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프 아기옹 외 지음 / 에코리브르
이 책은 창조적 파괴를 통한 성장이 어떻게 경쟁, 불평등, 환경, 금융, 실업, 건강, 행복, 산업화, 빈곤
국의 따라잡기 정책 등과 상호 작용하는지 설명한다. 또한 국가의 개입, 즉 행정부의 적절한 제어와
관리가 앞에서 언급한 문제들을 공략하면서도 어느 정도 부의 창출을 촉진할 수 있는지 알아본다. 결
론적으로 저자들은 자본주의를 ‘끝내기’보다는 더 잘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창조적 파괴의 힘
필리프 아기옹 외 지음
▣ Short Summary
코로나19 위기는 기존에 시행되던 형태의 자본주의 체제에 영향을 주는 좀 더 심각한 문제들을 노출
시키는 뜻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했다. 포괄적으로 보면 지난 수십 년간 진행되어 온 불평등의 확산,
기득권의 집중화, 점점 더 불안정해지는 고용 조건, 보건 체계와 환경의 악화 등을 마주한 현 상황에
서 이제 경제 체계를 변화시키고 자본주의 자체를 폐기해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을 어떻게 구상해야 하는가라는 토론이 필요한데, 그 논의의 중심에 ‘창
조적 파괴’가 자리한다. 불과 200년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부유한 수준으로 현재 우리 사
회를 끌어올린 원동력이 바로 창조적 파괴다. 실제로 코로나19 팬데믹은 일자리를 없애고 많은 기업의
파산을 불러왔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새롭고 혁신적인 경제 활동의 장을 활짝 열어 주었다.
이처럼 창조적 파괴가 성장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우리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는 기업을 지원해 일자리를 보전하고 그 기업이 축적해 온 인적 자본을 지켜 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재할당이 필요한데, 이는 경쟁력이 더 높거나 소비자의 새로운 수요에 더 잘 대
응하는 신생 기업 및 새로운 경제 활동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책은 창조적 파괴를 통한 성장이 어떻게 경쟁, 불평등, 환경, 금융, 실업, 건강, 행복, 산업화, 빈곤
국의 따라잡기 정책 등과 상호 작용하는지 설명한다. 또한 국가의 개입, 즉 행정부의 적절한 제어와
관리가 앞에서 언급한 문제들을 공략하면서도 어느 정도 부의 창출을 촉진할 수 있는지 알아본다. 결
론적으로 저자들은 자본주의를 ‘끝내기’보다는 더 잘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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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파괴의 힘
참고로 성장의 동력으로서 창조적 파괴가 지닌 장점을 역설한 조지프 슘페터는 그러면서도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해서는 비관론을 견지했다. 특히 그는 그룹형 대기업들로 인해 중소기업이 사라지고 그 때문
에 사업가가 소멸할 것이며, 관료주의 및 기득권이 득세하는 사회가 오리라 예견했다. 그런데 이 책은
정부의 역할 및 자본주의에 대한 규제를 다루며, 기업, 국가, 시민 사회라는 삼각 구도를 통해 슘페터
의 비관적 예상을 비켜 갈 수 있는 방법과 지속적인 성장을 이뤄 낼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 차례
한국어판 서문
서론
01 새로운 패러다임
02 ‘이륙’이라는 수수께끼
03 기술 발전의 물결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04 경쟁은 바람직한가
05 혁신, 불평등 그리고 조세 제도
06 장기 침체에 대한 논의
07 아르헨티나 신드롬
08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산업화를 이루어야 하는가
09 친환경 혁신과 지속 가능한 성장
10 혁신이라는 무대 뒤
11 창조적 파괴, 건강 그리고 행복
12 창조적 파괴에 필요한 자금 조달하기
13 세계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14 투자 국가에 이은 보장 국가의 등장
15 국가, 어디까지?
결론: 자본주의의 미래는 어떠한가
감사의 말
주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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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파괴의 힘
창조적 파괴의 힘
필리프 아기옹 외 지음
새로운 패러다임
이 책은 여행으로의 초대라고 할 수 있다. 경제사 속으로의 여행, 특히나 경제 성장의 역사 속으로의
여행이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창조적 파괴라는 관점으로 경제 성장이라는 현상을 탐색할 예정이다.
창조적 파괴란 지속적으로 새로운 혁신이 이루어져 기존의 기술을 폐기하게 만드는 과정이자, 신생 기
업이 계속 등장해 기존 기업과 경쟁하고 또 새로운 일자리와 경제 활동이 탄생해 기존의 일자리와 경
제 활동을 대체하기도 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창조적 파괴란 자본주의의 동력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
에 위험과 동요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반드시 적절히 규제하고 방향을 잡아 줄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전 세계 경제 성장과 관련해 역사 속에서 가장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사건들을 설명한다. 즉, 산업화 과정의 이륙 단계, 몇 차례 기술 혁명의 물결,
장기 침체, 불평등의 진화, 국가 간 경제 성장의 수렴 또는 분산, 탈공업화 등에 대해 논한다. 둘째,
선진국에서 혁신과 경제 성장을 둘러싸고 이뤄지는 다음과 같은 논의에 대한 재접근을 시도한다. 혁신
과 창조적 파괴를 양립시킴과 동시에 환경을 보존하고 불평등을 조율하는 일이 가능한가? 우리 사회
시민들의 일자리, 건강, 행복 등의 영역에 잠재적으로 피해를 줄 수 있는 창조적 파괴의 부작용을 피
해 갈 방법이 있는가? 정보 통신 기술의 혁명이나 인공 지능 발전은 두려워해야 할 일인가?
셋째, 국가와 시민 사회의 다음과 같은 역할을 재점검한다. 국가와 시민 사회는 혁신과 창조적 파괴를
촉진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그럼으로써 국가의 부를 축적하는 데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
는가? 극단적 자본주의로부터 우리 사회의 경제와 시민을 어떻게 보호해야 할까?
국부(國富) 측정하기
국부를 측정하기 위해 보통 국내 총생산이라는 지표를 활용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한 가지 근거로,
수십억 명에 달하는 인간의 물질적 복지는 실제로 그 사람이 살고 있는 나라의 1인당 국내 총생산과
상당한 관계가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므로 19세기 초의 산업 발전은 매우 장기간의 침체기를
거친 후 1인당 국내 총생산 수치의 ‘이륙’이라는 형태로 유난히도 명백하게 표출되었다.
19세기 초에는 극소수 특권층만이 즐기던 생활 수준을 이제 세계 각지의 여러 나라 사람이 누리게 된
것은 바로 1인당 국내 총생산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1인당 국내 총생산이 충분히 향상되
지 않은 빈곤 국가에서는 수억 명의 사람이 여전히 너무나 힘들고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러
한 상황을 고려할 때, 1인당 국내 총생산의 성장을 결정짓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작업이 중요
해 보인다. 이는 어째서 특정 국가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부유해졌는지, 그리고 전 세계 국가들 사
이에서 부가 왜 불공정하게 배분되고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국가의 부를 설명하는 데 새로운 패러다임이 왜 필요한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명료하다. 기존의 패러다임으로는 국가의 경제 성장과 번영 과정이 보여 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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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파괴의 힘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설명하기에도, 그 수수께끼를 알아내는 데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패러다
임의 도입이 시급했던 것은 이론상의 이유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이론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도입이 시급했던 이유: 1980년대에 경제 성장을 설명하는 주류
이론은 이른바 신고전주의 모델이었는데, 이는 자본의 축적을 기본으로 하는 이론이다. 신고전주의 모
델 중에서 가장 우아한 이론은 로버트 솔로가 1956년에 내놓았다. 아주 축약해서 그리고 비공식적인
방식으로 그의 이론을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한마디로, 생산을 위해서는 자본이 필요하고, 또한 이런
자본 축적이 늘어나면서 국내 총생산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증가한 경제 단위가 솔로의 경제
성장 이론에서 기본을 이룬다. 그렇다면 자본 축적은 어디서 기원하는가? 저축이 국내 총생산에서 항
시 유지되는 부분값과 같다는 가정하에 자본의 축적은 가계 저축에서 비롯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경제에서는 모든 게 항상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요컨대 저축을 통해 공급된
자본이 늘어날수록 국내 총생산이 증가하고, 이는 다시 저축의 증대로 이어지며, 재차 자본 및 국내 총
생산이 증가한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모델이 보여 주는 경제에서는 기술 발전 없이도 단순히 자본 축
적의 효과만으로 경제 성장이 영속적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 이론의 약점은 자본만으로 창출해 낼 수
있는 수익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든다는 데 있다. 기계의 수가 증가할수록 기계 설비를 한 단위 추가
할 때마다 늘어나던 국내 총생산의 수치가 줄어든다. 그러므로 저축 증가는 둔화하고, 연이어 자본 축적
또한 둔화한다. 그리고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그 경제는 숨이 가빠 오고 성장을 멈추게 된다.
로버트 솔로가 아주 잘 설명한 바와 같이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술 발전을 통해 기
계 설비의 질을 높여야 하는데, 이게 바로 생산성 향상이라는 문제다. 하지만 솔로는 기술 발전을 결
정짓는 요소가 무엇인지에 관한 분석은 후대의 과제로 남겨 두었다. 특히 경제 단위 내에서 혁신을 촉
진 혹은 방해하는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가 중요한 숙제로 남았다.
실질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의 도입이 시급했던 이유: 방금 언급한 대로 신고전주의 성장 이론은 장기
적 경제 성장을 결정짓는 요소를 설명하지 못한다. 게다가 성장 과정과 관련한 일련의 수수께끼를 이
해하는 데에는 더욱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왜 어떤 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더 빠르게 경제
성장을 이루는지, 또 어떤 나라는 선진국의 1인당 국내 총생산 수준으로 수렴하는 데 성공하는 반면,
왜 다른 어떤 나라는 격차를 좁히지 못한 채 정체하거나 심지어 성장 도중에 갑자기 멈춰 서는지 등에
대한 수수께끼를 푸는 데 기여하지 못한다. 바로 이렇게 이중으로, 즉 이론과 실제의 측면에서 부족함
이 있었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분석의 틀을 마련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창조적 파괴에 대한 슘페터식 패러다임
창조적 파괴를 통한 경제 성장 이론은 슘페터식 성장 모델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전에 정식으로 이론
화하거나 검증된 바는 없더라도,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의 세 가지 아이디어에서 착안한 모델이기 때
문이다. 슘페터의 첫 번째 아이디어는 혁신과 지식 전파야말로 성장 과정의 핵심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는 장기적인 경제 성장은 ‘축적’된 혁신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이 생각은 솔로의 결론, 즉 기술 발
전 없이는 장기적인 경제 성장 또한 있을 수 없다는 논지와도 맞닿아 있다. 혁신이 계속 축적될 수 있
도록 지식을 전파하고 체계화하는 과정이 없었다면, 우리는 각 시대마다 새롭게 바퀴를 발명해야 하거
나 심지어 신화 속 시시포스처럼 산 위로 바위를 굴려 올리는 일을 반복해야만 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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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파괴의 힘
슘페터의 두 번째 아이디어는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식 재산권을 보장하고 우대하는 일이 필수적
이라는 것이다. 혁신이란 기업가들이 수익을 얻기 위해 (특히 연구 개발에) 투자하겠다고 결정함으로
써 이루어지는데, 혁신가들의 이러한 수익을 보장해 주는 조치, 그중에서도 혁신의 내용에 대한 지식
재산권을 보장하는 조치는 기업가들이 더욱더 혁신에 투자하도록 독려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대체
로 혁신이란 한 사회 내에서 공공 기관이나 공공 정책이 내놓는 긍정적 혹은 부정적 조치에 반응을 보
이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하면, 혁신이란 사회적 과정이라는 뜻이다.
슘페터의 세 번째 아이디어는 바로 창조적 파괴라는 개념 자체다. 새로운 혁신은 기존의 혁신을 폐지
시킨다. 다시 말하면, 창조적 파괴를 통한 경제 성장은 신구(新舊)를 항시적인 갈등 관계에 배치한다.
이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대기업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기 영역에 새로운 경쟁 기업이 등장하는
걸 항시 방해하거나, 잠재적인 경쟁 기업의 시장 진입을 지연시키려 애쓰는 그 모든 대기업들 말이다.
그러므로 창조적 파괴란 성장 과정 자체 내에서도 딜레마 혹은 모순을 발생시킨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혁신을 보상해 줄, 즉 혁신을 촉진하기 위한 동기 부여로서 수익이 발생해야만 한다. 다른 한편으론
과거의 혁신자들이 그렇게 얻은 수익을 새로운 혁신을 방해하는 데 사용하게끔 놔둬서는 안 된다. 이
러한 딜레마에 대한 슘페터의 답변은, 자본주의란 바로 그런 측면에서 쇠락을 면할 길이 없다는 것이
었다. 이미 자리를 잡은 기업이 신생 혁신 기업의 시장 진입을 방해하는 행위를 막을 방도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에 대한 우리의 해답은 다르다. 이러한 모순을 극복할 방법은 분명 존재한다.
달리 말하면, 자본주의를 적절히 규제하는 일은 가능하다. 라구람 라잔과 루이치 친갈레스의 책 제목
에서 차용하자면 우리는 “자본가들로부터 자본주의를 수호”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기술 발전의 물결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기술 혁명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아니면 희망해야 하는가? 어떤 면에서 기술 혁명은 걱정을 불러일으
킨다. 업무 자동화, 즉 특정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을 기계가 대체하는 현상에 가속이 붙는 것처럼 보
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은 기술 혁명을 기대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그로 인해 경제 전
반에 영향을 미쳐 결국 경제 성장을 위한 도약의 기회를 만들어 내는 2차 혁신이 파생되기 때문이다.
기술 혁명 물결의 원천을 이루는 기술이 등장하고, 이어서 그 물결의 실질적 결과라 볼 수 있는 경제
성장이 나타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차가 있었다. 실제로 최초의 증기 기관이 상업화한 해는 1712년이
지만, 영국의 1인당 총생산 증가의 가속화가 눈에 띄기 시작한 시기는 1830년 들어서였다. 이와 마찬
가지로 전구는 1879년에 발명되었지만, 미국에서 50년 넘게 지나서야 비로소 생산성 증가 추세가 가
속화하는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어째서 새로운 속성의 발명이 등장하고 그에 따른 성장 가속화 현상
이 나타날 때까지 이렇게 시간상 간극이 발생한 것일까?
기술 혁명의 물결 전파가 지연을 겪는 이유
1987년 로버트 솔로는 “통계에만 없을 뿐 여기저기에 컴퓨터가 보인다.”고 적었다. 지금까지도 ‘솔로
의 모순’이라 불리는 이 말을 했을 때는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발명한 지 18년이나 된 시점이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의 생산성 향상에는 그다지 여파가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사실 정보 통신 기술과 관련한
경제 성장의 물결은 그보다 수년이 지난 후인 199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드디어 시동이 걸려서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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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파괴의 힘
년대 중반까지 지속되었다고 여겨진다. 정보 통신 기술이 전파되기까지 이렇게 지연이 발생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술 혁명의 특징이 무엇인지부터 검토할 필요가 있다. 먼저 특정한 기술 혁명의
기원은 ‘총체적 기술’, 즉 한 경제 내의 모든 요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기술을 생산해 내는 근본적 혁
신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총체적 기술은 다음의 3가지 근본 성격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① 강한 ‘번식’ 효과를 들 수 있다. 총
체적 기술은 일련의 2차 혁신을 불러일으키며, 그러한 2차 혁신 각각이 경제 단위 내의 특정한 경제
활동 분야에서 또 다른 총체적 기술 역할을 한다. ② 개선 가능성을 들 수 있다. 총체적 기술이란 시간
이 지날수록 개선됨으로써 사용자의 비용을 점차 줄여 준다. ③ 편재성을 들 수 있다. 경제 전반의 수
많은 영역으로 퍼져 나가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이제 총체적 혁신이 일어난 순간부터 실제로
경제 성장이 나타나는 시점까지 시차가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방금 언급한 총체적 혁신의 3가지 근본
적 특징을 통해서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2차 혁신의 중요성: 총체적 기술이란 ‘기성품’이 아니다. 경제의 다양한 분야에 이를 적용하려면 ‘맞춤
형’ 2차 혁신이 필요하다. 각각의 2차 혁신은 총체적 기술을 특정 분야의 필요에 맞게 적용하는 역할을
한다. 공장의 조립 라인을 예로 들어 보자. 이는 전기 혁명에 의해 발생한 2차 혁신을 자동차 산업에
적용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인터넷 상거래는 정보 산업 혁명에서 비롯된 2차 혁신이 영업 서
비스 분야에 적용된 사례다. 이러한 2차 혁신은 기업의 생산 공정을 개선하고, 그로 인해 생산성이 향
상된다. 나아가 기업의 장기적 성장 가능성 또한 높여 준다.
하지만 이러한 2차 혁신이 등장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바로 이것이 경제 성장이 뒤늦게 발생하
는 이유를 설명하는 첫 번째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추가로 고려할 사항은 일단 1차 혁신 발생
이후 생산에 투입했어야 할 자원을 희생해야만 2차 혁신이 등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모든 게 단기
적으로 보면 경제 성장을 둔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하며,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새로운 기술 혁명을 통
한 경제 성장의 재도약 시점이 지연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2차 혁신의 필요성은 각 분야마다 상이하며,
각 분야별로 2차 혁신의 발견에 들어가는 시간 또한 다르다. 경제 단위 전반을 종합적으로 바라봤을 때,
이 모든 요소는 구시대적인 기술의 대체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이렇듯이 1869~1900년 제조업계에서는 바퀴와 수력 터빈의 사용 비중이 점차 낮아졌는데, 이런 현상
은 증기 기관 및 증기 터빈의 사용 비중 증가와 동시에 발생했다. 또한 20세기부터는 증기 기관보다
전동기를 선호하는 경향을 관찰할 수 있는데, 초기에는 대체하는 속도가 매우 완만하게 높아지다가 점
점 가속이 붙는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새로운 총체적 기술의 전파는 ‘로지스틱 함수’ 곡선의 모양을 따
라간다. 이는 전염병의 진행 상황을 보여 주는 곡선과 상당히 유사한데, 마치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전
파 양상과도 비슷하다. 즉, 초기에는 속도도 느리고 점진적으로 퍼지다가 어느 시점 이후에 전파 속도
가 급속도로 빨라지고 최종적으로는 정체 단계에 이른다.
총체적 기술 활용 개선: 새로운 총체적 기술은 즉각 효율성을 발휘하지는 않는다. 이를 제대로 활용하
는 법을 터득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행동으로 배우는 과정(영어로는 learning by doing이라고 한다)
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새로운 총체적 기술을 포함한 자본 비용의 변화에 반영된다. 실제로, 좀 더 효
율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총체적 기술을 활용하는 신품 기계가 등장하면, 같은 기술의 그 이전 버전을
활용하는 기존의 기계 가격은 떨어진다. 예를 들어, 시속 320킬로미터로 달리는 ‘푸른색 TGV’가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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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파괴의 힘
하자 최고 시속 기록이 260킬로미터에 그치는 TGV의 최초 모델, 즉 ‘오렌지색 TGV’의 가격이 하락했
다. 또한 20세기 초부터 1960년대까지 전기의 가격은 100배 감소했으며, 컴퓨터 가격은 25년 사이에
동일 품질 제품으로 비교할 때 1만 배 낮아졌다.
가정에서의 새로운 총체적 기술 도입: 기업체 내에서 새로운 총체적 기술의 반영이 처음에는 지연되다
가 나중에 가속화하는 현상과 유사하게 가정에서도 신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초기 지체에 이어 어
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가속화하는 양상이 나타난다. 이렇게 시간이 지난 후 신기술 도입에 가속이
붙는 데에는 가격 하락이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양상으로 1990년대 노트북 컴퓨터 가격의 인하
가속화 현상은 가정의 정보 통신 기술 도입 자체의 속도가 빨라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여기서 흥미로
운 점을 지적하자면, 전기를 공급받는 가정의 비율과 정보 통신 기술을 받아들인 가정을 보여 주는 도
표가 상대적으로 유사한 추이, 즉 일시적 변화 양상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 두 가지 새로운 총체적 기술 도입 사례를 놓고 볼 때, 가정에서 기술을 도입하도록 유도하는 총체
적 기술의 품질 개선은 또한 ‘네트워크 효과’를 통해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말은 지리적으로 전기
공급이 확대되고 전기 공급망의 품질이 좋아지면서 전기를 가정에 도입하는 추세 또한 확대되었다는
뜻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보 통신 기술의 도입 또한 충분히 빠른 속도로 제공하는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는 주변 상황이 마련되어야 가능해진다.
혁신, 불평등 그리고 조세 제도
혁신,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불평등
슘페터식 혁신에 의한 성장 이론의 바탕이 되는 2가지 주요 견해는 성장과 불평등 사이의 관계에 있어
각각 시사하는 바가 있다. 첫 번째 견해에 따르면, 혁신은 독점으로 인한 이득을 기대하는 사업가의 활
동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이 이득은 그 나름대로 또한 제도적 환경에 의존하는데, 그중에서도 지식 재산
권의 보호 정도가 중요한 요소다. 혁신으로 인한 이득은 혁신가들이 기대할 수 있는 소득 수준 상승의
가능성을 높여 주는데, 특히 그 유명한 ‘최상위 1퍼센트’ 집단에 합류할 가능성을 높인다.
일반적으로 말해 보자면, 각각의 새로운 혁신은 혁신가로 하여금 기존의 혹은 잠재적인 경쟁자의 제품
보다 자신의 제품을 향상시킬 수 있게 해 준다. 또한 비용 절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는데, 특히 임금에
들어가는 비용 측면에서 그러하다. 이렇게 하면 혁신가가 실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늘어난다. 그의
소득이 임금에 대비해 증가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슘페터식 패러다임은 일차적으로 혁신이 소득 분포
상 상위권에서 불평등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예측한다. 즉, 한 국가 혹은 지역이 혁신적일수록 그
나라 혹은 지역의 소득 중에서 ‘최상위 1퍼센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날 거라고 예상한다.
슘페터 이론의 바탕을 이루는 두 번째 견해는 창조적 파괴 개념이다. 새로운 혁신은 옛 기술을 대체하
며, 그 결과 과거 혁신가들에게 보상 역할을 해 준 그들의 이득을 소멸시킨다. 이러한 새로운 혁신은
실제 시장에 진입하는 신진 기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생각하면 20년 전만 해도 스카
이프 발명가는 시장에 존재하지 않았고, 애플이 탄생하기 전까지는 스티브 잡스라는 존재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슘페터식 패러다임이 내리는 두 번째 예측은 혁신, 특히 새롭게 시장에 진입하는 이들이
내놓는 혁신이 사회 이동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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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파괴의 힘
슘페터식 모델의 예측, 즉 ‘최상위의 불평등’이라고 부르는 상위 1퍼센트의 소득 비중뿐 아니라 사회
이동 가능성을 동시에 증가시킨다는 견해가 언뜻 보면 모순이라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 미
국 주들을 비교해 보면 매우 분명히 위의 내용을 증명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현재 미국에서 혁신을
주도하는 주 중 한 곳인 캘리포니아와 가장 혁신성이 덜한 주에 속하는 앨라배마를 비교해 보면, ‘최상
위 1퍼센트’가 캘리포니아의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앨라배마의 ‘최상위 1퍼센트’가 그 주에서
차지하는 비중보다 상당히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사회 이동의 정도를 살피는 지표
또한 앨라배마보다 캘리포니아에서 현저히 높게 나타난다.
혁신이 한편으로는 ‘최상위’의 불평등을 확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 이동 가능성을 높인다는 사
실은 혁신이 지니 계수와 같은 더 포괄적인 불평등 지수에 영향을 주는지 가늠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그 결과 슘페터식 패러다임을 통한 세 번째 예측은 혁신과 전반적 불평등 지수 사이의 관계가 모호하
다는 점이다. 하지만 소득 불평등에 대한 여러 지표와 혁신 사이의 관계에 대해 실제 자료는 어떤 내
용을 담고 있을까? 1975~2010년 미국 여러 주의 생산, 특허의 질, 소득 분포 관련 자료를 분석한 결
과, 혁신은 이런 ‘상위권’의 불평등이 가중되는 데 필수 요인 중 하나라는 점이 증명되었다. 이 자료는
또한 혁신은 전반적인 불평등을 가늠하는 지표인 지니 계수와 상호 관계가 없음을 증명한다.
한편 미국 여러 도시의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혁신과 사회 이동 사이의 관계를 다룬 자료에서 혁신
과 사회 이동 사이에 정비례 관계가 성립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를 통해 또 확인할 수 있는 바가
있다면, 새롭게 시장에 진입한 기업을 통한 혁신은 사회 이동의 가능성과 긍정적 상호 관계를 맺고 있
다는 점이다. 이는 창조적 파괴를 통해 혁신이 사회 이동을 야기한다는 가설과 들어맞는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요약하면, 혁신은 소득 분포도상 최상위에서 불평등이 강화되는 데 기여하면서도 다음의 3가
지 미덕을 보여 준다. 첫째 전반적인 불평등을 확대시키지 않고, 둘째 특히 시장 진입을 시도하는 신
진 혁신가를 중심으로 사회 이동을 장려하며, 셋째 생산성 향상을 촉진한다.
사회 이동의 수단 역할을 하는 혁신 기업
혁신과 사회 이동 사이의 정비례 관계는 새로운 혁신가들이 과거의 혁신가들을 대체한다는 데서만 비롯
되는 건 아니다. 혁신성 높은 기업 자체가 사회 이동의 잠재적 수단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는 해당 기업이 직원들, 그중에서도 특히 가장 숙련도 낮은 직원들을 교육하고 또 승진시켜야만 가능한
일이다. 2004~2015년 영국 자료를 바탕으로 한 최근의 한 연구에 따르면, 혁신도가 높은 기업은 가장
숙련도 낮은 직종이라 할 수 있는 영역에 종사하는 이들, 예를 들어 상품 취급 전담 직원, 비서, 안전
요원, 특수 노동자, 운송업자, 판매원 등에게 ‘사회적 엘리베이터’ 역할을 해 준다고 한다.
그럼 숙련된 노동 인구, 즉 중간 관리직, 엔지니어, 연구자 집단의 경우는 어떨까? 한 직원이 연차에
따라 보너스를 받을 수 있는 경우 해당 보너스는 혁신 기업이건 비혁신 기업이건 동일한 양상으로 증
가한다. 다시 말하면, 숙련 노동자의 경우 혁신 기업에서 근무한다고 해서 추가 보너스가 발생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가장 숙련된 이들의 임금은 기업의 혁신성이라는 변수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가장 숙련도가 낮은 집단에 속한 노동자의 임금은 소속 기업의 혁신성에 따라 크게 증가한다.
이처럼 상황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가장 숙련된 노동 인력은 무엇보다 그
들이 보유한 ‘확인 가능한 능력’(영어로는 hard skills)을 기반으로 평가받는다고 본다. 즉, 그들의 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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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파괴의 힘
이나 이력서를 통해 확인 가능한 부분이다. 반면 숙련도 낮은 노동자의 경우는 노동의 대가가 그들의
‘확인 불가한 능력’(영어로는 soft skills)에 기대어 계산된다. 이는 해당 기업에 근무하는 과정에서 습득
하는 경험이며, 그렇기에 기업이 성공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 이들은 점점 더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혁신성이 높은 기업일수록 미숙련 노동자가 더 필요하다. 확인 불가한 능력을 더 많이
갖춘 이들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특히 믿을 만하다고 판단되는 직원이 필요하다. 이러한 기업은 직
원이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완벽히 수행하지 않을 경우 잃는 부분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혁신 기업일
수록 다양한 종류의 업무 사이에 상호 보완성이 높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혁신적이지 못한 기업에 속한 미숙련 노동자에 비해 혁신성이 높은 기업에 고용된 미숙련 노동자의 임
금이 유난히 높은 데에는 바로 위와 같은 까닭이 있다. 이는 또한 혁신 기업의 지도자들이 왜 (특히 실
습 등을 통해) 미숙련 노동자의 업무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더 큰 관심을 기울이고 독려하는지를 설명
해 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위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혁신과 사회 이동 사이의 관계를 혁신 기업에
고용된 미숙련 노동자의 임금 변화를 통해 아주 구체적인 방식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국가는
혁신 기업으로 하여금 실제적으로 사회적 엘리베이터 역할을 하도록 장려할 수 있는 도구를 갖추고 있
는 셈이다. 바로 직무 실습에 대한 정부 지원 제도를 통해서 말이다.
친환경 혁신과 지속 가능한 성장
1970년대가 되자 연구자나 경제 정책 결정권자에게 자연 자원 고갈 문제가 중요한 우려 사항으로 떠
올랐는데, 이를 증명해 주는 자료가 그 유명한 메도스 보고서(Meadows Report)다. 메도스 보고서는
1820년 산업 혁명과 함께 시작된 성장의 시기를 마무리하고 제로 성장이라는 해결책을 택해야 할 필
요성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제한되어 있는 그리고 계속해서 감소하는 비재생 자원과
우리 지구상의 제한된 공간으로 인해 인구 증가는 종국에 생활 수준을 저하시키며 더 복잡한 문제들을
불러일으킬 거라는 원칙적인 결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경종을 울리는 목소리와 함께 온실 효과로 인한 기후 온난화 문제에 대해 각성하기 시작하면서
정체의 시대로 들어설 운명이라는 견해가 힘을 얻기에 이르렀다. 자원 고갈이라는 주제와 기후 온난화
에 맞서기 위해 꼭 필요한 투쟁이라는 화두에는 수많은 질문이 뒤따른다. 한정된 자연 자원과 기후 문
제로 인한 제약 때문에 결국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는 정체 혹은 나아가 퇴보의 상황을 맞을 수밖에 없
는가? 효율적인 에너지 전환은 어떻게 고안해야 할까? 질적인 성장 그리고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는
과제와 기후 온난화에 대한 투쟁이라는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활용할 수 있는 주요 수
단은 무엇인가? 이러한 의문점에 대해 탐색한 결과 여기서 도출한 4가지 명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자연 자원의 고갈이라는 한계와 기후 온난화에 맞선 투쟁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의 질
과 생활 수준을 계속해서 향상시켜 줄 요소는 바로 혁신이다. 둘째, 혁신은 자발적으로 환경 친화적인
성격을 띠지는 않는다. 오히려 과거에 환경 오염을 일으키는 종류의 혁신을 한 기업이라면 장래에도 계
속해서 동일 분야의 혁신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이러한 영역에서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
기업의 혁신 방향이 친환경 쪽으로 잡힐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가 기업을 대체하려 들어서는 안 되고 부양책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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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파괴의 힘
이 환경 친화적 혁신을 하게끔 하는 정부의 여러 가지 정책 도구는 다음과 같다. 탄소세 과세, 친환경
혁신을 위한 정부 보조, 개발 도상국으로의 친환경 기술 이전, ‘오염 천국’ 탄생을 저지하기 위한 ‘탄소
국경세’ 등이다.
셋째, 중간 단계 에너지원, 즉 천연가스에 의존하는 방법은 단기적으로는 탄소 배출 증가율을 둔화시
킬 수 있지만, 그와 동시에 이러한 중간 단계 에너지원의 ‘덫에 걸려’ 에너지 전환 자체가 지연될 위험
이 있다. 여기서도 정치권력의 역할이 중요한데, 훌륭한 폴리시 믹스(policy mix: 경제의 성장과 안정을
동시에 추구하기 위한 혼합 정책)를 택함으로써 에너지 전환을 진행하다 말고 중도에 그만두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넷째, 기업이 친환경 기술 분야에서 혁신을 추구하도록 장려하는 데는 시민 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소비자의 역할도 물론 중요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든지 중앙은행 및 상업 은행이 기저에 깔고
있어야 할 사회적 책임 또한 시민 사회의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국가, 어디까지?
국가가 창조적 파괴를 방해할 때 - 베네치아 공국의 사례
국가는 창조적 파괴의 과정에서 방해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디에고 푸가와 대니얼 트레플러는 중세 베
네치아 공국의 번영과 쇠퇴라는 역사 속 사례를 분석함으로써 이를 증명했다. 베네치아 공국은 12세기
말부터 13세기 말까지 무역 개방을 통해 엄청난 번영을 누리다가 이내 폐쇄적으로 변화하면서 14세기
초부터는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초기 단계에서 무역 개방이 수월했던 이유는 세 가지 대대적인
제도 혁신을 통해 베네치아 공국의 지도 계층인 총독(Doge)의 권력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이자 핵심 사건으로서 나머지 2가지 혁신의 원천이 된 요인을 꼽자면 1172년 선출 의회인 대
의회의 탄생이었다. 이 의회는 귀족의 대표자뿐만 아니라 임명 위원회를 통해 매년 갱신되는 총 100명
의 의원으로 이뤄졌다. 베네치아 공국의 대의회는 이후 수십 년 동안 2가지 추가 혁신을 통해 점진적
으로 총독의 권력을 제한하는 데 힘을 모았다. 먼저 선서 제도를 도입해 총독이 취임하기 전 공개적으
로 대의회가 요구하는 규칙 모두를 존중하겠노라는 선언을 하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총독은 국가의 재산을 수용할 수 없고, 또한 자신을 다루는 사법 사건을 주재할 수도 없
게 되었다. 여기에 세 번째 혁신, 즉 대의회가 선출하는 소의회를 설치했다. 총독은 어떤 결정을 내릴
때마다 소의회의 자문을 거쳐야만 했다. 이와 같은 제도 혁신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법관의 등장을 촉
진했고, 계약과 파산에 대한 법률을 제정하는 데 기여했으며, 최초의 근대적인 금융 체계가 자리 잡게
끔 해 주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시기에 나타난 새로운 종류의 계약 관계가 중요하다. 베네치아에서 콜레간자
(colleganza)라고 부르던 이 계약은 근대 주식회사 형태의 진정한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장거리 무역이 주요 수입원으로 자리 잡자 코멘다 계약 방식이 바로 이 장거리 무역 분야에서 많이 체
결되었다. 가장 간단하게 보면, 코멘다는 투자자와 항해 무역상 쌍방 간의 합의라고 정의할 수 있다.
코멘다는 물자를 대는 투자자와 그 물자를 항해 중 (특히 지중해 동쪽과 흑해 지역에서) 판매 혹은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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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파괴의 힘
역하는 역할을 하는 항해 무역상이 무역을 통해 발생하는 이득과 위험 요소를 공유하도록 보장하는 역
할을 한다. 이러한 종류의 계약은 베네치아 공국의 대다수 국민이 국제 무역에 진입할 수 있게 해 주
었고, 베네치아가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는 데 기여했다.
이러한 계약 관계는 투자자와 혁신가 사이의 관계와 비슷한 양상을 띤다. 실제로, 코멘다는 상당한 고정
비용(물자 및 선박), 높은 실패 위험(난파 위험, 해적, 배달 지연 등), 그리고 물론 미약하지만 매우 높
은 소득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모두 지닌 무역 항해라는 활동에 출자를 가능케 했다. 이러한 제도는 보
통 서민층 출신이던 베네치아의 항해 무역상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지위 상승을 할 수 있는 기회
를 선사했다. 또 이 계급이 귀족 계층과 공동으로 통치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어 주었다. 이러한 변화는
더욱더 큰 창조적 파괴를 동반했다. 코멘다 덕분에 부를 쌓은 항해 무역상 집단이 등장하자 그때까지
엘리트 계층이 독점하던 이득은 줄어들고, 이들의 정치권력 또한 도전을 받게 되었다.
이에 대한 반응은 이내 나타났다. 1286년 대의회에 지원하는 모든 새로운 후보 중 자기 아버지와 조부
두 세대에 걸쳐 이미 대의회 의원이었다면 자동 입회를 허가하는 규정이 생겼다. 1297년에는 직전 4년
동안 대의회 의원이었던 사람은 누구나 자동으로 자격이 갱신되는 규정을 법적으로 인정했다. 세라타
(이탈리아어로 ‘폐쇄’라는 뜻)라고 부르는 이런 제도상의 폐쇄적 움직임은 경제 분야의 폐쇄성으로 이
어졌다. 우선 코멘다 계약을 베네치아 귀족 중에서도 가장 권세 있는 가문들에게만 가능하도록 제한했
다.
이어 1314년에는 무역을 부분적으로 국영화하고, 무역업에 뛰어들고자 하는 이들에게 부과하는 세금
을 인상했다. 그리고 1297년, 즉 세라타 실시 이후 실제 평민을 포함하는 코멘다의 비중과 수가 매우
큰 폭으로 줄어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병행해 과두 정치를 이끌던 세력에 주어진 의석의 중앙
값은 계속해서 늘어나 1339~1342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런 일련의 변화는 무역이 귀족만의 잔치로
변질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자 베네치아는 경제 쇠퇴기에 접어들었고, 1400~1800년 기간 동안 인
구도 계속해서 줄어들기만 했다.
다론 아제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은 『왜 국가는 실패하는가?』에서 현 행정부의 권력이 성장을 방해하
는 경우 - 그 이유는 자신들의 권력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는 창조적 파괴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 를
보여 주는 다른 사례도 소개한다. 예를 들어, 오토만 제국에서 최초의 인쇄소를 허가한 때는 1727년으
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 후 거의 300년이 지난 때였다. 이러한 조치는 백성의 문자 해독률을 낮
게 유지해 새로운 생각의 전파를 제한하고자 하는 목적을 띤다.
실제로 오토만 제국에서는 문자 해독률이 1800년 당시 3퍼센트에도 채 미치지 않았다. 한편 과거 러
시아에서는 창조적 파괴에 강박적 반응을 보여 방적 공장이나 제련소의 설립을 금지했다. 조직적인 노
동자 계층의 출현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러시아는 또한 철도 개발에도 반대했는데, 사람들의
이동성이 확대되면 러시아 사회에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혁신에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첨단 기술의 혁신은 왜 민주적인 제도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가? 좀 더 민주적인 정치 체계란 기득
권 세력이 정치 지도자들에 대해 영향력을 덜 발휘하고 정치권력을 매수하기가 더 어려운 제도이기 때
문이다. 부패 정도가 낮을수록 혁신은 촉진되고, 새로운 기업과 기술의 시장 진입이 수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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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파괴의 힘
헝가리 경제학자 여노시 코르너이는 한 논문에서 20세기에 가장 혁명적이었던 혁신들을 나열했는데,
그 결과 모든 해당 제품이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탄생했음을 알 수 있었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래리 페
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박사 과정 중 훗날 구글이 될 프로젝트를 함께 개발하기 시작할 수 있었던 이
유는 무엇보다 자신들이 탐색하고자 하는 연구 방향을 아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며, 또
한 박사 논문 주제를 선택하는 데 지도 교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행정 권력을 강력하게 제한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걸까? 우리
는 세금을 인상하고, 투자를 하고, 개인의 위험 요소에 대비해 보장 역할을 해 줄 수 있고, 역주기적
정책을 실천할 능력을 갖춘 국가가 혁신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국가의 이러한 특권을 행정 권력에
대응할 보호막이나 권력의 제어 필요성과 어떻게 양립시켜야 할까?
행정부의 권력에 한계를 분명히 해 두는 것은 혁신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행정 권력의 범주를 확실히 해 두면 자사의 이득을 보전하고픈 기존 기업과 정치권력 사이의 결탁 가
능성을 제한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행정부의 영역을 한정 지음으로써 신진 혁신 기업의 시장 진출
을 장려하고, 그 결과 창조적 파괴 과정이 용이해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행정 권력을 제어하는 첫 번
째 수단은 헌법이다. ‘불완전 계약’이라는 환경에서 헌법은 규범 사이에 위계질서를 정립하고 권력 기
관의 관계를 명시한다.
헌법은 또한 행정부와 입법부 사이의 권력 분립을 정의하며 사법부의 독립성을 확보해 준다. 또 국회
의원 선출을 위한 선거 제도를 명시하며 의회와 표결 방식, 수정 권한, 헌법 재판소 제소 권한 그리고
임기의 기한 등을 규정하기도 한다. 이 모든 사항은 행정 권력의 범위와 한계를 설정해 주는 도구 역
할을 한다. 하지만 헌법 차원에서 보장된 이런 내용은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고 활발히 움직이는 시민
사회 없이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에 불과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창조적 파괴와 혁신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 체제가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장, 국
가, 그리고 시민 사회라는 삼각 구도가 꼭 필요하다. 시장은 혁신에 필요한 동기를 부여하며 혁신성
높은 기업들 사이에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는 장을 제공한다. 그리고 국가는 혁신에 대해 재산권을 보
장하며 계약이 존중될 수 있도록 감시하고, 투자자로서 그리고 보장의 주체로서 개입한다. 마지막으로
언론, 중개 단체와 민간단체를 아우르는 시민 사회는 행정 권력을 제대로 통제할 수 있는 헌법 차원의
도구를 생산해 내고 또 활성화하는 역할을 한다. 아울러 시민 사회는 시장의 운영이 더욱 효율적이고
윤리적이며 공정하게 이루어지도록 보증하는 역할도 맡는다.
실제로, 시민 사회 덕분에 자본주의는 역사 속에서 좀 더 제대로 규제받는 체제로 발전해 올 수 있었
다. 더욱 포괄적이고, 좀 더 사회 보장을 제공하고, 좀 더 환경에 대해 고민하는 형태의 자본주의 말이
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선형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 무엇보다 각 나라마다 다른 속도로 변화
한다. 오늘날 자본주의 형태에는 어떤 종류가 있으며, 이상적으로는 그중 어느 방향으로 가는 게 옳은
가? 이제 바로 그 질문을 던지면서 창조적 파괴의 원동력에 대한 탐색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결론 - 자본주의의 미래는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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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파괴의 힘
우리가 사는 선진국 사회에서 자본주의는 시간이 지나면서 좀 더 보호자답고 좀 더 포괄적인 성격이
짙은 모습으로 변해 왔다. 이는 무엇보다 노동조합, 진보 정당, 언론 등 시민 사회가 주도한 투쟁 덕택
이다. 지성인들이 사회 문제에 개입해 시민 사회에 대한 정부 기관의 억압적인 태도를 변화시킨 것 또
한 결정적이었다. 그중에서도 레옹 블룸(1936년의 유급 휴가), 프랭클린 루스벨트(1930년의 뉴딜 정
책), 윌리엄 베버리지(1942년의 영국 사회 보장 체제), 샤를 드골(1945년의 레지스탕스 국가 위원회
프로그램), 올로프 팔메(1970년대의 스웨덴 사회 민주주의 계열 국무총리), 버락 오바마(2010년의 오
바마 케어)의 예를 드는 걸로 갈무리하겠다. 이와 반대로 보장 성격을 띤 자본주의에서 출발했으나 자
국 경제를 좀 더 혁신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 개혁자로는 포울 뉘루프 라스무센(1990년대 덴마크 플
렉시큐리티의 아버지), 그리고 아사르 린드베크(1991년의 스웨덴 개혁 설계자) 등이 있다.
이런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2008년 금융 위기라든지 코로나19 팬데믹 같은 거시 경
제 차원의 충격이나 기후 변화에서 기인한 위험 요소 때문에 발생하는 실직 혹은 질병의 위협으로부터
시민 개개인을 보호하는 체계와는 거리가 멀다. 유럽 국가들의 경우는 다른 종류의 문제로 고심 중이
다. 바로 대학, 기관 투자자, 벤처 캐피털리스트, 메세나, DARPA 등의 경제 생태계를 만들어 내지 못
했다는 점이다. 앞으로의 기술 혁명에서 뒤처진 채 뒤에서 쫓아가는 게 아니라 선도 국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생태계 말이다. 이런 체계를 이루지 못하면 유럽은 곧 중국에 따라잡힐지도 모른다.
그렇다고는 해도 우리는 여전히 적어도 두 가지 이유로 인해 ‘또한’이라는 자본주의 모델에 굳은 신뢰
를 갖고 있다. 그 믿음의 첫 번째 이유는 미국에서 사회 보장과 포괄적인 개혁 조치를 혁신에 피해를
주지 않고도 실행한 바 있고, 또한 독일과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 혁신과 창조적 파괴를 용이하게
만드는 개혁이 실행된 후에도 이 국가들의 사회 체제나 공공 서비스의 근간이 뒤흔들리지 않았다는 관
찰 결과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이 책에서 다룬 분석을 바탕으로 하는데, 바로 혁신과 포괄성 혹은 혁신과 보호의 관
계는 제로섬 게임이 절대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 오히려 정반대다. 혁신적인 기업의 시장 진입을 용
이하게 하고 연구자의 사명을 일깨우며 혁신과 성장을 촉진하는 동시에 그 혁신과 성장이 더욱 포괄성
을 띠도록 만들 수 있다. 잘 고안된 플렉시큐리티 원칙을 노동 시장에 도입하면 실직으로 인한 부정적
영향(특히 건강 관련)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실직한 당사자가 적절한 교육을 통해
새로운 직장에 더 잘 준비하도록 독려할 수 있다. 이러한 조치는 창조적 파괴 과정에 피해를 주지 않
으면서도 개인에 대한 보호 장치를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다준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가져온 긍정적 영향이 있다면, 세계 여러 나라의 자본주의 체제가 가지고 있던 약
점과 미진한 부분을 강렬히도 드러냈다는 점이다. 중국의 경우 팬데믹은 표현의 자유가 부재한 경우
나타나는 자본주의의 한계를 드러냈다. 정보를 끌어안은 채 자체 검열까지 더해 새로운 바이러스가 얼
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전 세계의 각성이 지연되었고, 이는 바이러스 확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경우 팬데믹은 실직이나 질병에 대한 국가의 보장 혜택을 받지 못하는, 혹은 제대로 받지 못하는 시민
개개인의 극적인 상황을 적나라하게 노출시켰다. 프랑스에서는 전략적인 분야인 보건 산업을 포함해
자국의 가치 사슬을 지나치게 해외로 이전시킨 나머지 국내 경제가 얼마나 취약해졌는지 드러난 계기
였다. 팬데믹은 또한 지나치게 중앙 집권적이거나 지나치게 관료적인 정부, 또 자국의 시민 사회나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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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파괴의 힘
할 영토를 충분히 신뢰하지 못하는 국가의 한계 역시 드러내 주었다.
분명 현재의 위기는 ‘코로나19 이후’ 시대를 어떻게 고민해야 할지를 놓고, 존재론적 토론을 불러올 게
분명하다. 사전에 이러한 토론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 예측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이 책에서 논한 여러
가지 주제와 분석을 동원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자본주의의 미래는 어떠한가”라는 질
문에 대해 우리는 앙리 베르그송을 인용해 답하고자 한다. “미래는 우리에게 일어날 무언가가 아니라,
우리가 행동으로 옮길 무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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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파괴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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