김경진
1. 잠수함 장문휴
5월 22일 08:20 북위 36도 23분, 동경 134도 31분
오키제도 북동쪽 9km
연푸른 나뭇잎에 봄 햇살이 녹아나는 오월 하순 아침에도 수심 120미터는 암흑과 침묵의 세게였다. 검은 잠수함이 깊은 물속에서 서서히 드러났다. 잠수함은 물위에서 벌어지는 소란에도 아랑곳 않고 느리게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잠수함이 지나간 자리에 작게 물거품이 일었다.
거대한 향유고래가 특유의 짝짝거리는 소리를 내며 동료인지 확인하려 잠수함으로 접근했다. 향유고래의 주름진 작은 눈이 잠수함을 보고 놀라 치켜 떠졌고, 고래는 기겁하여 서둘러 심해로 사라졌다.
물속에는 잠수함이 내는 조용한 스크루 소리말고는 계속 침묵이 이어졌다.
가끔 낮게 지직거리는 소리가 물속으로 넓게 퍼져나갔다. 수면 일부분에서는 강한 바람을 내리받아 잔물결이 세차게 일었다. 이곳에서 기다란 줄에 감긴 뭉툭한 막대가 물속 깊이 내려갔다. 높은 소리가 짧게 바다를 진동시켰다.
5월 22일 08:25 오키제도 북동쪽 92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고래는 심해로 내려갔습니다. 이백육심공(2-6-0)도 상공에 있는 헬기는 이쪽을 탐지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목표 8은 방위 공십오(0-1-5)도, 거리는 4천 미터입니다.”
“목표 8, 12노트. 속도 및 침로는 변동 없습니다!”
음탐관 강인현 대위와 음탐장 최현호 상사는 바짝 긴장해 소나 디스플레이에 나타난 목표들을 추적하며 보고했다. 소나는 잠수함의 가장 기본적인 정보수집 장비로, 흔히 ‘음파탐지기’로 번역된다. 이들은 잠수함을 탐지하려는 수상목표들보다는 뒤에 서 있는 함장 때문에 더 신경이 예민해졌다.
함장 서승원 중령은 팔짱을 끼고 모니터에 나타난 목표들을 묵묵히 노려보며 장승처럼 우뚝 서 있었다. 함장 뒤에는 부함장이 서 있고, 항해장이 작도판을 보면서 계산에 열중하고 있었다. 무기장을 겸한 작전관은 음탐질 옆의 발사관제 컨솔 찰에서 바짝 긴장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이 배는 한국 해군의 신형 잠수함 ‘장문휴’함이었다. ‘장보고’급이라 불리는 기존의 209급에 비해 성능이 상당히 개량된, 어찌 보면 209급과 전혀 다른 잠수함이었다.
승조원들은 미국과 일본의 연합함대 외곽에서 대잡경계중인 미국 프리깃 밴더그리프트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태평양전쟁 때 과달카날(Guadalcanal) 상륙작전을 지휘한 미 해병대 1사단장의 이름 딴 ‘밴더그리프트(Vandegrift)'는 만재 배수량이 4천 톤에 달하는 올리버 해저드 페리(O.H Perry)급 프리깃(frigate)함이다.
해군에서 방위는 각도기처럼 360도로 세밀히 나눠 지정한다. 물론 기준점은 관측자의 위치이다. 동쪽은 090도, 남쪽은 180도, 서쪽은 270도이며, 북쪽은 공공(000)도, 또는 360도이다.
서승원 중령은 무표정하게 두 번째 목표를 시선에 집중했다. 함장은 미국 프리깃보다 그 뒤를 따라오는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에 더 신경이 쓰였다.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구축함 ‘하루사메’는 대잠수함전능력이 상당히 뛰어난 편이다.
거리가 멀어 흐릿한 목표들을 빼면, 소나컨솔에 밝게 빛나는 점은 두 개였다. 그 옆 대형 모니터는 장문휴의 전투정보시스템인 MSI-90U의 디스플레이 시스템인데, 밝은 전 두 개가 소나 디스플레이에서보다 훨씬 더 크게 표시되었다. 둘 다 마름모꼴 기호였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적 수상 전투함이었다. 마름모 중심에서 직선이 뻗어나와 곧장 중심, 즉 이쪽을 향했다.
“목표 방위 고정! 거리 3천5백 미터. 목표 9는 목표 8의 우측 후방 1천 미터입니다.”
음탐장 최현호 상사의 바짝 마른 목소리가 사령실을 뒤덮은 침목 속에서 홀로 작게 메아리쳤다.
거리가 계속 가까워지고 있었다. 승무원들 시선은 각종 모니터에 집중되어 있었다. 공격명령이 떨어져야 할 순간이 이미 한참 지나자 이들 사이에는 과도한 긴장감이 번지고 있었다.
“함장님! 지금 공격해야 합니다.”
참다 목한 부함장 진종훈 소령이 침묵을 깼다.
모니터에 나타난 목표 데이터에 온 신경을 집중하던 함장이 낮은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좋아, 공격한다. 작전관! 목표 데이터와 이미 산정해놓은 해석치를 파일에 저장해놓도록. 나중에 군소리가 없어야 하니까.”
“예! 알겠습니다.”
낮지만 우렁차게 대답한 작전관 김승민 대위는 함장의 명령이 공격명령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고 아연실색했다. 부함장의 호흡이 점점 가빠졌다.
대부분의 군함 승무원들이 그러하듯, 장문휴의 승조원들도 함장을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그리고, 이 해역에서는 수상함정이나 대잠항공기들이 잠수함을 탐지하기가 무척 어렵다. 하지만 적함과 이토록 가까이 접근하는 것은 아무리 소음이 적고 탐지당할 가능성이 적은 잠수함이라 해도 위험했다. 미국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들은 잠수함을 탐지하기 위한 각종 신형 장비를 무수히 많이 탑재했기 때문이다.
“목표 8, 방위 공십삼(0-1-3)도! 거리 3천 미터!”
“목표 9, 방위 공삼십사(0-3-4)도! 거리 3천9백 미터!”
적함들과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였지만 음탐장의 목소리가 이번에는 의외로 차분했다. 과도한 긴장감이 한도를 넘자 이제는 차라리 느긋한 심정이었다.
계속 긴장하고 있던 음탐관 강인현 대위는 함장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물곳은 모든 것이 불확실성의 세계였다. 구축함 같은 대형 전투함들은 예민한 함수소나를 갖추고는 있지만 소나가 전방의 모든 목표물을 포착하는 것은 아니다.
소나는 소리를 이용하는 탐지장비이다. 물은 소리를 전달하는 데있어 매우 훌륭한 매질이다. 물속에서 소리의 속도는 대략 초속 1,500미터 정도이다.
물속에서는 잠수함이나 어뢰 같은 무기들이 제트기처럼 빠른 속도를 내지 목하는 대신, 음파의 진행속도가 공기보다 훨씬 빠르다. 그래서 소나는 배와 해군에게 가장 중요한 탐지장비가 되었다.
잠수함이 내는 소리를 듣는 것이 패시브 소나, 소리를 직접 발생시켜 그 반사음을 잡아 목표의 방향과 거리를 파악하는 것이 액티브 소나이다. 그러나 파동인 음파는 진행중에 거리와 깊이에 따라 매질인 물의 성질이 달라지면 심하게 반사되거나 산란된다. 똑같아 보이는 바닷물이 어떻게 성질이 다른지 잠시 살펴보기로 한다.
넓은 바다 표면 바로 아래에는 공기와 접하는 표층수가 끊임없이 위아래로 대류한다. 그 깊이는 해류와 태양의 복사열, 그리고 바람의 강도 등 외부 기상조건, 특히 기온과 수온의 차이에 따라서 급격히 달라진다. 이 표층수는 계속 대류하므로 깊이와 관계없이 수온이 거의 일정하다.
일정한 깊이는 아니지만 표층수 밑에 수온약층이 잇다. 이 수온약층은 극히 안정되어 있고 대류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수심이 깊어질수록 수온이 급격하게 낮아진다.
그 아래에 심층수가 있다. 가장 아래에 위치해서 안정된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지열을 받은 심층수가 끊임없이 대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온이 거의 일정하다.
대체로 깊이에 따라 구분되는 이 세 가지 물은 수온, 염도, 밀도 등의 물리적 성질이 극잔적으로 다르다. 그래서 수온약층의 위아래 경계선을 기준으로 음파가 심하게 산란되고 반사된다. 이 경계면을 온도층이라고도 한다. 표층수와 수온약층 사이에 1차 온도층, 수온약층과 심층수 사이에 2차 온도층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바다를 수직으로 본 것에 불과하다. 바다에는 끊임없이 각종 해류가 흐르고 계절과 낮과 밤의 온도차 및 대륙과의 거리, 또는 바다에 유입되는 강물의 유무에 따라 수온과 염도가 달라진다. 그래서 같은 해역이라도 음파의 매질인 바닷물은 상황과 시간에 다라 그 성질이 끊임없이 바뀐다.
이것이 잠수함 승조원이나 잠수함을 탐지하려는 해군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요소들이다. 그러나 지형적, 계절적 요소가 가미되므로 바다에서 모든 것을 정확히 알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수상전투함이 바로 코앞의 잠수함을 놓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강인현이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바닷속에서는 모든 것이 확률인 동시에 불확실하다는 사실이었다.
강인현은 함장이 조금 전까지 잠수함의 심도와 침로를 약간씩 바꾸도록 명령했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그것이 미국과 일본 구축함의 함수 소나로부터 탐지당하지 않기 위한 행동임을 강인현은 알고 있었지만 왜 그렇게 이동해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항상 불확실한 바닷속 음파의 세계이지만 함장은 오랜 경험과 직관으로 어느 위치가 안전하게 숨을 수 있는 곳인지 파악하고 있는 모양 이었다. 강인현이 역시 함장님이라며 감탄할 때, 서승원 중령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바짝 긴장한 부함장과 작전관은 초조하게 함장의 입술에 시선을 집중했다.
“어뢰발사관 개방. 1, 3, 5, 6번 순서로 발사한다. 발사관 주수.”
“발사관 개방! 발사관 주수!”
함장의 느릿느릿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작전관이 낮지만 절도 있는 목소리로 복창하며 어뢰실로 이어지는 마이크에 반복했다. 유압모터가 작동되면서 잠수함 앞쪽 어뢰발사관 해치가 열리는 진동이 사령실에서도 약하게 느껴졌다.
강인현은 적함에서도 이 소리를 들을까 봐 불안했다. 유압모터 진동음은 적함에게 노출되지 않더라도 발사관에 물이 차는 소리는 적함이 들을 가능성이 컸다. 이 소리를 발사관 주수음이라고 하는데, 이 소리가 들린다면 잠수함의 공격의도가 극명하게 드러났다고 보면 된다.
- 발사관 개방. 주수 완료. 유선 유도 링크 완료!
사투리가 심한 사람이 억지로 표준말을 쓰는 듯한 묘한 억양이 스피커에서 낮게 울렸다. 이제 몇 시간 동안의 피 말리는 작업 결과가 판가름날 순간이 왔다. 작전과 김승민 대위와 음탐관 강인현 대위가 바짝 긴장하며 함장의 명령을 기다렸다.
“발사!”
함장의 짧은 명령이 떨어지자 깜짝 놀란 김승민 대위가 서둘러 목표를 지정하여 복창하며 손가락을 발사버튼 위에 올렸다.
“발사순서는 1, 3, 5, 6번. 1, 3번은 목표 8! 5, 6번은 목표 9에 할당합니다. 발사!”
5월 22일 08:30 오키제도 북동쪽 95km
미 해군 미사일프리깃 FFG-48 밴더그리프트, 전투정보센터
- 지잉~~
“왑!”
각각 희고 검은 피부를 한 소나 담당자 두 명이 동시에 비명을 지르며 헤드폰을 벗어던지고 손바닥으로 귀를 막았다. 조금 전에 전방에서 들려온 정체불명의 작은 소리에 집중하느라 볼륨을 잔뜩 높였기 때문에 그들은 소리 공격의 직격타를 맞은 것이다.
음탐수들은 그 고통에 얼굴이 진뜩 일그러졌지만 본능적으로 소나 디스플레이에 시선을 집중했다. 소나컨솔에는 이 음파가 어느 곳에서 발사되었는지 방위와 거리가 자동으로 계산되어 표시되어 있었다.
낮은 저주파음이 다시 함을 전동시켰다. 낮은 파장의 음은 진동으로 변화한다. 곧이어 똑같은 저주파음이 2회 더 이어졌다. 처음과 두 번째에 들린 소리는 밴더그리프트를 향하여, 다음 2회는 밴터그라프트와 약간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이럴 수가!”
강력한 소나음이 함체를 때리는 동안 망연히 서 있던 함장 잭 피터슨(Jack Peterson)중령이 나지막이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음파가 발사된 곳과의 거리는 불과 2천8백 미터였다. 수상전투함이 적의 어뢰를 피하기 위한 수단이 예인식 닉시(nixie)를 이용해서 회피하려 해도 함이 180도 선회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도저히 공격을 피할 수 없는 가까운 거리였다.
이건 매복에 의해 뒤통수를 맞은 것도 아니고 멀쩡히 눈뜨고 있다가 눈앞에서 코가 베인 꼴이었다. 도저히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잠수함을 잡기 위한 대잠초계중에, 그것도 매복해 있던 잠수함에게 정면으로 당한 것이다.
“밴터그리프트. 어뢰 2발 피격으로 간주합니다. 이탈하십시오.”
싸늘한 목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왔다. 함장이 뒤를 돌아보았다. 함내에서 유일하게 전투복을 입지 않고 미 해군 정복을 입은 마이클 포터 소령이었다. 훈련판정관이 포터 소령의 무릎 위에는 위성통신기에 무선 연결된 노트북 컴퓨터가 펼쳐져 있었다. 판정관이 키보드를 눌러 몇 가지 데이터를 입력했다.
그가 격침 판정키를 누르면 일본 요코스카에 있는 미 해군 7함대의 훈련통제센터와 인근의 전투함정에게 곧바로 통보된다. 그리고 그드르이 전투정보시스템에서 미 해군 프리깃 밴더그리프트를 효시하는 부호도 삭제될 것이다.
공격측과 방어측 무기체계의 능력과 반응양상에 따라 확률을 계산하여 피해 여부를 결정하는 일반적인 판정과는 달랐다. 이번 경우에는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에서 공격당한 것이다.
함장이 머리를 숙이고 잠시 한숨을 쉬다가 고개를 번적 들었다.
“5초간 급속 후진을 실시한다.”
구차한 변명을 필요없었다. 이 거리에서 적 잠수함의 공격소나음을 맞은 것은 격침 이외에 다른 판정이 나올 수가 없었다. 이 경우 피격당한 것으로 판정된 함정은 급속 후진하여 적과 우군에게 전열에서 이탈하게 된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이번 한미일 해군합동 환동해훈련에서의 규정이었다.
“급속 후진.”
함교로 이어지는 인터폰을 집어든 부함장의 목소리가 무척 침울했다. 그 분위기는 아직가지 얼떨떨한 상태에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승무원들에게 순식간에 전염되었다.
잠시 후 밴더그리프트의 주 추진기가 반응했다. 가변피치 프로펠러인 밴더그리프트의 주 추진기는 메인 샤프트를 역회전시키지 않고 스크루 날개 각도를 변경하는 것만으로 후진이 가능했다. 지금까지 빠른 속도로 항주한 것은 아니었지만 진행방향과 반대쪽으로 움직이려 하자 관성 때문에 밴더그리프트가 잠시 크게 진동했다.
* * *
“함장님, 하루사메도 피격됐습니다. 하루사메 비행갑판에서 연료보급중이던 시 호크(Sea Hawk) 17도 역시 삭제됐습니다.”
판정관 마이클 포터 소령이 조금전보다는 많이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젠장! 빨라서 좋군.’
졸지에 전사자가 된 피터슨 중령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시 호크 16. 즉 밴더그리프트 소속의 SH-60B 대잠헬리콥터가 전방 10km에서 초계중이었지만 이제는 헬기를 호출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밴더그리프트는 입을 꾹 다물고 죽은 척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게임의 규칙이었다.
5월 22일 08:35 오키제도 북동쪽 93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무기조종 컨솔 앞에 서 있던 작전관 김승민 대위는 아직도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조금 전 김승민의 손가락은 순간적으로 어뢰 발사버튼을 누를 뻔했다. 하마터면 실제로 어뢰를 발사할 뻔한 것이다.
“어이~~ 수원말갈, 잘돼 가나?”
김승민은 괜히 옆에 앉은 강인현 대위의 어깨를 특 치며 말을 걸었다. 김 대위는 거북한 몸짓을 남들이 느끼지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그를 향한 시선은 없었다. 음탐관 강인현은 벌개진 얼굴로 땀을 뻘뻘 흘리는 김승민을 힐끗 쳐다보고는 무심하게 계속 작업에 몰두했다.
실전과 같은 훈련에 몰두하다 보면 간혹 있는 일이었다. 물론 훈련중에는 발사과정에 여러 가지 안전장치가 추가되긴 하지만 아주 가끔 오발 사고가 나기도 했다. 그리고 또한 극히 드문 경우지만 합동훈련중인 상대방 함정을 명중시키는 경우도 있다.
1992년 10월, 에게해에서 dirks 훈련을 실시중이던 미국 항공모한 새러토가(Saratoga)에서 시 스패로(Sea Sparrow) 함대공 미사일 2발이 실제로 발사되었다. 그리고 그 미사일은 합동훈련중이더 터키 구축함을 목표로 삼아 돌진했다.
하픈 같은 대함미사일도 아닌 함대공 미사일에 명중된 터키 해군의 구식 구축함은 대파되고 승무원 20명이 사상당했다. 선체는 아예 수리불능이 되었고, 미국은 그 보상으로 자국의 비교적 신형 프리깃함을 터키에 무상대여해야 했다.
“목표 8, 가속하고 있습니다. 회전수가 빠릅니다. 아! 급속 후진입니다.”
“그렇습니다. 목표 8은 가속했지만 캐비테이션 패턴이 다릅니다. 스크루 피치를 바꿨습니다.”
음탐관 강인현 대위가 최현호 상사를 거들었다. 스크루의 날개각을 바꾸어 역추진하는 경우, 날개에 부딪치는 물의 표면저항과 캐비테이션(cavitation)이 훨씬 커지고 효율은 떨어진다.
“밴터그리프트가 격침을 인정하는군요.”
작전관 김승민이 작도판을 확인하며 싱글벙글 웃었다. 작전관과 함께 주변의 다른 함정 위치를 확인하던 함장이 초조한 듯 말했다.
“그래, 목표 8은 격침됐다. 그런데 목표 9는 아직 반응이 없나?”
“아직 없습니다. 아! 목표 9가 가속합니다. 급속 후진 확인합니다.”
뒤를 돌아보는 강인혀느이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한번에 세계최강의 해군국이라는 미국과 해군왕국 일본 해상자위대의 주요 함선 두척을 해치운 것이다.
음탐장 최현호 상사도 주먹을 불끈 쥐며 기뻐했다.
조금 전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하루사메의 후진이 늦었다면, 즉 피격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장문휴의 승조원들 사이에서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한국인들은 지금도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
뿌듯해진 진종훈 소령이 나서서 음탐수들에 대한 염려로 치하를 대신했다. 과묵한 함장 밑에 있다 보니 부함장의 치하도 역시 무뚝뚝한 편이었다.
“강 대위! 귀를 조심하라구, 이번 훈련에서 죽어나는 건 음탐실 요원들뿐이니까.”
“알겠습니다. 부장님!”
미세한 소리도 크게 증폭하는 소나 하이드로폰은 폭발음 같은 커다란 소리를 훨씬 더 크게 증폭시킬 수 있다. 물속에서 나는 모든 소리를 헤드폰으로 들어야 하는 음탐수들이 들으면 귀머거리가 될 정도이다.
그러나 일정한 크리 이상의 소리가 기기 내에서 증폭되는 과정에서 많은 양의 전류가 발생하면 릴레이 스위치에 으해 그 흐름이 차단된다. 그래도 음탐수들은 갑작스러운 폭발음 앞에 노출되어 큰 고통을 겪는 수가 많다.
조금 전에 장문휴함으로부터 갑작스럽게 공격소나음을 받은 밴더그리프트의 음탐수들이 겪은 상황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잠항. 심도 200미터.”
“잠항한다. 잠항각 10도 심도 200미터!”
함장의 무미건조한 명령을 부함장이 절도있게 복창했다. 부함장 진종훈 소령은 가끔씩 판정관을 힐끗거리며 웃음을 억지로 참았다. 이번 훈련의 판정관이라는 직함이 붙은 미국 해군 소령 제임수 레스턴(James Reston)은 검게 번들거리는 볼이 줄룩해져 있었다.
지금가지 규칙위반이라고 트집을 잡거나 한국 잠수함의 성능을 무시하며 뭐라고 자꾸 씨부렁거리던 태도에 비하면 많이 조용해진 편이었다. 더불어 미 해군에서 복무중이 한국계 통역병도 기가 죽어 입을 다물었다.
잠수함의 부상과 잠항은 밸러스트 탱크에서 부력을 조절하거나 함미의 횡타를 조작흠으로써 이뤄진다. 다른 잠수함과 달리 X자 모야의 잘개를 가진 장문휴함은 종타, 횡타라 구분지을 것이 없었다.
함미에서 X자로 뻗은 네 개의 날개가 모두 아래쪽으로 기울자 잠수함은 마치 짐이 잔뜩 실린 화물차가 내리막길을 미끄러지듯 서서히 기울었다.
“침로 이백팔십공(2-8-0). 출력 50퍼센트.”
“키 왼편 15도 침로 이백팔십공도 출력 50퍼센트로 증속!”
“출력 50퍼센트로 증속!”
“키 왼편 15도! 침로 이백팔십공도.”
입이 반쯤 찢어진 부함장이 함자의 명령을 세부적으로 지정하자, 얼굴이 안동 하회탈처럼 변한 작전관과 조타수들이 다시 우렁차게 복창했다. 잠수함이 서서히 선회하며 속도가 빨라졌다.
검푸른 동해바다에서 수심 200미터의 심연은 완전한 어둠의 세계였다. 오로지 소리로만 모든 것을 파악해야 하는 잠수함에게 어둠이란 장애가 아니라 오히려 편안한 집과 같은 친구였다.
눈먼 강철덩어리가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서서히 움직였다.
* * *
5월 22일 08:37 오키제도 북동쪽 105km
미 해군 미사일순양함 CG-53 모빌베이, 전투정보센터
“밴더그리프트와 하루사메가 당했습니다.”
작전참모 매튜 해리스(Mattew Harris) 중령이 슬금슬금 함대 대잠지휘관의 눈치를 보며 보고했다. 대잡지휘관 제프 오코너(Jeff O'Connor) 준장은 해리스 중령이 올린 간략한 보고서를 뚫어질 듯 노려보았다.
“제기랄!”
오코너 준장이 부하들이 깜짝 놀랄 만큼 큰 소리로 욕지기를 내뱉었다. 미 해군 미사일 순양함 모빌베이(Mobil Bay)에 탑승한 오코너 준장은 다혈질로 소문났지만, 부하들 앞에서 이렇듯 큰소리로 욕지기를 내뱉는 것을 해리스 중령은 처음 보았다.
“C1037 지점입니다. 현재, 주변 수역 대잠항공기로는 시 호크 16이 있습니다만 지금 연료가...”
해리스 중령의 보고를 오코너가 중간에 끊었다.
“알고 있어! 시 호크 16이 밴더그리프트로 귀환하거나 다른 곳으로 날아가거나 하는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 싹싹 긁어모아서 지금 투입시켜! 당장 그놈을 잡아!”
오코너 준장은 정도 이상으로 흥분하는 것 같았다. 해리스는 대잠 지휘관을 진정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 호크 16은 밴더그리프트로 귀환하면 안 됩니다. 훈련규칙상 탑재헬기는 침몰한 함정에...”
“이런 답답하긴! N-34를 연결해!”
상관으로부터 호통을 들은 작전참모 해리스 중령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해리스는 왜 이런 꾸지람을 들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에게는 모함을 잃어버린 대잠항공기의 귀환문제를 결정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훈련은 승패의 결과보다는 그 과정이 중요했다. 훈련을 하다가 인원이나 장비를 상실한다면 미합중국으로서도 큰 손해였다. 그런데 이 자리에 있는 몇몇 사관들은 이번 훈련을 진짜 전쟁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해리스 중령은 오코너 준장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그가 왜 이리 잔뜩 흥분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지금은 실전이 아니라 단지 우방국들과의 훈련일 뿐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N-34를 연결합니다.”
해리스 중령은 뒤로 돌아서서 항모기동부대의 N-34, 즉 항공작전장교를 호출했다. 그는 작업을 하면서도 속으로 상관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그래. 마음대로 지껄이라구, 젠장!’
해리스 중령은 오코너 준장이 원하는 것이 명령라인을 연결하라는 것인지, 직접 통화를 하겠다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또다시 그의 성질을 받아내기는 싫었다. 몇 번의 통화시도 끝에 항공모함 에이브럼 링컨(Abraham Lincoln)의 항공작전 담당장교를 확인한 뒤 오코너 준장에게 수화기를 건넸다.
함대 대잠지휘관은 또 다른 상대에게도 계속 신경질을 부렸다. 그 사이에 해리스 중령은 전술정보시스템의 디스플레이를 보며 대잠헬기 시 호크 16이 귀환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함정을 찾아 대잠헬기의 착함을 유도했다.
5월 22일 08:55 오키제도 북동쪽 10km
미 해군 항공모함 CVN-72 에이브럼 링컨
-펭귄 파이브(5)! 이륙을 허가한다.
항공관제센터에서 내려진 명령은 대잠초계기 S-3B 바이킹의 조종석에 올라탄 파일럿과 비행갑판에 서 있던 캐터펄트 아피서에게 동시에 전달되었다. 명령이 떨어진 이후 대화는 필요하지 않았다.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소음 때문에 어차피 항공모함 비행갑팜에서는 말이 들리지도 않는다. 임무에 따라 갖가지 색깔의 조끼를 입은 함상요원들이 넓은 한모 비행갑판 위를 바삐 움직였다. 이들간에는 오직 수신호와 색깔만이 동원 가능한 의사소통 수단의 전부였다.
캐터펄트 아피서(Catapult Officer), 즉 항공기 이륙을 책임지는 발함사관의 수신호에 따라 조종사가 엔진출력을 최대로 높이기 시작했다. TF-34 터보팬 엔진의 작동음이 날카롭게 울려퍼졌다.
“저치 오늘 고생 좀 하는군. 팔이 꽤나 아픈가 본데?”
“그러게 말입니다. 30대나 띄웠으면 교대해줄 때도 됐는데, 윗사람한테 찍혔나 봅니다.”
바이킹의 기장 어윈 로스(Irwin Ross) 대위가 보기에도 지친 듯한 발함사관의 수신호를 보며 이죽거리자 부기장이 맞장구쳤다. 그러나 이들도 항모로 귀환한 지 정확히 50분만에 다시 비행에 나섰으니 남의 말을 할 때가 아니었다.
로스는 이번 훈련이 너무 빡빡하다고 투덜거렸다. 항공모함 링컨에 소속된 제 9항공항모단의 대잠비행대에는 대잠초계기 S-3B 바이킹 6대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대잠비행대 소속 항공기 모두 날개에 불이 날 지경이었다. 함대 소속 대잠헬기들도 마친가지로, 연료를 공급받을 때 외에는 거의 대부분 시간을 바다 위에서 비행하며 보냈다.
그러나 가상 적인 잠수함 2척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해군력이 형편없다고 알려진 한국 해군 소속 소형 디젤 잠수함들의 존재는 하대 대잠방어 임무에 투입된 모두에게 점점 크게 느껴졌다. 자칫하면 미국해군이 크게 망신을 당할 판이었다.
전에도 한국 잠수함에 의해 대잠방어망이 뚫린 적이 종종 있었다. 그렇지만 잠수함들이 이번처럼 완벽하게 숨어서 방어망을 유린한 것은 처음이었다.
노란색 재킷을 입은 발함사관이 사출준비신호를 보내왔다. 이제 이륙할 순간이었다. 로스 대위는 바짝 긴장ㅎ산 채 조종간을 잡았다. 항공 모함 캐터펄트에서 퉁겨보지 못한 공군 애송이들은 이런 느낌을 잘 모를 것이다. 여기서는 2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정지상태에서 자그마치 시속 250km로 가속된다.
동료들 가운데는 간혹 발함 순간의 가속도와 그로 인해 생가는 느끼함을 즐기는 녀석들고 있었다. 하지만 대잡기 조종사 로스 대위에게는 아직도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발함사관이 무릎을 꿇으며 앉았다.
“자, 간다.”
로스 대위는 반사적으로 짧게 심호흡했다. 엔진출력이 100퍼센트에 이르자 기체는 움직이고 싶어 안달하듯 진동이 거셌다. 그러나 사출기에 단단히 고정된 S-3B 바이킹 대잠초계기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발함사관이 왼팔을 크게 한 바퀴 돌리며 전방을 가리켰다. 과연 선상 위의 발레라고 불릴 만큼 큰 동작이었다.
그 순간 덜컹 하는 충격과 함께 펭귄 파이브, S-3B 대잡초계기는 비행갑판 위를 급가속하며 달려 어느새 푸른 바다위로 내팽개쳐졌다. 로스 대위는 순간적으로 숨을 멈췄다.
‘역시 느끼해. 젠장!’
잠깐 기우뚱거리며 푸른 바다 위로 떨어지려던 펭귄 5가 가속하며 서서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오리가 물위를 뜀박질한 다음 짧은 날개를 퍼덕여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과 흡사했다. 뭉툭하게 생긴 함상 제트비행기 S-3B는 오리보다 날개가 짧은 펭귄을 연상시켰다.
바다 위에는 각종 전투함들과 헬기들이 잠수함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물고기를 찾아 수면과 공중에서 난무하는 하얀 갈매기떼 같았다. 로스 대위가 부여받은 임무도 이들과 마찬가지였다.
“한국 놈들의 잠수함? 그래, 쇼를 시작해보자고.”
5월 22일 09:10 오키제도 동쪽 80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 사령실
- 통신실입니다. 벨 링어입니다!
“벨 링어뿐인가? 그밖에는?”
음탐실 소나컨솔 뒤에 서 있던 함장 토마스 가르시아(Thomas Garcia) 중령은 통신실의 호출에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긴박한 상황에서 수면밑에 있는 잠수함을 긴급호출하는 방법인 벨 링어(bell ringer)를 받고 놀라지 않을 함장은 아무도 없었다.
수심 200미터에서 항주하고 있던 미국 해군 공격형 원자력 잠수함 라 호야(La Jolla)는 일반적인 전파통신을 할 수가 없었다. 물속 수십미터 깊이에서는 대낮에도 빛이 들어가지 않아 암흑인 것과 마찬가지로 전파도 깊은 물곳을 통과하지 못하고 산란하여 소멸한다.
하지만 파장이 수십 킬로미터에 수천 킬로미터에 이를 정도로 긴 초장파(VLF)와 극초장파(ELF)는 수십 미터 이상까지도 투과가 가능하다. 그러나 파장이 긴 대신 진동수가 낮기 때문에 필요한 정보를 총분히 송출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
파장이 긴 대신 1분 동안 기껏 문자 몇 개만 보낼 수 있으므로 암호 코드가 붙은 식별표를 사용하는 방법 외에 구체적인 명령을 지령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벨 링어는 명령문을 받기 위하여 잠수함에게 수면 가까이 부상하라는 신호인 셈이다.
마이크를 잡고 통신실에 확인한 그는 간단한, 그러나 매우 실망스런 대답을 들어야 했다.
- 없습니다.
급박한 전쟁위기가 아니라면 벨 링어를 쓸 필요가 앖을 것이다. 그리고 웬만한 상황에서는 짧으나마 암호화한 명령어를 잠수함에 송신하는 편이 좋다. 잠수함은 은밀성이 생명인데, 물위로 부상했다가는 적의 눈에 띄기 쉽기 때문이다.
주면에 한국 잠수함이 있다는 것이 확실한데, 안전한 갚은 해역을 떠나 부상한다는 것이 함장은 무척 꺼림칙했다.
“대체 뭐야?”
함장은 서둘러 사령실로 돌아오며 외쳤다. 승무원들의 순이 휘둥그레졌다. 뭔가를 감지한 무함장이 함장의 입술을 주시했다.
“잠항관, 부상한다! 잠망경 심도까지 올라간다.”
함장의 명령에 잠항관이 패널을 조작하여 조타수들에게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부상한다. 부상각 5도 업트림. 10퍼센트 배수.”
로스앤젤레스급 공격형 원자력 잠수함의 전방과 후방 밸러스트 탱크 안쪽에는 잠수함의 자세를 미세하게 주종할 수 있도록 트림 탱크가 장착되어 있다. 원리는 밸러스트 탱크와 비슷하다.
밸러스트 탱크에 공기를 주입하여 부상하는 경우, 수면 가까운 심도에서 멈추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자동차와 같은 제동장치가 없는 잠수함이 부력에 관성까지 붙어 가끔 물위로 튀어나가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같은 경우 물밖에 아군 함정만이 있으므로 적으로부터 탐지될 위험은 적었다. 하지만 부상할 때 나는 소리가 워낙 커서 목표 잠수함이 라 호야를 탐지할 가능성이 컸다.
“잠망경 심도까지 말입니까? 함장님?”
부함장 새뮤얼 폴머(Samuel Polmar) 소령이 함장에게 되물었다. 별도 지시가 없는 한 벨 링어가 울리면 수면 가까이 접근하여 장파 통신으로 세밀한 정보를 수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ELF/VLF 수신용 안테나의 길이가 수천 피트에 이르니 구태여 수면 가까이 올라갈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아예 잠망경 심도까지 부상하라는 함장의 의도가 궁금했다.
“그래. 올라가 보자구, 샘. 대체 뭘 원하는지 궁금하네.”
함장 가르시아 중령은 뭔가 불만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잠망경 올려! ESM 마스트, 통신 마스트 모두 올린다.”
주변 상공에 경계할 만한 적 대잠초계기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라 호야는 부상에 따른 기본적인 절차를 취하고 있었다. 제해권과 제공권을 쥐고 있는 측에서 잠수함의 위력은 배가된다. 껄끄러운 적인 대잡항공기들로부터 공격당할 가능성이 줄어들므로 좀더 과감한 작전을 펼 수 있기 때문이다.
유압장치로 구동되는 마크 18 탐색용 잠망경이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올라왔다. 부함장도 그 옆에서 마크 2 잠망경을 뽑아들고 관측을 시작했다. 수면에는 파도 위로 성조기와 일본 해군기를 단 마스트 몇 개가 멀리 보였다.
‘해상자위대로군.’
토마스 가르시아가 정정했다. 아직까지 일본에는 공식적인 군대가 없다. 해상자위대가 해군력으로만 따지면 세계에서 세 번째, 또는 네 번째에 드는데도 해자대는 법적으로 군대가 아닌 것이다.
가르시아 중령이 왼쪽 눈을 잠망경 접안구에 대고 처점을 조절했다. 미국 잠수함의 잠망경은 한쪽 눈만을 대는 방식이다. 가까이에서 고속으로 항주하는 구축한 한 척이 홀수선까지 보였다. 하늘에는 대잠헬기 두 대가 비행하고 있었다.
삼일만에 처음 보는 푸른 하늘이었다. 가르시아 중령은 바깥을 구경하고 나자 속이 시원해졌다. 공기순환 시스템과 바닷물을 전기분해해서 얻어지는 고순도 산소로 승무원들이 호흡하는 원자력 잠수함에서는 가끔 물위로 떠오르더라도 내부공기를 교환하지 않는다. 함내 공기는 부상 전과 다를 게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는 순전히 기분문제였다.
“2번 잠망경, 방위 0-1-6에 수상함정 다수 포착. 아군 상륙양용그룹으로 판단됩니다. 이상 없습니다.”
함장은 폴머 소령의 보고를 듣고 나서야 얼핏 정신이 들었다. 잠망경을 내린 가르시아 중령이 구조물에 매달린 함장용 마이크를 붙잡았다.
“이쪽도 이상없다. 통신실 보고하라!”
- 통신실입니다. 장거리 단파통신, 위성통신 채널 모두 연결됐습니다. 지정된 명령문 수신 완료했습니다.
“좋아, 잠항한다.”
함장은 40분쯤 전에 한국 잠수함에서 발사한 소나발신음을 들었다. 그 잠수함이 숨어 있던 곳을 멍청하게 지나가던 수상함정 두 척이 꼼짝없이 매복에 걸려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위성통신을 통한 명령문은 그 사건과 관련될 것이라 예상했다.
잠시 후 통신실에서 수신한 명령문이 어린 티가 채 가시지 않은 수병을 통해 가르시아 손에 쥐어졌다. 함장은 잠시 명령문을 보더니 그 내용을 믿기 어려워 무심결에 소리쳤다.
“뭐야? 이건!”
펠리컨 6에서 범고래들에게
대잠방어망에 쥐새끼 한 마리가 파고들었다.
범고래 1, 2는 현재 임무를 해제하고 담당구역을 변경한다.
범고래 1은 C1037 인근 해역으로 이동한다.
이 해역에는 현재 다수의 아군 대잠초계기와 대잠헬기들이 작전중이다.
범고래들은 대잠기들을 무시하고 쥐새끼를 잡을 것.
“기가 막히군. 두 척이 다한 건 알고 있지만... 함대 대잠지휘관이 너무 흥분한 것 아냐?”
가르시아 중령이 종이를 부함장에게 건넸다. 부함장이 전문을 읽고 무척이나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주변에 있는 사관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부함장을 주시했다.
“우리가 아군 대잠기에게 당하다느 말든, 어떻게 해서든 한국 잠수함을 잡으라는 뜻 아닙니까?”
“그러게 말일세. 함대 대잠지휘관이 상당히 열 받았나 보군”
“명령에 따르실 겁니까? 이렇게 해서는 대잠기 및 수상함들과의 유기적 협조체제는 무너지고 혼선만 빚을 뿐입니다.”
“그럼 어떡하겠나? 계급이 깡패지.”
함장은 이 말을 몇 년 전 어느 합동해군훈련에서 한국 해군 장교에게서 들은 것 같았다. 디젤 잠수함에 탑승한다던 김승민이라던가? 당시 그 장교는 영어는 약간 서툴렀지만 상당히 똑똑한 친구로 기억에 남았다. 하지만 감히 상급자에게 맞대응하는 건방진 놈이라 좋은 인상을 가지지는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까지... 너무 심했습니다.”
“제기랄! 훈련이 종료된 다음에나 이 문제를 제기하자고.”
현재 라 호야는 잠수함만의 단독작전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고 함대 방어임무에 투입됐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함장은 함대 대잠지휘관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5월 22일 09:35 오키제도 북동쪽 90km
미 해군 순양함 모빌베이, 전투정보센터
“휴잇(Hewitt)에서 보고입니다. 한국 해군으로 추정되는 잠수함을 추적중이랍니다.”
느긋한 척 팔짱을 끼고 앉아 있던 오코너 준장이 통신사관으로부터 보고받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탐지했다고 해서 꼭 격침시킨다는 보장은 없지만 잠수함의 위치를 탐지하지 못했을 때 가졌던 불안감은 상당히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속이 편할 리 없었다. 소득도 없이 전투함 두 척을 잃었으니 속에서 불이 날 지경이었다. 짐짓 여유를 부리며 일어난 오코너가 스프루언스(Spruance)급 구축함 휴잇의 위치를 확인했다. 이미 격침판정을 받은 밴더그리프트와 하루사메의 자리에 휴잇이 있었다. 잠수함은 그 근처에 있을 것이다.
* * *
“좋아, 펭귄 파이브와 세븐을 먼저 보낸다. 작전권을 휴잇에게 할당하라. 펭귄들을 잘 부리라고 전해! 작전참모, 비행대기중인 모든 대잠 헬기 그룹을 확인하게.”
오코너 준장은 참모들에게 지시를 내리며 호주머니를 뒤적거렸다. 파이프를 꺼내 담뱃가루를 채우려던 함대 대잠지휘관은 해리스 중령이 보고를 위해 다가오자 하던 일을 그만두었다.
대잠정보 컨솔 옆 큰 모니터에는 함대상공에 머무르고 있는 대잠헬리콥터와 대잡초계기들의 비행가능상태가 표시되고 있었다. 연료보유량과 비행지속시간 등을 미리 면밀히 계산해둔 해리스 중령이 모니터에 나타난 점들을 가리키며 보고했다.
“커츠(Curts) 탑재 헬기가 상공에 머무르고 있습니다만 곧 귀환시간입니다. 휴잇의 헬기 역시 연교가 거의 다 됐습니다. 주변 해역에 있는 것들은... 예! 링컨 소속 헬기가 가장 가깝습니다.”
해리스 중령이 자세히 보고하는 동안 오코너 준장은 귀찮다는 듯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결론만 간단히 보고하라는 뜻이었다.. 해리스 중령이 바짝 얼어붙어 보고를 마치자마자 오코너의 명령이 떨어졌다.
“좋아. 빨리 투입시켜야 해. 링컨에 연락하게.”
해리스 중령이 통신실 쪽으로 가자 오코너가 투덜댔다. 오코너는 항상 실전처럼 훈련해야 제대로 된 훈련효과가 난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다. 참모들 선에서 처리될 몬제까지 시시콜콜 보고받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 잠수함들에게 망신당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는 점점 초조해졌다.
함대 대잠지휘관 오코너 준장은 빈 파이프를 물고 전면의 전술 디스플레이를 응시했다. 화면에는 구축함 휴잇, 그리고 대잠초계기인 펭귄 파이브와 세븐을 상징하는 각각의 기호들에서 적 잠수함으로 향한 직선이 그려지며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5월 22일 10:05 오키제도 북동쪽 86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잠수! 100미터로 잠항한다.”
잠망경을 보던 함장이 갑자기 급속 심도조정 명령과 함께 서둘러 잠망경을 내렸다. 얼굴 높이에 있던 잠망경 조정 패널은 손잡이가 접힌 채로 바닥에 뚫린 커다란 홈통 밑으로 모습을 감췄다.
“심도조정, 100미터로. 잠항각 10도!”
부함장은 영문도 모르고 서둘러 명령을 내렸다. 조타수가 자그마한 조종간을 잡아 앞으로 밀자 한국 해군 소속 잠수함 장문휴의 선체가 아래쪽으로 기울었다. 잠수함을 급속히 해저를 향해 곤두박질쳤다.
갑자기 허둥대는 승무원들을 보며 훈련판정관 레스턴 소령이 이를 드러내며 히죽댔다. 번들거리는 검은 뺨과 대비되어 하얀 이가 반짝거릴 정도였다.
“항공기였다. 저공비행중이었어. 음탐실! 수면에 새로운 접촉 없나?”
서승원 중령이 잠시 가쁜 숨을 골랐다. 조금 전까지 잠망경에 연결 된 모니터를 통해 외부상황을 관측하던 부함장이 화들짝 놀랐다. 부함장은 잠시 푸른 하늘에 시선을 빼앗겨 비행기 같은 것은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 없습니다. 수면상황은 조용합니다.
“함장님, 마지막 상황을 리플레이합니다.”
부함장이 리코더를 조작하자 사령탐 전면에 붙박이 대형 모니터가 작동하며 잠학 직전의 상황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방위는 공이십오(0-2-5)도입니다. 항공기는... 쌍발입니다. 아! 바이킹 같습니다.”
“바이킹이 맞아.”
진종훈 소령이 보고하자 긴장이 가신 서승원 중령이 들릴 듯 말 듯 내뱉었다. 화면 한쪽 구석에 북쪽에서 접근하는 항공기 실루엣이 작지만 선명하게 나타났다.
이 비행기는 날개 하단 양쪽이 불룩한 모습이었다. 이곳은 제트엔진의 흡입구가 틀림없었다. 형식명 S-3B 바이킹은 미국 항모항공단의 주력 대잠초계기이다.
장문휴로서는 실로 위험한 순간이었다. 잠망경을 노출시킨 시간이 짧았지만 바이킹은 정밀한 대수상레이더를 갖춘 항공기였다. 발견되었을까? 화면은 거기서 끝이었다. 녹화된 야이 너무 적었다.
“바이킹 침로는 북쪽 같습니다.”
비디오 리코더 화면을 주의깊게 본 진종훈 소령이 바이킹의 방위를 추정했다. 서승원 중령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뜻밖의 명령을 내렸다.
“좋아, 잠망경 심도로 다시 부상한다.”
“심도조정. 잠망경 심도로 부상!”
함장의 명령에 조종컨솔 앞에 서 있던 부함장이 복창하자 조함병이 조종간을 당겼다. 항공기 조종간처럼 생긴 잠수함 조종간은 원리도 같다. 조종간을 당기자 함미의 종횡타가 위쪽으로 꺾이며 선체가 서서히 상승했다.
훈련판정관 레스턴 소령의 시선이 재미있다는 듯 함장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함장의 저돌적인 행동을 지켜보며 조만간 함이 격침판정을 받아 부상할 것으로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그의 임무는 이번 훈련에서 한국 잠수함 장문휴의 작전 전반을 체크하고 금지된 전술을 감독하는 판정관이었다. 아직까지 특별한 상황은 없었고, 그가 개입할 만한 일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가 받은 다른 임무는 한국 잠수함의 성능을 체크하고 한국 해군이 미군에 알리지 않은 정보를 파악하는 일이었다. 이것은 일종의 스파이 행위였지만, 다른나라에 파견되거나 외국 함정에 탑승한 군인은 기본적으로 스파이 임무를 수행했다.
“대잠초계기가 통과한 직후가 그래도 안전하겠지요?”
함장이 레스턴 소령에게 뭐라고 떠들면서 싱긋 웃었다. 레스턴 소령이 인상을 약간 찌푸렸다. 어제와 오늘, 처음 듣는 한국어는 귀에 상당히 거슬렸다. 수년간 근무했던 사세보에서의 부드러운 일본말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판정관 위치라서 그런지 뭔가 함장이 시비를 거는 것처럼 느껴졌다. 곧 그에게 익숙한 영어가 들렸다. 통역병이 함장 말을 다시 영어로 옮겨준 것이다.
‘뭐라고?’
레스턴 소령이 말뜻을 알아채고 놀라 함장을 다시 쳐다보았다. 미국 공격잠수함 함장들이 아무리 저돌적이라 해도 대잠초계기가 상공을 통과한 직후에 잠망경 심도까지 다시 알라갈 정도는 아니었다. 잠수함은 분명히 수면을 향해 치솟고 있었다.
레스턴 소령은 간신히 몸의 균형을 잡으며 한국 해군 함장의 돌발적인 행동에 시선을 집중했다.
함장이 잠망경 작동 버튼을 눌렀다. 바닥으로 내려갔던 잠망경이 미끄러지듯 올라왔다.
“ESM 마스트 작동준비!”
서승원 중령이 명령을 내리며 잠망경 접안구에 눈을 댄 채 한 바퀴 빠르게 돌았다. 물위 특별한 것은 없었다. 잠망경 상층부에는 간단한 전파감지기가 있었지만 그것으로 정밀한 수색을 할 수는 없다. 위험경보만 할 뿐 정밀한 수색을 위해서는 ESM 장비가 탑재된 마스트가 필요하다.
“ESM 마스트 올려! 탐지시간 10초 주겠다.”
부함장이 ESM 마스트를 직접 조작했다. 그리고 마스트가 수면 위로 올라간 직후부터 스톱워치를 꺼내 시간을 재기 시작했다.
“잠망경 내린다. ESM 어떤가?”
잠망경이 다시 하강하여 하얀 잠망경 몸체를 드러내며 바닥에 고정됐다. 함장이 ESM 분석기 앞으로 다가왔다.
“ESM 마스트 내려!”
통신관 이홍기 중위는 아까부터 허둥대고 있었다. 눈치가 빠르고 말이 많은 젊은 장교인데, 상급자들로부터 아직 다듬을게 많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ESM 마스트에서 감청한 전파정보는 분석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전파 노이즈는 세 곳입니다. 두 개는 대수상레이더 시그널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전술항법지시기(TACAN) 전파 같습니다. 그런데 매우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동료들에게 ‘까불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홍기 중위의 목소리가 함장 앞에서는 약간 더듬거렸다. 함장이 익숙지 않은 미소를 지으며 이중위에게 물었다.
“미국 녀석들은 수상함정 대부분이 대잠헬기를 운용한다. 항공기 유도용 전파라 해서 반드시 항모라고 할 수는 없겠지?”
함장 얼굴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오자 이홍기 중위가 바짝 얼어붙었다. 반쯤 일어나다가 주저앉은 이홍기 대신 부함장이 나섰다.
“그렇습니다. 놈들 항모전단이 자주 쓰는 트릭 하나가 항공모함의 테이캔(TACAN)을 완전히 끄고 미리 약속된 다른 방향의 구축함에서 유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테이캔 방향에 항모가 있다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부함장 말이 옳았다. 항공모함과는 전혀 다른 함정에서 항공기를 유도하고 항모는 미리 정해진 다른 방향에서 항공기를 불러들일 수 있었다. 이것은 막강한 미국 항모전단에 대항해 공대함 미사일 공격을 위주로 하는 구 소련과의 해상전투에 염두에 둔 전술이었다.
“좋아, 믿을 건 소나뿐이군. 제군! 통신감청으로 얻을 수 있는게 많기도 하지만 하나도 없는 경우도 있다. 명심하도록.”
“예, 명심하겠습니다!”
함장이 자리를 뜨자 이홍기 중위가 유달리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놀란 부함장이 손가락을 입술로 가져갔다. 여기는 절대 침묵이 필요한 잠수함이었다.
“침로 변경한다. 방위 일백칠십오(1-7-5)! 심도조정 200미터. 잠항각 15도.”
“침로 변경! 방위 일백칠십오도!”
“심도 조정! 200미터. 잠항각 15도!”
잠수함 장문휴의 선체가 좌현으로 기울자 아래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통역병의 통역이 늦어 다른 곳에 한 눈을 팔던 레스턴 소령은 함이 심하게 기우는 순간 잠시 휘청댔다. 장문휴는 수면 및 물고기를 노리는 물새처럼 해저를 향해 급강하했다.
5월 22일 10:35 오키제도 묵쪽 70km, 상공
미 해군 S-3B 바이킹, 코드명 펭귄 파이브
“투하!”
“투하!”
명령하자마자 부기장이 소노부이 투하 버튼을 눌렀다. 이미 익숙해진 작은 소리가 들리고 진동이 느껴졌다. 대잠초계기 바이킹의 기장 어위 로스 대위는 고개를 들어 창 밖을 살폈다. 파란 바다 위에 점점이 떠 있는 전투함들이 하얀 항적을 만들며 달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로스 대위가 헤드셋의 기내용 버튼을 눌렀다. 시끄러운 비행기 엔진 소리를 뚫고 밀튼 로젠벅(Milton Rosenberg) 소령이 다른 탑승원에게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기내 스피커에서 울리는 것보다 더 크게 들려 짜증이 났다.
“투하했습니다.”
로스 대위는 대잠초계기의 지휘관인 전술통제사(TACCO)에게 보고를 마치고 기체를 왼쪽으로 약간 선회했다. 원통형 소노부이가 수면에 하얀 물보라를 남기며 물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었다. 수면의 부표와 기다란 와이어로 연결된 수동소나가 수심 600피트에서 목료 잠수함을 탐지하여 정보를 초계기로 송신할 것이다. 로스 대위는 조그마한 소노부이에서 그토록 긴 줄이 나오는 것이 항상 신기했다.
- 좋아, 어윈. 이제 1-1-5로 선회한다. 이놈, 꼭 잡아야 할 텐데.
“예, 당연히 잡아야죠. 신호는 좀 걸립니까?”
전술통제사와 대화를 하던 로스는 슬쩍 옆자리의 부기장 표정을 확인했다. 새벽부터 계속된 비행 때문에 상당히 지친 모습이었다. 그래도 소득이 전혀 없으니 엄살을 부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 글쎄. 근처에 뭔가 있는 것 같은데, 확실치 않아. 이번에 확인할 수 있겠지.
“예. 그럼 투하 위치를 알려주십시오.”
로스 대위는 언제나처럼 원기왕성한 목소리였다.
* * *
“이놈, 상당히 머리가 좋은 놈이야. 그래 봤자 고래에 불과하지만.”
전술통제사 로젠벅 소령은 모니터를 통해 각 소노부이가 보내오는 데이터를 확인하며 점점 초조해졌다. 좁은 기내에 가득 찬 각종 기기들이 조그마한 한국 잠수함을 잡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승무원들도 일단은 기계에 부착된 조그만 부속품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런 부속품 하나하나가 합해져서 적을 발견하고 격멸시키는 것이다. 로젠벅 소령은 유심히 모니터를 살폈다. 몇 시간째 그의 추격을 피하고 있는 이번 상대방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신호가 잠시 이어졌다가 끊어졌다. 잠수함은 절대로 정확한 위치를 노출시키지 않았다. 경험이 많은 초계기 지휘관도 이렇게 힘든 훈련은 처음이었다. 승무원들은 점점초조해지며 지쳐갔다.
- 대기, 대기, 투하!
- 투하!
기장과 부기장이 또다른 소노부이를 투하하는지 스피커에서 잔뜩 긴장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초계기의 뒤창에서 작게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수백 달러를 호가하는 소노부이가 물위로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MAD에는 뭐 걸리는 것 없나?”
로젠벅 소령이 얼굴을 모니터에 들이밀고 있는 중위를 옆에서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20대 후반인 에브릿 라저스(Everett Rodgers) 중위는 깜짝 놀라더니 이상 없다고 대답하며 괜히 미안해했다.
MAD는 자기탐지장치이다. 강철 선체의 잠수함이 지구자장에 미치는 작은 변화를 감지하는 예민한 장치인데, 탐지범위는 상대적으로 무척 좁다. 이곳 훈련 해역의 깊은 곳도 수심이 50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아 자기탐지장치로 잠수함을 발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로젠벅은 중위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조그마한 가능성에라도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조금전에도 함대 대잠지휘관이 호출하여 한바탕 난리를 친 것이다.
“19번에서 접촉물! 접촉물입니다!”
라저스 중위가 머리 위로 검지 손가락을 돌리며 외쳤다. 로젠벅 소령이 얼른 모니터를 확인했지만 거기에는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까도 14번 소노부이에서 뭔가를 탐지했지만 금세 사라졌다. 잠수함이 이 근처에 있긴 분명 있는 모양이었다.
“음향패턴은 재래식 잠수함이 틀림없었습니다. 무척 짧았지만 말입니다.”
라저스 중위가 잔뜩 힘이 실린 목소리로 부연설명했다. 로젠벅 소령은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부하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든 로젠벅이 헤드셋에 달린 기내용 통신기를 켰다.
“알았네, 기장!”
- 예! 소령님.
기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전술통제사의 판단에 따라 대잠초계기가 얼마나 빨리 훈련을 마치고 의기양양하게 항공모함에 착륙할지의 여부가 달려 있었다.
“1-7-5로. 아무래도 저놈은 새둥지를 노리는 것 같다.”
- ......
기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해군에서 ‘새둥지(birds nest)'라는 말은 각종 항공기들이 이착륙하는 항공모함을 뜻한다. 한국 잠수함 승무원들이 아무리 저돌적이고 유능하다고 해도 대잠초계기와 호위잠수함, 대잠무기를 적재한 각종 전투함과 대잠헬리콥터들이 삼중, 사중으로 펼친 경계망을 뚫고 항모에 접근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하지만 잠수함의 특성상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구 소련 잠수함들과 가끔 있었던 충돌사고가 이를 증명한다.
미국 항모와 구 소련 잠수함의 충돌사건은, 잠수함이 항모전단 한 가운데로 몰래 침투할 수 있다는 증거로 삼는 측이 있고, 미국 항모전단이 모르는 척하며 고의적으로 구 소련 잠수함에 충돌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사실은 전자에 가깝다.
- 알겠습니다. 본때를 보여주겠습니다.
한참 침묵이 흐른 다음 조종석에서 간신히 대답이 나왔다. 로스 대위는 여전히 원기왕성한 모양이었다.
5월 22일 10:50 오키제도 북동쪽 75km
미 해군 구축함 DD-966 휴잇, 전투정보센터
소나를 담당한 조셉 레이(Joseph Ray) 준위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디스플레이 한쪽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가 아침부터 추적해온 잠수함은 그동안 잡힐 듯 말 듯하며 확실하게 탐지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조금 전에는 펭귄 파이브라는 코드명이 붙은 대잠초계기 바이킹이 목표의 대략적인 위치를 휴잇으로 통보해왔다. 하지만 이 구축함의 소나에는 아직 목표가 잡히지 않았다.
목표 잠수함은 그동안 온도층을 오르내리면서 쓰시마 해류와 연안수의 급격한 온도차를 이용해 대잡방어망을 따돌려왔다. 이 해역은 여러 모로 보아 확실히 잠수함에 유리했다. 한국 잠수함들이 이 해역을 승부처로 삼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비로소 깨달았다.
레이 준위는 방광이 터질 듯했지만 꾹 참으면서 온 신경을 집중하길 어느새 3시간이 넘었다. 어느새 3시간이 넘었다. 갑자기 레이 준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소나 디스플레이에 뭔가가 나타난 것이다. 드디어 기다린 보람이 었었다. 레이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지휘관에게 보고했다.
“접촉물! 2-9-5, 거리는 7,000에서 8,500야드 사이입니다.”
“확인해봐. 컬럼비아일지도 모르니까.”
레이 준위는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함장이 어느새 레이 준위 바로 뒤에 서 있었다. 함장도 소나 디스플레이를 통해 레이 준위와 동시에 잠수함을 확인했을지도 몰랐다.
레이 준위는 한 시간여 전에 녹음된 음문과 이번에 잡힌 데이터를 함께 놓고 비교했다. 틀림없었다. 미 해군 원자력 잠수함 컬럼비아의 추정 위치와도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원자력 잠수함과 재래식 잠수함은 음문 패턴이 전혀 달랐다.
“재래식 잠수함입니다. 패턴 확인!”
진땀을 흘린 레이 준위가 의기양양하게 함장에 보고했다. 함장 마셜 맥루언(Marshal McLuhan) 중령은 멋으로 담뱃가루도 없는 빈 파이프를 물고 있었다.
“오호라~~ 1시간 반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시는구먼.”
“예! 아까와 동일한 잠수함입니다.”
이번 훈련에는 가상 적으로 한국 잠수함 두 척이 동원되었다. 한 척은 함대진형 정면에서 밴더그리프트와 하루사메를 격침시킨 놈이었는데, 이놈은 아무래도 항모를 노리는 모양이었다. 레이는 상대방이 상당히 간이 큰 잠수함이라고 생각했지만, 항공모함은 잠수함에게 꽤 매력적인 목표임에 틀림없었다.
“근처에 아군 항공기는 뭐가 있나?”
“펭귄 파이브와 펭귄 세븐이 있습니다. 부를까요?”
뒤에서 함장과 부함장이 의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레이는 디스플레이에 계속 시선을 고정했다. 목표 잠수함은 아주 천천히 움직였고 잠시 후 음문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레이 준위가 ‘어어~~’하는 사이에 잠수함은 사라지고 없었다.
5월 22일 11:10 오키제도 복동쪽 80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소나 컨택! 방위 이백구십공(2-9-0), 거리 10km. 수중 시그널입니다!”
모니터상에 진동음이 파악되자 음탐장 최현소 상사가 갑자기 바빠졌다. 편한 자세로 기대앉아 소나 헤드폰을 한쪽 귀에만 대고 있다가 서둘러 제대로 쓰고 나서, 모니터에 나타나지 않은 미약한 음을 잡아 내려는 듯 양손으로 헤드폰을 누르며 눈썹을 잔뜩 찌푸렸다.
“소나 컨택 확인! 추적코드 부여하겠습니다. 목표 17!”
음탐관 강인현 대위도 바삐 움직일 때 함장이 음탐실로 들어왔다. 그러자 약간 떨어진 거리에 있던 훈련판정관 레스턴 소령도 새로운 변화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표정에서는 조그마한 깡통 주제에 갖출 것은 다 갖췄다는 뜻의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레스턴이 보기에도 모니터에 표시된 미약한 음문이 눈에 띄었다. 소음 수준은 매우 낮았지만 디젤 잠수함이 전동모터로 항주중에 내는 균등한 음문과는 달랐다. 단속적인 파동음은 분명 원자력 잠수함이 내는 가장 특징적인 소음, 즉 원자로 냉각계통의 소음이었다.
“원자력 잠수함입니다! LA급 후기함 같습니다.”
강인현 대위가 뒤에 선 함장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한 직후 최현호 상사가 모니터에 시선을 못박은 채 새로운 보고를 했다.
“침로는 북동쪽을 향하는 것 같습니다. 아! 가속중입니다. 스크루 회전수가 점점 빨라집니다.”
서승원 중령의 얼굴에 약간 그늘이 졌다. 작전관 김승민 대위의 숨이 가빠지며 얼굴이 잔뜩 상기되었다.
“저놈이 아군 최무선함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저놈, 컬럼비아입니다. 최무선이 위험합니다.”
강인현이 미국 잠수함의 함명을 확인하고 보고했다. 모두들 잔뜩 긴장했다. 최무선이 장보고급 자매함들 가운데서 많은 훈련전과를 올려 유명해졌지만 작은 함체를 가진 209급으로서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그것은 탐지장비가 대형 잠수함에 비해 전반적으로 열세에 있다는 점이다.
동료 잠수함 걱정에 안달하는 장문휴의 승무원들과 달리 훈련판정관 레스턴 소령은 상대적으로 느긋한 표정이었다.
5월 22일 11:15 오키제도 북쪽 64km
한국 해군 잠수함 최무선, 사령실
“방위 일백사십공(1-4-0), 거리 7km. 확실합니다.”
음탐관 권혁준 대위가 보고를 마치고 침을 꿀꺽 삼켰다. 너무 거대한 목표였다. 만재배수량 10만톤이 넘는 초대형 원자력 항공모한 링컨이 약 80대의 항공기를 싣고 바로 코앞에 있었다.
음탐관 뒤에 서 있던 함장 조성진 중령이 약간 흥분된 어조로 승무원들의 사기를 잔뜩 올렸다.
“자, 우린 저 뙈지를 잡는 거야. 피래미는 무시한다!”
그러나 승무원들은 별로 사기가 올라가는 것 같지 않았다. 긴장의 도가 지나쳐 이젠 모두들 지친 것이다. 이들이 항모 링컨을 추적한 지 벌써 2시간이 지났다.
“지금 공격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대잠전투함들과의 계속된 숨바꼭질로 긴장이 극에 달한 부함장이 공격을 계속 재촉했다. 부함장은 30분 사이에 세 번이나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그러나 조금 전에 조리실 냉장고에 들어갔다. 왔는지, 호흡이 아까보다는 한결 가벼워졌다.
함내공기를 정화해서 계속 다시 써야 하는 잠수함에서 냉장고의 또다른 역할은 바로 흡연실이다. 담배 연기가 냉장고에 낀 성에에 흡착되기 때문에 잠수함에서 담배를 피우려면 이곳밖에 없었다.
물론 이곳도 아무나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계급과 짬밥이 있어야 하고, 그런 위치가 아닌 수병들은 담뱃가루를 씹으며 눈물을 흘려야 했다. 하사관 대접을 쉽게 받을 수 있는 일반 수상함정과 달리 잠수함에서는 최하 계급이 하사이다. 그러니 하사관들이 담배도 마음대로 피울 수 없는 잠수함 근무를 지원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긴장한 부함장과 달리 함장은 자신만만했다.
“아니야, 주변에 호위함정이 많아서 조금 더 접근해야 해. 실전상황 이라면 모르겠지만.”
함장이 힐끗 뒤돌아보았다. 통역병의 도움으로 최무선의 항모 공격의도를 파악한 판정관이 약간 의외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은 훈련상황이고, 어뢰 대신 공격소나로 대체해야 하니까. 게다가 저놈들은 우리가 접근하는 줄도 몰라.”
조성진 중령이 음탐실을 떠나 작도판까지 뚜벅뚜벅 걸어갔다. 부함장이 따라가고, 작전관이 함장에게 보고했다.
“현재 장문휴는 위치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습니다. 아직은 적에게 탐지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조성진 중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작도판에 그려진 항적을 살폈다. 주변에 각종 대잠함정과 대잠초계기들의 예상 항로가 잔뜩 기록되어 있었다.
미국 구축함 휴잇이 위험할 정도로 취무선에 접근하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다섯 번이나 속여서 함장은 휴잇을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온도층이나 해류 방향등, 이 해역은 모든 것이 잠수함에 유리했다. 최무선이 아직까지 휴잇을 살려둔 것은, 쓸데없는 구축함을 잡았다가 집중공격 받는 것보다는 항공모함을 한번에 확실히 잡기 위해서였다.
최무선의 함장이 판단하기로는 동료함 장문휴가 함대 정면에서 적함 두 척을 침목시킨 모양이었다. 조성진 중령은 장문휴함이 지금은 아마 함대 대잠방어선 외곽에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함장은 장문휴의 함장, 서승원 중려엥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겠지. 그 친구는 대단한 놈이니까. 우리도 한 건 해야지?”
“물론입니다. 조무래기보다는 왕건이를 잡아야죠.”
작전관이 지시봉으로 미 해군 항공모함 링컨이 표시된 부호를 두들겼다. 함장은 링컨에 최대한 접근할 계획이었다. 항모에 3km 정도까지 접근해서 지향성 공격소나를 때린다면 자존심이 강한 미국 해군도 절대 헛소리를 못할 것이다.
- 음탐실입니다! 주변에 소노부이가 대량으로 낙하하고 있습니다.
“우라질! 키 오른편 전타, 일백육십공(1-6-0)도 잡아! 바이킹이야. 10노트, 심도 200까지.”
함장이 낮은 목소리로 명령하자 부함장이 함장의 명령을 구체적으로 복창했다. 최무선함이 급속히 해저로 내려앉았다. 최무선함은 초계기에 발각됐을 경우에 대비해 미리 준비한 노이즈 메이커를 사출하고 표층수 아래로 내렸다.
방향타를 최대한 꺾는다는 의미의 전타는 표준전타로 타각 25도이며 최대각은 35도이다.
최무선함은 수심 200미터까지 내려가면서 동시에 방향을 반대로 바꿨다. 초계기는 노이즈 메이커를 쫓는지 잠수함과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 음탐실입니다! 구축함 휴잇이 급속 접근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런... 가변심도 소나인가?”
함장이 상황을 깨닫고 서둘러 음탐실로 뛰어갔다. 음탐실에는 음탐관과 음탐장, 음탐선임하사까지 모두 각자 목표 하나씩 맡아 주면 해역의 움직임에 귀를 집중했다.
음탐장이 소나 디스플레이에 휴잇으로 표시된 점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밝은 점이 희미한 흔적을 남기고 디스플레이 중간 약간 왼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똑바로 오고 있습니다. 조금 전에 우리가 있던 위치를 통과할 예정입니다. 5,400미터!”
음탐장으로부터 급박한 보고를 받은 조성진 중령이 결단을 내렸다.
“그럼 들켰어! 구축함 먼저!”
“항공모함은 어떡합니까?”
깜짝 놀란 부함장이 항모를 우선 공격하자고 주장했지만 자신의 잠수함을 격침시키고 싶은 함장은 없었다.
“항모는 자체 방어능력이 없어! 먼저 구축함부터 잡는다!”
5월 22일 11:20 오키제도 북동쪽 75km
미 해군 구축함, DD-966 휴잇, 전투정보센터
“확실히 잡았습니다! 함장님. 거리 5,500야드, 방위 2-8-5입니다.”
음탐장 조셉 레이 준위가 함장을 큰 소리로 불렀다.
“펭귄 파이브, 세븐에서 보내오는 데이터와 교차확인중입니다. 핀 포인트 공격까지 가능하도록 정확하게 위치를 뽑을 수 있습니다.”
구축함 휴잇의 함장 마셜 맥루언 중령이 소나실로 뛰어왔다. fp이 준위의 능력은 의심할 게 없지만 어려운 일을 해낸 다음에는 자랑하고 싶어하는 버릇이 있었다. 함장은 칭찬해줘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다.
“수고했네. 그런데 핀 포인트 자신 있어? 토마호크를 주면 머리 위에 때릴 수 있겠냐구?”
대잠무기가 아닌 토마호크를 잠수함을 향해 발사한다는 말은 물론 농담이다. 재래식 탄두를 장착한 지상공격형 토마호크 TLAM-C 또는 D형의 원형공산오차는 10미터이다. 그러니 그 정도로 정확히 탐지했느냐는 물음이었다.
“물론입니다. 플러스 마이너스 20미터 이내로 뽑을 수 있습니다. 펭귄 파이브, 세븐의 데이터와 삼각계산을 끝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 완료됐습니다!”
자신만만한 레이 준위가 서둘러 키보드를 조작했다. 휴잇이 장비한 SQS-53 함수소나의 정보는 Mk-116 대잠공격 시스템에 연동되어 공격에 필요한 정보를 곧바로 산출해낼 수 있다. 실전이었다면 바로 애스록을 쏘아버리면 상황은 끝이었다.
애스록(ASROC)은 탄두가 어뢰인 대잠로켓이다. 구축함에서 발사된 대잠로켓은 잠수함이 숨어 있는 바다 위까지 날아가 탄두를 작은 낙하산에 달아 떨어뜨린다. 천천히 물에 착수한 어뢰는 자체 소나를 이요해 잠수함을 탐지하여 공격한다. 전투함이 잠수함을 멀리서 안전하게 잡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탄두인 Mk-46 어뢰는 폭약의 양이 적어 잠수함에 명중한다고 해도 확실히 격침시킨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좋아. 추적정보를 확실하게 백업하도록. 토마호크를 머리 위에 터뜨려주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잘했다. 조셉! 저주파로 한 방 먹여준다. 준비하게.”
“예! 알겠습니다. 놈들 귀가 먹도록 강한 놈으로 준비하겠습니다. 수면 가까운 심도였다면 진짜 토마호크로 때려도 격침시킬 수 있었을 겁니다.”
함장의 명령을 받고 조셉 레이 준위는 한 번 더 우쭐댔다. SQS-53소나를 공격모드로 전환하여 최대 출력을 조절하는 그의 손길이 빨라졌다.
“공격소나, 탐신 대기했습니다!”
레이 준위의 보고와 동시에 함장이 명령을 내렸다. 대잠무기 담당자들은 함장의 명령이 없이도 이미 애스록의 발사준비절차를 거치고 있었다.
“오케이. 탐신한다!”
“탐신!”
방위를 정한 SQS-53 소나에서 지향성이 강한 저주파가 낮게 울렸다. 동시에 헤드폰을 잠시 벗은 레이 준위가 득의 만면한 것도 잠시, 3초도 지나지 않아서 소나 디스플레이에 밝은 점이 화면 가득 커다랗게 번져 나갔다.
“뭐야? 이건!”
맥루언이 반문하자 레이의 눈동자도 휘둥그레 떠졌다. 재빨리 헤드폰을 다시 썼지만 이미 휴잇의 전투정보센터에 탐승한 모든 사람의 귀에 들릴 만한 짧은 음파가 진동했다. 새로운 음파의 잔향이 물속에서 날카롭게 울려퍼졌다. SQS-53 소나의 공격음보다 더 높은 대역의 새로운 음파는 듣기에도 확연히 구별됐다.
“젠장! 저쪽에서도 한 방 쐈습니다.”
맥루언 중령과 레이 준위가 멍청하게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는 동안 뒤에 서 있던 부함장이 입을 열었다. 3초라면 휴잇에서 쏜 음파가 반사되어 돌아오는 것보다도 빠른 시간이었다. 즉, 이 소리는 휴잇이 탐신한 액티브 소나의 반사음이라고 볼 수 없었다.
수중에서 음파는 초속 약 1,500미터를 진행하고, 탐신음이 이 목표에 도달하여 휴잇에 반사음이 들리려면 두 배의 시간이 필요하다.
“함장! 휴잇도 격침이야.”
“뭐라고? 무슨 소리야? 우리가 먼저 쐈어!”
고개를 돌리며 함장이 소리쳤다. 휴잇에 탑승한 판정관 라벗 K. 머튼(Robert K. Merton) 중령은 함장과 같은 해군 사관학교 79년도 졸업생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이미 구축함 함장 근무를 마친 머튼 중령의 서열이 높았지만 그들은 가족끼리도 서로 친했다.
“우리가 먼저 쏜 것을 자네도 봤잖나? 말도 안돼! 우리까지 격침이라니. 이런! 지금 뭘 하는 건가?”
항의하던 함장이 휴잇의 격침판정을 보고하기 위해 키보드를 조작하는 머튼 중령의 행동을 보고 목소리가 높아졌다.
“거리 5,500야드에서 애스록 발사로 상정된 자네 공격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상대측 공격은 휴잇의 액티브 소나음으로 위치를 파악한 것이라 볼 수 없네. 그쪽의 반응시간이 너무 짧았어. 그쪽 역시 준비된 공격이라고 판정할 수밖에 없네.”
화가 난 맥루언 중령이 뭐라 반박할 말을 찾았지만 쉽지는 않았다. 판정관 머튼 중령이 말을 계속했다.
“거리 5,500야드에서 휴잇이 탐신하고 그 직후 3초 이내에 잠수함이 탐신했다면, 오히려 저쪽 잠수함이 먼저 발사했다고 봐야해. 그정도 시간차이라면 어차피 동시에 공격한 셈이 되니 큰 차이는 없지만. 어쨌든 자네 함정은 저들이 쏜 어뢰를 피할 수가 없었을 걸세.”
머튼 중령은 대답하면서 계속 키보드를 두들겼다. 맥루언 중령은 마지막 수단을 쓸 수밖에 없었다. 머튼과의 친분관계를 배경으로 한 으름장이었다. 함장이 훈련판정관 머튼 중령에게 바짝 다가왔다.
“뭐야? 자네, 나한테 이럴 수가 있나? 당장 격침판정을 취소하게!”
5월 22일 11:23 오키제도 북동쪽 66km
한국 해군 잠수함 최무선, 사령실
“최무선 격침!”
미국인 판정관이 얄밉게도 한국말로 격침판정을 내렸다. 통역병에게 미리 격침에 해당하는 한국말을 물어본 모양이었다.
휴잇이 탐신한 액티브 소나음에도 놀라지 않던 승조원들이 화들짝 놀랐다. 항공모함에 대한 공격을 준비중이던 부함장은 기가 막혀 말을 잊었고, 작전관과 항해장은 부릅뜬 눈을 판정관을 쏘아보았다. 분노한 함장이 판정관을 돌아보니, 판정관을 가증스럽게도 기계설비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피식피식 웃고 있었다.
“판정관! 이건 말이 안 되잖소? 탐신 직후 우린 온도층 바로 위로 올라왔는데, 어떻게 우리가 격침이란 말이오?”
마크 46 어뢰를 탄두로 만든 대잠로켓은 잠수함에서 발사된 어뢰에 비하면 속도가 빠르지만, 그래도 입수 이후 자체 탐지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잠수함이 있던 해역에 애스록이 투하됐다고 해도 잠수함을 반드시 탐지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리고 잠수함이 어뢰를 회피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최무선의 승조원들은 억울했다. 그들은 휴잇이 애스록을 발사해도 충분히 피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통역병이 함장의 항변을 영어로 얾긴 즉시 판정관으로부터 싸늘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마크 46은 수면 바로 아래에서부터 탐신할 수 있잖소?”
“하절기에 이 해역 온도층이 몇 미터인 줄이나 아시오? 겨우 15미터도 안 되오, 피프틴 미터즈! 대잠어뢰는 물에 착수하자마자 온도층 아래로 내려가 버린단 말이오! 토피도 초기수색 패턴이 서클 패턴이든, 스네이크 패턴이든 가에 결코...”
함장은 영어를 섞어가며 판정관에게 항의했지만 판정관은 요지부동이었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해도 도저히 씨알이 먹히지 않을 것 같았다.
한국 해군 잠수함 최무선은 취역 후에 실시된 각종 해군 합동훈련에서 엄청난 전과를 올려왔다. 겹겹이 두른 함대 대잠방어망을 뚫고 항공모함이든 공격용 핵잠수함이든 가상적이면 가리지 않고 격침시켰다. 미국과 일본, 호주 등의 구축함과 대잠초계기들이 떼를 지어 바다를 샅샅이 뒤졌지만 그들은 최무선을 탐지조차 하니 못했다.
이것은 비록 훈련에서 거둔 전과였지만 최무선 승조원들의 자존심은 최초의 본격적인 잠수함인 장보고에 못지 않았다. 한국형 209급을 1번함인 장보고의 이름 따서 ‘장보고’급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훈련에서 드러낸 성과는 최무선이 압도적이었다.
물론 그만큼 최무선이 미국 해군의 질시와 집중적인 경계 대상이 되기도 했다. 판정관의 판정에 함장이 그렇게 분노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동안 각종 훈련에서 골탕먹은 미국 해군이 최무선함을 좋게 볼 이유가 없을 것이다.
* * *
무엇보다 공정해야 할 사람이 판정관이었다. 그러나 판정관은 미국 무기의 우수성을 내세우며 함장의 항변을 일언지하에 묵살했다.
“흠! Mk-46의 소나는 해면 위에서 하버링하는 헬기를 탐지할 정도로 예민하오.”
판정관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잠수함이 물속에서 공중의 헬리콥터가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듯이 어뢰 탄두의 소형 소나도 헬기가 수면 위를 날면서 내는 소음을 탐지할 수 있다.
그런데 마크 46 대잠 경어뢰는 불발과 오작동이 잦기로 유명하다. 미국 해군이 실시한 대잠어뢰 투하훈련에서 어뢰 하나가 목표를 잃고 고속으로 물속을 헤매다가 낮게 비행중이 대잠 헬리콥터를 목표로 삼아 물위로 뛰어오른 적이 있었다. 놀란 헬기 조종사가 급상승해서 간신히 어뢰를 피했는데, 그 헬기는 하마터면 세계 최초로 어뢰에 의해 격추된 항공기로 기록될 뻔했다.
“부상.”
함장이 침울하게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함장 이하 승조원드은 잔뜩 화가 났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미국 항공모함이 바로 코앞에 있는데, 마지막 5분을 넘기지 못하고 격침판정을 받은 승무원들은 무척 안타까웠다.
그것도 공정한 판정이 아니라 한국 잠수함을 우습게 보는 미국인 판정관 때문이라니 더욱 화가 났다. 이제 격침파정을 받아 수면 위로 떠오르려니 다들 힘이 빠져 잠수함도 힘을 잃은 듯했다. 함장은 나라가 약하니 이런 수모를 당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항공모함도 동시에 공격했어야 했습니다. 사실, 시간은 충분했습니다.”
부함장이 안타깝다는 듯이 말하자 함장이 고개를 저었다.
“항모쯤이야 얼마든지 잡을 수 있잖아? 이제 우리는 이쯤 물러서고 장문휴의 데뷔전을 지켜보자고.”
그동안 항모를 잡아본 경험이 있는 최무선 승무원으로서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함장도 일말의 섭섭함과 아쉬움을 감출 수는 없었다.
5월 22일 11:31 오키제도 북쪽 60km 상공
미 해군 대잡기 S-3B 바이킹, 비행코드 펭귄 5
“바보 같은 놈들!”
밀튼 로젠벅 소령이 혀를 끌끌 찼다. 기체가 왼쪽으로 크게 선회하자 좌측 관측창으로 푸른 바다가 하늘처럼 다가왔다. 로젠벅 소령은 초계기가 이대로 바다에 처박히지 않을까 걱정했다.
항공기 조종사들은 계기비행을 하도록 훈련받는다. 시각이란 얼마든지 착각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인 이상 이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다.
전투기가 지상 상공을 비행할 때 기체를 뒤집어 거꾸로 날아가는 경우가 상당히 있다. 조종사들은 종종 구름을 기준점 삼아 시계비행을 하는데 구름은 지상에 대해 항상 수평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구름이 기울어져도 그것을 느끼지 못한 조종사는 비행기를 조금씩 기울인다. 그러다가 착륙할 때에야 활주로가 머리위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게 된다.
하늘과 땅이 명확히 구분되는 육지에서의 비행도 이런 경우가 있는데, 날시에 따라 하늘과 바다가 잘 구별이 가지 않을때가 많은 바다에서는 이런 경우가 더 자주 일어난다. 해상에서 발생하는 항공기 하고 상당수가 이처럼 조종사의 착시현상 때문에 발생한다는 보고가 있다.
- 잠수함입니다! 부상하고 있습니다!
조종사가 비명 비슷한 소리를 질렀다. 로젠벅 소령이 잠수함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에서 거대한 포말이 일어났다. 잠수함은 로젬적 소령이 예상한 방향과 반대방향에 있었다.
이윽고 시커먼 잠수함이 물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훈련격침 판정을 받은 최무선은 끝까지 대잠초계기의 예상을 벗어나고 있었다.
“다른 나라에 저런 놈이 있다는 건 상당히 기분 나쁜 일이야.”
로젠벅 소령은 한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아픙로도 한국 잠수함들 때문에 골머리가 지끈거릴 생각을 하니 걱정이 되었다.
2차 대전 때 유 보트를 대량 운용했던 독일의 잠수함 건조기술은 지금도 뛰어났다. 독일이 개발한 209급은 세계 각국에 수출되었다. 이 잠수함은 세계 각국에 수출된 잠수함 중에서도 베스트 셀러로 꼽힐 정도로 뛰어난 편이었다.
그런데 한국 보유한 잠수함은 209급 중에서도 가장 뛰어났다. 209급을 운용하는 국가는 많다. 이스라엘, 터키, 그리수, 노르웨이, 그리고 포클랜드 해전에서 영국과 싸운 아르헨티나를 위한 남미 국가들이 209급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209급 잠수함은 막강한 대잠전력을 보유한 미국 해군에 위협으로 간주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한국의 209급 잠수함들은 이들과 격이 달랐다. 장보고급은 대부분 7,80년대에 건조된 다른 나라 잠수함들과는 달리 1990년대 이후에 건조됐기 때문에 장비도 최신형이었다.
게다가 저렇듯 뛰어난 함장이 지휘하는 잠수함을 잡을 생각을 하니... 로젠벅은 잠수함이 현대전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 소령님, 휴잇까지 격침판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바보 같은 놈들! 거리를 충분히 두고 공격했으면 됐는데...
기장 로스 대위가 기함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한 마디했다. 그러나 로젠벅 소령은 의견이 달랐다.
“어윈! 거리를 두었으면 항모가 먼저 격침됐을 거야.”
5월 22일 11:34 오키제도 북동쪽 50km
미 해군 순양함 모빌베이, 전투정보센터
“사령관님, 휴잇이 놈들 잠수함을 한 척 해치웠습니다. 악명높은 최무선입니다! 그러나 휴잇도 동시에 격침 판정을 받았습니다.”
매튜 해리스 중령이 보고서를 옆구리에 끼고 함대 대잠지휘관에게 보고했다. 오코너 준장은 최무선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함대 대잠업무에 종사하는 미국 해군으로서 최무선의 이름을 모른다면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한 놈 남았군. 그런데, 매튜. 어떻게 했기에 휴잇까지 날아간 건가?”
“휴잇은 공격과 동시에... 정정합니다. 3초후에 공격소나음에 접촉했습니다. 한국 잠수함도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판단됩니다. 양함의 동시 격침판정은 휴잇의 판정관이 내렸습니다. 그의 보고서는 애스록의 비과시간을 고려하여 한국 잠수함의 휴잇의 애스록에 피격되기 전에 충분히 어뢰를 유도할 수 있다고 판단했답니다.”
오코너 준장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휴잇과 최무선이 서로 공격한 직후 상대방의 어뢰를 피할 가능성을 먼저 계산했다. 대충 답이 나왔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는 곤란했다.
“젠장! 어려운 판정이었군. 어느 놈이야, 판정관이?”
“라벗 머튼 중령입니다.”
해리스 중령은 보고를 마치고 오코너 준장의 표정을 살폈다. 비록 휴잇이 격침판정을 받았지만 잠수함 한척을 격침한 것에 약간 만족한 듯 신경질을 부리진 않았다. 하지만 완벽한 기회에 휴잇까지 당한 것은 그로서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북쪽이 완전히 뚫렸군. 또 다른 한 척의 행방은 아직 못 찾았나?”
“예,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코너가 전술 디스플레이를 올려보았다. 벌써 세 척째 당한 것이다. 재래식 잠수함 한 척을 잡을 때까지 프리깃 두 척과 구축함 한 척을 잃었다면 상당히 손해 본 거래이다. 하지만 더 이상의 손실만 없으면 3대 2가 된다. 그다지 나쁜 도박은 아닌 셈이다.
“한 척 남았다. 놈에게 모든 전력을 모으기로 한다. 벨로 우드 전단에서 두 척을 차출하면 어떻겠나? 매튜.”
벨로우드(Belleau Wood)는 거의 4만 톤에 달하는 타라와(Tarawa)급 강습상륙함이다. 각종 상륙함을 동반한 벨로 우드 상륙전단은 지금 항공모함을 중심으로 한 링컨 전투그룹의 후방 40km를 항진중이었다.
이번 훈련의 목적이 7함대의 전방전개부대인 벨로 우드 상륙전다, 즉 제 1상륙전단을 북한으로 기습투입하는 것으로 상정한 만큼 벨로우드 전단이 사실상 전체 함대의 핵심이라 할 수 있었다.
“거리상으로 판단컨대, 나머지 한 척이 상륙함대에 접근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훈련 목적은 지정된 함대 포맷에서 대잠 방어능력을 평가하는 데에 있습니다. 벨로 우드 호위전단으로부터 두척을 동원하면 그쪽 대잠방어망이 위태롭습니다.”
“알겠네, 그만하게. 그럼 자네는 링컨까지 놈들에게 내주겠다는 것인가?”
오코너 준장이 부하를 테스트할 때는 목소리가 차분해졌다. 평소 다혈질인 그는 냉정한 태도로 부하를 다그치는 데 정평이 나 있는 지휘관이었다. 오코너 준장의 목소리 톤이 달라진 것을 느낀 해리스 중령이 바짝 긴장했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링컨의 근접호위를 맡은 챈슬러즈빌과 전위에 선 폴 해밀튼(Paul Hamilton)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세해도 충분하다고 판단됩니다.”
해리스 중령은 대답하면서도 자신은 왜 제독에게 아부하지 못할까 생각했다. 오코너가 원하는 것은 부하의 전면적인 동의라는 것을 그도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인정할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문득 오코너의 참모로서는 대령 진급이 어려워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느슨한 대응 때문에 세 척이나 당했네. 자네 의견은 충분히 알아들었어. 지금 당장 벨로 우드 호위전단에서 태치(Thach)와 유우기리를 호출하도록 하게. 그리고 우미기리와 야마기리를 벨로 우드의 전위로 배치하도록. 알겠나, 중령?”
나지막한 오코너의 명령은 테스트가 끝났음을 알려주는 셈이었다. 이리저리 다그치는 것을 좋아하는 오코너는 해리스의 조언에서 들을것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질문을 끝냈다. 숨을 크게 몰아쉰 해리스 중령이 명령을 따랐다.
“예! 알겠습니다, 제독님.”
2. 보이지 않는 도살자
5월 22일 12:15 오키제도 북쪽 40km
미 해군 대잠기 S-3B 바이킹, 비행코드 펭귄 5
“47번 소노부이에 뭔가 잡힙니다.”
애브릿 라저스 중위가 보고하자 초계기 전술통제사 로젠벅 소령이 디스플레이를 확인했다.
“동쪽이잖아! 47번은 우리가 투하한 소노부이가 아닌데?”
“그렇습니다. 모빌베이의 시 호크가 투하한 소노부이입니다. 그들은 이미 귀환했습니다.”
라저스 중위가 소노부이에서 보내지는 음향을 분석하는 OL-82 신호처리기를 조작하며 보고했다. 바이킹 대잠초계기는 이들이 직접 뿌린 소노부이 외에 다른 대잠항공기에서 투하한 소노부이 신호도 분석할 수 있었다.
“제대로 파악이 안 되는 군. 다른 소노부이에서는 접촉이 없나?”
로젠벅 소령도 바쁘게 손을 놀리면서 기기들을 조작했다. 그러나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제대로 수색하려면 소노무이가 더 필요합니다.”
라저스가 고개를 저었다. 이미 휴잇과의 협동작전을 수행하면서 탑재한 소노부이를 모두 소모한 것이다. 바이킹은 총 60개의 소노부이를 잡재할 수 있지만 이제 여분이 없었다.
육상기지에서 발진하는 대형 대잠초계기 P-3C 오라이언(Orion)이라면 평상시에도 기내에 예비용 소노부이가 탑재되어 있겠지만 바이킹은 그렇지 않았다. 4명의 승무원 중 단 두 명이 대잠탐지용 각종 기기를 조작해야 하는 바이킹에서는 애초에 기내 재장전이 고려되지도 않았다.
“정작 필요할 때는 없다니...”
로젠벅 소령이 아쉬워했다. 이미 투하한 소노부이가 깔린 라인은 엉뚱한 방향이었다. 게다가 나머지 소노부이도 아까 다 써버렸다. 로젠벅은 짜증과 함께 구축함 휴잇의 멍청이들을 다시 떠올렸다.
“어쩔 수 없겠습니다. 다른 펭귄들을 호출하는게...”
“대잠지휘센터를 연결해.”
로젠벅은 씁쓸한 표정으로 손목시계를 보았다. 비행시간은 벌써 4시간에 가까워졌다.
5월 22일 12:20 오키제도 북동쪽 43km
미 해군 순양함 모빌베이, 전투정보센터
점심시간이 이미 지났다. 자리를 이탈할 수 없는 전투정보센터 승무원들에게 점심이 배달되었다. 그러나 일에 몰두하고 있는 승무원들은 점심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함대 대잠지휘관 오코너 준장은 점심 메뉴로 나온 햄버거와 콜라를 보며 이것을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빨리 잠수함을 마저 잡고 식당에 가서 먹을 수 잇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 통신사관이 보고했다.
“펭귄 파이브입니다. 잠수함으로 예상되는 물체를 추적중이랍니다.”
“뭐야? 위치는?”
오코너 준장이 보고를 듣고 벌떡 일어섰다. 투명 아크릴판으로 만든 표정판에는 항모전단과 상륙전단을 중심으로 전투함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펭귄 5가 있는 곳은 상대적으로 함선들이 적은 곳이었다.
“링컨의 서북쪽 20km 지점입니다. 펭귄 파이브가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소노부이를 모두 소모했다며 지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래? 당장 귀환시켜. 그리고 전 호위함정을 그쪽으로 투입시키게. 아, 잠깐만. 해리스 중령! 벨로 우드 전단에서 한 척을 더 차출하라. 가용한 모든 전투함과 대잠항공기를 빨리 투입시켜!”
“예... 알겠습니다.”
해리스 중령은 반문하려다 멈칫거리며 마지못해 대답했다.
“잡았다, 이놈!”
오코너는 주먹으로 손바닥을 치고 나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오코너는 햄버거를 보며 피식 웃었다. 잠시 후에는 식당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5월 22일 13:26 오키제도 북쪽 20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잠항한다. 심도 20미터 유지!”
“잠항각 5도! 심도 20미터!”
서승원 중령이 잠망경을 빠르게 접으며 명령하자 부함장이 복창했다. 잠망경이 수면 위로 노출된 시간은 5초. 짧은 시간이었으나 대잠초계기의 레이더에 발견될 가능성이 높았다. 함장은 발견되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는지 별로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공격방위 일백삼십이(1-3-2)도, 거리 23km! 하픈(harpoon) 2발 연속 발사 준비! 위치로 봐서 그놈은 페리급 프리깃이다.”
서승원 중령은 항모와 그 함정의 상대 위치와 움직임만으로 목표의 함종을 예측했다. 장문휴의 음탐수들은 거대한 항공모함의 존재는 이미 확실히 파악했지만 그 근처에서 호위하는 함정들은 거리가 멀어 정확히 구별해낼 수 없었다.
페리급 프리깃은 대잠수함전을 위주로 하는 함정이다. 장문휴가 잠수함에 위협적인 프리깃을 격침시키고 나면 전문 대잠수함전 함정은 거의 남지 않게 된다. 그러나 아직 남은 함정이 많았다. 이지스(Aegis) 순양함은 기본족으로 함대의 대공방어를 책임진 대형 함정이지만, 최근에는 대잠수함전 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공격방위 일백삼십이(1-3-2)도. 거리 23km!"
작전관 김승민 대위가 복창하며 어뢰실로 이어지는 마이크를 잡았다. 김승민은 잠시 뭔가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함장님, 하픈의 침로를 설정해주십시오.”
“최단거리로 설정한다. 우회침로를 택할 필요는 없다.”
작전관의 확인요청에 함장이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작전관이 잠시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함장은 잠수함에서 왕보다 높은 지위였다. 그리고 서승원 중령은 부하들에게 워낙 신망이 두터웠다. 김승민은 당연한 선택을 했다.
하픈은 목표까지 비행하는 침로를 세부적으로 지정할 수 있다. 관성항법장치에 의해 목표 가까이 유도된 후 자체 레이더를 작동시키는 하픈 대함 미사일은 직선 코스 외에도 여러 가지 병형된 침로를 선택 할 수 있다.
“알겠습니다. 어뢰실!”
- 어뢰실입니다.
마이크를 잡은 김승민 대위가 잠시 머리를 굴렸다. 김승민은 장문휴에서 발사된 하픈의 심정이 되어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목표를 잡을지 골몰했다.
“하픈 공격한다. 방위 일백삼십이(1-3-2)도, 거리 23km. 직선 침로! 비행고도 5미터, 유도레이더 작동은 목표 5km 전방에서 한다.”
- 방위 일백삼십이도 23km, 직선 침로 스키밍 고도 5미터. 레이더 작동 5km!
무기장 강희담 준위의 복창이 끝나자 서승원 중령이 스톱워치로 시간을 재기 시작했다. 목표까지 하픈이 스스로 날아가도록 관성좌표와 여러 가지 설정을 하는데는 시간이 꽤 소요됐다.
- 하픈 발사 준비 완료!
어뢰실에서 보고가 왔다. 소요된 시간은 50초. 비교적 짧은 시간이 었다. 이미 발사관에 장전된 하픈이지만 미사일은 발사과정이 어뢰보다 훨씬 복잡하다.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변수를 프로그램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픈은 일단 발사된 다음에는 더 이상 유도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어뢰도 대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어뢰는 종류에 따라 유선으로 유도하는 종류들이 있다.
장문휴함이 사용하는 독일제 SUT 어뢰도 발사 후에 유선 유도케이블을 통해 18km에 이르는 거리까지 계속 유도할 수 있다. SUT 어뢰는 유선 유도가 끊길 경우 목표를 자체적으로 추적한다.
“발사관 개방 후 급속 발사한다. 6번 발사관도 주수한다. 준비되는 대로 발사!”
선체 전방에서 어뢰발사관이 열리고 바닷물이 발사관 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곧이어 압축공기가 캡슐에 내장된 하픈 미사일을 밀어내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들렸다.
- 3번, 4번 어뢰발사관. 하픈 발사 완료했습니다.! 6번 발사관 개방 합니다!
“좋아, 발사하라!”
이번에는 하픈의 발사음과 다르게 낮은 진동음이 들렸다.
“함장! 지금 발사한 것이 뭡니까?”
사령실 뒤쪽의 의자에 앉아 훈련과정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레스턴 소령이 벌떡 일어났다. 옆에 서 있던 통역병이 허둥지둥 레스턴의 영어를 통였으나 서승원의 대답이 먼저 나왔다.
“어뢰를 발사했습니다.”
레스턴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탄두가 없는 하픈 대함미사일을 발사는 것은 양해했지만 훈련에서 실제로 어뢰를 발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잠수함이 어뢰를 유선으로 유도한다고 해도 어떤 무기체계든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자칫하면 대형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뭐라고? 어뢰라고 했습니까? 이런! 실어뢰입니까? 이건 중대한 규칙 위반입니다!”
5월 22일 13:30 오키제도 북쪽 26km
미 해군 대잠헬리콥터 SH60B, 비행코드 시 호크 21
수면 위 5미터 상공에서 정지한 시 호크 대잠헬리콥터가 일으키는 물보라가 거세게 일었다. 시 호크의 동체 아래쪽으로 가느다란 케이블이 내려와 물속에 잠겨 있었다. 낮은 고도에서의 하버링(hovering)이 쉽지 않은 듯 기체는 좌우로 약간씩 미끄러지며 뒤뚱거렸다.
- 펭귄 파이브에서 시 호크 투원(21)으로 접근중이다. 소노부이를 투하하겠다.!
“방금 G3238 지점에서 소리를 포착했다. 그쪽으로 소노부이 라인을 깔기 바란다.”
- 알았다.
통신을 마친 윌슨 디자드(Wilson Dizard) 대위가 동쪽 하늘로 눈길을 돌렸다. 뜽뜽하고 못생긴 항공기가 낮은 고도로 비해하며 뭔가를 살포하기 시작했다.
꼬리 부분에서 쏟아지는 원통형 긴 막대기는 낙하산과 같은 역할을 하는 바람개비형 감속장치에 의해 수면 위로 천천히 떨어졌다.
“한꺼번에 저렇게 많이 뿌리다니. 도대체 누구야?”
디자드 대위가 고개를 돌려 부기장에게 물었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방금 투하된 소노부이는 30개가 넘었다. 투하를 마친 바이킹이 기수를 높여 상승했다. 그 뒤러 또 다른 바이킹이 소노부이 투사코스로 비행 하고 있었다.
“대단하군요. 부잣집 막내아들 같습니다.”
부기장 해럴드 라스웰(Harold Lasswell) 중위도 놀랍다는 듯이 대꾸했다. 가격이 낮은 디파(DIFAR)형 부이를 기준하더라도 일순간에 만오천달러치를 쏟아부은 것이다. 좀더 비싼 디카스(DICASS)형 부이라면 3만달러를 깔아버린 셈이다. 돈으로 전쟁을 하는 미국 해군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소노부이 가격은 미 해군의 납품가격이다. 그러나 그것을 수입해서 쓰는 우방국들은 훨씬 비싼 가격에 산다. 미국 방위 산업체들이 가장 만만하게 여기는 한국이 얼마나 바가지를 쓰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지금 라스웰이 알 바가 아니었다. 바이킹 대잠초계기들이 우글거리는 상공을 구경하던 라스웰은 디자드 대위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디핑소나를 감게. 우린 귀환한다. 펭귄들이 잔치를 벌이는군.”
“알겠습니다.”
라스웰은 버튼을 눌러 디핑소나를 감아올렸다.
대잠초계기들이 도착하는 동안 자리를 지켰던 시 호크 21은 이제 귀환할 시간이 되었다. 전투예비로 20분간 비행할 수 있는 연료가 남아 있었지만 어서 착함하지 않고 꾸물거리다가 비상연료를 사용하면 징계감이었다. 비상연료는 작전상황에 따라 그 양이 달라진다.
디핑소나가 감겨 올라오자 시 호크 대잠헬기가 출력을 높여 상승하는 것과 동시에 기수가 아프오 고꾸라지듯이 기울었다. 일단 가속을 얻은 시 호크는 곧 시속 200km 가까운 순항속도로 치닫기 시작했다.
멀리 전투함들이 점점이 흩어져 서서히 서쪽으로 항주하고 있었다. 이들은 가능하면 위험한 잠수함에 접근하지 않고, 초계기와 대잠헬기에 대잠공격을 떠맡긴 채 안전한 곳에서 항공모함 호위임무에 투입되어 있었다.
“이크! 저게 뭐야?”
디자드 대위가 물위로 솟구치는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반사적으로 조종간을 당겼다.
“아니! 수중발사 하픈입니다!”
물위로 솟아오르는 것은 길이 6미터 정도의 굵은 원통이었다. 디자드 대위와 라스웰 중위는 순간 놀라서 서로를 마주보았다.
시 호크 전방 200미터에서 솟아오른 원통은 수면 위를 솟구쳐 10미터 정도 상승했다. 그들은 캡슐 속에서 미사일이 화염과 함께 터져나오기를 기다렸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캡슐은 물위로 떨어져 하얀 포말을 일으킨 채 가라앉았다. 잠시 후 그곳에서 노란색 연기가 바람에 휘날렸다. 이것은 잠수함에서 훈련용 하픈을 발사할 때 다른 훈련참가자들에게 알리기 위한 수단이었다.
또 다른 잠수함 발사 하픈이 수면을 뚫고 치솟아 올랐다. 그러나 그것도 미사일을 분리시키지 않고 물속에 가라앉았다. 수면에 다시 노란색 연기가 피어나왔다.
“휴, 놀래라. 발사되지 않았어. 어쨋든 저 밑에 잠수함이 있다.”
디자드 대위가 잠시 숨을 헐떡였다. 얼이 빠진 기장은 서둘러 기기를 조작하여 잠수함을 탐지하려 했다. 그러나 부기장을 아직도 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안 됩니다, 기장님. 귀환해야 합니다.”
라스웰이 제지하자 디자드가 작업을 멈추고 잠시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야 연료 생각이 났다. 디자드가 조급한 마음으로 통신기를 더듬다가 자꾸 놓쳤다. 디자드는 라스웰을 보며 외쳤다.
“이런! 빨리 펭귄들을 호출해! 바보 같은 자식들!”
5월 22일 13:35 오키제도 북쪽 32km
미 해군 대잠기 S-3B 바이킹, 비행코드 펭귄 5
- 시 호크 투원이다. 놈들이 하픈 2발을 쏘았다!
“뭐라고? 진짜 하픈인가?”
날벼락 같은 소리에 바이킹 대잠초계기 내부뿐만 아니라 통신망 전체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여기저기서 확인을 요청하는 무선이 쇄도했다. 소란이 가라앉을 때까지 잠시 침묵이 이어지더니 다시 시 호크의 부기장 라스웰 중위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 C3235 지점이다. 지금 이 아래에 잠수함이 있다.
- 빨리 서두르기 바란다.
시 호크에서 상당히 분한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목소리는 시 호크 21의 기장 디자드 대위의 것이었다. 목소리로 판단컨대 급박한 상황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나 바이킹의 기장 로젠벅 소령은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확인을 요청한다. 진짜 하픈을 쏘았는가?”
실탄이 장전된 하픈이 아니라도 이것은 놀랄 일이었다. 그곳은 예상치 못한 위치였다. 바이킹 대잠초계기 지휘관인 로젠벅 소령이 시 호크 21에게 재차 확인을 요구했다.
- 아니다.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하픈의 캡슐뿐이다. 반복한다. 진짜 미사일은 아니다. 캡슐 2개만 떠올랐다. 이 밑에 놈들 잠수함이 있다. 우리는 귀환해야 한다. 놈을 부탁한다. 라저 아웃.
“이런 망할!”
한국 잠수함에서 하픈 공격을 알리려고 실탄두를 뺀 하픈의 저장캡슐을 물위로 쏘아올린 것이다. 거리도 멀지 않은 2km 동쪽이었다. 마치 농락당한 것 같은 수치심에 로젠벅의 목소리가 격해졌다.
“기장! C3235로 이동한다. 서둘러라. 펭귄 세븐! 교신내용을 들었는가? 빨리 움직여라!”
바이킹이 기수를 급격히 돌리며 동쪽으로 향했다. 방금 전 투하한 소노부이들은 케이블이 풀리며 지금은 수중 50미터에서 200미터까지의 다양한 심도에 고정되는 중이었다.
그러나 30개의 소노부이는 엉뚱한 곳에 뿌려졌으니 이미 무용지물인 셈이었다. 각 소노부이로부터 신호를 점검중이던 에브릿 라저스 중위가 아직 탐지 준비작업을 완료하기도 전이었다.
바이킁들이 시 호크 21이 알려준 해역에 도착했다. 물위로 노란 연기 두 줄기가 바람에 휘날렸다. 시 호크에서 보았다는 하픈 캐니스터는 보이지 않았다. 로젠벅이 서둘렀다. 하픈을 발사한 한국 잠수함이 다른 곳으로 도망가기 전에 빨리 탐지해야 했다.
“투하 준비 완료!”
기장 로스 대위가 보고하자마자 로젠벅 소령이 명령을 내렸다.
“투하! 투하하라!”
다시 10여개의 소노부이가 시 호크가 알려준 지점에 뿌려졌다. 소노부이가 작동되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로젠벅 소령의 손이 기기들 사이로 빠르게 움직였다.
“아무 것도 안 잡힙니다. 아! 28번 소노부이에서 약하게 신호가 잡힙니다. 26번 소노부이에서도 잡힙니다.”
라저스 중위의 보고에 로젠벅 소령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26번과 28번 소노부이는 이곳으로 오기 전, 아까 그 위치에 투하한 소노부이들 이었다.
“뭐라고? 그쪽은 아냐! 시 호크가 목격한 지점은 바로 이 아래란 말이다!”
라저스가 기기를 조작하자 OL-82 신호처리 시스템에서 각 소노부이가 수집한 정보를 합산했고, 모니터 상으로 하나의 궤적이 그려지고 있었다.
“아닙니다. 그쪽이 확실합니다. 젠장! 15노트. 속도가 점점 빨라집니다!”
라저스 중위가 조금 전에 있던 곳에 잠수함이 있다고 악을 써댔다. 당황한 로젠벅 소령이 통신기를 잡았다.
“빌어먹을! 시 호크 21 나오라!”
- 시 호크 21이다. 무슨 일인가?
통신에 나온 대잠헬기 조종사의 목소리는 잠수함을 확실히 탐지했으니, 할 만큼 했다는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잠수함 소음을 탐지했다. 그런데 방향이 다르다. 어떻게 된 건가? 육안으로 본 것이 확실한가?”
- 확실하다. 하픈 캐니스터가 솟는 것을 직접 봤다. 거기에 스모커 까지 있는데 못 믿겠는가?
마이크로폰 너머로 시 호크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짜증이 잔뜩 섞여 있었다. 착함 직전에 모함과 통신을 취해야 하는데 난데없이 똑같은 질문이 계속되니 신경질이 난 모양이었다. 로젠벅 소령이 영문을 모르는 참에 라저스 중위가 다시 급하게 보고했다.
“잠수함이 가속중입니다. 음향 노이즈 분석! 디젤 잠수함 주전동기의 최고 가속음입니다. 20노트를 넘어섰습니다!”
로젠벅은 무척 혼란스러웠다. 헬기 조종사 놈들은 이곳에서 봤다고 우기지만 이쪽으로 뿌려진 소노부이에서는 아무 것도 잡히지 않았다. 대신 반대쪽에서 잠수함의 고속 항주음이 잡히고 있는 것이다.
- 펭귄 세븐이다. 파이브 들어라. 이쪽에서도 접수했다. 서쪽으로 고속행행중이다. 그쪽, C3238로 향한다. 놈의 침로 전방에 소노부이를 투하하겠다.
통료 바이킹 대잠기로부터 교신이 들려오고 기체는 어느새 선회하여 서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다른 대잠초계기들로 다시 아까 소노부이를 뿌린 곳으로 몰려갔다.
- 펭귄 세븐! 시 호크 21이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분명하다. 그 시간에 절대로 C3238까지 이동할 수 없다. 우리를 못 믿는가?
디자드 대위의 목소리가 통신기에서 흘러나왔다. 화가 난 로젠벅이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닥쳐! 멍청한 잠자리들. 귀환이나 빨리 하기 바란다. 바다에 처박히지 말고!”
로젠벅은 시 호크의 경고를 신뢰할 수 없었다. 시 호크의 기장에게 욕설을 퍼부은 다음, 그들의 귀에 확실이 들리는 목표를 추적할 수밖에 없었다.
5월 22일 13:40 오키제도 북동쪽 42km
미 해군 순양함 모빌베이, 전투정보센터
매튜 해리스 중령이 보고서철을 가지고 함대 대잠지휘관 앞에 우뚝 섰다. 오코너 준장이 턱을 약간 들어올려 바짝 얼어붙은 해리스에게 보고를 재촉했다. 애써 침착해지려는 오코너였지만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 잠수함이 발사한 것으로 가정한 하픈 2발에 대한 평가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려서, 2발 모두 함대 대공망에 의해 분쇄됐습니다.”
오코너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코너의 표정이 많이 풀어졌다. 눈치를 보던 작전참모 해리스가 구체적으로 보고하기 시작했다.
“훈련통제센터에서 판정한 결과, 한발은 모빌베이가 발사한 SM2에, 나머지 한발은 커츠의 체프에 목표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커츠가 발사한 SM1 2발은 빗나갔습니다.”
커츠는 페리급 프리깃이다. 훈련통제센터는 장문휴에서 발사한, 아니, 발사한 것으로 가정한 하픈이 그 발사 위치로 보아 커츠가 목표인 것으로 판단했다. 항모전단은 하픈 발사 경보에 따라 즉각 대공방어에 임했다.
먼저 이지스 순양함 모빌베이가 하픈 2발을 향해 4발의 SM2 스텐더드 함대공 미사일 발사절차를 마쳤다. 그러나 훈련통제센터에 있는 미사일 판정 시뮬레이터는 모빌베이가 발사한 것으로 가정한 스텐더드 미사일이 목표를 하나만 잡은 것으로 판정했다. 오코너 준장이 주먹쥔 손을 부들부들 떨었지만 대꾸하지는 않았다.
“모빌베이와 커츠의 상대 위치, 그리고 하픈의 침로가 방어하기에 최악이었습니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 침묵은 상당히 길어졌다. 이 결과는 하픈을 발사한 장문휴가 운이 좋았다기 보다는 그 코스로 발사한 장문휴함장의 능력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윽고 오코너 준장이 입을 무겁게 떼었다.
“아무래도 훈련통제센터는...”
그러나 오코너는 말끝을 얼버무렸다. 해리스는 감히 대잠지휘관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하지만 해리는 훈련통제센터가 항모전단의 체면을 세워주었다고 생각했다.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심하게 굽기도 한다.
5월 22일 13:50 오키제도 북쪽 20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멍청이들이 능동 소노부이를 본격적으로 투하하기 시작했습니다. 북서쪽입니다. 성공했습니다!”
최현호 상사가 고개를 돌려 함장 서승원에게 말했다. 훈련이 시작된 이후 최현호 상사가 고개를 뒤로 돌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최현호의 얼굴에서 긴장이 풀어지며 미소가 번졌다. 하픈과 어뢰를 미끼로 대잠초계기들을 대혼란에 빠뜨리는 작전이 성공한 것이다.
“좋아. 미속 전진, 4노트.”
“전진, 4노트로!”
함장의 명령을 받은 김승민 대위가 밸러스트 탱크를 직접 조작했다. 대잠초계기들을 감쪽같이 속인 장문휴의 승조원들은 느긋해졌지만 훈련판정관 레스턴 소령은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오키제도 주변의 수중지형은 남서쪽으로는 남해와 연결되며 제주도 서남장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대륙붕지형이다. 북쪽으로는 수심이 점차 깊어져 대륙붕이 끝나고 수심 2,500에서 3,000미터에 이르는 해저분지가 나타난다. 오키제도의 대륙붕과 대륙사면의 경계선에서 위태롭게 침좌했던 장문휴함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밸러스트에 주수합니다. 좌우 트림 탱크 대기! 중립부력상태로 들어갑니다.”
김승민 대위의 동작은 익숙해 보였지만 저속에서 잠수함의 균형을 잡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안정적이지 못하지만 예민한 X자형 함미타를 갖춘 장문휴가 균형을 잡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이것은 모두 자동으로 미세하게 함미타를 조정하는 컴퓨터의 도운 덕택이었다.
잠수함 장문휴는 30미터를 천천히 떠오른 다음 수중에 정지하듯 멈춰섰다. 그리고, 스크루가 회전하자 쇠로 만든 1,800톤짜리 깡통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당신들은... 음향기만 디코이가 있군요. 그것도 어뢰처럼 자주 발진식이었다니!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레스턴 소령이 그제야 입을 열고 함장에게 물었다. 장문휴함이 바닥까지 침좌하여 대잠초계기들의 소노부이 세례를 받는 동안 전체 승조원들은 절대침묵을 유지해야 한다. 그럴 때는 판정관도 말을 할 수 없었다.
레스턴 소령은 잠수함이 어뢰를 발사한 것에 대해서 규정위반이라고 펄쩍 뛰었지만, 그것은 어뢰가 아니라 어뢰와 비슷한 음향기만 디코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리고 레스턴 소령은 이 잠수함이 일반적인 209급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러나 그도 장문휴함이 회피하는 긴장감에 저절로 몰두하게 되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긴장하는 승무원들, 그리고 묵묵히 서 있는 함장이 겁나서 잠자코 있었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비밀이오, 소령.”
항상 그렇듯이 서승원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레스턴의 표정이 고울 리 없었다.
“비밀? 작전이 끝난 후 정식으로 공개할 것을 건의하겠습니다.”
함장과 판정관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때 작전관이 이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함장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뭔가?”
서승원 중령이 판정관으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우방국인 미국 해군 사관과 악감정을 쌓을 필요는 없었다.
“페리급에 발사한 하픈은 어떻게 됐겠습니까?”
김승민의 질문에 함장이 빙긋 웃었다. 서승원 중령은 하픈을 발사할 때 미국 군함을 명중시킬 자신이 있었지만, 미 해군이 중심이 된 훈련통제센터가 공정한 판정을 했을지는 의문이었다.
“자네가 예상한 대로 함대의 대공방어망을 뚫지 못했을 걸세.”
“예, 역시 훌륭한 판정관들입니다.”
김승민은 1987년 이란-이라크 전쟁 때 엑조세 공대함 미사일에 명중된 미 해군 프리깃 스타크를 떠올렸다. 장문휴에서 발사된 하픈의 목표가 된 커츠도 스타크와 같은 페리급이었다.
그때 스타크는 이라크의 미라지 F-1이 발사한 미사일 2발에 모두 명중해 함이 크게 손상되고 전투능력을 상실했다. 이때 37명이 전사하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
5월 22일 14:05 오키제도 북쪽 45km
미 해군 대잠기 S-3B 바이킹, 비행코드 펭귄 5
“뭐야? 소노부이들 사이로 그냥 내빼겠다는 속셈인가?”
로젠벅 소령이 버럭 짜증을 냈다. 바이킹 대잠초계기 승무원들은 한국 잠수함의 도주로 앞쪽으로 계속 소노부이를 살포하여 잠수함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했다고 자신했다. 그런데 잠수함은 수십 개의 소노부이를 무시하고 항주를 계속했다.
그 사이에 섞인 액티브 소노부이가 탐신음파를 계속 발하며 잠수함을 완벽하게 포위했는데도 불구하고 잠수함은 피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았다. 로젠벅 소령의 표정이 약간 험악하게 바뀌었다.
“기장! 저공비행하자. 매드(MAD)로 완벽하게 측정한 후에 통제센터로 보고해 버리겠어. 비겁한 놈들!”
로젠벅은 페어플레이를 하지 않는 상대는 경멸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로젠벅은 자기감지기인 매드로 정확히 파악한 후에 탐지결과를 직접 훈련통제센터로 전송하려고 마음먹었다. 잠수함 위치를 알고 있는 이상, 자기감지기에도 확실히 잡힐 것이 분명했다.
- 알겠습니다. 놈들 도주로를 따라 하강하겠습니다. 어뢰를 직접 투하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하하!
어윈 로스 기장도 심술이 솟는 모양이었다. 바이킹 대잠초계기는 좌측으로 길게 선회하며 하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도주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잠수함의 예상침로 위 30미터 고도에서 해면 위를 빠르게 질주했다. 수면에는 검은 그림자가 대잠초계기와 같은 속도로 수면을 달렸다.
“매드, 작동합니다.”
“거리 800야드... 500... 300...”
잠수함과의 추정거릴 세던 로젠벅의 표정에 점점의혹이 가득 찼다. 참다 못한 로젠벅이 드디어 일성을 터뜨렸다.
“아니! 아무 것도 안 걸리잖는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모르겠습니다. 잡히지 않습니다. 목표 잠수함의 항주 심도는 300피트 소리는 확실하게 들립니다. 그런데 매드에는 안 잡힙니다.”
라저스 중위가 땀을 뻘뻘 흘리며 자기탐지기에 고장이 났는지 기계를 살폈다.
“고장났어? 빨리 확인해!”
로젠벅은 다급해졌다. 그도 매드 계기판 앞에서 여러 가지 조작을 했지만 감지기엔 이상이 없었다. 그 사이, 바이킹은 다시 선회하여 오던 방향으로 비행했다. 그러나 두 번째에도 아무 것도 잡히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젠장!”
로젠벅은 누구에게 묻는지 모를 말을 했다. 그러나 그가 모르면 미일 연합함대의 어느 누구도 모를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었다.
- 우앗!
로젠벅이 다시 기기를 조작하는 사이에 기장 로스 대위의 비명이 들리고 기체가 급격히 상승하며 기울었다. 좌석에서 일어나 기기를 조작하던 로젠벅 소령이 중심을 잃고 반대편 컨솔 위로 나자빠졌다.
“어윈! 뭐 하는 짓이야!”
비틀거리며 일어난 로젠벅이 부딪친 오른쪽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외쳤다. 손바닥에 시뻘건 피가 묻어나왔다. 기장에게 퍼부을 온갖 욕설을 준비하던 순간, 로젠벅은 스피커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들어야 했다.
- 물위로 뭔가가 솟구쳤습니다. 피해야 했습니다! 저게 도대체 뭐지?
- 맙소사! 어뢰입니다!
“뭐? 어뢰라구?”
놀란 로젠벅이 조종석으로 달려가 조종사와 부조종사 사이로 고개를 내밀며 되물었다. 기장이 어뢰를 발견했다는 바다 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 소노부이를 조작하던 라저스 중위의 목소리가 기내에 크게 울렸다.
“소령님! 소노부이에서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접촉 상실입니다!”
로젠벅은 표정을 묘하게 일그러뜨리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럼 우린 지금까지 저 어뢰를 추적한 건가?”
5월 22일 14:15 오키제도 북쪽 40km
미 해군 순양함 모빌베이, 전투정보센터
“유우기리는 도대체 뭔가? 왜 아직도 저기에 있지?”
함대 대잠지휘관 오코너 준장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전술 디스플레이를 노려보았다. 아까부터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 유우기리의 움직임이 느려진 것 때문에 잔뜩 못마땅해진 함대 대잠지휘관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 거리에서 전술행동을 취하겠다는 건가? 잠수함은 훨씬 앞쪽이야! 어서 최고속도로 진입하라고 지시하게. 겁쟁이 노란 원숭이들!”
오코너 준장의 언성이 다시 높아졌다. 벨로 우드 호위전단에서 차출된 유우기리는 목표 잠수함의 추정 위치에서 20km나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유우기리는 벌써 감속을 하고 있어TEk.
오코너는 잠수함 탐지를 위해 저속으로 순항중인 유우기리를 결코 곱게 볼 수 없었다. 그가 일어나 소리치자 아까 점심으로 나온 식어빠진 햄버거를 손에 쥐고 간단히 요기를 하려던 음탐수들의 행동이 순간 딱 멈췄다. 함내에 다시 긴장감이 가득 번졌다.
“제독님! 펭귄 파이브로부터 연락입니다.”
통신장교로부터 보고를 받은 작전참모 해리스 중령의 말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오코너 준장은 잠수함 격침 판정을 기대하며 해리스 중령의 보고를 기다렸다. 희색이 만면한 제독을 보며 해리스 중령은 언뜻 보고를 하지 못했다. 뭔가 이상이 생긴 것을 직감한 오코너 준장이 해리스 중령을 재촉했다.
“뭔가?”
“추적하던 물체는 잠수함이 아니었답니다.”
전투정보센터에 잠시 약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승무원들이 일제히 해리스 중령에게 주목했다.
“그럼 대체 뭐야?”
오코너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머뭇거리던 해리스 중령은 빨리 말해버리는 게 낫겠다 생각했는지 곧바로 대답했다.
“어뢰였답니다. 전동추진 어뢰로 마크37로 예상됩니다. 그 어뢰는 209급 디젤 잠수함이 전속추진할 때의 음향을 내고 있었습니다.”
해리스 중령은 잠깐 동안 펭귄 파이브와 세븐에 탑승한 대잠팀들이 훈련 뒤에 오코너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러나 곧이어 터져나올 오코너의 호통에 대비해 어깨를 움츠렸다.
“말이 되나? 디지털 스펙트럼 분석도 안 했단 말야? 어디 설명 좀 제대로 해보게!”
오코너 준장이 한 입 베어 물었던 햄버거를 난폭하게 땅바닥에 내팽개쳤다. 콜라가 쏟아져 바닥에 식어빠진 거품이 일어났다.
“펭귄 파이브가 음향만 믿고 과신한 것 같습니다. 바이킹이 탑재한 신호처리 시스템은 수상함정과 같이 고밀도의 음파분석을 수행해낼 수 없습니다만...”
해리스가 허둥대며 대답했지만 그가 대잠초계기 승무원들을 변명 해준 것은 쓸데없는 짓이었다.
“머저리들! 바보들!”
최고지휘관은 감정표현이 차분해야 한다. 특히 부하들 앞에서의 과민반응은 사기에도 직결되는 무제다. 그러나 오코너는 그렇지 못했다. 격앙된 오코너의 눈가가 가늘게 떨렸다.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신체가 멋대로 움직이는 것은 매우 나쁜 징조였다.
“그럼 도대체 잠수함은 어디 간 거야? 다들 뭐 하는 거야?”
펄쩍 뛰는 오코너를 쳐다보며 전투정보센터의 요원들 표정이 어둡게 변했다.
5월 22일 14:45 오키제도 북서쪽 30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놓쳤습니다.”
음탐장 최현호 상사가 헤드폰을 벗으며 강인현 대위에게 말했다. 안상률 중사와 잠깐씩 교대했지만 이번에는 4시간이나 계속 귀를 모아야 했다. 최현호는 혹사당한 것은 귀였는데 눈까지 침침한 것이 신기한지 자꾸 눈을 꿈벅거렸다.
“예. 노이지 레벨은 비교적 높았는데 일순간에 소리가 없어졌군요.”
음탐관 강인현 대위가 한쪽 헤드폰을 벗으며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다른 수상함정들의 신호도 미약해지고 있습니다.”
나이가 어린 강인현은 계급이 낮은 최현호 상사에게 항상 정중하게 대했다. 최현호 상사 역시 나이 어린 상관인 강인현에게 깍듯했다. 장교와 고참 하사관 사이에는 항상 이렇듯 약간의 긴장이 개입되게 마련이다.
강인현 대위도 이번 일에는 약간 의구심이 들었다. 장문휴가 추적하던 LA급 공격형 원자력 잠수함의 소음은 비교적 컸다. 전반적으로 수면 위의 적 함정들도 모두 그렇게 서두르고 있었다. 장문휴함에게는 더없이 좋은 일이었다. 속도를 올리는 만큼 이쪽을 탐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가 공격형 원잠이라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디젤 잠수함이 원자력 잠수함에 비해 가장 취약한 것은 지속적인 잠항능력이다. 디젤 잠수함이 20노트 이상의 최고속도를 내면 축전기는 기껏 한두 시간 내에 완전히 방전되게 마련이다. 축전지를 소모하고 난 후에는 잠수함은 방법이 없다. 수면 가까이 부상하여 디젤엔진과 발전기를 가동시켜야 하는데, 그것은 더 큰 위험에 노출되는 일이었다.
장문휴의 연료전지형 무급기 추진 시스템은 외부의 공기 없이도 발전이 가능했다. 그것은 탑재된 액화산소의 수소를 반응시켜 직접 전기를 생성하는 것이다. 이로써 장문휴는 일반적인 디젤 잠수함보다 열배가 넘는 시간 동안 잠항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잠수함의 무제한적인 잠항능역에는 비교할 수 없었다.
강인현은 아마 영국인이 한 말이라고 기억했다. 핵잠수함은 한 번공격에 실패하더라도 또다시 30노트가 넘는 고속으로 쫓아가거나 도망가 재차 공격이나 반격할 기회를 잡을 수 있지만, 디젤 잠수함은 한 번 실패하면 끝장이라는 말이었다. 디젤 잠수함이 고속으로 항주해 목표를 뒤쫓거나 공격을 회피할 능력은 절대 없었다. 그것은 성능이 향상된 장문휴함도 마찬가지였다. 장문휴가 핵잠수하에 결코 미칠 수 없는 한계가 바로 그것이었다.
강인현이 한참 생각을 하다가 문득 최현호 상사에게 말했다.
“음탐장님, 온도와 해류를 체크해 보지요.”
“예, 알겠습니다.”
강인현에게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도 최현호 상사를 따라서 잠수함의 환경감지 센서들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잠수함 외부에는 온도와 염도, 해류의 유속 등을 측정할 수 있는 센서들이 부착되어 있다.
앞에 언급한 것은 소나에 많은 변수를 가져다 주는 요소들이다. 음파는 온도나 해류에 따라 진행에 방해를 받기도 하며 굴절되는 등, 극심한 왜곡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온도층 깊이가 바뀌는 것 같습니다. 수온약층과의 온도 차이도 굉장히 크군요. 아! 그쪽은 냉수대가 급격히 확장되고 있습니다.”
온도층은 물의 대류가 활발히 일어나는 표층수와 그 아래쪽 수온약층의 경계면을 이루는 면이다. 음파는 온도층을 통과하면서 굴절되거나 다른 각도로 퉁겨나가기도 한다. 소나 성능에는 악영향을 미치지만 잠수함은 이를 역이용할 수 있었다.
잠수함 함장이라면 당연히 이를 활용해야 하고, 잠수함을 추적하는 수상함도 당연히 온도층을 감안해야 한다.
표증수 아래의 온도약층 밑에는 심층수가 있다. 방금 미국 잠수함이 사라지 곳은 차가운 심층 해류가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곳이었다. 여름철에는 대기의 온도와 해류의 북상에 따라 표층수의 수온이 급상승하지만, 저층수의 온도는 반대로 내려간다. 이것은 동해에서 발생하는 해류의 순환 때문이다.
한참을 고민하던 강인현이 최현호의 눈과 마주쳤다. 강인현은 확인을 하듯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럼 마지막으로 접촉했던 잠수함의 진행방향이... 함장님!”
“왜 그러나?”
뒤돌아 함장을 부르던 강인현은 바로 뒤에 다가와 있는 함장을 보고 놀라 의자에서 팔짝 뛰어올랐다. 잠시 몰두하느라 인기척을 느끼지 못함 것이다. 강인현이 잠시 숨을 가다듬고 손으로 디스플레이를 짚어 가며 보고했다.
“현재 위치가 온도층이 혼합되는 권계면으로 판단됩니다. 놈들의 마지막 침로로 봐서 이곳이 매복에 적합한 장소로 생각됩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함장님.”
최현호 상사가 다시 헤드폰을 집으며 강인현의 의견에 동의했다.
“좋아, 나도 거기에 걸도록 하지.”
서승원 중령이 씨익 웃으며 강인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강인현은 함장의 갑작스런 칭친에 놀라 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강인현이 알기로 함장은 칭찬에 대단히 인색한 사람이었다.
“작전관, 엔진 정지. 잠항한다! 심도 200까지 내려간다.”
“예! 동력 순간정지. 심도 200으로 잠항!”
동역을 일순간에 상실한 장문휴함은 마치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 허우적대다 가라앉듯이 둔중한 맥주병이 되어 시커먼 암흑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5월 22일 14:55 오키제도 북서쪽 27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71 컬럼비아, 사령실
“순양함 챈슬러즈빌(Chancellorsville)이 앞서 나갑니다!”
소나장 워런 브리드(Warren Breed) 준위가 사뭇 차분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너무 서두르는 것 같군.”
미 해군 로스앤젤레스급 공격원잠 컬럼비아의 함장 로이 스위프트(Roy Swift) 중령이 생각에 잠겼다. 컬럼비아는 LA급 공격형 원자력 잠수함 가운데 최후기함에 속한다.
개량형 LA급으로 불리는 이 잠수함은 더욱 향상된 소나와 전투정보 시스템을 탑재하고 있다. 컬럼비아는 또 다른 LA급 행잠인 라 호야와 달리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12발을 별도의 수직발사관에 추가로 장비한다. 그리고 잠항타가 사령탑 대신 함수에 설치되는 등 초기형에 비해 외관상 차이도 크다.
“온도층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수온센서와 해류센서에서 감지되는 외부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말을 마치며 브리드 준위가 소나의 탐지모드를 조정하기 위해 여러 가지 환경감지 센서들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도 컬럼비아가 동해에서 작전한 적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동해의 해류상황은 매번 일정하지 않았다.
“감속, 12노트로. 소나장, 해류분포가 제대로 파악되면 알려주게.”
스위프트 중령은 신중하게 행동했다. 특히 쿠로시오 난류의 지파인 쓰시마 난류가 북상하여 북쪽의 한류와 만나는 오키제도 근방은 해류가 급격히 환류하는 해역이다. 독도 주변 해역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럴 경우 상이한 온도와 염도 차이로 인해 음파가 직진하지 못하고 상당 부분 산란된다. 컬럼비아의 소나는 주변의 모든 소리에 집중하고 있지만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적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이곳은 수중에서 무엇인가 있더라도 그 존재를 절대 확신할 수 없는 불확정 영역인 셈이다.
“온도층을 파악할 수 없겠나? 온도층 아래쪽이 좋겠는데...”
스위프트 중려이 초조하게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작업하는 소나팀원들이 한 대답은 함장이 예상했던 것들 가운데 최악이었다.
“어렵겠습니다, 함장님. 범위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온도층이 붕괴도니 것 같습니다.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면서 한류가 아래쪽으로 파고드는 잠류현상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해류가 횡방향으로 회전하는 링 밥까지 발생하고 있습니다.”
브리드 준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했다. ‘링 밥(Ring Bob)’이란 해류가 서로 만나서 선회하는 현상이다. 해류가 반원형으로 반복적으로 선회하는 경우는 마치 뱀처럼 꾸불꾸불하게 진행한다고 하여 ‘사행류’라고 한다. 이것이 심한 경우에는 해류가 원형으로 계속 횡전한다. 이럴 때는 한류의 일부분이 난류에 갇히고, 한류를 따라 내려온 물고기들도 더 이상 이동하지 못하고 그 안에서 헤매게 된다.
링 밥 현상이 가장 대규모로 일어나는 해역은 미국 동부해안이다. 그린랜드로부터 차가운 북극 냉수를 몰고 내려오는 래브라도 한류가 따뜻한 멕시코 만류와 만나면서 링 밥 현상이 대규모로 벌어진다. 브리드 준위가 초임시절 대서양 함대에 복무했을 때 링 밥 현상은 그를 어지간히도 괴롭혔던 단골손님이었다.
“젠장! 완전히 블랙홀이군. 챈슬러즈빌은 왜 서두르지? 이곳 해류변화를 모르고 있는 건가?”
스위프트가 무심코 이마를 닦아내렸다. 해도상에 나타난 주변 해저지형은 비교적 낮았다. 오키제도 북쪽으로는 대륙사면이 있어 수심이 점차 깊어지며 수심 2,000미터 이상의 심해로 이어진다. 이런 곳은 잠수함이 작전하기에 매우 적합한 지형이다.
하지만 그것은 공격자의 입장이지, 이번과 같이 컬럼비아가 함대를 호위해야 하는 방어적 입장에서는 불리했다. 함장은 컬럼비아가 이 해역을 크게 우회하여 미리 통과한 다음 대기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후회했다. 그러나 스위프트 중령은 함대 대잠지휘관 오코너 준장이 호위 잠수함들을 항모의 직접 호위로 돌리도록 지시한 명령문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챈슬러즈빌이 속도를 줄이고 있습니다.”
소나장 브리드 준위뿐만 아니라 컬럼비아에 탑승한 승무원들은 아군함의 행동에 신경이 더 쓰였다. 여차하면 어디선가 챈슬러즈빌을 향해 액티브 소나음을 쏠 것 같았다. 스위프트 중령이 혀를 찼다.
“바보 같은 놈들...”
순양함 챈슬러즈빌이 처음부터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챈슬러즈빌이 이곳의 해류상황을 자헤히 파악할 리도 없는데 앞서나간 것은 잘못이라고 스위프트는 생각했다. 수상함정이 깊은 곳의 해류와 온도를 파악하려면 케이블에 연결된 감시젠서들을 물밑으로 내려보내야 한다. 물속을 항행하는 잠수함처럼 지속적으로 물밑 상황을 파악할 수는 없는 것이다.
챈슬러즈빌도 다른 함정들과 마찬가지로 훈련 전에 이곳 해역 해저 지형과 해류 등에 관한 자료를 수령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얼마나 활용하는가는 각 함정마다 차이가 난다. 스위프트는 그 활용 정도가 경우에 따라서는 결정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챈슬러즈빌이 뭔가 발견했나 봅니다! 프레리 마스커를 작동하고 있습니다.”
브리드 준위가 챈슬러즈빌로부터 들려오는 물거품 소리를 포착했다. 프레리 마스커(Prairie Masker)는 선체의 홀수선 아래쪽 양현에 길게 배열된 기포발생 장치이다. 기포는 곧 선체 주위를 감싸며, 마치 커튼을 드리우듯 선체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차단해 준다. 물과 그 안에 가득한 공기라는, 극단적으로 이질적인 매질인 기포가 음파의 진행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노이즈를 접촉했습니다. 방위는... 알 수 없습니다!”
브리드가 급박하게, 그리고 당혹스럽게 보고했다. 잠수함의 눈인 소나로 음파를 발생시키는 물체의 방위를 알 수 없다는 것은 그렇게 흔치 않는 경우였따. 브리드는 음원의 거리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감속, 5노트로! 빨리 수색해 봐!”
함장의 명령에 따라 원자로 출력이 급격히 줄어들며 스크루 회전수도 줄어들었다. 그 사이 브리드 주위가 다른 소나병과 함께 새로운 노이즈를 파악하려고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여러 가지 조작을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그에게 들려오는 음파는 방향을 종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도대체 목표와의 거리도 알 수 없었다. 극단적으로는 적 잠수함이 컬럼비아의 사령탑 위에 있을 수도 있었다. 막강한 공격용 핵잠수함인 컬럼비아는 지금은 장님과 다름없었다.
함장 스위프트 중령은 점점 초조해졌다. 한국 잠수함이 아무리 재래식 디젤 잠수함이라고는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소음 레벨이 너무 낮아 탐지하기가 곤란했다. 아무래도 핵잠수함으로서는 빠른 속도를 이용하는 편이 유리했다. 핵잠수함의 최고속도는 한국 잠수함이 장비한 어뢰의 속도에 비해 별로 느리지 않았다.
저속에서의 잠수함전은 탐지능력과 잠수함에서 발생하는 소음 정도에 따라 결판난다. 그런데 이것들은 LA급 핵잠수함과 209급 디젤 잠수함 사이에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럴 경우 머리와 인내력이 승부를 가름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함장이 절망적으로 소나팀의 바쁜 손길을 주시했다. 컬럼비아가 훈련중 한국 잠수함에게 격침판정을 받은 미국 핵잠수함들 가운데 하나가 된다면, 아마 그는 승진은 기대하지 않는게 속 편할 것이다.
목표를 탐지하지 못해 극도로 초조해진 함장은 차라리 속도를 높여 이 해역을 벗어날까 생각해 보았지만 이미 늦었다. 아무리 핵잠수함이라도 최고속도로 가속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아무래도 한국 잠수함은 상당히 가까이 있는 것 같았다. 함장은 지금 한국 잠수함이 컬럼비아의 존재를 눈치챘겠지만 위치를 확실히 모를 수도 있다는 한 가지 희망에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었다.
- 디잉~~~.
“으악!”
브리드 준위와 나머지 소나병들이 마치 지시를 받은 것처럼 동시에 헤드폰을 벗어던지고 손으로 귀를 막으며 비명을 질러댔다. 그 직후 낮은 소리가 다시 한 번 컬럼비아의 선체를 때렸다.
스위프트 중령이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한국 잠수함은 컬럼비아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숨어 있어TEk. 만약 한국 잠수함이 실제로 어뢰를 발사했다면 아무리 빠른 LA급 잠수함이라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거리였다.
* * *
5월 22일 14:55 오키제도 북서쪽 28km
미 해군 순양함 챈슬러즈빌, 전투정보센터
핵잠수함 컬럼비아와 거의 동시에 순양함 챈슬러즈빌의 소나실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만약에 두 공간의 모습을 한군데서 바라볼 수 있다면, 핵잠수함 컬럼비아와 이지스 순양함 챈슬러즈빌 모두 4명씩 도합 8명의 소나팀원들이 고통스러운 듯 귀를 감싸며 얼굴을 찡그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거리는... 3km 이내로 추정됩니다. 지향성 액티브 소나에 두 번 맞았습니다.”
챈슬러즈빌의 소나팀장 앨런 센터(Allen H. Center) 대위는 아직도 귀가 멍멍한 듯 한 손으로 귀를 감싸고 육안으로 소나에 감지된 음파를 분석했다. 함장 레이먼드 사이먼(Raymond Simon) 대령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미세하게 들려오는 잠수함 음파를 탐지하고 함정의 정지와 프레이리 마스커의 작동을 지시했지만 이렇게 가까운 곳일지는 짐작하지도 못했다. 그가 잠시 멍청히 서 있는 동안 인터폰이 날카롭게 울려댔다.
- 함교입니다. 전방 2km 지점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분명했따. 사이먼 대령이 혹시나 하고 송신기를 들어 함교 당직사관에게 물었다.
“함장이다. 그 외에 다른 사항은 없나?”
- 예, 없습니다. 하나가 더 피어롭니다. 색깔은... 둘 다 오렌지 색입니다.
“지기랄!”
사이먼 대령이 갑자기 송신기를 난폭하게 집어던졌다. 오렌지색 연기라면 한국 잠수함으로부터 발사된 스모크 부이였을 것이다. 그것은 공격소나로 격침을 알리는, 이번 훈련방식보다 먼저 사용된 옛날 방식 이었다.
잠수함이 일정거리까지 접근하여 연막탄을 물위로 띄워 보내면 그 연기는 수상전투함에 곧바로 관측된다. 쉽게 말해서 연기를 확인한 수변함정은 격침당했으니 꼼짝 말고 죽어 있으라는 뜻이다.
공격소나음도 부족해서 친절하게 연막탄까지 쏘아올린 한국 잠수함 함장에게 사이먼 대령이 고마움을 느낄 리 만무했다. 수치심과 분노가 불같이 피어올랐지만 지금은 꾹 참는 수밖에 없었다.
“대령님! 함정을 급속 후진시키는 것이 규칙입니다만...”
사이먼 뒤에 서 있던 판정관이 그의 눈치를 살피면서 도저히 용기가 안 나는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그러나 사이먼 대령이 홱 돌아보면서 한 말은 판정관이 예상한 그대로였다.
“알고 있으니 입 닥치고 가만있어 주게, 소령!”
5월 22일 14:58 오키제도 북쪽 30km
미 해군 순양함 모빌베이, 전투정보센터
작전참모 해리스 중령으로부터 보고받은 오코너 준장은 침착하려고 노력했다. 끓러오르는 노기를 간신히 억제하며 이를 악물었다. 그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폭발하기 직전이었따. 양옆 관자놀이에 동맥이 불거지며 꿈틀거렸다.
오코너가 간신히 입을 열어 힘들게 말했다.
‘위치 파악됐으면 모두 집중시키게.“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오코너의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본 해리스 중령이 짧게 대답하고 돌아섰다. 오코너 옆에 붙어 있다간 불벼락이 떨어질 것 같았다. 해리스는 곧 주변 호위함정들을 다시 불러모으기 시작했다.
앞서 나아가던 다른 호위함정들, 그리고 대잠항공기들은 헛물을 들이켜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절대 실수하면 안 된다.
항모 링컨의 직위함정 챈슬러즈빌이 당한 이상, 링컨에게 붙어 있는 호위함정은 약간 우측으로 치우쳐진 구축함 폴 해밀튼밖에 없었다. 그러나 폴 해밀튼은 알레이 버크(Arleigh Burke)급 이지스 구축함으로 막강한 방공전투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대잠헬리콥터는 탑재하고 있지 않았다.
당장 대잠헬리콥터를 발진시킬 수 있는 함정은 항모 좌우에서 호위중인 페리급 미사일 프리깃 커츠(Curts)와 일본 해상자위대의 무리사메밖에 없었다. 폴 해밀튼이 옆에 붙어 있어 봤자 잠수함을 공격하지 못하고, 대신 한국 잠수함으로부터 동시에 공격받을 가능성이 더 컸다.
“링컨을 호출해. 전속력으로 해역을 이탈하라고 전하라!”
안절부절못하는 오코너가 해리스에게 조급하게 지시했다. 해리스는 재빨리 링컨의 함장과 연결되는 직통회선을 연결했다.
“모빌베이입니다. 항모, 전속항진하십시오.”
전화 상대방 쪽에서 잠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해리스는 전화를 받은 상대방이 항모 함장에게 보고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잠시후 전화가 딸깍거리는 소리가 난 다음,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렸다.
- 자넨 누군가?
갑작스런 늙은이의 목소리에 해리스 중령이 바짝 긴장했다. 함대에서 이렇게 안하무인격으로 상대방의 신원을 확인하는 자는 딱 한 사람밖에 없었다.
“중령 마크 해리스입니다.”
- 당장 오코너를 바꿔!
잔뜩 화가 나서 내지른 큰 목소리였다. 해리스 중령이 놀라 잠시 말문이 막혔다. 항모의 작전라인을 호출했더니 항모기동부대 사령관 대니얼 부스틴(Daniel Boorstin) 소장이 붇은 것이다. 해리스 중령은 황급히 오코너 준장을 불렀다.
송신기 옆에 서 있던 오코너 준장은 말없이 듣기만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의 안색은 붉은색에서 점점 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5월 22일 15:02 오키제도 북서쪽 25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링컨이 가속하고 있습니다. 대단합니다.”
“항공모함이 급속 변침하고 있습니다. 북쪽으로 선회하고 있습니다. 동망갑니다!”
최현호 상사의 가벼운 탄성에 이어 강인현 대위가 놀랍다는 듯이 외쳤다. 헤드폰을 눌러서 들을 필요가 없어TEk. 항모가 급속항진하는 소음이 잠수함의 함체를 때려댔다.
맨귀로 들려오는 링컨의 추진음은 엄청났다. 만재배수량 10만 톤의 거함 링컨이 무려 20만 마력의 최고출력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승조원들은 함체를 울리는 큰 소리에 놀라서 불안하게 주위를 살폈다.
“대단합니다. 저런 뚱보가 30노트 넘는 속도를 내다니! 그렇지 않습니까?”
함장 서승원 중령이 웃으며 옆에 있는 판정관 레스턴 소령에게 말을 붙였다. 시무룩해진 레스턴은 별 말이 없었다. 서승원에게 한 마디 쏘아주려던 레스턴은 뭔가 할 말이 있는지 실룩거리다가 말고 목구멍으로 꿀꺽 삼키고 말았다.
서승원 중령은 레스턴의 표정을 읽고 나서 묘한 미소를 지웠다. 그는 곧 뒤돌아 부함장을 불렀다.
“부장, 항모는 참아주게. 대신 다른 것을 잡자구.”
“욕심을 내볼 만했습니다. 컬럼비아와 챈슬러즈빌을 잡았을 때 바로 시도했더라면 충분했습니다. 아쉽습니다, 함장님.”
아쉬움은 나았지만 이번 훈련으로 자신만만해진 승조원들은 입이 반쯤 찢어져 일에 몰두했다. 부함장은 지금 함장에게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승조원들을 격려하고 있었다. 함장이 설명을 덧붙였고, 부함장이 그 설명에 추가했다.
"그래, 지금은 늦었지. 저놈이 최고속도를 내면 우리는 따라갈 수 없으니까. 120퍼센트 출력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네. 무슨 말인지 알겠나?“
“예, 알고 있습니다. 25노트를 내면 우리도 항모를 잡고 나서 대잠항공기들로부터 집중공격을 받았을 겁니다. 그래도 아쉽군요. 모험해 볼 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함장님.”
대답하는 진종훈 소령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링컨을 놓아조었지만 장문휴가 대잠방어망을 분쇄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것도 대잠방어망을 피한 침투가 아니라 호위 전투함들을 격침시킨 결과 얻어진 돌파였다.
그리고 마음만 먹었다면 링컨이 최대속도로 가속하기 직전까지 거리를 좁혀 하픈과 공격소나음을 먹여줄 수 있었다. 잡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잡을 수 있는 것을 놓아주었다는 자신감이었다.
“자네, 96년도에 최무선에 탔었지?”
“예! 그렇습니다. 음탐관으로 근무했습니다.”
진종훈이 대답하면서 서승원의 눈빛과 마주쳤다. 두 사람이 뻔히 아는 사실을 왜 묻는지 안ㄹ 수 없었다. 그때 서승원은 최무선함의 부함장이었다. 진종훈은 그때 림팩 훈련에서 목표 항공모함인 인디펜전스를 둘러싼 대잠방어망을 돌파한 뒤, 미 해군으로부터 받았던 지독한 압력을 떠올렸다.
5월 22일 15:30 오키제도 북서쪽 32km
미 해군 항공모함 에이브럼 링컨, 비행갑판
항공모함 링컨의 비행갑판에 두 대의 시 호크 대잠헬리콥터가 거의 동시에 착륙했다. 아일랜드(Island)라 불리는 함교 뒤쪽 3번 엘리베이터뒤로 두 대가 나란히 안착했다. 갖가지 색깔의 조끼를 입은 함상근무자들이 헬기를 향해 우를 몰려들었따.
착지를 완료한 시 호크 대잠헬리콥터는 엔진을 끄지 않았다. 아이들링, 즉 공회전 출력 상태에서 연료재보급을 받아야 했다. 녹색 재킷과 헬멧을 쓴 항공기 정비요원들 한 무리가 달려들어 기체 각 부분을 긴급 점검했다.
이들이 이상이 없다는 사인을 보내자 이번에는 자주색 재킷과 헬멧을 쓴 한 무리의 수병들이 굵은 호스를 들고 뛰어왔다. 연료보급반 요원들이었다. 폭발성이 강한 항공유를 제트엔진 시동중에 주유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작업이다. 한 수병이 능숙한 솜씨로 주유구에 연료호스를 고정시킨 다음 연료주입을 시작했다. 그 수병이 풍선껌을 부풀리며 옆에서 지켜보는 헤럴드 라스웰 중이에게 말을 걸었다.
“와우! 저것 좀 보세요. 멋지군요.”
“입 닥쳐! 빨리 볼일이나 보고 꺼져주게.”
건들거리는 케이트 스미스(Kate Smith) 하사에게 시 호크 21의 부기장인 라스웰 중위가 냉랭하게 내뱉었다. 무안하다고 느꼈는지 스미스는 가리키던 손을 내리고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풍선껌을 크게 부풀렸다.
항공모함 링컨 주위로 수십 대의 대잠헬리콥터들이 몰려와 있었다. 마치 벌떼들이 강을 건너는 것처럼 2~3대씩 떼지어 이곳저곳에서 우르르 몰려다니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S-3 바이킹 대잠초계기도 헬리콥터들을 간섭하지 않는 방향에서 2대씩 짝을 지어 저공비행과 상승을 반복했다.
“젠장! 근데 왜 이렇게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겁니까? 몽땅 다 몰려 있군요. 설마 잠수함이 여기까지?”
스미스는 이번에는 라스웰에게 고개를 돌리지 않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강한 소음 속이어서 프로텍터를 착용한 주변 동료들에게도, 라스웰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풍선껌이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다. 헬리콥터 로터가 일으키는 강한 바람 때문에 케이트가 만든 풍선이 반대쪽으로 잔뜩 일그러졌다.
5월 22일 16:05 오키제도 북서쪽 15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탱크가 굴러오는군요. 대잠전에서 저런 속도라니. 미쳤습니다. 저 또라이 새끼...”
최현호 상사가 입담 좋게 상소릴 곁들이며 중얼거렸다. 잠수함위로 전투함 한 척이 30노트가 넘는 최고속도로 항주하고 있었다.
“함장님! 저넘, 벨로 우드 상륙함대를 호위하는 놈이 아닐까요?”
작도판에서 상황을 살피던 부함장이 다가와 의견을 제시했다. 항모호위함정들은 지금 모두 한곳에 몰려 있어TEk. 그러나 장문휴는 이미 그 해역을 이탈한 지 오래였다. 함장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런 것 같군. 최 상사, 저놈뿐인가?”
“예, 그렇습니다. 스프루언스급 구축함입니다.”
최현호 상사에 이어 강인현 대위가 보고했다.
“요코스카에 있는 놈이 휴잇과 커싱인데, 아마 저놈은 커싱 같습니다. 최고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함장 진종훈 소령은 방향으로 판단하건대 그것은 벨로 우드 호위전단 소속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진종훈은 함장이 항모를 잡지 않은 것이 이런 효과까지 기대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표정이었다.
“좋아! 저놈마저 빠지면 벨로 우드는 우리 것이다. 음탐장, 놈이 5km 이상 이동하면 알려 주게. 우리도 움직인다.”
서승원 중령은 만족스러운 듯 모자를 눌러 쓰며 진종훈 소령을 힐끗 돌아보았다. 그리고 약간 찡그린 미소는 부함장에게 이젠 자신의 생각을 읽을 수 있겠느냐는 물음이었다. 함장의 눈빛을 받은 부함장이 조용히 미소지었다. 게임은 이제 후반부로 접어들고 있었다.
사령실 한쪽 구석에서는 레스턴 소령이 뭔가를 수첩에 적으며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계산기를 꺼내들고 스톱워치를 간간이 들여다보며 혼자서 열중하고 있었다. 그를 바라보던 강인현 대위와 작전관 김승민 대위가 소곤대며 키득거렸다.
“저 자식 말야. 우리가 잠항한 직후부터 시간과 속도를 체크하고 있었단 말야. 우리 잠수함의 잠항능력이 꽤나 궁금하겠지? 낄낄!”
김승민 대위가 강인현에게 말한 다음 판정관에게 윙크를 보냈다. 김승민과 눈길이 부딪친 레스턴은 잠시 당황하더니 어깨를 들썩였다. 레스턴은 다시 계산기를 두들겼다. 하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한 번도 부상하지 않고 연료전지만으로 사흘 가까이 계속 잠항한 장문휴함이 레스턴에겐 놀라울 것이다. 그것도 전력소모가 극심한 고속기동을 수차례 했기 때문에 더욱 의아했을 것이다. 계산이 잘 안 되는 듯 레스턴 소령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5월 22일 16:50 오키제도 북서쪽 30km
미 해군 순양함 모빌베이, 전투정보센터
- 디잉~~.
함체가 저주파 탐신음으로 짧게 진동했다. 모빌 베이의 함수소나 SQS-53 소나에서 발생한 탐신음이 물을 진동시키며 멀리 퍼져나갔다.
“다른 구역은 어떤가?”
미일 연합함대 대잠지휘관 오코너 준장이 보고준비를 마친 해리스 중령에게 물었다. 해리스는 모고서철을 보면서 또박또박 보고했다. 해리스가 항상 오코너의 눈길을 피해 내심 불쾌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부하를 나무랄 여유는 없어TEk.
"구축함 커싱(Cushing)이 2분 전부터 새로 합류했습니다.“
“특별한 사항은?”
오코너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해리스를 노려보았다. 해리스는 잠시 오코너의 눈길과 마주쳤지만 즉시 보고서로 시선을 돌렸다.
“도합 6개 구역으로 나뉘어서 각 함정이 액티브 탐신을 계속중입니다. 이들이 링컨의 전방을 선회하며 계속 범위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아무 것도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코너의 표정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항공모함 링컨은 한 시간 동안의 전속항진을 마친 후 다시 원래의 항로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한국 잠수함이 쫓아오지 못할 속력으로 일단 위험해역을 벗어난 것이다.
해리스 중령도 아직 발견되지 않는 잠수함에 대한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함대가 모조리 투입되어 액티브 탐신을 하며 해역을 배회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쪽의 존재를 폭로시키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런 방법은 아군 전투함 가운데 한 척을 잠수함의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는 오코너를 돌아보며 측은하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으로는 이렇듯 극단적인 전술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어이가 없기도 했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 지익~~.
순양함 모빌베이의 함수소나에서 저주파음이 다시 한 번 물속을 진동시켰다.
5월 22일 17:40 오키제도 북서쪽 10km
일본 해상자위대 구축함 DD-158 우미기리
아리무라 유지 이등해좌는 함교 난간에 서서 자외선 코팅렌즈의 파란 색깔이 나는 쌍안경을 집어들었다.
오른쪽 난간에 서서 보는 동해는 언제나 푸르렀다. 난류가 강한 요코스카 서안이나 일본열도의 동쪽 바다와는 달리 동해의 색깔은 더욱짙어 보라색에 가까웠다.
15노트의 초계속도로 순항을 계속중인 유우기리급 구축함 우미기리 왼쪽에는 상륙함대의 기함 블루 리지(Blue Ridge)가 있었다. 그보다 약간 앞쪽에는 만재배수량 4만톤에 육박하는 상륙함 벨로 우드가 항진중이었다. 이들 뒤에는 각종 양륙함과 보급선들이 뒤따랐다.
벨로 우드의 갑판 위에는 많은 수의 CH-46 시 나이트(Sea Knight), CH-53 수퍼 스탤리언(Super Stallion) 헬기가 도열해 있었다. 그 위로 완전군장을 한 병사들이 후방 승강구로 타고 내리는 동작을 반복했다. 아리무라는 미 해병대원들이 탑승훈련을 하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하루 종일 전투정보센터에서 시달린 아리무라는 바깥에 나오자 눈이 부셔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바깥이 너무 밝았다. 아리무라는 대잠지휘관이 너무 웃기는 명령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모든 대잠함정을 한곳에 집중시키다니! 이번 훈련에서는 가상 적 잠수함이 단 두 척만 동원됐지만, 실전상황이라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리무라 이등해좌는 다시 망원경을 집어올려 주변을 돌아보았다. 함대 좌익을 맡은 호위함 야마기리가 멀리 보이고, 상륙함대 맨 앞에서 선도하는 이지스 구축함 커티스 윌버(Curtis Wilbur)가 가물거렸다. 호위 담당 해역이 현재의 상륙함대 호위함 숫자에 비해 지나치게 넓었다. 게다가 호위함 3척을 항모기동전대로 뺐으니 더욱 썰렁해 보일 수 밖에 없었다.
- 함장! 수측실입니다. 접축보고입니다.
“뭔가?”
아리무라가 헤드셋의 스위치를 넣어TEk. 훈련중에는 잠시도 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 추정방위 3-1-0으로부터 미약한 노이즈입니다. 무엇인지는 파악되지 않습니다만...
“알아다. 곧 내려간다.”
아리무라는 설마하는 느낌이 들었다. 예민한 소나에는 침몰선, 고기떼뿐만 아니라 심지어 해류의 소용돌이도 물체로 판단될 때가 있다. 소나가 처음 발명되어 테스트할 때는 온도층을 물체로 판단했었다. 조금 전에 잠수함으로 생각된 물체는 결국 새우떼로 판명되었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한국 잠수함이라면 이쪽의 방어력은 너무 약한 꼴이었다. 한국 잠수함은 이쪽 위치를 파악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이쪽은 잠수함을 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이 문제였다.
아무래도 걱정이 된 아리무라는 상갑판 바로 아래층에 위치한 전투정보실을 향하여 난간을 붙잡고 미끄러지듯이 뛰어내려갔다.
5월 22일 17:43 오키제도 북서쪽 13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최대한 접근한다. 놈의 속도가 변할 때까지 기다려. 놈이 눈치를 챘을 때 공격한다. 알겠나? 부장.”
“예! 알겠습니다.”
서승원 중령이 명령을 마치고 잠망경 앞으로 다가섰다. 그는 공격 소나를 때리자마자 부상할 계획이었다. 일단 우익에 위치한 해상자위대 구축함만 제거하고 나면 반대편의 또 다른 구축함이나 선도의 이지스 구축함 커티스 윌버가 반응하기까지는 상당한 여유가 있었다.
서승원은 그동안 잠망경으로 상륙함대를 촬영할 예정이었다. 공격소나를 일일이 때리지 않더라도 훈련이 끝난 후에는 이 필름이 매우 유용한 훈련보고서 역할을 할 것이다.
“감속하고 있습니다!”
“좋아, 탐신!”
최현호 상사의 외침에 이어 함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공격소나가 작동하자 음파가 일본 해상자위대의 구축함 우미기리를 향했다.
“잠망경 심도로 부상한다!”
“부상! 잠망경 심도로. 부상각 15도!”
대기하고 있던 작전관 김승민 대위가 복창하며 조함을 지휘했다. 선체가 뒤쪽으로 급격히 기울며 장문휴함이 수면 위를 향해 돌고래처럼 상승하기 시작했다.
“심도 유지하라. 함장님! 잠망경 심도입니다.”
김승민이 보고했다. 서승원은 대답하지 않고 잠망경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서승원은 먼저 주변에 항공기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잠망경을 잡고 빠르게 한 바퀴 돌았다. 그 사이에 진종훈 소령도 또 다른 잠망경을 조작했다.
고급 안경과 저일렌즈로 유명한 독일의 ‘카를 짜이스(Karl Zeiss)'사에서 제조된 SERO 15형 공격잠망경은 서승원이 조작하는 SERO 40형 탐색용 잠망경과 나란히 붙어 있었다. 진종훈 소령이 천천히 돌며 상륙함대의 각 함정 한 척마다 십자눈금에 고정시킨 다음 손잠이에 달린 버튼을 눌러 체크했다.
물위에 솟은 공격잠망경의 대물렌즈 옆에는 레이저 거리측정기가 부착되어 진종훈이 버튼을 누를 때마다 레이저 빔이 목표 함정까지 쏘아졌다. 바깥 모습은 보다 정밀한 SERO 40형 잠망경과 연결된 비디오 카메라에 기록이 되지만 SERO15형 잠망경에서 진종훈 소령이 스위치를 눌러 지정한 방위는 장문휴함의 MSI-90U 전투시스템으로 바로 링크되어 공격방위를 산정할 수 있었다.
“됐나? 부장. 잠항한다. 아... 대기하라. 잠깐!”
서승원이 옆을 돌아본 후 진종훈이 작업을 마쳤는지 살폈다. 그리고 다시 방향을 돌려 방금 공격한 우미기리를 향했다. 그리고 배율을 조였다. 아직 우미기리는 오던 침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음탐실! 우미기리는 어떻게 됐나? 이쪽으로 계속 접근하고 있다.”
- 아직 변화가 없습니다. 설마 공격소나음을 못들은 척하지는... 아! 가속 역추진하고 있습니다. 보이십니까?
음탐실은 사령실과 사실상 같은 공간에 있다. 다만 소리를 차단해 주기 위하여 약간의 방음벽이 감싸고 있지만 그래도 같은 공간이다. 잠수함에서는 사령실과 음탐실 등, ‘실’이라는 개념은 일반적으로 폐쇄된 공간이 아니다.
잠망경 너머 우미기리 쪽에서 뭔가 불빛이 명멸하고 있었다. 서승원 중령이 눈을 밀착하며 뜻을 읽어보려고 애썼다.
“귀함의... 건투에...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귀함이 격침한 함정은... 일본국... 해상자위대의... 호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멍텅구리 양키들의... 지휘를... 받았기 때문이다. 다음에... 만날 때는... 좋은 승부가... 되길... 기대한다.”
짧게 끊어지는 탐조등의 모르스 부호로 전문이 모두 당도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그 사이에 함장이 웅얼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 승조원들도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짜식들이 말이 많군요. 당했으면 가만이나 있을 것이지, 주둥이만 살아 가지고...”
피식 웃으며 진종훈 소령이 한 마디 던졌다.
5월 22일 17:42 오키제도 서쪽 30km
미 해군 순양함 모빌베이, 전투정보센터
“사령관님! 완전히 당했습니다. 벨로 우드 전단 우익에서 우미기리가 격침됐습니다. 벨로 우드 전단 우측이 완전히 노출됐습니다!”
해리스 중령은 함대 대잠지휘관에게 보고하며 고개를 숙이고 부들부들 떨었다. 벌컥 화를 낼 줄 알았던 오코너 준장은 의외로 가만히 있었다. 뜻밖의 반응에 해리스가 겁을 집어먹고 떨고 있을 때 오코너 준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그놈이 죽기로 작정했단 말이지. 그깟 큐트 네이비(Cute Navy)주제에... 중령! 상륙함정들을 모두 회피기동시킨다. 개별 회피행동에 들어가라고 전하게. 그리고 당장 링컨 주위에 몰려 있는 멍청이들을 빨리 되돌려!”
오코너 준장의 말에는 단어마다 깊은 분노가 담겨 있었다. 미 해군은 한국 해군을 ‘귀여운 해군’이라고 부른다. 항모와 순양함 등 커다란 덩치의 미국 해군은 낡고 조그마한 군함을 몰고 다니는 한국 해군을 정식 해군으로 여기지도 않는 비아냥이 담긴 말이다.
해리스 중려이 서둘러 벨로 우드 전단을 호출했다. 다행이 벨로 우드 지휘관들의 계급서열은 오코너보다 낮았다. 게다가 7함대 기함인 블루 리지에도 사령부 요원만 탑승하고 있었지 최고지휘관은 없었다.
대니얼 부스틴 소장이 링컨에 탑승하고 있는 것이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한 해리스 중령이 오코너의 지시를 전달했다. 한편에서는 다른 참모들이 오코너 준장의 직접적인 지휘선상에 있는 구축함과 프리깃, 대잠초계기들을 호출하고 있었다.
5. 최후의 출항
9월 10일 15:10 부산광역시 가덕도 동쪽 3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호야, 소나실
“시에라 92! 방위 3-3-0, 속도는 12노트입니다.”
“화물선 같은데... 엔진이 무척 낡았어. 제기랄! 끝이 없군.”
미 해군 공격원잠 라 호야의 소나병 둘이 피곤에 지쳐 맥이 풀린 대화를 나누었다. 두 사람은 긴장감이 전혀 없었다.
“또 옵니다. 추적번호 부여합니다. 시에라 93, 방위 3-3-5, 속도는...”
“불 싯(Bull shit)! 또 한 바퀴 돌겠군! 미치기 직전이야!”
선인 소나병인 제이 로키(Jay Rockey) 중사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쳤다. 소나로 탐지한 목표를 식별하기 위해 S로 시작되는 일련번호를 붙이는데, 이를 ‘시에라’로 발음한다. 그리고 일련번호를 가능한 짧게 하기 위해 100을 넘을 때마다 새롭게 시작한다. 어차피 이곳을 지나간 상선들이 곧바로 되돌아올 리는 없으니까.
미군에서는 무선통신을 하거나 암호화된 문서를 알파벳을 다르게 발음한다. A는 ‘알파’, B는 ‘브라보’, 그리고 C는 ‘찰리’라고 발음해서 상대방에게 확실한 문자를 알려주기 위함이다.
이것은 소나가 탐지한 목표처럼 일련번호가 붙은 대상을 지칭할 때도 쓴다. 러시아 잠수함에 빅터급이니 위스키급이니 하는 명칭을 붙이는데, 이는 러시아에서 정한 것이 아니라 미군이 V,W로 지정한 것에 불과하다.
제이 로키 중사가 이미 부팅되어 있는 휴렛 팩커드 사의 웍스테이션 HP 770을 마우스로 좍하여 워드패드를 불러들였다. 그런 다음, 시에라 92와 93의 접촉시간과 특성, 속도 등을 기입했다. 이렇게 많은 양을 메인 컴퓨터에서 계속 추적할 필요는 없었다.
로키 중사는 간단하게 메모를 한 다음 메인 컴퓨터에 저장된 이전의 추적정보를 추려내어 삭제 키를 눌렀다. 이 해역에는 하도 많은 민간 선박이 지나가 함장으로부터 추적정보 삭제권한을 위임받은 지 일주일이 넘었다. 로키 중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길게 켠 다음 사령실 쪽을 돌아보았다.
간단한 방음벽이 둘러진 소나실에서 뒤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사령실 한쪽이 보였다. 당직을 서고 있는 대위 한 명과 조함 요원들 몇몇, 공격컨솔 앞에 앚아 있는 사관 한 명뿐이었다. 함장과 부함장은 아마도 헬스실에서 러닝 머신을 타고 있을 것이다. 벌써 보름간의 단순한 추적이 모두의 진을 빼놓았단 것이다.
“방위 2-3-0! 해로운 목표입니다. 코드 부여, 시에라94!”
랠프 루이스 하사가 큰 소리로 외쳤다. 초임 하사는 저래서 좋다고 로키는 생각했다. 지금 라 호야 승무원들이 벌 대신 당하고 있는 이 사태가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얼마나 지루한 일인지도 모르고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루이스 하사를 쳐다보던 로키 중사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담배를 빼 물었다. 재떨이가 꽁초로 가득 찬지 오래였다.
9월 13일 08:30 경상남도 진해
한국 해군 진해항, 제 3부두 위병소
“강 대위!”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강인현이 뒤를 돌아보았다. 무성한 벚나무 그늘 아래 고참 하사관들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 차도 옆에 김승민 대위가 바삐 걸어왔다.
“작전관님! 필승!”
“여전히 좋아 보이는데?”
강인현에게 답례하는 김승민이 싱글싱글 웃었다.
“나쁠 게 뭐 있겠습니까?”
“어, 나쁘지 않다는 정돈가? 난 가슴이 벅찰 지경인데.”
강인현은 말없이 미소 지었다. 그 기분은 강인현도 마찬가지였다. 장문휴함에 승선하게 됐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 그리고 실제로 탑승한 이후부터 하루하루가 구름 위에 뜬 기분이었다. 아니, 물위에 떠 있는 느낌이었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특히 한미일 합동 환동해훈련 이후 그런 느낌이 더해졌다.
장문휴의 승조원들은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었다. 이들은 근무하는 게 재미가 있었다. 다른 잠수함 승조원들에 비해 다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훈련성과와 잠수함의 성능이 월등하니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들은 함장을 더 깊이 존경하게 되었다.
“저기 앞에 가는 놈, 김찬욱이지?”
“예! 맞습니다.”
장문휴의 의무하사 김찬욱 하사는 귀에 이어폰을 끼고 경쾌하게 댄스 스텝을 밟듯 걸어가고 있었다. 자전거로 출근하는 하사관들이 김찬욱을 힐끗거리며 지나갔다.
“도대체 해군 근무복을 입고도 저렇게 날티 나는 놈은 저놈밖에 없을 거야.”
“하하하!”
하긴 강인현도 김찬욱을 볼 때마다 그다지 나이 차가 나는 것도 아닌데 자기 자신이 무척 구세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신세대란 저런 걸까? 김찬욱은 처음 자대 배치 받았을 때 신고식에서 댄스음악에 맞춰 춤을 춘 이후로 선배들에게 찍혀 기압을 맣이 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음악을 즐겨 듣고 춤추기를 좋아했다.
“야! 김찬욱!”
김찬욱은 음악 소리 때문인지, 듣지 못하고 그냥 걸어가고 있었다.
“아니, 저 자식이!”
강인현은 걸음을 빨리 해서 김찬욱과 나란히 선 다음 까딱거리는 머리에서 이어폰을 뺐다.
“누구야?”
험악한 표정으로 돌아보던 김찬욱이 강인현의 얼굴을 보고 말을 얼버무렸다.
“어! 강 대위님.”
그때 뒤에서 오던 김승민이 김찬욱의 머리를 한 대 쳤다.
“아코!”
“대체 뭔 음악을 듣고 있기에 부르는 소리도 못 듣냐?”
김승민은 이어폰을 귀에 꽂아보더니 금세 빼버리며 한 마디 했다.
“어휴! 시끄러워서. 이것도 음악이라고 듣냐?”
“이게 요즘 최신 유행곡입니다.”
“그저 음악 하면 현철이 최고지.”
“끄아악! 김 대위님은 다른 건 다 멋지신데, 어떻게 음악 좋아하시는 것은 그렇게 구세대일 수가 있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강 대위님?”
동의를 구하듯 김찬욱이 강인현을 바라보았지만 강인현은 그저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김승민이 인상을 찡그리며 김찬욱에게 말했다.
“임마! 그 신세대니 구세대니 하는 것도 다 위화감을 조성하는 소리야. 나이에 따라 다른 문화를 즐기는 게 당연하지, 그 뜻을 묘하게 해석해서 사람 늙은이 취급이나 하고 말야. 근데 넌 어째 볼 때마다 날티가 더해지는 것 같냐?”
“날티라뇨? 멋입니다, 멋!”
김승민은 김찬욱의 마지막 말을 무시하고 그를 수쳐가면서 한 마디 던졌다.
“그래 봤자, 북진말갈 주제에 말야.”
“예? 북진말갈이라뇨?”
장교휴게실을 향해 총총히 사라지는 김승민을 바라보던 김찬욱은 강인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게 무슨 말씁이십니까? 수원말갈만 촌놈이란 뜻이잖습니까?”
“그냥 하시는 말씀이지, 뭐.”
김승민을 따라 걸어가는 강인현을 바라보며 김찬욱은 머리를 긁적였다. 말갈이라니?
김찬욱의 고향이 강원도 정선이니 북진말갈의 북진은 김찬욱의 출신지를 가리키는 것 같았다. 그런데 말갈이 뭘 의미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말갈이라면 발해시대 피지배계층인 여진족이 아닌가? 학교 다닐 때 제대로 수업을 들은 적은 없지만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어찌 됐건 그다지 좋은 의미는 아닌 것 같았다.
“대체 제가 왜 말갈입니까? 전 어엿한 대한민국 해군 김찬욱입니다. 이민족이 아니란 말입니다.”
김찬욱이 뛰어가 강인현을 따라잡고 물었다. 강인현이 피식 웃었다.
“김 하사, 화장실 가고 싶어? 왜 배에 힘을 주고 야단이야?”
“저는 지금 진지합니다, 강 대위님. 저만큼 늠름한 군인도 없을 텐데 절더러 말갈이라고 놀리시니까 그렇죠.”
김찬욱은 말꼬리를 흐리며 머리를 긁었다. 김찬욱은 발해의 피지배층인 말갈이 무슨 상관인지 궁금했다. 하필 피지배층에 이민족인 말갈이란 말이냐, 기분 나쁘게. 혹시 수원과 강원도 사람들은 단군의 후손, 한민족이 아니고 말갈족의 후손이라는 뜻인지 궁금했다.
“흔히들 발해 주민은 지배층이 고구려 유민이고, 피지배층이 고구려계와는 다른 종족인 말갈인이라고 하지. 이 같은 이원적 주민 구성론은 우리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이기도 하고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도 그대로 실려 있어.”
다행히 강인현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김찬욱에게는 어려운 말이 좀 있었지만 그런 대로 들을 만했다. 강인현이 자동판매기에서 유자차를 뽑아 김찬욱에게 건넸다.
“이 견해가 반영하고 있는 종족 계통은 숙신, 읍루, 물길, 말갈, 여진 이라는 말갈의 단일 계통설에 입각하고 있단 말이야. 그런데 이게 문제야. 중국의 시대변천에 따라 만주일대에 퍼져사는 종족의 이름이 달라진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진나라 때는 숙신, 한날 때는 읍루, 북위 때는 물길이라더니 당나라에 와서는 말갈이라고 부르다니.”
유자차를 한 잔 더 뽑은 강인현이 PX 주변 벤치에 앉으며 말했다.
“그런데 말야. 이런 종족 계통설에 문제가 없다면, 발해사는 고구려 유민사가 아닌 말갈사나 만주사로 봐야 더 합리적인 거 아냐?”
“어이구, 깜짝이야.”
열심히 듣고 있던 김찬욱이 놀라 돌아보니 언제 나타났는지 김승민 대위가 서 있었다. 청나라는 소수의 만주족이 건국했지만 국가 구성원의 대다수는 한족이기 때문에 중국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강인현이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물론 그렇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라는 데 있는 거니까요.”
“그럼 말갈을 대체 뭘로 보는 겁니까?”
김찬욱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어보았다.
“뭘로 보냐니, 사람으로 보지.”
김승민 대위가 한 마디 던지며 자리에 앉았다. 강인현이 설명을 시작했다.
말갈의 거주지였다는 발해의 영역에 숙신의 옛땅, 읍루의 옛땅, 예맥의 옛땅, 부여의 옛땅 등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숙신과 읍루는 같은 종족이 아님이 분명해졌다. 더불어 말갈의 종족계통을 단순히 숙신, 읍루만으로 연결하는 지금까지의 주장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은 각각의 소리 말이 다르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말갈이란 어느 특정의 종족 이름이 아닌 만주땅 넓은 지역에 거주하는 이민족을 통칭하여 부르는 범칭으로서, 이것은 중국사의 이민족 호칭에 대한 일반적인 예와 같이 중국 중심의 일방적 낮춤말인 비칭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단순히 그런 이유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무리가 따르는거 아냐?”
“그렇지 않습니다.”
김승민의 반박에 강인현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김찬욱은 강인현 대위를 바라보았다. 평소에는 별로 말도 없고 차분하기만 하던 강인현이 열띤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김찬욱은 처음 보았다.
“말갈이 나오는 기록은 <북제서>나 <수서>등에 국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삼국사기>에도 말갈이 상당한 비중을 두고 나옵니다.”
“예? <삼국사기>에도 말갈이라는 말이 나옵니까? 그럼 만주가 아니라 한반도에서도 말갈족이 나타났다는 뜻입니까?”
“의왼데.”
<삼국사기>에 기록된 말갈은 <수서>등과 같이 만주에서 활약했던 것은 소수이고 임진강이나 한강 유역, 강원도 등의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그들은 독자적인 것보다 주로 낙랑 및 고구려의 부용세력으로 활약했던 것이 큰 특징이다.
요컨대 한국측의 <삼국사기>에 나타나는 대부분의 말갈은 중국측 기록에 나타난 말갈 7부와는 전혀 다르다.
<삼국사기>에, 중국의 <북제서>에서 처음 언급했던 563년 이전에도 말갈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말갈을 특정 시대, 특정 종족이라는 관점에서 기록했다기보다, 동북방 이민족이나 고구려와 관련된 지역 주민을 통틀어 불렀던 이름으로 서술하였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말갈로 불리던 사람들은 자신들을 어떻게 불렀다고 봐야 하는 거지?”
김승민이 이때쯤 당연히 나올 만한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한 대답 역시 강인현의 몫이었다.
“아마도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지명을 앞세웠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나는 백산 사람이라든지, 송화강 사람이라고 하였다는 겁니다. 그것을 중국인들은 그때까지 알고 있던 만주의 부족 이름인 말갈 등으로 대치했다고 봐야 합니다.”
요컨대 고구려 시대를 중심으로 사서에 나오는 7부의 말갈이란 중국중심의 기준에서 동북아시아의 이민족을 편의상 구분하여 불렀던 타칭이었던 것으로, 퉁구스 계열의 수렵민족과 함께 고구려의 선조였던 예맥 등이 포함된 방대한 지역 주민들에 대한 타칭의 범칭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말갈을 일원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으며 각 말갈 7부의 실상을 역사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말갈 7부에는 속말, 백돌, 안거골, 불열, 호실, 흑수, 백산 말갈이 있다고 전해진다.
말갈 중 고구려와 가장 관계가 깊었던 세력은 백산부와 속말부이다. 그들은 고구려에 신속 내지 부속된 세력으로 역사적으로도 고구려와 같은 예맥계이면서 고구려 시대에는 고구려의 변방 피지배세력으로 보아도 큰 무리가 없다.
북만주 흑룡강 유역 일부에서 거주하던 흑수말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말갈도 예맥의 고구려계였다. 그러니 각 말갈부족은 고구려의 피지배민을 종족이 아닌 지역적으로 구분한 것에 불과하다.
발해 건국의 주체가 되었던 송화강 유역 주민, 즉 속말말갈과 백두산 유역 주민, 즉 백산말갈 등은 고구려 유민이었다. 따라서 발해의 주민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의 이중적 구성이 아니라 고구려 유민 중심이었다.
* * *
김찬욱이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저를 북진말갈이라고 부르셨군요. 옛날에 정선 근처 삼척을 북진이라 불렀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김 대위님은 어디 말갈이십니까?”
“말갈이라니? 나는 엄연한 서울 사람, 국인이라니까? 문화혜택을 못 받은 변방민들하고는 다르지.”
김승민이 짐짓 뻐기며 대답했다. 김찬욱은 이마를 잔뜩 찌푸리며 속으로 투덜대는 것 같았다.
“상당히 지역감정적인 발언을 하시는데요, 작전관님.”
강인현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고대에는 나라 이름이 수도 이름이나 마찬가지였다. 수도 이름인 서라벌과 나라 이름인 신라가 어원이 같은 데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종이컵을 만지작거리던 김승민이 물었다.
“그럼 왜 역사서에는 별개의 종족인 것처럼 나와 있는거야? 이를테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고구려 유민을 중심으로 한 황금서당과 말갈인을 중심으로 한 흑금서당으로 군사를 편성했잖아?”
“그건 아마도 왕조 중심적인 고구려나 신라 지배층과 신라 귀족 출신인 <삼국사기> 편찬자들이 변방 사람들의 문화적 낙후성을 깔보아 그들 지배층의 신분 의식하에서 그렇게 말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즉, 정규군 내지 평양인을 중심으로 한 황금서당과 피지배 변방주민들을 중심으로 한 흑금서당이었다는 거죠.”
강인현이 설명하자 김승민이 돌을 연병장에 집어던지며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썩을 놈의 특권의식이라니.”
김찬욱이 감탄한 듯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두 분 다 굉장히 유식하십니다.”
김승민 대위가 김찬욱의 머리를 콩 소리 나게 한 대 때렸다.
“밤낮없이 그 지랄 같은 음악 듣는 것말고 공부 좀 했으면 이런 건 진작 알았을 거다.”
입이 뿌루퉁하게 나온 김찬욱이 한 마디 했다.
“음악 듣는 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래도 발해가 멸망한지 몇 백년 지난 후까지 후손들이 발해 재건운동을 했다는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중요한 건 기억하는군.”
“앗! 김 대위님께선 대체 저를 뭘로 보시는 겁니까? 그런 건 당연히 기본이죠.”
“날날이로 보지 뭘로 봐!”
“정말 너무 하시는군요.”
“그럼, 너 재건운동을 한 게 누군지는 알아? 이제 보니까 너, 발해 재건운동을 소재로 한 무협지 봤지?”
“아앗! 들켰군요. 흑흑!”
김찬욱의 얼굴이 만화 주인공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손으로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흉내를 내고 있는 김찬욱을 본 강인현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훌쩍대던 김찬욱이 강인현을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대체 전공과는 상관도 없는 발해 역사에 이렇게 박식하시다니 놀랍습니다.”
“발해도 해양국가였거든. 바다에 관심을 갖다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됐지. 우리 잠수함 이름인 장문휴가 발해 장군이잖아?”
강인현이 멀리 푸른 남족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김찬욱도 강인현의 시선을 따라 동해바다와는 색깔이 완연히 다른 초가을 남쪽 바다를 바라보았다.
오늘날의 발해사 연구에 있어서 가장 장애가 되고 있는 것은 기본적인 사료 부족 문제 외에도 각국이 처한 현대사적 이해관계이다. 발해지역에서 한국과 중국, 러시아가 각기 그들의 현대사를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발해사를 자국사 내지 독립국사로 간주하여 그들이 역사에 기록하려는 것은 일면 타당하다. 즉, 지역사적 측면으로 보아 그들은 지금 과거의 발해땅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도 발해의 후손임을 자처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다르다. 즉, 민족사적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인들은 발해멸망 이후부터 계속 발해 옛땅의 일부에서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발해 후손을 자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자면 발해사람들이 당시 그들 스스로를 어느 나라 사람이고, 그들이 조상을 누구라고 생각하였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하다. 발해 주민들이 스스로를 고구려 후손으로 생각하였는가, 아니면 말갈 후손으로 자처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제중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지금까지 한민족과 관계가 멀다고 알려진 말갈의 실상을 밝히는 것이다.
9월 13일 13:30 경상남도 진해
한국 해군 진해항, 잠수함전대 회의실
연단에 선 김승민 대위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장문휴 승조원들은 바짝 긴장한 채 김승민 대위의 설명을 들었다. 장문휴의 출항 전, 훈련작전 브리핑 시간이었다. 함장과 부함장은 의자에 앉고, 훈련작전의 책임자이며 함내 서열 3위인 작전관 김승민 대위가 전체 승조원들 앞에 나서서 이번 항해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했다.
“출항 후에 영해를 따라 북쪽으로 항진한다. 혹시 추적할지도 모르는 외국 잠수함들을 피할 때까지는 절대 영해를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해군 작전사령부의 엄중한 명령이다. 또한 어느 정도 그들의 도발이 있더라도 절대로 반격하거나 그들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는 행동을 해선 안 된다. 물론 귀관들은 함장님 명령에 절대 복종하면 된다.”
김승민의 뒤 벽면에는 동해 해도가 투사되어 있었다. 동해안을 따라 북상하여 울릉도를 거쳐 독도 인근 해역에서 동료함 최무선과 랑데부하여 다시 남하하는, 일종의 초계훈련이었다.
“재삼 강조한다. 국군 정보사령부에서는 외국 잠수함에 의한 장문휴의 추적과 도발을 극히 우려하고 있다. 작전사령관님도 걱정하신다. 우리는 절대 경거망동하지 말아야 한다. 송곳으로 허벅지를 콕콕 찌르며 참아야 하느니라.”
마지막에 농담으로 끝냈지만 승조원들은 누구도 웃음을 보이지 않았다. 출항 이전에 으레 하는 주의사항이 아니었다. 지금 장문휴는 세계 해군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환동해훈련에서 창피를 당한 미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러시아에서도 잠수함을 동해에 파견해 장문휴를 추적할 예정이라는 소문도 나돌았다. 이번 항해는 상당히 피곤하고, 어쩌면 위험한 항해가 될지도 몰랐다.
작전관에 이어 함장이 연단에 섰다. 함장은 명령대로만 하면 걱정 할 것 없다고 간단히 끝맺었다. 처음에 들떠 있던 승조원들은 다소 굳어진 얼굴로 회의실을 나왔다.
9월 13일 14:50 경상남도 진해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장교내무반
“여자처럼 그게 뭐 하는 짓이야?”
벽면에 붙박인 3층 침대 맨 아래 칸에서 사물을 정리하던 김승민 대위가 건너편의 강인현에게 핀잔을 주었다. 침대 벽면에 무언가 붙이고 있던 강인현이 말없이 웃었다.
강인현이 양면 테이프로 붙이고 있는 것은 조그만 한국 지도였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만주와 연해주까지 나와 있는 넓은 지도라는 정도였다. 블라디보스톡에 푸른 색 깃발이 꽂히고, 그 옆에 ‘발해 1300호’라고 적혀 있었다.
“자네도 대단해. 출항할 때마다 침대 벽에 그걸 붙이다니. 차라리 역사학자가 되지, 왜 해군이 됐나?”
다 붙이고 3층 침대 맨 아래칸에 구부정하게 앉은 강인현이 조용히 반문했다.
“바다가 좋으니까 어쩔 수 없잖습니까?”
“역사는 취미야?”
빈정거리는 말투로 묻던 김승민 대위는 여느 때처럼 누드 사진을 침대 천장에 붙이려고 누었다가 잠시 생각하더니 관두고 일어났다. 김승민이 잠시 망설이더니 사진을 구겨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건 아닙니다만, 그 광활한 대륙을 생각하면 가슴이 뜁니다. 고구려와 발해사 연구는 제가 은퇴해서 늙어 죽을 때까지의 소일거리로 삼을까 합니다.”
강인현이 멋쩍게 웃었다.
“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거야?”
“중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습니다.”
잠시 기억을 더듬던 강인현이 말을 이었다.
“우연히 책을 읽다가 발해 유민사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나라가 멸망한지 200여 년이 지난 후에도 발해 재건운동을 펼쳤다는 사실이 너무나 대단해 보였습니다.”
강인현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평상시엔 조용한데, 바다 이야기 할 때랑 발해 이야기할 때만 사람이 변한단 말야. 내 참!”
“멋지지 않습니까? 쓸데없이 패배주의나 사대주의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좁은 바도가 어쩌고 하는데, 저 광활한 만주대륙을 지배하고 동해와 서해를 누볐던 발해를 안다면 그럼 날은 못할 겁니다. 발해는 만주대륙을 정복한 대륙국가이면서도 넓은 동해바다를 품에 안은 해양왕국으로서의 면모도 강했다는 것이 정말 매력적입니다.”
강인현은 다시 한 번 지도를 바라보았다. 대충 짐을 정리한 김승민이 침대 한켠에 앉았다.
“발해인들이 용감하다는 거야 다 아는 사실이니까. 왜, 발해 남자들이 워낙 용맹해서 발해인 세 명이면 능히 호랑이 한 마리를 당해냈다는 말을 보면 알 수 있잖아.”
“우와~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김승민의 말에 놀란 강인현은 김승민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나도 요즘 역사 공부 좀 했지. 흐흐.”
발해가 거란에 의해 멸망한 이후 그 유민들은 민족국가를 다시 찾아 세우기 위하여 거란 말기까지 끊임없는 무장 독립항쟁을 일으켰다. 발해 멸망 직후 거란의 태조 야율아보기는 멸망한 발해를 동란국으로 고치고, 그의 맏아들 배를 인황왕에 책립하여 그에게 통치를 맡겼다.
발해 유민은 동란국 통치하에서도 계속 번영했으며, 이것이 요나라가 된 거란 지배층의 큰 불안거리였다. 야율아보기에 이어 태종이 즉위하자 928년, 태종은 동란국을 서쪽, 지금의 요양으로 옮기면서 발해 유민 상당수를 서쪽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것은 동쪽에 있는 발해의 옛땅, 즉 거란의 새 영토를 태종 스스로가 포기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동란국의 서천은 거란에 대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거란은 그 세력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옮겼기 때문에 동쪽은 그대로 잔류 발해 유민의 활동 무대가 되어 거란에 대한 저항세력이 조직적으로 형성되었다.
정안국을 세운 사람이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성씨가 오씨인 것만은 틀림없다. 정안국은 78년(926~1004)동안 명맥을 유지해온 셈이다. 정안국의 건국이 갖는 의미는 발해가 거란에 의해 멸망되었으나 거란의 발길이 미치지 않는 발해 동북 옛땅, 즉 흑룡강 동쪽에서는 발해 유민들이 거란에 강력하게 항전했다는 뜻이다.
거란에 항전 발해 출신 관료들이 일으킨 무장 독립투쟁 전개 상황을 살펴보면, 대표적 인물로는 1029년에 동경에서 반기를 들어 흥요국을 세운 대연림을 비롯하여 1115년에 요주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대왕이라 자칭한 고욕과 그 이듬해 동경에서 반란을 일으켜 ‘대발해 황제’라고 칭한 고영창 등 세 사람이 주목된다.
흥요국을 세운 대연림은 발해국을 세운 고왕 대조영의 7대손이다. 흥요국은 천경이라는 연호를 갖는 등 자주적은 독립국가의 면모를 갖추었다. 흥요국의 건국은 발해가 멸망한지 103년만의 일이며, 정안국이 자취를 감춘 지 25년이 흐른 뒤였다.
대연림과 연정 형제가 주축이 되어 세운 흥요국은 1년만에 멸망하긴했지만, 거란에 의해 집단적으로 강제 이주당한 요양지방에서 발해 유민들이 최초로 일으킨 무장 독립투쟁이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여진군의 서침으로 거란의 정국이 큰 혼란에 빠진 시기에 일으킨 고욕의 독립투쟁(1115년)은 유감스럽게도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고욕이 주도한 봉기가 인근 지역으로 확대됐을 가능성이 큰 것은 무장 독립투쟁의 발생지인 요주에 발해 유민 집단 거주지가 있었고, 또한 이곳에서 철이 많이 생산됐기 때문이다.
고욕을 중심으로 일어난 독립투쟁은 대연림의 흥요국이 멸망한지 85년만의 일이며 발해가 멸망한 지 189년 이후의 일이다. 이것이 대연림의 봉기와 다른 점은 거란의 통치권 안에서 일어난 것이라 하겠다.
거란 국내의 치안 질서가 극도로 혼란해지고 조정에서 황제 자리를 놓고 외척과 권신 간의 정권 다툼이 치열할 때 거병한 고영창은 의거를 일으킨 지 10여 일만에 요동 50주를 휩쓸었다. 고영창이 다른 지역으로 군마를 파견해 닥치는 대로 거란 사람들을 살해하고 약탈해도 거란은 속수무책일 뿐 이를 막아내지 못했다.
고영창의 웅지가 5개월만에 실패로 돌아간 것은 전적으로 민족국가를 세우려는데 여념이 없는 여진의 세력을 과소평가하여, 사전에 여진군의 서침에 대해 효율적으로 대책을 세우지 않은데에 이유가 있었다.
대발해국이 갖는 의미는 고영창이 내세운 국오에서도 명확하게 나타나 있듯이, 발해 계승의식이 나타난 명실상부한 발해 부흥국이었다는 점이다. 발해가 멸망한 지 200여 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떳떳하게 발해라 호칭했던 것이 거란에 끌려가 살았던 발해 유민들의 계승의식을 보였던 것이라 할 수 있다.
9월 13일 15:05 경상남도 진해항 잠수함용 제 3부두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상갑판
수병들이 장문휴함 상갑판 위에서 부두에 계류시키기 위해 함을 묶었던 홑줄을 능숙한 동작으로 감았다. 그런 다음 해양경찰대 소속 예인선 T-03호에서 던진 예인용 로프를 잽싸게 받아서 함수 쪽 상갑판에 붙은 페드 아이에 감아 묶었다.
페드 아이(ped eye)는 함정이 예인할 때 선체에 고정되어 로프를 걸수 있는 도삭기이다. 장문휴함이 잠항할 때 도삭기는 선체 아래쪽으로 회전하여 수납된다. 수중에서 마찰저항을 줄이기 위해서이다.
“예인 준비 끄읏!”
갑판 위에서 작업을 지휘하던 기관장 배준석 원사의 목소리가 길게 울렸다. 사령탑 위에서 진종훈 소령과 함께 예인과정을 지켜보던 서승원 중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종훈 소령이 터그 보트 승무원에게 손으로 신호하자 100톤에 못 미치는 T-03호의 디젤엔진이 굉음을 울리며 작동했다.
T-03호가 전진하며 잔교에 있던 장문휴함을 왼쪽으로 잡아당겼다. 포획된 향유고래가 포경선에 힘없이 질질 끌려가듯 장문휴함의 함수가 외항 쪽을 향해 빙글 돌았다. 장문휴함이 스스로 항구를 빠져나올수 있으면 좋겠지만, 수상함처럼 함의 측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부조추진기가 없는 잠수함은 그렇지 못했다.
자신의 배를 남에게 맡길 때보다 불안한 경우는 없을 것이다. 부함장이 전전긍긍했고,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서승원도 마찬가지였다. 예인선에는 항구 내의 여러 배와 말속 장애물을 피해서 장문휴함을 인도할 수 있는 유능한 파일럿이 있었다. 파일럿들은 오랜 경력과 실력이 있는 사람들로만 구성되고 연봉도 엄청나게 많은 엘리트들이다.
하지만 사령탑 위에 올라 서 있는 두 명의 지휘관은 불안하기 그지 없었다. 전문 드라이버가 운전하는 차에 타도 차 주인에게는 자신이 운전하는 것처럼 완벽한 안도감을 주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좁은 부두와 잔교 사이를 T-03호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장문휴함의 선수를 외항 쪽으로 완전히 회전시켰다. 2km 정도 멀리 대죽도 옆에서 신호탐조등이 깜빡거렸다. 뭔가 메시지가 있는 것 같아 함장이 부함장에게 물었다.
“여수함인가?”
“예, 그렇습니다. 내용은 제 몸 하나...... 옆으로...... 돌리지 못하는...... 귀함에게...... 다이어트를...... 권한다. 뭐? 이 자식들이!”
화를 내는 부함장과 달리 함장은 오랜만에 낄낄거리며 웃었다. 장문휴함이 가덕도를 빠져나가기까지 호위임무를 맡은 여수함이었다. 여수함에서 전달된 모르스 발광신호를 해석한 진종훈 소령의 입이 실룩거렸다.
포항급 코르벳 중 여덟 번째 함정인 여수함의 배수량은 1천2백여톤으로 장문휴보다 가벼웠지만 그보다 훨씬 길었다. 잠수함은 부력이 낮기 때문에 같은 배수량이라도 크기는 훨씬 작은 편이다. 이윽고 터그 보트T-03호가 엔진을 가속하며 장문휴함을 외항 쪽을 향하여 거세게 잡아당겼다.
드디어 상갑판 위에서 예인작업을 하던 승무원들이 함수 해치를 열고 하나 둘 몸을 감추었다. 그들은 앞으로 두 달 가까이 못 보게 될 초록색 남해의 모습이 아쉬운 듯 천천히 들어가려고 애썼지만 맨 뒤에 서 있던 배준석 원사의 호통소리에 흠칫 놀라 후다닥 밀려 내려갔다.
함수 쪽 상갑판에서 배준석 원사의 모습까지 사라지자 함 주변의 위험을 관찰하는 견시수 두 명만이 남았다. 시력이 2.0이 넘는 조리장 박상빈 하사도 그 중 하나였다.
박상빈 하사가 모랠 갖고 들어온 디스 담배 한 개비와 조리장 자격으로 특별히 가지고 있던 라이터가 호주머니 속에 있었다. 하지만 겁대가리를 상실하지 않고서는 지금 담배를 피워 물 수는 없었다. 사령탑에 함장과 부함장이 나란히 있기 대문이었다. 힐끔힐끔 사령탑 뒤를 돌아보았지만 담배를 꺼내물 기회는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파랗군.”
박상빈은 푸른 바다를 한눈에 담았다. 당분간 볼 수 없는 바다였다. 진해항 외항의 방파제에 다가서고 있는 장문휴 앞에 내항의 바닷물 색깔과는 분명히 다른 초록색 남해의 모습이 더욱 크게 보였다.
바다는 물 깊이와 플랭크톤의 서식밀도에 빠라 물 색깔이 다르다고 한다. 그가 보기에도 남해는 초록색, 동해는 청색, 서해는 회색이었다. 박상빈 하사가 감시하고 있던 열두 시 방향, 거제도 주변에 보이는 많은 어선들은 너무나도 한가롭게 느껴졌다.
박상빈은 군복을 입은 것만으로도 바깥 세상과는 완벽하게 다른 또하나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잠수함에서는 더 그렇다. 그가 진해의 잠수병학교에서 교육받으며 무수히 주입받은 이야기는 잠수함 자체가 전쟁터란 것이다.
바닷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증거가 남지 않는다. 그 어떤 놈이 접근 하여 노골적으로 꽁무니에 따라붙거나 심지어는 어뢰발사 위협까지 하더라도 쏘지만 않는다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잠수함 승무원들은 전투의 긴장감을 실전과 똑같이 느낀다. 그러나 결국 온갖 횡포는 바닷속 암흑이란 환경 속에서 그대로 파묻혀 버리고 만다. 증거가 남지 않기 때문이다.
“잠항준비! 견시수 철수하라!”
상념에 잠겨 있던 박상빈 하사에게 진종훈 소령의 고함이 귓가를 때렸다. 서둘러 함수로 걸어가며 박상빈은 예인선과 연결된 로프를 풀어 던졌다. 어느새 예인선은 감속하여 로프가 느슨해졌기 때문에 푸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박상빈은 함수 해치로 다가가며 마지막으로 남해의 하늘과 바다를 번갈아 보았다.
“잠항 직전에 꼭 한 대 피우고 싶었는데...”
박상빈은 해치를 닫기 직전에 호주머니에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넣어두었던 마지막 담배 한 개비를 꺼내서 해치 앞쪽에 올려놓았다. 흡연이 완전히 금지된 한국 해군의 잠수함에서 승선시의 엄격한 소지품 검사에 들키지 않고 간직했던 한 개비였다.
박상빈은 담배를 끊어보려고 꽤나 노렸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부러 은행 잔고까지 털어 담배 살 돈이 없도록 만드는 극약처방까지 써봤지만 3일을 참고는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꽁초를 찾으러 막사 바깥의 쓰레기통으로 뛰어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때 소나기가 퍼부첬다. 주워 피울 꽁초가 다 젖어버린 것이다. 박상빈은 그때를 기억하고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해치를 걸어 잠갔다.
“상갑판 철수 완료했습니다.”
마지막 견시병이 함내로 들어오고 해치가 완벽하게 폐쇄된 것을 확인한 기관장 배준석 원사가 인터폰으로 보고했다. 그가 갑판장을 겸임하고 있었다. 기관실로 돌아온 배준석 원사의 고함이 다시 길게 하늘을 갈랐다.
“동력 가동하라. 4노트!”
모터로 작동하는 주추진기가 회전하자 장문휴함은 서시히 자신의 힘으로 항해하기 시작했다. 가까워졌던 여수함도 어느새 출력을 높이며 다시 멀어지고 있었다.
“잠항하라.”
서승원 중령이 명령을 내리고 방수 소켓에 연결된 마이크와 선을 뽑았다. 그리고 사령탑 사다를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9월 13일 15:18 경상남도 진해항 남쪽 3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진종훈 소령이 먼저 내려오고 서승원 중령이 사다리를 통해 사령탑 수직통로를 빠르게 미끄러져 내려왔다. 사령탑 통로는 잠항하면 물이 침수되는 공간이다. 수압을 이겨낼 수 있는 내압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통로에는 물이 들어오게 된다. 그러므로 사령탑 쪽의 마지막 해치는 사령실로 다 내려와서 천장에 붙어 있다. 서승원이 직접 해치 폐쇄용 핸들을 끝까지 돌려 잠갔다.
“해치 폐쇄확인! 잠항한다. 급속 잠항!”
“급속 잠항!”
김승민 대위가 복창하며 밸러스트 탱크를 조작했다. 장문휴함의 선수 쪽 밸러스트 탱크에 급속히 바닷물이 들어오며 상부에 공기 배출용 벤트 구멍을 통해 커다란 물거품이 일었다. 밸러스트 탱크 아래쪽에서 밀려들어오는 바닷물의 압력으로 내부에 차 있던 공기가 위쪽으로 몰리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고래가 수면 위로 올라와 호흡할 때 커다란 입김을 토하듯 장문휴함이 마치 고래처럼 물안개를 뿜으며 푸른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아픙로 얼마 동안 물속에서만 움직어야 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9월 13일 15:20 경상남도 진해항 남쪽 4km
한국 해군 코르벳 여수함 함교
“급속 잠항입니다, 함장님.”
함장과 나란히 서서 쌍안경으로 장문휴함을 보던 김준환 중위가 탄성을 질렀다. 급속 잠항은 흔치 않은 모습이다. 급속 부상과 마찬가지로 함수와 함미의 밸러스트 탱크의 배수 차이를 많이 주어 잠항하는 방법인데, 함수부분이 마치 자맥질하는 돌고래처럼 급격한 각도로 고꾸라지듯이 물속으로 짓쳐들어간다.
“저런! 스크루까지 수면 위로 보이는 군요.”
김준환 중위가 다시 소리쳤다. 장문휴함의 함수 쪽이 가라앉으며 함미 쪽이 치솟자 맹렬하게 회전하는 스크루 프로펠러가 잠시 수면 위로 떠오르며 물보라를 일으켰다.
여수함의 갑판사관인 김준환 중위는 작년에 잠수병과 모집에 응시 했었다. 그런데 그는 웃기게도 적정검사에서 탈락했다.
1차 서류 적성검사에서는 합격했지만 간단한 폐소공포증 테스트가 포함된 2차 적성검사에서 아깝게 고배를 마셨다. 그는 약간 의 폐소공포증 환자였다.
“아다, 이 잡것아! 그만 보랑께. 돌아온 탕아를 갖다가 곱게 봐줬으믄 인자 그만 미련을 버릴 때도 돼부렀잖어, 잉? 징허네, 징해!”
여수함의 부함장 손천민 소령이 고향도 아닌 여수 지방 사투리를 흉내냈다. 1차 테스트에 합격하고 이제 잠수병학교에 입교하게 되었다고 함장과 부함장등에게 작별인사까지 마쳤다가 떨어져 놀림감이 된 김준환 중위는 잠수함을 볼 때마다 이처럼 촐싿댔다. 손천민 소령이 안쓰럽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찼다.
9월 13일 부산광역시 가덕도 동쪽 3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 함장실
수중배수량이 7천 톤에 가까운 핵추진 원잠인 라 호야는 함의 엄청난 크기에도 불구하고 사관회의실을 겸한 함장실은 상당히 비좁았다. 길이 3미터, 폭 2.4미터의 좁은 공간에 사나이 네 명이 자리에 앉자 더욱 비좁아졌다. 벽면에는 책상과 옷장을 결합한 캐비닛 겸 테이블이 있고 TV 모니터와 통신기가 옆쪽 벽면에 놓여 있었다.
함장실은 잠수함에서 누릴 수 있는 최대의 개인공간이었지만 사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접이식 의자에서 함장을 마주하며 불편하게 앉아 있는 사나이들은 부함장 새뮤얼 폴머 소령과 무기장교 잔 E. 모스(John E. Moss) 대위, 그리고 소나팀장 폴커 스톨츠(Volker Stoltz) 대위가 앚아 있었다. 부함장 폴머 소령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가 한국놈들의 앞바다에서 고생한지 수십일이다. 20분 전에 긴급통신 접수됐다. 새로운 작전명령이다.”
폴머가 말을 잠깐 끊었다. 부함장은 명령문을 읽기 전에 함장 가르시아 중령에게 무언의 양햐를 구했다. 가르시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폴머는 명령문을 꺼내 읽어 내려갔다.
“발신은 태평양함대 사령부다. ‘귀함들이 장기간 초계활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노고를 치하한다.’ 참고로 이 명령의 수신자는 라 호야와 컬럼비아다.”
폴머 소령은 왜 라 호야와 컬럼비아가 이런 명령을 받게 되었는지 사관들에게 다시 각인시켰다.
“계속하겠다. ‘줄루 타임0600시에 한국의 진해항으로부터 한국 잠수함 장문휴가 정상적인 초계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출하앴다. 귀함들은 즉각 현 위치에서의 초계임무를 중단하고 장문휴함을 추적하여 성능을 분석하고 평가하라. 명령은 줄루 타임 0600시로부터 발효한다.’ 이상이다.”
폴머 소령이 명령문을 읽은 다음 접어서 함장에게 건넸다. 줄루 타임(Z time)이란 주로 미국 잠수함과 해군 함정들이 주로 사용하는 시간으로 그리니치 표준시를 뜻한다. 날짜 변경선과 각 시간대를 넘나들며 작전하는 핵잠수함들은 작전지점의 현지 시간대를 사용하지 않고 그리니치 표준시에 맞추어 활동한다.
명령문을 수신한 직후부터 가르시아 중령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아보였다. 그것은 화를 내기에 충분한, 당연한 내용이었다.
“함대사령부에서는 장문휴함의 작전계획을 입수해놓고 있었군요.”
잔 E. 모스 대위가 함장의 표정을 의식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젠장! 뻔히 알면서도 수십을 동안 뺑이 치도록 만들다니.”
폴커 스톨츠 대위도 성이 날 만했다. 그의 소나병들은 하루 수백 척의 민간 선박들 사이에서 혹여 잠수함을 찾아낼까 봐 혈안이 된 나머지 이제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 버렸다. 모스와 스톨츠가 한 마디씩 내뱉자 폴머 소령은 함장의 표정을 다시 살폈다.
“제군들...”
시계를 만지작거리던 토마스 가르시아 중령이 입을 열었다.
“명령은 확실히 전달받았겠지? 명령대로라면 곧 놈들이 우리의 매복지점을 통과할 것이다. 지나가는 즉시 놈들의 꼬리에 붙어 모든 것을 얻어낸다. 변기에 놈들의 똥떨어지는 소리까지 모조리 담아간다. 알겠나?”
“예! 함장님.”
나지막한 가르시아의 목소리는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세 명이 나란히 대답했다.
“그럼 현 시간부로 비번을 최대로 줄인다. 2직제 근무로 전환한다. 그리고 소나팀!”
“예! 함장님.”
가르시아가 갑자기 소나팀을 지칭하자 스톨츠 대위가 엉겁결에 대답했다. 2직제 근무란 12시간 근무에 12시간 휴식으로 8시간 근무에 16시간을 쉬는 3직제 근무보다 작업량과 피로도가 월씬 심하다. 대신 임무에 투입되는 병력수는 당연히 증가한다.
“소나팀 당직에게는 놈들의 접근 시간을 알리지 마라. 소나팀의 추적능력을 직접 확인하고 싶다. 알겠나?”
“예! 함장님.”
스톨츠 대위는 함장의 명령이 장문휴의 출항시간을 미리 알고도 통보하지 않은 태평양함대 사령부와 무엇이 다른가 속으로 반문했다. 불쌍한 건 그의 소나팀이었다.
“그럼 모두 나가보게. 부함장은 지금부터 조함권을 인수하라.”
“예! 함장님. 조함권을 인수합니다.”
세 명이 동시에 일어나며 함장실을 나섰다. 함장의 짜증 섞인 눈길이 돌아서는 그들의 뒤통수에 남았다. 모두 나가고 함장실 문이 닫히자 가르시아 중령의 손에 쥐어졌던 명령문이 난폭하게 구겨지고 있었다.
9월 13일 15:35 부산광역시 가덕도 서쪽 2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심도 15미터. 함장님! 항법소나 사용을 요청합니다.”
진해만을 빠져나와 가덕도에서 본토 사이의 좁은 해로는 수심이 낮은데다 낙동강 하구의 토사로 인해 수중지형이 수시로 바뀐다. 그러므로 잠항하여 통과하는 것은 그다지 안전한 방법이 아니다. 선도하는 해군의 코르벳 여수함이 항법소나로 다시 한 번 수중지형을 확인하고 있었지만 김승민 대위는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좋아, 허가한다.”
김승민의 요청을 허가하며 함장 서승원 중령이 잠망경을 올렸다. 이 해역은 수심이 워낙 낮아 잠항하더라도 잠망경 심도 가깝게 된다. 렌즈의 배율을 조작하고 초점을 맞추자 서승원의 눈에 수도와 송도 사이로 안골포가 들어왔다.
안골포는 진해 동쪽에 있는 포구이며, 임진왜란 때 한산도대첩 다음날 조선 수군이 전날의 왜국 수군 제 1제대에 이어 제 2, 제 3 제대를 전멸시킨 곳이다. 왜군은 나중에 이곳 안골포에 성을 쌓는다. 이곳에 진을 친 왜군 때문에 가덕도 공략에 신중했던 이순신을 비난하며 원균이 자신이라면 문제없다고 허세를 부린 그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결국 원균은 그 자신도 실상을 파악하고 나서 가덕도 공략이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당시 도원수 권율에게 곤장까지 맞는 수모를 당하고 급기야 무모한 공략을 감행하여 패배를 자초하게 된다.
원균의 칠천량 패전으로 조선 수군은 사실상 전멸했다. 삼도수군통제사로 급거 복귀한 이순신은 겨우 13척을 이끌고 명량에서 왜국 수군 200여 척을 상대로 싸워야 했다. 이순신은 전함 숫자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그 전까지 지양했던 단거리 접근전 위주로 전술을 바꿨다.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은 선두에 서서 싸워야 했다.
조선 수군이 막강했을 때 이순신이 사용한 전술은 우수한 포의 성능을 이용한 진법과 장거리 포격전이었다. 명량해전에서는 유용했지만 이런 전술 변경으로 나타난 결과가 바로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에서의 이순신의 전사였다.
원균 옹호론자들이 그의 복권을 기도하며 이순신을 깎아내리고 원균의 공적을 올려 세우려고 한창 애썼을 때가 있었다. 기록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원균과 그의 부하들이 임란 초기에 대단한 공적을 세웠고, 이순신은 단지 원균의 경상우수영 함대를 지원하기만 했다는 것이다.
서승원도 원균 옹호론자들의 주장 일부에 대해서는 수긍을 했다. 하지만 서승원은 원균을 용납할 수 없었다. 수군만으로 가덕도를 공략 할 수 있다며 이순신을 비난하는 장계까지 올렸던 원균이 약속을 이행하라는 권율에게 치도곤을 당하고 어쩔 수 없이 떠밀려서 패전했는데, 그 책임을 권율에게 물을 수는 없었다.
불가능한 작전을 강요당하면서 탄핵을 당하더라도 자신의 안위 대신 조선 수군과 국가의 안위를 걱정했던 이순신과는 달리 원균은 불을 보는 듯한 패배를 알고도 공격을 감행했다. 무모한 공격이 빚게 될 참담한 결과보다도 자신의 안위가 더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진해를 빠져 나올 때마다 항상 느끼는 생각이었다. 서승원은 그때마다 씁쓸했다.
잠망경을 함수방향으로 돌리자 여수함이 주변 해역에 있던 어선들을 항로에서 밀어내는 모습이 보였다. 진해는 군항으로는 너무 비좁았다. 개화기까지는 한산한 어촌에 불과하던 진해를 군항으로 선택한 것은 제국주의 일본이었다.
일본이 진해를 중시한 것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이곳에 옹천왜성을 쌓았기 때문이다. 고니시의 부대가 축성한 이 성은 왜군이 한반도에 건축한 왜성 가운데 가장 크다.
일제시대에 조성된 군사시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고, 고풍스런 제정러시아 건축양식의 해군작전사령부 건물도 바로 일본이 함대 사령부로 사용하던 건물이었다. 진해의 벚꽃이 유명한 것도 일본인들이 이곳에 벚나무를 많이 심었기 때문이다.
* * *
서승원은 잠망경을 들여다보며 자신이 잠시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몇 년 전에 가덕도에서 진해로 들어가는 바로 이 해역에서 미 해군의 공격원잠이 어선과 충돌하여 한바탕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해군에서 함선을 좌초시키거나 충돌시킨다는 것은 곧바로 모가지를 의미했다. 그가 주위를 돌아보자 또 다른 잠망경을 올려 주변을 열심히 관측하는 부함장과 항법소나를 조작하여 복잡한 해저지형을 통과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김승민 대위의 모습이 보였다. 어제 잠을 충분히 잤지만 왠지 모를 피로감에 서승원은 식은땀을 흘렸다.
“변침 요구합니다. 전방 300미터에 수중장애물입니다.”
“알았네. 키 오른편 15도! 일백공오(1-0-5)도 잡아.”
“키 오른편 15도! 일백공오(1-0-5)도!”
함장은 그 수중장애물이 가덕도 백옥포 쪽에서 수중으로 이어지는 낮은 해저능선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 근처 해저지형을 달달 외우고 있는 서승원 중령이었다. 그리고 부하들의 움직임이 새삼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음탐반! 부산을 지나면 바로 전체적인 점검을 실시하겠다. 준비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강인현에게 명령을 내린 서승원은 다시 잠망경에 눈을 대며 부함장을 불렀다.
“근데, 부장...”
“옛! 함장님.”
부함장이 잠망경을 내리고 함장 옆에 섰다. 서승원 중령이 잠깐 돌아보니 아주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조만간 승진하면 잠수함 함장으로서 충분히 역할을 해낼 만했지만, 함장은 진종훈 소령이 아직 약간 부족한 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몇 년 전에 말이야... 가덕도를 지나 진해로 기항하려던 미국 원잠이 어선과 충돌한 적이 있었지. 그때 무슨 배였는지 기억나나?”
“아! 그 멍청이 잠수함 말씀입니까? 라 호야였습니다.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그때 모가지 몇 개 날아간 거 알지?”
조금 전에 잠망경을 보느라 모자를 뒤로 둘러쓴 진종훈 소령의 표정이 우스꽝스러워졌다.
9월 13일 15:42 부산광역시 가덕도 동쪽 3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 소나실
“개스터빈입니다! 방위 2-8-0, 거리 7,000야드 정도...”
헤드폰을 끼고 미간을 모으던 랠프 루이스 하사가 짧게 외쳤다. 제이 롴티 중사가 tjenff 헤드폰을 집어들었다.
“그래, 개스터빈 엔진 구동음이다. 자네, 많이 늘었는걸? 속도는 15에서 16노트 정도... 한국 해군이지. 스크루 패턴은... 2축인데, 증속하고 있군.”
오랜만에 해군 함정 소리가 들려 로키 중사도 약간 긴장했다. 한국 해군 함정들은 이상하게도 요즘 이 해역을 거의 지나다니지 않았다. 초계기의 활동도 없었다.
“개스터빈 2축이면... 뭐가 있죠?”
“악포우 클래스, 얼샌 클래스, 빌어먹을 한국 배 이름은 발음하기 어려운 놈들이 많아 포우행 클래스까지 모두 개스터빈과 디젤엔진을 복합으로 사용한다. 스크루는 모두 2개씩, 2축이다. 그런데 이놈은 좀 작아 보이는걸?”
제이 로키 중사가 ‘악포우 클래스(Okpo class)'라고 발음한 것은 광개토대왕급을 뜻한다. 그리고 이어서 울산급, 포항급을 언급했다.
“조금 더 가까이 와야 알 것 같습니다. 개스터빈 엔진 수는 똑같습니까?”
한국 해군에 대한 경험이 적은 루이스 하사가 묻자 로키 중사가 잘난 척했다.
“아니지. 악포우 그놈과 얼샌 클래스는 LM-2500 개스터빈 2대다. 포우행은 1대야. 그럼 어디 디지털 분석을 해볼까?”
로키 중사가 음문을 자세히 분속하기 위해서 CCS Mk-1 전투지휘 시스템을 가동했다. Mk-117 디지털 처리 시스템에서 발전한 CCS Mk-1 전투지휘 시스템은 BQQ-5 소나에서 수신한 도합 40개 목표를 추적할 수 있다.
하지만 별로 자랑할 만한 능력응 아니었다. 로스앤젤레스급 초기형인 라 호야의 추적능력은 동급 후기함인 컬럼비아보다 크게 뒤처졌다. 컬럼비아가 장비한 BSY-1 전투지휘 시스템은 라 호야보다 10배의 목표를 더욱 정확하고 정말하게 추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데이터 베이스된 음문들을 꺼내고...”
로키 중사가 트랙볼을 조작해서 함전 추진용 LM-2500 개스터빈 엔진 소음 패턴을 찾아냈다. 여러 가지 속도에서 변화하는 진동과 소음특성이 그래프에 따라 상이한 평태로 나타났다. 로키 중사가 특정한 속도를 지정해주자 음파는 여러 가지 굵은 막대형상의 디지털 음문 패턴으로 표시되었다.
“음, 언뜻 비교가 안 되는데요.”
“그래. 마크 원(Mk-1)은 그래서 나쁘지. 조만간 라 호야의 퇴역과 함께 묻혀 버릴 구형이야. 어쩔 수 없어. 눈 크게 뜨고 육안 대조를 하는 수밖엔...”
“비슷하지가 않습니다만... 중첩되는 부분이 없는 것으로 봐서 개스터빈 1대짜리 배인 것 같습니다.”
“그래, 나도 개스터빈 1대짜리에 걸겠어. 이크! 너무 늦었군. 접촉 보고를 해야지.”
로키 중사가 서둘렀다. 저것은 한국 군함이 틀림없었다. 모항에서 빠져나오면서 대개는 순항속도를 낼 텐데 약간 의외였다. 이 배는 순항용 디젤엔진 대신 개스터빈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다. 로키가 사령실로 통하는 마이크를 집어들었다.
“소나실입니다. 한국 해군 코르벳입니다. 포우행 클래스로 추정됩니다.”
- 알았다. 곧 가겠네.
6. 추적자
9월 13일 15:50 부산광역시 가닥도 북쪽 1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예인소나 배출합니다.”
장문휴함의 사령탑 뒷부분 공간에 예인소나 수납구획이 있다. 평상시 여기에 들어 있는 예인소나는 긴 케이블 윈치에 감겨 보관된다. 강인현 대위가 예인소나의 배출 스위치를 조작하자 미약한 진동음이 선체를 울렸다. 사령실 내부에서 바라볼 때는 잠망경보다 조금 뒤쪽의 천장 부분이었다.
장문휴함이 장비한 예인소나는 독일제 TAS-90 시스템이다. 이것은 메인 소나인 CSU-90과 연계되어 전투 시스템인 MSI-90U 시스템과 이어져 수신한 음파정보를 세밀하게 분석할 수 있다.
잠수함 후방에는 스크루 프로펠러가 있다. 여기서 발생하는 추진음은 후방을 수색하는데 많은 장애를 가져온다. 스크루 가까이 소나를 장착해도 추진음이 다른 소리들을 덮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잠수함의 후방은 선체에 장착된 함수소나, 혹은 측면소나를 통해 감시하기 매우 곤란하다. 잠수함 후방은 일종의 사각 지대인 것이다.
하지만 예인소나를 장비한 장문휴함은 예외였다. 예인소나는 케이블에 연결된 소나인데, 스크루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서 후방을 탐색하기 용이하다. TAS-90 시리즈 예인소나 중 가장 대형인 TAS5-2 모델은 소나감지장치가 설치된 소나 수신부가 약 330미터, 전체 케이블의 길이는 2,000미터에 이른다.
“예인소나는 300미터만 빼도록, 주변 해저지형이 복잡하다. 테스트만 완료한다.”
함장이 명령을 내리며 설명하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았다. 강인현은 함장 서승원 중령이 약간 달라졌다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예! 예인소나 300미터 배출합니다.”
인치가 돌아가면서 케이블을 계속 늘어뜨리고 있었지만 배출시키는 시간은 꽤 오래 걸렸다. 예인소나를 300미터만 늘어뜨리면 예인소나의 맨 앞쪽 소나수신기는 윈치에 그대로 감겨 있게 된다. 낮은 심도에서 예인소나를 길게 늘어뜨렸다가는 자칫 민감한 소나수신기가 바다 밑바닥을 긁을 염려도 있었다. 게다가 급격하게 방향을 틀면 스크루에 휘감길 우료도 있었다. 함장은 무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예인소나 300미터 배출! 테스트를 실시합니다.”
강인현 대위가 보고하며 예인소나의 작동 테스트를 시작했다. 일렬로 배열된 소나 수신기들에 전원이 공급되면서 리셋 모드에서 자체점검이 시작되었다. 수백 개가 연결된 만큼 수신기 가운데 몇 개쯤은 작동불량 상태가 있게 바련이었다.
“32번, 97번 수시기에 반응이 없습니다. 3일전 최종 점검 때는 이상이 없었습니다만, 지금 확인하겠습니다.”
지상에서 정비를 완벽히 하더라도 작동불량은 반드시 발생하는 법이었다. 강인현 대위는 예인소나의 각 수신기들이 집적되어 있는 점검 패널로 걸어갔다.
사령실 후방의 천장 쪽에 붙어 있는 예인소나 잠검 패널은 기본적으로는 승용차의 푸즈박스와 원리가 같다. 각 소나수신기와 직렬로 연결된 동수의 퓨즈가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일단 퓨즈가 단락된 것인지, 아니면 중간 연결선 전체가 단선된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일일이 관찰하기 위해서는 자세가 너무 불편했다.
“32번은 이상이 없습니다만 연결선이 단락된 것 같습니다. 97번 수신기는 퓨즈가 나갔습니다.”
보고를 마치며 강인현은 잽싸게 호주머니에서 예비 퓨즈를 꺼내 고장난 97번 수신기의 퓨즈와 바꾼 다음 능숙한 솜씨로 끼워넣었다.
“97번 수신기 작동됩니다.”
9월 13일 15:55 부산광역시 가덕도 남동쪽 6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 소나실
“방위 2-7-0도 다수의 수상선박들이 빠르게 움직입니다. 침로와 방향을 정확히 계산하는데 시간이 좀 걸립니다.”
루이스 하사의 보고에 이어 로키 중사가 헤드폰을 눌러쓰며 판단을 내렸다.
“어선들이야. 놈들이 어선들을 쫓고 있는데?”
“어선들이맞아.”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놀란 로키 중사가 뒤를 힐끗 바라보았다. 소나팀장 스톨츠 대위에 부함장 폴머 소령까지 소나팀 뒤에 서서 흥미롭다는 듯 부하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방금 말은 스톨츠가 한 말이었다.
갑자기 다가온 소나팀장이 신경 쓰이는 듯 로키 중사의 표정엔 짜증이 섞여 있었다. 답을 알고 있지만 알려주지 않으면서 부하들의 대처방법을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부하들이 답을 찾지 못하면 스톨츠 대위에게는 팀의 오명이 될 테고, 그렇다고 부함장이 옆에 있는데 알려줄 수는 더더욱 없었다. 스톨츠 대위는 호주머니에서 아몬드를 꺼내서 하나씩 씹기 시작했다.
“너무 복잡합니다. 젠장할! 한국 어부놈들은 뭘 잡는다고 이 얕은 바다에서 이렇게 난리입나까?”
로키 중사가 한국의 코르벳함을 추적하려다가 수면 위의 다른 소음들로 혼란스러워지자 등이 가려운 듯 오른팔을 뒤로 돌려 신경질적으로 긁어댔다.
“쉬림프(shrimp:작은새우) 종류라는군. 1인치도 안 되는 작은 새우하고, 그리고 뭐더라? 정어리 종류인데 그것도 길이 1인치도 안 되는 생선을 벅는다네. 한국인들은 별 물고기를 다 잡아먹어.”
부함장 폴머 소령이 아는 척을 했다. 그러나 한국인에 대한 호감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한슴하군요. 사료로 쓰는 크릴과 비슷한 겁니까?”
스톨츠 대위가 거들었다. 한국 군함을 발견해 신경이 예민해진 부하들 뒤에서 잡담하는 게 꺼림칙하긴 하지만, 부하들의 작업은 이미 나와 있는 답을 찾는 무의미한 작업이었다.
“크릴과 비슷한 것이지. 아마 그보다 더 작은 걸 걸야.”
한국의 진해와 부산을 방문한 적이 있는 폴머 소령은 한국인들이 먹는 여러 가지 해산물에 놀란 적이 있었다. 코를 쥘 만큼 악취가 풍기는 곳을 지나다가 그것이 형체까지 흐물흐물해지도록 썩힌 작은 생선들이란 것을 알고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폴머는 한국인들이 그것을 반찬으로도 먹고, 김치라는 유명한 야채샐러드에 넣는 소스라는 것도 알았다. 폴머 소령은 나중에 김치를 절대 먹지 않았다.
유럽인들이 날생선을 먹게 된 것은 일본인들 때문이었다. 유럽인들에게는 문화적인 충격이었지만 싱싱한 생선이니까 그런 대로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상해서 비린내가 나는 생선을 먹을 수는 없었다. 이것이 단순한 발효과정이라도, 백인들이 자주 먹는 치즈가 김치처럼 발효식품이라 하더라도 생선을 썩힌 것을 인간이 먹을 수는 없다고 폴머 소령은 생각했다.
“잠깐만요! 뭔가 있습니다.”
루이스 하사가 귀를 기울이며 뒤에 선 사람들의 대화가 방해된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고주파 소나음 같습니다. 발신지점은 포우행급 코르벳의 후방 1km 지점입니다. 수상 시그널이 아닙니다. 수중 시그널입니다!”
“고주파 탐신음? 어디 들어볼까?”
로키 중사가 발신음을 체크한 다음 정확한 음역을 파악하려고 기기들을 조작했다. 로키 중사는 그 소리가 고주파 대역이라고 확신하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잡았습니다! 잠수함입니다. 놈이 항법소나를 쓰고 있습니다.”
로키 중사가 자랑스럽게 뒤를 돌아보며 보고했다. 폴머 소령과 스톨츠 대위는 약간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로키가 보기에는 이상하게도 이들에게서 전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참 멍청한 놈들이군요. 선도함을 따라가면서 항법소나를 쓰다니...”
“우리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겠지. 더 멍청한 것은 저 포우행급 코르벳이야. 탐지능력이 형편없는 것 같은데?”
로키와 루이스가 탐지 위치를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서 다시 기기들을 조작했다. 약간의 성취감이 그동안의 나태함을 밀어내고 있었다. 서둘러 조작하는 동안 폴머 소령이 큰 소리로 탄성을 지르며 루이스 하사의 어깨를 두드렸다.
“수고했네. 정답을 맞춘 데 대한 보답을 해야겠군!”
한국 잠수함을 탐지한 소나팀에게 뭔가 대단한 선물을 줄 것 같던 부함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1MC, 부함장이다. 현재 시간, 줄루 타임 0700시를 기하여 전원 전투배치에 들어간다.”
9월 13일 16:30 부산광역시 가덕도 남동쪽 23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목표 1, 침로를 변경하고 있습니다. 오른쪽입니다.”
음탐관 강인현 대위가 보고하자 함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아. 여수함은 모항으로 귀환하는군. 감사를 전해줘야겠지?”
잠망경을 통해 밖을 살피고 있던 서승원 중령이 뒤를 돌아보며 싱긋 미소 지었다. 장문휴함을 선도하던 여수함은 이제 귀환할 시간이었다. 장문휴함은 따라가면서도 여수함을 상대로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여수함에서 알면 화들짝 놀랄 일이겠지만 장문휴함은 여수함을 상대로 모의 어뢰공격을 두 차례, 모의 하픈 공격을 한 차례나 했던 것이다.
이제 잠수함 장문휴는 혼자서 항해해야 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존재를 완벽하게 은폐해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아군인 한국 해군조차도 장문휴함의 존재를 알 수 없도록 철저히 숨어야 했다. 동해에서 작전중인 1함대의 구축함과 프리깃도 이번 항해에서는 모두 적으로 간주되었다.
“분기점 갈매기로부터 침로를 공공오(0-0-5)로 변경한다. 작전관! 잠항하기 직전에 GPS로 현 위치를 정확히 체크한다. 자이로의 오차를 보정할 기회는 이후로는 주지 않겠다. 알겠나?”
서승원 중령이 정색을 하며 김승민 대위에게 명령했다. 아주 중요한 작업이었다.
서방 해군에서 ‘A point'란 항구 입구에 위치한 소해(바다에 부설한 수뢰 따위의 위험한 것을 제거하여 항해를 안전하게 하는 일)된 수로의 안쪽 끝에 지정하는 적절한 위치를 말한다. 전방이 열려 있는 접근로에서는 항구의 입구나 바다 쪽에 선정하며, 긴접근로가 있는 항구에서는 접근로의 바다 쪽 끝에 선정한다. 한국 해군에서는 Apoint 대신 기역자가 들어간 낱말로 분기점 이름을 삼는다.
“옛! 알겠습니다. 계속 조정을 하고 있습니다.”
서승원 중령이 체크하라고 명령한 GPS는 ‘Global Positioning System'의 약자로 현재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장치이다. 일종의 위성 수신기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지구 궤도에 떠 있는 냅스타(NAVSTAR) 인공위성들이 발사하는 각기 다른 전파를 수신하여 위치를 파악한다.
냅스타 위성은 지구궤도에 총 24개가 떠 있다. 위치 정보는 GPS 수신기로 3개 이상의 위성으로부터 정확한 시간과 거리를 측정하여 3개의 각각 다른 거리를 삼각측량법에 의해 현위치를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이다.
지구상의 어느 위치에 있던 간에 냅스타 위성 3개 이상의 전파를 수신할 수 있다. 이 방법으로 오차 10미터 내외로 현 위치의 정확한 위도와 경도, 고도까지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것은 지구 궤도 위에 각각의 냅스타 위성 모두가 정확한 위치에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지표면으로부터 2만 200km 상공에 위치한 24개의 위성들의 우치는 수시로 궤도를 비행하는 속도와 가속도, 위치 등을 파악한 다음 조금이라도 궤도를 벗어나면 지상기지국에서 위치를 수정하게 된다.
이러한 GPS는 군용으로 개발되었지만 민간용으로도 많은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민간항공기, 선박은 물로 심지어 시내를 주행하는 자동차에서도 사용되어 도심 시가지에서의 정확한 위치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
항해장을 겸한 작전관 김승민 대위는 잠망경과 결합된 GPS 수신기를 통해 마지막으로 정확한 위치를 뽑아낸 다음 장문휴함의 관성항법 장치에 다시 입력했다. 바다 위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아내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특히 잠수함은 바깥을 볼 수 없는 물속을 항주하므로 GPS는 물론이고 별자리와 나침반을 이용한 원시적인 항법도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밀폐된 공간에서도 완벽하게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관성항법장치를 사용하는 것이다.
간단하게 자이로(gyro)라 불리는 관성항법장치는 잠수함의 움직임으로부터 발생하는 관성을 이용한 항법이다. 2개 이상의 정말한 자이로와 그 수정장치에 의하여 가속도, 각속도, 중력의 세 가지 운동을 측정할 수 있는 계기를 부착시켜 세 가지 운동의 변화를 순간적으로 계산함으로써 자신의 운동방향과 속도, 방위를 알아내고 이것을 최초의 출발지점으로부터 역산하여 지속적으로 위치를 산출한다.
다만 시간과 운동량이 누적될수록 오차도 커지기 때문에 장시간, 장거리를 항해한 다음에는 정확한 위치산정이 어렵게 되는 단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승원 중령은 마지막 잠항하기 직전에 GPS로 정확한 위치를 다시 파악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다시 잠망경을 내밀 수 있을 때까지는 GPS를 이용할 수 없었다.
“광성항법장치 보정을 마쳤습니다.”
김승민 대위가 항법장치의 조작을 마치자 서승원은 즉시 깊은 수심으로의 잠항을 명령했다.
“좋아, 심도 조정. 100미터로!”
“심도조정 100미터!”
수면 위에 돌출되었던 잠망경이 물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잠망경의 뒤에 남아 있던 가느다란 항적이 서서히 사라졌다.
9월 13일 16:40 쓰시마 북동쪽 75km
일본 해상자위대 잠수함 SS-585 하야시오, 사령실
고마키 류 이등해좌는 문득 아리무라를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미 해군의 작전지휘를 받은 훈련이었다지만 해상자위대의 구축함이 한국 잠수함에 공격다운 공격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당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완전한 패배였다. 우미기리뿐이 아니었다. 유우기리와 하루사메까지 당했으니 패배도 이만저만 처참한 패배가 아니었다.
한국에서 교환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미 해군 고급장교들과의 간담회에서 미 해군은 해자대 간부들에게 분명히 알려주었다. 한국 해군이 해군력 증강사업으로 독일제 잠수함을 대량 도입한 것은 분명히 일본을 겨냥한 것이라고 했었다.
그동안 추정으로 난무하던 한국 해군의 진정한 증강 목적을 한국해군의 입으로 직접 확인한 셈이었다. 이 말은 군사관련 잡지에도 인터뷰 기사로 실렸다. 그런 한국에게 아무리 훈련이라지만 일본 해상자위대의 구축함이 세 척이나 깨져나갔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고마키는 수측실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부함장 시모미치 데쓰오 삼등해좌였다. 무슨 실수를 한 모양인지 신참 수측병 하나를 호되게 다그치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지난번 항해가 끝난 지 일주일도 안 돼 승무원 무도가 호출받았다. 기다리던 휴가도 사라졌고 집으로 출퇴근하는 육상 근무도 없이 새로운 임무를 또 부여받은 것이었다. 전체적으로 승무원들 모두 신경이 무척 날카로웠다.
일본해에서의 작전은 요코스카의 제 2잠수대군을 배제하고 구레의 제 1잠수대군에 전격적으로 할당되었다. 1개 잠수대는 3척의 잠수함으로 구성되는데, 훈련이 끝난 5월부터 일본해에는 1개 잠수대씩 계속 투입되고 있었다. 러시아를 상대로 정기적은 초계활동을 수행하는 1척을 제외하고는 2척이 일본해 전역에 대해서 한국 잠수함의 추적임무를 맡고 있었다.
한 달간의 초계임무가 끝난다고 꼭 휴가와 육상근무가 기다리는 것은 아니었다. 고마키가 지휘하는 하야시오는 지난번 훈련을 마친 후에도 휴가를 얻지 못했다. 가족이 기다리는 고참 자위관은 물론이고, 해위급 이상의 미혼 간부와 자위관들의 실망이 대단했다.
바다로 나가는 것에 낭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판에 박힌 일상생활과 반복되는 단조로운 작업, 갇힌 공간에서 받는 스트레스만으로도 대단한데, 가족을 만나지 못해서 겪는 그리움과 향수병 역시 대단하다.
정식으로 군대의 존재가 부인되는 일본에서, 군인이라기보다는 평범한 직장인이란 개념이 강한 자위대이기에 재차 계속되는 항해가 주는 스트레스가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잠수함에서야 더욱 그러했다.
2차대전 때 독일 U-보트 부대의 총사령관이었던 명장 되니츠 제독도 휘하 잠수함 부대원의 휴양만큼은 신경 써서 배려했다. 영국과 미국의 압도적인 해군력에 맞서는 동안 한 척의 잠수함이라도 긁어모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잠수함 승무원들의 휴식은 전력의 손실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휴식없이 재투입된 승무원들의 전투력은 아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저하되었기 때문에 그것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였다. 이런저런 생각에 미치자 고마키는 수측실에 있던 시모미치 부함장을 손짓해 불러냈다.
“부함장, 침묵상태를 한 단계 낮추고 비번인 승무원들에게 자유시간을 주도록 하게. 근무중인 병력도 3개조로 나누어 1개조씩 휴식을 취하도록 한다. 그리고 시미미치 군. 우선 내가 지휘를 할 테니 그동안 쉬도록 하게.”
“옛? 무슨 말씀이십니까. 함장께서 쉬십시오. 전 괜찮습니다.”
쉬라는 말에 부함장 시모미치가 손을 내저으며 가당치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마키는 완강했다. 깐깐하고 허세를 부리기로 소문난 고마키였지만 부하들을 위해 자신의 피곤함 정도는 흔쾌히 감내할 수 있는 위인이었다.
“예, 함장. 그럼 제가 먼저 쉬도록 하겠습니다. 두 시간 후에 돌아오겠습니다.”
시모미치가 고마키에게 경례를 붙인 다음 나머지 승무원들에게 함장의 명령을 전달하려고 함내 통신용 마이크를 집었다.
“아리무라... 멍청한 자식 같으니라구...”
“옛? 무슨 말씀이십니까?”
고마키의 혼잣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시모미치가 마이크에 이야기 하려다 말고 갸우뚱거리며 다시 고마키에게 질문했다.
9월 13일 17:18 대마도 남동쪽 28km
중국 해군 공격원잠 S-404, 사령실
인민해방군 해군 소속 한급 원자력 잠수함 404호가 대한해협의 남쪽, 쓰시마 남단을 조용히 항주하고 있었다. 1988년에 진수한 404호는 한급 공격원잠중 네 번째 함이다.
함장 천쥔타오 중교는 자신의 잠수함이 쓰시마와 이키섬 사이를 통과하자 신경이 예민해졌다. 대한해협의 왼쪽, 흔시 서수도라 불리는 곳의 수심은 반대쪽인 동수도보다 크게는 두 배 가까이 깊다.
대한해협의 평균 수심이 120여 미터로 잠수함이 작전하기에는 낮은 수심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서수도를 선택하는 것이 존재를 은폐하기에 훨씬 유리했다. 하지만 이번 동해로의 침투항로는 동수도, 즉 대마도 동쪽 수로였다.
취근 들어 서수도 해역에서 수중항주하는 잠수함들이 한국 해군의 대잠전투함들에게 탐지되는 상황이 빈발했다. 그래서 천 중교는 동수도를 선택했지만 동수도도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일본의 수중고정 소나망이 부설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일본은 러시아를 우려하여 외국 잠수함에 적대적인 행동을 취하는 일이 드물었다.
중국이 원자력 잠수함을 보유하기 위해 박차를 가한 시기는 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은 원폭 실험에 성공한 64년에 이어서 수폭 실험에 성공한 67년부터 원자력 잠수함을 건조하기 시작했다.
원자력 잠수함의 동력장치를 설계하는 일은 핵폭탄 설계보다도 훨씬 복잡하다. 잠수함 건조에 경험이 별로 없었던 중국의 무모한 개발계획은 곧 난관에 부딪쳤고, 1번함은 건조를 시작한 지 무려 7년만에 취역하게 되었다.
시험적인 성격을 띤 한급 원잠은 능력면에서 매우 뒤처지는 편이다. 최고 속도 25노트에 원자로에서 발생하는 동력을 직접 추진력으로 이용하지 않고 발전기를 돌려 전기로 추진하는 복합추진방식을 채택했다. 소나와 어뢰, 전투시스템 등 전반적인 기술이 낙후한 중국이 개발한 한급 원잠은 세계에서 가장 시끄러운 잠수함이라는 오명까지 들어야 했다.
중국의 잠수함 건조기술이 전반적인 질적 향상을 이룬 것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이다. 등소평이 중국의 권력을 장악한 후 해군에 유화청 상장이 등장하면서 그동안의 연안방어전략에서 적극적인 근해 방어전략으로 선회한 것이다.
이 시기 프랑스에 미테랑 사회당 정부가 들어선 것도 중국의 무기개발노력에 있어 커다란 행운이었다. 프랑스의 군수산업은 행정부의 외교적인 지원 아래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 많은 기여를 한 것이다. 그리고 해군 분야에 특히 치중되었다.
중국이 80년대 개발한 함대함 미사일과 함대공 미사일, 어뢰는 물론이고 잠수함 건조에도 프랑스의 지원이 더해졌다. 중국이 가장 고민했던 핵잠수함의 추진장치 부문에서도 프랑스의 협력은 예외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진보된 핵동력장치, 소나와 전투시스템에 있어서 중국의 핵잠수함 능력은 일층 향상되었다.
천 중교는 중국 해군이 새롭게 건조하는 094급 공격원잠에 거는 기대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목표로 선정한 성능이 러시아의 빅터III급 정도라는 것을 듣자 실망이 컸다. 80년대 초반에 건조된 잠수함과 동등한 능력이 2000년대 중국 해군이 장비할 신형 잠수함의 성능이었다니 당연히 실망할 만했다.
“감속한다. 4노트로!”
“감속 4노트!”
천쥐타오 중교는 속도를 더 줄여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알면 그만큼 생존할 확률도 높아진다. 천쥐타오는 한급 원잠 404호의 성능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무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천 중교는 일본과 한국이 벌인다는 명칭 논쟁이 문득 우습게 느껴졌다. 일본에서는 ‘일본해’로 부르고 한국에서는 ‘동해’로 부른다는 그 조선해뿐만이 아니었다. 한쪽에서는 ‘대한해협’으로, 그리고 한쪽에서는 ‘쓰시마 해협’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어느 쪽으로도 결정되지 않은 이곳, 해협도 있었다.
간혹 쓰시마의 왼쪽을 대한해협, 오른쪽을 쓰시마 해협이라고 타협을 보기도 하지만 해협은 결코 섬과 육지 사이에 붙는 명칭이 아니다. 큰 땅과 큰 땅의 사이, 말 그대로 해협이란 바다의 골짜기나 마찬가지이다.
원래 동해는 중국 잠수함이 주로 작전하는 해역은 아니었다. 때문에 중국 잠수함들은 최근부터 새로이 추가된 작전해역인 동해에서 수행하는 초계임무에 많은 부담을 느꼈다. 그것은 복잡한 동해의 해저지형과 해류상황 등 전반적인 해양 데이터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이 잠수함을 도입하여 중국 근해까지 침투하는 상황에서 중국도 역시 공세적으로 작전해역을 확장해야 했다. 천 중교가 지휘하는 404호 역시 동해에서의 해저지형 조사를 부임무로 부여받고 있었다. 쉽지 않은 임무였다. 그것도 조용한 것과 거리가 먼 한급 공격 원잠에게는 더욱 어려운 임무였다.
9월 13일 17:40 부산광역시 부산항 북동쪽 18km
한국해군 잠수함 장문휴, 음탐실
“방위 이백삼십공(2-3-0)도. 무엇인가 있습니다.”
음탐장 최현호 상사가 헤드폰에 온 신경을 집중하면서 기기를 조작했다. 최현호 뒤에 서 있던 음탐관 강인현 대위도 역시 모니터를 확인 했지만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부산항에서 나온 상선이 아닙니까?”
“이상합니다. 블라디보스톡을 향하는 북동쪽 항로 바깥입니다. 그리고... 부산항을 지나치면서는 드러나지 않았습니다만, 아까부터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본함을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이걸 보십시오.”
최현호 상사는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최현호 상사가 부산항을 지나치면서 추적했던 많은 배들의 취치에서 한 척을 지정한 다음 이동지점이 연결되도록 기기들을 조작했다. 모니터에는 장문휴함의 이동궤적이 노란색으로 나타나고 문제의 배가 청색으로 나타났다. 대략 장문휴의 7~10km 후방을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강인현 역시 모니터를 유심히 살폈다. 아직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우연의 일치라고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함장님께 보고할까요?”
“글쎄요, 아직까지는 단언하기 힘듭니다. 조금 더 지켜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우연히 같은 방향을 따라오는 상선일 수도 있습니다.”
일단 특이한 상황은 바로보고해야 했지만 최현호 상사는 자신이 발견한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없었다.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로 보고부터 할 수는 없었다. 만약 그것이 보통 상선이라면, 잠수함의 눈과 귀인 음탐반의 음탐장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셈이 된다. 최현호 상사는 음탐관 강인현 대위보다 훨씬 많은 경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조금 더 지켜보도록 하지요. 30분만 더 추적해 봅시다. 그때까지도 계속 따라오면 보고합니다.”
강인현 대위도 바로 보고하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통행이많지 않은 해역이라면 당장 보고해야 하겠지만, 이곳에서는 민간선박의왕래가 워낙 잦으므로 착각했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음탐장님. 같이 땀 한 번 흘려볼까요?”
“예, 물론입니다.”
싱긋 웃는 강인현이 최현호 상사의 오른쪽, 자신의 자리에 잽싸게 앉았다.
9월 13일 17:45 부산광역시 부산항 북동쪽 14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 소나실
“한국 놈들은 붐비는 곳을 좋아하는 것 같군요.”
“후후, 자네 이제 지쳤나 보군. 부산은 물동량이 상당한 곳이야. 한국 놈들의 군항과 부산 같은 큰 항구가 너무 가까워서 탈이지. 자네, 알아? 예전에 라 호야가 진해로 입항한 적이 있었어. 이 근처는 워낙 북적거리는 곳이야. 결국 가덕도라는 섬 근방에서 한국 어선을 들이받았다네.”
소나를 조작하던 루이스 하사가 이제 넌더리가 난다는 듯이 한숨섞인 비명을 내지르다가 로키 중사의 이야기를 듣고는 눈을 번쩍 떴다.
“들이받았다고요? 충돌이나 좌쵸사고는 군법재판 회부감이 아닙니까?”
“그렇지, 군법재판이지. 장교들이야 더 이상 진급을 바라지 말아야지. 그걸로 끝장이야. 그때 함장도 모가지 날아갔어. 그때 내가 소나팀에서 갓 신참이었지. 난리가 아니었다. 하긴 뭐 우리 같은 졸병들이 책임질 일은 아니었지만. 후후!”
다른 것도 아니고 핵추진 공격잠수함이었다. 충돌사고는 그만큼 치명적이었다. 루이스 하사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실 조함에 관련된 궁극적인 책임은 당작장교와 함장이 지게 되어있다. 사병이나 하사관이 책임질 영역은 아니었다. 로키 중사가 그 사건에 얽힌 여러 이야기를 더 언급하려다가 소나팀장 스톨츠 대외가 다가오자 입을 다물었다.
“그래, 놈의 움직임은 어때?”
“5에서 6노트입니다. 거리 약 1만 야드, 침로는 0-1-0입니다.”
스톨츠 대위가 질문하자 로키 중사는 어색한 말투로 허둥지둥 장문휴의 위치를 보고했다.
“장문휴의 예인소나를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추적하는 것을 들키면 절대 안 돼. 이번 작전의 목표가 장문휴함을 속속들이 파악하는 것임을 잊지 말도록 하게.”
“예! 알겠습니다.”
스톨츠 대위가 소나실에서 나가려다가 깜빡잊었다는 듯 다시 로키 중사에게 다가왔다.
“이봐, 로키. 근데 말야. 잠항중의 충돌사고는 소나팀도 책임을 묻게 되어 있어. 기왕 알려주려면 정확히 알려주게나. 아마 장문휴를 놓치게 되면 화끈한 보답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예! 물론입니다.”
로키 중사가 억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로키는 사관들은 항상 뒤에서 불쑥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뒤에서 실실 웃고 있는 부함장 폴머 소령도 그의 이야기를 모두 엿들은 것 같아 로키 중사는 기분이 매우 언짢았다.
9월 13일 17:55 부산광역시 부산항 북동쪽 22km
한국해군 잠수함 장문휴, 음탐실
“음탐관님, 확실합니다. 우리를 따라오는 놈입니다. 간격도 변화가 없습니다. 수상함정인지 잠수함인지 아직 확인할 수 없습니다만... 우리처럼 저속으로 항주하는 민간 선박은 분명 없습니다. 문어나 꽃게를 잡는 통발어선이라도 우리 잠수함보다는 빠를 겁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최현호 상사의 판단은 확실한 것 같았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계속 잠수함을 따라오고 있었다.
“그렇겠죠. 소음 수준으로 보아 분명히 소형 어선은 아닐 겁니다. 보고합니다!”
강인현 대위는 인터폰 송신기를 집으려다 말고 의자에서 일어나 사령실로 걸어갔다.
* * *
잠시후 함장 서승원 중령이 음탐실로 들어와 기기들을 모두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함장은 상당히 심각한 얼굴이었다.
장문휴함의 통합형 전투정보시스템인 MSI-90U 시스템은 기존 209급 잠수함과는 약간 차이가 있었다. 209급이 사용하는 ISUS 전투시스템은 독일제이지만 MSI-90U는 노르웨이제였다.
노르웨이가 독일에서 잠수함을 도입하며 자체개발을 시작한 MSI계열의 전투시스템은 신뢰성이 무척 뛰어났다. 이것은 결국 독일의 차기 잠수함인 212급에 역채용되는 결과를 낳을 정도로 뛰어난 전투정보시스템이었다.
한국 해군은 차세대 잠수함 건조계획에 따라, 발전된 추진시스템인 연료전지형 무급기 추진장치를 갖춘 212급을 선정했다. 이 212급의 1번함 장문휴함이었고, 전투시스템도 독일 해군의 212급과 동일한 사양으로 설치했다.
장문휴의 메인 소나시스템인 CSU-90에 연결되는 세 개의 컨솔은 17인치 모니터가 상하 2열로 배열되어 있었다. 그 아래쪽에는 조작용 키보드와 트랙볼 마우스가 있었다. 소나에서 주집되는 음파는 각각의 컨솔에 연결된 컴퓨터에 의해 디지털로 분석되고 처리된다. 그것과 연동된 두 개의 또 다른 컨솔은 어뢰를 발사하여 명중하기까지의 과정을 통제하는 무기통제시스템이다.
TMA(표적이동분석) 기능을 가진 표시장치는 음파가 발생한 방향과 거리뿐 아니라, 그것이 움직이는 동안의 변화하는 속도와 위치 등을 지속적으로 계산하는 장치이다. 이것은 어뢰공격을 실시할 때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 기기들은 모두 링크되어 있어서 음파를 탐지하고 목표를 평가하여 판단하는 과정에서부터 어뢰를 발사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과정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렇게 때문에 과거와 같이 어뢰의 발사각, 주행침로 등을 일일이 손으로 계산하는 일은 없어졌다. 장문휴가 장비한 MSI-90U 다기능 통합 컨솔들이 바로 잠수한 전투시스템의 핵심장비이다.
함장이 들어오자 최현호 상사는 미리 준비해둔 파일을 클릭하여 모니터에 표시했다. 화면에 문제의목표가 발견된 최초의 위치와 시간에서 이동한 궤적들이 직선으로 이어져 나타났다. 부산항 근처 민간선박들을 표시하는 무수한 점들에서 빠져나온 이 직선은 장문휴함의 이동궤적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이놈을 최초로 탐지한 것은 30분 전입니다만, 주변의 다른 목표들과 분간할 만큼 특별한 신호도, 특징도 없었습니다. 15분전에 이동궤적이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지속적으로 체크한 결과입니다. 본함의 항로와 일치하고 있습니다.”
트랙복을 조작하며 모니터에 코를 박은 채로 최현호 상사가 입을 열었다. 최현호 상사는 직업하사관의 자존심 때문인지, 아니면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는지 함장에게 보고할 때도 얼굴을 돌리는 범이 별로 없었다.
“우리를 따라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군.”
잠시 화면을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기던 서승원 중령이 최현호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작전계획상 더 이상 장문휴함을 동반하는 해군함정도 없었다.
“거리가 좀더 가까워지면 명확하게 알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함장님!”
“좋아, 그럼 감속한다. 놈이 뒤에 붙을 때까지 기다린다.”
잠시 생각에 잠긴 함장 서승원 중령이 음탐실 바깥쪽을 향해 짧게 외쳤다.
“부장!”
“예, 함장님!”
진종훈 소령이 어느새 음탐실 밖에 대기하고 있었다.
“현재 속도에서 50퍼센트 감속해주게. 그리고 함내 침묵상태를 최고로 올린다. 난 당분간 음탐실에 있을 테니까 조함은 자네가 계속 맡아주게.”
“예, 알겠습니다.”
순항속도로 움직이던 장문휴함이 최저속도로 감속했다. 사람이 걷는 속도로 서서히 움직이는 장문휴함에서 발생하던 몇 가지 소음도 뚝 멈처버렸다.
비번으로 식당에서 노닥거리던 승무원들 몇 명도 모두 조용히 내무반으로 향했다. 그리고 비좁은 3담 침대로 꾸역꾸역 기어들어갔다. 여닫이 겸 블라인드를 치고 나서 승무원들은 잠을 자거나 쥐 죽은 듯이 입을 닫고 누워 있어야 했다. 그것이 함내에 불필요한 소음을 없애는 침묵상태 1의 명령이었다.
“잠수함입니다! 수상 시그널이 아닙니다. 수중 시그널이 확실합니다.”
“잠수함이 맞습니다.”
최현호 상사에 이어 강인현 대위가 즉각 확인했다. 서승원 중령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함장은 음탐관 강인현보다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느 나라 잠수함인가? 미국인가?”
한국 영해 근처에서 설치는 잠수함이라면 미국과 일본밖에 없었다. 특히 한국과 미국의 특수관계 때문에 미국 잠수함들은 한국 영해 안쪽까지 제집처럼 들락거렸다.
“아직 확인할 수 없습니다. 조금 더 접근하면 확실히 알 수 있겠습니다.”
강인현 대위가 신중론을 폈다. 하지만 승무원들은 그 잠수함이 어느 나라 잠수함인지 뻔하다고 생각했다.
9월 13일 18:20 부산광역시 부산항 북동쪽 19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 소나실
“로스트 컨택(lost contact)! 이런! 첩촉을 상실했습니다.”
“뭐야? 제기랄!”
“어떻게 된 거야? 빨리 서둘러! 접촉을 잃다니!”
잔뜩 당황한 로키 중사가 허겁지겁 소나 시스템을 조작했다. 하지만 한 번 잃은 소리는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소나팀장 스톨츠 대위도 성급하게 부하들을 닦달했다. 그러나 닦달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로키 중사는 마음 같아서는 최대출력으로 액티브 탐신을 하고 잎었지만 그럴 상호아도 아니었다. 라 호야는 가능한 비밀리에 한국 잠수함을 추적하여 소음 특성과 성능을 파악하는 것이 임무였다.
BQQ-5 소나가 최대출력으로 저주파를 발사하면 해수 상태가 양호한 경우 20km까지도 탐색할 수 있다. 그러나 해수 상황이 나쁠 때는 5km만 넘어도 효율이 급격히 떨어진다.
패시브 소나가 해수 상황에 따라 극단적인 경우 지구 반대편의 고래 소음까지 들을 수 있다지만, 액티브 소나의 경우 에너지 손실 대문에 먼 거리까지 탐지할 수 없다. 어쨌든 탐지거리는 액티브든 패스브든 간에 해수의 상황에 따라 차이가 크게 난다.
“아무래도 함장님께 보고해야 되겠군.”
부하들의 작업을 지켜보던 스톨츠 대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스톨츠는 가르시아 중령의 불벼락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어깨가 축 늘어졌다.
“좋아. 놈이 속도를 높여 빠져나간 것일까? 그럼 따라가야지. 마지막 추적위치로 급행한다. 부함장, 15노트로 증속한다. 스톨츠... 다시 발견하면 바로 알려주게.”
탐지를 잃었다는 스톨츠 대위의 보고를 받자 가르시아 중령은 뜻밖에 선선히 대꾸했다. 라 호야가 다시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9월 13일 17:55 부산광역시 부산항 북동쪽 25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음탐실
“옵니다!”
숨을 죽인 채 귀와 눈을 모아 소나에 집중하던 최현호 상사가 들릴 듯 말 듯 강인현에게 속삭였다. 뒤에 서 있는 서승원과 김승민은 미동도 하지 않고 음탐반 요원들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었다.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아마도... 우릴 놓쳤기 때문에 다급해진 모양입니다. 역시 원잠입니다!”
강인현 대위가 낮고 빠르게 속삭였다. 강인현 역시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로써 누군지 모르지만 장문휴함을 추적하는 잠수함이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었다. 그것도 핵잠수함이었다. 그렇다면 일본이나 한국 잠수함은 절대 아니었다. 함장의 예상대로 미국 잠수함일 가능성이 컸다.
강인현은 차근차근 작업을 개시했다. 그는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후방을 추적하는 메모리 기억장치에 저장된 음문 파일들을 불러 들인다음, 언제라도 꺼내볼 수 있도록 조그만 윈도우로 만들어 화면의 한쪽 구석에 밀어넣었다.
한참 고민하던 함장이 무겁게 입을 떼었다.
“작전관! 지금 통신반으로 가서 작전사령부에 지원을 요청한다. 대잠작전센터에 오라이언의 긴급지원을 요청하도록. 사출용 통신 부이를 사용한다. 보고문 작성요령을 잘 알려주도록 해.”
“예! 알겠습니다.”
김승민 대위가 소리나기 않게 빠른 걸음으로 통신실로 향했다. 통신관 이홍기 중위는 아직 어수룩한 부분이 많아서 김승민도 걱정하던 참이었다.
SLOT(submarine launched one-way transmitter) 부이, 즉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일회용 송신기는 장문휴의 현재 위치와 미확인 잠수함의 위치정보 등이 기입되고, 지원요청이 입력된 다음 디코이 발사관에 장전되었다. 부이가 디코이 발사관에 들어간 것을 확인한 김승민 대위가 사령실 계기판에서 확인한 다음 버튼을 눌렀다.
장문휴의 사령탑 후방에 설치된 디코이 발사관은 어뢰 기만용 디코이뿐 아니라 3인치 크기의 통신용 부이도 사출시킬 수 있었다. 디코이가 물속으로 쏘아졌다.
부력을 얻어 급상승한 SLOT 부이가 물위에 다다르자 안테나가 펼쳐지면서 지향성이 높은 극초단파 대역의 전파를 하늘로 쏘아올렸다. 이 부이는 수면에 떠오른 다음에도 즉각 발신하지 않고 지정된 시간이 지난 다음 발신할 수 있도록 발신시간이 조정되는 방식이었다. 이것은 위험해역에서 필요할 경우 잠수함이 그 지점을 완전히 이탈한 다음에, 즉 부이를 사출한 잠수함이 초계기들의 전파수신과 탐지를 피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여유를 준 다음에 작동 될 수 있었다.
SLOT 부이에서 발사한 전파 신호가 장문휴의 컴퓨터에서 압축되어 0.1초보다도 짧은 시간 동안 송신되었다. 버스트(burst) 전송기술이라는 압축형태의 통신방식은 통신이 순식간에 끝나기 때문에 도청하기 곤란하다.
장문휴의 전파를 받아낸 무궁화 3호 통신위성이 전파를 다시 진해에 있는 위성통신 기지국으로 되쏘아보냈다. 고도 3만 6천km, 적도상의 지구정지궤도에 머무르는 무궁화 3호위성은 민간용의 순수 상용 통신위성이다. 그러나 몇 개의 채널은 비밀리에 군용 채널로 할당되었다.
일단 해군작전사령부의 위성통신수신장치에 감지된 전파는 바로 암호해독기를 통하며 장문휴가 보낸 원문이 프린트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일일이 손으로 암호해독표와 대조해야 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0과 1의 수십 자리 디지털 숫자로 이루어진 암호코드는 일정한 규칙이 없는 랜덤방식으로 계속 규칙이 변하며 같은 코드라도 다른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수십만 가지로 조합이 가능한 이런 코드들은 암호의 기본 알고리즘을 알고 있더라도 규칙 자체가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해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말 그대로 암호해독기의 내부 알고리즘과 동일한, 똑같은 장비를 훔쳤다 하더라도 또다시 무수한 병형 알로리즘을 선택 할 수 있으므로 수십만 단위의 전체 알고리즘과 조합규칙을 파악하지 않는 한 암호해독은 불가능하다.
* * *
퇴근 시간이 지나고 해군 작전사령부의 기밀통신실에서 당직근무를 서던 소령이 무엇인가 프린팅되는 소리를 듣고 잽싸게 달려갔다. 발신자를 확인하고 내용을 확인한 소령은 곧 작전사령관과 통하는 직통 회선을 집어들었다.
사령관이 조금 전에 퇴근했다면 부관이 바로 휴대폰으로 연락을 할 것이다. 코드분할 다중접속방식(CDMA)을 사용하는 작전사령관의 휴대폰은 PCS라 불리는 일반 개인 휴대통신과 같은 방식이었고, 이것은 도청당할 우려가 있었다.
아마도 사우나에 갔다가 허겁지겁 달려운 작전사령관을 생각하며 소령이 빙그레 미소 지으며 다음 행동을 서둘렀다. 소령은 해군의 대잠초계항공단으로 이어지는 직통회선을 집어들고 대기중인 P-3C 오라이언 초계기에 임무를 지시했다.
9월 13일 18:15 부산광역시 부산항 북동쪽 32km
미 해군 공역원잠 SSN-701 라 호야, 소나실
“아니... 이게 뭐지? 후방입니다!”
“8노트! 본함 뒤를 따라오고 있습니다!”
루이스 하사가 다급히 위치며 경악한 표정의 로키 중사를 돌아보았다. 상대방의 소음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거리 1,200야드! 예인소나 바로 뒤쪽입니다. 소음 패턴은 균일 하고 조용합니다. 모터 추진음인 것 같습니다!”
소나팀장 스톨츠 대위가 놀라 허겁지겁 헤드폰을 눌러 썼다. 잠시후 스톨츠 대위가 표정을 잔뜩 일그러뜨리며 외쳤다.
“이런! 장문휴다!”
라 호야가 끌고 있던 예인소나에서 불과 300미터 정도의 거리였다. 눈으로도 알아볼 수 있는 거리였다. 한참을 앞서가던 한국 잠수함이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자 로키 중사는 잔뜩 당황했다.
“어떻게 된 건가? 소나팀! 목표 옆을 지나면서도 몰랐단 말인가?”
아까의 여유와는 달리 함장 가르시아 중령의 목소리가 무섭도록 낮게 깔렸다. 사냥감을 눈앞에 둔 범이 공격 직전에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 같았다.
“그게... 함장님! 전혀 파악된 것이 없었습니다.”
“그게 말이 디나? 우리가 추적을 시작한지 세 시간도 안 됐어! 젠장! 겨우 두 시간 몇 분 미행하고 들킨 셈이군.”
가르시아가 시계를 보며 짧게 탄식했다. 장문휴의 추적 임무가 세시간도 못 되어 발각되다니,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할 뿐이었다. 장문휴가 라 호야를 언제부터 발견하고 기다렸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지만, 한국 잠수함이 라 호야가 한국의 영해 안쪽에서 작전한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잠수함 지휘관으로 상대방보다 자신이 먼저 탐지당했다는 것보다 더 큰 수모는 없었다.
“목표가 속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18노트입니다.”
“그래, 놈이 우리를 완전히 포착한 것이다. 스톨츠 대위!”
가르시아 중령의 표정이 잔뜩 험악해졌다. 검에 질린 스틀츠 대위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예! 함장님.”
“소나팀에 실망했다. 도대체...”
가르시아가 언성을 높이려다 중간에서 멈췄다. 스스로도 어이가 없고 창피했다. 러시아와 중국 잠수함을 추적하면서도 이런 황당한 경우는 없었다. 심지어 잠수함 강국이라는 일본 잠수함을 쫓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추적하던 목표가 감속해서 이쪽을 기다리는 것은 어쨌든 좋았다. 하지만 그 목표를 먼저 발견하지 못한 적은 없었던 것이다. 눈먼 장님 이라도 이런 일은 없을 것이다. 장님도 귀가 있기 때문이다. 가르시아는 라 호야가 어떻게 장문휴 옆을 지나치면서도 감쪽같이 몰랐는지 쉽사리 납득되지 않았다.
“함장님! 피해야 합니다. 일단 여해를 침범한 함정은 영해를 빠져나오더라도 해당국에 추적권이 부여됩니다. 장문휴는 지금 우리에게 영해침범의 책임을 물을 권리가 있습니다.”
조언하는 폴머 소령도 어이없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발견되었더라도 빠져나가야 할 때는 신속히 빠져나가야 했다. 장문휴가 더 가까이 다가와 라 호야의 정체를 파악한다면 문제는 더 커질 수도 있었다.
“젠장! 기관실! 가속해서 빠져나간다. 기관 전속!”
이번 작전에 투입된 또 다른 원잠 컬럼비아는 아직도 먼 거리인 포항 동쪽 20km 바닷속에 있었다. 일단 회합지점 전까지 장문휴에 대한 추적임무는 라 호야가 쥐고 있고 그 다음부터는 컬럼비아가 합류하여 공동으로 추적하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계획이 틀어져도 한참이나 뒤틀려 버렸다. 추적하는 쪽의 존재가 노출된 것으로 추적은 끝이었다.
함장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일단 라 호야가 빠른 속도로 컬럼비아에 접근하면 컬럼비아도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일단 꽁무니에 붙은 장문휴를 데어 버려야 했고, 그 다음으로는 컬럼비아에게 빨리 이 사실을 알려주어야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 가르시아 중령은 라 호야의 속도를 높였다.
“컬럼비아에게 상황을 통보한다. 통신 부이를 준비하도록!”
가르시아 중령이 부함장에게 짧게 명령했다. 신중하게 기회를 포착했는데도 불구하고 일이 뒤엉키자 가르시아 중령은 속이 끓어올랐다. 그러나 무진 애를 썼는데도 원하는 결과가 얻어지지 않을 때는 어쩔 수 없었다.
9월 13일 18:20 부산광역시 부산항 북동쪽31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음탐실
“놈이 가속합니다! 엄청나게 빠릅니다. 현제 27노트. 계속 빨라지고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속도를 높이는 목표 잠수함에 놀라 강인현 대위가 몸을 뒤로 돌리며 급히 보고했다. 최현호 상사가 음문 그래프를 확인하며 씁쓸한 표정으로 보고했다.
“저건 LA급입니다. 확실히 양키들입니다.”
“LA급이 맞습니다. 이건 아무래도... 라 호야 같습니다.”
침착한 최현호 상사의 보고를 확인하며, 강인현이 음문 그래프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
“나쁜 놈들!”
음탐실에 와 있던 부함장 진종훈 소령이 화를 벌컥 냈다. 최현호 상사가 저장되어 있던 음문 데이터와 비교해 보았다. 지난 한미일 합동 환동해훈련에서 추적했던 라 호야의 소음은 특이한 점이 있었다. 일곱 개의 스크루 블레이드(날개) 중에서 하나가 단단한 물체에 부딪쳤는지 끝부분에 약간의 손상이 있었다.
잠수함의 스크루를 비롯한 대부분의 선박용 스크루는 청동합금으로ㅗ 제작된다. 정밀한 표면가공에 적합할 뿐만 아니라 강철의 경우 염분에 빠르게 산화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동은 강도가 그다지 크지않아 수중에 떠있는 부유물이나 커다란 물고기에 부딪쳤을 때 손상을 입기가 쉽다.
“예, 라 호야가 맞습니다. 이것을 보십시오.”
최현호 상사가 가리킨 라 호야의 음문에서 단속적으로 작은 소리의 골이 생기고 있었다. 특히 균등하게 나타나는 소리의 맥과 골이 대략 일곱 개당 하나씩 비틀린 형태로 보여졌다.
음문 스펙트럼(분광) 장치에 나타난 스크루 모습은 마치 예쁘장하게 포개놓은 샌드위치처럼 여러 가지 두께의 스펙트럼이 규칙적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다른 형태를 보인다는 것은 날개 하나가 손상을 입었다는 뜻이었다.
선풍기의 날개 끝부분이 약간만 부러져도 회전할 때 심하게 요동치듯이 스크루 표면에 조그마한 손상이 있어도 추진음은 많은 차이를 보이게 된다.
현재 각국이 사용하는 소나는 과거와 같이 귀로 듣는 것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음파는 간단한 전기적인 처리과정을 통해 시각적인 형태로 표현될 수 있다. 음파를 파장에 따라 세분화시키면 귀로 들을 수 있는 것 이상의 미세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사람의 지문과 마친가지로 각 함정의 독특한 소음을 구분하는데 이용할 수 있는데, 이것을 음문이라고 한다.
“바보 같은 놈들... 그다지 나쁜 상태는 아니지만, 그동안 스크루 정비도 하지 않았나 봅니다.”
진종훈 소령이 빈정거렸다. 하지만 실제로 라 호야가 재출항 명령으로 인해 독(dock) 정비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승무원들도 휴식없이 투입된 사실을 그가 알 리 없었다.
미 해군은 평소에 이처럼 얼렁뚱땅 넘어가는 법이 드물었다. 이번이 그 드물다는 극히 몇 안 되는 경우였다. 잠시 후 진종훈 소령이 다시 덧붙였다.
“무늬만 잠수함입니다.”
9월 13일 18:25 경상북도 포항 동쪽 35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71 컬럼비아, 사령실
수심 80미터에서 대기하고 있던 컬럼비아의 통신실에 있던 텔레타이프가 작동되며 뭔가 프린팅되기 시작했다. 조금 전 라 호야가 발사한 통신부표의 전파를 태평양의 정지궤도에 있던 퉁신위성이 중계받은 다음 다시 괌(Guam) 상공에서 비행하던 E-6A 타카모(TACAMO) 항공기로 쏘아보냈다.
보잉 707 여객기를 기초로 만들어진 E-6A 타카모기는 수중에 머물고 있는 잠수함에 통신을 중계하기 위한 이동비행기지이다. 초장파(VLF) 대역의 전파를 발생시키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긴 안체나가 필요한데, 타카모 항공기는 꼬리 부분에 무려 10km에 달하는 안테나를 끌며 비행한다.
일단 3만 키트의 고도까지 올라간 타카모 항공기는 기다란 안테나를 늘어뜨리??? 다음 커다란 원을 그리며 선회하는데, 자체 무게로 인해 아래쪽으로 드리워진 안테나는 길게 세워져서 조장파를 발생시키기 적합하게 된다.
물속으로는 전파가 아주 짧은 거리에서 급격히 에너지가 소멸되므로 잠수함까지 도달하기 어렵다. 하지만 전파의 파장이 길수록 물을 투과할 수 있는 범위가 증가하므로 초장파나 극초장파를 이용하면 수십미터에서 수백 미터까지의 물속까지도 전파가 전달된다. 전파로 잠수함에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잠수함이 쏘아올린 통신부표나 인공위성은 극초단파나 초단파밖에 송출할 수 없다. 그것은 안테나를 길게 만들 수도 없고 출력도 한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극초단파를 다시 초장파로 바꾸어 잠수함으로 되쏘아 보내는 중계역할을 타카모 항공기가 맡는 것이다.
통신문을 받아든 사병이 맨 앞에 첨부된 식별부호를 암호대조표와 확인했다. 사병은 정상적은 통신문임을 확인한 다음 종종걸음으로 사령실을 향해 빠르게 걸었다. 발소리를 내면서 뛰어 다니는 것이 며칠 전부터 금지되었다.
“뭐야? 이건! 바보 같은 놈들...”
컬럼비아 함장 로이 스위프트 중령이 욕지기부터 내뱉었다. 한국 해군의 장문휴함을 포착하고 추적중이던 라 호야가 오히려 장문휴에게 덜미를 잡힌 것이다. 장문휴를 떨궈내기 위해 라 호야가 곧 컬럼비아가 대기하고 있는 지점에서 회합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라 호야는 아마 지금쯤 물속에 온갖 소음을 흩뿌리며 급송 항주 하고 있을 것이다. 스위프트 중령은 어이가 없었다. 작전 초반부터 이렇게 되면 난감해진다.
“부함장, 라 호야가 장문휴를 탐지했다. 현재 장문휴와 함께 북상중이라고 통신을 보내왔다. 전원 전투배치에 돌입한다.”
스위프트 중령은 일단 부함장 대니얼 러너(Daniel Learner) 소령에게 짧게 설명했다. 이것은 사실 사령실의 다른 승무원들에게 한 말이었다. 그러고는 함장은 다른 승무원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통신문을 슬쩍 러너에게 전해주었다. 라 호야의 존재가 장문휴에게 폭로된 것을 부하들에게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창피한 일이었다.
9월 13일 18:30 부산광역시 부산항 북동쪽 44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 사령실
30노트의 빠른 속도로 항주중인 LA급 공격원잠 라 호야는 굉음을 울리며 질주했다. 엄청난 소음과 웅웅거리는 진동이 사령실에서 느껴지며 승무원들에게 묘한 기분을 일으켰다. 적에게 꼬리를 보이며 도망가는 판에 유쾌할 군인은 아무도 없어TEk.
말없이 서 있던 가르시아 중령이 입을 열었다.
“급속 변침한다. 우현 전타. 방위 1-8-5로!”
“우현 전타! 방위 1-8-5로!”
부함장 폴머 소령이 잠항팀의 작업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민간인들이 잠수함인지 모르고 본다면 여객기 조종석으로 착각할 만했다.
기어의 회전비가 높은 수상함정의 키와 비교할 때 잠수함의 키는 극단적으로 다른 형태이다. 잠수함용 키는 반 바퀴 이상 회전하지 않는다. 비행기 조종간과 마찬가지로 빠른 회전을 염주에 두지 않고 미세한 조정을 목적으로 만든 잠수함의 키는 나비 모양으로 생겼고, 상승 하강을 조정할 수 있도록 앞뒤로도 꺾인다.
키를 앞으로 밀면 잠수함 뒷부분에 달린 수평타(횡타)가 아래쪽으로 기울며 잠수함은 하강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앞으로 당기면 수평타는 위로 걲이며 잠수함은 수면 쪽을 향하여 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잠수함은 속도가 느리고 덩치가 클 뿐이지, 비행기가 하늘을 비행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로 움직인다. 비행기가 하늘이라는 기체 속을 비행하는 것처럼 잠수함은 바다라는 액체 속을 비행하는 것이다.
문득 폴머 소령은 라 호야가 빠른 속도로 다시 남쪽으로 선회하고 나서도 속도고 줄지 않을 것을 깨달았다. 함장 가르시아 중령은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했지만 조함컨솔 쪽에 붙어 있는 나침반과 속력표시기 등 계기판에 눈을 대고 있었다.
함장이 다른 문제에 정신을 팔린 것 같지는 않았다. 미국 해군의 공격용 원자력 잠수함 라 호야는 한국 잠수함을 뿌리친 것과 같은 속도로 다시 한국 잠수함 방향을 달리고 있었다.
폴머는 스톱워치를 꺼내서 라 호야가 30노트로 가속한 순간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을 계산했다. 한국 잠수함이 아무리 빨리 쫓아오더라도 라 호야는 그보다 최소 7~8노트 이상 빠르다. 그러므로 이미 15분간의 전속항주시간 동안 최소한 3km 이상은 거리를 벌여 놓았을 것으로 판단했다.
장문휴가 무급기 추진시스템을 탑재하고 있기 때문에 수면 위로 부상하여 배터리를 충전하지 않고 계속 따라올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기지로 돌아가서 재충전을 해야하는 귀중한 산소와 수소를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거리는 더 벌어졌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라 호야가 고속으로 항주하면 소나의 효율이 떨어지므로 장문휴를 탐색할 수가 없었다. 고민하던 부함장 폴머 소령이 입을 열었다.
“함장님, 현재 속도로 계속 나아가면... 만약 장문휴도 최고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면, 앞으로 2분 30초 후에는 장문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해점으로 다시 진입하게 됩니다. 소나의 효율을 감안해서 감속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칫 충돌할 우려가 있습니다.”
말을 마친 폴머 소령이 계속 스톱워치를 확인했다. 잠깐 말한 사이에도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폴머의 보고를 들은 가르시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폴머는 함장이 대답하지 않자 한 번 더 그를 불렀다.
“함장님!”
7. 추적자의 추적자
9월 13일 18:33 부산광역시 부산항 북동쪽 38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음탐실
“저 쪼다 새끼들이...!”
“다시 우리 쪽으로 선회한 다음에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있습니다. 30노트! 거리 5,000!”
놀라서 보고하는 대신에 욕지기를 내뱉으며 최현호 상사가 더듬거리는 사이에 강인현 대위가 빠르게 보고했다. 잠시 전 장문휴는 최고 속도로 라 호야를 추적하길 포기해야 했다. 어차피 재래식 잠수함은 핵잠수함을 속도로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부함장 진종훈 소령은 라 호야가 가속하는데 시간이 걸리므로 연료 전지를 가동하여 빨리 따라잡자고 했었다. 그러나 함장은 그때 고개를 가로 저었다.
* * *
연료전지는 AIP의 일종이다. AIP는 ‘Air Independent Propulsion'의 약자로, 무급기추진 시스템이다. 일반적인 디젤 잠수함은 함내 축전기에 저장한 전기가 떨어지면 물위로 부상하여 디젤엔진을 가동시켜야 한다. 디젤엔진에서 연료를 연소시키려면 산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급기추진 시스템은 함내의 산소를 저온액화탱크 내에 보관하여 물속에서 전기를 발생시킨다. 그래서 부상하지 않고도 발전을 할 수 있다. 무급기추진 시스템에는 디젤엔진을 사용하는 방식 외에도 일종의 외연기관인 스터링(Stirring) 엔진, 스팀터빈 엔진, 연료전지 등 여러 가지 방식이 존재한다.
장문휴가 장비한 연료전지(fuel cell) 방식은 산소와 수소를 이온화시켜 직접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먼저 수소 기체를 전해질에 담긴 얇은 순금제 막이나 니켈 다공판에 투과하면 이온화되어 전자를 분리 시킨다. 반대쪽 양극에서는 수소 이온의 산소와 결합하여 물이 되고 전위치를 유지한다. 이 사이에서 발생한 전기가 잠수함을 움직이는 것이다.
산소를 이용해 연료를 연소시켜 다시 발전기를 돌려야 하는 다른 방식들과는 달리 연료전지에서는 원동기를 돌릴 필요없이 직접 전기를 생성한다. 그러므로 디젤엔진이나 스터링엔진, 스팀터빈 등은 에너지 효율이 낮은 데 반해 연료전지는 이론적으로는 100퍼센트, 장문휴에서는 70퍼센트가 넘는 높은 효율을 보인다. 그만큼 더 오랫동안 수중에 머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연료전지 방식을 쓰는 212급은 엄밀히 말해 디젤 추진 잠수함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내부에 저장된 산소와 수소를 이용하여 별도로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으로 인하여 장문휴는 재래식 잠수함이지만 핵잠수함에 맞먹는 비약적인 수중항행 능력을 갖게 되었다.
함장의 결단은 옳았다. 서승원 중령은 이미 호출한 해군 항공전의 오라이언 대잠초계기도 고려했다. 일단 영해를 침범한 이상 공해상으로 도주하더라도 추적권이 부여된다. 미국이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권을 보유하고 있고, 군용항공기에 대해서 한국내의 미공군 기지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지만 배의 경우는 달랐다.
한 국가의 군함은 영토 개념이 적용된다. 그러므로 함정의 공간은 한 국가의 영토의 연장선상인 셈이다. 미국이 부산에 전용부두를 갖고 있더라도 한국 영해의 자유통행권을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라 호야는 분명 영해를 침범했던 것이다.
미 해군이 80년대와 그 이전까지는 동해에서 러시아의 극동함대를 제지할 목적으로 수많은 작전을 수행했지만 한국 해군과 협조했던 적은 없었다. 심지어 한국의 영해, 12해리 안에도 허가없이 자유롭게 들락거렸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달랐다. 그때 한국에는 대잠수함 작전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구축함과 프리깃이 전무했다고 할 수 있었다. 제지하고 싶어도 능력이 없었던 때였다.
입을 꾹 다물고 헤드폰과 모니터에 온 신경을 집중시키고 있었지만 강인현은 가슴 한구석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라 호야가 이쪽으로 접근하는 것은 영해를 침범하고 도주한 주제에, 그것도 장문휴에게 추적권이 있는 상황에서, 두둑놈이 도둑질을 하러 재차 침입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눈을 뻔히 뜨고 있는 한국 해군 잠수함을 완전히 모욕하는 행동이었다.
“거리 2,000미터! 속도 30노트! 목표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있습니다.”
“저 새끼들이...”
최현호 상사의 보고에 진종훈 소령이 입술을 앙 다물었다. 하지만 약한 나라의 해군 입장에서는 별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뜻밖의 명령이 내려졌다.
“액티브 탐신 준비하라.”
“예! 액티브 탐신 준비했습니다.”
서승원 함장이 무겁게 입을 열자 강인현 대위가 반색하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9월 13일 18:35 부산광역시 부산항 북동쪽 40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 사령실
“액티브 탐신!”
“액티브 탐신!”
가르시아 중령의 명령과 동시에 스톨츠 대위가 버튼을 눌렀다. 라 호야의 함수에서 강력한 저주파 빔이 장문휴를 향해 발사되었다.
“거리 1,000야드! 950... 900...”
라 호야가 액티브 탐신을 하자 상대편 잠수함 중문휴의 위치와 속도가 명확해졌다. 반사파는 발사와 거의 동시에 돌아왔다.
짧은 시간의 저주파 반사음이었지만 도플러 효과 때문에 매우 높게 들렸다. 음원과 접근할수록 음파의 도달속도는 상대적으로 빨라지고 진동수는 증가한다. 스톨츠 대위가 점점높아지는 소나음에 질려 헤드폰과 귀 사이에 살짝 손을 넣었다. 예상대로 장문휴도 15노트의 속도로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함장님! 이러다가는 충돌합니다.”
폴머 소령이 다급히 외쳤지만 가르시아 중령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갑자기 새로운 저주파음이 라 호야를 때렸다. 장문휴함에서 발사한 공격소나음이었다. 거리가 너무 가까웠기 때문에 라 호야의 선체를 진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거리 300... 250... 함장님!”
참다 못한 소나팀장 스톨츠 대위가 기겁하며 함장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가르시아 중령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소나실 승무원들이 모두 진땀을 뻘뻘 흘렸다. 함장은 입술이 약간 실룩거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우현 전타.”
“우현 전타~~.”
함장의 명령을 애타게 기다리던 조함병이 복창도 하기 전에 이미 조종간을 오른쪽으로 급히 꺾었다. 라 호야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자 원심력에 의해 승무원들의 몸이 일제히 왼쪽으로 기울어졌다.
9월 13일 18:36 부산광역시 부산한 북동쪽 39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음탐실
“키 오른편 전타!”
서승원이 다가오는 라 호야를 지켜보다가 마지막 순간에 명령을 내렸다. 폭주기관차처럼 라 호야가 끝장을 보자고 덤벼드는 상황이었다. 수중배수량 7,000톤에 이르는 라 호야가 장문휴함을 아슬아슬하게 비켜가면서 일으킨 거대한 압력파가 장눔휴를 덮쳤다. 겨우 1,800톤에 불과한 장문휴가 거세게 흔들렸다.
* * *
교차하는 선박에는 항상 통행우선권을 가진 선박이 있게 마련이다. 군함도 마찬가지다. 함마다 급이 있고, 동급 함선에 함장 계급이 같아도 당연히 보다 선임인 함장이 있어 하급자인 함정의 양보를 받는다.
하지만 비우호국인 외국 군함과 마주칠 경우에는 어느 한편이 알아서 비켜나가는 경우가 드물었다. 상대방 함전 함장과의 계급 서열을 알기 어려운데다가 자존심 문제까지 개입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서로 마주 달리다 최후의 순간 비켜나가야 할 때는 무조건 오른쪽으로 비켜나가는 것이 수칙이었다. 이를 지키지 않고 어느 한쪽이 반대방향으로 움직일 때는 걷잡을 수 없는 대형 충돌사고가 일어나게 된다.
“도데체 저놈들이 원하는 게 뭡니까?”
심한 진동으로 쓰러졌다가 몸을 가누고 일어선 진종훈 소령이 함장에게 물었지만 대답을 기대하고 물은 것은 아니었다. 미국 잠수함이 왜 저러는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장문휴함 승무원 중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전혀 알지 못하는 승무원도 없었다.
“부장,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며느리가 알겠나?”
평소에 농담 한 마디 하지 않던 서승원 중령이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자 진종훈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다른 승무원들이 모두 놀랐다. 부하들의 표정을 읽은 함장의 자신의 조크가 재미와 거리가 멀었다는 것을 알고는 빙그레 웃었다. 긴장되는 순간에는 마음에 여유를 주는 것이 좋았다.
“자! 양키들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행동을 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취할 수 있는 행동은 없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리라 믿는다.”
함장은 잠시 승무원들이 생각할 짬을 주었다. 출항 전 브리핑에서 충분히 주지시킨 내용이었다.
함장은 그 직후에 김승민 대위를 불렀다.
“작전관!”
“옛! 함장님!”
김승민 대위가 턱을 올리고 부동자세를 취했다. 표정은 그렇지 않았지만 김승민은 분명히 함장의 깊은 분노를 느꼈다.
“임무가 끝난 후 이번 접촉상황을 자세히 보고할 생각이다. 확실한 증거를 제출할 예정이니 준비를 해주게.”
“옛! 알겠습니다.”
분노에 비해 함장의 조치 수준이 너무 낮아 김승민 대위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김승민은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지만 만약 똑같은 행동을 장문휴가 미국 원잠에 취했다면 그들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하는 의문이 떠올라 기분이 착찹했다. 다른 승무원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당혹스러움에 더해 적개심까지 피어오르고 있었다.
“라 호야가 방향을 틀고 있습니다. 좌현로 접근합니다!”
장문휴를 스치고 지나간 라 호야가 다시 방향을 돌리고 있었다. 최현호 상사가 예인소나를 통해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보고하자 진종훈 소령이 눈을 부릅드며 외쳤다.
“꽁무니를 잡으려는 것입니다.”
함장이 부함장의 표정을 읽었다. 잠시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함장은 부함장이 웅변하고 있는 무언의 항의와 희망을 묵살했다.
“부장! 긴장을 풀게. 놈들은 곧 행동헤 합당한 대접을 받게 될 거야.”
함장이 고개를 돌려 작전관 쪽을 향했다.
“자, 잠항한다. 놈들이 머리가 빈 고등어란 사실을 확실히 각인시켜 주겠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진종훈 소령만 대답한 것이 아니었다. 머리가 빈 고등어라고 서승원이 비꼬자 그제야 사령실 승무원들의 얼굴이 펴지면서 모두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고등어는 겉보기엔 전혀 그렇게 생기지 않았지만 빈 낚싯바늘도 덥석덥석 잘 무는 멍청한 물고기이다. 땅위로 끌어올려지면 몸체를 중심으로 제자리에서 머리와 꼬리만 파닥거리는 꼴이 꽤나 웃긴다. 그래서 일단 잡히면 절대 도망가지 못하는 물고기가 고등어다. 가장 쉬운 낚시로 꼽히는 고등어 낚시를 심심풀이로 해봤던 승무원들이 고등어가 땅 위에서 파닥거리는 장면을 연상하며 낄낄댔다.
“오~ 제군들! 침묵상태를 다시 발령한다. 이제 전원 복창 금지야. 하하하! 심도조정 150으로. 감속 4노트!”
“심도 150! 감속 4노트!”
서승원 중령은 지금부터 미국 잠수함을 놀래주기 위해 펼칠 전술과 함께 어느 정도 곯려줄 것인지 잠시 생각했다. 장난이 지나치면 힘만 세고 머리는 나쁜 미국이 자존심 상한다며 다시 무리한 짓을 할 것 같았다. 함장은 출항 전에 왜 작전사령관이 그렇게 자제를 신신당부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우리 오라이언은 동작이 너무 굼뜬 것 같은데?”
서승원 중령이 잠항을 지휘하는 김승민 대위를 지켜보며 시계를 보았다. 통신부이를 띄워 작전사령부에 보고한 지 30분이 넘어서고 있었다. 예상대로라면 해군항공대 친구들이 지금쯤은 수퍼맨처럼 등장할 시간이었다. 장문휴는 속도를 죽이며 깊은 바닷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9월 13일 18:40 부산광역시 부산항 북동쪽 37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 소나실
라 호야가 선회하는 데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속력도 줄이지 않고 30노트의 고속으로 선회하면 선회반경도 그만큼 커지게 마련이었다.
“1/3로 감속한다.”
“1/3로 감속!”
잠수함의 속도를 줄이도록 명령한 가르시아 중령이 초조하게 기다린 가운데 마침내 소나실에서 보고가 왔다.
“장문휴를 재탐지했습니다. 방위 0-4-5도! 놈이 속도를 줄였습니다.
“좋아. 이번에는 서두르지 않도록 조심하라.”
가르시아 중령은 잠수함을 장문휴에 충돌 직전까지 가도록 명령한 것이 과연 잘한 일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분명 한국 잠수함을 놀라게 해줄 필요는 있었다. 이제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다. 라 호야가 장문휴를 압박하면서 컬럼비아가 대기하고 있는 해역까지 계속 밀어붙이는 것이다.
이미 통신부이를 띄운 이상 컬럼비아에서도 사태를 파악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장문휴가 컬럼비아가 기다리고 있는 덫으로 빠져들어간 다음 컬럼비아가 더욱 신중하게 추적을 재개할 계획이었다.
컬럼비아의 초계구역에 들어갔을 때 라 호야가 잠시 사라져 주면 만사형통이었다. 그러면 장문휴는 라 호야를 떨쳐낸 것으로 생각할 것이고, 그것이 바로 잠수함 두 척에 의한 목표 미행의 요령이었다.
“접촉을 최대한 유지한다. 이번에는 장문휴가 우리를 알아도 상관없다. 우리가 컬럼비아 쪽으로 밀어내기만 한면 된다. 부함장! 장문휴가 외해로 빠지지 않도록 추적 침로를 정확히 설정하라. 이번실수는 용서받지 못한다.”
가르시아 중령이 마지막 구절에 잔뜩 힘을 주었다.
“예! 함장님.”
한국 잠수함을 깔보고 있던 라 호야의 승무원들이 눈에 띄게 신중해지고 있었다. 자신들이 긴장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승무원들이 계기판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공격소나를 계속 먹이면서 쫓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함장님. 우리가 바깥쪽에서 쏘면 놈들은 외해로 넘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좋아, 똥침을 찔러주는 것도 좋겠지. 우린 양치기가 되는 거로군. 하하!”
폴머의 의견을 들은 가르시아 중령은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호쾌하게 한번 웃었다. 함장은 양떼를 몰며 신이 나서 컹컹대는 벨전 테르뷔랑(belgian tervuren)이 된 기분이 들었다. 함장은 약소국인 한국 잠수함이 결코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9월 13일 18:45 부산광역시 부산항 북동쪽 41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음탐실
“액티브 소나입니다! 방위 이백이십공(2-2-0)도! 거리 3,000미터.”
최현호 상사가 얼굴을 찡그리면서 고통스런 표정을 지었다. 강한 저주파음이 예인소나를 직격했기 때문이다.
“심도 재조정, 200으로! 키 왼편 5도! 공이심공(0-2-0)까지 돌려라!”
서승원 중령이 차분하게 명령을 내렸다. 공격소나를 탐신하는 행위는 공격 준비동작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공격행위로 간주되어 반격을 받을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기도 했다. 그러나 서승원 중령은 흥분하지 않았다.
이 근처의 해저지형은 남해안과 쓰시마 섬, 그리고 일본의 규슈로 이어지는 대륙붕 지형으로 수심이 200미터 내외의 지형이었다. 계속 심도를 낮추고 있는 장문휴로서는 바닥에 좌초될 염려가 있었다.
“함장님은 울릉단층을 이용할 생각이신가 보죠?”
강인현 대위가 잔뜩 불안해하는 김승민에게 나직하게 속삭였다. 계속 심도가 낮아지자 사령실 승무원들은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함을 지휘하는 함장의 표정이 여전히 침착한 것을 보고는 그다지 동요하지는 않았다.
강인현도 마찬가지였다. 계속 작도판 쪽을 보며 근처 해저지형에 눈길을 돌렸지만 직점 가서 보려니 불안한 심정을 들킬 것 같아 꾹 참던 중이었다.
울릉단층은 2,300만년 전, 한반도와 러시아 동해안에 붙어 있던 일본이 유라시아판 대륙지각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생긴 단층지형이다. 일본은 한반도 동해안의 해안선과 평행하게 직선으로 남쪽을 향해 미끄러져 내려갔다. 수심 2천 미터가 넘는 동해가 생긴 것이 바로 그 시기이다.
이때 대륙지각이 짖어져 나가면서 생긴 단층 지형이 양산단층과 울릉단층, 그리고 후포단층이다. 이중에서 울릉단층이 가장 큰 것으로, 울릉도 서쪽에서 시작해서 대마도를 지나 남해안, 규슈 서쪽까지 이어진다.
“심도 재조정, 230으로!”
“심도 230미터로!”
함장이 심도를 낮출 때마다 김승민 대위는 점점 불안해졌다. 해저단층은 일종의 협곡과 비슷한 지형이다. 지금 장문휴는 울릉단층의 낮은 해저 쪽을 향해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방향을 잘못 잡으면 병풍처럼 둘러진 단층벽에 충돌할 수도 있었다.
김승민 대위는 항법소나를 쓰면 주변 해저지형을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훨씬 안전하겠지만, 지금 미국 잠수함이 뒤를 쫓는 마당에 항법소나를 사용하기는 어려웠다.
“2노트로!”
“속도 2노트!”
4노트로 느리게 움직이던 장문휴는 스크루 회전수가 더욱 느려졌다. 그런데 이상하게 출력을 낮췄는데도 속도가 줄어들지는 않았다. 쿠로시오 해류의 지류인 남한난류가 북쪽으로 방향을 틀며 북상을 시작하는 지점이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장문휴는 해류를 타고 서서히 북쪽으로 향했다.
난류의 영향력이 강해지는 한여름이라면 잠수함이 동력을 완전히 정지시키더라도 북한 원산까지 아무도 모르게 침투할 수 있다. 그것은 북한도 마찬가지다. 오호츠크해에서 발원하는 리만 한류의 지류인 북한해류가 한반도 북동해안을 평행하게 흐르는데, 시속 1~2노트인긴 하지만 한류가 강해지는 가을과 겨울철에는 남쪽으로의 항해를 이용 할 수 있었다.
일단 해류에 몸을 싣게 되면 전혀 소음을 발생시키지 않고 남한의 삼척이나 울진까지는 문제없이 침투할 수 있다.
이것이 침투하는 북한 잠수정을 한국 해군이 탐지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물론 정지상태의 잠수함은 균형을 잃고 전복되기 쉽기 때문에 위험한 점은 이따.
“작전관님, 함장님 좀 본받으세요. 눈 딱 감으면 땀흘릴 일도 없답니다.”
유독 진땀을 흘리는 김승민에게 강인현이 한 마디 던졌다. 그러나 김승민은 알아듣지 못하고 여전히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9월 13일 18:50 부산광역시 부산항 북동쪽 41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 소나실
“놈이 느리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심도는 200야드... 아... 더 깊이 내려가고 있습니다.”
“더 내려가다니? 이곳 해저 수심은 200야드 미만이야!”
소나팀 요원들의 보고에 폴머 소령이 되물었다. 이곳은 아직 낮은 대륙붕 지형인데다가 동해의 깊은 바다로 이어지는 대륙사면은 훨씬 북쪽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합니다. 계속 심도를 낮추고 있습니다.”
로키 중사가 자신 있다는 듯 한 번 더 확인했다.
“놈들은... 단층지형을 이용하고 있네.”
묵직한 소리에 놀라 폴머 소령이 뒤돌아본 곳에는 함장 가르시아 중령이 서 있었다. 미 해군은 동해를 주요 작전지역으로 설정한 이래주변 해저지형에서 많은 양의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해놓고 있었다.
60~70년대, 한국이 해군력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었을 무렵이니까 미국이 한반도 주변 해저지형을 조사하는 동안 한국으로부터 방해받을 일도 없었다. 한 마디로 한국은 안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 * *
“이곳 단층대는 지각판의 이동으로 생긴 단층으로 골짜기가 꽤 깊다. 단층곡(fault valley) 지형이다. 하지만 폭이 상당히 좁아서 한국잠수함이 아무리 작더라도 통행에 이용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일단 우리는 위쪽에서 대기한다. 놈이 다시 올라올 수밖에 없다.”
함장은 장문휴가 곧 상승하리라 단정했다. 라 호야로서는 일단 덩치가 큰데다가 길이도 장문휴보다 훨씬 길어서 좁은 단층곡 지형에서 기동하기가 어려웠다. 작은 장문휴를 쫓아 쉽게 따라갈 수 있는 지형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함장은 장눔휴도 잠깐 숨어 있을 뿐이지, 계속 머물거나 통과할 수는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 근처의 해저지형을 손바닥 보듯 꿰고 있더라도 결국은 떠오를 것이다. 그러므로 라 호야가 굳이 내려갈 필요없이 단층 위쪽에서 대기하며 다시 부상할 장문휴함을 기다리는 편이 나았다. 이렇게 판단한 함장이 명령을 내렸다.
“좋아, 다시 감속한다. 6노트로!”
“감속, 6노트!”
라 호야도 속도를 더 줄여야 했다. 단층곡 지형에서 어렵사리 은폐와 항주를 계속할 장문휴는 마음대로 속도를 낼 수 없을 것이다. 괜히 서둘렀다간 탐지도 못하고 장문휴를 앞서갈 우려가 있었다.
“좁촉을 상실했습니다.”
‘뭐야? 안돼! 액티브를 때린다!“
로키 중사가 힘없이 장문휴함을 놓쳤다고 보고하자 스톨츠 대위가 허둥거렸다. 능동소나의 사용권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이상 문제될 것은 없었다. 당황한 함장이 미처 말리기도 전에 시톨츠 대위의 지시에 따라 로키 중사가 버튼을 눌렀다.
“탐신!”
해저를 행해 저주파가 발사되었으나 되돌아오는 반향속에 잠수함은 포착되지 않았다. 대신 복잡한 해저지형이 일으킨 음파의 난반사로 더욱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칸, 소나! 수면 접촉음입니다!”
로키 중사가 갑자기 호둥지둥 소나를 조작했다. 수면 방향이라면 잠수함은 분명 아니었다. 게다가 라 호야의 주위를 항해하는 모든 선박을 추적하여 분석하고 있던 참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수면 노이즈라면 가능성이 몇 가지 되지 않는다. ‘칸, 소나’는 “Control room, it's sonar" 즉, 소나실에서 사령실을 호출하는 말이다.
“가깝습니다! 본함 바로 위입니다. 소노부이가 대량으로 낙하하고 있습니다!”
스톨츠 대위가 무의식중에 보이지도 않는 비행기를 보려고 고개를 위로 젖혔다.
9월 13일 18:55 부산광역시 부산항 북동쪽 42km
한국 해군 P-3C 오라이언, 코드명 흰꼬리수리 3
은회색 항공기가 해면 위를 낮게 비행하며 소노부이를 일정간격으로 흩뿌리고 있었다. 한쪽에서 뿌리고 난 뒤 반대방향으로 선회한 다음 또다시 소노부이를 투하하기 시작했다.
-투하!
-투하!
소노부이가 투하되는 것을 확안하는지 스피커가 잠시 침묵을 지켰다. 8명의 대잠요원들이 각자 계기판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대장님! 그만 뿌려도 될 것 같습니다. 놈이 액티브 소나를 쐈습니다. 위치는 27, 28번 부이의 안쪽입니다. 이런! 완전히 잡았습니다. 그쪽으로 뿌려둔 소노부이 11개에서 탐지되고 있습니다.”
강인호 대위가 기겁하며 보고했다. 모니터에는 신호처리기가 가장 수신상태가 좋은 3개의 소노부이를 중심으로 하여 자동적으로 삼각측량을 실시해 잠수함의 위치를 표시하고 있었다.
“좋아! 더 이상 낭비하면 안 되지. 위치 확인됐으면 제저벨을 뿌려서 귀를 먹게 해준다. 준비됐나?”
흰꼬리수리 3의 전술통제사 홍희범 소령이 득의만만하게 소리쳤다. 제저벨(Jezebel)은 액티브 음파를 쏘아 그 반향으로 잠수함을 탐지하는 능동형 소노부이이다. 60년대에 사용하던 구형이고, 마찬가지로 구식인 S-2 대잠초계기가 사용하는 부이였다.
그런데 오라이언에서는 이것을 잠수함에 대한 경고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재고가 워낙 많은데다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역시 액티브 탐신기능을 가진 디카스(DICASS) 부이가 있었으나 이제는 디카스와 디파(DIFAR)를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제저벨은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왕아합(Ahab)의 왕비이며 독부의 대명사이다. 강한 고주파 탐신음을 발하는 제저벨 부이가 잠수함주위에서 소리를 내면 그것이 잠수함 승무원들에게는 마치 바가지를 박박 긁는 마누라 목소리처럼 들릴 것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홍희범 소령은 누가 붙인 이름인지는 몰라도 제대로 붙인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명명자는 전날 부인에게 호되게 바가지를 긁혔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능동형 부이가 잠수함 승무원에게 마누라의 바가지 정도로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전투시에 잠수함이 발견당했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니까.
* * *
“제저벨 부이 10, 11, 12번, 발사관에 장전했습니다.”
장민호 상사가 기내 후방에 있던 소노부이 저장케이스에서 제저벨 부이를 꺼내 아래쪽 소노부이 발사관에 장전을 마치고 보고했다. 오라이언은 전에 타던 S-2 트래커보다 따뜻해서 좋았다.
여압구조가 아닌 S-2 트래커는 기내압이 바깥과 똑같았다. 고도를 높이면 호흡하기도 곤란했고, 우선 무척 추었다. 트래커에 탑승할 때는 두터운 방한 조끼와 방한 점퍼를 오리처럼 껴입어야 했다. 한여름에는 특히 고역이었다.
“좋아, 투하한다!”
“투하!”
제저벨 부이 3개가 동시에 라 호야의 머리위로 떨어졌다. 사냥의 마지막 부분이었다. 쫓는자의 희열은 사냥감이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는 막다른 곳으로 몰렸을 때 가장 강하게 느껴진다. 사냥감은 그를 쫓던 사냥꾼에게 솣든 싫든 일순간 고개를 돌려 확인하게 마련이다. 잠수함 승무원들이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는 장면을 연상한 홍희번 소령은 뿌듯했다.
9월 13일 19:00 울릉도 북서쪽 62km
미 공군 전자정보수집기 RC-135 리벳 조인트
RC-135 리벳 조인트(Rivet Joint)기는 미 공군 소속 전자전 정찰기이다. 적국 상공에 최대한 접근하여 무선통신뿐만 아니라 상대국의 전파 체계를 모두 수집한 다음 분석하는 전자정보수집 전용 항공기이다. 이 항공기는 항상 북한 상공 주변을 배회하며 북한의 레이더 체계와 항공기 작전상태, 무선통신 등을 감시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월터 에머슨(Walter Emerson) 소령이 갑자기 폭주한 한반도 남동해안의 전파통신량을 분석하고 나서 정찰기 지휘관 조던 레이크(Jordan Lake) 중령에게 보고했다. 레이크 중령은 신중하게 판단했다.
링본 혼슈 북쪽, 아오모리현 미자와 기지에서 이륙한 리벳 조인트기는 북한 감시공역으로 향해 계속 북상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남쪽에서 한국 해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임무가 우선이었지만 일단 호기심이 강하게 일었다.
“좋아! 감시공역을 변경한다. 침로 1-9-5 변경한다. 섹터 F에서 작전 하겠다.”
결정을 내린 레이크 중려잉 조종석으로 통하는 송신기를 들어 조종사에게 새로운 항로를 명령했다.
- 예! 알겠습니다. 침로 1-9-5로 변경합니다.
조종석 쪽에서 약간 들뜬 대답이 들려왔다. 뭔가 상당히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김해와 대구, 포항에서 항공기 발진이 대규모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각 공항에서 민간여객기의 이착륙을 전면 보류시켰나 봅니다. 여객기들이 각 공항 상공에서 대기중입니다. 아! 여객기들을 근처 청주 공항으로 유도합니다.”
“부산에서 함정들이 출항합니다. 해상에 나와 있는 함정들과의 교신량이 폭증하고 있습니다. 코스트 가드(Coast Guard) 소속 함정들도 동원되고 있습니다. 이들과의 음성통신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부하들의 보고가 잇따랐다. 해군의 대규모 작전인 것만은 분명했다. 항공기와의 연합작전이라면 가능성은 줄어들겠지만, 아직은 학실히 알 수는 없었다.
코스트 가드는 이들이 한국의 ‘해양경찰대’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미국이 그렇듯이 자국의 해양과 해안을 관리하기 위하여 군대조직 외에 경찰조직이 필요한데, 전시를 비롯해 유사시에는 해군과 유기적인 상호 협조체계에 들어간다.
레이크 중령은 가끔 북한의 고속정과 침투정이 한국 근해에 접근했을 때 지금과 비슷한 난리법석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규모가 상당히 컸다. 리벳 조인트기가 기수를 남쪽으로 돌린 후 문제 해역에 가까워지자 상황은 더욱 명료하게 파악되었다.
“중령님! 이것은 대규모 대잠수함 작전입니다.”
“뭐? 대잠작전? 잠수함이란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대잠초계기 오라이언과 수전투함들과의 교신량이 폭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노부이에서 발신하는 단파 통신입니다. 확실한 대잠작전입니다.”
“또 북한 놈들인가? 대단하군. 강릉에서 법석을 피우더니 이번에는 남동해로군. 좋아, 빨리 보고해야겠어. 지금쯤 우리 해군도 궁금해서 눈알이 튀어날올 거다.”
레이크 중령이 직접 본국의 중계센터로 이어지는 위성통신망을 개방시켰다. 오늘은 북한지역 대신 남한의 메뉴였다.
9월 13일 19:05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
미 해군 태평양함대 제 7함대, 제 7잠수전단 사령부
a; 제 7함대의 전진배치 기지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에는 7함대의 잠수함 작전을 총괄하는 부서가 위치하고 있다. TF-74, 즉 제 74임무부대(Task Force) 사령부였다. 공격원잠들이 정박하는 12번 부두에서 걸어서 5, 6분 거리에 있는 2층 건물이었다.
근무시간이 끝나 대부분이 퇴근하고 통신요원 십수 명이 남아서 야간 당직근무를 서고 있었다. 낮과 밤이 없는 잠수함과 마찬가지로 잠수함들을 지휘하고 통제하는 잠수전대 사령부도 밤이라 해서 텅 비는 것은 아니었다.
“이건 뭐지? 한국 남동해안에서 대규모 대잠작전 전개중? 북한의 침투 잠수함을 추적하는 것으로 추정됨. 실전상황임... 앗!”
통신문을 읽던 키쓰 파머(Keith Palmer) 소령의 안색이 일순간에 변했다.
“이곳을 라 호야와 컬럼비아가 작전중인 해역인데... 큰일났다! 비상을 걸어! 라 호야와 컬럼비아로부터 통신은 없나?”
이제부터 꼬박 밤을 새야 할 운명에 처한 줄도 모르는 당직 통신장교는 느긋하게 단말기를 확인하고 파머 소령에게 보고했다.
“아직 없습니다. 예정된 통신시간은 아직 한 시간 남았습니다.”
“이런! 큰일났다. 그놈들은 지금 통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일 거야. 제기랄!”
파머 소령은 허둥지둥 제 7잠수전단 사령관과 통하는 직통회선을 집어들었다.
9월 13일 19:10 부산광역시 부산항 북동쪽 43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 소나실
“제저벨입니다. 탐신 가격이 빠릅니다.”
제저벨 부이의 날카로운 고주파가 라 호야의 선체를 울리고 있었다. 로키 중사가 소나로 탐지하지 않아도 사령실뿐만 아니라 함내의 모든 승무원이 확실히 들을 수 있었다.
2차대전 때 독일 U-보트 승무원들이 느꼈던 공포의 소리가 바로 귀로 들리는 가청음대의 고주파 탐신음이었다. 라 호야의 승무우너들은 소노부이의 고주파 탐신음을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직접 들은 경험이 없었다. 그것은 생소했지만 듣는 즉시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는 날카로운 소리였다.
“강제부상을 원하는 것일까요?”
“주변에 수상함정은 없다. 무시한다. 심도조정! 바닥으로 가능한 깊이 내려간다.”
부함장 폴머 소령이 긴장된 목소리로 함장에게 의미있는 질문을 했지만 가르시아 중령은 대잠초계기는 철저히 무시했다. 심도를 낮춰 바닥에 바싹 붙으면 제저벨과 DICASS와 같은 능동형 부이에서는 해저지형과 잠수함을 분간하기 어렵게 된다.
“만약 한국 놈들이 추적권을 사용한다면 우리는 이미 한국 영해를 침범했었습니다.”
폴머 소령이 더듬거리며 함장에게 의이를 제기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부상해서 놈들에게 임검이라도 받고 싶나?”
“그런 뜻이 아닙니다. 우리 상황이 매우 난처하다는 것입니다. 사령부로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한국 놈들의 대잠전력이 우습긴 하지만 현재와 같은 상태라면 그들의 기지에 너무 가깝습니다.”
폴머 소령은 불안했다. 가르시아가 한국의 대잠초계기를 무시하려는 것은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에 시답잖게 여긴 한국 초계기에 탐지됐다는 당혹감이 더해진 결과라고 생각했다. 사실 폴머도 이 상황에서는 뚜렷한 대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라 호야는 한국 초계기들이 해역 상공에 도달하기 전에 한국 영해를 빠져나갈 예정이었다.
대잠초계기가 잠수함을 탐지하려면 상당한 작업시간이 소요된다. 장문휴가 라 호야와 충돌 직전까지 간 직후 초계기들을 불렀다고 해도 이렇게 빨리 대잠초계기에 탐지될 것으로 예상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장문휴가 상당히 이른 시기에, 어쩌면 라 호야가 장문휴를 미행한 직후부터 라 호야의 존재를 탐지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전투공중초계를 하는 전투기들과는 달리 대잠기들은 출격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전방에 소노부이 입수! 탐신을 시작했습니다. 역시 제저벨입니다!”
로키 중사도 목소리가 떨렸다. 사방에서 제저벨이 울리는 소리가 혼란스러웠다. 삑삑거리는 요부 제저벨 수십 개가 사방에서 괴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외국 배가 영해를 침범했을 때 국제법적으로 성립되는 추적권이라는 개념이 있다. 1962년에 발효된 ‘공해에 관한 협약’ 제 23조에 따르면 외국 선박이 특정 국가의 내수면이나 영해를 침범했을 경우 해당국가는 당연히 침입한 함정을 추적하여 나포하고 검사할 수 있었다.
더구나 민간선박도 아니고, 군함이고 잠수함이었다. 아무리 군사분야에서 지금도 한미 연합지휘체제 아래에 있지만 라 호야는 사전통보 없이 한국 영해에서 작전을 펼친 침입자였다.
폴머 소령은 도망가는 길이 꽤나 험난할 것이라 생각했다. 추적권은 공해상에서도 무제한적으로 지속되기 때문이다. 라 호야가 제 3국이나 본국인 미국 영해로 도망치지 않는 한 추적권은 지속된다. 지금까지 한 짓은 너무 멍청한 짓이었다. 인사평점에서 상당한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자 폴머는 이번 작전을 지시한 사령부가 원망스러웠다.
9월 13일 19:12 부산광역시 부산항 북동쪽 13km
한국 해군 코르벳 여수함, 함교
“내가 이래서 잠수함을 타려고 했는데... 우웩~.”
김준환 중위가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해군에서 배멀미를 하는 인간은 인간대접을 받지 못한다. 해군사관학교에서는 배멀미하는 사관후보생은 가차없이 지상근무로 내보낸다. 학사장교 출신인 김준환은 근해에서 실시한 해상훈련 때 교관들을 속여넘겨 그가 원했던 수상전투함에 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고속정처럼 해면 위를 튀듯이 질주하는 여수함에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김준환이 함교 난간에 기대어 찬 바람을 맞았다. 터져나오려는 토사물을 막으려고 입을 오므려 두 손으로 움켜쥐었지만 허사였다. 내용물이 분수처럼 길게 쏟아져 나왔다.
포항급 코르벳 여수함이 2만 6천 마력짜리 개스터빈을 최고 출력으로 높이자 시속 34노트에 가까운 속도로 치달았다. 허용 최고속도인 32노트를 넘어서 34노트에 이르자 여수함은 미친 돌고래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함수 아랫부분까지 수면 위로 치솟아 마치 선첵사 물위로 날아가려는 듯 용트림을 하다가 텀벙하고 가라앉았다. 이번에는 함수 윗부분이 물속으로 처박힌 다음 다시 솟구치고 있었다. 새하얀 물살이 여수함 뒤쪽을 반쯤 가릴 정도로 강하게 일어났다. 물살이 푸른 바다 위에 하얗게 빛났다.
밀려오는 동해의 거친 파도를 여수함이 연속적으로 펑펑거리는 소리와 함께 뚫고 지나갔다. 배가 파도를 뚫으면서 내는 진동음이 김준환을 기름냄새 나는 만원버스처럼 울렁거리게 했다.
김준환이 다시 한바탕 게워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맑은 물말고는 나오는 것이 없었다. 아까보다 숨이 더 막혔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차라리 시원하게 토악질을 했으면 좋으련만, 김준환은 더 이상 토해낼 게 없었다. 그것이 더 괴로웠다.
포항급은 외국의 동급 코르벳함보다 훨씬 강력한 추진력을 자랑한다. 그것은 포항급이 대잠작전 외에도 북한의 대규모 고속정 집단을 상대하고 대간첩작전을 병행하려는 목적으로 고속성을 중시했기 때문이었따. 코르벳함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지나치게 빠른 속도는 한국 함정들의 특징이었다.
함교에서 쌍안경을 집어 수평선 쪽을 바라보던 부함장 손천민 소령이 초점을 맞춰보려 애썼지만 이 정도 속도에서는 망원경을 쥐는 것도 힘들었다.
“어~ 시원하군. 이봐, 김 중위! 너 해군 맞아?”
평상시처럼 친근하게 다독거리는 말투가 아니었다. 노골적으로 경멸하는 표정이었다.
“임마! 폐소공포증으로 잠수함도 못 타고, 배멀미로 전투함도 못 타면 도대체 넌 뭘 타야겠냐? 임마, 육상근무로 돌려주련?”
“그게...... 아닙니다...... 우웩~.”
김준환 중위가 대답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말 대신 그동안 참았던 헛구역질만 쏟아졌다. 그가 잠수함을 지원하려고 했던 것은 잠수함에서는 배멀미가 없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맞는 말이다.
잠수함이 수중을 항해할 때는 피칭(pitching)과 롤링(rolling) 현상을 겪지 않는다. 함이 좌우로 요동치는 롤링과 앞뒤로 요동치는 피칭 현상은 물과 공기의 경계선, 즉 수면 위를 떠서 항해하는 수상함정에만 해당되는 형상이다. 잠수함은 물속을 항해하므로 유체역학적인 흐름에서 단 한 가지의 항주조건만 갖게 되는데, 비행기가 대기 속을 비행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거리는 얼마 남았나?”
손천민 소령이 함교에서 나와 수평선을 망원경으로 살피던 현동석 대위에게 물었다. 현 대위는 여수함의 진동과 리듬을 맞추기 위해 능숙하게 무릎을 굽혔다가 함이 머리를 잔뜩 치켜들어 순간적으로 정지한 그 잠깐 사이에 망원경을 내리며 대답했다.
“17해리입니다. 잠시후에 흰꼬리수리로부터 정확한 위치가 통보될 겁니다.”
17해리는 32km쯤 되는 거리이다. 부함장이 날카로운 시선이 수평선을 훑었다가 시계를 보며 말했다.
“30분 남았군. 목표의 도주 속도는?”
“아직 모릅니다. 곧 흰꼬리수리에서 통보해줄 예정입니다.”
“알았네. 그럼, 현 대위, 자네가 대신 조함 지휘를 맡아라. 난 전투정보센터로 내려가서 함장님을 보좌하겠다.”
“예! 알겠습니다.”
손천민 소령이 계단으로 내려가려다 말고 잠시 난간을 향했다. 헛구역질을 해대는 김준환 중위를 바라보는 눈길이 곱지 않았다. 발길로 냅다 엉덩이를 내지르고는 하갑판으로 향하는 난간을 손잡이만 잡고 내려갔다. 함이 심하게 요동쳤지만 손천민 소령은 미끄러지듯이 능숙하게 뛰어내려갔다.
9월 13일 19:15 부산직할시 부산항 북동쪽 47km
한국 해군 P-3C 오라이언, 코드명 흰꼬리수리 3
“개새끼! 이놈이 안 섭니다!”
AQA-7 신호처리시스템을 조작하던 황성준 중위가 짜증난다는 듯 버럭 소리질렀다. 잠수함이 도주하는 방향으로 새롭게 소노부이를 계속 투하했기 때문에 기내에 보관하고 있던 예비 부이도 다 떨어져가고 있었다. AQA-7 시스템은 각 소노부이에서 전해오는 탐지신호들을 합산하여 잠수함의 위치를 파악하는 장치이다.
“대장님! 폭뢰 공격이 왜 안 된다는 겁니까?”
부하들로부터 항의성 채근을 받은 홍희범 소령은 답답했다. 다른 부하들은 모르지만 홍희범은 최강로 대위로부터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 만약 목표가 또 미국 잠수함이라면 한미간에는 다시 긴장이 고조될 것이 분명했다.
석 달 전에 있었던 진해항에서의 한바탕 화끈한 대잠작전은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은 사건으로 종료되었다. 그때 홍희범은 강한 의구심이 들었지만 사령부에서는 일언반구의 대답도 없었고 엄중한 함구명령이 떨어졌을 뿐이었다.
“대장님!”
이번에는 강인호 대위였다.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홍희범 소령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폭뢰 투하는 안 돼. 계속 추적만 한다.”
부하들은 작전사령부에서 떨어진 명령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히 영해를 침범한 미확인 잠수함이었다. 이것은 당연히 북한 잠수함일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수시로 영해에 침투한 북한 잠수정을 포착하지 못했다고 욕을 먹은 해군이었다. 대잠초계기 승무원 입장에서는 당연히 잠수함에 폭뢰공격을 해서 강제부상시켜야 했다.
부하들이 답답해했지만 억울하기 홍희범이 더했다. 그때 폭뢰를 투하했던 S-2의 기장 최강로 대위는 죄없는 소주를 네 병이나 퍼마시고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 분명히 영해를 침범한 외국 잠수함을 탐지하여 강제부상을 시키기 위해 위협 공격을 가했고, 그 잠수함을 결국 강제로 부상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최 대위는 공격중지명령을 받았다. 최 대위는 기지로 귀환한 다음 상부로부터 호된 질책을 당해야 했다. 최강로는 미국 놈들이었을 거라고 확신했고, 그때 그 작전에 참가한 홍희범도 당연히 동의했었다.
이번에도 분명히 미국 잠수함이었다. 홍희범 소령은 미국이 한국에 원하는 것이 참 많다고 생각했다.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지만, 한국에 지상군 병력을 상주시키는 유일한 외국 군대이면서도 침투까지 해가면서 뭔가 얻으려는 것이 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더욱 불쾨해지기 시작했다.
“여수함! 여기는 흰꼬리수리 셋이다. 놈의 도주로는 다음과 같다. 침로 공사십이(0-4-2)도 반복한다. 침로 공사십이도! 위치는......”
강인호 대위가 송신기에 대고 바락바락 악을 쓰고 있었다. 여수함이 예상보다 빨리 진입한 모양이었다.
9월 13일 19:25 부산직할시 부산항 북동쪽 47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 사령실
“이놈들을 뿌리칠 수가 없습니다. 본함 주위로 계속 소노부이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개새끼들!”
가르시아 중령의 속이 바짝바짝 타올랐다. 미국 잠수함들이 한반도 근해에서 작전하다가 노출된 적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동해에서 작전했던 다른 잠수함들도 어선에 발견되어 한국 해군으로부터 추적당한 경우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주로 블라디보스톡의 러시아 극동함대를 염두에 둔 초계작전중에 일어난 사건이었지, 오늘처럼 한국 영해를 무단으로 침범하여 쫓긴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가 알기로는......
결국 떼어놓을 수 없다면 사령부로 보고해야 했다. 가르시아는 탐지됐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통신을 띄우는 결정에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사령부에서는 한국 해군에게 뭐라고 변명할 것인지 난감할 것이다.
“우현으로 고속 접근중인 함정이 있습니다! 방위 1-8-5, 거리 5마일, 속도는...... 굉장히 빠릅니다!”
“뭐야?”
“함장님! 벨 링어입니다.”
“뭐어야?”
로키 중사의 긴박한 외침과 동시에 통신반으로부터 수병 하나가 뛰어나왔다.
“이 순간에 벨 링어라니!”
가르시아는 난감했다. 대륙붕 바닥에 침좌된 상화에서 다시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확실히 발견될 수밖에 없었다. 옆에 서 있던 폴머 소령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함장님, 상황을 사령부에 알리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 어쩔 수 없군. 사령부로 보고한다. 보고문을 작성해서 통신부이에 띄워 올린다.”
가르시아의 허락이 떨어지자 폴머 소령이 직접 통신실로 향했다. 함대사령부를 경유해서 몇 군데 복잡한 경로를 거쳐 한국 해군에게 추적중지명령이 떨어지겠지만, 가르시아는 hos지 모르게 솟아오르는 착잡한 심정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9월 13일 19:30 부산광역시 부산항 북동쪽 43km
한국 해군 코르벳 여수함, 전투정보센터
“15노트로 감속! 폭뢰조! 폭뢰 투사 준비하라!”
출렁이던 여수함이 안정을 찾으며 천천히 움직이자 후갑판에서 무지막지한 진동으로 얼이 빠져 있던 폭뢰조들이 작업을 시작했다. 폭뢰 투사레일에는 이미 마크 9 대잠폭뢰가 6개씩 얹혀 있었다. 작업병들이 바닥에 바퀴가 달린 폭뢰투사레일을 통째로 밀고 후갑판 끝을 향했다. 능숙한 솜씨로 투사레일 끝부분을 거치대에 고정시킨 다음, 언제라도 투발이 가능하도록 준비를 마쳤다.
마크 9 폭뢰는 거의 공모양에 가깝게 똥똥하게 생긴 괴물이었다. 뒷 부분에는 물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고 똑바로 내려가도록 날개 6개가 달려 있고, 날개 테두리와 앞부분에는 레일에서 잘 굴러가도록 원형 테가 붙어 있다.
폭뢰공격을 하기 위햇는 목표 잠수함의 바로 위를 지나쳐야 한다. 공격하는 쪽에서는 잠수함 바로 위를 지날 때 어뢰공격을 받을 위험성도 많았다. 그래서 현대 수상함정들이 잠수함을 공격할 때 원거리에서 발사가 가능한 대잠어뢰나 대잠미사일이 주로 사용되고 폭뢰는 더 이상 쓰이지 않는다. 하지만 여수함을 비롯한 한국의 소형 전투함 대부분은 대잠미사일을 장비한 함정이 거의 없다. 때문에 폭뢰가 아직도 대잠 주력병기였다.
중량 154kg짜리인 마크 9 폭뢰는 내부에 90kg이나 되는 고폭약이 충진되어 있다. 심도를 지정해주면 폭뢰는 물속으로 가라앉다가 지정된 심도에 이르러 폭발한다. 90kg짜리 고폭약이 수심 100미터에서 터지는 모습은 장관이다.
-폭뢰반 투하준비 끄읏~.
“좋아! 대기하라.”
부함장 손천민 소령이 마이크를 들고 폭뢰반의 보고를 확인했다. 함장 백운기 중령은 긴장됐는지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소나에선 아직 잡히지 않나?”
“아직 포착되지 않습니다. 흰꼬리수리의 보고르는 바닥에 침좌해서 꼼짝하지 않고 있답니다.”
“그래 버티기다 이거지? 지정심도 100미터로 폭뢰 2발을 준비시켜!”
“폭뢰반! 지정심도 일백공공(1-0-0)으로 둘 대기!”
-지정심도 일백공공. 둘 대기.
손천민 소령이 폭뢰반에 지시를 내리고 음탐반을 돌아보았다. 요원들이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지만 아직도 탐지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오라이언의 보고로는 이제 2천미터 전방입니다. 액티브로 한방 먹여 주죠.”
포항급이 장비한 네덜란드 시그날(Signaal)사의 PMS-32 함수소나는 액티브 탐신을 위주로 설계된 소나였다. 패시브, 즉 적 잠수함이 내는 소음을 추적하는 수동 모드에서는 기능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좋아! 탐신한다.”
“액티브 탐신!”
여수함으로부터 발신된 소나 빔이 라 호야를 향해 진동했다.
9월 13일 19:35 부산광역시 부산항 북동쪽 47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 사령실
“액티브 소나입니다. 방위 1-7-9, 거리 2,000야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으며 로키 중사가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하지만 아착같이 헤드폰을 쓰며 주변 상황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다시 가속하고 있습니다.”
이쪽을 탐지해낸 것이 틀림없었다. 어뢰나 폭뢰 공격이 이어질 것이다. 만약 저 수상함정이 라 호야를 북한 잠수함으로 인식했다면 경고도 없을 것이다. 무차별 공격뿐이었다.
“젠장! 사령부에서는 우리 보고를 못 들었나? 왜 아직까지 공격을 멈추지 않는 거야!”
“부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부함장 폴머 소령이 안절부절못했다. 그는 초계기가 투하한 제저벨과 여수함의 액티브 소나음에 질려 이젠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시계를 들여다보던 가르시아 중령이 절망적인 한숨을 내쉬었다.
“안 돼, 샘. 지금 부상했다가는 저놈이 우리가 공격하는 것으로 여길지도 몰라.”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난감했다. 이 상황에서는 가만히 있는게 상책이었다. 사령부가 빨리 손을 써주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가르시아는 입안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9월 13일 19:38 경상남도 진해시 진해항
한국 해군, 해군 작전사령부
벗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도로를 올라서 맨 끝에 제정 러시아 양식의 고풍스러운 적벽돌 건물이 있었다. 구 일본군이 기지 사령부로 쓰던 건물 그대로가 현재 한국 해군의 최고 중추의 하나인 해작사, 즉 해군 작전사령부의 건물이었다. 해가 다시 짧아지기 시작해서 주변에는 어슴푸레 밤 기운이 다가오고 있었다.
“옵니다!”
부관 감우식 소령이 외쳤다. 과연 웅장한 소리가 들리며 해작사 뒤편 언덕을 넘어 HH-60 시 호크 수송헬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헬리콥터는 해작사 건물 앞의 헬리포트에 내려앉았다.
“션(shun)!"
헬리콥터에서 내려와 성큼성큼 걸어오는 도널드 오스번(Donald Osborne) 준장이 감우식 소령의 어텐션(Attention) 구호에 차렷자세를 취하며 절도있게 경례를 붙였따. 그제야 작전사령관 김병륜 중장이 경례를 바았지만 손을 내밀지는 않았다. 김병륜 중장의 일그러진 표정을 읽은 오스번 준장도 따라서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지금 그는 한국 제독에게 손이라도 비벼야 할 입장이었다.
한미연합사령부 해군구성군 부사령관이 오스번 주장의 직함이었다. 연합사령부에 실제로 배속되어 활동하는 미 해군의 작전함정은 일반 지원함정뿐이기 때문에 한직에 가까운 자리였다. 그래서 이 보직에는 더 낮은 계급이라도 되겠지만, 해군 준장으로 보임한 것은 80년대까지 활발했던 군사정전위의 대표로 내보내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물론 군사정전위 대표는 해군 제독만 임명되는 것은 아니다.
한미연합사의 해군구성군 사령관은 한국 해군 작전사령관이 겸임이다. 바로 김병륜 중장이다. 그러니 오스번 준장은 김병륜 중장의 하급자인 셈이다. 두 사람의 어색한 표정을 읽은 감우식 소령이 먼저 앞서 걸어가는 김병륜 중장의 뒤를 따라 오스번을 안내했다.
“커피로 하시겠습니까?”
감우식 소령이 오스번 준장에게 정중히 물었다. 테이블에는 냉랭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당번병은 바짝 얼어붙어 감히 이쪽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좋습니다. 블랙으로 주시오.”
오스번이 초조하게 김병륜 제독의 표정을 살폈다. 이 다급한 상황에서도 김 제독은 손님맞이 예절을 다 차릴 것 같이 느긋했다.
“사령관님께선 어떤 차를 드시겠습니까?”
감우식 소령이 다시 김병륜 중장에게 물었다.
“항상 똑같은데 뭐 하러 물어보나? 난 둥굴레차.”
작전사령관의 퉁명스런 대꾸에 감우식 소령이 미소를 지으며 서둘러 사령관실을 빠져나갔다. 부관과 당번병이 문을 닫고 나가자마자 김병륜 중장이 말을 꺼냈다.
“서둘러 이야기합시다. 아마 이야기가 끝나야 커피가 들어올 것 같습니다.”
“아, 예!”
김병륜 중장의 냉랭한 말투에 오스번 준장이 바짝 긴장했다. 영어가 능통한 김병륜 제도그 통역이 필요없었다. 부관 감우식 소령은 그가 부를 때까지는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요? 미국 잠수함이 왜 통보도 없이 한국 영해에 들어온 거요? 어차피 우리가 아직 한미연합사 지휘하에 있으니 미국 군함이 기항을 하겠다면 언제든 허용할 수 있소. 그런데 도대체......”
김병륜 중장은 석 달 전의 사건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사건은 고식적으로는 완전히 존재하지 않는 사건이었다. 이 자리에서 아는 체할 수도, 언급할 수도 없는 사건이었다.
“그게...... 저도 자세한 이유를 모릅니다만, 사세보로 향하던 7함대의 공격원잠 라 호야가 항법장치 고장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오스번이 서둘러 변명을 늘어놓았다. 지금은 1초라도 아껴야 할 상황이었다. 한국 해군 작전사령관은 오스번의 다급한 요청에 대해 가타부타 결정도 하지 않고 그를 불러들였다. 오스번은 마침 부산에 있다가 초고속으로 진해까지 날아와야 했다.
“항법장치가 왜 고장나오?”
“정확히 말씀드려서 GPS 수신장치가 고장났습니다. 동해 북부를 초계중에 함내 안전사고로 승무원들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라 호야가 러시아와 북한에 접속한 수역에서 부상병을 후송할 수는 없었고, 최대한 빠르게 사세보로 기항하려 했던 것입니다. 사고원인은 밝히기 어렵습니다만 GPS 위성항법 시스템을 비롯해서 관성항법장치 등이 손상받은 채로 관측항법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확한 위치를 판정하지 못하고 귀국의 영해로 잘못 진입한 것입니다.”
준비해둔 거짓말이라 오히려 더 차분했다. 김병륜 중장이 믿건 말건이란 생각에 오스번은 담담하게, 그러나 서둘러 털어놓았다.
“그럼 귀함에서는 아직 부상자 후송도 하지 못했겠군요.”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후송과 치료에 우리가 협조할 일은 없겠습니까?”
김병륜 중장은 씨알도 먹히지 않을 거짓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잠수함 손상에 부상자 후송이라니, 김 중장은 속으로 웃음이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럼 공격중지 명령을 내려주시겠습니까?”
“우방인데 뭐, 당연히 그렇게 해야겠지요.”
오스번이 바짝 긴장했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공격중지 며령을 내려주신 데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후송에 지원을 해주시겠다는 말씀도 감사합니다. 하지만 현재 일번에 있는 우리 병원에서 의료진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수송헬기도 대기중입니다.”
오스번은 서둘러 말을 끝맺으려고 했다. 그가 헬리콥터로 이곳을 향하면서 연합사령부 명령으로 대잠작전을 중지하라고 했지만 한국 해군은 듣지 않았다.
대간첩작전은 한국군의 평시 작전이었고, 그 해역에 미국 잠수함이 있을 까닭이 없으니 그것은 북한 잠수함이 분명하고, 당연히 공격해야 한다는 답변을 거듭 들어야 했다. 오스번은 김병륜 제독이 서둘러 공격중지 명령을 내려주면 좋겠지만, 김 제독은 아직도 할말이 남은 것 같았다.
“예, 좋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양국 함정의 작전수역과 부두진입문제에 대해서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차후, 통보없이 영해를 진입할 시에는 그 결과를 상상할 수 없는 사태가 발발할지도 모릅니다. 아시다시피 동해는 잠수함에게 위험한 곳입니다. 96년과 98년의 사건을 잊지는 않으셨겠지요?”
김병륜 중장은 협박과 동시에 농담을 했다. 김병륜은 북한 잠수함들이 암초에 좌초되거나 꽁치그물에 걸려 나포된 사건을 말한 것이다. 한국의 바다를 책임진 해군 작전사령관으로서 상당이 자괴적인 농담이기도 했다.
한국의 해군력으로 동해에서 활동하는 외국 잠수함을 탐지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그러나 그것은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대잠전력을 투입한 훈련에서 미 해군은 번번이 한국 잠수함을 놓치고 호되게 당하기까지 했다. 그만큼 동해는 잠수함의 천국이었다.
“예, 그 점은 명확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스번은 속으로 발을 동동 굴렀다. 농담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무슨 뜻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김 제독이 어서 수화기를 집어들거나 부관을 부르길 바랬지만 나이든 제독은 여전히 느긋했다.
“일단 커피를 드시지요. 부관!”
김병륜 중장이 그리 큰 소리로 부리지 않았는데도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감우식 소령이 차를 가지고 쪼르르 들어왔다. 오스번은 사병인 당번병이 차를 나르지 않고 소령이 온 것에 대해 놀라워했다. 오스번은 한편으로는 이 한국인 소령이 제독 대신에 공격중지 명령을 통보할 것이란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소령은 정중하게 찻잔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다시 빠르게 문밖으로 사라졌다. 김 제독이 부관에게 공격중지 명령을 하달하지 않자 초조해진 오스번은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혹시 석 달 전쯤...... 자세히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이번과 비슷한 선례가 있지 않았습니까? 진해 앞바다였던 걸로 기억하비다만.”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김병륜 중장이 말을 빠르게 던졌다. 서둘러 커피를 마시다 놀란 오스번 준장이 캑캑거렸다.
“저런, 천천히 드셔야지요.”
빙그레 웃으며 김병륜 중자잉 오스번을 걱정해주었다. 김병륜은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기침을 심하게 한 후에야 오스번이 숨을 가다듬고 다시 입을 열었다.
“김 제독님,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사고??? 수습하러 이만 돌아가야겠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오스번이 잔을 내려놓고 서둘러 일어섰다. 그가 나가야 공격중지 며령을 내릴 것 같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김병륜도 배웅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령부 정문을 열고 나서자 대기하던 헬리콥터가 오스번을 알아보고 다시 시동을 걸었다.
시 호크의 터보 샤프트 엔진 배기구에서 파열음이 날카롭게 들리며 로터가 순식간에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김병륜은 헬리콥터 입구까지 오스번을 따라 걸었다. 소리가 거셌기 때문에 김병륜은 언성을 높여야 했다.
“말씀해주시기 바라오. 6월 14일 새벽에 있었던 사건을 당신은 정말로 모릅니까?”
“제독님, 우리 해군 잠수함은 태평양사령부말고도 또 다른 통합군 사령부에 예속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 함대 사령부에서는 모르는 작전이었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은 저도 모릅니다.”
오스번도 역시 고함을 쳤지만 헬리콥터의 맹렬한 소음 때문에 알아듣기 어려웠다. 그러나 오스번이 무엇을 얘기하려는지 핵심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오스번이 탑승구를 오르며 울입구를 닫았다. 그리고 창문 안쪽에서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깜빡 잊었다는 듯 김병륜 중장에게 경례를 붙였다.
헬리콥터가 날아오르며 바람이 거세게 밀었지만 만지를 많이 날리지는 않았다. 해작사 정문 앞 헬리포트에 시 호크가 남긴 바퀴 자국과 먼지가 휩쓸려간 자국이 희미하게 남았다. 사라지는 헬기를 보며 김병륜 중장이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그래, 그때는 특수전사령부 짓이었다는 얘기겠지. 개새끼들!”
9월 13일 19:45 부산광엯기 부산항 북동쪽 47km
한국 해군 코르벳 여수함, 전투정보센터
“함장님! 폭뢰 투사 코스로 진입합니다. 이번 것은 경고용입니다.”
부함장 손천민 소령이 함장에게 준비완료를 알렸다. 부함장은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좋아, 시작하라.”
“폭뢰반! 지정된 폭뢰 2박을 투발한다. 심도 확인 하나공공!”
손천민 소령이 폭뢰반으로 연결되는 마이크를 잡고 직접 공격을 지휘했다.
-확인! 지정 심도 하나공공! 두 발 투하했습니다!
‘하나...... 두울...... 셋......’
손천민 소령이 마음속으로 세었다. 잠시 후 둔탁한 폭발음 두 번이 연속해 여수함 뒤쪽에서 들려왔다. 손천민 폭뢰가 폭발하며 일으키는 물기둥을 볼 수 없어 안타까웠다. 이곳은 함교가 아니라 전투정보센터였다.
“급속 변침한다! 좌현 최대!”
“좌현 최대!”
여수함이 선회하는 반대방향으로 승무원들의 몸이 급격히 기울어TEk. 짧은 반겨으로 회전하려는 함정과 밖으로 벗어나려는 원심력, 두 가지 힘 사이에서 짜릿한 진동이 몸과 발로 전해져왔다.
“폭뢰반! 이번엔 네 발이다! 지정심도 하나다섯공(1-5-0)!”
일단 마이크로 전달되는 목소리는 왜곡되게 마련이다. 소음이 큰 외부와 대화할 때는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포병이 사격제원을 읽을 때 숫자는 한자 발음과 순우리말 가운데 가장 명확한 발음을 나타내는 것을 섞어 쓰게 된다.
일(1)과 이(2)는 혼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하나, 둘로 칭하고, 칠(7)이나 팔(8)과 같은 것은 그냥 써주는 것 등이다.
- 확인! 지정심도 하나다섯공! 네 발 대기!
“변경한다!”
“변경! 기다려라!”
변경요구에 손천민 소령이 뒤를 돌아다보았다. 함장 백운기 중령이었다.
“더 이상 경고는 없다. 안 떠오르면 그대로 묵사발낸다. 폭뢰 열 발 대기시켜! 지정심도 둘백(2-0-0)으로 때린다.”
“예! 알겠습니다. 변경한다. 지정심도 둘백! 열 발 대기!”
- 확인! 지정심도 둘백, 열 발 대기!
90kg짜리 고폭약 열 개에 직접 맞지 않더라도 주변에 떨어지면 엄청난 수압의 폭충을 만들어 낸다. 잠수함에 직접 명중하지 않아도 지근탄이 만들어낸 수압으로 인해 잠수함 내압격벽이 깨져 침몰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폭뢰에 수심을 지정하는 이유는 잠수함에 직접 맞지 않더라도 가장 가까운 심도에서 폭발시키도록 하기 위함이다.
승무원들에게는 시커먼 밤바다에서 폭뢰를 터뜨리는 것만큼 멋진 구경도 드물 것이다. 수심 200미터라면 너무 깊어서 터질 때 피어오르는 오렌지색 화염을 배 위에서 보기 힘들다.
하지만 50미터 정도라면 다르다. 물소게 오렌지색 풍선들이 밝게 부풀어오르는 것을 확연하게 볼 수 있는데, 그 색깔은 형용하기 어려울 만큼 밝고 곱다. 그리고 곧 거대한 물기둥이 솟구쳐서 축하의 물벼락을 퍼부어 준다.
“함장님! 작전사령부로부터 연락입니다. 공격을 중지하랍니다!”
“뭐? 공격을 중지하라고? 빌어먹을! 공격중지! 공격중지!”
통신장교의 보고와 동시에 백운기 중령이 마이크를 잡고 허겁지겁 고함쳤다.
“설마...... 그럼 우리가 공격한 것이 북한 놈들이 아니었따는 겁니까? 그럼 도대체 누구란......”
눈이 휘둥그레 떠진 손천민 소령이 놀라서 함장을 바라보아TEk. 백운기 중령은 북한 잠수함이 아니면 뻔하지 않느냐는 눈빛이었다.
9월 13일 19:50 부산광역시 부산항 북동쪽 47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 사령실
“공격해야 합니다! 함장님! 이대로 당할 수는 없습니다.”
폭뢰 두 발이 먼 거리에서, 그것도 훨씬 위쪽에서 터졌지만 라 호야에게 진동이 거세게 전해졌다.
LA급 원자력 잠수함이 저런 구식 코르벳에게 당할 수는 없었다. 일단 자신들을 공격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하자 부함장 폴머 소령뿐만 아니라 사려실 승무원들 모두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뢰실! 발사 준비를 서둘러라. 부함장! 공격 준비한다!”
이윽고 굳게 닫혔던 함장 가르시아 중령의 입이 열렸다. 스피커에서 어뢰장의 씩씩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예! 알겠습니다. 가루로 만들어 버리겠습니다!
“놈이 선회를 마쳤습니다. 다시 이쪽으로 향합니다.”
소나팀장 스톨츠 대위가 사령실 쪽을 돌아보며 크게 소리쳤다.
“그래. 더 가까이 오기 전에 엿먹여준다! 발사준비는 끝났나?”
“발사준비 완료했습니다. 명령만 내려주십쇼.”
가르시아는 결심했다. 두 번째 접근이라면 더 이상 위협공격은 아닐 것이다.
“유선유도로 공격한다. 3박을 동시에 발사한다.”
“3발 동시 공격, 유선유도!”
폴머가 긴장된 손으로 발사 버튼에 다가섰다.
“거리 800...... 750......”
포항급 코르벳이 함수 쪼그로 접근하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따. 지금 상황에서 함정이 방향을 바꾸는 것은 매우 곤란했다.
“거리 500에서 공격한다.”
어뢰 3발이 라 호야의 전투시스템과 완벽하게 연겨뢰었음을 알리는 링크 확인 표시가 모니터에서 깜빡거렸다.
“650...... 600......”
발사 버튼에 올렸던 폴머 소령의 손가락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한국 군함에 대한 라 호야의 어뢰공격이 가져올, 즉 그가 손가락을 누른 후에 벌어질 사태를 예상하며 온갖 걱정을 다했다.
“앗! 다시 변침합니다. 오른쪽으로 빠져나가려는 것 같습니다!”
“뭐야? 목표가 아뢰를 발사한 것은 아닌가? 확인하라! 어뢰를 쏜 것이 아닌가?”
가르시아가 허둥지둥 로키 중사를 재촉했다. 더 이상 가까워지면 이쪽에서 발사한 어뢰가 한국 함정을 향해 치솟기도 전에 폭뢰세례를 맞을 수도 있었다.
폴머의 이마에 식은땀이 소스며 발사해 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갑작스런 변침 때문에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어뢰 착수음은 없습니다! 확인합니다. 어뢰 착수음은 없습니다. 수면에 특별한 징후는 없습니다.”
“공격을 취소한다!”
폴머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버튼에서 손을 뗐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목표는 변침한 다음 완전히 이탈하고 있습니다. 침로 1-8-0! 남쪽으로 빠집니다.”
“사령부에서 손을 쓴 모양이다.”
가르시아 중령은 온 몸에서 기운이 쫙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가르시아는 힘겨운 저녁이었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사건은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
8. 고요한 해류
9월 13일 19:55 부산광역시 부산항 북동쪽 42km
한국 해군 P-3C 오라이언, 코드명 흰꼬리수리 3
- 여기는 가오리집! 가오리집! 흰꼬리수리들은 응답하라! 응답하라!
- 흰꼬리수리 다섯이다.
“흰꼬리수리 셋이다.”
가오리집은 대잡지흐ㅟ센터의 호출부호였다. 가뜩이나 공격중지 명령을 받고 속이 쓰리던 참인데 또다시 호출이라 홍희범 소령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 흰꼬리수리 다섯은 기지로 귀환하라. 흰꼬리수리 셋은 새로운 명령을 수령한다. 확인하라!
- 흰꼬리수리 다섯. 확인! 귀환합니다.
“흰꼬리수리 셋! 확인! 명령수신 대기.”
- 좋아. 싹싹한 흰꼬리수리만이 칭찬을 받을 수 있다. 흰꼬리수리셋은 미국 원잠이 부상하는 순간부터 접속수역 바깥으로 안전히 빠져 나갈 수 있도록 공중호위를 맡는다. 확인하라!
대잠지휘센터 지휘관은 어린 아이 다루듯 대잠초계기 탑승원들을 어르고 달랬다.
“흰꼬리수리 셋! 확인한다! 미국 잠수함이 부상하여 접속수역을 벗어날 때까지 호위한다. 이상.”
입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욕을 간신히 참은 홍희번 소령이 명령문을 수신확인했다. 미국 놈들이 영해를 무단으로 침범했는데 도리어 빠져 나가도록 호위하라니, 속에서 열불이 터져나왔다
“대장님! 10시 방향입니다. 잠수함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관측창을 들여다보던 장민호 상사가 소리치자 홍희범 소령도 관측창으로 다가갔다. 이미 컴컴해진 바다였지만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잠수함 사령탑이 솟아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수직형 사령탑! 사령탑애 대형 잠항타! 러시아 놈들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외관이 비슷해 보이는 잠수함이지만 몇 가지 특징들을 체크하면 대략 어느 나라 잠수함인지는 분간할 수 있었다. 해군 요원들이 적함식별카드 중에서 잠수함 식별카드 때문에 가장 많이 고생하지만, 일단 익숙해지면 외관만으로도 함형을 간단히 파악할 수 있었다.
“LA급 확인, 초기형입니다.”
“그래. 그 자식은 라 호야라네.”
홍희범 소령이 씁쓸하게 말했다. 비행기에 비하면 한없이 느려터진 잠수함을 호위하려면 오늘 자정 전에 귀환하기는 글러먹었다고 생각했다. 최대 13시간까지 비행할 수 있는 오라이언의 체공시간으로 볼 때 임무수행에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무척 지루할 것이 분명한 임무였다.
9월 13일 20:05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스타항
미 해군 태평양함대 제 7함대, 제 7잠수전단 사령부
“뭐라고? 6월달에 우리 잠수하이 박살났던 게 진해에 들어갔다가 한국 해군의 공격을 받아서였다고? 도대체 말이 되는 거야? 그걸 왜 우리 해군이 지금까지 모를 수가 있는 거지?”
7잠수전단 사령관 버나드 포스너(Bernard Posner) 소장이 펄쩍 뛰었다. 그때 피해를 입은 LA급 원잠 샬럿은 아직까지 샌디에이고의 기지창에서 수리중이었다.
물론 그도 주변의 다른 고급사관들로부터 샬럿의 피해가 충돌사고로 보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강한 의혹 제기를 들은 적이 있어TEk. 하지만 설마 미국 잠수함이 한국 해군으로부터 공격당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미군은 엄밀한 의미에서 육, 해, 공, 해병대가 독립적인 작전을 수행하지 않는다. 합동참모회의 휘하의 통합군 사령부(Unified Command) 체제인 미군은 각 통합군 사령부가 작전상의 초고 사령부 조직이다. 여기에는 9개의 통합사령부가 존재하며 각 사령부에서는 적절한 숫자의 육해공군, 그리고 해병대 구성군을 총괄하여ㅕ 지휘한다.
예를 들자면, 태평양 지역을 관할하는 미 태평양 사령부는 미 제 3함대와 제 7함대의 양대 작전함대를 거느린 태평양 해군구성군, 즉 태평양함대를 예하에 두고, 그밖에도 육군구성군과 공군구성군이 배속되어 전체 작전을 모두 총괄한다. 다른 사령부도 구성은 거의 비슷하다. 태평양사령부의 경우 지역적인 특성상 해군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그 사령관은 해군 대장이 임명되는 것이 통례였다.
문제는 특수전사령부였다. 특수전을 담당하는 이 사령부는 유사시 해군 함정들을 일시적으로 예속시켜 독자적인 작전을 수행한다. 이번 경우에는 작전을 수립한 일부 정복계통의 지휘관들과 특수전사령부만 간여했을 뿐, 지역적ㅇ로 태평양지역을 관할하는 태평양사령부가 완전히 배제되었다.
통합군 c제에서 이와 비슷한 경우는 전략미사일 원잠들에서도 보여진다. 핵탄도미사일을 탑재한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은 해군소속이지만 실제 핵전쟁 상황하에서의 작전은 전략사령부(Strategic Command)의 지휘를 받는다.
전략사령부는 해군의 탄도미사일뿐만 아니라 공군의 전략폭격기, 지상발사 대륙간탄도탄(ICBM) 등을 모두 총괄하는 사령부이다. 그러나 전략핵잠이나 전략폭격기 등이 작전할 때 원래의 소속 부대가 완전 배제되는 건 아니었다.
포스너 소장이 날뛰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아무리 특수전작전에서 비밀 유지가 중ㅇ하다지만 특수전사령부가 해군 함정을 빼가면서 정작 해군은 모르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더욱이 태평양함대와 해군의 독자적인 작전이라고 할 수 있는 라 호야와 컬럼비아의 정찰적전을 수행하는데, 이미 6월에 미국 핵잠수함에 의해 저질러진 치명적인 실수를 해군이 전혀 몰랐다니, 말도 안되는 일이었따. 하마터면 중요한 핵공격잠수함을 이번에 아주 우습게 잃어버릴 뻔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과잉반응은 그 일과 연관됐음이 분명했다.
“사령관님! 특수전사령부에서 온 연락장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씩씩대던 포스너 소장이 뒤를 돌아보았다. 카키색 해군 근무복을 입지 않고 신사복 정장을 차려입은 자였다. 그가 포스너 소장을 보자마자 절도있게 경례를 붙였다.
“제독님! 로스토프 중령입니다. 저도 해군입니다.”
손을 내리며 이야기하는 피터 로스토프(Peter Rostov)의 목소리에서 굵직한 쇳소리가 배어 있었다.
“먼저 특수전사령관님으로부터 미리 알려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드리라는 명령을 받고 왔습니다.”
“그래? 여태까지도 안 알려준 자들이 뭣 때문에 이제야 나타난 건가? 그것 때문에 일부러 온 건 아니겠지?”
심드렁하게 말한 포스너가 자리에 앉았다. 제독은 로스토프 중령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권하지도 않았다. 당연히 호의적인 반응을 기대하지는 않았겠지만, 로스토프는 매우 침착했다.
“예, 그렇습니다만, 이곳에서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새로운 작전인가?”
“예, 그렇습니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그것도 명령과 함께 말씀드리겠습니다.”
포스너 소장은 딱딱거리는 대답은 질색이라며 고개를 휘휘 저었다. 소장은 다리를 꼬고 회전의자를 한 바퀴 빙글 돌리며 말했다.
“그래? 일단 거부해도 별 탈은 없겠군. 나는 특수전사령부의 지휘계통에서 벗어나 있으니까, 그쪽에서 내게 명령할 권리는 없네.”
포스너는 계속 쌀쌀맞게 굴었다. 특수전사령부와 같이 비정규전을 수행하는 곳은 포스너의 체질에 맞지 않았다. 게다가 해군은 원래부터 특수전의 비중이 낮은 군대이다. 상륙작전 등에는 물론 SEAL 같은 특수부대가 필요하고 해군 예하에 명목상으로나마 해군 특수전사령부가 따로 있긴 했다.
그러나 해군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인력은 엔지니어들이었다. 망망대해에서 해전이 벌어질 경우, 각종 기계장치를 조작하고 순간적으로판단하며 값비싼 무기로 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수천 미터 고공에서 낙하산을 타고 강하하거나 밤에 오리발로 어기적거리며 해안선을 기어올라가 기습침투를 주임무로 하는 비정규전 병력이 아니라, 그야말로 기술집약적인 엔지니어들이었다.
“제독님, 태평양사령부에도 통보가 된 작전입니다. 이번 작전은......”
목소리를 낮춘 로스토프는 주의를 돌아보며 포스너의 참모진이 있는 자리에서는 더 이상 이야기가 곤란하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그러나 포스너는 로스토프를 자신의 방으로 끌어들이려 하지는 않았다. 손을 휘저어 통신사관을 제외한 참모와 사령부 요원들에게 잠시 나가 있으라는 신호를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 자체도 증거로 남겨야 할 필요가 있었다. 로스토프와의 대화는 그만큼 위험했다. 그리고 특수전사령부 자체가 위험한 곳이기도 했다. 참모들과 사병들이 상황실을 벗어나자 로스토프가 통신사관의 눈치를 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했다.
“이번 작전은 합참에서도 재가가 난 작전입니다. 작전의 모든 유형은 특수전사령부에서 재량권을 가집니다. 어떤 패턴이라도 선택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부수적으로는 보복입니다. 샬럿 공격사건은 어떤 형토로든 보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까짓 작은 나라가 한 짓을 미국이 참기만 할 수는 없잖습니까?”
강대국으로서의 자존심이었다. 미국이 비록 나쁜 짓을 하더라도 미국이 하는 일을 방해하는 국가나 세력은 언제든지 제재를 가하는 것이 미국이었다. 포스너도 로스토프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도 분명 미국인이었다.
“젠장! 나도 손을 더럽혀야 하는 건가?”
포스너 소장이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자 로스토프가 잽싸게 불을 붙여 주었다. 담배 연기를 길게 빨아들인 소장이 연기 한 모금을 로스토프에게 내뿜었다.
“그래, 특수전사령부에서 원하는 게 도데체 뭔가?”
로스토프가 씨익 웃더니 잠시 통신사관의 눈치를 살폈다. 그 장교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지 않으려는 듯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로스토프가 아주 낮게 이야기 하자 포스너가 고개를 숙이며 귀를 쫑긋 세웠다.
“간단합니다. 현재 장문휴의 추적평가를 위해 투입된 라 호야와 컬럼비아를 그대로 동원해 주시면 됩니다.”
“정말 간단하군. 그 다음엔?”
포스너 소장이 비꼬듯 토를 달며 로스토프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렸다.
이런 경우에 일반적으로 취하는 선택은 서너 가지가 있었다.
“그 다음도 간단합니다. 이번 작전은 엄밀히 말해서 작전이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지지어된 타격 목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장문휴를 격침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발적인 상황만 조성하면 되는 것입니다.”
“간단하지는 않은데?”
포스너 소장이 다시 담배 연기를 로스토프의 얼굴에 내뿜으며 말했다. 그러나 로스토프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결론부터 말씀드려서 이번 작전은 특수전사령부뿐만 아니라 해군이 함께 비밀리에 결정한 사안입니다. 그리고 일은 매우 간단하다는 것만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파일을 넘겨드리겠습니다. 저도 더 이상 언급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로스토프가 말을 끝맺으며 봉인장치가 된 서류가방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강제로 열려고 할 때 내부에 퓨즈가 작동하여 마그네슘을 연소시켜 가방의 내용물을 단숨에 태워버리는 그런 장치 같았다. 포스너는 이 가방을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관찰했다.
로스토프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가방을 열었다. 가방 속은 보통 가방과 다를 바 없었다. 로스토프가 겉봉에 깨알 같은 글씨가 씌어 있는 노란 봉투를 가방에서 꺼내 포스너에게 건넸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제독님.”
로스토프가 경례를 붙이고 뒤돌아서서 성큼성큼 상황실을 걸어나갔다. 로스토프가 나간 후 봉투를 뜯어 내용물을 읽어본 포스너 소장이 곧 부하 참모들을 다시 상황실로 불러들였다.
9월 13일 20:10 부산광역시 부산항 북동쪽 54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대단합니다.”
진종훈 소령이 적막한 사령실에서 제일 먼저 말문을 터뜨렸다. 한시간이 넘는 동안 다들 그렇게 묵묵히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들은 소나로 들려오는 정보를 통해 밖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자세히 파악할 수 있었다.
“대단한 자존심이야. 일촉즉발의 위기에서도 부상하지 않고 여수함을 스스로 물러나게 하다니 말야.”
함장 서승원중령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진종훈 소령이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는 듯 함장에게 물었다.
“함장님, 석 달 전에 일어났던 사건을 아십니까?”
“뭘?”
부함장이 함장의 눈치를 살폈다. 함장은 금시초문이라는 듯,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듯이 시치미를 떼는 것 같았다.
“작전에 참가했던 제 동기에게서 비공식적으로 들은 내용입니다만, 그때 침투한 것은 북한 잠수함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진종훈 소령은 혼란스러웠다. 단편적으로 떠돌아 다니는 소문은 무성했지만 그 어느 것도 의문을 시원하게 설명해 주지는 못했다. 진종훈은 혹시 함장이라면 알고 있을까 궁금했다.
“난 전혀 모르는 일일세. 부장! 그런 쓸데없는 호기심은 갖지 않는게 좋아. 자, 이제 우리도 옴직인다! 최무선이 눈이 빠지게 기다릴 거다.”
함장과 부함장은 서로 의미있는 눈길을 주고받았다. 함장의 명령으로 더 이상 자세한 이야기는 진행되지 않았다.
“예! 죄송합니다, 함장님. 심도 조정, 100미터로! 속도 15노트. 침로 공공오(0-0-5)도로!”
“부상합니다. 심도조정 100미터. 침로 공공오!”
부함장의 지시에 김승민 대위가 복창하며 밸러스트 조작팀과 조함병들을 지휘했다. 바닥에 가라앉았던 잠수함 장문휴가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함장님! 사령부에서 통신입니다. 초단파통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통신실에서 이홍기 중위가 달려왔다. 헐떡거리는 폼이 생전 처음 받아보는 긴급통신에 상당히 놀란 모양이었다. 함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명령을 내렸다.
“심도 100에서 통신케이블을 올린다.”
장문휴의 사령탑 뒤쪽에서 해치가 열리며 케이블에 연결된 부이가 물위로 솟았다. 수면 위로 올려진 통신부이는 유선으로 장문휴함에 연결되었고, 곧 지상과 교신할 수 있는 초단파 대역의 전파를 쏘아올리기 시작했다. 작전사령부에서 이 전파를 받아 발신자를 자동으로 확인한 다음, 곧 작전사령부 상황실로 연결되는 회선이 개방됐다.
- 북극곰이다.
통신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서승원 중령의 표정이 일순 긴장되었다. 북극곰은 해군 작전사령관 김병륜 중장의 개인 호울부호였다. 북극곰이라는 말을 들은 이홍기 중위가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음성은 디지털 형태로 변환된 후에 다시 암호화 과정을 거치므로 도청될 우려는 적었다. 하지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통신자의 존재가 노출되는 것은 금물이었다.
“불곰 하나입니다.”
- 불곰도 상황을 파악하고 있나?
“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 불곰이 경보를 전파하고 나서 왜 그 해역을 이탈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아무리 급한 일이라도 작전중인 함정에게 질문할 수 있는 내용이 따로 있었다. 간단한 명령을 전파하거나 보고를 받는 것 외에 이런 통신은 전례가 드문 일이었다. 신중한 김병륜 중장이 작전중 함장의 행동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는 것은 밖에서 일어난 사태의 강도가 극히 심각했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흰꼬리수리들의 추적중에 불곰의 존재를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불곰을 원하는 자들이 많기 때문에 대린 결정이었습니다.”
잠시 생각한 뒤 서승원 중령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상대편에서도 잠시 침묵이 흘렀다.
- 알았다. 불곰은 예정된 작전을 수행하라. 변경사항은 없다. 혹시 경보를 발령하기 직전에 상대를 평가할 수 있었는가?
미국 잠수함인지 알고도 장문휴함은 왜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느냐는 추궁이었다.
“추정은 할 수 있었지만 불확실했습니다. 목표를 확실히 판단하기 위해 추적하는 대신 회피를 선택했습니다. 이유는 조금 전 말씀드린 바와 같습니다.”
- 알았다. 북극곰의 의문은 기분 좋게 해소되었다. 불곰은 임무를 계속 수행하도록. 앞으로도 항상 신중하라. 이상이다.
교신은 상대방 쪽에서 일방적으로 끊었다. 하지만 기분은 별로 나쁘지 않았다. 김병륜 중장이 마지막에 말한 것은 칭찬과 다름이 없었다. 서승원 중령이 김병륜 제독ㅇ게 거의 20년만에 처음 듣는 칭창이었다.
9월 13일 20:25 부산광역시 부산항 동쪽 3km
미 해군 공겨권잠 SSN-701 라 호야, 사령탑
물위로 몸체를 드러낸 라 호야의 수상항주 모습은 위풍당당했다는 표현은 전혀 적합하지 않았다. 차라리 거대한 섬이 물위로 솟아난 모습이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 정도로 잠수함은 엄청나게 컸다. 사령탑 꼭대기에는 가르시아 중령과 폴머 소령이 나란히 서 있었다. 밤인데도 불구하고 잠수함이 일으킨 항적이 하얀색으로 바닷물과 뚜렷이 대비되었다. 폴머 소령이 암시경을 꺼내 상공을 관측했다.
암시경이 부르릉거리는 터보 프롭 엔진 소리로 향하자 오라이언 대잠초계기가 보였다. 광량증폭식 암시경이라 캄캄한 밤에도 관측할 수 있었지만 낮게 떠서 라 호야의 주위를 선회하는 마당에 굳이 암시경을 사용할 필요는 없었다. 순간 낮은 고도로 내려온 오라이언이 라 호야의 사령탑 위를 빠르게 지나쳤다.
“개자식들! 신났군.”
함장 가르시아 중령이 몹시 불쾌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초계기 날개 좌우의 항공등이 번쩍거렸다. 그 위로 붉은 구름들이 남서쪽으로 빠르게 흘러갔다.
- 함장님, 통신실입니다. 사령부로부터 통신입니다.
가르시아 중령은 통신기를 들면서 연신 주변 하늘을 살폈다. 비를 머금은 먹장구름은 아니었지만 태풍이 불기 전의 고요와 흡사했다. 일기예보에서는 태풍이 일본열도에 상륙하고 동해에는 영향을 및이지 않는다고 했지만, 태풍의 진로는 항상 의외성이 있는 법이었다.
“알았다, 내려가겠다. 부함장! 브리지를 맡아주게.”
“예! 알겠습니다.”
부함장이 함장의 걱정을 깨달았는지 한국 해군 초계기는 무시하고 암시경으로 구름을 살폈다. 분명 두꺼운 먹구름은 아니었다.
가르시아 중령은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사다리를 타고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브리지(bridge)는 함교를 가리킨다. 잠수함에서는 사령탑이 함교 역할을 하지만, 수면 위로 완전히 부상했을 때에 한해서만 사용된다. 잠수함 사령탑을 세일(sale)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돛과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서둘러 내려간 가르시아가 통신실로 들어서자 프린터에서 인쇄용지가 쏟아지고 있었다. 암호해독기와 결합된 레이저 프린터였다. 프린터가 작동을 멈추자 통신병이 여러 장의 명령문을 클립으로 고정시킨 다음 가르시아에게 전했다.
수신자는 라 호야와 컬럼비아, 두 잠수함 모두였다. 가르시아 중령은 명령문을 받아든 즉시 함장실로 향했다. 열람자가 지정된 파일이었기 때문이다.
폴머 소령이 암시경으로 구름을 관찰하는 도중 상공을 계속 선회하던 한국 오라이언이 암시경에 잡혔다. 폴머 소령은 그 초계가 무척 거슬렸다. 호위는 단지 핑계였을 뿐이고, 이것은 노골적인 추방과 다름없었다.
마치 영해를 침범한 난민선이 공해로 강제로 밀려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영해보다도 훨씬 바깥쪽, 한국 해군이 접속수역으로 선포하여 군사적으로는 영해에 준하는 해역을 잠수함이 벗어날 때까지 오라이언의 시위를 주시해야 했다.
폴머 소령이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함장은 내려간 지 30분이 가까웠지만 브리지로 다시 올라오지도 않고 연락도 없었다. 뭔가 색다른 명령문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시간이 걸릴 리가 없어TEk. 남족으로 향하는 라 호야의 앞쪽에 어선 몇 척이 보였다.
그러자 잠수함 머리 위에 떠 있던 오라이언이 날아가서 강렬한 탐조등을 비추며 어선들 위를 맨돌았다. 어선들이 만약에 저인망이나 정치망으로 어로작업중이라면 미리 그물을 거두도록 해야 했다. 잠수함이 그물에 걸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1998년에 발견되 북한 잠수함은 가느다란 실로 엮고 폭이 상당히 좁은 꽁치 그물에 걸려 항행불능이 되었다. 그물은 스크루가 달린 모든 배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었다. 특히 잠수함에게는 쥐약이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물 때문에 잠수함이 부력을 상실할 수도 있었다.
몇 분 지나자 어선들이 슬금슬금 서쪽으로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선들이 너무 굼뜨게 움직여 P-3C가 다시 한 번 저공비행하면서 탐조등을 바다 위로 비췄다. 어선에서 물고기 같은 하얀 것이 하늘로 날아갔다. 폴머 소령이 암시경으로 보니 어선 갑판 위에는 화가 잔뜩난 선원들이 초계기를 향해 삿대질하고 있었다.
- 브리지! 원 엠씨(1MC)다. 상갑판 요원들을 철수시켜라. 잠항한다.
송수신기에서 함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폴머 소령이 그 내용에 깜짝 놀라 함장의 명령을 확인했다.
“함장님? 아직 접속수역을 벗어나려면 멀었습니다. 명령은 접속수역을 벗어날 때까지 수상항주로 빠져나가라고 되어 있습니다.”
한국 해군이 접속수역을 고집하는 바람에 가장 짧은 쪽인 대마도로 향하는 중이었다. 일본 영해와 겹치는 대한해협은 국제해협이라서 가장 가까운 거리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 새로운 명령을 수신했다. 필요없으니 철수시키고 내려와!
“예! 알겠습니다.”
상갑판 앞과 뒤쪽에는 견시수 두 명이 있고 사령탑 좌우로도 또 다른 두 명이 있었다. 좌우에 있는 두 명은 커다란 잠항타 위에 위태롭게 서 있었다. 측방 견시수들이 자리잡는 곳이다. 폴머는 큰 소리로 불러 이들에게 철수하라는 손짓을 했다. 모두 철수한 것을 확인한 다음 폴머 소령도 사다리를 타고 사령실로 내려갔다.
9월 13일 20:50 경상북도 포항 동쪽 35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71 컬럼비아, 함장실
“어떻게 생각하나? 댄.”
스위프트 중령이 부함장 대니얼 러너 소령에게 질문했다. 지금 두 사나이는 함장실에서 서로를 마주보며 명령문을 읽은 직후였다.
“별첨 문서가 가관이군요. 이런 중요한 사건을 사령부는 왜 이제야 알려주는 겁니까?”
“그걸 모르나? 우릴 엿먹이려는 거야. 우리가 훈련에서 장문휴를 잡지 못했다고 말일세. 애시당초 라 호야와 우리가 선택된 것도 그 때문이고. 후후! 우리보다 라 g h야가 고생이 더 심했지.”
라 호야 승무원들이 고생했다는 것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을 생각했는지 러너 소령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샬럿 사건은 의외야. 특수전사령부가 해군에게 빚을 졌군, 그래. 하지만 우리가 거기까지는 생각할 필요가 없네. 대신 받을 게 있었을 거야. 그건 그렇고......”
스위프트 중령이 잠시 뜸을 들이며 오렌지 주스를 반쯤 들이킨 다음 컵을 탁자에 내리며 부함장을 쏘아보았다. 뭔가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스위프트가 상대방의 주목을 요구하는 자세였다.
“세부적인 작전행동을 설정해주게. 라 호야와의 팀웍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네.”
“예,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스위프트가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명령대로라면 8시간 뒤부터 전술행동을 시작하도록 되어 있었다. 명령문은 장문휴의 작전수역과 시간까지 정확히 알려주고 있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한국 잠수함의 작전계획을 꽤나 자세히 파악한 모양이었다.
일선부대에서도 ‘에이전트(Agent)', 즉 상대국에 잠입한 첩보원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가끔 있었다.
그럴 때는 자신들의 모국인 미국의 힘에 대해 새삼 놀라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경악스럽기까지 했다.
“아직 시간 여유가 있어. 작전수역까지의 침로는 가능한 직선으로 정하되, 발겨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하네”
“예! 함장님”
“그리고 이 명령서의 열람제한은 보다시피 ‘XO'까지야.”
XO는 ‘Executive Officer', 즉 부함장을 뜻한다. 스위프트 중령의 말은 부함장 이하의 다른 사관은 열람할 수 없으니 기밀유지를 하라는 뜻이었다. 함장은 CO, 'Commanding Officer’라 칭한다.
“알겠습니다. 유의하겠습니다.”
“그럼 사령실로 가세. 준비해야 할 일이 많을 거야.”
스위프트 중령이 반쯤 남은 오렌지 주스를 쭉 들이켜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부터 5분 후 미 해군 공격원잠 컬럼비아는 대기지점에서 출발해 조용히 북동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9월 13일 21:00 부산광역시 부산항 남동쪽 26km
한국 해군 P-3C 오라이언, 코드명 흰꼬리수리 3
라 호야의 항로 앞에 있던 어선들이 너무 느리게 움직였기 때문에 홍희범 소령은 그들을 qlusk도록 하는데 애를 먹어야 했다. 부하들이 민간선박과 통하는 응급회선을 사용하여 어선 선장들과 입씨름하느라 언겅이 높아져다. 군사작전에 대한 민간인들의 반응은 예전과 확연히 달랐다. 무조건 버티고 보자는 식이었다.
하지만 민간인들을 나무랄 문제는 아니었다. 고무줄을 잡아당겼을 때 탄성을 가진 고무줄이 반대쪽으로 퉁겨나가는 것처럼, 제자리로 돌아오려면 시간이 걸렸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후유증이나 마찬가지었다. 홍희범 소령은 비슷한 경우에 맞닥뜨릴 때마다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이유가 있는 반작용이라고 생각하고는 혼자 씁쓸해지곤 했다.
“대장님! 놈이 잠항합니다!”
관측창에 붙어 있던 장민호 상사가 홍희번 소령을 불렀다.
“뭐야? 접속수역을 벗어나서 잠항하기로 한 약속을 잊은 거야, 뭐야?”
홍희범 소령이 허겁지겁 관측창을 통해 잠수함을 찾아다. 전방 밸러스트 탱크에서 공기가 분출되며 커다랗게 포말이 일었다.
잠수하기 위해 밸러스트 탱크에 바닷물을 주입하면 안에 있던 공기는 밸러스트 탱크 상부의 ‘벤트(vent)'라 불리는 밸브장치를 통해 빠져나간다. 물이 차오르는 압력과 잠수함이 내리누르는 중량이 겹쳐 빠져 나오는 공기 압력은 무척 강하다. LA급과 같이 대형 잠수함에서는 그것이 확연하게 관측된다.
“쉽새이들! 사령부를 호출해! 징그럽게 말 안 듣는 개자식들이군.”
“덕분에 일찍 귀환할 수는 있겠는데요.”
장민호 상사도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허탈하게 입을 열었다. 잠수함을 향해 감자바위를 먹인 홍희범 소령이 마이크를 잡고 화난 소리로 외쳤다.
“여기는 흰꼬리수리 셋이다. 라 호야가 잠항한다. 반복한다. 접속수역 내에서 잠항하고 있다.”
- 가오리집이다. 잠시 대기하라.
잠시 기다리는 동안 관측창으로 다시 라 호야를 찾았다. 어느새 선체는 모두 물에 잠기고 사령탑 윗부분만 약간 남았지만 그것도 곧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라 호야가 만든 새하얀 항적이 수면 위에서 완전히 끊어졌다.
- 가오리집이다. 포기하고 귀환한다.
이미 예상했던 응답이었다.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약한 나라로서 어쩔 수 없었다. 분노를 꾹꾹 눌러 참은 홍희범 소령이 다른 문제를 제기했다.
“알았다. 그리고 라 호야로 접근한 헬리콥터는 없었다. 반복한다. 라 호야로 접근하는 헬리콥터는 없었다.”
- 알고 있다. 예상하고 있던 일이다. 흰꼬리수리 셋은 귀환하라. 수고했다. 이상!
홍희범 소령은 부상병 후송을 위해 라 호야로 헬기가 접근할 예정이라고 들어었다. 그러나 그것이 거짓말이란 사실을 확인되자 그러면 그렇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장! 귀환한다! 오늘은 집에서 쉴 수 있을 것 같군.”
허탈한 귀환이었다. 홍희범은 착륙할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른 승무원들도 마찬가지였다.
9월 13일 21:05 경상북도 포항 동쪽 24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출력, 10퍼센트로 감속한다!”
“출력 `10퍼센트!”
서승원 중령이 감속을 명령하고 나서 속도계를 들여다보았다. 출력이 떨어지면서 속도도 마찬가지로 줄어들어야 했지만 떨어지는 속도가 빠르지ㅐ 않았다. 약간 시간이 지나가 천천히 내려가던 속도계의 눈금이 3노트에서 멈출 듯하다가 오히려 위로 움직였다.
“출력, 현상태로 유지한다. 타 고정! 4직제로 전환한다.”
서승원 중령이 말을 마치고 나서 사령실을 빠져나갔다. 4직제로 전환한다는 말은 병력중 1/4만 근무하고 나머지 3/4은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미국 잠수함을 따돌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긴장감을 풀고 이제부터 평상시 초계상태를 유지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당연히 승무원들 사이에서 한숨이 터져나왔다.
“작전관, 내가 먼저 당직을 서지. 휴식을 취하게.”
“예, 그럼 제가 먼저 쉬겠습니다.”
진종훈 소령이 김승민보다 먼저 당직을 자청하자 김승민 대위는 군소리 없이 부함장의 명령을 들었다. 전혀 고마운 표정이 아니었다.
경례를 마친 김승민 대위가 음탐실로 걸어왔다. 잠수함의 눈과 귀인 음탐실도 이때는 교대근무해도 상관없었다. 소나에서 감지된 이상징후는 컴퓨터에서 판단하여 자동적으로 경보를 띄워주기 때문이기도 했다. 주변에 적이 있을 때나 손이 많이 필요해진다.
음탐실의 강인현 대위는 최현호 상사를 먼저 쉬게 하려 했다. 그러나 최현호 상사는 할 일이 있다면서 강인현에게 먼저 쉬라고 권했다. 지금보다는 한밤중에 잠을 자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 강인현이 최현호 상사를 위해 그렇게 조를 편성했다.
조편성이 끝나자 김승민 대위가 싱글거리며 지금은 이미 없어진 TV의 밤 9시 멘트와 동요 흉내를 냈다.
“청소년 여러분, 밤이 깊었습니다.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세수하고 발 닦고......”
“작전관님, 출력을 줄였는데도 속도가 전혀 줄지 않습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사령실을 빠져나오면서 강인현이 김승민에게 물었다. 사관휴게실로 향하는 두 사람은 시뮬레이션 게임이나 한판 하기로 했던 것이다. 사관휴게실이라야 비좁은 공간에 탁자 몇 개와 TV, 비디오에 미니 컴퍼넌트도 아니 sth형 카세트-시디 견용 플레이어뿐이었다. 이곳은 식당을 겸한다.
두 사람은 탁자에 앉아 각자 노트북을 펼쳤다. 케이블을 서로의 컴퓨터에 연결하고 조이 스틱을 꺼내 포트에 꽂으면서 김승민 대위가 입을 열었다.
“아까 뭘 물었지? 잘 못들었는데......”
“함장님 말씀입니다. 출력을 줄였는데 속도계가 나중엔 다시 올라가는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아~ 그거 말인가?”
전원 스위치를 누르고 윈도우 98의 화면이 뜨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프로그램 화면이 뜨자 게임 아이콘들이 생겨났다.
“해류야.”
“해류요?”
강인현이 확인하자 김승민이 귀찮다는 듯이 몇 번 반복했다.
“응, 그래. 해류, 해류!”
“지금과 같은 계절에 북상하는 남한 난류의 유속이 빨라 봤자 기껏 3~4노트일 텐데요. 잠수함은 그보다 훨씬 빨리 움직이는 것 같았습니다.”
“자네, 게임할 거야, 말 거야?”
이미 전투기 시뮤레이션 게임을 띄워놓고 멀티플레이어 모드를 선택했지만 강인현의 컴퓨터에 연결되었다는 표시가 뜨지 않고있었다. 원래 고단수들은 승부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다. 하지만 며칠 전 주말에 강인현과 날밤을 새면서 참혹한 패배만 당했던 김승민에게 이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작전관님! 후배 하나 키우는데 그리도 인색하십니까? 너무합니다. 너무해~.”
“흐이구, 그건 해류의 주요 흐름 사이에서 가장 강한 흐름을 타는 거야. 해류는 애초의 발원지점에서 멀어질수록 다른 조류와 맞닥뜨려 차츰 온도와 염도를 잃게 되지. 하지만 수면 가까이에 있는 중심부 해류는 남풍의 영향까지 받아 속도 손실이 적어진다구. 그 흐름에 몸을 싣는거야.”
“파도타기로군요. 동한난류의 평균 유속이 훨씬 빠른 해류가 있다니, 몰랐습니다.”
“그래. 하지만 그걸 찾는 건 쉽지 않지 우리가 직접 물속에 있는 건 아니니까. 나도 더 이상은 몰라. 그런 건 함장님이나 아시겠지. 난 모르니까 그만 게임이나 하자고.”
호기심의 전구가 반작 켜진 강인현에게 게임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두 사람은 해군과 관련 없는 게임을 시작했다. 육군 사병이 외박 나와서 밤에 서바이벌 게임을 한 특이한 경우도 있지만, 쉬는 시간에는 대개 직업과 관련 없는 놀이를 하게 마련이다.
첫 번째 공중전에서 강인현은 김승민에게 맥없이 꼬리를 잡히고 기관포탄을 수십 발이나 얻어맞았다. 악착스레 꼬리를 놓치지 않은 김승민이 꼬리날개부터 시작해서 주날개, 수직방향타까지 차례차례 점사로 명중시켰다. 강인현은 조종간을 움직여도 반응이 없는 기체로 허둥대다가 막판에는 엔진을 얻어맞고, 가장 마지막으로는 캐노피에 명중돼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다.
그 사이 잠수함 장문휴는 해류에 올라타고 엔진은 거의 사용하지 않은 채 6노트로 북쪽을 향해 미끄러지듯이 항해하고 있었다. 남한난류가 삼척 근방까지 북상한 다음 오른쪽으로 급격히 휘어지며 잠수함을 울릉도와 독도까지 데려다 줄 것이다.
잠수함에게 있어 해류는 중요하다 한국에 침투하는 북한 잠수함 승무원들도 해류를 무척 좋아한다. 가을과 겨울철에 북한 해류를 타면 속초와 강릉 근방까지는 흐름에 떠밀려 오더라도 이틀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 상어급이나 유고급, 또는 1998년에 꽁치 그물에 잡힌, 일명 꽁치급 소형 침투용 잠수함들은 공기 교환을 위해 최소 10시간에 한 번씩은 부상해야 함은 물론이다.
9. 백조의 호수
9월 14일 02:15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 북쪽 75km
한국 해군 잠수함 최무선, 사령실
검은 수면 위로 막대기 하나가 천천히 솟아오르며 하얀 물거품이 일었다. 막대기가 한 바퀴 빙글 돌더니 잠시 후 바로 뒤쪽에서 끝부분이 둥글고 좀더 굵은 막대기가 치솟았다. 주변의 전파정보를 분석해서 위험이 없는지를 판단하는 잠수함의 ESM 마스트였다.
몇초가 지나지 않아 앞서 두 개의 마스트보다 훨씬 굵은 원통형 관이 마지막으로 떠올랐다. 그것은 잠수함의 디젤엔진을 가동하기 위한 흡기장치인 스노클(snorkle)이었다. 이 시노클은 수면 위로 돌출된 부분에서 공기를 빨아들이고 물속의 다른 배출구멍으로 배출가스를 방출하는 방식이었다.
배기가스를 수면 위로 배출하지 않는 이유는 적으로부터 탐지되지 않기 위해서이다. 초계기나 수상함정이 적외선 관측장비를 사용하면 장애물이 없는 해면에서는 상당히 먼 곳에서도 배기열의 관측이 가능하다.
시동을 건지 얼마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검은색 물거품이 물위로 솟았다. 엔진이 충분히 가열되자 검은 물거품은 곧 사라졌다. 최무선이 장비한 3,800마력짜리 디젤엔진이 내뿜는 배기가스가 수면 위로 거센 포말을 만들어냈다.
“디젤엔진 가동! 충전 시작했습니다, 함장님.”
부함장 한형석 소령이 기관실로 이어지는 송신기를 내려놓으며 함장에게 보고했다. 함장은 잠망경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최무선함의 축전기가 완전방전 상태가 아니라서 충전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국 해군 잠수함 최무선의 공기순환시스템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잠수함에서 탁한 내부공기가 외부로 배출되고 바깥의 신선한 공기가 들어왔다. 새로 유입되는 공기는 코에 느껴지는 냄새까지 다를 정도로 눈에 띄게 차이가 났다. 사령실 이곳저곳에서 승조원들이 짧게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계속 바깥을 살피던 조성진 중령이 잠명경을 좌우로 돌리며 명령했다.
“10시 방향에 둘, 12시 방향에 하나 있다. 체크하라!”
“예! 알겠습니다.”
느긋한 목소리였다. 부함장 한형석 소령이 대답하며 소나팀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음탐실에서는 음탐요원들이 이미 수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정지한 배가 둘, 통통거리며 남쪽을 향해 천천히 움직이는 배가 하나였다.
그쪽에 있는 배들은 소형 어선들로 오징어잡이배였다. 어선들은 강력한 흰색 조명으로 바닥에서 회유하는 오징어를 유혹하고 있었다. 채낚이는 일종의 주낙으로, 몇백 미터나 되는 긴 낚싯줄에 낚싯바늘 수백 개가 달려 있다.
주의하지 않다가 잠수함에 낚싯줄이 걸리면 조업중인 어선들 사이에서 큰 소동이 일어날 것이다. 낚싯줄에 어선이 끌려오지는 않겠지만 어부들은 혹시 고래가 주낙을 문 것으로 오인할 수도 있었다. 물론 어부들은 북한 잠수정인지 눈에 불을 켜고 확인할 수도 있었다. 그럴 경우 상당히 골치 아파진다.
조성진 중령이 잠망경에서 눈을 떼고 빠져나오자 한형석 소령이 함장의 잠망경을 넘겨받았다. 열영상식 탐색모드가 추가된 최무선의 탐색용 잠망경은 한밤중이라도 주변을 관측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버튼을 눌러 열영상식으로 전환하자 주위의 모든 것이 적외선 방출량에 따라 밝거나 어둡게 보여졌다.
바다가 내뿜는 열도 있었다. 낮 동안 태양에 의해 데워진 바다는 육지보다 뜨겁지는 않지만 잠열이 크기 때문에 대신 밤에는 육지에 비해 온도가 높아진다. 바다가 열을 잃는 속도가 육지보다 느리기 때문이다. 한형석이 잠망경 렌즈에 잡힌 바다는 그렇게 보였다. 육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하늘은 분명 바다보다 어두은 그늘이었다.
한형석 소령이 버튼을 누르며 잠망경의 관측각도를 조정해서 더 위쪽을 바라보았다. 잠망경통 내에 빛을 굴절시키는 프리즘이 위쪽으로 기울며 빛을 다른 각도로 굴절시켰다.
언뜻 하늘의 색깔이 다르게 보였다. 맑은 날 밤에 검게 보이던 하늘이 모두 뿌옇게 덮여 있었다. 구름이 가진 미약한 열이 열영상 카메라에 희미하게 잡힌 것이다. 기상상태는 해군 함정들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한형석이 고개를 돌려 함장에게 확인했다.
“기상상태가 매우 안 좋습니다, 함장님.”
“그래, 예상보다 조금 빠르지. 내일 새벽에나 영향권에 든다고 했는데......”
“다른 이상 징후는 없습니다.”
보고를 마친 한형석이 다시 접안구에 눈을 대었다. 바깥 풍경을 잠망경을 통해서나마 실컷 보고 싶은 마음은 최무선함의 승조원 누구나 마찬가지였다. 며칠째 하늘을 보지 못한 승조원들이 부럽다는 듯 부함장을 힐끗거렸다.
“태풍이라......”
조성진 중령이 낮게 중얼거렸다. 태풍이 기상예보보다 약간 빠르게 북상하는 모양이었다. 하늘과 바다는 아직 고요했지만 열대성 저기압이 접근하고 있다는 정황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었다.
해군을 비롯하여 군용으로 사용되는 기상정보는 매우 정밀하다. 하지만 태풍은 예외였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했어도 아직 태풍의 진로와 속도는 정확히 예측하지 어렵다.
태풍은 핵폭발에 버금가는 엄청난 에너지를 품고 바다와 육지를 쓸어버린다. 특히 섬나라 일본에는 매년 많은 태풍이 상륙해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낸다.
대부분의 태풍이 일본에 상륙할 때 한국도 태풍의 간접적인 영향권에 드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조업중인 모든 어선과 주변을 항해하던 상선들은 서둘러 방파제 안으로 피해야 한다.
바다를 지켜야 하는 해군도 대부분의 함정을 항구로 피난시켜야 한다. 한국 해군 함정들은 너무 소형이라 태풍이 부는 중에는 작전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태풍이 지나는 동안에는 항공기도 띄울 수 없다. 이럴 때 동해는 무방비 상태가 된다.
그러나 아무리 험난한 파고와 풍랑, 심지어는 태풍도 물속 깊숙히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표층수만 거세게 휘저을 뿐 잠수함이 활동하는 100미터 이하의 심도는 조용하기 그지없다. 오히려 태풍이 불면 거친 바람과 파도가 일으키는 소음에 가려 잠수함을 탐지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태풍이 불어 소형 군함과 항공기가 뜨지 못하는 거친 바다는 잠수함의 독무대가 되는 것이다.
- 기관실입니다. 충전 완료됐습니다.
“좋아, 배터리로 동력전환한다. 잠항 준비하라!”
기관실에서 보고가 올라오자마자 조성진 중령이 잠항을 서둘렀다. 발견되기 쉬운 수면상에 잠수함이 오래 머무를 필요는 없었다. 한형석 소령이 잠망경을 내리고 나서 수면 위로 올려진 나머지 다른 마스트들을 내렸다. 며칠만의 바깥 구경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한국 해군의 209급 잠수함 최무선은 이제 다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배터리가 소모되는 사흘 동안은 다시 부상할 일이 없을 것이다.
9월 14일 02:25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 북쪽 83km
러시아 해군 공격원잠 K-317 판터, 사령실
“소나 탐지! 수상물체입니다. 방위 1-9-0. 노이즈 특성은......”
소나에 귀를 기울이던 유리 포트레소프(Yuri Potresov) 상사가 손을 흔들어 옆에 앉아 있던 세르게이 쉬비코프스키(Sefgei Shivikovsky) 대위를 불렀다.
“그 방향에는 아무 것도 없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건가?”
쉬비코프스키 대위가 새로운 탐지 목표가 나타난 모니터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그 목표는 어선들을 나타내는 점과 약간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그렇습니다. 남쪽에 있는 어선들 숫자는 계속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솟아난 놈입니다.”
“혹시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 정치망 어선 아냐?”
흥미를 느낀 쉬비코프스키 대위가 헤드폰 한쪽을 귀에 대고 잠시 소리를 들었다. 근처에서 조용히 표류하던 어선이 갑자기 엔진을 작동하여 움직이는 경우에도 조금 전까지 없던 배가 별안간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오인되기 쉬었다. 느긋하게 소리를 듣던 대위의 표정이 점점 심각하게 변했다. 목표의 소음이 너무 낮은 것이 오히려 대위의 주의를 끈 것이다.
“소음은 낮은 수준입니다만 패턴이 다릅니다. 어선들의 디젤엔진음은 상당히 요란합니다. 출력도 변변찮은 주제에 소음이 심합니다만, 이놈은 조용하면서도 주파대역이 매우 낮습니다.”
한쪽 귀로 소리를 듣고, 다른 귀로 포트레소프 상사의 설명을 듣던 쉬비코프스키 대위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러시아 킬로급 잠수함의 저속 항주음과 비슷하면서도 뭔가 다른 소리가 들렸다. 대위는 이번 작전의 목적을 떠올렸다. 장문휴라 불리는 한국의 신형 잠수함을 탐지, 추적, 평가하여 정보를 최대한 얻어내는 것이 이 러시아 공격원잠 판터(Panther)의 임무였다.
“특이한 놈이군. 일단 함장님께 보고하겠다.”
쉬비코프스키 대위가 사령실로 연결된 인터폰을 집어들었다.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심상치 않은 의미가 서로의 눈빛에서 교차했다. 일단 디젤추진 잠수함이라고 단정해도 그리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럴 경우에 가장 쉽게 확인하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
잠시후, 러시아 극동함대 소속 아쿨라급 공격원잠의 잠망경이 수면 위로 솟아올랐다.
잠망경은 제자리에서 몇 바퀴 돌고 나서 소리가 나는 방향에서 아무 것도 잡히지 않자 빠르게 물곳으로 자취를 감췄다.
9월 14일 02:35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 북쪽 7km
한국 해군 잠수함 최무선, 음탐실
“예인소나에 접촉! 추정방위 공십공도(0-1-0)입니다.”
음탐 선임하사 최태훈 중사가 갑자기 바짝 긴장하며 음탐관에게 보고했다.
“이런! 가깝네? 선임하사! 접촉코드 34를 부여한다. 수상 시그널인지 먼저 확인하게.”
음탐관 권혁준 대위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배터리 충전을 위해 수면 위에 올라갔다 내려온 지 얼마 안 돼서 무엇이 탐지되면 소나팀의 긴장도는 급격히 올라간다. 209급 디젤 잠수함은 배터리로 항주할 때는 워낙 조용해서 소음이거의 없다. 209급이 가장 취약할 때가 수면위로 올라가 디젤엔진을 가동할 때였고, 하필 그때 주변에 붠가 나타난 것이다.
“소음이 커지고 있습니다. 가속하고 있습니다! 이놈은 아무래도 잠수함 같습니다. 아! 원자력 잠수함입니다.”
최태훈 중사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모니터에 나타난 음문 스펙트럼은 원자력 잠수함의 추진특성인 단속적 파동음을 표시하고 있었다. 그것은 원자로가 맥동하는 소리인 것이다. 최태훈 중사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모니터를 보며 권혁준 대위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권혁준 대위가 인터폰을 집어들었다. 이상을 발견했으니 함장에게 보고해야 했다. 그리고 내무반에서 쉬고 있는 나머지 음탐요원들도 불러야 했다. 아무래도 일손이 부족했다. 이때 경악에 찬 최태훈 중사의 목소리가 그의 귀를 때렸다.
“음탐관님! 함수소나에도 뭔가 잡힙니다.”
“뭐야?”
남쪽에도 다른 잠수함이 있었다. 권혁준 대위가 고개를 돌리자 함수소나에 연결된 또 다른 소나컨솔에서 새로운 음파의 접촉상태를 알려주는 부호가 깜빡이고 있었다. 두 사람이 예인소나에 집중하느라 함수소나의 탐지경보를 보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나자 컨소링 스스로 경보음을 발했던 것이다. 권혁준 대위가 잠시 멍청하게 바라보다가 허둥지둥 다시 인터폰을 집어들었다.
9월 14일 02:45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 북쪽 59km
러시아 해군 공격원잠 다닐 모스코프스키, 사령실
통신반이 작업중인 컨솔에서 긴급명령이 떨어졌음을 알려주는 표시등이 번쩍거렸다. 다행히 지금 잠수함이 부상할 필요는 없었다. 수심 100미터를 항주중인 러시아 공격원잠 다닐 모스코프스키(Daniil Moskovsky)의 사령탑 후방에 길게 늘어뜨려진 통신용 케이블을 통해 명령문이 수신되고 있었다.
발신자는 근처에서 작전중인 동료 공격원잠인 판터였다. 프린트된 명령문을 받아든 통신사관은 판터가 가까이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수중통신을 이용하지 않았을까 하고 갸웃거렸다. 통신사관은 동료함이 구태여 절차가 복잡한 인공위성을 경유하는 통신으로 보낸 것에 의아했지만 그가 궁금해할 필요는 없었다. 통신사관은 함장에게 통신문을 전달하기 위해 재빨리 사령실로 걸었다.
“이게 뭐야?”
통신문을 받아 읽던 이고르 코발레프스키(Igor Kovalevsky) 대령의 표정이 금세 폭발할 것처럼 붉게 변했다. 함장은 신경질적으로 통신문을 구긴 다음 부함장을 불렀다.
부함장 블라디미르 발마셰프(Vladimir Balmashev) 중령이 엉거주춤 다가가자 코발레프스키 대령이 구겨진 통신문을 발마셰프에게 건넸다. 발마셰프가 통신문을 읽는 동안 코발레프스키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부함장이 다 읽고 난 뒤에도 함장은 입을 꾹 다문 채 씩씩거리기만 했다.
통신문을 다 읽고 나서 고개를 쳐든 발마셰프 중령은 함장이 아무 말도 없었지만 함장이 내리는 무언의 명령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다닐 모스코프스키의 소나팀은 뒤로 접근 하는 정체불명 잠수함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거리도 멀지 않은 10km 정도였다. 아예 모르고 있었다면 그나마 나았다. 동료함 판터에서 발견해 통보해줘서 알게 된 것이 더 창피했다. 이런 중대한 실수를 한데다가 다닐 모스코프스키의 실수가 동료함에 완전히 드러났기 때문에 함장은 도저히 소나팀을 용납할 수 없었다. 함장의 분노가 폭발위험 수위에 이른 것을 알아차린 부함장이 서둘러 나섰다.
“우현 전타! 방위 0-0-0까지 돌린다!”
“조함은 내가 하겠네. 자네는 소나팀으로 가봐!”
발마셰프 중령이 후방에 있는 정체불명의 잠수함을 향하도록 조함을 명령하는 순간 코발레프스키가 제지했다. 조함은 함장이 알아서 할테니 부함장을 소나실로 가서 그곳 요원들을 족치라는 뜻이었다. 부하들을 다그치는 일을 함장이 직접 할 필요는 없었다. 입과 손을 더럽히는 것은 2인자가 떠맡게 마련이었다.
9월 14일 02:50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 북쪽 69km
한국 해군 잠수함 최무선, 음탐실
휴식을 취하던 음탐요원들이 모두 몰려나오자 그렇지 않아도 비좁은 음탐실이 시장바닥처럼 북적거렸다. 함장 조성진 중령과 부함장 한형석 소령, 작전관 오필재 소령까지 이곳으로 몰려와 있었다.
“목표 34의 방위는 공공오(0-0-5)도, 거리는 약 7km로 판단됩니다만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목표 35의 방위는 백팔십오(1-8-5)도 거리는 약 12km입니다.”
“남북으로 샌드위치가 됐군. 어느 놈들이야? 양키들인가?”
조성진 중령이 심드렁하게 물었다. 함장은 한국 영해를 제집 화장실처럼 들락거리는 나라는 한국전쟁 때 도와준 우방이랍시고 거들먹거리는 미국밖에 없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예상은 정확하지 않았다.
동해는 동해바다 고유의 특성상 잠수함의 천국이다. 동해는 수심이 깊고 해저지형이 복잡하며 동해에서 사방으로 흐르는 해류가 무척 다종다양하다. 비슷한 위치에서도 곳에 따라 해류가 반대 방향으로 흐를 수 있으며, 수심에 따라 해류의 성질과 방향이 다른 경우가 많다.
이것은 동해의 입구인 대한해협이 너무 좁은데다, 울릉도와 독도, 오키제도를 비롯한 동해의 섬들, 그리고 바다로 확장된 일본의 대륙붕 때문이다. 해양학자달은 아직도 동해에서 흐르는 해류의 가짓수와 각각의 성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동해를 흐르는 가장 중심적인 해류인 쓰시마 난류가 동해로 들어와서 세 갈래로 나눠지는지, 아니면 한 줄기만으로 뱀처럼 꿈틀대며 진행하는지 아직 결론이 아지 않았을 정도였다.
이런 바다에서 조용히 물속을 항해하는 잠수함을 탐지하기란 상당히 어렵다. 동해는 이렇듯 잠수함이 활동하기 무척 좋은 조건이기 때문에 미국과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강국들의 잠수함들이 득시글거린다. 여기에 북한의 대남침투용 소형 잠수정들까지 가세하면 잠수함 밀도는 대단히 높아진다. 대부분 구식 장비에, 그것도 필요한 숫자도 갖추지 못한 한국 해군이 동해를 통제하기란 쉽지 않았다.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기기적 특성이 자세히 파악되지 않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함장의 질문에 권혁준 대위가 대답했다. 조성진 중령은 여전히 팔짱을 낀 채 소나팀의 작업을 지켜보았다. 이 상태에서는 자칫 포위당해서 옴짤달싹 못할 우려가 있었다. 실제 교전상황은 아니지만, 일단 잠수함들끼리 추적전이 벌어지면 양측 잠수함들이 교전상황에 준해 행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가능한 이쪽의 존재를 감추고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수집해야 하기 때문이다.
평상시에 잠수함이 외국 잠수함을 만나 펼치게 되는 정보수집 활동을 하는 동안 일반적으로 준수되는 규칙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는 수중에서의 공방전은 마치 심판이 없는 축구와 같다. 모든 게 거친 반칙 투성이였다. 그래도 편파판정을 일삼는 심판이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 조성진 중령은 아무래도 두 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수면 위에서 외국 수상함정들끼리 스칠 때면 멋들어진 대함경례를 한다. 대함경례는 해군의 전통적인 우호 표시 방법인데, 승무원들이 갑판 위에 한 줄로 서서 거수경례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방국이 분명해도 외국 잠수함들끼리 만나면 에외였다. 음문특성 한 조각이라도 얻으려고 서로 숨고 추격하는 곳이 묵속, 비정한 잠수함들의 세계였다. 특히 미국 해군에게 악명높은 최무선은 지금까지 미국 잠수함들로부터 특별대우를 받아야 했다.
“뒤에 따라오는 놈을 찍자. 부장! 조함을 지휘하게. 공공오(0-0-5)에 있는 잠수함을 먼저 잡는다.”
“예! 알겠습니다. 키 오른편 전타! 공공오도 잡아!”
한형석 소령이 대답과 동시에 음탐실에서 빠져나가며 사령실 쪽을 향해 외쳤다. 가까운 거리라 조함병들이 복창하며 바로 움직였다. 박재석 상사가 스위치에 손을 올린 채 함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예인소나를 감겠습니다.”
180도에 가까운 변침을 할 때는 예인소나를 감는 것이 안전하다. 자칫 와이어가 잠수함 스크루에 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박재석 상사가 함자의 승인을 얻은 다음 예인소나를 감기 위해 윈치를 작동시켰다.
처음에는 예인소나가 부드럽게 감겼다. 그러나 갑자기 사령탑 후방쪽에서 윈치 감기는 소리가 날카롭게 들리기 시작했다. 화들짝 놀라 음탐실로 들어온 부함장 한형석 소령이 박재석 상사를 몰아세웠다.
“음탐장! 귀환하면 예인소나부터 정비해서 보고하게.”
“예, 알겠습니다.”
놀란 박재석 상사가 잽싸게 스위치를 내리며 대답했다. 함장 조성진 중령은 음탐반원들에게 핀잔을 주지는 않았지만 표정이 굳게 변했다. 잠수함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은밀성이다. 그런데 지금 최무선함은 그 무기가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박재석 상사가 서둘러 몇 가지 조작을 마치고 다시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나 스위치를 누르기 무섭게 귀가 따가울 정도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다가 잠시 후 그 소리가 딱 멈췄다. 음탐실에 있던 승무원들이 눈살을 잔뜩 찌푸리다가 갑자기 눈들이 동그래졌다.
“예인소나가 감기지 않습니다!”
박재석 상사가 허둥지둥 윈치의 작동스위치를 내리고 다시 작동시켰다. 그러나 예인소나는 뭔가에 걸렸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몇 차례 스위치를 켰다가 끄기를 반복했지만 윈치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만둬. 놔두게.”
함장이 윈치 조작을 그만두라고 낮게 말했다. 당장 급한 일부터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음탐반, 경위보고서 작성해!”
옆에 있던 한형석 소령이 참지 못하고 다시 발끈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권혁준 대위와 박재석 상사, 그리고 나머지 음탐수들이 시무룩해졌다.
9월 14일 03:00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 북쪽 74km
러시아 해군 공격원잠 K-317 판터, 사령실
“수중에 돌발음! 거리 3,000미터! 목표는 본함 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음탐장 유리 포트레소프 상사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면서도 계속 헤드폰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조금 전에 난 소리는 파장이 너무 높아 흡사 쇠못으로 유리를 긁는 소리 같았다. 하지만 그 소리는 곧 멈췄고 목표가 내는 소음 수준은 다시 상당히 낮아졌다.
“한국 잠수함일까?”
음탐장 뒤에 서있던 부함장 레오니드 카친스키(Leonid Kazinsky)충령이 기대감이 가득 찬 질문을 던졌다. 넓은 동해에서 한국 해군의 장문휴함을 발견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뜻밖에도 임무가 빨리 종결될 수도 있다는 희망 섞인 질문이었다. 그러나 아직 확실히 판단할 수 있는 소음 수준은 아니었다. 상대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아직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감속한다. 출력 15퍼센트로 조정하라!”
함장 알레세이 스트루베(Aleksei Struve) 대령은 호기심이 일었지만 억제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공세적으로 접근하여 괴롭히는 것보다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제대로 판단하는 문제가 더 시급했다.
상대방의 정체는 일단 한국 잠수함으로 심증이 굳어지고 있었다. 소나컨솔에서는 이미 상대방이 내는 소리가 저장되고 있었다. 상대방의 음문 패턴은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지만 미국의 공격형 원자력 잠수함이나 일본의 대형 디젤 잠수함과는 상당히 다르고 훨씬 더 조용했다.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골치 아픈 한국 잠수함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함장은 상대방이 제발 한국의 장문휴함이길 바랐다.
“다닐은 통신을 받았겠지요?”
카친스키 중령이 동료 공격원잠 다닐 모스코프스키로부터 아직 움직임이 없자 조심스럽게 함장을 돌아보았다. 함장은 바로 뒤에 한국 잠수함을 두고도 발견하지 못한 동료함을 생각하며 한심하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한때 함장도 슈카(Shuka)급 공격원잠에 탑승한 적이 있었다. 슈카급은 나토에서 코드네임 빅터III를 부여한 러시아 공격원잠이다. 빅터III급은 수중 운동능력과 중숙성이 비교적 뛰어난 잠수함이지만 아쿨라급에 비해서는 확실히 뒤처졌다.
함장은 외국 잠수함들과의 접촉기회가 많은 동해에서 작전을 할 바에는 이왕이면 조용한 킬로급 디젤 잠수함과 협동작전을 하는 쪽이 차라리 더 낫지 않았나 하고 아쉬워했다. 목표인 한국의 신형 잠수함은 조용하기로 소문이 나 있어서 함장의 아쉬움은 더욱 컸다.
* * *
“놈이 가속합니다. 거리2,000미터, 속도 15노트. 계속 가속합니다.”
“우리를 찔러보겠다는 거야. 그리고 지나쳐서 도망갈 생각이군. 지나치는 즉시 놈의 꼬리를 물겠다. 준비하게.”
포트레소프 상사가 스포츠 중계하듯이 보고하자 팔짱을 낀 함장이 느긋하게 한국 잠수함이 가속한 의도를 설명했다. 이럴 때에는 속도가 빠른 원자력 잠수함이 훨씬 유리했다.
잠수함기리의 탐색전은 경우에 따라서 매우 노골적이고도 공격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자동차 폭주족들이 거리에서 서로지지 않으려고 질주하는 것과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잠수함은 그야말로 물밑의 거대한 공간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함정이다. 길바닥에서 꼬물거리는 조그마한 자동차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금세 연료가 떨어져서 파리떼처럼 지상에 착륙할 수밖에 없는 비행기들과도 다른 점이 있었다. 그래서 스트푸베 대령은 잠수함이 훨씬 멋지다고 생각했다.
“거리 1,000미터. 속도 20노트.”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는군. 부함장! 속도를 더 줄여라!”
스트루베 대령이 손에 까지를 끼고 우드득 거리는 소리를 내며 명령을 내렸다.
“예! 알겠습니다.”
카친스키 중령이 대답하고 나서 조함요원들에게 다시 지시를 내렸다. 속도가 크면 클수록 선회할 때의 반경은 커지게 된다. 덩치가 큰 아쿨라급 공격잠수함 판터는 기동성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목표의 함종을 확인할 수 있나?”
함장은 임무를 잊지 않았다. 음탐수들도 이미 필사적으로 상대방의 함종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집된 음문을 데이터 베이스와 대조하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이것은 자동화 정도가 낮은 러시아 잠수함들의 약점이었다.
“함장님, 장문휴함은 연료전지를 사용하는 212급이라고 들었습니다. 조금 전에 부상해서 디젤엔진을 가동하는 것을 보니 저놈은 혹시 209급이 아닐까요?”
부함장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레오니드 카친스키 중령도 상대 한국 잠수함이 장문휴함이길 바랐지만 아까의 일을 생각하지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다. 일반적인 디젤 잠수함은 수면으로 부상한 다음 디젤엔진을 가동하여 축전지를 충전시킨다. 그러나 연료전지를 사용해 직접전기를 생산하는 212급은 부상해서 시끄러운 디젤엔진을 가동시킬 필요가 없었다.
“무슨 소리! 평시 작전에서는 212급도 부상해서 디젤엔진을 가동시킨다. 안전해역에서 액화산소를 낭비할 멍청이들은 없어.”
함장 스트루베 대령이 딱 잘라 부함장의 주장을 부정했다. 경험 많은 함장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연료전지 덕택에 수중 항행능력이 원자력 잠수함에 맞먹는다는 212급이라도 연료전지는 부상하기 어려운 상황일 때 주로 사용했다.
“거리 500...... 450...... 400......”
한국이 사용하는 독일제 디젤 잠수함이 세계에서 조용하기로 손꼽히는 잠수함이라 할지라도 20노트가 넘는 속도에서는 시끄럽게 마련이었다. 더구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소리??? 더욱 명확히 들렸다.
“한국의 209급입니다!”
한국 잠수함이 판터의 옆을 통과하는 순간 포트레소프 상사가 고개를 번적 들며 보고했다. 소나실 내부에 있던 승무원들이 잔뜩 실망하며 한숨을 내뱉었다. 긴장감이 사라진 포트레소프 상사가 조금전과는 달리 시큰둥하게 보고했다.
“통과했습니다!”
“좌현 최대로! 급속 변침한다!”
스트루베 대령이 짜증이 가득 섞인 명령을 내리자 판터가 왼쪽으로 서서히 기울었다. 속도가 높지 않아서 기울기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209급이라면 저 속도로 놈은 기껏해야 한두 시간이다.“
스트루베 대령이 부하들에게 들리도록 큰 소리로 외쳤다. 맞는 말이었다. 디젤 잠수함은 속도를 높일수록 에너지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리 소모된다.
실망하는 표정이 역력한 스트루베 대령은 상대가 목표로 했던 장문휴함이 아니더라도 그에게 대드는 핸국 잠수함을 혼내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한국 209급 잠수함에 관한 정보를 최대한 수집하여 보고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장문휴를 목표로 했지만, 209급 잠수함의 음문정보라도 짭짤한 부수입이 될 만했다.
함장은 한국 잠수함이 손아귀에 든 이상 절대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함장은 한국 잠수함이 한국 영해 안으로 도망가 상부에 지원을 요청할 때까지 철저히 괴롭혀줄 심산이었다. 그리고 이 기회에 한국형 209급 잠수함의 성능도 철저히 파악하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국 잠수함들과 이런 위험한 놀이를 몇번 해본 함장은 지난 일들을 생각하며 씨익 웃었다. 소나 성능이 미국 원잠에 비해 약간 떨어질뿐, 운동성과 속도 면에서 아쿨라를 능가하는 잠수함은 없다고 함장은 자신만만했다.
“212급 장문휴라는 놈은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거야?”
함장 스트루베 대령은 209급 최무선함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말투였다.
9월 14일 03:05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 북쪽 72km
한국 해군 잠수함 최무선, 사령실
“소련, 아니, 러시아 놈들 같습니다.”
음탐장 박재석 상사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밝혔다. 고속항주시에는 소나의 효율이 떨어지므로 박재석은 잠수함이 저속으로 항주하지 않는 것이 내심 아쉬웠다. 그러나 이미 상대방 잠수함의 특성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난 뒤였다.
“추적하시겠습니까?”
부함장 한형석 소령이 함장에게 물었다. 러시아 원자력 잠수함과의 접촉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러시아 극동함대는 동해라는 비교적 좁은 해역의 초계에는 디젤 잠수함을 집중적으로 투입하고 있었다. 함장 조성진 중령은 러시아 공격원잠의 거대한 사령탑과 특유의 로켓 같은 함미 부분을 떠올렸다. 이 특이한 방향타는 예인소나를 수납하는 공간으로 알려져 있었다.
“아직 기다려. 우리 예인소나가 문제군. 예이소나가 지나친 다음에 변침한다.”
조성진 중령은 아직 1,500미터나 늘어지 예인소나가 걱정되었따. 잠수함 뒤로 길게 늘어뜨려 수중에서 나는 조그마한 음타 정보도 놓치지 않는 예인소나는 잠수함이 급격히 기동할 때는 장애가 된다.
함장은 오래간만에 접촉한 러시아 잠수함을 그대로 놓아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고장난 예인소나 윈치를 다시 한 번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예인소나에서 목표 35를 재포착했습니다.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습니다.”
아까 남쪽에 있던 또 다른 잠수함이 이쪽으로 방향을 돌린 모양이었다. 원자력 잠수함 두 척이 사이좋게 최무선을 쫗아오고 있었다. 둘은 같은 편이 분명했다. 한형석 소령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함장에게 물었다.
“로스케가 둘이나 되는군요. 지원을 요청할까요?”
“뭘 지원해달라고 하지? 관두게. 여긴 공해상이야. 우리가 개별적으로 추적하는 쪽이 나을 것 같아.”
부함장의 의견을 묵살한 조성진 중령은 상대가 러시아 잠수함임을 확인하자 강한 호기심이 일었다. 해군 작전사령부에 보고할 때는 사후보고나 접촉보고로 적당히 올리기로 작정했다. 더구나 공해상이고 거리도 떨어져 있어서 아군의 빠른 지원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함장은 이 기회에 러시아 잠수함을 제대로 분석해보고 싶었다. 한국 해군에 러시아 핵잠수함에 대한 정보는 너무 적었고, 정리도 되어 있지 않았다. 조성진 중령의 굳은 표정 속에 숨겨진 호기심과 장난기를 읽은 한형석 소령은 씨익 웃은 다음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함장님. 목표 34가 예이소나를 통과했습니다.”
권혁준 대위가 함장이 기동안 기다리던 대답을 다급하게 보고했다.
“그래! 키 오른편 전타. 백팔십공(1-8-0) 다시 잡아!”
“키 오른편 전타! 백팔십공도!”
조함을 맡은 윤순하 하사가 복창하며 키를 오른쪽으로 꺾었다. 심심했던 초계임무에서 뭔가 쫓을 일이 있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었다. 윤순하 하사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고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한국 잠수함의 성능이 최고라고 교육받은 승조원들에게 러시아 잠수함은 무서울 것이 없었다. 원자력 잠수함과 디젤 잠수함을 비교할 때 불리한 점과 유리한 점이 극단적으로 대비되지만, 자신만만한 초임 하사관은 212급의 장점만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9월 14일 03:07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 북쪽 72km
러시아 해군 공격원잠 K-317 판터, 사령실
“놈도 침했습니다! 오른쪽으로 돌고 있습니다.”
“이놈들이 우리를 겁내지 않는군요.”
포트레소프 상사의 보고를 듣고 부함장 카친스키 중령이 재미있다는 듯이 함장에게 한 마디 했다.
이쪽이 두 척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텐데도 도전적으로 다가오는 한국의 소형 잠수함을 보니 약간 우습기도 했다. 함장 스트루베 대령도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나팀! 놈의 음문 특성은 완전히 파악했나?”
함장의 질문에 소나팀장 쉬비코프스키 대위가 모니터에 나타난 음문을 자료와 다시 한 번 대조하며 보고했다.
“예! 다른 나라들의 209급과는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확실히 한국의 장보고급입니다.”
“212급일 가능성은 전혀 없나?”
함장은 아직도 못내 아쉬워했다. 상대 잠수함이 한국형 209급의 음문특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지만 212급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들은 209급과 212급의 음문이 어떻게 다른지 정보를 갖고 있지 못했따.
“가능성은 남아 있지만 부정적입니다. 음문 패턴은 전형적인 한국형 209급, 즉 장보고급입니다. 음문자료에 따르면 목표는 장보고급 3번함 최무선과 거의 흡사합니다.”
소나팀장 쉬비코프스키 대위가 함장의 질문에 또박또박 대답했다. 쉬비코프스키는 추정한 부분과 모르는 부분을 확실하게 구분하고 있었다.
바로 옆을 지나친 이상, 소나로 수집한 음문은 확실했다. 쉬비코프스키도 상대방 한국 잠수함이 212급일 가능성을 열어두었지만 그럴 확률은 희박했다.
러시아 잠수함 승무원들은 내심 아쉬웠다. 미국과의 합동훈련에서 스타로 떠오른 212급 잠수함을 확인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이것은 잠수함 승무원으로서의 개인적인 욕망이기도 했다. 하지만 머릿속에 계속 담아둘 일은 아니었따.
소나팀 뒤에 서 있던 스트루베 대령이 다리를 약하게 떨었다.
- 끼이이이이익!
갑자기 선체를 진동시키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들려왔다. 선체 후방이어따. 스무원들이 일제히 눈을 찡그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소나팀원들은 엄청난 고통을 참으면서도 무슨 일인지 파악하려고 애썼다.
잠수함의 어느 부위에 고장이 생긴 줄 알고 놀란 함장이 황급히 물었다.
“무슨 일인가?”
“스크루에 뭔가 걸렸습니다! 이런!”
항주하던 잠수함의 속도가 약간 떨어지고 소리가 나는 곳의 위치를 파악한 부함장이 사태를 정확히 보고했다. 부함장은 보고하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소리는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어떻게든 빨리 손을 써야 했다.
“동력 순간 정지!”
“동력 순간 정지!”
잠항관이 동력차단 스위치를 누르자 순간적으로 메인 샤프트와 추진기를 연결한 커다란 원통형 클러치가 작동하며 양쪽으로 이어지는 동력을 차단했다. 그러자 소리가 작아지며 곧 멈췄다.
9월 14일 03:10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 북쪽 73km
한국 해군 잠수함 최무선, 사령실
갑자기 들려온 요란한 소리에 음탐장 박재석 상사가 이를 악물고 오만상을 찌푸렸다. 그다지 큰 소리는 아니었다. 예인소나에 뭔가 걸려도 그리 큰소리는 안 날 텐데 하필 걸린 곳이 소리가 증폭되는 예인 소나의 수신기 부분이었다.
박재석 상사는 헤드폰을 벗고 잠시 동안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고개를 흔들어댔다. 옆에 있던 권혁준 대위도 마찬가지였다. 조성진 중령은 무슨 일인지 묻기 전에 그들의 고통에 찬 몸부림이 끝나기를 기다려야 했다.
“무슨 일인가? 갑자기 왜 그래?”
부함장이 다급하게 묻자 권혁준 대위가 먼저 정신을 차렸다. 서둘러 고개를 들고 소리가 들려온 소나가 어느 것인지 모니터를 통해 확인한 다음 보고했다.
“예인소나입니다. 목표 34에 예인소나가 걸린 것 같습니다.”
“스크루에 꼬인 것 같습니다!”
음탐장 박재석 상사가 덧붙였다.
“뭐라고? 목표 34의 스크루에 예인소나가 걸렸다고?”
부함장이 먼저 어이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러자 어깨를 잔뜩 움츠린 권혁준 대위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보고했다.
“그렇습니다. 목표 34는 지금 동력을 차단하고 정지했습니다.”
최무선이 선회중이라 예인소나가 러시아 잠수함의 스크루에 빨려 들어간 상태였따. 계속 움지기면 케이블에 묶여서 오도가도 못할 것이 틀림없었다.
“젠장! 예인소나가 결국 속을 썩이는군.”
조성진 중령도 답답하다는 듯 한 마디하면서 부함장에게 더 이상 소나팀원들을 추궁하지 말라는 뜻으로 눈짓을 했다. 급한 불을 끄는 동안에 누가 불을 냈는지 따질 필요는 없었다.
특히 부하들을 다룰 때는 조심해야 할 부분이었다. 그들은 지휘관의 감정상태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조성진의 눈짓을 읽은 한형석 소령도 더 이상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복귀해서는 징계위원회에 확실히 회부할 작정이었다.
“함장님! 놈의 특성은 아쿨라급에 가깝습니다.”
“아쿨라라고?”
그제야 소나로 접수한 러시아 잠수함의 특성을 파악해낸 박재석 상사가 다시 함장을 돌아보았다. 예인소나 사고로 제대로 분석해서 보고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아쿨라라...... 재미있게 됐군. 음탐장! 예인소나의 어느 부분에 걸렸나?”
“소나수신기가 배열된 쪽입니다. 45번까지는 아직 작동하고 있습니다.”
조성진 중령이 차분하게 질문하자 음탐반 요원들도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예인소나는 소나수신기가 길게 일렬로 결합되어 있다. 45번수신기라면 대략 1/3 정도 위치였다. 나머지가 스크루에 걸렸으니 2/3는 완전히 단선되어 작동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됐어, 다행이군.”
“예? 다행이라뇨?”
조성진 중령이 표정을 펴며 박재석 상사의 어깨를 두드리자 한형석 소령이 의아하다는 듯이 반문했다. 값비싼 예인소나가 못 쓰게 됐는데 함장이 괜찮다니,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예인소나를 끊어버릴 수 있잖아? 그럼 된 거지. 안 그래? 잘됐다. 놈이 정지해 있을 때 끊고 빠져나간다. 침로변경! 키 왼편 20도! 공팔십공(0-8-0)도까지 잡아.”
“예, 알겠습니다. 키 외편, 타각 20도, 방위 공팔십공도!”
부함장이 어리벙벙해하는 사이에 윤순하 하사가 우렁차게 복창하며 다시 키를 꺾었다.
9월 14일 03:15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 북쪽 72km
러시아 해군 공격원잠 K-317 판터, 사령실
“앗, 케이블에 걸렸습니다! 놈이 예인소나를 우리 스크루에 감았습니다.”
포트레소프 상사가 이제야 원인을 파악하고 잔뜩 분노한 채 보고했다. 스크루에 한국 잠수함의 예인소나가 걸려 있는 현재 상황을 한국 잠수함이 의도적으로 도발한 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뭐야? 예인소나에? 추진기의 현재 상태는? 어느 쪽 추진기야? 부함장! 기관실에 가서 직접 점검하게.”
“예! 알겠습니다.”
잠시 당황한 스트루베 대령이 서두르자 카친스키 중령이 재빨리 기관실을 향해 뛰었다. 스크루에 예인소나가 걸리다니, 기가 막혔다. 스크루가 상하기 전에 빨리 조치를 취해야 했다.
“왼쪽 스크루입니다!”
잠항관 파벨 악셀로드(Pavel Axelrod) 소령이 허겁지겁 대답했다. 그도 이런 일을 처음 당해보는지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 * *
판터의 스크루는 두 개였다. 판터뿐만이 아니라 빅터III급을 비롯한 대부분의 러시아 공격원잠, 전략미사일 원잠 등도 스크루는 두 개다. 하지만 판터의 경우는 동력이 전달되는 메인 샤프트는 1축이고 최종 연결 단계에서 2개의 스크루를 회전시킨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러시아가 고정밀도의 대형 스크루를 제작하는 기술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직경이 짧은 두 개의 스크루를 써야 했는데, 두 개짜리 스크루는 하나짜리 스크루보다 훨씬 더 큰 소음을 발생시키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1980년대 중반 일본의 도시바가 당시 대공산권 수출통제위원회인 코콤(COCOM)의 금수규정을 어기고 고성능 다출 밀링머신을 러시아에 수출해서 말썽을 빚은 적이 있었다. 미국은 도시바에 압력을 가하고 대미수출을 금지시키는 등 강경한 조치를 취했는데, 그 원인은 바로 잠수함 스크루였따.
컴퓨터로 제어되는 일본제 고성능 밀링머신은 복잡한 형상의 스크루를 제작하는데 필수적인 장비였다. 구 소련은 이 기계들을 이용하여 기술적으로 훨씬 향사된 정밀 스크루를 제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어느날 갑자기 구 소련 잠수함들의 소음 수준이 급격히 감소했따.
스크루에서 발생하는 추진음들을 수십년 간 데이터 베이스화하여 러시아 잠수함들을 추적하는 핵심자료로 비축해 왔던 미국은 구 소련 잠수함 추적작전에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구 소련 잠수함들의 유일한 단점이며 아킬레스건이었던 소음 수준이 대폭 낮아지자 핵전 가능성에 항상 대비해온 미국은 당연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당시에 일본 도시바의 도움이 전적인 원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이견도 많았다. 일본이 제공한 밀링머신은 도구일 뿐, 기본적인 설계와 제작기술은 소련의 첩보활동을 인해 미국 내에서 이미 절취당했다는 것이다.
미 해군 대서야사령부에서 근무하던 하급 무관인 존 워커 준위가 20여년 동안 지속적으로 해군의 정보를 구 소련으로 빼돌렸다. 구 소련은 이에 힘입었던 것이지, 결코 일본이 제공한 밀링머신에 의해 잠수함의 설계기술이 급성장한 것은 아니었따는 의견이다. 아무튼 이견이 많기는 하지만 스크루의 가공기술과 스크루가 발생시키는 소음은 잠수함 작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임에는 틀림없었다.
각국 잠수함이 진수되는 보도사진에서 어뢰발사관 및 소나가 있는 함수와 스크루가 달린 함미에 천조각이 덮여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이것으로 봐도 스크루가 상당한 수준의 군사기밀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함장님! 부함장입니다. 기관실입니다. 역시 왼쪽 스크루에 이상이 있습니다.
“동력을 배터리로 전환한다.”
- 알겠습니다. 동력, 배터리로 전환!
잠시 고민한 끝에 스트루베 대령이 명령을 내렸다. 보조동력인 배터리와 전동기를 사용하여 감긴 와이어를 풀려는 것이다.
“최저속으로 스크루를 역전한다. 실시!”
- 최저속 역전!
부함장이 복창하고 곧이어 판터의 보조전동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느릿느릿 움직였지만 소음만 요란할 뿐 스크루에 감긴 와이어는 옴짝달짝하지 않았다. 몇 회의 시도 끝에 부함장의 목소리가 다시 인터폰을 울렸다.
- 불가능합니다, 함장님. 더 꼬이고 있습니다!
“제기랄!”
스트루베 대령이 쿵 소리가 날 정도로 바닥을 발로 찍었다. 잠수함에 탑승하고부터 사라졌던 그의 어릴 적 버릇이었다.
“부상한다! 망할 놈의 한국 놈들. 부함장! 사령실로 돌아오라.”
- 옛! 사령실로 가겠습니다.
한국 잠수함을 추적하지도 못하고 스크루에 손상까지 입다니, 함장은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운용비용은 물론이고 제대로 된 급식까지 어려운 러시아 태평양함대 사령부에서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함장님! 소나실입니다. 놈이 가속하고 있습니다!”
“그래? 꼬리가 물렸으니 발버둥치겠다는 건가?”
이쪽이 불리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국 잠수함이 잡아당기면 잡아당기는 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손상받은 왼쪽 추진기 대신 오른쪽만 사용하여 움직이면 족겠지만 아무래도 동력을 제대로 얻기 어려울 것이다. 왼쪽 스크루로 이어지는 클러치를 작동시켜 동력을 완전히 차단했다. 그리고 판터는 오른쪽 추진기만을 사용하며 서서히 물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9월 14일 03:20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 북쪽 74km
한국 해군 잠수함 최무선, 사령실
최무선이 서서히 물속을 항주하고 있었다. 항형석 소령은 불안하게 사령실에서 서성거렸다. 예인소나가 연결된 강철 케이블은 그다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물론 어떤 일본 만화에 나온 것처럼 기다란 통신용 케이블을 늘어뜨린 후 상대방의 스크루에 감아 거대한 핵잠수함을 심해로 끌고 들어가는 정도의 상황은 당연히 벌어질 수 없다.
그렇지만 수천 미터에 이르는 기다란 예인소나를 끌기 위해 상당히 강하게 만들어진 케이블이었따. 만약 반대쪽으로 억지로 움직였다간 사령탑 후방에 있는 예인소나실 전체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다. 그것이 한형석 소령의 거정이었따.
“예인소나가 몇 미터나 풀려 있었나?”
“약, 1,500미터입니다.”
“그래? 그럼 시간이 다 됐군.”
힐끗 손목시계를 들여다본 조성진 중령이 대꾸하고 수초가 지나자 둔탁한 소리가 최무선함 뒤에서 울렸다.
“끊어졌습니다!”
“간단하군. 나머지 예인소나를 빨리 점검하게.”
무덤덤한 목소리로 조성진 중령이 명령했다. 강철 와이어 부분이 걸린 게 아니라 예인소나의 연결부분이 걸린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따.
“40번 소나 트랜스듀서까지는 작동합니다. 부분적으로는 사용할 수 있겠습니다, 함장님.”
박재석 상사가 보고하며 부함장 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부함장은 아직도 화가 안 풀린 모양이었다. 하긴, 예인소나는 매우 고가의 장비이므로 문책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박재석 상사가 부함장의 눈치를 보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조성진 중령이 다시 입을 열었다.
“부장, 예인소나는 고로케들이 공격적인 행동을 해서 끊어진 것이다, 알겠나?”
“예? 예! 알겠습니다.”
무슨 뜻인지 몰라 잠깐 머뭇거리던 항형석 소령이 곧 말뜻을 알아 채고는 대답했다.
“그럼 됐지? 이제 독오른 고로케들을 잠시 피하자.”
승무원들이 잠시 킥킥댔다. 러시아 잠수함을 로스케라는 말 대신 ‘고로케’라고 부른 것이 함장의 실수인지, 농담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함내에 팽배했던 긴장감이 일순 사라졌다. 음탐실 요원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을 보며 눈을 부라리던 한형석 소령이 함장의 명령에 따라 지령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침로 고정! 9노트로 증속한다.”
9월 14일 03:25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 북쪽 72km
러시아 해군 공격원잠 K-317 판터, 사령실
“케이블이 끊어졌습니다. 놈이 의도한 대로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스크루는 아직 움직이지 않습니다.”
잠항관 파벨 악셀로드 소령이 어쩔 줄 모르며 함장에게 보고했다.
“긴급수리팀을 대기시켜! 잠망경 심도에서 수중작업을 실시하겠다.”
스트루베 대령은 담배를 꺼내 물면서 큰 손상이 아니기만을 바랐다.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었다. 기관실로 걸어간 스트루베 대령은 잠수반 요원들이 탈출구 해치 쪽으로 장비와 수리기구를 옮기는 것을 지켜보았다. 함장은 미리 잔소리를 해두어야겠다고 마음먹어TEk. 그때였다.
“함장님, 통신실입니다.”
기관실 벽에 붙어 있던 인터폰을 받은 기관병 하나가 함장을 돌아보며 인터폰을 건넸다. 소음 때문에 수신호로 의사소통을 해야하는 구식 엔진은 아니지만, 러시아제 기계는 뭐든지 덩치도 크고 소음도 컸다. 정숙성을 생명으로 하는 잠수함 엔진도 마찬가지라고 투덜거리며 함장이 인터폰을 들었다.
“뭔가?”
- 다닐 모스코프스키가 수중통신을 보내왔습니다. 어떻게 된 건지 묻고 있습니다.
“묻긴 뭘 물어? 여긴 상관 말고 당장 까레이스키 잠수함을 추적하라고 해!”
버럭 화를 낸 스트루베 대령이 인터폰을 난폭하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또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다.
9월 14일 03:39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시 남동쪽 22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장교내무반
보였다.
드넓은 설원을 수만 마리의 말이 가득 메웠다. 말떼는 털옷을 입은 사람들의 고삐에 이끌려 눈보라를 헤치고 동쪽으로 뛰다시피 걸었다. 수많은 말과 사람들이 얼어붙은 강을 건너자 단단히 언 얼음이 유리깨지는 비명 소리를 냈다. 수만의 말과 사람이 뛰는 길옆 자작나무들에서 그동안 쌓인 하얀 눈이 쏟아져 내렸다. 이들이 지나간 검은 흔적은 하얗게 눈이 내린 평원과 뚜렷이 대비되었다.
체구가 작은 말들은 갑주를 걸치고 코에서 김을 내뿜으며 나아갔다. 말 한 마리마다 기마대가 한 명씩 따라 뛰었다. 이들은 주로 북방 유목민의 털옷을 입었지만 복장이 통일되지는 않았다. 머리 모양과 얼굴 생김새도 제각각이었다.
대열에는 거란족뿐만 아니라 돌궐족도 있고 실위족, 해족, 위구르족도 있었다. 심지어 멀리 남서쪽에서 수천 리를 거쳐 온 티벳인도 있었다. 하지만 같은 목적으로 같은 부대에 편성되었다. 이들은 지치 기색도 없이 뛰어갔다. 그들은 이렇게 천리 길을 내달렸다.
하얗게 서리가 내린 말과 사람들의 집단은 거의 일체가 되어 뛰었다. 이들이 거대한 성 앞에 이르자 순식간에 넓게 퍼졌다.
털옷을 입은 유목민 전사들이 일제히 말에 올라탔다. 이들은 거란왕 야율아보기를 필두로 함성을 지르며 앞으로 뛰쳐나갔다.
발해의 서쪽 최전선, 중앙의 정권쟁탈전 때문에 관심에서 멀어지고, 병사도 부족한 부여성 군민들은 합심하여 치열하게 싸웠다. 그러나 치열한 전투 후에 부여성은 사흘 뒤,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부여성이 타오르면서 뿜어내는 시커먼 연기가 잿빛 하늘 아래로 천천히 솟아올랐다.
말을 탄 강인현은 초조하게 진영 맨 앞에 대기했다. 사람들의 긴장감을 느꼈는지 말들도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병사들의 사기는 그런대로 좋은 편이었다. 만주를 호령했던 고구려의 후예들답게 중기병들은 특히 사기가 충천했다.
귀가리개 역할을 하는 금색 이엄이 부착된 회색 투구와 흑회색 어린문 견갑, 주황색 완갑을 입고 장창을 든 기병들은 보기에도 화려하고 강해 보였다. 기마대 병사들은 어서 전투가 시작돼 오합지졸 같은 거란군을 쓸어버리고자 했다.
지방에서 소집된 병사들은 오돌오돌 떨며 전투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이들은 윗부분을 뾰족하게 만든 털모자를 써서 장화만 신는다면 거란인과 거의 흡사한 복장이었다.
고대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듯 이들에게 민족의식은 약한 편이었다. 다만 왕도에 사는 지배층과 피지배 지방민의 구별만 있을 뿐이었다.
지방 병사, 그러니까 말갈 병사들 가운데는 공을 세워 낮은 벼슬이라도 하려고 덤벼드는 자도 있었다. 촌구석의 말갈이 지배층인 국인이 되는 방법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 이들로서는 이번 전쟁이 일생일대 절호으 기회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병사들에게는 자신과 상관없는 전쟁이었다. 그나마 이긴 후에 베풀어질 조그마한 상이라도 기대하며 비상소집에 응했을 뿐이었다. 다행이랄지 지금까지 발해군이 패한 적도, 패할 이유도 없었다. 항상 이겨온 발해군이었다. 병사들은 조만간 거란군의 패배로 전쟁이 끝나 고향에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요즘은 추워도 너무 추웠다.
한울님이 노했는지 최근 백산이 북을 뿜은 이래 만주 지방은 상당히 추워졌다. 몇백 년 전에 발생한 백산의 화산 폭발로 인해 고구려가 멸망했다는 전설이 다시 재현되는 것 같아 민심도 흉흉했다. 백산 부근의 넓은 땅은 화산 분출로 인해 사람이 살기 어려웠다. 한때 곡창지였던 만주지방에서는 그 쉽던 농사짓기도 이제는 힘들었다.
지금도 하늘에는 백산에서 솟아로는 시커먼 연기가 동쪽으로 뭉게뭉게 흘러가고 있었다. 하얀 눈 위에 까만 화산재가 점점이 떨어지고 있었다. 말들이 이따금 땅이 미세한 진동에 놀라 뛰어오르며 울어댔다. 지금도 지진이 이어지고 있었다.
만주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영산으로 받드는 백산이 노한 것은 국인들 때문이라는 소문이 백성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나돌았다. 귀족들의 치열한 권력다툼과 지극히 사치스러운 생활이 백성을 더욱 힘드레 했다. 백산 남쪽에 사는 자들 상당수가 얼마 전에 건국된 후고구려로 귀화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런 여러 가지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은 사기충천하여 거란군 진영을 노려보았다.
강인현은 바짝 긴장했다. 강인현이 탄 말도 주인의 긴장감을 알아 챘는지 푸르륵거리며 주인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이번 싸움이 어렵다고 느꼈다. 거란군은 지금까지의 다른 부족과는 달랐다. 중국을 정복하여 기마민족의 정복왕조가 되려는 꿈을 가진 태조 야율아보기는 이번 전투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거란군은 5년 전에도 쳐들어와서 많은 백성을 납치해갔다. 그래서 발해는 그에 대한 보복으로 작년 봄에 거란의 요주를 침공해 자사장수실을 죽이고 상당수의 거란인을 납치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거란군은 중국인과 여러 유목민족들을 아우르는데 성공했지만 발해는 외교적으로 고립된 상태였다.
중국은 분열되어 오대의 혼란기가 계속되었고, 발해인과 같은 민족이면서도 대대로 관계과 좋지 않은 신라는 구원군을 파견하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내란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제 앞가림하기 바빴다. 게다가 발해 궁정에서 계속된 권력쟁탈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려로 망명했다.
이 군대를 지휘하는 노상은 기고만장했다. 병력도 거란군에 비해 적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그는 거란군을 야만족이라고 우습게 보았다. 직책에 비해 무척 젊은 노상은 왕족이었다. 지금의 왕인 대인선의 사촌 동생이었다.
노상은 지방에서 일어난 소규모 반란을 몇번 무자비하게 진압했고, 그것이 군사경험의 전부였다. 하지만 그는 대규모 정규전을 지휘한 경험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상의 젊은 혈기가 문제였다. 왕족만 아니라면 그렇게 젊고 능력도 없는 자가 노상이라는 최고 관직에 오르지도 못했을 테지만, 발해는 왕족과 귀족의 세상이었다.
강인현은 이 군대가 무너지면 수도 홀한성도 무너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지금은 홀한성을 지킬 만한 병력도 없었다. 홀한성은 상경용천부이다. 무를 숭상했던 고구려인의 기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발해는 이미 사치와 문약으로 흐르고 있었다.
드디어 노상이 공격신호를 내렸다. 발해군 중기병이 돌격을 시작했다. 천지에 말발굽 소리가 진동했다. 철기라 불리는 중기병이 중심이 된 이들이 거란군을 향해 직선으로 공격해갔다. 활을 든 보병들이 기병들을 따라 뛰었다.
거란 장수 안단이 지휘하는 거란군 기마대는 순식간에 중앙을 비우고 둘러 갈라졌다. 양쪽으로 갈라진 거란군 가운데 어느 쪽을 공격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발해 중기병은 그대로 거란군의 포위망 안으로 빠져들어갔다. 노상은 당황하여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했다.
거란군 기마대 3만여 명이 한꺼번에 발해군을 향해 짓쳐들어왔다. 이들은 발해군의 중기병대를 무시하고 보병을 덮쳤다. 보병은 궁병 위주로 편성됐지만 명령이 떨어지지 않아 거란군을 향해 활을 쏘는 병사는 얼마 되지 않고 발해군의 전투는 극히 산발적인 저항에 그쳤다.
발해군 진영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었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거란군은 발해 보병대를 한번 휩쓴 다음 뒤로 돌아갔다. 무거운 마갑 때문에 순발력이 떨어지는 거란의 기마대들은 작은 승리에 취해 발해군의 보병대 사이에 멈춰 서서 얼쩡대는 어리석은 짓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적은 발해군 기마부대였다.
거란 기마대는 공격방향을 바꿔 당황한 발해군 기마대를 포위했다. 발해 보병들은 이미 전의을 잃고 눈 덮인 설원을 향해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이것이 다시 발해군 기마부대의 전의를 잃게 했다.
이때 강인현은 어느새 노상을 호위하고 있었다. 잔뜩 당황한 노상은 발해군 기마대가 포위당하고 보병대가 도주하자 불같이 노했다. 그러나 패배가 확실해지자 안색이 점점 하얗게 변했다. 너른 눈밭에서는 창과 칼이 맞부딪치고 말과 사람이 비명을 질러대며 죽어갔다. 이 전투에서 죽는 것은 대부분 기세를 뺏긴 발해군이었다.
거란 철기 수십 명이 긴 창을 휘두르며 노상을 향해 짓쳐들어왔다. 발해군 지휘부에 위기가 닥치고 있었다. 원래 문관 귀족이고 명색뿐인 우웅위 대장군 모두간이 겁에 잔뜩 질려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다. 장수의 도망은 부하들에게 집단적 공포가 되어 순식간에 전염되었다. 호위대는 노상을 지키려는 자들보다 도망치는 자들이 더 많았다.
도성방어부대인 좌맹분위으 랑장인 강인현이 언월도를 곧추세우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하급 무관에 불과한 그였지만 이런 위기에 자신의 안위를 돌볼 때가 아니었다. 지금 그가 나서지 않으며 부대는 붕괴고 만다.
그가 먼저 사용한 것은 활이었다. 복합재인 조립식 단궁이 픽픽거리는 소리를 낼 때마다 거란군 병사들이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강인현은 전통에서 화살을 뽑아내는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쏘고 또 쏘았다. 대 고구려의 후예답게 그는 추모, 또는 주몽, 즉 활을 잘 쏘는 자였다.
강인현이 말을 달리며 화살을 몇 발 쏘자 거란군과의 거리가 금세 가까워졌다. 강인현이 마지막 화살을 쏜 것은 거란군 선두 병사 바로 코앞에서였다. 병사는 이바에서 피를 뿜어내는 화살을 손으로 잡으며 말에서 떨어졌다. 바로 뒤에 거란군 장수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강인현이 활을 전통에 넣고 언월도를 수평으로 그어 선두에 선 적장의 목을 베었다. 그는 빠르고 정확했고, 이는 오랜 기간의 훈련에서 나온 힘이었다. 하얀 눈에 점점이 검은 화산재가 박힌 땅에 북은 피가 흩뿌려졌다.
말이 높이 뛰고, 강인현은 이어서 다음 거란병의 가슴에 기다란 언월도를 쑤셔 넣었다. 강인현의 서슬 퍼런 기세에 눌린 거란병들이 말의 속도를 줄이고 그를 포우ㅐ했다. 사방에서 짓쳐들어오는 창과 칼을 막으며 강인현은 죽을 힘을 다해 싸웠다.
“빨리 후퇴해야 합니다!”
“적진을 뚫고 동쪽으로 갑시다!”
장수들이 대부분 후퇴를 주장했지만 이미 거란군에게 겁을 먹은 노상은 얼어붙은 듯 꼼짝하지 못했다. 강인현은 이들의 논의를 걱정스럽게 들으면서도 전투를 계속했다. 왼팔이 뜨끔했다.
“항복하면 안 됩니다! 홀한성이 위험합니다!”
노상의 의도를 알아챈 우맹분위 소장이 노상을 향해 외쳤다. 그러나 노상은 나라보다 제 목숨이 중요했다. 발해 조정에서 실컷 권력을 누린 노상은 나라말고도 먼저 지켜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커다란 견갑을 입은 거란 장수의 칼이 강인현의 목을 노리고 쏘아 들어왔다. 순발력이 중요시되는 기마전에서는 창이 절대적으로 유리하지만 거의 정지해 있을 때는 짧은 도검이 유리했다. 강인현이 거란 장수의 칼을 퉁겨내며 언월도 자루로 그를 때려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강인현은 이미 지쳐서 이 기다란 칼을 휘두를 힘도 없었다.
거란병 4명이 동시에 사방에서 칼과 창으로 강인현을 노리고 쇄도했다. 강인현은 번뜩이는 창칼을 뻔히 보면서도 이들을 막을 힘이 없었다. 강인현이 질끈 눈을 감았다.
이제 발해는 멸망할 것이다. 그러나 더욱 아쉬운 것은 발해의 운명이 아니라, 800년을 넘게 이어온 고구려가 마침내 사라진다는 사실이었다. 목과 심장에 섬뜩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꿈이었다. 그러나 너무도 생생했다.
강인현은 온몸이 솜방망이로 얻어맞은 듯 무거웠다. 온통 땀투성이었다. 마치 실제로 전투를 치른 기분이었다. 어제 음탐실에서의 대화에다 미국 잠수함들의 시비로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밤새 꿈에 시달린 것 같았다.
강인현은 무겁게 몸을 일으켰다. 발해는 거란군에 패해 결국 망했다. 그 전투에서 항복한 노상은 발해 수도에 거란이 세운 동란국에서 높은 벼슬을 하며 계속 영화를 누렸다. 강인현은 꿈속에서나마 노사의 얼굴을 본 것이 불쾌했다. 그 얼굴은 고등학교 다닐 때 그를 무던히도 괴롭히던 동네 불량배였다.
시계를 보니 교대시간이 거의 다 되어가고 있었다. 서둘러 일어나 옷을 챙겨 입었다. 겨우 물 한 컵으로 세수하고 이 닦고 머리까지 감아야 하는 잠수함 승조원들의 세면방식이 지겨워 강인현은 그냥 껌 하나만 씹으며 어두운 장교내무반을 나섰다.
“아니, 음탐관님. 눈이 왜 그러십니까?”
음탐실로 들어서자 안상률 중사가 놀란 토끼눈을 하며 강인현 대위를 쳐다보았다. 강인현은 잠을 잘 못 자서 그런지 눈이 빨갰다. 음탐장 최현호 상사는 헤드폰을 쓴 채 꾸벅꾸벅 졸다가 말소리가 들리자 눈을 번쩍 떴다.
“그게...... 제대로 잠을 잘 못 자서 그런 것 같은데. 음탐장님! 시간 됐습니다. 이제 쉬시죠.”
강인현이 최현호와 인사를 하며 자리를 잡았다. 최현호 상사가 조는 동안 상황이 없어 그동안 심심했던 안상률 중사가 괜히 다시 말을 걸얻사. 안상률 중사가 교대하려면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밤새 애인 꿈이라도 꾸셨나 보죠?”
“야! 애인 꿈을 꾸셨으면 잠을 푹 주무셨겠지.”
최현호 상사가 기지개를 켜고 자세를 바로 하며 말했다. 그동안 너무 심심했다가 말문이 트인 안상률은 지금 말할 기회를 놓치기가 아까웠다.
“애인이 변심하는 꿈을 꾸셨나 보죠, 뭐.”
“넌 어째 그렇게 안 생긴데다가 말을 해도 그리 싸가지 없게 한다냐? 음탐관님, 이상 상황은 전혀 없었습니다.”
최현호 상사가 펜과 메모지를 챙기며 일어서다가 안상률 중사를 구박했다.
“아, 말씀 드리자면 그렇다는 거죠. 제가 뭐랬습니까?”
안상률 중사가 볼이 잔뜩 부어서 퉁명스럽게 마를 내뱉었다.
“그저 잠 좀 설친 것뿐입니다.”
강인현의 말에 두 사람이 조용해졌다. 안상률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안상률이 교대하려면 앞으로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 최현호 상사와 같이 근무할 때보다 더 심심해질 것 같았다. 안상률이 알기로 강인현은 썰렁의 한도를 넘어 지나치게 과묵했다.
교대절차를 마친 최현호 상사는 경례를 한 다음 연신 하품을 하며 내무반으로 향했다. 강인현이 헤드폰을 쓰고 주변 상황을 살폈다. 장문휴함 주위에는 조용히 흐르는 해류 외에 특별한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가끔 멀리서, 아주 멀리서 고래 우는 소리가 슬피 들렸다.
9월 14일 03:55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 북동쪽 80km
한국 해군 잠수함 최무선, 사령실
“놈이 쫓아오고 있습니다. 목표 35인 것 같습니다.”
“목표 34의 움직임은?”
“부상한 채 그대로 있습니다.”
“수리하는 걸 거야.”
함장 조성진 중령이 긴장을 풀며 피식 웃었다. 박재석 상사가 망가진 예인소나를 가지고 애를 쓰고 있었지만 쉽지는 않았다. 최무선에서도 예인소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함내에서 수리하기는 곤란했다. 일단 러시아 잠수함들을 따돌리고 빠져나가야만 했다. 조성진 중령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목표 35, 속도 20노트 거리 7,000야드.”
“우리를 잡겠다는 거야. 손해배상이라도 청구할 모양이지?”
머리를 감은지 꽤 오래되어 조성진의 머리는 기름기가 번들거렸다. 계속 슭적거리며 우습다는 표정으로 농담을 하자 주위에 있던 부하들이 키득거렸다. 디젤 잠수함은 작전중에 사용하는 식수 등을 탱크에 저장하고 다니므로 물을 여유있게 사용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원자력 잠수함이 막대한 발전량으로 바닷물까지 담수화하여 사용하는 것에 비하면 디젤 잠수함이 탑재하는 물은 상당히 부족한 셈이다.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급 공격원잠은 하루에 38톤에 이르는 바닷물을 담수로 만들어 승무원들이 얼마든지 샤워와 빨래를 할 수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소형 디젤 잠수함인 최무선은 그렇지 못했다.
문득 조성진 중령은 복귀하자마자 집에 가기 전에 공중목욕탕에 가야 했던 것을 떠올렸다. 진해에는 장교들이 가는 비교적 고급사우나가 있었다. 고급장교들의 벌거벗은 알몸을 하급장교나 하사관들이 보면 아무래도 위엄이 깎인다는 속설이 있어서 고급장교들은 그 사우나를 이용했다. 조성진은 딱 한 번 작전사령관 김병륜 중장의 비쩍 마른 몸에 똥배만 툭 튀어나온 알몸을 봤을 때 그 속설을 떠올린 적이 있었다.
목욕탕에서 장교들끼리 번갈아가며 등을 밀어주는 것도 또 하나의 귀향의식이었다. 집에서 손꼽아 기다릴 아내에게 지저분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는 없었다. 아직도 처녀 때처럼 해군 장교는 깔끔하고 멋진 남자라고 생각하는 부인들이 많았다. 결혼한 해군 장교 입장에서 부인들의 그런 오해는 영원히 풀리지 말아야 했다.
조성진 중령은 잠시 사로잡혔던 한간한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아쉽게도 이 해역은 매우 깊기 때문에 해저지형을 이용해 회피하는 것이 곤란했다.
“음탐관! 현재 이곳에서 소나 효율이 가장 안 좋은 심도는 어딘가?”
“예? 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권혁준 대위가 온도와 염도, 해류 등의 분포를 다시 점검하며 음파의 진행패턴이 가장 좋지 않은 수심을 계산했다. 여러 가지 변수들을 체크하여 음파탐지기가 작동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계산해본 적은 많았지만 최악의 조건을 계산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온도층 위로 올라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현재 이곳에서의 온도층은 수심 20미터 근방입니다.”
“젠장, 잠망경 심도로군. 그래 올라가 보자. 미속전진한다. 지정심도 20미터. 지정심도에 이르면 동력을 완전 정지한다!”
“예, 알겠습니다. 심도변경! 상승각 5도 지정심도 20미터!”
작전관 오필재 소령이 복창하고 다시 조함병이 조종간을 잡아당겼다. 밸러스트 탱크를 조작할 필요는 없었다. 최무선이 미끄러지듯 조용히 수면 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정심도 20에 다다랐습니다.”
오필재 소령이 보고하며 함장의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조성진 중령의 명령은 오필재가 예상한 그대로였다.
“좋아, 동력정지! 침묵상태 1을 발령한다!”
“동력정지, 침묵상태 1 발령!”
최무선이 모든 기관을 정지하고 쥐 죽은 듯이 표류를 시작했다. 당장 필요하지 않은 대부분의 기기를 끄고 당직에서 제외된 승무원들이 일제히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잠수함 안에서 들리던 모든 종류의 소리가 일시에 뚝 끊어졌다. 해류의 흐름에 따라 최무선은 동쪽을 향해 해파리처럼 떠밀려가고 있었다.
9월 14일 04:15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 북쪽 74km
러시아 해군 공격원잠 K-317 판터, 사령실
사령탑 후방에 잠수장비를 가지고 드나들 수 있도록 설계된 여압식해치가 다시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다시 해치가 잠기고 배수펌프가 작동하며 여압실에 들어찼던 바닷물을 뽑아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령실에 있던 스트루베 대령은 그 소리를 듣고 나서 후방 해치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수리가 끝났습니다.”
아래측 해치를 열고 빠져나오 빅토르 코프(Victor Kopp) 상사가 무거운 산소통과 호흡기를 벗어내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왜 이리 늦었나?”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스크루에 감긴 것은 하필 예인소나의 하이드로폰이 연결된 부분이었습니다. 스크루 이음부분으로 부서진 부품들이 밀려들어가 있었습니다. 귀환한 다음 분해정비가 필요합니다.”
하이드로폰은 소나의 소형 청음기이다.
“그럼 작동 불능이란 말인가?”
스트루베 대령의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아닙니다. 가동할 수는 있습니다. 다마 왕벽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코프 상사는 아직도 헐떡거리며 대답에 짜증을 섞었다. 그는 잠수함과 그가 맡은 임무를 위해 무척이나 애썼고, 30분 넘게 물속에 있었던 것이다.
“알았네. 기관실로 복귀하게.”
스트루베 대령은 코프 상사를 뒤로 하고 서둘러 사령실로 걸음을 옮겼다. 숨을 가다듬고 잠수장비와 수리기구들을 챙기던 코르 상사와 또 한 명의 잠수요원의 표정이 잔뜩 일드러졌다.
함장은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도 없었다.
“자! 이동한다. 속도 20노트. 방위 0-9-5도로!”
“함장님 먼저 저속상태에서 테스트를 해야......”
“됐다. 완벽하게 수리됐어. 빨리 놈을 추적해야 돼. 소나팀! 다시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도록 하라.”
조급해하는 함장을 보며 레오니드 카친스키 중령이 입을 열려다가 다물어 버렸다. 그리고 함장의 명령을 부하들에게 전달했다.
“가속한다. 20노트! 방위 0-9-5도! 심도 조정, 100미터!”
러시아 아쿨라급 공격 원자력 잠수함, 판터의 추진기가 다시 회전하며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9월 14일 04:45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 북동쪽 86km
러시아 해군 공격원잠 다닐 모스코프스키, 사령실
“이상합니다. 한국 잠수함의 자취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완전히 증발했습니다.”
“그럼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소나팀의 보고에 코발레프스키 대령이 발끈했다. 소나팀의 추적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미속으로 감속까지 해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놓쳤다니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감속한 순간 한국 잠수함이 계속 움직였다면 분명 탐지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 잠수함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거의 한 시간이 다 되도록 노렸했지만 한국 잠수함은 발견되지 않았다. 코발레프스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디젤 잠수함이 조용해서 추적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이건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멀리서 오징어가 먹물 내뿜는 소리는 들려도 한국 잠수함의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함장님! 수중통신입니다. 판터입니다.”
“바보 같은 놈들! 추적중에 수중통신이라니. 수리가 끝난 모양이군.”
코발레프스키가 서둘러 통신실로 걸음을 옮겼다. 바보라고 했지만 선임은 판터의 함장 스트루베 대령이었다. 통신실에서 통화하는 코발레프스키의 표정이 벌레 반 마리를 씹은 듯했다. 그가 교신을 마치고 화난 표정으로 사령실로 돌아오자 부함장 발마셰프는 무슨 내용인가 물을까 하다가 말았다.
코발레프스키가 씩씩거리며 사령실의 부하들을 둘러보자 승조원들이 슬슬 눈치를 보며 다들 계기판에 시선을 집중시킨 채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나팀! 능동소나의 사용권을 부여하겠다. 탐지되면 바로 추적한다. 알겠나?”
“예? 예...... 알겠습니다.”
소나팀장 이반 체르니셰프스키(Ivan Chernyshevsky)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개자식! 조함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뭐라고 지껄인 거야?”
함장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자 사령실 요원들이 바싹 긴장했다. 곧 혼잣말이고 자신들에게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조만간 불똥이 부하들에게 튈 것이 뻔했다.
9월 14일 04:55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 북동쪽 82km
한국 해군 잠수함 최무선, 사령실
“저노무스키들은 우릴 발견 하지 못했습니다.”
박재석 상사가 모처럼 헤드폰을 벗고 고개를 돌려 함장에게 보고했다. 지금 막 아쿨라급 공격원잠이 바로 옆을 지나치는 것을 확인했다. 안도감은 다시 함장에 대한 경외감으로 바뀌었다.
잠수함전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능력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잠수함 바로 옆을 지나치더라도 상대의 존재를 깨닫지 못할 경우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잠수함 함장들은 거리를 띄우는 쪽을 훨씬 선호한다. 자신의 잠수함의 정숙도를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수한 훈련과 도전을 통해서 얻어지는 노하우였다.
적함을 공격할 때 어마만큼 가까이 갈 수 있는가의 문제는 잠수함전에서 절대적인 요소이다. 속도가 느린 어뢰는 거리에 따라서 급격히 명중률이 떨어진다. 원자력 잠수함 가운데는 어뢰 속도와 비슷한 최고 속도를 내느 경우도 많다.
그러니 가까이 접근하면 접근할수록 성공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중요하지만 귑지 않은 일이었다.
“놈들이 가속하고 있습니다. 아!”
“뭔가?”
음탐장이 갑자기 잔뜩 인상을 쓰자 조성진 중령이 긴장하며 박재석 상사에게 다가섰다. 옆에 있던 권혁준 대위가 먼저 함장에게 보고했다. 권혁준도 박재석 상사의 능력을 신임하지만, 조성진 중령이 음탐관인 자신을 제껴두고 음탐장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때면 묘한 질투심을 느꼈다.
“액티브 소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탐신 방향은 남동쪽입니다.”
“좋았어. 수고했네, 여러분.”
조성진 중령이 미간을 약간 찌푸리며 주먹에 힘을 줘서 우드득거리는 소리를 냈다. 기가 막히게도 이것이 조성진 중령이 만족스러울 때 짓는 제스처였다. 함장은 러시아 잠수함이 안달이 나서 능동소나를 썼지만 이쪽을 탐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무선의 방향을 짚어도 완전히 잘못짚었다고 확인하자 승무우너들의 표정에 일순간 화색이 돌았다.
“부장! 침묵상태 1은 당분간 더 지속한다. 놈이 완전히 벗어나면 움직인다. 그전까지는 현재 위치를 고수한다.”
“예! 알겠습니다.”
한형석 소령이 낮지만 힘차게 대답했다. 기다림도 긍정적일 때는 그다지 지루하지 않았다.
가끔 클래식 음악을 듣는 한형석 소령은 지금 동해를 ‘백조의 호수’라고 생각했다. 백조는 물위에서 우아하게 미끄러지는 것 같지만, 실상 물속에서는 방정맞게 물갈퀴를 바삐 움직인다.
그처럼 수면 위 조용한 밤바다와 달리 동해의 물밑에서는 치열한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10. 성하신당의 전설
9월 14일 05:05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시 동쪽 20km
한군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강인현 대위가 읽던 책을 덮고 사령실 쪽을 돌아보았다. 당직을 서고 있던 진종훈 소령이 잠망경 쪽에 붙어 있는 난간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출항 이후 두 번째 교대였다. 지금은 다시 작전관 김승민 대위가 침대에 들어가 있었다. 출격 첫날의 dirks 당직근무에서는 시차적응에 애를 먹는 법이었다. 모두가 무료한 항해를 계속했다.
“흠......”
강인현이 모니터를 다시 확인했다. 하밤 내내 작업하던 오징어채낚이선들 대부분이 항고로 돌아가고 몇몇 어선들이 남았지만 연안 쪽에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무엇인가 움직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도 없던 목표였다.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관심이 생긴 강인현 대위가 읽던 책을 한켠으로 치워놓고 키보을 조용히 두들겼다.
“뭐가 있나?”
졸고 있던 진종훈 소령이 어느샌가 뒤에 다가와 있었다. 강인현 대위 쪽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예. 뭔가 있긴 있는 모양인데 불확실합니다. 방위는 공십공(0-1-0)도입니다.”
“거리는 어떤가?”
“불확실합니다. 대락 20km 정도?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해 밖이군. 어떤가? 침로를 그쪽으로 조정하면 자세히 알 수 있겠나?”
“예, 그러면 좀 더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소리를 내는 대상이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잠수함의 눈과 귀를 책임진 음탐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인현 대위는 대한민국의 영해를 지키는 해군이었다.
영해 바로 바깥에서 얼쩡거리는 목표라면 그것은 북한 잠수정일 가능성이 다분했다. 얼마 전까지 무수히 많은 북한 잠수정들이 동해안을 들락거렸다. 그러나 동해 중부 해상에 한국 잠수함들이 대거 투입되어 초계하기 시작하고부터는 북한 잠수정들의 출현이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속도와 탐지능력, 그리고 소음수준 등 어떤 면으로 비교하더라도 북한 잠수정은 한국 잠수함의 밥이었다.
그러나 강인현 대위는 함장이 지정한 이 해로에서 벗어나는 것이 걱정스러웠다. 만약 그 탐지목표가 어선이나 아군 함정, 또는 우방국 잠수함으로 판정되면 다시 이 항로로 돌아와야 했다. 지금 이 해류를 다시 타려면 고도의 경험이 축적되어 있어야 할텐데, 부함장이 그런 실력이 있는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진종훈 소령은 강인현의 걱정을 읽었는지 씨익 웃어 보인 다음 말했다.
“알겠네. 함장님 밑에서만 서당개 10년이 넘었으니 염려 말게.”
진종훈 소령이 뒤돌아서서 조함팀 쪽으로 향했다.
“오른쪽 10도로 타 잡다. 방위 공육심공(0-6-0)도로!”
“오른편 10도. 방위 공육십공도!”
장문휴함이 서서히 움직이며 북동쪽으로 침로를 돌렸다. 진종훈 소령은 아직 무엇인가가 확실해지지 않은 이상 함장을 부르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오랜만에 함을 마음대로 조함하고 싶어졌는지 약간 과감해졌다.
9월 14일 05:15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시 북동쪽 32km
중국 해군 공격원잠 S-404, 사령실
“경사지형입니다. 다시 높아지는데요?”
“그래서 대한해대라고 부른다는군. 이곳은 푱균수심이 1,000 정도로 다시 높아지는 해역이야.”
레이후 소교가 얼마 전에 배운대로 아느 척을 했지만 자세한 것은 아니었다. 이곳에서 작전해본 경험이 별로 없는 중국 잠수함으로서는 해저상황도 일반적인 해양지식 수준에 머무를 뿐이었다.
“전반적으로 한국의 동해안 지형은 매우 깊습니다. 깊어도 너무 깊은데요? 두다오(獨島) 까지는......”
해저지형도를 펴며 주변지형을 다시 확인하던 친차이엔 중위가 볼록하게 올라와 있는 해저지형을 가리켰다.
“멍청이! 그건 두다오가 아니라 우링다오(鬱陵島)잖아?”
옆에 서 있던 레이후 소교가 친차이엔 중위의 뒤통수를 한 대 후려쳤다. 최소한 정찰지역의 해저지형을 미리 도상판독이라도 해뒀어야 하는데, 친차이엔 중위가 너무 나태했다고 생각했는지 레이후 소교가 는을 매섭게 부라렸다.
“죄송합니다. 우링다오가 훨씬 큰 섬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입 닥치고 조용히 있게.”
변명하려고 친차이엔 중위가 말읏자 레이후 소교가 다시 핀잔을 주었다. 해저지형도를 일반 지도와 대조하지 않고 보면 쉽게 일으킬 수 있는 착각이었다.
독도는 수면 위로 드러난 부분이 0.2평방킬로미터도 되지 않는 조그마한 섬이다. 그러나 물밑에 잠겨 있는 육괴는 울릉도 면적의 거의 세배에 이른다.
주위에 서 있던 다른 군관들이 키득거렸다. 친차이엔 중위는얼굴이 빨개지면서 다시 해도를 들여다 보았다.
“중위! 셍나반에게 회합지점을 통보하라.”
“예! 알겠습니다.”
레이후 소교가 회합지점이라고 짤막하게 지시했는데, 그것은 또 다른 잠수함 369호와의 회합지점을 말한 것이었다. 중국의 공급 디젤 잠수함 1번함인 369호는 이미 한 달 전에 출항하여 404호와 교대할 때까지 울릉도 주변지형과 한국 해군의 동향을 관찰하고 있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369호를 만날 수 있었다. 소나팀에게도 알려주어야 할 시간이었다.
소나팀을 뜻하는 말은 국가마다 차이가 크다. 한국에서는 음탐반, 일본에서는 수측조, 중국에서는 쉥나반 등이다. 중국어의 쉥나는 소나와 비슷한 음과 뜻을 가졌다.
9월 14일 05:25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시 북동쪽 27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뒤척거리다 일어난 서승원 중령이 손목을 들어 야광바늘을 보았다. 어슴푸레 빛나는 시침이 5시를 넘어 있었다. 항해 첫날은 항상 그랬다. 이제는 적응이 되어 편안한 잠을 잘 수도 있건만 그 버릇은 지독히도 오래갔다. 서승원 중령은 뒤척이다가 두 시간도 채 못 자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일어날 시간이 되어 저절로 눈이 떠진 것이다.
몸을 일으켜 스위치를 켜자 적색 실내등에 불이 들어왔다. 탁자 위는 깨끗했고 한쪽 구석에 지구본 모양으로 생긴 나침반이 놓여 있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그의 아들이 선물한 것이었따. 투명한 플라스틱 케이스의 지구본 속에는 물이 차 있고 조금 작은 공모양의 나침반이 떠있었다.
눈을 비비며 나침반을 들여다보던 서승원은 문득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북쪽을 가리키는 빨간 표시가 누워서 보일 리가 없었다. 서승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신발도 신지 않고 책상 앞에 다가갔다. 서승원의 머리 쪽을 가리키고 있어야 할 나침반은 분명히 침대 쪽을 향해 30도 가량 기울어져 있었다.
그때 갑자기 인터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 부함장입니다. 소나에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이 탐지됐습니다. 사령실로 와주시겠습니까?
“침로를 병경했나?”
서승원이 대뜸 침로를 변경했느냐고 묻자 인터폰 건너쪽의 부함장이 잠시 머뭇거렸다. 서승원이 그렇게 빨리 알아차린 것이 이해가 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 예! 그렇습니다. 목표 추적을 위해 방위 공육십공(0-6-0)도로 변경 했습니다.
“알았다. 곧 가겠네.”
서승원 중령이 신발을 신고 빠른 걸음으로 함장실을 나섰다. 아무래도 북한 잠수정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인민무력부 정찰국이나 노동당 작전부 고위층이 최소한 닭의 아이큐를 넘는 자라면 한국 해군 잠수함이 우글대는 동해에 또다시 침투용 잠수정을 보내는 그런 모모한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그렇다면 미국 잠수함이 또 장문휴함에 시비를 거는 상황일 수 있었다. 새로 취역한 잠수함은 항상 이렇게 다른 나라 잠수함들의 철저한 추적을 받게 마련이었다. 냉전시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전개된 잠수함 추격전은 언론에 보도된 것은 별로 없지만 상당히 치열하게 전개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지금의 미국은 더욱 위험했다. 석 달 전에 있었던 얼토당토않았던 사건이 이를 증명했다.
함장이 사령실을 들어서기 무섭게 부함장 진종훈 소령이 다가왔다.
“함장님, 잠수함입니다! 방위 공이십공(0-2-0)도, 거리 15km로 추정됩니다.”
부함장이 약간 호들갑스럽게 보고했다. 서승원 중령은 당연히 미국 잠수함인 줄 알고 짜증을 냈다.
“또인가?”
“최초 접촉은 20분 전입니다. 접촉 상태가 좋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침로를 변경했습니다.”
사령실 입구에서 함장을 기다리던 진종훈 소령이 항로변경을 지시 한 것에 대해서 먼저 보고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서승원은 음탐실로 들어섰다.
“소음 특성이 매우 특이합니다. 미국 원잠은 아닙니다, 함장님.”
어느새 일어났는지 김승민까지 나와 있었다. 지금 이 시간의 음탐실 당직은 강인현 대위가 틀림없을 텐데, 함장은 비번인 최현호 상사까지 헤드폰을 쓰고 있는 것으 보고 놀랐다.
“그럼 러시아 잠수함인가?”
미국 잠수함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면 그 다음에 당연히 나올 만한 질문이었다. 미국과 소련의 핵전쟁을 상정한 냉전시대에는 러시아 잠수함들이 동해를 상당히 중요한 작전해역으로 삼고 있었다.
소련이 붕괴된 이후 태평양함대가 쇠락하면서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후에도 종종 러시아 잠수함이 미국과 일본 해군에 의해 탐지되거나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때로는 내부 고장으로 인해 어쩔 수없이 부상해서 호들갑스러운 일본 언론에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추진특성으로 봐서는 중국 원잠 같습니다.”
음탐관 강인현 대위가 조슴스럽게 의견을 제시했다. 그가 중국 잠수함을 접촉해본 경험은 아직 없었다. 하지만 진해에서 시뮬레이터를 통한 대잠전투훈련을 많이 받았고, 서해에서 활동하는 다른 잠수함들이 추적한 음문 데이터 베이스를 접해 보았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다.
“저도 음탐관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함장님! 이건 한급 원자력 잠수함입니다.”
최현호 상사가 모니터에서 상대 잠수함의 음문 데이터를 대조하며 동의했다. 차상급자에게 보고할 때는 그 이하 계급인 상급자에 대한 경칭을 쓰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최현호 상사는 그걸 알면서도 음탐관에 ‘님’자를 붙였다.
“접촉특성을 상세히 파악하라. 중국 놈들이 동해에 들어오는 것은 드문 일인데. 부장! 어떻게 생각하나?”
“맞습니다. 그들이 동해로 원자력 잠수함을 투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치로를 봐서는 아무래도 우리 쪽에 관심을 가진 것 같습니다. 추적하시겠습니까?”
서승원 중령이 약간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중국 잠수함이 새로취역한 장문휴함에 관심을 가졌다면, 구태여 이들 앞에 나설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잠수함 함장으로서, 접하기 어려운 주변국 잠수함의 특성을 파악하고 싶은 것은 거의 본능에 가까웠다.
“일단 추적을 시작한다. 부장! 사령부로 통신문을 띄우게. 협조하는게 상책이겠지?”
함장이 가장 적절한 결론을 내렸다. 장문휴는 장국 잠수함게게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대신, 한국 초계기나 해군 함정으로 하여금 중국 잠수함을 추격시켜 쫓기는 잠수함으로부터 음문 데이터 등 자료를 축적하려는 의도였다.
부함장이 함장의 의도를 파악하고 통신실에 명령을 전하려다가 갑자기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진종훈 소령이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중국인이 갖는다.’라는 속담과 함께 함장의 콜사인을 생각해낸 것이다. 부함장이 웃는 이유를 알아차린 서승원 중려이 덧붙였다.
“부장! 난 곰이 아냐. 불곰 하나야. 중국인도 아냐.”
9월 14일 05:40 경상남도 진해시 진해항
한국 해군, 해군 작전사령부
“5분만 더 자자고 했잖아?”
간이침대에서 선잠을 자던 김병륜 중장이 깨어나며 화부터 벌컥 냈다. 김 중장이 심통을 부리자 당직사령인 유형준 중령이 어쩔 줄 몰라하며 얼굴을 붉혔다.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린 김병륜 중장이 엉거주춤 서 있는 당직사령을 보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잠자는 김병륜 중장을 깨울 때마다 부하들은 한 차례씩 곤욕을 치러야 했다. 김병륜 중장은 ‘5분만 더’라는 말을 몇 번씩 한 것으로 기억했다. 노인들은 새벽잠이 없다고 했지만 김병륜 중장은 스스로 너무 젊어서 탈이라고 혀를 차며 일어섰다.
“그래, 무슨 일인가?”
“초계중인 장문휴가 잠수함 접촉보고를 보내왔습니다. 중국 잠수함이랍니다.”
“또 미국 놈들인가? 염병!”
시계를 꺼내보자 벌써 다섯시 반이 약간 넘었다. 일어날 시간이었지만 조금 이른 시간이었고, 아쉽게 그는 새벽 단잠을 깬 것이다. 상의를 주섬주섬 챙겨입으며 김병륜 중장이 툴툴거리자 유형준 중령이 작전사령관의 말을 정정했다.
“아닙니다, 사령관님. 중국 잠수함입니다. 장문휴는 목표가 한급 공격원잠이라고 보고했습니다.”
“그래? 도대체 왜들 이 난리지? 양키들도 모자라서 이젠 뙤놈들이야? 알았어. 먼저 가 있게. 곧 따라가겠네.”
먼저 가라는 말이 떨어지자 유형준 중령이 어겁지겁 사령관실을 빠져나갔다. 그대로 있다간 무슨 날벼락이 떨어질지 몰랐다. 김병륜 중장이 오늘처럼 가끔 야간에 작전사령부에서 선잠을 잘때면 항상 부하들에게 당부하고는 했다. 잠결에 험한 소리를 하더라도 잠꼬대니까 신경 쓰지 말고 깨우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부하들은 그를 깨울 때마다 애를 먹어야만 했다. 심지어 그의 잠을 깨우던 소령 한 명에게는 원산폭격을 시키기도 했다. 5분 후에 정신을 차린 김병륜 중장이 그 소령에게 사과하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 김병륜 중장은 일어날 때마다 부하들의 애를 먹이는 잠꾸러기였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대위 이하는 감히 그를 깨우지 못하니 최소한 영관급 이상이 깨워야 한다고 못을 박은 명령이었다.
몇 분의 시간이 흐른 뒤 작전사령부 전술통제센터에 김병륜 중장이 나타났다. 당직자들을 제외한 부하들 일부가 아직 자리에 보이지 않았다. 지금쯤이면 비상호출을 받고 눈을 비비며 허겁지겁 뛰어나오고 있을 터였다.
김병륜 중장이 사령부에서 밤을 새우겠다고 했을 때 한사코 튀근할 수 없다고 버텼으나 그가 호통을 쳐서 귀가시켰던 부하들이었다. 하지만 결국 부핟ㄹ의 새벽잠을 깨웠으니 공연한 짓을 한 셈이라 생각하며 김병륜 중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대잠초계비행대에는 연락했나?”
“예! 연락했습니다. 지금 비행준비 중입니다. 5분 후면 이륙할 수 있습니다.”
유형준 중령이 대답했다. 한국 해군에 대잠초계기 숫자가 충분하다면 상시 교대로 상공에 배치하여 이런 일이 발생하면 언제든 투입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절대수가 부족한 P-3C 오라이언 초계기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비행대에 출격을 취소시키게.”
“옛?”
5분 후에 출격가능하다는 보고를 받고 곰곰이 생각하던 김병륜 중장이 입을 열었다. 주위에 서 있던 다른 장교들도 놀라는 표정이었다.
“뭐 해? 비행대에 출격중지 명령을 내리라니까.”
“예, 예. 알겠습니다.”
잠이 덜 깨서 그런가 하고 유형준 중령이 김병륜 중장의 표정을 조심스레 살폈으나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작전사령관이 눈을 부라리며 호통치자 유 중령이 허둥대며 비행대로 연결되는 통신라인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황급히 비행을 취소시켰다.
“장문휴가 보고한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초계함 몇 척만 선정해서 명령을 내리게. 그리고 엄격하게 무선침묵을 시키게.”
차가운 생수를 한 잔 들이켠 김병륜 중장이 이어서 명령했다. 유형준 중령이 서둘러 동해함대에서 초계중인 함정들의 위치를 살폈다.
“여수함이 영덕 근방에서, 그리고 속초 쪽에 군산함이 초계중입니다. 그리고 안양함이 강릉 동쪽에 있습니다. 이들 세 함정이 가장 가깝습니다.”
유형준 중령은 상당히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잠헬기를 탑재한 강력한 구축함 광개토대왕함은 지금 항구에 정박중이었따.
“군산함은 빼! 그놈은 소나도 없잖아?”
김병륜 중장이 벌컥 화를 내며 유형준 중령에게 핀잔을 주었다. 군산함은 1,200톤쯤 되는 포항급 코르벳이다. 그런데 포항급의 초기형은 대함공격 능력을 특화시킨 함형이라 대잠전 능력이 없다. 소형 함정에 대함, 대잠, 대공 능력을 모두 갖출 수는 없었다.
“지금 바로 암호문으로 작전을 내리게 장문휴에게는 계속 추적을 지시하고 한 시간 간격으로 위치보고를 명령하라.”
“예! 알겠습니다.”
오라이언 대잠초계기를 띄웠다간 또다시 미국이 끼어들지 몰랐다. 김병륜 중장은 이번만큼은 조용히 처리하고 싶은 생각이었다. 중국 원잠이 동해에 나타나다니,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곳은 아직도 연안해군에 불과한 중국 해군 잠수함이 놀 장소가 아니었다.
9월 14일 05:55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남동쪽 45km
한국 해군 코르벳 여수함, 함교
“날 새자마자 출동명령이군.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자, 벌레 주워먹으러 가자. 서둘러라. 무찔러 가!”
“예! 알겠습니다!”
백운기 중령이 통신문을 접고 함교에 모인 장교와 하사관들에게 강한 어조로 지시했다. 대답소리가 함교를 쩌렁쩌렁 울리며 승무원들이 전투위치로 내달렸다.
전날 밤 공격직전에 포기해야 했던 라 호야에 대한 앙금이 새삼스럽게 일어났다. 당직으로 날을 샌 부하들과 막 잠에서 깨어난 승무원들 모두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여수함은 어느새 30노트에 다다르며 물찬 제비처럼 새벽 바다 위를 튀며 달리기 시작했다.
밤새도록 토악질에 시달린 김준환 중위도 이제는 정신을 차렸다. 얼굴이 반쪽이 됐지만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가슴 벅차게 느껴졌다. 뱃속이 공복감으로 날아갈 듯이 가볍게 느껴졌다.
“어쭈? 이제 정신을 차린 모양인데? 이제야 뱃놈이 됐구먼!”
심호흡을 한껏 하던 김준환의 어깨를 부함장 손천민 소령이 퍽 소리나게 치고 웃자 김준환도 따라서 웃었다.
9월 14일 06:50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시 북동쪽 38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굉장히 더딘 놈이군요. 한 시간 반 동안 겨우 10km밖에 안 왔다니.”
“그놈은 지형정찰을 하려는 것 같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강인현 대위가 최현호 상사의 옆자리에 앉으며 종이컵을 내밀었다. 최현호 상사는 따분해서 하품이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는지 무거워진 눈가가 촉촉해졌다.
작전에 나서면 제대로 잠자는 것은 아예 포기해야 한다. 당직 교대 시간이 된지 얼마 안 되어 전원 전투배치가 이루어지면 누구를 탓할 수도 없어TEk. 운이 업사기보다는 무수하게 반복되는 일의 시작일 뿐이었다.
“마침 커피 생각이 간절하던 참이었습니다.”
반가워하며 최현호가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개놈의 짱꼴라 녀석들! 우리 영해 가까이에서 장난을 치고 있군.”
뒤에 서 있던 진종훈 소령이 감질난다는 듯 툴툴거렸다. 한급 공격원잠은 아슬아슬하게 영해 가까이 접근했다가 떨어지곤 했다. 추적하는 입장에서는 짜증나는 일이었다.
강인현 대위의 눈썹이 꿈틀거리더니 헤드폰을 꾹 눌렀다. 모니터를 보고 있던 최현호 상사가 거의 동시에 이상을 이상을 파악했다.
“지원군이 나타났습니다.”
최현호 상사가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면서 다시 기기를 조작했다. 남쪽 해상에서 고속으로 접근하는 새로운 물체를 포착한 것이다.
“드디어 나타나셨군. 그럼 연락을 취해야지.”
진종훈 소령이 통신용 부이에 데이터를 입력하고 발사버튼을 누르기 위해 사령실 쪽으로 걸어갔다. 점근하는 여수함에게 장문휴의 정확한 위치와 추적중이던 한급 원잠의 해점을 알려주어야 했다. 잠시 후 조그만 부이가 수면 위로 솟구쳐서 여수함으로 신호를 송출하기 시작했다.
9월 14일 07:20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시 북동쪽 42km
중국 해군 공격원잠 S-404, 사령실
“좁촉했습니다! 방위 1-7-0! 거리는 불명입니다. 고속항행중입니다.”
“방위 0-1-0에서도 고속 노이즈를 탐지했습니다. 거리는 멀지만 소음이 상당히 큽니다. 침로는, 침로는! 이놈이 곧장 본함을 향하고 있습니다!”
“뭐야? 빨리 정체를 파악해봐!”
소나반에서 잇달아 접촉보고를 하자 레이후 소교는 어안이 벙벙했다. 갑자기 나타난 수상목표들이 똑바로 404호 쪽으로 향해 오고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자명했다. 그리고 속도로 봐서 그들 정체는 해군 함정이 분명했다.
“젠장! 들켰군.”
팔장을 낀 천쥔타오 중교가 허탈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함장은 누가 이 잠수함을 발견했는지 도대체 알 수 없었다. 그는 가장 먼저 대잠초계기르 떠올렸다. 한국 해군 대잠초계기는 가용전력이 상당히 부족하다고 들었다. 근처에서 조용히 항행하던 수상함정일 리도 만무했다.
지금 전속력으로 다가오는 두 척의 함정은 거리가 아직 멀었다. 아무리 소나가 좋고 수중상태가 양호하더라도 설마 그 거리에서 탐지하기는 상당히 곤란할 것이다. 게다가 404호는 저속항해중이었다.
“일단 한국 영해에서 떨어지는 게 좋겠군. 북조선 잠정으로 어인받지 않으려면 말야. 부함장! 방위 0-9-0으로 침로를 변경하라.”
“예, 알겠습니다. 우현 15도! 방위 0-9-0!”
404호가 천천히 서뇌하면서 천쥔타오는 누구에게 탐지되었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가능성이 마음에 걸렸다. 그것은 주변에 조용히 숨어 있는 한국 잠수함이었다. 어차피 이족이 탐지하지도 못한 잠수함이었다. 그렇다면 시험을 해보는 게 좋았다.
“부함장! 기관 전속한다.”
“옛! 알겠습니다. 기관 전속!”
404호가 빠른 속도로 앞을 향했다. 그리고 곧 25노트의 최고속도로 맹렬하게 동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9월 14일 07:25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시 북동쪽 40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놈이 가속했습니다. 침로는 동쪽. 아군 전투함정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자식들! 그래도 귀는 쓸 만한데?”
“20노트가 훨씬 넘는 것 같습니다. 내빼고 있습니다.”
강인현 대위가 뒤를 돌아보며 진종훈 소령에게 이야기 했다. 20노트가 넘는 속도라면 장문휴에게 불리했다. 중국 원잠을 따?기 위해서는 예비 배터리의 소진을 각오해야 했다. 연료전지를 가동해도 문제가 있었다. 이제 출항한 지 12시간이 겨우 지났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우리는 빠지는 게 좋다고 생각됩니다. 오리들에게 맡기시죠.”
진종훈 소령은 최고소고로 도주하는 한급 원잠을 추적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함장 서승원 중령이 입을 열었다.
“좋아, 목족을 달성했으니 이제 우리는 빠져나간다. 침로변경한다. 방위 공칠십공(0-7-0)도로!”
“예, 알겠습니다. 우현 10도! 공칠십공도 잡아!”
김승민 대위가 날렵하게 조함을 지휘했다. 서승원은 아군 초계함들이 좀더 신중히 접근해 주었다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그러나 일단 동해로 들어온 중국 원잠이 빠져나가는 것은 들어올 때와 다를 것이다. 출구가 좁은 대한해협 입구에 포진하고 있으면 시끄러운 중국 원잠쯤은 당연히 걸리게 마련이었다.
9월 14일 11:05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남쪽 2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좌현 12km, 울릉도다.”
함장 서승원 중령이 잠망경을 통해 밖을 관찰하면서 중얼거렸다. 승무원들이 숨소리를 죽이고 모니터를 통해 전해진 바깥 풍경에 넋을 잃었다.
모니터에는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울릉도 도동으로 들어가는 작은 고깃배가 선명하게 보였다. 푸른 절벽 사이, 도동항 너머로 다닥다닥 붙은 작은 집들이 가을 걷이를 앞둔 밭과 파스텔화처럼 어우러졌다. 함장이 잠망경 접안구에서 눈을 떼지 않고 조정 패널을 조작하며 사령실 요원들에게 조용히 말했다.
“울릉도에는 호박엿말고도 특이한 것들이 많다. 섬과 주변 해역에 독특한 숙물군상과 동물 들이 서식해 생태학적 가치가 매우 크다.”
울릉도는 난류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에는 눈이 많이 와도 따뜻한 편이다. 함장이 잠시 잠망경 점안구에서 눈을 떼고 마이크를 잡았다.
“통신실, 함장이다. 이홍기 중위! 울릉도에 자생하는 식물은 뭐가 있나?”
- 섬피나무, 털고로쇠나무 같은 특산실물과 천연기념물인 너도밤나무, 섬잣나무, 섬댕강나무, 섬개야광나무, 우릉국화, 섬백리향 등이 자생하고 있습니다!
스피커에서 즉각 대답이 나왔다. 함장이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잘했다. 그리고 울릉도의 인물이라면 우선 울릉도와 독도를 지킨 안용복 장군이 있다. 물론 그는 동래 사람이긴 하지만 당시엔 공도 정책으로 섬 주민이 없었고, 일본 막부와 어민들을 상대로 울릉도를 지켯으니 울릉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함장이 잠시 뭔가를 생각하듯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광복 이후 정부의 힘이 미치지 못했을 때, 홍순칠 대장 등 일본으로부터 독도를 지켜낸 용사들이 있었다. 안용복 장군도 조선 조정으로부터 칭찬은커녕 무단으로 월경했다며 탄압을 받았다. 발해 1300호 이덕영 선장도 울릉도 주민이다. 그가 동해에서 뗏목탐사를 할 때 정부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국토는 결국 그 나라 국민이 지켜야 한다. 우리도 군인이기 이전에 국민이다!”
함장은 먼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토수호의 의무를 강조했다. 지금까지 국민은 온갖 희생으로 국토를 지켜왔다. 그러나 그것은 정부, 특히 군대가 먼저 해야 할 일이었다.
강인현은 함장이 발해 1300호의 탐험에 관심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강인현은 이덕영 선장을 생각하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발해 1300호의 항해를 맡은 이덕영 성장은 어인마니이다. 그러나 강원도 산골에서 산삼을 캐는 심마니들의 우두머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산삼의 어린 싹의 묘삼을 산에 심는 농심마니였다.
몇십 년, 몇백 년 뒤 이 땅의 정기를 가득 먹고 자란 산삼이 가난하고 병든 사람의 눈에 띄길 바라며 방방곡곡 산기슭에 묘삼을 심는 사람에게 어떤 사심이 있을까? 강인현은 애국자는 결코 유명한 정치가가 아니라 이렇듯 이름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이덕영 선장은 원래 울릉도에서 약초를 재배하던 농민이었다.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꿈이 있었다. 그가 죽고 나서 기자들이 찾아간 울릉도의 집옆 텃밭에는 공사를 중단한 소형 굴삭기가 주인을 잃은 채 서 있었다. 그에게는 진취적이고, 또한 진정한 용기가 있었다.
그 누구도 아문젠이나 피어리를 무모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프랭클린이 이끈 탐험대는 대원 129명 전원이 얼어죽었다. 콜럼버스는 출발전에는 너무 무모하다는 비판을 받았고, 신대륙을 발견하고 돌아와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었다는 비난을 들었다. 그러나 콜럼버스를 비난한 자들은 그 누구도 달걀을 깨뜨리지 못했다.
“우리는 군인이다. 그것도 해군이다! 영해수호는 우리가 먼저 책임져야 한다. 우리가 못나서 지켜내지 못하면 결국 국민이 지키겠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가 먼저다! 해군이 죽음으로써 지켜내야 한다. 바다는 우리가 지킨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함장이 사무적인 명령 외에 이렇듯 길게 훈시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함장은 해군으로서의 의무를 완수하자고 했다.
한참 강한 어조로 얘기하던 함장이 마이크를 잡고 승무원들에게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로 말했다.
“울릉도에는 성하신당이 있다. 각자 마음속으로 빌도록. 장문휴함의 안전운항과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을......”
이미 함장으로부터 성하신당의 내력을 들은 승무원들은 나름대로 진지하게 고혼의 영령을 위로하고 잠수함 장문휴의 무운을 빌었다. 1997년에 시작된 경제위기를 극복한 한국에 광영이 있을지어다......
울릉도 사람들은 배를 진수하면 반드시 태하동 성하신당에서 제사를 지내 안전운항과 사업의 번창을 기원한다. 성하신당은 단지 성황당, 또는 서낭당이라는 뜻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세워진 내력에 얽힌 슬픈 전설이 뱃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여진족과 왜구의 노략질 때문에 고려 대부터 전통적으로 취해온 공도정책에 따라 다른 섬들처럼 울릉도는 무인도인 때가 많았다. 만약 울릉도에 정착해서 사는 사람들이 발견되면 거의 여지없이 육지로 내보내졌다.
하지만 조정에서 섬들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조정에서는 자주 순회사들을 파견해서 섬들의 현황을 살피게 했다.
조선 선조때, 순회사 일행이 섬에 들어와 태하동을 유숙지로 삼아 섬 전반에 대한 순찰을 마쳤다. 일행은 다음날 강원도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이날 밤 순회사는 기이한 꿈을 꾸었다. 동해 해신이 현몽하여 일행 중 동남동녀 두 명을 이 섬에 남겨두고 가라는 말을 마치며 사라졌다.
다음날, 순회사는 꿈을 무시하고 출항하려 했지만 풍랑이 일어 출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풍파가 가라앉기를 기다렸지만 바람은 며칠째 멎을 기세는 없고 점점 심해졌다.
할 수 없이 순회사는 일행 전원을 모아놓고 동남동녀 두 명에게 일행이 유숙했던 장소에 담뱃대를 잊고 왔으니 찾아올 것을 명했다. 두 명이 밀림 사이로 사라지자 그렇게 심했던 풍라이 거짓말처럼 멎고, 순회사 일행은 허겁지겁 배에 올라 급히 출항했다.
이 무렵, 속은 줄도 모르는 어린 남녀는 아무리 찾아도 담뱃대가 없어 해변으로 돌아오니 배는 벌써 저 멀리 해상을 달려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고함을 치고 울부짖었지만 이미 배는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말았다.
임지로 돌아간 순회사는 울릉도 현황을 조정에 보고하고 나서 항상 연민의 정과 죄의식이 마음 한구석을 떠날 날이 없었다. 다음 해에 다시 울릉도 순회의 명을 받고 입도하여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태하동에 상륙했다.
순회사 일행이 작년에 유숙했던 그 자리에 발견한 것은, 꼭 껴안은 형상으로 누워 있는 두 동남동녀의 백골이었다. 춥고, 배고프고, 무엇보다는 무척이나 무서웠을 것이다. 순회사는 이들이 불쌍해 견딜 수 없어 땅을 치며 통곡했다. 순회사는 슬펐지만 어쩔 수 업섰다. 순회사 일행은 어린 고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그 자리에 조그만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
이것이 태하동 성하신당의 유래이다. 1882년 이래 본격적으로 개척이 시작된 이후, 울릉도 사람들은 매년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에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며 풍년과 해상안전을 기원했다.
“연료전지 모드를 시험가동하겠다. 증속, 15노트. 방위 공팔십공(0-8-0)!”
“함장의 명령이 승무원들을 상념에서 깨웠다. 장문휴가 서서히 속도를 올렸다.
강인현은 동해바다를 지킬 수만 있다면 태하신당에 모셔진 동남동녀들처럼 몸을 바쳐도 좋으리라 생각했다. 차가운 동해바다에 잠기더라도 동해바다와 영원히 함께 하는 것도 멋지리라 여겼다. 동남동녀들 처럼 이름이 남지 않더라도, 사당에 모셔지지 않아도 바다지킴이가 될 수만 있다면 그런 건 개의치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동해만 지킬 수 있다면!
9월 14일 12:25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쪽 32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71 컬럼비아, 사령실
“소나 컨택! 방위 2-6-0입니다!”
워런 브리드 준위가 인터폰을 누르고 사령실을 급히 호출했다. 곧이어 함장과 부함자잉 모두 소나실로 몰려왔다.
“거리가 멀어 확실히 판단하기는 힘듭니다만, 매우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이건 저번 훈련 때 기록된 장문휴의 음문입니다.”
화면상에 나온 음문 스펙트럼은 음파의 맥과 골의 특징이 뚜렷하지 않았다. 하지만 몇몇 부분의 스펙트럼 막대기는 이전에 수집한 장문휴의 음파와 간격이 일치하고 있었다.
“먼저 코드 부여를 한다. 일단 장문휴로 간주하겠다. 정밀 추적을 실시한다!”
“예, 알겠습니다. 코드 부여 시에라(S) 31!”
함장 스위프트 중령이 시계를 들어 확인했다. 그가 통보받은 중문휴의 울릉도 해역 진입 예정시간과 거의 일치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이 정보를 알아낸 자가 누굴까 궁금했다. 함장은 대단한 스파이가 한국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신경을 끄는 것이 상책이었다. 정보분야에 너무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가는 득보다 실이 컸다. 스위프트 중령은 일부러 소나팀에게 장문휴의 작전 예정해역과 시간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장문휴를 일찌감치 멀리서 판별해낸 소나팀을 칭찬해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잘했네, 워런!”
1년만에 처음으로 함장에게 받아보는 칭찬이었다. 지난 몇 개월 간은 사실상 최악이엇다. 브리드 준위는 진심으로 함장의 칭찬이 고마웠다.
“감사합니다, 함장님.”
뿌듯해진 브리드 중위가 다시 소나컨솔에 몰두했다.
“부함장, 전원 전투배치 시켜라. 얼트러 콰이엇(ultra quiet)을 계속 발령하고 모든 승무원은 각자 전투위치에서 최대한 침묵을 유지시킨다.”
“예! 알겠습니다.”
드디어 시작이었다. 부함장의 얼굴이 긴장으로 잔뜩 굳어졌다.
“그리고 부함장, 라 호야에게도 연락하라.”
스위프트 중령과 부함장 대니얼 러너 소령이 의미있는 눈빛을 교환했다.
“물론입니다.”
9월 14일 12:40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 서쪽 29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 사령실
긴급통신문을 받아 읽던 가르시아 중령이 주먹을 꽉 쥐었다. 통신문에는 컬럼비아가 발견한 장문휴의 위치와 침로가 정확시 기재되어 있었다. 올 것이 온 셈이었다. 그리고 지난 몇 달 간의 실패를 만회할 순간이었다.
“소나팀! 컬럼비아에서 접촉보고가 도달했다. F3071 지점이다. 놈의 침로는 0-9-0이다. 우리 쪽으로 접근하고 있다. 놈에게 접근한다!”
낮게 깔린 함장의 목소리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함장의 명령을 부함장이 수행하자 각 부서에서 속속 보고가 올라왔다.
“예! 알겠습니다. 침로 변경한다. 우현 10도! 방위 2-7-5도. 속도 8노트로!”
“우현 10도, 방위 2-7-5로 변침합니다.”
“8노트로 가속하겠습니다.”
한국 잠수함에 가까이 접근할 때는 속도를 줄이고 바짝 긴장해야 했다. 어찌된 일인지 장문휴는 라 호야가 탐지하기도 전에 먼저 라 호야를 발견해냈었다. 상대방의 능력을 알고 있는 가르시아는 당연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9월 14일 13:05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쪽 38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71 컬럼비아, 사령실
“함장님, 라 호야로부터 수신을 확인하는 통신문입니다.”
통신문 말미에는 무언가를 의미하는 문장이 섞여 있었지만 그것을 전달하는 통신장은 애써 호기심을 억제했다. 통신문을 받아든 스취프트 중령이 부함장 러너 소령을 불러 조용히 수군거렸다.
“댄, 압션 리마(option L)야.”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아쉽습니다. 우리 족에서 주도하고 싶었는데요.”
“괜찮네. 실수 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두게.”
“물론입니다. 모든 준비는 완료됐습니다.”
압션 리마는 컬럼비아와 라 호야 가운데 어느 쪽이 각기 어떤 임무를 부여받는가에 대한 설정이 담긴 약속이었다. 컬럼비아가 먼저 탐지한 경우 컬럼비아가 장문휴를 추적하면서 몰이를 시작하게 된다. 장문휴를 일단 사냥꾼인 라 호야로 몰아붙인 다음 몰이꾼인 커럼비아는 잠시 기다리는 것이 압션 리마의 의미였다.
“함장님! 토끼몰이에 적당한 거리입니다. 증속을 허락해 주십시오.”
“좋아! 가속한다. 20노트면 적당하겠나?”
“물론입니다! 최적입니다. 증속한다. 20노트로!”
컬럼비아의 함장과 부함장, 그리고 승무원들이 손발을 척척 맞춰가고 있었다.
9월 14일 13:15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쪽 47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방위 이백칠십오(2-7-5)에 잠수함입니다!”
“이럴 수가! 거리는 어떻게 됩니까?”
저장된 음문들의 데이터 베이스를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강인현이 음탐장의 급작스런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질문했다. 난데없이 잠수함이라니, 놀랄 일이었따.
“가깝습니다! 거리 5,000미터 이내입니다.”
최현호 상사가 기겁을 하며 모니터를 몇 번씩이나 확인했다. 정체불명의 잠수함이 이렇게 가까이 접근할 때까지 몰랐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을 정도였다.
연료전지 모드로 고속항주를 하는 동안 그냥 지나친 것 같았다. 최현호 상사는 만약 장문휴가 저속상태였다면 분명히 먼저 발견했을 거라고 억울해했다.
“이런! 어떻게 여기까지...... 함장님!”
강인현이 인터폰을 누를 새도 없이 머리를 뒤로 돌려 사령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갑작스런 외침에 놀란 함장과 부함장, 작전관 김승민 대위가 허겁지겁 다가왔다.
“잠수함입니다. 후방 4,000미터. 가속하고 있습니다. 속도는...... 20노트에 가깝습니다.”
“미국 잠수함입니다. LA급 후기형입니다. 아니! 이놈은 지난 훈련때 접촉했던 컬럼비아 같습니다. 이봐, 선임하사! 빨리 데이터 베이스를 불러들여.”
강인현 대위와 최현호 상사가 동시에 외쳤다. 옆자리에 있던 음탐 선임하사 안상률 중사가 최현호 상사의 지시에 따라 보조기억장치에 저장된 음문파일들을 불러냈다. 잠수함들이 작전중에 접촉한 타국의 모든 함정과 잠수함, 혹은 아군의 전 함정의 음문 특성들이 저장된 프로그램을 가동시키자 지난번 훈련에서 포착하여 저장시킨 컬럼비아의 음문파일이 선택되었다.
안상률 중사가 트랙볼을 조작해서 컬럼비아의 음문파일을 불러낸 다음 빅 프로그램을 가동시켰다. 속도와 출력에 따라 변하는 다양한 캐비테이션의 예상 모델이 화면 위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수학적 변수를 계산하는 짧은 시간이 흐르고 화면에는 계산을 종료했다는 메시지와 함께 새로 접촉한 음문이 기존 데이터의 컬럼비아 음문과 동일 하다는 계산 결과가 표시되었다.
“확실해, 컬럼비아야.”
“본함을 완전히 탐지한 것 같습니다. 우리 쪽을 향해 계속 가속중입니다.”
강인현 대위가 다시 소리치자 서승원은 잠자코 땀이 배인 모자를 다시 눌러썼다.
9월 14일 13:20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쪽 45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71 컬럼비아, 사령실
“거리 3,500야드입니다.”
브리드 준위는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조용하고 탐지능력이 우수한 잠수함이 갖춰야 할 두 가지 요소 모두에서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잠수함 장문휴가 컬럼비아의 매복을 모르고 스쳐 지나갔다. 그동안의 열등감과 당혹감에서 말끔하게 벗아난 승무원들은 모두들 미국 잠수함 승무원으로서의 자신감을 완전히 회복한 기색이었다.
“좋아, 쏴!”
함장도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그 자신감이 주저없이 과감한 행동을 가능케 했다.
“액티브 탐신!”
컬럼비아에서 액티브 소나 탐신음이 장문휴를 향해 진동했다. 그리고 5초 후에 또다시 공격소나음이 울려퍼졌다. 스위프트 중령이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첫 번째 기회가 가장 좋았다. 최적의 순간이었다.
9월 14일 13:25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쪽 49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액티브 소나음입니다! 방위 이백팔십공(2-8-0)도. 거리 2,000미터!”
최현호 상사가 반쯤 찌그러진 표정으로 보고했다.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액티브 탐신음을 맞아 음탐팀은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다들 정신을 바짝 차렸다.
“이런 개새끼들!”
진종훈 소령이 울화가 일었는지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한국 잠수함에 도발해오는 미국 잠수함에 대한 증오가 절반, 매복한 미국 잠수함을 미리 발견하지 못한 데 대한 불만이 절반이었다.
잔뜩 심각한 표정 짓고 있던 서승원 중령이 나섰다.
“오른편으로 전타! 침로 이백팔십공까지 잡아라!”
“키 오른편 전타! 침로 이백팔십공!”
“예인소나 감겠습니다!”
함장 서승원 중령의 명령에 따라 장문휴가 우현 쪽으로 급격하게 선회했다. 말이 끝나자마자 서승원은 다시 김승민 대위를 불렀다.
“작전관!”
“옛! 함장님.”
“수중통신을 시도해야겠다. 자네가 교신을 맡아라. 대기하게!”
“옛! 알겠습니다.”
서승원은 직접 교신을 시도할 생각이었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던 진종훈 소령도 그제야 화를 꾹꾹 눌러 참았다. 보스인 함장이 직접 맞붙기로 마음먹은 상황이었따.
“선회를 마쳤으면 키 고정시켜!”
“키 고정합니다.”
조함병이 복창하며 조종간 아래쪽에 붙어 있는 키 잠금용 핸들을 감았다. 물러서지 않겠다는 함장의 굳은 의지의 표현이었다.
“거리 1,100입니다.”
“교신 시작해!”
함장 서승원 중령의 목소리는 굵고도 힘이 담겨 있었다.
9월 14일 13:30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쪽 47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71 컬럼비아, 사령실
“놈이 선회했습니다.”
“어느 쪽이야?”
“오른쪽입니다.”
소나팀의 보고를 받은 함장 스위프트 중령이 씨익 웃었다. 일이 재미있게 돌아간다고 생가했다.
- 함장님! 수중통화입니다.
통신실에서 수중교신이 들어왔다고 알려왔다. 사령실 요원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동료함 라 호야의 통화 시도는 아닐 게 분명했다. 틀림없이 장문휴가 시도하려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원 엠씨(1MC)로 회선을 연결해!”
스위프트 중령은 함장용 명령회선인 원 엠씨로 연결하라고 지시하고는 머리 쪽에 붙어 있는 마이크를 살짝 집어들었다.
- 여기는 한국 해군 잠수함이다. 귀함의 소속을 밝혀라.
장문휴에서 보내오는 통신은 약간 잡음이 섞여 있었다. 영어발음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뜻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스위프트 중령이 고개를 까닥거리며 소리없이 웃었다.
- 반복한다. 귀함의 소속을 밝혀라. 귀함은 왜 공격소나를 쏘았는가? 우리에게 적대행위를 하겠다는 것인가? 응답하라!
스위프트 중령은 코읏음치며 계속 대답하지 않았다. 장문휴에서 보내요는 교신은 계속 이어졌다.
- 귀함의 국적을 밝혀라. 반복한다. 귀함의 국적을 밝혀라.
9월 14일 13:35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쪽 48km
한구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대답이 없습니다. 함장님!”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지만 대답이 없자 머쓱해진 김승민 대위가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함의 중심인 함장은 이런 상황에서 별로 놀라지도 않는지 덤덤하게 명령했다.
“놈은 교신할 의도가 없다. 그대로 밀어붙인다. 15노트로 증속하라.”
“알겠습니다. 15노트로 증속!”
그 순간 다시 공격소나음이 길게 울렸다. 승무원들이 계속되는 소나음에 치를 떨었다. 소리도 끔찍했지만, 공격소나음은 잠수함 승무원들이 평상시에 그와 비슷한 소리만 들려도 깜짝 놀라는, 그런 무서운 의미가 담긴 소리였다.
공격소나는 상대방을 완전히 파악하고 나서 최종적으로 공격하기 직전에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격소나음을 발한다는 것은 공격하겠다는 의도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상대방이 공격소나음을 발신하면 반대편에서 반격을 가해도 무방할 정도로, 공격소나음을 발한다는 자체가 공격하는 것과 의미 차이가 별반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런 개새끼들이!”
진종훈 소령의 고함소리가 소나음에지지 않을 정도로 크게 울렸다.
11. 오발탄
9월 14일 13:40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쪽 47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71 컬럼비아, 사령실
“변침한다. 우현 전타!”
“우현 전타!”
스위프트 중령은 장문휴를 약올리며 계속 유인할 생각이었다. 그 사이에 라 호야가 장눔휴의 뒤를 계속 따라붙을 것이다. 이것이 계획이었따. 장문휴의 소운 수준과 탐지능력, 그리고 전체적인 성능을 평가하려면 직접 몸으로 부대끼는 것보다 좋은 방법이 없었다. 상대방은 최선을 다해 이쪽의 도발을 피하려 할 것이고, 그럴 때 당연히 잠수함의 숨겨진 능력도 나타나게 마련이었다.
“속도를 낸다. 놈을 앞서가야 해!”
“알겠습니다. 20노트로 증속합니다.”
스위프트 중령은 부함장이 조함팀을 쥐휘하는 것을 바라보며 라 호야가 예정대로 행동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멍청한 라 호야가 부산 앞바다에서 제대로만 했던들 이렇게 고생할 일은 없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아직까지 일이 수월하게 풀리고 있었다. 함장은 조금 더 도발해서 상대방의 반응을 보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무엇보다도 동료함과의 팀웍이 중요했지만, 스위프트 중령은 라 호야의 함장을 믿지 않았다. 잠수함 함장으로서 적당한 과감성과 적당한 정도의 자제능력이 중요한데, 스위프트는 가르시아 중령을 약간 다혈질인 인물로 평가하고 있었다.
“시에라 31을 추월했습니다. 현재 좌현 700미터에 있습니다.”
“좋아. 이제부터는 목표 31의 속도를 정확히 체크하라. 너무 앞서가도 안 된다.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도록 놈을 계속 유인해야 한다.”
라 호야는 그리 멀지 않은 후방에 떨어져 있었다. 장문휴의 예인소나에 걸리지만 않는다면 라 호야는 수월하게 장문휴의 뒤를 밟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장문휴는 예인소나를 접어두었을지도 몰랐다. 컬럼비아가 장문휴를 계속 앞지르면서 복잡한 침로로 움직이면 장문휴는 예인소나를 접어야 제대로 행동할 수 있다. 그러니 컬럼비아는 장문휴가 예인소나를 거추장스럽게 느끼도록 만들어야 했다.
“좋아, 다시침로를 변경한다. 좌현 15도로 변침! 방위 3-1-5도로!”
“좌현 15도! 방위 3-1-5도!”
컬럼비아가 충돌할 정도로 가까이 접근하며 장문휴의 앞을 가로막기 시작했다. 그리고 좌우로 지그재그 항해를 하며 장문휴의 침로를 방해했다.
9월 14일 13:45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쪽 43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개새끼들 지랄을 떠는군.”
컬럼비아가 장문휴를 앞지르며 침로를 방해하자 참다 못한 진종훈 소령이 다시 벌컥 화를 냈다. 하지만 서승원 무표정하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혼자만 화를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진종훈이 힐끔 고개를 돌려 함장을 돌아보았다. 서승원은 시선을 허공 쪽을 향하고 무어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중이었다.
“부장. 라 호야는 어디에 있을까?”
“옛? 라 호야 말씀입니까?”
갑작스런 질문에 진종훈도 라 호야를 떠올렸으나 어디 있는지 감이 잡힐 리가 없었다. 라 호야는 한국 해군에게 묵사발 난 뒤로 잠시 소식을 감췄기 때문이다.
“예인소나 다시 풀어!”
“예인소나 작동합니다.”
서승원이 명령하자 강인현 대위가 재빨리 예인소나의 조작 스위치를 눌렀다. 급속 변침을 하면서 접어두었던 예인소나였다. 예인소나를 풀면 장문휴의 행동에 제약이 따르겠지만, 혹시 다른 미국 잠수함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강인현은 함장의 명령이 옳다고 생각했다.
“라 호야도 이곳에 있을까요?”
진종훈 소령이 함장의 얼굴을 보며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컬럼비아는 우리를 잡기 위해 이곳에 왔다. 라 호야도 역시 우리들을 잡으려고 했어 난 둘이 같이 있을 거라 생각하네.”
서승원 중령의 답변을 진종훈 소령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 해군 잠수함들이 왜 그리 우방국인 한국 잠수함에 집착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함장님! 후방에 뭔가 있습니다. 방위 공구십오(0-9-5)도! 라 호야인지는 아직 불분명합니다. 음문 비교를 시작하겠습니다.”
강인현 대위도 점점 긴박해지는 상황에서 마음이 조급해지고 있었다. 기기를 조작하는 손에 실수가 잦아졌다. 서승원 중령은 무림 고수가 포권을 하듯 오른쪽 주먹으로 왼쪽 손바닥을 ‘딱’ 소리나게 내리쳤다.
“그래, 그놈이 바로 나 호야다. 증속한다. 전속력으로 이곳을 빠져나간다.! 방위 이백칠십오(2-7-5)도! 울릉도로 간다!”
9월 14일 13:48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쪽 44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71 컬럼비아, 사령실
“시에라 31! 가속하고 있습니다.”
“귀여운 녀석. 도망가려고? 그러면 쓰나. 자! 다라잡겠다. 증속하라!”
도전적으로 덤비던 장문휴가 아예 도망가려는 심간인 것 같았다. 스위프트 중령은 장문휴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컬럼비아가 최고속력으로 다시 장문휴를 뒤쫓기 시작했다.
“놈이 도망쳐봤자 기껏 25노트다. 우리한테는 어림도 없지.”
차차 좁혀지는 장문휴와의 거리를 지켜보며 수위프트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무급기 추진시스템을 사용하는 잠수함이라도 전기추진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전동모터는 출력 면에서 원자력 잠수함의 스팀 터빈에는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것이다. 느린 속도에서 디젤 잠수함이 조용할지는 몰라도 속도를 다투는 일이라면 원자력 잠수함이 한 수가 아니라 몇 수 위였다.
“거리 1,000. 곧 따라잡습니다.”
러너 소령이 함장을 돌아보며 보고했다. 장문휴를 앞선 후에 울릉도를 접근하지 못하도록 저지하려면 조금 더 치열한 몸싸움이 필요할 것 같았다.
잠수함끼리 추적전을 벌이는 중에 종종 충돌사고가 발생하곤 한다. 소련 붕괴 이전 냉전시대에 미국 공격원잠들은 바렌츠해나 동해에서 각각 소련 북양함대와 태평양함대 소속의 탄도미사일 전략원잠들을 일일이 추적해왔따. 핵전쟁이 발생하면 즉각 미국의 공격원잠이 소련의 전략원잠을 공격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전략원잠을 가장 쉽게 찾는 방법은 바로 전략원잠들이 모항에서 빠져나올 때부터 추적하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러시아 전략원잠들은 모항을 나서자마자 미국 공격원잠들의 추적을 받아야 했다. 러시아는 미국 공격원잠으로부터 전락원잠을 보호하기 위해 공격원잠을 호위에 붙였다. 그래서 더 치열하고 대규머적인 추격전이 벌여졌다.
이것은 미국 전략원잠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조지아주의 킹즈 베이(King's bay)와 시애틀 근처의 뱅거(Bangor) 기지는 각각 태평양, 대서양함대 오하이오급 전략원잠으 lrl지이다. 이곳 앞바다에도 러시아의 공격원잠들이 항상 대기하고 있었다. 이들끼리 서로 쫓고 쫓기는 과정중에 언제든 사고가 날 가능성이 잠재하고 있었다.
1986년에는 미 해군의 로스앤젤레스급 공격원잠 오거스터(Augusta)와 구 소련의 양키급 전략원잠인 K-219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때 탄도미사일 발사관 위쪽을 들이받은 K219는 침수와 화재로 인해 침몰했다. 그 충돌에 의해 미사일 로켓 연료에 바닷물이 스며들어가 연속적인 폭발이 발생했다. K-219는 버뮤다 앞바다의 5,000미터 해저에 지금도 가라앉아 있다. K-219의 원자로와 핵탄두를 회수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다.
미국 원잠과 러시아 원잠들이 충돌한 사건은 세계 도처에서 일어났다. 이것은 서로 추적하다가 우발적으로 발생하거나, 또는 상대방의 도발에 대해 지나치게 과잉반을 한 결과로 발생한 예가 많았다. 1993년, 국제적 환경보호단체인 그린피스는 냉전 기간 동안 구 소련 핵잠수함과 미국 핵잠수함의 충돌사고가 최소한 7건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한국 놈들은 무식한 러시아 돼지들과 다를 거야. 그렇지 않나?”
스위프트 중령이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러시아 원잠들은 충돌을 개의치 않는 저돌적인 조함으로 인해 악명이 자자했다. 하지만 한국의 장문휴는 겨우 2,000톤도 안 되는 잠수함이다. 덩치로는 LA급과 도저히 비교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충돌 때 입는 피해도 마찬가지였다.
“물론입니다. 러시아 놈들보다는 당연히 현명해야겠죠. 살아남을면 말입니다.”
러너 소령이 킥킥거렸다.
“거리 300야드입니다.”
“좋아! 지나쳐서 앞서 간다.”
함장이 명령을 내리려는 순간 헤드폰에 집중하던 소나장 브리드 준위의 눈이 크게 떠졌다.
“함장님! 목표에서 밸러스트 배수음입니다! 압축공기가 탱크에 주입되고 있습니다.”
“뭐야? 이놈이 도망가려교?”
소나팀의 갑작스런 보고에 놀란 스위프트가 당황해서 서둘러 명령을 발했다. 어떻게든 장문휴가 수면으로 올라가는 것을 막아야 했다.
9월 14일 13:53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쪽 41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가깝습니다! 놈도 우릴 따라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음탐관 강인현 대위가 헤드폰을 귀에서 약간 떼며 보고했다. 핵잠수함의 스크루 소리, 캐비테이션 소리, 그리고 물살 갈라지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이때 함장이 예상치 못한 명령을 내렸다.
“좋아! 지금이다. 잠항각 20도!”
“잠항각 20도!”
서승원 중령의 명령에 휘둥그레 놀란 김승민 대위가 복창하고 잽싸게 조함을 지휘했다. 작전관은 함장의 명령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명령은 명령이었다. 조함을 맡은 윤순하 하사는 영문도 모른 채 조종간을 아래쪽으로 꺾었다.
장문휴는 밸러스트 탱크에서 물을 빼고 공기를 넣은 상태로 부상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잠수함이 잠항하려면 탱크에서 공기를 빼고 다시 물을 채워 넣어야 한다. 그러나 함장은 밸러스트에 공기가 주입된 상태로 놔둔 채 명령을 내렸다.
일단 부력을 받은 장문휴는 쉽게 가라앉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추진력과 X자형 함미타에 의해 부력이 상쇄됐다. 잠수함은 부상을 멈추고 잠시 균형을 이뤘다가, 다시 아래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함장님! 바로 아랩니다. 이러다간......”
진종훈 소령이 충돌을 걱정하며 진땀을 흘렸다. 그동안 무척이나 신중히 행동했던 서승원 중령이 이렇게 나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부함장은 놀람의 정도가 더욱 컸다. 잠항각도를 나타내는 수평각 지시기가 아래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심도계를 지켜보던 함장이 명령을 내렸다.
“음탐장! 항법소나를 켜라!”
“옛! 항법소나 작동!”
최현호 상사가 항법소나를 켰다. 선체 하부에 장착되어, 혹시 있을지도 모를 암초와 해저지형을 탐색하는 것이 항법소나이다. 고주파 소나음이 바닷속으로 퍼져나갔다.
항법소나음은 가청 주파수가 아니기 때문에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컬럼비아가 소나 모니터로 이 소리를 본다면 화들짝 놀라 나자빠질 일이었다.
함장 서승원 중령이 굳은 표정으로 팔짱을 끼었다. 승무원들은 초조하게 나름대로 충돌 상황에 대비했다.
9월 14일 13:56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쪽 41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71 컬럼비아, 사령실
“함장님! 목표가 바로 위에 있습니다!”
“어떻게 된 거야? 방금 전까지도 부상한다고 했잖나?”
스위프트 중령은 놀란 나머지 소나장 브리드 준위에게 호통부터 쳤다. 당황한 브리드 준위가 몇 가지 기기를 조작해봤지만 기계고장은 아니었다.
“모르겠습니다! 이상합니다. 밸러스트 배수하는 소리는 확실히 들었습니다만, 공기 배출하는 소리도 없었고...... 밸러스트 주수음도 분명히 없었습니다. 앗! 지금 항법소나음이 들립니다. 가깝습니다! 거리 50야드!”
“제기랄! 밸러스트를 멈추고 함미타를 사용해서 강제적으로 하강하것 같습니다. 개자식들! 아예 항법소나를 작동시켜 우릴 놀래키려는 것입니다.”
브리드 준위가 더듬거리는 동안 그제야 알았다는 듯 러너 소령이 한국 잠수함에 욕설을 퍼부었다. 꼼짝없이 속았다는 데 대한 당혹감과 수치심으로 러너 소령의 얼굴이 벌개졌다.
“좌현 전타! 동력정지! 빨리 빠져나간다.”
“좌현 전타! 동력정지!”
다급해진 스위프트 중령이 몇 가지 명령을 동시에 내렸다. 잠수함이 속력을 급격히 줄였는데도 불구하고 관성으로 인해 컬럼비아는 장문휴의 아래쪽으로 계속 밀려가고 있었다.
로스앤젤레스급 잠수함은 길이가 110미터이다. 배수량은 한국의 신형 광개토왕급 구축함의 2배 가까이 되는 7,000톤에 달한다. 그러나 이런 대형 LA급 핵잠수함이라도 위에서 내려오는 소형 잠수함이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당장 핵잠수함의 운명에 큰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중대 위협이 되기에 충분했따.
- 쿠쿵!
순간, 사령실 위쪽으로 커다란 충격이 전해졌다. 컬럼비아의 사령탑을 장문휴가 내리누른 것이다. 사령시렝 서 있던 스위프트와 러너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9월 14일 13:58 경상북도 울릉도 동쪽 44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 사령실
“놈이 예인소나를 뺀 게 확실합니다. 목표까지의 거리는 3,000야드 읍니다. 컬럼비아가 목표 꽁무니를 확실하게 문 것 같습니다.”
제이 로키 중사가 헤드폰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보고했다.
“우리 존재가 놈에게 이미 노출됐겠군. 그래, 다른 변화는 없나?”
가르시아 중령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라 호야는 완전한 관찰자가 됐어야 했다. 그런데 장문휴가 예인소나를 사령탑 안에 수납하지 않았다면 라 호야의 존재를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아쉬운 함장은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가르시아 중령은 장문휴의 함장이 정보평가에 나온 것처럼, 아니 그보다도 더 주도면밀하다고 생각했다.
“함장님! 이런! 충돌음입니다. 컬럼비아가......”
“충돌음이 확실한가? 컬럼빙아와 한국 잠수함이 충돌했다구? 오, 하느님 맙소사!”
컬럼비아는 재래식 잠수함도 아닌 핵잠수함이었다. 만약 원자로에서 방사능 누출사고라도 일어나면 큰일이었다. 환경을 생각해도 큰 재앙이었지만, 가르시아 중령은 그것보다는 앞으로 미 해군이 언론으로부터 얻어맞을 것이 더 걱정이었다. 그리고 만약 컬럼비아가 조함불능 상태에라도 빠진다면, 미국은 이번 사건으로 국제적으로 크게 망신당할 판이었다.
“충돌음 확인! 컬림비아와 장문휴가 충돌했습니다.”
“이런, 개새끼들!”
가르시아가 욕설을 퍼부었다. 컬럼비아가 장문휴를 뒤쫓았지만 설마 충돌까지 일어날 줄 상상도 못했다. 신중하고 잠수함 조함 실력이 뛰어난 컬럼비아의 함장 스위프트가 중령이 실수로 충돌했을 리는 없었다. 이런 상황은 스위프트가 의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 교통사고의 가해자인지 분명했다.
“놈이 가속하고 있습니다. 이런! 빠릅니다.”
“컬럼비아는 어떤 상탠가? 빨리 접근한다.”
로키 중사가 총돌로 인한 피해를 파악해보려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장문휴는 다시 가속을 시작하고 있었다. 장문휴가 입은 피해는 크지 않은 모양이었다. 장문휴는 다시 20노트를 넘어서고 있었다.
“함장님! 저놈이 한국 영해로 들어가려는 게 아닐까요?”
“그래, 들이받고서 도망가겠다는 거야. 끝까지 얄밉게 노는군. 이젠 어쩔 수 없어! 놈과의 거리를 떼면 안 된다. 22노트로 증속하라!”
가르시아 중령이 체념하는 표정을 지으며 부함장 폴머 소령에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여기서 한국 잠수함을 놓칠 수 없으니 계획대로 진행하라는 신호였다.
폴머 소령이 잠시 당황하다가 굳어진 표정을 지었다. 내키지 않았지만 이것을 명령이었다.
“예, 시작하겠습니다. 어뢰반 나와라.”
- 어뢰실입니다.
폴머 소령이 마이크를 잡고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함장의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견딜 수 있는 부함장은 별로 없었다.
“실탄 장전훈련을 실시하겠다. 데이터 링크 점검. 발사관 주수하라!”
- 예에? 예, 알겠습니다. 어뢰 장전!
어뢰실에 명려을 내린 폴머 소령은 공격컨솔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제 쇼를 시작할 시간이었다. 매우 불쾌한 쇼였다. 소령은 결코 이런 상황을 바라지 않았다.
소나팀에서 컬럼비아가 속도를 올렸다는 보고가 왔다. 폴머와 눈이 마주친 함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폴머 소령은 이를 악물었다.
잠시 후 미 공격원잠 라 호야로부터 장문휴를 향해 공격소나가 연달아 울려퍼졌다.
9월 14일 14:05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쪽 37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71 컬럼비아, 사령실
“각 부서, 피해상황은 어떤가?”
정신을 차린 스위프트 중령은 가장 먼저 피해보고부터 받았다. 강한 충격이었지만 사령실의 일반기기들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소나실도 문제는 없었다. 손쓸 새도 없이 당한 것차고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사령탑 쪽이 손상받은 것 같습니다. 젠장! ESM 마스트와 레이더 마스트, 그리고 잠망경 하나가 이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러너 소령이 각 장비들의 자기진단 모드를 작동시키자 마스트 배출 시스템의 이상을 알려주는 경보등이 깜박였다. 충격은 측면에서 가해진 것 같았다.
북극해에서 어지간한 두께의 얼음덩어리도 부수고 부상할 수 있는 견고한 구조가 바로 사령탑이었다.
“왼쪽이야, 오른쪽이야?”
“왼쪽입니다. 마크 18 잠망경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비싼 거 해먹었습니다.”
“망할 놈들! 배로 갚아 주겠다. 증속해! 다시 앞서 나간다.”
“알겠습니다. 출력 100퍼센트로 증속!”
잠망경과 ESM 레이더 장비들은 작전에 꼭 필요한 장비들이다. 하지만 그 정도 피해라는데 그나마 위안 삼을 수밖에 없었다. 잠항중일 때는 사용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애써 참으려는 스위프트 중령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공격소나음입니다! 라 호야가 쐈습니다!”
소나팀에서는 동료함의 짓인 줄 파악하고 느긋하게 보고했지만 함장과 부함장은 필요 이상으로 화들짝 놀랐다. 스위프트 중령이 직접 조함병 바로 뒤에까지 뛰어와 명령을 내렸다.
“이런! 기관 전속! 우현 10도 어서 서둘러! 한국 잠수함과 너무 가갑다.”
갑자기 반대편에서 들려온 공격소나의 의미는 단 한가지였다. 컬럼비아가 제 속도로 움직이자 이상이 없다고 판단한 라 호야에서 안심하고 어찌 보면 어쩔 수 없이 다음 단계를 시작한 것이다. 장문휴가 한국 영해로 도주하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그리고 첫 공격소나는 동료함에게 작전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의 의미가 있었다. 아울러 라 호야에서는 장문휴의 위치를 정확히 판단할수 있을 것이다. 이제 본격적인 쇼가 시작되었따.
옆에 있다가 벼락 맞기 싫으면 컬럼비아는 당장 이곳을 피해야 했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함장 스위프트 중령과 부함장만이 알고 있었다. 사령시과 소나실 요원들이 이유도 모르고 허둥거리는 사이에 핵잠수함은 이미 30노트에 가까운 최고속도로 치닫기 시작했다.
9월 14일 14:08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쪽 34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함장님, 공격소나입니다. 지속적으로 쏘고 있습니다. 방위 공구십오(0-9-5)도!”
최현호 상사가 외쳤다. 숨어 있던 라 호야가 완전히 본색을 드러내고 쫓고 있었다.
“어떤가? 배터리실은......”
“점검은 완전히 끝났습니다. 선체 하부에 강한 충격이 있었습니다만...... 아무래도 장문휴는 통뼈인 모양입니다. 저놈들 정만 멍청한 놈들입니다.”
서승원 중령의 질문에 진종훈 소령이 대답했다. 부함장은 방금 배터리실에서 올라온 것이다. 겁만 주려는 것이었는데 충돌에까지 이르자 서승원도 약간 놀랐다.
하부선체에 장착된 배터리에 침수라도 되는 날에는 피해가 클 수도 있었다.
이제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후방 추적은 이제 라 호야가 맡고 컬럼비아는 장문휴의 앞쪽에서 빠른 속도로 멀어지고 있었다. 협공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래, 좋아! 강행돌파한다. 시간이 문제군......”
서승원이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울릉도 영해까지 들어가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전에 장문휴가 이들을 따돌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액티브 소나를 때리며 착 달라붙어 쫓아오는 미국 원잠들을 기만하기는 어려웠다.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컬럼비아가 변침하고 있습니다. 길을 비켜주는 걸까요?”
진종훈 소령이 머리를 갸웃거렸다.
9월 14일 14:15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쪽 35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 사령실
“발사!”
“어뢰 발사했습니다!”
가르시아 중령이 명령하자 폴머 소령이 직접 발사 버튼을 눌렀다. 이제는 주저하거나 거리끼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Mk-48 중어뢰가 발사되며 잠수함에 잠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순간, 어뢰를 실제 발사할 줄 몰랐던 사령실 승무원들이 놀라서 일제히 함장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뜻밖에 함장 가르시아와 부함장 폴머의 표정은 차분했다. 경악한 폴커 스톨츠 대위가 뭔가 말하려고 입을 실룩거렸다가 가르시아의 굳은 표정을 보고 멈추고 말았다.
- 어뢰실입니다! 어뢰가 진자 발사됐습니다!
인터폰을 통해 어뢰장 랠프 재크민(Ralph Jacqmin) 상사의 경악한 목소리가 다급하게 흘러나왔다. 가르시아 중령이 마이크를 집어들고 어뢰실이란 부호가 붙은 스위치를 손가악으로 퉁겨 올렸다.
“함장이다! 예정된 공격이다. 오발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 것. 유선유도를 사령실에서 직접 통제하겠다. 실수 없도록 하라!”
- 예! 예! 알겠습니다, 함장님.
마이크를 내려놓은 함장 가르시아 중령이 잠시 사령실 요원드렝게 눈을 돌렸다. 가르시아는 시선집중을 느끼며 천천히 걸어 잠망경 옆에 걸려 있는 함내 마이크를 잡았다.
“함장이다! 이번 발사는 예정된 발사훈련이다. 반복한다. 사령부로부터 직접 하달된 명령이니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어뢰는 한국 잠수함을 목표로 발사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아군 잠수함 컬럼비아와 함깨 어뢰를 사용한 모의 대잠훈련중이다. 우리는 어뢰 실사격 훈련중이다. 이상이다. 모스 대위?”
“옛! 함장님!”
함장이 마이크를 위로 꽂고 나서 무기장교 모스 대위를 불렀다. 바짝 얼어붙은 모스 대위가 차렷자세로 대답했다.
“어뢰 컨트롤은 부함장 지시를 받도록 하라. 현재와 같이 유선 유도로 최대한 노에게 어뢰를 접근 시킨다. 알겠나?”
“예! 아, 알겠습니다.”
모스 대위는 어리둥절했지만 이것은 명령이었다. 발화장치가 그대로 설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자칫 오작동이라도 했다간 큰일 날 일이었지만 내려진 명령에 의문을 달 수는 없었다.
어뢰조작 컨솔 아페 서 있던 폴머 소령이 아직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스를 잡아 잡아당겼다.
“스톨츠 대위!”
“옛! 함장님!”
함장이 다시 소나팀장까지 불렀다. 모스 대위가 받은 지시 내용을 옆에서 들은 스톨츠도 놀라기에 충분했다. 스톨츠 대위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엉거주춤 의자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소나팀 역할이 중요하다. 지금부터 일어나는 상황은 가능한 최대로 백업한다. 놈들이 움직이며 내는 모든 소리를 정확히 포착하라. 알겠나?”
함장은 마지막 말을 할 대 얼굴을 스톨츠 대위 얼굴에 바짝 들이대고 손가악을 흔들어 스톨츠의 코를 찔러대는 것 같은 동작을 취했다.
“예! 알겠습니다.”
“알았으면 당장 서둘러!”
가르시아 중령은 주위의 다른 부하들이 흠칫 놀랄 정도로 큰 소리로 고함쳤다. 스톨츠 대위가 소나실로 뛰어갔다.
함장으로서도 내키지 않는 명령이었다. 함장도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가르시아는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내 물며 부하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중얼거렸다.
“미친놈들......”
9월 14일 14:18 겨앙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쪽 31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맙소사! 어뢰를 쐈습니다. 어뢰입니다! 거리 5km! 마크 48입니다!”
최현호 상사가 기겁하며 소리질렀다. 혼자만 놀란 것은 아니었다. 사령실에 있는 모든 승무원들이 경악했다.
“다시 확인해 봐! 진짜 어뢰가 맞나? 마크 48이 맞아?”
서승원 중령은 믿기지 않았다. 여태까지 많은 작전을 해왔지만 이쪽을 상대로 어뢰가 날아온 것은 처음이었다. 그 어뢰가 진짝 공격용 어뢰인지 훈련용 어뢰인지 아직 알 n 없었지만, 훈련용 어뢰라도 이렇게 예고 없이 쏘는 법은 없었다.
탄두가 없는 훈련용 어뢰라도 명중당하면 잠수함이 큰 타격을 받을 수도 있었다. 소나로 그 어뢰가 실탄인지 훈련탄인지 알 수 없으므로 함장의 질문은 어뢰가 물속에서 지금도 항주하고 있느냐는 뜻이었다.
“맞습니다! 터빈작동음. 고속입니다! 마크 48 어뢰는 소리가 큽니다. 확실합......”
“함장님! 이건 적대행위입니다. 반격을 가해야 합니다!”
최현호 상사의 보고를 중간에서 자르며 진종훈 소령이 다가왔다. 서승원 중령은 어이가 없었다. 설마 충돌사건을 일으키고 빠져나간다고 해서 상대바이 이쪽을 공격할 이유는 될 수 없었다. 어쨌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기관 전속.”
“기관 전속!”
“기만체 발사 준비하라!”
“기만체 발사 준비됐습니다!”
함장의 명령과 동시에 복창한 목소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장문휴함의 주 추진기인 지멘스(Siemens)제 3,875마력짜리 공냉식 직류 전동기가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진동을 줄이기 위해 전동기는 고무와 복함 탄성소재의 스프링 장치로 만들어진 지지대 위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잠수함이 가속하면서 소음이 점차 커지는 것은 어쩔수 없었다.
“거리 3,300미터...... 3,250미터......”
스톱워치로 시간을 재는 진종훈 소령은 아직도 상황이 납득되지 않았다. 진짜 어뢰를 상대로 회피해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도대체 미국이 왜 어뢰를 쏘았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거리 3,100...... 3,050미터......”
빠른 속도로 달려왔던 장문휴함이 다시 10노트로 감속했다. 둔중해 보이는 1,800톤짜리 쇳덩어리가 어뢰를 회피할 때는 속도보다 운동성이 중요할 때가 많았다. 더욱이 추적능력이 뛰어난 Mk-48을 상대하는 경우에는 잽싸게 도망가는 것보다는 소리는 죽이는 쪽이 더 안전했다. 그러나 미국이 발사한 Mk-48 어뢰는 시속 60노트에 가까운 속도로 장문휴를 노리고 빠르게 따라붙고 있었다.
“거리 2,200미터! 예정 충돌시간 86초!”
“음탐장! 상대는 미국 잠수함이 틀림없나?”
한 번도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는 사령실 승무원들이 경악한 채 움직이는 동안 서승원 중령이 최현호 상사에게 다시 물었다. 함장도 미국이 왜 어뢰를 쏘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혹시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 상황에서 오발했을 수도 있다. 그런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마크 48 어뢰는 대개 최초 유도를 유선 유도에 의지한다. 그리고 가능한 최대 사거리까지 유선 유도로 어뢰를 발사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래야 명중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만약 유선 유도였다면 오발 사고가 나더라도 간단히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어뢰를 다른 곳으로 유도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함장님! 미국 잠수함이 틀림없습니다. 그것도 로스앤제렐스급, 라 호야가 맞습니다. 지난번 훈련 때 놈의 음문 패턴이 완벽하게 저장되어 있습니다.”
최현호 상사가 단언했다. 두말할 필요 없다는 식이었다.
“저도 동의합니다, 함장님. 라 호야는 스크루 상태가 안 좋습니다. 라 호야의 소음 패턴은 무척 특이합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데이터를 완벽하게 보유하고 있습니다. 동일합니다.”
서승원은 강인현 대위까지 거들자 다시 입을 다물어 버렸다. 감정을 억제하려고 애썼지만 힘들었다.
9월 14일 14:21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쪽 27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71 컬럼비아, 사령실
“후후! 꽤나 놀랐나 보군. 허둥지둥 도망가고 있어 이봐, 소나팀! 백업은 제대로 하고 있겠지?”
땀을 뻘뻘 흘리며 장문휴함의 행동을 지켜보는 소나팀에 함장 스위프트 중령이 물었다. 소나팀은 실전을 방불케 하는 이런 긴박한 상황에는 아직 제대로 적응되지 않았는지 기기를 조작하는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아차 실수하는 사이에 대형 사고가 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방금 전에 장문휴의 움직임을 파악하는데 실수하여 함장에게 호되게 당한 뒤라 긴장이 더했다. 스위프트 중령은 소나팀이 무능해서 충돌했다고 더 화를 냈던 것이다.
“예! 완벽하게 추적중입니다. 저 212급의 전체 출력변화를 시뮬레이트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소나장 브리드 준위는 침착하게 대답하려고 노력했지만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함장도 지금 진행중인 이 작전이 무리수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다. 사고 위험성은 물론, 한국 정부나 해군이 거세게 항의해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잠수함을 평가하려면 이 방법이 가장 적절했다. 다양한 출력 변화와 속도에 따른 잠수함의 소음을 모두 담아두기만 하면 완벽한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러면 장문휴함이 어디숨든 미국 잠수함은 장문휴를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212급은 더 이상 절대 미국 해군을 위협할 만한 요소가 되지 못할 것이다.
장문휴와 충돌했을 때 느낀 분노가 함장을 걱정에서 해방시켰다. 스위프트는 장문휴가 도망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아까의 분노가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흥분에서 희열로 바뀌고 있었다.
구 소련을 상대로 미국이 벌였던 지독한 냉전에서 상대는 구 소련의 원자력 잠수함뿐이었다. 행동반경이 짧은 러시아의 디젤 잠수함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냉전이 종결되고 소비에트가 붕괴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나토 동맹국인 독일은 미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제 3세계에 대한 잠수함 수출에 적극적이었따. 냉전 시대에도 그랬지만, 냉전 이후에는 제 3세계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판촉활동을 폈다.
처음에는 미국이 디젤 잠수함과 같은 재래식 잠수함의 작전능력을 그다지 경계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비에트라는 가장 큰 적이 사라진 지금 적은 더 이상 대양 한복판이나 북국의 두꺼운 얼음 밑에 존재하지 않았다. 페르시아만과 남중국해 등과 같은 근해였고, 제한된 해역이었다.
미국은 특히 합동훈련에서 한국이 장비한 독일제 209급에게 여러차례 대잠방어망이 돌파당하는 망신을 당하자 낮은 속력과 짧은 항속거리의 재래식 잠수함을 다시 평가하게 되었다. 미국은 자국의 주도권에 도전하는 어떤 가상의 적도 용납할 수 없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이 작전은 스위프트 중령이나 라 호야의 가르시아 중령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의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이미 상부로부터 비밀지령을 받아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스위프트 중령도 속으로는 떨렸지만,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부하들 앞에서 태연을 가장해야 했다.
“시에라 31! 본함의 좌현 후방 1,500야드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측면소나에서 정밀 추적이 가능합니다. 곧 함수소나의 감시영역으로 들어옵니다.”
브리드 준위가 보고한 다음 각 소나에서 수집되는 정보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컬럼비아가 장비한 BSY-1 전투시스템의 주 소나체계는 BQQ-5로 소나의 개별적인 을력은 라 호야와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컬럼비아가 라 호야보다 진정으로 뛰어난 기능은 음파의 분석 및 처리 시스템이었다. BSY-1 시스템은 라 호야의 CCS 마크 1 시스템보다 다섯 배 높은 추적/처리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라 호야는 몰이꾼이고 컬럼비아는 사냥꾼인 셈이다.
스위프트 중령은 라 호야에서 발사한 어뢰의 궤적을 모니터를 통해 확인하며 장문휴의 움직임을 살폈다. 장문휴는 그야말로 꼬리에서 불이 나도록 달리고 있었다. 장문휴는 아까보다 속도는 줄였지만 완벽히 소음을 차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만큼 장문휴의 함장이 당황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어뢰 명중 10초 전!”
“이제 놔줄 때가 됐는데...... 라 호야가 도대체 어디까지 가겠다는 건가?”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스위프트 중령은 여전히 팔짱을 낀 채로 실실 웃고 있었다. 최악의 경우 어뢰가 장문휴에 명중하더라도, 물론 그가 ?는 바는 아니었지만, 스위프트 중령은 손해볼 게 없었다. 당분간 미국과 한국 사이에 외교적 위기가 계속되겠지만, 약소국인 한국이 감히 미국에 대들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라 호야의 함장 가르시아 중령은 어뢰 조작 실수에 대한 책임을 지고 옷을 벗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불쌍한 가르시아......’
스위프트 중령이 혀를 쯧쯧 찼다. 함장은 가르시아 중령도 멍청이가 아닌 한 지휘부의 의도를 대충 알아챘을 것으로 추측했다. 한국 해군에게 조롱거리가 된 라 호야의 함장 가르시아 중령이 화를 참지 못해 실제로 한국 잠수함에게 공격을 가하는 경우를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르시아 중령이 다혈질이긴 하지만, 실제 어뢰를 한국 잠수함에 명중시킬 정도로 무모한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스위프트 중령은 가르시아가 명중시키지 않는 한도에서 어뢰를 장문휴에 최대한 접근시킬 것으로 추측했다. 그것이 올해 두 번이나 미국 해군의 망신을 시킨 가르시아의 임무였다. 그는 지금까지는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었다.
함장은 장문휴가 조만간 정지하거나 급회전하며 어뢰 회피운동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때가 이번 작전의 대단원이었다. 스위프트 중령이 그 순간을 잔뜩 기대하고 있을 때, 브리드 준위가 모니터를 확인하며 놀라 외쳤다.
“함장님! 방위 2-6-5에 접촉입니다!”
“뭐야? 이런 빌어먹을! 새로운 접촉을 파악하라!”
“잠수함 같습니다!”
브리드 준위의 목소리에 쇳소리가 섞이고, 스위프트 중령까지 허둥대기 시작했다. 이미 라 호야는 어뢰를 발사했다. 지금은 차분하게 장문휴가 헐레벌떡 도망가는 모양을 구경할 때였다. 하지만 불청객이 나타난 것이다. 목격자가 필요하지 않은 게임이었다. 스위프트는 뭔가 일이 꼬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9월 14일 14:23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쪽 28km
한국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기만체 1, 2번 연속 발사! 좌현 전타! 급속 부상한다!”
회피 순간을 기다리던 서승원 중령이 짧고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장문휴함 뒤쪽 물속으로 독일제 TAU-2000 어뢰기만체가 솟아올랐다. 기만체는 발사관에서 빠져나온 다음 수초가 지나자 어뢰의 추적소나를 속이기 위해 광대역에 걸친 음파를 내기 시작했다.
기만체를 수중에 발사한 장문휴의 움직임이 다시 신속해졌다. 가능한 빨리 기만체와 떨어져야 했다. 장문휴는 좌현으로 급히 꺾어지며 수면을 향해 솟구치기 시작했다.
“어뢰가 기만체를 통과했습니다! 계속 따라옵니다. 충돌 15초 전!”
“3, 4번 기만체 발사!”
서승원은 이제 미국 잠수함의 의도는 확실해졌다고 생각했다. 무엇때문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미국이 한국 잠수함을 공격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지금 상황이 우습게 느껴졌다.
장문휴함이 격침되더라도 블랙박스가 남아 모든 것을 알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심해탐사 능력이 뒤떨어지는 한국 해군이 미국에 앞서 블랙박스를 회수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니면 미국이 방해를 놓을지도 몰랐다. 함장은 그럴 경우 미국이 할 거짓말들이 생각났다. 격침될 경우 모든 책임을 오히려 장문휴가 뒤집어쓸 수도 있었다. 함장으로서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3, 4번 기만체에도 속지 않았습니다. 충돌 10초 전!”
김승민의 목소리는 절규에 가까웠다. 그때 서승원은 잠깐 동안 자신이 무엇인가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통신부이에 장문휴가 공격받은 상황을 요약해서 올려보내는 것을 잊은 것이다. 블랙박스를 뺏기더라도 통신부이는 물위에서 사령부로 상황을 전송해줄 수 있었다.
“충돌 5초 전!”
김승민이 마지막 카운트를 마치자 누가 지시한 것도 아닌데 사령실 승무원들 모두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무릎을 감쌌다.
9월 14일 14:24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쪽 32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 사령실
“어뢰 급속 변침! 우현으로 빠져나갑니다!”
“하하하! 한국 놈들, 기겁했을 거야! 통쾌하군.”
가르시아 중령이 껄걸 웃었다. 넉 달 전 환동해훈련에서 장문휴에게 형편없이 깨진 다음 쌓였던 체증이 일순간에 가시는 것 같았다. 가르시아는 소나팀에게 작업진행 상황을 확인했다.
“소나팀 추적은 어때? 완벽한가?”
“물론입니다. 컬럼비아가 우리보다 한수 위의 시스템을 가졌다고 해도 우리는 어뢰에서 백업된 데이터까지 있습니다. 확실합니다.”
소나팀을 지휘하던 스톨츠 대위가 함장에게 자신있게 대답했다. 스톨츠 대위도 모처럼 후련하다는 표정이었다.
“좋아, 임무 백 퍼센트 달성이다. 모스 대위! 이제 어뢰를 자침시킨다.”
“옛! 어뢰를 자침시키겠습니다.”
어뢰를 자폭시켜야 더 안전하겠지만 콕발시키면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었다. 한국 잠수함이 어뢰의 회피에서 폭발상황까지 녹음해서 증거로 제출하면 라 호야로서는 발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훈련 상황이라는 핑계도 안 먹힐 우려가 있었다. 어차피 모든 것은 미 해군이 원하는 대로 꿰어 맞춰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킬 것은 지키는 것이 안전했다.
“자침시키겠습니다. 어뢰 지냉 코스 수정! 하강시킵니다.”
어회 유도를 지휘하던 모스 대위가 함장에게 보고한 다음 부하 수병에게 지시했다. 이곳 지형은 동해에서도 비교적 수심이 낮은 곳이지만 어뢰가 바닥까지 침좌되면 압궤시키기에 충분한 1,500미터 이상의 수심이었다. 만에 하나 러시아가 미국의 하이테크 병기 가운데 하나인 마크 48 어뢰를 수거해도 무엇을 알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저...... 모스 대위님.”
“뭐야?”
어뢰의 코스를 하강시키는 작업을 하던 조셉 클래퍼(Joseph Klapper) 하사가 얼굴이 노래지며 모스 대위를 불렀다.
“어뢰가! 어뢰가 컨트롤이 안 됩니다!”
“뭐야?”
모스 대위가 다시 뒤돌아 가르시아 중령을 보았다. 어이가 없었다. 모스 대위가 클래퍼 하사를 의자에서 밀어내고 앉아서 직접 조작했다. 정말로 어뢰가 컨트롤되지 않았다. 모스 대위가 허둥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던 가르시아 중령과 폴머 소령이 얼굴색이 검게 변했다.
9월 14일 14:28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쪽 27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어뢰가...... 휴~ 그냥 통과했습니다. 본함 우현으로 빠져나갔습니다.”
“씨팔놈들! 우리를 갖고 놀았습니다. 당장 경고해야 합니다!”
마크 48 어뢰가 지나가면서 남긴 추진음이 날카로운 잔향으로 남았다. 최현호 상사도 이미 소나와 연결된 헤드폰을 벗었지만 장문휴의 선체 내에서도 들릴 정도로 소음이 뚜렷했다. 그제야 긴장이 풀어진 진종훈 소령이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침묵을 지키던 서승원 중령이 짧고 조용하게 진종훈을 제지했다.
“어떻게?”
“당장 놈들에게 접근해서 경고해야 합니다! 부상시켜서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령부로 보고해야 합니다!”
“부장! 어떻게 그렇게 하지? 그들이 응할 것 같은가?”
“강제로라도 부상시켜야 합니다. 이건 완전히...... 적대행위입니다. 어떻게 진짜 어뢰를 발사할 수 있습니까? 도발입니다.”
진종훈 소령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며 강한 어조로 외치고 있었다.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흥분한 진종훈을 바라보며 서승원 중령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 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란 없었다. 미국 잠수함에 부상을 요구한다고 해서 말을 들을 위인들도 아니었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것은 완벽하게 은폐할 수 있는 능력과 힘을 가진 것이 미국이었다. 서승원이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진종훈도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진종훈 소령의 분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함장님! 어뢰가 방향을 바꾸고 있습니다!”
“뭐야? 어느 쪽이야! 우리 쪽인가?”
최현호 상사는 헤드폰을 다시 끼고 소나에 집중하느라 진종훈 소령이 대뜸 크게 소리지르는 것을 듣지 못했다.
“방위...... 이백육십공(2-6-0)도로 가고 있습니다. 악! 그 방향에 새로운 물체가 있습니다!”
“빨리 파악해봐!”
진종훈 소령이 사령실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고함을 쳤다. 그 새로운 잠수함은 동료함인 최무선일지도 몰랐다. 진종훈은 막 긴장이 물린 순간이라 가슴이 계속 거세게 뛰던 상태였다. 심장은 잠시도 쉬지 못하고 거칠게 박동했다.
“아! 디젤 자수함이 아닙니다!”
“한급 원잠으로 판단됩니다!”
“어뢰가 중국 원잠을 포착한 것 같습니다!”
정신없이 기기를 조작하며 보고하는 최현호와 강인현 등 음탐실 요원들의 목소리에 진종훈 소령의 고함소리는 그대로 묻혀 버렸다. 안상률 중사가 잽싸게 한급 공격원잠의 음문 파일을 불려내 대조한 즈기 보고했다.
“오늘 아침 05시에 접촉했던 바로 그놈입니다.”
“미국 놈들이 완전히 미쳤군요.”
진종훈 소령이 다시 입을 열었다. 부함장은 양키놈들이 이번엔 뙤놈들을 상대로 장난을 치려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함장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서승원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9월 14일 14:30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쪽 31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 사령실
“와이어가 절단됐습니다! 어뢰는 방위 2-6-0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모스 대위가 진땀을 흘리며 매달려봤지만 이미 그들의 손을 떠난 뒤였다. 어뢰는 유도를 완전히 상실하고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모스 대위는 어뢰의 유선 유도 케이블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끊어지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모스 대위는 어뢰 유도부나 전선 연결부에 무슨 문제가 생긴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물속 상황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한국 잠수함 근처를 지나며 어뢰가 급격히 기동할 때 손상을 받았을 수도 있었다.
순간 모스 대위는 유선 유도 방식에서 유도선의 지령이 차단되었을 때 바로 자동 공격모드로 전환되도록 입력된 마크 48 어뢰의 초기설정을 바꿔놓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르시아와 폴머 역시 말문이 막힌 채 꼼짝 못하고 있었다.
“방위 2-6-0에는 또 다른 잠수함이 있습니다. 어뢰가......”
“컬럼비아는 아닌가?”
가르시아는 혹시 컬럼비아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방위와 거리상 컬럼비아는 분명 아니었다. 행여나 하는 생각에 한 말이었지만 필요없는 질문이었다. 그쪽에는 분명히 다른 잠수함이 있었다.
“어뢰가 방위 2-6-0의 미확인 잠수함을 포착했습니다. 가속하고 있습니다!”
“맙소사!”
가르시아 중령이 어이없다는 듯이 손으로 눈을 가렸다. 함장 가르시아는 혹시 누군가 어뢰에 장난을 치지 않았나 의심했다. 한국 잠수함을 확실히 격침시키기 위해 지휘부나 정보계통 요원들이 미리 어뢰에 손을 써놓았을 수도 있었다.
그럴 경우 가르시아 중령은 불쌍한 희생양이 된다. 함장은 어뢰에 조작을 가할 수 있는 승무원 몇 사람을 리스트에 올리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뢰의 목표가 된 잠수함이 더 걱정이었다.
9월 14일 14:33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쪽 26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71 컬럼비아, 사령실
“도대체 뭐야! 왜 아직 어뢰를 침좌시키지 않은 거지?”
“어뢰 진행방위 2-6-0! 가속하고 있습니다. 젠장! 라 호야가 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빌어먹을!”
스위프트 중령은 초조했다. 소나장 브리드 준위가 동료함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어뢰의 속도가 점점 증가하고 있었다. 목표를 포착했을 때의 반응이었다. 함장은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어뢰의 진행바위 2-6-0 쪽에는 중국 놈들이 있습니다. 이럴 수가! 중국 잠수함을 포착했습니다. 급속 접근중!”
다급해진 브리드 준위가 소리쳤다. 지금 어뢰의 움직임은 유선 유도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분별없이 라 호야에서 호전적이기만 한 중국 원잠을 일부러 자극할 리가 없었다.
“아무래도 유도 케이블이 끊어진 모양이다. 큰일이군. 일단 어뢰가 어디로 가는지 정확히 추적하라. 가르시아, 이 개자식 같으니라구!”
스위프트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9월 14일 14:34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족 19km
중국 해군 공격원잠 S-404, 사령실
“함장 동지! 어뢰입니다. 본함을 향하고 있습니다!”
소나병이 다급하게 외치자 천쥐타오 중교는 사색이 되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억세게 운이 나쁜 날이었다. 괜히 한국 영해 근처에서 얼쩡거리다가 한국의 초계함 두 척에게 무려 세 시간 동안이나 쫓겨나녀야 했었다. 한숨 돌리고 부분당직으로 일부 승무원들에게 휴식을 취하도록 조치한지 채 한 시간도 못 되어 이번에는 미국 잠수함들이 우글거리는 틈바구니로 끼어든 것이다.
미 제국주의자놈들이 감히 중국 인민해방국 잠정에게 어뢰를 쏘다니! 천쥐타오는 어이가 없었다. 이번에는 울릉도 해저지형을 탐색하기 위해서 재차 한국 영해 내로 들어왔지만 누구라도 경고 없이 어뢰를 쏠 수는 없었다. 영해를 지키려는 한국 해군 과격분자라면 혹시나 그럴 수도 있겠지만, 미국 놈들이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좌현 전타! 180도 선회한 다음 급속 부상한다! 기관 전속!”
천쥔타오는 미국 잠수함들이 한국 향해 어뢰를 발사한 것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무슨 의도인지 그도 알 수 없었지만 공격준비를 하며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뢰가 하눅ㄱ 잠수함을 지나쳐서 자신의 잠수함에게로 돌진 하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어뢰를 뒤늦게 탐지해낸 소나병을 그 자리에서 즉결처분하고 싶도록 울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소나병을 나무랄 수는 없었다. 한급 공격원잠의 소나체계가 워낙 낡고 구형이라는 것을 그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원자력 잠수함으로서 최고속도 25노트의 빈약한 출력을 가지고 있던 한급 원잠이 출력을 최대로 높이며 왼쪽으로 크게 선회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마크 48 어뢰는 점점 거리를 좁혀왔다.
천쥔타오 중교는 그의 잠수함이 미군의 마크 48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군인으로서 최선을 다하기 직전에 가지는 불신은 치명적이고 위험한 패배주의였지만 엄연한 사실이었다. 중국의 국산 무기시스템, 특히 잠수함은 이만저만 성능이 나쁜 것이 아니었다. 갑자기 천쥔타오의 뇌리에 94년도에 받았던 수모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비교적 많은 개량이 가해진 한급 후기형에 해당하는 404호의 소나시스템은 측면에 장비한 DUUX-5 소나가 저주파 대역을 커버했다. 이것은 비교적 양호한 성능을 가진 프랑스제였다.
하지만 함수소나는 고주파 대역을 사용하는 러시아제의 ‘송어뺨(Trout Cheek)'이라는 별명이 붙은 소나였다. 원래. 형식명 MG-10이란 이름이 있으나 구 소련이 무기 명칭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토에서 제멋대로 붙인 명칭이었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성능이 좋지 않았다. 천쥔타오는 소나만 좋았어도 상황을 빨리 판단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함장 동지!”
“뭐야!”
천쥔타오 중교가 신경질적으로 소나팀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좋지 않은 소식이 틀림없었다.
“369호가 앞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뭐라고?”
중국이 자체 건조한 송급 디젤 잠수함의 1번함이 369호였다. 이 잠수함은 물방울경 디자인을 가진 중국 최초의 잠수함이기도 했다.
369호는 한급 원잠 404호와 오늘 교대하기로 되어 있었다. 물론 임무는 달랐다.369호는 404호와 접촉하기 위해 주변 해역에 조용히 줌어 있다가 동료함의 위기를 알아채고 나서는 통에 최악의 위기상황에 빠져들었다.
디젤 잠수함 369호는 404호로 향하는 어뢰를 막으려 과감하게 앞으로 나서고 있었다. 중국이 보유한 몇 척 안 되는 공격원잠에 대한 극단 적인 보호작전인 셈이었다. 천쥔타오 중교의 턱 밑으로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 떨어져 내렸다.
마지막 종말 유도단계로 접어든 마크 48 어뢰는 패시브 추적에서 액티브 탐신으로 유도방식이 전환되었다. 패시브 방식은 표적이 내는 소음을 추적하는 것이고, 액티브 방식은 강한 지향성 팀신음을 쏘아 반사음으로 목표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일단 액티브 탐신으로 전환된 마크 48 어뢰는 처음에 설정했던 한급 공격원잠을 송급 디젤 잠수함이 가리고 앞에 나타났지만 그런 변화에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송급 디젤 잠수함의 함수 아래로 아슬아슬하게 살잘 비켜가던 마크 48 어뢰의 음향 기폭장치가 폭발 타이밍을 놓쳤다. 그러나 잠수함의 자성에 감응하는 마그네틱 기폭장치가 작동했다. 어뢰는 사령탑 바로 아래쪽 좌현에서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폭심에서 몇 미터 떨어져 있지 않은 송급 잠수함은 순식간에 폭발에 말려들었다. 수중 배수량 2,250톤의 송급 디젤 잠수함 369호는 단 한 방에 두 동강이 난 채로 바닷속으로 가가앉았다. 커다란 폭발음이 온 바다에 울려퍼졌다.
9월 14일 14:40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쪽 24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71 컬럼비아, 사령실
“폭발했습니다!”
“이럴 수가!”
스위프트 중령은 어이가 없었다. 평생 이보다 더 심각한 경우가 없었다. 예상치도 못하게 미국 잠수함 라 호야가 중국 잠수함을 격침시킨 것이다.
“우현 전타! 라 호야로 저븐한다. 아! 하느님 맙소사......”
영어에는 신이나 예수를 뜻하는 단어들은 동시에 욕설인 경우가 많다. 함장은 계속해서 성경에 나오는 단여들을 쏟아냈다.
“함장님! 한급 공격원잠이 이쪽으로 함수를 돌리고 있습니다. 가속중입니다!”
“뭐야?”
멀쩡한 잠수함을, 그것도 수십 명의 승무원을 몰살시켜 놓고 실수라고 발뺌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중국은 핵보유국이다. 겉멋만 든 제 3세계 국가들처럼 어정쩡하게 핵탄두만 보유한 것이 아니라 숫자는 적지만 그래도 미국을 향해 대률간탄도탄을 날릴 수 있는 핵강국이었다.
상대는 만만하기 그지없는 한국 잠수함이 아니었다.
동료 잠수함을 잃은 한급 공격원잠이 당장 공격태세에 들어갔지만 이에 맞대응을 할 수도 없었다. 함장은 일단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우현 전타! 심도 150피트! 최고 속도로 빠져나간다. 빨리! 서둘러!”
“예! 알겠습니다. 우현 전타! 심도 150피트!”
9월 14일 14:45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쪽 22km
중국 해군 공격원잠 S-404, 사령실
“함장 동지! 부상해서 사령부로 사태를 먼저 보고하는 것이......”
“닥쳐! 어뢰실! 공격 준비하라!”
부함장 레이후 소교가 함대사령부로 먼저 보고할 것을 건의했지만 함장 천쥔타오 중교는 듣지 않았다. 양키들이 공격해서 아군 잠수함이 한 척 격침되었다고 보고하면 어떻게 될 것인지 불을 보듯 뻔했다.
북해함대 사령부에서는 당장 404호의 귀환을 종용할 것이다. 그리고 대가를 얻어내려고 더러운 미 제국주의자들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 낼 것이다. 그 사이에 사건은 조용히 은폐된다. 그렇게 해서 해당 작전 지휘관들만 숙청당하고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이것이 사고 수습의 일반적인 시나리오였다.
천쥔타오는 몇 년 저의 악몽을 떠올렸다. 황해에서 미국 태평양 함대소속 키티호크 항모 기동부대를 추적하던 임무였다. 수심이 낮은 황해에서 잠수함이 안전한 항해를 하기 위해서는 수면에 기준을 맞추어 항해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의 잠수함은 키티호크 근처까지 접근하기는커녕 미 해군의 S-3 바이킹 대잠초계기에 발각되어 무려 3일 동안 도망 다녀야 했었다.
천쥔타오가 받은 임무는 키티호크를 추적하여 보고하라는 임무였지만 물론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그곳은 미국 항공모함의 자체 방어구역이긴 했으나 분명히 공해였다. 한급이 물러섰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초계기들은 소노부이를 투하하면서 액티브 탐신까지 하며 악착같이 괴롭혔다. 천 중교는 그깨 키티호크의 대잠초계기들을 도저히 떨쳐낼 수가 없었다.
결국 청쥔타오가 지휘한 한급 원잠은 예정과 다르게 모항도 아닌 산동반도의 칭다오로 급거 대피해야 했다. 수치스럽게도 미 해군의 바이킹을 쫓아준 것은 인민해방군 소속 J-7 전투기들이었다. 바이킹들은 방공식별구역까지 집요하게 따라왔던 것이다.
그 사건은 외교문제로 크게 바화되었다. 통상적인 중국의 해군 작전까지 방해하는 미국의 무분별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었다.
중국 해군을 망신시킨 천쥔타오에게 내려진 사후징계는 가혹할 수밖에 없었다. 천 중교는 그가 맡았던 한급 공격원잠으로부터 바로 직위해제 당하고 무려 3년 동안이나 로미오급 구식 잠수함을 타야 했다.
천 중교가 아직가지도 중교 계급에 머무르고 있는 것도 그 사건 때문이었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이제 다시 한급 공격원잠 404호의 함장으로 복귀한 마당에, 이번 사건의 원인 같은 것은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결과였다. 또다시 혹독한 징계밖엔 없었다.
자신의 흉터를 드러낸다면 그 누구도 아껴줄 사람은 없었다. 아픈 곳은 더욱 더 속으로 곪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그가 경험한 정치가들의 생리였다. 천 중교는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자 고개를 가로 저었다.
천 중교는 바고 같은 송급 잠수함 369호 승무원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스스로 404호의 앞에 뛰어들어 자신들의 목숨을 던진 것이 전혀 고맙게 느겨지지 않았다. 차라리 404호가 어뢰를 맞는 것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생존자가 더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 어뢰실입니다! 공격준비 완료됐습니다.
“좋아! 명령을 기다려라. 부함장! 기관 전속! 놈들을 추적한다.”
“예! 알겠습니다. 기관 전속!”
레이후 소교가 명령을 복창하며 지시를 내렸다. 레이후 소교가 힐끔 돌아본 천 중교의 표정의 뜻밖에 담담해 보였다.
9월 14일 14:50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쪽 30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 사령실
“컬럼비아가 본함을 향합니다. 뒤쪽에...... 앗! 한급 원잠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런! 한급이 속도를 올립니다. 함장님! 중국 잠수함이 컬럼비아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로키 중사라 라디오 야구 중계하듯 악을 썼다. 얼굴이 노래진 가르시아 중령과 폴머 소령 모두 어떻게 손을 쓸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발사한 어뢰가 중국 잠수함을 격침시킨 것이다. 중국 잠수함이 어떻게 반응하든 그들로서는 당연한 권리였다.
“놈이 공격할까요?”
“공격할지도...... 어떻게 하면 좋겠나?”
가르시아의 머릿속은 순간 텅 비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만약 중국 잠수함이 이쪽을 공격한다면, 공격 의도를 확인하자마자 이쪽에서 선수를 치는 것이 유리했다. 하지만 과연 방어적인 공격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당장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방법이 없었다. 폴머 소령은 지금 이 상황이 고전적인 유럽식 결투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이미 한 방을 쏜 이상 상대방이 쏠 때까지 잠자토 기다려줘야 하는 것일까란 생각이 들었다.
“기관 정지! 컬럼비아를 기다린다. 어뢰실! 발사관 2문에 모스를 할당한다. 나머지 발사관 2문은 어뢰를 링크시켜 놓도록!”
라 호야가 엔진을 모두 끈 채로 조용히 미끄러져갔다. 모스(MOSS)는 구경 10인치(254mm)에 길이 약 4미터, 중량은 450kg에 이르는 어뢰형태의 유인기만장치였다. 잠수함이 움직이면서 발생시키는 추진음을 흡사하게 재현하므로 잠수함 추적훈련에서 시뮬레이션 장비로 사용하기도 한다. 어뢰실에서는 이미 재장된 마크 48 어뢰 두 발을 빼내고 모스 어뢰 디코이를 장전하느라 무척 바빠졌다.
모스를 어뢰발사관에서 발사하려면 특별한 사출장치가 필요했다. 라 호야의 어뢰발사관 직경은 533mm인데 반해 모스의 직경은 254mm이므로 충분히 들어갈 수는 있으나, 수압으로 강제방출 시키는 방식일 경우 발사관 내부에서 모스가 손상받을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533mm구경에 맞는 모스 발사기를 따로 어뢰발사관에 삽입해야 했다. 어뢰실요원들이 예비어뢰 거치선반의 맨뒤쪽에 처박혀 있던 모스들을 꺼내느라 애를 먹었다.
“함장님! 컬럼비아로부터 수중통신입니다.”
거르시아가 재빨리 통신실로 향했다. 수중전화는 말 그대로 수중에서 상호간 음성으로 재화를 나눌 수 있는 통화장치이다. 수중전화의 원리도 일반 가정용 전화기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반 전화기가 움성을 진동으로 인식한 다음 전기신호로 바꾸어 상대방에 전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중전화는 음파에 신호를 실어 보낸다.
가르시아가 받아든 모델 5400형 수중전화기에서 이미 고함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두 잠수함의 거리가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컬럼비아가 고속으로 항주중이어서 잡음이 많이 끼었다.
-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컬럼비아 함장 스위프트 중령의 목소리는 차분하지 못했다. 컬럼비아늬 스위프트 중령이 이번 작전의 선임이자 책임자였다. 스피커 저편의 목소리는 무척 흥분한 상태였다. 하지만 가르시아는 뭐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고 혼란스러웠다.
“함장님! 어뢰입니다. 어뢰를 쐈습니다!”
“뭐야? 개자식들! 방위 2-6-0으로 모스 발사하라!”
정신을 차린 가르시아 중령이 명령을 내렸다.
“모스 발사합니다!”
“우현 전타! 침로 1-0-0도로! 서둘러라!”
라 호야의 어뢰발사관으로부터 모스 기만체 한 발이 사출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모스의 발사기는 그대로 어뢰발사관에 있고, 그 내부로부터 모스 기만체만 빠져나온 것이다. 일단 잠수함을 빠져나온 모스는 자체동력으로 서서히 가속하여 전방을 향해 미끄러져 나갔다. 라 호야의 어뢰실에서는 다시 발사관을 폐쇄하고 새로운 모스를 장전하기 위해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 이런, 제길! 기관 전속! 다운트림, 20도 하강한다!
컬럼비아의 스위프트 중령이 수중전화기의 송신 버튼을 누른 채로 명령을 내리는지 그쪽의 바쁜 상황이 가르시아 중령에게도 들려왔다. 눈앞이 캄캄했다.
9월 14일 14:55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쪽 26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중국 원잠이 어뢰를 쐈습니다! 모두 네 발입니다. 어뢰 속도 40노트!”
최현호 상사가 깜짝 놀라 보고하자 장문휴를 공격하는 줄 알고 서승원 중령이 급히 물었다.
“방향은 어딘가?”
“방위 이백육십공(2-6-0)도에서 발사됐습니다. 목표는 우리가 아닙니다. 어뢰가 공팔십오(0-8-5)를 향합니다! 중국이 미국 잠수함들을 향해 쐈습니다!”
침착한 강인현 대위가 상황을 정확히 보고했다. 함장 서승원 중령 뿐만 아니라 사령실 승무원들 모두 어이가 없었다.
“개자식들! 그놈들은 당해도 쌉니다. 미친놈들!”
진종훈 소령이 속이 다 시원하다는 듯이 한 마디 던졌다. 김승민 대위가 허탈하게 웃자 서승원 중령이 김승민 대위의 어깨를 툭치고 나섰다.
“모든 상황을 자세히 기록해두도록, 부장!”
“예! 함장님.”
“현재 상황을 부상과 동시에 사령부로 보고한다. 부상하는 대로 최단시간에 보고문을 발송할 수 있도록 준비하게.”
“예! 알겠습니다.”
부함장이 서둘러 통신실로 뛰어갔다.
서승원 중령의 눈이 이번에는 김승민 대위를 향했다. 김승민은 웃지 않으려고 이를 앙 다물었다.
“작전관! 우리는 일단 몸을 숨긴다. 수온상황을 체크해서 은폐 가능한 위치를 파악하라. 중국 한급에게 들키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한다.”
모든게 엉망진창이었다. 함장 서승원은 중국이 미국에 교전을 감행하리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중국의 자존심과 미국에 대해 갖고 있는 경쟁의식이 작용하여 한급 원잠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함장은 이제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했다.
하지만 강 건너 불구경할 처지가 아니었다. 자칫 불똥이 장문휴함에게도 튈 염려가 있었다. 이럴 때는 숨어 있는 것이 상책이었다. 서승원 중령은 미국 잠수함들이 애초 장문휴를 목표로 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9월 14일 15:00 경상북도 우릉군 우릉도 동쪽 27km
중국 해군 공격원잠 S-404, 사령실
“1, 2번 어뢰, 목표로 접근합니다. 3, 4번 어뢰 유선 유도로 추적중입니다.”
404호를 빠져나온 4발의 어뢰 중 2발은 러시아제 SET-65E 어뢰였다. 이 어뢰는 직경 533mm라는 점은 다른 어뢰들과 비슷했지만 길이가 7.8미터, 중량이 무려 1.8톤에 이르는 대형 어뢰였다. 속도 40노트로 그다지 특출한 능력을 가진 어뢰도 아니고 정밀도도 뛰어나지 않은 어뢰였다. 게다가 최대작동심도가 200미터로, 심심도 잠항능력을 가진 잠수함을 공격하기에는 문제가 있는 어뢰였다.
“목표 3의 심도가 계속 내려가고 있습니다. 심심도로 잠항하려는 모양입니다.”
“자라 같은 놈!”
천 중교가 잔뜩 화가 나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중국말에서 ‘자라’는 욕이다. 교활한 양키놈들이 한급이 주력으로 사용하는 SET-65E 어뢰의 성능과 결점을 꿰뚫고 있었다. 300미터 이상 잠항이 가능한 로스앤젤레스급이 최고잠항 심도까지 내려가 버리면 이번 공격은 무용지물이었다.
실상 SET-65E 어뢰는 수상함정이나 대형 민간선박을 공격하기 위한 어뢰나 마찬가지였다. 사령부의 고위장교들은 고성능 어뢰의 도입 문제에서는 항상 뒷짐만 지고 있었다. 아마 이번에 404호가 침몰한다면 이 문제를 확실하게 증명시켜줄 것이라고 천 중교는 쓰디쓴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동시에 또 다른 어뢰 두발이 유선 유도로 미국 잠수함들을 뒤쫓고 있었다. 비밀리에 이탈리아에서 도입했지만 사실 공공연하게 보유한 사실이 알려진 A184 어뢰였다. 속도는 SET-65E 어뢰보다 느린 36노트였지만 대신 명중률은 한 수 위였다. 물론 미국 잠수함들이 사용하는 마크 48 어뢰의 반값도 안 되는 발당 125만 달러였지만 중국 해군에게는 엄청난 고가의 어뢰였다.
유선 유도기능을 가진 A184 어뢰???ㄹ 유도하기 위하여 한급 원자력 잠수함중 일부가 수년 전 대규모 개조공사를 벌였었다. 구식 어뢰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중국은 A184 어뢰를 기본으로 유선 유도가 가능한 잠수함용 중어뢰 개발도 시작했다. 그러나 C43이라 명명된 그 어뢰의 시험평가는 썩 좋지 못했다. 결국 A184 어뢰를 당분간 더 사용해야만 했다. 천 중교는 이번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목표 3의 전면에 새로운 목표 출현! 가속하고 있습니다!”
“그놈이 우리에게 어뢰를 발사한 놈이다. 속도와 거리를 빨리 알아내!”
새로운 목표는 어뢰공격을 하고 있는 404호 전면으로 감히 겁도 없이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죽으려고 작정한 모양이었다. 아니, 그 살인자는 아예 404호까지 공격할 의도를 갖고 있다고 천 중교는 판단했다. 미국 잠수함은 문제를 일으키고 나서 사죄하는 대신 증거를 없애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물속이기 때문에 가능한, 아주 치사한 방법이었다.
구식 소나에 계산을 수작업에 의존해야 하는 404호의 소나병들이 바쁘게 움직였지만 쉽게 계산해내지 못했다. 복잡한 계산척을 일일이 대조하며 헤매는 루등이 중사를 보다 못한 부함장 레이후 소교가 부하를 제치고 직접 계산했다.
“목표 4! 25노트! 거리 4공리(km). 정확히 본함 정면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뢰를 발사한 놈이라는 생각이 들자 천 중교는 목표 4를 공격학로 마음먹었다. 분노가 끓어올랐다.
“3, 4번 어뢰 모표 재조정! 목표 4를 공격한다!”
컬럼비아를 쫓던 2발의 A184 어뢰가 급격히 방향을 바꾸며 새로이 나타난 목표를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9월 14일 15:05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쪽 32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 사령실
“빙고! 놈이 걸려들었습니다. 모스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멍청한 한급은 어쩔 수 없구먼. 컬럼비아를 쫓던 다른 두 발은 어떻게 됐나?”
“컬럼비아는 이미 최대 잠항심도로 내려갔습니다. 두 발은 러시아제 SET-65인 것 같습니다. 수심 200야드 근방에서 배회하고 있습니다. 역시 더 이상 내려가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가르시아 중령이 내심 쾌재를 불렀다. 역시 중국 놈들은 미국의 적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대잠전과 잠수함전에 있어서 중국이 미국을 따라오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고 생각했다.
9월 14일 15:07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쪽 29km
중국 해군 공격원잠 S-404, 사령실
“함장 동지, 이상합니다! 목표 4 뒤에 한 놈이 더 있습니다.”
“한국 잠수함 아닌가?”
“한국 잠수함은 아까 사라졌습니다. 사라진 지점과 방향이 다릅니다. 이쪽까지 왔다고는 도저히 생각하기가 어렵습니다. 거리가 너무 멉니다.”
“젠장! 도대체 뭔지 알 수가 없군. 또다른 양키인가?”
천 중교는 답답했다. 구닥다리 소나 시스템을 갖춘 404호의 한계였다. 하지만 천 중교는 새로운 목표를 무시하기로 했다.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목표 4, 아군 369호의 원수를 갚는 것이 중요했다. 놈의 숨통이 바로 앞에 있었다. 도망가는 목표 3은 걱정되지 않았다. 목표 3이 이쪽으로 선화하기도 전에 먼저 선공을 가할 수 있었다.
“거리 700...... 650......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양키들이 어뢰를 쏘는 것도 아니고, 우리 잠수함에 어뢰를 발사해서 미안하니 그냥 죽겠다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건 미친 짓입니다!”
부함장 레이후 소교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함장에게 강력하게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404호의 소나가 판단한 목표 4는 분병히 LA급 원자력 잠수함이었다. 천 중교도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지만 달리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항주하는 어뢰의 추적장치가 완벽하게 목표 4를 포착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한 번 확인한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액티브 탐신한다!”
“액티브 탐신!”
비교적 고주파 대역인 404호의 공격소나가 날카로운 음파를 미국 잠수함을 향해 쏟아부었다. 일단 음파를 쏘아 상대방에 부딪쳐 돌아오는 액티브 탐신일 경우에는 공격목표의 방향과 속도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외형상 크기까지도 어느 정도 식별이 가능하다.
“함장님! 이건 잠수함이 아닙니다. 실루엣이 너무 작습니다! 기만체 같습니다!”
“뭐라고? 당장 공격을 취소하라!”
“공격 취소!”
레이후 소교가 함장의 급작스런 명령을 복창하며 어뢰를 조작하려 goTwlas 이미 늦었다. 마지막 순간 A184 어뢰는 한급 404호의 통제를 따르지 않고 스스로 최적의 접근코스를 계산하고 있었다. 몇 초 후 두 번의 커다란 폭발음이 들렸다.
“어뢰실! A184 급속 재장전하라! 아니...... 5, 6번 발사관에서 급속 발사한다. 바라관 개방!”
유선 유도가 이루어지는 동안에는 케이블 윈치가 어뢰발사관의 안쪽에 결합되는데다 연결시스템가지 고정되므로 급속 재장전이 불가능했다. 천 중교는 정확하진 않지만 아예 SET-65E 어뢰를 사용하는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윽! 함장님! 놈이...... 공격소나를 쐈습니다!”
루등이 중사가 고통스러운 듯 귀를 감쌌다.
“위치는? 위치는!”
“목표 4의 뒤에 있던 놈입니다. 거리가 예상보다 가깝습니다. 2km!"
“젠장 2km까지 다가오도록 몰랐단 말인가!”
“죄송합니다. 목표 4의 사각지대에 겹쳐 있었기 때문에......”
“젠장할! 발사관 개방! 급속 발사한다!”
레이후 소교가 대신 변명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급의 소나시스템이 워낙 성능이 떨어져서 누구를 탓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404호가 다시 어뢰발사관의 외부 개폐구를 열고 바닷물을 주입시키는 사이, 이번에는 공격소나음이 세 번이나 길게 이어졌다.
최대출력 200kw에 달하는 음파가 404호에 닿자 공명하는 소리굽쇠처럼 선체가 푸르르 떨렸다. 소나가 없었도 승무원들이 함체 격벽을 통해 확실히 들을 수 있었다. 승무원 몇 명이 공포에 질려 몸을 떨었다.
“함장 동지! 놈이 공격하려는 모양입니다.”
“개놈들! 당장 발사해!”
“함장 동지!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우리에게 위협만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부함장 레이후 소교가 함장을 가로막았다. 함장 천쥔타오 중교가 부함장을 밀치며 발사관제 패널로 다가섰다. 함장이 직접 버튼을 누를 작정이었다.
“집어치워! 당장 공격......”
순간, 저주파 공격소나음이 다시 물을 가르며 404호의 선체에 전달되었다. 천 중교는 지금 당장 발사 버튼을 누르고 싶었지만 상대 쪽에서도 바로 발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2km도 되지 않는 거리에서 서로 어뢰를 발사하면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
천 중교는 소나컨솔들 앞으로 다가가서 밝게 반짝이는 점 하나를 노려보았다. 미국 원잠을 나타내는 점이었다. 그 점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번득이는 눈동자가 되어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9월 14일 15:12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쪽 32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 사령실
한급 공격원잠에 맞서고 있던 라 호야의 속도가 떨어지며 천천히 앞으로 다가갔다. 가르시아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 거리에서 발사하면 양쪽 다 격침을 피할 수 없었다.
웨스턴 카우보이 여와에서는 먼저 뽑아 발사한 쪽이 이길 수 있지만 어뢰는 총알과 달랐다. 이쪽에서 발사한 어뢰가 상대를 명중시키기도 전에 상대방의 어뢰가 이쪽으로 발사되게 마련이었다.
“바보 같은 놈들! 우리의 발사관 개방음을 못들은 모양입니다.”
폴머 소령이 답답하다??? 듯이 입을 열었다. 발사관 개방음을 들었으면 중국 잠수함도 공격을 계속 진행하지 못했을 것이 틀립없었다. 서둘러 공격소나를 지속적으로 때린 것이 다행이었다고 생각했다. 중국 잠수함의 발사관 개방음이 들린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발사되지 않고 있었다. 저쪽도 심각하게 고민하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공격준비 상황은 어떤가?”
“지금이라도 명령만 내리신다면 한 방에 보내버릴 수 있습니다.”
모스 대위가 자신있게 대답했다. 그런 자신감이 지나쳐 중국 잠수함을 격침시켜 버렸다고 생각한 가르시아 중령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귀환하면 군복을 벗는 정도가 아닐 것이다. 군법재판에 회부되어 영어의 몸이 될 수도 있었다.
문득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가르시아는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은 이쪽을 노리는 중국 잠수함을 앞두고 발사 버튼을 누를 것인지 말 것인지 목숨을 걸고 판단해야 하는 긴장되는 상황이었다. 이럴 때 귀항한 다음의 일을 생각하는 자체가 넌센스였다. 1분 앞을 내다볼 수 없는데 그 다음 일을 상상하는 건 사치였다.
“함장님! 목표가 속도를 줄이고 있습니다.”
소나팀장 스톨츠 대위가 보고했다. 가르시아 중령이 바라마지 않던 보고였다.
“그래, 놈이 머뭇거린다. 컬럼비아의 현재 위치는?”
“본함 후미를 완전히 통과했습니다. 본함 배후에 있는 이상 안전합니다.”
스톨츠 대위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컬럼비아가 안전하게 대피한 것을 확인한 이상 가르시아는 자신도 무엇인가 결정해야겠다고 느꼈다. 하지만 중국 잠수함이 언제든 어뢰를 발사할 수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될지 난감했다.
‘수중전화로 통화를 시도해봐? 채널이 다르지 않을까? 그쪽에서 만약 영어를 모른다면? 아니 영어를 알아도 어떻게 하는가. 고의적인 공격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사과해? 사람 죽여놓고 사과만 하면 그쪽에서 순순히 받아줄까? 그런데 군인에게 사과라는 표현이 있었나?’
가르시아의 머릿속에 여러 생각들이 교차했지만 뾰족하게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무엇인가 해야 했다. 긴장상황이 오래될수록 섣부른 행동으로 이어지게 마련이었다.
“후진한다. 출력 1/3로 후진.”
“후진합니다. 출력 1/3!”
“부함장! 경계를 늦추지 마라. 놈이 발사하면 우리도 바로 되쏘아준다. 모스의 침로도 미리 설정을 해놓도록!”
“알겠습니다! 함장님.”
어뢰와 모스의 발사를 맡은 무기장교 모스 대위가 바짝 긴장한 채 대답했다. 묘하게도 어뢰기만체 모스와 같은 이름이었다. 지금은 훈련이 아니었다.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실전상황이었다.
라 호야의 기관실 후방에는 주 추진기로 이어지는 동력을 차단하는 거대한 클러치가 있었다. 클러치가 잠시 떨어지며 감속기어에서 역회전 모드로 기어 배열이 변환되자 라 호야가 서서히 후방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어뢰 발사관에는 2발의 모스가 또다시 중국 어뢰의 미끼가 되기 위해 장전되어 있었고, 반대쪽 발사관에는 마크 48 어뢰 2발이 발사가능상태에 있었다. 이것들은 언제든 발사가능한 상태였다.
9월 14일 15:15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31km
중국 해군 공격원잠 S-404, 사령실
“놈이 정지했습니다.”
“다른 움직임은 없나?”
“모르겠습니다. 발사관 개방음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공격하기 위한 준비는 마쳤을 것이 분명합니다.”
공격소나음을 다섯 번 이상 때렸으니 이쪽 위치는 충분히 알려졌을 것이라고 천 중교는 생각했다. 묘한 기분이었다. 적개심과 분노가 불같이 피어올랐지남 공격에 앞서 공포심이 솟아났다.
함장은 미국 잠수함을 격침시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러면 404호도 끝장날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미국 잠수함은 아까처럼 살아남고 404호만 격침될 수도 있었다. 천 중교는 그것이 더 걱정이었다.
“함장 동지, 어떡하시겠습니까?”
레이후 소교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천쥔타오에게 물었다. 그는 공격만큼은 절대 피하고 싶었다. 죽기는 싫었던 것이다. 이미 발사한 4발의 어뢰를 모두 피한 미국 잠수함이 눈앞까지 다가오자 부함장은 겁부터 잔뜩 집어먹었다.
“함장 동지......”
대답없는 천 중교에게 레이후가 다시 물었지만 아무 대다보 없었다.
“아! 놈이...... 후진합니다!”
“현재 힘도 그대로 유지하고 정지한다. 그리고 공격준비 상태에서 계속 대기하라.”
천쥔타오 중교가 낮은 목소리로 명령을 내린 다음 소나컨솔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허공을 응시하는 듯 함장의 눈에는 초점이 흐려져 있었다.
9월 14일 15:20 경사욱도 울릉군 울릉도 동쪽 33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 사령실
- 라 호야! 여기는 컬럼비아다. 라 호야는 응답하라.
수중전화의 감도가 매우 좋지 않았다. 하지만 저편의 목소리가 누구인지는 확실했다. 함장 가르시아 중령이 수중전화기를 집어들었다. 가르시아는 잠시 전 중국 잠수함과의 긴박했던 대결이 끝나자 긴장했던 몸이 풀어지며 몸에 힘이 쫙 빠져나갔다.
“컬럼비아, 여기는 라 호야다.”
-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어떻게 어뢰가 중국 잠수함을 침몰시킨 건가? 자네, 설명을 해봐!
“어뢰가...... 어뢰가 갑자기 유도를 상실했다.”
- 어떻게 했길래 유도를 상실해? 거리는 충분했잖은가?
“갑자기 유도 와이어가 끊겼는지, 어니면 어뢰 유도부에 고장이 났는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 멍청이! 그러니까 어뢰를 한국 잠수함에 지나치게 접근시키지 말았어야지!
“스위프트 중령님! 제가 중국 잠수함을 공격하고 싶었겠습니까? 이건 분명히 사고입니다!”
갑자기 가르시아 중령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에 따라 스위프트 중령의 목소리도 계속 높아졌다.
- 중국 놈들이 복수하겠다고 달려드는데, 이건 어떡할 거야?
“고의가 아니라 사고였는데 저더러 어떡하란 말입니까?”
“함장님! 또 어뢰를 발사했습니다!”
스취프트 중령과 통화하느라 정신없던 가르시아 중령 뒤로 소나팀장 스톨츠 대위의 찢어질 듯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모두 4발입니다!”
“개새끼들! 1, 2번 발사관 급속 발사! 모스도 발사하라! 다운트림 20도. 기관 전속!”
“1, 3번 발사관 마크 48 발사! 2, 4번 발사관 모스 발사했습니다!”
버튼을 누르는 무기장교 모스 대위의 손이 떨렸다. LA급 잠수함은 오른쪽에 1번과 3번 어뢰발사관이 있고, 왼쪽에 2, 4번 어뢰발사관이 있다.
라 호야의 어뢰발사관으로부터 다시 마크 48 어뢰 두 발이 퉁겨져 나왔다. 그리고 뒤이어 어뢰기만체 모스 2발도 튀어나왔다. 어뢰와 모스를 발사하자마자 라 호야는 물속으로 깊숙이 빠져들어갔다.
후진중이던 라 호야가 추진기를 역전시키며 급피치를 올렸으나 가속은 빨리 이뤄지지 않았다. 지금쯤 컬럼비아도 어뢰를 피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9월 14일 15:22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족 31km
중국 해군 공격원잠 S-404, 사령실
“함장 동지!”
부함장 레이후 소교가 떨리는 목소리로 천쥔타오 중교를 돌아보았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었을 때와 당겼을 때는 분명히 달랐다. 그것도 뻔히 마주본 상태에서 발사하면 양쪽 모두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레이후 소교는 묵묵부답으로 소나컨솔만 노려보고 있는 천 중교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오금이 저리기 시작했다.
“A184, 각각 목표 1, 2를 추적합니다. SET-65E도 각각 목표 1,2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어뢰요격관은 담담해 보였다. 중국 인민해방군의 주입식 교육에 완전히 물이 들면 저렇게 된다고 레이후 소교는 생각했다. 실전 경험이 부족한 위관급 장교들은 멋도 모르고 자신감에 넘치는 경우가 흔했다. 더구나 미 해군을 상대할 때에는 쓸데없는 경쟁의식까지 작용해서 더욱 그러했다.
“어뢰 접근중! 거리 800미터.”
어뢰요격관이 접근하는 미군 어뢰의위치를 침착하게 보고했다.
“잠항관! 명령과 동시에 급속 부상한다. 대기하라!”
“예! 대기하고 있습니다!”
천 중교는 도망갈 생각이 없었다. 유선 유도중인 A184 어뢰를 끝까지 유도할 작정이었다. 모니터 상에는 미국 원잠을 향해 달려가는 중국 어롸와 이쪽으로 다가오는 미국 어뢰, 도합 6발이 밝은 접으로 빛났다. 미국 어뢰가 다가오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마크 48 어뢰는 A184 어뢰보다 두 배나 빠른 속도였다.
다가오는 어뢰를 노려보던 천 중교는 이를 악물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나지막한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유선 유도에서 자동으로 전환하라. 밸러스트 완전 배수! 급속 부상한다!”
404호가 수면을 향해 치솟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404호에 접근하는 마크 48 어뢰도 시시각각 잠수함을 향해 코스를 수정하고 있었다. 레이후 소교가 소나실에서 잠수함을 쫓아오는 어뢰와의 거리를 판독하며 절망적으로 울부짖었다.
“거리 500...... 450미터...... 400미터...... 함장 동지! 당신은 정말 바보야.”
9월 14일 15:23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쪽 33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 사령실
“한 발이 모스를 물었습니다! 나머지 한 발은 본함을 계속 추적중입니다!”
스톨츠 대위가 바짝 쉰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구식 SET-65 어뢰가 모스를 추적하게 된 것은 라 호야의 승무원 입장에서 정말 다행이었다. 하지만 또 다른 어뢰 1발은 모스에 기만되지 않았다. 유선으로 유도되는 어뢰가 분명했다. 로키 중사가 함장을 보며 외쳤다.
“놈이 급속 부상을 시작했습니다!”
“함장님! 우리도 급속 부상을 해야 합니다. 저 놈은 이탈리아제 전동추진 어뢰입니다. 현 심도에서는 피하기 어렵습니다!”
이번에는 폴머 소령이 다급해졌다. 이탈리아제 A184 어뢰는 유선유도를 상실하더라도 근거리에 들면 자동 유도 상태에서도 명중률이 상당한 어뢰였다. SET-65 어뢰를 이미 모스로 기만시킨 이상 기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급속 부상으로 A184 어뢰를 회피하는 게 바람직했다.
“아직 안 돼! 급속부상을 하면 마크 48의 유도 케이블이 끊어진다. 놈을 명중시키고 피해도 늦지 않아!”
“이 정도 거리에서 마크 48은 자도 유도로도 명중률이 높습니다! 함장님! 피해야 합니다.”
너무 위험한 도박이었다. 그리고 죽음의 공포 앞에서는 감정이 우선할 수밖에 없었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포머는 자신이 방금 함장의 지휘권에 대드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주먹을 굳게 쥔 가르시아 중령은 마크 48의 유도에 몰두하고 있어서 폴머의 반박에 대해 뭐라고 질책하지는 않았다.
“어뢰, 자동 유도로 전환! 케이블 절단하라. 급속 부상한다!”
“자동 유도로 전환! 케이블 절단!”
함장의 명령을 기다렸다는 듯이 모스 대위가 큰 소리로 복창했다. 사령실 요원들의 막혔던 숨이 갑자기 확 트인 듯, 이곳저곳에서 한숨 소리가 새어나왔다.
“급속 부상합니다!”
라 호야의 선체가 수면을 향해 급격하게 기울어졌다. 서 있던 승무원 몇 명이 넘어질 듯하다가 중심을 잡았다. 스토츠 대위의 보고는 비명에 가까웠다.
“400야드가지 접근! 어뢰가 본함을 탐신하고 있습니다!”
“디코이 연속 발사!”
함장의 명령에 따라 모스 대위가 버튼을 연신 눌러댔다. 사령탑 뒤쪽에서 디코이들이 줄줄이 발사되었따.
“300야드!”
“어뢰가 디코이들을 통과했습니다!”
소나팀에서 합창하듯 비명을 질렀다. 어뢰가 잠수함을 향해 발하는 탐신음이 라 호야 승무원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프레이리 매스커 가동!”
가르시아 중령은 마지막 희망에 모든 것을 걸었다. 일반적으로 수상함정에만 있다고 알려진 프레이리 매스커는 LA급 잠수함에도 있었다. 압축공기가 물속에서 거대한 거품 주머니를 형성했다.
“200야드! 계속 접근하고 있습니다!”
잠수함과 어뢰는 같은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서 상대속도는 크게 나지 않았다. 어뢰는 차근차근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승무원들이 몸을 최대한 숙이고 아무 거나 잡히는 대로 손에 잔뜩 힘을 주었다.
9월 14일 15:27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족 34km
864 성광호
오징어채낚이선 864 성광호의 아래쪽으로 무엇인가 거대한 물체가 순식간에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몇 개의 채낚이용 릴이 맹렬한 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거 와 이라노?”
채낚을 모두 풀어제끼고 오징어들이 물 때까지 쉬고 있던 어부가 벌떡 일어났다. 그의 옆에 있던 릴 뭉치가 스위치를 넣지도 않았는데 풀려 나가고 있었다. 거대한 대왕오징어가 물었다고 해도 이 상태에서 릴이 돌아갈 리가 없었다.
“선장님예! 퍼뜩 나와 보이소!”
“와카나?”
야간작업에 지쳐 선실에서 자고 있던 선장 유기철은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허겁지겁 갑판으로 뛰어나왔다. 나와 보니 릴 뭉치 세 개가 마구 돌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전동모터가 낚싯줄을 풀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선장님예, 고래가 문 게 아닙니거? 앗, 뜨거브라!”
타들어가는 담배를 손가락에 끼운 채로 멍청히 릴이 풀려가는 방향을 바라보던 선원 이명수가 그제야 펄쩍 뛰었다.
“고래라꼬?”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선장이 반문하는 동안 줄은 릴을 감은 마지막 몇 바퀴 빼고 거의 다 풀려나갔다. 둘은 고개를 마주보며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참말로 억수로 큰 고랜갑다.”
그때 이명수 뒤쪽을 바라본 선장이 웃음 멈추고 입을 쩍 벌렸다. 유기철은 눈이 휘둥그래진 채로 놀란 나머지 말문가지 막혔다.
“저, 저게 뭐꼬?”
이명수가 뒤돌아보자 그곳에는 거대한 고래가 수면을 박차고 튀어오르는 중이었다. 그것도 두 마리, 아니 세 마리였다. 곧이어 커다라 폭발이 귀를 멍멍하게 만들었다.
“고래가 아이고...... 잠수함인데예?”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잠수함 머리 부분에 섬광이 번쩍이면서 거대한 화염이 일고, 곧이어 시커먼 연기가 치솟았다. 그리고 또 다른 잠수함 주위에서 커다란 물기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유기철과 이명수 두 사람 모두 말을 잃고 폭발이 일어난 곳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나머지 선원들이 커다란 폭음에 잠이 깨 선실에서 기어나오고 있었다.
그들이 눈을 비비고 폭음이 난 쪽을 보았지만 그곳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머리 부분에 맞은 한 척은 마치 대가리가 잘려나간 물고기 처럼 순식간에 물속으로 자취를 감췄고, 반대쪽에 있던 또 다른 잠수함은 수면 위를 잠시 미끄러져 나가더니 곧 물속으로 다시 가라앉았다. 시커먼 연기만 하늘에서 뭉클거리며 올라갔다.
한참 시간이 지났는데도 선원들은 멀뚱멀뚱 검푸른 바다를 쳐다보기만 했다.
“해군 어딨노? 아이다! 퍼뜩 신고해야 안 되겠나?”
잠시 멍청하게 서 있던 유기철 선장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무전기가 있는 선실로 허둥지둥 뛰어들어갔다.
9월 14일 15:28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쪽 32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 사령실
“각 부서, 피해상황 보고하라!”
부함장 폴머 소령이 가장 먼저 일어나 외쳤다. 함미를 아슬아슬하게 비켜간 어뢰는 라 호야의 자현 후방 120미터에서 폭발했다. 충격으로 전원이 차단되고 함내에는 비상동력 상태를 나타내는 적색 보조등이 켜졌다. 폴머 소령은 서둘러 함장용 마이크를 잡고 가장 먼저 기관실을 호출했다.
“원 MC다! 기관실! 기관실은 어떤가?”
- 아직까지 이상은 없습니다. 동력 루프를 점검중입니다. 원자로는 무사합니다. 핵반응도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밀 점검 후 다시 보고하겠습니다.
“좋다. 다른 부서 보고하라. 침수는 없나?”
- 어뢰실 이상 없습니다.
- 배터리실입니다. 침수가 조금 있었지만 막았습니다. 배터리는 안전합니다. 유독가스도 없습니다.
기관실이 무사하다면 핵잠수함 라 호야는 일단 살아남은 것이다. 라 호야의 보조동력원인 배터리실에서 수가 약간 있었던 모양이지만 차단되었다니 다행이었다.
“샘, 일단 배터리실로 가서 안전점검을 실시하도록 하게. 배터리가 해수에 노출되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나머지 부서들도 점검해 봐.”
“예! 함장님. 알겠습니다.”
비틀거리며 일어선 가르시아 중령이 새뮤얼 폴머에게 명령을 내렸다. 함장은 뜻밖에도 느긋한 표정이었다. 어뢰 공격을 받고도 일단 살아남았고, 잠수함 운행에 크게 지장이 없다는 사실이 함장뿐만 아니라 승무원들 모두를 안정시켰다. 폴머 소령이 사령실을 나서자 가르시아는 소나실로 달려갔다.
“소나 상태는 어떤가? 피해는 없나?”
“좌현 측면소나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좌현의 TB-23 예인소나도 작동되지 않습니다.”
LA급 원자력 잠수함은 좌, 우현에 예인소나가 각각 하나씩 있다.
“함수소나는 문제 없나?”
“예! 그렇습니다. 완벽하게 작동합니다.”
스톨츠 대위가 함장에게 대답했다. 그나마 예인소나 하나는 살아남았다. 게다가 함수소나도 문제없었다.
“컬럼비아 쪽으로 달려간 어뢰는 어덯게 됐나?”
“그쪽에서는 폭발음이 없었습니다. 모두 따돌린 모양입니다.”
“알았다. 주변 상황을 자세히 감시하도록. 난 통신실에서 컬럼비아와 교신을 해보겠다.”
가르시아 중령이 소나실을 빠져나왔따. 기관실에서 이상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주전원이 다시 공급되기 시작했다.
12.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
9월 14일 15:30 울릉도 동쪽 35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71 컬럼비아, 사령실
“라 호야는 어떤가?”
“모르겠습니다. 한급 원잠은 확실히 격침됐습니다만, 라 호야는 모르겠습니다. 상당히 지근거리에서 어뢰가 폭발했습니다.”
어뢰 폭발 소리에 놀란 스위프트 중령은 라 호야가 걱정되었다. 폭발이 라 호야에서 너무 가까웠기 때문에 브리드 준위도 라 호야가 어떤 상태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웠다. 함장이 소나실을 뒤로 하며 명령을 내렸다.
“젠장! 라 호야로 접근한다. 서둘러라.”
“예. 우현 최대! 방위 2-0-0으로!”
“20노트로 중속하라.”
“20노트로 중속!”
조함을 지시하는 러너 소령의 얼굴에도 우려의 빛이 가득 담겼다. 라 호야까지의 거리는 4,500야드였다. 라 호야가 어디를 맞았느냐에 따라서 문제는 크게 달라진다. LA급 핵잠수함이 크긴 하지만 잠수함용 중어뢰들은 위력이 워낙 커서 피격부위에 따라서는 단 한방에 핵잠수함이 부력을 완전히 상실할 가능성도 있었다.
밸러스트 탱크 위위가 파괴되면 부력조절 능력을 아예 잃어 버린다. 또한 함미 쪽 스크루와 추진축이 관통하??? 수밀 부분이 파괴될 경우 기관실 안족가지 일거에 침수되므로 이곳도 매우 취약한 부분이다. 그렇게 되면 잠수함은 보통 쇳덩이처럼 그냥 맥없이 가라앉는다. 게다가 그곳에는 후부 밸러스트 탱크도 있기 때문에 더욱 치명적이다.
“함장님, 일단 상부에 보고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안 돼!”
스위프트의 대답이 너무 급작스럽게 나왔기 때문에 조언을 한 러너 소령이 깜짝 놀랐다.
“아직 피해상황도 제대로 알 수 없지 않나? 구조가 우선이다. 통신은 피해상황을 파악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아.”
스위프트 중령은 모든 게 확실해지기 전에는 상부에 알리고 싶지 않았다. 함장은 속으로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적당한 변명과 증거들을 차근차근 계산하는 중이었다. 상황을 제대로 알아야 변명도 그걸듯하게 만들어낸 수 있었다. 그것은 거짓말도 마찬가지였다. 공연히 서둘렀다가 상관들로부터 책잡힐 일을 만들긴 싫었다.
“부함장, 잠수팀을 편성하게. 어저면 물속에 들어가야 할지도 몰라.”
“예! 알겠습니다.”
러너 소령이 흠칫 놀라며 사령실을 나서는 것을 보고 난 다음 스위프트 중령이 계산을 다시 시작했다. 어디까지 했더라 하고 잠시 기억을 되살린 다음 곧 나머지 조건들을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상당히 심각하고 복잡하게 돌아간 만큼 함장은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함장님! 소나 접촉입니다. 방위 0-4-0!”
“뭐야?”
“목표는 원자력 잠수함으로 판단됩니다. 급가속중입니다! 젠장! 중국이 발사했던 어뢰 두 발이 그 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런! 으으......”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쪽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데 원자력 잠수함이라니! 도대체 어느 나라 잠수함인지는 몰라도 그놈은 제발로 지옥에 들어온 셈이었다. 아마 중국, 아니면 러시아 잠수함일 것이다. 이제 다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함장은 돌아가는 상황이 꼬여도 너무 꼬이자 이젠 잔뜩 질리고 말았다.
9월 14일 15:35 울릉도 북동쪽 48km
러시아 해군 공격원잠 다닐 모스코프스키, 사령실
“우현 최대! 출력 100퍼센트로! 디코이 발사 준비!”
“우현 최대! 기관 전속!”
함장 코발레프스키 대령의 목소리가 사령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놀란 승무원들이 바짝 긴장해 신속히 작업을 진행시켰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져쓴지 알 수 없었다. 러시아 잠수함은 새벽에 접촉을 상실한 한국 209급 잠수함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209급을 추적하며 충분히 정보를 축적하고 잘하면 새로 취역한 212급 잠수함도 탐지할 수 있다는 희망에서 이 잠수함은 천천히 남쪽으로 이동해왔다.
그런데 남서쪽에서 아까부터 계속 들려온 공격소나음 소리를 러시아 원잠 다닐 모스코프스키에서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빅터III급 공격원잠은 무슨 일인가 궁금해 소리가 나는 쪽으로 접근하는 중이었다.
러시아 공격원잠 다닐 모스코프스키는 그쪽에서 시끄러운 중국 한급 잠수함과 아마도 미국 원자력 잠수함으로 추정되는 두 척의 방향을 탐지해싿. 그리고 다른 한 척은 디젤 잠수함이었는데, 함종은 파악하기 어려웠다. 함장 코발레프스키 대령은 거리가 약간 멀어 잘 들리지 않았지만 어쨋든 이들의 회합을 느긋하게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그쪽 방향에서 엄청난 폭발음이 들리고, 그 반사음에 묻혀 미처 탐지하지 못한 어뢰가 갑자기 이쪽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승무원들은 사색이 되었다.
“어뢰는 두 발입니다. 접근침로는 2-2-0도! 본함 쪽으로 선회하고 있습니다! 거리 4,500미터!”
어뢰의 침로를 보고하는 소나병 목소리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급격히 선회하는 다닐 모스코프스기의 방향지시계가 왼쪽으로 회전하고 있었지만 회전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잠수함의 속도를 높여서 선회하면 회전반경이 커지고, 시간이 더 소요되기 때문이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방향지시계를 쳐다보던 코발레프스키 대령은 자신이 실수했다고 후회했다.
“선회를 마쳤습니다. 어뢰 접근! 3,000미터입니다!”
보고하는 부함장 발마셰프 중령도 초조하긴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선회는 완료했다. 잠수함은 어뢰를 뒤로 하고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어뢰는 시시각각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다.
“어뢰 유형은 파악되지 않았나? 도대체 어떤 놈이 발사한 거야? 미국 놈들인가?”
“모르겠습니다. 방위 2-2-0에서 갑자기 솟아났습니다.”
소나팀이 땀을 뻘뻘 흘리며 작업하는 중에 소나팀장 이반 체르니셰프스키 대위가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가만! 두발의 어뢰가 유형이 다릅니다.”
“빨리 알아봐!”
재촉한다고 결과가 빨리 나올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함장에게 차분함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어뢰 유형을 알아내는 것은 도대체 어느 쪽에서 러시아 잠수함을 공격했는지 파악하는데 중요한 단서였다.
러시아인들은 미국이나 중국 모두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중국 잠수함은 이미 격침된 것으로 보이므로 중국에게 책임 지우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만약 미국이 러시아 잠수함을 향해 의도적으로 어뢰 공격을 가했다면, 이건 엄청난 사건이었다. 코발레프스키 대령은 차라리 미국 어뢰이길 바랐다.
“하나는 전동 추진 어뢰, 또 하나는 터빈 추진 어뢰입니다.”
귀를 기울이던 체르니셰프스키 대위가 안간힘을 쓰더니 겨우 알아냈다.
“뭐야? 그럼 한 놈이 쏜 게 아냐?”
코발레프스키 대령이 반문했다가 말꼬리를 낮췄다. 어뢰의 진행 방향이 같다고 해서 동일한 잠수함에서 발사한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추진방식이 다른 두 가지 어뢰라면 그 가능성이 대폭 줄어든다. 그렇다면 지금 다닐 모스코프스키를 향해 다가오는 어뢰 2발은 각각 미국과 중국이 발사한 어뢰로 볼 수도 있었다.
추진방식이 다른 어뢰를 혼용하는 국가는 얼마 되지 않는다. 또한 러시아 원잠을 추적하고 있는 어뢰들은 항공기에서 투하한 경어뢰도 아니었다. 그럼 미국과 중국이 각각 발사한 어뢰일 수가 있었다. 이것이 일반적인 추론이었다. 코발레프스키가 재빨리 머리를 회전시켰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혹시 중국이......”
코발레프스키 대령이 말하는 도중에 입을 다물고 주변 눈치를 보았다. 작은 소리로 말했기 때문에 들은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중국 잠수함이 두 가지 유형의 어뢰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그는 일단 확인하기로 했다.
“이런! 함장님. 어뢰 하나는 SET-65E형입니다! 추진 패턴이 똑같습니다!”
체르니셰프스키 대위가 놀라운지 뒤를 돌아 함장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SET-65E 어뢰는 바로 러시아제 어뢰였다. 수출형이 E형, 바로 ‘export'를 의미하는 식별문자였다. 이제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러시아 잠수함을 향하는 어뢰 2발 가운데 열기관 어뢰는 중국이 발사한 어뢰였던 것이다.
“뭐야? 심도 변경! 300미터로 내려간다!”
“심도 변경! 300미터로!”
코발레프스키가 급히 명령을 내렸다. SET-65E형 어뢰라면 적어도 심도를 낮춰서 피할 여지가 있었다. 어뢰도 잠수함과 마찬가지로 심도가 내려갈수록 수압의 영향을 받는다. 어뢰도 내압설계에 따라 작동심도가 결정되는 것이다.
“어뢰에 식별코드를 부여하겠습니다. 선두 1번 어뢰, 거리 1,500미터. 2번 어뢰, 1,200미터!”
페르니셰프스키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어뢰가 이제 잠수함 꼬리에 완전히 달라붙었다. 부함장 발마셰프 중령이 입에 게거품을 물고 말했다.
“함장님! 2번 어뢰는 한국이 쏘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이 사용하는 독일제 어뢰가 전동추진실 SUT 어뢰입니다. 빌어먹을 한국 놈들이 감히 우리를 공격했습니다!”
승무원들은 부함장 말을 듣고 12시간 전에 추적하다 놓친 한국의 209급 잠수함을 떠올렸다. 그 잠수함은 러시아인들이 찾고 있던 212급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디젤 잠수함은 러시아 원잠들의 도발에 대해 상당히 공격적인 반응 보였다. 이번에도 당연히 한국 잠수함이 공격적인 행동을 한 것으로 생각했다.
코발레프스키 대령은 부함장의 주장에 도의하지 않았지만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지금은 누가 다닐 모스코프스키를 공격했는지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다.
“디코이 발사!”
“디코이 발사!”
코발레프스키의 명령과 함께 납작한 사령탑 뒤쪽에서 디코이 두 발이 솟구쳤다. 그리고 다닐 모스코프스키는 더욱 더 낮은 심도로 가라 앉았다. 운이 좋다면 어뢰 한 발은 수압 때문에 못 내려올 테니 이제 한 발만 처리하면 되었다.
“1번 어뢰, 거리 400미터! 2번 어뢰...... 아! 디코이를 물었습니다.”
체르니셰프스키 대위가 보고하자 주변에서 가벼운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심도계는 240미터를 가리키고 있었다. 일단 SET-65 어뢰라면 도달하기 불가능한 심도였다.
“2번 어뢰는 디코이를 완전히 물었습니다. 1번 어뢰는 심도 200미터 근방에서 더 이상 내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체르니셰프스키 대위가 보고한 다음 뻐근해진 목을 한 바퀴 돌렸다. 어뢰의 자체 심도계가 아래쪽에서 잡힌 탐지신호를 무시하는 것 같았다. 불안하게 천장쪽을 힐끔거리던 승무원들이 일제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러시아 원잠 승무원들이 안도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갑자기 엄청난 진동이 다닐 모스코프스키의 선체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거대한 폭음이 뒤따랐다. 승무원들이 머리를 컨솔에 찧고 벽에 내팽개쳐졌다. 서 있던 몇몇은 바닥에 나뒹굴었다. 함내를 밝혀주던 조명등이 갑자기 한꺼번에 꺼졌다. 암흑 속에 비명이 이어졌다.
9월 14일 15:40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쪽 31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 사령실
“동력계통은 이상 없습니다. 다만 고속항행시에는 소음이 커질 것 같습니다. 스크루는 문제없지만 베어링 쪽이 손상받은 것 같습니다. 배터리실에 발생한 침수는 완전히 복구됐습니다. 현재 승무원들이 건조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폴머 소령이 데미지 컨트롤 패털, 즉 피해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상황표시판 앞에서 가르시아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침수지역으로 붉은 램프가 반짝였던 배터리실은 다시 녹색등으로 바뀌어 있었다. 밸러스트 탱크와 트림 탱크도 모두 무사했다. 다만 예인소나가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좌현에 길게 배열된 측면소나도 복구되지 않았다.
함장은 배터리실이 계속 신경 쓰였다. 자칫 납축전지에 해수가 침수되면 염소가스가 발생해서 위험하기 때문이다. 잠수함이 순식간에 아우슈비츠의 독가스실러 바뀌면 승무원들은 도망갈 곳도 없었다. 하지만 배터리실은 이제 위험한 상황이 아니었다.
“좋아. 소나 복구는 계속하고 나머지 복구팀은 철수시켜도 되겠군.”
“일단 문제는 없습니다만 좀더 지켜봐야 합니다. 계속 점검팀을 배치시켜도는 것이 좋겠습니다만......”
“아니야, 지금 그보다 더 중요한게 있네. 소나 복구팀만 빼. 4명이면 되겠나? 나머진 모두 전투배치시키게!”
폴머는 아직 상태가 만족스럽지 못해 걱정되었으나 함장 가르시아 중령의 명령은 단호했다. 지금 가르시아의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생각만이 가득 차 있었다.
"함장님! 돌발음입니다. 추정 방위 0-3-5, 폭발음입니다!"
"중국 놈들이 쏜 어뢰가 폭발한 건가? 거리는 얼마나 되나?“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좌현 픅며노나와 예인소나가 모두 불능이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대략...... 15km 이상으로 판단됩니다.”
“그래도 사정거리는 꽤 나가는 녀석이군.”
가르시아 중령은 폭발음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뢰가 자폭했는지, 아니면 지나가던 어선이나 장문휴가 아닌 한국의 다른 잠수함에 명중했는지는 알 바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쪽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가 알 수 있는 범위도 아니었다.
9월 14일 15:43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북동쪽 50km
러시아 해군 공격원잠 다닐 모스코프스키, 사령실
폭발한 것은 SET-65E 어뢰였다. 다닐 모스코프스키가 심도를 낮추어 피해보려 했지만 SET-65E 어뢰는 지정된 안전심도까지 쫗아가다가 더 이상 내려가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근접센서가 폭발신관을 작동시킨 것이다. 잠수함이 심도 280미터까지 내려갔음에도 불구하고 250kg짜리 탄두가 80미터 거리의 다닐 모스코프스키를 위에서부터 강한 압력으로 때렸다.
“피해상황을 보고하라! 함장님! 괜찮습니까?”
전원이 나간 실내에 비상등이 들어왔다. 비상등은 조명등과 달리 어두컴컴했다. 부함장은 함장의 상태부터 살폈지만 조명이 어두워 바닥에 쓰러진 함장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발마셰프 중령이 오른속으로 옆구리를 감싸쥐며 간신히 몸을 반쯤 일으켜 함장에게 다가갔다.
“난 괜찮아. 피해상황을 점검하고 복구를 서두르게.”
“예, 알겠습니다.”
쓰러진 코발레프스키 대령의 머리에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큰 부상이 아니라고 생각되자 발마셰프는 그대로 일어섰다. 점검해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았다. 가장 중요한 곳은 원자로였다. 발마셰프는 마이크를 집어들고 함내방송을 시작했다.
“사령실이다. 피해 보고하라. 원자로실과 기관실부터 먼저 보고하라. 상황은 어떤가?”
- 원자로실입니다. 피해는 없습니다. 가이거 지수는 평균치 이하입니다.
가이거(Geiger) 계수기는 원자로에서 방출되는 감마선의 양을 측정하는 장치이다. 기준치 이상으 l방사선, 즉 감마선이 방출되는 것을 측정한다. 무척 오래된 장비였고 다른 방식으로 감마선을 측정하는 기기들이 있지만 이것은 간단하고 소형화할 수 있기 때문에 간이탐지기로 유용했다. 원자로실에 별 이상이 없자 발마셰프는 일단 안도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다른 부서는 심상치 않았다.
- 소나실입니다! 예인소나 수납기가 완전히 파괴됐습니다.
빅터급의 예인소나 수납기는 함미의 종타 윗부분에 달린, 우주로켓 만화그림의 꼬리날개와 비슷하게 생겼다. 이것이 송두리째 부러진 것이다.
- 스크루 손상이 심합니다. 우측 스크루가 파괴됐습니다.
- 기관실입니다! 스팀 배관 일부가 파괴됐습니다.
“후부 밸러스트 탱크도 조절능력을 상실했습니다.”
인터폰으로 들려오는 각 부서 피해보고에 이어 사령실 한쪽에 서 있던 잠항관이 침통하게 보고했다.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코발로프스키 대령과 발마셰프 중령의 절망스런 눈빛이 서로 교차했다.
“빌어먹을 한국 놈들!”
발마셰프 중령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실제 다닐 모스코프스키를 전투불능으로 만든 어뢰는 중국 잠수함이 발사한 SET-65였지만 중국 잠수함은 이미 격침됐다. 발마셰프는 본능적으로 책임을 한국에 뒤집어 씌웠다.
부함장은 SET-65와 같은 방향에서 온 전동추진식 어뢰가 한국 잠수함의 SUT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핵보유국이라서 골치 아픈 중국보다는 한국이 만만했고, 무엇보다도 살아 있는 쪽에 책임을 전가 시키는 편이 좋았다.
함장 코발로프스키 대령은 중국이 이탈리아제 전동추진식 어뢰를 수입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212급 잠수함 장문휴를 찾기 위해 임무에 투입됐으므로 이번 사태의 책임은 장문휴에게 일부 있다는 생각이었다.
함장과 부함장의 대화를 들은 승무원들은 한국 잠수함 때문에 이꼴이 됐아며 한국 잠수함에 저주를 퍼부었다.
9월 14일 15:45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쪽 35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71 컬럼비아, 사령실
“방위 0-4-0에서 일어??? 폭발은 어뢰 폭발음입니다.”
“그래, 알고 있어. 그밖에 다른 징후는 없는가?”
바닥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스위프트 중령이 브리드 준위 옆으로 다가왔다. 만약 중국이 발사한 어뢰가 마지막으로 탐지했던 새로운 잠수함 근처에서 폭발했다면 희생자는 한 척이 더 늘어난 셈이다. 그 이상을 생각하려 하자 스위프트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차피 컬럼비아에서 수집한 모든 음파정보는 귀항과 동시에 파일로 변환되어 해군정보국(ONI)로 보내질 것이다. 그곳에서는 해군에 관련된 전략, 전술정보 수집과 정보작전 외에도 방대한 야의 기초정보까지 체계적으로 분류한다. 컬럼비아가 듣고 행동했던 모든 일들이 소리로 다시 그려질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 장황이 해군정보국에 그대로 넘어갔다간 컬럼비아까지 문책을 면하기 어려웠다. 스위프트는 어디가지 조작할 수 있을 것인지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계산이 쉽지 않았다.
“함장님, 수중통신입니다. 라 호야입니다.”
“라 호야는 괜찮은가?”
스위프트 중령은 새로 들려온 폭발음에 신경 쓰다가 라 호야를 잠시 잊었음을 깨닫고 서둘러 통신실을 향했다.
“라 호야! 여기는 컬럼비아다. 라 호야, 응답하라.”
- 라 호야다.
“무사한가? 피해상황은 어떤가?”
- 피해는 복구중이다. 작전에는 이상 없다. 회선을 혼자 받을 수 있겠는가?
“무슨 이야기인가?”
- 잠시 기다려라. 샘! 현재 회선을 함장실로 연결하라. 함장실에서 교신하겠다.
스위프트 중령은 라 호야의 가르시아가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뜻인지 몰라 잠시 머뭇거렸다. 가르시아가 회선을 개방한 채로 라 호야의 부함장에게 내리는 명령을 듣고 나서야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다. 그리??? 스위프트 중령도 러너 소령에게 같은 명령을 내렸다.
“부함장, 현재 회선을 함장실로 연결하라. 함장실에서 교신하겠다.”
다른 부하들에게 방해받지 않고 통신을 나누겠다는 뜻이었다. 수위프트 중령이 함장실로 들어가면 러너 소령이 남아서 교신내용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는지 확인할 것이다. 스위프트가 명령을 마친 후 서두러 함장실로 걸어나갔다. 그가 사령실로 다시 돌아온 것은 시간이 5분 정도 흐른 뒤였다.
9월 14일 15:50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북동쪽 50km
러시아 해군 공격원잠 다닐 모스코프스키, 사령실
아직까지 어두운 비상등이 사령실을 비추고 있었다. 머리에 붕대를 감은 코발레프스키 대령은 애써 숨기려 했지만 참담한 심경은 어쩔수 없었다. 강한 충격으로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일부 승무원들이 아직도 이곳저곳에 너부러져 있었다.
다닐 모스코프스키의 추진기가 움직이긴 했지만 요란한 소음만 날뿐 잠수함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좌우 두 개의 스크루 모두 폭발 충격으로 심하게 뒤틀렸기 때문이다. 함장은 차라리 아예 정지시키는게 낫다고 생각했다.
“동력 완전정지하라.”
“동력 완전정지.”
보조동력인 배터리와 전동기가 완전히 정지하자 러시아 빅터III급 공격원잠 다닐 모스코프스키는 우주를 유영하듯 서서히 바닷속을 움직였다. 선미부분 밸러스트가 고장나 선수부분이 5도 가량 곤두선 채라 사령실도 기울어져 있었다.
“일단 밸러스트 복구에 최선을 다하라.”
기울어진 함정의 안정을 찾는게 시급했다. 하지만 후부 밸러스트 탱크가 침수된데다 압축공기를 주입하는 벤트(vent) 개폐장치가 조정 불능이었다.
“현재 수동으로 개폐장치를 작동시킬 수 있도록 작업중입니다. 하지만 가능성이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사상자는?”
“가관실 일부가 침수됐습니다. 메인 샤프트실 내에 세 명이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폐쇄했습니다. 침수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습니다. 일부 배관이 터져서 승무원 몇 명이 화상을 입었습니다.
발마셰프 중령인 담담하게 보고했다. 일부러 승무원 몇이 죽었다는 표현을 쓰지 않았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자명했다. 주동력인 스팀 터빈을 정지한 것도 배관을 다시 복구하지 않는 한 가동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오염상태는?”
“열교환기까지는 무사합니다. 방사능 누출이 없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터빈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이음부분 쪽에서 배관이 터져 버렸습니다. 누출량은 미미하고, 현재 증기유입을 완전차단했습니다.”
“잘했네.”
코발레프스키는 한숨이 나왔다. 일단 함대사령부와 직접 통신할 필요가 있었다. 이미 구조신호용 통신부이를 사출시켰지만 제대로 작동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함장님, 전력은 곧 복구될 것 같습니다. 발전기 쪽 루프(loop)는 이상이 없습니다. 그럼 다시 작업하거 가보겠습니다.”
“수고하게......”
땀으로 범벅이 된 발마셰프가 코발레프스키에게 경례를 붙이고 다시 사령실을 나섰다.
‘그래, 전력이 들어오면 생명유지는 가능하겠군.’
코발레프스키는 움직이지 못하는 잠수함에게 전력은 무슨 필요가 있을까 씁쓰레한 미소를 지었다. 느닷없이 날아온 어뢰 때문에 모든게 뒤죽박죽이었다.
9월 14일 15:55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동쪽 24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 사령실
“현재 70퍼센트 줄력에 다다랐습니다. 동력상태는 양호합니다.”
잠수함을 점차 가속시키며 소음상태를 점검하던 폴머 소령의 표정이 밝아졌다. 가르시아 중령 역시 흡족해하는 표정이었다.
“그래, 만족스럽군. 빨리 서두르자. 이제 거의 다 왔다. 매복지점은 바로 이곳이야.”
함장이 작도판에서 손으로 가리킨 지점은 울릉도 동쪽 10.5해리였다. 울릉도를 기점으로 12해리 영해선에서 안쪽으로 3,000야드나 들어간 지점이었다.
하지만 그는 한국 해군이 미국 잠수함의 영해침범을 알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 해군 잠수함이 울릉도 근처 해역에서 작전한 이래 한국 해군으로부터 확인 요청이 들어온 것은 몇 번밖에 없었다. 그것도 한국 해군함정이 미국 잠수함을 탐지한 것이 아니라 어선이나 어선신고소 직원이 물위로 부상한 미국 잠수함을 발견하고 한국 해군에 신고한 것이었다.
이 작전에서 중요한 것은 장문휴가 울릉도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하는 데에 있었다. 장문휴가 울릉도 근처 작은 섬 뒤에 숨거나 수심이 낮은 곳으로 도망가면 미국 원잠들이 장문휴를 탐지하기도 곤란하고 공격하기는 더욱 힘들었다. 그래서 미국 원잠의 함장들은 미리 울릉도로 가는 길에 매복하려고 계획을 세웠다.
“컬럼비아는 어디로 갔습니까?”
폴머 소령은 컬럼비아가 사라진 방향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조금전에 가르시아 중령이 컬럼비아의 함장과 나눈 대화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컬럼비아는 북동쪽에서 발생했던 폭발음을 추적중이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네. 샘.”
입을 연 가르시아가 눈빛을 반짝거리며 새뮤얼 폴머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호주머니에서 종이조각을 꺼내 폴머에게 건넸다. 휘갈겨 쓴 메모의 내용은 완전한 문장을 갖춘 형태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이 의 미하는 것은 폴머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매복지점에 접근한 다음 전단사령ㅂ로 교신을 보낸다. 우리는 지금 우발적 교전상황에 봉착한 거야. 적대적 행위를 촉발시킨 장본인은 바로......”
“장문휴로군요.”
가르시아가 대답 마지막에 잠시 멈추고 뜸을 들이자 폴머 소령이 대신 말을 이었다. 그리고 동의한다는 눈짓을 했다. 그러자 가르시아 중령이 허탈하게 웃었다.
“그렇다면 컬럼비아는?”
폴머가 다시 질문했다. 그것은 몰라서 묻는 질문이 아니었다. 컬럼비아는 폭발음의 뒤편에 목격자가 있는지 없는지, 또는 그 목격자가 누구인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가르시아가 대답하지 않았지만 다시 두 사람 사이에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했는지를 확인하는 눈빛이 반짝였다. 구태여 대화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럼 통신실로 가보겠습니다. 제가 직접 준비하겠습니다.”
폴머가 말을 마치고 통신실을 향해 걸음을 옮기자 가르시아는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리 나쁘지 않은 계획이었다. 가르시아가 한 모금 깊숙이 빨자 입 주위가 붉어지며 무서운 이야기에 나오는 괴물 모양이 되었다.
9월 14일 16:00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항
미 해군 태평양함대 제 7함대, 제 7잠수전단 사령부
통신참모 키쓰 파머 소령은 가스가 차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배를 문지르며 인상을 찌푸렸다. 연이은 상황실 근무는 긴장과 무료함의 반복이었다. 더구나 졸음을 쫓기 위해 공복에 마시 커피가 위장을 휘저어 놓은 상태였다.
출입문이 열릴 때마다 빗줄기가 쏟아지는 소리와 함께 후덥지근한 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이틀째 태풍 영향권에 들어 바깥에서는 지금도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샤워라도 할까?’
파머 소령이 습기를 잔뜩 머금어 끈적끈적해진 의자에 앉아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일본에서 보내는 여름은 유난히 무덥고도 길었다. 미국 북서부 같으면 벌써 여름이 끝났을 텐데, 이곳은 지금도 지겨운 여름이었다.
일본의 여름은 청명하거나, 뜨겁거나, 메마른 여름이 결코 아니었다. 파머 소령인 처음 겪은 끔찍하게 후덥지근한 여름이었다. 후덥지근한 대신 산듯한 밀림 냄새가 나는 열대지방이 차라리 일본보다 훨씬 낮게 느껴졌다.
게다가 어제부터는 태풍이 불고 있었다. 상황실에 습기가 차자 온몸에 퀴퀴한 냄새가 배었다. 일본인들이 다른 동양인들과는 달리 매일 목용하는 것은 이유가 있는 관습이라며 투덜거렸다.
고개를 들어 모니터 위로 건너편을 쳐다보았다. 사령관은 자리에 없었다. 조금 전까지 상황실에 나와서 요원들을 닦달하던 포스너 소장은 사령관실로 들어가 버린 모양이었다. 그럼 잠시 자리를 비워도 되겠다고 생각한 파머 소령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때 상황실 한쪽에 있던 통신실에서 사병 하나가 서둘러 나오고 있었다. 키가 무척 큰 그 흑인 사병은 곧장 파머 소령에게로 걸어왔다. 또 통신문이 들어온 것이다. 오늘은 되는 게 업사고 생각한 파머 소령이 의자에 풀썩 주저앉아 건네받은 통신문의 봉투를 살폈다.
발신인은 원자력 잠수함 라 호야, 수신인은 전단사령관 포스너 소장이었다. 다른 때라면 통신참모인 파머 소령이 먼저 개봉하겠지만, 어제 밤 이루호는 상황이 달라졌다. 사령관 수신의 통신문은 무조건 열람금지였다. 오늘따라 통신문이 꽤 많이 온다고 생각하며 통신문을 가지고 서둘러 사령관실로 향했다.
사령관실에는 참모장과 작전참모도 이미 들어와 있었다. 머리를 맞대고 조용히 쑥덕거리던 사람들이 일제히 침묵을 지켰다. 10여 개의 시선이 파머 소령에게 꽂히자 그는 일순 당황했다. 포스너 소장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물었다.
“또 뭔가?”
“라 호야가 보낸 통신입니다.”
포스너 소장과 다른 고위 참모들이 도둑질하다 들킨 아이처럼 일순 움찔했다. 포스너 소장이 참모장과 얼굴을 마주친 다음 파머 소령에게 손을 뻗었다.
“이리 주게.”
통신문을 건네받은 포스너가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찬찬히 읽고, 세 번을 반복해서 더 읽었다. 평소에는 한 번 죽 훑고 마는 포스너 소장인데 오늘은 이상하다고 생각한 파머가 사령관실을 나가려 했다. 그런데 포스너 소장이 그에게 잠간 있으라고 손짓했다. 그리고 사령관은 다시 통신문에 코를 바짝 들이박았다.
시간이 몇 분 더 흐른 뒤에야 포스너가 상황을 완전히 깨달은 모양이었다. 사령관이 통신문을 참모장에게 건넸다. 그리고 참모장이 다시 사령관에게 눈짓을 했다. 파머 소령이 읽어도 좋다는 뜻이었다.
통신문을 받아든 파머 소령이 침을 꿀꺽 삼키고 내용을 읽었다. 직감적으로 뭔가 매우 특별한 일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용은 그의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었다.
통신문에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는 우선 내용이 사실인지부터 의심이 갔다. 진짜 교전이라니! 그는 황당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교전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까?”
“그렇다네. 단순히 한국 영해를 침범했다는 이유만으로 한국 잠수함이 중국 잠수함에게 공격을 감행했어. 지금 중요한 것은, 미치광이 과격파 한국 놈들로부터 우리 잠수함들을 보호하는 것이야. 이베 곧 챈슬러즈빌과 휴잇, 밴더그리프트가 그 해역으로 출동할 걸세. 자네는 컬럼비아와 라 호야의 상황을 잘 전달해서 공동작전에 착오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하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태평양함대 사령부와 7함대 사령부로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아! 그럴 필요는 없어. 이미 다들 알고 있을 테니까. 연락점검만 신경 쓰도록. 그리고 다른 요원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해야 하네. 가능하면 조용히 해결해야 하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나?”
포스너 소장이 마지막 말에서는 목소리를 잔뜩 낮췄다. 파머 소령이 잔뜩 긴장해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파머는 약간 의아했다. 통신문을 책상위에 올려놓고 뒤로 돌아나오면서 다시 생각해보니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수상함대도 아닌 잠수함전단 사령관이 동해에 투입될 예정인 수상전투함들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도 이상했고, 실제 교전상황이 발생했는데도 너무 태연한 것이 더 이상했다.
파머 소령은 통신참모였다. 그를 통하지 않는 통신문이 있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아까 태평양함대 사령부를 발신자로 한 통신문에 그 비밀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금 분명히 뭔가 일이 꾸며지고 있었다. 그러나 파머 소령은 더 이상 의문을 품지 않기로 작정했다
9월 14일 16:05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북동쪽 29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대단하군.”
한 시간 넘게 쥐 죽은 듯이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던 서승원 중령이 말문을 열었다. 음탐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모든 승무원들이 숨을 죽인 채 바짝 긴장하고 있다가 그제야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국 잠수함들이 두 척이나 박살났습니다. 게다가......”
최현호 상사가 모니터를 가리키며 말하자 김승민 대위가 최현호의 말을 이어받았다.
“다른 잠수함이 또 있었습니다. 완전 격침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뢰가 주변에서 폭발했습니다. 설마 최무선은 아니겠죠?”
“최무선은 아니야.”
김승민과 최현호가 도 다른 폭발음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자 서승원 중령이 강하게 부정했다. 함장은 최무선과의 회합지점과 진입방위를 알고 있었다. 지금쯤 최무선은 울릉도 남쪽에서 장문휴를 기다리고 있을 시간이었다.
장문휴가 부여받은 임무는 울릉도와 둑도 해역을 초계하고 특정 해점에서 동료 잠수함 최무선과 랑데부하는 것이었다. 무척 단순하지만, 이것이 이번 출항에서 장문휴가 공식적으로 받은 임무였다.
강인현 대위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중국 잠수함이 정말로 공격을 받아 격침당한 것이다. 그가 알고 있기로는 2차대전 dgn 잠수함이 실전 무기에 의해 공격당한 사건은 딱 한 차례밖에 없었다.
1982년에 발생한 포클랜드 전쟁 때 아르헨티나 해군이 보유한 잠수함 산타페(Santa Fe)가 영국 해군의 링스 대잠헬기가 발사한 시 스쿠아(Sea Skua) 대함미사일에 피격되었다.
산타페는 2차대전 때 미국에서 건조된 구피(Guppy)급 디젤 잠수함이다. 그 잠수함은 사령탐을 내놓은 채 수상을 항주하다가 대잠무기인 어뢰나 폭뢰가 아닌 대함미사일에 명중당한 것이다. 그러나 잠수함은 침몰하지 않았다.
강인현이 중국 잠수함이 격침된 것에 의미를 두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잠수함은 충돌이나 자체 사고에 의하지만 않으면 적으로부터 공격당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그만큼 적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한국 국민들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상당히 불안 요소가 될 만한 대사건이었다.
핵잠수함이 침몰된 사실이 언론에 발표되면 아직도 핵에 대해 공포를 느끼는 일본 사람들이 동해를 일본해로 부르길 포기할 만한 사건이기도 했다.
“함장님, 지금 원자력 잠수함이 동해에 가라앉은 겁니까?”
강인현 대위는 장문휴의 모든 승무원들이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는 동해에 핵폐기물을 투기한 러시아의 행위 정도와 비교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였다. 지금까지 바다에서 핵잠수함의 원자로 노심이 용융하여 방사능이 누출된 사고는 최소한 9건이 보고 되었다.
1993년에 반핵단체 그린피스(Green Peace)의 적극적인 활도에 의해 최초로 폭로된 러시아 핵폐기물의 동해 투기는 그 전에 이미 30여년간이나 지속되었다. 러시아 극동함대는 함대 소속 원자력 잠수함등 120여기의 원자로에서 나온 폐기물을 육상저장소가 포화상태라는 이유로 손쉬운 해양투기를 택한 것이다. 러시아는 동해에 매년 4천 톤에 달하는 저준위 방사능 물질을 투기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그린피스의 해양감시선박 ‘MV 그린피스호’에 탑승한 운동가들은 동해에 핵폐기물을 투기하는 러시아 해군 소속 함정에 맞서 극렬하게 투쟁했다. 러시아 군함은 핵폐기물이 든 드럼통을 던져 운동가들이 탄 고무보트를 전복시키고 그들을 향해 호스로 물을 뿜어댔다. 그리고 폐기된 핵잠수함 원자로의 냉각수와 세척액으로 추정되는 액체 폐기물을 용기에 담지도 않은 채 파이프를 통해 직접 바다로 버렸다.
“그래. 더러운 방사능 쓰레기가 왕창 가라앉은 거야.”
함장이 침울하게 대답했다. 혼란상황에 정신없이 몰두했던 다른 승무원들도 그제야 한급이 원자력 잠수함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강인현 대위는 사태가 불러올 파장이 걱정되었다. 하필 중국 원잠이 침몰한 해역이 울릉도와 독도 사이, 해산물이 상당히 많이 잡히는 곳이었다.
“젠장! 이제 오징어 안주는 다 먹었군.”
김승민 대위도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오징어도 중요하긴 했다. 동해안 특산물은 덜 말린 오징어를 생각하며 강인현 대위가 쓴웃음을 지었지만 결코 웃을 일이 아니었다. 이제 동해에서 잡히는 수산물은 치명적인 방사능에 오염되어 있을 것이다.
“사령부로 보고한다. 통신관에게 상황을 간단히 요약해서 입력하도록 해. 이제 지원이 필요할 때가 됐다.”
“통신실에 준비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진종훈 소령이 함장의 명령에 따라 통신실로 이어지는 인터폰을 누르려고 할 때였다.
“소나 탐지! 방위 백구십오(1-9-5)도. 속도는 20노트로 추정됩니다!”
갑자기 최현호 상사가 크게 외쳤다. 승무원들이 방사능에 오염된 동해에 대해 심각한 표정으로 수군거리고 있을 때 느닷없이 들린 최현호의 목소리가 유달리 크게 들렸다.
“누군지 파악되나?”
서승원 중령은 음탐실 요원들이 보고하기 전에 이미 상대가 라 호야라고 판단했다. 함장은 라 호야가 울릉도 주변 해역을 돌아다니며 장문휴를 탐지하는 대신에 아예 울릉도로 직행하여 매복하려는 것이라 여겼다.
울릉도 주변의 해저지형을 조금만 벗어나면 동해의 수심이 2,000미터 이상으로 깊어진다. 이 때문에 미국 원잠들이 적극적으로 행동하면 속도가 느린 장문휴 입장에서는 숨기가 매우 곤란했다.
“라 호야로 판단됩니다. 음문 분석을 시작하겠습니다.”
“놈은......”
함장이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다른 결정을 내릴 여유가 없었다. 지금 미국 원잠은 중국 잠수함을 두척이나 격침시킨 상태였다. 미국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장문휴는 가능하면 이곳을 피해야 했다. 손에 피를 한번 묻히기 시작하면 가속이 붙게 마련이었다.
서승원은 미국 잠수함이 자행한 연쇄살인이 절대 쉽게 멈춰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장문휴는 살인사건의 유력한 목격자였고 살인자는 목격자를 내버려두지 않는 법이었다.
최현호 상사와 강인현 대위, 그리고 가른 소나요원들이 다시 바빠졌다. 서승원 중령이 모자를 벗고 소매로 이마를 훔쳤다. 더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번들거리는 기름이 땀과 범벅이 되어 소매에 축축하게 묻어나왔다.
“작전관!”
“예! 함장님.”
“침로를 변경한다. 방위 삼백오심공(3-5-0) 잡아.”
함장은 일단 미국 잠수함들을 피하기로 했다. 그는 미국 잠수함들이 환동해훈련에서 있었던 장문휴함에 대한 원한 때문에 이성을 상실했다고 보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뭔가 흑막이 있는 것 같았다.
“옛! 알겠습니다. 우현 10도! 삼백오십공도 잡아!”
“음문 분석 완료됐습니다. 라 호야입니다.”
강인현 대위의 목소리가 먼곳에서 울려퍼지는 메아리처럼 생소하게 들려왔다. 서승원 중령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통신을 띄우면 작전사령부가 발칵 뒤집힐 것이다. 함참과 국방부, 어쩌면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될지도 몰랐다.
그리고 동해에서는 긴급출동한 수상함정과 초계기, 대잠헬기들이 액티브 소나로 이리저리 들쑤셔 난리가 날 것이다. 잠수함 함장인 서승원 중령은 바다에서 이런 소동이 일어나길 결코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해군 작전사령부가 발리 손을 써주길 바랐다. 함장은 무엇보다도 최무선이 가장 걱정되었다.
9월 14일 16:10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북동쪽 53km
러시아 해군 공격원잠 K-317 판터, 사령실
“다닐은 어디 있나?”
함장 스트루베 대령은 무척 초조했다. 불길한 폭발음을 듣자마자 서둘러 이곳 해역을 향했지만 이제야 도착하게 되었다. 속도를 높여 빨리 움직일 경우 판터의 존재가 다른 잠수함들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함장은 지금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조용히 숨어 있다가 판터를 향해 어뢰를 발사할 수도 있었다.
“폭발음이 있었던 해점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4km 전방입니다.”
포트레소프 상사가 보고했다. 주변은 너무 조용했다. 조금 전에 커다란 폭발이 있었던 곳이라고는 더저히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불안함을 참지 못한 함장이 명령을 내렸다. 동료함은 이 근처에 있을 것이 분명했다.
“수중교신을 시도한다. 부함장, 연결해!”
“예! 다닐과 수중전화 연결합니다.”
레오니드 카친스키 중령이 마이크를 들었다. 부함장이 수차례 교신을 시도했지만 응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소나 탐색 결과는?”
스트루베가 답답한 듯 다시 소나장 포트레소프 상사에게 물었다. 그러나 포트레소프도 뚜렷하게 잡히는 것이 없어 애를 먹고 있었다. 참다 못한 함장이 결단을 내렸다.
“젠장! 액티브 탐신한다.”
“액티브 탐신 준비 완료!”
포트레소프 상사가 미안한 표정으로 함장의 명령을 기다렸다. 탐신 방향은 폭발음이 있던 곳이었다.
“쏘아!”
함장의 명령과 동시에 포트레소프가 버튼을 눌렀다. 러시아 원잠 판터의 함수로부터 나온 강력한 소나빔이 전방의 물을 두들겼다.
“전방 3,900미터! 수심 80미터입니다. 잠수함입니다! 정지하고 있습니다. 다닐 모스코프스키 같습니다!”
프트레소프 상사가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크게 외쳤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왜 응답이 없는 거지? 부함장, 공격준비에 만전을 기하도록. 혹시 다닐이 아닐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준비는 이미 끝났습니다. 허튼 짓을 하는 놈이라면 단번에 날려버릴 수 있습니다.”
카친스키 중령이 배에 잔득 힘을 주고 대답했다. 어찌 됐건 동효함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은 분명했다. 스트루베 대령은 저 앞에 유령처럼 멈춰 떠 있는 잠수함이 다닐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다닐이 대파된 상태일 것이다.
예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모두가 나쁜 가정뿐이었다. 스투루베 대령은 슬슬 긴장되기 시작했다. 그대 포트레소프 상사가 갑자기 허리를 펴더니 헤드폰을 손으로 꾹 눌렀다.
“함장님! 소리가 들립니다. 저 잠수함 쪽입니다. 이건......”
포트레소프가 말을 중간에 멈추고 다시 귀를 모았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카친스키 중령이 옆에 있던 다른 수병의 헤드폰을 빼앗아 귀로 가져갔다. 그것은 뭔가 단단한 물체로 잠수함 벽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 깡깡깡! 까앙~~ 까앙~~ 까앙~~ 깡깡깡!
“에스 오 에스(SOS)입니다!”
카친스키 중령과 포트레소프 상사가 동시에 놀라 외쳤다. 세 번의 짧은 연속음(dot)은 모스(Morse) 부호의 ‘s’였고, 다음에 이어지는 세 번의 긴 연속음(dash)은 ‘o'를 의미했다. SOS 신호가 두 차례 반복된 다음에 짧게 ‘D’를 의미하는 모스 부호를 듣자마자 카친스키는 상대가 다닐 모스코프스키라고 바로 단정지었다.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다닐입니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요?”
“빨리 접근해! 아니. 잠망경 심도로 부상한다!”
“잠망경 심도로 부상!”
다닐 모스코프스키에서 보내오는 신호를 접수했다는 의미로 판터에서 다닐을 향해 다시 공격소나를 2회 쏘아보냈다.
판터는 수면에 가까운 심도로 부상해서 통신 마스트를 수면 위로 올려보냈다. 그런 다음 판터는 다닐이 피격됐다는 내용과 함께 구조요청을 잠수함대 사령부에 송신하고 다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 * *
판터는 수면 위에서 다닐 코스코프스키를 향해 계속 접근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다닐 스코프스키에서 두드리는 모스 신호는 점점 복잡한 내용으로 바뀌어 갔다. 다닐이 알려주는 놀라운 정보에 스트루베 대령의 눈이 치켜떠졌다. 놀랄 일이었다. 아니, 화가 나서 미칠 일이었다. 함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변침한다! 침로 2-1-5, 출력 40퍼센트! 현 전투배치 상태를 지속한다. 모근 승무원은 각자 위치에서 침묵상태를 유지하라. 침묵상태를 위반할 시 군법회의에 회부하겠다.”
“함장님! 다닐을 구조하는 것이 우선 아닙니까?”
카친스키 중령은 상황을 알고 있었지만 서두르는 스트루베 대령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에겐 다닐을 구조할 장비가 없네. 다닐의 구조요청을 해줬으니 우린 할 만큼 했고, 이제는 다닐을 공격한 놈을 찾는 게 우리 임무다. 알겠나, 부함장?”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고 있던 스트루베 대령이 단호한 목소리로 반박했다. 카친스키 중령은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9월 14일 16:30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북동쪽 40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71 컬럼비아, 사령실
“소나 컨택! 방위 0-6-0입니다.”
“그놈인가?”
“모르겠습니다. 서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속도는 약 15노트 정도입니다.”
폭발이 있던 방향에서 잠수함의 움직임이 드러나자 소나팀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스위프트 중령은 중국이 발사한 어뢰에 그 잠수함이 손상받지 않았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계속 남하하면 문제가 생길 것이다.
“한쪽 스크루가 삐그덕거립니다. 전반적인 추진특성은 아쿨라급이라 판단됩니다.”
음문 스펙트럼 분석을 시도하던 브리드 준위가 입을 열었다. 어뢰를 맞고 살아남은 놈이라면 독이 잔뜩 오른 상태일 것이다. 스위프트의 머릿속이 다시 복잡해졌다. 일단 컬럼비아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했다.
“감속한다. 출력 15퍼센트로!”
“출력 15퍼센트로 감속.”
복창하는 러너 소령도 걱정스런 눈길로 함장을 쳐다보았다.
“뉴 컨택! 방위 0-9-5. 가깝습니다.”
“뭐야? 그쪽에 또 있단 말인가?”
“셋, 넷. 아니! 다섯입니다.”
브리드 준위는 접촉하는 음파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점점 더 긴장되었다. 옆에서 소나팀을 바라보던 스위프트 중령이 다섯이라는 보고를 듣고 아연실색했다.
만약 장문휴라면 거의 정동쪽이라 할 수 있는 0-9-5에서 나타날 리가 만무했다. 스위프트 중령은 다른 잠수함들이 대규모로 출현했다고 판단했다. 아마도 연락을 받고 긴급출동한 한국 잠수함들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때 부리드 준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보고했다.
“바이얼라직스입니다. 고래들입니다.”
“젠장할 고래놈들......”
바이얼라직스(biologics)는 소나로 수집한 정보 가운데 생물학적 존재를 일컫는 말이다. 잠수함 소나에 가장 많이 걸리는 종류는 실상 생물채였다. 바다에는 고래나 상어, 바다사자 같은 대형 동물 왜에도 작은 물고기들이 떼로 몰려다니면 소나에 탐지될 만큼 큰 소리가 날 수 있다. 새우떼도 경우에 따라서는 큰 물체로 오인되기 쉽다.
익숙하지 않은 초임 소나병들은 고래 소리에 많이 놀란다. 고래가 조용히 바닷속을 헤엄치다가 잠수함이 다가오는 것을 알고 갑자기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향유고래 종류는 눈이 퇴화하여 시력이 매우 나쁘다. 대신 박쥐처럼 소리로 주변의 위치와 물체를 파악한다. 먹이를 사냥할 때는 마치 액티브 소나처럼 깍깍거리는 소리는 내며 먹이감인 대왕오징어를 추격한다. 고래는 동료 고래가 내는 다른 소리가 주변에 난반사할 텐데도 자신의 소리와 반사음을 정확히 구별하여 위치를 알아낸다. 결국 고래의 음향시스템이 핵잠수함의 최신 소나보다 성능이 더 좋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향유고래들은 옆에서 움직이는 커다란 물체를 느끼고 소리를 내서 동료가 아닌지 확인했을 것이다. 컬럼비아의 무지막지한 크기를 확인한 고래들은 서둘러 동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또 다른 접촉입니다. 방위 3-0-0.”
“뭐야? 또 고래새끼들인가?”
스위프트 중령이 시큰둥하게 물었다. 그러나 보고는 정반대였다.
“아닙니다. 이번에는 잠수함 같습니다.”
스취프트 중령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혹시 장문휴가 다시 모습을 나타낸 것일까? 스위프트의 눈꼬리가 치켜떠졌다. 장문휴가 울릉도 영해로 도망가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아주 손쉽게 처리될 수 있었다. 라 호야가 공격하고, 실패하든 성공하든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런 다음에는 더 이상 작전을 진행할 수 없었다. 그런데 한국 잠수함은 일부러 어려운 선택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함장은 일이 계획대로 안 풀린다고 투덜댔다.
“확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침로는 0-3-0으로 천천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좀더 가까워지면 모르겠지만 이 상태에서는 확인하기 곤란합니다.”
브리드 준위가 고개를 돌려 상대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표시를 분명히 했다.
잠수함의 침로를 그쪽으로 변경해 추적한다면 확인해볼 수 있겠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러길 바란다는 요청이기도 했다. 그러나 함장에게 그것은 어려운 선택이었다.
“그건 보나마나 장문휴야. 울릉도로 매복하러 가는 라 호야를 발견하고 피하려는 모양이군. 여우같은 놈. 우리까지 예상하고 크게 우회하려는 속셈이다.”
함장이 그 잠수함을 장문휴로 생각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주변 상황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 거리에서 함종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면 극히 조용한 디젤 잠수함임이 틀림없었다. 어떻게 장문휴의 예민한 예인소나를 속이고 꼬리를 물까 고민하던 순간, 스위프트 중령은 갑자기 머리가 맑게 개이는 것 같았다.
“어쩌면 좋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 동력 10퍼센트로 재조정!”
그 새로운 목표는 러시아 아쿨라 쪽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어쩌면 독이 오른 러시아 아쿨라급이 예상외로 반응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자 스위프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내기를 하시겠습니까? 저는 아쿨라가 발광하는 쪽에 걸겠습니다.”
부함장 러너 소령이 함장의 의도를 먼저 눈치채고 말을 걸었다. 스위프트 중령은 짐짓 모르는 체했다.
“그게 말이 되나? 그럼 난 반대쪽에 걸지. 20달러 어때?”
내기는 할 만했다. 그리고 돈을 잃는 대신에 원하던 대로 일이 풀어지기를 바라며 스위프트는 그의 생각과는 반대로 걸었다. 20달러 가치가 충분히 있는 일이었다.
9월 14일 16:35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북동쪽 43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방위 백이십공(1-2-0)도 쪽에 뭔가 있습니다. 아! 소리가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컬럼비아일까?”
“모르겠습니다. 거리는 대략 10km 정도입니다.”
서승원 중령이 다시 신중해졌다. 만약 그쪽에 있는 것이 컬럼비아라면 장문휴를 찾아 헤매는 중일 것이다. 다른 때 같았으면 상대방을 추적하여 확실히 확인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오로지 피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침로 변경한다. 타각 오른편 30도! 공오십공(0-5-0)도 잡아.”
먼저 통신을 보내기 좋은 지점을 찾아야 했다.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느라 장문휴함에서는 아직 진해에 자세한 통신문을 보내지 못했다. 아까는 간단한, 그야말로 간결한 내용만 모냈다.
그리고 어찌된 셈인지 주변에 미확인 잠수함이 너무 많았다. 다시 통신용 부이를 쏴 올려야 했는데, 함장은 자꾸 상황이 급변하자 통신을 늦추고 있었다.
함장은 일단 잠수함을 독도 쪽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상대가 외국 잠수함들이니 장문휴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영해 안쪽 이 유리했다.
9월 14일 16:50 경상북도 울릉군 우릉도 북동쪽 48km
러시아 해군 공격원잠 K-317 판터, 사령실
“방위 2-5-5! 잠수함입니다!”
“그놈이다! 다닐을 공격한 놈이야. 어뢰실, 공격 준비!”
직접 소나실에 와서 소나팀이 뭔가 탐지하기만을 학수고대하던 스트루베 대령이 반색했다. 속도를 줄이고 무음항주하며 주변을 탐지한 보람이 있었다. 함장은 다닐 모스코프스키에서 망치로 함체를 두드리며 알려준 정보를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함장은 동료함의 불은을 잊을 리가 없었다.
첫 번째 어뢰는 중국 잠수함이 발사한 것이 확실했지만 두 번째 어뢰는 불확실하다고 했다. 그러나 스트루베 대령은 동료 잠수함을 노렸다는 전동추진식 어뢰는 한국 잠수함에서 발사한 것이 틀림없다고 단정하고 있었다.
“디젤 잠수함입니다. 속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새벽에 점촉한 놈과는 음문이 약간 다릅니다.”
포트레소프 상사가 새벽에 접촉한 한국의 209급 음문과 비교를 마치고 함장에게 보고했다.
“그래? 그럼 놈이 장문휴다! 이 기회에......”
스트루베 대령은 다른 가능성은 생각할 것도 없었다. 혹시나 또 다를 가능성, 미국과 일본이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소음이 큰 열기관 추진방식의 어뢰를 사용한다. 결국 함장은 다닐을 노리고 접근한 어뢰 가운데 한 발은 한국 잠수함이 발사한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도대체 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재구성한 전후사정은 이렇다. 어찌된 일인지 중국 잠수함과 한국 잠수함이 격투를 벌였고, 그리고 틀림없이 한국 잠수함이 발사한 어뢰 한 발이 튀어나와 다닐 모스코프스키에 다가와 폭발한 것이다.
스트루베 대령은 다닐이 울릉도에 접근하자 화가 난 한국 잠수함 함장이 먼저 중국 잠수함, 결국은 러시아 잠수함을 공격했다고 믿고 있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보복을 해야 했다. 한때 초강국의 하나였던 러시아 해군이 먼저 공격받고도 참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 어뢰실, 장전 완료했습니다.
아쿨라급 공격원잠 판터의 어뢰발사관은 무려 8문이었다. 표준구경인 533mm 어뢰발사관이 4문, 그리고 650mm 어뢰발사관이 4문이나 있었다. 지금 판터의 650mm 어뢰발사관에는 이미 2발의 SS-N-16 스텔리언(Stallion) 대잠미사일 두 발이 장전되어 있었다.
종마라는 별명을 가진 SS-N-16 대잠미사일은 물속에서 발사된 다음 수면을 박차고 하늘로 치솟는다. 그런 다음 자체 추진 로켓이 점화되어 잠수함이 숨어 있는 위치를 향해 관성유도로 날아간다. 관성좌표는 발사하기 전에 미리 입려을 해놓는데, 미사일은 관성좌표까지 비행하여 잡재한 어뢰를 물속에 떨어뜨리고 그 어뢰가 잠수함을 추적하는 공격방식이었다.
수면 착수 마지막 순간에 미사일이 어뢰로 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SS-N-16 대잠미사일은 탄두부분에 어뢰를 싣고 비행하는 일종의 어뢰 운반 미사일인 셈이다.
미국도 이와 같이 잠수함에서 발사되어 수면 위로 솟구쳐 미사일로 잠수함이 있는 지점까지 빠르게 날아간 다음 물속으로 떨어져 폭발하는 시스템이 있었다. 그것을 ‘서브록(SUBROC)'이라고 하는데, 턴두는 어뢰가 아닌 무유도 핵탄두였다. 이것은 핵전쟁 상황을 상정하여 구소련 전략핵잠수함을 공격하기 위한 무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핵탄두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에 미국은 탄두에 어뢰를 탑재한 시 랜스(Sea Lance)를 개발하여 배치하려 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결국 잠수함이 발사하는 대잠미사일을 운용하는 국가는 러시아가 유일했다.
스트루베 대령은 아예 200킬로톤(kt)짜리 핵탄두가 장착된 SS-N-16 미사일을 발사해서 형체도 남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술핵탄두는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니었다. 그 대신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1, 3번 발사관 주수하라!”
“1번, 3번 발사관 주수!”
“발사관 개방하라!”
“발사관 개방!”
스트루베의 명령에 따라 부하들이 어뢰의 발사절차를 착착 진행했다. 부하들은 지금 잠수함을 상대로 어뢰를 발사하는 과정이 미처 실감나게 느껴지지 않았다. 상대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과 오랜 훈련 때문에 이들은 주저하지 않고 함장의 명령을 따랐다. 상대방의 얼굴을 보며 직접 소총 방아쇠를 당기는 것과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어뢰 발사 단추를 누르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탐신!”
판터의 공격소나음이 장문휴를 향해 뻔어나갔다.
9월 14일 16:55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북동쪽 43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발사관 개방음입니다! 거리 4,300. 방위 공팔십공(0-8-0)도입니다!”
강인현 대위가 깜짝 놀라 보고했다. 그 소리를 듣지 못한 최현호 상사가 허겁지겁 소나의 볼륨을 최고로 올렸다.
“함장님! 러시아 아쿨라급 원잠입니다. 러시아 잠수함이 왜 갑자기...... 으악!”
어뢰 발사관 개방음에 아연실색하던 최현호 상사가 보고하다가 비명을 질렀다. 최현호는 손으로 귀를 막고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고개를 좌우로 휘저었다. 승무원들은 최현호가 공격소나음을 듣고 끔찍한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왜 그런 상황이 됐는지 파악하고 시급히 대처해야 할 때였다.
서승원 중령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러시아 핵잠수함이 장문휴를 향해 어뢰발사관을 개방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러시아 원잠까지 장문휴를 공격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강인현 대위가 손으로 짚은 소나컨솔 모니터에는 액티브 소남음이 쏘아진 위치와 방위 등이 자동적으로 계산되어 표시되고 있었다.
“함장님! 당장 공격을 해야 합니다. 저놈은 우릴 공격하려는 것입니다.”
“안 돼! 기다려.”
부함장 진종훈 소령이 당장 반격해야 한다고 날뛰었지만 서승원 중령은 신중했다. 함장의 가슴도 이미 분노로 격렬하게 박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방에서 어뢰를 발사하지 않은 이상 선제 공격을 가할 수는 없었다. 대신 언제든지 반격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했다.
“액티브 탐신하라!”
“액티브 탐신!”
함장이 과감하게 명령을 내렸다. 장문휴에서 액티브 탐신음이 쏘아졌다. 러시아 원잠이 이쪽을 탐지하기 전에 빠져나가려 했지만 원하는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서승원 중령은 그것이 아쉬웠다.
공격소나를 때린 것은 러시아 원잠에 대한 경고와 동시에 공격준비의 의미도 있었다.
“방위 공칠십오(0-7-5)도 거리 3,900미터! 심도 110에 있습니다.”
러시아 원잠이 움직이는 방위와 속도를 비롯하여 패시브 상태로 추적했던 것보다 더욱 정밀한 데이터들이 소나컨솔에 표시되고 있었다.
“작전관! 어뢰실 발사상태를 빨리 점검하라. 유선 유도 2발, 자동 유도 2발로 준비되는 대로 보고해!”
함장의 명령을 받은 작전관보다 부함장이 더 놀랐다. 함장은 공격준비를 명령하고 있었다. 상대는 러시아 원잠이었다. 부함장은 눈앞의 러시아 원잠은 무섭지 않았지만 그 배후에 있을 러시아의 힘이 두려웠다. 러시아는 구 소련 해체 이후 쇠락의 길을 걸었지만 아직도 군사력 만큼은 세계 최강의 반열에 들고 있었다.
“1, 2번 유선 유도! 3, 4번 무선 유도 할당합니다. 5, 6번 발사관에는 미끼가 들어 있습니다.”
“좋아! 발사관 개방. 우리 의사를 확실히 보여준다!”
“발사관 개방합니다.”
서승원 중령은 러시아 원잠 쪽에서 먼저 발사한담ㄴ 즉각 반격할 작정이었다. 도대체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는 없었다.
9월 14일 17:03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북동족 47km
러시아 해군 공격원잠 K-317 판터, 사령실
“계산을 마쳤습니다. 좌표입력도 끝냈습니다. 함장님.”
“좋아, 놈도 준비했을 것이다.”
스트루베 대령이 부함장 카친스키 중령 쪽을 돌아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갑자기 공격팀 요원들을 향해 짧게 명령을 내렸다.
“어뢰 급속 발사! 자동 유도! 2발 연속 발사하라!”
“발사!”
카친스키 중령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설마 함장이 지금 공격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함수 발사관에서 두 발의 어뢰가 배출되는 둔탁한 소리가 판터를 진동시켰다.
“함장님!”
카칱스키가 말을 잇지 못하고 놀라 멍청하게 서 있었다. 함장은 부함장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동료 원잠의 복수와 함께, 쇠락한 러시아가 아직 군사강국이란 사실을 세계에 알릴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스트루베 대령이 단호하게 명령했다.
“우현 전타! 기관출력 최대로!”
판터가 급속하게 변침하며 맹렬한 속도로 반대쪽을 향해 움직였다. 거의 무제한적인 수중항주능력과 함께 최고속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원자력 잠수함의 강점이며, 이것이 디젤 잠수함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느 차이였다.
함장은 이번에 속도를 최대한 이용할 계획이었다. 한국 잠수함이 사용하는 SUT 어뢰와 아클라급 핵잠수함은 속도에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당초 한국형 212급 잠수함인 장문휴는 SUT보다 성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된 DM2A4 어뢰는 SUT의 세 배가 넘는 275kw의 출력에 50노트 가까운 속력을 발휘하는 고속 어뢰이다.
그러나 이 어뢰는 아직 개발이 완료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트루베 대령은 잘 알고 있었다. 속도가 느린 어뢰를 사용하는 잠수함은 당연히 전술운용에 제한이 많다. 함장은 한국 잠수함을 향해 어뢰를 발사한 다음 최고속도로 달리면 한국이 발사한 어뢰를 따돌릴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9월 14일 17:04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북동족 44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어뢰입니다! 놈이 어뢰를 쐈습니다. 2발입니다!”
“놈이 쐈습니다. 이럴 수가! 우리가 먼저 공격했어야 했습니다.”
최현호 상사의 보고에 진종훈 소령이 울화가 터지는지 가슴을 두들겼다. 함장은 계속 무표정한 얼굴로 명령을 내렸다.
“5번 발사관, 흑상어를 발사하라!”
“발사합니다.”
“발사하는 대로 급속 변침! 타각 왼편으로 전타! 이백팔십공(2-8-0)잡아!”
“키 왼편 최대! 방위 이백팔십공!”
발사 버튼을 누르던 김승민 대위가 서승원 중령을 쳐다보았다. 장문휴가 급격하게 왼쪽으로 기울자 자리에 서 있던 서승원과 진종훈, 김승민 모두 무언가를 잡고 있어야 했다.
“함장님! 왜 반격하지 않으십니까?"
분노한 진종훈 소령이 당장 러시아 잠수함을 공격하자고 주장했다. 조금 전에 함장의 어뢰발사 준비 명령에 놀란 부함장은, 이번에는 반대로 함장이 즉각 반격하지 않는 사실에 더 놀랐다. 그러나 함장은 고개를 저었다.
"속도와 사정거리를 감안해 보게."
함장의 우울한 목소리가 분노의 늪에 빠진 진종훈 소령의 이성을 깨웠다. 부함장이 잠시 머릿속으로 계산하더니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였다. 상대는 원자력 잠수함이었고, 이 거리에서 장문휴의 어뢰는 현재 최고속도에 달한 러시아 원잠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 * *
구리빛으로 검게 그을린 서승원 중령의 얼굴은 개기름이 잔뜩 번들거렸다. 함장은 무퓨정하게 미동도 하지 않았다. 기묘한 느낌이었다. 어뢰가 장문휴를 노리고 다가오는데도 불구하고 함장의 무덤덤한 표정을 보고 나니 강인현 대위는 문득 자신도 냉정해지는 것을 느꼈다. 함장이 지금 상황에 놀라 선 채로 기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접근하는 어뢰, 도합 두 발입니다.”
어뢰의 항적을 추적하고 있던 최현호 상사가 갑자기 이상하는 듯 말끝을 얼버무렸다. 뭔가 빠진 것 같았다. 212급 최신형 디젤 잠수함으로 알려졌으니 당연히 더 많은 공격을 가해올 줄 알았는데 겨우 어뢰 2발이라니, 자연히 의문이 생겼다. 그 순간에 강인현 대위가 입을 열었다.
“2발 접근 확인! 거리 3,000미터!”
“작전관! 흑상어의 코스를 빨리 수정 입력하라. 코스는 현재 장문휴의 침로와 동일하게. 그리고 수면 쪽을 향해 계속 회유하도록 프로그램하라. 시간이 없다. 서둘러!”
무표정하게 서 있던 서승원 중령이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김승민 대위가 한번에 해낼 수 있는 간단한 명령은 결코 아니었다. 흑상어는 마크 37 어뢰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어뢰기만장치였다. 최대 15km를 자체항주 할 수 있으며 탄두 부분에는 폭약 대신 음향발생장치가 장착되어 잠수함의 항주음을 흉내내도록 설계되었다.
환동해훈련 당시 미국의 대잠추적팀을 경악시킨 미끼 어뢰가 바로 흑상어였다. 당초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같은 목적으로 모스(MOSS) 기만어뢰를 도입하려 했으나 미국이 핵심기술의 이전이 불가하다는 이유로 거절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체개발한 것이었다. 흑상어와 모스는 평상시 대잠 훈련 때에는 가상잠수함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함장님, 프로그램 입력 완료됐습니다.”
김승민 대위가 흑상어의 프로그램 항주 모드를 조정하여 진행방향과 패턴 입력을 마치고 서승원 중령에게 보고했다.
“발사해!”
6번 발사관에 있던 흑상어 한 발이 빠져나간 후 30미터 정도를 진행한 다음 반대편으로 방향을 틀어 러시아가 발사한 어뢰 쪽을 향했다.
“심도 조정 300미터! 잠항각 30도!”
“잠항각 30도! 심도 300미터로!”
흑상어가 방향을 트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서승원 중령이 심심도 잠항을 명령했다. 장문휴함이 고꾸라지듯 머리를 숙인 채 바다 깊숙한 곳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9월 14일 17:07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북동쪽 48km
러시아 해군 공격원잠 K-317 판터, 사령실
“장문휴가 어뢰를 회피하고 있습니다. 반격은 없습니다.”
“좋아! 완전한 먹이감이다!”
장문휴가 판터를 향해 어뢰를 발사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자 스트루베 대령이 만족스러운 듯 쩝쩝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어차피 이거리에서는 한국 잠수함이 어뢰를 발사해도 소용이 없었다. 판터가 전속력을 내어 도망가면 그뿐이었다.
“아! 장문휴가 뭔가를 발사했습니다! 침로는...... 응? 침로는 이쪽이 아닙니다. 방위 2-0-5로 가고 있습니다.”
쉬비코프스키 대위가 황급히 고개를 돌려 스트루베를 쳐다보았다. 장문휴가 뭔가를 발사했다는 소리를 듣고 어뢰인가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어뢰는 아닐 것이다. 아마 양키놈들이 사용하는 모스와 비슷한 놈일 거야.”
“함장님, 우리는 자동 유도로 발사했습니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기만당할 가능성이 큽니다.”
함장이 너무나 여유있게 이야기했지만 카칱스키 소령은 우려를 표했다. 유선 유도라면 대형 함수소나로 추적하면서 어뢰를 목표에 유도할 수 있기 때문에 기만당할 가능성이 적었다.
그러나 자동 유도의 경우는 다르다 특히 유도시스템이 낙후한 러시아제 어뢰는 대어뢰기만책에 무척 취약했다. 어뢰가 표적과 미끼를 제대로 구분하는 것은 어렵다. 비교적 단순한 형태의 음향기만장치는 무시하도록 프로그램된 서방측 어뢰와 아직 비교하기 어려운 것이 러시아제 어뢰였다.
“부함장! 지금이 적절한 시간이다. SS-N-16을 사용한다. 좌표를 입력시키게.”
“옛? 아, 알겠습니다.”
스트루베 대령은 부함장의 반문을 짐짓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이 고려했던가능성을 다른 사람이 더듬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스트루베는 속으로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감추려고 입술을 실룩거렸다.
“함장님, 입력 완료했습니다.”
“발사해!”
카친스키가 발사버튼을 누르자 판터의 함수쪽 650mm 어뢰발사관에서 새로운 두 발이 퉁겨져 나왔다. 장문휴의 방향은 반대쪽이었지만 문제될 것은 없었다. 새로 튀어나온 어뢰 두 발은 발사된 직후 곧장 수면 쪽을 향해 치솟기 시작했다.
9월 14일 17:08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북동쪽 43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어뢰가 또 발사됐습니다. 두 발입니다.”
최현호 상사가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두 발의 어뢰가 잠수함에 접근하는 마당에 또 다른 어뢰가 발사된 것이다.
“방향이 다른데 왜 또 어뢰를 쐈을까요? 아무리 무선 유도라 해도 이놈들이......”
진종훈 소령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함수방향을 목표와 반대쪽으로 하고도 어뢰는 발사할 수 있었다. 어뢰가 사전 프로그램이 입력된 방향으로 스스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종훈 소령이라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예 함수를 장문휴 쪽으로 돌린 다음 유선 유도 모드로 발사하는 것이 훨씬 정확했다. 진종훈 소령은 지금이라도 공격할 생각을 하지 않는 함장이 원망스러웠다. 러시아 원잠이 최고속도로 도망가면 소용없겠지만, 위협사격이라도 가해야 상대방이 재공격을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 발사음은 조금 전에 분명히 들렸는데 항주음이 끊어졌습니다! 이상합니다.”
“뭐야? 항주음이 끊어지다니.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는단 말인가?”
가뜩이나 답답한 마당에 새로운 어뢰를 추적하던 강인현이 접촉을 상실했다고 보고하자 진종훈 소령이 펄쩍 뛰었다. 그러나 지금 사라진 어뢰에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강인현과 최현호는 꼬리에 달라붙은 어뢰를 추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어뢰 접근! 거리 500미터......450미터......아! 한 놈이 흑상어를 물었습니다.”
장문휴함의 꼬리를 물고 있던 두 발의 어뢰중 한 발이 미끼인 흑상어를 쫓는 것을 확인하자 사령실 요원들이 이곳저곳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만체 발사 준비!”
“1, 2, 3, 4번 모두 4바이 장전됐습니다. 명령만 내리십시오!”
이번에는 흑상어와 다른 튜브식 TAU-2000 대어뢰기만체였다. 사령실 후방에서 SLOT 통신부이를 쏘아올리는 발사기를 이용하는 것으로, 흑상어처럼 음향을 만들어 어뢰를 유인하는 장치였다. 구경 127mm, 길이 1.2미터의 TA-2000 기만체는 스스로 움직여 미끼가 되는 흑상어와는 달리 추진력은 없었다.
대신 많은 양을 동시에 발사할 수 있기 때문에 꼬리에 붙은 어뢰를 따돌리는 데는 유리했다. TAU-2000 기만체가 발생시키는 음파는 잠수함의 대형소나와 음파분석기를 사용하면 미끼라는 것을 쉽게 판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동 유도로 돌입하는 어뢰의 경우는 달랐다.
어뢰가 탑재한 소나추적장치, 프로세서와 연산프로그램들이 허위의 음파를 식별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뢰의 소형컴퓨터는 인간보다 뒤처질 수밖에 없다.
“1, 2번 발사하라. 좌현 전타!”
TAU-2000 기만체가 어뢰를 따돌리기에 적당한 거리를 기다렸다가 서승원 중령이 명령을 내렸다. 장문휴함은 두 발의 기만체를 배출한 다음 왼쪽 방향으로 빠르게 선회했다.
“2번 어뢰 후방 접근! 현재 거리 300미터!”
“3, 4번 기만체 발사! 좌현 전타! 하강한다!”
마지막 순간이었다. 장문휴가 다시 TAU-2000 기만체를 발사하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더욱 깊은 심도로 고꾸라지듯 내려갔다. 심도계는 이미 300미터를 넘어서 계속 내려가고 있었다.
장문휴의 안전잠항 심도를 넘어서는 깊이였다. 적색선으로 표시된 안전선을 넘어서 심도계 바늘이 계속 아래쪽으로 기울어지자 조함을 지휘하는 김승민 대위의 표정이 바짝 굳어졌다.
“거리 150...... 아! 2번 어뢰! 기만체 쪽을 향해 빠져나갑니다!”
강인현 대위가 2번 어뢰가 기만체 쪽을 향하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하는 거솓 잠시, 함체 이곳저곳에서 날카로운 파열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안전잠한 심도를 넘어선 잠수함이 강한 수압을 받자 내부골격에 뒤틀림 현상이 발생하고 있었다.
“함장님! 더 이상 내려가면 위험합니다.”
진종훈 소령이 기겁하여 외쳤다. 하지만 서승원 중령은 묵묵부답이었다. 선체가 찌그러지는 것으로 착각할 만큼 소음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심도계의 바늘은 이미 350미터를 넘어 400미터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뢰, 모두 통과했습니다. 기만체에 유인당했습니다.”
선체가 뒤틀리는 소음 때문에 최현호 상사는 소나를 다루기도 어려웠다. 일단 어뢰 2발이 모두 기만체에 유도된 셈이었다. 사령실 승무원들은 함장이 내릴 부상명령을 기다렸지만 아직 서승원 중령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장문휴는 어느새 최대잠항 심도에 다다르고 있었다.
압궤, 즉 잠수함이 수압을 이겨내지 못하고 찌그러지는 현상은 안전잠항 심도를 넘어선다고 일순간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압궤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제한이 바로 최대잠항 심도이고, 안전잠항 심도를 벗어나면 잠수함의 내부골격은 극심한 부하로 인해 피로도가 점차 누적된다. 잠수함의 수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였다.
“심도 조정, 200미터로!”
굳게 다물었던 함장으 l입이 그제야 열렸다. 조마조마 기다리던 기승민이 반색을 하며 장문휴를 부상시켰다.
“부장!”
“옛! 함장님!”
“우현 최대! 놈에게 대가를 츠르게 해주겠다. 공격준비하라. 실수하면 안 돼! 한 방에 해치운다.”
“물론입니다. 박살내놓겠습니다!”
그제야 서승원 중령이 노기를 터뜨리며 진종훈에게 공격을 지시하기 시작했다. 참았던 분노가 폭발하기는 진종훈도 마찬가지였다. 부함장은 마치 신참 소위처럼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하고 김승민과 함께 공격컨솔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부함장은 뭔가 잠시 잊은 것 같았다.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당장 러시아 원잠을 공격해서 요절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9월 14일 17:10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북동쪽 49km
러시아 해군 공격원잠 K-317 판터, 사령실
“착수할 시간이군.”
스트루베 대령이 시계를 보며 중얼거렸다. 맨 처음 발사한 어뢰 두발에 더해서 추가로 발사한 SS-N-16 대잠미사일이 이제 어뢰로 돌변하여 물위로 떨어질 시간이었다.
“어뢰, 착수했습니다.”
함장의 계획대로 상황이 착착 맞아떨어지자 소나팀장 쉬비코프스키 대위가 들뜬 목소리로 보고했다. 이번에 머리 위에서 새로운 어뢰까지 가세하면 장문휴는 절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1번 어뢰가 장문휴를 쫓지 않고 있습니다. 엉뚱한 쪽으로 빠지고 있습니다.”
“기만체에 완전히 속았군. 하지만 대잠미사일까지 모두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하하!”
스트루베 대령은 모든 변수를 이미 다 고려해두었다고 자신만만한 웃음을 터뜨렸다. 장문휴가 어뢰를 피하더라도 곧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는 어뢰에 대처하지 못하고 얻어맞을 것이라 생각하자 무척 고소했다.
“2번 어뢰도 침로가 이상합니다, 함장님. 예인소나가 제대로 풀리지 않아서 정밀한 추적이 어렵습니다.”
쉬비코프스키 대위가 추적이 어렵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180도 변침한지 얼마 안 되는 동안 예인소나를 충분한 거리까지 배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스트루베 대령은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침로를 돌려 다시 추적하겠습니다. 대위?”
함장 대신 부함장 카친스키가 쉬비코프스키에게 명령했다. 하지만 예인소나 때문에 안간힘을 쓰고 있던 쉬비코프스키는 카칱스키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9월 14일 17:11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북동쪽 44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수면에 착수음! 뭔가 떨어졌습니다!”
“어뢰입니다. 방위 이백육십공(2-6-0)도. 거리 1,000미터도 안 됩니다. 바로 머리 위입니다. 나선형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어뢰 두 발을 따돌렸다는 안도감도 잠시였다. 최현호와 강인현이 서로 합창하듯 소리쳤다. 서승원 중령이 침울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대잠미사일이다.”
함장도 이번에는 바짝 긴장했다. 수면 위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어뢰는 항공기용, 혹은 수상함정이 투하하는 경어뢰들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나타난 대잠초계기도 없었고 더욱이 수상함장도 없었다.
서승원 중령은 조금 전에 음탐실에서 어뢰 발사음을 탐지했다가 추적에 실패했던 것을 떠올렸다. 대잠미사일을 잊었다니, 서승원 중령은 나이가 들어 이제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우현 최대! 방위 공육십공(0-6-0) 잡아!”
“우현 최대! 방위 공육십공!”
“가속한다. 출력 40퍼센트로!”
“출력 40퍼센트로 가속!”
이제 더 이상 피할 수는 없었다. 피한다고 러시아 원잠이 공격을 중단하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부장! 발사를 맡기겠다. 유도를 전적으로 맡아라!“
함장은 자신에 대한 자학과 러시아 원잠에 대한 적개심이 동시에 불같이 피어올랐다.
“지금 당장 발사할 수 있습니다! 스윔 아웃 모드로 발사하겠습니다.”
“알았다. 확실하게 날려라! 회피는 내가 맡겠다.”
“1, 2, 3, 4번 발사관 동시 발사합니다. 발사관 개방!”
진종훈 소령이 발사명령과 함께 장문휴의 함수 어뢰발사관 해치가 열리기 시작했다. 심도가 꽤 깊었지만 자주식 발진(swim-out) 방식으로 발사하면 수압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스윔 아웃이란 압축공기식, 혹은 수압식 발사관에서 어뢰를 강제로 사출시키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어뢰가 자체 추진력으로 발사관을 빠져나가는 방식이다. 소음이 매우 낮기 때문에 발사음이 잘 들리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작전관! 어뢰의 최초 접근 속도는 24노트로 설정하라. 놈의 뒤통수를 때릴 생각이다.”
진종훈 소령은 이 급박한 상황에서도 냉철하게 명령은 내렸다. 처음에는 어뢰를 천천히 항주시켜 소음을 극소화했다. 적 잠수함이 어뢰를 탐지할 대쯤 속도를 내려는 의도였다. 이것은 속도가 느린 대신 소음이 극히 적은 전동식 어뢰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발사방식이었다. 하지만 목표에 도달되는 시간이 느려진다는 결점이 있었다.
“좋습니다. 1, 2, 3, 4번 어뢰 24노트로 설정!”
김승민 대위가 이미 발사관 안에 들어있는 네 발의 SUT Mod 2 어뢰에 초기 항주모드를 재설정했다. 어뢰와 공격컨솔 사이에는 유선 유도선이 링크되어 있었고 여러 가지 명령을 입력할 수 있으며 발사 후 통제가지도 가능했다.
장문휴에 장비된 SUT 어뢰들과 두 발이 실린 국산 어뢰 백상어의 시험양산형은 무기장 강희담 준위와 김승민 대위가 일일이 어루만지듯 점검하여 탑재했던 것들이다. 지금 이것들은 발사관에 들어가 있지만, 그들은 어뢰의 시리얼 넘버까지 달달 외울 정도였다. 김승민은 잠깐 동안 어뢰의 미끈한 선단부분과 동체를 떠올렸다.
“부장님! 완료했습니다.”
“좋아! 급속 발사한다. 4발 동시 발사!”
“동시 발사!”
김승민 대위가 직접 발사기능 상태를 표시한 4개의 청색 버튼을 동시에 눌렀다. SUT 어뢰의 추진 모터가 발사관을 빠져나오기 위해 미속으로 움직였다. 조용히 빠져나온 어뢰들은 24노트로 점차 가속해서 검은 바닷속으로 빨려들어갔다.
“하나가 본함을 탐지했습니다. 추격코스로 접어들었습니다!”
강인현 대위가 외쳤다. 나선형 코스로 서서히 아래쪽으로 하강하던 러시아의 어뢰 한 발이 장문휴를 탐지했는지 항주패턴이 바뀌고 있었다. 나선형(helical) 운동은 수면 위에서 투하되는 어뢰들이 초기에 목표를 수색하는 방법이다. 어뢰는 목표를 찾을 때까지 크게 원을 그리며 나선형으로 서서히 내려오게 된다.
“기만체 발사하라!”
접근하는 러시아 어뢰에만 집중하던 서승원 중령이 시간을 재다가 명령은 내렸다. 장문휴에서 또다시 TAU-2000 어뢰 디코이가 솟구쳤다. 어뢰는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
“어뢰가 접근합니다!”
9월 14일 17:16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북동쪽 50km
러시아 해군 공격원잠 K-317 판터, 사령실
“후방에 폭발음입니다! 어뢰가 놈을 잡은 것 같습니다.”
“좋았어! 급속 변침! 이제 놈을 확인사살할 때다.”
쉬비코프스키가 보고하기 무섭게 스트루베 대령이 변침을 명령했다. 이제 장문휴가 격침됐는지 확인하는 일만 남았을 뿐이었다.
“두 번째 폭발입니다! 방위 동일합니다. 방위 2-4-0!”
“잡았다!”
잇따른 두 번째 폭발음은 확실했다. 장문휴의 숨통을 끊어놓는 소리였다. 스트루베 대령은 이 결과가 원자력 잠수함과 디젤 잠수함의 결정적인 차이, 즉 속도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했다.
전투는 아군의 장점과 적군의 단점을 극대화하는 편이 이긴다는 것이 함장의 지론이었다.
“기관 출력 50퍼센트. 빨리 가자. 놈의 시신을 확인하고 싶다. 하하하!”
스트루베 대령이 이젠 확실하다 싶었는지 마음껏 웃어제꼈다. 너무나도 쉬운 목표였따. 스투루베는 장문휴의 함장이 아무래도 덜 떨어진 놈이 아닐까 생각했다.
자신이라면 그 전에 미리 반격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쪽을 격침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재공격을 막는 효과는 있었다. 어뢰를 발사한 다음 디젤 잠수함의 특성을 이용해 조용히 숨어 있으면, 원자력 잠수함인 판터도 섣불리 공격하기는 어려웠다.
아쿨라급 핵잠수함은 속도를 높여 장문휴가 있는 곳을 향했다. 하지만 이들은 승리의 환호성을 지르며 함내에서 보드카로 축배를 들 정도로 정신이 나가지는 않았다. 러시아 승무원들은 아직도 해저에서 난반사되고 있는 폭발음의 반향을 들으며 주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함장님! 방위 2-8-0에 뭔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폭발음이 들린 곳보다 훨씬 가깝습니다.”
“뭔데 그리 소란스럽나? 파악해봐.”
스트루베 대령은 여전히 느긋했다. 함장은 장문휴가 격침된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함장이나 승무원들이 주의한 것은 이미 격침된 장문휴가 아니라 다른 나라 잠수함들이었다. 그러나 소나에 귀를 기울이던 쉬비코프스키 대위의 표정은 시시각각 굳어지고 있었다.
“어뢰 같습니다! 모두 셋, 아니, 네 발입니다. 거리 1,500미터! 이럴수가! 가속하고 있습니다!”
“뭐야? 어떻게 여태 모를 수가 있었단 말인가? 쉬비코프스키 대위!”
어뢰 접근을 보고받고 안색이 창백해진 스트루베가 엉겁결에 쉬비코프스키를 나무랐지만 이미 부질없는 짓이었다. 지능적이었다. 어뢰를 저속으로 발사하여 탐지를 피하다니. 그것도 무려 네 발이나 다가오고 있었다.
“급속 변침한다. 우현 전타! 기관 전속!”
스트루베가 부르짖었다. 한국 잠수함이 사용하는 어뢰는 전기추진이라 속도가 느렸다.
서두르면 지금이라도 어뢰를 떨쳐낼 수도 있었다.
9월 14일 17:17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북동쪽 44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함장님!”
비틀거리며 일어선 진종훈 소령이 함장부터 찾았다. 서승원은 머리를 부딪친 듯 바닥에 쓰러진 상태로 꼼짝하지 않았다. 진종훈이 서둘러 함장을 한쪽 팔에 기대게 하고 얼굴을 흔들어댔다. 그러나 서승원 중령은 의식이 없는 것 같았다.
“의무하사 불러와! 김찬욱이 어딨어?”
전투시 기관실 근무가 부임무인 김찬욱 하사는 지금 기관실에 있었다. 부함장의 비명이 들릴 리 만무했다.
진종훈의 고함소리를 들은 승무원 한 명이 비치적거리며 일어나 기관실 쪽으로 휘청거리며 걸어갔다. 비상전원이 들어왔을 뿐 사령실은 아직 어두웠다.
마지막 순간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어뢰 한 발은 용케 피했으나 두 번째에 맞은 것 같았다. 어뢰에 잠수함이 직접 가격당한 직격탄은 아니고 주변에서 폭발한 지근탄이었다. 그러나 상당한 위력이었다.
기만체를 다시 발사한 장문휴는 급격히 하강했다. 일순간 어뢰가 소나의 사각지대에 들어선 듯 방향을 놓쳤을 때 둔탁한 폭음이 머리위를 때렸다.
주변에 쓰러졌던 요원들이 하나 둘 신음소리를 내며 일어나기 시작했다. 모두들 가슴과 머리를 쇠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은 큰 충격을 받아 정신을 차리는데 시간이 걸렸다.
“부장님은 괜찮습니까?”
“난 괜찮다. 함장님이 의식불명이다. 이런! 어뢰는 어떻게 됐지? 빨리 확인해!”
그제야 진종훈의 머리에 장문휴가 발사한 어뢰가 떠올랐다. 김승민이 제정신을 차린 듯 허둥지둥 일어서며 무기컨솔 쪽에 다가갔다. 자리에 앉아 있던 음탐요원들과 조함요원들도 모두 정신을 차렸는지 각자 맡은 기기들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각 부서, 피해 보고해!”
- 기관실, 배터리실 모두 이상 없습니다. 침수도 없습니다.
- 어뢰실 이상 없습니다.
“음탐실 함수소나 작동, 측면소나 작동, 예인소나 불능입니다!”
다른 부서의 보고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강인현 대위가 진종훈 쪽으로 향해 크게 소리쳤다. 침수가 없는데다 주요기기들은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대잠미사일이 사용하는 어뢰는 탄두크기가 비교적 작은 경어뢰들이었다. 만약 잠수함용 중어뢰에 얻어맞았다면 장문휴함의 생존은 어림없었다.
“좋다, 음탐실. 어뢰를 계속 추적하라! 김승민 대위!”
“부장님. 어뢰 1발 외에는 모두 유도를 상실했습니다만, 모두 자동 유도로 전환되어 러시아 잠수함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유선 유도가 멈추자 SUT 어뢰들은 자체의 추적 프로세서로 러시아 잠수함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스로 속도를 높여가고 있었다.
“함장님이 다치셨다고요? 어디 계십니까?”
허둥지둥 들 것을 들고 다려온 김찬욱 k사가 함장을 찾았다. 뒤이어 조리장 박상빈 하사도 허겁지겁 뛰어왔다.
“어서 의무실로 옮겨. 의식을 잃으셨다. 아직도 폭발충격에 정신이 나갔던 김찬욱이 바짝 긴장했다.
“예! 부장님.”
“함장님은 네 손에 달려 있다. 잘할 수 있겠나?”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들것에 함장을 눕히며 진종훈 소령이 김찬욱에게 다짐을 받았다. 의무실로 실려가는 함장을 보는 진종훈의 눈빛이 촉촉했다.
“허벌나게 도망가고 있습니다.”
함장이 쓰러져 의식불명인지도 모르고 있는 최현호 상사는 짐짓 여유를 부렸다. 소나컨솔에 코를 들이박고 있던 최현호는 그제야 공격받은 충격에서 벗어난 모양이었다. 진종훈은 어뢰가 제대로 목표를 추적하는 것을 확인하고 잠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뢰 네 발은 모두가 제대로 작동하여 러시아 잠수함을 포착하고 있었다. 이젠 네 줄기의 거대한 폭발음을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진종훈 소령은 함장이 걱정이었다.
9월 14일 17:19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북동쪽 53km
러시아 해군 공격원잠 K-317 판터(Panther), 사령실
판터가 최고속도로 치닫고 있었다. 하지만 왼쪽 스크루가 문제였다.
고출력을 걸자 최무선의 예인소나에 의해 손상받은 스크루가 굉장한 소
음을 내기 시작했다.
"디코이 발사!"
"디코이 발사!"
스트루베의 명령에 따라 어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또다시 디코이가
사출되었다. 하지만 벌써 여덟 개를 발사하고도 하나밖에 떨치지 못했
다. 서방측 어뢰들이 디코이와 같은 기만장치에 대응능력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이 정도인지는 미처 몰라 승무원들이 무척 당황했다. 디코이를
발사해도 어뢰들이 집요하게 따라오자 스트루베의 얼굴은 절망 그 자체
가 되었다.
"다시 한 발이 디코이를 물었습니다. 나머지 두 발의 접근거리 300미
터 250미터"
"디코이 발사해! 다시 우현으로 빠진다. 꺾어!"
조급한 나머지 스트루베의 명령이 두서가 없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디코이를 발사하라는 명령을 내렸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발사되지 않고
있었다. 함장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은 악셀로드 소령이 벌벌 떨었다. 그
것은 스트루베가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쏘아도 쏘아도 디코이에 기만당
하지 않는 어뢰에 기가 질린 것이었다.
"예비 디코이를 아직 재장전하지 못했습니다."
"어뢰 접근거리 100미터 50"
"오! 맙소사! 말도"
스트루베 대령이 이성을 잃자 공포감은 일순간에 전 승무원들을 감염
시켰다. 그러나 스트루베는 말을 마칠 수 없었다. 짧은 순간 거대한 폭
발이 함미에서 일어났다. SUT 어뢰 두 발을 얻어맞은 판터는 후방의
기관구획이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약간 앞에 있는 원자로 구획이 허리가 잘린 동물의 내장처럼 선체에
간신히 달라붙어 있었다. 강한 열과 압력을 견디는 원자로의 구조적인
특성상 심해로 가라앉아도 원자로 용기 자체가 깨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것은 원자력 잠수
함이 사고로 심해에 가라앉았을 때 군 관계자들이 발표한 변명일 뿐이
었다.
충격에 놀란 승무원들이 아우성을 치는 사이에 러시아 원잠 판터는
서서히 동해의 심연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잠수함전 소설 동해 11. 스캐빈저 (1)
9월 14일 17:28 울릉도 북동쪽 45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명중했습니다! 두 발이 2초 시간 차로 목표를 가격했습니다. 밸러스
트를 작동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최현호 상사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차분히 보고했다. 수 십분동안
정신 없었던 상황이 드디어 끝나자 긴장감이 몸에서 빠져 나가면서 기
운까지 쫙 빠져 버렸다.
계속 귀를 기울이는 강인현에게도 아직 끔찍한 소리는 들리지 않고
있었다. 대신 물끓는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잠수함이 압
궤되며 선체가 비틀리는 단말마의 비명소리보다 더 끔찍한 소리였다.
원자로 용기가 아무리 단단하다고 해도 증기터빈쪽의 배관과 냉각관
이 터지면 방사능 누출을 피할 수 없다. 부글거리는 물끓는 소리는 아
직도 원자로가 반응을 이어가며 주변의 바닷물을 끓이는 소리였다. 이
번에는 아무도 오징어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라 호야와 컬럼비아는 파악되나?"
진종훈 소령이 강인현 대위에게 질문을 던졌다. 러시아의 아쿨라급을
상대하는 동안 미국 잠수함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접촉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추정지점은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놈은
원자로를 저출력상태로 놓고 대기중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담담하게 보고한 강인현 대위가 소나 스크린 위에 손가락을 짚었다.
강인현은 장문휴 남서쪽, 즉 울릉도 동쪽 20km쯤에 있는 것이 라 호야,
장문휴 남쪽 6km쯤에 컬럼비아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컬럼비아는
LA급 후기함답게 원자력 잠수함치고는 상당히 조용한 편이었다.
진종훈 소령이 잠시 최현호 상사의 표정을 살폈다. 최현호도 강인현
대위의 예상과 일치하는지 수긍하는 눈치였다. 이 사태를 일으킨 라 호
야와 컬럼비아도 지금쯤은 얼이 빠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면 다시 장문휴를 쫓을 것이 분명했다.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진종훈 소령은 암담했다. 함장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졌다.
"사령부로 통신을 보낸다. 통신관! 상황을 요약해서 통신부이로 사출
한다. 상황은 잘 알고 있겠지?"
"넷? 저"
실전은 이홍기 중위에게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진종훈의 명령을
듣기는 했지만 이홍기는 뭐라고 보고해야 할 지 떠오르지 않았다. 이홍
기는 두서없는 생각들이 머리를 교차하면서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
다.
"작전관! 이홍기를 도와줘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김승민 대위가 이홍기 중위의 귀를 잡고 통신실로 끌고갔다. 통신실
로 사라지는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진종훈은 문득 자신이 혼자
내팽개쳐진 것 같은 소외감에 몸을 떨었다.
"강인현 대위! 잠시 조함을 지휘하라. 곧 오겠다. 작전관이 먼저 오면
인계하도록."
"예! 부장님. 강인현 대위. 조함권 인수합니다."
황당해하는 강인현 대위를 뒤로 하고 진종훈 소령이 서둘러 의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부함장은 앞으로는 이런 시간도 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자 내심 착잡했다. 상황은 너무 복잡했고, 장문휴는 이 해역을 쉽
게 빠져나갈 수도 없었다. 그리고 미국 잠수함들은 지금 빼도 박지도
못한 채 폭주기관차에 올라탔다는 점은 분명했다.
9월 14일 17:30 울릉도 북동쪽 42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71 컬럼비아, 사령실
"아쿨라급은 계속 가라앉고 있습니다. 아! 압궤가 시작됐습니다."
보고하는 브리드 준위가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금속이 비틀어지고
찌그러지는 소리는 듣기에도 끔찍하게 날카로운 파열음이다. 거기에 잔
향까지 어우러져 듣는 사람의 위장을 비비 꼬이게 만든다. 스위프트 중
령은 직접 그 소리를 듣지 않았지만 브리드 준위 등 소나팀의 행동과
표정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치를 떨었다.
"장문휴가 이겼군."
스위프트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뱉었지만 놀라움을 감출 수는 없었
다. 선제공격을 받고서도 살아남아 아쿨라급을 해치운 것이다. 그는 장
문휴가 섣불리 공격할 상대가 아님을 깨달았다.
장문휴가 러시아 잠수함과 싸울 때 장문휴를 기습하지 않은 것은 오
사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었다. 스위프트 중령은 러시아 원잠
이나 중국 디젤 잠수함 꼴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설마 러시아 아쿨라급 핵잠수함이 장문휴에게 격침당하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장문휴를 제거하려던 그의
계획은 이미 수포로 돌아갔다. 스위프트 중령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부함장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부함장. 어떻게 하면 좋겠나?"
"함장님. 이 시나리오의 종말을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가 달리
선택할 방법이 없잖습니까?"
러너 소령도 애써 담담한 체하려 했지만 낭패감을 감추기 어려웠다.
러너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정황보고를 해야합니다. 이미 일이 너무 크게 벌어졌습니다. 사
령부가 원한 것은 이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래. 그건 나도 알고 있어."
스위프트가 눈동자를 러너에 맞추었다. 이미 물건너 가버린 것이 많
았다. 작전의 성공과 치하, 그가 두 번째로 지휘한 공격원잠 컬럼비아에
서 함장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대령으로 승진하는 일, 참모생활을 조금
한 다음에 목표로 삼았던 오하이오급 전략원잠을 지휘하는 일, 이런 꿈
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허탈했다.
마주한 러너의 눈빛도 그런 스위프트를 읽어내고 있었다. 스위프트는
한편으로 러너에게 미안했다. 실패한 지휘관을 보좌한 부하들은 실패에
대한 대가가 그만큼 주어지게 마련이다. 적어도 부함장선까지는 확실히
책임추궁이 있을 것이다.
"함장님."
"그래. 이제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야."
스위프트가 모자를 잠시 벗고 이마를 쓸어내렸다. 이젠 스위프트나
부하들의 문책이 문제가 아니었다. 스위프트는 침울하게 입을 열었다.
"댄"
"예! 함장님."
"이 게임은 우리가 이미 진 거야. 돌이킬 수는 없네. 하지만 정해진
코스는 완주해야겠지?"
러너 소령은 함장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렸다. 그리 어려운 수
수께끼도 아니었다. 말을 마친 스위프트는 결연하게 뒤돌아서서 모자를
꾹 눌러썼다. 그것은 장문휴를 격침시켜야 한다는 뜻이었다.
"지금 곧 사령부로 상황을 보고하겠습니다. 그리고 라 호야를 불러들
이겠습니다."
스위프트 중령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자 러너 소령이 통신실로 빠르
게 걸어갔다.
9월 14일 17:35 경상남도 진해시 진해항
한국 해군, 해군 작전사령부
"뭐야? 로스케 놈들하고 교전을 했다고? 맙소사!"
장문휴로부터 통신을 전달받은 김병륜 중장이 머리를 감싸쥐었다. 모
자가 떨어져 그의 빛나는 대머리가 드러났지만 가릴 생각도 하지 않았
다.
"현재 울릉도 해상으로 남서쪽에서 안양함이 접근중입니다. 장문휴가
보고한 해역까지 진입하려면 70분이 더 소요됩니다. 여수함은 더 늦어
지고 있습니다. 두 시간 이상 걸릴 것 같습니다."
보고하는 유형준 중령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오전에 중국 원잠을
추적하던 두 함정은 원래의 초계지역으로 복귀한지 오래였다. 장문휴가
보내온 최초의 보고는 너무 간단했다. 미국과 중국 잠수함들 사이에 교
전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장문휴가 통신을 보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간신히 보낸
이유를 눈치챘어야 했다. 오죽하면 통신부이로 보냈을까. 유형준은 자신
이 멍청한 인간이라고 자책했다.
어선이 잠수함 발견 신고를 한 것이 15시 20분, 그리고 장문휴가 간
단한 통신문을 보낸 것이 16시 약간 넘어서였다. 어선의 신고를 받고
말도 안되는 미확인 정보로 치부하고 작전사령관에게 보고도 하지 않은
당직사령 한성구 중령은 영창에 들어가 있었다. 16시 10분부터 부랴부
랴 초계함을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이들은 울릉도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지금 상황은 여수함과 안양함이 수습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1함
대 전 함정에 출동명령을 내려야겠다. 그리고 합참에 비상경보를 전달
하라."
"예! 대잠기들도 급파시키겠습니다."
"그래"
명령을 내린 김병륜 중장은 침통한 표정으로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
락을 계속 쥐어뜯었다. 김병륜 중장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최무선은? 최무선은 어딨나?"
"교전해역으로 접근중입니다. 마지막 교신 이후 다른 보고는 하지 않
았습니다."
김병륜 중장은 최무선이 지금 어디쯤 있을까 궁금했다. 김 중장은 장
문휴와 회합하기로 대기하던 지역에서 이탈하여 북상하는 것을 내려두
었다. 김병륜은 최무선이 제대로 접근하고 있다고 믿는 수밖에 없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속담에 의지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9월 14일 17:40 오키()제도 북서쪽 95km
미 해군 순양함 CG-62 챈슬러즈빌, 함교
"태풍이 곧 들이닥치겠구만."
쌍안경을 내리며 레이먼드 사이먼 대령이 중얼거렸다. 함장은 시계를
보며 다시 머리속으로 계산했다. 전속력으로 달려도 앞으로 한 시간 10
분은 더 필요했다. 최고속력으로 챈슬러즈빌과 휴잇이 질주하자 O.H.
페리급 프리깃인 밴더그리프트는 한참 뒤쳐졌다.
페리급은 최고속도가 29노트로 챈슬러즈빌과 휴잇에 비해 고속성능은
떨어진다. 그렇다고 한 시가 급한 마당에 함대진형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도착해서 미국 잠수함에 도발을 걸어오는 러시아
와 한국 잠수함을 저지하는 게 급했다. 이미 중국 잠수함 두 척이 한국
잠수함에 의해 격침됐다고 한다.
'감히 나룻배 한국 해군 주제에!'
사이먼 대령이 공연히 분개했다. 중국 잠수함들이 한국 영해를 침범
했는지, 정말로 한국 잠수함이 영해침범의 책임을 물어 먼저 중국 잠수
함을 공격했는지는 그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약한 나라인 한국의
잠수함이 미국보다는 약하지만 한국보다 강한 중국의 잠수함을 공격했
다는 것이 그에게는 더 큰 문제로 보였다. 함장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사이먼 대령은 한국보다는 중국이, 중국보다는 러시아가 친근하게 느
껴졌다. 그리고 함장은 러시아 잠수함이 미국 잠수함에 도발하는 것은
그럴 수도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러시아는 지금은 쇠락의 길을
걷고 있지만, 그래도 예전의 초강국답게 잠수함도 멋지고 훌륭했다. 그
는 러시아 잠수함이 적으로서도 훌륭한 상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의 디젤 잠수함이 도발했다면, 이건 전혀 주제 넘은 짓이
었다. 강력한 미국의 원자력 잠수함에게 상대도 되지 않는데다가, 나라
마다 국력과 군사력을 기준으로 엄연한 서열이 있었다. 까마득한 아랫
놈이 감히 윗나라에게 덤비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톡톡히
가르쳐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었다. 챈슬러즈빌과 휴잇,
밴더그리프트, 이 세 척은 이틀전부터 이곳 오키제도 북쪽해상에서 머
물고 있었다. 목적은 훈련이었다. 일본 후쿠이현 마이즈루()를 모항
으로 하는 일본 해상자위대의 제3 호위대군 및 마이즈루 지방대와 연합
기동훈련을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훈련일자는 이틀 뒤인 16일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일
찍부터 일본해역에 대기시킬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태풍이 밀려오는
마당에 훈련을 이유로 함대를 먼바다에 투입시키다니, 부하들 사이에
불만이 상당했다.
그런데 여기서 멀지 않은 울릉도 인근 해역에서 이렇게 일이 터진 것
이다. 우연의 일치치고는 약간 심하다고 느꼈다. 어쨌거나 함장 입장에
서는 경력을 더하는데는 좋은 기회였다. 이때 전투정보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 함장님, CIC입니다. 센트리가 떴습니다. 데이터 링크가 들어오고 있
습니다.
"뭐? 어떤 내용인가?"
일이 나긴 크게 난 모양이었다. 오키나와 가데나 기지에 주둔중인 제
961 항로-공중통신대 소속 E-3C AWACS 조기경보통제기가 뜬 것이
다.
- 한국 함정 2척이 울릉도 서쪽, 울릉도 기점 방위 2-8-0, 2-4-0에서
진입중입니다. 자세한 위치는
"알았다. 내려간다."
조기경보통제기가 작전해역 상공에 있어주면 방공작전은 상당히 수월
해진다. 아무리 대공방어 능력이 뛰어난 이지스 함정이라도 수평선 너
머까지 탐지하는데 애로가 있기 마련이다. 특히 저공으로 침투하는 항
공기와 소형 선박을 탑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런데 사이먼 대령은 지금 일어나는 일이 무슨 일일까 다시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일전에 페르시아만에서 느꼈던 긴장감이 밀려들
어오는 것만 같았다. 군사적 대치국면에서는 어느쪽에선가 아무래도 희
생자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전사자 리스트에 강력한 이지스함의 함장인
그의 이름이 오르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사이먼 대령은 쌍안경을 접고 CIC를 향해 난간을 뛰어내려갔다. 타이
컨디로거급 순양함인 챈슬러즈빌의 전투정보센터(CIC)는 1층인 주갑판
에 있는 대신 함교는 상당히 높았다. 아침마다 4km를 뛰는 건강한 함장
도 계단을 내려가느라 헐떡거렸다.
9월 14일 17:45 울릉도 남동쪽 23km
일본 해상자위대 잠수함 SS-591 미치시오, 사령실
-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건투를 빈다.
"무운을 빌겠네, 사무라이."
야마시타 켄() 이등해좌가 수중통신기를 내려놓고 잔뜩 비감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통화한 상대편은 SS-585, 잠수함 하야시오의 함장
고마키 이등해좌였다.
"통신장. 잠수함대 사령부로 바로 타전하라. 현 심도에서 계속 작전할
것이다. 발신은 통신부이를 사용하라."
"알겠습니다. 그런데 내용은 무엇입니까?"
타카시마 쿠니오() 이등해위가 메모지에 받아적을 준비를 마
쳤다.
"한국 잠수함이 계속 도발중이다. 현재 러시아 원잠 1척이 추가로 격
침당했다. 교전을 허가해주기 바란다. 상황이 악화일로다. 현재 미국 원
잠이 사고해역에서 한국 잠수함의 계속된 도발에 대한 저지임무를 띄고
작전중이다. 미 해군과의 작전협조체계를 가동해주기 바란다. 이상이
다."
야마시타 이좌의 명령을 빠르게 메모한 타카시마 이등해위가 통신실
로 향했다. 다카시마가 통신실로 들어서는 것을 보며 함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제군들! 이제 우리는 무력도발을 감행하는 한국 잠수함을 진압해야
한다. 실전상황이다! 수뢰과는 어뢰공격 준비에 만반을 기하라. 선무과!
공격에 필요한 모든 정보가 귀관들의 눈과 귀에 달려 있다. 항해과와
기관과도 철저히 만반의 대비를 하라. 기회를 최대한 포착하라. 우리는
임무를 성공리에 마칠 수 있다. 신념을 가져라. 이상이다."
해상자위대의 잠수함 내 부서중 포뢰과는 어뢰를 담당하는 부서이다.
그리고 선무과는 소나와 통신을 담당한다.
야마시타 이등해좌는 흔들림 없이 묵묵히 명령을 듣고 있는 부하들을
보며 크게 만족감을 느꼈다. 해상자위대의 최신형 잠수함, 오야시오급 2
번함인 미치시오에게 한국 잠수함은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상대가 212
급이더라도 그는 자신이 있었다.
"우현전타! 컬럼비아로 접근한다."
"우현전타! 방위 1-3-0으로! 컬럼비아를 향한다."
부함장 오가타 타다카쓰() 삼등해좌가 함장의 명령을 복창하
며 조함을 지시했다. 미치시오는 컬럼비아에 다가가기 위해 서둘러 움
직였다.
9월 14일 18:15 울릉도 북동쪽 45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사령탑 피해상황이 예상보다 심각합니다. 감지센서들이 모두 작동하
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항주 소음이 커졌습니다. 선체에 균열이 많
이 발생한 것 같습니다."
김승민 대위가 잔뜩 걱정스러운 눈길로 부함장에게 보고했다. 그나마
탄두 위력이 약한 대잠미사일용 경어뢰에 얻어맞은 것이 다행이었다.
만약 일반 중어뢰가 같은 부위를 피격했다면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
었다. 사령실까지 통째로 가루가 되었을 것이다.
"소나를 작동하는데 무리가 있다는 얘기군. 그밖에 다른 부위는 어떤
가. 마스트들은 정상작동하나?"
"균열이 발생하면서 잠망경들을 손상시킨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잠
망경은 사용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통신마스트, ESM 마스
트, 레이더 마스트는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부상한 다음
사용해봐야 확실히 알 것 같습니다."
잠망경 마스트는 잠수함의 마스트중 길이가 가장 길다. 사령탑에 장
착된 다른 마스트들과 달리 잠망경은 선체 안쪽까지 관통하므로 길이가
긴데다 측면에 약간의 손상만 받아도 쉽게 휘어진다. 내부의 관에 렌즈
와 프리즘의 촛점이 정확히 맞추어진 상태여서 아주 미세하게라도 휘어
지면 잠수함 안에서 바깥을 보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다.
"부장님! 공격소나음입니다."
"뭐야? 어느 방향인가?"
갑자기 강인현 대위가 보고하자 화들짝 놀란 진종훈 소령이 음탐실쪽
으로 서둘러 다가섰다. 부함장이 음탐실로 오는 중에 생각해보니 뜻밖
에 강인현은 느긋한 목소리였다. 일반적으로 잠수함이 수중항해중에 공
격소나음을 받았다는 것은 곧 잠수함이 공격을 당한다는 뜻이다. 진종
훈 소령은 강인현의 표정이 믿기지 않았다.
"출력상태가 상당히 낮습니다. 저출력으로 조정한 것 같습니다. 방위
는 남서쪽입니다. 추정방위 이백삼십공(2-3-0)입니다."
"양키들이 쏜건가?"
진종훈은 장문휴의 추적에 실패해 이성을 상실한 미국 해군들이 이제
눈에 불을 켜고 액티브 탐신을 하는게 아닌가 생각했다. 궁지에 몰리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이때 음향의 특성을 파악한 최현호 상사가 보
고했다.
"아무래도 이것은 쪽발이들 같습니다. 오키(Oki)사제 ZQQ-5 소나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쪽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닙니다."
"맙소사. 어중이 떠중이 다 모였군."
진종훈 소령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ZQQ-5 소나는 일본 해상자
위대의 하루시오급이 장비하는 함수 소나였다.
9월 14일 18:20 울릉도 동쪽 24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La Jolla), 사령실
"대체 어떤 놈이야? 공격소나를 쏜 놈이!"
소나팀이 공격소나를 쏜 방위를 찾으려 허둥거리는 것을 보고 있던
가르시아 중령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상대는 디젤 잠수함입니다!"
제이 로키 중사가 비명을 질렀다. 가르시아 중령의 안색도 창백해졌
다. 지금까지 확인한 바로는 이곳 해역에서 디젤 잠수함은 한국 잠수함
밖에 없었다. 장문휴의 추정위치와 정반대 방향에서 갑작스럽게 공격소
나음을 받은 승무원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공격소나 패턴은 아! 하루시오급입니다."
바짝 긴장했던 폴커 스톨츠 대위가 안도의 안숨을 내쉬며 보고했다.
"공격 대기! 저놈들이 우릴 공격할 지도 모른다."
일본 잠수함이 갑자기 나타났다고 해서 미국 잠수함 승무원들이 경악
할 필요는 없었다. 가르시아 중령은 스스로 차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벌써 잠수함 4척이 격침된 마당에 이제는 조용히 끝날 수가 없었다.
일본 잠수함이 이곳에서 발생한 폭발 소리를 듣고 쓰시마 남쪽에서 왔
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가르시아 중령은 될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함장님! 수중교신이 들어옵니다. 일본 해군 잠수함이 수중교신을 걸
어왔습니다."
부함장은 해상자위대를 굳이 해군과 구별하려하지 않았다.
"젠장! 원 엠씨로 연결해."
가르시아 중령이 마이크를 집어들자마자 귀찮은 듯이 내뱉었다.
"귀함의 소속을 밝혀라. 우리는 미해군이다."
- 우리는 해상자위대 1잠수대군 소속 잠수함 하야시오다.
상대방은 소속에 함명까지 밝히고 있었다. 자신의 함명까지 노출시키
면 함정의 패턴과 음문이 상대방 국가 해군에게 완전히 공개되는 것을
뜻한다. 가르시아는 전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외국 잠수함과 수
중교신을 해본 경험이 몇 번 있었지만 이번처럼 함명까지 밝히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무슨 일인가? 왜 공격소나를 쏘았는가."
- 빔 출력을 낮춰서 쏘았다. 소나팀들이 고생했다면 사과하겠다. 우리
는 공격하려는 의도로 쏜 것이 아니다.
거리가 상당히 멀어서 그런지 감도가 좋지 않았다. 게다가 노란 원숭
이들의 영어발음은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차라리 독일인이 말하는 프
랑스어를 듣는 편이 이해가 빠를 것 같았다. 가르시아 중령은 부함장의
도움을 받아 겨우 뜻을 대충 이해했다. 가르시아 중령의 목소리가 저절
로 커지기 시작했다.
"본함은 작전중이다! 귀함에 피해가 우려되니 멀리 떨어져주기 바란
다."
- 우리 함정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한국 잠수함이 도발행
위를 가한 것을 명백히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 잠수함의 도발을
저지하는데 우리도 가세하겠다.
'뭐라고?'
눈이 휘둥그래진 가르시아가 멍하니 말을 잊고 폴머쪽을 돌아보았다.
폴머도 교신 내용을 듣고 있었다. 그 역시 납득이 가지 않는 모양이었
다.
- 이해하지 못했는가? 우리는 한국 잠수함이 도발행위를 감행한 것을
알고 있다. 알아들었기를 바란다. 현재 해상자위대의 지원함정들이 이곳
으로 진입하고 있다. 귀함이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독자적으로 한국
잠수함의 도발을 저지할 것이다.
"샘! 어떻게 하면 좋겠나."
가르시아가 송신 스위치를 누르지 않고 옆에 있던 폴머 소령에게 물
었다.
"공동작전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하십시오. 이놈들도 뭔가 꿍꿍이
가 있을 겁니다."
"좋아. 새로운 물주가 포커판에 끼어들었군. 아쉽게도 거절하기에는
우리가 가진 패가 너무 나쁘지."
폴머의 조언을 들은 가르시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함장이
다시 송신기 스위치를 켰다.
"알겠다. 귀함의 참여를 환영한다."
- 수락한 것으로 알겠다. 아군 잠수함 한 척이 현재 귀함의 동료함에
접근중이다. 참고하기 바란다.
"알았다. 교신을 마친다."
한 척이 더 있다니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가르시아는 마이크를 머
리 위의 고정대에 힘없이 걸어놓았다. 잠시 멍한 채로 서있던 가르시아
가 고개를 들었다.
"잠망경 심도로 부상한다. 전단사령부와 교신할 준비를 갖추게."
이제는 라 호야의 가르시아나 컬럼비아의 스위프트 중령이 재량껏 행
동할 수 있는 범위를 완전히 넘어선 상황이었다. 일본 잠수함의 접근을
사령부에 급히 알려야 했다.
9월 14일 18:30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항
미 해군 태평양함대 제7 함대, 제7 잠수전단 사령부
포스너 소장은 또다시 자신의 사무실로 후다닥 들어가버렸다. 오디오
볼륨을 어찌나 높여 놓았는지 사령관실 밖의 상황실까지도 소리가 새나
왔다. 간간히 들려오는 괴성은 분에 못이겨 포스너가 내지르는 고함소
리였다.
파머 소령은 사령관이 발악하는 것은 조금 전에 건네준 통신문 때문
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좋지 않은 습관이지만 부하들을 닥달하는 것
보다는 나은 버릇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해상자위대 해상막료감부 소속 연락장교 다카기
노부유키() 이등해좌입니다. 포스너 제독님을 만나뵈러 왔습니
다."
사령관이 분노를 터뜨리는 동안 쉬쉬거리던 상황실 요원들이 갑자기
들어선 방문객에 시선을 집중했다. 일본 해상자위대에서 해상막료감부
()라면 다른 나라의 해군참모부에 해당하는 최상층 지휘조직이
다.
"무슨 일입니까? 사령관님과 만날 약속을 하고 오셨습니까?"
파머 소령은 작은 체구지만 단단해보이는 다카기 이좌를 돌아보면서
건성으로 질문했다. 가뜩이나 열받아있는 포스너 소장이 일본인 방문객
을 맞으면서 좋아할 리 만무할 것이다.
"약속은 아닙니다만, 곧 통보가 될 것입니다."
파머 소령이 시덥지 않은 놈 다보겠다는 표정으로 다카기를 ㅎ어보았
지다. 다카기 이좌는 그런 시선에도 애써 태연했다. 그리고 뭔가를 기다
리는 듯 시계를 쳐다보면서 무표정한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통보라구? 기다려 볼테면 기다려 보시지. 이 친구는 조급하지 않아서
좋군.'
파머는 상대가 서있건 말건 신경을 끄기로 했다. 군대같지도 않은 일
본 자위대 간부가 이곳에서 사령관을 기다리다가 그냥 돌아가든지 말든
지 상관없었다. 파머 소령이 비문 파일들을 다시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맞은편 사령관 방에서 흘러나오던 커다란 음악소리가 갑
자기 뚝 멈췄다. 파머 소령이 무슨 일인가 하고 고개를 들어 보니 잠시
후 창문에 드려진 청색 블라인드 가운데가 좌악 벌어졌다.
"파머 소령! 손님이 왔다지? 들여보내!"
블라인드 사이로 방문자를 확인한 포스너 소장이 문을 열고 나와 파
머 소령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문을 열어둔 채 다시 방으로 모
습을 감췄다.
"그럼 들어가보겠습니다."
다카기 이등해좌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약간 숙이고 멍청하게 서있는
파머 소령을 뒤로한 채 빠른 걸음으로 포스너의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쾅하는 소리와 함께 닫혔다.
"해상막료감부에서 왔다구?"
"예, 제독! 다카기 노부유키 이등해좌입니다."
꼿꼿하게 대답하는 다카기를 보며 포스너 소장은 건방진 놈이란 생각
이 들었다.
"시간이 없네. 본론으로 들어가지. 방금 일본 해군 제독이라는 사람과
통화를 했네. 일본 해군, 아니, 해상자위대가 우리 작전에 협조를 한다
는군. 무슨 소린지 귀관이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겠나?"
포스너는 손가락으로 접대용 소파를 가리켰다.
"아닙니다. 서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우리 해상자위대 소속 잠수함 2척
은 일본 영토인 다케시마 근해에서 정상적인 초계임무를 수행중이었습
니다. 그리고 귀국과 중국, 러시아, 한국 사이에서 벌어진 교전상황을
파악하게 됐습니다."
다카기 이등해좌는 말을 멈추고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점점 일그
러지는 포스너 소장의 표정을 잠시 관찰했다. 일본은 독도를 다케시마
라고 부른다. 다카기 이좌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명백히, 명백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한국 잠수함이 무모한 도
발을 감행한 것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한국 잠수함의 적대적인 도발행
위는 일본해의 안전보장에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자위대 간부의 말을 들은 포스너 소장은 일본측이 상황을 제대로 모
르거나, 아니면 잠수함에서 거짓보고를 했다고 느꼈다. 다카기의 말은
칼럼비아에서 보고한 내용과 전체적인 내용은 엇비슷했지만 상당한 차
이점이 있었다. 물론 포스너 소장은 미국 잠수함 함장들의 보고도 절반
쯤은 과장이나 왜곡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다카기의 말투와 표정에서
거짓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한국 잠수함은 아군 잠수함에게도 적대적으로 행동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현재 통합막료회의에서는 이미 자위권을 발동시켰
습니다. 그래서 아군 잠수함에 교전권을 부여했습니다. 도발을 계속하는
한국 잠수함을 저지하기 위해 이미 투입된 잠수함 2척 외에도 마이즈루
에 주둔중인 3호위대군이 급거 북상하고 있습니다."
'이 기회에 분쟁을 일으켜 예산을 더 타내겠다는 수작이겠지!'
포스너 소장이 속으로 코웃음쳤다. 자위대의 과잉반응은 비대해진 자
위대 조직의 존재가치를 의심하는 정치가와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고 군
비를 증강하기 위한 정치적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은 군대
가 자신의 존재의의를 과시하고 성실한 납세자들을 갈취하는 상투적인
수단이었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 적절한 수준의 군사적 긴장을 촉발시키는 것은
큰 위험이 따랐다. 자칫하면 더 큰 것을 잃을 위험이 있었다. 포스너 소
장도 조만간 그런 위치에 서서 양심과 자리보전 사이에서 고민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자신이 한심해졌다. 그는 작전중인 배를 타본지 얼
마나 되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이미 해군이 아니라 육상기
지의 행정관에 불과했다.
"제가 방문한 목적은 미국과 일본이 각각 독자적으로 작전할 경우 오
인전투와 같은 우발적인 상황이 촉발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공동작전의 세부내용을 제안하기 위해 제독님을 찾아뵌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공동작전의 세부내용을 제안한다구?"
포스너는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의아했다. 다카기는 포스너 소장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계속했다.
"예. 그렇습니다. 사건의 파장이 더 커지기 전에 빨리 수습하는 것이
최선일 것입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다카기 이등해좌가 전혀 뜻밖이라는 듯 포스너 소장을 보며 반문했
다.
"제독께 태평양 함대사령부에서 지시가 내려오지 않았습니까?"
잠수함전 소설 동해 11. 스캐빈저 (2)
9월 14일 18:40 울릉도 동쪽 35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71 컬럼비아, 사령실
"놀라운 일입니다."
스위프트 중령으로부터 통신문을 받아 읽은 러너 소령이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었다. 태평양함대 사령부로부터 일본 잠수함과 공동작전을 실
시하라는 지시가 떨어지다니, 그것도 한국 잠수함을 목표로. 어제까지만
해도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어이가 없군. 우리 팀 메이트가 미치시오라니. 정말 미치겠군."
함장 입장에서는 기가 막혔다. 상처입은 장문휴를 혼자서 해치울 수
있는데 일본녀석들이 끼어들어 괜히 우쭐대는 꼴이었다. 일본 잠수함만
없었더라도 덕분에 장문휴를 가볍게 놓쳐버렸다. 스위프트는 시간이
한참 걸리는 탐지작업을 다시 시작할 일이 암담했다.
"댄."
"네. 함장님."
"노란 원숭이들의 속셈이 대체 뭘까?"
노란 원숭이는 당연히 일본인을 가리키는 말로, 태평양전쟁 때 미국
의 군가에 나온 가사이다.
"글쎄요"
대니얼 러너 소령도 한국이 일본에 감정이 안좋은 것은 알고 있었지
만 일본이 이렇게까지 나서는 것이 의아할 따름이었다. 일본도 장문휴
를 제거하고 싶어하는 것만은 분명했다. 러너는 한국 해군 사관들이 그
들의 해군 증강계획 자체가 일본을 겨냥한 것이라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닌 것을 기억해냈다.
"한국의 209급 잠수함들의 함명이 말이야"
"예. 모두 다 일본을 상대로 승리한 한국 제독들 이름을 땄다고 합니
다."
둘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일본이 과격한 결정을 내린 이유가 어렴풋
이 느껴지고 있었다. 일본의 의도가 한국에 대한 순수한 적대감정에서
나온 것을 확인한 이상, 같이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특히 호전적인 일본 잠수함을 미끼로 쓴다면, 이쪽이 부담할 위험도
상당히 줄어들 것이 분명했다. 일본 잠수함을 어떻게 활용할지 결정을
내린 스위프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장문휴가 사라진 마지막 방위를 미치시오에게 알려라. 라 호야와 하
야시오가 있는 곳으로 몰면 일은 끝날거야. 어떻게 네 척이 겨우 한 척
을 못 잡겠나?"
"예. 알겠습니다. 미치시오에게 수중통신으로 전술을 통보하도록 하겠
습니다."
"사령부로도 우리의 접근침로와 위치를 상세히 알리도록 하게. 라 호
야와 하야시오도 대비를 해야 하니까."
수중통신을 준비하는 부함장을 지켜보면서 스위프트는 갑자기 4대 1
의 싸움도 그다지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9월 14일 18:50 울릉도 남동쪽 22km, 오키()제도 북서쪽 160km
미 해군 순양함 CG-62 챈슬러즈빌, 전투정보센터
"도대체 몇 대나 띄운 거야? 무식한 놈들."
"모두 12대입니다."
챈슬러즈빌의 함장 레이먼드 사이먼 대령이 놀라며 혀를 끌끌 찼다.
밝은 하늘색으로 빛나는 4개의 통합형 전술정보표시장치(JMCIS)에는
남동쪽에서 접근하는 수많은 항공기들의 식별부호와 궤적이 그려지고
있었다.
'3'이란 숫자를 옆으로 눕혀놓은 듯한 갈매기 모양 기호는 대잠초계기
를 나타내는 식별부호였다. 바로 일본 해상자위대의 P-3C 오라이언 대
잠초계기들이었다.
아쓰키에 위치한 미 해군 육상기지에도 항모 인디펜던스 소속 S-2B
대잠초계비행대가 있었다. 그러나 자위대 P-3C들이 먼저 북상하고 있었
기 때문에 태평양 함대는 미 해군 바이킹 비행대의 이륙을 아예 보류시
켰다. 대형기인 미 해군 P-3C는 일본에 배치되지 않았다.
"10분 후부터 해상자위대 P-3C들이 작전을 개시하겠답니다."
"서쪽에서 접근하는 이 놈들은 뭔가?"
사이먼 대령은 전술정보표시장치를 보다가 한반도 동해안에서 울릉도
쪽으로 접근하는 항공기 표지를 가리켰다.
"한국 해군 소속의 오라이언들입니다."
"좋아. 오라이언들이 잔치를 벌이겠군.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잖은
가. 이제 슬슬 시호크들을 진입시켜야지."
"물론입니다. 준비시키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울릉도의 영해선 안쪽으
로 들어가도 됩니까?"
"그래. 곧 해도 질텐데, 뭐. 무시하게!"
부함장인 라저 길머(Roger Gilmour) 소령의 질문에 사이먼 대령이 전
혀 거리낄 것이 없다는 투로 대꾸했다.
잠시 후 챈슬러즈빌의 비행갑판에서 시 호크 대잠헬기들이 이륙을 준
비하기 시작했다. 평상시에는 1대씩밖에 적재하지 않지만 이번에는 각
함정 모두 2대씩 탑재하고 있었다. 대잠수함 작전에서 수상함정들과 가
장 유기적으로 작전을 펼칠 수 있는 것이 대잠헬리콥터 비행대였다.
사이먼 대령은 오라이언과 같이 육지에서 이륙하는 족속들은 해군으
로 쳐주지 않았다. 그의 기준으로 따지면, 작전중에 바다가 아닌 하늘을
날아다니더라도 최소한 기본적으로 배에서 이륙하는 놈만이 해군 축에
끼었다.
미 해군 입장에서는 다 잡은 사냥감을 엉뚱한 녀석들에게 넘겨줄 수
는 없었다. 사이먼 대령은 접근해오는 일본 초계기들을 보면서 아프리
카 초원의 하이에나를 떠올렸다. 식사를 하는 사자들 옆에서 슬슬 눈치
를 보는 하이에나들은 사자가 자리를 뜨면 남은 찌꺼기를 해치운다고
알려져 있다.
하이에나와 대머리독수리처럼 썩은 고기도 마다 않는 청소동물들을
스캐빈저(scavenger)라는 멸시적인 이름으로 부른다. 그러나 정반대였
다. 보통은 하이에나가 사냥한 짐승을 사자가 빼앗아 먹는 경우가 더
많았다.
사이먼 대령도 눈치는 있었다. 아무리 외국 잠수함이 영해를 침범했
다고 해도 한국 잠수함이 먼저 외국 잠수함들을 공격할 리가 없었다.
남북한 대치상황과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 한국의
대미 군사적 종속관계 등을 조금이라도 아는 자라면 결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여기에 미국 잠수함까지 개입된 것은 결코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었
다. 뭔가 이유가 있을테지만 사이먼 대령이 그 이유를 알 필요는 없었
다. 함장은 아무래도 지난번 훈련에서 드러난 한국 신형 잠수함의 성능
이 문제가 된 것 같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지금 하는 일이 명예로운 일은 아니겠지만, 가능하면 미 해군이 해결
해야 뒷처리도 쉬워질 것이다. 사이먼은 윗사람들이 지금쯤 꽤나 골치
아플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래도 윗사람들 눈치를 봐야 할 경력이 된
사이먼 대령이 서두르기 시작했다.
9월 14일 19:00 경상남도 진해시 진해항
한국 해군, 해군 작전사령부
"흰꼬리수리들로부터 보고입니다. 울릉도 인근에 대규모 함정과 초계
기들입니다."
유형준 중령이 김병륜 중장 앞으로 뛰어가 보고했다. 흰꼬리 수리 3
과 5가 울릉도 해역에 당도해서 제일 먼저 관측한 것은 미국과 일본이
발진시킨 무수한 숫자의 대잠초계기들과 대잠헬기들이었다.
그러나 김병륜 중장은 아직도 머리를 감싸쥔 채 묵묵부답이었다. 이
제 상황은 합동참모본부에 링크되고 있었다. 그리고 지휘권도 최종적으
로 합참의장이 행사하게 된다. 평시 초계임무에서 완전한 작전으로 바
뀌었기 때문이다. 교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날더러 어떻게 하란 말야! 바보같은 새끼들"
김병륜 중장이 고개를 들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옆에 서있던
유형준 중령은 자신에게 화를 낸 줄 알고 놀라서 들고 있던 상황보고서
뭉치를 바닥에 쏟았다.
"멍청한 합참놈들! 누군 장문휴를 빼고 싶지 않아서 이러는지 알아?
식충이같은 새끼들 같으니라구. 그래, 공군은 출동시키겠대?"
계속 고함을 질러대는 김병륜 중장에게 놀란 유형준 중령은 바닥에
흩어진 서류를 줍다가 놓치며 벌벌 떨었다. 창문을 통해 한성구 대령의
구령소리가 유형준에게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부하와 상관을 모두 잘
못 만난 한성구 대령은 아직도 앞에총 자세로 해작사 건물 앞길을 구보
하고 있었다.
"합참에서는 부정적입니다. 전투기들을 발진시켜 그들의 대잠작전을
방해하면 맞대응당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대답하는 유형준 중령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일본의 항공자위대
뿐만 아니라 주일 미 공군이나 해군 전투기들이 작전을 방해하는 한국
공군을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 뻔했다. 하지만 장문휴에 달려드는 대잠
초계기들을 방치할 수는 없었다. 김병륜 중장이 꽝 소리가 나게 책상을
쳤다.
"어쩔 수 없다. 우리 오라이언들을 연결해 주게."
"예?"
"못 알아 들었나? 귀 먹었어? 흰꼬리수리를 연결하라고! 내가 직접
교신할거야. 당장! 당장 연결해!"
김병륜의 노기가 이번에는 유형준 중령에게 폭발했다. 김병륜 중장은
말귀를 못 알아먹는 유형준 중령이 답답했다. 부관 감우식 소령은 눈치
가 빨라서 김병륜과 호흡을 잘 맞췄지만 지금은 잠수함전단 사령관과
함께 합참 지휘부로 떠나고 난 다음이었다. 아쉬웠다. 하지만 감우식 소
령이 합참에서 상황을 잘 설명하길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육군과 공군은 지금 바다 속에서 얼마나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 모양이었다. 김병륜 중장은 이렇게 만만
하게 당할 수 없다며 이를 악물었다.
"통신 연결됐습니다. 사령관님."
유형준 중령이 건네준 직통전화를 김병륜 중장이 난폭하게 나꿔챘다.
"나, 작전사령관이다. 귀관은 누군가?"
- 예? 옛! 소령! 홍희범! 입니다.
오라이언 흰꼬리수리3의 전술통제사는 상대가 작전사령관이라는 사실
에 겁부터 집어먹었다. 김병륜 중장은 다른 때라면 자신의 직위와 카리
스마에 놀라 허둥대는 일선부대 장교들의 반응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
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그럴 기분을 느낄 때가 아니었다.
"홍희범 소령. 자네에게 무거운 짐을 주어야겠네. 맡을 수 있겠나?"
- 옛! 맡겨만 주십시오! 무슨 명령이든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래. 기차화통을 삶아먹은 것 같군. 기백이 아주 좋아. 현 상황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자네 옆에서 비행하고 있는 일본과
미국 대잠초계기들은 지금 우리 잠수함을 잡으려는 것이다. 아쉽게도
우리 공군은 출격하지 못한다. 놈들을 저지할 수 있는 것은 자네들밖에
없다. 알겠나?"
-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저지를 합니까? 우리는 전
투기가 아닙니다.
홍희범 소령의 답답한 대답에 김병륜 중장은 다시 폭발하려 했으나
간신히 진정했다. 적절한 때는 화를 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었다. 김병륜 중장은 폭발하는 분노를 이성으로 억누르면서 속을 새
까맣게 태웠다. 김병륜은 말을 멈추고 다시 한 번 숨을 내쉬었다. 그리
고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래. 오라이언은 전투기가 아니다. 그래서 자네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이야. 지금 자네가 있는 곳바다 밑에서 우리 해군 잠수함이 공격받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겠나? 무슨 수를 쓰든지 놈들의 대잠초계기들
이 활동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네. 방법은 나도 모르겠어. 이건 명령이
아니라, 음 부탁일세. 부탁하네."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자존심 강한 김병륜 중장은 남에게 부
탁해본 적이 언제였던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해군 작전사령관은 홍희
범 소령의 대답도 듣지 않고 조용히 송신기를 내려놓았다. 평생 자신이
이토록 무력하다고 느낀 적은 결코 없었다.
9월 14일 19:22 울릉도 동쪽 38km
일본 해상자위대 잠수함 SS-591 미치시오, 사령실
"좋았어. 대잠초계기들이 잘해주고 있군."
통신문을 펴든 야마시타 켄 이등해좌가 중얼거렸다. 계속 갱신되는
대잠초계기들의 추적정보는 초장파도 아닌 극초단파대역의 위성송신망
으로 전송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미치시오는 수면 위로 통신마스트를
내놓아야 했지만, 그다지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사냥개들의 포위망이
좁혀지면 결국 장문휴는 덫에 걸려들기 마련이었다.
- 컬럼비아가 우현으로 돌고 있습니다. 뭔가를 발견한 것 같습니다.
소나장 아라카네 렌타() 일등해조()가 보고하자 야마시타
함장이 소나실로 들어섰다. 컬럼비아가 장문휴를 먼저 발견했을지도 몰
랐다. 그렇다면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었다.
야마시타는 컬럼비아가 장문휴를 잡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 전혀 없
었다. 교전명령이 떨어진 이상 자신의 손으로 직접 해치우고 싶었다. 안
달이 날 지경이었다.
"좋아. 컬럼비아가 움직이는 쪽으로 우리도 따라간다. 출력 50퍼센트
로 높여! 서둘러라!"
"알겠습니다. 출력 1/2로 조정!"
혼자라면 사냥감 앞에서 서두르는 쪽이 해롭다. 하지만 포위했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드러내놓고 추격하더라도 상대방은 숨을 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방위 3-3-0쪽에 뭔가 있습니다."
수측장 아라카네 일등해조가 묻자 함장이 대뜸 되물었다.
"한국 잠수함인가?"
"거리가 멀어 확인할 수 없습니다만, 추진음 말고도 이상한 잡음이
많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라카네 일등해조가 기기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다른 수측조원들이
일제히 그 잠수함에 신경을 집중하며 작업에 들어갈 때, 함장이 전혀
뜻밖의 명령을 내렸다.
"그래? 애쓸 것 없다! 저주파를 한 방 먹여준다!"
"예? 지금 이 거리에서 공격소나를 때리라는 말씀입니까?"
아라카네 일등해조가 잘못 알아들은 것이 아닌가 하고 함장쪽을 돌아
보았다. 그러나 야마시타가 엉뚱한 명령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장문휴
가 미치시오의 위치를 알아내더라도 장문휴를 쫓는 다른 세 척의 위치
를 모르므로 간신히 어뢰를 피해봤자 다른 잠수함들로부터 공격받을 것
이 뻔했다.
"수측장! 귀가 먹었나? 당장 공격소나를 때려!"
"알겠습니다. 액티브 탐신!"
저주파가 장문휴를 향했다. 야마시타는 미국 원잠 컬럼비아의 소나병
들도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공격소나에 화들짝 놀랄 것이라 생각하자
기분이 묘하게 좋아졌다. 자위대를 속국 군대로 알고 자신들을 점령군
으로 여기며 뻐기는 미군, 일본의 하늘과 바다를 종횡무진으로 누비는
미군에게 통렬한 복수를 한 셈이었다.
"찾았습니다. 방위! 3-3-2! 거리 8,000 미터! 3-3-0에 거리 4천5백!"
순간 소나 디스플레이에 밝은 점 두 개가 나타났다. 가까운 쪽에 있
는 것이 컬럼비아이고 먼 쪽이 장문휴였다.
"수뢰실, 공격준비! 급속발사한다!"
"함장님! 아무래도 공격은 양키들에게 맡기시는게 결정을 재고해 주
십시오."
"닥쳐! 교전허가가 떨어졌는데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우리가 잡는다.
어서 발사해!"
부함장 오가타 타다카쓰 삼등해좌가 급히 나서서 제지하려 했지만 야
마시타는 요지부동이었다. 어뢰 공격을 준비하는 공격사관과 수측실 요
원들이 고함소리에 놀라 일제히 함장과 부함장 쪽을 돌아보았다. 그러
나 그들의 눈빛은 부함장을 탓하고 있었다.
지금은 정식 교전명령이 떨어진 상태에서 안심하고 최초의 전과를 올
릴 수 있는 기회였다. 컬럼비아가 방패막이가 되고 있으니 이쪽이 위험
할 리도 없었다.
"어뢰 2발 급속발사! 2, 4번 발사관 발사!"
미치시오의 89식 어뢰에게는 충분한 거리였다. 89식 어뢰는 미국의
마크 48어뢰의 기술을 도입하여 일본이 자체개발한 어뢰이다. 추진시스
템도 마크 48과 마찬가지로 열기관이며, 속도는 60노트가 넘는 고속이
다.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오야시오급 잠수함 미치시오에서 두 발의 89
식 어뢰가 퉁겨져 나왔다.
9월 14일 19:25 울릉도 북동쪽 41km
한국 해군 잠수함 최무선, 사령실
"방위 이백오십공(2-5-0)에 공격소나음! 거리 3km입니다. 일본 잠수
함이 공격소나를 쐈습니다!"
갑자기 들려온 공격소나음에 박재석 상사가 똑바로 의자에 앉으며 소
리쳤다.
"어느쪽으로 탐신했나?"
최무선의 함장 조성진 중령이 박재석 상사에게 물었다. 함장은 스크
린에 나타난 상황을 파악하고 일본 잠수함이 이쪽을 노리지 않았음은
이미 확인했다. 혹시 장문휴가 일본 잠수함에 탐지됐는지를 묻는 질문
이었다. 권혁준 대위는 함장이 전혀 원하지 않는 대답을 했다.
"음원 기점으로 삼백삼십공(3-3-0) 방향입니다. 저 쪽발이 새끼가 장
문휴를 탐지한 것 같습니다!"
공격소나음을 받은 장문휴는 사방으로 반향을 내보내고 있었다. 주변
에 있는 모든 잠수함들이 장문휴의 위치를 명확히 판단했을 것이다.
조성진 중령이 잠시 망설이는 사이 또다른 소리가 박재석 상사의 귀
를 울렸다. 놀란 박재석 상사가 기가 막혀 말을 못하는 사이에 최태훈
중사가 먼저 외쳤다.
"이런! 어뢰를 발사했습니다. 두 발입니다."
"우리도 공격한다. 작전관! 급속발사 준비!"
여유가 없었다. 조성진 중령이 음탐실 칸막이를 잡고 사령실에 있는
오필재 소령에게 명령한 다음 다시 박재석 상사에게 명령했다.
"음탐장! 액티브 쏴!"
"액티브 탐신!"
조성진 중령의 노여움이 강력한 액티브 소나음으로 변해 전방으로 뻗
어 나갔다. 일본 잠수함이 장문휴를 향해 어뢰를 발사하다니! 조성진 중
령은 설마하고 너무 신중하게 접근했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함장님! 방위 이백육십오에 또 한 놈이 있습니다! 거리 7500!"
"장문휴 말고?"
"장문휴는 아닌 것 같습니다. 왜구놈들 우측면에 붙어있습니다! 일본
잠수함이 쏜 어뢰는 진행방향이 다릅니다. 둘은 같은 편입니다!"
권혁준 대위가 신중히 계산한 끝에 자신있게 대답했다.
"그래. 망할 놈의 쪽발이들까지 우리에게 덤벼? 부함장! 7, 8번 어뢰
발사관도 SUT로 교체하라! 8발 모두 발사한다. 서둘러!"
9월 14일 19:26 울릉도 북동쪽 33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어뢰 접근중입니다. 거리 8km! 방위 백이십삼(1-2-3)도."
최현호 상사의 보고에 진종훈 소령이 눈을 감았다. 울릉도쪽에 매복
한 미국 원자력 잠수함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는데 전혀 다른 방향
에서 공격소나음이 들려온 다음 장문휴를 향해 어뢰가 발사되었다. 손
을 쓸 여지가 없었다.
"부장님! 89식 어뢰입니다."
어뢰의 종류를 확인한 강인현 대위가 보고했다. 장문휴의 사령탑에서
발생하는 소음소리가 너무 커서 소나의 성능을 제대로 활용할 수가 없
었다. 강인현 대위는 러시아 잠수함과, 이들을 공격적인 행동으로 내몬
중국 잠수함, 그리고 최종적으로 모든 책임을 져야 할 미국 잠수함들에
게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9월 14일 19:27 울릉도 북동쪽 41km
한국 해군 잠수함 최무선, 사령실
"7, 8번 발사관 SUT로 교체! 함장님, 나머지 발사관 발사준비 완료됐
습니다."
"발사해!"
"발사!"
"네 발은 목표 1, 두 발은 목표 2에 배분한다. 7, 8번 장전완료되면 목
표 2를 향해 발사한다."
"알겠습니다. 목표 1에 네 발, 목표 2에 두 발 할당합니다."
작전관 오필재 소령이 복창하고서 어뢰공격콘솔을 조작하기 시작했
다. 최무선의 함수발사관 8문 중 6문이 개방되고 곧이어 6발의 어뢰가
쏟아져나왔다. 어뢰가 발사되고 조성진 중령은 입을 다물었다. 마음속에
는 제발 늦지 말기를 바라는 간절함뿐이었다.
9월 14일 19:28 울릉도 동쪽 37km
일본 해상자위대 잠수함 SS-591 미치시오, 사령실
"어뢰가 발사됐습니다! 도합 6발입니다."
갑자기 들려온 공격소나에 정신없던 아라카네 일조는 어뢰까지 발사
된 것을 탐지하고 어쩔줄을 몰라했다. 야마시타 이좌도 경황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누가 어뢰를 쐈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우현 전타! 기만체 발사준비!"
"우현 전타! 기만체 준비합니다!"
기겁하는 야마시타가 우현으로 침로변경을 요구했다. 전방으로 내달
렸다간 자칫 장문휴에게 반격당할 염려가 있었다. 미치시오의 스크루가
맹렬히 회전하면서 오른쪽으로 크게 선회했다.
"으악! 2발이 또 발사됐습니다. 이럴 수가 어뢰는 SUT인 것 같습
니다."
"뭐야? SUT라고!"
SUT 어뢰를 쓰다니, 새로운 한국 잠수함이 분명했다. 8발을 거의 동
시에 쐈으니 어뢰발사관 8문이 달린 209급이 거의 확실했다. 야마시타
가 주먹으로 벽을 후려쳤다. 저지망을 펼치고 있던 챈슬러즈빌과 다른
전투함들이 막아줬어야 하지 않는가. 해자대의 오라이언까지 깔린 마당
에 배후에서 기습을 당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도합 여덟발이 미치시오
의 뒤를 따라붙고 있었다.
"기만체 준비됐습니다."
"빨리 발사해!"
미치시오로부터 튀어나온 기만체들이 어두운 수중으로 흩어졌다. 기
만체가 강한 음파를 내며 어뢰를 유혹하는 동안 미치시오는 속도를 줄
여야 좋을지, 아니면 최고속도로 도망가야할지 빨리 결정하지 못했다.
경황없이 서둘렀던 야마시타가 SUT어뢰의 최고속도를 상기하고는
출력을 높여 최고속력으로 빠져나가리라 마음먹었지만 귀중한 시간은
계속 허비되고 있었다.
"함장님. 어뢰유도 케이블이 절단났습니다."
어뢰 공격을 지휘하던 와키야 히데오() 일등해위가 외쳤다.
유선유도중인 어뢰를 먼저 처리해야 했었다. 장문휴가 있던 지점까지
미리 경로를 입력해놓고 스스로 탐지를 시작하도록 설정해야 했었는데
그보다 먼저 한국잠수함이 발사한 어뢰를 피하려고 급변침한 것이 실수
였다.
어뢰에 프로그램 항주절차만 입력했더라도 89식 어뢰는 미국의 마크
48 어뢰처럼 예정된 지점까지는 직행했을 것이다. 이제 89식 어뢰는 미
치시오가 유도하려고 했던 목표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가까
이에 있던 다른 물체를 탐지하기 시작했다.
9월 14일 19:30 울릉도 북동쪽 36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71 컬럼비아, 사령실
"어뢰 액티브 탐신음입니다! 일본제 89식입니다!"
소나장 워렌 브리드 준위가 소리쳤다..
"좌현 최대! 급속변침한다. 멍청한 놈들! 감히 우리를 앞에 두고 어뢰
를 쏘다니. 제기랄! 이번 오발을 우릴 향하는군."
스위프트 중령이 욕설을 퍼부었다. 장문휴를 컬럼비아에서 먼저 탐지
하자 선수를 뺏길 것 같으니 뒤쳐져 있던 미치시오가 먼저 공격한 것이
다. 이런 일이 벌어질까봐 일본과의 공동작전이 탐탁치 않았었다. 전방
에 우군 잠수함이 있는 것도 개의치않고 발사한 미치시오를 이대로 용
납할 수 없었다. 스위프트는 귀환한 후에 미치시오 함장을 어떻게든 한
방 먹이겠다고 다짐했다.
자신들끼리 공동작전을 할 때는 절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유선유도 어뢰이지만 어떻게 우군을 앞에 두고 어뢰를 쏠 수 있단 말인
가. 그렇다면 어뢰 오발사고로 시작된 이번 사건의 전말을 일본측에서
는 모른다는 말이 된다. 괜히 아는 척하다가 똑같은 실수를 저지른 일
본 잠수함의 행위에 대해 스위프트는 괘씸하다 못해 울화가 치밀어 올
랐다.
"89식 어뢰가 유도를 잃었나봅니다. 장문휴와 거리가 상당한데도 불
구하고 벌써 액티브 탐신모드에 들어섰습니다. 정말 바보자식들입니다."
부함장 러서 소령도 분통을 터뜨렸다. 일단 거리가 떨어진 상태에서
액티브 유도로 쫓아오는 어뢰는 피할 가능성이 컸다. 어뢰의 자체 소나
가 액티브 탐신을 하더라도 소나의 용적이 작은데다 출력도 낮기 때문
이었다.
그러므로 어뢰가 액티브 모드에서 자동추적으로 들어가면 탐지거리는
기껏 1~2km로 제한된다. 탐지반경에서 서둘러 빠져나오면 액티브 탐신
의 89식 어뢰는 피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오발된 89식 어뢰
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함장님! 으으"
"무슨 일인가? 말을 해! 빨리!"
소나에 귀기울이던 브리드 준위가 겁에 질려 말을 잇지 못하자 답답
한 스위프트 중령이 화부터 벌컥냈다.
"후방에 새로운 어뢰입니다! 도합 여섯발 아니! 두발이 더 있습니
다."
"으악! 여덟발이나?"
9월 14일 19:32 울릉도 북동쪽 32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개새끼들, 죽여 버리겠어. 어뢰실, 공격 준비해! 변침한다. 키 오른편
최대!"
분노한 진종훈 소령이 흥분해 상의 단추를 풀며 소리쳤다. 장문휴의
뒤를 따라오던 컬럼비아가 좌현으로 빠지면서 폭발적인 소리를 내며 도
망가고 있었다. 장문휴의 뒤를 숨죽이며 추적하던 잠수함을 그제서야
겨우 알아차렸다는 부끄러움이 분노에 불을 당겼다.
"이번 일은 다 미국놈들 때문이야. 좋아! 우릴 꼭 죽여야겠다면 죽어
주겠어. 하지만 절대 곱게 죽어 주지 않겠어."
진종훈 소령이 소매를 걷는 사이 어뢰실에서 보고가 오고, 김승민 대
위가 부함장에게 보고했다.
"어뢰실, 공격준비 됐습니다. 3, 4번 발사관에 2발 장진됐습니다."
"발사해! 우리도 갈 데까지 가는 거야!"
컬럼비아를 향해 뒤돌아선 장문휴에서 어뢰 두 발이 빠져나왔다. 어
뢰는 빠르게 가속하며 컬럼비아를 뒤쫓기 시작했다.
9월 14일 19:34 울릉도 북동쪽 39km
한국 해군 잠수함 최무선, 사령실
소나 디스플레이를 노려보고 있던 조성진 중령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
었다. 컬럼비아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일본의 오야시오급 잠수함이 모두
흩어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오야시오급이 발사한 어뢰도 장문휴를 탐지
하는데 애를 먹게 될 것이다.
"좋아. 이제 어뢰들을 분리시켜라. 각각 4발씩 할당한다."
"알겠습니다. 목표 1에 1, 2, 3, 4번 어뢰! 목표 2에 5, 6, 7, 8번 어뢰
할당합니다."
작전관 오필재 소령의 목소리가 우렁찼다. 최무선의 ISUS-83 전투시
스템은 최대 8발의 어뢰를 동시에 관제할 수 있다. 최무선이 탑재한 8
문의 어뢰발사관을 모두 유선유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이좋게 4개
씩 짝지은 SUT 어뢰는 각각 두 척의 잠수함을 향해 미끄러지듯이 돌
진했다. 목표는 미치시오와 컬럼비아였다.
9월 14일 19:38 울릉도 동쪽 34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71 컬럼비아, 사령실
"으악! 장문휴도 어뢰를 발사했습니다! 2발이 접근중입니다!"
"후미의 어뢰 8발중 4발이 방향을 바꿨습니다. 이런! 본함으로 4발이
접근합니다! 나머지 4발은 미치시오를 향합니다."
소나팀 요원들이 새로운 어뢰가 전방에서 다가오자 절규에 가까운 소
리를 질렀다. 스위프트 중령은 급박한 와중에도 뒤에서 나타난 한국 잠
수함이 대체 누굴까 생각했다. 하지만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함장은 장문휴의 작전지점과 출항시간까지 통보해준 정보부가 어떻게
또다른 한국잠수함은 미리 통보해주지 못했을지 의심스러웠다. 진정 몰
랐을까? 아니면 알려주지 않은 것일까. 스위프트가 브리드 준위의 외침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모스 발사준비!"
"모스 발사준비됐습니다!"
"발사! 좌현 전타!"
함장의 명령은 즉각 승무원들의 행동으로 나타났다.
컬럼비아의 어뢰발사관에서 모스 기만체가 빠져나왔다. 모스는 입력
된 프로그램에 따라 방향을 바꾸어 컬럼비아로부터 멀어져갔다. 잠수함
이 왼쪽으로 급격히 꺾이면서 수중에 거대한 물거품이 일어났다.
컬럼비아가 물거품에 가려 잠시 어뢰에게 탐지되지 않았지만 어뢰는
잠수함 소리를 내는 모스 대신에 컬럼비아가 사라진 방향으로 정확히
선회하여 추적을 계속했다. 미국 잠수함을 추적하는 어뢰 6발은 아직도
유선유도를 받고 있었다.
스위프트는 모스가 어뢰를 유인해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후방에 폭발음입니다. 으아 모두"
브리드 준위가 폭음에 귀를 먹었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는 누구
도 브리드 준위의 외침을 듣지 못했다. 겨우 4km 후방에서 연속적으로
들려온 폭음이 사령실 내 모든 승무원들의 귀에 벼락소리처럼 크게 울
려퍼졌다.
"4발에 모두 명중됐나? 단 한 발도 못 피했단 말야? 지지리도 멍청한
일본놈들!"
연달아 이어진 폭발 소리는 미치시오를 노린 어뢰 중 빗나간 것이 없
음을 의미했다. 스위프트 중령이 미치시오의 함장을 욕했지만 한편으로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스위프트 중령은 지금 남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어뢰들이 모스쪽으로 유도되지 않았습니다! 4발이 모두 본함으로 접
근중입니다!"
컬럼비아는 모두 6발의 어뢰에 의해 양쪽에서 샌드위치를 당하고 있
었다. 이럴 경우 피하는 것도 상당히 어렵다. 스위프트가 긴장으로 뚝뚝
떨어지는 땀을 닦았다.
"젠장! 어뢰가 안 떨어집니다."
뒤에서는 최무선이 발사한 어뢰 4발이 점점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변침하면 장문휴에서 발사한 어뢰 2발에 먼저 맞고 가루가
될 상황이었다. 게다가 왼쪽에는 목표를 잃은 89식 어뢰 두 발이 열심
히 사방으로 탐신음을 쏘아대고 있었다. 스위프트 중령의 얼굴이 노랗
게 변했다.
"디코이 연속 발사! 좌현으로 급속 변침!"
잠수함전 소설 동해 11. 스캐빈저 (3)
9월 14일 19:40 울릉도 남동쪽 28km
미 해군 순양함 CG-62 챈슬러즈빌, 전투정보센터
"컬럼비아로 어뢰가 계속 접근중입니다! 컬럼비아가 어뢰를 회피중입
니다만 점점 거리가"
소나팀장 앨런 센터 대위가 경악하고 있는 사이먼 대령을 돌아보았
다. 그대로 놔두었다간 컬럼비아까지 격침당할 지경이었다. 잘못하면 컬
럼비아가 어뢰를 못 피할 수도 있었다. 어떻게든 빨리 손을 써야 했다.
사이먼 대령이 정신없이 서둘렀다.
"애스록 발사준비!"
"알겠습니다. 휴잇도 동시 공격하도록 지시하겠습니다."
부함장 길머 소령이 인근에 있던 휴잇을 호출했다. 기상이 점차 악화
되며 함정의 롤링현상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빨리 서둘러! 애스록을 아낄 필요 없다. 무더기로 발사해! 가루로 만
들어 버리겠다!"
사이먼 대령이 채근하는 사이 포술장이 챈슬러즈빌이 탑재한 8발의
애스록중 4발을 동시에 발사하기로 결정했다. 마크 41 수직발사기(VLS)
에 16발의 애스록을 탑재한 휴잇은 더 많은 수의 애스록을 발사할 수
있었다.
함장은 갑자기 나타나 컬럼비아를 공격한 한국 잠수함 뿐만 아니라
장문휴까지 동시에 박살내리라 마음먹었다. 소나팀이 잠수함 두 척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서둘렀다.
함장은 한국의 수상전투함 두 척이 이미 수평선 위를 넘어 이쪽으로
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레이더 스크린에 한국 전투함들
이 시시각각 접근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한국 함정들이 이
곳에 접근했을 때는 이미 애스록을 발사한 후가 될 것이다.
- 함교입니다! 방위 2-6-5에서 한국 함정들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래? 알고 있어! 그래서 어쨌단 말야?"
전투정보센터에 있는 사이먼 대령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함교에서
호들갑스럽게 보고하자 함장은 대뜸 화부터 냈다. 무기관제사관이 애스
록에 한국 잠수함의 위치 데이터와 투사코스를 입력하고 있었다. 대잠
공격 직전이었다. 함장은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 그게 지금 우리를 향해 포격을 가해오고 있습니다.
"뭐야?"
사이먼 대령이 놀라서 송신기를 떨어뜨렸다. 갑자기 소나팀 요원들이
귀를 싸매며 비명을 질러댔다. 함 근처에서 포탄이 작렬했다. 충격파가
외벽을 통해 전해지며 폭음으로 바뀌었다.
9월 14일 19:42 울릉도 남동쪽 9km
한국 해군 코르벳 여수함, 함교
"쏴! 계속 쏴! 썅놈의 새끼들! 감히 우리 잠수함을 공격해? 칵! 쎄리
직이뿔라!"
함장 백운기 중령이 불을 토하듯 거친 목소리로 계속 고함쳤다. 백운
기 중령은 전투정보센터에서 소나팀의 보고를 듣고 있다가 미국 함정들
과 거리가 가까워지자 안절부절 못하고 뛰어올라왔다.
여수함이 장비한 소나의 능력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멀리서 들려오는
수중폭발음의 정체는 확실히 판별할 수 있었다. 어둑어둑해진 바다에서
시뻘건 예광탄이 날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망원경으로 탄착점을
관측하던 백운기 중령이 마이크를 잡고 직접 포반을 지휘했다.
"사탄이 오른쪽으로 한참 벗어났잖아, 이 바보자식들아! 바짝 더 붙
여! 좌로 오공(50) 수정해!"
여수함이 장비한 함수의 76mm 자동속사포가 분당 80발의 속도로 다
시 불을 뿜기 시작했다. 그 위에 탑재된 40mm 쌍열포도 붉은색 예광탄
을 맹렬한 속도로 토해냈다. 사거리가 짧은 브레다(Breda) 40mm 포탄
은 미국 함정들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예광탄이 번뜩이며 날아가 미
국 함정들에게 위협을 가할 수는 있었다.
"부장님. 이러다 우리 모두 가는 거 아닙니까?"
고함을 치는 함장 뒤에 서서 김준환 중위가 부함장 손천민 중령에게
걱정스럽게 물었다. 위협사격을 공격으로 간주해 미국 군함이 반격을
가할 경우 화력이 열세인 여수함은 꼼짝없이 침몰당할 판이었다.
"조용히 해. 임마!"
질문은 당장 쌀쌀한 구박이 되어 돌아왔다. 동시에 김준환의 옆구리
에 부함장의 팔꿈치가 적중했다. 김준환은 당장에라도 미국 순양함과
구축함이 장비한 127mm 함포가 불을 뿜을 것만 같았다. 아니면 하픈
대함미사일이 이쪽을 향해 날아올 수도 있었다.
바람이 더욱 세차게 불었다. 고속으로 항주하는 여수함이 심하게 흔
들렸다. 김준환 중위는 경험해보지 못한 거센 요동에 다시 멀미가 나려
고 했다.
파도가 거셌다. 남쪽에서는 비바람을 몰고온 거대한 먹구름이 짙게
깔리고 있었다. 몇 미터씩 튀어오르며 요동치는 여수함의 함포도 표적
을 찾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포안정장치가 장착된 오토멜라라
사의 76mm 속사포는 함정이 튀어오를 때마다 미세한 위치조정을 가한
다음에 계속 불을 뿜어댔다.
멀리 챈슬러즈빌의 함수쪽으로 포탄이 작렬하고 있었다. 백운기 중령
도 걱정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위협사격이라 하지만 자신이 지금 미국
해군 함정에 실제 포탄을 날리고 있는 것이다. 자칫하면 장문휴의 일까
지 덤터기를 쓸 수도 있었다. 도발하는 한국 해군에 챈슬러즈빌이 합법
적으로 대응했다고 한다면 백운기 중령은 언뜻 답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김병륜 중장의 명령이었다. 어떻게든 장문휴를
지키라는 것이 해군 작전사령부의 명령이고, 지금 미국 해군은 그 한국
잠수함을 격침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백운기 중령은 한미관계가 악화되고 한국 해군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을까 우려했다. 그러나 수중에서 들려온 폭음이 그의 소심한 결정을
뒤엎어버린 셈이었다. 백운기 중령은 김병륜 중장이 한 당부와 호통을
동시에 기억해냈다.
함교 저편에 이쪽으로 방향을 트는 대형 함정 두 척이 보였다. 함수
부분에서 불빛이 번쩍이더니 몇 초 후에 여수함과 안양함 주위로 포탄
이 비오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포탄 한 발이 함교 옆 바로 10미터에서 커다란 물보라를 일으켰다.
배가 크게 흔들리고 물벼락이 항해함교를 때렸다.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한 함장에게 외침 소리가 들렸다.
"함장님! 점멸신호입니다."
김준환 중위가 미국 함정을 향해 손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점멸신호
가 반짝이며 무엇인가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었다. 백운기 중령이 다시
쌍안경을 집어들었다.
"포격중지!"
"포격중지!"
더 이상 포격을 가하는 것은 위험했다. 함장이 원했던 목적은 이미
달성했다. 다행히도 미국 수상전투함들은 대잠전열에서 물러나 여수함
을 향하고 있었다.
9월 14일 19:45 울릉도 남동쪽 30km
미 해군 순양함 CG-62 챈슬러즈빌, 전투정보센터
수중에 거대한 폭음이 두 차례 연속 이어졌다. 그리고 이십여초의 시
간이 지난 다음 다시 폭음이 세 번이나 연달았다.
"젠장! 이 망할놈의 한국놈들!"
소나 모니터로 컬럼비아의 최후를 묵묵히 지켜본 사이먼 대령이 고통
스럽게 절규했다. 함장은 애스록 발사 직전에 한국 군함들이 출현해 위
협사격을 가해오는 바람에 애스록을 발사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 안타
까웠다.
마지막 순간에 컬럼비아가 최대속도로 맹렬히 선회했지만 한국 해군
의 SUT 어뢰는 무자비하게 차근차근 거리를 좁혀들었다. 어떤 이유에
선지 컬럼비아가 발사한 모스나 디코이는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사이먼 대령은 한국 잠수함이 최후까지 유선유도를 하지 않았나 의심스
러웠고, 그래서 더더욱 애스록을 발사하여 한국 잠수함들을 공격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처음 장문휴가 발사한 어뢰 두 발이 컬럼비아의 다리를 부러뜨려 주
저 앉혔다. 스크루를 날려버린 것이다. 이어서 옴짝달싹 못하는 컬럼비
아를 최무선의 어뢰 네 발 가운데 세 발이 덮쳤다. 사이먼 대령은 너무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마치 피라냐(piranha)떼 같았다. 피라냐는 하천을 건너는 소나 양들을
무리지어 공격해 순식간에 뼈만 남기고 모조리 먹어치우는 남미산 육식
어류이다. 면도기 대용으로 쓸 수 있는 날카로운 피라냐 이빨같은 어뢰
가 맹렬한 폭발음으로 바뀌며 컬럼비아의 내부골격까지 완전히 가루로
만들었을 것이다.
폭발음이 끝난 후 몇 차례 반향이 일어난 다음에는 이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잠시의 침묵으로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된 사실을
깨달은 사이먼 대령이 조용히 분노했다.
"라 호야와 하야시오에게는 빠져 있으라고 해! 이제 잠수함들은 비켜
난다. 우리가 해결하겠다."
"함장님! 지금 한국 수상함들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공격하기는 어렵습니다. 녹화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무서우리만큼 차갑게 변한 사이먼을 소나팀장 앨런 센터 대위가 만류
했다. 한국 수상함정들까지 해치울 수는 없었다. 물위에서 일어나는 일
은 물 속에서 일어나는 일과 극단적으로 달랐다. 수상전투함은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 함정들을 격침시키더라도 승무원 몇은 살아남을 가능성
이 다분히 있었다. 이들이 국제여론에 호소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주변 상공에서 비행하고 있는 항공기들도 문제였다. 자위대
초계기 승무원들이 본국에 돌아간 뒤 뭐라 떠들지 걱정스러웠다. 주변
에 분명히 있을 러시아 정보수집함이나 잠수함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의 인공위성도 이번 사건의 유력한 목격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사
이먼 대령은 참을 수 없었다.
"함교를 연결해! 저 개새끼들 때문에 망쳤어. 한국 경비정들을 밀어버
리라고 해! 그리고 휴잇과 밴더그리프트에게 이놈들을 확실히 봉쇄하라
고 전해라. 만약 저놈들이 한 번만 더 방해하면 그때는 내손으로 휴잇
과 밴더그리프트를 날려버릴거야! 내말 확실히 전해!"
사이먼 대령의 눈동자가 불타올랐다. 챈슬러즈빌은 이젠 육탄으로라
도 한국 함정들의 진입을 막으리라 결심했다. 사이먼 대령의 명령을 접
수한 휴잇과 밴더그리프트도 한국 수상전투함들을 몸으로 막으려고 고
속 기동을 시작했다.
"일본 오라이언들에게 연락하라. 몇 대 빼서 저 수상함정들 주변을
계속 선회하라고 전해라. 절대 틈을 주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나머지 대
잠기들은 공격을 개시하라!"
여섯대의 오라이언 대잠초계기가 여수함과 군산함에 달라붙었다.
P-3C들은 까마귀 떼처럼 한국 군함 상공을 선회하며 한 대씩 차례대로
여수함과 군산함의 상공에서 교묘하게 위협을 가했다. 여수함의 대공포
가 초계기의 움직임을 따라 빙글 돌아갔다. 나머지 초계기와 대잠헬기
들은 장문휴가 있는 상공으로 다시 진입했다.
9월 14일 19:50 울릉도 동쪽 32km
한국 해군 P-3C 흰꼬리수리 3
"으악! 이게 왜 이렇지?"
각종 기기가 꽉찬 초계기 내부에서 강인호 대위가 비명을 질렀다. 소
노부이를 연결하는 AQA-7 신호처리기가 뿌옇게 흐려졌다. 다른 시스템
도 마치 전파방해를 받은 것쳐럼 모니터 화면이 일그러지고 왜곡되어
도저히 알아볼 수가 없었다.
"저 새끼들이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전술통제사 홍희범 소령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아 망연자실하여 서
있었다. 그때 조종석과 연결되는 인터폰에서 기장 한기영 대위의 급박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락온(Lock on)! 락온! 락온됐습니다!
"뭐야? 락온이라니? 어떤 놈들이 우릴 공격하려는 거야?"
홍희범 소령이 조종석 쪽으로 비틀거리면서 뛰어갔다. 기체가 요동까
지 치고 있었다.
"저 개새끼들이 대공미사일 공격을 가하려나 봅니다. 사격레이더로
우리를 조준하고 있습니다."
조종석으로 머리를 들이밀자 기장 한기영 대위가 홍희범 소령을 돌아
보며 외쳤다. 조종석 계기판에 있는 바늘들이 제멋대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미국 함정에서 대공미사일을 유도하기 위해 지향성이 강한 레이더 빔
을 오라이언에 쏜 것이다. 특히 출력이 강한 사격용 레이더 빔에 기체
를 얻어맞으면 마치 전자방해를 받을 때와 비슷한 현상이 생긴다. 이
강력한 레이더 전파는 심지어 유선으로 연결된 내부 전자회로에도 영향
을 미친다.
"그래. 우리를 격추하겠다고? 어디 격추시켜 봐라, 이 자식들아!"
홍희범 소령이 독기를 담아 내뱉었다. 미국 군함이 미사일로 공격하
면 감연히 맞겠다는 심정이었다. 어차피 피할 수도 없었다. 한국 공군은
아직 오지 않았다. 홍희범은 이제는 공군 전투기가 올 가능성도 적다고
체념하고 있었다. 같은 기종인 일본의 오라이언들과 숨바꼭질 하는 것
도 이제 진력이 날 정도였다.
"이러다가 우리 진짜로"
부기장 황성준 중위가 겁이 덜컥 나는지 말을 더듬거렸다. 그러자 홍
희범 소령이 황성준의 어깨를 한 대 쳤다.
"까짓거! 갈 때 되면 가는 거야. 영원히 살 것도 아니잖는가? 아, 가
만. 이 새끼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는데?"
어떤 SF영화에서 나온 대사를 중얼거리던 홍희범 소령이 계기판을
확인했다. 조종실 계기판이 모두 정상을 회복하고 있었다. 레이더 수신
경보장치도 침묵을 지켰다. 홍희범 소령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창문쪽을 돌아보았다.
흰꼬리수리는 수 십 분간 계속 일본의 대잠기들과 꼬리를 물고 물리
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단 두 대로 이들을 방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
했다. 그런데 일본 초계기들의 꼬리잡기가 갑자기 멈춰진 것이다. 한기
영 대위가 일본 초계기들의 숫자를 세었다.
"지금 여수함과 안양함 상공에서 노는 놈들의 숫자가 이거 쪽수가
안 맞는데요?"
"맙소사! 이 새끼들이 지금 장문휴를 공격하는거 아냐?"
해상자위대의 오라이언들은 이미 어뢰 투사코스에 진입하고 있었다.
홍희범 소령이 기차 화통 삶아 먹은 목소리로 외쳤다.
"막아! 몸으로라도 막아!"
9월 14일 19:55 울릉도 동쪽 34km
한국 해군 잠수함 최무선, 사령실
"장문휴! 응답하라!"
- 최무선. 장문휴다.
"서승원 중령인가?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미안하다."
최무선의 함장 조성진 중령이 장문휴의 응답을 받고 기뻐 어쩔줄 몰
랐다. 장문휴를 피해 없이 구출해낸 것이다. 그러나 상대편 목소리가 이
상했다. 장문휴 함장 서승원 중령이 아니었다. 조성진 중령은 함장이 직
접 받길 기다리기 답답했다. 이상하게 상대쪽에서는 계속 머뭇거리는
것 같았다.
- 저는 진종훈 소령입니다. 함장님은 부상당하셨습니다.
"뭐야?"
- 치료를 받고 계십니다. 제가 지휘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서승원 중령이 다쳤다니, 지휘를 못할 정도라니, 큰 부상이 아니길 바
라는 수밖에 없었다. 조성진 중령은 잠시 말문이 막혀 머뭇거렸다.
- 너무 늦게 오셨습니다. 그동안 일이 크게 벌어졌습니다.
"나도 알아. 놈들의 방어망을 돌파하는데 이렇게 시간이 걸릴 줄은
몰랐다. 정말 미안하다."
조성진 중령이 진심으로 사과했다. 미국 함정과 대잠기들은 장문휴의
외곽으로 커다랗게 대잠봉쇄망을 설치했다. 장문휴가 빠져나오지 못할
뿐 아니라 대잠망 안으로 최무선이 파고들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애초에 최무선이 장문휴와 함께 있었
다면 이런 일까지는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두 척이 함께 있었으
면 외국 잠수함들이 섯불리 공격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공격하
더라도 최소한 한 척은 살아남아 증인이 될 수 있었다. 이렇게 상황이
엉망이 되어 미국이 한국 잠수함들을 몰살시키려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 알겠습니다. 일단 빠져나가야 되겠습니다. 울릉도쪽은 이미 매복이
가득합니다. 다른 방향에 회피로가 있겠습니까?
"물론이다. 기꺼이 안내하겠다."
이제는 회피를 할 때였다. 최무선이 방어망을 돌파하면서 주변에 위
치한 함정들을 파악해놓은 상태였다. 조성진 중령은 어서 수중통화를
마치고 서둘러 빠져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함장님! 대잠어뢰가 입수했습니다! 이런"
"뭐야?"
조성진이 놀라서 소나실 쪽으로 뒤돌아섰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공격
이었다. 수상함정들은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게다가 수면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는데 대잠어뢰라니, 놀랄 일이었다. 태풍같은 악천후
상황에서는 소노부이의 탐지능력이 상당히 떨어질텐데도 불구하고 대잠
기들이 어뢰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으윽 이럴 수가! 한 두발이 아닙니다. 개새끼들이 마구 퍼붓고 있
습니다. 여섯발 아니, 여덟 발이 입수했습니다. 두 발은 거리 500에 떨
어졌습니다!"
음탐관 권혁준 대위가 기겁을 했다. 일본 초계기들과 미국 대잠헬기
들은 한국 잠수함을 탐지하고 나서 대잠어뢰를 투하하는 것이 아니었
다. 잠수함을 탐지하기 어려우니 해상에 무차별로 어뢰를 살포하고 있
었다.
9월 14일 20:10 울릉도 동쪽 33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이런 개새끼들! 작전관! 폴리펨 준비해!"
"예? 폴리펨을 말입니까?"
"그래! 당장 준비해. 이 새끼들 모조리 죽여버리겠어."
진종훈 소령이 펄펄 날뛰었다. 폴리펨(Polyphem SM) 미사일은 잠수
함의 대공방어용 미사일이다. 폴리펨 말고도 잠수함이 장비하는 대공미
사일이 있기는 하다. 러시아의 SA-N-8과 같은 미사일이 대표적이다.
이것은 적외선 유도방식의 휴대용 대공미사일로, 승무원이 직접 밖으로
나와 발사기를 조작해야 한다.
그러나 폴리펨은 수중에서 발사가 가능하다. 광섬유로 유도되는 유선
유도방식의 폴리펨은 잠수함의 소나로 적 항공기나 헬리콥터의 호버링
소음을 탐지하면 일단 그 방향으로 추정발사를 한다. 폴리펨의 선단부
분에 달려있는 카메라는 물위로 빠져나오자마자 광각모드로 수면 위의
항공기를 수색하게 된다.
폴리펨이 촬영한 영상은 잠수함 내에서 조작승무원이 모니터로 확인
할 수 있다. 목표를 선정한 다음 승무원이 조이스틱으로 컴퓨터 게임을
하듯 미사일을 항공기에 유도시키면 되는 것이다.
유로미사일(Euromissile)사에서 제작된 폴리펨은 최대수심 300미터에
서도 발사가 가능하다. 그리고 독일의 212급이 최초의 고객이었다. 물론
212급 잠수함을 도입한 한국이 폴리펨의 전술적 가치를 무시할 리 없었
다. 대잠기나 대잠헬리콥터는 이제 마음대로 수면 위에서 잠수함을 사
냥할 수 없게 되었다.
김승민 대위가 일단 두 발의 폴리펨을 발사했다. 모니터 두 개에서
폴리펨이 촬영한 화면이 나타났다. 폴리펨은 직접 유도를 해야 하기 때
문에 조종수가 명중될 때까지 목표에 중심선을 계속 맞춰주어야 한다.
김승민 대위가 최초로 발사하는 폴리펨에 긴장되는지 손바닥을 바지에
비벼댔다. 진땀이 흐르고 있었다.
9월 14일 20:15 울릉도 동쪽 35km
일본 해상자위대 P-3C 가마우지 8
- 더 깔아야겠다. 다시 투하코스로 들어가라.
"알겠습니다. 코스 재진입합니다."
조종석 후방의 대잠실에서 명령이 떨어지자 기장 요시다 세이키(
) 일등해위는 오라이언을 다시 반대쪽으로 선회시켰다. 선두에 선
가마우지 7도 재진입하고 있었다. 4발의 어뢰를 모두 투하할 예정이었
다. 마치 융단폭격을 하듯이 오라이언 대잠기들이 줄줄히 투하코스로
진입하고 있었다. 순간, 가마우지 7에서 밝은 화염이 번쩍였다.
"저게 대체 무슨 일이지?"
요시다가 놀라며 앞서 날던 가마우지 7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항공
등 치고는 너무 밝았고, 지금은 하픈 대함미사일을 발사할 상황도 아니
었다. 왼쪽 주날개에서 붉은 화염덩어리와 함께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
었다.
"젠장! 화재다! 화재. 가마우지 7! 괜찮나?"
요시다가 허겁지겁 통신을 개방하고 가마우지 7과 교신을 시도했다.
화재를 빨리 진압하지 않으면 폭발할 지도 몰랐다. 아무래도 사고가 발
생한 것 같았다.
- 방금 뭔가 커다란 폭발음이 들렸다. 뭐지? 우악! 우리 비행기잖아?
좌측 동체에 구멍이 뚫렸다! 도대체 뭐지? 으아~ 살려줘! 추락한다!
가마우지 7의 기장 카지 카즈유키() 일위의 목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조종 불능인지 가마우지 7은 수면위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바로 그때 가마우지 8의 기장, 요시다 일위 뒤에서 커다란 폭발음이
들렸다. 파편이 튀며 기체 내부에 폭풍이 일고 기압이 뚝 떨어졌다. 요
시다 일위는 도대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본능적으로 상체를 바짝
낮추고 충격에 대비했다. 일순간 매캐한 연기가 조종석을 덮쳤다. 기체
가 요동을 치며 조종간을 붙잡고 버티는 것이 힘들 정도였다. 종이같은
것들이 그의 얼굴을 때려댔다.
"으아~~ 기장님! 대잠실이 박살났습니다!"
상황을 파악하려고 일어섰던 부기장 카미무라 토이치() 이등
해위가 뒤를 돌아보고 나서 하얗게 질렸다. 동체 하부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고, 서너명이 피투성이가 되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었다.
9월 14일 20:17 울릉도 동쪽 25km
미 해군 순양함 CG-62 챈슬러즈빌, 함교
"오라이언들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럴 수가!"
폭음과 승무원들이 내지르는 비명에 놀란 사이먼 대령이 쌍안경을 들
었다. 함장은 조금 전에 함교로 올라와 있었다. 거리가 멀어서 확인은
되지 않지만 해상자위대의 오라이언들이 불을 뿜으며 추락하고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수면 위에서 무엇인가 치솟
고 있었다. 천천히 솟아오른 그 물체는 급격히 방향을 바꾸며 주변 하
늘에 있던 오라이언을 뒤쫓았다. 그리고 또다시 붉은 화염이 터져나왔
다.
"잠대공 미사일이다! 어떻게 저런게"
사이먼 대령이 놀라서 허둥거렸다. 오라이언들은 영문도 모른채 계속
불붙고 있었다. 잠대공 미사일을 한국 잠수함이 무장하고 있었다니! 빨
리 오라이언들을 미사일의 사정권에서 떼어놓아야 했다.
"오라이언들을 철수 시켜! 저러다 다 죽이겠다. 저놈들은 무엇에 공격
당하는지도 모르나 봐."
함장이 투덜거렸다. 사이먼 대령은 해상자위대 초계기 승무원들이 잠
대공 미사일의 존재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화가 났다. 미 해군이나 해상
자위대나 직업군인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미 해군이 군인인 반면,
해상자위대는 직업인이었다. 그가 듣기로 해상자위대원들은 목숨을 걸
고 싸울 생각이 없었다. 이것은 결정적인 차이였다.
"대잠어뢰들은 추적중인가?"
- 예! 2발이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 착수한 것 같습니다. 탐신음을 발
하고 있습니다.
전투정보센터에서 즉각 대답하자 사이먼 대령은 약간이나마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사이먼 대령은 잠시 결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태풍이 몰
려오는 상황에서 항공기에서 투하하는 경어뢰로 잠수함을 격침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잠수함들의 위치 만큼은 확실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가지기에는 충분했다.
"함장님! 수면 위에 다수의 레이더 시그널입니다. 서쪽입니다!"
사이먼 대령이 다시 망원경을 집어들어 서쪽을 향했다. 해면 위에 무
수한 점들이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이쪽으로 똑바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것은 한국의 소형 고속정들이었다. 그리고 조금 뒤에 커다란 마스트
가 수면 위로 천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국 해군의 구축함들이 본격
적으로 출동한 것이다.
"이런, 망할!"
사이먼 대령은 골치가 아파졌다. 한국 해군이 고분고분하지 않은 것
은 전혀 뜻밖이었다. 함장은 오라이언을 철수시키고 다시 애스록으로
공격할까 생각하고 있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머리 한구석에서
환동해 훈련때의 악몽이 스멀스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함장은 조용한
한국 잠수함을 잡기는 이미 틀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부의 뜻을 무
시할 수는 없었다.
"대잠기 철수 확인했으면 라 호야와 하야시오에 연락하라."
사이먼 대령이 침통한 표정으로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챈슬러즈빌의
위성통신시스템이 잠수함 통신을 관할하는 지상기지국으로 접속한 다음
명령문을 발송했다. 초장파 기지국에서는 곧 라 호야와 하야시오에 수
신될 새로운 명령을 전파할 것이다.
"잠수함들이 제대로 해줄 수 있을까?"
사이먼 대령이 탄식했다. 이제 2대 2의 싸움이었다. 지금까지의 상황
으로 보아 결코 유리하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다.
9월 14일 20:20 울릉도 동쪽 36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어뢰 2발, 방위 삼백이십공에서 급속 접근중입니다. 우리를 탐지했습
니다!"
"디코이 발사하라! 좌현 전타!"
"디코이 발사!"
"좌현 전타!"
장문휴가 왼쪽으로 급격히 변침했다. 승무원들은 어뢰를 탐지하고 회
피행동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삑삑거리는 어뢰 탐신음이 잠수함 내
부에까지 들려 공포감이 승무원들을 엄습했다.
잠수함이 급속 변침하는 것은 속도가 빠른 대신 순발력을 희생하는
어뢰가 잠수함을 스쳐 지나가기를 바라는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잠
수함이 방향을 바꾸면서 발생시키는 거품이 어뢰의 탐지장치에 혼란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다.
"거리 100미터! 하나가 기만체를 물었습니다. 또 한발은 우욱!"
최현호 상사의 놀람이 끊어지기도 전에 머리 위로 낙하하는 마크 50
대잠어뢰의 강력한 액티브 탐신음이 선체를 울렸다. 그리고 곧이은 폭
발음이 장문휴를 감싸버렸다. 거대한 충격과 함께 승무원 모두가 일제
히 공중에 떴다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사령실이 온통 암흑에 휩싸였다.
"으으 피해보고하라."
진종훈 소령이 일어서며 곧바로 함내통신망에 피해보고를 요구했다.
사령실에 아직 전원은 들어오지 않고 적색 비상등만 깜빡이고 있었다.
황급히 심도계를 보았다. 바늘은 제자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 어뢰실입니다! 침수가 발생했습니다.
어뢰실 안에서 물 쏟아지는 소리가 함내통신기를 통해 사령실에도 들
려왔다. 곧이어 정신을 차린 다른 부서에서도 보고가 이어졌다.
- 기관실 이상없습니다. 예비동력을 공급하겠습니다.
"부장님! 소나실 함수 소나가 전혀 작동하지 않습니다."
"밸러스트가 이상합니다! 이런"
비치적거리며 일어나자마자 밸러스트를 점검한 김승민 대위가 잔뜩
당황한 채 보고했다. 밸러스트 탱크로 유입되는 각 밸브의 작동표시등
가운데 태반이 적색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아예 모두 다 적색이거나 꺼
졌더라면 전원이 차단되어 발생한 에러일 수도 있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나마 심도가 내려가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진종훈 소령은 피해
가 함수쪽 부서에 집중되는 것으로 봐서 어뢰가 함수부분에서 폭발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 정도 피해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최무선은 어떻게 됐나?"
"모르겠습니다. 어뢰가 충돌하기전에 폭발음이 들렸습니다만"
"수중통신은 가능한가?"
"예비동력이 곧 들어옵니다. 시도하겠습니다."
진종훈은 최무선이 걱정되었다. 최무선 쪽으로 낙하한 대잠어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함장님! 최무선과 연결됐습니다."
칸막이 밖으로 빼꼼히 머리를 내민 이홍기 중위가 함장과 부함장을
가리지 않고 보고했다. 진종훈 소령이 허둥지둥 통신실로 향했다. 사령
실 회선으로는 연결이 되지 않고 있었다.
- 최무선이다. 피해상태는 어떤가?
"피해가 약간 있습니다. 하지만 작전은 가능합니다. 최무선은 어떻습
니까?"
진종훈 소령은 피해여부를 자세히 말하려다가 멈췄다. 혹시나 수중통
신이 도청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아쉽게도 암어화 변환장치가 작
동이 되지 않고 있었다.
- 우리쪽은 이탈하겠다. 장문휴가 후위를 맡아줄 수 있겠나?
"기꺼이 후위를 맡겠습니다. 그럼 건투를 빕니다."
힘든 여정이었다. 조성진 중령의 말투로 보아 최무선은 심각한 피해
를 입은 것 같았다. 선임인 조성진 중령이 위험한 후위를 장문휴에게
맡기려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진종훈 소령은 아무래도 최무선은
후방쪽이 피해를 입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9월 14일 20:25 울릉도 남동쪽 15km
한국 해군 코르벳 여수함, 함교
- 함장님, 소나실입니다. 수중에 폭발음입니다. 방위 공오십(0-5-0)도
근방입니다.
"개새끼들이! 당장 공격해야합니다. 함장님! 함장님!"
부함장 손천민 소령이 감정이 북받치는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함장 백운기 중령은 침통한 표정이었다. 눈 앞에서 아군 잠수함이 공격
을 받는 동안 손을 쓸 수 없었다는 것 때문에 더욱 참을 수 없었다.
"고속정 전대에게 진입을 지시하라"
"예! 이 개새끼들"
간신히 감정을 억제한 백운기 중령은 손천민 소령의 흥분으로 인내력
의 뚝이 무너질 뻔했다.
"부함장! 우린 공격할 수 없네. 그 점을 망각하지 말게."
"이럴 순 없습니다! 아무리 우리나라가 우습게 보이더라도 이럴 수는
없습니다. 이 개새끼들"
손천민 소령이 이를 악물었다. 입술이 터졌는지 피가 흘러내렸다. 그
들은 모두 약소민족의 한이라는 것을 한동안 잊고 산 세대들이었다. 백
운기는 몇 세대 전의 조부모들이 느꼈을, 참화에서 터져나온 울분이 아
마 이런 것이었을까 생각했다. 폭발시킬 수 없는 울분은 결국 속으로
폭발하기 마련이었다. 얼굴을 꼿꼿히 새운 채로 서있던 손천민 소령의
눈가에 맑은 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주위에는 미국 함정들에, 조금 전에 이곳에 도착한 해상자위대 제3
호위대군, 그리고 마이즈루 지방대 소속 함정들이 새까맣게 모여들고
있었다. 큰 함정들은 서로 대치한 가운데 움직일 수 없었지만 작은 크
기의 고속정들은 요리조리 방향을 틀며 사이를 빠져나갔다.
고속정들이 폭발음이 들리는 곳으로 빠른 속도로 내닫기 시작했다.
행여나 승무원들을 구조할 수 있으리란 기대에 고속정들은 거친파도에
도 불구하고 물위를 위태위태하게 튀기 시작했다.
잠수함전 소설 동해 12. 그림자 떼기 (1)
12. 그림자 떼기
9월 14일 20:35:11 울릉도 남동쪽 24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La Jolla), 사령실
"이렇게 우리에게 다시 명령이 떨어졌다."
통신문을 접은 가르시아 중령이 비분강개한 표정으로 천천히 승무원
들을 돌아보았다. 각자 자리에서 뒤돌아 앉아 명령문을 들은 승무원들
은 잔뜩 굳어진 얼굴이었다.
아까 공격중지 명령과 지정해역을 이탈하라는 명령을 받고 가르시아
중령은 하마터면 까무라칠 뻔했다. 장문휴는 라 호야에서도 충분히 공
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령실 요원들도 컬럼비아가 격침되었다는 것
이 아직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가르시아가 승무원쪽을 향해 터질듯
한 목소리로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소나팀! 장문휴의 위치는 정확히 파악했는가!"
"공격팀! 놈을 지옥으로 보낼 수 있나!"
"옛, 서(Yes, Sir)!"
"이제 우리에게 다시 명령이 떨어졌다. 성공할 수 있나!"
"옛, 서!"
가르시아의 질문에 승무원들이 각 팀을 맡은 사관들이 합창하듯이 복
창했다. 가르시아가 점차로 목소리를 크게하자 대답하던 사령실 요원들
의 목소리도 떠내려갈 듯이 커졌다. 어느새 어뢰발사관이 개방되고 물
이 쏟아져 들어왔다.
"공격한다! 어뢰 발사!"
"1, 2번 어뢰 발사! 아이, 서(Aye, Sir)!"
"어뢰 발사했습니다!"
함장이 명령하자 발사관제사관의 복창과 함께 어뢰를 맡은 공격팀 준
사관의 보고가 이어졌다.
장문휴를 향해 발사된 어뢰 두 발이 미 해군 원잠 라 호야에서 빠져
나왔다. 마크 48은 가느다란 유도 케이블을 끌며 점점 빠른 속도로 치
닫기 시작했다.
9월 14일 20:35:35 울릉도 동쪽 36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저쪽에서 어뢰를 발사했습니다! 2발입니다."
"함수 소나가 부서져서 우린 공격 방위 산정이 어렵습니다! 젠장!"
최현호 상사의 보고에 이어 작전관 김승민 대위가 부르짖었다. 부함
장의 눈이 자신에게 시선을 집중한 승조원들의 절망적인 표정들을 더듬
어 지나갔다. 진종훈 소령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작전관! 어뢰를 쏘고 빠져야겠다!"
"힘듭니다! 이 거리에서 자동유도로 세팅하면 명중률이 떨어집니다.
놈들 위치를 정확히 알기 어려워서 어뢰 접근코스를 세밀하게 지정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잖아? 우리가 꽁무니를 보이면 곧 2차 공격이 이어
질거야. 우선 갈기고 본다! 추정방위를 가능한 근접하게 산출해 봐. 어
서! 서둘러!"
"예. 알겠습니다."
최악의 조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너무 없었다. 함수 소나가
망가진 장문휴함으로서는 삼십육계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그나
마 도망친다 해도 장문휴함의 최고속도로는 도저히 라 호야를 따돌릴
수 없었다. 서둘러 명령을 내리는 진종훈 소령의 얼굴에도 그늘이 짙게
드리웠다.
"부장님! 공격을 잠시 보류해 주십시오!"
"뭐야?"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진종훈 소령이 고개를 홱 돌렸다. 목소리
의 주인공은 강인현 대위였다.
"어뢰로 어뢰를 요격할 수 있습니다. 제게 맡겨주십시오!"
"어떻게? 시간이 없다. 빨리 얘기해! 20초 주겠다."
김승민 대위가 발사 준비 절차를 잠시 멈추고 진종훈 소령은 시계를
보았다. 초침이 무지막지하게 빠르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일단 어뢰를 유선유도로 놈들의 어뢰가 접근하는 곳으로 추정발사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어뢰의 소나를 최대출력으로 해서 액티브 탐신을
시킵니다. 그러면 일단 놈들의 어뢰를 탐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접근
시켜 근접거리에서 기폭장치를 작동시키면 요격이 가능합니다. 지근거
리가 아니라도 어느 정도 근거리라면 어뢰 앞부분 센서 정도는 충분히
날릴 수 있을 겁니다!"
빠르게 말을 마친 강인현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렸다. 강인현의 의
견을 들은 진종훈과 김승민 두 사람 모두 잠시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강
인현의 눈동자만 바라보았다. 침묵이 길어지자 참다못한 진종훈 소령이
모자를 벗어 벽에 내팽개쳤다. 어차피 이번 공격을 막지 못하면 모두
죽은 목숨이었다.
"씨팔! 좋아. 해보자! 어디서 주워 들은 아이디어야? 작전관! 이해가
되나? 그럼 빨리 서둘러!"
"예! 알겠습니다!"
진종훈 소령의 입에서 작전을 승인한다는 말이 떨어지자 누가 뭐랄
것도 없이 김승민과 강인현은 음탐실은 제껴두고 공격시스템 콘솔이 있
는 곳으로 뛰었다.
"어뢰 링크 점검. 발사 가능 어뢰, 도합 5발입니다. 모두 유선유도 가
능합니다!"
김승민 대위가 재빨리 유선유도가 가능한 SUT 어뢰를 발화가능상태
로 조작한 다음 데이터링크 회선을 개방했다. 또 하나의 모니터가 작동
하며 CSU-90 메인 소나시스템과 완벽히 연결되었음을 알리는 부호가
깜빡거렸다.
"음탐관!"
"예! 부장님."
"강대위 어래 세발을 주겠다 저놈들의 대가리를 날려라 함장님 복수다."
"예! 자신있습니다!"
"작전관!"
"옛! 부장님."
"자네에겐 두발을 주겠다. 요격을 해라 꼭 성공해야 한다 알았나?"
"물론입니다!"
"준비 되는대로 쏴! 썅 놈들에게 확실히 맛을 보여 준다. 양코배기
들을 묵사발 내버린다!"
"어뢰 발사합니다! 어뢰발사관 개방, 주수. 급속발사! 3, 4번 발사관
먼저! 1, 2, 6번 발사관은 30초 후입니다. 발사!"
장문휴함의 압축공기탱크에서 공기가 분출되면서 2차회로에 연결된
수압펌프를 밀었다. 압축공기가 일단 피스톤을 바깥쪽에서 밀어내자 실
린더 안쪽의 바닷물이 어뢰발사관으로 밀려들어갔다. 그 직후에 두 개
의 어뢰발사관에서 SUT 어뢰들이 퉁겨지듯이 튀어나갔다. 장문휴함을
가늘게 진동시키며 물밖으로 튀어나온 어뢰 두 발은 10미터가량 떠밀려
간 다음에야 스크루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SUT 어뢰는 처음에는 낮은 속도로 항주했다. 어뢰 내부에 나뉘어진
배터리들이 직렬로 연결되었고, 어뢰는 점차 조용히 가속하며 미국 잠
수함 라 호야를 향했다. 잠시후 나머지 어뢰 세 발이 장문휴함으로부터
다시 쏟아져 나왔다.
9월 14일 20:37:10 울릉도 남동쪽 25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La Jolla), 사령실
"놈들이 어뢰를 발사했습니다! 거리 12,000 야드!"
"뭐야? 방향은 이쪽인가?"
"어뢰가 탐지되지 않습니다. 추적에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어뢰발사음
은 확실히 들렸습니다."
"이런, 제기럴"
조용한 SUT 어뢰를 탐지하느라 바빠진 소나팀 뒤에서 가르시아 중
령의 분노가 터져 나왔다. 장문휴가 도망가지 않고 이쪽으로 함수를 유
지한 채 어뢰를 발사한 것이다. 같이 죽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최종
유도까지 유선으로 어뢰를 유도하려던 함장은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계획이 완전히 틀어진 것이다.
그러나 함장은 지금은 잠시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라 호야가 먼저
어뢰를 발사했고, 마크 48 어뢰는 전동추진식인 SUT 어뢰보다 훨씬 빨
랐다. 게다가 LA급 원잠인 라 호야는 속도도 빨랐다. 이정도 거리라면
속력이 빠른 핵잠수함인 라 호야는 충분히 어뢰 사정거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거리가 약간 애매했다. 한국 잠수함이 발사한 어뢰에 추적받
지 않으려면 라 호야도 어뢰의 유선유도를 중간에 끊고 도망가야 할 거
리였다. 그럴 경우 라 호야의 어뢰가 장문휴를 탐지할 가능성이 줄어든
다. 가르시아 중령은 자신이 없었다. 이것은 확률의 문제였다.
함장은 이번에야 말로 확실히 장문휴를 격침시키고 말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었다. 이제 가르시아 중령은 물러날 곳이 없었다. 미국 잠수함
들을 구원하러 온 수상함대와 대잠초계기들은 지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모든 것은 라 호야 혼자서 해결해야 할 상황이었다.
"급속발사 준비!"
가르시아 중령은 확률을 높이기로 했다. 이미 발사한 어뢰를 중간에
서 와이어를 끊을 경우 장문휴에서 어뢰를 기만시킬 가능성이 컸다. 함
장은 추가로 몇발 더 발사하고 일단 빠지기로 작정했다. 그런데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무기장교 잔 E. 모스 대위의 보고가 그를 낭패감에 빠지
게 했다.
"즉시 발사 가능한 것은 2발 뿐입니다. 재장전에는 시간이 소요됩니
다, 함장님!"
미처 어뢰를 재장전하기 전이라 라 호야가 장비한 4문의 어뢰발사관
가운데 2문에만 어뢰가 장입되어 있었다. 다른 발사관 2문에는 모스가
탑재되어 있었다. 진작에 모스를 어뢰로 교체했으면 하고 가르시아는
아쉬워했다. 이 거리에서는 자동유도로 발사할 경우 4발만으로는 약간
부족한 감이 있었다.
"어쩔 수 없다. 현재 유도중인 1, 2번 어뢰의 유선 유도를 차단하고
마지막 공격방위를 산정하여 자동유도로 세팅하라. 3, 4번 어뢰도 자동
유도로 세팅, 발사되는 즉시 내뺀다. 일단 1, 2번 어뢰의 속도를 줄여라!
동시에 4발을 때려야 한다. 놈들 어뢰의 속도는 겨우 35노트일 뿐이야!
아직 시간이 있어. 하지만 어서 서둘러!"
"예! 알겠습니다."
무기장교 모스 대위가 서둘렀다. 함장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했지만
명령이 너무 복잡했다. 이미 목표를 향해 항주중인 어뢰의 속도를 잠시
줄이고 추적모드를 변경하는 것과 동시에 새로 발사하는 어뢰들의 추적
모드를 설정하는 일은 간단치 않았다. 당연히 추가 발사에 대비했어야
하지 않았느냐고 가르시아 중령이 호통쳤지만 지금은 이미 독촉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어뢰 발사 준비가 계속되는 동안 가르시아 중령은 부하들의 작업을
지켜보면서 심한 자괴감에 빠졌다. 함장에게 장문휴는 인간 힘으로 도
저히 어찌할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다.
상대는 겨우 재래식 디젤 잠수함인데 어찌 이런 참담한 결과가 났는
지 알 수 없었다. 백번 양보해 아무리 뛰어난 디젤 잠수함이라도, 속도
와 작전능력에서 핵잠수함과 비교할 수 없었다. 그런데 212급은 그런
상식을 벗어난 것이다.
지난번 환동해훈련에서도 드러났지만, 미국의 국익을 해칠 가능성이
있는 잠수함은 한국이 우방국이라 해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런
잠수함이 제3 세계 국가에 마구 수출된다면 미국의 세계전략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것이 분명했다. 어느 나라도 미국의 힘 앞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 경우 미국의 국익에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될텐데, 미국 정부는
왜 독일의 잠수함 수출을 막지 못했는지 가르시아 중령은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다. 어쨌든, 지금은 라 호야가 장문휴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
에 있었다. 이것은 평원에서 벌어진 권총과 장총의 대결이었다.
"어뢰발사 준비 완료! 어뢰발사관 개방했습니다!"
상념을 깨우는 소리가 들려 가르시아 중령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함
장은 장문휴에 대한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분노를 실어 짧게
명령했다.
"발사!"
"1, 2번 어뢰 다시 가속 시작! 케이블 유도에서 자동 유도로 전환! 3,
4번 어뢰 발사!"
간단히 말했지만 엄청나게 복잡한 명령을 모스 대위가 복창했다.
공격원잠 라 호야에서 또다른 어뢰 두 발이 퉁겨져나왔다. 마크 48
어뢰의 1,000마력에 가까운 터빈엔진이 어뢰발사관을 빠져나오자 작동
을 시작하면서 거센 배기가스의 기포를 만들어냈다.
"좌현 전타(left full rudder)! 180도 변침한다! 기관전속!"
어뢰가 발사되기까지 가까스로 참았던 조바심이 가르시아 중령의 입
에서 폭발해 나왔다. 순간적으로 기관실에서 터빈 출력이 최대로 높아
지며 라 호야가 가속하기 시작했다.
원자로에서 끓여진 수증기가 압력으로 팽창하면서 증기터빈의 프로펠
러 블레이드를 거세게 밀어쳤다. 하지만 폭발적으로 반응하는 개스터빈
엔진처럼 빠르게 가속되지는 않았다.
가르시아는 한국 잠수함이 발사한 어뢰가 제대로 발사된 것이 아니
기를 바랐다. 아직까지 한국이 발사한 어뢰는 탐지되지 않고 있었다. 위
치가 파악되지 않는 어뢰가 라 호야의 숨통을 끊으려 어둠 속에서 접근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함장이 갑자기 전율을 느꼈다.
속도가 느린 전동추진식 어뢰는 대신에 소음이 거의 없었다. SUT 어
뢰가 최고속도로 항주할 경우 라 호야에 어디까지 접근했을지 예상할
수는 있었지만, 어뢰가 탐지되지 않으니 아무래도 불안할 수밖에 없었
다.
함장은 급격히 선회하는 라 호야의 사령실에서 라 호야가 최고속도까
지 가속되는 시간을 어림짐작해 보았다. 하지만 쉽게 계산되지 않았다.
가슴 한편에서 검은 불안감이 가르시아를 엄습했다.
9월 14일 20:38:50 울릉도 동쪽 35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또 쏜 것 같습니다!"
음탐장 최현호 상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함수 소나가 불능인 상태에
서 아까와는 달리 이번에는 미국 원잠쪽으로 함수를 완전히 돌린 상태
여서 측면소나로 탐지하기는 어려웠다. 매우 미약한 또다른 파열음이
미국 어뢰의 추진음 배후에서 들려왔을 뿐이었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경
우의 수는 몇 개 없었다.
"그래. 당연히 놈들이 더 쐈다고 생각해야겠지. 작전관! 어뢰에서 탐
지되는 것은?"
지금 장문휴의 승무원들이 믿을 것은 어뢰의 눈밖에 없었다. SUT 어
뢰의 선단부에는 일반적인 어뢰와 마찬가지로 고정밀 소나가 탑재되어
있다. 이 어뢰는 소나에서 탐지한 목표를 스스로 추적한 다음 자신을
그쪽으로 몰아가도록 일련의 수학적 계산을 수행하는 마이크로 프로세
서가 내장되어있다.
소형컴퓨터라 할 수 있는 SUT의 추적프로세서는 음파의 방향에 따
라 어뢰의 미익쪽에 달린 조정핀을 제어하여 어뢰를 음파의 발생원, 즉
음원으로 유도하게 된다.
여기에 부수적인 유도방법이 유선유도 방법이다. 어뢰의 추적소나가
정밀하긴 하지만 잠수함의 대형소나에 비교하면 탐지능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유선 유도 방식은 일정거리까지 가느다란 케이블
을 통해 어뢰의 유도를 잠수함에서 직접 제어하는 방식을 말한다. 쉽게
말해 전깃줄이 달린 리모트 컨트롤로 유도하는 것이다.
장문휴함이 사용하는 SUT Mod 2 어뢰에는 여기에 덧붙여 특별한
기능이 있다. 그것은 바로 어뢰에서 탐지한 정보를 장문휴함의 공격컴
퓨터로 피드백하여 새로운 정보와 시간적 오차를 보정할 수 있는 것이
다. 어느 한쪽만의 유도가 아니고 쌍방향으로 정보가 흐르는 데이터 링
크 어뢰인 셈이다.
"1, 2번 어뢰! 패시브 모드에서 놈들 어뢰를 탐지했습니다. 거리 3km
입니다! 접근속도 시속 100노트!"
어뢰 요격을 담당한 김승민 대위가 바짝 긴장해 외쳤다. 그의 목소리
가 군기가 잔뜩 든 신병보다 컸다는 것도, 사령실이 김승민의 목소리
때문에 쩌렁쩌렁 울리고 있는 것도 지금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부함장
진종훈 소령이 여차하면 꿇어앉아 기도할 것처럼 김승민 대위의 일거수
일투족에 매달렸다.
"좋아! 액티브 모드에서 확실히 잡는다. 제발 거리 산정을 잘 해야
돼!"
"문제 없습니다!"
김승민 대위가 대답했지만 자신을 북돋우려는 의지일 뿐이었다. 미국
잠수함이 발사한 Mk 48 어뢰가 시속 60노트, 장문휴가 발사한 SUT 어
뢰가 35노트의 최고속도에 다다르자 양쪽이 가까워지는 접근속도는 무
려 100노트에 이르렀다.
20노트 이상의 속도는 수중이던 수상이던 고속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그런데 100노트라면 특히 수중에서는 엄청난 속도이며, 김승민의 속도
감각을 잃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수중에서 음파의 속도가 초당 1,500m인데, 지금 어뢰는 초당 50미터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웬만한 승용차의 최고속도와 다름없었다.
김승민 대위가 미국 어뢰를 탐지했다고 해도 탐지에 사용된 그 음파
는 2초 전의 음파였다. 지금과 같은 거리에서는 2초의 시간에 어뢰는
100미터쯤 더 가까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음파의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음파로 탐지한 상대방은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 불확정한 공간
에 있게 된다.
이런 경우에 대비한 훈련을 받아보지 않은 김숭민 대위가 온 신경을
집중해도 쉽게 계산될 수는 없었다. 어릴 적에 제트전투기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그 위를 쳐다보았을 때 비행기를 찾을 수 없었던 당혹감이
떠올랐다.
그때는 눈을 통해서 빛이라는 또다른 탐지매체를 이용할 수 있었지
만, 반대로 빛을 이용한 탐지의 경우에도 문제는 드러난다. 지구에서 1
만 광년 떨어진 거리에서 발생한 별의 폭발을 관측했을 때, 실제 그 사
건은 1만년 전의 일이 된다. 그동안의 별의 움직임이나 운명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영역인 것이다. 음파도 똑같았다. 김승민 대위는 귀로만 모
든 것을 알 수밖에 없는 잠수함이 갑자기 굉장히 답답하게 느껴졌다.
"거리 2,000미터! 액티브 탐신 시작합니다!"
잠시 혼란에 빠졌던 김승민 대위는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결정의 시간
이 다가오고 있음을 명료하게 느낄 수 있었다. SUT 어뢰의 소나에서
지향성 탐신음이 쏘아진 다음 음파가 상대방의 어뢰에 부딪혀 되돌아오
자 상태는 더욱 확실해졌다. 음파가 미국 어뢰에 맞고 돌아오는 간격이
점점 짧아지자 김승민은 몸 속의 아드레날린이 광천수처럼 샘솟는 것
같았다.
"기폭장치는 수동으로 조작한다. 어뢰를 믿을 수는 없다. 200kg짜리
고폭약 두 방이면 확실한 충격을 줄 수 있다. 작전관, 알겠나?"
"예! 물론입니다."
진종훈 소령이 수동폭발을 요구했고 김승민도 공감했다. 유선으로 자
세한 데이터가 전달되는 상황에서 어뢰의 추적프로세서가 오작동을 하
거나 오판을 할 수도 있었다. 사람이 직접 폭발 시키는 것이 안전했다.
김승민 대위는 스톱워치를 꺼내서 시간을 재기 시작했다.
"상대거리 1700 1650 1600미터"
손에 진땀이 베어나와 김승민의 손아귀에 들어있던 스톱워치가 신경
쓰일 정도로 미끌거렸다.
9월 14일 20:39:30 울릉도 동쪽 23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La Jolla), 사령실
둔중한 LA급 공격원잠 라 호야가 180도로 완전히 방향을 바꾸는데는
비교적 많은 시간이 걸렸다. 선체 폭에 비해 길이가 매우 긴 편에 속하
는 LA급은 수중고속성에서는 탁월하나 기동성은 비교적 떨어지는 편이
었다. 회전을 마치고 최대속도로 가속하면서 함미의 종횡타에서 무엇인
가 빠져나왔다.
횡방향으로 연결된 수평타의 끝부분에 장착된 디스펜서, 즉 예인소나
배출기를 통해서 TB-16 예인소나가 느린 속도로 배출되고 있었다. 시
속 30노트를 약간 넘는 고속으로 최대 항주를 할 경우 예인소나의 효율
도 상당히 떨어진다. 주위 물살의 흐름이 소음과 진동을 일으키고 민감
한 소나 트랜스듀서의 작동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효율은 좋지 않지만 가능합니다. 아직 스크루 프로펠러와 가까운
거리라 우리의 캐비테이션 노이즈가 상당히 큽니다."
소나를 담당한 로키 중사가 아직은 어렵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아
직은 예인 소나가 적절한 거리까지 빠져나가지 못했다.
"속도 30노트입니다."
9월 14일 20:39:50 울릉도 동쪽 35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어뢰접근! 거리 600미터, 550 500미터"
김승민 대위가 어뢰의 기폭스위치에 손가락을 얹은 채로 스톱워치와
전투시스템으로 표시되는 어뢰의 탐지장치에 집중했다.
"거리 400미터 350미터"
김승민 대위는 양쪽에서 접근하는 어뢰의 사이가 점점 가까워지자 입
속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주위에 서있던 진종훈 소령이나 다른 승무
원들도 똑 같았다. 최현호 상사는 슬그머니 헤드셋을 벗어내렸다. 어뢰
의 자체탐지 모드를 직접 연결해서 듣고 있었으나 가까워지면서 소리가
너무 커졌기 때문이다. 이제 몇초 후면 엄청난 소리가 들려올 순간이었
다.
"접근거리, 200 150"
"작전관님! 어뢰를 패싱 시키십시오!"
"어뢰 패싱! 통과시킵니다!"
옆에서 라 호야를 공격할 어뢰를 조작하던 강인현 대위가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순간 화들짝 놀라며 기폭스위치에서 손을 떼며 김승민
대위가 복창했다. 김승민은 엉겁결에 손을 뗐으나 그 목소리의 주인이
부함장이 아니라 음탐관 강인현 대위였다는 것을 깨닫고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뭐야! 왜 그래?"
얼굴이 새파래진 진종훈 소령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이미
어뢰는 접근거리는 50미터에도 미치지 않은 상태였다. 당황한 김승민
대위는 기폭 스위치에 다시 손을 가져갈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잠시
머뭇거린 김숭민 대위가 허겁지겁 다시 손을 얹었을 때는 이미 어뢰들
이 맹렬한 소리를 내며 교차한 다음이었다.
부함장 등이 입만 벌리고 비명도 지르지 못할 때 강인현 대위가 나섰
다. 강인현은 아연하여 말도 못하고 서있는 부함장에게 빠르게 말문을
열었다.
"부장님! 1, 2번 어뢰를 패싱시켜 놈들을 추적해야합니다. 1, 2번 어뢰
가 먼저 폭발하게 되면 뒤에 있는 3, 4, 5번 어뢰가 폭발 잔해에 부딪혀
센서가 손상받을 위험이 있습니다. 그보다도 문제는, 뒤쳐진 3, 4, 5번
어뢰가 목표를 쫓아가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놈들이 최고속도
로 도주하면 어차피 우리 어뢰는 따라잡기가 어렵습니다. 부장님! 시간
은 충분히 있습니다. 지금 1, 2번 어뢰를 앞으로 내보내면 놈들을 확실
히 잡을 수 있습니다. 놈들 잠수함의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젠장! 좋아! 3, 4, 5번을 요격에 할당한다. 이번엔 강인현 네가 맡아
라! 확실히 해야 한다."
멋대로 하라는 뜻이었다. 이제는 강인현 대위에게 제재를 가한다고
해서 미국 어뢰가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은 아니었다. 강인현이 김승민에
게 큰 소리로 외쳤다. 거의 얼이 빠져있던 김승민이 간신히 정신을 차
렸다.
"작전관님! 1, 2번 어뢰를 그대로 직진시켜 놈들 꼬리로 접근시켜 주
십시오. 놈들한테 최대한 접근할 때까지 3, 4, 5번의 속도를 늦추겠습니
다. 일단 3, 4, 5번 어뢰가 폭발하면 1, 2번 어뢰의 유선 유도케이블이
끊어지게 될 겁니다. 케이블이 끊어지면 바로 자동무선유도로 넘어가도
록 세팅해 주십시오. 그러면 됩니다. 해치울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이르자 강인현의 목소리가 최대한 커졌다. 평소에 샌님같던
강인현 대위에게서 나온 소리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강인현이 이를 악물었다. 그는 자신이 결정한 것이 정확하게 옳은지
검증할 틈이 없었다. 빠르게 접근하는 양쪽의 어뢰사이에서 차분히 검
토한다는 것이 오히려 불가능했다.
한편으로는 불가능한 공격이라고 판명된 후에는 도저히 수습할 수 없
을 것이기 때문에 다시 생각하는 것이 겁이 났다. 강인현이 다시 조작
에 몰두했다. 부함장과 작전관, 그리고 다른 승무원들을 볼 엄두가 나지
ㅇ았다.
"3, 4, 5번 어뢰, 24노트로 감속합니다!"
진종훈 소령은 침착해 보이는 강인현이 놀랍다고 생각했다. 조금 전
까지 진종훈 소령이 느꼈던 감정은 절망에 가까웠다. 그가 기댈 수 있
는 함장의 존재가 있었을 때 자신의 모습과, 자신의 어깨에 모든 중압
감이 얹어졌을 때 너무 달랐다고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함장은 만들
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다는 말도 안되는 상념이 그의 머릿속을 뒤
흔들었다.
"3, 4, 5번 어뢰, 목표 탐지했습니다."
강인현 대위는 장문휴가 발사한 어뢰와 상대 어뢰와의 거리 및 속도
를 다시 점검했다. 이제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때 김승민 대위가
비명을 질렀다.
"이런! 부장님! 1, 2번 어뢰가 놈들의 제 2격 어뢰를 탐지했습니다! 두
발입니다!"
9월 14일 20:40:15 울릉도 동쪽 21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La Jolla), 사령실
"후방 6시 방향에서 어뢰 2기 탐지! 우리쪽 3, 4번 어뢰에 접근합니
다. 속도 35노트! 거리 1,400미터!"
예인소나를 통해 한국 어뢰를 탐지한 제이 로키 중사가 외쳤다.
"이런! 부함장! 현재 우리 속도는?"
"31노트입니다."
"기관실! 원자로 최고 출력으로. 110퍼센트!"
4노트의 상대속도라면 1분에 124미터씩 꼬리를 잡히게 된다. 12분이
면 라 호야가 어뢰에 따라잡히는 것이다.
독일제 SUT는 Mk 48처럼 화학연료를 사용하는 터빈엔진이 아니고
배터리로 움직이는 모터추진 어뢰이다. 속도가 낮지만 대신 매우 조용
하다. 그 때문에 어뢰가 잠수함 후방 2km까지 접근해서야 발견된 것이
다. TB-16 예인소나를 500미터까지 케이블을 풀어 뒤쪽에 위치했음을
고려하면 1km거리에서 발견한 셈이다.
SUT 어뢰가 최고속도시 사정거리는 12km이다. 한국이 신형 Mod 2
어뢰를 사용한다고 하지만 가르시아 중령은 최대 사거리가 15km를 넘
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12분만 버티면 한국 어뢰의 사정거리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배터리가 소진된 SUT 어뢰는 더 이상 따라올 수 없을 것이다. 아슬아
슬한 시간이었다. 가르시아 중령은 확신할 수 없다고 느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지금 상황에서는 마냥 도망가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전혀 없
다는 것도 절감해야 했다.
9월 14일 20:41:23 울릉도 동쪽 34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1, 2번 어뢰. 놈들의 3, 4번 어뢰를 지나쳤습니다. 놈들 잠수함을 거
리 1,300미터까지 따라잡았습니다."
김승민 대위가 부함장에게 보고하자 강인현 대위가 스톱워치를 살폈
다. 아슬아슬한 거리였다. 자칫 사정거리에 다달아 배터리가 소진된다
면 SUT 어뢰는 바닷속으로 맥주병처럼 가라앉게 될 것이다.
"5번 어뢰를 가속시키겠습니다. 놈들의 2격 어뢰에 시간을 맞추겠습
니다. 3, 4번 어뢰, 24노트. 현재 속도 유지합니다."
강인현이 불쑥 보고만 하고나서 부함장의 허가를 기다리지도 않고 직
접 어뢰콘트롤 시스템을 조작했다.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도 정확
히 몰랐다. 직감이 그의 행동을 빠르게 만들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앞에 접근하는 적의 1, 2번 어뢰를 장문휴함에서
발사한 3, 4번 어뢰가 요격하고 적의 3, 4번 어뢰는 이쪽 5번 어뢰로 요
격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현재 상태에서 앞에 다가와 있는 1, 2번 어뢰를 먼저 기폭시키면 5번
어뢰의 유도케이블이 끊어진다. 그러면 자칫 5번 어뢰가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다분했다. 당연히 두 곳의 어뢰 4발을 동시에 요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배터리로 추진되는 SUT 어뢰는 내부 배터리의 연결방식을 제어함으
로써 속도를 순차적으로 조절할 수 있었다. 강인현이 정신없이 컨트롤
시스템을 조작하며 다시 3, 4번 어뢰의 속도를 더욱 줄였다.
"접근합니다! 3, 4번 어뢰와 적 1, 2번 어뢰의 충돌 예정지점을 포인
크 A로 설정합니다. 5번 어뢰와 적 3, 4번 어뢰의 충돌 예정점을 포인
트 B로 설정하겠습니다. 포인트 A의 접근 거리 500미터! 포인트 B의
접근거리 800미터! 포인트 A로부터 본함과의 거리는 1,600미터!"
강인현이 마지막으로 보고하고 다시 콘솔에 집중했다. 옆에 앉은 김
승민도 1, 2번 어뢰를 유도하기에 정신없는 상태였다. 강인현은 계속 답
답함을 느꼈다. SUT 어뢰의 속도모드 중 최저속도를 선택했으나 3, 4
번 어뢰를 5번 어뢰가 목표에 도달하기 전에 폭발시켜야 할 것이 분명
했다. 지금은 방법이 없었다.
"음탐관! 3, 4번 어뢰의 동력을 순간차단하라!"
"넷?"
부함장의 갑작스런 명령에 무슨 뜻인지 몰라 강인현이 잠시 머뭇거렸
다. 아무리 명령에 죽고 사는 군대라지만 지금은 모두의 목숨이 달린
중요한 순간이었다. 강인현의 손이 조작패널에서 움찔거리자 부함장이
재빨리 설명했다.
"차단하라! 속도모드에서 더 이상 저속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빨리 서
둘러. 4초간 차단한 후 가속시키면 동시에 요격할 수 있다. 젠장 빨리
서둘러!"
"옛! 알겠습니다!"
얼떨떨해있던 강인현이 그 의미를 깨닫고 얼굴이 환해졌다. SUT 자
폭/회수 모드 중에는 동력을 정지시켜 해저로 침강시키는 방법이 있다.
한 발당 가격이 180에서 200만 달러에 이르는 고성능 어뢰를 훈련에 사
용한 다음 재생하여 쓰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다.
강인현이 순간 동력을 차단하자 3, 4번 SUT 어뢰들의 속력이 떨어지
기 시작했다. 액티브 탐신음까지 끊어진 SUT 어뢰는 잠시 스크루가 완
전히 정지했지만 관성에 의해 계속 밀려나갔다. 정확히 4초가 지났다.
"어뢰 동력 가동! 재탐신!"
잠시동안 물 속을 유영하던 SUT 어뢰의 스크루가 다시 맹렬히 회전
했다. SUT 어뢰가 마크 48을 향해 미친 듯이 탐신음을 발했다.
"포인트 A, 접근거리 300 250 부장님! 포인트 B를 맡아주십쇼!"
"기다리고 있었다!"
강인현의 뒤에 서있던 진종훈 소령이 침착하게 어뢰 컨트롤 패널 앞
으로 다가왔다. 그도 어느새 기폭 버튼에 손을 올려놓고 모니터상에서
가까워지는 점들을 노려보았다.
"150 100 50미터 포인트 A 기폭!"
"포인트 B 기폭!"
두 사람이 세 발의 어뢰를 거의 동시에 폭발시켰다. 장문휴함의 전방
1,200미터 물 속에서 거대한 오렌지색 풍선 세 개가 부풀어 올랐다. 암
흑의 바닷속에서 밝게 빛나는 오렌지 색 폭발개스는 곧 수압을 이겨내
지 못하고 오그라들고 한덩어리가 되어 수면 위로 치솟았다.
잠수함전 소설 동해 12. 그림자 떼기 (2)
9월 14일 20:42:02 울릉도 동쪽 19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La Jolla), 소나실
"함장님! 후방에 폭발음입니다! 3회 이어졌습니다. 거리는 현상태로
정확한 거리를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3회의 폭발은 같은 장소가
아닙니다. 반복합니다! 거리가 떨어져 있습니다!"
라 호야의 소나팀장 폴커 스톨츠 대위가 갸웃거리며 보고했다. 잠수
함의 속도가 빨라 예인소나의 성능이 상당히 떨어져 거리를 제대로 파
악하기 어려웠지만, 어뢰가 발사된 방향에서 폭발이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함장님! 뭔가 이상합니다. 1, 2번 어뢰가 목표에 명중하기에는 약간
이른 시간입니다."
스톨츠 대위가 폭발보고를 하자마자 부함장 폴머 소령이 의문을 제기
했다. 스톱워치로 계산한 시간보다 20초 정도 폭발시간이 빨랐다. 한국
잠수함이 어뢰쪽으로 함수를 돌려 상대거리를 줄인 것도 이미 보정하여
계산을 해두었던 터였다.
"그 사이에 놈들이 좀 더 빠르게 접근했을 뿐이야. 결코 마크 48을
피할 수는 없을걸세."
가르시아 중령은 의문을 갖고 싶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는 장문휴
가 발사한 어뢰를 피하는 것만으로도 급급했다. 차근차근 거리를 좁혀
오는 어뢰를 나타내는 두 개의 점이 그에게는 검은 그림자로 보였다.
몸이 떨려왔다.
"어뢰 2발, 계속 접근중입니다. 6시 방향. 거리 650미터!"
"젠장! 겨우 35노트 짜리 어뢰다. 속도를 더 낼 수 없나? 기관실!"
어뢰는 1분에 백미터가 넘게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5분 30초가 남
았다. 5분 30초 동안 SUT 어뢰의 배터리가 떨어져야 했다. 만약 그렇
지 않으면
가르시아 중령은 잔뜩 조바심이 났다. 함장이 기관실을 다시 호출했
지만 기관실에서도 더 이상 들어줄 수 없는 무리한 요구였다. 라 호야
는 지금 낼 수 있는 최고속도로 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9월 14일 20:42:30 울릉도 동쪽 34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부장님! 아직 한 발이 남았습니다! 거리는 젠장! 알 수 없습니다.
가깝습니다!"
"정확히 잡았는데"
측면 소나로 아무리 애써봤자 거리를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최현호
상사는 분통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강인현 대위도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크 48 어뢰의 날카로운 추진음이 선체를 통해 들려오고 있었다. 일
종의 개스터빈 엔진인 마크 48의 추진음을 직접 들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처음 듣는 소리라도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사
령실 내의 모든 승무원들은 일순간에 꽁꽁 얼어붙었다.
"우현 전타. 상승각 최대."
진종훈 소령이 짧고 담담하게 명령을 내렸다. 부함장은 순간적인 판
단으로 잠수함의 아랫쪽으로 피탄하는 것이 나을 지 모른다고 생각했
다. 상부에는 밸러스트 탱크가 있으므로 피탄시에는 부력을 완전히 상
실할 우려가 있었다. 마크 48의 300kg 고폭약에 얻어맞으면 어차피 장
문휴함은 통째로 가루가 되겠지만 그것이 실오라기같은 희망이었다.
"우현 전타! 상승각 최대입니다!"
조함병이 복창하며 조종간을 난폭하게 당기며 오른쪽으로 꺾었다. 그
러나 밸러스트에 손상을 입은 잠수함은 너무 굼뜨게 움직였다. 승무원
들은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이제 마지막이었다.
펌프젯 추진기를 사용하는 마크 48의 날카로운 추진음이 일순간 더욱
높은 톤으로 커지며 다시 낮은 소리로 멀어져갔다. 어뢰가 그냥 스쳐
지나간 것이다!
"그냥 통과했습니다"
최현호 상사가 말이 떨어지지 않는 듯 더듬거렸다. 사령실에 있는 그
누구도 입을 열 수 없었다. 진종훈 소령은 어지러웠다. 갑작스런 안도감
이 극한 긴장감을 몰아내자 몽롱한 기운 때문에 몸을 가누기 어려웠다.
"어쩐지 액티브 탐신음이 안 들린다 했습니다."
강인현 대위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강인현과 진종훈의 마주
친 눈들이 웃고 있었다.
"성하신당의 고혼들이 우릴 지켜주신 것 같다."
몇번 심호흡을 한 진종훈 소령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승무원들은 울
릉도 태하신당의 고혼들이 동해를 굽어보고 있는 장면을 연상했다. 외
로움과 추위에 지쳐 죽은 동남동녀 영령들의 얼굴이 성인봉에 떠올라
미소짓고 있는 것 같았다.
"부장님! 2번 어뢰가 2번 어뢰 유선 유도선이 아직 살아있습니다."
그때 김승민 대위가 침묵을 깼다. 어뢰가 다가오는 위험도 모르고 1,
2번 어뢰의 유선 유도에 열중하던 김승민이었다. 뭔가 울컥 울컥 올라
와 목이 메었다. 엄청난 폭발 충격에도 불구하고 2번 어뢰의 케이블은
절단되지 않았다.
"와이어가 절단된 1번 어뢰는 현재 자동 유도로 전환을 마쳤습니다.
마지막 유도 지점부터 자체 탐신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액티브 모드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2번 어뢰가 이 모든 것을 중계해주고 있습니다. 이
럴 수도 있을까요"
김승민 대위가 강인현을 돌아보았다. 두 사람의 눈가에 촉촉한 물기
가 어렸다.
9월 14일 20:45:05 울릉도 동쪽 17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La Jolla), 사령실
"디코이(decoy) 발사 준비! 잠항관! 발사와 동시에 좌현 전타, 업트림
20도로 빠져나간다. 대기하라!"
"예! 준비됐습니다!"
가르시아 중령는 한국 잠수함이 발사한 어뢰를 충분히 따돌릴 수 있
다고 생각했다. LA급 공격원잠은 사령탑 뒤쪽에 6인치(127mm) 구경의
어뢰기만체 발사장치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곳은 의무실이었다. 의무실 침상 윗쪽으로 비스듬
히 연결된 발사관은 함의 후방쪽으로 발사되도록 장착되었다. 쏘고 난
후에 재장전도 의무실에서 하지만, 발사는 사령실에서 직접 통제할 수
있다.
"1, 2번 동시발사!"
"발사!"
"좌현 전타! 업트림 20도!"
사령탑 뒤쪽으로 무게 100파운드의 헤이즐틴(hazeltine)이라 불리는
ADC Mk 4 유인기만체 두 발이 떠올랐다. 헤이즐틴은 꼬리부분에 달린
조그마한 프로펠러에 의해 일정한 심도에 정지했다. 그리고 맹렬히 다
가오는 한국 해군의 SUT 어뢰를 유혹하는 미끼가 되었다. 상대편 어뢰
의 추적장치가 이것을 잠수함으로 오인하도록 강한 음파를 내는 것이
다.
"속도를 줄여야 할까요? 현재와 같은 속도에서는 추진음이 너무 크기
때문에 디코이가 유인에 실패할 지도 모릅니다."
"처음부터 감속하는 것은 위험해. 디코이를 계속 뿌릴 준비를 하고
일단 놈들 어뢰의 반응을 본다."
폴머 소령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함장에게 건의했지만 잠수함의 속
도를 줄였다가 자칫하면 꼬리를 완전히 잡히게 될 우려가 있었다.
"디코이 3, 4번 연속발사합니다!"
모스 대위가 다시 디코이의 발사 버튼을 눌렀다. 또다시 두 발의 헤
이즐틴 디코이가 사령탑 후방에서 치솟았다.
"잡았습니다! 놈들의 어뢰 하나가 2번 디코이를 물었습니다."
"성공입니다! 한 놈 제거!"
예인 소나를 담당한 로키 중사의 표정에서 긴장감이 사라졌다. 거대
한 물거품을 남기고 좌현으로 급속히 꺾이는 라 호야의 후방을 노리던
어뢰 한 발이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그 어뢰는 전속력으로 디코이
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좋아! 함 수평 유지! 의무실! 디코이를 빨리 재장전하라!"
"거리 350미터!"
가르시아는 이제 잠수함을 추적하는 어뢰가 겁나지 않았다. 디코이의
여유분은 많았다. 나머지 하나도 충분히 따돌릴 수 있을 것이다. 예인
소나를 계속 감아 점점 스크루에 가까워지자 소음이 시끄러운 듯 제이
로키 중사가 얼굴을 찡그렸다.
9월 14일 20:45:36 울릉도 동쪽 34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1번 어뢰가 디코이를 물었습니다."
김승민 대위가의 잠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기만책에 대한 대응능
력이 비교적 높은 SUT 어뢰였지만 예상보다 쉽게 떨어져 나갔기 때문
이었다. 1번 어뢰가 기만체를 향해 방향을 틀자 유선유도가 살아있는 2
번 어뢰에서 자세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케이블은 충분하지?"
"그렇습니다. 케이블 길이는 18km입니다. 놈을 지옥까지 쫓아갈 수
있습니다!"
애써 실망감을 감추던 진종훈 소령은 자신도 알지만 확인을 하고 싶
은 질문이었다. 부함장에게 대답한 김승민 대위는 정말 지옥이라도 쫓
아가서 라 호야를 박살내고 싶었다. 마지막 남은 한 발의 어뢰에 모든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
"디코이를 또 뿌렸습니다. 여섯 발째입니다."
"그래. 쪼다들 암만 뿌려봐라. 우리는 안속는다."
나머지 한 발, 2번 SUT 어뢰에서 모든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기만
체를 나타내는 몇 개의 휘점이 반짝거렸으나 그것이 어뢰의 추적 프로
세서를 속일 수는 있을 지언정 김승민 대위와 다른 요원들, 인간의 머
리를 속일 수는 없었다.
"이번에는 모스입니다. 저놈들, 별짓 다하는군요."
김승민 대위가 느긋하게 보고했다. LA급 잠수함과 거의 비슷한 소음
을 발하는 모스 기만어뢰가 급격히 선회하는 라 호야 대신 직선으로 달
려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유선유도를 하는 김승민이 모스에 속을 리가
없었다.
장문휴의 어뢰발사관 안쪽 해치에 결합된 SUT 어뢰의 케이블 윈치
에서 눈에 보일 듯 말 듯 가느다란 광섬유 케이블이 엄청난 속도로 풀
려나가고 있었다.
9월 14일 20:46:23 울릉도 동쪽 16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La Jolla), 사령실
"6번 디코이에도 속지 않았습니다. 젠장!"
"7, 8번 디코이 재장전 되는대로 발사한다. 이번에는 우현으로 빠져나
간다. 발사와 동시에 우현 전타. 다운 트림 20도!"
하지만 7, 8번 디코이의 발사가능 상태를 알려주는 표시등이 켜지지
않았다. 다급해진 폴머 소령이 잽싸게 마이크를 집어들었다.
-의무실! 뭐해? 7, 8번 디코이가 왜 아직도 장전되지 않은 거야! 서둘
러!
사령실에서 고함치는 명령이 의무실의 스피커를 울렸다. 그러나 이곳
에서도 상황은 순조롭지 않았다. 의무실에 들어간 승무원들이 일단 디
코이를 사출한 발사관의 외부 해치를 잠그자마자 내부의 폐쇄해치를 열
어 제꼈다.
안쪽에 차있던 물이 밑으로 쏟아졌다. 염도가 높은 바닷물이 순식간
에 수병들과 재장진하려던 새로운 디코이 위로 떨어져서 물벼락을 맞았
다. 바닥에는 지금까지 발사한 디코이 숫자를 말해주듯 물이 가득 차있
었다.
방수 처리는 물론 수압을 이겨내도록 견고하게 만들어진 디코이였다.
두 명이 서둘러 옆에 있던 시트 조각으로 대충 닦은 다음 잽싸게 발사
관 안쪽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나서 사령실로 통하는 마이크로폰을
집어들었다.
- 재장전 완료했습니다.
전전긍긍하던 폴머 소령에게 의무실로부터 연락이 오자 바로 발사 버
튼을 눌렀다.
"발사했습니다!"
"우현 전타! 다운트림 20도!"
다시 라 호야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며 바닷속을 향해 쇄도해들어갔
다.
"어뢰가 7, 8번 디코이도 그냥 스쳐 지나갑니다. 이런!"
"디코이 계속 사출해! 떼어 버려!"
토마스 가르시아 중령의 목소리가 절규에 가까워졌다. 끝까지 따라오
는 어뢰에 눈이 달린 것 같았다. 끔찍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어렸을 적에 토마스는 저녁 무렵에 길게 늘어진 자기 그림자에 놀랐
다. 가만 있었는데도 그림자가 조금씩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 낯선 그
림자는 토마스에게 뭔가 말하려는 것 같기도 했다. 낮에 본 평소의 그
림자가 절대 아니었다.
겁이 난 토마스는 있는 힘껏 집을 향해 뛰었다. 그림자는 계속 토마
스를 따라왔다. 불이 밝혀진 주변 집들이, 차도를 달리는 자동차가 희미
한 배경으로만 보였다.
그림자는 토마스가 천천히 뛰면 천천히, 빨리 뛰면 빨리 쫓아왔다. 도
저히 떨쳐버릴 수 없었다. 기진맥진하여 집에 도착해 확인해 보니, 그
그림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의 그림자로 돌아가 있었다. 그러나 토
마스는 그림자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어린 토마스는 한동안 혼
자 있는 법이 없었다.
9월 14일 20:46:55 울릉도 동쪽 34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2번 어뢰, 100미터까지 따라붙었습니다. 속도 35노트, 아직 속도는 떨
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7, 8번 디코이 회피했습니다. 놈들이 계속 뿌리고 있습니다. 9, 10번
디코이가 다시 사출됐습니다!"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디코이를 사출하고 라 호야가 연속 변침했
지만 그 족적을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사정거리 한계
까지 다다르는 SUT의 배터리 능력이었다.
이제 마지막 1분이었다. 혹시 유선유도선이 절단되는 수도 있었다.
100미터 거리에서 어뢰가 디코이에 기만당할 확률은 적었지만 그것은
미지수였다. 한 발이 실패하면 더 이상은 불가능했다.
장문휴가 장비한 어뢰는 이제 거의 다 떨어졌다. 이미 사용한 숫자가
너무 많았다. 아직도 남은 두 발이 있었지만, 이 거리에서 쏘아 봤자 따
라잡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어뢰실은 지금 침수상태였다. 어뢰실에서는 승무원들이 악착
같이 더 이상의 침수를 막고 있었지만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는 어뢰를 재장전하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사실상 이번에 발사
한 것이 마지막 어뢰였다.
"거리, 70미터"
김승민 대위가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사람이 뛰어도 10초면 충분히
주파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어뢰는 그보다도 느린 속도로 잠수함
에 접근하고 있었다. 마치 속보로 걸어가는 정도로 느껴질 뿐이었다. 전
동식 SUT 어뢰에 비해 핵잠수함은 너무 빨랐다. 김승민이 마른 침을
계속 집어삼켰다.
"거리, 50미터입니다."
9월 14일 20:47:34 울릉도 동쪽 16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La Jolla), 사령실
"거리 30미터"
폴머 소령이 나직히 보고하며 가르시아 중령의 얼굴을 살폈다. 낯빛
이 구리빛으로 바뀐 가르시아는 표정이 완전히 굳어진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20미터 입니다."
"직접 사람이 타고 조종하는 것 같군."
"예? 함장님?"
"놈이 살아있는 것 같아. 유선 유도겠지. 아니라면 이렇게 디코이에
속지 않을 리가 없는데"
가르시아 중령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벼랑끝에 서있는 사람처럼 목
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폴머는 그런 가르시아의 얼굴을 보면서 차라리
자신은 담담해지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폴머 소령이 장교로 임용되기 전, 초급 훈련 시절이었다. 육체적 한계
를 오르내리는 강도높은 훈련 속에서 그는 그냥 울며 주저않고 싶은 충
동을 쉴 새 없이 느꼈다. 그런 갈등 속에서 자신을 추스를 수 있었던
것은 수치심이나 의지가 아니였다.
바로 옆 동료의 표정에서 절망스런 고통을 읽고나서야 그는 오히려
힘이 났다. 자신이 동료보다 고통에서 한 자락이나마 뒤쳐져 있다는 것
만으로도 위안과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 가르시아를 돌아보는 폴머
소령의 마음은 그때와 똑같았다. 그러나 폴머의 상념은 오래갈 수 없었
다.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시간은 더 이상 주어지지 않았다.
"거리 10미터"
"완전히 졌군."
들릴락 말락 가르시아의 탄식이 입에서 새나왔다. 그리고 몇 초후 거
대한 충격파가 가르시아 중령의 가슴으로 직접 밀어닥쳤다. 함장은 충
격으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
다.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에서 발사한 SUT 어뢰는 정확하게 라 호야
의 스크루 뒤쪽 2미터 지점에서 폭발했다. 260kg짜리 고폭약이 만들어
낸 폭발개스는 지상에서 터지는 인마살상용의 고폭탄과는 달랐다. 파편
효과를 노린 강철탄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대로의 폭약덩어리였
다.
대기중에서의 폭발은 기체가 충격파를 흡수하면서 다시 폭풍의 형태
로 막대한 운동에너지를 동반하는데, 수중에서는 정도가 훨씬 더 심하
다. 밀도가 공기보다 훨씬 높은 물은 지상에서의 폭풍반경보다는 위력
범위가 더 짧지만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수압과 물이 만들어 낸 폭풍효
과는 수십배로 증폭된다.
구부러진 갈고리 형상으로 생긴 라 호야의 스크루는 청동으로 만들어
졌고 날개가 일곱 개인 7엽 스큐드 프로펠러(skewed propeller)였다. 컴
퓨터로 제어되는 고성능 다축 밀링머신으로 정교하게 제작된 프로펠러
바로 뒤에서 어뢰가 터지자 고열과 폭풍으로 스크루는 형체도 없이 찢
겨져 녹은 다음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거센 폭풍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스크루로 이어지는 메인 샤프트
가 찌그러지면서 샤프트와 내압선체의 사이, 수밀부에 커다란 구멍을
낸 다음 기관실로 이어지는 후방구획 전체를 일그러뜨렸다.
9월 14일 20:48 울릉도 동쪽 33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명중했습니다."
김승민 대위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2번 어뢰가 폭발하자 어뢰와 연결
된 모니터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라 호야가 찌그러지는 소리를 들
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함수소나가 없는 상태에서는 무리였다. 마지막
순간 숨을 죽이고 있던 사령실 승무원들이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기 시
작했다.
"그래. 잡았어."
진종훈 소령도 나직하게 소감을 말했을 뿐이었다. 장문휴의 승무원들
이 정신없이 만세를 부르거나 승리 분위기에 도취된 것은 아니었다. 안
도감만 조금 들었을 뿐, 승무원들은 걱정이 더 앞섰다.
지금은 잘못하면 미국이나 일본과 전쟁이 날 수도 있는, 극단적인 긴
장상태였다. 장문휴함은 외국 잠수함들의 도발에 맞서 당연히 자위권을
발동했을 뿐이지만 상대가 상대이니 만큼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
지만 승무원들은 누구도 그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근처에 잠수함이 또 있을 거다. 아까 일본 잠수함 한 척이 있었지?
분명히 한 척 더 있을테니 음탐반은 주의하도록. 작전관! 난 함장님을
뵈러 가겠다."
말을 마친 진종훈 소령이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았다. 조함권을 김승
민 대위에게 건넨 진종훈이 의무실을 향했다. 승무원들과 같이 있어도
외로운 느낌이 들었다.
진종훈은 함장의 존재가 그 어느 때보다 아쉬웠다. 서승원 중령이라
면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해류와
해저지형을 잘 이용해 이런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지휘했을 것이다. 진
종훈은 지금도 함장의 능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지금까지 자신이 지
휘를 잘했는지 아닌지조차 감을 잡을 수 없었다.
9월 14일 20:49 울릉도 동쪽 16km
미 해군 공격원잠 SSN-701 라 호야(La Jolla), 사령실
"으 전방 밸러스트 탱크, 완전 배수합니다"
부함장 폴머 소령이 신음을 내면서 밸러스트 탱크를 조작했다. 거센
충격으로 소나 콘솔에 부딪힌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주전원이 차
단되고 보조동력용 배터리에서 전원이 공급되었지만 사령실은 상당히
어두웠다.
사령실 곳곳에 쓰러진 승무원들이 비명과 신음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
지만 폴머 소령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후방 기관실 전 구역이 침수
된 것 같았다. 무게 중심을 이기지 못한 라 호야가 뒤쪽으로 급격히 기
울고 있었다.
다행히 전방 밸러스트 탱크는 아직 작동하는 것 같았다. 압축공기의
분출음이 들리며 탱크 안에 있던 물을 밀어내는 소리가 들렸다. 부함장
폴머 소령이 함장 전용 마이크를 켰지만 불통이었다. 서둘러 다른 마이
크를 잡았지만 마찬가지였다.
마이크를 내던진 폴머 소령이 주위를 다시 돌아보았다. 가르시아 중
령은 얼굴을 정면으로 부딪힌 듯 코와 입술이 피투성이었다. 폴머 소령
이 45도쯤 경사가 지고 아직도 계속 기울고 있는 바닥을 기어 함장에게
다가갔다. 폴머 소령이 정신을 잃은 함장을 간신히 반쯤 일으켰다.
심도 150미터까지 올라가야 해치를 열고 승무원들이 비상탈출할 수
있었다. 그 이하의 심도에서 탈출을 시도했다가는 수압으로 인해 생존
이 거의 불가능했다.
폴머는 공기가 분출되는 소리를 들으며 가르시아를 껴안은 채 심도계
를 올려보았다. 침강속도가 느려지고 있었지만 아직 멈추지 않았다. 전
방 밸러스트 탱크를 공기가 거의 다 채웠다. 함수 부분은 물 위로 떠오
르려 하고 함미쪽은 가라앉으려 했지만 가라앉으려는 힘이 더 강했다.
잠수함은 함수 부분이 수직에 가깝게 서고 있었다.
밸러스트 탱크로 주입되는 공기의 분출음이 일순간 멈췄다. 바닷물이
완전히 배수된 것이다. 폴머는 간절한 눈으로 심도계를 노려보았으나
오른쪽으로 기울던 바늘은 멈추지 않았다. 속도만 느려졌을 뿐이었다.
"압궤 "
조용히 혼잣말을 하고 난 다음 폴머는 이마의 피를 닦아냈다. 가르시
아 중령은 아직도 의식 불명이었다. 압궤는 선체가 수압을 견디지 못하
고 찌그러지는 것을 뜻한다. 폴머는 문득 기관실에서 형체도 없이 즉사
했을 부하들이 부럽게 느껴졌다.
일단 압궤심도에 들어가면 고장력강으로 만들어진 라 호야의 주선체
는 압력에 이기려고 거센 저항을 하지만 결국 연결부위에 커다란 파공
이 나며 침수가 시작된다. 선체에 물이 들어차면 내부압력과 외부의 압
력이 동일해지므로 어느 순간에 라 호야는 더 이상 찌그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잠수함 내부에 탄 승무원들이 모두 죽은 후의 이야기였
다.
"함장님. 익사가 좋겠습니까? 아니면 수압으로 압사하는게 좋겠습니
까?"
폴머는 가르시아 중령에게 질문을 했다. 들릴 리가 없었다. 폴머는 그
나마 산소가 떨어져 질식사하는 것보다는 좋다고 생각했다. 잠시 천천
히 움직이던 심도계의 바늘이 다시 빨라지고 있었다.
잠수함전 소설 동해 12. 그림자 떼기 (3)
9월 14일 20:52 울릉도 남동쪽 22km
미 해군 순양함 CG-62 챈슬러즈빌, 전투정보센터
"라 호야가 계속 침강하고 있습니다. 이곳 해저지형은"
소나로 라 호야를 추적하던 센터 대위가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라
호야가 어뢰에 명중당할 때부터 묵묵히 서있던 함장이 간신을 입술을
떼었다.
"그래. 수심이 2,000야드가 넘어. 하지만 다행히 대륙사면에 걸치기라
도 한다면"
사이먼 대령은 이번 작전에 심해구난용 잠수정을 붙여주지 않은 사
령부가 원망스러웠다. 미스틱(Mystic)급 심해구난정은 수심 1500미터까
지 잠항할 수 있다. 중량은 겨우 37톤, 미 공군의 전략수송기 C-5A나
C-17 글로브매스터(Globemaster)라면 미스틱급 구난정을 지구촌 어느
곳이든 단번에 공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라 호야가 2,000미터 이상 내
려가버리면 구난도 불가능할 뿐더러 승무원들이 생존할 가능성도 없다.
"계속 내려가고 있습니다. 심도 550야드 압궤가 시작됐습니다."
라 호야의 심도가 계속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안전잠항심도를 넘어
최대잠항심도에 다다르자 라 호야의 선체 이곳저곳에서 금속성 소음이
날카롭게 울려퍼졌다. 각각의 내압구획이 합창하듯 서로 다른 톤의 괴
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귀를 기울이던 소나팀 요원들, 팀장 센터 대위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
졌다. 압궤가 계속 진행하면 어느 순간 선체의 내벽과 외판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심하게 뒤틀리면서 파열한다. 그리고 파열한 다음에는
강한 수압으로 물이 내부로 침수한다.
비틀리는 소리가 점점 거세지자 센터 대위는 조용히 헤드폰을 벗어내
렸다. 금속성 압궤음의 한쪽에서 승무원 누군가가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압궤의 최종순간, 내부의 공기가 모두 빠져나오고 바닷물이 들어차서
내부의 압력이 바깥 수압과 동일해지면 더 이상 압궤는 진행되지 않는
다. 잠수함을 찌그러뜨리던 수압은 그것으로 더 이상 선체에 압력을 가
하지 않는다. 대신 내부에 들어차있던 밀폐된 용기들을 찌그러 뜨리기
시작한다.
그것에는 인간의 신체도 포함된다. 사람의 복강()은 대기압에서
균형을 이루도록 내복부에서 바깥으로 미는 압력이 대기압과 동등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수십기압으로 수압이 높아지면 균형이 무너지고 순식
간에 찌그러들게 된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지는 일이라 곧 이어지는 신
체의 다른 부분까지 찌그러지는 것을 세밀하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내부의 물체들에 미치던 수압이 어느 순간 평형을 이뤄 멈추게
되고, 잠수함은 다시 평온을 찾게 된다.
"다 끝났습니다."
센터 대위가 허탈한 듯 멍하게 앉아 있었다.
"장문휴는 우리가 잡는다."
라 호야의 최후를 침착하게 지켜본 사이먼 대령의 눈가가 파르르 떨
렸다. 함내에 침묵이 이어졌다. 승무원들은 함장의 결단이 나중에 미칠
영향이 두려웠다. 한국이 아무리 약소국이라도 가만 있지는 않을 것이
다. 어떻게든 상황이 대충 평정된 다음에는 챈슬러즈빌의 사관과 승무
원들이 군법회의에 불려다니고, 함장을 포함한 몇몇은 법정에 설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승무원들은 이제 한국 잠수함들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당장
에, 장문휴를 격침시키기도 전에 챈슬러즈빌이 먼저 당할 우려가 있었
다. 4개국 잠수함 8척의 공격에도 살아남은 장문휴였다. 게다가 그중에
두 척은 미국이 자랑하는 LA급 공격원잠이었다. 환동해훈련에서 장문
휴가 활약하는 것을 두려움에 떨며 지켜본 승무원들은 패할 것이 뻔한
전투에 참가한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함장님. 수상함정에서의 공격은 어렵습니다. 애스록을 발사하면 당장
에 한국 해군이 눈치 챕니다. 아직까지는 모든게 명확하지 않은 상태입
니다. 다시 한 번 재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필요없어! 해상자위대 놈들이 한국함정들을 계속 잡아주기만 하면
된다. 우리가 직접 장문휴를 쫓아가서 해치운다."
부함장 길머 소령이 조심스럽게 반론을 제기했지만 사이먼은 한국 해
군은 안중에 들어오지 않았다.
"고속정들까지 봉쇄할 수는 없습니다.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경고하고 계속 따라오면 위협사격을 가한다."
"이들이 만약 불응하면 어떻게 합니까?"
"죽여버린다!"
사이먼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던진 마지막 한 마디에 길머 소령은
더 이상 이야기할 수 없었다.
9월 14일 20:58 울릉도 동쪽 19km
한국해군 코르벳 여수함, 함교
"부장님! 저게 뭡니까? 골 때리게 생긴 헬리콥터인데요."
쌍안경으로 여수함 주변을 관측하던 김준환 중위가 저고도로 접근하
는 대형 헬리콥터를 발견하고 손천민 소령을 불렀다.
바다에는 거친 파도 위로 각종 수상전투함들과 고속정의 불빛이 달리
고, 하늘에는 대잠초계기와 헬기들이 날아다녔다. 이들은 국가별로 뒤섞
여 서로의 함정과 군용기를 향해 위협하듯 서치라이트로 비춰댔다.
이들 전투함이나 초계기는 각기 다른 나라 소속이라도 형태가 거의
비슷했다. 미국에서 공여받은 것도 있고, 미국 해군의 설계를 받아 라이
센스 생산한 것도 있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이 사용하는 초계기 오라이
언은 미국 록히드사 제품이었다. 이들이 대치하는 해역 사이에 전혀 이
질적인 헬기가 나타난 것이다.
챈슬러즈빌에 다가가는 헬리콥터는 주 로터(rotar)가 2단으로 서로 반
대방향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꼬리부분에 테일(tail) 로터도 없는 특이한
헬리콥터는 김준환이 이제껏 봐왔던 헬리콥터와는 전혀 달랐다.
"러시아 놈들이야. 카모프 27이다."
손천민 소령이 쌍안경을 내리며 말했다. Ka-27, 나토 코드 헬릭스
(Helix)라는 이름을 가진 러시아의 주력 대잠헬리콥터였다. 함대주변을
겹겹히 에워싼 전투함과 상공을 선회하는 오라이언들을 아랑곳 하지 않
고 3대나 날아온 헬릭스 대잠헬기들은 마치 경찰헬리콥터가 범인들을
수색하듯이 이곳 저곳에 서치라이트를 비추고 있었다.
"깡다구도 좋은 놈들이구만 이제 로스케 배들이 당도할 시간이다."
손천민 소령이 시계를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고속으로 접근하는 러
시아 함대에 대한 경보가 이미 한국 해군 오라이언으로부터 전달되었던
것이다.
"부장님! 저기 보입니다."
김준환이 손으로 북쪽방향을 가리켜고 다시 쌍안경을 집어들었다. 수
평선위로 조그맣게 보이던 마스트가 점점 커지면서, 곧 함정의 윤곽이
드러났다. 거리가 멀고 어두웠지만 엄청나게 거대한 전투함이라는 것은
누가 봐도 분명했다. 거친 파도에도 불구하고 요동이 없고 움직임도 민
첩한 편이었다.
"대단히 큰 놈같은데요."
"그래 키로프급 같아."
수평선위로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거함은 여덟척에 가까운 동반함정
과 함께 위풍당당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시속 30노트가 넘는 최고속도
로 달려오는 거함은 러시아의 핵추진 순양함, 표트르 벨리키(Pyotr
Velikiy)였다. 러시아의 위대한 차르, 피터 대제라는 함명을 가진 그 함
정은 러시아 태평양 함대의 최대 거함이었다.
9월 14일 21:05 울릉도 남동쪽 26km
미 해군 순양함 CG-62 챈슬러즈빌, 전투정보센터
- 함장님. 표트르 벨리키에서 점멸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내용은
움직이지 말랍니다.
"뭐야? 러시아 돼지새끼들이 감히! 기다려! 내가 함교로 직접 올라가
겠다."
사이먼은 기가 막히는지 코웃음을 치면서 함교로 올라갔다.
"대체 뭐라는 거야?"
사이먼이 직접 점멸신호를 확인하려고 쌍안경을 집어들었다. 표트르
벨리키의 함교에서 명멸하는 불빛을 읽던 사이먼이 가소롭다는 듯이 껄
껄 웃기 시작했다.
"계속 전술행동을 취하면 우리 잠수함을 공격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고? 흥! 지들 잠수함이 남아있기나 한가? 다들 진작 나자빠져 죽은 주
제에"
함장이 러시아 순양함의 경고를 무시하며 혼잣말을 끝내기도 전에 통
신사관이 달려와 보고했다.
"함장님! 센트리에서 보고입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항공기들이 대규
모로 발진했답니다. 선두에 백파이어 6대와 수호이-24 10여 대가 초음
속으로 접근중입니다!"
순간 사이먼 대령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백파이어라니! 미 해군의
가장 큰 가상 적은 러시아 해군이 아니라 미 항모함대를 집단적으로 공
격해 올 것으로 상정된 러시아 해군 항공대였다.
특히 Tu-22M 백파이어는 고속으로 접근해 원거리에서 대함미사일을
날리는, 미 해군 항모함대에 가장 위협적인 적이었다. 미국이 항모에서
발진하는 F-14 전투기같은 함대방공용 요격기들을 보유했음에도 불구
하고 챈슬러즈빌같은 타이컨디로거급 이지스 순양함이 대량으로 필요했
던 것은 이런 대규모 항공공격에 대비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중과
부적이었다.
러시아가 미 해군을 상대로 무력시위를 하겠다고 마음 먹는다면 지금
상태에서는 미 해군이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주한 미 공군이나 주일
미 공군 모두 이곳 해역에는 시간적으로 블라디보스톡에서 출격한 항공
기를 막을 수 없었다.
숫자도 숫자거니와, 미 공군기들이 출격하려면 준비가 필요했다. 긴급
요격태세를 갖춘 전투기 10대 미만이 출격해봤자 러시아의 숫적 우세가
지속될테고, 항공기끼리의 긴장된 대치상태에서는 우발적으로 더 큰 사
고가 날 우려도 있었다. 그러면 전쟁의 시작이었다. 러시아가 구 소련
해체 이후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지만, 아직도 엄청난 숫자의 핵탄두를
보유한 초강국이었다.
그리고 물밑으로 움직이는 잠수함과 달리 항공기들끼리의 우발적인
전투는 숨길 수가 없었다. 주변 각국에서 항공기들의 움직임을 하나하
나 낱낱이 파악하며, 울릉도 상공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손바닥 들여보듯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태확대를 막기 위해 주일, 주한 미 공군은 출격시키지 않기로 했
답니다. 그리고 언론에서 지금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국
방성에 문의가 빗발치고 있답니다."
사이먼 대령은 통신사관의 연이은 보고를 묵묵히 듣기만 했다. 현재
챈슬러즈빌의 진행방향으로 소브레멘니급 구축함 한 척과 우달로이급
구축함 한 척이 빠른 속도로 막아서고 있었다. 사이먼 대령은 주먹을
꽉 쥔 채 이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9월 14일 21:15 울릉도 동쪽 51km
한국 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부장님. 그래도 울릉도쪽에는 아군 전투함들이 있습니다."
미국 함정들에게 봉쇄당해서 장문휴를 구원해 주지 못할 수상전투함
들이지만 그래도 주변에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김승민은 진종훈 소령이 독도쪽으로 고속항주하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이미 어뢰실 요원들 일부는 어뢰실의 침수구획을 막는 것을 포기하고
빠져나온 뒤였다. 강희담 준위를 비롯한 4명이 남아 침수를 막으려고
애썼지만 상황은 더욱 나빠지고 있었다. 암담한 상황이었다.
피격된 함수와 사령탑이 피해를 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장문휴가 속도
를 내면 낼수록 수중저항과 소음이 거세졌다. 게다가 밸러스트 조절능
력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어뢰실의 침수가 늘어나자 함수쪽으로 무게중
심이 이동하고 있었다. 지금은 잠항타를 이용하여 간신히 버티는 중이
었다. 18노트에서 더 이상은 무리였고, 특히 소음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
다.
"작전관. 어떻게든 최무선은 살아야 한다."
진종훈 소령이 한마디 하고 다시 입을 닫았다. 추진장치쪽을 피격당
한 최무선은 아무래도 회피하는 것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진종훈도 빨
리 숨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최무선을 놔두고는 그럴 수 없
었다.
전우애, 동료를 구하겠다는 감정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지는 감정이 아
니었다. 만약 장문휴가 같은 경우를 당했을 때도 최무선이 당연히 그렇
게 선택했을 일이라고 믿었다.
"함장님. 예인소나입니다. 일본 잠수함이 디젤엔진을 가동했습니다."
무수한 전투를 치르면서도 아직 살아남은 예인소나가 아쉬우나마 눈
역할을 해주었다. 디젤엔진 가동음이 들렸다는 것은, 장문휴를 추적하던
일본 잠수함이 수면으로 부상했다는 뜻이었다.
수중항행을 많이 한데다 고속으로 움직이는 장문휴를 따라잡던 일본
잠수함은 배터리가 거의 소진된 모양이었다. 지금과 같은 기상상태에서
잠수함을 수면으로 부상시키는 것은 상당히 부담가는 결정이다. 그러나
잠수함으로서의 역할을 하려면 일본 잠수함은 디젤 엔진 가동을 위해
부상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연료전지를 사용하는 212급이 일반 디젤 잠수함과 다른 점이
었다. 장문휴는 연료전지 AIP시스템을 최고출력으로 가동하며 독도를
향했다. 지금은 일본 잠수함과의 거리를 확실히 떼어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9월 14일 21:25 울릉도 동쪽 47km
일본 해상자위대 잠수함 SS-585 하야시오, 사령실
- 배터리 충전 완료됐습니다.
"잠항한다. 심도 100미터로!"
기관실에서 올라온 보고를 가장 반긴 것은 잠항관 나카가와 마사유키
() 일등위였다. 고마키 함장의 잠항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기다렸
다는 듯이 나카가와 일등해위가 밸러스트를 조작했다.
파고 4~5미터의 황천()하에서 잠수함을 수면위로 올려보내는 것
은 매우 위험한 짓이다. 일반 선박은 함저쪽의 중심선을 따라 선체가
아랫쪽으로 내리누르는 힘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좌우로 요동치더라
도 항상 중심선으로 돌아오려는 힘, 즉 복원력을 가진다. 하지만 잠수함
은 달랐다.
하루시오급인 하야시오를 비롯한 현용 대부분의 잠수함은 눈물방울
형(tear drop), 어뢰형과 같은 유선형 디자인을 가졌다. 눈물방울형은 수
중에서의 운동성과 고속성을 위한 디자인이지 결코 수상에서 일반 선박
처럼 움직이는데 유용한 디자인은 아니다. 더욱이 파고가 높은데서 자
칫 측면에 파도를 들이맞으면 잠수함은 쉽게 전복될 수 있었다.
요동치는 하야시오가 디젤엔진으로 배터리를 충전하는 동안 내내 긴
장했던 나카가와 일위는 잠수함이 심도 100미터에 이르러 안정을 찾자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함장님."
부함장 시모미치 삼좌가 참고 참았다는 듯이 고마키 이좌를 불렀다.
"왜 공격하지 않고 추적만 하는 것입니까?"
"주변에 눈들이 너무 많다. 놈이 충분히 도망가게 만든 다음에 공격
해도 늦지 않다."
"하지만 장문휴는 수중에서 고속으로 장시간을 항해할 수 있습니다.
계속 추적만 하다간 지금처럼 또다시 태풍속에서 스노팅을 해야합니다.
이러다간 놓치고 맙니다. 차라리 아까"
시모미치는 자신의 언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했는지 중간에 말을 끊었
다. 주위에 있던 다른 승무원들이 두 사람을 지켜보다가 시모미치가 눈
빛을 번뜩이자 일제히 눈을 아래로 깔고 기기에 집중하는 시늉을 했다.
"시모미치 내가 공격을 안하려는 것으로 보이나? 자네 이야기는 충
분히 알아들었다. 하지만 적절하지 않다. 알겠나?"
고마키의 얼굴이 벌개지고 있었다. 부하들 앞에서 자신의 지휘에 대
해 반론을 받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고마키는 마음 한
쪽에서 솟아오르는 장문휴에 대한 공포심을 지워버릴 수 없었다.
주위에 부하들이 다시 고마키에게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미치시오의
최후를 들었던 수측실 요원들, 그리고 어뢰 공격을 준비했던 공격팀 요
원들 모두 차가운 눈빛으로 함장의 적극적인 지휘를 갈망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마키는 장문휴가 무서워졌다.
장문휴가 공격소나를 사용하지 않고 라 호야를 쓰러뜨린 것은 함장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장문휴의 함수 소나가 고장난 것을 뜻했다. 함수
소나 없이 적 잠수함을 어떻게 해치울 수 있었는지 고마키는 납득이 가
지 않았다.
고마키와 시모미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고마키는 그런 침묵 속에
서 시모미치가 자신의 속내를 알아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력 80퍼센트로 증속해. 서둘러야 장문휴를 잡는다!"
고마키의 외침이 공허하게 울려퍼졌다.
9월 14일 21:30 울릉도 동쪽 59km
한국해군 잠수함 장문휴, 사령실
"놈이 따라붙었습니다. 거리 9km 정도입니다. 쌔빠지게 쫓아옵니다.
아직 우리를 찾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는 장문휴였다. 최현호 상사가 일본 잠수함이
또다시 꼬리에 붙은 것을 확인하자 사령실 요원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장문휴가 더 이상 속력을 내는 것은 어려웠다.
"어뢰실은 어떻게 됐나?"
"침수가 심합니다. 어뢰실 구획을 폐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씨팔! 어
뢰실만 침수가 안됐더라도 분합니다."
김승민 대위가 분통을 터뜨렸다. 어뢰만 발사할 수 있다면 일본 잠수
함도 라 호야처럼 만들어버릴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발사관에
어뢰를 장전할 수가 없었다. 어뢰실 요원이 없어도 사령실에서 발사하
고 유도할 수는 있지만, 어뢰가 장전되어야 발사할 수 있다.
어뢰실에 들어찬 물은 벌써 무릎께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내압벽에
생긴 구멍은 피로도가 누적되면서 점차 커지고 유입되는 물도 불어갔
다. 다시 구멍 한 개에서 물줄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어뢰실 하사 두 명
이 방수테입을 들고 뛰어갔다가 수압에 밀려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들
머리 위로 다른 구멍에서 쏟아진 물이 뿜어졌다.
"도저히 안되겠다. 철수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방수작업을 지휘하던 어뢰장 강희담 준위
가 부하들에게 외쳤다. 더 이상 막아보려고 애쓰는 것은 무리였다. 내압
해치 위에까지 물이 들어차면 이제 나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어서 서둘
러야 했다. 물에 잔뜩 젖은 어뢰실 요원들이 서둘러 문을 열고 나가려
할 때였다.
그때 인터폰이 울렸다. 승무원들이 일제히 행동을 멈췄다. 잔뜩 신경
질이 난 강희담 준위가 수화기를 들고 거친 목소리로 대꾸했다.
"어뢰실입니다!"
- 나, 부함장이다. 지금 어뢰를 장전할 수 있나?
지금 이 상황에 어뢰를 장전하라니, 강희담 준위는 말문이 막혔다. 게
다가 지금은 어뢰실을 포기해야 할 순간이었다. 강희담 준위가 어이가
없는 나머지 대답을 못하자 다시 인터폰에서 소리가 들렸다.
- 어뢰재장전은 아주 중요한 문제다. 지금 장문휴의 사활이 달렸다.
전적으로 어뢰장의 재량에 맡기겠다. 불가능하면 어서 탈출을 서둘러라.
알겠나?
인터폰으로 들려오는 부함장의 말에는 길고 깊은 한숨이 섞여있었다.
절박한 상황에서 차마 강요는 하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는 감정이 그대로
전해졌다. 그것으로 인터폰은 끊어졌다.
강희담 준위는 생각하는데 잠시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답은 빨리
나왔다.
"선임하사! 그대로, 빨리 철수한다."
"알겠습니다!"
어뢰반 선임하사인 김무영 중사가 나머지 두 명과 함께 문을 열었다.
어뢰실에 있던 물이 사령실쪽으로 쏟아져 나갔다. 하사 두 명이 물 위
를 뛰어 건너갔다.
"어뢰장님! 빨리 나가야죠!"
"응. 할 일이 생겼어. 다른 손은 필요없으니까 빨리 나가. 어서, 서둘
러!"
이미 하사 두 명을 밖으로 밀쳐낸 김무영 중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강희담 준위를 바라보았다. 넘치는 물이 해치를 타고 바깥쪽으로 흘러
나가고 있었다.
"뭐하는 거야? 문 닫고 빨리 나가!"
강희담이 다시 호통을 치자 김무영은 엉겁결에 해치를 닫아버렸다.
그리고 잠금용 핸들을 감아 문을 완전히 폐쇄시켰다.
"이, 쪼다 새끼가! 너 안 나갈래?"
어느새 허벅지까지 차오르는 물을 헤치고 어뢰 거치대에서 SUT 어
뢰 한 발을 발사관쪽으로 밀던 강희담이 제자리에 멈춰섰다. 어이가 없
다는 표정이었다. 그러자 김무영 중사가 달려들어 어뢰거치용 레일위로
어뢰를 밀었다.
"너 너"
"문부터 닫으라면서요? 어뢰장님! 계속 그렇게 서 계실겁니까?"
9월 14일 21:35 울릉도 북동쪽 52km
일본 해상자위대 잠수함 SS-585 하야시오, 사령실
"수상전투함들은 울릉도에 묶여있는 것 같습니다. 이쪽으로 따라오는
함정은 없습니다."
수측장 모리야마 도쿠히로() 일등해조가 보고했다. 미국 함정
은 아니더라고 혹시나 해상자위대 호위함들의 지원이라도 기대했던 고
마키는 잔뜩 실망했다. 바다는 시시각각으로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아직 탐지하지 못했나?"
"예. 수면상황이 매우 안좋기 때문에"
"바보! 상처입은 장문휴가 폭주기관차처럼 달리고 있는데 그것을 못
찾는단 말인가?"
고마키가 신경질을 부렸다. 그러나 모리야마 일조가 애쓰는데도 불구
하고 소나는 탐지거리가 더욱 줄어들고 있었다. 강한 바람과 풍랑이 해
표면을 휘저으면서 소음을 많이 발생시키고 있었다.
"놈은 독도를 향할 겁니다. 아쉽습니다. 우리가 앞설 수만 있다면 놈
을 잡는 것쯤은 식은 죽먹기입니다. 놈은 분명히 함수 소나를 못 쓸겁
니다. 함수 소나가 어뢰발사관하고 비슷한 위치에 있으니까 혹시 어뢰
를 못 쏠 수도 있습니다."
조금 전에 대들던 시모미치 삼좌가 가까이 다가서자 고마키는 소나
콘솔에 관심있는 척하며 슬쩍 자리를 옮겼다. 함장은 부함장이 싫기도
하고, 밉기도 했다. 누구든 내심을 들키면 기분 나쁘기 마련이었다.
함수 소나를 잃어 귀가 먹은 장문휴라도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
니었다. 함장은 장문휴를 겁내는 마음을 애써 지우려고 했지만 이유없
는 공포심은 또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9월 14일 21:45 독도 서쪽 23km
한국해군 잠수함 장문휴, 어뢰실
물은 이미 목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강희담 준위와 김무영 중사가 어
느 곳으로 피할까 머리를 굴렸지만 마당한 곳이 없었다. 땅달막한 강희
담의 머리 높이에 둘린 찢긴 구멍까지 물이 차오르면 내부에 공기가 남
아있게 되고, 내부의 공기압력으로 인해 한도가 되면 침수가 멈출 것이
다. 강희담 준위는 마지막 순간을 급작스럽게 맞이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뢰장님은 물위에 잘 뜨시겠어요."
"뭐야? 이 자식이!"
이 마당에 농담을 할 수 있다니, 강희담 준위는 김무영 중사가 부러
웠다.
"넌 뭐하러 들어온 거냐? 바보같은 짓을 했어."
"글쎄요. 아마 생각할 시간만 있었으면 안 들어왔을 걸요. 지금은 후
회되는데요. 쿡쿡!"
다시 생각해봐도 미련했다고 느껴지는지 김무영 중사가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근데 말입니다. 멋있는 결정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언제던 죽
을거 아닙니까. 그리고 남은 사람들이 우리들을 마음 속으로 영원히 간
직해주는 것도 멋지다고 생각됩니다. 근데 슬프단 말입니다"
한껏 여유를 부리던 김무영 중사가 그제서야 울먹이기 시작했다.
"어뢰실로 통화가 안됩니다. 응답이 없습니다. 어뢰는 세 발이 링크
되어 있습니다."
침울한 목소리로 김승민 대위가 보고했다. 마주보는 진종훈 소령의
표정도 비감했다. 어뢰실을 빠져나온 하사 두 명은 물에 젖은 머리를
숙이고 어깨를 들썩거렸다. 울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부함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잠수함 내부 전체에 방송되는 함장용 마
이크였다. 진종훈 소령은 아직도 어뢰실에서 살아 있을지도 모를 승무
원들이 들을 수 있길 바라면서 비장하게 말했다.
"제군들. 이제 우리의 고향 독도다. 영해 안쪽으로 들어가겠다. 우리
국토를 침범한 놈들에게 어떤 댓가를 치르게 해야 할 지는 모두들 알고
있을 것이다. 철저히, 그리고 처절하게 응징하겠다."
9월 14일 22:33 독도 남쪽 4km
독도 해산() 90미터 해저
동도와 서도로 나뉘며 34개의 작은 바위섬을 가진 독도의 총면적은
0.18 평방킬로미터에 불과하다. 하지만 물 속으로 내려가면 울릉도 해저
기반 보다도 두배나 큰 독도의 해저기반이 펼쳐져 있다. 해저화산의 융
기로 생겨난 독도는 같은 화산섬인 울릉도보다 120만년이나 먼저 생성
되었다.
독도의 해저기반은 두 개의 화산이 동시에 폭발하여 만들어낸 쌍둥이
화산지형으로, 너비는 약 50km이다. 그리고 근처의 수심은 2,300미터에
이르는데, 경사는 거의 수직에 가까운 직벽을 이룬다. 이 두 개의 쌍둥
이 해산중 독도는 바로 서쪽 해산이 물 위로 솟아난 섬인 것이다. 남동
쪽으로 6km 떨어진 동쪽해산과의 사이에는 수심 700여미터의 골이 파
여있다.
그 쌍봉우리의 가운데에 검은 물체가 쥐죽은 듯이 멈춰 서있었다. 그
것은 잠수함이었다. 십()자형 종횡타가 아닌 X자로 된 함미타, 그리고
함수가 아닌 사령탑에 달린 잠항타는 이것이 212급임을 말해주고 있었
다. 장문휴는 똑바로 서있지 않고 함수쪽이 보기에도 이상할 정도로 아
랫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앞부분이 조각조각 떨어져나간 사령탑은 보기에도 흉할 정도였다. 범
고래에게 살점을 뜯긴 긴수염고래처럼 사령탑 맨 앞쪽이 심하게 잘려
나간데다가 오른쪽 잠항타가 반쯤 떨어져 나갔다. 이 상태로 독도 근해
까지 왔다는 자체가 신기할 정도로 잠수함이 입은 피해는 심각했다.
함수쪽도 온전치 않았다. 함수 소나가 장착된 함수 왼편의 윗부분 역
시 주먹으로 깡통을 내리친 것 처럼 움푹 들어간데다 찢겨진 채로 너덜
거렸다. 그것은 내부에 탑재된 함수 소나를 덮는 특수고무재의 소나돔
잔해였다.
이상한 것은 사령탑 뒤쪽이었다. 굵다란 케이블 한 가닥이 마치 꼬리
를 힘없이 내린 것처럼 아랫쪽으로 드리워져 있었다. 미동도 하지 않던
잠수함에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함수 아랫쪽에 위치한 여섯 문의 어뢰
발사관 중 오른쪽 상단에 위치한 두 개가 열리고 있었다.
어뢰의 직경보다 약간 넓은 발사관 내부에는 SUT 어뢰 두 발이 매
끈한 검정색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짧은 시간이 지나고 SUT 어뢰들
은 바닷속 틈바구니에 숨어있던 곰치처럼 느릿느릿 빠져나왔다.
어뢰 끝부분에 장착된 두 개의 스크루는 2단으로 겹쳐진 형태였는데,
회전방향은 서로 반대방향이었다. 동축반전식의 2엽 스크루는 처음에는
느리게 움직였다가 점차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SUT 어뢰를 가속시켰
다.
스크루 앞에 장착된 4개의 꼬리날개가 움직이자 어뢰는 서서히 방향
을 바꾸었다. 하지만 목표가 무엇인지 눈 먼 어뢰는 알 수 없었다. 그러
나 1km를 항주한 뒤 고주파 대역의 탐신 소나를 작동하기 시작했다. 어
뢰는 잠시동안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좌우로 이리저리 방향을 바
꾸다 무엇을 탐지해낸 듯 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왼쪽에 있던 어뢰가 먼저 방향을 잡아 달렸다. 조금 뒤쪽으로 오른쪽
을 달리던 두 번째 어뢰는 마치 첫 번째 어뢰로부터 연락을 받은 것 처
럼 부드럽게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리고 최고속도인 35노트로
사이좋게 맞은 편의 검은 그림자를 향해 질주했다.
9월 14일 22:35 독도 남서쪽 6km
일본 해상자위대 잠수함 SS-585 하야시오, 사령실
"좌현 최대! 디코이 발사!"
"좌현 최대! 디코이 발사!"
갑자기 놀란 고마키 이좌가 절규에 가까울 정도로 부르짖었다. 이제
는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장문휴가 함수 소나가 망가진 상태에서 어떻
게 라 호야를 해치웠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배운 것을 써먹
기엔 지금 당장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일본 잠수함 하야시오는 세 번째 변침을 마쳤다. 속도를 갑자기 높이
고 방향을 바꾸면 스크루 프로펠러 주위에 물의 흐름이 급격히 바뀌면
서 와류현상이 발생한다. 스크루가 급회전하면 날개가 지나간 바로 뒷
부분은 압력이 낮아지며 기포가 발생한다. 이때 소음도 커지며 발견될
확률도 더 높아진다. 그 대신에 잠수함 뒤에 커다란 기포덩어리가 남게
된다.
어뢰의 소나와 유도섹션은 최종 돌입단계에 액티브 방식으로 목표를
탐지하는데, 커다란 기포덩어리는 잠수함만큼 큰 물체로 인식된다. 기포
는 음파의 전달을 방해하는 원인이므로 음파는 기포에 반사되어 소멸되
기도 한다. 짧은 거리에서 어뢰가 순간적으로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하야시오는 급변침을 마친 다음 수면위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또다른 회피방법이었다. 지금과 같이 수면 위로 태풍이 불며 소음이 커
질 때는 잠수함의 소음이 파도소리에 묻혀버릴 뿐만 아니라 어뢰가 수
면의 파도와 잠수함을 착각할 수도 있었다.
하야시오가 급부상을 계속했다. 하지만 수면쪽으로 수십미터도 채
움직이기 전에 어뢰가 접근했다. 잠수함으로부터 더 이상 기만체가 나
오지 않았다.
첫 번째 어뢰가 하야시오의 함미를 때리며 폭발했다. 그리고 뒤이은
두 번째 어뢰는 사령탑 바로 아랫쪽 3미터까지 접근한 다음 폭발했다.
하야시오는 마치 부레가 터진 물고기처럼 맥없이 바닷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마지막 순간 고마키와 시모미치가 입을 열 기회는 없었다. SUT 어뢰
가 사령실이 위치한 선체 중반을 정확히 가격했기 때문이다. 복각식 이
중구조를 가진 하야시오의 선체였지만 바깥쪽 강판은 그리 견고하지 못
했다. 폭발은 일순간에 사령탑 내부까지 관통해서 고마키와 시모미치,
그리고 승무원들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잠수함은 배가 아니었다. 마치 추락하는 비행선처럼 느릿느릿 동해의
심연을 향해 곤두박질 쳤다. 날개잃은 이카루스였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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