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긴대로 건강법
1.생긴대로 살면 건강하다.
아침 안 먹어도 체중은 줄지 않는다.
아침 식사를 거르면 정말로 필요한 영양은 공급받지 못하면서도 한 번에 집중적으로 과식하게 되고,실제로
는 영양실조에 빠지면서도 보기 흉하게 몸이 불어나는 경우가 생긴다.
아침 안 먹어도 체중은 줄지 않는다.
최근 들어 보기 싫게 살이 찌거나 비만증에 걸리지 않으려고 아침 식사를 거르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고 싶은 아가씨들은 물론, 한창 활동기에 있는 중년 남자들도 살이 찌고 아랫배가 나오
는 것이 두려워 아침 식사를 하지 않는다. 정신없이 바쁜 아침 시간, 샐러리맨들은 아침 식사 시간이 결코
즐겁지 않다. 아침에는 식욕도 없고 정신적으로 긴장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틀림없이 곤욕스러운
시간이다. 그러나 아침 식사를 거르다 보면 오히려 점심이나 저녁에 집중적으로 과식하게 되고 날씬한 몸매
를 만들기는커녕 더 뚱뚱해지고 만다. 그리하여 결국 체중 조절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수가 있다. 아침
식사를 거르면 대개 점심쯤 해서 서서히 식욕이 왕성해지고 저녁에는 공복감에 빠져서 오히려 더 많이 먹게
된다. 날씬해지고 싶은 사람일수록 이러한 집중 과식은 역효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원래 사
람들의 몸에 필요한 영양은 집중 과식을 한다고 해서 사막의 낙타처럼 능률적으로 두고두고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시적으로 칼로리가 높은 많은 양의 식사를 하더라도 사람의 몸은 이것을 전부 이용하지는 못
한다. 사람 몸 속에 있는 열과 힘을 내게 하는 전분 가운데 이용되지 않은 부분이 지방으로 변하여 체중이
늘게 된다. 따라서 하루에 같은 분량의 음식을 나누어 먹으려면, 한 번에 전부 먹는 것보다는 여러 번에 나누
어 먹는 것이 체중 조절이나 건강상에 훨씬 더 효과적이다. 더욱이 단백질이나 비타민은 식사 때마다 균등하
게 나누어 먹을 수록 효과가 좋아진다. 아침 식사를 거르면, 정말로 필요한 영양은 공급받지 못하면서도 한
번에 집중적으로 과식하게 되고 실제로는 영양 실조에 빠지면서도 보기 흉하게 몸이 불어나는 경우가 생긴
다. 아침 8시부터 저녁 5시나 6시까지 활동하는 현대인에게 하루에 세 끼의 식사는 생리적으로나 영양관리
면에서 합리적인 방법이다. 특별히 육체 노동을 하지 않는 수도승이나 옛날의 한가한 선비들은 생식을 하거
나 하루에 한끼밖에 먹지 않아도 건강을 지탱할 수 있었을지 모르나, 능률적으로 활동하는 현대인들은 균형
잡힌 식사를 세 번에 나누어 해야 한다. 체중을 줄이려는 사람은 하루 세 끼의 식사를 하되 전체 칼로리 량
을 줄임으로써 그 목적을 달성해야 할 것이다. 아침에 식욕이 없는 사람은 생활 방법을 개선하고 운동을 통
해 식욕이 나도록 하고 정신적인 긴장을 풀고 즐거운 아침 식사를 하는 것이 좋다. 식욕이 없다고 해서 아
침 식사를 거르면, 과식을 하게 되고 영양실조에 빠지게 되며 오히려 비만증에 걸리기 쉽다. 아침 식사를 안
한다고 날씬해지는 법은 없다. 속편하게 먹을 건 먹고 사는 것이 좋다.
맵게 먹어도 머리 나빠지지 않는다.
우리 나라 음식은 고추를 많이 써서 맵게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로부터 음식의 맛을 돋우기 위해 쓰인
조미료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세계적으로 많이 사용되어 온 향신료는 고추,후추,식초 등이다. 서양사를 뒤져
보면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끝난 항해도 인도산 향신료룰 더욱 빠르게 유럽에 수송하고자 새로운 항로
를 찾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고 한다. 동서고금을 통해 향신료는 음식의 맛을 돋우는 데 많이 이용되었다.
특히 온도와 습도가 다 같이 높은 열대지방으로 갈수록 향신료 사용은 늘어난다. 그러나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향신료를 너무 많이 쓰거나 맵게 먹는다고 해서 머리가 나빠지지는 않는다. 물론 우리 나라에
주로 많이 발생하고 있는 위염이나 소화불량, 위궤양이나 위암 같은 병들은 너무 매운 음식을 먹기 때문이라
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맵게 먹는다고 머리가 나빠지는 일은 결코 없다. 향신료는 입과 코의 점막을
자극해서 눈물이나 콧물이 나게 사는 수는 있지만 대뇌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너무 매운 음식을 먹게
되면 위액이 많이 나와서 일시적으로 다른 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따라서 위장이 튼튼하지 못한 사람이나 위
장병을 앓는 환자는 싱겁게, 맵지 않게 음식을 먹으라는 의사의 지시를 받는 경우가 있다. 또한 위장병을 앓
는 경우에도 배설 과정에서 신장에 자극을 주는 것을 염려해서 향신료 사용을 제한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여름에 밥맛이 떨어지거나 식욕을 잃었을 때 여러 가지 향신료는 빼놓을 수 없다. 근래 인공적으로 맛을 내
기 위해 글루타민산소다 계통의 조미료도 많이 쓰이고 있으나 역시 자연적인 향신료가 더 바람직하다. 확실
히 우리 나라 사람들은 너무 맵게 음식을 만들어 먹기 때문에 위장 장애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같은
향신료라도 자극이 덜한 식초 같은 것을 많이 써야겠지만 매운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머리까지 나빠지는 일
은 없다. 물론 나이가 어릴수록 매운 음식의 자극이 심해서 일시적인 위염을 일으키는 수도 있다. 그러나 짠
음식은 향신료보다 더 좋지 않으므로 여러 가지 천연 조미료를 만들어 먹는 게 좋다. 매운 음식은 일시적으
로 위장에 장애를 주는 일은 있다. 그렇다고 머리를 나쁘게 하지는 않는다.
맥주, 아무리 마셔도 아랫배 안 나온다.
당뇨병 환자의 식생활은 극히 불편하지만 절대로 먹어서 안되는 식품은 없다. 당뇨병 환자라고 해서 모든
기호식품을 버릴 필요는 없으며,인생을 즐길 권리가 있다.
맥주, 아무리 마셔도 아랫배 안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맥주를 계속해서 마시면 아랫배가 나온다고 체중이 늘어난다고 걱정을 한다. 우선 이와 같은
주장의 진위 여부를 따지기에 앞서 맥주와 청주, 그리고 위스키가 가지는 알코올 함량과 칼로리를 알아 보자.
위스키 한잔은 알코올 함량이 26cc로 50칼로리이다. 청주는 한 홉이 알코올 함량 29cc로 198칼로리이고 630
짜리 맥주 한 병은 알코올 함량 26cc로 233칼로리이다. 쉽게 말하면 청주 한 홉이나 위스키 한 잔 대신에 맥
주 한 병을 마시면 맥주가 위스키보다 약 50퍼센트 정도 칼로리가 높고 청주보다도 약간 칼로리가 높다. 같
은 양의 알코올을 마실 경우에는 확실히 맥주는 다른 술보다 놓은 칼로리를 갖는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
다. 따라서 맥주는 체중이 늘고, 아랫배가 나오게 하는 하나의 원인이 될 수는 있겠다. 그렇지만 위스키나 청
주 또는 맥주만을 마시는 것은 아니다. 술을 마실 때 살이 찐다는 것과 관련해서 중요한 것은 무슨 안주를
어느 정도 먹으며 식사와 음주를 어떻게 조절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맥주 한 병의 칼로리는 같은 양의 사이
다와 별로 큰 차이가 없다. 맥주를 청주나 위스키와 비교해 본다면 동일한 알코올 함량에 비해 맥주는 칼로
리가 높지만 아랫배가 나오고 체중이 느는 것은 음주시에 먹는 안주와 이와 곁들여 먹는 식사 때문이지 맥주
가 원인이 아니다. 각별히 맥주를 마실 때는 식사를 줄이거나 안주의 분량을 줄인다면 아랫배가 나오고 체
중이 늘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당뇨병 환자라고 술 끊을 필요 없다.
당뇨병만큼 괴로운 병도 없을 것이다. 성욕은 떨어지고 식사 제한 때문에 언제나 배부르게 음식을 먹지도
못하기 때문에 항상 즐거운 식사가 되기 어렵다. 당뇨병을 물이 많이 먹히고 당뇨가 나오며, 오줌을 많이 배
설하거나 피로가 자주 오고, 여러 가지 질환들이 뒤따라 생겨나기 쉬운 만성병의 하나이다. 종래 당뇨병 환
자들에게는 당분을 극도로 제한해서 당이 많은 청주나 맥주는 먹지 못하게 하고 위스키, 소주,보드카 같은 것
만 허용했다. 실제로 영양은 거의 지방질에 의해 충족되다시피 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당뇨병의 식사요
법도 많이 변화되어, 대개 하루에 150-300그램의 당분 섭취가 오히려 당뇨병 환자들의 식생활에 도움이 된다
면 추천한다. 오히려 체중을 이상적으로 보존하는 것이 더 좋다는 학설에 근거, 표준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잘 먹으면서 체중 조절에 힘쓰고 있다. 당뇨병이 오랫동안 계속되면 심장병이나 고혈압을 유발하기 쉬우므
로 술을 추천할 만한 것이 못된다. 그렇다고 해서 기호 식품의 하나로서 즐겨 오던 술을 하루 아침에 끊어
버리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이다. 술을 먹더라도 가능한 한 당분이 적은 소주나 위스키를 먹는 것이 좋
지만, 맥주나 청주는 절대 마셔서는 안된다는 이론은 성립되지 않는다. 술은 위스키나 맥주나 정종이나 모두
비슷하다. 단지 문제가 되는 것은 청주나 맥주를 마실 때에는 그만큼 당분을 적게 섭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주나 맥주에는 당분이 포함되어 있다. 맥주의 당분을 3.1퍼센트 정도로, 한 병의 맥주에는 약 19그램의 당
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그만큼 당분 섭취를 제한한다면 무슨 술을 먹든 술의 종류에는 크게 차이가 없다
는 결론이 나온다. 당뇨병과 음주에 있어서는 우선 술을 먹어도 괜찮은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것은 병의 정도
에 따라 좌우된다. 중환자의 경우 절대로 음주가 허용되지 않는다. 병이 가벼운 경우에는 증상에 따라 일정
칼로리 내에서 허용된다 .예컨대 하루에 150cc의 알코올이 허용된다면 위스키는 두 잔 정도이고 청주는 반
홉 정도, 맥주는 한 병 가까운 양이 된다. 술의 선택은 이 정도의 범위 내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술을 고르면
된다. 알코올도 칼로리가 있는 음료이므로 당연히 하루에 허용되는 칼로리 범위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당뇨
병 환자의 식생활은 극히 불편하지만 절대로 먹어서 안 되는 식품은 없다. 단지 허용되는 칼로리 내에서 전
문 의사와 상의하여 관리해야 한다. 당뇨병 환자라고 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무조건 버릴 필요는 없
다. 당뇨병 환자도 얼마든지 인생을 즐길 권리가 있다.
술 섞어 마신다고 숙취 생기는 것 아니다.
어쩌다 우유를 마시면 설사를 하게 되고,따라서 아예 우유를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고 여겨지만,설사 때문에
지레 겁먹지 말고 우유를 마시다 보면 자연히 설사를 멎게 되고 건강도 좋아진다.
술 섞어 마신다고 숙취 생기는 것 아니다.
지나치게 폭음한 다음날 아침이면 머리가 아프고 뱃속이 메슥거리고 목이 타는 전형적인 숙취의 증상이 나
타난다. 출근 후에도 피로하고 권태감이 심하며 뱃속이 좋지 않고 현기증이 나서 정상적으로 책상 앞에 앉아
있기 어려울 때도 있다. 숙취는 술을 마시게 되면 몸 속에 들어간 알코올 아세트알데히드란 중간 산물을 만
들어 일으키는 증상이다. 물론 저질의 합성주나 싸구려 술 속에는 에틸 알코올 외에도 휴텔 같은 불순물들
이 포함되어 골치를 아프게 하는 원인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숙취는 한 두 잔의 다른 술을 섞어 마신다고
해서 일어나지는 않는다. 서양 사람들의 가정에 초대를 받아본 사람이면 누구나 겪었으리라 생각하지만 풀
코스의 저녁을 먹으려면 적어도 네댓 가지의 각기 다른 술을 마시게 된다. 맥주나 포도주는 물론 럼이나 샴
페인, 보드카 같은 술들을 그대로 마시거나 칵테일로 섞어 마시는 수가 많다. 이렇게 많은 종류의 술을 마셨
다고 해서 다음 날 아침에 숙취를 일으키는 일은 별로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짬뽕'만 하게 되면 무조
건 숙취를 일으킨다고 착각하고 있다. 숙취는 원래 술을 마시는 본인의 신체적 조건과 술의 질과 절대량,그
리고 술을 마시는 속도에 따라 좌우된다. 숙취를 예방하려면 소화 능력이 떨어지고 정신 상태가 나쁠 때는
가능한 한 전체적인 음주량을 줄이고 술을 마시는 속도도 늦추는 것이 좋다. 그렇게 되면 아세트알데히드의
생산량도 줄어들고, 속도도 늦어져 거의 숙취를 일으키지 않는다. 여러 가지 술을 섞어 마실 때는 도수 높은
술을 먼저 마시고 알코올 함량이 적은 술은 뒤에 마시는 것이 좋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값싸게 술에 취하는
방법으로 위스키나 진과 같은 독한 술을 한 두 잔 마신 뒤에 맥주를 마시는 경우가 많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가능한 한 음주의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술을 섞어 마시게 되면 같은 종류의 술을
계속 마실 때보다, 도수가 높은 술 때문에 일시적으로 빨리 취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술을 섞어 마실 때는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취기에 빠지지 않도록 서서히 마셔야 한다. 술도 알고 마시면 제 아무리 섞여 마셔도
숙취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
우유 마신 뒤,설사 두렵지 않다.
몸에 좋은 줄은 뻔히 알면서도 왠지 손이 잘 안 가는 우유, 많은 사람들이 우유를 마시면 설사를 하기 때문
에 분명히 좋은 줄은 알지만 우유를 마시지 못한다는 얘기를 한다. 물론 드물게는 우유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우유는 물론 버터나 치즈같은 유제품만 먹어도 과민 반응을 나타내며 설사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찬 우유를 너무 급하게 마셔서 위벽이 자극을 받아 설사를 일으키거나
우유 속에 들어 있는 당분이 윗속에서 발효되면서 생기는 가스 때문에 설사를 하는 것이다. 즉 찬 우유를
빨리 마시면 위벽에 자극을 주게 되고,그 신경 반사로 장운둥이 높아져 설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소리이다.
이 외에도 우유 속에 들어 있는 유당에 의해 가스가 생겨나 장벽을 자극하므로 장운동이 활발해져 설사를 하
는 수도 있다. 그렇다고 우유를 마신 후 설사를 한다고 해서 마신 우유가 그대로 몸 밖으로 배설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우유가 위장을 흘러 유동성 식품이라고 하지만 완전히 위장을 통해 대변으로 배설되기까지
는 최소한 10시간 이상이 걸린다. 따라서 우유를 마시면 설사를 하고 결국 영양분이 섭취되지 않기 때문에
우유를 마시지 않는다는 것은 지나치게 어리석은 생각이다. 대개 우리 나라 사람들은 어른이 되면 거의 우
유를 먹지 않게 때문에 어쩌다 우유를 마시면 설사를 하게 되는 것이고, 따라서 아예 우유는 마시지 않는 것
이 좋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설사 따위에 겁먹지 말고 계속해서 우유를 마시다 보면 설사도 멎
게 되고 건강도 좋아진다. 우유를 마실 대 일어나기 쉬운 설사를 피하려면 죽이나 밥을 우유에 섞어 먹어
보는 것도 간단한 예방법이다. 우유를 미지근하게 데워서 간격을 두고 자주자주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천
천히 죽이나 밥을 섞어 먹기 시작하면 위장에 자극을 적게 주어 설사를 미연에 방지할 수가 있고 더 이상 우
유를 겁먹지 않고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임신중에 닭고기 먹어도 닭살 안 된다
동물성 식품은 단백질과 비타민의 필요량을 충족시키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식품이므로 근거 없는 주위 사람
들의 권고에 따라 음식을 가리다가 건강을 해치고 영양 장애를 일으키기 쉽다.
임신중에 닭고기 먹어도 닭살 안 된다.
임신중에는 가리는 음식이 많다. 술이나 커피 같은 자극성 있는 음식을 먹으면 좋지 않다는 것은 과학적으
로도 수긍할 수 있지만 전혀 근거 없는 금기 식품들도 꽤나 많이 있다. 물론 임신중에는 옛부터 전해 내려
오는 바와 같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가능한 한 최선의 건강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그렇
다고 해서 지나치게 음식을 가리다가 영양 실조에라도 빠져서는 곤란한 일이다. 흔히 임신중에 닭고기를 먹
으면 태어나는 어린아이의 살이 부드럽지 못하고 닭살이 된다고 해서 닭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이 있다. 또
오리고기를 먹으면 어린아이가 육손이 된다고 오징어를 먹으면 뼈 없는 아이가 태어난다는 터무니없는 얘기
를 듣고 음식을 가리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임신한 여자들에겐 정상적인 생리과정이지만 임신에서 부터 출
산에 이르기 까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부담이 커지고 임신에 따른 영양소의 공급을 충분히 해주지 못하는
경우에는 태어나는 아기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치거니와 어머니의 건강도 해치기 쉽다. 일단 임신을 하게 되
면 누구나 상상할수 있는 바와 같이 아이의 몫으로 영양분이 더 필요하게 된다. 총 칼로리 양과 단백질의
수요가 늘고 칼슘, 철분과 같은 무기질과 각종 비타민의 요구량이 증가된다. 더욱이 임신후 5개월이 지나면
임신하지 않았을 때보다 하루에 최소한 단백질은 10그램. 칼슘은 5그램, 철분은 3그램이상이 필요하고 비타민
에이는 약 500만 단위가 더 필요하며 B1과 B2, 나이아신, 비타민C, 비타민D도 더 소요된다. 이때 동물성 식
품은 단백질과 비타민의 필요량을 충족시키는데 없어서는 안될 식품으로 근거없는 주위사람들의 권고에 따라
음식을 가리다가는 건강을 헤치고 영양장애를 일으키게 된다. 닭은 털을 뽑고 나면 살이 매끄럽지 못하고,
오징어는 흐느적거리며, 오리발은 이상하게 생기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식품을 먹으면 이와 비슷한
어린아이가 생긴다는 것은 너무나 소박한 미신이다. 마음놓고 더욱 많은 동물성 식품을 섭취해서 튼튼한 아
이를 키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괜히 금기에 주눈들어서 자칫 영양 공급에 소홀했다가는 오히려 기형아나 건
강하지 못한 아기가 태어날 수도 있다. 너무가리지 말자. 먹고싶은 대로 먹어야 아이도 산모도 건강하다.
산모도 미역국만 먹을 필요 없다.
필자는 여러가지 병에 전통적으로 적용되어온 비과학적인 금기식품에 대해 이미 지적한 바 있다. 특히 임신
이나 출산을 둘러싼 금기식품은 너무나 다양하고 많고 그중 납득하기 어려운 오랜 습관으로 산모의 식생활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어린아이를 분만하게 되면 산모는 반드시 미역국과 밥만 먹으면서 최소한 일주일이나
삼칠일(21일)동안 지내야 한다고 알고 있다. 생활정도가 높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도 미역국외에
고기나 생선같은 비린 음식을 해롭다고 해서 먹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론 분만은 생리적인 과정임엔 틀림
없으나 산모에게 부담이 커서 아기를 낳은 후에는 가능한한 소화되기 쉬운 아전한 음식을 먹는 것이 좋지만
출산에 따른 산모의 체력소모를 감안해 볼때 균형있는 고영양식을 부지런히 먹어 주어야 한다. 더욱이 태어
난 어린아이의 정상적인 발육을 위해 수유를 하는 산모들에게 단백질이나 지방은 물론 충분한 무기질과 비타
민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미역국과 밥만 계속 먹인다는 것은 비과학적인 습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
론 미역은 산모에게 좋은 식품이다. 미역 100그램에는 단백질이 10.4그램이나 들어있으며 산모에게 부족해서
는 안 될 칼슘과 철도 각각 870밀리그램씩과 13.8밀리그램씩이나 들어 있다. 게다가 비타민A, B1,B2및 C가
골고루 들어 있어 산모의 빠른 회복과 수유 준비에 좋은 식품이다. 그러나 밥과 미역국만 먹으면서 삼칠을
지내다 보면 영양실조에 걸릴 가능성이 대단히 많다. 물론 아기를 낳으면 첫날에는 미역국과 죽같은 유동식
으로 속을 편안하게 해주어야 겠지만 아기를 낳은지 이삼일 후부터는 음식을 지나치게 가리지 말고 고른 식
사를 통해서 필요한 영양분을 충분히 보충해야 한다. 단백질은 몰론 지방과 함수탄소(탄수화물) 무기질 및
비타민이 골고루 들어 있는 높은 칼로리의 영양식을 먹는 것이 좋다. 밥도 중요하지만 영양가 있는 여러가지
반찬을 골고루 곁들여 균형있는 식사를 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소리다. 고기나 생선같은 동물성 식품
은 믈론 신선한 야채나 과일도 빠뜨려서는 안될 것이다. 산모는 아기를 갖지 않은 사람보다 열량이 약 1000
칼로리나 더 필요하고 단백질이나 비타민 및 무기질등을 많이 섭취해야 하는 것을 명심해서 영양가 있는 고
른 식사를 해야 한다. 산모의 식욕이 왕성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구태여 미역국이나 쌀
밥만으로 산후 식사조절을 할 필요는 전혀 없다.
당뇨병, 단 음식 먹어서는 안 생긴다.
육식도 많이 하지 못하며 우유 소비량도 적은 우리 나라와 같은 식사 구조로 볼 때 하루에 계란을 아무리
많이 먹는다고해도 콜레스테롤 양이 지나치게 늘어날 가능성이 없다.
당뇨병, 단 음식 먹어서는 안 생긴다.
이따금 다방에 가보면 체중 조절에 신경을 쓰는 사람도 아닌데 설탕은 물론 크림도 넣지 않고 소위 블랙커
피를 마시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서 그 이유를 알아보면 설탕을 먹으면 당뇨병에 걸릴까
두려워서 먹지 않는다거나 생명 없는 식품이기 때문에 좋지 않다는 얘기를 한다. 생활이 편리해짐에 따라
가공식품이 늘어나고 인스턴트 식품이 범람하자 손수 만든 자연 식품을 먹으려는 경향이 붐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설탕을 먹으면 당뇨병 환자가 된다는 생각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다. 설탕은 함수탄소 식
품으로 먹으면 빨리 지방으로 변해 살을 찌게 할 가능성은 있지만, 누구나 단 음식을 먹었다고 해서 오줌에
당이 섞여 나오는 당뇨병 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당뇨병이란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단순히 오줌 속에
포도당이 섞여 나오는 병이 아니다. 여러 가지 영양분이 흡수되지 못해서 나타난 일종의 전신병이다. 이 병
을 일으키는 원인은 아직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으나 우선 유전적인 요인을 들 수 있다. 부모나 친척 중에
당뇨병 환자가 있는 경우,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이 병에 걸리기 쉬운 유전자를 갖게 된다. 그러나 쉽게 당뇨
병에 걸릴 만한 요인을 가졌다고 해서 모두 당뇨병 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직접 당뇨병을 일으키는 데
는 여러 가지 요인이 필요하다. 자기 몸에 필요로 하는 칼로리 이상의 영양분을 먹게 되면 비만증에 걸리게
되고, 자연스럽게 당뇨병을 유발하게 된다. 또한 정신적으로 지나치게 긴장하거나 계속해서 피로가 쌓이면 역
시 이 병에 걸리기 쉽다. 매일 먹는 식사는 우리 몸에 영양분을 공급해 주고 이 영양분을 이용해서 활발하
게 신체 기능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음식물의 이용 과정을 의학적으로는 대사라고 하는데 당뇨병은 이
러한 대사가 잘 안 되어 생기는 병이다. 밥이나 국수, 과자 같은 것들은 함수탄소 식품으로 이러한 음식의
대사를 위해서는 췌장에서 나오는 인슐린이라는 호르몬이 필요하다. 그런데 당뇨병이 생기면 바로 이 인슐린
이 적시에 필요한 양만큼 나오지 않아서 이용되지 않은 포도당이 핏속에 넘쳐 오줌 속에 섞여 나오는 것이
다. 당뇨병에 걸리면 오줌에 당이 섞여 나오지만 단 음식을 먹었다고 무조건 당뇨병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과식을 한 결과 비만증에 빠져서 당뇨병에 걸리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계란 하루에 두 개 이상 먹어도 괜찮다.
어느 동물에 있어서나 알은 다음 세대를 위한 영양소가 최선의 방법에 의해 비축된 가장 좋은 세포이다. 사
람의 몸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포로 구성되어 있지만 오직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난자밖에 없다. 약
30일 마다 난소로부터 나오는 난자는 직경이 1밀리미터의 1/5정도의 크기로 사람의 몸에서는 가장 큰 세포이
다. 계란은 그것 자체가 하나의 세포이지만 내용물이 약 40-45그램이나 되는 큰 세포이다. 계란은 다음 세
대의 생명 발육에 관한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므로 외부로부터 아무런 물자의 보급 없이도 단지 일정
한 온도로 데워 주기만 하면 알이 깨지고 하나의 생명체인 병아리가 생겨난다. 계란의 영양가를 분석해보면
부족한 것은 단지 비타민 C뿐이고 칼로리는 같은 양의 쌀의 2배 반, 단백질은 쇠고기보다 6할이나 많고 지방
은 뱀장어의 2배이며, 칼슘은 우유보다 5할이나 많고 철분은 시금치나 물보다 2배, 비타민 A는 버터와 같다.
따라서 노약자에게 반숙의 계란은 가장 좋은 영양식으로 꼽을 만하다. 외국에서는 밀크쉐이크 같은 음료에도
많이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흔히 계란을 하루에 두 개 이상 먹으면 몸에 좋지 않다고 알
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계란을 콜레스테롤이 많아서 하루에 두 개 이상을 먹으면 동맥 경화증을 일으키기
쉽다며 잘 난 척들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콜레스테롤은 계란뿐만 아니라 다른 식품에도 많다. 더욱이
계란을 먹으면 식품 중에 흘러 들어가 직접 혈관벽에 침착된다는 침투설은 이제 와서는 잘못됐다는 사실이
인정되고 있다. 오히려 혈액 중의 콜레스테롤은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체내에서 합성되
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 나라같이 육식을 적게 하는 경우에는 계란을 많이 먹는다고 해서 콜레스테롤
의 양이 크게 증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햄이나 베이컨 같은 식품들과 함께 요리를 해
서 매일 많은 양의 계란을 즐겨 먹고 있다. 육식도 많이 하지 못하고 우유 소비량도 적은 우리 나라와 같은
식사 구조로 볼 때 계란을 아무리 많이 먹는다고 해도 문제가 될 것은 하나도 없다. 고깃값이 오르고 생선
값이 제아무리 뛰었다고 해도 계란값은 별로 비싸지지 않았다. 우리 나라 식품 중 가장 부족한 지방과 단백
질의 보충을 위해서라도 하루에 다섯개, 열 개씩 안심하고 계란을 먹도록 권하고 싶다.
눈병 걸렸다고 육식 삼갈 필요 없다.
눈병 걸렸다고 육식 삼갈 필요 없다.
한때는 소위 아폴로 눈병이 유행하여 수많은 수영장이 파리를 날렸으며, 눈병에 걸리지 않으려고 수영도 제
대로 하지 못하고 한여름을 지낸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눈병이 여름에만 유독 유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
람들이 많은 수영장에서 수영을 한다든지 피서지를 가게 되면 비위생적인 환경에 노출되기 쉬워 여러 가지
안과 질환을 앓는 경우가 생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흔한 눈병은 눈알을 덮는 결막에 생기는 결막염이고 다
음에는 눈꺼풀에 생기는 소위 눈다래끼(내분비종)이다. 눈은 전신의 일부분으로서 용적으로나 무게로 따진다
면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흔히 이목구비라는 말과 같이 우리의 용모는 물론 성생활을 하는 데 없어
서는 안 될 중요한 기관이다. 그러나 병균의 침입으로 발생하는 이런 눈병에 과학적인 치료법이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30여 년 전으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종래의 암중모색에 불과했던 근거 없는 섭생법을 주
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세균이나 보통 현미경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작은 여과성 병원체가 일으
키는 결막염이나 내분비종에 걸리게 되면 일반적으로 여러 가지 음식을 먹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다. 돼지고
기는 풍기를 일으키기 때문에 좋지 않다고 하는가 하면, 닭고기는 물론 심지어는 쇠고기조차도 피를 탁하게
만든다고 해서 못 먹게 한다. 새우젓이나 멸치젓 같은 음식은 결정적으로 눈병 치료에 좋지 않은 대표적인
음식으로 꼽히고 있다. 확실히 병원균 자체를 죽이거나 그 성장을 억제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항생제가 개
발되기 이전에는 부득이 병균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보다는 간접적으로 이러한 질병의 발전을 저지시키는 방
법이 시도될 수밖에 없었다. 과거, 결핵은 많은 공기를 쐬면 치유된다고 해서 해변가에 요양소를 지어 소위
대기요법을 한 적도 있었고, 고름이 나는 임질 환자에게는 학질에 걸리도록 해서 높아진 체온으로 임질균을
죽이려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고열요법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스트렙토마이신이나 파스 등, 이러한 원
인균을 정면으로 공격할 수 있는 의약품이 생긴 이상 육식 금기 같은 종래의 비과학적인 방법은 일고의 가치
도 없는 전근대적인 섭생법이다. 눈병에 걸렸다고 해도 마음놓고 육식을 해서 균형 있는 영양 관리를 하는
것이 오늘날의 병균 대치법이다.
탄 음식 먹는다고 암에 걸리진 않는다.
종합병원의 입원 환자를 중심으로 집계된 병원 통계는 물론 필자가 매년 실시하는 상병 및 의료비 조사를
보면, 우리 나라의 질병 발생 경향도 쉽게 예방할 수 있는 전염병보다는 좀처럼 치료나 예방이 어려운 만성
병들이 점차 많이 생기는 것을 알 수 있다. 생활 정도가 높아지고 평균 수명이 늘어날수록 이 같은 경향을
더욱 심해져 결국 심장병, 당뇨병, 고혈압은 물론 암종이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미 많은 중년 부인들이 자궁
암에 걸리지 않았나 두려워하고 있다. 심지어 이따금 잡지에 나오는 외국의 과학계 소식에서 얻은 토막지식
에 의해 부모들이 암으로 사망한 사람들은 혹시라도 그 체질이 유전되지나 않을까 염려한 나머지 고깃집에
가도 조금이라도 탄 고기는 아예 입에 대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지나친 기우에 불과하다. 아직 암
이 왜 생기며 효과적으로 어떻게 치료해야 할 것인지 완전히 규명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암의 체질이 절대
적으로 유전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우리 나라 사람들의 암 발생 경향을 보면, 위장에 생기는 암이 과반수를
차지해서 외국에서 폐암이 많이 발생하는 경향과는 대조를 이루기 때문에 학자에 따라서는 우리 나라의 음식
구조에서 그 원인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맵고 짠 음식을 먹기 때문에 위장에 부담을 주어 위
염이 생기고 나아가 위궤양이 되며 위암이 발생한다는 주장도 있고, 우리들이 즐겨 먹는 된장, 고추장, 간장
같은 발효 식품 중 좋지 않은 곰팡이가 사람 몸에 나쁜 독소를 만들어 암을 유발한다는 이야기가 수년 전에
외국 잡지에 보도된 일도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볼 때 부모나 조부모가 위암이나 폐암으로 사망했다고
해서 그 체질이 유전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담배가 폐암을 유발한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인정하고
있지만, 불고기나 구운 생선을 좀 먹는다고 해서 암이 생기지는 않는다. 물론 폐암 방지 차원에서 외국에선
대대적인 금연운동이 일어나고 있지만, 파이프나 장죽담배보다 궐련이 가장 암을 유발하기 쉬운 것으로 되어
있다. 궐련을 피우게 되면 담배를 만 종이가 함께 타서 암을 일으키기 쉬운 소위 발암성 물질을 만들지만 불
고기나 생선을 태워서 먹는다고 해서 곧바로 암이 생겨날 리는 없다. 구태여 먹고 싶은 불고기나 갈비는 물
론 생선을 구워 먹지도 않고 지낼 필요는 없다.
노인의 성생활이 수명 단축시키진 않는다.
인간이란 알수록 잃어버리게 마련이며 잃어버릴수록 새로운 사실을 기억할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된다. 건망
증이 있다고 기죽지 말고 잊을 건 멋지게 잊어버리고,새로운 일을 많이 만들면서 속 편하게 사는 것이 가장
건강한 인생이다.
노인의 성생활이 수명 단축시키진 않는다.
우리 나라 남자들은 대개 서너 살 아래의 여자들을 아내로 맞이한다. 원래 남자는 여자보다 5-6년 정도 단
명하기 때문에 8-9년쯤 앞서 남편이 죽는다는 계산이 나오게 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수치는 어디까지나 통
계적인 것이고 개중에는 중간에 상처를 해서 의지할 데 없이 외롭게 지내는 노인들도 많다. 통계적으로나
생리적으로 볼 때 남자들은 여자에 비해 약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생이별을 했거나 상처를 했을 경우는 물론,
독신으로 사는 남자들에 비해 결혼 생활을 하는 남자들이 훨씬 장수한다는 사실은 통계적으로 증명된 지 오
래이다. 이와는 반대로 과부가 된 여자들은 오히려 다른 여자들보다 수명이 긴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구태여
보건적인 입장에서 재혼을 추천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자식들이나 사회적인 체면 때문에 재혼을 망설인다는
것을 남자의 경우에 있어서는 자신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이론이 성립된다. 그러나 항간에는 젊은 여자와의
관계가 좋았던 노인이 사망했을 경우에는 너무 무리를 해서 수명이 단축됐다는 뒷얘기가 더러 나오고 있다.
참으로 웃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성생활을 일종의
소모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투 시합을 앞둔 선수나 합숙 훈련중의 운동 선수들은 대개 부인과의
동침이 금지되고 금욕 생활이 강요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훈련 방법은 점차 없어지고, 외국에서는 훈련중인
선수들도 정상적인 성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오히려 능률을 향상시킨다고 주장하고 있다. 성은 더 이상 금기
될 일이 아니며 성생활도 결코 소모가 아니다. 노인이 젊은 여자와 재혼을 한 후에 죽었다는 것은 천수를
다하고 때가 와서 죽은 것이지 성생활 때문에 빨리 죽음을 맞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젊은 사람은 물론 노인
의 경우에도 적당한 성생활은 필요불가결의 요소이다. 물론 지나친 성관계 때문에 그 다음 날에도 피로가
겹치고 사회 생활에 지장을 준다면 좋지 않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섹스에는 나이에 따른 횟수나 어
떤 철칙이나 표준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본인의 일상 생활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인생을 즐
기도록 각자에게 맡겨 두어야 한다. 노인의 경우에 있어서도 본인이 성적으로 무기력해서 결혼 생활을 단념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구태여 지나친 체면이나 자식들의 이목에 좌우되어 성생활을 완전히 중지할 필요는
없다. 50세만 넘으면 벌써 노인 행세를 하게 되고 상처를 해도 주위의 이목이 두려워 정상적인 성생활이나
재혼을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수명을 단축하는 결과가 된다. 자신이 있는 노인들은 더 이상 눈치보지 말고
편하게 재혼하고 사는 동안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노인들도 얼마든지 성생활을 즐기며
나머지 생을 화려하게 살 수가 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장수 비결이다. 노인들이 젊은 여자와 즐겁게 성
생활을 한다면 일찍 죽기보다는 오히려 오래 사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은 꼭 기억할 일이다.
생활 수준 높을수록 폐암 조심해야 한다.
우리 나라는 아직도 소화기 계통의 위나 소장, 간에 생기는 암이 다른 기관에 생기는 암보다 월등하게 많다.
그러나 구미 각국의 암 사망 통계를 연대별로 볼 때 우리 나라도 머지않아 위암과 폐암의 발생 빈도가 바뀌
리라 전망해 볼 만하다. 실제로 종래엔 찾아보기 어려웠던 폐암 환자들이 근래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원
래 폐에는 혈관과 임파관이 많이 분포되어 있으며, 24시간 동안 끊임없이 호흡하는 기관이므로 다른 암으로
부터 영향을 받거나 재발하기 쉽다. 따라서 치료 후에도 10년간의 경과를 보지 않고는 장담할 수 없다. 더욱
이 경제적으로 윤택해질수록 인위적인 생활 환경이 늘어나고 기호품의 일종으로 담배를 즐기게 됨에 따라 폐
암이 많아진다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운동 부족으로 체력이 떨어지고 영양 과잉으로 비만증이나 당뇨병
같은 병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 이러한 혈액이 폐 속으로 들어옴에 따라 폐의 저항력은 점차 쇠퇴해질 수밖
에 없다. 폐암의 4대 증상으로는 첫째로 헛기침이 나고, 둘째로 가래침에 피가 섞여 나오며, 셋째로는 가슴
이 아프고, 넷째로는 열이 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증상은 유독 폐암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폐에 염
증이 있거나 기관지에 이상이 있더라도 생겨나기 쉬운 증상이므로 예민하게 반응할 정도의 일은 못 된다.
물론 40대 이후에 이와 같은 증상이 있을 때는 일단 의료 기관을 찾아 그 원인을 밝혀 보는 것이 좋은 것이
다. 더욱이 이와 같은 증상과 함께 밥맛이 없을 때는 꼭 가슴 X선 촬영을 받아 그 원인을 규명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초기의 폐암은 폐결핵과 비슷해서 단순한 X선 촬영만으로는 3할 가량 오진하기 쉬우므로 미심쩍
을 때는 다시 정밀 검사를 받아 정확한 원인을 알아내는 것이 좋다. 역시 무슨 암이나 다 마찬가지지만 폐암
도 가능한 한 빨리 진단을 받아 조기에 발견한다면 결코 불치병은 아니다. 생활 수준이 높아질수록 점차
위암이 줄어들고 폐암이 늘어날 수밖에 없으므로 50대 이후의 부유층일수록 폐암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
다. 배기 가스의 공기의 오염뿐만 아니라 담배도 폐암을 유발하므로 폐암의 예방을 위해서 담배는 가능한
한 하루에 한 갑 이상 피우지 말아야 한다. 특히 당뇨병을 앓는 사람에겐 담배가 제일 좋지 않으므로 가능한
한 금연해야 한다.
건망증은 두려워할 병 아니다.
수년 전에 신문에 난 수필을 보니 비록 전문 분야나 학문 활동에서는 남에 비해 크게 기억력이 뒤떨어지지
않지만, 이름을 외거나 사람을 기억하는 데는 도무지 실력이 없어 자주 만난 사람의 성을 뒤바꿔 부르거나
심지어 수년 동안 같은 대학에 있던 수위도 알아보지 못해 망신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외국에서도
연구에 몰두한 대학 교수들이 세상 돌아가는 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웃어넘기기에는 너무나 큰 실수를
저지르거나 건망증이 심했던 일화는 얼마든지 있다. 필자도 대학을 졸업한 후, 오늘까지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지만 아직도 부모님과 형제들의 생일이나 제삿날은 물론, 정작 내 생일조차도 외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인
간이란 알수록 잊어버리게 마련이며, 잊어버릴수록 또한 새로운 사실을 기억할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되므로
건망증이 좀 있다고 해서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건망증도 심각하면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경멸하는 수가 있지만,대뇌 생리학자들의 설명에 의하면 불필요한 기억은 속 시원하게 빨리 잊어버릴수록 두
뇌활동에 좋은 효과를 갖는다고 한다. 대뇌 속에서는 아주 작은 흥분도 전류와 같이 계속 흐르는 가운데 기
억으로 남게 되는데,그 중 강렬한 인상을 받은 어렸을 때의 특이한 사건이나 화재, 돌발 사고 같은 일들은 일
생을 통해 잊어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일상생활중 특별한 인상 없이 지낸 많은 사건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잊어버리고 새로운 기억이 추가된다. 이때 지나치게 모든 사건이나 추억
들을 잊어버리지 않고 간직한다면 노이로제에 빠지기 쉽다. 더욱이 많은 가족의 생일이나 수많은 제자들의
이름을 빠뜨리지 않고 기억하기엔 특별한 노력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본인이 살아가는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기억만을 빼놓고 점차 낡은 것들은 잊어버리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새로운 사실을 기억하게 되면 과
거의 녹음이 깨끗하게 없어지듯 오래된 추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없어지는 것이 마땅하다. 구태여 옛날에 집
착해서 얽매여 살기보다는 적당히 잊어버리고 미래지향적인 태도로 생활하기 위해서도 건망증이 반드시 나쁘
다고만 할 수는 없다. 젊은이나 늙은이나 건망증이 좀 있다고 주눅들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잊을 건 멋지게
잊어버리고 새로운 일을 많이 벌이면서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 가장 건강한 인생이다.
여드름에 비누 세안 문제 없다.
여드름이 생기는 것이 싫다면 피지선에서 나오는 기름기를 깨끗이 닦아 주어야 한다. 적어도 하루에 두서너
번씩 미지근한 물로 얼굴을 닦는 것이 좋다.
여드름에 비누 세안 문제 없다.
중학교 2,3학년까지는 더없이 살결이 희고 고왔던 여학생도 고등학교에 들어간 후 돋기 시작한 여드름이 대
학생이 되면 빈틈없이 돋아나 남 앞에 떳떳이 얼굴을 들고 나서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남자들의 경우에는
여드름이 좀 나더라도 대수롭지 않지만, 혼인을 앞두고 맞선을 보거나 이성 교제를 해야 할 적령기 아가씨들
에게 여드름은 가장 큰 고민거리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렇게 기승을 부리던 여드름도 나이를 먹고 중년
기에 접어들면 씻은 듯이 없어진다. 또한 사춘기 이전의 어린이들에게서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도 없다. 따
라서 여드름은 성호르몬과 관계를 갖고 나타난다고 볼 수가 있다. 실제로 오늘날의 의학 지식으로 봐도 여
드름은 남성 호르몬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나이를 먹게 되면 아무리 심했던 여드름도
없어지게 마련이므로 무리해서 호르몬 요법을 쓰는 경우는 드물다. 원래 여드름은 피부 속의 기름기를 내보
내는 피지선 활동이 지나치게 활발해서 생겨난다. 피지선에서 생겨난 기름기가 완전히 피부 밖으로 나오지
못하면 피지선 속에서 기름 덩어리로 굳어진다. 흔히 여드름이 생겼을 때 손톱이나 수건을 대고 짤 때 하얗
게 비지밥같이 나오는 덩어리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여드름이 손끝에 만져진다고 해서 섣불리 손톱으로
짜다 보면 피부에 상처를 주게 되고 여러 가지 세균이 들어가 벌겋게 부어오르거나 고름이 생긴다. 여드름
이 생겨나지 않도록 예방하려면 피지선에서 나오는 기름기를 깨끗이 닦아 주어야 한다. 하루에 두서너번씩
미지근한 비눗물로 얼굴을 닦는 것이 좋다. 물론 비누만 쓰면 생기는 비누 알레르기 환자라면 비누를 함부로
써서는 안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드름이 나도 자주 비누로 닦는 것이 좋다. 흔히 비누
로 얼굴을 씻으면 피부가 거칠어지고 여드름이 더 많이 생긴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얼굴을 닦을
때 완전히 비눗기를 씻어내지 않으면 비누 성분이 피부에 남아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미
지근한 세숫물로 완전히 비눗기를 닦아내면 피부에서 분비된 기름과 때를 씻어내 여드름이 생기지 않는다.
누구나 여드름이 나더라도 서슴지 말고 비누로 얼굴을 닦아 기름기와 때를 씻어내 깨끗한 얼굴을 보호해야
한다.
몸살이라고 땀 너무 빼서는 안 된다.
흔히 열이 나고 팔다리가 쑤시며 머리가 아프고 입맛이 떨어지면 너무 과로해서 몸살이 났다고들 생각한다.
제아무리 강단 있고 건강에 자신 있는 사람이라도 몸살이나 감기 한번 앓지 않고 몇 해씩 무사히 넘기는 경
우는 드물다. 힘든 육체 노동을 하거나 지나치게 과로해서 피로해지면 출근도 못하고 며칠씩 드러누워서 꼼
짝 못할 때가 더러 있다. 그러나 의학적으로 볼 때 몸살이란 단순히 한 가지 증상으로 진단할 만한 병이 아
니라 여러 가지 병세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생기는 병이다. 대개 전염병의 초기 증상도 몸살과 흡사할 경우
가 많으며, 여과성 병원체가 일으키는 독감이나 호흡기 계통의 병은 물론 세균들에 의해 일어나는 소아마비
나 류마치스성 열들도 몸살로 알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95퍼센트 이상이 어른이 될
때까지 소아마비에 걸리지만 대개 감기나 몸살을 앓는 정도로 가볍게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세균에 의해
일어나는 병으로 류마치스성 열 같은 것을 반복해서 앓게 되면 심장병 같은 고치기 어려운 병을 일으키기 쉽
다. 그러므로 몸살이다 생각되면 단순한 과로 때문에 생겨난 것인지 이렇게 위험한 병들이 원인인지 미리 알
아보는 것이 좋다. 그러나 몸살이 다 이렇게 좋지 않은 병들이라도 단언할 수도 없고, 이러한 병 때문에 생
겨난 몸살 비슷한 병세인지 알아내기는 어렵다. 몸살에 걸리면 우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안정을 취하고
충분한 휴식을 가져야 한다. 쓸데없이 몸살이라 해서 가볍게 다루거나 땀만 많이 빼는 민간요법을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열이 많이 나고 골치가 아플 때는 차가운 물수건으로 머리를 식히고 해열제를 먹는 정도로 응급
처치를 해야 안다. 팔다리가 쑤시고 열이 나는 사람을 너무 덮게 해서 땀을 뽑아 내면 쇠약한 노인이나 어
린이들의 경우에는 오히려 치료가 늦어지고 위험한 합병증까지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역시 몸살에는 억지로
열을 올려 땀을 빼기보다는 적절한 해열제와 진통제를 먹는 것이 가장 과학적인 치료법이다. 물론 열이 떨
어지지 않고 며칠씩 몸살이 계속되면 여러 가지 미생물의 침입으로 일어나는 합병증인 경우도 있지만, 이미
지적한 좋지 않은 전염병일 수도 있으므로 의료기관을 찾아 정확한 진단에 따른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어쨌거나 몸살이라고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땀만 빼서 체력을 소모하는 무모한 치
료법은 절대로 좋지 않다.
머리 자주 감아도 머리 안 빠진다.
머리 자주 감아도 머리 안 빠진다.
탈모는 이미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들어서 젊은 사람들 사이에도 심각한 고민거리가 되었고,
심지어는 여자들에게까지도 불어닥친 심각한 문제에 이르러 있다. 항간엔 가발가게가 흥행을 하고 개중엔 단
순한 멋부리기로 가게를 드나드는 사람들도 있지만, 가발로 텅빈 머리채를 가리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
주로 찾고 있다. 서른 살이 되기도 전에 머리가 빠지기 시작해 서서히 이마가 벗겨지다 마흔 쯤 되면 어느
덧 머리카락을 셀 수 있을 정도로 머리숱이 적어지는 사람들을 이제는 제법 흔하게 볼 수 있다. 나이가 예
순이나 일흔이 되어도 드물게는 머리가 희어지지 않고 빠지지도 않는 사람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
를 먹으면 머리가 하얗게 되고 탈모 현상을 나타낸다. 따라서 탈모 방지를 위해 여러 가지 비타민제를 먹거
나 양모제를 바르는 사람도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의학지식으로 보면 젊어서부터 대머리가 되는 것은 유전
적 인자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병적으로 머리가 빠지는 가장 큰 원인은 머리를 자주 감아서라기보다 오히
려 머리를 자주 감지 않는 등의 불결한 두발 관리 때문이다. 머리를 자주 감지 않으면 땀이 나서 머릿속의
분비물과 섞여 비듬이 많아지고 그것이 곧 탈모의 원인이 된다. 머리가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땀이 많
이 나고 먼지가 많이 끼는 여름철에는 자주자주 머리를 감아서 깨끗한 두발을 유지해야 한다. 더욱이 머릿속
은 두발로 싸여 먼지나 땀이 앉더라도 다른 피부와 같이 쉽게 떨어져 갈 수 없다. 이러한 불순물들이 축적
되어 모근을 약하게 만들어 가을이 되면 머리가 많이 빠지게 된다. 물론 지나치게 자극성이 강한 빨랫비누나
질이 안 좋은 샴푸를 쓴다든지 예리한 손톱이나 빗으로 머리밑을 지나치게 긁으면 모근에 상처가 생기는데
이 또한 탈모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주로 쓰는 세안용 비누로 머리를 감는 한 머리가 빠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사람은 새나 개 같은 동물처럼 일정한 기간마다 털을 갈지는 않는다. 여름이나 가을에
머리가 많이 빠지는 것은 영양 관리를 잘 못했거나 머리에 비듬이나 때가 너무 많이 앉아서 모근을 약하게
만든 결과로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는 것이다. 지나치게 머리를 자주 감으면 혹시나 머리카락이 많이 빠질까
걱정이 되어 머리밑이 가려워도 억지로 참을 필요는 없다. 여름철에는 땀이 나고 먼지가 앉기 쉬우므로 매일
비누로 머리를 깨끗이 감아 신선한 기분으로 위생적인 생활을 해보라. 더 이상 머리 빠지는 일로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빗 같이 쓴다고 비듬 옮는 것 아니다.
이따금 만원 버스를 타면 멋지게 차려입은 신사나 요란하게 꾸민 젊은 아가씨나 할 것 없이 양쪽 어깨 위에
내려앉은 하얀 비듬을 발견할 때가 있다. 확실히 비듬이 많아 윗도리에 눈같이 쌓인 모습은 아무래도 궁상스
럽고 추해서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어렸을 때는 별로 비듬이 많지 않다가도 나이를 먹으면서 여러 사람
과 함께 빗을 같이 쓰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듬이 옮겨져 많아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오해
하지 말기 바란다. 비듬은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 옮겨지는 전염병이 아니다. 비듬이 많아지면 비단
머리뿐 아니라 털이 자라는 우리 몸의 여러 부위는 물론, 얼굴이나 겨드랑이에 심한 피부염까지 일으킬 수
있다. 아직도 많은 피부병의 원인이 확실하게 규명되지 못한 것처럼 비듬이 많이 생기는 원인도 정확히 알려
지지 않았다. 물론 이렇게 비듬이 생기고 가려움증이 시작되면 우리 주위에 흔한 포도당 구균이나 연쇄상
구균 같은 세균들이 들어와 전형적인 피부염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결코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지는 않는다.
이 외에도 기름기가 많은 우유, 버터, 크림 같은 식품이나 고기기름을 많이 먹으면 비듬이 생겨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하지만 적어도 빗을 같이 쓴다고해서 비듬이 많은 사람으로부터 옮겨지는 것은 아니다.
일단 비듬이 생기기 시작하면 머리를 자주 감아야 한다. 방법은 그것뿐이다. 가능하다면 매일 비누질을 해서
충분히 머리를 감아 비듬이 생기지 않도록 청결하게 머리를 관리하는 것이 좋다. 이 때 약용 삼푸나 비듬약
을 함께 쓴다면 훨씬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일단 비듬이 생기지 않게 되면 일주일에 두세 번씩 머리를 감아
더 이상 비듬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확실히 비듬은 많은 현대인들에게 가장 흔한 고민거리가 되었다.
거듭 말하자만 하얗게 윗옷에 내려앉은 골치 아픈 비듬을 없애기 위해선 머리를 자주 감고 일주일에 한두 번
씩 목욕을 해서 개인 위생을 지켜나가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남이 보기에도 추하고 본인도 갑갑하기 짝이
없는 비듬은 전염병이 아니므로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또한 필자가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머리를
자주 감을수록 머릿속의 때나 비듬이 떨어져 머리도 빠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 두면 좋겠다. 머리
를 자주 감는다고 기름기가 빠지거나 머리카락이 빠질 가능성은 없으므로 겁내지 말고 자주 머리를 감는 것
이 좋다.
춥다고 옷 껴입는 것 안 좋다.
겨울에도 두꺼운 내의와 방한이 잘 되는 속옷 한 겹 이상 입지 않는 것이 좋다. 그래야만 피부와 옷에 의복
내 기류가 일어나고 바람이 생겨 피부의 저항력을 높이고 자극을 주어 신체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춥다고 옷 껴입는 것 안 좋다.
날씨가 쌀쌀하고 추워지면 몇 겹씩 속옷을 껴입는 사람들이 있지만 보온이 잘 되는 옷으로 두 겹 이상 껴입
지 않는 것이 좋다. 미국의 유명한 지리학자 헌칭튼 박사가 발표한 기후 자극성에 의하면 역사상 대부분의
문명이 열대지방에 생겨나지 않고 추운 계절이 있는 온대지방에 집중된 것은 우리들이 춥다고 느끼는 한랭
자극이 사람의 몸에 진취적인 자극을 주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라는 것이다. 실제로 추운 공기는 일종의 자
극으로 체내의 호르몬 분비나 신경의 조화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자극이 될 수 있다. 추운 한랭 자극이
우리들의 일상생활이나 활동에 긴장 효과를 준다는 것은 환경생리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아드레날린이
나 코티존같이 인간 활동의 조화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호르몬은 여름보다 겨울에 약 30퍼센트나 더 생산
된다. 특히 두세 겹씩 속옷을 껴입게 되면 공기의 열차단 효과에 힘입어 가만히 있을 때도 추위를 느끼지 않
겠지만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거북하고 땀이 나서 불쾌해진다. 원래 사람의 몸과 의복 사이에는 가능한 한
적당한 의복 내의 기류 형성을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 활동에는 능률적이며 운동에도 편해야 하는 것은 당연
하지만 의복 내에 적당한 기류 현상이 계속돼야만 정상적인 신체 기능을 유지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
로 겨울에도 두꺼운 내의와 방한이 잘 되는 속옷을 한 겹 이상 입지 않는 것이 좋다. 그래야만 피부와 옷에
의복 내 기류가 일어나고 바람이 생겨 피부의 저항력을 높이고 자극을 주어 신체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을부터 지나치게 껴입지 않도록 습관을 들여야 한다. 조금만 날씨가 추워도 두세 겹씩 속
옷을 껴입고 스웨터를 걸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겨울에는 여러 겹의 속옷을 껴입어야 추위를 견딜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사람의 몸은 계절에 따라 쾌적하다고 느끼는 옷의 두께가 달라진다. 겨울 동안 추위에 단련되
고 나면 좀 얇게 입어도 추위를 느끼지 않지만 한여름을 지내노라면 가을에는 추위에 대한 적응능력이 떨어
져 조금만 날씨가 추워져도 겨울이나 봄에 비해 많은 옷을 껴입어야만 따뜻한 느낌을 갖게 한다. 그러나 의
식적으로 가을부터 속옷을 껴입지 않도록 노력한다면 겨울이 되더라도 몇 겹씩 옷을 껴입어야만 추위를 견딜
수 있는 약골이 되지는 않는다. 누구나 지나치게 속옷을 껴입게 되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
란다.
냉증은 몸이 차서 생기는 것 아니다.
흔히 몸을 차게 하거나 아랫배가 차면 냉증이 생겨 좋지 않은 대하가 생긴다고 얘기를 한다. 실제로 대하가
심해지면 몸이 차다고 해서 한여름에도 방을 덮게 하고 한증하듯 땀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냉증은
몸을 차게 하거나 아랫배를 차게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여성들의 성기에서 나오는 분비물은 성적으로 흥
분되거나 발정 호르몬이 많으면 정상적인 경우에도 많이 나오는 수가 있다. 이때 나오는 분비물은 자궁경관
에서 나오는 정상적인 분비물로 냄새가 없고 빛깔도 없다. 그러나 미생물의 감염을 받아 일어나는 경우에는
대하에 빛깔이 생기고 염증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증세가 나타난다. 우선 원충이 기생하여 일으키는 트
리코모나스 질염의 경우에는 흰 빛깔의 대하가 흐르고 몹시 가렵다. 심하면 여자들의 외음부가 붓고 벌겋게
변하는 등 염증의 전형적 증세를 나타낸다. 이 외에도 효모균에 의해서 생기는 질염에서도 냉증이 심해 대
하가 많이 흐르게 된다. 이 균은 정상적인 사람들의 입이나 피부와 대변 속에서도 볼 수 있으나 당뇨병이나
임신을 하게 되면 나타나는 수가 많다. 이때 대하는 비지 같은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며 몹시 가렵다.
또한 1955년에 새로이 알려진 헤모필루스균에 의한 질염에서도 대하가 심하고 밑이 가려워진다. 이때 생기는
대하의 빛깔은 흰 경우도 있지만 누런 빛깔을 띠는 수도 있다.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보는 연쇄상 구균이나
대변 속에 들어 있는 대장균 같은 것이 잘못 들어와 염증을 일으켜 대하가 생기는 경우도 무시 못한다. 가장
흔한 것으로 역시 성병의 일종인 임질에 의한 질염을 볼 수 있다. 특히 여자들은 남자의 경우보다 증상이
가벼워 본인 스스로 성병에 걸렸다고 느끼지 못하고 지내다보면 염증을 오래 끌어 대하가 늘고 소위 냉증이
생기는 수가 많다. 어린 소녀들의 경우에는 어른들이 쓴 불결한 요강이나 변기를 통해 전염되는 경우가 있
으므로 대하나 성병을 가진 부인들은 반드시 변기를 따로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결핵 같은 만성병은 물론,
자궁에 혹이나 궤양이 생겼을 때도 대하가 많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몸을 차게 하거나 아랫배를 차게 해서
대하가 생기거나 냉증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누구나 대하가 심하고 냉증이 있을 때는 그 원인을 정확하게
밝혀 내 완치할 수 있는 치료법을 모색해야 한다. 쓸데없이 방을 덮게 하거나 옷을 많이 껴입는다고 냉증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만이 상책 아니다.
인간은 하루 24시간 중 언제 자고 언제 일어나는가는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단지 문제되는 것은 완전히 새
로운 리듬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한 달 이상의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만이 상책 아니다.
어쩌다 새벽에 기차를 타려고 날이 밝지도 않은 새벽거리에 나오면 물주전자와 수건을 든 중년의 남자들이
약수터로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흔히 일찍 일어나는 조기 조침은 건강이 근원이라고 일컬어져 왔다. 그러
나 이와 같은 조기 조침이 과연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 것인지 재고할 여지가 많다. 과연 12시 이전의 수면
은 자정 이후의 같은 수면 시간보다 피로회복의 효과가 큰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하
룻동안 언제 어디서 얼만큼 자든지 그 길이가 문제되는 것인지 시각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사
회가 복잡해지고 산업화가 추진될수록 야근제나 3교대제가 늘어남에 따라 이와 같은 전근대적인 조기 조침
원칙은 적용될 수 없다. 농업을 위주로 하던 과거에는 해가 뜨면 논밭에 나가 일하고 해가 지면 집에 돌아
가 잠자는 것이 당연하고 정상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조기 조침은 미덕인 동시에 생활 신조로 승화되고 건강
의 원칙으로도 권장되어 왔다. 어린 아이의 경우에는 나이가 어릴수록 수면 시간이 길어야 하므로 유치원이
나 초등학교 학생들이 매일 9-10시간씩 자기 위해 빨리 자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지만 빨리 일어난다는 것이
반드시 건강상 필요한 것은 아니다. 속리산 문장대나 경주 석굴암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기 위해 매일 계속
해서 일찍 일어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분이 상쾌하기보다는 오히려 수면 부족으로 불쾌해질 것이 뻔하
다. 단지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은 인체의 리듬이다. 만일 학생이 밤늦게까지 공부를 했다면 아침에는 늦게
일어나야 한다. 평소에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학생이 수험 전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시험장에 나가
면 머리가 띵하고 숙면을 하지 못해 시험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취침과 기상 시각을 변경했기 때
문에 몸이 새로운 리듬에 습관화되지 못해 나타난 결과이다. 인간은 하루 24시간 중 언제 자고 언제 일어나
는가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단지 문제되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리듬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한 달 이상의
적응기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주야제나 3교대제를 실시하려면 1-2개월 이상 계속해서 똑같은 방
식에 따라 생활하지 않는 한 몸과 마음이 다 같이 적응할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없어 피로가 쌓이게 된다.
조기 조침은 이미 사회적으로나 건강상으로나 받아들일 수 없으며 받아들일 필요도 없는 과거의 유물이다.
단지 문제가 되는 것은 일정한 리듬에 적응하도록 충분한 기간을 두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취침 전 간식 나쁘지 않다.
근래 모 정신과 전문의가 라디오 건강상담에서 우리 나라의 위장병 환자 중 약 1/3쯤은 신체적인 원인에서
오는 것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인 긴장이나 스트레스 때문에 오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확실히 위장만큼
인간의 정신 작용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기관도 드물다. 정신 활동의 피로를 풀기 위해 대뇌가 수면을 취하
는 동안 사람의 위는 큰 활동을 하지 않는다. 배불리 식사를 한 후 보통 3시간이 지나면 위는 음식물을 완전
히 처리한다. 그러나 식사 후 곧 잠을 자게 되면 4시간이나 5시간이 지나더라도 위내에 그대로 음식물이 남
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식후 곧 취침하게 되면 소화불량에 빠진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적어도 식사후
2-3시간쯤은 자지 않고 어느 정도 소화가 진행된 후에 취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흔히 서양 사람들이 저녁
식사후 오랫동안 후식을 먹으면서 잡담하는 것도 이러한 면에서 볼 때 합리적인 습관이다. 따라서 취침 전
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이 좋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제대로 반찬을 갖춘 성찬을 먹는 것과 간
식으로 가벼운 음식을 먹는 것은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서양 사람들은 취침전에 잠이 안 오면 따끈하게
데운 우유를 마시는 경우가 많다. 취침 전 식사는 위에 부담을 주게 되고 소화불량을 필연적으로 가져오지
만 적당하게 소량의 소화되기 쉬운 간식은 오히려 공복감을 없애 주고 깊은 잠을 이룰 수 있게 하는 좋은 수
면제이다. 시골에서 자라난 사람이면 대부분 경험했으리라 짐작되지만 농촌의 겨울밤은 밤참없이 지내기가
힘들다. 해가 짧은데다 초저녁에 저녁밥을 먹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거나 일을 하다 보면 저녁 7-8시만 지나
도 심한 공복감에 빠져 여러 가지 가벼운 간식 거리를 찾게 된다. 밤이 길고 저녁식사 후 잠자리에 들기까지
의 시간이 길수록 밤참을 먹는 것은 오히려 보건상 좋은 식습관이다. 일부러 취침 전 식사가 나쁘다고 해서
배가 쓰리고 심한 공복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잠자리에 들게 되면 잠도 제대로 오지 않을 뿐만 아니
라 위장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취침 전 공복감이 있을 때에는 소화되기 쉬운 가벼운 간식이나 따뜻
한 우유를 마음껏 먹어라. 아무 탈도 생기지 않는다.
불면증으로 죽는 법은 없다.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억지로 잠을 청할 필요가 없다. 잠이 오지 않더라도 지나치게 걱정하지 않으면 불면증
은 자연히 사라지게 된다. 잠이 안 와서 큰 변이 생기거나 죽는 일은 없다.
불면증으로 죽는 법은 없다.
입학 시험을 앞두고 수험 준비에 바빠 각성제를 먹어가며 일 분 일 초를 다투어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는 반
면, 잠이 오지 않거나 깊이 잠들지 못하고 꿈자리가 사나워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나폴레옹은 하
루에 3시간밖에 자지 않고도 일을 해냈으며, 하루에 서너 시간씩 자고 몇 해씩 고시공부를 했다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려면 하루에 8시간은 자야 한다. 실제로 나폴레옹은 3시간밖에
자지 않았지만 그 대신 낮잠을 즐겼으며, 말을 타면서 졸았다. 전쟁에 나가 실전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얘기
를 들어 봐도 2-3일이나 일주일씩 계속 전투가 벌어지면 행군을 하면서도 잤다고들 한다. 원래 사람의 몸은
정상적인 생리 기능이 유지되도록 자율적으로 조절된다. 많은 불면증 환자들이 잠이 안 와 죽겠다고 하지만
불면증으로 죽는 법은 없다. 자연히 피로가 겹치면 잠이 오고 피로하지 않은 때는 잠이 오지 않는다. 정신적
으로 지나치게 피로하면 일시적으로 잠이 오지 않는 수는 있다. 그러나 진짜로 피로하면 아무리 환경이 나빠
도 잠은 오게 마련이다. 전쟁중에 행군하면서 군인들이 잠을 잤다는 얘기는 많지만, 반대로 우리의 몸과 마
음이 수면을 하지 않을 때는 아무리 환경이 좋더라도 잠은 오지 않는다. 결국 불면증이란 잠이 안 오는데
잠을 자야겠다고 조바심을 내기 때문에 생긴다. 잠이 오지 않을 때 자야겠다고 의식할수록 잠은 더 안 온다.
흔히 불면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잠도 자지 않고 뜬눈으로 지냈다고 하지만 하루에 3-4시간씩 필요
한 수면을 취한 경우가 많다. 원래 불면증은 사색에 잠길 수 있는 사람만의 병이다. 개나 고양이 같은 동일
에게 불면증은 없다. 사람도 어린 아이들은 불면증을 호소하지 않는다. 결국 지능이 발달하고 수면의 중요성
을 인식하게 될수록 잠을 자지 못하면 큰 변이 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자지
말고 잠이 올 때 자면 된다. 잠이 오지 않더라도 지나치게 걱정하지 않으면 불면증은 자연히 사라지게 된다.
잠이 안 와서 큰 변이 생기거나 죽는 일이 없다. 걱정할수록 불면증은 고쳐지지 않는다. 마음을 편히 가지면
잠을 자연히 오게 마련이다.
꿈 많이 꾼다고 허약한 것 아니다.
아직도 꿈을 신비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집에 불이 나거나 돼지꿈을 꾸면 반드시 재운이 따르거
나 경사가 생긴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깊은 강을 건너거나 젊은 여자를 보면 재수가 없다는 사람들도 있
다. 우리 나라 야사를 보면 이태조는 꿈 속에서 계시를 받고 이씨조선 건국에 나섰다는 이야기도 있다. 꿈을
많이 꾼다고 반드시 잠을 설치거나 깊은 잠에 들지 못했다고 말할 수 없다 흔히 몸이 허약하거나 약해지면
숙면을 하지 못하고 꿈을 많이 꾼다고 하지만 반드시 맞는 이야기는 아니다. 꿈을 많이 꾸더라도 숙면과는
깊은 관계가 없다. 물론 꿈은 잠자리에 든 후, 깊이 잠들기 전에 꾸거나 깨어날 때 임박해서 꾸는 경우가 많
지만 꿈을 많이 꾼 것 같이 여겨진다고 하여 숙면하지 못했다는 생각은 기우에 불과하다. 아무리 곤히 사람
도 흔들어 깨우면 흔히 꿈을 꾸다 깼다고 말한다. 대개 우리들은 깊이 잠들기 직전의 꿈과 깨어나기 임박해
서 얕은 잠을 자면서 꾼 꿈만을 기억하며 그 외의 꿈은 거의 다 잊어버리고 만다. 따라서 진짜로 수면중에
많은 꿈을 꾸었더라도 아침이 되면 거의 다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많은 꿈을 꾸었다는 것은 새벽녘에
얕은잠을 잤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하물며 꿈을 좀 꾸었다고 해서 몸이 허하거나 지나치게
약하다고 말할 수 없다. 물론 밤중에 몇 번씩 깨어나 화장실에 드나드는 경우 중년기 이후라면 당뇨병이 의
심되거나 방광염이 만성화된 경우겠지만 신장 기능에 이상이 있을 경우에도 생길 수 있다. 물론 이런 경우에
는 의사에게 진찰을 받아 그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좋지만 꿈을 자주 꾼다고 해서 병이 있거나 허약하지 않
은가 걱정할 필요는 없다. 실제로 꿈을 많이 꾸게 만드는 것은 몸이 허하고 약한 경우보다는 침실의 환기가
잘 안 됐거나 너무 꼭 끼는 옷을 입고 잤거나 딱딱한 베개나 지나치게 무거운 이불을 덮고 잘 때 생긴다. 또
한 배불리 식사한 후 곧 잠든 때라든지 특별한 근심이 떠나지 않았을 때 생겨나기 쉽다. 누구나 꿈을 자주
꿀 때는 생활 주변을 정리하고 근심거리를 줄이는 동시에 잠자리를 편안히 해서 꿈을 꾸지 않도록 해야 하겠
지만 꿈을 꾼다고 몸이 허하거나 약한 것은 아니므로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2.장수하는 사람들의 아주 특별한 생활 습관
왜 전통의학에 주목하는가?
이제는 환갑 잔치를 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전설시대에 살았다는 옛어른들
같이 오래 살게 만드는 장수 의학은 없다. 생리적 수명에 대한 의학자의 입장도 장님 코끼리 더듬듯 제각기
다르다.
왜 전통의학인가?
의학과 보건학을 중심으로 20세기 후반부터 나타난 범세계적인 변화를 꼽는다면 생활 수준의 향상과 의료
기술의 발전에 힘입은 장수화 경향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의 평균 수명은 이미 80세에 이르렀다.
UN의 추계에 의하면 현재와 같은 추세로 노령화가 계속된다면 2025년이 되면 일본은 총인구 중 65세 이상
의 노인들이 25-30퍼센트가 되리라 전망하고 있다. 우리 나라와 중국도 예외는 아니다. 과학적인 전염병의
예방법은 평균 수명의 연장을 가져왔고, 평균 수명의 연장은 40-50대의 장년층과 노령 인구의 급속한 증가를
가져 왔다. 그러나 오래 살수록 병에 걸릴 확률은 높아진다. 전염병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사람
들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나이 먹은 사람들에게 잘 생기는 성인병이나 노인병은 일단 발병하면 거의 완치가
안 되는 비전염병이다. 제대로 관리를 해도 좋지 못한 합병증이 생기고 많은 사람들을 괴롭힌다.옆구리가 아
프고 무릎이 쑤시고 안면마비로 얼굴이 뒤틀리는 등 갖가지 통증이 생겨난다. 이런 질병 치료의 한계에 부딪
힌 서양 의학을 대신해서 아직도 세계의 여러 민족들이 지니고 있는 전통 의학을 활용하자는 의견이 세계적
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국제적 추세에 발맞추어 세계보건기구(WHO)는 노인들의 만성병 관리에 전통 의
료와 전통 의학을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필자로 하여금 1984년부터 1996년까지 1년에 한 번씩 구소련
의 카자흐스탄 공화국은 물론 우즈베키스탄 공화국과 내몽골 그리고 중국의 변방을 돌아다니면서 그 타당성
을 조사하도록 했다. 물론 필자는 한의사가 아니다. 티베트의 장의사나 몽골의 몽의사도 아니다. 하물며 위
구르족의 유의사도 아니다. 서양 의학을 공부한 후 예방 의학과 보건학을 전공하고 약 20년 전부터는 의과대
학에 나가 의학사를 강의하고 보건대학원에서는 보건사를 담당해 왔다. 그러나 의학사나 보건사를 세계적인
안목에서 아시아나 한국에 국한시키면 중국의 중의학이나 중앙아시아의 전통의학은 매우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인연 때문에 필자는 서양 의학을 공부해 왔지만 전통 의학을 학문의 대상으로 삼고 이
해하려는 입장을 지녀왔다. 또한 5.16 이후 근 10년간에 걸쳐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의 전신인 동양의학대학
에서 보건학을 강의한 인연도 있어서 세계보건기구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른바 '비단길'의 요충지라 할 수 있
는 사마르칸트와 타슈켄트는 물론 알마아타와 중국의 여러 고장을 돌아다녔다. 신강 자치구의 토르판,우르무
치는 물론 청해성의 서녕과 서안, 돈황 그리고 장춘과 성도, 낙양, 정주 그리고 서장 자치구인 티베트의 수도
라사와 시가체에도 다녀왔다. 또한 지난해에는 중일전쟁 당시 요충지로 이름난 운남성의 곤명과 메콩강의 발
원지인 광서성에도 가보았다. 1988년에는 중국 정부의 호의에 힘입어 우리 나라 동포들이 많이 사는 연길과
백두산도 구경했고, 1993년에는 18세기 말까지 한자 문화권에 귀속되어 있던 라오스,캄보디아 그리고 베트남
을 다녀왔다.
아시아 의학의 뿌리
정치적인 배경도 깔려 있지만 중국에선 1949년 이후 뿌리찾기 운동과 자주의학 재건사업의 일환으로 중의학
의 발전이 거국적으로 추진되어 왔다. 우리 나라와 일본은 물론 유라시아 대륙에 분포되어 있는 여러 민족
들도 서양 의학 일변도에서 벗어나 이제는 일종의 대체 의학 또는 보완 의학의 차원에서 각기 자신들이 지
켜온 전통의학을 되살리고자 힘쓰고 있다. 우리 나라 또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전통의학에
관련된 관심을 중의학과의 관계규명이라는 차원에서 나아가 인도의 '아유르/베다' 의학은 물론 서양의 '그리
스/로마'의학과 좀더 넓은 안목에서 밝혀 나아갈 필요가 있다. 흔히 중국의 역사는 중국을 둘러싼 야만족인
이른바 북적과 남만 그리고 서융, 동이의 변방 민족과 한족의 상호관계를 중화 사상에 입각해서 한족을 중심
으로 기록해 왔다. 의학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오늘날 중국이 정치적으로 강조하는 이른바 중의학도 엄격
히 따진다면 한족을 중심으로 발달한 한의학을 뜻한다. 중국 안에서도 몽골족의 전통의학을 몽의학이라 부르
며 위구르족의 전통의학을 유의학,티베트의 전통의학을 서장의 의학이란 의미에서 장의학이라고 한다. 역사
를 통해 한족이 중국을 지배한 경우도 있었지만 왕소군의 이야기로 유명한 중앙아시아의 위구르족이나 문성
공주의 일화로 잘 알려진 장족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 의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한족의 한의학이 아
시아에서 언제나 지배적인 위치에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인도의 고대 불교 의학은 물론 아라비아의 이슬람
의학과 더 나아가 유럽의 그리스 의학과도 관계를 맺고 아시아의 전통의학은 발전해 왔다. 중국을 둘러싼
여러 민족은 오래 전부터 고유의 민간의료요법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의료요법은 오랜 문화적 기반 위에서
생겨난 것으로 이미 역사로부터 그 자취가 사라진 것도 있다. 일반적으로 민간 의료는 공식적인 문서에 의
해 기록된 기술 의학에 앞서서 생겨났다. 그러나 그 후 문자에 의해 기록된 아시아 여러 민족의 기술 의학은
그 이론 체계가 대부분 중국과 인도 그리고 아라비아 의학으로부터 근원을 찾게 된다. 일본의 한방과 우리
나라의 한의학은 중국의 한의학으로부터 그 이론 체계를 모방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나
라나 일본의 전통의학이 중국의 한의학과 같은 것은 아니다. 질병이나 치료에 관한 사고방식을 보더라도 아
시아 여러 민족은 독창적인 비판 정신과 고유 영역을 지켜왔다. [향약집성방]이나 [동의보감]은 우리 나라의
고유의 자주 의학 발전의 대표적인 흔적이다.
노의가 전해 준 건강 수칙 10가지
노망은 이른바 노인성 치매 또는 알츠하이머병이라고도 한다. 30-40년전까지만 해도 나이 들면 며느리 흉이
나 잘 보는 일종의 정상적인 노화 과정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20세기 후반에 접어들
자 극히 못사는 나라들을 제외한다면 우리 인류는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 살게 되었다. 그
러나 북경의 백운관 내에 모셔진 팽조같은 도인들이나 구약 성경의 모세로부터 노아에 이르는 전설 시대의
선인들같이 몇백 년씩 오래 사는 사람은 없다. 1875년을 기점으로 불붙기 시작한 서양의 과학적 의학이 거
둔 가장 큰 업적을 든다면 홍역이나 마마 같은 전염병을 없애서 누구나 오래 살게 만든 평균 수명의 연장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은 60부터라면서 노익장을 자랑하고 이제는 환갑잔치를 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늘
어나고 있다. 그러나 생리적 수명은 연장시키지 못했다. 생리적 수명에 대한 의학자의 입장도 장님 코끼리
더듬듯 제각기 다르다. 다른 동물같이 완전히 자라서 제구실을 하게 되는 20세를 기준으로 해서 200세까지라
고 하는가 하면 최소한 150세는 될 것이라는 사람들도 있다. 근래 이런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100세 넘게
오래 사는 사람들이 많은 장수촌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고장은 곧 과학 문명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한
변방인 동시에 장수 의학 내지 전통의학이 보존된 고장이다. 그러나 이런 장수촌에 가려진 함정은 많다. 호
적 제도가 잘 정리되지 않은 맹점을 이용해서 120세나 130세로 늘려 잡는 사람들이 있다고도 한다. 1949년
이후 중국이 자랑해 온 중의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정부 수립 이후 공식적인
교육기관에서 교육받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지방에 따라 각기 몇백 년씩 조상 대대로 이어받은 비방에 따
라 침을 놓거나 약을 쓰는 노의들이 있다. 이 중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노의들이다.
때로는 관상도 보고 점도 치며 비방도 일러 준다. 서안에서 만난 이런 한 노의는 현대인에게 꼭 필요하다는
10가지 건강수칙을 필자에게 전해주었다. 첫번째는 적게 먹고 오래 씹으며, 두 번째는 고기를 먹되 적게 먹
고 채소를 많이 먹으며,세 번째는 싱겁게 먹고 식초를 많이 쳐먹고, 네 번째는 단 것을 적게 먹고 과일을 많
이 먹으며, 다섯 번째는 화를 적게 내고 잘 웃으라고 했다. 여섯 번째는 괴로움을 줄이고 잠을 많이 자며,
일곱 번째는 말을 적게 하고 행동을 앞세우며, 여덟 번째는 욕심을 적게 부리고 많이 베풀며, 아홉 번째는 옷
을 얇게 입고 목욕을 자주 하며, 열 번째는 차는 적게 타고 많이 걸으라고 했다. 그 내용을 보니 중국 한의
학의 현대화된 섭생법이라 여겨졌다. 독자 여러분들에게도 참고가 되리라 생각된다.
육식 없이 장수 없다.
근래 우리 주변에는 고기를 먹으면 고혈압과 동맥경화증을 유발한다고 기피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서
양 사람들을 위해 만든 서양의학을 그대로 도입해서 생겨난 착각이다.
티베트의 릉다
티베트에 가 보면 가장 낮은 곳이 해발 3,700미터이고 높은 곳은 5,900미터에 가깝다. 산소가 부족해서 외국
인들은 쉽게 적응하기 힘들다. 그러나 티베트는 역사 시대이후 기원전 500년경부터 문자로 기록된 역사를 가
지고 있었으며, 7세기경에 이르자 티베트의 고유문자가 만들어졌다. 7세기에는 중앙아시아를 정복한 후 서기
763년에는 중국에 들어가 장안을 점령하기도 했다. 또 785년에는 서쪽으로 세력을 확장해서 파미르 고원까
지 그 지배하에 두고 찬란한 문명을 이룩했다. 아직도 나곡,일객칙,산남 같은 곳에는 이들이 자랑하는 장수촌
이 있다. 이런 곳에 가보면 어김없이 생활 수준도 낮고 위생 상태도 좋지 않다. 목욕을 하지 않아 냄새가 나
는 데다 강렬한 햇볕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야크 젖이나 양젖으로 만든 버터를 온몸에 발라서 기름
기가 돌고 불결한 느낌도 났다. 그리고 밥도 없고 빵도 없다. 4000미터 이하에선 양고기를 많이 먹고 고산지
대에서 나는 보리와 조를 볶아 빻은 가루에 버터를 더운물에 넣어 다져 먹는 '짬바'가 고작이다. 물론 지방에
따라서는 포도도 나고 멜론 같은 과일도 나서 먹는다지만 신강 자치구의 '토르판'이나 '우루무치'만큼 흔하지
는 않았다. 그렇다고 피부병이 많은 것도 아니다. 오늘날 현대인이 앓고 있는 대부분의 피부병은 몸을 너무
깨끗이 하고 위생적으로 관리해서 생겨난 인조병이다. 목욕은 거의 하지 않지만 피부병은 많지 않았다. 티베
트에 머무르는 동안 여러 곳을 둘러보았으나 생활 수준도 낮고 먹는 것도 별로 좋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 나
라같이 악착스럽게 사는 사람들은 없었다. 부자나 권력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보지 못했다. 확실히 이들에게
이승이란 잠깐 머물다 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았다. 생긴 대로 살다가 떠나는 것, 그것이 그들의
인생인 것이다. 중국이 이 고장을 점령할 때만 해도 어느 가정에서나 아들이 둘 이상 태어나면 한 사람은 반
드시 승려가 됐다고 한다. 따라서 1950년대까지는 전인구의 1/4이 라마승이었다고 한다. 비행기에서 내려
'라사'시내에 들어오면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병을 고치고 복을 가져오게 양병기복한다는 룽다였다. 몽골이
나 청해성 그리고 신강지방에서는 이런 것들을 오뿌라고 했다. 쉽게 말하면 횡액을 막고 뜻하지 않은 병고
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토착신앙 같은 것이었다. 가는 곳마다 마을 입구에는 돌로 쌓아 놓고 그 한가운
데에는 이런 '오뿌'나'룽다'를 세워 놓는다. 30-40년전 우리 나라 성황당과 매우 흡사했다. '룽다'는 마치 깃대
에 소원이 담긴 깃발 같은 천을 수없이 매달아 놓은 것으로 복을 빌고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있다. 이런 깃
대는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다. 집안에도 있고 들에도, 길거리에도 있다. 그러나 이런 풍습은 라마
불교와는 관계가 없다. 이곳 사람들의 설명에 따르면 몽골이나 티베트에서 '샤머니즘'의 영향아래 전래된 종
교유산으로, 예전에는 이런 종교의식에 의해 미친 사람을 고쳤다고도 한다. 우리 나라의 굿이나 푸닥거리와도
비슷했다.
기름기 있는 음식은 피해야 하나?
유라시아 대륙에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이른바 장수촌이 많다. 일본의 오키나와, 유럽의 불가리아, 파키스탄
의 훈자,그리고 필자가 자주 가본 중앙아시아에도 이른바 장수촌이 많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요즘 우리들
이 알고 있는 건강상식과는 정반대되는 식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이들의 주식은 고기이다. 양고
기, 말고기,야크고기를 주로 많이 먹는다. 물론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위구르족은 돼지고기 대신 말고기와 양
고기를 많이 먹고 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선 아직도 고기는 산성 식품이기 때문에 몸을 산성화시켜 노화
를 촉진,건강에 이롭지 못하고, 채소는 알칼리성 식품이기 때문에 채식을 많이 하면 몸이 알칼리성으로 바뀌
어 장수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아직도 냉면집에 가보면 냉면에 얹은 돼지고기를 상 위에 젖혀 놓고 먹
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곰탕집이나 설렁탕집에 가더라도 기름을 뺀 맛배기만 먹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 우
리 나라도 살찐 사람이 건강하다는 얘기는 옛말이 되어 버렸다. 뚱뚱한 사람이 건강해 보인다는 얘기는 우리
의 옛 선조들이 누려 온 상식이었다. 마른 사람은 어딘지 모르게 허약해 보이고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
러나 이제는 표준 체중이상으로 뚱뚱한 것은 비정상이며 성인병의 초기 증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누구나
다 아는 바와 같이 뚱뚱하면 영양이 좋다는 얘기는 분명한 착각이다. 식생활이 빈약했던 과거에는 뚱뚱하면
영양상태가 좋다고 보았다. 보릿고개를 걱정하던 시절에는 먹거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돈 많은 사람일수
록 뚱뚱하고 가난한 사람일수록 야윌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 와서는 반대로 뚱뚱한 사람일수록
영양에 결함이 있거나 식생활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비만증은 생활 정도가 낮은 흑
인이나 원주민들에게 많이 생긴다. 상류층의 사람들보다 균형 있는 식사를 하지 못해서 생겨난 결과로 해석
되고 있다. 과거 뚱뚱한 사람은 전염병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다고 알고 있었지만, 이제는 전염병이 질병의
주류를 형성하던 시절이 아니다. 고혈압,심장병,당뇨병, 같은 성인병은 비만증에 걸린 사람일수록 잘 발생해서
평균 수명도 짧다. 따라서 비만증은 억제하고 다이어트를 해야만 건강해진다. 이제는 보기만 해도 그대로 살
이 될 것 같은 비계나 기름기 있는 음식을 기피하는 습성이 상식화되어버렸다. 그러나 이런 지방 기피 현상
은 잘못된 건강 상식이다. 우리들이 매일 세 끼에 섭취하는 지방이나 고기의 양은 서양사람들에 비하면 아직
도 턱없이 모자란다. 하물며 지방이나 기름에는 비타민 A,D,E가 포함되어 기름기 있는 음식을 먹지 않으면
이러한 비타민 부족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콜레스테롤도 너무 부정적인 측면만 강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많아도 걱정이지만 콜레스테롤이 적어지면 우리 생활에 밀접한 관계를 가진 여러 효소나 호르몬 생산에 지장
을 준다. 남자의 정액은 그 원료가 100퍼센트 동물성 지방인 콜레스테롤이다. 뇌세포와 뇌조직에 가장 좋은
영양분도 콜레스테롤이다. 티베트 사람들은 양이나 야크고기를 먹을 때 지방도 함께 즐겨먹고 있다. 그러나
그곳 사람들 중 뚱뚱한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육식해야 장수한다.
아직도 티베트 사람들은 거의 자급자족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 가축의 껍질로 만든 옷과 신발을 이용하고
그 배설물로 불을 피우며 그 고기를 먹고 살아간다. 생활에 여유가 생겨 도회지로 나와 현대식 건물에서 사
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도 시골에서 천막 비슷한 이동식 간이 주택에서 산다. 대개 가축
을 따라 유목 생활을 하기 때문에 한 고장에 정착할 수가 없다. 그러나 서장 자치구 장의원의 연구 조사에
따르면 도회지에 나와 사는 사람들 중에는 장수하는 사람들이 없다고 한다. 시골에서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전통 음식을 먹고 사는 사람들만이 장수한다는 얘기였다. 특히 놀라운 것은 나이가 들면서도 기름기를 잘
먹고 고기를 계속 먹어야 건강하다는 얘기였다. 요즘 우리 나라에서 유행하고 있는 채식 바람과는 반대되는
얘기였다. 사람의 몸은 대부분이 단백질로 이루어지고 단백질은 아미노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대부분
의 아미노산은 우리 몸 안에서 합성되지 않아서 고기를 먹어야만 보충할 수 있다. 여름철에 잘 먹는 보신탕
도 따지고 보면 고단백 고지방식이기 때문에 몸에 좋은 것이다. 그러니 고기를 많이 먹어야 건강에 이롭다는
얘기가 성립될 수 있다. 근래 우리 주변에선 고기를 먹으면 고혈압과 동맥 경화증을 유발한다고 기피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서양 사람들을 위해 만든 서양 의학을 그대로 도입해서 생겨난 착각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너무 맵고 짜게 먹어서 고혈압과 동맥경화증도 생겨나고 뇌출혈이나 뇌일혈로 사망하고 있다. 우
리 나라에선 앞으로도 최소한 30-40년 동안 90퍼센트 이상의 사람들이 채식보다는 육식을 더 해야 건강할
수 있을 것이다. 티베트의 장수촌에선 오늘날에도 고기를 많이 먹어 장수하고 있다.
균형식은 없지만 술은 많다.
이들의 식문화에서 그 특징을 찾아보라면 술을 여러 가지 질병 치료나 예방을 위해 쓰고 있다는 점이다. 특
히 몽골의 말젖으로 만든 마유주는 외국에서도 유명하다.
몽골 사람들의 술대접
1984년부터 지난해까지 15년간에 걸친 여행 중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잠자리와 음식 그리고 교통 문제였
다. 북경에서 기차로 신강 자치구의 수도'우르무치'까지 가려면 급행을 타도 4-5일 걸린다. 우르무치에서 '토
르판'까지는 하루 종일 자동차로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한다. 또한 우르무치에서 지도로 보면 매우 가까운 청
해성의 수도 서녕에 가려면 다시 북경에 가서 기차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야 한다. 또한 사전에는 왕복 기차
표나 비행기표를 끊을 수도 없다. 예컨대 우르무치에서 한 달 동안 머무른 후 북경으로 되돌아갈 때는 반드
시 머무르는 곳마다 기차나 비행기표를 끊어야 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중국 정부의 배려와 지방 행정당
국의 주선으로 큰 불편은 없었다. 두 번째는 필자는 가는 곳이 대개 벽지나 오지여서 편한 잠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던 점이다. 지방에는 정부가 운영하는 초대소가 있어서 그곳에 묵거나 아니면 병원에서 묵은 적도 있
다. 세 번째로는 음식 문제였다. 대체로 저녁마다 방문하는 고장이나 병원에선 저녁을 잘 차려 후하게 대접
해 주었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중국 사람들의 대접은 돈독하다. 수많은 요리와 함께 술대접도 받았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내몽골과 외몽골에서는 필자를 위해 특별하게 노래를 부르고 술을 따라 주는 여자까지 배석해
서 흥을 돋워 주었다. 북경에서 내몽골로 떠나기 전에 중국 위생부 관리들이 농담 섞어 말해 준 바와 같이
몽골 사람들의 술대접은 극히 인상적이었다. 뻗지 않으면 놓아 주지 않았다. 매일 저녁 술에 만취하다 보니
낮에 일을 보기가 힘들어 며칠지나서부터는 꾀를 냈다. 아예 술을 몇 잔 마시고 만취한 듯이 행동하는 것이
다. 그러면 숙소로 돌려보내주었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한 번 아니면 두 번쯤은 그 고장 사람들이 먹는 전
통음식을 대접받았다. 몽골에서는 양 한 마리를 보는 앞에서 잡아서 삶은 고기를 작은 칼로 잘라 먹고 돌같
이 딱딱한 말 젖 치즈를 더운물에 녹여 마시면서 좁쌀 볶은 것을 먹기도 했다. 우르무치와 토르판에서는 사
우디아라비아와 비슷하게 양고기에 쌀을 넣고 찐 맛있는 양고기 밥을 대접받기도 했고, 양고기 꼬치구이도
먹었다. 티베트의 라사와 시가체에선 높은 고산지대에 나는 보리를 볶아 만든 가루를 야크 또는 말 젖 버터
로 더운물에 섞어 먹는 짬바도 대접받았다. 청해성과 운남성에선 타이족과 장족의 의식대로 대나무 속에서
자라는 꼭 구더기같이 생긴 벌레를 날로도 먹고 기름에 튀겨 먹기도 했다. 돼지고기도 몇 달씩 간을 해서 삭
혀 김치같이 만든 것을 대접받기도 했다. 베트남과 라오스에선 작은 생선을 젓갈로 만들어 원료로 사용한
생선장으로 음식을 간해서 좀 역겹기도 했다. 그러나 대접하는 분들의 성의를 생각해서 가능한 한 많이 먹고
기분 좋게 마셨다.
밥도 빵도 없는 몽골 음식
우리 나라에서도 가는 곳마다 음식에 차이가 나듯 소수 민족에 따라 이들이 흔히 먹는 음식은 아주 다르다.
몽골의 전통음식에는 밥이나 빵이 없다. 고기가 주식이고 말 젖이나 양 젖을 발효시킨 요구르트나 버터와 치
즈 그리고 볶은 좁쌀과 치즈 차를 마시는 것이 고작이다. 채소도 거의 먹지 않는다. 몽골에서 채소를 가꾸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고장에 이주해 온 한족들이다. 호수에서 나는 생선도 라마 불교의 영향을 받아서 먹지
않는다. 그러나 몽골은 넓다. 드물지만 숲이 우거진 고장도 있고 온천도 있으며, 과일도 난다. 그러나 몽골
사람들이 먹는 음식의 특색을 들라면 양 젖이나 말 젖은 반드시 순두부같이 요구르트로 만들어 마시고 고기
를 많이 먹는다는 것이다. 티베트도 비슷하다. 그러나 시골 지역에서는 과일이 나는 곳도 있다. 하지만 그곳
역시 주식은 고기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수촌으로 손꼽히는 위구르족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반사막지
대여서 채소가 거의 없다. 그러나 천산에서 끌어오는 물과 오아시스에서 포도, 멜론, 수박 같은 과일을 생산
한다. 그 결과 이곳에선 신선한 과일은 물론 말린 대추나 살구,포도 등을 많이 먹는다. 시장에선 계절을 가
리지 않고 말린 과일을 손수레에 가득 싣고 다니며 판다. 이 외에도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의 수도인 타슈켄트
는 물론 사마르칸트에선 중동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덕에 구운 얇은 빵이 거리에서 팔리고 있다. 이
고장 사람들은 쌀이 나지 않기 때문에 대개 이런 밀전병같이 얇게 화덕에서 구워 낸 빵을 많이 먹었다. 물
또한 우즈베키스탄은 물론 카자흐스탄 공화국을 위시해서 몽골까지 대부분이 반사막지대여서 우리 나라같이
맛있는 연수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비누질을 해도 거품이 잘 일지 않는 센물이어서 물맛도 좋지 않았다.
물이 좋지 않아서 생겨난 습관인지 반드시 물을 끓여서 딱딱한 치즈 차나 짠 버터를 섞어 마셨다. 그런 의
미에서 볼 때 이들의 식사는 오늘날 영양학자들이 권장하는 균형식의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단지 특이
한 것은 젖은 그대로 먹지 않고 요구르트를 만들어서 먹고 고기를 많이 먹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과일을
우리보다 많이 먹는다는 것이다. 천산의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해발 3,500미터에 위치한 천지나 3,000미터
높이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청해호도 물이 그렇게 깨끗해 보이지 않았다. 푸른 빛깔을 띠기보다는 오히
려 흙빛이 더 나고 물맛도 짰다. 그러나 이런 척박한 고장에서도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아주 특이했
다.
술 잘 먹는 노인들
그러나 이들의 음식문화에서 그 특징을 찾아보라면 술을 여러 가지 질병 치료나 예방을 위해 쓰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몽골의 말 젖으로 만든 마유주는 외국에서도 유명하다. 티베트에서도 위장병이나 신경통 치료에
술을 많이 쓰고 있다. 대개 이들이 쓰는 술은 우리 나라의 소주 같은 증류수로 고량주만큼이나 독했다. 웬만
한 병은 이렇게 독한 술로 고칠 수 있다고 한다. 원래 '의'라는 말을 풀이해봐도 '주'자에 해당하는 '주'자가
들어있다. 중국의 고의서를 훑어보면 한나라 때까지만 해도 '의'자에는 무당이라는 뜻을 지닌 '무'자가 들어
있었다. 다시 말하면 먼 옛날에는 무당이 병이 나면 귀신을 쫓는다는 의미에서 '의'라는 말이 쓰였다. 그러나
알코올의 증류법이 도입되고 술이 질병 관리에 이용되면서 오늘날의 '의'자가 만들어졌다. 중국의 고의서[천
금방]을 봐도 "한 사람이 술을 제대로 마시면 온 집안에 병이 없어지고 한 집안에서 술을 잘 마시면 온 마을
사람들이 병에서 해방된다."고 했다. 또한 청나라 황제들의 회춘 보양을 위해 쓰였던 강정제는 모두 술에 섞
어 만들어 왔다. 이런 사정은 북경에 있는 청궁 의약연구소에서도 볼 수 있다. 실제로 장수촌이라 일컫는 고
장에선 술을 잘 마신다. 술의 긍정적인 효과 중 그 첫번째는 소화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이다. 내분비 계통의
생리 기능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실험에 따르면 술을 마시고 각종 소화액을 측정해 본 결과 이런 소화액이 많
이 분비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두 번째로 술을 적당히 반주로 마시면 심장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서양의 18개 국가에서 각종 사망원인을 음식과 비교 분석해 본 결과 프랑스와 이태리 사람들의 심장병 사망
률이 가장 낮았다. 그 대신 심장병이나 뇌혈관 질환으로 사망하는 미국 사람들의 사망률은 아주 높았다. 이런
차이는 과실주의 소비량과 깊은 관계가 있었다. 프랑스나 이태리 사람들은 미국 사람들에 비해 무려 20배나
과실주를 많이 마신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세 번째로 신진대사를 촉진해서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점이다. 특
히 광서성과 운남성에 있는 타이족과 장족은 관절염 치료에 술을 넣은 물에 목욕하는 주욕법을 아직도 쓰고
있다. 관절염이나 신경통을 이 고장에선 풍습이라 부르며, 이런 병에는 술을 넣은 물에 목욕하거나 술 찌꺼기
를 바르고 있다. 네 번째로는 정신 건강에 도움을 주며 장수에도 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술을 잘 마시면 우
울증이나 지나친 긴장과 스트레스에서 해방되어 안정을 되찾게 된다. 특히 노인들의 반주는 가벼운 흥분을
동반해서 좋은 효과가 있다. 결국 음식을 고루 먹는 것도 좋지만 폭음하고 폭식하지 않는 한. 중년 이후에
과실주를 반주로 마시는 것은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이때 말젖이나 야크 젖 그리고 양 젖으로 만든 술이나
과일로 빚은 과실주는 보통 술보다 훨씬 효과가 뛰어나다고 한다. 물론 술은 절주해야 한다 .그러나 금주보
다는, 잘 마시면 장수에 보탬이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여섯 가지 장수 비법
이들은 주로 발효 식품을 즐겨 먹는다. 생선으로 젓갈을 담아 먹고 돼지고기나 쇠고기도 소금 쳐서 땅에 묻
어 두었다가 육젓으로 먹고, 우리 나라 청국장과 거의 비슷하게 된장을 만들어 찌개를 해먹는다.
운남성의 풍물
새롭게 공업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는 무한에서 일주일 동안 노인병 관리 세미나에 참석한 후 운남성의 수도
곤명행 비행기를 탔다. 대학에서 마쳐야 할 일들을 마무리짓고 서울을 떠나 마닐라, 홍콩을 거쳐 무한에 도착
해보니 날씨는 쌀쌀하고 공장에서 뿜어 나오는 석탄 냄새 때문에 대낮에도 햇빛을 볼 수 없어서 을씨년스러
웠다. 호텔도 낮에는 난방이 되지 않아 퍽 추웠다. 그러나 곤명의 날씨는 초가을이라기보다는 늦여름같이 청
명하고도 쾌적했다. 알고 보니 곤명은 중국말로 춘성이라 해서 일년 내내 봄날씨의 살기 좋은 고장이라 한다.
숙소도 마음에 들고 한국 음식점도 있어서 큰 불편은 없었다. 도착한 날부터 곤명시에 있는 운남성중의학원
과 종합중의원을 찾아 나섰다. 2차대전 때부터 서방세계에 알려져서인지 개방된 느낌이 들었다. 옷차림이 단
정하지 못한 히피족 같은 서양 사람들도 많았고, 미국과 영국 그리고 스페인에서 와 중국의 기공술과 추나요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쉽게 말해서 추나요법은 전통적인 중국의 물리요법이라 해도 틀림없다. 나
이 먹으면 생기기 쉬운 목이나 척추의 디스크는 물론 정형외과에서 필요로 하는 여러 가지 보조요법에 해당
되는 치료법이 곧 추나요법이다. 시내에는 이렇게 큰 종합중의원이 서너 개나 있었다. 입원 환자만도 천 명
이 넘는다고 한다. 이런 병원에는 어김없이 소수 민족들의 전통의학과 관련된 진료실이 따로 개설되어 있었
다. 이 고장에 많이 사는 티베트족을 위한 장의학 진료실도 있고 미얀마와 라오스 접경지대에 많이 사는 타
이족 전통의학 진료실도 개설되어 있어서 이들로부터 설명도 받았다. 장의학 진료실에는 티베트 전통의학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송찬간포'의 초상화도 걸려 있었으나 환약이 들어 있는 약장 두 개가 놓여 있을 뿐 다른
진료실에 비해 초라한 느낌이었다. 타이족 전통의학 진료실은 장의학 진료실에 비하면 드나드는 사람들도 많
고 약장도 많았다. 운남성 보건국장의 설명에 따르면 운남성에는 십여 소수민족이 산다고 했다. 그 중에서도
타이족,장족,묘족,장족,이족 같은 소수민족들은 남쪽의 접경지대에 산다고 한다. 이곳 지방 정부의 주선에 따
라 우리 나라 민속촌 같은 소수민족 부락들을 이틀에 걸쳐 찾아본 후 운남성에서 소문난 석림을 찾았다. 관
광객들을 위해 특별히 여러 소수민족의 무희들이 나와서 춤을 추는 등 다채로운 행사가 벌어졌다. 두 주일
에 걸친 곤명의 일정을 마친 후 다시 비행기를 타고 라오스, 캄보디아와 메콩강을 사이에 둔 서쌍반납을 찾
았다. 이곳 날씨는 11월임에도 불구하고 여름과 다를 바 없이 뜨거웠다.
타이족의 전통의학
서쌍반납은 메콩강만 건너면 라오스와 캄보디아로 갈 수 있는 중국 최남단의 내륙 도시이다. 이곳은 겨울이
없어서 여러 가지 열대 과일이 많이 생산된다. 또한 중국 정부가 자랑하는 자연 식물원에선 야생 코끼리나
호랑이 같은 맹수들도 망원경을 통해 아침, 저녁이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곳에는 여러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다. 물론 도시에는 내륙에서 이주해 온 한족이 많지만 시골로 갈수록 한족은 거의 살지 않는다. 묘족, 장족,
이족,장족 그리고 타이족이 각기 부락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다. 이들의 종교는 모두 불교이다. 기원을 따져
보면 북쪽에서 왔다고 하지만 이들의 말은 라오스나 캄보디아 그리고 태국의 말과 흡사하다. 쓰는 글은 다
르지만 타이족의 말은 태국 말과 비슷해서 서로 통용할 수 있다고 한다. 시내는 물론 시골에도 크고 작은 불
교 사원이 많다. 또한 태국과 비슷하게 거리에 나온 스님들에게 공양을 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이곳 사
람들은 밥을 주식으로 한다. 특히 타이족은 찹쌀밥을 좋아하고 소나 돼지고기도 먹지만 자주는 먹지 않는다.
대개 메콩강과 그 지류에서 나는 생선과 닭고기를 많이 먹고 일 년 내내 여러 가지 과일과 채소를 먹는다.
이들의 음식문화 중 눈에 띄는 특색은 발효 식품을 즐겨 먹는다는 점이다. 생선도 젓갈을 담아 먹고 돼지고
기나 쇠고기도 소금 쳐서 땅에 묻어 두었다가 육젓으로 먹고, 우리 나라 청국장과 거의 비슷하게 된장을 만
들어 찌개를 해먹는다. 채소도 우리 나라의 김치와 같이 대개 발효시켜 먹는다. 고추도 잘 먹는데 태국이나
베트남같이 독하고 작은 고추를 먹었다. 날로 먹는 음식은 과일을 빼면 없다. 된장은 콩을 삶아 발효시킨 다
음 절구에 찧어서 찌개를 해먹는 것이 우리 나라 청국장과 거의 같았다. 술도 우리 나라 시골에서 하던 것
과 비슷하게 찹쌀을 발효시켜서 소주를 내리듯 증류수를 만들어 마신다. 그러나 그 맛이 아주 독해서 최소한
40-50도는 되는 것 같았다. 서쌍반납에 있는 타이족 전통의학 병원에는 타이족 전통의사들이 환자를 전통적
인 방법에 의해 진료하고 있었다. 이들이 쓰고 있는 원전은 고대 인도 말인 팔리어로 된 경전이어서 대부분
의 남방 민족은 중국의 전통의학보다는 인도의 불교의학으로부터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있었다.
타이족의 여섯 가지 장수 비법
운남성의 소수민족들은 고유의 전통과 풍습을 지니고 각기 다른 부락을 이루고 살고 있다. 운남성 보건국의
통계에 따르면 이들의 어린이 사망률은 높지만 장수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서쌍반납
은 한족이 살아남기 어려운 전염병의 창궐지대였다. 19세기 말에 중국 대륙을 휩쓴 흑사병의 대유행도 운남
성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 군대가 서쌍반납에서 작전을 개시하자 외지에서 들어온 군인들
사이에 유행하기 시작해서 퇴각한 후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20세기 초까지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은 이런
전염병이 무서워 서쌍반납에 부임하기를 꺼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 고장엔 100세 넘은 사람들도 많다. 타이
족중에는 예로부터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서쌍반납의 타이족 전통의학 병원 주임의사로 있는 늙은 의
사로부터 이들이 장수하는 이유를 들어 보았다. 우선 발효식품을 많이 먹기 때문에 장수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였다.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이 고장 사람들은 채소는 물론 생선과 고기도 발효시켜 먹는다. 과학적인
입장에서 보더라도 이런 발효 식품은 소화되기 쉽도록 단백질도 아미노산으로 분해시키고 젖산과 구연산을
생성시켜 건강에 도움을 준다. 그런 의미에서 보더라도 우리 나라의 김치나 된장 그리고 여러 가지 젓갈은
확실히 장수 식품임에 틀림없다. 두 번째로는 찰밥을 즐긴다고 한다. 찰밥을 주식으로 하며 맵쌀은 술을 담
그는 데 쓸 뿐 먹지는 않는다. 찹쌀밥은 보통 쌀밥에 비해 소화도 잘 되고 영양 면에서도 좋다. 우리 나라에
서도 소화가 안 되고 소화기능이 떨어졌을 때 찰밥을 먹으면 위장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세 번째로는 모든 채소를 익혀 먹어서 생식에 의해 생겨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위험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채소는 꼭 데치거나 기름에 튀겨 먹는다. 네 번째로는 산에 가면 손쉽게 채취할 수 있는
야생꿀을 1년 내내 먹기 때문에 건강하다고 했다. 서쌍반납에서 2-3킬로미터만 가도 험준한 산이 나온다. 이
런 산 속에는 아직도 야생 벌이 많이 서식한다. 이런 벌집에서 꿀을 채취해 놓고 여러 가지 병 치료에도 쓴
다고 한다.소화불량에도 잘 듣고 신경통에도 좋다고 한다. 다섯 번째로는 저녁마다 찹쌀로 빚은 술을 한두
잔 마시고 찌꺼기로 자주 목욕하는 것이 몸에 좋다는 얘기였다. 팔다리가 아프거나 신경통이 심할 때도 술
찌꺼기를 아픈 곳에 바르거나 술을 탄 물에 목욕하는 주욕이 좋다고 한다. 여섯 번째로는 이 고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나무에 많은 흰벌레를 먹기 때문에 건강하다는 얘기였다. 대나무를 자르면 흰벌레를 채취할 수
있는데 이것을 술안주로 먹는 것이 몸에 좋다고 한다. 실제로 필자도 저녁 초대를 받아 전통 음식점에 가보
니 꼭 구더기같이 생긴 흰벌레를 한 사발 담아 놓고 술안주로 먹기를 권했다. 외국 사람들에게는 튀김을 해
서 대접하기도 한다. 허약한 사람이나 노인들에게 이 대나무 흰벌레는 좋은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일리 있
는 설명이었다. 산업화된 도시에서 사는 현대인으로선 흉내내기 어려운 것이지만 전통음식을 먹고 열심히 사
는 장수의 지름길이 아닌가 싶다.
마늘을 잘 먹는다.
마늘은 피를 잘 통하게 해서 종기 같은 피부병을 고치고 몸에 습기를 제거하며 몸 안의 냉과 풍을 쫓아내고
위장을 튼튼하게 하여 대부분의 전염병도 예방할 수 있는 살균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식사때마다 나오는 통마늘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에는 연해주에서 강제로 이주해온 '고려 사람'들도 많이 살고 있다. 카자흐족이나 러시
아인들도 많지만 주종을 이루는 사람들은 역시 우즈베크족이다. 이 고장 보건국의 전통의학 과장도 회교 신
도였다. 성격이 활달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뒷바라지를 해주었다. 주식으로는 얇고 둥글게 만든 빵을 먹고
가끔 볶음밥 비슷한 '쟈반'도 먹었다. 이 '쟈반'은 양고기과 함께 요리해 먹었다. 타슈켄트는 물론 사마르켄트
에서 가장 인상적인 음식은 양고기 꼬치구이이다. 잘게 썬 양고기를 꼬치에 끼워 소금에 구워 먹는 꼬치구이
는 냄새도 좋거니와 맛도 일품이었다. 8월이었지만 낮에는 덥고 밤에는 선선했다. 전형적인 내륙의 반사막지
대에서 볼 수 있는 날씨이다. 낮에는 불볕더위로 밖에 나가 일하기도 힘들지만 밤에는 상쾌하고 서늘해서 많
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술을 마시며 양고기 구이를 즐겨 먹었다. 저녁 초대를 받으면 양고기나 닭고기로
만든 여러 가지 요리가 풍성하게 나오고 복숭아나 멜론 같은 과일도 대접받았다. 특이한 것은 모든 과일이
통째로 식탁에 오르는 것이었다. 먹는 사람이 원하지 않으면 닦을 물이나 칼도 가져오지 않았다. 이때 빠뜨
리지 않고 통마늘을 두 개쯤 건네준다. 값비싼 음식점의 저녁 만찬은 물론 서민들이 먹는 거리의 음식점에서
도 통마늘은 빠지지 않고 나왔다. 이곳 사람들의 설명에 따르면 과일 껍질 속에는 몸에 좋은 성분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에 통째로 먹는 것이 좋다고 한다. 마늘도 미리 꺼놓으면 몸에 좋은 성분이 없어지기 쉬워서
항상 음식을 먹을 때 본인이 즉석에서 까먹는 것이 좋다는 얘기였다. 이렇게 식사때마다 통마늘을 먹는 모
습은 중국의 서안을 벗어나 중앙아시아에 접어들기 시작하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토르판과 우
르무치에서도 저녁식사에 통마늘을 대접받았고 카자흐스탄 공화국의 알마아타에서도 역시 통마늘이 나왔다.
이곳 사마르칸트에서도 어김없이 식사때면 통마늘을 대접받았다. 이들의 설명에 따르면 마늘은 피를 잘 통
하게 해서 종기 같은 피부병을 고치고 몸에 습기를 제거하며 몸 안의 냉과 풍을 쫓아내고 위장을 튼튼하게
하며 대부분의 전염병도 예방할 수 있는 살균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원래 마늘은 더운 성질을 띤 식품으로
몸이 찬 사람이나 체력이 약한 사람에게 좋고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주며 가벼운 흥분도 야기시킨다는 것이
다.
마늘,자르지 말고 먹어라
[삼국유사]의 단군신화를 보면 마늘과 쑥만 먹고 백일 동안 깜깜한 토굴에서 햇빛을 기해서 곰이 여자로 둔
갑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만큼 우리 나라에서도 쑥과 마늘의 역사는 길다. 이제는 세상이 많이 달라졌지만
글공부를 하는 선비들이나 절에 들어가 도를 닦는 스님들은 마늘이나 마늘이 든 음식을 먹지 않았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마늘이 우리 몸의 활동을 촉진하고 강정 효과도 크다는 소리다. 이시진이 16세기에 쓴[본초
강목]을 봐도 마늘은 감기를 예방하고 냉증에 좋으며 변비나 피부질환에 도움을 준다. 설사 같은 증상에 효
능이 있으며 소화를 촉진시키고 이뇨와 해열 작용이 있다고 나온다. 대합 가루와 함께 마늘을 환약으로 만들
어 먹으면 몸이 붓는 부종을 고칠 수 있다고도 나온다. 또한 유황과 함께 마늘을 환약으로 만들어 먹으면
복통에 좋고 몸에 종기가 났을 때는 마늘침을 놓는 것이 좋으며, 학질 같은 병으로 열이 나고 추울 때는 마
늘을 구워서 술과 함께 복용하면 좋다고 했다. 지네나 뱀, 전갈 같은 독충에 물렸을 때는 마늘을 찧어서 물
린 곳에 붙이는 게 좋고 게를 먹고 중독되었을 경우에도 마늘을 끓여서 그 물을 마시게 하면 낫는다고 했다.
오늘날 영양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마늘에는 단백질,당분,인,칼륨,비타민B1이 많이 들어 있다고 한다. 이 중
에서도 비타민 B1은 당분을 운동 에너지로 바꾸는 작용을 하며 에너지를 생산하고 힘을 만드는 작용을 해서
항피로 비타민이라고도 불린다. 고기를 많이 먹지 못했던 20-30년 전에는 흰 쌀밥만 먹어서 각기병에 잘 걸
렸다. 현미나 잡곡밥보다 흰 쌀밥만 먹어서 각기병에 잘 걸렸다. 현미나 잡곡밥보다 흰 쌀밥을 좋아하는 사람
들은 비타민 B1의 부족으로 각기병에 잘 걸렸다. 오늘날에 와서도 인스턴트 식품이나 페스트푸드만을 먹다
보면 당질 식품에 편중돼 비타민 B1이 대량 소비되고 따라서 비타민 B1부족 상태가 되기 쉽다. 각기병까지
는 아니더라도 팔다리가 쑤시거나 저리고 붓는 등 여러 가지 건강상 문제점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비타민
B1은 우리 몸 안에서 많이 흡수되지 못하는 성질이 있다. 아무리 다량을 섭취해도 흡수량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남은 것은 소변으로 배설되어 버린다. 그러나 마늘에는 이런 비타민의 섭취 허용량을 확대시키는 성
질이 있다. 원래 마늘에는 스위스의 '스톨'이 발견한 '알리인'이란 성분이 있다. 이 알리인은 색깔도 없고 냄
새고 나지 않지만 마늘의 효소 '알리나제'가 작용하면 '알리신'으로 바뀌어 냄새가 난다. 즉 알리신이 마늘 특
유의 냄새를 내는 장본인이다. 이 알리신이 곧 마늘의 약효를 좌우하는 성분이다. 또한 알리신에는 항균 작
용이 있다. 12만 배로 희석해도 결핵균이나 디프테리아, 이질균 같은 세균에 저항력을 나타낸다. 따라서 식중
독의 예방도 되고 장안에서 세균의 번식을 억제해 주며 정장효과도 있다. 이런 알리신은 마늘을 씹거나 부
수면 생겨난다. 만약 마늘을 가열해서 알리나제가 파괴되어 버리면 알리인은 알리신으로 바뀌지 않아서 냄새
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마늘을 자르지 않고 익히거나 구울 때는 독특한 냄새만 없어질 뿐 마늘의 약효는 줄
어들지 않는다. 이 알리신은 비타민B1 과 결합해서 '알리/치아민'으로 바뀌어 우리 몸 안에 흡수된다. 또한 당
장 이용할 수 없는 비타민 B1도 몸의 세포에 저장되어 필요할 때 쓸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냄새가 난다고
먹지 않던 일본 사람들도 최근에는 끼니때마다 마늘을 먹는다. 일본에서는 냄새가 나지 않게 가공한 여러 가
지 마늘 제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그러나 마늘을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비타민 B2같은 다른 영양분의
흡수에 지장을 주고 소화 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다. 따라서 아무리 위장이 튼튼한 사람이라도 마늘은 한 끼
에 두 쪽이나 세 쪽 아니면 둘이서 통마늘 하나를 나누어 먹는 정도로 그치는 것이 좋다. 실제로 마늘을 잘
먹는 중앙아시아에서도 통마늘을 하나 이상 먹는 것은 보지 못했다.
요구르트와 장수
이들이 먹는 아침 식사에는 말 젖이나 양 젖으로 만든 요구르트 내지 발효유가 빠지는 법이 없다. 대개 음
식점에서 뚝배기나 사기그릇 같은 데에 고정시켜 만든 것을 팔았다. 우리 나라의 순두부와 비슷했다.
몽골족과 마유주
예로부터 몽골족은 만리장성 북쪽의 넓은 초원에서 유목 생활을 해왔다. 오늘날에도 외몽골과 내몽골,신강
자치구,청해성 그리고 네팔에 이르는 넓은 고장에서 약 700만 명이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지그메트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이미 12세기 이전에 몽골족은 생활 환경이나 기후 그리고 지리적 여
건에 맞는 의료 기술을 개발하여 이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몽의학의 발전은 12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그 후 12세기 초에 칭기즈칸이 몽골의 여러 부족을 통일한 후 명나라 초에
이르기까지 몽골의 전통의학은 더 많은 경험을 쌓으면서 발전해왔다. 그 후 티베트로부터 [의경팔지]와 [사
부의전]이 들어와 장의학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고,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중국의 한의학으로부터도 많은 영
향을 받았다. 예로부터 몽골족은 북쪽의 넓은 초원과 울창한 산림에 살면서 샤머니즘(살만교)을 믿었다.또한
질병과 싸우면서 민간 의료도 발달했다. 예를 들면 독특한 뜸요법,말에서 떨어진 사람들에게 베푸는 정골술,
외상에 대한 치료법,말 젖을 이용한 마유주요법 그리고 음식요법 등이 발달했다. [황제내경]중에는 "북방은
천지가 막히고 지세가 높고 춥다. 이 곳 사람들은 들에서 살며 젖을 주식으로 한다. 따라서 추위를 오래 노출
되어 병이 잘 생기며 그 치료에는 뜸이 좋다. 뜸은 원래 북방에서 온 것이다"라고 나온다. 여기서 뜸이란 구
를 의미하며 북방이란 몽골을 꼬집어 밝히지는 않았지만 '들에서 살며 육식을 하며 젖을 주식으로 삼는다'라
는 말로 미루어 몽골과 몽골족을 가리키는 것으로 믿어진다. 몽골 전통의학의 음식요법은 음식으로 병을 고
치려는 시도로부터 발전해 왔다. 먼 옛날에는 생식을 많이 해서 소화불량이나 식중독이 많았다. 따라서 음식
으로 여러 가지 병을 치료하도록 힘썼다. 유제품과 육식,육탕 같은 것들을 활용해서 병을 예방하고자 힘쓰고
있다. 이런 음식요법은 오랜 유목 생활에서 터득한 지식으로 목축을 하면서 수렵을 부업으로 하는 몽골 사람
들에게는 매우 적절한 치료법이다. 이 중 마유주요법은 아주 독특하다. 마유주는 말의 젖을 발효시켜 만드는
데 많이 마시면 취한다. 이 술은 몽골 사람들이 아직도 즐기는 전통 음료이다. 7,8월에는 말 젖이 흔해서 많
이 만들어 마시는데, 손님을 접대하거나 잔치를 할 때도 반드시 마유주를 쓴다. 음력 7월에 열리는 나담축제
같은 행사에서도 빠뜨리지 않는다.
요구르트를 잘 먹는 민족, 몽골족
[몽골비사]에 보면 몽골에서는 말 젖으로 술을 만들어 마신다는 기록이 나온다. 예컨대 칭기즈칸의 10대 선
조는 매일 마유주를 마셨다고 한다. 실제로 호아호투에서 열린 나담축제에 가서 이 술을 마셔 보았다. 역겨
운 느낌은 나지 않았다. 알코올 도수는 그리 높은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특별한 모임이나 잔치를 할 때가
아니면 즐겨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이곳의 몽골 전통의학 전문의는 이 마유주가 만병에 좋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이들이 먹는 아침 식사에는 반드시 말 젖이나 양 젖으로 만든 요구르트 내지 발효유가 빠지는 법은
없다 .음식점에서 대개 뚝배기나 사기그릇 같은 데에 고정시켜 만든 것을 팔았다. 우리 나라의 순두부와 비슷
한데 대개 숟가락으로 떠먹었다. 흔히 우리들이 상상하듯 딱딱하지도 않고 약간 새콤할 뿐 별 맛은 없다 점
심과 저녁에는 돌같이 딱딱하게 소금을 넣어 만든 말 젖이나 양 젖으로 만든 치즈 차를 끓여 좁쌀 같은 것을
볶아 함께 먹는다. 그러나 이들이 아침이면 먹는 요구르트는 전날 밤에 받은 신선한 젖으로 만든 발효유라
고 한다. 이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 발효유도 이틀이 지나면 먹지 않는다고 한다. 요구르트의 역사는 길다.
세계적인 안목에서 볼 때 최소한 천 년의 역사는 더 된다. 불가리아에선 수천 년 전부터 요구르트를 만들어
먹었다. 이집트에서도 물소와 산양의 젖으로 유산균 음료를 만들어 먹었으며, 구소련의 코카서스 지방에선
'케피어'가 수백 년 전부터 많은 사람들에 의해 애용되었으며 시베리아에선 말 젖으로 만든 요구르트가 발달
해왔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몽골족이 말 젖으로 만든 요구르트와 치즈를 만들어 먹는 것은 당연한 역사적
산물이라 하겠다. 물론 우리 나라에는 유제품이나 요구르트가 알려진 지 얼마 되지 않는다. 우유를 마시는 것
도 근래 생겨난 식습관이다. 그러나 말 젖이나 양 젖을 요구르트로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 몸에 좋다는 유산
균이 우리네 식생활에 전혀 관계사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발효 식품인 된장이나 간장 그리고 사계절에 걸쳐
언제나 먹는 김치에는 많은 유산균이 들어 있다. 그러나 이런 발효유나 유산균이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러시아의 미생물학자 메치니코프가 불가리아의 장수촌을 조사한 보고로부터 비롯된다. 이들이 장수하
는 요인 중 하나로 장내에 유산균이 다량으로 존재한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유산균이 장내 세균을 도
와주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사람이 갓 태어나서는 거의 무균 상태이지만 서서히
잡균이 들어와 이 잡균들과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된다. 이 장내 세균에는 우세균과 열
세균 두 종류가 있다. 이 세균들은 질병에 걸리거나 나이를 먹으면 그 균형이 깨어지고 열세균이 증가한다.그
렇게되면 장내에 부패 현상이 일어나고 유독 물질이 생겨난다. 이런 상태가 오래 계속되면 간,심장,신장에 부
담을 주어 노화를 촉진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장내 세균 중 우세균이 차지하는 비율이 건강과 노화를
좌우하게 된다는 얘기이다. 따라서 유산균을 많이 섭취하면 우세균의 비율이 늘어나 장내 세균이 균형을 이
루게 되고 결국 장수하게 된다.
요구르트의 의학적 효능
요구르트를 우유를 유산균으로 발효시킨 것이다. 이런 요구르트를 먹게 되면 비피더스균 같은 우세균이 늘
어나 장내 부패를 억제하고 유독 물질의 생산을 막아준다. 이런 요구르트에는 단백질,지방,칼슘은 물론 비타
민 B1,B2가 많이 들어 있으며,식물성 섬유와 마찬가지로 정장 효과가 있기 때문에 변비나 설사에도 효과적이
다. 또한 혈액 중 콜레스테롤 양이 지나치면 높아지면 억제시켜주기도 하고 우리 몸에 면역 기능을 높이는
작용도 해서 병의 예방이나 상처의 치료는 물론 고혈압이나 암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그리고 요구르트의
단백질은 소화가 잘 되어서 병중 또는 병후의 환자나 노인들이 먹으면 소화 흡수가 잘 된다.우유를 마시면
소화가 안 되고 배가 부글거리는 사람에게도 좋다. 또한 노화 방지에 도움이 되는 비타민 B2는 단백질이 부
족하면 체내 흡수가 어렵지만 요구르트를 계속 먹으면 비타민 B2의 체내 흡수가 훨씬 좋아진다. 요구르트
속에 들어 있는 칼슘은 흥분을 가라앉히는 정신안정효과도 있다. 요구르트 속의 단백질과 유산이 많은 상태
에선 칼슘의 흡수도 더욱 좋아진다. 그런 의미에서도 생우유보다는 요구르트를 섭취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
다. 이 때 설탕을 첨가한 것이 칼로리가 높아져 비만을 유발할 수도 있다. 우리 나라 사람들도 하루에
300-500cc쯤 먹는다면 건강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 시판되고 있는 요구르트는 엄
격한 의미에서 볼 때 몽골이나 중앙아시아 사람들이 먹는 요구르트는 아니다. 가능하다면 집에서 요구르트를
만들어 설탕을 치지 말고 먹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내몽골의 수도'호아호투'를 두번 찾았다. 한 번은 삼주 동
안 묵었고 또 한 번은 두 주일 동안 체류했다. 이곳에서 가장 좋다는 소군 대주점에서 언제나 이 고장 사람
들과 요구르트를 먹었다. 사기로 만든 사발 같은 것에 담긴 요구르트를 아침이면 먹었던 기억이 있다. 묵은
것은 좋지 않다고 들었다. 특히 요구르트 윗부분에 좀 두꺼운 막이 생겨 신맛이 강하고 이상한 냄새가 나면
변질된 것이라고 했다. 확실히 우유는 완전 식품에 가깝다. 요구르트를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은 꼭 권하고
싶은 일이다.
한족의 차문화와 장수
원나라 때 '마르코 폴로'가 북경에 머물다 차를 가지고 유럽에 돌아간 후 차를 마시는 습관이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갔다고 한다. 따라서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비단길'은 곧 '녹차의 길'이기도 했다.
한족은 하루 종일 차를 마신다.
한 달간에 걸친 내몽골 여행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숙소는 먼 옛날 한나라 때 북쪽 오랑캐들과 화친을 맺기
위해 몽골족에 시집을 간 왕녀 왕소군이 머무르다 갔다는 '호아호투'의 '소군 대주점'이었다. 제일 좋은 숙소
라지만 우리 나라로 치면 시설 좋은 여관 수준이었다. 저녁때마다 대접은 융성했다. 칭기즈칸의 무덤으로 알
려진 곳을 위시해서 여러 지방을 돌아다녔다. 날씨가 좋아서 자동차로 다녔는데 호수에는 물고기가 많았지만
몽골 사람들은 먹지 않았다. 단지 이 고장에 이주해 온 한족들이 고기를 잡아 내장을 빼서 말리는 광경이 인
상적이었다. 다음 일정은 서안이었다. 때마침 일주일에 한 번씩 비행기 직항 편이 생겨나 북경을 거치지 않
고 서안에 갈 수 있었다. 서안의 인상은 매우 개방적이었고 현대적인 건물이 많아서 깨끗했다. 호텔은 비싼
만큼 시설도 좋았다. 이곳에서도 역시 중의학원과 중의원을 찾았다. 주말에는 진시황의 무덤으로 알려진 그
유명한 미용과 토용도 구경했다. 서안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쯤 달리면 전형적인 한족 마을이 나오는데 이곳
은 개방이후 외국 사람들에게 자랑하는 농공단지였다. 예전에는 아주 가난했지만 마을 사람들이 서로 협력
해서 공장을 세우면서 부자 동네가 됐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집들도 구경시켜주었다. 부엌 살림도 보통 농촌과
는 다르게 가스 불로 음식을 요리할 수 있게 만들어졌으며 TV나 냉장고도 있었다. 마치 1960년대의 우리
나라 새마을시범 마을 같은 고장이었다. 가는 곳마다 점심과 저녁을 대접받았고 이동중엔 물통에 차를 타서
수시로 갈증을 해소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 고장 사람들은 잠에서 깨어나면서부터 하루 종일 차를 마신다. 특
히 한가한 노인들은 차가 담긴 물통을 들고 공원에 나와 쉬면서 틈만 나면 차를 마신다. 이곳 중의원 주임의
사의 설명에 따르면 사람들이 나이 먹어서도 건강을 유지하고 체중을 제대로 관리하는 데 이 차가 좋다고 한
다. 또한 비타민이나 각종 무기질이 풍부해서 30대 이후에 생겨나기 쉬운 비만증 예방에도 좋다. 다시 말하면
중국의 한족은 차를 마시기 때문에 건강하고 장수한다는 것이었다.
마르코 폴로와 녹차
일본에서는 중국차 중에서도 우롱차가 인기다. 우롱차도 콜라나 주스같이 캔음료로 팔고 있다. 최근 들어 우
리 나라에서도 녹차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 차 이야기는 [신농본초경]에 잘 나와 있다. 5천 년도 넘는 먼 옛
날에 중국에선 사람들에게 유익한 약초를 찾아내기 위해 사람이 구할 수 있는 각종 초목을 신농이 직접 맛보
아서 하루에도 70번이나 독초에 중독되면서 [신농본초경]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신농본초경]에는 "차나무
는 사천성 같은 경치 좋은 계곡이나 언덕에 자생하며 그 잎새를 4월에 따서 건조시켜 쓸 수 있다 이런 차 잎
새는 여러 가지 부스럼이나 방광의 병은 물론 가래를 제거하고 열을 떨어뜨리며 갈증을 없애고 졸음을 쫓아
내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라고 나온다. 이런 표현으로 미루어볼때 차는 원래 오늘날과 같은 기호 음료
가 아니라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를 위한 약으로 쓰였던 것 같다. 그 후 물이 좋지 않아 꼭 끓여 마셔야 하기
때문에 중국에선 차를 전문으로 파는 다루나 다관이 생겨나고 이런 데서 사람들이 모여 담소하며 피로를 풀
기도 하고 문화생활을 즐기게 되었다. 서양의 역사를 보아도 차는 중국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미 당나라나
송나라 때부터 중국은 아라비아나 중동 지방과 교역을 했다. 이런 해상 무역에 종사하는 아라비아 상선의 선
원들은 신선한 채소가 없어서 괴혈병에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한족들의 무역선을 타고 다닌 선원들
은 항해를 오래 해도 병에 걸리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중국 차에 있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족의
차는 높은 값으로 아라비아와 유럽 각지로 팔려 나갔다. 또한 당나라 때에 몽골 사람들은 한족으로부터 차
를 얻기 위해 날쌘 말을 중국에 넘겨 주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내몽골 사람들은 그들이 기르는 양을 팔아
중국 차를 사고 있다. 이는 몽골에는 신선한 채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원나라 때 '마르코 폴로'가 북경에
머물다 차를 가지고 유럽에 돌아간 후 차를 마시는 습관이 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고 한다. 따라서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비단길'은 곧 '녹차의 길'이기도 했다. 이런 중국의 녹차는 인도와 스리랑카 그리고 열대지
방에 수출되고 동인도회사는 이런 중국 차의 종자를 캘커타에 가져온 후 또다시 스리랑카에 전파시켜 세계적
으로 이름난 실론차가 생겨난 것이다. 러시아는 16세기경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카자흐족의 차를 받아
들여 러시아에 보급하고 러시아 안에서도 재배시켜 국내 수요를 충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중국에서 비롯된
한족의 차문화는 18세기 이후 인도차이나를 거쳐 프랑스 사람들에 의해 유럽으로 도입되었다고 한다. 영어
로 '티(tea)'란 발음은 복건성 사람들의 차라는 발음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아직도 러시아에선 차를 '챠이'라
고 부르는데 이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한족에 의해 시작된 차는 향기나 형태,색깔,맛 그리고 생산지와
제조 방법에 따라 차이가 난다. 중국 사람들의 분류에 의하면 녹차,홍차,청차,흑차,황차 그리고 백차로 나눈
다. 제조 방법에 따라 나누어 보면 전혀 발효시키지 않은 녹차,완전히 발효시킨 홍차,약간 발효시킨 우롱차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한족이 가장 많이 애용하는 것은 녹차이다. 이 녹차는 우리 나라 녹차와 비슷하
며 색깔이나 향기는 물론 맛도 좋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절강성 항주에서 나오는 용정차를 꼽는다. 이 외에도
강소성의 동정에서 나오는 벽나춘 그리고 사천성의 몽정차 그리고 강서성의 녹차가 유명하다. 이런 고급 녹
차 중에는 사람들이 살지 않는 깊은 산 속의 차나무에서 얻은 새순으로 만든 오여차같은 것이 특히 유명하
다.
녹차의 감비 효과
이 외에도 우리 나라와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우롱차가 있다. 이 우롱차는 일명 청자라고도 부른다. 발
효의 정도로 따진다면 녹차와 완전히 발효된 홍차의 중간쯤 되는 반 발효의 차이다. 이 차를 우롱차라고 부
르는 것은 일설에 따지면 푸른 빛깔의 다갈색을 띠기 때문에 마치 까마귀 색깔이 연상되며,그 형상이 용을
닮았다고 해서 우롱차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차는 1700년대에 복건성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해 남쪽으
로 광동과 운남성 및 대만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중국에도 홍차가 있지만 거의 마시지 않고 대부분 수출
한다고 한다. 이 외에도 운남성 특산의 흑차가 유명하다. 문자 그대로 검은 색을 띤 차이다. 이 차는 홍차보
다 색깔이 진하며 몇 번씩 물에 타 마신다. 떫은 맛도 다른 녹차에 비해 적다.이 흑차는 녹차로부터 가공된
다. 다시 말하면 녹차의 성분을 그대로 유지시킨 발효차라 할 수 있다. 운남성 사람들이나 광서성에 사는 장
족들이 주로 많이 마신다. 라오스,미얀마,캄보디아와 메콩강을 사이에 두고 차산지로 유명한 운남성 최남단
의 서쌍반납은 흑차 산지로 유명하다. 이 고장이 자랑하는 식물원에 가려면 서쌍반납에서 자동차로 4-5시간
쯤 메콩강을 끼고 달리게 된다. 시야에 펼쳐지는 메콩강 유역의 들과 산은 이런 흑차의 원료를 제공하는 흑
차 단지이다. 나무들이 크기 때문에 사람들이 올라가 잎새를 뜯는다. 이 차는 예로부터 중국 안에서도 명품
으로 소문나 중앙 정부에 진상품으로 헌납되어 왔으며,송나라로부터 원나라,명나라 그리고 청나라 조정은 차
를 가공해서 몽골족이나 티베트족은 물론 위구르족에게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흑차는 고급차로 쳐준다.
서안뿐만 아니라 서장 자치구, 사천성, 청해성에서도 저녁 식사를 하고 나면 으레 흑차를 주로 마셨다. 일설
에 의하면 이 차 때문에 기름진 음식을 먹어도 이곳 사람들은 살이 찌지 않는다고 한다. 명나라 때 고모경
이 쓴 [다보]에는 "사람이 차를 마시면 갈증이 멈추고 소화가 잘 되며 잔병을 막아 주고 잠이 없어지며 소변
이 잘 나오게 된다.또한 눈이 맑아지고 머리가 좋아지며 기름기를 제거해서 건강에 도움을 준다"라는 구절이
있다. 과학적인 차원에서 볼 때 녹차의 주성분은 '카페인'과 '탄닌'이다. 카페인은 커피 속에도 많이 들어 있
다.피로감을 덜어 주고 사고력을 증진시키며 운동 기능도 높여준다. 또한 탄닌은 각종 독극물과 결합해서 외
부로 배설시킴으로 해독 작용이 뛰어나고 설사를 멈추게 하며 살균 효과도 있다. 또한 대부분의 녹차나 흑차
는 체중을 감량시키는 효과가 있다. 중국 사람들이 기름기 있는 음식을 많이 먹지만 이런 전통차를 많이 마
셔서 배가 나오지 않고 체중이 늘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좋은 녹차가 생산되고 있다. 비만
을 걱정하거나 장수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전통차를 자주 마시는 것이 좋다.
두부와 두유를 많이 먹는다.
중국에선 어디를 가나 콩과 콩 가공식품을 즐겨 먹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침에는 두유를 마시고 점심과 저
녁에는 두부나 탕엽 그리고 두부간 같은 것을 써서 요리를 만들어 먹는다.
황하 이남의 두부와 두유
중국에선 비행기 여행을 할 때 왕복 항공권을 끊기가 애매하다. 비행기 출발 시각이 정확치 않기 때문이다.
심하면 오전에 떠나는 비행기가 오후 3-4시나 되어야 출발하는 경우도 있다. 소련 여행도 마찬가지이다. 모
스크바에서 타슈켄트로 가는 비행기를 오전 10시에 타게 되어 있었지만 실제로 비행기는 3시간이나 늦게 출
발했다. 우리 나라와 중국이 외교 관계를 갖기 전 얘기이다. 중국 정부의 호의에 힘입어 대련의 일정을 마친
후 비행기로 연길에 가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떠나는 날이 되어서야 비행기 편이 어려우니 기차로 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심양을 거쳐 이틀 동안의 기차 여행 끝에 연길에 갔다. 백두산을 구경하고 돌아올 때는 북경
으로 직행하는 비행기를 타도록 되어 있었지만 예약이 안되어서 심양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라는 얘기였다.
그러나 심양 비행기에 도착해 보니 이미 북경행 비행기는 탈 수가 없고 호텔 예약도 되지 않아 중국민항 직
원들 숙소에서 하룻밤을 잤다. 저녁도 중국 사람들과 같이 하고 아침도 함께 먹었다. 호텔에서 먹는 음식과는
달랐다. 고기도 별로 없고 식단도 간단했다. 그러나 저녁과 아침에 우유 대신 먹은 것은 이곳 사람들이 즐겨
먹는 두유,즉 두장과 두부였다. 특히 아침에는 두유 한 잔에 삶은 땅콩과 흰죽을 함께 먹은 것이 전부였다.
그 후 여러 곳에서 두부와 두장을 먹은 기억이 난다. 원래 두부는 우유나 유제품을 먹을 수 있는 황하 이남
의 남쪽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황하를 건너 만리장성을 지나면 초원지대가 펼쳐지고 말 젖이나 양 젖
그리고 우유를 발효시킨 요구르트를 많이 먹는다. 티베트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남쪽으로 갈수록 양도 없
고 말도 치지 않으며 우유로 많든 유제품도 찾아보기 어렵다. 두부나 두유는 말 젖이나 우유를 구하기 어려
운 고장이나 일본과 우리 나라에서 오래 전부터 먹어 온 식품이다. 곤명에 머무르는 동안 저녁마다 여러 가
지 두부 요리가 꼭 나왔다. 이 고장 사람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면 역시 따뜻한 두유에 죽과 삶은 땅콩을
먹는 것이 전부였다. 운남성의 중의원 주임의사의 설명에 따르면,이 고장 사람들은 콩과 콩 가공식품을 많이
먹기 때문에 장수한다고 한다.
두부의 역사
중국에선 훌륭한 사람을 대인이라고 높여 부른다. 쌀도 곡식 중에선 중요하다고 해서 대미라 쓰고 콩도 매
우 중요한 곡식이란 뜻에서 대두라고 한다. 콩은 유제품이 많지 않은 남쪽 지방에선 아주 중요한 식품이다.
그러나 콩을 날 것으로 그대로 먹게 되면 많이 먹을 수 없고 부작용도 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두부 같은
가공식품이다. 역사를 보면 두부는 전한 때 회남왕 유안이 만들어 낸 식품이라고 한다. [논어]나 [맹자]같은
책을 보면 군자는 주방에 드나들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여씨 춘추]를 보면 이윤은 유화씨의 양자로
서 은나라 때 왕에게 음식을 잘 만들어 주어서 재상의 자리까지 올랐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것이 곧 '이윤이
이활팽으로 위재상했다'는 얘기이다. 아직도 일본에 가면 전통 일본 요리를 '활팽요리'라고 한다. 이윤의 고
사에서 나온 얘기이다. 두부도 남자인 왕의 발명품이다. 대부분의 중국 음식은 대를 이어 음식을 잘 만드는
남자들에 의해 계승되어 왔다. 오늘날에 와서도 강태공의 낚시질로 유명한 태공 망은 협서성의 위수에서 빈
낚시질만 하면서 주나라 문왕이 올 때까지 때를 낚았다. 결국 문왕이 나타나 군사로 맞이하자 문왕을 도와
은나라의 폭군 주왕을 물리쳐 크게 공을 세웠지만 젊은 시절에는 한때 푸줏간에서 닭이나 돼지를 잡고 음식
을 만들던 요리사이기도 했다. 이런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중국에선 오래 전부터 음식 만드는 것이 대단한
기술로 인정되어 왔던 것 같다. 두부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한나라 때 생겨난 두부는 지방에 따라 노두
부,북두부,연두부,남두부 등으로 발전해 왔다. 남두부,연두부는 연한 두부를 말하며 북두부와 노두부는 딱딱한
두부를 가리킨다.그러나 실제로 맛을 보면 연두부라 해도 우리들이 먹는 두부보다 훨씬 딱딱하다. 이런 연두
부는 남쪽 사람들이 좋아하며 딱딱한 두부는 북쪽에서 잘 먹는다. 이런 두부말고도 대부분의 중국 사람들이
아침이면 반드시 먹는 것이 두장,즉 두유이다. 황하를 넘어 초원지대에 사는 소수민족이나 변방에 사는 사람
들을 빼면 중국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우유룰 마시지 않는다. 그 대신 두유를 마시는데 영양가가 높아서 어린
이들에게 젖 대신 먹이기도 했다. 두유에 응고제를 섞은 것을 두부뇌라고 하고 일명 물두부라고도 한다. 진
한 두유를 원료로 쓰기 때문에 마치 요구르트 같다. 간장을 쳐서 그대로 먹기도 하고 요리에 섞어 먹기도 했
다. 바로 이 두부뇌를 압축시켜 탈수하면 두부가 된다. 이 때 염화마그네슘을 써서 만들면 북두부 또는 노두
부가 되고 황산칼슘을 써서 부드럽게 만들면 연두부 또는 남두부가 된다.이 외에도 두유를 끓이면 표면에 엷
은 막이 생긴다. 이것을 말린 것을 탕엽이라고 하며 두부피,두유피라고도 부른다.
콩의 신비
중국에선 아침에는 두유를 마시고 점심과 저녁에는 두부나 탕엽 그리고 두부간 같은 것을 써서 요리로 만들
어 먹는다. 딱딱한 두부를 고기나 채소와 함께 튀기거나 익혀 먹는다. 또한 콩을 갈아서 국이나 수프 같이 만
들어 먹기도 한다. 과학적으로 볼 때 콩은 밭에서 나는 고기라 할 정도로 고단백 고지방 식품이다. 콩에는 당
분이 적은 대신 지방이 많이 들어 있다. 말린 콩에는 단백질이 33-35퍼센트나 들어 있고 지방도 약 20퍼센트
나 된다. 이 중 필수지방산도 있으며 혈중 콜레스테롤을 떨어뜨릴 수 있는 리놀레산도 많이 들어 있다. 칼륨
같은 광물질은 물론 비타민 B1이나 B2같은 B군 비타민과 비타민 E도 있어서 노화를 방지하며 사포닌이나 레
지딘 같은 항산화 물질도 들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콩과 콩으로 만든 두부나 두유는 성인병예방에
좋은 효과가 있다. 밥을 먹어서는 안 될 당뇨병 환자도 단백질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고기를 먹을 수밖에 없
다. 그러나 고기를 많이 먹으면 동물성지방의 흡수가 늘어나 고혈압이나 동맥경화증을 유발하기 쉽다. 이때
필요한 단백질은 공급받지만 이런 성인병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콩과 두부 제품은 좋은 건강식품임에 틀림없
다. 콩 속에는 불포화지방산이 많다. 이 불포화지방산은 혈액 중 늘어나기 쉬운 콜레스테롤을 적정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으며,비타민 E는 미용이나 노화방지 효과가 있다. 이 외에도 콩에는 '레시틴'이란 인지
방이 들어 있다. 이 레시틴은 우리 몸의 뇌와 간장,신장,폐장,심장은 물론 근육에 들어가 정상적인 기능 유지
에 도움을 주게 된다. 즉 레시틴이 이런 조직의 세포 활동을 조절해서 여러 가지 병을 예방할 수 있다. 끝으
로 몸 속에 들어 있는 '사포닌'의 효과를 손꼽을 수 있다. 우리가 두유를 마시면 약산 떫은 맛이 나는데 이것
은 콩 속에 들어있는 사포닌과 관계가 있다. 이 사포닌은 나이 들면 늘어나기 쉬운 과산화지방이 만들어지는
것을 억제해서 노화를 방지하며, 혈액 중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지나친 지방의 흡수를 억제하며 분해를 촉진
시켜 비만이나 동맥경화증을 예방하게 된다. 또한 콩에는 섬유질이 많이 들어 있다. 이런 식이성 섬유질이
많은 음식을 먹으면 위장을 튼튼하게 하며 정장 효과도 있어서 성인병도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날콩에는
문제점도 있다. 비린내가 날 뿐 아니라 혈구를 응고시키는 물질과 함께 단백질을 소화시키는데 필요한 효소
인 트립신의 효능을 떨어뜨리는 저해 인자가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열로 가열하면 없어진다. 광서성이나
운남성에선 우리 나라 청국장과 같은 된장도 잘 해먹는다. 이런 된장은 발효과정에서 곰팡이균에 의해 단백
질을 아미노산으로 전환시켜 소화도 잘 된다. 말 젖이나 소 젖 그리고 각종 요구르트가 흔한 유목민들 사이
에선 된장도 못 보았고 콩이나 두부 그리고 두유도 못 보았다. 그 대신 각종 요구르트와 치즈를 많이 먹었다.
그만큼 환경과 풍토에 따라 음식도 달랐다. 아직도 우리 나라에는 우유와 유제품이 많이 보급되어 있지 못
하다. 특히 시골로 갈수록 우유나 유제품을 먹는 사람들이 적다. 중국의 한족이 자랑하는 두부나 두유는 우리
나라에서도 활발하게 보급시키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식사 전엔 찬물 안 마신다.
중국에선 찬물을 마시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비행기를 탈 때도 반드시 물병을 들고 다닌다. 특별히 만
든 물병도 있지만,큰 유리병에 따뜻한 녹차를 넣어 들고 다니면서 수시로 마신다.
매일 대추를 먹는다.
중앙아시아에서는 채소가 많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양이나 야크 같은 가축의 고기와 젖 그리고 유제품과
함께 여러 가지 과일을 먹는다. 특히 위구르족은 1년 내내 매일 빠뜨리지 않고 대추를 먹는다. 양고기 요리
나 볶음밥의 일종인 쟈반에 빠짐없이 들어가는 것 역시 대추다 .이 곳에서 많이 나는 우리 나라 대추보다는
좀 크고 살이 많다. 대추는 대체로 모든 요리에 쓰이는데,건강에 좋고 특히 위장이 약한 노인들에게 좋은 과
일로 치고 있다. 한족을 중심으로 발달한 한의학에서도 대추는 빼놓을 수 없는 약으로 쳐왔다. [신농본초경]
을 보면 약을 군,신,좌,사 네 가지로 나누고 있다. 쉽게 말하면 병을 고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약과 좌
약 그리고 그 약효를 제대로 나게 하는 사약으로 이루어진다. [동양 의학사]를 쓴 프랑스의 유명한 의사인
'피에르유아르'는 한방에서 자주 쓰는 백호탕을 보면 군약을 써서 열을 떨어뜨리고 타액의 분비를 촉진시키며
좌약을 써서 위를 바로 잡아 주고 사약으로 대추나 감초를 써서 위를 보호해 준다고 한다. 옛말에도 약방의
감초란 말이 있다.감초뿐만 아니라 대추도 생강과 함께 한방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약재다. [동의보감]에도
잠이 오지 않을 때 대추를 달여 먹으면 잠이 잘 오고 위장의 기운을 편안하게 해준다고 되어 있다. 또 입맛
이 없고 소화가 안 될 때는 씨를 제거한 대추를 약한 불에 구워서 말린 다음 가루를 만들어 식후에 한 숟갈
씩만 먹으면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여자들이 마음이 불안하고 자주 놀라며 잠을 이루지 못하거
나 답답하고 불안할 때에도 대추에다 감초를 넣어 끓여 마시면 좋다. 갑자기 오한이 나거나 더위 때문에 배
가 아프고 복통이 생겨도 대추와 생강을 함께 넣어 달여 먹으면 좋다. 그러나 한의학의 분류법에 따르면 대
개 대추는 어느 약에나 들어가는 사약으로 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신농본초경]에도 대추는 맛이 달고 독
이 없으며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비장과 위장을 튼튼하게 해준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오장을 보하고 열두
경맥을 도우며 몸 안의 체액을 보충해 주어서 백약을 도와준다고 하였다.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소화 기
능이 떨어지고 여러 가지 퇴행성 질환이 생겨나기 쉽다. 그때마다 증상에 맞는 약을 먹는 것도 좋겠지만 대
추 같은 과일을 써서 건강을 유지하는 것도 40대 이후에는 유용한 양생법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약보다는
음식이나 과일을 즐겨 먹으며 건강을 유지하도록 힘쓰는 것이 슬기로운 건강 관리법이다.
돌소금 양치질로 잇몸을 단련한다.
위구르족이나 티베트족을 보면 안경을 낀 사람이 드물고 웃을 때 이가 빠진 노인들도 찾아보기 어렵다. 시
력이 떨어지고 충치가 늘어나는 것은 생활수준이 올라가면서 생겨난 문명의 역기능이란 지적을 이곳에서 실
감할 수 있다. 서녕을 떠나 티베트로 가는 사흘 내내 저녁 식사는 언제나 그곳 장의원의 신세를 졌다. 가는
곳마다 양이나 야크를 즉석에서 잡아 삶아 주었는데,어찌나 질기고 설익었는지 먹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이
곳 사람들은 고기를 완전히 익히면 맛이 없고 건강에 좋지 않다고 했다. 칠순을 넘긴 해남 장의원의 원장으
로 있는 주임의사 유다씨는 장도 같은 칼로 용케 뼈만 남기고 잘도 발라 먹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
에선 나이를 먹어도 이가 나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티베트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잇몸을 단련하기 위해 양
이나 말고기의 힘줄을 입에 물려 주고 씹을 만큼 씹고는 버리게 해 잇몸을 튼튼하게 하며,초원에 많이 나는
질긴 나뭇잎을 쪄서 껌처럼 씹게 해 잇몸을 튼튼하게 단련시킨다고 한다. 이곳에서 많이 먹는 돌소금도 잇
몸을 튼튼하게 해준다. 신강 자치구는 물론 감숙 및 청해성과 티베트는 바다 멀리 내륙에 위치하고 있어 바
닷물로 만든 소금도 없다. 대신 땅 속에서 파낸 돌소금을 먹는데 이 소금으로 이를 닦는다. 이 돌소금은 검
을 색을 띠고 있으며 요오드와 인 그리고 칼슘 같은 잇몸에 좋은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이런 소금도 정제하
면 여러 가지 광물질과 요오드 그리고 칼슘이 빠져 나가 오히려 좋지 않다고 한다. 특히 돌소금에 들어 있
는 요오드는 상처난 피부를 재생시키는 기능이 있어 잇몸이 상하더라도 쉽게 치료할 수 있다. 이 곳 사람들
은 씹기 어려운 힘줄이나 가축의 늑골 같은 단단한 것을 즐겨 먹는다. 필자도 억지로 먹다가 입안에 상처가
나고 잇새에 끼여 곤욕을 치른 일이 있다. 이런 돌소금은 땅에서 채취하면 어두운 곳에 보관한다. 검은 자줏
빛을 띠는 돌소금은 햇볕을 쬐면 적백색으로 변색되어 품질이 떨어진다고 한다. 며칠씩 이를 닦지 않더라도
이런 돌소금을 입에 넣고 있으면 잇몸을 튼튼하게 하고 입 안에 상처가 나더라도 곧 아물게 된다는 것이다.
오복의 하나인 이를 어릴 때부터 단단한 음식을 먹어 단련시키고 정제된 소금보다는 재래식 소금을 써서 닦
는 것은 매우 합리적으로 보인다. 문명의 혜택 때문에 충치가 늘어나고 이가 나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
도 이들의 지혜를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식사 전엔 찬물 안 마신다.
중국에선 찬물을 마시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비행기를 탈 때도 반드시 물병을 들고 다닌다. 특별히 만
든 물병도 있지만 큰 유리병에 따뜻한 녹차를 넣어 들고 다니면서 수시로 마신다. 아마도 이런 습관은 풍토
적 특성에서 유래된 것 같다.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려면 천산산맥이나 타클라마칸 고원의 만년설이
녹아내리는 중앙아시아에 가야 한다. 대개는 며칠씩 흙탕물을 가라앉혔다가 차를 넣어 끓여 마신다. 이런 환
경 때문에 한족을 중심으로 차문화가 발달했다고도 한다. 몽골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광활한 초원에는 냇
물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들도 언제나 물을 끓여서 유차를 마신다. 이 유차에 넣는 치즈는 딱딱한 돌같이 소
금을 넣어 굳게 만든 것으로 가루를 빻아 적당히 끓인 물에 넣어서 마신다. 버터나 치즈가 서양에서 냉장고
가 보급되기 전 일종의 보존 식품으로 우유에 소금을 넣은 다음 발효시켜 이용해 온 것과 같이 유차에 넣는
치즈도 소금을 많이 넣어 굳힌 것으로 몇 달씩 보관해도 변질이 되지 않는다. 이런 것을 가루로 빻아 끓인
물에 넣으면 땀의 손실에 의한 열분의 부족도 보충해 주거니와 맛도 있어서 마치 우리 나라의 냉면 육수에
간장을 탄 맛과 비슷하다. 몽의학에서도 부득이 찬물을 마실 때에는 언제나 네 가지 주의사항을 지키고 있
다. 첫째로 불선과량이다. 갈증이 심해 더운물만으로는 더위를 식히기 어려울 때도 단번에 마시지 말고 찬물
을 마시고 싶더라도 그 분량이 많아서는 좋지 않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로는 불선맹음이다. 땀이 많이 나서
찬물을 꼭 마시고 싶더라도 빨리 마시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찬물은 되도록 천천히 시간을 두고 마시
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불선반전의 원칙이다. 과학적으로 보더라도 식사 전에 찬물을
마셔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식사 전에 찬물을 많이 마시면 위액이 희석되고 소화액의 분비도 떨어져 식욕도
없어지고 음식의 소화 흡수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네 번째로는 유환불선냉음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
이다.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하고 건강이 나쁠 때 찬물을 마시는 것은 좋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위장에 병이 생
긴 경우뿐만 아니라 기관지염이나 감기에 걸린 경우에도 찬물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 주변에서도 찬물을
마시고 배탈이 났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외지에 나가 물을 갈아마시고 병이 생겼다는 이야기도 종종 듣
는다. 이런 병은 물 속에 들어 있는 좋지 않는 미생물 때문에 생겨나는 경우가 흔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운
물을 마시는 것이 좋다.
사욕,약욕,뜸요법
청나라 왕실의 서양 의사로 있었던 '파라미노'가 강희제를 따라 서쪽의 변경 지방에 갔을 때 왕이 갑작스레
심한 복통을 일으키자 이 고장 위구르 전통 의사가 기름과 대마,그리고 약초 가루로 부위를 찜질해서 깨끗하
게 고쳤다고 한다.
강희제의 복통에 관한 프랑스 신부의 기록
신강 자치구의 수도인 우르무치는 꽤 컸다. 인구도 10만 명이 넘었다. 거리를 자동차로 달리다 보면 확실히
이 고장이 동서 문화의 교류가 빈번했고 그만큼 각기 다른 인종의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
었다. 근래 성행하기 시작한 구소련의 카자흐스탄 및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사이의 국경 무역으로 붐비는 위
구르족 거리를 벗어나면 타타르족의 거리에 이르고 얼마 가지 않아 몽골족이나 한족이 모여 사는 구역에 들
어선다. 생활습관도 크게 차이가 난다. 한족에 비해 맑고 깨끗하다는 의미에서 이 고장에선 회교도를 청진교
도라 하며 회교 사원을 청진교당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드나드는 음식점을 청진찬청이라고 한다.
이들은 한족이 좋아하는 돼지고기를 먹지도 않고 만지지도 않는다. 좀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청나라 강희제
때 북경에 와 있던 프랑스 신부 '파르낭'의 기록에 따르면,당시에 중국을 통일하고 그 영향력이 절정에 이르
렀던 청나라에서는 한의학뿐만 아니라 여러 종족의 전통의학도 이용했다고 한다. 청나라 왕실의 서양 의사
로 있었던 '파라미노'가 강희제를 따라 서쪽의 변경 지방에 갔을 때 왕이 갑작스럽게 심한 복통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때 한의사는 물론 서양 의사들도 그의 병을 고치지 못했다. 결국 이 고장 위구르 전통 의사에게 그
병을 고치도록 맡겼다. 이 의사는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기름과 대마 그리고 약초 가루를 써서 강희제가 아
파하는 곳을 찜질해 30분도 지나지 않아 깨끗하게 고쳤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갑신정변 때 크게 부상당한
당시의 세도가 민영익을 '앨런'이 고쳤다는 이야기와 흡사하다. 이와 같이 중앙아시아에는 이 고장 특유의 약
과 온천 그리고 독특한 치료법이 많다. 지대가 높고 춥지만 청해성으로 연결되는 타클라마칸 고원에는 온천
도 많다. 또한 300종이 넘는 각종 식물과 자연적인 약용 식물도 있다. 대황,당귀,동충하초 등 수많은 약재가
오늘날에도 생산된다. 이 중 동충하초는 곰팡이균의 기생을 받은 나비나 모기의 유충이다. 매우 희귀하고 유
명한 약용식물로서 곤륜산맥,청장고원 그리고 티베트에서 자라고 있다. 필자는 자동차로 우르무치를 떠나 토
르판 그리고 청해성의 서녕으로 나갔다. 특별히 필자의 여행을 위해 자치구 정부는 힘센 일제 랜드로바에 운
전기사 그리고 통역을 딸려 청장고원을 닷새 동안 달리게 했다. 우르무치를 벗어나면 바다보다 낮다는 토르
판에 이르고 그곳에서부터 지대가 높아진다. 이미 서녕에 이르면 해발 3,000미터를 넘어선다.고산병에 걸리
지 않도록 뛰지 말라고 했다. 숨이 좀 차는 것 같았다. 서녕은 청해성의 수도이다. 우르무치에 비하면 규모
가 작지만 서장 자치구 다음으로 티베트족이 많이 사는 고장이다. 해발 3,500미터 이상의 고원지대에서는 유
목민들이 말과 야크 그리고 양들을 치면서 살고 있다. 8월 중순이라서 날씨는 좋았다. 그러나 밤에는 섭씨
5-7도 가까이 떨어졌다. 비가 내리다가도 한 시간쯤 뒤에는 햇볕이 쬐고 바람이 불었다. 또한 바람이 불면
먼지 때문에 눈을 뜰 수 없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 나라에서 봄,가을에 자주 보는 황사현상도 바로 이 고장으
로부터 비롯된 먼지바람이다.
사욕,약욕,그리고 뜸요법
이 고장 전통의학 병원에서 인상적으로 본 것은 한 여름에 많이 하는 모래찜질이었다 .한문으로는 사욕이라
고 하며 일종의 물리요법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시골에 가면 천막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관절염이
나 만성적인 통증이 많은 것 같았다. 나이를 먹으면 언제나 한여름에 이런 병을 예방하기 위해 사욕을 많이
했다. 두 번째로는 쑥과 여러 가지 약을 넣은 물에 목욕을 시키는 약욕법은 독특했다. 세 번째로는 뜸도 많
이 하고 있었다. 뜸을 무엇으로 하느냐고 물어 보니 애구라고 써보인다. 우리 나라와 같이 쑥 찜질을 하는 것
이었다. 효과가 얼마나 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었다. 이 고장 사람들은 목욕을 자주
하지 않는다. 일생을 통해 서너 번밖에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중앙아시아의 위구르족과 몽골 및 카자흐족
에게는 만성병 예방과 치료에 인기 있는 것이 바로 약욕법이었다. 가는 곳마다 찾아간 전통의학 종합병원에
선 입원실 옆에 반드시 약욕실을 두 개 내지 세 개씩 운영하고 있었다. 하루에 두 세번씩 1-2주 동안 계속
약욕을 하고 한달쯤 쉬었다가 다시 약욕을 두세 번 반복하면 웬만한 만성병을 다 낫는다는 얘기였다. 여기
에 쓰이는 약을 한문으로 써서 물어보니 백엽,두견화,마황 같은 생약제였다. 이 중 마황을 뺀다면 이런 약재
는 모두 중앙아시아 특산의 생약들이다. 한족이 운영하는 중의원에서는 약욕을 하지 않는다. 필자가 찾은 낙
양과 정주,서안의 중의원에서는 약욕실이 없었다. 이 고장 위구르 전통 종합병원에게 더 자세히 물어보니 아
시아의 여러 고장에선 온천 요법도 좋은 치료법으로 쓰인다고 했다. 우리 나라나 일본에서도 오랫동안 여러
가지 만성병 치료에 온천을 즐겨 왔다. 중앙아시아의 풍토나 물이 귀해 목욕하기 어려운 생활환경에서 유래
된 독특한 치료법이라 여겨졌다. 그러나 위구르족의 위구르 전통의학 병원이나 카자흐족의 민간 요법은 어
느 의미에서 볼 때 한의학과 이런 중앙아시아 특유의 치료법을 다 함께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이 고장에서
도 근래 인기를 끄는 것이 기공술이었다. 또한 침구 치료를 받으려는 환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북경이나 서안의 중의원에서 쓰는 침보다 굵고 컸으나 몽골이나 티베트에서 쓰는 침보다는 작았다. 물론 우
리 나라나 일본에서 쓰이는 침보다는 훨씬 컸다. 중세 유럽 의학의 경우와 같이 중앙아시아에서는 아직도 급
성 질환에 걸리면 피를 빼내는 사혈 요법이 쓰이고 있었다. 이런 목적을 위해서는 우리 나라나 일보보다 침
이 클 수밖에 없으리라 여겨졌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아라비아 의학에선 병이 생긴 부위로부터 멀리 떨어
진 피부를 때우는 뜸 내지 구술과 함께 이런 사혈 요법이 많이 쓰였다. 예로부터 우리 나라에서도 관격이나
급체에 걸리면 피를 뽑는 사혈 요법이 통용되었다. 이런 치료법을 보고 있으니 필자가 어렸던 40년 전이나
50년 전의 모습을 재현한 것 같아 감회가 깊었다.
중앙아시아의 피부병 치료법
끝으로 신강 자치구에서 청해성에 이르는 중앙아시아의 전통의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피부병 치료법이
다. 실제로 우르무치나 토르판 그리고 화전에 있는 위구르 전통의학 병원의 입원실에는 러시아는 물론 파키
스탄과 이란에서 온 환자들이 완치되기 어렵다는 피부병을 치료받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북정에는 당
나라 때 설치한 도호부의 유적이 아직도 남아 있고 곤륜산맥을 등지고 있는 화전에는 3년제로 된 위구르 전
통의학 대학이 있어서 이들의 독특한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이 고장 사람들은 햇볕이 따갑고 일
교차가 심하며 자외선에 많이 노출되어 생기는 여러 가지 피부병에 잘 듣는 치료법이나 치료약을 자랑하고
있었다. 과학적인 차원에서 보더라도 자외선이 많이 함유된 햇볕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기미도 잘 생기고 피
부의 각질화를 촉진해서 노화를 일으키기 쉽다. 더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30대만 되어도 피부가 쭈글거리
고 살결이 두꺼워지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 고장에서도 이런 풍토 때문에 우피선 같은 난치
피부병이 많이 발생한다. 우피선이란 살결이 쇠가죽같이 두껍게 각질화되는 피부병을 말한다. 이런 병은 현대
의학이나 한의학으로는 고치기 어렵다. 병을 치료하는데 쓰이는 약은 모두 이 고장에서 나는 독특한 중앙아
시아 고유의 생약들이었다. 한문으로 번역된 자료를 보니 가중흑초종을 가루로 만들어 사아단기름과 함께
바른다고 되어 있었다.북경이나 서안 같은 곳에선 들어 보지도 못한 약들이었다. 우리 나라에 돌아와 이 이
야기를 잡지에 실었더니 한 제약회사에서 이런 피부병에 잘 듣는 연고나 고약을 개발하고 싶다며 같이 가보
자는 제의를 해왔다.그러나 또 다시 찾아가기에는 너무 벅찰 것 같아서 자료만 넘겨 주었다. 어쩌면 이 약이
우리 나라에서도 머지않아 개발될지도 모르겠다. 서양 의학의 역사를 보더라도 우리들이 쓰는 오래된 약들
은 대개 민간요법이나 전통의학에서 얻어낸 것들이다. 말라리아에 잘 듣는 키니네가 그렇고, 심장병 약한 디
기탈리스는 물론 우리들이 가장 많이 쓰는 아스피린도 전통의학의 산물이다.
평생 두 번 목욕하는 사람들
너무 오래 때를 밀고 목욕하는 습관은 버려야겠다. 비누질도 많이 하지 말고 목욕 후에는 반드시 크림이나
로션으로 피부를 보호하는 게 좋다. 오히려 비누도 없고 목욕도 자주 하지 않는 티베트 사람들 중에는 피부
병을 앓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 너무 깔끔떨지 말고 생긴 대로 사는 게 좋다는 얘기이다.
티베트의 라사로 가는 길
티베트의 '라사'로 가려면 서너 가지 경로를 거치게 된다. 아직도 북경에서 라사에 들어가는 직항 비행기 편
은 없다. 대개 성도나 중경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라사에 가게 된다. 그러나 워낙 티베트가 고산지대여서 비
행기로 가면 고산병에 걸리기 쉽다. 육로로도 청해성의 서녕으로부터 자동차를 타고 2-3일이면 라사에 갈
수 있다. 정책적으로 중국 정부가 개설한 이 길은 험준한 고산지대를 뚫고 가지만 최소한 고산병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대개 서녕을 떠나 청장고원을 넘어 티베트에 들어가려면 과낙장족 자치주를 지나게 된다. 이
고장 주정부가 있는 감덕에서 티베트족이 많이 이용하는 장의원 구경을 하고 저녁식사를 대접받았다. 귀한
손님이 왔다고 양을 잡아 즉석에서 삶아 놓고 큰 칼을 주면서 먹으라고 했다. 야채는 거의 없고 좁쌀이나 보
리를 빻은 것을 버터에 녹여 더운물에 넣고 손으로 반죽해서 먹었다. 전통적인 티베트족의 만찬을 대접받은
것이다. 이튿날에는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라마 사원인 '테르'사원을 찾았다. 이 절은 역사도 길고 명나라
홍무 연간에 객파대사가 출생한 곳으로,라마 불교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곳이기도 하다. 독실한 라마교
신도들이 온몸을 땅에 던져 오체투지하면서 참배하는 모습을 보면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현재 이 절은 대
금와전을 비롯하여 7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불경을 외우면서 수없이 돌리는 마니경륜은 영겁의 세월을 초월
해 인간의 삶 자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았다. 원래 티베트의 전통의학은 라마 불교와 떼어 놓을
수 없다. 아직도 이 절에는 60여 명의 젊은 라마승들이 6년간의 과정으로 티베트의 전통의학인 장의학을 공
부하고 있다. 장의학의 기본 경전인 [의경팔지]나 [사부의전]은 중국말로 번역되기도 했지만 이곳에선 모두
티베트말로 된 의학 경전으로 배우고 있었다. 모든 종교 의학에는 신비한 일면이 있다. 라마교도 밀교적인 분
위기가 짙다. 불교 의학뿐만 아니라 도교 의학이나 회교 의학도 그런 면에서 보면 비슷한 점이 많다. 티베트
의 전통의학과 장의학의 강력한 영향아래 나타난 몽골의 몽의학도 그 역사를 뒤져 보면 티베트의 황교와 밀
접한 관계를 가지고 발전해 왔다. 13세기에 이르자 원나라의 황제 '쿠빌라이'는 티베트의 라마교를 국교로
선포하고 몽골에 보급시키고자 힘썼다. 티베트에 옮겨진 라마교가 몽골과 시베리아까지 본격적으로 전파된
것은 16세기 후반부터였다. 이런 라마 불교는 의학 경전으로서 [단주미경]속에 의경팔지를 가지고 있다. 이
의학 경전은 서기 3세기경 인도로부터 전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 경전 속에는 한족이 한의학에서 볼 수 있
는 목,화,토,금,수 같은 오행설이나 오장육부이론이 들어 있지 않다. 그 후 이 책은 16세기에 이르자 몽골까지
퍼져 나가고 티베트 고유 경전이라 할 수 있는 [사부의전]이 만들어 졌다.
평생 두 번 목욕하는 사람들
티베트는 넓다. 북쪽으로는 삭막한 반 사막에 가까운 고산지대만 남쪽으로 가면 각종 식물이 잘 자라고 야
생 동물들도 많다. 확실히 티베트는 아직도 생활 수준이 높지는 않다. 발표된 공식 통계를 보더라도 생후 한
살 이내에 사망하는 영아 사망률도 아주 높다. 그러나 도회지를 벗어나 유목 생활을 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
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오래 사는 사람들도 있다. 의학이 발달한 것도 아니고 약이 특별하게 좋을 리 없건만
나이 많은 노인들이 시골에 많이 산다는 것은 인상적이었다. 서장 자치구 장의원의 주임의사로부터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될 듯했다. 우선 목욕을 잘 하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거리나 병원에서 만난 사람들을 보면
목욕을 자주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고장에선 일생 동안 목욕을 별로 하지 않고 죽는다
고 한다. 고작해야 두 번 정도 하는데, 태어나서 한 번하고 결혼을 앞두고 한 번 한다. 그러니까 티베트에선
목욕은 질병의 치료나 예방을 위한 의학적인 처치에 해당되어서 평상시에는 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신강
자치구는 물론 청해성과 감숙성 그리고 서장 자치구에 널려 있는 장의원 입원실 옆에는 반드시 약욕실이 있
다. 따라서 목욕은 병이 났을 때 여러 가지 약재를 넣고 하기 때문에 약욕이라고 하며,이런 시설을 약욕실이
라고 한다. 확실히 목욕은 의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선 목욕탕에 가서 30분이나 한시간씩 목욕을 하면서 온몸이 벌겋게 변하고 피가 맺히도록 수건으
로 때를 벗겨 내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오랜만에 목욕을 하면 가볍게 밀기만 해도 때가 밀리는 수가 있지
만 때를 세게 밀거나 벗기면 득보다는 해가 더 많다. 원래 사람의 피부는 손톱,발톱,입술 그리고 항문을 빼
고는 보통 피부로 덮여 있다. 피부의 제일 위에는 표피가 있고 그 아래에 진피가 있으며 진피 밑에는 피하조
직이 있는데 대개 지방조직과 연결되어 있다. 또한 피부는 입술,항문,여자의 성기 같은 점막과 연결된다.피부
는 좋지 않은 외부의 자극이나 영향으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하는 기능을 가지며, 덥거나 찬 감각을 느끼고
피지선과 땀샘을 통해 윤기가 돌게 하며 땀을 내어 체온을 조절한다. 그 중 제일 밖에 덮여 있는 피부의 외
부는 혈관이 분포되어 있지 않아 점차 물기가 없어지고 각질화되면서 벗겨져 나간다. 완전히 각질화되지 않
았더라도 표피는 물기가 적어서 외부의 각질층이 비듬이나 때의 형태로 떨어져 나간다. 우리 몸을 덮고 있
는 표피는 대개 0.07-0.12밀리미터의 두께이며 손과 발바닥은 약 0.8밀리미터 정도이고,제일 두꺼운 곳은 1.4
밀리미터 정도까지 된다. 그러나 계속 물리적으로 힘을 주거나 마찰을 하면 몸의 어느 부위에서도 각질층이
늘어날 수 있다. 표피에는 피가 통하는 혈관이 없으므로 진피로부터 영양을 공급받는다. 흔히 우리가 목욕할
때 수건으로 피부를 세게 문질러 때를 벗기게 되면 피가 맺히고 벌겋게 변하는데 이것은 각질층이 모두 벗겨
져 나가고 마찰에 의해 피부에 흐르는 혈관이 충혈되거나 파괴되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목욕을 너무 자주 하는 게 오히려 문제
따라서 때를 지나치게 벗기면 우리 몸을 보호해야 할 표피가 모두 벗겨져 나가기 쉬우므로 가볍게 때를 미
는 것이 바람직하다. 더욱이 때를 말끔히 벗겨 내기 위해 거친 헝겊이나 수건을 쓰게 되면 표피가 심하게 벗
겨지고 부분적인 출혈에 의해 색소가 완전히 침전하기 때문에 피부에 흉터까지 남기기 쉽다. 결국 이렇게
벗겨진 피부가 다시 원상으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피부 깊숙이 들어 있는 진피로부터 새로운 각질층이 형성되
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 일교차가 심하고 자외선 조사량이 많은 고산지대에서 목욕을 자주 한다는 것은 건강
에 좋지 않으리라 여겨졌다. 필자도 시골에서 자라난 사람이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40-50년 전 한겨울에는
목욕을 자주 하지 못했다. 오랜만에 목욕탕에 가면 때를 많이 밀고 벗겨 낸 기억이 난다. 그러나 생활에 여유
가 생기고 각 가정에서 샤워나 목욕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추어지자 목욕을 자주 해서 위생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여러 가지 피부병과 고치기 어려운 알레르기성 질환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서양 사람들은 거의 매일 샤워를 한다. 그러나 비누질을 했을 때는 반드시 피부를 보호
하기 위해 로션이나 크림을 써서 온몸에 바른다. 역설적인 얘기가 되겠지만 과거에는 더러워서 부스럼이 많
았지만 이제는 오히려 너무 목욕을 자주 하고 때를 밀고 비누질을 해서 병이 늘어나고 있다. 서양에선 이런
것들을 현대 문명의 부산물로 생겨난 병들이라고 해서 인조병 또는 문명병이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도 이제
는 너무 오래 때를 밀고 목욕하는 습관은 버려야 한다. 비누질도 많이 하지 말고 목욕 후에는 반드시 크림이
나 로션으로 피부를 보호하는 게 좋다. 비누도 없고 목욕도 자주 하지 않는 티베트 사람들 중에는 피부병을
앓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 너무 깔끔 떨지 말고 생긴 대로 사는 것,그것이 진정한 건강법이다.
왜 죽음을 걱정하나?
장수촌에 사는 사람들은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다. 뚱뚱하면 뚱뚱한 대로 마르면 마른 대로 살아간다. 병을
걱정하지도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이 모든 것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인기 좋은 티베트 정력제
미국과 일본이 합작해서 만든 영화 <작은 부처(리틀붓다)>는 라마 불교의 신비한 모습을 현대인에게 소개
해서 많은 감명을 준 바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티베트에서 찍을 수 없어서 티베트와 인접하고 있는 불교
국가 '부탄'에서 촬영했다. 이 영화를 보면 티베트 출생의 나이 먹은 라마승이 자신의 천명을 미리 알고 음식
을 먹지 않고 불경을 외우며 죽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확실히 라마 불교는 밀교적인 냄새가 짙다. 또한 이런
밀교적인 라마교와 서로 뿌리를 같이하는 티베트의 전통의학에는 신비한 약들도 많다. 특히 중년 이후 남자
들의 정력에 좋다는 약들도 많다. 값이 싼 오미감로환으로부터 좀 비싼 이십미산호환이 있는가 하면,최고의
보약으로 치는 칠십미진주환이 있다. 실제로 우리 나라에서도 이런 약을 구하고자 북경에 있는 티베트 사람
들이 다니는 장의원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과거의 의학을 세계적인 안목에서 볼 때 그 진
료의 대상에 따라 지배층을 위한 귀족 의학과 대중의 건강을 보살펴 온 대중의학으로 나눌 수 있다. 소설[
동의보감]에도 나왔듯이 허준 선생이 젊은 시절에 심혈을 기울여 진료한 곳은 일반 서민들의 건강을 보살핀
혜민원과 혜민서였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지배층의 건강을 돌보았던 귀족 의학의 주요 관심사는 어느
나라에서나 결국 성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미약이나 정력제 또는 불로 장생을 보장한다는 보약에 쏠릴
수밖에 없었다. '살레르노'의 [양생훈]을 보면 중세기 대부분의 서민들은 허기진 배를 채우고도 힘들었던 유
럽에서도 건강을 위해 고기를 적게 먹고 절주하며 저녁 만찬을 적게 먹었다고 나온다. 티베트의 경우도 예
외는 아니다. 티베트 전통의학이 자랑하는 이런 보약 내지 정력제는 아직도 인기가 높다. 귀한 손님이라면 필
자에게도 선물을 했다. 그러나 이 고장 사람들이 자랑하는 장수촌은 호의호식하는 지배층이 사는 고장이 아
니다. 비싼 약을 먹을 수 있는 처지의 사람들도 아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도 그들은 오래 살고 있었다.
이러한 사람들의 장수에는 이들이 전통적으로 지키고 있는 식양법도 중요하겠지만 생활 양식과 밀접한 관계
를 가진 것 같았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회심리학자 '엘리자베스 큐블라-로스'가 쓴 [죽음과 죽어가는 과정]이란 책은 미국에서 출판된 후 20년
가까이 베스트셀러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사람이 불치병에 걸려 죽어가는 과정을 심리적
으로 설명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치의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절망하고 우울해지며 죽음
을 '거부하는 단계(stage of denial)'를 거쳐 결국 죽음을 받아들이는 '수용의 단계(stage of acceptance)'에 이
른다고 한다. 개인차는 있지만 현대인들에게 죽음은 괴롭고도 비정한 숙제다.현대인은 누구나 오래 살고 건강
하길 바란다. 따라서 건강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면 높아지면 건강 염려증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장수촌에
가보면 이런 삶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나 집념은 찾아보기 힘들다. 장수촌에 사는 사람들은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다. 뚱뚱하면 뚱뚱한 대로 마르면 마른 대로 살아간다. 병을 걱정하지 않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고장 사람들의 설명에 따르면 나이 먹으면 병들고,병들면 죽어서
자신의 시신을 새들에게 보시하는 풍장을 통해 자연으로 되돌아간다고 믿는다. 풍장은 대개 마을 주변의 산
정상에서 한다. 외국 사람들에게는 풍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허용하지 않아서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풍장
하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독수리와 여러 새들이 떼지어 날아다니고 있었다. '라사'의 가장 큰
장의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주임의사도 자신이 죽으면 풍장을 하겠다고 했다. 역설적인 얘기가 되겠지만 삶
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일수록 장수하기 어렵다. 그러나 옛말에도 오복의 첫째가는 조
건은 장수라 했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장수에 대한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은 끊이지 않았다. 진시황이 즐겨
먹었다는 불로 장생약단사를 위시해서 19세기에 유산균 발효유를 권유했던 러시아의 미생물학자 메치니코프
또한 불로 장생을 염원했다. 오늘날에 와선 노인병학이 생겨나 의학,심리학,사회학,경제학,법학 등 여러 학문
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사람의 노화 내지 노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우리 나라 또한 65세 이상 노인들
을 노인 복지법에 의해 각종 혜택을 주고 이들의 건강 문제 또한 사회적인 차원에서 해결하고자 힘쓰고 있
다. 그러나 인생을 확고한 신념과 정신적 안정 속에서 생활한 사람들만이 오래 살았다는 연구 조사 결과는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라와 겨레를 위해 생명마저 아끼지 않았던 독립운동가나 확고한 신념을 가
지고 살았던 종교인들은 모두 70세 이상 장수한 반면,사회적으로는 저명 인사에 속했지만 정신적으로나 정서
적으로 불안정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예술인들이나 영화인들은 장수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의학은 섭생 의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당뇨병,고혈압,심장병 같은 성인병은 음식이나 일상 생활
과 행동 그리고 태도를 비롯한 각 개인의 섭생이 건강과 장수에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 오
늘날 현대인은 각박한 경쟁 사회에서 정서적 불안에 빠지기 쉽다.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차를 타고 직장에
나가고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오는 도시인들에게 긴장과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다. 촌각을 다투는 산업 사회
에선 느긋한 여유 대신 빠른 변화와 이에 대한 적응 과정에서 정서적 불안과 긴장을 겪게 된다. 실제로 내과
병원을 찾는 환자의 2/3는 이런 스트레스 때문에 생겨나는 심인병 내지 심신병 환자들이다.
스트레스가 없으면 삶도 없다.
'스파르타'에선 몸이 튼튼해야 정신이 건강하다고 했다. 이제는 마음이 건강해야 육체도 튼튼해진다고 강조
한다. 그만큼 정신 건강이 육체적 건강에도 필수적 조건이 됐다. 따라서 긴장과 스트레스를 적게 받아야 육체
적으로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현대병은 정신적 요인 때문에 발병하고 약화된다. 통계적으
로 볼 때 당뇨병이나 고혈압을 일으키는 가장 큰 위험 인자는 스트레스와 긴장이다. 소화불량이나 위궤양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과학적으로 병의 발생 과정을 밝히려는 근대 병리학도 체질이나 소인이란 개념을 완
전히 버린 것은 아니다. 정신 노동에 종사하는 내성적인 사람에겐 위장병이 잘 생기며 욕구 불만에 빠지기
쉬운 투쟁적인 사람에겐 고혈압이 잘 생긴다. 병은 원래 단 하나의 결정적인 원인 때문에 생겨난다는 이른
바 단일 병인론은 전염병이나 영양실조를 설명하는 데는 잘 맞았으나 오늘날 우리가 걱정하는 비전염병의 발
생과정을 밝히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 어찌 보면 전근대적인 냄새마저 풍기는 소인이나 체질 같은 요소 때문
에 병이 생긴다는 이른바 복수 병인론의 입장에서 많은 학자들이 여러 가지 위험 인자를 찾는 데 힘쓰고 있
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정신적 스트레스이다. 그러나 스트레스는 변화에 대한 적응 과정에서 생기는 생리
적 반응이다. 스트레스가 전혀 없으면 오히려 살맛이 안 난다. 피할 수 없는 숙제인 현대인의 스트레스는 오
히려 잘 활용하는 편이 낫다. 티베트의 전통의사는 물론 옛 선인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충고하
고 있다. 첫째,내일을 걱정하지 말라는 충고이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 오늘에 충실해서 그 결과를 기다
리자. 둘째,한 가지 걱정을 거듭하지 말라는 충고이다. 공자도 두 번 이상 같은 걱정하면 사특해진다고 했다.
셋째,긍정적 생활 태도를 가지라는 것이다. 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을 때 성공한다.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라.
행운을 믿고 살자. 그리고 그 결과는 자연에 맡겨야 한다. 때가 되면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다. 건강도 너무
걱정하면 병이 생긴다. 죽음을 두려워할수록 오래 살지 못한다. 역시 예로부터 전해지고 있는 여러 전통의학
의 뿌리를 훑어보면 자연에 순응하는 슬기로운 삶을 강조하고 있다. 즐겁게 살고 자연에 순응하는 지혜를 터
득할 때 현대인도 장수하리라 믿는다. 과유불급이라는 말 그대로 건강에 대한 걱정도,장수에 대한 욕심도 지
나치면 독이 된다. 스트레스가 있으면 있는 대로 죽음이 다가오면 다가오는 대로 생긴 대로 살다 죽는다는
편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으뜸가는 장수법이요,건강법이다.
우울증과 핵가족
나이를 먹으면 생기기 쉬운 노인성 우울증도 핵가족 제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흔히 노망이라고 부르는
노인성 치매도 핵가족에서 잘 생기고 빨리 악화된다.
[동의보감]속의 서역 의학
1984년에 찾은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의 수도 '타슈켄트'와 '사마르칸트'는 인상에 남는 고장들이다. 타슈켄트는
1970년대에 큰 지진을 겪고 모두 파괴되어 버렸지만,당시 소연방의 여러 공화국들이 자금과 사람들을 보내
오늘날의 타슈켄트를 건설했다고 한다. 도심지나 '바자르'같은 시장은 잘 정돈되어 있었으나 아직도 뒷골목에
가면 누추한 임시 건물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사마르칸트에는 소구드 왕국 시절의 유적
들을 위시해서 한때 번성했던 불교 관련 유물은 물론 헬레니즘 문명의 유산들도 박물관에서 찾아볼 수 있었
다. 특히 이 두 고장에선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해온 우리 나라 동포인 '고려인'들을 많이 만났다. 두려움과
호기심 속에서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의 여행을 끝마치고 카자흐스탄 공화국의 알마아타에 갔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몹시 추웠다. 사막에 인접한 내륙의 특이한 날씨였다. 바람이 불면 흙먼지가 하늘을 가리다가도 금방
해가 뜨면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었다. 그 후 중국령인 신강 자치구에서도 비슷한 날씨를 겪었다. 우르무치와
토르판에서도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이나 카자흐스탄 공화국과 비슷하게 여러 소수 민족이 살고 있었다. 이들
은 대개 회교도이다.특히 위구르족이 장수하기로 소문나 있다. 오늘날 우리가 비단길이라 부르는 '실크로드'
는 대개 중국의 서안에서 시작해서 난주와 주천을 거쳐 돈황에 이르고,우르무치를 지나 바그다드에 이르는
천산북로와 천산남로를 가리킨다. 이 고장은 전통적으로 여러 소수민족이 사는 고장이다. 중국에선 이들을 서
융이라고 불렀으며 한때는 불교 문화권에 속했지만 이제는 회교 문화권에 들어 있는 이른바 청진교도들이 살
고 있다. 중국인들이 쓴 역사를 보면 한나라 무제 때 장건은 왕명에 따라 대원국을 찾아 나서 실크로드를
비롯하여 인도와 이란 그리고 카스피 해로 통하는 육상 교역로를 개척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중국과 중앙
아시아 그리고 서역 사이의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이 비단길을 통해 중국의 한족은 8세기 경부터 아라비아와
빈번한 교류를 갖게 되었다. 그 결과 중세기에 찬란한 꽃을 피웠던 아라비아 의학도 동아시아에 소개되었다.
[동의보감]을 보면 이런 빈번한 문화교류를 통해 서역 의학의 영향을 받았음을 엿볼 수 있다. 우리 나라 의
학사에 빛나는 업적인 [동의보감]을 봐도 서역산 약재가 오래 전부터 우리 나라에 소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동의보감]에 기록된 서각,대모,목향을 위시해서 20여 종의 약재를 보면 분명히 중앙아시아와 티베트
산 약재가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대가족 제도의 장점
그러나 이들은 대개 양이나 말을 치고 사는 유목민이다. 이제는 문명이 발달해서 도회지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골에 살고 있으며,시골에 사는 사람들만이 장수하고 있다. 이
고장 장의원의 주임의사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장수의 결정적 요인 중 중요한 인자로 여러 사람들이 모여
사는 대가족 제도를 꼽는다. 실제로 현대 문명은 건강 면에서 볼 때 부정적인 측면이 많다. 근래 늘어만 가
고 있는 불량 청소년 문제도 그 뿌리를 찾아보면 할머니나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대가족이 줄어들고 핵가족
이 늘어남에 따라 생겨난 문제점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고장에선 대개 3대나 4대,5대가 함께 모
여 산다. 적어도 가족 수가 10명에서 많으면 20-30명까지 된다. 물론 근래 중국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며 추
진하는 사업중 하나가 가족계획이다. 한족의 경우에는 조건없이 아이를 하나만 가져야 하고 소수민족의 경우
에는 두 명까지 허용한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행정력이 잘 미치는 도회지에서는 지켜지고 있지만 소수민족
들이 많이 사는 시골에 가면 아직도 출생 신고를 하지 않은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이들의 설명에 종합해보
면 아직도 이 고장에 사는 유목민들은 중국 정부의 이런 가족 계획을 제대로 따르지 않는 것 같았다. 35세
쯤 되는 사람이면 대개 4-7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다. 실제로 이들의 궁색한 변명을 들어보면 가족계획을 잘
몰라서 아이를 많이 나았다고 한다. 화전에 있는 유의 학원(위구르족 전통의학대학)의 주선으로 장수하는 노
인들이 많은 위구르족 마을을 찾아가 보니 한 천막에 4-5대씩 함께 어울려 살고 있었다. 특히 여름에는 양
과 야크를 방목하기 위해 옮겨 다녀서 한 천막에서 여럿이 함께 지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런 사정은 티베
트나 몽골의 유목민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렇게 4대나 5대가 함께 어울려 살면
노인들의 건강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교육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는 우리 나라의 장수촌에서도
이미 입증된 바있다 .제주도의 '곽지리'나 지리산 깊숙이 자리잡은 장수마을에 가보면 3대나 4대가 어울려 살
고 있다. 노인이 되어도 쉬지 않고 일하며 교육에도 힘써서 아이들이 모두 예의바르고 효성스럽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제는 도로가 포장되고 벽지에도 차가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점차 이런 장수마을도 사라
지고 있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장수촌에 가보면 열녀나 효자를 기리는 정문도 보게 된다. 필자가 초등학교
에 다녔던 50여 년 전에는 요즘같이 좋은 종합병원도 없었고 위중한 병에 걸리면 쓸 수 있는 링거 주사도 없
었다. 당시에 노인들이 병들어 임종이 가까워 오면 효자들은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이로 깨물어 임종에 가까
운 노인 어른들에게 피를 먹여 회생시키고자 하는 단지효양을 하는 풍습이 남아 있었다.
우울증과 핵가족
오늘날 노년학에서는 대가족 생활이 노인들의 정신건강은 물론 어린이들의 전통문화 전수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핵가족이 늘어남에 따라 결손 가정이 많아지고 노인들만 따로 사는 가정이 많아져서
노인들의 생리적 노화가 빨라지고 노인성 신경 정신병의 발병률도 늘어난다. 이런 경향은 생활 수준이 높은
선진국에서 더욱 많이 볼 수 있다. 나이를 먹으면 생기기 쉬운 노인성 우울증도 핵가족 제도와 밀접한 관계
가 있다. 흔히 노망이라고 부르는 노인성 치매도 핵가족에서 잘 생기고 빨리 악화된다. 40대 이후에 생겨나
기 쉬운 고독감이나 소외감을 줄이기 위해서도 일하는 시간을 늘리고 슬픔이나 괴로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족적인 유대가 유지되어야 한다. 이런 것은 정부가 베푸는 사회보장제도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특히 정
신 신경증이 늘어나는 이유로 40대 이후 핵가족사회에서 나타나기 쉬운 소원한 인간관계를 첫째로 꼽고 있
다. 나이를 먹어서도 가정에서 노인들의 확실한 역할이 유지되어야만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건강할 수 있
다. 사랑에 실패하고 돈 때문에 인생을 포기하거나 대학에 낙방하고 성적이 나쁘다고 자살하는 청소년이 늘
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느 나라에서나 40대 이후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훨씬 많다.
노인들이 즐겁게 지내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데는 대가족 제도가 장점이 더 많다. 실제
로 중앙아시아의 장수촌을 찾아가 보면 그 어느 곳에서도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무료하게 살지 않으며 심심하
지도 않다. 증손도 있고 고손도 있으며 아이들을 가르치기 바빠서 우울증에 걸릴 틈이 없었다. 또한 이 고장
에선 불량 청소년 문제도 볼 수 없었다. 물론 우르무치나 토르판 같은 여러 민족이 함께 사는 큰 도시에선
범죄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시골에 가면 아직도 전근대적인 냄새가 나고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안정된 생
활을 하고 있었다.
일하자,일하자!
우리 나라에선 근래 명예 퇴직과 조기 정년이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건강하게 살려면 죽을
때까지 일을 해야 한다. 2,000여 년 전에 씌여진 [논어]를 봐도 '40에 시사하여 70에 치사한다'고 했다.
척박한 땅의 사람들
티베트족이나 장족,몽골족 그리고 위구르족이 사는 중앙아시아는 한국 사람의 안목으로 본다면 사람이 살기
어려운 척박한 풍토와 기후를 가지고 있다 .이들이 흔히 초원이라고 부르는 목초지도 필자의 눈에는 사막으
로 보였다. 목초지라고 하지만 풀보다는 먼지와 모래가 더 많은 반 사막지대이다. 그러나 위구르족이 모여 사
는 시골은 이런 반 사막지대뿐만 아니라. 천산에서 흘러 내리는 물을 땅 속으로 끌어서 과일과 채소를 가꾸
는 오아시스도 있다. 이 오아시스에는 한여름이면 햇볕을 가려주는 나무도 있고 포도와 살구,수박,멜론 같은
과일이 풍성하게 수확된다. 8,9월이면 북경 거리에서 팔리는 대부분의 수박은 흔히 신강수박이라고 한다. 한
때 우리 나라에서도 유행했던 '참외는 나일론 참외가 맛있다'는 얘기와 똑같다. 북경에선 맛있는 과일은 모
두 신강에서 재배된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맛있는 여러 가지 과일이 나오고 1년 열 두 달을 말려서 먹기도
한다. 그러나 주업을 어디까지나 양과 말 그리고 야크를 키우는 목축업이다. 이들은 초지를 따라 여러 곳으로
옮겨 다니며 가축을 키우며 살아간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이 고장은 한낮의 기온과 밤의 기온 차이가
심하다. 낮에는 40도가 넘는 무더위지만 밤이면 담요를 덥지 않고는 잠들기 어려울 정도로 춥다. 이 고장을
처음 찾는 사람들에게 특이한 인상을 주는 것은 유목민들의 복장이다. 제아무리 더운 날씨에도 겨울 옷을 껴
입고 눈만 빼고는 얼굴까지 천으로 가린다. 그리고는 가죽 장화를 신고 말을 타고 다니는 모습은 러닝 셔츠
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더운 날씨에 의문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알아 보니 이렇게 옷을 많이 입어야 체온
보다 더 올라가는 더위를 막을 수 있고 밤에는 추위를 막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자급자족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이 고장에선 말이나 양의 배설물도 중요한 자원이다. 뜨거운 햇볕에 말린 배설물은 모두 거두어
불을 피우고 음식을 만드는 데 이용하고 있었다. 필자가 받은 인상에 따르면 이 고장 사람들의 일은 그렇게
고된 것 같지 않았다. 하루 종일 김을 매거나 논을 돌보는 들 심한 육체 노동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개를 데
리고 말 위에서 천천히 이동하면서 가축의 무리를 감시하고 풀을 먹이고 있었다. 말을 잘 타는 이들은 대부
분 네 살이면 말타기를 시작한다. 특히 이런 가축 몰이에는 노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이를 먹어서도 긴
채찍을 손에 휘어감고 천천히 양떼를 몰거나 야크 떼를 모는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나이 110세에 말 타는 노인들
놀랍게도 100세나 110세가 된 노인들도 남자의 경우에는 젊은이들과 똑같이 말을 타고 가축들을 돌보고 있
었다. 우리 나라에선 근래 명예 퇴직과 조기 정년이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건강하게 살려면
죽을 때까지 일을 해야 한다. 2,000여 년 전에 씌여진 [논어]를 봐도 '40에 시사하여 70에 치사한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사물에 대한 안목을 제대로 갖추어서 불혹의 경지에 이르는 40세쯤 되어서야 비로소 벼슬길에
나가고 70세쯤 되면 스스로 벼슬에서 물러난다는 얘기이다. 평균 수명이 낮았던 2,000여 년 전에도 벼슬아치
들은 70세까지 일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장수촌에 가보면 100세,120세 또는 130세까지 사는 사람들이 많다.
100세가 넘어서도 들에 나가 젊은이들과 함께 일을 한다. 위구르족과 같은 유목민들의 경우에는 아침이면 들
에 나가 양떼를 몰고 저녁이면 집에 들어와 쉬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으며, 과일이나 채소를 가꾸는 고장에선
밭농사도 하고 있었다. 특히 흥미 있는 사실은 사회적 지위가 높아져 도회지에 나가 편하게 사는 사람들 중
에선 단 한 사람도 장수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만큼 사람이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부지런하게 일하고
육체적인 활동을 계속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도시에 사는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육
체적인 노동을 요구하기는 어렵다. 밭도 없고 논도 없으며, 하물며 목장도 없다. 따라서 이런 육체적 노동에
버금가는 운동을 추천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나라에서도 근래 조깅,수영,에어로빅 같은 유산소 운동이 권
장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장수촌 사람들은 하루 종일 좋은 공기를 마시며 좋은 유산소 운동을 하고 있는 것
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생활에 여유가 생기고 편해질수록 많이 걷고 많이 일하고 운동도 계속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운동 생리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30대 이후 장년층의 유산소 운동은 몇 가지 기본 조
건을 충족시켜야 바람직하다. 첫째,운동의 강도가 너무 세지 말아야 하며,둘째,필요에 따라 운동의 강도를 조
절할 수 있어야 하며 셋째, 고혈압이나 당뇨병 환자의 경우와 같이 위험 부담이 많은 중년이후에는 안전한
운동이 바람직하며 넷째, 상대방의 페이스에 맞추어서 무리하게 해야 할 필요가 없는 운동이어야 하며 다섯
째,기구나 시설 없이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운동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이런 다섯 가지 조건에 맞는 운
동을 든다면 산보나 맨손 체조,탁구 그리고 가벼운 등산이나 조깅을 추천하는 운동 생리학자들이 많다. 특히
지위가 높아져 도회지에 나와 사는 사람들 중에선 장수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위구르족의 얘기는 우리 현대인
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기 먹고 살찌는 법은 없다.
운동 생리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중년 이후에는 가슴을 펴고 손을 흔들며 10분쯤 땀이 날 정도로 빨
리 걷는 것이 좋다고 한다. 1분에 90미터 속도로 40분내지 1시간쯤 걸으면 충분한 운동량이 될 수 있다. 중
년 이후의 사람들에겐 시합이나 경쟁을 목적으로 한 등산이나 운동, 그리고 수영은 바람직하지 않다. 고혈압
은 물론 당뇨병과 동맥경화증을 앓는 사람들이 무리하게 젊은 사람들의 페이스에 맞추어 심한 운동을 하면
오히려 부작용만 초래하기 쉽다. 또한 특별한 복장이나 기구가 필요한 운동보다는 언제 어디서나 틈만 나면
혼자 손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 바람직하다. 이런 운동에는 산책이나 줄넘기 그리고 조깅 같은 것들이 있다.
조깅이나 산책은 꼭 새벽에 해야 되는 운동은 아니다. 시간이 나면 점심때도 좋고 저녁때에도 바람직한 운동
이다. 이때 운동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똑같은 종목의 운동보다는 여러 가지 운동을 번갈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운동마다 주로 많이 쓰이는 근육이 다르다 같은 운동만 계속하면 쓰이는 근육과 안 쓰이는
근육 사이에 불균형이 생기기 쉽다. 며칠 동안 수영을 하고 난 후에는 조깅을 하고 그 후 일주일에 한 번 쯤
등산을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중년 이후의 체중 관리나 비만증 예방과 체력 증진을 위해 운동을
할 경우에는 운동과 함께 음식 또한 조절해 나가야 한다. 실제로 통계를 내보면 늘어난 체중 1Kg을 줄이려
면 최소한 50-60킬로미터는 걸어야 한다. 따라서 중년이후 체중 관리를 위해선 운동도 중요하지만 먹는 음식
의 총열량을 줄여야 한다. 이때 가장 조심해야 할 사항은 음식을 균형 있게 먹되 당질 식품의 분량을 줄여
야 한다는 점이다. 고기를 많이 먹으면 살이 찐다고들 한다. 그러나 고기를 많이 먹어서 살찌는 사람은 없다.
살찌는 사람은 고기도 많이 먹지만 밥이나 국수 같은 당질 식품을 많이 먹어서 체중이 늘어난다. 이때 술을
많이 먹으면 체중은 더욱 증가한다. 따라서 중년 이후 체중 관리를 위해서는 고기와 채소 그리고 과일을 많
이 먹고, 밥이나 국수 같은 당질 식품의 분량을 줄어야 한다. 술을 마실 때는 그만큼 밥의 양도 줄여야 한다.
고기와 함께 먹기 쉬운 지방은 쉽게 포만감을 주기 때문에 오히려 체중 관리에 도움이 된다. 다시 말하면 삼
겹살과 채소 그리고 과일을 많이 먹되 밥의 분량은 줄이는 것이 좋다. 이런 절식과 함께 노화되기 쉬운 신체
기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매일 일정량의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죽을 때까지 성생활을 영위한다
이들이 나이를 먹어서도 자녀를 갖고 건강하게 생활하는 원천은 역시 자연에 순응해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
으로 무위자연하는 생활 내지 섭생법에 있다고 여겨졌다.
'실크로드'와 신선
근래 몽골에 가보면 몽골 사람들 사이에서 역사를 제대로 복원하려는 민족적 자각이 높아지고 있다. 필자가
내몽골에 머무르는 동안 줄곧 영어 통역을 맡아 준 내몽골 공과대학 아굴라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몽골 사람
들은 '실크로드'라는 말을 싫어한다고 했다. 칭기즈칸은 이미 13세기에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했다. 따라서 중
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유럽은 먼 서역 땅이지만 몽골족으로선 당연히 자기네 제국의 한 영토에 지나지 않았
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실크 로드란 몽골 사람에겐 별 다른 뜻이 없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중국의 한족이나
유럽의 입장에서 본명 몽골은 자기들에게 굴욕의 역사를 안겨 준 장본인이었다. 원나라를 세워 몽골족은 중
국을 지배했고,유럽의 수많은 나라들 역시 몽골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기도 했다. 그러므로 중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칭기즈칸이나 몽골족은 한때 중국을 무력으로 짓밟은 북방의 흉노나 북적의 무리로 여길 수밖에 없으
며, 서양에서도 바이킹이나 게르만족보다도 더 고약한 야만족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었다. '맥닐' 같은 역사학
자가 쓴 책을 보면 몽골 군사는 용감하지만 잔인하고 흉악하며, 목욕을 하지 않아서 몽골군이 쳐들어올 때면
바람이 불어도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고 하였다. 우리 나라 역사를 봐도 비슷한 게 많다. 고려 인종 때
송나라 서긍이란 사람이 쓴 여행기 {고려도경}을 보면 "고려에 가보면 미신만 있고 의학은 중국인들이 가르
쳐 주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콧대높은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를 방문한 서긍의 개인적 여행기라고 봐야겠지
만 우리 나라 사람들로는 굴욕적인 표현들이 많이 들어 있다. 따지고 보면 송나라 형편도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송나라가 망하고 한의사에게 말하는 금원사대가가 출현할 때까지 중국의 전통의학은 합리적인 의
가 아니라 의무적이고도 신비한 신선 사상이나 주술 의학적 성격이 짙었다.
도교의학과 접이불설
흔히 오늘날의 의학을 과학적 의학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질병과 건강에 대해 과학적으로 연구 분석한다
는 말이다. 그러나 의학은 실험실의 시험관에서 얻을 수 있는 결과나 동물 실험만으로 이루러지는 것은 아니
다. 오랜 세월을 통해 축적된 경험에 따라 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기도 해서 경험 의학이라고도 한다. 서양에
서도 과학적 의학의 역사는 길게 잡아도 르네상스 이후 300년을 넘지 않는다.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우
리 몸의 오묘한 생명 현상이나 질병과 건강의 관계를 제대로 밝혀 내지 못한 것이 너무나 많다. 평균 수명은
연장되었지만 생리적 수명 자체는 연장되지 않았다. 먼 옛날에도 사람의 노화 과정을 기,로,모,기로 나누었는
데, 마지막 기에 이른 100세까지 산 노인들도 있었다. 조선조 500년을 통해 이성계는 70을 넘겨 살았고 영조
대왕은 83세까지 징수했다. 과학적 의학은 단지 어린 나이에 많이 죽었던 사람들을 오래 살게 해서 평균 수
명을 연장시키는 데는 크게 이바지했으나 생리적 수명 연장에는 별로 공헌한 바가 업다. 경우에 따라서는 당
시의 철학 사상이나 종교와 밀접한 관계를 갖기도 했다. 흔히 이런 시대를 승려 의학 또는 종교 의학의 시대
라 한다. 서양에서도 서로마가 멸망한 후 르네상스 운동이 시작되기 전 약 1천년간은 종교적 계율이 지배했
던 종교 의학의 시대였다. 이런 경향은 동양에서도 비슷하다. 불교는 몽골이나 일본에서 의학과 깊은 관계를
맺어 왔으며, 승려이면서 의사의 역할을 했던 승의들이 여러 가지 고의서를 남겼다. 일본 명칭만 봐도 불교와
의학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유명한 고사로 전하는 바와 같이 화타는 관운장
의 팔에 박힌 화살을 빼내고 마불산으로 마취시켜 배를 가르는 제복 수술도 하였다. 이런 얘기는 고대 인도
불교 의학의 일면을 나타내는 얘기이다. 또한 중국과 중앙아시아에는 신비한 도교 의학의 뿌리도 남아 있다.
중국 의학사에 등장하는 손사막이나 장중경 그리고 포박자를 쓴 갈홍 같은 사람들도 엄격히 따진다면 도교적
인 냄새가 짙은 도사 내지 도교 의학자였다. 우리 나라 의학사에 빛나는 {동의보감}을 따져 봐도 그 이론의
뿌리가 도교 의학임을 알 수 있다. {동의보감}에서 보면 '도득기정, 의득기조'라는 표현이 나온다. 다시 말하
면 도교에 입각해서 조섭수양하는 것이 건강관리의 근본이며, 의원이 베푸는 치료는 이차적인 처치에 불과하
다는 얘기이다. 또한 {황정경}에 나오는 '정, 기, 신'을 인용해서 사람의 몸 안에 들어 있는 여러 내장의 생리
적 기능과 그 증상을 종합하여 내경편으로 엮어 놓았다. 따라서 허준 선생은 사람이 건강하려면 조섭수양이
첫째이며 약을 쓰는 치료법은 이차적인 것이라고 분명하게 도교 의학 이론을 받아들였다. 이런 도교 의학은
특히 음식을 먹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도인이나 부적 같은 특이한 섭생법도 들 수 있지만 특히 방중술이 유명
하다. 도가의 이론에 따르면 사람의 몸을 세 개의 영역으로 나눈다. 산스크리드 말의 '니르바나(열반)'에서 유
래하였다는 이환궁은 뇌에 있으며, 골수의 바다인 수해라고도 불렀는데, 이곳을 정액의 원천이라고 믿었다.
하부 영역은 이른바 단전으로 이루어진다. 왼쪽과 오른쪽 콩팥으로 이루어지는데, 왼쪽과 오른쪽 모두 생식
활동의 원천으로 보았다 또한 남녀 관계에 관련된 여러 액체, 특히 정액은 없어지기보다는 다시 한 번 생명
선을 따라 척추를 통해 뇌로 되돌아가게 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도교에서 조섭수양의 전제 조건을
꼽고 있는 접이불설 내지 보류교접의 원칙이다. 남녀 관계를 해서 대뇌로부터 방광으로 내려온 정액은 사정
되지 않고 또다시 대뇌로 돌아가게 해야만 환정보뇌해서 징수한다고 했다. 아직도 이런 원칙은 엄격하게 지
켜지고 있다. 도교 의학에선 이런 계율은 자신의 정력을 유지하고 장생을 꾀하는 데 필수적 요소라 여기고
있다.
죽을 때까지 성생활
특히 위구르족은 회교를 신봉한다. 이제 많지 않지만 일부다처인 경우도 있다. 또한 70이나 80이 넘어서도
자식을 가진 노인들을 많이 보았으나, 이들의 생활이 그렇게 부유하지는 못한 것 같았다. 정력제로 소문난 칠
십미진주환 같은 비싼 약을 알지도 못하며 먹지도 않는다. 이들이 나이 먹어서도 자녀를 갖고 건강하게 사는
생활의 원천은 역시 자연에 순응해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무위자연하는 생활 내지 섭생법에 있다고 여
겨졌다. 우선 왕성한 정력으로 노인이 되어서도 성생활을 계속하려면 건강한 성생활 해야 한다. 중년 이후에
는 당뇨병이나 고혈압 같은 병을 예방하고 지나치게 살찌지 않도록 몸 관리를 하는 것이 좋다. 이때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육체적 활동이다. 장수촌에선 100세 넘게 사는 사람들도 힘겨운 육체 노동을 계속하고 있다.
육체적인 활동은 노화를 막아 주는 항산화효과가 있다. 결국 오늘날에 와서도 부지런히 일하고 육체적 활동
을 계속하는 사람만이 중년 이후에도 건강하고 왕성한 정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다음으로는 마
음이 마음의 평화를 강조한다. 너무 화를 내면 마음이 상하고, 생각을 많이 해도 정신을 해치며 마음이 고달
파져서 병이 생기고 정력도 떨어진다고 한다. 나이 들수록 지나치게 화를 내거나 슬퍼하고 너무 좋아하지 말
것이며, 항상 절제하고 일을 많이 하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고 {동의보감}에서는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나이에 따라 성생활을 적응해 나가는 지혜이다. 이미 '마거리트 미드'도 지적한 바와 같이 성생활은 한 쌍의
남녀가 합심해서 이루는 협동 작업이며 개인과 연령에 따라 조절해 나가야 한다. 따지고 보면 성생활의 조화
나 부조화는 어느 한 사람에게 그 허물을 돌리기는 어렵다. 성생활은 부부가 합심해서 서로 사랑하며 뜻을
함께 해 공동으로 이루는 일종의 공동 작업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더라도 부부 관계는 부부 모두의 책임이며
숙제이다. 정력제나 약에 지나치게 의존하기보다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애정을 나누는 성실한 태도를 유
지하며, 가끔 접이불설을 하면 현대인들도 죽을 때까지 정력적으로 남녀 관계를 계속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장수촌엔 약이 없다.
장수촌에선 약이 거의 없으며,고작 쓰이는 약들도 그 고장에서 나는 생약에 불과하다. 그래서 장수촌 사람들
은 약을 먹지 않아 장수한다고 자랑한다. 오늘날 현대인들도 약을 꼭 필요할 때만 먹고 남용하지 않는다면
더욱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다.
회교 의학의 실체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지만 필자가 1984년에 두 달 동안 소연방을 갈 수 있었던 배후에는 현재도 세계보건기
구 서태평양지역 사무처장으로 있는 한상태 박사와 제네바의 세계보건기구 본부에서 근무하던 러시아 의사
알렉세이 박사의 각별한 주선에 힘입은 바 컸다. 모스크바를 거쳐 당시 소연방에 속했던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공화국을 두 주일씩 찾아가게 됐다. 타슈켄트나 사마르칸트는 물론 알마아타는 모두 반 사막으로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운 전형적인 내륙형 기후를 가진 고장이다. 8월에 갔는데 낮에는 불볕더위에 시달렸고
밤에는 담요를 덥지 않으면 잠들기 힘들었다. 이 고장에는 여러 민족이 살고 있다. 그러나 우즈베키스탄 공
화국에는 우즈베크족이 그리고 카자흐스탄 공화국에는 카자흐족이 많이 산다. 도회지에선 우리 나라와 다름
없는 현대적 생활을 하지만 시골에 가면 대개 양을 치고 말을 잘 타는 유목민들이 산다. 이들은 주로 회교도
이다. 세계적인 안목으로 볼 때 회교 의학은 오늘날 서양 의학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서양 의학에서
쓰는 시대 구분을 인용한다면 그리스와 로마를 중심으로 발전된 서양의 고대 의학은 서로마 제국의 멸망과
함께 중세 의학의 시기로 접어든다. 그 후 히포크라테스와 갈렌으로 대표되는 서양의 고대 의학은 동로마 제
국도 망하자 아라비아 의학 내지 회교 의학이 서양 의학의 자리를 이어 받아 전성기를 맞게 된다. 정확하게
정치사의 구분에 따라 이 시기를 구분해 보면 서기 732년부터 1096년까지 회교 의학이 세계 의학의 중심적
역할을 해서 의학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이런 회교 의학 또한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강력한 회교 문화
권의 지원 아래 그리스와 로마의 의학 경전도 보존하고,알코올의 증류법과 연금술로 대표되는 의학 체계의
발전을 가져왔다. 이런 회교 의학은 그 후 서유럽이 또다시 '살레르노'를 중심으로 아라비아 의학을 받아들여
르네상스 운동이 본격화된 15세기경까지 융성했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이번 여행을 통해 서양 의학의 발
달 과정에 크게 공헌하였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회교 의학의 실체를 파악하고자 힘썼
다. 우리가 말하는 중의학은 한족을 중심으로 체계화된 전통의학이다. 그러나 중의학의 역사나 그 전통에는
아라비아 의학 혹은 회교 의학의 요소도 많이 담겨 있다.
회교 의학의 특징과 역사
흔히 중국에서는 회교 사원을 청진사라고 하며 회회교 또는 청진교라 부른다. 한족 중에도 회교 신도가 있
다. 동서간의 정치 문화적 교류가 빈번했던 중앙아시아에는 회교 사원이 많다. 이곳에서 아직도 쓰이고 있는
전통의학은 한족의 중의학과는 이론이나 임상 면에서 꽤 차이가 나는 회교 의학이다. 한때 소구두 왕국의
수도로 크게 번성하고 비단길의 요충지로서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군이 들어와 헬레니즘 문명의 영향도 받았
던 사마르칸트와 타슈켄트를 비롯한 중앙아시아의 여러 곳에는 중의학과는 다른 회교 의학의 요소가 많이 남
아 있다. 오늘날에도 서안에서 돈황을 거쳐 카스피해에 이르는 중앙아시아의 여러 고장에는 회교도들이 살고
있다. 북경에서도 원나라 때부터 공식적으로 포교가 허용되었다는 청진사와 청진교도들을 만나 보았다. 원래
회교 의학은 그 기원을 따져 볼 때 회교도 고유의 것만은 아니다. 더욱이 아라비아 사람들만의 의학도 아니
다. 좀더 시야를 넓게 보면 회교 의학은 9세기로부터 14세기에 걸쳐 당시 유럽과 아시아의 여러 지역에서 거
의 국제어로 통용되었던 아라비아어로 기록된 의학이다. 유라시아 대륙에서도 아라비아어는 오랫동안 비단길
과 관계가 깊었던 페르시아어와 경쟁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회교 원년이며 서기 622년에 해당되는 '헤지라'
보다 훨씬 앞서서 로마 사람들은 '카르타고'에 석류를 소개하였고 1세기경에는 중국에도 들어왔다. 또한 이란
이나 아라비아에서 '알파파'하고 불린 목숙도 이미 기원전 2세기경에 중국에 알려졌다. 이런 식물은 중국에서
대원국이라 불렸던 '페루가나'에서 말들이 먹던 사료였다. 흔히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장건은 대원국에서 좋은
말들을 들여 왔다. 서양 사람들의 표현에 따르면 이것이 바로 '페루키나'말이다. 당시의 전쟁은 말을 탄 기마
부대에 이해 좌우되었기 때문에 한나라 무제는 이런 좋은 말을 얻기 위해 두번씩이나 멀리 원정을 가기도 했
다. 3세기경에 이르자 페르시아만과 중국의 광동을 잇는 비단길도 생겨났다. 이런 항로를 통해 아마,대마,호
두,대나무 같은 것들이 중국에 들어오기도 했다. 남송 때에 이르러 수도가 항주로 옮겨지면서 해상 교역은
더욱 번창했다. 아직도 중의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서기 8세기경에 이순이란 사람이 펴냈다는 [해약본초
]를 보면 중동이나 서역에서 나는 여러 가지 약재가 실려 있다. 이런 교역을 통해 중국 사람들은 얼룩말이나
기린 그리고 타조 같은 동물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중국인들에게 가장 흥미있었던 것은 회교
의학과 그 약재였다. 유향, 몰약 그리고 '테리아카'같은 약재는 원나라 때부터 우리 나라에도 들어오기 시작했
다. '테리아카'는 기록에 따르면 비잔틴 왕실이 중국 조정에 바친 것으로 전한다. 이외에도 포도,참깨,마늘,양
파,콩,후추,박하,땅콩,수박,당근 등은 모두 아라비아에서 수입된 것이다. 회교 의학의 전성기였던 9세기에서 10
세기에 걸쳐 회교 의학의 거장 '라제스'는 연금술에 관한 책을 쓰고 천연두에 관련된 인두법도 소개했다. 그
러나 자세히 보면 [본초강목]에 들어 있는 많은 약들은 '아비켄나'가 쓴 [의학대전]의 내용과 흡사하다. 그
러나 회교 의학과 한의학은 이론이나 임상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오늘날에도 중앙아시아에는 백전풍이나
우피선 같은 난치 피부병을 고치는 피부약이 유명하고 연금술의 발전에 힘입은 여러 가지 약들이 많다 .이런
사실은 중국의 [회회의약방]에서도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정맥류에 잘 듣는 약도 있고 골절 환자를 수술하
지 않고도 잘 고치는 치료법도 있다. 그러나 이 고장에선 탕약은 별로 찾아보기 힘들다. 환약이나 바르는 고
약이 대부분이다.
장수촌에는 약이 많지 않다.
우리 나라의 [동의보감]을 보아도 이런 회교 문화권에서 들어온 약재들이 많다. [동의보감]에도 분명히 중
앙아시아나 서역에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는 약재가 20여개나 실려 있다. 그러나 실제로 장수하는 사람들
이 많은 타슈켄트나 사마르칸트 그리고 우르무치 같은 고장에서 이들의 생활을 살펴보면,약의 종류도 다양하
지 않고 쓰이는 약의 양도 많지 않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빈 사막 지대의 유목민들 사이에 많은 난치 피
부병에 잘 듣는다는 사아단 같은 약의 성분을 물어 보아도 가중흑초종 같은 비교적 간단한 약들만 쓰고 있었
다. 또한 이 고장 사람들의 설명에 따르면 약을 적게 먹기 때문에 장수한다고 강조한다. 확실히 약은 병을 고
쳐 줌과 동시에 독이 될 수도 있다. 중국에서 전설시대에 백성들의 건강을 위해 왕이 만들었다는 [황제내경]
이나 [신농본초경]을 보아도 약의 의미를 쉽게 알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약은 상약과 중약 그리고 하약으로
나눈다. 이 중 상약은 오래 먹어도 좋지만 하약은 반드시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만 써야 한다고 나온다. 이 설
명에 따르면 아마도 상약은 음식과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의식동원이란 차원에서 파악해야 할 넓은 의미의
식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서양의 여러 약들은 회교 의학의 연금술의 발전에 힘입어 생
겨나,19세기부터 화학 공업의 발달과 함께 요법의 전통이 계승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6,25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매독 치료에 썼던 특효약 '606호'는 이 약을 만들기 위해 606회나 실험을 거듭해 매독에 잘 듣
는 약을 만들어 냈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 후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많은 약이 생겨나고 '다이아진'과 페니
실린으로 대표되는 화학요법은 거의 대부분의 전염병을 고전적 질병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이런 약들은
놀라울 정도로 좋은 약효를 지니지만 부작용도 크다. 이런 부작용들을 약 때문에 생겨나는 약원병이라고 한
다. 오늘날 현대인은 약을 먹고 병을 고치기는 하지만 약을 과용해서 약원병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
러나 장수촌에선 약이 거의 없으며,고작 쓰이는 약들도 그 고장에서 나는 생약에 불과하다. 그래서 장수촌 사
람들은 약을 먹지 않아 장수한다고 자랑한다. 약을 꼭 필요할 때만 먹고 남용하지 않는다면 더욱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다.
몸보다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20세기 후반에 이르자 현대인이 앓는 대부분의 병은 이런 세포 병리설로는 설명하
기 어려운 마음의 병들이다. 그것이 곧 마음이 병들어 육체에 생겨나는 심신병 내지 심인병이다.
한의학은 양생 의학이다.
북경에 들러 중국이 자랑하는 중의학의 현장을 살펴보려면 시내에 있는 북경 중의학원과 중의원,그리고 청
나라 때 서태후가 여름철 한때 별궁으로 썼다는 이화원 근처에 있는 청궁 의약연구소에 가보면 된다. 이 세
곳은 중국의 전통의학을 관장하는 중국 정부의 중의약 관리국이 외국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주요 견학 코스
에 들어 있다. 이 중 청궁 의약 연구소는 청나라 때 제왕들이 즐겨 먹은 음식이나 장수를 위해 상용했던 약
들을 현대적인 의미에서 연구 개발해서 일부는 판매도 하고 있다. 이 중에는 차나 엑기스 같은 먹기 쉬운 형
태로 만든 강장약이나 강정약도 있고 몸에 좋다는 약술도 있다. 그러나 서고에 들어가 보면 아직도 손을 대
지 못하고 사장되어 있는 청나라 때 황제들이 먹던 음식이나 약에 대한 여러 가지 처방들이 연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예로부터 중국에선 사람의 병을 망문문절의 네 가지 사진법에 의해 알아낼 수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을 관찰하고,청각을 통해 들어 보고,물어보며,진맥을 해서 병을 알아낸다는 얘기이다. 예로부
터 화타 같은 고명한 의사는 환자를 보기만 해도 병을 알아낸다고 해서 흔히 '망이지지'한다고 했다. 이런
사진법은 서양 의학도 비슷하다. 사진, 청진, 문진 그리고 타진의 전통적인 서양 의학의 진단법 또한 네 가지
방법에 의해 병을 알아내고자 했던 방법들이다. 그러나 중국의 한의학은 진맥을 통해 병을 알아내는 데 큰
관심을 기울여 왔다. 또한 우리가 흔히 쓰는 양생, 귀생 그리고 위생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외부 세계 내지 우주와의 완전한 조화를 강조했다. 따라서 인간과 우주간의 상호 조화가
완벽하게 이루어 질 때 소우주인 인간은 대우주 속에서 아무런 지장 없이 융화를 이루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비판적인 관점에서 이런 양생 사상을 훑어 보면 지나친 절제와 신비주의적인 일면
을 보게 된다. 그러나 좀더 시야를 넓혀 중국의 한의학이 가진 예방 의학적인 측면을 따져 보면, 성생활이나
생활 주변의 위생 문제에서 비롯하여 종국적으로는 윤리적으로 건전한 인간관계를 강조했다. 즉 하늘과 땅,
인간의 상호 조화 내지 합리적인 조정을 중요시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단히 자신의 몸을
단련하고 지나친 과로나 게으른 생활을 피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좋다.
진시황이 요절한 이유
그러나 이런 일반론적인 설명에서 나아가 제왕이나 지배층의 조섭양생을 살펴보면 이상한 단약이나 약재가
정력 세게 하고 수명을 연장시킨다고 해서 많이 쓰이기도 했다. 진시황이 50세 되기 전에 요절한 이유는 몸
에 좋다는 이상한 약을 많이 먹어서 비소와 수은 중독이 걸렸기 때문이라는 것이 의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이
다. 그 후 한나라나 당나라 그리고 명나라와 청나라의 경우에도 비슷하다. 당나라 때 측천무후를 뺀다면 대
부분의 제왕들은 요절했다. 이 역시 이상한 약을 너무 먹어서 약물 중독 때문에 생겨난 결과라 보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중국의 한의학은 {신농본초경}에서 보는 바와 같이 쓰는 약을 군신좌사의 네 가지 약물로 구
분해 군약, 신약, 좌약, 사약을 합리적으로 결합해서 건강 회복에 힘써 왔다. 다시 말하면 이런 네 가지 약을
적절하게 배합해서 사용함으로써 질병을 다스린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중국의 한의서에서는 그 어느 곳에서
도 지나치게 약을 많이 쓰도록 권고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신을 깨끗이 하고 음식을 합리적으로 먹으며, 신
체를 단련함으로써 건강을 유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도 소림사 권법으로 소개된 여러 가지 신
체 단련법은 외국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고 중국을 찾는 사람들의 인기 있는 관광 코스에도 들어
있다. 이런 신체 단련법은 기원전 3세기경 진나라 때부터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한나라 이후 유
고가 국가와 교육의 기본 철학이 되고, 수나라와 당나라 때에는 과거 제도가 확립되어 인문 교육이 강조되다
보니 크게 발전을 보지 못했다. 이런 신체 단련법에는 대기를 받아들여 몸 안에 머물게 한다는 양성법의 일
종인 도인과 안마, 그리고 뱃속에 들어 있는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신선한 기운을 들어마신다는 토납 같은
것이 있다. 오늘날에는 이런 것을 가미해서 기공과 태극 권법이 통용된다. 화타는 새, 곰, 호랑이, 사슴 그리
고 원숭이의 네 가지 동물의 모습을 흉내내어 참선하는 승려들의 신체 단련에 쓰이게끔 오금희를 만들어 냈
다. 이 방법에 따르면 신체 단련에는 생명 현상과 똑같이 두 개 측면이 있다고 본다. 그 하는 정(기공)에 기
초를 둔 것이고 또 하나는 동(태극권)에 기초를 둔 것이다. 이런 방법은 상호 보완적인 것이어서 서로 대립
하는 것이 아니다. 기를 오래도록 몸 안에 간직하기 위해 호흡을 일시 정지하거나 사고력을 집중시켜 기를
끌어들인다. {황제내경}에 따르면 이 방법에 의해 가벼운 열병이나 정신쇠약을 고칠 수 있다고 한다. 도사들
의 역사를 살펴보면 불로장생의 연단술에 실패 한 후, 후한 시대에 이르면 장수법의 하나로 단전이란 개념을
만들어 냈다. 또한 이들에 의해 개발된 태극권은 우리 몸 안의 기와 혈의 움직임을 건전하게 해줌으로써 새
롭게 생명력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누구나 중국에 가면 아침마다 나이 먹은 사람들이 느린 음악에 맞추
어 태극권 운동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런 운동은 이론적으로 볼 때 정, 기,신을 단련하는 방법이다. 단전
은 자신의 생각을 집중시켜 정신적 수련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런 수련법은 상,중,하 세 곳에 있는 단전에 기
를 주의 깊게 유도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하여 단전에 기를 주의 깊게 유도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하
여 호흡법에 따라 사람과 동물의 모습을 배합시켜 육체적 수련을 쌓아 기를 충만시키고, 이기에서 신으로 나
가고, 그리하여 정, 기, 신을 튼튼하게 한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면벽 9년의 수행을 쌓은 달마대사에 의해
생겨났다고도 한다.
훌륭한 의사는 마음을 다스린다
실제로 중국이 개방된 후 외국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고 있는 중의학을 소개하고, 더 나아가 몸에 좋다는 약
술이나 차를 파는 청궁 의약연구소의 여러 곳에서 이런 약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조섭양생법이 여러 벽면에
걸려 있다. 그 중 한 구절을 보니 "옛날의 훌륭한 의사는 능히 사람의 마음을 다스려서 미리 병이 나도록
하지 않았는데, 지금 의사는 오직 사람의 병만 다스리고 미리 병이 나도록 하지 않았는데, 지금 의사는 오직
사람의 병만 다스리고 마음은 다스릴 줄 모르니, 이것은 근본을 버리고 끝을 쫓는 것이다. 그 근원을 연구하
지 않고 말류만 연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니, 비록 한 때의 요행으로 병이 나을 수는 있지만 이것은 훌륭
한 의사가 아니다"라고 씌여 있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실제로 {동의보감}의 내경편에 보면 병을 올바른 도
로서 고쳐야 한다고 '이도요병법'을 강조하고 있다. 즉 '병을 고치려면 먼저 그 마음을 다스린 후에 환자로 하
여금 마음의 동요를 없애 주어야 한다. 그러면 자연히 환자의 마음이 태평하고 성질이 화평해져서 세상 만사
와 영위하는 바가 모두 망상이요, 허망이고, 화와 복이 따로 업소 생사가 꿈과 같다고 것을 알게 된다. 이런
것을 깨달으면 스스로 마음이 깨끗해지고 병이 생기지 않으며 약을 먹지 않아도 병이 저절로 낫게 된다. 이
것이 옛 성인의 도로서 마음을 다스려 병을 고치는 큰법'이라고 했다. 서양 의학에서도 이런 입장은 20세기
이후 더욱 강조되고 있다. 히포크라테스는 먼 옛날 우리 몸 안에 돌고 있는 혈액, 점액, 황담즙 그리고 그리
고 흑담즙 사이에 균형이 깨질 때 병이 생겨난다는 체액병인설을 주장했다. 이런 전통적 병인론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킨 사람이 독일의 '피르호'였다. 그는 19세기 후반에 모든 병은 세포에서 생겨난다는 세포 병리설
을 주장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20세기 후반에 이으러 현대인이 앓는 대부분의 병은 이런 세
포 병리설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의 병들이다. 그것이 곧 마음이 병들어 육체에 생겨나는 심신병 내지 심
인병이다. 고혈압은 물론 심근경색과 협심증, 그리고 위장병은 물론 각종 성인병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하
기 때문에 생겨나는 심인병이다. 정도의 차는 있지만 현대인은 누구나 이런 심신병에 시달리고 있다. 따라서
이런 병을 막기 위해서도 열심히 일하고 잘 자며, 일과 휴식의 구분을 짓고 취미 생활을 즐기며 정신수양에
도 힘써야겠다. 누구나 한번쯤 동양의 전통의학이 권고하는 정신을 말게 하는 조섭양생에 관심을 가져 보기
보란다.
장수촌은 낙원이 아니다
건강에 너무 조바심을 내서 관리하면 오히려 오래 살지 못한다. 때가 되면 죽을 각오를 해야만 장수할 수
있다. 이런 인생관은 자연에 순응해서 살아가는 장수촌의 가장 기본적인 특색이다.
도저히 장수할 수 없는 곳들
장수촌은 낙원도 아니고 도원경도 아니다. 한때 유럽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던 흑사병이 진원지였던 고비사
막, 티베트와 청해성을 잇는 해발 3,000미터의 청장고원 그리고 메콩강을 끼고서 역사상 전염병이 극성을 부
리던 고장들에 장수촌은 많다. 아직도 이런 곳에선 어린이들이 설사나 전염병으로 많이 죽는다. 평균 수명도
높지 않고 위생 상태도 나쁘다. 물론 전기나 수도도 없다. 땔감으로 쓰이는 것은 흔히 말이나 야크, 양 같은
가축이 배설물 정도이다. 문맹률도 높아서 글을 읽는 사람들도 많지 않고 출생 신고가 정확치 않아 확실한
생년월일도 파악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런 곳에 사는 사람 둥에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다. 몽골은 물론 티베
트에도 소문난 장수촌이 있고, 우즈베키스탄 공화국과 '아제르바이잔'이나 '아르메니아'에도 장수촌은 있다. 특
히 신강 자치구의 위그르족은 장수하기로 소문나 있는데, 그곳에 가보면 100세가 넘은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가 있다. 그러나 이들이 장수하는 이유는 어느 모로 보나 과학적 의료나 좋은 약 때문에 얻어진 결과가 아
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대개 이런 장수촌에는 포장된 도로가 없다. 자동차로 가려면 여름철에 비가 오지 않
는 날을 가려서 사륜 구동의 짚차 같은 것으로 가야만 한다. 이런 곳에 현대식 병원이 있을 리 없고 약도 마
을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생약이 고작이다. 물로 티베트에 가면 중년 이후 남자들의 정력에 도움을 주고
건강하게 사는 데 좋다는 칠십미진주환이나 이십미산호환이 있고, 몽골이나 사마르칸트에 가면 그 나름대로
몸에 좋다는 보약들이 많다. 실제로 히말라야의 설산에서 야생으로 채취되는 동충하초 같은 생약들은 외국에
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장수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도회지에 살지 않는다. 모두 교통편도 나쁘고 문
화시설이 없는 오지에서 살아간다. 자식들이 돈 많이 벌고 지위가 높아져 도시에 나와 잘 입고 좋은 음식을
먹게 되면 곧 죽는다. 따라서 중국의 한족 중에는 장수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
탄 공화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파키스탄의 '훈자'도 소문난 장수촌이었지만 도로가 포장되고 전기가 들어
오자 장수하는 사람들도 사라졌다. 확실히 장수촌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듯 신비에 휩싸여 아직도 인적
이 닿지 않는 오지이다.
때가 되면 죽는다
의료 혜택도 제대로 못 받고 생활 수준도 낮지만 이런 오지에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스스로 인정
하듯이 의료 외적인 여러 가지 독특한 특징들을 들 수 있다. 첫째, 이들은 정신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한다.
장수촌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10여 년 전에 미국에서 출판되어 100만 부 넘게 팔린 '엘리자베
스 큐블라로스'라는 사회심리학자의 {죽음과 죽어가는 과정}이란 책을 보면 문명사회일수록 죽음을 두려워하
고 죽지 않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장수촌에선 나이 먹으면 병들고 병들면 죽는 것을 자연현상으로 받아들인
다. 무리하게 건강을 유지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건강에 너무 조바심을 내면 오히려 오래 살지 못한다. 때가
되면 죽을 각오를 해야만 장수할 수 있다. 이런 인생관은 자연에 순응해서 살아가는 장수촌의 가장 기본적인
특색이다. 그리고 모든 장수촌 사람들은 독실한 종교인이다. 우즈베크족이나 카자흐족 그리고 위구르족은 회
교 신자들이고, 몽골족과 티베트족, 타이족들은 대개 불교를 믿는다. 회교 신자는 회교의 율법에 따라 하루
에 다섯 번 '메카'를 따라 기도를 올리고, 1년이면 한 달씩 금식을 해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도록 힘쓴다.
티베트나 몽골의 불교 신자들은 일생에 한 번쯤 오체투지를 하면서 수개월 내지 1년씩 걸려 가며 큰 절에 갓
탑돌이를 하고 '마니콜로'나 '마니창아'를 돌리며 불공을 드린다. 현세는 영원한 내세를 위한 찰나의 과도기요,
여생에 이르는 징검다리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실제로 티베트에 가면 병들고 늙어서 죽음
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쉽게 본다. 결구 건강과 질병 그리고 죽음을 자연현상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야말로
오히려 장수의 발판 위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화를 잘 내고 잘 웃는 솔직한 생활을 한다. 몽골이나
티베트는 물론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 같은 고장에 사는 사람들은 말을 잘 타는 유목민인 동시에 기마
민족이다. 여름이면 흩어져 살던 부족들이 시냇물이 흐르는 초원에 모여 큰 잔치를 베푼다. 그것이 '나담'축제
이다. 말 타는 경기도 하고 활도 쏘고 우리 나라의 씨름과 레슬링을 합친 것 같은 격투지도 한다. 또한 서양
사람들이 즐겨하는 폴로 경기와 비슷한 게임도 한다. 그러나 이때 사용하는 것은 공이 아니라 한 마리의 죽
은 양이다. 말을 타고 두 팀으로 나누어 죽은 양을 막대기로 쳐 골 안에 넣는 시합을 하는 것이다. 특별한
보호복을 입지도 않는다. 경기 규칙도 엄격하지 않다. 수틀리면 상대방 선수를 막대기로 치기도 한다. 소리를
지르거나 화도 잘 낸다. 그 대신 반가운 손님이 오면 며칠씩 자신들의 천막에서 묵고 가기를 간청한다. 그만
큼 인정미가 넘쳐흐른다. 먼 옛날에는 나그네의 객고를 풀어 주기 위해 아내까지 양보했다는 얘기도 있다.
술을 마시는 풍습도 중국의 한족과는 전혀 다르다. 술잔을 돌려 가며 마시고 손님이 취하지 않으면 보내주지
않는다. 옛날 우리 나라 풍습과 비슷한 느낌도 들었다. 여자로 하여금 권주가를 부르게 해서 주흥을 돋구는
경우가 많다. 중국의 한족 모임에선 그런 일이 없다. 결국 이들은 기분 좋으면 어린애들같이 잘 웃고 마음에
안 들면 화를 내고 욕도 잘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건강하다.
약이 없다
이런 장수촌에 가려면 여름철에 가야 한다. 일교차도 심하고 겨울엔 춥고 교통편도 나빠서 힘들다. 실제로
여름 한철은 살 만하다. 들에는 풀이 돋아나고 기르는 말이나 양, 야크는 살찌며 과일과 재소도 풍성하다.
자연히 일손이 달리게 마련이다. 100세가 넘어 110세,120세가 된 사람들도 젊은이들과 똑같이 말 타고 양이나
야크 떼를 몰고 다니며 천산에서 흘러 내리는 물로 과일을 재배하며 살아간다. 다시 말하면 죽을 때까지 사
람들은 일을 한다. 그것이 곧 노화를 방지하고 건강에 활력을 불어넣는 항산화효과를 지닌 유산소운동이다.
확실히 현대인은 운동 부족으로 늙는다. 밭이나 논에 나가 일하던 시절에는 운동 부족이란 말이 없었다. 도시
의 봉급 생활자는 긴장과 스트레스를 받아 가면 격렬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간다. 운동도 모자라고 육체적인
노동도 부족하다. 체육 생리학자들이 권고하듯 사람은 매일 육체적 활동을 해야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정신적 긴장은 육체적 운동으로 보상된다. 따라서 빠른 걸음으로 땀이 나게 20-30분간 속보를 하거나 조깅이
나 새벽 등산을 하는 것이 중년 이후의 건강 관리에 도움이 된다. 노이로제, 신경과민, 불면증, 소화불량, 과
민성 대장염, 원형 탈모증, 고혈압, 관상동맥 혈전증, 당뇨병은 정신적 불안정 때문에 생기는 심신병 내지 심
인병이다. 다시 말하면 마음의 병 때문에 육체적으로도 건강이 나빠지는 것이다. 현대인은 누구나 마음의 병
을 앓고 있다. 장수촌에는 게으른 사람이 없다. 나이를 먹어서도 열심히 일하고 육체적 활동을 계속할 때 건
강은 유지될 수 있다. 장수촌의 음식은 균형식이 아니다. 오늘날 영양학자가 권장하고 있는 균형식과는 거리
가 멀다. 이들은 고기를 많이 먹고 말 젖이나 양 젖을 요구르트로 만들어 먹는다. 생선은 주로 젓갈을 담아
먹고 고기도 발효시켜 먹으며 우리 나라 된장과 같은 발효 식품도 잘 먹는다. 그러나 약은 거의 없다. 좋은
약을 먹을 수 있는 도회지 사람들은 같은 종족이라도 장수하지 못한다. 약효가 뛰어난 수많은 약들을 먹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역설적인 얘기겠지만 그들은 약을 적게 먹어서 장수한다. 약은 꼭 필요할 때만 먹고 아
무 약이나 먹지 않는 것이 장수의 또 하나의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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