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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삶

by Casey,Riley 2022.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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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죽음과 삶


         죽음과 삶  
                                     
  0. 제가 받은 제목은 죽음의 의미 --- 한국인의 측면에서 --- 이었습니
다. 이러한 제목이 저에게 주어진 것을 가지고 살펴보면 다른 분들도 여러
분 오셔서 여러 가지 각도와 각각 서로 다른 측면에서 죽음과 삶을 말씀하
셨을 것이고 앞으로 또 말씀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주어진 제목이 
"죽음의 의미" --한국인의 측면에서 --인데  저 임의대로 제목을 "죽음과 
삶"이라고 조금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내용에  있어서도 두 가지만 말씀드
리려고 합니다.  먼저(1) 장자(莊子)에 나오는  "죽음과 삶"에 대한 이야기
를 끌어와서(引用)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잘 알고 계시는  바이겠습니다만 
장자는 철학적으로 학파를 분류하자면 도가철학(道家哲學)입니다. 고대  중
국의 춘추시대(BC770 -480)에  제자백가(諸子百家)라고 하는 여러  학자와 
여러 학파가 나와서 제 각기 그  당시 도탄에 빠진 사회를 건져내고  죽음 
앞에서 허덕이는 백성들을 살리려고 내어놓은 철학사상이 너무  많아 학파
가 무려 백 개나  된다고 하여 백가(百家)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가(家)는 
학파를 말합니다. 자(子)는 공자(孔子)나 맹자(孟子)와 같이 위대한  인류의 
스승을 말합니다. 이러한 제자백가 중에서 후대에  영향을 가장 많이 끼치
고 있는 두 개의 학파가 도가(道家)와 유가(儒家)입니다. 도가의 대표 인물
은 노자와 장자이고 이 도가사상이  후대에 도교(道敎)가 되었으며 도교에
서는 신선(神仙)이 되어 오래 오래 사는 것이 최대의 목표입니다.  저는 아
직 신선 사상이 담긴 도교에 대해서는  공부하지 못하였고, 그래서 오늘은 
다만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죽음과 삶"을 먼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 다음으로 (2)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죽음과 삶"을  말씀 드리려고 하
는데 공자(孔子)에서 조금 끌어와서(引用)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1, 도가(장자)의 사망철학.   

  1) 부인의 죽음에 노래하다.(장자(莊子) 지락편(至樂篇))
「장자(莊子)의 처(處)가 죽자 혜자(惠子=惠施)가 조상(弔喪)하려  갔다. 장
자는 그때 두 다리를 뻗고 앉아 항아리를 두드리면서 노래를 하고 있었다.  
혜자가 말하였다. 그분과 함께 살았고, 자식을 길렀으며, 함께 늙었다. 그런 
부인이 죽었는데 곡(哭)을 안 하는 것도 모르겠거니와, 또 거기에 항아리를 
두드리며 노래까지 부르고 있으니 너무 심하지 아니한가?    장자가 말하
였다. 그렇지 않다. 그가 처음 죽었을 적에야 나라고 어찌 슬픈  느낌이 없
었겠는가?  그러나 그가 태어나기 이전을 살펴보니  본시는 삶(生)이 없었
던 것이었고, 삶(生)만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시 형체(形體)조차도 없었던 
것이었으며, 형체만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시 기(氣) 조차도 없었던 것이었
다. 구분되지 않고, 두루 섞이어(芒 (混沌)  있었으나 그것이 변화하여 기
(氣)가 있게 되었고, 기(氣)가 변화하여 형체가 있게 되었고 형체가 변하여 
삶이 있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은 그가 또 변화하여 죽어간 것이다. 이것은 
봄과 가을, 그리고 겨울, 여름의 사철이 운행하는 것과 같은 변화였던 것이
다. 그 사람은 하늘과 땅이란 거대한 방 속에 편안히 잠들고  잇는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엉엉하며 그의 죽음을 따라서 곡(哭)을 한다면 천명(天命)에 
통달(通達)하지 못한 짓이라고 스스로 생각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곡(哭)하
지 않고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이것은 장자(莊子)라고 불리는 책의 지락편(至樂篇)에 나오는 이야기입니
다. 사람의 삶과 죽음이 똑같이 자연의  한 변화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입니
다. 다른 이야기를 하나 더 살펴보겠습니다. 
  「죽음과 삶은 운명이다. 밤과 낮이 일정하게 있는 것이 자연(天然)이다. 
사람들이 관여할 수 없는 그런 일이 있는 것은 모두가 만물의 실정인 것이
다. 그들은 특히 하늘을 아버지처럼 여기면서 몸소 그것을  사랑하고 있다. 
하물며 더욱 뛰어난 것이야 어떠하겠는가? 사람들은 특히 임금은 자기보다 
뛰어나다 생각하고 몸소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하물며 참된 사람(眞人)
에게야 어떠하겠는가? 우물이 마르면  물고기들은 서로 땅위에 모여  서로 
물기를 뿜어주고 서로 물거품으로  적셔준다. 그러나 강물이나  호수(湖水) 
속에서 서로를 잊고 있던 때만  못한 것이다. 그처럼 요(堯)임금을  기리고 
걸왕(桀王)을 비난하는 것은 차라리 두 사람을 다 잊고 올바른 도(道)로 동
화(同化)되는 것만은 못한 것이다. 대지(大地)는 우리에게 형체를 부여하고 
삶을 주어 우리를 수고롭게 하고 있다.  늙게 만듦으로써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고, 죽음으로써 우리를 쉬게 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기의 삶을 잘 아는 
것은 곧 자기의 죽음을 잘 맞이하는 길인 것이다. 」
  이 이야기는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
서도 장자는 죽음과 삶이 똑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생각을 우리는 절대주의라고 부릅니다. 절대주의라고 하는 말은 상
대주의와 비교되는 말입니다. 상대주의에  서서 말하자면 좋은  것과 나쁜 
것, 아름다움과 추함, 키가 큰 것과 작은 것 등등의 구별이  생기지만 이러
한 상대적인 판단은 모두 다른  상대적인 것과 비교하고 견주어서  말하여 
지는 것입니다. 즉 이것이 저것과 비교해 볼 때 조금 더 나아 보인다는 것 
뿐 이지요. 그래서 장자는 상대적이고 사람들이  쉽게 추구하는 것을 단계
적으로 말하면서 참 사람 즉 진인(眞人)을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다시 
장자의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2) 열자의 바람 타고 놀기
  「그러므로, (1) 지혜는 한 가지 벼슬을  감당할 만하고, 행동은 한 고을
에서 뛰어나고, 덕(德)은 한 임금을 모시기에  합당하고, 능력은 한 나라의 
신임을 받을 만한 사람이 그 자신을 보는  것도 또한 이와 같았다. 그런데 
(2) 송영자(宋榮子)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픽 웃었다. 그는(송영자) 온 세상
이 칭찬을 한다해도 더 신나 하는 일이  없었고, 온 세상 사람들이 비난을 
한다해도 기죽는 일도 없었다. 그는 자기 자신과 밖의 일의 분수를 일정하
게 알고 영예와 치욕의 한계를 분별하고 있음으로써 그럴 수 있었다. 그는 
세상 일에 대하여 급급하지 아니하였다. (3)  열자(列子)는 바람을 타고 다
니는데 두둥실 날렵하기만 하였다. 그는 한 번 나서면 15일 만이라야 돌아
왔다. 그는 바람이 순조로이 부는가 그렇지  않는가에 대해서는 마음 졸이
는 일이 없었다. 그는 비록 걸어 다니는  일은 면했다 하더라도 아직도 의
지하는데(바람)가 있는 것이다. (4) 만약 하늘과 땅의 참 모습을 타고서 육
기(六氣)의 변화를 따라 무궁(無窮)에 노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또  무엇
을 기다리는가? 」여기서 우리는 장자(莊子)철학의 중요한 한 면을 살펴볼 
수 있으니 곧 기다린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기다린다(有待)는 것은 의지한다는 의미이니 예를 들자면 우리가 
앉으려고 하면 의지를 기다려서 의자에 의지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
는데는 음식에 의지하고 의복에 의지하고 거주하는 집에 의지하고 어느 것 
하나 의지하지 아니하는 것이 없습니다. 위에서 말한 열자(列子)의 경우 바
람을 타고 두둥실 날렵하고  경쾌한 모습이 얼마나 자유스러워  보입니까? 
그러나 바람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해서 바람이  불지 않으면 
열자는 꼼작할 수가 없습니다. 이 기다림이 없는 것(無待)은 장자철학의 핵
심입니다. 기다림이 없음은 다른 말로  바꾸어 보면 곧 자유자재(自由自在)
입니다. 그래서 죽음으로부터도 자유자재입니다. 장자에서 가장  유명한 포
정해우( 丁解牛) 이야기를 하나 더 인용하겠습니다.

 3) 포정해우( 丁解牛)
  「한 포정( 丁=백정)이 문혜왕(文惠王)을 위하여  소를 잡은 일이 있었
다. 그의 손이 닿는 곳이나 발로 밟는  곳이나 무릎으로 누르는 곳은 푸덕
푸덕 살과 뼈가 떨어졌다. 칼이 지나갈 때마다 설겅설겅 소리가 나는데 모
두가 음율에 들어맞았다. 그의  동작은 상림(桑林)의 춤과  같았으며, 그의 
절주(節奏)는 경수(經首)의 절주(節奏)와 들어맞았다. 문혜왕이 말하였다. 
아아 훌륭하다. 재주가 이런 지경까지 이를 수가  있는가? 포정이 칼을 놓
고 대답하였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道)로서 재주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처음 제가 소를 잡았을 적에는 보이는  것이 모두가 소였습니다. 그러나 3
년 뒤에는 완전한 소가 보이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저
는 정신으로서 소를 대하지 눈으로는 보지  않습니다. 감각의 작용은 멈춰 
버리고 정신을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천연의 조리를 따라서 큰 틈을 쪼
개고 큰 두멍을 따라 칼을 찌릅니다. 소의  본래의 구조에 따라 칼을 스므
로 힘줄이나 질긴 근육에 부닥뜨리는 일이 없습니다. 하물며 큰 뼈에야 부
딪치겠습니까? 훌륭한 포정은 일년마다 칼을 바꾸는데 살을 자르기 때문입
니다. 보통 백정들은 달마다 칼을 바꾸는데 뼈를 자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의 칼은 19년이 되었으며, 그 사이 잡은 소가 수천 마리나  됩니다. 그러
나 칼날은 숫돌에 새로  갈아 내온 것과 같습니다.  소의 뼈마디에는 틈이 
있는데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가 없는 것을 틈이 있는 곳에 넣기 
때문에 횡하니 칼날을 움직이는데 언제나 반드시  여유가 있게 됩니다. 그
래서 19년이 지나도 칼날은  새로 숫돌에 갈아 놓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뼈와 살이 엉긴 곳을 만날 때마다 저도 어려움을 느
끼게 됩니다. 조심조심 경계를 하면서 눈은  그곳을 주목하고 동작을 늦추
며 칼을 매우 세미하게 움직이게 됩니다. 그러면 후두둑 뼈와 살이 떨어져 
흙이 땅 위에 쌓인 듯 쌓여집니다. 그러면  칼을 들고 서서 사방을 둘러보
며 만족스런 기분에 잠깁니다. 그러고는 칼을 닦아 잘 간수해 둡니다. 문혜
왕이 말하였다. 훌륭하구나 나는 포정( 丁)의 말을 듣고서 삶을 기르는(養
生) 방법을 터득하였다. 
  장자철학의 핵심은 무대(無待)이기 때문에 자유자재입니다. 그렇기  때문
에 삶에서도 자유자재이고 죽음에서도 자유자재입니다. 


2. 유가(공자)의 사망철학
  이번에는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죽음과 삶"을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두 말할 것도 없이 공자(孔子)부터 말해야합니다.

 1) 「아침에 도(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가하다. 」(朝聞道, 夕死可矣)
공자에 있어서 사망철학의  최고 범주는  천(天)`천명(天命)`천도(天道)입니
다. 공자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말은 직접 '천
명(天命)'과 관련되는 것입니다.  공자가 말하는 천(天)  혹은 천명(天命)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첫째는 자연의 천(天)과 관련되는 천명(天命)
인데 (중국 사람들은 기명(忌明)이라고 합니다.  = 우리는 그저 명(命)이라
고만 말합니다.) 빈부(貧富) 귀천(貴賤) 요수(夭壽) 등으로 실존하는 주체의
지로는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공자의 가장 사랑하는 제자 안
회(顔回)가 불행스럽게도 단명(短命)하여 죽었을 때 공자는 어쩔 수가 없었
고 다만 「天喪子! 天喪子!」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어쩔 수  없는 운명을 
천명이라고 했고 다만 어쩔 수 없는 죽음일 뿐입니다. (2) 두 번째는  천명
과 조금 다른 의미에서 말하는  천도(天道)입니다. 즉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도(道)는 곧 천도입니다.  이러한 천도(天道)가 무엇
이 그렇게 중요하기에 공자는 죽어도 좋다고 했습니까? 공자는 천도를  말 
할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논어(論語) 양
화편(良貨)에서 「하늘을 무어라고 말할까? 사시(四時)가 흘러가고 만물(萬
物)이 살아가는 것이다.」(天何言哉? 四時行焉萬物生焉)  ?     ,    )라고 
해서 말로 설명해 낼 수 없는 것,  그러나 우주의 모든 법칙 (죽음의 법칙
까지도 포함하는)을 도(道) 내지 천도(天道)라고 말했습니다. 그러한 도(道) 
내지 천도(天道)를 듣기만 한다면 죽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공자는  이러한 
천도(天道)를 인(仁)에서 찾고 있습니다. 인(仁)은 곧 인도(人道)입니다.  조
금 어렵게 말하면 「인(仁)을  실천하여 천(天)을 아는 방법입니다.」(踐仁
而知天) 즉 공자철학  안에서 천도(天桃)와  천명(天命)은 초월적(형이상학
적) 기본 범주이고 인(仁=人道)은 도덕철학의 기본 범주로써,  공자는 천인
합일(天人合一)을 이루기 위해 천도(天道)와 인도(人道)를 통일시키려고 합
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도(天道)는 공자에 있어서 궁극적 관심이며  궁극적 
헌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는 마땅히 살아야하는 삶이라면 또한 마땅
히 살아야하고 마땅히 죽어야 하는 죽음이라면 죽어야하는데  그것이 천도
와 부합되는 것인가? 늘 묻고 있습니다. 그래서  「朝聞道, 夕死可矣」라고 
합니다. 조금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초월적 본체인 천도(天道)와 내재적 본
체인 인도(人道=仁)를 관통시켜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2) 자기 몸을 죽여 인(仁=人道)을 이룬다. (殺身成仁)
인(仁=人道)이 무엇이기에 자기 몸을 죽여가면서 이루어야 되는 것입니까? 
인(仁)을 번역하여 설명한 책들이 없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책들이 그냥 인
(仁)으로 표기합니다. 또 개념으로 규정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마치 기독
교에서 사랑이나 천국을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나 논어(論語)에서 여러 가지로 제자들이 인(仁)을  묻습니다. 만약 개
념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면 누가 물어 오던지 어느 때에 묻던지  같은 대답
이어야 할 것이지만 그러나 공자의 대답은 묻는 사람에 따라  대답이 달라
집니다. 그것은 인(仁)이 실천을 통해서만 드러나기 때문에 묻는 사람의 인
격을 따라서 실천이 가능한 것으로 대답하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제자들
의 질문과 공자의 해답을 통해서 우리는 인(仁)을 파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仁)은 실천을 통해 드러나고 실천을 통해 실현된다
는 것입니다. 
  「공자는 뜻 있는 선비와  인인(仁人=사람다운 사람)은 삶을  구하여 인
(仁=사람다움)을 해치는 일이 없고 몸을 죽여 인(仁)을 이룬다.」(子曰,志士
仁人,無求生以害仁,有賤身成仁)고 말하였습니다. 또  공자는 「군자(君子)가 
인(仁)을 제거하면 어찌 이름을 이룰  수 있겠는가?(君子去人,惡乎成名) 」
이라고 하면서 「군자는 밥을 먹는 동안에도 인(仁)에 위배되지 않고, 경황
하고 위급해도 반드시 이것(仁)에서 하며, 엎어지고 자빠져도  반드시 이것
(仁)에서 한다.」( 君子無終食之間違仁, 造次必於是,  顚浦必於是)라고 하였
습니다.
  「자공(子貢)이 말하기를 만약 백성에게 널리 베풀고 또 능히 민중을 구
제한다면 어떻습니까? 인(仁)이라고 말할만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찌 인(仁)이겠는가? 반드시 성(聖)이다. 옛날 요(堯)  순(舜) 조차도 오히
려 어려움으로 여겼다. 무릇 인(仁)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서려고  하면 
다른 사람을 먼저 세워주고, 자기가(목표에) 도달하려고 하면  다른 사람을 
먼저 세워라. 가까운데서부터 취하여 비겨보면 인(仁)의 방법이 될 것이다. 


  3) 삶을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죽음을 알겠느냐? ( 未知生, 焉知死=先進)
이 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삶도 알지 못하는 데 죽음을 어찌 알겠느냐? 
라고 해석합니다. 저도 몇 년 전에 여기  와서 이야기할 때 그렇게 말했습
니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중국에서까지) 공자가 사망에 
대해 회피하는 태도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앞 뒤 문장을 읽어보면 
공자의 생각은 삶(生)을 가지고 죽음을 이야기하자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
급한 바와 같이 살아 있을 동안 정말  사람답게(仁) 살았다면 죽음을 자연
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4) 신종(愼終) 추원(追遠) 민덕귀후(民德歸厚) (學而篇)
신종(愼終)은 초상에 그 禮를 다하는 것입니다. 추원(追遠)은  제사(祭祀)에 
그 정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백성의 덕이 후(厚)한데로 돌아갈 것이
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공자는 맹손씨의 효(孝)에 대한  물음에 무위(無違=
부모의 뜻에 위배되지 않음)라고 대답하였다고  말했을 때 제자인 번지(樊
遲)가 무엇을 말씀하신 것입니까? 다시 물을 때 공자께서  살아 계시면 예
로 섬기고, 돌아가시면 예로  장사지내고, 예로써 제사지내는 것이다.(生事
之以禮, 死葬之以禮,祭之以禮=爲政편) 라고 하였으니 공자는 삶과 죽음, 그
리고 죽음 뒤의 제사 모두 예로서  실행하라고 말합니다. 공자는 「사람이 
사람답지 않으면  예는 무엇이며,  사람이 사람답지   않으면 악은 무엇인
가?」(人而不仁,如禮何=八佾篇)라고 하여 살아도  죽어도 죽은  뒤에도, 산 
사람도 죽을 사람도, 죽은 뒤에 자손도 오직 사람다워야(仁) 함을 강조하고 
주장했기 때문에 인문주의(Humanism)의 기초를 튼튼히 하여 동양 사상의 
뿌리를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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