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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소낙비

by Casey,Riley 2021.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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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낙비

밤새도록 줄기차게 내리던 빗소리가
아침에 이르러서야 겨우 그치고
점심 때에는 생기로운 볕까지 들었다.
쿨렁쿨렁 눈물나는 소리는 요란히 들린다.

김유정 지음

소낙비
김유정 지음
▣ 저 자 김유정(1908~1937)
해학과 아이러니를 통한 단편미학의 개척자. 궁핍과 병고에 시달리다 요절한 천재작가
운명의 여인 박녹주를 향한 무서운 사랑
김유정은 서른을 넘기지 못하고 요절한 작가다. 짧지만 굵은 예술가의 삶을 살았던 그의 삶에는 지울
수 없는 두 사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 두 사람은 형과 박녹주라는 여인이다. 유정에게
형 김유근이 감당하기 힘든 현실적 고통을 제공했다면 운명의 여인 박녹주는 씻을 수 없는 정신적 상
처를 남겼다.
스물 두 살의 젊은 청년이었던 유정은 1929년 어느날 우연히 목욕탕에서 막 목욕을 마치고 나온 여인
과 마주쳤다. 그 순간 유정은 자신이 그 여자에게 사로잡혔음을 직감한다. 여인은 다름 아닌 당대 이
름높던 소리꾼(기생이라는 설도 있음) 박녹주였다. 유정은 녹주를 만난 이후 자신의 모든 정열을 그녀
를 사랑하는데 바쳤다. 유정의 녹주에 대한 사랑은 너무나도 정열적이고 거침없어 서울 거리에 소문
이 자자하게 퍼질 정도였다. 당시 박녹주는 유정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 스물 일곱이었다.
다음날부터 유정은 매일같이 녹주에게 편지를 보냈다. 유정의 녹주에 대한 사랑의 열정은 『두꺼비』
와 미완성 장편인 「생의 반려」에 고스란히 드러나는데, 애절한 연애편지와 사랑의 감정을 담은 혈
서를 보내거나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함께 죽자는 협박까지 했다. 그러나 박녹주는 자
신의 동생뻘인 유정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 역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다. 이 모든
사실을 알고 나서도 유정의 녹주에 대한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매일같이 당신을 연모하오. 녹
주, 너를 사랑한다. 와 같은 구절들로 가득 찬 편지를 보내고, 녹주가 있는 곳이라면 언제나 모습을 드
러냈다. 녹주를 향한 무서운 사랑에도 불구하고 녹주는 끝내 자신의 마음을 열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
는 유정을 만나 유정의 사랑을 거절했다.
녹주로부터 사랑을 거절당한 유정은 괴로운 심정을 달래기 위해 매일같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녹
주에 대한 사랑을 보상받기 위해 방탕의 나날을 보냈다. 그는 평생 자신을 짓눌러 왔던 폐병과 치질
이라는 병을 얻게 됐다. 짝사랑으로 인한 괴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곧 제
적당한 유정은 녹주가 있는 서울에 있을 수 없다며 고향인 실레로 돌아갔다. 폭음과 방탕한 생활로
얻은 폐결핵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박녹주에 대한 자신의 짝사랑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도피였다.
형의 인한 충격, 결핍 속에서 요절한 아까운 청춘
김유정은 190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본래 고향은 강원도 춘성군 신동면 실레로서 그의 선대는 이곳
에서 대대로 살아 왔는데, 부친이 서울에서 살면서 그를 낳았다. 어린 시절 비교적 유복하게 살았던
유정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은 그가 6세 되던 해 어머님을 여의고 2년 후 아버지마저 잃은
채, 일시에 고아가 되면서부터이다. 그의 유년시절은 매우 우울하고 불우했다.

- 2 -

유정의 유년시절은 형 유근으로 인해 더욱 불행에 빠졌다. 소문난 효자였던 형 유근은 열 여덥 아홉
쯤에 갑자기 난봉이 나서 조카까지 둔 형수를 내보내고 새장가를 들겠다고 하여 아버지와 갈라섰다.
이 일로 형은 하루가 다르게 술과 노름에 빠져들었고 아버지가 죽자, 재산을 탕진하기 시작해 유정이
안회남과 막역한 친구로서 휘문고보에 다닐 때는 생활이 쪼들릴 지경으로 가세가 기울었다. 형의 방
탕한 생활로 인해 유정은 이후 죽는 순간까지 극심한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게 되며, 결국 활발했던
그의 성격은 방탕과 패악을 일삼는 형으로 인해 우울하게 됐다.
유정이 박녹주에게 그토록 빠져들었던 것도 어떤 측면에서 보면 그가 유년시절 겪었던 애정의 결핍에
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휘문고보를 졸업한 후 녹주에게 불같은 사랑을 했지만 실패하자, 연희전
문 문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가난과 폐렴, 그리고 유정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던 치질 등으로 인해
학교를 중퇴하고 전국 각지를 방랑하다 고향 실레로 돌아갔다.
고향에 내려온 유정은 청년들을 모아 농우회를 조직하고 야학을 하는 등 열심히 활동하여 금병의숙
이란 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안정한 생활에서 오는 고독을 이기지 못하고 곧바로 마을로
찾아든 들병이들과 어울리고 술로 생활하는 등 방탕한 생활로 건강이 상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금광
에 관계하게 됨으로써 건강은 더욱 나빠졌다. 유정이 들병이들과 그처럼 쉽게 어울렸던 것은 박녹주
에게 버림받았다는 자괴감의 발로였다는 견해도 있다.
유정의 문학활동은 1933년 『총각과 맹꽁이』를 「신여성」9호에 발표함으로써 시작되었는데,「조선
일보」 신춘문예 당선을 계기로 문학을 통해 그간의 방황을 비로소 정리하고 정신적인 안정감과 만족
감 및 경제적 궁핍을 한꺼번에 극복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건강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고, 결국 그는
자신의 얼마 남지 않는 생을 의식하면서 작품창작에 온 정열을 쏟는 동안에도 마지막까지 건강에 대
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인체중 한 가지를 더 가진다면 무엇을 원하느냐?"는 질문에 유정이 "폐를
한 너덧 개 더 갖고 싶다"고 한 말은 그가 질병의 고통을 얼마만큼 괴로워했으며, 건강을 희구했는가
하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35년 실레를 벗어나 서울 신당동에 자리를 잡은 유정은 『금 따는 콩밭』『만무방』『산골』『봄
봄』 같은 작품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창작에 열을 올리고 고료로 약을 사 먹으려 했지만 문우
들과 어울리면서 그의 건강은 더할 나위 없이 나빠져 얼마 지나지 않아 술마저 마시지 못할 정도로
몸이 쇠약해졌다. 그 당시 그는 이상(李箱)과 각별하게 지냈는데, 이상은 『김유정』이란 소설체로 쓴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건강을 잃은 유정은 경기도 광주에 있는 매형 유세준 집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펜을 놓지 않는 채, 소
설 구상에 몰두하다 1937년 3월 28일 병마의 고통 속에서 생을 마감한다.

▣ S ho rt S umma ry
농꾼인 춘호는 흉년과 빚쟁이들의 위협과 악다구니를 피해 나이 어린 부인과 함께 야반도주하여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타관에서 흘러든 그를 따뜻하게 맞아 준 곳은 없었다. 산골마을까지
흘러든 춘호 내외는 여전히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는데, 때마침 뒷산 산 속에서 큰 노름판이 벌어진다
는 것을 알았다. 노름판을 동리의 빚이나 대충 가리고 진저리나는 산골을 떠나는 절호의 기회로 생
각한 춘호는 돈 2원만 있으면 서울 가는 데 소요되는 30~40원을 노름판에서 금방 딸 것 같지만 그 2

- 3 -

원을 구할 방도가 없다. 그래 아내에게 졸라보지만 아내는 요리조리 피하며 들어주지 않아 할 수 없
이 지게막대기로 때리며 돈을 구해 오라고 내쫓는다. 아내는 매가 무서워 몸을 팔기로 작정하고 ⋯⋯.

- 4 -

소낙비
김유정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춘 호

가난한 농꾼. 노름 밑천 2원을 얻어 서울로 떠나려는 욕심에 아내가 이주사에게 몸을 파는
것을 묵인한다.

춘호 처 가난한 살림과 남편의 무서운 매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의좋게 살기 위해 이주사에게 몸을
파는 순박한 농꾼의 아내다.
이 주사 여색을 탐내는 지주. 춘호 처와 관계를 맺고 돈 2원과 춘호에게 땅을 주기로 약속한다.

아내에게 돈 2원을 구해오라 매질하는 춘호
음산한 검은 구름이 하늘에 뭉게뭉게 모여드는 것이 금시라도 비 한 줄기 할 듯하면서도 여전히 짓궂
은 햇발은 겹겹 산 속에 묻힌 외진 마을을 통째로 자실 듯이 달구고 있었다. 이따금 생각하는 듯 산
매1) 들린 바람은 논밭간의 나무들을 뒤흔들며 미쳐 날뛰었다.
산 밖으로 농꾼들을 멀리 품앗이로 내보낸 안말의 공기는 쓸쓸하였다. 다만 맷맷한 미루나무 숲에서
거칠어 가는 농촌을 읊는 듯 매미의 애끓는 노래

. 매응! 매매움! 춘호는 자기 집 - - - 올 봄에

오 원을 주고 사서들은 묵삭은 오막살이 집 - - - 방문턱에 걸터앉아서 바른 주먹으로 턱을 고이고는
봉당에서 저녁으로 때울 감자를 씻고 있는 아내를 묵묵히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사날 밤이나 눈을
안 붙이고 성화를 하는 바람에 농사에 고리삭은2) 그의 얼굴은 더욱 해쓱하였다.
아내에게 다시 한 번 졸라 보았다. 그러나 위협하는 어조로, 이봐, 그래 어떻게 돈 이 원만 안 해줄
테여? 아내는 역시 대답이 없었다. 갓 잡아온 새댁 모양으로 씻는 감자나 씻을 뿐 잠자코 있었다. 되
나 안 되나 좌우간 이렇다 말이 없으니 춘호는 울화가 터져 죽을 지경이었다. 그는 타 곳에서 떠돌아
온 몸이라 자기를 믿고 장리를 주는 사람도 없고 또는 그 알량한 집을 팔려 해도 단 이삼 원의 작자
도 내닫지 않으므로 앞뒤가 꼭 막혔다. 마는 그래도 아내는 나이 젊고 얼굴 똑똑하겠다, 돈 이 원쯤이
야 어떻게 라도 될 수 있겠기에 묻는 것인데 들은 체도 안 하니 괘씸한 듯싶었다. 그는 배를 튀기며
다시 한 번, 돈 좀 안 해줄 테여? 하고 소리를 뻑 질렀다. 그러나 대꾸는 역시 없었다.
춘호는 노기 충천하여 불현듯 문지방을 떠다밀며 벌떡 일어섰다. 눈을 홉뜨고 벽에 기대인 지게 막대
기를 손에 잡자 아내의 옆으로 바람같이 달려들었다. 이년아, 기집 좋다는 게 뭐여. 남편의 근심도 덜
어 주어야지, 끼고 자자는 기집이여? 지게 막대는 아내의 연한 허리를 모질게 후렸다. 까부라지는 비
명은 모지락스레 찌그러진 울타리를 벗어 나간다. 잼처3) 지게 막대는 앉은 채 꼬꾸라진 아내의 발뒤
축을 얼러 볼기를 내리갈겼다. 이년아, 내가 언제부터 너에게 조르는 게여? 범같이 호통을 치며 남
편이 지게 막대를 공중으로 다시 들어올리며 모질음을 쓸 때 아내는, 에구머니! 하고 외마디를 질렀
다. 연하여 몸을 뒤치자 거반 엎어진 듯이 싸리문 밖으로 내달렸다. 얼굴에 눈물이 흐른 채 황그리는4)
1) 요사스러운 산귀신
2 ) 곯고 삭은
3 ) 금방 뒤미처

- 5 -

걸음으로 문 앞의 언덕을 내리어 개울을 건너고 맞은쪽에 뚫린 콩밭 길로 들어섰다.
너, 네가 날 피하면 어딜 갈 테여? 발길을 막는 듯한 의미 있는 호령에 달아나던 아내는 다리가 멈
칫하였다. 그는 고래를 돌리어 문안에 아직도 지게 막대를 들고 섰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어른에게 죄
진 어린애같이 입만 종깃종깃하다가 남편이 뛰어나올까 겁이 나서 겨우 입을 열었다. 쇠돌 엄마 집에
좀 다녀 올게유.
쭈뼛쭈뼛 변명을 하고는 가던 길을 다시 횅하게 내걸었다. 아내라고 요새 이 돈 이 원이 금시로 필요
함을 모르는 바도 아니었다. 마는 그의 자격으로나 노동으로나 돈 이 원이란 감히 땅뜀도 못 해볼5)
형편이었다. 벌이래야 하잘것없는 것 - - - 아침에 일어나기가 무섭게 남에게 뒤질까 영산6)에 올라 산
으로 빼는 것이다. 조그만 종댕이를 허리에 달고 거한 산중에 드문드문 박혀 있는 도라지, 더덕을 찾
아가는 일이었다. 깊은 산 속으로 우중충한 돌 틈바귀로 잔약한 몸으로 맨발에 짚신 짝을 끌며 강파
른 산등을 타고 젖먹던 힘까지 녹아 내리는 듯 진땀이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흘러내린다.
아랫도리를 단 외겹으로 두른 낡은 치맛자락은 다리로, 허리로 척척 엉기어 걸음을 방해하였다. 땀에
붙은 종아리는 거친 숲에 긁혀 매여 그 쓰라림이 말이 아니다. 게다가 무거운 흙내는 숨이 탁탁 막히
도록 가슴을 찌른다. 그러나 삶에 발버둥치는 순진한 그의 머리는 아무 불평도 일지 않았다.
가물에 콩 나기로 어쩌다 도라지 순이라도 어지러운 숲 속에 하나 둘 뾰족이 뻗어 오른 것을 보면 그
는 그래도 기쁨에 넘치는 미소를 띠었다. 때로는 바위도 기어올랐다. 정히 못 기어오를 그런 험한 곳
이면 칡덩굴에 매어 달리기도 하는 것이었다. 땟국에 절은 무렵 적삼은 벗어서 허리춤에다 꾹 찌르고
는 호랑이 숲이라 이름난 강원도 산골에 매어 달려 기를 쓰고 허비적거린다. 골바람은 지날 적이라
알몸을 두른 치맛자락을 공중으로 날린다. 그제마다 검붉은 볼기짝을 사양 없이 내보이는 칡덩굴이
그를 본다면, 배를 움켜쥐어도 다 못 볼 것이다. 마는 다행히 그윽한 산골이라 그 꼴을 비웃는 놈은
뻐꾸기뿐이었다.
이리하여 해동 갑7)으로 해갈8)을 하고 나면 캐어 모은 도라지, 더덕은 얼러 사발 가웃, 혹은 두어 사
발 남짓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동리로 내려와 주막거리에 가서 그걸 내주고 보리쌀과 사발 바꿈을
하였다. 그러나 요즘엔 그나마도 철이 겨워 소출이 없다. 그 대신 남의 보리 방아를 온종일 찧어 주고
보리밥 그릇이나 얻어다 가는 집으로 돌아와 농토를 못 얻어 뻔뻔히 노는 남편과 같이 나누는 것이
그날 하루하루의 생활이었다. 그러고 보니 돈 이 원은커녕 당장 목을 딴대도 피도 나올지가 의문이었
다.
만약 돈 이 원을 돌린다면 아는 집에서 보리라도 꾸어 파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그리고 온
동리의 아낙네들이 치맛바람에 팔자 고쳤다고 쑥덕거리며 은근히 시새우는 쇠돌 엄마가 아니고는 노
는 보리를 가진 사람이 없다. 그런데 도둑이 제발 저리다고 그는 자기 꼴 주제에 눌려서 호사로운 쇠

4)
5)
6)
7)
8)

황급히 달아나는
일을 시도해 보지도 못할
참혹하고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넋
해가 질 때까지의 동안. 어떤 일을 해질 무렵까지 계속함을 이르는 말.
헤매고 돌아다님

- 6 -

돌 엄마에게는 죽어도 가고 싶지 않았다. 쇠돌 엄마도 처음에야 자기와 같이 천한 농부의 계집이련만
어쩌다 하늘이 도와 동리의 부자 양반 이 주사와 은근히 배가 맞아 금방석에 뒹구는 팔자가 되었다.
그리고 쇠돌 아버지도 이게 웬 땡이냔 듯이 아내를 내어 논 채 눈을 살짝 감아 버리고 이 주사에게서
나는 옷이나 입고, 주는 쌀이나 먹고 연년이 신통치 못한 자기 농사에는 한 손을 빼고는 희자9)를 뽑
는 것이 아닌가!
사실 말인즉, 춘호 처가 쇠돌 엄마에게 죽어도 아니 가려는 그 속 까닭은 정작 여기 있었다.
이주사를 찾아 쇠돌네로 가는 춘호처의 앞날
바로 지난 늦은 봄, 달이 뚫어지게 밝은 어느 밤이었다. 춘호가 보름 계추10)를 보러 산모퉁이로 나간
것이 이슥하여도 돌아오지 않으므로 집에서 기다리던 아내가 인제 자고 어려나 생각하고는 막 드러누
워 잠이 들려니까 웬 난데없는 황소 같은 놈이 뛰어들었다. 허둥지둥 춘호 처를 마구 깔다가 놀라서
으악 소리를 치는 바람에, 그냥 달아난 일이 있었다. 어수룩한 시골 일이라 별반 풍설도 아니 나고 쓱
싹되었으나 며칠이 지난 뒤에야 그것이 동리 부자 이 주사의 소행임을 비로소 눈치 채었다. 그런 까
닭으로 해서 춘호 처는 쇠돌 엄마와 직접 관계는 없단 대도 그를 대하면 공연스레 얼굴이 뜨뜻하여지
고 몹시 어색하였다. 죄나 진 듯이⋯⋯.
그리고 더욱 쇠돌 엄마가, 새댁, 나는 속옷이 세 개구, 버선이 네 벌이구 행 하며, 아주 좋다고 핸들
대는 꼴을 보면 혹시 자기에게 한 점을 두고서 비아냥거리는 거나 아닌가 하는 옥생각으로 무안해서
고개도 못 들었다.
한편으로는 자기도 좀만 잘했다면 지금쯤은 쇠돌 엄마처럼 호강을 할 수 있었을 그런 갸륵한 기회를
깝살려11) 버린 자기 행동에 대한 후회와 애탄으로 말미암아 마음을 괴롭히는 그 쓰라림도 적지 않았
다. 그러나 아무러한 욕을 보더라도 나날이 심해 가는 남편의 무지한 배보다는 그래도 좀 헐할 게다.
오늘은 한맘 먹고 쇠돌 엄마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춘호 처는 이번 걸음이 헛발이나 안 칠까 일념으로 심화12)를 하며 수양버들이 쭉 늘여 박힌 논두렁길
로 들어섰다. 그는 시골 아낙네로는 용모가 배우 반반하였다. 좀 야윈 듯한 몸매는 호리호리한 것이
소위 동리의 문자대로 외입13)깨나 하염직한 얼굴이었으되 푸레한 의복이며 퀴퀴한 냄새는 거지를 볼
지른다.14) 그는 왼손 바른손으로 겨끔내기15)로 치맛귀경이 되고 만다. 먼데서 개 짖는 소리가 앞뒷산
을 한적하게 울린다. 빗방울은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차차 굵어지며 무더기로 퍼부어 내린다.
춘호 처는 길가에 늘어진 밤나무 밑으로 뛰어 들어가 비를 그으며 쇠돌 엄마집을 멀리 바라보았다.
북쪽 산기슭 높직한 울타리로 삥 둘려 두르고 앉았는 오목하고 맵시 있는 집이 그 집이었다. 그런데
싸리문이 꼭 닫힌 것을 보면 아마 쇠돌 엄마가 농군청에 저녁 제누리16)를 나르러 가서 아직 돌아오지
9 ) 흰소리를 하다.
10 ) 늦가을 만추(晩秋)
11) 까불려 없앰
12 ) 마음을 조임
13 ) 오입(誤入)
14 ) 거지 뺨친다
15 ) 서로 번갈아 하기

- 7 -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쇠돌 엄마 오기를 지켜보며 우두커니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뭇잎에서 빗방울은 뚝뚝 떨어지
며 그의 뺨을 흘러 젖가슴으로 스며든다. 바람은 지날 적마다 냉기와 함께 굵은 빗발을 몸에 들이친
다. 비에 쪼르륵 젖은 치마가 몸에 찰싹 감기어 허리로, 궁둥이로, 다리로, 살의 윤곽이 그대로 비쳐
올랐다.
이주사에게 강제로 겁탈을 당하는 춘호 처의 운명
무던히 기다렸으나 쇠돌 엄마는 오지 않았다. 하도 진력이 나서 하품을 하여가며 정신없이 서 있노라
니 왼편 언덕에서 사람 오는 발자취 소리가 들린다. 그는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러나 날쌔게 나무 틈
으로 몸을 숨겼다. 동이 배를 가진 이 주사가 지우산을 받쳐 쓰고는 쇠돌네 집으로 향하여 응뎅이를
껍쭉거리며 내려가는 길이었다. 비록 키는 작달막하나 숱 좋은 수염이든지 온 동리는 털어야 단 하나
뿐인 탕건이든지, 썩 풍채 좋은 오십 전후의 양반이다.
그는 싸리문 앞으로 가더니 자기 집처럼 거침없이 문을 떠다밀고는 속으로 버젓이 들어가 버린다. 이
것을 보니 춘호 처는 다시금 속이 편치 않았다. 자기는 개돼지같이 무시로, 매만 맞고 돌아 치는 천덕
꾼이다. 안팎으로 겹귀염을 받으며 간들대는 쇠돌 엄마와 사람된 치수가 두드러지게 다름 그는 알 수
있었다. 쇠돌 엄마의 호강을 너무나 부럽게 우러러보는 반동으로 자기도 잘했다면 하는 턱없는 희망
과 후회가 전보다 몇 갑절 쓰린 맛으로 그의 가슴을 찌푸뜨렸다.
쇠돌네 집을 하염없이 건너다보다가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이 굴러 내린다. 언덕에서 쓸려 내리는 사탯
물17)이 발등까지 개흙으로 덮으며 소리쳐 흐른다. 빗물에 폭 젖은 몸뚱어리는 점점 떨리기 시작한다.
그는 가벼웁게 몸서리를 쳤다. 그리고 당황한 시선으로 사방을 경계하여 보았다. 아무도 보이지는 않
았다. 다시 손을 돌리어 그 집을 쏘아보며 속으로 궁리하여 보았다. 안에는 확실히 이 주사뿐일 게다.
그때까지 걸렸던 싸리문이라든지 또는 울타리에 널은 빨래를 여태 안 걷어들이는 것을 보면 어떤 맹
세를 두고라도 분명히 이 주사 외에 다른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는 마음놓고 비를 맞아 가며 그 집으로 달려들었다. 봉당으로 선뜻 뛰어오르며, 쇠돌 엄마 기슈?
하고, 인기를 내보았다. 물론 당자의 대답은 없었다. 그 대신 그 음성이 나자 안방에서 이 주사가 번
개같이 머리를 내밀었다. 자기 딴은 꿈 밖이란 듯, 눈을 두리번두리번하더니 옷 위로 불거진 춘호 처
의 젖가슴, 아랫배, 넓적다리로 발등까지 슬쩍 음흉히 훑어보고는 거나한 낯으로 빙그레한다. 그리고
자기도 봉당으로 주춤주춤 나오며, 쇠돌 엄마 말인가? 왜 지금 막 나갔지. 곧 온 댔으니 안방에 좀
들어가 기다렸으면⋯⋯ 하고 매우 일이 딱한 듯이 어름어름한다. 이 비에 어딜 갔에유?
밖에 좀 나갔지, 그러나 곧 올걸⋯⋯.

지금 요

있는 줄 알고 왔는디⋯⋯. 춘호 처는 이렇게 혼잣말로 낙심하

며 섭섭한 낯으로 머뭇머뭇하다가 그냥 돌아갈 듯이 봉당 아래로 내려섰다.
이 주사를 쳐다보며 물차는 제비같이 산드러지게, 그럼 요담에 오겠애유, 안녕히 계시유 하고 작별
인사를 올린다. 지금 곧 온 댔는데, 좀 기다리지⋯⋯.

16 ) 곁두리. 경기도 사투리
17 ) 폭우로 넘쳐 흐르는 물

- 8 -

담에 또 오지유.

아닐세, 좀 기다리게. 여보

게, 여보게, 이봐! 춘호 처가 간다는 바람에 이 주사는 체면도 모르고 기가 올랐다. 허둥거리며 재간
껏 만류하였으나 암만해도 안 될 듯싶다. 춘호 처가 여기엘 찾아 온 것도 큰 기적이려니와 뇌성 벽력


구석진 곳이겠다. 이렇게 솔깃한 기회는 두 번 다시 못 볼 것이다. 그는 눈이 뒤집히어 입에 물

었던 장죽을 쭉 뽑아 방안으로 치뜨리고는 계집의 허리를 뒤로 다짜고짜 끌어안아서 봉당 위로 끌어
올렸다.
계집은 몹시 놀라며, 왜 이러시유, 이거 놓세유 하고 몸을 뿌리치려는 앙탈을 한다. 아니 잠깐만.
이 주사는 그래도 놓지 않으며 허겁스러운 눈짓으로 계집을 달래 인다. 흘러내리는 고의춤을 왼손으
로 연신 치우키며 바른 팔로는 계집을 잔뜩 움켜잡고는 엄두를 못 내어 쩔쩔매다가 간신히 방안으로
끙끙 몰아 넣었다. 안으로 문고리는 재빠르게 채이었다. 밖에서는 모진 빗방울이 배추 잎에 부딪치는
소리, 바람에 나무 떠는 소리가 요란하다. 가끔 양철통을 내려 굴리는 듯 거푸진 천둥소리가 방고래를
울리며 날은 점점 침침하여 갔다.
얼마쯤 지난 뒤였다. 이만하면 길이 들었으려니 안심하고 이 주사는 날숨을 후우, 하고 돌린다. 실없
이 고마운 비 때문에 발악도 못 치고 앙살도 못 피우고 무릎 앞에 고분고분 늘어져 있는 계집을 대견
히 바라보며 빙긋이 얼러 보았다. 계집은 온몸에 진땀이 쭉 흐르는 것이 꽤 더운 모양이다. 벽에 걸린
쇠돌 어미의 적삼을 꺼내어 계집의 몸을 말쑥하게 훌닦기 시작한다. 발끝서부터 얼굴까지 - - - - - .
너, 열 아홉이지? 하고 이 주사는 취한 얼굴로 얼간히 물어 보았다. 니에 하고, 메떨어진 대답. 계
집은 이 주사의 손에 눌리어 일어나도 못 하고 죽은 듯이 가만히 누워 있다. 이 주사는 계집의 몸을
다 씻고 나서 한숨을 내뿜으며 담배 한 대를 턱 피워 물었다. 그래, 요새도 서방에게 주리경을 치느
냐? 하고 묻다가 아무 대답도 없으매, 원 그래서야 어떻게 산단 말이냐, 하루 이틀도 아니고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있는 거냐? 그러다 혹시 맞아 죽으면 정장 하나 해볼 곳 없는 거야. 허니, 네 명이 아까
우면 덮어놓고 민적을 가르는 게 낫겠지? 하고 계집의 신변을 위하여 염려를 마지않다가 번뜻 한 가
지 궁금한 것이 있었다.
너 참, 아이 낳았다 죽었다더구나?

니예.

어디 난 듯이나 싶으냐? 계집은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지면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외면하였다. 이 주사도 그까짓 것 더 묻지 않았다. 그런데 웬 녀석의
냄새인지 무생채 썩는 듯한 시크무레한 악취가 불시로 코청을 찌르니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다.
처음에야 그런 줄은 소통18) 몰랐더니 알고 보니까 좋이 역하였다. 그는 빨고 있는 담배통으로 계집의
배곱께를 똑똑히 가리키며, 얘, 이 살의 배꼽 좀 봐라. 그래 물이 흔한데 이것 좀 못 씻는단 말이야?
하고, 모처럼의 기분을 상한 것이 앵하단 듯이 꺼림한 기색으로 혀를 찼다. 하지만 계집은 참다참다
이내 무안에 못 이기어 일어나 치마를 입으려 하니 그는 역정을 벌컥 내었다. 옷을 빼앗아 구석으로
동댕이를 치고는 다시 그 자리에 끌어 앉혔다. 그리고 자기 딸이나 책하듯이 아주 대범하게 꾸짖었다.
왜 그리 계집이 달망대니? 좀 듬직하지 못하구 ⋯⋯. 춘호 처가 그 집을 나선 것은 들어간 지 약 한
시간 만이었다.

18 ) 도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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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마련됐다는 말에 서울 갈 생각에 들떠 있는 춘호의 설램
비가 여전히 쭉쭉 내린다. 그는 진땀을 있는 대로 흠뻑 쏟고 나왔다. 그러나 의외로, 아니 천행으로
오늘 일은 성공이었다. 그는 몸을 솟치며 생긋하였다. 그런 모욕과 수치는 난생 처음 당하는 봉변으
로, 지랄 중에도 몹쓸 지랄이었으나 성공은 성공이었다. 복을 받으려면 반드시 고생이 따르는 법이니
이까짓 거야 골백번 당한대도 남편에게 매나 안 맞고 의좋게 살 수만 있다면 그는 사양치 않을 것이
다. 이 주사를 하늘같이, 은인같이 여겼다. 남편에게 부쳐먹을 농토를 줄 테니 자기의 첩이 되라는 그
말도 죄송하였으나 더욱이 돈 이 원을 줄게니 내일 이맘때 쇠돌네 집으로 넌지시 만나자는 그 말은
무엇보다도 고맙고 벅찬 짐이나 풀은 듯 마음이 홀가분하였다. 다만 애키는 것은 자기의 행실이 만약
남편에게 발각되는 나절에는 대매19)에 맞아 죽을 것이다. 그는 일변 기뻐하며 일변 애를 태우며 자기
집을 항하여 세차게 쏟아지는 빗속을 가분가분 내려 달렸다.
춘호는 아직도 분이 못 풀리어 쀼루퉁하니 홀로 앉았다. 그는 자기의 고행인 인제를 등진 지 벌써 삼
년이 되었다. 해를 이어 흉작에 농작물은 말 못 되고 따라 빚쟁이들의 위협과 악다구니는 날로 심하
였다.
마침내 하릴없이 집 세간살이를 그대로 내버리고 알몸으로 밤도주하였던 것이다. 살기 좋은 곳을 찾
는다고 나이 어린 아내의 손목을 끌고 이 산 저 산으로 넘어 표랑하였다. 그러나 우정 찾아 들은 곳
이 고작 이 마을이나, 산 속은 역시 일반이다. 어느 산골엘 가 호미를 잡아 보아도 정은 조그만치도
안 붙었고, 거기에는 오직 쌀쌀한 불안과 굶주림이 품을 벌려 그를 맞을 뿐이었다. 터무니없다 하여
농토를 안 준다, 일 구멍이 없으매 품을 못 판다, 밥이 없다. 결국에 그는 피폐하여 가는 농민 사리를
감도는 엉뚱한 투기심에 몸이 달떴다.
요사이 며칠 동안을 두고 요 너머 뒷산 속에는 밤마다 큰 노름판이 벌어지는 기미를 알았다. 그는 자
기도 한몫 보려고 끼룩거렸으나 좀체로 밑천을 만들 수가 없었다. 이 원! 수나 좋아서 이 이 원이 조
화만 잘 한다면 금시 발복20)이 못 된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으랴! 삼사십 원 따서 동리의 빚이나 대
충 가리고 옷 한 벌 지어 입고는 진저리 나는 이 산골을 떠나려는 것이 그의 배포였다. 서울로 올라
가 아내는 안잠을 재우고 자기는 노동을 하고, 둘이서 다구지게 벌으면 안락한 생활을 할 수가 있을
텐데, 이런 산 구석에서 굶어 죽을 맛이야 없었다. 그래서 젊은 아내에게 돈 좀 해오라니까 요리 매낀
조리 매낀 피하고 곁들어 주지 않으니 그 소행이 여간 괘씸한 것이 아니다.
아내가 물에 빠진 생쥐꼴을 하고 집으로 달려들자 미처 입도 벌리기 전에 남편은 이를 악물고 주먹
뺨을 냅다 붙인다. 너 이년, 매만 살살 피하고 어디 가 자빠졌다 왔니? 볼치 한 대를 얻어맞고 아내
는 오기가 걸리어 벙벙하였다. 그래도 직성이 못 풀리어 남편이 다시 매를 손에 잡으려 하니 아내는
질 겁을 하여 살려 달라고 두 손으로 빌며 개신개신 입을 열었다. 낼 되유- - - 낼, 돈, 되유 하며 돈
이 변통됨을 삼가 아뢰는 그의 음성은 절반이 울음이었다. 남편이 반신반의하며 눈을 찡긋하다가,
낼? 하고 목청을 돋았다. 네, 낼 된다유.

꼭 되어?

네, 낼 된다유.

남편은 시골 물정에 능통하니 만치 난데없이 돈 이 원이 어디서 저렇게 되는 것까지는 추궁해 물으려

19 ) 마구치는 매
20 ) 복이 터짐. 복이 현실로 나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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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았다. 그는 적이 안심한 얼굴로 방문턱에 걸터앉으며 담뱃대에 불을 그었다. 그제야 비로소 아
내도 마음을 놓고 감자를 삶으러 부엌으로 들어가려 하니 남편이 겉으로 걸어오며 측은한 듯이 말리
었다. 병나, 방에 들어가 어여 옷이나 말리여, 감자는 내 삶을게.
먹물같이 짙은 밤이 내리었다. 비는 더욱 소리를 치며 앙상한 그들의 방벽을 앞뒤로 울린다. 천장에서
비는 새지 않으나 집 지은 지가 오래되어 고래21)가 물러앉다시피 된 방이라 도배를 못 한 방바닥에는
물이 스며들어 귀축축하다. 거기다 거적 두 잎만 덩그렇게 깔아 놓은 것이 그들의 침소였다. 석유 불
은 없어 캄캄한 바로 지옥이다. 벼룩 이는 사방에서 마냥 스물거린다.
그러나 등걸 잠22)에 익달한 그들은 천연덕스럽게 나란히 누워 줄기차게 퍼붓는 밤 빗소리를 귀담아
듣고 있었다. 가난으로 인하여 부부간의 애틋한 정을 모르고 나날이 매질로 불평과 원한 중에서 복대
기는 그들도 이 밤에는 불시고 화목하였다. 단지 남편의 품에 들은 돈 이 원을 꿈꾸어 보고도, 언제
서울 갈라유? 남편의 왼팔을 베고 누웠던 아내가 남편을 향하여 응석 비슷이 물어 보았다. 그는 남편
에게 서울의 화려한 거리며, 후한 인심에 대하여 여러 번 들은 바 있어 일상 안타까운 마음으로 몽상
은 하여 보았으나 실지 구경은 못 하였다. 얼른 이 고생을 벗어나 살기 좋은 서울로 가고 싶은 생각
이 간절하였다.
곧 가게 되겠지, 빚만 좀 갚아도 가뜬하련만.

빚은 낭종 줴더라도 얼핀 갑세다유.

염려 없어. 이

달 안으로 꼭 가게 될 거니까. 남편은 썩 쾌히 승낙하였다. 딴은 그는 동리에서 일컬어 주는 질꾼으
로 투전장의 가보쯤은 시루에서 콩나물 뽑듯하는 능수였다. 내일 밤 이 원을 가지고 벼락같이 노름판
에 달려가서 있는 돈이란 깡그리 모집어 올 생각을 하니 그는 은근히 기뻤다. 그리고 교묘한 자기의
손재간을 홀로 뽐내었다.
이번이 서울 첨이지? 하매, 그는 서울 바람 봄 한 번 쐬었다고 큰 체를 하며 팔로 아내의 머리를 흔
들어 물어 보았다. 성미가 워낙 겁겁한지라 지금부터 서울 갈 준비를 착착 하고 싶었다. 그가 제일 걱
정되는 것은 둠23) 구석에서 놰 자라 먹은 아내를 데리고 가면 서울 사람에게 놀림도 받을 게고 거리
끼는 일이 많을 듯싶었다. 그래서 서울 가면 꼭 지켜야 할 필수 조건을 아내에게 일일이 설명치 않을
수 없었다.
첫째, 사투리에 대한 주의부터 시작되었다. 농민이 서울 사람에게 꼬라리라는 별명으로 감잡히는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사투리에 있을지니 사투리는 쓰지 말며 합세를 하십니까로 하게유를 하오로
고치되 말끝을 들지 말지라, 또 거리에서 어릿어릿하는 것은 내가 시골뜨기요 하는 얼뜬 짓이니 갈
길은 재게 하고 볼 눈은 또릿또릿이 볼지라- - - - 하는 것들이었다. 아내는 그 끔찍한 설교를 귀담아 들
으며 모깃소리로 네, 네 를 하였다.
남편은 두어 시간 가량을 샐 틈 없이 꼼꼼하게 주의를 다져 놓고는 서울의 풍습이며 생활 방침 등을
자기의 의견대로, 그럴싸하게 이야기하여 오다가 말끝이 어느덧 화장술에 이르게 되었다. 시골 여자가
서울에 가서 안잠을 잘 자 주면 몇 후에는 집까지 얻어 갖는 수가 있는데, 거기에는 얼굴이 예뻐야
21) 방고래. 구들을 놓은 언덕
22 ) 걸친 것 업이 엎드려 드는 잠
23 ) 촌. 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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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는 소문을 일찍 들은 바 있어 하는 소리였다. 그래서 날마다 기름도 바르고, 분도 바르고, 버선도
신고 해소 쥔 마음에 썩 들어야⋯⋯. 한참 신바람이 올라 주워섬기다가 옆에서 쌔근쌔근 소리가 들리
므로 고개를 돌려보니 아내는 이미 곯아져 잠이 깊었다. 이런 망할 거, 남 말하는데 자빠져 잔담,
남편은 혼자 중얼거리며 바른 팔을 들어 이마 위로 흐트러진 아내의 머리칼을 뒤로 쓰담아 넘긴다.
세상에 귀한 것은 자기 아내! 명색이 남편이며 이날까지 옷 한 벌 변변히 못 해 입히고 고생만 짓시
킨 그 죄가 너무나 큰 듯 가슴이 뻐근하였다. 그는 왁살스러운 팔로 아내의 허리를 꼭 껴안아 자기의
앞으로 바특이 끌어당겼다.

돈을 위해 아내의 몸을 단장시키는 춘호 내외의 비극적인 삶
밤새도록 줄기차게 내리던 빗소리가 아침에 이르러서야 겨우 그치고 점심때에는 생기로운 볕까지 들
었다. 쿨렁쿨렁 눈물 나는 소리는 요란히 들린다. 시내에서 고기 잡는 아이들의 고함이며, 농부들의
희희낙락한 미나리24)도 기운차게 들린다. 비는 춘호의 근심도 씻어 간 듯 오늘은 그에게도 즐거운 빛
이 보였다. 저녁 제누리25) 때 되었을 걸, 얼른 빗고 가 봐 - - - - . 그는 갈증이 나서 아내를 대고 재촉
하였다. 아직 멀었어유.

뭘!

아내는 남편의 말대로 벌써부터 머리를 빗고 앉았으나 원래 달포나 아니 가리어 엉클은 머리가 시간
이 꽤 걸린다. 그는 호랑이 같은 남편과 오랜만에 정다운 정을 바꾸어 보니 근래에 볼 수 없는 화색
이 얼굴에 떠돌았다.
어느 때에는 매적하게 생글생글 웃어도 보았다. 아내가 꼼지락하는 것이 보기에 퍽으나 갑갑하였다.
남편은 아내 손에서 얼래 빗을 쑥 뽑아 들고는 시원스레 쭉쭉 내려 빗긴다. 다 빗긴 뒤, 옆에 놓인 밥
사발의 물을 손바닥에 연신 칠해 가며 머리에다 번지르하게 발라 놓았다. 그래 놓고 위서부터 머리칼
을 재워 가며 맵시 있게 쪽을 딱 질러 주더니 오늘 아침에 한사코 공을 들여 삼아 놓았던 짚신을 아
내의 발에 신기고 주먹으로 자근자근 골을 내주었다. 인제 가 봐! 하다가 바루 곧 와, 응? 하고 남편
은 그 이 원을 고이 받고자 손색없도록, 실패 없도록 아내를 모양내 보냈다.
발표지 『조선일보』1935

▣ 더 재미있게 읽기 위하여
궁핍한 식민지를 배회하는 유랑인
『소낙비』는 1935년 1월 1일 조선일보 신춘문예 현상 모집에 당선된 소설이다. 원 제목은 『따라지
목숨』이었으나 신문사에서 『소낙비』로 개명하여 발표했기 때문에 『소낙비』로 알려진 작품이다.
김유정에 의해 이 작품이 『따라지 목숨』이라 명명되었다는 것은 이 소설이 뿌리뽑힌 이들의 전망
부재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 작품은 고향을 버리고 타관으로 흘러든 춘호라는 인물을
통해 1930년대 유랑 농민의 궁핍하고 한 많은 삶을 형상화하고 있다. 주인공 춘호는 그의 아내와 함
께 고향을 등지는데, 그 원인이 해를 이은 흉작과 빚장이들의 악다구니 때문이었다. 이들은 살기 좋

24 ) 강원도 내륙지방의 농부들이 논밭에서 일하면서 부르는 농부가의 하나
25 ) 곁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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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곳을 찾아 나섰지만, 그들을 맞아 줄 살기 좋은 곳은 어디에도 없었고, 그들이 찾아 든 곳이라고는
오직 쌀쌀한 불안과 굶주림이 품을 벌려 맞는 곳이었다. 유정은 이처럼 유랑인을 통해 1930년대 농
촌의 경제적 파탄과 빈곤현상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것은 비단 이 작품뿐만 아니라, 문제작이라 할 수
있는『만무방』에서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주인공 응칠은 흉작과 가난과 빚에 몰려 고향에서 살 수 없게 되자 전 재산을 빚쟁이가 나눠 갖도록
남겨 놓고 야반도주하여 유리걸식 하다가 아내와 헤어지고 머슴, 투전, 절도, 형무소를 전전하다 동생
응오의 집에 몸을 기탁한다. 근면한 응오는 열심히 농사를 짓지만, 추수를 해야 지주와 빚쟁이에게 모
든 것을 빼앗길 것이 뻔해 아예 타작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논의 벼가 조금씩 사라지는 일이 발생한
다. 응칠은 억울하게 도둑의 누명을 쓴다. 응칠은 밤늦도록 벼 도둑을 지킨다. 결국 응칠은 자신이 피
땀흘려 가꾼 벼를 훔치는 동생을 발견한다. 자신의 논에서 벼를 훔쳐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을 통해 당
시 소작농의 75%가 빚을 지고 있었으며, 이들의 평균부채 액수도 65원에 이르렀다는 현실을 반어적으
로 제시하고 있다.
유랑인에게 있어 경제적 궁핍은 인간의 기본적인 도덕적 가치관마저 파괴한다. 춘호는 아무런 죄의식
없이 아내에게 매매춘 행위를 강조한다. 춘호 처 역시 남편의 강요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매매춘에 나
섰지만 어떠한 도덕적 죄의식도 그렇다고 성적 쾌락에 탐닉하지도 못한 채 그저 남편을 위해 무엇인
가 했다는 안도감에 휩싸인다. 이처럼 유랑인에 직면한 경제적 고통은 인간다움을 위해 반드시 지켜
야 할 도덕적 치장들을 소멸시킨다. 춘호는 현재의 도덕적 일탈 행위를 살기 좋은 서울 생활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사고함으로써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시킨다.
춘호는 겨우 한번 얼핏 본 서울의 풍경에 대해 자신의 허황된 꿈을 담아 아내에게 이야기한다. 산골
마을에서 가난에 찌들었던 춘호에게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의 서울 거리는 자신을 구원할 유일한 출구
였다. 비록 그 출구가 끝이 막혀 있는 곳이라 할지라도 도시가 갖고 있는 이중성을 알지 못한 춘호에
게는 열망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이 주사에게 육체적으로 시달린 춘호 처의 아픔은 감
춰진다.
문제는 춘호가 자신의 뜻대로 돈 2원을 얻는다 해도 그가 궁핍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그가 서울로 갔다고 하더라도 유랑인인 그에게 있어 도시는 더 이상 희망을 생산하
는 유토피아의 공간이 아닌 또 다른 궁핍의 장소로써의 공간적 이동에 지나지 않는다. 도시 하층민의
비극적 삶의 모습을 형상화한『땡볕』은 유정이 왜 이 작품을 『따라지 목숨』으로 삼았는지 잘 보여
주고 있다. 결국 유정은 이 작품을 통해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몸을 팔아야 하지만 그 궁핍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유랑 농민들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해학과 아이러니를 통한 골계의 미학
김유정 문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웃음의 미학이다. 유정 문학에 나타난 웃음은 크게 세 가지 방
식에서 유출됨을 볼 수 있다.
첫째, 대부분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문체 사용에 있어서 토속어와 방언, 그리고 작가에 의해 고
안된 조어의 사용은 하층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효과와 함께 해학적 웃음을 발생시킨다.『소
낙비』에서 볼 수 있듯 모지락스리 , 요리 매낀 , 맥적하게 , 힘하게 와 같은 부사나 형용사의 사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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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로 하여금 자연스런 웃음을 유발하게 만든다.
둘째, 우직하고 바보스런 인물의 행위를 통한 웃음의 발생이다. 유정 소설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
들은 바보스런 인물이거나, 어릿광대형의 인간들이다. 그들은 이들 인간들이 사용하는 토속적인 언어
를 통해 자신들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한편, 어리석고 단순한 인물들이 보여주는 지극히 어
리석은 상황에서도 해학적 효과를 만들어 낸다.
『동백꽃』과『봄봄』을 비롯한 대부분의 작품을 보면,『동백꽃』의 주인공 나는 성적으로 조숙한 점
순이의 성적요구가 함축된 도전적 행동에 대하여 무관심과 기계적인 반응을 보임으로써 웃음을 유발
한다. 성적으로 미숙한 1인칭 주인공의 모습과 독자가 바보스럽게 보는 그의 모습의 괴리감으로 인해
아리러니는 그 웃음의 강도를 더하게 한다. 반면,『봄봄』은 어리숙한 주인공의 기대와 실제의 결과가
어긋남으로써 기대했던 상황이 엉뚱한 방향으로 전환됨으로 아리러니를 유발시킨다.
셋째, 비극적 상황의 극적 반전을 통한 웃음의 유발이다. 『만무방』『소낙비』『땡볕』등에서 볼 수
있는데, 비극적 현실을 비극적인 시선으로 그리지 않고 엉뚱한 방식으로 그림으로써 웃음과 함께 비
극미를 만들어낸다.
이주사로부터 당한 겁탈보다는 남편과 함께 오손도손 살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하는 춘호 처의 모습
과, 아내가 무엇을 하러 가는 줄 뻔히 알면서도 아내의 몸단장을 시켜주고 빨리 갔다 오라고 걱정스
럽게 바라보는 춘호의 행동에서 비극적인 웃음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유정은 식민지라는 암담하고 비참한 현실에서 그것 자체만을 반복 묘사함으로써 절망에 떨어지
지 않고 의도적으로 해학과 유머를 도입하여 절망을 극복하려 함을 볼 수 있다.
해학과 아리러니를 통한 빈궁의 현실 인식
김유정의 대부분의 작품은 극도의 빈궁에 쪼들리는 식민지 당대의 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대표
작인 『동백꽃』,『봄봄』을 비롯하여 『산골』,『만무방』『소낙비』『산골 나그네』,『아내』등의
작품에는 한결같이 식민제 체제하의 30년대 가난한 하층민들을 대상으로 한다.
이러한 작품 세계를 통해 유정은 식민지 시대의 사회적, 경제적으로 버림받은 소외된 인간군상을 그
리고 있으며, 이를 통해 결국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 수탈정책을 사실적으로 제시한다.
그런데 유정 문학을 30년대 다른 작가들과 구분하는 것은 유정 문학에는 웃음의 미학이 있다는 점이
다. 이러한 웃음은 하층민을 통해 현실의 비극을 형상화함에 있어서 현실 인식의 대한 진지한 탐구나
비극적 심각성보다는 어리석고 익살스런 인물이나, 해학적인 톤, 아이러니를 통해 희극적 감각으로 왜
곡된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그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한결같이 어리석으면
서도 순박성을 잃지 않는 촌놈이요, 희극적인 행동을 연출하는 어릿광대와 같은 인물이다. 이들은 그
들만이 사용하는 특유의 사투리와 토속어, 육담 등을 통해 자신의 직접적인 감정을 노출시킴으로서
비참한 현실에 대한 저항을 드러낸다. 『동백꽃』, 『봄봄』, 『산골』, 『산골 나그네 』을 통해서 확
인할 수 있듯, 유정은 농촌사회의 피폐함의 직접적 원인인 사회적 모순을 그리지 않고 이 속에서 생
활하는 순박하고 어리숙한 농촌사람들의 자연스런 생활모습을 연민의 아픔을 동반한 웃음으로 그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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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농민에 대한 애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작중 인물들인 소작인, 머슴, 들병이, 노동자, 실업자 등이 보여주는 해
학성에 대해 모두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비록 유정이 일제의 삼엄한 검
열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들의 모습을 염치없고 미련한 사람들로 설
정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작가로서 올바른 창작 태도였는가 하는 문제는 남는다. 그렇다고 유정의
전 작품이 해학으로 일관된 것은 물론 아니다. 『소낙비』, 『만무방』, 『가을』 같은 작품에서는 인
물설정과 서술에 있어, 유정 특유의 해학성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당대의 농
민들의 참상이 잘 드러나 있다. 특히 『만무방』에는 유정 특유의 해학성이 절제된 채, 농민들을 궁핍
으로 내몬 사회제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숨어 있다.

▣ 김유정의 생애와 작품
1908

1월11일 강원도 춘성군 신남면 중리(실레)에서 부 김춘식 모 청송 심씨 사이에서 2남 6녀
중 일 곱째로 출생.

1913

어머니 타계.

1915

형과 불화관계에 놓여 있던 아버지마저 타계.

1923

휘문고보 입학. 안회남, 임화 등과 수학하며 다양한 취미 활동을 한다. 문학에 관심이 많아
러시아 문학전집과 바이런 시집, 로렌스나 맨스필드, 이효석 작품을 탐독함.

1929

휘문고보 졸업. 연희전문 입학. 박녹주에 대한 불같은 짝사랑을 함. 폐병 발병.

1930

연희전문 입학과 제적. 전국 각지를 방랑함.

1931

고향 실레로 낙향. 야학을 열어 문맹 퇴치 운동에 힘쓰고 금병의숙을 설립함.

1932

충청도의 금광에 현장감독 겸 휴양차 감.

1933

「신여성」에 『총각과 맹꽁이』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1935

「조선일보」신춘문예에 『소낙비』가 1석으로 당선됨. 구인회회원으로 활동.

1936

대표작『동백꽃』을 비롯한 수 편의 소설을 창작함.

1937

3월29일 누이와 조카가 지켜보는 29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함.

▣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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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철,『김유정의 농민소설 연구 춘원의 농민소설과 비교하여』,한국방송통신대 논문집,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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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실,『수수께끼 풀기와 그 욕망의 중층구조;김유정 단편소설의 구조분석을 위한 시론』, 서강어문,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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