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
하나가 올라앉았다.
채만식 지음
탁류(濁流)
채만식 지음
▣ 저 자 채만식(1902~1950)
식민지시대 최고의 사실주의 작가. 풍자 소설가.
백퍼센트의 신경질 이라 불렸던 완벽주의자
채만식은 유년시절 평탄하고 유복한 삶을 살았다. 근검한 아버지 덕분에 제법 중농 소리를 듣는 소지
주의 아들이었다. 그에게는 특별한 버릇이 있었는데, 평소 음식과 잠자리에 까다로운 결벽증이 그것이
다. 남의 집에 가서도 밥을 먹을 때는 숟가락을 닦아 사용하거나 앉아서 얘기하는 도중에 몇 번이고
엉덩이 밑을 쓰다듬어 먼지를 털고 몸매를 추스르곤 했다. 이러한 결벽증은 이후 문학적 결벽성으로
까지 이어져 창작활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모든 작품을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만들고서야 만족
했다. 이런 그를 가리켜 안회남은 백퍼센트의 신경질이라 불렀을 정도다.
어린 시절, 그는 집에 독서당을 만들고 형들과 한문을 배울 만큼 부족함 없는 생활을 했다. 유달리 옛
날 이야기를 좋아했고 독서광이었기에 『춘향전』이나 『구운몽』 『수호전』 『삼국지』 등 고전
소설은 물론, 『추월색』이나 『장한몽』 같은 신소설들도 빼놓지 않고 읽었다. 그가 소설가의 길을
가게 된 것도 이러한 독서체험이 바탕이 된다.
그러나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고 이듬해 부모의 강권으로 은선흥과 결혼하면서, 그의 평탄한 삶
은 깨지기 시작했다. 애정이 없는 결혼은 오래지 않아 금이 갔고 평생을 이혼도 하지 않은 채 별거생
활을 했다. 인습과 전통을 거역하지 못하면서도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픈 욕망 사이에서 갈등했던 작
가, 그는 자신의 삶의 경험을 고스란히 문학작품에 표출했다. 그가 작품활동을 시작할 무렵 집안도 동
시에 몰락하기 시작했다. 수리조합이 생긴다는 소문을 믿고 헐값에 논과 밭을 넘긴 아버지의 뒤이은
사업과 잇따른 실패, 또 맏형의 방탕한 생활로 가산은 밑바닥나고 만다. 이후 그는 가난으로부터 한번
도 벗어나지 못했다.
채만식은 1924년 강화의 사립학교 교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하지만, 이듬해 동아일보사로 직장을 옮
긴다. 그렇지만 그것도 1년만에 그만두고 1931년 개벽사에 입사할 때까지 실직자 생활을 계속했다. 그
는, 이때의 생활을 뻣뻣하고 물기 없는 생활 이었으며, 물질의 안정과 정의 위무(慰撫)에서 버림받은
시기였다고 말한다.
그는 1936년에 숙명여고를 나온 신여성 김영숙과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동거를 시작한다. 부인과
이혼을 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지만, 어쨌든 안정된 가정을 꾸미려 했다. 하지만 친구에게 돈을 빌
려 광산사업을 했던 형이 실패함으로써 그는 안양과 고향 임피 등으로 잦은 이사를 다녀야만 했다.
원고료 수입만으로 자신의 가족은 물론 형의 식구들까지 책임져야만 했기 때문에 생활은 가난을 면치
못했으며, 이로 인해 그는 건강까지 악화되어 결국 죽음에 이른다.
뛰어난 현실 묘사와 풍자의 작가
채만식의 호는 백릉(白菱) 또는 채옹(采翁), 1902년 전북 옥구군 임피면에서 태어났다. 부족함이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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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복한 유년기와 수학기를 보냈지만, 그가 작품활동을 시작하던 때부터 가난은 수족처럼 붙어다녔다.
중앙고보를 졸업한 그는 일본에 건너가 와세다 대학 부속고등학원 문과에 입학했고 축구선수로 활약
하는 등 적극적인 학교생활을 보내지만, 동경 대지진으로 조선인학살이 이루어지자, 학업을 중도에 포
기하고 귀국해야만 했다.
귀국 후 그는 1924년 이광수의 추천을 받아 「조선문단」 3호에 「세 길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첫
발을 내민다. 그렇지만 이 작품이 처녀작은 아니다. 이보다 앞서 중편 분량의 『과도기』를 썼는데,
한성도서에 출판을 의뢰했으나 나오지 못하고 1973년 유작으로 발표됐다. 등단 이후 그는 부지런히
창작활동을 했으나, 이 시기의 작품은 대체로 단순한 이야기 수준의 작품에 머문다. 그러나 그 뒤,
『화물자동차』 등의 현실비판 의식이 들어있는 일련의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카프작가들로부터 동반
자 작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함일돈이 「산동이」, 「앙탈」 등을 부르주아적인 작품으로 평
가하면서부터 벌어진 현인 이갑기 등과의 논쟁을 통해 자신의 독자적인 문학태도를 분명히 한다.
그는 1930년대 중반 이후부터 탁월한 작가적 역량을 발휘한다. 『레디메이드인생』, 『치숙』, 「천하
태평춘」을 「조광」에 발표하는 등 일련의 풍자소설을 발표하는 한편,『탁류』와 같은 당시대의 현
실을 잘 드러낸 작품들을 써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일제의 탄압이 가중되던 1930년대 후반의 상황하
에서 그만큼 현실에 대한 관심과 비판을 보여준 작가는 드물다. 그러나 1938년 불온사상혐의를 받고
일경에 피검되었다가 조선문인협회에 협조한다는 묵계 아래 가까스로 풀려난 후, 비록 생계를 잇기
위한 방편이었다고는 하지만 친일적인 글을 써서 작가로서의 오점을 남겼다. 해방 후 그는 이때의 사
실들을 『민족의 죄인』이라는 글을 써서 반성하고 있다.
해방 후에도 그의 창작열은 식지 않았다. 「미스터 방」을 비롯하여, 중편 「도야지」, 「논 이야기」
등의 작품을 통해 그는 당시의 혼란한 사회상을 풍자하고 야유한다. 하지만 그의 평생을 따라다닌 가
난은 여전했고, 몸을 돌보지 않는 창작생활로 결국 건강을 크게 해쳐 49세의 젊은 나이로 폐결핵에
걸려 병사한다. 그의 개성이 드러나는 수필을 보면 지독한 가난으로 늘 힘든 생활을 했지만 어떤 경
우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뛰어난 유머감각의 소유자이며 풍자문학의 대가임을 알 수 있다.
▣ S ho rt S umma ry
금강의 끝 군산의 미두장(쌀 시장)에서 투기꾼 노릇을 하며 연명하는 정주사 일가가 있다. 그의 딸 초
봉이는 어머니의 남다른 교육열 덕에 여학교를 마치고 아버지의 고향 친구인 박제호의 약방에서 점원
으로 일하면서 약제사의 꿈을 키우며 산다. 그녀는 자기 집에 세 들어 살면서 의사의 꿈을 키우는 마
음씨 착한 병원 조수 남승재를 좋아한다. 하지만 초봉의 부모는 돈 욕심에 눈이 멀어, 고객의 돈을 몰
래 빼돌리고 난봉질을 일삼는 은행가 고태수에게 속아 초봉을 그에게 시집보낸다. 그러나 결혼하자마
자 태수는 예전에 하숙을 하면서 정을 통했던 한참봉댁 마누라를 다시 만나는데, 음모를 꾸미고 있는
장형보의 밀고로 한참봉에게 맞아 죽게 된다. 이틈에 형보는 초봉을 욕보인다. 초봉은 서울로 가서 새
삶을 살려고 하지만, 도중에 박제호에게 속아 그의 첩이 된다. 하지만 안정된 생활도 잠시뿐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는 애를 가진 초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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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류(濁流)
채만식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초봉이
정주사의 맏딸. 고태수에게 시집가나 열흘만에 과부가 되고, 박제호의 첩이 되지만 그에게
도 버림받는다. 결국 곱사등이 장형보와 살다 그를 죽이는 비극의 주인공.
계봉이
정주사의 둘째 딸, 언니와는 달리 자기 주장이 강하고 활달한 성격으로 언니가 좋아했던 남
승재와 결혼을 약속한다.
남승재
병원 조수 노릇을 하며 이웃의 불행을 잘 보살피는 마음씨 착한 인물, 초봉이를 좋아했으나
초봉이가 떠나간 뒤 그의 동생과 사랑한다.
정주사
정씨 집 무능한 가장. 어려서 한문을 공부하고 신학문까지 배웠으나 군서기 노릇을 하다 밀
려나 군산까지 와서 미두꾼에서 다시 하바꾼으로 전락한다.
장형보
고태수에게 빌붙어 생활하다 그를 밀고하는 곱사등이. 초봉이를 강제로 욕보이고 결국은 초
봉이를 차지하나 결국은 그녀의 손에 최후를 맞는다.
박제호
군산서 약방을 하다 서울에 올라와 초봉이를 첩으로 삼은 수완 좋은 인물. 형보가 나타나자
핑계김에 초봉이를 버린다.
고태수
은행원. 고객의 돈을 빼돌리고 술과 여자에 탐닉하다 초봉과 결혼하나 형보의 밀고로 한참
봉의 마누라와의 불륜이 들통나 한참봉에게 맞아죽는다.
군산 미두장의 풍경과 그 주변 사람들
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
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大
處=市街地) 하나가 올라앉았다.
금강의 끝 군산의 미두장(쌀 시장)에서 쌀 투기를 하는 정주사는 젊은 하바꾼1)에게 봉변을 당하고 있
다. 밑천 없이 쌀을 사고 팔다 싸움이 붙은 것이다. 사람들은 말릴 생각은 안하고 구경만 하는데 마침
군산은행 당좌계에 있는 고태수가 싸움을 겨우 말렸다.
정주사는 서천 땅에서 한문과 신학문을 배우고 군서기 노릇을 하다 결국은 밀려나 이곳 군산으로 이
주했지만 점점 몰락을 거듭해 미두꾼2)의 신세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의 식구는 스물 한 살 먹은 맏딸
초봉이와, 열 일곱 살의 작은 딸 계봉이, 그리고 큰아들과, 여섯 살 막내아들, 그리고 아내 유씨까지
모두 여섯이다. 그의 딸들은 마누라 유씨의 교육열 덕으로 여학교를 다녔으나, 가장인 정주사가 벌어
들이는 것은 살림의 십분의 일도 안 된다. 정주사는 입만 가졌지 수족이 없는 인간 기념물인 셈이
다. 그는 할 일없이 이곳 저곳을 배회하다 탑삭부리 한참봉네 싸전에 들러 주인과 장기를 두고, 한참
봉의 젊은 마누라 김씨는 정주사의 맏딸 초봉이의 중매를 서겠다고 나섰다.
1) 속임수로 남의 돈을 따먹거나 일을 그럴듯하게 꾸미는 사람.
2 ) 일제시대에 군산이나 인천 같은 항구를 중심으로 유행했던 일종의 투기를 하는 시람, 현물 없이 약속만으로
사고 파는 일을 했다. 지금의 주식거래와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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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사의 맏딸 초봉이는 세거리 바른편 귀퉁이에 있는 양약국 제중당을 혼자 지키고 있다. 약국 주인
박제호는 말대가리 같이 길다란 얼굴에 대머리, 입담 좋은 구변을 가진 인물로 초봉이를 무척 예뻐했
다. 초봉이가 약국에 나오고부터 약과 그 밖의 물건들이 다 잘 팔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박제호는
정주사의 오랜 고향 친구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관계나 저런 타산 말고라도 예쁜 초봉이를 제호는
좋아했다.
초봉이는 집안의 떨어진 양식 걱정을 하며 끼니를 자주 걸렀다. 그때 기생인 행화가 우유를 사러 들
어왔다. 초봉이는 기생답지 않게 순박한 행화의 인상이 맘에 들었다. 가게 안에서 제호의 아낙인 윤희
가 나와 한바탕 성깔을 부렸다. 십 년 전, 제약회사에 다니던 제호는 여자전문학교에 다니던 윤희와
연애를 해, 본처와 이혼하고 결혼한 사이다. 하지만 곧 사랑이 식어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부부다.
그런 판에 초봉이가 점원 겸 사무원으로 약국에 나오고부터 더욱 신경질이 늘었다. 향수를 주문하는
고태수의 전화에 이어 남승재의 전화가 오자 윤희는 자기 남편의 전화인 줄 오해하고 전화통에 대고
신경질을 부렸다. 초봉이는 윤희에게 대들고 싶었지만 앞날이 걱정되어 참고 말았다. 원래 성격이 자
신의 속에 있는 말을 시원하게 내뱉지 못하고, 속으로만 수그러들고 눈물이 앞서는 탓이다.
심부름꾼 아이의 놀림을 받으면서 말끔한 고태수를 떠올린 초봉은 그를 남승재와 비교했다. 하지만
승재의 듬직한 모습과 맑은 눈을 생각하고는 마음을 안심시켰다. 승재는 자신의 집에 하숙을 하는 병
원 조수로, 이미 반 넘게 의사시험을 통과해 곧 제대로 된 의사가 될 참이다.
약국에 돌아온 박제호는 좋은 일이 생겼다며 초봉이를 잡고 수선을 떨었다. 약국을 팔고 제약사를 차
려 지배인이 되어 서울로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초봉에게 서울로 같이 가자고 슬쩍 꼬드겼다.
물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지만, 제호는 삶의 위안이 되는 초봉이를 데려가고 싶었다. 그
녀도 승재와 떨어지게 되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약제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서울로 가고 싶
었다. 한편 한참봉의 시전3)을 나온 정주사는 김씨의 중매 얘기로 들떴다. 집으로 가는 길에 그는 딸
일이 잘 풀리면 신랑 편에서 혼수비용을 다 대고 자신의 장사밑천까지 보태주는 꿈을 꿔본다.
정주사는 문득 아이들이 밥을 굶고 있으리라 짐작하고 집안에 들어서는데, 밥짓는 냄새가 구수하게
풍겨져 나왔다. 초봉이가 제호에게 십 원을 미리 받아 밥을 짓는 것이다. 저녁을 먹자 막내둥이 병주
가 어리광을 부렸지만 정주사 내외는 초봉이가 서울 가는 문제로 티격태격 싸움이 붙었다. 정주사는
다 큰 딸을 혼인도 시키지 않고 서울 보내는 것이 마땅찮았다. 곧이어 승재가 돌아왔다. 초봉이의 활
달한 동생 계봉이는 숭늉 심부름을 시키는 언니를 놀리며 승재를 맞았다.
남승재, 그는 서울 태생으로 다섯 살에 고아가 된 것을 개업의가 거둬 길렀는데 재주가 많고 성실해,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병원 조수 노릇을 하며 의사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그 개업의가 죽으면서
군산의 금호의원에 소개를 해 이곳으로 내려오게 됐다. 그는 틈틈이 가난한 사람들을 무료로 진료해
주는 마음 착한 청년이다. 또 초봉이를 좋아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를 못했다. 그런 승재에게 계
봉이는 스스럼이 없다.
3 ) 시장 거리에 있는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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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인간군상과 집안을 위한 초봉의 희생
조금치라도 관계나 관심을 가진 사람은 시장이라 부르고, 속한은 미두장이라고 부르고, 그
리고 간판은 군산미곡 취인소라고 써 붙인 ○○도박장. 집이야 낡은 목재의 이층으로 헙
수룩하니 보잘것없어도 이곳이 군산의 심장임에는 갈 데가 없다.
쌀을 사고 파느라 소란한 미두장에 태수의 친구이자 그의 일을 맡아보는 꼽추 형보는 쌀값이 곤두박
질하자 은행으로 전화를 걸었다. 태수는 소절수(일종의 자기앞수표) 위조 등으로 고객의 돈을 몰래 빼
돌려 술과 여자에 쏟아 붓다가, 그것을 벌충할 요량으로 쌀 전매에 나섰다가 그것마저 거의 다 날린
것이다. 그가 이렇게 빼돌린 금액은 자그만치 삼천 삼백 원이나 됐다. 그는 천여 석 추수를 하는 과부
의 외아들에 전문학교를 나왔다고 소문이 났으나, 모두 사실과 거리가 멀다. 가난한 과부의 외아들에
다 은행 급사로 출발해 야학으로 상업학교를 나왔을 뿐이다. 그는 이 짓이 곧 탄로날 것 같은 불안
속에서도 죽어버리면 그만이지 하며 되는 대로 살았다. 다만 초봉이와 결혼해서 단 하루라도 재미를
보는 것이 유일한 꿈이다.
그가 기생 행화의 집으로 가자 형보가 기다리고 있었다. 형보는 기괴한 모습을 한 꼽추다. 형보는 쌀
전매에서 만 원 정도를 더 빼돌려 달아나자고 태수를 꼬드겼지만, 태수는 숨어 지낼 일이 난감해 고
개를 저었다. 사실 형보는 어떻게든 돈을 빼돌려 중국으로 도망가 금제품 밀수나, 계집장사, 혹은 술
장사를 하는 꿍꿍이를 품고 있다. 하지만 태수가 함께 달아나는 것을 거절하자 언젠가 골탕을 먹이리
라 생각했다.
태수는 하숙집인 탑삭부리 한참봉의 마누라와도 정을 통하는 사이였다. 한참봉의 마누라 김씨는 나이
보다 젊은 데다 자식이 없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식 보기를 소원했다. 그러던 중 스스럼없이 귀여
워하던 고태수와 결국 정분이 났다. 그러나 아직까지 아이를 갖지 못한 그녀는 일을 수습할 계획을
하고 있던 차에 초봉이를 좋아하는 태수의 맘을 알게 됐다. 질투가 피어올랐지만 마침내 그녀는 마음
을 돌려 먹었다.
한편 승재는 먹곰보네 어린애가 다 죽어간다는 명님이의 기별에 왕진을 갔다. 아이는 곧 죽을 것 같
은데, 경장이는 경만 읽고 있다. 아이가 숨을 거두자 아이 엄마는 주사나 침이라도 놔 달라고 떼를 썼
다. 그러나 손을 봐주면 생트집을 잡는 사람들이 많아 승재는 거절을 했다. 그는 돈이 없어 치료를 포
기한 명님이의 병을 고쳐준 이후로, 퇴근 이후에 가난한 사람들을 무료로 고쳐주는 자그마한 사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다음날 먹곰보가 승재를 찾아와 치료를 해주지 않아 자식을 잃었다고 행패를 부렸
다. 계봉이와 명님이, 그의 아버지 양서방, 정주사까지 가세해 그를 쫓은 후에도 계봉은 분을 이기지
못했다.
초봉이의 서울행을 놓고 모녀가 서두르는 사이 정주사는 한참봉 마누라의 중매에 솔깃했다. 미심쩍은
바도 없지 않았으나, 혼수장만은 물론 장사밑천까지 대줄 요량이라는 말에 아주 넘어가고 말았다. 정
주사 마누라도 마음이 흡족해서 초봉이를 설득했다. 윤희의 질투로 인해 서울을 가지 못하게 된 초봉
은 낙심천만인 데다, 어머니 유씨의 설득 또한 집요했다. 결국 승재에 대한 미련과 미안함을 접어두
고, 초봉은 집안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태수에게 시집가기로 마음먹었다. 한참봉네 집에서 태수와 초봉
이의 약혼이 있던 날 형보는 초봉이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음흉한 마음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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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모르던 승재는 초봉이의 결혼소식을 듣고 안타까워했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는 그녀
의 집을 나와 따로 방을 얻었다. 그런데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나, 고태수가 화류병(성병)
을 고치기 위해 병원을 찾은 것이다. 이렇게 더러운 자에게 초봉이가 시집간다는 사실에 태수를 죽이
고도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지만 승재는, 이내 성심껏 치료를 해줬다.
이삿짐을 싸기 위해 정주사의 집에 들렀던 승재는 계봉이의 변함없는 대우에 작은 위안을 얻었다. 퇴
근 후 새로 얻은 집에 찾아온 계봉이는 전에 없이 얌전하게 굴어 불안하고 거북했다. 그리고 계봉이
로부터 그간의 사정을 들은 승재는 집안을 위해 시집을 간 초봉이의 희생에 감격했다.
행화와 함께 신접살림을 차릴 집을 구경간 태수는 그곳에서 초봉이와 마주치자 당황했다. 초봉이는
어리둥절할 뿐 상황을 눈치채지 못했다. 행화는 초봉이가 고태수와 결혼할 사이임을 알고 그녀가 안
됐지만 별 수 없었다. 결국 태수와 초봉이의 결혼식을 올렸다. 승재를 자주 생각하던 초봉이도 점차
현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초봉이의 집에 함께 기거하게 된 형보는 돈을 빼돌려 달아나자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태수를 해칠
궁리를 했다. 더구나 초봉이에게 품은 흑심은 그 결심을 부채질했다. 태수는 자신의 부정과 비리가 곧
탄로날 것 같은 위기에 처했다. 그러자 초봉이와 함께 죽을 결심을 하고 집으로 왔다. 마침 한참봉 마
누라의 기별을 받고 고태수는 한참봉네로 가고, 형보는 한참봉에게 그 마누라의 불륜 사실을 전화로
일러바쳤다.
작은마누라 생일이라 집을 비웠던 한참봉은 몰래 가게에 숨어 기다리다 시간에 맞춰 안방문을 열었는
데 아내와 고태수의 불륜장면을 보고 분노한 그는 준비한 다듬이 방망이로 두 남녀를 때려죽였다. 그
시각, 형보는 초봉이의 방에 몰래 들어가 그녀를 욕보였다. 초봉이는 정조를 더렵혔다는 생각에 죽을
결심을 했지만, 이내 태수의 사고 소식에 놀라 경황이 없다. 병원으로 향하는 초봉이에게 형보는 태수
의 비리를 낱낱이 이르지만, 초봉은 정신이 없다. 정주사 내외는 태수의 실상을 듣고도 믿지 못했다.
다만 날아가 버린 장사밑천이 더 아뜩했다.
비극의 여인에게 씌워진 올가미
차가 슬며시 움직이자 이걸로 가위를 눌리던 악몽은 하직이요, 새로운 생애의 출발인가
하면 무엇인지 모를 안심과 희망이 조용히 솟는 것이나, 일변 너무도 호젓한 내 행색이
둘러 보이면서 장차로 외로울 앞날이 막막하여 그래도 군산을 떠나는 회포는 슬펐다.
태수의 장례를 치르고 폭풍이 가라앉자, 초봉은 지나온 나날들을 생각하면서 모든 걸 허망한 꿈으로
치부하고 잊고자 했다. 그리고 군산을 떠나 서울로 갈 작정을 했다. 초봉이는 이리의 플랫폼에서 우연
히 제호를 만났다. 번잡한 삼등칸을 피해 이등칸으로 옮겨 탄 그들은 서로의 소식을 주고받았다. 초봉
은 제호가 반갑고 안심이 되었지만, 윤희와도 별거중인 제호는 검은 뱃심이 생겨났다. 군산서는 조심
해야 할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헌 계집인 바에야 내가 어떻게 한들 어떠랴 하는 마음이 한구석에서
일었다. 친절히 대해주는 제호를 믿은 초봉은 유성에서 온천을 하고 가자는 그의 말에도 의심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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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간 온천에 어리둥절한 초봉은 점차 제호의 흑심을 눈치챘다. 그러면서도 그런 상황을 뛰쳐나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속절없이 제호의 유혹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초봉이는 제호와 결국 새살림을
차렸다. 초봉이의 마음은 점점 가라앉고 생활도 자리가 잡히기 시작했다. 집안정리며 화초 등을 가꾸
는 데 낙을 붙이며 기계적이지만 제호의 착실한 아낙이 되어갔다. 한편 영원한 첫사랑인 승재를 그리
는 생각을 낙으로 삼은 채 살아가던 초봉이는 어느날 자신이 임신한 것을 알게 됐다. 그런데 심한 입
덧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일은 뱃속의 아기가 누구의 자식인지 모르는 데 있었다. 여러 날을 고민한
끝에 초봉은 애를 지우기로 결심하고 약을 먹었다. 하지만 생명이 위태로워진 건 다름 아닌 초봉이
자신이었다. 박제호도 남의 자식을 떠맡아 길러야 하는 억울한 애비의 부담이긴 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초봉은 계집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낳기 전의 불안과 공포는 아이를 낳자 기쁨으로 바뀌었다. 아이의 이름은 송희로 지었다. 초봉
은 아비를 몰라 성도 없는 자식인 송희에 대한 슬픔에 눈물만 흘렸다. 하지만 자식에 대한 정은 깊어
만 갔다. 그저 송희를 남부럽지 않게 떳떳하게 길러내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 생각했다.
초봉이는 아이한테 함빡 빠져 모든 것에 소홀해졌다. 살림은 물론 제호한테까지 무덤덤해지자 제호는
점차 가정에 등한한 기색이 역력했다. 초봉이는 이런 기색을 눈치채지 못하고 안심하고 있다가 윤희
가 올라왔다는 말에 의심스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송희를 위해서라도 결코 제호를 뺏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바람도 형보의 등장으로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뻔뻔한 배짱으로 무작정 들이닥친 형
보는 송희가 자기의 자식이고 초봉이도 그의 계집이라고 억지떼를 썼다. 그러면서도 말을 듣지 않으
면 칼로 송희를 죽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는 사이 제호가 돌아오고 둘은 서로 통성명을 한
뒤 초봉이를 놓고 담판을 했다. 제호는 마치 수하물을 처분하려던 참에 잘됐다는 식으로 못 이기는
척 형보의 편을 들고 사라졌다. 믿었던 제호에게마저 배반당한 초봉은 악이 받쳤다. 그녀의 눈에는 살
기가 어렸다. 자신의 실낱같은 희망마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제호가 달아난 자리에 형보가 남았다. 악에 받친 뒤라 초봉은 송희를 들여다보면서 비장한 용기가 솟
아났다. 자식 송희를 위해서는 못할 일도 없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형보보다 더한 놈이라도 송희를 탈
없이 편안하게 기른다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기로 다짐했다.
결국 그녀는 형보에게서 다달이 받을 용돈의 액수와, 동생까지 공부시킨다는 약조를 받고 그와 살기
로 했다.
자매의 상반된 운명
계봉이는 드디어 승재를 사로잡고 말았다. 승재도 제 자신이 그렇게 된 줄을 몰랐다가, 작
년 가을 계봉이가 서울로 뚝 떠난 뒤에야 제 몸뚱이가 통째로 없어진 것같이 허전한 것을
느끼고서 비로소 그것이 계봉이로 인한 탓인 줄 알았다.
한편 군산의 정주사는 초봉이가 부쳐준 돈을 밑천 삼아 여전히 미두장에서 소일을 했다. 그들의 형편
은 좀 나아졌다. 딸이 부쳐준 돈으로 가게를 내고, 부인 유씨의 바느질로 소득이 꽤 짭짤한 까닭이다.
더구나 계봉이가 서울로 올라가 식구가 줄기도 했다. 하지만 정주사의 씀씀이도 커져 풍파는 오히려
- 8 -
잦았다.
정주사 내외가 부부싸움을 하는 사이, 승재가 서울 가는 인사 겸 집안사정을 알아봐 달라는 계봉이의
부탁을 받고 들렀다. 부인 유씨는 승재와 초봉이의 일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도 계봉이에게 짝 지워
줄 생각에 대접을 정성껏 했다. 승재도 유씨의 따뜻한 호의가 살갑게 느껴졌다.
승재는 병원경영보다 계봉이를 보기 위해 서울로 가려는 참이었다. 그는 열심히 가난한 사람들을 위
해 무료진료를 해왔으나 점점 감당하기 힘들었다. 승재는 정주사의 집을 나와 작년부터 가르쳐온 야
학에 들렀다. 학생들에게 서울로 간다는 작별인사를 하자니 많은 일들이 눈앞을 지나갔다.
승재는 색주가 집인 개명옥으로 명님이를 찾아 나섰다. 사흘 전 명님이가 돈 이백 원에 팔린 것을 알
고, 이리저리 돈을 구하러 다녔으나 허사가 되자, 책과 옷가지 등을 팔아 겨우 구십 원을 만들어서 주
인여자를 만나 사정을 했다. 결국 서울 올라가서 돈을 부쳐주면 명님이를 서울로 보낸다는 약조를 받
아냈다. 며칠 후 승재는 서울로 향했다.
학교에 더 다니라는 주위의 얘기에도 불구하고 자립하기 위해 백화점에 취직한 계봉이는 출근 채비에
마냥 즐거웠다. 그녀는 예쁘고 성숙했다. 초봉이는 그런 그녀가 한편으로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걱정
도 많았다. 초봉이가 보기엔 계봉이의 행동이며 말이 도무지 계집애다운 구석이 없고 방자했기 때문
이다. 남자들이 득실득실한 백화점도 걱정이거니와 형보의 음흉한 눈길도 근심이 됐다.
송희를 끔찍이도 귀여워 해주는 계봉이를 보고 초봉은 자신이 없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형보
를 생각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형보는 꼬장꼬장하게 쏘아주는 처제 계봉이에게 구두를 사 주겠다는
둥 끈적끈적한 수작을 부렸다. 초봉은 싸움 끝에 형보를 죽인다는 상상을 했다. 송희를 괴롭히는 형보
를 보고 그 결심을 키워나갔다. 사실 초봉이는 형보의 등쌀에 심신이 지쳐 끝끝내 배겨날 수 없는 형
편이었다.
초봉은 형보의 어깨를 으깨버렸다
형보는 그리하여 잠자코 있어도 초봉이의 손에 죽을 신순데, 게다가 입을 모질게 놀려 분
까지 돋구어 주었으니, 만약 오늘에라도 어떠한 거조가 난다면 그건 제가 지레 명을 재촉
한 노릇이라 하겠다.
백화점의 화장품 매장에서 계봉이와 동료들이 농담과 잡담을 할 때, 승재에게 전화가 왔다. 계봉이를
좋아해서 거의 매일 백화점에 들르는, 여드름 바가지의 학생을 시치미 뚝 따고 놀려준 그녀는, 퇴근
후에 승재의 병원을 찾아갔다. 둘의 사랑은 무르익었다. 앞날을 계획하는 중에 계봉이는 언니 이야기
를 했다. 초봉이의 딱한 사정을 듣자 승재는 그녀를 구해야한다는 사명감에 흥분했다. 둘은 저녁을 먹
고, 언니와 셋이 모여 앉아 앞으로의 일을 논의할 겸 초봉이의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집 앞에 이르자
동네 사람들이 모여 수군거리고 있다. 큰일이 났음을 짐작한 계봉이가 집안으로 뛰어들었다.
초봉이는 송희를 재워 놓은 다음, 형보를 죽이고 자신도 죽을 결심으로 약을 사려고 나섰지만, 약효가
빠르고 치명적인 약은 구하지 못하고 교갑4)과 염산만 구했다. 여러가지 생각 끝에 집으로 돌아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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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애 우는 소리가 까무러칠 듯 울렸다. 불안과 짜증이 나던 형보가 송희를 거꾸로 쳐들고 있었던
것이다. 초봉이가 달려들어 형보를 발길질해 대는데, 엇나간 겨냥이 급소를 치고 말았다. 불의의 일격
으로 쓰러져 숨이 넘어가는 형보를 보고 초봉은 오히려 더욱 살기를 띠었다. 그렇지만 기력을 찾은
형보는 부러 엄살을 부렸다. 초봉이 때리기를 그만두는 척하다가 발꿈치로 가격한 곳은 배꼽 밑의 급
소였다. 순간 형보는 입을 벌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숨도 쉬지 않는 것 같고 입가로 게거품이 나왔
다.
정신없이 형보를 발로 짓이기던 초봉은 비로소 형보가 죽었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자신을 끈질기게
괴롭히던 형보의 무사태평한 죽음에 그녀는 오히려 화가 났다. 그녀는 치를 떨면서 시신에다 대고 화
풀이를 했다. 그리고 끝내는 맷돌을 들어 형보의 가슴을 으깨버렸다.
차츰 제 정신이 돌아온 초봉은 송희에게 젖을 물리고 주변을 정리했다. 그녀는 사람을 죽이고 난 뒤
의 공포나 죄책감, 혹은 형벌 등에 대한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만 천행으로 이루어진 이 결과에 대한
만족과 원수의 무사태평함에 대한 시기라는 두 가지 감정만이 교차될 따름이었다. 유서를 쓴 다음 계
봉이를 기다려 그녀에게 송희를 맡겨 군산으로 내려보낸 후 자살할 결심이었다. 때맞추어 계봉이가
달려들어 왔다.
계봉이는 언니가 무사한 것에 우선 안심을 하지만, 곧 형보의 주검을 확인했다. 또 약병을 발견하고
그녀의 안타까운 운명을 애달파했다. 조금만 참았더라면 승재가 그녀를 구해주었을 것이라는 계봉의
넋두리에 그가 자신을 아직까지도 사랑한다고 믿는 초봉은 기쁨과 슬픔의 감정이 북받쳤다. 모두들
한바탕 부여안고 울던 끝에 초봉은 승재에게 앞으로 어떻게 할까를 물었다. 승재는 초봉이가 애원하
는 그 명일의 언약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감옥에 갔다오라고 말했다. 초봉이는 저도 모르게 한숨
을 쉬며 네라고 대답할 따름이었다. 그녀의 얼굴엔 슬픔이 드리웠지만 끝내 승재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
▣ 더 재미있게 읽기 위하여
1930년대 우리 나라 사회상의 사실적 묘사
장편소설인 『탁류』는 1937년 10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된 작품이다. 탁류란
제목은 금강이 유장하게 흐르다 바다에 다다라서는 조수까지 휩쓸려 흐리고 탁하게 흐르는 모습에서
따온 것으로, 당시의 혼탁한 사회의 흐름을 상징한다.
이 소설은 1930년대의 우리나라의 사회상을 집약적으로, 또 리얼하게 묘사해 당시의 세태와 풍속을
손에 잡힐 듯이 보여준다. 특히 군산 미두장(쌀과 곡식 시장)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세태와 온갖 인간
군상들의 표정은 당시의 시대상을 잘 드러낸다. 군산이란 항구는 일제의 식민지지배가 시작되면서, 우
리나라의 쌀을 일본으로 공출하는 창구역할을 했다. 그곳은 왜곡된 식민지근대화 과정의 모순들이 한
꺼번에 어울려 탁류를 이루는 적나라한 현장이었다. 즉 그곳은 전통사회가 무너지고 새로운 사회의
질서와 윤리가 충돌하는 구체적인 공간인 셈이다. 식민지자본주의가 진행되는 와중에서 농민층의 광
범한 분화와 분해가 일어나고, 그 과정에서 경제적 몰락의 길을 걷거나, 아니면 시류에 편승하거나 교
4 ) 아교로 만든 작은 갑. 캡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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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히 이용하면서 살아가는 다양한 인물들이 미두장을 둘러싸고 다양한 파노라마를 펼치는 것이다.
여주인공 초봉의 아버지 정주사의 경우는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몰락의 과정을 밟는 전형적
인 구시대의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양반의 후예로 어려서 한문을 공부하고 신학문까지 배웠으나 군
서기 노릇을 하다 밀려나 군산까지 흘러와서 몇몇 월급쟁이를 거쳐 미두꾼에서 다시 하바꾼으로 전
락한 무능한 인물이다. 그는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즉 입만 가졌지 수족이 없는
인간 기념물로 묘사된다. 사실 개인의 무능함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어쩌면 정주사의 몰락은 역사적
문맥으로 보면 필연적이다. 그러므로 벌건 대낮에 그것도 대로상에서 젊은 녀석에게 멱살을 잡혀 망
신을 당하는 정주사의 비참하고 딱한 처지는 그대로 몰락하는 전 시대의 사고방식 자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식민지자본주의체제에 정상적으로 편입되지 못하는 대다수 농민층의 처지이기도 하다.
물론 그곳에는 몰락의 길을 걷는 사람들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고태수와 같이 시류에 편승하긴 해도,
술과 여자에게 빠져 앞날의 희망도 없이 그날 그날을 방향 없이 살아가는 인물이나, 자본주의체제로
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그럭저럭 살아가는 탑삭부리 한참봉과 같은 인물도 있다. 그런 점에서 악의 화
신으로 그려지는 형보는 식민지자본주의체제 혼란과 그 비극적 성격을 보여주는 데 가장 걸맞은 인
물일 수 있다. 그는 그 시대의 변화와 모순의 충돌과정 속의 혼란을 가장 적극적으로 이용하며 자신
만의 이익을 추구한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그는 어떻게든 돈을 빼돌려
중국으로 도망가 금제품 밀수나, 계집장사, 혹은 술장사를 해먹는 꿍꿍이를 품고 있다. 밀수와 매매춘,
이것이야말로 왜곡된 자본주의체제의 가장 비극적 모순이 아닌가. 차라리 그가 서울로 올라와 생계로
삼는 고리대금업은 애교에 가깝다. 박제호도 시대변화에 적극적으로, 그러면서도 그러한 혼란을 교묘
히 이용하는 새로운 인물상이다. 그러므로 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과 충돌은 그대로 1930년대라는
혼란한 시대의 축도인 것이다.
『탁류』속에는 이렇게 부정적인 양극단의 인물들만이 존재하는 건 아니다. 작가는 새로운 시대의 희
망을 남승재나 계봉이의 모습 속에서 조심스럽게 기대하는 것 같다. 아직은 뚜렷하게 드러나거나 구
체화되지 못했지만 새 시대의 전형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이들의 성격에 대한 형상화가 미흡해서
단순한 세태묘사에 머물렀다는 평가도 있지만, 식민지자본주의 지배체제에 편입된 우리나라의 현실을
도식적으로 그리지 않은 것이 이 작품의 성과다.
세속적 욕망과 전통 윤리의 비극적 파탄
『탁류』는 다양한 인물들의 단순한 집합체는 아니다. 이들이 벌이는 갈등과 충돌은 주인공인 초봉이
를 중심으로 벌어진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초봉의 삶을 통해 세속적인 욕망에 희생된 한 여인의 운
명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부모의 욕심에 희생되고, 남편에게 속고, 주위의 그릇된 욕망에 찢겨진 초
봉의 비극은 한 불행한 여인의 일생으로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당시 신·구 모럴이 무
질서하게 충돌하는 과정에서 희생된 전 조선여성의 비극이 집약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초봉이가 겪는 비극의 근본적 원인은 두 가지 방향에서 진행된다. 그 하나는 당연히 외부다. 우선 정
주사는 초봉의 혼사문제를 혼수장만과 자신의 장사밑천과 결부시켜 딸을 팔아먹는다. 자기기만과 합
리화라는 인격적 파탄과 동시에. 또 박제호는 친구의 딸임에도 불구하고 초봉이가 처한 상황과 돈을
교묘히 이용해서 자신의 첩으로 삼고, 형보가 찾아온 것을 핑계삼아 초봉을 버린다. 형보는 친구를 배
신하고 초봉을 겁탈했으며, 또 송희를 이용해 초봉이를 차지한다. 이들이 보여주는 세속적 욕망과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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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적 타락은 당연히 자본주의적이다. 그런데 비극의 원인이 그것뿐일까?
초봉이는 승재를 사랑하고 있음에도 부모의 권유(반쯤은 협박)에 따른다. 자신의 뜻이 아니라, 부모님
의 뜻에 순종하는 효녀 심청이다. 주체적 선택보다도 봉건시대의 절대이념인 효를 우선으로 하는 가
치관이 비극의 출발점이었다. 또 형보가 겁탈했을 때도 현실적 적극적 저항이 아니라 봉건이념인 정
절을 내세워 죽으려고까지 한다. 새 출발을 계획하고 서울로 향할 때도 운명을 적극적으로 개척하고
자 하는 의지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박제호와 만나 온천에 들렀을 때도 마찬가지다. 승희를
낳고부터는 자신은 이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형보가 다시 찾아오고 박제호가 자신을 배신할
때의 분노와 원한도 어머니로서 자식을 지켜야 한다는 전통적 윤리관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운명이
라 여기며 체념한다. 운명에 희생하는 여인상 이것 자체가 이미 낡은 윤리가 아니었던가? 그러므로
초봉이는 스스로 비극의 원인을 안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초봉이가 형보를 죽이고 앞날을 걱정하는
소설의 결말부분이 서곡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다는 점이 시사하는 의미는 크다.
▣ 채만식의 생애와 작품
1902
전라북도 옥구군 임피면 읍내리에서 중농인 아버지 채규섭과 어머니 조쌍섭의 6남매 중 막
내로 태어났다. 호는 백릉(白菱), 채옹(采翁)
1910
임피보통학교 입학
1914
임피보통학교를 졸업
1918
서울의 중앙 고등보통학교에 입학
1919
집안 어른들의 강권으로 은선흥(殷善興)과 결혼한다. 그녀와는 애정 없는 결혼이라 평생을
별거로 살다시피했다.
1922
중앙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와세다 대학 부속학원 문과에 입학, 이듬해 본
과는 영문학을 선택한다.
1923
도쿄 대지진이 일어나자, 학업을 포기하고 귀국한다. 문학에 뜻을 두고 중편『과도기』를
썼다. 이 작품은 출간되지 못하고 유작(「문학사상」73.8- 9 발표)으로 남았다. 이 무렵엔
집안의 가세가 완전히 기운다.
1924
춘원 이광수의 추천으로 「조선문단」3호에 단편소설 「세길로」가 발표되어 문단에 첫 선
을 보인다. 교원으로 취직하고, 맏아들 무열이가 태어났다.
1925
동아일보 학예부와 사회부기자로 1년여 활동하다 퇴사한다. 이후 1931년「개벽」사에 입사
할 때까지 오랜 실직생활을 경험한다. 이러한 경험은 이후 『레디 메이드 인생』(1934) 등
의 작품으로 산출된다. 「불효자식」(「조선문단」)을 발표했다.
1928
둘째 아들 계열이가 태어났다.
1931
「혜성」에 「창백한 얼굴들」, 「화물자동차」 등을 발표. 카프에 가담하지 않았으나, 현
실비판 의지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발표해 그들로부터 동반자 작가로 평가된다. 하지만 함
일돈, 이갑기 등과 자신의 작품을 둘러싼 이른바 동반자 작가 논쟁으로 독자적인 문학태
도를 천명했다.
1932
희곡 「감독의 안해」(「동광」)를 발표했다.
1933
「조선일보」로 직장을 옮겨, 1936년까지 기자생활을 했다. 여성의 가정으로부터의 해방을
내용으로 하는 「인형의 집을 나와서」를 「조선일보」에 연재했다.
1934
「신동아」에 「인텔리와 빈대떡」(희곡), 『레디 메이드 인생』 등 인텔리의 비애를 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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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다수 발표한다. 장편「염마」(「조선일보」)를 연재했다.
1936
오랜 하숙생활을 정리하고 새로운 여인과 결혼식 없이 동거에 들어갔다. 또 「조선일보」를
나와 금광을 하는 형이 사는 개성으로 거처를 옮겼다. 「보리방아」(「조선일보」)를 시작
으로 1934년 이후 접었던 창작활동을 재개했다.
1937
「조선일보」에 장편「탁류』를 연재했다. 희곡 「제향날」(「조광」)을 발표
1938
「동아일보」에 『치숙』을 발표. 잡지「조광」에 장편「천하태평춘(天下太平春)」을 발표
했다. 이 작품은 1948년 「태평천하」로 제목이 바뀌어 단행본으로 간행됐다.
1939
장편 「금(金)의 정열」을 「매일신보」에 연재,『탁류』가 박문서관에서 출간됐다.
1940
안양으로 이사. 가난 때문에 이후 고향 임피와 서울 등을 전전하면서 「인문평론」에 중편
「냉동어」를 발표했다.
1941
『탁류』3판이 조선총독부에 의해 발매금지처분을 받았다.
1942
「매일신보」에 장편 「아름다운 새벽」을 연재한다. 셋째아들 병훈이 태어났다.
1943
장편 「어머니」(「조광」)를 발표. 이 작품은 이후 1947년 「여자의 일생」이란 제목으로
출간됐다. 한편 「홍대(鴻大)하옵신 성은」(「매일신보」) 등의 친일의 글을 발표하여 일생
의 오점을 남겼다.
1944
딸 영실이가 태어났다.
1945
부친이 별세하고, 맏아들 무열이가 병으로 사망했다. 해방 후 서울로 이사했다.
1946
고향 임피에서 단편집 『제향날』을 간행하고, 『논 이야기』등 많은 역작을 발표했다.
1947
넷째 아들 영훈이 태어났다. 어머니 별세, 이리시로 이사해 정착했다. 장편집 『아름다운
새벽』이 박문출판사에서 출판됐다.
1948
장편 『태평천하』(동지사판)가 재출판되고, 단편집 『잘난 사람들』(민중서관), 『당랑의
전설』(을유문고14. 을유문화사)이 출판됐다.
1949
『탁류』(민중서관)3판을 간행하고, 역사소설「옥랑사」를 탈고, 무리한 창작활동으로 병상
에 눕게 됐다.
1950
6월 11일, 49세를 일기로 이리시 마동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1984
군산과 금강이 바라보이는 월명공원에 문학비 건립.
▣ 참고문헌
김윤식 편, 『채만식』, 문학과지성사, 1984.
김윤식, 김현, 『한국문학사』, 민음사, 1973.
김치수, 『식민지 시대의 문학연구』, 깊은샘, 1980.
나병철, 『전환기의 근대문학』, 두레시대,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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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용 공저, 『한국근대작가연구』, 삼지원, 1985
윤병로, 『현대작가론』, 삼우사, 1975.
이동수, 『채만식 소설 연구』, 이우출판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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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웅, 『우리소설이 걸어온 길』, 솔,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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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상, 『한국 현대 골계소설 연구』, 문학예술사,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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