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 구 참 선 법
파수오경간월출 芭峀午更看月出
두견성리목장려 杜鵑聲裡牧將驪
원앙수출종교간 鴛鴦繡出從敎看
불파금침도여인 不把金針渡與人
뾰족한 산봉우리에 달뜨는 것을 보고, 두견새 소리 속에 나귀를 먹인다. 원앙새 수 놓은 것 보여주어도, 수놓은 금침은 주지 못하네. '파수오경'의 오경은 낮 '오'(午)자 오경입니다. 달은 밤에 뜨는것인데 어떻게 해서 낮 오경에 달뜨는 것을 보느냐?
이 '파수오경 간월출'은볼래야 볼수 없고, 들을래야 들을수 없고, 만져볼래야 만져볼 수 없는 한물건을 깨닫는 도리를 표현한 것이고, 두견새 소리 속에 나귀를 먹인다하는 것은 내가 나를 깨닫고 그 도리에 입각해서 깨달은 뒤에 수행해 나가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원앙새' 수놓은 것 보여주어도 수놓은금침은 주지 못하네.'
참선은 바로 내가 나를 깨닫는 길이며, 그 길을 통해서 목적지에 도달할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깨달아서 생사해탈을 하고 불조(佛祖)의혜명(慧命)을 이어받음으로써 나도 영원히 행복하고 모든 중생도 영원히행복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소원이 있다 하더라도 바른 수행방법을 알지 못하면 그 소원을 이룰 수가 없을 것입니다.
또 바른 길을 알았다 하더라도, 쉬지 아니하고 중단하지 아니하고 열심히 가지 아니한다면 도업을성취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삼천년전에 부처님이 출현하셔서 불교를 펴시기 이전부터 이 우주가 생겨나기 이전부터 '참나'는 있어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참선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도 어려서부터 "대관절 이 인생이란게 무엇이냐?" '나'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어디에서부터 와가지고 한평생을 희노애락의 많은 고비고비를 겪으면서 마침내는 일생을 하직하고 어느곳으로 또 가느냐?" 생각하면 생각해볼수록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서고금의 성현들도 이 문제를 위해서 많은 힘을 거기에 쏟았던 것입니다.이 문제의 해결은 말로써 가르쳐줄 수 없는 것이고 귀를 통해서 들어가지고 해결할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이론으로 따져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일생의 힘을 다 소비한다 하더라도 이론으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참선법을 통해서 깨달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론을통해서 얻어지는 결론은 아는것에 불과한 것이고, 참선을 통해서 도달하는것, 그것은 깨달음입니다. 깨달음과 아는 것과는 전혀 질이 다르기 때문에 이론을 통해서 불법을 연구하는 사람은 마침내 중생의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을 조장하는 결과 밖에는 안되는 것이라 그걸 가지고는 생사해탈이 아니되는 것입니다.
* 활구선(活句禪), 사구선(死句禪)
요새 우리 나라 뿐만아니라 서양에서까지도 널리 보급이 되고, 붐이 일어나서 너도 나도 참선을 하려고 하고, 또 알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 만은 참선은 두가지 경향이 있읍니다. 하나는 - 살 활자 글귀 구자 - 활구참선(活句參禪)이고, 또 하나는 - 죽을 사자 글귀 구자 - 사구참선(死句參禪)입니다. 사구 참선은 무엇이냐? 참선을 하되,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지고,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하는 그런 참선, 공안 또는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런 참선, 그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활구참선은 선지식으로부터 공안 하나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활구참선은 당장 처음 시작할 때부터 꽉막혀서뒤를 돌아봐도 꽉막히고, 왼쪽 오른쪽을 둘러봐도 꽉막혀서 한걸음도 나아갈래야 나아갈수 없는 상태로 지어가되, 한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바로 참 나를 깨닫는 길인 것입니다. 물질문명이 차츰 발달해감에 따라서 사람들은 점점 약아져서 힘을 적게들이고 쉽게 목적한 바에 도달하려는 생각들을 많이하게 됩니다.
참선은 어떤 사람이라도 그런 약은 생각을 가지고는 되지않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바보가 되어가지고, 다만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자기의 온갖 지식, 상식을 다 내버리고 백지 상태로부터 공부를 지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공부는 보고 듣고 생각하고 연구하고 해감에 따라서 차츰 무엇인가 얻어지는 바가 있어야만 되지만, 이 참선공부는 이미 알고있는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 하는 것입니다.
일시에 다 버릴수 있다면그 사람은 그 만큼 공부에 빨리 힘을 얻게되는 것이고, 미련 때문에 버리지를 못하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하는 사람은 그만큼 늦어지는 것입니다.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활구참선을 하려면 그동안에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것 - 불교에 관한 것이건, 부처님의 말씀이나조사의 말씀까지도 - 전부를 다 놓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다만 바보가 되어서 하라는 대로만 해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 자 세
첫째, 자세를 바르게 가져라.
둘째, 호흡을 바르게 하라.
셋째, 생각을 옳게 지어가라.
첫째,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잘 알고있는 가부좌, 오른다리를 구부려서 왼쪽무릎위에다가 올려놓고, 또 왼쪽다리를 구부려서 오른쪽 무릎위에다가 올려놓는 것입니다. 다리가 굳어서 잘 안되는 분도 있을줄 압니다만, 자꾸 해 버릇하면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서양 사람들은일생동안 의자생활만 해서 이 책상다리를 할 수 없을만큼 굳어져 있지만은, 그 사람들도 얼마동안만 연습하면 가부좌를 우리보다도 더 오랜 동안잘 하는 것을 봤읍니다. 가부좌하는 것이 참선의 기본자세입니다.
자꾸익혀서 되도록 하면 그 굳어져 있던 힘줄이 서서히 늘어지므로 해서 건강에도 좋은 것이니까요. 틈틈이 가부좌를 연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꼭 가부좌를 해야만 참선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반가부좌를 해도 좋습니다. 오른발을 왼쪽무릎위에다 올려놓고 하다가, 다리가 저리거나 아프면 발을 바꾸어 놓고 반가부좌를 해도 좋습니다. 오른발을 왼쪽무릎위에다 올려놓고 하다가, 다리가 아프면 발을 바꾸어 놓고 반가부좌를 해도무방합니다.
다리를 그렇게 한다음에는, 오른손바닥을 위로하여 왼쪽발복숭아뼈 위에 올려놓고, 왼손을 펴서 오른손위에 포게 놓은 다음, 양 엄지손가락끝을 가볍게 맞댑니다. 너무 힘주어 맞대려고 하지 말고 또 떨어지지도 않도록 하되 엄지손가락의 모습이 아주 곱게 되어야 합니다.위로 삐쭉 올라가거나 삐뚤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손의 모습을 보기만해도, 지금 그사람의 생각이 안정되었나, 어떤 망상속에서 곤두박질을 치고있나, 또는 졸음에 빠져있느냐, 그런 것을 알수가 있는 것입니다.
한참 딴 생각에 골몰해 있을 때에는 손에 힘이 들어가서 위로 올라가기도 하고,두서없이 이 생각 저생각하고 있을 때에는 손장난을 하기도 하고 손이 삐뜰어져서 떨어지기도 합니다. 이 손만 보면 그 사람이 옳게 화두를 들고있나 안들고 있나를 알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손모습을 잘갖는것이 대단해 중요합니다.
그리고 앉은 자세가 뒤로 넘어가거나 앞으로기울여지거나 좌우로 기울여지지 않아야 합니다. 두 귀는 어깨위에 수직으로 놓이게 하고 고개도 전후좌우로 기울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코끝은단전위에 수직선상에 놓이도록 합니다. 몸도 바르게 해야하고 고개도 바르게 해야 한다 그말입니다.
그리고 이는 어금니부터 지긋이 물고 혀는위로 꼬부려서 입천장에다가 대는 것입니다. 눈은 평상으로 뜹니다. 너무 똑 부릅뜨면 생각이 산만해지기가 쉽고 너무 가늘게 뜨면 졸음에 빠지기 쉽습니다. 성성하고 적적하며(惺惺寂寂), 적적하면서 성성해야 하므로(寂寂惺惺), 처음 시작할 때부터 평상으로 뜨는 습관을 들이도록 합니다. 눈은 평상으도 뜨되 자기 앉은 자리로부터 3미터 전방에다 시선을떨구면 되는 것입니다. 시선을 떨군다 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거기가 보이도록 하라는 것이지, 3미터의 어떤 한점을 의식으로 응시하라, 그런것은 아닙니다.
* 단전호흡
우리의 의식은 오직 배꼽밑에 1촌 3푼, 단전(丹田)에다가 집중해야 합니다. 어떻게 집중해야 하느냐? 보통 가슴으로 호흡하지만 참선하는 사람은 단전으로 호흡하는 것입니다. 숨을 들이 마시되, 너무 가득 들이마시지 말고 8부쯤만 들이마시되, 숨을 들이마심에 따라 단전부위가 블룩해지고, 3초동안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단전이 차츰차츰 훌쭉해지도록 온 의식이 거기에 집중이 되어야 합니다.
너무 무리하게 잔뜩 들이마신다든지,들어마신 상태에서 너무 오래 억지로 참는다든지 하면 숨이 차고 가슴이답답해지는 부작용이 일어나는 수가 있으니까, 무리없이 아주 자연스럽게해야 합니다. 이렇게 단전호흡을 잘하면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피로가회복이 되며 정신이 안정되고 몸이 가벼위지고 머리가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 수식관
앉아서 하는 것이 기본자세이지만, 매우 피로 했을때나, 정신이 착잡할때 그리고 잠이 안올 때는 누워서 하는 것도 효과적입니다. 팔다리를 뻗고 편안하게 누워서 단전부위에다가 두툼한 책 한권을 올려놓습니다. 그래가지고 숨을 들이마시면, 아랫배가 불룩해지니까 책이 약3센치가량 위로 올라가고, 올라간 상태에서 악3초 동안 머물렸다가, 조용히 내쉬면 아랫배가 홀쭉해지니까 따라서 책도 한3센치 내려오게 됩니다.
이렇게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마다 하나, 둘,.. 하고 세어서 하나에서 열까지 세어올라가고, 열에서 하나까지 세어내려옵니다. 이것이 수식관입니다. 중간에 딴 생각이 나서 몇까지 했나 막연하면, 다시 하나에서 시작하고 해서, 잘되면 이십까지 올라갔다 내려오고, 또 그게 잘되면 삼십까지 올라갔다 내려오고 합니다. 해서 백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도록 아무 실수없이 되면 참선해 나가는데 기초가 아주 훌륭하게 닦아졌다고 말할 수 있읍니다. 큰 건물을 지우려고 할 수록 암반이 나오도록 깊이 파서 기초공사를 잘해야 하는 것처럼, 대도를 성취하려면 그 고초인 자세와 단전호흡을완벽하게 해 나갈 필요가 있읍니다.
이런 기초를 허술하게 하고 아무리건물을 잘 지어봤자 얼마안가서 와우아파트와 같이 무서운 사고가 나게되는 것처럼, 참선도 기본자세와 호흡법을 잘 모르고 덮어놓고 화두만 맹렬히 들고 나가다가는, 백이면 백 위장병이나 상기병 같은 무서운 병에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그 기본자세와 호흡법을 바르게 알고 해 나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 생각의 기멸
그 다음 세번째에 가서 생각을 어떻게 다루어 나가느냐? 우리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무엇인가 생각을 아니하고 있을수는 없읍니다. 무슨생각이 일어나면 그 생각이 이리저리 발전을 합니다. 그러다가 그 생각이 사그러지면 또 딴생각이 생겨나고-쓸데없는 생각, 쓸데있는 생각, 지나간 생각, 현재 닥치고 있는 생각, 앞으로 다가올 생각- 그러한 생각속에서 일분일분을 지내고 하루하루를 지내고, 그러면서 일생이 지나가게됩니다.
심지어 잠이 들어 있을때도, 꿈 속에서도, 그 생각은 쉬지 않고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좋은 생각이 일어나서 행동화 되면 좋은 행동을 하게 되고, 바르지 못한 생각이 일어나서 그것이 행동화 되면은 죄를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우리는 잠시도 쉬지않고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생각이 육도 윤회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생각을 안하게 할려면 죽으면 안하게 될것 같지만 죽는다고 한들 현재 가지고 있는 이몸을 가지고서는 끝나지마는, 이 몸 버린다고 해서 그 생각의 활동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으면 또 다른 몸을 받아서 태어나게 되고, 설사 다음 몸을 받아 날때가지 몸 없는 상태에 머물러 있다 하더라도, 중음신의 상태에서도 우리 생각의 기멸(起滅)은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내가 나를 깨닫는 활구 참선만이 생각의 기멸을 끊고 생사의 윤회를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고인(古人)의 송(頌)에,
참선수투조사관 參禪須透祖師關
묘오요궁심로절 妙悟要窮心路絶
참선은 모름지기 조사관을 뚫어야 하고 묘한 깨달음은 종요로이 마음 길이 끊어져야 한다.
* 활구참선의 법맥
삼천년 전에 부처님께서 가섭존자에게 법을 전하시고, 가섭존자는 아난존자에게, 아난존자는 상나화수존자에게, 이렇게 해서 28대 달마대사까지전해왔읍니다. 달마대사는 일백오십세가 되도록 인도 천지를 두루 다니시면서 이 정법을 펴시다가, 그 이전에 중국에 불법이 건너갔다고는 하지마는 경전이나 불상이나 그런 상법(像法)만이 건너갔지, 내가 나를 깨닫는 부처님의 최상승법은 전해지지 못했기 때문에, 일백오십세의 고령으로3년간의 항해 끝에 중국 남해안에 도달하셨읍니다.
그래가지고 맨처음에양무제를 만나니 "짐이 절을 많이 짓고, 경전을 보시하고, 스님네 봉양을많이 한 공덕이 얼마나 됩니까?"하고 물었읍니다. 달마대사께서는 "공덕이 없읍니다." 그러면 어떤것이 가장 성스러운 진리입니가?" 달마대사께서 "확연해서 성스러운 것도 없읍니다" "그러면 내 앞에 서 있는 당신은누구요?" "모르겠읍니다!"하고 달마대사가 답했읍니다.
거기에서 대화가 끊어져서, 달마대사는 양자강을 건너서 위나라 숭산 소림굴에 들어가9년간 면벽 관심을 하다가 혜가라고 하는 제자를 만나 법을 전하셨읍니다. 부처님께서 육조 혜능스님까지 33대가 되고, 육조스님 이후로 오종가풍이 벌어져 중국 천지에 선풍이 크게 진작을 했읍니다. 그 오종 가풍가운데 임제종의 활구 참선법이 한국에 전해졌읍니다. 이조에 와서 수백년간 교풍(敎風)이 성하고 선풍(禪豊)이 다소 침체한 감이 있었으나, 백여년 전에 경허선사가 대강사로 확철대오 하시어 종풍(宗風)을 중흥하셨읍니다.
그 밑에 만공선사를 비롯한 육대 선지식이 배출되고, 오늘날 활구 참선법이 이 땅에 전해지게 된것입니다. 그러면 그 활구 참선법이란어떠한 것이냐? 이론으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참선이 아니라, 일체 이론을 배제하고 오직 꽉막힌, 알수 없는 의심으로 하나의 화두를 참구하여일체 공안을 타파하고 확철대오 하는 참선법입니다.
* 화 두
첫째, 자세를 바르게 하고,
둘째, 호흡을 바르게 한다음,
세째는 화두를의심해 나가는데,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이라고도 말하는데,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에 대한 의심을 관조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막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 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차를 탈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밥을 먹을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해서 들려고 안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7일이지나면, 어떠한 찰나에 확철대오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물을 가득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며는 그 항아리가 바싹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하고, 참나를 깨닫게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참선을 해나가는데 가장 핵심이 되어야 할 화두를 지금부터말씀드리겠읍니다. 오늘 여러분은 여기에 참선법을 듣기 위해서 왔읍니다. 여러분을 이끌고 계시는 만덕장보살이 가자고 해서 왔다고 혹 생각할른지 모르지만, 그것은 표면에 나타난 한 조건에 지나지 못합니다.
여기에 여러분이 온 것은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의 발이 여기에 온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몸뚱이가 제멋대로 온것이 아니고, 남이 오자고 해서 온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지금 편의상 자신이라는 말을 썼지마는 알 수없는 놈이 여기를 오기로 결정을 해서 그 놈이 명령을 했기 때문에, 그명령에 의해서 여러분의 몸이 움직여져 가지고 발로 걷기도 하고 차를 타기도 해서 여러분은 여기에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여기를 가자 하고 명령을 했겠느냐? 그놈이 바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그놈인 것입니다.
누구 보고 물어봐도 그것은 나의 마음이지 무엇이겠느냐? 다 그렇게 말하겠지만 마음이라 하는 것도 고인이 편의상 지어놓은 이름에 지나지 못합니다. 마음이다. 성품이다. 주인공이다. 뭐 얼마든지 우리나라 이름도 맣고, 중국에서 붙인 이름도 많고, 서양 사람은 서양 사람대로 그놈에 대한 이름을 여려가지 붙여 놓았을 것입니다만, 붙여 놓은 이름은 우리가 들은 풍월로 알고 있을 뿐이고, 그런 이름은 그만 두고 그이름을 붙인 그자체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로 부터 이몸을 받아나기 이전에 부터 그놈은 있었고, 몇 천만번을 그 놈이 이 옷 입었다 벗어 버리고 저 옷 입었다 벗어 버리고, 사람 옷도 몇백만번 입었다벗었다 했을 것이고, 짐승의 껍데기도 몇 천만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그놈이 지옥에도 가봤을 것이고 천당에도 가봤을 것이고 귀신으로도 떠돌아 다녀봤을 것입니다. 그렇게 무량겁을 돌고 돌다가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이 사바세계 대한민국에 사람으로 태어났읍니다. 그래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오시게 된것입니다.
그러면, 이 몸뚱이를 끌고 여기에 온 그놈이 무엇이냐? 그놈이 눈을 통해서 보기도 하고, 귀를 통해서 듣기도 하고, 코를 통해서 냄새를 맡고, 입을 통해서는맛도 보고 말도 하고, 몸뚱이를 가지고는 차갑고 덥고 부드럽고 껄끄러운것도 알고, 여기 앉아서 백리 이백리, 저 광주나 부산일도 생각하면 환하고 그래서, 공간에 걸림이 없이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하고 또 십년전, 이십년전, 삼십년전도 생각하면 환하고 해서 시간적으로도 걸림이 없이 그놈은 왔다 갔다 합니다.
그렇게 신통이 자재하고 시간 공간에 걸림이 없는 묘한 물건을 우리 모두 낱낱이 다 지니고 있고, 그놈에 의해서 우리는살아가고 있읍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 자체를 깨닫지를 못하고 계속생사윤회를 할 수 밖에 없느냐? 부처님이나 모든 성현들은 진작 이 문제에 눈 떠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 해서 생사에 자유자재하고, 그놈을 마음껏 활용을 하신 분들 인 것입니다. 우리는 부처님 열반하신뒤 3천년이 된, 이 말세에 겨우 이 문제를 알고 이제야 그것을 하려고 하는안타까운 처지에 놓여있읍니다. 그러나 조금도 후회하거나 한탄할 필요는 없읍니다. 금생에라도 알게된 것은 천만 다행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만약에 금생에 마저도 그것을 모르고 지나치게 된다면, 무량겁 미래 언제 또 사람몸을 받아서 이 법을 알게 될지 모르기 때문인 것입니다.이것을 모른다면 한없는 생사윤회를 거듭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 몸은 금생에 언젠가는 버리게 됩니다. 버리고 난 다음에 다시 또 육도의 어느곳에 몸을 받아나게 됩니다만은 금생에 일생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마지막에 숨 딱 거둘 때에도 참선하는 그 마음가짐, 그 화두일념으로 딱 숨을 거두게 되면 내생에 금방 또 사람몸을 받아서 좀더 일찍, 좀더 공부하기 좋은 여건하에 태어나게 되기 때문에, 내생에는 훨씬빨리 공부를 하여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모든 도인들, 모든성현들도 일생 이생 닦아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고, 여러 생을 공부해 가지고, 금생에 공부하기에 가장 좋은 여건을 받아 태어나 가지고 일찍 공부를 성취하시게 된 것입니다. 깨달음은 점진적이 아니고 비약적인 것입니다. 차츰차츰 알아들어가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계속 그 자리걸음만을 하는 것 같지마는, 결국 깨달을 때에는 중생의 상태에서 성현의상태로 비약적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초직입 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라, 한번 뛰어가지고 바로 여래의 경지에 도달한다. 그러나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이만 해 놓으면, 설사 금생에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공부가 허사가 아니고 또 올바르게 해 놓은 공부는 바로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는 점진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빨리 깨닫지 못한다고 조급한 생각을 낼 것도 없고, 금생에 나이가 먹도록, 죽음에 이르도록,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해서 조금도 후회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어갈 수 밖에는 없는 것이라, 언제 죽을지 모르는 가운데, 우리는 죽을 날을 받아 놓았으면서도, 그죽은 날만은 알지 못한채 살고 있는 처지에 있기 때문에 일분 일초라도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말고, 정말 알뜰하게 이 공부를 위해서 마음을 돌려 써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를 끌고 여기에 오는 놈 그놈이 슬퍼할 줄도 알고, 성낼줄도 알고, 근심 걱정할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알고, 이 몸뚱이를 자유자재로 작용하는 바로 이 놈 나의 주인공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이 운전사 - 대관절 이 놈이 무엇이냐? 그놈이 부모로부터 이 몸뚱이를 받아가지고 이승을 하직 할 때까지 단 일초동안도 이몸으로 부터 떠나보지 못한채 같이 생활을 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단 한번도 우리는그 놈의 모습을 본적이 없읍니다. 단 일초동안도 이 몸을 떠나서 존재해보지 못한 그 놈인데, 어째서 온갖 것은 다 보고 알고, 듣고 알고,만져보고 알고, 생각해서 알면서 바로 그 자기의 주인공은 한번도 본일이 없느냐? 이건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것을 봐야 영원한 행복을 얻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주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외물 -우리 밖의 모든 사물의 노예가 되어 가지고 있고, 그 놈의 부림을 받고있는 것입니다. 이 삼라만상, 우주법계를 내가 운전하고 내가 요리하고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밖의 물건에 의해서 내가 구속을 당하고 있고, 그 조종을 받고 있고, 그 종 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인은 나인데, 주인이 시원찮고 정신을 못 차리니까, 내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내가 소유하고 있는 종들에게 주인이 멸시를 당하고, 주인이 종 노릇을하고, 종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얼마나 가련하고 불쌍한 존재들입니까. 이렇게 말을 하니까,"하! 그 공부가 대단히 중요하면서도 대단히 어렵겠구나!" 이렇게 생각하실런지 모르지마는 절대로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내게 있는 것,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놈, 여러분이 듣고 있는 놈, 밥을 먹을때는 먹고있는 놈, 길을 걸어 갈때에는 바로 그 걸어 가는 놈, 성날 때는 바로 그성내는 놈, 그 놈을 돌이켜 살피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성날때도 공부할 수 있는 것이고, 기쁠때도, 슬플때도, 밥을 먹을 때도, 차를 탈 때도,앉았을 때도, 누웠을 때도, 바로 그 때 그 자리 그 자리가 나를 찾는 선불장(選佛場)이 되는 것입니다. 책을 통해서 하는 공부는 장소가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하고, 분위기가 필요하지마는, 이 공부는 때도 장소도 필요가 없읍니다. 언제 어디서라도 한생각 돌이키면 되는 것입니다
*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하는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이뭣고"라고 합니다. 표준말로 "이것이 무엇인고?" 하고 정확히 쓰면 일곱자인데, 경상도 사투리로 이뭣고?석자 입니다. 그래서 참선해 나가는 데에는 이뭣고? 이렇게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해 왔읍니다.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뿐이어야 합니다.
참선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슬플때는 슬픔에 빠져 슬픈생각이 더 일어나도록 이 생각 저 생각, 묵은 생각을 일으켜 내어 점점 더 슬픔에 빠집니다. 어떤 근심 걱정이 있으면 그 근심 걱정을 없애려고 하지 않고 점점근심이 더 치성하게 일어나도록 근심이 될 만한 사건을 연상해서 더 근심에 빠집니다. 성이 날 때에는 빨리 그 생각을 돌리켜서 성나는 생각이가라앉도록 해야 유익할텐데 점점 더 성이 일어나도록 고약하게 지나간생각을 되살려 깊이 그 성나는 생각에 빠져 들어가서 자기가 자기를 괴롭혀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중생은 불붙은 데다가 스스로 석유와 휘발유를끼얹어 점점 더 불이 치성하게 만들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읍니다.참선하는 사람은 무슨 생각이 일어나든지 그 생각을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슬픈생각이 나도 바로 이뭣고? 기분나쁜 생각이 일어나도 바로 이뭣고? 괴로운 생각이 나도, 그 괴로운 생각이 다음 생각으로 번져나기 이전에 바로 이뭣고?로 돌아와 버리는 것입니다.
도인이라고 해서 생각이 안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한 생각이일어나되, 그 일어나는 생각을 발판으로 해서 바로 참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한 생각이 불현듯 일어나면 그 생각으로 인해서점점 괴로움에 빠져 들어가, 나중에는 그 생각이 원인이 되어 건강을 상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한테 좋지 않은 생각을 터트려 다른사람 마음까지괴롭히고, 일까지 그르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생을 살아가니생사윤회에 안 떨어지고 배기겠읍니까? 참선은 일어나는 한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백번 일어난다 하더라도 문제가 없읍니다. 일어나는 그 생각이 좋은 것이건, 나쁜것이건, 슬픈생각이건, 괴로운 생각이건, 성나는 생각이건, 과거 생각이건, 현재 생각이건, 그것도 상관이 없읍니다. 무슨 생각이 일어나자 마자 바로 이뭣고?이렇게 합니다. 무슨 기분 나쁜 소리를 들어서 성이 푹 솟구치더라도 숨을 깊이 들이마셔 가지고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해 나가는 것입니다.
* 참선의 효과 지극히 간단한 이 한마디지만, 여러분이 이것을 깊이 명심하고 생활속에응용해 나가고 실천해 나간다면 여러분은 한 달을 못가서 차츰차츰 이 공부가 얼마만큼 소중하고 훌륭한 것인가를 느끼게 될 것 입니다. 두달,석달, 반년, 일년 가노라면 여러분은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있는 것을 느끼게 되고, 여러분 가족이나 친구 간에도 "하! 저 사람이 딴 사람이 됐다. 그렇게 신경질을 잘 내고 경솔하고 괴벽한 성질을 가졌던 사람이 어떻게 해서 저렇게 사람이 달라질 수 있을까!" 라고 말할 것 입니다.
물론 깨달음에 이르게 되면 말할 것도 없지만, 깨달음에 이르기 전에 수십가지 좋은 이득을 얻게 되는 것 입니다. 오늘 시간상 그것을 낱낱이 다애기할 수는 없지만 우선 피가 맑아지고 피로가 풀리고 정신이 안정되고정신통일이 됩니다. 여러분은 학생이니까 학생으로서 공부해 나가는 데에도 큰 효과가 있을 것이고, 회사나 관공서에 나가시는 분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로를 느끼게 마련인데, 아까 말한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과 아울러 화두를 잘 관조해 나가면 피로회복이 빨리 되고, 온갖 짜증이 쉽게 풀어지며 정신이 맑고 안정된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언제나 경건한 마음으로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공부를 알고서 열심히 행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진정한 행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 활구 '이 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 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것가저런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 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에 가득 차있는 것입니다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의 고인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뭣고"하는 화두 하나 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를 해결함으로 해서1700 공안이 일시에 타파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조금 해보고 이래서는 못쓰는 것입니다.화두 자체에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를 철저히 해나가면 일체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 요새 일본식 참선이 수입되어 화두 하나를 이리저리 따져서 자기 나름대로 또 하나를 지어 놓고또 다른 화두를 하고 해서 10개, 20개... 화두를 이렇게 이론적으로 따들어가며 참선을 하는 지성인들이 상당히 많이 있읍니다. 이런 참선은 사구참선이라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 놓았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 생사해탈을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치성하게 해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 있겠읍니까? 이것은 조금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능히 알고도 남을 상식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차라리 참선을 안하고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을 부를지언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3초 동안 머물렀다 내쉴때 "이뭣고?" 다 내쉬면 스르르 숨을 들이 마시되 들이마시면서도 아까 그 이뭣고?"한 의식의 여운이 그 때까지 오도록 그렇게 조용하게 관조하는 것입니다. 3초를 머무르는 동안에도 그 의심을 묵묵히 관조하다가 조용하게 내숼 때 다시 또 "이뭣고?". 처음에는 숨을 들이셨다가 내쉴 때마다"이뭣고?" 이렇게 하다가 차츰차츰 딴 생각은 줄어들고 "이뭣고?"가 잘되어지면, 두 번 들이마셨다가 내쉴 때 한 번씩만 "이뭣고?"를 들다가 나중에 더 익숙해지면 다섯번 호흡하는 동안 "이뭣고?" 한번의 의심으로 쭉이어지도록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공부가 더욱 익숙해지면 아침에 눈딱 떴을 때 "이뭣고?" 한 번 해놓으면 하루종일 "이뭣고?" 한번으로 살아갈 수 있게끔 될 때가 꼭 올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안 깨달을래야 안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일상생활이 바로 알 수 없는 화두하나로써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화두를 들고서 밥을 먹고 똥도 누고 차도타고 걷기도 하고 사람하고 대화도 하고 이렇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팔만사천 마구니가 엿보지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팔만사천 마구니가 무엇이냐 하면 바로 팔만사천 번뇌망상인데, 화두의단이 돈독한 사람한테는 와서 달라붙지를 못합니다. 잠깐 필요한 생각이 떠오르면 그 필요한 일을 적절히 처리하되 나의 이 화두 일념은 근본적으로 흔들림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나를 깨달는 것이요,우주법계의 주인공이 되어서 우주법계를 내가 요리해 나가고 내가 살아가는 것옵니다. 내가 운전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운전을 하는 것입니다. 이 법이 바로 불법이요 최상승법 입니다. 팔만대장경에 그렇게많은 법문이 있지마는 그 말씀을 하나로 뭉치면 지금 내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이 법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 말세와 근기
말세다. 중생의 근기가 미약하다. 그러니까 참선법 가지고는 안되고아미타불을 불러야 한다." 이런 것을 주장하는 분들이 있읍니다마는, 말세라는 것은 편의에 따라서 정법시대, 상법시대, 말법시대 이렇게 말씀을해왔지마는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하근기가 아니라 상근기인 것입니다.
아무리 부처님 당시에 태어났으되 이법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 하근기인 것이고 삼천년이 지난 오늘날에 태어났어도 이 활구 참선법을 믿고 열심히 실천에 옯기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바로 정법시대 사람이요, 그 사람은 상근기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니다. 여러분이 참선법을 배우고자 하고, 참선에 의해서 자아를 깨달고자하는 마음을 냈을때 여러분은 정법시대를 만난 것이고, 여러분은 상근기인 것입니다. 조금도 그런 염려를 마시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결정코금생에 '참나'를 자각하고 도업을 성취하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 맺 음 시작할 때에 읆은,
원앙수출종교간(鴛鴦繡出從敎看),
불파금침도여인(不把金針渡與人)
하는 것은 원앙새 수놓은 것은 여러분에게 보여줄 수 있지마는, 원앙새 수 놓은 그 바늘은 여러분에게 줄 수 없다'. 이러한 내용의 게송이었읍니다. 여러분에게 '참나'를 깨달을 수 있는 방법은 이야기 해 드릴 수 있지마는 깨달음 그 자체는 여러분에게 줄 수가 없읍니다.깨달음은 여러분 자신이 깨달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도 여러분에게 깨달음을 줄 수 없읍니다. 여러분 자신이 실천을 통해서 깨달을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금생약불종사어 今生若不從斯語
후세당연한만단 後世當然恨萬端
금생에 이 자리에서 들은 말을 실천하지 아니하면, 내생에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여러분에게 더 구체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많고 여러분들도 더 자세한 것을 듣고자 하시겠지마는, 오늘은 이것으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고운사 용맹정진 오참 법문
(근일선사 공부담)
오늘 법문은 안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달리는 말에 더 달리라고 재촉하는 격인데, 이 더운 여름에 스님도 아닌 세속인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용맹정진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스님들도 여름에는용맹정진을 두려워하는데 우리 거사님, 보살님들이 용맹정진한다는 것은그 자체가 놀라운 일이고 장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로 반정도 지났지요. 8박 9일중 반정도지났는데 누군가 잘 된 분들도 있을 것이고,잘 안된다는 분도 있을 것이라 봅니다. 물으십시요. 내가 봐서는 이 자체 만 해도 장하다는 생각이 들고, 다만 부탁하고 싶은것은 중단하지 말아달라는 것 입니다. 8박 9일 약속했으면 여하한 일이 있더라도 끝내야지요. 무엇이 바빠서 어쩌니하는 것은 여러분이 참다 참다 못참으니까 도망가는 것입니다. 지금 몇분이나 됩니까? (수선회 회장 답, '34명입니다.') 물으십시요.
공부가 잘 된 분은 물을 필요가 없고 공부가 안 된분은 물으십시요. 화두를 지어가는 참 뜻을 알고 공부해야 수월합니다. 이 공부를 하는것은 우리가 근본을 찿자는 것이고, 모든 것의 근본은 "나"이니 나를 알자는 것이 목적입니다. 또 참나를 알고 그 다음으로 나밖에 나를 찿자는것인데, 그러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화두하는데 귀근득지(歸根得志)요 수조실종(隨照失宗)이로다. 근본으로 돌아가면 뜻을 얻고 비춤을 따르면종을 일는다.
우리의 근본이 나인데 어리석은 사람은 육체만 나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육체도 나지만 육체를 이끄는 주인공이 있어서 그 자리를 알게되면 모든 것을 다 알고 비춤을 따르면 종을 이룬다는 것은 경계에 팔리면 다 잃어버린다는 말입니다. 보고 듣고 내지 무슨 부처님 경계라도 온전히 화두하나만 추구하되 화두하나가 잘 들리는냐, 안들리느냐,또 화두하는데 장해는 없는냐. 이것을 묻지 그 밖에 무슨 향상일구(向上一句)가 중한 것은 아닙니다. 공부가 좀 깊어진 뒤에 백척간두진일보(百尺幹頭進一步)하는 도리를 물어야 합니다.
지금 꼭 필요한 것을 물어야되며 겉다리를 아무리 찿아봐야 아무소용이 없읍니다. 지금 마삼근(麻三斤)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순수순일하게 잘 되느냐이것입니다. 어째서 마삼근이라 했는고, 어떤 것이 부처님일까 하니까마삼근이라 했읍니다. 어찌 부처님을 물었는데 마삼근이라 했는고 여기에 중요한 것이 있으니 첫째는 믿음입니다. 무엇을 부처라고 배웠읍니까.마삼근이라는 말에 믿음이 갑니까. 믿음이 안가면 공부가 안됩니다. 그정말로 마삼근이라고 일러준 스님을 믿어야 됩니다.
부처라는 말도 믿고마삼근이라는 말도 믿었다면 분명히 내가 알고 있는 부처는 마음이 부처라했는데 어째서 마삼근이라고 하였는가? 알 수 없으니 이 알 수 없는것으로 전부를 삼아야 됩니다. 그러면 이 공부 안될 수가 없으며 그냥흐리멍텅하게 하니까 안되는 것입니다. 탄 화두는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혹 우리는 화두를 탄다는 말이 있는데 타는 화두가 힘이 없기 때문에 깨친 사람이 드뭅니다.
조주무자(趙州無字)도 그렇고 이뭣고도 그렇고 모두 1600공안(公案)이 다 그렇습니다만, 하도 신심도 없고 선지식을 잘안믿으니까 이것이라도 해라하여 염불하듯이 하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하는 것이나 "이뭣고"나 "마삼근"이나 다 똑 같읍니다. 탐(貪)은 탐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부처님은 일체 유정무정 개유불성(一切有情無情皆有佛性)이라고 했는데 조주스님께
'개도 불성이 있읍니까 없읍니까?' 하니
'없느니라.' 부처님도 믿고 조주스님도 믿었기 때문에 거기서 의심이 생기는데
너 "無"자 해라 하니까 밭에 무우도 생각나고, 안되는 것입니다.
혹 "無"자 하는 분 밭에 무우는생각안납니까? 개도 생각나고 배추도 생각나고 온갖 경계가 다 생각납니다. 몸에 불이 붙어놓으면 무슨 생각이 있겠읍니까? 딴 생각없읍니다.
불끌 생각밖에 없듯이 정말로 이 화두가 모든 것을 해결한다, 전부라고덤비면 의정(疑情)이 안일어날 수 없읍니다. 그래서 이 공부는 믿음, 하고자 하는 용기, 알 수 없는 의정이 있야합니다. 의심이라 하니까 믿음이 없는 사람은 불신적으로 나갑니다. 그러면 못쓰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의심은 남 불신하는 것인데 그렇게 하는 수좌도 봤읍니다. 사사건건 사람까지 의심하는 병이든 사람도 있는데믿음이 없는 의정은 있을 수도 없고 못써요. 전체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이것을 포도라고 배웠는데 혹 오늘날 그것을 포도가 아니라고 하면, 난 포도라고 배웠는데 왜 아니라고 하는고, 그렇게 전체가 공부아닌 것이 없읍니다. 자기 알음알이로 세상을 볼려고 하지 마십시요.정말로 이 공부는 자기 공부된 만큼 받아들이고 공부된 만큼 믿읍니다.여기 지금 여러분도 공부된 만큼, 저 빗소리도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로 받아들 입니다.
공부가 안된 사람은 저 빗소리가지고 필요 이상의 걱정을합니다. 비가 많이오면 어쩔까. 저 비가 어쩌고 경계에 따라서 혹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참 비가 오니까 좋다. 좋아하는 것이나 미워하는 것이나 꼭 같읍니다. 사실을 보되 본봐가 없고, 듣되 들은바가없어야 됩니다. 지금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은 환희의 경계는 될지언정비에 끄달릴 필요는 없읍니다. 좋게 보는 것이 걱정하는 것보다는 좋읍니다.
지금 서울같은데 있으면 덥고해서 피서가고 할텐데 공부하고 있는것만 봐도 다 부처님이고, 잠 안자고 공부하는 것만 봐도 대단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 항상일구를 찿을려고 하지말고 공부하는데 정말로 화두일념(話頭一念)이 되어서 화두가 타파될 때 더 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점검하는 제일 좋은 방법이 행주좌와어묵동정(行住座臥語默動停)에 과연 내가 일여(一如)하느냐 또 꿈속에도 공부가 안넘어가느냐. 오매일여(悟昧一如)는 걱정안해도 됩니다.
왜 안해도 되느냐하면어묵동정에 일여만해도 굉장합니다. 말하고 오고감에 실지 어묵동정이어려운 것은 앉아있으면 선정(禪定)에 들어도 말하면 안되는 것입니다.혹 어떤 사람이 개중에는 공부가 많이 되어서 5-6시간씩 선정에 드는 사람도 있는데 실지 말하면 잘 안됩니다. 이 말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수좌의 오계가
첫째 말을 많이 하지 말라,
둘째 잠을 적게 자라,
셋째 책을 보지마라,
네째 음식을 많이 먹지마라,
다섯째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마라.
이것이 오계인데 말하면서도 공부가 안 도망갈 정도면 공부가 꽤 깊은것입니다. 제일 방해가 되는것이 말인데 여기 묵언(默言)이라고 써붙였읍니다만, 이 말안하기도 어렵읍니다. 보통 수행이 되기전에는 말안하기도 어렵습니다. 다겁생(多劫生)에 익힌 습기때문에 그저 쓸데없는 말이나 욕이라도 해야 후련하고 흉이라도 한번 해야 후련한 것입니다.
그것에 전부 끄달리다보니 갑자기 묵언이 답답합니다. 이 사방으로 쫓아다니는 놈을 끌어앉어놓으니 죽을 지경입니다. 허리는 아프고, 잠은 때만되면 잤으니 고비를 넘기려니 엄청나게 어려운 것입니다. 참 묘한 것이 이몸둥이는 마음씀에 따라 달라집니다. 사실은 마음대로 되게 되있읍니다.세상 사람이 마음대로 안되다하지만 사실은 뜻대로 안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가 써놓고 안믿읍니다. 매일 잠을 잤으니까 그 때가되면 저절로 잠이 옵니다. 안자는 습관이 되면 잠이 안옵니다. 미국은지금 밤인데 그곳에 가면 잠이 안옵니다. 그 습관 때문에 밤이라해서 잠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습기 때문입니다. 이 몸둥아리 다스리는데 생각에따라서 늘 달라집니다. 출격장부(出格丈夫)가 되기 위해서 생사대사(生死大事)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기 왔지않읍니까.
그렇다면 이보다 다행스러운데가 어디있겠읍니까. 다행스러운 마음을 가지면 공부가 됩니다. 참 백천만겁난조우(白千萬劫難遭遇)다. 백천만겁에 사람몸 만나기 어려운데 혹 짐승으로 태어났으면 어쩌겠읍니까? 하도 요새 사람이 흔하니까 귀한 줄 모릅니다. 사람은 그렇더라도 부처님법 만나기가 얼마나 어렵읍니까? 또 정법만나기가 얼마나 어렵읍니까? 또 이 참선법회만나기가 쉽읍니까? 혼자는 할려고 해도 못합니다. 그러니 도반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혼자 이런 자리를 마련할 수도 없거니와 같이하기 때문에 얼마나 고맙고 서로 귀중합니까? 그래서 감사하고 고마운 줄 알면 공부가 안될 수가 없고 또 중간에갈려고 해도 못갑니다.
중간에 간 사람은 엄청난 죄를 짓는 것입니다.이보다 더 급한 일이 어디있겠읍니까? 사실은 끝마치고 갈려고 했는데도저히 어려우니 핑계를 된 것입니다. 생사대사보다 더 급한 일이 세상에 어디 있겠읍니까? 그것은 소중히 안여기고 또 근기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여하한 일이 있더라도 중간에 물러서지 마십시오. 중간에 그만두는 것은 산모가 달채우지 못하고 어린애를 낳은 격입니다.
그러니 화두만 열심히 들으십시요. 고비는 조금 넘긴것 같읍니다. 이 묘한 것은 삼천배 절을 해야겠다고 목표를 세우면 500배가 고비고 그 다음은 잘 넘어가다가 끝에 가서 또 어려워집니다. 108배를 할 때도 30배가고비고 인생살이도 그렇고 그렇습니다. 지금 8박 9일이라고 정해놓으니까 처음이 좀 어렵지 지금부터는 빨리 지나갑니다. 그러다 마지막 7,8일째가 되면 그 때부터는 참 시간이 지루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끝내지말고 집에 가서도 여기 공부한 마음으로 간단없이 열심히 해야 될 것입니다. 가나오나 매일 경계에 팔려서 시비나하고 지내지 말고 보기는 보되본 바 없이 보고, 듣기는 듣되 들은 바 없이 들으란 말입니다. 화두를항상 관하면서 의정을 일으키고 가나오나 이것을 본업으로 알고 다른 것은 부업으로 삼으십시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나 찿는 공부이기 때문이며 참선이란 나를 참구한다는 말이며, 선은 근본이요, 진리요, 나이고,참자는 참구한다는 뜻입니다. 나를 찿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어디있읍니까. 그리고 잠깐이라도 선정에 들고 화두를 들면 그 공덕이 한량이없읍니다.
우리가 목표를 너무 크게잡기 때문에 그렇읍니다. 여러분 본인을 잘 모르겠지만 시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십시요. 과연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있나, 어떻게하면 돈을 버는가, 어떻게하면 잘 먹고 잘 입고 이름을 떨치고, 엉뚱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읍니다. 요새 월급 올려주라는 사람들을 보십시요. 여러분들은 그런 생각 다 뛰어넘었지요.
용맹정진한 사람들이 한번씩 앉았으면 다 해결될 것입니다. 그래서본인이 공부됐는가 안됐는가는 주위 사람을 보면 압니다. 처음에 이 사람도 공부를 해보니 안되더군요. 화두가 전혀 안되고 시간은 지루하고 어떻게 해야 옳은 것인지, 다만 이 석달을 선방에 들어가긴 들어갔는데 중간에 나오면 안된다하니 나올수도 없고, 다리는 아프고,허리도 아프고 죽을 지경이였읍니다. 화두만 되면 좋겠는데 화두는 그만두고라도 잠이라도 왔으면 좋겠읍니다.
지루해서 50분도 시간이 잘 안갑니다. 내가 어제는 무엇을 했던가, 그 제는 무얼했던가, 다겁생래 생각까지 나는데 심지어는 아버지께서 4살때 글 배우던 생각까지 나는데 그래도 50분이 잘 안갑니다. 그것도 한두번이지 늘 생각하면 싱거운 것입니다. 그러다가 안되니까 개미가 지나가는 것이나 보고 옆 사람 조는 것보고 '아 저놈 잘 잔다'하고, 잠이나 오면 잠이나 자지 잠은 안오고 화두는 들릴 턱이 없고 無자하라니까 밭에 무우도 생각나고 개도 생각나고 안됩디다.
하도않되서 경봉스님이 "이머꼬"하라 하셔서, 큰스님이 이머꼬하라니, 이머꼬는 하는데 이머꼬가 되어야지요. 이것도 한참하니 개 생각도 나고, 無자 생각도 나고 안됩니다. 중간에 못도망가게 한철내 싸우는 것 입니다. 이 공부는 선근(善根)이 없이는 어렵다고 봅니다. 경봉스님회상(會上)에서 옛날에는 차가 못다니니까, 원주에서 짐을 니아카에 싣고 밀고당기며 힘차게 올라가다가 니아카 쇠에 발이 끼어버렸읍니다.
조금만 더올라갔으면 난 병신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업고 왔는데 병원에 갈려니 그런 창피가 어디있읍니까? 병원에 안갔읍니다. 이 잘못이 다 내죄업이니 창피한 노릇이지요. 그러나 아프고 쑤실 때 화두가 되면 아품도 적읍니다. 약이래야 일꾼들이 담배피운 담배가루와 머큐롬으로 소독하는 것이 고작이였읍니다.
그러니 경봉스님께서 마음으로 관을 해라 하셔서 화두삼은 것입니다. 아프니까 어디가지도 못하고 도망가지도 못하고, 허리는 아파죽겠는데, 이 다친 것이 더 아프니까 허리 아픈 것은 다도망가고 없는 것입니다. 변소도 업고 가야되니, 마음으로 치료하고 있었읍니다. 그러니까 공부는 선근도 있어야지 못합니다. 다친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 것입니다.
한 달쯤되니까 혼자서도 걸을 수도 있게 되었읍니다. 내가 아프다는 것이 어떤 놈인고 가만히 생각하니 쏙쏙 쑤셔도 '이것은 고기덩어리'하게 되더군요. 감옥에 들어가 있는 사람을 생각하면 여긴 신선노름입니다. 감옥에서는 갖은 고문을 당하고 고추가루를 입에 넣고하여 인간 취급도 안합니다.그렇게 독하게 하면 다 깨칠 것입니다. 어디 잠오라고 그냥 나 둡니까?
오늘 김 대중이 잡혀갔으니 대단할 것입니다. 그 사람 아랫 사람들이 전부 데모하고 그럴 것 아닙니까. 공부를 그렇게 했으면 굉장할 것입니다. 제정신에 사는 사람이 없읍니다. 시방세계가 무너져도 이 몸뚱아리는 별것아닌데 무얼 말할 것 있읍니까? 내 공부 찿아야겠다 이것입니다. 그사람들 참선했으면 다 도통했을 것입니다. 이 공부 만나지 못하면 부가 악길로만 떨어집니다. 그래서 이 공부는 편하면 공부가 안됩니다.심하게 누구에게 뺨을 맞으면 안 잊어지고 분합니다. 분심이 나면 하는데 편하니까 화두가 안됩니다. 그리고 화두를 쉽게 쉽게 줍니다.
소중해 보십시요. 안 잊어집니다. 그런데 소중한 것도 지금 이 시간이 소중할 수도 있읍니다. 짧은 순간에도 강한 것이 있고, 시간이 지나서 소중한 것도 있읍니다. 예를 들으면 힘없는 염불도 여러번 하면 그것이 강해집니다. 또 짧은 순간이라도 큰 충격을 받으면 강하지 않읍니까? 오랜세월동안 하니까 화두도 되더라 이 말입니다. 정말 진실로 발심해서 충격을 받으면 그 순간에 화두가 될텐데 쉽게 주고 그러니까 쉽게 생각하고합니다.
그나마 선지식도 어렵게 만났읍니다. 누가 선지식인지 도인인지 지금승려들 중에 거의가 모릅다. 다른 사람은 그만두고라도 내가 그랬읍니다. 그런데 기도를 열심히하니까 선지식을 만나게 됩디다. 매일 봐도몰랐는데, 누가 도인인가 물었읍니다. 승려로서는 내 스승인 각성스님이글을 많이 아는 사람이라 글 많이 아는 이가 도인인줄 알았읍니다.
내가공부가 덜되어서 그랬는지, 좋게 말하면 바꿔질려고 그랬겠지만 저렇게많이 아는 사람도 行이 저렇다면 내가 더 배울 것이 무엇이 있겠나 하고,그만두고 선방에 참선하러 갔읍니다. 오대산에 가서 옆에서 공부하는 사람을 보니 한 시간을 못참아서 몸을 비틀고 졸고합니다.
난 잠도 안오고두시간 앉았어도 좋읍니다만, 다 이것은 초심자일 때는 잘 되는 것이고고참이 되면 잠도 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오 모르고 그저 선방에 앉아있는 사람은 도인인 줄 알았더니 별거 아니구나 했읍니다. 그런데 그나마도 안하고 그 곳에 입승스님은 결제를 안한다 합니다. 그때 나는 하도안되서 경포대에 가서 울었읍니다.
"부처님이시여, 나는 평탄하고자 바라지 않읍니다. 나에게 떠한 어려움이 부딪쳐도 이겨낼 힘을 주옵소서!" 하고 기원했읍니다. 그리고 무문관을 들어가니 경험이 없다고 안받아 줍다. 그래서 어디 조그마한 절에 가서 기도를 열심히 하니까 선지식을 만나게 되더군요. 그 선지식이 누군가하면 경봉스님이였읍니다. 그런데 그 전에는 無자 화두를 했읍니다. 그것이 어느 절에 가니까
'스님 무슨 화두를 탔느냐?' 그래서
'화두가 물건인가 타게' 하니까 아무 소리도 안합디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하니까 화두를 타는가보구나 했읍니다. 그것도 모르고 그냥 앉아있으면 공부인 줄 알고 했읍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자존심이 있어 물어 볼 수도 없고, 우리 스님에게 물었읍니다.
'화두를 타야 합니까?'
'타야된다'
'그럼 스님 주십시오'
'無자 해라'
'無자요'
'無자, 개가 불성이 있느냐 없느냐, 왜 無까? 그리하라!' 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있느냐 없느냐 왜 無로 했을까, 그런 생각은안나고 쓸데없는 생각만 나옵니다. 無하면 밭에 무우, 배추 별 생각이다 납니다. 그래 경봉스님회상에 가니까. '이뭐꼬' 하라 하시는데 되야지요, 안되요. 5분도 안되고, 전혀 안됩니다. 허리만아프고 이 시간에 책을 봤으면 얼마나 보았을 것인가 생각하니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서 죽겠는데 더우기 다리는 다쳤으니 도망갈 수도 없고, 모기는 그리도 많이 무는데 잡을 수도 없고, 용을 쓰니까 뒤로 퉁퉁넘어집니다.
여러분도 넘어져 봤지요. 오늘은 맛있는 것 안해 올 것인가. 음식은 무엇을 먹을까만 생각하고 죽을 지경입니다. 내가 그래서여러분들께 참으로 다행스럽게 여깁니다. 다 퇴굴심을 내가지고 도망가 버립니다. 또 본능적인 사된 생각은 더 납니다. 남자는 여자 생각나고,여자는 남자 생각나고 그럴 것입니다. 공부하고 있으면 업식이 동하니까더 할 것입니다.
물이 잔잔할 때는 온갖 빛이 다 비칩니다. 마음이 잔잔하니까 지난 업식이 다 뜨올라 공부가 더 안됩니다. 그래서 못 참는것입니다. 그냥 도망갈 수 없고 핑계를 되고 도망갑니다. 여기 올 때는 그런 생각 갖고 왔겠읍니까? 고비를 참고 죽어도 끝까지 가야지 토끼가 되지말고 거북이가 되십시요. 그것이 다 법문입니다. 끝끝내 가면은 그자리가 다 통하는데, 그것을 못합니다.
그래가지고 한철을 턱 마치고 보니 법당의 주련이 다르게 보입니다. 선방에 들어가지전하고, 내 나름대로의 느낌이 다르고, 글색임이 확 틀립니다. 그리고 단적으로 헐떡임이없어졌읍니다. 누구한테나 일등해야 되고 무엇이든 일등해야 된다는 욕심이 참 많았는데 그것이 꺼졌읍니다.
무엇을 잘해아 되겠는 마음, 무엇이 좋다는 마음이 없으니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읍다. 그래서 '바로 이것이구나!' 했읍니다. 선이야 말로 화두를 들고 앉아 있는 것만해도 공덕이 한량이없구나, 억만금을 가지고 있어서 불안하고 돈지키는 노예가 된다면 그 아무 필요가 없고, 아무리 많이 알았다 하더라도 마음이 불안하면 그 무슨필요가 있고, 근본자리 모르면 아무 소용이 없구나 하고 해제하자마자 용맹정진(勇猛精進)을 시작했읍니다. 스님 3명과 처사 한명이 했읍니다.
그때 스님들이 걸작이 많았는지, 요새 어러분들이 들어보면 알만한 사람들 입니다. 개차반들 말도 못합니다. 인격때문에 이야기를 못합니다.다만, 큰 스님회상에서 임금님 쓰는 관을 만들어서 쓰고 도포를 입고 다니기도 합니다. 얼마나 공부가 안되었으면 그랬겠읍니까?
또 먹는 타령이나 하고, 곡차라고 먹고, 지금 철우스님이 입승보실 때인데 그 가지가지 일일이 다 말도 못합니다. 술은 난초약이고, 담배는 영산마라 하며피웁니다. 화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으니까요. 그래도 나는 하자고 해도 안했읍니다.
저 사람들은 공부가 많이 되었기 때문에 저렇게 해도 되겠지 했읍니다. 처음오면 신고라 하여 돈내라해서 곡차마시고 했읍니다. 난 흉 안봤읍니다. 저 사람들은 다 한 경계 지나서 저렇겠지 하면서 지냈읍니다. 지금이라 이런 생각이나 하지 그 때는 그런 생각할 능력도 없었읍니다. 나는 그것을 먹으면 벼락이 떨어지는 줄 알았고 큰 벌받는 줄 알았는데 어찌 먹겠읍니까.
'아 저사람들은 굉장한 도인들이다.'그런 생각을 했읍니다. 그래 한철 지니 큰스님께서 어떠하셨겠읍니까? 그런데 네명이 졸면 두들겨 패기로 하고 용맹정진한다하니 경봉스님이 얼마나 좋아하셨겠읍니까. 지금 내가 여러분들만 봐도 좋은데 공부 열심히한다면 안좋겠읍니까. 경봉스님은 40년 조실해도 이런 사람들은 처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네명이 용맹정진한다하니 안좋겠읍니까. 평상시에없던 것을 다 주시면서 먹으라 합니다. 한 일주일하고 나니까 해제할 기분이 없어집니다. 깨칠 때가 해제이지 그까짓거 화두들때 그것이 해제아닙니다. 3개월에 해제라고 생각하면 잘못입니다. 그런중 그 때 해인사에서 총림한다고 신문에 나서 그 곳에 갈려고 하니 큰스님께서 못가게하시더군요.
그러나 '내 마음먹었으니 한번 갔다오겠습니다.'하고 기필코 나섰읍니다. 그 곳에 간다고 공부가 되는 것은 아닌데, 억지 춘향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 때 6시 잔 팀과 4시간 잔 팀이 있는데조금이라도 더 할려고 가행정진에 들어갔읍니다. 거기에는 나보다 더 열심히 잠안자고 공부하시는 분이 있었읍니다. 해암스님이 입승을보는데잠을 안자고 합니다. 그 스님보면 50분 앉아있으면 45분은 졸고 5분은그냥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장한 일입니다. 보통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저 분에게 뗠어져서 되나 싶어서 '스님 나를 좀 깨워주십시요!'하고 12시에 깨어서 하는데 열심히 하다보면 언제 졸았는지 모릅니다.졸아도 경책해 주는 사람없고, 그렿게하다가 위장병도 생겼읍니다. 화두는 그냥 염화두 이뭣고 입니다. 또 성철스님은 '마음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요, 이것이 무엇인고, 이렇게 하라'고 합니다. 아 이놈 마음, 부처, 물건 다 끄달립니다. 화두가 된면 의심스럽읍니다. 보통 전생에 많이 하신 분 아니면 어렵읍니다.
어뗜 사람은 돈이 얼마나 있나 세고, 해제철에 어디가서 얼마를 탈까, 그런 것들을 생각합니다. 앉아서 하다가 안되니까 별궁리 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공부는 억지로 해야 합니다. 억지로 해야지 순리적으로 잘 잠 다자고 먹을 것 다 먹고는 안됩니다. 조금씩이라도 욕심을 가져야 됩니다. 조금씩이라도 남보다 더 할려는 욕심으로 들어갔읍니다. 그래서 옆에 사람이 선지식이라 합니다. 혼자 있으면 들어누울 것도 남이 있으면 못 눕읍니다.
그래서 옆에 도반이 나의 선지식입니다. 남 졸고 있으면 우습지요. 밤에 공부하고 있다가 옆에 보면 송장으로 보입니다. 송장들 잠잘잔다. 그것만 해도 나는 용기나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공부가 3년이 다되어도 억지춘향입니다. 그렇게 이뭣꼬를 하니까 보이는 것마다 이뭣꼬이고, 사람을 봐도 이것이 무엇인고, 글자만 봐도 이것이 무엇인고,하도 염불하듯이 하니까, 놓칠 것 같아도 그냥 몸에 익혀놓으니까 이뭣꼬밖에 없읍니다.
의정은 생각도 못합니다. 그런뒤에는 떨어집니다. 친구 이름도 잊어버리고, 밥맛도 뗠어지고, 좋고 나쁜 것 그런 것도 없고단순해져서 큰스님 법문을 알아들을 수도 없어집니다. 그래서 오매여가기전에는 법문 묻지도 않고 이것만 믿고 한다고 하는데 안되어서 백일을 잠안자고 해도 안되면 옷을 벗고 나가야지, 내 청춘 다보내고 무엇하나 해서 3년을 정하고 했읍니다. 한 70여명중에서 5명만 뽑아서 졸면 때리고 포행도 없이 했읍니다.
그러기 한 40일 지나니까 화두가 잡히기 시작하고, 50일이 지나니까 시간이 그렇게 잘 갑니다. 지루한 줄도 모르고, 그렇게 편할 수가 없읍니다. 그런데 그것도 마장이 옵니다. 졸면돌아가면서 패기로 했는데 내가 졸면 안봐주고, 공격이 전부 나한네 오년데, 졸지않는데도 패는 것 같았읍니다.
그래서 '내가 이 철이면 갈 몸인데 조니 안조니 시비할 것이 무엇이 있는가 부처님이 나를 경책해 주는구나'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졸지않는데 때린다고 싸우는 람도 있고, 공부가 안되니 그렇겠지요.
75일쯤되니까 9명이 불었읍니다.눈이 많이 와가지고 합친 것입니다. 혼자서 고집할 수도 없었읍니다.그 때 들어누우면 허리가 아프고 몸은 다 썩어 있었읍니다. 무슨 죄인가하면, 축구 시합에서 많이 다친데다가 용맹정진하니까, 피가 안돌아서 온몸을 긁으면 피가 나고, 눈으로 감아놓고 또 하고 하니 피가 안도니 썩은것입니다. 이 때 아픈 것이 10년을 갔읍니다. 전신에 퍼져서 눈에서까지 고름이 나올 지경이었읍니다.
향곡스님 회상에서 도천스님이 늘 고름을 뽑아주고 했읍니다. 성냥으로 고름을 뽑고 나병환자들 먹는 약으로뽑았는데 육백육국을 맞으니까 전신에 퍼져서 사람들은 문둥병인줄 알았을 것입니다. 손만대면 간지럽고, 굶으면 편합니다. 지금 생각하니까 아픈것이 선지식입니다. 그 이야기를 일일이 다할 수는 없고 '몸에 병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나니 병으로 양약을 삼아라. 일이 뜻대로 되기를 바라지 말라.
일이 뜻대로 되면 뜻을 가벼운데 두나니, 뜻대로 되지 않음으로 수행을 삼아라.'참 기가 막힌 말입니다. 공부하는 분상에 장애속에서 다 도를 이룬 것입니다.그러니까 부처님의 가피력도 있어야지 혼자 힘으로는 어려운 것입니다. 졸다가 누가 깨워주나 해서 돌아보면 아무도 없읍니다.
정말 여러분들이 공부할려고 하면 다 도와줍니다. 전부가 도의 모습이고 도와주는 것인데 한 생각 잘못 일으키면 전부 장애입니다. 그래서 좋은 생각을가지고 공부를 하되 항상 다행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지금 화두가 안된다고 좌절하지 마십시요. 앉아있는 공부만 해도 한량이 없읍니다. 그리고망상이 떨어지면 잠이오고 졸음이 옵니다. 일구월심(日久月沈)하면 자연정혜원명(自然定慧圓明)하리라. 날이가고 달이 깊어지면 절로 정과 혜가밝아니느니라. 이 일보다 더 빠른 길이 없읍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이 뗏목에 비유했읍니다. 공부할 때 위에서 물도 흐르고 비바람치고 하는데노젓고 삿대질하기가 힘듭니다. 열삿대쯤 가다가 조금 쉬면 20삿대쯤 물러갑니다. 아이구 내 이래서는 안되겠다해서 또 한참 올라가다가 또 쉬면 도로 가 버리고, 표시가 있어야 할 것인데 더 안됩니다. 더 안되요. 보통 사람같으면 중단할 것이지만, 끝끝내 그렇게하면 그 다음에는 바람도 자고 물도 장해가 적을 때가 있어서 그 한 고비를 넘기면 그 다음은가만히 삿대질만 해도 줄줄 흘러갑니다.
그러니 잘 될 때보다 안될 때가소중하니 좌절하지 말고 이길뿐이다, 세상살이는 부업이고 참선은 본업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업으로 삼고 내 못깨달는 것은 그만두고 일염만년토록 한생각 만년가도록 그러면 염라대왕이 함부로 못잡아가고 부러운 것이 없읍니다. '역대조사가 어찌 나를 속였을 것인가.' 이것을믿고 하십시요. 그래서 그 고비를 지나고 한 75일쯤하고 못했읍니다.100일을 못채우니 분해 죽겟읍니다.
기필코 채워야 되겠다 해서 해제하자마자 백일을 채웠읍니다. 그것도 단식으로 했읍니다. 한 6일쯤하니까이러다가 죽는구나 싶었읍니다. 초조하기가 짝이 없었읍니다. 왜 그렇게 굶었나하면, 성철스님이 병원에 가라고 5,000원을 주는데 내 기분에엄청난 돈이었읍니다. 그 때는 한철나면 300원을 줄 때인데, 지금은 한철나면 몇 십만원을 줍니다.
그러니 얼마나 큰 돈입니까. 또 그 때는국가적으로도 어려운 때이고, 더구나 전부가 기독교병원인데 그 귀한 돈으로 어찌 병원에 가겠읍니까. 차라리 다리 자르고 병신으로 살기보다는죽는 것이 낫지요. 뜸을 많이 뜨고 이명래고약을 많이 없앴습니다. 열댓군데 떠놓고 고약부치면 시원합니다. 고름이 심할 때는 떼어내면 썩은피가 줄줄 흐릅니다. 지금도 선합니다. 손으로 눌르면 일어나지를 안했읍니다. 요사이 병원에 갔으면 별놈의 병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은데로 붙쳤을 겁니다. 굶으니까 바싹 말랐읍니다.
굶으면 가려움이 덜하고 음식만 먹으면 간지러운 것이 더합니다. 그런 상태로 화두를 들때 잇빨을물고 금강좌(金鋼座)하고 서너시간씩 있으면 그 때에야 선정에 들고 그러면 아픈 것도 가려운 것도 잊어버립니다. 긴장만 좀 풀리면 근지러워 못삽니다. 그런 고비를 넘기고 심지어는 이 고운사까지 올 때까지도 그 기운이 있었읍니다.
그래서 그 단식을 하면 낫겠다는 생각에서 했읍니다.죽더라도 기필코 20일, 100일을 채워야 된다 이러고 있는 데 사제가 한명오더니 우유를 줍니다. 속으로는 반갑지만 '너나 먹어라.'하고 내 보냈읍니다. 그러니 노스님 한 분이 와서
'단식을 어떻게 합니까?'
'네 안먹습니다.'
'에이, 물도 안먹으면 죽습니다.' 단식한다니까 멍청하게 굶는 것이 단식인줄 알고 물을 안먹으니까 피가말라서 한 일주일되니까 이상한 것이었읍니다.
'그래 물을 먹어도 단식입니까?'
'물은 먹어야 됩니다.'해서 물을 먹으니 그리 편할 수가 없었읍니다. 육체는 이렇게 고비를 넘기기가 어렵읍니다. 다겁생래로 애착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보름쯤되니 환희가 나기 시작하는데 지금도 안잊어집니다. 어떻게 환희가 나는지 석가는 새벽별을 보고 소리쳤지만 나는 저녁별을 보고 소리친다. 아름다운 것이 꽃이라면 꽃아닌 것이 있겠느냐. 환희심이 터지니 감당을 못하겠읍니다. 변재가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잘못하면 점장이가 될 것 같아
'이것가지고 선지식이 다 되었다고는 안 할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억제를 하면서 이 때부터는 내 몸이 필요하고 있어야 공부하겠다 싶어가지고 일어나서 기간을 다 채우고 향곡스님회상에 갔읍니다.법문을 들으니까 이해가 다 가는 것입니다. 그때에 선지식이 잘 잡아주어야 하는데 그것을 못잡아주고 인정해 버리면 않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양논작위선덴 석화도 불법이요 정광도 마구통이라 열활진곤이라도 적과우장궁이요 양구거불도 삼화작이라 역대조사가 태도삼천리라 삼화총화초이요 사마당상 근택이라 불보공처진보술은 명안 납승야나루라라고 하시는데 이해가 다 갑니다. 난 그렇게 안하겠다 싶읍니다. 무릅을 끓을 수 없을 정도로 형편이 없었읍니다. 반철도 안나서 가야겠다했는데 고름이 터져 수월했읍니다. 그래서 향곡스님께 가서
'스님법문 들으면 이해가 가는데 전 그렇게 안하겠읍니다.'
'응 그래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약논 작위산데 진진찰찰이 무비급이라 하겠읍니다.'하니 태도가 180도로 라졌읍니다. 하신 말씀이
'가도 가는 줄 모르고 와도 오는 줄 모르면 깨달음법, 인가가 무슨 필요가 있읍니까? 말도 올리고 사자같은 사람이 여우가 되버렸읍니다. 거기서 아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식은 반드시 눌려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꾸지람해 주고 병통을 집어주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 무엇이든지 물어라 하고 미쳤읍니다. 큰소리 펑펑치니까 수좌 한 명이 성철스님 법문하실 때 동별당 서별당 고양이 갖고 싸운 것에 대하여 물으셨다면서 묻읍니다.
남전스님이 '일러라, 일으면 이 고양이를 살릴 것이고 일르지 못하면 죽인다'하시니 아무도 대답을 못해서 칼로 고양이 목을 쳤는 데 조주스님이 들어오시니 남전스님이 '이런 일이 있었는데 너같으면 어떻게했겠느나'하시니 신짝을 지고 나갔읍니다. 이에 '너가 있었으면 고양이가 죽지 않았을 것이다'하셨으니 '이 신짝 매고 간 도리가 무엇인가'라고해제법문에 하셨다 하기에 '그 당시 조주스님이 물구나무 설 줄 알았던들 물구나무 서서 갔을 것이야'라고 대답을 하니 말을 안합디다.
그래서 성철스님을 찿아가서
'스님 이번 해제법문에 고양이 법문하셨다면서요.'하니
'그래'하시기에
'나는 그렇게 안겠읍니다'했읍니다.
'그래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저는 물구나무 서서 가겠읍니다'
'그래 그 첫 대답이 그럴 듯하다. 옛 선지식도 그 첫 대답에많 이 속았느니라. 그 물구나무 선 도리하고 남전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
'예, 저가 묻는 사람에 따라서 대답을 하겠읍니다'
'그래야지'
'선지식이 그렇게 물으면 내가 물구나무 서서 겠지만 아직도 공부하고 있는 사람이 그럴 때는 너 목은 어떻 게 할 것이냐?' 고양이 목자르면 인과가 있어서 저도 목 당할것 아닙니까. 큰스님은 주안달아도 알지요.
'그럼 내 다른것 하나 묻지. 너가 이것만 답하면 확철대오로인 정해준다.'그러면서 능행마 화두를 드는 것입니다. 옛날에 보살이 큰스님될 것 같은 한 스님을 토굴을 지어서 한 10년간 시봉했읍니다. 10년이 되는 어느날 딸을 시켜서 시험을 했읍니다. 딸에게 가서 스님을 보듬고 교태를 부리면서 스님이
'이럴때 경계가 어떠합니까' 하고 물으라 했읍니다. 딸이 시키는데로 행하니 스님이 '고목에 한암하니 한기가 돈다.
' 마른나무에 찬 바위가 의지하니 한기가 돈다 라고 답했읍니다. 이를 어머님에게 그대로 전하니 보살이 토굴에 가서 스님의 멱살을 잡고 '이 흉악한 속인놈을 내가 10년동안 밥을 먹였구나. 에이 도적놈 나가거라' 하며 끄집어내고 불을 탁 질렀읍니다. 그런데 왜 쫓았느냐 이것을 묻기에
'지극히 그 스님을 위해서 쫓았읍니다'
'그래 어찌하면 안쫓겨나겠느냐. 너 같으면 어찌하겠느냐?'물으신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들이 안 쫓겨날려면 입벌리지 말고 공부만했으면 됩니다. 고목이 한암하니 한기가 돈다는 말도 안하고 교태를 부리나 말거나 정진만 했으면 됩니다. 공부가 안깊어졌기 때문에 그런 헛소리를 하지 공부가 깊어지면 그런 것 말할 필요가 무엇있읍니까. 들리지도 안합니다. 정말로 진실로 열심히 했다면 들리겠읍니까. 뜨거운 것이나 차가운 것이나 똑 같읍니다. 사실 안 그렇겠읍니까.
'너 같으면어떻게 하겠느나' 물으시기에
'부지런한 해가 동쪽에 뜨니 벌나비가 춤을 춥니다.
'부지런한 해, 참 부지런한 해입니다. 늘 해뜨고 내일 또 해뜹니다.내 이름이 무엇입니까. 부지런할 근자 날일자이니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그래 그 말하고 고목에 한암하니 한기가 돈다는 말하고 같느냐다르냐.'
'천리현격입니다.'
'틀리단 말이지'
'예'
'너 아직 덜 되었구나. 네 서울 갈려면 아직 멀었어. 아직 수원밖에 못갔다. 네가 더 열심히 하면 네가 내 은혜를 못갚을 것이다.' 내 그래서 종정스님 존경합니다. 그때 만약 잘 못 일러주셨으면 큰 일아닙니까. 변명해 보았자 소용없읍니다.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짓 선지식은 못합니다.
그 때부터 새로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전강스님 회상으로 가는 도중 낙동강에서 망상 피워 시 한 수 읊고, 佛祖死活以不亂이로다. 부처님과 조사를 죽이고 살리는 것이 어렵지 않도다. 雨下濕地無의하니. 비가 내려 땅 젖음을 보고 내가 의심이 없으니, 洛東僑下 유소거라. 낙동강 다리아래 물이 흘러가네.하고 시를 짓고 그 때부터 전강스님 회상에서 3년 동안 공부했읍니다.전강스님도 참 간절하신 분입니다.
낮에는 대중하고 정진하고 밤에는 큰스님하고 같이 정진하시는데 제가 기는 살아놓으니까 법문하실 떄 조금만잘못하면 그대로 않있고 막 공격했읍니다. 하루는 '이 사람아 득력했다면 큰 허물이 아닐 것일세.' 본인이 득력했다고 하십니다. 큰스님께서그리고 '이놈들아 나는 77 대 조사라면서도 내 한시간밖에 잠안자고 공부하는데 너희들은 잠만 퍼자느냐'하시기 에 '이 노장하고 한번 겨루어보자'해서 낮에는 대중하고 정진하고 밤에는 큰스님하고 같이 정진했읍니다.
그것도 출입자재 방부를 들인 상태에서 그런 것입니다. 왜 출입자재방부를 드였냐하면 전에 용주사에서 한바탕 크게 싸운 것이 인연이 되어서 입니 다. 싸운 원인은 대중이 부처님의 복장을 뜯어 팔아 먹으려합니다. 옛날 단하 목불선사가 부처님 쪼개 가지고 불붙인다는 말은 이해가 갈지언정 그 속에 나온 것을 팔아 먹어 서 되겠읍니까. 그런 상황이 큰스님 회상에도 일어났읍니다. 그래가지고 대중공사가 벌어졌는데나는 지대방에 있었는데 대중공사에 따라 만다라 주인공들인 몇몇 스님들이 보따리를 싸기에 '너 왜 가느냐'하니 큰스님이 미워한답니다.
그래서 '큰스님게 서 어찌 미워할수 있겠느냐 참회하고 지내자'하니 큰스님이 막 활을 하십니다. 나도 막 활을 했지요. 버릇없지요. 수좌들이 활하면 힘을 모아서 하니까 크게 나옵니다. 입승스님이 와서 참회하라 합니다. 그러나 잘못했어야 참회하지, 참회도 안했읍니 다. 그 때 밤에도잠안자고 공부할 때 입니다. 참회도 안하고 떡 내 자리에 앉았는 데아무소리가 없읍니다. 그 때 입승이 오더니 아무말을 안하니까 그대로계십시요 합디다. 그래서 나와서 절을 하니까
'자네가 내 말끝에 활을 했는가'
'예'
'도대 체 그 활이 무슨 활인고'
'활은 처치하고 무엇때문에 수좌를 보내시렵니까.'
'대중의 결의니라'
'제가 알고 있기로는 결제중에 수좌를 보낸다는 것은 달차지 못한 산모가 어린애를 출산한 격으로 알고 있는데 어찌하여 금싸라기같은수좌를 버리시렵니까'
'가섭이 아란을 쫓았지 않느냐.'
'아란이야 쫒아야지요'
'이놈 어디서 버릇없이 땅을 치냐'그러니까 회오가
'근일이 참회하라'합니다. 그러니 노장은 이 사람도 보내고 저 사람도 보내고 나도 보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회오가 근일이 참회하라 합니다. 그래
'야 가만히 있거라. 내 못가겠읍니다. 나 갈곳을 일려주시오.'
'너도 모르는 데 내가 알겠느냐. 천성도 불성이니라.'
'흥 둘은 알고 하나는 모르는구나'라고 그랬읍니다.그때 그 덩치 큰 월용이가 철없이 나를 끌어 냅니다. 회오하고 내보내니까 나갔읍니다. 그런데 큰스님이 들어오라고 불러 들어가니 악수를 청하는 것입니다. 반가와 꼭 잡았지요.
'아 이놈아 가만히 잡아라. 보내도록 허락해 주게.'
'큰스님 뜻대로 하십시요. 큰스님이 미워한다 하니 어찌 큰스님이 미워할 수 있겠읍니까'라고 했읍니다. 그러면 그렇지 전단이마에 무작수하니 사자굴속에 사자가 없을수 있느냐. 아 그런 멋도 있어야 됩니다. 그리놓고 분좌를 하고 앉으라하시니까 멍청하게 앉았읍니다. 그 다음날 아침 새벽에 날 두들겨 잡을려고 정식적으로 법상에 올라가지고, 통도사에서 만발공양을 하는데 공양을 막 할려하는 데 혜월스님이 억하고 활을 하시고, 공양이 다 끝나니 만공스님이 억하고 또 활을 했읍니다.
그 활이 무슨 활인가, 이것 때문에 수좌들끼리 논란이 많았는데 그것은 여기 공부하는 사람이 있는가 없는가볼려고 했는 활이라느니, 처음은 밥 먹자는 활이고, 밥 다 먹었다는 활이라느니, 이렇게 수좌들의 견해대로 붙었는데 그 건 그만두고 내가 어제안에서 활을 했으니 내활이요, 밖에서 눈밝은 수좌가 활을 했으니 외활이다.
'이 활이 무슨 활인가 대중은 일러라'하시니 회오가
'억'하고 활을 하니
'갱도하라'다시 한번 일러라.
'잘 모르겠읍니다'
'이 자석아 거기서 죽느냐?'
'우리 원각이가 일러봐라.'원각이라고 공부 열심히 하는 수좌가 있었읍니다.
'허허 '이럽니다. 그러니
'저자식이 또 이러네, 우리 근일이가 일러봐라.'
'사자소리에 천룡은 기뼈하는데 백수는 분분합니다.'그 말이 무슨 말인가 알겠읍니까. 내가 이러니 스님은 좋아하는데 대중이 놀랍니다. 이렇게 했다면 맞아 죽읍니다.
'갱도하라.'
'잔설이 분분하니 그대로 보시요.'
'큰스님한테 잔소리로 표현해서 되겠느나.'내가 잔소리로 표현한 것은 아닌데 내 거기서 전강스님을 딱 잡은 것입니다. 적어도 내 뜻을 간파해야 되는 것입니다. 해제가 다 되어서 뜰에눈이 덜 녹은 상태라 남을 잔자 눈설자 잔설이라 했는데 잔소리라 들으신거지요. 내가 잔소리로 표현했으면 큰 실수아닙니까.
'그럼 내 백설로 고치지요.'표현을 백설로 했으면 노스님이 오해를 안하셨을 것인데 잔설로 표현한 나도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백설이 분분하니 그대로 보시요.'
'이제 근일이 살림살이가 들어나는구나.'
'흥 노장이 내 살림살이 알려면 아직 멀었다.' 그때 그런 기질로 살았읍니다. 그러다가 법상에 안올라가시는 것입니다. 수륙제 법문을 지금 총무부장인 대각사 주지인 경우를 법상에 올라가게하는데 말은 청산유수인데, 내용은 엉터리입니다. 누구가 법문을 하든지 법문만 잘하면 무슨 상관이 있겠읍니까. 그런데 저런 엉터리 법문을큰스님회상에서 수좌들이 있는 곳에서 하니 신도들은 굉장하다고 볼 것 아닙니까. 그래서
'저거 당장 끌어내려라'그랬읍니다. 그래가지고 능파스님과 능혜가 앞에서 목탁을 똑똑치면서
'스님 내려오십시요.'이것이 공부의 힘입니다. 큰스님에게 가서 '스님 법문 좀 해 주십시요.'그 때에서 나오셔서 선채로 법문을 하셨읍니다. 그래 소문이 내가 성철스님에게 인가를 받아 가지고 우리 회상을 넘어뜨릴려고 왔다고 능파스님이 그럽니다. 나는 놀랬읍니다. 어찌 남의 회상을 부수러 가겠읍니까.그럭저럭 지내는데 당길려고 큰스님이 그렇게 좋아하셨읍니다. 그러다가해제가 되어가지고 '아이고 이제는 내 혼자 공부해야 되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떠날려고 하는 데 붙들렀읍니다. 부처님이 도와주지 않으면공부가 안됩니다. 그대로 두었다면 큰소리나 하는 외도가 되었을 것입니다. 상천사 법전스님이,
'전강스님은 신이 안가니까, 스님이 화두를 주십시요'하는 것입니다. 도반이 조실스님이 신이 안간다고 날보고 화두를달라고 하니 되겠읍니까. 그래서
'이놈아 큰일났다. 그러지마, 그런 법이 아니야 다시 찾아가라'했읍니다. 저 일숙각에 육조스님하고 문답하는것 보면 육조스님은 꼼짝 못합니다. 그렇다고 공부가 시원찮은 것은 아니고, 스승이 지게되어 있읍니다. 다시 찿아가서 물으니까
'근일이가 우리 용주사에서 방부들인다더냐, 안드린다더냐.'
'안살것 같읍니다.'
'아 그래 그렇치 않더라도 안받는다 그래라.' 이렇게 편지가 온 것입니다. 속으로 안살판인데 안받는다하니 뒤틀려서 편지를 썼읍니다.
'듣자하니 큰스님께서 근일이는 용주사에서 방부를 안받는다 하니 큰스님 이뜻을 따라서 근일이는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내가 몸만 이곳에 두었으니 이름지어 주옵서서'라고 써서 묵인스님의 시봉을 시켜서 보냈읍니다. 이에 답이 오기를
'그 이름지어 달라는 놈을 바로 이르라 해라'라고 왔읍니다. 그래 편지를 또 쓰기를
'구장삼 투도산했다는 옛 구도 정신은 따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찿아뵙고 말씀을 드려야 도리인줄 아오나 서신으로뜻을 전함을 양지하옵소서. 예로부터 두두물물이 그르친 바 없거늘 어찌새삼 근일인들 바고 이를 수 있겠읍니까 만은 큰스님의 조도편달을 받고저 사족을 붙여 뜻을 전합니다. 육육은 삼십육이요'해서 보냈읍니다.그리고 일오스님하고 제주도로 갔읍니다. 비행기 한번 못탔다 하니 지금용주사 주지가 돈을 듬북 주기에 둘이서 갔다가 입제 하루전에 왔읍니다. 와보니 큰스님이 그 편지받고 용주사에 왔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장용화사에 갔읍니다. 가니까 반가와 하시면서
'자네 방부들이러 왔지'
'예, 그래서 방부들이고 법문듣고 이틑날 저 갈렵니다.
'나도 괴짜입니다. 방부안된다 해서 그런것이지 방부드렀으면 있을 필요가 있나 싶었읍니다.
'아 이사람아 결재인데 어디 갈려하나.
'거기서 딴소리해서는 안되네
'몸이 아파서 자유정진을 좀 할렵니다.'
'그래, 그럴것 없어. 내가 40년 조실했지만 출입자 재 방부는 처음이야. 출입자재 방부하게.'
'대중앞에서 그럴수 있읍니까.'그러면서 돈 만원을 주시면서 악값하라는 것입니다. 만원이면 엄청난 돈입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그래
'제가 약을 좀 먹고 오겠읍니다'하니
'그럴것 없어 내가 방을 하나 따로 줄테이니 자유정진하게'대중이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꼼짝못하고 육미지향탕을 지어 먹으면서 낮에는 대중하고 정진하고 밤에는 노장방에 들어가 같이 정진했읍니다. 큰스님은 매일같이 간절하게 법문을 하셨읍니다. 그때 법문이 제대로 들리는 것입니다. 몸은 그때 형편없었읍니다. 심지어는 피가 안돌아도산스님에게 등을 바늘로 좀 찔러달라고 하여 그렇게 해주면 조금 덜 하였읍니다. 몸은 탈진상태였읍니다. 몸이 아파도 예사 아픈것이 아니고전신이 그랬읍니다. 그런 상태에서도 내가 소위 공부했다면서도 육체에 끄달려서 무엇할까하고 밤 9시면 큰스님과 같이 정진했읍니다. 그래서 해제가 되었는데 백중때 달도 고요한데 한 턱 낸다면서 과일과 떡을 차렸는데 하도 경계가 좋아서
'스님 시 한 수 읊어 주십시요'
'자네가 먼저하게.'
'명월 청풍은 나무가지 스치고
사시장천 피는 꽃 밤에도 분명구나.
부처님과 조사도 이곳에 이르러서는
신명을 잃을진데 별의 무리는 동으로 향하고 구름은 서로 달린다.'
후에 한문으로 고쳤읍니다.
명월청풍자거래
사시바라야범명
불조도차상신명
성군동향운주서
그것 근일이 시네. 그리고 저두 방장하면서 들어가 버리셨읍니다. 내가먼저하라 해놓고 큰스님도 한마디 하셔야 될 것 아닙니까. 저두 방장하고 방으로 들어가셨는데, 아무도 모르게 내 방으로 오라고 한 것인 데 안간 것 입니다. 그 당시에는 소견도 그랬지만 여러가지면에서 그랬읍니다. 묵언스님하신 말씀이 있는데
'선지식을 꼼짝 못하게 하면 자동인가 아닙니까?'하셨읍니다. 내가 묵언스님께 그랬읍니다.
'스님은 다 좋은데 호탕한 것 이 없읍니다.'
'내가 큰 스님처럼 어찌 그럴 수 있읍니까. 나는 난폭하지 않게공부나 하다가 갈렵니다.'
그렇게 점잖하십니다. 받아들이는 폭이 넓고 진실하고 좋고 훌륭한 분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래 스님말이 본사 주지 안하면 내가 어디까지 따라가든지 기필코 한다해서 본사 주지했읍니다. 용주사에서 막 붙들고 그랬읍니다. 스님 좀 하십시요. 진제스님은 천하 선지식 다 치지만은 그 기질이 좀 그래도 없는 소식가지고 써먹읍니다. 내가 남의 선지식 함부로처서 안됩니다만, 그 후에 은제방 주지로 계실때 수좌들하고 갔더니 '수좌스님들 어디서 공부하고 왔읍니까?'하기에
'전강스님 회상에서 지냈읍니다.'전강스님은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사정없이 처버립니다. 야 무엇좀 있겠다 싶어서
'그럼 나하고 한번 겨루어 봅시다' 하니 턱 보더니
'조용히 만나자!'하면서 산으로 갑니다. 수좌들이 따라와 멀리서 봤겠지요. 땅 가리키는 법문을 묻읍니다.
'너 어디서 왔느냐?'
'보주서 왔읍니다'
'그래 보검을 가지고 왔느냐?'그에 땅을 척 가르켜읍니다.
'왜 보검을 가지고 왔느냐는 질문에 땅을 가르키느냐'라고 합니다. 여기서 간파하면 곤란합니다. 그래도 그 스님 인가도 받은 훌륭한 스님 아닙니까. 스님이 원하는데로 그대로 답했읍니다. 다음은 수건법문을 묻읍니다.
'둘이 지나가는데 옆에서 칼소리 난다하니 칼 찬 사람이 수을주는데 왜 칼소리 난다는데 수건을 주느냐?'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대로 답했읍니다. 세번째는 고양이 법문을 묻기에 또 그대로 답했읍니다. 네번째는 '부처가 도는 데 허물이 있읍니다'라고 향곡스님께 말씀드리니
'너가 내가 할 말을 했다.'고
'나는 스님 그래도 공부인줄 알고 활로축제로 답을 했는데 그런소견가지고 묻는 것을 보니 스님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그럼 내가 하나 묻겠읍니다. 그것만 대답해 보라'하기에
'고따위 소견 가지고 시험하지 말라'그랬읍니다. 그러니 어깨를 턱 대기에
'다시 한 번 대보.'라 하니 막 손을 붙들면서
'방으로 가자'고 해서 갔더니
'내 이 썩은 방망이지만 나하고 같이 좀 지내자'고 그리 좋아하셨읍니다. 그러면서 전강스님 여래선을 알았다고 인정해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스님한테 찿아가 보라고 하니 지내보니 별것 아닙니다. 주좌는 그런 기질도 있어야 됩니다. 그렇다고 내가 아만으로 그런것은 아닙니다.
나도 사자새끼입니다. 뜻을 들어 혹 잘못들으면 오해합니다. 천하 선지식다 그렇게 했으니 오해 많이 사고 있읍니다.저놈 건방지게 선지식 다 친다고, 그러나, 내가 그렇게 남을 무시하는 성질이 아닙니다. 어리석은 놈 잘못받아들이면 그래 받아 들입니다. 월산스님한테 절 딱 해 놓고 '스님 무엇이든지 물어보십시요.'그랬읍니다.
한두시간 했는데 그리 좋아했읍니다. 적어도 우리가 공부할려는 사람을 보면 반갑고 그런것 아닙니까. 버릇없이 했다면 내 잘못이지 만 예의는 갖추고 본분상에서 한 것 입니다. 여러분들도 하다보면 기가 모일때 가 있읍니다. 중요한 것이 보이는 것은 나의 모습이요, 들리는 것은 나의 소린줄 알아 야 됩니다. 공부가 소중한 줄 알고, 어리석은사람에게는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공부분상에는 존경심을 딱 가지고 해야되고 버릇없이 선지식 우습게 알면 안됩니다. 우리가 이 시대에 정말로 소중한 사람입니다. 참선 참자만 들어도 공덕이 한량이 없읍니다.여러분들이 지금은 화두도 잘 안 잡히고 어렵지만 나도 그런 어려움을 겪었고, 애를 쓰니까 도망안가고, 잡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을 이기기가 쉽고 져주기가 어렵읍니다. 나로 인해서 어떻게 하면 저분들을 편하게해 줄까. 그런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우리가 난행을 능행하면 존중여불입니다. 어려운 일을 능히 행할 줄 알아야 존중하기를 부처님과 같읍니다. 잠 다자고 먹을 것 다 먹고 할 말 다하고 공부할 사람없읍니다.그러니까 여러분이 망상을 펴도 이자리를 지키는 것만해도 엄청납니다.집에서 지금 우리 아들, 딸, 부모가 공부한다고 달리 안보겠읍니까? 망상없을 수 없읍니다. 이것 다 묘용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만 약속을 지키고 하되, 아주 힘이 들면 잠깐 쉬어주어서 융통성이 있게 하십시요.우리 용맹정진할 때는 포행이 없었읍니다.앉고싶은 사람은 계속 앉고,정말 다리가 아픈 사람은 나가서 돌고, 선정에 들면 깨우지 않았읍니다.열심히 하는 보살들도 있읍니다. 그 얼마나 장한 일입니까? 한번 들기가 어려우니 들면 가만히 두어야 합니다.
공부가 될만하면 돌고하니 아주 안좋읍니다. 경험에 의하면 3시간은 지나야 선정에 들어요. 그러니 포행없이 하고 다리가 아프면 무릎을 꿇고하고 해서 용을 쓰면 그래저래잡힙니다. 그래서 한시간만 정에 들어도 힘이 굉장합니다. 하루가 빨리빨리 지나갑니다. 그 얼마나 좋읍니까? 우리 서로 같은 도반이고 분신아닙니까? 그러니 서로 공부하도록 방해가 안가도록 소중히 해주시고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됩니다.
한 사람도 가서는 안됩니다. 중간에 간 사람은 큰 죄가 됩니다. 이 생사대사보다 더 급한 것이 어디 있읍니까? 그래서 지금은 화두가 안잡힌다 하더라도 염화두가 아니라도 하고 앉아서조는 사람이 있어도 흉보지 마십시요. 한 경계가 지난 사람입니다. 망상이 떨어지면 졸립니다. 그러니 너무 두들기지 말고, 코 골면 때려야됩니다. 코 고는 것은 분명히 조는 것 입니다. 혜암스님은 졸다가도 가서 때릴려하면 깹니다.
전강스님에게서 시를 읊고 해제하고 설악산 홍련암에 가니
'설악산고 천년성이요
동해강심 만년수라
관음영조 하처응고
백구척진 파상비'
란 글이 있는데 참 글 경지는 좋다만은 나는 저렇게 안하겠다 싶어서 쓰기를
'설악산색 천고수요
동해수심 만년청이라
관음영조 하처젠고
백구척진 파상비라.'
이렇게 해 가지고 전강스님께 보냈읍니다. 해석하면
설악산은 높아서 천년의 도리요
동해강은 깊어서 만년의 물이로다.
관음영조는 어느곳에 숨었는고
백구는 자질하며 파도에서 나는구나.
라고 했는데 나는 설악색은 천고에 변하고 동해바다는 깊어서 만년에 맑도다. 관음영조는 어느 곳에 있는고 백구는 자질을 하며 파도에서 나는구나. 그 하나 하나를 보면 설악산이 아무리 높아도 돌만 있는 것이 아니고, 동해가 어디 강입니까? 바다입니다. 사실 그대로 해야 됩니다.글은 진실해야 됩니다. 또 깊으니까 맑은것 아닙니까? 관음영조가 어디숨었읍니까? 못봤지요. 그렇게 글을 쓰니까 어느 것이 잘되었느니 말이많았읍니다. 그래서 어느 것이 잘되었냐 큰스님께 전검해오라 해서 보이니 이것이 근일이가 한 것 같다하고 잡아냅니다.
이 글귀 잡아 낸 사람을 두 선지식 밖에 못봤읍니다. 선지식 다 점검해 봤읍니다. 안절부절합니다. 경봉스님은
'욕심 같으면 백구등한 파상비라 하면 어떻겠느냐?'라고 하시기에 '아니 스님 그럼 일없는 소식 밖에 더 됩니까'하니
'그럼 오언구로 해보자.'하시면서
설악은 천고수요
동해는 만년수라
영조는 하처잰데
백구는 파상비라.
두 자씩 빼버린 것입니다.
'설악산색 안해도 설악속에 다 들어 있고, 동해는 깊다 안해도깊은 줄 다 알고, 관음영조는 그대로 신령스러운 새이고, 백구는 척질안해도 파도에서 나는구나.하면 숨을 맛도 안있나'하시면서 참 좋아하셨읍니다.
공부는 못 속입니다. 아주 깊은 구절구절마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부 맛보다 좋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여기 떡 맛, 과일 맛 이것 좋은 것만 압니다. 경봉스님 화상에서 지내는데, 혜암스님이 입승보고 내가 부입승보는데, 사부대중이 많았읍니다.그 중에는 별 걸작들이 다 있었읍니다.
이 철에 깨치지 못하면 목을 베어 바치겠다는 용기가 대단한 사람도 있었읍니다. 그래 지내는데 혜암스님 참 자비스러워 고구정령 법문을 일려주는 데 이것을 고맙고 생각안하고 잔소리로 받아 들이는 사람이 있어서 잘못하면 깨지게 생겼읍니다.그래서 입승방에 찿아가서
'스님 공부안되는 원인이 세가지가 있읍니 다.'지금 생각해도 미안합니다. 나이 20살이나 차이가 난 대선배입니다. 지금은 같이 늙어갑니다만, '무엇이냐?'하시기에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해도 안되는고 이것이 첫 째 장해요,두번째는 명예욕이 강합니다. 어디가서 법문이나 할까, 입승이나 할까그러고, 세번째는 해양목을 하고 있읍니다. 공부는 성성하고 적적하며 면면하고 밀밀해야 될 것인데 항상 제자리 걸음하고 있으니 언지 공부맛보겠소.'
'내가 요새 선지식처럼 할려면 나도 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 그래요. 그럼 내가 하나 묻겠읍니다. 이배타요, 불이배타니까?'이 안에 들어와도 때리고 이 안에 들어오지 못해도 때린다. 즉 입 열어도 틀리고, 입 안열어도 틀린다는 소리입니다.
'전강스님이 나에게 그렇게 물으면 이 원상을 지우지 않고 절을세번하고 나오겠읍니다.'
'스님 그것 갖고 되겠소? 내가 스님을 부정하면 스님은 나를 믿지 않을거요. 내 곪았다 생각하고 침을 대겠읍니다'하고 떡 이야기하니 다시는 입승을 안하겠다고 합니다. 공부 된 사람은들어보면 앎니다. 여기서는 이야기 할 수 없읍니다. 여러분을 무시해서가 아니고 곪아야 침을 댑니다. 그 다음은 법문을 떡 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시간을 했읍니다.
그때 목을 베어 바치겠다는 수좌가 옛 조사소타고 소찿는다는 도리가 무엇입니까? 라고 묻기에 너 이름이 무엇이냐고 하니까, 어리어리하기에 벼락같이 활을 하고 네가 너소리해도 시원찮을터인데 조사스님 어쩌고 그래가지고 어찌 목베어 바치겠느나. 선지식은 처음 길을 몰랐을때 필요하고 해태심이 날 때 분지나게 하기 위해서필요하고 깨달았을 때 바로 깨달았느냐, 못깨달았느냐 점검할때 필요한법이야. 분지나게 할려고 그랬읍니다. 그래가지고 수좌 하나가 나한테무엇이라 하는데 너무 설치면 그 사람에게 무엇있는 것처럼 보입니다.그래 내 이 회상에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읍니다.
경봉스님이 시장 안가신다고 대신 해달라고 해서 쌍계사 주지 고산스님이 범어서 동래포교당 주지했을때 들기름 두말을 화주해 주고 밤에 떠났읍니다. 그때 진제스님 상좌가 공부하고 있는데
'스님 따라가겠읍니다'하기에
'내길은 험하다. 여기서 공부해라'하고 토굴로 들어갔읍니다. 들어갈때 성철스님에게
'스님 이제는 혼자 공부해도 될 것 같으니 들어가겠읍니다'하고 9년을 지내고 여기 주지로 왔읍니다. 그 후에도 가끔가서 일하고문답도 하고 했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다가 전강스님회상에 가는 도중 큰스님 열반에 들었읍니다. 참 안댔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정말로공부가 소중하고 선지식이 소중한 줄 알아야 됩니다. 또 화두에 심천이 있읍니까마는, '이뭣꼬' 화두가 무난하고 좋읍니다. 이 화두의 출처를말씀드리면, 육조스님께 남악 회양선사가 찿아갔읍니다.
도인이라 해서 찿아갔더니
'너 어디서 왔느냐.' 거사님 갔으면 '서울에서 왔읍니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살다가 온 곳 숭산에서 왔읍니다. 심마물(심마物)이이마래(이마來)오. 어떤 물건이 이와같이 왔느냐 하니 대답을 못했읍니다. 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이 있는데 어떤 물건이냐 하는 것인데 8년을고심하다가 깨달은 것입니다. 8년동안 이 무엇이라 해야 되느냐, 이것이 '이뭣꼬'의 시작입니다. 보고 듣고 말하고 하는 이 주인공이 있는데이 이름이 마음이지 그 자리가 마음이 아닙니다. 그러면 물건이냐, 물건도 아니란 말이며, 그럼 부처냐, 부처도 아니니 어떤 이름을 붙여도 안맞읍니다. 그래 이것이 무엇이냐. 이것이 '이뭣꼬'입니다. '이것이 무엇인고'를 7자로 줄이면 이뭣꼬고 이뭣꼬를 줄이면 당장 '이'하는 이것이무엇이냐 입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슾픈것인고 하면 슬퍼지고, 즐거운생각을 하면 즐거워지듯이 염불과 틀린것은 이것이 무엇인가 할때 그 의문점이고 다른 염불은 의지심을 가짐입니다.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따로 있어가지고 우리 소원을 이루어준다 이러는데 이뭣꼬는 그런 의지심이 없기 때문에 좋읍니다. 염불은 의지심이 있기 때문에 단점이 있읍니다. 이것이 무엇인고는 바로 가까운 나이고, 염불경계도 됩니다. 그러니까 염송, 염불, 염선으로 되어서, 의미없이 하면 염송이고,부처님을 생각할 때는 염불이고, 이것이 깊어지면 염선 즉 의정을 일으키는 당장 이것이 무엇인고 입니다. 관세음보살도 관세음보살 부르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러면 그것이 화두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추구하다보면 깊어집니다. 방법은 따질것 없이앉아서 하면 좌선이고, 걸어다니면서 하면 행선이고, 들어누워서 하면 와선이고, 일체처가 공부입니다. 바른 자세, 바른 호흡, 바른 생각이라야하는 것은 구차한 소리입니다. 호흡법이 어떻고 언제 호흡법 따집니까?이리 따지고 저리따지고 그러는데 그럴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하십시요.
급한 마음갖지 말고 하면 되고 그러다보면 물을 말이 생길 것이고 그 때 어려울때 물으십시요. 지금 너줄하게 복잡하지요. 그러니 그렇게 쉽게 이루지말고 자기 나름대로 하다보면 어떤 길이 있읍니다. 다만 이 정말로 참선이 소중하고 선이 소중한 줄만 알면 공부가 됩니다. 기필코 내가 물러나지 않으리라 그런 생각만 하면 됩니다. 몇 일전에 한 보살이 오셨는데 부채질을 하니 시원하기에 공기를 화두로, 지금생각하니 화두지 화두인지도 모르고, 무엇이 이렇게 시원한고 이것 생각하다가 보니 그만 삼매에 들어서 다섯, 여섯시간을 그냥 지냅니다. 자기가 드는 방법이 있어서 그렇게 하면 오육시간 그냥 삼매에 듭니다.
그러니까 염력이 강해져서 저 회사가 기울어져가면 일으켜 주어야 되겠다 생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무당으로 안다고 합니다.그래서 낙공에 떨어진것 아닌가 해서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공부만해도 힘이 있읍니다. 아무튼 공부가 조금 깊어지면 자기 생각대로 된 것으로 끄달리지 마십시요. 그런 경계나 좋은 경계가 오더라도 그것으로삼지마십시요.
선을 하면 귀신도 못본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속인들 신통을 좋아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요. 또 이뭣꼬를 약하게 하니까 윙하고 띵한데 당장 '이'하는 놈이 무엇인가, 혹시 어디 아프더라도 아프다하는이 놈이 무엇인고 하십시요. 머리가 띵할때 머리 불 붙여놓으면 머리 땡한 생각이 없읍니다. 약하게 하기 때문에 띵히니 뭣하니 끄달립니다.정말로 당장 보고, 맛보고, 말하고 하는 이 주인공, 알수 없는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을 천 번 면면밀밀하게 추구하여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용을 쓰고 찡을 쓰고 그러면 머리아프고 합니다. 그러니 음식을 좀 적게잡수시고 이 육신이 있어야 되겠다 싶으면 마지못해 먹되, 음식에 탐해서먹지말고 그렇게 열심히 하면 안될 턱이 없읍니 다. 그리고 생각난 김에 우리 경봉스님께서 열반에 드셔서 내가 을지어올린 글하나 소개하겠읍니다. 큰스님께서 열반에 드셨다해서 우리저 총무부장하고 내가 가다가 큰스님께 시 하나 지어 올릴 것 없느냐 해서 지었읍니다. 내가 돌아가시기 5년전에 찿아가서
'스님 언제 가시렵니까?'하고 물으니,
'내가 어디에 있느냐?'
'큰스님!'하니까,
'나를 속이지 말라.'
'석가가 일찌기 속였읍니다.'
'그래 속지 않은 일은 없었느냐?'
'눈 어두운 이는 속고 그렇지 않은 이는 속지 않읍니다.'
'너무 말이 길다.'
'종일(終日) 설(說)이 불설(不說)입니다.'그러니까 톡 때리기에 나도 톡때리고 그랬는데 그걸 기점으로 잡아서 글을 지어서올린 것입니다.
'큰스님 언제 가시니까?'
'내가 어디에 있느냐?'
'큰스님!하고또 불읍니다.
'나를 속이지 말아'하시기에,
'석가가 일찌기 속였읍니다.'
'내가 그래 속이지 않은 일은 없었느냐?'
'눈 어두운 는 속고, 그렇지않은 이는 속지 않읍니다.'하던 때가 엇그제인데 큰스님 언제 오시렵까? 지금 사람이 귀합니다. 새옷갈아 입으시고 우리곁에 오옵소.
영축통도 적멸궁이요, 靈축通度 寂滅宮
원광명지 친소절이로다. 圓光明智 親疎絶
경봉선사 재하천고, 鏡峰禪師 在何處
백운청풍 삼소굴이로다. 白雲淸風 三笑窟
그 산이 무슨 산입니까? 영축산입니다. 영축통도 적멸궁이요, 영축통도는 부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부처님이 어디 안계시는 곳이 있으리요마는 실지 진신사리가 거기에 있기 때문에 부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글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부여되어야 됩니다.
특히 시에는 그러합니다.영축통도는 부처님이 계신 곳이요, 그러니까 지금 현재 이대로이면서도또 그런 깊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원광명지 친소절이로다. 둥근 빛밝은 지혜는 친소가 끊어졌읍니다. 죽은사람이 친소가 가깝고 멈이 있읍니까? 없지요, 또 원각 둥근빛 밝은 지혜가 친소가 있읍니까? 부처님이 또 경봉스님의 호가 원각이니까, 그러니까 경봉스님도 당기면서 여러가지 의미가 부여됩니다. 백운 청풍 삼소굴이로다.
흰구름 밝은 바람 삼소굴이로다. 그 스님 계시는 곳이 삼소굴이니 저 흰구름에도 계시고청풍에도 계시고 삼소굴에도 계셔서 안 계신 곳이 없단 말입니다. 그러면 삼소굴이란 말은 무슨 말인가, 무엇을 보고 세번 웃었는가? 허상을보고 웃고 실상을 보고 웃고, 허상실상을 조화있게 보고 웃었다. 다시말하면 무상한 이치를 깨닫고 웃고, 상주불멸의 이치를 깨닫고 웃고 또이 둘을 조화있게 보고 웃었다. 이 삼소굴의 뜻은 깊읍니다. 내가 해석을 해도 공부된 사람은 그런대로 봅니다. 또 내가 구산스님께 올린 글이있는데 소개하겠읍니다.
구산스님께서 열반에 들어가지고 전보가 왔기에글을 써 올린 것입니다. 부족한 나를 전부 맡긴다면서 오라는데 안갔읍니다. 거기는 내가 없어도 되지만 여기는 아직 날 필요했읍니다.
'네가 나 있을때 와야된다.'하시면서
'나에게 일년뒤에 간다'고 유언했읍니다.
'일년 연기했다'고 합니다.
'20년 연기하십시요.'했는데 안되었는가 봅니다. 그래서,
아이고? 아이고? 통곡해야 옳습니까? 허허 앙천대소해야 옳습니 까? 스님 분상에는 가고 옴이 없이 이무소유하시지만 저희들의 어린 소견에는 분명코 옴이 있으니, 이 일이 가심이라면 언제 다시 이일로 오시렵니까? 아직은 짐을 푸실 때가 길고도 멀었는데 우리는 어이하라고, 어이하라고, 야생마도 스님앞에 서면 고개가 숙여지고 순한양이 되는 것은 법력만도 자비만도 천진만도 아닙니다. 어찌 이 관견으로 큰스님의 문제를 다 헤아리오까?
큰스님 긴긴 세월 한결같이 자비의 손길로 미소짓는 눈으로 장광 설법으로 중생을 거두시다가 이제 살신 법문으로 저희들의 눈을 뜨게 하나이다.
천태만상 제불안이며
천태만상은 모든 부처님의 안목이요.
적멸멸이 조사면이로다
멸이 멸이하니 조사의 면목이로소이다.
구산선사 재하천고
큰스님은 어느곳에 계시는고.
백운청풍 조계문이로다
흰구름 맑은 바람 조계문이로소다.
여러분 열심히 정진해서 기필코 이 일은 해결해야 합니다. 이 일보다 더소중한 일이 없다, 이런 생각하면 무슨 방법이고 이것 따질것 없읍니다.자기 스스로 방법이 나오는 것입니다. 듣는 것만해도 큰 공덕인데 수행에 임하면 얼마나 좋겠읍니까? 될 수 있으면 누구 공부가 얼마나 됐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 공부에 얼만큼 좋게 받아 들이냐이고, 법문을 누가 잘 하더라보다 법문을 잘 들었다하는 것이 더 중하고 법문을잘 들었다 보다는 거기서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가 법문 엉터리로 하더라, 잘 하더라 하는 것은 아무도움이 안되는 것입니다. 여기 부처님이 출현도 잘 못 받아들이면 안 좋읍니다. 여러분은 독으로 받아들이지말고 감로수로 받아들이면 좋겠읍니다. 웃기만해도 엔돌핀이 나온다는 이것이 다 법문입니다. 어찌하든 감로수라 이렇게 생각하면 전부가다 공부입니다.
o 5월 법회자료
지난번에 다섯 가지 마음의 향에 대해서 말씀드렸는데 그것이 제일 첫번째 목적이기 때문에 한번 더 말씀해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해탈할 수 있는 수행 자체가 바로 그길을 들어서는것이거든요 지난 번에도 얘기했듯이 계향,정향,혜향,해탈향,해탈지견향지 다섯 가지의 목표를 세운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예불 모실때도 항상 독하고 계십니다만, 하면서도그저 입으로만 염하면 되는 줄 알고 그냥 지나시는데 그말씀을 그대로 생활속에서 실천하면서 자기 마음을 발전시켜야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소신껏 계발시켜서 자기의 능력을 창조로까지 이끌고 가야만 자유인의 맛을 볼 수있을텐데 그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아서 한마디 더하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한마디뿐만이 아닙니다. 항상'관하라, 관하라'해도 그 관하는 도리를 완전히 터득을 못해서 미흡하게 그저 놓았다 꺼냈다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어떤 심부름을 시켜도 믿고돈을 맡기는데 하물며 자기 집합소를 끌고 다니는 참자기를못믿어서 놓았다 꺼냈다 하면서 진짜 심부름을 하지 못하게끔 만드는 여러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스님네들도 더 한층 발전을 위해서도 그렇고,창조력을기르기 위해서도 그렇고, 살림하는 신도님들도 가만히 틀고앉아서 하라고 가르치는게 아닙니다. 뛰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뛰는 그대로가 참선이니 참선 아닌게 하나도 없다고가르치셨는데도 불구하고 실행을 제대로 못해서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것조차도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한테 광력, 전력, 지력, 통신력의 네 가지 재료가 주어져있고 그 재료가 충만한 데도 불구하고 재료를 끌어 쓰지 못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다시 짚고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모르시는 분들은 열 마디, 백 마디 해줘도 잘 모르는게 많습니다. 먼저 '계향'이니 부처님 법에 누가 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거사든 보살이든 또는 출가한 스님네들이든 자기은사에 누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죠. 그런가 하면 더중요한 게 있습니다. 자기에게 누가 되게 하지 말라는 겁니다. 몸뚱이가 이 세상에 나왔으니 상대성이 생기고 모든 게벌어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모든 게 내가 이 세상에 나온 탓이죠.
그러기에 내탓으로 돌려야지 남의 탓으로 돌린다면 아니되죠, 잘못된 것도 잘된 것도 다 내탓으로 돌리고 일체를내탓으로 돌림으로써 남의 탓을 안 하게 됩니다. 남을 원망안하면 부질없는 미움도 안 생길 거고...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이겠죠, 자기 있는 곳이 바로 도량입니다. 내 깊은 내면 마음속으로 , 내탓으로 돌린다면 부드러운말이 저절로 나오고, 부드러운 행동이 저절로 나와서 화목을도모하고, 의리를 도모하고 진짜 사랑을 베풀면서 서로가 서로를 도와가면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잘못되는 것은 내탓으로 돌리고 한 생각에 마음을 잘 내는 것이 바로 계향아닌 계향입니다.
정향이라고 하는 것은 내면세계에 내 자성 주인공을 세워놓고 잘못되는 것도 잘되게끔 마음을 한 생각 돌려서 놓고'너만이 바꿀 수도 있어'하고 믿어야 합니다. 지난 번에도얘기했지만 구정물도 그속에서 나오는 거니까 그 속에서 새물도 나오게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모든 일체가 다 말입니다.
그렇게 믿고 잘 되는 것은 감사하게 놓고 , 자기가 좋은 일을 했든지, 좋은 말을 했든지, 좋은 행동을 했든지 감사하게 생각해서 놓고 물러서지 않는 그 마음이 바로 정향입니다. 이건 입으로 아무리 말해본들 소용이 없습니다. 물이 차다뜨겁다 아무리 말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먹어본 사람이나뜨겁고 찬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먹어보지 않는다면 뜨거운지 찬지 얘기만 들었지 정도를 감지할 수가 없습니다. 그와 같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스스로 체험하고 다스리면서 넘어가야 한다 이겁니다. 그리고 혜향이니, 지혜로운 마음으로써 내면세계와 물질세계를 둘로 보지 않으면서 관찰하는 겁니다. 관찰하면서 체험하는 것이 바로 혜향입니다. 둘로 보지 않으면서 듣고, 보고, 느끼고, 체험한다면 해탈이 오는 것입니다. 다음은 해탈향이니, 만물만생이 무명에 묶였음을 풀어서 여여하게 다스려 나가는 것이 바로 해탈향입니다. 집을 지으려면 기초를 튼튼하게 해야 집이 무너지지 않듯이 계향을 아주 철저하게 지키고, 정향을 철저하게 잘해야만이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이 스스로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해탈지견향이라 했으니, 삼라만상 일체만물만생이 보살피고 느끼고 항상 밝아서 걸림없이 구족한 것을 이름해서해탈지견향이라 하는 겁니다. 일체 만법을 내 마음 하나로인해서 들이고 내고 들이고 내며 반복하면서 돌아가는 상대성 원리, 살림살이 이 모두를 마음에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자기가 느끼고 , 다스리고, 실험하는 것이 바로 지금 시대에생각하고 뛰고, 뛰면서 생각하는 마음의 참선......
이 마음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기여할 수 없고, 발전할 수도 없고, 창조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마음을 떠나서는 말입니다. 우리가 잘 알아야 할 문제는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살다가죽는다면 지금 이 시대가 과거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어떠한 무명을 쓰고 나오든지 간에 이 세상으로 다시 나올땐 미래이자 현실입니다. 그래서 삼세에 모든 업을 짓는다면악한 일을 행한 것이 업보가 돼서 삼독이 된다는 것인데 왜냐하면 내일이자 오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교차로를 연방 넘나들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며, 가는 사람도 역시 그 삼독을 면치 못한다 이런 소립니다. 삼독을 면치 못하는 원인은 내 마음이 툭 트이지 못해서 입니다. 내 마음이 한계성을 느끼고 , 살아오면서 관습에 젖어가지고 한 치도 나가지 못하는 마음이란 말입니다.
요건 요렇게 해야 되고 조건 조렇게 해야 되고, 어디를 가려면 문을열고 들어가야 하고, 문을 열고 나와야 하고 , 물에 들어가면빠져 죽고, 불에 들어가면 타 죽고, 또 무서운데 가면 무서워서 죽고, 귀신에 말리면 무서워서 죽고 이런 생각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가 없는 겁니다. 이사를 잘못 가면 안 되고, 삼재가 들면 안 되고 안 되는 게왜 그렇게 많은지 온통 안 되는 것뿐이죠 그래서 그안 되는 업보로 오간지옥고를 받는다하는 것은 땅끝에서 국냄새, 밥냄새도 맡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오간지옥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고생해서 살 만하면 어려운 일이 생기고, 살만하면 또 복잡한 일이 생기고 , 이렇게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지옥이 따로 있습니까. 이 세상이 지옥이지, 지옥도 자기네들이 만들어서 지옥에살고, 자기네들이 만들어서 승천해서 극락에 살기도 합니다. 삼독을 면하려면 마음의 관습이 떠나야 될텐데 한 치도 벗어날 수가 없으니 마음이 문제입니다.
자유스럽게 벗어날 수있는데도 불구하고 내 마음을 가지고도 내 마음대로 못하니이 노릇을 어떡하면 좋습니까. 여러분! 내 마음을 가지고 내 마음대로 못한다면 이것은 노예이지 자유인이 아닙니다. 애 이 세상에 남들처럼 다 타고나서 그렇게 살아야 합니까?여러분들도 눈달리고, 부처님도눈 달리고, 코 달리고 다 똑같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똑같이인간이데 왜 자유스럽게 살지 못하고 왜 자기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못합니까.
과감하게 뛰어넘어야죠, 죽으면 한 번죽지 두 번 죽습니까. 입에 밥 들어가지 못할까봐 걱정, 죽을까봐 걱정을 하다 보니까 과감히 뛰어넘을 수 없는 옹졸한마음이 돼서 항상 노예로서 벗어날 수가 없는 거죠, 과감하셔야 됩니다. 마음은 이 자리에 앉아서 그냥 뛰어넘을 수도 잇습니다. 이자리에 몸을 두고도 우주탐사를 할 수도 있고, 이 지구 바깥을 벗어날 수도 있고, 집에도 갔다올 수 있고, 회사에도 갔다올 수 있는 것아닙니까, 신발 한 짝이 어디 놓여 있는지, 맛있는 음식이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못믿습니까? 그래서 삼독을 제거한다면..... 하는 소립니다. 아까 계향, 정향, 혜향까지 탁 둘 아니게 관찰하고 체험하고넘어갈 수 있다면 해탈은 스스로 오는 것이고, 해탈지견향역시 스스로 오는 것입니다. 삼독을 제거한다면 삼세의 모든부처님의 마음이 한 마음으로 나투어 주시는데 , 나투어 주시면 몸과 마음이 항상 밝아서 일체 고에 물들지 않고, 번뇌에 물들지 않고, 일체 굴레에서 벗어나 저 언덕에 이른다는뜻입니다. 저 언덕이라는 것도 이름해서 언덕이지 우리가 자고 깨고, 자고 깨고 하는 교차로를 언덕이라고 표현하는 겁니다. 꽃이 피고 지고, 피고 지고하는 것도 공즉시색입니다.
아주 간단하게 얘기해서죠, 어렵게 생각을 하지 마세요, 정신계와물질계, 몸과 정신, 마음이 바로 공, 생입니다. , '색이 공이요, 공이 색이니라. 꽃이 필 때는 색이요, 꽃이 질 때는 공이니라'하고 표현해도 됩니다. 어디다가 비교해도 연결되지 않는곳이 없습니다. 이 세상 돌아가는 것이 팔만대장경입니다. 어떻게 글로 다 쓰리까. 어떻게 말로 다하리까.
그 세밀하고 아주 묘한 도리는 자기 마음속에서 스스로 지혜로워질 때 혜향이라고 볼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계향도 정이요, 혜향도정이다, 그 정을 안다면 해탈향은 물론이거니와 해탈지견향도 그대로 포함되는 겁니다. '오신통을 이룬다 하더라도 오신통을 이뤘다 하지 말라. 오신통에서 벗어나야 오신통을 굴릴 수 있느니라'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신통을 구하려고 노력을 하고, 해탈을 구하려고 노력을 하고, 부처를 구하려고 애쓰지만, 어리석지 않은사람들은 해탈을 구하려고 아니하고, 부처를 구하려고 아니해도 저절로 구해진다 이겁니다.
욕심이 앞서면 눈앞이 캄캄해지고 문을 찾아서 들어려고 하기 때문에 옴짝달싹도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을 구하고, 자기 자신을 구하고, 지혜를 구하고 , 진짜 사랑 아닌 사랑을 베푸는 사람에게는 전체가 문이죠, 문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문 찾아 들고나는 사람들은 소인들이고, 대인은 문이 있으나 없으나, 벽이없으나 있으나 그대로 통달해서 한 도량이죠, 그래서 마음이야 어찌 한 도량에 넘나들 수 없겠느냐 이겁니다. 마음이야 어찌 걸려서 못 가고 못 나오겠습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네 마음부터 알아야 일체 만물만생의 마음을알 수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마음을 알아야 응신으로화해서 여여하게 어떠한 용도든지 나투어 주신다는 겁니다. 한철 캠핑 왔다가 홀가분하게 목 마르면 물 마시고, 가고싶으면 가고, 오고 싶으면 오고, 자고 싶으면 자고, 똥 마려우면 똥을 누니 사람 사는 것이 이만하면 족하지 뭣이 따분한게 있고 뭣이 답답한 게 있겠습니까.
그런데 어떤 이들은 마음의 노예가 돼 가지고 한 발짝도 떼놓을 수가 없는 겁니다. 누가 사랑을 하지 말랬나요, 돈을 가지고 살지 말랬나요, 좋은 집에 살지 말랬나요, 정도에 넘치면해가 오니 정도에 넘치지 않게 하라는 것뿐이죠. 몸은 재산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관리인일뿐이고, 몸은 자생중생의 집합소입니다.
그리고 자생중생들이 안에서 심부름을 해줘야 겉에서 건강하게 뛰어 다니는데 안에서 심부름을 안해 준다면 몸뚱이가한 치도 걸어갈 수 없어요. 그래서 자생중생을 먼저 제도하라는 겁니다. 그러기에 계향도 올바르게 지켜야 하고, 해탈향도 지켜야 하고, 해탈지견향도 지켜야 한다는 겁니다. 지키기는 지키되 물질로 지키지 말라, 내 마음의 향, 다스리는 마음으로......
그런데 다스리는 마음이 첫째는 화목해야 하고, 성내지 말아야 하고 , 남을 탓하지 말아야 하고, 위선자가되지 말아야 하며, 모든 걸 내탓으로 돌리고 푸근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써 행을 해야 하는 것이죠. 모든 것을 내탓으로 돌린다면 남을 미워할 게 없고, 불안하게 해줄 게 없고, 언짢게 말해 줄 게 없고, 탓할 게 하나도없어요. 그리고 모르는 사람, 잘못하는 사람을 봤을 때는 몰랐을 때의 내 모습으로 둘러보지 않는다면 해탈은 물론이거니와 해탈지견향까지 구족하게 되는 겁니다.
살아서 구족해야지, 죽어서 구족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서 먹은 마음이 죽는다고 달라질까요, 이모습을 가지고 인간 되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한번 개구리가 됐다 합시다. 그러면 개구리의습성이 딱 붙어서 그 습성 떼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개구리의 습성, 뱀의 습성, 개의 습성, 돼지의 습성, 소의 습성 등갖은 곤중에 이르기까지 각계 각층 천차만별로 돼 있으면서살아 나가는 그 습성을 떼기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곤충에서부터 태로 날 때까지 계단없는 계단에 서려면 얼만큼 거쳐야 되며, 그 습성을 얼만큼 떼야만 인간의 모습을 타고 나겠는야 이겁니다. 인간의 모습을 타고 나서 정신계의 어버이로서 훌떡 벗어나야 될텐데 우리가 인간으로 살면서 회사에서 좌천되듯이 좌천이 돼서 되겠습니까? 인간의 모습을 타고 났으면 역시 그모습이 다해지기 전에 이 도리를 알고 넘어서야죠이 모습으로 살다가 만약에 돼지가 됐다 합시다. 돼지같이살아서 돼지가 됐다면 속으로는 인간의 의식이 있다 할지라도 겉으로는 돼지 모습을 썼으니 돼지 대접밖에 못 받겠죠. 의식은 사람의 의식이지만 꿀꿀 대고 눈물을 흘리니 돼지대접밖에 못받습니다.
이것이 내 앞에 닥치지 않았으니까'뭐그래. 죽으면 그만이지'이러고 아주 태평하게 있지만 그렇게태평해 할 게 아닙니다. 이 도리는 무섭고 에누리 없는 겁니다. 우리가 컴퓨터에 모든 것을 입력해 놓으면 틀림없다고 하죠, 그러나 더 무서운 컴퓨터는 숙명통으로 인해서 간접적으로 입력되어 있는 마음의 컴퓨터입니다.
자동적으로 자기가마음먹고, 행동하고, 말하고, 살아나가는 일거일동이 자동적으로 그냥 입력이 되는 것이니 부모의 병으로 인해서 고통을받는다 하더라도 '아이구 지겨워'이런 생각 마시고 '아, 이것도 바로 내탓이로다. 내가 이런 인연을 안 지었더라면 왜내 앞에 왔을까. 얼마 안 있다가 낸들 안 그러랴'하고 내 모습으로 생각하고 , 마음으로 공경을 잘 하고 미워하지 않고지겨워하지 않는 마음으로 꾸준히, 잘하는 척하지도 말고 못하는 척하지도 말고 그냥 여여하게 나간다면 그것이 바로대성공을 할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자식들을 기르느데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모두 살아나가는데 자식들이나 부모들이나 일체 만물만생이 전부 스승 아닌게 하나도 없어요, 하다 못해 풀뿌리를 봐도 스승 아닌 게하나도 없습니다. 죽을 것 같은데도 묻어 놓으면 살고, 아무리 캐어 내도 어디다가 뿌리를 붙이면 살고 그러거든요. 그렇게 생명이 지겹도록 튼튼하게 이어가는 것은 참 처음봤습니다.
그런 걸 보면서 우리의 인생 근본도 이렇게 영원한 것이 아닌가 하면서공부하는 거죠. 그러니 어느 것 하나를 봐도 내 스승이 아님이 없는 것이죠. 어제도 그런 말을 했지 않습니까. 일체 삼세 부처님의 마음과 일체 만물만생이 다 스승이 돼 준 까닭에 이렇게 말 한마디라도 할 수 있었고, 행동 하나도 할 수 있었고, 실천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감사함을 어찌 말로 얍삽하게 할 수있겠습니까. 예전에도 말한 적이 있습니다만. 그때는 지금처럼 배불리 먹지 못했을 때여서 겨울에도 누구 말마따나 배는 등에 달라붙고 땀은 뻘뻘 흐르는데 , 물 한 모금을 먹으려고 도랑에가니까 큰 뱀이 , 그건 뱀도 아니고 구렁이였던 것 같은데틀고 앉았는 겁니다.
그러니 웬만하면 기절을 했을텐데 아주침착해지는 거예요, 무슨 능력이 있어서 침착했던 게 아니구요, 내 바른대로 얘기하죠 하하하.....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기는 누구나 다 죽는건데 그까짓 것 죽는 것이 뭣이 그렇게 어려우냐. 네가 인연이 돼서나를 물어 죽인다 하더라도 너를 원망 안 한다. '그러고서는보니까 목 마르다는 생각이 싹 없어지면서 뭐가 보이느냐하면,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원이 보이는 겁니다.
원! 원이 보여서 무심코'아, 세상은 모가 나지 않고 저렇게 둥글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뱀이 어느틈에 머리를 번쩍들고 혓바닥을 낼름낼름 하는데 ' 고개를 들었으니 뱀이면서 법이로구나. 고개를 일으켰으니 법이고 혓바닥을 내밀었으니 행동 하나하나가 살아있구나'하는 걸 느꼈단 말입니다.
그런데 아무짓도 안하고 가지도 않고 가만히 들여다보고있으니 그 뱀도 오해려 두려웠던지 길게 몸을 끌고 가는 겁니다. 아, 그걸 보면서 '원에 모든 진리는 하나로 돌아가는구나'하는 걸 또 느꼈습니다. 그러니 모든 매사 하나하나가 스승 아닌게 어디 있겠습니까. 네? 꼭 말을 해야 스승입니까. 꽃이 피고 지는 것도 스승이요, 물이 흐르는 것도 스승이요, 밥을 먹고 똥을 싸는 걸 봐도 스승이요, 서로 악다구니 처럼 싸움을 하는 것도 스승이고 요새 조사하고 뭐 이러는 것도 스승이지요 하하하......
스승 아닌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 감사함을 느낀다면 누구를 원망할 수 있으며, 누구를 증오할 수 있으며, 누구를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오늘 이런 말을 하면 날 건방지다고 하겠지만 나는 여러분들과 둘이 아닌 마음, 이 세상 천지가 다 둘이 아니게 전달을 하고 돌아갑니다.
마음과 마음이 말입니다. 그게 사실입니다. 은행나무와 은행나무가 사라앟고, 사과나무와 사과나무가 사랑하고, 진달래 나무와 진달래 나무가 사랑하고 싸리나무와싸리나무가 사랑하는 거 보셨습니까?사랑 빼놓고 없습니다. 모두가 사랑입니다. 그런데 사랑을 하는데도 마음을 너그럽게 굴렸다 줄였다 할 수 있는 자동적인 자유자재권이 있어야 되는데 , 곤충들은 자유자재권이 없어서 자식을 낳으면그 자식한테 자기 몸을 다 바쳐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뺐다 끼웠다 하는 지혜에 달려 있는데 그걸 둘글릴 수가 없고자유자재할 수 없이 곧이 곧대로 사니까 곤충으로밖에 못살죠 , 어떻습니까. 사람들도 좀더 마음을 탁 틔여서 훌떡 넘어가야 합니다. 귀신이 무섭다고 하는데 , 사람이 살다 죽은 것이 귀신인데 귀신이 뭣이 무섭습니까. 그믐밤에 묘지에 가서 밤을 새우라면 무서워서 쩔쩔 매실거지만 그것도 마음이란 말입니다. 그 마음을 좀 활짝 여세요, 우리 몸뚱이는 문을 열고 닫고 다니지만 마음은 벽도 소용없고 봇장도 소용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진짜 믿으세요, 진짜 그렇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세요. 왜 믿지 못하고 줬다 뺐었다 . 줬다 뺐었다 이러십니까. 지혜롭게 믿고 밀고 나가세요. 아까 내가 건방지다고 그럴 거라 말한 것은, 오늘 아침에 거닐다 보니까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길래 오늘은 비오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안 돼'하는 용건이 적합해야 하는데 내가 안된다고 한 이유는 바로 이 삼라만상 대천세계에마음과 마음이 전달되고 통신되고 모든 것에 전달이 되는데비가 오면 부처님들이 비를 맞으니 비 오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하나하나 아주 소중한 부처님들 아니십니까.
내가 여러분들이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지혜를 넓히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찾아주기 때문에지혜를 넓혔고 , 사랑도 할 줄 알았고, 네 자식 내 자식 따로없는 것도 알았고, 네 부모 내 부모가 따로 없다는 것도 알았기에 여러분들이 저에게는 스승이시며 부처이십니다. 그러니 어디 따로 있습니까. 더불어 같이 도반이요, 더불어 같이가지 않습니까. 이만하고 공부하시면서 어떠한 체험이라든가또는 질문하실 거 있으면 질문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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