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는 소리 불꽃 박동진
1916년 7월 충남 공주군 장기면에서 동진의 첫 울음소리가 퍼졌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집안이 가난했
던 동진은 자라면서 배고픔의 설움을 누구보다 더 뼈저리게 겪어야 했습니다.
여덟 살이 될 때까지 서당에 다니며 한문을 익히던 동진은 충남 대덕군 진잠면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곳에서 진잠 보통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동진이 이사 온 바로 이웃에선 날마다 가야금 뜯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가끔씩 토막소리 몇 마디도
섞여 들리곤 했습니다. 밤이 되면 더더욱 애처로운 가야금 소리와 창이 동진의 집 담을 넘어왔습니다.
'아 이 가슴 설레는 느낌은......무얼까? 이런 밤중에 누가 이런 소리를......'
어린 동진은 처음으로 들어보는 소리가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밤이면 으례껏 담너머로 귀를
바싹 기울이며 소리를 듣곤했습니다. 저절로 허벅지에 손장단이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었
지만 그 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혼자 가야금과 소리를 즐기는 할아버지였습니다.
동진은 매일 들은 소리들을 속으로 따라 부르더니, 어느샌가 모두 외어 부르게 되었습니다. 학교 가는
길이나 오는 길엔 온통 외운 소리를 흥얼거리며 오기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던 중 진잠 보통학교를 4년만에 졸업하고 대전중학교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동진아! 우리 집안 형편이야 너도 잘 알지?"
"예! 아버님!"
동진의 아버지는 이제 곧 대전으로 떠날 동진을 앉혀 놓고 말했습니다.
"동진이 너 중학교 학비 댈라면 너와 네 엄마가 얼마나 뼈빠지게 일해야 하는지 알거다. 하지만 너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가르쳐 훌륭한 인물을 만들어보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란다."
"잘 알고 있습니다.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그래 그래! 우린 동진이 너만 믿고 있을란다. 학비와 하숙비 걱정일랑 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거
라."
아버지는 힘든 노동판에서 일을 하며 받은 품삯을 모아 동진의 학비와 하숙비를 보냈습니다. 막걸리
한 잔 하고 싶어도 동진의 모습을 생각하며 꾹 참고 모은 손 때 묻은 돈들이었습니다.
당시 대전 중학은 대부분이 일본인 학생들뿐이었습니다. 1년에 우리나라 학생은 두셋 뽑으면 고작이
었습니다. 동진도 셋중의 하나로 뽑혀 입학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들어가기가 어려운 학교였습니다.
힘든 가운데 학교 공부를 한 지 4년이 되어 졸업을 몇 달 앞둔 어느날이었습니다. 동진의 운명을 바
꿔놓은 일이 생겼습니다.
대전에 이동 국악 공연단인 협률사가 커다란 천막을 치고 공연을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입장료를 받
고 소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동진을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소리를 얼마나 잘하기에 사람들이 돈을 내고 그것을 들을까? 5전씩이나 내고 말이야'
당시는 밥 한상에 8전하던 때였는데 5전의 입장료는 큰 돈이었습니다.
협률사 단원들은 공연을 알리기 위해 굿패들을 앞장세우고 울긋불긋한 깃대를 들고 마을마을을 돌았
습니다. 동진은 그 깃대를 들어주고 대신 입장표를 한 장 얻었습니다. 협률사의 천막 극장 안은 구경하
러 온 수많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이동백, 이화중선, 김창룡 등 화려한 명창들의 소리는 동진의 가슴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명창
들의 소리를 듣고 감동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람들 틈 여기저기서 '얼씨구','좋-다' 계속해서
추임새가 터져나왔습니다. 특히 감정이 예민하고 판소리에 대한 남다른 감각을 타고난 동진에게는 감동
의 정도가 대단했습니다.
동진은 온몸이 화끈 달아오르고 등에 소름이 끼쳤습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정시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명창들의 소리는 더욱 더 동진의 가슴을 울려놓았습니다. 동진은 금방이라도 명창이 되어 수많
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들었습니다. 당장이라도 소리를 따라 불러보고 싶은 마음
이었습니다. 주먹을 쥔 손바닥에 땀이 흥건해지고 입이 근질거렸습니다.
협률사의 명창들은 어린 동진의 가슴에 소리에 대한 열정의 불을 질러놓고는 다른 곳으로 떠나버렸습
니다.
그 후로 동진은 학교 공부에는 소홀히 하게되었습니다. 오직 무대에 서서 노래 부르며 사람들의 박수
갈채를 받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괴로운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괴로울 때면
언제나 눈앞에 고생하시는 부모님의 여윈 모습이 자꾸 어른거렸습니다.
'내가 이래선 안되는데... 지금 고생하시는 부모님이 계시는데. 동진아 안돼!'
'이제 얼마 후면 졸업인데...내가 왜 이러지?'
동진은 스스로에게 많은 설득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소리에 대한 불길은 쉽게 꺼지질 않았습
니다.
'소리를 배우겠노라고 말씀드리면 허락해주실까? 아니야 그건 불가능해...하지만 난 소리를 배우고 싶
은데......'
며칠동안 고민을 하던 동진은 드디어 모든 것을 희생하고서라도 판소리를 배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학교 공부가 중요한 게 아닐거야. 부모님의 뜻도 중요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잖아. 소
리를 배워야겠어. 나에게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그래 소리를 배우자. 소리를!'
동진은 결심이 서자 바로 짐을 챙겨 들고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소리를 배운다는 생각
에 가슴이 흥분되었습니다.
학교에서 공부해야 할 동진이 난데없이 돌아오자 집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아버지는 논에서 일하다
말고 곧장 집으로 뛰어들어 오셨습니다. 걷어부친 바지가랑이엔 진흙탕물이 줄줄 흘러 방바닥을 적셨습
니다. 동진의 아버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동진의 손을 잡아 앉혔습니다.
"아니 동진아! 이게 어찌된 일이냐? 학교에서 무슨 일 났냐?"
"아니예요?"
"아니면 너 어디 아픈게야?"
"아...아니예요. 아버지...사실은......"
"그래, 무슨 일인지 말해보렴?"
하지만 동진의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빗장을 걸어놓은 대문마냥 굳게 닫혀버린 입이었습니다.
"무슨 일이냐니까 어서?"
아버지의 성화에 동진은 아랫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 사이로 동진의 가느다란 목
소리가 새어나왔습니다.
"저...소...리를 배워야 겠어요. 도저히 공부도 손에 안잡히고"
"아니 뭐라고? 너 지금 소리를 배운다고 했느냐?"
"예...예..."
"아니 이눔아! 몇 달 있으면 곧 졸업인데 무슨 미친병이 들어서 하필이면 광대짓을 하려든단 말이냐
내가 고생고생해서 동진이 네 학비 대준 것이 고작 광대짓 시키려고 그런줄 아느냐? 이놈 불효자식 같
으느라구"
동진의 아버지는 손으로 방바닥을 내리치며 호통을 쳤습니다.
"아버님! 저도 아버지의 고생을 모르는바가 아닙니다. 하지만 저의 길은 어쩐지......"
"아니 이 녀석이... 그래 안다는 놈이 이 아버지의 뜻을 어길 셈이냐? 어디 한번 말해봐!"
고개를 푹 떨군 동진은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아버님! 이 불효자식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이미 저의 마음을 결정했습니다. 소리를 배우게 해주
십시오."
"예이 이눔아! 계속 그런 소릴 할려면 당장 보따리 챙겨들고 가버려! 이 애비 맘도 몰라주는 자식은
자식도 아니여 에이!"
동진의 아버지는 분에 못이긴 나머지 동진의 보따리를 마당으로 '휙' 집어 던졌습니다. 동진은 더이
상 아버지를 설득시킬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내팽겨쳐진 보따리를 주워들고 사립을 나섰습니다. 왠지모
를 설움이 북받쳐 올랐습니다. 동진은 힘껏 뛰었습니다.
"동진아... 동진아..."
뒤쫒아온 어머니의 애타는 부름에도 동진은 뒤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집을 뛰쳐나온 동진은 이를 악물고 소리를 배우기로 했습니다. 마침 이동백 명창의 고수였던 지동근
이 고향 근처인 충남 연기군에 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분을 찾아가서 나의 스승으로 모시고 소리를 배워야겠다'
동진은 겨우 지동근을 만났으나 소리 가르치기를 거절했습니다.
"나는 본래 소리에 별 재주가 없는데다 목을 무리하게 쓰다가 완전히 상했기 때문에 소리 선생은 할
수가 없다네"
"선생님이 원래 명창이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토막소리라도 좋으니 제발 좀 가르쳐 주십시오"
"어허... 난 지금 판소리를 그만두고 고수 노릇이나 하고 있는데 무슨 소리를 가르칠 수 있다고 그러
나"
"선생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전 소리를 배워야 합니다. 제발......"
"허허...이 사람이... 자네 생각이 정 그렇다니 말이네만, 청양군 정산면 백공리에 가면 손병두라는 사
람이 있다네. 바탕소리는 온전히 못하지만 토막소리 하나는 멋드러지게 하는 사람이니 배워볼만한 것이
네"
지동근은 그 자리에서 소개 편지를 써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동진은 소개 편지를 품에 꼭 지니고 곧바로 정산을 향해 먼길을 떠났습니다. 정산을 향하여 공주쪽으
로 70리쯤 걸어가다 금강나루터를 만났습니다.
'어! 나루터가 있구나...하지만 배삯이 없으니 어쩌지?'
나룻배가 강어귀에 도착하자 한 패의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습니다. 그러더니 곧장 기다렸던 사람들이
배에 올랐습니다.
'에이! 우선 배에 타고 보자'
동진은 사람들을 따라 무턱대고 배에 탔습니다. 배가 천천히 물 위를 미끄러지더니 어느새 강둑을 저
만치 두고 있었습니다.
"자자- 모두들 배삯 준비하시오"
사공이 배삯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동진은 안절부절했습니다.
"이봐 젊은이 배삯 내야지?"
"저...저는 돈이 없이 그냥 탔습니다. 그대로 건네 주시면 다음에 올 때 잊지 않고 꼭 갚아드리겠습니
다."
동진은 넙죽 허리를 굽혀 사정을 했습니다.
"뭐? 배삯도 없이 그냥 타? 배 닿거들랑 내리지 마!"
"제발...다음에 꼭 갚아드리겠습니다."
"안돼 임마!"
한 마디로 거절당한 동진은 계속해서 사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사공은 고개만 가로저을 뿐이었습니다.
이미 배가 나루를 뜬 때라 도로 내려 놓지를 못하고 분명 다시 건너올 때 되싣고 와서 내려 놓을 참인
모양이었습니다.
'그래...소리를 한토막 하자! 그러면 누가 배삯을 대신 내 줄지도 몰라!'
동진은 <심청가>중의 심황후가 그의 부친을 생각하여 울며 부르는 <추월가>를 불렀습니다. 이 <추
월가>는 그 당시 이화중선이 처음으로 레코드에 취입하여 전국 방방곡곡에 퍼져 한창 대유행이던 노래
였습니다.
"추월은 만정하여 산호주렴에 비쳐들 제, 청천의 외기러기 월하에 높이 더 뚜루룩 울음을 울고 가니
심황후 기가 막혀 기러기 불러 이르기를, 오느냐 너 기럭아! 소중랑 북해상에 편지 전턴 기러기냐? 도화
동을 가거들랑 불쌍하신 우리 부친 전에 편지 일장을 전하여 다오......"
동진의 창이 끝나자 배 안은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오고 동진의 얼굴을 보려
고 밀치고 잡아당기고 야단들이었습니다.
"거 어린 놈이 소리 썩 잘 부르는데......"
"그래 아주 잘 불러"
"여보 사공! 강나루에 배 좀 천천히 대시오"
사람들은 배를 나루에 천천히 대라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여보시오! 소리채부터 걷어야죠?"
누군가가 중절모자를 벗어 거기에 소리채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때마침 여름 과일철이라 과일을 팔러
가는 광우리 장수들은 참외도 하나 내고 복숭아도 몇 개 내었습니다.
"이봐 사공도 소리채 좀 내야지?"
"허허허... 나는 배삯을 안 받았으니 그것으로 대신하면 어떻소?"
동진은 절로 신이 났습니다.
"자 소리 하나만 더해라"
모자 든 사람이 걷은 소리채를 동진 앞에 모자째로 갇다 놓으며 말했습니다.
"잘은 못하는 소리라 죄송하지만, 여러분들이 그러시니 한 곡 더 올리겠습니다."
마을의 그 가야금을 타며 소리를 하는 노인이 하던 것을 담너머로 듣고 배운 것이라 장단도 엉망이었
지만 여전 박수와 탄성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사공까지도 노래에 취해 20분이면 건너는 나루를 한 시
간이나 거의 걸려서야 배는 겨우 저쪽 강나루에 닿았습니다.
여기저기 물어물어 손병두를 찾아간 동진은 나무도 하고 농삿일을 거들며 소리를 배웠습니다. 동진은
머슴살이를 하며 일년동안 소리 공부를 했습니다. 하지만 손병두는 판소리 다섯 마당 중 전판을 다 할
줄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나마 토막소리 몇 대목을 알고 있었지만 장단도 없이 그저 입으로
만 부르는 남사당패 비슷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진은 그저 가르쳐 주었다는 것만이 감사해서 그
를 하늘같이 우러러 따랐습니다.
동진은 <춘향가>중 춘향이 그네를 타는 대목, <사랑가> 한토막, 그리고 <심청가>중 심청이가 인당
수로 어부들한테 끌려가는 대목, 단가 몇 개 배우고 나니 더 이상 손병두에게도 배울 것이 없었습니다.
손병두의 곁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은 동진은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얘, 동진아! 너 이리 좀 오렴!"
어느 날 손병두의 아버지 손필모가 동진을 불렀습니다.
"예, 어르신 부르셨습니까?"
"오냐, 너 어서 외출 준비 하거라"
"외출이요? 무슨 일이신지......"
"나랑 잠깐 어디 다녀올 때가 있느니라. 어서 서둘러라"
갑작스런 외출에 동진은 허겁지겁 단장을 하고 따라나섰습니다.
"어르신! 어디로 가시는지요?"
"아 가보면 알게 될게야. 잔말 말고 따라오기나 해라. 흠흠..."
손필모는 청양군 청장면에 있는 미륵당이라는 양반집에 동진을 데리고 갔습니다. 커다란 대문을 들어
서자 하인들이 넙죽 절을 하였습니다. 몇 개의 문을 지나니 겨우 안채에 도착했습니다.
"어서 오시게 이 사람아! 정말 오랜만이군 그래"
"그래... 그간 잘 지냈는가?"
주인 영감은 손필모를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곧바로 술상이 차려졌습니다. 주인영감은 손필모와 술을
한잔씩 권하며 마셨습니다. 주인영감은 입맛을 다시며 수염을 주욱 쓸어내리고는 밖을 향해 소리쳤습니
다.
"얘들아! 들어오너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방문이 열리더니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예닐곱명의 여자들이 손에 악기를 하나
씩 들고 들어왔습니다.
"어서 이 어르신께 인사 올리거라"
"아니 이 처자들은 누구......"
"허허허... 내 아들 손주 며느리들일세"
"그으래?"
"자, 이분들께 음악을 한 곡 연주해 드리려무나"
가야금, 거문고, 피리, 대금, 양금, 해금을 연주하는 여자들의 모습에 동진은 정신을 빼앗겼습니다. 생
전 처음 들어보는 아름다운 풍류가락이었습니다. 연주가 끝나자 손필모는 박수를 치며 칭찬했습니다.
"매우 훌륭해...허허허...참, 그리고 이 놈이 내 자식한테 소리를 좀 배웠는데 장차 소리꾼이 될만한 재
목감인지 좀 봐주시게"
"그래? 그럼 어디 네 소리 좀 들어보자"
주인영감은 옆에 있던 북을 잡았습니다. 동진은 갑작스럴 일에 겁이 덜컥 났습니다. 바짝 긴장하고는
배운 소리 한 토막을 불렀습니다.
"허허... 네가 소리에 그런대로 소질은 있지만 선생을 제대로 못 만난것 같구나. 우리집은 명창들이 다
한번씩은 다녀갔던 집이다. 서울에 가면 정정렬이란 명창이 있는데 그 분의 춘향가는 지금 따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훌륭하지. 그러니 그분을 찾아가 배우도록 해라"
동진은 그 길로 손병두 선생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괴나리 봇짐을 메고 걸음을
재촉하여 서울로 가던 중에 유성을 거쳐가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곳에는 사당패들이 커다란 천막을 치
고 소리판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동진의 발걸음은 소리판으로 향했습니다. 구경꾼들 틈에서 소리
를 듣던 동진은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피, 저게 무슨 소리하는 거라고 야단들이람?'
사당패의 소리가 끝나자마자 동진은 구경꾼들의 틈을 헤집고 나섰습니다.
"내 소리에 뜻이 좀 있어서 한토막 해보겠으니 부디 허락해주시오"
"아니 너는 누군데 소리판의 흥을 깨려드느냐 이노옴!"
사당패의 우두머리인 듯한 사람이 동진의 앞을 막아서며 큰 소리를 쳤습니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온데 소리가 하도 귀에 거슬리기에"
"뭣이 이놈이 달린 입이라고 함부로 말을 하구먼"
"거 한번 소리하라고 시켜봅시다."
"그래요...그래..."
주위 사람들의 성화에 결국 소리 한토막을 했습니다.
"거 소리에 맛이 깃들어 있구만. 한토막 더 들어봅시다"
"한토막 또 더!"
동진은 그 자리에서 다섯 토막이나 부르게 되었습니다.
소리판이 끝나고 동진은 여관을 잡아 짐을 풀었습니다. 몹시 피곤했습니다. 일찍 잠자리에 드러누워
눈을 감았습니다.
"아까 사당패 놀이에서 소리한 학생이 누고?"
누군가가 밖에서 하는 말소리에 눈이 뜨였습니다. 바로 동진 자신을 찾는 소리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진은 방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며 대답했습니다.
"예...접니다."
"그래? 니 우리 방에 잠깐 온나"
처음 보는 중년여인이 동진을 찾아왔습니다.
"난 김천서 진양옥이라는 술집을 경영하는데, 기생들 소리 선생 하지 않을래? 돈도 많이 생기는 일인
데 말이야"
"기생들의 소리 선생이요? 글쎄요......거 좋지요"
동진은 서울로 올라가다 반대로 내려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동진은 젊은 기생들에게 소리를 가르쳤
습니다. 때로는 술집에서 직접 손님들 앞에서 소리를 해 돈을 벌기도 했습니다.
동진의 손에 상당한 돈이 들어오자 소리꾼으로서의 자신감과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동
진은 거침없이 돈을 쓰기도 하며 멋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또 신식풍조에 물든 여자들과 수많은 연애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동진은 얼굴도 잘 생긴데다가 소리 잘하는 젊은 총각이었으니 젊은 여자
들 사이에서 조용히 지내기가 어려웠던 것이었습니다.
몇 해를 방탕한 생활로 시간을 보내던 동진에게 무서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동진의 나이 스물 다섯
되던 해였습니다. 소리꾼으로서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목에 이상이 생긴 것이었습니다.
성음이 꽉 막혀 아무리 안간힘을 써서 내질러봐도 도무지 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소리는 목안
에서만 겨우 맴돌뿐이었습니다.
"편지를 써서 들...쿠울룩...커억 컥...들고 정황없이...컥...커억...컥컥..."
"이게 뭔 소리냐? 어서 당장 집어 치워라!"
"박동진은 무대에서 썩 물러나라!"
소리를 듣던 사람들은 동진의 소리가 막히자 물러나라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아- 내 인생은 이제 이것으로 끝장인가? 창피하고 부끄러운 나의 모습...죽고만 싶은 심정이다'
동진은 잃어버린 소리때문에 좌절하며 신세 한탄만 했습니다. 한약방에 찾아가 목에 좋다는 약은 다
써보았지만 다 소용이 없었습니다. 답답함과 서러움이 더해갔습니다.
동진은 무작정 길을 떠났습니다. 발길이 닿는대로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녔습니다. 소리를 못하는 동
진의 가슴엔 언제 나 설움이 가득차 있었습니다.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세끼 밥을 얻어먹기란 무척 힘들었습니다. 휑한 얼굴엔 소리에 대한 패배감과
안타까움이 어려있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허기진 배를 채우기가 힘들게 되었습니다. 전국을 헤매다니던
동진은 해방뒤에 생긴 창극단인 '햇님 국극단'에 들어갔습니다. 그 곳에서 무대 뒷바라지와 판소리 편
곡, 그리고 고수 노릇을 묵묵히 해냈습니다. 그런대로 밥을 얻어 먹을 수 있었고 누추한 잠자리나마 얻
을 수 있었습니다.
동진은 자신의 생활이 괴로웠습니다. 자신이 무대감독이나 하고 다른 명창들의 뒷바라지나 하면서 그
늘에 가려 지내는 것이 안타깝고 슬프기까지 했습니다.
'심부름꾼처럼 온갖 궂은 일을 하면서도 관객들은 이제 나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어! 나를 알아보질
못해!'
소리에 대한 열정은 아직도 동진의 가슴 속에서 불씨로 남아 있었습니다. 동진은 골방에 틀어박혀 새
벽부터 점심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고 소리 연습만 했습니다. 다른 명창들 같으면 이미 유명해져서 사람
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 명창 대접을 받을 나이였습니다. 동진은 목이 벌겋게 부어오르도록 연습을 계속
했습니다. 목이 쑤시고 아파서 그만둘까 몇 번이고 망설이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를 악물고 참았
습니다.
'내가 젊어서 너무 못된 짓을 많이 해서 목을 버려놓았어. 아- 목만 다시 찾을 수 있다면 죽어도 여
한이 없겠다'
결심을 굳게 하고 몇 년을 고생하며 소리 공부를 했습니다. 그 덕분에 드디어 막혔던 목이 풀렸습니
다. 한창 때의 소리를 그대로 되찾게 되었습니다.
'그래! 이건 하늘이 이 동진에게 내리신 기회다. 나의 열정을 다해 소리를 하리라!'
동진의 눈에선 뜨거운 눈물이 흘렀습니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습니다.
1968년 국립국악원 강당에는 박동진의 <흥부가> 완창 발표회에 구경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
습니다.
"허-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박동진이란 사람이 흥보가를 완창하겠다니 믿기질 않는구만"
"누가 아니래? 한두 토막도 아니고 몇 시간씩이나 걸리는 흥보가를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겠다니 별
일이 다 있구만"
사람들은 무명의 소리꾼이 다섯시간이나 걸리는 판소리 한 마당을 완창하겠다는 것이 믿기질 않았습
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형님주전 비나이다. 쌀이 되면 한 말만 주고, 돈이 되면 닷냥만 주고, 벼가되면
서 말만 주옵시고, 보리가 되면 닷 말만 주옵소서. 그도저도 못하거든 찬 밥이나 한 술 주오......"
동진의 소리는 예전보다 더 힘이 있고 구성지게 꺾여졌습니다. 높은 음과 낮은 음을 자유스럽게 오르
내렸습니다. 발림과 너름새가 재미있고 재치가 있어서 듣는 사람들을 사로잡았습니다. 동진은 어렵게 소
리를 되찾았던 지난 일들을 생각하며 앙갚음이라도 하듯 소리를 했습니다.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계속해서 소리를 했습니다.
다섯 시간은 언제 갔는지 모르게 후딱 지나갔습니다. 다섯 시간이나 되는 공연이 끝나자 사람들은 일
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쳐댔습니다. 사람들의 입에선 감탄의 소리가 쉴 새 없이 터져나왔습니다.
동진은 한 술 더 떠서 이듬해인 69년에 명동국립극장 무대에서 <춘향가> 한 마당을 여덟 시간에 걸
쳐 완창하여 사람들은 더욱 더 놀라게 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명창이길래 판소리를 여덟 시간씩이나 계속할 수 있을까? 정말 무서운 사람이구나"
그 후 동진은 유명인사가 되어 소리를 마음껏 했습니다. 다른 소리꾼들은 평생에 한두번 하기도 어려
운 완창발표회를 최근까지도 일 년에 한 번 이상 쉬지 않고 가졌습니다.
86년 가을, 나이 칠십이 넘은 동진은 무대 위에 물주전자를 갖다놓고 물로 목을 축여가며 또다시 판
소리 <흥보가>를 무리없이 완창해 냈습니다. 사람들은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내며 믿기지 않는 동진
의 의욕을 칭찬했습니다.
박동진은 73년에 판소리 <적벽가>의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어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국립국악
원의 단원인 동진은 창극공연의 단골출연자로서 창극부흥운동에 한몫을 단단히 했습니다. 한편으로 세
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창극과 판소리를 외국에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박동진의 나이 여든, 창극단에서 은퇴를 했지만 더 바쁘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하루도
쉬지 않고 초청공연이나 각종 국악행사 출연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침 일곱 시에 연습실
에 들러 제자들을 가르친 후 하루종일 바쁘게 뛰어다니는 동진의 정정한 모습은 꺼지지 않는 소리불꽃
으로 타오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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