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터너티브의 과거,현재 그리고 미래
ROCK! NOW & THEN
90년대 록음악계를 온통 얼터너티브가 장악하고 있다. 90년대초 펄잼과 너
바나 등의 선전에 힘입어 일약 주류의 자리에 오른 얼터너티브가 최근엔 뉴
펑크록의 이름으로 그 맥을 잇고 있다. '70년대 정통 펑크음악에서 '80년대
뉴웨이브와 포스트 펑크, '90년대 얼터너티브와 네오 펑크, 모던록에 이르기
까지 일명 `대안' 음악의 실체를 샅샅이 파헤친다.
얼터너티브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 펑크/뉴 웨이브에서 모던 록/브릿팝까지.
불타는 `대안'의 연대기
장르라는 것의 효용 가치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예컨대, 헤비 메탈이라는
단어가 단지 '중금속'을 의미하는것일 뿐이고, 우리가 알고 있는 록 음악의
한 형태로서 헤비 메탈이 아직 적당한 이름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가정한
다면, 우리는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와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
를 설명하기 위해 반나절을 소비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처럼 장르라는 인위적인 구분은 대단히 편리한 수단임에 두 말 할 나위
가 없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결코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그 개념의 시작
이, 본질적으로, 각각의 음악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에 기인한다는 사실이
다. 심포니와 소나타가 각기 다른 형식을 의미하듯이, 동편제와 서편제의 표
현방식이 다르듯이, 그리고 재즈와 블루스와 록이 각각의 영역을 가지고 있
듯이 말이다.
그러나, 보다 세밀한 배려를 요하는 부분은 그들 각각의 영역을 구분하는
경계의 모호함이라고 할 수 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장르라는 인위의 벽
은 명확하게 나뉘어진 것이 아니라 각기 서로 다른 영역들과 이리저리 복
잡하게 얽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것이다. 아주 멀리도 말고, '90년대 초까
지만 거슬러 올라가 보자. 너바나(Nirvana)가 처음 등장했을 때, 국내에서는
그들의 음악을 과연 어떤 명칭으로 불러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지독한 혼선
을빚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본고장에서 설정된 표현은 우리에
게도 그대로 유입되어, 그들에게도-그들이 원했건 그렇지 않건 간에-장르라
는 카테고리가설정되었고 음악 팬들은 당연하다는듯이 그 이름에 적응해 갔
다.
문제의 시작은 여기서 부터이다. '대안없는' 얼터너티브의 홍수. 너바나와
펄 잼(Pearl Jam)의 오버그라운드 침공 이후 쏟아져 나온 '90년대의 수많은
록 밴드와 그들의 음악은 이 땅에 소개되는 시점부터 예외없이 '얼터너티브
'라는 꼬리표를 달게 되었고, 그 기원과 사적(史的) 배경에 대한 점검도 없
이, 일말의 여과 장치도 거치지 않은 채 어느 틈엔가 이 얼터너티브라는 표
현은 장르의 치외법권적 존재로 자리를 잡고 앉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우리 것이 아닌 대상에 대한 개념적 혼란이었다. 과연 누구의
책임이라고 할 것인가 ? 혹자는 평론가들의 무분별한 용어 남발 때문이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펑크/뉴웨이브 무브먼트가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없었던, 규제와 심의로 얼룩진 우리 사회의 폐쇄적 구조가 가져다
준 자연스러운 귀결에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오류의 책임 소재를 규명하는 작
업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명확한 개념정립이 필요하다는 인식이라고 할 것이
다. 물론,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무슨...'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까지 그 당
위성을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록이 단지 그 겉모양으
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기성 세대의 그 번드르르한 고급 문화에
반하는 카운터 컬처이며, 인종/민족을 초월한 연대감으로 구축된 젊은이들의
서브컬처의 핵심 수단이라는 사실을 주지한다면, 그동안 사운드 자체의 심
미적인 탐색에만 한정되어 온 우리 시각의 편향성은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때문에, 나무를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오류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당위성
은 굳이 강요하지 않아도 그 스스로당위적인 것이다. 지금부터 그 이유에
대하여 알아 보도록 하자.
< 장르 개념의 이해 >
우선, 다시 한 번 장르라는 명칭의 테제로 화두를 돌려보자. 거의 모든 경
우에 있어서 그것의 생성과 소멸은 유사한 경로를 통하여 진행된다. 지극히
기계적으로 단순화시킨다면 그것은, 1)강한 파급력을 지닌 오리지널의 등장
(명칭의 최초 사용)을 거쳐 2)유사한 성격을 지닌 기존의 존재들이 동류로
분류되며 3)(넓게든 적게든) 특정한 신(Scene)이 형성되고 4)그 음악에서 드
러나는 흔적을 통하여 과거로 소급적용됨으로써 유기적인 영향 관계의 모델
이 설정된 후에, 비로소 일개의 '장르'라 칭할 수 있는 외형적 요소를 갖추
게 되는 과정으로 요약된다. 그리고 이 과정은, 일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미세한 시차를 두고 정리되게 마련이다. 결국 장르는,
다시 한 번 살펴보면, 그 명칭/개념에 있어서는 새로운 것일지언정 음악사적
인 면에서는 필연적인 전후 관계를 갖게 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장르로서의)얼터너티브 역시 그와 다를 것이 없다. 그것은 '80년대 중반,
헤비 메탈이 록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을 때, 대학가를 중심으로 인기
를 얻었던 새로운 경향의-주류의 움직임에 반한다는 의미에서 그 실상은 다
분히 복고적인-사운드를 지칭하면서 부터 유래되었고, 너바나를 위시한 일
련의시애틀 출신 밴드들의 등장에 힘입어 '90년대 들어서 확고히 정착되었
으며, 다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소급 적용됨으로서, 장르로서의 개념과 카
테고리의 윤곽을 드러내었던 것이다.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와 닐 영(Neil Young)이, 그리고
섹스 피스톨스(Sex Pistols)가 새로운 세대에 의하여 새롭게 읽혀지기 시작
했고, 그것의 파급력은-과거 펑크가 그러했듯이-질풍과도 같은 속도로 대중
음악계 전반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 다음 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폭 넓은 파급력과 놀라운 전파 속도에 힘입어 얼터너티브의
의미는 장르 개념의 한계를 벗어나, 절대적인 문화 현상으로서 시대를 관통
하는 대중 음악의 본질적 규범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이는 얼터너티
브에 관한 모든 담론들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내용이라
고 할 수 있는 것으로서, 그것의 입지가 대중들 혹은 사회와 관계를 맺는
방식에 입각하여 새롭게 파악되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보다 구체적으로 얼터너티브란?>
록(이것은 형식이 아닌 관념으로서의 포괄적 명제이다)의 본질적인 정신성
이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의 발현인 동시에 기성 세대와 사회의
편견/부조리에 대한 반발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
회에 있어서 상품으로서의 음악은 대량 생산과 소비의 과정을 거침으로써
그 존재 가치를 획득하게 된다. 이와 같은 상호 모순적인 두 전제 사이에서
록 음악은 영원히 풀리지 않을 딜레마를 타고 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
니다. 바로 여기서 얼터너티브라는 개념은 탄생했다.
얼터너티브는 그와 같은 아이러니의 극간을 최소화하려는 양심 선언적 시
도라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여기에 보다 적극적인 해석을
가하자면, 얼터너티브란 의도적으로-그것의 자의적 혹은 타의적 가능성 여
부를 떠나서-오버그라운드의 경계아래 쪽에 존재하려고 하는 밴드와 그들의
음악을 의미하는, 메인스트림에 대한 인디(Indie, Independent) 록계의-말 그
대로의-'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상업주의에 대하여 록 본래의 정신을 강조
하고, 길들여지지 않은 혁신성을 지향하는 진취적인 자세가 바로 그 본질인
것이다. 이는 얼터너티브가 인디 록의 습성을 대변한다는 말과도 같다. 즉,
대규모 세일즈를 통한 상업적 성공 보다는,소수의 그러나 열렬한 팬들로부
터 지지를 받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음악을 통한 실험적 자세를 견지
하려는 '기본 노선'의 설정 자체가 메인스트림의 흐름과는 명백한 차이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와 같은 이분법적 구분은 대단히 모호하고 추상적이며, 언제 어디
서 터져 나올지 모를 불발탄의 뇌관처럼 불안하기만 한 반론의 여지를 남기
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메인스트림에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다고 해서
얼터너티브가 아니라고할 수 없는 일이며, 그 반대로 소수대중들에게 적극
적 지지를 받는다고 해서 그것이 얼터너티브라고 단정할수는 없는 것이다.
얼터너티브 록 전문 잡지 스핀(Spin)의 수석 편집자인 에릭 와이즈바드(Eric
Weisbard)는 <얼터너티브 레코드 가이드(Alternative Record Guide)>라는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토리 에이모스(Tori Amos)와, 공히그녀에게 영향을 준 케이트 부시(Kate
Bush)와 조니 미첼(Joni Mitchell) 사이에 명확한 선을 긋는다는 것은 지극
히 어려운 일이다. 또, 케이트 부시는얼터너티브로 분류하면서 조니 미첼은
그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것 역시 난해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떻게 보면, 이는 얼터너티브의 경계 설정이 그 근본부터 흔들릴 수 있음
을 은유하는 완곡한 경고일 수도 있다. 더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
것의 개념이 장르적 정의를 넘어서'사회와 대중들에게 대하여 대중 음악이
수행하는 규범'으로 확장되었고, 그 전이 속도가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급속
했으며, 관련 영역이 엄청나게 비대해지는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 현재 진
행의 상황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말이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이
고있다.
"얼터너티브가 명백한 경계를 가지고있지 못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그에 대한 우리의 분류가 항상 옳지만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
리는 어딘가에든 그 경계선을 그어야만 했다"
-결국, 예술은 수학이 아니라는 말이다. 록 음악을 화학 물질의 성분 배열표
를 써넣듯 산술적이고 도식적인 방법으로 분해할 수는 없는 일이고, 다른
모든 예술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개념의 적용은 지극히 주관적인 영역이라
는 것이다.
주지했다시피, 장르라는 편의의 외벽에는 항상 돌출적인 변수가 따르게 마
련이다. 따라서, 그것의 영역이 포괄적인 개념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그 개
개 분자들에 내재한 변수들에 의한마찰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이
다.(비록 명백한 것은 아니나마) 그 개괄적인 테두리는 다수의 견해에 의해
객관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으니 결국, 얼터너티브의 최종적인 수용 여부는
각자의 주관에 달려 있다. 이것이 얼터너티브라는 표현의 어의(語義) 만큼이
나 포괄적이고 모호한결말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국내 음악 팬들의
일반적 논의가 아직도 그 객관적 조건들의 이해에 못미치고 있다는 것을 감
안하면,이 글의 목적은 그 단편적 양상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족할 것이라
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얼터너티브의 개념을 추상적이고 단편적인 몇 마디 말로 정의 내리기 보다
는 그 어의의 본질을 록의 역사 속에서 찾고, 그 기원과 시대의 변화에 따
른 흐름으로 이루어진 '개괄적 연대기'를 소개함으로써, 그것을 규정하는 인
자들의 면면과 그것의 영향 관계 및확립 과정을 살피려 한다.
따라서, 본문의 내용은 가급적 다수의 전문가들에 의하여 검증을 받은 대
상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며, 국내팬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범주의 록
보다는 넓은 테두리를 유지할 것이다(그러나, 그와 관계하여 여기서 언급하
게 될 밴드/뮤지션들의 앨범은 국내에서 구입하기가 용이치 않은 것이 다수
이고, 그것의 광범위함과 복잡성은 독자들의 혼선을 빚을 가능성 마저도내
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그와 같은 점을 고려하여 여기서 다루
는 내용은 의미 전달이 가능한 최소의 범위로 축약시킬 것임을 주지해 두기
바란다. 지명도가 높은 밴드 임에도 불구하고 언급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는 점도 함께 전제해 둔다).
<얼터너티브적 단서들의 발현>
얼터너티브라는 개념의 최초의 '구체적' 발현이며 현재까지도 가장 확실한
개념 정립자로서 가장 일반적으로 얘기되어지는 것은 벨벳 언더그라운드라
고 할 수 있다. '64년 뉴욕에서 루 리드(Lou Reed)와 존 케일(John Cale)이
라는 혁명적 실험주의자들에 의하여 결성된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철저히 비
타협적이고 비상업적인 사운드를 통하여 뉴욕 언더그라운드의 문화를 결집
시키는 동시에 인디 록 카운터컬처를 확립시켰는데, 플라워 무브먼트로 대
표되는 히피 세대들에 대한 혹독한 비판이 그 저변에깔려 있음은 주목할만
하다.
그들은 현실 도피적인 이상향을 꿈꾸는 반전/평화주의자들의 외침을 공허
한 것으로 간주하고, 록이 실제적인 삶 속으로 들어설 것을 강조하였다. 다
다이스트(Dadaist)들의 니힐리즘과무정형성, 비트 제너레이션(The Beat
Generation) 시인들의 사회에 대한 비판적/공격적 영향을 그대로 흡수하여,
뉴욕이라는 거대 도시의 거리 생활(Street Life)과 매춘, 마약 중독, 새도매
저키즘(Sadomasochism) 등으로 그촉수를 뻗어냈던 루 리드의 시각은 기성
사회의 보수성에 직접적으로 반발하는 얼터너티브 정신의 본질을 규명하였
던 것이다.
사운드적인 면에 있어서도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펑크를 중심으로 하는 비
대중적 록 음악 형식에 생명을 부여하는 산파격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편집
적 성향의 음 실험자였던 존 케일의 끊임없이 감겨드는 일렉트릭 비올라 선
율은 루 리드와 스털링 모리슨(Sterling Morrison)의 피드백으로 가득 찬 기
타 사운드와 어울림으로써 감상성과 상업주의를 원천에 배격하고 전통적인
록의 형식미에 반하는 아방가르드(Avant-Garde)의 파격미를 보여주었으며,
폐깡통을 드럼 연주에 도입하기도 했던 모린 터커(Moureen Tucker)의 실
험은 다다이즘의 이상과맞닿아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등장은록 음악의 전형성을 일거에 타파하는
혁명이었다. 그들이 대다수의 젊은이들로부터 즉각적인 호응을 얻었던 것은
아니지만, 모순적 시대에 대한 반사회적 에너지와 나르시시즘적인 태만에
빠진 록 음악계에 대한 비판을 기치로 한 그들의 존재는, 나로드니키
(Narodniki:바쿠닌 등을 중심으로 봉기했던 농민 연합)적 무정부주의에 조차
도 몸서리쳤던 기성 세대의 눈에는 그 형식 자체로 불량스러우며 지극히 위
험한 실체로 비춰지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그들의 실험이 성
공적이었음을 반증하는 패러독스이기도 했다.
MC5(모터 시티 파이브 Motor CityFive)와 스투지스(The Stooges)의 등
장은 펑크 무브먼트를 촉발시킨 보다직접적인 원동력이었다. 디트로이트 출
신의 MC5는 헤비 메탈을 연상케 하는 파워와 거라지 밴드(Garage Band)
특유의 정제되지 않은거친 감각을 혼합함으로써, 벨벳 언더그라운드로부터
시작된 분노의 미학을가일층 공격적이고 소란스러운 방식으로 표출하였는
데, '69년 발표된 그들의 데뷔 앨범 Kick out the jams는 그 외설스러운 가
사 때문에 방송이 거부되기도 했다.
반면에, 이기 팝(Iggy Pop)이라는 전대미문의 기인(奇人)을 중심으로 결성
된 밴드 스투지스는 사회에 대한 분노와 광기를 가학적인 방식으로 표현했
다. 특히, 마이크로 자신의 머리를 때리거나 깨진 유리 조각으로 자해를 하
는등 라이브 스테이지에서 이기 팝이 보여준 충격적인 이미지는 논란의 대
상이었는데,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탈퇴한 존 케일이 프로듀스를 담당한 그
들의 데뷔 앨범 The stooges('69)는 펑크 록의 프로토타이프(Prototype)를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요약하자면, MC5와 이기 팝 앤 더 스투지스는 글램과 쇼크 록의 이미지,
헤비 메탈적 양식과 거라지 밴드의 저돌성을 한데 지니고 있었으며, 그 영
향력은 초기 뉴욕 펑크에서부터 '80년대의 스래쉬 메탈에까지 깊이 개입하
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영국 쪽에서의 움직임은 보다 우회적인 방법을 통하여 진행
되고 있었다. 비틀즈(Beatles)라는 거함이 범장르적인 사운드를 탑재하고 리
버풀을 출발하여 전세계에 침공(TheBritish Invasion)을 가하기 시작할 즈
음, 런던 록계의 분위기는 모드(Mod)와 글램(Glam)으로 이어지는 탈범(脫
範)의 이미지로 술렁거리고 있었다.
브리티시 블루스 리바이벌 붐을 주도했던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의-
기성에 반하는-불량스러운 이미지의바탕 위에서, 킹크스(The Kinks)와 후
(The Who)와 스몰 페이시스(SmalFaces)로 대표되는 모드 계열과 데이빗
보위(David Bowie), 마크 볼란(Marc Bolan;티 렉스T-Rex의 리더)를 중심
으로 하는 글램 록은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같은 직설적인 비판 보다는, 간
접적이고 역설적인 방식으로 중/하층 계급의 대중들에게 접근해 갔다. 즉,
번지르르한 의상과 헤어 스타일로 블루 컬러 계층의 욕구불만을 해소하려했
던 모드, 앤드로지너스(Androgynous)/바이 섹슈얼리티의 이미지를 차용함으
로서 중산층 이상 유한 계급의 예절바른 도덕 사회를 비아냥거린 글램은,
공히 자신의 무능력함과 사회에 대한 불만을 토로할 길 없는 대중들의 대
리 배설을 담당함으로써 록의 반항적 심성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물론, 당시 모드와 글램 록의 이미지가 사회적 역할 보다는 보여주기를 지
향하는 쇼적인 측면에 조금 더 가깝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현
대 사회에 대한 비판과 냉소적인 풍자와 광기에의 접근 등 비타협적 자세
와, 단순 반복적인 리프 라인의 격렬함으로 이루어진 형식성을 병행 함으로
써, 또 비트 제네레이션으로부터 받은 영향력을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위시
한 초창기 뉴욕 펑크 로커들에게 되돌려 줌으로써, 그들이 이후의 펑크 록/
뉴 웨이브 무브먼트와 그로부터 파생된 일련의 움직임들에 직간접적인 영향
력을 행사하였다는 것역시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또 한 가지, 이 시기에 등장하여 현재까지도 간과할 수 없는 영향력을 남
기고 있는 것은 레게와 스카이다. 자메이카의 토속성을 바탕으로 하는 이들
음악은 그 사운드적 특성의 독특함은 둘째로 하더라도, 그것이 주시하고 있
는 메시지-현실로부터의 혁명,부의 형평성 문제, 인종 차별에 대한 문제 제
기 등에서 그 의의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레게의 아버지로 불리는 밥 말리(BobMarley)와 그의 밴드인 웨일러스
(Wailers), 그리고 스카를 영국 음악계에 합류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
던 스캐털라이츠(Skatalites)와 메이탈스(Maytals)의 영향력은 이후 펑크/ 뉴
웨이브 시대의 클래쉬(Clash)와 폴리스(Police)로 이어졌고, 포스트 펑크 시
의 스카/레게 리바이벌 붐을거쳐, 마이티 마이티 보스톤스(Mighty Mighty
Bosstones)를 비롯한 '90년대의 스카 코어 계열 밴드들에게로 이어지고 있
다.
한편, 히피들의 사이키델릭 문화로 '60년대를 마감하고 있던 미국 서해안
지방은 포크 록의 정형화된 사운드의 룰을 파기하고 강렬한 기타 사운드로
혁명을 주도한 닐 영(Neil Young)의 등장을 맞이하였는데, 그의 독특한 사
운드는 '90년대 시애틀 그런지 사운드의 모범적인 텍스트로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으며, 개인과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력은-커트 코베인(Kurt Cobain)
의 유서를 통하여-아직까지도 빛을 발하고 있음을 안타깝게 보여주었다.
<펑크 록의 등장>
벨벳 언더그라운드, 이기 팝과 스투지스, 그리고 MC5의 등장은 록계의 흐
름에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한다. 상업화된 록 음악의 단정한 양태에 반발한
새로운 세력의 등장이 그들로인해 촉발된 것이다. 당초 뉴욕 언더그라운드
를 중심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한 그러한 움직임은 곧 이어 영국 밴드들에
의하여 흡수되었고, 그것은'펑크'라는 명칭으로 일반화되었으며, 록 역사상
가장 격렬한 언어들을 창조해 내었다.
그 어떤 음악도 그처럼 짧은 시간 동안 그토록 많은 것을 이루어 낸 적은
없었으며, 그 파급의 충격은 '90년대에 다시 부활하고 있다.
-뉴욕 펑크의 태동-
'70년대 초반, 뉴욕의 CBGB클럽(원래 명칭은 CBGB & OMFUG로서
'Country, Blue Grass, Blues & OtherMusic For Urban Gourmets'의 약어
임)은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지향하는 뮤지션과 팬들의 아지트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뉴욕 돌스(New York Dolls)를 비롯하여 텔레비젼(Television),
패티 스미스(Patti Smith),라몬스(TheRamones) 등이 그 당시 CBGB 클럽
무대의 주요 등장인물들이었고, 이는 초창기 뉴욕 펑크의 계보를 가장 잘요
약하고 있다. 뉴욕 돌스는 짙은 화장과 하이 힐을 신는 등 글램의 이미지를
차용하였고,뉴욕의 거리 생활 등을 노래하는 벨벳언더그라운드와 유사한 정
서를 가지고 있었으며, MC5와 스투지스로부터는 헤비 디스토션과 역동적인
리듬을 배웠고, 브리티시 블루스 리바이벌의 영향력까지도 흡수한매우 독
특한 성격으로 뉴욕 펑크의 외형적 위상을 정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
였다. 그러나 뉴욕 돌스의 '덜 심각한' 사회적 자세는 결국, 상업적 성공 실
패와 맞물려 그들을 해산으로 내몰았는데, 이는 본격적인 뉴욕 펑크 시대의
서막과 끝닿아 있다.
톰 벌레인(Tom Verlaine)과 리처드헬(Richard Hell)을 주축으로 결성된
텔레비전과 훗날 '펑크의 여왕'으로불리게 되는 여걸 패티 스미스의 등장은
사회에 대한 록의 시각을 분명히주지함으로써, 단순하고 빠르고 거친 3분
미만의 악곡 패턴을 완성시킨 라몬스-그들 네 명의 멤버 중 프로 뮤지션 경
력이 있던 인물은 드러머 한 사람 뿐이었는데, 이는 곧 'D.I.Y.' 정신의 충실
한 발현이다-와 함께, 펑크록의 전형성을 지탱하는 두 개의 거대한 축을
완성시키게 된다. 이들 뉴욕 펑크 로커들의 영향력은 곧바로 영국으로 유입
되어 저 유명한-혹자는 펑크의 모든 것이라고 알고 있는-섹스 피스톨스와
클래쉬의 등장을잉태하게 된다. 특히, 리처드 헬-그는 후에 보이도이즈
Voidoids를 결성한다-이 처음 선을보인 삐죽히 일어 선 헤어 스타일과찢
어진 의상, 라몬스의 사운드가 확립한 모노 톤의 보컬/거칠 것 없이 질주하
는 연주 패턴은 엄청난 파급 효과를 거두어 들이게 되는 것이다.
-런던(브리티쉬) 펑크의 충격-
섹스 피스톨스의 등장은 말 그대로 충격이었으며 경악이었다. 섹스 피스톨
스는 비전없는 미래를 한탄하던 젊은이들의 (거칠지만) 유능한 대변인이었
으며, 그들로 인해 야기된 폭동을 해결해야만 했던 영국 정부에게는 악몽으
로 받아 들여졌다.
런던에서 'Sex'라는 이름의, 기성 패션에 반하는 기괴한 옷들만을 취급하
는, 부티크를 경영하고 있던 말콤 맥라렌(Malcolm McLaren)의 주도로 결성
된 섹스 피스톨스는, 뉴욕 돌스와 라몬스의 이미지를 차용하기는 했지만, 그
들보다 훨씬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었고, 또 그만큼 과격하였다(슬램 댄스
의 원형 격인 포고(Pogo)는 이 당시에 이미 보편화되었다).
과도한 실업률과 천정부지로 솟구치는 인플레이션 속에서 그들은 반정부,
반사회적 분노감을 키워 왔던 것이다. 섹스 피스톨스가 불러 일으킨 사회적
반향에 고무된 말콤 맥라렌은 또 다른 펑크 밴드인 댐드(The Damned)의
매니저로 나선다. 싱글 New rose와 앨범 Damned, damned, damned를 제
작한 영국 최초의 펑크 밴드였던 댐드는 보다 과격한 양상의 스테이지 액션
을 도입하였고, 섹스 피스톨스와 함께 캘리포니아 하드 코어 펑크의 태동
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클래쉬의 위상은 섹스 피스톨스나 댐드와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그들 역
시 높은 실업율과 인종 차별 문제, 경찰력의 무자비한 남용 등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
달하기 위해 극단적인 언동과 과격한 공연을 자제하였고, '펑크는 언더그라
운드에 머물러야 한다'는 팬들의 질시에도 불구하고 메이저 레코드사와 계
약을 체결함으로써, 단명한 다른 밴드들과는 달리, 밴드활동을 꾸준히 그리
고 성공적으로 지속시킬 수 있었다. 또, 그들은 레게(Reggae) 사운드를 자신
들의 음악에 도입함으로써 펑크록의 영역을 확장시키는데 일조하였다.
뉴욕에 CBGB가 있었다면 영국에는 100 Club이 있었다. '76년과 '77년을
경유하면서 영국 내에서 펑크 록의 저변은 급속도로 확산되었고, 그 성격도
다변화되었다. 폴 웰러(Paul Weller)가 이끌었던 잼(The Jam)은 그 복장과
음악에서 모드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으며, 버즈콕스(Buzzcocks)와
갱 오브 포(Gang Of Four)와 와이어(Wire)는 뉴욕 펑크의 영향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엑스레이 스펙스(X-Ray Spex), 슬리츠(The
Slits), 레인코츠(The Raincoats) 등은 여성에 의하여 주도되었던 밴드들로
서, '90년대 들어서 급격히 부각되기 시작한 록계의 'Riot Grrr'(Grrr은 Girl
을 의미한다)들의 원조적 아이콘이었다. 이밖에도 빌리 아이돌(Billy Idol)이
재적했던 제너레이션 엑스(Generation X)와 첼시(Chelsea)등이 등장하면서
전 영국은 펑크 록의 급류에 휩쓸려 갔다.
-캘리포니아에도 펑크가...-
섹스 피스톨스와 댐드가 미국 서해안 지역을 돌며 행했던 순회 공연은 그
곳의 젊은이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캘리포니아와 L.A.의 거라
지 밴드들은 그들이 보여준 영국 펑크의 특성을 고스란히 물려받게 되고,
보다 더 빠르고 격렬한 형태의 하드 코어 사운드를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그 양자 사이에는 한 가지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었다. '일년 내내
따뜻한 태양이 비추는 캘리포니아에서 펑크가 등장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을까'라고 반문했던 어느 평론가의 지적은 캘리포니아 펑크의 독특한
성격을 설명하는 좋은 단서이다. 보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영국의 펑크 밴
드들이 극심한 실업률과 침체에 빠진 경제 사정을 성토하고 있을 때, 캘리
포니아와 L.A.의 젊은이들은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생활 수준도 제법 여유
로운 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물론 캘리포니아의 펑크 밴드들도 할 말은 있었다. 그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토로하는 대신에, 가난하고 소외된 나라들과 인권 부재의 독재국
가들에 대한 미국 정부의 소극적이고 형식적인 정책을 비난하는 등, 히피
시대를 겪었던 기성 세대들의 낡은 관념을 비판함으로써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보하였던 것이다. 젤로 비아프라(Jello Biafra)가 이끌었던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데드 케네디스 (The Dead Kennedys)는 그 이름에서부터 정치적인
냄새를 짙게 풍기고 있다.
그들은 섹스 피스톨스의 Holiday in the sun에서 영감을 받아 Holiday in
cambodia를 발표하였고, 중성자 폭탄개발에는 거금을 지불하면서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지원에는 인색한 정부의 정책을 꼬집은 Kill the poor 등을
공개하면서 캘리포니아 펑크 록계의 최 선두에 섰다.
L.A.에서는 그렉 긴(Greg Ginn)과 헨리 롤린스(Henry Rollins)를 배출한
블랙 플래그(Black Flag, 검은 깃발은 무정부주의의 심볼이다), 존 도(John
Doe)와 엑센 체르벤카(Exene Cervenka)를 중심으로 구성된 엑스(X, 물론
일본의 X와는 전혀 다른 밴드)를 비롯하여, 점스(The Germs)와 서클 저크
스(Circle Jerks) 등이 활동하고 있었다.
이들 역시 속도감 넘치는 리듬 패턴과 모노 톤의 샤우트 창법 등 영국 펑
크의 특성을 보다 헤비한 버전으로 발전시킨 하드코어 펑크 사운드를 구사
하였는데,특히 블랙 플래그의 공연은 그 과도한 공격성으로 인해 종종 폭
동에 가까운 반응을 불러 일으킴으로써 대다수의 클럽들로부터 공연을 거절
당하기도 했다.
<뉴 웨이브의 파급>
당초 뉴욕 언더그라운드를 중심으로 발화된 '새로운 경향'의 음악들은 뉴
웨이브'라는 이름으로 통칭되었었다. 그러나, 불만 투성이에다 막무가내인
일단의 영국 젊은이들의 공로(?)로 '펑크'라는 표현이 일반화되면서, 뉴 웨
이브는 어떤 '경향'을 나타냈던 당초의 의미가 아닌 펑크 록의 대안적 장르
로 그 의미가 축소된다. 즉, 본질적인 모티브에서는 펑크 록과의 연대 관계
를 공유하고 있으나, 그것의 과격한 이미지와 단조로운 패턴, 반대중적 특성
을 극복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장르로서의 뉴 웨이브의 등장을 촉발시킨 배
경인 것이다. 펑크 록과 뉴 웨이브 사이의 차이점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단서들도 바로 거기서 비롯되는 것이다.
-미국의 뉴 웨이브-
디보(Devo)의 등장은 여러가지 면에서 새로웠다. 그들은 빈곤과 무질서로
점철된 아노미 상태의 미래가 아니라, 컴퓨터와 기계 문명에 의해 야기될
지 모르는 불안한 미래를 예감하고 있었다. 사운드적인 면에서도 그들은 펑
크와는 구별되는 특성을 지향하고 있었는데, 전자 악기의 전면 배치, 다양한
형태의 비트 사용, 감정을 배제한 경직된 보컬 파트 등은 뉴 웨이브의 프로
토 타아프를 보여준 것이다.
데이빗 번(David Byrne)이 리드했던 토킹 헤즈(Talking Heads)는 아프
리칸 리듬과 소울 음악의 감성등을 혼합하는 시도를 보여준 이 시기의 가장
대표적 밴드 중 하나이며, 데보라 해리(Deborah Harry)를 전면에 내세운 블
론디 (Blondie)와 릭 오케이섹(Ric Ocasek)이 주도하던 카스(Cars) 등도 미
국의 뉴 웨이브를 풍성하게 했던 장본인들이다.
-영국의 뉴 웨이브-
영국에서의 뉴 웨이브는, 펑크와는 비교가 안된다고 할 지언정, 여전히 기
타의 비중이 신서사이저의 그것을 앞서고 있었다는 점에서 미국에서의 움직
임과는 다르다(물론, 이것은 시기상의 구분에 의한 경직된 분류 방법일 뿐
이고, 포스트 펑크 시대로 접어 들어서는 영국 쪽에서 신서사이저를 더욱
폭 넓게 사용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영국 뉴 웨이브의 그러한 특징은 조
그마한 술집들을 중심으로 록 사운드의 본질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이른바
퍼브 록(Pub Rock)의 전통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인물인 엘비스 코스텔로(Elvis Costello)와 그의 밴드
인 어트랙션스(Attractions)는 영국뉴 웨이브의 기린아로 평가 받고 있으며,
여걸 크리시 하인드(Chrissie Hynde)가 이끄는 기타 팝 밴드 프리텐더스
(Pretenders), 밥 겔도프(Bob Geldof)의 붐 타운 래츠(Boom Town Rats) 등
도 빼놓을 수 없는 밴드들이다.
대중적으로 거대한 성공을 거둔 거의 유일한 뉴 웨이브 밴드인 폴리스
(Police)와 드럼 머신의 이름을 밴드이름에 갖다 붙인 에코 앤 더 버니맨
(Echo And The Bunnyman), '앤트 뮤직'이라는 독자적 스타일을 인정받
은 아담 앤 디 앤츠(Adam And The Ants)등도 영국의 뉴 웨이브를 구축
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던 밴드들이다.
<포스트 펑크의 시대>
'80년대로 넘어들어 오면서 펑크와 뉴 웨이브의 감성은 다양한 형식과 내
용으로 그 저변이 확대되었는데, 이시기를 포스트 펑크의 시대로 부르는 것
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뉴 웨이브의 어의에 충실한 해석 즉, 과거의
것들을 '낡은 것'으로 치부하고 등장했던 배경을 따르자면 이 시기의 음악
들은 모던 록이라는 커다란 카테고리 안에 존재하게 되면서 말 그대로 새롭
고 현대적인 것의 당위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는-뉴 로맨틱스의 경우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듯-형식론의
극치를 추구하는 자기 모순으로 파행하는 함정에 빠져들게 됨으로써, 스스
로의 무덤을 파는 아이러니한 최후를 맞게 된다. 이후 록계의 패권은 헤비
메탈에의해 주도되고, 새로운 '대안'은 언더그라운드의 일각을 통하여 다시
모색되기 시작한다.
-영국-
영국의 포스트 펑크 시대는 (미국에 대한 상대평가에 의하면) 대단히 다양
한 표정의 사운드로 채색되었다. 그 개략적인 구도는 고딕 록과 신서 팝에
의하여 구획되었으나, 펍 록의 전통을 계승한 네오 어쿠스틱 계열과 글램의
이미지를 유니 섹스 모드로 발전시킨 뉴 로맨틱스, 노이즈(기타) 팝, 레게/
스카 리바이벌, 멘체스터 사운드 등 갖가지 형식이 동시대의 깃발아래서 그
영역을 구축하고 있었다.
물론, 투 톤 무브먼트(Two-Tone Movement;인종차별에 반하는 움직임. 각
기 다른 인종의 멤버들로 구성된 밴드들에 의해 주도됨)과 오이 뮤직
(OiMusic, 나치즘적 인종차별주의를 고수하는 입장. 스킨헤드)의 대립적 관
계에서 대표적으로 제시되고 있듯이, 그 이념적인 지향성은 펑크의 그것으
로부터 진화/변이된 차별성을 가지고 있었다.
모리세이(Morrissey)와 자니 마(Johnny Marr)의 경이적인 파트너십으로
완성된 스미스(The Smiths)는 이 시기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밴드로 일
컬어지고 있다. 모리세이의 가사는 펑크의 시니컬하고 비관적인 세계관을
내적 성찰을 통하여 한층 더 심화시켰고, 자니 마의 그 특별한 기타 사운드
와 작곡 능력은 모던 록의 지도에 기념비적인 자취를 남기고 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동시대를 공유했으며, (그들과는 달리) 현재까지도 그 영역을
공고히 하고 있는 U2와 큐어(Cure) 역시 이 시기 모던 록의 저변을 대표
하는 존재들이다.
그밖에 이 시기의 대표적 밴드들로는, 어둡고 그로테스크한 감성/사운드
를 지향했던 고딕 록 계열의 바우하우스(Bauhaus), 수지 앤 더 밴시스
(Siouxsie And The Banshees), 그리고 시스터스 오브 머시(Sisters
OfMercy)와 그로부터 파생된 미션(Mission). 신서사이저와 파퓰러한 멜로디
를 전면에 내세운 신서 팝 계열의 뉴 오더(New Order)와 그 적자(適者)인
조이 디비전(Joy Division), 펫 숍 보이즈(Pet Shop Boys)와 디페쉬 모드
(Depeche Mode), 모던 잉글리시(Modern English). 그리고 그 양자 간의 경
계를 유지했던 일련의 인더스트리얼(협의의) 초기 밴드들인 스로빙 그리슬
(Throbbing Gristle)과 카바레 볼테르(Cabaret Voltaire), 레게/스카 리바이벌
의 주역이었으며 투 톤 무브먼트의 모범적 실천자들이었던 스페셜스
(Specials)와 셀렉터(Selecter), UB40, (내용없는 껍질로 변질되기 전까지는)
신서 팝을 도용하여 말끔한 엘리트주의와 현실도피적 이상주의를 꿈꿨던
뉴 로맨틱스 계열의 울트라 복스(Ultra Vox)와 저팬(Japan), 휴먼 리그
(Human League), 맨체스터 사운드의 세계화에 기여한 해피 먼데이스
(Happy Mondays)와 스톤 로지즈(Stone Roses), 노이즈 팝을 주도한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과 지저스 앤 매리 체인(Jesus And
Mary Chain), 그리고 네오어쿠스틱 사운드의 충실한 계승자인 아즈텍 카메
라(Aztec Camera)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영국에서의 포스트 펑크 시대는 헤비 메탈계의 새로운 물결
(NWOBHM, New Wave Of British Heavy Metal)에 의하여 잠식되기 시작
했다. 형식에만 치우쳐 갈수록 상업화돼 가는 신서사이저 사운드는 결국 대
의를 상실하고 틴 에이저들의 노리개로 전락하고 말았고, 진보적 젊은이들
로부터는 외면을 당했다.
결국 그것은, L.A.메탈과 스래쉬의 물량 공세에 밀린 헤비 메탈계의 침묵
과 더불어 '80년대 중반 이후 영국 록계의 진공 상태를 야기시킨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가 되었고, 그 암울한 상황은 '90년대 초.중반에 이르기까지 계
속되었다.
-미국-
포스트 펑크 시대의 미국은, 뉴욕 언더그라운드를 축으로 하는 한계성을
벗어나, 다양하고 광범위한 지역적인 확산을 특징으로 보여주었다. 물론, 뉴
욕의 언더그라운드에서는 소닉 유스(Sonic Youth)를 중심으로 하는 노 웨이
브(No Wave)의 물결이 앤티 -팝, 앤티-휴머니즘의 기치 아래 여전히 그 아
방가르드적 정통성을 이어 가고 있었지만 말이다. 허스커 두와 리플레이스
먼츠를 배출한 미니애폴리스는 포스트 펑크 시대의 가장 주요한 거점 중 하
나였다.
폴 웨스터버그(Paul Westerberg)에의해 결성된 리플레이스먼츠는 그들의
명반 Let it be를 기점으로 섹스 피스톨스 풍의 분노한 펑크 사운드를 독자
적인 아이덴티티로 발전시킴으로써 이 시기의 대표적인 밴드로 자리매김하
였다. 밥 몰드(Bob Mould)라는 카리스마를 보유한 허스커 두 역시 섹스
피스톨스로부터 받은 영향을 그들만의 영역으로 확장시킴으로써 명확한 인
상을 남기고 있다.
이언 맥케이(Ian MacKaye)가 이끌었던 마이너 스레트(Minor Threat)는 푸
가지(Fugazi)로 명맥을 이어 가면서 워싱턴의 록계를 주도하였고, B-52's와
R.E.M.은 조지아를 배경으로 등장하였다. 그리고 시애틀의 언더 그라운드에
서는 사운드가든(Soungarden)과 그린리버(GreenRiver), 머드하니
(Mudhoney) 등이 '90년대의 활화산 같은 활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지역적 확산 현상은 대학가 방송국들의 주도에 의한 독자적인
컬리지 록(College Rock) 문화가 확립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한편으
로는 록 음악이 무지한 노동자들의 대책없는 불만 토로의 장에 국한되는 것
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시사하였다. 자본주의 경제의 첨예한 발달로 이제는
'먹고 살기'를 걱정하는 단계에서벗어나, 물질에 사로잡힌 사회와 그 속에
존재하는 고독한 개인의 문제로까지 사고의 폭이 넓혀진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포스트 펑크는 '80년대 초반 이후 오버그라운드의 경계
를 넘지못하였다(이는 상업성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것과는 사뭇 다른
뉘앙스를 지닌 것으로, 신(Scene)의 규모와 영향력의 감소에 천착하는 개념
이다. 또 의도적으로 마이너의 자세를 고집하는 것과 대중들에 의해 그들로
부터 유리되는 것은 분명히 다른 성격이다. 예컨대, 너바나는 그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수백만 장의 앨범 판매고를 기록했고, 소닉 유스는 후에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을 맺게 되지만 여전히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
하다.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는 일일이 예를 들 수도 없을 정도로 빈번하
다). MTV의 등장으로 대중 음악은 깡통에든 인스턴트 식품로 전락하였고,
진보적인 개혁 의지는 바보 상자의 최면 속으로 빨려 들어 갔다. 특히, L.A.
를 중심으로 하는 서해안 지역의 분위기는 상업화된 헤비 메탈 사운드에
굴복하고 있었다.
록의 메인스트림은 L.A. 메탈의 데카당트한 세계관에 의해 지휘되었고, 그
견제 세력으로는 스래쉬 메탈이 유일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나마도 후기로
접어들면서 형식주의에 치우침으로써 그 운명을 다하였고, 그 대안으로 등
장했던 데스메탈 역시 비슷한 운명을 겪게 된다 (데스 메탈의 경우 한 번도
메인스트림에 진입하지 못했지만, 그것은 타협을 하지 않았다기 보다는 할
수가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시체/죽음/살인/사탄 따위를 이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반작용이라고 생각하기 힘들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들은 인디 록일지언정 얼터너티브의 범주에 포함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들은 시종일관 '컬트'로 존재하는 셈이다. 그 최초의 등장에서 보여준 양상
을 형식면의 대안으로 인정하는 시각도 있을 수는 있다).
<'80년대 록의 또 다른 표정. 혹은 '90년대의 여명에서>
앞서 지적했듯이, '80년대 중반 이후 미국 록계의 판도는 헤비 메탈에 의해
잠식되었고, 영국 록계는 그에 상응할 만 한 '대안'없이 침체 상태로 접어들
었다. 그러나, 유행의 속성이 그렇듯이, 초창기의 신선미를 상실하고 수준
이하의 실력-과 수준 이상의 외모-을 지닌 밴드들의 난립으로 L.A. 메탈의
영역은 급속도로 사그러들어 갔고, 스래쉬 메탈의 형식주의는 그 주도적인
세력들에 의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바로 이 때,
언더그라운드에서 암약하는 '포스트 펑크적' 움직임들과는 별개로 '80년대
후반의 대중음악계에서는 새로운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었다.
이는 주로 미국의 음악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하드 코어/갱스터
랩의 확산, 하드 코어 펑크와 스래쉬의 크로스오버, 펑크(Funk)와 헤비 메탈
의 퓨전, 인더스트리얼 록 등은 그 대표적인 현상들이며, '90년대 들어서도
그 흐름은 이어지고 있다.
흑인 빈민가의 은어, 속어들을 화풀이 하듯이 내뱉었던 랩은 그 자체로 얼
터너티브적이었다. 특히,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말콤 X의 현실 참여 정신을
바탕으로 흑인들의 비참한 거리 생활을 폭로했던 갱스터 랩은 진정한 의미
의 하드 코어 사운드로 인정받았으며 또, 광범위하게 받아 들여졌다.
동부에서는 런 D.M.C.(Run D.M.C.)와 비스티 보이스(Beastie Boys), 퍼블
릭 에니미(Public Enemy) 등이, 서부에서 는 N.W.A.(Niggaz With
Attitude)와 그로부터 독립한 아이스 큐브(Ice Cube), 그리고 헤비 메탈과
의 접목을 실험했던 아이스 티(Ice T) 등이 하드 코어/갱스터 랩을 주도하
였다.
한편, 네이티브 텅스 파시(Native Tongues Posse)출신의 퀸 라티파(Queen
Latifah)는 랩 뮤직에 페미니즘의 시각을 도입시킨 장본인으로 평가받고 있
으며, 어레스티드 디벨로프먼트(Arrested Development)는 지성적이고 긍정
적인 메시지로 랩에 대한 선입견을 타파한 매우 특별한 존재였다.
하드 코어 펑크와 스래쉬의 크로스오버는, 뉴욕을 중심으로 하는 하드 코
어 메탈 사운드와 그라인드 코어 계열을 중심으로 몇 가지 양상을 보인다.
전자의 경우 펑크와 헤비 메탈의 혼합 뿐 아니라 부분적으로 랩을 수용하기
도 하는 과단성을 보이는데 브루클린과 브롱크스, 퀸즈 등 맨해튼을 둘러싸
고 있는 할렘가를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대표적인 밴드로는 헬멧(Helmet),
식 오브 잇 올(Sick Of It All) 등을 들 수 있다. 형식적인 면에서 데스 메탈
과의 유사성에 의하여 곧잘 혼동되곤 했던 후자의 경우는 네이팜 데스와 슬
레이어라는 독보적 밴드들로 설명된다.
결국, 그라인드 코어라는 표현은 데스 메탈과의 경계 사이에서 점차 그 아
이덴티티를 상실해 갔지만, 그들이 기존의 헤비 메탈계에 가져 온 충격은
지금도 기억되고 있다.
킹스 X(King's X), 프라이머스(Primus),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 등은 헤비 메탈과 펑크(Punk)의 혼합물에다가 펑크(Funk)의
요소를 도입하여 어느 하나의 카테고리에 얽매이지 않는 독특한 사운드를
들려 주었다. 때문에, 그들 사이에서 뚜렷한 동질성의 연결고리를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며, 대략적인 형식의 뿌리를 통하여 유대감을 확인
할 수 있을 뿐이다.
이들과 관계하여 언급할 만 한 밴드들로는 배드 브레인스(Bad Brains)와
페이스 노 모어(Faith No More), 리빙컬러(Living Colour) 등이 있다. 카바
레 볼테르와 스로빙 그리슬 등에 의하여 실험된 본격적인 일렉트로닉스 사
운드는 인더스트리얼이라는 신조어의 등장과 함께 모든 음악의 영역으로 그
방법론을 확장시켜 갔다.
이 시기의 인더스트리얼 록-아방가르드와 고딕의 감성을 전자 악기와 하드
웨어로 해석하는 일군의 신흥 뮤지션에 한정하는 협의의 의미이다-을 주도
한 대표 주자로는 미니스트리(Ministry)와 마이 라이프 위드 더 스릴 킬 컬
트(My Life With The Thrill Kill Kult),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 등을 들 수 있는데, 그들의 방법론은 '90년대로 들어서면서-하드 코
어 댄스 클럽의 플로어를 탈출하여-메인스트림의 흐름에 개입하기 시작하였
으며 거의 전 장르의 음악에 걸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게 된다.
<'90년대 얼터너티브의 단상>
그것은 예기치 못한 대홍수였다. 시애틀로부터 발원한 물줄기가 차고 넘
쳐 전미국의 오버 그라운드는 수중으로 잠식당했고, 새로이 솟아 오는 토양
은 메인스트림의 지형도를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그런지 사운드로부터 시
작된 미국 록계의 복고주의 열풍은 펑크 록의 르네상스를 거쳐, 컨트리/포크
를 감싸 안은 루츠 록 계열까지 도달하여 그 끝을 가늠하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
지난 10여 년을 숨죽이고 동면해왔던 영국 록계의 반응도 만만치는 않다.
그들은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의 유산은 물론이고 모드/글램/펑크의 편린들
을 모조리 쓸어 담아, 그 이름도 영국적인 '브릿 팝'이라는 포장지로 자국의
경계선을 둘러 버리고 국지전에 돌입한 것이다.
록계에도 쇼비니즘의 이데올로기는 적용되는 것일까 ? 그렇다면 과연 그
대안은 무엇인가? 여기 '90년대가 제시한 '대안'의 단상들 가운데서 그 해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그런지 록-
시애틀 사운드. 오늘의 얼터너티브 논의를 촉발시킨 직접적인 화두이며,
'90년대의 유스컬처(Youth Culture)를 규정지은 단서이고, 진정한 록의 의
미를 묻는 질문에 스스로 답하였다. 커트 코베인과 그의 친구들은 너바나
라는 이름으로 미끈한 상업주의의 행태에 융단 폭격을 해댔고, 앤드루 우드
(Andrew Wood)의 묘비명을 대신하여 등장한 펄 잼(Paerl Jam)은 메인스트
림에 통쾌한 복수를 시작했다.
사운드가든(Soundgarden)과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가 계속해
서 제도권 공략에 성공을 거두었고, 머드하니(Mudhoney)와 스크리밍 트리
스 (Screaming Trees)도 메이저 진입을 이루어냈다.
그들은 순신각에 거대한 록의 물줄기를 새로운 방향으로 틀어버린 것이다.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와 닐영과 펑크 록의 초상. 노이즈와 피드백으
로 가득찬 '그런지' 사운드는 시애틀을 넘어서 하나의 표준이 되었고, 그것
은 스톤 템플 파일러츠(Stone Temple Pilots)와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 그리고 영국 출신의 라디오헤드(Radiohead)와 부시(Bush) 등장
으로 증명되었다.
-펑크 록 르네상스-
시애틀 동지들의 밀리언 셀러 입지확보는, 그것의 등장 속도 만큼이나 급
속도로, 메인스트림에 대한 또 다른 대안을 요구하기 시작하였고, 커트 코베
인의 죽음이 가져 온 진공 상태의 공백은 오래지 않아 그린 데이(Green
Day)와 오프스프링(Offspring)의 등장으로 균열되기 시작했다. 랜시드
(Rancid)와 노에펙스(NOFX)는 물론이고, 아저씨 뻘의 대선배인 배드 릴리
전(Bad Religion)의 가세가 이어졌다.
캘리포니아 펑크의 전통은 '90년대의 토양에서 다시 부활하였고, 펑크 록은
이제 더 이상 마이너리티의 음악이 아니었다. 형식의 차용에 불과할 뿐이라
는 '순수성 논쟁'은 오래지 않아 설득력을 잃었고, 그것은 '시애틀 사운드가
닦아 놓은 기반'이라는 조건 하에서 대안적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그렇다면 라몬스가 은퇴를 선언한 이유와 섹스 피스톨스가 재결합을 선언
한 배경 사이에서 펑크 록 르네상스는 어떤 식으로 개입하고 있는 것일까?
-브릿 팝-
블러(Blur)의 용단은 영국 록계에 희망의 불씨를 심어 놓았고, 오아시스
(Oasis)의 배짱은 그것을 완연한 불길로 키워 놓았다. '80년대 이후 대안없
는 침체기 속에서 전전긍긍하던 영국록계는 온고지신의 미덕을 대안으로 제
시하였고, 그들의 텍스트는 온통 영광스러운 자국 선배들의 유산으로 아로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물론, 브릿 팝이라는 애매한 테두리가 도대체 어느 정도의 범위까지 해당
되는 것이고, 그것의 세분화된 구도가 어떤 양상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은 약간의 인내를 더 필요로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 한 가지만은
분명한 답을 갖는다. -독자적인 신 (Scene)의형성. 일래스티카 (Elastica)와
에코벨리(Echobelly), 슬리퍼(Sleeper)가 등장했을 때 NWONW(New Wave
Of New Wave)라는 이름까지 붙여주며 흥분했던 그곳 음악 계의 가상한
노력은 결국 이렇게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그것은 곧, 블러와 오아시스의 파급력이 가시적인 효과를 발휘했다는 의미
이고, 슈퍼그래스(Supergrass)와 블루톤스(Bluetones), 캐스트(Cast)와 셰드
세븐(Shed Seven)과 진(Gene)의 등장은 영국 인디 록의 전통이 부활했음을
선언하는 격앙된 목소리인 것이다.
-또 다른 표정들-
화이트 아메리칸들에 의해 구축된 유일한 전통적 양식인 컨트리 음악은 펑
크와 정신적으로 유대하고 그런지의 생생한 느낌과 연대하면서 루츠 록
(Roots Rock)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소울 어사일럼(Soul
Asylum)과 레몬 헤즈(Lemon Heads), 카운팅 크로우스(Counting Crows)
의 대중적 성공은 제이호크스(Jayhawks)와 윌코(Wilco), 버펄로 톰(Buffalo
Tom)의 성장으로 이어졌고, 골든 스모그(Golden Smog)를 통해 한 목소리
가 되었다.
컬렉티브 소울(Collective Soul)과 후티 앤 더 블로피시(Hootie And
TheBlowfish), 블루스 트래블러스(Blues Travelers)의 가공할 만 한 성공이
이 서브 장르의 위상을 어디로 옮겨 놓을지. 또 그것의 구조적 특성이 과연
이 시대의 '대안'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에 대한 의문은 첨예한 현재 진
행형의 양태이다.
브리스톨의 삼총사-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과 트리키(Tricky)와 포티
셰드(Portished)가 마리화나 연기 속에서 만들어낸 트립 합 사운드는 하드
코어 댄스 클럽의 컬트가 되었다.
프로디지(Prodigy)와 골디(Goldie)와 머큐리 레브(Mercury Rev), 에이펙스
트윈스(Aphex Twins)와 스테레오랩(Stereolab)의 성장세는 정글/트랜스/ 앰
비언트/애시드 하우스의 실험적 사운드의 확산과 함께 테크노와 로큰롤의
경계 사이의 선입견을 무너뜨리고 있으며, 동시에 세기말적 카오스에 대한
음적 퇴폐미의 대안으로, 나인 인치 네일스와 미니스트리에 대한 영국측의
강경한 대응수로 부상하고 있다.
<...그리고 시간은 계속되고>
"얼터너티브는 죽었다".
몇 년 전부터 공공연히 회자되어 온 이 진술에 대한 동의/반발의 가능성
은 다중적 해석을 요하는 것이다. '얼터너티브'를 단지 표현의 문제로 한정
시킨다면 결론은 단순해진다. 메인스트림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하여, 얼터너
티브를 상용화시키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90년대의 얼터너티브는 메인스트
림으로 합류했던 것이다.
결국, 대중들이 또 다른 대안을 원하는 최근의 현상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변증법적 논리과정의 산물이 아닌가. 그러나, 어느 시기에든 주류 세력의 반
대편에는 반주류/비주류의 존재가 자리하고 있기 마련이고, 자연 과학의 검
증 가능한 절대 이론이 아닌 이상 반론의 여지는 어떤 현상/사물에도 내포
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대중 음악계에서 메인스트림의 영역이 존재하는 한, 그 반대급
부의 대안은 언제나 양립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물론, 그것은 굳이 '얼터너
티브'라는 표현이 아니더라도 좋은 것이다. 중요한 것은-그 명칭이 어떻든
간에- 상업주의와 기성의 안이한 관념에 대한 신랄한 비판 의식과 길들여지
지 않은 록의 원초적 자세를 고수하는 인디록의 이상(理想)이 존재하는 이
상, 얼터너티브의 본질은 유지될 것이고 대안의 역사는 계속될 것이라는 사
실이다.
'90년대도 그 절반을 훌쩍 넘겨버린 현재, '얼터너티브'라는 표현에 대한
진지하고 진보적인 담론은 더 이상 진행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앞서 언급
했듯이, 또 다른 '대안'을 모색하는 작업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진행
되고 있다. 어떤 형식과 내용이 새로운 세기의 대안으로 부상할 것인지. 그
것은 또어떤 명칭/표현으로 불릴 것인지. 그리고 그것 역시 메인스트림에의
고착단계를 거쳐 또 다른 대안의 탄생으로 이어질 것인지. 결국,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를 뿐, 뮤지션과 미디어와 대중으로 이루어진 삼각 관계의
틀은 언제나 예측을 불허해 왔다. 그렇기에 세상사 모든 현상은 늘상 '대안'
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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