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적 관계들 : 알뛰세르와 유물론적 미학
Michael Sprinker, Imaginary Relations (Verso, 1987) pp.267-295
역사에 관해 많은 것을 알지 말라.
샘 쿠크Sam Cooke 2세
폴 드 만Paul de Man 은 그의 마지막 에세이들 중 하나의 첫 문단에서 정치적 효과와 미적 판단이 서로 대립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문학적 혹은 철학적 텍스트를 가지고 작업했 지만 그것이 그들이 정치사상사에 중요한 기여를 하는데 어떤 실질적인 장애로 작용하지 않았던 일 범위의 근대 사상가들을 올바로 평가할 수 없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 때 드 만이 직접 옹호한 대상은 데리다Derrida였는데, 비평가들은 그가 표명한 정치적 견해나 입장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가 직업 철학자의 기술과 관심을 통해서 이러한 입장에 도달했다는 이유로 이구동성으로 그를 비난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탐구 목적과 보다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것은 드 만이 이러한 미학사상가들의 전통 속에 데리다와 나란히 놓고 있는 인물들의 목록이다. 그 목록에는 마르크스Marx (특히 칸트Kant의 제3비판서를 따른 비판 절차의 모델로 판단되는 [독일 이데올로기The German Ideology]),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루카치Lukacs, 알뛰세르Althusser, 그리고 아도르노Adorno가 들어 있다. 드 만은 그들의 사상을 근대문학사에서 전통적으로 유미주의라는 말로 이해 되어 온 것과
구별하면서 '이들 사상가들의 작업은, 예를 들면, 지적인 엄격함이나 정치적 행동을 희생한 채 미적 범주들을 유지하거나, 미적 경험을 자기폐쇄적이고 자기반영적인 총체로 보고 그 자율성을 주장하는 것을 배제한다'고 주장하였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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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aul de Man, Hegel on the Sublime , in Displacement: Derrida and After, ed. Mark Krupnick (Bloomington, 1983). pp. 139,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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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뛰세르의 경우 지금까지 그의 작업에 대한 평가는 그를 서구 마르크시즘 전통 내의 미학사상가로 분류한다는 점에서는 드 만과 일치하는 편이었지만 동시에 그의 사상의 이러한 경향이 갖는 정치적 영향에 대해서는 드 만과 정반대의 결론에 도달했다.2) 특히 랑시에르 Lancire는 알뛰세르가 68년 5월의 여파 속에서도 여전히 철학을 가르치며, 강단 전통의 기준과 가치들을 재생산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3) 자신이 철학에 계속 종사하며 이론적 작업을 추구하는데 대하여 알뛰세르는 마르크스 자신으로부터 그 자신의 변명의 근거를 이끌어내며, '철학은 최종심급에서, 이론 수준의 계급투쟁이다'라는
이제는 빛바랜 주장에 의존하고 있다.4) 알뛰세르의 개입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정치적 견해가 아니며 이론 일반이 갖는 정치성은 더욱 아니다. 알뛰세르 자신이 이를 다음과 같이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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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페리 앤더슨 Perry Anderson이 Considerations on Western Marxism (London, 1976)에서 알뛰세르의 작업을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에서의 정치에 대한 강조로부터의 일탈이라고 평가한 것은 이 제는 알뛰세르를 평가하는 표준구가 되었다. 우리가 위 8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알뛰세르에 대한 정치적 기소는 In the Tracks of Historical Materialism에서 계속된다. 그러나 그것은 Arguments
within English Marxism 에서도 다소 변칙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7장 주 32를 보라). 알뛰세르의 정치적 견해를 비판적으로 논의하는 부분적이지만 대표적인 문헌들에 대해서는 7장 주 2를 보라.
3) Jacques Ranci re, On the Theory of Ideology -- Althusser's Politics', in Radical Philosophy Reader, ed. Roy Edgley & Richard Osborne (London, 1985), pp. 101-36.
4) Louis Althusser, Elements of Self-Criticism , in idem, Essays in Self-Criticism, trans. Grahame Lock (London, 1976), p. 166. 이하 이 책은 (ESC)로 인용한다. 자주 인용되는 알뛰세르 저작의 다른 약어들을 주장에 의존하고 있다. 자주 인용되는 알뛰세르 저작의 다른 약어들을 알기 위해서는 7장 주 2를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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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자신을 속이려 하지 말자. 이 토론과 논쟁은 결국은 정치적인 것이다.... 비록 말을 둘러싼 단순한 다툼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문제가 된 것이 없었다 하더라도, 우리가 지금까지 목도한 폭풍과 비난과 열정을 만들어낸 것이 마르크스주의 이론, 마르크스주의 과학이라는 표현들--더구나 이것들은 노동운동의 역사에 의해, 마르크스와 엥겔스, 레닌, 모택동의 저작들에 의해 오랜 시간 거듭 확인되어온 것인데--이었다고 생각할 만큼 순진한 사람이 실로 누가 있겠는가? ...말에 집착하거나 혹은 이 말을 거부하는 것, 그것을 방어하거나 파괴하는 것, 이들 투쟁 속에는 문제가 되는 어떤 실제적인 것이 있으며 그것의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특성은 명백하다. 오늘날 문제가 되는 것, 말에 대한 논쟁 배후에 있는 것, 그것은 바로 레닌주의라고 해도 지나친 것이 아니다. 레닌주의는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과학의 존재와 역할을 인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노동운동과 마르크스주의 이론 그리고 유물론의 개념과 변증법을 융합한 구체적인 형태이기도 하다. (ESC, 114-15; 강조는 원저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뛰세르의 철학작업에서 중심부분이라고는 할 수 없을 미학이론의 영역이, 알뛰세르가 자신의 고유한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전개하면서 방어하는데 착수한 마르크 스-레닌주의의 일반 기획 속으로 통합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알뛰세르의 이론이 예술 개념에 관해 제기하는 문제는 이데올로기적 실천과 미적 실천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또는 좀 더 좁혀 말하면, 역사유물론의 이론 속에서 예술의 개념은 무엇인가이다. 우리는 알뛰세르가 역사유물론 전통 내의 예술 이론을 괴롭혀 온 모든 문제들을 확연하게 해결했다고 주장하지는 않겠지만, 알뛰세르가 때로 쓴 문학과 예술에 대한 에세이들 속에서 유물론적 미학의 윤곽을 찾아낼 수 있음을 주장하고자 한다. 더 나 아가 우리는 그가 서둘러 스케치한 이 이론의 윤곽을 발전시키려는 이후의 시도들이 비록 실패하기는 했지만 알뛰세르가 예술에 대해 단편적으로 쓴 저술에서 지시하는 방향이 마르 크스주의 미학이론의 현재 지평을 구성하고 있음을 주장하고자 한다. 더구나 미학이론을 역사유물론 내의 다른 영역들과 분리하는 명백한 거리는, 이론 그 자체의 위치와 그것이 유물론적 과학개념에 제공하는 인식론적 문제들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감소된다. 우리의 연 구를 끝맺게 할 이 후자의 탐구노선은 그 이론적 함축과 경험적 연구수준 모두에서 더욱 정교해져야 한다. 관련된 연구과제들의 범위는 필연적으로 확장되어야 하겠지만 그에 따르는 결과에 대해 여기서 생각하는 것은 현명치 못한 일일 것이다.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지식의 한계로 인해 이 논문은 이 연구가 취하게 될 생산적인 방향 몇 가지를 잠정적으로 투영해 보는 것 이상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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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여러번 언급한대로 미적 실천에 대한 알뛰세르의 개념은 일반적으로, 예술에 대한 정통 유물론적 이론의 엄격함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미적인 것을 어느 정도 이데올로기의 영역밖에 둠으로써 알뛰세르는 부르주아 미학의 범주들을 마르크스주의 내에 다시 새겨 넣었다고 비난받아 왔다. 제 4장에서 우리는 야우스Jauss 및 수용미학을 뒷받침 하는 역사적 도식에의 비유를 통해, 알뛰세르가 이데올로기적 실천과 미적 실천을 구별한 것은 각각 서로 다른 제시 양식을 확정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여전히 모호한 것은, 적어도 알뛰세르에 반대해 가장 자주 인용되는 알뛰세르 이론의 거두절미된
해석에서 여전히 모호한 것은, 이데올로기적 실천과 미적 실천이 사회 전체 내에서 구별되 어 나타날 때 이들이 갖는 정확한 연관이다. 만일 알뛰세르가 <예술에 대한 서신Letter on Art> 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예술작품이 한 주어진 시대의 이데올로기적 재료를 단순히 복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예술작품이 이데올로기를 자신의 구성재료로 취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사실이다. 그것이 어떻게 그렇게 되며, 또 그렇다면 예술작품이 이데올로기적 재료를 제시하는 것이 특정한 이데올로기들의 산물이자 조달자인 이런 저런 계급의 기획 내에서 어떻게 도구로서 다시 전유되는가, 이것이 바로
유물론적 예술개념이 결국에 가서 답해야만 하는 질문이다.
첫번째 질문은 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 이다. 우리는 알뛰세르의 에세이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Ideology and Ideological State Apparatuses>의 논의를 낱낱이 설명 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그 에세이의 중요한 명제는 충분히 잘 알려져 있어서 여기서 포괄적인 설명을 할 필요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단지 몇가지 점만을 상기해보도록 하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의 위치는 사회 개념에 대한 알뛰세르의 전반적인 탐구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이데올로기 개념은 역사유물론 이론과 인간 의식의 사회적 규정 내에서 한 영역을 차지한다. 알뛰세르 에세이에서 종종 무시되는 이 점이 갖는 주목할만한 귀결은, 사회구성체가 물질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산수단과 생산관계를 재생산해야만 한다는 가정에 따르면, 이데올로기의 생산은 일반적으로 (비록, 우리가 보았던대로 일방적이거나 투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어진 사회구성체 내에서 지배적인 착취관계를 재생산해내는 기능을 갖는다는 점에 있다. 이데올로기의 기능 적 유용성은 지배계급의 지위를 유지시키는 지배 및 착취관계를 당연하고 합법적인 것으로 만드는 데 있으며 그것이 갖는 존재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모든 이데올로기의 목표는 스스로 움직이는(ISA, 181) 주체들을 생산해내는 것이다. 비록 알뛰세르 자신이 계속해 서 주장하듯이, 그리고 우리가 위의 제 7장에서 논의한 것처럼, 이러한 목표가 성취된다고 보장할 수는 없고 이데올로기 내의, 이데올로기를 위한 투쟁은 영원한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러한 개념화의 수준에서 적합한 것이 이데올로기와 과학의 구별이다. 이데올로기는 현실의 존재조건들에 대해 개인들이 맺는 상상적 관계를 나타낸다(ISA, 162)는 알뛰세르의 명제는 과학의 지식기능을 이데올로기의 정치적인 기능과 구별한다.
전자가 사물들의 실제 본성을 기술하는 것이라면 후자의 목적은 사회적 지배의 형태들을 재생산할 수 있는 조건들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어떤 이론이건 이러한 조건 위에서만, 즉 이데올로기와 과학은 그 목적과 그들이 물질적 실재와 맺는 관계에 있어 서로 엄격하게 구별된다는 조건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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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우리는 여기서 과학과 이데올로기의 구별을 지식생산의 조건으로 보는 초기 알뛰세르 저작에 상대적인 특권을 부여하면서 논의를 해나가고 있다. 관련된 텍스트는 On the Materialistic Dialectic 과 알뛰세르가 Reading Capital에 기고한 논문들이다. 우리가 앞서 8장에서 지적한 대로 Philosophe spontane 를 비롯한 후기 텍스트들은 초기의 텍스트들에서 과학의 인식론에 관해 개진한 기본입장들과 모순되지 않으며 (과학이 아닌) 철학을 사회적 규정의 영역 밖에 두었던 이론주의를 바로잡고 있다. ISAs를 포함하여 알뛰세르 후기 텍스트들은 과학과 이데올로기의 구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철학 자체를 계급투쟁(즉 이론의 수준에서의 계급투쟁)의 역사적 영역 내에 위치시킨다. 과학과 이데올로기의 구별을 전적으로 폐기하는 것은 일종의 리센코이즘Lysenkoism 에 굴복하는 것이 될 것이다. 알뛰세르는 적대적인 비평가들의 단언에도 불구하고 결코 리센코이즘의 오류를 범하지 않았다. Gregory Elliott의 이론은 인지적으로는 자율적이나, 사회적으로는 상대적으로 자율적이다(Louis Althusser and the Politics of Theory , [Ph.D. thesis, Oxford University, 1985], p.89)라는 요약적인 정식화는 여기서 견지되고 있는 견해와 일치한다. --
두번째는 역사적 이데올로기들을 이데올로기 일반과 구별하는 것인데, 이 점 또한 상당히 중요하다. 역사적 이데올로기들은 그 형식이 어떠한 것이든 간에 (그것이 종교적인 것이든, 윤리적인 것이든, 법적인 것이든, 정치적인 것이든) 항상 계급입장 (ISA, 159; 강조는 원저자)을 표현하는 반면, 이데올로기 일반은 역사를 갖지 않으며 무의식과 꼭 마찬가지로 영원하다 (ISA, 159, 161; 강조는 원저자). 알뛰세르가 <예술에 관한 서신>에서 자신은 진정한 예술을 이데올로기와 동열에 놓지 않는다고 말할 때6) 그는 동일한 재료를 파악하는 두 개의 다른 방식 즉 예술 (혹은 미적 실천)과 이데올로기를 구별하려 하고 있다.
이 구별은 전통적인 형식과 질료 간의 관계에 기초해 있다. 즉 예술은 이데올로기라는 재료에 형식을 부여한다. 엄밀히 말해서 그 관계는 과학과 이데올로기의 구별과 같이 인식론적인 것은 아니다. 예술의 목적 혹은 효과는 (알뛰세르가 예술적 실천과 과학적 실천을 구별함으로써 분명하게 하고 있듯이 (LP, 222-4) 이데올로기에 대한 지식(개념에 의한 기술이라는 의미에서)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데올로기를 부각시키는것, 그것을 가시화하는 것이다. 알뛰세르는 예술이 이데올로기를 과학적으로 제시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적 제시와 과학적 실천 사이의 이러한 관계는, 우리가
앞으로 살펴볼 것처럼, 알 뛰세리안들의 텍스트의 다른 곳에서는 보다 복합적인 것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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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Louis Althusser, A Letter on Art in Reply to Andr Daspre, in idem, Lenin and Philosophy and Other Essays, trans. Ben Brewster (New York, 1971), p.
221. 강조는 원저자. 이후 이책에 대한 참조는 (ISAs를 제외하고는) 본문 속에 (LP)로 표시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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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예술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관계가 전적으로 외적인 것도 아니다. 이데올로기가 미적 실천이 작업을 가하는 질료가 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술은 이데올로기의 질료가 될 수 있다(LP, 222-4를 보라). 예술작품이 이데올로기적 실천의 원재료가 될 때 --- 예를 들면 제국주의 본국의 문화적 전통 내에서 식민지 원주민들을 교육하는 경우 --- 예술작품의 미적 양상은 예술작품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에 종속된다. 작품의 내재적 성질, 즉 그 물질적 시적 구조는 그것이 이데올로기적 도구로서 사용된다 하더라도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유물론적 미학의 예술개념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에서
크레인R.S. Crane과 리파테르M. Riffaterre로 내려오면서 정교화된 형식시학이 완전히 양립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술작품이 주어진 사회 내에서 한 쪽 혹은 다른 쪽의 이데올로기적 기획을 위해 전유되게 되면, 예술작품은 사회구성체의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과학 내에서, 특히 이데올로기 이론이라고 이름붙여진 과학 분야의 연구 대상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술작품은 두개의 구별되는 탐구방식 혹은, 알뛰세르가 이름붙인 대로 따르자면, 과학들의 대상이 되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는 그 미적 양상 내에 한정하여 예술작품을 탐구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특정한 역사적 이데올로기의 형식구조 내에서 그것이 수행하는 기능 면에서 예술작품을 탐구하는 것이다. 전자의 탐구는 (이데올로기 일반과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알뛰세르의 주장의 유추라 할 수 있는) 예술 일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과 관련된 개념들을 전제로 할 것이다. 후자의 탐구는 이데올로기 이론에 의존할 것이고 예술의 물질성(즉 미적 실천의 산물로서 그것이 갖는 형식적
특성들. 이데올로기는 물질적 존재를 갖고 있으므로 예술작품은 이데올로기적 실천 내에서 여전히 물질적으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은 도외시하게 될 것이다.
동일한 대상을 이해하는데 적절한 서로 다른 과학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알뛰세르나 아리스토텔레스나 똑같이 공유하고 있는 전제이다. 알뛰세르는 결코 방법론적 일원론자가 아니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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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이 논의는 질료의 여러 가지 양상들이라고 하는 어려운 개념에 달려있다. 알뛰세는 이데올로기가 물질적 존재를 갖는다는 그의 주장에 이 개념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이 개념을 상세하게 파고들지는 않는다(ISA, 166-9).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는 동일한 물질적 실체가 상품으로 변형되었을 때 그것에 적절한 서로 다른 연구방법들을 생각해 봄으로써 그 대략을 이해할 수 있다. (넓은 의미에 있어서의) 물리학은 하나의 반지로 정형화된 금의 속성을 기술하고 그 반응을 예측할 수 있다. 경제학은 동일한 질료를 가치의 실현수단으로 간주하고 어떻게 해서 같은 양의 금이, 그것이 취한 형태와 그것이
구매자에게 제공될 당시의 시장상황에따라서 다르게 값이 매겨 지는지에 대한 설명을 제공할 것이다. 물론 한 걸음 더 나아가 반지의 미적 혹은 시적 속성은 어 느 정도는 금반지의 물리적 속성으로부터 (즉 그것의 展性으로부터) 그리고 그보다 정도는 덜하지 만 반지의 경제적 속성(시장의 여건은 금이 미적 생산을 위한 재료로 이용되는데 제한하는 힘을 행사할 것이다)으로부터 도출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지의 이러한 다른 면들과 구별된다고 말 할 수 있다. 만약 금반지를 녹여서 금덩어리로 만들면 금반지의 물리적 속성(이 경우는 원자구조)
은 변하지 않으나 그 시장가치와 미적 구조는 변화한다. 금은 금덩이로 있으면 반지의 모양으로 세공했을 때보다 가치가 덜 나갈 것이다(시장가치의 변화). 그리고 이는 그 형태적 속성에 가한 변형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미적 구조의 변화). 잉여가치학설사 에서 마르크스에 의해 제기된 생산적 노동 대 비생산적노동이라고 하는 까다로운 문제는 (이 문제는 여기서의 우리의 연구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 우리는 그 문제를 다른 곳에서 다루게 되기를 희망한다) 한 사물의 경제적 속성과 미적속성의 교차라는 이 동일한 문제의 일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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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올바른 유물론적 미학이 될 것인가에 대한 알뛰세르의 설명에 의하면 이데올로기가 어떤 역사도 갖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술 또한 역사를 갖지 않는다. 예술과 관련된 이러한 견해에 있어 알뛰세르는 그가 이데올로기와 관련된 견해에서 그랬던 것만큼 명시적 이지는 않지만, 알뛰세르의 견해가 미적 실천을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갖는 다소 영구적인 측면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추론할 수는 있을 것같다. 우리는 알뛰세르가 기획한 이데올로기 이론의 모델 위에서 예술이 기능하는 방식, 즉 하나의 실천으로서 예술이 갖는 특수성에 대한 정확한 이론을 발전시킬 수 있다. 특정한 예술작품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그에 앞서 미적 실천에 특유한 일련의 개념들을 만들어내어야 할 것이다. 마르크스가 말했 듯이 과학의 방법은 추상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알뛰세르가 그러한 개념들을 만들어내고 있지는 않으며 단지 과학의 효과를 예술의 효과와 어렴풋이 구별하고 있을 뿐이다. 예술과 과학은 모두 이데올로기를 그 대상으로 삼지만 이 원재료에 작용하는 방식은 서로 다르다.
예술과 과학의 진정한 차이는 그것들이 특유한 형식을 통해 우리에게 동일한 대상을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제시한다는 데 있다. 예술은 (그것을) 보거나 지각하거나 혹은 느끼는 형식으로 제시하며, 과학은 지식의 형식으로 (엄밀한 의미에서는 개념들로) 제시한다.
이를 달리 말해볼 수도 있다. 솔제니친Solzhenitsin은 개인숭배와 그 영향을 실제 겪은 경험을 우리로 하여금 보도록 만들지만, 우리에게그것들에 대한 지식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이 지식은 결국 솔제니친의 소설이 논하고 있는 실제 겪은 경험 을 생산하는 복합적 기제들에 대한 개념적 지식이다.
여기서 스피노자Spinoza의 말을 다시 사용한다면 예술은 우리로 하여금 전제없이 결 론을 보도록 만드는 반면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전제로부터 결론을 생산 해내는 기제를 꿰뚫어 볼 수 있게 해 준다고 말할 수 있다. (LP, 223-4; 강조는 원저자)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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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이론적 실천(즉 과학)이 질료 에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알뛰세르의 개념은 On the Materialist Dialects (FM, 182-93)에 충분히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지식이 생산되는 일반적 양식을 보여주기 위해 거기서 인용된 예들(1917년 러시아의 상황에 대한 레닌의 분석, 1930년대 중국에서의 대중과 관련된 당의 입장에 대한 마오의 설명)은 정치적인 것에 한정되어 있다. 더구나 알뛰세르는 경제학과 역사학 이외의 학문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실천이 상대적으로 뒤떨어져 있음을 매우 분명히 말하고 있다(FM 169-70을 보라). 우리는 그 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탐구는 예술이론의개념들을 다른 이론적 실천들의 영역으로 들여옴으로써 경험적 이론들의 일반적인 발전에 필요한 수단이 제공될 수 있음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이 논의는 뒷부분에서 Darstellung에 대한 알뛰세르의 설명을 다룰 때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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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만, 우리는 우리가 미학과 이데올로기의 관계를 연구하는 출발점으로 삼았던 [강요Grundrisse]의 그 부분으로 돌아감으로써 알뛰세르의 구별이 갖는 힘을 보여줄 수 있다. 고대 그리이스의 예술적 실천에 관한 마르크스의 언급은 알뛰세르가 정립한 미적 대상의 두가지 현상양식을 포괄한다. 한편으로 탐구의 대상(그리이스 예술)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영원한 매력으로 인해 비이데올로기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이것은 예술작품이 그것이 생산된 계기와 당시의 사회적 맥락을 넘어 여전히 독자와 관중에게 인지될 수 있있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은유이다. 다른 한편으로 주어진 예술작품은 어느 것이든지, 생산양식에 있어서 특정한 역사적 시기의 산물이다. 그리고 그 생산의 조건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엄밀하게 규정될 수 있다. 즉 '그리이스 미술과 서사시는 특정한 사회발전 형태들과 결부되어 있다'.
마르크스가 그리이스 예술을 이후의 미적 실천의 규범이자 도달할 수 없는 전범이라고 주장할 때 우리는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역사주의적 독단 (이는 빈켈만Winkelman 및 헤겔Hegel의 몇몇 덜 영리한 제자들의 관념론적 예술철학의 잔재이다)은 젖혀두고, 좀더 그럴듯한 주장을 견지할 수 있다. 즉 비록 '그리이스 예술이 그 속에서 발생했고 또 그 속에서만 발생할 수 있었던 미성숙한 사회적 조건들'이 결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고 해도, 그리이스 예술속에서 식별할 수 있는 미적 재현의 물질적 구조들은 여전히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리이스 예술 속에서 즉각 인지하는 것, 곧 그 '매력'의 원천은 '인류의 유년시절'9)에 대한 이미지를 제공하는 그 '어린애같은 천진함'이다. 알뛰세르의 말로 하면 그것이 '우리가 보고, 지각하고,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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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여기서 마르크스는 쉴러가 Uber naive und sentimentalische Dichtung 에서 고대 그리이스의 소박한 문화에 대한 논의한 것에 의존하고 있다. 쉴러에 의하면 소박함은 그것이 더 이상 기대되지 않는 곳에서의 어린애 같음이며, 바로 이 때문에 그 가장 엄밀한 의미에서 실제 어린시절에는 귀속될 수 없다 (Friedrich Schiller, Naive and Sentimental Poetry and On the Sublime: Two Essays, trans. Julius A. Elias [New York, 1966], p. 90. 강조는 텍스트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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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동시에 그리이스 예술은 역사과학의 대상의 하나로 이해되어야 한다. 미적 대상에 관한 이 과학은 그것의 [그 대상의] 진실을 보다 높은 단계에서 재생산하고자 노력한다. 그리이스 예술 속에서 미적으로 제시된 진실, 즉 그 현상형태는 과학적 실천에 의해 변형된다. 이를 알뛰세르가 지식의 생산에 대해 쓴 비유를 빌어 말하자면 작업이 가해진다. 이 과학적 실천은 그리이스 예술이 생산된 기제를 분명하게 드러내준다. 이것이 마르크스가 일찌기 '인체 해부학은 원숭이의 해부학의 열쇠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하등동물종들에서 보이는 고등발달의 징후는 그 고등발달이 이미 알려진 후에야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부르주아 경제는 고대 등의 경제에 대한 열쇠를 제공한다'고 한 주장이 갖는 힘이다.10) 의심할 바 없이 과학적 개념들은 역사 속에서 나오지만 그 개념들이 갖는 기술의 힘 descriptive은 그것들을 낳은 역사적 형태들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그리이스의 미적 실천의 특수성이 완전히 이해되고 그것의 매력의 기제가 여실히 드러나는 것은 과학적 예술이론의 출현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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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Karl Marx, Grundrisse: Foundations of the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Rough Draft), trans. Martin Nicolaus (London, 1973) p.105. 그리이스 예술에 대한 부분으로부터의 인용들은 이 판의 111 쪽에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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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구에서 마르크스의 논점은, 많은 비평가들이 잘못 생각해 온 것처럼 생산양식들의 역사적 목적론을 구축하려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대상의 여러 현상형태들을 구별하려는 것이었다. 인간과 원숭이 모두 엄지를 다른 손가락과 마주보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종種의 발달에서 이 해부학적 분화가 갖는 의의는 인간에게만 알려져 있다. 좀더 정확히 얘기 하면 그것은 인간이 갖고 있는 인지적 해부학 이론 내에서만 알려져 있다. 원숭이들은 다른 손가락들과 마주보게 할 수 있는 엄지를 갖고 있으나 그 엄지에 대한 개념을 갖고 있지는 않다. 이는 이전의 생산양식들이 잉여가치 착취형태를 내보였으면서도 이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것과 꼭 마찬가지이다. 다른 곳에서 알뛰세르는 바로 이 점을 강조한다. 고전주의 경제학이 정작 보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결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그것이 결여하고 있지 않은 것이요, 그것이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그것이 놓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간과는 보이는 것을 보지 않는 것이며, 간과는 더 이상 대상과는 관련이 없고 봄 그 자체와 관련되어 있다(RCF, 21; 강조는 원저자). 고전주의 경제학이 가치개념을 만들어 내고서도 이를 깨닫지 못했듯이, 원숭이가 다른 손가락과 마주 볼 수 있는 엄지를 갖고 있으면서 그 사실의 의의를 완전해 이해하지 못하듯이, 그리이스인들은 말하자면 예술에 대해 알지 못하면서, 마르크스식으로 말하면천진하게, 예술을 생산해냈다. 예술에 대한 과학이 출현한 후로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은 미적 실천 그 자체가 아니라 --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하에서는 예술생산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믿은 것은 결코 아니다 -- 한 때 미적 실천을 대할 때 사람들이 가졌던 천진함이다. 이는 물론 예술생산을 천재들만이 열망할 수 있는 신비적 이거나 불가사의한 과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유치한 견해를 예외로 할 때 그렇다는 것이다. 유물론자는 예술에 대한 그러한 무지몽매한 개념의 사치를
누릴 만한 여유가 없다.
그렇다면 미적 실천은 그 원재료를 어떻게 변형시키는가? 우리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 이 알뛰세르의 전체 저작 속에 예술에 대한 어떤 일반이론이 전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개별 작품들에 가한 분석 속에는 일정한 절차적 원형들이 나타나 있다. 이것들로부터 우리는 아직 씌어져야 하는 알뛰세르 미학의 대략을 그려볼 수 있다. 알뛰세르 자신이 지적한 대로 누구라도 임의의 대상에 대한 과학적 연구에 착수하려면 먼저 연구대상에 대해 상당히 엄밀한 개념을, 마르크스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단지 암시적 으로라도, 생산해 내어야만 한다. 우리의 목표는 알뛰세르가 예술작품에 대해서 쓴 두 가지의 비평적 해설에 나타나는 것과 같이 미적인 것의 특수성에 대한 예비적 설명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 설명을 통해 그동안 관습적으로 미적 인공품의 영역으로 이해되어 온 것의 한계를 우리가 뛰어넘을 수도 있다는 점이 알뛰세르의 사회적 실천 개념이 열어놓은 가능성이다. 추상적 부류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작업이 가해진 질료의 한 양상으로 이해되는미적인 것이 소위 미술의 실천 아닌 다른 실천들과 결부되어 있고 또 그 속에서 움직인다는 것이 밝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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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뛰세르의 에세이 <피콜로 극장 : 베르톨라지와 브레히트 (유물론적 연극에 관한 노트) "The Piccolo Teatro": Bertolazzi and Brecht (Notes on a Materialist Theatre)>는 1962년 국립극장에서 조르조 스트렐러Giorgio Strehler가 무대에 올린 카를로 베르톨라지Carlo Bertolazzi의 희곡 [우리들의 밀라노El Nost Milan] 공연에서 촉발되었다. 우리들의 밀라노 공연은 부르주아 비평가들로부터 격렬한 반감을 끌어냈고 알뛰세르는 그 공연과 희곡이 연극적 승리임을 방어하는 일에 착수했다. 동시에 그는 이 공연이 뛰어나게 성취한 유물론적 연극이라는 개념을 상술하게 되었다. 그의 논의가 브레히트에 대한 고찰로 나아간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따라서 그 에세이는 개념적으로 두 부분으로 나뉘어 알뛰세르적 예술개념의 이중적 초점 --- 예술작품이 비이데올로기적이면서 동시에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표출한다는 주장 --- 을 되풀이한다.
알뛰세르의 설명은 연극 내에 공존하는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 소원하나 그럼에도 생생한 관계에 의해 통일되어 있는 시간성의 두 형식 (FM, 135)을 강조한다. 이들 다른 시간들은 각각 밀라노의 민중생활을 묘사하는 긴 장면 동안 무대를 메우는 룸펜들의 시간과 세 명의 비극적 주인공인 니나와 그녀의 아버지 및 유혹자 토가소의 시간이다. 알뛰세르 해석의 열쇠는 '이것은 그 내적 분리가 두드러지는 연극이다. 왜냐하면 이 두개의 시간 혹은 두개의 공간 간에는 어떠한 명시적 관계라고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의 인물들 (즉 밀라노의 룸펜들)은 내리치는 번개 속에 있는 인물들(니나, 그녀의 아버지, 토가소)에게는 이방인들로 보인다. 그들은 규칙적으로 (마치 폭풍의 우뢰소리가 무대로부터 그들을 쫓아낸 듯이) 그 세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었다가 일단 그들의 리듬에 소원한 순간이 지나고 나면 다른 모습으로 다음 막에 되돌아온다'(FM, 134; 강조는 원저자)는 주장에 놓여 있다. 이들 두 별개의 시간구조의 제시는 무대연출, 특히 두 막을 하나로 만들고 두개의 다른 막을 동일한 무대장치 속에서 연출하는 스트렐러의 천재적 손질(FM, 137; 강조는 원저자)에 의해 뛰어나게 성취된다. 공연의 물질적 수준, 즉 무대 위에서 물리적으로 제시되는 것은 연극의 내적 분리에 대한 관객의 이해를 강화시킨다. 관객은 두개의
시간성의 공존을, 동일한 공간에 거주하지만 연극의 행위의 수준에서 보면 서로 아무런 관련도 없는 두 개의 다른 세계의 공존을 지각 한다.
그러나 극의 외양에 대한 이러한 직접적인 파악이 관객이 경험하는 전부는 아니다.알뛰세르는 연극의 행위가 두 세계 간의 모순을 더욱 깊이 자각하게 하고, 외양 자체의 영역을 넘어서서(왜냐하면 관객이 파악하는 구조는 무대 위 어느 곳에서도 제시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에 가서는 두 세계 간의 구조적 관계에 대한 인식, 그것들을 통일시키는 모순의 단일성에 대한 인식, 한 마디로 막이 내릴 때 니나가 도전하고자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인식을 강화시킨다고 주장한다.
니나가 그녀를 대낮의 햇빛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있는 문을 통과할 때 그녀는 자신의 삶이 어떻게 될 지를 아직 모른다. 그녀는 심지어 자신의 삶을 잃을 수도 있다. 적어도 우리는 그녀가 현실세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안다. 그 세계는 의심할 바 없이 돈의 세계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빈곤을 생산하고 빈곤에 비극이라는 의식을 부과하는 그러한 세계이다. 그리고 이것이 마르크스가, 비록 그것이 민중의 의식이라 할지라도, 허위적인 의식의 변증법을 거부하고, 다른 세계, 즉 자본의 세계에 대한 연구와 경험을 지지했을 때 말한 것이다.(FM, 140-1; 강조는 원저자)
위의 마르크스에 대한 언급이 가리키는 대로, 이 과정의 끝에서 관객은 등장인물들과 그 들의 삶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극중 행위의 한계 너머에 놓여 있으면서 궁극적으로 그것을 규정하는 세계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게 된다. 연극의 어느 곳에서도 직접 지각되지는 않으면서도(FM, 142) 관객이 깨닫게 되는 것은 그 구조의 기본 요소들의 내적 관련(FM, 141)이다. 그러나 관객의 위치는 (개념들에 의해 지식을 생산해내는) 과학자가 점하는 위치와 다르다. 왜냐하면 관객들의 이해는 무의식적인 것(FM, 141)이기 때문이다. 알뛰세르는 그가 관람한
공연에서 관객들이 보인 반응은 비평가들이 받아들인 것과는 달리 분명히 긍정적인 것이었으며, 미숙하긴 하지만 극중 행위의 진정한 대상에 대한 인식을 나타냈다고 주장한다. 그 예술작품은 스트렐러의 기민한 무대연출의 도움을 받아 관객들로 하여금,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을, 즉 고립된 개인들의 개인적 비극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내에서의 대량빈곤이라는 사회적 조건의 통일성을 보고, 지각하고, 느끼도록 한 것이다. 알뛰세르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구조에 대한 과학적 지식과 연극공연의 현상 속에서 제시된 그 구조에 대한 미적 파악을 분명히 구별한 것은 그가 <예술에 관한 서신> 에서 똑같은 대상이 예술과 과학에서 다른 방식으로 제시된다고 단언적으로 주장한 것과 일치한다.
관객이 스트렐러의 공연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인 경험적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에세이의 앞 부분에 이어 브레히트Brecht와 브레히트의 주요 희곡들이 제기하는 이론적 문제들에 대한 고찰이 이어진다. 베르톨라지의 희곡에서 두개의 전적으로 다른 시간이 맞닥 뜨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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