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지가
龜何龜何 거북아 거북아
首其現也 머리를 내어라
若不現也 내놓지 않으면
燔灼而喫也 구워서 먹으리
형식 - 4구체 한역시가, 서사적 서정시
셩격 - 주술요, 노동요, 집단가요, 집단무가
주제 - 수로왕 강림 기원
표현 - 주술적 표현, 명령어법, 직설적 표현
의의
현전 최고의 집단 무요(舞謠)
주술성을 지닌 현전 최고의 노동요
별칭 - 영군가, 영신군가, 구지봉 영신가, 가락국가
구지가의 해석
잡귀를 쫓는 주문으로 보는 견해
영신제의 절차 중에서 가장 중추가 되는 희생 무용에서 가창된 노래라는 견해
원시인들의 강렬한 성욕을 표현한 노래로 보는 견해
거북점을 칠 때 부른 노래라는 견해
그러나 700여년 후 성덕왕 때 불려졌다는 내용 및 주제가 같은 해가와 연결시켜 볼 때
원시 주술적 집단 무요로 부는 것이 유력하다.
시가에 반영된 사상 - 무속신앙, 동물 숭배 사상(토테미즘)
같은 집단 가요 - 향두가, 강강수월래, 쾌지나칭칭나네, 모내기 노래
유사한 노래 - 해가
위협적 언사가 가지는 의미 - 소망의 강렬성
거북의 상징적 의미 - 신령스러운 존재, 오래 삶, 신 또는 임금, 새 생명
집단 무요가 오늘까지 전승되는 이유 - 소원 성취를 위한 주술성이 있기 때문에
구지가와 해가의 공통점
주술적 성격의 집단 무요
원시 종교 의식과 관계가 깊음
동물 숭배 사상의 반영
제의적 성격
감상
이 노래는 원래 우리말로 불리던 것이 한역되어 전하므로 그 원형은 알 수 없으나 영신군
가, 영신가, 가락국가 등으로 불리는 가락국 건국 신화에 나오는 삽입가요이다. 향가의 4구
체와 비슷한 형식을 가진 이 노래는 수로왕 강림의식에서 불리어진 주술적 집단 무요이다.
이 노래는 노동요로 보는 견해, 잡귀를 쫓는 주술요로 보는 견해, 원시인들의 성욕에 대한
은유적 표현으로 보는 견해, 영신제의 희생무용에서 불려진 노래 등의 견해가 있으나, 700년
후 성덕왕 때 불려졌다는 '해가'와 연결해 본다면 원시 주술적 집단 무요로 보는 것이 타당
하다.
옛 기록상의 연대로는 황조가나 도솔가보다 후대의 작품인 이 노래는 동북 아시아를 중심으
로 고대인 신앙의 바탕이 된 샤머니즘을 근간으로 하고 있어 그들 노래보다 훨씬 이전의 노
래일 것이다. 한편 이 노래는 소박, 단순한 고대인의 정신을 나타내고 있다. 거북은 신군을
상징하는 말로, 머리는 생명의 근원을 상징하는 말로 볼 수 있으나, 이 노래의 근본적인 성
격은 소망(새로운 왕의 영접)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주술적으로 불린 집단 무요라 할 수 있
다.
해설
제의적인 집단요로 현전하는 최고의 작품은 <구지가>이다. 김수로왕의 출현을 기대하는 가
락국의 구간(九干)이 인도하는 무리가 구지봉에서 부른 집단요이기도 하다.
'머리를 내어 놓는다'는 말이 바로 '수로(首露)'이다. 구워서 먹겠다는 것은 물과 관련된 거
북을 불로 위협해서 분발하도록 한 역설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해서 봄이 태어나고 나라의
시조가 태어났다. 수로왕은 아기인 채로 숭앙의 대상이 된 점에서 혁거세와 같다고 하겠으
나, 탄생의 신이함이 더욱 강조되어 있어서 주목된다. 구지가는 <굿노래>의 한 대목이지만
굿을 하지 않을 때에도, 무당이 아닌 예사 사람도 부르는 노래로 떨어져 나오지 않았나 싶
다. 상대방을 위협하면서 소원을 이루자는 노래로 널리 전승되어 와 오늘날 들을 수 있는
동요로도 이어진 것같다.(조동일, 한국문학통사,지식산업사,1988)
이와 같은 조동일님의 견해에 대한 방증을 아이들이 모래집을 만들며 부르는 노래에서 찾을
수 있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물론 이와 같은 현재의 동요에는 위협의 내용은 없다. 그러나 어떤 대상을 정해놓고 그 대
상에게 자신의 소원을 빌어서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기본 심리는 같다. 이것은 다시 구지가
와 같은 원시 종합 예술에서 분화된지 오래지 않은 문학 형태의 방증이 될 수 있다.
구지가를 '실제의 민족 이동과 건국'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다.
가락국 지역의 구간들이 지배하는 지역의 백성들을, '거북'을 신앙의 대상으로 섬기는 거북
토템의 부족이었다고 가정할 수 있다. 구지봉이라는 명칭은 거북의 봉우리이지 수로의 봉우
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거북 토템 신앙을 지니고 있는 9개 부족 연합 형태의 느슨하고
미약한 집단에 하늘에서, 실제로는 북쪽일 것이다, 강력하고도 많은 수의 이주민들이 내려온
다. 이들의 힘은 막강해서 구간들은 항쟁에 대한 꿈도 꾸지 못한 채 그들을 받아들인다. 그
들은 모두 하늘의 자손임을 자랑하는 천신족들이다. 이들은 거북 토템의 상징인 구지봉을
신성 모독한다. 그 방법이 파헤치는 것이다. 거북의 생명 상징인 구지봉 꼭대기는 거북 토템
에게 제사를 지내던 신성 장소였을 것이다. 그러한 산마루에서 자신들, 즉 천신족의 강림을
기원하라는 이야기는 모든 것을 완전히 포기하고 투항하라는 위협으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결국 구지가에서 노래 가사만 보았을 때에는 거북을 위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천신족
에 의해 자신들의 신앙의 대상인 거북에게 명령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후에 만들어진 해가는 이미 역사적 내용은 잊혀진 '단지 노래의 흔적과 설화'에
의해 만들어진 주가일 뿐이다.
황 조 가
翩翩黃鳥 펄펄 나는 꾀꼬리는
雌雄相依 암수 서로 놀건마는
念我之獨 외로운 이 내 몸은
誰其與歸 뉘와 함께 돌아갈꼬
작자 - 고구려 제2대 유리왕
4언 4구의 한역시
주제 - 사랑을 잃은 슬픔
의의
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서정시
집단가요에서 개인적 서정시로 넘어가는 단계의 가요
표현 - 자연물을 빌려 우의적으로 표현. 대조, 의태법
자연과 인간 사이의 대비 관계가 주는 시적 효과 - 꾀꼬리라는 자연물을 통해서 작자의 감
정을 우의적으로 표현하여, 세련미를 더해 주고 있다
꾀꼬리의 상징성
정답게 서로 사랑하는 자연물
실연의 아픔을 깨닫게 하는 존재
과거를 회상하게 해 주는 매개체
님에 대한 그리움을 환기시키는 존재
서정적 자아의 외로운 심정이 집약된 구절 - 뉘와 함께 돌아갈꼬
구지가와 황조가의 비교
구지가는 주술적 성격을 띤 집단적 의식요인데 대해서 황조가는 개인의 서정을 노래한 작품
이다. 일반적으로 집단의 운명과 관계되는 노래들은 서사적인 성격이 강하고 개인적인 감정
을 노래한 작품들은 서정성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학자에 따라서는 구지가는 집단가요(민요)이면서 오랜 세월 동안 민간에 전승되었고 황조가
는 중국의 詩經 작품 중 하나에서 운을 빌려 그대로 지은 복사제품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
다. 또한 구지가가 질박한 형식을 띠고 있고 황조가는 세련되게 정제된 형식을 지닌 것을
볼 때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배경설화
고구려 제 2대 유리왕이 즉위 3년에 왕비 송씨가 세상을 떠나자, 화희와 치희의 두 여자를
계비로 맞이하게 되었다. 어느 날 왕이 사냥을 나가 이레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이때 두 여
인 사이에 큰 싸움이 일어났는데, 화희가 치희에게 "너는 한나라에서 온 천한 계집의 몸으
로 어찌 이렇게 무례하게 구느냐"고 꾸짖었다. 이에 치희는 부끄럽고 분해서 제 나라로 돌
아가 버렸다. 뒤늦게 왕이 말을 달려 치희를 찾아 나섰으나 만나지 못했고, 돌아오는 길에
마침 쌍쌍이 노니는 꾀꼬리를 보고 이 노래로써 외로움을 읊었다.
황조가에 대한 여러 견해
이병기 - 원시적 서사 문학 가운데서 축수 또는 기원의 요소적인 부분이 분화 독립하
여 서정시로 형성되었는데, 황조가도 그 한 예이다.
임동권 - 고구려의 민요로서 유리왕이 창작한 것이 아니라 가창했을 따름이다.
정병욱 - 이 노래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전하는 제례의식 중에서 남녀가 배우자를
선택할 때에 불려진 사랑가의 한 토막이다.
이명선 - 유리왕의 치희에 대한 개인적인 미련에서 불려진 것이 아니라 종족 간의 상
쟁을 화해시키려다 실패한 추장의 탄식이다.
전래되던 애정의 노래가 유리왕의 이야기 속에 담겨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최철,
박태상, 고전시가강독, 한국방송통신대학 출판부, 1990)
유리왕 대의 시대적 상황과 연관시켜 살피는 견해- 유리왕 때 나라 안팎에 시련이 많
았다고 한다. 부여와의 싸움이 격화되면서 벌어진 위기는 아직 국력이 약했던 탓이라고 돌
릴 수 있으나, 내부적인 시련은 따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해명 태자가 죽게 되는 사태가 벌
어지고, 여기서 보듯이 화희와 치희의다툼도 일어났으며, 아버지와 아들, 임금과 왕비 사이
에 오해의 장벽이 생겼다. 시련의 근본적인 이유는 신화적인 질서가 무너지면서 가치관의
전반적인 혼란이 일어난 데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자아와 세계의 동질성이 흔들렸으므로 유
리왕은 사태를 바로 이해할 수 없는 혼란에 빠져, 자기 고독을 생각하며 일방적인 사랑노래
를 불렀던 것이다. 불러도 해결이 없는 노래이니, 이것이야말로 서정시가 되고 말았다.(조동
일, 한국문학통사,지식산업사,1988)
당초 국어로 된 노래였던 것이 뒤에 한시로 번역되었으리라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혹
후대의 호사가의 위작이라는 등 작자에 대한 시비가 없지 않으나 이 한 편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나온 고대 서정시로서, 개인적인 연애 감정을 꾀꼬리에 의탁하여 표출한 작품으로
왕의 위엄이나 권위가 조금도느껴지지 않으며, 오로지 여인을 그리워하는 한 사나이의 내면
세계가 자연스럼게 드러나 있을 뿐이다.(황패강, 윤원식, 한국고대가요, 1991, 새문사)
감상
이 노래의 소재는 '꾀꼬리'라는 자연물이고 주제는 사랑하던 짝을 잃은 외로움과 슬픔이다.
즉, 주체할 수 없는 실연의 아픔을 꾀꼬리라는 자연물에 의탁하여 우의적으로 표현한 것이
다. 일찍이 유리왕은 아버지를 이별하고 어머니 밑에서 자라다가 어머니곁을 떠나 남방으로
방랑하게 되었고, 끝내는 왕비까지 잃게 되어 화희와 치희 두 계비를 맞이하는 등, 애초부터
정에 굶주리고 있었다. 이러한 그가 두 계비 간의 사랑 싸움으로 치희를 잃게 되자 인생의
무상감을 느낀 것은 당연하다. 때마침 정다운 모습으로 펄펄 나는 한 쌍의 꾀꼬리는 두 계
비의 시샘과 자신의 갈등이 상징적으로 어우러지면서 그 비애감을 한층 더하게 하였으니,
이 시의 모티프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허탈에 빠진 왕은 나무 그늘에 무심히 앉아 있었다. 때 마침 나뭇가
지에는 황금빛 꾀꼬리 한 쌍이 서로 부리를 맞대고 정답게 놀고 있었다. 무슨 사랑의 이야
기나 나누는 듯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왕은 그 순간 과거의 그 즐거웠던 시절을 생각
하며 더욱 뼈저리는 고독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짤막한 한 편의 노래에서 우리는 왕으
로서의 유리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유리왕의 모습을 느낄 수 있어, 그에게서 따뜻한 정감
이 흐르는 훈훈함을 맛보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공무도하가
公無渡河 님아, 그 물을 건너지 마오
公竟渡河 기어이 건너시다가
墮河而死 물에 빠져 죽으니
當奈公何 님을 장차 어이할거나
작자 - 백수 광부의 처, 혹은 뱃사공 곽리 자고의 아내 여옥
이 노래의 지은이는 일반적으로 백수광부의 아내로 알려져 있으나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남편이 죽는 광경을 보고 아내가 공후를 들고 와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이
치에 맞지 않으므로 뱃사공인 곽리자고의 아내 여옥이 지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설화에 따라 백수광부의 아내가 지은 것으로 보는 것이 톨설이다.
시대 - 고조선 대
별칭 - 공후인
주제 - 임과 사별한 슬픔
출전 - 해동역사
의의 -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서정 시가
전설적이어서 작자나 지은 연대 등의 확실한 문헌 고증이 불가능함
서사 문학에서 서정 문학으로 옮아가는 시기의 작품
정서 - 슬픔과 한탄
이 노래처럼 물과 이별을 제재로 한 고려가요 - 서경별곡
공무도하가와 황조가의 전승방식에서의 공통점 - 4언 4구의 한역가요
서정가요로 볼 수 있는 이유 - '슬픔'의 정한 표출
4행에 드러난 시적 화자의 정서 -체념
정서적 접맥 작품 - 정읍사, 가시리, 서경별곡, 진달래꽃, 아리랑
물의 의미
차안과 피안의 의미, 즉 이별의 의미로서 떠나려는 자와 붙잡는 자, 죽은 자와 산 자로
갈라지게 되는데, 이 갈라짐의 의미에서 비극이 진행된다.
아내가 남편을 따라 죽음으로써 남편과 이루는 그런 만남, 여기서 비극이 막을 내린다.
죽음 - . 갈라짐의 물에서는 남편이 죽고, 만남의 물에서는 아내가 죽는다.
1행의 '물' - 충만한 사랑
2행의 '물' - 임의 부재
3행의 물 - 임의 죽음
견해
비극적인 별리를 노래한 것으로 '정읍사', '진달래꽃'으로 연결되는 전통적인 정한의 세
계를 노래했다.
남편을 따라 죽어야 한다는 일부종사의 정절의 여심을 노래했다.
물의 이미지로 사랑과 죽음을 맞바꿀 수 있다는 강렬한 애정 지상주의를 노래했다.
일명 <공후인>* 공후는 비파처럼 생긴 스물 석 줄로 된 현악기으로 불려지기도 한
다.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란 명칭이 옳으며, <공후인>은 악곡의 명칭이요,작자는 백수
광부(白首狂夫)의 妻이다. 제작 연대는 서기 2세기 후반으로 원래 민요이던 것이 後漢 때 한
역되었다는 설도 있고, 공후인을 음악상의 操曲인 동시에 문학상의 작품명으로 보고, 조선에
서 한문으로 정착되어 중국에 유입된 가요로 한사군 이후부터 전한말에 백수광부의 처가 짓
고, 여옥(麗玉)이 정착시킨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백수광부를 주신(酒神),여옥을 악신(樂
神)으로 이해함으로써 이 설화를 神話로 설명하여 작품을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
다. 한편 이 노래를 우리 노래가 아닌, 중국 고대인의 노래로 보고, 여기에 나오는 朝鮮이란
6세기 전까지 존재했던 중국의 직예성(直隸省)의 조선현(朝鮮懸)을 지칭한 것으로, 또 곽리
자고의 성명은 '곽마을에 사는 沙工'의 뜻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황패강, 윤원식, 한국고대
가요, 1991, 새문사)
배경설화
고조선 때 나룻터의 사공 곽리자고가 새벽에 나룻터에 나갔더니 흰 머리를 한 사람이 배도
없이 강을 건너려고 하는데 그 아내로 보이는 이가 따라가 건너지 말라고 외치며 말렸으나
그 사람은 강을 건너다가 빠져 죽고 만다. 그 아내는 울다가 공후를 튕기며 노래를 불렀다.
곽리자고는 집으로 돌아와 이 이야기를 아내인 여옥에게 하고, 여옥은 백수광부의 아내가
불렀던 곡을 다시 노래 불렀다.
백수광부의 정체
모습이나 거동이 예사롭지 않은 점을 보아 죽은 사람이 무당일 것이라고 하는 견해가 특히
주목된다. 머리를 풀어 헤치고, 술병을 들고, 미치광이 짓을 하면서 강물에 뛰어들기도 하는
것은 황홀경에 든 무당의 모습이라야 이해가 된다. 강물에 뛰어들어 죽음을 이기고 새로운
권능을 확인하는 의식이 거행되었는데, 그렇게 하는 데 실패했으니 문제이다. 서툰 무당인
탓이라고 하면 심각한사태가 가볍게 처리되고 만다. 실패에서 어떤 역사적인 의미를 찾으면
서 새로운 견해를 덧보탤 필요가 있다. 무당으로서의 권위가 추락했기 때문에 죽음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하고, 그렇게 된 이유가 고조선이 국가적인 체계를 확립하면서 나라 무당으로
서의 지위를 차지하지 못한 민간 무당은 불신되거나 배격되는 사태가벌어진 데 있었을 법하
다. 그 자리에서 공후를 탄 아내도 무당인 것 같으며, 그래서 굿노래 가락에 얹어 넋두리를
했다고 볼 수 있다.(조동일, 한국문학통사,지식산업사,1988)
감상
이 노래에서 우리는 전통적인 한국의 여인상을 발견할 수 있다. 남편의 죽음을 보고 뒤따라
죽는 아내의 모습에서 기다림과 한, 체념에 묻혀 살아온 인종의 한국 여인, 정렬의 여심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흔히 우리 민족의 정서를 한이라고 하는데, 이 한은 이별과 죽음에서 온
다. 우리 나라의 서정시에서 이별을 다룬 것이 많은 것은 우리 나라의 경우 오랜 옛날부터
한의 정서가 싹터 왔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서정시의 출발이라
할 이 노래는 한국적 정서인 한의 원류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노래의 중요한 제재인 강물이 훗날 고려 속요의 '서경별곡'이나 정지상의 '송인'
등 많은 이별가에 등장하고 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 노래에 대해서는 신화적
차원에서 해석되기도 한다. 즉 백수광부는 주신이며, 그의 아내는 악신의 성격을 지닌다는
것이다. 그래서 백수광부의 행동은 황홀경에 든 신, 또는 무당의 행동이며, 이 행동은 강물
에 뛰어들어 죽음을 이기고 새로운 권능을 확인하는 의식의 하나라고 보기도 한다.
해가
성덕왕 때의 가요이다. 순정공이 강릉 태수가 되어 부임하던 길에 해룡이 나타나 수로부인
을 바다로 납치해 간다. 이때 '백성을 모아 노래를 지어 부르고 막대로 바다를 치면 부인을
보리라'는 노인의 말대로 해서 부인이 나타나게 된다. 이때 부른 노래가 해가이다.
구지가 유형의 노래로서 해가는 주술요, 집단요이다.
구지가와 해가의 만들어진 시기는 서로 차이가 있으나 삼국유사에 채록된 시기는 같으며 다
음과 같은 점에서 맥을 같이 한다.
龜乎龜乎出水路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어라
掠人婦女罪何極 남의 부인을 빼앗은 죄 어이 크지 않으리
汝若悖逆不出獻 네 만일 어기어 듣지 않으면
入網捕掠燔之喫 그물로 잡아서 구워 먹으리
신라 성덕왕(聖德王) 때에 순정공(純貞公)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는 도중 바닷가에서 점심
을 먹고 있었는데, 곁에 바위 산봉우리가 있어 병풍과 같이 바다를 둘렀다. 높이가 천 길이
나 되고, 그 뒤에 철죽꽃이 만발하게 피어 있었다. 공의 부인인 수로가 좌우를 향해 "누구
꽃을 꺽어 올 사람이 없느냐 ?" 하였다. 모시던 사람들은 사람이 올라 갈 수 없는 곳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하였다. 마침 그 때한 늙은이가 암소를 끌고 지나가다가 부인의 말을 듣고
꽃을 꺾어, 노래 헌화가(獻花歌)와 함께 부인에게 바쳤는데, 그 늙은이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그 이틀 뒤에 임해정(臨海亭)이라는 곳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문득 바다에서
용이 나타나서 부인을 끌고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공이 허둥지둥 발을 구르나 계책이 없었
다. 또 한 노인이 있어 말하되 "옛날 말에 여러 입은 쇠도 녹인다고 하니 이제 바닷속의 물
건인들 어찌 여러 입을 두려워하지 않으랴 ? 경내의 백성을 모아서 노래를 지어 부르고 막
대기로 언덕을 치면 부인을 찾을 수 있으리라." 하였다. 공이 말대로 하였더니 용이 부인을
받들고 나와 도로 바치었다. 공이 부인에게 바닷속 일을 물으니 부인이 말하기를 "칠보(七
寶)로 꾸민 궁전에 음식이 맛이 있고 향기로우며 깨끗하여 속세의 요리가 아니다."고 하였
다. 부인의 옷에서는 세상에서 일찍이 맡아 보지 못한 특이한 향기가 픙기었다. 수로부인은
절세의 미인이라, 매양 깊은 산과 큰 못을 지날 때마다 여러 번 신물(神物)에게 붙들림을 당
하였다.
[구지가]의 내용과 비슷하다.
정 읍 사
여러 가지 견해
남편을 기다리는 노래라는 점에서 선운산과 같다. 이 노래를 부르고 여인은 망부석이 되었
다고 한다. 서정적 자아에게는 달을 광명의 상징이며 안녕의 수호자로 보는 사고방식이 전
제되어 있다. 여인네의 수난을 담고 있어 후대까지 면면히 이어지는 정서의 한 주류를 이루
게 된다. 띄어쓰기나 '全'자를 붙일 것인가 말 것인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져서 논란을 일으
키고 있다.
달밤에 춤추며 부르는 강강수월래의 전통과 연결시키고자 하는견해도 있다.(최정여, '정읍사
재고', "계명논총"3, 계명대 출판부, 1966)
신라의 풍요에서만 후렴구를 찾아볼 수 있을 뿐 그밖의 시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데, 정읍
사에서는 고려가요와 같은 수법의 후렴구가 발견되는 점과 전주의 백제 명칭은 完州, 完山
이었으며 통일신라 경덕왕 16년에 와서야 全州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게 되었다는 점을 들
어 백제 가요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임동권, 한국민요 연구, 반도출판
사,1992)
물론 이 노래는 오랜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하여 내려 왔기 때문에 백제 시대 그대로의 것
은 아니겠으나 그래도 많이 백제 노래로서의 면목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은 틀림 없으리라 생
각된다.(구자균, 한국평민문학사, 민족문화사,1982)
정읍사는 가사가 전하지 않는 <선운사> <무등산> <방등산>과 함께 "고려사 악지"에 제목
이 전하고 있으며, "악학궤범" "시용향악보"에 가사가 전하는 백제 가요이다. 그러나 고려를
거쳐 그 가사 내용이 윤색되고 정제되어 다시 조선에 와서 정착되었다는 점을 참작할 때 고
려가요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황패강.윤원식, 韓國古代歌謠,1991,새문사)
악학궤범에 실린 내용
정읍사는 우리글로 표기되어 전하는 백제의 유일한 노래로서 악곡과 여음과 절주가 노래말
에 그대로 담겨져 있다. 밖에 나간 남편이 탈없이 돌아 오기를 기원하는 약한 자(여자)의 정
성과 애원의 한이 담겨 있다. 백제 노래가 담고 있는 정한 속에는 억눌리며 살아가는 사람
들의 힘센 숨결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작품의 아름다움은 재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井邑 全州 屬縣 縣人爲行商久不至 其妻登山石以望之 思其夫夜行犯害
托泥水之汚以歌之 世傳有登岾望夫石云 {高麗史} 樂志 三國俗樂 百濟井邑條
정읍사에 대한 이설
남편이 밤길에 도둑의 해를 입지 않을까 두려워 달을 빌려 노래한 것이다.
상인의 아내가, 장에 가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소박한 정서를 표현한 것이다.
여성의 육체를 노래한 남녀 상열의 음사이다.
행상 나간 남편이 혹시 돌아오다가 화류항에 빠지지 않나 하는 애타는 심정을 노래한 것
이다.
달의 의미
남편의 안전을 지켜 주는 달, 따라서 남편의 안전을 비는 아내의 애정이 어린 달이요
'즌데(소리나는 대로 씀)''를 밝혀 주는 밝은 달
남편에 대한 믿음으로 충만한 달, 즉 아내의 남편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믿음의 이미지
가 담긴 달이다.
시적 자아와 남편을 이어주는 매체
소망과 기원을 실현시켜 주는 숭고한 대상
시적 자아와 대상 사이의 거리를 좁혀 주는 매개물
천지 신명의 상징
달의 원형적 이미지
이 노래에 나오는 달의 이미지는 원형적 이미지라 할 수 있다. 달은 찼다가는 기울고 다시
차는 속성으로 분리와 합일, 충만함과 이지러짐의 이미지를 갖는다. 그리고 어둠 속ㅇ서 빛
을 발하는 속성으로 소망과 기원의 이미지도 내포한다. 그것은 월하의 소원 성취를 기원하
던 전통적인 달이기도 하다. 더구나, 이 노래에서의 달은 단순한 달이 아니라 남편의 안전을
빌고 있는 아내의 따뜻한 애정이 서려 있는 달이다. 나아가 그들의 인생 행로의 어둠을 물
리치는 광명의 상징이기도 하다. '달'과 '즌데'는 대칭구조를 이루며, 끝 구절의 '내 가논 데
졈그랄세라'와 연결된다. 달이 지면 어둠이 차게 되고, 그렇게 되면 나와 남편 사이에는 사
랑의 절망이 오게 된다.
감상
이 노래는 현전하는 유일의 백제가요이자, 한글로 기록되어 전하는 최고의 노래이다. 고려て
조선조를 통하여 삼국 속악의 하나로 오랫동안 궁중에서 무고와 함께 연주되었으며, 특히
조선조에 들어서는 섣달 그믐날 궁중 나례 뒤에 처용무, 봉황음, 삼진작, 북전과 함께 연주
되었다.
이 노래의 해석에는 구구한 이설이 있으나, 대체로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순박한 마음이
달을 빌어 표현된 것으로 생각된다. 어둠을 밝게 비추는 달, 그 달에 의탁된 아낙네의 심정
은 행상 나간 남편의 야행 침해에 대한 염려를 '즌 데를 드데올세라'하여 진흙물에 더럽혀
짐에 비유하여 우의적으로 표현함은 함축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달의 광명
은 남편이 무사하기만을 비는 간곡한 여인의 심정을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나아가 달은 그
들의 인생 행로의 어둠을 물리치는 광명의 상징일 수도 있다.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순박한 마음이 달에 의탁되어 나타난 이 노래는 아내의 지순한 사
랑이 잘 드러난 노래이다. 안녕의 수호자격인 '달'은 우리의 소원 성취를 기원하던 전통적인
달인데, 이 노래에서는 아내의 애정이 서려 있는 함축성이 내포된 달이다. 이러한 달이기에
남편의 귀가길과 아내의 마중길, 나아가 그들의 인생행로의 어둠을 물리치는 광명의 상징이
기도 하다.
제 1연에서의 걱정은 제2연에 와서 '즌 데를 드데욜세라'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제시되었고,
3연에서의 '지고 가는 행랑을 어디에든지 놓고 위험을 피하십시오 내 임이 가는 곳에 날이
저물까 두렵습니다'라는 표현은 서정적 자아의 간절한 기원의 목소리를 드러낸다. 이러한
서정적 자아의 목소리는 평민의 삶에서 벌어지는 소박한 감정과 애환을 잘 대변해 주고 있
다고 하겠다.
前 腔, 小 葉 - 악조
실제 기록 - 조선 성종
시조형식의 모태로 보는 이유 -후렴구를 빼면 3장 6구가 되어 시조 형식과 비슷하기 때문
에
이 노래의 이야기와 비슷한 신라때 부전가요 - 치술령곡
중종 이후 궁중에서 폐기된 이유 - 남녀 상열 지사
행상인의 처를 작자로 보는 근거 - 져재
시적 자아와 남편의 동일시 의도 - 내 가논 데 졈그랄셰라.(소리나는 대로 표기함)
남편에 대한 지은이의 심정 - 염려
'책,영화,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박장애 (0) | 2022.10.17 |
---|---|
고가요 (0) | 2022.10.17 |
1등은 당신처럼 SNS 하지 않는다 (0) | 2022.10.17 |
각자의 요가 (0) | 2022.10.17 |
그렇다고 회사를 때려치울 순 없잖아 (0) | 2022.1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