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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이어령하다

by Casey,Riley 2022.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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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타 지음 / 맥스미디어
이 책은 아티스트 김아타와 이어령의 마지막 대화로, 김아타가 촬영한 이어령의 내면 이야
기이다. 김아타는 ‘창조적 인간의 전형’이라는 이어령 선생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김아타
는 이어령 선생을 혁명하는 사람, 어느 진영에 속하지 않았던 ‘소수를 위한 사람’이라 칭한
다. 자신이 촬영한 <이어령하다>는 이어령 선생의 다른 모든 것을 배제한 후 오직 인간 이
어령의 내면을 담았다고 말한다.

이어령하다
김아타 지음


▣ Short Summary
아티스트 김아타는 ‘창조적 인간의 전형’이라는 이어령 선생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김아타는 이어령
선생을 혁명하는 사람, 어느 진영에 속하지 않았던 ‘소수를 위한 사람’이라 칭한다. 자신이 촬영한 <이
어령하다>는 이어령 선생의 다른 모든 것을 배제한 후 오직 인간 이어령의 내면을 담았다고 말한다. <
이어령하다>에 실려 있는 두 사람의 대화는 우리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생명 같은 메시지
들을 담고 있으며 둘의 대화는 지성과 인문, 철학과 예술 전 범주에 걸쳐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21세
기 생명 자본주의와 자연의 예술, 그리고 죽음을 아우르는 지성의 오케스트라를 펼치고 있다.
우선 1부 ‘대화하다’는 아티스트 김아타가 이어령 선생의 사진을 촬영하게 된 계기를 보여 준다. 김아
타는 이어령 선생이 자신의 작업에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라는 크나큰 격려를 해 준 것에 감동하
며, 생각지도 못한 이어령 선생의 부탁(자신을 촬영해 달라)을 받게 되는 과정을 담백하게 설명한다.
또한, 자연에 관한 철학을 설명하며 이어령 선생의 실존에 대해 질문한다.
2부 ‘편지하다’는 김아타와 이어령 선생의 철학적 대화가 주를 이룬다. 두 사람의 예술, 철학, 그리고
지성이 가득 담긴 두 사람의 편지는 감동과 감탄을 느끼게 한다. 3부 ‘아르테논하다’에는 이어령 선생
의 여러 조언과 김아타의 작품, 철학, 그리고 미술관 ‘아르테논’이 등장한다. 아르테논은 아티스트 김
아타가 자신의 철학이 담긴 예술 작품들을 전시한 미술관으로 그 안에 품고 있는 철학과 지성은 헤아
리기 힘들다.
4부 ‘얼굴하다’에서는 두 사람의 더 깊은 대화가 이어진다. 아티스트 김아타는 ON NATURE <자연하다
>의 철학과 이어령 선생님을 촬영한 기법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며 인간의 내면에 관한 철학과 죽음,
그리고 진정한 ‘나’란 무엇인가 등에 관해 설명하며 독자에게 성찰의 시간을 준다. 이어령 선생 역시
김아타의 철학에 동조하며 “내가 죽음을 앞에 두고 유일한 지기를 얻은 것 같다.”고 흡족해한다. 마지
막 5부 ‘실존하다’에서는 이어령 선생의 지식과 혁명을 용암과 마그마가 솟구치는 ‘시의 화산’에 비유
하며, 그의 내면과 실존에 관해 설명한다.

▣ 차례

-2-

이어령하다

이 책을 이어령 선생님 영전에 바칩니다 / 이어령하다를 엽니다
1부 대화하다
내 마지막 모습을 찍으세요
선생의 마지막 초상
내 마지막 예술의 혼을 함께해 주신 고마움을 담아
아타 선생은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 계시다
아르테논하다
선생의 초상을 찍었다
마지막 메일
선생의 실존은 무엇입니까?
2부 편지하다
눈물이 난다
한국 미술판에서 영원히 추방될 것이다
평화로운 땅을 만나다
이어령 얼굴하다
3부 아르테논하다
백수하다
4부 얼굴하다
글이 눕다
그대로 풀어서 원고로 사용하세요
마지막 대화를 긍정하셨다
뭐가 들어가서 고장이 났을까?
5부 실존하다
찬란한 슬픔
타우마제인 하다
화산 폭발하다
혁명하다
창조적 인간, 이어령
창조적 인간의 전형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어령하다
인문의 절정
2022년 2월 26일
책을 여밉니다.

-3-

이어령하다

이어령하다
김아타 지음

대화하다
내 마지막 모습을 찍으세요
마지막 수를 놓듯, 들숨 사이 날숨 사이 말을 빚던 선생께서 당신을 사진하라 했다. 선생도, 나도, 침
묵했다. 선생을 만난 지 7년, 선생은 언제나 당당했다. 한순간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오케스트라를 지
휘하듯, 우주를 지휘하듯, 때로는 온화하고 때로는 격정적으로 당신을 통제했다. 이제, 초월했다. 겁
(劫)의 시간이 흘렀다. 선생의 말을 받았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시(詩)가 된 이어령을 사진했다. 아
름다운 영혼이다.
선생은 이른 시간 동시했다. 동요했다. 시를 쓰고, 소설하고 희곡하고 평론했다. 평생을 인문의 정점에
서 만다라보다 더 화려하고 섬세한 언어로 동서양을 직조했다. 그림하고 지우기를 90해를 계속했다.
이제 거푸집이 된 당신을 ‘사진하라’ 했다. 블랙홀에 가까운 선생의 마지막 시간이다. 도배지도 걷고,
미장도 걷고, 벽돌마저 걷어 낸 골조만 남은 언어적 구조가 시라면, 모든 인간은 결국 한 편의 시가 된
다. 가장 난해하고 단순한 서사, 당신은 시가 되었다.
선생의 마지막 초상
선생의 마지막 시간을 사진할 상상은 없었다. 사진은 내 마음 밖에 있었다. 오직, 선생과 마지막 대화
를 하고 싶었다. 마지막 시간, 마지막 순간, 사진하는 일보다 더 절박함이 있었다. 대화였다. 선생께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상처가 있었다. 상실의 시간, 아버지와의 대화였다. 아버지의 죽음이다. 30년
전, 당신께서 마지막 시선을 거두기 3일 전, 아버지 사진을 찍었다. 앙상했다. 바싹 마른 장미 한 송이
를 들었다. 한마디 말이 없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질풍노도의 시절, 내 정신은 카메라 뒤에 숨어
있었다.
아버지, 당신의 마지막 초상은 필름에서 화석이 되었다. 필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무도 부르지 않
았다. 그렇게 30년을 보냈다. “내 마지막 모습을 찍으세요.” 선생의 말은 초봄 아지랑이 같았다. 실바
람 같았다. 나의 상상 밖에 있었던 일이다. 말하는 선생께서도, 듣는 나도, 아프지 않았다. 침묵했다.
침묵으로 답했다. 오직 믿음만 있었다. 겁의 시간이 지났다. 겁은 모르는 시간이다. 겁은 의식하지 않
는 시간이다. 겁했다. 선생은 나를 보고, 나는 선생을 보았다. 서로 마주했다. 아름다운 영혼이다. 아
름다운 시간이다.
비워 있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그대로다. 향기가 난다. 선생의 마지막 초상이다.
내 마지막 예술의 혼을 함께해 주신 고마움을 담아
몇 년 전 봄날, 마당 한쪽에 이랑을 치고 호박씨를 심었다. 2주일 남짓 되었을까? 떡잎에 밀려 올라오
는 호박씨를 보았다. 여린 떡잎은 기도를 하듯 이 두 손을 모으고 자신을 내어 준 호박씨 껍질을 밀어
올리고 있었다. 비장하고 장엄했다. 호박씨는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고 거푸집이 되어 있었다. 거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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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하다

이 된 호박씨의 전설처럼, 육신이 빠져나간 모든 인간은 결국 거푸집이 된다. 세포 하나도 남겨 두지
않고, 완벽한 거푸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생의 마지막 모습, 언어를 내려놓았다. 맑고
여리다. 호박씨 껍질을 밀어 올리는 여린 떡잎을 닮았다.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다. 초침이 지나는 소리,
아침에 지나간 바람 냄새, 창밖을 지나는 겨울 미소, 그 시절로 간다. 여림한다.
“내 마지막 예술의 혼을 함께해 주신 고마움을 담아.” 선생께서 혼신의 힘을 다해 선생의 마지막 책,
『메멘토 모리』에 자필 서명했다. 아다지오, 아다지오~~ 한없이 느린 슬로우 비디오처럼, 내가 만난
가장 오래된 춤이었다. 음악이었다. 음악을 해방시킨 존 케이지도, 춤을 자유한 머스 커닝햄도 이르지
못했다. 음악이다. 춤이다. 선생께서 책에 서명을 하는 그 순간, 많은 것이 함께했다. 따뜻한 겨울 볕
이 가득했다.
“창가에 우는 새 / 혹시 너냐 / 보고 싶어 왔느냐” 먼저 간 딸을 그리는 통절한 선생의 시가 왔다. 까
치 소리가 들렸다. 우주를 압축한 듯 야무진 찻잔, 오랜 세월 당신을 받아 준 소파, 여유로운 슬리퍼,
여기저기 하는 책들, 부유하는 먼지, 선생과 시공을 공유했던 자재하는 존재들, 계량할 수 없는 선생의
우주가 춤을 추었다. <메멘토 모리>를 축제하라! <메멘토 모리>를 축제하라! 선생은 눈을 감고, 눈을
떴다. 나는 하얀 춤을 추었다. 선생을 축복했다. 모든 것을 축복했다.
아타 선생은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 계시다
2015년 8월 26일, 이어령 선생께서 당시 파주 출판 단지에 있던 나의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눈물이
난다. 아타 선생은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 계시다.” 선생님은 자연이 그림을 그리는 프로젝트, <자연하
다>를 긍정했다. 선생의 긍정은 내가 절망처럼 붙잡고 있었던 <자연하다>에 생명이 되었다. 나는 “부
활했다”고 『백정의 미학』에 썼다. 이틀 뒤, 나의 감사 편지에 선생의 회신이 왔다.
“충격과 어쩌면 질투에 가까운 부러움을 지니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뜻밖에 우리 가까운 곳에 지적 모
험과 영혼의 탐험자들이 있기에 우리는 절망하다가도 한국을 잊지 못합니다.” 선생께서 한참을 뒤에
서 있는 서툰 사람에게 마음을 내어 주셨다. 몇 년이 지났다.
아르테논하다
10년을 더 자연했다. 죽어서도 후회하지 않을 작업에 올인했다. 처음 선생을 만난 후 몇 해가 지났다.
바람이 되었다. 2020년 4월, 경기도 여주에 <아르테논>을 조성했다. <자연하다>에 대한 선생의 긍정
이 큰 용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미 선생의 건강은 <아르테논>까지 나들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르테논>은 나의 총합이다. 신학과 미학과 철학이 함께한다. 이곳에서 선생과 대화를 하고 싶었다.
삶과 죽음, 이곳에서 존재와 실존을 해방하고 싶었다.
선생의 초상을 찍었다
<아르테논>을 방문할 수 없는 선생의 건강을 염려했다. 선생의 초상을 역사에 남기기로 했다. <이어령
얼굴하다>, 선생의 미수(米壽) 생신을 기념했다. 선생은 큰 스승이시다. 사람들은 선생을 지성의 상징
으로 말하지만, 나는 창조적 인간 이어령에 초점한다. 선생은 예술 너머에 있다. 어떤 수식도 선생을
한계할 수 없다.

-5-

이어령하다

“아! 내가 죽음을 앞에 두고 유일한 지기를 얻은 것 같습니다.” 동산에 불과한 내 자연을 보듬어 주셨
다.
마지막 메일
2022년 1월 23일.
“규술이라도 꼭 쓰겠습다 먼저 누워 맀다가이제서야 열어보았 니다 전화로 설명드리지요”
당신께서 워드를 할 수 없어 구술이라도 더하겠다 하셨다. 세상에 처음 소개되는 <자연하다> 책에 선
생의 말을 부탁했다. 예술사에 처음 하는 자연이 그림을 그리는 <자연하다>가 세상에 소개된다. 선생
의 혜안으로 길을 내어 달라 청했다. 선생께서 보내온 마지막 메일이다.
선생의 실존은 무엇입니까?
“예수의 실존이 무엇이겠습니까?” “지저스의 새크리파이스(sacrifice)는 ‘피’입니다.”
선생께 실존을 물었다. 본질에 앞서는 사르트르의 ‘실존’은 고전이다. 선생의 ‘실존’은 지저스의 피다.
마호메트의 피다, 너의 피다, 나의 피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실존’은 ‘피’로 생명한다.
선생과의 마지막 대화에서 마지막 질문을 했다. 살아남은 자인 내 가혹한 실존을 선생께 물었다. “실존
이 무엇입니까?” “사르트르는 본질에 앞선다 했는데 선생의 실존은 무엇입니까?” 나도, 선생도 잠시
침묵했다. 선생께서 가쁜 숨을 쉬었다. 지저스의 희생은 피라 했다. 나는 지저스의 피, 붓다의 피, 마
호메트의 피, 너의 피, 나의 피,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피로 받았다.
피는 본성이고 본질이다. 대단한 화두였다. 사르트르의 실존은 고전이다. 나도 60년을 더, 영락없는
실존주의자로 살았다. 본성과 본질을 떠난 실존의 정체는 없다. 실존을 비켜 갈 지성은 없다. 실존을
외면할 선생은 아니다. 위대한 지성의 실존은 추상이 아니다. 그 자체다. 죽음을 앞둔 위대한 사람, 이
어령의 실존이다. 창조적 인간의 완성이다.
선생의 마지막 시간, 선생께 실존을 물었다.

편지하다
눈물이 난다
이어령 선생께서 파주 출판 단지에 있던 나의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중앙일보 남정호 기자와 오랜 지
기인 철학하는 수원대학교 이주향 교수가 자리를 함께했다. 남정호 기자는 2006년 중앙일보 뉴욕 특
파원으로 근무할 당시 뉴욕 타임스에 소개된 ICP(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 New York) 나의
개인전 리뷰를 뉴욕발로 한국에 소개했다. 그해 뉴욕 타임스는 아츠 섹션 2페이지를 할애했다. 속된
말로 대서특필했다. KBS에서는 <젊은 그대>란 스페셜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남정호 기자는 예술에
이해가 깊은 사람으로 백남준에 대한 두 권의 책을 썼다. 이주향 선생은 소리 없는 죽비처럼 매섭지만,
이름처럼 향 맑은 사람이다.

-6-

이어령하다

나는 이어령 선생께서 스튜디오를 방문하기 전날 밤을 꼬박 설쳤다. 자연이 그린 그림, <자연하다>에
대한 선생의 이해가 궁금했다. 절박했던 시절이다. 이어령 선생은 모든 것이 열려 있는 창조적 인간이
다. 스튜디오에는 몇 점의 <자연하다> 작품이 걸려 있었다. 선생께서 <자연하다> 제작 과정을 기록한
15분짜리 다큐멘터리를 감상했다. 이 프로젝트는 다큐멘터리를 보지 않으면 작업 배경을 이해하기 어
렵다. 대부분의 작업이 상식 밖에 있어 그렇다.
“눈물이 난다. 아타 선생은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 계시다.” 선생께서는 <자연하다>를 극찬했다. 수억
년을 쟁여 온 내 업(業)이 다 녹은 듯했다. 두 시간이 바람같이 지나갔다. 선생은 공감하고 감동했다.
<자연하다>에 대한 선생의 공감은 나를 살게 했다. 그랬다. 선생의 공감은 나를 살게 했다. <자연하다
>를 마주한 여러 외국 친구들이 눈물을 흘리며 공감했지만, 나는 이어령 선생의 <자연하다>가 궁금했
다. 그리고 위로받고 싶었다.
한국 미술판에서 영원히 추방될 것이다
“대단하다. 감동적이다. 이게 말로만 듣던 그 작업입니까?” 자연이 그림을 그리는, 자연 드로잉 프로젝
트 <ON NATURE>였다. “그렇습니다.” “아타 선생, 그런데 아타 선생이 이 프로젝트를 한국에서 전시를
하는 그날부터 한국 미술판에서 영원히 추방될 것입니다.” 내 귀를 의심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렇게 알고 계세요.” 나는 애써 웃으며 이유를 물었지만, 그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평생을 대학에서
미학을 가르치며 인문학을 공부했던 사람이다. 2015년 3월 12일, 당시 파주 출판 단지에 있던 나의 스
튜디오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의 충격은 컸다. 그는 나의 작업을 매우 긍정했던 몇 안 되는 미술 평론가 중 한 사람이었다. 기가
찼다. 그로부터 5개월 사이, 두 미술관에서 기획되었던 전시가 공염불이 되었다. 전시 포스터까지 만
들어 와서 눈물을 흘리며 간절하게 <ON NATURE> 전시를 요청했던 미술관이 있었다. 그녀는 미국 유
학 중에 내 작업에 대한 논문을 썼다.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그 미술관의 책임 있는 위치에 자리했다.
그녀는 절절한 내용의 손 편지를 써 왔다. <ON NATURE> 전시 포스터까지 만들어 내 스튜디오를 찾아
왔다. “간절히 원하면 이룰 수 있다.”라는 성경 구절을 써 온 그녀의 간절한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미술관을 방문하여 공간을 확인하고, 전시 스케줄이 완성되었을 무렵, 한마디 이유 없이 “전시를 할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가 끝이었다. 한 곳의 미술관이 더 있었다. 미술관 오너가 직접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ON NATURE>에 감동했다. 자신의 미술관에서 먼저 <ON NATURE> 전시를 하고 싶어 했다.
전시 경비 등 모든 절차가 완료되었다. 졸지에 “전시를 할 수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끝이었다. 인간
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작가에 대한 상식적 배려도 없었다. 21세기 문명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 무
리들의 경고가 작동하고 있었다. 비참했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5년째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세상과 소통을 해야 하는 이유는 예술의 존재 이유
다. 아티스트가 전시를 하는 일은 세상과 소통하는 일이다. 이는 아티스트들에게는 숨을 쉬는 것과 같
다. 촌스러운 말 같지만, 소통은 생명이다. 전시를 하지 않으면 시나브로 결국 소멸된다. 소통하지 못
하면 유통하지 못하고 결국은 죽는다. 몸이 먼저 죽고, 정신이 따라 죽는다. 순수해야 할 예술 세계에
서 무리 지어 협박하고, 숨통을 죄는 것은 폭력 이상이다. 해서는 안 될 짓이다. 그러나 아티스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가 않다. 오직 작업을 계속하는 일이 전부다. 죽기를 각오했다. 지독한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에, 이어령 선생께서 나의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7-

이어령하다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 계시다.” 선생의 말 한마디가 나를 살게 했다. 나는 이 순간을 2019년 발간했
던 『백정의 미학』에서 “나는 부활했다.”라고 썼다. 나의 의지는 더 선명해졌다. 한 발을 더 내었다. 직
접 전시 공간을 조성하기로 했다. <아르테논>은 그렇게 조성되었다. 미학과 신학과 철학이 함께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이곳에서 이어령 선생과 걸림 없는 대화를 하고 싶었다. 하여 삶과 죽음, 실존
을 해방시키고 싶었다. 구원의 메시지를 준 선생께 감사하고 싶었다.
평화로운 땅을 만나다
2015년 12월 31일 이후, 몇 년 동안 선생께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큰 수술을 받은 선생의 건강을 우
선했다. 간절했지만, 공간을 조성하고, 선생을 초대하기로 했다. 전시 공간을 직접 만들기로 했던 것이
다. 좋은 땅을 만나기 위하여 여러 곳을 다녔다. 강원도,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전국을 다녔
다. 작은 땅이라도 경매가 나온 매물이 있으면 한달음 했다. 자연환경을 우선할 처지가 아니었다. 공장
지대, 바다, 산, 어디라도 좋았다. 어디든 내가 가면 그곳이 명당이라 의지했다. 나는 60년을 더 살면
서 땅을 우선하지 않았다. 땅은 내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거시 경제에 무지
했던 탓이다.
2006년 말, 뉴욕 ICP 국제사진센터의 개인전을 크게 다루었던 뉴욕 타임스 리뷰, KBS 스페셜을 통해
나의 예술 철학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작품이 팔리기 시작했다. 10년을 더 밀려 있던 빚
을 갚을 수 있었다. 전셋집에서 벗어나고, 작업 공간을 지을 여유가 생겼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
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작업의 외연을 세계로 확대했다. 오직 내가 그려 왔던 그림을 재현하기
시작했다. 지금이라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철들지 못한 나의 경제관이었다. 지혜롭지 못했다
는 말이다.
이제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오매불망 땅만 찾았다. 그렇게 전국을 헤매고 다닌 지 몇 년 만에 평화로
운 땅을 만났다. 경기도 여주시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 복숭아밭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100년 가
까이 산 사람이 그곳을 무릉도원으로 만들어 놓았다. 감사했다. 직접 터를 고르고 건물을 조성했다. 여
전히 갈 길은 남았지만, 유일한 공간을 만들고 있다. 사유와 성찰의 공간, <아르테논>이다. 작은 공간
이지만, 자존감은 충만하다.
선생은 <아르테논>을 조성한 큰 이유이다. 4년 만에 이어령 선생께 소식을 전했다. <아르테논>에서 선
생과 속 깊은 대화를 하고 싶었다.

아르테논하다
백수(白壽)하다
2020년 12월 29일 작은 퍼포먼스를 했다. 선생의 미수 생신날 점심 초대를 받았다. 밥맛이 좋은 여주
진상미 한 가마를 가져갔다. 쌀 포대를 열고 한 알의 알곡을 가져왔다. “백(百)에서 한 획을 가져가겠
습니다.” 한 획을 뺀 99, 백수(白壽)하시라는 의미였다. 선생께서 그대로 받고 즐거워하셨다. 함께 웃
었다. 한 개의 알곡을 유리 앰플에 담았다. 자자손손, 선생을 상징하는 식의 자양분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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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하다

얼굴하다
글이 눕다
2022년 1월 23일 오전 4:53
구슐(구술)이라도 꼭 쓰겠습다 먼저 누워 맀다가이제서야 열어보았 니다 전화로 설명드리지요
선생의 회신이 없어 하늘을 보고 있을 때, 까치가 울었다. 선생의 메일을 받았다. 가슴이 무너졌다. 선
생의 자음과 모음이 서로를 의지하며 쓰러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선생은 평생을 자음과
모음을 바로 세운 사람이다. 언제, 어디서라도 둑이 터진 나이아가라 폭포수처럼, 자음과 모음이 축제
를 했다. 그 자음과 모음이 반쯤 누웠다. 마치 스마트한 아이들이 신조어를 만들듯이 글 장난을 하는
것 같았다. 선생의 회신을 보는 순간 내가 무너져 내렸다. 몸이 눕는 일이 죽음이다. 스스로 몸의 무게
를 이기지 못하는 삶이 죽음이다.
오래전, 얼음으로 붓다를 만들었다. 얼음으로 마오쩌둥을 만들었다. 얼음으로 나를 만들었다. 얼음으로
파르테논 신전을 만들었다. 얼음으로 만든 그것들은 녹아서 물로 돌아가는 순간이 가장 영롱하고 아름
답다. 영롱함도 잠시 결국 무너진다. 무너짐은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일이다. 몸이 먼저 눕고,
정신이 뒤를 따랐다. 미명의 시간, 얼음으로 만든 성스러움도, 권력도, 자아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 의지이고, 사상이다. 선생의 글은 눕더라도 글하는 선생의 의지는 눕
지 않는다. 오히려 선생의 몸의 빈자리에 선생의 사상은 더 선명해진다. 그것이 글의 본성이다. 존재하
는 모든 것들의 본성이다. 정체성이다.
부디, 이제, 선생은 글하지 않아도 된다. 비로소 글에서 해방되었다. 나도 선생의 글에서 해방되었다.
2022년 1월 23일 선생께서 보내온 마지막 메일을 받았다. 선생은 평생을 글로, 말로 소통했다. 그런
선생께서 글에서 해방되었다. 해방을 축복해야 할 일이다.
오래전, 뉴욕 첼시 길거리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는 화분을 보았다. 단단한 사슬이었다. 쇠사슬은 화분
을 묶으면서 자신도 화분에 구속되어 있었다. 굵고 단단할수록 자신을 더 단단하게 구속한다. 세상사
에 흔한 일상의 역설이다. 이 시간, 이 글도 결국 이 글에 구속된다. 좋은 글을 쓰려고 애쓸수록 좋게
구속된다. 구상처럼, 추상처럼, 완벽한 글은 완벽하게 구속된다. 원하는 값을 얻으면 그런대로, 부족하
면 부족한 대로 그 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유는 자유라 말하는 순간 자유에 구속되는 것과 같다.
진리가 있다면 그곳에 다가가면 갈수록 진실로 진리에 구속되는 것과 같다. 이것이 세상의 모습이다.
선생은 글을 버리고 대 자유로 갔다.

실존하다
창조적 인간, 이어령
열어 놓음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이 창조이다. 디지로그, 굴렁쇠, 갓길, 생명 자본주의, 모
든 것이다. 선생과의 대화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한 시간, 두 시간, 토씨 하나 버릴 것이 없다.
폭발하는 화산에서 분출하는 마그마는 환상적이다. 통제할 수 없다. 창조의 원형이다. 지성의 상징보
다 창조적 인간 이어령에 초점하는 이유다. 창조적 인간이 아름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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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하다

창조적 인간은 다름을 배제하지 않는다. 창조적 인간은 다름에 차이를 두지 않는다. 창조적 인간은 벽
이 없다.
창조적 인간의 전형
선생은 소수를 위한 사람이다. 소수를 대변한 많은 사연들이 있다. 창조적 인간의 전형이다. 무리에 싸
이면 창조적 인간이 될 수가 없다. 불가능하다. 프레임이 창조적 마그마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폭발하
는 화산을 막으면 화산이 죽는다. 선생의 식(識)을 막으면 선생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선생은 진영
에 속하지 않았다. “우리we라는 우리cage에 갇혀 버리면 새것을 창조할 수 없다.” 했다. 선생을 존경
하는 이유다. 선생께서 그 지점을 위로했다.
2015년 8월 26일 내 스튜디오를 방문하셨다. <자연하다>, 자연이 그림을 그린 프로젝트를 보셨다. “아
타 선생은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 계시다.” 크게 덕담했다. 20년을 더 뒤에 있는 선 사람에게 쉽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힘으로 받았다. 수백 번을 되새겨도 과하지 않다. 창조적 의지는 이것과 저것을
가리지 않는다. 선생께서 나의 스튜디오를 방문하기 일주일 전, 선생의 제자 열세 명이 먼저 방문했다.
“이어령 선생님께서 꼭 오셔야 한다.” 모든 사람이 입을 모았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인문의 절정
모든 인간은 유토피아를 꿈꾼다. 그러나 유토피아는 인간이 살아서는 안 될 금단의 땅이다. 가지 말아야
할 땅이다. 낙원, 유토피아에는 부족함이 없다. 일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싸울 이유도 없다. 풍족하고
싸울 이유가 없으니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니 사유할 이유가 없다.
삶은 필요에 의한 몸의 본능적 반응이다. 필요한 것이 없는 세상은 결국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세
상이다. 늙은 나무는 속이 먼저 비어 간다. 속이 겉보다 자연에서 멀어서 그렇다. 인디언, 영혼이 맑은
사람들은 보호 구역에서 자연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보호 구역에서 온전한 평화를 누릴 것 같지만, 그
들은 소멸되어 갔다. 늑대와 춤을 출 이유가 없었다. 주먹을 쥘 이유가 없었다. 자연할 이유가 없었다.
2007년 10월, 나는 뉴욕에서 마지막 남은 인디언 영적 지도자를 만났다. 그녀는 “문명이 모든 것을
가져갔다.”라고 마지막 숨을 토하듯 눈물을 흘렸다. 유토피아가 꿈꾸는 곳이 있다. 패러독스의 완성 그
곳이 개천이다. 개천은 용의 홈타운이다. 실존했던 모든 성인의 어제는 모든 상처의 모둠이다. 성인은
큰 상처의 현현이다. 지저스를 기도한다, 붓다를 기도한다.
선생께서 마지막 순간까지 혼신을 다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유토피아가 아니다. 창조적 인간이다.
이미 오래전, 선생의 디지로그는 생명 자본주의로 진화했다. “AI 시대는 빅 데이터가 생명이다.” 나는
선생의 통찰에 전율한다. 선생의 통찰은 AI 시대 빅 데이터를 생명으로 창조했다. 이것은 생명 자본주
의의 꽃이다. 인문의 절정이다. 창조적 인간 이어령 선생의 진면목이다. 이 어 령 하 다.
2022년 2월 26일
“얘야! 밥 먹어라!” 선생은 엄마가 밥 먹으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어머니에게로 갔다. 선생과 마지
막 대화를 한 날로부터 29일째 되던 날, 선생은 별이 되었다. 동화로 갔다. 신화가 되었다. 모든 존재
는 탄생의 순간부터 탄생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날을 꿈꾼다. “죽음을 기다리며 탄생의 신비를 배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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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하다

네.” 선생께서 죽음을 축복했다. 존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의 집행 유예 상태이다. 시차가 다를
뿐 이를 비켜 갈 자연은 없다. 선생을 축복한다. 찬란한 슬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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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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