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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김주영-객주(5)-5

by Casey,Riley 2023.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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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객주 (5)

           -김 주영 역사소설
  ----- 차  례 -----

  주요 등장인물
  제 3 장  모리 1
  제 3 장  모리 2
  제 3 장  모리 3
  제 3 장  모리 4
  제 3 장  모리 5
  제 3 장  모리 6
  제 3 장  모리 7
  제 3 장  모리 8
  제 3 장  모리 9
  제 4 장  난비 1
  제 4 장  난비 2
  제 4 장  난비 3
  제 4 장  난비 4

  제 4 장  난비 4
  제 4 장  난비 6
  제 4 장  난비 7
  제 4 장  난비 8

  주요 등장인물

吉小介  46세. 처음엔 젓갈장수였으나
        조성준의 재물을 가로챈 뒤
        상경하여 양반 행세를 한다.
        모사와 계략에 능한 인물.
金輔鉉  약관에 급제, 철종 때 참판에까지
        이르렀으나 대원군의 버림을
        받다가 민씨(閔氏)가 집권하자
        선혜청 당상(宣惠廳堂上)을 거쳐
        경기 관찰사 등을 지냈다.
        임오군란 때 민겸호와 함께
        중희당에서 피살된다.
梅月이  31세. 들병이 출신으로 송만치의
        외사촌누이이며
        천봉삼(千奉三)에게 각별한 연정을

孟九範  31세. 거상(巨商) 신석주의
        차인행수로 잇속에 밝으며
        달변에다가 사람을 다룸에 능하다.
        오직 잇속을 찾아 행동하다가
        신석주에게 내쫓기어 조산
        깍정이패에 섞인다.
閔謙鎬  알성문과에 장원급제한 민씨세도의
        일원으로, 여러 요직을 거쳐
        선혜청 당상에 이른다. 임오군란
        때 강압책으로 이를 진압하려다
        김보현과 함께 살해당한다.
선돌이  28세 황해도 황주(黃州) 사람.
        근본이 갯바닥 출신이나 초기에는
        의리와 정의에 살았고, 천봉삼과
        동업한다.
申錫周  71세. 시전(市廛)의
        권문세가에 무상출입하며 양반도
        감히 그 앞에서 자기를 내세우지
        못한다.
월  이  18세. 조소사의 교전비로
        백정(白丁)의 딸이다. 최돌이의
        아내가 되었다가 청상이 되고,
        여상(女商)이 되어 활약하다가
        다시 조소사의 하녀가 된다.
柳必鎬  광주(廣州) 사람. 김보현의
        식객으로, 난세라 하여 과거를
        보지 않고 백두(白頭)를 고집하다.
        곧잘 예언하고 관상에 능하다.
趙召史  23세. 월용화태로 그 아름다움이
        대단하다. 신석주의 총첩(寵妾).
        천봉삼의 아이를 갖는다.
千奉三  26세. 송도(松都) 사람.
        보부상으로 천소례의 동생이며
        조성준의 수하에 있다가 상경한다.
        정의감이 투철하고 의협심이 강한
        인물.


  제2부  京 商 (中)

  제 3 장 謀利 1

  1.

  군산포 해창(海倉) 앞 한터는 인마들의
부산한 내왕으로 장시를 방불케 하였다.
향곡에서 육태(陸太)나 거룻배로
세납미(稅納米)를 운반해온 백성들이 구실
바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고 한편으로는
집으로 회정하려는 노복들이나 마름들도
없지 않았다. 세곡을 바쳤다 하나 결손으로
결안(決案)이 안 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방납전(防納錢)을 구하려는 사람, 하룻밤
거처를 구하려는 사람, 그리고 짚신이나
장사치들이 서로 엇갈리고 비끼어서 저자를
이루는 것이었다. 마침 후둑후둑 빗낱이
듣고 있었으므로 우비(雨備)가 없는
사람들은 그대로 비를 맞고 서성거렸고
비를 피해 해창의 담벼락을 따라 길게
늘어선 사람들도 있었다.
  감납(監納)을 받으려고 곡식을 지고
들어갔던 사람들은 거의가 시금털털한
낯짝이 되어 쫓기다시피 되짚어 나왔다.
창색과 말감고[斗監考]들의 행패도
그러하거니와 낙정미(落庭米)가 세납미보다
더 많다는 공론들이 돌았다.
계판(計版)이란 것이 아전들 마음대로
결안한 것들이어서 진전(陳田:
休耕農地)에도 세를 물며 화속(火贖)을
물리기에 주저함이 없었다. 살년을
복호(復戶: 大同米의 免稅) 따위는 어림도
없었다. 봉미관(俸米官)인 감납 차사원이란
관원은 있으나마나여서 해창 어름에는
얼씬도 않았고 아전과 말감고들만 제
세상을 만난 듯이 분주를 떨며 헤집고
쏘다니는 것이었다. 그것은 빼앗으려는
자들과 빼앗기지 않으려는 자들의 싸움일
뿐이지 백성을 기림으로 수령의 명예를
구하는 선치(善治)의 도리와는 이미 거리가
먼 정상들이었다. 원래 세결(稅結)이란
토지의 비옥과 척박을 가리어 9등급의
양전(量田)을 두었으나 수령의 탐학과
아전의 농간으로 양안(量案)의 원칙은
있으나마나였다. 이른바 본세라 할 수 있는
전세(田稅)는 일결(一結) 6말[斗],
대동세는 12말, 삼수미(三手米) 1말 2되,
  그나마 고종 8년에 이르러서는
쳐들어오는 양인(洋人)의 방비를 빙자하여
삼수미 외에 강화도를 지키는 군사들을
위한 포량미라는 것을 만들었다. 응당
전부터 받아오던 삼수미로 충당해야 할
것이나 재용 부족을 이유로 1결에 2말씩을
가징(加徵)하니 이것만으로도 1년에 5백
석(石)이 웃돌았다. 처음에는 대동미
외에는 수세를 않는다 하였다가 세월이
흘러갈수록 가징이 되어 이즈음에
이르러서는 대동미를 1결에 14말, 삼수미가
3말, 별수미(別手米) 3말, 포량미 1말이니
해서 도합 21말이나 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여기에다 석렴(石斂)으로
가승(加升)이라 하여, 쌀이 쥐의 침해를
받거나 혹은 낙루될 염려가 있다 하여 쌀
쌀의 건조나 부패로 인하여 줄게 되는 것을
미리 예측하여 3되를 받았다.
  작지미(作紙米)는 세곡을 받을 때
기입하는 종이값을 말하는데 이것도
호조작지미(戶曹作紙米)와
창고작지미(倉庫作紙米)가 따로 있어
합하여 1말 5되나 되었다.
경창역가미(京倉役價米)가 6되요
하선입창가미(下船入倉價米)가 7홉
5작이었다.
  국납미(國納米)말고도 읍징(邑徵)의
계정으로 세곡의 품질을 알아본다는
간색미(看色米)가 석렴(石斂)으로 한
섬마다 1되, 세곡을 거두어 섬으로 만들 때
축나는 것을 벌충하기 위한
타석미(打石米)가 10되,
진상첨가미(進上添加米)가 있다. 또한
선가(船價), 입강창가(入江倉價),
입경창가(入京倉價), 인부가(人夫價) 등의
4가(四價)로 한 섬마다 3말을 받았다.
이러한 역가는 수운의 거리로 따져 값이
일정치 않았으나 하륙비라하여 짐방들이
창고까지 넣는 값으로도 7홉을 받고
잡비로서는 인정미(人情米) 2되로서 이것은
세곡을 검사하는 사람이 말질을 하는
까닭에 일종의 수수료로 내놓아야 하는
것이었다. 부석가(負石價)는 쌀섬을 따로
사는 비용에다 차원지공비(差員支供費)까지
붙어 있었다. 이는 정한 것이 없고 각
고을마다 크게 달랐으나, 무엇보다
백성들을 울리는 것은 낙정미(落庭米)라는
것이었다. 낙정미는 마되질 중에 떨어지는
억울한 세목) 물기에 이력난 백성들은
꿀먹은 벙어리로 말감고들의 농간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세미 몇말 몇되라고 아전들이 외치고는
있었지만 백성들은 도대체 막연하여 살펴
알아듣지를 못하였다. 국납이 몇말이고
선급(船給)이 몇말이며 읍징이 몇이요
무엇이 결렴(結斂)이고 무엇이
석렴(石斂)인지 무엇이 쇄렴(碎斂)인며
또한 원결(原結)이 얼마이고 면결(免結)이
무엇이며 연결[隱結]이 얼마인지 졸가리를
따져 들다가도 지쳐서 그만두는 일이
허다하였다.
  자고로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 죄를 먼저
따진 뒤에 매질을 하여야만 백성이 자기의
죄를 알게 될 것이고, 씀씀이를 헤아린
것이나, 조정은 멀어서 못하고 수령은
돌아올 것이 있어 눈을 감았고 아전은
빼앗을 것이 있으니 더욱 날뛰었다. 1결에
수확하는 곡식이 많아야 8백 말[斗]이요
적게는 4백~5백 말일 뿐이었다. 백성들이
제 땅이 있을 턱이 없으니 토호나 아전들의
땅을 빌려 경작하여 연명하는 데 일년 내내
상투를 땅에다 끌며 살아도 살붙이들의
식량과 이웃에 주는 품삯은 치러야 하였다.
추수 때가 되면 도조(賭租)로 수확의 반을
나누어가니 6백 말을 추수한 백성이
제몫으로 가진다는 곡식이 끽해야 3백
말이다. 종자를 제하고 세전 양식을 제하면
1백 말 미만의 농량(農糧)이 남게 되는
것인데 이 또한 부세로 긁어가고
빼앗아가는 것이 극도에 이르니 빈털터리만
수령이 또한 이를 알고 있다 하여도
아전들의 비방과 위계를 면하고자
투식(偸食)과 남봉(濫捧)을 하는 대로
맡겨두니 목민이란 이르러 허공의
말이었다. 더욱이나 창촌(倉村)에는 방을
붙여 잡류(雜流)를 엄금하여야 했으나
그것조차 별무간섭이었다. 사당패와 창기와
주파(酒婆)의 접근을 금하고 투전질과
도사(屠肆)를 금해야 할 것이나 노래와
여색과 술과 고기로 창리(倉吏)와 선인들과
세납민들을 유혹하는 것이니 창리와 선인은
축난 것을 횡포로 채울 수 있으나 세납민은
그 빼앗김이 전부였다.
  창촌의 그런 잡류들보다도 가장 큰
도적은 도필리(刀筆吏)이니 지방으로
도임(到任)하는 수령들이 그 임기 동안
백방으로 머리를 짜고 방책을 강구하는
것이었으나 향속(鄕俗)에 어두운 수령들은
한번 그들의 농간에 들기만 하면 체모를
더럽히는 것은 물론이요, 때로는
파문(破門)의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옥구현의 아전 중에서도 가위 노른자위라
할 수 있는 도서원(都書員: 稅穀의 監納을
맡아보는 아전) 최재걸(崔在杰)이란 자는
총기가 남다르고 그 계략과 술수에 있어
다른 사람이 미처 따르지 못할 자였다.
그는 가근방에서 탐욕스런 수령을 잡아먹는
아전으로 호가난 터여서 가시 일향(一鄕)을
호령하고 지내는 자였다.
  7년 전 그는 옥구의 전임(前任) 관장이
도임을 앞두고 있던 차에 조그므이
척분(戚分)을 연줄로 하여 은근히 그를
어리광을 부리며,
  "나으리께서 이번에 출사하시어 옥구
현감으로 나시니 민(民)이 얼마간 훈수를
한다면 나으리께서 평생 편안히 살 길이
트일 수가 있습니다."
  "아니? 내가 고을을 맡는다면 자네의
의식쯤은 돌볼 수가 있을 지는 모르지만
어떻게 내 평생 살길을 도모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으리, 제게 많은 돈과 재물을
주시라는 뜻이 아닙니다. 옥구의 도서원
자리만 제게 주시라는 뜻입지요."
  "옥구는 해창이 있는 곳이라 향리들이
자못 드세다고 들었네. 그런 판에 관장의
위엄 하나로 도서원 자리를 선뜻 자네에게
넘길 수가 있겠는가?"
먼저 옥구로 내려가서 자리를 잡은 후에
이안(吏案)에 오르도록 조처하여얍지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 내가
나중에 내려간다 하여 공중뜨게 이안에
붙일 수가 있겠는가?"
  "객담이 아닙니다. 나으리께서 도임하신
후 백성들의 송사에 판결문을 내려주실 때
형방이 미처 받아쓰지 못하거든 엄한
꾸지람을 내리시고 또 이같은 어리보기를
형리로 불러 썼다는 이유를 들어 이방에게
책임을 묻고 징치를 하십시오. 호령과
치죄가 나날이 반복되면 자연 도리가 생길
것입니다. 그러시다가 공사중에 제 손에서
나온 문첩(文牒)이라면 지체없이 칭찬을
하십시오. 이러기를 며칠 하고 나서 명을
내려 형리를 다시 뽑으시되 시임(時任)과
범백사에 영리한 자를 취사(取士)한다
하시면 자연 제가 뽑혀 형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형리가 된 뒤에도 도서원
자리를 분부하시어 직임을 내리시면 외간의
실정을 제가 듣는 족족 기록해
올리겠습니다. 그러하면 나으리께선 자연
백성들에게서 추앙받는 수령이 되실
터이지요. 또한 그 간악한
이서배(吏胥輩)들의
무문농필(舞文弄筆)에도 놀아나시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에 소견이 그럴싸하고 해롭지 않게
생각한 현감이,
  "정히 그렇다면 자네 수완대로
해보게나."
  최재걸이 물러나오는 대로 서둘러
피신해온 아전이라 둘러대고 저석을 주막에
부쳐먹으면서 길청에 드나들며 친분을 트고
간혹 문장(文狀)을 도와주고 대신 써주기도
하였다. 위인이 원래 영민하고 문자와 셈에
능통하니 여러 이속들이 대혹하여 그를
대접하였는데 아예 길청에서 기식을 하도록
주선하고 제반 문권을 그와 상의하는
것이었다. 신관이 도임해서 신영(新迎)과
지장(支裝)을 끝내는 대로 관정(官庭)에
가득히 밀린 민소(民訴)에 제사(題辭)를
부르는데 형리가 지체없이 받아쓰지 못하면
반드시 탈잡아 꾸짖으니 날이 갈수록
벌받는 자가 늘어나고 이속들은 하루의
공사가 살얼음 위를 걷는 형국이었다.
보장(報狀)과 전령(傳令)에 있어서도
반드시 트집을 잡아서 엄히 다스리고
인하여 형리를 감히 가까이 하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따돌림에 외토리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최재걸이 손을 댄 문서가
들어가기만 하면 입에 침이 말랐으니
길청의 이속배들은 난든집을 가진 최재걸이
훌쩍 떠나버리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상전처럼 모시는 것이었다. 이에 현감이
하루는 홀저에 입을 열기를,
  "내 서울서 듣기로는 옥구는 문향이라
하더니 직접 도임해서 총찰(總察)하니 전혀
꼴이 아니다. 길청에서 시사(時仕)하는
아전과 읍내 사람 중에 문필이 쓸 만하고
보필함이 지극해 보이는 자들을 불러
취재하여 형리를 다시 뽑으리라."
  옳다꾸나 하였던 이방이 나는 듯이
나아가서 길청에 우거하던 최재걸을
심드렁하게나마 두어 마디 묻고 필력을
시험한 뒤에,
  "이 사람에게 이역(吏役)을 맡긴다면
그럭저럭 해나가겠구만. 그를 이안에
올리고 형리로 임명하여라."
  이방은 자기가 천거한 인물로
결안(決案)이 된지라 붙은 곳도 모르고
스스로 기뻐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최재걸이 형방이 된 이후로 현감의 책망은
어느 틈에 쑥 들어가고 없게 되었다. 이방
이하 여러 관속들이 그를 도서원으로
겸임시켜 거행케 하여도 감히 지청구가 될
건덕지가 없었다. 취재걸은 매양 여항에
떠도는 소식을 살펴 꾸민 염기를 동헌방석
밑에 슬쩍 놓고 나감으로써 아전들의
간교를 귀신처럼 살피는 수령이 되었고
거역함이 없었다. 그러나 1월이 크면 2월이
작더라고 해소수를 보내는 동안 최재걸은
기생첩까지 두었으되 현감은 자연
청렴해져셔 티끌 하난들 부당하게 취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이른바 자승자박이랄
수 있었다. 과만이 되어 출륙(出六)을 하여
경사로 승탁이 되었으나 주머니가
동지섣달이니 당장의 치행도 지난이엇다.
현감은 조바심이 났다. 이를 눈치챈
최재걸이 반죽 떨기를,
  "안전께서 일찍이 청렴으로 자처하옵고
결백을 지키신지라 이제 과만이
되어오는데도 치행의 마련이 없습니다."
  "자네 그걸 알아주어 다행일세."
  현감이 시쁘장스럽게 최재걸을
흘겨보았다.
이제 보답코자 하던 차에 한 꾀를
생각하였습니다."
  "꾀라니?"
  "안전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고 치행의
걱정을 놓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차
서울의 가산을 윤택하게 하고도 남음이
있을 듯합니다."
  가위 허기에 지쳐서 형용이란 게
살가죽만 남게 된 현감이 퀭한 얼굴로
대답하였다.
  "자네의 언사가 이치에 닿고 내 체모에
손상을 입지 않을 일이라면 내가 나서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경장(京場)저자 윗머리에 건어물장사로
치부한 김풍헌의 집이 고울에서 갑부인
줄은 전부터 들어 알고는 계십지요? 오늘
부려보면 천금을 단숨에 얻을 길이
있습지요."
  언사가 꽤나 엉뚱하고 또한 무분별한지라
현감이 대로하여 최재걸을 꾸짖었다.
  "이 천하에 상없는 놈. 그런 망측한 일로
나를 욕뵈려 들다니? 내가 이 고을의
관장이란 걸 잊었느냐? 후생(後生)의 본이
되어야 할 내가 가히 상서롭지 못한 일로
아름답지 못한 꼴을 보이라니? 이 요망한
놈은 곤장을 맞아 마땅하리라."
  최재걸이 놀라는 기색도 없이 해납작한
낯판때기를 쳐들고는,
  "물론 나한(羅漢)에도 모래 먹는 나한이
있다 하였지만 고집만 세우지 마시고
소인의 말을 들어보십시오.괜히 넉장을
뽑아들고 어물어물하시다간 나용하신
땜질하시며 노자 오륙십 꿰미는 어디서
마련하시겠습니까. 안전께서 피골이
상접하신건 고사하고 댁에 돌아가신 후에
풍년이 되어도 주림을 면치 못하시고
겨울이 따뜻한들 추위에 떨어 집이 경쇠에
매단 듯하고 가마솥에 먼지가 앉아도
죽부인에 퇴침만 베고 누었으렵니까?
노문(路文) 없는 행차에 수각(手脚)만
황망하더라고 지체가 먹여살립니까? 홀여
상것들이라면 해창에 나아가 마되질로
마고청이나 얻어먹고 연명한다지만 안전의
지체로 될 법한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수천지조명(受天地詔命)이라 사람의 목숨은
하늘로부터 받은 것, 함부로 내던질 일이
아닙니다. 허물만 마시고 파(破)를
당하시기 전에 재삼 숙고하십시오. 혹시
아닙니까."
  현감이 하도 어이가 없어 계속 최재걸을
꾸짖었으나 이말 저말 끌어당겨 말이
길어지면서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말꼬리가
모험을 감행하는 방향으로 기울게 되고
말았다. 이에 현감은 당초부터 눈살을
찌푸린 대로이나 목소리는 은근해져
물었다.
  "다른 하료들로 내 대신 하면 되지
않겠느냐?"
  "아니 됩니다. 만약 다른 놈과 작반하다
조명이 나면 안전의 얼굴에 똥칠을
합니다."
  "정히 그러하다면 장난삼아 한번 해보자.
비상을 먹으란 것도 아닌데 설마 네놈이
내게 앙화를 입히지는 않겠지."
동헌을 나서서 경장저자 윗머리로
올라갔다.
  경장저자까지는 초간한지라 한식경이나
되어서 김풍헌의 집에 닿았다. 밤이 깊어
적막강산인데 담장을 넘어 집 안으로
기어들었으나 눈치채고 뛰어나오는
노복들은 없었다. 두 사람은 곧장 마당
귀퉁이의 고방의 걸쇠를 따고 안으로
기어들었다. 잠시 숨을 돌리고 있던
최재걸이 말하였다.
  "이건 술 곳간이 아닙니까?"
  "그런가보이."
  "우리가 황망중에 실수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기왕 들어온 김에 뱃심이나 채우는
게 상책입니다."
  부득이 위인과 작반하여 면종은 한다지만
지경에 이르러 시비를 가릴 겨를도 없는
터라 위인이 하자는 대로 울며 겨자 먹기로
술독에 떠 있는 자배기로 순배를 돌리었다.
술독 하나가 반이나마 거덜이 나갈 즈음
취재걸이란 놈이 느닷없이 벌떡 일어나더니
장가(長歌) 한가락을 큰소리로 뽑아올리는
것이었다. 명색이 장가일 뿐 그것은
상것들이나 입초에 올릴 만한 잡가였다.
  "이르랴 보자, 이르랴 보자. 내 아니
이르랴 네서방다려. 거짓짓으로 물긷는
체하고 통(桶)이란 내려서 우물 전에 놓고,
또아리 벗어서 통조지에 걸고 건넌집 작은
김서방 눈껌적 불러내어 두 손목 마주잡고
수군수군 말하다가 삼밭[麻田]으로
들어가서 무슨 일 하던지 잔삼은 쓰러지고
굵은 삼대 끝만 남아 우줄우줄하더라고, 내
  아니나다를까 행랑 봉노에서 잠에
떨어졌던 노속들이 모두 일어나서 허겁지겁
야단을 피우는 사이에 최재걸은 혼자
고방을 나와서 밖으로 빗장을 내린 다음
몸을 숨겨버렸다. 현감이 허둥대다 말고
술독 사이로 상투를 쳐박았다. 홰를 쳐든
노속들이 고방으로 뛰어들어 술독 사이에서
된장에 풋고추 박히듯 한 도둑을 잡아
끌어내었다. 그가 고을의 관장이란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할 일이었다. 손발을 돌려
묶고 나락섬에 처넣어서 버드나무 가지에다
매달았다. 날이 밝는 대로 관아에 이송할
작정이었다. 바로 그때 그 집 사당에서
연기가 솟았다. 도둑이고 뭐고 가속이며
노속들은 불길을 잡기 위해 우르르
사당으로 몰려가고 집 안에는 오직 풍헌의
반귀신이 되어 자리보전을 하고 있는 팔십
노인이 사랑에 누워 있다는 것을 취재걸은
전부터 알고 있었다. 최가가 사랑으로
돌입하여 노인을 업어내어 나락섬의 현감과
바꾸었다. 다리가 둘밖에 없는 현감인지라
엎어지고 자빠지며 동헌으로 도망해왔다.
숨이 막히고 목이 멘 위에 또한 명치까지
기어오른 분기를 삭이기가 어려웠다.
현감은 소매를 부르걷고 어지간히 어금니를
갈아부치며 진저리를 치더니,
  "이놈, 그런 못된 소행머리가 어디
있느냐? 이것이 어디 진중한 벼슬아치의
몸놀림이라 할 수 있단 말이냐? 밤저녁에
사람을 꼬드겨서 감히 양상군자 되자더니
또한 난데없이 술을 퍼마시고 노래를
읊조리다니? 네 무슨 억하심정이 있었더냐?
불각시에 혼찌검이 나지 않았느냐?"
  현감의 신색이 차마 눈뜨고 바라볼
계제가 아니었다. 최재걸이 이르기를,
  "고정하십시오. 이제 소인의 계교가
들어맞았습니다. 안전께서 벗어나신
대신으로 김풍헌의 팔십 노친을 나락섬에
쑤셔박았습니다. 지금 당장 사령들을 풀어
끌어오도록 하여 간옥에다가 내려
가두십시오. 내일 조사(朝仕) 끝에
김풍헌이란 놈을 불러 노친네를 보이고 난
뒤에 아주 그놈 문촌(門村)에 연못을 팔
요량으로 불효죄로 다스려 칼을 씌워
아비와 아들을 함께 하옥하십시오."
  최가의 꾀가 무엇인지 현감은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곧장 통인을 불러 사령들을
풀게 한 뒤 버드나무의 나락섬을 떼오게
점잖게 불러들였다.
  "자네 집에서 간밤에 적당을 잡았것다?
그놈을 끌어다가 자네가 보는 앞에서
중곤을 내리리라."
  사령들이 나락섬에서 목숨이 턱에 걸린
김풍헌의 노부를 끌어내었다. 치고보니
삼촌이더라고 풍헌이 넋이 빠져 한참이나
끄떡 않고 앉았더니 마침내 부들부들 떨며
아뢰었다.
  "쇤네의 노복들이 미처 알지 못하고
저지른 사단이 분명합니다. 쇤네의 죄는
백번 죽어 마땅합니다."
  현감이 이에 신명이 나서 떠들기를,
  "내 일찍이 네놈이 이 고을에서
불효자라는 걸 알고 있었느니. 이번에
무단히 강상(綱常)의 죄를 범하였으니 이는
많고 거느리는 노속이 수십이라 하나
불효로 이를 거두었고 이제 와선 아비에게
도둑의 누명을 씌워 내쫓으려 함은 만고에
없는 대역죄이다. 네놈이 이제 와서
노속들의 실수로 빙자한다만 네놈이 평소에
아비를 얼마나 구박하였으면 노속들이
집안의 어른을 저 모양으로 만들었겠느냐?
주변없는 백성들이 이를 보고 흉내를
낸다면 머지않아 온 나라가 적지(賊地)로
변할 터이니 이를 용서한다는 건 나랏님을
능멸함과 진배없느니라. 동서고금에 어디
제 아비를 도둑으로 몰았던 불효자가
있었더란 말이냐. 향중에 이런 수치가
없으니 무슨 변고를 내기 전에 이놈을
엄중히 다스려야 고을이 안돈하리라."
  이어서 집장사령을 불러서는 장판도
삼우장(三隅杖) 20대를 걸판지게 두들겼다.
살이 터지고 피가 흙을 적시어도 전혀
개의치 않았으며 또한 마련이 없었다. 어느
편이 억울한 것인지 또한 어느 편이
타당한지 전혀 종잡을 수가 없는 틈에
아우성 소리가 동헌 담장을 넘어 나가고 그
식솔들이 삼문 밖에 와서 떨고 노속들은 담
밑에 퍼질러 앉아 울었다.
  "이놈, 이제 네놈의 죄업을 알겠느냐?"
  두들겨놓고 죄를 물었으니 풍헌이
철골이라 한들 무슨 소용일까. 심풍헌은
똥구멍에까지 내려가 울대를 가까스로
빼올려 죽어 마땅하다고 토설할 수밖에
없었다.
  "그놈, 이제 제정신이 드는가보다, 내려
가두어라."
20근짜리 칼을 씌워 하옥하였다. 이는 뒤에
남은 풍헌의 식술들을 위협하려 함이었다.
  불효의 죄로 칼을 썼으니 여항간의
동정을 받기도 글러버린 일이요, 권속들
역시 감히 방백을 호소할 길이 없었다.
김풍헌이 생각하니 그 또한 살아날 방책이
없었다. 최재걸이 현감과는 거의
평교(平交)를 할 지경으로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는 풍헌의 권속들이 밤중에 이목을
피하여 최재걸에게 알토란 같은 은자 2백
냥을 내놓았다.
  측간 앞에서 만난 사돈간처럼 거북하게
앉았던 최재걸이 겨우 손을 써보마 하고
응낙하였다. 얼마 후 요즈음의
신관(新官)이 내려오면서 외간에 떠도는
유언으로 보아 김풍헌이 은자 2백 냥을
뚜렷한 범증이나 빙거(憑據)가 없었으니
설분은 고사하고 방자할 방도조차 없었다.
  최재걸의 농간 한번에 은자 2백 냥을
날탕으로 빼앗긴 김풍헌의 속내가 편할 리
없었다. 언제인가는 저놈의 행적을 들추어
구실을 떼어버리고 말겠다는 세혐(世嫌)이
없지 않았던 터에 전주감영으로 압송하던
중죄인을 중도에서 적당들의 손에 넘겨준
실수를 저지른 것이었다.








  길소개가 처음 군산포에 하륙하여 찾아낸
사람이 도서원인 최재걸과 앙숙지간에 있는
지방의 토호였고 수소문하자니 김풍헌이란
사람이 최재걸에게 매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었다. 길소개는 김풍헌을
통하여 최재걸이 밑천이 어떠하며 또한 그
간계가 어떠한 사람인가를 낱낱이 얻어
들은 것이었다. 일개 향청의 아전
나부랭이라 하나 도서원의 자리에 있는
위인인지라 그놈을 어떻게 구워삶을까 하던
중에 마침 압송 죄인을 중도에 놓친 실수를
범한 것이었다.
  최가는 그때 이미 죄인을 놓친 죄로
감영에까지 압송되지는 않았으나 하옥이
감영으로부터는 최재걸을 며칠 안으로
압송하라는 엄칙이 내려 있었다. 현감이
겉으로는 엄히 다스리는 체하였지만
최재걸로 하여 얻은 재물이 수월찮은지라
위인을 감영으로 압송할 제 현감 자신이
탐학한 사실까지 토설해버릴 염려도 없지
않은지라 부질없이 날밤을 새며
전전반측이었다. 그런 날 밤 저녁에
수통인(首通人)이란 놈이 내아로
달려들더니 세곡선단의 행수란 자가 현신할
일이 있다고 연통하는 것이었다. 꽤나
엉뚱한 전갈인지라 현감이 물었다.
  "세선단의 행수라니? 성명이 뭐라
하더냐?"
  "그분 말씀이 안전님과는 척분이 있는
사이로 길아무개라 하던뎁쇼."
  말끝을 흐리며 생각을 도사리던 현감이
문득 내아로 모시라고 일렀다. 자기 친척에
선단의 행수로 박혀 있는 위인이 있을 턱이
없는데도 허공에 대고 함부로 내칠 일이
아니었다.
  통인이란 놈이 쏜살같이 쫓아나간 뒤
곧장 도포 차림의 한 사내가 신발을
팽개치듯 하고 단걸음에 내아로 들어서는데
불똥을 튀기고 밝은 빛으로 모색을
살펴보았어도 자기와 세의가 있는 위인은
아니었다. 그러나 위인은 도대체 주저함이
없이 보료 앞으로 썩 당겨 앉더니 넙죽
엎드려 현신의 예를 차리었다.
  "감히 안전의 문중임을 사칭하여 마련이
없습니다. 시생은 이번 군산포에 하륙을 한
세곡선단의 길소개라는 위인입니다."
엄두도 못 내면서 위인을 바라보고만
있는데,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흘리면서
뚜릿뚜릿 방안을 살피다간 정색을 하고
댓바람에 말문을 열었다.
  "우선 말이 좀 바쁜 듯합니다만 은근히
듣자 하니 안전께서는 이번에 생긴 옥사로
하여 거의 날샘을 하시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혹이나 유조할까 하여 이렇게
분별없이 현신하게 되었습지요."
  현감은 우선 이 길아무개란 위인에게
호감을 느끼었다. 고을의 관장에게 감히
세의가 있다고 뛰어드는 배포도
그러하거니와 세곡 선단의 행수라면 경사의
권문의 손이 닿아 있을 법하였기
때문이었다. 관선(官船)의 선인이라면
수작을 주고받는 사이 흠절의 꼬리를
임선(賃船)의 행수라면 분명 장사치가 그
본색이 아니겠는가. 현감은 피식 웃으면서
장난삼아 묻는 듯이,
  "그래, 최아무개를 살려낼 무슨
묘책이라도 있다는 게요?"
  "묘책이 없었으면 제가 어찌 이 야밤에
안전을 찾아뵈었겠습니까. 그것도
불시초면에 말씀입니다."
  타구에 가래침을 퉤악 뱉어낸 현감이
속타는 것과는 달리 심드렁하게 묻기를,
  "어디 한번 들어봅시다."
  "안전께 묘책을 알려드리기 전에
시생에게 한 가지 소청이 있어 그것부터
아퀴를 지어야 하겠습니다."
  "그 소청이 타당하고 또한 관장으로 능히
분별할 만한 것이라면 내가 구태여 내칠
  "세렴 중에서 낙정미로 떨어지는 것과
읍징(邑徵)으로 거두는 곡식을 저의 선단에
넘겨주십사 하는 소청입니다."
  "그건 지금 하옥시킨 도서원과 전임의
동관(同官)께서 간평(看坪)하여
계판(計版)을 짓고 결안(決案)한 것이어서
사실은 읍징으로 세렴할 것이 얼마인지 나
자신 소명치가 못하오. 그러나
준가(準價)만 지불된다면 마되가
얼마고간에 내가 전자(專恣)할 수는 있소.
그러나 읍징의 세곡을 모두 선단에
팔아넘긴다면 아니래도 적지(赤地)가 된
판국에 사창(社倉)의 곡식을 축낸다 하여
환미(還米)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백성들의
원성이 없지 않을 터인데 그 원성을 방비할
만한 묘책도 갖고 있다는 게요?"
하고 길소개를 바라보는데,
  "세납민들의 원성을 들어서야 안전에겐
해롭다는 것은 시생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그런 방비책이 있다면야......"
  현감의 의중을 더듬기에 여념이 없던
길소개는,
  "보통 감납을 결안함에 있어 액미가 섞인
쌀은 결안에 올리지 않았었고 또한
나락섬이 두꺼운 것도 받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햅쌀이 아니면 감히 출포할 엄두도
내지 못하였습니다. 햅쌀은 마되가
불어나서 다소간의 이익이 세납민들에게
돌아간다 하였으나, 그 대신 한장(旱狀:
한해로 인한 감세 신청)과 신기전(新起田:
새로 경작된 토지), 속전(續田: 한 해
묵혔다가 다시 경작되는 토지)으로
묵은쌀을 바쳐야 할 백성들은 방납이
아니면 도대체 손을 쓸 수가 없었지
않았습니까. 이번 감납에는 묵은쌀도
지체없이 결안시키되 궂은 날만 피한다면
물색 모르는 세납민들이 감히 읍징의
세렴이 축나는 것에 눈을 돌리지 못하고
좋아 날뛸 것입니다."
  "궂은 날을 피한다는 건 알 만한
처사이나 하필이면 액미에 묵은 쌀이며
두꺼운 섬을 받는다는 것이오?"
  "그건 굳이 말씀드리기 뭣하나 그런
조치만은 근간에 없었던 일로 게첩(揭貼)이
나붙는 길로 안전의 덕치가 여항에 퍼질
것은 뻔한 이치지요. 누이 좋고 매부가
좋다 하면 감히 훼방을 놓을 자가
  "읍징은 그러한다 하나 차사원이 그를
용납할까요."
  "차사원에 대해서는 안전께서 걱정하실
일이 아닙니다. 장사치로 입신한 위인이
그런 일에 허술할 리가 있겠습니까."
  현감이 짐짓 딴청을 부리며 헛기침이다가
장지를 열어 밖을 살피었다. 수통인이란
놈이 마당 귀퉁이 먼발치에 서서 완월을
하다가 제풀에 놀라 고패를 떨어뜨렸다. 썩
물러섰거라고 호령하고는,
  "그렇다면 차제에 내가 살아나고 시방
간옥에 내려 가둔 최가란 위인을 살릴
방도란 무엇이오?"
  "너무 서둘지 마시고 잠시
소창(消暢)이라도 하실 겸 밖으로
나시지요."
아니오."
  "저희들이 묵고 있는 객줏집에다 다담을
마련하였습니다. 분별이 없는 다담이라
하나 잡수시고 돌아오시면 옥사에 대한
해결 방책은 도리가 되어 있을 터입니다."
  "파옥을 하자는 것이오?"
  "안전께서 시전의 거상(巨商)을 바라보는
시생들을 화적의 동류로 분별하자 하시면
정말 섭섭합니다."
  "잠깐 해본 말이오."
  "농이시라 하나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혹시 이놈의 농간에 말려들어 체모에
똥칠을 하지 않겠는가 하여 속으로는 자못
켕기는 구석이 없지 않았으나 내막을
알아볼 겸 현감은 미복(微服)으로 길소개를
이르러 보행객주에 이르니 미목이 그림
같고 어딘가 차가워 보이는 한 위인이
다담을 마련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초인사를 나눔에 총대선인으로 행세한다는
유필호라 하였다. 그 자리에서 술과
음식만을 나누었을 뿐 별다른 수작이
없었는데 걸판지게 퍼마시고 내아로 돌아온
현감은 방바닥에 떨어진 한 통의 봉서를
발견하였다. 의아하여 겉봉을 살폈더니
그것은 옥구 현감인 자신이 전주의
관찰사에게 보내는 장계였다. 그 장계는
이번 최재걸의 옥서를 다루고 있었다.

  "소관이 문초한바 이번의 옥사에 있어선
형방의 잘못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의 옥사는 그 처음과 끝이
적당(賊黨)들이 형리(刑吏)의 눈을
어지럽게 함으로써 일어난 사단이 그
전부가 아니옵니까. 이는 도사의 복색이
적당을 도운 결과이나 형방의 소견이 깊다
한들 감히 위풍이 늠름하고 호령이 추상
같아 그자가 적당의 수괴라는 것은
엄두조차 못 낼 지경이었다 합니다."
  그러나 곰곰 생각컨대 시골의 아전이란
도사의 모색은 가리지 못하나 그
관대(冠帶)와 복식(服飾)을 견양(見樣)하여
계차를 분별하고 공사를 가늠하지
않았습니까. 도사의 복색을 보고 죄인을
인계한 것은 반분의 안면도 없는 불찰이
저지른 실수라 하나 이를 죄로 다룰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시골의 보잘것 없는
이속배들이란 공사가 아니면 감히 포정사의
도임하였다 하여 하찮은 이속배를
선화당(宣化堂)으로 불러 현신을 용납한
일이 없고 또한 이속배의 지체로 관헌과
함부로 교분을 트고 교유치도
못하였습니다. 대저 행공(行公)함에 이르러
그 복색과 관망을 보아 품계의 높고 낮음을
가려 분별하고 지공(支供)해온 것이 이
나라 관아의 위엄이요 전통이
아니었습니까. 백로의 속살이 검은들 그
겉의 흰 깃을 분별하여 백로(白鷺)라
이르고, 그 내장의 모양새는 알 길이
없으나 고기는 그 비늘과 지느러미의
형상을 분별하여 고기 魚로 이름지었고
초면이라 하나 그 상투를 보고 성취한
사내로 분별하였다는 것을 삼척동자라도
알고 있는 이치는 전부 차림새에 근거하는
압령장까지 위조한 그 사단에 있어 직입과
사람을 바꾸어 놓는다 하여도 매양 같은
실수를 범했을 건 뻔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오히려 아전의 지체를
모르고 소절(小節)에 구애됨이 없이
적당이었다 하나 도사가 틀림이 없었던
신분에 응명(應命)을 않고 끝내 불손하게
굴었다면 중죄인을 잃지 않아 공사는
무사히 치르었을지는 모르지만 계차의
예절과 그 하료들이 지킬 법도가 문란해질
아름답지 못한 선례를 남기어 조만간
강상에 상하의 구별이 어지럽고
관정(官庭)의 명분이 날로 문란하여 공사의
어지러움이 옴 번지듯 할 것입니다. 또한
징벌당한 형방이 향당(鄕黨)의 손가락질을
받고 연비간에 지천뜨기가 된다 하면
영리한 자가 어찌 관장을 보필하려고
자원을 하겠습니까. 숙맥(菽麥)을 구별
못하는 삼반관속(三班官屬)들은 동류의
형벌을 생각하고 범백사에 몸을 사리어
수령의 의지를 요량해서 형편에 따라
말하고 공사의 옳고 그름을 막론하고
빠져나갈 구멍만 도모하게 되었으니 장차의
공사는 형용은 있되 씨앗이 없는 허사가
되기 십상이 아니겠습니까. 아전 최재걸은
약간의 전장(田庄)도 없이
잔배냉반(殘盃冷飯)의 구차함을 무릅쓰고
소관을 보필하여 불철주야 공사를 도왔으니
아무리 엄한 율이 있다 한들 어찌
단련(鍛鍊)을 내릴 수가 있겠습니까.
사또께서는 제발 가련히 여기시와 옥사를
푸는 대덕을 베풀어주십시오.
  현감은 대희하여 도장을 찍고 수결을
하여 날이 밝는 대로 쌍급주를 내어
감영으로 등장(等狀)을 올리었다. 관찰사가
등장을 몇번인가 뜯어읽고 그럴듯하다고
생각하고 방송시키라는 분부가 내려진
것이었다. 일개 상인의 글발 하나로
도서원을 백방할 수 있었다 하나 현감은
그로 인하여 부처 밑구멍이나 지배없는
자신의 탐학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게
되었음을 천만다행으로 알았다.
  그것은 최재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방포 사건이 일어나서 조성준을 놓친
것하며 최재걸이 죄인 압송중에 적당들에게
함거를 취탈당하고 최재걸이가 옥사에서
방송이 되는 경과중에는 몇가지 석연치
않은 점이 없지 않았다. 그것은 첫째 이번
살피건대 어째서 조졸들이 그날 밤
조성준과 길소개 두 사람을 향해서만
방포를 하였던가 하는 점이었다.
도선목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갯벌이라고는
하나 갯가에는 다른 행객의 왕래도 없지
않았을 터이고 그들이 전부 적당이랄 순
없을진대 수하(誰何)를 막론하고 대중없이
방포질을 해댄 것하며 무턱대고 쏘아댄
터에 어째서 길소개만은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한 것일까. 또한 조졸들이 대장간으로
몰려와서 측간까지 뒤졌으면서도 정주
아궁이에 숨어 있었던 조성준을 목도하지
못한 것이었을까. 또한 조성준을 맨 처음
만났을 때 결코 무사하진 못하리란 것을
알고 있을 길소개가 군소리 한마디 없이
순순히 따라나섰던 것일까. 그것이 결국은
계략이었다.
  김풍헌의 입을 통하여 최재걸이
모사(謀士)란 것은 알았으나 최재걸을
이용한 방책을 찾던 중 창촌에 떠도는
소문으로 대장장이 득추의 동기가 적굴에
박혀 있으며 그가 또한 도둑의 접주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을 탐지하였다. 득추를
옥사에 빠뜨린면 적당들이 필경 파옥을
해서 득추를 구하려 들 것이고 파옥을
당한다면 형방인 최재걸이 문책을 당할
것도 시분 짐작하고 있었다. 문제는 무엇을
빙자하여 득추를 옥사로 빠뜨리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조성준이가
대장간으로 쫓겨든 것이었다.
  맨 처음 도선목에서 조성준을 만나서
뒤따를 적에 길소개는 동행하던 선인들에게
방포하라고 떠먹이듯 당부해둔 터였고
조성준이가 마침 대장간으로 뛰어들 제
그를 잡지 말라로 사주를 한 것이었다.
조성준이 마침 방포로 맞히어서 살변을
내어버렸다면 몰라도 조졸들에게 포착이
되어 관아로 넘어간다면 길가의 아름답지
못한 과거사가 백일하에 드러날 일이
아닌가. 조성준은 자기 손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물고를 내어야 할 위인이었다.
그러나 그때만은 조성준을 변고 내기 전에
득추를 취할 때였다. 조성준을
뒤쫓으려다가 세곡 농간을 놓치게 될
중요한 시기가 바로 그때였기 때문이었다.
  득추가 잡혀가서 옥사를 치르는 동안
파옥의 낌새가 없어서 일이 그르친 것이
아닌가 하였지만 마침 감영으로 호송되는
형방 최재걸을 손에 넣는 기회가
길소개에게 주어진 셈이었다. 운수는
이상하게도 길소개의 편이 되어준
것이었다.
  조성준을 잡지 말라는 길소개의 사주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배불리 먹는 데만
정신이 빠진 조졸들이 의심의 여지를 가질
리 만무였고, 그 계략을 또한 유필호나
최재걸 자신이 알아챌 수도 없는 일이었다.
최재걸이 풀려나는 길로 객점에 묵고 있는
선단의 행수들을 찾아가서 그 보답할 길을
물었다. 감영으로 올린 등장을 쓴 사람인
유필호는 방 가운데 앉아 복기에 열중하고
있었고 길소개가 최재걸을 상종하는
것이었다.
  "나 역시 환로에 들진 않았지만 초시는
섭섭게 생각진 말게."
  초면이긴 하나 길소개가 패를 잡고
나서자 부들자리에 상투를 끌어박으며
최재걸이 대답하기를,
  "여부가 있겠습니까. 소인이야 하찮은
길청의 이속이긴 하나 양반의 지체로 어찌
은혜를 기망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그때였다. 복기에만 열중하고 있는
줄 알았던 유필호가 짐짓 화를 돋우면서,
  "망측한 인사로군. 자네가 고을의
아전이라면 서울의 서리가 아닌가. 서리의
지체로 감히 반명을 할 수는 없네. 자넨
필시 관원이 아닐진대 뉘 앞에서 향곡의
풍속대로 서슴없이 반명을 자처하고 나선단
말인가? 뇌까린다고 다 말인가?"
  최재걸이 후딱 엉덩이를 돌려 앉히며,
관원과 서리를 분별치 못하였습니다."
  "세상의 인정이란 대저 새우젓을 먹을 땐
달걀이 생각나고 굵은 베옷을 입을 때면
세모시가 생각나는 법일세. 간옥에서
벗어났다하여 옛적 생각을 잊어버린다면
자네 신상이 해로울 것일세. 내가 자넬
간옥에서 끌어내었다면 다시 간옥으로 보낼
재간도 없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게. 자네와
우린 잠시 이익을 위하여 면종을 하려는
것뿐 감히 한골의 상투까지 노려보아선 안
되네."
  "소인의 실언을 용서하십시오, 나으리."
  "가려운 곳을 긁는 데도 방법이 있는
것이야. 등을 어루만지되 그 겨드랑이에
이르러선 안 될 것이고 가슴팍을
어루만지더라도 목덜미에 이르러서는 안
체모를 깊이 헤아려서 처신하게나."
  정통으로 얻어맞은 최재걸이 미처 대꾸한
기력을 잃고 상투만을 몇번인가 조아렸다.
처음엔 평교를 하자고 대들 심산이었으나
은근한 가운데 오금을 박는 서릿발 같은
언사하며 일개 상인들이라 하나 선혜청에
끈이 달린 것을 안 터라 감히 언사를 농할
기분이 아니었다. 아니래도 앞뒤가
분명찮은 미투리를 허겁지겁 꿰고 하직을
하고 나서는데 뒤미처 따라나온 길소개가,
  "그 선배가 선창에 하륙한 지 여러
날째나 아직 객고를 풀지 못해서 화증이
나신 거니 과히 섭섭해 마시게."
  그 말에 최재걸이 짐짓 경색을 지으며,
  "그렇다면 소인에게도 방도가 없는 바는
아닙지요."
것들은 전부 관기로 박히고 창촌 어름에는
끽해야 납독이 올라서 볼따구니가 잔나비
밑구멍처럼 축처진 것들뿐이더구만."
  "입맛이 까다로운 서울 한량들께서야
반분에도 차지 않겠지만 그런대로 고을에선
쓸 만하단 것들을 변통할 재간이야
소인께도 없지 않지요."
  "다른 한 가지는 창빗[倉色]이며
소임들에게 은근히 통기를 놓아서 우리
선단의 사람들이 해창 어름에 무상출입을
하여도 혼금을 놓지 않도록 물금첩(勿禁帖)
발급 주선을 해주어야겠네."
  "염려 놓으십시오. 그놈들이야 소인의
수하에 있는 놈들이 아닙니까."
  최재걸이란 놈을 만지고 주물러서 내보낸
다음 길소개는 해창 어름으로 발길을
어름에는 분주하기가 단대목 만난 저잣바닥
그대로였다. 마침 일색이 다하여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끝간 데 없는 수평선을
덮고 있는 구름이 검붉기 물들고
바다새들이 닻을 내리고 정박한 세선들의
돛대 위를 떼지어 날아가고 있었다.
  길소개는 문득 젓장수 시절이 생각났다.
끽해야 젓국에 전 긴 저고리에 누비배자나
걸치던 신수에 소매 넓은 도폿자락이
바닷바람에 본때있게 펄럭이고 있는
것이다. 자기의 입성이 언제부터 이렇게
변하게 되었는가. 그는 괴춤에 차고 있는
호패를 소매 사이로 가만히 움켜쥐었다.
이번 행보 한번이 자기의 일생에 있어선
중요한 고비가 된다는 것을 길소개는
한순간이나마 잊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름으로 행보를 떼어놓았다.
















  해창으로 들어가는 길은 쌓아 놓은
세곡섬들로 두어 사람이 겨우 비집고
들어갈 만한 길이 서너 줄기로 삐꿈하니
뚫려 있었다. 출포를 마친 농투성이들이
감납할 차례를 기다리기 위해 부들부들
떨면서도 한터를 뜨지 않고 있었다.
  해가 빠지고 비가 다시 한줄기 퍼부을
조짐인지라 노적가리에 이엉을 덮느라고
모두들 허둥지둥 이었다. 곡식이 비에
젖으면 그 곡식을 말리느라고 적잖은
부비가 나기 마련이고 액미가 생기기
마련이니 한번 출포에 열흘을 허송하기가
예사였다.
  해창 담벼락 아래로 비를 피해 늘어선
  "어허, 이놈의 비가 기어코 내 집구석에
연못을 팔 작정이여."
  "니미, 하늘을 보게나. 한주름 오지게
내려쏟을 기색이 아닌가."
  "집 떠난 지가 벌써 열흘인데 낌새
보아하니 환갑 전엔 여편네 얼굴 보긴
글렀는걸."
  "걱정도 팔자일세. 환갑 전에라도 여편네
얼굴 구경이야 못할까만 나는 아버님
제사가 바로 내일일세. 아버님 살아 생전
송기죽 공양도 변변히 못했는데 돌아가셔도
냉수 한 사발 공양도 못 받으시게 생겼으니
이런 불효가 어디 있는가."
  그 곁에 서 있던 위인이 눈자위를
곱상하지 않게 치떠 보이고는,
  "자넨 망령 끼니 걱정하는 걸 보니
가릴 줄 모르는 돌바기놈이 경기(驚氣)가
들어 오락가락 하는 걸 보고 왔다네. 아마
지금쯤 애장터에 갖다 묻고 난 뒤인지도
모르지."
  그러자 이때까진 수작에 끼여들지도 않은
채 턱을 괴고 앉아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던
위인이 다 죽어가는 소리로 거들고 나섰다.
  "나는 마침 어제가 어머님 제삿날이라
해낮에 제사를 올렸다네. 집에 가서 망령을
모신들 산 사람들 섭생이 전혀 꼴이 아니니
제청(祭廳)을 차린들 밀기울죽 한 사발이
고작이 아니겠는가. 새물전에 가서 외상을
졸라보았자 구박에 지청구만 받을 것이고
생각다 못하여 축문(祝文)을 가슴에 품고
술국집으로 갔다네. 거적문 앞에 엎디어
남몰래 큰절을 올리고는 저승에 계시는
황육 넣은 술국이 휘장 안에 있으니 많이
드십시오 하였지. 망령도 우리 집 솥에 개
들어앉은 줄은 생시 때부터 알고
계시었으니 불편한 대로 타박이야
하겠는가. 다음엔 과물전으로 찾아갔다네.
거기서도 과물전 주인이 눈치채지 않게
혼자소리로 어머님 여기 과일이 지천이니
분수대로 요기하시라고 가만히 여쭈었지.
내 남의 제물로 제사를 지낸다 하나
정성이야 남과 다르겠는가. 내 실정이
그러하니 망령께서도 분복대로 포식을
하셨겠지. 다음엔 어물전으로 갔다네.
그런데 막상 어물전으로 가보니 요즈막에
물때가 좋지 않아서 생선들이 모두 상해서
차마 그걸 드시라고 권할 수는 없더구만.
싱싱한 것으로 드시게 하려고 아주
한 척이 선창에 와 닿으려는 지라 고깃배로
큰절을 올리면서 무턱대고 저 배에 실린
것을 아주 원도 한도 없으시게 요량대로
포식을 하시라고 말하였다네. 그것으로
제절(祭節)은 끝난지라 마침 돌아서려는
참에 보았더니 칠산바다 저기를 실은 줄
알았던 그 조깃배는 조깃배가 아니라 마침
연도의 푸성귀밭을 왕래하면서 거름을 주는
똥배이더구만. 똥배인 줄 모르고 내 무작정
망령께 배불리 드시라고 간구하였으니 영문
모르는 망령이 이승의 살붙이 소청만 중히
여겨 얼마나 많이 드셨겠는가.
주과(酒果)를 차리진 못할망정 이런 단매에
맞아죽을 불효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어찌 조처를 하였는가?"
  "내 경황없이 다시 소리쳤다네. 어머님
합니다. 그렇게 몇번인가 소리치고 나니
눈앞이 캄캄하고 나도 모르게 흘린 눈물이
옷섶을 적시고 있었다네. 망모(亡母)께서
얼마나 진노를 하셨겠는가."
  그러자 옆에 섰던 위인이 가만히
말하기를,
  "너무 걱정 말게. 자네 망모께선
뽕나무에 올랐다가 떨어져 돌아 가신 것
아닌가. 뽕나무에서 떨어져 기동을 못하는
사람은 똥물이 보약이니 자네 망모가 과히
섭섭하게 생각할 까닭이 없네. 되레 자네
소견이 깊고 범절이 숙성하다고 흡족하셨을
게 아닌가."
  "거 꿈보다 해몽일세."
  "밑구멍이 찢어지는 우리야 해몽으로나
배불리고 살아야지 무슨 수가 따로
  그때, 다시 한 위인이 끼여들기를,
  "어허,이놈들이야말로 걱정도 팔자일세.
구실 바치러 온 위인들이 배고프단 수작이
어디 이치에 닿는 말인가? 저 한터를 한번
내다보게나. 천세가 난 곡식인데 그깐 한
섬 짊어지고 장달음질을 놓게나."
  "그게 어디 구실이지 곡식인가. 나도
그만한 배짱 없는 건 아니지만 도둑질하다
잡히면 우리 일곱 식솔이 밑구멍에 말뚝
박고 일년을 살아야 하네."
  "에끼, 농투성이가 어디 사람 구실인가.
차라리 까마귀가 되었으면 어물전
고깃대가리라도 넘보지. 이건 명색이
인두겁을 쓰고 내질려서 섭생은 짐승만도
못하니 이게 분명 삼신할미가 재채개하는
사이에 잘못 내질린 게 농투성이들이여."
거미줄이야 칠 수 있나."
  한 위인이 괴춤을 헐더니 땟국이
꾀죄죄한 수수떡 한 주먹을 내놓았다. 손이
들쭉날쭉할 사이도 없이 한 입씩 베어 무는
사이에 수수떡은 온데간데없어졌다. 그때
한터 초입으로 불쑥 엿장수 하나가
나타났다.
  열댓이나 되었을까. 연잎 하나를 이마에
얹어 우비를 대신하면서 쫓아오는 엿장수는
양 어깨에 멘 걸빵이 느슨해서 엿 담은
목판이 사타구니 아래까지 내려와서 행보를
떼어놓을 적마다 목판이 이죽거리는
것이었다. 창촌에 운집한 세납민들을
겨냥하여 뛰어든 엿장수인데 빗줄기 사이로
들려오는 엿단쇠 소리가 마냥 처량하였다.
  "엿 사세요, 엿들로 요기들 하세요.
울퉁불퉁 대추엿, 서간도의 좁쌀엿,
강원도의 감엿이요, 능라도라 고구마엿, 엿
중의 엿은 조청엿, 엿들을 사세요."
  허리춤에는 뒤축 떨어진 짚신 두어 짝도
매어달려 뒤뚱거리는데 마침 수수떡
요기하던 사내들이 엿장수를 손쳐 불렀다.
엿장수가 쭈르르 달려올 제 위인들은
금어치를 따지기도 전에 엿목판에
달려들더니 삽시간에 거들을 내고 말았다.
그런가 했더니 엿장수가 그만 진흙바닥에
퍼질러 앉아 복장거리로 포달을 떨었다.
  "아이구 야단났네. 이놈의 화적들이 남의
엿목판에다 아주 연못을 파버렸네.
이놈들아 엿값 내놔."
  "......"
  "이놈들아!"
호놈이여?"
  "이놈이지 않구? 내 상투는 외자루 튼 줄
아느냐? 내 벌써 이태 전에 성취하여
대가리가 호박덩이만한 소생이 돌바기다
이놈들. 어서 엿값 내라."
  "내년 농사 다 지으면 주지."
  "이런 고연놈들이 있나? 염소털 같은
채수염들을 해갖구 비오는 날에 벼락도
무섭지 않냐? 내 엉덩이 큰 내자하며
자식은 어찌 먹여살리라구 남의 엿목판에
연못을 파?"
  "에끼 그놈, 노랑 주둥이에 장가는 일찍
들어서 너나들이가 낭자하냐. 활곡이라도
타면 갚을 테니 너무 앙탈 말게."
  "옥구 아전이 네 삼촌이냐?"
  "에끼 그놈, 입정도 사납다."
경황없이 뒹굴어 온통 흙칠갑인데 가근방의
사람들이 구경거리가 생긴지라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놈들, 내 엿값 내놔라. 밑천이라곤
짚신 두 짝이여. 화적질도 분수 나름이지
밑천 짧은 엿장수를 털다니, 이 고연놈들."
  양탈에 호놈이 벌갈아 튀어나오는데도
위인들은 정말 엿먹은 벙어리가 되어 도통
대꾸가 없었다. 엿장수는 온통 진흙덩이가
돼 떼굴떼굴 구르는 판인데 마침 비를 피해
있는 황화장수 한 놈이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드니 제 푼수로만 알고 싸개통으로
달려들며 호객을 시작했다.
  "어쑤우. 황화장수가 왔소이다. 장사장사
황화장사 걸머진 게 무엇이냐. 아기네들
굴레다리, 각시네들 낭자댕기, 늙으신네
염낭끈, 도령님네 머리댕기, 상투쟁이
동곳끈, 기생서방 허리끈. 울아버지 장에
가서 두닢 주고 떠온 댕기, 울어머니 공력
들여 곱게곱게 접은 댕기,머리끝에
드리고서 성안에서 널뛰다가 성밖에다
잃었구나. 열다섯 서당내기 주웠거든
주려무나 염낭 접어 은혜하마. 줌치 집어
은혜하마. 염낭도 내사 싫고 줌치도 내사
싫다. 팔폭병풍 들러치고 귀밑머리 마주
풀고 초례칠 때 너를 주마. 오동나무 장롱
짜고 네 옷 넣고 내 옷 넣고 손바꿀 때
너를 주마. 정지 안에 돌솥 걸고 밥지어
겸상해서 마주 먹을 때 너를 주마.
유자나무 꼭대기에 탱자 두 개 열리듯이
우리 사이 금슬 좋아 한베개에서 잠이 들
때 너를 주마. 자 댕기들 사시오. 널뛰다
사시오."
  궐자가 댕기를 줌으로 쥐고 흔들어대면서
간드러진 쟁기타령으로 호객을 하는데,
등짐장수 복색으로 행세하였다 하나 모색을
보아하니 며칠 전 조행수와 동행하여
창촌으로 숨어들었던 탑삭부리였다.
탑삭부리는 그렇게 호객을 하고 있긴
하였으나 정작 사람들에게 흥정을 터보는
것도 아니었고 금어치를 물어오는 사람도
없었다.
  그때까지도 빈 엿목판을 끌어안고
떼굴떼굴 구르며 엿장수가 복장거리에
자반뒤집기를 하고 있는 판이었는데 마침
길소개가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섰다.
  "이놈, 도대체 무슨 연유로 삼문 앞이나
진배없는 해창거리에서 이토록 자발없이
  도포짜리 호령에 찔끔하고 쳐다보던
엿장수란 놈이 소매로 콧물을 닦으며,
  "나으리, 이놈들이 작당하여 쇤네
엿목판을 털어버렸습니다요."
  "엿목판이라니?"
  "엿먹은 벙어리가 됐다는 뜻입죠."
  엿장수의 낭패한 몰골이며 도통 구처가
없어 구경소가 닭 보듯 하고 있는
구경꾼들의 상통을 번갈아 보던 길소개가
게트림하면서 물었다.
  "금어치가 얼마였더냐?"
  "엿값이오? 포도청 물고리를 잡고
팔았대도 상목 두필값은 되었습죠."
  "그놈 시악을 쓰는 꼴이 상목 두필값으로
송사 낼 놈이로군."
  길소개가 소매 속에서 은자 몇닢은 내어
나타나선 몽근벼 한섬값을 부질없이
내던지는 길가의 처분에 모여섰던
구경꾼들은 토막돌림으로 입방아를 찧는데,
  "저 어르신네 뉘신가?"
  "세곡선단 경아리라네."
  "행수 거행하시는 분이라네."
  "거 시원시원하신 씀씀이하며 풍골이
가위 신선일세. 저런 분이 배종하라시면
이태 묵은 송장도 덜썩 깨어나겠네. 에그
내 평생에 저런 분의 신이나 한번
삼아봤으면."
  "풍문에 옥구 도서원 나으리가 옥사에
떨어져 모가지가 경각간일 때 저 나으리가
정소(呈訴)하여 풀어주었다지 않은가.
문필이며 소견이 길청에서 내로라는
아전붙이들과는 근본부터가 다르다는구만."
모아들이고 있는 한켠에 빨랫줄 두어
길이쯤 상거한 한터에는 겨우 웃비나 가릴
만한 덕석이나 휘장을 친 술국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세납민들이냐 쌈지가
비었으니 그 어름에 얼씬할 까닭이
없었으되 조졸이며 창빗이며 말감고
명색들은 해거름에 비 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자 떼를 지어 술국집으로 모여들었다.
해낮부터 취한 놈들은 벌써부터 주사가
낭자하엿고 더러는 목로를 훔치고 있는
주모를 잡아먹지 못해 껄떡거리는 놈에,
술에 감기어 굽도 젖도 할 수 없는 놈들은
멍석에다 코를 박고 잠든 놈들도 없지
않았다. 목로마다 사람들이 꽉꽉 들어차서
옴나위없이 흥청거리는데, 바늘에 실
가듯이 제청(祭廳)에 육포 기듯이 어느새
방귀타령을 뽑아 올린다.
  "저기 가는 저 각시 방귀 통통 뀌지
마소, 조개 딱딱 벌어진다. 저기 가는 저
총각 방귀 퉁퉁 뀌지 마라, 불알 덜렁
떨어진다. 방귀방귀 나간다 함지박을
받쳐라. 먹을 것은 없어도 냄새나 맡아주.
이놈의 방귀 이래봬도 궁노루 방귀라 향내
하나는 일품이요, 타락죽(駝駱粥)을 못
먹어서 힘은 없지만 팔도명산 다 먹어서
냄새 하난 입맛대로요."
  하면서 방귀를 빌빌 뀌어대니, 휘장 안에
앉았던 조졸 한 놈이,
  "저놈 저러다가 정말 똥싸겠네."
  옆에 서서 발장고를 치고 섰던 다른 한
놈이,
  "고춧물로 낯 씻기고 밤송이로 코 닦고
모진 풍상 겪었으나 이내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품마품마 잘한다
지리구지리구 잘한다. 건너 보니 영변장,
앉아 보니 안주장, 서서 보는 선돌장, 숨어
보는 수모루장, 울고 나니 운산장, 찔러
보니 피양장(平壤場), 바꿔 보니 박천장.
팔도 저자 걸어서 전라도로 돌아드니
굉장하다 경장장, 엎어지면
아쿠장[탄溝場], 자빠지면 경포장(京浦場),
추천하면 남원장, 절뚝절뚝 전주장.
품마품마 잘한다 잘도잘도 넘어간다.
옹기장수 옹기짐 웅덩거리고 넘어간다.
사발장수 사기짐 왈그락달그락 넘어간다.
이놈의 쌈지에 돈 없어도 사대육신
멀쩡하니 다문다문 돈 생긴다. 이놈의
대가리 베어다가 전라감사 도임상에
이놈의 이빨을 빼어다가 한량아제 만나면
골패쪽으로 팔아도 다문다문 돈 생기고,
이놈의 배를 베어다가 개밥통으로 팔아도
다문다문 돈 생기고, 이놈의 다리 잘라다가
괭이전에 팔아도 다문다문 돈 생기네.
품마품마 잘한다 다문다문 잘한다 한잔
주우."
  동냥아치가 제법 핏대를 올리고는 있으나
휘장 안에 앉아 있는 축들은,
  "이런 놈들 행색하구는. 내 볼 가실 것도
없는데 네놈들 퍼먹일 동참주가 어디
있겠냐. 썩 물러나거라."
  그때, 동냥아치 한 놈이 슬쩍 퉁기면서
되레 휘장 안으로 한 발을 놓는데,
  "나으리, 각색하게 굴지 말고 입잔 한잔
적선합쇼."
투족(投足)질인가?"
  "나으리님네들, 문전박대 마십시오."
  "어허, 이런 대중없는 놈을 봤나? 기생
자릿저고리같이 전 놈이 어딜 자꾸
기어드나? 뱃구레 맞창 내기 전에 냉큼
비켜나지 못할까?"
  휘장 안의 조졸이며 창빗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면박에 지청구를 해대는데도
동냥아치들은 좀처럼 물러날 기미가
아니었다. 그 거동이 동냥아치의
행신(行身)으로서는 몹시 외람하고
방자하다 싶은데, 아니나다를까 휘장
안으로 썩 들어선 한 놈이 핏대를
곤두박으며 짓조르고 나서기를,
  "허 나으리들, 내 입성이 설혹 짠짓국
같기로서니 장타령 놀이채만은 기어코
  "그놈 행악을 보아하니 우리가 약방
기생이라면 수청 들라 호령할 놈일세."
  기어드는 품이 심상하게 두었다간 체모
손상입기 십상인지라 창빗 한 놈이 멍석
위의 부들자리로 들어서는 동냥아치에게
딴죽을 걸어서 넘어뜨리니 동냥아치란 놈이
비틀비틀하다가는 목로 한가운데를 안고
걸판지게 엎어졌다. 술국이질에 한창
신명이 나던 주모가 눈자위를 하얗게
까뒤집고 앙탈을 떠는데, 목로 한고
넘어졌던 동냥아치가 목자를 부릅뜨며
소리쳤다.
  "나으리들 이거 너무하지 않소? 비럭질
신세라고 개 대접하시깁니까?"
  "어허 봉패로다. 어젯밤 꿈자리가
어지럽더니 밤저녁에야 액땜을 하네그려."
한 조졸 한 놈이 우두둑 떨치고 일어나서
동냥아치 뒷덜미를 비틀어 잡았다. 그러나
휘진 몸뚱이로 겨우 운신이나 할 줄 알았던
동냥아치는 섣불리 감겨들지를 않았다.
절묘하다 싶은 조졸의 회전옆차기가 무위로
끝나는 찰나에 낯선 한 놈이 휘장 안으로
불쑥 상통을 디밀었다.
  "어허 나으리들 그러시다가 날송장
치시겠수."
  언사를 보아하니 동냥아치 편역을 드는
일변 쓸까스르는게 분명한데,
  "뒤웅박 차고 바람 잡는다더니 이놈은 왜
불쑥 끼여드느냐?"
  "보면 모르시오? 황화장수요. 지나치다
보아하니 자린고비들 사이에 끼여든
동냥아치가 봉욕을 하길래 한마디
  "그놈 실없기는 설쇤 무쪽일세. 이놈
얻다 대고 언사에 속된 욕지거리냐?"
  덜미 잡힌 동냥아치며 황화장수
탑삭부리란 놈이 슬슬 쓸까스르는데 정작
싸움만은 걸어오지 않는다뿐이지 언사에
대담하고 외람되기가 부아를 돋우는 데는
부족이 없었다. 모여앉았던 창빗이며
조졸들이 합세하여 세 놈을 휘장 안에 잡아
엎치고 뺨따귀 몇대를 모양있게 갈기던
차에 이번엔 다시 몇놈이 끼여들어
싸움판은 자못 걸판져서 구경거리였다.
상직을 서던 조졸들도 모여들어서 자못
살기등등한 한편 모둠매를 맞고 있는
동냥아치며 황화장수는 모둠매를 불사하고
부아를 돋우는 판이어서 때아닌 싸움질은
쉽게 결말이 날 것 같지도 않았고 바깥에선
조졸들이 모두 그 싸개통으로만 꾀어들어
해창거리 남쪽 모퉁이가 텅 비어 있었다.
  편싸움이 되고 밀고 당기다가 겨우
사화를 본 것이 이경(二更) 해시(亥時)를
너기고서였다. 사화될 낌새가 보이기
시작할 무렵 황화장수로 행세하였던
탑삭부리하며 동냥아치와 엿장수는
언제였던가 싶게 싸개통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말전주로 이간질을 붙이던
위인들이 자취를 감추어버렸으니 싸움질은
싱겁게 결말이 날밖에 없었다. 창빗들이며
상직 서던 조졸들이 구경꾼들을 멀리
내쫓고 휘장 안으로 들어가려던 참에
옹구바지 차림의 떠꺼머리 한두놈이 초막
쪽으로 짓쳐오르고 있었다.
  "큰일났습니다."
  짓쳐오르는 두 놈이 숨바꿈으로 소리를
치는데 아닌밤중에 무슨 흰소리가 하여
초막의 장교와 조졸들은 어리둥절 두 놈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감납된 세곡을 도둑맞았습니다."
  장교가 소매를 떨치며 번들거리는
눈으로,
  "이런 질정찮은 놈들을 보았나. 뭣을
도둑맞았다는 거여?"
  "조금 전 시비를 붙였던 그놈들이 전부
화적들과 한통속이었던가 봅니다, 나으리."
  "이런 멱을 딸 놈들을 보았나. 웬놈이
그놈들이 화적의 동류라던가?"
  "상직꾼들이 싸움질로 딴전을 피우는
사이에 적당들이 몰려와서 세곡섬을
빼내갔으니 그놈들 농간에 뒤말린 것이
  "네놈들은 누구냐?"
  "쇤네는 익산고을에서 출포 나온
농투성이 명색들입죠."
  그때서야 봉적한 것을 알아차린 장교가
아쿠 싶었던지,
  "아니 이게 무슨 소린가? 도적맞은
세곡이 몇섬이나 되던가?"
  "쇤네들이 알 턱이 있나요? 눈대중으로
봐서 얼추 서른 섬은 될 듯하더이다."
  장교가 그제서야 도둑들의 농간에 놀아난
것을 깨닫고 뒤축을 구르며 호령하였다.
  "이러고 있을 처지가 아니다. 그놈들
섬을 메었겠으니 아직은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야. 분명 서천(舒川)으로 빠지는
경개[京浦] 도선장으로 장달음을 놓았을
것이니 한 패는 그쪽으로 뒤쫓고 한 패는
수 있겠지."
  "경포나루가 아니고 해우(海隅)라면
어떡하나?"
  옆에 있던 장교가 그렇게 물었다.
  "이쪽으로는 포영의 군사들이 순라를
돌고 있는 판에 감히 호랑이 코앞에서
고깃점을 들이댈까?"
  오륙십 명으로 보이는 조졸과 선인들이
합세하였다. 해창거리에는 상직할 십여
명만 남기고 두 패로 갈라서 수적들을
뒤쫓았다. 장교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홰를 쳐들고 갯벌의 풀밭을 뒤져 오르던
조졸들은 쫓기던 적당들이 미처 뛰기에
바빠 떨어뜨린 나락섬들을 여러 곳에서
발견하였다. 도적질한 곡식을, 쫓기는 데
급급하여 떨어뜨릴 형편이라면 뜨내기 구메
조졸들이 근 십여 리 사이에 널려 있는
세곡들을 모아서 점고를 해보니 도둑맞은
서른 섬에 축낸 것이 대여섯 섬에
불과하였다.
  흩어져 달아난 적당들은 경포나루로
앞질러 올랐던 패들에게 근포가 될 것으로
보아 틀림이 없을 것이었다.
  "그놈들 먹지도 못하는 놈들이 욕심만
부려서 우리만 공연히 밤을 하얗게 새우질
않았다."
  "밤저녁에 사람을 아주 빨랫줄 모양으로
적셔놓네그랴."
  입이 생기고 성깔깨나 있다는 조졸
명색들인지라 모두 지청구를 해대는 것은
나락섬을 해창거리까지 메고 가야 할
사람들은 저희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모두
해창까지 시오릿길에 행렬은 자연 쉴참이
많아지고 노량으로 지체될 수 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회정하는 행렬이 10리를
채 못나가서 산비탈 아래로 질펀하니 깔린
푸성괴밭 어름에 닿았을때 뒤따르던 장교가
소리를 쳤다.
  "나락섬들을 모두 내려라."
  "무슨 말씀이셔요?"
  "나락섬을 내리고 여기엔 두 사람만
남아서 상직을 서고 나머지는 나를
따르라."
  "어디로인뎁쇼?"
  "이놈들아, 긴소리로 상종할 경황 없다.
어서 따라오라."
  "장교가 눈자위가 허공에 떠서
추졸(趨卒)들을 휘동하여 5리쯤인 해창
조졸들이야 분부만 무서워 허겁지겁 뒤따를
뿐이었다. 장교가 해창 노적장(露積場)에
당도하고 보니 예상했던 대로 적당들의
간계에 안팎곱사로 뒤말린 것을 깨달았다.
기력이 모자란다 하여 남아서 상직을 서게
하였던 구닥다리 조졸 열 명은
조깃대가리처럼 줄엮음을 당해서
순포막(巡捕幕)에 처박히었고, 노적했던
세곡 백여 섬은 하늘에 뜬 구름이
되어버렸다. 토끼를 쫓다가 뒤따르던
호랑이에 물린 격이니 돌탄을 한들 무슨
소용이며 뉘를 보고 눈을 부라리랴.
적당들의 양동(陽動) 위계에 푼수없이
놀아난 장교가 넋이 빠지고 탈기하여
우두망찰인데, 바다는 희뿜하니 날이 새고
세납민들의 행렬이 하나둘 선창으로 오르고
수적들이라면 상투꼭지도 구경 못하고
회정하였다. 수적들은 애당초 경포나루
쪽으로는 포진을 하지도 않았었고
해창거리가 텅 빈 사이에 잠닉하여 백여
섬의 곡식을 적탈하고는 아예 해미 속으로
도주해버린 것이었다. 건공대매로
토포선(討捕船)을 낸다 하여도 겨자씨
속에서 담배씨를 찾는 격이 아닌가.
  그 사단을 두고 감납 차사원과 옥구 현감
사이에 입씨름이 벌어졌다. 차사원은
감영으로 이보를 올리고 보자는 주장이었고
현감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보를 올리지
않고 해결을 보자는 심산이엇다. 차사원이
낙맥을 하고 묻기를,
  "그렇다면 동관께서는 무슨 요지부동한
마련이라도 있다는 것입니까?"
억지 타박만 하고 있을 까닭이 없지요."
  "그 패가 무엇인지 어디 말씀 한번
들어보십시다. 보장을 올리지 않고 수습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구태여 천금 같은
속을 썩이고 앉아 있을 까닭이 없지요."
  "패랄 것도 없지요. 가승(加升)으로
봉적당한 세곡 충수만 채우면 그만이
아닙니까."
  태연한 현감의 대꾸에 차사원은 호들갑을
떨며,
  "당치않은 말씀이요. 아니래도 백여 리가
적지요 소출이 빠듯한 세납민들이 입만
열었다 하면 궁설(窮說)인 판국에
남봉(濫捧)을 한다면 그 억만 갈래 원성을
어찌 감당하고 수습하시겠단 말씀이요?"
  현감이 그 말에 코방귀를 뀌는
  "국납이 얼마이고 읍징이 얼마인지
모르는 터에 한 됫박쯤 덜어낸다 하여 그
산맹들이 알 것이 무엇입니까. 선화당으로
이보가 올라간다 합시다. 하늘에서 쌀섬이
쏟아진다면 모르겠지만 관찰사의 방도랬자
세납민들에게 가승을 받아 충수 채우란
분부가 고작이 아니겠습니까. 이보를
올리면 우리에게 돌아올 건 문책일
뿐입니다. 우리가 문책을 당해서 방도가
달리 강구된다 하면 징벌을 당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백사를 둘러댄다 하여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선화당이 아니라
상감께 상주한다 하더라도 적폐를 당한
세곡 충수는 농투성이들 땅에서 나와야
한다는 이치입니다."
  차사원이 맞장구를 치고 나올 수밖에
  "동관께서는 가위 일세의 명관이 되실
재목인데 이런 구석에서 외직으로 썩고
계시군요."
  "그런 말씀 마십시오. 소문나면
역적모의할 놈이라고 추관(秋官)에서
잡으러 오게 됩니다. 현감 구실이나 조용히
해먹어야지요."
  "동관의 소견대로 이보는 내지 않되
세목은 어찌하며 적폐를 당한 구실은
어찌할 작정입니까?"
  "기신미(祈神米: 水神에게 고사지낼 때
사용하던 쌀)나 호궤미(조졸들의 음식을
만드는 데 사용하던 쌀)에 가승을 하여도
무방할 것이나 세곡 백 석을 적당들이
취탈해갔다는 건 해창거리가 다 알고 있는
판이니 아예 토포미(討捕米)란 세목 하나를
  "어찌 노비들 이름짓듯 하십니까."
  "식견은 두어서 얻다 쓰라는 것입니까."
  "수적들은 급히 추쇄를 해가겠지요?"
  "개를 쫓을 때는 구멍을 두라 하였지요.
적당들은 필시 우리가 군졸을 풀어서
연안을 뒤지고 검색할 것을 예상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때 아주 맥을 놓고
가만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저놈들이 다시 세곡을 노려 나타나든지
실수를 저지를 터이지요. 그때를 기다려
근포해서 효수를 해야지요."
  "적당들을 현륙(顯戮)을 한다 하여도
취탈당한 세곡은 어디서 찾소이까?"
  "곡식을 처분하였다면 연안의 객주나
내륙의 곡상(穀商)들이겠지요. 그걸 못
찾을까요."
잠상질인 왜선들과 끈이 닿아 있으면
그때는 낭패가 아닙니까. 왜선은 우리
관선보다 물길에 빠르고 곡상들보다는
물계도 많이 쥐어준다는 소문입니다."
  그 말에 현감이 어이없다는 낯짝으로
한참이나 차사원을 쳐다보다가,
  "적폐당한 곡식을 가승으로 충수
채우리고 한 터면 적당의 손에 넘어간
곡식은 이미 가외의 곡식입니다. 그 곡식을
되찾는다 하여 우리의 곳간을 사사로이
채울 수가 있겠소? 어차피 나라 창고로
들어갈 것 구태여 뒤쫓아 몰수를 한다 하면
감영으로 이보 내지 않은 것만 탄로가 날
일입니다."
  입맛이 떨떠름한 차사원을 윽박질러서
내보낸 다음, 일색이 다할 때까지 하는 일
은밀히 수통인을 내아로 불렀다. 섬돌 밑에
고패를 떨어뜨리고 서 있는 통인놈에게,
  "너 모화(毛花)의 집을 알렷다!"
  "알구말굽쇼. 초하루 점고(點考) 때
다녀왔는뎁쇼."
  "너 은밀히 그년에게 가서 들라 일러라."
  수통인이란 놈 오랜만에 분냄새 맡아볼
다리품을 놓게 된지라 가재걸음으로 내아를
비켜나서 삼문께를 벗어나선 똥 마려운 개
모양으로 불알아 앞서거라 하고 저잣거리로
냅다 뛰었다. 통인이란 놈이 분부받고 나간
지 한식경이 못 되어서 햇미나리처럼
야들야들 물이 오른 모화란 년이 성적하고
현감께 현신하였다. 아직 나이 열여덟이나
옥구고을 관기로서는 그 용모하며 언변에도
물리가 터서 말대꾸로도 첫손가락에 꼽히는
할끔거리면 현신을 하는데도 현감은 관망도
벗지 않은 채 외면을 하고 있었다.
무료함을 참지 못하던 모화가,
  "사또나으리, 쇤네 현신입니다."
  현감이 눈시울을 좋지 않게 뜨고
빈정대는 투가 초장부터 거칠고 탁하다.
  "어느 놈 사타구니에 끼여앉아
만수받이하느라고 이렇게 늦었느냐?"
  "쇤네 분부 거행하느라고 애면글면
천방지축으로 달려왔다는 게 이것입니다."
  "그년 여간한 행내기가 아니구나. 네년이
겉으로는 나한테 깜박 죽는 시늉을
한다마는 목도한 자들의 소문을 듣자 하니
조금조금에 개구멍서방과 배꼽을
맞춘다며?"
  그때까지 두어 발걸음에 앉았던 모화란
오도방정을 떠는데,
  "마른하늘에서 벼락이 내렸으니 쇤네
귀신도 모를 죽음을 당하게 되었군요. 쇤네
같은 외대머리 시골 천기가 절조를
따진다는 것부터가 동에 닿지 않는 일이란
건 알고는 있으나 사또 도임 이후로는 쇤네
거동을 흩트린 적 없고 다른 사내를 새삼
섬기거나 발 뵈인 일은 절대로 없었습니다.
사또께서 하신 말씀 진정이시라면 쇤네
자진이라도 해야겠습니다."
  "도둑이 도둑이야 한다더니 그년 반죽도
좋다. 기생년의 입에 발린 소리를 내가
첫곧이들을까? 네년의 화각함에는 이[齒]가
몇되나 들었느냐?"
  "사또 하시는 말씀 듣자 하니 정녕 쇤네
자진하는 꼴을 보시고 싶은 게로군요.
봉행하잡시고 뒷물도 못하고 허겁지겁
달려왔더니 남볼정없는 성화로 진노하시니
쇤네 오욕된 향화를 누리기보단 차라리
죽기를 한사하겠습니다."
  간청을 하는데도 현감의 심사가 풀릴
기미가 없는데,
  "그년 꼴같잖게 성깔은 있는 체하는구나.
내 분부가 무서워 자처라도 할 강단이
있으면 어디 내 앞에서 한번 꼴을
보여다오."
  "그것이 사또의 청이시라면 황송한 꼴
보여드립지요."
  "엇 그년, 죽겠다는 년이 말도 많다.
네년 주제에 이승의 미련이 무엇 많다고
그렇게 주저하느냐? 저승길이 멀 터인데
저녁 요기는 든든히 하였느냐?"
찔끔거리기 시작하였다.
  "사랑놀음은 구멍서방에다 하고 나서
죽기는 내게 와서 하겠다니 이런 견모가 또
어디 있을까."
  "쇤네의 초개 같은 한 목숨 버리기에
미련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틀 밤을 못 뵈신
사이에 어쩌면 그렇게도 심기가 돌변한
것이지 그것이 놀랍고 또한 쇤네 사또를
기망한 일 추호도 없으니 억울해서
그럽니다."
  "그럼 죽겠다고 앙탈을 할 적에는 억울한
줄 모르고 공중띄워 맹세를 하였던가? 내
네년의 심기를 십분 짐작하고 죽으라 했던
게야. 너 같은 천기에게 언행이 서로
같기를 바라는 내가 잘못이지. 세벌상투한
상것들이라도 쌈지에 동취 나는 사내라면
신수 헌칠한 한량을 보았다 하면 그 또한
살을 주지 못해 안달이었던 네년들의
풍속을 20여 년을 외직으로만 살아온 내가
모를 턱 없지."
  현감이 수청 들라고 불러놓은 모화를
잡고 억지를 쓰는 판에 모화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지고 참으로 내아의 대청마루
보꾹에다 목이라도 맬 양인지 치마를
벗어서 말기를 북 찢는 것이었다.
  그때 현감이 소리치기를,
  "네 이년. 뉘 앞에서 못된 행사냐?
그만두지 못하겠느냐!"
  "쇤네 이미 안전에서 자문하기로 허락을
받지 않았습니까?"
  "행악을 거두지 못하겠느냐?"
  "쇤네에게 남아 있는 정절의 징표라는
결백을 보여드립자면 목숨을 걸어
증거할밖에 딴 방도가 없습니다."
  "에끼 이년, 네년의 목을 매고 혀를 열댓
발이나 빼물고 보꾹에 매달린 것을 내
아무리 간담 좋은 사내이기로 어찌 어여삐
바라볼 수가 있다는 게냐."
  "살아 있는 쇤네를 밉게 보시고 또한
죽은 쇤네도 어여삐 보시기 싫다 하시면
쇤네는 어찌하면 좋습니까? 목숨까지
버리기로 작심한 년이 무엇을
주저하겠습니까? 분부대로 봉행하겠으니
어떤 분부라도 내리십시오."
  "그게 정말이냐?"
  "쇤네, 사또 앞에서 거짓을 아뢴 적이
있었습니까?"
  "내 분부대로 하것다?"
방도가 없으신 모양이군요."
  "너 오늘 밤엔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수청을 들어주어야 하겠다."
  "곱게 앉아 있는 쇤네를 불러 군서방을
보았다고 그토록 타박을 하시구선 이제
와선 아주 드러내어 사이참을 보라 하시니
약 주고 병 주어도 분수 나름이지
너무하십니다. 그런 말씀 진작에
거두십시오. 제가 한두살 먹은 계집아이가
아니지 않습니까?"
  "내 이때까진 너의 연충을
헤아려보느라고 공중뜨게 성가시게 굴었다.
네가 내 분부를 어느 만큼 중히 여길까
해서 떠본 소리지. 내 소청을 허튼수작으로
듣지 말고 새겨듣거라."
  "사또께서 홀저에 무슨 말씀 하시는지
그만두시지요."
  "너 정말 내 죽는 꼴을 보고 싶은
게로구나."
  "이런 작희가 없습니다. 쇤네더러 죽으란
분부 추상 같더니 이제 와선 사또께서 되레
사위스런 말씀 하시는지 쇤네 갈피 잡지
못하겠습니다."
  "네가 거절을 한다면 정말 내 모가지가
다급해질 일이다."
  "감영에서 빈객이 오셨단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감영이 아니고 서울에서 온
선인행수님이시다."
  "사또의 상전이 포정사에 있을 수는
있으나 뱃사람들에 있다는 것은
금시초문입니다. 사또께서 쇤네에게
거행하십시오."
  "세상사란 게 알고 보면 뱀의 대가리와
그 꼬리에 불과하느니, 뱃놈이 관원의
상전일 수도 있고 관찰사를 내 수하에 둘
수도 있는게 오리무중인 세상사의
내막이다. 세상사란 또한 네년들이 입는
통속곳과 같아서 앞뒤가 없느니. 내 너를
측실로 맞을 수도 있고 싫다면 한살림
마련해줄 수도 있다."
  "그것이 정말이십니까? 사또와 막역한
사이십니까?"
  솔깃해졌는지 모화란 년이 연거푸
물었다.
  "정말 아니면, 말장난할 곳이 없어서
밤저녁에 너를 불러 지다위를 하겠느냐?"
  모화는 뭔가 어렴풋이 짚여오는 것이
능구렁이가 된 현감이라 그 흉중을 더듬어
밝힐 길이 없어 반신반의해서 건성으로
대거리를 하는 체인데,
  "너, 밖에 있는 통인놈을 따라가 보아라.
그러면 네가 수청 들 선인행수가 하처잡은
객줏집으로 데려가 줄 터이다. 너는 소견을
써서 그 위인을 오늘 밤 안으로 아주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주물러 놓아라.그
위인도 관상을 보아하니 계집깨나 행실내게
생겼고 색기도 장할 듯싶으니 너를 내치기
어려울 것이다. 네가 오늘 밤 내게다가
모가지를 두고 맹세까지 하였다면 그
소청쯤이야 들어주겠지?"
  현감이 정색을 하고 일의 대강을 따져준
다음에야 모화는 현감이 무엇을 희롱이나
하자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담배 한대
앉았던 모화가 말하였다.
  "창졸히 될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쇤네
사또 분부 봉행해올립지요."
  "농담이 아니다. 그 위인이 색사(色事)에
홀딱 반해서 아예 치맛자락을 놓지 않도록
잡도리하여라. 너도 행방술이 그만하고
또한 색이라면 밤을 새워 싫다 하는 계집이
아니었으니 마음먹기 달린 것이다."
  "쇤네에게 그런 분부 내리시고 나중에
쇤네를 내친다면 쇤네는 어찌합니까?"
  "그때는 또한 그때 가보아서 조처할 일이
아니냐."
  "만약 쇤네를 면박을 하시면 정말 자문을
해버리겠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목숨가지고 개 뭣
모양으로 분별없이 불쑥불쑥 내놓고 주착을
보라고 조방질을 하고 있는 내 심기도
한겨울에 개구리 내놓는 격으로 안쓰럽기
그지없다. 내 앞에서 알랑거리지 말고 어서
나가 거행하거라."
  "쇤네 이만 물러갑니다."
  모화란 년 찔끔하고 눈물을 짜내면서
하직하고 내아를 물러나니 수통인이란 놈은
벌써 족등을 밝혀 들고 일간문 곁에
기다리고 있었다. 모화란 년 금세
말짱해져서 혼자 배시시 웃었다.







  기생 모화는 수통인을 따라서 삼문
밖으로 나서자마자, 조급히 향낭을 끌러
인정전을 꺼내 수통인에게 건네었다.
통인이란 놈이 찔러준 신발차를 받아들고
쓸개 씹은 얼굴을 하자, 모화는 눈시울을
모질게 뜨고는,
  "원, 눈은 보리동냥을 갔나? 삼신할미가
눈을 둘씩이나 뒀을 적엔 짐작이 있게
마련인데 하나 더 내달라는 말인가. 그게
꿰미돈이 아니구 은자로구만."
  하면서 수통인의 옆구리를 한점 뚝
떼어낼 듯이 꼬집는 시늉이자 그제서야
알아채고,
  "어허, 이거 은자가 웬일인가?"
다솔식구 입이나 봉혀. 막잠자고 난
누에처럼 먹새들이 대단할 터인데......"
  "알았네, 그런 난 가네."
  통인이 돌아서자, 모화는 객줏거리인
도선목으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저희
집이 있는 창텃거리를 겨냥하여 바쁜
행보를 떼어놓는 것이었다. 장옷자락에
깊숙이 얼굴을 묻고 고샅을 빠져 곧장
집으로 들어섰다. 이미 방안에는 유필호와
길소개가 주안을 놓고 대작을 하고 있었고
야살을 떨고 있던 최재걸은 물러나고
없었다. 현감은 이미 패 한 수가 늦은
셈이었다. 측간에나 다녀온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턱을 디밀고 상머리로
끼여드는 모화를 보고 길소개가 넌짓
빗대어 물었다.
뭣이더냐? 내아로 와서 살수청을 들라더냐,
아니면 절간에라도 가서 살보시라도
들라더냐?"
  그 수작에 모화란 년, 콧대가 이지러지게
놀라며,
  "쇤네 그 상간에 아문(衙門)에 얼핏
다녀온 건 어찌 아십니까?"
  "시치미 떼지 마라. 아까 널 슬쩍
연통하여 데리고 간 놈이 아문의 수통인이
아니더냐?"
  모화란 년 고운 눈초리 곱지 않게 뜨긴
하였지만 까부스스하니 어린양을 떠올리며,
  "나으리께서 옥구관아의 수통인 명색가지
분별하고 계시군요."
  "무슨 분부 내리시더냐?"
  "사또 분부가 쇤네더러 무슨 농탕을
안으로 아주 미나리 삶아내듯 노골노골하게
구워내라하였습니요."
  "네 불덩에서는 식초가 됫박으로
쏟아지느냐?"
  "독하기로 말한다면 어찌 식초에
비견할까요. 군산포에서 여각을 내고 있는
포주인 하나는 쇤네에게 홀딱 반해서 배 세
척을 날탕으로 쇤네에게 발리고 나서
여각을 놓아버렸습니다만 쇤네가 소박을
놓아 돌아설 땐, 50섬을 싣는 배 세 척을
잡아먹은 사추리에선 어째서 돛대조차
보이지 않느냐고 앙탈에 지청구를
하던뎁쇼."
  "툭 털어놓고 기어드는 품이 살수청을 들
땐 아주 소갈머리깨나 있게 거행하겠구나.
그러나 헛다리를 짚었다. 네가 수청 들
  길소개가 눈짓으로 마주앉은 유필호를
가리키는 시늉인데 수작을 듣고만 앉았던
유필호가 짐짓 화를 돋우며,
  "자넨 심법(心法)하며 행사가 날로
고양해지는군. 내가 풍류를 쫓아 기루에 든
것이지 육허기를 겨냥하여 이러는 줄
아는가?"
  길가가 그 말을 냉큼 되받아서 한다는
말씀이,
  "나으리. 한 광무(漢光武)가 아니면
엄자릉(嚴子陵)의 절조를 이루지 못하였고
또한 엄자릉이 아니었더면 한 광무의
도량이 드러났을 리 만무였다는 말씀을
하신 분은 나으리가 아니십니까? 시생이
아니면 나으리가 돋보일 리 만무입니다.
시생이 은밀히 눈짓할 적에 못 이기는
  유필호가 탈기하고 웃으며,
  "내가 내 가진 짧은 문견을 뒤집어쓰고
낭패를 보게 되었구나. 그래 세상이란
자네와 나 같은 사람이 있기에
진세(塵世)와 질곡(桎梏)으로 비견하지
않겠느냐. 자네로 인해 내가 있고 나 또한
자네와 더불어 풍류하고 있으니 이게 바로
세상의 진면목일 따름이다."
  곁에 앉았던 모화가 폴싹 끼여들었다.
  "우리 서방님은 칠산바다 조구 잡으러
갔다네, 저 달이 지도록 놀다 가소, 놀다
가는 게 정분인가 자고 가는 게 정분이지
하는 노래가 있습지요. 사또께서 쇤네를
불러 당부하심이 지성이니 만약 오늘 밤
달동무만 하시다가 신을 돌려 신으신다면
쇤네는 날 밝는 대로 삼문 안에 끌려가서
살아갈 건덕지라곤 명색이 엉덩이뿐이온데
물볼기 맞아 그것마저 못쓰게 만드시면
그것 또한 진중한 선비의 도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오늘 밤은 쇤네의 집에서
묵어가야 하십니다."
  "내 정분도 없는 너를 두고 어찌
하룻밤을 허송하라는 게냐?"
  "하룻밤으로 쌓는 것이 만리장성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하룻밤 정분 때문에
목숨까지 버리는 여인네도 많습니다."
  유필호가 그때 정색을 하고는,
  "하기야 네 말도 생판 근본없는 말은
아니나, 그러나 본곶 현감이 아닌밤중에
너를 불러 타관받이인 내게 수청을 들라고
강다짐을 하였을 땐 분명 딴 곡절이
있어서가 아니었더냐?"
그러나 쇤네가 아옹다옹 내막을 캐어
무엇합니까. 다만 사또 분부 거역할 수
없고 나으리 또한 풍골이 준수하시니 제
마음이 스스로 동할 따름입니다."
  두 사람의 수작을 시종 귀기울여 듣던
길소개가 뭔가 짚이는 게 있었던지
상머리로 바짝 당겨 앉으면서,
  "나으리, 현감이 오늘 밤 일을 꾸미고자
한 것은 봉적한 세곡과 관련이 있는
듯합니다."
  "우리가 명색이 선인들이니 도둑의
접주나 와주(窩主)와 끈이 닿기 쉽고 그에
기대어 세곡을 도루 찾자는 수작이
아닌가?"
  "모르지요......"
  길소개가 말끝을 흐리는 것은 곁에
알아채고 밖으로 나갔다. 이에 길소개가,
  "도둑맞은 세곡이 어느 여각이나 객주에
팔려간 건지 그것만 탐지해낼 수 있다면
우리는 관아의 이름을 팔아 곡식을
차지하고 그 대신 현감은 뇌물을 달라고
손을 내밀 심산이 아닙니까?"
  "그만두게. 도한(盜漢)들은 현감이
잡아야 하고 우린 세곡 일천 섬을
광성창까지 수운하면 될 일이다. 나중 일은
김대감이나 신대주가 주변할 일이지."
  "나으리께선 둘은 알되 하나를
모르시는군요. 대감께서 우리를 삼남
조운에 거행시킨 까닭이 무엇입니까?"
  "자넨 그렇게 해서라도 구사(求仕)하여
환로에 들고 싶은 게로군."
  "나으리께선 이미 작정하신 바 있어
진 일이 아닙니까."
  "모리로 그것을 얻겠다는 뜻인데?"
  "시생을 행수선인으로 박아준 염의가
그것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시생은
시생이 도모해야 할 소임과 분수가
무엇인지 그것을 알아 지킬 따름이지요."
  "자네 그게 진심이렷다?"
  "언제 시생이 거짓을 아뢴 적이
있었습니까?"
  유필호가 방죽갓끈을 만지작거리며
한참이나 길가의 인중만을 노려보고
앉았더니,
  "알겠네. 자네 작심대로 하게나. 그러나
이참에 이르러 내 자네에게 한 가지 알려둘
일이 있네! 자네는 그 과욕으로 인하여
일신을 망치리. 자넨 결코 환로에 이르지
자리에도 오르지 못할 것이야. 자네
전도에는 객사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게."
  "나으리, 아무리 화가 꼭뒤까지
나셨기로서니 야박하게 말구종들에게나
하실 허물을 농하십니까요."
  "자네 관상이 그러한 걸 내가 거짓
하자(瑕疵)를 하겠는가."
  이에 길소개의 낯짝이 문득 쓸까스르는
푼이 되어,
  "나으리께서는 시생의 행세를 깎자
하시나 해창거리 백성들은 시생더러 가위
신선이라 하더이다."
  "이놈 냉큼 물러나지 못할까. 내 어쩌다
내놈과 한통속이 되어 이 곤욕을 치르는고.
내 이제까지 관후장자(寬厚長者)로
묻히는 티끌 하난들 무심히 지나친 적이
없거늘 오늘날 네놈과 더불어 망신을
당하고 보니 나 또한 벌레와 진배없게
되었구나."
  "나으리, 제발 고정하십시오. 밖에 있는
계집이 숙맥을 구별 못한다 하나 설마하니
축생을 보고 동침을 간구하였겠습니까."
  "이 능지를 할 놈, 보기도 싫으니 냉큼
객점에 물러나 있거라. 두번 다시 대거리가
낭자하였다간 네놈의 회양목 호패를 오늘
밤 안으로 뒤나 닦는 측목으로 바꾸어놓을
테니 그리 알라."
  길가를 내쫓고 유필호는 속불을 끄느라고
독작으로 어지간히 퍼마신 셈이었다.
객점으로 돌아갈 심회도 아니라 홧김에
오입질이라고 자연 모화와 하룻밤을 보내게
누운 것이 달이 진 깊은 삼경이었다.
  뒤곁을 핥고 지나가는 바람소리에
유필호는 문득 귀를 기울였다. 취토록 마신
것인데도 바람소리는 올올이 귓밥 속으로
잡혀오는 것이었다. 문풍지가 떨리는 소리,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삽짝이
삐걱거리는 소리까지도 심회를 어지럽히는
것이었다. 그는 문득 자신도 모르게
한숨지었다. 이 절박한 차제에 길가란 놈
농간 하나를 주질러 앉힐 방도가 없다는
것이 수치스러웠다. 도대체 선비란
무엇인가? 이토록 무기력한 것이라면
평생을 두고 길을 읽어
경사자집(經史子集)에 능통하단들
청맹과니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시정에
뒹구는 하속배 떨거지들과 비견할 곳이
  도대체가 시절을 농한답시고 김보현의
헐숙청에서 바둑으로 소일한 것부터가
질정찮았던 일이요, 겉과 속이 판이하여
양존(陽尊)에 이골이 난 위인인 줄은
모르고 소원을 푼다고 길가란 놈을
초시에나마 등과를 시킨 것도 돌이킬 수
없는 허물이었다. 김보현의 분부에 풍류를
한답시고 핑계없이 덜렁 삼남의 배를 탄
것도 몸가짐에 진중함을 잃은 처사였다.
김보현의 분부에 똑바로 내치고 길가와
더불어 장난질을 하지 말았어야 옳았다.
길가에겐 이미 귀기가 서려 있었다. 하찮은
시정배의 몸에 붙은 망령 하나 내쫓지
못하고 있는 형편에 어찌 선비의 형용으로
자처하고 나설 수 있단 말인가. 그때 문득
잊어버렸던 계집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나으리 삿갓반자만 바라보시려면 불을
다시 켤까요?"
  "네 기어코 오늘 밤 나와 더불어 동루할
적정이냐?"
  "그럼 나으리를 붙잡은 쇤네가 공중
그러하였겠습니까?"
  "너, 사또의 분부가 무서워 강잉히 곁을
주려는 것이겠지......"
  "일찍이 나으리와 인연이 닿아서
결발부부가 되지 못했던 이상, 분부 따라
동침하든 정분나서 동침하든 구태여 흉회를
털어볼 까닭이 무엇입니까. 보아하니
나으리께서도 무척 심기가 여리시군요.
지체를 중히 여기시는 선비들의 행사란
짐짓 겉과 속이 딴판이라 그게
싫습니다요."
  "나으리께선 겉으로는 쇤네를 방색하시는
체하시면서 속으로는 쇤네 속곳을 벌써
열두 번이나 더 벗기셨을 터인데요?"
  "네가 오늘 밤 나를 견모한다만 네 옷
벗는 소리보단 아무래도 문풍지 소리가
좋은 걸 어찌하느냐."
  "쇤네 기적에 뛰어든 지 올해로
3년입니다만 이런 견모는 처음 당하는
일입니다."
  "네가 행수기생은 아닐 테지?"
  "그럼입죠."
  "그럼 내일 아침 너들 행수에게 쫓아가서
객리 타관의 문풍지 소리가 어떠하더냐고
물어보아라."
  "그건 내일 아침에 거행할 일이고 지금
당장 가슴이 터질 듯 하니 옷고름이라도
  "그년 핑계도 좋게 기어드는구나. 어찌
화류병이나 없더냐?"
  "물에 사는 달팽이집이라 하여 객물 든
걸 보았습니까?"
  모화란 년이 제 손으로 자릿저고리를
벗어 말코지로 내던지고 이불 속으로
기어드는 첫고등에 붙임성있게 허벅지를
유필호의 사추리에 걸었다.
  "어허, 이런 고연것이 있나?"
  "좋거든 입이나 닥치십시오."
  "어허, 봉패로다. 이거 놓지 못할까."
  "난 나으리께서 어지자지가 아니면
개호주가 물어간 줄 알았더니 물꼬 같은
거양(巨陽)을 차고 계시군요. 뻔질들락
행실을 내시다가 자칫하면 쇤네 뱃구레에
무슨 변고 내시겠습니다요."
  "허우대가 이렇게 클 양이면
어련하시겠습니까."
  "이런 경을 칠 봉패가 없구나."
  곧장 진흙 밟는 소리가 낭자하고 늑골이
얼얼하도록 몇합을 이루고 나서 잠든 것이
4경이 넘어서였는데, 날이 희뿜하니 새는
인시 말쯤해서 느닷없이 삽짝을 흔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필호의 턱밑에 엎질려서 개팔자로 잠이
들었던 모화는 수통인이란 놈이 사또 분부
따라 염탐 온 게 아닌가 하고 장지문을
삐쭘하니 열고 내다보았다. 그러나 희붐한
안개 속으로 내다보이는 위인은 수통인이
아니라 체구가 들썩한 패랭이 차림의
장한이었다. 복용은 장돌림이되 모색이
제법이나 준수하다.
질질 끌고 삽짝으로 나갈 제 밖에 선
궐자가 하겟말로 조급히 물었다.
  "이 처소에 선단의 총대선인 거행하시는
분이 묵고 계시는가?"
  "......?"
  "삽짝부터 따주게나."
  "꼭두새벽에 정분도 없는 인사가
들이닥쳐서 문부터 따라니요?"
  "나도 선인일세. 긴히 뵈올 일이 있으니
어서 기침하시라 이르게."
  언사의 위엄에 짓눌린 모화가 방으로
들어와 유필호를 흔들어 깨웠다.
  "잘 주무셨습니까?"
  유필호가 겨우 어섯눈을 뜨고
상툿바람으로 바짓가랑이를 꿰려는 참인데
궐자는 벌써 방안에 들어와 있었다.
행사시오? 아무리 무상출입인
기방이라지만."
  모화가 되반들거리는 눈으로 앙탈인데도
들어선 봉삼은 이렇다할 대꾸가 없었다.
그러다가,
  "긴히 말씀드릴 일이 있으니 계집을 잠깐
내치시지요."
  "너 밖에 좀 나가 있거라."
  "쇤네가 무슨 창귀랍디까."
  "긴히 여쭐 일이 있단 말씀 듣지
못하였느냐?"
  계집이 두 사람을 번갈아 할끔거리고
나가자 천봉삼은 그제서야 윗목에
좌정하였다.
  "기침도 하기 전에 불쑥 모입자고 분주
떨어 범절이 아닙니다."
  "배를 수리하는 일은 어제로 손을
놓았습니다. 발장에는 지장이 없게
되었습니다."
  "어련하시겠나."
  "시생이 찾아온 건 봉적을 당한 세곡과
연유한 일 때문입니다."
  "그 일이라면 우리 선단 사람들이 분주를
떨 소간사가 아닐 터인데?"
  "물론 옳은 말씀입니다. 시생도 섣불리
나설 일이 아니란 건 알고 있습니다만
어젯밤에 시생의 처소로 한 작자가
찾아왔습니다."
  "적당의 간자였거나 와주였을 테지."
  "알고 계셨군요."
  "짐작일 따름이지."
  "백 석의 세곡을 한 됫박도 축냄이 없이
해달라는 소청이었습니다."
  "그 적당들 중에는 자네와 일찍이 면분
있는 사람이 동사하고 있었다는 뜻이겠지?"
  "예."
  "그게 누군가?"
  그참에 봉삼은 이번 득추를 만났던
일이며 조성준과 동사하였던 일들을 대강
간추려서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한 가지
미심쩍은 일로 길소개가 조성준을 일부러
놓아준 사실과 또한 도적질한 세곡을
되돌려주겠다는 내막이 무엇인지도 지금은
알 수 없다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조행수란 위인이 자네 앞에
얼굴을 내밀 만도 하지 않은가?"
  "그때 입은 총상(銃傷)으로 기동을
못하고 자리보전으로 누워 있는
  "그 사람이 자네와 연비가 있다 하나
도한들의 수괴가 아닌 이상 취탈한 곡식을
고스란히 돌려준단 말은 아무래도 엉뚱하지
않은가? 그것이 어디 자네와의 사사로웠던
친분 하나로 해결을 볼 일이 아니지
않은가."
  "적굴로 찾아가 볼 작정입니다."
  "그 위인을 그렇게 믿고 있다면
다녀온다는 것이 해롭지만은 않을 테지.
그러나 장명(將命)을 당한지도 모를 일이니
각별 조심하게."
  "그분이 어찌하여 백파의 접주로 둔갑을
하게 되었는지 도통 짐작할 수는 없으되
결단코 시생을 모함에 빠뜨리려고 방자를
놓아 통기를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나와 작반을 할 텐가."
  "급주로 다녀와야 하네."
  "얼추잡아 사흘 행보는 될 터이지요."
  긴가민가하는 유필호를 하직하고
선창머리 객주로 돌아온 봉삼은 곧장
작로한 채비를 하였다. 수적의 졸개가
틀림없는 북상툿바람의 사내 하나가
술청에서 새벽 요기를 하다 말고 객점을
나서는 봉삼을 뒤따라 나섰다.









  먼젓번 방포 사건 때 조성준이
조졸들에게 쫓길 제 대장간을 빠져나와
찾아간 곳이 궁말의 사공막이었다.
해낮에는 갯가의 갈밭 속에 몸을
숨기었다가 밤 되기를 기다려 사공막으로
찾아든 것이다. 장물아비가 바라지를 열고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것을 보고서야
탑삭부리에 업혀온 조성준은 낙맥을 하고
기절해버렸다. 탑삭부리와 장물아비가
달려들어 진맥을 하며 방으로 안아들이고
법석을 떠는 중에 드난하던 여인네가
달려나왔다.
  "어서 방으로 뫼시고 군불을
뜨끈뜨끈하게 지펴야 합니다."
돌아가는 중에도 한번 혼도를 한 조성준은
좀처럼 깨어날 줄 몰랐다. 언제인가,
조성준이 한주름 진땀을 요때기가 푹신
젖도록 흘리고 나서 어슴푸레 눈을 떴다.
퇴창에서 그을음이 새까만 코콜불이
가물거리고 그 옆에는 신색이 가냘픈 한
여자가 바람벽에 기대앉아 있었다.
  "이제 신기를 되찾을 만하십니까?"
  궐녀가 얼른 이마의 물수건을 갈아대며
나직이 물었으나 귓결에는 명료하게
잡혀오질 않았다. 어디선가 한두 번 면종을
하였던 계집의 얼굴이다 싶은데,
  "신열이 그만치 내렸으니 지금쯤은
기력을 되찾을 만합니다."
  달래고 어르는 궐녀의 범절에 어딘가
위엄을 느낀다.
  "여긴 궁말 사공막이니 딴 걱정은 마시고
어서 정신을 차리셔야 합니다."
  "뉘신가?"
  "저는 이 집에서 드난 거행하는 객리의
여편네입니다."
  깍듯이 공대는 쓰고 있다 하나 그 어취가
객리를 떠도는 상계집의 언사는 아니었다.
머리가 바스러질 듯 아프고 어깨가 무너져
내릴 것 같았으나 조성준이 겨우 말하였다.
  "나도 이젠 노창인가 보오. 이만한
장처로 부질없이 낙맥을 하다니. 지금
몇경이나 되겠소?"
  "얼마 있지 않아 첫닭이 울 것입니다. 그
동안 행수님께서는 줄곧 명부를 헤매는
듯하였지요. 인창(刃創)이 자심히지는
않으나 행보할 만큼은 안 되니 얼마 동안은
  "댁은 내 행세옷을 지어주었던 여인네가
아닌가......?"
  "그렇습니다."
  "침선 솜씨를 보아하니 산골 여인네와는
제도가 틀리던데......?"
  "저는 강경 김학준의 측실이던 천소례라
합지요."
  갑자기 방안이 바윗덩이에 눌린 것 같은
침묵이 흘렀다.
  "그렇다면 왜 나를 보고 살변을 내지
않았던가......"
  조성준이 그제서야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천소례가 황급히
달려가서 궤짝 부둥키듯 안아서 주질러
뉘었다.
  "조용히 하십시오. 이런 내막을 다른
  밤새도록 문은 닫아둔 방안에는
등잔연기가 자욱하였고 덮고 있던
차렵이불에선 흘린 땀으로 하여 자릿내가
등천을 하였다. 조성준이 눈을 크게 뜨고
등잔 곁에 앉은 궐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 품에서 금방 비수 한
자루가 뽑혀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맞은편 바람벽을 타고 흔들리는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보고 앉았던 궐녀가,
  "제가 여기에 이르러 무슨 휘할 말이
있으며 또한 뒤를 사릴 까닭도 없게
되었습니다. 다시 행수님을 해할 생념을
먹지 않았던 것도 아니지요. 그러나 저
또한 구천에 떨어져 사대(四大)가 티끌처럼
흩어져야 할 몸이 천행으로 비명의 화를
면하고 이런 몰골로나마 목숨 부지를 하고
죄안(罪案)을 만들까요. 지금까지 쌓아온
죄업만으로도 이승의 연명이 과분한 터에
말입니다."
  조성준이 그 말 귓결로 흘리는 체하고
문득 되묻기를,
  "지금까지 쌓은 죄업이라니......?"
  "행수께서 목도한 일이야 없겠지만 제가
망부를 모살한 사실은 알고 계시겠지요.
이미 제게 창귀가 덮어씌어 피를 보지 못해
상승을 한 터라 그 사실을 짐작하고 있을
사람이 행수어른뿐일 터라 저지른 죄업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도방과 임방으로
사발통문을 돌리게 한 것입니다."
  궐녀가 방구들이 꺼지도록 함숨을
내쉬었다. 요때기 한끝을 부둥켜 잡고 있는
궐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범골이야 알 수 없겠지만 인연이 어찌하다
이럴 수가 있단 말이오...... 내게
한응어리의 매원이 없지 않았으되 오늘에
이르러 어찌 그 원수의 내자였던 사람에게
미음 수발에 병구완까지 받게
되다니......"
  "제가 행수님을 기다린 것입니다. 먼젓번
행보 때 저는 벌써 행수님을 알아본 것이고
다시 회정하실 날을 기다린 터이지요. 저는
지금 이 사공막에 잡혀 있는 신세입니다."
  "내 코가 석자나 빠진 터요. 그러나
댁네는 어찌해서 여기까지 와서 드난살이를
하고 있는 게요?"
  그때, 문득 삽짝 밖의 바람소리에 섞여
인기척이 들리는 것 같아 두 사람은 수작을
끊고 기다렸다.
못미처서 강심에다 떨군 사람들은 인근의
저자를 돌고 있던 장돌림들이었지요.
그들은 제가 행수님을 척살시킨 장본인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여기
이렇게 살아 계시고 저 또한 비명을
면하였으니 그 모해는 처음부터 하늘이
용서하지 않았던 것이겠지요. 그
장물림들이 이 불측한 계집을 동여서
강심에 떨굴 제 이제 저는 이승의 사람
되기는 글렀다는 생각을 하였지요. 그러나
육천 마디에 맺힌 것이라곤 죄뿐인
계집일수록 악연은 많은 법인 모양입니다.
마침 뜨내기 명화적들이 도둑질한 황아짐을
념겨받기로 약조했던 저 장물아비가 갯가의
갈숲에 파피선 한 척을 숨기고 물목을
오르내리는 선척들을 유심히 살피고
배는 아니었습니다만 장물아비는 그것이
밀매꾼들이 일단 강심에 떨어뜨려
가매(假埋)한 뒤 다시 건지려는
왜화(倭貨)인 줄 알고 땡떳다 하고
부랴부랴 배를 저어 저를 건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미 그때 숨이 끊어져 저승
문턱에 닿았을 때였지요. 그런데 요행히도
장물아비란 사람이 소싯적부터 수적질로 물
속에서만 살아온 경험이 있어 입을 빨고
코를 빨아 숨을 돌려놓았습니다."
  "싫거나 좋거나 제 서방을 모살한
여인네에게 하늘이 된급살은 못 내릴망정
어찌 그런 보은을 내렸을까...... 내가 한
일은 장삿길 나간 사이에 샛서방을 본
음분한 계집을 찾아 도방의 풍속대로
징벌한 것뿐이외다. 그러나 그로 인한
떠날 날이 없었소."
  "그것이 한낱 부세(浮世)의
업연(業緣)입지요. 오늘 하룻밤 행수님의
병구완으로 제가 저지른 악업이 이지러질
리 만무일진대 제게 적원(積怨)이 남아
있으시다면 소원대로 처결을 하십시오."
  "다 부질없는 소리요. 내가 이 모양이 된
것은 군산포에서 길아무개란 위인을 만나
그 졸개들이 쏜 연환에 맞은 까닭이오.
그것이 전부 죄만 쫓아다닌 사내가 받아야
할 업보라는 생각이 없지 않습니다.
금두(金頭) 물고기 용에게 덤비더라고
계집을 단념할 제 김학준에게 적몰당한
재물도 같이 단념했어야 했소. 내 미처
그것을 깨닫지 못했던 불찰이 오늘날에
이르러 한낱 수적들의 접주 노릇이나 하게
다시 목숨을 되돌려준 것처럼 하늘이 내게
내린 것도 바로 이러한 깨달음이니 댁네나
나나 하늘의 보은을 입은 것으로는 같은
입장이오. 댁네는 목숨을 다시 얻었고 나
또한 대의를 깨달았으니 더 이상 사악을
품었다가는 이제 하늘도 만부득이 응보를
내릴 것이니 그땐 우리가 하늘을 원망하여
박정하달 수는 없겠지...... 또한......
하늘이 우리 두 사람을 만나게 해준 것도
서로의 가슴에 품은 사악을 풀고 매원에
얽매이어 평생을 부질없이 그르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겠소. 다시
부스럼을 만들어 무엇 하겠소......"
  "그러나 제겐 아직 한 가지 일이 남아
있어서 탈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소. 내 저 장물아비란
  "그 동안 위인은 색념이 동할 때마다
제게 살을 달라고 구박에 위협이
개차반이었지요. 그때마다 그 속내를
요량해서 때로는 몸것이 있다 핑계도 하고
달래고 받자를 하며 하루하루를 칼날 위를
걷는 형용으로 실절만은 당하지 않으려고
모진 고초를 겪었지요. 그러나 이젠 절박한
지경에 이르러 어찌 꾀를 부려볼 방책이
없게 되었습니다."
  "꿰미돈으로 보은을 하겠다고
하였겠구려. 그러나 그 위인이 그렇게
기어드는 데는 무슨 정근(情根)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댁네의 가산이 어떠하단
것을 위인이 믿지 못하기 때문일 게요.
내가 입채를 선다 하면 믿을지도
모르겠소."
작정입니까?"
  "내가 군산포에 갔다가 우리 둔소 사람들
뒷배를 봐주던 대장장이를 그만 옥사에
떨어뜨리고 말았소이다. 그 사람을
구명하고 나서야 장차의 일을 주변해볼
생각이오."
  문득 장지 밖이 훤해졌는가 싶은데
마당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금세 장물아비와
탑삭부리가 봉노 안으로 고개를 디밀었다.
탑삭부리가 터지 방앗공이에 보리알 격으로
턱밑으로 바싹 기어들며,
  "밤 사이에 차도가 있었소?"
  "이제 고비를 넘긴 것 같습니다."
  소례가 대답하는 사이에 조성준이 감았던
눈을 떴다.
  "넌 급주로 둔소로 달려가서 득추가
동안 탐지한 해창거리 사정도 소상하게
알리고......"
  "행수님 처분은 어찌할깝쇼?"
  "행보할 만하게 되기까진 여기서 간병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몰골로 행로에
나서면 금방 기찰에 물릴 것이야."
  여드레 뒤에 옥상에서 풀려난 득추가
대처로 도망하는 길에 기찰을 용하게
따돌리고 궁말의 사공막으로 조성준을
찾아왔다. 곁에 엿듣는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득추가 천봉삼을 만났던 일을 털어
놓았다. 말하는 푼수며 내막이 천봉삼이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는 것은 반가움보다 놀라움이 더
컸다. 그가 선단의 행수로 거행하게
되었다는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나 어쩌다가
불길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땐 이미 출포민이아 장돌림으로
가장한 적굴 사람들이 해창거리로 쏟아져
나가 매복한 뒤였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세곡을 취탈하려는 사단 중에 봉삼이 어떤
모해나 곤욕을 치를 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한낱 적당들의 일이긴 하나
그무리에 조성준이 사사로운 연비를 내세워
오래 전부터 공론했던 그 일을 번복시킬
만한 힘도 건더기도 조성준에겐 없었다.
게다가 그 곡식을 처분하고 준가(準價)를
받아낼 소간은 그의 몫이었다. 잠상꾼을
물색하거나 왜구들과 손이 닿아 있는
여각이나 객주를 물색해서 거래를 터볼
위인이란 둔소에서는 그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행탁을 털어 득추의 다솔식구를
사람에겐 큰 짐을 두고 떠난 셈이었다.
이번 일을 무사히 치르면 장물아비란 놈도
나루를 뜰 요량인지 설치고 돌아가는
푼수가 때아니게 분주한데 마침 그가
나루질 나간 틈을 타서 천소례가 물었다.
  "그 대장장이가 다녀간 이후로 행수님의
신색이 왜 그렇게 보기 딱할 지경이십니까.
제가 보기에는 필시 심상치 않은 경난이
벌어진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조성준이 툇마루에 나와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던 참이라,
  "댁네가 알아서 주변될 일이 아니오."
  "혹시 제가 알아서 유조할지 아나요.
도방 풍속에도 아는 길일수록 물어 가라
하지 않았습니까?"
  강나루 쪽으로 멀리 시선을 던지고 있던
  "내가 동기간이나 진배없었던 짝패 한
사람을 액회에 빠뜨리게 될지 모르겠소."
  "무슨 일이십니까?"
  "길아무개란 위인과 선단에 동사하는
행수선인 중에 나와 죽반간에 고락을
같이하던 총각이 있소. 연전에 나와 길이
엇갈려 헤어진 후 생사존몰을 모르는 중에
수소문해 왔었는데, 마침 득추 인편으로
소식을 들었구려. 내가 대장간을 다녀간 줄
알고 수배를 놓은 것이오. 그런데 그
임선단이 서울로 조운할 대동곡(大同穀)을
털겠다고 둔소의 사람들이 몰려갔으니
자리보전하는 중에 이런 낭패가 없구려."
  궐녀가 옹가지를 들고 남새밭가에 있는
샘터로 가면서 되물었다.
  "그 총각은 그토록 소중한 사람입니까?"
빠뜨렸단 장돌림들이 그 총각인지도
모르겠소. 내 행적을 수소문하여
뒤따랐을지도 모를일이었으니까."
  "그 사단에 대한 일은 다시 입초에
올리지 않기로 한 것이 아닙니까?"
  "일테면 그렇단 얘기요."
  "혹시 성명 삼자가 무엇입니까?"
  "천봉삼이라 하지요."
  그 순간 옹가지에 물을 퍼올리던 소례의
한 손이 경황없이 허공을 헤집는다. 궐녀는
귀를 의심하였다.
  "누구라구요?"
  "받들 봉자에 석 삼자요."
  궐녀는 다시 눈앞이 아득해오는 것을
느꼈다. 샘물에 비치고 있는 자신의 신색이
무두질한 세모시처럼 하얗게 질려 있는
  "성취는 하였습니까?"
  "아니오. 이제 스물여덟이라 하나 떠돌이
행중에 감히 성취할 생각인들 하였겠소.
그러다가 엄지머리로 늙는가 하였더니
다행히 선인행수 거행이라도 하게 되었으니
이제 머지않아 장가처를 얻겠지."
  "고향은 어디라 하였습니까?"
  "개성이오. 어릴 때 누이와 헤어졌다
하더군요, 그 누이가 살아 있다면 아마
서른두서넛이 되었을 게라고 하더군요."
  소례는 문득 일어나려다 말고 옹기그릇
가녘을 잡고 몸을 가누고 앉았다.
유리개걸하다가 객사죽음을 하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동기간이 살아 있단
말이 도대체 믿기지가 않았다. 하물며 그
소식을 조성준의 입을 빌려 듣게 되다니.
삼성산(三聖山) 봉우리 한자락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소례는 그것이 삼성산의 산허리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궐녀 자신의 가슴이
무너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칠흑 같은
야밤에 밤길을 밝히던 족등이 바람에
꺼져버렸을 때, 사위가 자지러질 듯
무너지는 낭패와 절망을 지금에 비유할
만하였다. 가을밤을 사위던 먼 다듬이
소리가 갑자기 뚝 끊어졌을 때 뼛속 깊이
스며오던 아득한 적막감 같은 것이 또한
소례의 가슴속을 적시는 것이었다. 서로
등을 비비며 사생영욕(死生榮辱)을 같이
했어야 할 동기간이 살아 있다는 소식에
되레 낭떠러지를 만난 듯한 절망을
느끼다니. 그것은 분명 기구한 악연에
것도 없이 궐녀 자신의 욕된 성깔이나
탐욕에 연유한 것이 아닌가. 궐녀가 겪어온
이승의 영욕이란 것도 기껏해야 반평생.
그러나 죄업만은 남달리 쌓았으니 어찌
동기간이 서로 다시 대면할 수 있으며 그
말소리를 귀로 다시 듣자 할까. 만나서
반가울 사람들이 만나기 전부터 두려울
뿐이니 이는 차마 듣지 않는 것만 못한
소식이 아닌가.
  궐녀는 찌그러진 질동이에 물이 넘치는
것도 모르고 자꾸만 물을 퍼담고 있었다.
궐녀는 뒤돌아보지도 못한 채 나지막한
소리로 물었다.
  "취탈당한 세곡 때문에 동패하시던 그
총각이 모해를 입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은
어떤 연유 때문이니까?"
서울의 권문세가에 끈이 닿아서라기보다는
선주(船主)인 시전 상인의 눈에 들어서일
게요. 시정배들을 영솔하는 솜씨가 남달라
발탁을 하였겠지요. 그런 차에 장선할
곡식을 취탈당하였다면 물론 관아에서
처분할 일이긴 하나 선인행수로서의 책임도
면할 길이 없고 또한 길아무개란 놈이
동사하는 경우 모함에 뒤말리기 십상이
아니겠소? 천행으로 행수 거행하게 된
봉삼의 일이 난감하지 않소. 또한 둔소의
두목이란 자도 원청강 드센 위인이라 내가
구슬러 적습(賊習)을 만류한다고 해서
들어줄 위인도 아니란 것이지요. 내가
큰일을 저질렀소이다."
  조성준이 마룻장이 무너지도록 길게
한숨을 뽑아올리자,
곡식을 어떻게 처분할 것입니까?
역모(逆謀)를 도모할 사람들이 아니라면
분명 하매자를 물색하여 꿰미돈으로 바꿀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요. 내가 나가서 연안의
잠상꾼들과 연줄을 트고 있는 물상객주나
접주들을 물색해야 할 입장입니다."
  소례가 툇마루 한켠으로 가서 앉으며
말하였다.
  "제가 그 곡식을 수매하면 어떨까요?
판화전은 준가대로 둔소 사람들에게
물어주되 그 총각을 은밀히 불러서 세곡을
축냄이 없이 되돌려준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런 생각도 한동안 품어는
보았습니다만, 내 댁네에게 그런 짐을 지울
수는 없소이다."
  "해야 할 일이라니요?"
  궐녀가 조급히 말머리를 돌렸다.
  "속죄의 길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조성준은 대답이 없었다.
  "이제 행수님께서도 그만치 조섭을
하였으니 먼길 행보는 지난이나 기동하실
만은 합니다. 저 장물아비를 부추겨서
급주로 강경으로 보내주십시오. 제가
언문은 대강 뜯어보는지라 문중사람들에게
쪽지를 쓰겠습니다."
  "입채를 서주시겠다니 고맙소. 그러나 그
빚은 나중에 내가 꼭 갚아드리리다."
  "제가 할 일이라지 않았습니까."
  "저 장물아비란 놈은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놈인데 만약 강경의 가택을 알았다간
목숨 구해준 것을 빙자하여 평생을 두고
어찌하려고 그러시오?"
  "제가 여기에 이르러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요? 그러나 그 일에 대해서는
저도 방책이 있으니 어서 방자나
세우십시오."
  "문중에서는 벌써 댁네가 저승사람이 된
터로 작정하고 있을지도 모를 터인데
요량없이 백민의 돈을 들려 보내진 않을
터이지요?"
  "그렇다마다요. 문중의 일가붙이들이
뒤따라오든지 할 터이지요."
  "나중 일은 어찌하려오?"
  "그것까지는 묻지 말아주십시오. 제게도
작정한 바가 없을 턱이 있겠습니까. 이런
포악하고 수치스런 계집이 무슨 유세로 그
문중에다 다시 발을 적시겠습니까.
감소 호강을 누리고 싶은 속내는 추호도
없습니다."
  마침 행객들을 건네주고 돌아오는
장물하비의 모습이 각담 너머로
바라보였다. 궐한을 봉노로 불러들여
떡먹이듯 문지르고 부추기니
반신반의하였으나 조성준을 믿는 판이라
다녀오겠다는 반허락을 하였다. 그대신
천소례를 꼼짝없이 잡아두어야 한다는
약조에 닦달을 곱씹듯 하고 나서야 길을 뜬
것이었다. 장물하비가 쉽게 길을 뜨기로 한
것은 천소례가 강경포구의 상고들을 한손에
넣고 주무르던 김학준의 측실이었단 말을
조성준이 일러주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말이 적실하다면 꿩 먹고 알 먹는 판국이
되었다 싶었기에 장물아비는 아예 반정신이
  궁말 갯나루에서 강경지경까지는 뱃길로
따져 70리가 빠듯하다. 그러나 육로로
따지자면 백리가 넘는 길이었다. 그
백릿길을 단 하루에 달려간 장물아비의
통기를 받은 김가 일문은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쪽지의 글발이며 수결 따위가
반년이 넘게 행처가 감감하던 천소례의
것에 분명한지라 서둘러 장정들을 조발하여
나귀 안장얹고 장물아비란 놈 뒤를 따랐다.
문중에서 주변깨나 있다는 인사들은 저마다
가겠다고 자원을 했던 것이나 쪽지의
내용을 따라 하속 셋과 서사와 일가붙이 한
사람이 이튿날 해질 무렵에 궁말에 닿았다.
삽짝 밖에 서서 통자를 넣는 중에
달려나오는 여인네가 소례인지라
일가붙이는 삽짝 밖 맨땅에 엎드려 길게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난 그날 밤 한밤중에
열어둔 삽짝 안으로 들어서는 장한이
있었다.
  기침소리로 통자를 대신하는 그 장한은
키꼴이 훌쩍하여 당장 봉삼임을 알 수
있었다. 바라지를 부서져라 뛰어나간 놈이
장물아비 먼저였다. 장물아비가 상방으로
봉삼을 모시었다.
  "날세."
  심지를 한껏 돋운 등잔을 가운데 두고
조성준과 봉삼이 마주할 제, 만남과
헤어짐에 초연했던 난전꾼들의 풍속이 있다
하나 남다른 감회가 깊을 수밖에. 예대로
키꼴이 장대한 봉삼을 쳐다보는 조성준의
눈시울에 안개가 서리었다.
  "행수어른 저의 봉삼입니다."
무릎걸음으로 기어와서 덥석 손을 잡았다.
  "타관 객고는 어찌하였나?"
  "......"
  "이제 다시 상봉하게 되었으니 이런
천행이 다시 없고 반갑기 그지없군."
  한참 만에서야 말문이 터진 봉삼이가,
  "행수어른 제 불찰로 횡액중에 이런
병고를 겪으십니다."
  "이제 기동을 한 만하게 되었다네. 그
동안 나는 백파들의 도움으로 목숨은
부지하고 있네만 네가 선인행수 거행한다니
그게 정말인가?"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가리산 지리산으로 앞뒤없이
행려중의 견문담을 주고받는 사이에 늦은
저녁상을 들고 장물아비가 봉노로
조밥을 고봉으로 담고 아직 지글지글
기름이 타는 비웃을 통으로 구워 구미있게
곁들이고 돝고기 산적도 없지 않았으나
봉삼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조성준은
헤어져 있던 사이의 사정을 산적 꿰듯이
미주알고주알 따져 묻는 것이었으나
강경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선 단 한마디도
내비치지 않았다. 그것은 천소례와의 약조
때문이었다. 장물아비란 놈은 밥상
식어가는 것만 중히 여겨 나중엔 선소리
그만들 하시고 익은밥이나 치우라고 심통을
부리는 것이었으나 봉삼은 끝내 저녁상을
내치었다.
  "마침 뵙게 되었으니 이젠 딴생각 마시고
송파로 올라가시지요. 시생이 구태여
송파에다 자리를 잡은 것은 제 불찰로
꼭 뵙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송만치란 망종이 자객의 칼에 죽게
되었는데 그 누명을 아직까지 행수님이
쓰고 계시니 지금 당장 올라가는 것이 옳은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건 내 행적을 익히 알고 있는 놈이
모해를 놓은 것이겠지?"
  "물론입니요. 그러나 송파저자에서
뒹구는 난전꾼들치고 행수님 행적을
대강이나마 모르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게다가 한 파수에도 수백명의 상고들이
들락거리는 판이라 어느 놈의 행실인지
도통 정범(正犯)을 가려낼 가망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원혐이 있다하여
편리한 대로 행수님을 치의하고 용모
파기까지 각 도방에다 돌려놓고 있는
  "그런 걱정은 나중으로 미루고 우선 세곡
봉적당한 일부터 먼저 얘길 하세. 세곡을
돌려준다면 자네게 공(功)이 될까?"
  "공이 되고 안 되고는 차치하고 공변된
나라곡식이니 돌려주셔야지 않겠습니까?"
  조성준이 팔짱을 끼고 앉아서 대꾸없이
봉삼을 바라만 보는데,
  "관고(官庫)의 곡식을 털었으니 돌려주는
것이 적굴 사람들의 나중 일을 봐서라도
유리할 것입니다."
  "꼭히 그렇지만은 않다네. 내가 나선다면
그만한 곡식쯤이야 쥐도 새도 모르게
처분할 수 있지. 곡식을 돌려주려 하는
것은 이 사단으로 인하여 자네가 모함에
들까 두려워서지......"
  "시생이 모해를 입다니요?"
대해 넌지시 물었다.
  "수적의 여당을 잡았다가 놓치었는데
전사에 송파 우시장의 쇠살쭈였다는 말을
은연중 흘리기에 시생이 속으로 행수님이
틀림없는 것으로 믿었습지요."
  "그놈이 혹시 송만치를 요정낸 살범은
아닌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 위인은
앞으로 환로에 들 것을 겨냥하여 권문에
붙어서 아첨과 비굴과 중상을 일삼고
비루한 세속에 말려들었다 하나 살변을
저지를 만큼 정신을 잃은 위인은 아니지요.
살범이란 필경 덜미가 잡히는 법이
아닙니까?"
  "농담으로 한 말일세만 그 위인의 거동을
보아하니 행사가 교활해서 사람을 속이고
생각이 들더군. 거기다가 부랑배들과
결교(結交)까지 하게 되면 장차 폐단을
저지를 위인이 틀림없지. 자네와 같은
어리보기가 그자와 동사한다면 까딱했다간
모해를 입을 것이니 그 점 명심하게."
  "시생도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그자가 제 뒷덜미에 비수를 들이대기
전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선혜 당상
김대감과 연줄이 닿아 있는 위인이라 아직
시생과 같은 지체로선 성급한게 대적 못할
입장입니다."
  "자넬 허수아비로 만들 만한 위인이니
각별 조심하게."
  조성준이 그렇게만 타일렀을 뿐 저간의
봉욕을 당한 일에 대해선 단 한마디인들
내비치지 않았다. 부스럼이란 긁으면
약조하지 않았던가. 그때, 생각난 듯
봉삼이가 말머리를 돌렸다.
  "행수님 이렇게 살아 계시는 것 뵙고
나니 한 가지 가슴 아픈 일이 있습니다."
  "무언가?"
  "시생과 동패하던 동무 한 사람고 행수님
행처를 뒤지며 강경에 닿았지요. 거기에서
행수님을 모살하였다는 여인네를
만났습니다."
  조성준이 조급히 손사래를 쳐서 봉삼의
말을 막고 난 뒤,
  "그 일이라면 다시 입초에 올릴 일이
아니네. 그 연인네는 천행으로 지나던 배를
만나 구명을 하였다네."
  "그 일을 알고 계시었습니까?"
  "마침 그 여인네가 목숨을 구한 뒤에 그
한 짓이란 걸 알게 되었지. 그러나 이젠
서로가 덮어두기로 나와 약조한 것이니
그리 알고 다신 입 밖에 꺼내지 말게. 내가
그 여인네의 하속배들 손에 척살당한
것처럼 꾸민 것이 잘못이었지."
  "그 여자가 제 늙은 서방을 모살했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상전의 일을 헐뜯기 좋아하는 하예들이
주둥이들을 헤프게 놀리고 다니는 게지. 그
여인네가 천행으로 살아났기 망정이지
그것이 아니었더라면 자네 또한 평생 동안
죄업을 지고 살아가야 할 뻔하지 않았나?
거상(巨商)이 따고 종자가 있는 것도
아닐세. 대명(大名)을 얻자 하면 일신을
정하게 굴려야 하네. 선비가
각고(刻苦)해서 학문을 닦아 대의를
얻어야 하네. 대저 보부상들이 결찌들의
힘을 믿거나 권문에 연줄이 있다 하여
모둠매질에 송사를 즐기고 있으나 이젠
세상이 달라졌네. 대원위 대감이
물러나시고 나랏님의 친정이 시작된 지
오랜 지금이야 난전 동무님들 기세도
꺾이었다네. 각별 몸조심을 하고 사사로운
일에 집착하다보면 기필 대의를 잃는다는
건 정한 이치가 아닌가. 그런 흠질이 있고
보면 앞으로 거상이 된다 하여도
동무님들의 모해를 받기 십상일세. 애당초
내 사사로운 원혐을 갚는 길에 자넬 달고
나선 것이 잘못이었네. 그로 인해 나 또한
여기에 이르러 도둑의 앞잡이 노릇으로
연명을 하게 된 것이 아닌가."
  "기왕지사 삼남으로 내려왔으니 먼길
만나보아야겠습니다."
  "이미 가라앉은 먼지인데 다시 소동을
피울 까닭이 무언가? 우리가 서로 만났을
때 밤을 도와 마주앉아서 속죄한 터였고
또한 그 여인네도 금강산으로 불공을
드리러 떠난 지가 달포가 되어가니
가보았자 만나지도 못할 것인세."
  "금강산 어느 절입니까?"
  "그걸 내가 알고 있은들 자네에게 바른
대로 댈까?"
  봉삼이 등잔접시의 불똥을 가라앉히니
불꽃이 환하게 밝아졌다. 멀리서 강심을
핥고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들리더니 뒤꼍의
해장죽이 어지럽게 흔들리었다. 바람에
날리는 물새들이 까악거리며 지붕 위로
날았다. 대나무들이 후드득거리며 서로
들려왔다.
  봉삼이 봉노 구석에 놓인 곰방대를
찾아서 담배 한 죽을 담아 불을 붙여
조성준에게 권하였다. 조성준이 한두 모금
빨다 말고 당긴 불이 꺼졌나 하고 몇번인가
다시 곰방대를 내밀었고 봉삼이 다시 불을
당겨주려고 손바꿈을 하다보니 담배 한
줄을 다 태울 때까지 은연중 맞담배질이 된
셈이었다.
  "자넨 어찌해서 총대선인 거행하게
되었나?"
  "최동무님의 초종을 치르고 난 뒤
형수님을 뒤쫓아 시전에 뛰어들었다가
대행수의 자리에 오른 건 상매로 이문이
나는 족족 권문이나 궁중에다 회뢰(賄賂)를
하였기 때문이었네. 그로 하여 거상의
그늘에서만 살아갈 사람이지 상민(商民)의
신분을 높일 그릇은 못되지. 내 우연히
이용익이란 금점꾼과 동패한 적이 있는데
언제 자네와 만날 날이 올걸세."
  "동래포(東萊浦)에 하륙한
왜상(倭商)들이 금맥을 찾아 곳곳에
간자들을 풀고 있다는 소문이 왜자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이용익이란 동무가
왜노들과 손이 닿아 있는 부류 아닌지요?"
  "내 아무리 지각없이 나잇살을 먹어온
위인이기로서니 그만한 갈피야 헤아리지
못할까. 내가 보기엔 일세의 효웅(梟雄)이
될 재목이데"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헤어졌다네. 그러나 송파에 득달하는
길로 자넬 찾아볼 것이야. 내가 신신당부를
  "우리의 상권이 피폐해질 조짐이 없지
않은 판에 그만한 동무님이 있다면
불원천리하고라도 찾아가서
상면하여야지요. 조정에서는 또다시
왜상들에게 북청(北靑)을 열준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운현궁 대감이 양주(楊州)지경
직곡(直谷) 산협으로 은퇴한 뒤때와
구실만을 노리고 있던 왜(倭)는
운양호(雲揚號) 사건을 조작하였다.
몇번인가 연안을 들락거리며 난동을 부려
조정을 위협하니 배겨나지 못했던
조정에서는 병자년(丙子年)에
수호조약[江華島條約]을 맺고
김기수(金綺秀)로 하여금 왜국(倭國)에
다녀오도록 하였다. 김기수가 다녀온 뒤
제물포로 경유하여 도성에까지 들어왔다.
그들의 행패와 끈질긴 요구를 모피하다
못한 조정에서는 의정부 당상
조인희(趙寅熙)로 하여금 대응케 하여
수호조약 부칙을 조인하였다. 이로 인하여
동래포에서 왜상들의 왕래가 자유로운 길을
트고 또한 토산물이나 왜물(倭物)의 행매를
자유롭게 하였다. 그들이 내륙으로 들어올
수는 없었으나 우리의 백성을 고용할 수가
있었으니 고용된 조선의 백성들이 왜물을
지고 팔도의 저자 어느 곳엔들 못 가는
데가 없었다. 앞서 청전(淸錢)의 금수를
단행하였던 조정이 왜국의 화폐를 조선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길을 터놓고 조선의 상인은
왜전(倭錢)으로만 왜물을 행매할 수 있되
왜상들은 조선의 꿰미돈을 사용할 수 있게
빙자하여 왜선(倭船)이 연안 어디에든
접근할 수 있는 길도 터놓았다.
  정축년(丁丑年) 9월에 다시
하나부사[花房義質]가 군함[高雄號]을
이끌고 연해를 측량하면서 올라와 서대문
밖의 경기중영(京畿中營)인 청수관을
상대로 공사관 상설과 다시 2개 항을
열어주는 문제를 놓고 실랑이를 하다가
돌아갔다. 그러나 이듬해인 무인(戊寅)에는
9월과 11월에 걸쳐 조선의 상민에게만 물게
되어 있는 수출입세의 부과가 저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하여 동래부중으로
달려들었으나 부사인 윤치화(尹致和)가
이를 용납치 아니하였다. 하나부사는 이에
저희 군사를 하륙시켜 공포사격으로
위협하여 그 동안의 수세(收稅)로 인한
삼월에 다시 동래부중을 습격하였는데 이에
격분한 노상의 상민과 백성들이 투석으로
맞서자 이를 빌미로 윤치화의 손을 자르고
변찰관(辨察官) 현석운(玄昔運)에게 부상을
시키는 패악을 저지르는 유혈극을 벌였다.
  이에 대경실색한 조정에서는 접대에
능수단인 홍우창을 의정부 당상관에
제수(祭授)하여 품격을 높이는 일변 이후
왜의 공사(公使)가 입경할 제 연도에
내왕하던 백성들이 손가락을 하거나
투석(投石)하면 즉시 효수한다는 엄칙을
내렸다. 하나부사는 군함 두 척을 이끌고
군산, 서천, 당진, 남양만 일대를 측량하며
올라서 종자(從者) 40명을 이끌고 다시
청수관에 자리 잡았다. 위인의 요구는
제물포를 개항장으로 열어놓으라는
원산(元山)을 개항키로 대안을 내놓는 한편
저들의 만행에 손가락까지 잘리는 수모를
겪은 윤치화를 파직시키었다. 아직 조인은
되지 않았으나 원산진이나 제물포는 불원간
개항으로 흥청거릴 조짐이었다.
  한참이나 말없이 등잔만을 바라보고
앉았던 조성준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번에 자네와 헤어지면 나는 둔소
사람들과는 하직하고 원산포로 떠나려
하네."
  "그곳에 따로 연비가 있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우시장(牛市場)이 성한 곳도
아니지 않습니까? 공연한 마음 먹지 마시고
기찰 풀리기를 기다렸다가 송파로나
올라오십시오."
  "개항장에 자리잡고 왜상(倭商)들을
늦깎이라 하나 그런대로 이문을 도모할
수가 있지 않겠나. 원산포 인근의 저자를
돌거나 다락원을 거쳐서 내려오는 우피만
도집(都執)한다 하여도 한 파수에 수백
영(令: 여기선 가죽을 세는 단위)이 될
터이니 적굴에서 무명색한 졸개 노릇
거행하는 것보다야 낫겠지."
  "우피 도집이라면 밑전부터 장만해야 될
터인데요."
  "다행히 원산지에는 친분 있는 객주가
있으니 별로 걱정할 일이 아닐세."
  "지금껏 저에게 해라를 쓰시다가 이번에
뵈일 때는 하게를 쓰시니 시생은 도통
갈피를 잡지 못하겠습니다."
  "자넨 미장가라 하나 이미 하속들을
거느리는 행수선인이니 이젠 무턱대고
  두 사람이 마주앉아 긴밤을 새우는 동안
소례는 사뭇 바라지 틈사이로 봉노 안을
엿보았다. 헤어진 지 십수년이 지난
동기간이라 하나 궐녀는 첫눈에 봉삼을
알아볼 수 있었다. 장승 같은 허우대며
세벌상투며 목소리가 예 같지 않다
하더라도 살붙이로서의 흔적이 거기에 없을
수가 있겠는가. 길가에서 서로 스친다
하여도 능히 알아볼 만하였다. 봉삼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눈에 와 가슴에 못을
박는 것 같았고 밤새 뛰는 가슴을 누를
길이 없었다. 궐녀는 몇번인가 문고리를
잡아당기려다간 다시 놓고 하였다. 떨리는
손을 치맛자락에 묻으며 궐녀는 밤새
바라지 앞에서 떠날 수가 없었다. 궐녀가
봉노 안으로 뛰어드는 순간 의젓하고 저
보는 조성준의
눈시울에 안개가 서리었다.
무너져버릴 것만 같았다. 아서라 하고
수십번 마음을 고쳐먹고 궐녀는 문고리를
놓아버린 것이었다. 살붙이가 서로 만나
회포를 푸는 것이 중대한 일이 아니라
궐녀가 당장 해야 할 일과 봉삼이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고 또한 서로 다르니 몇줄기
눈물을 위하여 어찌 대의를 그르치게 만들
것인가.
  봉삼이 조성준을 만나러 갈 적에는
육로였지만 군산포로 회정할 적에는 배를
타게 되었다. 꼬박 마주앉아서 밤은 새운
이튿날은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일색이
다하기를 기다려 싸리말에 쫓기듯 조성준을
하직하고 도선목으로 나서니 강심에
난데없는 배 두 척이 떠있었다. 장물아비란
놈이 파피선을 저어서 강심의 배까지
고스란히 장선(裝船)되어 있었다. 사공과
격군(格軍), 그리고 화장(火匠)으로 보이는
장정 대여섯이 뱃전 가녘에 쭈그리고
앉았다가 봉삼이 배에 오르자 닻을 거두고
돛을 올리었다.
  "안녕히 가십시오, 행수님."
  장물아비란 놈이 파피선 머리를 돌리면서
시늉만으로 손을 흔들었다. 도선목에는
인적이라곤 없었다. 조성준을 하직하기
전에 뱃사람들과는 단 한마디도 수작을
나누지 않기로 경신년(庚申年) 글 강 외듯
신신당부하였으므로 봉삼은 아예
곰루간으로 가서 죽치고 앉아버렸다.
항풍(恒風)을 따라 느릿느릿 배를 몰아
삼경이 빠듯해서 군산포 윗머리에
득달하였다. 사공들도 역시 말이 없었는데
꼴이 근본이 농투성이들이었고 간혹
저희들끼리 주고받는 수작들도 얌전하였다.
배가 선창 윗버리 지경에 이르자 한 녀석이
고물간에 웅크리고 앉은 봉삼에게로
다가왔다.
  "행수님, 우린 저기 갯머리에다
세곡섬들을 하륙시키고 회항을 해야
합니다. 저기 갈밭 사이로 들어가면
하륙시킬 만한 해우(海隅)가 있습지요.
사방이 잡목숲이라 안개가 걷히기 전에는
발각이 될 염려가 없습니다."
  "관속들의 눈을 피하자는 것인가?"
  "그렇습지요. 결찌들을 호궤하자고 턴
곡식을 돌려주는 일은 저희들도
처음이니까요."
  심통은 있어 보이되 말대답은
  "자네들 사정이 그러하다면 딴 방도가
있겠나. 동트기를 기다렸다가 선인들을
불러서 해창거리까지 운반을 해야겠지."
  "해창거리까진 엎어지면 코닿을 자리니
우리도 호랑이 코앞까지 배를 댄 셈이지요.
줄초상 나기 전에 해치워야지요."
  매복한 순라쟁이들에게 발각이 되는 날엔
몰사죽음을 할 판이라 저고리를 벗어부치고
선제(船梯)를 오르내리는 수적들은
분주하게 움직여 수시로 방귀소리만 내지를
뿐 기침소리 한번 없었다. 동이 뿌옇게 틀
무렵에는 하륙을 마치고 배 두척은 벌써
포구 한가운데로 떠나가는 것이었다.
  날이 새자 자연 행객들이 눈에 띄었고
행객들 편에 통기를 받은 선인 조졸 들이
한다리로 몰려왔다. 봉적을 한 곡식을
사람뿐이었다. 그날 밤 유필호가 봉삼을
자기 처소로 불렀다.
  "자네에게 딱 한가지 일러둘 일이 있네."
  "무슨 말씀인지 시생도 대강은 짐작하고
있습니다."
  봉삼이 유필호를 빨랫줄 같은 시선으로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렇다면 얘기는 쉽게 풀리었네.
한마디로 한다면 봉적하였던 세곡을
적구로부터 되찾은 일만으로도 자네는
재앙을 불러들인 셈이 되었네. 그러니
언사에 조심할 건 물론이요, 그와 연루된
모든 일에서 알거냥하지 말게."
  "시생이 재앙을 받을 일이라면 왜 발행
전에 만류하지 않으셨읍니까?"
  "이미 늦었기 때문이야. 내가 만류한다
나를 앙숙으로 알았을 것 아닌가."
  "시생이 이번 일을 빌미잡아 섣불리
자랑삼으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되었네. 모든 재앙이
발설(發說)의 응보라는 걸 명심하게나."
  "투식(偸食)을 일삼는 위인들을 눈앞에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경을 치는 것은
고사하고 입닥치고 있으라니 이런 억울할
데가 없습니다."
  "자네가 백 석의 곡식을 찾으로 나간
사이에 길행수는 이미 그것을 눈치채고
한발 앞질러 봉미관(俸米官)이며
수운판관(水運判官), 본읍 현감과 통을
짜고 뇌물을 주고받아서 곡식 백 석을
도집(都執)을 해버렸다네."
  "그같은 행사를 두고만 보라는
안기고 말겠습니다."
  "천하가 동조하는 대의라는 것도
기회라는 것이 있는 법, 섣불리 나서지
말라는 내 말의 뜻이 바로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아주게나."
  "애당초 그 일로 하여 시생의 일신을
드러내어 자랑삼자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건
절 모르는 시주(施主)가 아닙니까. 김보현
대감의 권세가 아무리 드세단들 이런
도적질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다면 시생이
만나고 온 적굴 사람들은 무엇으로 불러야
할까요."
  "언젠가는 따질 날이 오겠지. 그러나
지금은 그때가 아니니 잠자코 포구로
나가서 발행이나 서둘게."


  장선(裝船)을 서둘러 왔다 하나
예정보다는 일순(一旬)이나 넘게
지체되었다. 이백오십 석(石)을 장선할 수
있는 대선(大船)이 5척, 이백 석을
장선하는 중선(中船)이 10척, 일백삼십
석을 장선하는 소선(小船)이 15척이었으니
그 동안 삼천오백 석의 세곡을 장선한
셈이었다. 중선 네 척에는 인근 저자에서
도집한 담배, 소금, 건화어(乾花魚),
마포(麻布), 백목(白木), 곡자, 면화(綿花)
들을 실었다. 선단의 규모가 예사롭지
아니하니 사공과 격군들을 호궤할
길양식이며, 살진 걸구를 댓 마리나 잡아
올리고 화주(火酒), 건건이하며 곁반들을
땟목을 타고 내려온 장작도 넉넉하게
사들이고 일찍 나온 푸성귀도 구처하였다.
경각으로 오르려는 장사치들이나 겨우내
전라도 땅을 떠돌며 행구를 팔아서 주린
배를 달래던 사당패들이 단오(端午) 때의
단대목을 노려 경기기경으로 오르려고
댓푼의 인정을 쓰려 하였으나 선단
어름에는 잡인 엄금이었다.
발행일(發行日)이 코앞에 닥친 터라 그
동안 해창거리에 흩어져 나가 흥청거리던
화장붙이며 짐방들이 나루 주변의 휘장 친
술국집이나 혹은 뱃전 가녘에 모여들
앉아서 주사위노름이나 패설로 무료함을
달래고 있었다. 뱃전에 모여앉은 축들
중에서 낯짝이 개 핥은 죽사발처럼 허연 한
놈이 게트림하면서 좌중에다 불쑥 한마디를
  "난 그 동안 모색이 그런대로 동탕하게
생긴 해창거리 막창과 연사흘 밤을 술청
뒷방에 틀여박혀 쉰 참 없이 가죽방아만
찧었더니 기력이 부실해진 건 고사하고
이젠 아주 코에서 단내가 물씬거리네......
그년 행요 하나는 일품이어서 달고 갔으면
싶데만 바느질 하나는 비각 중에 비각이라
버선 구멍 하나를 온전하게 막아 신지
못하니 그걸 얻다 써먹을까......"
  "그놈하구선, 그래 해웃값은 뭐로
치르었나?"
  "내게도 무명자투리 두어끝이 있었지만
마침 말감고 한 놈과 면분을 트고
꼬드겼더니, 허 이놈이 물색 모르고
걸려들데. 내 해우채는 육장 그놈이 입채를
섰지. 마고청만 해도 하루에 석 섬이나
  "이놈 알고 보니 순 공다지로 살보시를
들였지 않나?"
  "그 막감고란 놈 나를 아주
화상(和尙)으로 알아본 모양이여."
  그때, 옆에 앉아 뱃전 가녘에 부딪치는
물결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던 한 놈이
슬쩍 퉁기기를,
  "그것 가지고 뭘 떠들고 야단인가. 난
애사당 하나를 만나서 사흘 동안 소피 한번
안 보고 삼팔주 수건 한 죽을 적셔냈다네.
그 육실할 년의 행요직이 어찌나
자심하였던지 혓바닥이 한 뼘이나
빠져나와서 아직 들어가지를 않으니 난
아주 포병객이 되었네."
  먼젓번 동무 턱밑에 붙어앉아서 아옹다옹
케묻고 앉았던 작자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허 이거 측간 앞에서 사둔 만났네. 그래
얼마나 골똘하게 색탐을 하였으면 혓바닥이
빠지도록 양도를 쏟아부었나 그래?"
  그러자 당사자는 눈길을 피해 먼
갯나루로 돌리면서,
  "말도 말게, 난 오늘 당장 수중고혼이
된다 하여도 그 일에 대해선 아주 원도
한도 없게 평생할 것을 다 하였다네.
그런데 그 애사당의 서방 거사란 놈과
해우채 소동으로 대판 시비가 붙어서
까딱했다간 양물을 잘릴 뻔하였지. 엇
뜨거라 싶어 휘진 몸뚱이를 이끌고
뛰쳐나온긴 하였는데 봉당으로
내려서자마자 두 다리가 휘청하는 것이
이건 형용이 육신이지 순전히 밀기울
반죽이더구만. 엉금엉금 기어서 삽짝을
제 동무로만 알고 컹컹 짖고 달려오더니 내
코를 핥아주데."
  "이끼 이놈, 아무리 씹고 놀자는
패설이기로 동에 닿는 말을 해야지."
  "내 말이 거짓말 같으면 지금 당장
한터로 쫓아가서 개들에게 물어보게나, 내
말이 거짓말인가. 네놈도 이치 따지고 드는
걸 보니 아직 정신이 바로 박히지를
못했군. 봉적을 한 곡식 백 석을 고스란히
되찾았다는 일은 이치에 맞는 일인감."
  "쉿, 그런 말 말게. 주둥이를 헤프게
놀려 누굴 모함잡으려는 겐가? 그럼
천행수님이 적굴놈들과 밀통하고 있는
와주란 말인가?"
  "입은 가로로 찢어져도 침은 바로
뱉으랬다고, 천행수가 도둑의 접주가
게지."
  "그놈 거양(巨陽)만 차고 설치는 줄
알았더니 소갈머리도 예사로운 놈이
아닐세. 지각없이 굴지 말고 입이나 닥쳐."
  "이놈 보게. 사십객 사람을 보고
지각없다니?"
  "이놈, 어째서 네가 사십이냐?"
  "서른다섯이면 사십이지 뭐냐 이놈."
  "사십객이든 오십객이든 천행수님 연하라
하여 간대로 폄척(貶斥)하진 마라."
  "어쨌든 이번 회정길에는 뱃길도 험하게
되었거니와 시전에서 조발된 짐방들 얘길
들어보니 천행수 수하에서 거행하는 우리
송차것들은 괄시를 면하기 어렵게 되었네.
하기야 우리들이야 날삯이나 받아 챙기면
그만일 테지만......"
난리가 날 게라고 수군대는 것을 나도
들었지. 그러나 우리 송파장터에서 조발된
결찌들은 천행수에게 의탁하여 골육이나
진배없게 의자하게 지내는 판국이니
수틀렸다 하면 길행수 수하의 시전놈들
육장으로 만들어야지."
  "길행수란 위인이 관헌을 만났다면 금방
수시같이 야들야들한 낯짝을 하고 갖은
요신(妖神)과 간특에 색책(塞責)을
부린다지 않는가. 설혹 불민한 일이 생겼다
하여 무턱대고 대들었다간 뒤집어쓰기
십상이지."
  "아무튼 셈판들을 잘 알아서 처신하되
천행수님이 욕보는 꼴은 보고 있진
못하겠네."
  마침 해가 뉘엿뉘엿 일색을 다하는
작자가 뱃전 가녘으로 다가왔다. 선인들은
당장 사내를 알아보았다.
  "저기 오고 있는 것이 사당 패거리
행중의 꼭두쇠가 아닌가."
  "저 화상이 선단 주변에는 왜 얼씬거리나
그래?"
  꼭두쇠는 곧장 개펄을 가로질러
선제(船梯)를 타고 배로 올랐다. 뱃전
가녘을 지키고 앉은 선단 사람들을 보자
뒤통수를 긁적거리는데 세벌상투엔 멀리서
보아도 서캐가 하얗게 슬었다.
  "안녕들 하시우."
  머쓱해 있던 뱃사람들이 시늉만으로 마주
고래를 끄덕이자,
  "도사광 거행하시는 분을 뵈려고
왔습지요."
  연치가 십년이나 넘게 차이가 지나
이쪽에선 대뜸 반말이다.
  "이젠 가근방에선 곰뱅이 틀 만한 곳이
없게 되었습지요. 설사 놀음판을 얻는다
하여도 놀이채는 적어지고 아둔한
여사당들은 씨모를 자식만 낳아제끼지요.
어제도 행중의 저승패 하나가 논두렁을
비었습지요. 그나마 살아남자 하면
경기지경 내륙의 저자로 올라서 단오
대목이라도 보아야 할 것이데 큰일이
났습니다요."
  "얼쑤, 여기가 활인서(活人署)
뒷마당으로 아는가? 그것 때문이라면
도사공을 만난다 하더라도 소용ㄹ게
되었네. 우리 선단에선 잡인 엄금일세.
설혹 배를 얻어 탄다 하여도 행구까지 죄다
리도 만무일 것이고......"
  "우리 행중이애야 스무 명 남짓합니다요.
공으로 배를 얻어 타자는 심산이 아니라
항해중에 노역으로 품을 팔아 벌충을
한다면 선단에서도 손해만 볼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요."
  "패거리 스무 명에 반 넘어가
여사당들인데 아래품을 들인다면 모를까,
노역은 무슨 놈의 썩어빠질 노역이여?"
  그참에 이르러 꼭두쇠란 사내는 입가에
희쪽하며 웃음을 흘리더니,
  "거참 아둔한 분들을 보았네. 행중의
서방 거사들은 노역으로 품을 팔아 선가로
벌충하는 일변 암동모들은 가죽방아품을
판다 하면 뜨내기 뱃사람들에게야 그것보다
더 좋은 호강이 어디 있겠소. 쥐여줘도
보았나."
  "우리가 되사람 색상(色商)들인 줄 알어?
끄덕거리는 조격이 우습군. 에라 썩
물렀거라 부정타겠어."
  "괄시들 너무 마시우. 당신네들이나 우리
행중이나 죽지 못해 연명하자는 수작인데
임의롭게 지내는 것이 나쁠 것이 없지
않소."
  "듣고 보니 딱하게 되었군. 그러나 스무
명이나 넘는 걸립패와 작반하자는 일이
우리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도사공이나 행수선인 만나서 수작을
터볼 것이니 이녘들은 곁에서 훈수나
들어주시우."
  "그렇다면 여기서 기다려보게."
  그렇게 말한 것은 애사당을 만나
송파저자 왈자였다. 때마침 도선목으로
나서는 길행수의 모습이 멀리
바라보이는지라 그 사내가 지소(指所)를
하면서,
  "저기 도선목으로 나오는 사람이 명색이
행수선인이니 가서 사정을 해보게."
  꼭두쇠란 사내가 옹구바지를 치켜올리며
배를 내려가서 도선목 쪽으로 내닫는데
걸음걸이가 시위처럼 재빨랐다. 꼭두쇠가
길행수의 앞을 가로막고 적선을 빌며
고개를 주억거리는가 하였더니 얼마있지
않아서 꼭두쇠는 저들 행중이 모여 있는
삼막[麻幕] 쪽으로 내달았다. 이제 궁금한
건 꼼짝 않고 거동을 지켜보고 있었던
송파패거리들이었다.
  "이것 보게, 하회가 무언가?"
  "반허락이라니?"
  "천행으로 행수님이 면분이 있었던 터라
허락을 얻어냈습지요. 송파 패거리들이
저들끼리 수군대기를,
  "거참 별종일세. 길행수로 말하면
대갓집의 문객이었다는 소문인데 저런
굿중패와 면종이 있었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면종이 있었건 없었건 굳이 캐어서 얻다
쓰려고 그러나. 꼭두쇠란 놈이 그 동안
챙긴 행중의 꽃값으로 인정을 썼던 게지.
구린 돈이나 단 돈이나 자국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아녀. 인정전 몇푼에 스물이나 넘는
패거리들을 선뜻 배에 오르게 할 계제가
아녀. 무슨 꿍꿍이속이 따로 있는 게지."
보고 떡이나 먹는 게지...... 오늘 밤만
넘기면 우리도 군산포 하직이 아닌가."
  선단(船團)이 발행하기 전에
봉미관(俸米官)이 승선하여
물목단자(物目單子)와 세곡의 석수(石數)를
대조하고 선체를 점고한다. 물목단자는
육로를 따라 호조와 선혜청에 닿게 되고
선단은 해로를 따라 광성창에 올라 세곡을
하륙하게 되면 단자와 세곡을
봉점(逢點)하여 중로에서의 횡령을
가려내고, 또한 감색(監色)과
해운판관(海運判官)이 선단에 동승하게
된다.
  봉미관이 승선하여 세곡의 석수와 선척을
점고하다가 뒷선실 부근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사당패 행중을 보았다.
  곁에 선 길소개가 대답하였다.
  "마침 경기지경으로 오르는 행중이길래
태웠소이다. 다치고 병든 짐방들이
네댓이나 되어 행선이나 노역에 궐이 나
있는 중에 장한들이 낀 행중이니 유조할까
해서지요."
  봉미관이 길소개의 말을 귓결로 흘리면서
패거리들 중에 나이 들어 보이는 작자를
지목하여 눈을 부라렸다.
  "이놈들, 어디 행중이냐?"
  "네, 쇤네들은 본시 광주(廣州)
봉은사(奉恩寺) 행중입죠."
  꼭두쇠란 놈이 굽실하면서 괴춤을 뒤져
신표(信標) 한 장을 꺼내 보이었다.
꺼내주는 신표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던
봉미관이 더그레 자락을 떨치면서,
있겠는가?"
  "노역을 들이구말굽쇼. 명색이 계집이라
하나 젊은것들이라 나락섬 들어 옮길 만한
장력들은 있습죠."
  "만에 하나 행선중에 사공들을 꼬드겨서
엉뚱한 짓거리들을 하였다간
상풍죄(傷風罪)로 엄히 다스릴 건 물론이요
신표를 빼앗아서 다시는 곰뱅이를 트지
못하게 조처할 터이니 그리 알라."
  꼭두쇠란 놈이 덕판 위에 너부죽이
엎디면서 아뢰었다.
  "행여 그런 불민한 사단이 일어나지
않도록 행중의 계집들을 닦달하겠습니다요,
나으리."
  봉미관의 점고가 꼬박 하루를 잡아먹고
사월 스무사흗날에서야 임선단 서른 척은
마포나루에서 발행할 때처럼 거창한 용신굿
한마당이 벌어지지는 않았으나 걸구 한
마리를 잡아 통으로 얹고 닷말 시루떡과
조기찜과 포육으로 회정하는 뱃길의 무사를
비는 제사가 있었다. 대선 다섯 척이 앞을
서고 중선, 소선 들은 뒤를 따랐다. 말로야
개야도(開也島)를 비켜 오식도와 연도를
거슬러 원산진(元山鎭)을 지나서
안흥진(安興津)과 영종도(永宗島) 앞바다로
오르는 뱃길이라 하나 여의치 못한 일이야
너무도 많았다. 오식도와 연도만을
비켜나면 풍랑과 정면으로 맞부딪쳐야 하고
더군다나 안개가 심해 닻을 내리고 행선을
멈추고 있어야 할 때가 많았다.
  군산포구가 시야에서 점점 멀어지고 바다
한가운데로 배가 뜨자 바람이 드세게 불기
팽팽하게 잡아매고 장선한 세곡들이 이엉을
덮는 축이랑 한참 부산하게 돌아가면서도
선인들은 연신 입방아들을 찧고 있었다.
  "자 이제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구만.
하기야 집구석을 돌아간다 한들 알밤 같은
자식새끼들이 있을까 엉덩이 큰 여편네가
있을까. 독수공방으로 긴 밤 지새울 걸
그래도 집으로 간다 하니 어쩐지 심기가
싱숭생숭한 건 마찬가지구만."
  "평생 엄지머리로 지내는 것도 나쁠 것이
없다네. 날 한번 보게, 농삿일에나
뱃길에나 간에 손방에 비각이라 일곱
식솔을 먹여살릴 재간이 없다네."
  이제 군산포구가 선미(船尾) 끝에 두둥실
뜬다. 오식도(筽篒島)가 가까워질
모양이었다.
화산(花山)과 봉홧둑이 있는
설림산(雪林山)이 나란히 이마를
마주하면서 건너편의 서천포(舒川浦)를
바라본다. 여기서 오식도를 뒤로 버리면서
오른편으로 완만하게 뱃길을 꺾으면 다시
좌현(左舷) 쪽 멀찍이로 개야도(開也島)와
죽도(竹島)가 푸른 삿갓처럼 연파(煙波)에
떠밀린다. 개는 주위가 13리 되는 섬이지만
죽도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 서천
앞바다에는 암초가 여럿이어서 될수록
개야도를 가까이 끼고 돌아 나가는 것이
난리를 피하는 방법이다. 군산포에서
홍주목(洪州牧) 비인현(庇仁縣)의
마량포(馬粱浦)까지는 뱃길을 30리로
잡는다. 개야도를 뒤로 하면서부터 잠시
망망대해에 뜬 것처럼 보이다가 금방 바다
육지가 마주 다가오는 것인데 그것이
비인읍치에서 마량까지의 30리의 육로이다.
마량에서 남포(藍浦)까지는 또한 30리가
수월하다. 미인만을 우현으로 하고
비켜나면서부터 벌써 중화때를 한참이나
넘긴 시각이 되었다.하룻밤만 순항을
한다면 홍주와 서산으로 서로 나누어진
원산진(元山鎭) 앞바다에 이르고
거기서부터 바다에 해도(海島)들이 점점이
떠 있어 큰 풍랑은 없었다. 설혹 풍랑을
만난다 하여도 인근의 해구(海溝)에 손쉽게
대피할 수가 있다.
  "오늘 밤이 첫 고비입니다."
  고물간에 버티고 앉아 키[舵]를 잡고
있는 도사공이 선교루(船橋樓)에 앉아 있는
천봉삼에게 소리쳤다. 봉삼이 고개만
  이물대나 고물대나 할 것 없이 돛에 걸린
열다섯 칸의 활대가 기운껏 당겨놓은
활시위처럼 휘어져 있고 용촐줄과
아디줄에서는 쉴새 없이 생황(生簧) 퉁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풍이라 배가 하늘에 뜰
지경이나 파도가 일지 않으니 그런 다행이
없었다. 마침 해넘이 때라 이글거리는 해가
바다끝에 잇대어 있었다. 돌팔매를 던진다
하여도 맞힐 것같이 떨어지는 해는 가까이
있었다. 봉삼은 문득 조성준을 떠올렸다.
그만한 곡식을 도둑질할 적에도 연간한
노역이 들지 않았을 터이고 그 곡식을 다시
내어줄 때에도 필유곡절이었을 것이다.
그런 곡식을 적굴 사람들이 순순히
내어놓았다는 것이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었다. 조성준과 그와의 연비를
아닌데도 결과는 너무나 손쉽게 이루어진
셈이었다. 그 속사정을 더 캐어묻지 못한
것이 불찰이었다. 곡식 되찾는 일만을 중히
여겨 셈평을 따져볼 겨를을 찾지 못한
것이었다. 봉삼은 문득 짧게 한숨지었다.
  이글거리던 해가 바닷속으로 가라앉는가
하였더니 물결은 온통 피를 쏟아부은 듯
붉게 이지러졌다. 이물간과 고물간으로
나와 앉은 선인들의 얼굴도 반조(返照)를
받아 이글이글 타는 듯하였다. 선단
이곳저곳에서 화장들이 피우는 연기가
하늘에 날기 시작하고 해상의 장기가
훈훈하였다. 멀리 바라보이는 해안마을의
소금가마에서 피워올리는 연기가 그림처럼
바라보였다. 해가 떨어지자 뱃전에서
비린내가 풍겨올랐다.
  "어기여차 배 띄워라, 만경창파
가자꾸나. 어기여차 배 띄워라, 우리 인생
죽어지면 모든 것이 허사로다. 어기여차 배
띄워라, 호의호식 못해보고 수중에서
성장하여 수중으로 다니기는 육로같이
다니면서, 해중풍파 다 겪다가 아차 실수
하게 되면 고기밥을 면할쏘냐 해중고혼
면할쏘냐. 어떤 놈은 팔자 좋아 고대광실
높은 집에 남녀노비 거느리고 호의호식
하는구나. 우리 팔자 기박하여 어부놈이
되었구나. 이놈 팔자 기박하여 정처없이
다니다가 아치 실수 하고 보면 부모처자 못
보고 수중고혼 되나보다. 고기밥이
되나보다. 어야디야 어야디야 이놈의 팔자
보소. 부모처자 생이별로 팔도저자에
흩어지고 죽을 곳을 알면서도 할수없이
이것이니 이것저것 생각 말게 천생생업
할수 있나. 어허디야 닻 감아라 돛 달아라
배 띄워라."
  선태(蘚笞)가 낀 뱃전 가녘을 두드리며
뱃노래를 칭얼거리던 선인이 한숨에
말하였다.
  "자, 이제 곧 해월(海月)이 뜨렷다."
  "선등을 켜라."
  선교루에 서 있던 봉삼이 소리질렀다.
담록색 물결이 뱃전에 시끄럽고 먼 하늘은
벌써 잿빛이었다. 단주(端舟) 두 척이
선단을 비켜서 비인해안 쪽으로 줄달음을
치고 있었다. 이물간의 사람들이 소리를
치자 어부들이 창막 위로 올라서서 마주
손을 흔들었다.
  임선단(賃船團)은 밤새 뱃길을 몰아
삽시도(揷矢島), 마차도(麻次島),
불모도(不毛島), 율도(栗島),
장고도(長古島), 길산도(吉山島) 같은
해도들이 촘촘히 박힌 원산진 앞바다에
이르렀다. 원산도는 주위가 47리에 이르는
큰 섬으로 수영(水營)과 목장(牧場)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뒤로는 경개가 좋기로
이름난 안면도(安眠島) 70리가 보령
앞바다를 가로막고 있다. 선단은 여기서
서로 호기(號旗)를 올려서 안면도에 배를
정박시키고 하룻밤을 묵기로 하였다.
길소개가 탄 배에서 정박해야겠다는 호기가
올랐기 때문이었다. 안면도에는 원산진
수영에 공역(工役)을 지는 선장(船匠)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물이 스미는
선방(船房)을 고치는 일이나 부서진 활이나
있었다. 게다가 배를 얻어 탄 봉은사
행중들이 해애(海艾)를 뜯어 입에 물린다.
향을 피워준다 하여 일찍부터 닦달을
하였건만 기한(飢寒)에 시달려 겨우
모가지만 형용으로 달려 있던 처지들이라
당초부터 수질(水疾)을 앓아 스무 명이
넘는 행중들이 몰사죽음을 할 판이었다.
하룻밤이나마 하륙을 시켜 반정신이나마
되찾도록은 조처를 하여야 했다. 일색이
다해갈 주음 선단은 안면도
중장(中場)포구에다 배를 잇대었다. 선단이
배를 정박시키기 시작하자 갯가 사람들과
군총들의 식솔하며 객점거리의 어민들이
선착장으로 쏟아져 나와 금방 어지간한
저잣거리처럼 복작대기 시작했다. 배가
닿자마자 해금내가 등천하는 선방이나 뜸
엉금엉금 기어나왔다.
  모여든 구경꾼들 중엔 더그레 차림인
수영의 군총들고 눈에 띄었는데 선단에서
때아닌 사당의 계집들이 하륙을 시작하자
벌려진 입들이 닫혀지질 않았다.
  "얼씨구, 저것이 뚱쭝이패(굿중패의
하대)들 아닌가?"
  "히야, 저게 사당패 논다니들이 아닌감."
  "논다니들이 적실하구만. 내 열다섯
소싯적에 다락원 객점거리에서 곰뱅이를 튼
굿중패들을 딱 한번 구경한 이후로 이번이
두번째 일세그랴."
  "저것 보게. 치마 속에 속곳도 입지
않았네. 저 흰 죽사발같이 허옇게 자빠진
살피죽 좀 뒀다 보게."
  "얼씨구, 이놈 좀 보게. 오랜만에
아무리 논다니 잡색들이기로서니 몸가축을
그처럼 허술히 할까?"
  "누깔이 뒤집힌 건 바로 네놈이여. 저기
갯벌로 내려와서 벌렁 나자빠지는 논다니의
달덩이 같은 사추리가 허옇게 나오는 게
보이지 않는감?"
  "아아니, 내 사십평생에 저런 꼴은
처음일세. 제게 해상(海床)에서 기어나온
여귀가 아닌가?"
  "끼놈, 해낮에 무슨 귀신타령이여."
  "쌈지에 챙긴 푼전이나 있으면 어디
오랜만에 가죽확에 대고 때한번 걸판지게
벗겨보세나."




  선단이 해구에 정박을 마치고 선인들도
하륙을 시킨 다음 길소개는 이제 겨우
반정신을 되찾은 굿중패 행중의
곰뱅이쇠[化主]를 손짓하여 불렀다. 마침
포구를 스쳐가는 해척(海尺)들을 기다려서
바다 쪽으로 내다보고 낸 휘장 친 술국집이
있어 곰뱅이쇠를 그곳으로 은밀히
불러들였다.
  "행수어른 어쩐 일인뎁쇼?"
  곰뱅이쇠는 행중의 수질 때문에 중도
하륙을 시키지나 않을까 하여 불러올
때부터 낯짝이 외꽃이 되었다. 멍석 위에
무릎을 꿇고 앉는 궐자에게 길소개는
나직이 물었다.
굿청을 차릴 수 있겠나?"
  "행중이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사물(四物: 호적, 꽹과리, 징, 북)이
온전한 판에 굿청 채비야 안 될 것
없습니다만 불각시에 굿판을 벌이시라니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나으리."
  말은 그렇다 하나 궐자가 영색을 짓고
비나리치는데,
  "까닭이야 구태여 알 것이 없네. 굿청을
차려서 자정까지만 신명 떨음을 한번
해주게."
  "아이구, 무슨 당부의 말씀입니까.
나으리 분부시라면 털을 뽑아 신이라도
삼아 올릴 처지인데 신명떨음을 하시라는
데 비각날 리 만무입니다."
  길소개가 궐자를 가까이로 주질러 앉히고
궐자도 몇번인가 상툿고를 주억거리는
것이었다. 궐자는 탁배기가 가득한
입사발을 주욱 들이켠 다음 짠지쪽을 입에
문 채 득달같이 휘장 술집을 나와
구경꾼들에 둘러싸인 행중 채거리들께로
뛰어올랐다.
  "곰뱅이를 텄소이다."
  불쑥 내지르는 한마디에 꼭두쇠가 무슨
흰소리인가 하여 곰뱅이쇠의 뒷덜미를
낚아채며 물었다.
  "해낮에 물귀신을 만났는감?"
  곰뱅이쇠가 나직이 둘러대기를,
  "행수선인이 갯나루 근처에 굿청을
차리라는 것입니다요."
  "이 아픈 날 콩밥 한다더니 다 죽어가는
판에 무슨 분부가 그러하시던가."
염장(鹽場)의 소금꾼들에게 재간가진 대로
연희를 보이랍디다. 치하금은 두말할
나위도 없고 저녁 끼니까지 보시를
하겠다는데 박절하게 굴 까닭이 없지
않습니까?"
  곰뱅이쇠는 꼭두쇠의 귀를 당겨 뭐라고
한참이나 귓속말을 나누었다. 곰뱅이쇠는
식화주(食化主: 밥곰뱅이쇠)를 선단의
화장에게 보내어 저녁 지을 곡식을 구처해
오게 하는 일변 저승패(기능을 잃은 노인),
나귀쇠(짐꾼), 뜬쇠(각 종목의 연희자 중
선임자) 할 것 없이 행중을 휘동하여 배에
실었던 풍각 제구들을 하륙시키었다.
  "저것 좀 보게. 행중들이 굿청을
차리려는가 보이."
  "곰뱅이를 튼 모양이군. 오늘 밤 복에
  굿중패 행중들의 부산한 움직임에 놀란
것은 본바닥 갯거리 사람들뿐만 아니라,
작반하였던 선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언뜻
길행수가 굿중패를 승선시킨 연유를 알듯도
하였다. 어쨌든 하룻밤을 무료하게 보내는
것보다는 다행한 일이었다. 굿중패들은
도선장을 왼편으로 비켜나서 활 두어 바탕
상거한 후미진 해장죽숲 앞 헌터에다가
굿청을 차리기 시작했다.
  식화주와 암동모(여사당)와 삐리(초보
기능 연수자)들이 한데 어울려 노구솥을
걸고 저녁밥을 짓는 사이에
수동모(남자)들과 가열(뜬쇠와 삐리들
사이의 기능자)들은 덜미포장막을 치기
시작하였다. 우선 해장죽숲에다 바싹
잇대어 탈막[改服廳]을 치고 서너 걸음
작은 멍석 한 닢을 깔아 덜미놀이판을
만들었다. 작은 멍석 앞에는 큰 멍석 두
닢을 연폭으로 깔아 덧뵈기놀음판을
차리었다. 그리고 장작 두어 짐을 날라다가
화톳불을 피웠다. 덧뵈기놀음판을 중심으로
한 좌우 양편에는 사오 장 높이의 줄기등을
서로 마주보게 잇대어 세우고 어름녹밧줄을
열두발 길이로 당겨 걸었다. 이제 굿청
차림이 끝난 셈이었다.
  어둑어둑 일색이 다하자 소금꾼이며
수영의 군총들, 선인들, 아녀자들 할 것
없이 백여 명을 헤아리는 구경꾼들이
굿판으로 모여 들었다. 굿청 차림이 끝나자
키 얕은 솔소반에 화주 한 방구리와 북어
몇마리가 제수(祭需)로 올려진
터고사(告祀)가 시작되었다. 꼭두쇠가
  "흠향(歆饗) 받자옵시고 이물의 대대선왕
고물의 장군선왕 허리칸의 화장선왕,
본당의 각시선왕, 동참취포(同參醉飽)하신
후에 대해만리(大海萬里) 가는 우리 밤이면
석을 잡고 낮이면 돛을 달아
오량남천(五粱南天) 긴 순풍에 평판에 물
실은 듯 배도 무쇠배가 되고 닻도 무쇠닻이
되어 억십만큼 퇴를 내어 돛대 끝에 봉기
찔러 웃음으로 연화받고 춤추며 돌아가게
점지하여 주옵소서......"
  연이어 고수레가 있었고 굿판은
시작되었다.
  좌청우홍(左靑右紅)의 원동에 초록색
소매 달고 청황남색(靑黃藍色) 끝동을 단
더그레 떨쳐입고 머리에 화관을 눌러 쓴
스무 명이나 남는 행중들이 신명을 잡으며
칠채풍물(앞놀음)을 하늘이 찢어지게
울리니 십리에 뻗은 해장죽숲이 가지를
떨고 갯가를 날던 갈매기가 놀라 뛰었다.
처음엔 느린채가락으로만 넘어가다가
북수님의 대나무 둥글채가 자진가락으로
넘어가자 굿판은 어느새 불을 쏟아부은 듯
열기가 후끈거렸다. 구경꾼들이 놀란 것은
당초에는 암동모들이 여남은이나 되는 줄
알았으나 춤사위를 보자 하니 그 행중에서
사오 명은 여장(女裝)을 한 삐리들이었다.
  사당패의 남색 조직은
수동모(서방거사)와 암동모(피조리)라는
명색들로 이루어졌으나, 수동모는 가열
이상이었으며 암동모들은 삐리들이
감당하여 계간(鷄姦)을 파는 경우가
많았다. 행중의 우두머리인 꼭두쇠일망정
못한다는 율이 있었고, 암동모의 수효가 전
행중의 반이 넘는 경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전 식구가 짝을 지을 수는
없었다. 남사당 굿중 패거리들 사이엔 금방
입대(入隊)한 삐리들의 쟁탈전이 치열한
것이 보통이었다. 그것은 서방거사들이
자기 몫의 암동모를 갖기 위한 방편도
되었고, 또한 동탕하고 신색이 해말쑥한
삐리들이 많은 굿중패일수록 대처로 나가면
눈길을 많이 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패거리들의 율은 매우 엄중한 것이어서
한번 입대한 패거리가 도망을 하면 끝까지
따라가서 잡아다가 즉살을 시키기도
하였고, 식구들간에 물건을 훔치거나
패거리의 비밀을 여항의 사람들에게
누설하면 작당하여 모둠매를 하거나 몇날
서방거사들은 연희가 끝난 다음 자기 몫의
몽가리내를 저자의 왈자들이나 머슴이나
보부상들에게 팔아서 해우채를 챙기고
행중의 노자로도 충당을 하였다. 별빛을
따라 팔도 구석구석을 유랑하면서도
끊임없이 연회를 익혀나가는 것이었고
적지를 헤매면서 끼니 굶기를 흥부네처럼
하며 고개를 넘고 물을 건너 발 디딘
마을마다 곰뱅이를 트기는커녕 어귀에서
쫓겨난다 할지라도 연희를 익히고 단련하는
일만은 죽기까지 하였다. 괄시와 천대가
그들의 것이었기에 몇마디의 모진 욕설에도
쉽게 흥분하지 않았었고 놀이채의 많고
적음에 결코 심지를 괴롭히지 않았다.
목숨을 이어가는 것과 끊어지는 것은
하늘의 뜻이니 저승패가 밭두렁을 베고
행중의 손으로 자갈을 주워 돌무덤을
만들었다. 저승패의 혼백이 행중의 뒤를
따라오게 함이었다. 식구들이 쪽(아편)에
빠져 폐인이 되고 도둑으로 몰려 병신이
되는 자 허다하였으나 결코 버리지 않고
행중에 달고 다녀 저승길 문턱에 득달할
때까지 신명과 고락을 같이 하였다. 그들의
아픔과 서러움과 외로움을 새겨듣는 자들은
그들뿐이란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삐리에서 가열이 되기까지는 여장을 하여
뜬쇠들에게 남색을 팔고 봄 되어 부황나고
겨울 되어 강시가 난다 하더라도 결코
고향으로 돌아갈 심기를 품지 못하였으니
풍물가락에 취해서 고향의 이름조차도
어느덧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한마당의 풍물놀이가 끝나고 행중이
나서서 시나위놀음을 시작하며 사설을
푼다.
  "자 이놈의 물대접이 돌아가는 것을
보시오. 청루 큰애기 궁둥이 돌리듯,
자드락길 올라가는 피아말 궁둥이 돌리듯,
기름 먹인 방앗고 돌아가듯 돌아가는
물대접이오."
  처음에는 왼손에 앵두나무 막대기를 손에
쥐고 버나를 때리면서 돌리는 때릴사위로
신명을 잡다가 갑자기 몸을 한바퀴 홱
돌리면서 버나를 공중으로 올렸다 다시
받아 돌리는 던질사위로 이어졌다. 왼발
사이로 팔을 집어넣어 다리 사이로 버나를
던져올렸다가 바른 손에 쥔 막대로 다시
냉큼 받아 돌리는 다리사위. 이번엔
앵두나무 막대 두 개 중에 한끝에는 바늘을
것처럼 보이는 버들버나로 이어진다. 뼘
가웃 곰방대 끝에 다시 닷 뼘 장죽을
연이어 세우고 그 위에 다시 앵두나무
막대를 연이어 세운 다음 버나를 돌리는
삼동버나로 연희가 이어지다 구경꾼들
입에서는 한입같이 탄성이 터져나왔다. 그
동안 삐리와 암동모들은 삼팔주 수건을
팔랑거리며 인정전을 구걸하는 것이었는데,
둘러선 구경꾼들이야 던져줄 인정전은
없지만 한마디씩 거들었다.
  "햇 고년. 물오르는 능수버들같이
야들야들한 허리 한번 끼고 뜨끈뜨끈한
방구들에서 뱀새도록 뒹굴었으면 여한이
없겠네."
  "저년 보게. 살꽃 파는 논다니
아니랄까봐 살신이 포르족족한 거며
생겼네. 난 벌써 바짓가랑이부터
축축한걸."
  "어허 자넨 벌써 권신이 되었나? 저리
비켜, 길내 옆에 섰다가 비역 주겠네."
  "자네 저 서방거사놈들께 입채 좀
서주게. 오랜만에 날고기 맛좀 보세."
  "주제하구선 궁상 떠네. 내 딱 분질러
말한다면 우리가 해포 이웃이라는 처지지만
자네 입채 설 것 있으면 나부터
해보겠네그려."
  "하기야 하면 뭘 해. 먹구름에 학
지나가듯 잠깐 희다 말걸."
  "아서, 노루잠에 개꿈이여. 제 쌈지에
꽃값 없으면 유난 떨지 말고 구경이나
착실하게 해두는 게지."
  그때 버나잽이가 개복청으로 퇴청하자
우선 마수걸이 팔꿈치와 무릎을 붙여서
엎드리고 곱게 거꾸로 곤두질하는 노루걸이
땅재주 연희부터 보이는데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상통이 오종종하고 키꼴이란
게 소낙비 오는 날엔 코에까지 흙탕물이
튀어오를 것 같은 매호씨(어릿광대)가
나와서 살판쇠를 상대로 재담을 매긴다.
  "자 긴긴 오뉴월에 방금 소낙비 묻은
먹구름은 몰려오지요, 고삐 쥐고 몰고 가는
소는 남의 콩밭 고랑으로만 대가리를
디밀지요, 물찌똥은 똥구멍에서 삐죽삐죽
튀어나오는데 등에 지고 있는 꼴짐은
자꾸만 옆으로 넘어가고, 꼴짐에 찔러둔
날이 시퍼런 낫은 흘러내려 발등을 찍을 것
같지요, 괴춤은 자꾸만 흘러내려 양물이
삐죽하네 보이지요, 할 수 있나요, 지게
뛰기를 할밖에요."
  매호씨의 사설을 듣고 있던 살판쇠는
멍석 한쪽 끝에서 양팔과 양발만을 땅에
대로 앞뒤로 몸을 뒤집어 나갔다.
  매호씨가 한발 앞으로 썩 나서며,
  "자 설사는 닦달을 하였다만 이번엔 뒤
닦을 측목도 없고 그렇다고 돌이끼도
없것다, 할 수 있나 궁둥이 쳐들고 뛸
수밖에요."
  그러자 살판쇠는 양팔을 오므려
책상다리를 하고 거꾸로 서서 걸어가는
앉은뱅이 팔걸음으로 땅재주를 넘었다.
  "그놈 말도 잘 듣는다. 하기야 만신에
흠파없고 효행이 출천키로 아비 분부
거역하 리 없지. 그래 거꾸로 서서 보니
무엇이 보이더냐?"
  "네놈의 하초에 달린 말라 비틀어진
좆대강이 보인다."
  "에기놈, 앉은뱅이걸음을 하는 줄
알았더니 자발없이 남의 하초구경은 왜
했느냐? 그럼 이번에 돌아때기에 앞곤두를
연거푸 서보아라, 그 누깔에 무엇이
보이는가?"
  "그야 수월하지."
  둘러섰던 아녀자들이 허겁스레
치맛자락을 사려 잡는데, 살판쇠는 양손에
침을 뱉어 뭉기더니 섰던 자리에서 그대로
휙 돌아서며 이쪽 저쪽 팔을 멍석에다
짚으면서 떨어져 갔다. 그리고 반듯이 서서
앞으로 서너 발짝 걸어가다 말고 허공에다
손을 짚고 공중회전을 하였다. 매호씨가
신바람이 나서,
이번엔 지팡설손으로 넘어라."
  "그건 좀 어려운데."
  "이놈, 얻다 대고 방색이여? 네놈을
뜬쇠로 만든게 누군데 그러느냐?"
  "그럼 한번 해볼까?"
  "성가시게 굴지 말고 거행하렷다."
  이번엔 한번은 궁중에 뜨게, 다시 한번은
재게 번갈아 법사를 넘다가 나중에 손을
쓰지 않고 허공잡이로 공중에 떴다가 몸을
한바퀴 뒤집으면서 땅에 떨어진다.
  "어허, 이 굿중패가 어디 굿중패여
그래?"
  둘러섰던 군총 중에 한 놈이 상툿고를
넘어뜨리게 놀라면서 탄성을 내질른다.
옆에 섰던 동무 군총이,
  "맞았어. 그 소문이 왜자한 안성(安城)
  "아녀. 양주 봉은사 신표를 갖고 있는
패거리란 게여."
  "알고 있었으면 묻기는 무슨 지랄로
물었나. 어쨌든 데데한 패러리는 아니여.
한절에 갯땅(전라도)으로 출행하였다가
행중이 전부 부황이 나고 저승패는 둘이나
밭두렁을 베고 말았다는구만. 이 풍상 저
풍상 다 겪으면서도 연희 하난 일품으로
익혔구만."
  "쌈지에 푼전이나 들었으면 놀이채나
던져. 저 애사당들 눈총받기에 부끄럽지도
않은감."
  "이끼 남 타박 말고 자네나 내어놓게."
  굿판 가녘에 피워놓은 화톳불은 활활
타올라 모여선 구경꾼들 얼굴도 불에
익었다. 연희자들의 이마엔 땀방을이
사이가 없었다.
  그때 흰 저고리에 푸른 바지 입고 더그레
껴입은 어름산이(줄타기)가 덜미포장막
앞으로 사뿐히 나와 선다. 개꼬리 상모에
왼손에는 합죽선을 활짝 펴들었다.
줄기둥에 맨 바를 타고 올라 어름 녹밧줄
한편 가녘으로 성큼 올라서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꽹과리와 징과 북, 장고가
자진가락으로 넘어가고 거기에 날라리가
곁들여져서 덩더꿍 칠채가락으로 넘어가다
말고 뚝 멎는다. 녹밧줄 아래에선 매호씨
제못에 겨워 고꾸라졌다 일어서며 재담을
건넨다.
  "어허 임자 곱기도 하여라. 분세수 곱게
하여 낭자 짓고 제비행전 졸라매고 배자
맵시있게 떨치었구나. 나주칠 팔모반에
어동육서 좌포우혜 좌홍우백 벌여놓고
게트림 길게 빼고
소지삼배(燒紙三拜)하였으니 어름에서
떨어져 모가지는 부러지지 않겠다.
과객글은 개좆 같아 앉으면 곧 나오것다 나
또한 그러하네. 어름산이 배자 입어 남장은
하였지만 암컷이 분명한지라 내 하오가 안
나와서 반말로 묻겄는데 임자는 어느
고을에서 농탕치다 어름산이가 되었는가?"
  어름산이 그 말 듣고 합죽선을 좍 펴서
한번 흩뿌려 몸을 가누면서,
  "어따 그놈 입정만 더러운 줄 알았더니
방귀냄새도 상종을 못하겠구나. 어름
밑에서 얼씬거리지 말고 썩 비켜나거라.
여기 있는 나로 말하면 경기 안성땅
내로라는 대갓집의 둘째자제분과
더러웠지. 몸 볼 적에 차던 서답글방 앞에
끌러놓기, 밥 푸다가 이[蝨] 잡기, 머슴
잡고 어린양하기, 코 큰 총각 동이술에
섬밥 지어 대접하기, 밤이면 마을 돌고
해뜨면 낮잠자기, 양식 퍼내 떡 사먹고,
속곳 벗고 추천(그네)하기, 젊은 중놈 잡고
혀 짧은 소리, 개 헐레 붙는 데 구경하기,
혼인발에 바람잡기, 상인 잡고 허벅지
보이기, 방사하는 데 문 열기, 우물가에서
뒷물하기, 상두꾼 괴춤 헐기, 남의 서방
기물 자랑, 양도가 합세할 제 엉덩이
잡아빼기, 망부석(望夫石)에 똥싸기,
밋남진[本夫] 뒤에 두고
소대남진(사잇서방) 보느라고 남의 집의
축담 위를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듯 하다가
간통중죄로 조리돌림을 당하고 마을에서
  매호씨가 되받아치기를,
  "임자도 듣고 보니 논다니 잡색질로 꽤나
농탕을 쳤네그려. 나로 말하면 과갈간에
모두 향반(鄕班)에 그쳐 출사나 해볼까
하여 각고(刻苦)로 학문 닦고 남북 전답
모두 팔아 조선팔도 떠다니며 명산에
산제하기, 대천에서 큰굿하기, 대찰 찾아
불공하기, 미륵 선 데 집짓기, 팔도 적선
다 하였네만 부처님 은혜 입기는커녕
감당송(甘棠訟)에 박이 터지고 회술레를
돌려 마을에서 쫓겨났다네. 그래 임자는
어름에 올라보니 무엇이 보이는가?"
  어름산이가 합죽선을 이마에 올리고
먼빛을 바라보는 시늉이다가,
  "치더보니 삼십삼천 내려뜨니 이십팔수.
오방신장(五方神將), 사해용왕(四海龍王),
팔만제불이 다 굽어보이네."
  "또 무엇이 보이는가?"
  "가까이는 용산 삼개 뗏목배며 멀리는
용왕길이 훤히 바라보이네."
  "용산 삼개 굿중패에 안부나 전해주고
용왕님 영등신께는 풍년이나 빌어주게."
  "여부가 있나. 이미 저편에서 먼저 알고
안부를 전하네."
  "임자, 기왕지사 어름에 올랐으니 뭘 좀
구경시키게나."
  "그렇고말고. 내 놀다 떨어지면 자네
모가지가 부러질 것이니 저쪽으로 썩
비켜나게."
  그때 벌써 어름산이는 합죽선을 모두어
쥐고 사추리 사이로 줄을 타고 ㅇ았다
일어섰다 허공잡이를 놀았다. 아래에 선
초풍을 하는 시늉이었다. 매호씨가 다시
재담을 건네기를,
  "임자, 시방 무얼 하는가?"
  "망우리(달맞이)를 가자면 몸가축에
성적(成赤)을 해야 않겠는가?"
  녹밧줄을 타고 앉은 어름산이가 연지
찍어 화장하는 시늉이었다.
  "임자, 무얼 하는가?"
  "내 삼개땅 김풍헌의 맏아들과 정분이
터서 시방 그리로 찾아가려고 성적을
한다네."
  "김풍헌집 맏아들이 어떻게 생겼나?"
  "신수야 헌칠하고 양물이야 물꼬를
뽑아낸 듯 기름이 철철 흐르지만 한 가지
하자가 있다네."
  "그 하자가 무엇인가?"
  어름산이가 밭고랑에 들어 콩을 심는
것처럼 양발을 폈다 오므렸다 하면서
절름발이 걸음으로 녹밧줄을 타고 나가자
구경꾼들 입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어쩌다 절름발이와 정분이 났네그려."
  "나 같은 천출내기가 반열에 끼는 가문의
책방 도령님께 살수청을 들게 되었는데
절름발이면 어떻고 청맹과니면 어떤가.
그만한 분복이 또 어디 있을까."
  "그래 김풍헌네 집에 당도하여 정인을
만났는가?"
  "정분 튼 책방 도련님은 간 곳 없고 저승
문턱에 턱을 건 김풍헌이만 있네."
  "그렇다면 김풍헌이 방수 들라
호령하던가?"
  "아닐세. 그 양반이 뒷산에서 밤나무를
  "밤나무를 어떻게 지키던가?"
  그러자 어름산이는 줄 위에서, 밤 훔치러
몰려온 동네 각다귀들을 튀기듯 어름 위를
휘저으며 이리 뛰고 저리 뛴다.
  "각다귀들이 쫓겨가는가?"
  "혼비백산 흩어지는데 돌팔매를 맞은
놈도 있네."
  "그래 어찌 달아나던가?"
  "돌팔매에 맞은 놈이 한 발로만 뛴다네."
  어름산이가 한 발로 계속 뛰며 앞으로
나아가는 외허공잡이로 맞은편 줄기둥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서서는 한쪽 정강이를
꿇고 한발로 밀고 나아가는 외호모걸이를
연이어 보여주자, 굿판에서는 박수소리가
무너진다.
  "자 이젠 내려오게. 술화주가 기다리고
  어름산이가 개복청으로 퇴청하자, 행중의
패거리들이 쏟아져 나와 연이어 막판의
덧뵈기춤으로 이어질 판인데 멀리
염장(鹽場) 어름에서 이상한 외마디 소리가
들려왔다. 알고 보면 그 외마디 소리는
이미 벌써부터였으나 굿중패들의
자지러지는 풍악소리에 묻혀버리곤 했던
것이다. 그 소리를 맨 처음 들은 것은
선단에서 하륙하여 연희를 구경하던
송파저자 왈자 출신인 선인이었다. 위인이
마침 옆에 선 동패의 옆구리를 꾹 찔렀다.
  "가만, 이게 웬 소린가 아닌가? 염장
쪽으로 귀를 기울여보게. 아마 사람
살리라는 소리 같은데?"
  "사람 살리라니?"
  "귀를 기울여보게나. 멀지만 염장 쪽에서
  두 사람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쑤군대더니 옆에 서 있던 동패 하나를 굿판
밖으로 불러내었다. 그리고 염장 쪽으로
재빠른 걸음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 사람이 굿판을 벗어나서 염장의
소금막이 바라보이는 자드락길로
꺾어들려는 찰나, 개펄의 왼쪽을 따라 길게
뻗은 무성한 해장죽숲에서 한 작자가 불쑥
나타나서 목을 가로막았다.
  "노형들 어디 가시우?"
  "화받이 앞에 웬 도깨비가 뜸베질이여?"
  세 사람이 무심코 고개를 들었더니 목을
가로막고 선 위인은 굿중패의 뜬쇠로
징수님으로 행세하는 작자였고 다른 한
놈은 행중의 꼭두쇠였다.
  세 사람은 일단 안심을 하고,
어디서 불쑥 나타나서 남의 길을
가로막어?"
  "못 가십니다. 성명없는 굿중
패거리들이라고 깔보지 마슈."
  "어허, 이거 때아닌 망신살이 아닌가.
해수(咳嗽)에 헐떡증을 겸하고
울화(鬱火)에 물조갈을 겸한다더니 우리가
그 짝일세. 못 가다니 우리가 시방 어딜
가려는데 못 간다는 게여? 이놈들 가서
탈박놀음 신명이나 풀 노릇이지 물린
자국도 모르면서 남의 길은 왜 가로막고
지랄여? 손찌검을 못 당해서 뱃구레가
근질거리냐?"
  "물린 자국을 모르다니요? 턱없이
노형들을 훼방 놓고 있을 까닭이 없지요."
  "심기를 바로잡고 살려 해도 이런
시키기 전에 저리 썩 비켜."
  두 놈을 상종하여 입씨름이 한참인 중에
선인 동패 중의 사람이 문득 싸개통을
가로막고 나섰다.
  "가만들 있어보게. 이놈들 쓸까스르는
거동이 필유곡절이 아닌가?"
  염장 쪽으로 가자면 양편으로 해장죽이
울창한 가팔진 잘록이를 벗어나서 활 두어
바탕만큼이나 쫓아가야 하였다. 그러나 두
놈이 목을 잡고 비켜주지 않으니 이건
간계가 있음이 분명하다는 뜻이었다. 왈자
패거리들 중의 하나가 비틀듯이 목자를
부라리며 물었다.
  "이놈들, 아가리에 손을 집어놓어 창자를
뽑아내기 전에 잽싸게 길을 내놔. 도대체
어떤 놈이 네놈들을 사주하더냐?"
까먹는 소리요?"
  "보아하니 네놈들이 우릴 녹록하게 보는
모양인데, 우리 본색들이 누군 줄 아느냐?
네놈들이 양주 봉은사 신표를 지닌
굿중패가 적실하다면 송파장터 송만치성님
수하에서 가락을 잡던 쇠전머리 시라소니들
선성도 일찍이 들어 알고 있겠지."
  "그야 듣고 있구말굽쇼."
  "이놈들, 네놈들 눈깔은 명태껍질로
씌웠느냐? 이놈 똑똑히 봐라, 우리가
누군가."
  그 말에 꼭두쇠란 놈이 괴춤을 헐더니
부스럭거리고 쌈지를 꺼내 부싯깃에다 불을
댕기는 것이었다. 입으로 불씨를 훅훅 불어
이편 세 사람의 얼굴로 다가서는 순간 이쪽
선인들의 주먹이 어느새 꼭두쇠의
냈다.
  "아쿠쿠!"
  놈이 단매에 박을 두 손으로 싸안고 뒤로
벌렁 나자빠지는데 뒤에 섰던 뜬쇠는 역시
누구의 발길질에 차이어 끽 하더니 뒤편의
해장죽숲의 모퉁잡이로 박히는 것이었다.
  "기왕 신명 내는 김에 이놈들 사그리
도륙을 내어버릴까."
  "아서. 이놈들은 두고 어서 소금막으로
뛰어. 소리지른 푼수하며가 아무래도
선단의 동패여."
  세 사람이 득달같이 소금막을 겨냥하여
뛰는데, 이제 굿판에선 파장 바람의
덧뵈기춤이 자진모리로 무르익고 있었다.
굿판에 남아 있던 뜬쇠들이며, 버나잽이,
어름산이, 애사당 계집들 할 것 없이 멍석
돌고 있는데, 역시 개꼬리 상모 쓴
상무동님이 멍석 한가운데로 벗어나며
걸음사위춤을 엮어올린다. 방정맞은 양반
걸어가듯 발을 꼬아 걷는 까치걸음사위,
굽은 떼지 ㅇ고 무릎만 굽혔다 폈다 하며
무진(舞進)하는 게걸음사위, 양손을 쳐들고
마주잡고 고개를 좌우로 까딱거리며 좌우로
흔들어대는 일변 몸은 옆으로 나아가되
발을 떼지 않고 구르며 매기는
가재걸음사위, 그런가 하면 오르팔을 들어
오른쪽으로 돌아가고 왼팔을 들어 왼쪽으로
돌아가는 새우걸음사위로 이어진다.
막바지에 가서는 오른손은 오른손 어깨에
걸치고 어깨를 안으로 잔뜩 움츠려 한바퀴
휘그르르 돌며 수탉이 암탉을 덮치듯
얼싸안고 행요 시늉을 하는 빗사위걸음이
맞추어 매겨나가니 금줄 밖에 모여선
구경꾼 어느 한 사람 엉뚱한 곳에 시선을
돌릴 겨를이 없었다. 걸음사위춤을 매기는
상무동님의 개꼬리 상모한 이마에는
땀줄기가 노 드린 듯하였다. 오랜만에
저녁끼니는 때웠다 하나 한절에 들고부터
기한에 떨고 주린 창자로 신기를
잃어왔으니 한마당 연희에도 식은땀이
비오듯 하는 것이었다.
  "아직 젊은 나이에 언제 저렇게 소태같이
진한 춤사위를 익혔을까?"
  멀리서 풍물가락을 듣고 구경 나온
염장의 소금꾼 하나가 동패를 돌아보며
상무동님의 춤사위를 입에 침이 마르라고
부추기는 것이었다.
  "저거 말인가? 타고난 신명이 없으면
하늘이 점지하여야지만 역마살 든 놈도
팔자가 점지 않으면 못해먹는 노릇이지."
  옆에 섰던 환갑 늙은이인 소금꾼이
맞장구를 치는 것이었다.
  "나도 이깐 입에 풀칠도 못하는
소금꾼이고 뭐고 전부 엎어치고 굿중패에나
따라다닐까요. 팔도저자 구경 못할 곳이
없고 조선팔도에 뜨는 달을 죄다 볼 것
아닙니까?"
  "아서라, 너도 역마살 든 놈 같았으면
이때까지 소금막에나 처박혀 있었을까?"
  상무동님의 걸음사위춤이 끝났는데도
사물을 쥔 고수들의 진쇠가락은 지칠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멍석 가녘을 돌아가던
애사당 중에서 사설 한가락이 흘러나왔다.
  "상사로 얻은 병이 무당 들여 굿을 한들
받을까. 새벽서리 지는 달에 외기러기 슬피
울고 반가운 우리 정인 행여 올까 바랐더니
창만한 구름 밖에 바람소리 뿐이어라.
목단꽃 같은 내 얼굴에 외꽃이 웬일인고.
삼단 같은 머리채에 비사리춤이 무삼일꼬.
서방 죽고 오매불망 자식 죽고 오매불망
천지간 만물 중에 내 살붙이 하나 없네."
  "어허, 걸궁 창부 무동춤에 상사소리 더
좋구나!"
  굿판이 왁자지껄 떠드는 그 시각에
길소개는 염장의 소금막에서 방굼 자리를
떨고 일어설 채비를 하였다. 길가는 이미
도포를 벗어 부치고 긴 저고리에 배자 입고
패랭이 차림으로 변복하고 있어서 모색을
자세히 뜯어보지 않는 이상 궐자가
길소개인 것을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있는 와주와 마주앉아 있는 길소개
등뒤에는 허우대가 장승 같은 선인들이
셋이나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다. 와주가
내놓은 전대들을 뒤에 앉았던 동패가 챙겨
들었다. 와주가 말하였다.
  "성앳술이라도 나누어야 도리겠으나 그럴
경황이 없으니 이대로 하직을 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굿판이 파하고 소금꾼들이 염장
어름으로 돌아아기 전에 배를 십리 밖으로
빼내시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제 수하에 있는
사공들이야 선들을 켜지 않은 밤길에도
백리 뱃길이야 기척없이 배를 몰비요.
그러나 저기 염전 둑에 처박힌 두 놈은
어떡할깝쇼?"
처분할 일이오. 설마 모가지가 결딴나진
않았을 터이고 어둠 속에서 우리들의
모색을 알아보았을 리도 만무요. 다시 손을
쓰려 했다간 소동만 커집니다."
  "그럼 우린 갑니다."
  와주는 곧장 소금막을 나와서 저들의
배를 잇대놓은 염전머리 갯가로 냅다
뛰는데 얼마를 못 가서 어둠 속에
파묻히었다.
  안면도 중장포구는 해구가 해장죽으로
싸이면서 토끼의 귀처럼 돌출되어 바다를
막고 있었다. 선창에 정박한 배들이 바람을
피하는 데는 좋았으나 바다 멀리의 동정을
살피자면 언덕빼기를 넘어서 염전머리로
나와야 하였다. 밀매선(密賣船)은 해구
바깥쪽 언덕빼기 아래에 정박해 있어
잇대어 있었으나 굿판이 벌어지고 있는
중장포구에서는 눈치조차 챌 수가 없었다.
  밀매선의 선주가 소금막을 나선 뒤에
사이를 조금 두었다가 밖으로 나서는
길소개의 뒤를 따르던 곁꾼 한 놈이 불쑥
채근을 하였다.
  "나으리, 저 두 놈은 정말 두고 갈깝쇼."
  "하불실, 뒈어졌을까."
  "개팔에 대가릴 처박았으니 그냥 두면
미구에 결딴이 날 터인데요."
  "이놈아, 그럼 쫓아가서 활인을 하겠다는
게냐? 되레 뒤집어쓴다는 것도 모르는
숙맥이 어디 있냐?"
  "천행수 수하에 있던 왈자놈들이라
걱정입니다요."
  "활인을 할 작심인 놈이 그놈들이
하지 나중 일은 생각잖고 박은 왜
내려쳤더냐? 그리고 배짱이 그처럼 약해서
또한 얻다 써먹겠느냐."
  "그놈들이 불쑥 나타나 줄을 꿈엔들
생각했겠습니까. 결김에 냅다 엎치고 만
것이지요."
  "군소리 말고 한 발씩 더 놓아라."
  "나으리, 저기 또 누가 오고 있는뎁쇼."
  "엎드려."
  염전둑에 배를 붙이고 가만히 엎디어
있자니 곧장 고금막을 향해 줄달음을 치는
발그림자 셋이 바라보였다. 아직 몸을 피할
사이는 있다 하되 꼬불꼬불한 염전 둑길을
잘못 잡아들었다간 마주치기 십상이었다.
  "저놈들 역시 송파에서 조발된
선인놈들이 분명합니다."
살리란 고함소리를 들었던게 분명하군.
그런데 목을 지키던 굿중패들은 어찌
되었길래 저놈들이 여기까지 들어서나?"
  "저놈들 장력에 나가떨어진 게지요."
  "어떡할깝쇼. 나으리? 저놈들도 정을
다셔놓을까요? 어름서름 봉창을 하려다간
후환이 있을 터인데요?"
  "정다시게 할 일이 따로 있지. 잠자코
기다려보세. 결딴내는 것만 중한 일이
아니야. 소동이 커지면 좋지 않아."
  "저놈들이 일의 골자를 알아
취군(聚軍)들을 하기 전에 선창머리까지
뛰어얍죠."
  길가 패거리들이 염전둑에서 엎뎌 있는
동안 세 장한들은 다른 길로 하여 소금막에
닿았다. 소금막 밖에는 금방 내놓은
담배냄새가 싸할 뿐 기척이 없었다. 조급히
이엉을 뜯어 홰를 만들어 불을 댕겼으나
소금꾼들은 죄다 굿판 구경을 나가고
없었다. 다만 소금막 뒤켠에서 마대로 지은
빈 전대 한 개를 주워들었을 뿐이었다.
  "잠상꾼들이 왔다 간 게 틀림이 없네."
  "그럴싸하군. 세곡 밀매가 있었던 게
아닐까. 모르긴 하지만 길행수가 통을 짜고
투식을 한 게여. 굿판을 벌인 건 길행수의
계략이 아니던가? 염장의 소금군이며
선인들이며 객점거리 사람들을 죄다
굿판으로 몰리게 하고 자기는 그 사이에
투식질을 한 게야."
  투식(偸食)이란, 대동미(大同米)를
비롯한 각종 세곡을 청부받은 운반곡의
일부나 전부를 착복하여 행방을 감추는
대부분 경강상인(京江商人)들에 의하여
운반되어왔다. 여기에 상인과
선주인(船主人)들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세곡을 횡령하기에 이르렀으나 어쩐 셈인지
조정에서는 마냥 흐지부지 두고 보는
입장을 취하였다.
  사선 임용(私船賃用)의 폐단이 날로
극심해져 가는 것을 알고 뜻있는 대신들이
공선(公船)을 강화하고 사선 임용을
혁파시키자는 주장을 해왔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강상(江商)의 상인들과, 객주들과
은밀히 결탁이 된 주상(主上)의 측근들이
이를 저지해오고 있는 터였다. 지금에
이르러서도 김보현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주상이 또한 딱 잘라 사선 임용을 혁파하지
못하였다.
대신들의 속셈이야 어떠하든 거기엔 당장
피치 못할 여러 명분들이 없지 않았다. 그
첫째는 관선(官禪)이나 병선(兵船)의
절대수가 태부족이라 사선을 사용하지
않으면 세곡 운반과 서울의 지줄들의
도지곡(睹地穀) 운반이 거의 불가능하기에
이르렀다는 점이었다. 대동법(大同法)
이후로는 공미(貢米)까지 새로 운반하게
되어 조운 능력이 이에 따를 수가 없었다.
  두번째로 조운의 경로에는 장연(長淵)의
장산곶(長山串), 태안(泰安)의
안흥곶(安興串)과 관장목[冠丈項]이나
강화(江華)의 손돌목[孫乭項]과 같이
험난한 수로가 많았고 또한 한강에는
등풀[草嶼]이 무생(茂生)한데다가
퇴적(堆積)으로 배의 통행이 나날이
행주(幸州)의 염창목[鹽倉項]이 가장
어려운 곳이었다. 이런 곳에서 조운선이
좌초를 당하는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는
복선까지 당하여 조선술(操船術)이 월등한
사선 이용이 사리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셋째는 사선 임용의 경용(經用) 절감에
연유한다. 세곡을
경강선인(京江船人)들에게 위탁 운반할
경우 매척당 선주와 사공과 격군을 합쳐
십오륙인 정도에 주는 양미(糧米)만
하급(下給)하면 되었다. 장태미(醬太米)니
차사지공미(差使支供米)니 상미(賞米)니
하는 따위의 지급이 불필요하며 선박
개조의 경우도 각 수영(水營)의 병선
중에서 이미 퇴선(退船)된 것을 영선하여
이를 근거하여 생겨난 폐단이 민간
선박주의 대종을 이루는 경강 상인들과
지방 관속들과의 결탁이었다.
  조운에 있어 경강 상인들의 사선과
경쟁관계에 있었던 것은
훈련도감(訓鍊都監)이 소유하고 있는
병선(兵船)인데 이들 병선들은 가을과
겨울엔 강화도에 배치하였지만 봄과
여름에는 삼남의 세곡 운반에 조발되었다.
그 운임으로 군총들의 생활비를 조달하기
위함이었다. 조정에서는 각 지방의 관아에
엄칙을 내려 이 훈련도감의
시변선(侍變船)을 경강 사선에 우선하여
이용토록 하였으나 지방의 수령들은 세곡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군량미 운반까지도
시변선 이용을 모피(謀避)하고 나서니
하고 성총(聖聰)이 있다 한들 상로배와
부동(符同)한 지방 관속들의 술계(術計)에
미치지 못하였다. 여기에 기댄 경강의
선주인(船主人)들은 호조나 선혜청으로부터
정당하게 지급되는 선가(船價)에서보다는
부정한 방법에 의한 모리(謀利)가 더
많았었는데 그 부정의 예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투식(偸食)이 그 첫째로, 청부받은
운반곡의 일부 또는 전부를 착복하고
선주인과 도사공이 행방을 감추어버린다.
두번째가 화수(和水)의 방법이다. 운반곡의
일정량에 물을 먹여 곡물을 불어나게
조처하고는 그만한 양의 곡식을
해상(海商)이나 여각 객주에 팔아 횡령하는
방법이다. 경강의 객주인 이른바
사공들의 숙식을 마련하고 위탁판매도
하였지만 선주나 사공들과 통모하여 화수로
졸부(猝富) 된 자가 허다하였다.
  가장 악랄한 것은 세번째의 방법이었다.
고패(故敗)가 바로 그 방법이었다.
운반곡의 일부를 장선도 하기 전에 지방
관속과 결탁하여 미리 횡령해버리고
잔여곡만을 장선시키고 출선(出船)하여
얕은 물에서 고의로 침몰시켜 횡령곡을
은폐한다. 또한 세곡 운반선이 복선
침몰하는 경우 물에 잠기었던
증열미(拯劣米)를 지방의 백성들이 가진
정상미(正常米)와 교환해주게 한 나라의
방침을 빌미잡아 그 교환비율을 말조하여
이중으로 모리를 취하니 결국은 백성과
조정이 모두 피해를 입게 되었으되
  세곡 운반선의 내막이 그러하기에 간활한
경강의 선주인들은 세곡 운반이 시작되는
4,5월 전에 운반권을 따내기 위해
바리바리에 인정전을 싣고 세도가의 문전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상로배들은 그로
인하여 모리만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벌열층과 연비를 트게 되는 인연에 까지
이르러 한걸음에 두 마리 범을 잡는 꼴이
되었다. 이에 입맛을 들인 대신들은 또한
사선 임용의 혁파가 대두될 적마다 명분을
내세워 이를 저지하였다.
  길소개가 맹구범과 교유할 제 그로부터
배워 취한 것이 세곡선의 횡령방법이었고
이제 말로만 들었던 일을 실제에 옮기고
있는 것이었다. 길소개는 김보현이 구태여
자기를 이 선단의 행수선인으로 박아준
유필호나 천봉삼이 이를 막지 못하고 있는
것도 또한 그런 까닭에 연유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걸 알고 있었으되 수하에 있는
선인들이야 길가의 거동이 수상쩍기만
하였을 뿐이다. 소선 한 척이 야음을
틈타서 선대(船隊)를 벗어나 해우를
스름스름 빠져나가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길행수가 껑충한 선인들 셋을 조발하여
염창 쪽으로 서둘러 나가는 것을 발견한
것은 굿판에도 못 가고 상직을 서고 있던
송파 왈자 출신의 선인 두 사람이었다.
염탐을 한답시고 물색없이 뒤따르다가
목숨까지 결딴이 나버린 것이었다.
  홰를 켜 들고 소금막 주변에 낭자한
신발자국을 뒤쫓던 한 사내가 느닷없이
소리쳐 동패들을 불렀다.
  "뭐, 사람?"
  세 사람이 합세하여 염천 개펄에 상투를
처박고 고꾸라진 두 시신을 둑으로
끌어올렸다. 두 시신은 이승을 하직한 지
이미 오래였다. 모색의 앞뒤를 분간해내기
지난이요 상툿고와 턱을 가려낼 수 없을
정도로 뻘흙으로 뒤범벅이 되어 다만 그
복용한 형용으로 보아서 그들의 동패라는
걸 알아볼 정도였다. 조급히 진맥을
해보았던 한 사내가 제 상투를
쥐어뜯으면서 이를 갈았다.
  "단매에 된급살을 맞은 것이여. 명이
끊어진 지는 벌써 오래 전이여."
  "들쳐 업어."
  "아서. 이미 명이 끊어진 판에
편작(扁鵲) 앞에 들이댄들 살려낼 가망이
  "그래도 선창머리로 나가 난데의원이라도
불러 보여야지."
  "아서. 홰나 끄게. 동페를 척살한 놈들이
가근방에 숨어서 우릴 지켜보고 있을
것이여. 여기서 우리가 설친다면 우리 또한
속절없이 당할 판이여."
  "불을 꺼."
  "도대체 어떤 놈들이 이런 패악을
저질렀을까?"
  "조용하게. 달이 구름 사이로 들어가면
들쳐 업고 선창으로 뛰어."
  아무리 살펴보아도 염장 어름은 쥐죽은듯
조용하였다. 해문(海門)의 자갈밭으로
밀려닥치는 밤파도 소리가 바람을 타고
아득히 맞물려오는 굿판의 풍물가락과 서로
어우러져 대작하고 있었다. 염장을
인기척이라곤 느낄 수가 없었다. 어스름
달빛이 염장의 둑을 따라 희끗희끗
굽이돌다가 멀리 해장죽숲 속으로 아득히
사그라져 들어가고 있었다. 이미 뼈가
굳어버린 시신에서는 싸늘한 냉기가
감돌았다. 굿판에서 피워놓은 화톳불빛이
희미한 달빛이 흐르는 허공으로 사그라져
들어가고 기진맥진한 풍물가락도 어느덧
바람을 따라 가라앉기 시작하였다. 짚신
감발을 단단히 죄고 처연히 앉았던 세
사람은 그때 돌덩이 같은 시신들을 들쳐
업었다. 오던 길을 회정하여 굿중패의
꼭두쇠와 뜬쇠를 잡이 엎질렀던 목쟁이까지
달려왔으나 이미 두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떡할거여? 행수들이 하처잡은
 이번엔 뒤
  "글쎄. 나도 시방 생각중이여. 선방에다
업어두고 천행수님께 통기를 하는 것이
어떻겠나?"
  "우리가 시방 이 사단의 내막이고
셈평이고를 알 도리가 없잖아? 그러니
도선머리 해장죽숲 속에다 시신을 뉘고
행수님께 기별하는 것이 순서이네. 선방이
왁자해지면 또 무슨 모함을 입게 될지
자네가 알겠는가 내가 알겠는가."
  "그렇게 하지. 사람 목숨이 둘씩이나
속절없이 도륙났다는 일이 이거 보통
일인가. 까딱했다간 우리 셋도 몰사죽음할
판이여."
  두 사람이 시신을 숲속에다 뉘고 땀을
들이며 기다리기로 하고 한 사람은
숙소까지 달려가서 봉삼을 불러왔다. 물을
전에 서울 길소개의 집에 들이닥쳐 행패를
부리었던 저들의 동패 왈자였다. 손발이
검붉고 아래윗니에 검은 피가 엉기었으니
누가 보아도 급살을 맞은 것이지 병으로
죽은 건 아니었다. 공력을 들일 만한
겨를도 경황도 없었다. 입었던 옷이나 당겨
입혀 염을 하던 중에 한 사내가 불쑥
봉삼에게 물었다.
  "행수님은 이 사단이 어찌 된 셈평인지
짐작하고 계시겠지요?"
  "......"
  "어서 대답을 하쇼. 우리도 짐작이 있어
묻는 말입니다."
  동패가 속절없는 노변 죽음을 당하자,
피를 못 봐 상승이 된 왈자들은 의향을
묻고 있는 말버슴새부터가 냉기 차고
정범으로 여겨서가 아니라 봉삼의 처지라면
이미 살범이 누구쯤 된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을 법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세 사내가
갈퀴 같은 눈시울을 뜨고 바라보는데
봉삼이 말하였다.
  "괜히 협기들 부릴 요량 말고 미봉이라도
초종이나 치르도록 하세."
  "그럼 행수님은 근저가 깊으시단
말씀이요, 아니면 이 살범들과 한통속이란
말씀이오?"
  "내 말을 잘 들어둬. 너희들이 내가 이
모살에 연유된 입장에 있는 줄 알았다면 왜
내게 은밀히 통기를 하였나."
  "한통속이래서가 아니라 행수님만은
살범을 알고 있을 것 같기에 하는
말입니다. 그럼 행수님은 처사가
없이도 굿중패를 닦달하여 그놈들이 누구란
걸 알아내기만 한다면 즉살을 시키고
말겠습니다."
  "고정들 하는 게 그것이 화근을 부르지
않는 길일세."
  "우리가 이런 꼴로 동패를 급살시키고도
탈기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우리가 피붙이는 아니라 할지라도 왈자들
바닥이란 원래가 살아 생전 죽고 사는 것을
같이하는 율이 있지 않습니까. 이참에
이르러 우리가 손을 쓰지 않는다면
벼락치는 날엔 울밖 출입을 못하게 됩니다.
행수님 속내로는 관아붙이들에게 고변이나
하시겠다는 배포인데, 그땐 이미 물증이고
뭐고 도타한 뒤라 벙거지 쓴 놈들이 나와서
살옥검시를 한다, 나루를 검색하고
그땐 이미 강 건넌 송아지가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소동을
피워보았자 살범을 가려낼 방도가 있을지도
의문이고 설령 한 마리의 토끼를 잡는다손
치더라도 그 뒤에 앉은 호랑이는 놓치고
말게 되지. 지금 당장은 우리가 치패를
당한다 할지라도 참기만 하면 머지않아 그
호랑이를 잡을 수 있네."
  "망신만 당하고 뒤를 본답시고
기다리다가 되레 호식(虎食)을 당해
줄초상을 당하면 그땐 얻다 대고
하소연하시렵니까?"
  "그런 걱정은 내게 맡기게. 자 어떡할
텐가? 지금 당장 하수인이나 잡아 죽인
다음 우리 전부가 모해를 입고 섣달 볼기
그믐날 흰떡 맞듯 어육이 되어
뒀다가 정범을 잡을 것인가?"
  봉삼이 오금을 박고 나서자, 세 사람은
서로 마주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한 사내가
불쑥 면박을 하고 나서는데,
  "천만 도섭스런 말씀이오. 산 설고 물 선
이 타관 해중에서 그깐 호랑이는 잡아서
비린내 나는 가죽을 뒤집어쓸 것이오? 우린
당장 앞에 있는 토끼라도 잡아야 직성이
풀리겠습니다. 이런 횡액이나 업신여김을
당하고도 가만있을 도학군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자 지금까지 가만가만하던 봉삼이가
불끈 화를 돋우었다.
  "이놈들, 비윗장 하나로 지각없이
굴다보면 평생 기찰에 몰려 쫓겨다니는
신세 되기 십상이 아닌가. 왜 한 발자국
짐작하지 못하는가? 낸들 수하에 있던 동무
선인이 급살을 맞았는데 심지가 편할까?
날송장을 옆에 두고 부지하세월로 입씨름만
하고 있을 처지인가."
  "그럼 어떡하시잔 말씀이오?"
  "성급하게 굴다간 폐단이 생기네. 모른
척 초종이나 정하게 치르고 나면 내 뜻을
알게 될 거야. 근저들 차리고
역군(役軍)이나 얻어서 초종부터 치러놓고
봐야 해. 나도 행세를 하자 하면 너들보다
못할까."
  이미 송파장터에서 형제의 결의들도 한
터라 의절만은 하기 거북하였던지 세
사내는 일단은 따지고 들려 하지 않았다.
  봉삼이 우선 선창머리로 나아가 무명 한
필을 끊어서 상포(常布), 백지(白紙)와
가래와 괭이 등속을 세낼 요량으로
한식경이나 헤맨 끝에 그나마 명색뿐인
상둣도가란 데를 찾아내었다. 소임을
겸하고 있다는 그 상둣도가 주인이란 놈은
천봉삼과 곁군들의 의표를 한번 쓱
치떠보더니 난데서 온 뜨내기 선인들인 줄
당장 알아차리고는 사토장(莎土匠) 역군 한
사람을 안동하지 않고는 장구(葬具)들만
세놓을 수는 없다고 버티었다. 닥 잡아뺀들
별다른 방도가 없는지라 사람 품삯과 가래,
괭이 세 자루씩의 물건세로 무명 스무 자를
내놓았다. 그리고 면례는 제일 긴요한 것이
무쇠지렛대라고 이르고는 무명 다섯 자를
더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난데서 온
뱃놈붙이라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값을
부르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무명 스무 자를
샀다. 부아 돋는 대로 한다면 상둣도가
주인이란 놈부터 물고를 내는 것이
순서이겠으나, 오종종한 궐자와 맞붙어서
타박을 하고 실랑이를 벌이며 작정없이
밤을 지샐 형편이 아닌지라
매사간주인(每事看主人)으로 궐자가 하자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궐자가 지소해준 대로 마을 윗산
등성이를 골라서 산역을 하는데 따라나온
사토장은 면례 하나로 연명하는 놈답게
한식경도 못 되어 산역을 끝내버렸다.
수상(隨喪)의 예를 차릴 경황은 물로
없었고 홰 하나 켜 들지 못한 야음 속에서
산역이 이루어진 것이다. 부시도 치지
말라고 봉삼이 만류하였기 때문이었다.
사토장이란 놈은 역군살이 20년에 구메
시종 투덜대기를 그치지 않아 한 사람이
시종 붙어서 받자를 하고 부추겨야 했었다.
시신을 내리고 흉내뿐인 봉분 앞에서
탁배기 한 방구리와 육포 대여섯 쪽으로
산제를 지내고 선창머리로 돌아와보니 벌써
새벽바다가 희뿜하니 밝아오고 선단은 출선
준비에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작정했던 것보다는 출선이 빨라진 터라
밤세 표객들에게 암동모를 팔았던 굿중패
행중의 서방거사들은 표객들을 끼고
산지사방으로 흩어진 암동모들을 수배하고
쏘다니느라고 객점거리며 선창머리에
소동이 낭자하였다. 때아니게 섬의 선창에
들이닥친 굿중패였던지라, 명색 붙은
암동모란 것들은 죄다 표객들에게
팔려나갔는데 손바닥만한 선창머리에
곁방을 차지한 건 그중 다행이요, 휘장 친
술국집이나 헛간을 얻어 표객들을 받았던
서방거사들은 한잠을 더 잔다 하여도 해가
뜨지 않을 꼭두새벽에 암동모들을 빼내가려
하자, 표객들은 긴밤 꽃값으로 앞전을 치른
쌈지돈 보전 생각이 나기도 하였지만
육허기가 아직도 미진한 터라 자연 듣기에
거북한 말들로 싸움질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꼭두쇠가 짝패인 암동모가 표객을 받고
있는 숫막 뒤꼍방의 바라지를 벌컥 열고
다짜고짜로 암동모를 불러내었다. 봉노에
갇혀 있던 고린내와 구린내가 물씬
풍겨와서 코를 들이댈 재간이 없는데
거기다가 곰삭은 젓갈내 같은 몸비린내까지
동천하니 봉노 안은 돼지우리나
  새벽하기에 잠을 깬 표객이 한참 만에야
눈을 뜨고 부스스 일어났다. 그때까지도
실오라기 하나 걸친 데 없이 하초를
시꺼멓게 드러내놓고 자빠졌던 표객이
바라지문 밖에 서 있는 꼭두쇠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러나 대뜸 범 잡아먹은
주지같이 벌건 눈자위를 치뜨고는
오지투거리 깨지는 소리로 벌컥 별기를
긁어올렸다.
  "남의 행요하는 화초방에 기침도 없이
문을 여는 놈은 웬놈이여?"
  이제 겨우 파과기(破瓜期: 여자 나이
십오륙세 때)를 벗어났을까말까 한 박도 덜
쇤 애사당은 이젠 살았다 싶었던지
허겁지겁 색정을 수습하고 일어나
차렵이불을 홱 거두어 흐벅진 젖무덤부터
보둣 심드렁한 눈발로 봉노 안을
휘둘러보다간 허리를 굽실하며,
  "노형, 출선이 바로 발등에
떨어졌습니다요. 다소간 미진하시더라도
행중의 사정을 봐주셔야겠습니다."
  손바닥만한 차렵이불을 애사당에게
빼앗길 표객은 삭숭이는 가릴 까닭도
없다는 듯이 뱃심 좋게 드러낸 채로
서방거사에게 걸쭉하게 악담을 쏘아붙였다.
  "이것 보라니? 오랜만에 이삼륙(二三六)
쌍비연(雙飛燕) 궁합끼리 만나서 앞전
치르고 질탕하게 놀고 있는 구들막에
웬놈의 새벽 도깨비가 뛰어들어 헤살을
놓고 지랄이여? 이놈아 지분거리지 말고
냉큼 장지 닫아. 오뉴월 새벽하기쯤에
얼어죽을 위인이 아니여."
횃대에 검정 쾌자와 패랭이가 어지럽게
걸려 있는 것을 슬쩍 훔쳐본 꼭두쇠란 놈은
새벽 하기에 제 먼저 어깨를 으스스 떨면서
사뭇 사정조다.
  "노형, 시방 행중이 죄다 포고를 뜨려는
판인데 식구를 떨어뜨리고 갈 수야 없지
않습니까. 보나마나 사추리에 가래톳이
서도록 포식을 하였을 터이니 탕정(蕩情)이
그만했으면 무쇠라도 녹았겠수. 그러니 내
짝패를 놓아주십쇼."
  "이놈아, 내 발바닥 뒤집는 거 네놈이
보았냐? 그놈 아주 제 눈으로 본 듯이
씨부리네."
  "본 거나 진배없죠."
  꼭두쇠란 놈이 우거지상을 하고도
설핏하니 웃음을 흘리는데,
연밥을 먹이고(꼬드기다의 변말)
매휴(賣休)한 놈은 바로 네놈이
아니었더냐? 그런데 아직 개도 안 깬
꼭두새벽에 들이닥쳐서 업어가겠단 게여?
그런 억지가 어딨어? 에라 이놈, 쑥대머리
귀신 형용 보기 싫다, 냉큼 비켜서래도
그러네?"
  "노형, 곧 출선입니다."
  "출선이 뉘집 씨종인지 내가 알 게
뭐여."
  "어쿠우, 이거 낭패가 아닙니까. 그럼
쇤네 어젯밤에 받은 앞전 중에서
해장값으로 좀 떼어드릴 터이니 제발 더도
말고 내 짝패만 내주십쇼."
  표객이 입을 비쭉하며,
  "그놈 보게. 내가 무명색하다기로서니
네놈들의 야바우통을 내가 알게 뭐여, 잠깐
사이에 딴 놈을 받으려는 게지. 회술레를
시키지 전에 썩 물러나, 수청방에 냉기
찬다 이놈."
  뒤꼭지에 불이 붙은 꼭두쇠는 뺨 맞고
하소연하다가 볼기 맞는 격이라 할지라도
별다른 방책이 없게 된 것을 깨달았다.
괴춤에서 줄쌈지를 홱 끄집어내더니 지난
저녁 표객에게서 받은 긴밤 해우채 중에서
반절을 뚝 떼어 봉놋바닥에 내던졌다.
  "거 뚱쭝이패 하천의 무리들이라 하여
홀대는 고사하고 호놈이 낭자하시구려.
나도 골자를 알고 보면 고향딸에서
완력이며 성깔로는 호가 난 놈이유."
  "그놈하구선. 완력이면 다라더냐. 나로
말하면 완력에다 약고 꾀바르기가 가근방
편작을 앞에 두고 진백하려는 꼴이
가관일세."
  "에끼 이 앙급을 할 놈의 세상. 옜수,
여기 있수나. 이럭하면 노형은 지난밤에
공다지로 남의 살꽃을 삼킨 거구 난 화초방
퇴창 아래서 밤새도록 상직만 섰수다."
  "그놈 핑계모가 좋다. 누가 상직은
서ㄹ나? 으르딱딱거리지 말고 진작부터
고분고분하게 나올 일이지."
  그제사 표객은 봉놋바닥에 흩어진
엽전들을 주섬주섬 주워두는데, 문턱데
엉덩이를 들이대어 애사당을 업고 삽짝
밖으로 나서는 꼭두쇠는,
  "이년아 삼팔주 수건은 제대로 챙겼냐?
네년이나 무명색한 굿중패인 나나 조선팔도
삼백육십 고을을 굴러다니면서 공다지로
개똥치레인 밭두렁이나 베고 이승을 하직할
제 까막까치 찾아와서 더러운 살점을
뜯어가지 않겠느냐. 불쌍하고 서러운 년,
까막까치도 해지면 갈 곳 있고 해뜨면
쪼아먹을 것 있어 만니 창천 높은 하늘
평생토록 훨훨 날다가 죽으련만 전생에
무슨 죄업이 그리도 많아서 인두겁을 쓰고
내질려서 땅강아지 신세가 되었냐. 어떤
년들은 팔자 좋아 고대광실 높은 집에
대방마님 되어서 여의사(如意紗) 겹저고리
자주항라(亢羅) 넓은 댕기에 수부다남 금을
박고 고양나이[高陽木] 속버선에, 몽고
삼승(蒙古三升) 겉버선에 그것도 한이 덜
차 물면주(綿紬) 고쟁이에 백수 놓은 너른
속곳에 남빛 항라 대단치마 잔살 잡아
떨쳐입고 백저포(白紵布) 깨끼적삼에
늙은 차집을 거느리고 주육이 낭자한
성찬을 즐기건만 네년 팔자 기박하여
소년에 까막과부로 신세부터 망치고
굿중패에 입대하여 겉보리 장떡에 밀기울로
끼니 때우고 밤마다 살꽃 팔아 팔다리는
낮거미요 이마엔 외꽃이 피었지 않았느냐.
이것이 어찌 살아 있는 목숨이며 명색이
인종이라 할 수 있을까. 아예 천수
누리기는 글렀느니라. 네년과 내가
적수공권으로 작패 되어 호구하자고 이
지랄타고 그나마 정근(情根)이 생겨
이도저도 못하고 개죽음할 때만을 기다리게
되었구나. 우리 같은 역마직성(驛馬直星)
무지리 유민지배(流民之輩)가 어딜 간들
홀대를 면하겠으며 눈물이 오줌같이 흔한들
어느 누가 불쌍히 여길까."
애사당의 엉덩이를 추스르며 선창으로
내려가는 꼭두쇠의 신세타령이 낭자한데
등에 업힌 애사당은 표객놈의 모진 색탐에
밤새도록 잠을 설친 터라 어느새 꼭두쇠의
어깨에 턱을 걸고 새근새근 잠이 들어
있었다.











  온 선창머리에 흩어졌던 굿중패들이
나갔던 상주(喪主) 제청(祭廳)에 달려들듯
허겁지겁 승선들을 해서야 배다리가
내려지고 후풍을 기다려 용총줄에 매단
북을 힘껏 쳐서 출선을 알리었다. 오경
인시가 훨씬 넘어서였다. 중장포구를 병
속에서 빠져나오듯 벗어나서 염장들이
질펀하게 깔린 둔두리 목쟁이를 오른편으로
끼고 굴거리나루까지 천천히 후풍을 타고
오르다가 백사정(白沙汀) 앞에 이르면
선단은 해중에 우뚝 솟아 있는
거아도(居兒島)를 정면으로 바라보게 된다.
거아도와 맞닥뜨린 선단은 곧장 안흥곶이로
빨랫줄 당기듯 곧바로 행선해야 한다.
된다지만 일색이 다하기 전에 닿아서 다시
해가 뜰때까지 하룻밤을 정박해야 한다.
  안흥곶이는 옛날에는 난행량(難行粱)이라
불렀을 만큼 바닷물이 험하여 조운선이
복선되기 여러 번이었다. 안흥곶이에서
관장목으로 오르는 뱃길은 물길이 얕고
암초투성이여서 까딱했다간 배와 선인을
함께 수장시키기 알맞았다. 게다가 봄철
들고부터는 해무(海霧)가 심한 곳이어서
죄초의 위험은 가중된다. 해중의 이런
악조건을 이용하여 봉산도(封山島),
가의도(賈誼島), 단도(端島),
정족도(鼎足島), 옹도(甕島) 등지에 숨어서
노리던 구적(寇賊)들의 기습을 받기도
십상이었다. 황당선이며 잠상선들도
구적들에 뒤질세라 뻔질나게 출몰하여
세곡을 사들이거나 고패를 조작하는 곳도
안흥곶이 부근이었다. 삼남에서 출선한
조운선들은 태반이 안흥곶이에서 밤을
새우게 되는데 그곳엔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 한 사람이
있고 수졸들은 2천이나 되었다. 태안읍치인
안흥곶이는 그 앞바다를 거치지 않고 곧장
왼편으로 돌아서 해문을 따라 오르다가
태안과 서산 읍치의 중로 지점 목쟁이인
굴포(掘浦)에다 배를 대는 방도는 없지
않았다. 그러나 굴포 육로 시오리 남짓한
길을 육태로 세곡을 나르자면 하륙과
육태질을 반복하는 사이에 자연 내륙의
장사치들이나 강와(强窩)들이 끼여들어서
세곡 농간이 발붙일 여지를 만들었다.
내륙의 곡물상들이 아예 그것을 겨냥하여
치고 기다렸다. 대처의 저자에서도 좀처럼
구경할 수 없는 반반하고 육덕푸짐한
논다니들을 데려다가 술청을 차리고
창가(娼家)를 이루었다. 선인들이 하륙을
하면 주육을 베풀어 맑은 정신부터 빼앗고
계집을 풀어 뱃길을 묶었다. 선창머리엔
창병이 창궐하고 객점거리에 파락호들이
판을 치는 마당에 세곡은 경강의
곡상들에게 은밀히 팔려나가고 화수와
자행되었다. 갯사람들은 바다로 고기를
잡으로 나가지 않고 객점거리를
어슬렁거리다가 배가 들어오면 사공들을
조방질하고 하룻밤 육태질로 노역을 팔아
열흘 먹을 양식을 구하였으니 좀처럼
바다로 나갈 엄두를 내지 않고 있었다.
일찍이 굴포의 반석을 파서 바닷물을
리의 위험한 물길을 경유치 않아도 될
것이라 하여 백성들을 노역시켜 10여 리의
도랑을 판 적도 있었으나 돌이 물밑에 깔려
있고 조수가 파는 대로 메워버리므로 이에
공을 거두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선단이 천행으로 안흥곶이 앞바다를
무탈하게 빠져나와 다시 태안읍치인
배뫼곶이[梨山串]에서 선대(船隊)를
정박시켰다. 서른 척의 배 중에서 여섯
척이 안흥곶이 암초지대를 빠져나오는 동안
하중(荷重)를 견디지 못해 선방과 뜸의
판자벽으로 물이 새어드는 곳이 많았다.
마침 안면도를 뜨기 전에 송목(松木)
선재(船材)를 구처하여 싣고 온 것이
있었으므로 사공들 노역으로서도 영선이 될
만하였다.
해넘이께였다. 안흥곶이를 빠져나오는 데만
하루 해를 다 잡아먹은 것이었다. 마침
유필호가 천봉삼에게 연통을 놓았다.
  유필호는 수질에 시달려 그 준수하던
풍골이 기진역진하여 휘진 신색하며
눈자위가 십리나 쫓겨들어가서 흡사 낙태한
암고양이 상이었다. 수질이란 것이 또한
망측한 병이어서 그러다가도 땅에만 일단
내리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생기가
팔팔하게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선인들이며
굿중패들이 전부 뱃전 가녘이나 배다리로
나와서 바람들을 쐬는 중에 유필호는
선창으로 내려와서 기직자리 한 닢을 깔고
앉았다가 다가오는 봉삼에게 물었다.
  "이제 살 만하네. 자넨 그 동안 변고나
겪지 않았던가?"
앉으면서,
  "이미 비각이 난 사이에 무슨 변고가 날
만하였으면 궐자를 가만 두지 않았을
터이지요."
  "천행일세. 선단이 그나마 안흥곶이를
무탈로 빠져나온 것도 천행이려니와 나는
길가란 위인이 배를 두어 척 뒤집어버릴까
여간 조바심을 한 게 아니라네. 내
선머리에서 행선하는 도사공놈에게
노량으로 몰라고 아주 떡먹이듯이 닦달을
한 덧분인지도 모르지. 뱃길이 험한데다
궐자의 행사에다 또한 정신을 팔자 하면
수질도 달아날 만하건만 이건 지지리도
사람을 괴롭히고 드는군."
  봉삼이 곰방대에다 시초를 꾹꾹 눌러
담다 말고,
않을까요. 모르긴 해도 손돌목 근처로
나아가면 두어 척은 뒤집어놓을 게
뻔합니다. 퇴병선(退兵船) 세 척을 궐자의
수하에 있는 사공들이 행선시키고
있으니까요. 그 선주(船主)가 김보현이란
것을 경강에서 발선했을 임시에야
알았습니다. 그 배들은 지치고 낡아서 다음
파수엔 바다에 뜨지 못할 것들입니다."
  "밤엔 상직을 엄히 세우게나."
  "상직을 세우면 개죽음만 당할 뿐입니다.
시생이 신대주 소유의 배를 영솔하고 있기
망정이지 그렇지가 않았다면 궐놈이 배
여러 척에 선인 여럿을 수장시킬
놈입니다."
  "내 대감집 헐숙청에서 내리 삼년을
바둑으로 소일하고 있었던 형편이지만
되리라곤 미처 생각 못하였네."
  "그렇다면 생원님도 관상을 보신다는
말은 이제부터 거두셔야 합니다."
  "아니야. 알고 있었지. 다만 내 희롱이
너무너무 지나쳤던 게지."
  "궐자를 어찌해야 할지 지금 당장은 아무
방책이 없습니다."
  봉삼이 담뱃불을 껐다.
  입가에 쓰디쓴 웃음을 흘리며 우두망찰
앉아 있던 유필호가 말했다.
  "내 군산포에서 수청 들던 계집이 하던
말이 생각나네. 궐녀의 사추리에 배 세척을
날리고 소박을 당한 사내가 돛대 끝도 안
보인다고 투덜거리더란 게여. 길소개란
놈은 독하기가 노류장화 수청 기생보다
월등 독한 놈인가 보네."
능멸하고 우습게 보아온 행티일시
분명합니다. 여기에 이르러 저 미물에
그치는 길가만을 타박하겠습니까. 사단은
저런 악업을 공공연히 저지르고 있는
우인의 뒤에 버티고 있는 권세란 것입니다.
권세의 사주 아래 저런 창귀가 기식할 수
있다는 것이 개탄할 일입니다. 제 수하에
있던 동무들 두 사람이 급살을 당한 것도
곡식 백 석을 와주들에게 팔아넘기는 걸
염탐하다 생긴 살변이란 걸 번연히 알고는
있으나 굳이 협기를 부리지 않고 있는 것은
도마뱀의 다리를 잘라야 다시 솟아나듯
임시방편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자넨 너무 멀리 바라보니 발등에 떨어진
불똥을 보지 못하는 구먼. 내가 은밀히
자넬 부른 것은 이런 객담이나 하자는 것이
  "객담이라니요?"
  "우리 선단이 남양만에 닿게 되거든 자넨
배를 내려 비접을 하게. 그래야 자넨
목숨을 건지게 되네. 자네가 적굴에서
찾아낸 세곡 백 석을 해상들에게
팔아넘기기 기탄이 없는 것은 경강에
득달하는 길로 자네에게 중죄를 덮어씌워
장금사 전옥서로 빠뜨릴 속셈이 분명하다는
것이야. 자네가 입닥치고 있을 사람이면
몰라도 자네 역시 감수자도(監守自盜)한
길가를 가만둘 리 업겠으니 이런 낭패가
어디 있는가?"
  두 사람 사이에 잠시 말이 끊어졌다.
저녁참 먹으라는 선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귀신 모르는 육시를 당한다
아닙니다. 수하의 동무들에게 그런 못난
꼴을 보일 수도 없거니와 설혹 시생 혼자서
앙화를 벗어난다 하여도 매복하고 있는
동무들이 궐자를 가만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시생이 주저하고 있는 것은
궐자의 근본이 상것이란 데 있습니다.
상것이 상것을 잡아먹기로 한다면 양이
차겠습니까."
  "목숨이 중한가 의리가 중한가?"
  "이미 사단은 일어난 것이지요. 바람이
거세다 하여 피하고 서있기만 한다면 갈
길은 어제 갑니까."
  "내 일찍이 대대로 국록을 먹던 반가에
태어나 학문을 닦았으나 출사는커녕
이제까지 민머리로 지내지만 앞일을
예견하는 재간만은 조금 가지고 있다네.
배우지 못하였다네. 조정으로부터 지방
방백이며 각골 수령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각진(各鎭)의 무직(武職)에 이르기까지
뇌물의 다과로 형벌의 경중을 달리하는 건
고사하고 뚜렷한 범증도 없이 원한을
당하는 자가 부지기수 아닌가. 이런 난세에
살아서 기구하고 또한 더러우이. 그러나
조심하게. 자네나 또한 나나 이번 선단에
끼여드는 것이 아니었네. 이것이 매우
잘못된 걸 진작 깨닫지 못하였으니 나 또한
무엇으로 구실을 할까?"
  "남비징청의 뜻이 없으시다면 그깐
헐숙청 식객으로 썩으시기보단 장차 우리
상단(商團)에 동사하시어서 의탁하고
지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갯땅
영암에서는 양반도 참빗을 삼아 연명하고
없지 않습니다."
  "그만두게. 자네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판에 속편한 소리만 하긴가."
  전 같았으면 동사하자는 소리에 봉삼의
따귀라도 한대 모양있게 갈겨주었을
유필호는 어쩐 셈인지 귓결로 흘리듯 그런
말로 흘려보내는 것이었다.
  "자넨 봉관을 송도로 쓴다 하였지?"
  "그렇습니다."
  "송도 상인은 의(義)와 이(利)만
취한다더니 자네에게도 송도냄새가 물컥
풍기네그랴. 자네 속내가 딱히 그러하다면
딴 방도가 없지. 자네가 옥사에 떨어진다면
미력이나마 힘이 되어줄 것을 약조는
하겠네만 우리가 어쩌다 이 꼴이
되었는가?"
잡으라 하였습니다. 변죽만 울릴 것이
아니라 옥사에 떨어지든 원찬을 당하든
상도(商道)를 지켜 장사꾼이 대접을 받는
시절을 만들지 하면 이런 고초를 마다해선
안 될 줄 압니다. 송도 상인으로서
절조있게 행동함에 거리낌이 없어야겠지요.
티끌 같은 목숨일수록 의롭게
처분하여야겠습니다."
  "이건 공중뜬 말이 아닐세. 자네 관상을
보아하니 귀인이 항상 옆에 있을 상이네.
자네가 가장 어려울 땐 그 귀인이 반드시
찾아와 재액을 모면시킬 그런 복덕을
타고났네."
  "제 팔자가 그러한 것이 아니라, 대세가
그러하겠지요."
  "자네 그 동안 자녀간에 무엇을 두었나?"
  "내 그런 줄 알았네만 넌짓 물어본
것이야. 앞으로 여색을 조심하게.
불비예혼(不備禮婚)으로 고초를 겪을 수도
있는 상일세. 그것으로 대의를 그르칠 수도
있는 일이니까. 염복이란 것도 과도하면
액운을 부를 뿐이지."
  풀쑥 웃음을 흘리던 천봉삼이 힐끗
하늘을 쳐다보았다.
  "허, 이거 진종일 선방이 무룩하더니
한주름 하려나? 아니래도 화장들이
소금섬에 간수[苦鹽]가 생긴다고
야단이더니 비치레를 할 모양입니다."
  "아니래도 아침에 햇무리가 지더군."
  "선창으로 가봐야겠습니다."
  이미 삿자리 위로 빗낱이 후둑후둑
떨어지는 소리가 나고 하륙하였던 선인들은
있는 구름이 제법 멀어 보이는 것이 비는
오래갈 것 같았다. 예상했던 대로
해질녘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연
이틀을 꼬박 쉬지 않고 내려 뱃길을
막았다. 장적한 세곡더미에 이엉을 엮어
덮는 체하였으나 마침내 비바람까지 불어와
세곡 태반이 취재(臭載: 새곡이 상하여
냄새가 남)를 당할 참이었다. 본의 아니게
화수(和水)를 본 셈이었다. 이틀 동안의
비가 그치고 난 다음 선방에 웅크리고 앉은
유필호에게 길소개가 찾아왔다.
  유필호가 먼저 수선을 피웠다.
  "비가 그쳤으니 어서 출선을 서두르게."
  길소개가 개연한 어조로 그 말을
되받았다.
  "출선을 서두를 경황이 아닙니다."
두고 여기서 두류하여 또 무슨 고초를
겪자는 수작인가?"
  "그 동안 내린 비로 하여 세곡 태반이
화수가 되었습니다."
  "나도 알고 있네."
  "화수가 되는 것이 선단에 유조한 일니지
환난을 부를지는 시생도 짐작하기
어렵습니다만 원래 군산창에서 발장한
때부터 과적이 되어 바닷길이
난행이었습니다. 거기다가 비에 젖은
세곡들이 하중을 더하게 되었으니 소홀히
출선을 서둘렀다간 불가불 침몰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루쯤 늦어도 괜찮겠지. 어서
이엉을 벗기고 세곡섬에 바람을 쏘이게.
잘못하면 액미가 생기기 십상이니 득달같이
  "분주하시긴 쉬운 일니나 그것도
여의치가 않습니다."
  "사공이며 격군들이 도망이라도 했단
말인가? 굿중패도 있지 않은가?"
  "그것보단 침수되는 선방이며 창막이
수선이 더 급하지요. 웃비가 걷히면 무얼
합니까, 창막이에 물이 들면 복선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화수된 걸 보고만 있자는 말인가?
아니면 배꽃이나 따먹으며 여기서 육장을
보내잔 말인가?"
  "노선(老船)을 수선하자 하면 장골들이
조발되어야 하고 그 동안 미로 하여 선방에
침수된 것이 허벅지에까지 차올랐으니 그
물을 펴내는데도 선인들 모두가 조발되어도
태부족입니다. 화수된 게 화근이 아니라
아닙니까?"
  거기다가 뒤따라 들어온 도사공들조차도
길가의 주장에 이구동성으로 받자하고 드는
판이었다. 이미 사단은 유필호의
재간으로선 방책을 세울 만한 일이 되지
못하였다. 얼굴에 외ㄱ을 피운 유필호는
이미 반정신은 빠져나간 몰골이었다.
  "그런 급히 파발을 뛰워 빈 배를
보내달라는 기별지를 보낼까?"
  "여기서 경강나루가 초간한 줄
아십니까?"
  "지나가는 병원선이고 토선이고 고깃배를
부르든지 아니면 세곡부터 전부 하륙을
시키게."
  "선창에 내려놓으면 하룻밤을 못 넘기어
태반을 도둑맞을 게 뻔합니다. 설사 적패를
되는 날 것이니 그 벌충은 어디 가서
한답니까? 어디 그것뿐입니까? 세곡을
하륙시켜놓고 있다는 것이 해중으로 소문이
퍼져나갈 제 가까운 섬에 숨어 있던
구적들이 몰려온다 해보십시오. 그땐
모가지까지 내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자넨 구적들의 간자인가? 아니면
세곡선단의 선인행수인가?"
  "제가 세곡선단의 선인행수이기에 지금
생원님과 마주앉아 방책을 의논하고 있는
게 아닙니까?"
  길가가 이젠 드러내어 유필호의 심지를
휘젓고 나섰다.
  얼굴이 새하얗게 된 유필호가 몇각을
노려만 보고 있다가,
  "이놈이 이젠 인사불성이 되었군.
품고 세곡 횡령을 도모하다니. 그러나
여기는 읍치와는 초간한 것이 아니야. 비록
열증미와 정상미를 바꾸려 하잔대도
얼추잡아 일순은 걸릴 것이니 아예
딴생각은 말아라."
  길소개가 품고 있는 간계가 무엇임을
정통으로 가려낸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길가는 태연하였다.
  "이미 동승한 차사원에게도 시생일 손을
써놓았습니다. 50석 정도 해상(海商)들에게
넘기지 않으면 안 됩니다."
  "네놈을 길래 두었다간 이 나라의 조정을
기롱하고도 남을 것이야."
  "그건 생원님이 미처 생각이 닿지 못한
탓이오. 시생이 이로 재물을 일구어 호사를
하자는 소셈이 아니올시다. 사실은 조정의
세곡의 판화전이 대감 손에 들어가면
그것이 또한 어디로 가겠습니까.
궁가(宮家)로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이 세곡은 조정의 곡식이기 전에 나라의
국록을 먹는 관원들의 녹미가 태반이요,
변방과 연안에서 수자리를 사는 병영들의
호궤미가 아니던가? 그런 세곡이 어찌
돈으로 둔갑하여 궁가로 들어간단말인가.
네놈이 여기서 콧물을 세우고 한 발짝만
잘못 내디딘다면 필시 코앞에 압령장이
떨어질 것이니 그리 알라."
  "생원님께서는 이치와 도리만을 따지는
것이 해결의 방도로만 생각하고 있군요.
그것이 어리보기 책상물림이란 명색들의
생각이란 것이오. 이판사판하는 터에
공맹의 도리에만 매달리고 있을
판국에 공론이 무슨 옴의 얼어죽을
변설이오? 생원님이 원치 않았다 할지라도
이미 세곡은 저절로 화수가 되었으니 한
발짝 잘못 내디디면 봉욕을 당한 사람은
시생이 아니라 생원님이오. 생원님은
명색이 총대선인이 아닙니까. 쥐 잡는 데는
천리마가 고양이 한 마리를 못 당하는 법.
가만 시생만 바라보고 있으시오."
  "이놈, 뉘 발목을 잡고 늘어지려나?"
  "그럼 시생이 생원님 발목을 놓아줄
것이니 이 경난을 해결한 방책을
구처하십시오."
  그때, 길가가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뒤에 지키고 앉았던 도사공들도
떨치고 일어나며 저희들끼리 수군거린다.
  "총대선인이란 게 양반 행티만 낭자하지
숨넘어가는 판에 저녁끼니 걱정하는 꼴이
가관이여."
  "책상물림이란 것들 비윗장 사납기로는
똥묻은 상놈 발바닥보다 못한 놈들이요.
저러다 화근을 뒤집어쓰면 어떡하려나."
  "저희놈들끼리 밥을 짓든 죽을 쑤든 두고
보세나. 우리야 선가와 고전(雇錢)만
챙기면 그만 아닌가. 저희놈들이 금부로
끌려가서 치도곤을 당하면 그만이지.
아지마씨 불두덩은 덮어줘도 욕먹드란 말
듣지도 못했나."
  "화수되어 곡식에 궐이 나면 경강
초입에서 겨로 채워 벌충하면 그만일텐데
저런 투미한 놈도 있나 그래."
  도사공들이 중구난방으로 지청구를
해대는 판인데 유필호가 선방에서 덕판으로
  "안 된다, 이놈들. 내 두 눈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동안은 네놈들의 농간을 용납치
않을 터이니 그리 알라."
  유필호가 딱 분질러서 오금을 박는데도
사공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때마침
배다리께로 걸어가던 길소개가
도사공들에게 분부를 내렸다.
  "안 되겠다, 저놈을 엮어라."
  "누굴 말인뎁쇼?"
  "이놈아, 이 차제에 엮으려면 어떤 놈을
엮어야겠느냐?"
  그 말이 채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배다리로 가던 도사공들이 되돌아서서
설교루로 올라가고 있던 유필호의 발목을
낚아챘다. 한놈이 유필호의 허릿바를
틀어잡고 덕판에다 패대기를 치니 아니래도
일같잖게 상투를 덕판에다 처박았다.
사단이 거기까지 간 줄 몰랐던 유필호가
미처 팔을 짚고 일어나려는 중에 다른 한
놈이 달려들어 왼다리 덧거리로
넘어뜨리고는 뒷결박을 지웠다. 도선목에
있던 선인들이 그 경난을 보지 못했을 리
만무였다. 두억시니 같은 놈들이 결박한
유필호를 선방에다 곤두박는 중에 배다리
끝에 천봉삼을 위시하여 십여 명의
송파패들이 몰려들었다.
  "이놈들, 얻다 대고 패악질이냐?"
  사세는 자못 험악한데, 덕판 가녘에
버티고 섰던 길소개가 옹골차게
되받아치기를,
  "냅뜨지 마라, 이놈들. 소동을 피우려
했다간 귀신도 모르게 참(斬)을 당하다는
  아니나다를까, 송파패들 뒤에는 또 다른
도사공과 굿중패의 뜬쇠들이 부러진 삿대며
몽둥이들을 꼬나들고 에워싸는 품이 미상불
심상치가 않은데, 약차하면 박을 내려칠
기세로 결진하고 있는 것이었다. 작변을
깨닫고 무턱대고 달려만 온 것이 큰
실수였다.
  "이놈들, 이게 무슨 짓들이요? 능지를
당하고 싶은 게냐?"
  길소개가 넌짓 대꾸하기를,
  "애들아, 안 되겠다. 그놈도 옭아라."
  뒤쪽에 결진하고 있던 길소개 수하의
사공과 격군들이 욱하는 김에 손빠른
송파패들이 어느새 달려드는 두 놈의
고대를 낚아채서 펄흙에다 곤두박았다.
그참에 천봉삼이 소리질렀다.
다친다."
  "아니, 행수님은 기생서방이라도 되시우?
이 사단을 보고만 있으라니요?"
  "가만들 있게. 내가 오라를 받겠네."
  그 사이에 사공들이 달려들어 봉삼을
잡아 엎치었다. 그러나 송파패 하나가 잘
되어 신은 창박은 미투리로 봉삼을 잡아
엎치려는 위인의 턱을 사 두지 않고
옆차기로 내꼰지르자 궐자는 속절없이
개펄로 나가떨어지는데 입가에 선지피가
낭자하다. 그러나 워낙 수적으로 열세에
몰린 터라 몽둥이 네댓에 한 사람씩 대척을
하자 하면 그나마 명만 붙어 있는
모가지들을 고주로 걸어야 할 판국이었다.
어느새 몽둥이에 박이 터지고 어깻죽지를
맞아 고꾸라지는 작자들이 여럿이었다.
  그러나 선교루에 올라선 길소개의 대답은
천연덕스럽다.
  "이놈 얻다 대고 간대로 호놈인고? 다시
그런 입정을 놀렸다간 주둥이를 간수에
처박아 폐인으로 만들 터이니 헤프게 굴지
마라. 적당으로 몰리기 싫거든 내 영대로
따르라. 이놈들아, 배 한 척이라도 침목을
당하면 너희놈들께로 돌아갈 것은 삭료가
아니라 전옥서 간옥이다."
  "이놈, 네놈의 공갈에 수월하게 기어들
줄 알았다간 큰코다친다. 네놈의 수하에서
찬밥을 먹느니 차라리 적당이 될 텨."
  "네놈들이 아무리 장승도깨비같이 겁없고
당치다 한들 칠십여 명에 가까운 내 수하
사람들께 대적할까? 국 쏟고 뭐 데고 치마
버리고 뺨맞더라고 병신 되어 패가망신하고
말고 내 영대로 따르라."
  이미 숙마바로 뒷결박이 되어 유필호가
갇힌 선방으로 끌려올라 가는 봉삼의
허릿바를 잡아채며 피칠갑이 된 송파패가
물었다.
  "행수님 어떡할깝쇼?"
  "할 수 없지. 궐자의 분부를 따르게.
목숨부터 건져야 하지 않겠는가?"
  "행수님 흉중을 한번 털어놔 보시우."
  "내 속이 버선짝이라면 뒤집어
보이겠네만 그럴 수가 없네. 그러나 궐놈이
결코 우릴 처참하진 못할 것이니 때를
기다리도록 하세나."
  길소개의 공갈에 주눅이 든 것도
사실이지만 실제로 대척을 한다하여도
승산이 없었기에 송파패들은 물러날
수군거렸다.
  "저 길가란 놈을 어찌할까?"
  "처칠 하세."
  "적당이 되었다가 근포되어 효수를
당하거나 저놈의 손에 맞아 죽으나 죽기는
매일반이 아닌가. 저놈이 혼자서 차 치고
포 치고 두 행수님까지 잡아 가둔 판에
그깐 파리 목숨인 우린들 가만두겠는가.
기회를 두고 보기로 하고 기다리세."
  "이놈의 천출, 모가지는 평생 두고
하나뿐이네 버히겠다는 놈은 여러 놈이니
모가지가 열 개인들 부접하겠는가.
육도삼략 있는 제간을 다 부린들 모가지
하나 달린 것 건사하기 이토록 힘이 드니
상놈의 모가지는 개발바닥보다 못혀."
  "그럴 거 없네. 마음먹기 달린 게여.
않는다면 또 못할 일이 무언가. 우리라고
길가란 놈 박살을 못할까."
  선인들이 침수된 배로 몰려가서
선복(船腹)의 썩은 판자를 뜯어 내는 일변
물을 퍼낸다 선재들을 대패질한다 하는
사이에 하루 해를 꼬박 넘기었다. 만 하루
동안이나 선방에 갇힌 두 사람은 시각이
지체될수록 조바심은 더해갔다. 유필호가
길게 한숨을 뽑으며 캄캄한 선방의 해금내
나는 판자벽을 휘둘러보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우리가 무사타첩이 되긴 글렀네. 하루
해를 넘기었어도 궐놈이 우릴 풀어주지
않는 것은 필시 딴 배포가 있다는 뜻일세."
  "그런가 봅니다."
  "자네가 굳이 내 말을 듣지 않더니 이
  "시생이 혼자서 비접을 하지 않은 게
다행이지요. 아니었더면 생원님 혼자서
고초를 당할 뻔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모르는 소리일세. 자네가 없었다면
길가란 놈이 나를 결박하진 않았을
것이야."
  "염려 놓으십시오. 출선 때에는 우릴
풀어줄 것이 틀림없습니다."
  "우릴 죽이려 들 것이 틀림없네."
  "우릴 죽이자면 밖에 있는 수하들도
죽여야 합니다. 길가에게 그런 담력이 있다
할지라도 일을 크게 벌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도 물론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네만 궐놈이 우릴 살린다는 건 옥사를
일으키겠다는 수작일세. 이번 일로 하여
득달하는 길로 선혜청으로 달려가서 우리가
배를 복선하도록 방치하고 화수된 것만을
가지고 타박하더라고 알소할 건덕지를 만든
것이지. 그 불령(不逞)한 무뢰배의 간계에
들어 우린 필시 옥사에 떨어지게 생겼네.
자네가 적당으로부터 건져낸 곡식 백 석을
밀매선에 공공연히 팔아먹은 것도 전부가
셈평이 업시 한 짓이겠는가? 자네가
원장(願狀)을 내어 궐놈의 투식을 논핵하려
든다면 궐놈은 자네를 되받아쳐서 적당의
무리와 내통하여 해창(海倉)을 털었다고
뒤집어씌울 만한 증거를 잡고 있다는
뜻일세. 내 문견이 있다 하고 자네 또한
재질이 소명한 위인이었으되 일개
장물림이었던 궐자의 농간에
나수(拿囚)당하였으니 면난이고 뭐고
그치었고 자네의 재질이 또한 견모가
되었을 뿐이었네."
  선방의 바깥쪽 판자를 두드리는
파도소리가 선명한데 파도소리에 섞이어
물새들의 울음소리가 낭자하다. 불도 없는
선방에는 한참동안 침묵이 흘렀다.
  "저희가 보병것[步兵木]으로 몸가축을
하는 상것에 불과하나 결단코 궐놈의
농감에 한번에 허술하게 치패를 당하긴
싫습니다. 염려 놓으시고 기다려보십시다."
  "내 일찍이 혜화문[東小門] 근처로
비켜나가서 갖바치 노릇이나 하면서 지낼
걸 잘못하였지."
  "맞춤은 고사하고 막치 한 켤레인들
변변히 짓지 못하실 한골이신 양반이
환로에는 들지 않고 갑자기 갖바치 되길
  "내 솜씨가 투미하단들 옥견(玉堅)이가
발로 만든 신보다야 못하겠는가. 내 주제가
일세를 경륜(經綸)하단들 무엇에다 쓰며
환로에들어 판서가 된들 무엇 할꼬. 대개
육조 여섯 마을의 큰일이란 판서들이
처결하되 작은 일은 참의(參議)들이
알음하여 참판(參判) 또한 맡은 일이
없으니 벼슬이란 낮잠 자기 좋은 자리밖엔
아무것도 아닐세. 차라리 갖바치라면
처음과 끝이 제 정성과 기력으로
이루겠으니 과욕을 부릴 건덕지가 업고
간계에 휘말릴 까닭이 없지 않겠는가.
천행으로 내가 목숨을 건질 수만 있다면
나는 혜화문으로 나가야 하겠네. 내 다소
면분이 있는 갖바치 한 사람의 훈수를 받을
수 있을니까."
  "자네들과 동사하자는 겐가?"
  "상것들이라 내키지 않으시단
말씀입니까?"
  "정근이 있다 하여 도포짜리가 어찌 자네
같은 보병것들과 동사 할 수 있겠는가,
아서 그런 말 뒀다 하게."











  선단이 수선을 마무리짓고 배뫼곶이
선창을 떠난 것은 두 사람이 선방에 갇힌
지 이틀이 지나고서였다. 출선을 알리는
북소리가 들려왔을 때 두 사람은 비로소
길소개로부터 놓여나기가 어렵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배뫼곶이를 떠난 선단은
곧장 덕적도(德積島)를 향해 북상하였다.
덕적도의 남양만 앞바다를 비스듬히 길게
가로질러 나아가면 영종도(永宗島)와
마주치게 된다. 영종도에서
마니산(摩尼山)을 바라보며 행선을 하면
손돌목 초입인 항산(項山)포구에 이른다.
손돌목을 지나자면 항산포구에서 한숨을
돌려야 한다. 항산포구는 삼남의
물길에 대비하는 곳이었다. 거기까지
당도하는 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여기서
서강이나 삼개까지 닿는 데도 다시 하루
반이나 이틀이 걸린다. 항산포구에서
하루를 묵고 손돌목을 무사히 빠져나가
덕진(德津)과 광성진(廣城津),
용진(龍津)까지의 연강수역(沿江水域)을
무사히 빠져나가 강화 달곶이[月串津]와
개성읍치(開城邑治)인 영정포(領井浦)를
휘그르 돌아서 조강(祖江) 어름에 이르는
뱃길을 거의 하루를 잡아야 한다. 선단이
조강 어름에 이를 때까지 선방을 지키고
있는 사공들은 아침 저녁 끼니때가 되면 두
사람에게 구메밥 한 덩이씩을 넣어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유필호는 밥톨
하나 입에 넣지 않았다. 상직을 서고 있는
덕판으로 끌고 나가서 행기를 시켜주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사공들을 붙잡고 선단의
내막에 대해서 구차하게 캐묻지도 않았다.
영종도 앞바다에서 소선 한척을 잃었을 뿐
행선은 순조로운 것 같았다. 동승한
관원색과 차사원을 매수하고 도사공들에게
적잖은 인정전을 찔러준 터라 선단은
제대로 움직여 주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배가 양화진
어름에 이르거든 저놈들이 행기를 시킬
적에 무턱대고 강으로 뛰어내리게. 액회를
모면하려면 그 길뿐이네. 갯벌까지만
헤엄쳐 나간다면 살길이 생기네. 널찍한
도회청에 자네 한몸 술길 곳이 없겠나."
  유필호가 완곡히 타이르는 것이었으나
봉삼은 시종 왼고개를 치는 것이었다.
속언에 잔고기가 가시 세다 하였네. 길가란
놈 허수히 보지 말게."
  "시생이 일개 모사꾼인 길가란 놈 하나를
겨냥하여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 형문깨나 좋이 맞을걸세."
  "간당률(奸黨律)에 처하여 효수를
당한대도 도리없지요. 다행히 사고무친이니
구경장폐(俱慶杖斃)까지 당할 것이 없는
자만 다행입니다."
  "자네 관가에 반연(絆緣)이라도 있는가?
아니고서는 술객(術客)도 아닌 주제에
그렇게 태연할 수가 없네."
  "장류(杖流)에 속을 바칠 건덕지도
없습니다만 믿는 것이라곤 동기간이나
진배없는 수하의 동무들뿐입니다."
이번 경난은 장력으로 되는 일이 아닐세."
  "동무들을 모조리 간옥으로 몰아놓을
재간이 없는 이상 우린 살아날 길이
있습니다. 신대주도 있지 않습니까?"
  "짐작없는 소리. 선주가 신석주와
김보현이 아닌가. 그런 둘 사이에 은밀히
오고간 내막을 자네야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길가란 놈이 감히 우릴
결박지을 땐 두 사람의 내막을 소상히 알고
있기 때문일세."
  "가만 계십시오, 고물 쪽에서 낯선
발짝소리가 들립니다."
  "몇경이나 되었을까?"
  "축시말(丑時末)이 되었을 것입니다."
  판자를 밟는 소리가 어수선하더니 금방
밖으로부터 걸쇠 따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득 호령을 하는 것은 낯선 목소리였다.
선방의 판자문이 벌컥 열리자 희뿜한
밤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네댓 놈이
들어와서 두 사람을 선교루 아래로
끌어내었다. 배에는 붉은 상모 달린
벙거지에 남철릭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포리
댓 놈이 버티고 서 있다가 끌려 나온
유필호의 상투를 잡아 제치고는,
  "제법 해말쑥한 이놈은 웬놈이여?"
  "이놈, 놓아라. 난 유필호라 한다. 어디
함부로 손찌검이냐 이놈."
  유필호가 두 눈을 부릅뜨고 하대에
호놈을 하고 나오자,
  "자네 함자는 들어 알고 있으니 양반
행티 너무 말게. 암고양이 상판으로
환형(換形)이 되어가지고서도 소가지는
쓴다는 천봉삼이란 놈인가?"
  벙거지 쓴 놈이 말마디깨나 꾸짖고
나오자 사공들이 고개만 끄덕이고 있는데
아무리 들러보아도 길소개의 모습만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선 도타할 염려가 없네. 형조로
압송될 때까지 우리가 상직을 설 터이니
자네들은 행선이나 거들게."
  숙마바로 엮은 결박 위에 다시 오라를
씌워 단단히 죄고 난 다음 장패(將牌)를
차고 있는 자가 들러선 사공들은 세곡더미
너머인 고물간으로 내몰았다.
  "여기가 어딘가?"
  유필호가 나직이 물었다.
  "양화도(楊花島)가 틀림없습니다."
  봉삼이 포리들을 눈여겨보았으나 송파
분명한데 철릭자락에 벙거지를 본때있게
뒤집어쓴 꼴이 구색에 맞고 어색해
보이지가 않았으니 형조에서 나온 포리들이
분명하달 수밖에 없었다.행주(幸州)
염창목에서 선단이 지체할 제 길가가
봉비(封臂)한 비각(飛脚)을 놓아 형조의
포리들을 불러올린 것이 분명하였다.
그런데 배가 마침 양화도 갯나루를 벗어나
스름스름 나아갈 즈음에 장교 복색을 한
자가 다가와서 환도로 두 사람의 뒷결박을
끊었다.
  "빨리 덕판 가녘으로 나가시오. 거기
파피선 한 척이 잇대어 따르고 있습니다.
재빨리 그리로 뛰어내리시오."
  그참에 봉삼이 물었다.
  "도대체 댁네들 본색이 무어요?"
나온 사령들이오."
  "형조의 포리들이 어째서 여기까지
나왔소?"
  "거 말마디깨나 끌고 있네. 그런 일
알음하여 만수받이하고 있을 처지가
아니오. 우선 차피선으로 옮겨 타고
졸가리를 따져봅시다."
  장교 복색한 위인이 열퉁적게 쏘아붙이는
중에 눈자위를 똑바로 뜨고 물었다.
  "나와 동사하던 송파패들은 어찌
되었소?"
  "노형이 파피선으로 피신해야만 그
패거리들도 무사하게 될 거요. 여기서
아퀴를 짓자 하고 사뭇 버티고만 있다간 그
패거리들은 사르리 취박을 당할 것이오."
  도대체 장교의 말대꾸가 두동지고
하든지 난리를 일으키든지 해야겠다고
생각이 올지갈지하는 판인데, 다섯 놈이
일시에 권(拳)을 뭉치고 달려들어 두
사람을 파피선으로 밀어뜨렸다. 파피선엔
벌써 건장한 사공 한 놈이 노를 강심에
담근 채 기다리고 있었다. 일곱 사람을
태운 파피선은 잠시 동안 세선의 뱃전
가녘을 바싹 붙어서 노를 저었다. 멀리
억새밭이 질펀한 갯가가 보이기 시작하자
잽싸게 뱃머리를 돌렸다. 그리고는
와우산(臥牛山) 기슭의 망원정(望遠亭) 앞
샛강으로 쏜살같이 미끄러져 들어갔다.
와우산 뒤편 기슭을 사뭇 따라오르면
무쇠막[細鐵里] 네거리와 마주친다. 무쇠막
주막거리를 지나서부터는 성산리(城山里)라
연희궁(延禧宮)에서 넘어오는 두 줄기 길과
큰덕이[大峴]의 서활인서(西活人署) 앞에
이르게 된다. 거기까지 이를 동안 거의
인적을 느낄 수가 없었고 뒤따르는 포리들
역시 두 사람을 느긋하게 뒤따를 뿐
별반거조를 보이지 않았다. 큰덕이를 넘어
애오개[阿峴]에서 다시 노고산(老古山)
ㅇ수터에서 갓방고개를 넘어 동막과
공덕리(孔德里)에서 넘어오는 길과
마주치면서 길은 제법 널찍해지고 제도가
번듯한 주막거리를 만난다. 애오개 아래
주막참에 이르자 벌써 새벽이 희뿜하니
밝아오면서 안개가 내려 지척을 가늠하기
지난이었다. 앞서서 휘적거리고 걷고 있던
장교가 두 사람 건너인 졸개들에게 불쑥
말했다.
  "숫막에 들러 끼니 청해서 초벌 요기나
  "삽짝 열어둔 주막이 있을까요?"
  "고샅에 있는 그 집으로 가서 주모를
들깨워보게나."
  "하필이면 또 그 집입니까? 지척에도
숫막이 여럿인데요."
  "다 짐작이 있어 한 말인데 비틀기는 왜
비틀고 야단이냐."
  졸개란 놈이 잽싼 걸음으로 고샅으로
뛰어든 지 얼마 기다리지 않아서 어서
오시라는 시늉이었다. 고샅으로 들어서니
안개 속으로 용수 씌운 장대가 각담 위로
높다랗게 솟은 숫막이 보였다. 일행이
마당으로 들어서자 화초머리에 자주 댕기
늘어뜨린 주모는 벌써 술청으로 나와서
목로를 훔치고 있었다.
  "주모, 그 동안 별고 없었나?"
전사부터 연분을 트고 지내는 사이 같은데
주모는 그렇게 수작을 거는 장교에게 하얀
치열을 드러내고 배시시 웃음을 흘릴 뿐
대꾸가 없었다.
  "지난밤에 살꽃을 과도히 팔았는가 어찌
신색이 노랑꽃인가?"
  주모는 다시 할끔하고 장교를 흘겼을 뿐
역시 대꾸가 없었다.
  "새벽에 끓인 술국이 있는가?"
  "토장국이 있어요."
  "토장국에 돝고기 쭝쭝 썰어넣어 퍼먹는
것도 별미지. 술도 두어 방구리 내놓게."
  일곱 사람이 목로 주변에 턱을 괼 듯이
당겨 앉았다. 봉삼이가 그때,
  "노정이 바쁜 터에 술 두 방구리라니
무슨 말씀이오?"
하여도 반허리나 끌까말까요. 노형들도
그간 선방에서 갇혀서 배를 주렸을 터이니
돝고기로 순대나 채우시오. 그래야
중장(重杖)에 논죄(論罪)를 당한다 하여도
뱃심이 생길 거 아니오."
  "어서 댁네들 본색이나 밝히시오. 우리가
도타할 구멍을 몰라서 여기까지 끌려온 건
아니오."
  "조급하게 짓조르지 말고 우선 요기부터
하시라니까 그러네? 모가지가 홑벽에 가린
터에 웬놈의 결기는 그리 긁어올리시오?"
  술국집에 들어설 적엔 초벌 요기나 하로
냉큼 일어서겠다던 작자들이 토장국에
돝고기며 술에 아침동자까지 시켜 걸판지게
퍼먹고 나서, 두 사람을 외딴 봉노로
데려갔다. 장교는 새삼스럽게 철릭 자락에
  "노형들이 자꾸 우리의 본색을 밝히라고
짓조르고 드는 거동은 우리를 만리재
왈자패들이나 아니면 길아무개란 사람의
사주에 놀아나는 하예들이나 아닌가 해서란
건 알고 있소이다. 그러나 우리는 형조의
형리들이 분명하외다."
  질겁을 하고 놀랄 줄 알았던 유필호가
그때 한다는 말씀이,
  "허, 십년 과수로 앉았다가 고자대감
만난 격이군. 그렇다면 이렇게 노량으로
지체할 까닭이 무언가? 우리에게 논죄할
것이 있다면 당장 장폐를 시켜야 순서가
아닌가. 너희 같은 하잖은 무변들이 명색이
반명을 한다는 사람을 데리고 희롱을
일삼고 있다니 말이 되는가? 양반이 너희
같은 무변들에게 벼슬을 줄 수 없으되 뗄
  그참에 이르자, 장교는 상툿고가
늘어지도록 걸판지게 껄껄 웃고 나서,
  "한골 나가시는 반명께서 북촌(北村)
어름에 어슬렁거리진 않고 어찌 뱃것들과
한통속이 되어 세선행수로 박히셨소이까?
유생(柳生)께서 내 벼슬을 떼기 전에 내가
먼저 유생의 모가지를 떼버린다면 그땐
어떡하시겠소?"
  "버르장머리없는 언사 냉큼 거두고 어서
아퀴나 짓게."
  "물론 시전(市廛)의 대행수(大行首)인
신대주어른을 알고 있겠지요?"
  "신석주는 왜 들먹이냐? 임선단의 선주를
우리가 모르겠는가?"
  "그렇다면, 질질 끌 것도 없소이다."
  장교는 철릭자락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이걸 거두시오."
  "이건 어음표가 아니오? 삭료로선 너무
과도한 액수가 아닙니까?"
  이번엔 천봉삼이가 놀라서 물었다.
어음표를 가만히 들어다보던 유필호가
혼자소리로,
  "신석주 수결(手決)로 된 천냥짜리
어음일세."
  그때, 천봉삼은 비로소 세선단이
서강(西江)나루에 닿기 전에 두 사람을
끌어내린 곡절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신석주가 형조에 면분있는 관헌들에게
인정ㄹ전을 찔러주고 이런 사단을 벌인
것이 분명하였다.
  "형조에서는 노형들이 세선단을 이끄는
행수로 박힌 것을 빙자하여 저지른 범증을
횡행하는 수적들과 내통한 건 물론이요,
세곡 농간에 이골이 난 옥구관아 작사청
아전이란 놈을 요사한 정소(呈訴)를 올려
백방하여 선화당을 희롱하고 게다가 수적과
내통한 간자를 수적들을 시켜 도타시키는데
방조하였소. 어디 그뿐이오? 노선(老船)
수리를 빌미잡아 화수를 자행하였소.
화수하기 좋도록 묵은쌀과 액미를 감납토록
공공연히 게방(揭榜)하여 주도록
향임(鄕任)들과 현감을 부추겨 사주한
것이며 나락섬이 두껍고 감납에 궂은 날을
피한 것은 기필 화수나 변매(變賣)할
계략을 당초부터 꾸미었다는 증거가
아니오. 논죄를 하자 하면 장판(杖板)
위에서 무주고혼을 시킬 죄목이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이 어음표를 내놓는
  "이 어음을 받지 않고 형주로 끌려가서
중장을 당하겠소, 아니면 이 어음을 받고
놓여날 것이오."
  "이건 알다가도 모를 일이군."
  "송파 패거리들은 걱정할 게 없소이다.
무사히 송파로 돌려보낼 것이오."
  신석주가 그만한 가급(加給)까지
내어놓은 이면에는 필경 조소사와 나누었던
그 하룻밤 정분 이외는 용납할 수 없다는
뜻일 게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란 유필호의
입장에서일 뿐이었다. 이제 조소사와는
두번 다시 대면할 수 없게 된 것을 봉삼은
깨달았다. 우두망찰 맞은편 바람벽에다
시선을 주고 있는데 장교가 이르기를,
  "한 가지 아퀴지을 일이 있소. 앞으로는
두 사람이 도성 안엔 얼씬도 말라는
안으로 발끝을 디밀었다간 득달같이 형조로
엮어들일 것이오."
  "나도 내쫓으라던가?"
  "김대감 분부가 추상 같았소이다. 앞으로
문전에 얼씬도 말라 하였소이다."
  "자네들 말을 믿어도 되는가?"
  "내 말을 못 믿겠거든 오늘이라도 당장
성안으로 들어가보시오. 참빗으로 서캐
훑듯 검색하여 잡아들일 게요. 성명 단자며
용모 파기가 수문군(守門軍)에마다
이문(移文)이 되었으니 행동거지에 조심을
해야 명을 붙이고 살 게요."
  "그렇다면 우리 선인들 삭료만 내어놓고
끝전들은 가져가주게. 개들의 등겨를 털어
주린 배를 채우거나 두견(杜鵑)의
모가지에서 피를 뽑아 먹지 이런 더러운
  "꿰미돈이라면 모를까. 그럴 수가
없습니다. 또한 우리에겐 밑전이고
끝전이고 남의 어음을 두동강 낼 재간도
없소이다."
  장교란 위인이 그렇게 쏘아붙이고는
자리를 박치고 일어났다.
  "자, 이제 하직입니다."
  봉당으로 내려서더니 술청에서 기다리고
있던 졸개들을 영솔하여 갈지자걸음을 하고
숫막을 나섰다.
  "에쿠, 식대들은 어찌하고 그냥들
하직이실까."
  그때까지 졸개들 손에 사추리를 떠맡기고
앉았던 주모가 치마말기를 거두며 황망히
술청을 나선다.
  주모의 지청구를 귓결로 주워들었던지
째지는 눈지위를 하고는,
  "그, 애우개 아래참 주모치고는 통
숙맥일세그려, 누깔은 보리동냥을 보냈나?
봉노 안에 전대 두둑한 선인행수들이
버티고 있지 않은가. 북어나 동태나
명태이긴 마찬가지 아녀. 우리 같은
졸개들에게 무슨 놈의 식대가 있다고
지다윈가 그래?"
  "어서 내고 가셔."
  "관헌들 돈 먹으면 시한내(겨울 내내)
고뿔도 안 한단 소문은 어디서 줏어 챙긴
모양이구만. 아서 천냥짜리 어음 가진
통뼈들에게 그만한 식대가 없겠나."
  "그럼, 지난밤 꽃값들은 어쩌세요?"
  "뭐 살꽃값 말여? 허 이거 새벽 도개비에
발목 잡혔네그려. 그건 네 좋고 내 좋아서
잡고 늘어지며 황소 영각 켜는 소리로
희학질한 건 누구여? 걸신 들린 년처럼
남의 밤잠을 한숨도 안 재우고 색허기를
채우구선 누구 보고 꽃값을 내라는 게여?
새벽바람부터 창피하게 삼이웃 들깨우지
말라구. 반년 동안 몸보신하여 임자에게다
죄다 쏟아부었으면 나로 봐선 이만저만한
손재수가 아니지 않은가. 집에 가면
여편네한테 또 당할 판여, 그러지 말라구."
  "애쿠, 이 무슨 날벼락이신가 그래,
명색이 대장부가?"
  "임자, 정 그러하다면 상풍죄로 취박하여
아주 단단히 정을 다시게 할 터이니 애오개
너머까지만 암상 떨며, 쫄쫄 따라와봐
어디."
  "에쿠, 그게 정말이여?"
임자하고 희롱이나 할까봐서?"
  물색 모르고 삽짝 밖 고샅까지
따라나가서 지난밤에 판 꽃값을 짓조르던
주모가 걸찍하게 우세만 당하고 돌아서는데
때마침 봉노에 앉았던 행객 두 사람도
봉당으로 내려서고 있었다.
  "주모, 왜 그러나? 식대구 뭐 값이구
전부 우리가 계배할 터이니 아침동자
바람부터 너무 설치지 말게."
  "에쿠, 말씀도 마십시오. 나으리들께서
들으셨으면 흡사 쇤네 혼자서만 그 위인과
동품한 줄 알겠습니다."
  "그럼, 자네말고 막창이라두 두었단
말인가?"
  "막창을 두지 않았지요."
  "그렇담 애꿎은 얘기는 무언가?"
걸판지게 먹고 계집을 들이라고 비대발괄을
하길래 오리정까지 나가서 활인서
선무당들까지 불러다가 밑을 대었더니 그냥
날탕으로 삼키구선 그 배냇물도 덜 마른
놈이 글쎄 쇤네만 들먹여 삼이웃에다
우세를 주는 것이지 뭡니까 글쎄."
  "그런 사정 듣고 있을 처지가 아니니
득달같이 계배나 대어보게."
  "스무 냥은 내놓으셔야 되겠습니다."
  "그건 상목 세필값이 아닌가?"
  "색대에 꽃값에 창피까지 뒤집어쓴 판에
열 필 무명인들 봉창이 되겠습니까. 쇤네도
봉을 잡은 김에 털이나 뽑아얍지요."
  "주모 보아하니 노들에서 뺨맞고
종루에서 눈 부리리는 격이 아닌가?"
  그때 주모가 눈을 힐끔하면서,
고추장 세 바탱이 요절내더란 얘기도 못
들으셨습니까?"
  "여기 있네. 시룻번 얻어먹고 떡값 물게
생겼네."
  유필호가 지녔던 은자를 꺼내 계배를
대었다. 은자를 몰로에 떨어뜨리자 그렇게
입정 사납던 주모는 물룰 끼얹은 듯 말이
없었다. 두 사람은 새벽이 깨고 해가 뜰
녘이 되어 숫막을 나섰다. 활인서 앞을
지나 공덕리로 빠져 갓방거리를 지나
만리창(萬里倉)고개를 넘었다.
만리창고개에서 군자감(軍資監)
신창(新倉)머리에서 오른편으로는
파청루(杷淸樓)로 나가는 길이 있고
왼편으로는 효창묘(孝昌墓) 앞으로 해서
청파역(靑坡驛)으로 빠지는 길이다. 두
만초내[蔓草川]와 만난다. 만초내로만
나가면 칠적재를 넘지 않고도
아랫굴[西永庫]로 나가는 뗏배나 주낙배를
얻어 탈 수 있었다. 그러나 만초내에서
유필호는 거의 탈진하여 기동조차 어렵게
되었다. 그 동안 선방에 갇혀 있을 제
곡기를 끊고 지낸데다 김보현의 배신에
심기가 흐트러진 탓일 게다. 사색이 되어
냇가에 퍼질로 앉은 유필호에게 봉삼이
등을 들이댔다.
  "시생에게 업히십시오."
  "아닌세. 조금만 더 지체하면 심기가
돌아올 것이네."
  "그러시지 말고 업히십시오. 생원님
같은신 학문이 투철하신 분과 동사하게
되었는데 승교바탕으로 모시지 못할망정
  "나를 그렇게 치부해주니 고맙네만 내
차마 업혀갈 수야 있겠나. 자네 또한
기진맥진한 처지가 아닌가."
  "시생은 연골 때부터 소금섬을 지고
경기.황해도 지경을 안 다닌 곳이 없고
병각마(病脚馬)를 업다시피 끌기도
하였습니다. 이날까지 이 천출이 연명해온
것은 두 다리와 등때기 하나 굳세었던
덕분입니다. 종잇장 같으신 생원님이야
등에 업혀도 그만 아니어도 그만입니다."
  봉삼이 꽁무니를 빼려는 유생을 잡아
업고 만초내를 건넌다. 물이 아랫배까지
차오르고 펄흙이 밟혀 자칫하면 물에
엎어질 지경이었다.
  "자네, 아까 그 형조의 장교란 자가
우리를 논죄할 제 길소개가 변매(變賣)한
한마디 발명은커녕 입도 뻥긋하지
않았었나?"
  "대세(大勢)가 이미 기울었기
때문이지요."
  "대세라니?"
  "발명을 해보았자 이미 해코지를 하자
하고 덤비는 판엔 백 가지 핵변이 통할 리
만무가 아닙니까? 한 사람은 권세를 잡았고
한 사람은 장안의 상권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은 모함잡는 술수가
남다르지 않습니까? 그 셋이 모여 하잖은
천출의 상고배 하나와 어리보기 양반 하나
욕보이자는 데야 당해줘야 맛이지요.
항우도 댕댕이덩굴에 걸린다는 판에
말입니다."
  "자네, 신석주와는 세간이 알지 못하고
  "그렇습니다만 나중에 말씀 여쭙기로
하지요."
  "다 건넜네. 이제 그만 내려주게."
  "여기서 뗏배나 얻어 타지요.
아랫굴까지만 나가면 선객을 태우고
송파나루까지 가는 배가 있습니다."
  봉삼이 젖은 바지를 짜서 털고 다시
꿰었다. 힐끗 돌아보매 유필호의 눈자위에
설핏하니 눈물이 괴고 있었다.







  제 4 장  亂 飛


  매달 하순 스무닷새 어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던 경도(經度)가 비치지 않은 지가
벌써 두 달째였다. 조소사는 물론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고 있었다. 지난달
그믐 적께부터 문득 삭신이 나른하여
기동하기가 싫었고 헛구역이 나는 등
입덧을 하기 시작하였으니 분명 뱃속에
피붙이를 가진 것이었다. 월이가 시전
행랑에서 탑골집으로 옮겨앉고부터 자연
조소사의 곁을 떠나지 않고 제백사를
수발을 하는 터라 조소사의 잉태를 맨 먼저
알아차렸으련만 아직 이렇다 할 말은
  벌써 6월 하순께라 이른봄에 내린
병아리들은 거의 중치가 되어서 어미닭을
따라 화초담장 아래로 가서 모래찜질을
하고 있었다. 추녀끝을 미끄러져 내린
뙤약볕이 지대 위에서 고기비늘처럼
뒤채는데 높은 담장 밖으로는 네댓이나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호드기를 불며
고샅을 빠져나가는 발짝소리가 다급하다.
  그때, 마당 건너의 반빗간 지게문이
열리면서 북덕무명으로 복용하였으나
입성이 정갈하고 낭자 곱게 지은 월이가
한낮의 햇볕만 휑뎅그렁한 마당을 가로질러
몸채의 신방돌로 올라섰다. 월이는
마루끝에서 방안을 향해 나직이 말하였다.
  "아씨마님, 마루로 좀 나오십시오."
  "......"
햇볕을 쬐셔야 합니다."
  "......"
  "쇤네인들 무얼 알겠습니까만 소싯적에
쇤네의 어미가 한 말이 생각나서
그럽니다요. 어서 나오시지요."
  그때, 조용히 미닫이가 열리었다.
  "햇볕을 쬐면서 이것이나 좀 드십시오.
아침나절에 숭례문 밖 복삿골로 나가서
낱알이 분명한 것으로만 분별해서 구처해온
것입니다."
  마루끝에 놓인 단각반(單脚盤)엔 때아닌
오얏이 함지박에 수북하도록 쌓여 있었다.
조소사는 금방 잇몸에 짜릿한 구미를
느꼈다. 궐녀는 그러나 벌떡 몸을
일으키려다 말고 금세 마음을 다시
가라앉히었다. 멀리 사라졌던 아이들의
거슬러올라 담장을 비켜나갔다. 그때
맞은편 집 몸채 지붕 용마루 위에서 깃털이
현란한 수탉 한 마리가 허공에 길게 목을
빼고 한바탕 늘어지게 울었다. 그 푸짐하게
흐드러지는 낮닭의 울음소리가 또다시
조소사의 가슴속을 헤집고 파고들었다.
봄이 기울어 여름에 들고부터 그 수탉은
거의 매일같이 용마루에 올라 북악을 향해
늘어지게 울음을 뽑아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 깃털은 한낮의 햇볕을 받아 언제나
번쩍거리는 것이었고, 그 울음소리는
구처에라도 닿을 듯 우렁찼다. 몸매가
수려하고 우람한가 하면 벼슬이 또한
푸짐하였다. 그 수탉으로 하여 조소사는
이상한 버릇 한 가지가 생겨났다. 낮닭이
용마루에 오르는 시각을 어름하여 머리를
 배뫼곶이를 떠난 선단은
아녀자가 몸가축을 정히 해야 한다는 것에
연유되었다기보다, 행여 그 수탉이 오늘은
울지 않으면 어떡할까 하는 공연한
조바심이 궐녀로 하여금 자꾸만 머리를
빗질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로 인하여
정수리 한쪽은 빗독으로 벌겋게
화농(化膿)이 들 직전에 이르렀다.
  용마루에 올랐던 수탉이 기왓골을 따라
성큼성큼 춤추듯 추녀 가녘으로 내려가더니
몇번인가 나래를 퍼덕이며 아래를 겨냥하여
뒤꼍 소나무숲으로 내려앉았다.
  "아씨마님 이제 좀 드십시오."
  월이가 대청 한가운데로 소반을
옮겨놓으면서 타이르듯 말했다. 조소사의
귓볼이 문득 붉어졌다.
  "여기서 어떻게......"
기웃거리는 사람이라도 있을까봐
그러십니까. 설마 쇤네에게까지 면난해하실
것은 없겠지요."
  신것이 먹고 싶은 것은 사실이었다. 또한
그 자신 아직 한번도 배태한 경험도 없는
월이가 입을 맞춘 듯 이토록 헤아림이
지극한 것에도 조소사는 고마웠다.
조소사는 오얏 한 개를 집어들면서
말하였다.
  "너도 한 개 맛보아라."
  "별말씀입니다. 쇤네 걱정 마시고 어서
양껏 드십시오. 오늘 초행길로 오얏밭길을
익혀두었으니 자시고 싶을 땐 언제든
쇤네께 귀띔만 하십시오. 득달같이
달려가서 구처해 오겠습니다."
  "종루거리에 나갔다가 다른 소식은
  "다른 소식이라니요?"
  "......"
  "무슨 소식 말씀입니까? 아예
잊어버리십시오. 소식을 알게 되면 그것이
곧 화근이 되십니다. 아씨마님 끝내
상심이면 쇤네가 견뎌내기 힘든 건
고사하고 잉태한 몸에도 좋지가 않습니다."
  정인의 피붙이를 가졌으니 더욱 그
모습이 그립되 피붙이를 간직하여
순산하기를 바란다면 정인을 잊어야 한다는
도리는 곰곰 생각할 제 사리에 닿는
일이었다. 다시 천봉삼을 만나게 해줄
신석주도 아니거니와 월이와 언년이를
부추겨서 천봉삼의 행처를 수소문하게
한다는 낌새를 눈치채는 날엔 그 당장
살아남지 못할 것이었다. 애당초 시전의
것이 아니고 단지 문중의 후사를 얻기 위한
시내리고 취하고자 함이었으니 신석주가
조소사의 행동거지에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있으리란 건 자명한 이치였다.
  "저런 벌써 함지박을 태반이나
비우셨네요."
  월이가 화들짝 놀라 함지박을 굽어보는
시늉까지 하였다. 수건에 손을 닦던
조소사가 슬쩍 떠보는 말로,
  "나으리는 오늘 밤 내처 김대감댁에 가
계실 것이 아닌가?"
  "그 집은 대감이나 대방마님이랑 똑같이
굿 보기를 좋아해서 연일 굿청을 벌이는
것이랍니다. 그때마다 나으리를 부르시니
가보지 않을 도리가 없겠지요."
  "그렇다면 오늘 밤 안으로는 정녕
  "아씨마님이 무슨 속내로 그런 말씀인지
쇤네도 십분 짐작합니다만, 쇤네 그 일만은
못합니다."
  "삼남 세곡선을 타신 이후로는 소식
돈절이시니 내 설령 목석이라 한들 어찌
하루 세끼의 밥이 입으로 들어가겠나. 네가
못 간다면 내 차라리 배태한 피붙이를
잃는다 할지라도 내 발로 걸어서 그분의
행처나마 수소문하고 돌아와야 하겠다."
  "고정하시라니까요."
  "내 한 목숨 요정나고 또한 피붙이를
없앤다 하면 나으리께서 문중에 후사를
남기지 못하는 일도 또한 낭패가 아니
될까. 다시 첩실을 얻어 또한 배태를 하자
하면 문중이 또 한번 뒤죽박죽 분주를 떨게
마련이지. 내가 목숨을 내걸기로 마음만
네가 못 간다면 내가 가지."
  "안 됩니다. 그러시다간 정녕 욕을
당하십니다요."
  "그럼 네가 갔다 오겠다는 게냐?"
  "당장은 어렵습니다."
  "당장이 절박하지 않느냐. 나으리가 집을
비운 사이가 아니면 넌들 기동이 쉽지 않을
것이야."
  "아씨마님이 기어코 쇤네의 목숨을 걸게
만드시는군요."
  "목숨 걸기는 매일반이다. 네가 변괴를
당해 고초를 겪는다면 내 어찌 그 꼴을
보고만 있을까. 차라리 자처나 하고 말
일이지."
  "잉태한 아씨가 어찌 기탄없이
생각하시고 말씀하신단 말입니까. 다시
안으로 쇤네 송파 쪽에나 한번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월이는 가슴이 떨리는 것을 가까스로
가라앉히었다. 이미 조소사의 심지는
너무나 굳게 박이어 장비가 가로막는대도
그 뜻을 저버릴 계제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조소사 손수 나아가
수소문하도록 내버려두어 들통이 난다 하면
궐녀와 잉태한 목숨은 물론이요, 그
수하에서 수발하던 노비로서의 책분을 면치
못해 세 목숨이 요정날 것이요, 월이
혼자서 다리품을 놓고 다니다가 들통난다
하여도 끝내 고변만 않는다면 제 한목숨만
거들나면 그만이겠으니 차라리 상전의 귀한
목숨을 구하고 그 노비가 죽는 것이 또한
도리가 아니겠는가.
앉아 곰곰이 생각할 제 방도는 그 한
가지뿐이었다. 타관 객사를 하고 난 후
이미 이승의 사람이 아니라고 체념했기
망정이지 최선돌이가 천봉삼이처럼 소식이
돈절했다 하면 월이 또한 조소사의
조바심에 버금갈 일이 아니겠는가. 하물며
그 사람의 피붙이를 육신에 담고 있는
처지라면 애간장이 녹을 듯할 건 십분
짐작할 만하겠다. 다만 이 일이 한낱
무자리 백정의 소생이라 하되 한목숨을 걸
수 있는 가치가 있는 일이가에 대해서는
월이도 의구심을 품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 또한 어릴 때부터 곁에서
수발하였던 상전의 분부이니 그 분부를
거역함은 이미 하늘의 뜻을 저버림과 같지
않은가. 다시 만나지 말았어야 할 상전과
맞닥뜨리지 않았을 것이었다. 이것이
연분이란 것이라면 그 연분의 인연대로
따르는 것이 또한 순리처럼 생각되었다.
  월이는 횃대에 걸린 처네를 걷어들었다.
몸채로 나아가 다녀오마고 연통을 하였으나
방안에선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아마 울고
있을지도 몰랐다. 월이는 곧장 탑골을
벗어나 향교골[校洞] 평시서(平市署) 앞을
돌아서 좌포청(左捕廳)을 지나 내처
배우개로 나아갔다. 종루로 뻗은 한길을
주욱 따라서 흥인문에 당도했을 때서야
겨우 두어식경이 지났을 만큼 월이의
행보는 재빨랐다.
  밤을 도와 송파로 가서 천봉삼을
수소문하여 찾아보고 다시 새벽까지 흥인문
밖에 당도하였다가 성문이 열리는 대로
굿판에서 돌아오기 전에 집에 당도할 수
있으리란 막연한 짐작 하나로 길을 나선
것이었다. 마침 뚝도까지는 작반할 만한
여상(女商)들을 만나 노정이 그다지
번거롭지가 않았으나 뚝도 갯나루 어름에서
여상들과 동행을 작파하고 나자 월이 혼자
남게 되었다. 벌써 일색이 다하여 연안
갯벌에 어둑발이 내리기 시작하고 주위에서
서성대는 행객들이라곤 눈자위가
화등잔만한 사내들뿐이라 조바심부터 났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뗏배를 얻어 타려고
갯나루를 서성거리는 행객들 중에는
내행(內行)이란곤 없었다. 혹시
성내에서부터 뒤를 밟고 있는 염탐꾼이나
없었던가 하여 작로중에 여러 번 길을
바꾸고 숫막 뒤꼍길을 잡아 숨어도
삼전도로 건너려는 도선객들은 거의가
장사치들로 보였다. 담배장수나 황화장수가
대부분인가 했더니 개중에는 괴나리봇짐에
북두끈을 잔뜩 매어단 외방의 소장수들도
섞여 있었는데 소장수들은 경기 인근을
돌고 있는 장돌림들이 아닌지 저희들끼리
주고받는 말투들이 제법 거칠고 말끝이
뚝뚝 부러지는지라, 자못 사위가
험악하게만 느껴지는 것이었다. 최돌이와
같이 남도길 장터목을 헤매던 때의
배포와는 달리 그들이 장목을 부라리며
농지거리라도 건네오면 어쩌나 하고 가슴을
죄었으나 다행히 뗏배로 오를 때까지
수작을 걸어오는 인사가 없었다. 그러나
뗏배가 갯나루를 빨랫줄 한 길이만큼 강심
쪽으로 비켜 뜨자, 바로 옆자리에 웅크리고
것이었다.
  "어디로 가는 내행이시우?"
  "......"
  "보아하니 성내에서 연명하는 듯한데
행탁도 없는 걸보니 멀길 행보는 아닌
듯한데 송파까지 노정이시우?"
  이쪽에서 말대꾸 없는 것으로 보아
심기가 동하지 않는다는 걸 미루어
알아차릴 만하건만, 배 타기 전에 도선목
숫막에서 한잔 걸친 김에 사내 구실을
하자는 건지 사내는 내처 물고늘어졌다.
아차하여 처네 밖으로 힐끗 곁눈질을
해보았으나 도통 면분이 없어 우선은
안심인데 사내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구 고리짝 놓아버린 방물장수
같지도 않고 입성을 보아하니 장안의
하님이시우?"
  위인을 길래 두엇다간 무슨 변고라도
내고 말 것 같은 깜냥인지라 참다 못한
월이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심심하거든 노질이나 거드시오."
  "허참, 노질을 거들려면 무슨 지랄루
비싼 선가 내고 뗏배에 올랐겠수."
  "뉘댁 하님이면 어떡하겠소?
승교바탕이라도 갖다 대령하고 싶어
안달이라도 났다는 말씀입니까?"
  "엇 뜨거라. 난 또 벙어린 줄 알았더니
말대답하기로 하면 차기가 섣달
냇물일세그려."
  "식은 한저녁을 자시고 냉골에 업혀 자서
횟배가 동하셨나 웬 흰소리는 이리
낭자한가 원."
보아하니 장안에서도 방귀깨나 뀐다는
한댁의 하님이신 모양인데. 그래 송파의
어느 존위집을 찾아가는 길이시우?"
  사내가 내뱉는 말투가 하대를 하였다간
받자를 하였다가 하는 꼴이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은데, 월이의 대답은 거칠 것이
없었다.
  "한골 하님이 아니면, 밤중에 뗏배 한번
혼자서 못 탈 어리보기로 보시었소?"
  "그런데 모시고 있는 상전의 택호는
뉘시우?"
  그참에 이르러서야 주변에 앉았던
장사치들이 이쪽으로 시선들을 돌렸다.
  "흥, 눈치만 보구 사부인 고쟁이
벗긴다더니 댁네가 그 짝이구려. 남의 상전
알뜰히 찾아낸다 하여 청촉질도 못하실
지다위가 낭자하실까. 흰소리 그만
거두시고 양치(養齒)나 하고 출입하십시오.
입에서 시궁냄새가 납니다."
  금방 뗏배가 들썩하도록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폄을 당하고 크게 면박을 당한
당사자도 파적이나 하잡시고 수작을 걸어온
듯 도선객들을 따라 웃어버리고 말았는데,
삼전도에 당도하여 배를 내리는 중에서도
몸을 채 가누지 못하고 기우뚱거리는
월이를 부축까지 해주는 것이었다. 궐자가
진작 썩 비켜나지 않고 주변에서 맴도는
것이 어쩐지 꺼림칙한데 아니나다를까,
도선목을 벗어나서 반마장 가량이나 저자
쪽으로 열불나게 행보를 줄이고 있는데도
열댓 칸을 사이하고는 사뭇 뒤를 밟고 있는
것이었다. 때때로 월이가 뒤를 돌아본다
아주 태연자약 한 것이었다. 그런
행동거지가 일단은 안심이 되었다.
신석주가 보낸 하예라면 끝까지 몸을
숨기겠기 때문이었다. 일변 생각하기엔
한적한 길목에서 월이를 낚아채서 잠깐
겁간하여 육허기나 채우려는 도선목 왈자
패거리가 아닌가 싶기도 하였다. 때마침
여남은 칸 앞 고샅으로 밤낮도록 술청을
열고 있는 술국집 불빛이 보이기에 조급히
담모퉁이를 꺾어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궐자가 언제 행보를 줄여온 것인지 곰
발바닥 같은 억센 손으로 월이의 처네끝을
잡아채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짜고짜로
내뱉는다는 말이,
  "허어, 숫막 쪽으로 가면 소간사는 언제
보려구 그려."
분명하다 싶자, 월이는 그만 온 삭신이
돌처럼 굳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월이
또한 아직은 궐자를 따돌릴 만한 변통이
없지 않은 터라,
  "이분이 왜 길래 빌붙어서 지다윈가
그래? 남의 소간사야 어떻든 길 가는
내행을 잡았으니 그래 댁네 소간부터
알아보십시다?"
  "그 주둥이 닥치지 못해?"
  "주둥일 닥치라니? 아예 온양장까지
가시지 그러시오?"
  "내 한 주먹이면 네 주둥이와 마빡이
한데 뭉쳐 섭산적이 된다는 걸 알아."
  "본색을 밝히지 않으면 예서 소릴 지를
테니 아예 썩 물러나셔. 내 죽는 건
괜찮지만 회자수가 네놈 모가지 떨구어
원망하며 비럭질을 다닐까?"
  "이년 암상 떨지만 말고 네년이 가고
있는 곳이 어딘지 발고나 혀. 이젠
따라가기 진력이 났으니까."
  "네놈은 누구냐?"
  "사단이 여기까지 왔으니 내 본색들
밝히는 것도 도리이긴 혀. 내 명색이
장안의 시구문 조산에서 살고 있는
깍정이로 내 이름은 범포라 하지. 내
진작부터 네년의 뒤를 밟아온 것인데, 이건
구범이성님 분부 때문이여."
  "구범이라니? 맹구범?"
  "이제 알아차렸나? 그 성님 분부로
네년을 조산까지 옭아가야 하겠기에 예까지
발바닥이 헐도록 따라온 게여."
  "날 조산 움막으로 끌고 가려면 흥인문
송파까지 따라왔나?"
  "그걸 몰라서 묻나?"
  "대답 못하면 소릴 쳐서 낭패를 보인
테니 그리 알아."
  "소리지르기 전에 네년 옆구리에 먼저
맞창이 날 터인데?"
  "그래, 나를 어떡하겠단 게여?"
  "내가 여기까지 끈을 느슨하게 풀고
따라왔다 하면 짐작이 갈 터인데
그러나......"
  궐자는 그제야 마빡에 동였던 수건을
풀었다. 밤빛이라 하나 궐자의 이마엔
'强窩'라고 자자(刺字)한 입묵(入墨)자국이
선명하다. 월이는 떨리는 두 다리를
가까스로 가누고 서있었다. 이 화상에게서
놓여나자 하면 어디 생사당 뒤꼍에라도
소리부터 치자 하면 금방 괴춤에서 비수가
튀어나올 일이었다. 그간 잊어버리고
있었던 맹구범이가 조산 깍정이 움막으로
기어들어 이를 갈고 있었을 줄은 몰랐었다.
이젠 꼼작없이 당하는가 싶은데 벌써
깍정이놈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궐녀를
누일 만한 후미진 곳을 찾고 있었다. 차마
이런 꼴을 당하리라곤 꿈엔들 생각 못한
터라 몸에 지닌 쇠붙이 하나 없으니 목숨
보전을 하자면 속것을 순순히 벗어주는
방도밖엔 없었다. 조산 깍정이라면 말로만
들어오긴 하였으나 찌르고 튀는 데는
이골이 난 놈들이라지 않았던가. 섣불리
굴었다간 기필 이승을 하직하게 되리라.
그러나 밭둔덕에서 야합하여 이런 화상에게
귀신 모르는 시주야 할 수 없지 않은가. 툭
보면 딴것도 장대할진대 허벅지가
빠져달아나는 듯한 고통은 또한 어찌 참아
넘길꼬. 맹구범이란 놈에게 훼절을 당한
것만도 천추의 한으로 남아 있는 판에
이번엔 그놈의 수하에서 놀아나는 깍정이란
놈이 불쑥 나타나서 살꽃을 먹자 하니
차라리 자처를 하는 게 마땅하다 싶었다.
그러나 자처를 하자 한들 무슨 주변이
있을까.
  "이년, 냉큼 앞장서지 못하겠나? 네년을
살려두고 행요를 놀까? 아니면 아예
죽여놓고 놀까? 나야 네년의 귓밥 하나만
잘라가면 구범이성님에게 용채를 두둑히
받아낼 것이니까."
  "날 살려줄지 어떻게 믿을까요."
  "그럼 못 믿겠다고 내게 살꽃을 내주지
하나에 달렸으니 고분고분 말만 들어봐.
나도 깍정이 되기 전엔 착한
백성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나도 작정을 했소이다. 그러나
어찌 밭둔덕에서 야합을 하리까. 어디
처소에라도 들고 작정을 하십시다."
  "객소리 마라. 딴 배포가 있다는 것
아니냐?"
  "그렇담 딴 속내가 없다는 걸 당장
보여드리면 될 것 아닙니까."
  "그게 뭔가?"
  그때, 월이는 코밑까지 뒤집어썼던
처넷자락을 걷어붙이었다. 그리고
깍정이놈의 어깨에 매달리면서 시궁냄새가
등천을 하는 입에다가 쩍 하고 입을
맞추었다. 그리곤 다시 접문을 하며 바싹
솜씨에는 반상의 구별이 없는지라
깍정이놈은 어느새 혓바닥을 내어 내두르는
것이었다. 월이는 그 순간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입 안에 들어온 놈의 혀를 잇몸이
바스러져라 하고 힘껏 물었다. 금방 입 안
가득히 선혈이 괴어들고 창자를
뒤틀어올리는 듯한 놈의 외마디 소리가
고샅에 그득하였다. 놈의 입에서 뼈를 녹일
듯한 외마디 소리가 서너 번이나
흘러나와서야 월이는 혓바닥을 놓아주었다.
  "사람 살류......"
  그때 벌써 고샅 안쪽에 있던 숫막에서
술추렴을 하던 난전꾼들이 난데없는 외마디
소리를 듣고 고샅 어귀로 짓쳐올랐다.
  "이게 무슨 변괴인가?"
  여인네의 발 앞에 허옇게 나자빠진
장한과 여인을 벌갈아 본 난전꾼들의 두
눈이 화등잔만해져서 다투어 부싯깃에
불들을 댕겼다.
  "아니, 우리와 한배에 탔던 여인네가
아닌가?"
  월이는 그 순간 눈앞이 아찔하고 온
삭신에서 기력이 빠져달아나는 것을
의식하였다.
  "이놈이 뚝도에서 뜰 때부터 이
여인네에게 빌붙어서 지신거리더니 종내엔
딴생각이 있었던가 보군. 겁탈이라도
하려다가 되레 설분을 당한 거야."
  "어허, 이 여잔 혼절하였네."
  "업어다 주모에게 맡기게. 이놈은
어떡한다?"
  "그놈, 상풍을 저질렀으니 무릿매를 내려
나루로 내쫓아버리지. 쇠전머리에
테니까."
  "그놈 마빡을 보아하니 조산
패거리군그랴."
  "이놈을 아주 병신을 만들어버릴까. 이런
놈들이 풍속을 더럽히고 난데없는
외장꾼들이 상풍죄를 뒤집어쓰고 채장을
빼앗긴다 무고를 당한다 하여 온 도방이며
행중이 엽색꾼들로만 득실거리는 줄 안다지
않은가."
  "두 사람의 내막도 모르고 도방 풍속대로
간대로 다룰 수야 없지. 그 여인네와는
뚝도나루에서부터 동행이었으니까."
  "어쨌든 아귀찬 계집이구만. 이놈의
혓바닥이 반 넘어나 잘려나갔네그려."
  땅바닥에 나자빠져서 횟배 앓는 소리로
연신 앓고 이미 반정신이 나간 범포란 놈의
말하자, 모여섰던 대여섯이 혀를 내둘렀다.
월이는 한 쇠전꾼에게 업혀 술청으로
업혀갔고 범포란 놈은 낙태한 개처럼 설설
기어서 도선목으로 되짚어 나가는
것이었다. 쇠전군들이 술청으로 돌아왔다.
주모가 찬물을 마셔준다, 손발을 주무른다
하는 사이에 월이는 어렴풋하게 먼 달빛
사이로 잡혀오는 숫막의 주등빛을 보았다.
  빈 술방구리가 서너 개나 놓여 있는 목로
앞에 앉아서 소금을 집어넣고 있는 축들
중에 연장인 듯한 사십객의 사내가 고개를
삐쭘하니 빼물고는,
  "주모, 그 하님이 이제 제정신이 좀
드는가 보이."
  "이제 눈자위가 바로 박힌다우."
  "그 범강장달 같은 놈에게 욕이나 당하지
  사내의 말에 허겁스레 월이의 치마 밑을
들치고 더듬던 주모가,
  "겁간이야 모면한 것 같구먼요."
  "뉘댁 하님인지 거처부터 물어서 급주를
놓아 사람을 부르든지 조처를 해야 할 게
아닌가. 봉패를 당한 놈이 그놈 하나였다면
다행이겠지만 패거리들이 있었다면 아직
앞일을 알 수 없지."
  그 말을 귓결로 어렴풋이 듣고 있던
월이가 정신을 가다듬고 일어나 앉았다.
  "초면에 구완을 해주시어 고맙습니다."
  주모가 등때기를 부축하면서 아직도
미심쩍다는 듯,
  "어디 신기 되찾을 만하우? 행보가
되겠수?"
  "예, 이젠 되었습니다. 부지중에 당한
은공을 어찌할까요."
  "은공이랄 게 있겠수. 나야 장텃거리
병문 앞에 숫막을 내고 있다보면 숱한
활인도 예사이구 병추기들 찾아들면 구완에
미음 수발도 여러 번이었으니 찬물 한 대접
먹인 것 가지구 은공으로 생각진 마시우.
그런데 아낙은 이 밤중에 어딜 가시우?"
  "여기까지 왔습니요. 사람을
수소문하려고요."
  "남대문 입납으로 지향없이 찾아왔단
말이유? 그러지 말고 뉘댁인지 택호나
대보시우."
  "혹시, 지본이 송도 사람으로 천행수라는
분을 아십니까?"
  "천행수라면 봉삼이성님을 말이오?"
  이번엔 목로 앞의 사내가 되물었다.
  "천행수는 다음 장도막까지는 다락원에서
지낼 것이오. 우리들도 그분의 수하에서
동사하는 막역한 처지로 송파의
쇠전꾼들이오. 그렇다면 하님은 낭패를
당하였소이다그려."
  "낭패랄 것까지는 없습니다. 그분과
동패하는 처지들이시라면 나중에 다시
걸음하겠다는 전갈만 해주십시오. 장안
탑골에서 왔었다면 알 것입니다."
  "그럼 시방 장안으로 회정을 하겠다는
게요? 뗏배는 물론이거니와 주낙배 한 척
주변하기 어려울 게요."
  "사공막에 가서 적선을 빌어봅죠."
  말은 그렇게 하였으나 내막으로는 월이도
노정이 막막한 판이었다. 되돌아간다는
일이 천릿길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술청에 앉았던
두 장정이 뛰따라 일어서는 것이었다.
  "촉급하게 떠나겠다면 우리가 사공막까지
따라가 드리리다. 이 야밤에 여인네 혼자서
사공막놈들을 구슬러보아야 물황채수로
나자빠져서 눈썹 한번 까딱할 위인들이
아닙니다. 한 발자국 잘못 내디뎠다간
무단히 야로만 당하거나 거리송장 되기
십상이니 따라오쇼."
  감히 혼자 가겠다는 생념을 못 내고
쭈뼛거리고 있는 사이에 통행전 차림의 두
쇠전꾼들이 먼저 숫막 앞 고샅으로 나선다.
  마침 그 창귀에게 겁간을 당할 조금에
몸을 건지게 해준 사람들이 뒷배를
봐준답시고 나서는 판임에 월이는 다만
감읍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
눈치챘음인지 앞선 사내가 말하였다.
  "하님이 마음 한구석으로는 또 당하는 게
아닌가 하여 미심쩍게 생각하는 것도 무린
아니오만 딴생각을 마시오. 우린 천행수의
뒤를 따라 삼남 세곡선을 탔던 격군들이오.
천행수를 따라 다락원 마방까지 소몰이를
갔다가 한발 앞서 송파로 돌아오는 길이오.
천행수는 다락원 여각에서
원산포(元山浦)에서 내려오는 하매자를
장맞이하려고 기다리고 있소이다."
  "다락원에는 한 장도막에 몇번
행보하십니까?"
  "한번이지요. 경기 인근과 삼남에서
오르는 소들을 수매하여 다락원에 가서
하매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보통
장안날 송파로 돌아옵니다."
있을까요?"
  "뚝도나루까지 나와보면 혹시 만날 수가
있을 게요."
  "아씨께서 배태를 하였다고만
전해주십시오."
  "골자를 보아하니 탑골 조소사의
일이군요."
  "어찌 그런 것까지?"
  "동기간이나 진배없이 지내는 처지로
그걸 모르겠습니까? 하님이 말하지
않았어도 우린 그 댁 하님이란 걸
알아차리고들 있었습니다. 그 말은
명심하였다가 꼭 전하리다."
  "아씨께서 기동이 여의치 못한 죄로
망부석이 되었습니다."
  "성님께서도 때때로 긴 함숨 지으신다는
없다면야 어찌 가보입지
않았겠습니까만......"
  "쇤네 혼자서 발품을 놓고 다닐 수도
없게 되었으니 큰일입니다."
  두 장정들 말대로 송파나루 사공막
사람들도 두 장정들 모색을 알아보기
전에는 배를 낸다는 일은 어림도 없었다.
각처에서 화적에 구메도둑들이 들끓는데다
야밤에 운선되는 거룻배들 중에는 별창에서
빼돌린 세곡들을 암매하려는 밀매선들이
대부분이라 하여 노들이나 서강으로
드나드는 시선(柴船)이나 용산 치목소로
내려가는 뗏배 외에는 기찰에 물려
시달림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벌써 송파에서 사단에 신고를 겪는 사이
시각을 빼앗긴 터라 두사람과 흥인문
열리고도 한식경이나 착실히 흐른 뒤였다.
흥인문에서 장안 탑골까지는 날듯이 뛴다
하여도 향 두대 피울 참이나 도어야 당도할
판이었다. 정신을 허공에 매단 채로 행보를
떼어놓아 탑골집에 당도하였으나 예견했던
대로 신석주는 벌써 김보현의 안택
굿판에서 돌아와 있었다. 노복이 상전에게
말미도 얻지 않고 무단히 출타하였다면
필경 경을 치고 경위와 행적을 밝혀야 할
일이다. 대문에 들어서기까지 구초 받을 때
둘러댈 말을 앞뒤 외착나지 않게 생갹해둔
터였으나 웬일인지 신석주는 새벽이슬에
물귀신이 되어 들어서는 식전바람의 월이를
안중에 두지 않았다. 신석주는 조소사가
받쳐올리는 양즙그릇을 바쁘게 비우고 난
뒤 곧은걸음으로 종루 육의전 도방으로

















  신석주가 입전 행랑에 있는
도방(都房)으로 나아갈 제 실임(實任),
의임(矣任), 서기(書記) 들이 나와 있었다.
그들은 신석주가 서견대(書見臺) 앞으로
나가도록 자리를 비키었다. 동래포로 내려
갔었던 의임(矣任)인 길소개가 마침
당도하였다기에 신석주가 부랴부랴
도방으로 쫓아나온 것이었다.
  "그래 노중에 다른 변괴는 없었던가?
행역에 지쳤을 터이지?"
  "행수님 심려 끼친 덕분으로 무탈하게
다녀왔습니다."
  "듣기에 동래포에서는
왜노(倭奴)들에게서 묻어든 괴질이 번져
문을 꼭꼭 처닫고 출입을 않는다는데, 물화
처분에 지장이 없었던가?"
  "예, 그것은 이미 시생은 하매자를
만나서 안매를 끝낸 다음에 번진
괴질입니다. 아마 왜상(倭商)들에게서
묻어든 손님인가 본데 용천뱅이보다 더
무서운 괴질이라 하였습니다. 전답과 집을
잃은 농투성이들이 호구할 곳을 찾아
헤매느라 바닥이 허옇습니다."
  남 안되는 꼴이 제 잘되는 것보다
보기좋은 길소개란 위인이 입에 침을
튀기며 신명을 떠는데,
  "장마 피해는 여기도 마찬가지일세. 경기
인근은 물론이요, 황해도의 열읍에서도
난리를 겪는 바람에 내 장토도 몇두락
날렸네. 그래 동래포의 물정은
  "동래포뿐만 아니라, 내륙의 저자에서도
왜화(倭貨)를 찾아보기 어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도고상이나 객주들이 왜상들이
갖고 온 피륙이며 사치한 물화에 눈을
빼앗기어 앞다투어 사들이는 판인데 솟보는
축이 태반이었습지요. 곡물이나
우피(牛皮)나 상목(常木)을 거래하는
상고배들도 내막으로는 왜상들에 끈이 닿아
있었습니다. 한수 더 뜨는 장사치들은
왜상들의 대변돈 수백냥을 쓰고 빚에 몰려
계집을 빼앗긴 자도 있었고 노복으로 박힌
자도 있었습니다. 불원간 왜상들의 여세가
서울의 시전에까지 미친 것이 분명하고
덕원(德源)의 원산진(元山津)까지
왜상들에게 열어주기로 하였다면 그들의
위세가 포구와 내륙의 저자에까지 넘칠
  "군자 말년에 배추씨 장사라더니, 우리
도방 사람들이 그 꼴을 당하게 되겠군.
우리가 금난전권을 쥐고 있으면서
쥐꼬리만한 이문을 보아온다 하여 과중한
국역이며 궁가의 살림을 뒷바라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나 시전의 코밑인
배우개며, 동묘(東廟) 앞 우시장이며,
약고개.애우개.주자골 저자며, 남문 밖
칠패니, 송파며 다락원에서는 멀쩡한
도고상들이며 좌고들이 알짜배기 이문을
챙기고들 있지 않은가. 거기다가 다시 남과
북에 항구를 열어준다면 우린 상권이 날로
피폐를 당할 것이야. 거기다가
하나부사(花房義質)란 위인이
청수관(淸水館)에 버티고 앉아서 하루가
멀다 하고 인천 제물포를 열라고 으름장에
조정 안방에까지 들어앉지 못한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신석주는 긴 한숨을 토해내었다.
  "나으리, 상리란 난세(亂世)일수록
챙기기 좋은 법이 아닙니까? 시재당장
도방이 위협을 받는 판에 가릴 것이
무엇입니까? 가산 일부를 정리하여
왜상들과 손을 잡으시든지 아니면 금점을
내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자네 안목도 졸렬하지 않다는 건 알고
있네만 아직은 일러."
  "이르다니요? 이르다고 엄두를 못 내고
계실 때가 벌써 늦은 것입니다. 나으리께서
먼저 손을 쓰지 않으시면 그 눈이 시뻘건
배행수(裴東益)니 이행수(李德裕)의
끄나풀들이 선수를 쓰기 마련 아닙니까?
사람으로 이용익이란 철점 동무 하나가
금맥을 찾아내어 수월찮게 화식을 하였다는
소문이 파다하더이다."
  "그렇다 하여 나 혼자서 결단을 내릴
일도 아닐세. 내 가산 중에는 김대감의
가산도 수월찮은 터, 대감과 의논을 하여야
결말이 날일일세. 눈앞에 길미가 떨어진다
하여 금방 왜노들과 손을 잡거나 금맥을
찾는 데 가산을 쏟아부을 수도 없는
처지야. 더 두고 초읽기를 하다가 기회를
보는 수밖에."
  신석주는 서기들을 밖으로 내치고 난
다음 길소개를 바싹 당겨 앉히었다.
  "자네 오늘부터 김대감의 허술청이나
시전 도방 어름엔 얼씬거리지 말고 기별이
갈 때까진 집에서 근신하도록 하게."
벌이었습니까?"
  "그럴 만한 일이 생겼다네. 경상도 밀양
본창(密陽本倉)에 있던 대동미 1천 석을
경강으로 조운하던 강대 사람으로
정두성(丁斗星)이란 위인이 눈치없이
남양만 부근에서 월경하여 황당선에 변매를
하였다가 천성만호(天城萬戶)에게
추포(追捕)되고 말았다네. 그로인하여 지난
4월부터 조운된 대동미와 세곡들을 다시
봉점(逢點)에 조수(條數)하고 있는 판이니
미상불 사태가 심상치 않으이. 이 불똥이
튀고 보면 자네나 우리가 곤욕을 치를
것이야."
  "하불실, 우리에게까지 불똥이 튈까요.
너무 심려 마십시오."
  "아닐세. 심상하게 보아넘길 일이
이젠 조정에서도 눈을 똑바로 뜨려
한다네."
  그만한 일로 오금을 저려 할 신석주가
아니란 것쯤은 길소개도 알고 있었다. 또한
이미 그 세곡 중에는 봉미로 출하된 것도
있을 것이고 조정의 재용으로 축난 것도
없지 않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 제갈량이
새삼스럽게 조수를 한다고 한들 변매한
것이 드러날 리 만무였다. 그런데도 일간
근신하라는 말은 실상 까닭이 다른 곳에
있다는 말일 게다. 그러나 따지고 든다
하면 당장 방자하다 하여 추상 같은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니 무류한 대로
물러날 도리밖에 없었다. 무언가 심상찮은
일이 길소개가 동래포를 다녀온 사이에
도방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심증은
  길소개를 내친 신석주는 명심록이며
초일기며 장책들을 형용만으로 뒤적이는
척하다가 오랜 동안 도방에서 살아온 늙은
서사를 방으로 불러들이었다.
  서견대의 서랍을 열어 서찰 하나를
꺼내더니 서사에게 건네었다.
  "너 여기 적힌 물록대로 구처할 수
있겠느냐?"
  늙은 서사가 물목단자를 펼쳐들고 눈으로
읽었다. 우선 당화(唐貨)로서는
주단(綢緞).홍공단(紅貢緞).백공단(白貢緞)
.운문단(雲紋緞).운문사(雲紋紗).궁초.공릉
(貢綾)을 갖추어야 하였고,
초피(貂皮).수달피(水獺皮).청서피(靑鼠皮)
가 각기 5령씩, 문방제구로서는 단계(端溪)
벼루와 호주(湖州) 붓이며 휘주(徽州) 먹도
옥타구(玉唾具).옥잔(玉盞)과
옥저(玉著).옥장도와 자마노지환이며
비취(翡翠)대접과 산호(珊瑚)가 각
1개씩이었다. 단자를 읽어가는 서사의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주단이나 흑공단,
백공단 같은 피륙이나 초피와 수달피
등속은 종루 시전에서도 구처할 수
있겠거니와 그외의 물목들이야 말로만 듣던
것들이어서 도통 요량할 방도가 서질
않았다. 입만 딱 벌리고 쭈뼛거리고만
있는데,
  "어떠냐? 네 주변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게냐?"
  "대주어른, 도대체 이런 희귀한 물목들을
구처하여 어디다 소용하시려고
그러십니까?"
냉큼 대답이나 할 일이지 웬 엉뚱한
수작이냐?"
  "워낙 귀중한 물목들이라 쇤네 엄두가
나지 않아서 그러하옵니다요."
  "네놈이 입전 행랑에서만 연명한 지도
반평생이 넘는 터수에 이만한 물목들도
구처할 행색이 못 된단 말이냐? 네놈이
궁리가 그에도 당치 못한다는 건 고사하고
네놈같이 멀쩡한 숙맥을 수하에 두고
있었던 내 체통이 말이 아니로구나."
  "그렇다면 한 사흘 말미만이라도
주십시오. 어디 구처해보겠습니다요."
  "하루가 촉박하다. 궁상 떨지 말고
궁리를 터보아라. 남촌 역관 놈들 장롱을
뒤지든지 아니면
전은자모가(錢銀者母家)하며 북촌의 총첩들
초저녁까지는 구색을 갖추어놓되 양과 수에
일호의 어김이라도 있었다간 네놈의 구실을
떼어서 도방에서 멀리 내쫓으리라."
  고패를 떨어뜨리고 앉았던 서사놈이
바쁘게 행랑으로 내달았다. 서사로
늙어가는 놈의 재간이나 술수를 미리
짐작하여 분부를 내린것이라 이튿날
저녁까지는 물목단자에 적힌 대로 물목들을
구처하였다고 연통을 하였다. 현물과
단자의 물목들을 자세하게 조수를 하고 난
신석주가 말하였다.
  "너 이 물화들을 이웃한 행랑 사람들이며
하속들이 눈치채지 않도록 바리 지워
나귀에 싣고 네 손수 견마하여 종루
뒤회랑을 빠져 나가서 상사골[相思洞]로
가거라. 혜정교(惠政橋)를 건너서 향 한대
사복사(司僕寺) 지나서 중학다리[中學橋]
초입에 이르겠거니 그 이상은 행보를 놓지
말고 소나무숲 앞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서사놈을 지소하여 앞세운 다음 신석주는
의관을 정히 차려 채비하고 행랑을 나섰다.
서로 다른 노정을 잡았으나 반식경을
사이하고 중학다리 초입에서 서로
맞닥뜨렸다.
  그곳에서부턴 동십자각(東十字閣)에
이르기까지 아름드리 노송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마전내를 따라 견마한 서사놈을
앞세우고 걸었다. 금방 노송숲이 끝나고
고래등 같은 한댁들이 듬성듬성한 중학골
초입에 이르렀다.
  동십자각 못미처 왼편으로 꺾인 고샅을
따라들어가니 오장이 넘어 보이는
환하게 켜진 솟을 대문 앞에는 큼직한
노둣돌[下馬石]도 놓여 있었다. 대문
앞에서 길게 통자를 넣으니, 일개 하정배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 이마에 기름기가
반질거리는 청지기란 놈이 기다리고
있었기나 한 듯이 추녀 끝에까지 쭈르르
미끄러져 나왔다.
  "대감마님 뵈오러 왔다네."
  사대부 복색에 뒷짐을 지고 해라로 묻는
품에 금방 오갈들어 하겠건만 청지기란
놈은 시늉만으로 고개를 한번 굽실하고는,
  "어느 댁에서 오신 뉘시라 연통할깝쇼?"
  "종가 시전에 있는 신행수라 기별하게."
  "잠깐만 지체하십시오."
  듭시란다는 분부 받고 나온 청지기를
따라 중문을 지나니 용마루가 껑충한
바라보였다. 민겸호(閔謙鎬)는 사창이
이글거리고 타오르는가 싶게 촛불을 밝히고
화문등메에 비스듬히 나자빠 누워 교전비의
시탕(侍湯)을 받다간 누마루끝으로
올라서는 인기척을 느끼고 미닫이를 손수
삐쭘하니 열었다.
  "대감, 종가 신석주 현신입니다."
  "신행수께서 이런 야밤에 어인
일이시오?"
  서안(書案) 앞에 놓인 방석을 눈으로만
가리키고 있는 민겸호의 코대답이 별반
달갑지 않았고 약그릇 챙긴 교전비가
바쁘게 비켜났다. 민겸호는 병자년(丙子年)
봄에 폭사한 민승호(閔升鎬)의 아우였다.
위인의 학문이나 식견이 가히 경지에
도달해 있지 못하였고 집안의 가숙들과
별미쩍고 사대부답지 못하다는 풍문이
장안에 낭자하였다. 그러나 뇌물을
청촉(請囑)함에는 단연 뛰어난 솜씨를
가졌고 무릇 주상의 주변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관직을 팔고 옥사(獄事)를 파는
일에 앞장서는 등 패정(悖政)과 발호가
심하였다. 종2품인 금장(禁將)이라 하나
민비가 뒤에 버티고 있는지라 그것이 감히
세상에 흠절로 나타나지 않았다. 민겸호는
이제 막 40객을 넘긴 나이로 그 탐욕에
비견된 만큼 기골이 장대하고 눈발을
곤두세우고 궁궐을 무상출입으로 설치고
다니는 거조가 장차 녹록히 볼 인물이
아니란 걸 신석주는 진작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대감, 그간 격조하였습니다. 마침
이판(吏判)으로 발탁될 것이란 소식 듣고
문안차 달려왔습니다."
  "나 같은 궁상이 시전의 대행수인
신대주의 문안을 받을 만한 인물이
되더이까?"
  말버슴새야 듣기에 고분고분하여 성깔을
죽이고 있는 듯하다 가시가 사방에 돋친
말이었다. 곧은 시선으로 노려보고 앉은
민겸호에게 신석주는 잠시 얼굴을 붉히는
척하였다.
  "시생이 주변머리가 없어 그간 안전께
소홀하였고 격조하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찾아뵈었으니 이제
섭섭하였던 심기를 풀어주십시오."
  그 순간 민겸호의 입가에 싸늘한 냉기가
감돌았다.
군정(軍丁) 한두 놈 구실 박아주는
일쯤이라면 나도 입이 있으니 훈수나마
합니다만 내 일찍이 상고배(商賈輩)들과는
상종해본 일이 없어 그 모퉁이에는
청맹과니와 다를 바가 없소이다.
화식(貨殖)에 관한 일이나 취리(取利)를
해보려고 오신 일이라면 아예 발설도 하지
마십시오."
  신석주가 시전의 공주인(貢主人)으로 그
금력이 장안에 떨치고 민비와도 끈이 달려
있기로서니 민겸호는 민겸호대로 그 노리는
바가 있는지라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은
그대로 바늘쌈지를 내뿜는 듯하고 개와
고양이가 서로 외다리에서 만난 듯하였다.
  "행수께서 부랴부랴 찾아오신 근저에는,
내가 그저께 조반(朝班)에서 신행수를 비껴
난재(蘭齋: 金輔絃의 號)가 그걸 엿듣고
당장 신행수를 타박하여 부추겼던
모양이구려?"
  똑바로 들이대는 데야 신석주가
제갈량인들 피해나갈 재간이 없었다. 바른
것은 그것대로 대꾸하고 나서는 것이
신석주의 술수였다. 민겸호의 으름장엔
아직 비린내가 가시지 않았고 또한 그
도저한 입정에 배알이 꼬인다 할지라도
이미 구미호가 다 된 신석주가 하릴없이
헛기침만 토해내고 앉았을 위인도
아니었다. 면박에 우세를 당한다 싶던
신석주가 대답하였다.
  "문전박대를 하시면 제 몸둘 곳이 없지
않습니까. 대감댁 스물여덟 곳간 어느 한
곳엔들 쥐구멍을 내놓지도 않았을 거구요."
알아주어야겠군요."
  그때, 누마루 양각 아래쯤에서 청지기란
놈의 잔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민겸호가
미닫이를 열었다. 누마루 아래에서 고패를
떨어뜨리고 서 있는 청지기의 손에 화각함
하나가 들려 있고 화각함 위에는
물목단자로 보이는 봉함서찰 한 통이
포개져 있었다. 민겸호가 힐긋 신석주를
쳐다보았다.
  "알았으니 내려가 있거라."
  청지기를 내친 다음 민겸호가 물었다.
  "저놈의 손에 든것이 무엇입니까?"
  "보잘것없습니다. 안전의 행세가 깎이지
않을 만한 귀물들이니 거두어주십시오."
  "그 위에 서찰은 무엇입니까?"
  "물목단자입니다."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다시 미닫이를 열고
이미 중문 밖을 나서고 있는 청지기를
다급히 불러세웠다.
  "너 그걸 이리로 가지로 올라오너라."
  "쇤네 말입니까 나으리?"
  "그렇다니까."
  영문을 모르는 청지기란 놈의 화각함과
봉함서찰을 서안 위에다 대령시켰다.
민겸호가 봉함을 뜯어 물목들을
읽어내려가는가 하였더니 그대로 북
찢었다. 그리고 촛대의 불을 당겨 말끔하게
태워버리는 것이었다. 민겸호의 때아닌
거동을 미동도 않고 바라보고만 앉았던
신석주는 그런 연유를 십분 짐작한 뒤라,
껄껄 웃우며 말하였다.
  "대감, 시생의 소견머리 없었음이 또
창피만을 톡톡히 싸고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무지한 사람의 실수이니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
  "실수랄 것까지야 없습니다. 그러나
씨물림으로 두고 부리는 노복이라 할지라도
상전과 그 혀를 바꿀 수야 없는 것
아닙니까. 저놈은 우리 가문에서
씨물림으로 청지기 구실을 거행하고 있으나
원래 소견이 있고 제딴엔 총민한 놈이라
허술청에 드나드는 문객들을 수발하며
상종하는 동안 언문은 물론이요,
진서까지도 뜯어보게 되었습니다.
고양이에게 고깃덩이 물려 보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어지간한 물목단자쯤이야
단숨에 읽을 수가 있겠지요. 비부쟁이란
놈들은 까막눈이며 까막눈으로 족하고 하루
겨우 분별하고 지냈으면 좋으련만 항간에
천주학쟁이들이 기승을 부리고부터는 세끼
밥만으로는 구실을 못다하겠다고 덤비는
판이니 그런 고약한 낭패가 어디 있겠소."
  "그런 일을 가지고 속썩일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깐 불패 천인들 혓바닥 하나
자르는 것쯤이야 어디 일입니까."
  "듣자 하니 신행수께서는 수십년 손때
먹여서 수하에 두고 있던 서사놈 하나를 혀
잘라서 성밖으로 내쫓았다는
소문입니다그려?"
  "묘당(廟堂)의 정사만으로도 번거로우실
안전께서 어찌 시전바닥 하찮은 상고배의
가내사까지 소상히 알고 계십니가그려!"
  그참에 이르러 민겸호가 껄껄 웃으며
대꾸하였다.
모양이시구려. 설마하니 신행수를 빗대어
상고배라 지칭하였겠소. 시류가 그랬다는
말이었으니 너무 괘념치 마시오. 내 언행이
다소 상되어 식언을 했다 한들
상극(相剋)끼리 만난 것처럼 거북해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래, 그놈을 내쫓은
다음엔 어찌 되었소?"
  "겨우 언문이나 뜯어읽는다는 장물림
하나를 수하에 두고 있는데, 이놈은 글발이
어두운 대신 귀밝기가 새끼 낳은
암고양이에 흡사하고 곁눈질에 속짐작이
어리보기 경관(京官)이나 남산골
샌님들이야 빰칠 정도인데다 행동거지가
날으는 범입니다. 작정만 한다면 한몫을
단단히 할 놈입지요."
  "가당찮은 위인이군요. 그런 놈을 사뭇
말입니까?"
  "그것이야 다루기에 달렸지요. 원래는
김보현 대감의 헐숙청에서 묵새기며
찬밥이나 얻어먹던 위인인데 길아무개라
하지요. 새경다리께에서 살고 있는데
멀쩡한 종루바닥에서도 끄떡없이 사대부의
행세를 하는 위인이라 관부(官府)
주변에서도 혹간 아귀찬 위인으로 소문이
나 있는 위인입지요."
  "그건 그렇고 아직 나를 찾아오신 연유를
모르겠습니다. 소간사가 무엇인지 조바심만
마시고 말씀하시오. 설마 나를 하자하러만
오신 것은 아니겠지요?"
  이에 신석주가 잠시 주저하는 빛이더니,
어렵게 입을 열었다.
  "사실은 이번에 덕원 부사(德源府使)로
일면식도 없는 처지입니다. 연비를 터보려
합니다만 도통 맥을 잡을 수 없습니다."
  "김기수라면 내막으로는 내가 주상께
계품(啓稟)하여 덕원 부사에 제수하기로
작정이 되었습니다만, 그만한 일이라면
신행수와는 막비연분인 난재에게
귀띔하여도 될 만한 일이 아니오?"
  민겸호는 일시 누그러졌던 태도를 바꾸어
도저해갔다.
  "안전께서 자탁(藉託)의 말씀이시군요."
  "구태여 종착없기로 이름난 내게 그런
일을 이르겠단 말씀이오? 자칭(藉稱)이
아닙니다."
  김기수는 앞서 강화도조약 체결 당시인
병자년 4월에 왜(倭)에 건너갔다가 8월에
돌아와서 [일도기유(日東記游)]를 지어
그 당장 곡산 부사(谷山府使)로 발탁
제수하였던 인물이었다. 그가 이번엔
원산진이 개항되면서 덕원 부사로 승차하게
되었음을 신석주가 미리 탐문하였다. 물론
원산진에서 상리(商利)를 꾀하려는
일이었고 상리를 꾀하려면 김기수와 연비를
트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민겸호의 내침에 신석주는 할말을
잊었다. 물론 그만한 연비를 트는 데는
김보현만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신석주가 김기수를 빌미잡아
민겸호를 찾아온 깊은 뜻은 다른 곳에
있었다. 조정에서 흘러나오는 말로
민겸호가 머지않아 민태호(閔台鎬)에
뒤이어 선혜 당상(宣惠堂上)으로 승탁이 될
것이란 소식이었기 때문이었다. 조정의
판에 주상이 측근인 민씨 가문에서만
조정의 재용을 맡길 사람을 발탁하리란
것은 예견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신석주의 속셈을 민겸호도 모르고
있진 않았다. 이를테면 김기수에게 다리를
놓아달라는 일쯤으로 갖은 패물에 진귀한
피물(皮物) 따위를 뇌물로 가져올만큼
신석주가 아둔한 인물이 아니란 것이었다.
민승호가 폭사하고 또한 민규호(閔奎鎬)도
민영익(閔泳翊)과 불화로 홧병으로 죽자
민비가 믿는 것은 오직 민태호와
자기뿐이었으므로 그 자신 입만 열었다하면
조정의 어느 계차엔들 하루아침에 기어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처지로서 화각함
속에 든 패물과 피물 몇영(令)으로
신석주에게 털썩 기어들 수는 없는
사랑방에 감돌기 시작했고 와룡촛대에서
촛농이 소리없이 녹아 흐르고 있었다.
뒤꼍의 노송숲을 핥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만
간간이 들려와 촛불을 희롱할 뿐 긴 시각이
마냥 무거운 정적으로만 묻어날 뿐이었다.
신석주는 문득 민겸호의 얼굴에서 조바심을
읽었다.
  "그럼, 시생은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홀저에 걸구를 잡아 환접하긴
어렵겠으나 곧 주안이 나올 터이니
산적부침이나 잡수시고 가야지요."
  "체면이 못 되었습니다만 이만 하직을
해야겠습니다. 행랑에도
나가보아야겠구요."
  솟을대문 밖 한터에서 빈 나귀를 잡고
기다리고 서 있던 서사놈이 하직하고
뛰어왔다. 신석주가 선머리에 섰다.
  "너 민대감댁 청지기놈의 견양(見樣)을
눈여겨보아 두었느냐?"
  "그럼입죠, 나으리."
  "너 내일 아침부터는 새벽동자를
지어먹고 이 한터로 나와서 기다렸다가 그
청지기란 놈의 뒤를 밟아보도록 하여라,
알겠느냐?"
  "뒤를 밟다가 발각이 되는 날엔 경을
치게 될 것인데요?"
  "이놈아, 누가 네놈더러 아둔하게 발각이
되라 일렀느냐? 눅게 잡아 사흘만 지켜보고
있으면 그 청지기놈이 뭔가 네게 보여주는
것이 있을 터이니 너는 눈으로만
지켜보다가 주둥이는 나한테만 와서
열어라."
적에 수제비국으로 동자 떼우고 나아가서
민겸호의 집 헐숙청에 불이 꺼질 때까지
한터를 지키고 서서 청지기란 놈의 출입을
염탐하였다. 궐자의 거동을 지켜본 지
사흘이 지난 뒤였다. 뉘엿뉘엿 일색이
다해갈 무렵 궐자가 홀연히 대문을 나서는
것이었다. 궐자는 사포서(司圃署)의
송현(松峴)을 넘어 곧장 충훈부(忠勳府) 앞
석교(石橋)를 건너 관인방(寬仁坊)고
쇠다리를 건너 목을 왼편으로 꺾어서
종루로 접어들었다. 좌포청 앞에선 다시
길을 오른편으로 꺾더니
하릿교다리[花橋.河浪橋]에 이르고 연이어
새경다리께로 접어드는 것이었다. 새경다리
못미처 농방거리에서 행인을 잡고 길을
묻던 궐자가 새경다리목에서 고샅으로
고샅으로 들어서면 곧장 길소개의 집이
나선다. 대문 밖에서 청지기를 상종하던
여인네 하나가 궐자를 건넌방으로
안내하였다. 그러나 궐자는 금방
되돌아나왔다. 길을 되짚어 회정할 때도
사뭇 뒤를 밟다가 향교골 못미처 평시서
앞에 이르렀을 때, 서사는 길을 좁혀 사오
장 가까이로 다가갔다.
  "앞서가는 하님 날 좀 보시게."
  이미 종가에는 어둑발이 내리기 시작해서
빈 소바리에 지게 진 시탄장수들이 떼를
지어 숭례문 쪽으로 바쁘게 내닫고 있었고
가가들에선 등을 내어다는 집도 있었다.
궐자는 금방 되돌아섰다.
  "뉘십니까요?"
  "자세히 보게나. 나는 초면이 아닌 것
  "어이구, 며칠 전 신대주 후배(後陪)로
오셨던 샌님이 아니시우. 해저녁에 어디로
출타하시길래 이렇게 노면(路面)을 하게
되었습니까?"
  "내 평시서에 들렀다가 나오는 길일세.
마침 길을 건너다보니 북상투가 푸짐한
하님이다 싶어 눈여겨보았더니 초면이
아니어서 불렀다네."
  "쇤네 같은 상것이 상투만 크면 뭘
합니까......"
  "자넨, 무슨 소간으로 이토록 바쁜
행보인가?"
  "소간이랄 게 있습니까. 대감마님 방자
노릇 한답시고 묵정밭 일구는 소처럼 그저
숨이 턱에 닿았습지요."
  "출출한 판에 어디 가서 군요기라도 하고
  서사의 말에 회가 동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느닷없이 길을 가로막고 수작을
걸어오는 거동이 해괴하여 도통 맥을 잡을
수가 없는지라,
  "쇤네 같은 노자배와 작배를 하시자니요?
게다가 쇤네는 곧장 집으로 가야
하는뎁쇼."
  "참 주변머리없는 인사로세. 의주 파천도
곱똥눌 참은 있다네. 나와 잠깐 작배한다
하여 무슨 우환이 생길까. 사실은
신대주께서 잠시 자넬 보자 하시니 잠깐
따라오게나."
  "신대주께서 우리 집 대감마님께
통기하실 일이 생긴가 보군요."
  부랑배도 아닌 서사를 따라간다 하여도
별다른 변괴가 일어날 리 만무였다. 행랑에
신석주가 기다리고 있는 신방의 거처로
안내를 하였다. 사방탁자 위에 쌓인
장책들이 유난히 청지기의 눈길을 끌었다.
  "이리 가까이 앉게."
  가까이 다가앉기를 기다렸다가 신석주는
서안 아래에서 염낭 하나를 꺼내 청지기
앞으로 풀썩 던졌다. 구태여 들어보지
않는다 하여도 그것이 꿰미돈이란 것을 알
만하였다.
  신석주는 한동안 우두망찰로 청지기란
놈을 뜯어보다가,
  "내가 왜 너에게 전대를 건네는지
알겠느냐?"
  때아닌 분부를 알음할 수 있을까, 눈만
둥그렇게 뜨고 청승맞게 앉아 있는 궐자를
보고 신석주가 다시,
집어두어라. 네 방금 새경다리께
길아무개의 처소에 무슨 기별을 주고
왔겠다?"
  "그렇습지요."
  "대감께서 길가를 부르시것다?"
  "예, 대감마님께서 내일 아침 입궐 전에
현신하라는 분부를 통기하였습지요."
  "너 그 길가가 와서 대감과 무슨 공론을
하는지 뒤꼍에서 엿들었다가 내게 은밀히
밀통(密通)해줄 수 있겠느냐?"
  그제서야 청지기란 놈은 엇 뜨거라
싶었던지 엉덩짝을 한자 높이나 되게
들었다 놓았다.
  "나으리, 이게 무슨 거조이십니까.
아니래도 시색이 시퍼런 대감께 분수없이
반노의 행세를 하였다간 곱다시 장판에서
살아난다 하여도 장금사 전옥서로 떨어져
곤장질에 어육이 되겠지요."
  여항의 인심이 아무리 흉악하기로
청지기가 그 용채를 집어들 리 만무였다.
게다가 씨물림으로 민겸호의 겸인 노릇인
자가 감히 상전을 모함잡을 마음을 먹고
모해할 일에 천금을 안긴들 무턱대고
방조하려 할까. 그러나 신석주가 그런
사정을 모를 리 없다.
  "아뿔싸, 노주(奴主)간에 명분이 있다는
걸 깜박 잊었구나. 내가 체모를 생각 않고
큰 우환을 만들고 말았구나. 그런 줄
모르고 내 감히 너와 더불어 너의 상전을
기망하려 하였으니, 네가 용채를 집어들지
않을 것은 물론이요, 너 또한 상전에게
돌아가는 길로 내 해괴했던 거동을 낱낱이
막을까."
  "나으리, 그건 염려 놓으십시오. 맹세코
그런 입정만은 놀리지 않겠습니다."
  "네 말은 우선 귀에 달다만 네 심기를
내가 어찌 믿겠느냐? 게다가 너는 나와는
초대면이 아니냐. 내가 대감집에다
세작(細作)을 심으려 했던 모해가 드러나는
날엔 내게 무슨 화근이 생길지는 아둔한
너라 한들 모를 리가 없지 않느냐?"
  "쇤네가 당장 무엇으로 증거할 것은
없으나, 아무리 상것이라 한들 제 몸에
붙은 입 하나를 제출물로 다스리지
못하겠습니까."
  "내가 이런 실수를 저지르고도 널 못
믿어한다는 건 삼척동잔들 알 일이 아닌가.
그러나 내 널 믿기로 하지. 너는 오늘
것으로 평생 입을 닥쳐야 하느니. 그렇다면
나를 안심시킬 한 가지 방도가 없는 것도
아닐세."
  "무엇인지 분부만 하신다면 그대로
따릅지요."
  "이 염낭은 기왕 내 소매에서 나왔던
용채이니 넣어두어라. 그것만이라도 네가
집어넣어 주어야 내가 발을 뻗고 잠을
자지. 그것은 너와 내가 만났다는 것을
발설하지 않는 것을 약조하는 용채렷다."
  장안의 내로라는 문객들이며 갑사(甲士),
다방골 기방 건달에 시정의 파락호에
이르기까지 출입이 번다한 허술청을 지키며
호령에 차이고 분부에 쫓기며 닳고닳아온
청지기가 그참에 이르러서야 두려워할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이 염낭을
일이 생길 것인가. 입정만 함부로 놀리지
말라는 당부로 받는 용채라면 수만금을
사양할 까닭이 없었다. 장안의 대행수가
대갓집 하정배에게 말 한번 잘못 꺼냈다가
손재를 당했다 하나 수만금 재산에 이깐
것이야 하찮은 군돈에 불과하지만
청지기에겐 심상한 한조각 꿈이 아닌
횡재였다. 애오라지 이것조차 퇴짜를
하겠다고 나선다면 어둑어둑한 판에 행랑의
장정들을 불러다가 멸구를 하려 들지도
몰랐다. 청지기는 얼른 염낭을 괴춤에다
찔러넣은 다음 쫓기듯 신석주를 하직하고
행랑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와 대감께 연통하고 마방 옆
행랑방에 누웠으려니까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이 떨려 도대체 진중할 방도가 없었다.
이어가는 상것의 반평생에 50냥의 꿰미돈을
한꺼번에 만져보긴 처음이었다. 여편네와
아이들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뒤꼍 반빗간
뒤를 파고 염낭을 묻었다. 그제서야 겨우
가슴이 진정되기는 하였으나 그때부턴 궁리
때문에 잠이 오질 않았다. 잠을 청하지
못한 터라 이튿날은 꼭두새벽에 털고
일어났다. 마당비 한 자루를 들고 바깥
한터로 나갔다. 안개가 내려 지척을 분간할
수가 없었는데 마악 비질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안개 속에서 문득 인기척이 나는
것이었다.
  "여보게 날세."
  눈을 비비고 안개 속에 자세히 뜯어보니
종가 입전 행랑에 있다는 서사였다. 이건
또 무슨 변괴인가 싶어 우두망찰 궐자의
  "자네 일찍도 일어났네그려. 그래 그
길아무개란 사람은 아직 오지 않았던감?"
  "아직 오지 않았소만, 그 사람과 연루된
일이라면 입도 뻥긋 않기로 한 걸 샌님은
모르시오?"
  청지기가 불쑥 퉁기는 말에 서사놈은
코대답도 않고 가래침을 두발 길이나 되게
퉤악 뱉고 나서,
  "길가와 대감이 무엇이라고 수작을
하는지 낱낱이 염탐을 하게나."
  "아니, 그런 일은 아예 없었던 것으로 한
것이 아닙니까? 50냥의 용채에 심기가
뒤틀려서 그러신다면 당장
내어드리겠습니다. 손끝도 대지 않고
반빗간 뒤꼍에다 묻어두었으니 하루만
말미를 주신다 하면 당장 꺼내
  "아서 이 사람아. 이 사람이 밤 사이에
상승을 한 게로군. 그 꿰미돈이 백
냥이었지 어째서 오십 냥인가? 이제 보니
심보가 실로 고얀 사람이로군. 그렇게
둘러댄다 하여 내가 실패를 볼 성싶은가?"
  "백 냥이라뇨? 여러 말 번거롭게 할 것이
없습니다. 쇤네가 셈술이 아둔하다 하나
오십 냥, 백 냥을 분별할 줄 모를까요?"
  "그래? 그 염낭의 꿰미돈 백 냥은 내
손수 챙겨 행수께 건넨 것일세. 그렇다면
큰일이 아닌가? 지금 당장 꺼내 한번 나와
같이 아퀴를 맞춰보세."
  그 순간, 청지기놈의 얼굴에 외꽃이
만발하였다.
  "지금은 안 됩니다. 벌써 차집이며
상노들이 깨어 새벽군불을 지피고 있는
쇤네가 무엇으로 핵변을 한단 말입니까?"
  "자네가 나를 희롱하고 있구만. 하룻밤
사이에 백 냥 중에서 오십 냥을 축낸
것이네. 자네가 끝내 버틴다면 내 이 길로
당장 대감 마님을 현신하고 사실(査實)을
해달라고 고변할 수밖에, 자네가 받은 것이
오십 냥이란 건 증거할 사람이 없되 백
냥임을 증거할 사람은 여럿 있다네. 그도
그렇거니와 자네가 허술청에서
수발한답시고 용채나 챙기는 것에 한눈이
팔려 있다는 것을 대감마님이 아시는 날엔
구몰을 시키려고 대들 것이 아닌가."
  청지기란 놈은 그제야 신석주가 친
어살에 걸려든 걸 깨달았다. 그러나 이참에
이르러 무슨 수로 발을 뺄 수가 있을까. 두
다리만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 "자네, 길소개가 올 때까지 여기서
마당질을 하다가 곧장 뒤따라 들어가서
낱낱이 엿듣고 내게 연통을 해주게나.
그렇게만 해준다면 자네가 어젯밤에 축낸
오십 냥을 충수해줌세."
  "그렇게 하지요."












  향 한대 피울 참이 못 되어서 길소개가
한터로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청지기가
길소개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새경다리께 있는 길소개 현신입니다."
  일찍 기침하고 있던 민겸호가 앉은
걸음으로 다가가 미닫이를 열고 누마루
아래 서 있는 길소개를 내려다보았다.
  "자네가 길아무개인가?"
  "네 그렇습니다, 대감마님."
  "거기 섰지 말고 냉큼 올라오게."
  길소개가 어깨를 주억거리며 올라와
바람벽 아래 와 앉았다.
  "자네가 운종가의 도중(都中)에서 구실을
살며 신행수 수하에서 찬밥을 축내고
문감방 출입도 무상이란 것도 알고 있네."
  "대감마님께서 어찌 소인배의 일을
분별하고 계십니까."
  민겸호는 그 말에 이렇다 할 대답을 않고
길가의 이마에 굳은 살이 박이는가 싶게
뚫어져라 바라보고만 있었다. 신석주가
말한 대로 위인이 식견은 없어 보이되
간술에 능하리란 것은 한번 보아 알아챌 수
있었다. 잠시 방안이 호젓하여 거북한
느낌이 드는가 하였더니,
  "내 들은 풍월이네만 김대감께선 적지
않은 가산을 신행수에게 맡기어 변리를
늘리고 몽리를 챙기는데 입전의 행랑이란
기실 시늉뿐이요, 대동선(大同船)도 여러
척 가지었고 세곡(稅穀)도 변매(變賣)하여
재미를 톡톡히 보았다 하는데 그것이
  "시생은 내막을 알 길이 없사오나,
대감마님께서 그런 줄 아시오면 그러한
게지요."
  그때, 민겸호가 버럭 결기를 하고,
  "이놈, 감히 뉘 앞에서 방자하게 언사를
농하려 드느냐? 중도 아니고 속도 아니라면
그럼 뭣이냐?"
  "두 어르신네의 내막을 시생 같은
소인배가 알 까닭이 없어 그러하옵니다."
  "네놈이 아무리 아둔한 위인이라 한들
지금 앉아 있는 곳이 뉘집 문중이란 것은
알고 있으렷다?"
  솟증이 돋은 민겸호의 한마디 호통에
북청 동태 꼴로 뻣뻣하게 굳어버린
길소개가 겨우 입을 열어 핵변하기를,
  "시생의 소견이 아무리 투미하기로
민문(閔門)에 들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나으리."
  민겸호는 한동안 노려만 보고 있다가
하겟말로 고쳐서,
  "자네의 외양이 그런대로 음전하고
타고난 총기와 강단이 남다를뿐만 아니라
사람을 분별하는 눈치도 있어 난재의 집
문턱을 무상 출입하였고 그로 인하여
난삼(생원이나 진사에 합격된 자가 입는
예복)이라도 걸치게 된 것 아닌가. 또한
도중(都中)에서 의임(矣任)의 자리까지
올라 중치막으로 복용하는 게 아닌가.
하찮은 상고배야 누비등거리에 통행전이
고작이렷다? 그런 걸 안다 하면 자네가 말
한마디 잘하고 못하는 데 따라 내 집에서
두 발로 걸어나갈 수 있는가 없는가도
  "감히 어느 안전이라 기망할 심기를
품겠습니까. 진노하심을 거두시고 말씀만
내리십시오."
  "내 말을 아로새겨 듣고 이행만 한다면
자네에 대한 내 대접도 그다지 홀하진 않을
터. 기왕에 신행수와 난재 두 사람
사이에서 서사 노릇 하며 신역을 들고 있는
자네 처지에 내게 은밀히 출입한다 하면
신명이 더 났으면 났지 신상에 해로울 일이
무언가."
  그 도저한 어투로 보아 환난을 만나기
전에 기어드는 것이 상책이 아닌가 싶었다.
또한 민규호(閔奎鎬)가 이승을 버린 차제의
김보현이란 날개 ㄲ인 새와 진배없는지라
민겸호가 자기를 수하에 두고자 한다면
비수를 물고 엎어지라 한들 불감청이언정
꺾인 새에서 준총마로 옮겨 타는 경이니
방색할 까닭이 없었다. 다만 민겸호가 어떤
연줄을 타서 자기를 알고 새벽같이
불러들여 이런 수작을 건네고 있는지는
도대체 짐작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그런 내막을 묻겠는가.
  "내 듣기로는 난재의 집 벽장에는
능라주단이 쌓여 밑에선 썩고 있고 연행
사신에 따라갔던 통사(通事)며
송상(松商)들이 들여놓은 당물화(唐物貨)가
발에 차이고 동래 왜관에선 왜은(倭銀)을
사들이는가 하면 드난하고 거행하는
노복들이 오십이요, 나가 살며
신공(身貢)을 바치는 종이 백여 명이라
하더군. 조석식사를 궁중에서와 같이
수라(水刺)라 이름짓고 수라간에는 사내
타락죽(駝酪粥)을 아이들까지 배불리
먹는단 소문을 들었는데 그것이 사실이냐?"
  조석지간으로 몸채를 들락거리며 살펴본
일도 없었고 또한 운변인물(雲邊人物)도
아닌 김보현의 가내사를 들추어 폄하고
나서는지 짐작이 멀쩡한 길소개로서도 알
수가 없었다. 주저주저하고 있는 사이에
민겸호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내 말이 외착난 건지 아니면 시중의
모함인지 자네는 알고 있으렷다?"
  "아닙니다 나으리. 너무 소상히 알고
계시어 시생이 섬겨올릴 만한 건덕지가
없어서 그럽니다요. 김대감댁 가계가
요족하다 못해 도에 넘친다는 건 장안이
파다하게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거짓을 참말처럼 하는 재간쯤이야
  "난재의 집 가계가 사치에 넘치는 것은
전부 신행수가 몽리를 챙겨 바치고 또한
대동곡(大同穀)들을 농간질하여 중도
취탈한 모리와 빼돌린 관재(官材)로
이루어진 것이란 것도 사실이렷다?"
  "그러하옵니다."
  "며칠 전에 신행수가 내게 찾아와서
자네의 소견머리없는 행사를 개 꾸짖듯
하고 폄하는 거동이 불원간 자넬 수하에서
내쫓을 심산이 분명하더이. 자넨 그걸 알고
있는가?"
  "시생도 대강은 눈치를 채고 있습지요."
  신석주가 며칠 전 동래를 다녀온
자기에게 종가 행랑 어름엔 얼씬도 말라
하고 비접을 내보낸 것하며 민겸호의 말이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은 자기에게 싸리말을
  "자네가 신행수와 난재 사이에
매복(埋伏)하고 있으면서 신석주가
내상(萊商)이며 송상(松商)과
북상(北商)들과 트고 있는 거래의 규모하며
가산의 정도 그리고 외방 객주들과
거래하는 규모를 낱낱이 캐어 내게
알려주게. 사흘 동안 시한을 줄 터이니
시한내에 거행하고 일호의 어김이 있어서는
안 되네, 알겠는가?"
  일은 난감하게 되었다. 사흘간의 말미란
것도 짜거니와 진서글을 뜯어보지 못하는
주제에 그 많은 장책이며 초일기를
베껴낸다는 일은 배지 못한 아이를
내놓으란 격이었다. 그러나 오리발을 내밀
수는 없었다. 민문(閔門)에 발을 디밀 수
있느냐 없느냐는 이 한가지 일로
길소개가 그때 뇌리에 얼른 떠올린 인물이
있었다. 신석주에게 사형(私刑)을 당하고
성밖으로 내쫓겼다는 맹구범이었다. 그
위인의 생사존몰을 알 길 없으나 허술히
죽을 위인이 아니지 않던가. 민겸호는
예궐이 늦었다고 서두르는 판에 길소개도
따라 일어섰다. 맹구범만 찾는다 하면
신석주의 거래 규모하며 가산의 정도쯤이야
일목요연하게 적어올릴 수가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 해질 때를 기다려 다방골로
나갔다. 기방 출입으로 말한다면 이젠
길소개도 격을 찾을 만하게 되었다.
다방골에서 포도군관(捕盜軍官)을
기둥서방으로 두고 있다는 코머리 기생집을
찾아갔다.
  삽짝문도 없는 담 밖에서 연통하니
방으로 안내를 하는데 해빠진 지가
금방이건만 벌써 중치막짜리 셋이
아랫목에서 술추렴들을 하고 있었다. 주인
격인 코머리 기생은 기적에 오른 지 일천한
화조기생을 셋이나 거느리고 있었다. 세
사내 곁에 앉아 주안 수발하며 만수받이를
하고 있는 기녀는 금시 초면이었다. 기녀를
한동안 바라보던 길소개가 통성명도 없이
선객들에게 말을 건넸다.
  "좌중에 통할 말이 있소이다."
  술이 불콰하게 오른 선객 셋은 길가의
말에 금방 회가 동했던지,
  "네, 무슨 말씀이오?"
  "그 계집은 초면이라 몇마디 묻고 싶어서
그렇소."
  "그렇다면 잘 물으시오."
살신이 뽀얗고 동탕하게 생긴 기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길가가 다짜고짜로
물었다.
  "내 기방 출입이 십년을 넘긴 터에 자넬
처음 보겠네. 네 명색이 무어냐?"
  기녀가 홍조 띤 얼굴로 살짝 곁눈질이며
배시시 웃음을 흘리더니,
  "쇤네, 명색이 기생이랍니다."
  "기생이라? 그렇다지만 물심부름이라면
몰라도 주안상 머리에 앉기는 아직 박이 덜
쇠었고 범절도 속성찮아 보이는데
그러느냐."
  그렇게 면박부터 하고 나서 길가가
계집의 볼따구니를 살짝 꼬집으니 계집
또한 죽을 맞춘답시고 공연히 아픈 시늉을
지었다.
 바꿀 수야 없는 것
나올 것이냐?"
  "그럼입죠."
  "그러면 기적에 오른 네 이름이 무어라
하느냐?"
  "선다홍(仙多紅)이라 했지요."
  "선다홍이라? 소년 살신도 홍동지 같다만
이름 한번 오방지게 새빨갛구나. 너 연치는
어떻게 되느냐?"
  "열살하고도 아홉을 더 먹었습니다."
  "그 나이를 한꺼번에 다 처먹었더란
말이냐?"
  선다홍이 그제사 호박 속살같이
야들야들한 손가락으로 하나 꼽아가면서,
명색이 제 나이를 꼽아나가는데,
  "한해에 한살, 한해에 한살, 또 한해에
한살, 또 한해에 한살......"
어디냐?"
  "평양입니다요."
  "거기가 네 안태본(安胎本)이냐?"
  "그러하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평양까지
노정기(路程記)를 외워보아라."
  "서울서 고양(高陽)이 사십 리입죠.
고양서 파주(坡州)가 사십리 행보입죠.
파주서 장단(長湍)까지가 또한 사십 리,
장단서 송경(松京:開城)이 사십 리, 송경서
금천(金川)이 칠십 리 노정입니다.
금천에서 평산(平山)까지는 삼십 리
행보입죠. 평산서 총수까지는 삼십 리에
상거하였고 총수에서 서흥(瑞興)까지는
오십 리 상거입지요. 서흥에서
검수(劍水)까지가 사십 리이고, 검수에서
황주(黃州)가 또한 사십 리 행보입니다.
황주에서 중화(中和)가 오십 리, 중화에서
평양(平壤)이 오십 리에 격하였습지요."
  "고년 노정기 외워바치는 걸 보니 평양이
태자리가 틀림이 없구나. 서울 장안은 난생
처음이냐?"
  "예."
  "네 기둥서방은 누구냐?"
  "민서방이라 합지요."
  "그 위인은 대갈통만 나다니고
아랫도리는 변방에 수자리 구실 나가고
없더냐?"
  "민호연이라 합지요."
  "고년 서울이 초행이라면서 시절은
알아서 아금받게 민문(閔門)의 한량만
골라서 물었구나. 그분이라면 외입에
어서 속차리고 차버려라."
  "그러지 못합니다. 쇤네 비록 천기라
하나 몸을 지키어 목숨같이 하라는 분부
있었사온데 그러다 격이 떨어져 삼패로
박힌다는 걸 나으리께서도 알 만하시지
않으십니까."
  "고년하구선. 아주 기생재상(妓生宰相)인
척 행세하는구나. 기루의 풍속이
호굴(虎窟)에 버금갈 만큼 무섭다는 건
너도 알렷다? 파방(破房)을 당해 기명
등속을 마당에 내동댕이치고 싶으냐?"
  "나으리, 파방을 하시다니요. 제발
고정하십시오."
  "내 입성이 다소 부실하다 하여 네년이
홀대를 할 모양인데 이 다방골에
수진방골이며 무교다리께선 시전의
노란 수건 동여서 운종가 바닥으로 끌어내
회술레 돌려 망신을 시키는 데는 아주 호가
난 사람이란 걸 네년이 미처 모르는
모양이로구나?"
  그때서야 심상하게 앉았던 아랫목의
선객들이 술사발을 놓고, 첫밗에부터
다부지게 뜸을 들이고 있는 길가의 거동을
눈여겨 쳐다보았다.
  "어디 그뿐이냐. 나는 기방 식대조차
엄대 긋고 다니며 갚지 않는다 하여도
코머리들에게 찍자 한번 당해본 일이
없었다. 이래도 기둥서방을 떼지
못하겠느냐?"
  "정이 깊어 못 버리겠어요."
  "그 동안에 벌써 정이 들었더냐? 네년이
정이 들었다 하면 그 정근(情根)이 도대체
  "쇤네의 뱃속에 들었습지요."
  "어디 그 정 한번 보여라. 뱃속에 정이
들었단 걸 내가 보기만 한다면야 기둥서방
떼라고 지다위 하진 않으리라."
  궐녀가 할 수 없이 제 손으로 겉치마의
말기를 끄르다가 짧은 한숨 끝에 그만둔다.
  "그래, 그것이 정이란 게냐? 내가 보기엔
치마말기로만 보이는데?"
  궐녀가 치마를 마저 끄르고 속곳을 벗고
홑속곳만 입고 앉았다.
  "이년, 대판 시비 나기 전에 어서 정을
내보이렷다."
  화들짝 놀란 궐녀가 홑속곳을 벗어 입에
물고 사추리와 가슴을 가리고 섰다. 그때,
길가가 궐녀의 입에 물린 속곳자락을 홱
낚아챘다. 박꽃처럼 희디흰 궐녀의
돋아나는 불두덩이 드러나는가 하였더니
궐녀는 호들갑을 떨며 속곳을 다시
낚아채어 사추리를 가리면서 주질러
앉았다. 그제서야 길소개가 픽 웃으며
발밀이로 물러앉으면서 기공행하 몇푼을
던진다.
  "네년의 뱃구레가 그렇게 푸짐할 양니면
오장육부 삼천육천 뼈마디 어디에고 정이
박히었겠구나. 그래, 그 서방 모시고 오래
살아라."
  궐녀가 옷매무시를 수습하고 있는 동안
아랫목에서 시종 청승스럽게 앉아 있던
사내들 중에 한 놈이,
  "좌중에 통할 말이 있소이다."
  "네, 무슨 말씀이오?"
  "보아하니 형장께선 방에 드시고
보자 하니 연조가 보통이 아닌 것
같습니다. 기명이 허술하여 행세가 깎일
듯하시나 합석을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거 듣던 중 반가운 말씀이오."
  길가가 지체없이 주안상 앞으로 썩 당겨
앉았다. 명색이 장안의 한량들이랍시고
행세깨나 한다는 위인들이라 하나 입잔
한잔 들지 않고 앉아 기녀를 다루는 솜씨에
한입같이 놀라는 것이었다. 통성명을 하고
보니 사내들은 좌포청의 군관들이며, 그
끄나풀들이었다. 맹구범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두 놈이 한꺼번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맹구범과
면식은 있되 지금의 거처를 알고 있지는
못했다.
  길가가 낭패한 얼굴로 꼭 수배해야 할
있다며 한 사내가 벌떡 일어서는 것이었다.
  비틀거리며 나갔던 위인이 자정을 넘기고
술기운이 말갛게 깨어 가지고서야
들어왔다. 방에 남아 있던 축들은 그 동안
술을 몇주전자를 비웠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여보게, 자네 어딜 헤매다 이제서야
메추리 소매를 하고 들어오는가?"
  "말도 말게. 광충다리, 수표다리, 혜정교
밑이며 청파에 배다리하며 오간수 밑이며
명색 붙은 딴꾼들 움집이란 곳은 다
뒤졌다네. 어디 그뿐인가. 서소문 성
밑이며 새남터며 만리재에까지 급주를
놓아서 수배를 하였다네."
  "그래 찾았는가?"
  "맹구범이 오간수문 해자(垓字) 구멍
있는가 보더군."
  "자네 말이 적실한가?"
  이번에는 길소개가 다잡아 물었다.
  "성님 이러지 마슈. 내가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성님 일에 헤살을 놓겠수.
내 구실이 하찮은 포도군관이지만 수하에
둔 딴꾼놈들은 믿을 만하다우. 맹가를
만나려거든 오간수문으로 가보시우."
  오간수문(五磵水門)이란, 목멱산 구릉이
동으로 뻗어 시구문[光熙門]에 이어지면서
남영(南營) 뒤에 이르러 계곡을 이룬다.
그곳에서부터 계류(溪流)가 생겨나면서
남소문동(南小門洞)을 꿰ㄸ어
하도감(下都監) 곁을 지나 훈련원(訓鍊院)
뒤쪽으로 흘러내려 개천(開川)에 합치면서
오간수 해자로 흘러드는 곳이다. 그곳에
모여 살았다.
  포도군관의 말이 들어맞았다. 새벽까지
난무순(亂無順)으로 술추렴을 하다가
계명성이 밝아올 인시쯤에 길가는 다방골
기루를 나섰다. 다방골에서 오간수문까지만
하여도 시오릿길이 빠듯한지라 훈련원
어름에 닿으니 벌써 날이 희뿜하니
밝아왔다. 훈련원을 비켜 오간수문
어름으로 꺾어드니 개천가로 깍정이들의
움막이 바라보이기 시작하엿다. 깍정이들은
새벽같이 일어나서 삭정이와
허섭쓰레기들을 주워다 화톳불을 피우고
옷을 말리거나 어한을 하고 있는 축들도
있었다. 궐한들은 때아닌 꼭두새벽에 조산
움막을 겨냥하여 거침새없이 내려오고 있는
중치막짜리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입성이 꽤나 번지르르한데 마수걸이로 잘
걸렸수. 가까이 오거든 옷이나 벗깁시다."
  "보아하니 전냥깨나 지녔을 만한데그랴."
  "혹시 전의감(典醫監)이나
혜민서(惠民署)에서 나오는 구실아치가
아닌가. 거침새없는 걸음걸이며 풍골이
꽤나 준수한데그려."
  깍정이들이 가까이 다가오는
중치막짜리를 발길 공론들을 하고 있는
중에 위인은 빨랫줄 한 길이만큼에서
행보를 멈추고는 깎듯한 하겟말로,
  "여보게들, 자네들에게 긴히 통한 말이
있네."
  한 놈이 화톳불가에서 썩 비켜나면서
대꾸하였다.
  "어느 한골 나으리신데 새벽동자 바람에
  깍정이놈이 앞으로 다가오는데 입가에
허옇게 버캐가 끼여 있고 눈자위에 달린
누런 눈곱이 어지간한 옥수수
낱알만하였다. 어깨에 걸친 등거리며
옹구바지에선 시궁 썩는 냄새가 등천을
하였다. 이놈들은 측간 다녀와서 뒤도 닦지
않는가 싶은데 오뉴월인데도 보리 알만한
서캐가 등거리 위로 굼실거리고 있었다.
  "자네들 동패 중에 전자에 시전
차인행수로 행세하던 맹아무개가 있는가?"
  깍정이놈이 가파른 눈길로 길가의 행색을
ㅎ어보더니 네댓 칸 밖에서 웅성거리고
있는 저의 동패들에가 대고 큰소리로
묻기를,
  "여보게들 우리 패거리 중에 아직도
안태성 가지고 행세하는 놈도 있나?"
되었거나 도망 나온 노비라거나
화적질이다가 잠적(潛跡)하여 조산 움막에
숨어든 사내들이 이름을 가지고 행세할
리가 만무란 뜻일 게다. 조산에 들어오면
꼭 지단이 지어주는 까마귀니 솔개미니
구렁이니 하는 이름으로만 행세하게
마련이었다. 동패가 한 눈을 찡긋하며 묻는
말에 화톳불가의 놈들이 와르르 웃었다.
  "우리 동패 중엔 그런 놈 없습니다."
  "내 연비를 트고 있는 포도관을 닦달하여
소식을 얻어듣고 왔으니 만나도록 해주게."
  "어디서 오셨수?"
  "종가 입전 행랑의 길생원이라 하면
맹행수도 알 만한 것일세."
  "그럼 한번 알아보긴 하겠지만 먼저
앞전을 지르십시오."
안으로 기어들었던 놈이 금방 다시
나타났다.
  "혼자 오셨수, 후배라도 있소?"
  "나 혼자일세."
  "따라오슈."
  움막이래야 형용뿐이어서 서까래 몇개를
아구 맞춰 세우고 거적이며 이엉 따위를
둘러 겨우 비와 이슬을 피할 정도였는데,
거적문을 들치고 안으로 들어서니 캄캄하여
한 발짝 앞을 겨냥하기 어려웠고 시체가
썩는 것 같은 고약한 냄새 때문에 금방
골머리가 찡하니 아파왔다. 잘못 발을
들여놓은 것은 아닌가 하여 가슴이
섬ㅉ한데,
  "거기 앉으시오."
  무턱대고 앉아서 눈을 익히니 세 사내가
사내가 맹구범이었다. 형용이 옛 같지가
않고 맨상툿바람이었으나 맹가가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앉으라고 권한 놈은 맹가
옆에 앉은 위인이었다. 맹구범이 벙어리
행세라지만 귀밝기는 멀쩡한지라 어떻게
말문을 열어야 할지 주저하고 있는 판에
맹구범의 옆에 앉았던 자가,
  "얘길 하시오. 우리 동패들이 들어도
괜찮소이다."
  맹구범이 고개를 끄덕이었다.
  "맹행수가 지금은 언변을 통하지 못하게
되었으나 손에 익힌 글이며 총기 또한
여전할 것이오. 그러하다면 신석주가
송상과 내상들이며 외방의 객주들과
거래하던 규모며 그 가계의 규모도 잊지
않으셨겠지요? 그걸 소상히
  "그걸 얻다 쓰려고 그러시오?"
  "물론 신석주를 모해하려는 것이오.
맹행수도 신석주에게 품고 있는 원혐이
날로 깊이 쌓일 터 우리가 힘을 합쳐
신석주의 문중에다 아예 연못을 파버리자는
것입니다. 초일기만 내놓는다면 내 백냥은
수이 내놓으리다."
  "초일기의 용처가 어디십니까?"
  "그 세력이 당대에 빛나는 권문의
대감에게 갖다 바칠 것은 틀림이 없으나
함자를 들어 말할 수는 없소."
  맹구범이가 목자를 부릅뜨고 길소개를
쏘아보았다.
  옆자리에 앉았던 자가 힐끗 맹구범의
안색을 엿보고 나서
  "초일기를 갖다 바칠 사람이 누구인지
찾아온 김에 옷이나 벗어주고 가시오."
  "예끼 이 사람들, 아무리 미천한
사람들이라 한들 이처럼 불량스러울 수가
없네. 찾아온 사람을 두고 박정하게 옷을
벗기려 들다니."
  "그럼, 어떡하우. 우리 풍속이
그러한걸."
  "정 그렇다면 내 말하지. 안국방 민겸호
대감일세."
  "그게 적실하다면 2백 냥을 내놓으시오.
내일 해거름 적까지는 초일기를 공력 들여
닦아놓겠답니다."
  "백 냥이래도 천만의외의 돈일텐데, 이백
냥이면 너무 과도한 행하돈이 아닌가."
  "떨떠름하면 그만두시라고 몇번 말해야
알아듣겠소? 죄안(罪案)을 날조하여
냔이 대수요? 성애를 먹는다 하여도 그만한
금어치는 들어야 하오."
  맹구범으로 보아선 배부른 흥정이었다.
이미 그 초일기를 뉘게다가 갖다줄
것인지도 직토를 해버린 이상, 길가는 이제
맹구범에게 발목이 잡힌 셈이 되었다.
이튿날 해질녘인 술시초(戌時初)에 훈련원
밖인 연자루(燕子樓)에서 만나기로 하고
움막을 나왔다. 약조한 이튿날 정한 시각에
길소개가 연자루로 갔다.
  연자루 근처에는 노송숲이 빽빽하여
한낮에도 열 칸 앞을 겨냥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고, 곳곳에 웅덩이가 패어져
있는 곳이었다. 훈련원의 활터가 근방에
있어 한낮이면 두다리[二橋] 천변에 있는
전족전(箭鏃廛) 근방의 악다구니들이
적막한 곳이엇고, 잡초 사이로
오간수문으로 빠지는 조도길이 노송숲
사이로 뱀처럼 스쳐가고 있을 뿐이었다.
하필이면 이런 으스스한 곳으로 사람을
불러들이는가 싶은데, 갑자기 키높이로
자란 잡초숲을 헤치고 서넛이나 되는
장한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불쑥 나타난
범강장달 같은 세 놈을 보는 순간,
길소개는 말구멍이 막혀버렸다.
  "생원이시오?"
  듣자 하니 어제 아침 맹구범을 통변하던
꼭지딴이었다.
  "어이쿠, 자네들인가?"
  "우릴 좀 따라오시오."
  "맹행수는 나오지 않았나?"
  "따라오시라니까 그러네."
하니 비로소 무슨 소동이 벌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리를 절룩거리는 놈에,
어깻죽지를 엉덩이까지 늘어뜨린 놈에 한
놈은 전신에 피칠갑이었다. 깍정이놈들이
봉적을 당한 것인가 아니면 저희들끼리
대판 시비가 벌어졌는가 하고 속으로만
요량을 하고 있는 중에 선머리에 섰던 한
놈이 웅덩이 가녘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길 자세히 보시오."
  웅덩이는 잡초가 무성하고 뼘 길이만큼
수채가 차 있었다. 그 잡초 속에 몽둥이에
핏자죽 하나 없는 맹구범이가 하늘로 눈을
부릅뜨고 반듯이 누워 있었다.
  "방금 된 급살을 맞고 나서 숨을 들이고
나더니 다신 내뿜질 않소?"
  "아니, 이게 무슨 경난인가?"
연자루 어름으로 들어서는 판에 갑자기
노송 뒤에서 허우대가 장승도깨비 같은
패거리들이 들이닥쳐서 치고 박는데 움치고
뛸 재간이 있어야죠. 풍비박산이 되어
등골에서 누린내가 나도록 모둠매를 맞고
일어나 보니 맹가는 늪에 처박히는데
코에선 벌써 단내가 납디다요."
  "이 숙맥 같은 사람들아, 그래 덮친
놈들이 어떤 놈들이란 걸 도통 알 길이
없더란 말인가?"
  "꿩 구워먹은 자리는 재나 있지요. 눈
깜짝할 사이에 튀고 없는 판에 그럼
어떡하란 말이오? 거 호롱불에 속곳 말리는
답답한 소리 작작 하슈."
  "저걸 어찌하려나?"
  "수의 명색이라도 차려서 시구문 밖으로
가쇼."
  "그 초일기는 어떻게 되었나?"
  "초상집에서 권주가요? 그러야 우릴
작살낸 놈들이 가져갔겠지요."
  사태는 분명하게 되었고 배짱 하나 믿고
사는 길가인들 더 이상 그곳에서 지체할
강단도 없었다. 이십 냥 뚝 떼어
건네주면서,
  "뒷일을 조처하게들."
  그리고는 두 다리뿐인 것을 탄식하며
그곳에서 장달음을 놓아버렸다. 길가
평생에 그토록 혼찌검이 나보긴
처음이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와 곰곰
되씹어볼 제, 불각시에 나타나서
맹구범에게 된급살을 놓은 패거리가 도대체
누구인지 알 길이 없었다. 더군다나
날은 바로 내일로 박두하지 않았는가. 사흘
말미 중에 못다한 일을 열흘 말미를 더
준다 하녀 할 수 있다고 생각할 민겸호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맹구범이가 죽은 이상
달리 술계를 부려볼 재간도 없었다. 길가는
쓰디쓴 입을 다시며 밤새도록 한잠도
이루지 못했다. 계집을 잡고 하소연할까,
척간이나 항렬이 있어 기대나 볼까.
구들장이 꺼지나 싶게 새벽별이 숨을
때까지 한숨만 토해내고 있는 판에 정주
아궁이에 묻어둔 불씨를 보러 밖으로
나갔던 강경댁이 소스라쳐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나으리 이것 보시오."
  "임자, 그게 뭔가?"
  "대문간에 인기척은 없었는데 이것이
  강경댁이 들고 있는 것은 떠껑지를
보자기삼아 싼 초일기 장책 한 권이었다.
떠껑지에는 흙이 묻어 있고 이슬을 맞아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길가는 다시 눈엎이
아찔하였다. 필적이 맹구범의 것에 틀림이
없고 떠껑지에는 흙이 묻은 것이며
책갈피에 이슬 맞은 것이 자기가 얻고자
하던 그 초일기가 분명하긴 한데 도대체
어느 놈이 임자를 용하게 찾아내어
대문간에다 떨구었을까. 깍정이
패거리들이었다면 수월찮은 신발차를 또한
청하고 나섰을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런
것이야 나중에 부닥치고 볼 일이었다. 당장
바라던 것을 얻었으니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고 보자는 심산이었다. 새벽같이
민겸호를 찾아갔다. 초일기를 뒤적거리던
  "자네, 어느 사수(寫手)를 빌려 초일기를
닦았으렷다?"
  "뉘 손을 빌리다니요?"
  "그럼 자네 손으로 했단 말인가?"
  "그건 아닙니다만."
  "내가 알고 있기로는 자네가 언문은
그런대로 뜯어본다 하나 가로 왈(曰) 날
일(日)을 분별할 줄 모른다는 건 나도
진작부터 알고 있었네. 그렇다면 다른 손을
빌렸다는 건 잠작하기 어렵잖은데 그게
누군인가? 자넨 입막음으로 거금을 날린
것이 아닌가?"
  "대감마님, 시생의 문겸이 모자라는 건
적실하나 한낱 미물인 굼벵이도 뒹구는
재주는 있다 하였습니다."
  "자네 뒹구는 재주가 그럴싸하다면 어디
  "시생이 사수를 물색하여 차작(借作)으로
초일기를 닦은 건 사실이나 그놈은 벌써
이승의 놈이 아닙니다."
  계집종이 들여놓고 간 깨죽사발을
들어올리려다 말고 화들짝 놀란 민겸호가
물었다.
  "아아니, 이런 맹알한 위인도 있더란
말인가? 그놈 하나에 모함 잡힐까 겁을
먹고 경솔하게 살옥(殺獄)을 저지르고
다닌단 말인가?"
  그때, 앉은 자리에서 엉덩짝을 번쩍
치켜든 길가가 조급히 손사래를 치면서,
  "그게 아닙니다 대감마님. 그 위인이
시생에게 이 치부(置簿)와 하기(下記)를
전하고 돌아가는 길에 시구문 해자에서
낙상을 하여 그만 황천행이 되고
입막음 하나를 제대로 닦달 못해 목숨을
도륙내겠습니까?"
  "저런 딱한 노릇이 있나? 그래 초종은
치르었나?"
  "내일이 장례일입지요."
  입에서 나오는 대로 둘러댄 것인데,
민겸호 역시 거짓 전갈로는 듣지 않았다.
  "거짓 전갈이 드러나면 내가 자네에게
살변을 낼 것인즉, 그 위인이 제삿날로
낙명(落命)한 게 적실하렷다?"
  "어느 안전이라고 무보(誣報)를 하여
노여움을 자초하리까. 시생의 반푼어치밖에
안 되는 모가지를 걸겠습니다."
  "내 일간 자네에게 통기를 할 것인즉
오늘은 돌아가 있게. 자네가 고분고분하게
내 처분만 기다려준다면 어느 고을 한
뜨내기라 하여 환수(宦數)가 트이지 않으란
법도 없지."
  "시생 같은 용렬한 위인이 어찌......"
  "겸사(謙辭)도 할 줄 아는 걸 보니,
자네도 문견이 짧아 탈이지 염의도
그만하면 쓸 만해 보이네."
  봉천답(奉天畓)이 소나기를 싫어할까.
민겸호의 두어 마디 부추김에 길소개는
뼈마디가 죄어드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권문에 드나들며 지성으로 바라던 것이 그
한마디를 듣고자 함이 아니었던가. 역시
공력을 들인 보람이 없지 않아서 병풍에
그린 닭이 홰를 친 듯 당대의 세도가인
민겸호의 입에서 천만의외의 말을 듣게
된것이었다. 어디 기름진 고을의
수령자리뿐일까. 민겸호의 처분에 따라서는
취사(取士)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시골
관아의 수통인 구실이 하늘같이 쳐다보이던
시절이 어저께만 같은데 오늘에 이르러
경사의 구실아치에까지 현달할 것을 넘보게
되었으니 세상에 이런 왕기(旺氣)가
없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어느
때보다 심기가 어지러웠다. 민겸호가
자기를 불러댄 것은 신석주가 모함잡아
내쫓으려는 낌새를 알아차린 때문이라고
생각되지만 새벽참에 대문 안에 떨어진
초일기는 어떤 위인이 갖다놓은 것일까.
그것이 조산 깍정이 패거리들 짓은 절대로
아니란 것쯤은 길가도 알고 있었다.
느닷없이 코앞에 들이닥친 공명과 왕기가
더할 나위 없이 수중하매, 오리무중인 그
한가지 위문이 몸서리치게 궁금한
있되 곡절도 모르는 떡을 물색없이
삼켰다간 그 견모를 또한 어찌 감당할까.
  집에 들어가는 길로 강경댁을 불러
앉히고 성화를 먹이는데,
  "임자, 장안에 어디
황양목(黃楊木)이라더니 임자 소견은
날마다 줄어들기만 하는가 그래."
  "아침나절부터 맹랑한 지경 당하겠네.
불각시에 웬 판수타령으로 성화시우?"
  "근간에 잡사가 많아 내 경위소견을 한번
밝혀볼까 해서 그러네."
  "무슨 횡액이라도 입으셨단 말씀입니까?"
  "내가 언제 횡핵당해 오갈이 들던가?
왕기를 보았는데 어디 붙은 자리를 몰라서
속에 천불이 나서그려. 용하다는
전내(殿內)집이라도 있단 소문은 못
  반짇고리에서 침선 일거리를 꺼내 풀을
먹이고 있던 강경댁이 잠시 고개를
기우뚱거리다가,
  "약고개[藥峴]에 신통한 명판을 가진
도무당이 살고 있는데 그 만신의
육효(六爻)점이 아주 똑떨어진다는 풍문은
왜자합니다."
  "그 소문이 적실하다면 임자가 가서 좀
데리고 오게나."
  "어림없는 말씀입니다."
  "어림없다니? 제아무리 도무당이라
하더라도 복채(卜債)만 두둑이 놓는다 하면
저승 문턱까지 오란들 마다할까."
  "듣자 하니 그 만신의 복술(卜術)은
소문이 왜자하여 한골만 들락거려서
어지간한 구실아치들이야 불러봤자
  "목마른 놈 샘 파기라구, 그만치
도도하다면 내 발로 찾아갈 수 밖에."















  길소개는 체통이며 성깔이며 가릴 처지가
아닌지라 부리를 헌 김에 주저할 것도 없이
집을 나섰다. 새경다리에서 약고개까지라면
시오릿길이 빠듯하고 목이 또한 숨찬
길이었다. 배우개 장거리며 종가를 쭉
벗어나서 광충다리 어리전 어름에서
무교다리께로 꺾어졌다. 무교다리에
서남쪽으로 뻗은 숭례문까지 길을 단숨에
줄여 숭례문 밖 칠패를 비켜나면 염초교가
나선다. 염초교를 건너 반마장길을
오르다보면 길은 두 갈래 되는데 왼편으로
꺾으면 만리재와 애우개와 큰덕이[大峴]로
넘어가는 길이요, 오른편으로 꺾으면
한림골[翰林洞]을 지나서 약고개에 이른다.
가가(假家)가 즐비하였고 관동(關東)에서
내려온 약초(藥草)들이 경강(京江)을 따라
내려오다가 일단 삼개에서 짐을 풀기도
하였지만 일부는 거래를 트고 있는
건색들을 찾아 용산(龍山)을 지나 만리재를
넘어 약고개에까지 와서 화매(和賣)를
하는가 하면 구리개[銅峴]에서 나온
약주릅들도 심심찮게 끼여든다.
  벌써 한낮에는 행보가 숨이 찰 정도로
날이 더웠고 길가의 노송 아래선 위통을
벗어부친 상것들이 모여앉아 고누를 두고
있었다. 도무당이 살고 있다는 언덕
막바지에 당도하였을 적엔 등줄기에 땀이
질퍽하게 배었다. 한낮의 적막이 더욱
무더운데 만신의 집에는 얼핏 인적이라곤
없었다.
  몇번인가 목청을 가다듬어 가며 통자를
넣어도 대꾸가 없길래 주저주저하며
뜨락으로 들어서는데 지게문이 열리었다.
  "거참, 고이헌 사람들이군.
불청객이라지만 밖에선 숨이 넘어가는 판에
어찌 그렇게 태연하단 말인가."
  그렇게 호령을 하는 시늉인데도 문을 연
젊은 계집은 문고리를 잡고 주저할 뿐
접객할 엄두가 없는 모양이었다.
무녀(巫女)인 주제에 내외를 차리자는 건가
싶어 맹랑한 심사가 없지 않은데, 그순간
봉당으로 내려선 계집이 길가를
가로막으면서,
  "어쑤, 어서 나가라."
  "나가라니? 자네가 누군데 나를
문전박대하는가?"
잡귀가 덮씌었으니 그 몰골로
신당(神堂)으론 못 들어간다."
  "무슨 잡귀가 있다고 그러나."
  부득부득 봉당 쪽마루로 올라서려는
길소개를 팔을 벌려 가로막으며,
  "엇쉬 물러가거라. 콩밭 매다가 독사에
물려 죽은 귀신, 물 긷다가 우물에 빠져
죽은 귀신, 엄동설한에 얼음구멍에 바져
죽은 귀신, 옘병 삼년에 땀 못 흘리고 죽은
귀신, 찰떡 먹다 체해 죽은 귀신, 삼문
안에 끌려가서 태장 맞고 죽은 귀신,
삼복더위에 헐떡증을 만나 죽은 귀신,
된서방 만나서 복상사로 죽은 귀신, 남의
서방 끌어내다 대죽밭에 엎어져 죽은 귀신,
엇쉬 잡귀야 썩 물러가라."
  "아니 이 사람아, 내게 무슨 잡귀가
  그때, 계집이 공손해지면서 말했다.
  "얼추 벽사가 된 듯하니 신당으로
드십시오."
  "내 들기 전에 한마디 묻겠는데 약고개의
명판이라면 바로 이 집인가?"
  "약고개라면 이 신당밖엔 없습니다."
  "자네가 바로 행수무당인가?"
  "쇤네에게 신어미가 있습니다만 육효는
쇤네가 뽑아올리고 있습지요."
  "그렇다면 선무당 명색이렷다?"
  "대주께선 미진하시다면 돌아가시어도
좋습니다."
  계집의 모색이 제법 눈길을 끌었다. 쪽
곧은 가리마 아래로 희고 반듯한 이마가
도드라졌고, 선명한 아미(蛾眉) 아래로
초롱초롱한 눈발은 도화살이 끼어는 있으나
꽃잎처럼 붉게 젖어 있는 것도 버리기
아까운 맵시요, 밉지 않게 오뚝한 콧날이며
노리끼한 한산 생모시를 맵짜게 다듬어서
어울리게 입은 몸가축 역시 범상치가
않았다. 그 소매 사이로 내뻗는 두 팔이
껍질 벗긴 무처럼 희다. 어쩌다 이런
창상이 무복(巫卜)에 종사하게 되었는지
문득 궁금하다. 궐녀가 안내하는 대로
어둑어둑한 신당으로 들어갔다. 방
한가운데 점상(占床)이 놓여 있고 점상
위에는 삼명도(三明圖)라는 유기그릇이
놓였고 유기그릇에는 좁쌀이 가득하다.
좁쌀 위에는 오색 지화(紙花)다발이
꽂히었는데, 그 꽃빛이 계집의 창백한
이마에 서리어 무기(巫氣)를 뿜어낸다.
점상 뒤에 제청(祭廳)이 보이고 제청 옆에
제청 왼편으로는 신옷[神衣]들이 걸려
있었다. 산마누라[山神]를 제사할 때 입는
상모 달린 주립(朱笠)이며 세 갈래 창과
청룡도(靑龍刀)가 걸리었고 남색
치마저고리며 그 위에 입을 철릭과 붉은
띠가 걸리었다.
  또한 제석(帝釋)거리 할 때 쓰는 흰
빛깔의 날아갈 듯한 승모(僧帽)와
장삼(長衫)이 걸리었고 눈이 어지러운
금빛의 가사(袈裟)와 염주와 흰 부채가
또한 횃대가 휘어지게 걸리었다.
신기(神旗)와 신대.신칼, 방울과
요령.울쇠[嗚金]가 바람벽에 나란히
걸리었고 삼불선(三佛扇)과
팔선녀선(八仙女扇)이 보였는데 이
부채들은 악신을 털어버리고 선신을
개인데 빛깔이 제각기 다르다. 그래서
오색신장기(五色神將旗)라고도 하는데
오색은 동서남북과 중앙의 다섯 방향을
가리키는 구실을 한다.
  신당 안을 뚜렷뚜렷 살피고 있는 길가의
거동을 기다리기 진력났던지 무녀가 먼저
물었다.
  "여기까지 걸음하신 연유나
말씀하시지요."
  "근자에 내 신변에 전고에 없던 괴이한
일이 많이 생겨났는데, 그러나 내 짐작이나
견문으로는 골자를 가늠할 수 없어
육효라도 뽑아볼까 하여 불문곡직하고
찾아오긴 하였네만 보아하니 자넨 아직
선무당으로 신발[巫氣]이 바르게 나올 것
같지가 않구먼. 원무당이 올 때까지
  궐녀가 눈발을 곤두세우고 길가를 똑바로
쳐다보며 심사가 틀린 어조로,
  "파적을 하시다니요?"
  "내 자네완 초면이네만 외양이 그만하면
쓸 만해 잠시 정신이 팔렸다는 얘길세."
  "신당 안에서 무슨 사위스런 언사를
농하십니까. 전내집에 와서 잡담으로
지분거리시는 것은 그 싱겁기가 기생
데리구 떡먹기와 같은 것입니다."
  "자네의 그 은근한 추파하며 교태가 제법
곱상한데 그러나."
  "굳이 파적을 하시려면 조금 더 올라가서
약국에 벌여놓은 장기판에 끼시거나
색주가도 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으리의
신변에서 일어났다는 괴이한 일이란 근자에
겪으셨던 두 번의 횡재가 아니었습니까?"
길소개가,
  "두 번의 횡재라니?"
  "한번은 귀인의 부름을 받았으니 썩은
고목에서 때아닌 꽃이 핀 격이었고, 한번은
또한 귀인이 나타나서 낙척(落拓)이
경각간인 것을 모면시켜 주었으니, 이는
지려는 꽃에 이슬을 내려 열매를 재촉한
격입니다. 이것이 바로 두 번의 횡재라 할
수 있지요."
  "누가 밖에서 엿듣지나 않겠나?"
  "잡인이 신방 밖에서 얼씬거리다간
신벌을 받게 되지요."
  "그렇다면 도대체 두번째 나타난 그
귀인은 누구인가?"
  "꽃은 피어 만발인데 나비가 없으니 장차
현달하실 기상은 하늘에 닿았으나 아직
심질을 얻었으니 밤이 깊을수록 잠을
설치고 정작 일신을 의탁하여 기댈 곳이
없으니 오늘은 이리 기웃 내일은 저리 기웃
마음의 정처가 없으니 만리장천을 날으는
집 없는 외기러기 신세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고목의 뿌리가 썩듯이 뿌리 없는
꽃이란 소(沼)에 갇힌 물과 같아 흐르지
못하니 그 또한 필경 썩고 말 것입니다.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더라고 남 보기엔
비룡(飛龍)의 기상에 방불하나 실상은 그에
닿지 못하니 이 또한 딱하고 분통터질
노릇입니다."
  "태주할미라더니 자넨 청상의 몸으로
언제 그렇게 빼어난 무기(巫技)를
지녔는가? 그래 내 팔자가 장차 어찌
되겠는가?"
있습니다그려. 첫째는 누가 나으리를
겨냥하여 제웅을 만들어 방자를 하고 있는
지가 오래입니다. 두번째는 꽃귀신이 집에
들었습니다."
  "꽃귀신이라니?"
  "북관의 의주땅에서 상전의 아들과
정분을 트다가 자녀(姿女)로 지목이 되어
동리형(洞里刑)으로 죽은 꽃귀신이 설분을
못 풀어 저승과 이승 사이를 헤매다가
나으리댁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나를 방자한다는 곳은 어딘가?"
  "괘(卦)에는 삼남쪽입니다. 그러나 우선
꽃귀신의 살(煞)을 풀고 저승으로
보내주셔야 액막이가 되고 귀인이 다시
나으리를 부르시게 될 것입니다."
  "천하에 이런 망측한 비색(否塞)이 없네.
복채는 물론이요, 제수(祭需)에도 물력을
아끼지 않음세."
  하얗게 질린 길가의 얼굴을 매월은
유심히 바라보았다. 육효가 뽑힌 대로
말한다면 꽤나 드센 신발을 가진
위인이었다. 도대체가 반열(班列)에 끼여들
수 없는 얼치기가 반명을 하게 된 것부터가
사주를 흩뜨려놓은 위인이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과욕이 서려 순리대로 살아가지
못할 팔자가 되었으니 일신이 편할 날이
있을 턱이 없었다. 거릿귀신이 매양 상투를
잡고 놓지 않는 괘였다. 오절(五絶)이라
하여 다섯 가지 비명의 죽음이 있다.
목매어 죽는 일, 물에 빠져 죽는 일, 눌려
죽는 일, 얼어 죽는 일, 몹시 놀라 죽는
일이 그것인데, 이 위인은 그 오절에
박복하고 기박한 팔자를 타고난 위인이라
나라무당이 맡아서 안택굿을 한다 하여도
굿발을 받지 못할 드센 팔자였다. 그런데도
위인을 잡아두고 오랫동안 수작을 트고
있는 까닭이 있었다.
  위인이 처음 삽짝 밖에서 통자를 넣고
있을 때 문틈으로 동정을 살피던 매월은
가슴이 쩔렁하니 내려앉았던 것이었다.
위인의 형용에 겹쳐 천봉삼의 환형이
너무나 역력하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이 위인을 쉽게 놓아버릴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천봉삼의 행적을 찾아 어디 안 가본 것이
있었던가. 흥인문(興仁門) 안
마전다리[馬廛橋]와 청교(淸橋) 사이의
쇠전마당, 칠패와 배우개의 채소전,
혜정교 잡전(雜廛)과
세물도가(貰物都家)하며 경교다리[京橋]의
양대전(凉臺廛)과 서소문[昭義門] 밖의
초물전(草物廛), 숭례문 밖과 삼개의
염전(鹽廛)머리, 의금부(義禁府) 앞의
미투리전, 육조(六曹) 앞의
목기전(木器廛)이며 새경다리의
칠목기전(漆木器廛)과 장전(欌廛),
광충다리의 마상전(馬上廛)이며 용산
갯머리의 시목전(柴木廛), 종루의
방물전(方物廛)과 잡철전(雜鐵廛),
어의동(於義洞)병문의 백립전(白笠廛)이며
돈의문(敦義門) 밖의 분전(粉廛)에
이르기까지 명색이 외방의 장사치들이
꾀어든다는 곳이면 안 가본 곳이 없을 만큼
발서슴을 해보았었지 않았던가. 그러나
천봉삼의 환형을 본 것이었다.
  매월이가 한동안 주저하다가,
  "따로 굿청을 벌이신 것까지는
없습니다."
  "굿청을 벌일 까닭이 없다니, 자네 말은
필유곡절이 아니었던가?"
  "안방마님이 계시겠지요?"
  "내 연치가 얼마인데 이제껏
미장가이겠는가."
  "쇤네가 따로 뵈었으면 하는데요."
  "여부가 있겠나."
  "쇤네가 신당을 비울 수가 없습니다.
쇤네의 신어미는 사흘 뒤에나 오실 것
같아서지요. 일간 짬을 내어 안방마님께서
여기까지 찾아오신다면 만나보입지요."
  "자네 성씨가 무언가?"
무가(巫家)에서는 항용 이씨녀(李氏女)라
부릅지요."
  "알겠네. 내 한발을 더 놓아 집에
득달하는 길로 내자 되는 사람을 이리로
보냄세."
  삽짝을 나서는 길가의 거동이 무척이나
조급하다. 매월이 신당의 문을 활짝
열었다. 대낮이었다. 뜨락에선 놋쇠 익는
냄새가 물씬할만큼 뜨거운 햇살이 내려쬐고
있었다. 궐녀는 정주로 나가서 냉수 한
사발을 떠 마셨다. 가슴이 미어질 것만
같은 조갈(燥渴)은 후끈거리는 더위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궐녀는
옹가지에다 넘치도록 물을 길었다. 뒤꼍
울바자 아래로 가져간 다음 저고리를 벗고
홑단치마만 걸친 채 물을 머리끝에서부터
물을 뒤집어썼다. 궐녀는 물방울이 흐르는
살신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입무(入巫)한
뒤부터 처신을 정히 하고 또한 외간의
사내들에게도 곁을 주지 않았으니 거칠던
신색은 탄력이 되살아나 박꽃처럼 희고
움푹 패었던 눈자위엔 생기가 돌았다. 물을
기얹고 나니 조급하던 심기가 다소간
가라앉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 위인을 따라
새경다리의 집에까지 달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처신을 경망스럽게 하면 신발도
내리지 않을 뿐더러 자칫하면 이제 지척에
있는지도 모를 봉삼을 멀리 내쫓는 사단이
일어날지도 몰랐다. 이제 그에 대한
흠앙(欽仰)이 원혐으로 굳어진 이상
떼난봉이 난다 하여도 뒤틀린 심사를
차근차근 젖무덤 위로 흐르는 물기를
닦았다.
  해가 나절 가웃으로 기울 즈음, 삽짝
밖에 두 여인네가 나타났다. 한눈으로
보아도 한 사람은 안방마님이요 곁에는
배종하는 여비였다.
  "장안 새경다리께서 왔다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매월이가 건넨 화채(花菜)그릇을 바닥째
비우고 있는 여인네의 이마엔 땀이 비오듯
하고 흰 모시적삼 등줄기는 소낙비를 맞은
것처럼 흠뻑 젖었다. 해전으로 길을
조이느라고 무척 조바심을 하였던
모양이었다. 여인네의 이마에 서린
도화살이 언뜻 눈에 들어오는데 언사하며
범절이 반가의 여인네다웠다. 한나절에
지체이고 또한 서로 가합한 혼처가
아니었다. 궐자의 분복이 또한 거기에 차지
못하니 모든 비색이 이 여인네로부터
기인한다 할 수 있었다.
  "항간의 소문으로는 자네의 굿발이
용하다더군."
  "여기까지 오시게 하여 전혀 도리가
아닙니다."
  "만신이 시키는 일을 어찌 거역하겠는가.
다만 내 집이 난가(亂家) 되어 작변을 겪기
전에 액막이만 된다 하면 천리 원행인들
마다할 노릇이 아니지."
  "자녀간에는 무엇을 두었습니까?"
  "자궁이 기박하여 아직 배태도
못하였다네."
  "마님과 나으리께선 결발부바가
  만정이 뚝 떨어져 넋이 빠진 듯 앉아
있던 강경댁이,
  "내 사위스런 속내를 세세히 밝힐 수는
없으나 내 본래 본부(本夫)와 평생 해로는
못할 팔자로 태어난 것인지도 모르지."
  "여항의 인심이란 대저 일의 결말에
따라서 팔자를 이어붙이고 그것을 팔자
탓으로 돌리려 하지요. 외람되고 불공스런
말씀 같사오나 마님께선 팔자를 고치지
않으셨다면 뜨내기 사내들에게 살꽃이나
파는 창기 될 팔자였습니다."
  "아무리 괘가 뽑힌 대로라 할지라도 그런
야멸찬 면박이 어디 있겠나."
  "그렇다면 아예 신당에 걸음을 하시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강경댁이 면판이 붉으락푸르락하였으나
어지간히 삭고 나서야,
  "회정할 길은 먼데 해는 한뼘밖에 남지
않았네. 어서 그 초일기 보따리를 갖다놓은
귀인이 누구인지나 가르쳐주겠나."
  "제가 묻는 말이 혹여 견모가 되고
면구스럽다 할지라도 외착나지 않게
대답하셔야 괘가 바로 뽑힙니다."
  "내 근본까지 들춰버린 지금에 와서 무슨
거짓으로 자넬 조롱할까."
  "한나절에 다녀가신 나으리께선 본래
떠돌이였습니다. 외방의 저자를 발섭하는
도부꾼이었거나 아니면 개평 서푼에 그날의
일진을 거는 상화방 설레꾼이었겠지요."
  "자네의 외양은 밉상이 아닌데 그
지청구가 어찌 그렇게도 불손한가."
  "지금에 이르러 출사할 때만을 노리고
않습니다. 가산도 그만하면 적빈하달 수는
없고 권문에도 끈을 달고 있습니다만
마음만 조급할 뿐입니다."
  "말도 말게. 북촌 김보현 대감이라면
당대의 세도가가 아닌가. 시전의 대행수인
신석주의 눈에 들어 도방에선 의임(矣任)의
자리에 올랐다네. 그러나 문견이 짧아 도통
출사를 못하고 있던 중에 근자엔 민겸호
대감의 분부를 봉행하게 되었다네. 상말에
방귀 잦으면 뭐 싼다는 말도 있건만 무슨
액회가 들어 이 모양인지 방책이 없다네.
그 난데없는 초일기로 하여 발등의 불은
껐으나, 그후론 어살에 걸린 고기처럼
처신에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었으니 이런
낭패가 없게 되었다네."
  강경댁은 반은 우는 소리로 저간의
직토해버린 다음 또한 묻기를,
  "우리 가문에 복덕을 내릴 은인은
누구이며 척이 질 인사는 누구인가?"
  "그분들과 친분을 트기 전에는 주장
누구와 교유하였습니까?"
  "낸들 소상히 알 턱이 있겠는가. 다만
근자에 송파장터의 왈자들이 육장 와서
북새를 놓곤 하였다네."
  "그 치부와 하기를 대문에 떨어뜨린
장본인은 제가 지금 당장 명자(名字)해
드리지 않더라도 사나흘 안으로는 그
스스로 나으리를 찾게 될 것입니다. 이
부적을 가져가서 사랑방 문설주 위에다
게첩을 하십시오."
  "그게 정말인가?"
  "절 믿으십시오. 나으리께서 이 재액을
  부적 한 장을 손에 쥐어 내쫓듯 강경댁을
내보낸 매월은 해가 지는 판인데도 길을
나섰다. 조급히 길을 죄었으나 숭례문 밖에
득달하였을 때에는 벌써 일색이 다하였다.
자기전(磁器廛), 고초전(藁草廛),
죽물전(竹物廛), 시목전(柴木廛)의
난전꾼과 염전(鹽廛)의 염부(鹽夫)들이
휘장을 거두고 성벽에 잇대인
사발막걸리집으로 몰려갔고, 노숙하려는
미투리 행상이나, 엿장수들과
옹기자(甕器匠)들이 떡전머리의
허섭쓰레기들을 모아서 모깃불들을 피우고
있었다. 칠패(七牌) 저자로 나갔던
시겟장수와 어물사인들이 빈 나귀를 이끌고
문밖의 객점을 기웃거리는 모습도 심심찮게
바라보였다. 매월은 문득 옛날의
시절을 떠올렸다. 맹구범이란 자가
아니었더면 지금쯤 부상으로 행세할 듯도
싶었고 천봉삼이가 아니었으면
무녀(巫女)로 박히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명색없는 상계집의 반평생이지만 흡사
주마등(走馬燈)과 같이 흘러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월이란 잊혀지라고 흘러가는
것인데 뜨내기 남정내 하나가 잊혀지지
못하니 그 또한 마음의 병이 가로 들어선
다음 입전의 신석주의 행랑으로 찾아갔다.
요행히 행랑은 찾아내었다 하나 신석주는
없었다. 선약이 있어 찾아왔다고 거짓
변해를 하였더니 접객을 한답시고 달려나온
서사는 뒤틀린 심사를 눈자위에다 그대로
꿰고 어디서 왔느냐고 불손하게 물었다.
  "약고개에서 왔습니다."
못했는데 상것이 감히 뉘게다가 거짓을
농한단 말인가?"
  "쇤네가 거짓인지 아닌지는 신대주께
현신을 시켜보면 그 당장 드러날 것인즉
선다님께서 공연히 속태우실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전사에 나으리를 한두 번 뵈온
일도 있다는 말인가?"
  사대부들이나 부상들이 심심파적으로
간혹 무녀들을 건드리는 일이야 허다한지라
서사는 의미심장하게 물었던 것이었다.
  "있다마다요, 수일 전에 김보현 대감의
안택굿에서 신어미의 곁시로 따라갔던
계집이라 하면 신대주께서 금방 알아차리실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하필이면 해저녁에 왜
  "해저녁에 찾아오라는 분부가 있었으니
해저녁에 보입자 할 수밖에요."
  "거짓이라면 자네 혼찌검을 당하네."
  "혼찌검을 당한다 하여도 신대주께서
보시는 앞이라면 상관이 없습니다."
  서사가 그렇다면 따라오라 하고 선머리에
선다. 종가에서 곧장 탑골로 들어갔다.
대문간이 조촐한 집 앞에 이르러 기다리라
하고 서사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집이
워낙 조용하고 행랑채가 작은 것으로 보아
측실의 가택임을 짐작할 만하였다.
  얼마 있지 않아서 서사가 다시
뛰어나왔다. 궐자는 모가지를 삐딱하니
꼬고는,
  "에끼 이 망측한 사람. 자네 꾸며댄 말을
첫곧이듣고 자네 손에서 놀아났다네.
잡아떼시지 않는가. 그러나 약고개 사람이
해저녁에 찾아왔다면 필유곡절일 듯싶으니
데리고 들어오라네."
  "성가시게 굴어서 죄송합니다. 대주어른
만나뵙지 못할까봐 쇤네 권도를 쓴
것뿐이니 밉상으로 보지 마십시오."
  뜨락은 소낙비 뒤끝처럼 티끌 하나
없었고 대청을 어둑발이 내리는 중에도
반들거리고 윤기가 났다. 마루끝에 좌정을
하려니까 불이 환히 켜진 건넌방에서
미닫이가 열리고 신석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누구인데 무슨 소간으로 날
찾아왔느냐?"
  "대주께서 쇤네를 기억하시는지요."
  "내가 널 기억하다니? 이런 고이헌 일도
  "일전 김대감댁 안택굿에 신어미의
곁시로 따라갔던 계집입지요."
  "그으래? 그렇고 보니 알 만하구나. 그래
그것이 어쨌다는 게냐?"
  "긴히 아뢸 말씀이 있어서지요."
  "이리 가까이 올라오거라."
  매월이 마루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실은 오늘 해낮에 새경다리에 살고
있다는 한 선달이 육효를 뽑아보자 하고
저의 집 신당으로 찾아온 일이 있습니다."
  "그래? 나도 짐작은 하고 있지."
  "신발이 꽤나 드센 분이어서 그
안방마님을 다시 불러 속내를 털어놓게
하였지요."
  "그 위인이 무얼 찾고 있었것다?"
갖다준 사람을 찾고 있었지요. 안방마님이
토설한 연비 중에 세 분의 함자가
거론되었는데 그중에서 김대감마님과
대주어른이 들어 있었습니다."
  "또 한 사람은 민대감이렷다!"
  "그렇습니다."
  "그래 뭐라고 하였나?"
  "쇤네가 지금 당장 명자(名字)하지
않더라도 사나흘지간에 장본인 스스로
찾아갈 것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 네 점괘가 세 사람 중에는 내게로
떨어진 모양이군. 그렇다면 내 또한 점괘가
난 대로 주변하는 것이 도리요, 또
그래야만 명색이 명판이란 네 얼굴에
똥칠을 하지 않게 되겠구먼?"
  "쇤네가 명판이 되고 안 되고는 치성에
하는 게 유조할 것 같아서입니다."
  "네가 나를 유념해두었다는 얘기인가?"
  "장안의 거상이신 대주어른을 멀리서
뵙고 의표를 새겨두었지요."
  "그래? 잘 와주었네. 이미 일색이 다해
성문도 닫혔을 터이니 오늘 밤은 내 집에서
묵어가도록 하게."
  "아니래도 일모도궁이라 속으로는 낭패를
보았다고 생각던 중이었습니다. 외람되나
행랑 봉노에라도 들게 해주십시오."
  "쉬어 가게. 내 서사를 시켜 후한 행하를
주선토록 할 터이니 그렇게 알고 말전주나
하고 다니지 말게. 이 점 명심해야 하네."
  "무녀가 남의 가내사를 푼수없이 입초에
올리고 다니면 수심방[首巫]에게 물볼기를
맞고 신벌을 받아 육신에 병을 얻거나
  "내 안으로 들어가는 길로 저녁상을
내가도록 일러줄 터이니 미대접이더라도
홀대라 생각 말고 행랑 봉노에 내려가서
기다리게."
  행랑방으로 내려가서 기름접시에 불을
밝히고 앉았으려니 이팔의 나이가 될까말까
한 계집종이 저녁상을 들고 들어오는데
어린 나이에 성례는 치러서 비녀 꽂은
머리였다. 매월이가 맛있게 저녁을 먹는
사이에 월이는 봉노 윗목에 그린 듯이
오도마니 앉아 있었다. 바람벽엔 헌
옷가지가 걸린 횃대가 있고 그 아래로
때묻은 반짇고리 하나가 놓여 있을 뿐
봉노는 기방(妓房)처럼 썰렁하였다.
바라지문의 창호는 절 대로 절어서 누렇게
퇴색이 되었으나 구멍 난 데는 없었다.
  "이 봉노는 하님 혼자 거처시우?"
  월이가 묻는 어취를 금방 깨닫고,
  "예. 소년에 혼자 되어 단출한
처지입지요. 노복이 거처하는 봉노라
누추하여 면목이 못 되었습니다만 딴
걱정은 마시고 쉬십시오."
  두 여자는 삿자리 위에 홑이불을 덮고
누웠다. 그러나 잠이 올 턱이 없었다.
매월이가 구태여 해저녁에 신석주의 집을
찾아온 건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서였다.
장안의 부호인 신석주와 길생원이란 위인의
연비가 어느 만큼 남다른가 알고 싶었고
또한 그것만 알아 낸다 하면 천봉삼의
행적을 수탐하는 일도 수월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속으로 겨냥하고 왔던 계책이
들어맞아 신석주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수완에는 날이 난 매월이도 당장
난감하였다.
  "길생원이란 선다님을 알고 있소?"
  월이 역시 잠이 들지는 않았던지,
  "잘은 모릅니다만 나으리 수하에서
의임(矣任)으로 행세한다는 말은
들었습지요. 제가 알고 있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길생원은 본디 외방의 저자를 도는
장물림었다던데......"
  "저는 잘 모릅니다."
  월이가 모르쇠로 딱 잘라서 무안을
주었으나 매월은 못 들은 척 하였다.
명색이 교전비로 따라온 듯한 천예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이나 입을 헤프게 놀릴 계집
같게는 보이지 않았다.
일찍부터 교분을 트고 지내는 처지라
하던데......"
  그렇게 운자를 떼고 말끝을 흐렸으나 그
역시 대꾸가 없었다. 그때 매월이 짧은
한숨을 내쏟으며,
  "평생 종살이로만 보내시려우? 속량을
하고 나가야 사람 구실을 한답니다. 사실은
나도 한땐 시골 구석 토반의 대물림
노비였지요. 추위에 떨고 화받이에 차이는
구박을 견디다 못해 대처로 도망 나와서
지금은 무당 행세입니다만 백번 되씹어도
잘한 노릇이란 생각이 들지요."
  매월의 그 한마디를 첫곧이듣고 월이가
무겁게 닫았던 말문을 열었다.
  "그러다가 추노객(推奴客)에게 덜미가
잡히는 날엔 살아남지 못하겠지요."
지금에 와서야 화망(禍網)에 걸린다
하더라도 속전을 벌었으니 걱정이
무엇입니까. 또한 어수룩한 시골 토반이
보낸 추노객 한둘 따돌리기야 여반장이
아닙니까."
  "저도 한땐 앙심을 모질게 먹었던
도비(逃婢)였습지요. 그러나 씨물림 팔자는
타고난 것인지 서울에까지 와서 옛 상전을
다시 뵈었으니 모가지 부지하게 된 것만도
천행으로 알고 다시 종살이로
박히었습니다. 팔자를 거역하자니 심기가
괴롭고 팔자에 따르자니 신역이 괴로울
뿐입니다."
  "도비로 나다닐 적에 초례를
치르었군요."
  "성례한 지 이태를 넘기지 못하고
앙급(殃及)이었겠지요. 이젠 더 이상
움직일 기력도 없답니다."
  "팔자를 고쳐 지아비를 맞이한들
비부쟁이 하나가 더 늘어날 것이요, 소생을
생산한들 그 또한 사대부의 자식이 아닐
것이니 씨물림 노비로 박힐 것은 뻔한
이치가 아닙니까. 제가 상부했을 당장에는
배태 못한 것이 한이 되어 가슴에 돌이
박히었습니다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기왕 상부할 팔자였다면 자궁에 남은
피붙이가 없었다는 게 요행입지요. 제가
죽고 나면 그 서럽고 헐벗은 자식이
천상천하에 홀로 남아서 모가지에서 숨이
끊어질 때까지 남의 집 종살이로 지어미를
원망하며 살아갈 걸 생각하면 치가 떨리는
일이 아닙니까."
궁상이 주마등 같군요. 이런 수치를
모면해야겠다는 의향이 생기고 담력이
생기거든 약고개 전 내집으로 나를
찾아오시오. 보아하니 하님은 바깥 출입에
크게 간섭을 받지 않는 것 같소. 밑전
몇푼만 지니면 삼개로 나가 소금을 받아
근기(近畿) 인근에 풀어먹이고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소금짐이 진력나고
거북하면 장안의 여섯샌전(六毛廛: 隅廛)을
돌아도 되지요. 숭례문 안에 송현(松峴)
모전이 있고, 새문안에 정릉동(貞陵洞)
모전이 있소. 무교다리 병문께에
상모전(上毛廛)이 있고, 배우개에
하모전(下毛廛)이 있고, 견평방(堅平坊)
전의감동(典洞) 모전이 있고, 숭례문 밖에
또한 모전이 있지요. 배우개에서
하루 해가 지긴 합니다만 이문은 곱입니다.
젊어 한때는 그런대로 살아가나 노비로
박히어 속절없이 홀로 늙고 나면 남는 것이
후회뿐이지요."
  월이가 더 이상 대꾸를 않고 모재비로
돌아누우면서 소매로 눈자위를 닦았다.
  "이 집의 아씨마님께선 연치가 얼마나
되오?"
  "스물을 갓 넘겼을 뿐이지요."
  "이 집에 잉태의 기운이 있군요."
  "요행히 손(孫)이 귀한 이 가문에 후사를
보게 되었지요."
  "그러나 신대주의 관상으로는
손양(損陽)이 되어 양도(陽道)가 쇠하여
보입니다. 소(沼)에 갇힌 물이 위에서 보면
맑지만 바닥은 썩어 있다는 격이지요."
배태한 건 틀림이 없습니다. 지대 아래선
보약이 끊일 사이가 없으니 나으리께서
연만하시어 근력이 부치다 하시나 약발을
받은 것입니다. 만신님의 어취를
아로새겨보니 아씨마님께서 흡사
차태(借胎)라도 했단 말씀 같군요?"
  "아니오. 내가 어찌 그런 사위스럼
생념을 하였겠소. 다만 주책없어 불쑥 나온
말이지요. 아씨마님의 친정댁은 어디로
부릅니까?"
  "경상도 안동부중이랍니다. 아씨마님은
그곳에서 포목도가(布木道家)를 하시는
조씨 가문의 외동으로 일찍이 성례 치르고
또한 망부하시고 나서 나으리의 눈에 들어
측실로 들어앉았습니다."
  "훼절을 했다 하나 여인의 팔자가
  두 여자는 그러다가 얼추 잠이 들었다.
밤이 깊어 삼경에 가까웠을까. 문득
문틈으로 새어드는 한기로 선잠이 깬
매월의 귀에 여인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였다. 가만히 귀를 기울일 제
그 소리는 몸채의 안방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분명했다. 매월은 가만히 일어나
옷매무시를 수습하고 봉당으로 내려섰다.
달은 휘영청 밝아 뜰에 떨어진 바늘인들
보일 듯한데 안방 미닫이 틈사이로
흘러나오는 여인의 흐느낌은 끊어지려다
또한 이어지는 것이었다. 달빛을 밟으며
뒤꼍으로 돌아가서 몸을 숨겼다. 담장을
끼고 뒤꼍 장독대 아래까지 기어간 매월은
안방 봉창 아래고 가서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방안에서는 아직 촛불을 끄지
사이에 구멍을 내고 방안을 엿보았다.
아랫목으로 비단 금침이 깔려 있긴
하였으나 신석주나 그 총첩이 잠자리에
들었던 흔적은 없었다. 장죽을 물고 앉은
신석주의 두어 발자국 앞에 자색이
항아(姮娥) 같은 총첩이 무릎을 세우고
앉아 흐느끼고 있었다.
  "네가 굳이 직토까지 못하겠다면 내 지금
당장 저 종년을 지대 아래에 꿇리고 태질을
한다면 전후 사실이 술술 기어나올 것인즉
짐에 당장 달갑잖은 숙객(宿客)이 있어
조명날까 두려워 참고 있다는 것을
알렷다!"
  보자 하니 신석주는 화증이 꼭뒤까지
솟아서 쉽게 삭아질 낌새가 아니었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두 눈발은
탱천하여 모가지는 물고기처럼 뻣뻣하였다.
흐느끼던 첩실이 간신히 대답하였다.
  "소첩이 목도하고 있는 앞에서 그 아이를
혹독하게 다루시자는 것은 바로 소첩에게
태벌(苔罰)을 내리시자는 뜻이온데 구태여
번거로우실 것 없이 소첩을 손수
다루시지요."
  "너의 죄가 구천에 닿았다 한들 어찌
배태한 몸에다가 매질을 할까. 그런 너를
내가 다스린다면 나 또한 더불어 축생이나
진배없게 되거늘 내 스스로 체통을 깎을
수야 없지."
  "월이년이 송파를 다녀온 것은 사실이나
결코 천행수란 위인의 행지를 알자 하고
소첩과 통을 짠 일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 종년이 무단히 집을
송파저자를 기웃거린 까닭이 무어냐?
그렇잖아도 송파하며 칠패, 다락원의
상로배들이 중로도집을 일삼아
시전(市廛)이 날로 치패를 당하고 있는 이
판국에 외전(外廛) 장시의 물리라도 익혀
나를 업어치자는 심산이었던가?"
  "나으리가 아무리 화증이 솟았기로
집에서 부리는 노비의 일을 두고 억탁의
말씀까지 하시다니요."
  "내가 할 말 네가 하니 이것이 곧 억탁이
아니냐."
  "나으리께서 뉘게 어떤 말전주를
받으셨는지는 모를 일입니다만, 월이가
전자에 외방의 장돌림과 성례를 치른 후
곧장 망부를 하였다는 것은 나으리께서도
알고 계십니다. 그때 초종이란 게 칠성판도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슴에 못이 박였던 것
같습니다. 마침 가까운 송파에 삼남의 객리
행상들이 들락거린단 말을 듣고 혹이나
그때 작반하던 동패를 만나면 면례라도
치를 수 있는 노수를 전할까 하여 다녀왔다
하였습니다. 천예의 상것이라 하나 망부에
대한 지성이 그토록 지극하고 또한 심지가
깊은지라 흠절 만들어 불문곡직하고 징치할
수가 없습니다. 소첩이 하예들의 출입을
닦달하지 못한 죄로 애꿎은 의심을 받아
하자를 당하는 것은 감당할 수 있으나
차제에 월이를 다스린다 하면 나으리의
체면이 손상되십니다."
  "종년을 은휘하려는 네 말은
그럴싸하다만 어찌해서 조산 깍정이
놈들에겐 책이 잡혀 그 경난을 겪었더란
것은 뭔가 지다위할 건덕지가 있었던
게지?"
  "그건 맹구범이란 자가 사주해서 보낸
자객이었다 합니다. 둘 사이에 숙혐이
있다는 것은 나으리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럼 그놈이 왜 당장 비수를 들이대지
않았나?"
  "그 화상이 월이란 년을 겁간한 다음에
움막으로 데려갈 심지를 품은 것이지요.
여간한 행내기가 아니었더면 월이란 년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러고 보면 체모에 똥칠한 건 내가
아닌가. 내 이 나이를 해가 지고 젊은
내자에게 강새암을 보이다니......"
  신석주는 그제야 결기를 죽이고 스스로
  "나으리께서 소첩을 그만치 소중하게
여기신다는 증거이겠지요."
  "어쨌든 말이 난 김에 아주 아퀴를 짓고
봐야겠다. 앞으로 이런 출처 모를 소문이
낭자하여 가문에 수치를 준다면 너는
물론이요, 그 천가란 놈도 육시를
내어버리고 말 것인즉 한 발짝 내딛는
일에도 생각부터 먼저 하고 허튼 일에 귀를
기울이지 말 것이야. 맹가란 놈 혀를
뽑아버린 일을 알고 있으렷다?"
  "명심하겠습니다."
  봉노로 되돌아온 매월의 가슴은 진정될
기미 없이 자꾸만 뛰었다. 신석주 첩실의
친정이 안동이라면 그들이 입초에 올린
천가란 사람은 봉삼이가 아닐까. 그들의
어취로 보아 저 첩실이란 계집은 천가란
분명하고 그 뱃속에 있는 피붙이도 천가란
사람에게 차태한 것이란 것도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김보현 대감의 안택굿에서
신석주를 보았을 때 매월은 이미 그
신기에서 양도가 날아가고 없다는 짐박이
없지 않았다. 월이란 노비 역시 운자를
떼기가 무섭게 무슨 차태라도 한 줄
아느냐고 버럭 결기를 보이지 않았던가.
  이튿날 아침에 신석주는 몸채 사랑으로
매월을 불러들이었다. 양수거지하고 서
있는 매월에게 향낭 하나를 던졌다.
  "거기 패물이 수월찮을 것일세. 어서
거두게."
  매월이 얼른 향낭을 집어 신석주 앞에
갖다놓았다.
  "쇤네 이런 귀물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물었다.
  "세상에 체면없기로는 무당의 쌀자루란
얘긴 들었다만 그 향낭의 편은(片銀)으로
말한다면 자네가 행하돈으로 챙기긴 거북한
것일걸세. 설혹 명판 가진 만신이라 한들
그토록 푼수를 모른단 말인가."
  "쇤네 감히 푼수를 모를 리 없습니다.
향낭을 열러보지도 않았지 않습니까."
  "화류방 풍속에는 신벌이라도 받는단
말인가?"
  "긴히 여쭐 말씀이 있사오니 일간 쇤네의
신당으로 행차해주십시오."
  "내게 또다시 할말이 있다면 여기서 하면
되지 않나?"
  "......"
  이건 또 무슨 경난인가 싶어 이 방자스런
착잡하였다. 그로서는 궐녀의 소청을
거절할 용기가 없었다. 궐녀의 말이
언중유골이라고 생각한 신석주가 더 이상
따지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었다.
  "하예들을 안동하시지 않고 혼자 오셔야
합니다."
  "알았네."
  쫓기듯 길을 줄여 집으로 돌아온 것이
한낮이 되어서였다. 집 안팎을 정하게 쓸고
툇마루는 몇번이고 행주질을 하였다. 밤이
되어 춧불을 밝히고 신색을 가꾸었다.
살쩍을 공력 들여 밀고 가리마는 난초를 친
듯 교태있게 빗어넘기어 낭자 지었다.
오랜만에 성적하고 입술연지를 빼어나게
그어 발랐다. 외씨버선을 모양있게 가려
신고 장산적과 북어무침에 전복과 홍합을
신석주에겐 항용 있는 것이어늘
갖은양념으로 남다른 솜씨를 다하고 정성을
깃들였다. 그 동안 일색이 다하고 병문에
행객의 발길이 뜸해진 이경(二更)
해시(亥時) 어름이 되었는데, 문득 삽짝의
대사립 흔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라지를
방싯 열고 내다보니 신석주가 삽짝 밖에 서
있었다. 미투리에 발을 꿰는 둥 마는 둥
하며 구르듯 뛰어나가 맞아들이었다.
  성밖에 있는 전내집이라 하나 장안에서도
소문이 왜자한 도무당의 집이라 방구들은
기름 먹인 장판이요, 바람벽에도 누렇게
절긴 하였으나 벽지라도 발랐으니 흙냄새가
쾨쾨한 숫막의 봉노보다는 한결 앉아 버틸
만하였다. 신석주가 좌정을 하자마자
행주질을 정한게 한 팔모상에 기명이
  "본데없는 상것이 감히 대주어른을
걸음하기세 하여 괘씸하다 하시겠습니다."
  매월이가 되반들거리는 낯짝을 들어
받자를 하는데,
  "무어 그럴 게 없네. 재 아래 숫막까지
겸임들께 견마잡히어 와서 나귀를 매고
왔으니 수고랄 것도 없었다네."
  매월이 대뜸 주안상에 놓인 잔을 들어
술을 권하였다.
  "쇤네가 아끼던 송절주(松節酒)입니다.
한잔 쳐올립지요."
  "내 평생 이렇게 호젓하게 앉아 순배를
받아보긴 처음일세."
  "외람된 말씀이오나 처음부터 시작되지
않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구면이면 초면이
있었단 말인요, 둘이면 하나가 있었단
사설이 낭자하였습니다."
  신석주가 그때 술을 받으려다 말고,
  "자네 먼저 음복을 해야지."
  "쇤네가 이 술에다 비상을 넣었을까요,
바늘을 띄웠을까요."
  "예끼 이 사람, 어디 상된 말을 그다지도
거침없이 내쏟는단 말인가. 이제 보니
자네도 성깔이 소태 같은 계집이로군."
  "그럼 소태 같은 쇤네 성깔을 안주삼아
한잔 드시지요."
  신석주가 한잔을 들이켜고 나서,
  "어디 독작이 될 법한 일인가."
  "쇤네더러 작배(作盃)를 하시잔
말씀입니까. 합환주라면 몰라두요."
  "합환주라니?"
  "세간에서는 계집이 회간남장게 은밀히
정인에게 ㄱ을 바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하고 있지요. 쇤네의 잔을 받으셨다니
대주님의 의표가 또한 거기에 있는 줄
압니다."
  "이 사람 이제 보아하니 야밤에 사람을
불러놓고 엉뚱하게 방사(房事)벌이자는 게
아닌가?"
  "미거한 몸이오나 대주께서 해롭지 않게
여기시어 동품을 사자시면 굳이 마다할 건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대중없이 살꽃을 파는
은근짜는 아니옵니다."
  "내 문득 자청천(紫淸殿: 神仙이 사는
집)에 올라 송절주로 파적하고
월궁항아(月宮姮娥)를 눈앞에 두었으니
색념인들 동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오늘은
열나흗날이 아닌가. 초닷새와 열나흗날은
불의출행일(不宜出行日)이니 방사하기엔
온당치 못한 날일세."
  둘러대고 받자를 하며 기어들고 하는
동안 매월이 허벅지를 드러내 보이기도
하고 치마말기를 고쳐 입는 양하며 흐벅진
젖무덤을 내보이기도 하였지만 신석주는
물꼬가 막힌 듯 도통 요동이 없었다.
나중엔 상머리에 기어올라 행주질을
한답시고 젖무덤을 귓불에다 비벼도
보았지만 효험이 없었다. 게다가 이
송설주에는 몇잔만 마시면 색념이 동하는
미약(媚藥)을 넣었었다. 전신에 미약
기운이 오를 즈음 곁으로 다가가서
기대어도 보았지만 헛일이었다. 색념이
솟았다면 그 손이 이미 매월의 사추리까지
기어내려왔을 법한 일이 아닌가. 얼추
건 푼수없이 내지르는 계집의 교태를 웃고
바라볼 뿐 면박을 주지 않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시각이 지체될수록 무안을
다하게 된 것은 불가불 매월이 쪽이었다.
정녕 이렇다 하면 신석주는 이미 사내
구실을 못하게 된 지가 오래 되었다는 뜻일
게다. 신석주의 총첩은 차태를 한 것이
틀림없다는 확신을 가질 즈음에,
  "자네의 자색이 밉상이 아니고 서시에
방불한 교태를 가졌네만 내 오늘은 동품할
수 없으니 공연히 헛수고 말고 여기까지
나를 불러낸 연유나 밝히게."
  "나으리께선 한낱 무녀를 건드리시면
견모가 될까 하시어 파일을 핑계하시는
게지요. 체모의 손상이 그다지도 소중한
것입니가. 아니면 쇤네가 무례하게 측실로
  "집에 잉태한 내자를 둔 사내가 함부로
처신할 수는 없지."
  "밤이 깊었느니 묵고라도 가십시오."
  "후배 따라온 겸인들이 재 아래 숫막에서
기다리네."
  매월이가 일어나서 바깥에 나갔다
들어오더니 부적 한 장을 신석주의
콩소매에다 집어넣었다.









  맹랑한 계집이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신석주는 쇠양배양하여 전내집 사립을
나섰다. 밤은 깊어 자정(子正)이었다. 고개
아래 술청 거리까지는 상거가 반마장이
실하였다. 인적은 끊어진 지가 오래여서
머리 한림골[翰林洞] 복숭아밭 어름에서
들려오는 개짖는 소리만 청승스러울
뿐이었다. 고개 아래 인가에서 피운 모깃불
냄새가 달빛을 타고 흘러 콧등에 구수하게
묻혀왔다.
  곰곰 무녀가 한 거동을 아로새겨보았으나
부적 한 장을 콩소매에 찔러주기 위해
약고개에까지 사람을 불러낸 것 같지는
않았다. 계집의 수상쩍은 거동이라면 아주
:隙?트기 전에는 주장
있었다. 그러나 일개 상계집이 실성기가
들었다 한들 시전의 대행수인 자기를
성밖에까지 불러내어 색념을 돋우기로
마음먹을 수 있을까. 아무리 담력 있는
계집이기로 거기까지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면 또 다른 연유가
있었더란 말인가. 죽은 고기를 먹은 것처럼
속이 찝찌름한 것도 같고, 내장을 다
드러내 보이고 돌아선 것만 같은 무안이
없지 않았다. 일진이 여의치 못한
날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지금 또한
무엇을 돌이킬 수 있을까.
  "고이헌 계집......"
  신석주는 혼자서 중얼기리고 쓴웃음을
흘리었다. 명색이 시전의 대행수란 지체로
성밖에 있는 일개 명색없는 무녀에게
올리기초자 창피한 노릇이니 어디 가서
호소할 곳도 없었다. 이것이 전부 그
길가란 위인을 진작 내쫓지 못한 우환으로
일어난 사단으로만 여겨졌다.
  "내 전혀 꼴이 아니로구나...... 그
무당의 계집이 도섭을 부리기 전에
득달같이 이 길가란 놈을 아주 줄초상을
내줘야지. 그놈을 더이상 키워놓으면
맹구범이란 놈보다 더 날고 뛸 놈이
아닌가."
  신석주는 흡사 옆에 누가 있기라도 한 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문득 옆을
돌아다보았으나 길가에 핀 박꽃은 달빛을
받다 깨어질 듯 하고 깻잎은 태우는 모깃불
내음만 허공에 가득할 뿐 자기의 찬 손을
잡아줄 든든한 친척 한 놈도 거기엔
  그것은 후사 없이 나이를 먹은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뼛속을 이는 듯한
적막감이었다. 자기가 왜 이렇게 사악한
늙은이가 되어버린 것일까. 왜 사람을 믿지
못하며 믿을 수 없는 사람들만 수하에
꾀어드는 것일까?
  "내가 부덕한 탓이다. 아니면 과욕인
게지. 그러나 내 재물과 장토를 지키자면
불여우가 다 된 길가란 놈을 두고만 볼
수는 없지."
  고개 아래 숫막에 닿는 대로 신석주는
벌써 한잠이 든 서사와 겸인놈을 들깨워
길을 나섰다. 자다가 깨어난 서사와 겸인은
입에 문 뱃내를 풍기며 호령인 상전의
분부를 거역할 수 없어 도깨비걸음으로
허둥지둥 숫막을 나서는 것이었다.
  견마하던 겸인이란 놈이 볼멘소리로,
  "나으리, 쇤네 사추리에 진물이 나도록
바삐 길을 줄입니다요."
  "이놈아, 사추리에 진물이 나서 모주
먹은 도깨비 모양으로 비틀거리느냐?"
  호령에 쫓기어 숭례문 밖에 닿은 것이
사경(四更) 축시였다. 문이 열리는 대로
행랑에 돌아와 기다리자니 신석주가
예상했던 대로 민겸호의 청기란 놈이
새벽같이 달려와서 연통을 놓았다.
  신석주는 청지기란 놈을 방안으로
불러들여 귀엣말로 물었다.
  "길가란 놈이 다녀간 뒤 대감의 안색이
어떠하더냐?"
  "평소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대감께선 오늘 입궐하셨더냐?"
박히어 앉아서 선다님이 갖다 바친
장책이며 하기를 뒤적이는 게
일이었습지요."
  "일간에 길가란 놈이 대감댁 허술청에
얼씬하진 않았것다."
  "대감마님 통기하기 전에는 현신할 일이
있겠습니까요."
  "내 곧 갈 터이니 대감께 그렇게
아뢰어라."
  청지기란 놈을 내보내고 신석주는
어둑발이 내리기를 기다렸다가 후배도 없이
단신 중학골 민겸호의 집으로 찾아갔다.
방안에는 이미 다담상이 놓여져 있었고
촛불을 휘황하게 밝혀놓았다.
  "마침 내실에서 별실을 장만한 터라
주과를 마련하라 하였소."
마련하시다니 이런 생광이 없습니다."
  주전자의 술을 따라 오랫동안 순배를
돌리고 취기가 오를 때까지도 민겸호는
객쩍은 잡담만 늘어놓고 있을 뿐 이렇다 할
얘기가 따로 없었다. 자연 뒤통수가
근질근질한 신석주가 먼저 의중을 떠보는
도리밖에 없었다.
  "대감, 변죽만 울리지 말고 저를
불러들인 연유가 무엇인지 부리부터
헐어보시지요. 이러시다간 밤을
새우시겠습니다."
  "웬 조바심을 하는 게요. 하기야 내가
선행수를 불러들인 연유야 없겠소."
  "그렇다면 말씀을 하시지요.
좌불안석이니 저의 예법이 감히 상도를
벗어나고 있다 한들 두려워할 겨를조차
마시지 않겠습니까. 대감과 대작을 하고
있는 것만도 시생에겐 생광입니다만."
  "그런 인사치레는 그만두시오. 내 문중
사람들이 대권을 쥐고 있고 또한 주상을
조석간으로 배알하고는 있으나 시전의
상권을 한손에 쥐고 있는 신행수에
비견될까요. 이깐 벼슬이야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기는 어렵지 않으나 재물이란
자자손손 대물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소. 상인들이 겉만 번지르르한
벼슬아치들에게 당장 면종은 한다 하되
속으로야 좀 고깝게 생각들 하시겠소. 내
근간에 듣자 하니 신행수의 가산이 삼개의
소문난 어물객주를 열흘 합친다 한들 그에
미치지 못하고 근간에는 동래와 의주에다
서사들을 풀어서 가히 송방(松房)에 대적할
궁가에다 공물을 바친다고는 하나 그
가산에 비하면 서안에 내려앉은 먼지를
불어내는 것과 다를 바가 없겠지요. 경강에
떠 있는 임선(賃船)만 하더라도 열여섯
척이나 되고 지금 용산에선 두 척을
건저하고 있지 않소. 거기다가 행랑의 다섯
곳간에는 주단이 다섯 동(무명, 베, 명주
같은 피륙일 경우 한 동은 50필)이나 쌓여
있질 않고. 그리고 만상들을 통해서 갖가지
진귀한 청국 토산을 사들이는가 하면
시골집에는 기름진 땅이 산천백 마지기나
된다 하니 신행수는 가히 조선의 부호라 할
만하지요. 그런데도 원산포에 객주를 내려
한다니 신행수의 여력이 팔도에 뻗친
셈이오."
  가산과 상거래의 규모를 낱낱이 밝혀
쳐다보고 있던 신석주가 말하였다.
  "다만 놀라울 뿐입니다. 정사에 골똘하신
줄만 알았더니 미거한 상로배의 가산과
거래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소상히 알고
계신다 하니 백성 된 도리로 놀랍고 황송할
뿐입니다. 도대체 제 입으로 발설한 일이
없는데 어떻게 소상히도 알고 계십니까?"
  "왜? 내 말이 알과녁을 맞히어서 무안을
당하신 게로군. 내 수하에도 눈치깨나
있다는 모사꾼도 있고 문견 있고 똑똑한
놈도 수십이니 신행수의 가산쯤
사실(査實)하는 일이야 수월하다오."
  "아뢰기 황송하오나,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발뺌을 하려 하여도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신행수의 가산을 억탈(抑奪)하자는
아닌데 지레 겁을 먹고 발뺌을 하자는
심사는 무엇이오? 애저 백성들이란 그 가진
것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풍속으로 안다
하지만 내가 그만한 증거 없이 신행수를
닦달하려 들겠소."
  이 작자가 지금 누굴 희롱하자는 겐가
하는 마음이 들어 되꼽쳐 무안을 주려고
하는 참에 신석주가 황급히 손사래를
치면서,
  "대감, 시생의 말을 잘 들으십시오.
차제에 이르러 대감을 기망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대감께서 알고 계시는 시생의
가산 정도가 외착나서 이르는 말씀입니다."
  "외착나다고 덤비는 것이 발뺌이 아니고
무엇이오? 그럼 내가 없는 것을 있다
하였단 말이오?"
것으로 알고 계시니 답답하달 수밖에요.
대감이 누굴 시켜 시생의 가산을
사실해보았는지 알도리는 없습니다만
시생이 가진 임선은 16척이 아니라
25척이요, 시골집의 땅은 소출이 좋은
것으로 3천이 아니라 4천입니다. 의주
만상뿐만 아니라 평양과 송상들과의 거래도
기십만 냥이 되지요. 행랑의 곳간은 또한
다섯이 아니고 여덟입니다."
  민겸호가 열린 입을 닫지 못하고
신석주의 면판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데
신석주는 사이를 두지 않고,
  "대감께서 하문하길 적에 시생은
그렇다고 고개만 끄덕이면 그것뿐입니다.
상인이란 있는 것을 없다 할망정 없는 것을
있다 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상술의
아뢴 것뿐이지요. 대감을 기망하였다가
나중에 들이닥칠 환난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감히 거짓을 아뢰고도 대감
턱밑에서 밥을 축내고 잇는 위인이 있다는
것이 안타까워서지요. 시생도 대감께서
가산을 억탈하자는 것이 아니란 것을 빤히
알고 있는 터수에 제 가산의 규모를
거짓으로 아뢰어 또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다만 경강의 임선 중에서
7천으로 화식을 시켜드린 셈이지요."
  "그것이 정말이오?"
  "모가지를 건다 하지 않았습니까? 시생이
대감을 속이자 하였다면 숨기는 것이
상책이란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신석주의 입에서 침이 튀었다.
  민겸호는 속내를 뻔히 들여다보듯이
오금을 박고 대들 말을 잃었다.
  대저 높은 벼슬아치들은 관직과
옥사(獄事)를 팔고 장사치와 백성을
수탈하여 그 곳간에 곡식과 피륙을 쌓는
일에는 능하였으나 그 밑동이 썩어가는
것을 막지 못하였다.
  지체가 그만하니 체통을 돌보아서 잉여의
재물을 저자에 내다가 팔기도 지난이라
종종 노복들이나 겸인들을 시켜 시전이나
배우개의 외전에 내어다 팔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한두 번이지 잦으면 이웃에
조면나고 동접이며 대신들간에 견모가 되는
일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벼슬아치들은
거상이나 객주들이 그들의 돈을 빌려 쓰지
않고는 배겨나지 못하도록 술수와 억압으로
윽박질러 육삭변이나 칠삭변으로
  대개의 상인들은 벼슬아치들의 별리를
쓰지 않으려고 꾀를버려 모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 꾀를 먼저
알고 거상과 객주들을 트집잡아 관아로
불러들이거나 훼방을 저지르게 되니 그들의
등쌀에 못 이긴 상인들은 고리변에
시달리게 마련이었다. 상리를 꾀하는
재간이 출중하고 셈술에 밝다 할지라도
그만한 변리를 감당할 만한 이문을 챙기지
못하니 나중에 원리금을 갚을 적엔 살돈을
떼어서 갚아야 하였다. 재미를 붙인
벼슬아치들은 너도나도 상인이나 공장들을
불러 변리를 늘리고자 아귀다툼이니 자연
수완 있고 상리에 밝은 상인들은 겉으로는
병추기나 물정에 어두운 어리보기인 체하는
것이었다.
드는 것이었다. 그럴수록 벼슬아치들은
간자들을 풀어서 은밀히 상인들의
거래규모를 내사하여 돈을 맡기고 재물을
맡기어도 안심할 수 있는지를 교묘히
밝혀내는 것이었다. 이른바
경주인(京州人)들을 시켜 경기 인근 저자의
물가를 실사하여 상인의 농간에도 빠지지
않게 닦달하였으니 명색이 장사치라는
것뿐, 벼슬아치의 화식놀이에 한낱
꼭두각시인 자 허다하였다.
  민겸호가 김보현과 아삼륙이 되어 있는
신석주를 불러들여 으름장을 놓고 있는
것도 연유로 따진다면 그런 간단한 이치에
불과하였다. 또한 지체가 그만하니 시전의
대행수와 상종할 염의를 품은 것이었다.
김보현은 민겸호에 기대어 그 지체를
빼앗는다 할지라도 김보현이 그에 다른
말이 또한 있을 수가 없었다.
  닳고닳은 신석주가 민겸호의 내막을 모를
턱이 없었고 덕원 부사로 제수될
김기수에게 연비를 놓아달라는 소청을
한마디로 거절하고 나온 까닭 또한
짐작하고 있었던 터였다. 민겸호로선 더 큰
고기를 잡자는 수작이었고 신석주는
끌려가는 척 형용을 지으면서 또한 상리
이상의 무엇을 노리고자 함이었으니 이
와중에 끼여 있던 길소개만 날벼락을 맞게
된 것이었다.
  "내가 김기수에게 연통하여 은근히
뒷배를 보아주도록 할 터이니 그 점은 너무
걱정 마시오."
  "대감의 은혜를 입게 되었으니 시생도
되었습니다."
  그때, 민겸호가 서안에서 어음표 한 장을
꺼내어 신석주에게 내밀었다. 신석주가
그걸 받아 펴보았더니 바로 그 자신의
이름으로 된 20만냥짜리 어음이었다.
그러나 민겸호의 손에서 나왔으니 이건
민겸호의 어음이 아닌가.
  석 달 전에 민비에게 바쳤던
어음이었지만 신석주는 결코 내색하지
않았다. 민겸호가 신석주의 안색을
뚫어지도록 바라보고 있다가,
  "이 어음을 왜 내놓았는지 속짐작이
가리다. 달리 화식을 할 재간이 없는
지체라 맡기는 것이니 알아서 처분토록
하시오."
  "딴 걱정은 마십시오."
민겸호는 청지기를 놓아 새경다리의
길소개를 불러들이었다. 길소개는 내심으로
매월의 점괘가 맞아떨어지고 부적을 한
효험이 있는가 하여 뛸 듯이 기뻤다. 지체
할 것 없이 곧장 청지기의 뒤통수를 물고
민겸호의 헐숙청으로 들이 닥쳤다. 그러나
민겸호의 저택에 당도하고 보니 집 안이
냉랭하고 썰렁한 것이 도통 맥을 잡을 수가
없었으나 황망중에 길게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내사로 들어갔더니 민겸호가
누마루끝에 나와 서 있었다. 길소개는 코가
발등의 흙먼지를 쓸도록 깊숙이 하정배를
올리며,
  "대감마님 새경다리 길소개 현신입니다."
  "네가 길아무개냐?"
  민겸호의 딴청에 길가가 히쭉 웃음을
  "대감마님 시생이 길가이옵니다. 알고
계시면서 새삼 하문이시니 시생은 무안을
당하였습니다."
  그때, 민겸호가 발뒤축을 구르는데
대청마루가 쩡쩡 울리었다.
  "이 육포를 뜰 놈, 내가 언제 네놈과
언사를 농하자 하였더냐? 네놈이
길아무개가 적실하다 하면 지대 위로
기어오를 생념은 말고 게 굻어라, 이놈."
  "대감, 이 어인 날벼락이십니까?"
  "이놈, 게 꿇으라는데 웬 잔말이 이리도
낭자하냐? 여봐라, 밖에 아무도 없느냐?
모두 달려들어 저놈이 도타할 염려 없도록
아주 결박부터 짓고 봐야겠다."
  민겸호의 호령이 으름장이 아니란
것쯤이야 청지기들이 당장 알아차렸다.
달려나와 길소개를 댓바람에 잡아 엎치고
활시위로 뒷결박을 지우는데, 눈 깜짝할
사이였으므로 길소개 자신도 묶인 것이
긴가민가할 정도였다.
  "이놈, 별반거조를 차리기 전에 몇마디
물어볼 것이 있다. 아예 딴청 피우지 말고
곧이곧대로 발고하렷다."
  "대감, 때아닌 새벽에 이 무슨
거조이십니까? 시생도 명색이 초시에
등과하여 북촌에서도 양반으로 행세하옵는
터에 시생을 이토록 혹독하게 다루신다
하면 여항의 욕이 되지 않습니까, 대감.
제발 고정하십시오."
  "이놈 감히 내 앞에서 반명을 해?
네놈에게 묻겠는데 네놈이 나를 속여
챙기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 자복하렷다. 그
올리랬더니 분부 거행한다는 것이 알짬은
다 배먹고 처삼촌 벌처하듯이 대강대강
은휘하여 적어와선 내 안목을 어지럽힌
죄를 그냥 두고 볼 성싶었더냐?"
  "시생이 아무리 소졸하고 분별없기로
감히 대감마님을 기망하올 생념을 품을
수야 없습니다. 아니래도 오랜만에 연줄을
얻어 승시(乘時)를 기다려 소견을 트는
중이었는데 섣불리 부실한 행사를 할
입장이 또한 아니지 않습니까. 여긴 분명
외간의 모략이 있는 듯합니다."
  "이놈 보아라? 그럼 내가 네놈에게
억탁의 말을 한단 말이냐?"
  "시생이 듣기에는 그러하옵니다."
  "이런 육시를 할 놈을 보았나? 내가
아무리 후덕한 사람이라 한들 네놈의
없게 되었다. 여봐라, 저놈의 주둥이에서
다시는 대거리가 기어나오지 않도록 아주
눅신하게 조처하여라."
  뒤에 지키고 서 있던 청지기가,
  "거조를 차릴깝쇼?"
  "차리다마다. 공상볼기가 아니니 아주
되우 쳐주어라."
  청지기들이 달려들어 널빤지에다 엎치고
노둔을 시키는데 이에 막을 장사가 없었다.
아무리 다부진 길소개란들 또한 매가 튈 리
만무였다. 첫매에 방죽갓끈이 탁
터져나가고 눈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이른 아침에 민겸호의 집 내사에서 때아닌
신음소리가 낭자하니 삼이웃에 조명나면 그
또한 달갑지 못한 일이라 하여 민겸호는
길가의 입에다 솜뭉치라도 틀어막으라
비오듯 하고 버드나무 곤장에 피가 튀고
뼈는 녹아나는 듯하였고 매가 내릴 때마다
내장이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50도(度)의 매가 내려질 무렵
민겸호가 분부 내리기를,
  "그놈을 죽이지는 말아라."
  곤장을 들었던 겸인들의 어깨에도 땀이
후줄근한데 그중 한 놈이,
  "대감마님 이 위인이 혼절을 한 것
같습니다요."
  "이놈아,매맞아 혼절 않는 놈이 어디
있느냐. 비린내 난다. 멀리 치워라."
  겸인들도 하예로서 양반의 분부만을
봉행하고 살자 하니 가슴에 맺힌 포원이
남달라 양반이라 칭하는 길가에게 설분도
할 겸 해서 아주 매허기를 채울 작정을
보니 측은한 것이었고 또한 뒤끝이
개운치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민겸호가
비린내가 난다 하고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기다려 겸인들은 사지가 제각각으로 놀고
있는 길가를 행랑의 저희들 봉노에다 업어
뉘었다. 향 두어 대 태울 참이나 되어
길소개가 겨우 눈시울을 떴다.
  "여기가 어디요?"
  "염라국은 아니니 걱정 마시우."
  늙은 겸인 하나가 길가의 잇몸을
들쳐보았다. 잇몸마다 피멍이 들었으니
곤장 10를 더 넘겼더라면 길가는 요정나고
말았을 것 같았다.
  "여기가 어디요?"
  "여기는 대감마님의 집이오."
  그러자 겨우 신기를 가다듬었던 길가는
혼절해버리는 것이었다. 보다 못한
청지기들이 새경다리로 달려가서 강경댁을
불러왔다. 허둥지둥 달려온 강경댁이
길가를 들쳐업고 솟을대문을 나서는데 도통
마련이 없었다. 그러나 종가 입에까지
들어서지 못하여 다리가 휘청거리고
손깍지에 기력이 빠져 더 이상은 행보를
떼어놓을 만한 재간이 없었다. 길가를
담벼락 아래 내려놓자 하니 구경꾼이
몰려들 것만 같아서 도통 경황이 없는 판에
달구지를 끌고 가는 차부가 보이길래 목청
높여 불렀다.
  "어디까지 가나?"
  "쇤네 말씀입니까?"
  "배우개 쪽이라면 이분을 좀 실어다주게.
내 부실하여 도통 행보가 지난이어서
  차부란 놈 어육이 된 길가를 흘끗
내려다보고 나서,
  "어허, 어디서 섭산적이 되었그려."
  "객담 말고 좀 실어다주게. 내 태가는
넉넉히 쥐여줌세."
  "달구지 신세가 어디 될 법이나 하우?
어디 사거 승교바탕이라도 구처해야 체면이
깎이지 않습니다요...... 하기야 한골
나가는 양반이라 하더라도 이 몰골이고
보면 개돼지나 다를 바 없겠지요."
  차부가 길가를 업어다 달구지 위에다
뉘며 걸찍하게 내뱉는 지청구가 귀에
거슬렸으나 달구지 뒤를 추적추적 따라갈
밖에 없었다. 마음은 상부한 계집처럼
쓰라렸고 발길은 천근같이 무거웠다.
액막이를 한답시길래 행하돈 톡톡히 치르고
약고개 무당년의 소행이 또한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차부란 놈은 태가를
넉넉하게 쥐여주겠다는 약조에 길가를 아주
집에다까지 업어다주었다.
  방에 뉘고 바지를 헐어 보니 사람을 반은
죽이다 만 골이 되었다. 엉덩이 살점이
아주 팥죽처럼 흐물흐물하던 것이었다. 이
더운 한여름에 병구완도 문제거니와 밤낮
의원을 불러댄다 하여도 쾌차를 하자면
달포는 넘기어야 할 것 같았다. 대강
장창을 조섭한다, 상약을 구처한다 하여
경황없는 사나흘이 흐른 뒤에 강경댁은
아무래도 약고개의 전내집을 찾아가서
한바탕 북새를 피우고 돌아와야 직성이
풀릴 것만 같았다. 벼르고 있는 판인데
아침나절에 불쑥 대문을 밀치고 들어서는
마당으로 장금장금 들어서는 궐녀를 보자,
강경댁은 웬지 가슴이 덜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설분을 해야겠다는 염의를 품고
있는 속내까지도 무자의 점괘에 발각이 난
게 아닌가 해서였다. 우선 궐녀를 발에
들게 하고는 강경댁이 오랜 동안 깊은
한숨에 앵두만 똑똑 따다가,
  "황망중에 어인 걸음인가?"
  "어젯밤 비몽사몽간에 언뜻 선다님을
뵈었습니다. 옷에 피칠갑을 하고 서서는
자꾸만 쇤네더러 손짓하여 부르시기에 무슨
환난을 만나신 것으로 깨닫고 부랴부랴
달려왔습지요."
  "나으리께 태장을 내린 여귀가 용하게도
자넬 찾나낸 모양이네. 나으리께서
자리보전하신 지 이제 나흘이 되었네."
선다님께 태장을 내리신 것입니다."
  "자네의 점괘대로라면 이 앙화를
모면하셔야 할 터인데 되레 이튿날로 이런
환난을 만나셨으니 점괘를 믿자고 작정을
하였다면 환난을 모면하기는커녕 못숨조차
거덜날 판이 아닌가. 차후부터는 아예 우리
집 출입을 할 요량 말게. 내 속에 천불이
나서 전내집이라도 찾아가서 방도를 찾을까
하였던 것이 불찰이었네. 하기야 일개
선무당인 자네가 어찌 남아의 지계를 점칠
수 있으며 대사를 예견할 수 있더란
말인가. 내 잠시 혹하여 자네의 술수에
홀딱 넘어가고 말았네. 내 속내가 이러하니
다시 자네를 상종할 까닭이 없게 되었네."
  강경댁은 창자가 뒤틀려올라올 정도로
구역질이 났으나 무자란 것들이 방색에
낭패인지라 입으로는 좋은 말로 내치는
체하였다. 그러나 매월은 눈썹 한번 까딱
않고 듣고 앉았다가,
  "쇤네의 점괘하며 부적이 효험이 없었던
게 아닙니다. 이번의 몽매한 태장으로 더
큰 환난을 액땜할 수도 있었겠지요."
  "아아니, 자네 부아 지르려고 일부러
찾아온 사람이 아닌가? 몽매한 매질로
굴신을 못하게 되었으면 그만이지 이보다
더 큰 환난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마님, 고정하십시오. 쇤네가 무안당할
것을 미리 알고 찾아왔을 땐 연유가
있어서입니다."
  "연유가 무슨 놈의 얼어죽을 연유인가.
듣기 싫으니 어서 신이나 돌려 신게.
고집을 부리려다간 망신 주어 쫓아낼
  처음과는 달리 강경댁의 어취가 자못
망령되는가 싶은데 매월은 시종 버티고
앉아서,
  "선다님께서 속절없이 욕을
당하셨습니다만 설분할 길이 없지 않기에
찾아온 것입니다. 우선 하루라도 빨리
쾌차하시도록 구완이나 지성껏 하십시오.
곧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이만
갑니다만 며칠 후에 다시 찾아올 땐
마님께서 방색하실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남겨놓고 훌쩍
일어서 나갔던 매월이가 보름이 지난 뒤에
다시 찾아왔다. 그때 길소개는 측간 출입은
혼자서 할 만하게 되었으나 몰골은 아직
비맞은 메추리 꼴이었다. 도방에 선 의임의
자리에도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된 것은
뼈가 으스러지도록 태장을 당하였으니 이제
어디 가서 연줄을 잡을까. 동문수학한
동접배(同接輩)가 있을 수 업고, 지금 와서
유필호를 찾아갈 수도 없게 되었다. 이미
그가 당한 소문이 관변에 입문되었을
것이고 보면 김보현 대감의 헐숙청엔들
고개를 디밀 수도 없었다. 민겸호에게
초일기 갖다 바친 사실을 김보현이 알고
있다 하면 또 한번의 벌이 내려질 수도
있었다. 하루아침에 내린 날벼락으로
신기를 되찾는다 하여도 이젠 구실할 게
없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며칠을
두고 궁리를 터본사 하였으니 무슨 방책이
있을 수 없었다. 그때 마침 매월이가
찾아온 것이다. 이 계집의 말만을 믿고
있다가 그런 봉욕을 한 것은 원망스러우나
연유가 있겠지 하여 방으로 불러들이었다.
  "쇤네 면목이 없습니다."
  "자네가 면구스러월할 까닭이야 없지.
다만 내가 박복한 탓이야."
  피골이 상접해서 도무지 형용이 아닌
길소개를 추연히 바라보던 매월이가,
  "이번에 봉욕하신 것이 어디에서부터
꼬여나간 것이지 아직 모르고 계시겠지요?"
  "내가 그걸 알면 설분을 하였지 이렇게
누워만 있겠는가?"
  "원래 선다님께서 신행수를 해코지할
염의를 품으셨던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그리고 일을 너무 조급히 서둘렀던 것도
사실이구요."
  "아아니, 자네가 그 내막을 어찌 알고
있나?"
모르고 지내겠습니까? 그건 차치하고
선다님께서 일을 벌이시려 할 때 신행수는
벌써 먼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대문
안에 떨어뜨린 그 초일기는 신행수의
수하사람들이 한 짓이란 짐작이 있었어야
했지요. 선다님께서 발등에 떨어진 분부
봉행할 요량만 앞서서 앞뒤 돌아볼 경황을
잃으셨던 게지요. 그 초일기를 분별없이
민대감께 갖다 바친 것이 그만 화근이 되고
말았습니다."
  길소개가 곰곰 생각하니 매월이나 계집의
말이 그럴듯하였다.
  "선다님의 문견이 짧다는 것을 알고 그
초일기에는 가산의 정도를 거짓으로 적고
나중에 민대감에게 찾아가선 있는 대로
실토정(實吐情)을 한 것이란 것도 짐작하기
  "자네의 말이 들어맞았네. 그렇다면 내가
신행수의 화망에 걸리어 반신불수가 된
셈인데 이 포원을 어찌하면 좋은가? 관아의
힘을 빌리자 하면 고양이목에 방울을 단
셈이니 그 화색을 내가 뒤집어쓰기
십상이고 그 위인과 당당히 대척을 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 아닌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슨 계책을 쓰든지 궐놈에게
손재를 입힐 것밖엔 없으니 염치불고하고
자네의 힘을 빌려야 하겠는데 의향은
어떤가?"
  "쇤네에게 신행수의 제웅이라도 만들고
반자해달란 말씀입니까? 선다님이
신행수와앙숙 된 건 짐작할 만하나 쇤네
같은 천뜨기가 분복도 없는 일에 분별없이
끼여들었다가 아니래도 티끌 같은 목숨
  "이번 사단의 내막을 그만큼 안다 하면
자네가 빠져나갈 구멍인들 찾기 어렵겠나?"
  "아닙니다. 몇푼 행하에 동하여 목숨
걸긴 싫습니다요."
  "이런 짐작없는 사람을 보았나? 내가
자린고비 찜쪄먹은 위인이라 한들 자네에게
내릴 용채에 인색할까?"
  "그럼 몇푼을 내리시겠습니까?"
  "몇푼이라니? 자네가 궐놈을 해코지할
방도만 물고 온다 하면 기백냥을 아낄
사람이 아닐세. 내 진정을 자네가
알아주게. 내가 이대로 곱상하게 물러날
성싶은가? 끈질기고 모질기로 말한다면
나도 한 사람 부앗감은 되는 사람일세.
시전 행랑에다 불을 지르는 한이 있더라도
설분은 하고 말 것이네."
흉중에 남아 있는 것은 신석주에 대한
포원뿐이니 한낱 돈 백 냥의 재물에 연연할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백 냥에
버금가는 패물이 든 향낭 한 개를 매월에게
던지자, 매월이 잽싸게 향낭을 거두고
나서,
  "전일에 선다님댁에 송파의 왈자들이
육장 와서 북새를 놓았다는 데요?"
  "육장은 무슨..... 한때 그놈들에게
곤욕을 치른 적은 있네만 홀저에 그것은 왜
묻나?"
  "그 왈자들이 아직 송파에 있습니까?"
  "있다마다, 그놈들이야 송파장터 붙박이
왈자들인데 어딜 가겠는가. 그놈들도
신석주에게 당하긴 마찬가지였지. 내 이
지경에 이를 줄 알았더면 차라리 그놈들과
사람이 어디 한치 앞의 일인들 내다볼 수
있겠는가."
  "그 행중에 천가 성 가진 자가 있었다지
않습니까?"
  "있었지. 신석주가 행수로 박아놓고
부리던 위인이었는데 삼남 뱃길에서 돌아온
이후로는 성밖으로 내쫓아버렸다네. 그후로
천가의 행적을 간혹 수탐도 해보았네만
아마 송파 왈자들과 배맞추고 쇠전꾼으로
행세한단 말은 들었네. 하기야 내가 이
지경이 될 줄 알았더면 일찍이 그놈과 배를
맞추기나 할걸, 패에 들고 나니 나도
만감이 서리는구먼."
  길가는 견골이 패도록 길게 한숨을
토해놓았다.
  매월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궐녀가 왜
토설해버린지는 궐녀 외엔 짐작해낼 도리가
없었다. 길가의 집을 나서서 신석주의 입전
행랑으로 노정을 잡았던 것도 아니었고
탑골의 조서사집에도 들르지 않았다.
곧은길로 약고개로 돌아가서 문밖 출입도
하지 않았다.











  그즈음, 다락원으로 뻔질들락하던
천봉삼은 한 장도막 내내 송파에서 붙박여
있었다. 봉삼은 신석주에게 받았던
어음으로 옛날 조성준이가 벌여놓았던
마방을 되찾게 되었다. 조성준이 송파를
떠난 이후로 산개와 서강의 객주나
거간들이 쇠전을 주름잡고 있었다. 그
어음으로 마방을 사들이는 데는 동패들의
원성이 없지 않았고 두셋은 자기 몫의
삭료를 받다 타관으로 떠버린 일도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는 천봉삼과 유필호를
수상으로 받들고 두끼의 끼니인들 연명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알았고 저자로
몰려다니며 행짜를 놓는 일도 없게 되었다.
윗머리(늙은 소의 별칭)나 부룩소(작은
수소)에서 우황(牛黃) 든 것을 용하게
가려내는 재간꾼도 있었고, 부사리(뜸베질
버릇이 있는 황소)나 찌러기(성질 사나운
황소) 따위들을 길들이는 재간을 가진 자,
소몰이에 남다른 재간을 가진 자도 있었다.
  송파에서 뚝도나루를 건너고 왕십리 밖을
돌아서 영도교를 건너 인창방(仁昌坊)
안암동(安岩洞) 고개티 하나를 넘으면
혜화문(惠化門)에서 뻗어나온 길과
마주치면서 곧장 무넘이골[水踰里]로 뻗어
나간다 무넘이골을 지나 도봉(道峰)을 바로
등뒤에 두고 있는 다락원까지의 길은
송파에선 50릿길이 실하였다. 그들은
다락원장터에 있는 대장간에도 마방을 짓고
무상으로 드나들었는데, 대장간 주인은
득추였다. 송파 쇠전에서 떠난
소몰이꾼들이 다락원까지 가서 기다리게
되면 관동(關東)이 장돌림들을 만나게 되고
그곳에서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송파와 다락원은 경기 인근의 외전으로서는
손꼽힐 만하여서 삼개나 서강의 객주들과도
대적할 만한 도고상들이 많았다. 그런
객주들이 즐비하다는 것은 물화 거래가
옛적부터 활발했기 때문이었다. 마침
원산포에 가 있는 조성준과는 탑삭부리가
다리품을 놓고 다녀서 관동지경의 쇠전
시세를 소상하게 알 수 있어 자연 많은
이문을 남기게 되었다. 그러나 천봉삼의
동패들이 가장 시달리는 것은
화적떼들이었다. 북두끈 하나와 한 뼘의
혀를 가지고도 소 열마리를 일없이 몰이할
고개티마다 화적들이 지키고 섰다가 소를
빼앗자 하니 열 마리의 소를 몰자 하면
가외의 몰이꾼들이 열댓이나 패를 지어
몰려다녀야 겨우 봉적을 면할까말까였다.
소란 짐승이 천성이 순하고 얼뜬 것들이라
좀처럼 놀라지 않는 것은 다행이나 굼떠서
들고뛰는 일에는 사람을 따르지 못하니
소를 버리기로 한다면 목숨을 건질 수는
있으나 소를 빼앗기지 않고 목숨도 지키자
하니 어느 고개를 넘는다 하여도 화적들에
버금갈 만한 장력 있는 왈자들이 없어선 안
되었다. 올망졸망한 황화짐이나
어물장수보다는 소장수들이 길미가 많아
쇠전 근방을 기웃거리는 장돌림도 없지
않았으나 화적 들 것이 두려워 아예 생념을
못하는 축들이 많았다.
관동(關東)에서 내려오는 피륙과 곡물,
과일과 약재(藥材), 담배와 잡화 들이
몰려들어 함경.평안도와 황해도 등지의
향시(鄕市)로 흘러드는 큰 상로(商路)가
있는 일변 삼개와 서강으로빠져나간
물화들은 칠패와 배우개의 난전으로
흩어지는 것이었다. 그와 더불어 쇠전이
번창할 수 있었던 것은 앞에 경강(京江)이
가로놓여 있는데다 삼남의 어수룩한
쇠전꾼들을 노린 쇠살쭈들이 많이 득실거린
탓이었다. 흥인문(興仁門) 안 천변에
우시장(牛市場)이 열리긴 하였으나 규모에
있어 송파를 따르지 못하였던 것은
백성들이 애당초 관정(官庭) 아래에 턱을
디밀기 싫어하는데다 또한 도성 안의
장사치들의 텃세하며 시세의 농간에 겁을
  송파는 물론 장날이 따로 있기 하였으나,
중랑포를 타고 내려온 산동의 물화나
육로를 탄 삼남의 곡물들이 장날에
때맞추어 오르는 법이 없었으므로
무싯날이고 장날이고가 따로 있을 수가
없었다. 삼남에서 오르는 길이 여럿이고
중랑포를 거치는 뗏배들이 수시로 와
닿으니 뗏배 한 척에 장이 서고 삼남의
상단이 와 닿으면 그 또한 흥정으로
북새판을 이루게 마련이었다. 소몰이꾼들은
송파에 오르는 길로 마방에다 소를 매고
주식을 먹어가면서 며칠이고
하매자(下賣者)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천봉삼의 동패들이 사들인
마방은 전부 서른다섯 칸 마방으로
하룻밤에 오십 두(頭)의 소를 먹이고 재울
봉노가 여섯이어서 외장(外場)의
소몰이꾼들이 먹고 뒹구는 데도 별 불편이
없었다. 송파 왈자들 중 권속들을 거느리고
있는 축들은 마방에다 거처를 주어 들어와
살게 하였으니 찾아드는 소장수들의 음식
수발이 깍듯하고 아금받은 것은 물론이요,
열 개나 되는 섬들이 쇠죽솥을 걸어
조석으로 뜨끈뜨끈한 여물을 삶아내는
것이었다. 삼남의 몇백리 노정을 걸어온
소들이 송파에 닿으면 살이 빠지고 식욕을
잃는가 하면 소몰이꾼들 역시 형용만 남아
있을 뿐 피골이 상접한 꼴이 되었다. 소를
한 장도막쯤 마방에 놓어 식욕을 돋으고
살을 찌워서 쇠전 마당으로 끌고 가서야 제
값을 쳐줬으니 더불어 마방이 흥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경영하는 천씨 마방
규모에 있어 천씨 마방을 따르지 못하였다.
또한 헐가(歇價)로 소를 먹여주고
연가(煙價)도 눅게 받으니 천씨 마방은
글자대로 천세가 나서 단골 사이가 아니면
마방 얻기가 힘들 정도였다.
  "자네 어디다 하처를 잡았나?"
  "천씨 마방일세."
  "자넨 이번 파수에 제 값 받게
되었네그려"
  소몰이꾼들이 서로 만나면 그런 말이
오갈 정도로 천씨 마방에서 구문(口文)
받기에도 아옹다옹하지 않았다.
  장날을 하루 앞둔 신새벽에 밤새도록
물것에 시달리던 봉삼이 측간 출입을
나갔다. 볏섬 한귀퉁이를 뜯어 뒤를 닦고
바지를 추스르자니 측간에 잇대인 축담을
빗방을 듣는 소리가 들렸다. 어젯밤부터
위태위태하다 하였더니 그예 한줄금 하려는
모양이었다. 하필이면 장안날에 비벼락일까
하고 봉당으로 올라서는데 문득 사립
밖으로 한 장전이 호젓하게 들어서는 것이
희끔하게 바라보였다.
  궐자는 사립 밖에서 통자를 넣으려다
말고 봉당에 선 봉삼을 보더니 주춤
서버렸다.
  "자네 봉삼이 아닌가?"
  궐자의 입에서 그런 말이 튀어나와서야
하늘을 쳐다보던 봉삼의눈길이 사립 밖으로
떨어졌다.
  "아니, 이게 누군가? 선돌이 아닌가?
이게 어찌 된 노릇이여?"
  화들짝 놀란 봉삼이 뛰어나가 선돌을
놀랐다. 가슴에 와 안기는 선돌의 허우대가
예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평소 깔끔하고 날렵하던 입성은
간 곳이 없고 때묻은 통바지에 동정도 없는
홑저고리를 걸치었는데 그런 비렁뱅이가
없었다. 그러나 내색을 않고 황망히 봉노로
들이었다.
  "이 신새벽에 내 거처는 용하게
찾았네그려."
  "송파에 와서 자넬 찾으니 곧장 지소를
해주더군."
  봉삼이 곰방대를 찾아 시초를 눌러 담고
불을 댕겨 건네었다. 때묻은 구레나룻엔
수염이 몇치나 자랐고 눈자위가 움푹 팬
꼴이 변방의 갯가를 뒹구는 쪽쟁이와
흡사치 않음이 없었다.
  그 말에 선돌은 힐끗 봉삼을 쳐다보았을
뿐 건네받은 곰방대만 뻐끔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뭐 얼요기할 거라도 내놓게. 내 끼니
때운 지가 이틀이 넘는다네."
  봉삼이 뛰어나가 식솔들을 들깨워
새벽동자 짓게 하고 옷 한 벌을 구처하여
우선 누더기를 벗기고 갈아입히었다.
그리고 사백 냥이 들었던 전대를 시전의
열립꾼들에게 털린 일이며 마침 도망하다가
월이를 만난 일이며 신석주와 유필호를
만났던 일까지 낱낱이 얘기하였다. 그러나
선돌은 덤덤하게 앉아 귀를 기울이는 체할
뿐 희멀건 시선은 사뭇 허공에 매달고
있었다. 아침동자 다 되어 방으로 들이자
한판 걸게 드시고는 곧장 바람벽을 등지고
깨어나지 않았다. 말코지에 걸어둔
행리에는 헝겊총을 댄 미투리 한 켤레와
고린내가 등천하는 길목버선 두어 켤레가
구겨져 있을 뿐 이렇다 할 행구도 갖춘 게
없이 길을 떠났던 모양이었다. 그 몰골이며
정신나간 형용이 몹시 궁금하였지만 심기를
건드리기 싫어 그대로 두었더니 하루 낮을
꼬박 자고 이튿날 밤중에서야 부스스 눈을
뜨고 일어났다. 봉창에 올려놓은 산초 기름
등잔이 잘잘 끓는 소리가 나는데 깨어난
선돌은 마침 옆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는
봉삼을 깨웠다. 놀란 봉삼이 물었다.
  "의원을 부를까?"
  "나 포병객이 아닐세."
  "자네의 형용이 그만하면 병골이
분명하네. 병 나지 않았으면 밤새도록
  "내가 헛소리를 하던가?"
  "헛소리뿐이나. 내가 뭐라고 물어보면
대답까지 하더군."
  "뭐라고 대답하던가?"
  "나두 기억이 없네."
  "싱거운 사람. 내 헛소리에 말대답까지
하였다면서 기억이 없다니 그런 억지가
어디 있나."
  "헛소리한 자네가 싱겁지 내가 왜
싱겁다는 겐가. 자네 왜 이 꼴이 되었는지
곡절을 말하지 않으면 쫓아내겠네."
  "인사불성이 되어 잠꼬대에 헛소리한다는
사람을 내쫓겠다니? 그건 어느 못돼먹은
도방 풍속인가?"
  "도방 풍속이 엄중하면 대순가, 내
작정할 탓이지. 애저녁에 쫓겨나는 게
자네가 지면 오늘 밤으로 당장 여길 뜨고
내가 진다 하면 이틀간만 묵도록 말미를
주지."
  "고양이 쥐 다루듯 하네그랴. 섣부른
수작에 내가 호락호락하니 말려들 성
싶은가......"
  "그것도 싫다 하면 어서 사정을
털어놓아야 할 것이 아닌가? 사정을 토설만
한다면 첩약이라도 구처하여 자네 신기를
보할 것이고 또 한번 거절이면 정말
방색일세. 구유전을 뜯어야 할 인사가 어찌
그렇게도 도도한가."
  "오랜만에 만난 동무님이 안면을 싹
바꾸시네그랴. 행짜부리지 말고 술이나
한상 차려오게."
  "술허기가 들었거든 잽싸게 앞전 두 푼을
  "내게 무슨 동취가 난다고 민값부터
지르라고 으르딱딱거리나?"
  "술 가져오면 얘길 하겠지?"
  "생각해보지."
  이미 밤은 깊어 삼경이 되었다. 하루종일
여물을 삶아낸다, 외양 거름을 쳐낸다,
쇠지랑탕을 치운다, 손님 수발에 발이 땅에
닿을 여가가 없던 권속들은 코가
비뚤어지나 싶게 잠에 곯아떨어졌다.
봉삼이 부엌으로 내려가서 술 한 방구리에
꿩장 한 접시와 시어터진 김치 한 접시를
개다리소반에 찾아 얹고 들고 들어왔다.
선돌이 자작으로 술 두 사발을 단숨에
들이켜고 나서 석 잔째를 봉삼에게 돌리는
것이었다. 한참 만에 입을 열어 한다는
말이 꽤나 수상쩍다.
허물하겠나. 배냇물이 덜 말라서부터
부지거처로 싸돌아다니며 세상 풍진도 많이
뒤집어썼고 또한 활인도 할 만큼은 하였네.
원래가 궁박한 놈이긴 하였지만 불의의
환난에 손재를 입기도 하였지. 그런 일변
상도에 어긋나는 일을 저지른 일도 없지
않았고 애꿎은 동패에게 행짜를 놓기도
여러번이었지. 왈자란 소리도 들어보았고
군자란 소리도 들어보았지. 그러나 그런
것이 전부 해질녘 서천에 뜬 구름같이
덧없던 것은 타관에서 영고성쇠란 본디
고향에 두고 온 처자식보단 그 간절한
정의엔 따르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지."
  "그런 심질을 얻기야 장돌림에서 어찌
자네뿐이겠나? 팔도를 떠도는 등짐장수나
소몰이꾼들은 자네처럼 고향에 둔 식솔조차
수치스럽기는 자네보다 더한
사람들이잖겠나."
  "내 몸에 병 얻으면 제 신세는 잊고 집에
두고 온 처자가 병고에 들면 누가 구완할꼬
걱정이 태산이었고, 백설기 한 조각에도
까치다리같이 비쩍 마른 소생들이 눈앞에
밟히었네. 오리정에 나와 장에 간 남정네를
기다리는 아낙네를 보면 고향에 둔
여편네가 생각나 얼음이 버석버석 씹히는
찬 술을 밤을 새워 퍼먹어야 겨우 잠을
청할 수가 있었지 않았던가?"
  선돌이 눈자위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용도질로 사추리의 굳은살을 빼는 한이
있었을망정 논다니 계집을 사서 하룻밤의
음욕엔들 빠져들지 않았던 것은 젖먹이를
끌어앉고 이태가 넘도록 독수공방할
때문일세. 장판에선 입에 담지 못할 패설을
퍼부었어도 벽공에 높이 뜬 들을 쳐다볼
적에는 어느 누구도 망령된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은 천리 상거에 있는 여편네가
장삿길 나선 서방을 기려 그 달을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자네 하는 말엔 분명 곡절이 있네.
도대체 오늘 저녁 왜 이러는가?"
  봉삼이 문득 가슴 한귀퉁이서 짚여오는
생각이 없지 않았으나 설마하여 입을
다물어버리는데,
  "향중에 이런 비루한 수치가 있겠나.
자네와 분수작별하고 나서 꼭 열흘 만에
집이 십리에 상거한 고갯길에서 문득
동네의 불알친구를 만났네그랴."
  처자가 있는 고향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빨라졌다. 이태째나 헤어져 있었으면서도
풍편으로나마 소식 한번 전하지 못한 것이
죄스러웠고 또한 무일푼으로 돌아가게
되었으니 그 또한 면난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중 일이야 어찌 되든 식솔부터
만나야겠다는 일념으로 길만 줄이느라
경황이 없었다. 개천가에 솥을 건 마을의
장정들이 통발로 고기를 후리고 있는
천렵판을 지날 적에도, 설요기라도 하고
가라는 전병장수의 호객에도 눈길 한번
던질 수가 없었다. 이제 마을이 십리에
상거해 있는 곳에 득달하였다.
  선돌이 문득 하늘을 쳐다보니 아직 해가
지자 하면 서너 뼘이나 남아 있었다.
장삿길 나섰던 위인이 몸에 지닌 행구
명색이라고는 뒤축 떨어진 미투리 한 짝이
집으로 기어든다는 일이 낯뜨거운
일이었다. 마침 키 큰 전나무 두 그루가 길
옆에 서 있는지라 그 아래로 기어들어
신들메나 고쳐 신으며 뼘가웃 해가 마저
넘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에 그때 길앞을
지나던 긴 저고리 차림의 사내 하나가
전나무 아래를 기웃거리더니 대뜸 한다는
말이,
  "자네 선돌이 아닌가?"
  엇 뜨거라 싶어 황망히 고개를 쳐드니
불알친구란 놈이 고개를 외로 꼬꼬 거기 서
있었다. 두 사람이 서로 반가워 얼싸안고
지난 얘길 나누는 중에 한 대목에 이르러
불알친구는 머뭇거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한동안 주저하던 친구가 선돌이가 오던
길을 가리키며,
작별할 수가 없네. 반마장만 걸으면
모주팔이 할미네 숫막이 있네. 우리 거기
가서 짧은 회포나마 풀고 헤어지세."
  "향 한대 피우면 해가 질걸세. 아무리
면목없이 돌아온 놈이기로서니 고향으로
오던 길을 되돌려서 술푸렴하며 지체할
수야 없지 않은가."
  선돌이가 마냥 손사래를 치고 되돌아설
기미를 보이지 않자, 친구의 모색은 더욱
난처해지는 것이었다. 그러다간 아주
작정을 한듯이 선돌을 밭둑 아래로 데려가
앉히는 것이었다.
  "내 말을 잘 듣게. 이건 내가 자네를
무단히 조롱하자는 것도 아니요, 수치를
주자는 것도 하는 것도 아닐세. 그러니 내
말을 아로새겨 듣고 처신에 욕됨이 없도록
  "무슨 곡절인지 말이나 하게. 자네가
내게 수치를 준다 하여도 도리가 없지.
우리의 교분이 자별하다는 것은 서로가
알고 있지 않은가."
  "내 말을 듣고 놀라지 말게. 이 또한
마을에 떠도는 소문일 뿐인데 공연히
말저주를 하여 발쇠꾼 노릇이다가 자네에게
포원을 지운다면 그 또한 낭패일세."
  친구의 말을 듣자 하니 미상불
수상한지라 선돌은 더욱 조급히 굴밖에
없었다.
  "자네가 이태째나 집을 비운 사이에
아지마씨는 명색이 서방 있는 여편네였다
하나 까막과부나 진배없었지 않았던가.
내가 간혹 찾아가서 살림두량이랍시고
거들기도 하였고 장독을 옮겨주기도
지정간(至情間)이라 하지만 친구라는 걸
빙자하여 외정이 없는 집에 무상으로
출입한다는 것도 이웃에 조명나기
십상이었지. 해 있는 낮에만 들러서 마당에
선 채로 안부를 묻고 나오는 게
고작이었네. 조금없이 자주 들락거리다보면
나로 인하여 아지마씨가 자네를 싱각하게
되겠으니 심지만 흩뜨려놓을 법도 하여또한
해진 후로는 자네 집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네. 그런데 요전에 듣자 하니 밤중에
자네의 집에 외간남자가 심심찮게
드나든다는 소문을 들었단 말일세."
  벌써부터 사세를 판단하고 모색이 노랗게
된 선돌이가 겨우 입을 열어 물었다.
  "그게 정말인가?"
  "소문일 따름일세. 소문이 그렇나 걸
하자면 뺨따귀를 맞을 것 같고 염탐을
하자고 밤저녁에 바자 아래 숨어 있다가
마을사람에게 들키어 자네에게 오쟁이를
지운 자가 친구 명색인 나로 오인되기라도
한다면 그 또한 견모가 아닌가. 이도저도
못하고 생각만 무성한 중에 자네가 불쑥
나타났네그려."
  달팽이집같이 협착하여 두 사람이 돌아설
곳이 없는 두옥이라 하나 그곳을 바라고
불원천리 달려온 선돌에겐 날벼락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그 집이 키 큰 사람이라면
뒤축만 들어도 바라보일 지척이 아닌가.
선돌은 두 다리가 후들거리고 이마에
식은땀이 괴는 것이었다. 한참이나
길바닥에 시선을 떨구고 있다가,
  "그런 기별이나마 해주었으니 고맙네.
불과한 것이 아닌가. 내 오늘 해가 빠지면
단신 집으로 숨어들어서 계집의 작태가
과연 그러한가 염탐을 할 터이니 그렇게
알게."
  "내가 공연히 패설을 늘어놓은가 보이."
  "내가 장삿길을 떠날 때, 자네에게
식솔들을 돌봐달라고 당부하지 않았던가.
공연한 걱정은 말게."
  친구를 돌려보내고 난 뒤 선돌은
해지기를 기다렸다. 어둑발이 내리고
하늘에 별이 떠서야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
초입에 선돌이 집이 있었다. 찌그러진
삽짝이며 지붕은 형용뿐이었으나 각담
아래의 장독대는 그런대로 아담하였다.
정지 딸린 방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집을 나설 때 얻어둔 개는
있다 하더라도 이태 만에 집으로 돌아온
지아비가 해야 할 짓이 이래선 안 된다고
생각되어 몇번인가 나 왔노라고 소리치고
싶은 충동이 가슴을 때리는 것이었으나
그럴수록 낮에 만났던 친구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뒤축을 들고 장독대를 돌아서 뒤꼍으로
갔다. 우선 집에 두었던 개가 없다는 것이
무척이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었다. 뒤꼍
봉창으로는 한결 밝은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손가락에 침을 발라 봉창을 뚫고
눈을 바싹 갖다 대었다. 과연 한 사내가
그의 안해와 마주앉아 있었다. 두살박이
어린것은 삿자리 위에 잠재워 뉘고 그 옆에
앉아 마침 밀전병을 구워놓고 먹으려는
판이었다. 그 사내를 선돌은 알고 있었다.
포흠을 지고 쫓겨난 일이 있는 서선달이란
위인이었다. 여편네가 지성으로 밀전병을
권하는 것이었으나 색념이 동해 찾아온
놈이 그깐 밀전병 한 조각에 회가 동할 리
만무였다. 여편네가 턱밑까지 받쳐올리는
데도 서가놈은 고개를 외로 꼬고 받지
않았다. 사내의 입에다 밀전병을 집어넣는
계집의 모색이 피골이 상접하여 두 눈만
퀭한 것이었다. 남의 계집에 혹하여 축담을
넘나든다 하면 계집의 사정을 헤아려
더러는 시겟돈이나마 넌지시 건네어서 몸을
보해주어서 용색의 도리를 가르치는 것이
오입쟁이의 도리일진대, 저놈은 오밤중에
찾아와서 제 육허기나 채우고 새벽별이
뜨기 전에 나가버리는 천하에 인색하고
더러운 놈임에 틀림이 없었다.
하고 씹던 것을 내뱉었다. 그리고
볼따구니에 손을 갖다 대고 앓는 시늉을
하는데 화들짝 놀란 계집이 달려들어
약손을 보자 하니 서가놈은 능멸하는
어조로 말하는 것이었다.
  "이런 질정찮은 년을 보았나. 원래
구미가 닿지 않는 음식이었으나 네년의
지성이 그러하여 맛이나 보아줄까 하였더니
돌을 넣어 나를 욕뵈다니, 이런 육시를 할
계집같으니라고."
  계집이 따귀 맞아 흐트러진 머릿결을
쓸어올리며 백배사죄하고 눈물까지
글썽이는 것이었으나 화증이 솟은 서가놈은
결기를 죽이지 못하여,
  "이년아, 나도 이젠 만정이 뚝 떨어진다.
이태째나 독수공방인 네년이 보기 딱하여
간다마는 여물이나 삶아내던 음식 솜씨를
해가지고 무슨 반죽으로 외간 사내까지
본답시고 꼬리를 친단 말이냐? 자고로
용모가 아리따운 계집은 소박을 당하지만
음식 수발 잘하는 계집은 박색이더라도
소박만은 면한다 하였다."
  여편네가 궐놈의 발 앞에 엎디어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비는 것이었다. 그 순간
선돌은 이상하게도 그 여편네가 측은한
것이었다. 그것은 선돌이 자신도 예측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지아비가 홀연히
장삿길을 떠난 지 이태째, 젖먹이 계집아이
하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여편네가 어느
날 밤 잠깐 실수로 축담을 넘어온 사내에게
엉겁결에 정절을 잃고 만다면 다시 찾아온
사내에게 어찌 박정할 수가 있더란 말인가.
꾸짖어 내쫓자 하니 삼이웃에 들먹거리게
될 것이요, 사내 또한 호락호락하진 않을
터, 계집이란 한번 자질이 이지러지면 제
육신을 제출물로 다스리지 못하는 깊은
상처를 입게 되기 마련이 아닌가. 소식
없는 지아비에 대한 서러움이 앙심으로
변하고 그 또한 오기가 되어 종래는
지아비를 잊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어서 요때기나 펴, 나두 가야 하니까."
  서가놈이 재촉하자 여편네가 사내의 발을
끌어당겨 대님을 풀어주는 것이었다.
  선돌은 그 뱅뱅이 없는 놈의
시시덕거림을 더 이상은 구경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봉창을 부수고 눈 깜짝할
사이에 방으로 돌입하니 사내와 계집은 한
덩어리가 되어 바람벽 아래로 면판을
사색이요 간부(間夫)는 혼백이 뜨고
말았다. 젖먹이 계집아이가 서슬에 놀라서
창자가 끊어져라 울어댔다. 선돌이
다가가서 아이를 보듬어 안았다. 장지를
막고 앉아 사내에게 호령하였다.
  "네 놈은 웬 놈인데 감히 남의 처소에
들어와서 낯빤대기를 쳐들고 지아비가 있는
계집과 농탕질이냐? 이식지고 않으면
네놈의 혀를 뽑아버릴 것이니 바른 대로
대어라."
  "제발, 살려만 주소."
  "어서 말 못하겠느냐?"
  서선달이란 놈이 한참만에야 겨우
반정신을 수습하고 대강 그 사연을
토로하였다. 그러나 그 전부가 비굴한
핵변에 또한 거짓말이 난당이었다. 어찌
말인가. 옳고 그름을 따지고 사리 분별을
헤아려 발기잡을 건덕지가 없을 만큼 그
언사가 어늘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솟증을 돋구어 잘잘못을 발기잡는다 한들
도대체 무슨 방책이 있을 수도 없었다.
선돌이가 허망한 웃음을 터뜨려 눈자위에
괸 눈물을 감추었다. 선돌이가 그
계집에게,
  "네년이 지 간부놈과 어울려 온갖 음탕한
짓을 저지르고 또한 지아비에게 욕을
돌리었으니 내 원한이 구천에 사무칠밖에
없게 되었다. 소매평생(素昧平生)이라더니
앙급을 하자면 지금 당장 네년의 목숨을
요정내어야 할 것이다. 한데 내가 시방
원행길에 목이 몹시 마르다. 나가서 술
두어 방구리만 사오너라."
몇문의 동전을 삿자리에 던졌다. 오금이
붙어버린 계집이 떨기만 하고 있어 선돌이
다시 한번 호령하였다. 그때 계집이
구르듯이 밖으로 나갔다. 술상을 보아올
동안 선돌은 간부의 괴춤을 단단히
죄어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계집에게
한잔술을 따르라 일렀고 다시 선달에게도
순배를 돌리는 것이었다.
  "네놈도 이제 곧 내 손에 죽을 못숨이다.
황천길 어디에고 숫막이 있단 말은 ㄷ지
못하였으니 모주팔이 할미인들 만날 수
있겠느냐. 한낱 필부(匹夫)를
탈절(奪節)시킨 네놈이긴 하나 이 한잔의
술로 황천요기나 해두어라."
  선돌이 그때서야 바른쪽 괴춤에서 비수
한 자루를 꺼내어 연놈이 먹다 남은 밀졈병
조각을 비수 끝에 꽂아 잔과 같이
들이대었다. 선돌의 서슬에 기가 질린
간부는 노란꽃이 핀 상판을 숙이고 잔과
안주를 받았다.
  "네놈에게도 장가처가 있느냐?"
  "있다마다......"
  명색이 아전 퇴물인지라 행세하던 소견은
있어서 선돌이 대답에 경대만은 쓰지
않으려고 말꼬리를 흐린다.
  "소생은 몇이냐?"
  "넷이나......"
  "네놈의 장가처가 소생을 넷씩이나
빼냈다 하면 기물도 쓸만하겠고 색도 잘
쓰것다? 내 이 길로 달려가서 네놈의
장가처를 겁간하려 한다. 네놈이 조방하고
수직은 못 선다 해도 앙타랄 까닭이야
  조아린 간부의 입에서 대꾸가 없다.
  "네놈이 처녑 속 같은 깊은 산중
촌백성들을 상종하여 사류를 자처하며
성깔을 부리고 다니는 주제에 계집에
주렸기로 이런 패악을 저지르니 고을의
풍교가 어찌 이지러지지 않겠느냐? 네놈은
상것의 계집을 조석으로 겁간하고 다니면서
네 계집이 외간 남자와 정을 토한다는 것이
두려운 것은 이치에 당치 않는다는 것을 왜
생각 못하느냐. 네놈의 집으로 나를
득달같이 영거(領去)하여라."
  서선달이 상투를 삿자리에 짓찧으며
적선을 비는데 이마에 흐르는 땀이 노
드리듯 하였고 상판은 납을 부은 듯
창백하였다.
  "제발 고정하시게, 석고대죄라도
  "개보다 못한 놈,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공맹을 읽었단 네놈이 개보다 못한 짓을
저질렀으니 내 앞에서 개처럼 짖겠느냐?"
  서선달이 두 팔로 삿자리를 짚고
형용인즉슨 개처럼 엎드리어 고개 쳐들고
몇 마디 짖었다.
  "사지를 뜯어발길 놈. 저 계집이 원낙
군색한 가계에 험한 밥으로 조석끼니를
떼우고 있는 형편에도 불구하고 네 놈을
맞이하여 밀전병을 구워 아양을 양념으로
먹어주기를 권하였다. 축담을 넘어와 남의
계집을 겁탈하였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음욕을 채우고 색사(色事)로 농탕치면서
오늘 밤 또한 내 계집의 음식 소견까지
타박하고 나서니 본부가 누구이며 간부가
누구인지 경계조차 희미하게 되고 말았다.
의지간이란 것이 협호(夾戶) 살림에
불과하고 풍창파벽(風窓破壁)에
세간이라고는 허섭쓰레기나 진배없다.
아무리 무엄하고 지각 업는 놈이기로 여기
와서 음식 투정에 타박까지 하다니, 네놈은
금수다. 오늘 네놈을 당장 쳐죽여서 네놈의
죄를 바로 다스릴 것이나 인명이 가련하고
나 또한 이태째나 계집을 방치하고 잡도리
못할 불찰도 없지 않은지라 우선 네놈의
머리만은 남겨둘 것이다. 네놈이
천하만사를 무불통지(無不通知)로 잘 알고
세상의 모든 계집을 네 계집으로 안다
하여도 차후 이런 버르장머리를 정습지
않는다면 네놈이 뻔히 바라보는 앞에서
네놈의 식솔 중에 계집 명색한 것은 노소를
몰몰아서 모조리 옷을 벗기고 갑간해
잊어선 안된다."
  서선달이란 놈은 목수 부지한 것만도
천만 뜻밖이라 골백번 머리를 조아려
사죄하며 구멍동서를 남기고 쥐구멍을
찾듯이 도망질쳤다. 계집은 아이를
잠재우며 바람벽에 귀신 형용으로 기대
앉아 있었다. 선돌은 비수를 상 위에
놓았다. 율에 의하면 간통한 계집을 그
지아비가 죽인들 관아에서 사실해서 간통한
것이 드러났을 땐 추심을 하지 않았다.
선돌이 연거푸 몇 잔을 들이켜며
공방살이에 지친 여편네를 바라보았다.
밭일 논일 품팔이에 손은 칡뿌리처럼
거칠어지고 백옥같던 앞니는 밤을 지새며
가르는 삼[麻]일에 꺼멓게 죽고 말아
노파처럼 겉늙었다. 빗질 못한 쑥대머리에
가슴은 그대로 구릿빛이었다. 저런 모색에
어디 사내가 탐하여 사심을 품을 구석이
있더란 말인가.
  선돌은 계집에게 술푼주와 술사발 같은
기명들을 치우고 불을 끈 다음 조용히 누워
있으라 이르고 친구의 집으로 찾아갔다.
친구가 선돌이 찾아온 것을 알고
허공잡이로 벌떡 뛰어나와 귀엣말로
지껄이는 것이었다.
  "자네 필시 오쟁이를 지운 그 간부란
놈과 맞닥뜨린 게로군 그렇지?"
  "그렇지 않았네."
  "그렇지가 않다니, 오늘 밤에도 도포짜리
사내가 자네 집사람을 넘더란 소문이
왜자한 판에 무슨 소린가?"
  "정히 믿지 못하겠다면 나와 같이 우리
  친구를 데리고 집으로 달려갔다. 조용히
삽짝을 열고 마당을 가로질러 문 틈으로
들여다보았다. 과연 안해는 아이를 가슴에
보듬어 안고 잠들어 있었고, 외간 사내가
다녀간 흔적 또한 없었다. 이에 선돌이가
친구를 삽짝 밖으로 끌고 나와서 심사 틀린
말투로 무안을 주는데,
  "자네와 나 사이가 막역하여 무간하게
지내는 터수라 하더라도 그런 소식을 내게
주다니. 내 여편네가 외정이 없이
초막간이나 의지하고 살다 보면 혹간 사립
밖을 지나가는 남정네를 불러들여 섬이나
물독을 옮겨 달라고 청할 법도 하고
품앗이를 해준 사람에게 힌저녁을 대접할
만도 하지 않은가. 흰소리로야 하늘의
별인들 못 따겠는가. 밤에 바심하던
놀려 공연히 정절이 굳은 여편네 하나
음욕에 빠진 자녀로 만들지 않았는가.
자네와 나는 교분이 자별한 사이가 아닌가.
자네에게 그런 말전주를 하여 자네와 나
사이에 의를 끊어놓으려는 짓이었거나, 내
식솔을 모함잡아 악명을 뒤집어씌워
마을에서 내쫓으려는 간계가 분명하네."
  친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정말 그랬던 것일까?"
  "내가 아무리 미거하고 대주없는
위인이라 한들 설마하니 여편네의 음분을
방조하려고 이런 말을 하겠는가? 내가
낙척(落拓)당한 것을 번연히 알고도 이런
말을 하겠는가? 이제 이런 출처도 없는
소문이라면 자넨 운자도 떼지 말게. 시러베
같은 놈들의 주작부언(做作浮言)일
  "나 역시 그러리라 믿었네 다만 동네에
소문이 왜자하니 불알친구인 자네에게
귀뜸하지 않을 수 없어 푼수없이 입정을
놀린 것이나 과히 섭섭하게 생각지는
말게."
  "차후 이런 소문이 퍼진다 하더라도
자네만은 믿지 않을 것이야. 오늘 저녁에도
역간 사내가 사립을 넘어왔단 말이
적실하다면 내 여편네가 간부를 끼고 자야
하지 어찌 젖먹이를 끼고 자더란 말인가?
자네 눈으로 똑똑히 보았지 않은가?"
  "내 이만 면목이 없네. 친구 노릇을 아주
잘못 하였다네."
  "나도 처음엔 눈앞이 캄캄하여 보이는
것이 없었다네."
  친구를 돌려보내고 난 뒤 선돌은 봉당에
담배를 피워댔다. 거짓말로 위기는
넘겼으나 저 여편네를 어떻게 처치해야 할
것인지 도대체 방도가 서질 않았다. 한번
쫓아낸 서선달이란 놈을 다시 찾아가서
행짜를 놓는다는 것도 비굴하고 구차한
짓이요, 그렇다고 이미 정절을 잃은 계집과
평생 의지하며 해로하자 하니 그 또한 치가
떨리는 일이었다. 여편네와 동루하며
옛정을 되살리기엔 너무 많은 것을
보아버린 후였기 때문이었다. 저 젖먹이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선돌은 한동안 손만
비비고 섰다가 방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어미 품에서 잠들었으나
일조풍파(一朝風波)가 사그러지지도
않았는데 여편네 또한 아이와 같이 잠들어
있었다.
태평으로 잠들 수 있는 여편네의 드센
배짱에 선돌은 기가 질리고 오장육부가
녹아내리는 듯 가슴이 쓰린 것이었다.
야속하고 반죽 좋은 계집을 쳐연히
내려다보고 섰는데 안겨 있던 젖먹이가
칭얼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런데도 여편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발로 그 뻔뻔스런
계집의 면판을 까뭉개려고 뒤축을 치켜드는
순간 선돌은 웃목에 놓인 염낭쌈지로 눈이
갔다. 문득 지펴오는 생각이 있어 염낭을
집어 들었더니 먹다 남긴 비상이 들어
있었다. 조급히 차렵이불을 들쳐보니
가슴에 손톱자극이 낭자한 시체는 벌써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코에 입을 대고
숨을 빨고 손발을 주물렀으나 이미 사지가
돌처럼 굳어 있고 시신은 얼음덩이같이
  "이런 박살한 계집이 있나......"
  선돌의 입에서 그 한마디 욕지거리가
터져나왔을 뿐이었다.
  "이년아, 이건 죄업이 아니냐. 한번은
원행 장사길 나간 본부를 두고 외간사내를
보더니 이제는 어린 젖먹이를 남기고
자문을 하다니......"
  선돌은 시신의 젖을 허겁스레 빨고 있는
젖먹이를 떼어내었다. 아이가 목젖을 놓고
울어댔다. 차렵이불을 걷어 아이를 싸서
들쳐 업었다. 젯간으로 가서 짚단 하나를
꺼냈다. 부싯깃을 쳐서 불을 댕기고 지붕
위로 던졌다. 갈대로 이엉을 깔고 용구새를
씌운 지붕에는 금방 불길이 댕기었다.
선돌은 빠른 행보로 집을 나섰다. 마을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 만한 언덕배기까지
때아닌 오밤중에 일어난 불이라 집 한 채가
거의 타서야 마을의 장정과 부녀자들이
몰려나왔다. 이미 기둥이 내려앉은 집에
동이물을 덮씌운들 소득이 있을 수 없었다.
홰를 켜든 장정들이 선돌을 부르며 추쇄를
하는 중에 선돌은 고개를 넘고 말았다.
황주(黃州) 묵방골(墨房)에서 한길을
버리고 곧바로 어초내(於草川)를 건너
백모루골(梨隅洞) 고개를 넘어
금산골(金山) 개활지를 찬바람 등에 지고
건너서 소학골(巢鶴洞) 등성이와
진기(眞機)와 한촌(閒村)의 깊은 계곡을
빠져 무작정 서흥(瑞興)길목인
철산(鐵山)에 득달하니 산중 조도(鳥道)긴
육십리 행보에 벌써 계명성이 뜨고 새벽이
희뿜하니 밝아오는 것이었다. 젖먹이는
잠들어 있었다. 철산에는 선돌이 왈짜
시절에 연분을 트고 지내던 몇 사람의
고구들이 살고 있었다. 무작정 집에다 불을
놓고 떠나오기는 하였으나 안해 죽은
설움보다 젖먹이 살릴 일이 태산처럼
가로놓였다. 처음에는 반기는 시늉이던
고구들이란 것도 선돌의 행색을 보고는
꽁무니를 빼는 것이었고 소문난 궁촌이라
과객질할 집도 마땅치가 않았다. 해낮에는
마을을 뒤져 젖 있는 아낙네를
찾아다니는데, 처음에는 가긍하게 여기어
열일 스무일을 다 제치고 한훤(寒暄)
수작까지 해가면서 골똘하게 젖 품앗이를
하던 아낙네들고 한번 찾고 두번 찾으면
벌써 야박하게 굴고 토심(吐心)들을 보이는
것이었다. 자기 아이 먹일 젖 한 통을
판국에 어미도 없는 아이에게 대중없이
빨려 줄 젖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낮에는 그럭저럭 견뎌낸다 하더라도 해진
뒤가 큰일이었다.
  젖먹이가 어쩌다 한숨 달게 자고 나면
버릇대로 젖무덤을 찾는 것인데, 한참이나
선돌의 맨가슴 안으로 입을 헤집고
더밀다간 젖꼭지를 찾지 못하면 그만
칭얼거리기 시작하는데 서로가 딱하여
혀라도 끌끌 찰 양이면 젖먹이 주제에 무슨
심지가 든 것같이 무안을 알아서 입을
삐죽거리다간 와하니 울음보를 터뜨리는
것이었다. 아이를 달랜답시고 북두갈고리
같은 손으로 등을 토닥거리면 제 어미의
손이 아닌 줄은 금방 알아서 아주 목젖을
놓고 울어대는 것이었다. 가로 안기도 하고
듯하다간 다시 불에 덴듯이 지악스럽게
울어대는 것이었다. 울음 그칠 사이가
없으니 젖먹이가 어른처럼 목이 쇠어
있었다. 한밤중에 아이를 업고 나간들 어느
누가 남의 아이 젖 먹이겠다고 자다가
일어나 동냥젖을 주겠는가. 자리끼로 떠다
놓은 슝늉을 입에 흘려 보내면 몇번
깔딱거리고 받아먹다가 사레가 들어서
이번엔 가슴팍이 무너져라 밭은기침을
토해놓는 것이었다. 나중엔 궁여지책으로
손가락을 입에 넣어 보는데 그것도
잠시였다. 손가락에서 젖줄이 나시
않는다는 것이야 젖먹이가 더 잘 알아서
속아서 한두 번 빨다간 이번엔 몇 모금
삼켰던 자리끼까지 죄다 토해내는 데는
환장밖에 할 게 없을 지경이었다. 마른
전복 말린 것을 목에다 걸어주어도 보았다.
간이 묻어 짭짤한 맛에 한두 번 빨아보았을
뿐 그것도 아이를 생다지로 겉말려
죽이자는 수작이지 젖꼭지에 당할 리가
만무였다.
  젖은 없고 마음은 조급하여 죽고 싶은
심정으로 아이를 정신없이 들까불다 보면
놀란 아이가 일시 울음을 그쳤다간 또다시
누가 살가죽이라도 벗겨내듯이 울어대는
것이었다. 어르고 달래다가 못견딜 지경에
이르러 방구석에다 패대기를 치면 아이는
까르르 넘어가도록 울어대니 하룻밤을 자고
나면 어른이나 애새끼가 목간통을 뒤집어
쓴 것같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어른은
눈자위가 허공에 떠 있고 아이는 낮에
구걸해 먹은 젖을 밤새 탕진하느라고
瑗恬??자네가 싱겁지 내가 왜
같았다. 하룻밤을 자고 나면 방구석에는
선돌이 제손으로 쥐어뜯은 머리킬이
수복하게 쌓였다. 또한 낮에 어쩌다 젖줄을
만나면 허겁지겁 빨아대고 젖을 물고 놓지
않으려고 비틀고 하는 사이에 젖에
싱채기가 나서 어른이 죽는 시늉을 하였다.
이젠 손돌이가 병문이나 고샅에 나타났다
하면 젖 있는 여자들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이었다. 삯전을 주어 유모를
따로 둘 수 없는 터수에 간구만으로 될
일이 아니란 것을 눈치채게 되자 선돌이
언사가 자연 험악해질 수밖에 없었다.
고샅으로 빠져 달아나는 아낙네를 뒤쫓아서
반은 주먹다짐으로 아이를 던지듯 안기는가
하면 밭일 나가 있는 아낙네들까지
뒤져내어 욕설과 공갈롤 빈 젖꼭지나마
들었다 하여 마을의 장정들이 몽둥이를
들고 일어났다. 마침 마을에는 진질(疹疾:
마마)이 창궐하고 있었는데다 난데놈이
젖먹이 아이를 업고 와서 아낙네들을
후리고 다니면서 난장판을 벌이니 성가심을
받다 못한 마을 장정들이 목도를 들고
일어난 것이었다. 철없이 이전 세월만
여기고 부닐고 다닐 수는 없는지라
종말에는 친구들께 하직할 경황도 없이
철산마을에서도 ㅉ겨나고 말았다.
  형단영척(形單影隻)의 실제로 갈 곳인들
마땅할 리 없었다. 젖먹이를 아금받게
보듬어 안았다고 한 젖을 가지지 못한
지아비란 아이에겐 썩은 나뭇등걸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젠 울어댈 기력조차
잃어버린 아이를 들쳐 업었다. 계명성이
앞의 질편한 개활지를 가로질러 봉산(鳳山)
이십리를 걸어서야 겨우 새벽이 깨어났다.
봉산에서 과객질로 수수떡을 얻어 설요기
때우고 십리를 더 내려가니 문득
주막거리가 나서는데 길이 네 갈래였다.
오른편으로 꺾으면 사원(沙院)에 득달하고
곧바로 걸으면 서흥내(瑞興川)를 건너
은파(銀波) 장터에 이르는 길이요,
왼편으로 꺾으면 자비령(慈悲嶺) 산협을
왼편으로 끼고 가는 삼십오리 여정이
빠듯한 검수역말(劍水驛)에 당도한다.
검수역말에서 십리 상거에 흥수(興水)에
이르고 거기서부터 다시 삼십리길은
서흥곡수(瑞興曲水)가 길 왼편을 따라
흐른다. 서흥읍치 병문에는 마침 장이 서고
있었다.
길을 나선지라 서흥에 득달하였을 때에는
일력이 나절가웃밖에 기울지 않았고 어물전
어름에는 술취한 파장꾼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마침 저자를 만나고 보니 아이에게
젖이라도 얻어 먹일 수 있는 몇 문의
부비나마 구처한 요량부터 앞서는
것이었다. 장터 가녁 파장꾼들이
오르내리는 고샅길 초입에 좌판을 벌여놓고
길손을 부르고 있는 할미가 있었다. 몇푼의
행하를 약조하고 고뿔 들린 아이를
할미에게 맡겼다. 어물전 가녁으로
올라가서 우선 구경꾼부터 불러모았다.
  "저기 가는 길손님네들, 내 곱지 못한
걸궁패 행색이긴 하나 고개 한번 돌리십쇼.
내 몰골을 볼작시면 야단스럽게 밉상이긴
하오. 코는 들창코라 소낙비가 오면 빗물이
앞사람보다 옆사람이 더 잘 보이게
마련입지요. 엉덩이는 옆으로 쳐지고
아래로 빠져 뒤뚱거리고 걷는 품이
방불함에 있어 요강장수요, 턱이 가슴에
붙어 있어 수수떡 요기를 하자마자 금방
뒷구멍으로 기어나오는데 이것이 수수떡
그대로요. 그러나 이 몸이 배냇물도 덜
말라서 되국상인 따라다니며 배운 재간
한가지가 있소이다. 뱃속에서 바늘을
뽑아내고 똥구멍에서 혓바닥을 집어낼 줄도
압니다. 사발 속에 괸 물은 거꾸로 들어도
쏟아지지 않고 손바닥에서 엽전 한 닢을
집어내어 호공에 나렸다가 다시 받으면 열
닢이 됩니다. 이런 구경 시켜 드릴 것이니
십시일반 적선하시어 젖 없어 숨넘어가는
젖먹이 아이놈 하나 활인들 하십시오."
난데놈 하나가 파장 무렵 어물전네 불쑥
기어나와 종착없이 지껄이고 섰으니 더러는
히쭉 웃고 외면이요 더러는 미친 놈
수작인가 하여 핌을 뱉고 돌아서는
것이었다. 본데없고 견문없는 산골
장꾼들이라 대혹하여 연희를 보자 하고
괴어들 만도 한데 도대체가 괄시하는
눈초리들이니 선돌은 기력이 빠지는
일이었다. 이미 일력이 다해가는 판이라
갈길들이 바쁘고 장거리에는 그런 엉뚱한
놈들이 간혹 나타나서 서투른 속임수로
시각을 뺏는지라 연희 한두 가지
구경하잡시고 허송세월할 염의들이 없다는
투였다.
  그래도 소맷자락에 콧물이 번질번질하게
말라붙은 장텃가 악다구니 몇 놈과 빈
않고 연희놀기를 기다려 주었는데 한두
가지를 보여주었으나 놀이채로 땡전 한 닢
던지는 놈이 없었다. 그런 낭패가 없는
중에 마침 통지게에 소금섬을 지고 지나던
대여섯의 소금장수들이 힐끗 선돌의 행색을
살피더니 다시 연희를 놀아보라고
청하였다. 그로 인하여 오늘 당장
풍찬노숙은 모면할 만한 노자를 손에 쥐게
되었다. 소금장수 패거리들이 마악 자리를
뜨려 할 즈음, 아이를 맡고 있던 떡장수
할미가 하얗게 바랜 얼굴을 하고 허겁지겁
달려왔다.
  "여보시오, 남정네 큰일났소."
  "애는 어떡하시고 빈몸으로 왔소?"
  "바로 그 때문이오."
  화들짝 놀란 선돌이가 다잡아 묻기를,
  "말도 마시오. 이만저만한 변고가
아니오. 마침 수수떡으로 요기를 때우려는
소금장수 일행을 만나 합지를 비우고 옆을
돌아다보았더니 애 싸인 이불보퉁이가
온데간데없구료."
  "애가 없어지다니요?"
  "어떤 떡에 상승을 한 놈이 수수떡 싸인
떡보퉁이로 잘못 알고 안고 간
모양입니다."
  "이런 결창낼 놈을 보았나......"
  더 이상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할미와
수작하고 있을 경황이 아니었다. 사세를
알아챈 선돌은 덕진거리 쪽으로 짓져
오르는데 그 역시 혼백이 아득하니
떠버렸다. 할미가 지소해준대로
새막글[新幕]쪽으로 경황없이 내달았다.
가로지르는 장촌내(張村川)를 만난다. 해가
뉘엿뉘엿하는 판에 천행으로 행인들의
내왕도 없어 보이는 자드락길 다복솔
아래에서 차렵이불에 싸인 채 버려진
아이를 찾아내었다. 선돌은 아이를
차렵이불에 알뜰히 싸서 가슴에 안았다.
그리고 길을 되짚어 서흥 장터로 돌아갔다.
소금장수들이 찔러준 부비를 밑천삼아
장텃가의 젖 있는 여편네를 수소문하고
다녔다. 이미 밤이 되어 숫막 여기저기에선
주등이 켜지는데, 선돌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숫막의 주모가 난산으로 아이가
죽어버려 젖이 쇠한 가근방 여편네 하나를
꼬드겨서 술청 뒷방으로 데리고 왔다.
여편네는 선돌에게서 신발차부터 앞전으로
건네받고 난 다음 아이를 건네받았다.
화등잔만해지는가 하였더니 금방 입에서
죽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여편네가 아이를
떨치고 일어서려는데 선돌이가 사이를 두지
않고 여편네의 손떠꾸를 낚아채어 주질러
앉히었다.
  "이년, 어딜 간다는 게냐. 네가 앞전까지
지른 터에 아이에게 젖 한 방울 주지 않고
발딱 일어서?"
  "여......여기......있습니다."
  여편네가 치마말기에 찔러넣었던 엽전을
내던지었다.
  "젖을 물려. 만약 여기서 한 발짝만
내디뎌도 네년의 육신을 찢어놓으리라. 내
말 알아들었거든 아이를 안아."
  말구멍이 막히고 공갈에 기가 질려
한기까지 든 여편네가 바들바들 떨고만
  "꾸물거리지 말고 젖을 물려라 이년."
  "이미 숨이 넘어간 아이에게 젖을 물릴
수가 없습니다요. 또한 젖을 물려본들 무슨
소용입니까?"
  "어거지로라도 입을 벌리고 젖을
떨구어라."
  선돌이 눈자위는 벌써부터 허옇게 뒤집혀
있었다.
  "이미 몸뚱이가 쇠어서 단지(斷指)를
한다 하여도 입이 벌려지지도 않습니다요."
  "그래? 그렇다면 내가 입을 벌려주지."
  임 사지가 동태처럼 굳은 아이를 빼앗아
어거지로 입을 벌리고 있는 틈을 타서
아낙네는 장지문을 냅다 꼰지르고 술청으로
내달았다. 새파랗게 기가 질려 노루뜀을
하는 아낙네의 거동에 놀란 주모가
묻어야 할 어린 시신을 끌어안고 제 젖을
물리려고 애쓰고 있는 선돌의 참혹한 꼴을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판에 만류한답시고 골자도 모르고 봉노로
뛰어들었다간 혼백이 떠서 행사가 고약해진
사내가 이번엔 주모를 잡아 엎치고 젖을
먹이라고 행짜를 놓을 것이니 반죽만 믿고
고개를 디밀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술청으로 나가 장돌림들에게 사정을
토파하고 선돌을 방에서 끌어내기로
하였다. 장정 셋이 작당하여 어른과 아이를
떼어 놓으려 하였으나 그곳이 수월할 리
만무였다. 아이를 놓치지 않으려는 선돌은
비수를 꺼내 내젓는 판국이어서 섣불리
다투다간 모가지에 흠집이 날 것 같았다.
사세가 다급히진 터에 마침 담력 있는
잡아 비틀어 삿자리에 꼬아박은 다음 그
품에서 아이를 빼내었다. 그러나 아이라 할
망정 임자 있는 송장이라 덕대로 매장해
버릴 수는 없었다. 탁배기 두어 사발로
요기를 때우고 금방 서흥읍치에서 뜨려던
장돌림들은 술청으로 선돌을 끌어내어 제발
정신 차리라고 간곡히 타일렀다.
경상(景狀)이며 실성기까지 보이는 경황을
보자 하니 잘못하면 어른까지 요정날
판이었다. 여러 말 나누는 중에 선돌이가
행장(行狀) 가진 장돌림이란 것을 알고
십시일반으로 푼전들을 걸립하여
상둣도가에서 역군까지 얻어 초종을
치러주었다. 장돌림들은 선돌을
부추기느라고 서흥에서 소금 서 말을 못다
팔고 평산(平山) 칠십리 노정을 동행해주는
술청거리에서 중화할 제 장돌림들은 선돌의
신기를 되찾으라고 저들은 희멀건
장국요기하면서 돝고기 넣은 술국 한
푼주를 따로 사주었다. 그러나 선돌은 윤달
만난 황양목 모양으로 쭈그려뜨리고 앉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 동안 사뭇 옆에서
배 문지르고 등두드리며 받자를 해오던
장력 센 사내가 그만 결기를 삭히지 못하고
선돌의 따귀를 보기좋게 갈기고 말았다.
  "야 이놈아, 화냥에 빠진 계집
화장지내고 애물단지를 역병으로 잃은 놈이
어찌 네놈뿐이라더냐? 모두들 아구통을
닫고 앉았지만 장돌림 명색이면 가슴에
바람구멍 난 동무님들 부지기수여. 조빼지
말고 어서 처먹어."
  "노형, 왜 사람을 치고 행짜를 부리는
  "이놈아, 네놈 행사에 부아가 치밀어서
그런다. 우리가 애새끼 초종까지 대신
치르고 노정까지 바꿔가며 정신 차리기
권유한 터에 네놈의 행사가 이게 뭣이냐?"
  "가슴이 찢어지는 판에 어찌 육점을 씹고
앉았단말요."
  "이 아둔한 놈아. 네놈의 가슴에 맺힌
포원이 클수록 데데하게 굴어선 안돼.
일각이라도 빨리 정신을 차리어 의지간을
장만하고 미색을 골라 초례 치르고
부지런히 가죽방아 찧어서 후사를 본다
하면 정들 탓이 아니냐."
  "알겠소. 고맙게 먹으리다."
  "이 주리를 안길 놈. 설성기 보이지 말고
어서 처먹어. 밉상도 분수가 넘치면
모둠맷감이 되는 것이여."
욕지거리를 퍼붓는 것이었으나 사내의
눈자위에도 눈물이 괴는 것이었다.
평산까지 동행했던 그들은 산중으로 소금을
풀어 먹이겠다고 선돌과 하직하였다.
선돌이 혼자서 금천(金川)을 거쳐
송도(松都)까지 왔다. 송도 어느 객주에서
짐방 노릇으로 연명하는 중에 걸핏하면
싸움질로 대판 시비가 오가고 입정이
더럽고 불량기가 많다 하여 방색을
당하였다. 불현듯 길을 나서
장단(長湍).파주(坡州).고양(高陽)길
백팔십 리를 사흘 걸려 와서 송파에 당도한
것이다.
  선돌의 저간의 사정을 다 듣고 난 봉삼은
담배 한 대를 다 태울 동안 이렇다 할
대꾸가 없었다. 멀리서 첫닭이 홰치는
멎었다. 봉삼은 문득 조소사의 얼굴이
뇌리에 떠올랐다.
  "자네, 그 오쟁이를 지운 도포짜리를
물고를 내지 않고 왜 살려보냈나?"
  "나도 모를 일이지. 봉노로 돌입해들
적엔 그 모가지에 비수를 꽂을 만큼 결이
돋았었지."
  "내게 장가처가 있었다면 자네처럼
타일러서 내쫓을 경황은 없었을 것이야."
  "여편네의 몰골을 눈앞에 보는 순간,
나는 어쩐 셈인지 기력이 꺾이듯 하였네.
음욕에 빠진 계집 내가 잡도리 못한 것을
뉘게다가 타박한단 말인가."
  "그러나 주먹부터 나가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나도 종잡을 수가 없었다네. 그러나
주기를 바랐고 또한 집에 불지를 것도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그
도포짜리를 죽여 내가 얻는 명분이
무엇인가. 나만 마을에 소문만 왜자하여
욕이 되돌아올 뿐이지 않은가. 연놈을
눈앞에서 바라보면서 나는 문득
군자(君子)연하고 싶었다네. 내 속내는
그것이 아니면서 말일세."
  "한번도 상면하지 못한 아지마씨였네만
이태를 참지 못해 바자에 개구멍을 내고
사잇서방을 불러들이다니. 나는 그 지경이
이르면 도륙을 내지 않고는 배겨나지
못하겠네. 그러나 그만하면 설분도 되었고
세월도 지났으니 그만 심지를 차리게. 내게
사백 냥 전대를 몽땅 넘기고 신명 하나로
고향을 찾은 자네가 바로 화근이었네."
원망할까. 나가서 술이나 한 방구리 더
가져오게나."
  첫닭이 홰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마방에 거처하는 식솔들이 모두들 일어나서
쇠죽솥에다 군불을 지피기 시작하였다.
봉삼이 들어 있는 상방에 밤새도록 불이
켜져 있었고 두런두런 말소기라 그치지
않았던 터라, 봉삼이 장지를 열자 중노미
노릇인 아이놈 하나가 기다렸다는 듯 술 한
방구리를 디밀었다.
  "사내 평생에 한번 지나간
소나기바람이었다 생각하게. 이제 송파까지
왔으니 나와 동사하며 임의롭게 지내는 게
어떤가?"
  "난 이미 글러버린 놈이야."
  "글렀다니, 그게 무슨 흰소린가?"
  "자네의 셈술이 특출하고 또한 눈썰미가
남다른 터에 무슨 딴소린가? 한 열플
신색을 가다듬어 상로(商路)에 나서기로
하세."
  선돌이 불쑥 되받아 뇌까린다는 말이,
  "내가 와서 묵는 게 비편할 테지. 내
숭한 몰골 때문에 자네 행세가 깎이고
창피볼 지경에 이르렀다면 내가 여기서 뜰
수도 있지......"
  "고이헌 사람. 응석 부리는 걸 보아하니
젖먹이나 진배없네그려. 그렇게 의표가
선명하고 슬금하던 사람이 홀저에 이렇게
변하다니. 내가 오시목퇴침과 명주이불로
공궤할 주변이 못 된다 하여 이렇게 성화를
먹이려 드는가?"
  "외대라니, 자네의 대접이 과해서 되레
이러다 싸움나겠네."
  "자네로 인하여 내가 우리 동패들에게
구경 소조(所遭)를 당하는 낭패를 볼지언정
자네를 방색하고 천둥 치는 하늘로 머리
두고 다닐 수가 있겠나."
  "나는 중놈 바랑 속에 든 빗처럼
쓸모없는 놈이 되었네. 그러나 솟증이
돋쳐서 살가루가 뚝뚝 떨어지는 판인데
육허기나 채우게 기생방 출입이나
시켜주게."
  "해참, 상제 노릇 하는 중에도
기방(妓房) 갈 염의가 있다는 겐가? 이제
와서 기생방 천틀 요량인가?"
  "무슨 소리, 내 연갑(年甲)에 오입쟁이
발천하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다네.
책상물림이나 무변들만 드나들란 기방이
  "기생방 출입 잘못 알음하여
허튼수작하다간 난장개 되기 일쑤라네.
어디 그뿐인가 오입쟁이 날이 나면 건달
되고 건달이 배고프면 조방꾼 신세 면하기
어렵다네."
  이에 선돌이가 발끈하여 화증을 돋으며,
  "그렇다면 내가 이 초빈(草殯) 속보다 더
어두운 음산한 봉노에 육장 처박혀서 그깐
한번 찡하다 마는 용두질이나 치고 있으란
말인가?"
  "제발 그 더러운 입정 그만 놀리게."
  "자네가 상약 따위나 디밀고 심기를
건드리니까 그렇지."
  "상약이 방문약(方文藥)보다 나을 수도
있다니 약이나 거르지 말고 들게."
  "약그릇을 내동댕이쳐 버리겠네."
  완곡히 타이르고 경계를 따지고 시종이
여일하게 받자를 하고 드는 봉삼의 말에
선돌은 거탈 수작으로 고개만 두어 번
주억거렸을 뿐 아퀴지어 동사하겠단 말은
끝내 없었다. 더 이상 다잡아 묻는 것도
경난 겪은 당자 심사만 긁어놓는 격이라
봉삼도 입을 다물고 말았다. 선돌도 똥개
없는 사람이 아니건만 앉아 있는 형용이
흡사 썩은 장승 같아 한 손으로 잡아들어도
번쩍 들릴 것같이 수척한 것을 무어라
탓하랴. 두어 파수가 지나보아야 선돌이
행보할 만큼 신기를 되찾을 것 같았다.





  선돌이가 오던 날 새벽부터 질금거리기
시작한 비가 두 파수 내내 그치지 않아
장이 서질 못했다. 두 장도막 동안 마방에
매인 소들은 그대로였다. 매팔자가 된
선돌은 해가 서 발이나 치뜨도록 자고
일어나면 식전 술국집과 저녁 모주집을
뻔질들락거렸다. 삼개의
공덕리(孔德里)에는 황해도의 신계(新溪),
곡산(谷山), 안악(安岳) 인근의
책상물림들이 아주 권속들을 솔거해와서
살며 성균관이나 사학(四學)으로 나아가
과거 준비를 하였다. 과거 바라지를 하는
권속들이 과채(科債)에 시달리고 궁핍을
겪다 못해 서울에서는 귀하기 마련인
나중엔 식초도 만들어
겸매(兼賣)하였었는데, 그 소주가 청결하고
독하다는 소문을 들은 선돌이가 뗏배를
얻어 타고 공덕리 소주촌(燒酒村)까지 찾게
되었다.
  봉삼은 약 수발에 끼니 지공(支供)은
물론이려니와 선돌의 용처에 부족이 없도록
각별 주선하였다. 재취장가를 들 요량은
않고 계집과 농탕을 치겠다 하면 되대머리
논다니이고 들어앉은 계집이고 간에
군소리없이 끌어대었고, 동패 쇠전꾼들에게
대중없이 해라를 내붙이며 왜장을 쳐도
그리 알고 위하며 심사 틀린 대꾸들을 하지
말게 닦달하였다. 선돌이도 혹간 반죽이
눅을 때에는 홍제원 인절미 같았으나
식전술에 취하여 솟증이 돋았을 때에는
길길이 날뛰었다. 술청을 두드려 엎는 것은
약과요 애꿎은 주모들까지 골병을
들이었다. 의원을 불러 진맥을 시켰더니 그
전부가 신기가 허한 탓이라니 탓하고 나설
수도 없는 것, 성깔이 삭아질 때만을
기다려보는 수밖에 방책이 없었다.
  삼남에서 올라온 쇠전군들은 외양가와
객비만 불어난다고 걱정들이 태산 같은
중에 투전질과 척전(擲錢)질로 소일하는
중에 장마가 들었다. 두 장도막이나 저자가
열리지 못하였으니 북새판을 이룰 만한데
그렇지가 못한 까닭이 있었다.
  때마침 삼남에서는 역병이 돌아 고을마다
백성들이 효복을 틀어안고 몰사죽음을
당하는 처참이 있었고, 저자에는 광주부
유수(廣州府留守)인 민영목(閔泳穆)이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한 가운데 저자
모퉁이 곳곳에서는 광주 유수의 탐학을
고변하는 쾌서(快書)가 나붙는 가운데
동헌에 정장(呈狀)을 올린다는 소문이
분분하고 자못 인심이 흉흉한 판이었다.
관부에서는 각 고을의 풍헌이며
동소임들에게 신칙을 내려 매매를 빙자한
백성들이 인근 저자에서 취회하지 못하도록
엄중 단속하고 있었다.
  방리(坊里)마다 효시문(梟示文)을
게첩하는 등 백방으로 엄금하는 판이어서
송파에서 양주(楊州)의 평구(平邱)장터를
드나들며 소몰이를 하는 동패 일곱과 소가
열다섯 두(頭)나 길이 막혔다. 동패들이
송파로 건너오는 거루를 타지 못해
살곶이에서 묵고 있다는 기별만
주장(朱杖)을 꼬나든 향청의 별감배들이
떼로 몰려나와 행객들을 서캐 잡듯
검색하는 판이어서 비가 들었다 하나
장시의 거래가 순탄할 리 없었다. 외양가와
연가에 물린 삼남의 쇠전꾼들은
척매(斥賣)로 소를 처분하고 마방들을 뜨는
판인데 살곶이에서 발이 묶인 동패들 일이
난사였다. 물론 채장 가진 장사치가 읍치
밖으로 나가는 것이야 자유스러웠다.
  봉삼이가 살곶이로 나갈 수도 있었으나
차제에 선돌을 끌어들이자는 심사로 듣고
있는 자리에서 걱정을 내쏟았다. 선돌이
무슨 염의가 돌았는지 전과 같이
뒤숭숭하지 않고 제법 침착하게 살곶이에서
기다리고 있는 일행을 영솔하여 아예
다락원까지 다녀오겠다고 나섰다.
내가 한 행보 하지."
  속으로 이게 무슨 조화인가 싶었으나
봉삼이 미심쩍다는 시늉으로,
  "자네 신색으로는 먼길 행보가 아직은
지난일 터인데?"
  "그런 말 말게. 이젠 행패도 그만치
놓았으니 기력에 동이 났고 자네에게 앉혀
사는 치골 노릇도 진력이 났다네.
장공속죄(將功贖罪)하는 셈치고 다녀옴세."
  봉삼의 속셈을 어림할 수 없었던
동패들은 마방에 바람 재울 날이 없이 연일
찍자를 부리던 선돌이가 빈말이라도 듣기에
놀랍고 반가워서 입을 맞춘 듯 선돌을
부추기고 나섰다.
  "기력에 동이 났다는 사람이 원행이
가당한가?"
하초를 아주 버릴 만큼은 낭패를 보지
않았네. 도감포수(都監砲手) 오줌짐작으로
그러지 말게. 길목버선 두어 켤레하고
견술이나 매단 행리 하나면 원산포까진들
못 다녀오겠나."
  "살곶이에 기다리고 있는 동패 일곱과
안동한다면 초행길이라도 별 탈 없이
다녀올 수 있을 것이야."
  "글쎄, 걱정 말라니깐."
  선돌이가 지각을 차린 것만 반가워 더
이상 주저를 않고 살곶이로 떠나보냈다.
  살곶이에서 만난 일행과는 초면인지라
인사 수작 나누고 늦은 동자를 걸게 든
다음 지체없이 다락원으로 소들을
몰아대었다. 다락원의 득추의 대장간에
들렀으나 원산포에서 내려온 북상(北商)
말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을 만나지 못한
것이 낭패이나 선돌이패도 덩달아 송파로
회정한 수는 없었다. 득추의 대장간
툇마루에선 공론들이 분분하였다. 득추가
불쑥 끼여들어 손사래를 치면서,
  "솔모루[松隅店] 장터까지라면 반나절
길이지만 연천(漣川)지경까지라면 길이
초간하지 않고 또한 고개티 목쟁이마다
화적들이 득실거리는 판국에 한발 더
놓으려다 낭패를 보십니다."
  "지레 겁부터 집어먹을 게 뭐요? 그렇담
북상들은 어찌 무상으로 고개티를
넘어다니오?"
  "북상들이야 적굴 사람들과 더러는
안면을 트고 지내는 터수이고 달포
상간으로 곡식말이나 보태주는 사이라
  "여기서 다시 한 파수를 기다린 순 없소.
중로에서 장맞이해서 소를 넘기는 게
좋소이다. 그깐 쇠파리 무서워 장 못
담글까."
  "공연히 허세를 부리려다간 명 보전하기
힘들지요."
  "그놈들, 공물 실은 부담마다 털 일이지
하필이면 장사치일까."
  "새벽에 나온 호랑이, 쥐나 개나
하루살이나 하는 판인데 뭘 가리겠소."
  "그깐 뛰면 벼룩이요, 날면 파리겠지.
우리도 떨거지가 이만하니 당적할 만하지
않겠소."
  선돌의 푸른 서슬에 동패들은 쓰다 달다
대꾸가 없었다. 콧등 센 왈자 출신들이라
겁들이 적었고 당장 회정한 곳도
장수원(長水院)까지는 상거가 십 리밖에
되지 않았고 거기서 반마장을 채 못 가서
파발막(擺撥幕)에 당도한다. 이곳에서 길은
삭녕(朔寧)으로 해서 평양 노정으로
이어지는 길과 원산포(元山浦)로 빠지는
길로 나뉜다. 파발막에서 축석령(祝石嶺)
고개티까지가 줄잡아 오르막길 이십 리이고
축석령에서 솔모루까지를 내리막길 이십
리로 잡는다. 솔모루는 송파나 다락원과
함께 금난전권 밖에 있는 또 하나의 과시
못할 사상도고(私商都賈)들의 근거지였다.
  솔모루는 관동지경과 원산, 함흥 소산
어물(魚物: 혹은 北魚)과 이른바
북포(北布)라고 통칭되는 길주(吉州),
북청(北靑), 종성(鐘城). 회령(會寧),
마전(麻田), 등지의 포목(布木)이
거쳐 서울로 운반되었다.
  특히 북어(北魚)바리들이 서울로
들어오는 경로는 소산지(所産地)의
도고(都賈)들과 중간 통과지인 통천(通川)
여각의 포주인들, 그리고 솔모루를
근거지로 하는 건방(乾房)의 난전꾼들이
서로 결탁이 되었고, 이들에 의하여 교역된
물화들이 마지막으로 서울의
사상(私商)들에게 넘겨지고 있었다. 이렇듯
솔모루는 원산포와 통천의 포주인들과는
끊을 수 없는 주객관계를 이루고 있어서
시전 상인들의 추상 같은 위협일지라도
이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그러니까 서울의
금난전권을 에워싸는 사상도고들의
포위망은 경강(京江)과 다락원과
동작나루를 연결하는 첫번째의
연결하는 또 하나의 상로가 있었다.
북상들은 솔모루에 당도하면 거의가 거래를
이루게 되고 회정하는 것이 상례처럼 되어
있었으니 하루에도 칠십여 바리의 어물과
포목들이 솔모루의 건방과 객주를 통하여
다락원으로 보내지고 있었다. 다락원에서는
솔모루에서 오는 각종 어물을
매점해두었다가 서울의 칠패와 배우개의
난전꾼들에게 보내면 그들이 수시로 물화의
시세를 조정할 뿐 아니라 시전의
어물도가에서는 물량을 제대로 구처하지
못하는 폐단을 겪었다.
  선돌이가 화적 만날 것을 짐작하면서도
민주대고 연천(漣川)으로 오르려 한 데는
그 나름대로 까닭이 있었다. 송파에서
다락원까지는 득추의 마방과 서로 연경과
솔모루 위로는 연결될 만한 마방이 없어
중로 저자에 진을 치고 있는 쇠살쭈들과
몰이꾼들에게 많은 이문과 객비를 뜯기고
있었기에 솔모루나 철원(鐵原)에 상로를 틀
만한 곳을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계집과
자식을 잃고 난 뒤 멀쩡한 사람이
병풍상성(病風喪性)을 했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고는 하나 차제에 봉삼에게 할 수
있는 품앗이가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기에 불쑥 길 나서기를
자청하였었다.
  다락원에서 중화하고 난 다음 공론들을
한답시고 시각을 지체한 터라 축석령
고개티에 득달하였을 때에는 길어자빠진
팔월의 한여름 해도 서너 뼘밖에 남지
않았었다. 노량으로 걷게 마련인 짐승의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솔모루에서
다락원으로 가는 어물이며 포목 바리며,
다락원에서 솔모루로 오르는 황화짐이며
소금장수들과 점사람들과도 심심찮게
만나는 것이어서 행로가 적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황톳길을 달달 볶아대는
뙤약볕과 쇠파리에 시달리며 워낭소리만
따라서 노량으로 걷자 하니 속에 천불이
올라오고 승새 굵은 삼베등거리에 하초들이
시커멓게 들여다보이는 쇠코잠방이를
걸쳤다 하나 땀을 하루종일 노 드린
듯하였다. 고개티를 내려간 제 쇠여울이
나타나고 한창 북새판인 천렵꾼들을
만났다. 연방 여뀌풀을 돌로 찧어 소에다
풀어놓는 놈, 청솔가지 연기에 눈물을
질금거려가며 노구솥에 불을 지피는 놈에
더러는 등목들을 하고 길목을 돌아서는데
떼 안 입힌 백정들 무덤들이 듬성듬성한
언덕빼기 위로 다 쓰러져가는 천궁(天宮:
屠殺場) 한 채가 바라보였다.
  천궁 앞엔 이끼가 낀 수혼비(獸魂碑)
두어 개가 잡초 사이에 누워 뒹굴고,
고리짝을 만들 버들껍질이 각담 밖 덕대에
주렁주렁 널려 있는 고샅을 빠져나가니
개활지 건너로 장거리가 훤하게
바라보였다. 다락원을 나서면
장천거리(長舛巨里)와 파발막에 당도하고
비석거리(碑石巨里)와 포천읍치인
장거리(場巨里)를 지나 사뭇 계곡길로
빠지면 삼십리 상거에 만세교(萬世橋)가
있으니 천상 솔모루에서 하처를 잡아야
하였다. 마침 빨랫가지를 자배기에 넣어
물었더니 장터목으로 가보라고
지소해주었다. 객점으로 찾아들긴 하였으나
역시 소들을 재울 만한 마방 딸린 객점은
없었다.
  "덕서들을 구처해서 씌우고 한터에다
노숙을 시키는 수밖에 없게 되었네."
  "우리가 번을 만들어 상직을 서도록
하지요."
  "관동의 화적들이 드세다 할지라도
주막거리까지 쫓아내려와서 북새를 놓기야
하겠나."
  소들을 노숙시킬 공론들을 하는 중에
객점 마당에 깐 멍석 위로 저녁이 날라져
왔다. 장마 뒤끝이라 봉놋바닥이 눅눅하고
후텁지근한지라 다른 봉노에 들었던
행객들도 장지문이며 지게문을 활짝 열고
잡담들이 늘어진 판이었다. 그때 술질에
열심이던 한 사람이 옆에 앉은 동패의
옆구리를 꾹 찔렀다.
  "여보게 초풍할 일이 생겼네. 자네 저기
퇴에 나와 누운 인사를 눈여겨보게. 얼추
알 만한 놈이 아닌가?"
  "누구 말인가?"
  "분주는 떨지 말고 퇴에 누운 인사를
가만히 훔쳐보게."
  "장돌림 복색들만 우글거리는 객점
마당에 누구 말인가?"
  "궐자는 초저녁잠에 취해 우리는 보지
못하였네만 저놈이 새경다리께 살고 있는
길아무개란 놈이 분명하네."
  "길가란 놈 말여? 아니 저 육시랄 놈이
솔모루 객점엔 웬일인가?"
몰라 한시름되더니 잘 만났네. 자네
손떠꾸가 근질근질하거든 저 놈 제독을 줄
겸 한번 가서 민주를 대보게나."
  "저놈이 어쨌든 구실을 살아보겠다고
재상가에 총촉질을 하고 다니는 주제에 딴
변고가 나지 않은 이상 장돌림으로 나설
리도 만무일텐데 어떻게 되어 여기 와서
나자빠져 누었을까. 석식 뒤에 딴 볼일도
없는데 가서 수작이나 붙여볼까."
  "아서. 공연히 덧들였다가 또 무슨
앙화를 입을지 모르네."
  "장안에서 놀아야 할 놈이 외방 저자
객점으로 홀연히 나타나서 잠에 취해 있는
처지라면 분명 남다른 속내가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게 아닌가?"
  "그렇더라도 평지풍파를 일으켜 경난을
척해두지."
  "어디 면분 있는 동무님이라도 만났소?"
  두 사람이 귀엣소리로 받고채는 말을
선돌이가 어림짐작으로 얻어듣고 물었다.
그러나 이미 묵어자빠진 고려 적 일을
주착없이 토설하였다간 선돌이 성깔에 또
무슨 환난을 벌일지 몰라 두 사람은
말머리를 돌려버렸다. 석식을 마치고 힐끗
돌아다보았더니 길소개는 어디로 나갔는지
행지가 묘연하였다. 이 봉노 저 봉노를
기웃거려보았으나 후배는 따라온 겸인이나
떨거지들도 없는 것 같았다.
  이튿날 신새벽 첫닭 울 녘이 되어서
새벽동자 바쁘게 뜬 다음 일행은 다시 길을
나섰다. 솔모루 장거리에서 영평(永平)길로
접어들어 자하골[紫霞洞]과
영평읍치에 이른다. 영평에서
남대천(南大川)을 끼고 왼편으로 꺾으면
밤모루골[栗隅]과 숯골[炭洞]을 지나
전곡(全谷)에 이르고 다시 왼편으로 또
한번 꺾어 장진나루를 거텨 이십리 상거인
연천(漣川)에 득달한다. 연천 어름인
원모루[院隅]를 지나고 점마을[店村]
장거리에 당도하여 다시 하룻밤을 묵고
이튿날 철원부중(鐵原府中)에 당도하였으나
원산포에서 내려온 탑삭부리 일행은
보았다는 사람이 없었다. 철원장터에서
지체할 수도 없어 내친김에 평강(平康)가지
오르기로 하였다. 철원에서 포촌(浦村),
천통, 달우물골[月井里],
석탑거리(石塔巨里:弓裔石塔)를 지나면
원골[院里]에 당도한다. 원골에서
따라 꾸불꾸불 내려간 길 양편엔
묵정밭이고 키 큰 전나무들이 듬성듬성
들어서 있었다.
  산중길 사흘 행보에 몰이꾼들도 행역에
지쳤고 소들도 지치었다. 병문에서
수소문하여 원산포의 소몰이꾼들이 단골로
정하고 묵는다는 객점은 찾아내었으나 역시
마방은 없었다. 설사를 하고 다리를
절름거리는 소가 있어 하루를 평강
숙소참에서 묵기로 작정하였다. 그날
해질녘에 탑삭부리와 원산포 소몰이꾼
일행이 숙소에 들이닥쳤다. 탑삭부리를
알아본 일행 중 한 사람이 객점 마당으로
들어서는 그를 보고,
  "이거 탑삭부리 성님 아니시오?"
  "어허? 이거 웬놈들이여?"
뛰었소."
  "천행수는 별 탈 없으시지?"
  "조행수님은 어떻소?"
  "무탈하시다네. 그런데 전번 파수에는
자네들이 배약(背約)하는 바람에 허행하고
용용(冗用)이만 수월찮게 나서
양실(兩失)을 보았다네."
  "아픈 데도 없으면서 괜히 앓는 소리
마슈. 장마에 갇힌 걸 어떡하우. 우리도
평강까지 오느라고 객비가 수월찮았소."
  "행수 구실은 누구인가?"
  탑삭부리가 수상으로 온 선돌과 초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시생은 이래봬도 연전까지 강경포구
어름에 둔소를 둔 적굴의 화적이었소."
  적굴에 종사했던 일을 거침없이 내쏟는데
것은 생각 않고 제 신명만 알아서 떠드는
판에 선돌은 정색을 하고,
  "모개흥정으로 해서 가전이나 넘기시오.
우린 곧장 회정해야 합니다."
  "원 바쁘기도 하시오. 오줌 누고 뭐 털
사이도 없으시단 게요? 우리가 초대면에
첫거래를 튼 셈이니 명색이 성애라도
먹어야 하지 않겠소."
  "송파에서 나설 적엔 솔모루까지만
겨냥했었으니까요. 그러나 다음부턴
평강까지 소몰이를 할 터이니 금어치는 더
쳐주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수월하게 되었소이다.
고개티를 지키고 있는 화적들이야 내
수중에 있소이다만 외양가며 부비가 헐하게
되었으니 그만한 금어치는
  탑삭부리는 언죽번죽 얘길 잘하고 괘나
시원시원하게 선돌은 다루는 것이었다.
  소들을 넘기고 받은 꿰미돈이 두 바리나
되었다. 탑삭부리 일행이 치행하여
원산포로 회정한 뒤 선돌이패도 이튿날
아침으로 평강에서 다시 서울길로
회정하였다. 소금섬에다가 전대를 넣어
소금방수로 가장하였으니 평상 소산(所産)
설화지(雪花紙)를 행매하지 못하면
철원장까지만 바삐 대어가서 북포(北布)로
환매할 적정이었다. 북포를 솔모루까지
가져가서 다시 돈으로 바꾼다면 봉적할
걱정도 덜고 길미도 바랄 수 있으니 그것이
이른바 상리를 꾀하는 재간이었다.
  철원도 관동지경에서는 꽤나 소문난
향시여서 인근에서 장꾼들이 모여들기
한짐이나 되게 북포로 환매하여 정한
객점으로 돌아와서 하룻밤을 지내려는데,
삽짝 밖이 소연해지더니 뜻밖에 한
패거리의 행객들이 들이닥쳤다. 상방으로
들어서는 행객들은 저희들끼리 주고받는
말이 경사(京辭)이니 경아리들이
분명하였다. 진대 부리기 좋아하는 동패
중의 한 사람이 불문곡직하고 쫓아가서
통성명들 하자고 성화를 먹이었다.
산초기름 희미한 불빛 아래로 분별해선
확연치는 않으나 그들은 입성부터가
선돌이패들보다는 말쑥하였고 성깔깨나
부리게들 생겼었다. 그러나 그만한
외양이라 해서 기가 질릴 반죽이 아닌지라,
  "보아하니 서울서 오신 동무님들
같소이다그려?"
봉노로 들어서던 위인 하나가 그 말을 냉큼
되받아서,
  "이건 웬 물것이 불쑥 뛰어들어 촐싹대나
그래?"
  "여보시오들, 불 없는 질화로에 딸 없는
사위라더니 사람들이 왜 그렇게 다정다감한
맛이 없으시오들? 병풍상서(病風傷暑)라
했듯이 서로 쪼들림을 당하는 장사치들
차지에 통성명들 하자는데 웬 방색이
그렇게도 혹독하시오?"
  "그럼 초인사들 나누시지. 산 사람
소원들 풀어줘."
  성화를 받다 못해 색책으로 말하는 것을
짜장 좋은 도리를 일러 주는 것으로 듣고
송파패는,
  "난 정주가 지본이오, 임가라 합니다요.
  "거참, 죽은 놈 매장은 안하고 초빈만
해둔 탓에 벼락소리 듣고 되살아난 놈처럼
꽤나 엉뚱하게 성화일세."
  한 놈이 꽥 소리를 지르며 한 손
식지가락을 내뻗치고 흔들며 곧장 드잡이를
놓을 것같이 팔을 뽐내고 있는 터에,
  "이런 제미 붙을 놈을 보았나. 초인사
나누자는데 웬 성깔이여 그래?"
  "여어, 이놈 보아라."
  한 놈이 어금니를 바드득 갈아 부치더니
삿자리 위에 넓죽하니 엎드린 송파패를
드잡이하고 장지문 쪽으로 내다꼰질러
박으려는데 대롱대롱 매달려 올라가던
작자가 드잡이한 손을 잽싸게 뿌리치며
부담농 쌓아둔 바람벽으로 가서 풀썩
나자빠졌다.
두었다간 여러 사람 코다칠 놈이 아닌가."
  행수 격으로 보이는 위인이 호령하자 세
놈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송파패를 싸잡이
툇마루 밖으로 내던져버렸다. 코피가 터진
채로 쫓겨난 송파패가 선돌이 있는 방으로
들어와서,
  "행수님, 저 상방에 하처잡은 패거리들의
부담농이 수상쩍습니다."
  용집이 배어 고린내가 등천을 하는
길목을 벗어 활활 털고 있던 선돌은 궐자가
패거리들에게 덧들이다가 우세만 당하고
쫓겨난 것을 부족하게 여겨 쏘아붙이기를,
  "이상하면 자네가 어쩔 텐가? 더운밥
먹고 식은방귀 뀌지 말고 잠이나 자게."
  "아닙니다, 행수님. 제가 저
패거리들에게 부대껴본 것은 당초부터
  "해괴한 잔소리 집어치우고 어디 가서
논다니 계집이나 업어오게. 응어리를 풀지
못하면 잠을 청할 수가 없다네."
  "농이 아닙니다요. 제가 그놈들 따귀 한
대를 모질게 얻어맞고 넘어지는 척하고
시렁 아래 쌓아둔 부담농 위로 넘어졌을 땐
생각이 있어 한 짓이라니까요."
  "부담에 금은보화가 들었던가?"
  "사연인즉슨 그 부담농들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습지요."
  "자네 코가 개코인 줄은 당초부터 알고
있었네."
  "냄새고 보아 어물이나 포목은
아니었습지요. 이상한 약초냄새가
났습니다요."
  "불땐 굴뚝에 연기 난다는 이치군.
무엇이 탈잡을 게 있단 말인가?"
  "약주릅도 아닌 놈들이 약초를 부담농에
넣어 싣고 다닐 게 무엇입니까? 약고개로
가면 당재(唐材)는 물론이요 희한한 관동의
약초가 천새나는 찬에 저들이 관동
산중까지 행보할 까닭이 없겠지요.
궐놈들의 성깔이 괴팍한 것하며 손떠꾸가
곱상들 한 것이 함지는 복수들로 가장한
시전붙이들이 분명합니다요."
  말인즉슨 그럴싸하였다. 고개를 고아박고
한참 뜸을 들이던 선돌이가,
  "그렇담 저 부담짝들이 무엇이란 말이냐?
짐작 가는 일이 있다는 게여?"
  "아편이 아닐까요. 되국 밀매상들에게
받아오는 아편이 분명합니다요."
  "부담농들이 열댓이나 되어 보이는데
가구를 모조리 족쟁이로 만들어도 남을
양이 아닌가."
  "그중에 몇은 황화짐이겠지요."
  "자네 보아하니 그 부담짝에 붙어온
쥐새끼처럼 환하게 알고 있나 그래?"
  "짐작인즉슨 그러하다는 얘기지요."
  "설마 시전붙이들이 잠상질로 치부를
하려 들까."
  "설마설마하다 앞집 처녀 놓친다는 말도
듣지 못했습니까. 외전에서들 물화를
도집하고 시새들을 농하는 바람에 시전이
피폐를 보고 있는 지가 오래되지
않았습니까. 시전붙이들이 이제 와서야
형용만 남아 바지저고리들만 걸어다니는
꼴이 되었습지요. 아편 밀매라도 해서
궁가에 재용을 대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하였습니다. 기왕 선김에 한번 부닐어서
점고를 해보시지요."
  "도대체 저 차인놈들의 상전은
누구일까?"
  "저도 그걸 알려다가 따귀만 맞고
쫓겨났습니다. 행수님은 언변도 그만하시고
외양도 그럴듯하시니 한번 건너가서
화햇술이라도 먹자 하고 안면을
터보십시오."
  해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한 선돌이가
벗었던 길목을 다시 꿰고 행전 친 다음
상방으로 건너갔다. 마침 문지방을 베고
누워 물것들을 쫓던 한 놈이 벌떡 반몸을
일으키며 뉘시냐고 불량스럽게 물었다.
  "행수님을 뵙자 하오. 마침 시생의
동패가 돌입하여 수선을 피웠다기에
반실(半失)이라 그렇게 된 것입니다."
  "거참, 을사년 주린 가마귀 빈 측간
드나들듯 한다더니 원. 썩 불러나지 못하고
부아를 돋두는 데는 이골이 난 인사들이군.
화해(和解)고 나발이고 싫다는데 왜 자꾸
건너와서 성화를 부리나 그래?"
  그때, 봉당에 서 있던 선돌이가 흰자
많은 눈자위를 굴리며 위인에게 꾸지람을
안기는데,
  "발칙한 놈, 말본새가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냐? 웃는 얼굴에 침 뱉지 않고
먹고 있는 개는 쫓지를 않는 법이다.
하물며 도리를 찾아 이치에 맞추고 갈피를
찾아서 화해 말씀 올리자는데 뉘게다가
솔잎상투를 까딱거리며 버릇없는
말대답이냐? 내 꼴이 면추가 못되어 주제
명색이 행수 노릇이다, 이놈."
  "이놈 봐라? 얻다 대고 간대로 호놈이여?
이놈, 행수면 다냐? 행수도 행수 나름이다
이놈. 산중 도방놈이 철점 동무 맛 좀
볼래?"
  위인이 맞장구를 치고 기어오르는 품이
아무래도 셈평이 잘못되었는가 싶은데,
선돌이가 다짜고짜로 퇴로 쫓아올라가서
위인의 뒷고대를 냉큼 잡아채고서는
왼발걸이로 일같잖게 객점 마당에다 꼰질러
박아버렸다. 상투를 마당 귀퉁이에다
꼬아박은 놈이 채 일어나기도 전에 선돌이
뒤미처 쫓아가서 궐자의 뒷덜미를 밟고
서서 호령이었다.
  "이놈, 행수도 행수 나름이라 했것다? 키
큰 놈이나 키 작은 놈이나 하늘 보고
  밟고 있는 발을 떼고 궐자를 번쩍 치켜
둘러메고 두어 번 헹가래를 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바자구멍 아래에 놓은
오줌장군에다 상투째 곤두박아버렸다.
궐자가 거꾸로 박힌 채로 두 발로 허공에다
발장구를 치고 있는 참에도 상방
패거리들은 꿈쩍 않고 두 사람의 거동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놈들 아니래도 저녁 먹은 것이 관격이
되어 울화통이 치밀던 판에 잘되었다.
몇놈이든 나와봐라 육젓을 담가주마."
  호기있게 다짐한 선돌이가 짚신감발을
죄어 신는데, 한 사람이 상방 지게문을
열고 마루로 나서는 것이었다. 키꼴이
훌쩍하고 어깨가 장대하여 장골값에 갈
만하고 때벗은 품이 산골 농투성이 같지도
선돌에게 손짓하며 부르기를,
  "여보시오 형장. 그렇게 화증만 돋우지
말고 이리 와서 앉으시지요."
  선돌이가 소매를 걷어붙이며,
  "넌 웬놈이냐?"
  "시생이 진작 형장께 초인사 올리지 못한
불찰이야 있습니다만 장사치들끼리 타관
객점에서 이런 난장판을 벌인다면
객점거리에 빈축이나 살밖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결기 삭이시고 이리 오시오."
  궐자가 싸개통을 가로막고 나섰으되
선돌을 상종하여 새삼 주먹다짐을 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마루로 오를 핑계가
없어 주저주저하는판에 궐자가 말을
이었다.
  "이웃에 조명나면 낯이 무어요. 어서
  깍듯한 궐자의 공대에 선돌이 못 이기는
체 마루 모서리에 엉덩이만 걸치고 앉았다.
  "우리도 벌서 초벌 요기는 한 후입니다만
화햇술이라도 건네면서 초인사 나누기로
하지요. 원수를 맺었다 풀었다 하는
오입판에서도 화햇술 한 자리면 사화가
된다지 않았습니까."
  스물대여섯이나 되었을까말까 한 궐자는
위엄있게 수하의 짐방 한 놈을 불러서
술상을 차려오게 일렀다. 술상 나오기를
기다려 궐자가 먼저 깊숙이 고패를
떨어뜨리며 인사 수작을 올리는데,
  "시생은 본디 함경도 명천(明川)
태생으로 이가(李哥) 성 가진 용익이라
합니다. 객리 행상길에서나마 형장을 뵙게
되어 다행입니다. 대소가 과갈간들이 두루
하십니까?"
  선돌이 딴전하고 고개를 돌리고 있다가
성가신 듯이,
  "나는 두자 이름으로 선돌이라 하오.
의지간 하나 없이 부지거처하며 팔도를
떠다니는 부평초 신세라 성명조차
선돌이라오. 식솔이고 소생이고 천지간에
나 한몸뿐이외다."
  "우리 동패들은 지금 서울로 작로하는
길이지요. 발행한 지가 사흘째가
된답니다."
  "어느 고을에서 떠났소?"
  "단천(端川)을 떠나긴 하였으나 꼭히
어디서부터라곤 할 수 없지요. 시생도 집
떠난 지가 십년에 가깝습니다."
  그제서야 선돌이 다소 눅은 낯색을
  "우린 평강까지 갔다가 올라가는
광주고을 송파 쇠전꾼들이오. 서로
행매하는 물화가 다르고 또한 풍속이 다른
고을 태생들이라 할지라도 사해가 형제
같아 의리가 엄중한 판에 초인사 올리고
안위를 묻자 하는 내 동패를 따귀 때려
내쫓는 법이 어디 있소?"
  "우리 짐방 한 놈이 좀 별미쩍어 저지른
실수이니 괘념치 마십시오."
  "우리야 괄시받아 마땅한
난전붙이들이오만 동무들은 서울 어느 전방
차인들이시우?"
  "동패들 중엔 육의전의 짐방들도
있습니다만 시생은 서울이 초행이나
다름없지요. 마침 형장께서 경기지경까지
올라가신다 하니 행로중에 짝패가
  "몽금짐들은 무엇이오?"
  선돌이 슬쩍 퉁기자, 이용익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한다는 말씀이,
  "바리랄 것도 없습니다. 약초두 있고,
상목이며 비단도 있습니다. 조금 전에 우리
방에 와서 부닐던 동무님의 눈치를
보아하니 우릴 잠상꾼들이나 아닌가 하는
눈치입디다만 우린 모리배들은 아니지요.
삼남의 연해 고을이나 남양만에서 왜물과
당화를 거래하는 잠상꾼들이 득실거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가막가치도 넘나들기
어려운 관동지경 산골에서 무슨
잠상질이겠소."
  "서울에 당도하면 마포 객주로 찾아가실
작정이요, 시전의 도가로 찾아가실
작전이시오?"
없으니 서울에 당도부터 하고 나서 작정할
일입니다."
  이용익이란 위인이 말본새가 그런대로
공손하고 장력이 있어 보이되 자제할 줄도
알아 보이니 그의 수하 짐방을 오줌장군에
처박았던 일이 그제서야 조금씩
무안해졌다. 마침 멀지 않은 이웃에서 새
집을 짓고 성주받이굿을 벌이는 구경거리가
있다 하여 대부준이 그 집으로 몰려가고
객점 마당은 모깃불 연기만 자욱할 뿐
한적한 판이었다.
  이용익의 담론이 제법 공손하고 수작도
사근사근하나 자신의 속내만은 드러내지
않으려고 말머리를 이리저리 돌려대는
흔적은 역력한지라 선돌은 내심
우격다짐으로만 상종할 인사가 아니란
폭배(暴杯)한 뒤에 순을 돌리니 빙긋이
웃으며 잔을 받던 이용익이 물었다.
  "요사이 농우소 시세는 어떻습니까?"
  "굽이나 뗄 만한 두습(말이나 소의 두살)
정도면 스무 냥, 푸주할 만한 것은 삼사십
냥이오."
  "삼십 냥이면 목수 한 달 삭료와
맞먹는군요."
  "그렇지만 소도 물종으로 따지면
생물이요, 낙가(落價)가 되어 패에 들고
돌림병이라도 들어 파(破)가 끼게 되면
여축없이 밑천을 놓게 되어 있소이다.
솟보는 경우라도 당하면 그 또한 벌청하기
힘드오. 그건 그렇고, 아갓번 내게 봉욕한
짐방이 철점 동무 행세를 보이겠다고
벼르던데 그건 무슨 소리요?"
같이했던 위인이었기에 불쑥 내뱉는 말이
그랬던 것이지요."
  "잠채꾼이었군."
  "그만하면 설분이 되셨을 터이니 조금
전의 사단은 덮어두시지요."
  "우리 계집 둔 술청에라도 찾아가서
소창(消暢)이나 합시다."
  "내일의 행역이 남았으니 그만
주무십시다."
  선들이 가져온 술 두 방구리를 거의
혼자서 바닥을 본 뒤 객점을 나섰다. 취한
김에 장구소리가 나는 굿판으로 발길을
놓았다. 가근방 이웃이 다 몰려나와서
굿구경을 하고 있었다. 기웃기웃하다가
굿판 가녘에 나와 앉은 남색짜리 계집에게
불쑥 묻기를,
  계집이 앉은자리에서 굽도 떼지 않고
할끔 선돌을 아래에서 위로 치떠보고는
살천스럽게,
  "졸곡(卒哭)에 뛰어든 개처럼 대중없이
짖지 말고 저리 비키시오. 도무당이면
어떻고 선무당이면 무슨 소간사요?"
  "허 고년, 살오른 벼룩처럼 제법
폴싹거리는 성깔을 보아하니 그맛은 톡
쏘는 고추장맛이렷다. 어디 풀섶으로 가서
나하고 가죽방아나 찧어보지 그러냐."
  "불알이 원수라더니 그 모진 군포(軍布)
세렴에도 저런 놈은 왜 살려두었을까.
아무리 색에 밭은 놈이기로서니 패설이
저리도 더러울까. 행색하구가 천출내기
상로배인가 본데 이런 못된 소행머리가
어디 있나. 저리 비켜, 개주둥이에서 시궁
  "오늘 밤 나하고 같이 자세. 내 하늘이
노랗게 보이는 행방술을 알고 있다네."
  "이런 개호주도 안 물어갈 더러운 놈을
보았나? 상로배가 여항에 기어들어서
대중없이 찍자를 부리다간 동리매 얻어맞는
것을 네놈도 알겠지?"
  "이년이 두고 보자 하니 꽤나 조빼고
있네그려? 네년이 몸을 사려 정절문을 세울
것이냐? 촉새처럼 주둥이만 나불대지 말고
내 앞전 몇닢 찔러줄 터이니 생광으로 알고
날 따라오너라 이년."
  "에끼 순, 날벼락에 대갈통이 으깨져서
뒈질 놈."
  "이년, 우선 사추리 점고부터 한번
해볼까."
  그가 해거(駭擧)를 부리려 들자마자
있는 구경꾼들 뒤통수에 대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에쿠, 사람 살류. 이놈이 사람 잡네."
  선돌이 육담에 패설이 낭자하였으되 손끝
한 군데 건드린 사실은 없건만 계집은
걸쭉한 악담을 내쏟으며 봉당에 나자빠져서
복장거리로 포달을 떨었다. 굿판을 발칵
뒤집어놓은 계집의 왼소리에 졸란 마을의
장절들은 억병으로 취한 장돌림의 발치
아래서 뒹구는 계집을 보았다. 얼추 사단을
알아차린 장정들이 다짜고짜 선돌의 괴춤을
낚아채고 단매에 마당 한가운데다 패대기를
치고 털메기 짚시으로 짓밟았다. 선돌이
역시 장력이 남다르다 하나 모둠매에는
견딜 재간이 없었다. 더욱이나 새 집을
짓고 성주받이 굿판을 벌이는 중에
놓았으니 이는 누대(累代)의 향화가
끊어지고 허다한 가권(家眷)을 구렁에
몰아넣을 뜬것[浮行神]이 굿청에 뛰어든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되었다. 주인고
깍짓동같이 든든한 장정들이 달려들어서
아주 물고를 낼 판국이었다. 선돌의
노계머리를 뒤틀어 회술레를 돌리다간 댓돌
위로 끌고 가서 이마를 짓쪼는데 금방
이마에서 흘러내린 핏물이 댓돌을
적시었다. 굿구경 왔던 동패들이 한 패는
뜯어말리고 한패는 객점으로 쫓겨났다.
굿청은 쑥밭이 되었고 부녀들은 볼을
싸매고 달아나고 아이들은 볼이 터져라
울어댔다. 선돌이가 사정없는 사매질에
필시 줄어나는가 싶은데, 그때 눈자위에
살기등등한 장정이 굿청에 뛰어들었다.
장정들을 손에 잡히는대로 내리곤두박았다.
허리가 발길에 차여 바자구멍에 상투를
처박은 놈, 박이 터져 선혈이 낭자한 놈,
불알을 차여 모가지를 빼올리고 고추 먹은
시늉 하는 놈, 피가 흐르는 삭은 코를
싸매고 거꾸러진 놈, 고깃값도 못하고
달아나다가 측간 구멍에 다리가 빠진 놈에,
형세가 도망 못하면 죽을 판이었다. 그대
이용익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이놈들, 사잣밥을 챙겨먹었거든 패를
지어 대들어봐. 우리가 누군 줄 알고 감히
산골 농투성이들이 손찌검이냐? 아무리
외방 물정에 어둡고 미욱한
산중놈들이기로서니 이런 방자를
저지르다니. 네 산중놈들이 우리 장사치들
아니면 어디 소금 한 톨, 자반비웃 한 마리
시비분간이 부족하여 무녀 따위를 상종하여
기롱하였기로 네놈들 고장에 찾아든
타관바치를 거리송장으로 만들 작정이라니,
천하의 이런 홀대가 없다."
  이용익의 호령하는 품이 우렁차고 그
허우대가 당당한 데 넋이 빠진 것인지,
아니면 방앗고같이 튼튼하던 마을 장정
대여섯을 눈 깜짝할 사이에 요정내버린
것에 기가 질렸는지 집주인과 동소임은
대꾸가 없었다. 텃세와 나이 덕과 언변
힘으로 말상종깨나 할 수 있다는 위인은
동소임뿐인지라, 위인이 머쓱거리고
나서면서,
  "댁네는 함자를 뭐라고 부르시오?
보아하니 연소한 분이 장력이
대단하시구려?"
  "그렇다면 나와 한번 겨뤄보겠단
말이냐?"
  "원 별말씀입니다. 굿청이 삽시간에
적막강산이 되어버린 터에 무슨
대적입니까. 다만 굿청이 이 모양이
되었으니 수습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수하사람들을 휘동하여 하처잡은 객점으로
돌아가시는 게 좋을 듯하여 드리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추쇄한다든지 또다시 행패
거조를 보이려 했다간 장텃거리를 아주
도륙을 낼 터이니 그리 알아라."
  봉당 앞에 널브러져 사지가 제각각으로
놀고 있는 선돌을 잡아 업고 객점까지
돌아오긴 하였으나 차후 문제가 난사였다.
호령과 장력으로 싸움판은 일단 수습이
가만있지는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조만을 모를 뿐이지 앙갚음을 하러
들이닥칠 것은 뻔한 조짐인데 생각다 못한
이용익이 자리보전한 선돌에게,
  "동무님이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나 도리가 없소이다. 밤이 새기 전에
여기서 뜨는 게 상책이오."
  "그렇다면 먼저들 뜨시오. 난 상관이
없소."
  "의절을 당하기는 싫소이다. 우리가
이로써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사실이
아닙니까? 동무님을 떠메고 가는 한이
있더라도 같이 가야합니다."
  선돌이 퉁퉁 부어오른 입으로,
  "내 동패들이야 괜찮지만 동무님의
수하에 있는 복수(卜手)들에게까지
지청구를 듣는다 하면 체면이 아니지
않소."
  "이판사판하는 경황에 체면이 대수요."
  "남에게 민줏감이 되긴 싫소이다."
  "객소리 그만하시고 가십시다."













  두 패거리가 일행이 되니 열댓이나 되는
상단이 되었다. 연천의 객점에선 이용익이
나서서 마방 낼 객점을 물색하고 포천을
거치는 동안도 봉적당한 일은 없었다.
일행이 솔모루에 득달한 이틀 동안 선돌은
사뭇 들것에 들려오거나 들것이 거북하면
동패들에게 업혀 왔다. 역시 마방 낼
객점을 물색하자니 평강으로 내려간 적에
하처 잡았던 객점을 겨냥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이용익이 대신하여 객점의 숫막쟁이와
흥정을 트는 판인데 어디선가 어둑발이
내리는 참에 난데없는 풍물 잡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행기하러 나갔던 송파 쇠전꾼 한
놈이 허겁지겁 객점으로 뛰어들며
  "여보게들, 장거리에서 사당패들
곰뱅이가 텄다네."
  "아니, 불각시에 또 웬 굿청이여?"
  철원에서 굿청에서 덧들이다 덴 깐이
있는지라 동패가 눈을 까뒤집고 물었다.
  "내 그 패거리들이 묵고 있는 옹기전
모퉁이를 돌아왔는데, 희한하게도 우리
삼남 뱃길에서 동행했던
봉은사패들이었다네."
  "아니, 그놈들이 여기까지 기어올랐나
그래?"
  "발 달린 짐승이 어딘들 못 가겠나. 내게
살수청을 들었던 그 애사당년이 글쎄
첫고등에 나를 알아보고는 낯짝에 넘칠 듯
어린양을 담고 추파를 던지는데 나는
사지가 오그라드는 듯했다네. 그러고보니
모두 해끔해진 것들이 그때 신색들하구는
생판 별미들이여."
  "햐, 이거 때난봉났네."
  "말도 말게. 이것들이 근기(近畿)지경을
거치면서 어디서 후려온 계집들인지
암동모만 꿰어봐도 열 손가락으로 모자랄
판여."
  선돌이 아랫봉노에 누워서 동패들이
중구난방으로 지껄여대는 음담을 듣자 하니
속에 천불만 솟았다. 애사당들 흐벅진
살꽃을 맛을 들인 송파패들은 구경가고
싶어 발동을 하다가 저희들끼리 해우채를
챙기며 입채들을 서느니 한참 수선을
피우다가 끝내는 작당하여 놀이판이 벌어진
장텃거리로 쏟아져 나가고 없었다.
  그렇지만 이용익 수하에 있는 복수들은
봉노를 지키고 있었다. 한 패는 마당으로
내려와서 멍석을 깔고 몸을 뉜 채 방귀나
붕붕 뀌고 있었으나, 멀리서 바람결을 타고
흘러오는 놀이판의 자지러지는 풍물가락에
귀를 빼앗기고 있었다.
  그때, 식자깨나 들어 보이는 한 선비가
호젓이 객점 뜨락으로 들어섰다.
열댓살이나 먹어 보이는 떠꺼머리 종자를
거느린 도포짜리는 삽짝 안으로 들어서기
바쁘게 길게 통자를 넣었다. 노랑머리에
북상투를 한 주막쟁이가 엎어질 듯
달려나가서 일숙(一宿)을 청하는
도포짜리에게 길 건너편 고샅에 있는
보행객주(步行客主)를 가리켰다. 그만하신
지체라 하시면 보행객주에서 하처를
잡으셔야지 천뜨기 보병것들이나
숫막이 가당하시냐고 점잖게 거절을 하는
숫막쟁이의 대꾸가 제법 그럴싸한데,
난색이던 도포짜리는 고꾸라질 듯 무거운
행담을 지고 있는 나이 어린 종자를 힐끗
뒤돌아보고 나서,
  "여보게, 내 설령 도폿자락으로 복용을
하였기로 상것들과 하룻밤 동숙을 한다
하여 욕될 것이 아닐세. 기왕 주객간에
수작이 오간 터이고 하니 정한 봉노 하나만
비워주게나."
  "말씀은 생광이나 사정인즉슨
그러합니다. 쇤네의 숫막은 냄새나는
부들자리에 쥐똥이 낭자하게 깔려 있고
또한 물것이 창궐하고 끼니 공궤래야
풀나물에 보리죽이 기껏입니다요. 또한
홀저에 상단들이 들이닥쳐서 나으리께
  숫막쟁이가 지성으로 사정을
토파하는데도 도포짜리는 발길 돌릴 요량이
없어 보였다.
  "보아하니 자네 집은 봉노가 여럿인데
내게 내어줄 봉노 하나가 없겠나? 밤저녁에
일숙을 청하는 과객을 내쫓으려는 자네
버르장머리는 무언가? 협호라도 좋으니
봉노를 내주게."
  텁석부리 수염에 치찢어진 고리눈하며
도포짜리는 봉은사 사당패의 꼭두쇠였다.
그러나 그의 모색을 알아챌 만한
송파패들은 모조리 장거리로 몰려나간 뒤라
위인이 사당패의 꼭두쇠란 것을 알아볼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숫막쟁이는
아무래도 내키지 않는 듯,
  "보행객주에 봉노가 없다 하면 장거리를
시원한 다락 위로 올라가시면 경개도 좋을
뿐만 아니라 바람도 좋습니다요."
  "달빛 아래 박꽃을 바라보며 풍류하는
맛도 나쁘지 않을 터이지. 그러나
공사(公事)로 나선 길이 아니니 원(院)에
묵을 까닭이 없지 않은가. 과객이 처음
겨냥한 객점에서 이처럼 방색을 당하기
날이나면 온 동리를 돌아도 또한
거절당하기 일쑤이지. 기어코 봉노
내놓기를 마다한다면 한뎃잠이라도 잘
수밖에."
  도포짜리로 별복한 꼭두쇠는 난색 짓는
숫박쟁이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장 마당을
가로질로 멍석 한견으로 가서 좌정하고
말았다. 뒤따르는 떠꺼머리 하님도 말이
없고 또한 행동거지가 불량스럽지 않았다.
돌아서려는데,
  "어디 한저녁이라도 두어 술 뜰 수
있겠는가?"
  "예, 곧 지어올립지요."
  "지어올 것까지는 없네. 그러지 말고
술상이나 두어 개 차려 내오게나."
  "술은 있습니다만 안주가 도통 주변할
거리가 못 됩니다."
  "그 사람, 수작은 공손한 척하면서 웬
잔말은 그렇게도 많은가. 안주가 마련이
없다 하면 내가 걱정할 일이지 자네가
안달할 까닭이 무언가."
  호령이 곧 꾸중이라 숫막쟁이가 더
이상은 채근을 못하고 술상 둘을 주변하여
마당으로 내려왔다. 행담을 메고 왔던
종자가 행담을 풀고 안주 될 만한 것들을
돝고기구이에 황조기에 두부졸임이며
꿩장을 곁들이는 주변하며가 도통 산중
행로중엔 듣도 보도 못할 것들이었다.
아니래도 바람결을 타고 귀를 간지럽히는
풍물소리에 목이 저절로 컬컬한 판이던
복수들이 모가지를 빼어올리고 육물냄새가
푸짐한 술상을 곁눈질하기 시작하였다. 그
눈치를 알아챘음인지 독작을 하고 있던
도포짜리가 곁에서 시중 들던 종자에게
뭐라고 귀엣말을 하였다. 종자가 수어
수작을 하고 나서 술상 하나를 멍석
한편으로 옮겨놓으면서,
  "댁네들 이리 오십시오. 저녁 뒤에
출출할 터인데 이리 와서 몇순배
돌리십시오."
  "아닙니다. 어찌 외람될 수가 있겠소."
건성으로라도 체면치레를 한다는 것쯤은
나어린 종자도 알고 있는 터라
뭉기적거리며 손사래를 치는 복수들 소매를
붙잡아 앉히고 순배를 돌리는 것이었다.
도포짜리가 난데없이 물려준 대궁상이라
처음에는 사양들이 낭자하다가 나중엔
패거리 전부가 술상 앞으로 몰려앉았다.
그러다가 또한 변고가 일어났다. 멀찌가니
따로 앉아 천작(淺酌)을 하던 도포짜리가
이번엔 합석을 하자고 채근하고 나선
것이었다.
  "자네들 그럴 거 없네. 나 또한 난생
처음 타관 출입으로 객회가 쓸쓸하고 같이
담론할 동행도 없으니 이리 와서
합석하세."
  복수 중에 나이 지긋한 위인이 술사발을
  "나으리, 쇤네 같은 상것들을 그토록
보비위하시니 생광입니다만 반상이
유별하고 또한 남의 이목이 멀쩡한 판에
동석이라니요, 도무지 가합한 자리가
아닙지요."
  "그 무슨 소린가. 내 어찌하다 보니까
지벌(地閥)이며 문망(文望)이 그럴싸한
가문에서 배태된 것뿐일세. 자네들과
오장육부 육천 마디 뼛골 중 한 군데도
다를 바 없고 또한 내가 글줄이나 읽었다
하나 삼라만상이 저물고 돋아나는 이치를
가늠하지 못하는 것도 자네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네. 그 하찮은 반상의 도리에
얽매이어서 사람의 정의를 이토록 메마르게
한단 말인가. 파탈하고 이리와서
합석하세."
깎이십니다요."
  "그깐 체모 깎이면 어떻고 좀이 슬면
어떤가? 내가 저승에까지 보첩을 안고 갈
것인가. 자네들이나 나나 인간사의 외롭고
화합한 것이며 덥고 추운 것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여. 그러지 말고 나와 동루하면서
오늘 밤 이 객점의 술독이나 긁어 보이세.
술이 취하면 공대와 해라는 집어치우고
서로 평교(平交)로 대하여 피차 간격이
없도록 하세."
  양반의 행실치곤 괴이하나 극력 청하는
김에 모두들 심기가 동하여 합석하고
말았다.
  일면식도 없는 선비와 상것들이 동석한
술자리인지라 나중엔 이용익도 동석이 되고
말았다. 송도순배로 술자리가 한창
하나가 객점 마당으로 들어섰다. 역시
숫막쟁이와 길게 수작을 나누는 품이
하처잡을 곳을 찾는 모양이었다. 봉노
하나만 비우면 먼저 온 도포짜리와 동숙이
될 듯하여 봉노를 치울 동안 뒤에 찾아온
위인을 멍석 귀퉁이에다 등메를 덧깔고
좌정을 시키었다.
  방으로 들 채비만 하고 앉았던 나중 온
도포짜리가 반몸을 비틀고 술상머리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간 금방 먼저 온
도포짜리에게 능멸하는 눈초리를 하고 대뜸
반말로 묻기를,
  "내 자네의 행색을 보자 하니 시골
양반이 분명한데 어디 사시는가?"
  통성명도 없는 터수에 첫수작부터 하게로
내붙이는 위인의 말에 발끈할 만도 하건만
이르기를,
  "예, 시생은 관동지경 평강고을 탑고개에
살고 있습니다."
  그의 깍듯한 공대에 어리석음을 금방
알아챈 나중 온 위인이 그말을 냉큼 받아
되쏘아붙이기를,
  "가관이로군. 내 언제 자네더러
호적단자(戶籍單子)까지 개어올리랬나?
고을 이름만 대면 그만이지."
  "행차(行次)께서 묻자오시니 소상히
밝혀올리는 것이 도리가
될듯하여서입니다."
  "어디로 행로중인가?"
  "족인(族人) 중에 죄침(罪侵)한 위인이
생겨 형조로 이송된 지 두어 달이
되었지요. 그래서 약간의 전장(田庄)을
가는 길입니다."
  "서울에 아는 이가 있는가?"
  "육조 앞 거리 일가붙이 하나가 살고
있는데, 병조에서 구실을 살지요."
  "자네가 양반이라 하면 어찌 족인 중에
군역(軍役) 치르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괴이한 양반이 아닌가?"
  "향곡에 뭍혀 얻어들은 풍문입니다만
듣자 하니 상감의 주변에도 아당(阿黨)들이
있다고 하였습지요. 그 연줄을 잡아
가까스로 공명첩(空名帖)을 얻었습지요."
  그때 술상가에 앉았던 복수들이며 종자가
왁자지껄 웃움보를 터뜨리는데 우세에다
무안을 당한 위에 체통에 똥칠까지 한 나중
온 도포짜리가 낯짝이 게껍데기 되게
붉히고 나서 손바닥을 내뻗치고,
시골 양반이란 놈이 감히 상감을 능멸함에
기탄없고 또한 양반의 지체에 똥칠을 하려
드느냐?"
  그러나 먼저 온 위인은 눈섭 한번
까딱하는 법도 없이,
  "시생이 하찮은 시골 생장이라 하나
만전을 가지면 고을살이라도 능히 얻는단
말을 들었습니다. 상공께서는 어찌
혼자서만 근엄한 도덕군자로
자처하십니까."
  "네 이노옴, 나는 처음부터 네놈의
거조가 눈에 거슬리었다. 아무리 돈을 주고
직첩을 산 양반이라 하더라도 행세가 따로
있어 체모를 중히 여겨야 하거늘 장텃가
몰상식한 백성들이 빤히 바라보는
객점거리에 퍼질러 앉아서 천뜨기 부랑배인
이 아니었다. 그러나 마루로 오를 핑계가
술추렴을 벌이다니. 이는 장폐를 당해
마땅한 경상(景狀)이 아니냐. 천지간에
이런 창피가 없고 이런 폐단이 어디
있느냐?"
  "행차께서도 우리와 같은 멍석에
좌정하였으니 성것들과 면대하긴 매일반이
아닙니까?"
  딱선을 활활 부치고 있던 나중 온
도포짜리가 그 말 한마디에 화를 꼭뒤까지
치밀고,
  "이 발칙한 놈. 본데없는 하천들과
어울려 술추렴이더니 금방 말대꾸가
불공스러우냐? 이놈이 감히 나를 넘보다니.
네놈을 아문으로 잡아들여 압슬(壓膝)에
포락을 푸짐하게 안기리라."
  그 한마디에 경겁(驚怯)한 먼저 온
못하고 턱만 들까불렀다. 사세는 큰 풍파를
겪어야 할 판인데, 난처하게 된 것은
이용익과 동패인 복수들이었다.
마음속으로는 먼저 온 도포짜리와 싸잡히어
봉욕하고 우세를 당한 것이었으나 이치는
반명을 한다는 위인들끼리 싸움이니 간대로
뛰어들 수는 없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먼저 온 도포짜리를 빗대어 욕먹은 것은
그들인지라 싸움에 뛰어들 빌미만 찾고
있는 터에 마침 나중 온 위인이 딱선을
내던지고 술상머리로 뛰어들어선 먼저 온
도포짜리를 잡아끌고 눈 감짝할 사이에
사립 밖으로 내닫는 것이었다. 차후의
사태가 사뭇 긍금하고 또한 무슨 핑계를
대든 사태는 수습하고 봐야 했다. 좌중에
앉았던 이용익과 복수들이며 숫막쟁이며
뒤따라나갔다. 끌려가는 위인이나 끌고
가는 위인이 서로 게거품을 내몰고 고샅을
빠져나간 사이에 객점에 남아 있는
사람이라곤 누워 있던 선돌이뿐이었다.
  그때, 바른손편 뒤꼍에 숨어 있던 장정
대여섯이 객점 안 마당으로 뛰어들었다.
족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짚신에는 감발을
하였고 수건으로 입언저리를 동여 누깔들만
번들거렸다. 그들은 겨냥해두었던 상방으로
뛰어들었다.
  "다른 부담짝은 건드리지 마라."
  그 중에 한 놈이 그렇게 엄금을 하고는
바람벽을 의지하고 쌓아둔 부담짝들에서
'申錫周 新房入納'이란 찌지[附票]가 붙어
있는 부담짝만을 골라 뒷담방 밖으로
넘기는 것이었다. 그중에 나중 남아서 뒤를
넘어가려는 한 놈을 불러 세웠다.
  "나으리, 한 놈이 봉노에 남아 있는 듯
합니다."
  나으리라 불린 자가 꿈쩍 놀라며,
  "웬놈이냐?"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내는 걸 보니
득병하고 기신(氣神)을 차리지 못하는
날송장인 듯합니다."
  "병추기인지 술에 곯아떨어진 놈인지
들어가보자."
  두 놈이 되짚어 봉노로 들어가보니 귀신
형용을 한 포병객이 낙맥하고 누워 있었다.
잠시 주저하던 한 놈이,
  "나으리, 날이 난 김에 이놈을 살변을
내어버립죠."
  "가만, 살변만이 능사는 아니다. 이놈
그중에 두 눈만은 온전하구나. 이놈, 눈깔
하나는 보전토록 조치할 터이니 아예
우리를 보았다고 토설해선 안 되느니."
  죽은 듯 입을 닥치고 누워 있었어야 했을
선돌이가 기력을 모아 한마디 대꾸한 것이,
  "이놈들, 어느 적굴놈들이냐......"
  나으리라 불리던 자가 몇각을 노리고
있다가 옆에 선 놈이 대뜸 대통을 눈자위에
박고 뒤통수를 쳐서 눈알을 빼었다 다시
박아 선돌을 단김에 애꾸로 만들고 말았다.
봉노벽에 피가 튀어 매화를 그리고 창자가
끊어져 나가는 듯한 선돌의 비명소리가 빈
술청을 흔들어놓았다. 나으리란 자는
태연하게,
  "이놈, 이제 보름 보기가 되었으니 우릴
보았다고 토설해선 안 된다. 만약 입정을
물론이요, 혓바닥까지 뽑아버릴 것이니
주둥이를 조심하여라."
  삿자리를 긁는 선돌을 남기고 두 놈은
담장을 넘었다. 음분한 계집과 젖먹이를
잃고 거의 실성한 지경에 이르러 사삿집의
계집에 지분거리다가 조리돌림을 당한
것까지는 못된 거지로 받은 응분의
풍상이라 하되 어찌해서 이토록 혹독한
재앙이 겹치는 것일까. 선돌은 피와 눈물을
함께 뿌리며 봉당으로 기어나와 뒹구는데,
그제서야 객점을 나갔던 패들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밤새 옆에 앉아서 약낭에서
사향소합원(麝香蘇合元)을 꺼내 씹어 입
속에 흘려보내고, 기름에 개어온
밀타승(密陀僧)을 상처에 바르는 등 간병에
것 같은 선돌에게 누가 한 짓이냐고
물었으나 선돌은 검다 쓰다 말이 없었다.
이용익의 몫인 부담짝은 건드리지 않고
신석주의 입전으로 가져가던 부담짝만
가져간 것을 보면 이는 화적이 아니라 분명
내막을 알고 있는 인근 무뢰배들의 소행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이용익 역시 그
부담작에 든 물화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한
봉적한 사실을 관아에 발고할 수가 없었다.
물화를 되찾았을 때 물종이 드러날 일을
생각해서였다. 되뇔 것도 없이 두 놈의
도포짜리가 객점에 나타난 것부터가
암수(暗數)였고 간계였다. 그러나 우선
바쁜 것이 선돌을 애꾸로 만든
원범(原犯)을 찾는 일이었다.
  "형장, 이제 반정신이나마 들었거든 이
토파하시오. 내가 이 원혐을
갚아드리리다."
  "모릅니다......"
  "그런 말씀 첫곧이들을 사람이 어디
있소? 아무리 무지한 놈들이기로서니
자리보전하고 누운 사람에게 이런 혹독한
난행을 부린데는 필시 그만한 연유가 있을
게요."
  "나는 이미 당한 것이니 걱정 말고
봉적한 짐바리나 추쇄하시오."
  "가근방 장거림 독전머리까지 올라가서
추쇄를 해보았습니다만 헛다리만 짚고
왔답니다."
  "아문에서 쫓아나오지 않았소?"
  "아문이 여기서 초간합니까? 그러나
아문에 고변을 할 일도 못됩니다."
  "사실은 그게 밀매품이었소이다. 그러나
시생이 화주(貨主)는 아니었지요. 태가를
톡톡히 받고 서울 시전까지 나르는
길이었지요. 그 이상은 더 묻지 마시오."
  "사정이......"
  "더 이상 천추(遷推) 말고 그놈의 견양을
대시오. 형장께서 애꾸가 되었다는 것을
생가하지 못하시오?"
  "이미 멀리 달아났을 게요. 소용없는
짓이니...... 모두가 그만둡시다......"
  "관동 산중에 늑대나 시라소니는 흔하단
얘긴 들었습니다만 이런 무뢰배들이 있단
얘긴 못들었습니다. 이는 필시 서울의
무뢰배들이 솔모루까지 나와 출패(出牌)한
것이 틀림없소."
  이용익이 선돌의 입이 열리도록 백방으로
설득하고 꼬드기는 것이었으나 선돌의 닫힌
입은 이튿날 송파 마방에 안동될 때까지도
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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