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론
1. 문제의 제기
'현실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자본주의 국가들에서의 노동자 운동의 전반적
퇴조, 그리고 이에 따라 맑스주의가 그 이론적, 역사적 타당성을 의심받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맑스주의의 위기"라는 압축된 표현으로 정식화될 수 있다. 맑스
주의는 그 형성 이후부터 수차례의 위기 국면을 경험하였지만
{{
)맑스주의의 위기의 역사와 그 쟁점들에 대해서는, G rard Bensusan, "Krisen
des Marxismus," in G. Labica und G. Bensusan (hrsg.), Kritisches W rterbuch
des Marxismus, Herausgeber der deutschen Fassung: Wolfgang Fritz Haug(West
Berlin: Argument, 1985), pp. 719-734. 참조.
}}
, 현재의 위기는
맑스주의가 실존해 왔던 모든 양식들
{{
)맑스주의는 우선 근대의 정치 이데올로기들과 나란히 실존해 온 하나의 이념이다. 동시
에 맑스주의는 '현실'속에서 공산주의 국가들의 체계로, 그리고 비공산주의 국가들에서의
공산당들과 사회운동들의 형태로 존재해 왔다. 맑스주의의 역사는 이 세 항들 간의 갈등적
접합 속에서 그 정치적 '의미'를 생산해 왔던 역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현재의 위기는 이 접합의 소멸에 의해 규정된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에띠엔
발리바르, "공산주의 이후의 유럽," {이론}(서울: 이론, 1992, 여름), pp. 190-196. 참조.
}}
에서의 붕괴와 쇠퇴로 특징지어진다는 점
에서, 맑스주의의 형성 이후 가장 심각한 발본적인 위기 국면을 표현한다 할 것
이다.
그런데, 이 위기는 맑스주의의 본원적 오류에 기인하는 것도, 그리고 맑스주
의의 역사적 시효만료에 기인하는 것도 아니며, 더구나 맑스주의의 본래적 목표
에 반하는 일련의 왜곡들에 기인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맑스주의의 현실정
합성과 진리성을 산출하는 것은 노동운동과의 융합 속에서의 그것의 정치적, 이
데올로기적 사용이기 때문이다.
{{
)E. Balibar, "The Vacillation of Ideology," in Cary Nelson & Lawrence
Grossberg, Marxism and the Interpretation of Culture(Chicago and Urbana: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1988), p. 159.
}}
맑스주의는 노동운동과의 결합 속에서 노동운
동의 내부로부터 형성되었으며 동시에 노동운동에 작용함으로써 노동자 운동을
변화시키는 상호침투와 상호규정의 변증법적 메카니즘 속에서 작동해 왔다. 이러
한 점에서 맑스주의가 직면한 현재의 위기는 그 근원적 형태에서 맑스주의와 노
동운동의 융합의 위기이며, 이 위기는 맑스주의와 노동운동의 융합의 지배적 형
태로서의 당-형태의 위기와 관련된 맑스주의의 내적 모순들로 소급된다. 맑스주
의는 당-형태 속에서 노동운동과의 융합을 위한 조직적 매개를 발견하지만, 맑스
주의의 역사는 당이 오히려 자신의 재생산을 보증하는 '당의 통일성' 테제 및
'당-진리'관에 사로잡혀 대중운동과 이론적 발전을 봉쇄하는 제 1의 장애물로 전
화되었음을 보여 준다.
{{
)맑스주의에서 당-형태의 모순, 특히 당-정치와 대중정치 간의 모순에 대한 연구로는, E.
Balibar, "Fragen zur 'Partei au erhalb des Staates'," E. Altvater und O. Kallscheuer
(hrsg.), Den Staat Diskutieren: Kontroversen ber eine These von Althusser(Berlin:
sthetik und Kommunikation Verlag, 1979), pp. 148-163.
}}
여기에 오늘날 맑스주의의 위기의 가장 핵심적인 측면
이 존재한다.
맑스주의의 역사가 보여 준 이러한 역설은 맑스주의의 종별적 대상 속에서
이데올로기 개념이 차지하는 모순적 지위와 관련된다. 맑스주의가 그 발전을 예
상하고 또한 개념화하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했던 것은 부르조아 정치와 프롤레타
리아 정치 간의 모순이다.
{{
)에띠엔 발리바르, "국가, 당, 이데올로기," 에띠엔 발리바르, 서관모 역, {역
사유물론의 전화}(서울: 민맥, 1993), p. 95.
}}
맑스주의는 본질적으로 프롤레타리아 정치의 가능성
과 그 현실태에 대한 분석, 즉 계급투쟁의 조건과 실존형태, 그리고 그 효과에
대한 분석을 자신의 이론적 대상으로 한다.
{{
)이 점이 갈등적이고 분파적인 과학으로서의 맑스주의의 특수성을 규정하는데, 바로 이러
한 갈등성이 맑스주의의 과학성과 객관성에 대해 구성적 역할을 수행한다. 이에 대해서는,
루이 알뛰세르, "맑스와 프로이트에 대하여", 윤소영 엮음, {맑스주의의 역사}(서울: 민
맥, 1991), pp. 99-124. 참조.
}}
역사유물론의 모든 정식화들과 맑
스주의의 모든 정치 저술들에서 지속적으로 추구되고 있는 것은 부르조아 정치가
산출하는 프롤레타리아 정치의 경향들, 그리고 부르조아 정치가 강제하는 일련의
형식들을 넘어서서 프롤레타리아가 자신의 독자적인 정치적 실천을 수행해야 할
필연성이다.
여기서 이데올로기 개념은 부르조아 사회의 내적 운동의 필연적 결과임과 동
시에 그것이 부르조아의 지배 효과를 산출한다는 점에서 프롤레타리아에게는 외
재적인 '환상' 또는 '허위의식'으로 규정된다. 이러한 규정 속에서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계급으로의 구성이라는 프롤레타리아 정치의 핵심적 문제는, 이데올로기
적 '환상'에 대비되는 프롤레타리아의 본래적 '자기의식', '프롤레타리아 세계
관'의 확보로 제시되는데
{{
)'프롤레타리아 세계관'이라는 개념은 본질적으로 이중적 의미를 가진다. 한편
에서 그것은 부르조아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 환원되지 않는 노동자 계급의 이
데올로기의 실존을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될 수 있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본
래적 프롤레타리아의 의식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 이러한 양가성은 토대/상부구
조라는 범론 속에서 맑스주의 이론의 이중적 위치설정과 관련된다. 한편에서 그
것은 하나의 포괄적인 분석원리로, 즉 현실 전반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는 수단으
로서 등장하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 그것은 주어진 전체의 설명원리가 아니
라 이데올로기 투쟁 속에서 그것이 산출하는 가능한 효과의 견지에서 사고된다.
후자의 측면에서 맑스주의 이론은, 대중의 투쟁 속에서 물질적 힘으로 전화하는
'이데올로기적 형태'로서 사고된다. 이에 대해서는, L. Althusser, "Marxism
Today," in L. Althusser, Philosophy and the Spontaneous Philosophy of the
Scientists and Other Essays(London: Verso, 1990), pp. 274-275.
}}
, 바로 이 지점에서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의 이론으
로서의 맑스주의가 '당-진리'의 테마 속에서 당의 재생산을 보증하는 조직 이데
올로기로 전화할 가능성이 항상적으로 재생산되는 것이다.
{{
)맑스주의에서 이데올로기 개념의 동요 및 그것이 당-진리라는 테마와 맺는 관련에 대한
체계적 연구로는, E. Balibar, "The Vacillation of Ideology," op. cit., pp. 159-209.
}}
따라서, 현재의 맑스주의의 위기의 핵심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환상' 또는
'허위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와 '프롤레타리아 세계관'의 반정립 속에서 이데
올로기와 프롤레타리아 정치의 문제를 사고하는 맑스주의적 정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반정립은 맑스주의가 이데올로기의 지배 효과, 혹은 지
배 이데올로기를 사고하는 특정한 방식과 관련되어 있다. 맑스주의의 관점에서
이데올로기가 산출하는 지배 효과는 그것이 지배 계급의 '의식'이라는 사실에 기
인한다. 이로부터 지배 계급의 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의식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 세계관'이라는 반정립이 지속적으로 산출되는 것이
다. 따라서, 맑스주의의 위기의 핵심으로서의 이러한 반정립적 구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배 계급의 의식으로 파악되는 지배 이데올로기 개념 자체를 전화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은 하나의 이행적 계기를 구성한다.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은 레닌주의의 영유를 통한 경제주의 비판의 맥락에서 정치
(학)의 독립성을 옹호, 수립하고자 하는 맥락에서 제출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람
시는 국가와 정치에 대한 맑스주의적 관점에 일정한 정정효과를 산출하게 되는
데, 그 최초의 형태는 지배 계급의 도구로 파악되는 고전적 맑스주의의 국가개념
을 강제와 동의(헤게모니)의 결합이라는 확장적 정식 속에서 재구성하는 것이었
다. 이러한 재구성은 일차적으로 러시아 혁명에 뒤이은 서구 혁명의 실패라는 조
건 속에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지배 계급으로 상승하기 위한 조건에 대한 숙고
에 기반한다. 이 속에서 그람시는 헤게모니 개념을 프롤레타리아 혁명 전략의 핵
심으로 채택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모든 계급지배의 본질적 계기로 정식화하게
된다.
{{
)그런데, 여기서 그람시는 헤게모니를 서구적 조건 속에서의 혁명전략으로 정식
화함으로써 이후 유로코뮤니즘 노선의 모태로 작동하게 된다. 부시-글룩스만은
레닌주의와 그람시와의 관련이라는 맥락에서,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이 유로코뮤니
즘 노선의 기반을 제공하였음에는 틀림없지만 그것으로 환원될 수는 없음을 주장
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Ch. Buci-Glucksmann, "Hegemonie," in G. Labica
und G. Bensusan, op. cit., pp. 480-481.
}}
그람시에게 헤게모니는 한 계급의 지배의 기초로서의 그 계급의 지도능
력을 의미하는 것인데, 이것은 일차적으로 토대에서의 그 계급의 지배적 지위에
기반할 뿐만 아니라
{{
)이러한 점에서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을 단순히 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 해석하는 논의들
은 그람시의 사상에 대한 편향적 독해에 기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람시의 헤게모니
론에 대한 이데올로기주의적 해석의 예로는, N. Bobbio, "Gramsci and the conception of
civil society," in Chantal Mouffe (ed.), Gramsci and Marxist Theory(London: Routledge
& Kegan Paul, 1979), pp. 21-47. 참조. 보비오 이외에 영국의 그람시주의자들 또한 이러
한 해석에 기반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본 논문의 제 3장 참조.
}}
정치적 실천 속에서 지속적으로 피지배 계급으로부터 동
의를 '조직화'해내는 능력에 의존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람시에게 동의의 개념
은 단순한 지지가 아니라 한 계급에 의한 이데올로기적 통일체의 구성과 그것의
재생산 과정을 의미하는 것인데, 여기서 그람시는 계급지배 및 정치적 실천의 본
질적 계기로서의 헤게모니 개념 속에서 이데올로기적 지배와 이데올로기 투쟁의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헤게모니 개념을 통해 전개되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그람시의 논의는 지배 이
데올로기에 대한 논의에 있어 하나의 이행적 계기를 구성한다. 그람시는 정치=철
학=역사라는 정식 속에서 지배 이데올로기를 피지배 이데올로기와의 대면 속에서
작동하는 것으로 위치지음으로써 지배 이데올로기를 단순히 지배 계급의 이데올
로기로 사고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것이 갖는 지배효과를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사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준다. 그람시의 관점에서 지배 이데올로기의 지위
는 이미 보장된 어떤 것이 아니라 지배 계급이 피지배 계급과의 구체적 통일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부단한 정치적 실천에 의존한다. 따라서, 그람시는 이데올로기
가 산출하는 지배 효과의 문제를 계급투쟁에 종속적인 것으로 사고할 수 있는 개
념화의 맹아를 도입한다. 그러나, 그람시에게서 이러한 가능성은 봉쇄되는데, 왜
냐하면 실제로 그람시에게서 정치적 실천의 본질적 계기로서의 이데올로기 투쟁
은 근원적으로 각기 다른 역사적 시대를 대표하는 서로 다른 두 계급의 이데올로
기들 간에 벌어지는 투쟁으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람시는 지배 이데올
로기와 피지배 이데올로기 간에 벌어지는 투쟁을, 각 계급의 유기적 지식인에 의
해 매개되는 이데올로기의 확산과정으로 대체하게 된다.
그람시의 논의는 이데올로기를 토대의 단순한 반영으로 사고하는 경제주의
적 관점에 대한 비판의 맥락에 위치해 있다. 이 비판 속에서 그람시는 이데올로
기를 역사적으로 규정하고 계급지배에 있어서 그것의 유효성과 현실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나, 그람시의 관점에서 정확히 누락되어 있는 것은 이데올로기의
지배 효과가 계급투쟁에 의해 어떠한 영향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또한 거기에
영향을 주지도 못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지배 이데올로기 개념 자체의 전화와
관련하여 핵심이 되는 것은 계급적대와 계급투쟁 속에서의 이데올로기의 현실적
작동 및 상호전화의 메카니즘이다.
2. 연구의 방법 및 논문의 구성
이데올로기의 문제는 맑스주의의 위기 국면 속에서 항상 다시 문제로 제기되
면서, 이데올로기 개념의 새로운 정식화를 위한 시도들과 역사유물론의 재정식화
를 위한 시도들을 산출해 왔다. 이데올로기의 문제는 일차적으로 프롤레타리아의
정치적 실천에서 제기되는 난점들과 관련된 문제임과 동시에 역사유물론의 정식
들의 구성 그 자체에 대한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맑스주의에서의 지배 이데올
로기의 재생산과 변형에 대한 문제설정은 부르조아 정치에 대해 독립적인 것으로
서의 프롤레타리아 정치의 전망에 종속적이면서 역사유물론의 정식들과 내재적인
관련을 보유하고 있다 할 것이다. 본고는 이와 같은 관점에서 이데올로기의 문제
와의 관련 속에서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이 갖는 일정한 함의와 그 한계들을 프롤
레타리아 정치 및 역사유물론의 문제설정의 맥락에 위치지움을 통해 고찰해 보고
자 한다.
우선 Ⅱ장에서는,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이 맑스주의에서 차지하는 특개적 위
치의 문제와 그 의의 및 한계에 대해 논의한다.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은 국가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맑스주의적 관점에 일종의 정정효과를 산출하는데, 그것은 그
가 국가와 이데올로기가 항상 계급투쟁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사고할 수 있는 개
념화의 맹아를 도입한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그의 논의는 고
전적 맑스주의의 정식들을 종합하는 데 그치고 있다.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이 갖
는 정정효과와 고전적 맑스주의의 종합으로서의 성격은 그가 이데올로기적 지배
의 과정을 이데올로기들의 투쟁으로 정식화하면서도 그것을 상이한 역사적 시대
를 대표하는 계급들의 이데올로기 간에 벌어지는 투쟁으로, 그리고 '유기적 지식
인'을 매개로한 지식이론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데에 기인한다.(2, 3절). 이데올
로기 투쟁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프롤레타리아 정치를 분열과 종합이라는 일반
적 형식 속에서의 사회의 국가 속에서의 종합이라는 형태로 사고하는 귀결을 낳
게 된다.(4절).
그러나, 그람시는 헤게모니의 구성적 원리를 제기함으로써 지배 자체를 비결
정적인 것으로 사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는데, Ⅲ장에서는, 반경제주의
(반환원주의)의 문제설정을 중심으로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의 이러한 측면을 전개
시키는 논의들을 살펴본다. 영국의 그람시주의자들--특히 무페(Chantal Mouffe)
와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러한 논의는, 이데올로기
를 주체의 계급적 입장에서 파악하는 것에 반대하고 오히려 주체, 나아가서는 그
계급적 입장 또한 이데올로기적 요소들의 접합과정 속에서 생성되는 것임을 주장
한다. 이러한 논의들은 그람시 자신의 사상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알뛰세의 이
데올로기론에 대한 '반환원주의'의 문제틀 내에서의 비판 속에서 수행된 그람시
에 대한 징후적 독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지배 이데올로기의 재생산과정을
한 계급에 고유한 이데올로기의 상승과정으로서가 아니라 다원적인 이데올로기적
요소들의 접합과정의 귀결로서 논의하는데, 이들은 이러한 요소들의 접합과정을
계급적대에 기반한 사회적 관계의 재생산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데 실패함으로
써 이데올로기가 산출하는 지배 효과의 문제를 부차화시키게 된다.
우선 1절에서는 그람시에 대한 반환원주의적 독해가 제기되는 정치적, 이론
적 배경을 살펴 보고, 무페의 논의를 중심으로 하여 이 문제틀의 핵심이 계급환
원주의에 대한 거부 속에서 계급적대의 부정으로 나아가는 데 있음을 살펴 본다.
2절에서는, 이러한 논의들이 이데올로기들의 생산을 이데올로기적 요소들의 접합
과정으로 설정하고 이 접합과정을 계급적대에 기반한 사회관계의 재생산이라는
맥락에서 사고하지 못함으로 인해 지배 이데올로기라는 논의 자체를 배제하게 됨
을 살펴본다.
Ⅳ장에서는, 전장에서의 논의를 기반으로 이데올로기적 지배의 재생산과정을
계급적대의 재생산이라는 맥락에서 고찰해야 함을 논의한다. 1절에서는, 지배 이
데올로기가 사회적 관계의 재생산 과정에 고유한 것임을 밝힌다. 이것은 토대/상
부구조의 관점을 넘어설 것을 요구하는데, 이를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의
관점에서 제기된 재생산의 관점 속에서 고찰한다(1절). 그러나, 사회적 관계의
재생산은 사회관계의 본질적 동질성의 연속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그
내부에 전화와 단절의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한데, 여기서 재생산과
정 자체가 계급적대에 기반한 과정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계급적
대는 이미 설정된 계급들 간에 전개되는 투쟁이 아니라 잉여가치의 착취를 둘러
싸고 사회 내에 구조화되어 있는 실천들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자본가 계급
과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비대칭적으로, 즉 자본가 계급이 사회적 착취과정 자체
의 의인화로서 등장하는 반면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이 과정에 구체적으로 포섭되
어 있는 대중들로서 드러난다(2절). 이러한 적대의 비대칭성이 함의하는 바는 이
데올로기의 지배 효과와 그 단절이 어떠한 주체에 의해서도 구성될 수 없는 본래
적으로 무의식적인 과정이라는 점이다. 이 과정은 계급투쟁의 계기적 변화들에
의해 규정되는데, 지배 이데올로기는 이 계기적 변화들 속에서, 즉 계급투쟁 속
에서 부단히 전화, 재구성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피지배 이데올로
기의 구성 또한 이 계기적 변화들 속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사고될 수 있는데, 이
러한 사고는 보편적 주체로서의 프롤레타리아라는 관념에 대한 문제제기를 요구
한다. 프롤레타리아 세계관과 '환상'으로서의 이데올로기 개념의 대비 속에서 전
제되었던 것은 역사의 주체, 혁명의 주체로서의 프롤레타리아라는 관념이었다.
이 관념은 맑스주의로 하여금 프롤레타리아의 대중의 계급으로의 구성을 사고하
도록 강제하였던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것을 본원적 계급의식의 확보로 제
한함으로써 현재의 위기의 핵심을 구성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맑스의 {자
본}은 프롤레타리아의 분할된 대중으로의 실존과 계급으로의 계기적 구성이라는
문제를 제기하는데, 여기서 프롤레타리아는 그 자체 동질적인 보편 계급으로서가
아니라 계급투쟁의 효과 속에서 산출되는 결과로서 이해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단절 효과는 이 계기적 구성 속에서 형성되는 맑스주의
의 정세적 진리효과라고 할 수 있게 된다.(3절).
Ⅱ. 그람시의 헤게모니론
1. 헤게모니 개념의 역사
헤게모니론을 정점으로 하는 그람시의 사상이 차지하는 특개적 위치 및 그
의의와 한계의 문제는 헤게모니 개념이 표상하는 맑스주의 내에서의 이론적, 실
천적 문제설정과의 연관 속에서 고찰될 수 있다.
{{
)그람시의 사상에 대한 논의는 주로 이탈리아 공산당(PCI)의 전략과의 관련 속
에서 톨리아티의 그람시 해석을 중심으로 하여 진행되어 왔다. 톨리아티는 전후
에 반파시즘 세력의 광범위한 동맹 위에서 이탈리아를 재건하고자 하는 '진보적
민주주의(progressive democracy)'전략의 기초 위에서, 그람시를 비코(Vico)로부
터 출발하는 이탈리아 사상의 진보적 경향의 연속으로서 위치짓는다. 1958년에
톨리아티는 그람시를 이탈리아의 민족적 전통 내에 국한시켰던 애초의 입장을 변
경하고 그람시의 사상을 이탈리아의 사회주의적 전통과의 단절로서 제시한다. 톨
리아티의 그람시 해석의 이러한 변화는 PCI의 전략노선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것
으로서, 이 시기 이후 PCI 내의 그람시에 대한 논의는 당의 전략에 대한 상이한
입장과의 관련 속에서 진행된다. 그람시의 사상에 대한 논의의 개괄은, Chantal
Mouffe & Anne Showstack Sassoon, "Gramsci in France and Italy -- a review
of the literature," Economy and Society, vol. 6, no. 1, 1977, pp. 31-68. 참
조. 그리고, 유로코뮤니즘적 전통내에서의 전후 PCI의 노선에 대한 개괄적 소개
로는, Guiseppe Vacca, "The "Eurocommunist" Perspective: The Contribution of
the Italian Communist Party," in Richard Kindersley (ed.), In Search of
Eurocommunism(London: Macmillan Press, 1981), pp. 105-146. 참조.
}}
그람시가 정식화한 일련의
새로운 개념들은 이러한 문제설정에 그람시가 대응하는 독특한 방식들을 나타내
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헤게모니 개념은 매우 모호하고 다의적인 형태로 카우츠키, 바우어, 플레하
노프, 레닌, 부하린, 트로츠키, 지노비에프, 스탈린 등 제 2, 3 인터내셔날의 주
요 이론가들의 저작에서 발견된다. 카우츠키와 바우어는 헤게모니 개념을 프롤레
타리아의 지배(Herrschaft)/우위(Vorherrschaft)의 동의어로서 사용한다.
{{
)헤게모니에 대한 카우츠키와 바우어의 이러한 이해는 부르조아민주주의, 즉
대의체계에 대한 물신화 속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사고하는 그들의 전략과 관
련된다. 이들의 이러한 이해 방식은 또한 맑스주의 내의 국가주의적 요소의 일종
의 완성으로 파악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Jean Robelin, "Etatismus," in
G. Labica und G. Bensusan (hrsg.), Kritisches W rterbuch des Marxismus,
Herausgeber der deutschen Fassung: Wolfgang Fritz Haug(West Berlin:
Argument, 1985), pp. 316-318. 참조. 이하에서 이 사전은, Kritisches
W rterbuch des Marxismus로 약칭한다.
}}
러
시아의 경우 이 개념은 1890년대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RSDLP)의 투쟁에서 일종
의 정치적 슬로건이 되는데, 플레하노프는 1887년에 러시아 혁명과정을 지도하는
데 있어서의 노동계급의 특수하고 자율적인 투쟁의 필연성을 지칭하기 위해 이
개념을 사용하였으며, 플레하노프의 이러한 사용은 악셀로드와 1900-1905년 까지
의 레닌의 저작에 계승된다. 레닌은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사회민주주의자의 두
가지 전술}에서 경제주의와 투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철두철미 민주주의적인 프
롤레타리아를 당면의 부르조아 혁명에서의 정치적 지도세력으로 만들기 위한 정
치적, 이데올로기적인 계급특수적 지도를 지칭하기 위해 헤게모니 개념을 사용한
다.
{{
)L. Gruppi는 레닌의 헤게모니 개념을 이와같은 맥락에 국한시킴으로써 레닌과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에서의 차별성을 강조한다. 이에 대해서는, L. 그루피, 최광열 역, {그람시
의 헤게모니론}(서울: 전예원, 1986), 특히 1, 2장 참조. Ch. Buci-Glucksmann은 10월 혁
명을 경과하면서 레닌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헤게모니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정식화로 이
끌려졌으며 이것이 그람시가 헤게모니론을 정식화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와 같은 사실로부터 그람시와 레닌을 연관짓기 위해 헤게모니와 프롤레
타리아 독재가 동일한 것이라고 파악하는 견해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서는,
Ch. Buci-Glucksmann, Gramsci and the State(London: Lawrence & Wishart, 1980), ch. 7,
8. 참조.
}}
그런데, 프롤레타리아 독재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지도로서 사용된
이러한 헤게모니 개념은 10월 혁명의 시기동안 소멸되었다가 레닌의 최후투쟁과
노동조합의 역할에 대한 논쟁에서 다시 등장한다. 이 논쟁에서 레닌은 전체 계급
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의 헤게모니와 프롤레타리아의 전위에 의해 수행되는 국가
적 지배를 명확히 구별하는데, 이러한 구별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토대"로서의
헤게모니
{{
)"튜린의 공산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의 문제,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노
동자 국가의 사회적 토대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제기하였다. 프롤레타리아는 자본주의와 부
르조아 국가에 대항하는 다수의 근로대중을 동원할 수 있게 만드는 동맹체계를 구축하는데
성공하는 정도에 따라서 지도적이면서 지배적인 계급이 될 수 있다(강조는 인용자)," A.
Gramsci, "Some Aspects of the Southern Question," ed. and trans. by Quintin Hoare,
Selections from Political Writings 1921-1926(London: Lawrence & Wishart, 1978), p.
443.
}}
, 지배와 구별되는 것으로서의 헤게모니에 대한 그람시의 표상을 뒷
받침한다.
{{
)이상의 정리는, Christine Buci-Glucksmann, "Hegemonie," Kritisches W rterbuch des
Marxismus, pp. 475-478. 참조.
}}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은 레닌주의의 영유를 통해 발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이 레닌의 그것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
)그람시와 레닌의 관계에 대한 논쟁은 그람시의 사상을 레닌주의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포스트-레닌주의적인 것으로 볼 것인가 하는 맥
락 속에서 진행되어 왔는데, 전자의 입장을 대표하는 것으로는 Massimo
Salvadori, "Gramsci and the PCI: two conceptions of hegemony," in Chantal
Mouffe (ed.), Gramsci and Marxist Theory(London: Routledge & Kegan Paul,
1979), pp. 237-258.을 참조할 수 있으며, 후자의 견해에 대해서는 Biagio de
Giovanni, "Lenin and Gramsci: state, politics and party," in Ch. Mouffe
(ed.), Ibid., pp. 259-288.을 참조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문제를 둘러 싼 PCI
내의 논쟁은 맑스주의 내에서의 그람시 사상의 위치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한 것
이 아니라 PCI의 다원주의적 이행 전략에 대한 상반된 견해에 근거하여 진행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그람시의 헤게모니론과 다원주의 정치전략과의 관련에 대
한 PCI 내의 논의에 대해서는, de Giovanni, Gerratana, Paggi, Gramsci-Debatte
1: Hegemonie, Staat und Partei(Hamburg: VSA Verlag, 1978).을 참조할 수 있
다.
}}
파
시즘의 반동에 의한 노동운동의 좌절을 경험하면서 그람시는 헤게모니 개념의 문
제영역을 확장하고 새로운 정식화들을 제출하게 된다. 이러한 정식화들이 맑스주
의내에서 차지하는 의의와 한계의 문제는, 맑스주의, 특히 맑스와 엥겔스의 맑스
주의에서 '지배'(Herrschaft)라는 개념이 내포하는 곤란 및 그것이 낳은 실천적
효과들과의 관련 속에서 고찰될 수 있다.
맑스와 엥겔스에게서 지배 개념은 우선 국가에 의해 구체화되는 권력관계의
본질을 표현한다. 역사적으로 존재하는 국가의 형태들에 대해 각각에 개별적인
특징규정이 가능한 것은 국가가 항상 한 계급의 다른 계급에 대한 지배의 도구라
는 점에서이다. 나아가, "한 시대의 지배적인 사상은 항상 지배계급의 사상이다"
라는 정식 속에서 지배 개념은 각각의 역사적 시기의 일반적 징표(생산양식, 정
치형태, 문화 등)를 그 시기에 특징적인 계급관계와 관련짓도록 한다. 따라서,
계급지배는 사회적 현실성의 배치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구조로서 개념화된다.
{{
)Pierre S verac, "F hrung(Leitung)/Herrschaft," Kritisches W rterbuch des
Marxismus, p. 396.
}}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최종적으로 한 계급의 이익이 관철되는 것
으로서 지배 개념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이 지배가 해당 사회에서 보편성의 외양
을 띠고 나타나게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정은, 특히 국가와 지배 이데올로기
를 비롯한 상부구조적 현상들에 고유한 것인데, 이러한 현상들은 외관상 사회 내
의 모든 계급들을 대표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맑스와 엥겔스
가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공산주의로의 이행을 사고하는 데에서 즉각적인 곤란을
낳게 된다. {공산당 선언}에서 정식화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선결적 임무는,
"프롤레타리아가 자신의 정치적 지배를 이용하여 부르조아지로부터 모든 자본을
차례차례 빼앗고 모든 생산도구를 국가의 수중에, 즉 지배 계급으로 조직된 프롤
레타리아의 수중에 집중시키며 가능한 한 빨리 생산력을 증대시키"는 것으로 제
시된다.
{{
)칼 마르크스, 김재기 역, "공산당 선언",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선}(서울: 거
름, 1988), p. 69.
}}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국가, 즉 지배 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
리아"라는 정식이다. 맑스 자신의 표현처럼 이것을 "첫 걸음"의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이해한다 하더라도 여기에는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는데, 그것
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종별성이 무엇보다 국가의 소멸을 지향하는 데에 있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이러한 문제는 무엇보다 프롤레타리아에 의해 장악된 국가의
특수성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 즉 지금까지 계급지배의 도구로 작용하였던 국가
들에 대해 프롤레타리아 국가가 갖는 차별성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며 나아가
이 국가는 어떻게 그 자신의 소멸로 나아가게 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맑스와 엥겔스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국가/사회의 대당 속
에서 이전의 모든 국가와 프롤레타리아 국가 간의 차별성을 프롤레타리아 국가가
'전체 사회의 진정한 대표자'로 나타나게 된다는 점에서 찾는 것이다. 지금까지
의 국가가 사회에서 지배적인 계급의 이익을 전체 사회의 보편적 이익으로 관철
시키는 사회에 외적이고 환상적인 '소외'의 표현이었다면 프롤레타리아 국가는
그것이 진정으로 전체 사회의 대표자가 됨으로써 계급지배의 도구이기를 그치고
따라서 이제 국가이기를 그치게 되는 것이다.
계급대립의 형태로 운동하여 온 이제까지의 사회는 국가를 필요로 하였
다. 즉 각 시대마다 착취계급은 자기 계급의 기구-외적인 생산조건을
유지하고, 따라서 특히 피착취계급을 기존의 생산양식에 의해 정해진
억압조건(노예, 농노 또는 예농, 임금노동) 속에 강압적으로 가두어 두
기 위한 조직-를 필요로 하였다. 국가는 전체 사회의 공식적 대표자였
고 이들을 가시적인 체현물로 집약시킨 것이었지만, 이는 그것이 당시
의 전체 사회를 대표하는 계급의 국가인 한에 있어서만 그러하였다. 국
가가 마침내 사회 전체의 사실상의 대표자가 될 때에는 그 자신을 불필
요하게 만든다..... 국가가 진정으로 사회 전체의 대표자로서 등장하여
수행한 최초의 행동--사회의 이름으로 생산수단을 장악하는 것--은 동
시에 국가가 독자적으로 수행한 최후의 행동이다. 사회관계에 대한 국
가의 간섭은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차례로 불필요하게 되고 이윽
고 스스로 사멸해 간다. 인간에 대한 지배에 대신하여 사물에 대한 관
리 및 생산과정에 대한 지도가 나타난다.(강조는 인용자)
{{
)프리드리히 엥겔스, 김민석 역, {반듀링론}(서울: 새길, 1987), p. 301.
}}
그런데, 이러한 정식화가 맑스주의의 역사 속에서 국가주의라는 고유의 효과
를 낳았다.
{{
)마르크스주의에서의 국가주의로의 내재적 경향에 대한 체계적 연구로는, Jean
Robelin, op. cit. 참조.
}}
여기서 국가의 소멸의 문제는 국가가 사회의 진정한 대표가 됨에
따라 자생적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설정되는데, 이러한 국가 소멸의 과정은 곧 국
가의 지배하는 기능이 "지도"하고 "관리"하는 기능으로 대체되는 과정이다. 그런
데, 이 과정은 그것을 정치 그 자체의 소멸과 동일시하는 속에서
{{
)국가의 소멸이라는 문제설정이 정치 그 자체의 소멸과 동정되는 것, 나아가 이것이 국
가의 관리 기능의 지속이라는 문제로 이전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국가주의와 무정부주
의 사이의 동요를 가장 극명하게 표현하는 지점이다. 마르크스는 한편에서 바쿠닌의 전제
를 수용했기 때문에 정치를 국가 및 권력과 동일시하는 경향을 갖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무정부주의적 비난에 반대하여 시민사회를 구조화하고 지배하는 국가장치를 점령하기 위해
노동계급이 일반적으로 정치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단념할 수 없음을 역설함으로써 국가주
의의 재생산으로 인도하는 요소를 열어 놓게 된다. Ibid., p. 316.
}}
국가가 사회
와 맺는 관련 및 그 기능양식이 변화하는 과정에 다름아니라는 점에서, 국가에
의해 구조화되는 정치를 뛰어넘는 새로운 정치적 실천의 문제를 끊임없이 봉쇄하
는 효과를 낳게 된다.
{{
)이러한 봉쇄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의 역사속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마르크스이후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은 한편에서 프롤레타리아 정치의 문제를 정치의 새로운 실천의 문제
로서 제기하지만(예컨대, '생산자들의 통치'라는 마르크스의 정식과 '이행기의 사회'라는
레닌의 정식 등) 동시에 이를 국가/사회의 대당속에서 끊임없이 봉쇄되는 과정을 보여 준
다. 마르크스주의에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의 역사에 대해서는, E. Balibar, "Diktatur
des Proletariats," Kritisches W rterbuch des Marxismus, pp. 256-267. 참조. 그리고 정
치의 새로운 실천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 정치라는 관점에서 국가/(시민)사회의 대당에 대
한 비판으로는, E. Balibar, "Marx, the joker in the pack: or the included middle,"
Economy and Society, vol. 14, no. 1, 1985. 및 에띠엔 발리바르, ["이행"의 아포리들과
맑스의 모순들], 윤소영 엮음, {맑스주의의 역사}(서울: 민맥, 1991), pp. 279-292. 참조.
}}
이러한 효과는 지배의 응축적 계기로서의 국가에 대한 맑스와 엥겔스의 표상
이 그 부침 속에서 보유하는 동일한 하나의 문제설정과 관련된다. 맑스의 이론적
작업이 지향하는 최초의 목표는 부르조아 사회에서의 정치적 소외에 대한 비판이
었다. 이것은 초기에 인간의 "유적 본질"의 소외라는 인간주의적 문제설정 속에
서 진행되는데, {공산당 선언}과 함께 부르조아 사회의 정치적 소외의 문제는 계
급투쟁에 대한 인간주의적 이해에서 프롤레타리아적 이해로 이행한다. 이러한 이
행을 특징짓는 것이 지배 계급의 도구로서의 국가라는 정식이다. '정치적 국가'
는 무엇보다 '공동의', '공적', 보편적 이해의 표상으로부터 부당하게 주장되는
'사적' 이해에 따른 일정한 형태를 띤 하나의 계급조직이다.
{{
)에띠엔 발리바르, "국가, 당, 이데올로기: 문제의 개요," 서관모 엮음, {역사
유물론의 전화}(서울: 민맥, 1993), p. 71. 국가에 대한 이러한 이해로부터 맑스
와 엥겔스가, 그리고 그 후계자들이 부르조아의 핵심적 이데올로기를 법률 이데
올로기로 사고하는 경향이 지속적으로 재생산된다. 발리바르는 이것이 맑스와 엥
겔스가 부르조아의 핵심적 이데올로기로서의 경제 이데올로기를 결코 극복하지
못한 데에 기인한다고 논의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에띠엔 발리바르, "조우커 맑
스: 또는 동봉된 제 3항," 앞의 책, pp. 43-55. 참조.
}}
국가에 대한 도
구적 이해는, '정치적 국가'를 현실 사회의 소외, 이 현실 사회의 ('계급들'로
의) 내적 분할 때문에 사회와 대치하고 사회를 압제하는, 사회의 생산물이며 사
회의 가상으로 파악하는 '소외'의 문제설정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이때, 부르
조아의 지배를 대체하는 혁명적 과정은, 그 자체 국가적이지도 않고 심지어 '정
치적'이지도 않은 목적, 즉 "부르조아적 소유의 폐지", 계급적대의 조건들과 계
급들 그 자체의 철폐, 자유로이 직접적으로 연합한 노동자들의 사회를 달성하기
위한 방편으로 국가를 이용하고 국가의 수단들을 이용하는 것이 문제이다.
{{
)칼 마르크스, "공산당 선언," 김재기 편역,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선}(서울: 거름,
1988), pp. 35-83.
}}
그러나, 1871년 파리 꼬뮌의 경험 이후에 씌어진 {프랑스 내전}과 {공산당
선언}의 정정에서는, 이러한 견해에 대한 내적 단절의 요소가 도입된다. 여기서
국가의 표출적, 또는 도구적 이해는 지배의 효과들을 (재)생산하는 기구, 메카니
즘으로서의 국가라는 관념으로 이행한다. 이러한 이행은 국가에 대한 표출적 이
해, 즉 거기서 국가가 시민사회의 (소외된) 표출일 뿐인 '시민사회/정치국가'의
대당에서 분리되어 감을 의미한다.
{{
){공산당 선언}의 정정이 함의하는 국가에 대한 파악의 변화에 대해서는, 에띠
엔 발리바르, "공산당 선언의 정정," 이해민 역, {역사유물론 연구}(서울: 푸른
산, 1990), pp. 76-110. 참조.
}}
여기서 추구되는 것은 자본주의적 착취조
건들의 재생산에 대한 국가의 위치문제이다. 그런데, 재생산 과정에의 개입을 위
해서는 국가 자체가 하나의 세력(권력)이어야만 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이행은
곧 국가적 심급의 고유한 역사적 현실성과 유효성을 승인하는 경향을 보유하게
된다.
{{
)에띠엔 발리바르, 서관모 엮음, op. cit., pp. 73-74.
}}
여기서 국가는 자신의 고유한 '기관들'과 '기술들'을 갖는 (압제의, 계
급지배의) 도구이지만, 그러나 계급적 '의지'의 단순한 매개물은 아니다. 상관적
으로 지배 계급은 국가에 대한 관계에서 점점 더 하나의 '주체'로서 생각될 수
없다. 국가는 오히려 그 구조에서 '계급적 국가', 계급 적대들의 실존에 조응하
고 그것들을 '재생산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것으로서 분석되어야 한다.
{{
)Ibid., p. 75.
}}
그러나, 이러한 이행과 단절은 경향적일 뿐이다. 국가에 대한 맑스와 엥겔스
의 파악의 전이는 '소외의 문제설정'에 상반하는 일련의 혁신들과 발견들을 제출
하지만 이것들은 단지 동일한 문제설정 속에서만 사고될 뿐이다. 맑스와 엥겔스
가 결코 넘어서지 못했던 것, 오히려 이러한 부침 속에서 더욱 더 강화했던 것은
정치를 인간들의 현실적 관계들이 전도되는 세계, 따라서 기본적으로 환상의 세
계로 파악하는 바로 그 관념이다. 이러한 관념은 맑스주의의 종별성이 프롤레타
리아 정치를 사고한다는 점, 즉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조아 정치를 넘어서서 별개
의 정치를 구성해야 할 필연성에 대해 사고한다는 점에 있다는 것과 관련된다.
따라서, 부르조아 정치가 프롤레타리아 정치에 강요하는 특정한 형태와 압박을
사고할 필요가 있었는데, 맑스는 이것을 지속적으로 '환상'과 '현실'의 대비를
통해 사고하거니와 이로부터 전도와 소외를 그 핵심으로 하는 사회에 대한 이원
론적 표상이 반복적으로 제출된다.
{{
)따라서, 결국 마르크스가 '토대'와 '상부구조', 사회와 국가간에 주어지는 전
도관계의 변종들 하에서 생각하고자 했던 것은 현실적으로 프롤레타리아 정치로
하여금 부르조아 정치의 규칙들과 형태들에 종속하도록 이끄는 전도의 효과라고
말할 수 있다. Ibid., p. 98.
}}
그런데, 국가를 단지 계급투쟁에서 지배
계급의 수단(이것은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조아 모두에게 해당된다)으로, 그리고
계급투쟁을 생산력과 소유관계의 발전의 조응법칙의 표출로 파악하는, 역사와 정
치에 대한 경제주의적 표상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는 것은 바로 이 환상과 현실
의 대비 속에서이다.
{{
)Ibid., p. 97.
}}
맑스와 엥겔스가 국가에 대한 그들의 분석에서 '소외의 문제설정'에 반하는
일련의 정식들을 제출함에도 불구하고 결코 그것을 뛰어 넘을 수 없었던 것은
1871년 이후의 국가 개념이 이데올로기적 관계들을 결코 생각할 수 없게 한다는
점에 기인한다.
{{
)Ibid., p. 99.
}}
거기서 국가에 대한 분석은 강제적 '기구'와 계급투쟁에서 그
것이 수행하는 기능에 대한 기술들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소외의 문제설정에서
직접 파생하는 최초의 개념은 바로 국가 개념과 동시에 이데올로기 개념이다. 프
롤레타리아 정치와 부르조아 정치의 모순을 사고하면서 맑스는 점점 더 국가를
'소외'의 관점에서 떼어 놓지만, 이데올로기를 지속적으로 '환상'으로 정의함으
로써 결국 정치를 환상으로 정의하는 '소외'의 문제설정에 머무르게 된다.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이 갖는 특개성은 부르조아 정치에 대한, 따라서 국가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맑스주의적 정식에 그것이 갖는 일종의 정정 효과와 관련된
다. 그람시는 '자율적인 과학으로서의 정치학'을 추구하는 속에서 국가와 이데올
로기에 대한 일련의 개념적 정정과 확장을 수행한다.
{{
) 카린 프리스터는, '자율적인 과학으로서의 정치학'을 구상하고자 하는 그람
시의 작업은 정치경제학 비판을 정치이론의 언어로 번역하고자 하는 시도였다고
주장한다. 카린 프리스터, 윤수종 역, {이탈리아 맑스주의와 국가이론}(서울: 새
길, 1993), p. 17.
}}
2. 통합국가론
그람시의 {옥중수고}가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문제는 어떻게 하나의 계급이
하위집단으로부터 출발하여 지배집단으로 발전하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
)그람시는 마르크스주의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개념들과는 상이한 개념들을
통해 자신의 논의를 전개하고 있는데, 본 논문에서는 구체적으로 명기가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그람시 자신의 개념을 그대로 사용한다.
}}
이것
은 우선 프롤레타리아가 지배 계급으로 상승하기 위한 일반적 전제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되는 것이지만, 동시에 한 계급의 지배가 어떻게 사회 전체에
대해 보편적인 것으로 나타나는가, 또는 한 계급의 발전이 어떻게 사회 전체의
보편적 발전으로서 나타나게 되는가 하는 일반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기도 하
다.
{{
)이러한 점에서,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은 전략적 측면과 동시에 이론적, 분석적 측면을
보유한다 하겠다.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의 양 측면에 대한 체계적 연구는, Ch.
Buci-Glucksmann, Gramsci and the State(London: Lawrence & Wishart, 1980).를 참조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이 내포하는 전략적 측면에 대한 논의는 생략
하고, 이데올로기와 정치의 문제를 중심으로 그람시의 이론적, 분석적 측면을 주요 논의
대상으로 삼는다.
}}
이 문제에 대면하여 그람시는 우선 계급지배의 응축적 계기로서의 국가를,
한 집단이 자신의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요구되는 기능들과의 관련 속에서 이중
적으로 분할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람시의 관점에서 "지배 계급의 역사적 통일
성은 국가를 통해서 실현"되며, 따라서 "하위계급은 정의상 스스로 '국가'가 될
수 있기까지는 통일되지 않으며 통일될 수도 없다."
{{
)A. Gramsci, "Notes on Italian History," trans. and ed. by Quintin Hoare
and Geofferey Nowell Smith, Selections from the Prison Notebooks(New York:
International Publishers, 1971), p. 52. 이하에서 이 책은 SPN으로 약칭함.
}}
그리고 국가 속에서의 지
배 계급의 이러한 통일은 단순히 법적이고 제도적인 것이 아니라 "국가 혹은 '정
치 사회'와 '시민사회' 사이의 유기적 관계에서 비롯"
{{
)Ibid., p. 52.
}}
된다. 여기서, 정치사회
와 시민사회간의 유기적 관계라고 표현한 바의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그람
시가 하위집단의 지배집단으로의 발전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의 방법론적 기준에
대해 논의하는 곳에서 드러난다. 하위집단의 지배집단으로의 발전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의 방법론적 기준은, "한 사회집단의 우위성은 '지배'와 '지적, 도덕적 지
도'라는 두 가지의 방식으로 나타나"며, "'지도'는 통치권의 획득 이전과 이후를
관통하는 것"으로서 지배의 기초를 이룬다는 점에 있다.
{{
)Ibid., p. 57.
}}
한 집단의 지배 집단
으로의 상승의 종국적 계기는 통치권의 획득(정치사회의 장악)이지만, 이것의 획
득과 유지는 전적으로 이 집단이 사회 속에서 여타 집단들에게 수행하는 지도의
기능에 의존한다. 지배 계급의 역사적 통일성이 실현되는 것으로서의 국가는, 한
집단이 지배 집단의 지위를 획득, 유지하기 위해 요구되는 이 양 기능과의 관련
속에서 사고되어야 한다. 따라서, 그람시에게 국가는 단순히 '지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국가와 지배를 동일시하는 풍토 속에 있는데, 이 동일시
야말로 경제적.조합주의적 형태의 표현, 다시 말해 시민사회와 정치사
회 사이의 혼동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왜냐하면, 국가라는 추상적 개념
속에는 시민사회의 개념에서 도출되어야 하는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국가=정치사회+시민사회. 다시 말해 국가='강제의 철갑에 의
해 보호되는 헤게모니'라고 말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후자(지배-인용
자)는 경향적으로 사라질 수 있으며 조절된 사회 속으로 포섭될 수 있
다고 파악하는 국가이론에 있어서는, 위의 주장은 기본적인 것이다. 조
절된 사회(혹은 윤리적 국가, 혹은 시민사회)의 현저한 요소들이 나타
남에 따라 국가의 강제적 요소가 점차 사라지리라는 것은 상상할 수 있
다.
{{
)A. Gramsci, "State and Civil Society," SPN, pp. 262-263.
}}
국가 속에서 실현되는 지배 계급의 역사적 통일성은 그 계급의 지배하는 기능과
지도하는 기능의 구체적 통일 속에서 실현된다. 따라서, '국가'는 단순히 지배의
도구로 사고될 수 없고 지배 계급이 자신의 지배적 지위를 유지하는 복합적 활동
의 관점에서 사고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람시는 국가를 정치사회(좁은
의미의 국가)와 시민사회의 종합으로 제시한다. 정치사회와 시민사회라는 국가의
두 계기는 한 집단이 지배 집단이 되기 위해 요구되는 두 가지 기능에 정확히 조
응한다. 그런데, 그람시에게서 지배 집단에게 요구되는 기능들이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동일하게 국가라는 단일한 개념으로 포괄되는 정치사
회와 시민사회 또한 서로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람시는 정치사회와
시민사회의 구별이 단지 방법론적인 것일 뿐 유기적인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
)이 점과 관련하여 제라타나는 국가/시민사회의 구별을 국가에 대한 그람시의
통합적 이해 속에서의 방법론적 구별로서 이해할 것을 강조한다. "과거에 사람들
은 종종 그람시의 국가/시민사회의 구별에 대해 토론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보기에 이 구별이 {수고}에서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수고}에서
국가는 가끔 부르조아 시민사회의 헤게모니 장치들 옆에 존재하는 순수한 억압기
제로 이해된다. 반면, 다른 경우에 그것은 강제 기구 뿐 아니라 부르조아 시민사
회의 헤게모니 장치까지를 그 내부에 포괄하는 확장된 개념 속에서 이해된다. 이
두번째 경우에 국가/시민사회 간의 구별이 보유하는 방법론적 기능이 이러한 확
장된 국가 개념의 내부로 이전된다," Valentino Gerratana, "Staat, Partei,
Institutionen: Politische Hegemonie der Arbeiterklass," de Giovanni,
Gerratana, Paggi, Gramsci-Debatte 1(Hamburg: VSA, 1978), pp. 40-41.
}}
시민사회와 정치사회의 통일로서 국가를 사고하는 그람시의 관점은 국가의
역사적 기능이라는 문제와의 관련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시민사회와 정치사회
가 각기 독립된 유기체로서가 아니라 '국가' 속에 통일된 각각의 계기로 사고될
수 있는 것은 국가가 갖는 근본적 기능과의 관련 속에서이다. 그람시의 관점에서
국가는, 그것이 바로 새로운 유형, 혹은 새로운 수준의 문명을 창출하고자 하는
한에서 '교육자'로 파악되어야 한다.
{{
)A. Gramsci, "State and Civil Society," SPN, p. 247.
}}
모든 국가는 국가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가 거대한 인구 대중을
특정의 문화적, 도덕적 수준(또는 형태), 다시 말하여 생산력 발전을
위한 요구, 따라서 지배 계급의 이익에 부응할 수 있는 수준으로까지
끌어 올리는 데에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윤리적 국가이다. 이러한 의미
에서 긍정적인 교육기능으로서의 학교와 강압적이고 부정적인 교육기능
으로서의 법정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활동이다.
{{
)Ibid., p. 258.
}}
교육자로서의 국가는 피지배 계급을 지배 계급이 요구하는 바의 문화적, 도덕적
수준에 조응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 기능은 지배 계급의 부단한 실천 속에서
진행되는데, 시민사회와 정치사회는 국가의 이러한 기능이 수행되는 차별적 계기
들일 뿐이다.
그런데, '지도'의 우위 하에서의 지배와 지도의 통일로서 지배 계급의 지배
를 사고하고 그로부터 국가를 방법론적으로 이중화하는 이러한 정식은 맑스주의
국가론에 있어서 하나의 전위효과를 산출한다. 여기서 국가는 지배 계급의 '도
구'가 아니라 오히려 지배 계급의 통일이 실현되는 공간이자 동시에 이 통일을
구성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사고되고 있는 것이다.
{{
)국가에 대한 도구주의적 관념과의 단절은 이미 튜린 시기에서부터 등장하기
시작한다. "부르조아 계급은 국가 외부에서의 통일체가 아니다......국가의 기능
은 내적인 계급대립과 적대적 이해 관계들 간의 충돌에 법률적 조정을 발견해 내
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상이한 집단들을 통합하고 계급에게 견고하고 통일된
외양을 부여한다," A. Gramsci, "Class Intransigence and Italian History,"
trans. and ed. by Quintin Hoare, Selections from Political Writings
1910-1920(New York: International Publishers, 1978), p. 40.
}}
이러한 통일은 지배 계
급 자신만의 통일이 아니라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 모두를 포함하는 구체적인
역사적 통일성이라는 점에서, 그람시의 이러한 정식은 국가를 지배 계급에게 복
무하는 중립적 도구로, 또 때로는 기생적 관료제로 인식하는 고전적 맑스주의의
국가관
{{
)맑스와 엥겔스에게서 '국가 장치'라는 개념은 이러한 범주를 뛰어 넘고 있지 못하다.
맑스주의에서 '국가장치' 개념의 역사에 대해서는, E. Balibar, "Apparat," Kritisches
W rterbuch des Marxismus, pp. 71-81. 참조.
}}
을 뛰어 넘어 국가가 항상 계급투쟁과 계급의 구성에 현존하는 것으로
사고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고 있다.
{{
)부시-글룩스만은 그람시 국가관의 이러한 측면이 1918년 개량주의자와 의회주의자, 그
리고 당 지도부와 Avanti로의 '사회주의자의 분화'가 일어 났을 당시의 그람시의 정치적
저작들에서 이미 발견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이러한 사고가 러시아 혁명으로부터 받은 깊
은 영감에 근거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Ch. Buci-Glucksmann, op.
cit., pp. 130-131.
}}
국가는 한 특정한 집단의 기관으로서 그 집단의 극대 팽창을 위해 유리
한 조건들을 조성하게끔 되어 있다고 보는 것은 옳다. 그러나, 주의하
여야 할 것은, 이 특정 집단의 발전과 팽창이 보편적 팽창, '국민적'
에네르기의 발전으로 파악되고 또 그렇게 제시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
하여, 지배집단은 종속적 집단들의 일반적인 이익과 구체적으로 통합되
어 있고, 국가의 삶은 기본적 집단의 이익과 종속적 집단들의 이익 사
이의 불균형--지배 집단의 이익이 우세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느 한계
내에서, 다시 말하여 지배 집단의 이익이 인색한 조합주의적, 경제적
이익으로까지 나아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균형--을 끊임없이 새로 형
성하고 폐기하는 과정이라고 파악된다.
{{
)A. Gramsci, "The Modern Prince," SPN, p. 182.
}}
그람시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적 지배가 갖는 보편성의 문제이다. 그람
시의 관점에서 이러한 보편성은 허구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인데 그것은
이것이 지배 계급이 구체적으로 사회를 통합하는 속에서 실천적으로 획득되는 것
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배 집단이 피지배 집단과의 대면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
의 이익과 피지배 집단의 이익 간의 불균형을 폐기하는 과정 속에서 획득된다.
이러한 점에서 그람시의 논의는 국가에 대한 '도구'론적 관점 뿐만 아니라 도구
론적 관점의 모체로서의 '소외의 문제설정'에 대한 일정한 정정효과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지배 계급의 사적인 이익을 전체 계급의 보편적 이익인 것
처럼 사회 내에 투사시키는 도구로서 국가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속에서
벌어 지는 지배 계급의 이익과 피지배 계급의 이익 간의 충돌을 사고함으로써 국
가가 계급투쟁 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사고할 가능성을 열어 준다는 점과 관련된
다.
그런데, 이러한 가능성은 단지 가능성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사실 그람시의
모든 논의는 결국 '소외의 문제설정'이 기반하고 있는 정치철학적 사회관, 즉 사
회의 종합으로서의 국가라는 관념으로 되돌아 간다. 맑스와 엥겔스에게서 부르조
아 국가와 프롤레타리아 국가 간의 차별성은 전자가 사회의 허구적 종합임에 반
해 후자가 사회의 실제적 종합인 것에서 나타난다. 그람시는 모든 국가가 새로운
역사적 시대에 요구되는 바의 새로운 문화적 수준으로 대중들을 인도한다는 점에
서 윤리적 국가일 수 있다고 논의하는 속에서 이러한 구별을 경향적으로 기각한
다.
{{
)이러한 기각은 경향적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람시는 어떤 곳에서는 프롤레타
리아만이 진실로 윤리적일 수 있다고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모든 국가가 윤리적
이라고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
그람시는, 모든 국가적 과정에 시민사회에서의 동의의 문제를 삽입함으로
써 국가는 항상 사회 내에서의 사적인 분할들의 조절과 종합 속에 존재한다고 논
의한다.
{{
)그람시의 관점에서 시민사회에서의 동의는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조직'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동의의 과정은 정확히 한 계급의 전체 사회에 대한 헤게모니를 구성한다. 그
런데, 여기서 이러한 헤게모니는 그람시에게 무엇보다 국가의 윤리적 내용이다. "시민사회
는 이 수고에서 가끔 사용되고 있는 것처럼 헤겔적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즉 하나의 집
단이 전체 사회에 대하여 행사하는 국가의 윤리적 내용으로서의 정치적, 문화적 헤게모니
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A. Gramsci, Quaderni del carcere(Turin: Einaud, 1975), p.
703.; G. Vacca, "지식인과 맑시스트 국가이론," 앤 사쑨 편저, 최우길 역, {그람시의 혁
명전략}(서울: 도서출판 녹두, 1984), p. 100.에서 재인용.
}}
동의의 문제설정 속에서 그람시는 국가의 현실적 복잡성을 사고할 수
있었지만, 맑스와 엥겔스의 국가관이 기반하는 바의 국가/사회 간의 대표하는 관
계라는 관념은 지속적으로 보전된다.
그람시의 관점에서 모든 국가는 사회 내에 존재하는 이익들의 분할 속에, 그
리고 그 분할과의 관련 속에서 존재한다. 이러한 분할들은 우선 한 계급이 헤게
모니적 계기로, 즉 "자기 자신의 조합주의적 이익이 현재와 미래의 발전과정 속
에서 지금까지의 순수히 경제적인 계급의 조합주의적인 한계를 벗어나 다른 종속
적 집단들의 이익으로도 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식하는 계기"
{{
)Ibid., p. 181.
}}
로
이행함에 의해 그 종합의 가능성을 보유하게 된다. 이러한 가능성은 헤게모니적
계기로 상승한 계급이 그 통치권의 획득과 더불어 하나의 새로운 국가를 형성함
을 통해 실현된다.
{{
)이러한 맥락에서 국가는, "지배 계급이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하고 유지해 나
아갈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지배하는 자들로부터 적극적인 동의를 쟁취하는 데에
사용하는 실천적, 이론적 활동의 총복합체"로 정의되는 것이다. A. Gramsci,
"State and Civil Society," SPN, p. 244.
}}
그람시가 한 집단의 지배를 국가적 계기 속에서의 지도와
지배의 통일로 사고하고, 지도를 통치권의 획득 이전과 이후를 관통하는 문제로
사고한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 위치한다.
{{
)이런 점에서 그람시의 국가관은 국가를 세력관계로 환원하는 경향을 보유하게 된다. 국
가를 세력관계의 응집으로 파악하는 관계론적 국가관에 대해서는, N. Poulantzas, State,
Power, Socialism(London: NLB, 1978). 참조.
}}
그람시의 입론이 갖는 특개성은 사회적 분할이 국가 속에서 종합
{{
)페리 앤더슨은 그람시의 국가와 시민사회에 관한 논의가 기본적으로 3가지의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고 논의하고 있다. 첫째, 국가가 시민사회와 대비되는 것으
로, 둘째, 국가가 시민사회를 포괄하는 것으로, 세째, 국가와 시민사회는 동일한
것으로 이해될 가능성을 모두 남긴다는 것이다. 여기서 페리 앤더슨은 그람시가
진지전 개념과 더불어 최종적으로 사회민주주의적 진화주의의 형태로 경사되었다
고 간주한다. 이에 대해서는, Perry Anderson, "The Antinomies of Antonio
Gramsci," NLR, no. 100, 1977, pp. 20-34.
}}
되는 과
정을 전적으로 계급투쟁에 의해 매개되는 과정으로 사고한다는 점이다. 현존 국
가에서의 통일성의 유형은 지배 계급의 지속적인 정치적 실천이 없이는 유지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또한 피지배 계급의 투쟁과의 관련 속에서 그 역전
의 가능성도 사고되는 것이다.
{{
)부시-글룩스만은 이 지점에서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이 베버류의 정당화의 맥락과 구별된
다고 지적한다. 즉,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에 입각할 때, 한 계급이 더욱 더 헤게모니 계급
화될수록 반대 계급에게 그들 스스로를 하나의 자율적인 정치적 세력으로 조직하고 형성
할 더 많은 가능성을 부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CH. Buci-Glucksmann, op. cit., p. 57.
}}
그러나, 이 투쟁은 정확히 새로운 국가의 건설
을 그 쟁점으로 한다. 그람시의 국가관이 갖는 이러한 측면은 그가 마키아벨리의
영유속에서 정치(학)의 문제를 사고한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
)John Merrington은 그람시에게 있어서 마키아벨리가 갖는 중요성을, 마키아벨리의 사상
이 갖는 현실주의적 측면 뿐만 아니라 켄타우루스의 이중적 본성, 강제와 동의, 권위와 헤
게모니의 '수준들'을 포함하는 야수이자 인간으로서의 그 이중적 본성 속에 존재한다고 지
적하고 있다. John Merrington, "Theory and Practice in Gramsci's Marxism," New Left
Review (ed.), Western Marxism, A Critical Reader(London: Verso, 1977), p. 151.
}}
그람시의 관점에
서 마키아벨리의 진정한 관심은 "모든 것을 정치로 귀착시키는 것", 다시 말해
"인간을 통치하고 인간으로부터 영속적인 동의를 확보하고 그리하여 '위대한 국
가'를 창건하는 기술"이었다.
{{
)Antonio Gramsci, "State and Society," SPN, p. 250.
}}
즉,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의 중심문제는
새로운 국가, 혹은 새로운 국민적.사회적 구조를 건설하는 문제였던 것이다.
{{
)카린 프리스터는 그람시의 마키아벨리 영유가 {옥중수고}가 이전의 저작에 대
해 갖는 단절을 낳게 된다고 논의한다. 카린 프리스터, 윤수종 역, {이탈리아 맑
스주의와 국가이론}(서울: 새길, 1993), p. 43.
}}
그람시는 마키아벨리의 '군주' 속에서 정치적 실천의 원천을 발견한다.
{{
)"마키아벨리 이전에는 정치과학이 유토피아의 형식을 빌어 표현되거나 현학적인 논술의
형식으로 표현되었다. 마키아벨리는 이 양자를 결합하여, 교의적.합리적 요소를 대장
(Condottiere)이라는 인격체 속에 육화(肉化)시킴으로써 자신의 개념에 상상적이고 예술적
인 성격을 부여하였다. 이때의 대장은 '집단의지'의 상징을 가공적이고도 '신인동형동성
설'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A. Gramsci, "The Modern Prince," SPN, p. 125.
}}
그런
데, 이러한 정치적 실천은 종국적으로 새로운 국가의 건설로 나아가는 실천이다.
{{
)이와 관련하여, 발리바르는 마키아벨리의 사상이 헤겔의 입론에서 이행의 계기를 형성
한다고 논의한다. 이에 대해서는, 에띠엔 발리바르, "조우커 맑스: 또는 동봉된 제 3항,"
에띠엔 발리바르, 서관모 역, {역사유물론의 전화}(서울: 민맥, 1993), pp. 33-37. 참조.
}}
3. 정치와 철학
그람시가 국가를 사회의 종합이라는 맥락에서 파악하는 것은, 그가 이데올로
기적 관계들을 사고하는 특정한 방식과 관련된다. 그람시는 국가와 정치의 문제
를 논의하는 핵심에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제기하고 이데올로기의 구성적 역할에
주목한다. 그는 이데올로기를 토대의 단순한 반영이나 환상, 또는 허위의식으로
파악하는 관점과 단절하고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계급지배와의 관련 속에서 역사
적으로 규정하고자 시도한다. 이것은 이데올로기를 한 계급이 국가 속에서 전체
사회를 종합하기 위한 핵심적 매개로 사고하는 것과 관련된다. 그람시의 관점에
서 "하나의 지배 계급(즉 국가)을 구축하는 일은 곧 하나의 세계관을 창출하는
일과 같"다.
{{
)A. Gramsci, "Some Problems in the Study of the Philosophy of Praxis,"
SPN, p. 381.
}}
부차적 집단이 실제로 자율적이 되고 주도권을 장악함으로써 새로운 국
가형태가 탄생하는 순간부터 새로운 지적.도덕적 질서, 즉 새로운 유형
의 사회를 창조할 필요성과 보다 보편적인 개념 및 보다 정제되고 결정
적인 이념적 무기를 개발할 필요성이 구체적으로 생겨나게 됨을 체험한
다.
{{
)Ibid., p. 388.
}}
새로운 세계관의 창출은 국가를 통해 완성되는 한 계급의 지배가 사회 전체에 대
해 보편적인 것으로 나타나기 위한 핵심 전제이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하나의 새
로운 지적.도덕적 질서, 즉 새로운 유형의 사회를 창출하는 일이다. 따라서, 그
람시는 계급지배와의 관련 속에서 이데올로기가 보유하는 고유한 사회적, 역사적
현실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고는 이데올로기가 토대에 의해 규정되는 것으로 사고하는
경제주의적 관점에서는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람시는 "정치와 이데
올로기의 모든 동요를 구조의 직접적인 표현"으로 제시하고 설명할 수 있다고 하
는 정식은 "초보적 유아주의"의 표현이며, "실천적으로 맑스의 권위있는 증명과
논쟁되어야" 함을 지적한다.
{{
)A. Gramsci, "Problems of Marxism," SPN, p. 407.
}}
그람시는 토대/상부구조를 그 결정성의 관점에서
가 아니라 양자의 구체적 통일의 관점에서 사고할 것을 주장하고, 이러한 통일을
사고하기 위해 그람시는 소렐로부터 '역사적 블럭'이라는 개념을 차용한다.
{{
)Ch. Buci-Glucksmann, "Historisher Block," Kritisches W rterbuch des
Marxismus, p. 487. 그람시 자신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구조와 상부구조
는 '역사적 블럭'을 형성한다. 말하자면, 상부구조의 복합적이고 모순적이며 부
정합적인 총체는 사회적 생산 관계의 총체를 반영해 준다," Gramsci, "The
Study of Philosophy," SPN, p. 366.
}}
역사적 블럭 개념은 단순히 계급동맹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
)Ch. Buci-Glucksmann, Ibid., p. 486.
}}
"토대의 상부
구조로의 이행", "객관적인 것에서 주관적인 것으로의 이행"
{{
)Antonio Gramsci, "The Study of Philosophy," SPN, p. 367. 그람시의 토대/
상부구조론에 대한 이해 및 역사적 블럭 개념과의 관련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의
소개로는, Esteve Morera, Gramsci's Historicism: A Realist
Interpretation(London & New York: Routledge, 1990), ch. 3. 참조.
}}
을 의미하는 것
이다. 이러한 논의는, 이데올로기를 토대의 반영으로 간주하는 경제주의적 관점
과의 단절속에서 이데올로기의 현실성의 문제를 제기함과 동시에 이데올로기를
그 토대와의 관련 속에서, 즉 해당 역사 시기의 계급관계와의 관련 속에서 사고
하도록 한다. 왜냐하면, 만일 토대와 상부구조 간의 결합이 필연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이데올로기가 재반영도, 임의적이고 개인적인 발명품도 아니고 오히려 기
본 계급과 유기적으로 결합되고 "자신의 물질적 조직",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구
조" 또는 "헤게모니 체계"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역사적 세력이기 때문이다.
{{
)Ch. Buci-Glucksmann, op. cit., p. 488.
}}
그람시는 이데올로기가 "반드시 역사적으로, 즉 실천철학(맑스주의--인용자)
의 용어를 빌리자면 상부구조로서 분석"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
)A. Gramsci, "The Study of Philosophy," SPN, p. 341.
}}
그람시의 관점
에서 이데올로기는 그것이 역사적으로 필연적인 한에서 현실성을 보유할 수 있
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적으로 볼 때 유기적인 이데올로기들, 즉 어떤
구조에 필연적인 이데올로기와 단지 자의적이고 합리주의적이며 심지어
'의지의 산물'일 뿐인 이데올로기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필연적인 이데올로기인 한에서 이것들은 '심리학적' 타당성을 갖는다.
{{
)Ibid., p. 376-377.
}}
"심리적인 것"과 "유기적인 것"의 대비는 이데올로기를 허위의식으로서, 즉 주관
적 기만으로서가 아니라 사회적 실천들 속에서 유지되는 역사적으로 토착적인 인
식형태로, 그 속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이해하고 자신의 삶의 성취를 방향
짓도록 하는 인식형태로서 파악하는 것을 가리킨다.
{{
)Wieland Elfferding und Eckhard Volker, "Societ Civile, Hegemonie und
Intellektuelle bei Gramsci," in Projekt Ideologie-Theorie, Theorien ber
Ideologie(Berlin: Argument-Verlag, 1979), p. 64.
}}
이것은 그람시가 지배 이
데올로기를 특정한 역사적 시대를 대표하는 통합적 행위 규범으로 인식하고 있음
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새로운 지적.도덕적 질서의 창출이라는 문제는 우
선 새로운 행위 규범으로 전화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의 역사적 성격을 전제하게
된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종류의 대중적 창조가 어떤 이데올로기에 의해 '자
의적'으로 행해질 수 만은 없다는 것이다......사실 이데올로기에 대한
대중의 선호 또는 비선호는 그 사상체계의 합리성과 역사성을 비판적으
로 검증해 준다. 그 어떤 자의적 구성물도, 비록 때로는 매우 유리한
환경들과 결합하여 상당히 대중적 인기를 누린다 해도, 매우 급속히 역
사적 경쟁에서 도태되어 간다. 반면에 복합적이고 유기적인 역사적 시
기에 요청되는 바에 부합하는 이데올로기들은 항상 자신을 내몰아 나가
결국에는 주도적인 것으로 된다.
{{
)A. Gramsci, "The Study of Philosophy," SPN, p. 341.
}}
따라서 새로운 지적 질서의 창조는 그 이데올로기가 우선 역사상의 요구에 부응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여기서 철학과 역사를 동정하는 그람시의 정식이 제출
된다.
어떤 시대의 철학이란 곧 그 시대 자체의 '역사'를 의미하며 나아가 지
배 집단이 선행하는 현실에 대해 성공리에 도모한 변화의 총체 이외에
다른 무엇이 아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역사와 철학은 뗄래야 뗄 수 없
는 하나의 블럭을 형성한다.
{{
)Ibid., p. 345.
}}
그런데, 그람시의 관점에서 철학과 역사의 동정은 각각의 역사 시기에 대응하는
오직 하나의 철학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람시에게 '정치'를 규
정지을 수 있는 것은 동일한 역사적 시기 속에서 상이한 세계관들이 공존한다는
점에 기인한다.
{{
)Leonardo Paggi는, 그람시가 역사 속에 정치를 기입함으로써, 나아가 역사와
정치를 동일시함으로써 크로체식의 사변적 역사주의를 벗어날 수 있었다고 지적
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Leonardo Paggi, "Gramsci's general theory of
marxism," in Ch. Mouffe (ed.), Gramsci and Marxist Theory(London: Routledge
& Kegan Paul, 1979), pp. 122-123.
}}
그람시의 입장에서 이러한 공존은 유기적 이데올로기와 비유
기적 이데올로기 간의 공존을 포함하며, 동시에 지배 이데올로기를 대체할 새로
운 이데올로기의 공존을 포함한다.
{{
)Wieland Elfferding und Eckhard Volker, op. cit., p. 62.
}}
이처럼 공존하는 상이한 요소들이 단일하
게 결합될 때, 한 시대의 통일된 행위규범, 즉 한 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형
성된다.
일반적인 의미의 철학사, 즉 철학자들의 철학으로 이루어진 철학사는
과거에 행해진 시도들의 역사이다. 다시 말해서, 어떤 특정 시기의 세
계관을 바꾸고 바로 잡거나 완성하여 그것과 결부된 규범, 곧 실천행위
전체를 바꾸고자 하는 의도에서 어떤 특정 계급에 의해 수행되는 이데
올로기적 주도권의 역사이다......우리의 입장에서는......방법론적 기
준으로서 적어도 철학사의 다른 면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즉, 대중의 세계관이라든지, 가장 엄밀한 의미의 지배 집단(또는
지식인 집단)의 세계관도 탐구해야 하고,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이 다양
한 문화복합체와 개별 철학자들의 철학이 어떠한 연관을 맺는 지도 탐
구해야 한다........이 모든 요소들이 결합되는 과정이 한 시대의 철학
이며 이것이 정점에 이르면 전반적 추세를 형성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한 시대의 철학은 집단적 행위 규범이 되고 구체적으로 완성된 (통합
적) '역사'가 되는 것이다.
{{
)Ibid., pp. 344-345.
}}
이로부터, 철학과 역사의 동일시라는 애초의 정식에 하나의 고리가 추가된
다. 그것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유기적 이데올로기가 여타의 이데올로기적 요소
들과의 관련 속에서 자신의 통합하는 기능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속에서 진정으
로 지배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다는 정식으로부터 도출된다. 한 역사적 시대를
대표하는 지배 계급의 세계관이 지배 이데올로기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그 세계관이 피지배 이데올로기와의 대면 속에서 자신의 통합기능을 수
행하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 그런데, 그람시의 관점에서 이러한 통합기능은 이
데올로기의 합리성에 의해 결정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 세계관 사이에 형성되는
지적.정치적 세력관계에 의존한다. 이로써 철학과 역사간의 동일시라는 정식에
정치라는 매개고리가 삽입된다.
우연적이고 순간적일 망정, 그 집단이 유기적 전체로서 행위하게 되는
바로 그 때의 행위 속에서 그러한 세계관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집단은 복종과 지적 예속 때문에 자신의 것이 아니라 다른 집
단에게서 빌려 온 세계관을 받아 들이게 된다. 따라서, 빌려 온 세계관
을 말로는 긍정하고 또 자신들이 그것을 따른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이 세계관은 그들이 '평상시'에, 다시 말해서 그들의 행위가 독립적이
거나 자율적이지 못하고 복종적, 예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시기에 추종하
는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철학은 정치와 결별할 수 없다.
(강조는 인용자)
{{
)Ibid., p. 327.
}}
철학=정치=역사라는 정식 속에서 그람시는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논의되는 중
심에 지배 이데올로기의 재생산과 대체의 문제를 도입한다.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일 수 있는 것은, 우선 그 이데올로기가 역사적 시대의 요청에 부합하는가
의 여부에 관련되지만, 이것이 실제적으로 한 시대의 통합적 행위 규범으로 지속
되는가의 여부는 그 이데올로기를 보유한 계급과 여타 계급 간의 세력관계에 의
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그것이 통합적 행위 규범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서는 부단한 정치적 실천 속에서 그 지위가 보증되어야 한다.
그람시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재생산 과정과 그 대체 과정에서의 핵심적 역할
을 지식인에게 부여한다.
{{
)그람시를 1920년대의 네오-헤겔리안적 전통에서 파악하는 Carl Bogg는 그람시
의 (유기적) 지식인 개념을 정치와 의식의 결합이라는 문제설정내에 위치짓고,
그람시가 지식인과 대중의 결합을 정치적 실천의 본질적 계기로 정식화함으로써
자생주의와 쟈코뱅주의(보그는 이를 레닌주의에서 찾는다) 모두를 벗어날 수 있
었다고 논의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Carl Bogg, The Two Revolutions:
Antonio Gramsci and the Dilemmas of Western Marxism(Bath: The Pitman Press,
1984), ch. 6. 참조.
}}
그람시의 관점에 따르면, 독립적인 지식인 계급은
결코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사회집단은 그 자신의 지식인 계층을 보유하고 있거
나 혹은 형성하려는 경향을 가진다.
{{
)A. Gramsci, "Notes on Italian History," SPN, p. 60.
}}
이러한 지식인이 보유하는 기능은 무엇보
다 그들이 한 계급의, 경제적인 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영역
에서의 기능의 동질성과 의식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나아가 이들은 한 계급의 이
익이 경향적으로 사회의 모든 계급들에게 동의로서 접합되고 관철되는 이데올로
기적 구성체의 생산자이자 조직가이다.
{{
)Wieland Elfferding und Eckhard Volker, op. cit., p. 70.
}}
따라서, 지배 이데올로기의 재생산의
문제와 새로운 이데올로기적 통일체의 구성의 문제에 있어서 결정적인 것은 그
계급의 지식인이 대중과 어떠한 관련을 맺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가 문화적 안정성과 유기적 사상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
으려면 지식인과 순진한 대중 사이에, 이론과 실천 사이에 있어야 하는
통일성과 같은 것이 존재할 때에야 가능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식
인들이 대중을 위한 지식인으로서 대중과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을 때,
곧 대중의 실천적 활동에서 생겨난 문제와 원리들을 유기적으로 구성하
고 완성해 낼 때에야 문화적, 사회적 블럭이 형성될 수 있다.
{{
)A. Gramsci, "The Study of Philosophy," SPN, p. 330.
}}
이데올로기의 사회적, 역사적 현실성에 대한 그람시의 논의는 국가에 대한
그의 확장적 관점의 맥락에 위치한다. 하나의 세계관이 한 역사적 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상승할 수 있는 것은, 그 세계관이 역사의 유기적 요구에 부응하는
한에서이다. 따라서, 이 계급의 세계관은 새로운 역사적 시대의 문화적 수준을
대변할 뿐만 아니라 이를 근거로 사회 내의 여타 계급들을 지도하게 된다. 한 계
급의 이러한 지도 기능이 그람시의 확장적 의미의 국가가 운동하는 핵심적 기초
가 된다.
4. 헤게모니와 프롤레타리아 정치
그람시가 자신의 논의 속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질문은 어떻게 한 집단이
지배 집단으로 상승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이 문제에 대한 접근 속에서 그
람시는 제 2 인터내셔날의 경제주의와 부하린류의 사회학주의에 반대하여 '정치
(학)'의 자율성을 옹호하고 수립하는 데 자신의 연구의 촛점을 맞춘다. 이 속에
서 그람시는 국가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맑스주의적 접근에 일정한 전위효과를 산
출한다.
그람시의 첫번째 전위효과는 국가를 계급투쟁 속에 위치짓는다는 점이다.
{{
)이러한 전위효과는 그람시가 국가와 정치, 이데올로기 간의 관련을 사고하는
과정에서 제출된다. 여기서 그람시는 정치를 국가와 이데올로기 간의 내적 관련
속에서 고찰하면서 국가 개념을 확장하는 데에로 나아가게 되는데, 이는 이데올
로기적 과정을 국가와의 내적 관련을 통해 사고하고자 하는 후기 엥겔스의 입론
에 대한 그람시적 대응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E. Balibar, "The
Vacillation of Ideology," in Cary Nelson and Lawrence Grossberg (eds.),
Marxism and the Interpretation of Culture(Chicago & Urbanba: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1988), pp. 191-195.
}}
국가를 통한 한 계급의 지배가 보편성의 외양을 띠게 되는 것은, 국가 속에서 지
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 간의 구체적 통일성이 실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람
시는 국가를 "지배 집단의 이익과 종속집단의 이익 사이의 불균형이 끊임없이 새
로 형성되고 폐기되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이러한 정의가 갖는 일차적 효과는
국가와 정치를 '환상' 또는 '전도'로 파악하는 '소외의 문제설정'으로부터 벗어
날 수 있는 매개를 제시한다는 점에, 즉 정치와 국가의 영역을 소외와 환상의 영
역으로서가 아니라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 간의 실제적 투쟁이 벌어지며 또 그
투쟁에 의해 부단히 전화되는 것으로서 사고할 수 있는 매개를 제시한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위효과는 또한 즉각 봉쇄되는데, 그것은 우선 그람시가
계급적대와 계급투쟁 속에서 부단히 구조화되는 것으로서의 국가장치의 개념을
결여하고, 국가를 지배계급과 피지배 계급의 투쟁이 수행되는 공간, 영역으로 설
정하는 경향을 갖는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그람시는 강제 장치와 헤게모니 장치
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있지만, 이 장치들은 지배 계급이 피지배 계급에 대한 투
쟁을 수행하기 위해 사용하는 "지배 계급의 사적 장치들"로 정의될 뿐이다.
{{
)그람시에게서 장치 개념은 부단히 약화되는데, 그것은 그의 헤게모니 장치 개념이 장치
가 산출하는 효과('동의')를 통해서만 규정될 뿐 장치가 수행하는 기능의 문제를 사고하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그람시는 '정치'의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정
치사회와 시민사회의 구별이라는 부르조아적 구분법을 다시 채택하게 되는데, 이로부터
'정치에 대한 법적 환상'으로의 경향이 생산된다. L. Althusser, "Der Marxismus als eine
endliche Theorie," in Elmar Altvater und Otto Kallscheuer (hrsg.), Den Staat
Diskutieren: Kontroversen ber eine These von Althusser(Berlin: sthetik und
Kommunikation Verlag, 1979), pp. 44-47.
}}
두번째 봉쇄효과는 계급투쟁의 종국적 계기가 새로운 국가의 건설로 사고된다는
데에 존재한다. 이러한 봉쇄효과는 "현대의 군주"로서의 정당과 윤리적 국가에
대한 그람시의 논의 속에서 드러난다. 그람시에게 정당은 맹아적 국가구조이며,
그것은 새로운 유형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
)Antonio Gramsci, "State and Civil Society," SPN, p. 226.
}}
정당은 사회적
적대들 속에서 출발하여 역사 속에서 실현될 '국가정신'을 축으로 스스로를 구성
한다.
{{
)A. Gramsci, "The Modern Prince," SPN, pp. 144-147.
}}
따라서, 정당은 미래 국가의 예견이다. 이러한 정식을 프롤레타리아 혁
명 이후의 사회의 재구성이라는 문제로 국한시켜 사고할 수 있지만, 그러나 문제
는 그람시가 "윤리적 국가"를 사고하는 곳에서 복잡해 진다. 한편에서 윤리적 국
가는 모든 국가의 속성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윤리적 국가는 오직 프롤레타리
아에 의해서만 건설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동요 속에서 그람시는 국가를 사
회의 종합으로 파악하는 고전 정치철학적 문제틀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
)이 지점에서 스탈린주의에 대한 대안점으로 사고되는 그람시의 입론이 갖는
동일한 문제설정이 드러난다. 양자는 사회와 국가의 대칭 속에서 프롤레타리아
정치에 대해 국가의 '사회화'(스탈린), 사회의 '국가화'(그람시)라는 상이한 개
념화를 제시하지만, 이것은 당-국가의 융합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 정치라는 일반
적 문제설정 내에서의 상이한 정식화들을 표현할 뿐이다. 정확히 문제가 되는 것
은 '정치'의 관념이다. 이에 대해서는, 에띠엔 발리바르, "조우커 맑스: 또는 동
봉된 제 3항," 에띠엔 발리바르 지음, 서관모 역, 앞의 책, pp. 24-29.
}}
이러한 봉쇄효과들은 그람시가 이데올로기 투쟁의 과정을 사고하는 방식과
밀접히 관련된다. 국가를 계급투쟁 속에 위치지음으로써 그람시는 이데올로기를
정치적 실천과 투쟁에 있어서의 핵심적 계기로 사고할 수 있었다. 그람시에게 이
데올로기적 지배는 한 계급이 선행의 역사에 대해 수행한 변화의 총체로서 규정
된다. 이것은 그 계급이 역사의 유기적 요구에 부응하여 여타 집단들을 효과적으
로 통합해 내고 새로운 행위 규범을 창출한데서 주어진다. 그람시의 이데올로기
론은 철학=정치=역사라는 3중의 규정 속에서 진행된다.
그런데, 이러한 정식 속에서 이데올로기가 내포하는 지배 효과의 문제는 소
실된다. 이 이데올로기들이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간의 투쟁에서 수행하는 역
할, 그리고 이 투쟁을 통한 지배 이데올로기의 변형 과정은 사고되지 않는다. 이
것은 근본적으로 지배 이데올로기의 작동의 문제를 역사적 필연성의 맥락에 제한
시키는 그람시의 논의와 관련된다. 그람시의 관점에서 어떤 이데올로기가 지배적
지위에 오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역사적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는 한에서이다.
마찬가지로, 지배 이데올로기의 대체는 기존의 이데올로기가 수행한 역사적 기능
이 소실된 이후에야 가능한 것이다.
전통적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통일성은 파괴된다: 이것이 발생할 때까지
새로운 세력들이 자신의 독립적 인격에 대한 의식에 도달하는 것은 불
가능하다.
{{
)A. Gramsci, "The Modern Prince," SPN, p. 136.
}}
따라서 그람시의 관점에서 이데올로기 투쟁은 상이한 역사적 시대를 대표하
는 계급들의 이데올로기 사이에 벌어지는 투쟁이다.
{{
)그람시가 프롤레타리아 정치의 문제를 집합의지의 맹아로서의 당에 의한 미래
국가의 예견이라는 형식 속에서 사고하게 되는 것은 이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
다. 이것은 또한 (절대적) 역사주의로서의 맑스주의라는 그람시의 정식과 관련되
는데, 이러한 규정은 경제주의적, 기계론적 환원론에 대한 비판 속에서 '정치'의
문제를 사고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는 보유하지만, 각각의 역사적 시기 속에서
진행되는 모순과 계급투쟁의 복합성을 역사적 시대 규정으로 해소시킴으로써 오
히려 '정치'의 문제를 제한하는 효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역사주의에 대한 비판
에 대해서는, L. Althusser, Reading Capital(London: NLB, 1970), ch. 5. 참조.
}}
이것은 집합의지의 형성
을 사회의 물질적 조건의 성숙이라는 기초 위에서 사고하는 그람시의 은폐된 경
제주의와 궤를 같이 한다.
{{
)"사회는 그 해결을 위한 물질적 조건이 이미 존재하고 있지 않은 문제를 스스로 제기하
는 일이 없다는 명제. 이 명제는 집단적 의지의 형성이라는 문제를 즉각 제기한다. 이 명
제가 의미하는 바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연속적인 집단의지가 어떻게 형성되며
그러한 의지는 어떤 식으로 구체적인 장기적, 단기적 목표--즉 집단적 행동의 방향--를 설
정하는가를 연구해야 한다," A. Gramsci, "The Modern Prince," SPN, p. 194.
}}
바로 이 때문에 그람시는 이데올로기 투쟁을 사고
하면서 지식이론적 입장으로 후퇴한다. 그람시의 관점에서 현재의 지배 이데올로
기를 대체할 피지배 계급 이데올로기의 구성은 지식인의 활동에 매개되는 과정이
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상식'의 영역을 벗어나서 '자아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확장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이 정치에 의해 규정된다는 점을 그람시는 강조
하고 있지만, 이 때의 정치는 대중의 의식을 지식인의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것
에 다름아니다.
상식과 한층 고차적인 철학 사이의 연결은 정치에 의해 보장된다. 이는
카톨릭에서 지식인과 순진한 대중 사이의 연결을 보장해 주는 것이 정
치인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 두 경우의 근본적 차이는 다음과 같
다. 교회가 '순진한' 대중 문제를 놓고 씨름하고 있다는 것은 신앙공동
체에 어떤 균열이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균열은 대중을 지식인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방식으로 치유되지는 못하고 있다.
{{
)A. Gramsci, "The Study of Philosophy," SPN, p. 331.
}}
이러한 맥락에서 그람시는 현대의 군주, 정치의 주체로서의 정당을 집합적 지식
인으로 정의하게 된다. 프롤레타리아 정당은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는 세
계관을 발전시키고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 이데올로기 투쟁의 진정한 주체가 된
다.
{{
)Ibid., p. 335.
}}
그람시는 이데올로기가 계급적대의 구조 속에서 보유하는 지배 효과의 문제
를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부합하는 바의 이데올로기가 사회 전체에 대해 갖는 보
편성의 문제로 대체한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하나의 인식이 단일한 문화 체계
속에서 역사적으로 통일되어 있는 전 인류에게 실재하는 경우에 한해서
이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 통일은, 인간 사회를 분열시키는 내적 모
순이 사라지는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모순 자체가
집단들의 형성과 이데올로기들의 탄생의 조건이며 이 때의 이데올로기
들은 구체적으로 볼 때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그 실천적 기원상 일시적
인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객관성을 얻기 위한 투쟁(자기자신을 일
면적이고 그릇된 이데올로기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이 존재하며, 이
투쟁은 인류가 문화적 통일을 획득하려는 투쟁과 똑같은 것이다.(강조
는 인용자)
{{
)A. Gramsci, "Problems of Marxism," SPN, p. 445.
}}
이러한 보편성은 물론 투쟁 속에서 획득되는 것이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이 투
쟁은 분열과 종합이라는 규정 이외에 어떠한 규정도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
은 근본적으로 등가적인 이데올로기들 간에 벌어지는 투쟁이다. 그람시의 이데올
로기론이 내포하는 이러한 측면은 그람시를 통해 이데올로기적 과정을 사고하고
자 하는 논자들로 하여금 그것을 계급적대의 구조와 독립적으로 사고하도록 하는
경향을 낳았다.(자세한 내용은 제 3장 참조.)
이데올로기 투쟁을 보편성의 획득으로 사고하는 관점은 국가에 대한 그람시
의 논의와 긴밀히 결합된다. 그람시에게 국가는 각각의 계급이 전체 사회에 대해
보편성을 얻기 위해 수행하는 투쟁의 공간임과 동시에 이미 한 계급이 전체 사회
에 대해 보편성의 지위에 올라 있음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따라서, 그람시에게
국가의 구성의 문제는 한 계급이 헤게모니적 계기로 이행하는 것에 조응하여 이
루어진다. 그렇다면, 각 계급 간에 벌어지는 계급투쟁은 결국 국가의 구성 속에
서 종료된다. 이데올로기 투쟁의 과정과 마찬가지로 국가를 둘러 싼 계급투쟁은
분열과 종합의 단순한 반복이 될 뿐이다. 따라서, 그에게 원리상 프롤레타리아
정치의 종별적 형태로서의 '국가의 소멸'이라는 문제는 제기되지 않거나 최소한
변경되는 것이다. 그것은 정치사회의 시민사회로의 흡수라는 형태로 재정식화되
거나 윤리적 국가의 구성이라는 형태로 변경된다. 이러한 귀결은 그람시가 국가
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논의를 계급적대 속에서 그것이 작동하는 양식이라는 문제
로서가 아니라 한 계급의 보편적 계급으로의 자기발전적 상승이라는 맥락에서 사
고하는 것의 귀결이다.
{{
- -
}}
Ⅲ. 헤게모니론의 새로운 전개
앞 장에서 우리는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이 국가, 정치, 이데올로기 간의
관련을 사고하는 맑스주의적 관점에 가한 일정한 정정 효과와 그 한계의 문제를
살펴 보았다. 이하에서는 특히 이데올로기 문제와 관련하여 그람시의 헤게모니론
을 독해하는 논의들을 살펴 보도록 한다.
1. 반환원주의의 문제틀
대처리즘의 등장과 좌파의 새로운 전략 모색이라는 정치적 배경 속에서 그람
시의 헤게모니론은 이데올로기론의 맥락에서 새롭게 주목받는다.
{{
)Robert Bocock, Hegemony(London and New York: Tavistock Publications
Limited, 1986), p. 13.
}}
영국 자본주
의의 점증하는 위기에 대한 신보수주의적 대응의 형태로 등장한 대처리즘은 케인
즈적 경제 운영 방식에 대한 거부와 노동조합에 대한 통제를 그 핵심적 내용으로
하면서,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대중의 도덕적 요인들을 개인의 자립과 사적 기업
에 대한 이데올로기를 통해 통합하려는 시도"로 나타난다.
{{
)Roger Simon, Gramsaci's Political Thought(London: Lawrence and Wishart, 1982), 김
주환 역, {그람시의 정치 사상}(서울: 청사, 1985), p. 103.
}}
그런데, 대처리즘
의 등장은 경제적 위기에 대한 신보수주의적 대응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노동당
내의 좌파세력의 강화 속에서 새로운 사회.민주적 동맹을 건설하고자 하는 사회
민주당의 출현을 동반했다는 점에서
{{
)대처리즘의 등장 속에서 출현한 영국 사회민주당은 노조와의 동맹보다는 자유당과의 동
맹을 통해 위기에 대한 사회민주적 대응을 추구하였다. Ibid., p. 103.
}}
영국의 전통적 정치체계의 위기를 또한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홀(S. Hall)에 따르면, 이러한 위기의 내용은 "계급과 그것의 전통적인 정치
적 대표체계 간의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전이와 표류"가 존재한다는 것, 즉, "거
대한 대중들이....자신의 전통적 이데올로기로부터 이탈했고 그리고 자신이 이전
에 믿어 왔던 것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는 데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
)Stuart Hall, "Popular-Democratic vs Authoritarian Populism: Two Ways of
'Taking Democracy Seriously'," in Alan Hunt and Martin Jacques (ed.),
Marxism and Democracy(London: Lawrence and Wishart, 1980), p. 158.
}}
따라서,
대처리즘의 등장은 단순한 위기의 반영이 아니라 위기에 대한 대응, 즉 새로운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세력을 구성하기 위해 지배 계급 스스로가 갱신된 형태로
사고된다.
{{
)Ibid., p. 159.
}}
그것은(신보수주의--인용자) 사회민주당과 자신의 당 내에서의 온건파
에 대항하여 지배 블럭 내에서의 헤게모니 투쟁에 참가한다........그
것의 개입이 갖는 강력한 성격은 부분적으로, 이전의 '철학들'의 요소
들을 단순히 재작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주형 자체를 붕괴시키는 급
진성에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그것은 이미 구성된
요소들을 재도입하고 그것을 분해하며 새로운 논리로 그것을 재구성하
고 공간을 새롭게 접합한다.
{{
)S. Hall, "The Great Moving Right Show," in Stuart Hall and Martin
Jacques (ed.), The Politics of Thatcherism(London: Lawrence & Wishart,
1983), p. 25.
}}
이러한 맥락에서 홀은 대처리즘을 '권위적 민중주의'(Authotarian Populism)
로 정의한다. 이 개념은 대처리즘이 위기 국면 속에서 세력관계를 결정적으로 우
파에게 유리하도록 이전시키고자 하는 시도로서 등장하지만, 동시에 기존의 우파
이데올로기를 변형하고 새로운 대중적 이데올로기를 창조한다는 점에 그 특개성
이 있다는 것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된다. 홀의 관점에서 대처리즘의 특징은 무엇
보다 그것이 광범위한 민중주의적 토대 위에서 보다 권위주의적인 정치체제로의
이전을 형성하고자 하는 부단한 노력이라는 점에 있다.
{{
)S. Hall, op. cit.(1980), p. 182.
}}
따라서, 그는 대처리
즘을 '수동적 혁명'으로 묘사하고, 그것이 '민중민주주의적'일 수 없기 때문에
'민중주의적'이라는 테제를 제기한다.
{{
)'권위주의적 민중주의'의 개념으로 대처리즘의 성격을 규정하는 홀의 논의는
대처리즘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수준에 대한 분석에 편중되었다는 비판을 받았
다. 이러한 비판들은, 그의 전략이 좌파로 하여금 '대안적 비젼'과 새로운 헤게
모니 전략을 발견시킬 필요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 속에서 건설적인 전략적 사고
를 방해한다는 평가에 기초한다. Bob Jessop, Kevin Bonnett, Simon Bromley,
Tom Ling 등은 이러한 맥락에서 '권위적 민중주의'의 개념을 '두 국가(two
nations)' 개념으로 대체함을 통해 대처리즘의 경제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수
준 모두에 대한 총괄적 분석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홀의 헤게모
니 전략에 대한 이들의 비판은 헤게모니 전략 그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홀의
전략이 이데올로기적 수준의 분석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다는 점에 대한 것이
다. '권위적 민중주의' 개념을 둘러 싼 홀과 이들의 논쟁에 대해서는, Bob
Jessop, Kevin Bonnett, Simon Bromley, Tom Ling, Thatcherism, A Tale of Two
Nations(Cambridge: Polity Press, 1988), Ch. 4-6. 참조.
}}
대처리즘과 신보수주의 이데올로기의 현실적 작동에 대한 이러한 분석으로부
터 좌파는 고전적 맑스주의와 사회민주주의적 대안들을 뛰어 넘는 새로운 전략
모색을 시도한다.
이전의 50년 동안 자본가 계급의 헤게모니에 봉사했던 정치적 대표체계
는 분해되기 시작했고 새로운 정치.사회 세력의 정비를 통한 신체제로
의 강한 추구가 나타났다. 이와 같은 상황은 사회주의로 발전하는 데
좋은 기회를 제공하였지만, 그러한 기회를 노동운동이 장악하여 그 지
도권 아래 새로운 동맹체계를 건설하고 새로운 사회 세력의 응집인자로
작용하면서 민족.민중적 집단의지를 창출하지 못한다면 자본가를 지지
하는 정치 대표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그들의 헤게모니를 재확립하는 데
성공할 것이다.
{{
)로저 시몬, op. cit., p. 104.
}}
좌파의 새로운 전략 구상에서 핵심적인 것은, 노동자 계급이 자신의 이해를 넘어
서서 여타의 사회 운동들, 즉 계급적 성격을 보유하지 않는 다양한 사회 운동들
과 광범위한 동맹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처리즘의 이데올로기가
기존의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의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대중 이데올로기
의 창조로서 등장하고 있다는 현실 진단에 조응한다. 이같은 진단 속에서 좌파의
동맹 전략은 더이상 계급동맹의 형태가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대중 민주주의
적" 동맹으로 제시된다.
{{
)여기서, 이 위기에 대한 사회민주주의적 대응방식은 그것이 "전적으로 대중
정치 또는 대중 동원의 어떠한 흔적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그리고 "위
로부터의 정치"라는 관념에 점착되어 있다는 점에서 배제된다. 이에 대해서는,
S. Hall, "The 'Little Caesars' of Social Democracy," S. Hall & Martin
Jacques (eds.), The Politics of Thatcherism(London: Lawrence & Wishart,
1983), pp. 309-321. 참조.
}}
그런데, 모든 사회운동을 계급운동으로 치환하는 전
통적 맑스주의의 '경제적 환원주의' 속에서는 이러한 동맹이 사고될 수 없다.
{{
)로저 시몬은 맑스주의 이론의 핵심적 결점을 경제적 환원주의로 규정하고, 그 핵심적인
내용을 정치를 경제의 반영으로 환원하는 것, 그리고 모든 사회운동들을 계급운동으로 환
원하는 것에서 찾는다. 따라서, 새로운 동맹 전략의 구사를 위해서는 정치의 자율적 성격
을 인지하고 사회운동과 사회제도들의 계급적 성격을 비결정적인 것으로 사고하는 것이 필
요하게 된다. 로저 시몬, op. cit., pp. 55-62.
}}
왜냐하면, 그 속에서 모든 사회적 주체성은 계급이라는 단일한 토대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계급 그 자체는 사람들의 주체성이 형성되는 단지 하나의 영역일 뿐이
며, 대중-민주주의적 정치는 이러한 영역들의 다원성을 설명하고 그것들을 운동
속에서 건설하는 것이다.
{{
)David Forgacs, "Gramsci and Marxism in Britain," NLR, no. 176, 1989, p. 84. 포가치
는, 이러한 논의들을 분석의 경제적 수준의 희생을 댓가로 그 문화적, 정치적 수준을 과도
하게 발전시킴으로써 전략적인 수준으로 논의가 이전될 때 심각한 취약점을 보인다고 비판
하고 있다.
}}
따라서, 새롭게 건설되어야 할 좌파는 더 이상 전통
적 계급이익과 사회주의적 정치의 토대로서의 계급통일에 호소하지 않는 반-본질
주의적인 좌파가 되어야 한다.
{{
)Ibid., p. 84.
}}
이와 같은 맥락속에서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이 좌파의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
한다. 그것은 이들이 그람시에 대한 반-본질주의적 독해--모든 형태의 계급 본질
주의에 대한 거부, 달리 말해 단정된 기초적인 경제적 계급 이해로부터 정치적
이해와 행위들을 도출하는 것에 대한 전면적 거부--속에서 맑스주의의 '경제적
환원주의'에 대한 전면적 비판을 발견한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
)Ibid., p. 84.
}}
그런데, 신좌
파의 건설에서 그람시에 대한 이러한 주목은 이상의 정치적 배경 뿐 아니라 그람
시를 통한 알뛰세의 입론 비판이라는 이론적 배경을 갖는다. 여기서, 그람시는
"포스트-알뛰세리안으로서, 현대의 정치, 문화 구성체들과 대중의 상식의 복잡성
양자에 대해 적절한 설명을 제시하고, 이데올로기에 대한 알뛰세적 설명의 기능
주의를 회피하는 이론적 관점을 제공하는 사람"으로서 등장한다.
{{
)Ibid., p. 83. 한편, 영국 좌파에서의 그람시를 통한 알뛰세 비판의 과정과
그 논의의 쟁점에 대한 개괄적 소개로는, David Harris, From Class Struggle to
the Politics of Pleasure(London & New York: Routledge, 1992).를 참조할 수
있다.
}}
이러한 배경 속에서 진행되는 그람시에 대한 독해는 '반경제주의', '반환원
주의'의 문제틀을 핵심으로 한다. 이러한 문제틀의 핵심적 원리는, 그람시의 헤
게모니론에서 반경제주의적 이데올로기 개념의 원리를 추출하고자 하는 무페
(Chantal Mouffe)의 논의 속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무페는 우선 '경제주의'가 두
가지 측면을 보유한다고 정식화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첫번째는 하부구조와 상부구조를 인과관계로 보면서, 상부구조를 순전
히 경제적 토대의 기계론적 반영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이데
올로기적 상부구조를 역사과정에서 어떠한 역할도 하지 않는 부수현상
으로 보는 견해로 나아간다. 두번째 측면은 상부구조의 역할이 아니라
그 실제적 성격과 관련된 것으로서, 이 때 상부구조들은 생산관계에서
의 주체들의 위치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두번째 측면은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들에 대해 '차별적인 시간계열들'과 일정한 유효
성을 부여할 수 있으므로 첫번째와 동일시되어서는 안된다.
{{
)Chantal Mouffe, "Hegemony and Ideology in Gramsci," in Ch. Mouffe
(ed.), Gramsci and Marxist Theory(London: Routledge, 1979), p. 169.
}}
이러한 양 측면은 각각 '부수현상주의'와 '환원주의'로 명명될 수 있는 것인데,
무페의 관점에서 이러한 구별은 경제주의의 다양한 형태들을 구별하기 위해 필수
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상부구조'적 맑스주의 해석들(루카치, 코르쉬 등)은
부수현상주의적 이데올로기 개념"을 거부했지만, 따라서 이데올로기의 현실성과
유효성을 승인했지만, "그 해석들에서는 여전히 계급환원주의가 존재한다는 점에
서 경제주의와 단지 부분적으로만 단절"하고 있기 때문이다.
{{
)Ibid., p. 169.
}}
경제주의의 이러
한 양 측면과의 완전한 단절은 그람시에게서 발견된다.
무페의 관점에서, 그람시는 이데올로기를 '인간이 활동하고 그들의 위치를
의식하며 투쟁하는' 지반으로서 사고함으로써 이데올로기에 대한 부수현상주의적
개념과 단절하고 이데올로기의 현실성의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에 있다.
{{
)Ibid., p. 185.
}}
그람
시가 인식한 이데올로기의 현실성은 그것이 '주체를 생산하는 실천'이라는 점에
있으며
{{
)그런데, 이러한 해석은 그람시 자신의 논의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알뛰세
르의 이데올로기론을 영유하면서 진행되는 '징후적 독해'의 성격을 가지는 것이
다. 이와 관련하여, 무페와 동일한 문제설정에 기반하면서도 그의 귀결들에 대해
서는 다소 거리를 두고 있는 보콕의 다음 언급을 보자.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
은 맑스와 맑스주의에 대한 그의 휴머니즘적 독해 속에 위치해 있었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알뛰세르주의에 대한 최초의 영향력 있는 비판의 상당수는,
그들이 그람시의 저작에 의존할 때 조차도 알뛰세르의 '반휴머니즘'을 공유해 왔
다. 여기서 사용되는 '반휴머니즘'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의식과 주관성을 자신이
선택하는 세계를 구성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그 자신에 외적인 힘들에 의해 구
성되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Robert Bocock, op. cit., p. 15.
}}
바로 이것이 철학=이데올로기=정치라는 그람시의 정식이 내포하는 핵
심이다.
따라서 이데올로기를 그에 상응하는 행위 규범을 지닌 세계관으로 파악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람시가 이데올로기는 인간이 자신의 모든 의
식형태들을 획득하는 지반이라는 사실을 되풀이하여 주장하고 있다는
견지에서 이러한 정의(철학=이데올로기=정치)를 검토한다면, 이 정의는
모든 가능한 유형의 '주체들'은 바로 이데올로기를 통하여 창조된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
)Ch. Mouffe, op. cit., p. 187.
}}
(괄호는 인용자)
그런데, 무페의 관점에서 그람시의 결정적 기여는, 그가 이데올로기의 현실
성을 승인함으로써 부수현상주의적 이데올로기 개념과 단절했다는 데에 있는 것
이라기 보다는 그것이 이데올로기에 대한 환원주의적 개념들과의 단절효과를 갖
는다는 점에 있다. 무페에 따르면, 이데올로기에 대한 환원주의적 설명은 모든
주체를 계급주체로 환원하고 각각의 계급에 자신의 고유한 이데올로기의 전범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며 따라서 모든 이데올로기적 요소들은 필연적으로 계급귀속성
을 가진다고 하는 세 가지의 원리에 기반한다.
{{
)Ibid., p. 189.
}}
그람시는 정치적 행위 주체를
'집합의지'로 규정하는 속에서 환원주의의 첫번째 원리와 단절하였으며, 이데올
로기 투쟁을 계급 이데올로기의 대체로서가 아니라 기존의 이데올로기적 요소들
의 새로운 접합과정으로 제시함으로써 환원주의와 완전히 절연한다고 제시된다.
이러한 논의는 그람시의 다음의 언급에 대한 무페식의 독해의 귀결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역사 단계를 최초로 대변하는 자들이 그 낡은 이
데올로기적 복합체에 대하여 가하는 비판이다. 이러한 비판을 통하여,
구 이데올로기에 포함되어 있던 여러 요소들이 지니는 상대적 비중에
변화와 분화과정이 생기게 된다. 이전에는 이차적이고 종속적이며 우발
적이기 조차 했던 요소들이 이제는 일차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새로운
이데올로기적.이론적 복합체의 핵심이 된다.
{{
)A. Gramsci, "Number and Quality in Representative Systems of
Government," SPN, p. 195.
}}
무페는 여기서 그람시가, "지적 및 도덕적 개혁이 기존의 세계관을 일소하는 데
있지 않으며 그것을 전적으로 새롭고 이미 형성된 것으로 대체하는 데에도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그러한 개혁을 "(새로운 형태의 창출을 목표로 하는) 기
존의 이데올로기적 요소들의 변형과정 및 재접합의 과정"으로 제시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람시가 헤게모니의 기초로서 제시한 지적 및 도덕
적 개혁은 "각각의 사회 계급에 전범이 되는 이데올로기가 존재한다거나 모든 이
데올로기적 요소들이 필연적으로 계급귀속적이라는 점을 가정하는 환원주의적 문
제틀 내에서는 분명히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
)Ch. Mouffe, op. cit., pp. 191-192.
}}
그러나, 이러한 독해를 그람시 자신의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
)이러한 독해는 앞서 살펴 본 일정한 정치적 맥락과 관련되어 있다. 이와 관
련하여 포가치의 다음의 언급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에
대한 그람시 자신의 개념은 노동 계급에 의한 여타 계급들 또는 계급 분파들의
동원, 최초의 심급에서는 이 집단들의 직접적 요구들과 불만의 토대 위에서, 그
러나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적 질서를 철폐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
이 집단들의 집합적 피착취자 또는 억압받는 생산자로서의 일반이익의 토대 위에
서의 동원을 포함했다. 최근에, 비대칭적으로 관련된 압제와 저항 지점의 다원성
이라는 관점(그람시로부터 정당성을 얻고자 하는 관점)에서 도전받아 온 것은 정
확이 일반이익의 객관적 핵심이라는 바로 이 개념이다," Forgacs, op. cit., p.
86.
}}
오히려
그람시는 여러 곳에서 각각의 집단이 비록 맹아적 형태일지라도 자신의 세계관을
보유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앞서의 인용문에서 그람시가 강조하고
자 하는 바는 대중의 '상식'속에서 맹아적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 새로운 유기적
시대를 대변하는 세계관을 사회의 재통합의 원리로 상승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계관은 그것이 사회 재통합의 원리라는 점에서 전적으로 그 집단에게
만 부착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역사를 대변하는 계급의 세
계관이며 또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발견된 것이다.
{{
)"새로운 문화를 창조한다는 것은.....이미 발견된 비판적 형태의 진리가 확산됨을 의
미하고, 마찬가지로 '사회화'됨을 뜻하며, 심지어는 역동적 행위의 기초, 통합의 토대가
된다는 것, 따라서 지적.도덕적 질서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강조는 인용자)," A.
Gramsci, "Some Preliminary Points of Reference," SPN, p. 325.
}}
그람시에 대한 무페의 독해는 그람시 자신의 문제틀에 대한 주해라기 보다
는, 반환원주의적인 사회구성체의 접합원리를 제시하기 위한 '징후적 독해'라고
할 수 있다.
{{
)따라서, 무페는 이후의 그의 논의에서 그람시를 하나의 분기점으로, 즉 계급
환원주의를 벗어나기 위한 모든 원리들을 제시하지만 여전히 그에 머물러 있는
분기점으로 제시하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샹탈 무페, 어니스트 라클라우, 김성
기 외 역, {사회변혁과 헤게모니}(서울: 도서출판 터, 1990), pp. 87-93. 참조.
}}
이것은 "과잉결정"과 "최종심에서의 경제에 의한 결정"을 핵심으
로 하는 알뛰세의 사회구성체론에 대한 비판의 맥락 속에 위치한다. 무페는 이
양 개념의 종합 속에서 사회구성체의 접합원리를 사고하는 알뛰세의 논의를 기본
적으로 환원주의적인 것이라고 규정한다. 무페의 관점에서, 복수의 모순들이 하
나의 국면속에 통일되어 있는 것으로 사고하는 과잉결정의 개념은 사회 행위자들
의 다수성 및 이데올로기적 결정 원리들의 복수성을 승인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이러한 복수의 모순들의 구체적 통일을 사고할 때 "최종심에서의 경제에 의한 결
정"의 원리를 도입하는 것은, 각각의 이데올로기들에게 필연적인 계급귀속성을
부여하지는 않지만 이 접합원리 자체가 계급에 의해 규정된다는 점에서 환원주의
로의 회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Ch. Mouffe, op. cit., pp. 170-172.
}}
따라서, 궁극적으로 환원주의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과잉결정" 개념을 "최종심에서의 경제에 의한 결정" 개념으로부터 분
리시켜 사회적 실천을 특징짓는 핵심원리로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
)이러한 사고는 영국의 그람시주의자들에게 일반적인 것으로 보인다. 레이몽
윌리암스 또한 이와 유사한 견해를 제시한다. "그것의 가장 긍정적인 형태들 속
에서 '과잉결정' 개념은 역사적으로 생동하는 상황들과 실천의 진정한 복합성을
이해하는 가장 유용한 방식이다.......그러나, 이 개념에는 또한 난점들이 존재
한다......'결정' 개념에서와 마찬가지로 '과잉결정' 개념도, 비록 복합적 방식
속에서라 할지라도, 그 내부 구조적인 관계들의 법칙들에 의해 '발전하는' 하나
의 구조로 추상화될 수 있다. 결정된 구조 또는 과잉결정된 구조에 대한 어떠한
범주적 객관화도 보다 심각한 수준에서 '경제주의'의 기본적 오류를 반복하는 것
이다," Raymond Williams, Marxism and Literature(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77), p. 88.
}}
이러한 재구성은 우선 "주체를 생산하는 실천"으로서의 이데올로기, 즉 사회
적 실천의 기초로서의 이데올로기를 어떤 특정의 기초를 보유하는 것으로서가 아
니라 그 요소들의 부단한 접합과 재접합 속에서 사회적 실천을 생산하는 사회의
진정한 접합원리로 사고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모든 사회적 모순과 적대
는 이데올로기적 요소들의 접합과 재접합 속에서 부단히 형성, 전화되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사회' 또한 이러한 재접합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형성되고 폐기되는
하나의 과정이다.
{{
)이러한 논의는 무페와 라클라우와의 공저 {사회변혁과 헤게모니}에서 체계적
으로 제시된다. 여기서 제시되는 논의들에 대한 검토는 차치하더라도 그 실천적
귀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좌파의 과제는 자유민주주의적 이데올로
기를 부정하는 것일 수 없으며, 이와 반대로 이 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를 급진적
이고 다원적인 민주주의의 방향으로 심화시키고 확대시키는 것이다," 샹탈 무페,
어니스트 라클라우, 앞의 책, p. 215.
}}
그런데, 이데올로기가 어떠한 기초도 갖고 있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회에 실정적이고 객관적인 적대와 모순을 도입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
다. 여기에서 무페의 논의는 계급적대의 부정으로, 따라서 맑스주의의 해체로 나
아가게 된다.
이러한 귀결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그리고 궁극적으로 사회구성체에 대한 반
환원주의적 문제틀이, 이데올로기에 대한 맑스주의적 문제틀과는 전적으로 상이
한 질문에 근거해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 반환원주의의 문제틀에서 제기되는 핵
심적인 질문은 이데올로기가 경제적, 계급적 기초를 갖는가, 달리 말해 이데올로
기는 경제의 반영이며 따라서 계급적 실존조건의 반영인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은 그 대답을 "Yes"나 "No" 속에서 선택하도록 한다.
{{
)이런 점에서, 라클라우와 무페가 {사회변혁과 헤게모니}에서 전개하고 있는
논의는 마르크스주의자로 하여금 전부냐 전무냐 하는 선택, 즉 토대에 입각하여
전부를 설명하는 환원주의자가 될 것이냐 아니면 토대에 입각한 설명 자체를 포
기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 자체를 포기할 것인가의 선택을 강요하는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제라스(N. Geras)의 비판은 올바르다. 라클라우와 무페의 논의에 대
한 제라스의 비판에 대해서는, N. Geras,"Post-Marxism?", NLR, no. 163, 1987,
pp. 41-82. 참조.
}}
그런데, 이러한 선
택은 이데올로기 개념의 도입 속에서 맑스주의가 사고했던 바를 전적으로 무효화
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맑스주의 내에서 이데올로기 개념의 도입이 함축하는 최
초의 의미는 부르조아와 프롤레타리아의 적대, 보다 구체적으로는 부르조아 정치
와 프롤레타리아 정치 간의 모순이다. 이것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맑스주의의 정
식화가 갖는 동요와 모순들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것인데
{{
)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E, Balibar, "The Vacillation of Ideology," in Cary
Nelson & Lawrence Grossberg (eds.), Marxism and the Interpretation of Culture(Chicago
and Urbana: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1988), pp. 159-203.
}}
, 여기서 핵심적인
문제는 사회속에 편재하는 이데올로기가 각 계급과의 관련속에서 존재하는가, 아
닌가 하는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작동과 그 기능양식을 계급적대와 계급투쟁
속에서 사고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데올로기의 구성적 기능과 그 요소들의 복합
성의 문제는 전적으로 계급적대의 문제설정과 양립가능한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이 논문의 제 4장 참조.)
2. 이데올로기의 재생산과 변형의 문제
결국, 반환원주의의 문제틀은 이데올로기의 작동을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사
고하는 것을 봉쇄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이 문제틀이 이데올로기에 대한 계
급적 요인의 결정성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이데올로기적 요소들의 다원성의 문제
로 나아감으로써 계급투쟁을 사고하지 못한다는 점에 기인한다. 이것은 극단적으
로 계급 (그리고 또한 사회적 실정성) 그 자체의 해체로 나아가거나 아니면 계급
과 계급투쟁을 사회적 요인들 중의 하나로 국지화시키는 다원주의적 관점으로 나
아가게 된다. 전자의 예를 라클라우와 무페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면, 후자의 예
는 홀의 논의에서 발견할 수 있다.
대처리즘에 대한 분석 속에서 이데올로기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키는 홀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고전적 맑스주의의 관점과 알뛰세의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론 양자에 대한 비판을 시도한다. 홀의 입장에서 고전적 맑스주의의 이데올로기
개념과 알뛰세의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론은 공히 대처리즘의 대중화라는 사회
적 현상을 분석하는데 적절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에 대응하는 전략을 모색하
는 데에서 무능력하다는 점에서 비판되어야 할 입장들이다.
{{
)S, Hall, "The Toad in the Garden: Thatcherism among the Theoriests," in
Cary Nelson and Lawrence Grossberg (eds.), Marxism and the Interpretation
of Culture(Chicago and Urbana: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1988), pp.
35-74.
}}
홀에 따르면, 고전적 맑스주의는 이데올로기를 '허위의식'으로 규정하고 이
속에서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일 수 있는 이유를, 그것이 사회적 관계 속에
서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계급의 이데올로기라는 점에서 찾는다. 다시 말해,
고전적 맑스주의는 이데올로기의 현실적 힘과 대중포섭력을 이데올로기 외부에서
찾는다. 그런데, 이러한 관점은 대처리즘이 이전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갖는 차별
성을 사고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심각한 결점을 갖는다. 또한, 이 관점은 대처리
즘의 힘을 그것의 이데올로기적 기만에서 찾음으로써 현실적으로 그에 대응할 전
략을 수립하는 데 한계를 가진다.
{{
)Ibid., p. 43.
}}
이 관점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사회의 지배적인 관념들이 "특수하고 우
연적인(개방적이며, 총체적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이데올로기 투
쟁의 과정을 통해 지배권을 적극적으로 획득해야 한다는 것을--지배권에 기인하
는 것이 아니다--사고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
)Ibid., p. 42.
}}
그런데, 고전적 맑스주의가 갖
는 이러한 문제점은, 고전적 맑스주의의 이데올로기 개념에 대해 가장 체계적인
비판을 수행한 알뛰세에게도 동일하게 반복된다. 홀의 관점에서 알뛰세의 '이데
올로기적 국가장치'론이 관심으로 삼고 있는 것은 이미 주어진 지배 이데올로기
의 재생산에 봉사하는 '장치들'의 문제이다.
{{
)Ibid., p. 47.
}}
따라서, 알뛰세의 논의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장치는 무엇인가에 배타적으로 집중될 뿐 이데올로기
적 헤게모니가 구성되는 공간 속에서의 투쟁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답도 제시하지
못한다.
{{
)홀은 이것이 알뛰세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를 논의하는 속에서 국가/시
민사회의 구별을 무효화한다는 점과 관련된다고 논의한다. Ibid., p. 48. 홀의
관점에서 알뛰세가 국가/시민사회의 구별을 무효화한 것은 궁극적으로 토대/상부
구조의 범론을 "재생산"의 관점으로 재구성하려는 알뛰세의 시도가 기능주의를
회피하지 못했다는 점과 관련되어 있다고 보는데, 재생산의 관점의 기능주의와의
연관에 대한 홀의 논의에 대해서는, S. Hall, "Rethinking the
'Base-and-Superstructure' Metaphor," in Jon Bloomfield (ed.), Class,
Hegemony and Party(London: Lawrence & Wishart, 1977), pp. 70-71.
}}
특히 알뛰세의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론은 대처리즘의 광범위한 대
중포섭력이 국가 속에서가 아니라 시민사회내에서 수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설명할 때 한계를 보인다고 지적한다. 이것은 대처리즘이 이전의 지배 계급의 이
데올로기에 대해 갖는 차별적인 성격을 사고하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고전적
맑스주의와 동일한 결론을 낳게 된다. 홀의 관점에서 대처리즘이 갖는 특수성은
그것이 국가장치가 아니라 시민사회 속에서 기존의 이데올로기 체계에 대해 변형
을 가하고 그것을 새롭게 주형하는 데 있다.
{{
)S, Hall, "The Great Moving Right Show," in S. Hall and Martin Jacques (eds.), The
Politics of Thatcherism(London: Lawrence & Wishart, 1983), p. 25.
}}
따라서, 홀의 관점에서 대처리즘이 기존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해 가한 변
형과 그것의 대중적 영향력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작동을 한
계급의 경제적 생산관계에서의 지배적 지위로 환원하거나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에 의해 지배 이데올로기가 지속적으로 재생산된다는 식의 논의를 모두 회피해야
한다.
{{
)이와 관련하여, 다이안 맥도넬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 대한 기능주의
라는 비판은 알뛰세의 논의에 대한 오해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론이 진정으로 함의하는 바는 그것이 계급투쟁의
관건이자 공간이라는 점이며, 나아가 재생산의 관점에 선다는 것은 계급투쟁의
관점에 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이안 맥도넬, 임상훈
역, {담론이란 무엇인가}(서울: 한울, 1992), pp. 46-48.
}}
모든 것들은 지배 이데올로기가 모순적이고 논쟁적인 것으로서 그 자체
를 재생산하는 과정을 개념화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진실로 "재생산"이
라는 용어는 그 강력한 기능주의적 연관으로 인해 매우 잘못된 내포를
수행한다. 그 과정은 이데올로기의 계속적인 생산과 변형의 견지에서
개념화되어야 한다.
{{
)S. Hall, op. cit., p. 48.
}}
그런데, 홀의 관점에서 이데올로기의 생산과 변형이 이데올로기 외부의 어떤 것,
예를 들어 경제적 수준에서의 계급관계와 '국가장치'에 의해 수행된다고 사고하
는 것은 다시금 고전적 맑스주의의 환원주의와 알뛰세의 기능주의로 퇴보하는 것
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데올로기의 생산과 변형의 관점에 서기 위해서는 이데
올로기를 그 자신의 고유한 특수성과 효과들, 그리고 메카니즘을 보유하는 것으
로 사고해야 한다.
{{
)Ibid., p. 63.
}}
이데올로기의 고유한 메카니즘을 사고하기 위해 홀은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
기 영역에 대한 정식화를 시도한다. 여기서 홀은 알뛰세가 {마르크스를 위하여}
에서 제시한 논의들이 진정으로 이데올로기의 메카니즘을 사고하기 위한 논의들
을 제시한다고 간주한다.
{{
)이에 대해서는, S. Hall, "Signification, Representation, Ideology:
Althusser and the Post-Structuralist Debates," Critical Studies in Mass
Communication, vol. 2, no. 2, 1985, pp. 91-105. 참조.
}}
홀에 따르면, {마르크스를 위하여}에서의 논의들이
이데올로기론의 관점에서 중요하게 공헌을 한 것은, 우선 알뛰세가 "차이" 개념
속에서 상이한 기원을 가지는 상이한 사회적 모순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도
록 했다는 점에 있다. 동시에 알뛰세는 "차이"를 특정한 방식으로, 즉 그 접합과
정을 통한 통일의 관점에서 사고한다. 이러한 논의가 의의를 갖는 것은 이데올로
기에 대한 경제결정론적 관점들로부터 단절할 수 있도록 한다는 데에 있다.
차이의 접합과 통일은 맑스주의의 핵심 개념인 "결정"을 개념화하고자
하는 상이한 방식을 포함한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맑스주의의 이론을
지배해 왔던 토대/상부구조라는 고전적 정식들 중의 몇몇은, 본질적으
로 사회구성체의 한 수준과 다른 수준 간의 필연적 조응이라는 관념에
기초하여 "결정"에 대해 사고하는 방식을 표현한다......우리가 발견한
것은 필연적 조응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이것
은 한 계급의 이데올로기가 그 계급이 자본주의적 경제관계들 내에서
보유하는 지위 속에 항상 그리고 확실하게 주어져 있다거나 그에 조응
한다는 것을 보증하는 어떠한 법칙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
다.
{{
)Ibid., p. 94.
}}
'차이의 접합과 통일'이라는 관점 속에서 홀은 이데올로기의 재생산과 변형
과정에 대한 논의를 시도한다. 이데올로기는 우선 그 실존 조건에 대한 사람들의
상상적 관계의 '표상체계'들로 정의되는데
{{
)홀은 알뛰세르가 이데올로기를 사람들이 자신의 실제적 생존조건에 대한 상
상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표상체계로 정의하는 것은 {마르크스를 위하여}에서
라고 논의한다. 이에 대해서는, Ibid., p. 103.
}}
, 표상체계로서의 이데올로기 정의
가 함축하는 바는 모든 사회구성체에는 많은 표상체계들이 존재하며, 그것들은
기본적으로 다원적인 성격을 갖는다라는 점이다.
{{
)Ibid., p. 104.
}}
홀의 관점에서 표상체계로서
의 이데올로기가 갖는 근본적으로 다원적인 성격이 이데올로기의 생산과 변형의
문제를 사고하도록 해 주는데, 여기서 지배 이데올로기의 탄생과 변형은 근본적
으로 이 다원적인 표상체계들이 갖는 "차이들"이 특정한 방식의 접합 속에서 이
루어 내는 통일의 과정으로 제시된다.
{{
)Ibid., pp. 104-105.
}}
'차이의 접합과 통일'을 이데올로기의 (재)생산과 변형의 핵심원리로 제시하
는 홀의 논의는 알뛰세의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론과 후기 구조주의의 해체주의
적 경향 양자에 대항하는 그의 입장을 설정한다. 차이의 접합과 통일의 관점은
차이를 그 통일성의 관점에서 사고함으로써 후기 구조주의적 경향과 경계점을 이
룰 뿐만 아니라
{{
)홀은 후기 구조주의나 푸코와 같은 담화이론의 핵심적 맹점은 '통일없는 차
이'를 사고한다는 점에 있다고 논의한다. 이에 대해서는, Ibid., pp. 91-92.
}}
, 결정적으로 담론의 영역 외부에서의 사회적 실천들의 존재를
사고하도록 해준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
)Ibid., pp. 103-104.
}}
따라서, 홀의 입장은 이데올로기
의 고유한 메카니즘을 사회적 실천의 모든 것으로 환원하는 담화이론적 입장과의
경계선 속에서 이데올로기의 생산과 변형 과정에서 계급이라는 요인과 물질적 조
건이라는 요인을 이 과정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들 중의 하나로, 그러나 결코 충
분하지 않은 요인들의 하나로 위치짓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들은 자신에게 적합한 계급들에게 유기적 실재로서 첨부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사회 내에서의 이데올로기의 생산과
변형이 권력과 계급의 조직적인 세력경계들 없이 또는 그 외부에서 진
행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S. Hall, "The Toad in the Garden: Thatcherism among the Theoriests,"
op. cit., p. 44.
}}
이것이 함축하는 바는 물질적 요인들이 단일하게 이데올로기를 결정한다거나
계급위치가 한 계급이 의식의 적절한 형태를 보유할 것이라는 보증을 표현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그 대신에 "물질적 이익들이 관념들을 구조화하도록
도"우며 "사회구조 내에서의 위치가 사회적 사상의 방향에 영향을 끼치는 경향을
갖는다"라는 것이다.
{{
)Ibid., p. 45.
}}
그런데, 이러한 명제는 모든 사회적 실정성을 담화로 해
소해 버리는 해체주의적 경향과 경계를 긋는다는 의미는 가질 수 있지만, 결국
이데올로기적 과정에 대한 다원주의적 관점을 유지하는 데 머무를 뿐이다. 홀에
게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데올로기의 영역에서 작동하는 요소들, 그리고 이데올
로기 그 자체에 계급귀속성을 부여함이 없이 그것들의 다원적 편재 속에서 접합
과 통일을 사고하는 것이 된다.
이데올로기 영역이 필연적으로 계급적 내포를 갖는 이데올로기적 담론
들의 요소들로 분할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데올로기적 투쟁
은 완전히 정형화된, 경쟁하는 세계관들 사이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
다.....그것은 동시에 많은 상이한 담론들과 사회 세력들이 작동하고
있는 영역이다.
{{
)Ibid., p. 58.
}}
그런데, 이러한 접합과 통일의 관점에서 이데올로기를 사고하면서 홀은 지배
이데올로기 개념의 무용성을 주장하는 데로 나아간다. 접합과 통일 과정에 참여
하는 일련의 표상체계들이 그 어떤 계급귀속성을 갖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회 내
에 지배 이데올로기, 또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요소들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응하는 종속적 이데올
로기에 대해 말하는 것 또한 불가능해 진다.
이데올로기적 표상은 상호 함축-소환-한다. 따라서, 상이한 이데올로기
적 체계들 또는 논리들의 종류는 모든 사회구성체에 이용할 수 있다.
지배 이데올로기와 종속적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은 현대의 모든 발전된
사회 속에서의 상이한 이데올로기적 담론들과 이데올로기 구성체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표상하는 데 있어서 부적절한 방식이다. 게다가, 이
데올로기의 영역은 상호배타적이고 내적으로 자기 보증적인 담론적 연
쇄들로 구성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공유된 개념의 레파토리를 함께 사
용하고 그것들을 차이 또는 균형의 상이한 체계들 속에서 탈접합시키고
재접합시키면서 서로 경쟁한다.
{{
)S. Hall, "Signification, Representation, Ideology: Althusser and the
Post-Structuralist Debates," op. cit., p. 104.
}}
(강조는 인용자)
여기서 홀은 이데올로기적 표상체계들의 근본적 등가성을 설정하고 이러한
표상체계들이 형성하는 접합과 재접합 속에서 이데올로기의 생산과정을 논의한
다. 이러한 분석은 대처리즘의 이데올로기가 기존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가한 변
형이 그것을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대체했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이
데올로기적 요소들의 접합관계를 변형시킨데 있다는 그의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동시에 이 속에서 그가 제출하고자 하는 전략론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
런데, 여기서 홀은 지배 이데올로기가 존재한다는 명제와 이데올로기가 지배 효
과를 갖는다는 명제를 혼동하고 있다. 다원적 표상체계들의 접합과 통일 속에서
형성되는 이데올로기들은 그 자체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로서의 지배 이데올로
기라고 사고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이것이 계급지배와의 관련 속에서 이데올로
기가 갖는 지배효과를 무효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혼동은 홀이 이데올로기적 요소들의 접합과정이라고 명명한 바의 것
이 내포하는 모호성에 기인한다. 홀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계급환원주의적 설명을
회피하면서 동시에 해체주의적 입장들과 경계선을 긋기 위해 이 개념을 사용하고
있지만, 정확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접합과정이 무엇에 의해 규정되는가 하는
것이다. 홀은 이에 대해 이데올로기가 그 외부에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존재조
건들을 보유한다고 말할 뿐이다.
{{
)S. Hall, op. cit., p. 63.
}}
그러나, 이것은 단지 이데올로기의 차원이
다양한 요소들의 복합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지적하는 데에 그친다는 점에서 문
제를 여전히 남겨 두고 있는 것이다. 홀은 무페와 마찬가지로 이데올로기에 대한
계급귀속성의 문제로부터 출발함으로써 계급투쟁과 계급적대의 관점에서 이데올
로기의 작동양식을 사고하는 데에로 나아가지 못하고 단지 이데올로기적 요소들
이 계급적 요인들과 비계급적 요인들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말할 뿐이다.
홀이 이데올로기적 요소들의 접합과 통일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놓치고 있는
부분은 그것이 전적으로 계급적대와 계급투쟁에 의해 규정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접합과 통일은 이데올로기적 요소들의 경쟁 속에서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 계급투
쟁에 의한 계급지배의 재생산 과정 속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이데올로기적 요소들의 접합 및 이데올로기적 요소에 대한 비이데올로기적 요소
들의 "결정"을 결정하는 것은 계급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홀의 논의가 이데올로
기를 계급과의 관련 속에서만 배타적으로 사고하는 입장들에 반대하여, 그리고
사회의 모든 것들을 담론으로 치환하는 후기 구조주의의 입장에 반대하여, 이데
올로기의 작동이 다원적인 표상체계들의 접합 속에서 '차이 속의 통일'을 형성하
는 데 있음을 지시하면서 결국 '다원성의 승인'이라는 동어반복적 결론에 도달하
게 되는 것은 그의 문제설정이 계급투쟁의 관점 속에서 이데올로기를 사고하는
것을 봉쇄하기 때문이다.
{{
- -
}}
Ⅳ. 이데올로기적 지배와 계급투쟁
1. 재생산의 관점
맑스주의에서 이데올로기 개념의 등장은, 역사와 정치에 대한 관념론적 표상
들의 형성 및 현실적 생산에 대한, 요컨대 '관념화 과정'이라 부를 수 있는 것에
대한 분석(또는 분석 프로그램)으로서의 역사유물론의 기본적 특성에 조응한다.
{{
)E. Balibar, "The Vacillation of Ideology," in Cary Nelson & Lawrence
Grossberg, Marxism and the Interpretation of Culture(Chicago and Urbana: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1988), p. 163.
}}
그런데, 역사와 정치에서의 관념화 과정에 대한 맑스의 분석이 갖는 독창성
은 그것을 역사적이고 동시에 유물론적으로 결정함과 동시에 관념성들의 원인 및
필연성에 대한 질문을 그것들의 작동방식과 힘, 그리고 그것들의 지배 효과에 대
한 질문 속에서 과잉결정한다는 점에 있다.
{{
)Ibid., p. 164.
}}
따라서, 맑스주의의 이데올로기
개념은 목적론과 사변에 대한 비판, 관념화의 유물론적 기원에 대한 분석, 그리
고 지배 효과의 분석이라는 3중의 결정 속에서 산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
)Ibid., p. 164.
}}
그런데, 맑스에게서 이데올로기의 지배 효과는 역사적으로 결정된다는 점
{{
)이러한 역사적 결정 속에서 마르크스는 관념성들의 지배 효과에 대한 쉬티르
너 식의 동어반복적 해명과 홉스와 마키아벨리 식의 기능주의적인 권력철학적 해
명을 벗어날 수 있었다. Ibid., p. 164.
}}
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은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부르조아의 지배를 규정한
다. 이 지배는 부르조아 정치의 담론들이 프롤레타리아 정치에 강제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여기서 이데올로기를 '환상' 또는 '허위의식'으로 정의하는 최
초의 규정이 도출된다. 따라서, 맑스주의의 이데올로기 개념이 내포하고 있는 즉
각적 의미는 프롤레타리아 정치와 부르조아 정치 간의 모순이다.
{{
)"마르크스주의가 그 발전 자체를 예상하고, 또 개념화하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했던 것
은......민주주의적 경향의 한 복판을 통과하는 부르조아 정치와 프롤레타리아 정치 간의
모순이다," 에띠엔 발리바르, "국가, 당, 이데올로기," 에띠엔 발리바르, 서관모 역, {역
사유물론의 전화}(서울: 민맥, 1993), p. 95.
}}
맑스의 최초의 목표는 부르조아 사회에서의 정치적 소외에 대한 비판이었으
며 그것은 최초에 포이에르바하의 인간학적 문제설정 속에서 헤겔적 문제틀에 대
한 비판으로 나타난다.
{{
)이러한 전도는, 국가와 시민사회간의 관련에서 헤겔적 주어, 술어 관련을 전
도시키는 형태로 나타난다. 맑스에게 국가는 시민사회의 산물이며, 시민사회는
국가의 본질이고 국가는 시민사회의 현상이다. "완전한 정치적 국가는 본래 인간
의 물질적 생활과 반대되는 인간의 유적인 생활이다. 이러한 이기적인 생활의 모
든 전제 조건들이 국가 영역의 외부에 있는 시민사회에 속한다," K. Marx, "On
the Jewish Question," Collected Works, vol. 3.(Moscow: Progress Publishers,
1975), p. 153.
}}
그러나, 이 최초의 비판은 '본질-현상, 소외'라는 헤
겔적 문제설정 내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에서 헤겔적 문제설정 내에서의 내재적
비판에 지나지 않는다. 헤겔적 '소외의 문제설정'으로부터의 최초의 단절은 {독
일 이데올로기}에서 역사유물론의 개념들을 맹아적으로 정식화함으로써 수행된
다. 여기서도 아직 초기의 헤겔적 범주들이 사용되고 있지만 그것은 토대/상부구
조 범론으로의 이행적 성격을 지닌다.
{{
)루이 알뛰세르, "모순과 중층결정," 고길환, 이화숙 역, {마르크스를 위하여}(서울:
백의, 1990), pp. 125-126.
}}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맹아적으로 형
성된 역사유물론의 정식들은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의 [서문](1859)에서 토
대/상부구조의 범론 속에서 압축적으로 제시되는데, 이 속에서 맑스는 헤겔적
'소외의 문제설정'으로부터 경향적으로 탈피해 간다.
맑스에게 있어서 경제와 정치의 암묵적 동일성은(현상-본질....의 진
리) 모든 사회구성체의 본질을 구성하는 복합적 구조-상부구조 속에서
결정적 심급들 간의 새로운 관계 개념을 위해 사라진다.......맑스는
우리에게 "사슬의 두 끝"을 제시하고 그것들 사이에서 무엇인가를 찾아
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 하나는 최종심급에서의 (경제적) 생산양
식에 의한 결정이고 다른 하나는 상부구조들의 상대적 자율성과 특수
한 효력이다. 그럼으로써 그는 자기의식(이데올로기)에 의한 헤겔적 설
명 원리와 명백히 결별하며 또한 현상-본질...의 진리라는 헤겔적 테마
와도 결별한다.
{{
)Ibid., p. 128.
}}
(강조는 원문)
그러나, 이러한 결별은 경향적일 뿐이다. 이것은 특히 맑스주의에서 이데올
로기 개념의 용법과의 관련 속에서 드러난다. 이데올로기 개념은 맑스가 헤겔적
'소외의 문제설정'으로부터 벗어나면서 역사유물론적 범주들을 정식화하기 시작
하는 1845-46년의 저술들에서 최초로 출현한다.
{{
)따라서, "이데올로기 개념은 분명히 하나의 결정적인 혁신이며, 마르크스주
의의 이론적 종별성을 구성하는 개념 중의 하나이다." E. Balibar, op.
cit.(1988), p. 161. 이와 관련하여, 알뛰세르는 맑스의 이론적 단절을 과학/이
데올로기(진리/오류)의 이분법 속에서 사고했던 초기의 "이론주의적" 오류를 자
기 비판하면서, 자신의 오류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환상, 오류를 의미하면서
동시에 상부구조 구성체를 지칭하는 과학적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데올로기
개념을 진리/오류의 반정립이라는 합리주의적 맥락 속에서 작동시킨데 있다고 술
회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수행되었던 '단절'은 이데올
로기 일반에 대한 것이 아니라, 부르조아 이데올로기, 세계에 대한 부르조아적
개념들과의 단절임을 정식화하고 이러한 맥락에서 이데올로기를 환상, 오류로 정
의하는 맑스주의적 정식이 이해되어야 한다고 적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Louis
Althusser, "Elements of Self-Criticism," Essays in Self-Criticism(London:
NLB, 1976), pp. 119-125.
}}
이 최초의 출현 속에서 이데
올로기 개념은 우선 '관념들'이면서 그것이 부르조아의 지배효과를 산출한다는
의미에서 프롤레타리아에게는 '환상' 또는 '허위의식'인 것으로 정식화되며, 이
것은 토대/상부구조 범론의 정식화 속에서도 마찬가지로 지속된다. 토대/상부구
조 범론이 갖는 함의는, "경제적 토대에 의해 의한 최종심에서의 결정이 오직 차
별화된, 따라서 복합적이고 분절된 전체 속에서만 사유될 수 있"으며, "이 전체
속에서 최종심에서의 결정은 상이한 심급들의 실제적인 차별성, 그들의 상대적
자율성과 토대 자체에 미치는 그 효과의 고유한 양식을 분명히 한다."
{{
)Louis Althusser, "Is it Simple to be a Marxist in Philosophy?," Philosophy and
the Spontaneous Philosophy of Scientists(London: Verso, 1990), p. 215.
}}
는 점에
있다. 따라서, 이 범론과 최종심급에서의 경제적 토대에 의한 결정이라는 정식은
맑스를 모든 기계론으로부터 근본적으로 구별지을 뿐만 아니라, "결정의 질서 속
에서 토대 부분과 상부구조 부분은 균등하지 않으며, 이 지배적인 불균등성이 전
체의 통일성을 구성"한다는 점을 지시해 줌으로써, 바로 이 작용과 불균등성 속
에서 "정치적 계급투쟁을 통해 현실 역사를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한다.
{{
)Ibid., pp. 215-220.
}}
그러나,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의 [서문]에서의 토대/상부구조의 범론
의 정식화는 이와는 전혀 다른 독해를 시사한다. 거기서 본질적으로 '환상적'인
것으로서의 이데올로기는, 그것이 토대의 반영, 심지어 부차적 반영인 한에서 환
상적인 것이다. 이로부터 [서문]이 순수히 철학적 용어로 사회적 심급들 간의 대
당인 토대/상부구조와 '인식론적' 대당인 존재/인식간에 확립한 엄격한 등가성이
나온다.
{{
)에띠엔 발리바르, 서관모 역, 앞의 책, p. 97.
}}
이러한 등가성의 확립 속에서 맑스가 부르조아 정치에 대한 최초의
비판 속에서 사용했던 '소외의 문제설정'이 반복된다. 토대는 상부구조의 "본질"
이며 따라서 동시에 상부구조는 본질로서의 토대가 발현된 "현상"들이다.
이 반복은 이제 프롤레타리아 정치의 입장에서 하나의 모순점을 관통한다.
토대의 반영으로서의 상부구조들이 갖는 효과는 부르조아의 지배를 허구적으로
보편화시키는 '전도'의 효과를 갖는다는 점에 있다. '전도' 효과를 사고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프롤레타리아 정치의 입장에서 가능한 것이지만, 이제 이러한 전
도를 방지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에게 요구되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환상/전도에
대립되는 '자기의식'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 이러한 '자기의식'
은 프롤레타리아의 실존 조건에 대한 지속적 부정으로부터 생산되어야 하는 의식
이다. 이로부터 '프롤레타리아 세계관의 구현체'로서의 당이라는 관념이 제출된
다.
{{
)이러한 관념의 파국적 귀결은 프롤레타리아 과학/부르조아 과학이라는 "두
개의 과학"론을 제시한 뤼센코주의의 등장과 공산당들에서의 이에 대한 통제된
"정정", 또는 침묵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뤼센코주의는 맑스주의 철학에 대한 공
산당들의 공식적 해석(존재론적 해석)의 기반 속에서 출현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
에 이를 "검증하는데" 기여했는데, 이 속에서 맑스주의 철학의 "비판적이고 혁명
적인"특성은 "변증법의 "법칙들"이라는 보증" 속에서 당을 "자체 내부에 갇히게
하고 또 외부세계와 절연하도록 하는" 실천적 이데올로기로 변질된다. 이에 대해
서는, Louis Althusser, "Introduction: Unfinished History," in Dominique
Lecourt, Proletarian Science?(London: NLB, 1977), pp. 7-16.
}}
그런데, 프롤레타리아 정치의 모순을 관통하는 것은 바로 이 관념이다.
사실상 당 형태는 그 역사적 유효성과 필요성의 원인이 되는 '불순성'
또는 기본적 양면성을 가진다. 당 형태는 노동자 운동이 지배적인 정치
적 모델로 흡수되는 것에 저항하는 형태일 뿐만 아니라, 트로이의 목마
처럼 언젠가는 그 모델을 전화하기 위해 노동자 운동이 그 모델속으로
수용 또는 도입되는 형태이기도 하다.
{{
)E. Balibar, "The Vacillation of Ideology," op. cit., p. 189.
}}
동시에 이 반복은 이데올로기적 환상/전도의 결과로서 상부구조의 제 수준에
부과되는 허구적 보편성에, 실제적 보편성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 세계관을 대치
시킨다.
{{
)'프롤레타리아 세계관'이라는 관념은 이중적 함의를 내포한다. 한편에서 그
것은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로 환원불가능한 노동자계급의 이데올로기들의" 지
표로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 관념이 사변적 경험주의의 논리(헤
겔적 논리)에 따라 노동자 계급의 이데올로기들을 보편적인 것의 직접적 '표출물
들'로서 정립하는 한 이 이데올로기들이 비판적으로 발전하는 것을 저지할 수도
있다," Ibid., p. 208.
}}
그런데, 허구적 보편성과 실제적 보편성 간의 이러한 대립은 프롤레
타리아 정치를 국가/시민사회라는 정치철학적 개념쌍 내에서 사고하도록 하는 효
과를 낳는다. 국가는 시민사회의 내적 분할의 "소외"된 형태이자 그 은폐이며,
따라서 그 소멸은 프롤레타리아가 사회의 진정한 대표자로 나섬에 의해 극복된
다. 국가/시민사회의 개념쌍 속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부르조아 국가가 프롤레타
리아 정치에 하나의 형태를 강제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그것의 역전을 사고하고자
했지만, 동시에 이 개념쌍은 국가와 사회의 분열, 부르조아 국가에 의한 소외된
형태 속에서의 양자의 결합, 그리고 이러한 소외의 지양이라는 3중의 도식 속에
서 프롤레타리아 정치로 하여금 국가주의와 무정부주의 사이에서 동요하도록 하
는 효과를 낳았다.
{{
)에띠엔 발리바르, "이행의 아포리들과 맑스의 모순들," 에띠엔 발리바르 외 지음, 윤
소영 엮음, {맑스주의의 역사}(서울: 민맥, 1991), p. 285.
}}
프롤레타리아 정치의 이러한 모순들은 토대/상부구조의 범론 그 자체로 소급
된다. 이러한 소급은 이 범론이 시사하는 함의, 즉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상부구
조들은 항상 이미 여기 모든 '사회구성체' 속에 있으며 '의식'의 요소 속에서의
토대의 사후적 표상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시사점을 발전시켜 내는 것이다.
{{
)에띠엔 발리바르, "국가, 당, 이데올로기," 서관모 역, 앞의 책, p. 98.
}}
따라서, 상부구조들은 단순히 토대의 사후적 "반영"으로서가 아니라 그 유효성과
현실성의 관점 속에서 재구성되어야 한다. 이것은 토대/상부구조가 상호 독립된
심급으로서 외재적 결정관계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관계의 "재
생산" 속에 항상 내재하는 것으로 사고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상부구조의 존재의 본질과 본성을 특징짓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가능하고 필요한 것은, 재생산의 관점에 입각해서이다.
건물이라는 공간적 비유가 개념적 해답을 제공함이 없이 그 존재를 나
타내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재생산의 관점에 서
는 것으로 충분하다.
{{
)Louis Althusser, "Ideology and Ideological State Apparatuses(Notes
towards an Investigation)," in Louis Althusser, trans. by Ben Brewster from
French edition, Lenin and Philosophy and Other Essays(New York and London:
Monthly Review Press, 1971), p. 136.
}}
"재생산의 관점"에 선다는 것은 사회구성체의 제 심급들을 계급적대와 계급
투쟁의 우위 하에서 재규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것은 계급투쟁을 사회
구성체의 어느 한 심급에 국지화시키지 않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토대/상부구
조간의 관련의 문제를 한 심급의 다른 심급에 대한 결정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계
급적대의 재생산과정 속에서 그 '불변성'이 항상 다시 문제로 제기되는 사회적
실천의 복합성으로 범론 자체를 해소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존재조건들은 자본가 계급이 노동자 계급에게 강요하
는 착취의 조건들이다. 자본가 계급은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것
을 재생산해야 한다..... 부르조아지는 착취의 물질적.이데올로기적.정
치적 조건들을 영속화시키거나 재생산함으로써 이 계급투쟁을 이끌어
간다. 부르조아지는 생산 속에서......그와 동시에 생산 밖에서 계급투
쟁을 이끌어 간다.
{{
)루이 알뛰세르, "맑스주의와 계급투쟁," 루이 알뛰세르, 김동수 역, {루이
알뛰세르--아미앵에서의 주장}(서울: 솔 출판사, 1991), pp. 72-73.
}}
그런데, 재생산의 관점에서 토대/상부구조의 관련을 다시 사고하는 것은 양
항간의 "반영"적 관련을 다시 문제삼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데올로기 개념의 재
정식화를 요구한다. 이와 관련하여, 알뛰세르는 이데올로기를 현실의 반영으로
사고하는 관점과 단절하고, 이데올로기를 사람들의 실제 존재 조건에 대한 그들
의 가상적 관계의 '표상'으로 정의한다.
{{
)Louis Althusser, op. cit., p. 162.
}}
이러한 정의는 이데올로기가 현실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그것들이 현실을 암시한다
는 것, 따라서 이 세계의 현실 자체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해석'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
)Ibid., p. 162. 이러한 논의는 이론적, 철학적 측면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측면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기도 한데, 후자와 관련하여 페쇠는 이 논의가 "'의
식', '의식화'와 교육적 과정의 심리학적 휴머니즘 내에 수면 보행자
(sleep-walkers)처럼 내재되었던, 노동운동조직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나르시
시즘에 일격을 가하려"고 의도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Michel P cheux,
"Ideology: Fortress or Paradoxical Space," in Sakari H nninen and Leena
Pald n (eds.), Rethinking Ideology: A Marxist Debate(Berlin: Argument
Verlag, 1983), p. 32.
}}
따라서, 알뛰세에게 '현실
적인 것'과 '가상적인 것'은 대립물이 아니다. 오히려 양자는 서로 분리될 수 없
으며, 현실적인 것에 대한 사고는 무한한 과정 속에서 현실적인 것에 속한다. 동
시에 그에게 있어서 '현실적인 것'은 주어진 '物'이나 '대상'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
)E. Balibar, "The Non-Contemporaneity of Althusser," in E. Ann Kaplan and Michael
Sprinker (eds.), The Althusserian Legacy(London and New YorK: Verso, 1993), p. 10.
}}
이로부터, 이데올로기는 '의식'이 아니
라 차별적인 역사적 조건들 하에서 인간들에게 의식과 그 형태들의 생산으로 제
시되는 '무의식'이라는 정식이 제출된다.
{{
)알뛰세는 무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양식을 '호명'과 '복종'의 문제틀로
정식화한다. 이러한 정식화는, 앞서 살펴 본 알뛰세의 이데올로기론이 의도하고 있는 정치
적 효과의 맥락에서 "이데올로기적 과정 내에 무의식과 언어의 효과의 문제를 제기함으로
써 전투적 실천에 정통한 주체의 자명성"이라는 가장 민감한 부분에 대한 공격으로서의 의
미를 갖는다. Michel P cheux, op. cit., p. 32. 이러한 문제틀은 또한 지배 이데올로기를
계급투쟁의 과정에 종속적인 것으로 사고하도록 함으로써,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유일한
적대점으로서 '과학적 담론'을 설정하는 이론주의적 편향에 대한 일정한 정정의 의미를 보
유하고 있는 것이기도 한데, 이 과정에서 알뛰세의 논의는 일정하게 기능주의적 편향을 띠
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미셀 페쇠, "이데올로기에 대한 두 가지 성찰," 에띠엔 발리바
르, 윤소영 역, {알뛰세르와 마르크스주의의 전화}(서울: 도서출판 이론, 1993), p. 336.
}}
여기서 이데올로기의 전도효과, 즉 지배효과의 문제는 전위된다. 그것은 실
제 세계의 소외된 성격에 대한 직접적 반영도 아니고 지배계급, 혹은 그 일부 그
룹에 의해 '의도된' 사건도 아니다.
{{
)알뛰세르는 이 양자의 입장이 이데올로기의 상상적 왜곡에 대해 '원인'을 설
정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것임을 지적하고, 이데올로기의 전도효과에 대한 '원인'
의 문제를 배제할 것을 요구한다. Louis Althusser, op. cit.(1971), p. 165.
}}
그 효과는 일련의 부단한 실천들 속에서,
즉 무한정한 이데올로기 투쟁의 결과로서 끊임없이 재생산되어야 한다.
{{
)여기에 알뛰세르의 작업이 갖는 함의가 존재한다. 그것은, "모든 존재와 의식(또는 의
식적 존재)의 '변증법'을 기각하고, 기존의 '구조' 이론에 '상부구조' 이론을 추가하는 것
이 아니라, 그 반대로 '생산' 및 '재생산'이 무의식적인 이데올로기적 조건들에 본래적으
로 의존하는 과정임을 증명함으로써 구조 개념 자체를 전화시키려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E. Balibar, op. cit.(1993), p. 8.
}}
그런데, 알뛰세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한 상부구조적 심급들의 통일이라
는 테제 속에서 이 투쟁의 결과를 미리 전제하는 경향을 갖는다. 억압적 국가장
치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간의, 그리고 다양한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 간의
통일(이 통일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을 '기능'하도록 한다)은 지배 이데올로
기에 의해 보장되며, 그 지배 효과는 주체들의 '호명'을 통한 동일화 과정 속에
서 지속적으로 재생산된다.
{{
)이러한 점 때문에 알뛰세의 이데올로기론은 그 모든 함의들에도 불구하고 일
정하게 기능주의적 경향을 보유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핵심적 문제점은, "복
종개념을 이미 동일화된 I-주체에의 기능적 복종으로서 사용"함으로써 지배 이데
올로기의 공간 내부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뛰어 넘는 피지배 이데올로기
에 대해 사고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데에 있다. Michel P cheux, op.
cit., p. 33. 이와 관련하여, G ran Therborn은 알뛰세의 이데올로기론이 보유하
는 기능주의적 측면이 복종-보증(subjection-guarantee)의 구조로서의 알뛰세의
호명구조에 기인한다고 보고, 호명구조를 복종-자격부여
(subjection-qualification)의 구조로 대체할 것을 제안한다. 이 새로운 호명구
조에서 결정적인 것은 복종-자격부여의 과정이 각 주체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구
별짓도록 함과 동시에 상호간의 차이를 인식하도록 한다는 점이다. 이로부터 그
는 각 계급의 이데올로기를, 그 계급에 고유한 것으로서의 자아-이데올로기
(ego-ideology)와 그 계급이 다른 계급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것으로서의 변경
-이데올로기(alter-ideology)로 이원화하고, 이 양 항의 관련 속에서 이데올로기
적 지배와 저항의 문제를 설정하고자 시도한다. 테어본의 논의는 호명에 의한 동
일화를 이중적으로 분할함으로써 동일화 과정 내부에서 저항의 생성을 사고하고
자 하는 것이지만, 그는 이데올로기적 지배와 저항의 과정을 각각의 계급 이데올
로기가 그 계급을 구성하면서 동시에 여타 계급에 대해 행사하는 '영향력'의 맥
락에 제한시킴으로써, 이데올로기적 지배를 계급투쟁의 효과로서 사고하도록 하
는 알뛰세 이데올로기론의 합리적 핵심을 방기하게 된다. 이 때문에 그는 지배
계급의 배타적 조직으로서의 국가와 이데올로기적 과정 속에서 진행되는 저항의
공간으로서의 시민사회라는 이분법적 도식 속에서, 이데올로기적 지배를 강제의
기초로서의 동의라는 문제틀 내에 국한시키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G ran
Therborn, The Ideology of Power and the Power of Ideology(London: Verso,
1980), 특히, 제 5장 참조.
}}
여기서 상부구조와 이데올로기는 토대의 영속성을
보증하는 데에서 그것들이 갖는 '기능'이라는 관점에서만 사고될 뿐이다. 마찬가
지로, 토대/상부구조 범론의 "재생산의 관점"으로의 대체 또한 양 심급의 기능적
관련이라는 문제로 후퇴하게 된다.
{{
)이 지점에서 알뛰세의 재생산 범론은 이중적 지위를 보유한다. 한편에서 그것은 토대/
상부구조 범론을 대체하는 새로운 범론으로서의 의미를 보유하지만 동시에 이 범론의 핵심
으로서의 사회적 실천의 수준들, 혹은 심급들의 유형학으로부터 전적으로 벗어나고 있지는
못하다. 알뛰세는 이를 벗어날 가능성을 제시하였는데, 그것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개
념 속에서 그가 진정으로 의미하고자 했던 바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가 계급투쟁의 관
건이자 공간이라는 점에 있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알뛰세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론에
대해 가해진 기능주의라는 비판에 대해 후자의 측면을 부각시키면서 응답하고 있는데, 이
에 대해서는, Mike Gane, "On the ISAs episode," Economy and Society, vol. 12, no. 4,
1983, pp. 455-465. 참조.
}}
2. 계급적대의 문제설정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재생산" 개념이 내포하는 "불변성"이라는 관념이
다. 재생산이라는 개념은 실제로 하나의 불변성, 즉 질적 동일성을 전제하는데,
이러한 불변성은 우선 생산양식의 구조 속에 위치하며 이때, 상부구조들은 이 불
변성을 보장해 주는 형식 속에서 그 현실성을 보유하는 기능적 방식 속에서 사고
된다. 알뛰세의 논의는 여기에서 출발하지만, 이와는 또다른 시사점을 던져 준
다.
알뛰세르는 사회구성체에 대한 맑스적인 메타포들 속에 잠재되어 있던
기능주의를 계승하면서 "상부구조"라는 고리를 삽입시켰다. 그런데, 이
작은 고리는, 그 통일성의 내부에서, 억압적 국가 장치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들로 이중화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
은 또 다시 계급투쟁의 "장소와 쟁점"으로 정의되기 시작한다. 계급투
쟁 속에서 한 계급의 물질적 지배가 획득 혹은 상실되고, 그러한 물질
적 지배가 없다면 기본적인 생산 착취관계(특히 임노동제도)의 영속성
은 전혀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재생산 관점"의 우위는 처음
출발했던 의미와는 정반대의 의미를 얻게 된다. 즉, 역사적 변형들이
어떤 불변성에 기초한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상대적) 불변성은 세력
관계를 전제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에띠엔 발리바르, "알뛰세르여, 계속 침묵하십시오!," 에띠엔 발리바르 외
지음, 윤소영 엮음, {루이 알뛰세르 1918-1990}(서울: 민맥, 1991), p. 84.
}}
(강조는 원문)
알뛰세의 입론이 갖는 진정한 함의는 구조의 '불변성', '영속성'이라는 관념
에 대면하여, 그것이 본래적으로 무의식적인 이데올로기적 과정들에 의존한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구조 개념 자체를 전화하고자 한다는 데에 있다. 여기서 물질적
생산의 사회적 조건들은 그 자체로서 계급투쟁에 근거하는 적대적 조건들로 정식
화되고 마찬가지로 '재생산'은 계급투쟁에 의해 담보되는 것으로 제시된다. 생산
과 재생산은 동질성의 연속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 자체 자동적인 영역도 아니
다. 따라서, 토대의 반영으로서의 상부구조라는 문제설정은 전적으로 포기될 뿐
만 아니라 토대/상부구조의 이원적 범론 속에서 사회구성체를 표상하는 것 자체
가 불가능하게 된다.
{{
)E. Balibar, op. cit.(1993), p. 8.
}}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자동성의 영역으로서의 경제라
는 관념, 경제는 그 자체로 자기 동일적인 것이라는 관념(경제 이데올로기)이다.
이러한 관념 속에서 "재생산"의 개념이 "불변성"이라는 개념들과 교환될 뿐만 아
니라, "재생산"을 토대/상부구조의 기능적 관련으로 후퇴시키는 효과가 지속적으
로 산출된다.
부르조아 고전 경제학에서 유래하는 이 관념은, 경제와 정치, 보다 구체적으
로는 국가와 노동과정을 상호 분할하고 경제를 정치로부터 독립된 자율적 '체계'
로 구성한다.
지배 이데올로기의 경향적으로 지배적인 형태로서 정치경제학의 중요성
은 그것이 계기적인 역사적 적응을 대가로 하여 노동의 공간과 국가적
심급간의 분리를 실천적으로 조직해 준다는 사실로부터, 또한 이 분리
에 '과학적' 기초를 부여한다는 사실로부터 나온다: 정치경제학이 생산
의 영역에 소유와 노동의 등치를 직접적으로 부과하든('생산적 노동'을
소유 일반의 기원으로 만듦으로써 이것은 이제 소유자의 이해와 논리에
따른 노동의 조직화를 정당화해 준다), 또는 이 정당화에 이르기 위해
효용, 생산과 소비의 균형관계와 같은 보충적 매개들을 도입하고 그리
하여 시장 개념을 확장하든.
{{
)E. Balibar, "The Notion of Class Politics in Marx," Rethinking Marxism,
vol. 1, no. 2, 1988, p. 32.
}}
부르조아 이데올로기의 지배적 형태로서의 경제 이데올로기는, 경제적 현상들의
양적인 견지에서의 자동성 또는 자생적 조절이라는 관념을 산출한다. 맑스주의는
이러한 경제 이데올로기의 효과로부터 완전히 단절하지 못했는데, 여기에서 프롤
레타리아 정치를 국가/시민사회라는 경제 이데올로기의 효과에 의해 산출된 이원
적 공간 속에서 사고하는 지속적 경향이 산출된다.
{{
)이에 대해서는, 에띠엔 발리바르, "조우커 맑스: 또는 동봉된 제 3항," 에띠
엔 발리바르, 서관모 엮음, 앞의 책, pp. 43-55. 참조.
}}
"재생산의 관점"은 기본적
으로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의 의미를 함축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기능
주의적 방식으로 제시되는 한 여전히 경제 이데올로기의 효과 아래에 머물러 있
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경제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점은 맑스가 '정치경제(학) 비판' 속에서 부르
조아 고전경제학에 대해 수행한 단절 속에서 사고될 수 있다. 맑스의 '정치경제
(학) 비판'의 특개성은 그것이 부르조아 정치경제학에 대비되는 프롤레타리아 정
치경제학, 혹은 '비판적 정치경제학'을 구성하기 위한 시도가 아니라 오히려 정
치경제학 자체의 불가능성을 함축한다는 점에 있다.
{{
)E. Balibar, "Kritik der politischen konomie," Kritisches W rterbuch
des Marxismus, p. 744.
}}
이러한 불가능성은 우선
'정치경제학'이 확립한 분리를 반박하고 무효화하는 것, 따라서, 부르조아 사회
의 제도들의 자명성에 거역하여 경제와 정치, 보다 구체적으로는 노동의 공간과
국가적 심급을 재통일하는 것을 의미한다.
{{
)발리바르는 이것을 맑스의 이론적 단락, 즉 경제와 정치, 노동과정과 국가 간의 '단
락'이라 부를 것을 제안한다. 이에 대해서는, E. Balibar, "The Notion of Class Politics
in Marx," op. cit., pp. 31-32.
}}
이러한 재통일(맑스의 이론적 단락)은 노동과정의 분석 한 복판에 적대라는
관념과 사회적 적대의 감축(소거)불가능성이라는 관념을 도입--그 관념들을 분석
의 주변에, 곧 노동과정의 다소간 지연된 결과들의 측면에 놓는 대신--하고 그
개념들을 노동과정의 역사적 경향의 설명원리로 삼는 것으로 나타난다.
{{
)이것은 맑스가 경제적 현실을 '착취' 개념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것과 관련된
다. 맑스는, 가치의 일반적 정의 또는 가치/가격 결정의 양적 원리의 결론들을
전개하는 대신에, 그리고 착취를 경제적 메카니즘의 결론으로 정의하는 대신에
'경제적' 형태들을 임노동 착취의 전체적 과정의 계기들과 효과들로서 정의한다.
E. Balibar, "Kritik der politischen konomie," op. cit., pp. 744-745.
}}
실상,
부르조아 이데올로기의 핵심적 부분은 계급과 계급투쟁의 부인에 있는 것이 아니
라
{{
)정치경제학에서 '자본'은 항상 '노동'의 역능으로서 표상된다. Ibid., p.
744.
}}
이것을 노동과 국가라는 분할된 두 측면들 중의 하나에 격리하거나 또는
기껏해야 이 두 측면에 분배한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맑스의 이론적 단락은 착
취관계로서의 노동관계를 무매개적으로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것으로 정의하는
데 있다.
{{
)E. Balibar, "The Notion of Class Politics in Marx," op. cit., p. 34.
}}
무매개성이 함축하는 바는 착취의 제 과정은 결코 국지화될 수 없으
며, 오히려 그것은 사회구성체 내의 제 수준들의 운동이 궁극적으로 귀착되는 지
점이라는 것이다.
이 '토대'(착취관계로서의 노동관계--인용자)로부터 '경제적 공동체'의
형태와 국가의 형태가 동시적(또는 평행적)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건
축학적 은유의 부정확성이 발생시킬 수 있는 역사적 문제가 어떠하든
간에 여기에는 어떠한 모호성도 없다. '매개들'이 있다 하더라도 그 매
개들은 선재하는 경제적 영역과 정치적 영역 사이에 개입하는 것이 아
니고 이미 주어진 한 영역으로부터 다른 한 영역의 발생으로서 개입하
는 것도 아니다. 이 매개들은 영원한 공동의 토대로부터의 양 영역의
각각의 형성과 진화에 개입한다. 이 공동의 토대는 이 양 영역 사이에
유지되는 '상호관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게 해 준다. 달리 말하자면, 노
동착취관계는 시장('경제적 공동체')의 맹아이자 동시에 국가('지배.종
속')의 맹아이다.
{{
)Ibid., p. 34.
}}
여기서 계급들로 분할된 사회 내에서의 사회적 관계의 의미는 전화된다. 사
회적 관계는 폐쇄된 계급들 사이에서 확립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계급들을 관
통한다. 달리 말하자면, 계급의 실존과 정체성 자체가 계급투쟁의 경향적 효과로
서 항상 생산되는 것이다.
{{
)Ibid., pp. 33-34.
}}
따라서,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조아지는 결코 대칭적
으로 마주보지 않는다. 양자는 계급투쟁의 물질적 실천들 속에서, 즉 착취를 핵
심으로 하는 물질적 실천들의 사회적 조직화 속에서 부단히 형성, 전화한다.
{{
)맑스의 이론적 단락이 함축하는 핵심적 내용은 지배와 교직되지 않는 '순수
한' 착취과정은 부재하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물질성 없는 (즉, 비대칭적으로
분배된, 권력의 기술 및 수단이 없는) '순수한' 적대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다. Ibid., p. 36. 그러나, 이러한 사고를 가능하게 해 주는 {자본}에서의 맑스
의 분석은 동시에 '순수한' 착취라는 개념을 부단히 재생산하도록 해 주는데, 그
것은 맑스가 {자본}에서 잉여가치에 대한 산술적(회계적) 서술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뛰세르는, 잉여가치에 대한 산술적 표현이 맑스주의 노동운동의 역
사에서 착취의 조건과 형태들을 명확히 분석하는 데 이론적 및 정치적 장애가 되
어왔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Louis Althusser, "The Crisis of Marxism," in
Il Manifesto (ed.), Power and Opposition in the Post-Revolutionary
Societies, trans. from the French by P. Camiller and the Italian by J.
Rothschild(London: Ink Links, 1979), p. 233.
}}
이러한 형성과 전화는 누구도 주체가 될 수 없는 물질적 과정이거니와 여기서 부
르조아와 프롤레타리아의 적대가 갖는 근본적 비대칭성이 설정된다. 맑스의 {자
본}에서 부르조아들은 결코 하나의 사회적 집단이 아니라 오직 자본과 자본의 다
양한 기능들의 '의인화', '담지자'의 형상으로 나타날 뿐이다. 역으로 프롤레타
리아는 처음부터 생산 및 재생산 과정에서 구체적이고 만질 수 있는 실체('집합
노동자', '노동력')로서 화폐-자본에 대면하는 형상으로 나타난다.
{{
)E. Balibar, "From Class Struggle to Classless Struggle?," E. Balibar & Immanuel
Wallerstein, Race, Nation, Class, Ambiguous Identities(London and New York: Verso,
1991), p. 160.
}}
이러한 두
'기본 계급'의 비대칭성(한 계급이 의인화한 형상으로 현존함에 대응하여 다른
한 계급은 의인화된 형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 역)은 계급투쟁 개념
을 부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역으로 계급투쟁이 착취조건의 생산 및 재생산속
에서 항상 이미 진행되고 있는 것이지 단순히 사후에 그것에 부가되는 것이 아니
라는 점에서, 그것은 계급투쟁의 심층적 구조의 직접적 표현을 나타낸다.
{{
)Ibid., p. 160.
}}
3. 계급과 대중의 변증법
적대의 비대칭성을 중심으로 재생산 과정을 사고하는 것은 원리상 모든 '주
체'의 문제설정을 배제한다. 프롤레타리아는 이 과정 속에서 계기적으로만 현존
하며 이러한 계기적 현존의 종합없이 프롤레타리아의 정체성에 대해 말할 수 없
다. 동일하게, 부르조아지의 정체성 또한 이 과정 속에서 부단히 전화되고 재구
성된다. 이러한 전화와 재구성은 그것을 궁극적으로 제어하는 '원인'을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인 복합적 실천들 속에서 진행되는 과정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적대의 비대칭적 재생산 과정에 항상적으로 내재하는 지배 이
데올로기를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 지배 계급이 그 자신의 실존 조건들과 수단
들에 대해 갖는 표상들로 사고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 역으로 말해야 한다.
{{
)이것은, 엄정한 의미에서 {자본}에는 하나의 계급만이 존재한다는 발리바르
의 분석의 맥락 속에 위치한다. Ibid., p. 160.
}}
그것은 우선 지배자들의 '체험된' 경험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의 '세
계'에 대한 인정 또는 승인과 저항 또는 반역을 동시에 함축하는(맑스
는 종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피지배 대중들의 '체험된' 경험이라고
반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역설적 테제에
이르게 된다. 즉, 최종심에서 이와 같은 지배자들의 이데올로기 그 자
체인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예를 들어, '자본가적'인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주어진 사회에서 지배적인 이
데올로기는 항상 피지배자들의 가상의 특수한 보편화이다.
{{
)E. Balibar, "The Non-Contemporaneity of Althusser," op. cit., pp. 12-13.
}}
그러나, 이러한 정식화가 지배 이데올로기의 실존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
니다.
{{
)각 계급에 고유한 이데올로기를 부여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이데올로기적 요
소들의 다원주의를 도입하는 반환원주의의 문제틀이 지배 이데올로기의 실존 그
자체를 부정하게 되는 것은, 적대를 비대칭적 관점에서 사고하지 못한다는 점,
따라서 궁극적으로 자본-임노동 간의 적대를 부정한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지배 이데올로기의 작동과 재생산이 착취의
지속을 향한 경향과 그 반경향 간의 내재적 대립관계 속에서 지배 관계의 계기적
재구성 속에 현존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적 형태들의 무한한 전위과정의 이면에는 계급투쟁 조건들의
전위 과정이 있다. 양자는 모두 사회적 갈등들의 총합 또는 결과가 담
론의 영역에서 그리는 궤적 및 방향과 관련하여 현실 역사의 영속적인
발산이라는 유물론적 개념 안에서 사고될 수 있다.
{{
)E. Balibar, "The Vacillation of Ideology," op. cit., p. 199.
}}
이러한 정식 속에서 애초에 맑스주의 이데올로기 개념이 사고했던 '전도' 효
과, '지배' 효과의 문제는 현실성의 은폐, 왜곡이라는 형식, 즉 프롤레타리아에
게는 낯선 의식의 부과라는 형태로서가 아니라 적대의 비대칭적 재생산 과정 속
에서 그 경향과 반경향의 계기적 통일이라는 문제로 대체된다.
{{
)"그리고, 결과적으로 착취가 잠재적 모순을 내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데
올로기적 지배 또한 잠재적 모순을 내포한다. 역사의 피지배자들이 '위로부터'
그들에게 보내진 그들 자신의 가상의 보편성을 곧이 곧대로 믿는다면, 또는 오히
려 그들이 그들 자신의 가상의 요구들에 부응하여 행동하고 그 결과들을 도출해
내려고 집단적으로 시도한다면, 그들은 더 이상 기존 질서를 인정하지 않고 그것
에 반대하여 반역하는 것이다," E. Balibar, op. cit.(1993), p. 13.
}}
이데올로기적
'게임'은 정학(physical law of statistics), 즉 몇개의 요소들이 서로 교대하면
서 이루는 균형이 아니라, 자신이 조직하는 표상들을 뛰어 넘고 동시에 그 표상
들과 모순되는 현실의 발현에 대항할 수 있는 저항에 의해 그 역사적 의미가 측
정될 수 있는 재생산의 과정이다.
그리하여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것은 개념들의 전위효과, 또는 지배 이
데올로기의 담론의 꼬임(twist)의 효과이다. 이 효과들은 이번에는 주
어진 정세 속에서 일관성을 동요하게 만든다. 어떠한 담론도 지배 이데
올로기의 공간(이 공간은 '외부'를 갖지 않는다)의 외부에서 이루어질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어진 정세 또는 세력관계 속에서 모든 담
론이 그 공간으로 환원가능한 것은 아니며, 모든 담론이 그것의 재생산
의 계기로 기능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
)E. Balibar, "The Notion of Class Politics in Marx," op. cit., p. 31.
}}
프롤레타리아 정치에 있어서 이데올로기의 지배 효과를 역전시키는 것은 지
배 이데올로기의 공간으로부터의 절대적인 탈출, 또한 마찬가지로 이데올로기로
부터의 절대적 해방이 아니다.
{{
)"순수한 지식, 또는 인식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과학의 모순, 이
데올로기의 모순은 극복할 수 없는 것이다. 반대로 필연적으로 노동과 국가를 구
조화하는 사회적 관계들과 절합되는 인식의 생산 및 전유의 사회적 관계들이 존
재한다. 따라서, 과학적 인식의 모든 발전은 이데올로기를 불안정하게 하는 동시
에 발전시킨다," 에띠엔 발리바르, "'육체노동과 지적노동의 분할'에 대하여,"
에띠엔 발리바르, 서관모 역, 앞의 책, p. 206.
}}
오히려 그것은 지배 이데올로기의 작동 속에서
발현하는 반경향들의 계기적 종합이며, 따라서 동시에 지배 이데올로기의 재생산
경향들과의 계기적 단절들이다. 여기에 프롤레타리아 정치의 현실주의의 조건들
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정치 속에서 사회적 관계들의 한정된 전화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학적 인식 속에서 특수한 한정된 이데올로기적 확신들과의 지구적
인 '절단'을 사고하는 것이다.
{{
)E. Balibar, "The Non-Contemporaneity of Althusser," op. cit., p. 11.
}}
이러한 사고는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정체성'이라는 질문을 다시 제기하도
록 한다.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정체성'의 문제는 분할되어 존재하는 대중들의
프롤레타리아로의 구성이라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지만, 맑스주의는 '역사의 주
체'로서의 프롤레타리아라는 표상 속에서만 이 문제를 사고한다. 이러한 표상 속
에서 프롤레타리아는 본성상 지배 이데올로기의 공간에 외재적이라고 단정된다.
{{
)E. Balibar, "The Notion of Class Politics in Marx," op. cit., pp. 47-48.
}}
여기서, 프롤레타리아의 구성의 문제는 단지 프롤레타리아가 지배적 이데올
로기에 포섭되느냐 아니면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인 환상들로부터 해방되느냐 하
는 방식으로 표상된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상이한 착취형태들, 생존위치들 및 생존조건들, 기원들 그
리고 대중문화적 '전통들'에 밀접히 연관된 노동자 계급의 이데올로기
들이 존재하지만, 이 이데올로기들은 사고되지 않은 상태로 그리고 사
고될 수 없는 상태로 남는다. 노동자 계급의 이데올로기들의 실존은 단
지 몇몇 예외들과 지체들의 결과일 뿐이다. 그것은 이론적 고찰 대상이
못된다. 유사하게 정치적 조직은, 과학적 이론의 도움을 받아 조직될
때 조차도, 노동자 계급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인지할 수 있게 하는 수
단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노동자 계급에 대해 대중 이데올로기적 효
과를 생산한다는 사실이 역사적 분석과 비판의 범위 내에 들어 오지 못
하게 된다. 그리하여 노동자 계급은 자신의 정치의 맹점이 된다.
{{
)E. Balibar, "The Vacillation of Ideology," op. cit., p. 195.
}}
이러한 효과는 대중의 계급으로의 구성의 문제를 프롤레타리아의 자기의식의
확보라는, 즉 프롤레타리아의 본원적 정체성의 확보라는 문제에서 접근한다는 사
실에 기인한다.
{{
)이것의 정치적인 이유는 맑스주의가 당-형태 속에서 단순히 계급투쟁 조직의
역사적 형태 뿐만 아니라 유일한 본질적 형태, 즉 계급투쟁의 연속성을 보장하고
자본주의의 역사와 그 위기의 변화무쌍함을 극복하여 프롤레타리아 혁명 내지 권
력 장악의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그리고 혁명을 넘어서서 더욱 나아 가도록 해
줄 본질적 형태를 보았다는 사실에 있다. 이에 대해서는, E. Balibar, "The
Notion of Class Politics in Marx," op. cit., pp. 47-48.
}}
이러한 효과를 전위시키기 위해서는 {자본}의 분석으로 되돌
아갈 필요가 있다. 거기서 프롤레타리아는, 생산과정에서의 위치 및 노동력 재생
산 과정에서의 차별적인 조건들에 의한 내적 분할로 특징지어 진다. 따라서, 프
롤레타리아는 계급이기에 앞서 다양한 이데올로기적 조건들에 의해 규정되는 구
체적인 대중, 무정형적인 대중으로 실존한다. 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차별적 계기들의 종합 속에서이다.
{{
)Ibid., pp. 45-46. 여기서 발리바르는 {자본}에서의 맑스의 분석이 갖는 장점이 사회
관계의 전화의 계기로서의 실천이라는 개념을 거부하지 않고서, 또 불변의 체계로서의 생
산양식의 무한정한 재생산이라는 테제를 채택하지 않고서, '역사의 주체', 그리고 '혁명의
주체'의 문제설정을 추방하게 해 준다는 점에 있다고 논의한다.
}}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혁명적 주체성이라는 형태의 출현은 결코 자연적 속
성이 아니고, 따라서 또한 어떠한 보장도 내포하지 않으며 항상 부분적 효과, 정
세의 효과로서 사고된다. 이것은 정세 속에서 계급투쟁이 대중운동으로 발전하도
록 촉진할 수 있는 조건들을 탐구해야 할 의무를, 그리고 동시에 이 조건들 속에
서 대중운동 속에 계급투쟁의 심급을 유지시킬 수 있는 집단적 표상의 형태들을
탐구할 의무들을 제기하는 것이다.
{{
)Ibid., p. 47.
}}
이데올로기의 지배 효과가 착취의 재생산
경향과 반경향 간의 모순적 통일 속에 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배 이데올로
기의 공간 외부에서의 프롤레타리아 정치를 사고하는 것은 이러한 모순적 통일
속에서 그 효과의 역전과 전위를 사고하는 것이다.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이데올로기 속에 집합적 전화의 특정한 실천과 (또한
특정한 형태의 사회적 교통과) 양립불가능한 어떤 것이 있다는 점이다.
{{
)E. Balibar, "The Vacillation of Ideology," op. cit., p. 201.
}}
그러
나, 이것은 자기동일적인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으며 착취과정의 재생산 속에서
계기적으로 부단히 전화한다. 이것은 언제나 현재적이며, 또한 그것이 작동중인
이데올로기에 대한 실천적 비판을 내포하고 있는 한에서 비판적인 확실성을 보유
한다. 바로 이러한 비판적 확실성이 유물론적 의미에서의 '진리'를 구현하는 것
인데, 이러한 한에서 이데올로기 개념은 유물론적으로 사고될 수 있으며 또한 그
것이 유물론적으로 사고되는 한에서 교조주의(본원적인 또는 종국의 진리)와 회
의주의(진리의 부재, 또는 단순한 기만이나 도덕적 허구, 또는 '존재의 상실' 등
으로서의 진리)의 원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
)Ibid., p., 201.
}}
Ⅴ. 결 론
맑스주의에서 이데올로기 개념의 지위는 프롤레타리아 정치와 부르조아 정치
간의 모순을 그 대상으로 하는 맑스주의의 종별성과 관련된다. 맑스주의에서 이
데올로기 개념의 등장과 그 이론적 위치설정의 변이들은 맑스주의의 이러한 종별
성에 종속된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노동운동과 맑스주의의 융합의 역사에서
모순점을 형성하여 온 것이기도 한데, 그 모순점의 핵심에 부르조아 정치에 독립
적인 것으로서 프롤레타리아 정치를 사고하는 데에서 맑스주의가 직면한 곤란들
이 존재한다. 이 곤란은 특히 맑스주의가 지배 이데올로기를 사고하는 경우에 두
드러지는데, 그것은 지배 이데올로기가 프롤레타리아에 외재적인 '환상'으로 정
의되지만, 구체적인 정치적 실천 속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 '환상'의 효과 하
에 살고 있는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구성이라는 사실과 관련된다. 이로부터, 부르
조아 이데올로기와 프롤레타리아 세계관의 반정립이 도출되는데, 이러한 반정립
속에서 맑스주의의 현재의 위기를 규정짓는 것으로서의 맑스주의와 노동운동의
융합에 있어서의 당-형태의 위기가 작동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지금까지 지배 이데올로기의 재생산과 변형의 문제
를,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과 반환원주의의 문제틀을 중심으로
그람시로부터 이데올로기론을 도출해 내는 논자들에 대한 비판의 형식을 빌어 고
찰해 보았다.
그람시의 사상에 대한 논의는 주로 유로코뮤니즘적 이행 전략에 대한 논쟁의
맥락에서 진행되어 왔다. 사회주의로의 이행에 있어서의 민주주의의 문제가 중심
이 되었던 이 논의 속에서, 그람시는 각 논자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상이한 방식
으로 해석되어 왔다. 한편에서 그는 '사회주의로의 민주적 이행 전략'의 기초자
로서 평가되기도 하였고, 다른 한편에서는 유로코뮤니즘 우파의 다원주의적 이행
전략과는 구별되는 직접 민주주의(평의회 공산주의)의 이론가로서 부각되기도 하
였다. 이러한 상이한 해석속에서 그람시와 레닌 간의 관련의 문제가 이론적 쟁점
으로 부각되어 왔는데, 이것은 그람시의 사상이 스탈린주의에 대한 비판적 대안
으로서, 그리고 논자에 따라서는 레닌주의 그 자체에 대한 대안으로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이러한 논쟁들 또한 그람시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검토되어야 할 부분이지만, 본 논문에서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생략
하고 이데올로기와 프롤레타리아 정치의 문제를 중심으로 해서 그람시의 헤게모
니론을 살펴 보았다.
이데올로기의 문제와 관련하여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은 하나의 이행적 계기를
구성한다. 그람시의 사상은 하위집단의 지배집단으로의 발전과정에 대한 질문으
로부터 출발한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탐구 속에서 그람시는, 국가와 정치에 대
한 고전적 맑스주의의 논의들에 대한 일정한 정정효과를 산출하고 고전적 맑스주
의가 기반하고 있던 문제설정을 뛰어 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지만, 결국
그것은 하나의 가능성으로 남을 뿐이다.
그람시가 도입한 최초의 정정효과는 국가에 대한 도구론적 관점에 대한 비판
속에서 국가와 이데올로기를 계급투쟁의 과정에 종속적인 것으로 사고할 수 있도
록 한다는 점에 있다. 그람시는 한 계급의 지배를 지배와 지도라는 두 계기로 분
할하고 이 두 계기의 통일 속에서 한 계급이 전체 사회의 대표자로 성장할 수 있
음을 논의한다. 그런데, 그람시에게 지배 계급의 이러한 지위는 그 역사적 시효
만료로 대체되기 전까지는 보장되어 있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부단한 정치적 실천
을 통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어야 할 것으로 나타난다. 이로써 그람시는 국가를
현실적으로 계급투쟁이 벌어지는 공간으로 정의함과 동시에 국가적 과정 내부에
이데올로기적 투쟁의 과정을 도입한다. 그런데, 그람시에게 이러한 투쟁들은 정
확히 분열과 종합의 원환 속에서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 각기 상이한 역사적 시
대를 대표하는 세력들 간에 진행되는 투쟁이다. 따라서, 이 투쟁은 근본적으로
투쟁 속에 형성된 분열의 종합이라는 형식을 띠게 되는데, 이로부터 프롤레타리
아 정치의 전망을 윤리적 국가의 구성으로 사고하는 정식이 제출된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정식의 제출 속에서 그람시는 애초에 그가 도입했던 고전적 맑스주
의에 대한 정정효과를 무효화 하게 된다.
국가에 대한 도구론적 관점의 핵심을 구성하는 것은, 국가/사회의 대당 속에
서 국가를 사회의 내적 분할의 '소외'로 파악하는 '소외의 문제설정'이다. 그람
시는 국가가 사회의 분할 속에 항상 내재해 있음을 사고함으로써 이 문제설정으
로부터의 출구를 열어 주지만, 동시에 그는 국가/사회의 분열과 종합의 과정을
영원한 것으로 사고하게 된다. 이것은 그람시가 이데올로기 투쟁을 이미 존재하
는 두 개의 세계관들 사이에 벌어지는 보편성을 향한 투쟁으로 사고한다는 점과
관련된다. 그람시는 이 투쟁 속에서 정치투쟁의 본질적 계기를 포착하지만, 이
투쟁은 분열과 종합이라는 일반적 맥락의 반복으로 제시될 뿐이다. 이 투쟁은 투
쟁하는 두 계급에게 어떠한 차별성도 부여하지 않으며,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계급이 사회의 대표자로 상승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람시가 한 계급의 지배 계급으로의 상승과정에서의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사고하면서 개진했던 논의는 대처리즘의 등장이라는 정치적 배경을 경과
하면서 새로운 형태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그람시의 관점에서 이데올로기 투쟁
은, 그것이 내재하고 있는 역사성을 제외한다면 근본적으로 등가적인 이데올로기
들 간에 벌어지는 보편성을 향한 투쟁인데, '반환원주의'적 문제틀을 중심으로
이데올로기를 논의하는 논자들은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이 갖는 이러한 측면을 논
의의 핵심원리로 삼게 된다. 무페와 홀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러한 논의는, 대
처리즘의 등장과 좌파의 새로운 전략 모색이라는 정치적 배경과 동시에 그람시를
통한 알뛰세의 입론 비판이라는 맥락 속에 위치하는데, 이들의 논의의 출발점은
이데올로기에 필연적인 계급귀속성을 부여하는 것에 대한 거부이다. 이들의 관점
에서 이데올로기적 과정은 그 요소들의 접합과정으로 정식화되는데, 이 접합과정
은 근본적으로 이데올로기적 요소들의 다원성을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이들은
이 접합과정이 무엇에 의해 규정되는 지에 대한 논의를 생략함으로써, 계급환원
주의에 대한 거부로부터 지배 이데올로기와 계급적대 그 자체의 부정으로 나아가
게 된다.
그람시가 열어 둔 길을 걸어 가고, '반환원주의'의 문제틀 속에서 그람시를
독해하는 논의의 오류를 회피하기 위해서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재생산과 변형을
계급투쟁의 계기적 변화에 종속적인 것으로 사고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역사
유물론의 범론적 정식에 대한 문제제기와 그 재구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사회의
각 심급들은 상호 독립적인 각각의 영역을 확보,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
속에서 그 심급들이 구성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역사유물론의 근본적 독창성은
계급적대의 재생산 과정에 대한 분석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재생산 과정은
사회 속에 국지화된 하나의 심급 속에서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작동 속에서 진
행되는 계급투쟁의 과정 속에 정확히 종속되는 것이다. 지배 이데올로기의 생산
이 항상 이 과정에 귀속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의 구성
또한 이 과정의 계기적 효과들로서 사고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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