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를 지배해온 지혜이야기
지혜로운 자는
지혜로 이긴다
[ 아반티와 법관
고을에 새로 부임해 온 법관이 있었는데 그는 마침 부잣집에 묵고 있었다. 그러자
그 부자는 법관이 자기 집에 묵는 것이 자랑스러워 온동네를 돌아다니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부자는 아반티를 만나 허풍을 떨기 시작했다.
"이보게, 아반티. 이번에 새로 부임해 온 법관 나으리는 이 세상에서 정말 보기
드물게 총명한 사람이더라구. 그의 지식과 인품이 얼마나 깊은지 머리에는 지혜로
가득찼고 말야."
"그런가?"
아반티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꾸하더니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지금 법관들은 사건을 처리할 때면 돈을 많이 갖다주는 사람한테 유리한
판결을 내려 지혜가 있을 필요가 없지. 그러니 지혜가 머리속에 가득찰 수 밖에 더
있겠나?"
이 말을 들은 부자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어쩔줄 모르더니 획하고 가버렸다.
부자는 집으로 돌아와 아반티의 말을 법관에게 고스란히 일러바쳤다. 그러자
법관도 부자 못지 않게 화를 내더니 조만간 아반티를 골탕먹여 복수하겠노라고
별렀다.
그때 아반티는 고을에서 조그마한 염색가게를 차리고 부근의 백성들에게 천을
염색해 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법관은 부잣집에서 천 한 필을 들고 아반티의 염색가게를 찾아와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반티, 이 천을 잘 염색해 주겠나? 자네의 솜씨가 어떤지 보고 싶군."
"그러죠. 그런데 무슨 색깔로 염색해 드리죠?"
"내가 요구하는 색깔은 다른 색깔이 아닐세. 붉은색도 아니고 푸른색도 아니고,
그렇다고 검정색도 아니고 흰색도 아니며, 녹색은 더더욱 아니며 자주색도 아니고
황색도 아닐 뿐만 아니라 회색도 아닐세. 알겠나? 이 염색쟁이 아반티야!"
법관은 의기양양해서 말을 덧붙였다.
"듣건데 너의 지혜는 머리속에 있을 뿐 아니라 또 쓸 줄도 안다는데 어떤가? 내
요구대로 염색할 수 있겠나?"
그때까지 법관의 뒤에서 서성거리던 부자는 법관의 요구에 아반티는 어쩔 수 없이
당했다는 듯이 신이 나서 말했다.
"아반티, 법관 나으리의 요구대로 색깔을 만들지 못하면 법관 나으리께선 자네를
결코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 알겠나?"
그러나 아반티는 부자와 법관이 자신에게 생트집을 잡으려고 찾아와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태연스럽게 천을 받아
쥐고는 말했다.
"그 정도야 매우 쉽죠. 제가 꼭 법관 나으리의 요구대로 염색해 드릴 수 있습니다.
염려는 조금도 하지 마십시오."
"네가 정말 내가 요구한대로 염색할 수 있단 말인가?"
법관은 아반티가 조금도 당황해하는 기색이 없자 자신도 모르게 흠칫 놀라며
말하였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그럼 그 염색한 천을 언제 가지러 오면 되겠나?"
"나으리께선 제가 말한 그날에 가지러 오시면 됩니다."
아반티는 태연하게 천뭉치를 궤짝 속에 쑤셔넣곤 말했다.
"그날은 월요일도 아니고, 화요일도 아니고, 수요일도 아니며 목요일도 아니고,
금요일도 아니고, 토요일은 더더욱 아니며 일요일도 물론 아닙니다. 그날이 되면
법관 나으리께서 지금 맡기신 천을 가지러 오십시오. 그러면 제가 만족하게 염색해
놓겠습니다."
법관은 아반티의 말에 무언가 뒤통수를 둔기로 얻어맞은 기분이었고 부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무엇에 쫓기기라도 하듯 황급하게 염색가게를 빠져 달아났다.
ff
[ 손님은 몇 명일까?
어느 여름날의 저녁 무렵에 한 여인이 그릇을 한 광주리 가득 이고 와 나룻터에서
씻고 있었다.
강물은 유유히 흐르고 조그마한 고기떼들이 그릇에서 나온 음식찌꺼기를 먹느라고
이따금 하얀 물방울을 튕기기도 했다.
그때 한 척의 쪽배가 저녁노을을 지고 천천히 나룻터로 다가왔다. 뱃사공과 그의
손자는 쪽배를 나룻터에 비끄러매고 막 집으로 돌아가려고 서둘렀다. 그런데 여인이
그릇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씻고 있는 것을 보고 뱃사공이 궁금해 못견디겠다는
듯이 물어왔다.
"웬 그릇을 이렇게 많이 씻죠?"
"오늘 집에서 손님을 초대했거든요."
"아니, 손님이 몇이나 왔길래 그릇이 이렇게 많습니까?"
여인은 웃으면서 말했다.
"노인장께서 한번 알아맞춰 보시겠어요?"
그러자 뱃사공이 껄껄껄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릇이 전부 똑같아서 어느 것이 밥그릇이고 어느 것이 반찬 그릇인지 구분이
안가는데 어떻게 알아 맞추죠?"
여인은 손으로 입을 살포시 가리우고 얼굴에 미소를 띠면서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그러시겠죠. 어느 것이 밥그릇이고 어느 것이 반찬그릇인지 구분이 안가시죠.
하지만 계산해 보세요. 저희집에 손님은 많고 그릇은 적어서 손님들 두 분이 밥그릇
한 개를 쓰고 세 분이 국그릇 한 개를 함께 쓰고 또 네 분이 반찬그릇으로 한 개를
같이 사용해서 모두 예순 다섯 개의 그릇을 사용했어요. 그렇다면 손님이 몇 분이나
되죠?"
뱃사공은 여인의 말을 듣고서 내심 계산해 보았지만 도무지 계산이 서질 않았다.
계산하려고 하면 할수록 머리가 헷갈려서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자 옆에서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어린 손자가 야무지게 외쳤다.
"저는 알아요. 손님이 몇 분인지 저는 알아요."
"네가 안다구?"
뱃사공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손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요. 손님은 모두 60 명이예요."
여인은 깜짝 놀랐다.
"60 명이라구? 맞습니까?"
뱃사공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여인의 얼굴과 손자의 얼굴을 바라봤다.
"네, 맞아요. 이 아이가 알아맞췄어요. 손자가 굉장히 똑똑하군요."
뱃사공은 손자의 머리를 자애롭게 쓰다듬어 주면서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아니, 얘야. 어떻게 계산했길래 알아 맞췄니?"
손자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조그마한 손가락을 꼽아가며 여유있게 계산해
나갔다.
2 명이 밥그릇 한 개를 사용했으니 1 명이 2/1개 밥그릇을 사용한 셈이고, 3 명이
국그릇 한 개를 썼으니 1 명이 3/1개 국그릇을 사용한 셈이며 4 명이 반찬그릇 한
개를 사용했으니 1 명이 4/1개 반찬그릇을 사용한 것과 같다.
밥그릇, 국그릇, 반찬그릇을 합하면 1 명이 사용한 것과 같다. 밥그릇, 국그릇,
반찬그릇을 합하면 1 명이 사용한 사발은 아래와 같다.
2/1 + 3/ 1 + 4/ 1 ^25,25^ 12/13(개)'
전부 합쳐 예순 다섯 개의 그릇이므로 한 사람이 사용한 그릇은 12/13개이기
때문에 손님은 '65 ^34,34^ 12/13 ^25,25^ 60(명)'
뱃사공과 여인은 연신 머리를 끄덕이며 어린아이의 총명함에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 ff
[ 스님이 철근으로 만든 황소를 끌어내다.
어느날 아침, 영제군 정문 앞에 큼직한 광고가 나붙었다. 하얀 종이에 먹물로
글씨를 써놓아 지나가는 행인들의 눈에 확 띄었다. 지나가는 행인들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궁금해서 광고 앞에 우르르 몰려들었다.
황하가 범람해 성밖의 허공다리가 밀려 가고, 양쪽 기슭에 다리를 고정시키는
8개의 철로 된 황소가 전부 물에 떠내려 갔다. 다리를 복구하고 홍수에 대비해 더욱
튼튼한 다리를 만들어야겠으니 누가 철로 된 황소를 건져올릴 수 있다면 상금
천냥을 내릴 것이다.
사람들은 광고를 읽고 저마다 수군거렸다. 그중 한 사람이 말했다.
"상금이 천냥씩이나 된다는데 군침은 돌지만 누가 천근씩이나 나가는 쇳덩어리를
들어올린다는 말인가."
또 한 사람이 이에 맞장구를 쳤다.
"강물이 바짝 마를 날을 기다리는 수밖에 도리 있겠나? 강물이 바짝 마르면 몇 백
명이 달려들어 들어올리면 모를까, 달리 도리가 있을 턱이 없지."
이때 얼굴이 야위고 널찍한 장삼을 걸친 스님이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고개를 쳐들고 입을 약간씩 실룩거리며 광고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두어 번 자세하게 읽어보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헐렁한 팔소매를 걷어올리고 손을
뻗쳐 광고지를 쭈욱 찢어선 몇 번 겹쳐 접더니 휙 버리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의아해서 스님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이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스님의
배거지장같은 얼굴, 바람에 당장 쓰러질 것 같은 깡마른 몸매, 누군가 보다 못해
스님에게 다가와 물었다.
"스님, 광고지를 뜯어버리신 것을 보니 그 철로 된 황소를 건질 수 있다는
말씀이세요?"
그래도 스님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철로 된 황소 한 마리가 몇 천근씩이나 되는데 여덟 마리면 몇 만근이 아니오.
아마 신선이 스님을 돕는다면 모를까 어쩔려고 그러시오?"
스님이 그 말을 듣더니 껄껄껄 웃는 것이었다.
"세상에 신선이 어딨어요? 철로 된 황소가 물에 떠내려 갔으니 나는 다시 물로
그것을 건져올릴 것이오!"
스님의 행동을 주시하던 사람들은 도저히 스님의 큰소리가 믿어지질 않았다. 몇
천근짜리 철로 된 황소가 강바닥에 가라앉아 있는데 어떻게 물을 이용해 다시
건져낼 수 있을까?
하지만 스님은 좋은 방법을 갖고 있었다.
그는 사람을 시켜 쪽배 두 척을 나란히 묶어놓고 가운데 공간을 내어 두 배
사이에 굵직한 통나무를 가로로 동여매놓게 하였다. 두 척의 배에 또 모래를 잔뜩
실어 뱃전이 수평면과 거의 같도록 했다. 그렇게 한 후, 배를 철로 된 황소가
가라앉은 곳으로 저어가 사람을 물속으로 잠수케 해 밧줄로 황소를 단단하게 묶게
하곤 그 끈을 또 두 배 사이에 가로놓인 통나무에 단단히 매었다.
이때 스님은 사람을 시켜 배 안의 모래를 한 삽, 한 삽씩 퍼내어 강물에 던지게
하였다. 그러자 뱃전은 물위로 서서히 떠올랐고 밧줄은 뿌득뿌득 소리를 냈다.
이윽고 모래를 다 퍼버리자 배는 물위로 떠오르고 철로 된 황소는 물속에 둥둥
떠올랐다. 몇 사람이 노를 저어 그것을 새로 건축하는 구름다리 현장으로 끌고
갔다.
이렇게 한 번, 또 한 번 거듭해서 끝내 여덟 마리 황소를 현장으로 옮기는데
성공하였다.
광고지를 뜯어내고 철로 된 황소를 건져낸 스님이 바로 송나라의 유명한 건축가
회병이다. ff
[ 꾀병을 치료한 아반티
아반티가 의사로 있을 때였다. 하루는 마을의 한 부자가 머슴을 시켜 아반티에게
왕진을 요청해 왔다. 아반티는 그 길로 가방을 들고 왕진길에 나섰다.
그 부잣집으로 가자면 강을 하나 건너야 했다. 어느 한 작은 관리가 때마침
아반티와 함께 나룻배를 타보게 되었다. 그러나 그 관리는 난생처음 나룻배를
타보게 되어선지 보통 무서움을 타는 게 아니었다. 나룻배가 이윽고 강 한가운데에
이르러 풍랑이 조금씩 거세지자 배가 흔들거렸고 작은 관리는 아반티의 옷자락을
붙잡고 무서움에 와들와들 떨었다.
"아반티, 난 무서워 죽겠어. 심장이 떨려 죽겠단 말야. 어떻게 좀 해줘."
"방법이 있긴 한데 자네가 그 방법을 듣겠나?"
"듣다마다. 이 무서움만 없어지는 일이라면 자네의 방법대로 하겠네."
"좋아. 그렇다면 앞으론 무섭지 않도록 해주지."
아반티는 때마침 배가 기우뚱 하는 틈을 타서 무서움에 떨고 있는 작은 관리를
강물로 처밀어 버렸다. 그러자 작은 관리는 강물 속에서 자맥질을 하기 시작했다.
"살^5,5,5^려^5,5,5^줘!"
작은 관리는 허우적거리며 몇 번이고 강물 속으로 가라앉았다가 다시 떠오르곤
하였다. 그렇게 몇 번을 거듭한 후에 아반티는 다른 두 사람과 같이 그 작은 관리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어 나룻배로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작은 관리는 물에 빠진 생쥐꼴이 돼서 나룻배의 한 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룻배는 여전히 좌우로 흔들렸다. 그러나 작은 관리는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는 그때서야 비로소 위험에서 벗어난 것처럼 안전감을
만끽하고 있었다. 아반티가 물었다.
"어때, 아직도 겁이 나나?"
"아니, 조금도 겁이 안나는 걸."
작은 관리는 씩 웃음을 지었다.
"그렇겠지. 오직 물에 빠져 본 사람만이 배의 안전을 느낄 수 있는 법이지."
그리곤 덧붙여서 말했다.
"나중에라도 무서운 일이 닥치면 또 내게 도움을 청하라구."
작은 관리인은 아반티의 말에 그저 쓴웃음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나룻배는 드디어 나룻터에 닿았다. 아반티는 그 머슴의 안내를 받아 부잣집에
당도하였다.
"아반티, 나는 비만증에 걸렸어. 이 비만증이 어느날 내 생명을 빼앗아 갈지 몰라.
그러니 어서 처방을 내려주게."
"어디 한번 봅시다. 하지만 괜한 걱정일 것 같군요."
아반티는 그렇게 말하면서 쌀자루처럼 터져나갈 듯이 살이 찐 부자의 몸집을
유심히 맥을 짚어보기도 했다.
"별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군요. 당신 병은 이미 정도를 지나 치료는 불가능하게
됐소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당신은 지옥으로 가질 않고 천당으로 가게 됐으니
얼마나 불행중 다행인지 모르겠군요."
그리곤 종이에다 뭐라 긁적이었다.
"이런 처방밖에 내릴 수 없어 죄송하게 됐습니다."
아반티는 처방을 내린 종이를 부자에게 건네주곤 아무 말없이 밖으로 나갔다.
부자는 아반티가 내밀고 간 처방을 받아 보곤 깜짝 놀라 그만 방바닥에 벌렁
나자빠졌다. 처방이라고 내린 종이에는 이런 몇 글자가 씌여 있었다.
"15일후면 당신은 죽습니다."
부자는 잔뜩 겁이 나서 하루종일 물 한 모금도 마실 수 없었고 밥 한 숟가락도
먹을 수 없었다.
이렇게 어느덧 15일이 흘러갔다. 보기 흉할 정도로 뚱뚱하던 부자는 그 사이에
장작나무처럼 바싹 말라갔다.
"아반티, 왜 거짓말을 했어?"
그동안 이제나저제나 죽을 날만 기다리던 부자가 15일이 지나도 죽지를 않고 살자
아반티가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이놈아, 왜 보름 후면 죽는다고 했는데 죽지를 않지? 이렇게 멀쩡하잖아!"
"부자 나으리, 이렇게 흥분할 것 까진 없잖소. 그날 내가 괜한 걱정일 것 같다고
했는데?"
"그랬지."
"부자 나으리의 병은 비만증이었죠?"
"그럼."
"나의 처방이 어땠습니까? 15일 후에 죽는다는 나의 처방이 결국 당신의
비만증을 치료하지 않습니까?"
부자는 그제서야 퍼뜩 깨닫곤 아반티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ff
[ 돌사자의 곤두박질
옛날, 하북 창주에는 강가에 한 채의 옛 절이 있었다.
어느해, 갑자기 강물이 불어나 절의 대문이 세찬 물살에 견디질 못하고 그만
무너져 내렸다. 그 바람에 대문 앞에 조각해 세운 두 마리의 돌사자도 잇따라
강물에 휩쓸려 갔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후 절의 스님들이 대문을 복구하기 위해 많은 인부들을
불러 돌사자를 건지려 했다. 하지만 강물이 흐리고 물살마저 세찬데다 또 오랫동안
시간이 흘러 어디쯤에 돌사자가 있는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처음 그들은 절 앞의 가까운데서 찾아보았지만 찾질 못했다. 필경 돌사자는
강물에 휩쓸려 멀리 떠내려갔다고 그들은 추측했다. 그래서 나룻배 몇 척을 띄워
쇠갈구리를 강물에 박고 비질을 하듯 위로부터 아래로, 왼쪽으로부터 오른쪽으로
10여 리 길이나 훑었으나 여전히 찾지 못하였다.
"너희들은 정말 이치를 모르는구나. 돌사자는 나무로 만든 것이 아닌데 어찌
하류로 떠내려 가겠느냐? 돌사자는 견고하고 무겁고 강모래는 흩어지고 가벼우니
돌사자는 강모래와 흙탕 속에 빠져 점점 깊숙하게 빠져들텐데 하류쪽에서만 찾으니
헛수고는 당연한 일이지."
그들은 학자의 말을 듣고보니 그럴듯해 곧장 대문이 무너져 내린 곳을 찾기
시작했다.
"넘어진 원래 자리에선 못찾을 걸세. 응당 위로 거슬러 올라가 찾아야지."
그러나 위로 거슬러 올라가 찾아야 한다는 말을 인부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코웃음만 치고 움직이려 들질 않았다.
학자는 하는 수없이 혼자 배를 타고 강물 위로 노를 저어 갔다. 이윽고 저녁때 쯤
상류에서 돌사자가 있는 지점을 발견했다.
정녕 사람들은 뜻밖이었다. 물은 원래 상류에서 하류로 흐르는데 몇 천근짜리
돌사자가 다리도 달리지 않았건만 어떻게 상류에서 발견될 수 있을까?
사람들은 학자를 빙 둘러싸고 돌사자가 어떻게 상류로 올라가게 되었는지 그
이치를 말해보라고 재촉을 했다.
학자는 소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돌사자는 곤두박질을 해서 상류로 올라갔지."
그러면서 학자는 작은 돌멩이를 그 가운데 놓고 돌사자로 비유하면서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속담에도 왜 없는가? 강물에 돌을 떨어뜨렸으면 반드시 위로 가서 찾으라고
했지. 돌사자는 견고하고 무겁고 대신 모래는 흩어지고 가볍지 않은가. 상류에서
흘러오는 물은 그 무거운 돌사자를 굴려 보낼 수 없어. 돌사자가 물속에 버티고
있으니 물은 자연 돌사자에 부딪쳤다가 다시 양쪽으로 흘러가게 되는데, 시간이
오래되면 돌사자 밑에 웅덩이가 파이게 되고 그 웅덩이는 파일수록 점점 더 커져
돌사자는 마침내 평행을 잃고 웅덩이로 굴러 떨어지지. 흐르는 물은 또 돌사자 밑의
모래를 휩쓸어 감으로 때가 되면 돌사자는 또 제자리에서 굴러 떨어지게 되는데
이렇게 연속 곤두박질을 하여 해가 가고 달이 가면 돌사자는 계속 상류로 올라가게
된다, 이 말씀야." ff
[ 현명한 재판
송나라 때, 어느 한 대신이 죽었다. 그 대신은 유언하기를 자기 재산을 두
아들에게 똑같이 나누어 가지라고 했다.
재산을 나누던 날, 재산분배를 주최하는 주최인인 두 형제의 친척인 삼촌과 고모,
이모를 한 곳에 불러놓고 재산분배에 대하여 의논했다. 그들은 이것저것 조목조목
따져가며 한참 동안 입씨름을 한 끝에야 겨우 똑같이 나누었다.
한데 며칠도 안되어 형은 삼촌이 동생편을 들어 값진 물건들을 몽땅 동생에게
주었다고 의심을 품었고 동생은 반대로 고모와 이모가 형의 편을 들어 많은 부분을
형이 차지하게 했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어쨌든 두 형제는 모두 자기의 것이 적다며
서로 손해를 봤다고 투덜거렸다. 두 형제는 마침내 다투게 되었고 이로 인해 고을이
들썩거렸다.
그후 두 형제는 서로 탄원서를 써서 관청에 제출했다. 하지만 관청에서도 어떻게
판결을 내려야 할지 몰라 상부기관으로 올려졌고 그곳에서도 확실한 판결을
내리기가 어려워 끝내 이 사건은 황제에게 넘어갔다.
황제가 보니 이 사건은 이미 작고한 대신의 두 아들 송사인지라 어떻게든 빨리
결정을 내려야겠다는 생각에서 재상 장제현을 불러 이 사건을 말썽없이 빨리
매듭지을 것을 명령하였다.
재상 장제현은 이 사건을 놓고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두 형제의 재산을 다시 모아놓고 다시 잘 나누면 어떨까? 그래도 그들은 자기
몫이 적다고 다시 말할 것이 분명하며 그 해결책은 옳지 못하다."
몇 날을 끙끙대던 장제현은 무슨 묘안이 떠올랐는지 북을 울리고 법정문을
열었다. 두 형제는 법정 앞에 나란히 섰다.
장제현이 먼저 형에게 물었다.
"정말 네가 가진 몫이 적고 동생이 가진 몫이 더 많은가?"
"네, 나으리. 틀림없습니다요."
장제현이 이번엔 동생에게 물었다.
"너도 형이 가진 몫이 많고 네가 가진 몫이 적다고 생각하는가?"
"그렇구 말구요. 저보다 형이 차지한 재산이 훨씬 많습니다."
"황제의 어명이 여기 있으니 만약 너희 둘 가운데 누가 거짓말을 했다는 걸
밝혀내기만 하면 하늘에 사무치는 죄이니 엄히 다스릴 것이다."하며 장제현이
호령을 내렸다.
"나으리, 믿어주십시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두 형제는 동시에 이렇게 말했다.
"그럼 좋다. 두 사람 다 도장을 찍거라!" 장제현이 또 명령을 내렸다.
두 형제는 어명이 있는지라 매우 정중하게 도장을 찍었고 장제현은 당장 이렇게
판결을 내렸다.
"형은 동생이 재산을 많이 가졌다 하고, 동생은 또 형이 많이 가졌다 하니 그럼
재산을 서로 바꾸거라. 형은 동생 집에가 살고, 동생은 형의 집에 가서 살아라.
그리고 재산을 나눈 계약서를 서로 바꾸면 될 것이 아닌가?"
장제현은 말을 마치더니 법관들에게 명령을 내려 계약서 교환수속을 끝내게 했다.
두 형제는 서로 얼굴만 멍하니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질 못했다. ff
[ 교묘한 분배술책
조대, 풍이, 왕소, 이 세 사람이 자본금을 출자해서 말장사를 하기로 했다. 그들은
전국 각지를 떠돌아다니면서 정말 열심히 장사를 했는데 2 년여만에 좋은 말을 17
마리나 사게 되었다.
그러나 말썽은 여기서부터 생겨났다.
조대가 먼저 자기 주장을 내세웠다.
"내가 절반을 가질테니 자네 둘이서 절반을 갖고 나눠 가져라. 장사란 항시
투자금에 비례하는 법, 내가 투자한 자본금이 절반이었으니 이윤도 절반을 갖는 게
당연한 것이잖나."
이때 풍이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펄쩍 뛰었다.
"그렇긴 해도 세 사람이 함께 땀흘려 장사해서 번 돈이니까 공평하게 똑같이
나누어야지."
왕소도 풍이의 의견을 적극 지지했다. 왕소는 자신이 투자한 금액이 적었을 뿐만
아니라 장사능력도 신통치 않아서 이윤을 많이 차지하지 못할 것은 뻔한 일인지라
평균으로 나누어 가지기만 해도 천만다행으로 생각하던 참이었다.
세 사람이 서로 주장을 펴기만 했지 뚜렷한 결말이 나지않자 하는 수없이 17
마리의 말을 끌고 관청으로 찾아갔다.
군수는 세 사람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판결을 내렸다.
조대는 2/1을 가지고, 풍이는 3/1을, 왕소는 9/1을 가지라고 명했으며 당장
지분에 대한 인정서에 도장을 찍게 하였다.
하지만 관청문을 나서서 군수의 판결대로 나누려고 보니 그 들은 난감하게
되었다. 어떻게 17 마리를 나눌 수 있는가?
조대가 먼저 입을 열었다.
"17 마리의 1/2은 8 마리 반이니 내가 8마리 산 말을 가지고 또 한 마리를 잡아
절반을 가져다가 말고기를 먹겠다."
풍이도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다.
"난 산 말 5 마리를 가지고 또 2 마리를 잡아 고기를 골고루 세 몫으로 나누어
내가 1몫을 가지겠다."
왕소는 그렇다면 자기 몫이 너무 적다고 볼멘 소리를 했다.
"어떻게 계산하든 내 몫은 다 주어야 돼. 그렇지 않으면 난 관청에다 다시 고발할
거야."
그들은 장사를 하여 돈은 벌었지만 17 마리를 놓고 지분을 나누는데는
무기력했다.
이때 군수가 사건을 처리하러 밖으로 말을 타고 나오다가 그들 옆을 지나치려고
하자 그들은 얼른 이 어려운 문제를 군수에게 말하면서 군수에게 직접 말을 나누어
달라고 청했다.
"어험, 그거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구."
군수가 말에서 내리면서 말했다.
"서로 힘을 합쳐 장사를 해서 이익을 남겼으면 양보할 줄을 알아야지. 내 말까지
합해서 너희들에게 나누어 주겠다."
그들은 군수가 자기 말까지 나눠주겠다는 말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저 처분만 기다릴 뿐 다른 방도가 있을 수 없었다.
"17 마리에다 나의 이 말을 합하면 모두 18 마리이다. 조대가 2/1을 가지면 9
마리이니 몰고 가거라."
군수는 이렇게 말하면서 정말 말고삐까지 조대에게 쥐어 주는 것이었다. 조대는
아주 기뻐서 말 9 마리를 몰고 재빨리 떠나갔다.
"풍이는 3/1이니 6 마리를 가져야 하니 역시 몰고 가거라."
풍이도 매우 흡족한 기색으로 6 마리를 끌고 갔다.
"왕소의 9/1은 즉 2 마리이니 너도 2 마리를 몰고 가라."
군수는 또 왕소에게 2 마리를 몰고 가게 했다.
세 사람은 이 분배방법에 매우 만족을 느꼈다. 동시에 그들은 매우 기묘한 기분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9마리, 6마리, 2마리를 합하면 역시 17 마리였고 또 1
마리가 남았다. 군수는 남은 1 마리, 자기 말을 끌고 와서 말잔등에 올라타더니
가던 길을 향해서 사라져 갔다. ff
[ 국왕이 산을 오르다.
손빈이 위나라에서 살다 제나라로 오자 제나라의 제위왕은 몹시 기뻐했다.
제위왕은 원수 전기로부터 손빈이 병법에 능하고 지혜와 모략이 뛰어난 훌륭한
인재라는 말을 듣고 있었다. 하지만 제위왕은 손빈의 재능이 어떠한지 알 수 없어
언젠가 기회를 틈타 손빈의 지혜를 시험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날, 제위왕은 원수 전기와 기타 대신들, 그리고 손빈과 함께 어느 산 밑에
도착했다. 제위왕이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다.
"너희들 가운데 누가 나를 저 산봉우리로 걸어올라 갈 수 있게 해보아라."
신하들은 난처하기 짝이 없었다. 어떻게 왕을 산봉우리로 올릴 수 있단 말인가?
신하들은 저마다 서로의 얼굴만 쳐다볼 뿐 말이 없었다.
이윽고 원수 전기가 입을 열었다.
"지금은 수풀이 다 마른 때여서 주위에 불을 질러놓으면 임금께서 산위로 오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화력을 사용하는 한 가지 방법이긴 하지만 좀 둔한 방법이다."
"다른 나라 군대를 끌어들여 이 산을 포위한다면 임금께선 올라가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걸."
한 대신이 이렇게 생각하곤 있었지만 그렇다고 감히 입밖으로 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신하들이 아무리 머리를 써도 제위왕 스스로 산꼭대기로 걸어올라 가게 할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이때 제위왕이 손빈에게 물었다.
"자네도 나를 저 산봉우리로 올려보낼 방법이 떠오르질 않는가?"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손빈은 비로소 제위왕이 자신에게 물어오자 매우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임금님, 저는 임금님께서 산밑에서 산꼭대기를 오르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임금님께서 만일 산봉우리 위에 계신다면 산밑으로 내려오시게는 할 수 있습니다."
"정말이냐?"
"그렇습니다."
"좋다. 그럼 어디 한번 해봐라."
그리하여 제위왕은 원수들과 대신들의 안내를 받으며 산봉우리를 향해 걸어
올라갔다. 제위왕은 산봉우리를 향해 걸으면서 생각을 해보았다. 손빈이 아래에서
산봉우리로 오르게 할 순 없다고 하면서 어떻게 위에서 아래로는 내려가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너무 궁금한 나머지 제위왕의 발걸음은 자신도 모르게 빨라지고
있었다. 신하들도 그런 생각엔 제위왕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산꼭대기에 이르러서야 손빈이 겸손하게 제위왕에게 말했다.
"임금님, 저의 무모한 행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는 이미 전하를 산꼭대기로
걸어오르시게 했습니다."
그제서야 제위왕과 신하들은 그것이 손빈의 재치였던 것을 알고 그의 뛰어난
지혜에 탄복을 했다. ff
[ 지혜로 왕을 이기다.
전국시대, 제나라 제위왕은 말을 타고 활쏘는 것을 몹시 즐겼는데 그냥 즐기는
것이 아니라 항시 다른 사람과 시합을 했는데 시합하면 거의가 제위왕의 승리로
끝났다.
어느날, 제위왕은 원수 전기에게 시합을 하자고 하면서 상금으로 천금을 내걸었다.
전기는 왕의 제의를 거절할 수 없어 승낙은 했지만 여지껏 왕에게 한번도 이긴
일이 없어 신이 나질 않았다.
집으로 돌아 온 전기는 왕에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손빈에게 구하기로
마음먹었다.
손빈은 용감하고 지혜가 출중한 병법가인데 그는 위나라에서 관리로 있다가
음험하고 지독한 방연의 박해를 피하여 제나라로 도망쳐 온 인물이었다.
전기는 손빈이라면 능히 어떤 방법이 있을 것 같아 그를 자기 집으로 초대해 귀한
손님접대를 하였다.
손빈이 전기에게 물었다.
"이전에는 어떤 식으로 시합을 했죠?"
전기가 이에 대답했다.
"임금님과 저, 두 사람이 각기 말 세 마리를 준비하는데 말을 상 중 하로 나누어
상위 말은 상위 말끼리, 중위 말은 중위 말끼리, 하위 말은 하위 말끼리 시합을
했었죠. 세 마리를 번갈아 타고 시합을 하는데 내 말은 힘이 모자라 번번이
임금님께 졌습니다."
손빈은 전기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당찬 어조로 말했다.
"이번엔 원수께서 임금님을 이길 수가 있소."
"정말입니까?"
"나를 믿으십시오."
"알겠습니다."
이윽고 시합날이 다가왔다. 손빈이 전기에게 말했다.
"상위 말의 안장을 하위 말에 얹어 상위 말인 것처럼 해서 임금님의 상위 말과
겨루고 또 자네 상위 말로 임금님의 중위 말과 겨루게 하세. 또 자네 중위 말로
임금님의 하위 말과 겨루게 하세. 이렇게 순서를 거꾸로 바꾸어놓으면 틀림없이
이길 수 있을 걸세."
전기는 손빈이 가르쳐 주는대로 준비를 단단히 하고 말을 타고 달리며 활을
쏘았다. 임금도 말을 타고 쏜살같이 달리며 활을 날렸다. 백성들은 박수를 치며
왕에게 맘껏 응원을 보냈다.
첫 판은 물론 전기가 졌다. 하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모두 전기가 이겼다.
제위왕은 또 전번처럼 자기가 당연히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전기가
이긴 것을 보고 의아스러움을 감추질 못했다. 제위왕은 전기에게 어떻게 되어 이길
수 있었는지를 물었고 전기는 아뢰지 않을 수 없어 손빈이 자신에게 가르쳐 준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제위왕은 전기의 말을 듣고 역시 손빈의 지혜가 매우
뛰어나다고 칭찬하며 웃었다. ff
[ 위위구조
2천여 년 전의 전국시대.
하루는 위혜왕이 대장 방연을 파견해서 전차 5백대를 거느리고 조나라를 공격하게
했다. 방연이 조나라 고을 한단을 완전 포위하자 조나라의 상황은 몹시 위태로웠다.
조나라에선 화급히 제나라로 특사를 보내어 구원을 요청했다. 제위왕은 당장
전기를 앞세워 대장으로 삼고 손빈을 군사로 임명하여 조나라의 운명을 구하기 위해
군사를 출동시켰다.
손빈은 임무를 부여받은 후, 어떻게 하면 위나라의 기세를 꺾어버리고 하루빨리
조나라를 위기에서 구출할 수 있겠는가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그는 전기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떤 방법으로 조나라를 구할 생각이오?"
"밤낮을 가릴 것 없이 강행군을 해서 빨리 한단으로 달려가 조나라군과 함께
안팎에서 공격을 해 위나라군을 섬멸시킬 작정이오."
전기는 꼭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러나 손빈의 표정은 그리
밝지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한단에 도착할 때는 위나라군이 이미 한단을 점령하고 말
것이오."
"그럼 어쩌지?"
"헝클어진 실타래를 손으로 억지로 잡아당겨선 안되고, 마구 두드려도 안되듯이
먼저 순서를 찾아야 하오. 내 생각으론 맞서 싸운다는 것은 안된다고 생각하오. 또
시간상으로 이미 한단까지 가서 조나라를 구하기는 어렵게 됐고 말이오."
전기는 손빈의 말을 조용히 귀담아 듣고 있었다.
"내 생각으론 지금 우리가 조나라를 구하러 가지만 조나라로 가지 맙시다."
"아니, 조나라를 구하자고 출병을 하는데 조나라를 가지 않는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마이오?"
손빈이 말했다.
"생각해 보시오. 위나라군이 조나라를 공격했으면 필경 정예부대를 파견했을
것이니 위나라는 지금 텅 비어 있을 거요. 그러니 우리가 군사를 거느리고 직접
위나라로 가서 그들과 싸우되 위나라의 교통요충망을 차단시키고 그들의 방어가
허술한 곳을 공격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위혜왕이 이 소식을 들으면 무조건
방연에게 명령을 내려 조나라에서 군사를 철수시켜 자기 나라를 구하려고 할 것
아니겠소? 그때 우리는 그들의 철수지점 중간에 매복해 있다가 공격한다면 조나라도
구할 수 있고 또한 위나라군에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가 있소."
전기는 손빈의 말을 듣고 지체없이 군사를 이끌고 방향을 돌려 위나라로 향해
달려갔다.
과연 손빈이 말한 것처럼 위나라군은 한단에 대한 포위망을 거두고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해 급하게 본국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위나라군이 황급히 계릉에 이르렀을 때 이미 매복하고 있던 제나라군이 일제히
공격을 퍼붓자 위나라군은 혼비백산이 되었고 무려 위나라군의 군사가 2 만여
명이나 전사하였다. 대장 방연은 겨우 목숨을 부지해 위나라의 수도 도성으로
도망을 쳤다.
전기와 손빈은 이렇게 하여 마침내 조나라를 구원하는 임무를 훌륭히 완수하였다.
ff
[ 늙은 말이 길을 안다.
춘추전국시대. 연나라는 늘 북방의 오랑캐들의 침략에 시달렸다. 연나라에서는
견디다 못해 하는 수없이 제나라에 특사를 파견하여 구원을 요청하였다. 제나라
국왕 제환공과 대신 관중은 토론을 거쳐 연나라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친히 군사를
거느려 연나라를 향해 떠나갔다.
어느새 북방 오랑캐들은 제나라의 원군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황급히 북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제환공과 관중은 군사를 이끌고 그들을 바싹 추격해 나갔다.
이날 밤, 그들은 미곡이란 곳에 도착했다. 그런데 눈앞에는 사막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한 그루의 나무도 한 포기의 풀도 보이지 않고 새들의 울음소리 하나 없이
그저 조용하기만 했다. 이런 지형을 처음 보았던 제환공과 관중은 끝내 어디가
동쪽인지 서쪽인지 분간하지 못하고 헤매다가 길을 잃고 말았다.
관중이 제환공에게 말했다.
"언젠가 북방에는 물이 하나 없는 '마른 바다'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만 아마 이곳 같습니다. 아주 위험하다던데요. 더 전진할 수가 없습니다."
군사는 전진을 멈추었다.
날은 점점 어두워져 갔다. 이윽고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였다.
군사를 이끌고 나올 때만 하여도 따스한 봄날이었는데 지금은 어느새 만물이 꽁꽁
얼어붙는 겨울이 되었다. 강풍이 모래를 휘감아 올려 군사들의 얼굴을 사정없이
때렸다. 하룻밤 사이에 숱한 병졸들이 눈을 뜬 채 얼어 죽어 갔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는 물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 곳이라서 빨리
빠져나가지 않으면 굶어 죽거나, 목이 말라 죽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 사막을
빠져 나갈 수 있겠는가?"
관중은 막막한 사막을 바라보며 머리속으로 탈출할 방법에 골몰하였다.
제환공은 한 켠에 서서 그저 무거운 얼굴 표정으로 관중의 어떤 묘책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말 한 마리가 요란하게 울부짖어 이 광활한 사막의 허공을
울렸다.
느닷없는 말의 울부짖음에 관중의 머릿속은 갑자기 무엇이 번뜩 지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이어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개나 비둘기, 꿀벌들은 집에서 아무리 멀리 떨어져도 절대로 길을 잃는 법이
없다. 말도 그렇지 않을까?"
관중은 자기의 생각을 제환공에게 말했다. 제환공은 성공 여부를 알 수 없어서
그저 짤막하게 말했다.
"글쎄, 밑질 건 없으니까 한번 시험해 보게."
관중은 늙은 말 몇 필을 골라 앞장서서 걷게 했다. 그 말들은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게 자유롭게 걸어 나갔다. 사람들은 그 길을 묵묵히 따랐고 말들은 끝내
관중의 생각대로 미곡을 빠져나와 원래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니까 늙은 말 몇 필이 제나라의 대군을 살려낸 것이다. ff
[ 자석
지금으로부터 1700여년 전에 진나라에는 마륭이라는 장군이 있었다.
그때 진나라의 서부국경은 항상 오랑캐들이 몰려와 소란을 피웠고 그래서 민심은
항상 흉흉하였다. 황제는 마륭에게 3천여 군사를 내주면서 오랑캐들의 버릇을
고쳐주라고 일렀다.
마륭의 3천여 군사들은 몹시 용감한 병사들이었으며 오랑캐들도 역시 만만치 않은
병사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륭의 군사보다 훨씬 많은 1 만여 명이나 되었다.
마륭은 곰곰히 생각했다.
"적의 군사는 무려 1 만여 명이나 되고 우리는 고작 3천여 명 밖에 되질 않는다.
정면승부를 걸다간 패하기 십상이니 어떤 술책을 가지고 적의 기세를 꺾어야만
승리할 수 있다."
이날, 양쪽의 군사들은 서로의 기세를 잡기 위해 피를 흘리는 처절한 혈전을
벌였고 천신만고 끝에 마륭은 한 요충지를 점령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었다. 싸움이 거듭되면 될수록 불리할 것이라는 것을 마륭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륭은 즉시 현지 백성들을 불러 부근의 지리상황과 풍토 등을 세밀하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백성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마륭은 우연히 부근의 산에 자석광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전의 마을사람들이 자석을 많이 캤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상황을 알게 된 마륭의 마음은 마치 그 자석에 끌려가는 것만 같았다. 그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끝에 마침내 한 가지 묘책을 떠올렸다.
"자석을 이용해서 오랑캐놈들을 혼내줘야지."
마륭은 병사들을 시켜 자석을 캐오게 했다. 그리고 여러 마을에서 이미 캐낸
자석을 모조리 거두어들여 험준한 요충지의 길 양쪽에 쌓아놓게 했다.
십여 일이 지나서 모든 준비를 끝내고 마륭은 전군에 명령을 내리길 모두
철갑옷과 철모자를 벗어버리고 대신 소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입고 오랑캐들과
싸우게 했다. 오랑캐들은 자기들의 세력이 강하다는 것만 믿고 진나라군을 단번에
토벌할 기세였다.
다시 전투가 벌어졌다. 그러나 너댓 차례 접전을 펼치던 진나라군은 후퇴하는
척하며 황급히 자신들의 요충지를 향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오랑캐들은 기세가 등등해 바싹 추격해 왔다. 그러나 요충지까지 물밀듯이
쳐들어왔던 오랑캐들은 자신들이 입고 있던 철갑옷이 자석에 떡떡 달라붙자 저마다
물에 빠진 사람처럼 손발을 마구 허우적거릴 뿐 도무지 자석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이때를 놓칠세라 후퇴하던 진나라 군사들이 달려와 마구 칼을 휘두르자
오랑캐들이 흘린 피가 강물처럼 흘렀다.
뒤를 따르던 오랑캐들은 이렇듯 앞서가던 자신들의 군사가 갑자기 손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쓰러지자 진나라군이 '신선 같은 군사'를 이용해 사람을 꼼짝달싹
못하게 만들어놓고 죽인다면서 혼비백산해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오랑캐들은 진나라군이란 말만 듣기만 해도 부들부들 떨었고 싸움을
하면 할수록 점점 패전만 거듭했다. 급기야는 1 만여 명이나 되던 군사가 투항한
자는 투항하고 죽기도 해서 완전히 섬멸되었다.
마륭의 지혜로 인해 이때부터 서부국경은 조용해졌다. ff
[ 국왕을 놀라게 한 말
춘추전국시대였다.
제나라 국왕 제경공에게는 무척이나 아끼는 좋은 말이 한 필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병에 걸려 죽었다. 제경공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말을 잘 보살피지 못한
마부의 사지를 찢어버리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이때 재생 안자가 집무를 위해 나가는 길에 마침 칼과 몽둥이를 든 무사들이
마부를 압송해 나오는 것을 보았다. 안자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얼른 옆사람에게
연고를 묻고서야 비로소 제경공이 무고한 사람에게 죄를 덮어 씌워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안자는 이 부당성에 대해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억누르느라고
무진 애를 썼다.
하지만 감히 누구의 앞이라고 제경공의 이 행위를 제지한단 말인가? 곧이 곧대로
말하면 그가 듣지 않을 수도 있고 심지어는 면박을 줄 수도 있고, 당장에 제지를
시킨다면 그는 국왕의 명을 어긴다고 화를 낼 뿐만 아니라 마부는 영락없이 살해될
것이다. 안자는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어 제경공에게 성큼 다가가 물었다.
"전하께 한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요와 순이 사람의 사지를 찢어버릴 때 누구부터
시작했습니까?"
제경공은 그의 물음에 그만 아무런 대답도 하질 못했다. 제경공은 잠깐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요^5,23^순은 현명한 국왕이어서 대대로 내려오며 칭송한다. 요^5,23^순은 절대로
사람의 사지를 뜯지 않았던 국왕들인데 누구부터 시작하다니?"
그제서야 제경공은 깨달을 수 있었다. 이는 안자가 요^5,23^순을 이용해 자신을
일깨워 주려 함이었다. 제경공은 입을 열었다.
"재상, 무슨 말인지 이제야 알겠소. 사람의 사지를 찢는 일을 어찌 나로부터
시작할 수가 있겠소?"
제경공은 곧 명령을 내려 마부를 감옥으로 끌고 가게 하고 사지를 찢는 일은
취소되었다.
그러나 안자는 국왕이 화까지 풀지 않는 이상 끝내 마부가 화를 면치 못할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안자는 매우 근엄한 표정으로 제경공에게 말했다.
"전하, 마부는 죽을 죄를 졌기 때문에 감옥에 집어넣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하지만 그가 어떤 죄를 지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하고 정정당당하게 명분을
내세운 다음에 죽여도 죽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줄곧 얼음장처럼 냉정하게 굳어 있던 제경공의 얼굴에는 그제서야 웃음이
떠올랐다.
"전하, 그러니 제가 마부의 죄를 하나하나 열거해 보겠습니다."
"그래, 어디 한번 해봐라."
안자는 매우 그럴듯하게 마부의 죄를 열거하였다.
"마부의 죄는 세 가지 입니다. 마부가 전하의 말을 길러 죽였으니 이것이 첫번째
죄입니다. 죽은 말은 또 전하께서 아끼시는 말이니 이것이 둘째입니다. 셋째는,
마부가 말을 죽여 전하께서 마부를 죽이겠끔 했으니 백성들이 이를 알고 마부를
동정하고 전하를 증오할 것이며, 신하들이 들으면 전하께서 사리가 밝지 않다고
전하를 멸시하고 멀리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조정과 백성이 함께 전하께
불만을 갖게 되고 실망하게 될 것인데 그렇게 만든 마부야말로 보통 죄인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니 마땅히 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어찌 마부의 죄를 열거하는 것인가? 오히려 교묘한 말로 국왕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아닌가.
제경공은 안자의 말에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몸둘 바를 몰라 했다. 그제서야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얼른 안자의 말을 가로 막으며 말했다.
"알았다. 알았어. 마부는 확실히 죄가 없으니 풀어줘라. 당장 풀어줘라!" ff
[ 일거양득
일거양득은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성구인데 그 뜻은 한 가지 일을 함으로써 두
가지 이익을 이룬다는 것이다.
이 성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독자들은 알고 있습니까?
아주 멀고 먼 옛날에 관장자라는 포수가 살고 있었다. 어느날, 그는 이웃에 사는
관여와 함께 사냥을 떠났다.
산을 두 개 타고 넘으니 앞에 벌판이 나타났는데 호랑이 두 마리가 죽은 송아지를
뜯어 먹고 있었다. 관장자가 그것을 보고 얼른 활을 꺼내 시위를 팽팽하게 당기며
호랑이를 향해 겨냥하는 것이었다. 이를 본 관여가 황급히 제지시켰다.
"잠깐만, 좀더 기다리게."
"아니, 지금 호랑이가 송아지를 먹느라고 정신이 없는데 이럴 때 쏘면 좋잖은가?"
"지금 쏘면 겨우 한 마리밖에 잡을 수 없어. 한 마리는 도망을 친단 말일세.
조금만 기다리면 두 마리 다 잡을 테니 기다리게."
"조금 기다리면 두 마리를 다 잡을 수 있다구? 어떻게?"
관자가 알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관여가 말했다.
"생각해 보게. 지금 두 마리는 정신없이 송아지를 먹지만 먹다보면 끝내 나머지를
가지고 싸우게 될 것일세. 서로 싸우다 보면 저 작은 호랑이는 큰놈에게 물려 죽을
것이고 큰놈은 또 큰놈대로 작은 놈에게 상처를 입어 기진해 있을 것이 아닌가.
그때 가서 그놈을 쏘면 단번에 두 마리를 잡을 수 있단 말야."
관장자는 관여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팽팽하게 당겼던 활시위를
거둬들였다. 두 사람은 수풀 속에 가만히 숨어서 호랑이의 동태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관여의 말대로 마지막 고기 한 조각을 놓고 두 마리의 호랑이는
풀밭에 널브러져서 두어번 꿈틀거리더니 이내 축 늘어지는 것이었다. 큰 호랑이는
싸움에 지쳐 숨을 헐떡거리며 몰아쉬면서 혓바닥으로 상처자국을 핥고 있었는데
몹시 지친 꼴을 하고 있었다.
이때 관장자와 관여가 함께 활을 쏘아 큰 호랑이를 쓰러뜨렸다.
이 두 사람이 이렇게 두 마리 호랑이를 모두 잡은 이야기는 이때부터 사람들에게
널리 전해졌다. 그리고 우리 성구에도 새롭게 일거양득이란 말이 생겨났다. ff
[ 서문표가 업성을 다스리다.
2천여 년 전의 전국시대, 위왕은 서문표를 파견해서 업성을 다스리게 했다.
업성은 지금의 하북성 임장이며 쉼없이 동으로 흐르는 장하가 바로 이 고장을
경유하고 있다.
업성은 원래 매우 풍요로운 고장이었는데 서문표가 와보니 집들이 허물어지고
토지가 황폐해져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그는 도무지 그 원인을 알 수가 없어서
백성들에게 알아보았더니 글쎄 "하백이 각시를 삼다"라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하백이 각시를 삼다"란 무슨 말인가 하면 무당들과 관리들이 해마다
장하의 신인 하백에게 예쁜 각시를 보내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질 않으면 하백이
화를 내서 장마를 지게 해 곡식이 물에 잠기고 집이 물에 떠내려 가게 한다는
것이다.
해마다 봄이 오면 무당이 어느집 규수가 예쁘다면 그 집을 찾아가 말했다.
"올해는 이 아가씨가 하백의 부인이 되어야 한다."
만일 돈을 많이 내게 되면 그것으로 면제를 받을 수는 있었지만 돈이 없다면
끌려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하백이 각시를 맞아들이는 날이면, 그들은 장하에서 아가씨에게 새옷을 갈아
입히고 곱게 단장을 시킨 후, 까래로 엮은 쪽배를 태워 하류로 떠내려 보낸다.
쪽배는 물길을 따라 둥둥 떠내려가다가 얼마쯤 가서는 배에 물이 스며들면서 쪽배와
아가씨는 그만 물밑으로 가라앉고 만다.
해마다 이러기를 반복했다. 무당과 관리들은 백성들이 피땀으로 번 돈을 이렇게
해서 무수하게 착취했으며 아가씨들은 무수히 죽어갔다. 백성들은 마음이 황황해져
저마다 이 고장을 떠나기 바빴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알게 된 서문표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업성을 잘 다스리고 평화롭게 하려면 반드시 '하백이 각시를 삼다'라는 사건을
송두리째 뽑아버려야 한다. 하지만 이미 뿌리내린 이 미신과 같은 것을 무슨
방법으로 없애버릴 것인가?"
생각 끝에 그는 마침내 하나의 방책을 생각해냈다.
드디어 하백이 각시를 맞는 날이 다가왔다. 한 늙은 무당이 맨 앞장을 서고 그
뒤로는 십여 명의 새끼 무당들이 손에 수건을 받쳐들고 줄줄이 따르면서 새옷을
입고 곱게 단장한 아가씨를 데려오고 있었다. 몇몇 관리들은 뭐가 신바람이 나는지
무슨 대단한 행사를 치루는 것인냥 무당 옆에 나란히 줄지어 섰다.
늙은 무당이 이윽고 한 아가씨를 까래로 만든 쪽배에 앉히려 할 때 서문표가
성큼성큼 다가가 자기가 직접 아가씨를 하백에게 보내겠노라고 했다.
서문표는 사방에 원을 그리며 빙 둘러선 백성들을 한번 휘둘러보더니 시선을
무당과 관리들에게 보내며 명령조로 말했다.
"그 아가씨를 이리로 데려 오너라. 내가 먼저 봐야겠다."
늙은 무당은 명령을 어길 수도 없고 해서 새끼 무당들을 시켜 곱게 단장한
아가씨를 서문표에게로 보내왔다.
그 아가씨는 겁에 질려 얼굴은 하얗게 되었고 눈물투성이었다. 서문표는 그
아가씨의 얼굴을 들여다보곤 매우 마땅찮은 얼굴로 무당을 향해 말했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이렇게 추한 여자를 하백의 부인으로 보내는 것이냐? 하백은
만족하지 않을 뿐더러 매우 화를 낼 것이다. 그러니 무당이 하백에게 가서
말하게나. 태수인 서문표가 아주 예쁜 아가씨를 골라 보낼 테니 며칠만
기다려달라고 말야."
말을 마친 서문표는 부하들을 시켜 늙은 무당을 장하에 처넣었다. 늙은 무당은
강물에서 몇 번 허우적거리다가 이내 물밑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서문표는 아주 태연하게 강가에 서서 진짜로 무당이 되돌아 오기를 기다리는
척했다.
한참 후에 서문표가 말했다.
"낡은 무당은 나이가 많아서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하백에게
간지도 벌써 오래됐는데 돌아오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러니 새끼 무당을 보내
하백이 나의 부탁을 들어줄 것인지 확인하도록 하라."
부하들은 서문표의 명령에 따라 한 새끼 무당을 끌어다 강물에 처넣었다.
늙은 무당과 새끼 무당들이 이렇게 하여 줄줄이 강물에 처넣어졌건만 누구도
돌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서문표는 한 관리에게 말했다.
"하백에게 간 사람들은 모두가 여자들이어서 일처리를 올바로 못하는 것 같다.
수고스럽지만 자네가 갔다 와야겠다. 지체하지 말고 빨리 갔다와서 보고를 해라."
부하들이 그 관리를 또 강물에 처넣었다. 그러나 장하는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동쪽으로 유유히 흐를 뿐, 한번 강물에 처넣어진 사람들은 소식이 없었다. 몇 명
남겨진 새끼 무당과 관리들은 또 자기들의 차례가 오지 않을까 싶어 몸을 사시나무
떨 듯 했다.
그렇게 한식경이나 지나서 서문표가 몸을 돌려 말했다.
"그들이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으니 이번엔 또 누가 가서 말하고 오겠나?"
그 말을 듣자 새끼 무당과 관리들은 얼른 땅에 엎드려 손을 싹싹 빌었다.
그제서야 서문표는 정색을 하고 엄숙하게 말했다.
"강물은 말없이 흐를 뿐인데 무슨 하백이 있단 말이냐? 너희들은 '하백이 각시를
삼다'라는 미명 아래 백성들을 못살게 굴었음은 물론 무고한 아가씨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늙은 무당은 이미 죽었다. 나중에 또 누가 이런 일을 벌인다면 그
사람부터 내가 하백에게 보내도록 할 것이다."
그로부터 '하백이 각시를 삼다'라는 미신은 영영 자취를 감추었고 업성의
백성들은 안심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태평성대를 구가하였다. ff
[ 집안을 가득 채운 10전어치 물건
옛날, 어느 사람이 자기의 세 아들 가운데 누가 가장 총명한가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그는 세 아들을 어느 빈 집으로 불렀다. 이 집은 오랫동안 비워두고 사용하지
않아서 습기가 많고, 침침하고 곰팡이 냄새가 진하게 풍기고 있었다. 그는
아들들에게 각각 10전씩 주며 말했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각자 시장엘 가서 10전어치 물건을 사와라. 그러되 그
물건으로 이 빈 집안을 가득 채워야 한다. 그러나 물건을 살 때 너희들은 제각기
사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묻지도 말고 자기 머리를 써서 사야 한다."
삼형제는 이윽고 시장으로 가서 빈 집을 가득 채울 물건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맏이는 아무리 시장을 왔다갔다하여도 그런 싸구려 물건을 사지 못했다.
10전어치 물건이어야 하고 또 집안을 가득 채워야 하는데 제일 싼 마른 나무라
하여도 겨우 한 단 밖에 살 수가 없었다. 그것으론 집안을 채우기는커녕 한 쪽
구석도 채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눈에 불을 켜고 다녔지만 빈집을 채울 물건을
산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였다.
어느덧 중천에 걸렸던 해는 서산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고 노을이 붉게 물들었다.
맏이는 파장시간도 가까웠고 별 수 없이 빈손으로 집엘 돌아왔다. 그 사이에 두
동생은 벌써 집엘 와 있었다.
아버지가 먼저 맏이에게 어떤 물건을 샀느냐고 물었다. 맏이는 풀이 죽어서
모기만한 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시장을 뒤져도 그렇게 빈 집을 채울만한 싼 물건이 없었습니다."
맏이는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아버지에게 내밀었다.
아버지가 이번엔 둘째에게 무엇을 사왔느냐고 물었다.
둘째는 풀 한 단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이 풀은 10전을 주고 샀습니다. 절반은 마르고 절반은 마르지 않아서 불을
지피면 연기가 많이 나지 않겠어요? 금새 연기가 빈 집안을 가득 채울 거^36^예요."
아버지는 머리를 끄덕이며 이번엔 셋째에게 물었다.
"그래, 너는 사왔느냐?"
셋째는 호주머니에서 빨간 촛대 한 자루와 성냥 한 통을 꺼내며 말했다.
"촛대 한 자루에 8전이고, 성냥 한 통에 2전이어서 모두 10전어치^36^예요."
셋째는 말을 마치더니 성냥을 그어 촛불을 켰다. 촛불은 처음에 희미하게
나불나불하더니 이내 환하게 켜지면서 침침한 집안의 어둠을 몰아내고 집안을 가득
채웠다.
아버지는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몹시 기뻐했고 두 형들도 셋째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ff
[ 바람을 그린 화가
청나라의 저명한 화가 이방응은 강소 남통 사람이다. 그는 그림을 아주 잘
그렸는데 특히 매화, 소나무, 그리고 대나무를 잘 그렸다.
어느날, 그는 친구집에 놀러 갔다. 여러 친구들이 모인 자리였는데 친구들은
세상사에 관한 한담들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어떻게 해서 이야기가
그림이야기로 연결되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말했다.
"세상에서 다른 것은 다 그릴 수 있을지 몰라도 내 보기엔 딱 한 가지, 그것만은
그릴 수 없다고 생각해."
다른 친구가 그것이 무어냐고 묻자 그는 당당하게 말했다.
"바람."
여러 친구들이 그 말을 듣더니 그것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바람은 만질 수도 없고
그림자도 없으니 확실히 그림으로 그리기엔 불가능하였다.
이때 옆에서 조용히 앉아 얘길 듣고 있던 이방응이 입을 열었다.
"그런가? 하지만 난 그릴 수 있지. 바람을 그릴 수 있다구."
친구들은 이방응이 바람을 그려낼 수 있다고 단호하게 말하자 호기심이 발동해
어서 빨리 그려보라고 졸라댔다.
이방응은 조금도 지체하질 않고 종이를 펴더니 먹물을 꾹꾹 찍어 바람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한나절이 지나서 '바람'을 그려냈다.
그림은 촘촘히 들어선 대나무숲이었는데 한 쪽 모서리로 힘있게 쓰러질 듯이
기울어져 있었다. 그림은 정말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광풍이 몰아치는 것 같이
보였고 대나무숲은 바람에 부대끼어 서걱서걱 하는 소리가 정말로 들려오는 듯했다.
형태도 없고 그림자도 없는 바람이 마치 손에 잡혀질 것처럼 느껴졌다.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너나없이 이방응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방응은 곧 그림에 '풍죽도'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그때로부터 '바람을 그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왔다. ff
[ 황금 10근
옛날에 한 노인이 있었는데 그 노인은 평생 열심히 일만 하면서 살았다. 그러나
정작 그 노인의 두 아들은 일하기는커녕 오히려 빈둥거리며 놀기만 하고 먹는 것만
밝히었다.
그래도 노인의 부지런함과 근검함에 생활은 풍족했으며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노인이 점점 나이를 먹고 기력이 쇠잔해지면서 살림이 점차 기울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아들은 여전히 일하기를 싫어하고 먹는 일만
탐닉했다.
끝내 노인은 몸을 더 지탱하지 못하고 몸져 누웠고 부인은 눈물을 흘리며
노인에게 말했다.
"저 게으른뱅이 녀석들을 믿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하군요."
병석에 누워 있는 노인은 자신이 죽은 후에 두 아들에 의지해 살아야 할 마누라가
가련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게으른 두 아들을 부지런히 일하며
살 수 있게 할 것인가 하고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이윽고 임종에 가까워서 노인은 두 아들을 앞에 불러놓고 말했다.
"얘들아, 난 곧 저 세상으로 간다. 그간 내가 너희들을 위해 황금 10근을
모아놨는데 그것을 마을 서쪽에 있는 우리밭의 회나무 밑에 묻어 놓았다. 너희들이
그 황금을 캐내어 나누어 가지면 잘 살 수 있다."
두 형제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를 선산에 묻었다. 그리곤 곧바로 두
형제는 서쪽에 있는 밭의 회나무 밑으로 황금을 캐러 갔다.
밭은 노인이 병들어 일구질 않아서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두 형제는
이를 악물고 오직 황금을 캔다는 생각에만 골몰해 연 닷새 동안 땅을 팠다. 그들
손바닥에 물집이 생기다 못해 피멍까지 들었다. 땅은 몇 길이나 파졌고, 단단하게
다져진 밭머리마저도 홀딱 뒤집어졌다.
"아니 왜 황금이 없지? 분명히 이곳이라고 했는데."
두 형제는 연신 땀을 닦아내며 중얼거렸다. 그리곤 돌아가신 아버지가 왜 하필 그
귀중한 황금덩어릴 이런 곳에다 파묻었는지 모르겠다면서 투덜거렸다.
그렇게 땅을 무한정 파들어 가던 두 형제는 점차 맥이 빠지기 시작했다. 형이
말했다.
"아우야, 아무리 찾아도 황금이 보이질 않는데 이렇게 하면 어떨까? 지금은 마침
씨뿌릴 철이 왔는데 땅도 이렇게 파헤쳤고 하니 우선 밀부터 심어 놓고 내년에 다시
파보는 게."
동생도 이내 동의를 했다. 두 형제는 밀을 자신들이 파헤친 밭에 뿌렸다.
일주일이 지나 파릇파릇한 밀의 싹이 돋아났다. 그리곤 또 얼마가 지나자 밀은
아주 푸르게 자라났고 봄바람에 파도 같은 물결이 일렁이고 있었다. 이것은 필경
자신들이 구슬땀을 흘린 뒤의 수확이라고 생각되자 두 형제는 탐스러운 밀을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며 흐뭇해했다. 그래서 열심히 거름을 주고 풀을 뽑아 주었다.
초가을이 되어 두 형제는 황금 같은 밀을 베어 식량과 이듬해 뿌릴 종자를
남겨놓은 후 나머지를 몽땅 시장에 내다 팔았는데 그것이 공교롭게도 황금 10근
값에 이르렀다.
그제서야 두 형제는 아버지가 임종 때 하신 말씀의 뜻을 깨닫게 되었다. 땅속에
묻어둔 '황금 10근'은 그것이 바로 피땀으로 가꾼 밀의 수확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때로부터 두 형제는 마을에서도 알아주는 부지런한 농군이 되어 기울었던
가세를 일으켰고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게 되었다. ff
[ 이상한 종
귀신을 잡는다는 이야기라면 아마 사람들은 신화를 이야기한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중국 역사에 실제 있었던 이야기다.
당나라 때, 낙양의 부근에는 절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의 스님이 기거하는 방에
걸려있는 작은 종은 타종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소리를 냈다. 소리는 매우 낮았고
은은했으며 그것은 마치 한 마리 꿀벌이 붕붕^6,3^ 날으는 소리같기도 했다. 스님은
그 종이 하도 이상해서 귀신의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주기적으로 종소리가 날 때면
얼굴이 온통 흙빛이 되어 안절부절을 못하였는데 나중엔 그만 병들어 눕기까지
하였다.
할 수 없이 도사를 불러 귀신잡을 방도를 모색했다. 그러나 그 도사의 도력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종은 여전히 울렸고 낙담한 스님의 병은 점점 깊어만 갔다.
스님에겐 친한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이름은 조소기였다. 어느날 조소기는 스님의
병문안을 왔다. 스님은 작은 종이 스스로 자꾸 울린다고 하면서 그 귀신을 잡으려고
도사까지 청했지만 그것도 헛수고였다는 이야기를 그에게 했다. 조소기는 그
이야기를 듣고 탁상 위에 놓은 작은 종을 찬찬히 관찰해 보았다.
이때 공양시간을 알리는 큰 종이 땡땡 울려퍼졌다. 큰 종이 울리자 그 작은 종도
덩달아 붕붕^6,3^하는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봐! 또 울린다, 또 울려!"
스님은 신음처럼 내뱉으며 두 눈을 꼬옥 감고 몸을 사시나무 떨 듯이 와들와들
떨면서 입으론 줄창 '나무아미타불'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조소기는 조용히 앉아서 그 매화꽃 같은 종을 바라보며 은은하게 울리는
종소리를 유심히 듣고 있었다. 이윽고 큰 종이 소리를 멈추자 방안의 작은 종도
이내 소리를 그쳤다. 그제서야 조소기는 내심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귀신을 찾았다. 작은 종 안에 귀신이 들어 있다." 조소기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스님은 한숨을 깊게 몰아쉬며 두 눈은 그저 조소기를 응시할
뿐이었다.
"나에게 곡주 한 잔 대접하게. 꼭 귀신을 잡아낼 테니."
"여부가 있겠나? 귀신만 잡는다면 곡주 한 잔이 아니라 한 말이라도 대접하지."
이튿날, 스님은 푸짐한 술상을 마련해 놓았다. 조소기는 여느 때와 같이 곡주를
마시며 한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귀신 잡는 이야긴 전혀 하지도 않고 오로지
술먹는 일과 쓸데없는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이 그의 전부였다. 스님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저 친구가 정말 귀신을 잡을 수 있을까? 잡는다면 어떤 방법으로 잡을 수 있다는
말인가?"
조소기는 취기가 잔뜩 오른 후, 품속에서 쇠칼을 꺼내 들더니 탁상 위에 놓은
종을 쓱쓱 몇 갈래 홈을 갈라놓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다 잡았네. 귀신을
잡았어.'하고는 몸을 일으켜 가버리는 것이었다.
스님은 그 몇 갈래 깊숙하게 패인 홈을 바라보아도 도무지 무슨 영문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작은 종에 흠집을 파놓은 이후론 다시는 붕붕^6,3^
하는 소리가 나질 않는 것이었다.
스님은 하도 신기하고 이상하기도 해서 조소기를 불러 까닭을 물어보았다.
"작은 종 안엔 아무런 귀신도 없었네. 단지 작은 종과 절의 큰 종은 음률이
같아서 큰 종이 울리면 그 진동에 의해 작은 종이 울렸을 뿐이네. 작은 종은 더
이상 울리지 못하지." ff
[ 도둑이 도둑이어야 한다.
이 이야기는 중국 역사상의 남북조시대에 생겨난 이야기이다. 그때 부융이란
사람은 익주에서 관리로 있었다.
황혼 무렵의 어느 하루였다. 나이가 지긋한 한 여인이 길가에서 도둑에게 물건을
빼앗겼다. 도둑이 물건을 빼앗고 도망치자 여인이 소리를 질렀다.
"도둑 잡아라, 도둑 잡아!"
때마침 길을 가던 행인이 도둑을 붙잡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적반하장격으로 도둑이 오히려 행인에게 도둑이라고 몰아세우는
것이었다. 날은 이미 어둑해져 사람들은 누가 도둑이고 아닌지를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 두 사람을 모두 관청으로 끌고 갔다.
끌려온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부융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누가 도둑이고 아닌가를 난 금방 알 수 있다. 너희 두 사람이 달리기 시합을
하는데 먼저 달려가는 사람은 도둑이 아니다."
잠시 후 그 두 사람은 달리기를 끝내고 다시 관청으로 되돌아왔다. 부융은 늦게
성문을 뛰어 간 사람을 보고 매우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네 놈이 분명하게 도둑인데 남에게 뒤집어 씌울 테냐? 곤장 50 대를 매우 쳐라."
원래 도둑은 달리기를 못하여 뒤따라 온 행인에게 붙잡혔던 것이다. 부융은
그것을 생각하고 달리기를 시켜서 진짜 도둑을 가려낸 총명한 관리로 백성들로부터
총애를 받았다. ff
[ 톱의 발견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에 기술이 아주 뛰어난 노반이라는 목수가 있었다. 그는
집을 짓는 것뿐만 아니라 교각을 설치할 줄도 알았고 돌로써 여러 가지 모양의
짐승들을 조각할 줄도 알았다. 그가 나무를 깎아 만든 새는 마치 하늘을 비상하는
것 같았다.
한 번은 그의 뛰어난 솜씨를 알고 있는 국왕이 궁전을 지어보라고 명령을
내렸는데 단순 명령이 아니라 기한을 정해놓고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기한을 지키지 않을 때에는 엄벌을 내린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궁전을 짓게 된 노반은 먼저 자재부터 구입했다. 궁전을 지으려면
목재가 수없이 많이 들어야 했으므로 노반은 제자들을 데리고 벌목하기 위해 산으로
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톱이 발명되지 않아서 오직 도끼로 굵은 통나무를 찍어
넘겨야 했다. 통나무를 찍는 도끼소리는 산을 쩡쩡 울렸다. 며칠이 흘렀다. 그러나
제자들은 벌써 기진맥진해 있는데 도끼로 찍어 넘어뜨린 나무는 얼마 되질 않았다.
노반은 은근히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목재를 짧은 시일 내에 채벌하지
못하면 궁전을 기한 내에 완성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자신은 물론 제자들까지도
엄벌을 면할 수 없게 된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벌목하는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는 무슨 방법이 없을까?"
노반은 이런 생각이 끊이질 않았고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어느날 아침, 노반은 무거운 마음으로 산을 올랐다. 산을 오르는 오솔길은 몹시
가파랐고 나무와 풀은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그는 나뭇가지와 잡초들을 헤치며
비탈길을 올랐다.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내딛는 발걸음은 힘겹기만 했다. 그런데
갑자기 미끄러지면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한 노반은 급한 김에 풀에 베어 빨간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그것을 본 노반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유연한 풀이 손을 베어?"
그는 다시 시험해보기로 작심을 하곤 왼손으로 풀을 잡고 힘껏 당겨보았는데
손바닥에는 또 두 줄기 살이 베어지면서 빨간피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노반은 아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풀을 뽑아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면서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는 그 이유를 알아냈다. 그 풀의 잎사귀에는 수많은 가시 같은 날이
돋아나 있었다. 바로 이 가시 같은 날이 노반의 손을 베놓았던 것이다.
노반은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딱 쳤다.
"한 줄기 유연한 풀이 손을 이렇게 벨 수 있다면 철판으로 이 가시 같은 날을
세운다면^5,5,5^? 맞아, 통나무쯤이야 쉽게 벨 수 있겠지."
그는 그 길로 한걸음에 내달려 철공소를 찾아가 양쪽에 가시 같은 날이 달린
철판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것을 메고 산으로 올라간 노반은 그것으로
나무를 베어보니 과연 쉽고 빠르게 쓰러지는 것이었다.
풀에 손을 베는 것은 지극히 사소한 일이지만 그러나 노반은 손을 베고서 톱을
발명하게 되었다. 그것은 그가 항시 새로운 것을 찾아 추구하며 사물을 분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ff
[ 쥐똥사건
삼국시대의 오나라에서는 보잘 것 없고 사소하기 그지없는 쥐똥사건이
발생하였다.
손량은 열 세살에 아버지 손권의 왕위를 이어받아 오나라 황제가 되었다.
어느날, 손량은 대신들과 함께 원점으로 사냥을 나갔다. 한참 사냥을 하다가
부하가 노오란 매실을 가져와 목을 축였다. 매실은 달콤하면서도 새콤하고 또
시원하기 때문에 지금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손량이 즐겨 먹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손량은 조금 마시다가 매실에 꿀을 타먹겠다고 하면서 부하를 시켜
창고에 보관해 둔 꿀을 가져오게 했다.
꿀을 가져 온 부하는 두 손으로 공손히 받쳐들어 황제에게 바쳤다. 그러나 손량이
받아서 마시려고 보니 꿀에 난데없는 쥐똥이 있었다. 손량은 벼락같이 호통을 치며
야단을 부리는 것이었다. 부하는 얼른 무릎을 꿇고 앉아서 떨리는 목소리로 쥐똥은
이미 창고에서 가져올 때부터 있었다고 말하였다.
손량은 사람을 시켜 창고지기를 불러와 물었다.
"꿀통 뚜껑을 닫아놓았기 때문에 쥐는 꿀통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제가
부하에게 꿀을 내줄 때까진 정말 깨끗했습니다."
"쥐가 꿀통에 들어가 똥을 누지 않았으면 어떻게 저 속에 쥐똥이 들어있단
말인가?"
부하는 자신에게 모든 누명이 씌어지자 거세게 반박해왔다.
"분명히 창고를 잘못 지켰고 꿀통 보관을 잘못했기 때문에 쥐새끼가 꿀통 속에다
똥을 싼 거란 말야."
부하와 창고지기는 서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황제 앞임에도 불구하고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싸우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책임임이 드러난다면
생명을 부지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손량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창고지기에게
먼저 물었다.
"저 부하가 오늘 말고 언젠가 너에게 꿀을 달라고 한 적이 있었나?"
"네, 그랬지만 주질 않았습니다."
손량은 이번엔 부하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네가 앙심을 품고 꿀에다 쥐똥을 넣은 것이구나?"
그 말에 부하는 아니라고 딱 잡아 떼었다.
"아^5,5,5^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때 옆에 있던 두 대신이 나지막한 소리로 손량에게 말했다.
"전하, 두 사람의 말이 같지 않은데다 또 증인이 없어 가릴 수가 없으니 아^36^예
옥졸에게 넘겨 처리하도록 하심이 어떠하오신지요?"
손량은 창고지기를 쳐다보고 또 부하를 바라보더니 단호한 어조로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당장 이 사건을 처리하겠다."
손량은 사람을 시켜 쥐똥을 건져내서 절반을 쪼개 보더니 얼굴이 환해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쥐똥을 넣은 놈은 다름아닌 부하놈이다. 필경 그때 창고지기가 꿀을 주지 않자
창고지기를 모해하기 위해 네가 쥐똥을 넣은 것이다."
부하의 낯빛이 점점 일그러지더니 하얗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손량이 계속해서
말했다.
"만약 쥐똥이 오래 전에 꿀에 들어갔다면 겉과 속이 다 젖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쥐똥은 겉만 젖고 속은 말라 있는 것을 보면 이 똥을 꿀에 넣은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부하가 벌써부터 창고지기에게 앙심을 품고 있다가
오늘 내 심부름을 이용해 네가 넣은 것이다!"
부하는 손량의 말을 듣고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부하들은 탄복의 눈길로
어린 황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ff
[ 현명한 군수
옛날, 어느 부인이 나쁜 마음을 품고 자기 남편을 독살하였다. 그녀는 이 일이
탄로날까봐 두려운 나머지 밤에 아무도 모르게 집에도 불을 질렀다.
세찬 불길은 삽시간에 집 전체를 감쌌고 동네 사람들은 불을 끄기 위해 모두
뛰쳐나왔다. 부인은 맨땅에 주저앉아 목놓아 통곡하였고 기절하는 시늉까지 했다.
마침내 불은 동네 사람들에 의해 진화가 되었다. 불이 꺼진 후 잿더미가 된
속에서 죽은 남편의 시체가 발견되었는데 불에 그을려 얼굴모양조차 식별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모습을 본 부인은 더욱 목놓아 우는 척을 했다.
죽은 남편의 친척들은 그러나 불에 타죽은 것을 인정하지 않고 타살일 가능성이
많다면서 이 사건을 관청에 고발하였다. 그러나 부인은 틀림없이 남편이 불에
타죽은 것이라면서 관청에 고발하기를 반대하였다.
그러나 관청에 접수된 이 사건은 군수인 장거가 직접 담당하기로 했고 현장검증에
나섰다. 그의 의문은 처음부터 초보적인 단계에서부터 나타났다.
"불에 타 죽었다는데 어떻게 몸부림 한 번 쳐본 흔적없이 이렇게 조용히
죽었을까? 그 뜨거움 때문이라도 고통스러워 마구 몸부림을 쳤을 텐데. 누군가 이
사람을 살해하고 그 흔적을 없애기 위해 불을 지른 것이라면 증거를 잡을 어떤
방법은 없을까?"
장거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끝에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는 사람들에게 돼지 두 마리를 끌고 오게 한 후, 그중 한 마리는 죽이고 다른
한 마리는 산 채로 불구덩이 속에 처넣었다. 그러자 산 채로 불구덩이 속에 던져진
돼지는 바둥바둥 몸부림을 치면서 호흡을 해 콧구멍에는 연기와 먼지가 가득 찼는데
죽은 돼지의 코는 깨끗하였다.
이 실험을 통해 장거는 사람을 시켜 시체를 검사하게 하였는데 죽은 사람의
코에는 연기와 먼지를 들여마신 흔적이 조금도 없었다. 필경 피살되었음이
분명했다.
장거는 당장 명령을 내려 부인을 끌고 오게 하였고 부인을 강력하게 심문하자
그는 자기가 죽였음을 인정하였다. ff
[ 제발 저린 중
옛날 유헌경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수주 안풍의 군수였다.
그곳에는 한 분의 스님이 절에서 살고 있었는데 성품이 어찌나 착하고 선하던지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았고 생활도 아주 검소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남들이 그에게
보시를 하면 그는 그것을 모두 모아두었는데 나중에 계산해보니 몇 백원이나
모일만큼 많았다.
그 스님에게는 이제 막 불가에 입문하려는 제자가 있었다. 이 제자는 득도를
하려고 불가에 입문했으면서도 유별나게 금전에 눈독을 들였고 기회를 봐서 그 돈을
훔치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스승이 좀체로 자기 방을 떠나지 않았고 설사 방을
비우게 된다 해도 꼭 제자를 불러 같이 나가는 바람에 좀체 돈을 훔칠 기회가
없었다.
어느날, 제자는 더 이상 참질 못하고 밤을 이용해 스님의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리곤 스님을 살해하고 돈을 훔쳐낸 뒤에 스님의 시신을 쥐도 새도 모르게
암매장해 버렸다.
속담에도 있듯이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했듯이 그 제자 중은 스님을 죽이고 난
후에 이것이 탄로날까봐 두려워 가슴이 방망이질 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당장 누군가 찾아와 스님은 어디 계시냐고 물을 것만 같았다. 제자 중은 아무리
생각해도 먼저 관청엘 찾아가 귀띔을 해놓아야 나중에 자기가 받을 의심에서 탈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제자는 스스로 관청엘 찾아가 말했다.
"저희 스님은 행려를 떠나셨는데 아마 며칠 걸려야 돌아오실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관청 사람들은 이 중이 참으로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
일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해서 관청까지 찾아와 얘길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헌데 군수 유헌경이 그 말을 듣더니 여기엔 필시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유헌경은 마음속으로 생각해 보았다.
"스님이 행려를 떠난다는 것은 아주 보통적인 일이며 관청에선 전혀 관계하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 중이 일부러 찾아와 보고하는 것을 보면 분명 어떤
문제가 있음이 확실하다."
이렇게 생각한 유헌경은 진위를 가리기 위해 스님의 친구인 것처럼 가장하고 아주
태연스럽게 말했다.
"나는 그 스님과 친분이 두터워 친형제처럼 지내고 있어 무슨 일이 있으면 그는
늘 내게 찾아와 의논하곤 했지. 언제나 행려를 떠나면 내가 노자를 챙겨 주었는데
이번엔 내게 한 마디 말없이 떠났다니 이해가 가질 않는다."
유헌경은 갑자기 태도를 바꿔 호통을 치듯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었다.
"이놈! 정말 스님께서 행려를 떠난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일이 일어났는가?
바른대로 말하지 못할까!"
중은 유헌경의 추상같은 목소리에 질려 두려움에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중의 얼굴 표정을 본 유헌경은 자세를 조금도 낮추질 않고 계속 심문해대자 중은
하는 수없이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ff
[ 거울
옛날에 동휘라는 어린아이가 있었는데 그는 매우 총명하고 영리하였으며
어린아이답지 않게 늘상 아버지와 어머니를 도와 일을 하였다.
어느날, 그는 어머니와 함께 우물로 물을 길러 갔다. 어머니가 머리를 숙여 물을
길어 올릴 때 그는 그만 머리에 꽂은 비녀를 우물 속으로 빠뜨렸다. 어머니는
그래서 비녀를 건져내기 위해 대나무를 가져와 끝에 작은 쇠갈구리를 매달아 우물
안에 넣고 휘저었다.
하지만 깊은 우물에 햇빛이 들질 않아 컴컴하였고 아무리 휘저어도 비녀는 종적을
감추었는지 걸려들지 안았다. 해라도 우물 속을 비추어 비녀가 떨어진 지점이라도
보였으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완전히 장님이 무엇을 찾으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어머니는 허리를 펴고 하늘을 바라보며 태양을 향해 원망하듯 중얼거렸다.
"해는 왜 우물 안을 비추지 못하지?"
줄곧 어머니의 행동을 지켜보던 동휘는 어머니의 한탄 섞인 말을 듣더니 태양을
바라보고 또 머리를 숙여 컴컴한 우물 안을 들여다본 후 말했다.
"어머니, 제게 방법이 있으니 잠깐만 기다리세요."하고는 집으로 한달음에
줄달음쳐 가는 것이었다. 얼마 후, 동휘는 거다란 거울을 들고 돌아왔다.
동휘는 손에 거울을 들고 우물 안을 비추었다. 거울은 한 줄기 눈부신 빛을
발사했다.
하지만 거울의 각도를 맞추기가 힘들었다. 거울에 반사된 빛은 우물 안의 한 쪽
벽에 멈출 뿐 물 속을 비추진 못했다.
동휘는 난감한 듯 태양을 쳐다보고 또 우물과 손에 든 거울을 번갈아 살펴보면서
생각해 보았다. 별안간 그는 무슨 생각이 났던지 어머니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어머니, 잠깐만 기다리세요. 이젠 정말 됐어요." 그는 또다시 집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그는 또 거울을 한 개 더 가져왔다. 그는 거울 한 개를 어머니에게 쥐어
주며 거울을 이쪽으로 비추게 했고 자기가 들고 있는 거울로 그 빛을 받아들이자
마침내 한 줄기 손전등같이 강한 빛이 우물 안을 환하게 비추게 되었다.
우물 안은 밑바닥까지 훤하게 드러났고 비녀가 놓은 지점도 확인되었다. 그렇게
해서 비녀를 찾을 수 있었다. ff
[ 땅콩은 전부 빨간 껍질이 있나?
옛날, 어느 고을에 평생 땅콩기름을 짠 총명하고 부지런한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그의 기술을 전수하려는 두 제자가 있었다. 두 제자는 노인을 닮아선지
모두 부지런하고 착하였다. 하지만 누가 더 총명한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들은 총명했다. 하루는 노인이 문제를 내 두 제자의 총명함을 시험해 보려고
하였다.
노인은 땅콩을 가득 채운 자루를 두 개 가져와 두 제자에게 나누어 주면서
말했다.
"너희들은 각기 땅콩 한 자루씩을 가져다가 땅콩 껍질을 벗겨 오너라. 껍질을
벗겨서 땅콩알마다 빨간 껍질이 씌워 있는가 보아라. 지금 당장 돌아가서 벗기는데
누가 먼저 이 숙제를 푸는가 보겠다."
한 제자는 그 말을 듣더니 두말없이 자루를 둘러메고 집으로 갔다. 그는 밥도
먹지 않고 부지런히 땅콩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또다른 제자는 그러나 자루를 메고 가면서도 천연스럽게 조금도 급해하는 모습이
없었다. 그는 길을 걸으면서 스승인 노인의 숙제에 대한 답안을 생각했다.
먼젓번 제자는 열심히 땅콩껍질을 벗기면서 한시도 손을 멈추질 않았다. 어찌나
열심히 벗겼던지 손가락이 짓물러서 손이 다 아릴 지경이었다. 그래도 전혀 쉴
생각도 하지 않고 신나게 벗겨댔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벗겼는데도 한나절이다
지났건만 조금밖에 벗기지를 못했다.
그는 그래도 나중의 제자에게 뒤질까봐 걱정이 앞서서 부인을 시켜 나중의
제자집에 가보라고 했다. 부인은 얼마 안되어 얼굴에 함박꽃을 피우며 돌아왔다.
"천천히 해도 되겠어요. 그 사람은 이제 겨우 한 줌이나 벗겼을까, 그대로 남았던
걸요."
그는 부인의 말을 듣고 은근히 속으로 기뻐하며 쉬기는커녕 도리어 더 부지런히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밤을 꼬박 새워서야 드디어 마지막 한 알을 다 벗겼다. 그는 마치 호랑이라도
잡은 기세로 소리를 질렀다.
"몽땅 빨간껍질이 있어. 몽땅 빨간껍질이 있단 말이야."
그는 땅콩자루를 썩 둘러메고 스승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스승의 집에 도착한 그는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중의 제자가
벌써 와 있는 것이 아닌가, 그의 옆에는 아직 벗기지 않은 땅콩이 그대로 덩그랗게
놓여져 있었다.
두 제자가 모두 도착하자 스승이 입을 열었다.
"먼저 도착한 네가 먼저 대답을 해보아라. 땅콩알에 모두 빨간 껍질이 있느냐?"
"저는 하나하나 벗기질 않았습니다. 저는 먼저 살 찐 땅콩 몇 개를 고르고 또
여윈 것 몇 개 고르고, 큰 것과 작은 것 몇 개를 고르고, 깨끗한 것 몇 개와 또
곰팡이가 난 것 몇 개를 골랐어요. 그리고 한 알짜리를 몇 개 고르고 또 두
알짜리와 세 알짜리를 견본으로 골라 벗겨 보았는데 몽땅 빨간껍질이 씌워
있었어요."
먼젓번 제자가 나중의 제자에게 이 말을 듣더니 무릎을 탁 치며 웃었다.
"그렇지! 자네의 방법과 지혜가 아주 훌륭했어. 난 미련하게도 한 알도 남기지
않고 모두 벗겨서 확인했지 뭐요. 내 방법은 너무 미련스러웠어."
스승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렇다. 무슨 일이든지 머리를 잘 써야 한다." ff
[ 불소
전국시대 연나라와 제나라 사이에 거대한 전쟁이 일어났다. 수십 만의 연나라
군사는 승승장구를 거듭하여 단숨에 제나라의 70여개 성을 함락시키고 제나라의
대부분 토지를 점령하였는데 이제 남은 것은 거와 즉묵 두 개의 성뿐이었다. 성
안의 백성들은 공포에 휩싸여 어쩔 줄을 몰라 했고 병사들의 얼굴에도 절망의 빛이
역력했다.
하지만 즉묵을 지키고 있는 제나라의 장군 전단은 더 없이 냉정하고 침착했다.
"잃어버린 군사들의 사기를 불러일으킨다면 지금이라도 적들을 물리치고 영토를
되찾을 수 있다."
전단은 진영을 나서서 병사들과 함께 참호를 파고 성을 굳건하게 쌓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 처까지 군에 편입시키고 식량을 나누어 주면서 병사들을 위문했다.
이 몇 가지 일들이 삽시간에 성 안에 퍼지자 병사들은 물론 백성들까지도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중천했다. 심지어 허약하고 늙은 노인과 부녀자들까지도 이제껏
겁에만 질려 있던 것과는 달리 집을 뛰쳐나와 성을 지키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전단은 일부러 성밖의 적들에게 소문을 퍼뜨려 놓았다.
"내가 제일 걱정하는 것은 연나라 군이 제나라 군 포로들의 코를 베어 버리고
그들을 맨 앞장에 세워 전투를 벌이는 것이오. 만약 이렇게 한다면 우리의 병사들은
겁이 나서 전투를 벌일 의욕을 잃을 것이오."
이 말은 금새 연나라 장군 기약의 귀에 들어갔다. 기약은 아닌게 아니라 그
소문을 곧이 듣고 정말로 제나라 군의 포로들의 코를 모조리 베어서 연나라 군의
앞장에 세웠다. 그것을 보고 있던 즉묵성의 제나라 병사들은 피가 끓는 분노를
느꼈다. 그들은 차라리 싸우다 죽을지언정 절대로 포로는 되지 않겠다며 죽음을
불사하는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며칠이 지나서 전단은 또 사람을 성밖으로 내보내 연나라 군들에게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연나라 사람들이 우리들 조상들의 묘를 파버려 우리 조상들을 모욕할까봐
제일 두려워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얼굴을 들고 이 세상을 살 수 없다."
기약은 원래 용맹스럽기는 했어도 지혜있는 판단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이 소문을
들은 그는 당장 명령을 내려 성밖의 제나라 사람들의 묘지를 모조리 파버리고
사신을 불태운 후 유골을 사방에 뿌리게 했다. 즉묵의 백성들이 성 위에서 그
광경을 보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울분을 삼키며 지금 당장이라도 성문을
박차고 나가 적들을 단숨에 때려눕힐 기세였다.
전단은 이제 반격할 시기가 성숙되었음을 알았다. 하지만 적의 숫자는 몇 십배 더
많고 아군의 숫자는 현격하게 적으므로 어떻게 해야만 적진을 헤치고 그들을 물리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전단은 줄곧 이 생각에만 골몰했다. 아무리 아군의 사기가 충천해 있어도 숫자가
너무 적은 탓에 중과부적으로 패할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전단이 천막을 나서는데 갑자기 누군가 비명을 지르는 것이었다.
"비켜요! 빨리 비켜!"
느닷없이 황소 한 마리가 꼬리를 바짝 쳐들고 미친 듯이 앞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길가의 행인들은 급하게 옆으로 비켜섰는데 그만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이 소에게
밟혀 그만 죽고 말았다. 몽둥이를 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뒤에서 허둥지둥 쫓아와
그 황소를 어느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서야 비로소 황소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멈추는 것이었다.
바로 이 광경이 전단으로 하여금 적을 물리칠 수 있는 묘책을 얻으리라곤 누가
상상조차 할 수 있었겠는가?
전단은 곧 성 안에 있는 1천여 마리 황소를 몽땅 끌어다가 소에게 붉은 색 천을
씌워 놓았다. 붉은 색 천에는 얼룩달룩한 용그림을 그리고 뿔에는 예리한 칼날을
묶어놓고, 꼬리에는 기름을 묻힌 갈대를 한 묶음씩 묶어놓았다. 그리고 성에는 몇
십개 구멍을 뚫어놓고 소들을 그 구멍 앞에 정렬해 놓았다. 그 다음 병사 5천여
명을 대기시켰다.
이윽고 날이 칠흑같이 어두워지자 전단은 드디어 공격명령을 내렸다. 병사들은
일제히 소꼬리에 불을 붙인 후, 천여 마리의 황소를 구멍 밖으로 내몰고 그 뒤를
바싹 따라 돌진해 나갔다.
꼬리에 불이 활활 타오르자 황소들은 정말 미친 듯이 연나라 진지를 향해 마구
달려가기 시작했다. 소꼬리에 붙은 불은 마치 횃불 같아 주위가 대낮같이 밝았다.
연나라 군은 이 광경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눈깜짝할 사이에 소 무리들은
코앞까지 다가왔다. 소 무리들의 몸뚱아리에는 무섭게 생긴 용의 그림들이 있었고
뿔에는 예리한 칼날들이 꽂혀 있어 한번 부딪치기만 하면 영락없이 지옥행이었다.
연나라 군사들은 금새 혼비백산해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마구 도망치기 시작했다.
5천여 명의 제나라 군들은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달려나가면서 칼을 마구 휘둘러
적을 무찔렀다. 즉묵성 위에서는 북소리와 함성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밤하늘을
진동했다. 남녀노소들은 급기야 댐이 터지듯 일제히 성문을 열고 뛰쳐나와 적진을
향해 돌진해 나갔다.
연나라 진영은 금새 초토화 되었다. 연나라 장군 기약은 이미 누구에게인지 칼을
맞아 죽었다. 장군까지 쓰러지자 그렇게 당당하던 연나라 군은 일시에
무너져내렸다.
전단의 지휘 아래 사기충천한 제나라 군들은 싸울수록 더욱더 용감했는데 단 며칠
사이에 연나라군이 점령했던 성을 되찾았고 잃어버린 강토를 수복하였다. ff
[ 꾀임에 넘어가 스스로 물러가다.
이는 한조 시기, 이광의 이야기이다.
이광은 한경제의 명령을 받고 흉노들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서북전선으로
달려갔다. 그와 함께 간 다른 한 사람은 한경제의 태감이었다.
이광은 체격이 우람하고 팔의 길이가 유난히 길었으며 그는 어려서부터 말타고
활쏘기를 즐겼다. 이날도 그는 몇몇 부하들을 데리고 사냥을 떠났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은 온통 풀투성이었으며 이미 마른 풀은 말의 무릎까지 덮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썩썩 소리를 냈다. 갑자기 한 부하가 말 잔등에 어떤 사람을 태우고
이광에게로 달려왔다. 말 잔등에 축 늘어져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이광과 함께 이곳
국경을 지키러 온 태감이었는데 화살을 맞고 죽어 있었다.
이날, 태감은 몇 십명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초원에서 말을 달리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흉노 세 사람이 나타났다. 태감은 그 흉노들이 정탐꾼인줄 알고 그들에게
달려갔는데 그 흉노들은 재빨리 몸을 돌려 태감을 향해 활을 쏘았다. 태감은 미처
활을 피하지 못하고 활에 맞아 고꾸라졌다. 자칫했으면 태감이 데리고 갔던
부하들의 생명도 잃을 뻔 했다.
이광은 부하의 진술을 듣고 이내 말했다.
"그들은 보나마나 사냥꾼들이다."
이광은 재빨리 진지로 돌아가 백여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그 세 사람을 뒤쫓아
갔다. 이광이 그들을 따라잡은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이광은 기병들을
양쪽으로 물러나게 한 후, 혼자 말을 타고 나가며 활을 쏘아 두 놈을 쓰러뜨렸다.
그리고 마지막 한 놈은 위협화살을 쏘아 사로잡았다. 사로잡아 심문을 해보니
아닌게 아니라 이광의 생각대로 사냥꾼이었다.
이광과 부하들은 사냥꾼을 놓아주고 막 돌아가려는데 저 멀리에서 정말로 몇
천명의 적군이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적군은
이광의 기병들을 발견하더니 한조의 대군이 일부러 파견한 유인군인 줄 오해하고
재빨리 산등성이로 올라가 전투태세를 갖추는 것이었다.
이광의 백여 명 부하들은 겁을 먹고 도망칠 태세였다. 이때 이광이 나서며
말했다.
"우리는 진지와 몇 십리가 떨어져 있다. 또 군사도 적기 때문에 여기서 도망을
친다면 적들은 우리를 곧바로 추격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결과는 뻔한 것
아닌가?"
"그럼 어떻게 하죠?"
"우리는 여기서 조용히 버티고 있어야 한다. 그들은 우리를 주력군이 파견한
유인부대인 줄로 오해시켜야 감히 우리에게 공격하질 못한다."
이광은 말을 마치고 명령을 내려 오히려 적들 가까이 전진하게 하고 적들과
가까운 곳에서 멈추게 하였다. 그야말로 아슬아슬한 순간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광은 다시 명령을 내렸다.
"전부 말에서 내려 안장을 떼어 버려라!"
어느 한 기병이 보다못해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적들이 저렇게 많고 또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데 이러다 저들이 공격을 하면
그땐 어떻게 하죠?"
이광은 그래도 두려운 빛 하나 없이 태연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적들은 우리가 도망갈 줄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도망가기는 커녕
오히려 말에서 내려 안장까지 버렸기 때문에 적들은 우리가 자기네들을 유인하러
왔다고 굳이 믿을 것이다."
적군은 정말 이광의 말대로 이광의 기병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알 수가 없어
마침내 흰색 말을 탄 장군 한 사람을 이광의 진지 앞으로 보내 정탐하게 하였다.
이광은 날렵하게 말에 뛰어 올라 타고 달려나가 적장을 한칼에 해치우고는 그
장군을 끌고 진지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또 말에서 내려 적의 장군이 탔던 흰색
말을 놓아 주어 자유롭게 풀을 뜯어먹게 하고 군사들에게 모두 풀밭에 편안히 앉아
휴식을 취하도록 했다.
날은 점점 어두워졌다. 그때까지도 적군들은 이광이 어떤 묘책을 쓰는지 알지
못한 채 섣불리 공격을 해오지 못했다. 이윽고 밤이 깊어가자 적군들은 한조의
주력군이 부근에 매복해 있다가 돌연 습격을 해올까봐 황급히 철수했다.
이튿날 아침, 이광은 적군이 간밤에 모두 철수해가자 비로소 백여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유유히 진지로 되돌아 왔다. ff
[ 제갈양이 허수아비로 화살을 얻다.
이는 삼국시대의 이야기이다.
하루는 동오의 주유가 노숙을 시켜 제갈양을 불러오게 한 후, 조조를 대항할
방법을 의논했다.
주유가 제갈양에게 물었다.
"얼마 안 있어 조조와 싸우게 되는데 이번에는 물 위에서 싸우므로 어떤 무기를
사용하면 좋겠소?"
제갈양이 말했다.
"강에서 싸우는데 뭐니뭐니해도 활이 최고요."
"나도 선생의 생각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소. 하지만 아군은 화살이
절대적으로 모자라오. 선생이 어떻게 해서든 십만여 개의 화살을 만들어 주시오.
이것은 나라의 국력을 위한 것이니 부디 사양하지 않기를 바라겠오."
제갈양이 대답을 했다.
"주유가 나에게 부탁하는 것은 나를 그만큼 믿기 때문이 아니겠소? 최선을 다할
테니 너무 심려는 마시오. 그런데 십 만개의 화살을 언제까지 준비해야 하는 거죠?"
"열흘 안으로 준비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만들어 줄 수 있는지요? 하루에 만
개씩인데 말이오."
제갈양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조조의 군사가 곧 들이닥칠텐데 열흘은 너무 길지 않겠소? 그러다간 조조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할 것이오. 내가 사흘만에 십 만개의 화살을 준비해 드리리다."
주유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 농담할 때가 아니오. 열흘도 힘들거라 생각해서 내가 선생한테 부탁하는
건데 단 사흘이라뇨?"
제갈양은 여전히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어찌 주유에게 농담을 하겠소? 만약 사흘 내에 준비하지 못한다면 중벌을
내려도 달게 받겠소."
주유는 정말 그렇게 준비만 된다면 더할나위 없이 기쁘겠지만 그래도 믿기지 않는
부분은 있었다.
"내일부터 사흘 동안 오백 명을 파견해 강가로 가서 화살을 운반하도록
하시오."하고 말하더니 인사를 하고 되돌아 가는 것이었다.
제갈양이 떠나간 후, 노숙이 주유에게 말했다.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사흘 동안에 십 만개는 커녕 만개도 만들어 내지 못할
것입니다."
"제갈양은 총명한 사람이다. 총명함이 너무 뛰어나 그대로 놔두면 나중에 커다란
화를 입을지 모른다. 나는 벌써부터 그를 없애버리려고 생각했다. 오늘 그가 스스로
약속한대로 준비되지 못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열흘만에 만들어달라고 한
것도 그를 처단하기 위해선데 단 사흘이라니?"
주유는 노숙에게 계속해서 말했다.
"너는 화살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일부러 늦장을 부리도록 하고 모든 준비가
원활하지 않도록 해라. 이렇게 되면 약속날짜를 어기게 될 것이고 나는 그에게 어긴
죄를 씌워 죽일 것이다."
그리고 또 노숙을 시켜 제갈양에게 가서 상황을 알아보도록 했다.
노숙이 제갈양을 찾아왔다. 하지만 제갈양은 첫날인데도 화살을 만들 궁리조차
하질 않았고 둘째날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 마지막 하루가 남았는데 어떻게
화살을 다 만든단 말인가?
사흘날 깊은 밤이 되어서야 제갈양은 노숙을 배 위로 불러 놓고 말했다.
"나와 함께 화살을 가지러 갑시다."
노숙은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린지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어서 묵묵히
제갈양의 행동만 주시해 지켜보았다.
제갈양은 미리 준비해 놓은 20척 쪽배를 연결시키고 북쪽 기슭을 향해 전진하게
했다. 배 위에는 짚으로 허수아비를 만들어 놓은 후 검은 천으로 씌워 놓았다.
밤은 캄캄했고 게다가 안개까지 자욱했다. 드디어 배가 조조의 진영에 가까워지자
제갈양은 명령을 내려 뱃머리를 서쪽으로 돌려 한 줄로 쭉 늘어서게 하더니 함성을
지르며 북을 울리도록 하였다.
갑자기 북소리와 함성이 강변에 울려퍼지자 쥐죽은 듯 조용하던 조조의 진지는
삽시간에 떠들썩하였다. 조조는 당장 명령을 내렸다.
"안개가 많이 끼었으니 필경 적군의 매복이 있을 것이다. 절대로 경거망동하지
말고 적을 향해 사격하라!"
명령이 떨어지자 만여 명의 병사들이 일제히 강심을 향해 활을 쏘아 댔다. 화살은
우박처럼 날아와 허수아비의 몸에 꽂혔다.
그러자 제갈양은 더욱더 요란한 북소리와 함성을 지르게 했다. 조나라 군의
화살은 더욱 빗발치게 날아왔다.
아침해가 떠오르고 짙은 안개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제갈양은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려 뱃머리를 남쪽으로 되돌리게 하였다.
배가 기슭에 도착하자 주유가 보낸 병사들이 화살을 가지러 나룻터에 도착해
있었다. 제갈양은 그들에게 배 위에 있는 화살을 가져가라고 말했다. 그들이
허수아비의 몸에 꽂힌 무수한 화살들을 뽑아 헤아려보니 과연 10만여 개나 되었다.
화살을 주유가 있는 곳으로 운반해가자 주유는 깜짝 놀랐다. 이때 노숙이 성큼
나서서 엊저녁 제갈양이 허수아비를 이용해 화살을 얻은 사실을 주유에게 낱낱히
아뢰었다. 주유는 제갈양의 지략에 내심 탄복해마지 않는 것이었다.
"역시 제갈양은 지략이 뛰어난 천하 인재요!" ff
[ 공성계
제갈양이라면 중국사람들은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다. 제갈양은 신비한 지략으로
군사를 이용해 숱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제갈양은 이미 사람들의 마음 속에
'지혜의 화신'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제갈양도 지략의 실패를 맛본 적도 있고 인재를 등용함에 있어 잘못
기용하여 전쟁에서 후퇴를 한 적도 있었다.
그가 편벽한 서성군에 군사를 주둔시키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부하가 말을 타고
달려와 그에게 보고를 하였다.
"가정이 함락되었습니다. 가정이 함락되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제갈양은 긴 한숨을 내쉬고 탄식조로 말했다.
"좋은 기회를 놓쳤구나! 이는 나의 과오이다. 나의 잘못이다!"
가정은 비록 조그마한 한 개 군에 불과했지만 교통의 요충지여서 위나라 군사가
그곳을 점령하게 되면 섬서 서부와 감숙일대의 목을 조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교통이 차단되고 군사들이 먹을 식량과 말이 먹을 사료가 제때에 공급되지 못한다면
위나라 군사와 싸울 힘을 잃게 된다. 이처럼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를 힘을 갖추지
못한 허울뿐인 마속을 파견하여 그만 적들에게 함락되고 만 것이다.
이제 유일한 방법은 군사를 한시라도 빨리 철수시키는 것이었다. 제갈양은 몇몇
장군을 파견하여 가정에서 후퇴하는 군사를 마중하는 한편 나머지 군사를
후퇴시키려 했다. 또 일부 병력은 식량과 사료를 구해오도록 했다.
"사마의가 15 만 대군을 거느리고 이곳 서성으로 달려옵니다."
제갈양의 신변에는 이때 장군이라고는 한 명도 없었고 단지 문관들 몇 명이
고작이었다. 게다가 서성군에 주둔하고 있던 5천명 군사 가운데서 절반이 식량과
사료를 구하러 떠난 뒤인지라 군사도 불과 2천 5백여 명 가량 뿐이었다. 병사들은
가정이 이미 함락된 데다 15 만이란 병력이 이곳으로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모두가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단지 유일한 희망이 남아 있다면 제갈양이 어떤
기묘한 병법을 써서 이 위기를 모면하기만 기다렸다.
이 위기일발의 시각에 제갈양은 애써 냉정한 태도를 보이며 깊은 생각에 잠기더니
성 위로 올라가 밖을 바라봤다. 과연 저 멀리서 위나라 군이 먼지를 뽀얗게
일으키며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후퇴하긴 이미 늦었다. 지금 저들과 정면승부를 벌인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다. 서성을 아무리 지키려고 해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한참을 생각하던 제갈양은 좋은 묘책을 떠올렸다. 제갈양은 곧 명령을 내려 모든
깃발을 내리게 하고 북을 회수했으며 병사들은 제멋대로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고
소리도 지르지 못하게 했다. 만일 이를 어기면 그 자리에서 무조건 죽이라고 했다.
그는 또 사방의 성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한 개의 성문마다 20 명의 병사들이
백성의 옷차림을 하고 빗자루로 길바닥을 쓸라는 명령을 내렸다. 제갈양은 두
서표를 데리고 적들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성루에 올라 향을 피우고 태연자약한
자세로 앉아 비파를 띄웠다. 향불 연기는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은은한 비파소리는
성루에 울려퍼졌다.
사마의의 선두부대가 성밖에 도착해서 이 광경을 보더니 감히 쳐들어오지를
못하고 즉시 사마의에게 보고했다. 그는 정말 그러랴 하는 의심을 품고 전군의
전진을 멈추게 한 후, 자신이 직접 말을 타고 성 앞으로 달려가 보았다.
성루에는 정말 제갈양이 웃는 얼굴로 앉아서 향을 피우고 비파를 뜯고 있었는데
왼쪽에 서 있는 서표는 손에 칼을 들고 있었고 오른쪽에 서 있는 서표는 손에
말초리를 들고 있었다. 성문에는 20여 명의 백성들이 허리를 수그리고 한가롭게
길을 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마의는 점점 의심이 짙어갔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드디어 전군을
북으로 철수시키라는 단호한 결단을 내렸다.
부하가 하도 이상해서 물었다.
"제갈양의 군사는 얼마 되지도 않는데 왜 공격을 않고 후퇴를 하시죠?"
사마의가 말했다.
"제갈양은 병법에 뛰어난데다 원래 조심스럽고 모험을 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의
대군이 쳐들어왔는데도 이처럼 침착하게 앉아서 성문을 열어놓고 있는 것을 보면
성밖에 대군을 매복시켜 놓고 우리를 유인하려는 것이 분명하다. 빨리 내 명령대로
후퇴를 하라."
사마의가 대군을 이끌고 허겁지겁 후퇴를 하자 그제서야 제갈양은 호탕하게
웃었다. 그 옆에 서 있던 병사들은 저들이 갑자기 후퇴하는 뜻을 모르겠다는 듯이
제갈양에게 물어왔다.
"사마의는 위나라의 명장이며 오늘 15 만 대군이나 거느리고 여기까지 왔다가
승상을 보고는 도망치는데 무슨 까닭이죠?"
제갈양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사마의가 나한테 속은 게야. 내가 매사를 신중하게 처리하고 모험을 하지 않는
것을 알고는 오늘도 마찬가지로 생각한 것이지. 이렇게 한가롭게 비파를 뜯고
성문을 활짝 열어놓은 것은 마치 우리가 매복군을 숨겨두고 자기네들을 유인하는 줄
알고 후퇴를 하는 거지."
그들이 후퇴해 가자 제갈양은 병사들을 거느리고 서성을 안전하게 철수하여
한중으로 돌아왔다.
이후, 사마의는 그것이 제갈양의 위장술이었던 것인걸 알곤 두고두고 후회하였다.
ff
[ 독어계
제갈양은 어렸을 때 조실부모하였다.
한조 말년, 전국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있어 백성들은 도탄 속에 빠져
있었다. 제갈량은 숙부 제갈현을 따라 산동고향을 떠나 객지로 부표처럼 정처없이
떠돌던 끝에 마침내 양양땅의 융중이란 곳에 이르렀다.
제갈양은 융중에서 나무를 하고 농사를 지으며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그는
부근의 영산에 풍공구라는 선생이 있었는데 사람이 아주 정직하고 지식이 풍부하며
덕망이 높은 사람으로 불리우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가 병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풍선생은 제갈양을 처음 본 순간 위풍이 당당하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그의
식견이 뛰어난 것을 보고 은근히 기뻤다.
어느날, 누군가 펄떡펄떡 뛰는 잉어 한 마리를 가져왔다. 풍선생은 제갈양에게
물고기를 요리하라고 일렀다. 제갈양은 아주 익숙한 솜씨로 고기를 잘 씻은 후 솥에
넣었다. 물고기가 끓기 시작하자 군침을 돌게 하는 냄새가 풍겼다. 고기를 익혀서
접시에 담아놓고 제갈양은 곧장 물을 길러 밖으로 나갔다.
물을 길어서 집안으로 들어서자 어쩐지 실내의 공기가 여느 때와는 몹시 무거워
있었다. 풍선생은 얼굴을 무섭게 일그러뜨리고 제자들을 단단히 꾸짖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십여 명의 제자들이 앉아 있었는데 더러는 머리를 떨구고 있었고
더러는 얼굴을 돌린 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실은 제갈양이 익혀낸 잉어를
누군가 훔쳐 먹어버렸는데 제자들의 뒷줄에 서 있는 제갈양을 본 풍선생은 노기가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갈양, 네가 요리한 고기가 왜 절반이나 모자라냐?"
"그게 정말입니까?"
제갈양은 짐짓 놀라는 체하며 되물었다. 이때 그의 머리 속에는 그새 묘책이
떠올라 있는지라 황급히 물통을 팽개치고는 기겁한 어조로 풍선생 보고 말했다.
"선생님, 큰일났습니다. 사람이 죽게 됐어요. 그 잉어를 익혀서 저는 잉어를
잡으려고 독약을 발라놓았는데요."
제갈양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말하자 한 제자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얼굴은 겁에 질려 백지장이 되었다. 그 제자는 그러더니 땅에 털썩 주저앉으면서
말했다.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선생님, 제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고기를 훔쳐
먹었어요."
그러나 제자들은 독약을 발라놓은 고기를 먹은 동료의 생명이 걱정이 되어
제갈양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제갈양은 태연하게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고
그제서야 범인을 찾아내기 위한 거짓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제갈양은 '독어계'를
이용해 고기를 훔쳐먹은 사람을 찾아냈던 것이다. ff
[ 황금사건
당조 때, 이덕유라는 사람은 서호에서 관찰사로 있었다. 어느날, 사건기록부를
검사하던 그는 우연히 한 가지 사건을 올바로 처리하지 못했음을 발견하였다.
사건기록부의 기록은 대충 이러했다.
감로사란 절의 주지가 신고한 사건이었는데 그가 감로사란 절의 재산을 넘겨받을
때 문서에는 분명히 황금 150냥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실지 황금은 넘겨받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황금을 전임 주지가 개인적으로 유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감로사의 전임 주지와 몇 명의 사무를 담당했던 스님들은 황금
150냥은 줄곧 대를 이어 내려왔는데 신임 주지의 손에 이르러 없어졌다면서 분명히
신임 주지가 유용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여러 스님들이 모두 그렇게 말하는지라
신임 주지는 어쩌지도 못하고 그렇게 인정이 돼버렸고 법의 판결도 그러했다.
"사건은 황금으로 인해 일어난 것이다. 신임 주지가 황금을 보지도 못했다고
얘기했음에도 단 몇 명의 스님들 이야기만 믿고 사건을 처리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올바른 처리로 볼 수 없다."
이덕유는 사건기록부를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갇혀 있는 신임
주지를 끌어내어 다시 심문하기로 했다.
"지금 절에서 사무를 보고 있는 중들이 내게 죄를 덮어 씌우려는 이유가 있죠.
그들은 절의 사무를 보면서 많은 것을 횡령하려고 합니다. 절의 재산을 몰래
빼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어요. 나는 처음 신임 주지로 부임해 와서 그런 낌새를
알아차리곤 사무에 엄격함을 보이자 그들은 나를 어떻게든 고립시키려고 내게
모함을 한 것입니다."
"누가 옳고 그른지는 언젠가 판결이 날 거요."
이덕유의 태도는 그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았다. 그는 신임 주지를 되돌려
구속시키곤 이 사건 해결의 묘책을 곰곰히 생각하다가 좋은 방법을 생각해냈다.
"이전의 전임 주지들이 재산을 넘겨주고 받을 때 분명히 문서상으로 황금이
있었다고 했겠다? 그렇다면 진짜로 황금이 있었던가를 증명하게 한다."
그는 곧 사람을 시켜 감로사의 살아있는 전임 주지들을 전부 모이게 했다.
"당신들이 주지로 취임하고 재산을 주고 받을 때 문서상에 분명히 황금이 있다고
씌어 있었는데 정말 황금이 있었습니까?"
이덕유가 엄숙하게 말하자 전임 주지들은 이 문제의 엄중성을 느꼈던지 아니면
자기와 연관이 될까봐선지 숨을 잔뜩 죽이고 서로 곁눈질만 했다.
이덕유가 또 한 번 물었다. 그러자 결국 한 주지가 황금이 있었노라고 대답하자
다른 주지들도 이에 호응을 하면서 확실히 황금이 있었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재산을 넘겨주고 받을 때 모두 직접 확인해서 인계했다는 것이다. 이들이 이렇게
말한 것은 전에도 법정에서 증인진술을 그렇게 했기 때문에 이제와서 번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덕유는 하는 수 없이 주지들을 분산시켜 놓은 후, 사람을 시켜 진흙덩이 몇
개를 가져오게 했다. 이덕유는 그것을 한 사람에 한 개씩 나눠주고 말하였다.
"당신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인수인계했던 황금의 형태를 한 번 만들어 보시오."
전임 주지들은 저마다 당황하기 시작했다. 본래 황금을 넘겨주고 받은 사실이
없기 때문에 황금의 형태가 어떠한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주물럭거리며 만든 황금은 각양각색이었다.
이덕유는 추상같은 명령을 내려 거짓증언을 해 무고한 신임 주지에게 죄를 덮어
씌운 전임 주지들을 잡아들이고 죄없는 신임 주지를 석방해서 다시 감로사의 주지의
임무를 맡게 했다. ff
[ 모래로 적을 물리치다.
중국 역사상에서 동진이라는 나라의 장강이북은 적들에게 점령되어 백성들의
생활은 이루 형언하기 힘들 정도로 매우 처참했다. 이를 보다 못한 장군 조적은
장강을 넘어가 북방의 영토를 수복하리라 굳게 다짐했다.
6월, 조적의 부대와 갈족 도표의 부대가 준의성을 가운데 놓고 쟁탈전을 벌였다.
그 쟁탈전을 벌여 쌍방의 군사는 준의성을 각각 절반씩 차지하게 되었다. 조적의
군사는 성 동쪽 부분을 점령하였고 도표의 군사는 서쪽 부분을 차지한 채 무려 대치
상태로만 40여 일을 버텼다.
어느날, 도표가 파견한 염탐꾼이 돌아와 보고했다.
"진나라 군사의 식량이 얼마 남질 않았습니다. 병사들의 사기도 그리 높지도
않구요."
도표가 그 말을 듣더니 몹시 기뻐하면서,
"조금만 더 기다리자, 식량도 떨어져 간다고 하니 얼마 못 가서 진나라 군사는
힘을 잃을 것이다."
이와 동시에 조적의 염탐꾼도 역시 조적에게 보고하였는데, 도표의 군사식량이
얼마 남지 않은데다 병사들이 고향 생각에 처자식을 그리워하며 사기가 떨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조적도 도표와 마찬가지로 조금만 더 시간을 끌면 그들이 힘을
잃을 것이고 그때 공격한다면 쉽게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니 자신의 군사들도 식량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힘을 잃지 않고 대치해
나간다는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조적은 쉽게 판단을 내릴 상황이 아니란 것을 자각하곤 마땅한 대책을 짜내느라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드디어 묘한 계책을 생각해냈다.
조적은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려 강가에서 모래를 퍼 자루에 담아오게 했는데,
겉보기엔 식량을 가득 채운 자루와 똑같았다.
이튿날 아침, 날이 밝아오자 그는 1천여 병사들을 보내어 모래자루를 성안으로
운반하도록 했다. 거짓식량을 운반하는 행렬을 가히 장관이었다. 그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었다. 그리고 몇 사람을 시켜 진짜 식량을 담은 자루를 실은
수레를 맨 줄 끝에 세우고 일부러 도표의 군사가 빼앗으러 오면 못이기는 체 하고
수레를 버리고 도망치라고 명령했다.
아니나 다를까, 도표의 군사가 식량을 빼앗기 위해 많은 병사가 공격해왔고
조적의 명령대로 수레를 끌던 병사는 수레를 놓고 줄행랑을 쳤다.
빼앗아 온 식량자루를 펼쳐본 도표는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루엔 몽땅
쌀이었다. 조적의 군량이 풍부해서 이제 병사들의 사기도 한층 오를 것이라고
생각한 도표는 저도 모르게 기세가 꺾이는 기분이었다. 그는 당장 사람을 장군
석륵에게 보내 이 상황을 긴급 보고하곤 어서 군량을 빨리 보내라고 요청했다.
이 소식을 들은 석륵은 즉시 1천여 마리 당나귀에 식량을 잔뜩 실어 보냈다.
식량수레는 한시라도 빨리 전달해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길을 재촉하였다.
염탐꾼이 이 상황을 발견하곤 급히 조적에게 보고를 했다. 조적은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조적은 곧 군사를 풀어 그들이 지나갈 산골짜기에 쥐도 새도 모르게 매복시켜
놓았다. 이윽고 식량을 실은 도표의 수레가 공격권 안에 들어섰고 조적의 군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을 공격해 별다른 힘도 들이지 않고 식량을 빼앗는데
성공하였다.
도표는 자기네 식량이 운송 도중 조적의 군사에게 모두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곤
이제 더 이상 조적의 군사와 대치할 능력을 상실하였다. 어찌할 도리가 없어 도표는
밤을 이용해서 성을 빠져나가 도망을 갔다.
조적이 모래로써 적을 물리치게 된 것이다. 싸움을 벌이지 않고도 적을 무찌른 이
이야기는 고대 전쟁사에서 아주 훌륭한 전법으로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ff
[ 신하가 단지 속을 기어들다.
당조 때, 주홍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이 자는 음흉하고 야심으로 가득찬
사람이었다. 그는 조정에서 형법과 감옥을 맡고 있었는데 여러 가지 잔혹한 형벌로
죄수들을 다스리고 죽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주위 사람들은 그와 대하기를
꺼려했고 그를 보기만 해도 슬금슬금 피하였다. 공연히 그의 옆에서 잘못
보이기라도 하면 자칫 옥살이를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주홍은 그럼에도 결코 자기의 직책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언젠가 큰 관리가 될
야심을 키우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과 호흡이 통하는 몇 명 일당들과 음모를
꾸며 조정을 뒤엎자고 했다.
하지만 주홍의 음모는 누군가에 의해 황제에게 밀고되었다. 여황제 무측천은 즉시
내준천이란 신하를 시켜 주홍를 심문하도록 했다.
내준천과 주홍은 그러나 잘 아는 사이였다. 주홍은 원래 변덕이 심한데다
음흉하고 교활하여 심문하기가 몹시 어렵다는 것을 내준천은 잘 알고 있었다.
이번에 주홍이 저지른 음모는 반역죄에 해당되어 사형을 면할 수 없는 처지였기에
주홍이 결코 고분고분 자백할 리 만무하다고 생각했고, 하지만 황제의 명령이 이미
내려진지라 내준천은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을지 도무지 좋은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드디어 고심 끝에 생각해낸 것이 우선 황제가 내린 명을 숨기고 그저 자연스럽게
주홍을 만났고 그 자리에서 내준천은 몹시 겸허한 태도로 말을 건넸다.
"대개 범죄자들은 자기의 죄가 어떠한 것이라고 실토하지 않는데 당신은 어떤
방법으로 그들로 하여금 솔직하게 자백할 수 있게 하겠소?"
"그건 매우 쉽지요. 큰 단지를 한 개 가져다 놓고 숯불로 그것을 빨갛게 달구어
놓은 후 그들을 그 속으로 기어들어가라고 명령을 내리면 어떠한 범죄자도 자기의
죄를 실토하지 않고는 뱃길 수 없을 것이오."
"한번 시험을 보여 줄 수 있겠소? 어떻게 하는 방법인지를 말이오?"
"그러지요."
주홍은 당장 부하들을 시켜 단지를 가져오게 하고 그 주위에 숯을 가득 쌓아 불을
붙였다. 숯은 탁탁 불똥을 튕기며 벌겋게 타오르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큰 단지가
용광로처럼 무섭게 달아올랐다.
"보십시오. 저렇게 뻘겋게 달아오른 단지 속에 들어가라는데 죄를 실토하지 않고
배기겠소?"
이때다 싶은 내준천은 근엄한 목소리로 주홍에게 호령을 내렸다.
"어명이 여기에 있다. 네가 조정을 뒤엎을 반역을 꾀했으니 죽을 죄를
저질렀느니라! 너부터 이 단지 속으로 기어들어가라!"
주홍은 그제서야 내준천의 꾀임에 빠졌다는 것을 알고는 얼굴이 흙빛이 되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는 땅에 엎드려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자신이 조정을 뒤엎으려
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ff
[ 특수한 처방
이는 삼국시대 명의 화타의 이야기이다.
어느날, 그가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인 서군으로 왕진을 갔는데 한 관리의
하인이 급하게 쫓아오더니 느닷없이 오만한 태도로 어서 빨리 가 군수의 병을 먼저
진찰하라는 것이었다.
권력을 이용해 백성들을 업신여기는 관리들을 화타는 원래 싫어했기에 관리의
하인을 거절하고 묵묵히 그 백성의 진찰에만 신경을 썼다.
그러자 근심하는 쪽은 화타보다도 오히려 백성쪽이었다. 먼저 군수의 병부터
진찰해달라고 백성이 애원했다. 군수란 사람은 얼마나 난폭한지 이 사실을 알았다간
살아남지 못할 것이란 것이 백성이 걱정이었다.
화타는 그런 백성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다 무슨 생각이 났던지 왕진가방을
주섬주섬 챙기더니 군수에게로 걸어갔다.
그는 먼저 군수의 아들부터 찾아 먼저 군수의 병세부터 물어본 다음, 군수 아들의
안내를 방아 군수를 만났다. 과연 군수는 소문대로 난폭함이 용모에도 나타나
있었다. 얼굴엔 밝은 빛도 없고 눈도 바로 뜨지 않았다.
그래도 화타는 처음 하인을 단호하게 거절할 때의 태도와는 달리 고분고분하게
군수의 병을 진찰해 나갔다. 진찰하면서 화타는 생각했다.
"별다른 병은 아니구만. 약 두 첩을 써서 속에 쌓인 것을 토해내면
그뿐인데^5,5,5^ 하지만 이 군수란 놈이 행패를 부리며 백성들에게 가하는 폭정의
'병'을 이 기회에 고쳐야 돼."
그는 내심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 방법을 생각해냈다.
화타는 이윽고 군수의 방을 나와 군수의 아들과 상의한 후 처방을 내리며 말했다.
"이것은 내가 백성들에게서 얻은 처방인데 아주 큰 효과가 있을 것이오. 내가
돌아간 후에 군수님께 쓰도록 하시오."
화타가 돌아가고 난 후, 아들은 화타가 내린 처방을 들고 군수에게로 갔다. 군수는
아들이 가져온 화타의 처방을 받아 들고 병이 다 나아진 듯이 기뻐했다. 화타의
처방이라면 어떠한 병이든 다 낫는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방을
펴든 순간, 군수는 강한 둔기로 뒷통수를 호되게 맞은 기분이었다. 처방에 씌어진
것은 그 무슨 감초요, 당귀 따위의 한약이 아니라 온통 그가 법을 무시하고,
호의호식하며 백성들을 못살게 구는 짓들을 열거한 글들로 가득 채워 있었다.
그리곤 마지막엔 이런 몇 마디 글이 적혀 있었다.
"당신이 이처럼 욕심만 채우고 백성들의 원성을 사는 군수라면 차라리 병들어
일찍 죽는 것이 하늘이 내린 천벌일 테고 백성들의 행복이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군수의 두 손은 부들부들 떨렸고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했다. 한바탕 거칠게 기침을 해대더니 마침내 검붉은 피를 왈칵왈칵 토해냈다.
군수는 부하를 시켜 화타를 당장 잡아들이라고 했다. 옆에 서 있던 그의 아들이
화타는 이미 떠나갔다고 군수에게 말했다.
군수는 처방전을 갈기갈기 찢어 아들 얼굴을 향해 냅다 뿌리며 호통을 쳤다.
"썩 물러가지 못해!"
군수는 이를 부득부득 갈더니 이어 또 검은 피를 토해냈다.
미구하여 군수는 피를 몇 번 토하더니 지쳐선지 이내 조용해졌다. 그제서야
아들은 이것이 화타가 화를 일으키는 방법으로 병을 치료하는 것이라고 군수인
아버지에게 알려 주었다.
그 말을 들은 군수는 갑자기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는 기분이었고 머리가 맑아짐을
느끼면서도 화타가 내린 그 특수한 처방에 자꾸만 온몸이 떨려오고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주룩 흘러내렸다. ff
[ 왕융
6월의 들녘은 그야말로 아름다웠다.
노오란 밀이 금실파도로 일렁이고, 옥수수는 파릇한 새싹을 돋아냈고, 수수는
주먹만한 통통한 파란 이삭을 휘둘러댔으며 조는 보송보송한 이삭을 자랑했다.
새들은 파아란 하늘을 날면서 지저귀었고 매미들은 구성진 울음소리를 냈다.
왕융과 그의 꼬마 친구들은 곤충도 잡고 들꽃도 꺾으면서 서로 앞장을 서느라
엎치락뒤치락했다.
그들이 한창 즐겁게 놀고 있는데 돌연 길가에 한 그루 오얏나무가 눈에 띄었는데
그 빨간 오얏의 열매는 얼마나 많이 달렸던지 가지가 찢어질 것만 같았다.
이 뜻밖의 발견으로 그들은 모두 뛰어가 마구 오얏을 따댔다.
하지만 왕융만은 그 자리에 멈추어 서 있었다. 이때 호미를 들고 지나가던 농부가
왕융에게 물었다.
"아니, 저들은 다 오얏을 따는데 넌 왜 가만히 서 있느냐?"
"저는 따지 않겠어요. 저 오얏은 상당히 쓰거든요."
왕융의 말이 떨어지자 그의 꼬마 친구들은 오얏을 따던 것을 멈추고 오얏나무에서
물러서며 입에 넣었던 오얏을 웩 뱉어 버리고 입을 헤벌리기도 했으며 또 이미 딴
오얏을 땅에 힘껏 내동댕이치기도 했다.
그 농부는 왕융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눈길로 바라보며 물었다.
"너는 오얏을 먹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저 오얏이 쓴 줄을 알았냐?"
왕융이 말했다.
"오얏나무가 길가에 자라나고 있는데 숱한 오얏이 달려 있어도 사람들이 따먹지
않은 것은 쓰기 때문이죠. 안 썼으면 벌써 다 따먹었을 거^36^예요."
이제 7세밖에 안되는 왕융의 말을 들은 농부는 머리를 끄덕이며 그의 총명함에
찬탄을 금치 못했다. ff
[ 흙보살이 고기를 먹다.
어느 한 집에 아버지와 아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툭하면 다투기 일쑤였다.
아버지는 얼마전 부인을 잃었고 또 딸자식이 하나 있었는데 그도 부인의 뒤를 이어
갑작스레 병들어 죽었다. 이렇게 차례로 부인과 딸자식을 잃자 아버지는 분명
귀신의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어느날 흙으로 만든 보살 몇 개를 가져와 집안에 모셔놓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날이면 향을 피우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자신과 아들의 앞날을 빌었다.
아버지의 정성이 얼마나 강했던지 워낙 살림이 가난한 집안이었으면서도 보살 앞의
식탁에는 항상 풍성한 음식이 마련되었다.
젊은 아들은 아버지의 이와 같은 행동이 못마땅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서
아들은 기도는 커녕 보살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고 이 일로 아버지와 더욱 다투게
되었다.
이렇게 자주 아버지와 다툼을 벌이던 아들은 번번이 이러는 게 자식된 도리가
아님을 알곤 어떻게 하면 아버지와 다투지 않고 살게 될까를 생각해 보았다. 어느날,
아버지는 외출을 하게 되어 아들에게 고기를 삶아서 제단에 올려놓으라고 말하곤
나가버렸다. 아들은 아버지와 다투지 않기 위해 고분고분 말을 들으며 고기를 삶아
제단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그것을 올려놓고 찬찬히 바라보던 아들은 무슨 생각이 났던지 갑자기 그
고기들을 허겁지겁 집어먹기 시작하더니 이내 바닥을 비워버렸다. 그리곤 그
흙보살들을 번쩍 들어 방바닥에 내동댕이쳐 박살을 내버렸다.
저녁 때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산산조각이 돼버린 흙보살들을 놀란
얼굴로 바라보며 아들을 소리쳐 불렀다.
"누^5,5,5^누가 이 보살들을 깨버렸냐?"
아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태연하게 말했다.
"제가 아버지께서 시키신대로 고기를 삶아 제단 위에 올려놓았는데 글쎄 이
보살들이 갑자기 달려들어 서로 고기를 먹으려고 치고 박고 싸우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박살이 나고 만 거^36^예요."
아버지는 말도 안되는 소릴 지껄이는 아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이 자식이 허튼 소릴 하고 있어. 이 보살들은 흙으로 만든 건데 어떻게 고기를
먹으며 또 어떻게 싸움을 한단 말이야!"
"아버지 말씀대로 흙으로 빚은 보살이기 때문에 고기를 못 먹는다면서 왜 고기를
차려 놓죠? 흙으로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또 어떻게 아버지와 저를 보호해 줄 수
있습니까?"
아들의 말에 말문이 막힌 아버지는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질 못했다. ff
[ 개미
기원 641 년, 이때가 바로 중국 역사상 당조가 가장 번성하던 때였다. 당조의
서쪽에는 장족이란 왕국이 차지하고 있었고 이 왕국에는 나이가 젊은 송찬간포라는
왕이 있었다.
당조와 왕국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두 나라의 사절들이 자주 오갔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아직 장가를 들지 못한 송찬간포왕은 어느날 진귀한 선물을 잔뜩
챙겨서 사절에게 보내며 당조에 청혼을 요구해왔다.
서부국경의 안정을 꾀하고 왕국과의 우호를 나타내기 위하여 당태종은 이 청혼을
쾌히 승낙했다. 당태종은 자신의 조카이자 이도종장군의 딸 문성공주를
송찬간포왕에게 배필로 주기로 했다.
문송공주가 출가하는 날, 송찬간포는 자신이 제일 신임하는 장군 녹동찬을 당조로
보냈다.
녹동찬은 왕국에서 지혜와 능력을 두루 겸비하고 덕망이 높다는 것을
이도종장군은 벌써 알고 있었으므로 이번 기회에 한 번 그를 시험해보기로 했다.
이도종은 부하를 시켜 두꺼운 구리판을 가져오게 했는데 구리판이 한가운데에는
아주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리고 바늘 한 개와 명주실이 그 위에 놓여
있었다. 이도종이 말했다.
"대신 녹동찬장군께선 지혜와 책략을 겸비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오늘 대신께서 이
실로 구리판 구멍을 꿸 수 있으신지요. 만일 대신께서 꿰지 못하신다면,
죄송합니다만 빈손으로 돌아가시고 다른 대신이 오셔서 문성공주님을
모셔가야겠습니다."
녹동찬의 수행인원 가운데에 성미가 몹시 급한 젊은이가 있었는데 그 말을 듣더니
벌떡 일어나서 구리판이 붙어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바늘을 쳐들고 명주실을
낀 후 구리판 구멍을 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바늘이 구멍 속으로 조금
들어가더니 나중엔 어찌된 영문인지 좀체로 들어가질 않는 것이었다. 원래 그
구멍이 구불구불하게 뚫려 있었는지라 꼿꼿한 바늘로는 도저히 꿸 수가 없었다.
녹동찬은 그 성미가 급한 수행원의 경솔한 행동에 대해 몹시 언짢아했다.
녹동찬은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이건 당조가 나를 시험해 보려는 것이다. 만약 이 실을 꿰지 못한다면 당조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게 될 뿐만 아니라 더욱이 문성공주를 데리고 갈 자격이
없다. 문성공주를 데려가지 못한다면 국왕을 뵈올 낯이 없어진다. 저 실을 어떻게
하면 꿸 수 있을까?"
녹동찬은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구리판 쪽으로 걸어가 구멍을 한 번 들여다 본 후
온다간다는 말도 없이 곧장 밖으로 걸어나갔다.
녹동찬의 행동을 숨죽이고 지켜보던 문무대신들은 서로 얼굴만 멀거니 쳐다볼 뿐,
아무 말이 없었다. 분위기는 몹시 긴장되고 있었다.
이윽고 녹동찬이 다시 돌아왔다. 그는 개미 한 마리를 들고와 명주실을 그 개미
허리에 묶어놓고 개미를 구멍에 놓았다. 개미는 놀란 듯이 실을 끌고 재빨리 구리판
구멍의 저쪽을 뚫고 나갔다. 마침내 명주실이 구리판 구멍을 뚫었다.
문무대신들은 그제서야 수군수군하며 녹동찬의 지혜에 탄복했다. 이도종도 고개를
끄덕이었다. ff
[ 방연은 이 나무 밑에서 죽을지어다.
춘추전국시대 위나라는 조나라와 결탁하여 힘없는 한나라를 공격했다. 위험을
느낀 한나라는 황급히 사절을 보내 제나라에 지원을 요청했다. 제선왕은 당장
전기를 원수로, 손빈을 사령으로 임명하고 한나라를 지원키로 했다.
36계에서 '위위구조'처럼 전기와 손빈은 군사를 거느리고 직접 한나라로 달려가지
않고 오히려 반대 방향에 있는 위나라 고을 경성을 향해 달려갔다.
위나라장군 방연이 이 소식을 듣고 흥분을 참지 못했다.
"흥! 내가 예측한 그대로구만. 손빈이 또 그 수법을 쓰는데 이번엔 어림없지. 꼭
본때를 보여주고 말 거야."
방연은 군대를 돌려세워 제나라 군의 뒤를 추격했다. 그런데 방연의 행동을 이쪽
손빈은 벌써 하나도 놓치지 않고 예의 관찰하고 있었다. 손빈이 전기에게 말했다.
"전번에 '위위구조'에서 방연이 커다란 실패를 보았기 때문에 이번엔 그가 또다시
그런 속임수에 말려들지 않을 것이오. 우리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하오."
"당신이 생각하기엔 어떻게 하면 좋겠소?" 전기가 손빈에게 되물어 왔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조나라, 위나라, 한나라 군사는 용감하고 제나라의 군사는
보잘 것 없다고 말해왔소. 그러니 방연은 자연히 제나라 군사는 안중에도 두지
않았을 것이오. 이번에 우리 군사는 이 점을 이용해 그들과 싸워 이길 수 있소.
우리 군사를 일부러 약하고 겁쟁이로 가장시켜 방연을 속이는 것이오."
"방연을 어떻게 속인단 말이오?"
"군사가 밥을 지어먹은 솥 흔적 말이오. 솥의 흔적이 얼마이면 그 군사의 숫자를
계산할 수 있잖겠소? 위나라 영토에 일단 들어선 후, 첫날에는 10 만 개의 흔적을
남겨놓고, 이튿날에는 5 만개, 사흘째엔 3 만개로 점차 줄인단 말이오."
손빈이 자신의 전략을 설명하자 전기는 두말없이 찬동해 실시했다.
마침내 위나라 땅에 들어선 후로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줄곧 사흘을 추격해온
방연은 추격하면서 정말 솥의 흔적을 관찰했다. 그는 매우 오만한 태도로 좌우를
둘러보며 거드름을 피웠다.
"내가 말하잖았는가? 제나라 군사는 담이 약해 전쟁을 두려워한다구. 솥 흔적을
보면 알 수가 있잖은가. 우리나라에 들어선 첫날에는 10 만개이고, 사흘날에는 3
만개밖에 되질 않잖아. 이건 병사들이 절반 넘어 도망친 것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손빈을 당장 붙잡기라도 한 듯이 방연의 마음은 사뭇 흐뭇하기만 하여 보병들을
천천히 뒤따라오라 하고는 전차를 지휘하여 바싹 추격해나갔다.
이날, 제나라 군은 마홍이란 곳에 도착했는데 여기는 산세가 험하고 숲이 우거져
있어 군사적 요충지였다. 손빈이 계산해 보니 이날 밤이면 방연의 군사가 여기까지
당도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는 군사를 멈춰 세웠다.
그리고 길가에 해묵은 나무의 한쪽 껍질을 벗기게 한 후 친필로 이렇게 써놓았다.
"방연은 이 나무 밑에서 죽을지어다."
손빈은 그렇게 써놓고 군사 1 만여 명을 길 양쪽에 매복시킨 후 이렇게 명령을
내렸다.
"이 나무 밑에 횃불이 나타나면 일제히 사격하라!"
미구하여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과연 방연이 마홍에 도착했다. 전에 손빈의 책략에
말려들어 참패를 당한 적이 있는 방연은 모든 신경을 칼날처럼 곤두세우곤 사방을
두리번두리번 살폈다. 협곡은 아주 조용하기만 했고 풀벌레소리만이 밤의 정적을
깼다. 아무리 주위를 살펴보아도 매복의 낌새가 없는지라 그제서야 방연은 한시름을
놓고 군사를 이끌고 느릿느릿 협곡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천천히 가는데 어둠 속에서 느닷없이 커다란 나무에 허연 것이 나타났는데
무슨 글씨 같은 것이 씌여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방연은 황급히 부하를 시켜 횃불을
켜게 하고 나무의 흰 부위를 비춰보았다.
바로 이때 방연이 그 글씨를 채 읽기도 전에 사방에서 예리한 화살이 우박처럼
날아왔다. 방연의 병사들은 수없이 화살을 맞고 쓰러졌으며 그중에서도 다행히
살아남은 자들은 삽시간에 난장판이 되어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저마다 뿔뿔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방연은 그제서야 또 손빈의 계책에 빠졌다는 것을 알아차리곤 너무도 부끄러운
나머지 그 자리에서 자결하고 말았다. ff
[ 지혜로운 재상
전설에 의하면 명조 때 엄눌이란 재상이 있었는데 그는 지혜가 남달리 뛰어났을
뿐 아니라 그때의 관리치고는 백성들의 편에 서서 백성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었다.
어느해, 그는 자신의 고향 마을에 넓다란 학당을 지어주게 되었다. 고향 마을
사람들은 그 소식을 듣고 너무나 반가워 저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기초계획을 잡고보니 뜻밖에도 학당을 지을 부지 안에 한 채의 낡은
가옥이 들어앉아 있었다. 만일 그 집주인이 이사하길 거부한다면 학당을 지을 일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물론이다.
그 낡은 가옥의 집주인은 두부를 만들고 담배도 파는 그런 사람이었다. 시공은
맡은 사람이 집주인을 찾아 고가로 집을 사들이겠다고 제의를 했다. 그러나 그
주인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 집은 조상들이 물려준 재산이어서 우리 대에 와서 팔아버린다면 사람들이
비웃을 거요. 그러니 아무리 값을 비싸게 준다고 해도 절대 팔 수가 없어요."
시공을 맡은 사람은 하는 수 없이 이 사정을 엄눌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엄눌이
말했다.
"조급해하지 마시오. 먼저 그곳을 제외하고 다른 일부터 시작하시오."
이윽고 공사가 시작된 후, 엄눌은 또 시공을 맡은 사람에게 특별히 당부를 했다.
"절대 그 집주인을 멸시해선 안되오. 공사현장에서 수효되는 두부는 물론이고
인부들에게 나누어 줄 담배도 꼭 그 집에서 사도록 하시오. 그러되 가격은 그
집에서 부르는대로 주고 또 예약금부터 먼저 지불하시오."
엄눌 재상이 도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하려고 그러는지 그 꿍궁이 속을 사람들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수군거렸다.
"엄눌 재상은 다른 관리와 같지 않다구. 절대로 자기가 갖고 있는 권력으로
백성들을 강제로 다루지 않아."
"그렇지 않아. 그까짓 두부장사 하나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걸."
사람들의 생각은 저마다 달랐다. 하지만 사람들이 뭐라 하든 시공을 맡은 사람은
엄눌이 시킨대로 현장에서 사용되는 두부와 담배는 모조리 그 집에서 사다가 썼다.
그러자 낡은 가옥의 집주인은 매출이 엄청나게 늘자 여간 상냥하지 않은 것이다.
매일 눈코뜰새없이 분주히 서둘러도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어 사람 한 명을
고용하기까지 했다.
학당을 짓는 일이 점점 구체화되어 가자 일꾼은 점점 더 늘어났고 그러자 낡은
가옥의 집주인은 다른 식품도 취급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공사현장에서 사용되는
모든 품목을 취급하게 된 것이다.
갑작스레 팔 물건을 잔뜩 사들이고 보니 그것들은 온통 집안에 꽉 들어찼고
그것도 모자라 발디딜 틈도 없었다. 가옥의 집주인은 좁은 집안 때문에 골머리를
앓게 되었다.
집주인 부부는 그 해결책을 궁리해보았다. 집주인이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돈을 많이 벌게 된 것은 엄눌 재상이 이곳에다 학당을 지은
덕분이 아니겠소? 애당초 우리가 이사를 갔어야 했는데^5,5,5^."
"그러게 말예요. 괜히 우리가 부끄러워서 동네 사람 보기가 창피해요."
"재상의 도량은 바다처럼 넓지 않소? 우리 이럴 게 아니라 이 집을 학당에 그냥
바칩시다."
부부는 밤새 토론한 결과를 이튿날 아침 시공을 맡은 책임자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 책임자는 이 사실을 곧바로 엄눌에게 보고했다. 엄눌이 그 책임자에게 말했다.
"공짜로 그 집을 받아선 안되오. 그 근방에 집 한 채를 사서 그 사람들에게 주되
현재의 집보다 훨씬 좋은 것이어야 하오."
집문제는 이렇게 해서 해결되었다. 장사꾼부부는 황송해 하면서 이내 이사를
갔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재상의 방법이 훌륭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ff
[ 조롱박
2천년 전의 한나라 때, 어느 한 고을에 살고 있는 농부가 조롱박을 심었는데 이
농부가 심은 조롱박은 남들이 심은 것보다 여섯 배, 일곱 배나 더 컸다.
그렇다면 그 비결이 무얼까?
처음 그가 심은 조롱박은 남들이 심은 조롱박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봄이 오면
씨를 부드러운 땅 속에 뿌렸고 이어 파아란 새싹이 돋아나와 넝쿨이 우거지는가
싶으면 마침내 하얀 박꽃이 피어났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서 윤기가 반들반들한
원두색 조롱박이 탐스럽게 열렸다.
농부는 이렇게 몇 년을 반복해서 조롱박을 심었다. 그러던 어느날 농부는 불쑥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해마다 이렇게 조롱박을 심는데 크게 아주 크게 할 방법이 없을까?"
이해 가을 조롱박을 딸 때, 박넝쿨이 어찌나 얼기설기 뒤엉켜 있는지 그는 도저히
어느 박이 어느 넝쿨에서 열렸는지를 분간할 수조차 없었다. 그것을 유심히 관찰한
농부는 새로운 재배법을 생각해냈다.
이듬해 봄, 집뙈기만큼 되는 뜰을 파엎고 박씨 10개를 둥그렇게 원을 그려
심어놓았다. 박넝쿨이 석자 가량 자라났을 때 그것을 한데 묶어놓고 흙을
덮어놓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박넝쿨이 한데 어우러져 자라났는데 그는 그중
9개를 잘라버리고 나머지 한 개만 남겨놓았다.
이웃 사람들은 그의 행동이 의아스러워서 물었다. 농부가 대답했다.
"이렇게 해주면 10개의 박넝쿨이 땅속에서 영양분이 충분해져 커다란 박이 열릴
것이오."
그러나 사람들은 농부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넝쿨은 농부의 말대로
하루가 지나기 무섭게 쑥쑥 자라났고 매일매일의 성장 속도가 눈에 보일 정도였다.
넝쿨은 이내 하얀 박꽃을 피우더니 털이 보송보송한 여러 개의 조롱박이 대롱대롱
열리었다.
그러나 농부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막 열리기 시작한 조롱박 3개를 따버리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더욱더 이상해서 그 연유를 물어보았다. 그가 말했다.
"넝쿨은 사람으로 비유하면 뼈와 같소. 뼈가 채 자라나기도 전에 너무 일찍
열매를 맺으면 필연코 힘이 부쳐 클 수가 없소. 이렇게 몇 개를 따버리면 나머지
남은 열매는 자연히 큰 박으로 자라날 것이요."
과연 박넝쿨은 그 어느 집의 것보다 튼튼하였고 열매도 비길 바가 못되었다.
그러자 농부는 이번엔 그 박넝쿨의 한 가운데에 구덩이를 파고 물을 가득 채운
단지를 묻어놓는 것이었다.
그가 이처럼 이상한 행동을 계속 해보이자 사람들은 그저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농부가 설명하듯 말했다.
"조롱박은 가물어서도 안되고 물이 많아도 안됩니다. 물을 가득 채운 단지에
이렇게 조그만 구멍을 뚫어 놓으면 물이 천천히 새어나와 조롱박이 항상 적당하게
물을 빨아들일 수 있죠."
자신의 일에 더 나은 방법을 연구한 농부는 이렇게 해서 해마다 크고 좋은
조롱박을 딸 수 있었다. ff
[ 포원
삼국시대 촉나라 황제인 유비는 인재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어느날, 그는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무술대회를 열었다.
무술대회가 열리자 두 사나이가 기풍도 당당하게 맞섰다. 한 사람은 작대기 같은
커다란 쇠몽둥이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시퍼런 날이
번뜩이는 칼을 틀어 쥐었다. 그리곤 시합을 알리는 북소리에 맞춰 그들은 무기를
휘둘렀지만 좀처럼 승부가 나질 않았다. 구경하는 백성들도 양편으로 갈라져 응원을
하면서 손에 땀을 쥐었다. 그러던 중 혼신의 힘을 다해 고함을 지르면서 쇠몽둥이를
가진 자가 공격을 가했다. 그러나 상대방이 칼로 그것을 막아내자 '쨍그렁'하는
소리와 함께 사나이의 쇠몽둥이가 두 동강이 나면서 맥없이 땅에 떨어졌다.
사람들은 쇠몽둥이가 칼에 맞아 두 동강이 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모두가
어안이 벙벙했다.
줄곧 높은 보좌에 앉아 구경하던 유비가 급급히 명령을 내려 시합을 중단시킨 후,
직접 그 칼을 쓴 사나이를 불렀다.
"지금 네가 쓴 칼을 누가 만들었나?"
"포원이 만들었습니다."
사나이가 공손히 대답을 했다. 사람들은 포원이란 이름을 듣고 포원이라면 칼을
잘 만들기로 소문난 철공이라고 얘기했다. 유비는 부하를 시켜 즉시 포원을 불러와
칼을 잘 만드는 비결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포원은 촉나라 사람이었고 대대를 내려오는 철공기술을 선조로부터 전수받은
사람이었다 포원은 이미 소문난 철공으로 그가 만들어낸 농기구와 칼을 탄탄하고
편리하여 사용자들이 앞다투어 사갔다.
그러나 그가 만든 칼에도 처음엔 한 가지 약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빨리 무디어져
수명이 길지 못하다는 것이다.
포원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몇 년에 걸쳐 실험을
거듭하였지만 번번히 실패를 면치 못했다.
어느날, 그는 또 칼 한 자루를 만들어냈는데 실험해보니 역시 이내 무디어졌다.
그는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다시 칼을 불 속에 넣었다.
칼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 속에서 새빨간 불덩이가 되었다. 칼을 끄집어 낸 후,
포원은 망치질을 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둔 채 망연히 쳐다보기만 하였는데 마치
그 뻘건 쇳덩이에서 비결을 찾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넋을 잃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 포원은 다시 손에 망치를 잡고 두드리기 시작했다. 한데
이글이글하던 칼을 이미 냉각되어 도저히 두드릴 수가 없이 탄탄해졌다. 뜻하지
않게 새로운 발견을 한 포원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뻘겋게 달구어졌던 쇠가 천천히 식으면서 단단해졌으니 만일 더 빨리 식힌다면
더욱 단단해질 것이 아닌가?"
그는 다시 칼을 불속에 넣었다가 새빨갛게 달아올랐을 때 꺼내서 찬물에 쑥
집어넣었다. 치익하는 소리와 함께 기포가 마구 튕겨올랐다.
칼을 완전히 냉각시킨 후, 포원은 그 칼을 들어 다른 칼을 힘껏 내리찍어
보았는데 그쪽 칼은 단번에 두 동강이 났고 실험한 이 칼은 아무런 흔적도 생기지
않았다.
포원은 너무도 기뻐 칼을 몇 자루나 더 만들어서 찬물에 냉각시켰는데 모두
그처럼 강해진 칼이 되었다.
금속에 열을 올렸다가 빨리 냉각시켜 금속의 강도를 높이는 방법은 이렇게 포원에
의해서 발명되었다.
줄곧 포원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비는 환한 얼굴 표정을 지으며 당장 촉나라
군사가 사용할 칼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때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1천 8백여 년이 흐르면서도 철공들은 한결같이
그 방법으로 칼을 만들고 있다. ff
[ 때리는 것이 곧 때리지 않는 것이오.
송조 때 구준이란 사람이 어느날 황주에 있는 한 절을 찾아가 선이라는 스님을
찾아뵈었다.
구준은 선 스님에 대하여 항시 존경해 왔었지만 스님은 구준이 보잘 것 없는 작은
관리에 지나지 않자 아^36^예 쳐다보지도 않고 말도 건네질 않았다. 잠시 후
동자승이 달려와 장군의 아들이 찾아왔다고 말하자 선 스님은 몸을 벌떡 일으켜
장삼의 매무시를 단정히 하고 황급히 밖으로 달려나가 반기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허리를 굽신거리며 동자승에게 차를 내오라고 해서 동자승이 차를 내오자
손수 찻잔을 받쳐올리는 것이었다.
원체 성미가 불같은 구준이 옆에서 그 꼬락서니를 보고 있으려니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선 스님이 이처럼 권세 앞에서 들판의 갈대마냥 휘어들 줄은 정말
뜻밖이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 절을 떠나버리고 다시는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았지만 자신이 그렇게 훌쩍 떠난다고 선 스님이 서운해 할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좀더 관망해 보기로 했다.
이윽고 한참이 지나서 장군의 아들이 돌아간 후 구준이 선 스님에게 퉁명스런
어조로 말했다.
"스님은 왜 저에 대해선 그렇게 냉정하게 대하시면서 장군의 아들에겐 어찌
후대를 하시죠?"
"선생은 결코 노여워하지 마시오. 선생은 출가한 우리들의 도리를 모릅니다.
이것이 곧 존경이 비존경이고, 비존경이 곧 존경함이오."
그러나 구준은 지금 선 스님이 자신의 체면을 위해 변명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돌연 벽에 기대어놓은 스님의 지팡이를 집어들어 유리알처럼 번들거리는
스님의 머리를 탕탕 내리치면서 말했다.
"스님,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스님은 우리 세속의 사람들 도리를 모릅니다. 우리
세속의 사람들은 세속 사람들의 도리가 있소. 이것이 곧 때리는 것이 때리지 않는
것이며 때리지 않는 것이 곧 때리는 것이오."
선 스님은 계란만큼 퉁퉁 부어오른 머리를 싸쥐고 아무 말도 못했다. ff
[ 자기 힘으로 번 돈이 아깝다.
옛날 어느 한 농군에게 외아들이 있었는데 이 아들은 세상에서 둘도 없는
게으름뱅이었다. 부모도 귀찮게 여길 정도로 불효자이기도 했다.
"어찌됐든 귀찮아도 부모가 있어야 내가 일하지 않고 먹고 살 수가 있지."
세월은 무정하여 농군도 나이가 많아진데다 설상가상으로 병까지 겹쳤다. 어느날
농군이 부인에게 말했다.
"부지런한 사람을 찾아서 우리 재산을 넘겨주어야 하겠소. 절대로 아들에겐 주지
않을 것이오. 그는 천하의 게으름뱅이어서 재산을 물려 주었다간 얼마 가지 않아
모든 재산을 탕진해 버릴 것 아니겠소?"
그러나 부인은 그래도 자신에겐 하나뿐이 없는 자식인지라 자식편을 들었다.
농부가 말했다.
"당신은 자식이라고 자식편에 서서 말하지만 진정 자식을 아끼는 마음이 있다면
재산을 그놈에게 물려 주어선 안되오. 녀석이 부지런만 하고 자기 힘으로 돈만
번다면 왜 아까운 재산을 남에게 주려고 하겠소? 만일 동전 한 닢이라도 자식놈이
제 손으로 벌기만 해도 난 재산을 자식놈에게 물려 주겠소."
이 말을 들은 부인은 곧장 아들을 찾아가 그에게 동전 한 닢을 손에 쥐어주며
간곡히 부탁을 했다.
"밖에 나가서 하루종일 지내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돌아와서 이 동전을 아버지께
드리며 네가 번 것이라고 말씀을 드려라."
아들은 시키는대로 했다. 그랬더니 농군은 아들이 벌어왔다는 동전을 받아서 불이
이글거리는 아궁이 속으로 집어던지며 말했다.
"이 돈은 네가 벌어 온 것이 아니다."
아들은 조금도 아까운 표정없이 그저 히죽히죽 웃으며 가버렸다.
부인은 당황하며 이번에는 동전 두 닢을 주며 말하였다.
"이번에는 산에 올라가서 놀다가 날이 어두워질 때 마구 뛰어 오너라. 그러면
땀이 날 테고 그 모습으로 아버지에게 네가 번 돈이라고 해라."
아들은 또 시키는대로 했다.
저녁 무렵, 온통 땀투성이가 된 아들이 아버지 앞에 불쑥 나타나 말했다.
"어휴, 힘들어! 아버지, 겨우 동전 두 닢을 벌어 왔어."
농군은 아들이 내민 동전을 받아쥐더니 여지없이 또 아궁이 속에다 던져버리면서
말했다.
"나를 속이지 못해. 이 돈은 네가 번 것이 아니야."
아들은 여전히 히죽히죽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그제서야 농군의 부인은 결코 남편을 속일 수 없다는 걸 깨닫곤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얘야, 우리가 아버지를 속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네가 가서 일해라.
일해서 번 돈을 아버지한테 드려야 아버지가 믿으실 것 같다. 그렇치 않으면 이
재산 모두가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간다."
이 말을 들은 아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정말 밖으로 나가 며칠간 일을 해서
동전 몇 닢을 벌어와 아버지께 드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번에도 역시 그 동전을
아궁이 속에다 던져버리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아들은 깜짝 놀라며 아궁이로 다가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동전을 꺼내려고 허둥댔다. 심지어 불에 손을 데는 것마저 그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아들이 아버지 보고 말하였다.
"힘들게 일해서 겨우 동전 몇 닢을 벌었는데 아버지는 그걸 아궁이 속에다
처넣으면 어떡해요!"
이때 농군의 주름투성이 얼굴엔 비로소 환한 웃음꽃이 피어 올랐다. 농군이
흐뭇한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젠 믿는다. 저 돈은 네가 노동을 해서 번 돈이 분명하다. 자신이 땀을 흘려 번
돈이라야 아낄 줄을 아는 것이니라." ff
[ 주정뱅이의 공헌
술에 만취한 주정꾼을 보면 길을 걸으면서 이리저리 비틀거리고 나중엔 다리도 채
가누지도 못하고 아무렇게나 길바닥에 고꾸라져 잠들기 일쑤다. 그런데 이런
주정뱅이가 어떤 공헌을 하였을까? 천 칠백여 년 전의 흥미로운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자.
그때 유명한 의사 화타는 사시사철 안휘, 산동, 하남, 강소 일대를 돌아다니며
백성들의 병을 치료해 주었는데 그 의술이 얼마나 뛰어났던지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를 보고 신선 같은 의사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 신선 같은 의사에게도 단 한 가지 만큼은 풀어내지 못할 고민으로 남아
있었다. 고민이란 당시 마취약이 없었으므로 수술받는 환자를 마취시키지 못해
환자는 그 고통에 몸부림치며 울부짖는 것이었다.
어느 하루, 화타는 팔에 종기가 난 어린아이를 치료하게 되었다. 종기가 난 부위는
벌써 곪아서 살이 썩어가고 있어 그 부위를 빨리 도려내지 않으면 팔을 절단해야만
될 위기까지 처해 있었다. 화타는 곧 수술을 시작했는데 아이는 생살을 도려내는
아픔에 마구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을 쳤고 어른들이 아이를 꽉 누르고 또 끈으로
아이를 꽁꽁 묶어놓고 나서야 비로소 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
모진 고통 속에서 수술을 끝낸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화타의 머리 속에는 이런
생각으로 꽉 찼다.
"수술도 잘 할 수 있고 또 환자가 아픔을 느끼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있어야
할텐데."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일은 참으로 공교로운데서 실마리가 찾아졌다.
어느날 몇몇 사람들이 한 환자를 업고 화타를 찾아왔다. 그 환자는 교각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져 있었다. 화타가 그 환자의 다리를 수술하는데 그 환자는 이상하게도
전혀 비명소리를 지르지 않는 것이었다. 이윽고 수술이 다 끝났는데도 그 환자는
여전히 혼미상태였다. 그의 표정으로 봐선 그가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 환자가 나무로 만들어진 사람이 아닌 이상 어찌 저토록
고통을 모른단 말인가? 순간, 그 원인이 환자가 지금 만취된 상태라는 것을 알았고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음을 알았다.
"가령 약을 만들어 환자가 먹으면 술에 취한 듯이 감각을 느끼지 못하게 할 수
있다면 수술받는 환자도 고통에서 해방되고 의사인 나도 수술하기가 훨씬 편하지
않을까?"
이 일이 있은 후부터 화타는 매일 연구와 실험을 거듭한 끝에 끝내 마취약인
마불산을 발명하기에 이르렀다.
어느날 한 뱃사공이 맹장염에 걸려 당장 수술을 받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화타는 수술하기에 앞서 그에게 마불산을 복용하게 하였더니 그는 이내 잠에 스르르
빠지더니 감각을 잃었다. 화타는 뱃사공의 배를 가르고 맹장수술을 하였으며
수술부위는 물론 가른 배를 실로 봉합하였다. 뱃사공은 수술을 마쳤을 때까지
아픔은 조금도 느끼질 못했다.
마취제의 발명은 온 인류의 '복음'이다. 화타는 세계에서 최초로 마취제를 발견한
자로 영원히 인류사에 이름을 남겼는데 거기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술주정뱅이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다름아닌 주정뱅이의 의외의 공헌이다. ff
[ 날으는 새를 잡다.
한 새잡이꾼이 큰 그물을 늪가에 살그머니 쳐놓고 그 그물 밑에다간 먹이를
뿌려놓은 후 몸을 갈대 숲속에 숨겼다.
늪에는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났고 여러 가지 곤충들이 많아서 기러기, 들오리 등
갖가지 새들이 즐겨 찾아왔다.
이윽고 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와 먹이를 쪼아댔다. 새들이 그물 밑에서 정신없이
모이를 쪼아대자 새잡이꾼은 이때다 싶어 그물끈을 지체없이 낚아채었다. 그러자 그
안에 있던 새들은 모두 갇히었다. 헌데 새잡이꾼이 막 끈을 거머쥐려고 할 때
갑자기 그물이 고무풍선처럼 허공으로 솟구치기 시작하였다. 새잡이꾼이 재빨리
앞으로 몇 발자국을 뛰어나갔으나 그때는 벌써 그물이 공중으로 떠오른 후였다.
새잡이꾼은 깜짝 놀랐다. 원래 그물 속에 한 마리 큰 새가 갇혀 있었는데 큰 새가
날개를 퍼덕이자 작은 새들도 일제히 날개를 퍼덕이어서 그물채로 하늘로 날아올라
갔던 것이었다.
새잡이꾼은 아무리 평생을 새잡는 일로 보냈지만 이런 광경은 난생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훨훨 날아가는 그물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갑자기 정신이 든 사람처럼 그물이 날아가는 방향을 따라 냅다 뛰어갔다. 그리곤
계속 뛰어가면서 그물을 쳐다보았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새잡이꾼을 말렸다.
"쓸데없이 기운일랑 빼지 말게. 자네가 어찌 날아가는 새를 잡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새잡이꾼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달리기만 했다.
또 한 사람이 새잡이꾼을 쳐다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이 빈정거렸다.
"정말 어리석은 친구로구먼. 새가 하늘에서 날아가는데 다리가 끊어지도록 아무리
뛰어보게나! 따라잡을 수 있겠는가?"
"한 번 보시오. 이제 날이 어두워지면 새들이 제각기 둥지로 돌아가려 하기
때문에 소동이 일어나 스스로 떨어질 테니 한번 두고 보시오."
과연 노을이 지면서 얼마쯤 더 날아가던 새들은 그물 속에서 어떤 놈은 동쪽으로
날아가려는 놈이 있고 어떤 놈은 서쪽으로 날아가려는 놈이 있어 방향을 잃고 그만
그물채로 땅에 떨어졌다. 새들이 그물 속에서 아무리 날아가려고 날개를 퍼덕여도
그때는 다시는 날아갈 수가 없었다. 새잡이꾼은 얼른 달려가 새를 모조리 잡아
집으로 돌아갔다. ff
[ 금을 찍어내는 손가락
아주 오래된 옛날, 깊은 산속에 황금이 가득 쌓여 있다는 소문을 들은 한 청년은
그 황금을 가져다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가 황금을 찾아 숲속으로 떠난다는 소식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렸다.
"환상을 쫓아가고 있구만. 그렇게 쉽게 찾아질 황금이라면 벌써 사람들이 찾았지."
"여지껏 그 황금을 찾아 떠났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나? 하지만 모두 헛탕을
치고 빈손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아야지."
그러나 사람들이 뭐라고 입방아를 찧던 상관없이 청년의 결심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어느날 아침, 날이 희뿌연하게 밝아왔다. 대지는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그는 황금을 찾아 첫발자욱을 내디뎠다.
처음 그는 꼬불꼬불한 오솔길을 따라 발길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이 일대에는
황금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어느덧 청년은 49일을 걸어 어느 심심산골에 이르자 고개를 쳐들고 앞을 쳐다보니
산이 첩첩치 싸여 있었고 집채만한 바위들이 덧놓여져 산봉우리를 이루었는데
그나마 이제 오솔길도 보이질 않았다.
청년은 그래도 굳은 결심을 굽히지 않고 가파른 산을 기어올라 갔다. 허리에 찬
보자기엔 식량도 벌써 떨어진 지가 오래였고 그래서 야생과일로 허기를 채우고
풀뿌리를 캐먹고 샘물을 마시면서 기운을 잃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렇게 얼마를 더
걸었는지 날이 얼마나 더 지났는지 모른다. 꽃봉오리가 맺고 피어난데서부터 단풍이
들고 눈발이 휘날리는 것을 보고 이내 파아란 새싹이 돋아날 때까지 걷고 또 걸었을
뿐이었다.
어느날 몹시 지친 청년은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서서 머리를 쳐들고 앞을
굽어보았을 때 느닷없이 백발이 성성한 한 노인이 얼굴에 가득 미소를 지으며
걸어왔다. 청년은 이 깊은 산속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을 보자 흠칫 놀랐다.
"내가 이 산속에서 신선을 만난 것인가?"
청년은 진짜로 신선을 만난 것이다. 이 백발 노인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8 대
신선 중의 한 신선인 여동빈이었다.
"이보게 젊은이, 이렇게 깊은 산속까지 뭣하러 왔소?"
"예, 황금을 찾으러 왔습니다."
청년은 침착을 잃지 않고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여기까지 사람의 발길이 닿은 것은 젊은이가 처음이오."
백발노인의 목소리는 우렁찼고 위엄이 있었다.
"뜻이 있는 자에겐 길이 있소.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자만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물건을 얻을 자격이 있는 법이오."
그리곤 백발노인이 돌멩이를 하나 주워들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니 그 돌멩이는
급기야 황금으로 변하여 찬란한 빛을 뿌리는 것이었다.
"이것이 젊은이가 그토록 찾아다니던 황금인가? 자, 받게!" 백발노인은
황금덩어리를 청년에게 불쑥 내밀었다.
청년은 그렇게도 찾아 헤매던 황금덩어리를 보자 너무 기쁜 나머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백발노인과 황금을 번갈아 쳐다보며 한동안 넋을 잃고
있다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뜻밖에도 황금을 놓으며 이런 말을 내뱉는
것이었다.
"싫습니다. 저는 싫습니다."
그러자 백발노인은 황금덩어리가 작아서 그런 줄 알고 이번엔 큰 돌덩어리를 주워
손가락으로 가리켜 황금으로 만든 후 청년에게 내밀었다.
"이제는 만족하는가?"
그래도 청년은 고개를 저으며 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백발노인이 손가락으로 여러 번 가리키자 온 산봉우리가 그대로 황금산으로
변하여 저녁노을처럼 눈부신 빛을 뿌렸다.
그래도 청년은 여전히 고개를 젓는 것이었다. 백발노인은 저토록 엄청난 황금을
주어도 가지려 하지 않다니 도대체 청년의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젊은이는 분명히 황금을 찾아 여기까지 모진 고생을 해가며 찾아왔던 것 아니오?
그런데 저 많은 황금이 싫다니 그건 또 무슨 이유요."
"분명히 그랬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갖고 싶은 것은 바로 돌을 가리켜 황금을
만드는 바로 그 손가락이^36^예요!"
청년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ff
[ 죽지 않는 약
이 이야기는 전국시대 초나라에서 발생한 실화이다.
초나라 국왕은 어느날 문득, 사람은 언젠가 죽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모든
부귀영화도 누릴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그래서 영원히 죽지
않는 약을 어떻게 해서든 구해서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국왕의 주위에는 아첨에 아주 능한 신하 하나가 있었는데 그는 국왕의 말을
듣더니 그런 약초가 있으니 염려 말라고 하구선 자신이 꼭 구해오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일이 조정의 경호대인 한 사수에게까지 전해졌다. 이 사수는 원래
성미가 대나무쪽 같은 바른 사람이었다. 그는 국왕의 그런 어리석은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왔고 그 아첨쟁이 신하는 언젠가 자신이 한번 혼찌검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때마침 한 손님이 초나라 수도 영성엘 찾아와 죽지 않는 약을
국왕께 바치라고 했다. 그 약은 이미 아첨쟁이 신하가 꾸민 각본에 의해서 가져온
것이었다. 신하는 재빨리 달려와 국왕이 자신을 보내 약을 가지러 왔다하고는 약을
들고 궁정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때 그 사수가 다가오며 물었다.
"당신, 그 손에 든 것이 무엇이오?"
"죽지 않는 약이오! 국왕께서 잡수실 죽지 않는 약이란 말이오?"
"먹을 수 있는 것이오?"
"그렇지 않구? 먹어야 죽질 않지?"
사수가 그 말을 듣더니 손을 내밀어 그 약을 집고선 입에 넣고 꿀꺽 삼켜버렸다.
신하는 자기 간을 빼앗기기라도 한 듯 놀라며 말했다.
"죽고 싶어서 그래!"
아첨쟁이 신하는 그 길로 국왕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낱낱히 고했다.
국왕은 벼락같이 화를 내더니 당장 그 사수를 끌어들여 몰매를 안긴 후 끌어내
목을 자르라는 어명을 내렸다.
이 위태로운 찰나에 그러나 사수는 아주 침착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폐하, 제가 신하에게 분명 '먹을 수 있는 것이오?'하고 물으니 신하가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해서 제가 먹었습니다. 그러니 저의 잘못이 아니라 이건 신하의
잘못입니다. 폐하께서 못 믿으시겠다면 신하께 물어 보십시오."
한쪽에 서 있던 신하는 이 말을 듣더니 우물쭈물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5,5,5^."
사수의 어조는 더욱 높아갔다.
"신하가 가져온 약은 죽지 않는 약이라 해서 제가 이미 삼켰는데 만약 페하께서
저를 죽이신다면 이 약은 죽지 않는 약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고 폐하를 회롱한 것
아닙니까? 가령 폐하께서 저를 죽이신다면 백성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고, 무고한
사람을 죽였다는 원성을 면치 못하시게 되옵니다."
국왕은 사수의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과연 그 말에 일리가 있고, 정말
사수를 죽인다면 백성들의 원성을 사게 될 것 같았다. 국왕은 하는 수 없이 사수를
풀어주고 신하를 물매 50 대를 쳐서 궁정 밖으로 내쫓았다.ff
[ 성을 덮을 집부터 지읍시다.
진시황이 죽은 후, 그이 아들 호해가 왕위를 계승하고 진황 2세라 불렀다. 진황
2세의 사치함은 결코 아버지보다 뒤지지 않았는데 매일 호의호식하며 방탕한 생활을
보냈다.
수도 함양을 더욱 아름답게 치장하고 황제의 위엄을 아주 높이기 위하여 그는
성벽을 몽땅 페인트로 칠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명령을 받은 대신들은 처음엔 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나중엔 불만을 품었으나
그렇다고 어쩌지도 못해 안절부절을 못했다. 진황 2세를 권유하여 이 황당한 일을
중지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의 잔혹함은 이미 세상이 다 아는지라 잘못
권유했다간 어떤 형벌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에 모두들 말하지 못하고 그저 두려움만
간직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 엄청난 일을 할 수도 없는 일인데 명령을 어겼다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여러 궁리 끝에 드디어 우전이란 사람을 생각해냈다.
우전이란 사람은 유머가 풍부하고 지혜가 뛰어난 사람으로서 지금 이토록 난처한
일에 빠진 것을 해결해 줄 사람은 그 사람뿐이었다.
한 번은 진시황이 살아 있을 때 진시황이 커다란 동물원을 짓겠다 했는데 그
길이는 무려 백여 리가 넘었고, 동물이란 동물은 다 잡아다가 키우며 보고
즐기겠노라고 했다. 우전이 일부러 감탄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비웃음이었다.
"전하, 전하의 생각은 정말 좋습니다. 동물을 많이 길러 적들이 쳐들어오면 그
동물들을 풀어서 막아내시려는 그 생각, 정말 좋습니다."
진시황은 우전의 말을 듣고 그것이 자신에 대한 충고임을 알고 동물원을 지으려던
생각을 포기해 버렸다. 이때로부터 우전의 명성은 널리 퍼졌다.
이번에도 대신들은 또 우전을 불러 의논했다. 우전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가서 말해 보리다."
진황 2세를 만난 우전은 우선 그 사실부터 확인했다.
"전하께서 성 전체를 페인트로 칠하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까?"
"그렇소. 함양을 더 아름답게 꾸미려고 말이오."
"좋습니다. 정말 좋으신 생각입니다. 저는 전하의 생각에 감탄했습니다. 만일
전하께서 이런 명령을 내리시지 않으셨다 하더라도 소인이 건의할 생각이었습니다."
진황 2세는 우전의 말에 흐뭇함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전이 계속해서 말했다.
"성을 온통 페인트로 칠하면 비록 백성들에게 노동력과 경제적인 부담을 안길
수는 있지만 온 성이 페인트로 칠해져 환하게 빛나서 좋은 점이 오히려 많지요.
하루빨리 시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는 우전은 진황 2세 앞에서 손뼉을 두들기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성벽을 반들반들하게 칠해 적들이 쳐들어와도 오를 수 없고, 성벽에 기름을 칠해
적들이 기어오르면 모두 붙어버릴거네."
이때까지만 해도 진황 2세는 자기 생각이 얼마나 정확했는가 하며 속으로 은근히
기뻐하였다.
우전은 진황 2세의 기뻐하는 표정을 보고는 노래를 멈추고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전하, 문제가 있습니다. 성에 칠하는 페인트는 햇볕에 말려선 안됩니다.
응당 그늘진 곳에 말려야 견고히 붙어 있으며 벗겨지질 않지요. 그러기
위해선^5,5,5^."
우전은 여기서 말을 잠시 멈추고 진황 2세의 얼굴을 다시 살펴본 후 말을
이어나갔다.
"전하, 페인트칠을 하기에 앞서 먼저 함양성을 모두 덮어버릴 수 있는 커다란
집부터 지은 후 페인트 칠을 하는 게 순서일 것 같습니다."
비록 잔인하고 횡포한 진황 2세였지만 우전의 말에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런가? 그렇다면 그만 두게. 칠하지 말게. 성을 덮을만한 큰 집을 무슨 수로
짓는단 말인가? 차라리 페인트칠을 안하는 것이 낫지." ff
[ 말뼈에서 나온 천리마
전국시대 진, 초, 제, 연, 조, 위, 한, 등 일곱 개 나라는 각각 한 지방을 차지하고
서로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서로 싸움이 치열했다.
그 중에서도 국력이 제일 약한 것은 연나라였는데 이 나라는 주위에 포진된
나라로부터 끊임없는 침략에 시달렸다. 한 번은 제나라에서 연나라 내부에 혼란이
일어난 틈을 타서 공격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하마터면 연나라가 멸망될 뻔한
일이 있었다.
연나라 연소왕은 제나라에 함락될 위기에서 벗어날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는 영토도 작질 않고 인구도 적질 않는데 왜 늘상 침략만 받고 힘이
없는 걸까?"
그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끝에 원인은 바로 지혜로운 대신과 무관들이
없는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였다. 건물에 대들보가 모자라면 휘청거리는
것과 다름없었다.
연소왕은 이제라도 인재를 찾아내어 연나라를 함께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훌륭한 인재를 찾아낸다는 것은 그다지 쉽지 않았다.
곽외라는 사람은 지혜가 뛰어나고 묘책이 많은데 과거 국왕이 그를 중용하지 않아
지금 그는 집에서 한가한 세월을 보내고 있으므로 그를 불러 의논해보자고 누군가
연소왕에게 알렸다.
연소왕은 직접 곽외의 집을 찾아가 인재를 추천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곽외는 환갑을 훨씬 넘긴 나이였으나 아직도 정신이 맑았고 얼굴은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연소왕의 부탁을 들은 곽외는 잠깐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인재를 중용하는 것은 연나라를 다스리는데 있어서 근본입니다. 하지만 인재를
주위로 모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가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곽외가 말한 내용은 이러했다.
고대시기 어느 국왕은 천리마를 몹시 갖고 싶어했다. 국왕은 그래서 부하를 시켜
천리마를 구해 보도록 했다. 하지만 부하는 삼 년이란 세월을 정처없이 헤매이고
다녔을 뿐 끝내 천리마를 구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대 아주 먼 곳에 천리마 한
마리가 있다는 말을 들은 신하가 자신에게 황금 천냥을 주면 석달 안으로 천리마를
기어이 몰고 오겠노라고 다짐을 하였다.
국왕은 너무도 기뻐서 두말도 하지 않고 신하에게 황금 천냥을 주었다. 그 신하는
그것을 받아들고 천신만고 끝에 그 고장에 이르렀는데 천리마가 그새 병들어 죽어
버렸다. 신하는 앞이 캄캄했다. 기어코 천리마를 사오겠노라고 국왕에게 맹세를
했는데 천리마가 죽어 버렸으니 자칫 목숨까지 잃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신하는 한참만에 좋은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는 가지고온
황금을 절반이나 풀어내 말뼈다귀를 사가지고 돌아갔다. 신하는 그 말뼈다귀를 국왕
앞에 내놓았다. 그러자 국왕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건 예상한 일이었다.
"내가 천리마를 사오라 했지, 누가 쓸모없는 말뼈다귀를 사오라 했는가!"
"전하, 이 말뼈다귀를 그렇게 보지 마십시오. 이 쓸모없는 뼈다귀가 천리마로 변할
수 있습니다."
신하는 태연스레 대답을 했다. 그래도 국왕은 그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뼈다귀가 어떻게 산 말로 변한단 말인가?"
"사람들이 전하께서 5백냥 황금으로 죽은 말뼈를 사셨다는 소문을 듣고 전하께서
진짜 말을 사랑하는 줄로 믿을 것이며, 그때면 사람들이 스스로 천리마를 보내올
것입니다."
하지만 국왕은 신하의 말이 믿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신하가 시키는대로 말뼈를
땅속에 정중하게 묻었다.
이 이야기는 삽시간에 소문이 났다. 그리곤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아 과연 천리마
세 마리가 국왕에게 보내져 왔다.
이야기를 여기까지 한 곽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연소왕은 이때까지만 해도, 곽외의 이야기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한 듯 했다.
인재를 추천하라고 했더니 엉뚱한 천리마 이야기는 왜 하는지 연소왕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 속엔 분명 어떤 깊은 뜻이 있을 거라 생각한 연소왕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끝에 마침내 그 뜻을 알아차렸다.
"곽외는 나더러 자신을 말뼈로 간주하고 천리마를 부르라는 것이로구나."
연소왕은 그 길로 궁정으로 돌아와 곧 호화로운 별장을 짓게 한 후, 곽외를
불러들여 그 별장에서 살게 하고 또 그를 사로 임명하고 가르침을 받았다.
이 사실은 금새 온 나라에 퍼졌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연소왕이 진정으로 인재를
중히 여기고 아낀다는 것을 알게 되어 숱한 인재들이 연소왕을 찾아왔다.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인재까지도 연나라로 몰려 들었다.
연나라는 마침내 인재들이 넘쳐나게 되었고 나라도 자연 강해지기 시작했다. ff
[ 청렴한 군수
명나라의 청렴한 군수 관리 해서가 순안군 군수로 있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총독 호종헌의 아들이 여러 명의 무리들을 이끌고 순안군에 들어섰다.
해서는 접대를 맡은 풍력승에게 이렇게 말했다.
"조정의 규정에 따르면 접대하지 않아도 되지만 이미 그들이 우리 군에 온 인사로
하루 세끼의 식사만 대접하라. 그들이 호종헌의 권세를 생각해 제멋대로 행동하며
횡포를 부리거든 곧바로 내게 전달하라."
순안군에 행장을 푼 호공자는 이 세상이 모두 제것인 듯 안하무인이었고 거리를
지나면서도 여자를 희롱하며 보통 말썽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었다. 이윽고
식사시간이 되었는데 밥상에 술이 보이질 않자 호공자는 버럭 화를 냈다.
"술도 없고 음식장만도 이렇게 밖에 못해 놓고서 이따위를 나보고 먹으란
말인가!"
호공자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밥상을 뒤엎어 버리는 것이었다.
접대를 맡은 풍역승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으면서 말했다
"이 식사는 그래도 저희 군수가 먹는 것보다 훨씬 나은 것입니다."
군수란 말을 들은 호공자는 더욱더 기고만장해서 마구 욕설을 퍼부었다.
"그렇다면 나를 일개 군수에 비교한단 말이냐! 난 호총독의 아들이야, 호총독의
아들이라구!"
호공자는 함께 온 무리들을 시켜 풍역승을 묶어놓고 한바탕 두들겨 팼다.
이 일을 알게 된 해서는 곧장 부하들을 파견해 호공자 일행을 모조리 체포하여
압송해오게 하였다.
해서가 직접 심문에 나섰다. 호공자는 자신을 체포한 것에 대해 분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호총독의 아들이다. 무슨 배짱으로 날 체포했는지 모르지만 만일 우리
아버지가 아시는 날엔 너의 군수자리는 당장 파면될 것은 물론 목숨까지 부지 못할
줄 알아라!"
해서는 늠실도 하지 않았지만 호공자의 그 방자한 태도에 마음이 쓸쓸했다.
"정말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로구나. 호종헌이 권세를 이용해 자기 멋대로
행동하며 백성을 괴롭히더니 그 아들도 마찬가지로군."
하지만 해서는 표정을 부드럽게 하며 말했다.
"총독나으리께서 법을 엄격하게 준수하여 조정의 전하로부터 아낌없는 칭찬을
받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겠죠?"
해서의 칭찬에 신바람이 난 것은 호공자였다. 호공자는 더욱 우쭐거렸다.
"우리 아버지가 청렴한 관리라는 것을 알았으면 어서 빨리 나를 풀어주고 내게
사죄를 해라."
"사죄를 하라구! 총독께선 청렴하신 분이고 너는 그 아들인데 어찌 너는 그리도
닮질 않았느냐? 못된 사람들을 끌고다니며 횡포만 부리고 말이다."
해서는 진노한 목소리로 엄하게 꾸짖었다.
"솔직히 말하거라. 너는 총독나으리의 아들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너는
총독나으리의 아들로 가장해서 못된 짓을 하고 다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곤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여봐라! 이 악당들을 사십 대의 곤장을 치거라!"
명령이 떨어지자 곤장이 수없이 날아들어 호공자 일행은 땅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비명을 질러댔다.
이때 호종헌의 종년이 호공자에게 잘 보이려고 대뜸 앞에 나서서 해서에게
협박적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호공자를 따라 나설 때 호총독께서 친필 서한을 써주셨오. 절대 가짜가
아니오. 빨리 사죄하고 풀어주지 않으면 정말 후회하게 될 것이오."
해서는 아^36^예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다시 명령을 내렸다.
"네년이 담도 제법 크구나, 호총독나으리의 서한까지 꾸며서 가지고 다니면서
그대로 살아남으려 하다니! 여봐라, 다시 사십 대의 곤장을 더 쳐라."
이렇게 되자 호공자는 체면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혼비백산해 땅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싹싹 빌었다. 그제서야 해서는 곤장을 멈추게 하고 그들을 모조리 감옥에
처넣었다.
그날 밤, 해서는 호총독에게 공문을 작성했는데 순안군에서 호총독의 아들로
가장한 사건을 적발하였고 더욱이 그들은 호총독의 친필 서한까지 위조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엄하게 처벌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곤 이튿날 부하들을 시켜
공문과 함께 호총독 아들의 일행을 총독부로 압송해 갔다.
하지만 호공자 일행이 압송되어 간 후 해서보다도 속이 바짝바짝 탄 것은 군청의
일부 관리들이었는데 그들은 해서에게 호공자는 진짜 호총독의 아들이라고 귀띔을
했다.
이에 해서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진짜 호공자이기 때문에 내가 그들을 공짜라고 한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 못된 무리들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겠는가? 곤장도 못 때리지."
관리들은 해서의 말을 듣더니 그의 깊은 의중에 감복했으나 여전히 불안감만은
떨칠 수가 없었다.
총독부로 돌아온 호공자는 분에 못이겨 해서를 단단히 혼내달라고 아버지인
호총독에게 졸랐다. 아들이 난생처음 호되게 얻어맞아서 온통 상처투성이였고 성한
데라곤 한 군데도 없는 아들을 본 총독부인은 남편에게 독촉했다.
"당신은 당당한 권세를 갖고 있는 총독이^36^예요. 그런데 그런 당신 아들이 일개
군수에게 맞아서 저 꼴이 되었는데 놈을 그대로 놔둔다면 앞으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어요?"
해서의 공문을 읽어본 총독은 화가 치밀기도 했으나 달리 그를 벌로써 다스릴
방법이 없었다. 총독이 부인을 쳐다보며 말했다.
"해서의 이 방법이 얼마나 무서운지 당신은 모르오! 그가 벌을 내린 자가 나를
사칭한 무리들이라고 했소. 만약 사실을 밝힌다면 내 아들의 행실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일이고 그것은 곧 내가 내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오. 조용히 덮어 둡시다."
[ 총명한 소년 승상 감라
진나라의 감라가 12세 때 승상이 되었는데 이는 그 어느 나라에도 매우 보기 드문
일이었다.
감라가 승상이 된 계기는 그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질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 해, 진나라 국왕은 장당이란 대신을 연나라와 조나라에 보내어 두 나라간에
이간을 붙여 그들로 하여금 연나라와 영합하도록 유도하여 점차 6개국을 하나로
통일시키려 했다. 그러나 장당은 선뜻 나서서 그 임무를 수행하려 들지를 않았다.
왜냐하면 장당은 일찍이 진나라 군사를 거느리고 조나라를 공격한 적이 있었는데,
그후 조나라에서는 누구나 장당을 잡아오기만 하면 상금으로 백 리에 달하는 땅을
주겠노라고 포상금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장당이 어찌할 바를 몰라 망설이고 있을
때 느닷없이 어린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바로 감라였다.
"전하, 제가 조나라에 가서 사명을 다하고 오겠습니다."
진왕과 문무대신들이 그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니 아직도 애티를 벗지 못한
감라인지라 헛웃음이 나왔다. 진왕이 말했다.
"너의 그 어린 나이에 어찌 대신의 명의로 다른 나라로 갈 수 있겠느냐?"
감라는 자신에 넘쳐 말했다.
"전하, 항탁은 일곱 살 때 공자의 선생이 되었은즉, 제 나이 벌써 열두 살인데
한번 맡겨 주십시오."
감라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자 진왕은 저도 모르게 호기심에 끌려 말했다.
"조나라로 가서 조왕을 만나게 되면 무슨 말을 하겠느냐?"
"대신으로 임무를 맡고 출국하면 중임이 이 한 몸에 달려 있습니다. 처신과
행동은 그때그때에 임기응변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먼저 무엇을 말하겠다곤 정할 순
없습니다."
진왕과 대신들은 감라의 당돌한 대답을 듣고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속으로 그의
뛰어난 용기와 지혜에 못내 탄복을 했다. 감라는 감무의 손자였는데, 감무는
정치가로서 일찍 진나라의 승상으로 있었고, 감라는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옆에서
생활하며 많은 정치적인 영향을 받아 세심하게 관찰하고 생각이 깊어 정치가의
재질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진왕은 이어 다른 것들을 두루 물어 보았는데 감라는 역시 대답을 척척 막힘없이
했다. 그래서 진왕은 곧 감라를 사절로 파견하는데 동의를 하고, 그에게 수레 10 대,
부하 백여 명을 거느리고 조나라로 행차하도록 했다.
진나라 사절이 온다는 통보를 받은 조나라 국왕은 황급히 달려나와 마중을 했다.
한데 뜻밖에도 당당한 진나라 사절이 채 애티도 벗지 못한 어린아이인지라 조왕은
기분이 몹시 나빴다. 하지만 나라와 나라의 외교 예절 문제인지라 그를 반기지 않을
수 없었다.
감라가 조왕에게 물었다.
"연나라의 태자가 진나라에 인질로 간 사실을 아시지요?"
"진나라에서 사람을 연나라로 파견해 국상이 된다는 사실도 들으셨는지요?"
"들었소."
"연나라 왕이 태자를 진나라 인질로 보낸 것은 연나라가 진나라를 신임하는
것이고, 진나라가 또 사람을 연나라로 파견해 국상이 되는 것은 진나라가 연나라를
믿기 때문이지요. 진나라와 연나라가 서로 신임하고 연합하면 조나라는 위험하게
되지요."
감라는 여기서 잠깐 말을 멈추고 조왕을 슬쩍 곁눈질해 보니 그가 묵묵히 앉아서
그다지 밝지 않은 표정을 보이는 것을 보고 이내 조금 느긋하게 말했다.
"하지만 때는 아직 늦질 않았습니다. 진나라와 연나라가 연합하는데 다른 특별한
요구는 없고 단지 하간 일대의 땅을 확충하려는데 가령, 국왕께서 이 몇 개의 성을
진나라에 떼어주신다면 진나라는 곧 조나라와 우호관계를 맺고 함께 연나라를
공격해 하간 일대보다 더 큰 땅을 얻게 되지요."
조왕은 감라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당장 그의 요구대로 다섯 개의 성을
떼주었다. 그후 조나라는 과연 연나라로부터 삼십여 개의 성을 빼앗았다.
감라는 이렇게 해서 진왕이 요구한 사명을 완수하였고 진왕은 그의 지혜를 높이
칭친해마지 않았으며 일부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를 승상으로 임명하였다.
ff
[ 황제를 정복한 노인
고대의 어느 포악한 황제는 칠십 세 이상 되는 노인들을 모조리 죽이라고
명령했다.
경성에는 한 소년이 살고 있었는데 그의 아버지는 딱 칠십세였다. 소년은 아무리
황제의 명령일지라도 자기 아버지를 죽일 수 없어 깊숙하게 아버지를 숨겨놓고 매일
저녁이면 아버지에게 그날 일어났었던 일을 들려주곤 했다.
이날 밤, 소년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오늘 낮에 황제와 대신들이 강가로 놀러나왔다가 물 속에서 반짝이는 보석을
보았지요. 그런데 그것을 건지려고 물 속으로 들어가면 보석은 또 반짝이는
것이었어요. 황제와 대신들은 이상하게 행각하며 돌아갔는데 왜 그랬을까요?"
"얘야, 그렇다면 혹시 강기슭에 나무가 없었더냐?"
"있었어요. 나뭇가지가 물위까지 늘어져 있어요."
"그렇다면 혹시 나무 위에 새둥지가 있지 않던?"
"새둥지가 있어요. 제가 봤어요."
"그래? 그럼 보석은 물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새둥지에 있는 것이다. 물 속에
있는 보석은 새둥지에 있는 보석이 햇살에 비춰 물 속에 보인 것이다."
이튼날, 황제와 대신들은 어제의 그 보석이 오늘도 나타났는지 보려고 또 강가로
나와 물 속에 있는 보석을 바라보았다. 보석은 여지없이 어제처럼 그 자리에
있었다. 이때 소년이 황제 앞으로 성큼 나아가 말했다.
"전하, 저 보석은 물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뭐라구? 물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니, 너도 지금 저것을 보고 있으면서도 아니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보석은 물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저 나무의 새둥지에 있는
것입니다."
황제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무 위의 새둥지를 바라봤고 성미가 급한 대신
하나가 얼른 나무 위로 올라가 정말로 새둥지에서 보석 하나를 꺼내왔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
황제는 깜짝 놀라며 소년에게 물었다.
"제 스스로 알았습니다."
"경들은 학문이 높은 사람들이라 자칭하면서고 실제로는 이 소년보다 못하구나."
황제는 대신들을 꾸짖었다. 그러자 대신들은 소년 때문에 황제에게 꾸지람을 들은
것이 화가 나 소년을 모함하기로 마음을 먹고 황제에게 말했다.
"이 소년은 일찍 허튼 소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알아맞출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전하, 말 두 마리를 끌고와 이 애 보고 멀리서 어느 말이
어린것이고 어느 말이 늙은 말인지 알아맞춰 보라고 시험해 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좋다!"
황제는 즉석에서 동의를 하고 소년에게 말했다.
"내일 궁궐로 오너라. 우리가 말 두 마리를 준비하겠으니 어느 말이 어리고 어느
말이 늙었는가를 알아맞춰 보도록 하라."
소년은 황제에게 인사를 하곤 묵묵히 집으로 돌아왔다. 소년은 아버지 옆에 앉아
근심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 내 말대로 보석이 새둥지에 있더냐?"
"네, 아버지. 보석은 정말 아버지 말씀대로 새둥지 속에 있었어요. 그런데
황제께서 제게 어려운 문제를 주시더군요."
소년은 낮에 일어났던 일을 아버지에게 찬찬히 설명했다.
"걱정하지 말고 머리를 써서 방법을 생각해내야 한다. 이 문제는 그다지 어려운
문제가 아니니 걱정하지 말아라."
소년은 어려운 문제가 아니란 말에 저으기 안심을 하고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내일 궁궐로 가서 그들이 말을 몰고 나올 때 말들의 행동을 자세히 살펴보거라.
어린 말은 길을 걸을 때 까불며 뜀질을 잘하고 늙은 말은 온순하게 머리만 흔들며
또 어린 말에게 길을 비켜 준다."
이튿날 아침, 소년이 궁궐로 나오자 황제는 사람을 시켜 똑같은 두 마리를 몰고
나오게 했다. 소년은 아버지가 가르쳐준 방법으로 구별해 정확하게 맞추었다.
소년이 쉽게 알아맞추자 대신들은 더 어려운 문제를 또다시 내놓았다. 그들은
사람을 시켜 크기가 똑같은 나무토막을 두개 가져오게 한 뒤 소년에게 어느
나무토막이 아랫부분을 자른 것이고 어느 나무토막이 윗부분을 자른 것인지
알아맞춰 보라고 했다.
소년은 또다시 착찹한 기분에 싸여 집으로 돌아온 후 이일을 또 아버지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말아라. 그것도 구별하는 방법이 있느니라."
아버지는 아들에게 나무를 구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튿날 아침, 소년이 다시 궁궐에 나타나자 그곳엔 나무 두 토막이 놓여져 있었다.
황제가 소년에게 말했다.
"이 나무 토막을 보고 어느 것이 아랫부분이고 어느 것이 윗부분인지 구별해라."
소년은 지체없이 말했다.
"그 나무를 물에 띄워 주십시오."
소녀의 청대로 나무를 물에 띄우자 그중 한 토막은 수면 위에 평행을 이루며 떠
있었고 다른 한 토막은 한쪽 머리가 물 속에 잠기며 끝부분이 물 위에 떠 있었다.
"수면 위에 평행을 이루며 떠 있는 나무가 나무 윗부분의 것을 벤 것이고, 평행을
이루지 못한 나무는 나무 아랫부분을 벤 것입니다."
소년은 물 위에 떠 있는 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누가 너에게 이런 방법을 가르쳐 주었느냐?"
황제는 너무도 신기해서 물었다.
"제가 그냥 안 것입니다."
"아니다. 네가 나이가 어린데 어떻게 이런 어려운 문제를 척척 알아맞추겠느냐?
가르쳐 분 사람이 누구인지 말하지 않으면 사형에 처할 것이다."
소년은 황제의 으름장에 더 이상 숨길 수 없음을 알고는 솔직하게 말했다.
"실은 저희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버지는 칠십세인데 피살되지 않게
하기 위해 제가 현재 숨겨놓고 있습니다."
"흠, 늙은 노인들이라 쓸모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로군. 연륜이 많아
젊은 사람보다 나은 부분이 있어."
이날부터 황제는 칠십 세 이상의 노인은 무조건 죽이라는 명령을 철회시켰다. ff
[ 부엌 이야기
동한 말년. 이날, 기수가 말을 타고 경성으로 달려와 황제 한안제에게 보고를
했다.
"서남국경의 호족들이 침입해서 백성들의 가축과 식량을 약탈하고 집을 불사르고
또 십여 명을 살해했습니다."
보고를 받은 황제는 몹시 근심을 했다. 어느 한 대신이 황제에게 건의를 하였다.
"국경이 불안하면 조정이 안정될 수 없습니다. 우허 장군은 일찍 국경일대의
반란을 평정한 적이 있으므로 이번에도 그를 보내 국경선을 지키고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도록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어떤 대신은 우허의 뛰어난 재능에 못내 질투를 하면서 황제에게 우허를
헐뜯었다.
"비록 우허가 공을 세웠다고는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운이 좋아서 승리한
것입니다. 우허는 그것을 기화로 기고만장해 있는데 이런 사람을 중용했다간
전하에게도 불이익이 갈지 모릅니다."
그러나 황제는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서 국경선의 급보는 계속 날아왔다. 그래서 황제는 당장 나라는
구한다는 생각으로 우허를 무도태수로 임명하고 감숙일대를 지키도록 했다.
우허가 삼천 명 군사를 거느리고 위하를 따라 강행군은 해서 며칠 새에
진창협곡에 이르렀는데, 이때 호족들 몇 천 명이 불쑥 나타나 길을 막았다. 우허는
군사를 즉시 멈추게 하고 소문을 퍼뜨리게 했다.
"우리는 지원병이 도착하면 곧 출발한다."
호족들은 그 소문에 혹시나 우허의 포위망에 걸려들지나 않는가 해서 감히 공격해
올 생각을 못하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호족이 물러간 후, 우허는 즉시 명령을 내려 강행군을 했는데 하루에 이백여 리나
달렸다. 그리고 매일 숙영지에서 밥을 지어먹을 부엌을 만들게 했는데 매일 부엌을
거의 배로 늘리도록 하고 만일 명령을 어기면 군법에 따라 처벌한다는 엄명을
내렸다.
누군가 우허에게 물었다.
"손빈이 부엌을 줄이는 방법으로 방연을 물리쳤는데 장군은 도리어 부엌을 늘리는
방법을 쓰고 또한 병법에는 매일 삼십 리 행군을 초과하지 말고 이외의 상황에
대처하라 했는데, 장군은 어째서 매일 이백여 리씩 행군하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적은 숫자가 많고 우린 적기 때문에 늦게 가면 적들이 금방 따라올 수 있지
않겠소. 또한 부엌을 늘리는 것은 적들이 이것을 보고 우리의 지원군이 도착한
것으로 생각할 테고 말이오. 손빈이 부엌을 줄이는 방법으로 자신의 허약성을
보여주어 적들을 속였다면 나는 부엌을 늘리는 방법으로 나의 강대함을 보여주어
적들은 덮치지 못하게 하고 주도권을 잡는데 이것은 적이 다르고 싸움터가 다르기
때문이오."
우허의 군사가 적정이란 곳에 이르자 호족들 만여 명이 앞길을 막고 열흘간이나
호위하고 있었다. 우허는 병사들에게 큰 활로 쏘지 말고 작은 화살로 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병사들은 우허가 왜 그러는지를 알 수가 없어 작은 활로 호족들을
향해 쏘았다. 호족들은 그들의 활이 힘이 약한 줄로만 생각하고 급기야 벌떼처럼
덮쳐왔다. 이윽고 호족들이 성 아래까지 당도했고 우허는 그제서야 큰 활로 쏘라는
명령을 내렸다. 위력이 강한 화살은 호족들을 순식간에 수없이 쓰러뜨렸고 이것이
적의 함정인 줄 뒤늦게 깨달은 호족들은 급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우허의 군사는
성문을 뛰쳐나가 도망치는 적들을 수없이 섬멸해 그들의 사기를 완전히 꺾어
놓았다.
이튿날 우허는 군사를 싸울 태세로 만들어 놓고 일부 병력을 동쪽 성문에서 북쪽
성문을 돌게 하며 한바퀴 돌고나면 옷을 갈아입고 계속 돌게 했다. 일전에 혼찌검을
당한 호족들은 멀리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서서 성안을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한나라
군사가 도대체 얼마인지 분간하질 못했다. 오히려 두려움만 쌓여 갔다.
우허는 호족들이 곧 철수해 갈 것을 짐작하곤 많은 병사들을 철수하는 그들
요로에 매복시켰다.
과연 어느날 적들은 철수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적들이 매복하고 있는 요로에
들어서자 양쪽에 숨어 있던 많은 병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뛰쳐나갔고
뒤에서는 증원군이 먼지를 뽀얗게 일으키며 바싹 추격해왔다. 호족들은 갑작스레
당하는 일이라 제대로 힘 한번 써보질 못하고 방향마저 잃고 뿔뿔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국경선일대는 평화가 지속되었다. ff
[ 당나귀가 안장을 찾다.
옛날 하남에 하양군이라고 있었는데 이 고장은 교통이 편리해서 시장이 꽤
번성했다. 달마다 초닷새와 초열흘이면 장보러 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날 한 상인이 물건을 팔기 위해 하양군으로 왔다. 중천에 떠 있던 해도 어느새
서쪽으로 기울어지고 장이 다 파할 즈음 그 상인은 가져온 물건을 다 팔았다.
그러자 시장기를 느낀 그 상인은 주막을 찾아 당나귀를 말뚝에 매어놓고 술을
곁들여 밥을 배불리 먹었다. 그리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주막문을 나서니 그의
당나귀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잘려진 고삐만 말뚝에 매어져
있을 뿐이었다.
상인은 사방을 뛰어다니며 당나귀를 찾아보았으나 당나귀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 날이 어두워졌다. 상인은 어쩔 수 없이 여관에서
하룻밤을 새우고 이튿날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나 이튿날도 아무리 발이 붓도록 찾아보았지만 헛수고였다. 그는 하는 수없이
이 일을 군수에게 알리기로 했다.
하양군 군수 장작은 이 사건을 보고 받고 즉시 포고문을 각 주요거리에 붙이고
당나귀를 목격한 자는 신고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포고문을 내붙인지 하루가
지났음에도 아무런 동정도 나타나질 않았다.
이튿날 장작은 부하들을 시켜 이제 곧 집집마다 수색한다는 소문을 퍼뜨리게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당나귀사건은 점점 더 파문을 일으켰고 확대되자 어느날 밤,
당나귀를 훔쳐간 도둑이 스스로 당나귀를 풀어주었다.
이날 아침, 상인은 길거리에서 당나귀를 찾았다. 그런데 당나귀 잔등에 얹혀 있던
안장이 없어졌음을 발견했다. 상인은 군수의 부하에게 안장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당나귀를 찾았으면 됐지, 그까짓 안장이 뭐가 대단하다고 그러시오?"
부하가 짜증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몇 푼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안장은 필히 당나귀를 훔쳤던 사람이
갖고 있을 테니 그것을 찾으면 도둑도 잡을 수 있을 게 아니요?"
부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 사실을 장작에게 보고했다. 장작이 말했다.
"당나귀를 찾았으니 안장은 금방 찾아낼 수 있다."
장작은 부하에게 당나귀를 아무것도 먹이지 못하도록 했다.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아무것도 먹지를 못한 당나귀는 배가 고파 견딜 수 없었던지 네 발을 안고 마구
울부짖었다.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자 그제서야 장작은 당나귀를 풀어주고 제멋대로
가게 하고는 그 뒤를 따라가라고 명령을 내렸다.
배가 잔뜩 고픈 당나귀는 요 며칠 동안 자신을 먹여준 그 집으로 곧바로
찾아갔다. 부하들이 재빨리 따라 들어가 그 집을 수색하자 과연 짚더미 속에서
안장이 나왔다. 부하들은 당장 집 주인을 군수에게로 끌고 갔다. ff
[ 대신의 언변
진나라와 초나라 사이엔 곧 전쟁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그래서
진왕은 대신을 초나라로 파견해 상황을 염탐하기로 했다.
이는 상당한 위험이 따르는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대신은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진나라 대신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긴장국면에선 어떤 사태가 돌발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파견될 대신은 돌발사태가
일어날 경우의 대비책과 방법에 대해 골몰하였다.
역량이 막강한 초왕은 아주 거만했다. 초왕은 진나라 대신이 왔다는 말을 듣더니
접대는 커녕 부하들을 시켜 그 대신은 한바탕 골탕을 먹인 다음에 돌려 보내라고
명령을 내렸다.
초나라 관리들은 머리를 맞대고 의논 끝에 골려줄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들은
교활한 웃음을 띄우며 진나라 대신에게 물었다.
"당신이 우리나라로 올 때 점을 쳐보았소?"
그 당시엔 외국으로 나갈 때 일이 잘 될 것인가 아닌가 점을 보는 것이 통례였다.
"쳐보았소."
"그래, 점친 결과가 어땠소?"
"결과가 매우 좋았소. 모든 것이 뜻대로 풀린다는 점괘였소."
"그렇다면 당신의 점괘가 틀린 거요."
초나라 관리는 히죽히죽 웃으며 빈정거렸다.
"당신네 진나라엔 형편없는 거북이 뿐이로군. 그런 거북이로 점을 치니 틀리는
것은 당연하지."
"어째서 점이 틀렸다는 것이지?"
진나라 대신의 표정은 조금도 당황함이 없이 당당했다.
"우리 국왕께서 당신을 죽여 그 피로 새로 만든 북에 칠하고 그 북을 울리면서
군사를 지휘해 진나라를 공격하려하는데 어찌 좋은 점괘라 하겠소?
"그건 당신네가 점괘를 잘못 해석한 것이오. 나의 점괘가 맞았다는 것을 나는
틀림없이 자신하오."
진나라 대신은 계속해서 말했다.
"진나라와 초나라가 곧 전쟁을 치룰만큼 긴장해 있어 우리 국왕이 나를 파견해
상황을 파악해 오도록 하셨소. 그런데 당신들이 나를 죽이면 우리 국왕에게
경각심을 높이게 되고 나의 원수를 갚기 위해 우리나라는 분연히 일어설 것이오.
그러니 나 하나는 죽되 우리나라로 봐선 좋은 점괘가 아니고 무엇이겠소?"
진나라 대신의 말에 그들은 말문이 막혔고 진나라 대신의 열변은 이어졌다.
"나를 죽여 그 피를 북에 칠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오? 내가 죽는다면 나의
영혼은 진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초나라에 남아 그 북에 붙어서 북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할 것이오. 북이 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이 나라 장군은 벙어리가 될
것이고 군대를 지휘할 수 없게 되오. 군대에는 지휘관이 없으면 혼란이 일어날 것은
뻔하고 절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소."
그제서야 초나라 관리들의 얼굴엔 사뭇 긴장된 표정이 감돌고 있었고 진나라
대신의 얼굴에는 승리자의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숨을 깊이 몰아쉬고 정중하게
말했다.
"두 나라가 싸울지라도 사절을 죽이지 않는 것이 예로부터 내려온 일반적인
관례요. 당신들이 나를 죽인다면 나라와 나라의 도덕적인 예절을 위반하는 것
아니오? 신중하게 처리하길 바라오."
초나라 관리들은 그만 말문이 막혀 아무런 대답도 하질 못했다. 그들이 진나라
대신의 말을 초왕에게 전달하자 초왕은 어설픈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를 놓아 주거라!" ff
[ 양수
삼국시대의 양수는 조조의 수하에서 문서로 있었는데 그는 사리가 밝고 문장도 잘
지었다.
어느 해, 조조는 아담한 정원을 짓게 되었다. 돌을 쌓고, 나무를 심고, 연못을
만들고 동산을 만들며 석달 동안 숱한 공을 들여 제법 규모를 갖춘 정원을 만들게
되었다.
이날 아침, 조조는 흐뭇한 마음으로 부하들을 거느리고 정원을 시찰하러 갔다.
정원 대문 앞에 이른 조조는 발걸음을 멈추고 대문을 쳐다보았다. 대문은 아직
완전하게 마무리가 되질 않았는데 금방 달아놓은 두 쪽의 대문에서는 나무 특유의
향기가 풍기고 있었다. 묵묵히 바라보던 조조는 붓을 가져오라 하더니 문에다가
'활'자를 큼직하게 써넣고는 정원 안으로 들어가 다른 곳을 둘러 보았다.
목수들은 조조가 쓴 '활'자를 놓고 추측이 분분했다.
"위왕께서 우리가 만든 대문이 견고하지 못하고 움직인다는 뜻에서 '활'자를 썼을
거요."
"아니오, 이것은 위왕이 우리를 칭찬하느라고 문이 살아있다는 뜻에서 '활'자를
쓰신 것이요."
그들이 한참 설왕설래하고 있는데 마침 양수가 찾아왔다. 목수들은 금방 있었던
일을 양수에게 말했다 양수는 머리를 쳐들고 문에 씌여져 있는 '활'자를 보더니
이렇게 말하였다.
"위왕께선 문이 너무 넓다고 하셨다. 빨리 문을 뜯어버리고 조급 좁고 작게
만들어라."
목수들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말을 들은지라 어떻게 해서 양수가 그런 해석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한 표정들이었다.
"'활'자를 문에 써놓았으니 넓을 '활'자가 아니냐?"
그후 다시 정원을 찾았을 때 조조는 자기가 마음에 들도록 잘 고쳐진 대문을
보더니 밝은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누가 내 뜻을 알아차렸는가?"
"양수입니다."
옆에 있던 부하가 말하자 조조가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날, 누가 조조에게 새로운 우유제품을 선물했다. 한 모금 죽 마셔보니 맛이
향기롭고 신선한지라 조조는 붓으로 병마개에다 '합'자를 쓴 후, 여러 부하에게 건네
주었다. 부하들은 그 우유병을 받아 보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서로 넘겨주며
참뜻을 헤아리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마지막에 양수의 손에 넘어갔다. 양수는 그
글을 보자 대뜸 머리는 뒤로 젖히고 한 모금 쭉 마시더니 이렇게 말했다.
"맛이 좋군! 맛이 좋아!"
관리들은 양수의 행동이 너무도 뜻밖이어서 심지어는 양수를 버르장머리가
없다고까지 탓하기도 했다. 그러자 양수는 도리어 이렇게 말하였다.
"위당께서 사람마다 한 모금씩 마셔보라 하셨는데 왜 안마시겠소?"
그제서야 관리들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합(합할 합)'자를 뜯어보면 인일구(사람 인, 한 일, 입 구)로써 그 뜻인즉 한 사람
한 모금이라는 것이었다. 관리들은 비로소 우유병을 받아들고 한 모금씩 맛을
보았다.
그후 조조는 군사를 거느려 섬서에서 유비와 한중지역을 쟁탈하기 위해 싸움판을
벌였다. 꼬박 두 달을 싸웠으나 숱한 병사들만 잃고 땅은 한치도 차지하지를
못했다. 이날 조조는 '계륵'이라는 구령을 전달했다.
"계륵이라? 이상한데, 왜 이런 구령을 내렸을까? 무슨 뜻인지를 알 수 있어야지."
전선의 병사들은 의아해했다. 하지만 양수는 그 구령을 받자 곧 행장을 꾸리는
것이었다.
"행장은 왜 꾸리는 것이오?"
병사들은 호기심에 끌려 물었다.
"철수해야겠소."
양수는 딱 잘라 말했다.
"철수! 철수라구?"
병사들은 어안이 벙벙해서 물어왔다.
"당신이 어떻게 철수하는 줄 아는가?"
"계륵이란 닭의 양쪽 갈비를 말하는데, 그것을 버리자니 아깝고 먹자니 먹을 것이
없잖은가? 위왕께선 계륵을 이곳 한중 지방을 말씀하신 것으로써 이곳을 버리자니
아깝고 오랫동안 머물러 있자니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다고 했소. 여기서
철수하라는 뜻이오."
양수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정말 조조의 철수명령이 떨어졌다. ff
[ 죽은 사람이 흉수를 잡다.
진, 초, 제, 연, 조, 위, 한 7개국이 저마다 영토를 장악하고 각 나라마다 유명한
인물을 갖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바로 소진이었다.
소진은 어렸을 때부터 정치에 뜻을 품고 있었다. 그는 학습에 열중했고 병법도
많이 읽었다. 때로는 밤중까지 책을 읽다가 깜빡 졸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그는
뾰족한 송곳으로 자기 허벅지를 찔러 졸음을 내쫓고 계속 글을 읽어 내려갔다.
그가 이처럼 열심히 책을 읽게 됨으로써 높은 안목이 세워지고 정확한 판단력이
서게 되었다. 그는 7개국의 정세를 분석하고 진나라를 제외한 6개국이 영합해서
진나라의 침략을 물리치자는 주장을 내세웠다. 그의 이 주장은 즉각 6개국의 지지를
얻었다.
소진은 한동안 연나라로 가서 참모역을 담당하여 연왕의 총애를 받았다. 그후
그는 또 제나라로 갔는데 역시 여기서도 제왕의 신임을 얻었다.
소진은 7개국 모두에서 명성 떨쳤다. 그러나 명성을 떨치는 것과 비례해 숱한
관리들의 질투와 멸시를 샀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제나라에서 난데없이 칼에 맞게
되는 변을 당했다.
소진이 흉수의 칼에 찔렸다는 소식을 들은 제왕은 황급히 그를 찾아갔다.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고 숨을 가냘프게 몰아쉬는 소진을 본 제왕은 안타깝게
말했다.
"당신을 찌른 놈을 내 꼭 잡고야 말겠소."
소진은 정기없는 눈길로 제왕을 바라보며 길게 숨을 몰아쉰 후 입을 열었다.
"전하, 빨리 범인을 잡으려다 자칫 무고한 사람들을 해칠 수가 있습니다. 나를
찌른 놈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놈이 누구인가? 어떻게 잡아낼 수 있단 말인가?"
"범인은 전하와 가까이에 있는 사람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이는 전하에 대한
위협이기도 하고 대항이기도 합니다. 전하께서 저를 신임해 주셨고 전하께서
신임하신 사람을 살해하려 했다는 것은 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소지가
있습니다. 이 기회에 제가 죽음으로써 꼭 범인이 가려져 전하의 안위가 더욱
돈독해지길 바랄 뿐입니다."
소진이 힘이 빠져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제왕을 감동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제왕은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저는 이제 살아날 가망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죽어서 범인을
잡아내겠습니다."
제왕은 소진이 죽어서 범인을 잡아내겠다는 말에 어리둥절했다.
"제가 죽은 후, 전하께서는 저를 연나라에서 제나라에 파견한 간첩이라 하시고
저의 시체를 꼭 짖어 놓으십시오. 그러면 그 자객이 스스로 영웅이 된 양 전하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제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진이 죽은 후 제왕은 소진의 말대로 가슴이 아팠지만
사지를 찢었다.
과연 어느날, 한 관리가 나타나 자기가 소진을 죽였다고 말하며 영웅이 된 것처럼
으시댔다. 제왕을 그 자리에서 그를 사형시켜 버렸다. ff
[ 추한 여인
제선왕이 통치를 하고 있을 때 제나라는 그런대로 꽤나 강한 나라였다.
제선왕은 그러한 자신의 통치력에 만족을 느끼고 점차 나태해지기 시작했다.
더욱이 손빈을 의지해 위나라를 물리친 후 더욱더 교만해져 조정을 돌보지 않고
먹고 노는 데만 열중을 했다. 궁중에는 오히려 아첨배들이 득세를 했고 충신들은
배척을 당했다.
어느날, 제선왕은 자기의 전용 연회장인 설궁에서 대대적인 잔치를 벌이고 많은
궁녀들을 불러 춤을 추게 하며 흥을 돋구었다. 한창 연회가 무르익어 춤추고
노래가락이 울려 퍼지고 있는데 한 신하가 달려와 어떤 못난 여인이 궁궐로 뛰어
들어와 제선왕을 섬기겠다며 막무가내라고 제선왕에게 아뢰는 것이었다.
제선왕은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지만 그녀를 데려오라고 말했다. 과연 말
그대로 그 여인의 인물은 몹시 추했다. 이마는 넓직하고, 눈은 움푹 패였고, 몸집은
컸으며 등은 구부정하게 휘었고 머리도 헝클어진데다 피부마저 가무잡잡했고 옷은
남루했으며 행동도 거칠어 보였다. 대신들과 궁녀들은 못 볼 것을 보기라고 한 듯이
눈살을 찡그렸다.
"무엇 때문에 이 즐거운 날, 궁정을 뛰어들어 이 소란인가?"
"저는 종리춘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사십이 넘었고 아직 결혼은 하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전하께서 연회를 베푸신다기에 일부러 찾아왔습니다. 제가 여기에 남아
전하를 모실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제선왕은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 그녀의 대범한 태도로 미루어 보아 범상한 일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어 물었다.
"이곳엔 나를 받드는 궁녀들이 많고 많은데, 너처럼 아무도 데려가지 않는 못생긴
여자가 이곳엘 들어오겠다니 도대체 너는 무슨 특별한 재능이라도 있단 말이냐?"
"저는 특별한 재능은 없습니다만 여러 가지 동작으로 국가의 정세를 나타낼 수는
있습니다."
종리춘이 빙긋 웃으며 대답하는데 그 얼굴이 정말 가관일 정도로 추했다.
"그렇다면 한 번 보여 보거라. 만일 허튼 소리에 그친다면 당장 목을 칠 것이다."
제선왕이 말하자 종리춘은 두 눈을 껌뻑이고 이를 깨물며 손을 젓더니 무릎을
치며 소리를 쳤다.
"위험합니다! 위험합니다!"
그러더니 제선왕에게 물어왔다.
"전하께서 저의 뜻을 아시겠습니까?"
제선왕은 도무지 알 수 없는 벙어리 시늉을 했는지라 그 뜻이 무엇인지 몰라
좌우의 대신들에게 물었는데 그들 역시 모르기는 매일반이었다. 제선왕은 할 수
없이 그녀에게 말했다.
"이리 가까이 와서 해석해 보아라."
종리춘은 제선왕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
"제가 눈을 껌뻑인 것은 나라에 불의의 재앙이 떨어질 것이므로 전하께선 정신을
차리시라는 뜻이고, 이를 깨문 것은 충신들이 드리는 권고와 비판을 참고 견디며
받아들이라는 것이며, 손을 저은 것은 아첨하는 간신들을 전하의 신변에서
내쫓으라는 것이고, 무릎을 친 것은 전하의 연회를 위해 지은 설궁을 허물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던 제선왕은 화를 벌컥 냈다.
"이년이 여기가 감히 누구 앞이라고 되먹지 못하게 아무 소리나 지껄이는 거냐!
나를 모욕하다니, 내가 너를 용서하지 않겠다."
제선왕은 당장 그녀를 밖으로 끌고가 목을 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종리춘은 당황하는 기색이라곤 조금도 없이 태연스럽게 말했다.
"전하께선 화를 진정하시고 제 말을 끝까지 들어보신 후에 목을 잘라도 늦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 서쪽 진나라에선 신앙변법을 하여 나라가 매우 강대해졌으며
곧 동족 함곡관을 거쳐 제나라와 싸우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지만 제나라에선
충신들을 중용하지 않고 국경선 방어에 소홀하고 있으니 이것이 불의의 재앙이 닥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은 제가 전하를 대신해서 눈을 똑바로 뜨고 본
것입니다. 황제는 훌륭한 신하를 두면 나라를 결코 망치지 않으며 아버지는 훌륭한
아들을 두면 결코 가정을 망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전하께선 나라
일을 돌보지 않고 충신들의 말은 전혀 듣질 않고 있으니 이제라도 충신들의 말을
받아들여야 하시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제가 이를 악문 원인입니다. 전하께선 지금
한 무리 아첨배들에게 포위되어 있으며, 아첨배들은 겉으론 전하에게 충성하는 것
같아도 속으론 나쁜 생각들을 갖고 있으니 이는 나라를 망칠 징조이므로 손을 저어
그들을 쫓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하께서 이처럼 호화로운 설궁을 지어 무수한
재력과 물력을 낭비해서 국고는 텅 비어 있고 백성들은 살기조차 어려운데 전하는
항상 술에 취해 나라일은 돌보지 않으니 이는 몹시 위험한 짓으로써 이 설궁을
허물지 않고선 아니됩니다. 전하께선 이런 네 가지 과오를 범하고 있으면서도 매일
호화로운 생활에 만족을 느끼고 있으니 백성들이 어찌 근심에 싸여 있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죽음을 무릅쓰고 전하를 일깨워 드리기 위해 이렇게 찾아왔으니
이제 전하께서 저를 죽이셔도 원이 없습니다."
종리춘의 논리와 정연한 분석에 제선왕은 긴 잠에서 깨어난 듯 크게 깨닫고 저도
모르게 감탄을 했다.
"너의 그 용기가 장하다. 너의 깨우침이 없었더라면 나는 나의 잘못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
제선왕은 즉시 연회를 중지하고 종리춘을 궁정으로 모시라는 명령을 내리고
그녀를 왕후로 삼았다. 곧바로 설궁을 부수고 그녀의 의견을 받아들여 충신들을
다시 중용하고 아첨배들을 내쫓아 선정을 베푸니 나라는 다시 강대해지기 시작했다.
ff
[ 풍난이 사온 인덕
제나라의 풍난은 가정이 몹시 가난해 맹상군이 사람을 널리 사귄다는 말을 듣고
어느날 맹상군을 찾아갔다. 맹상군은 그를 만나자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즐깁니까?"
"없습니다."
"그렇다면 특기는 무엇이오?"
"없습니다."
맹상군은 히죽이 웃더니 그를 불쌍히 여겨 식객으로 들여놓았다.
맹상군의 아랫사람들은 맹상군이 그에 대해 탐탁치 않게 여기는 터라 그들도 그에
대하여 쌀쌀하게 대했으며 하인들과 함께 밥을 주었다.
하지만 풍난은 그렇다고 기가 죽어 비굴하게 행동하진 않았다.
며칠 후, 풍난은 자기가 가지고 온 검을 두드리며 노래를 한 대목 불렀다.
"검이여, 검이여, 우리는 떠나가자. 여기서 밥을 먹으니 고기가 없구나!"
누군가 그 노랫소리를 들어보니 심상치 않은지라 얼른 맹상군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맹상군이 말했다.
"그를 다른 사람과 똑같이 대접하라."
그렇게 며칠이 지나지 않아 풍난은 또 검을 두드리며 노랫가락을 뽑았다.
"검이여, 검이여, 우린 떠나가자. 여기는 외출하려 해도 마차가 없구나!"
맹상군이 그 노랫소리를 듣고 이번에는 그에게 마차를 마련해 주었다.
겉보기엔 인물이 남다른데 없는 풍난이 이것저것 귀찮게 요구한다고 하인들이
웅성거렸다.
그 후 어느날, 맹상군은 설지라는 곳에 채무를 받아오도록 사람을 파견하게
되었다. 누가 갔다 오겠느냐고 묻자 서로들 발뺌하며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곳은 워낙 가난해서 채무를 받아올 자신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풍난이 자진해서 나섰다. 맹상군은 내심 기쁨을 감추기 못했다.
풍난은 행장과 채무문서를 수레에 다 싣고난 후 맹상군에게 물었다.
"빚을 다 받으면 무엇을 사오면 되겠습니까?"
맹상군은 집에 부족한 것이 별로 없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자네가 보기에 우리집에 무엇이 모자란지 알아서 사오게."
풍난은 그 말에는 아무런 대답도 않고 곧장 설지로 떠났다. 그는 그곳 백성들을
전부 한 곳으로 불러 왔다. 어떤 사람들은 빚더미에 눌리기라도 한 듯 등이
할시위처럼 휘어든 채 우두커니 서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와
눈물을 뚝뚝 떨구기도 했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풍난의 앞에 무릎은 꿇고 앉아
시간을 더 연기해달라며 빌기도 했다. 하지만 풍난은 짐짓 엄숙한 표정으로
빚문서를 한 장 한 장 씩 체크해 나갔다. 한데 그렇게 엄숙하게 체크를 해나가던
풍난은 오히려 뜻밖에 이런 선포를 내렸다.
"맹상군께서 명령을 내렸다. 모든 빚을 한 푼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빚문서를
당장 태워버린다."
백성들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어안이 벙벙했다.
풍난은 하인을 시켜 불을 지피게 하고 빚문서를 활활 타오르는 불 속에 처
넣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백성들의 근심에 차 있던 얼굴을 빼앗아 갔다.
풍난은 그 길로 제나라로 돌아와 맹상군을 만났다. 맹상군이 물었다.
"이렇게 빨리 오다니, 그래 빚은 다 받았소?"
"예, 다 받았습니다. 그것으로 물건을 다 사왔죠."
"그래, 무슨 물건을 사왔소?"
맹상군은 빈 수레를 보고 의아해서 물었다.
"저를 보고 이 집에 모자라는 것을 사오라고 하셨죠? 과연 이 집에 모자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풍난은 두 손을 벌려 보이며 말했다.
"제 생각에는 당신네 집에 보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소와 말은 떼를 이루며
하녀와 하인도 많으니 아무것도 모자라는 것이 없습니다. 다만 백성들에 대한
은덕과 인의가 모자라는 것 같아 제 마음대로 그것을 사왔습니다."
"은덕과 인의를 사오다니? 어떻게 은덕과 인의를 사왔단 말인가?"
맹상군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되물어 봤다.
"당신은 설지라는 작은 땅을 갖고 있으면서 거기에 고리채를 놓는데 그것은
민심을 못 얻는 행위요. 그래서 제가 일부러 당신의 명령이라고 말하고 빚문서를
모조리 태워버리고 빚을 면제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백성들이 맹상군 만세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사온 은덕과 인의지요."
맹상군은 화가 치밀었지만 이미 엎질러 놓은 물이라 그 일을 더 따져 묻지를
않았다.
어느덧 해가 바뀌었다. 새해에 들어서서 제왕은 맹상군을 관직에서 사퇴시켰다.
맹상군은 무거운 심정으로 자기 땅인 설지로 떠나야 했다. 그의 수레가 설지에 백여
리나 떨어진 곳에 이르자 뜻밖에도 많은 백성들이 그곳까지 마중나와 길에 두 줄로
늘어서서 그를 환영하는 것이었다. 맹상군은 전혀 생각지 못한 환대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고개를 돌려 뒤에 앉은 풍난에게 말했다.
"선생이 저를 위해 산 인덕을 오늘에야 내 두 눈으로 보았소!" ff
[ 가지
이 이야기는 명나라 때 은군에서 일어난 일이다.
어느날 이른 아침, 광주리를 둘러메고 자기 채소밭으로 가는 농부의 발걸음은
무척 가볍기만 했다. 자신이 그처럼 정성을 들여 재배한 가지가 벌써 수확할 때가
되어 장에 가지고 나가 팔 생각을 하니 그렇게 보람이 있을 수사 없었다.
그러나 농부가 가지밭으로 거의 다가갈 즈음 갑자기 어떤 낯선 청년이 가지를
잔뜩 따서 둘러메고 자기 밭에서 걸어나오더니 내친 걸음으로 장터로 향하는
것이었다.
농부는 화들짝 놀라 채소밭으로 달려가보니 아닌게 아니라 팔만한 가지는 모두
따갔고 어떤 것은 나뭇가지까지 마구 찢겨져 있었다. 농부는 그만 화가 치밀어 올라
광주리를 그 자리에 팽개치고 주먹을 움켜쥔 채 그 청년의 뒤를 쫓아 뛰기
시작했다. 이윽고 청년을 따라잡은 농부는 청년이 메고 있는 광주리를 잡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왜 내 가지를 도둑질 해갔지?"
"무슨 소리요? 이건 우리집 가진데, 내가 훔쳤다는 무슨 증거라도 있소? 왜
함부로 나를 도둑으로 모는 거요?"
그 청년은 오히려 펄쩍 뛰었다.
"자네가 우리 채소밭에서 걸어나오는 걸 내 눈으로 직접 보았어. 우리 가지가
몽땅 없어졌단 말이야."
농부는 화를 참지 못하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봤으면 왜 그때 채소밭에서 나를 잡지 않은 거요?"
두 사람은 서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끝내 군수를 찾아가기로 했다.
군수 이형은 그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사건의 내용을 듣고는 벌써 파악했다는
듯이 말했다.
"난 이 가지가 누구의 것인지를 보기만 해도 안다."
군수는 부하를 시켜 광주리에 담긴 가지를 바닥에 쏟아 놓으라고 하더니 한 번
훑어보고는 단번에 그 청년 가리키며 호통을 쳤다.
"이 가지는 네가 훔친 것이 분명하다. 거짓말을 시키지 마라!"
주변에 모인 사람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군수 나으리, 이 가지는 진짜 우리 겁니다. 전 훔치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것이 진짜 너의 가지라면 채 자라지도 않은 가지까지 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떤 가지는 가지나무까지 꺾어오지 않았느냐. 이것만 보더라도 이 가지는
네가 가꾼 가지가 아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군수의 말이 옳으며 그 청년이 가지를 훔쳤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 청년은 당황하다 이내 기색을 감추고 변명을 해대기 시작했다.
"날이 그때까지만 해도 컴컴해 잘 보이질 않아서 작은 가지를 땄었던
모양입니다."
"흠,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이형 군수는 청년이 거짓말을 하는 통에 화가 치밀었다.
"그러면 네가 직접 가지를 대, 중, 소로 구분해가지고 몇 개인가를 세어 모아라.
틀려선 안된다. 만약 잘못 세면 곤장 사십대를 치겠다."
그 청년은 군수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는지를 알 수가 없었으므로 제딴에는
자기 물건인 것처럼 나누어 숫자를 세어 군수에게 보고했다.
"큰가지가 여든 일곱 개 이며 중간치가 예순 세 개, 작은 것이 스물 네 개, 도합
백 일흔 네 개 입니다."
군수 이형은 즉시 두 부하를 시켜 그 청년과 농부를 데리고 농부의 가지밭으로 가
가지 꼭지를 헤아려 보도록 했다. 결국 가지꼭지와 가지 숫자가 딱 맞아 떨어졌다.
이제 청년은 어떤 변명도 하 수 없게 되어 도둑질한 사실을 고백하였다. ff
[ 양가죽을 두들겨 패다.
무더위가 한창이던 어느날, 바람 한 점 불지 않고 하늘도 구름 한 점 없이
녹아내리듯 파랗다. 중천에 떠 있는 태양은 폭염을 대지 위에 쏟아붓고 있었다.
큰길에는 짐을 어깨에 짊어진 두 사람이 걷고 있었다. 두 사람 가운데 한사람은
소금장수로서 묵직한 소금자루를 멨고, 다름 한사람은 나무장수로서 지금 장터로
나무를 팔러 가는 중이었다. 원래 서로는 모르는 사이였으나 같은 길을 걷게 되어
자연스럽게 말을 주고 받으면서 말벗으로 사귀게 되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나니
두 사람은 햇볕 아래서 지쳐 버렸다. 때마침 길가엔 커다란 나무가 우뚝 솟아
있었는데 시원 그늘이 있었으므로 그들은 짐을 내려놓고 땀을 식히고 있었다.
한참을 쉬고 난 후, 그들은 몸을 일으켜 두 사람은 함께 깔고 앉았던 양가죽을
놓고 다툼이 벌어졌다. 소금장수는 그 양가죽을 자기 것이라 했고 또 나무장수는
한사코 자기 것이라고 우겨댔다. 급기야 두 사람은 주먹다짐이 일어났고 밭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달려와 두 장사꾼을 뜯어 말렸다. 하지만 싸움을 말린 농부들은 그
양가죽의 임자가 도대체 누구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부득이
용주부로 찾아가기로 했다.
용주부 차사 이혜는 두 사람의 말을 들었다. 먼저 소금장수가 말했다.
"이 양가죽은 매일 어깨에 올려놓고 소금자루를 메는 받침으로 제가 사용하던
것입니다.
나무장수도 이에 질세라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이 양가죽은 분명히 제 것입니다. 제가 이 사람에게 빌려 주어 깔고 앉아 쉬게
했는데 고마움은 커녕 도리어 자기 것이라고 우기니 정말 환장할 노릇입니다."
두 장사꾼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이혜가 말했다.
"양가죽을 여기에 두고 너희들은 내가 부를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도록 해라."
두 장사꾼이 밖으로 나가자 이혜 차사는 부하들에게 물었다.
"이 양가죽의 주인이 누구인 것 같은가?"
부하들은 머리를 무겁게 저었다.
"내 생각인데 저 양가죽을 두들겨 팬다면 주인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양가죽을 두들겨 패면 주인을 알 수 있다구요?"
부하들은 무슨 말인지를 알지 못했다.
"물론이지"
그러더니 정말로 까래 위에 양가죽을 펴놓고 힘껏 패라고 했다. 부하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명령이기에 힘껏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이혜가
다가가 양가죽을 한 번 들춰보더니 말하는 것이었다.
"이 양가죽의 임자가 누구인지를 알았다."
그는 두 장사꾼을 다시 집안으로 불러들인 후 다시 한 번 물었다.
"솔직히 말하라. 누가 이 양가죽의 임자냐?"
그러나 두 장사꾼은 막무가내로 서로 자기 것이라고 우겨댔다.
이혜 차사가 큰 기침을 하더니 나무장수에게 호통을 쳤다.
"네 이놈! 네 것이 아니면서 네 것이라고 그렇게 끝까지 우길 테냐?"
"저^5,5,5^ 정말 제 것입니다요."
"네 놈이 직접 저 까래에 무엇이 떨어져 있는가를 똑똑히 확인하거라."
까래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내려다 본 나무장수는 돌연 맥없이 풀썩 꿇어
앉으며 제발 용서해 달라고 싹싹 비는 것이었다. 까래 밑엔 소금가루가 하얗게
널려져 있었다. 그것이 양가죽이 소금장수의 것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ff
[ 세상에서 제일 좋은 꿈
세상에서 어떤 사람들은 이따금 남에게 피해를 입히려다 오히려 자신이 피해를
입는 경우가 더러 있다.
어느날 도심에 사는 두 사람과 시골에 사는 사람이 우연히 동행해서 먼 길을 가게
되었다. 세 사람은 각자 지닌 돈을 함께 쓰고 음식도 함께 먹기로 약속을 했다.
처음 세 사람은 몹시 친하게 지내며 동행을 했다. 며칠이 지난 어느날 저녁, 어느
한 여인숙에 숙박하게 되어 먹을 것을 보니 고작 통닭 한 마리 밖에 남아 있지 않은
것을 보고 겉으로는 별다른 내색이 없었으나 내심 나름대로 욕심을 부렸다.
도심에 사는 두 사람은 원래 약삭 빠른 사람이었다. 그들은 시골사람을 어떻게
해서든 따돌리고 둘이서만 나눠 먹으려 했다. 한 도심사람이 시골사람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사람은 세 사람인데 통닭은 한 마리밖에 안 나았으니 어떻게 하겠나? 날도 이미
저물었는데 그냥 잠을 자고 제일 좋은 꿈을 꾼 사람이 내일 아침에 통닭을 먹는
것이 어떻겠나?"
시골사람은 이내 찬성을 했다.
밤은 점점 깊어갔다. 도심사람은 시골사람이 깊은 잠에 빠졌을 것이라 생각하고
몰래 밖으로 나와 아침에 일어나 이야기할 꿈을 꾸몄다. 한 사람은 꿈에 자신이
아름다운 천사를 만나 천사를 따라 하늘문을 열고 들어가 하나님 앞엘 찾아 갔고,
다른 한 사람은 아름다운 천사를 따라 땅 속으로 데리고 들어 갔는데 금은 보화가
지천으로 널려진 지하세계에서 환대를 받았다고 꿈얘기를 하기로 입을 모았다.
"이런 꿈을 저 시골놈은 생각조차 못할 거야."
두 사람은 입을 모아 만든 꿈얘기에 만족해 했다.
그러나 그들이 함께 하는 이야길 시골사람은 자질 않고 전부 들었다. 두 사람이
이내 방으로 들어와 깊이 잠이 들었고 시골사람은 그 틈을 타서 통닭을 몽땅 먹어
치웠다. 배부르게 잘 먹고나서 그는 다시 잠을 잤다.
이튿날 아침, 두 도심사람은 일찌감치 일어나 시골사람을 깨웠다. 시골사람은 아무
내색도 하질 않고 아직 잠이 덜 깬 것처럼 하품을 하며 말했다.
"누구요?"
"우리오."
두 사람이 말했다.
"아니, 자네들이 어떻게 해서 다시 돌아왔지?"
"돌아오다니? 우린 아무데도 가질 않았는데."
"이상하구만. 내 꿈엔 당신들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아름다운 천사를 만나
하늘나라로 가서 하나님을 만나뵙고 다른 한 사람은 아름다운 천사를 만나
금은보화가 가득찬 지하세계에서 대단한 환영을 받는 것을 보았소. 어찌나 당신들이
좋아하는지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해서 통닭이 상할까봐 내가 몽땅
먹어치웠는데 말이오. 자네들이 하늘나라와 지하세계에서 다시 돌아올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지. 다시 이렇게 올 줄 알았으면 통닭을 안먹고 기다리는 건데
말이오."
두 도심사람은 일순 말문이 막혀 멍하니 서 있었다. 그들 뱃속에선 시장끼를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ff
[ 누구 선물이 좋으면 누구에게 시집간다.
옛날 풍래도에는 매우 아름답게 생긴 처녀가 살고 있었다.
체격이 늠름한 세 명의 총각이 그 처녀를 동시에 사랑했는데 그들은 공교롭게도
몹시 사이가 좋은 친구지간이었다.
그래서 처녀는 어느 총각을 선택해서 결혼했으면 좋을지를 몰라 전전긍긍했다.
처녀는 오랜 생각 끝에 마침내 방법을 생각해냈다.
처녀는 세 명의 총각을 불러놓고 각각 은전 열 냥씩 나누어주며 말했다.
"이 돈으로 각자 저에게 줄 약혼선물을 사오세요. 딱 한가지만 사와야 하는데
누구의 선물이 제일 좋은지를 골라 그 사람과 결혼하겠어요. 저는 당신들이 올 날을
집에서 기다리겠어요."
세 청년은 서로 그 처녀와 결혼하기 위해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선물을 사려고
들뜬 마음으로 풍래도를 떠났다.
그중 한 청년은 희귀한 거울을 샀다. 가령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 그 거울을
들여다보면 그 사람이 지금 무엇을 하는지를 금방 알 수 있는 거울이었다. 거울을
산 청년의 마음은 자못 흐뭇했다.
두 번째 청년은 말 한 필을 샀다. 이 말은 어찌나 잘 달리는지 말을 타고 가기만
하면 아무 곳이든지 못가는 데가 없었다.
세 번째 청년은 큼직한 사과 한 개를 샀다. 그 누구를 막론하고 병에 걸렸을 때
이 사과를 먹으면 병이 씻은 듯 낫는다.
이윽고 약속된 90일이 지난 어느날, 세 청년은 약속한 지점에 이르러 서로 자기가
사온 선물들을 꺼내 놓으며 자랑을 늘어 놓았다. 그런데 그 처녀가 보고 싶은
마음은 모두가 같아서 먼저 그 거울로 처녀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보기로
했다.
한데 그 거울을 들여다본 세 청년은 깜짝 놀랐다. 무슨 영문인지 처녀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고 침대에 누운 채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는데 숨이 가냘프게
몰아쉬는 것이었다. 그래서 세 청년은 두말없이 그 말을 타고 쏜살같이 달려 단숨에
처녀 곁에 도착했다.
처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선물을 사오면 뭘하겠어요? 저는 이제 곧 죽게 될 거^36^예요."
이때 세 번째 청년이 얼른 호주머니에서 사과를 꺼내 처녀에게 주었다. 처녀가 그
사과를 다 먹자 과연 그녀의 눈에는 정기가 돌았고 얼굴은 불그레하게 혈색이
돌았다. 그녀의 병이 이렇게 해서 다 낫자 그녀는 세 청년에게 자신을 위해 사온
선물을 이야기 해달라고 했다.
세 청년의 이야기를 다 들은 후 처녀가 말했다.
"저는 어떻게 해야 되죠? 세분 모두가 아니었다면 저는 아마 벌써 죽었을
거^36^예요."
그렇다. 가령 사과가 없었다면 처녀를 살려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신비스러운 거울이 아니었다면 처녀가 병에 걸려 있는지를 제때에 알 수도 없었고
또한 말이 없었다면 처녀의 곁으로 그렇게 빨리 달려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세 사람의 선물은 값지고 처녀에겐 저마다 중요한 선물이었던 것이다. 세 청년들도
누구의 선물이 더 나은 것인지를 판단하지 못했다. 다만 세 청년의 심정은 자신이
처녀와 결혼해야 한다는 데엔 변함이 없었다.
이렇게 서로 처녀를 차지하려고 하자 스스로 선택하기로 마음먹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세 분은 마음씨가 좋고 서로가 친한 친구사이^36^예요. 세 분 모두가 제겐
생명의 은인들이^36^예요. 그러나 세 분 중에 저는 한 사람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누구를 선택해도 축하해 주시리라 믿어요."
세 청년의 가슴은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제발 자신이 선택되기를 하는 마음이
절실했다.
"저는 저에게 사과를 선물하신 분과 결혼하겠어요. 굳이 이유를 든다면, 한 분은
거울을 사서 저를 항상 가까이 두고 보려고만 했고 또 한 분은 말을 사서 저를
가까이 두고 떨어지려 하지 않았는데 이는 자신들의 만족만 생각한 것이지요.
그러나 사과를 사온 분은 남을 먼저 생각하였고 즉, 저의 고통과 생명부터 염두에
두고 사과를 사왔어요. 두 분은 선물을 자기들 손에 갖고 있으나 사과를 산 분의
선물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었지요. 그러니 저는 마땅히 사과를 선물한
분과 결혼해야 돼요."
처녀의 선택으로 사과를 산 청년은 그녀와 결혼하였고 나머지 두 청년은 진심으로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ff
[ 총명한 안자
춘추시대 제나라에 안영이라는 재상이 있었는데 백성들은 그를 존경해마지 않아
안자라고 불렀다.
어느날 안자는 사령을 받고 초나라에 가게 되었다. 초왕이 안자에 대한 인물됨을
알고 여러 대신들에게 말했다.
"안자는 체격은 작달막하지만 말주변이 좋고 덕망이 높기로 소문나 있다. 그가
우리나라로 온다는데 그를 한번 놀려주어 우리나라의 당당한 위풍을 보여 주어야
한다. 너희들에게 무슨 좋은 방법이 없겠느냐?"
여러 대신들은 두 눈을 껌뻑이면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태재 원계강이
초왕에게 나직히 말했다.
"안자는 원체 총명하고 말재간이 좋아 웬만한 문제론 그를 놀려 주기가
어렵습니다. 제 생각으론^5,5,5^."
원계강은 자기의 묘책을 내놓았다. 초왕은 그의 말을 듣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었다.
원계강은 그날 밤으로 인부들을 동원해서 성 동쪽 문 옆으로 자그마한 구멍을
뚫고 허술한 문짝을 아무렇게나 달아놓게 했다. 그리곤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에게
명령하였다.
"제나라의 대신 안자가 오면, 그의 키가 작으니까 성문을 열지 말고 이쪽 작은
문을 열어주어 들어오도록 하라."
이튿날 안자가 마차를 타고 성문 앞에 이르고 보니 성문이 굳게 닫혀져 있었다.
이내 초나라 병사들은 커다란 성문을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엊저녁 새로 뚫은 작은
문을 열어주며 안자에게 들어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안자는 이내 그들의 교활한 계책임을 알아차리곤 작은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문은 개문이지 나라 대신이 드나드는 대문이 아니다. 개나라로 가는 사람만이
저 개문으로 들어가느니라. 오늘 나는 너희들 초나라로 왔는데 저 개문으로
들어가란 말이냐? 너희들 나라가 개나라가 될텐데 말이다."
안자의 말을 들은 문지기 병사는 그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안자의 말을
초왕에게 보고하였다. 초왕은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할 수 없이 성문을 열어주었다.
궁궐에 들어선 안자는 초왕에게 예를 갖춰 인사를 올렸다. 그러나 초왕은 인사를
받는둥 마는둥 하며 놀란 체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네 제나라에는 그렇게도 사람이 없는가?"
안자는 조금도 서두르는 기색도 없이 태연스럽게 대답을 하였다.
"우리나라의 수도 임치만 하더라도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입김을 내뿜으면
구름으로 변하고, 옷자락을 추켜들면 울창한 그늘을 만들어 태양마저 가릴 수가
있으며, 땀방울을 뿌리면 비오듯 합니다. 길거리엔 행인들이 어깨와 어깨가 부딪히고
발과 발이 부딪힐 지경인데 어찌 사람이 없다 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당신같이 키 작은 사람을 우리 초나라에 파견했단
말인가?"
안자는 여전히 떳떳한 자세로 당당하게 대답했다.
"우리 제왕께선 대신을 파견하는데 원칙이 있습니다. 도덕이 있고 재능이 있는
사람은 도덕이 있고 재능이 있는 국왕에게로 보내고, 품행이 떨어지고 재능이 없는
사람은 품행이 떨어지고 재능이 없는 국왕에게로 파견합니다. 저 안자는 제나라에서
제일 못난 사람이기 때문에 여기 초나라로 파견되어 왔습니다."
초왕은 단번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속으로 안자의 총명과 지혜에 대하여 못내
감탄을 하였다.
연회장으로 갈 때 초왕은 직접 안자를 안내했다. 그때 갑자기 경호원들이 한
죄인을 압송해 가고 있었다. 초왕이 물었다.
"그 자가 무슨 죄를 지었느냐?"
"물건을 훔친 죄인입니다."
"그 자는 어느 고장사람이냐?"
"예, 제나라의 사람입니다."
초왕은 고개를 천천히 돌려 눈살을 찌푸리며 안자에게 말했다.
"제 나라 사람들은 물건을 잘 훔치는구먼."
안자는 그들이 자신을 망신시키기 위해 꾸민 연극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곤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듣건데 강남에서 자라는 귤나무를 강북으로 옮겨 심으면 맛이 쓴 탱자로
변한답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토질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제나라 사람들은
제나라에선 도둑질을 하지 않는데 일단 초나라에 오면 도둑으로 변하지요. 이것은
초나라의 환경이 그러하기 때문이지요."
초왕은 그만 넋을 잃고 물끄러미 안자를 쳐다보았다. ff
[ 조설근의 선물
장편소설 '홍루몽'을 쓴 조설근은 어느날 도통(관리의 명칭)이 보낸 한 통의
청첩장을 받았다.
도통이 50 회 생일을 맞이해서 축하연을 베푸니 참석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관리들은 저마다 갖가지 이유로 연회를 베푸는데 이는 한편으론 그들의 권세를
천하에 자랑하고 다른 한편으론 부조금을 벌어들이기 위한 명목임을 조설근은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조설근은 그 청첩장을 침대 밑에 훌쩍 던져 버렸다. 침대 밑엔
벌써 그런 종류의 청첩장이 여러 개나 널려 있었다. 조설근은 곧 자기의 소설
'홍루몽'을 써내려갔다.
헌데 알지 못할 것은 도통의 생일날이 다가오자 조설근은 여느 때와는 달리 두
사람을 시켜 술 두 통을 지게 하고 자신은 축하문을 써서 길을 나섰다. 그때
조설근은 변두리에서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이처럼 선물을 들고 찾아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도통이 베푸는 연회장은 벌써 관리들로 꽉 차 있었다. 이윽고 조설근이 왔다는
말을 들은 관리들은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원래 조설근은 관리들의 초대에
응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웬일로 술을 사들고 여기까지 찾아 왔을까? 손님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도통은 조설근이 참석한 것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가졌고
우쭐거렸다.
드디어 술상이 벌어졌다. 도통은 하인을 시켜 특별히 조설근이 가져온 술부터
손님들에게 따르게 한 후, 도통이 술잔을 높이 치켜들었다.
"여러분, 조공께서 가져오신 이 술은 보통 술과 다릅니다. 저는 오늘 조공께서
여길 찾아주신데 대해 더 없는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자, 건배를 합시다!"
건배를 제의하자 모두가 잔을 들었고 건배한 술잔을 도통은 단숨에 입에
털어넣었다.
그런데 술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자 도통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술이란 것이
아무런 맛도 없었고 맹물처럼 싱거웠다. 초대된 관리들도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멍하니 아무말도 못하고 있었다.
"이 술은 정말 좋은 술이오!"
도통이 먼저 선수를 쳤다. 그러자 도통과 관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는
식으로 웃어댔다.
"자, 제가 축하문까지 써왔으니 걸어 주십시오."
도통은 축하문까지 받아쥐고는 하인을 시켜 긴 대나무 막대기로 바른벽 높이
걸어놓게 했다. 내용은 '친구와 사귐' '술처럼 연하도다'라는 딱 두 문장이었다.
도통은 축하문이랄 수 없는 축하문에 화가 치밀었지만 많은 손님이 있어 그럴 수
없는 처지임을 알고는 태연하게 말했다.
"옛 성현들의 말씀이 있소. 군자의 사귐은 물처럼 연하다 하질 않았소. 물은
연하지만 정이 두터워 깊은 우정을 나타내는 말이오. 친구와 사귐, 물처럼 연하다는
축하문은 정말 조공다운 대단한 문장이오."
"그렇습니다. 물은 연하지만 정은 두텁지요."
손님들은 도통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애썼다.
결국 조설근이 사람을 시켜 지고 온 두 통의 맹물을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몽땅
마셔버렸다. ff
[ 진짜는 숨기고 가짜를 욕하다.
명조 말년, 17세 어린 나이에 민족의 영웅이 된 하완순은 아버지 하윤아와
진자룡선생의 영향과 철저한 교육을 받아 그는 어려서부터 가슴에 큰뜻을 지녔다.
그가 열 네살이 되던 해, 청나라군은 남쪽으로 전진해 남경을 점령하였다. 그는
아버지와 선생과 함께 선혈을 마시며 청나라군사를 물리치고 나라를 보위하자는
맹세를 굳게 다졌다. 그러나 그런 맹세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선생은 모두
전투에서 장렬하게 희생되었다. 하완순은 이 비참한 고통을 이겨내고 감남일대에서
다시 힘을 모아 청나라군에게 체포되어 남경 감옥에 투옥되었다.
하완순은 법정으로 끌려나와 심문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앞을 쳐다본 하완순은
자기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을 심문하려는 자가 틀림없는
홍승주였기 때문이었다. 홍승주가 아직도 살아있단 말인가?
홍승주는 원래 명나라의 한 총독이었다. 숭진황제는 그에게 13 만 명의 군사를
주어 청나라군을 물리치라고 전선에 내보냈는데 안타깝게도 송산, 형산의 결투에서
전군이 전멸되다시피 했다. 겨우 전선에서 도망쳐온 패잔병들이 돌아와 홍승주
총독이 전투에서 희생되었다고 보고했고 숭진황제는 궁정의 모든 문무대신들을
거느리고 홍승주의 장례를 대대적으로 치뤄주었고 그를 높이 평가했다. 그런 자가
청나라군에게 투항하고 역적이 되어 청나라를 반대한 명나라 사람을 심판하려
하잖은가!
하완순의 두 눈에 불같은 분노가 일었다. 그는 홍승주를 쏘아보며 벌떡 일어섰다.
양쪽에 선 두 법관이 하완순을 꿇어앉혀 놓으면 벌떡 일어서는 하완순이었다.
"네가 죽을 죄를 저지르고도 꿇어 앉지 않겠단 말이냐?"
홍승주가 괘씸하다는 듯이 고함을 질렀다.
"내가 무슨 죄를 저질렀단 말인가?"
하완순은 목소리를 돋구었다.
"내가 침략자들과 싸워서 내 민족을 구원하려 했는데 그것이 왜 죄인가? 가령
나같은 사람이 죄인이라면 나라와 민족을 배반하고 역적이 된 사람을 애국자라 해야
하는가? 사내대장부가 당장 죽을지언정 비굴하게 꿇어 앉지는 않는다. 내가 왜 너의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하는가?
하완순은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성격이 강하고 큰 인물이 될 사람임을 직감했다.
홍승주는 내심 하완순을 청나라로 끌어들여 자기의 부하로 삼고 싶었지만 완강하게
버티는 그를 쉽게 투항시키지는 못할 것 같았다.
하완순은 홍승주를 알아보았지만 그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것처럼 행동했다.
"너같이 어린애가 무엇을 안다고 그러느냐? 지금이라도 청나라를 위해 일하겠다고
귀순을 한다면 너의 목숨을 살려주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푸짐한 상을 내리겠다."
"나으리의 호의는 감사하오만 나는 이미 형구선생의 뜻을 받들어 명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했기 때문에 결코 죽음이 두렵지 않소."
형구란 바로 홍승주의 호였다.
"듣건데 형구선생은 송산과 형산의 전투에서 적들에게 투항하지 않고 장렬하게
전사를 했소. 숭진황제께선 형구선생의 죽음을 매우 비통해하며 형구선생의 가족을
따뜻하게 보살펴주고 있소. 나는 형구선생을 그리며 그를 본받아 나라를 위해 이 한
목숨 바칠지언정 절대로 나라를 배반하는 역적은 되지 않을 것이오."
그의 말은 듣기엔 형구선생을 몹시 존경하는 듯 했으나 실은 홍승주를 꾸지람하는
것이었다. 이때 누군가 다가와 지금 말하는 형구가 저 앞에 있는 분이니 말을
삼가라고 귀띔해 주었다. 그러자 하완순은 도리어 홍승주에게 삿대질을 해가며
욕설을 퍼부었다.
"네 이놈! 감히 네가 형구선생을 사칭하다니 가소롭기 짝이 없구나. 형구선생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지도 벌써 몇 해 째가 된다. 나라에서 국장을 치뤄주고
황제께서 친히 찾아와 눈물을 비오듯 쏟으셨는데 감히 네가 형구선생으로
둔갑하다니 형구선생의 명예에 먹칠을 해도 분수가 있지!"
법정에 앉은 홍승주는 뭐라 변명할 수도 없고 주위에 모인 청나라 관리들 보기가
부끄러워 신음하듯 말했다.
"저놈을 끌어내라! 끌어내!"
"하하하."
하완순은 밖으로 끌려나가면서 통쾌하게 웃어댔다. ff
[ 선생님도 어렸을 때 총명했군.
공융은 중국 역사상에 기록될 유명한 시인이었다.
공융이 네 살 때의 어느날, 그의 아버지가 노란 배를 사왔다. 노란 배를 본 공융은
손뼉을 치면서 재빨리 형을 불렀다.
"형, 아버지가 배를 사오셨어."
공융은 그러하면서 손을 광주리 속에 넣어 이것저것 배를 골랐는데 이상하게도
제일 작은 것을 골라냈다.
"아니, 왜 제일 작은 걸 골랐지?"
아버지가 이상스러워 물었다.
"제 나이가 제일 어리니까 제일 작은 걸 골라야죠."
네 살난 아이가 이처럼 어른스럽게 말하자 아버지는 대견스러워 마음이 흐뭇했다.
어느덧 공융이 열 살이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고을 난양으로 외출하게 되어
공융을 데리고 떠났다. 이 고을에는 이응이라는 사람이 출중하여 평소에 아무나
만나기 어렵고 또 만나주지도 않았다.
"너무 거만하군."
공융은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기어코 거만한 그 사람을 꼭 만나고 말 테야."
공융이 아버지에게 자기가 이응을 만나겠다고 말했다.
"그만 두거라. 그 사람은 명성이 높은 군태수(관리의 명칭)인데 너같은 어린아이를
만나주기나 할 것 같으냐? 대문도 들어서지 못할 것이다."
"한 번 보세요. 저는 꼭 만나고 말 테니까요."
그 길로 공융은 혼자서 이응의 집앞까지 찾아왔다. 문지기가 물었다.
"누구냐?"
"저는 군태수의 친척인데 나으리를 만나뵈려고 찾아왔어요."
얼굴에 애티가 완연한 공융이 태연스럽게 말했다.
공융을 아래위로 훑어보던 문지기는 아무래도 의심쩍어 다시 물었다.
"네가 군태수 나으리의 친척이라구?"
"그렇다니까요. 그러니 여러 말 말고 어서 군태수 나으리께 알리시오."
그의 기색을 보거나 말하는 투로 보아 진짜인 것 같았던지 문지기는 더 이상
묻지를 않고 안으로 들어가 알렸다.
이응은 친척이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 공융을 들여보내라 하고 나와보니 뜻밖에도
여지껏 한 번도 보질 못했던 어린아이가 불쑥 들어서는지라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는 이렇게 물었다.
"너는 나와 친척이라고 했는데 어떤 친척 관계이냐?"
공융이 대답했다.
"저는 공자의 24 대 자손이고 군태수께선 이백양(노자)의 후세지요. 이백양과
노자는 친밀한 스승과 제자 관계였으니 저도 군태수와 관계가 있는 셈이지요."
"흠."
이응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찍이 공자가 노자에게 주조의 예의제도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었다는 역사지식을 이응은 잘 알고 있었다. 한 눈에 이 어린아이가
보통이 넘는다는 것을 느끼고 이응은 그를 극진하게 대접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손님들은 대견한 눈길로 공융을 바라봤다.
그때 대중대부(관리의 명칭) 진위가 집안을 들어섰는데 한 관리가 방금 있었던
일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진위는 어린아이의 그 당돌함에 놀라기는 했으나 애써
시답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 애가 이렇게 어려서 총명하다곤 해도 커선 출세 못할 수도 있지."
공융은 그 말을 듣고 한 치 양보도 없이 면박을 주었다.
"그렇다면 선생님도 어렸을 때는 매우 총명하셨군요."
진위는 그 한 마디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부끄러움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ff
[ 시 맞추기
기윤은 지식이 풍부하고 시에 능하여 청나라 문호로 불리었다. 간륭황제는 그를
몹시 중하게 여겼고 급기야는 '사고전서' 주필이라는 중책을 맡겼다.
어느날 간륭황제가 낙양 용문을 여행하러 떠나면서 기윤을 데리고 갔다. 용문에
이르니 기암절벽이 치솟아 있었고 나무가 우거져 새들이 지저귀었다. 산아래로는
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강기슭에는 푸른 풀이 한창인데 강물에는 고기떼들이 떼지어
다니고 있었다. 이러한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는 간륭황제의 마음은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절벽 바위틈에 거꾸로 자라난 고목을 발견한 간륭황제가 돌연
기윤에게 말을 건넸다.
"시 한 구절이 떠오르는데 계속 이어질 구절이 떠오르질 않는구먼."
기윤은 황제가 자신과 시맞추기를 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곤 이내 대답을 했다.
"전하께서 떠오르신 시 한 구절을 읊어 주십시오. 그 다음의 구절은 미천하나마
제가 이어 보지요."
"그러게나."
간륭황제가 입을 열었다.
"산석암하고목고, 차목시시."
기윤은 마음속으로 탄복을 했다. 시가 정말 절묘했던 것이다.
산석(뫼 산, 돌 석)을 합치면 암(바위 암)자요, 고목(옛 고, 나무 목)을 합치면
마를 고자요, 차목(이 차, 나무 목)을 합치면 나무 시자로 실과 허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었으며 또 눈앞에 펼쳐진 경치에 딱 어울리는 시 구절이었다.
기윤은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간륭황제의 시 구절 다음을 지어 읊어야 했는데
간륭황제의 시가 너무 절묘해 어떻게 지어야 할지 선뜻 떠오르지를 않는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기윤의 시야에 화려한 옷을 입은 소녀가 물가에 앉아 빨래하는
광경이 들어왔다. 그러자 시가 절로 떠올랐다.
"백수천변여자호, 소녀최묘."
백수(흰 백, 물 수)를 합하면 좋을 호자요, 소녀(적을 소, 계집 여)를 합하면
묘(묘할 묘)자였다.
간륭황제는 과연 기윤이라고 미소를 띄우며 머리를 끄덕였다. ff
[ 종이의 발명
종이는 중국이 발명한 4 대 발명 가운데 하나인데 동한시대 채륜이 발명하였다.
채륜은 계양사람이었다. 그는 황제의 신임을 얻어 태감으로 진급하고 궁정에서
사용하는 검과 무기들을 생산하는 것을 책임지게 되었다.
채륜은 그러는 가운데서도 학습에 열중하였다. 어느날 그는 궁정에서 일하는
소황문을 시켜 책을 사오도록 했다. 반나절이 지나자 소황문은 무거운 책을 메고
돌아왔는데 얼굴엔 비오듯 땀을 흘리고 있었다. 책은 모두 세 권에 불과했지만 무려
10 킬로그램이 넘었다. 그때만 해도 종이가 없어 천연기름이나 혹은 먹을 갈아서
얇게 다듬은 대나무조각에다 글을 썼는데 대나무조각 한 개의 길이는 한 자 내지 두
자씩 되었고 너비는 반치 가량이나 됐으며 글자는 많아야 삼 사십 개였고 어떤
대나무조각을 끈이나 혹은 가죽띠로써 한 개씩 엮어놓은 것이 곧 책이었다. 그 책을
읽지 않을 때는 둘둘 말아서 한 권이라고 했다. 한 권이 2,3 킬로그램이 가는 것도
있었고 심지어는 3,4 킬로그램이나 되는 책도 있었다.
소황문은 사온 책을 채륜에게 바치고는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휴, 대나무조각이 엄청나게 무거운데요."
"새삼스럽긴, 언제 가벼운 책을 보았느냐?"
"보았지요. 지금 저 벽에 걸려 있잖아요."
소황문이 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벽에는 한 장의 커다란 명주천이 걸려 있었는데 그 위엔 글씨가 깨알같이 써
있었다.
"그래, 저 책은 가볍기는 해. 하지만 명주천이 너무 비싸 보통 사람은 사용할 수가
없지."
채륜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대나무조각은 무겁고 명주천은 비싸고, 그렇다면 가볍고 값싼 무엇이 없을까요?"
소황문은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채륜은 소황문의 말을 듣고 어떤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에 잠겼다. 가볍고도 값싼 재료를 이용해 글을
쓰는 방법.
그러던 어느날, 강가에서 사람들이 삶은 누에고치를 까래 위에 얹어놓고 물에
띄운 다음 다시 건져내 나무막대기로 누에고치를 두들겨서 명주솜을 만드는 과정을
보았다. 사람들은 그것을 햇볕에 바짝 말린 후 그것을 가져갔는데 까래에는 얇은
명주솜 부스러기들이 많이 붙어 있어서 채륜은 그것을 뜯어내가지고 궁정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명주솜 부스러기에다 글을 쓴다면 얇고도 가벼우며 희고 아름다워
대나무조각보다 질이 월등하게 좋으나 생산량이 적고 비싸며 부스러기로 만들었기
때문에 규격에도 문제가 있으며 글을 쓰기에도 불편한 점이 많았다.
채륜은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그는 명주솜 대신 값이 싸고 구하기 손쉬운 베천을
생각해냈다. 베천은 이미 많이 보급된 천이었고 백성들이 보편적으로 지어 입는
옷이었다. 베천을 짜기 전에 일단 물에 불리는데 그때에도 역시 베천 부스러기가 맨
위에 떠올랐다. 이런 부스러기로 종이를 만들기로 생각한 채륜은 그러나 이미
소수의 사람들이 그것으로 종이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음을 알고는 많은 용기를 얻고
더 나은 질과 생산량이 많은 종이를 만들기로 결심하였다. 어차피 천 부스러기로
종이를 만든다면 다량으로 사용하는데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마를 분쇄하여 물 속에 넣고 석회석을 넣어 불궈낸 후, 걸죽한 종이
팔프를 삶아내 다시 맑은 물로 씻어서 까래 위에 펴놓았는데 마른 후에 보니 알맞은
아마종이가 되었다.
한 장, 한 장 규격이 똑같은 얇은 아마종이를 드디어 만들어낸 채륜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실험에 실험을 거듭하여 나중엔 아마뿐만 아니라 나무껍질 등 다양한
종류의 원료로 종이를 만들게 되었다.
기원 105 년, 채륜운 제지를 만드는 방법을 발명하곤 이 사실을 황제인
한화제에게 보고했고 자신이 만들어낸 종이를 그에게 바쳤다. 한화제는 채륜의
치적을 높이 평가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아 이때부터 종이의 보급이 널리 퍼졌다.
이때로부터 인류문화발전에 대단한 기여를 한 채륜은 그로 말미암아 역사의
기록이 종이에 남아 대대로 전해지게 되었다. ff
[ 기묘한 저울
지금으로부터 1700여년 전, 위, 촉, 오, 3 나라가 매우 흥성하던 시대였다.
어느날, 오나라의 손권이 위나라 조조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에게 코끼리를
선물하였다.
코끼리는 따뜻한 중국 남쪽 지방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장강 이북의 사람들은
그때까지만 말로만 코끼리를 들어보았지, 실물은 처음이었다. 조조는 몹시 기뻐하며
아들과 관리들은 데리고 코끼리 구경을 나갔다.
코끼리는 강가에 우뚝 서 있었는데 마치 몸체는 담벼락 같았고 네 개의 굵직한
다리는 기둥같이 굵었고 축 늘어진 두 귀는 커다란 부채살 같았다.
사람들은 코끼리를 중심으로 빙 둘러서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데 조조가 문득
사람들에게 물었다.
"누가 이 코끼리의 무게를 달 수 있는가?"
"그건 수월하죠. 큰 저울을 만들어서 달아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한 관리가 별다른 생각없이 대답했다.
"그런 큰 저울이 있어야 말이지."
"큰 나무를 베서 만들면 되지 않겠습니까?"
"좋다. 그렇게 큰 저울이 있다치고, 하지만 저렇게 큰 코끼리를 무슨 수로 저울로
들어올릴 수 있단 말이냐?"
이때 또다른 관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방법이 있긴 합니다만, 그렇게 할 수 있을지가 문제입니다."
"어떤 방법인가? 말해 보거라."
"코끼리를 잡아서 칼로 고기를 잘라 달면 무게를 알 수 있지요."
사람들은 황당한 소리에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고 조조도 머리를 무겁게 흔들었다.
"저에게 한 가지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조조의 아들인 여섯 살날 조충이 불쑥 나서며 말했다.
"코끼리를 배 위에 싣고 물이 뱃전에 올라오는 곳에 금을 그어 표시한 다음,
코끼리를 내리게 하고 돌을 금을 그어 표시한 곳까지 찰 때까지 실은 후 그 돌들을
저울에 달면 코끼리의 무게를 알 수 있지요."
그의 말을 들은 주위 사람들은 역시 조조의 아들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ff
[ 조조의 아들 조충
조조의 아들 조충이 열 살나던 해에 있었던 일이다.
그의 아버지 조조가 애지중지하며 아끼고 있는 말안장을 쥐가 구멍이 뚫릴 만큼
갉아놓았다. 창고를 관리하는 창고장이 그것을 발견하곤 기절할 듯 놀랐다. 이 일을
조조가 알면 목이 달아날 것이고 알리지 않더라도 조만간 조조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창고장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안장을
두 손에 받쳐들고 얼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때마침 창고 앞을 지나가던 조충이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해 있는 창고장을
쳐다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에게로 다가가 연유를 물었다. 창고장을 체념섞인
말투로 연유를 조충에게 말했다.
조충은 제법 어른다운 생각을 했다. 창고장이 평소에 부지런했고 맡은바 임무에
충실했는데 쥐가 구멍을 뚫은 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라 분명 있을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이런 일로 그를 탓해서는 안되고 더욱이 죽여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조충이 한참을 생각하더니 창고장에게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제게 방법이 있으니까 내일 오전에 안장을 들고 우리
아버지께 가서 사실대로 말씀하세요. 그러면 용서해 주실 테니까요."
창고장은 그의 말을 듣고 너무도 기뻐 그에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
집으로 돌아온 조충은 하인에게 새 옷을 가져오게 하곤 작은 칼로 구멍을 몇 개
뚫어놓고 쥐가 갉아 놓은 것처럼 만들어 놓았다.
이튿날 아침, 하인이 식사를 하라고 말하자 조충은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하인이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도 그는 아무런 대답도 않은 채 더욱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하인은 그만 큰일이나 난 듯이 얼른 조조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알렸다.
조조는 이 총명한 아들을 무척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숨에 아들에게 달려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조충은 새 옷을 조조에게 보여주며 힘없이 말했다.
"이 옷을 쥐가 갉아 먹어 이렇게 구멍을 냈어요."
"난 또 뭐라구. 그게 뭐가 대단하다고 그러느냐?"
"하지만 쥐가 옷을 갉아 먹으면 옷주인은 재수가 없고 액운이 낀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 말은 다 미신이다. 염려하지 말거라. 쥐가 물건을 갉아 먹는 것은 흔히 있는
일 아니냐?"
"그렇죠? 아버지 말씀이 맞아요. 그런 이야긴 다 미신이^36^예요."
조충은 일부러 이 한 마디를 힘주어 말했다.
"이제부턴 그런 미신, 안 믿겠어요."
조조는 안심하며 자기 방으로 돌아갔고 조충은 얼른 창고장에게 달려가 지금 얼른
가서 조조에게 사실대로 말하라고 일렀다.
창고장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며 쥐가 구멍을 낸 안장을 들고 조조를 찾아갔다.
창고장은 바닥에 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이 사실을 말했다.
조조는 화가 버럭 났다. 쥐가 안장을 갉아놓은 것은 불길한 징조로 창고장은 엄한
벌을 받아야 했다. 그때 조조의 아들 조충이 모습을 드러냈고 조조는 아들을
바라보는 순간, 화를 삭이지 않으면 안되었다. 방금 자신이 아들에게 했던 말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우리 아들의 옷을 침대 옆에 걸어 놓은 것도 쥐가
갉았는데 하물며 창고 기둥에 걸어놓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앞으로 주의하도록
해라."
조충은 한 쪽에 앉아 빙그레 웃었고 창고장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ff
[ 뚱족 수재
청나라 말기, 육본송이라는 뚱족어린아이는 어찌나 총명했던지 열 두살에
과거시험을 보러 갔다.
과거시험을 보러 관청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는데 어떤 사람은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도 있었고, 나이가 어린 사람이라야 스무 살을 넘긴
청년들이었다. 육본송은 그런 사람들 틈새에 끼어 있었는데 그 누구도 그렇게
어린아이가 과거를 보러 온 사람이라곤 생각지 않았다. 감독관은 짜증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집으로 가거라. 과거시험이란 게 뭔지 알기나 하니?"
"정말 과거시험을 보러 왔어요."
육본송은 자못 진지한 태도로 말하였다.
"너는 너무 어려서 시험자격이 없다."
"나으리께선 제가 어리다고만 볼 것이 아니라 제가 과거에 합격하는가 못하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비록 그가 나이는 어려도 말을 매우 조리있게 하는 것이 보통 아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살이냐?"
"열 두살입니다."
"공부는 몇 년을 했지? 과거 시험에 대비해서 말이다"
"십 이년요."
"이놈이 어른을 놀리고 있구나! 그렇다면 네 에미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과거시험을 공부했단 말이냐? 엉덩이를 쳐야 네가 정신을 차리겠냐."
감독관이 놀림을 당한 것 같아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했다.
"나으리, 진정하십시요."
육본송은 이 상황하에서도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태연스럽게 말했다.
"남들은 낮에만 공부를 하지만 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부를 했어요. 제가
여섯 살 때부터 지금까지 육 년간을 공부했으니 남들에 비하면 십이 년간을 공부한
것이나 다름없지요."
"좋다. 네가 공부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내가 시험해봐야겠다. 시험을 잘 치면
과거시험을 볼 자격을 주고 그렇지 못할 때엔 매를 쳐서 내쫓을 테니 그런 줄
알아라."
"좋습니다. 나으리께서 어떤 문제든 내십시요."
육본송은 두려운 기색이라곤 전혀 없었다.
감독관은 어디선가 손바닥만한 종이 한 장을 가져와 육본송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이 종이에다 일부터 만까지 써라."
종이를 받아쥔 육본송은 앞뒷면을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나으리, 이렇게 큰 종이는 필요없어요. 절반이면 충분합니다."
그리곤 종이를 절반 찢어버리곤 나머지 반조각에다 글을 대충 긁적이더니
감독관에게 바치는 것이었다.
감독관이 종이를 받아보니 이렇게 써 있었다.
"일의 열 배는 십이고 십의 열 배는 백이며, 백의 열 배는 천이고 천의 열 배는
만이다."
감독관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하는 수 없이 과거시험을 볼 자격을 주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과거시험을 본 육본송은 그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등과를 하였다.
그는 뚱족 가운데서 제일 어린 수재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그의 고향인 귀주 청수강 일대에 미담으로 전해지고
있다. ff
[ 게를 선물한 제백석
제백석은 중국의 저명한 화가이다. 그가 그린 닭, 올챙이, 게, 새우는 그야말로
진짜와 같아 꼭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어느 하루, 누군가는 제백석의 그림을 선물받고 하마터면 쓰러질뻔 하였다.
상해에서 '제백석 미술전시회'를 가졌는데 북경에서 살고 있던 팔십여 세의
제백석이 참석하기 위하여 기차를 타고 상해로 왔다.
그가 상해에 도착한 이튿날은 마침 상해에서 위세가 등등한 선철오장군의
생일날이었다. 선철오는 제백석이 미술전시회 참석차로 상해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특별히 제백석을 집으로 초대했다. 하지만 선철오라는 사람의 됨됨이를 잘 알고
있는 제백석은 그의 초대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러나 선철오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을 시켜 세 번이고 네 번이고 청하는
것이었다. 제백석은 그의 속셈을 알고 있었다.
"나를 초대하는 것은 그림을 부탁하는 일이고 자기 위신을 높이자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제백석은 무슨 일인지 급기야 초대에 응했다.
이윽고 연회가 시작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자 선철오는 짐짓 제백석을 공경하는 체
하면서 기념으로 그림을 한 장 그려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손님들 중에는 제백석의 성미를 잘 아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제백석이
선철오 같은 인물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거부하면
어쩔 것인가에 손에 땀을 쥐기 시작했다.
그런데 제백석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신철오는 너무도
기뻐서 빨리 먹과 붓, 종이를 가져오라고 하인에게 분부를 내렸다.
제백석은 허연 수염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붓을 손에
잡고 그림을 그려나갔다. 쓱쓱 붓을 몇 번 휘갈기니 종이에는 금방 다리를 사방으로
뻗은 게 한 마리가 그려졌는데 마치 살아서 기어다니는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선철오는 몹시 만족한 듯이 얼굴은
상기된 표정이었다.
이때 제백석이 붓에 먹을 꾹꾹 찍어 그림의 왼쪽 상단 부분에 몇 글자를 써놓는
것이었다.
"언제까지 횡포한 행동을 지속할 것인가, 철오장군."
글을 다 쓰고 난 후, 제백석은 냉소를 던지고는 몸을 휙 돌려 밖으로 나갔다.
손님들은 당황한 나머지 머리를 숙인 채 숨마저 크게 쉬지 못했다. 분위기는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고 선철오의 얼굴 표정은 붉으락 푸르락했다. ff
[ 독약없는 독약
가난하기 짝이 없는 아반티는 돈을 벌기 위해 어느 한 부자집에 가 일꾼노릇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부자는 어찌나 인색하던지 식사 때가 되기만 하면
아반티에게 옥수수 빵 한 개와 반사발의 죽을 주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반복되어서 아반티는 허기에 지쳐 끝내는 참을 수 없는 화가 치밀었다.
어느날, 부자가 또 그 꼴의 식사를 주자 아반티는 엉뚱하게도 톱을 들고
부자에게로 왔다. 부자는 어리둥절해서 물어왔다.
"톱을 가져와서 무얼 하려느냐?"
"보십시오."
아반티는 죽이 절반쯤 담긴 죽사발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사발의 윗부분은 쓸모가 없으니 잘라버려도 되지 않겠습니까?"
아반티는 두말없이 죽그릇의 절반을 자르기 시작했다. 헌데 톱날이 뚝 끊어져
나가자 아반티는 다른 새 톱날을 갈아 끼운 뒤 다시 자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부자는 그만 톱날이 아까워 고래고래 소리를 쳐댔다.
그 이후부터 부자는 다시는 죽을 절반을 담지 않고 한 사발을 가득 채워서
가져왔다.
그러던 어느날, 누군가 그 부자에게 꿀을 한 사발 가져왔다. 그러나 막 밥을
먹고난 뒤인데다가 급한 일이 있어 외출해야 되겠기에 부자는 아반티에게 부탁을
했다.
"아반티, 금방 누가 나에게 독약을 한 사발 가져왔는데 잘 보관해 두게나, 쏟지
말고 말이야."
부자가 떠나간 후, 아반티는 천연덕스럽게 꿀사발을 들고 오더니 부자가 먹는
떡까지 가져와 꿀에 찍어서 몽땅 먹어 치웠다. 그리곤 꿀사발은 물론 부잣집의
사발이란 사발과 다른 그릇들을 닥치는대로 박살내 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이 득의 만만했고 급기야는 부자의 침대에 벌렁 누워 코를
골기 시작했다.
저녁 무렵 집에 돌아온 부자는 집안에 온통 널려져 있는 그릇조각들을 보고 화가
나 몸을 부르르 떨었다. 거기다가 꿀사발에 든 꿀은 오간데없고 그릇마저 박살이
나있는지라 피가 막 거꾸로 흐르는 것처럼 화를 냈다.
"아반티!"
부자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호통을 쳤다.
"집안이 이게 무슨 꼴인가! 그리고 그 독약은 어쨌어?"
아반티는 부자의 흥분엔 아랑곳없이 침대에서 굼벵이처럼 느릿느릿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오늘 제가 커다란 실수를 저질렀어요. 실수해서 그릇을 깨뜨렸는데 나으리께서
돌아오시면 저를 야단치시고 배상시킬 것은 뻔한 일인데 저는 원래 가난한 놈이어서
마누라도 먹여 살리지 못하는데 무슨 수로 배상을 하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죽는 편이 나을 것 같아 그 독약을 마셨지요. 머리가 아파 나으리의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아마 조금 후에는 독이 온 몸에 퍼져 죽을 거^36^예요."
여기까지 말한 아반티는 밖으로 비실비실 걸어나가면서 말했다.
"제가 빨리 여길 떠나야지요. 괜히 나으리께서 제 송장까지 치우시게 할 순 없지
않겠습니까? 나으리의 은혜를 봐선 안될 일입니다."
아반티는 이렇게 해서 그 인색한 부잣집을 떠났다. 부자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
아무런 말도 못했다. ff
[ 국왕을 속인 아반티
아반티의 총명한 지혜의 명성은 점점 널리 퍼져 급기야는 이웃나라에까지 그
소문이 퍼져갔다.
이웃나라의 국왕은 아반티의 놀라운 지혜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면서 여러
신하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듣건데 이웃나라에 아반티라는 자가 있다는데 심지어 자기 나라 국왕까지 재치
있게 속였다는데 그 소문이 진짜란 말이냐?"
"네, 그렇습니다. 저희도 아반티의 지혜가 뛰어나다는 소문을 들었고 거기에다
학문까지 깊어 그 누구도 그를 당해낼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 하지만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나만은 속아 넘기지 못한다."
국왕은 큰소리를 쳤다. 그리곤 아반티에게 자신만은 못 속인다는 것을 천하에
증명하는 것이 자기의 위신을 세우는 깃이라고 생각했다.
국왕이 말을 타고 아반티의 나라에 들어서자 저 멀리 길가에 비스듬하게 서 있는
나무에 등을 기대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국왕은 그 사람에게 다가가 말을 건냈다.
바로 그가 아반티인 줄 국왕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이봐라, 나는 이웃나라의 국왕인데 너희 나라에 아반티란 자가 지혜가
뛰어나다는 소문이 있는데 속히 가서 그를 불러 오너라. 그가 얼마나 총명한지 내가
시험해 볼 테다."
그의 말을 들은 아반티는 이미 그 심보를 헤아리고는 짐짓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제가 아반티인데 무슨 일이십니까?"
"그래? 네가 소문에 듣던 아반티란 말이지?"
국왕은 마침 잘됐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가 잔꾀가 많아 그 잔꾀를 가지고 국왕까지 속아 넘겼다는데 나는 속이지
못한다."
"그래도 저는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안됩니다. 저의 지혜주머니를 집에
두고 왔거든요. 그 지혜주머니를 가져와야만 국왕 전하를 속아 넘길 수가 있습니다."
"그 따위 지혜주머니는 열 개가 있어도 소용이 없다. 빨리 가서 가져오너라.
여기서 기다릴 테니까."
"정말 전하께선 저의 지혜주머니가 두렵지 않단 말씀이십니까? 제가 전하의 말을
타고가면 금방 다녀올 수 있는데 그때 가서 후회하진 마십시오."
아반티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리고 이 나무는 금방 쓰러질 것 같아서 제가 곧바로 세우려고 했던 참인데
제가 집에 가면 금방 쓰러질 텐데요."
"염려하지 말거라. 네가 올 동안 내가 받치고 있을 테니 이 말을 타고 얼른
다녀오거라."
국왕은 말에서 내려 말을 아반티에게 넘겨주고 아반티가 등을 대고 있던 나무를
받쳤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아반티는 이 한마디 말을 남기곤 말을 타고 먼지를 뽀얗게 일으키며 달아나
버렸다.
국왕은 정말 비스듬한 나무를 버티고 서서 아반티를 기다렸는데 해가 서산에
기울어도 아반티는 종내 나타나질 않았다. 국왕은 그제서야 자신이 아반티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고 컴컴한 어둠을 헤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ff
[ 돈소리를 들었소?
어느날 아반티는 당나귀를 타고 장터로 갔다. 장터엔 사람들로 붐볐고 그렇게
붐비는 장터를 반나절 정도 돌고나니 배가 출출해 당나귀를 매어놓고 어느 음식점을
찾아 들어갔다.
그가 막 음식점으로 들어서자 주인이 어떤 남루한 옷차림을 한 사내의 멱살을
움켜잡고 호통을 치고 있었다.
"이 나쁜놈의 자식! 음식을 처먹고 몰래 도망치려고 해!"
"내가 언제 음식을 먹었다고 이러시오? 음식을 먹었어야 돈을 낼 것 아니오!"
남루한 차림의 사내도 결코 만만치 않게 대들었다.
이럴 때 가만히 있을 아반티가 아니었다. 아반티가 다가가 남루한 차림의 사내를
가리키며 음식점 주인에게 물었다.
"어떤 이유인지 사연이나 들어봅시다."
주인은 아반티를 힐끔 보더니 연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놈이 여기서 하루종일 앉아 있으면서 음식을 볶는 냄새를 맡았소. 그리곤 빵
한 개를 가지고 왔는데 식당의 음식 냄새가 빵에 다 스며들자 빵을 먹어치우곤
가려고 했소. 음식 냄새를 공짜로 맡아도 되겠소?"
"맞는 이야기입니까?"
아반티가 이번에는 확인하듯 가난한 사람에게 물었다. 가난한 사람이 말했다.
"애초 식당에 들어올 때는 식사를 시켜 먹으려고 했는데 가진 돈이 모자라
밥찌꺼기라도 있으면 얻어 먹으려고 했지만 재수가 없어 여지껏 얻어 먹지도 못하고
할 수 없이 제가 가지고 온 빵으로 요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저 주인은 날보고
냄새맡은 값을 내라고 어거지를 쓰는데 세상에 이런 일도 있습니까?"
"냄새를 맡았으면 돈을 내야지!"
음식점 주인은 재삼 잘라 말했다.
아반티가 음식점 주인에게 말했다.
"내가 저 사람에게 말해 돈을 받아 주겠소."
그러더니 아반티는 남루한 차림의 사내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을 내게 다 주시오. 결코 손해를 보지 않을 테니까
말이오."
사내는 아반티의 말을 듣고 가지고 있던 동전을 그에게 주었다.
아반티는 그 동전을 두 손바닥에 움켜쥔 채 음식점 주인의 귀에 대고 냅다
흔들어대며 물었다.
"들립니까? 이 돈소리가 들립니까?"
음식점 주인은 동전이 손안에서 맞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말했다.
"들리죠."
아반티는 그제서야 흔들던 동전을 사내에게 주면서 이젠 가도 된다고 말했다.
"당신이 뭔데 저놈을 놔주는 거요? 난 돈을 받질 않았단 말이오."
주인은 사내의 앞을 가로 막고 아반티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반티는 말했다.
"당신네는 서로 값을 주고 받았지 않았소? 그러니 가야지."
"값을 갚았다구?"
"그러질 않았소? 저 사람은 당신의 음식 냄새를 맡고 돈을 안 주고, 당신은 저
사람의 돈 소리를 듣고 돈을 안 주어도 되니 결국 서로는 값을 치른 셈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음식점의 주인은 아반티의 말에 할 말을 잃고 가버리는 사내의 뒷모습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ff
[ 노를 젓는 군수
당조 때, 하역우라는 사람은 익창군 군수로 임명되었다.
그가 군수로 위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날, 그의 상관에 해당하는 차사 최박의
전문이 날라와 펼쳐보았더니 그곳엔 그리 유쾌하지 못한 매용이 씌여져 있었다.
차사 최박은 해마다 봄이 되면 들놀이를 나가 손님을 청해선 마음껏 먹고 즐기는
것이 그의 연중행사였다. 그런데 이해 봄에는 유별나게 용머리를 새긴 커다란
놀이배까지 한 척을 장만해서 친척은 물론 친구들까지 태우고 산해진미를 마련하여
가릉강을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물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날마다 술판을 벌이고
노래를 불렀는데 이것이 그의 일과였다. 게다가 놀이배가 지나가는 행정상의
군에서는 제일 좋은 술과 음식을 준비하였다가 최박을 접대해야 했고 또 백성들을
동원해 노를 젓도록 했다. 이날, 그런 최박이 보낸 전문의 매용은 놀이배가 익창군을
지날 때에 배의 노를 저을 사람을 보내달라는 명령을 보내왔던 것이다.
그러나 하역우는 몹시 정직하고 성품이 좋은 군수였다. 익창군은 원래 토지가
기름지고 자원이 풍부한 고장으로 농사의 젖줄인 가릉강까지 이 군을 거쳐 흐르고
있어 해마다 풍년을 맞이했음에도 백성들의 생활은 궁핍함을 면하지 못하였다. 이는
모두 관리들의 횡포와 세금 때문에 빚어진 결과였다.
그래서 하역우는 이곳으로 발령이 나면서 굳은 결심을 했다.
"옛말에 기러기는 소리를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 했는데 내가 이곳으로
부임해 와 백성들을 위해 일하고 백성의 존경을 받는 군수가 되어야지, 먹고 마시며
백성들의 피를 빨아먹는 권력은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 절대로 욕을 먹는 군수가
되어선 안된다."
그가 이런 굳은 결심을 다지고 있는데 오늘 느닷없이 이러한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마음 같아선 전문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차사 최박의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하역우는 백성들을 차출해 그의 배의 노를 젓게 하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그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전문을 들고 온 하인에게 말했다.
"배의 노를 저을 사람이 곧 도착한다고 전하거라."
하인이 돌아간 후 하역우는 두루마기를 벗어놓고 농군차림으로 최박 앞에
나타났다.
하역우의 그 농군차림을 본 최박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자네, 그게 무슨 꼴인가?"
"제가 직접 차사 나으리의 노를 저을까 해서 왔습니다."
최박은 하역우의 말에 가슴이 찔리는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애써 태연한 척 하며
말했다.
"자네는 한 군의 군수로서 백성들은 마음껏 부려먹을 수가 있는데 왜 백성을
보내지 않고 자네가 왔는가? 이건 신분의 권위를 추락시키는 일이 아닌가?"
"지금은 봄이라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느라 농군들은 눈코 뜰새 없이 바빠서 노를
저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할 일이 없는 제가 차사 나으리의 노를 젓겠습니다."
차사 최박과 일행들은 하역우의 말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최박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뱃머리를 돌려 익창군을 빠져나갔다.
그래서 군수가 노를 젓는다는 말은 봄바람을 타고 군 전체에 쫙 퍼졌다. 그래서
하역우는 '노를 젓는 군수'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ff
[ 세금을 줄인 장기
어느날, 조정의 대신 해서와 가정황제가 장기를 두게 되었다. 미쳐 한 판도 끝나기
전에 해서는 나라의 백성들 세금을 서푼이나 줄였다.
그때 관리들의 세금 찬탈의 횡포가 얼마나 많았던지 백성들의 원망소리가 날로
높아갔다. 그러나 가정황제는 장생불로만 꿈꾸면서 백성들의 고통은 아^36^예
안중에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어떤 의견도 황제에게 할 수 없도록 명령을
내렸다. 대신들은 별 수 없이 자신들의 관리에만 급급하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나 성미가 정직하고 백성의 고통을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해서는
그렇다고 황제가 어떠한 의견이라도 듣질 않는다는 걸 알고는 다른 방법을 써서
백성들이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의 실상을 알리리라 마음먹었다. 해서는 원래 장기의
상당한 고수였는데 이날 따라 머릿속엔 온통 백성들의 세금문제로 신경이 너무 쓰여
수가 제대로 풀리지 않고 점점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장이야!'를 외치는 가정황제의 얼굴엔 희색이 만면했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해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제서야 해서는 장기판에 정신을 집중시켰는데, 잠시
후엔 기세가 완전히 바뀌어 이번에는 오히려 가정황제가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이제는 해서가 판세를 수습하고 장을 부를 차례였다. 해서가 외쳤다.
"장이야! 천하 금전 서푼 줄이세."
가정황제는 단지 장군을 받느라 쩔쩔 매다보니 금방 해서가 뭐라고 했는지 듣질
못했다.
겨우 장군을 받아 수습을 했는가 싶었는데 이번에는 또 난데없이 해서의 말이 툭
튀어나오면서 장군을 부르는 것이었다.
"장이야! 천하 금전 서푼 줄이세."
가정황제는 이번에야 비로소 해서의 말을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닌 밤중에 밑도 끝도 없이 내뱉는 '천하 금전 서푼 줄이세'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말 자체가 유머스러워 듣기가 좋았다. 그래서 가정황제가
장을 부를 때 그 역시 해서의 그 밑도 끝도 없는 말을 무의식중에 되풀이했다.
"장이야! 천하 금전 서푼 줄이세."
황제의 그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해서는 얼른 장기판에서
물러나 땅에 엎드리며 말했다.
"소인은 분부대로 명을 집행하겠습니다."
가정황제는 느닷없는 해서의 행동에 무슨 영문인지 몰랐고 옆에서 구경을 하던
태감과 시녀들 역시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그저 해서의 행동을 멀거니 바라보기만
했다.
"전하께서 방금 '천하 금전 서푼 줄이세'라고 하셨으니 소인이 분부를 받들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거행하겠습니다."
봉건시대 황제의 말 한 마디는 곧 번복할 수 없는 지상명령이었고 그대로
집행해야만 했다. 가정황제는 그제서야 해서의 기지에 넘어가고 말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미 한번 내뱉은 말이었기에 어찌할 방도가 없는 터라 할 수 없이
전국의 백성들의 세금을 서푼씩 줄여 주었다. ff
[ 노두자
청조 때, 간륭황제가 북경의 한림원에서 전국의 지식인들을 뽑아 '사고전서'를
편집토록 했는데 주필은 그 중에서도 지식이 뛰어난 기윤이라는 사람이 맡았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선발된 사람들은 기윤을 정점으로 해서 편집에 들어갔다.
때는 마침 아주 무더운 여름철이어서 북경 시내는 온통 복사열로 대지가 끓고
있었는데 숨이 막혀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방울이 비오듯 쏟아지는데 더구나 비만한 기윤은 더욱 참질 못하였다. 그래서
윗통을 훌훌 벗어던지곤 알몸으로 앉아서 편집원고를 검토했다.
이때 누군가 갑자기 황제가 오신다고 소릴 쳤고 그 통에 편집실에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처신해야 좋을지 몰라 허둥댔다. 기윤도 마찬가지로 얼른 복장을 갖추려고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황제가 어느새 편집실 가까이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기윤은 옷을 걸치지도 못하고 책상 밑으로 기어 들어가 천으로 몸을 숨겼다.
하지만 기윤의 그러한 행동을 간륭황제는 이미 보고 있었다. 간륭황제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편집실로 들어갔다. 어찌할 바를 몰라 난감한 표정을 짓는
편집인들에게 간륭황제는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하더니 슬그머니 기윤의 책상
앞으로 다가가 의자에 앉고는 그저 아무런 기색도 나타내질 않는 것이었다.
편집실은 쥐죽은 듯한 정적만이 감돌 뿐, 조용하기만 했다.
한참이 지난 후, 기윤은 더 이상 더위를 참아낼 길이 없었고 더구나 실내가
조용해서 황제가 가버린 줄 알고 천을 살짝 제치곤 조그맣게 말했다.
"노두자(늙을 노, 머리 두, 아들 자: 영감이란 뜻) 갔나?"
책상 앞에 앉아 그 소리를 들은 황제는 얼굴에 진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기윤! 이리 썩 나오지 못할까? 뭐, 날보구 노두자라구? 이 무례한 놈
같으니라구! 내가 다른 죄는 다 용서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것만은 용서할 수 없다.
널 사형에 처해야겠다."
사형에 처한다는 말을 들은 여러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죽기라도 하듯 겁먹은
표정으로 온몸을 떨었다. 황제의 말 한 마디면 그것이 곧 법이었고 여태 말을
잘못해서 사형 당한 사람들을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기윤은 태연히 책상 밑을 기어나와 옷을 입고선 황제에게
아뢰었다.
"전하, 노두자란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이며 결코 소인이 지어낸 것이
아닙니다. 제가 해석해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기윤은 매우 침착한 태도로 말했다.
"황제를 만세(일만 만, 세월 세)라고 부르니 늙을 노자이고 황제를 국가수뇌(나라
국, 집 가, 머리 수, 정신 뇌)라고 하니 머리 두자이지요. 그리고 황제를 천자(하늘
천, 아들 자)라고 부르니 자이므로 이 세 글자를 합해서 '노두자'라고 한 것입니다.
절대로 소인이 전하를 욕되게 하기 위해 한 말이 아닙니다."
그제서야 간륭황제는 손으로 허연 수염을 쓸어내리며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재치가 아주 쓸만한 기윤이구먼. 그래, 너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ff
[ 농부와 상인
어느날, 한 농부가 산에서 나무 두 단을 해 가지고 힘겹게 산을 내려오고 있는데
우연하게 길가에 떨어진 돈주머니를 발견했다.
돈주머니를 주워 열어보니 번쩍이는 은전 열 다섯 닢이 들어 있었다.
"누가 잃어 버렸을까?"
농부는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주워들고 집으로 돌아와 병석에 누워 계신 어머니에게 돈주머니를 내밀었다.
그러나 기뻐하실 줄만 알았던 어머니는 이렇게 타이르는 것이었다.
"땀흘려 번 돈이 값진 것이고 그렇게 번 돈을 써야 보람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남이 잃어버린 돈을 탐내선 안되느니라. 빨리 이 돈의 임자를 찾아서 돌려 주거라!"
어머니의 타이름을 들은 농부는 두말없이 돈주머니를 주운 곳으로 부랴부랴
달려가 주인을 기다렸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고 있으려니까 과연 한 사람이 허겁지겁 달려왔는데 그의
얼굴은 바싹 여위어 있었고 두 눈은 번쩍거리는데 대뜸 상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농부는 연유를 설명하고 돈주머니를 상인에게 넘겨 주었다.
상인은 허리를 굽히며 거듭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감사를 표하던 상인은 돈주머니를 헤치고 은전을 세어보더니 일순간
태도가 돌변하여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자네가 주웠던 이 돈주머니엔 분명 서른 닢이 들어 있었는데 지금 보니 열 다섯
닢밖에 안남았구만. 그 열 다섯 닢을 어쨌나? 말하게."
순박한 농부는 어처구니 없는 이 말에 눈앞이 캄캄했다.
"내가 주웠을 땐 분명히 그 돈 뿐이었소. 돈을 주워 돌려준 것만 해도 고마울
텐데 오히려 내게 바가지를 씌울 셈이오?"
"은전을 당신이 감추지 않았다면 발도 달리지 않은 은전이 그럼 어딜 갔단
말인가?"
상인은 발끈 화를 냈고 농부도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 없어 언성을 높여가며
항의를 했다. 하지만 끝내 해결이 나지 않아 군수에게로 찾아갔다.
군수는 백성의 시비를 아주 정확하게 가려주어 백성들에게 칭찬이 자자한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일어난 일들을 소상하게 말해 보아라."
농부는 처음부터 일어난 일을 군수에게 차근차근 아뢰었다.
"돈주머니엔 처음부터 열 다섯 닢뿐인 은전이었고 저는 하나도 감추질
않았습니다."
"어찌 사람인데 이 돈을 주운 순간, 네가 가지려 하질 않았단 말인가?"
"아닙니다. 처음엔 저희 살림이 워낙 궁핍한데다 병들어 누워 계신 어머니가
계셔서 저 돈을 가지려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 땀흘려 번 돈이 아니라 주운
것이니 써선 안되고 그런 것을 탐내는 것이 나쁘다고 타이르셔서 주인에게 돌려주려
했습니다."
"그렇다면 돈을 주운 것을 처와 자식들에게 이야길 했나?"
"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외엔 이 일을 모릅니다."
"네가 정말 한 닢도 가지지 않았단 말이지?"
"저는 정말 결백합니다. 하늘에 맹세합니다."
"너도 할 말이 있겠지?"
군수가 얼굴을 돌려 상인에게 물어왔다.
"나으리, 이 자가 말한 것은 전부 거짓말입니다."
"거짓말이라는 근거라도 있나?"
순간 상인은 흠칫 놀라더니 이내 진정을 하고 태연을 가장하며 말했다.
"나으리, 저의 돈주머니엔 분명히 서른 닢이 들어 있었습니다. 사람이란 돈 앞에선
욕심이 생기는 법입니다. 저 자가 돈을 보고 열 다섯 닢을 꺼내간 게 분명합니다.
나으리께서 정확하게 처리해 주십시오."
"분명 그게 사실이란 말이지?"
"사실이구말구요. 분명히 서른 닢입니다.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서로가 자신들이 거짓말이 아니라고 말하고 또 증거도 없다?"
군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어 나갔다.
"비록 증거는 없지만 판결을 내리겠다."
군수는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빙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농부가 한말엔 거짓이 없다. 만약 돈을 절반 숨기는 욕심이 있었다면 전부
가졌을 것이다. 돈을 찾아 준 행동은 그 마음이 깨끗하다는 것을 말한다."
군수는 이어 상인을 보고 말했다.
"너는 분명 서른 닢이 들어 있었다고 했으니 열 다섯 닢이 든 돈주머닌 네 것이
아니다. 이 돈주머닌 임자가 없으므로 너의 늙으신 어머니와 처자식을 위해 쓰도록
해라. 만약 네가 우연하게 은전 서른 닢이 든 돈주머니를 주우면 저 상인에게
돌려주도록 해라." ff
[ 진짜마을과 가짜마을
장건은 서한시대에 이름있는 외교관이었다.
한 번은 한무제가 그를 신강, 이란, 이라크 지역에 파견하여 경제와 문화교류를
하도록 하였다.
헌데 장건이 이 지역으로 갈 때 이상스런 일이 발생했다.
장건은 몇 십 명의 일행을 거느리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장장 삼 개월이나
걸었다. 이날 그들 일행이 사막을 통과하는데 앞에 높은 산이 가로막았다. 바라보니
길이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없는 것 같기도 했다. 바라보이는 높은 산 밑에 그다지
멀지 않게 두 마을이 산을 등지고 앉아 있었는데 그 마을이 바로 들은 바 있는
진실만 말하는 진짜마을과 항상 거짓말만 하는 가짜마을이었다. 하지만 어느 곳이
진짜마을이고 어느 곳이 가짜마을인지 도저히 식별할 방법이 없었다. 어떤 수를
써서든지 진짜마을과 가짜마을을 식별하여 진짜마을사람의 길안내를 받아 이 험준한
산을 순조롭게 넘어가는 것이 그들의 급선무였다.
장건은 몇 명을 두 마을로 보내서 탐문해 보라고 했다. 이윽고 탐문하러 갔던
일행이 돌아와 도저히 분간할 방법이 없다고 말하였다.
"너희들은 어떤 식으로 물어보았나?"
"저는 남쪽 마을로 가 백발노인을 만나 이렇게 물었지요. '할아버님, 저는 길가는
나그네인데 지금 하늘에 떠 있는 것이 태양입니까, 아니면 달입니까?' 제 생각으론
그가 태양이라고 대답하면 이 마을은 진짜마을이 틀림없고, 만약 달이라고 한다면
가짜마을이 틀림없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 노인은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아무 말도 안하고 그냥 가버렸습니다."
"저는 북쪽 마을로 갔는데 한 여인이 있길래 서쪽 산을 가리키며 저 쪽이
서쪽이요, 아니면 동쪽이오 하고 물었더니 글쎄 그 여자는 들은 척도 안하고 그냥
휙 가버렸습니다."
"그런 식으로 물어봐선 식별해내기가 어렵겠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장건이 궁리를 거듭하고 있는데 이때 한 일행이 급하게 달려와 말했다.
"제가 방법을 생각해냈어요. 먼저 한 마을에 들어가 만나는 사람을 보고 문제를
제기하지요. 그 문제는 반드시 본인이 어느 마을에 와 있는가 하고 물어야만 그
사람이 대답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알아 낼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제기하면 좋겠나? 마을로 들어가 직접 진짜마을과 가짜마을을 묻는다면
두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마을이 진짜마을이라고 할 것이다. 만일 남쪽 마을로
가 북쪽 마을을 묻고 북쪽 마을로 가 남쪽 마을을 묻는다면 서로 상대방을
가짜마을이라 할 것이니 식별할 방법이 없잖은가?"
장건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끝에 드디어 좋은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는 홀연히 남쪽 마을로 걸어가 마침 먼저 일행이 만났었던 백발노인을 만나게
되었다. 장건이 물었다.
"어르신, 제가 만약 북쪽 마을사람들을 찾아가 여기 남쪽 마을이 진짜마을인지
그렇잖으면 가짜마을인지를 물었을 때 그들은 뭐라고 대답할까요?"
노인은 잠깐 떨떠름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분명 우리 마을을 가짜마을이라고 말할 거요."
이 말을 들은 장건은 즉시 노인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렸다.
"그렇다면 이 마을이 진짜마을이군요? 어르신께서 일행의 길 안내를 맡아
주십시요."
어느 마을이 진짜마을이고 어느 마을이 가짜마을이란 것을 장건은 판단했다.
노인은 장건의 그 뛰어난 지혜에 탄복하면서 서슴없이 길안내를 맡아 주었다. 그
험준한 산맥을 넘도록 아직껏 그 수수께끼같이 아리송한 문제를 풀지 못한 일행들은
더 참지 못하고 장건에게 어떻게 식별했는가를 물었다.
장건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실은 아주 간단한 일이지. 진짜마을 사람들은 가짜마을 사람들의 거짓말을
그대로 말할 것이며 만약 가짜마을 사람들이라면 진짜마을 사람들이 만할 진실한
말을 거짓말로 꾸며 말할 것이 아닌가? 그 백발노인이 북쪽 마을사람들이 남쪽
마을을 가짜마을이라고 말할 것이라고 대답할 때 나는 남쪽 마을이 진짜마을이라고
생각했소." ff
[ 비를 내리지 않는 보살
명조 때, 척현이 절강성 귀한군 군수로 임명되어 그가 그곳으로 부임하던 날은
매우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불볕더위는 어쩌다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마저 삼켜 버리고 군수를 실은 가마채를
메고 가는 가마꾼들은 땡볕에 머리가 터져나갈 듯했다. 땀은 비오듯 온몸을
흘러내렸고 심지어 가마 안에 앉아 있는 척현도 땀을 비오듯 흘렀다.
그들 일행이 성문 안으로 들어서자 절이 하나 나타났는데 많은 신도들이 향을
피우고 보시를 할 물건들을 들고 왔다갔다했다 척현은 가마를 멈춰 세우고 가마에서
내려와서 그 광경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가뭄이 들어 곡식은 말라 죽게
되자 누군가 비를 내리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비는 행사를 하고 있다고 한 부하가
척현에게 알려왔다. 그리고 이 절에선 무슨 소원이든지 빌기만 하면 이루어지는
아주 영험한 절이라고 덧붙였다.
척현은 그의 말을 듣고 도리어 쓴웃음을 지었다.
"황당한 얘기지. 빈다고 무슨 소원이든 이루어진다는 것은 신도들을 사기치려는
수작에 불과해."
그러나 이튿날이 되자 척현이 되려 비가 내리길 바라는 백성들의 틈에 끼어 빌고
있잖은가?
그렇게 연 사흘을 백성들과 함께 빌어도 맑은 하늘은 여전히 쨍쨍한 땡볕만
대지에 퍼붓고 있었다. 이때 척현이 백성 틈에서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보살을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었다.
"사람들이 보살을 섬기면서 손이 닳도록 빌었는데 그렇다면 응당 비를 뿌려야
하잖은가! 사람들이 온 정성을 다해 빌고 빌었는데 여지껏 빗방울 한 떨어뜨리기
않으니 당신 보살을 어떻게 믿겠는가?"
척현은 말을 마치더니 보살의 목에 돌을 매서 강물에 처넣으라고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사람들은 척현의 명령에 깜짝 놀라며 훗날 재앙이 닥칠까봐 속으로 전전긍긍
했다. 명령대로 보살은 목에 돌을 매어 강물에 처넣어졌다.
며칠이 지나도 사람들이 염려한대로 재앙은 일어나지 않았고 대신 큰비가 내려
가뭄은 해갈되었다. 백성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이 일은 있은 후 얼마 안되어 척현이 부하들과 함께 행정을 살피기 위해 배를
타고 강을 건너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배가 그때 보살을 처넣은 곳에 이르자 돌연
요란한 물소리가 들려오더니 하나의 물체가 배 위로 훌쩍 뛰어오르는 것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날 목에 돌을 매어 처넣은 보살이었다.
사람들은 혼비백산했는데 이것이 보살이 보복하는 것이라며 얼굴이 하얗게 질려
쩔쩔매는 것이었다. 다만 척현만이 아무런 동요없이 오히려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아^36^예 속시원히 태워버려야겠다."
그는 부하들과 함께 보살을 기슭으로 옮겨가 나무를 가져와 화장을 시켰는데 잠시
후 보살은 한줌의 재로 변했다.
그리고 척현은 슬그머니 몇 명의 부하를 시켜 포승줄을 가지고 강변에 숨어
있으라고 일렀다.
"만약 누가 강물에서 기슭으로 올라오면 즉시 체포하도록 해라."
이윽고 척현 일행이 그곳을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아 물 위에 두 사람의 머리가
불쑥 솟구쳐 오르더니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기슭으로 헤엄쳐 나왔다. 바로 그때
숨어 있던 척현의 부하들이 그들을 체포해 척현에게로 끌고갔다.
척현이 직접 심문을 했다. 그들은 원래 보살을 앞세워 돈과 재물을 사기쳐 온
자들로서 척현이 자기들의 돈벌이를 망쳐놓았다고 앙심을 품고, 보살을 척현이 탄
배 위로 올려보내 척현을 위협주고 민심을 혼란시킨 다음 그것을 빌미로 사기를
계속 치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척현의 지혜에 그만 모든 것이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ff
[ 진주
청나라 때 북경시내에는 '덕무'라는 점포가 하나 있었는데 이 점포에서 근무하는
유소삼이란 젊은 점원은 매우 총명하고 지혜가 뛰어난 사람이었다.
어느날 아침, 유소삼이 여느 때처럼 점포의 문을 열고 모든 청소를 끝내고 있는데
한 낯선 중년의 사내가 문을 열고 들어와 빨간 나무함을 꺼내놓았는데 그 속에 박혀
있는 진주 한 개가 눈부시게 반짝이었다. 가게 동료 왕씨가 그 진주를 들고 보더니
은전 백 냥에 사겠노라며 즉석에서 전표를 끊어 주었다.
"진주 한 개에 은전 백 냥, 1개월 후에 결산하며 월이자 2%임을 확인한다."
진주 주인은 전표를 받아쥐곤 히죽히죽 웃으며 떠나갔다.
유소삼이 다가와 말했다.
"아저씨, 그 진주가 진짜입니까?"
"난 여기서 삼십 년도 넘게 일해오면서 아직 실수한 적이라곤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이라고 실수하겠냐?"
왕씨는 자부심에 넘쳐 말했다.
"그런데 그 손님의 표정이 수상하던데요?"
유소삼은 저으기 걱정스런 말투로 말했다.
"아저씨가 진주를 받아들고 감정해보시니깐 그 손님은 몹시 당황해하다가,
아저씨가 흥정을 하시니까 금새 기뻐하며 그 전표를 받아들고 재빨리 떠나갔어요.
그 진주를 더 자세하게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요."
왕씨는 그 진주를 다시 꺼내들고 보면서 어쩐지 사기꾼에게 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아까와는 달리 진주가 가짜처럼 보였다. 점포에 모인 다른 사람들은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능력이 없었다. 그제서야 자신의 행동이 경솔했음을 알고 얼른 점포
주인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시내 도처에 있는 감정가들을 불러 감정을 의뢰했다.
"지금 어떤 장사꾼들은 유리로 가짜 진주를 만들어 내는데 그 기술이 어찌나
뛰어나던지 눈으로 도무지 분간한 길이 없지."
한 진주보석상이 말했다.
"하지만 구별해 낼 방법은 있소."
그는 호주머니에서 작은 손칼을 꺼내 들더니 진주알을 왼손에 집고 한 번
긁어보는 것이었다. 그리곤 긁어낸 가루를 손가락에 묻혀 비벼본 후, 그 보석상은
자신에게 말했다.
"이 진주는 유리로 만들어진 가짜 진주요, 진짜 진주는 긁으면 가루가 되고 가짜
진주는 긁으면 덩이가 되요."
점포 주인은 화가 나서 왕씨에게 호통을 쳤다.
"당신은 진짜와 가짜도 구별하지 못하는가! 한 달 후에 그 놈이 안 오면
계약금으로 물어준 걸 자네가 책임져!"
잔뜩이나 속이 상해 있던 왕씨는 주인에게 호된 꾸지람까지 듣고 보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가짜를 판 그놈을 당장이라도 만난다면 주리를 틀고픈
마음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유소삼이 왕씨에게 말했다.
"아저씨, 걱정하지 마세요. 돈 스무 닢만 제게 주시면 그 손님을 찾아내겠어요."
왕씨는 유소삼이 워낙 총명하고 지혜가 뛰어난 것을 알고 있어 그동안 자신이
모아온 은전 스무 닢을 그에게 주었다.
유소삼은 곧 왕씨의 명의로 된 초대장을 띄우고, 어느날 음식점에서 연회를
열기로 했다.
이날 저녁 초대했던 사람들이 음식점에 모여 즐겁게 여흥을 즐겼다. 술이 몇 순배
돌자 유소삼이 그 작은 빨간 나무함을 들고나와 여러 손님들 앞에서 말했다.
"우리 점포의 왕씨 아저씨가 진주를 하나 샀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이
안되고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한 번 감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진주를 보고 어떤 사람은 진짜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가짜라고 했다.
옆자리에서 구경을 하고 있던 사람들도 머리를 갸웃거리며 진주를 쳐다보았다. 이때
유소삼이 큰소리로 말했다.
"이것은 가짜가 분명합니다. 우리 왕씨 아저씨가 사기를 당한 것입니다. 여기에
계신 여러분은 이것을 자세히 보셨다가 다신 이런 사기 당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말을 마친 유소삼은 나무함에서 진주를 꺼내 땅바닥에 놓고 준비한 망치로 그것을
단번에 박살내버렸다.
그후 유소삼이 진주를 박살내버렸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북경시내에 펴졌다. 이에
가장 안절부절 못하고 조급해 하는 사람은 역시 당사자인 왕씨였다.
"계약금은 물론 전표를 써주었는데 증거가 될 가짜 진주를 깨버렸으니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많은 돈을 다 물어 주어야겠구만."
"아저씨, 조금도 염려하지 마세요. 그 손님은 계약금과 전표를 가지고 스스로
찾아올 것이고 그 후의 일은 제게 맡기세요."
유소삼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과연 한 달이 지나자 그 손님은 얼굴에
득의에 찬 미소를 흘리면서 점포에 나타났다.
"결산하려 왔소이다."
왕씨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진주는 이미 깨버려 없어졌기에 꼼짝달싹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판이었다.
그러나 유소삼은 태연스럽게 다가가 그가 내민 계약금과 전표를 받아쥐며 말했다.
"제가 당신의 물건을 가져 오겠소."
유소삼은 이내 그 빨간 나무함을 꺼내오더니 그 손님에게 내밀었다.
"그 나무함을 열어보시오."
손님이 황급하게 나무함을 열자 그곳엔 깨버렸다는 가짜 진주가 그대로 있었다.
"당신이 가져온 진주요!"
손님은 당황한 나머지 나무함을 호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쑤셔넣으며 누구에게
쫓기우듯이 황급하게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왕씨는 한편 기쁘기도 했고 한편
어떻게 된 일인지 도무지 영문을 몰라 그저 멍하니 유소삼의 얼굴을 바라봤다.
"제가 많은 사람을 모아놓고 진주를 깨면 필연코 소문이 밖으로 퍼지게 되지요.
손님이 그 소문을 듣고 진주가 정말 없어진 줄을 알고 태연하게 진주를 내놓으라고
하지 않으면 계약대로 돈을 요구하려고 마음놓고 찾아오게 될 것 아닙니까? 제가
남에게 부탁해서 그것과 똑같은 실물을 하나 만든 것을 부쉈어요." ff
[ 슬기로운 마부
서한 시대 폭이장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집은 하남성 신야였다.
그는 어느 지방관리의 마부였다. 그가 키우는 말들은 어떤 말이든 모두 살이 쪘고
힘이 세기로 유명했다.
그러던 어느날, 주인이 몹시 아끼는 말이 있었는데 갑자기 병에 걸려 죽었다.
폭이장은 그것을 살려내지 못한 안타까운 마음에 죽은 말 곁에서 이틀날 이틀밤을
새며 슬픔을 가누질 못했다. 주인은 말이 죽은 것이 폭이장이 먹이를 잘못 먹여서
죽은 것이라며 폭이장을 서북부로 쫓아버렸다.
서북부로 쫓겨난 어느날 정오 무렵, 일을 마치고 돌아온 폭이장은 뜻밖에
물웅덩이 옆에서 몇 마리 말이 물을 먹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말들은 물을
먹으며 이따금 머리를 쳐들고 사방을 살피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한 마리 말은
특별히 키가 크고 털은 윤기가 흘렀다. 폭이장은 말을 보자 자기도 모르게 그것을
잡아보고 싶었고 그래서 슬금슬금 발걸음을 옮겼다. 헌데 미처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야생말들이 경계의 눈초리를 보이더니 도망을 쳐버렸다. 이튿날, 역시 그
시간에 그 몇 마리 말이 또 물웅덩이로 와서 물을 먹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어제처럼 다가갔지만 여전히 말들은 도망치는 것이었다.
이렇게 며칠 동안 똑같은 방법이 되풀이 되었으나 번번히 실패로 끝났다.
어떻게 하면 그 말들을 붙잡을 수 있을까?
그후, 폭이장은 진흙을 이겨 말들이 날마다 와 물을 먹는 물가에 인형을 세우기
시작했다. 말이 오는 시간을 피해서 하루에 조금씩 쌓아 올렸다. 말들은 어김없이
날마다 그 시간이 되면 물가로 내려왔고 진흙으로 만든 인형은 날마다 조금씩 쌓아
올라가 점차 사람 형태의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드디어 인형이 완성되었지만
말들은 이미 인형에 날마다 습관이 들어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끝내 인형은
폭이장의 체구와 비슷하게 되었고 인형에 밧줄을 매달아 놓아도 놀라지 않으며
이전처럼 그 시간이면 내려와 물을 실컷 먹은 후 유유히 떠나가는 것이었다.
이렇게 또 며칠이 흘러갔다. 폭이장은 인형을 슬그머니 다른 외딴 곳으로 옮기고
자신이 인형 색깔과 비슷한 옷을 입고 손에 밧줄을 들고 인형인 것처럼 물가에 서
있었다. 야생말들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어느날 폭이장은 또 인형처럼 가만히 그곳에 서 있었다. 야생말들은 또 시간을
맞추어 물을 먹으러 내려왔다. 그는 그중 가장 크고 힘이 센 놈을 지켜보고 있다가
말이 머리를 숙이고 물을 마실 때 익숙한 솜씨로 밧줄을 던져 말의 다리부터 걸고
이어 목을 걸었다. 야생말은 울부짖으며 밧줄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폭이장의 말
다루는 솜씨에 꼼짝도 하질 못했다. 나머지 말들은 어느새 멀리 달아나 버렸고
폭이장은 그 말을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폭이장은 이 말을 국경을 지키고 있는 한 장군에게 선물로 보냈다. 그후 한무제가
이 일을 알게 되어 명령을 내려 말을 북경으로 가져오게 했다. 한무제가 말을 보니
과연 훌륭한 말이었다.
폭이장도 그 덕에 쫓겨난 서북부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가족들과 다시
행복한 생활을 누리게 되었다. ff
[ 없는 글자풀이
이 이야기는 북송 시대의 구준이 성안군 군수로 있을 때의 일이다.
이날도 가을하늘은 청정하고 햇빛은 포근했다. 지방순찰을 마치고 가마에 앉아
군청으로 돌아오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구준이
가마를 멈춰 세우고 가마의 들창을 밀어 밖을 바라보니 서당 훈장 같은 차림새를 한
노인이 꾀죄죄한 보따리를 길가에 내려놓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언제부터
그렇게 앉아 있었는지 얼굴은 온통 눈물투성이었다. 구준은 부하에게 연유가
무엇인지 물어보라고 하였다.
"이보시오, 노인장! 무슨 일로 이렇게 길가에 앉아 슬피 울고 있소?"
노인은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군수 나으리께서 지금 여기에 계시니 무슨 사연인지 말씀해보시오."
군수 나으리라는 말을 들은 노인은 이내 눈물을 닦고 몸을 돌려 구준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었다. 구준은 어떤 일이든 공정하게 처리하고 지식과 재능을 두루 갖춘
군수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노인은 자기의 억울한 사연을 말하기 시작했다.
노인은 어느 한 부잣집에서 글을 가르쳤다. 부자의 아들 천보는 원래 성미가
괴팍한데다 부모들마저 그를 응석받이로 키워놔서 글을 가르치기가 매우 어려웠다.
이 노인이 글을 가르치기 전에 벌써 여러 선비들이 거쳐갔다. 하지만 이 노인
선비는 그런 괴팍한 천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호구지책을 위해 부자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어느덧 글을 가르친 지가 삼 년이 흘렀다.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이 며칠에 한 번씩
일어났지만 노인은 무던히도 참아냈다.
이날, 부자와 그 아들 천보가 함께 노인의 서재로 성큼 들어섰다. 어쩐지 그들의
행동이 이상하다 할 만큼 미심쩍었는데 아닌게 아니라 부자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아들보고 종이에 글을 쓰라고 하더니 노인더러 무슨 글인지 알아맞춰 보라는
것이었다.
노인은 천보가 쓴 글자를 보고 그만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글자는 우물정자의
한 가운데에 점을 찍어놓은 것이었다. 노인은 여지껏 살아오면서 글을 가르치는
것을 평생 직업으로 삼고 살아왔지만 이런 글자는 처음이라서 몹시 당황했다.
"이 글자는 우물 속에 돌을 떨어뜨렸을 때 소리를 내는 '탕'자^36^예요. 이런
글자도 모르는 주제에 내게 글을 가르친단 말이오?"
천보는 제딴에 큰일이라도 해낸 것처럼 제법 우쭐거리며 말하더니 얼굴을 돌려
자기 아버지에게 말하는 것이다.
"아버지, 앞으론 이런 무식한 선생에겐 안 배울래요. 그러니 빨리 가라고 하세요!"
노인 선비는 쏟아져내리는 눈물을 삼키며 보따리를 둘러메고 삼 년이란 세월을
보낸 정든 서재를 무거운 발걸음으로 나섰다. 한참 동안 그렇게 무거운 발걸음을
방향도 없이 옮겨놓던 그는 지난 삼 년 동안 고생만 하고 끝내 이런 지경에 이른
자신의 처지가 한심스러워 회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부자가 없는 글을 만들어내 공연히 생트집을 잡아 노인 선비를 내쫓은 것이
분명했다. 구준은 금새 그에 맞설만한 방법을 생각해내고 그 부자와 아들을
군청으로 끌고 오라고 하구선 돌아갔다.
이윽고 부자와 그 아들이 군청으로 끌려왔다. 구준이 부자의 아들 천보에게
말했다.
"네가 나이는 어려도 유식하고 총명하다 하니 이 군수가 오늘 너의 가르침을
받고자 한다."
말을 마친 구준은 붓을 들어 '죽'자와 '육'자를 써서 천보에게 내밀었다.
"이 글자가 무엇이냐?"
천보는 그 글자를 보더니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구준은 단번에 호통을 쳤다.
"이 글자도 알지 못한단 말이지? 여봐라, 곤장 열 대를 두들겨라!"
천보는 바지를 벗기우고 엉덩이를 맞는데 처음 맞아보는 매라서 그런지 그는 죽을
것 같은 비명을 질러댔다.
"아버지는 그래도 아들보단 나을 것이다. 이렇게 쉬운 글자는 부자는 알 수
있겠지."
구준은 이번엔 부자에게 그 글자를 내밀었다.
부자는 호박같이 큰 머리를 이쪽저쪽으로 갸우뚱거릴 뿐 대답하질 못했다.
"이렇게 쉬운 글자도 모르다니, 여봐라! 곤장 사십 대를 쳐라!"
부자가 두 팔을 뒤로 묶인 체 곤장을 맞으면서 그는 아들 이상의 비명을
질러댔다.
구준이 부자에게 물었다.
"이 글자의 윗부분이 무엇이냐?"
"죽자입니다."
"아래는?"
"육자입니다."
구준은 호탕하게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위에는 대나무 죽자이고, 아래는 고기 육자이니, 대나무로 고기를 때리는 것인데,
'죽'자와 '육'자를 합한 자는 대나무로 고기를 때리는 소리를 나타내는 뜻이다. 우물
정자에 점을 찍어 돌을 우물 속에 떨어뜨려 나타내는 소리 '탕'과 같이 이 글자도
'탕'자이다. 대나무가 너의 고기덩어리 엉덩이를 때리는데도 모른단 말이냐?
그렇다면 알 때까지 더 때려야겠다!"
그제서야 부자와 그 아들은 정신이 번쩍 들어 두 손을 마구 비벼대며 용서를 비는
것이었다.
"너희 두 부자가 보아하니 진심으로 뉘우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곤장은 더 치지
않겠다. 그러나 이 '죽'자와 '육'자를 집으로 가지고 가서 잘 보관하도록 해라. 절대
찢어버리거나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라."
구준이 엄숙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 훈장선생을 다시 모시도록 해라. 만일 또 괄세하거나 말썽을 부릴
때는 대나무로 모시겠다!"
"네, 네"
그들은 연신 허리를 굽신거리며 부랴부랴 꽁무니를 뺐다. ff
[ 우물 속을 보고 살인범을 잡다.
송조 시대, 장승이 강소의 진강군수로 있을 때 이러한 일이 발생하였다.
어느 한 부인의 남편이 외출한 지 며칠이 지나도 집으로 돌아오질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마을 동쪽 우물 속에 사람이 빠져 죽었다고 해서 그 부인이
허둥지둥 달려가 우물 속을 내려다보고는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저 사람이 내 남편이^36^예요. 어느 놈이 죽였는지, 앞으로 난 어떻게 살라구!"
그녀의 목놓아 우는 통곡소리를 들은 몇몇 할머니들도 함께 동정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위로를 아끼지 않았지만 그럴수록 그녀는 오히려 더 구슬프게
우는 것이었다.
이윽고 남정네들이 소문을 듣고 달려와 보곤 곧바로 관청에 신고를 했다. 신고를
받은 장승은 만사를 제쳐놓고 재빨리 현장에 도착했다.
부인은 관청에서 나온 관리들을 보더니 더욱더 서럽게 울음을 터뜨리며 몸부림을
치는 것이었다.
원래 사건을 많이 다루어서 경험이 풍부한 장승은 제일 먼저 시체를 발견한
사람을 불러 연유를 상세하게 물었다. 그리곤 부인이 우물가에 도착해서부터의 모든
행동을 물어본 후 허리를 굽혀 우물 속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들여다보던 장승은 벌써 살인범이 누구라는 것을 알았다. 살인범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죽은 자의 처, 통곡하고 있는 여인이었다.
그래도 장승은 아무런 내식도 나타내질 않고, 그녀를 한쪽으로 가 있게 한 후,
마을 사람들을 보고 우물 속의 시체가 누구인가를 확인해보라고 했다.
사람들은 긴장하고 두려운 표정으로 슬금슬금 우물가로 모여들었다. 장승은 한
사람씩 우물 속을 들여다보게 했다. 사람들은 영문을 몰라 머리를 갸웃거리며 우물
속을 들여다보니 악취가 코를 찌를 뿐 우물 속은 컴컴해서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사람들이 말했다.
"우물이 너무 깊어서 잘 보이질 않는데요. 시체를 건져내서 확인해야겠어요."
"건져내서 확인하는 것은 단지 죽은 사람이 누구라는 것을 확인할 따름이지 그
사람을 죽인 범인은 잡아낼 수 없다. 나는 이미 범인이 누군가를 알고 있다."
이렇게 말한 장승은 즉시 부하를 시켜 아직도 맨땅에 질펀하게 앉아 통곡하고
있는 죽은 자의 부인을 관청으로 끌고 가게 하였다.
마을사람들은 어리둥절해졌다. 어떻게 저 여자가 자기 남편을 살해한 범인이라고
단정을 지을까?
장승이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두 우물 속을 들여다보아도 죽은 자가 누구인지 구별하지
못했는데 이 여자는 한 번 들여다보곤 자기 남편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저 여자가
자기 남편이 이미 우물 속에 빠져 죽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왜 장승이 이 여자를 관청으로 끌고 왔는지 그 연유를 알았다.
장승이 엄하게 심문을 하자 처음엔 펄쩍 뛰던 여자가 순순히 자백을 하게 되었다.
어떻게 해서 보이지 않는 남편의 시체를 보고 남편이라고 했는지 그것이 부인할 수
없는 증거였다. 그녀는 남편을 어느 정부와 함께 살해한 후 우물 속에 처넣었던
것이다. ff
[ 연꽃 아가씨
이 이야기는 몹시 흥미로운 신화이다. 옛날, 어느 한 청년이 있었는데 이름은
랑랑이고 가정이 너무 가난하여 집을 떠나 먼 타관땅의 어느 관리가 사는 집의
정원을 꾸미는 일을 하게 되었다.
정원은 몹시 우아하고 아담하게 꾸며져 있었다. 자연석을 쌓아올려 한껏 풍취를
나타내고 정원 한 가운데엔 자그만한 연못이 있었는데 연꽃이 한창으로 피어
있었다. 연못가엔 정자가 있었고 그곳에서 연못을 가로지르는 무지개 같은 작은
다리가 걸쳐 있었다. 그 정자에 앉아 있노라면 연꽃에 구르는 이슬방울과 연못
속에서 노니는 고기떼들이 헤엄치는 모습이 대단한 운치를 이루고 있었다.
랑랑이 이 정원을 가꾸고 관리해 온 지 어느새 몇 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어느날 밤, 사방은 쥐죽은 듯이 고요했다. 정자에 홀로 앉아 있는 랑랑의 마음은
괜스레 우울하고 쓸쓸하기만 했다. 나이가 벌써 서른이 가까웠고 아직 독신인데다
고향을 떠나 객지생활에 외로움을 떨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랑랑은 정원지기로서 틈틈이 시간나는대로 학습에 열중하는 매우 총명한
사람이었다.
달빛이 비추는 연꽃잎을 찬찬히 바라보며 고기들이 헤엄치다 일으키는
물방울소리를 조용히 듣고 있던 그는 새삼스레 낮에 배운 한 수의 시가 떠올라
혼잣말처럼 나직히 불러보았다.
"강남의 아름다운 연꽃, 연꽃잎이 물 위로 떠 있고 고기떼들은 연꽃잎 사이에서
노니는 구나."
그러나 그가 미처 다 읊기도 전에 누군가 그 시의 뒷부분을 빼앗아 읊는 것이
아닌가?
"고기떼들은 연꽃을 동서로 헤엄치고, 고기떼들은 연꽃을 남북으로 잇네."
청아한 목소리와 함께 느닷없이 연못 한 가운데서 아릿다운 아가씨가 유유히
솟아오르더니 랑랑의 앞으로 구름처럼 흘러왔다.
랑랑은 자못 놀랍기도 했지만 놀라움보다 먼저 그 아가씨의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 아가씨의 몸에서는 그윽한 연꽃향기가 물씬 풍겨왔다.
"랑랑께서 시를 읊는 소리에 제가 깨어났습니다. 저는 연꽃이^36^예요."
"연꽃아가씨?"
"그래요. 그렇게 불러 주세요."
랑랑은 여지껏 이토록 아름다운 여자를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보기는 난생
처음이라 몸을 어떻게 가누어야 할지 몰랐다.
"랑랑께선 연꽃을 좋아하시는지요?"
연꽃아가씬 정겨운 눈길로 랑랑을 쳐다보았다.
"좋아합니다."
랑랑의 가슴은 쿵쿵거려 자칫 조용한 어둠 속에서 연꽃아가씨에게 들릴까봐
진정시키려 애썼다.
"연꽃은 깨끗하고 물위에 조용히 떠 있어 제가 제일 좋아하는 꽃입니다."
그리곤 랑랑은 마치 그녀가 자신에겐 하늘이 내려주신 천생배필이라 생각하고
다시는 연못으로 돌아가지 말아달리고 애절하게 간청을 했다.
"안됩니다. 저는 날이 밝으면 다시 한 송이 연꽃으로 돌아가야 해요. 그러나 한
가지 방법은 있어요. 만일 랑랑께서 연못 가운데에서 저를 찾아내신다면 저는
랑랑의 아내가 될 수 있어요."
이윽고 날이 천천히 밝아오기 시작했다. 연꽃아가씨는 자못 아쉬운 듯 랑랑과
작별을 하곤 연못 속으로 사라졌다. 해가 점점 떠오르기 시작했다. 연못을 가득
메워 층층이 겹을 이룬 연꽃잎 가운데 그러나 연꽃아가씨의 연꽃이 어느 것인지
구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랑랑은 한참을 생각하다 드디어 연꽃아가씨의 연꽃을 알아낼 방법을 생각해내곤
기다란 대나무로 가볍게 연꽃을 다독이며 말했다.
"연꽃아가씨, 분명히 연꽃아가씨 입니다."
과연 그 연꽃은 점차 사람의 형상으로 변하더니 이내 수면 위로 솟구쳐 올라
랑랑에게로 다가왔다. 연꽃아가씬 양쪽 볼에 발그스레한 홍조를 띠고 랑랑에게
물었다.
"랑랑은 어떻게 저의 연꽃인지를 아셨죠?"
"여름의 이슬은 밤중부터 맺는 것이오. 아가씬 날이 거의 밝았을 때 연못으로
갔으니 이슬이 맺힐 수가 없죠. 그래서 이슬이 없는 연꽃이 바로 아가씨라
생각했죠."
연꽃아가씨는 밝은 웃음을 지으며 랑랑의 품으로 안겨들었다. ff
[ 말 한 마디 때문에
청조 말년, 절강의 상인 장삼과 주생이 있었는데 이들은 몹시 친한 친구였다.
어느 하루, 그들 둘은 호북으로 장사를 떠나기로 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배 한
척을 빌려서 이튿날 아침 일찍 떠나기로 배 주인과 약속을 했다. 이튿날, 새벽에
장삼의 처 장왕시는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 밥을 짓고 멀리 떠나는 남편의 행장을
꾸려 놓았다. 장삼은 부인이 차려준 아침을 먹고서 행장을 메고 집을 나섰다.
장삼이 배 위에 올라섰을 때는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았고 함께 떠나기로 한
주생이 도착하질 않아 잠시 눈을 붙이기 위해 배의 한 구석에서 잠을 청했다. 배
주인 정위리는 장삼이 장사를 떠나기 위해 몸에 많은 돈을 지녔다는 것을 알고 그
돈을 빼앗으려는 생각으로 사방을 살펴보았다. 주위는 아직도 어둑어둑하고
조용했으며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배 주인은 슬그머니 배를 으슥한
곳으로 끌고가 장삼을 살해하고 강물에 처넣은 후 다시 원래의 나루터로 돌아와
자는 척을 했다.
이윽고 주생이 행장을 둘러메고 나루터로 나왔는데 벌써 나와 있을 줄 안 장삼이
보이질 않자 주생은 배의 주인 정위리에게 장삼을 불러오라고 하였다.
정위리는 애써 태연하게 선뜻 일어서서 기지개를 펴곤 장삼의 집으로 달려가 문을
두드렸다.
"아주머니, 아주머니!"
장삼의 처 장왕시가 문을 열고 나와 무슨 일이냐고 정위리에게 물었다.
"장삼이 왜 아직도 안 나오죠? 배가 빨리 떠나야 하는데요. 주생은 벌써 나와
기다리고 있는 걸요."
"아니, 벌써 나가셨는데. 왜 아직도 안 갔을까?"
장왕시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요?"
"모르겠어요."
정위리는 어물어물했다. 그는 곧 나루터로 돌아가 주생에게 이 일을 말했다.
주생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장왕시와 함께 온 마을을 돌면서 연 사흘간이나
찾아다녔지만 아무런 흔적도 발견해내지 못했다.
그러자 주생은 즉시 군수에게 실종신고를 냈다. 군수는 당장 주생과 배의 주인
정위리와 장왕시를 잡아들였다. 그러나 몇 차례 취조를 했지만 아무런 결과를 얻질
못하였다. 군수는 주생과 장왕시가 간통을 해서 장삼을 살해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증거도 없어 그것도 생각에 그칠 따름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그들 세 사람을 풀어 줄 방법밖에 없었다. 이 사건은 비록 한 사람의
생명과 관계되는 일이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후, 성이 양씨라는 새로운 군수가 이 고을로 부임해 왔는데 그는 어려운 사건을
잘 처리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장왕시는 그 소문을 듣고 해결되지 못한 남편의
사건을 새로운 군수에게 의뢰하자고 주생에게 상의한 다음 신고서를 제출했다.
신고서를 받아본 양군수는 즉시 이 사건처리에 나섰다.
양군수는 신고서를 읽으며 사건처리에 골몰하였다. 그는 드디어 사건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듯 오른손 주먹으로 왼손바닥을 내려치며 중얼거렸다.
"문을 두드릴 때 배의 주인이 분명 아주머니라고 불렀지. 꼬리는 여기에 있다!"
만약 장삼의 실종을 뱃사공이 알지 못하고, 장삼이 시간에 맞춰 나루터로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면 배의 주인은 분명 장삼의 집을 찾아가 장삼을 불렀어야
했는데 그는 아주머니를 찾았다. 장삼을 부르지 않고 아주머니를 찾았다는 것은
분명 장삼이 집에 없다는 것을 배의 주인은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사건처리는
여기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끝내 심문을 한 끝에 배의 주인은 사실을 자백했고 그 한마디의 말을 놓치지 않은
군수의 탁월한 능력으로 영원히 해결되지 못할 사건이 해결되었던 것이다. ff
[ 수수께끼
이는 명나라 말기 정성공장군의 이야기이다.
그때 청나라의 군사는 장강을 넘어서자 재빨리 남쪽으로 밀고나갔다. 명나라의
총신인 정성공은 청나라군사에 항복을 하지 않고 광동일대에서 군사를 거느려
청나라군사와 맞서 싸우면서 하문, 금문지방을 근거지로 삼고 세력을
확충해나가는데 힘썼다. 그 세력을 확충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인재가 많아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 한 정성공은 어느날 청나라를 반대하는 인재를 선발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 방법은 매우 특이했다.
진지 앞에 테이블 한 개를 내놓고 그 위에 맑은 물을 담은 대야와 불을 켜지 않은
등불 한 개, 그리고 부싯돌을 올려놓았다. 테이블 옆엔 '인재초빙'이라는 글이
쓰여진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숱한 응시자들이 모여들었지만 무슨 뜻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소문은 점점 멀리 퍼져나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는데도 그 누구도 그
물건들이 인재선발을 하는데 있어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나흘째 되던 날, 사람들은 전날보다도 더 많아졌다. 정오가 될 무렵 삼십대의
남자가 사람들을 비집고 테이블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테이블 옆에 바람에
나부끼는 '인재초빙'이라는 깃발을 쳐다보고 또 테이블 위의 물건들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이내 얼굴에 여유있는 웃음을 흘리는 것이었다. 그는 먼저 대야에 있는
맑은 물을 단번에 쏟아버리고 부싯돌로 불꽃을 당겨 등불에 불을 켰다.
그의 행동을 숨죽이고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테이블을 지키고 있던 병졸이 재빨리 진지 안으로 달려가 정성공에게 이런 사실을
보고했다. 정성공은 비로소 만면에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빨리 그 사람을 데려오라!"
그 젊은이는 정성공을 만났고 그 후로는 줄곧 정성공의 밑에서 보좌역을 맡았다.
그후 어떤 사람이 그 젊은이를 만나 그때의 일을 물었다.
"그것은 정성공의 수수께끼였소."
젊은이는 이어 말했다.
"한 대야의 맑은 물은 청나라의 맑은 청을 상징하고, 한 개의 등불은 명나라의
밝은 명을 상징하는데, 맑은 물을 쏟아버린 것은 청나라를 뒤엎자는 뜻이고, 등불을
켠 것은 명나라를 복구시키자는 뜻인데 이는 청나라를 뒤엎고 명나라를 다시금
복귀시키자는 정성공의 결심을 나타낸 것이오." ff
[ 이상스런 종
진술고가 조성군 군수로 부임되어 오자마자 그의 집에 뜻하지 않은 도둑이 들어
귀중한 물건들을 모조리 잃어버렸다.
혐의자들이 있어 몇몇을 문초해보았지만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했다.
진술고는 몹시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증거도 없는 혐의자들을 수감시키는 것도
그렇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풀어주고 사건해명을 못한다면 백성들이 무능한
군수라고 비웃을 것은 뻔한 일 아닌가?
밤이 깊도록 진술고는 등불을 켜놓고 자료를 뒤적이며 사색에 잠겼다. 이때 저
멀리 절간에서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와 그의 귓전에 맴돌았다. 바로 이 종소리가
그에게 도둑을 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며칠 후, 진술고가 관원들에게 말했다.
"요즘 남산에 있는 영운사에서 매우 신비스러운 종을 발견했소. 그 종은 도둑을
구별할 수 있다는데 어찌나 정확한지 신비스러울 지경이오."
말을 마친 진술고는 사람을 보내 그 신비스럽다고 말한 종을 보성군으로 옮겨
오도록 한 후, 관청에 매달아 놓고 매일 향을 피우며 빌었다.
이날 진술고는 혐의자들을 관청 앞에 매달은 종 앞으로 끌어냈다. 그는 관원들을
거느리고 신비스런 종 앞에 제품을 올리고 머리를 조아리며 공손히 제를 지냈다.
제를 지낸 다음 그는 혐의자들에게 말했다.
"이 종은 매우 신비스러운 종이다. 도둑질하지 않은 사람이 이 종을 만지면
소리가 나질 않지만 도둑질한 사람이 만지면 웅웅하는 소리를 낸다. 너희들은 지금
아무도 도둑질하지 않았다고 발뺌을 하고 있으니 이종으로 범인을 가려내야겠다."
진술고는 다시 혐의자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관원을 시켜 종을 커튼으로 가리우게
했다. 그리고 관원을 그 커튼 속으로 들여보내 뭐라 지시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혐의자들을 한 사람 한사람씩 들여보내어 종을 만지게 한 후, 역시 컴컴한
구석에 서 있도록 하였다.
혐의자들이 이윽고 번갈아 신비한 종을 만졌으나 종은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몹시 실망한 얼굴로 진술고를 바라보았다. 혐의자들은
구석진 곳에서 밖으로 내보내졌다. 그때였다. 진술고가 갑자기 소리쳤다.
"모두 손을 내밀엇!"
혐의자들은 갑작스런 고함소리에 흠칫 놀라더니 모두 손을 내밀었다. 진술고가
앞으로 다가가 손바닥을 검사했는데 그 중 한사람의 손바닥은 깨끗했고 나머지는
새까맣게 숯이 묻어 있었다. 진술고는 그 손바닥이 깨끗한 사람에게 소리쳤다.
"네가 도둑놈이다!" ff
[ 왕과 사냥꾼 부부
몽고초원엔 아주 날렵한 사냥꾼이 살고 있었는데 그의 처 고와는 총명하고 인물이
매우 예쁘기로 소문나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 부부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고와의 눈은 달보다 더 밝고 얼굴은 꽃보다 더 예쁘다."
두 부부는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하루는 이 나라의 왕과 그의 아들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사냥을 떠났다. 그들
일행은 아침 사냥꾼이 살고 있는 마을을 지나치는데 우물가에서 물을 긷고 있는
고와를 만나게 되었다. 고와는 미처 피할 틈이 없어 별 수 없이 길가에 비켜섰다.
고와를 본 왕은 한눈에 고와의 미로에 몸을 움직이지 못했고 왕의 아들 또한 고와의
자태에서 눈을 떼질 못했다.
왕이 고와를 탐하고 있음을 안 한 신하가 얼른 왕에게로 다가가 그녀를 차지할
음흉한 계책을 내놓았다.
그렇게 며칠을 지낸 왕은 다시 그곳으로 사냥을 떠나면서 고와의 남편을 사냥에
동행하도록 했다.
왕의 일행이 한참 길을 걷고 있는데 미침 그들 머리 위로 까마귀떼들이 까욱까욱
울어대며 날아가는 것이었다. 왕은 이것이 매우 불길한 징조라고 하며 고와의
남편인 사냥꾼에게 까마귀를 쫓아가 까마귀들이 뭐라고 말했는가를 알아오라고
했다. 사냥꾼은 왕의 명을 거역할 수가 없어 대답을 하곤 까마귀들이 날아간 쪽을
향해 말을 달렸다. 잠시 후 사냥꾼이 돌아와 말했다.
"그 까마귀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께서 오늘 사냥을 떠나셨으니 우린 덕분에
짐승의 피를 먹게 되었어라고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은 왕은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아무 말없이 길을 재촉해 가고 있는데
이번엔 시체 한 구를 만났다. 왕은 이것도 불길한 징조라고 생각하며 사냥꾼더러 저
시체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 알아오도록 했다. 사냥꾼은 시체를 한 바퀴 돌아본 후
돌아와 보고했다.
"시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왕을 따라다니며
사냥도 할 수 있으니까. 죽은 사람은 밤낮없이 계속 이렇게 진흙 위에 누워
있으려니 괴로워요."
왕은 또 할 말이 없었다.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 그의 아내를 빼앗으려 했지만
번번히 실패한 왕은 기분이 매우 불쾌해 사냥을 포기하고 궁궐로 돌아왔다.
이때 신하가 왕에게 새로운 묘책을 내놓았다. 왕이 사냥꾼을 보고 말했다.
"오늘 집으로 돌아가 지푸라기 재로 긴 밧줄을 꼬아 내일 궁궐로 가져오도록
하라. 만일 가져오지 못하는 날에는 너의 목을 자를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사냥꾼은 여지없이 죽게 되었다는 생각하고 이 일을 고와에게
말했다.
"안심하고 쉬도록 하세요. 제가 그 밧줄을 만들어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고와는 밖으로 나가 짚을 가져다 긴 밧줄을 꼰 후, 돌돌 따발을 틀어서 쇠판 위에
얹어놓고 천천히 불로 쇠그릇을 달구자 밧줄은 천천히 타버려 재로 변했는데 선명한
재끈이 되었다. 이튿날, 사냥꾼은 쇠판의 재끈을 받쳐들고 왕에게 바치며 말했다.
"여기 재로 만든 밧줄을 가져왔습니다.
왕은 그가 이런 기발한 방법을 쓸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된 왕은 이번엔 아주 희한한 문제를 제기했다.
"내일 너는 들어오지도 말고 나가지도 마고, 집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닌데서 나를
만나도록 하라!"
사냥꾼이 또 근심어린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왔는데 고와가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튿날, 사냥꾼은 왕실로 나가 아무말도 하지 않고 한쪽 발을 문턱 안에 딛고 다른
한쪽 발은 문턱 밖을 딛고 선 채 몸을 문설주에 기대였다.
왕은 그렇게 서 있는 사냥꾼을 보고 아무 말도 못했다. 그 어떠한 문제도 결국
지혜롭고 총명한 사냥꾼과 그의 처 고와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왕은 결국 그의
지혜에 감복해서 고와를 차지하려는 마음을 포기했다. ff
[ 일거삼득
송조 시대 한 차례 커다란 화재가 일어나 커다란 궁궐은 잿더미로 변했다 화재를
진압했는데도 검은 연기는 하늘을 뒤덮었다.
진종황제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궁궐을 관리하는 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사형에 처했다. 그리고 정공언에게 궁궐을 다시 짓되 기일을 엄수할 것이며 기일을
지키지 못한다면 사형에 처한다는 엄명을 내렸다.
명령을 받은 정공언은 현장조사를 면밀히 검토해 과연 시기를 맞출 수 있을지
계산해 보았지만 도저히 불가능하단 생각이 들었다. 비록 궁궐 내에서 지혜가
뛰어난 그였지만 그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첫째는 흙을 운반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작업이었다. 성벽을 쌓고 집을 짓는데 흙은 엄청나게 필요하며 그
흙을 십여 리나 되는 성 밖에 나가 퍼와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그것을 운반하는
일이 문제였다. 또한 목재와 벽돌, 기와를 배로 변량성까지 운반해 온 후 다시금
육로를 통해 현장까지 운반해야 하는데 이렇게 하자면 인력은 물론 경비가 엄청나게
늘고 또 시간을 지체하게 된다. 셋째는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었다. 이미 잿더미가
된 궁궐의 벽돌조각과 기와조각 타버린 모든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게다가
복구에서 나오는 갖가지 쓰레기를 합해 모두 성 밖으로 내가자면 이것 역시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황제의 명령이 이미 떨어졌으니 그 명을 어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밤낮없이 골머리를 앓고 있던 정공은 드디어 좋은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는 만여
명의 인부를 동원해서 궁궐 앞의 도로를 파서 흙을 현장으로 날라오게 했다. 거리가
무척 가깝기 때문에 며칠 사이 흙을 충분히 마련하였다. 그러나 잘 닦여져 있던
도로는 커다란 웅덩이로 변했다. 이것을 본 관리들이 마구 항의를 했다.
"동쪽 벽을 허물어 서쪽 벽을 쌓는 격이군. 총명하단 사람이 생각해낸 것이 고작
이 정도란 말이오? 변량성을 몽땅 파헤치지만 않으면 다행이군."
하지만 엄청난 비난에도 불구하고 정공언은 조금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는
웅덩이와 성 밖으로 흐르는 강줄기를 잇는 도랑을 파라고 명령을 내렸다. 강물은
이내 그 웅덩이로 흘러 들어 웅덩이는 금새 큰 호수를 방불케 했다. 여지껏 성 밖의
강가에 머물던 배는 직접 궁궐 앞까지 짐을 싣고 들어왔다. 배에 실려온 목재, 기와
벽돌은 재빨리 공사현장에 도착해 시간과 인력을 훨씬 단축시킬 수 있었다.
마침내 궁궐을 짓는 일은 황제가 내린 시간 안에 끝낼 수 있었다. 완전하게
복구가 된 후 산더미같이 쌓인 타버린 나무와 기와장, 벽돌조각들은 몽땅
물웅덩이에 쓸어 넣었다. 며칠 안되어 호수 같던 웅덩이는 다시 평평한 도로로
변했다.
정공언이 생각해낸 이 방법은 일거삼득의 효과를 거두었다. 즉 흙을 파고 운반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였으며 산더미 같은 쓰레기를 치웠고 인력과 경비를 줄였는가
하면 시간을 앞당겼다. 그제서야 비난을 쏟던 관리들은 정공언의 지혜에 감탄을
하곤 자취를 감추었다. ff
[ 지혜로운 자는 지혜로 이긴다.
재상 진평이 한나라의 왕 유방에게 투항할 때 매우 재미있는 일이 발생했다.
봄이 지나고 무더운 여름으로 넘어가던 어느날의 정오 무렵, 하늘엔 옅은 구름이
떠 있었다. 푸르른 들판은 끝없이 펼쳐져 있고 농군들은 모두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들어가 이따금 이름모를 새들이 지저귀고 있을 뿐 들녘은 조용하기만 했다.
이때 초왕 항우의 어느 한 진지의 천막 안에서 장군복 차림에 칼을 허리춤에 찬
사람이 밖으로 나오더니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더니 곧장 논밭 사이로 뻗은
둑길을 따라 강가 쪽으로 발걸음을 부지런히 옮겨놓는 것이었다. 그가 바로
진평이었는데 강을 건너 유방에게로 투항하려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진평은 자라날 때 가정이 몹시 가난했다. 그러나 그는 독서를 무척 즐기었고
가슴에는 큰 뜻을 품고 있었다. 학업을 마친 그는 먼저 위왕의 밑에서 수레와 말을
관리하는 작은 벼슬을 하다가 나중엔 초왕 항우에게로 와서 참모역을 맡았다.
그런데 일정한 시간이 흐르고 보니 항우의 독재가 너무 심했다. 재능있는 장군들은
중용하지 않고 오리려 죽이기까지 했다. 이에 잔뜩 불만을 품은 진평은 호왕 유방은
마음이 너그럽고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잘 등용시킨다는 소문을 듣고 오늘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강가에 이른 그는 배 위에 급히 올랐다. 헌데 배 위에는 너댓 명의 험상궂게 생긴
사람들이 진평을 유심히 바라보았고 진평은 그 어떤 불길한 예감을 피부로 느꼈으나
이미 배 위에 오른 처지인지라 다시 내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또 시간을
어물어물 지체하다간 공연히 초왕의 병사들의 추격을 받을 것 같아 뱃삯을 후하게
정하고 빨리 출발하자고 독촉을 했다.
배는 나루터를 벗어나 강 한가운데로 밀려났다. 그제서야 한시름을 놓은
진평이었지만 함께 동승한 너댓 명의 사나이들이 이번엔 불안하게 했다. 그들은
서로 귓속말로 소곤거리며 이쪽 진형을 힐끗힐끗 보며 말했다.
"도망치는 관리가 분명해."
"품속에 보물을 갖고 있을 거야."
조 마조마한 마음으로 앉아 있는 진평은 그 소리를 듣고 더욱 긴장했다. 그는
경계의 눈초리로 그들의 동태를 살폈다.
"저놈들이 내 물건을 빼앗으려는구나. 아무리 내가 가진 것이 없어도 놈들은 믿지
않을 것이며 나를 해칠 것은 분명하다. 혼자서 저들을 감당하긴 어렵고 무슨 방법이
없을까?"
황하는 세찬 물살을 일으키며 흘러간다. 그래서 속도가 무척 줄어들었다. 그들의
현재 움직임으로 보아 손을 댈 모양이었다. 불현듯 위기를 극복할 방법이 떠오른
진평은 몸을 일으키며 먼저 말을 건넸다.
"날씨가 너무 덥군. 상당히 찌는 날씨야."
그리곤 아무렇지도 않은 듯 허리에 찬 칼을 벗어 배 위에 내려놓더니 군복마저
벗어놓곤 뱃사공을 도와 함께 노를 저었다.
배에 있는 그 몇 사람들은 이제 보이 진평이 아무런 보물도 갖고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고 진평을 해치려던 생각을 스스로 포기해 버렸다. 배는 마침내 기슭에
이르렀다.
나루터에 올라선 진평은 이내 뱃삯을 지불하고 옷을 차려입은 후 칼을 허리에
차고 재빨리 한왕의 진지로 달려갔다. ff
[ 햇빛에 드러난 범죄
무측천이 황제로 즉위하자 차사 서경업과 시인 낙빈왕 등 몇 사람이 그를
반대하여 양주에서 봉기를 일으켰으나 결국 무측천에게 진압되고 말았다.
서경업은 그 자리에서 사형을 당했고 낙빈왕은 투옥이 되었다. 이때 숱한
아첨꾼들은 여황제 무측천에게 반란을 꾀한 사람들은 밀고해서 여황제의 신임을
얻은 반면 상을 톡톡히 받았다.
강심이란 관리는 이 기회에 자신의 정적인 차사 배광을 처단키로 하고 그도
반란에 가담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 배광이 쓴 편지를 몰래 훔쳐내 하나하나씩 오려
서경업에게 반란을 도모한 편지로 둔갑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해서 그 편지를
조정에 바쳤다.
조정에서는 어사를 파견해 이 사건을 처리하도록 했는데 어사는 배광에게 편지를
내보이며 혐의를 인정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배광은 태연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글은 내가 쓴 글이 분명한데 말은 이 배광의 말이 아닙니다."
이밖에 다른 증거가 없고 이 말의 뜻이 무언지 몰라 어사를 세 명이나 바꾸어
사건을 처리하려고 했지만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반란을 도모한 사람들을 하루빨리 처단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무측천은 다시
장초금을 파견해서 하루빨리 진상을 조사해 처리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장초금이
강심과 배광을 불러 몇 차례 조사를 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글은 배광의 글이고 말은 배광의 말이 아니다."
장초금은 이 사건의 중대성을 잘 알고 있는 터라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황제가 특별히 내린 명령이기 때문에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그은 자기의 글이고 말은 그의 말이 아니다. 배광이 자기
혐의를 발뺌하기 위해 혼돈을 일으키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글은 자기 글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얼까? 그렇다면 이 편지는 배광이 쓴 글씨를 떼내서 꾸민 것인가?"
여기까지 생각한 장초금은 몸을 벌떡 일으켜 앉아 그 편지를 꺼내서 햇살이
비껴드는 창문에 대고 비춰 보았다. 과연 글자는 한 개씩 붙여놓은 것이었다.
진상은 확실히 밝혀졌다. 장초금은 모든 관리들을 모이게 하고선 커다란 물동이를
가져오게 한 후 강심으로 하여금 직접 그 편지를 물단지에 넣게 했다.
관리들은 장초금이 지금 뭐하는 짓인지를 몰라 물단지를 중심으로 빙 둘러서서
구경만 했다. 이윽고 편지는 물을 먹어 글자들이 한 개씩 종이장에서 떨어져 나와
둥둥 떠다니는 것이었다.
강심은 당장 무고한 사람을 반란죄로 만든 죄로 사형에 처해졌다. ff
[ 나라를 구한 장사꾼
날이 밝아지자 현고는 길을 떠났다. 북방의 날씨는 이른 봄날임에도 상당히
추웠다. 쌀쌀한 바람이 몸 속을 파고들자 현고는 옷자락을 단단히 여미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현고는 정나라의 유명한 상인이었다. 며칠 전 그는 소 열두마리를 샀는데 그것을
낙양으로 가서 팔기 위해 이렇게 아침 일찍 길을 떠나는 것이다.
한참 길을 가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한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 사람을 자세히
보니 자기 고향사람이었다. 그는 현고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말하는 것이었다.
"이보게, 현고! 큰일 났어, 큰일 났다구!"
"무슨 일이요?"
"진나라에서 맹명시라는 장군이 삼백여 대의 전차를 몰고 우리나라를 공격하러
오고 있소."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가?"
"내가 지금 막 진나라에서 오는 길인데 이 두 눈으로 똑바로 보았다구."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큰일이로군."
현고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우리 국왕께서 금방 돌아가셔서 나라에선 지금 장례를 치르느라 전쟁준비가 돼
있질 않은데 큰일이로구만. 나라를 구할 어떤 방법을 마련해야겠어."
"우리 같은 서민이 어떻게 나라를 구할 방법을 생각해내겠나? 일찌감치 도망칠
궁리나 하는 것이 상책이지."
고향 친구는 허겁지겁 어디론가 급히 사라졌다.
현고는 소를 몰고 계속 앞으로 걸어가면서 머리 속으로는 나라를 구할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정나라와 활나라의 국경지대에 이르렀을 때, 정말 듣던대로 저 멀리서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진나라 군사들이 쳐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현고는 소 12 마리를 길가 나무에 매달아 놓은 후,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태연하게 앞으로 나서 진나라 군사에게 말했다.
"나는 정나라 대신으로서 맹명시장군을 마중하러 왔다. 너희 장군에게 보고하라."
진나라 병사는 현고의 말을 듣고 전혀 의심도 하지 않은 채 맹명시장군에게
보고를 했다. 맹명시는 병사의 보고를 받고 깜짝 놀랐다. 비밀리에 정나라를
공격하러 가고 있는 것인데 어떻게 해서 벌써 정나라에서 알고 있었는가? 맹명시는
그 진실의 여부를 알 수가 없어 현고를 앞으로 불렀다.
"대사께서 저를 마중하러 나왔다는데 무슨 일이오?"
현고는 정중하게 예를 갖춘 후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저희 국왕께서 장군이 오신다는 말을 듣고 특별히 저에게 소 12 마리를 주시면서
귀국의 병사들을 위문하라고 하셨습니다."
현고는 여기서 잠깐 말을 멈추었다가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저희 국왕께선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나라는 우리의 우방이며 저희
나라에 대해 항시 우호적인 나라이므로 정중하게 대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장군께선 안심하십시오."
맹명시는 정나라를 침략하려고 했는데 정나라에서 대신을 마중나오게 해 위문하는
것을 보면 방어태세는 이미 완벽하다고 판단을 내리곤 정나라를 공격하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우리는 활나라를 공격하러 가는 길인데 이렇게 환대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맹명시는 얼떨결에 활나라를 공격하러 가는 길이라고 말해 버렸다.
"그래요?"
현고는 내심 쾌재를 부르며 애써 태연한 척을 했다. 더구나 활나라는 정나라를
수없이 침략하는 나라여서 보통 골머릴 앓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현고는 자신의
소들을 맹명시에게 넘겨주고 조정으로 들어가 이런 사실들을 보고했다.
며칠 후 활나라는 맹명시가 이끄는 진나라에 의해 멸망되었다.
길가에서 스스로 외교사절의 임무를 띤 대신으로 위장한 한 장사꾼으로 인해
마침내 정나라는 한 차례 큰 재난을 면하게 되었고, 현고는 푸짐한 상을 받았으며
이는 고대 외교사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일화로 남게 되었다. ff
[ '무명'이 이름을 떨치다.
무측천이 황제로 있을 때, 성은 소씨이고 이름은 무명이란 조그마한 관리가
있었는데 실제 사서를 들쳐보면 그의 이름은 사서에까지 기재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무명이 어떻게 이름을 떨치게 되었을까?
한 가지 예만 들어 무측천의 딸이 보물 두 상자를 잃어버린 사실만 들어도 금방
알 수가 있다.
어느해, 무측천이 딸에게 두 상자나 되는 금은 보화를 선물했는데 그의 딸
태평공주는 매우 기뻐하면서 잘 보관해 두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 그것을 보관한
궤짝을 열어보았더니 글쎄 궤짝은 텅 빙어 있었고 보물은 온데간데 없었다.
공주는 이 사실을 무측천에게 알렸다. 그 이야기를 들은 무측천은 화를 벌컥냈다.
"뭐라구! 감히 어떤 놈이 우리 딸의 보물을 훔쳐갔단 말야?"
무측천은 당장 노주부의 장사(관리의 명칭)를 궁궐로 불러 들여 어명을 내렸다.
"사흘 안으로 도둑을 잡아들여라. 그렇지 않으면 사형에 처할 것이다."
장사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나갔다. 노주부로 돌아온 장사는 현위(관리의
명칭)들을 모아놓고 도둑을 사흘 안에 잡아 들이지 못하면 당장 사형에 처한다는
어명을 전달했다. 현위들은 또 현위로 돌아가 각 부처의 관리들을 모아놓고 사흘
안으로 도둑을 잡아내지 못하면 목을 자르겠다고 호령을 내렸다. 관리들은 초조감에
속이 탔지만 달리 어떤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럭저럭 이틀이 지났으나 아무런 단서도 잡지 못하였다. 관리들은 이제 죽었다고
생각하며 절망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사흘째 되던 날, 그들이 밖으로 나가 도둑을
잡으려고 정찰하던 중 우연히 호주라는 조그만한 고장의 관리인 소무명을 만났다.
소무명은 이미 까다로운 사건처리에 능한 인물로 소문이 나 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를 만나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 그는 언제나 우스개로 대꾸하곤
했다.
"웬걸요. 무명소인일 뿐이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성 소씨에다가 무명을 붙여주어 소무명이라 불렀던 것이다.
현위의 관리들은 공주의 보물을 누가 훔쳐간 사실과 황제 무측천의 진노함을
말하고 나서 제발 한번만 도와달라고 애원을 했다.
소무명은 관리들을 앞장세워 현위로 갔는데 현위는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반갑게 맞이했다.
"대인께선 정말 도둑을 잡을 어떤 묘책이 있습니까?"
"우리 함께 노주부로 가서 의논합시다."
별다른 대꾸없이 소무명은 그렇게 말하였다.
노주부에 도착하자 이 일을 장사에게 보고했고 장사는 또 즉시 무측천에게 보고를
했다.
이윽고 무측천이 소무명을 만나서 물었다.
"네가 이 사건의 도둑을 정말 잡아들일 수 있단 말이지?"
"전하, 도둑을 잡는 일을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그 대신 시간을 정하지 마시고
독촉하지 마시며 저에게 관리들을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을 주신다면 필히 도둑을
잡아내어 보물을 찾아오겠습니다."
소무명의 부탁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라 무측천은 선선히 응낙을 했다. 그리곤
덧붙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네가 이 사건은 처리하지 못한다면 사형에 처할 것이다."
현위로 돌아온 소무명은 관리들에게 말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오."
날짜는 어느덧 흘러 보름이나 지났는데도 소무명은 황제의 어명을 까맣게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이 그저 집안에만 틀어박혀 책만 읽고 있었다. 드디어 며칠이
더 지나서 소무명은 관리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이제 며칠만 있으면 청명날인데 그날 열 사람씩, 혹은 다섯 사람씩 짝을 지어
동대문과 북대문 쪽에 나가서 서 있도록 하시오. 만약 그때 열댓 명의 호족들이
상복을 입고 성문을 빠져나가면 그들의 뒤를 가만히 따라가고 한 사람을 내게 보내
알리도록 하시오."
청명날, 소무명의 말대로 관리들은 무리를 지어 두 대문을 관찰했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열댓 명의 상복을 입은 호족들이 북대문을 빠져나가 뒷산에 새로
생겨난 무덤 쪽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관리들은 먼 발치에서 그들을 주시하며
사람을 소무명에게 보내 알렸다. 소무명이 물었다.
"호족들이 어느 곳으로 가고 무엇을 하던가?"
"그들은 미리 파놓은 새 무덤으로 가 제물을 펴놓고 곡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울음소리가 이상하게도 슬퍼서 우는 것 같질 않았고 더구나 눈물은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들은 또 무덤을 한 바퀴 돌아본 후 서로 의미있는 웃음을 교환하고
있었습니다."
"도둑을 붙잡았으니 빨리 손을 써야겠다!"
그는 관리들에게 명령을 내려 당장 호족들을 잡아들이라 했다. 그리곤 무덤을
파헤치고 관을 열었더니 태평공주가 잃은 보물이 몽땅 들어 있었다.
그제서야 무측천은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띄우며 소무명을 궁궐로 불러들이고
그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범인들을 잡아냈는가?"
"무슨 대단한 방법이 아니라 오직 주변의 상황을 유심히 살피고 생각했을
따름입니다."
소무명은 겸손한 태도로 말하고는 사건을 밝혀낸 과정을 설명했다.
"어느날 길에서 우연히 장례를 지내는 호족들과 만났는데, 이상한 일을
발견했지요. 그들은 울기는 하나 비통한 감정이 없었고 서로 장난을 치는 것을 보고
장례를 가장한 다른 무엇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후, 공주님의 보물을 도둑맞은
사실과 그 장례식을 매우 자연스럽게 연관시켰지요. 그래서 그 호족들이 도둑일
것이라고 단정했고 그때 가짜 장례는 그것을 가장해 보물을 묻는 것일진대 그 관을
어디다 묻었는지 알 수가 있어야죠. 생각하던 끝에 그들이 청명날에 장례를 지내는
체하며 보물이 잘 있는지 살펴볼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그래서 관리들을 파견해
동정을 살피라고 한 것입니다. 그 호족들이 장례를 치루며 슬퍼하지 않는 것은
관속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무덤을 한 바퀴 돌고 서로 쳐다보며 은근히
웃는다는 것은 보물이 그대로 묻혀 있고 남에게 발각되지 않았음을 말해 줍니다.
앞뒤를 연결해서 생각해보니 그들이 틀림없이 공주님의 보물을 훔쳐간 도둑들이란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처음 제가 전하께 날짜를 정하지 말아 주십사하고 장사와
현위에게 독촉하지 말라고 한 것은 너무 성급하게 행동하면 도둑들이 형세가 불리한
줄을 깨닫고 보물을 파서 멀리 도망 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느긋해지면
도둑들은 이제 안전하게 되었다고 시름을 놓고 스스로 뛰쳐나와 정체를 드러낼
것으로 믿고 그때를 노렸습니다."
그의 말을 다 듣고 난 무측천은 소무명에게 칭찬을 아끼질 않았다. ff
[ 우둔한 국왕
아주 먼 옛날, 어느 한 국왕이 갑자기 옴에 걸려 온몸이 가려워서 하루종일 몸을
긁어대 나중엔 진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국왕의 주치의들은 여러 가지 방법을 다 써서 치료해 보았으나 전혀 효과가
없었다. 국왕은 더 이상 참을 길이 없어 불호령을 내렸다.
"일주일 안에 옴을 치료하지 못하면 주치의들의 목을 모조리 쳐버리겠다."
주치의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별의별 방법을 다 써봤지만 병이 낳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심해갔다. 이제 의사들은 아^36^예 치료를 단념하고 절망속에서 죽을
날만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그 주치의들의 운명이 좋았던지 도반이라는 유명한 의사가 이 소문을 듣고
궁궐을 찾아와 국왕의 병을 보고 난 후 이렇게 말했다.
"저는 약도 복용하지 않고 수술도 물론 하지 않으며 고통도 느끼지 않는 방법으로
전하의 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만일 전하의 병을 제가 치료하면 주치의들의 죄를
사하여 주십시오."
국왕은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말에 그러마라고 약속을 했다.
집으로 돌아온 도반은 약을 달여 환을 지은 후, 속이 빈 나무막대기 속에 넣고 또
둥근 공 한 개를 만들었다. 이튿날, 도반은 그것을 궁궐로 들고가 왕에게 바치며
말했다.
"전하께서 커다란 운동장에 나가 이 막대기로 공을 쳐서 땀을 내시면 막대기 속에
있는 약이 손바닥에 스며들어 체내로 들어가 병이 완전히 치료될 수 있습니다."
국왕은 지체 높은 신분이었지만 의사의 처방이었으므로 시키는대로 했는데 정말
온몸에 퍼졌던 옴이 싹 가셔졌다. 국왕은 매우 기뻐했고 도반을 자기 주치의로
궁궐에 남겨놓았다. 도반은 궁궐에 있기가 싫었지만 국왕의 명을 어길 수 없어
그대로 눌러 앉았다.
일정한 시간이 흐르자 도반의 높은 의술에 은근히 질투를 품은 한 주치의가
도반을 음해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주치의는 왕후와 가까운 관계를 이용해 도반을
헐뜯었고 그의 말을 곧이 들은 왕후가 국왕에게 말했다.
"도반이 특수한 방법으로 국왕의 병을 치료할 수 있으니까 또 특수한 방법으로
국왕을 해칠 수도 있지 않겠어요? 그가 국왕의 병을 치료해 준 후부터 자기가
최고인 것처럼 우쭐대고 있어요. 이런 사람을 궁궐에 놓아두면 꼭 무슨 후환이
일어날 거^36^예요."
실은 도반은 그들의 그런 낌새를 미리 알아차리고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을
해왔다.
우둔하고 독단적인 국왕은 왕후의 터무니없는 말을 그대로 믿고 도반을 죽이기로
했다. 그는 무사를 시켜 도반을 체포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총명한 도반은 예상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자 사태를 돌이킬 수 없음을 알고는
국왕에게 마지막 청을 드렸다.
"저는 전하께서 내리시는 처벌을 즐거이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나 제겐 아주
진귀한 고서가 하나 있는데 그것을 가져다가 전하께 바치도록 허락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 책은 매우 신기해서 전하께서 제3 페이지를 펼쳐보시면 어떻게 하면
전하의 권력을 끝까지 보장할 수 있는가 하는 방법이 써있고 더욱 신기한 것은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전하께서 영생불로하실 수 있으며 영원히 이 나라를 통치하실 수
있습니다."
국왕은 뛸 듯이 기뻐하며 곧장 부하를 시켜 도반과 함께 도반의 집으로 가 책을
가져오도록 했다. 책을 가져오자 국왕은 급급히 책부터 받았다.
"전하, 제가 그 책을 전하께 바칠 수 있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도반이 태연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국왕은 도반이 뭐라 지껄이는지 하나도 귀에
들리지를 않았다. 오직 책을 펼치는데만 열중을 했다. 그러나 그가 3 페이지를
펼치려 하는데 3 페이지는 표지와 딱 달라붙어 있어서 손가락에 몇 번 침을 발라
겨우 3 페이지를 펼쳤다. 헌데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고 구토증세가 일어나며
비틀거렸다.
"내가 속았다! 이건 독이 묻은 책이다! 저 놈을, 죽^5,5,5^여라."
말을 채 맺지 못하고 국왕은 죽어갔다.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는 국왕에게 도반은
복수를 한 것이다. ff
[ 수상한 환자
청나라 시대, 어느 한 군의 군수인 우성룡은 어느날 이웃 군으로 나들이를 가게
되었다.
그가 성을 나서서 길을 걷고 있는데 두 사람이 들것에 사람을 메고 총총히
걸어가는 것이었다. 그 들것 위에 누운 사람은 이불을 덮고 있었고 머리카락은
밖으로 나왔으며 몸은 옆으로 뉘어져 있었다. 그밖에 서너 명의 건장한 사나이들이
양쪽에 바싹 붙어 걸으면서 이따금씩 이불을 여며주는 것이 환자에게 상당한 정성을
쏟는 것 같았다. 그렇게 걸으면서 힘이 들면 서로 교대하면서 부지런히 걸었다.
그들의 행동이 예상치 않아 우성룡을 시켜 그들의 사정을 알아오라고 했다.
사정은 한 사람의 여동생이 갑자기 중병에 걸려 곧 죽게 되자 친정으로 데려가는
것이라고 했다.
우성룡은 더 이상 말은 않고 부하에게 그들 일행의 동향을 계속 살피라고
명령했다. 아무래도 미심쩍은 구석이 남아 있어 그대로 지나치기가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이다. 그들 일행의 뒤를 살며시 밟은 부하는 그들 일행이 어느 한 마을에
이르르자 두 남자가 화급히 마중해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부하는 우성룡에게 달려와 이 사실을 보고했고 우성룡은 그럴수록 의혹이
짙어갔다.
이 군의 군수를 만난 후, 군내에서 강도나 절도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는가부터
물었는데 그 군의 군수는 그런 일이 전혀 없다고 매우 확신에 찬 대답을 했다.
하지만 그 군수의 대답을 우성룡은 믿을 수가 없었다. 조정에서 사회치안에 대해
엄격히 다루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어느 곳이든지 강도나 절도사건이 일어나더라도
애써 은폐하고 소문을 내지 않는 것이 상례였다.
우성룡은 거처를 정하고 부하에게 군내를 살펴보라고 일렀다. 그러자 과연 어느
한 부잣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그 집주인이 강도들에게 흉기에 맞아 숨졌던 것이다.
그리곤 많은 보물을 털렸다.
우성룡은 그 도둑맞은 집의 작은 아들을 불러와 도둑맞았을 때의 상황을 물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 작은 아들마저 도둑을 맞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우성룡이 말했다.
"너를 부른 것은 다름이 아니라 도둑을 이미 잡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그제서야 부잣집 작은 아들은 머리를 조아리며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달라고
간절하게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우성룡은 그날 밤으로 이 군의 군수를 찾아가 이 사건에 대해 의논한 뒤 날렵한
부하 몇 명을 골라 그 마을로 보내 환자일행을 모두 체포했다. 그리곤 모든 자백을
받았는데 사건의 내용은 이러했다.
그들은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훔친 그날밤 어느 기생집에서 묵었는데 훔친 물건을
안전하게 수송하기 위해 기생과 짜고 기생을 환자처럼 가장해 훔친 물건과 함께
은밀한 곳으로 운반해 나누어 가졌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우성룡의 세밀한 관찰력과 정확한 판단에 대해 감탄하며 어떻게 그들이
수상한 자들이라고 생각했는지 관심있게 물었다.
"별다른 방법은 없었고 단지 모든 사물이나 사람들을 세심하게 관찰했을 뿐이오.
여자 하나가 아파서 누웠는데 장정들이 뭐가 그리 무겁다고 번갈아 사람을 바꾸어
메고 가야 하겠소? 길을 걸을 때 양쪽에서 사람들이 바싹 붙어 보호하는 것을 보고
꼭 들것 속에는 다른 무엇이 들었다고 생각했소. 그리고 젊은 여자가 들것에 누워
있는데 남자들이 손을 들것 속에 밀어넣을 수가 없지. 젊은 여자가 이미 혼수상태에
처해 친정으로 왔는데 왜 친정어머니가 마중을 하질 않고 도리어 남자가 마중하냔
말이오? 또한 당황하는 기색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고 서로 환자의 병세에
대해선 관심도 없었고 말이오. 이러이러한 상황들을 모두 조합해 봤을 때 그들은
환자를 운반하는 것이 아니라 한 무리의 강도들인 것을 알 수 있었소." ff
[ 돌에서 받은 계시
청나라 때 팽영사 군수는 공무로 인해 도청을 가게 되었는데 그가 가는 날에
때마침 그의 군에서 도에 은전으로 세금을 바치러 갔다.
그러나 뜻밖에도 도청에 이르러 은전을 담은 궤짝을 열자 그 속에는 난데없는
커다란 돌이 한 개 덩그러니 놓여져 있을 뿐 은전 이백 냥은 간데온데 없었다.
그래서 은전을 호송해 온 관리와 경비원 및 마부들을 모조리 체포했다. 도청의
훈무(관리의 명칭)는 평영사 군수가 마침 도청에 와 있음을 알고 체포한 자들을
전부 팽영사 군수에게 넘겨 그로하여금 처리하게 하였다.
팽군수는 아무런 주저함도 없이 선뜻 그 사건은 받아들였다. 사건의 전말을
상세하게 들은 후 그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생각해 보았다.
"도둑이 돌로써 은전을 바꿔놓고 훔쳐 갔으면 먼저 돌의 출처를 밝혀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은전도 찾아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돌의 출처에 대해 총력을 기울였다. 그 돌은 일반 길가에 있는
돌처럼 매끄럽지가 못하고, 푸른 이끼가 끼어있는 것이 다른 점이었고 출처를 밝힐
수 있는 단서였다.
"이 돌은 어제, 어디서 상자 속에 넣었을까?"
팽영사는 돌멩이를 쳐다보고 또 궤짝과 말을 바라보면서 거듭 생각에 생각을
했다. 돌연, 그는 저울을 가져오라 하고는 그 돌을 저울에 달아보았는데 무게가
은전보다 거의 절반 가량 가볍게 나가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마부에게 물었다.
"처음 말 잔등에 은전을 얹었을 때 양쪽 무게가 같았나?"
"예, 틀림없이 같았습니다."
마부는 잘라 말했다.
"그렇다면 물건이 한쪽으로 기우는 것을 보질 못했는가?"
"봤습니다."
"그래? 그게 언제부터였지?"
"어느 날인가, 여관을 나서면서 물건이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어요. 기울면
똑바로 해놓고 또 기울면 똑바로 해놓고 그랬는데 자꾸만 기울었어요. 이건 물건을
옮길 때 흔히 발견되는 일이어서 전혀 주의를 돌리지도 않았지요."
마부는 지난 일들을 돌이켜 보며 말했다.
"잃어버린 은전이 돌보다 무거워 양쪽 무게가 같지 않으니 당연히 기울겠지."
팽영사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언제, 어디서부터 물건이 기울기 시작했다는 것을 밝혀내기만 하면 잃어버린
은전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오던 길을 되돌아 가면서 생각했다.
"은전을 잃어버린 장소를 밝혀내긴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물건을 훔쳐간 놈을 잡는 일이다."
역시 그 돌의 출처에서부터 사건을 밝혀나가야 한다. 그래서 그는 길을 걸으면서
그 돌과 비슷한 것을 여러 개 주워 봤지만 같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윽고 마부가
말한 그 여관에 이르러 샅샅이 훑어 봤는데, 집 뒤의 응달인 곳에서 그 돌과 비슷한
돌을 찾아냈다.
팽영사는 그 돌을 슬그머니 팔소매 속에 감추었다.
"은전을 잃어버린 사건은 필연코 여관주인과 관계가 있다. 그러나 주인 혼자선
절대로 이러한 일을 해낼 수가 없으므로 필경 은전을 호송한 자들과 결탁했을
것이다."
팽영사 군수는 관리들과 경비원들을 따로 한 방에 가두어 놓은 후, 여관주인과
마부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길가에서 주운 여러 개의 돌과 궤짝 속에서 발견한
돌을 꺼내놓고 같은지를 물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같지 않다고 말했다. 팽영사는
그제서야 팔소매 속에 감춘 응달진 곳에서 주운 이끼가 낀 돌을 꺼내놓고 궤짝
속에서 발견한 돌과 함께 비교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사람들은 돌의 크기는
달라도 이끼 낀 것이라든가 모양이 같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팽영사는
별안간 여관 주인을 향해 호통을 쳤다.
"이 돌이 어째서 너의 집 뒤에서 나오게 됐느냐?"
"그건 저^5,5,5^저는 알 수 없는 일이^36^예요. 저는 몰라요."
여관 주인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네가 호송하는 사람과 결탁해서 너의 집 뒤의 돌로 바꾸어 넣고 은전 이백 냥을
훔쳤다. 여기 이렇게 증가가 있는데 그래도 발뺌을 할 테냐?"
팽영사의 매서운 눈초리와 호통치는 소리에 여관 주인은 금방이라도 질식해
쓰러질 것만 같았다.
여관 주인은 자기와 함께 훔친 사람들을 찾아보았으나 그는 사태의 낌새를
알아차리고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여관 주인은 비로소 모든 고백을 했고 팽영사는 도망친 관리는 잡아오라고 명령을
했다. ff
[ 무좀과 야맹증의 발견
당나라의 저명한 의사 손사막은 그의 고향인 오대산을 떠나 수도 장안을
돌아다니며 병든 사람의 진료를 봐주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천금요방'이란
의학서적을 쓰기 위해 장안의 명의들을 방문하기로 하고 고서적들을 찾아보기 위한
뜻도 있었다.
이날도 그는 장안의 길을 걷고 있었는데 노을은 서서히 지기 시작했고 점차
어둠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사람 살려요! 사람 살려요!"
돌연 어디선가 다급한 외침소리가 울려왔다.
깜짝 놀란 손사막은 사방을 휘 둘러보고 소리나는 쪽으로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공동묘지가 있는 곳인데 한 웅덩이 속에서 어떤 사람이 힘겹게
기어올라오더니 비실비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이내 풀썩 쓰러지는 것이었다.
손사막은 얼른 달려가 그를 부축했다. 이미 날이 완전히 어두워져 그 사람의
얼굴을 자세하게 볼 수는 없었지만 사십대의 남자로서 옷은 무척 남루하고 몸은
마른 나무처럼 여위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손사막은 그를 부축해 공동묘지를
빠져나와 길가로 나선 후 물었다.
"왜 여길 왔소?"
"선생님, 좀 도와 주세요. 저는 집을 찾을 수가 없어요. 친척 집에 갔다가 오는
길인데 날이 이렇게 빨리 어두워질 줄 몰랐어요. 저의 눈은 밤만 되면 아무것도 볼
수 없어요. 새처럼 아무데나 부딪치기만 합니다."
"야맹증이로군."
손사막은 속으로 되뇌이었다. 예전에도 이런 환자들을 보아 온 적이 있었다. 그의
처는 너무도 반가워하며 손사막을 하룻밤 묵고 가라고 완강히 붙잡는 것이었다.
손사막은 밤도 이미 깊어진 터라 하는 수없이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그들과 여러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손사막은 우연히 이 가난한 산골 사람들이
특별히 야맹증에 많이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마을 조가장만 해도 벌써
십여 명이나 되었다.
"병도 가난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가 봐요. 이 가난한 산골 사람들은 뼈빠지게
일하면서도 땅이 척박해 잘 먹지도 못하니까 병이 많이 찾아오는 것 같애요."
그 사내의 아내가 말했다.
"부자인 사람들은 잘 먹고 편히 지내니 병에 잘 걸리지 않죠?"
여자의 말에 손사막은 여지껏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그 무엇을 돌연 깨닫기라도
한 듯 눈앞이 환해졌다.
"무엇 때문에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야맹증에 많이 걸리는가?"
이 의문을 가진 손사막이었지만 그렇다고 당장 그 병의 원인을 알 길은 없었다.
날이 밝아 조가장을 떠나오면서 가난한 산골사람들에게 많이 걸리는 야맹증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다.
헌데 장안에 이르고 보이 이와는 반대로 야맹증환자는 없고 대신 무좀환자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무좀에 걸린 환자들의 발등은 퉁퉁 부어 있었고 온몸에 맥이
빠져 있었다. 그리고 무좀에 걸린 환자들은 대개 풍채가 좋고 옷을 잘 입는 부유층
사람들이었다.
"무엇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야맹증에 많이 걸리고 부유한 사람들은 무좀에
많이 걸릴까? 빈부차이의 그 무엇이 이런 병을 일으키는가?"
손사막은 진지하게 생각하고 분석을 해보았다. 이때 손사막은 그 야맹증환자의
처가 말한 말을 떠올렸다.
"병도 가난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가 봐요. 이 가난한 산골 사람들은 뼈빠지게
일하면서도 땅이 척박해 잘 먹지도 못하니까 병이 많이 찾아오는 것 같애요."
"부자인 사람들은 잘 먹고 편히 지내니까 병에 잘 걸리지 않죠?"
손사막은 이런 추측을 내렸다.
"아마 병은 음식에 원이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한 그는 세밀한 분석을 해보았다. 가난한 한 사람들의 음식에는
쌀에서 나오는 겨가 많고 부자들이 먹는 음식엔 겨가루가 거의 없다. 그러니 무좀은
겨와 같은 물질이 적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겨를 이용해
무좀치료약을 만들어 치료해봤더니 효과가 매우 좋았다.
그리고 야맹증에 걸린 사람들은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먹게 해 영양을 보충해
주었더니 이 역시 효과가 대단했다. 더욱이 동물의 간이나 내장을 이용해 치료약을
만들었더니 야맹증환자들은 금방 치료되었다.
무좀과 야맹증의 치료약은 이런 계기에서 발견되었으며 손사막은 세계에서 이 두
가지 병의 치료약을 개발한 최초의 사람이 되었다. ff
[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
옛날 어느 한 부자가 집에 경사를 맞이하여 청첩장을 많은 사람에게 돌리기로
하고 술상도 크게 차리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자신의 위풍을 떨치며 빛낼 수도 있고 손님을 많이 초대하면 할수록
부조가 많이 들어와 이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부자는 어렸을 때 몇 년간 서당을 다녔는데 붓글씨도 제법 잘 써서 이 고을에선
그래도 명필이라도 소문이 나 그는 매우 우쭐했다.
이날 아침, 그는 안방에서 직접 청첩장을 쓰기 시작했다. 쓰는 대로 그는 하인을
시켜 청첩장을 돌렸는데 이틀째 벌써 백여 장을 썼다.
헌데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이 있어 쓰려고 하는데 도무지 마음이 내키질 않았다.
그렇다고 안 쓸 수도 없는 노릇이 받는 쪽 사람은 가난한 친척이었으나 가까운
친척이었기 때문이었다. 청첩장을 보내도 그는 분명 빈 손으로 올 것이 분명한데 안
보내자니 주위의 손가락이 두려웠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자는 이 일 때문에 며칠 동안 골머리를 앓다가 결국
그럴듯한 방법을 떠올렸다. 가난한 친척에게 청첩장을 보냈는데 이런 내용을
적었다.
"만약 온다면 먹새이고 오지 않는다면 몰염치이다."
청첩장을 받은 가난한 친척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그의 처가 투덜거렸다.
"우리가 가난하게 산다고 깔보는 짓이^36^예요. 이젠 그 집과 발길을
끊어야겠어요."
"사람이 가난해도 줏대가 있어야 해. 이 청첩장을 안받은 셈 치면 되지."
남자가 청첩장을 막 찢어버리려 할 때였다. 산에 나무하러 갔던 막내아들이
집안으로 들어와 아버지 손에 든 청첩장으로 뺏어 쥐곤 쓱 한번 읽어보더니 한참
동안 생각을 하다 아버지 어머니에게 말했다.
"오라는데 안 가면 남들이 비웃어요. 그러니 제가 갔다 오겠습니다."
그러자 부모는 가지 말라고 극구 말렸다.
"제게도 생각이 있으니 염려하지 마세요. 결코 아버님 어머님의 얼굴에 먹칠은
하지 않아요."
드디어 잔칫날이 돌아오자 막내아들은 간단한 선물을 준비해 가지고 축하문을
써서 그 부잣집으로 갔다.
잔치는 그야말로 성대하게 치뤄지고 있었다. 부자는 많은 부조가 줄을 잇자
얼굴에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가난한 친척집 막내아들이 대문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더니 이내 얼굴이 찌그러졌다.
막내아들은 한창 무르익은 잔칫집 분위기를 한 번 휘 둘러보고는 그런 분위기엔
아랑곳 없이 부자 앞으로 걸어가 가지고 온 조그마한 선물을 내놓고는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다.
"이것은 저희 부모님께서 나으리께 드리는 선물이고 또 축하문까지 써주셨으니
축하문은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막내아들의 큰 소리에 손님들의 시선은 일제히 그곳으로 향했다. 막내아들은 그
축하문을 읽어내려갔다.
"만약 받으면 욕심쟁이이고, 받지 않으면 얕잡아보는 것이오."
막내아들은 축하문을 선물꾸러미 위에 내려놓고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손님들은 내막을 몰라 어리둥절해서 서로들 얼굴만 멍하니 쳐다보았다.
부자는 그 축하문의 내용에 화를 억제하지 못하고 의자에서 쓰러져 버렸다. ff
[ 호박 쓰고 돼지굴로 들어가다.
무더운 여름날, 어느 한 부인이 이제 두 살난 아이를 업고 친청나들이에 나섰다.
머리 위에 떠있는 태양은 뜨거운 불덩이처럼 지글지글 타오르고 있었고 부인과
아이는 땀을 비오듯 흘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수박밭이 나타났고
부인은 아이의 갈증을 달래주기 위해 수박 한 개를 따 아이에게 먹었다.
그런데 마침 수박밭 주인이 그것을 보았다. 주인은 부인에게 다가갔다. 때마침
사방에는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자 주인은 못된 생각이 들어 부인에게 추파를
던졌다. 하지만 부인이 전혀 말을 듣질 않자 이번에는 부인에게 수박을 훔쳤으니
군수에게 가자고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수박 한 개를 따먹을 것을 가지곤 구속될
수 없다고 생각한 주인은 얼른 너댓 개의 수박을 더 따서 광주리에 담아 가지고
군수에게로 왔다.
군수가 먼저 그 부인에게 물었다. 사실을 설명한 부인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저는 아기가 갈증에 시달리고 있어 아기에게 먹이려고 수박 한 개를 땄어요.
군수님, 결코 도둑질할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거야!"
주인은 군수가 말하기도 전에 자기가 먼저 부인에게 호통을 쳤다.
"네년이 이 수박을 따서 아이를 안고 도망치려는 것을 내가 붙잡았잖아!"
"저 여인네가 수박을 훔쳤을 때 광주리에 담아서 훔쳐 갔는가?"
"아뇨, 광주리는 없었습니다."
군수는 알았다는 듯이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너의 애를 수박주인에게 안도록 해라."
부인은 무슨 뜻인지를 몰라 아이를 안고 주저하자 군수는 호통을 쳤고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아이를 수박주인에게 넘겼다. 그러자 군수는 수박주인에게 땅에
널려져 있는 수박을 전부 안아보라고 말했다. 결국 수박주인은 아이를 안고 여러
개의 수박을 안질 못했다. 그제서야 수박주인은 아이와 수박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꿇어 앉아 그녀를 모함하려 했던 사실을 인정했다.
군수는 즉시 수박주인에게 곤장 오십대를 치라고 호통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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