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튼동물기
지은이:시튼
차례
카람포의 이리 왕 이야기
1. 현상금이 걸린 머리
2. 울프 하운드의 추격
3. 독약을 써서
4. 블랑카를 덫에 걸고
5. 산 채로 잡자
솜털꼬리토끼 이야기
1. 최초의 모험
2. 숲 속의 학습
3. 토끼의 적
4. 덫을 물어뜯어라
5. 물은 친구
6. 몰아닥친 재난
7. 다시 늪의 주인으로
8. 여우에게 쫓겨서
우리집 개 이야기
1. 빙고와 소몰기
2. 정보 교환소
3. 나의 사랑하는 개
4. 덫에 걸려서
5. 빙고가 왔다!
영리한 여우 부부 이야기
1. 닭 도둑
2. 스카 페이스와 그 친구들
3. 속여서 치기
4. 여우의 교훈
5. 스카 페이스의 마지막
6. 잡힌 새끼 여우들
7. 비극의 어미와 새끼
야생마의 대장 이야기
1. 검정말
2. 암말을 데리고
3. 야생마의 무리를 쫓아서
4. 또 달아나다
5. 함정을 만들어서
6. 릴레이로 쫓기
7. 암말을 미끼로
8. 벼랑을 박차고
옐로 스톤 공원의 야생곰 이야기
1. 자연 공원의 곰
2. 쓰레기장에 숨어서
3. 엄마곰 그랜비와 회색곰
4. 회색곰 앞에 서다
5. 고양이에게 쫓겨서
6. 안녕 조니
작품해설
머리말 야생동물을 사랑의 눈으로 관찰
이 '시튼 동물기'를 읽고 있으면 동물들도 우리 사람과 마찬가지로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릴 때에는 어미의 귀여움을 받으면서 자라지만 조금 커지면 어미와 함께 먹이 찾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주변에는 언제나 어린 동물을 노리는 적이 있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대자연에서 자유롭게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야생 동물의 생활은, 알고 보면 언제나 긴장의 연속입니다. 오늘날 시튼과 마찬가지로 그림을 잘 그리고 야생 동물의 관찰기를 잘 쓰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이만큼 풍부한 자연의 동물 상태에 관한 자료를 구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실제로 야생 동물을 관찰하기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도 '시튼 동물기'는 역사적으로 매우 그 값어치가 높은 것입니다. 이 책에는 수많은 동물기 중에서 가장 재미있고 유익한 것만을 가려 뽑아서 옮겼습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야생 동물의 가장 큰 적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많은 야생 동물들이 사람에게 쫓겨서 도망치거나 죽거나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시튼처럼 야생 동물의 마음을 알고, 우리 나라에 살고 있는 얼마 안 되는 동물들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옮긴이 주요등장인물
로보:카람포 일대를 누비고 다니는 이리왕. 나이 먹은 수놈으로 회색 털을 가지고있다. 몸집이 유난히 크고 힘이 셀 뿐 아니라 악바리이다. 부하들을 데리고 다니며, 자기들의 손으로 죽인 먹이가 아니면 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랏그:장난꾸러기 솜털꼬리토끼. 귀가 짓눌려서 들쭉날쭉하게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영리하고 힘이 세며, 엄마토끼와 함께 오리판트 늪에서 살고 있다. 엄마토끼는 랏그에게 여러 가지 동작과 지혜를 가르쳐 준다. 빙고:검정 털을 갖고 있으며, 아주 똑똑하게 생긴 개. 코 언저리에 하얀 테가 있고, 냄새를 잘 맡는다. 장난꾸러기이지만 훈련을 시키면 일을 확실하게 한다. 소몰기를 무척 좋아하고 말이 가는 곳은 어디든지 따라다닌다. 스카 페이스와 빅센:여우 부부. 스카 페이스는 상처투성이로 꾀가 많다. 어미 여우 빅센은 침착하고, 박물학에 관해 많을 지식을 갖고 있다. 이들은 새끼 여우들에게 먹이 사냥하는 법과 여우 사회의 중요한 원리를 가르쳐 준다. 검정말:야생마의 대장. 날씬하고 아름다운 발을 갖고 있으며, 언제나 발을 모아서 뛴다. 먹처럼 검은 털과 초록빛 눈을 지니고 있다. 아홉 마리의 암말들이 이 검정말을 주인처럼 따른다. 씩씩한 모습으로 전체를 지휘한다. 조니:무뚝뚝한 엄마곰 그랜비와 함께 옐로 스톤 국립 자연 공원에 살고 있는 아기곰. 절름발이로 네 발을 말랐고 귀와 배는 유난히 크다. 외동곰이면서도 용맹이 없고,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엄마곰은 조니를 무척 아낀다. 카람포의 이리 왕 이야기
현상금이 걸린 머리
카람포는 뉴멕시코 주 북쪽에 있는 넓고 넓은 방목지입니다. 이 곳에는 수많은 염소와 소가 떼를 지어 살고 있습니다. 파란 풀이 무성한 이 고원은 마치 큰 파도가 굽이쳐 어디까지나 계속되는 것 같았습니다. 이 사이를 흐름이 빠른 계곡이 여러 줄기 흐르고 있습니다. 이들 계곡은 마침내 하나로 합쳐져 카람포 강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일대를 카람포라고 부르게 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이리 왕 '로보'란 이 일대를 설치고 다니는 이리의 우두머리를 말합니다. 로보는 나이 먹은 수놈이었는데 회색 털을 가진 이리였습니다. 로보는 몸집이 유난히 크고 힘도 셀 뿐 아니라 악바리였습니다. 염소치기나 카우보이 중에 로보를 모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모두 로보와 그 부하들 때문에 방목하고 있는 소나 염소가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한밤중에 들려 오는 울음소리만으로도 로보와 부하이리의 소리를 구별할 수가 있었습니다. 보통 이리라면 카우보이들이 야영하고 있는 주위에서 밤새도록 울어대도 누구 하나 눈도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에이, 귀찮은 녀석이로군!" 이 정도로 하고 맙니다. 그러나 기억하고 있는 로보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로보다, 로보가 왔다!" 하고 서둘러 일어납니다. 그리고, "나쁜 놈의 이리!" "내일은 또 소가 많이 쓰러져 있겠지?" 하고 불평들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로보가 거느리고 있는 부하는 소수였습니다. 왜 많은 부하를 거느리지 않는지 나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로보만큼 지위와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 더 많은 부하가 있을 텐데 말입니다. 어쩌면 로보는 이만한 부하만 데리고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로보의 성질이 너무 거칠기 때문에 다른 이리들이 가까이 하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로보가 그 전성기 후반에는 겨우 다섯 마리의 부하밖에는 데리고 있지 않은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다섯 마리라고 하지만 보통 다섯 마리가 아니었습니다. 다섯 마리 모두 몸집도 크고 힘도 센 놈들이었습니다. 특히 로보에 이어서 부대장 이리는 부하 중에서는 가장 컸습니다. 그러나 부대장이리도 로보에 비하면 역시 작았습니다. 힘에 있어서도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로보와 부대장 이리 외에 특히 눈에 띄는 것이 두 마리 있었습니다. 한 마리는 멋진 흰색 이리로, 멕시코 사람들은 이 이리를 '블랑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멕시코 말로 '희다'는 뜻입니다. 블랑카는 암놈이었는데, 로보가 사랑하는 아내일 것이라고들 했습니다. 또 한 마리는 노랑색 이리였는데 놀라울 만큼 발이 빨랐습니다.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 이리는 지금까지 수없이 산양을 잡아서 동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산양은 동물들 중에서 비교적 발이 빠릅니다. 이런 산양을 쫓아가서 잡았다고 하니 얼마나 발이 빠른가는 쉽게 짐작이 갈 것입니다. 마침내 로보 일행이 사람들 앞에 그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리가 우는 소리를 더 자주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로보들을 무찌를 수가 없었을까요? 이 사람들은 겁쟁이도 게으름뱅이도 아니었습니다. 모든 목장 주인들은 로보들로부터 많은 피해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만약 한 마리의 이리라도 잡아죽였다면 암소 몇 마리에 상당하는 돈을 내놓았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이 로보와 그 부하는 마치 불사신 같았습니다. 사냥꾼이란 사냥꾼은 모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독약을 넣은 먹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로보들은 5년 동안 밤마다 암소 한 마리씩을 목장에서 잡아 갔습니다. 이 계산대로라면 로보들은 실로 2천 마리 이상의 소를 죽인 셈입니다. 옛날부터 이리라고 하면 언제나 굶주려 살아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덤벼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말들은 로보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로보들은 모두 영양이 좋아서 털이 빤질빤질하게 윤이 나 있었습니다. 먹이는 가려서 먹고 있었습니다. 죽어 있거나 병에 걸려 있는 동물은 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목장 주인이 죽인 것도 그들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로보들이 좋아하는 것은 자기네들이 죽인 암소였습니다. 그것도 그 해에 태어난 젊은 소의 부드러운 부분만 먹었습니다. 나이 먹은 소는 암소든 수소든 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가끔 송아지와 망아지를 잡는 수도 있었으나 이 것이 그들이 즐겨 먹는 먹이가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였습니다. 양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양을 조금씩 죽이기는 했으나 그 고기를 먹으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1893년 11월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블랑카와 노랑 이리는 250마리나 되는 양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고기는 단 한 점도 먹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로보들이 한 못된 일 중에 한 가지의 예에 지나지 않습니다. 마침내 로보의 머리에는 엄청난 현상금 붙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로보를 잡으려고 많은 사람들이 나섰습니다. 독약을 넣은 먹이가 수없이 놓여졌습니다. 그러나 로보들은 독약 냄새를 쉽게 맡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계략에 절대로 걸려들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로보였지만 무서워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총이었습니다. 로보는 이 곳 사람들이 누구나 총을 가지고 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사람들에게 덤벼들거나 맞부딪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낮에 사람의 그림자라도 보게 되면 단숨에 줄행랑을 쳐버립니다. 이것이 로보들의 정해진 방침이었습니다. 로보는 자기들의 손으로 죽인 소가 아니면 먹으려고 하지 않았으며 또 부하들에게도 먹이지 않았습니다. 이 버릇 덕분에 부하들은 언제나 독을 넣은 먹이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로보의 코는 독냄새를 유난히 잘 맡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손이 간 곳도 쉽게 분간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 예민한 취각이 로보들을 한층 더 강력한 그룹으로 만들었습니다. 울프 하운드의 추격
어느 날,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카우보이 한 사람이 한 밤중에 묵직한 이리 울음 소리를 들었습니다. 로보가 부하들을 부를 때의 목소리였습니다. 카우보이는 몰래 이리소리가 나는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로보들이 소떼들에게 덤벼들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우두머리인 로보는 약간 높은 곳에 앉아서 부하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하얀 이리인 블랑카가 다른 이리들과 섞여서 쫓아다니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블랑카는 막 젊은 암소 한 마리를 무리에서 떼어 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리들의 계획대로 일이 잘 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소들은 모두 등을 한 쪽으로 모으고 머리를 바깥으로 향하여 둥근 원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머리를 숙이고는 날카로운 두 뿔로 적을 받으려고 하였습니다. 즐비한 쇠뿔을 보고 이리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돌파하여 자기들이 노리고 있는 소를 잡으려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가끔 날카로운 공격을 받은 소가 엉덩이를 돌리고 진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바깥쪽 한 모퉁이가 뚫리자 이리들은 그 틈을 이용하여 노리고 있는 소에게 덤벼들었습니다. 그러나 좀처럼 소를 쓰러뜨릴 수는 없었습니다. 바로 그 때였습니다. 갑자기 로보가 일어섰습니다. 나지막하게 울부짖으면서 재빨리 뛰어들었습니다. 부하들이 하는 짓을 보고 실망했던 것 같습니다. 로보는 단숨에 소떼들을 보고 달려갔습니다. 허점을 찔린 진이 삽시간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로보는 소떼 속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소떼들은 마치 폭발한 폭탄 조각처럼 치솟아 올랐습니다. 주목을 받은 암소는 위험을 느끼자 죽을 힘을 다하여 뛰어 달아났으나, 로보가 그것을 놓칠 리가 없었습니다. 25미터도 가기 전에 로보는 그 등에 뛰어올랐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암소의 목덜미를 물었습니다. 순간 암소는 땅바닥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무서운 힘이었습니다. 암소는 발랑 뒤집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던 이리들이 일제히 덤벼들었습니다. 이 일은 삽시간에 이루어졌고 암소는 움직이지 못하는 시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로보는 부하들을 도와 주지 않았습니다. 한 쪽에서 가만히 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봐 너희들, 이런 일을 왜 빨리빨리 처리하지 못해." 이 광경을 다 본 다음 카우보이는 말을 탔습니다. 큰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가자 이리 떼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사람을 상대해서 이익 볼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 카우보이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그 자리에 가 보았습니다. 먹어 치운 암소의 시체는 틀림없이 그 자리에 있었으나 이리들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로보는 독약이 묻은 부분만 잘라서 버린 다음 고기를 먹고 가 버린 것입니다. 이 무적의 이리들에 대한 목장 주인들의 두려움은 날이 갈수록 커졌습니다. 로보의 머리에 걸린 현상금은 해마다 올라 마침내 1천달러가 되었습니다. 이리의 현상금으로서는 예가 없던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한 사나이가 말을 타고 카람포 골짜기로 왔습니다. 현상금에 눈독을 들여 텍사스 주에서 온 삼림 감시원이었습니다. 삼림 감시원이란 바로 산지기입니다. 이름은 타나리였습니다. 지금까지 왔던 사람과는 준비가 매우 달랐습니다. 그는 최신식 총과 훌륭한 말, 그리고 울프 하운드란 개들을 몰고 왔습니다. 이리 사냥을 위해서 특별히 훈련된 사냥개였습니다. 타나리는 그 전에 판한들 평원에서 사냥개를 이용하여 많은 이리를 잡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자기의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2, 3일 안에 로보의 머리를 안장 앞에 매달아 오겠다!" 타나리는 자신만만해 하였습니다. 여름 아침이 밝을 무렵, 타나리와 사냥개들은 용감하게 출발하였습니다. 마침내 사냥개들이 미친 듯이 짖어댔습니다. 재빨리 이이들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추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갑자기 저 멀리서 회색 빛을 띤 동물들의 떼가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3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로보들이 보였습니다. 먼지를 일으키며 사냥개들은 맹렬히 뒤쫓아 갔습니다. 울프 하운드가 할 일은 이리들을 쫓아가서 사냥꾼이 총을 쏘아 쓰러뜨릴 때까지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텍사스 주처럼 넓은 들판이라면 틀림없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뉴멕시코 주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땅 모양이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바위와 바위가 겹쳐진 골짜기와 카람포 강의 지류가 들판을 가로지르고 있었습니다. 로보는 이러한 땅을 이용하여 달아나는 재주가 뛰어났습니다. 마침내 타나리는 멀리 처지고 말았습니다. "이 놈들, 어디 두고 보자." 하고 보고 있으니까, 로보와 부하들은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달아나고 있었습니다. 사냥개들은 몇 갈래로 흩어져서 뒤쫓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로보가 생각해 낸 함정이었습니다. 훨씬 앞쪽에서 로보는 부하들을 한 자리에 모았습니다. 그러나 사냥개들은 아직도 흩어져서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사냥개들을 무리를 짓고 있는 이리들을 만났습니다. 숫자가 많지 않으면 이리들은 개들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쫓고 쫓기는 쪽이 바뀌고 말았습니다. 사냥개들은 혼이 났습니다. 다치기도 하고 물려서 죽은 개들도 상당수 있었습니다. 그 날 밤, 타나리가 사냥개들을 모아 보니 돌아온 것은 여섯 마리뿐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두 마리는 상처투성이였습니다. 타나리는 어떻게 해서라도 로보의 머리를 잘라 내려도 두 번이나 큰 이리 사냥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만큼 성과를 올릴 수는 없었습니다. 마지막에는 가장 귀중하게 생각하고 있던 말도 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용감하다고 자랑하던 타나리도 그만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일은 딱 질색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텍사스 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로보는 이 곳의 독재자가 되어 자신만만하게 설치고 돌아다녔습니다. 이듬해, 두 사람의 사냥꾼이 이 곳에 왔습니다. 두 사람은 자기들이야말로 악명 높은 이리를 쓰러뜨릴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새로 생각해 낸 독약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으로 뿌려서 잡겠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프랑스계의 캐나다 사람이었는데, 마력을 넣은 독약을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로보는 마력을 지니고 있는 이리이기 때문에 보통 방법으로는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독약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으로 뿌린 것도, 마력을 넣은 독약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로보는 한 주일에 꼭 한 번씩 찾아와서 잔치를 계속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두 사냥꾼 카론과 라롯슈는 생각을 고쳐먹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습니다. 1893년 봄이었습니다. 이 곳에 살고 있는 조 카론이라는 사나이는 로보를 잡으려고 하다 실패한 데다가 체면 서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로보가 사람들을 바보로 대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조의 농장은 아름다운 계곡을 흘러가는 카람포 강의 작은 지류 가장자리에 있었습니다. 거기서 1천 미터쯤 되는 곳에서 로보는 부하들과 함께 굴 속에서 새끼들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여름 내내 이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이리 부부는 조의 소와 산양, 그리고 개들을 잡아갔습니다. 조는 독약을 뿌리기도 하고 올가미 같은 것을 쳐 두기도 했지만, 로보는 굴 속에서 태연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조는 화가 나서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하기도 하였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리들은 상처 하나 입지 않고 또 나쁜 짓을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저 굴 속에서 여름 내내 살고 있었어요." 조는 이렇게 말하며 깎아지른 듯한 바위 벼랑을 가리켰습니다. "나는 어떻게 손쓸 수가 없었어요. 로보는 나를 마치 바보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독약을 써서
나는 이렇게 난폭한 로보의 경력을 카우보이들의 입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이야기를 믿을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1893년 가을. 나는 이 못된 이리를 보고 드디어 누구보다도 깊이 그를 알게 되었습니다만.... 몇 년 전 나는 빙고라는 개를 데리고 얼마 동안 이리 사냥을 한 일이 있습니다. 그 후 전혀 다른 일을 하게 되어 줄곧 책상과 의자에만 매달려 있었습니다. '바람이나 쏘이러 어디 한번 가 보았으면....' 하고 있는데, 마침 카람포 목장을 가지고 있는 친구로부터 초청이 왔습니다. 뉴멕시코에 와서 가축들을 잡아먹고 있는 이리들을 어떻게 해 줄 수 없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 초청을 받아들였습니다. 나는 이렇게 결심이 서자 마음이 바빠졌습니다. 한시 바삐 그 이리 왕 로보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그의 땅이 있는 이 곳에 달려오게 된 것입니다. 얼마 동안은 이 옷의 형편을 알아보기 위하여 말을 타고 돌아다녔습니다. 가끔 아직도 껍질이 붙은 암소의 뼈가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것도 놈들의 짓입니다." 돌아다닌 결과, 대강의 형편을 알 수 있었습니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이 울툭불툭하고 날카로운 땅에서는 사냥개를 풀거나 말을 타고 로보를 쫓아서는 잡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쪽은 따라다니기 힘들고, 저쪽은 달아나기 쉬운 땅모양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독약이나 덫이 효과 있는 수단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로보를 상대할 만큼 큰 덫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곧 주문하기로 하고 먼저 독약을 쓰기로 하였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로보의 코를 멀게 하려고 백방으로 애를 써 보았지만 실패했습니다. 그것을 일일이 늘어놓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스트리키니네' '비소' '시안 화물' '청산 배합물' 등 내가 알고 있는 것은 한 가지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또 로보를 꾀어낼 수 있는 먹이로 여러 가지 고기를 이용해 보았습니다. 아침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전시키며 현장에 달려가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노력도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로보의 못된 꾀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보기를 들어 설명하기로 합시다. 한 가지 보기만으로도 로보가 얼마나 꾀보인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어느 덫을 만드는 할아버지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먼저 이리들이 죽인 암소의 콩팥 기름 고기를 도자기 냄비에 넣고 볶았습니다. 그리고 쇠붙이 냄새가 나지 않게 하려고 상아로 만든 칼로 잘게 썰었습니다. 그리고 녹인 치즈로 으깨었습니다. 살코기와 치즈가 식은 다음 몇 토막으로 나누었습니다. 이 토막 한 쪽에 구멍을 뚫고 '스트리키니네'와 '시안 화물'의 배합물을 많이 집어 넣었습니다. 또 약냄새가 나지 않도록 캡슐에 담아서 집어 넣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구멍을 치즈로 막아 버렸습니다. 이렇게 주의를 해도 사람의 냄새가 나서는 안 됩니다. 나는 젊은 소의 피를 묻힌 장갑을 끼고 먹이에 사람의 숨결이 닿지 않도록 주의를 다했습니다. 이렇게 준비가 되자 나는 만들어진 먹이를 암소 피를 묻힌 날가죽 주머니 속에 넣고 말을 탔습니다. 그리고 다시 준비해 둔 소의 간과 콩팥을 밧줄 끝에 묶어서 끌며 달렸습니다. 이렇게 하여 15킬로미터나 되는 곳을 한 바퀴 돌면서, 4백미터마다 한 개씩 먹이를 떨어뜨렸습니다. 손에 닿지 않도록 주의를 하면서 떨어뜨린 것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로보는 대개 주초에는 고지 주위에 왔다가 주말에는 세라그란데 기슭에서 보내고 있었습니다. 내가 독먹이를 놓아둔 것은 월요일이었습니다. 자, 그런데 그 날 밤. 우리가 침대에 누우려고 할 때, 이리들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낮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말할 것도 없이 로보였습니다. "놈이 왔습니다!" 젊은이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튿날 아침, 나는 재빨리 뛰어갔습니다. 마침내 이리들의 발자국을 발견했습니다. 로보의 발자국이 앞에 있었습니다. 로보의 발자국은 컸기 때문에 언제나 쉽게 발견할 수가 있었습니다. 보통 이리의 앞발은 발톱에서 뒤꿈치까지가 11센티미터, 큰 것이 12센티미터입니다. 그러나 로보의 것은 몇 번이나 재어 봐도 14센티미터였습니다. 후에 내가 로보를 봤을 때 다른 부분의 크기도 발과 비례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깨까지의 길이가 90센티미터, 무게가 68킬로그램이나 되었습니다. 그래서 로보의 발자국을 부하들이 밟고 지나가서 아무렇게나 되어 있었지만, 그 뒤를 쫓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발자국은 다음과 같은 것을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로보들은 내가 소의 내장을 끌고 지나갔던 길을 걸어갔습니다. 생각한 대로였습니다. 로보가 제일 먼저 떨어뜨린 먹이를 발견하고 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그것을 주웠습니다. 나는 기쁨을 참지 못하였습니다. "됐다. 해치웠다!"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1킬로미터 반도 채 못 가서 놈은 쭉 뻗어 있을 것이오." 모래 바닥 위에 남겨진 로보의 발자국을 따라 나는 말을 달렸습니다. 나는 자신에 차 있었습니다. '틀림없이 로보는 죽었을 거야. 그리고 부하들도 몇 마리는 죽었을 것이다.' 폭이 넓은 앞발자국은 여전히 앞장서고 있었습니다. 나는 말 위에 일어서서 들판 구석구석까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리의 시체 같은 것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독먹이가 있는 곳에 왔습니다. 그것도 없어졌습니다. 발자국은 네 번째 독먹이가 있는 곳까지 이어져 있었습니다. 나는 그제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로보는 독먹이를 입에 물고 간 것입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네번째 독먹이 위에는 세 개의 독먹이가 올려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나의 잔꾀를 비웃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군데군데에는 똥이 갈겨져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 두고 로보는 소 내장을 끌고 갔던 길에서 벗어나 다른 길로 부하들을 이끌고 소 사냥에 나섰던 것입니다. 이것은 비슷한 경험중의 한가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는 이제 독먹이로 로보를 쓰러뜨릴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이미 로보를 잡기 위한 큰 덫을 부탁해 두었습니다. 그것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독먹이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목표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해를 끼치는 다른 동물들을 죽이는 데 이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무렵, 또 로보가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로보는 악마와 같은 잔꾀를 충분히 쓰는 놈이었습니다. 로보와 그 무리들은 그런 후부터 못된 버릇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산양을 습격하는 일이었습니다. 산양 고기는 전혀 먹지 않으면서도 산양 뗀 속에 뛰어 들어가서 물어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산양은 보통 1천마리에서 3천마리가 떼를 이어 있으며, 한두 사람의 양치기가 지킵니다. 밤이 되면 산양들을 안전한 곳에 모아 둡니다. 이 산양 무리의 양쪽에는 양치기들이 한 사람씩 붙어서 한 층 더 경비를 잘 합니다. 산양은 참 어리석은 짐승입니다. 조금만 놀라도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달아납니다. 그런데 이런 성질 속에 강한 점도 있습니다. 즉 자기의 지도자에게는 복종하는 생각이 그 어리석음의 밑바닥에 깔려 있습니다. 양치기들은 이 강하고 약한 성질을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산양의 무리 속에 염소를 섞어 놓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산양의 무리 속에도 여섯 마리의 염소가 섞여 있었습니다. 산양들은 수염을 달고 있는 염소들이 자기들보다 우수한 머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산양들은 밤에 무슨 일이 있으면 염소 옆으로 찰싹 달라 붙습니다. 이렇게 해서 흩어지는 것을 막아 위험에서 벗어납니다. 그러나 언제나 일이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11월말의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두 양치기가 이리의 습격에 눈을 떴습니다. 산양들은 여느 때와 같이 염소 둘레에 모여 있었습니다. 염소는 어리석기는 해도 바보는 아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옮기지 않고 용감하게 맞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재수 없게도 그 때의 이리는 보통이리가 아니었습니다. 이리 왕 로보였던 것입니다. 로보는 염소가 산양들의 정신적인 뒷받침을 하고 있다는 것을 양치기들처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로보는 똘똘 뭉쳐서 서 있는 산양을 팔딱 뛰어넘어 염소에게 덤벼들었습니다. 잠깐 사이에 염소를 물어뜯어 죽여 버렸습니다. 이제 산양들은 제멋대로였습니다. 로보의 부하들의 공격을 받은 산양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부터 몇 주일 동안 나는 날마다 걱정스러운 양치기들의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혹시 요즘 없어진 산양들을 못 보았습니까? OTO 도장이 찍힌 놈들입니다." 나는 이럴 때 보지 못했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내 대답은 조금씩 다르기는 했지만.... "아, 봤습니다. 다이아몬드 샘 옆에 대여섯 마리가 죽어 있었습니다." 또 어떤 때는, "말바이 지역을 작은 무리를 이루어 뛰어가고 있었습니다." 또 때로는, "나는 못 봤지만, 판 메일러가 세드라 몬치 지역에서 20마리 정도가 죽은 것을 봤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마침내 부탁했던 덫이 도착했습니다. 나는 두 사나이의 도움을 받아 꼬박 1주일이 걸려서 그것을 조심스럽게 설치하였습니다. 블랑카를 덫에 걸고
이리 덫은 땅 밑에 묻는데, 그 위를 이리가 모르고 지나가다가 벌어진 입이 삽시간에 발을 홀치는 장치입니다. 올가미 끝에는 굵은 쇠사슬이 있습니다. 쇠사슬은 통나무를 깎아서 가느다랗게 한 부분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런 통나무도, 덫도, 모두 땅속에 묻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둡니다. 겉에서 보면 전혀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덫을 쳐놓은 지 이틀 만에 나는 말을 타고 알아보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덫에서 덫 사이로 뛰어간 로보의 발자국을 발견했습니다. 모래 위에는 어젯밤에 로보가 왔다간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었습니다. 나는 곧 그 이유를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또 내가 당한 것입니다. 어둠 속을 뚫고 나온 로보는 몰래 숨겨 둔 땅 속의 덫을 알아내고 만 것입니다. 로보는 부하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고 조심스럽게 그 주위를 헤쳐 버린 것입니다. 줄도, 쇠사슬도, 통나무도, 모두 밖으로 튀어 나와 있었습니다. 줄을 끌어당겨 위험한 용수철을 풀어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차례로 10개 이상이나 되는 덫을 모두 못쓰게 해 버린 것입니다. 나는 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 실패로 로보가 한 짓에 한 가지 똑같은 버릇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 이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덫을 H자 모양으로 설치 했습니다. 이리가 지나다니는 길 양쪽에 덫을 나란히 놓고, 나머지 하나만 한 가운데에 묻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나는 또 하나의 실패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길을 성큼성큼 걸어오던 로보는 내가 계획한 대로 덫을 나란히 놓은 곳까지는 왔습니다. 그러나 한가운데 있는 덫 앞에 와서는 갑자기 멈추어 서 버렸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나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 야생동물을 지키는 귀신이라도 붙었을 거야.' 로보는 멈춘 곳에서 3센티미터도 움직이지 않고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무사히 위험 지역에서 빠져 나온 로보는 H자의 바깥으로 나와 뒷발로 흙을 파내어 덫을 못쓰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나는 여러 차례 덫을 고쳐서 쳤지만, 로보는 절대로 내 꾀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로보의 지혜는 실패를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만약 행한 아내와의 사이만 아니었더라면 로보는 지금도 약탈 생활을 계속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아내와의 사이가 로보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뜨려 버린 것입니다. 만약 로보가 혼자 있었더라면 함락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믿었던 동료의 경솔한 짓에 의하여 마침내 그는 최악의 날을 맞이하게 됩니다. 비슷한 운명을 걸어갔던 지난날의 많은 영웅들처럼.... 로보가 부하이리들의 훌륭한 지도자로서 두려움과 존경을 한 몸에 받은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이 로보의 뜻대로만 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나는 한두 번 이런 것을 발견했습니다. 무리 속에 어딘지 모르게 지서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가끔 부하의 발자국이 로보의 발자국 앞에 나타난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무리의 규칙을 깨고 로보를 앞서 걸어간 이리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나는 이것을 한 카우보이의 보고를 듣기 전까지는 몰랐습니다. "저는 오늘 그 놈의 모습을 봤습니다." 카우보이가 말했습니다. "로보보다 먼저 뛰어나간 놈은 바로 블랑카입니다." 그래서 수수께끼가 풀렸습니다. '그렇다. 블랑카는 암컷이다. 만약 수컷이라면 로보가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이 보고는 나로 하여금 새로운 계획을 세우게 하였습니다. 나는 암송아지 한 마리를 죽여서 그 시체 주위에 이리 덫을 설치했습니다. 일부러 덫이라는 것을 알도록 그렇게 해 두었습니다. 내 목적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이것과 조금 떨어진 곳에 암송아지의 시체에서 잘라낸 머리를 놓아 두었습니다. 이리들이 머리를 보고 아무 쓸 데도 없는 고기라고 생각할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방취제를 뿌린 철강제 덫을 설치했습니다. 이러한 덫은 더 이상 손볼 것이 없을 정도로 주의깊게 땅 밑에 숨겨 두었습니다. 이 일을 하는 동안 나는 두 손과 장화, 그리고 도구에도 피를 발라 내 몸냄새가 옮겨지는 것을 막았습니다. 역시 이 피를 땅바닥에 흘려서 방금 송아지 머리에서 피가 떨어진 것 같이 해 두었습니다. 이리의 덫을 땅 속에 묻은 다음 그 곳에 죽은 승냥이의 털을 떨어뜨려 놓고 승냥이의 발자국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여기에 승냥이의 발자국이 있구나. 승냥이가 지나간 곳이라면 안전하다.' 라고 생각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송아지의 머리는 풀숲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두고, 머리와 풀숲사이에 머리는 좁은 길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이 길에 내가 가지고 있던 덫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2개 걸어 두었습니다. 모두 송아지 머리에 묶은 다음 땅 속에 묻어 두었습니다. 이리란 놈은 시체의 냄새가 나면 먹을 생각은 없어도 가까이 가서 살펴보는 버릇이 있습니다. 이 습성 때문에 카람포의 이리들이 내 새로운 계획에 걸려들지 모릅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로보는 물론 송아지의 시체에 덫을 설치해 둔 것을 알아차리고 부하들에게 가까이 하는 것을 말릴 것입니다. 그러나 머리 쪽은 희망이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송아지 머리는 쓸모가 없어서 버려진 것으로 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이튿날 아침, 나는 덫을 조사하러 갔습니다. "야단났다!" 놈들의 발자국이 그 근처에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송아지 머리와 덫이 없어졌습니다. 발자국을 조사해 보니, 역시 로보는 부하들이 송아지의 시체 쪽으로 가는 것을 말렸습니다. 그러나 송아지 머리 쪽에는 주의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작은 이리 한 마리가 좀 떨어진 곳에 있는 머리를 살펴보러 갔습니다. 그만 덫 한 개를 보기 좋게 밟고 말았습니다. 우리들은 곧 발자국을 따라 쫓아갔습니다. 1킬로미터 반도 가기 전에 그 불행한 이리는 하얀색 블랑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블랑카는 우리들을 보고는 벌떡 일어나서 전속력으로 달아났습니다. 20킬로그램이나 되는 송아지 머리를 끌고도 멀리까지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블랑카는 바위가 있는 곳에서 우물쭈물하고 있었습니다. 말을 타고 뒤쫓은 우리들은 곧 블랑카를 발견할 수가 있었습니다. 송아지 머리에 달린 뿔이 바위에 걸려서 블랑카를 꼼짝달싹 못하게 해 버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지금까지 한번도 본일 이 없는 멋진 이리였습니다. 그 털가죽은 조금도 상처를 입지 않은 완전한 상태였으며 빛깔은 순백색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블랑카는 우리들에게 덤벼들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을 부르기 위하여 길게 울부짖었습니다. 그 소리는 계곡을 따라 길게 메아리 쳤습니다. 멀리 고원 끝에서 대답하는 로보의 낮은 울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블랑카의 울음 소리는 이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블랑카는 자기 가까이까지 다가온 우리들과 온힘을 쏟아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는 엄청난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들은 블랑카의 목에 올가미를 던졌습니다. 그리고 말을 반대방향으로 달렸습니다. 이윽고 이리의 입에서 피가 나왔고 눈이 희미해졌습니다. 사지가 뒤틀리더니 마침내 축 늘어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죽은 이리를 말에 실었습니다. 이리하여 카람포의 이리들에게 처음으로 승리한 쾌감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비극이 연출되고 있을 동안에도, 그 후 우리가 집으로 가기 위해서 말을 달리고 있을 동안에도 로보의 울부짖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 왔습니다. 먼 고원 근처에서 블랑카를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일까. 로보는 결코 블랑카를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로보는 도저히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며, 또 사람이 가지고 있는 총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속 깊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날 하루 종일 블랑카를 찾으며 울부짖는 로보의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것은 가슴을 꿰뚫는 것 같은 목소리였습니다. 마침내 카우보이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군요. 이것으로 블랑카가 정말 로보의 아내였다는 것을 알았어요." 해가 질 무렵부터 로보의 목소리는 점점 가까워 졌습니다. 보금자리가 있는 골짜기로 찾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 목소리는 슬픔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 목소리는 보통 때와는 달리 흐느끼는 것 같은 부르짖음이었는데 길게 꼬리를 끄는 울음 소리였습니다. "블랑카, 블랑카." 하고 부르는 것 같았습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우리는 블랑카를 잡은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로보가 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로보는 마침내 블랑카의 발자국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그는 블랑카가 죽은 지짐에 왔습니다. 슬픔에 가득찬 울음 소리. 그것은 너무도 슬퍼서 듣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카우보이까지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리가 이렇게 우는 건 지금까지 한번도 들어 본 일이 없습니다." 로보는 블랑카의 피가 그 곳을 빨갛게 물들인 것을 보고 어떤 일이 벌어졌던가를 똑똑히 알았을 것입니다. 로보는 말발굽을 따라 목장까지 왔습니다. 블랑카를 찾으려고 했는지, 복수를 하려고 했는지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것은 복수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 집을 지키는 개가 운 나쁘게도 밖으로 나갔습니다. 로보는 이 개를 습격하여 집에서 50미터나 떨어진 곳에 질근질근 씹어서 내팽개쳐 두었습니다. 이 때 로보는 혼자 온 것 같았습니다. 이튿날, 아침, 조사를 해 보니 한 마리의 발자국밖에는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안 것은 그답지 않게 주의를 하지 않고 돌아다닌 것입니다. 혹시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를 위해서 나는 몇 개의 덫을 남겨 두었습니다. 이 덫을 목장 주위에 설치하였습니다. 나중에 로보가 실제로 이 덫을 발로 밟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로보의 힘은 과연 세었습니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서 덫을 내던져 버렸던 것입니다. 그럼 다음에는 어떻게 손을 쓸 것인가? 로보는 블랑카의 시체를 발견할 때까지 이 근처에 머물러 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로보가 다른 곳으로 옮겨 가기 전에 잡아 버려야겠다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아직도 마음이 흔들리고 있을 동안에 잡아 버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마침내 나는 이 어려운 일에 힘을 쏟기로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블랑카를 죽여 버린 것은 큰 실패였습니다. 블랑카를 살려 두고 미끼로 이용했다면 그 날 밤에 로보를 잡았을 지도 몰랐습니다. 산 채로 잡자
나는 모을 수 있는 데까지 이리 덫을 모았습니다. 130개나 되는 강한 강철 덫을 계곡으로 통하는 길목마다 4개씩 설치했습니다. 모든 덫에 통나무를 연결시켰고 통나무도 1개씩 조심스럽게 땅 속에 묻었습니다. 그리고 흙 위의 잔디를 파서 조심스럽게 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담요에 담았습니다. 이렇게 일을 한 다음 잔디를 다시 입히자 사람이 한 흔적은 전혀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덫을 모두 묻어 둔 다음 블랑카의 시체를 끌고 다녔습니다. 목장을 한 바퀴 돈 다음에 블랑카의 앞발을 하나 잘라서 덫 하나하나 위에 블랑카의 발자국을 찍었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궁리를 다 하였습니다. 나는 밤이 이슥할 때 집으로 돌아와서 그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밤에 로보의 소리가 한 번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면 내가 잘못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이튿날, 나는 말을 타고 덫을 놓아 두었던 곳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나 북쪽 골짜기까지 돌아보기 전에 해가 졌기 때문에 나머지는 다음에 돌아보기로 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오늘 돌아본 일로서 보고할 만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저녁식사를 할 때 카우보이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저 북쪽 골짜기에서 소들이 소란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덫에 걸렸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다음 날 내가 북쪽 골짜기에 왔을 때는 이미 오후였습니다. 급히 말을 몰아 달려가니 큰 회색 동물이 땅바닥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달아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만 그것은 이미 소용없는 짓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은 바로 로보였습니다. 강철 덫에 단단히 걸린 카람포의 이리왕 로보였습니다. 로보는 사랑하는 아내를 찾아 헤매다가 블랑카의 발자국을 발견하자 자기도 모르게 그 발자국을 따라갔던 것입니다. 그 발자국을 사람이 만든 것인지도 모르고... 그리하여 설치된 덫에 스스로 걸려들고 만 것입니다. 로보는 4개의 덫에 꼭 물려 있었습니다. 주위에는 소 발자국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습니다. 소들이 로보 가까이 갈 수 없으면서 로보를 발견하고는 소란을 피웠던 것입니다. 이틀 낮 이틀 밤을 로보는 이렇게 옆으로 쓰러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미 피로에 지쳐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그래도 내가 다가가자 목 뒤털을 치켜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목청을 가다듬어 굵고 낮은 목소리로 울부짖었습니다. 이 목소리는 골짜기를 따라 울려 퍼졌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충실한 부하들을 부르는 소리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목소리에 대답하는 목소리는 아무 데서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로보에게는 이제 죽음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미친 듯이 설쳤습니다. 나에게 덤벼들려고 날뛰었으나 모두 소용없는 짓이었습니다. 이리 덫은 모두 130킬로그램 이상 되는 족쇄였습니다. 강철 덫이 발목마다 꼭 잡고 있었고, 무겁고 굵은 통나무와 쇠사슬이 온몸을 꼼짝달싹 못하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로보의 상아와 같은 이빨이 얼마나 쇠사슬을 물어뜯었는지. 나는 큰 마음먹고 총으로 로보의 몸을 건드려 보았습니다. 순간 로보는 총대를 물어 뜯었습니다. 지금도 내 총에는 그 때 물렸던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로보의 눈은 미움과 분노로 초록빛을 띠며 불타고 있었습니다. 부르르 떨면서 내 말에 덤벼들려고 날뛰었습니다. 그의 턱은 허공을 물었습니다. '달가닥' 하고 이빨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나 굶주림과 덫에 걸린 출혈 때문에 로보는 이제 피로에 지쳐 있었습니다. 그는 다시 땅바닥에 푹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가축들이 로보의 손에 걸려 목숨을 잃었단 말인가. 이리하여 이번에는 내가 많은 희생자들과 같은 운명을 로보에게 줄 차례였습니다. 나는 그 준비를 하면서 마음 속에서 무엇인가 괴로움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이것 봐, 이 늙은 악당놈아. 지금까지 네 놈은 갖은 못된 짓을 다 해왔어. 하지만 이제는 할 수 없어. 이제 너는 곧 한 덩어리의 썩은 고기가 되고 만단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바로 네 운명이다.' 나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올가미를 크게 휘둘러 로보의 목을 향해 휙 던졌습니다. 그러나 힘이 모자랐습니다. 올가미들이 닿기도 전에 로보는 그것을 물어 뜯어 버렸습니다. 올가미 줄은 둘로 잘려 발 밑에 떨어졌습니다. 물론 나는 총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수단으로 로보를 죽이는 것은 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멋진 털가죽에 상처를 입히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야영지로 달려가 카우보이 한 사람과 새 올가미 줄을 가지고 달려왔습니다.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기 위하여 먼저 나무토막을 하나 던졌습니다. 로보는 이것을 입으로 받았습니다. 순간 2개의 올가미를 던져 보기 좋게 로보의 목을 졸라 맸습니다. 로보의 사나운 눈도 이제 빛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급히 조수인 카우보이를 불렀습니다. "기다려, 죽이지 말아. 사로잡아서 캠프로 끌고 가자." 로보는 이제 완전히 힘이 빠져 있었기 때문에 날카로운 입에 굵은 통나무를 끼우는 일은 그리 힘들지 않았습니다. 턱을 굵은 철사로 끼우는 일은 그리 힘들지 않았습니다. 턱을 굵은 철사로 둘둘 말아 올린 다음 막대에 감아 두었습니다. 로보는 이제 어떻게 해도 덤벼들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로보는 이것을 알았는지 두 번 다시 덤벼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조용히 우리 쪽을 보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마침내 나를 잡았구나. 흥, 그래. 너희들 좋을대로 하려무나." 그러고부터 로보는 우리들을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다리를 꽁꽁 묶어도 신음도 하지 않았고 울부짖지도 않았습니다. 머리를 돌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힘을 합쳐서 겨우 이 무거운 로보를 말 위에 올렸습니다. 어느 사이인지 로보의 숨소리는 마치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조용해졌습니다. 눈은 다시 빛났고 그 색깔은 맑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쪽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눈길은 저 멀리 펼쳐진 넓은 초원 쪽에 있었습니다. 그 곳은 이제 부하 이리들이 흩어져 버리고 망하여 가는 로보의 왕국이었습니다. 말은 골짜기 길을 따라 내려왔습니다. 초원의 풍경이 바위에 가려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로보는 눈을 때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천천히 말을 몰아 무사히 목장에 도착했습니다. 서둘러 로보의 목에 목걸이를 달았습니다. 그리고 목걸이에는 단단한 쇠사슬을 매달았습니다. 그리고 목걸이에는 단단한 쇠사슬을 매달았습니다. 그리고 목장에 말뚝을 박고 거기에 붙들어 매어 두었습니다. 몸에 묶어 두었던 밧줄을 풀어 주었습니다. 나는 비로소 이리 왕 로보의 몸을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가 있었습니다. 영웅이나 폭군에 대한 소문은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로보는 소문처럼 황금 목걸이도 없었으며, 어깨 위에는 악마와 손을 잡은 증거라는 거꾸로 된 십자가도 없었습니다. 다만 한 쪽에 허리께에 넓은 상처가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것은 텍사스 주의 삼림감시원인 티나리가 기르고 있던 울프 하운드 대장 주노에 의해 생긴 것입니다. 이 개는 골짜기의 모래 위에서 로보에게 죽었습니다. 죽지 직전에 이 주노가 안간힘을 다하여 상처를 입혔던 것입니다. 나는 고기와 물을 가지고 와서 로보 옆에 놓아 두었습니다. 그러나 로보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습니다. 조용히 옆으로 누운 채 내 어깨 너머 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누런 눈 앞에는 골짜기에서 펼쳐진 넓은 초원이 있었습니다. 해가 떨어져도 로보는 아까와 똑같은 모습으로 멀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밤이 되면 틀림없이 부하들을 불러 모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에 대한 대비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로보는 변함없이 입을 꼭 다물고 있었습니다. 로보가 울부짖는 것은 어제 궁지에 빠졌을 때 크게 소리친 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우리는 급히 로보가 있는 곳으로 가 보았습니다. 로보는 여전히 옆으로 비스듬히 누운 채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모습이 조금 이상했기 때문에 가까이 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로보의 영혼은 이미 멀리 날아가 버린 다음이었습니다. 이리 왕은 죽은 것입니다. 힘을 잃은 사자, 자유를 잃은 매, 아내를 잃은 비둘기들은 너무 괴로워서 죽는 다고 합니다. 아무리 용맹한 이리 왕이라도 세 가지의 타격을 한꺼번에 받고 참을 수 없었던 것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나는 로보의 목에서 목걸이를 풀고는, 카우보이와 함께 로보의 시체를 블랑카의 시체가 놓여 있는 창고 속으로 옮겨 주었습니다. 로보의 시체가 조용히 블랑카의 옆에 눕혀졌을 때 카우보이는 나직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봐, 너는 블랑카 옆으로 오고 싶어 했지?자, 아내가 곁에 있어. 이제 다시 너희들은 함께 있게 되었어. 솜털꼬리토끼 이야기
최초의 모험
'라기랏그' 또는 '랏그'라는 이름은 장난꾸러기 솜털꼬리토끼의 이름입니다. 이 이름은 짓눌려서 들쭉날쭉하게 된 귀에서 생겨난 이름입니다. 한 평생 없어지지 않을 이 상처는 랏그가 태어나서 처음 경험한 모험에서 받은 것입니다. 랏그는 엄마토끼와 함께 오리판트 늪에서 살았습니다. 이 늪에서 나는 랏그를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여러 가지 수단으로 그의 생활 기록을 조금씩 모아서 마침내는 지금부터 할 이야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동물을 잘 모르는 사람은 내 이야기를 읽고, '동물을 너무 사람처럼 쓴다.' 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동물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생활하고, 동물의 삶과 마음의 움직임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꼭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토끼는 우리가 알 수 있는 말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토끼들은 소리와 소리의 짜임새라든가, 몸짓, 뺨에 나 있는 긴 털의 움직임, 이 밖에 여러 가지 실례로써 서로의 뜻을 통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펼쳐 나가면서 여러 가지 토끼의 말을 사람들의 말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토끼가 하지 않는 말은 한마디도 보태지 않았습니다. 이 점을 잘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성한 늪의 풀들은 휘어져서 랏그의 둥지를 잘 숨겨 주었습니다. 엄마토끼는 나들이를 할 때면 언제나 도구로 반쯤 랏그를 숨겨 놓고 꼭 이렇게 주의를 시킵니다. "머리를 낮추고 무슨 말도 해서는 안 된다. 설령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말이다." 외톨이가 된 랏그는 둥지 속에서 큰 눈을 뜨고 있었습니다. 그 동그란 눈은 그가 살고 있는 초록빛 세상 한 부분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푸른 어치와 빨간 다람쥐는 다 도둑이면서 서로, "도둑놈, 도둑놈!" 하고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가끔 이렇게 싸우고 있습니다. 개똥지빠귀가 랏그의 코앞 15센티미터쯤 되는 곳에서 부리로 파란 나비를 잡았습니다. 빨간 등에 검은 점이 있는 무당벌레가 촉각을 흔들면서 걸어옵니다. 이쪽에 있는 잎으로 올라가서, 저쪽 잎으로 내려와 랏그의 둥지를 가로지리고 랏그의 얼굴 위를 지나 천천히 저쪽으로 가 버렸습니다. 그래도 랏그는 몸짓 한 번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한참 뒤 풀숲에서, "바스락바스락...." 하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 소리는 끊임없이 들려 왔습니다. 이상한 소리였습니다. 이쪽으로 갔다가 저쪽으로 갔다 했지만 땅을 밟는 소리는 조금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랏그는 태어난 뒤3주일, 지금까지 줄곧 이 늪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이런 소리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무엇일까?' 랏그는 호기심이 강하게 일어났습니다. 엄마토끼는, "꼼짝 말고 가만히 있거나." 하고 말했지만 그것은 위험한 경우입니다. 발걸음 소리도 나지 않는 이 이상한 소리는 그다지 무서운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바삭바삭...." 하는 낮은 소리는 랏그 바로 옆을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왔으나 그대로 지나가 버릴 것 같았습니다. 랏그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제 아기가 아니야.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은 내 의무다.' 짧은 연약한 털에 감싸인 발을 딛고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둥지를 가리고 있는 풀 위로 머리를 내밀고 수풀 속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순간 소리가 갑자기 멎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더 잘 보려고 랏그가 한 발자국 내디뎠을 때, 무서운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굵고 검은 뱀과 바로 얼굴을 맞대었습니다. 이 괴물은 잽싸게 덤벼들었습니다. "엄마!" 랏그는 뛰면서 소리쳤습니다. 작은 다리에 있는 힘을 다해서 뛰려고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뱀은 랏그의 한 쪽 귀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재빨리 이 아기토끼의 몸을 돌돌 말아버렸습니다. "엄마, 엄마!" 불쌍한 랏그는 버둥거리면서 엄마토끼를 불렀습니다. 잔인한 괴물이 천천히 몸을 조이기 시작했습니다. 랏그의 목소리는 점점 끊어질 것 같았습니다. 바로 이때였습니다. 숲 속에서 엄마토끼가 화살처럼 달려왔습니다. 지금은 여느 때처럼 겁많고 조그마한 그림자만 봐도 놀라는 그런 엄마토끼가 아니었습니다. 엄마의 사랑이 넘쳐 흘렀습니다. 자기새끼의 목소리가 용기를 불어 넣어 주었습니다. 무서운 뱀에게 덤벼들어 뛰어넘으면서 뒷발 발톱으로 차버렸습니다. 격렬한 공격이었습니다. 뱀은 아파서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리고 뱀은, "슛슛...." 하는 날카로운 소리를 냈습니다. "엄마, 엄마!" 랏그의 목소리는 점점 가늘어져 갔습니다. 엄마토끼는 두 번 세 번 되풀이 하면서 뛰어서는 격렬하게 뱀을 차 버렸습니다. 마침내 무서운 뱀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랏그의 귀를 놓아 주고, 덤벼드는 엄마토끼를 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뱀은 겨우 엄마토끼의 털을 무는 것뿐이었습니다. 이 굵고 검은 뱀의 몸은 이미 여기저기 상처가 나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엄마토끼의 맹렬한 공격은 점점 더 효과가 있었습니다. 뱀은 이제 불리하게 되었습니다. 토끼가 이렇게 상대하기 거북한 것인 줄을 몰랐습니다. 뱀은 비로소 온힘을 다 쏟아 싸우려고 공격할 다음 자세를 갖추었습니다. 그 순간 랏그를 조이고 있던 힘이 빠졌습니다. 랏그는 뱀의 몸에서 빠져 나와 숲 속으로 달아났습니다. 숨이 끊어질 것 같았지만 그래도 아직 그만한 힘은 남아 있었습니다. 뱀의 이빨에 왼쪽 귀를 들쭉날쭉 물렸지만, 다행히 다른 상처는 없었습니다. 엄마토끼는 이렇게 해서 자기 새끼를 도로 찾았습니다. 그러나 명예나 복수를 위해서 싸우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엄마토끼는 곧 숲 속으로 뛰어갔습니다. 랏그도 눈처럼 하얀 엄마토끼를 보고 달려갔습니다. 마침내 엄마토끼와 랏그는 늪의 한 쪽 모퉁이에 안전한 보금자리를 정하게 되었습니다. 숲 속의 학습
오리판트 늪은 찔레나무들만 있는 땅이었습니다. 오래 된 나무들은 다 베어 버리고 다시 새 나무들이 있는 수풀이 이 늪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거친 연못과 숲 속 한가운데를 흐르는 작은 시냇물이 하나 있었습니다. 옛날 수풀이었을 때의 나무 몇 그루가 서 있었으며 이것보다도 훨씬 오래 된 몇 그루의 나무는 통나무가 되어 굴러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연못 주위 일대에는 버드나무와 띠나무가 무성했습니다. 고양이와 말은 가까이 오지 않지만 소들은 무서워하지 않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약간 마른 곳에는 들장미와 싱싱한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늪의 맨 가장자리에는 소나무 진이 나오는 싱싱한 소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습니다. 하늘을 보고 뾰족한 침이 솟아나 있는 파란 솔잎과 땅바닥에 떨어진 솔잎의 낙엽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싱그러운 냄새를 풍겨 주고 있었습니다. 늪 주위에는 저 멀리까지 넓디넓은 들판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이 들판을 끊임없이 빠져 나갈 수 있는 것은 난폭자이자 꾀많은 여우뿐이었습니다. 이 여우는 바로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오리판트 늪에서 살고 있는 주민은 솜털 꼬리 토끼인 엄마토끼 모리와 아기토끼 랏그였습니다. 가장 가까이에 살고 있는 토끼도 여기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 가까운 친척은 이미 죽고 없었습니다. 엄마토끼 모리는 훌륭한 어머니였습니다. 끈기있게 아기토끼를 교육시켰습니다. 제일 먼저 랏그 꼬마가 배운 것은, "몸을 숨기고 아무 말도 하지 말라." 는 것이었습니다. 큰 뱀과 싸웠을 때의 경험은 이 교훈이 얼마나 정확했던가를 랏그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랏그는 절대로 이 일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부터는 말하는 것을 잘 들었습니다. 그래서 엄마토끼는 다른 여러 가지를 가르치는 데 있어 그 전보다 훨씬 간단히 가르칠 수가 있었습니다. '몸을 움츠리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부처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적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면 그 때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거나 그대로의 모습으로 꼼짝달싹하지 않고 있어야 합니다. 왜 이렇게 하는 것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숲 속의 생물은 숲 속에 있는 것들과 같은 빛깔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적끼리 서로 만났을 때에는 먼저 상대방을 발견한 쪽이 몸을 움츠려 버립니다. 이렇게 하여 상대방에게 자기가 있다는 것을 모르게 합니다. 그 다음에는 공격을 하거나 달아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여 이익 되게 행동합니다. 오직 숲 속에 살고 있는 이들만이 이런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야생 동물이거나 사냥꾼도 이것을 알아 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모든 동물들은 이 몸 움츠리기가 잘 될 때까지 열심히 연습을 합니다. 그러나 이 솜털꼬리토끼인 엄마토끼 모리를 이기는 동물은 누구 하나도 없습니다. 랏그는 그만큼 솜씨좋은 엄마토끼의 '몸 움츠리기'를 배웠던 것입니다. 하얀 솜털 같은 꼬리가 용수철처럼 되어 깡충깡충 숲 속을 돌아다니면 랏그는 그 뒤를 부지런히 쫓아갑니다. 이 때 갑자기 엄마토끼가 움츠리면 랏그도 따라서 몸을 움츠립니다. 몸 속에 숨겨져 있는 자연에 대한 자기 보호의 욕구가 이렇게 랏그에게 엄마토끼와 똑같은 짓을 하게 합니다. 랏그가 엄마토끼로부터 배운 것 중에서 가장 훌륭한 가르침은 들장미의 비밀이었습니다. 이 비밀은 퍽 오래 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많은 생물들은 아마 모를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해 두려면 먼저 왜 들장미와 동물들이 싸움을 했던가에 대해 이야기해 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옛날, 들장미는 침이 없는 작은 나무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람쥐와 쥐들이 꽃을 뜯으려고 기어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소가 뿔로 밀어 꽃을 떨어뜨리기도 했습니다. 또 큰 쥐가 긴 꼬리로 두드려도 꽃은 떨어졌고, 사슴이 뒷발로 차서 꽃을 떨어뜨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들장미는 자기의 꽃을 지키기 위하여 바늘과 같은 침으로 몸을 단단히 했습니다. 이리하여 나무 위에 올라가거나 긴 꼬리를 가진 동물들과는 영원히 싸울 것이라고 선언했던 것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들장미는 그 누구와도 평화스런 관계를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뽀송뽀송한 털을 가진 이 토끼와는 달랐습니다. 이유는 이 토끼는 나무 위로 올라갈 수도 없고, 뿔도 날카로운 발톱도 없고, 꼬리도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솜털꼬리토끼가 들판을 못쓰게 한 일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들장미는 많은 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토끼에게만은 특별히 깊은 우정을 안고 있었습니다. 가련한 토끼에게 위험이 닥치면 언제든지 힘을 빌려 줍니다. 들장미가 몇 만 개나 되는지 잘 모르는 날카로운 독바늘로 토끼를 보호해 줍니다.
다시 말하면 랏그가 엄마토끼로부터 배웠다는 비밀은, 들장미는 가장 중요한 친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계절에는 많은 시간을 이 곳의 형편과 찔레나무와 들장미를 구별하는 데 보냈습니다. 마침내 랏그는 이러한 것을 완전히 머릿속에 넣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두 가지 길을 통해서 늪을 돌아다닐 수 있게도 되었습니다. 특히 친구인 들장미가 있는 곳에 오면 다섯 번 여섯 번 팔딱팔딱 뛰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사람들이 지금까지 본 일이 없는 찔레나무를 싣고 와서 이 일대에다가 삥 둘러 심어 놓고 갔습니다. 솜털꼬리토끼의 적인 동물들은 모두 화를 냈습니다. 이유는 이 찔레나무는 어떤 동물이라도 넘어뜨릴 수 없을만큼 강했으며, 아무리 튼튼한 동물의 가죽도 꿰뚫을 수 있을만큼 날카로운 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이상한 찔레나무는 그 때부터 해마다 불어났습니다. 야생 동물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상태까지 되었습니다. 그러나 엄마토끼만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많은 야생 동물들은 들장미 속에서 자라오지 않았습니다. 개도, 여우도, 소도, 염소도, 아니 사람도 이 무서운 침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엄마토끼만은 이것을 잘 알고 있어서 그 침들 밑에서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상한 찔레나무가 널리 퍼져 나가면 퍼져 나갈수록, 솜털꼬리토끼들에게는 점점 안전한 곳으로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 새로운 찔레나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것은 '철조망 지붕'이라고 불리는 것이었습니다. 엄마토끼에게는 지금 다른 아이들이 없었기 때문에 랏그는 그 사랑을 혼자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랏그는 영리했고 힘도 셌습니다. 이것은 창창한 앞날을 약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랏그는 무럭무럭 자라 나갔습니다. 그리고 이 계절 동안에 엄마토끼는 랏그에게 냄새를 구별하는 비결, 먹어도 괜찮은 것, 만져서는 안 되는 것 등을 구별하는 비결, 먹어도 괜찮은 것, 만져서는 안 되는 것 등을 구별하는 것을 부지런히 가르쳤습니다. 날마다 훈련, 훈련이었습니다. 이렇게 엄마토끼는 어릴 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지혜와 자기의 오랜 생활 가운데서 익힌 지혜를 랏그에게 물려주었던 것입니다. 클로버 들판에서 랏그는 엄마토끼에게 찰싹 달라붙어서 토끼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이 코가 언제든지 냄새를 구별할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안 돼." 하고 엄마토끼는 코를 벌름거립니다. 그러면 랏그도 흉내내며 코를 벌름벌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엄마토끼가 씹고 있는 것을 입에서 끌어내기도 하고, 입술을 핥아 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자기가 먹고 있는 풀과 같은지 어떤지를 알아 보는 것이었습니다. 이 밖에 엄마토끼는 흉내내면서 여러 가지를 외웠습니다. 발톱으로 털을 긁기도 하고, 웃옷 손질을 하기도 하고, 아랫도리와 양말에 붙은 쓰레기를 떨어버리는 일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번 땅바닥에 떨어진 물은 더러운 것이 들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토끼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물은 들장미에 모여 있는 이슬이었습니다. 랏그는 이것도 익혔습니다. 이렇게 하여 랏그는 모든 학문 중에서도 가장 오래 된 숲 속의 학문을 배웠던 것입니다. 랏그는 이제 혼자 걸어다닐 수 있을 만큼 커졌습니다. 엄마토끼는 곧 랏그에게 신호를 보내는 방법과 듣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토끼들은 뒷발로 '콩콩' 하고 땅바닥을 두드려서 통신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소리는 땅바닥을 타고 멀리까지 들립니다. 땅바닥 2미터 위에서 '콩콩' 하고 땅바닥을 두드려서 통신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소리는 땅바닥을 타고 멀리까지 들립니다. 땅바닥 2미터 위에서 '콩콩' 해도 20미터 앞에는 도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땅바닥 가까이에서 하면 적어도 1백 미터까지는 닿습니다. 게다가 토끼는 귀가 크기 때문에 2백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도 이 소리를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리판트 늪이라면 끝에서 끝까지 신호를 보내고 받을 수도 있습니다. 신호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한번만 '통' 하고 치면 '조심해라.' 또는 '움츠려라.'는 뜻입니다. 천천히 '통... 통' 두드리면 '오너라'라는 뜻이 됩니다. 빨리 '통통통' 하고 두드리면 '있는 힘을 다해서 뛰어라.'라는 뜻입니다. 어느 활짝 개인 날이었습니다. 조심스런 푸른 어치들이 서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 주위에 위험이 없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엄마토끼와 랏그는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엄마토끼는 귀를 내리고 '몸을 움츠려라. !' 하고 신호를 보냈습니다. 랏그가 몸을 움츠리고 있자 엄마토끼는 '통통' 하고 '오너라.' 하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랏그는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엄마토끼는 아무 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통통' 하고 신호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대답이 없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랏그는 코를 벌름거리면서 그 근처를 조사해 봤습니다. 엄마토끼의 발자국 냄새가 났습니다. 한 걸음씩 다가가자 엄마토끼가 있었습니다. 수풀 속에 숨어 있었습니다. 냄새란 이상한 길 안내를 동물들은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이렇게 해서 랏그는 발자국 냄새를 처음으로 익혔습니다. 엄마토끼와 랏그의 이런 숨바꼭질은 그 후에도 여러 차례 되풀이되었습니다. 이 어려운 발자국을 쫓는 일은 훗날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최초의 훈련 기간이 계속되는 동안에 랏그는 들토끼가 생활해 나가는 필요한 일들을 모조리 다 배웠습니다. 랏그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를 잘 풀어 나가 천재다운 실력을 자랑했습니다. 토끼의 적
랏그는 '나무로 둔갑하기'와 '팔딱 뛰기' 그리고 '움츠리기'가 전문이었습니다. 이 이상의 솜씨는 거의 쓸 필요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또 자기는 아직 쓰지 않았지만, '철조망'을 이용하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고급 솜씨입니다. 이 밖에 어떤 냄새도 모두 태워 버리는 '모래 태우기' 공부도 했습니다. '몰래 빠져 나오기'와 '지붕 넘기'도 잘했습니다. 또 오랜 주의가 필요한 '구멍 파기'와 '급히 돌기'도 마찬가지로 잘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기술을 알고 있으면서도 더욱 몸을 낮게 하여 '잠자기'가 여러 가지 지혜 중에서 첫걸음입니다. 잠을 잘 때에는 '들장미 나무' 숲에 뛰어들어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것을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랏그는 또 모든 적을 아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이런 적의 뒤통수를 치는 방법도 배웠습니다. 매, 부엉이, 여우, 사냥개, 들개, 밍크, 족제비, 고양이, 스컹크, 곰 등 여러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도 있습니다. 이 적들은 저마다 다른 방법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랏그는 하나하나 다 다른 대책을 배워 두었습니다. 그리고 적이 가까이 온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자기와 엄마토끼의 코와 귀를 활용합니다. 때로는 어치들의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알아내기도 합니다. "절대로 어치의 경고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엄마토끼가 말했습니다. "어치는 까불고 장난꾸러기고 언제나 도둑질만 하고 있지만, 눈이 날카로워서 어떤 것이라도 놓치지 않는단다. 어치는 우리들이 어떻게 손쓸 수 없는 나쁜 놈들이지만 우리를 해칠 수 없는 건 들장미 덕분이란다. 그렇지만 어치의 적은 우리 토끼들에게도 적이니까 어치들이 떠들어대면 우리에게도 적이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해도 된단다. 그리고 딱따구리가 조심하라고 하면 믿어도 괜찮아. 딱따구리는 정직하니까, 이 점 명심해 두도록 해라. 어치는 장난이 심해서 반은 거짓말을 하지만, 나쁜 소식을 가지고 왔을 때에는 믿는 것이 안전하단다." 철조망을 이용하여 적으로부터 달아나기도 하고 반대로 적을 골탕먹여 주는 일은 참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술을 사용하려면 상당한 용기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강한 발이 필요합니다. 랏그가 이것을 결심하고 실천에 옮겨 보는 일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그가 어른이 되었을 때는 전문 기술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할 수 있게 되면 크게 도움이 된단다." 하고 엄마토끼가 말했습니다. "먼저 개를 끌어와서 똑바로 달리는 거야. 그것도 당장 잡힐 것처럼 보여 줘야 해. 그리고 한 번 뛸 만큼만 먼저 앞서 가다가 비스듬히 옆으로 팔딱 뛰어서 침이 나 있는 철조망 사이로 빠져 나가는 거야. 그러면 개가 가슴 높이의 철조망에 부딪히게 된단다. 나는 많은 개와 여우가 쓰러지는 것을 봤단다. 사냥개 한 마리가 그 자리에서 죽어 버린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봤어. 하지만 마음을 놓아서는 안 돼. 이것을 잘못해서 오히려 목숨을 잃은 토끼도 한두 마리가 아니니까." 랏그는 '구멍 속으로 들어가기'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멋있는 계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솜씨가 좋은 토끼에게는 안전하지만 바보스런 토끼에게는 이 구멍이 죽음의 구멍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어리고 생각없는 토끼는 위험에 부딪히면 제일 먼저 '구멍 속으로 들어가기'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별할 줄 아는 나이 많은 토끼는 다른 기술이 실패할 때까지는 절대로 이 기술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 기술을 쓰면 사람이나 개 또는 매, 부엉이 같은 고기를 먹는 새로부터는 몸을 보호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밍크라든가 스컹크, 하얀 족제비라면 곧 생명을 잃고 맙니다. 이들은 몸이 가늘어서 좁은 구멍을 파고 쫓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늪에는 땅 밑에 구멍이 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는 사닝판크에 있었습니다. 이 구멍은 늪의 남쪽 가장자리에 있습니다. 마른 언덕인데, 주위는 숲이 무성하여 적의 눈으로 잘 볼 수 없는 곳입니다. 남향 비탈이었으므로 엄마토끼와 랏그는 곧잘 이 곳에서 일광욕을 즐겼습니다. 향기 높은 솔잎 사이에서 마치 고양이처럼 하고는 길게 몸을 늘어뜨립니다. 그래서 햇볕을 많이 받아 구석구석까지 몸을 말립니다. 그 동안 이 두 마리의 토기는 눈을 깜빡거리며 마치 아파서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뒹굽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들이 가장 좋을 때 하는 표현입니다. 언덕 위쪽에 큰 소나무 그루터기가 있었습니다. 괴상하게 생긴 뿌리는 노란 모래 언덕 위에 용이 타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이 뿌리 밑에는 아메리카 마르모트가 보금자리 구멍을 파고 있었습니다. 이 마르모트는 아주 언짢아하고 있었습니다. 구멍에서 나온 마르모트는 언덕 위에서 오리판트 씨가 기르고 있는 개와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시간 뒤에는 솜털꼬리 엄마토끼가 이 구멍을 얻어서 쓰기로 했습니다. 이 구멍은 그 후 건방진 젊은 스컹크 놈에게 그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까불이 스컹크는 용기도 없으면서 총을 가진 사람도 자기를 보면 도망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잘못으로 그는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엄마토끼를 영원히 내쫓았다고 생각한 스컹크는 어느 헤브라이 왕국의 임금님처럼 7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또 하나의 구멍--시다라는 구멍은 클로버 들판 이웃의 시다의 수풀 속에 있었습니다. 그 곳은 자고 엉성한 곳입니다. 아무 데도 몸을 숨길 만한 곳이 없을 때 마지막으로 숨을 곳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 구멍도 마르모트가 만든 것입니다. 마음씨 고운 짐승이었으나 아직 젊은 데다가 경솔하여 마침내 사람에게 껍질을 벗기우고 말았습니다. 지금 그 껍질은 오리판트 씨의 마차를 모는 말채찍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나는 바른 재판을 해 주었을 뿐이야." 하고 오리판트 씨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 놈이 우리 집 말에게 줄 꼴을 훔쳐 먹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 그래서 그 놈을 잡아 껍질로 말채찍을 만들었지." 솜털꼬리토끼들은 지금 이 두 구멍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 근처에 길이라도 생겨서 최후로 숨을 집이 적에게 발견이라도 되는 날에는 야단입니다. 그래서 꼭 가야 할 일 이외에는 그 근처에 가지 않기로 하고 있습니다. 두 마리에게는 더욱 살기 좋은 집이 따로 있었습니다. 안쪽이 텅 비어 있는 나무 속입니다. 이 나무는 거의 쓰러질 것 같으면서 잎은 아직 싱싱합니다. 고맙게도 나무 아래위 양쪽에 구멍이 나 있기 때문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가 있었습니다. 이 곳에는 오랫동안 로타라는 곰 아저씨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곰 아저씨는 숲 속에 있는 자기보다 약한 동물들을 잡아먹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차츰 생각이 달라져 곰 아저씨는 토끼 고기를 먹을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그는 닭장을 습격했다가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엄마토끼는 저절로 이 살기 좋은 곳을 물려받게 되었습니다. 덫을 물어뜯어라
8월의 밝은 햇빛이 아침 늪에 쫙 펴졌습니다. 작은 갈색 참새가 연못 속에서 나온 풀 위에 앉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놀이를 되풀이하고 있었습니다. 건너편 쪽에 또 다른 풀들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늪의 참새는 이 폭 넓은 풀잎이 겹쳐진 곳에 두 마리의 동물이 숨어 있는 것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다른 것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데 코만 벌름벌름 하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솜털꼬리토끼인 엄마토끼 모리와 랏그였습니다. 두 마리의 토끼는 풀 밑에서 몸을 축 늘어뜨린 채 가만히 있었습니다. 이 풀의 이상한 냄새를 좋아해서가 아닙니다. 여기에 이렇게 하고 있으면 지독한 풀냄새 때문에 털 속에 붙어서 살고 있는 진드기가 달아나기 때문입니다. 토끼에게는 공부를 위한 특별한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1년이 다 공부하는 시간입니다. 어떤 과목을 어떤 때 배우느냐 하는 것은 그때 그때의 필요에 따라 정해집니다. 두 토끼는 이 풀숲에서 쉬기 위해 왔으나 지금 갑자기 새로운 필요, 즉 새로운 공부를 할 기회가 왔습니다. 나무 위에서 쉬지 않고 감시를 하고 있던 어치가 시끄러운 경보를 울렸습니다. 엄마토끼는 코와 귀를 세우고 꼬리를 등에 바짝 끌어올렸습니다. 늪 저쪽에서 오리판트 씨가 기르고 있는 큰 개가 똑바로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자, 몸을 잔뜩 움츠리고있어야 해. 나는 저 바보를 쫓아 버리고 올 테니까." 엄마토끼는 이렇게 말을 하고 개가 오는 곳으로 겁없이 달려갔습니다. "멍멍멍...." 개는 정신없이 짖으면서 춤을 추듯이 쫓아왔습니다. 엄마토끼는 지금이라도 당장 잡힐 것만 같은 거리를 유지하면서 달리고 있습니다. 개와 엄마토끼의 간격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습니다, 엄마토끼는 이렇게 해서 몇 백만 개나 되는 침 있는 곳으로 이 개를 끌고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곳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엄마토끼의 부드러운 귀가 침에 찔렸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아픔은 참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리하여 개는 보기 좋게 이 작전에 말려들고 말았습니다. 토끼를 잡으려고 만들어 둔 철조망에 개가 걸려들고 만 것입니다. 온몸에 상처를 입은 개는 아픔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이상한 꼴을 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안심하기란 아직 이릅니다. 개가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엄마토끼는 자기의 발자국 냄새를 없애기 위해 둘러가기도 하고 속이기도 하면서 둥지로 돌아왔습니다. 랏그는 무서운 것을 보고는 우뚝 서서 목을 황새처럼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습니다. 엄마토끼는 "이 바보야!" 하고 뒷발로 힘껏 차서 랏그를 흙탕물 속으로 밀어 넣어 버렸습니다. 어느 날, 두 토끼가 클로버 들판에서 먹이를 먹고 있을 때 하늘에서 매 한 마리가 내려왔습니다. 엄마토끼는 아무렇지도 않게 뒷발을 치켜들고 상대방을 위협했습니다. 그리고 곧 몸을 돌려서 잘 알고 있는 길을 따라 들장미가 무성한 숲 속으로 뛰어갔습니다. 물론 침이 많은 숲까지 갔습니다. 매가 따라올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 길은 클리크사이드의 숲에서 스토브 파이프의 숲으로 빠지는 큰 길이었습니다. 이 곳에 덩굴풀 대여섯 그루가 뒤엉켜 있습니다. 엄마토끼는 한 쪽 눈으로 매를 노려보면서 이 덩굴풀을 잘라내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엄마토끼가 일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랏그가 마침내 앞으로 뛰어가서 길을 막고 있는 다른 덩굴풀을 입으로 잘라냈습니다. "그래, 그래" 엄마토끼가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빠져 나가는 길은 언제나 깨끗이 해 두어야 한단다. 가끔 쓰지 않으면 안 되니까. 지금보다 넓지 않아도 괜찮으니 깨끗이 해 두어야 해. 방해가 되는 풀은 다 물어뜯어서 없애 버려야 해. 그러는 사이에 언젠가는 덫을 물어뜯을 수도 있을 테니까." "덫이라뇨?" 랏그는 왼쪽 뒷발로 귀를 긁으면서 물었습니다. "덫이란 말이지, 얼른 보면 풀숲처럼 보여. 하지만 풀숲처럼 늘어지지 않는단다. 덫은 이 세상의 매를 다 모은 것보다도 나쁜 것이란다." 이미 단념하고 멀리 날아가 버린 빨간 꼬리 매를 바라보면서 엄마토끼가 말을 계속했습니다. "왜냐하면 덫이란 놈은 밤낮없이 우리가 빠져 나가는 길목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지. 네가 지나가면 언제든지 잡으려고 기다린단다." "흥, 내가 그런 놈에게 잡힐 것 같아요?" 랏그는 이렇게 말하고 일어서서 높은 곳에 있는 부드러운 가지에 턱과 뺨을 문질렀습니다. 그 모습은 늠름한 젊은이처럼 자랑스럽게 보였습니다. 랏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런 몸짓을 했지만, 엄마토끼는 이것이 자랐다는 증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남자아이가 나이 들면 목소리가 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토끼는 어른이 되기 시작하면 이런 몸짓을 하게 됩니다. 엄마토끼는 자기 새끼가 이제 철없는 꼬마가 아니라 한 마리의 의젓한 솜털꼬리토끼가 될 날이 다가왔다고 생각했습니다. 물은 친구
흐르는 물에는 이상한 힘이 있습니다. 숲 속의 동물들은 자주 무서운 적에게 쫓깁니다. 그럴 때면 필사적으로 도망치지만 잡히기 직전까지 쫓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 마침내 그를 지켜 주는 수호신이 흐르는 물 쪽으로 데려다 줍니다. 동물들은 물 속으로 뛰어들어가서 그 흐름 속에서 원기를 회복합니다. 물의 흐름을 타고 저쪽 기슭으로 가서 무사히 숲 속으로 되돌아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동물들의 냄새가 물에서 끊어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냄새를 맡으며 쫓는 적, 예를 들면 사냥개들은 멈추어 서서 생각해 보지만 언제나 실패하고 맙니다. 이 일은 랏그가 엄마토끼한테서 배운 비밀의 하나입니다. "들판 다음에는 물이 네 친구란다." 엄마토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8월 어느 무더운 밤의 일이었습니다. 엄마토끼는 랏그를 숲 속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엄마토끼의 꼬리 밑에 있는 하얀 솜털이 움직이면서 랏그를 안내하는 등불 같은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편리한 등불은 엄마토끼가 앉아 버리면 보이지 않습니다. 두 토끼는 몇 번이나 멈추고는 귀를 쫑긋 세우고 주위에 적이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 또 뛰었습니다. 마침내 연못가까지 왔습니다. 머리 바로 위 나무에는 청개구리가 앉아서, "개골개골...." 하고 굵은 목소리로 노래부르고 있었습니다. "조용히 따라와." 엄마토끼가 이렇게 말하고는 '풍덩' 소리를 내면서 연못 속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한가운데 떠 있는 통나무 쪽으로 헤엄쳐 갔습니다. 랏그는 뒷걸음질쳤으나 할 수 없습니다. 큰 마음먹고 뛰었습니다. 그는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앗, 차가워!" 그러나 코를 벌름거리면서 엄마토끼를 따라가려고 열심히 헤엄쳤습니다. 땅 위에 있을 때와 같이 몸을 움직이자 물을 가르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이렇게 하여 랏그는 자기도 헤엄을 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엄마토끼는 통나무 높은 곳의 마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물에 젖어 새앙쥐처럼 보였습니다. 랏그도 따라 올라갔습니다. 두 토끼의 주위에는 물 속에서 하늘을 보고 튀어나온 풀이 마치 병풍처럼 감싸고 있었습니다. 연못물은 소리없이 조용해졌습니다. 이 공부는 매우 도움이 되는 공부였습니다. 따뜻하고 어두운 밤에는 스프링필드에서 온 늙은 여우가 자주 늪을 헤매고 다닙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 랏그는 언제나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잘 들었습니다. 아주 위험해졌을 때에는 이 개구리가 안전한 곳으로 길을 안내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랏그에게는 이 개구리의 이상한 노랫소리가, "어서 이리 온. 위험할 때에는 언제든지 와." 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야생 동물은 절대로 늙어서 죽는 일이 없습니다. 제 목숨대로 살지를 못하고, 늦거나 빠르거나 거의 비극적인 마지막을 마치는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모든 야생 동물의 목숨은 얼마나 오래 적으로부터 자기 몸을 보호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랏그의 일생이 나에게 증명해 주었던 것처럼 토끼는 청년 시절을 무사히 넘기면 어른 시절을 쉽게 넘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늙게 되면 쉽게 적에게 걸려들고 맙니다. 솜털꼬리토끼들은 사방 팔방에 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루하루의 생활은 쫓기고 쫓기는 연속이었습니다. 그것은 개, 여우, 고양이, 스컹크, 곰, 족제비, 밍크, 뱀, 매, 부엉이, 사람 게다가 작은 벌레까지도 두 토끼를 쓰러뜨리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엄마토끼와 랏그는 몇 백 번이나 모험을 겪어 왔습니다. 하루에 적어도 한 번은 있는 힘을 다하여 뛰어야 했습니다. 얄미운 스프링필드의 여우는 여러 번 두 토끼를 찾아와서 위험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두 토끼는 샘 옆에 있는 철조망 돼지 우리로 달아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랏그는 한두 번 사냥개에게 쫓긴 일이 있었습니다. 이 때 토끼에게는 개 못지 않게 위험한 상대인 스컹크를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사나운 개에게 스컹크를 넘겨 주고 틈을 봐서 달아났습니다. 랏그는 사냥꾼에게 사로잡힌 일도 있습니다. 사냥꾼이 페리트(하얀 족제비)를 데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페리트는 사냥꾼에게 길들여져서 사냥을 돕습니다. 이 때도 랏그를 쫓아왔는데 랏그는 구멍 속으로 달아났다 그만 잡히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운이 좋아 그 이튿날 달아날 수 있었지만, 이 경험으로 구멍이 믿을 만한 곳이 못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밖에도 몇 번이나 고양이에게 쫓겨서 물에 뛰어들었습니다. 또 셀 수도 없이 매와 부엉이에게 쫓겨 위험을 당했는데, 그 때마다 몸을 지키는 법이 따로 있었습니다. 엄마토끼는 기본적인 방법만 가르쳐 주었습니다. 랏그가 때에 따라 그것을 응용하여 썼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람에 따라서 여러 가지 새로운 방법을 이것저것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나이 들고 머리가 깸에 따라서 랏그는 자기 발의 속력보다도 지혜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보다 안전한 길이었습니다. 레이저는 오리판트 가까이 살고 있는 사냥개의 이름입니다. 주인은 이 개를 훈련시키기 위하여 솜털꼬리토끼인 엄마토끼 모리와 랏그를 쫓게 하였습니다. 쫓기는 것은 대개 랏그 쪽이었습니다. 랏그는 사람과 사냥개에게 쫓기는 것이 여간 재미있지 않았습니다. 사냥개에게 지지 않을 만큼 뛰어서 돌아다니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랏그는 곧잘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것 봐요, 엄마. 개가 또 왔어요. 오늘도 한 바퀴 돌고 와야겠어요." "너는 그 쪽을 너무 자주 봐." 엄마토끼는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만 둬라. 나는 네가 너무 달리다가 큰일나지 않을지 걱정이란다." "하지만 엄마. 저 바보 같은 개를 놀려주는 일이 참 재미있어요. 게다가 나에게는 좋은 연습도 되고요. 만약 바싹 쫓길 때에는 '통통' 하고 두드려서 신호를 보낼 테니 엄마가 와 줘요. 그리고 나하고 교대해요. 나는 잠깐 쉴게요." 이렇게 말하기가 바쁘게 랏그는 뛰어갔습니다. 랏그를 본 레이저는 펄쩍 뛰어서 그 뒤를 쫓아왔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경주가 시작됩니다. 이러는 사이에 랏그는 지쳐버리고 맙니다. 그러면 땅바닥을 두드려서 신호를 보내거나 다른 좋은 방법을 써서 개를 골탕먹여 버립니다. 랏그의 기술을 한가지만 이야기해 볼까요. 랏그가 숲 속에서 어떻게 하고 돌아다니는 지 말입니다. 몰아닥친 재난
랏그는 냄새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의 냄새는 땅바닥 가까이에 가장 똑똑히 남는다. 그리고 몸이 따뜻할 때 그 냄새는 가장 강하다." 이러한 사실을 잘 외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랏그는 땅바닥에서 떨어져 한 30분쯤 몸을 말린 다음 땅바닥에 남아 있던 자기 냄새를 없애 버립니다. 이렇게 해 버리면 적은 랏그의 발자국을 따라올 수 없게 됩니다. 이제 자기 몸은 안전합니다. 이 기술을 써 보자고 결심했습니다. 랏그는 클리크사이드에 있는 들장미 숲 속으로 뛰어갔습니다. 그러나 똑바로 가지 않고 일부러 시간을 걸려 꼬불꼬불한 코스를 따라갔습니다. 그림에 있는 것과 같이 꼬불꼬불한 길입니다. 그 바람에 개는 냄새 뒤를 쫓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말았습니다. 랏그는 작은 데까지 마음을 쓰면서 A, B점으로 가서 통나무가 있는 E점까지 간 다음에 숲 속의 D점까지 갔습니다. 여기서 일단 멈춘 다음 다시 자기 발자국을 따라 F점까지 갔습니다. 이 F점에서 깡총 뛰어서 G점으로 향했습니다. 랏그의 속임수는 또 계속되었습니다. G점에서 다시 발자국 위를 반대로 따라 J점까지 왔습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개가 아까 자기 발자국을 따라 저쪽으로 지나갔습니다. 그것이 I점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랏그는 H점으로 나아가 자기가 걸어왔던 발자국을 따라갔습니다. 크게 뛰어서 통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끝쪽으로 가서 마치 나무 혹처럼 몸을 둥글게 만들었습니다. 레이저는 찔레나무의 미로에서 완전히 시간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거기서 출발하여 D점까지 왔을 때, 토끼의 냄새는 조금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레이저는 어떻게 해서라도 냄새를 찾아내려고 빙글빙글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겨우 발자국을 찾아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된 것일까요? 냄새는 G점에서 끊기고 말았습니다. 레이저는 다시 빙글빙글 돌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점점 더 넓게 돌다가 마침내 랏그가 앉아 있는 통나무 밑에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기온이 낮은 날은 냄새가 밑에까지 잘 내려오지 않습니다. 게다가 랏그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레이저는 그냥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역시 사냥개였습니다. 또 갔다가 되돌아왔습니다. 통나무 밑에서 멈추더니 코를 벌름거렸습니다. "그렇다. 틀림없이 토끼 냄새다." 그러나 그 냄새는 희미했습니다. 그래도 개는 통나무 위로 올라와서 냄새를 맡고 있었습니다. 랏그에게는 괴로운 순간이었습니다. 이만한 일로 약해져서는 안됩니다. 다행히 바람은 반대 방향으로 불고 있었기 때문에 냄새가 개 있는 쪽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만약 개가 반쯤 올라오면 곧 달아나리라 각오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개는 오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 근처에 많이 있는 노랑털의 들개였더라면 틀림없이 토끼가 움츠리고 있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개는 냄새 맡는데만 신경을 집중했기 때문에 오히려 눈안의 사냥감을 놓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게다가 토끼의 냄새도 거의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개는 이 날의 사냥을 단념하고 통나무에서 내려와 가버렸습니다. 개가 지고 토끼가 이겼습니다. 랏그는 엄마토끼 말고 다른 토끼를 본 일이 없습니다. 다른 곳에 자기들과 똑같은 토끼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미 엄마토끼와 떨어져서 살 때가 많았지만 그다지 쓸쓸하다는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토끼란 동물은 친구들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12월의 일이었습니다. 랏그는 빨간 층층나무 숲에서 클리크사이드 숲으로 빠지는 새로운 길을 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사닝판크 위에 알지 못하는 토끼의 머리와 귀가 튀어나와 있었습니다. 이 서투른 토끼는 새로운 곳을 발견하여 매우 만족스럽다는 듯 깡충깡충 뛰면서 오솔길을 지나 이 늪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랏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화가 나기도 하고 미워지기도 했습니다. 이 마음은 시샘하는 마음이기도 했습니다. 이 토끼는 예사로 랏그가 문지르기에 쓰는 나무 가까이에 왔습니다. 문지르기에 쓰는 나무란 토끼가 벌떡 일어서서 될 수 있는 대로 키를 크게 하여 턱을 문지르는 나무입니다. 랏그가 이런 짓을 하는 것은 나름대로의 버릇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수토끼면 누구나 하는 짓입니다. 문지르기 나무는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됩니다. 언제나 몸을 문지르기 때문에 토끼 냄새가 지독하게 납니다. 다른 토끼가 이 문지르기 나무에 오면 거기에 남아 있는 몸냄새에 의하여 다음과 같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늪은 이미 다른 토끼의 것이다. 누가 옮겨 와도 편안하게 살 수가 없다. 또 조금 전에 왔던 토끼가 자기와 알고 있는 토끼인지. 모르는 토끼인지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새로 나타난 토끼는 문지르기 나무에서 턱을 문지르고 있습니다. 랏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보다 키가 목만큼은 더 크고, 또 몸도 그만큼 더 큽니다. 완전히 새로운 감정이 랏그의 몸에 번져 나갔습니다. 그 토끼를 죽여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랏그는 입을 꼭 다물었습니다. 평평한 땅에 와서 뒷발로 천천히 신호를 보냈습니다. "통... 통... 통..." 이것은, "내 늪이니까 나가라. 그렇지 않으면 싸움이다." 하는 토끼의 신호였습니다. 새로 나타난 토끼는 V자 모양으로 귀를 세우고는 잠시 동안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앞발을 땅에 내리고 랏그보다 훨씬 강한 신호를 보냈습니다. "통... 통... 통..." 이것은, "흥, 네가 나가거라. 그렇지 않으면 몰아내겠다." 하는 뜻입니다. 이리하여 서로 선전 포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두 토끼는 서로 비스듬한 언덕받이로 올라가려고 했습니다. 어느 쪽도 상대보다 유리한 자리에 서려고 하는 태도였습니다. 서로 조심스럽게 노려보았습니다. 새로 나타난 토끼는 뼈대가 단단하고 눈도 또렷한 사나이 대장부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공격은 그리 신통치가 않았습니다. 그렇게 지혜가 있는 토끼는 아니었고, 이 싸움을 힘으로 이겨 볼 생각인 것 같았습니다. 그 토끼가 잽싸게 덤벼들었습니다. 랏그도 총알처럼 덤벼들어 그를 맞이했습니다. 두 토끼는 서로 뛰어올라가 뒷발로 찼습니다. 랏그는 머리가 좋고 재치있는 토끼였으나 싸움에는 그렇게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탁탁!" 상대방의 공격을 받고 작은 랏그는 그만 나가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일어나려고 했을 때 재빨리 상대방이 입을 벌리고 뛰어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물어뜯었습니다. 몇 군데의 털을 랏그의 몸에서 뜯어냈습니다. 발이 빠른 랏그는 어떻게 해서 상대방으로부터 빠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몸을 고쳐서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번에도 나가떨어져서 털을 물어뜯기고 말았습니다. 이 힘센 토끼에게는 이빨이 아무래도 들어갈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랏그는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일보다 자기 목숨을 지키는 일에 더 힘쓸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상대방은 랏그를 죽여서 단숨에 이 늪을 빼앗으려고 전속력으로 쫓아왔습니다. 여기저기 상처는 나 있었지만 역시 랏그의 발이 빨랐습니다. 숨도 차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이 덤벼들 때마다 살짝 몸을 피했습니다. 몸이 무거운 상대방으로서는 랏그를 찾아오기란 매우 힘든 일이었습니다. 드디어 그는 숨을 헐떡거리더니 쫓아오는 것을 단념하고 말았습니다. 랏그도 피로와 상처의 아픔 때문에 무척 지쳐 있었습니다. 계속 쫓겼더라면 큰일날 뻔했습니다. 상대방이 큰 토끼였기 때문에 랏그에게는 오히려 다행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뒤부터 랏그에게는 두려운 시간이 계속되었습니다. 그 토끼가 이 늪에 살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랏그가 받은 훈련은 부엉이, 개, 족제비, 사람들을 상대로 한 것이었습니다. '다른 토끼를 상대로 할 때에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랏그는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랏그가 알고 있는 것은 몸을 낮게 움츠리고 있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달아나는 것뿐이었습니다. 다시 늪의 주인으로
불쌍하게 엄마토끼 모리는 이제 완전히 늙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랏그를 도와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자기 혼자서 안전한 곳으로 달아날 수도 없습니다. 어디든지 몸을 숨기려고 우물쭈물할 뿐이었습니다. 새로 나타난 그 토끼는 엄마토끼를 발견하고 말았습니다. 달아나려고 했지만 엄마토끼는 랏그만큼 발이 빠르지 못했습니다. 드디어 새로 나타난 그 토끼에게 잡히고 말았습니다. 이 토끼는 엄마토끼가 암토끼라는 것을 알고는 당장 죽이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염치없는 토끼는 엄마토끼에게 사랑을 하려고 했습니다. 엄마토끼가 싫다고 달아나자 쫓아와서 귀찮게 했습니다. 이 토끼는 날마다 엄마토끼 옆에서 귀찮게 굴었습니다. 그래도 엄마토끼가 자기를 계속 미워하자, 쓰러뜨린 다음 털을 뽑아 씹었습니다. 이런 짓을 하고는 약간 확 풀렸는지 얼마 동안은 엄마토끼를 그냥 내버려두었습니다. 이제 이 토끼의 목표는 랏그를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랏그는 한시도 마음놓고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잠깐 눈을 붙였다가도 '보스락!' 하는 소리만 나면 곧 있는 힘을 다해서 달아날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 토끼는 랏그가 자고 있는 곳에 왔습니다. 그 때마다 랏그는 벌떡 일어나서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 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봤지만, '거기에 가면 여기보다 더 위험할지도 몰라.' 하고 단념했습니다. 그러나 이 늪에 있는 한 랏그는 자기의 목숨을 노리는 다른 토끼에게 쫓겨야 했습니다. 그래도 랏그는 충실히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엄마토끼가 날마다 고통을 받으며 털을 뽑히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먹이가 있는 곳과 기분 좋은 잠자리와 땀흘려 이루어 놓은 길도 다 이 토끼에게 빼앗기고 있습니다. 랏그는 이러한 것들이 힘센 동물의 손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랏그는 여우보다도 페리트보다도 이 이웃 동족인 토끼가 가장 미웠습니다. 달아나고 감시하고 험한 음식을 먹고 하는 동안 랏그는 점점 야위어 갔습니다. 엄마토끼도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서 눈에 보일 만큼 약해져 있었습니다. 이 토끼는 참 비겁한 놈이었습니다. 진정한 토끼라면 아무리 서로 미워하고 있어도 토끼들의 공통의 적이 나타나면 싸움을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이 토끼는 말없이 정해 놓은 규칙을 깨뜨려 버렸습니다. 어느 날, 큰 매 한 마리가 늪으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이 토끼는 제일 먼저 안전한 곳에 몸을 숨기면서 랏그를 벌판으로 몰아내는 것이었습니다. 랏그는 한두 번 매에게 발견되었으나, 그 때마다 들판의 찔레나무가 랏그를 도와 주었습니다. 오히려 이 토끼가 거꾸로 매에게 잡힐 뻔했습니다. 그래서 이 뻔뻔한 토끼는 겨우 그 나쁜 버릇만은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사태는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랏그는 이 늪에서 사는 것을 단념했습니다. 어느 날 밤, 랏그는 엄마토끼와 함께 이 곳을 떠나 새로운 곳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사냥개 레이저가 늪 밖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지 코를 벌름거리고 있었습니다.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랏그에게 떠올랐습니다. 죽든지 살든지 한 번 결판을 내 볼 생각이었습니다. 랏그는 일부러 눈에 잘 띄는 곳으로 나가 사냥개 앞을 뛰었습니다. 쫓고 쫓기는 사태가 지금까지 없었을 만큼 격렬했습니다. 랏그는 다음과 같은 계획을 세웠던 것입니다. 엄마토끼는 이미 안전한 곳에 숨겨 두었습니다. 얄미운 이 토끼는 여느 때와 같이 자기 집에 있었습니다. 펄쩍 뛰어서 이 토끼의 집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을 들이받았습니다. 머리 위를 뛰어넘으면서 뒷발로 찼습니다. "이 자식, 죽여 버릴 테다!" 이 토끼는 랏그에게 덤벼들었습니다. 랏그의 계략에 걸려 들고 말았습니다, 사냥개는 이 토끼든 저 토끼든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랏그와 싸울 때는 유리했던 이 토끼도 이렇게 되자 목숨을 빼앗길 형편이 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이 토끼는 랏그처럼 여러 가지 기술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반대로 돌기'나 '멀리 돌기' '구멍으로 들어가기' 등 아기토끼도 할 수 있는 단순한 기술뿐이었습니다. 사냥개는 이 토끼 뒤를 바짝 쫓고 있었습니다. '반대로 돌기'나 '멀리 돌기'를 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구멍으로 들어가기'도 어디에 구멍이 있는지 이 토끼는 알지 못했습니다. 추적은 일직선이었습니다. 들장미는 어느 토끼에게도 친절했기 때문에 보호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나쁜 토끼에게는 별로 효과가 없었습니다. 사냥개가 짖는 소리, 숲 속의 나뭇가지에 걸리는 소리, 그리고 토끼의 부드러운 귀를 물어뜯는 사냥개의 아우성치는 소리가 숨어 있는 두 토끼에게도 들려 왔습니다. 갑자기 이런 소리가 끊어졌습니다. 사냥개가 이 토끼를 노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무서운 비명,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랏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온몸이 벌벌 떨렸습니다. 그러나 그 소리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는 두려움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랏그는 다시 이 늪의 주인이 된 것을 마음 속으로 기뻐했습니다. 여우에게 쫓겨서
오리판트 늪은 오리판트 할아버지의 땅이었습니다. 동쪽과 남쪽에 있는 작은 나무들을 불태워 버리고 샘물 바로 아래에 철조망을 치고 돼지우리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할아버지의 당연한 권리였습니다. 그러나 엄마토끼와 랏그에게는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숲 속에는 몇 군데 살기 좋은 곳이 있었습니다. 또 감시하기 좋은 곳도 있었습니다. 돼지우리 쪽은 더없이 좋은 요새였으며 안전하게 숨을 수가 있었습니다. 두 토끼는 오랫동안 이 숲에서 살고 있었으므로, 이 곳의 땅도 건물도 모두 자기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 곳을 점령했다. 그러니까 이 곳은 우리 나라다." 이러한 토끼들의 주장은 많은 국민이 국토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과 똑같은 일이었습니다. 이 이상 더 당연한 권리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습니다. 1월, 눈이 녹는 사이에 오리판트 할아버지 집 식구들은 연못가의 숲 속에 남아 있는 나무들을 완전히 잘라 버렸습니다. 그래도 두 토끼는 이 늪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무척 고생해서 얻은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곳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러나 두 토끼의 영토는 바깥쪽에서부터 벌거숭이 땅이 되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없었던 많은 위험이 닥쳐왔습니다. 그래도 랏그의 발은 아직 빨랐으며 숨도 차지 않았고, 지혜도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에 위험을 넘길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 이 조용한 곳에 밍크가 와서 한동안 두 토끼를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써서 오리판트 할아버지 집의 닭장 쪽으로 데리고 가자 밍크는 그 쪽으로 옮겨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후 오리판트 할아버지가 이 밍크를 잡았는지는 잘 모릅니다. 어쨌든 토끼들은 안전을 제일로 삼고 있었습니다. 당분간 오솔길 구멍을 이용하는 것은 그만두었습니다. 대신 들장미 숲이나 아직 남아 있는 숲 속 가까이에 숨어 있기로 하였습니다. 눈이 완전히 녹고 날씨도 좋아져서 따뜻했습니다. 엄마토끼는 관절염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낮에는 숲 속으로 들어가 티베리란 약초를 찾고 있었습니다. 이 약초는 힘을 내게 하는 효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랏그는 동쪽에 앉아서 겨울철의 약한 햇볕을 쬐고 있었습니다. 오리판트 할아버지의 집이 보였습니다. 굴뚝에서 간간이 뿌연 연기가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 건너편에 안채와 마찬가지로 지붕을 금색으로 칠한 헛간이 노아의 방주처럼 서 있었습니다. 거기서 들려 오는 소리와 연기와 함께 날아오는 맛있는 냄새로 랏그는 그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곧 알아냈습니다. 헛간 앞마당에서 가축들이 양배추 먹이를 얻어먹고 있는 것입니다. 입 안에서 저절로 침이 고였습니다. 양배추를 좋아하는 랏그는 코를 실룩거리며 여러 번 눈을 깜짝였습니다. 실은 어제 저녁에 그 헛간으로 뛰어 들어가서 클로버 잎을 조금 가지고 왔습니다. '또 한번 양배추를 훔치러 가 볼까?' 그러나 영리한 토끼는 절대로 같은 곳을 두 번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랏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랏그는 양배추 냄새가 나지 않는 곳으로 가서 마른 풀 더미에서 떨어진 풀 한 다발을 주워서 저녁을 일찍 마쳤습니다. 잠자리에 들려고 했을 때 엄마토끼가 왔습니다. 엄마토끼는 힘이 나는 약풀을 먹고, 또 사닝판크 근처에 있는 달콤한 자작나무 잎으로 푸짐한 식사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해가 졌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쳤습니다. 눈이 쌓였을 때보다 더 춥게 느껴졌습니다. "엄마, 참 추워요. 우리들의 숲이 그대로 남아 있었더라면 따뜻해서 좋았을 텐데요." 랏그가 말했습니다. "이런 밤은 소나무 밑에 있는 구멍 속으로 들어가면 따뜻하지." 엄마토끼가 말했습니다. 그러나 엄마토끼는 조심스럽게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그 밍크 녀석의 털가죽이 헛간 끝에 매달려 있는 것을 아직 못 봤어. 그것을 보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가 없어." 속이 텅빈 나무도 없어졌습니다. 실은 이 나무는 오리판트 할아버지 집을 땔감 두는 곳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 속에는 두 토끼가 싫어했던 밍크가 들어 있었습니다. 두 토끼는 연못 남쪽으로 뛰어갔습니다. 그리고 낮은 나무 숲 속에 들어가서 몸을 기대어 잠을 잤습니다. 그러나 만약의 경우 다른 방향으로 달아나기 위하여 코끝만은 다른 방향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바람이 세게 불었습니다. 한밤중에는 숲 속을 빠져 나가는 바람이 '윙윙' 하는 소리를 냈습니다. 이런 밤에는 사냥하기에는 좋지 않습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스프링필드에서 온 늙은 여우가 이 근처를 빙빙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여우는 숲 속으로 들어와서 잠을 자고 잇는 두 토끼의 냄새를 맡았습니다. 여우는 냄새가 나는 쪽으로 걸어왔습니다. 엄마토끼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 여우는 이미 훨씬 가까이까지 와 있었습니다. 엄마토끼는 급히 랏그의 수염을 건드렸습니다. 랏그는 재빨리 눈을 떴습니다. 그 때 여우가 두 토끼에게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빨리 두 토끼는 깡총 뛰어서 달아났습니다. 엄마토끼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할 눈보라 속을 있는 힘을 다하여 뛰었습니다. 실패한 여우는 놓칠 수 없다 는 듯이 마치 경마처럼 쫓아왔습니다. 한편 랏그는 다른 방향으로 달렸는데 마치 바람 같은 속력으로 달아났습니다. 엄마토끼는 외길로 달렸습니다. 그 앞에는 토끼가 마지막으로 도망칠 수 있는 연못이 있었습니다. 엄마토끼는 여우가 따라올 수 없는 진흙 위를 지나 겨우 연못가로 왔습니다. 엄마토끼는 돌아볼 틈도 없었습니다. 덮어놓고 앞으로 달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첨벙첨벙 진흙탕물을 튀기면서 잡초를 헤치고 달렸습니다. 그리고 깊은 물 속으로 '풍덩' 하고 뛰어갔습니다. 잇달아 여우도 뛰어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얼어붙는 듯한 밤에 물속으로 뛰어든 여우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여우는 부르르 떨면서 곧 되돌아갔습니다. 엄마토끼는 깊은 쪽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저쪽 기슭까지 헤엄쳐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심한 바람을 안고 가야 했습니다. 차가운 얼음 속에서 엄마토끼는 심한 피로를 느꼈습니다. 녹기 시작하던 눈이 물과 섞여 부드러운 얼음이나 진흙처럼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엄마토끼가 나아가는 것을 막았습니다. 저 멀리에 건너편 기슭의 지면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여우란 놈이 먼저 돌아가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엄마토끼는 심한 바람을 피하기 위하여 기다란 귀를 축 늘어뜨려서 있는 힘을 다하여 물을 헤쳤습니다. 차디찬 물 속을 지칠 때까지 헤엄쳐 갔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단숨에 기슭의 숲에까지 닿을 수 있을 만한 곳까지 왔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큰 눈덩어리가 흘러와서 엄마토끼를 가로 막았습니다. 그리고 기슭 위에서 바스락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여우가 숨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엄마토끼는 겁에 질려 힘이 쭉 빠졌습니다. 눈덩어리를 피할 수도 없어서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에 엄마토끼는 저쪽까지 밀려가 버렸습니다. 엄마토끼는 다시 헤엄을 쳤습니다. 그러나 남아 있는 힘은 조금밖에는 없습니다. 천천히 헤엄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겨우 물 속에 나 있는 나무 위에 닿았습니다. 이미 네 다리는 추위에 얼어 있었고, 힘은 다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작은 심장은 완전히 약해져 있었습니다. 눈앞이 희미했습니다. 이제는 여우가 있든지 없든지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겨우 나무를 지나 잡초가 무성한 숲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엄마토끼는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그녀의 발걸음은 느려졌습니다. 주위의 얼음은 차디찬 엄마토끼의 몸을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약해진 네 다리는 발버둥칠 수조차 없었고, 작은 코 끝을 움직일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갈색의 상냥한 눈은 이내 죽음으로 감추어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사실 연못 기슭에는 여우가 없었습니다. 숲 속을 흔든 바람 소리가 불쌍한 엄마토끼의 목숨을 빼앗아간 것입니다. 한편 랏그는 처음 공격을 받았을 때 곧 '몰래 빠져 나오기'를 하여 엄마토끼를 도우려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오는 도중에 엄마토끼를 기다리고 있던 여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랏그는 이 나쁜 놈을 멀리까지 끌고 가서 철조망 속으로 달아났습니다. 여우는 이 기술에 말려들었습니다. 머리에 날카로운 가시가 박혀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랏그는 다시 돌아와서 냄새를 따라 신호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대답 소리는 아무 데서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찾아 봐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랏그는 엄마토끼를 찾지 못했습니다. 엄마토끼는 일찍부터 친구였던 물의 얼음 위에서 두 번 다시 눈을 뜰 수 없는 잠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쌍한 엄마토끼 모리. 그녀야말로 진정한 영웅이었습니다. 토끼라는 약한 동물 세계 속에서 할 수 있는 데까지 노력을 다하다가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엄마토끼의 몸은 랏그의 몸이었고, 랏그의 뛰어난 머리는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것입니다. 엄마토끼는 랏그 속에 살아있습니다. 그리하여 랏그를 통해서 그 우수한 소질을 그의 종족에게 전해 주는 것입니다. 랏그는 지금도 이 늪에서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늪의 주인인 오리판트 할아버지는 그 해 겨울에 죽었습니다. 게으른 그의 아들들은 늪을 정리하고 철조망 울타리를 고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1년도 채 되기 전에 이 늪은 거칠어지고 말았습니다. 새로 나무가 자라났고, 찔레나무도 살아났습니다. 쓰러진 철조망은 많은 솜털꼬리토끼의 성이 되었고, 숨는 집이 되었습니다. 랏그는 이제 크고 힘센 수토끼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떤 적이 나타나도 두렵지 않습니다. 어디서 찾았는지는 모르지만, 아름다운 갈색 털을 가진 아주머니와 많은 가족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물론 랏그도, 그의 아이들도, 또 그 손자들도 이 늪에서 오래오래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여러분이 땅 위에서 토끼가 어떻게 신호를 보내는지 알면, 해가 불게 물드는 노을에는 언제든지 토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집 개 이야기
빙고와 소몰기
1882년 11월 초순이었습니다. 나는 중부 캐나다의 마니토바에 있었습니다. 북쪽나라에는 겨울이 빨리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나는 아침밥을 먹고 나서 마음 편하기 의자에 등을 기대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유리창 너머로 들판과 소 외양간이 보였습니다. 이것은 창틀에 끼인 한 폭의 풍경화처럼 보였습니다. 방 한쪽에는 오래 된 노래를 쓴 종이 쪽지가 압정으로 꽂혀 있었습니다. "프랭클린의 강아지가 목장의 울타리를 뛰어넘었다. 그래서 빙고라고 이름 붙였다. 꼬마 빙고라고 이름 붙였다... ." 노래는 더 길지만 나머지는 줄이기로 하겠습니다. 빙고란 볼타 스콧의 작품에 나오는 사냥을 좋아하는 남작 이름입니다. 나는 바깥을 보기도 하고 종이 쪽지를 보기도 하면서 편안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꿈 같은 경치는 금방 깨지고 말았습니다. 큰 회색 동물이 들판을 가로질러 소 외양간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 뒤를 따라서 달리는 흰색 검은색의 작은 동물들. "이리닷!" 나는 총을 들고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내가 가기 전에 두 마리의 동물이 외양간을 뛰어나와 눈 위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한 마리는 이리이고, 이것을 쫓고 있는 것은 이웃 목장의 코리개였습니다. 이리는 홱 몸을 돌려서 쫓고 있는 개에게 맹렬하게 덤벼들었습니다. 개는 공격하는 것을 풀고 빙글빙글 그 주위를 뛰면서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면서 물어뜯을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멀리서 총을 연달아 두 발을 쏘았습니다. 그러나 총소리는 들판을 요란하게 하는 효과밖에는 없었습니다. 이 겁없는 개는 한 바퀴 돌고는 마침내 적에게 덤벼들어 머리와 엉덩이를 물었습니다, 그런가 했더니 이번에는 이리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서로 노려보기도 하고 눈을 차면서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눈 내리 넓은 들판 여기저기서 2, 3백 미터마다 같은 광경이 몇 번이나 되풀이되었습니다. 개는 그 때마다 이리를 사람들이 사는 집 쪽으로 쫓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리는 동쪽에 보이는 검은 숲 속으로 도망치려고 했습니다. 나는 눈 위를 부지런히 뛰었습니다. 이 싸움이 무려 1킬로미터 반이나 계속된 다음에 나는 겨우 뒤따랐습니다. 개는 나를 보더니 힘을 얻었는지 이리에게 뛰어들었습니다. 2, 3초마다 위에 있기도 하고 아래에 있기도 했습니다. 드디어 이르는 뒤로 벌렁 나자빠졌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개는 이리의 목덜미를 물고 늘어졌습니다. 이젠 이쪽이 이겼습니다. 나는 다가가서 이리의 얼굴에 라이플 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격렬했던 눈 위의 싸움은 끝났습니다. 이 용감한 개는 적이 완전히 죽은 것을 보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똑바로 자기 농장으로 뛰어갔습니다. 이웃 농장까지는 6킬로미터나 됩니다. 개는 거기서 기다리고 있는 주인에게 달려갔습니다. 정말 멋진 개였습니다. 가령 내가 응원하러 가지 않았더라도 개는 혼자 힘으로 이리를 쓰러뜨렸을 것입니다. 나는 이 코리개에게 완전히 반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쓰러진 이리는 보통 들이리였는데, 회색 이리보다는 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개에게는 매우 힘든 상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이 프랭크라는 이름의 코리개는 자기보다 훨씬 큰 이리를 몇 마리나 해치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이웃 농장에 갔습니다. 아무리 비싸도 좋으니 개를 팔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팔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개의 새끼라도 사렵니까?" 프랭크는 팔지 않는다고 했으므로 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이 개의 새끼인 강아지로서 만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프랭크의 짝꿍이 낳았다고 합니다. 이 강아지는 검정 털을 갖고 있으며 아주 똑똑하게 생긴 것이 꼬리가 긴 곰 같았습니다. 그래도 프랭크의 털가죽에 있는 것과 같은 황갈색 무늬가 있는 것이 보기 좋았습니다. 코 언저리에 있는 하얀 테도 프랭크를 꼭 닮았습니다. 이것이 뒷날 이 개를 구별하는 데 특징이 되었습니다. 나는 이 개에게 종이 쪽지의 노래에서 힌트를 얻어 빙고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동작이 느리고 뚱뚱한 이 장난꾸러기 개는 우리 집에서 겨울을 났습니다. 먹이를 배 하나 가득히 넣고는 날마다 몰라볼 만큼 자랐습니다. 이 개는 쥐잡기를 하기 위해서 코를 구멍에 밀어 넣어서는 안 된다고 몇 번이나 야단을 맞아서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고양이와 사이좋게 지내려다 오히려 상대에게 오해를 받았습니다. 싸움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두 동물은 매우 심각하게 노려보곤 했습니다. 끝내 빙고는 상대방이 있는 안채를 피해서 헛간에서 자게 되었습니다. 봄이 되었습니다. 나는 마음먹고 이 어린 개에게 훈련을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그랬지만 개도 무척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성과가 있어서 개는 한 가지 일을 확실하게 외웠습니다. 그것은 울타리도 담도 없는 들판에 방목되어 있는 우리 집 소를 찾아서 데리고 오는 일이었습니다. 빙고는 내가 명령을 내리기만 하면 곧 소를 몰고 왔습니다. 이렇게 자기가 할 일을 외우자 빙고는 이 일 하기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명령이 떨어지지가 바쁘게 좋아서 큰 소리로 짖으며 뛰어가게 되었습니다. 들판을 잘 볼 수 있도록 가끔 춤을 추듯이 뛰면서 정신없이 달려갑니다. 이리하여 마침내 소를 앞세우고 전속력으로 돌아옵니다. 소가 숨을 거칠게 쉬면서 외양간 구석으로 들어갈 때까지 1초도 용서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소를 몰아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더욱 상냥하게 대하는 것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개가 무척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에 좋을 대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빙고는 내가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소를 데리러 가게 되었고, 점점 이 버릇이 심해졌습니다. 이 소몰기는 하루에 한두 번이 아닙니다. 무려 열 번 이상이나 되풀이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잠깐 산책이라도 하고 싶으면 당장 뛰어나가서 불쌍한 소를 몰고 왔습니다. 그리하여 소들은 언제나 얄미운 개에게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점점 마르기 시작하더니 젖도 가늘게 나왔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빙고의 소몰기를 못하게 하려고 손을 썼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결국은 그에게 이 일을 그만두게 될 때까지 맡겨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빙고는 그 후 명령을 어기고 소몰기를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소의 젖을 짜고 있는 동안 언제나 외양간 문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것은 아직도 그 놀이에 대한 흥미가 없어지지 않았다는 증거였습니다. 소의 젖을 짜는 일은 형인 프레드가 하는 일이었습니다. 여름이 되어 소 주위에는 마치 안개처럼 모기가 모여들었습니다. 소는 이 모기를 쫓으려고 꼬리를 쉴새없이 흔들어댑니다. 젖을 짜는 사람에게는 이것이 골칫거리였습니다. 형은 성질이 좀 급했지만, 대단한 발명가이기도 했습니다. 형은 쇠꼬리에다가 벽돌을 매달았습니다. 이렇게 해 두면 이제 소가 꼬리를 흔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은 목을 갸웃거렸으나 형은 이 고안에 매우 만족했습니다. '오늘은 일을 잘할 수 있을 거야.' 이렇게 생각하고 신나게 젖을 짜냈습니다. 한참 지나자 모기 떼가 날아왔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사람 몸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소는 벽돌을 매단 채로 꼬리를 흔들었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형은 귀를 벽돌에 맞았습니다. 게다가 모두가 떠들어댔기 때문에 형의 얼굴이 벌개졌습니다. 형은 젖을 짤 때 올라서는 받침대로 실컷 소를 후려쳤습니다. 순간 밖에서 뛰어온 빙고가 소에게 덤벼들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자기가 필요할 때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 때문에 큰 소동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소는 놀라서 난폭해졌고, 빙고는 쓸데없이 설쳤습니다. 형이 소와 빙고를 끌고 나갔습니다. 불쌍한 빙고는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잘 몰랐습니다. 빙고는 형을 도와서 소를 혼내 주었는데 왜 야단을 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빙고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야단을 맞은 것은 저 바보 같은 소 때문이다.' 이 때부터 빙고는 소를 싫어했습니다. 이제는 외양간 앞에 얼씬거리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빙고는 소를 돌보지 않았으나, 대신 말에게 관심을 옮기기 시작하여 마구간 일에 열성을 쏟았습니다. 소는 내 것이었고, 말은 형의 것이었습니다. 빙고가 마구간에서 봉사하게 되자, 나와는 등을 돌린 것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나와 빙고와의 만남은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갑자기 어떤 사건이 생기거나 하면 빙고는 어김없이 우리 집을 찾아 주었습니다. 또 어떤 때는 내가 빙고에게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사람과 개 사이의 인연은 한평생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빙고는 그 후 꼭 한 번 소몰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1년에 한 번씩 가을에 열리는 카베리 장터에서의 가축 경기에서였습니다. 이 경기에는 코리개의 훈련 콘테스트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승한 개는 주인과 함께 영예를 받을 뿐만 아니라 2달러의 상금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나는 어떤 장난꾼 친구의 꼬임에 넘어가 빙고를 이 경기에 참가시켰습니다. 많은 소가 들판에 방목되어 있었습니다. 마침내 시간이 되자 빙고에게, "소를 몰아서 오너라." 하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물론 심사위원석에 있는 자리까지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빙고는 알아듣고는 줄곧 뛰어갔습니다. 지난 여름에 훈련시킨 솜씨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소는 빙고가 오는 것을 보자 있는 힘을 다해서 도망쳤습니다. 소는 자기 외양간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빙고도 지금까지의 버릇처럼 그 쪽으로 소를 몰고 갈 생각이었습니다. "아니!" 하는 사이에 두 마리의 소와 개는 들판을 가로질러 자기들의 집을 향해서 뛰어가더니 마침내 모습을 감췄습니다. 개도 소도 심사위원들 앞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상금은 다른 코리개에게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정보 교환소
말을 충실히 지키는 일에 있어서 빙고는 정말 훌륭했습니다. 낮에는 말과 함께 다니고, 밤에는 마구간 앞에서 잤습니다. 말이 가는 곳은 어디든지 따라다녔습니다. 말에서 빙고를 떼어 내기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빙고는 마치 말 주인처럼 행세했습니다. 그러나 이일에 관해서는 한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나는 원래 미신을 믿지 않았으며 징조 같은 것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빙고가 주연을 한 이상한 사건에는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 무렵 드윈턴 농장에는 형과 나 두 사람밖에는 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아침, 형은 보기 골짜기로 마른풀을 한 차 분을 베러 갔습니다. 거기까지 갔다 오려면 꼬박 하루가 걸렸습니다. 형은 새벽에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셈인지 그날 따라 빙고는 말을 따라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형은 열심히 빙고를 부르는데 빙고는 좀 떨어진 곳에 서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말을 곁눈질해 보며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빙고는 갑자기 코를 하늘 쪽으로 돌려 슬픈 듯이 길게 울었습니다. 그래서 형은 그대로 출발했습니다. 빙고는 마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전송했습니다. 그러다가 1백 미터쯤 따라가다가 가끔 슬픔을 참지 못하는 것 같은 소리를 되풀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날 하루 종일 이 개는 헛간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빙고가 말 곁에서 떨어지려고 했던 것은 이번뿐이었습니다. 여전히 빙고는 슬픈 듯이 울부짖었습니다. '어떤 불길한 일이 없었으면 좋을 텐데... .'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내 마음은 무거워졌습니다. 6시경이 되자 빙고는 '우, 우' 하는 울음소리로 변했는데, 듣고 있을 수 없는 소리였습니다. 나는 아무것이나 집어 던지면서, "저쪽으로 가!" 하고 야단을 쳤습니다. '아아, 나는 왜 형을 혼자만 보냈을까? 살아서 다시 형을 만날 수 있을까?' 나는 개의 행동을 봐서 형에게 무서운 일이 일어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나는 좀더 일찍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형이 돌아올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형 프레드는 짐을 싣고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나는 마음을 놓고 형에게 물었습니다. "다른 일은?" "아니 별로."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그렇다면 징조 같은 것은 절대 없다는 것일까요? 훨씬 후에 나는 점을 잘 치는 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심각한 얼굴을 하고 물었습니다. "빙고는 어떤 위험한 일이 있을 때에는 당신 곁으로 오나요?"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웃고 넘길 일이 아닙니다. 그 날 위험이 있었던 것은 형이 아닙니다. 당신이었습니다. 그 개는 집에 남아서 당신을 도왔던 겁니다." 이듬해 봄이 되자 나는 또 빙고를 교육시켰습니다. 그렇게 하자 빙고도 나에게 여러 가지 일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나와 형이 살고 있는 집과 카베리트 마을 사이에는 3킬로미터 가량 되는 넓은 들판이 있었습니다. 이 들판 중간에는 낮은 언덕이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 농장의 경계를 나타내는 기둥이 세워져 있습니다. 빙고는 어찌 된 영문인지 이 기둥 가까이에 오기만 하면 냄새를 맡으면서 무엇인가를 검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나는 무엇을 하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데, 주의해서 보니까 이리도, 이웃의 개들도 모두 여기에 와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내가 멀리서 망원경으로 조사한 것입니다. 이것으로 내가 확실히 알 수 있었던 것은 이 기둥이 어떤 협정에 의해 개들끼리의 무엇인가를 기록해 두는 장소가 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개들의 코는 예민합니다. 어떤 희미한 냄새도 놓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 기둥에 코를 대고 벌름거리기만 하면 최근 어떤 친구들이 여기에 왔는지를 곧 알아 버립니다. 마침내 개들의 기록 장소는 이 기둥만이 아니라 이것은 전국을 연결하는 정보망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비슷한 동물들이 이 곳에 적당한 사이를 두고 흩어져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기록 장소는 기둥에 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눈에 뜨기 쉬운 말뚝이나 돌, 들소 머리뼈 등이 이 일을 맡고 있었습니다. 나는 다시 더 재미있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개와 이리는 이런 것들을 통해서 소식을 서로 나눈다는 것입니다. 이 곳에 가까이 다가와서 주의 깊게 그 냄새를 맡으면 최근에 누가 여기에 왔는지를 곧 압니다. 이것은 사람이 자기가 잘 다니는 클럽으로 가서 누가 왔는지 명부를 뒤적여 보는 것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빙고는 기둥의 냄새를 맡더니 목과 등의 털을 세우고는 으르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눈을 번쩍거리며 뒷발로 땅바닥을 파헤치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짓을 사람의 말로 바꾼다면 아마 이럴 것입니다. "이 냄새는 마카시의 못된 들짐승이다. 그 놈을 오늘 밤 혼을 내 주겠다." 그리고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빙고는 발자국 냄새를 다 맡아 보고는 혼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음... 이리란 놈이 북쪽에서 왔구나. 이 발자국에는 죽은 소 냄새가 나는구나. 볼와스 씨의 목장에 있던 늙은 소도 마침내 죽어 버렸구나. 어디 한번 알아봐야지." 이 밖에도 꼬리를 흔들면서 주위를 맴돌며 자기가 왔다는 것을 알리려고 몇 번이나 이웃집에 들락날락한 일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틀림없이 브란돈에서 돌아온 빌--빙고의 형--이 이웃에 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날 밤, 빌이 빙고를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두 마리는 함께 언덕으로 가서 죽은 말고기로 다시 만난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로 우연히 일어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손에 넣은 정보가 흥미를 끄는 것이라면 다음 신호소로 보내 주는 일도 있습니다. 때로는 조사한 다음 주의를 끌지 못하는 것에는 떠들지를 않습니다. 어쨌든 빙고는 이런 말을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는 듯했습니다. "글세, 이 냄새는 도대체 누구 것일까?" "잠깐, 어쩐지 이 녀석은 지난 여름에 보테지에서 혼내 주었던 놈 같아." 보테지란 강과 강 사이를 이어 주는 육지의 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빙고가 이 기둥에 가까이 가서 온몸의 털을 다 세웠습니다. 그리고 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배가 아픈 것 같았습니다. 이것은 곧 무섭다는 것을 나타내는 증거입니다. 빙고는 더 이상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고 곧장 집으로 가 버렸습니다. 이상하게도 30분이 지나도 세워진 털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미움과 두려움이 뒤섞인 그의 얼굴빛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 남겨진 발자국을 조사해 보고는 빙고가 무서워한 까닭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회색 이리의 발자국이었습니다. 빙고는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회색 이리 놈이 얼마 전에 왔다 갔구나. 아이 무서워!" 이러한 것들을 빙고는 나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빙고에 대해 대개의 것을 알아 버렸습니다. 빙고는 가끔 마구간의 추운 가장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켜고 몸에 쌓인 눈을 털어내 버렸습니다. 그리고 침착한 발걸음으로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나는 혼자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흥, 네가 가면 어디로 가? 이 집에서 나가려고? 나는 다 알고 있어, 뭐든지." 나의 사랑하는 개
1884년 가을, 드원턴 농장은 문을 닫았습니다. 그래서 빙고는 내 손에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나하고 가장 친하게 지내던 고든 라이트 씨에게 빙고를 주었습니다. 빙고는 고든 할아버지 집의 마구간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런 일은 아직 경험하지 못했지만, 빙고는 번갯불을 무척 싫어했습니다. 강아지 때부터 방 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번개가 칠 때만은 달랐습니다. 빙고가 천둥 소리를 두려워하는 것은 그것이 총소리와 같은 소리가 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확실히 총소리를 싫어했기 때문에 천둥 소리도 싫어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총을 싫어하는 버릇은 몇 번 경험한 사냥총 때문입니다. 그 원인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빙고의 잠자리는 겨울이라도 마구간 밖이었습니다. 그래서 밤에 놀러 다니는 것이 자유로웠습니다. 빙고는 한밤중에도 들판을 몇 킬로미터나 돌아다닌 것 같습니다. 그 증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농부인 고든 할아버지 집에 조심스럽게 나타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밤중에 당신 사냥개를 묶어 두지 않으면 엽총을 쏘겠어." 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빙고는 어떤 일을 당했는지, 총에 대해서는 굉장히 무서워했습니다. 훨씬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 이런 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어느 겨울 밤, 이리 한 마리가 눈 위에서 다른 이리를 죽이는 것을 봤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그것은 고든라이트 씨의 개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빙고는 얼어죽은 소나 말의 시체를 발견하면 밤마다 거기에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모이는 이리들을 쫓아 버리고 마음껏 맛있는 요리를 먹는 것이었습니다. 밤놀이의 목적이 다만 떨어져서 살고 있는 사냥개를 물어 주는 일 정도로 그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변상해 드리겠습니다." 하고 사냥개 주인을 달랬습니다. 그런데 만의 하나라도 어떤 불행한 일이 일어나서 빙고의 종자가 끊어진다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렇게 잘라 말했습니다. "나는 세 마리의 새끼를 거느린 이리를 봤어요. 물론 새끼들은 어미를 닮았어요. 그런데 모두 몸집도 크고 검은 색을 띠고 있었어요. 그리고 콧가에는 하얀 테 같은 털이 나 있었어요." 나는 곧 빙고의 코 언저리를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 이야기가 진짜인지 거짓인지 나 자신도 고개를 기웃거릴 일을 경험했습니다. 나는 빙고를 데리고 썰매를 몰고 갔습니다. 그러자 이리 한 마리가 굴 속에서 갑자기 뛰어나왔습니다. 이리가 달리자 빙고도 전속력으로 뒤쫓아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이리는 진짜로 도망치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얼마 뒤쫓아가지 않아서 빙고는 이리 가까이에 갔습니다. '자, 어떤 일이 일어날까?' 정말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두 마리 사이는 마치 친한 사이처럼 싸움 같은 것을 하지 않았습니다. 빙고는 귀여운 상대라는 태도로 이리의 코 언저리를 핥아 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빨리 해치워 버려!" 큰 소리로 내가 말했습니다. 내가 다가가서 소리치자 마침내 이리는 허둥지둥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빙고는 다시 뒤쫓아갔습니다. 뒤쫓아간 빙고의 태도는 여간 부드럽지 않았습니다. "하하... 저 놈은 암놈이리라. 그래서 빙고가 덤벼들지 않는 것이다." 마침내 그 까닭을 알게 된 내가 소리치자. "정말 놀랬다!" 하고 고든 할아버지는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나는 우물쭈물하고 있는 빙고를 불러 데리고 다시 달려갔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부터 나는 몇 주간에 걸쳐 이리의 집을 막아버렸습니다. 닭을 죽이기도 하고, 더구나 집 안에 놓아둔 돼지고기를 훔쳐 가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동물은 어른들이 집을 비운 사이에 창문을 넘어다보며 아이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 동물에 대해서만은 빙고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러는 사이에 마침내 암놈은 총에 맞아 죽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빙고는 이 동물을 죽인 올리버 씨에게 복수라도 하겠다 듯이 노려보며 자가의 생각을 나타냈습니다. 그런데, 사람과 개가 여러 가지 어려움을 없애고 서로 믿고 지내는 일은 참 아름다운 것입니다. 파트라라는 사람이 개를 통한 어느 인디언 부족의 싸움에 대해 써 놓은 것을 읽은 일이 있습니다. 파트라는 미국 독립전쟁 때 영국군 쪽에서 인디언 문제를 관리했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멀리 북쪽 지방에 살고 있는 인디언에 대해 놀랄만한 보고를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기르던 사냥개가 죽자 동족끼리 싸움이 벌어졌는데, 그 종족이 전멸에 가까운 상태까지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알 만한 이야기입니다. 사냥개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나를 사랑하거든 개까지도." 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재판을 걸기도 하고 싸움을 하기도 합니다. 이것과 관계있는 일인데, 이웃에 참 좋은 사냥개가 있었습니다. 다른 주인들과 마찬가지로 이 주인도, "우리 개야말로 이 세상에서 제일 뛰어나고 귀여운 개다." 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냥개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사냥개가 심한 상처를 받고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나는 주인과 함께 화를 냈습니다. 상금도 거고 사건의 증거가 될 만한 정보도 모았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사냥개를 죽인 사람을 찾아내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이러는 사이에 뜻밖의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주인의 아들이 나를 불러내고는 주위를 살피더니 슬픈 얼굴을 하고 속삭였습니다. "우리 개를 그렇게 한 것은 빙고입니다." 나는 질겁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빙고와는 이제 인연을 끊겠다.' 이렇게 결심하고 열심히 따르던 정의의 빙고를 못 본 체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려고 했으나 무척 괴로웠습니다. 나는 빙고를 다른 사람에게 주었으면서도 아직 내 것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나와 빙과와의 깊은 우정은 이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 나오는 사건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냥개를 죽인 문제가 이럭저럭 끝나갈 무렵이었습니다. 또 빙고가 새로운 사건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고든 할아버지와 올리버 씨는 서로 친한 이웃 사촌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나무를 베러 함께 가서 날마다 겨울 해가 질 때까지 사이좋게 일해 왔습니다. 어느 날 올리버 씨의 늙은 말이 죽었습니다. 이 시체는 말에게는 좀 미안한 일이지만 쓸모가 있었습니다. 들판으로 끌고 나가 그 말고기 속에다 독을 넣어서 놓아 두었습니다. 못된 동물들을 잡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빙고가 이것을 발견했습니다. 빙고가 죽은 말고기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그대로입니다. 이러한 고기에는 독이 들어 있기가 십상입니다. 빙고는 몇 번이나 위험한 일을 당했지만, 역시 이리 같은 생활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빙고는 그 날 밤, 고든 할아버지 집의 카리를 데리고 말 시체가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결과를 봐서 빙고는 이리 떼를 쫓느라고 말고기를 많이 먹을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눈 위에 남아 있는 발자취가 이런 것을 이야기해 주고 있었습니다. 독은 오는 도중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카리는 괴로워하면서 집에 오자 고든 할아버지의 발 앞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나를 사랑하거든 개도..." 란 말은 사실입니다. 어떤 설명도 어떤 변명도 사랑하는 개를 죽인 상대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카리의 죽음은 우연한 일이라고 올리버 씨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고든 할아버지는, "일부러 이웃 개를 죽이는 사람이 있겠소?" 하고 화를 냈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친 빙고와 올리버 씨와의 나쁜 사이가 지금 할아버지의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 때부터 빙고는 올리버 씨를 미워했으며, 사람과 개는 서로 원수처럼 지냈습니다. '이웃 사람인 그 누군가 빙고를 독먹이를 먹여서 없애 버릴려고 했기 때문에 귀여운 카리를 데리고 갔던 것이다.' 고든 할아버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무를 함께 베는 계약은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이상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카리의 죽음은 친한 이웃 사람들을 원수처럼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 사이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사이는 점점 나빠져서 주위 사람들을 끌어넣어 마침내 이편과 저편으로 나뉘어 싸우게 되었습니다. 빙고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빙고도 독먹이를 조금 먹었습니다. 빙고가 독먹이 때문에 고생한 것은 여러 달이었습니다. 나는 이 개가 옛날처럼 그런 훌륭한 개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봄이 되자 빙고는 다시 원기를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파란 풀잎이 솟아 나오는 것처럼 빙고는 그 전과 같이 나에게는 자랑스럽고, 이웃 사람에게는 일을 보살펴 주는 개가 되었습니다. 덫에 걸려서
다른 일 때문에 나는 얼마 동안 마니토바를 떠나 다른 곳에 가 있었습니다. 1886년에 돌아와 보니 빙고는 아직 고든 라이트 씨의 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2년이나 비워 두었기 때문에, '빙고는 이제 나를 완전히 잊어버렸을 거야.'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첫 추위가 오는 겨울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빙고는 이틀 동안이나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이상한 꼴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한 쪽 발에는 이리의 덫이 걸려 있었습니다. 빙고는 이 무거운 덫에 달린 통나무를 끌고 돌아온 것입니다. 그 발은 차가워져서 마치 돌처럼 굳어져 있었습니다. 빙고는 몹시 사나워졌습니다. 덫을 풀어 주려고 해도 누구한 사람 가까이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맹수처럼 날뛰는 빙고 곁으로 갔습니다. 지금은 이미 내 얼굴조차 잊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한 쪽 손으로 덫을 잡고, 다른 한 쪽 손으로는 빙고의 발을 꼭 잡았습니다. 빙고는 내 손목을 물었습니다. 가만히 보면서 내가 소리쳤습니다. "빙고, 나를 잊었니?" 그의 이빨은 아직 내 손목의 살갗을 물지는 않았습니다. 빙고는 급히 입을 놓고는 '핫핫' 하고 나를 알아보았습니다. 내가 덫을 풀어 주는 동안 빙고는 아파서 낑낑거리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나에게 덤벼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는 곳도 다르고 몇 년이나 만나지 않았지만 빙고는 아직도 나를 주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도 이 개를 다른 사람에게 주었는데도 내 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빙고가 싫어하는 것을 나는 억지로 끌고 집 안에 들어와 차가워진 발을 따뜻하게 해 주었습니다. 겨우내 그는 절뚝거리고 있었는데, 발가락 두 개가 빠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은 이 정도로 끝났습니다. 봄이 되자 빙고의 건강과 힘은 다시 살아났습니다. 얼른 보면 덫에 걸렸던 흔적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빙고는 마치 불사신과 같은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해 겨울에 나는 이리와 여우를 많이 잡았습니다. 빙고가 한 번 걸렸던 덫이라면 좀처럼 도망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불행한 동물들이었습니다. 껍질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상금은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봄이 되었을 때까지 덫을 쳐 두었습니다. 케네디 들판은 동물들이 덫에 잘 걸리는 곳이었습니다. 이 곳에는 사람들이 잘 오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 들판은 깊은 숲과 마을과의 사이에 있었습니다. 나는 이 곳에서 언제나 동물의 껍질을 많이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4월말경 나는 다른 때처럼 덫을 살펴보기 위해서 떠났습니다. 이리 덫은 무거운 강철로 만든 것으로써, 2개의 스프링이 달려 있습니다. 둘 다 50킬로그램 정도의 힘을 가진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땅 속에 묻은 먹이 주위에 4개씩 한 짝으로 겁니다. 그리고 숨겨 놓은 통나무에 단단히 연결시킵니다. 그리고 면화와 모래로 조심스럽게 덮어서 잘 보이지 않게 해 둡니다. 이 덫 하나에 이리가 걸려 있었습니다. 나는 몽둥이로 이 놈을 때려잡은 다음 다시 덫을 손질했습니다. 지금까지 몇 백 번이나 해 본 일이기 때문에 빨리 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덫에 쓰는 스패너를 말이 서 있는 쪽에 훌쩍 던져 놓고 손질을 시작했습니다. 덫을 더욱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는 옆에 있는 모래에 손을 뻗었습니다. 그런데 일이란 언제나 하는 일이라고 마음을 놓으면 실패하기 십상입니다. 이 때의 내가 바로 그랬습니다. 갑자기 무엇이 손을 때렸습니다. '아차!' 하고 생각했을 때에는 이미 덫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다행히도 이 덫에는 이빨이 없었으며 두꺼운 장갑을 끼고 있었기 때문에 용수철의 힘이 줄어들어 상처는 입지 않았습니다. 지금 나는 손가락 관절에서 끝 쪽을 물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을 당했을 때, 당황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침착하게 발을 길게 뻗었습니다. 방금 던진 스패너를 끌어 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발은 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발가락으로 뒤쪽을 찾아보았습니다. 어쩜 발가락이 덫을 풀 수 있는 열쇠에 닿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 노력도 실패였습니다. 쇠붙이 같은 것에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서 찾았지만 역시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 주위를 살펴보니, 내 위치가 지나치게 서쪽으로 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몸을 슬슬 돌리면서 더욱 열심히 발가락으로 열쇠를 찾았습니다. 나는 오른쪽 발로 찾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왼쪽 발을 소홀히 하고 말았습니다. 다시 철커덕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왼발은 또 다른 덫에 걸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내가 이렇게 된 처지를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나는 아무리 몸부림쳐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덫에서 빠져 나올 수도 없고 덫을 땅 밑에서 끌어낼 수도 없습니다. 다만 땅바닥에 누워 있을 수밖에는 없습니다. "아, 나는 어떻게 될까?" 추운 계절은 이미 지나가 버렸기 때문에 얼어죽을 위험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케네디 들판에는 겨울에 나무꾼이 올 뿐, 좀처럼 사람이 땅을 밟지 않는 곳입니다. 게다가 내가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내 힘으로 살아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리에게 잡혀 먹히거나, 추위와 굶주림 때문에 죽게 되거나 둘 중의 하나밖에는 없습니다. 누워 있는 나를 남겨둔 채 저녁 해는 들판 저쪽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몇 미터 앞쪽에 큰 마르모트와 같이 생긴 동물의 둥지가 있었습니다. 그 언덕 위에서 종달새가 저녁 노을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팔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추위가 온몸에 닥쳐왔습니다. '그렇다. 저 종달새는 어제 저녁에도 우리 집 문 앞에서 똑같이 저녁 노을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내 마음은 금방 고든 라이트 씨의 집, 즐거운 저녁 식탁으로 날아갔습니다. 내가 타고 왔던 말은 아직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내가 내렸던 그 자리에 서서 주인이 빨리 타 주지 않나 하고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은 왜 이렇게 늦게 돌아오지 않는지를 생각하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내가 말을 부르자 풀을 씹던 입을 멈추고 낭패스럽다는 듯 무엇인가 말을 하고 싶어하는 얼굴을 했습니다. 이 말이 혼자서 집에 가 주기만 하면 됩니다. 빈 안장을 보기만 하면 사정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누군가가 도와 주러 올 것이다.' 그러나 이 미련한 동물은 아무 쓸모가 없었습니다. 주인이 추위와 굶주림에 죽어가고 있어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빙고가 왔다!
나는 갑자기 언젠가 덫을 잘 놓는 지로 할아버지가 없어졌던 일을 생각했습니다. 이듬해 봄 곰덫에 걸린 발뼈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로 할아버지였습니다. '나도 그렇게 될까? 그렇다면 나의 어느 부분이 나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릴 수가 있을까?' 나는 이런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른 일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내 덫에 걸린 이리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았습니다. 밤은 점점 깊어갔습니다. 이리 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귀를 쫑긋 세우고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안됐다는 듯이 목을 늘어뜨렸습니다. 또 다른 이리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렇게 땅에 누워 갈갈이 찢기는 길밖에 없단 말인가?' 이리들은 서로 울면서 연락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습을 나타내지는 않았습니다. 얼마간 시간이 흘렀습니다. 희미한 그림자 같은 것이 가까이 오는 듯했습니다. 말이 처음 그것을 발견했습니다. 말은 놀라서 콧소리를 냈습니다. 이리는 허둥지둥 달아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다가왔습니다. 이번에는 가까이까지 와서 내 주위에 빙 둘러앉았습니다. 그 중에서 특히 용기 있는 놈이 천천히 걸어와서 그 근처에 쓰러져 있는 친구의 시체를 끌어당겼습니다. 아까 내가 죽여서 덫에서 풀어 놓은 놈이었습니다. 나는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이리는 나직하게 짖고는 뒤로 물러섰고, 말은 놀라서 좀 멀리 달아났습니다. 그러자 또 그 놈이 다시 다가왔습니다. 두세 번 이런 일이 되풀이되었습니다. 이리는 죽은 이리의 시체를 옮겨갔습니다. 죽은 이리는 친구들에 의해서 먹혀 버렸습니다. 시체를 다 먹어 치운 이리들은 다시 더 가까이까지 왔습니다. 딱 버티고 앉아서 나를 가만히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가장 용기 있는 놈이 사냥총 냄새를 맡고는 진흙을 끼얹었습니다. 나는 자유로운 한 쪽 발로 차며 소리쳤습니다. 그 놈을 펄쩍 뛰며 물러났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었습니다. 내가 약해짐에 따라서 그 놈은 대담해져 갔습니다. 이번에는 똑바로 와서 내 얼굴을 보며 짖었습니다. 다른 놈들도 이것에 힘을 얻었는지, 짖으면서 다가왔습니다. '아아, 나는 가장 바보라고 생각하고 있던 이 놈들에게 죽는단 말인가?' 그 때였습니다. 갑자기 어둠 속에서 크고 검은 이리 한 마리가 큰 소리로 으르렁거리면서 뛰어왔습니다. 다른 이리들은 모두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달아났습니다. 그러나 한 마리만은 버티고 있었습니다. 이 놈도 검은 이리에게 눈 깜짝할 사이에 시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나 하나뿐입니다.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그 순간의 공포! 그 사나운 동물은 나에게 덤벼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리가 아니었습니다. 빙고, 빙고였습니다. 틀림없는 내 빙고였습니다! 빙고는 '헉헉' 하고 숨을 내뿜으며 거칠게 파도치는 옆 허리를 내 몸에 비벼댔습니다. 그리고 내 차디찬 뺨을 문질러 주었습니다. "빙고, 빙고 너였구나. 저 스패너를 집어 줘!" 빙고는 잽싸게 뛰어가서 내 총을 물고 와 주었습니다. 그는 내가 원하는 것을 잘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냐, 내 스페너다!" 이번에 물고 온 것은 내 어깨띠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마지막에는 내 스패너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제 되었다는 것을 안 빙고는 좋다고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이제 됐다!" 나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손을 움직여 겨우 나사를 풀었습니다. 덫은 둘로 갈라지더니 손이 빠졌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발입니다. 나는 금방 자유로운 몸이 되었습니다. 나는 천천히 걸어서 피가 맺혔던 곳을 문질렀습니다. 그리고 말에 올라탔습니다. 처음에는 천천히 걸었으나 다음에는 조금씩 뛰었습니다. 빙고가 앞장서서 뛰었습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빙고의 이상한 행동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빙고에게 덫을 놓는 일을 구경시킨 일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그날 따라 빙고는 숲 쪽을 바라보면서 슬프게 울었습니다. 밤이 되자 빙고는 못 가게 하려는 사람의 손을 뿌리치고 어둠 속으로 달아났습니다. 어떤 힘에 끌렸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빙고는 내가 있는 곳에 와서 나에게 덤벼들려고 하는 이리를 쓰러뜨리고 나를 해방시켜 주었던 것입니다. 충실한 늙은 개 빙고, 빙고는 이상한 개였습니다. 이튿날, 마음은 나와 함께 하고 있으면서도 빙고는 길을 걸으며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고든 할아버지의 아들이, "자, 사냥하러 가자!" 하고 외치자 좋아서 뛰어 달아났습니다. 나와 빙고와의 관계는 훨씬 후까지 변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빙고는 이리와 같은 생활을 조금도 바꾸지 않았습니다. 얼어죽은 말이 있으면 반드시 찾아내어 먹어 버렸습니다. 그 바람에 빙고는 또 독먹이를 먹고 말았습니다. 심한 고통을 느낀 빙고는 고든 할아버지의 집으로 가지 않고 우리 집으로 왔습니다. 그 날 밤 나는 이웃집에 가고 없었습니다. 이튿날 집으로 돌아온 나는 현관에 턱을 괸 채 눈 소에 싸늘한 시체가 된 빙고를 발견했습니다. '아아, 마음 속으로는 마지막까지 내 개였던 빙고! 나를 찾아오면 반드시 고통을 덜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 빙고가 바랐던 것은 나의 도움이었던 것입니다. 영리한 여우 부부이야기
닭 도둑
큰 아버지 집의 암탉이 한 달 넘게 차례로 모습을 감추고 있었습니다. 그냥 둘 수 없다고 하여, 내가 여름 방학에 돌아오자 곧 그 원인을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원인은 어렵지 않게 알아냈습니다. 닭은 잠을 자기 위해 횃대 위로 올라가기 전이나, 횃대 위에서 내려온 다음에 잡혀갔습니다. 숫자는 한 번에 한 마리씩으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가지고 간 것으로 봐서 사람이 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사람이라면 횃대 위에서 자고 있을 때가 더 잡기 편합니다. 그리고 한 번에 한 마리씩 훔치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높은 횃대 위에서 잡혀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곰이나 부엉이를 의심할 수도 없습니다. 반쯤 먹다가 버려 놓지 않은 것으로 봐서 족제비나 밍크나 아닌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틀림없이 여우의 짓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근처에는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건너편 기슭에는 소나무 숲이 있습니다. 나는 시냇물가를 조심스럽게 조사해 봤습니다. 여우의 발자국과 털을 발견했습니다. 생각했던 대로였습니다. 나는 더욱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찾아내기 위해 시냇물 기슭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러자 뒤에서 까마귀가 울어댔습니다. 돌아보자 까마귀 떼가 막 내려와 앉으려고 했습니다. 이제 알았습니다. 도둑이 도둑을 잡으려고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입에 무엇을 문 여우가 있었습니다. 이 여우는 큰아버지의 집에서 또 새로운 닭을 훔쳐온 것이 틀림없습니다. 까마귀들은 자기들이야말로 부끄럼을 모르는 도둑들이었는데 언제나 제일 먼저, "도둑 잡아라!" 하고 떠들면서 잡은 것을 나누어 가지고 는 입을 다뭅니다. 까마귀와 여우 사이에 싸움이 시작되려고 했습니다. 여우가 숲 속으로 가려면 시냇물을 건너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여우가 가는 길에는 난폭자 까마귀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날카로운 부리의 공격을 받으면 상당히 어려운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여우는 재빨리 달렸습니다. 정말 빠른 걸음이었습니다. 까마귀들이 내 모습에 놀라 달아난 틈을 이용해 여우는 필사적으로 도망쳤습니다. 내가 서둘러 뒤를 쫓아갔지만 여우는 있는 힘을 다하여 암탉을 물고 숲 속으로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많은 양식이 규칙적으로 운반되어 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여우의 집 속에 새끼 여우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나는 여우의 집을 발견하기로 했습니다. 그 날 저녁 때, 나는 곧 사냥개 레이저를 데리고 시냇물을 건너 숲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냥개가 냄새를 찾으려고 빙빙 돌아다녔습니다. 그 때 나무가 울창한 골짜기에서 여우의 짧고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사냥개는 재빨리 그 쪽으로 쫓아갔습니다. 쫓고 쫓기는 추적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사냥개는 똑바로 사라졌습니다. 짖는 소리가 언덕을 넘어 멀리 사라졌습니다. 마침내 그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해가 졌습니다. 약 1시간쯤 지나자 레이저가 돌아왔습니다. 8월의 더위 속을 힘차게 달렸기 때문에 숨을 헉헉거리며 지쳐서 내 발 밑에 와서는 옆으로 드러누웠습니다. 그 순간 여우의 울음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 왔습니다. 사냥개가 벌떡 일어나더니 어둠 속으로 두 번째의 추적을 시작했습니다. 마치 뱃고동 같은 소리로 짖으면서 북쪽으로 뛰어갔습니다. 레이저가 짖는 소리는 점점 멀리 사라지고 마침내 들리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깊은 숲 속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똑똑똑... 이렇게 가까운 곳에 샘이 있다는 것은 전혀 몰랐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더운 밤에 샘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그 소리를 따라가서 생각하지도 않던 샘을 발견했습니다. 한 모금, 또 한 모금 마셨습니다. 부엉부엉... 부엉이의 울음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갑자기 거친 숨소리와 낙엽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레이저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습니다. 입에서는 거품을 내놓고, 배는 크게 파도를 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슴과 배는 땀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내 손을 핥으려고 하다가 곧 땅바닥에 드러누워 버렸습니다. 거친 숨소리가 모든 소리를 죽여 버렸습니다. 그 때 또 여우의 울음소리가 몇 미터 앞에서 들려 왔습니다. "알았다!" 나는 그 뜻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지금 여우의 집 근처에 있는 것입니다. 두 마리의 어른여우가 교대로 나와 사냥개를 멀리 끌어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날 밤은 너무 늦었기 때문에 사냥개를 데리고 집에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거의 해결되었다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스카 페이스와 그 친구들
늙은 여우 한 마리가 그 가족과 함께 이 근처에 살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가까이에 있다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이 여우는 스카 페이스(상처투성이)로 불려지고 있었습니다. 상처가 눈에서부터 귀 뒤에까지 크게 있었습니다. 토끼를 쫓다가 철조망의 침에 찔렸던 것 같습니다. 나은 다음에 하얀 털이 났기 때문에 이 여우는 확실한 표적이 되었습니다. 올해 겨울, 나는 이 여우와 만나서 얼마나 꾀가 많은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눈이 온 뒤에 나는 사냥을 하러 나갔습니다. 도중에 스카 페이스가 걸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곳은 낡은 물레방아가 있는 뒤였는데 수풀이 움푹 패인 곳입니다. 그래서 곧 숨을 죽이고 서서 스카 페이스가 이 곳 깊은 숲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있었습니다. 여우는 머리를 숙이지도 않고 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스카 페이스는 나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여우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저쪽 숲으로 먼저 돌아갔습니다. 거기서 기다렸다가 여우가 가는 것을 막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나는 내가 목적한 곳으로 가서 꽤 오랫동안 가만히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셈인지 여우는 나올 기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상하게 생각하고 그 근처를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러자 이제 막 숲에서 나온 여우의 발자국이 발견되었습니다. 그것을 따라가자 이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스카 페이스가 내 훨씬 뒤쪽에 딱 버티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참 우스워 죽겠다는 태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발자국을 살펴보고 알았지만, 여우는 나를 발견하고는 금방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이 약은 여우는 모른 체하고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내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서는 재빨리 뛰어서 내 뒤로 간 다음 혼자서 기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봄이 되어 스카 페이스가 얼마나 약아빠진 놈이었나를 알려 주는 한 좋은 보기를 만났습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목장 건너편에 있는 약간 높은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곳은 산등성이에서 1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산등성이에는 회색과 갈색의 둥근 돌이 몇 개 굴러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근처까지 왔을 때 친구가 말했습니다. "저쪽에서 세 번째에 놓여 있는 돌은 여우가 둥글게 하고 있는 것 같군." 그러나 나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래도 지나가 버렸습니다. 또 몇 미터 걸어갔을 때 바람이 세게 불었습니다. 바람은 그 둥근 돌 위로 불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부드러운 털이 파도가 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틀림없이 저건 여우야. 지금 놈은 잠이 깊이 들었어." "그렇다면 금방 시험해 볼 수 있어." 내가 돌아서서 그 쪽으로 한 걸음 옮겼을 때 벌떡 일어난 것은 틀림없는 스카 페이스였습니다. 여우는 똑바로 달아났습니다. 들불에 타 버린 목장에는 검게 탄 허리띠 모양의 흔적이 길게 한 줄 남아 있었습니다. 스카 페이스는 그 뒤를 뛰어가다가 다시 태워져 있지 않은 노란 풀이 있는 곳에 오자 어디론가 모습을 감추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만약, 우리가 몰랐더라면 여우는 그대로 돌처럼 보이게 하여 가만히 있었을 것입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우가 돌처럼 보이게 한다든지 노란 풀처럼 보이게 하는 그런 단순한 일이 놀랍다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가 그런 것들과 닮아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언제나 이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침내 나는 숲을 지나서 큰아버지 집 헛간을 식량 창고로 하고 있는 것이 스카 페이스 와 그의 아내인 빅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숲 속의 집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흙으로 된 큰 산이 높이 쌓여져 있습니다. 요 몇 달 사이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굴을 파낸 뒤의 흙의 틀림없었습니다. 그런데 굴을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영리한 여우는 굴을 팔 때 그 근처에 흙을 버리기는 하지만, 그거시 굴을 찾을 수 있게 하는 표적이 되게 하는 짓은 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다시 옆으로 굴을 파서 숲까지 닿을 수 있도록 긴 터널을 만듭니다. 그리고 처음에 판 굴은 입구를 영원히 막아 버립니다. 숲쪽에 있는 출입구만 씁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흙을 쌓아 둔 반대쪽을 살펴보았습니다. "있다, 있어." 마침내 나는 진짜 출입구를 찾아냈습니다. 그 안쪽에 새끼 여우가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발견했습니다. 언덕을 덮고 있는 풀들을 헤치고 올라가니 큰 시나라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이 나무는 늙어서 속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뿌리 쪽에 큰 구멍이 있었고, 그 위에는 작은 구멍이 있었습니다. 나는 어릴 때 곧잘 이 구멍 속으로 들어가서 '스위스의 로빈슨 일가' 놀이를 했습니다. 난파하여 무인도로 가서 살았던 로빈슨 일가의 모험담에서 생각해 낸 놀이였습니다. 부드러운 나무 벽에 계단을 파 놓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습니다. 다행히도 여우의 굴은 이 시나나무 바로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게는 옛날의 그 놀이가 그대로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튿날, 나는 해가 뜨자마자 곧바로 거기에 달려갔습니다. 나무 위에서 여우 집 안의 형편을 잘 볼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굴 속에서 나온 네 마리의 새끼 여우가 있었습니다. 보송보송한 털, 긴털투성이의 발, 그리고 천진한 얼굴 생김새--이러한 새끼 여우들을 마치 염소를 닮았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해 보니 폭이 넓고, 코가 날카롭고, 눈길이 사나운 얼굴 등은 얄미운 스카 페이스의 소질을 받은 것이 확실히 나타났습니다. 새끼 여우들을 햇볕을 쬐기도 하고 서로 얽혀서 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이상한 소리가 나면 놀이를 그만두고 허둥지둥 굴 속으로 뛰어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해서 도망쳤으나 이것은 별로 필요가 없었습니다. 숲에서 살짝 나타난 것은 어미 여우 빅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여우는 암탉을 입에 물고 있었습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틀림없이 세 번째의 닭이었습니다. 어미 여우가 낮은 소리를 부르자 꼬마들이 구르듯이 뛰어나 왔습니다. 새끼 여우들은 아직 살아 있는 닭에게 덤벼들며 싸웠습니다. 오늘은 크게 싸움을 벌이는 놈도 있어 매우 시끄러웠습니다. 어미 여우는 조심스럽게 주위에 눈 주면서 매우 만족스럽다는 듯이 새끼 여우들은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즐거운 듯 사람의 웃음 비슷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얄미운 얼굴이었습니다. 여는 때처럼 잔인하고 신경질을 부리는 것 같은 모습도 없지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강하게 나타나는 것은 모성애의 따뜻한 사랑이 빛이었습니다. 속여서 치기
시나라는 나무는 뿌리 쪽에 수풀이 많이 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우들을 놀라게 하지 않고 자유롭게 드나들 수가 있었습니다. 나는 며칠 동안을 이 곳에 다니면서, 새끼 여우들이 어미 여우한테서 훈련을 받고 있는 것을 충분히 구경했습니다. 새끼 여우들은 다른 소리가 나면 먼저 꼼짝하지 않고, 마치 작은 돌부처처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리가 다시 들리거나, 또 다른 무서운 상대를 보면 얼른 달아납니다. 동물 중에는 모성애가 매우 강해 주위의 것들에게 이익을 주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미 여우 빅센만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예를 들면 쥐나 새를 잡아왔을 때 마치 악마처럼 부드럽게 크게 다치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그래서 이 살아 있는 것을 새끼 여우들이 충분히 곯려 줄 수 있도록 둡니다. 둥지 건너편 언덕에 과수원이 있습니다. 이 곳에 아메리카 마르모트가 한 마리 살고 있었습니다. 아름답지도 않고 재미있지도 않은 작은 동물입니다. 그러나 자기 몸을 지키는 방법만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늙은 소나무의 그루터기와 그루터기 사이에 굴을 파 놓고 있었기 때문에 여우들은 함부로 팔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힘들여서 일을 한다는 것은 여우들의 생활 방침에 어긋납니다. 여우들은 지혜만으로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 아메리카 마르모트는 아침마다 그루터기 위로 나와서 햇볕을 쬐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조심했습니다. 여우가 보이기만 하면 얼른 굴 속으로 뛰어들어갑니다. 좀더 가까운 곳에 적을 발견하면 굴 안쪽 깊숙이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위험한 것이 어디론가 사라질 때까지 꾹 참고 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여우 부부는 어떤 의논을 한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아메리카 마르모트란 동물이 어떤 동물인가를 새끼들에게 알려 줘야겠다고 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꾀를 써서 아메리카 마르모트를 꾀어 내려고 했습니다. 그 작전은 이러한 것이었습니다. 여우 부부는 아메리카 마르모트에게 들키지 않도록 하면서 살짝 과수원 울타리까지 갔습니다. 다음에는 스카 페이스만 과수원 울타리를 지나 과수원 안에 모습을 나타내어서, 그루터기가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었습니다. 마치 배우와도 같이 걸으며, 아메리카 마르모트 쪽은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조심스런 상대는 곧 그루터기에서 내려와 자기 굴 출입구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스카 페이스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우가 하는 짓을 봐서는 그다지 위험한 일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될 수 있는 대로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는 굴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여우가 생각한 함정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숨어 있던 어미 여우 빅센이 재빨리 뛰어나와 그루터기 뒤에 몸을 숨겼습니다. 스카 페이스는 아직도 천천히 걸어가고 있습니다. 아메리카 마르모트는 얼마 후 나무 뿌리 사이에서 살짝 얼굴을 내밀고 주위를 살폈습니다. 보니, 여우란 놈이 앞으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젠 안전하다.' 여우가 멀리 갈수록 아메리카 마르모트는 밖으로 기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그루터기 위로 올라왔습니다. 그 순간 숨어 있던 빅센이 뛰어나와 이 동물을 잡고 말았습니다. 스카 페이스는 이렇게 되어 가는 것을 곁눈질하고 가다가 재빨리 도우러 왔습니다. 그러나 빅센이 이것을 잡아서 굴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자기는 별 볼이 없다고 생각하고는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빅센은 아메리카 마르모트를 꼭 깨물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싸울 수 있는 힘은 남겨 두고 옮겨 왔습니다. "우프." 하고 나직한 소리를 내자, 새끼 여우들이 마치 공부 시간이 끝난 아이들처럼 뛰어나왔습니다. 어미 여우가 먹이를 집어던지자 네 마리의 새끼 여우들이 덤벼들었습니다. 아메리카 마르모트는 비록 힘은 모자랐지만 있는 힘을 다하여 싸웠습니다. 이리하여 새끼 여우들을 물리치고 절룩거리며 수풀로 달아났습니다. 꼬마들이 마치 사냥개들처럼 뒤쫓았습니다. 꼬리와 옆구리를 물고 끌었지만 아무래도 끌어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빅센이 그것을 끌어내어 넓은 곳에 내팽개치자 다시 새끼 여우들이 곯렸습니다. 그런데 새끼 여우 한 마리가 아메리카 마르모트에게 물려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빅센이 벌떡 일어나서 이 불쌍한 동물에게 덤벼들어 단숨에 물어 죽여 버렸습니다. 여우 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잡초가 무성한 움푹 패인 땅이 있었습니다. 이 곳은 그 전부터 들쥐들의 운동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새끼 여우들이 굴 속에서 나와서 숲 속의 지식을 익히고 나서 처음으로 실습을 한 곳이 바로 이 곳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곳에서 여우가 꼭 알아야 할 것 중에서 가장 얌전한 들쥐 잡는 실습을 했습니다. 이 때 어버이 여우는 한두 가지 꼭 필요한 신호를 썼습니다. "가만히 엎드려서 잘 보는 거야." 라든가, "나처럼 해 봐라." 와 같은 뜻의 신호였습니다. 어느 날 조용한 저녁 무렵에 여우들은 이 곳에 왔습니다. 새끼 여우들을 숲 속에 숨겨 놓고 어미 여우가 사정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 때 먹이가 우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빅센이 벌떡 일어나더니 풀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보려고 몸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들쥐는 풀 밑에 파고들어 있습니다. 들쥐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살랑살랑 흔들리는 풀을 보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들쥐 사냥은 바람이 없는 날이 아니면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마침내 빅센이 펄쩍 뛰었습니다. 순간 한 줌 잡은 풀 속에서 들쥐 한 마리가 '찍찍' 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습니다. 네 마리의 새끼 여우들도 어미 여우처럼 똑같은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제일 큰 새끼 여우가 겨우 한 마리의 들쥐를 잡았습니다. 흥분을 하면서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습니다. 진주알처럼 작은 젖니를 들쥐의 몸에 갖다댔습니다. 아마 자신도 깜짝 놀랐을 것이지만 이것은 곧 고기를 먹는 동물의 새끼가 가지고 태어난 잔인한 모습이었습니다. 여우의 교훈
들쥐 사냥에 이은 또 한 가지의 사냥 교육은 빨간 다람쥐를 상대로 하는 경우입니다. 이 귀찮은 빨간 다람쥐는 여우의 굴 바로 이웃에 살고 있었습니다. 안전한 나뭇가지 위에서 여우들을 살펴보는 것이 빨간 다람쥐들의 놀이 시간이었습니다. 이 놈을 잡겠다고 새끼 여우들은 이 쪽 나무 저 쪽 나무로 눈빛을 바꾸며 뛰어다녔습니다. 그러나 상대는 나무 위에 살고 있습니다. 불과 30센티미터밖에 높이 떨어져 있지 않은 빨간 다람쥐들이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미 여우 빅센은 침착한 놈이었습니다. 이 여우는 박물학에 관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다람쥐의 성질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것을 한 가지 응용해 보였습니다. 새끼들을 굴 속에 숨겨 두고 빅센은 땅 한가운데로 나가 살짝 몸을 숨겼습니다. 빨간 다람쥐는 재빨리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빅센은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빨간 다람쥐는 점점 가까이 와서 마침내 머리 위의 가지까지 와서, "요 동물들아, 요 동물들아!" 하고 소리쳤습니다. 빅센은 아직도 죽은 것처럼 가만히 있습니다. 완전히 솜씨가 다릅니다. 빨간 다람쥐는 그 나무에서 뛰어내려 다른 나무로 올라가 또 떠들어댔습니다. "요 동물들아, 곰 같은 놈아, 스자아아아... 스자아아아!" 그래도 어미 여우는 죽은 것처럼 풀 위에 누운 채로 있었습니다. 빨간 다람쥐는 조르르 기어왔습니다. 그리고 호기심에 가득 차서 모험을 하고 싶은 마음이 되었습니다. 빨간 다람쥐는 또 땅 위로 내려와서 땅을 가로질러 아까보다 더 여우에게 다가왔습니다. "요 놈, 죽은 게 틀림없어." 굴 속에서 바라보고 있던 새끼 여우들까지 잠이 들었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빨간 다람쥐의 호기심은 이제 막바지에 도달했습니다. 빅센의 머리 위에 나무껍질을 떨어뜨리는 나쁜 짓을 했습니다. 벌써 두 번이나 헤매고 다니다가 조심스럽게 노리고 있는 어미 여우로부터 7, 80센티미터까지 다가왔습니다. 그 순간 어미 여우 빅센은 펄쩍 뛰어 빨간 다람쥐를 낚아 챘습니다. 빨간 다람쥐의 약점은 바보 같은 호기심이었고, 여우의 약점은 나무를 타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새끼 여우들에 대한 훈련은 상대가 강할 경우에는 멋있게 자기 약점을 보충하는 것이었습니다. 새끼 여우들은 이렇게 해서 어버이에게 여우 사회의 중요한 원리를 익혔습니다. 그것은 말로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어버이가 행동하는 것을 보고 혼자서 스스로 몸에 익히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여우가 나에게 가르쳐 준 생활의 지혜 몇 가지를 말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자기가 남겨 놓은 발자국 위에서 절대로 자서는 안 된다. 코는 눈보다 앞에 있다. 그러니까 제일 먼저 코를 믿어라. 바보 같은 동물은 바람 아래로 도망친다. 흐르는 냇물은 많은 병을 고쳐 준다. 숲으로 감싸져있지 않으면 절대로 밖에 나가서는 안 된다. 돌아서 갈 때에는 절대로 발자국을 똑바로 남겨서는 안 된다. 이상한 것을 만나면 반드시 적이 있다고 생각하라. 흙먼지와 물은 냄새를 없앤다. 토끼가 있는 숲 속에서 쥐를 잡으려고 하거나 닭장에서 토끼를 잡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풀을 가르며 걸을 것.' 대강 이러한 것들입니다. 그리고 새끼 여우들은 이러한 교훈을 잘 외워서, '냄새를 분간하지 못하는 상대를 따라가서는 안 된다.'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상대의 냄새가 오지 않을 때에는 상대는 이 쪽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쪽에서 바람이 불고 있다는 뜻입니다. 새끼 여우들은 숲 속의 날짐승과 길짐승들을 한 가지씩 외웠습니다. 그리고 어버이를 따라 다른 곳까지 나가게 되었을 때에는, 이 숲 속에 없는 다른 동물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밤, 여우 부부는 새끼 여우들을 들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거기에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검고 큰 것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검고 큰 것이 있었습니다. 새끼 여우들에게 냄새를 맡게 하기 위해 일부러 온 것입니다. 냄새를 조금 맡았는데도 새끼 여우들은 온몸의 털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고 부르르 떨었습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 냄새는 피 속으로 들어가서 자기도 모르게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던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어미 여우가 말했습니다. "얘들아, 이것이 바로 사람 냄새라는 거야." 새끼 여우들이 냄새를 맡은 것은 사람의 모자였습니다. 스카 페이스의 마지막
암탉의 수는 변함없이 자꾸 줄어갔습니다. 사실 나는 집안 식구들에게 새끼 여우 굴에 관한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암탉보다도 이 작은 장난꾸러기들에게 훨씬 더 많은 관심과 동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큰아버지는 화가 나 있었습니다. 나의 숲 속의 동물에 대한 지식을 형편없이 꾸짖었습니다. 그것은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큰아버지의 걱정을 덜어 주기 위해서 어느 날 사냥개를 데리고 숲 속으로 나갔습니다. 3분도 지나기 전에 사냥개는 사냥꾼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소리로 짖었습니다. "여우다, 여우! 골짜기로 바로 내려가겠다!" 한참 지나자 스카 페이스가 시내 바닥을 팔딱팔딱 가볍게 뛰어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냇가에서 18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똑바로 언덕 위로 올라갔습니다. 내가 살짝 몸을 숨기자 여우는 사냥개 쪽을 돌아보면서 가까이까지 왔습니다. 그렇게 영리한 동물에게도 실수가 있기 마련입니다. 여우는 나를 조금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3미터쯤 떨어진 곳에 오자 몸을 돌려 앉았습니다. 목을 길게 뽑아서 언덕 아래쪽의 사냥개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이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사냥개는 큰 소리로 짖으면서 여우 뒤를 쫓아왔습니다. 그러나 냇가에 와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흐르는 물은 동물의 냄새를 없애 버리기 때문입니다. 여우의 발자국 냄새가 바로 여기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여우를 뒤쫓는 방법은 아직 한 가지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시내 양쪽 기슭을 위에서 아래로 걸으며 여우가 물에서 올라온 곳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사냥개는 곧 이 방법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내 바로 앞에 있는 여우는 사냥개를 더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우물쭈물 하고 있는 사냥개를 재미있다는 듯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숲에 가렸던 사냥개가 다시 나타나자 여우의 어깨가 치솟았습니다. 심장이 갈비뼈 밑에서 크게 헐떡거리는 모습과 날카로운 노란 눈빛까지 잘 볼 수가 있었습니다. 사냥개가 물 때문에 우물거리고 있는 것이 이상했습니다. 여우는 재미있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가 내렸다가 했습니다. 때로는 뒷발로 일어서기도 하며, 입을 벌리고 웃었습니다. 사냥개는 마침내 여우가 시내에서 올라온 곳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 그래서 여우의 발자국 냄새가 나지 않을 정도로 희미해졌습니다. 이런 발자국을 쫓아가서 과연 여우를 찾아낼 수 있을까요? 사냥개는 망설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스카 페이스는 크게 좋아했습니다. 사냥개가 언덕으로 올라오자 여우는 살짝 숲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내가 겨우 3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다는 것을 여우는 영영 알지 못했습니다. 마침 내가 있는 곳은 바람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여우 코끝에는 닿지 않았던 것입니다. 게다가 나는 꼼짝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우는 자기의 목숨이 20분 동안이나 가장 무서운 적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마침내 사냥개 레이저가 나타났습니다. 이 사냥개도 여우와 같이 내 옆을 모르고 지나가려고 했습니다. 내가 소리를 치자 깜짝 놀아 발걸음을 멈추고 부끄럽다는 듯이 내 발 밑으로 와서 누웠습니다. 이러한 일은 여우와 사냥개 사이에서 며칠 동안 조금씩 변화를 보이면서 되풀이되었습니다. 이것은 내 눈에도 보일 뿐 아니라 시내 건너편 쪽의 집에서도 확실히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큰아버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큰아버지는 닭이 없어지는 것을 무척 화를 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곧 언덕 위에 와서 여우를 기다렸습니다. 스카 페이스는 다른 때처럼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왔습니다. 냇가의 사냥개가 우물쭈물하고 있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큰아버지는 여우의 등을 향해 총을 쏘았습니다. 마침내 여우는 죽었습니다. 스카 페이스는 오늘도 새로운 승리에 취하여 웃고 있었는데... 그런데 이런 일이 있은 다음에도 계속 닭이 없어지는 것이었습니다. 큰아버지는 더욱 화가 나서는, 자기가 싸워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숲 속에 독먹이를 뿌리고, 나의 숲속에 관한 지식을 무시하고 밤마다 총을 가지고 사냥개 두 마리와 함께 돌아다니며 조사했습니다. 어미 여우인 빅센은 독먹이를 찾아내는 날카로운 코를 가지고 있어서 모른 체하고 독먹이 옆을 지나가 버렸습니다. 아니 그것뿐만 아닙니다. 위험한 독먹이 하나를 물고 가서 여우의 적인 스컹크 굴 속에 떨어뜨렸습니다. 그 바람에 스컹크는 두 번 다시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짝을 잃은 빅센의 처지는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불리해졌습니다. 그 전에는 스카 페이스가 나가서 사냥개를 맡아 집안을 지켜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빅센이 모든 짐을 짊어지고 감다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굴까지 오는 발자국을 지울 시간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가까이 온 적을 멀리까지 꾀어내는 것도 혼자서는 어려웠습니다. 드디어 사냥개 레이저가 소굴로 뛰어가 구 속에 새끼 여우들이 모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곧 큰아버지 집의 일꾼들의 괭이와 삽을 가지고 굴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사냥개와 함께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가까이에 빅센이 모습을 나타내더니, 사냥개를 시내까지 꾀어내어 그 근처에 있는 염소 등을 뛰어넘었습니다. 염소들은 깜짝 놀라 4, 5백 미터를 달려갔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냥개가 아무리 찾아도 여우를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여우는 염소의 등에서 뛰어내려 굴로 돌아갔습니다. 이 작전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여우의 발자국을 잃어버린 사냥개는 결국 우리가 있는 굴 쪽으로 오고 말았습니다. 잡힌 새끼 여우들
일꾼인 파티는 그 동안에 열심히 굴을 팠습니다. 노란 자갈이 섞인 모래가 쌓였습니다. 1시간쯤 지났을 무렵, 굴 밑바닥에서 파티가 소리쳤습니다. "있습니다, 나으리!" 굴 맨 끝이었습니다. 새끼 여우들은 똘똘 뭉쳐 있었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안쪽에 모여 불안스럽게 이 쪽을 보고 있었습니다. 부드럽고 보송보송한 털이 몸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파티가 삽을 후려쳤습니다. 사냥개 레이저가 무섭게 덤벼들었습니다. 사람과 사냥개는 삽시간에 새끼 여우 세 마리의 목숨을 끊어 버렸습니다. 네 번째의 작은 새끼 여우는 내가 꼬리를 잡고 들어올렸습니다. 사냥개 입도 여기까지는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이 한 마리만은 겨우 목숨을 건졌습니다. 새끼 여우가 소리치자 어미 여우인 빅센이 뛰어왔습니다. 만약 사냥개가 그 중간에 뛰어들어서 우연히 자기의 적을 보호하는 모습을 하지 않았더라면 총에 맞아 죽었을 것입니다. 새끼 여우는 주머니에 담았습니다. 불행한 이 새끼 여우의 형제들은 지금까지 자라온 굴 속에 던져졌습니다. 그리고 삽으로 흙을 덮어서 묻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새끼 여우는 마당에 쇠사슬로 묶어 두었습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두들 마음이 변하여 새끼 여우를 죽이자는 생각에는 아무도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이 새끼 여우는 참 귀여운 놈이었습니다. 보송보송한 털이 있는 몸과 얼굴은 이상하리만큼 아기염소와 닮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참 천진스럽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노란 눈빛은 꾀 많고 난폭한 빛을 띠고 있었습니다. 이 꼬마는 누가 옆에 있을 때에는 상자 안에 가만히 있었는데, 1시간쯤 가만히 놓아 두면 겨우 경계심을 조금 풀고 밖을 내다보는 정도였습니다. 내 방의 창문이 이번에는 구멍이 뚫린 나무 역할을 했습니다. 새끼 여우 주위에는 병아리를 거느린 어미 닭이 몇 마리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어미 여우가 몇 번이나 날라다 주었던 새끼 여우의 먹이였습니다. 그 날 오후, 어린 닭들이 이 새끼 여우 가까이 갔을 때 쇠사슬 소리가 났습니다. 이 꼬마가 가장 가까이 온 닭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다행히 쇠사슬이 이 꼬마를 끌어당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 탈이 없었습니다. 새끼 여우는 실패하자 슬금슬금 상자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 후에도 몇 차례 이러한 짓을 되풀이했습니다. 그러다가 두 번 다시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새끼 여우는 무척 들떠 있었습니다. 상자에서 살짝 나오는가 했더니, 소리가 조금 들려도 깜짝 놀라 숨어 버렸습니다. 자기를 묶어 놓은 쇠사슬을 잡아당겨 보기도 하고 때로는 앞발로 누르고 미치광이처럼 물어뜯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멈추어 서서 귀를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또 검은 코를 위로 치켜들고 떨리는 소리를 짧게 지르기도 했습니다. 한두 번 이런 소리를 지르자 먼 곳에서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2, 3분 지나자 마당의 나무 쌓아 둔 곳에 검은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새끼 여우는 이것을 보고 깜짝 놀라 상자 속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어미 여우라는 것을 알자 좋아하면서 다가갔습니다. 빅센은 자기 새끼를 보자 얼른 새끼를 데리고 왔던 길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쇠사슬이 잡아당겼습니다. 나는 창문을 열었습니다. 빅센은 깜짝 놀라서 나무 위로 올라가더니 도망쳐 버렸습니다. 1시간쯤 지났습니다. 그 때까지 돌아다니면서 울곤 하던 새끼 여우가 어느새 조용해졌습니다. 창문으로 보니까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달빛 속에서 어미 여우가 길게 옆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어미 여우는 꼬마 옆에 누워서 계속 무엇을 갉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빅센은 쇠사슬을 갉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새끼 여우는 그 동안 어미 여우의 따뜻한 젖을 빨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마당으로 나가자 빅센은 어두운 숲 속으로 도망쳤습니다. 새끼 여우의 상자 속에는 피투성이가 된 쥐새끼가 두 마리 놓여 있었습니다. 날이 밝은 다음에 보니까 새끼 여우를 묶어 둔 쇠사슬이 목에서 5, 60센티미터 가량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나는 숲 속으로 가서 어제 파헤쳤던 여우의 굴에 가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어미 여우의 발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죽은 세 마리의 새끼 여우가 땅바닥에 뒹굴고 있었습니다. 몸에 묻은 흙이 혓바닥으로 깨끗이 핥아져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죽인 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 집 닭이 두 마리 놓여 있었습니다. 어미 여우는 새끼들에게 줄 먹이를 가지고 왔던 것입니다. 어미 여우는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랴, 몸을 따뜻하게 해 주랴 무척 바빴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죽은 세 마리의 새끼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대답도 없었던 것입니다. 흙 위에 남아 있는 흔적은 빅센이 말없이 슬픔을 달래며 그 자리에 누워 있었던 것을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 후 어미 여우는 두 번 다시 부서진 이 굴에는 오지 않았습니다. 새끼들이 죽었다는 것을 이 어미 여우는 이제 완전히 알아버렸던 것입니다. 우리는 새끼 여우를 디프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디프는 형제들 중에서 가장 몸이 허약했으나, 지금은 어미 여우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사냥개들은 닭들을 지키기 위해서 쇠사슬에서 풀렸습니다. 그리고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만약 여우를 발견하면 때려잡으라고 했습니다. 나도 똑같은 명령을 받았으나, 나는 절대로 여우를 잡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하고 있었습니다. 죽은 닭머리 위에 독을 묻힌 것이 숲 속에 뿌려졌습니다. 이것은 여우가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냥개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 먹이입니다. 빅센은 이 작전에 말려들지 않았습니다. 밤마다 어미 여우는 위험을 무릅쓰고 새끼 여우에게 왔습니다. 젖을 먹이기도 하고 죽인 닭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틀째 밤이었습니다. 나는 쇠사슬을 갉는 소리를 듣고 살짝 마당을 내려다봤습니다. 어미 여우가 또 와 있었습니다. 어미 여우는 꼬마의 상자 옆에 열심히 굴을 파고 있었습니다. 자기 몸이 반쯤 들어가는 깊이가 되자 쇠사슬을 그 곳에 묻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다가 흙을 덮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귀찮은 쇠사슬을 없애 버린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빅센은 새끼 여우의 목을 물고는 나무 쌓아 둔 곳으로 달아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새끼 여우는 그 전과 마찬가지로 쇠사슬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꼬마는 슬픈 듯이 코를 벌름거리면서 상자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비극의 어미와 새끼
30분쯤 지나자 사냥개들이 심하게 짖었습니다. 숲 속으로 달리면서 짖는 것으로 봐서 빅센을 쫓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멀리 북쪽 철도를 향해서 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들의 시끄럽게 짖는 소리가 마침내 들리지 않았습니다. 사냥개들은 다음 날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곧 알았습니다. 여우란 동물은 철도라는 것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것을 이용하는 방법을 몇 가지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 하나는 철로 위를 열차가 달려오고 있을 때 건너가는 것이었습니다. 발자국 냄새가 열차 덕분에 흘러가 버리고 맙니다. 게다가 뒤쫓아오던 사냥개들은 열차의 바퀴에 깔려 죽게 됩니다. 그리고 실천하기는 어렵지만 한층 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눈앞에 기차가 왔을 때, 사냥개들을 육교 위로 유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개들은 달아날 곳을 잃고 흩어집니다. 전날 밤에는 이 솜씨가 멋지게 실행에 옮겨졌습니다. 우리는 다림 밑에 깔려 죽은 레이저의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빅센은 우리에게 복수를 했던 것입니다. 그 날 밤, 빅센은 사냥개들을 해치우고 또 마당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암탉을 잡아서 새끼 여우 디프에게 가져다 주었으며, 자기는 새끼 여우 옆에 누워서 먹이를 주었습니다. 빅센은 자기가 먹이를 갖다 주지 않으면 아무도 갖다 주지 않는다고 믿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암탉의 시체가 큰아버지에게 빅센이 밤마다 오고 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나는 빅센 편이었으므로 그 이상 여우를 죽이는 계획에 참가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큰아버지 자신이 총을 가지고 1시간 이상이나 감시를 했습니다. 그러나 점점 추워지고 달이 구름을 가리자 큰아버지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꾼인 파티가 대신 망을 보고 큰아버지는 집으로 갔습니다. 파티는 조용한 가운데 망을 보느라 지치고 말았습니다. 한 시간 후에 '빵빵' 하는 큰 소리가 났습니다. 그러나 그 소리는 여우를 향해서 쏜 것이 아니라 다만 화약을 태워 버렸을 뿐입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빅센은 어젯밤에도 새끼 여우를 살리려고 찾아왔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튿날 밤에도 암탉 한 마리가 없어졌습니다. 큰아버지가 망을 보고 있었는데, 어두워지기도 전에 총소리가 났습니다. 빅센을 향해 쏜 것이었으나, 총알은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빅센은 물고 있던 암탉을 떨어뜨리고 달아났습니다. 빅센은 끈질기게도 또 찾아왔습니다. 이번에도 총소리를 듣고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다음 날, 빅센이 얄미운 쇠사슬을 자르려고 몇 시간이나 애쓴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용기와 꺾이지 않는 사랑은 사람의 마음을 감격시켰습니다. 여우를 노리는 총잡이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빅센은 오늘 밤에도 올 것인가? 세 번이나 총 때문에 쫓겨났는데, 그래도 자기 새끼에게 먹이를 가지고 와서 쇠사슬을 자르려고 할 것인가?' 4일째인 밤. 망을 보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습니다. 마침내 새끼 여우의 슬픈 울음소리가 울리자 대답이라도 하듯이 나무 위에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빅센은 암탉도, 다른 먹이도 물고 있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빈틈없는 사냥꾼인 여우가 오늘 밤에는 사냥에 실패하여 빈손으로 나타났단 말인가?' 여우는 그림자처럼 왔다가는 금방 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새끼 여우 앞에 무엇인가를 떨어뜨려 주었습니다. 디프는 땅바닥에 떨어진 것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디프는 고통스런 울음소리를 내더니 쓰러져 버렸습니다. 삽시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새끼 여우가 죽은 것입니다. '도대체 이것은 무슨 이유일까?' 물론 어미의 사랑은 빅센의 마음 속에서 강하게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층 더 높은 생각이 어미 여우를 누르고 있었습니다. 이 영리한 여우는 독약의 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독먹이의 정체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디프가 살아서 ㅍ유의 몸이었더라면 이 무서운 먹이를 가려낼 수 있도록 가르쳐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새끼는 달아날 수 없는 몸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미 여우는 다른 방법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빅센은 어미로서의 사랑을 억누르고 오직 하나의 방법인 독먹이를 먹여서 새끼를 해방시켰던 것입니다. 우리가 숲 속을 조사한 것은 눈이 땅바닥에 쌓였을 때였습니다. 겨울이 되었을 때 빅센이 이제는 이 숲 속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디로 갔을까?' 그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슬픔을 뒤로 남겨두고 멀리 여행을 떠났을 것이다.' 아니면 자기도 새끼 여우처럼 독먹이를 먹고 슬픈 삶의 무대에서 사라져 버렸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야생마의 대장 이야기
검정말
카우보이 조 카론은 울퉁불퉁한 모래땅에 안장을 집어던졌습니다. 그는 끌고 왔던 말들을 풀어 주고는 목장의 집으로 뚜벅뚜벅 걸어갔습니다. "이봐, 벌써 밥인가?" "아니, 17분 후." 요리사는 기차 발차 신호원처럼 워터베리의 싸구려 시계를 보면서 말했습니다. 그는 참 야무진 것 같으나, 실은 일을 제대로 한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조, 페리코 강 쪽은 어때?" 친구 중의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응, 좋아. 특히 소들은 O. K라고. 송아지들이 많아." 조는 이렇게 대답하고는 갑자기 열을 올리며 말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무스탕 떼를 봤어. 앙티로프 스프링그즈에서 물을 마시고 갔을 뿐이야." 무스탕이란 미국 서부의 들판에 살고 있는 야생마입니다. 성질이 거칠고 다루기 어려운 말로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무스탕 속에는 젊은 놈이 두 마리 있었는데, 하나는 검정 말이야. 그 놈이 아주 좋았어, 베스로 달려왔어." 말이 달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천천히 달리는 것은 트롯입니다. 앞 뒤 발을 가지런히 하고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은 가로프입니다. 그리고 같은 쪽의 앞 뒤 발을 동시에 움직이는 것을 베스라고 합니다. 조는 눈을 반짝이면서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그 놈을 놓쳐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1, 2킬로미터쯤 뒤쫓아 봤어. 그랬더니 그 놈이 무리를 거느리고 쏜살같이 달아나 버렸어. 베스로 잘 뛰었어. 나도 뒤쫓아갔지만 끝내 쫓을 수가 없었어." "이 친구야, 자네 한 잔 마신 건 아니겠지?" "물론이야. 자네도 지금까지는 우리가 흘려 버린 것만 쫓았지만 이제 제대로 할 때가 됐어. 한번 그 검정말 같은 놈을 쫓아 보는 거야. 꼭 기회가 올 거야." 그 때, "밥이다!" 하고 요리사가 말했기 때문에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났습니다. 이튿날은 가축을 모으는 곳이 바뀌었기 때문에 무스탕에 대한 것은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후 1년이 채 못 되어 뉴멕시코 주의 같은 곳에서 말을 몰이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화제의 무스탕 무리가 다시 나타난 것입니다. 바로 그 검정말은 한 살짜리로서 날씬하고 아름다운 발, 그리고 반짝이는 허리는 정말 멋졌습니다. 이 색다른 말을 보고 눈독을 들인 사람은 한두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조가 말한 대로 태어날 때부터 베스였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가질 만한 가치가 있는 말이야.' 몰이를 하고 있던 조는 생각했습니다. 서부의 사나이로서는 엉뚱한 생각이었습니다. 동부와 같이 말이 적은 곳의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해서 별로 놀랄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서부에서는 길들여지지 않은 말이라면 5달러, 보통 승마라도 15달러에서 25달러면 살 수 있습니다. 거친 야생마를 탐내는 것은 보통 카우보이가 아니면 생각할 일이 못 됩니다. 게다가 무스탕은 잡기가 어렵습니다. 가령 잡았다고 해도 포로로 두는 일뿐, 쓸모가 없었습니다. 끝까지 사람의 손에 길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무스탕은 풀밭의 거추장스런 것일 뿐 아니라, 길들여진 말을 꾀어 갑니다. 야생마들에게 끌려간 길들여진 말은 곧 야생마처럼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가축 주인들은 무스탕을 발견하면 총을 쏘아 죽이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조는 닥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었지만, 말에게는 자상했고, 말에 대한 것이라면 뭐든지 다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말이지, 얌전하지 않은 흰말은 보지 못했어. 털은 신경질을 부렸어. 빨간 털은 아무리 손질을 해도 잘 될 수가 없어. 검정말은 씩씩한 놈이지. 만약 이 놈에게 발톱이 있었더라면 다니엘이 들어간 굴 속의 사자도 당해 낼 수 없을 거야." 이런 이유에서 무스탕은 쓸모없는 말입니다. 그러나 검정말은 값진 물건이었습니다. 말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조가 검정 무스탕을 잡으려고 하는 것을 보고 모두 놀랐습니다. "저 친구, 사나운 야생마를 사로잡으려고 하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그러나 그 해 조는 문제의 무스탕을 쫓을 기회를 얻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한 달에 25달러를 받고 일하는 카우보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희망은 다른 카우보이들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목장을 가지고 일꾼들을 거느리는 것이었습니다. 돼지우리라는 쇠도장은 이미 산타페에 등록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곧 목장 주인이 되는 첫걸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쇠도장이 찍힌 것은 나이 먹은 암소 한 마리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떠돌이들, 즉 쇠도장이 찍히지 않은 동물을 더 많이 찾아서 자기 것으로 하는 노력을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해마다 가을이 되어 급료를 받게 되면 빈둥빈둥 놀고만 싶어집니다. 자꾸 놀고만 싶어져 친구들인 카우보이들과 함께 마을로 나갑니다. 그래서 주머니에는 돈 한푼 남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언제나 그의 재산은 말 안장과 침대, 그리고 나이 먹은 암소 한 마리뿐입니다. 이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살다가는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습니다. 어떤 화끈한 일을 한 가지 해서 깃발을 날리고 싶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그는 잠시도 잊어 본 일이 없습니다. '저 검은 무스탕은 나의 마스코트(복을 주는 신)다. 그 놈을 잡으면 내 운이 열릴 것이다.' 조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카우보이들은 대개 미신을 깊이 믿고 있었으며 조그마한 인연에도 매달리는 버릇이 있습니다. '기회가 오면 꼭 잡아 버리고 말겠다.' 그는 마음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카우보이들은 캐나다 강 근처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가을에는 돈카루로스 언덕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그 동안 그는 이 검정말을 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소식만은 들었습니다. 그 말은 이제 세 살짜리 젊은 말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카우보이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사방팔방에서 이 소문이 들려 왔습니다. 암말을 데리고
조가 처음 무스탕을 본 '사슴 샘터'는 넓은 들판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이 샘터에서 솟아나는 물이 많을 때에는 주위에 띠를 심어 놓은 작은 호수처럼 됩니다. 물이 없을 때에는 진흙 땅바닥이 나타나서 그 한가운데의 물구멍이 샘이 됩니다. 물은 흘러가는 곳도 없고 떨어지는 곳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참 맑은 물입니다. 이 샘터는 몇 킬로미터에 걸쳐서 이 곳에 하나밖에 없는 물입니다. 이 들판은 검정말이 가장 좋아하는 목초지였습니다. 또 이곳은 많은 소와 말을 방목하고 있는 목장이기도 했습니다. 이 곳에서 가장 세력이 큰 무리는 L. F무리였는데, 포스터라는 사람이 지배인이었습니다. 그는 땅을 가진 주인 중의 한 사람이기도 했으며, 또한 대단히 솜씨가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만한 방목지라면 더 우수한 소와 말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이 하고 있었던 일은 열 마리의 혼혈 암말을 기르는 일이었습니다. 모두 키가 크고 다리가 날씬하고 사슴처럼 상냥한 눈을 가지 말이었습니다. 보통 목장의 말들은 이 말 앞에 내놓으면 마치 종자가 다르고 말라빠진 말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 중의 한 마리는 쓰기 위해서 마구간에 묶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아홉 마리는 새끼의 젖을 떼자 어디론지 가 버렸습니다. 어떻게 해서 달아났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목초지로 가 버린 것입니다. 말은 가장 좋은 먹이를 발견하는 본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홉 마리의 암말들은 30킬로미터나 남쪽으로 달려가서 사슴 샘터 가까운 들판으로 가 버렸던 것입니다. 여름이 끝날 무렵 포스터가 말을 몰기 위해 갔더니 과연 아홉 마리의 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검은 수말 하나가 그 속에 섞여 있었습니다. 바로 그 검정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검정말은 보통 친구가 아니었습니다. 모두 이 검정말을 주인처럼 따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홉 마리의 암말들은 이 검정말을 삥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검고 아름다운 털과 암말들의 황금빛 털이 잘 어울렸습니다. 암말들은 원래부터 잘 길들여져 있어서 얌전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때 같으면 힘들이지 않고 집으로 데리고 갈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검정말이 이쪽으로 갔다가 저쪽으로 갔다가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암말들을 몰고 다녔기 때문에, 카우보이가 타고 온 수말은 좀처럼 뒤쫓을 수가 없었습니다. 두 카우보이는 화가 났습니다. 허리에 차고 있던 권총을 꺼내서, "형편없는 말이군!" 하고 쏘았으나 검정말은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이 말을 쏠 수 있는 기회는 열 번 중에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노렸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이 검정말은 다른 암말들을 데리고 남쪽 모래 언덕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카우보이들은 타고 있던 말들을 오늘 일에 이미 지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느릿느릿 걸어가고 있는 말 등에서 카우보이들은, "꼭 복수를 하고 말겠어." 하고 서로 다짐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몹시 걱정되는 일이었습니다. 한두 번 이런 경험을 가지면 암말들이 검정말처럼 야생마가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것을 구하는 길은 뚜렷한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하등 동물 사이에서는 아름답고 힘센 수놈이 암놈을 이끈다고 합니다. 먹처럼 검은 털과 초록빛 눈을 가진 이 검정말은 이 곳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무리로부터 부하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약 20마리의 암말을 거느리게 되었습니다. 거의가 방목하고 있던 보잘것없는 말들이었으나, 아홉 마리의 말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카우보이들의 말에 따르면 이 야생마들은 언제나 검정말을 잘 따랐으며, 검정말은 또 열심히 지켰다고 합니다.
1893년 12월, 나는 캐나다 강으로 가는 마차를 타고 피냐베티스트 강가의 목장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나는 이 곳에서는 전혀 낯선 사람이었습니다. 출발하려고 할 때 L. F목장의 포스터는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만약 그 무스탕을 노릴 기회가 있거든 꼭 검정말을 쏘아 버리세요." 내가 그 말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이야기한 것은 포장마차 속에서 길을 안내하는 잭 반즈로부터 들은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세 살짜리 검정말은 보고 싶다는 호기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런데 이틀째에 '사슴 샘터'의 들판에 와 보니 검정말들이 돌아다닌 흔적을 전혀 볼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약간 당황했습니다. 그 다음 날의 일이었습니다. 아라모사 골짜기를 넘어 다시 들판으로 나아갔습니다. 먼저 말을 몰고 가던 잭이 갑자기 말의 목덜미에 띠를 감추었습니다. 그리고 몸을 납작하게 엎드리고는 마차 안에 있는 내 쪽을 향해 말했습니다. "총을 꺼내세요. 지금 검정말이..." 나는 총을 들고 들판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과연 거기에는 한 무리의 말이 있었습니다. 한 쪽 끝에 아름다운 검정말이 있었습니다. 바로 야생마인 그 말이었습니다. 검정말은 머리와 꼬리를 치켜세우고 콧구멍을 크게 벌린 다음 서 있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당당한 말로서, 완전한 아름다움을 다 갖춘 모습이었습니다. '내가 어찌 이렇게 아름다운 동물을 한 덩어리의 고기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쏘아요. 빨리, 빨리!" 잭이 재촉했습니다. 잭이 총을 들었을 때 나는 살짝 총을 잡아 끌었습니다. 총소리가 났습니다. "탕!" 말들은 당황했습니다. 크고 검은 대장말은 주위를 돌아다니며 암말들을 모아서 달렸습니다. 말발굽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먼지를 뿌옇게 흩날리며 멀리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검정말은 전체를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이쪽 저쪽으로 달리면서 한 마리라도 무리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지켰습니다. 그리고 이 말들을 데리고 멀리 가 버렸습니다. 나는 내 눈으로 볼 수 있는 데까지 말들의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나 잭은 화를 내 고 있었습니다. 야생마에 대해서 욕을 퍼부었으며, 또 내 총에 대해서도 서부말로 화풀이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 나는 검정말의 씩씩한 모습에 취해 있었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해도 예사였습니다. 나는 그 검정말의 반짝거리는 껍질에 상처를 입히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야생마의 무리를 쫓아서
야생마를 잡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리스' 하고 하는 것은 총으로 동물의 목덜미를 쏘아 상처를 입히며 한동안 정신을 잃게 하는 것입니다. "그럼요. 나는 그렇게 해서 목뼈가 부러진 말을 본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야생마가 그렇게 된 것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 방법 말고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그것은 몰이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땅의 생김새를 잘 이용하여 무리는 몰아서 울 안으로 집어 넣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한 말 타는 기술로 사냥을 할 수도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이것은 흔한 방법인데, 좀 이상한 말인지는 모르지만 말을 쓰러뜨리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하겠습니다. 검정말은 언제나 발을 모아서 뛰고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 말이 달리는 모습, 속력, 숨의 길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이야기되고 있었습니다. 몽고메리라는 할아버지는 이 이야기를 듣고는 호텔로 일부러 들어왔습니다. 증인들이 있는 앞에서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말은 무사히 화차 속에 몰아 주는 사람에게 1천 달러를 내겠다." 열 사람 남짓한 젊은 카우보이들은 지금 당장에라도 그 야생마를 잡으러 가고 싶었습니다. 현재의 주인과 계약 기간이 끝나면 바로 몽고메리 할아버지의 상금을 타겠다고 어깨를 으쓱거렸습니다. 조는 이제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경쟁자들이 많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주인하고의 계약은 어떻게 됐든 밤새 돌아다니며 검정말을 잡는 데 필요한 도구를 모았습니다. 이제 떨어지려고 하는 신용을 되찾고 친구들의 신세를 갚기 위해서 마침내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20마리의 훌륭한 말과 1대의 포장마차, 그리고 일할 사람 셋. 이 세 사람은 찰리와 요리사, 그리고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또 2주간의 식량도 마련했습니다. 마침내 출발입니다. 세 사람은 놀랄 만큼 발이 빠른 검정말을 쓰러뜨리려고 생각했습니다. 크래이튼을 출발한 이 세 사람은 3일 만에 사슴 샘터에 닿았습니다. 마침 점심때였기 때문에 검정말은 말들을 데리고 물을 먹으러 왔습니다. 조는 야생마들이 배부르게 물을 잔뜩 마실 때까지 숨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말들의 속력을 떨어뜨리겠다는 속셈이었습니다. 동물은 목마른 때가 물을 먹은 때보다 훨씬 빨리 달리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보고 조는 살짝 앞으로 말을 몰았습니다. 약 8백 미터쯤 갔을 때 야생마들이 마차를 봤습니다. 깜짝 놀란 야생마들은 들판을 가로질러 남동쪽으로 달아났습니다. 조는 가로프로 뒤를 쫓아서 야생마들을 몬 다음에 다른 사람에게 지시하여 아라모사 골짜기로 가라고 했습니다. 그는 전에 가축을 몰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해 두고 자기는 남동쪽에 있는 야생마들의 한 무리를 보고 달렸습니다. 2, 3킬로미터쯤 갔을 때, 다시 야생마들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조가 다가가자 그들은 놀라서 남쪽으로 도망쳤습니다. 조는 이번에는 그 뒤를 쫓아가지 않고, 야생마들이 틀림없이 갈 것이라고 생각한 곳을 질러가기로 했습니다. 길을 가로질러 1시간쯤 달렸습니다. 생각했던 대로 마침내 야생마들이 나타났습니다. 야생마들은 조를 보고서 또 놀라서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날 오후에는 훨씬 멀리까지 쫓아갔습니다. 야생마들은 남으로 돌아갔습니다. 해질 무렵에는 아라모사 골짜기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더 멀리 야생마들을 몰아붙이고 나서 포장마차로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지금까지 편한 일을 하고 있던 찰리와 교대했습니다. 찰리는 새 말을 타고 천천히 쫓아갔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포장마차를 아라모사 골짜기 건너편으로 옮겨 오늘 밤에는 거기서 캠프를 치기로 했습니다. 그 동안 찰리는 야생말들을 계속 뒤쫓았습니다. 야생마들은 처음으로 빨리 달리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뒤쫓아오는 사람들이 별다른 공격을 해오지도 않고 야생마들도 이제는 쫓기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주위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지만, 야생마들을 잃어버릴 걱정은 없었습니다. 한층 더 쉽게 구별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유는 야생마 무리 속에 하얀 암말이 한 마리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걸려 있는 달빛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찰리는 하얀 말을 목표로 하여 조용히 뒤를 쫓았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야생마들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리 멀리 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찰리는 짐작했습니다. 그는 말에서 내려 안장을 치우고는 말을 묶어 두고 담요 속에 들어가 잠을 잤습니다. 아침 햇빛이 비치자, 찰리는 일어나서 곧 말을 달리게 했습니다. 고맙게도 어젯밤에 놓쳤던 야생마들은 8백 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찰리가 가까이 가자 검정말이 크게 울었습니다. 그것을 신호로 야생마들은 재빨리 달렸습니다. 그런데 검정말은 들판에서 멈추더니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것은 이렇게 끈질기게 쫓아오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쫓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잠시 하늘을 뒤로 하고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곧 알 만한 것은 다 알았는지 다른 암말들과 함께 또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검정말은 지치지도 않고 또 앞장섰습니다. 암말들은 줄을 서서 그 뒤를 쫓아갔습니다. 야생마들은 마침내 서쪽으로 돌아서 갔습니다. 찰리가 말을 달려 쫓아가자 야생마들도 한층 더 속력을 내서 추적자를 따돌렸습니다. 쫓고 쫓기는 경주가 몇 차례나 계속되었습니다. 낮이 되어 옛날 인디언의 아파치 족들이 망을 보던 절벽을 지나갔습니다. 여기서 조가 망을 보고 있었습니다. 한 줄기의 가느다란 연기가 기둥처럼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캠프로 둘아오라." 하는 신호였습니다. 찰리는 주머니에서 거울을 꺼내어 반짝반짝 반사시키면서 거기에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두 사람은 교대했습니다. 또 달아나다
조는 새말을 타고 용감하게 뒤쫓아갔습니다. 찰리는 캠프에서 식사를 하고 좀 쉬었다가 조에게 새말과 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조는 그 날 하루 종일 야생마들을 쫓아다녔습니다. 때로는 포장마차를 중심으로 큰 원을 그리며 가도록 몰기도 했습니다. 해가 질 무렵 벨레 건너편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에 찰리가 지름길로 와서 새 말과 식사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다시 조용한, 그러나 끈질긴 추적이 계속되었습니다. 저녁부터 밤늦게까지 뒤쫓았습니다. 야생마들은 사람들이 아무런 해도 주지 않는 것에 익숙해졌습니다. 그래서 빨리 뛰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쫓는 사람도 좀 편했습니다. 게다가 야생마들은 쉬지 않고 달렸기 때문에 서서히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맛좋고 영양 많은 목초 위를 달려온 것이 아닙니다. 먼지투성이의 모래땅 위를 쉬지 않고 쫓겨 왔던 것입니다. 반대로 그 뒤를 쫓고 있는 말은 먹이를 먹고 힘을 가진 말이었습니다. 또 쉬지 않고 마음을 긴장시켜 왔던 것이 확실히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식욕도 없고 목이 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물만은 실컷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조가 일부러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물을 많이 마신 말은 금방 다리가 무거워지고 숨이 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말에게는 특별히 조심하여 이러한 짓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지친 야생마들을 뒤쫓은 다음, 그 날 밤 캠프를 쳐도 조도, 말도 지치지 않았습니다. 이튿날 새벽, 조는 야생마들이 바로 가까이에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야생마들은 허둥지둥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달리지 않아서 발걸음이 느려지고 나중에는 걷고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제 싸움은 끝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운 일은 이제 지나온 셈이었습니다. 말을 따라가면서 쓰러뜨리기는 야생마들이 아직 힘이 있는 처음 2, 3일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넘기기만 하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10시쯤 호세 봉우리 쪽으로 먼저 와 있던 찰리가 조와 교대했습니다. 이 날 야생마들은 겨우 4백 미터밖에는 나아가지를 못했습니다. 게다가 어제부터 힘이 쭉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있는 힘을 다해서 북으로 북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찰리는 새 말을 타고 추적을 했습니다. 야생마들은 다음 날이 되자 발걸음이 흔들렸습니다. 검정말은 암말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 주려고 열심이었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야생마들은 지금 겨우 1백 미터 앞에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나흘째, 닷새째는 역시 같은 상태로 지나갔습니다. 야생마들은 열심히 달아났다고 생각했으나 지금 다시 사슴샘터 근처에 와 있었습니다. 이것은 조가 그렇게 말을 몰았던 것입니다. 추적은 큰 원을 그리면서 계속되었고, 협력하는 사람들이 탄 포장마차가 작은 원을 그리면서 뒤따라왔습니다. 이렇게 해서 야생마들은 출발점으로 되돌아왔습니다. 몰이꾼들은 더욱 신명이 나 있었습니다. 조는 오후 늦게까지 야생마들에게 물 먹을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 두었다가 이번에는 사슴 샘터로 몰아넣어 물을 실컷 먹여 주었습니다. 갑자기 물을 많이 마시면 숨도 막히고 다리도 말을 잘 듣지 않게 됩니다. 이러한 말을 오랏줄로 묶어 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이야말로 말을 기르던 사람들의 오랏줄 던지는 솜씨를 보여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이 계획에는 오직 한 가지의 차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검정말이 쉬지도 않고 두 발로 계속 뛰고 있기 때문으로, 그들이 추적을 시작했을 때의 속력과 거의 같은 속력으로 힘차게 보였던 것입니다. 검정말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다른 말들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시범을 보이면서 빨리 달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검정말을 제외한 다른 말은 완전히 지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의 표적으로 했던 그 하얀 말은 벌써 몇 시간 전부터 무리에서 떨어져 있었습니다. 게다가 무리를 지은 말들은 쫓아오는 사람들을 거의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야생마들의 운명은 조의 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번 사냥의 목표인 검정말 한 마리만은 손을 댈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어렵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조의 성질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가 갑자기 화를 내고 검정말을 총으로 쏜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형편은 여기까지 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조는 그런 생각은 전혀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야생마를 쫓은 지난 한 주간, 한번도 검정말에서 눈을 뗀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검정말은 계속 베스로 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참 멋진 말이군." 이 훌륭한 말에 대한 그의 칭찬은 더욱 높아만 갔습니다. 그는 이 말들에게 총질을 하는 것은 자기의 가장 중요한 말을 죽이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현상금으로 내놓은 몽고메리 할아버지의 돈을 자기가 받을 수 있을까 없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니 가령 못 받는다고 해도 통째로 손해를 본 것은 아닙니다. 검정말을 잡기만 한다면 이것을 씨말로 하여 경주용의 경마를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만으로도 재산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조는 마지막까지 쫓기로 했습니다. 이 검정말은 발이 빠르고 힘도 세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지금 지쳐 있는 암말들에게 오랏줄을 던지는 일은 쉬운 일이었으나 특별히 그렇게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암말들을 지도하고 있는 검정말에서 떼내어 우리 속으로 집어넣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검정말은 좀처럼 지치지 않았습니다. 이 놈에게 이기기에는 힘이 모자란다고 조는 생각했습니다. '좋다. 결판을 내 주겠다.' 하고 조는 결심했습니다. 조는 말을 타고 가면서 오랏줄을 슬슬 풀었습니다. 다음에는 지금까지 말을 쫓기 위하여 달린 속도 중에서 가장 빠른 속력을 내어 4백 미터쯤 떨어진 검정말을 향해서 달렸습니다. 검정말도 조의 말도 전속력이었습니다. 지쳐 버린 암말들은 양쪽으로 흩어져 버렸습니다. 검정말은 넓은 들판을 똑바로 빠졌습니다. 조의 말은 열심히 뛰었으나, 검정말은 훨씬 앞에 서서 처음과 같은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검정말의 발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이럴 리가 없어.' 조의 말이 지금까지 쫓지 못한 말은 없었습니다. 조는 화가 나서 한층 더 힘을 내어 자기 말에게 소리쳤습니다. 말은 날으듯이 뛰었습니다. 그래도 검정말과의 거리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검정말은 평평한 곳과 언덕을 빙글빙글 돌아 높은 고원을 지나 모래땅으로 뛰어갔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기 말과 검정말과의 거리는 더욱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조는 말 위에서 벌떡 일어나 말을 몰았습니다. 조의 말은 동부에서 자란 말이었습니다. 동부 지방에는 독풀이 있습니다. 대개의 가축들은 이것을 싫어하지만 그 중에는 이것을 먹고 병에 걸리는 것도 있습니다. 이 풀은 마치 모르핀과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었는데, 계속 이것을 먹으면 마지막에는 정신이 이상해져서 죽고 맙니다. 조의 말은 빛나는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험 있는 사람이 이 말을 보면, '이 말은 물건이다.' 할 정도로 좋은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중독에 걸린 말이 아니라면 조의 손에까지 들어올 수 있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 말은 조가 워낙 심하게 재촉했기 때문에 그만 자신을 잃어버리고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눈알을 빙글빙글 돌리고 머리를 흔들고 다리를 후들거리면서 뛰었습니다. 그러다가 곰의 굴에 발을 디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조는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말았습니다. 심한 타박상을 입었지만, 얼굴을 찡그리고 일어난 그는 미친 듯이 날뛰는 말을 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말은 맥을 추지 못했습니다. 오른쪽 앞발이 축 늘어져 있어서, 이제 더는 쓸모가 없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조는 말 안장을 풀어 주어 고통을 없애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안장을 가지고 캠프로 돌아왔습니다. 그 동안 검정말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일이 완전히 실패라고는 할 수 없었습니다. 달아난 것은 검정말뿐이고, 나머지 암말들은 조의 마음대로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와 찰리는 암말들을 우리 속으로 몰아 넣고 정해진 사례금을 받았습니다. 조는 어떻게 해서라도 검정말을 잡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빨리 달리고도 지치지 않는 말은 다른 곳에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검정말을 잡을 방법이 없을까 하고 밤낮 그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함정을 만들어서
조와 함께 이 말사냥에 뛰어든 요리사인 톰 베스 할아버지는 우체국에 등록을 해 두었습니다. 그는 편지와 송금해 오는 돈을 찾으러 자주 우체국에 갔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편지나 송금해 오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톰 할아버지를 칠면조 할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톰 할아버지 가축에 찍는 쇠도장의 무늬가 칠면조의 발자국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축업자들은 자기의 가축이 다른 가축들과 섞였을 때 금방 찾을 수 있도록 저마다 다른 모양의 쇠도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톰 할아버지는 한 마리의 가축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쇠도장을 가지고 있으니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톰 할아버지는, "이 쇠도장은 덴버 주에 등록되어 있는데, 거기에는 수많은 소와 말이 칠면조 발자국 쇠도장이 찍혀 있어." 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톰 할아버지는 검정말 사냥에 참가해 달라고 했을 때, 조에게 핀잔을 주었습니다. "1다스에 12달러도 되지 않는 쓸모없는 말을 쫓아서 뭘 한담." 그래도 톰 할아버지는 얼마 안 되는 돈을 받고 떠났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검정말을 한 번 보고 그 생각은 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멋진 말을 한 번 보기만 하면 끝입니다. 누구라도 빠져들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톰 할아버지도 조나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해서라도 검정말을 손에 넣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그 희망이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빌 스미스라는 사람이 점심때 목장에 왔습니다. "일을 부탁해야겠어." 하고 말을 꺼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어쩌면 점심을 얻어먹기 위해서 핑계를 댄 것인지도 모릅니다. 가축의 쇠도장으로 말한다면 '말발굽 빌리'라는 쪽이 더 잘 통하는 사나이였습니다. 모두가 싱싱한 고기, 빵, 커피, 말린 복숭아, 벌꿀을 펼쳐 놓고 있을 때 그가 왔습니다. 빌은 큰 빵을 입에 물고는 마치 원숭이가 소리치는 것 같은 말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말이지, 오늘 검정말을 봤어. 그것도 꼬리라도 잡을 수 있을 만한 가까운 거리에서." 한 사람이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그래서 자네는 쏘지 않았나?" "자칫 잘못했으면 쏘았을지도..." "이것 봐, 바보 같은 짓 하는 게 아냐." 테이블 건너편에서 한 카우보이가 소리쳤습니다. "나는 말이지. 달이 모양을 바꾸기 전에 그 주인없는 말에 내 쇠도장을 찍고 말겠어." 그러자 또 다른 한 사람이 놀렸습니다. "쳇, 그건 어려울걸. 너는 한참 헤매고 다니지 않으면 안 될걸. 네가 갔을 때에는 이미 내 삼각점 쇠도장이 찍혀 있을걸." 다른 한 사람이 이야기를 처음으로 돌렸습니다. "너 어디서 그 검정말을 봤어?" "음... 나는 샘터로 말을 몰고 가고 있었어. 랏슈라는 풀이 무성한 안쪽의 마른 진흙 위에 검은 덩어리 같은 것이 보였어. 나는 혹시 우리 소가 아닌가 하고 말을 타고 갔지. 그런데 바로 그 검정말이 잠을 자고 있었어. 뭐, 바람? 그래, 바람은 말 쪽에서 내 쪽으로 불고 있었어. 그러니까 내 냄새가 그 놈에게 갈 염려는 없었지. 그래서 내가 가까이 가 봤더니 바로 그 놈이 검정말이었어. 검정말은 죽은 것 같았어. 마치 고등어처럼 말이야. 그러나 자세히 보니까 몸은 아직 부풀어 있지도 않고 찢겨 있지도 않았어. 썩은 냄새도 나지 않았어. 그 때 말이 꿈틀하더니 파리를 날렸어. 검정말은 잠을 자고 있었던 거야." 모두 숨을 죽이고 듣고 있었습니다. 이 때 한 사람이 끼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자네는 어떻게 했어?" "그래서 나는 곧 오랏줄을 꺼냈지. 그런데 억울하게도 내 것은 이미 낡아 있었어. 게다가 내 안장의 허리띠는 외가닥이었어. 또 내가 타고 있는 말은 포니(조랑말)였기 때문에 7백 파운드(317. 5킬로그램)밖에 안 되었는데, 검정말은 1천2백 파운드(약 544. 3킬로그램)는 될 것 같았어.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 검정말에게 오랏줄을 걸어 봐도 끌어당길 수가 없을 것이라고 말이야. 어차피 안 될 일이라면 안장 끝을 끌어당겨야겠다고 말이야." 모두 숨을 죽이고 다음 말을 기다렸습니다. 빌은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자네들에게 그 때의 검정말을 보여 주고 싶었어. 그 놈은 2미터쯤 펄떡 뛰어올랐어. 그러더니 기차의 기적 소리 같은 소리로 울더니 단숨에 캘리포니아 쪽으로 뛰어 달아났어. 지금쯤 그 놈은 캘리포니아에 있을 거야. 그런데 그 놈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두 발을 모아서 마구 뛰더군." 빌의 이야기는 여기서 말한 것처럼 정리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빌이 강조했던 말은 틀림없었습니다. 빌의 이야기는 사리에 맞았고, 또 허풍을 떠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모두 그의 말을 믿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톰 할아버지는 남의 말을 잘 믿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가 장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이유는 이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서 머릿속으로 무엇인가 새로운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식사를 마친 다음 파이프 담배를 피우면서 톰 할아버지는 줄곤 그 생각만을 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이 일은 혼자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 말발굽 빌리를 의논할 상대로 끌어들이자.' 이렇게 생각이 정해졌습니다. 톰 할아버지는 곧 빌을 끌어들였습니다. 검정말을 잡아서 화차 속에 집어 넣자고 했습니다. 몽고메리 할아버지가 건 상금은 둘이 똑같이 나누어 갖기로 했습니다. 상금은 이 때 5천 달러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잘 되었습니다. 빌은 톰 할아버지와 같이 이 일에 뛰어들기로 결정했습니다. 사슴 샘터는 지금도 검정말이 와서 물을 먹는 곳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곳에 왔을 때 올가미를 걸자는 생각이었습니다. 물은 조금밖에 나오지 않고 있었으며, 그 근처에는 마른 진흙이 띠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이 곳에는 두 군데에 동물들의 발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말과 그 밖의 다른 야생 동물들은 꼭 이 두 군데의 발자국을 따라 물을 마시러 옵니다. 발자국이 없는 곳은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소만은 겁없이 지름길로 지나오지만... 두 군데의 발자국이 아닌 곳에서 두 사람은 일을 시작했습니다. 삽으로 길이 4미터 반, 폭 1미터 반, 깊이 2미터에 이르는 큰 함정을 팠습니다. 이것은 검정말이 물을 마시러 오기 전에 빨리 끝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샘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에 흙이 질퍽하여 여간 힘들지 않았습니다. 20시간이나 걸리는 큰일이었습니다. 마침내 일이 끝나자 그 함정을 기둥과 나뭇가지와 흙으로 덮어 두었습니다. 겉에서 봐서는 전혀 모르게 감추어 두었습니다. 이렇게 해놓고 두 사람은 멀리 떨어진 곳에 또 파놓은 굴속으로 들어가서 숨어 있었습니다. 낮이 되었을 때 생각했던 대로 검정말이 왔습니다. 무리를 다 빼앗겨 버린 지금 그는 외톨이였습니다. 그러나 톰 할아버지의 목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발자국의 길의 둘 중에 저쪽에 있는 것은 요즘 거의 쓰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모르고 함정을 이쪽에다 파 두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검정말이 잘못하여 저쪽으로 걸어갈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풀을 많이 뜯어서 길바닥에 흩어 두었습니다. 이 새로운 풀을 보고 검정말은 평소와는 다른 것을 알고 뒷걸음질 쳐서 이쪽 발자국 길을 선택할 것이라고 짐작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천사가 야생 동물을 밤낮없이 보호해 줄까요. 검정말은 저쪽 발자국이 있는 길에 흩어 놓은 풀을 밟고 왔던 것입니다. 물가에 와서 검정말은 맛있게 물을 마셨습니다. 이렇게 되면 이제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검정말을 함정 쪽으로 모는 것이었습니다. 검정말이 두 번째 물을 마시려고 고개를 숙일 때였습니다. 톰 할아버지와 빌이 굴 속에서 뛰어나왔습니다. 말이 머리를 들었을 때 빌은 말 뒤의 땅바닥을 향해 '빵빵...' 하고 권총을 쏘았습니다. 검정말은 함정 쪽으로 뛰어갔습니다. '다음에는 풍덩하고 빠지겠지.' '이쪽이다!' 이렇게 두 사람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검정말에게는 귀신이 붙어 있는지 함정보다 훨씬 멀리 뛰어서 흙을 차 버리고는 사라졌습니다. 검정말은 이런 경험을 한 다음부터는 두 번 다시 이 샘터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릴레이로 쫓기
들판에서 자란 카우보이 조 카론은 변함없이 원기왕성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검정말을 잡으려고 하는 것을 알고, '이대로 있을 수 없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내 손으로 그 검정말을 잡고 말아야지.' 그는 이렇게 결심했습니다. 이번에는 지금까지 들었던 일이 없는 방법으로 잡으려고 했습니다. 자기도 아직 해 보지는 않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인 것만은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릴레이로 쫓기'라는 기술이었습니다. 이리가 들토끼를 잡거나, 말에 탄 인디언이 말보다 훨씬 빠른 사슴을 잡는 방법입니다. 말하자면 일정한 사이를 두고 말을 몇 마리나 미리 두었다가 차례로 갈아타고 쫓아가는 것입니다. 이 기술을 잘 쓰기만 하면 상대는 점점 지치지만 이쪽은 힘이 좋은 말로 쫓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쪽의 캐나다 강과 그 지류인 강과 골짜기, 그리고 언덕이 1백 킬로미터나 되는 삼각형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곳이 바로 검정말의 땅이었습니다. 검정말은 자기 땅 밖으로는 절대로 나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기 땅의 중심은 사슴 샘터였습니다. 조는 이 땅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 물구멍, 골짜기를 건너가는 곳, 검정말이 지나 다니는 길 등은 언제나 머릿속에서 그릴 수가 있습니다. '만약 50마리의 우수한 말만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말을 군데군데에 배치해 놓고, 일제히 좁혀 들어갈 수가 있는데...' 조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조가 이용할 수 있는 것은 20마리의 말과 5명의 카우보이뿐이었습니다. 2주일 전부터 원기왕성한 말들이 먼저 왔습니다. 카우보이들은 조를 나누고 한 사람씩 자기가 할 일을 지시 받았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정해진 장소로 갔습니다. 이것은 릴레이로 쫓기를 시작하기 하루 전의 일이었습니다. 출발날이 되었습니다. 조는 포장마차로 사슴 샘터의 들판을 지나 멀리 떨어진 골짜기에 캠프를 쳤습니다. 그리고 검정말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나타났습니다. 검정말은 여느 때와 같이 혼자서 남쪽 모래 언덕 위에 검은 모습을 나타낸 것입니다. 조용히 샘터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 근처를 한 바퀴 돌고 계속 냄새를 맡았습니다. 어디에 적이 숨어 있는지 주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발자국이 없는 곳으로 걸어가 물을 마셨습니다. 참 맛있게 물 마시는 것을 보고, 조도 시원한 맥주를 한 잔 쭉 마시고 싶었습니다. 검정말은 몸을 돌려 풀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조는 자기 말을 타고 빨리 달렸습니다. 검정말은 용수철처럼 뛰어오르더니 달아났습니다. 정말 빨리 달렸습니다. 평평한 곳을 지나 남쪽으로 달렸습니다. 여전히 발을 모아 뛰었습니다. 조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검정말은 모래 언덕을 빠져 나갔습니다. 조의 말도 모래 언덕으로 접어들었다가 겨우 평평한 곳으로 나왔습니다. 이번에는 조의 말이 빨리 달리는 것 같았습니다. 검정말과의 거리가 점점 좁아졌습니다. 그 다음은 긴 비탈길이었습니다. 조의 말은 있는 힘을 다하여 달릴 용기가 없었습니다. 또 한 걸음씩 늦어졌습니다. 쫓는 말도 쫓기는 말도 죽을 힘을 다하였습니다. 조는 채찍을 휘두르면서 검정말을 쫓았습니다. 1킬로미터, 1킬로미터, 1킬로미터. 마침내 멀리 큰 바위 하나가 보였습니다. 거기에는 새 말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앞서가는 검정말은 갈기를 바람에 날리며 점점 멀리 사라졌습니다. 마침내 아리바 골짜기입니다. 기다리고 있던 카우보이가 쫓아 나왔습니다. 경주의 방향을 바꿀 필요가 없었습니다. 검정말은 비탈을 내려와서 단숨에 맞은편 쪽의 비탈을 올라갔습니다. 조는 지쳐서 흰 거품을 뿜고 있는 자기 말을 세우고 기다리고 있던 다른 말에 몸을 옮겼습니다. "자, 달려라!" 새 말은 힘차게 달렸습니다. 그러나 검정말의 빠르기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힘껏 달렸지만 조금도 사이를 좁힐 수가 없었습니다. "달가닥달가닥..." 똑같은 소리를 내면서 검정말은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1시간, 1시간, 또 1시간. 바라보니 골짜기가 보였습니다. 거기에는 또 다른 릴레이 말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조는 자기 말에게 큰 소리를 지르며 채찍을 쳤습니다. 검정말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똑바로 달려갔습니다. 조가 계획한 대로였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3킬로미터쯤 남겨 두고는 어찌 된 영문인지 왼쪽으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뭔가 이상한 예감이 있어 그렇게 한 것일까? 큰일났다. 이건 다른 코스로 도망칠 생각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조의 말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습니다. 조는 어떻게 해서라도 검정말이 가는 길을 바꾸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추적한 것도 결렬하였지만, 이번에는 더 힘들었습니다. 숨은 차고 안장은 조가 힘을 줄 때마다 삐걱거렸습니다. 이제는 보통 수단으로는 안 됩니다. 조는 허리의 권총을 뽑아 들고 앞쪽으로 쏘았습니다. 총알은 앞쪽의 땅 위에 맞아 먼지를 일으켰습니다. 이렇게 놀라게 한 것이 효과가 있었습니다. 검정말은 방향을 바꾸어 오른쪽으로 돌아왔습니다. '됐다. 놓칠 수가 있겠는가.' 조는 이를 꼭 깨물었습니다. 검정말은 낮은 땅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검정말은 건너가는 쪽으로 지나 단숨에 달렸습니다. 조는 여기서 내렸습니다. 이제 지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쫓기에는 50킬로미터를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달렸던 것입니다. 말도 더 이상 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새로운 말도 있습니다. 조는 말에서 내리자마자 손짓으로, "쫓아가. 아라모사로 가는 쪽으로, 똑바로!" 하고 명령했습니다. 조의 눈은 날리는 먼지 때문에 반쯤 장님이 되어 있었습니다. 눈이 어둠침침하여 잘 볼 수가 없었습니다. "좋아, 나에게 맡겨 줘." 새로운 기수인 톰이 새 말 진자를 타고 쏜살같이 달렸습니다. 검정말을 따라 평원으로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검정말의 몸에서는 눈과 같은 땀의 거품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갈비뼈는 파도처럼 아래위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 쇠 같은 말은 계속 달리고 있었습니다. 톰은 여기서 점점 검정말과의 거리를 좁혀갔습니다. 그러나 1시간쯤 지나서 아라모사의 비탈길을 내려갔을 때에는 그만 뒤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또 새로운 카우보이가 새 말을 타고 뒤쫓았습니다. 이번에 말을 탄 사람은 카링톤이라는 젊은이였습니다. 그는 말을 서쪽으로 몰아 초원의 동물들 굴이 많은 곳을 지나갔습니다. 수많은 선인장을 지나면서 가시에 찔리기도 하였으나, 쉬지 않고 달렸습니다. 검정말은 땀과 먼지가 범벅이 되어 이제는 갈색말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리는 여전히 힘차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카링톤은 너무 자신에 넘쳐 처음 뛸 때 자기 말에게 상처를 좀 입혔습니다. 그것이 실수였습니다. 검정말이 골짜기에 들어가서 조금 머뭇거리고 있을 때, 단숨에 쫓아가려고 자기 말을 회초리로 때렸습니다. 순간 말은 그만 발을 헛디뎌 몸의 균형을 잃고 말았습니다. 말과 사람이 한꺼번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카링톤은 재수 좋게 일어났으나 말은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 바람에 검정말은 멀리 달아나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암말을 미끼로
조는 아까의 피로에서 완전히 벗어나 카레고 할아버지의 목장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검정말을 보자 또 맹렬하게 추적했습니다. 멀리 서쪽에 카루로스의 언덕이 보였습니다. 거기에는 또 새 사람과 새 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기에서는 꺾일 줄 모르는 카우보이들이 그 쪽으로 오는 검정말을 차례로 뒤쫓았습니다. 이 때 검정말의 마음 속에는 갑자기 경계심이 일어난 것 같았습니다. 생각지도 않게 몸을 홱 돌려 북쪽으로 달렸습니다. 조는 큰 소리를 지르며 권총을 쏘아댔습니다. 그러나 검정말은 원래의 방향으로 돌아서지 않고 검은 유성처럼 벼랑을 타고 내려갔습니다. 조는 이것을 따라가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경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조는 검정말에 대해 잔인하게 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과 자기의 말에 대해서도 잔인했습니다. 태양은 쨍쨍 내리쬐고 들판은 찌는 듯한 열기로 가득했습니다. 조의 눈도, 입술도, 모래와 소금기로 바싹 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추적은 계속되었습니다. 이 추적에서 이길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가지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검정말을 빅 골짜기의 건너가는 곳까지 쫓아가느냐 못 가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처음으로 조는 달려가는 검정말의 모습에서 지금까지 없었던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것은 쇠약한 그림자였습니다. 갈기와 꼬리는 이제 아까처럼 높이 올라가 있지 않았습니다. 8백 미터쯤 떨어진 거리가 이제는 7백 미터쯤밖에는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역시 명마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여전히 앞장서서 흔들리지 않고 달려갔습니다. 1시간, 또 1시간, 그들은 변함없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검정말은 조의 끈질긴 추적에 질려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바랐던 대로 빅 골짜기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빅 골짜기의 건너가는 곳에 왔을 때에는 마침내 땅거미가 깔리고 있었습니다. 벌써 30킬로미터는 달려온 셈입니다. 그래도 조는 지치지 않고 있었습니다. 조는 또 새 말을 탔습니다. 버린 말은 물가에 가서 물을 마구 마시고는 그만 죽어 버렸습니다. 쫓기는 검정말도 이제 거품을 내뿜고 있었습니다. 조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저 놈도 물을 실컷 좀 마셔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러나 검정말은 영리했습니다. 한 모금만 마셨을 뿐입니다. 그리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에 검정말은 조금밖에 앞장서지를 못했습니다. 조의 말이 뒤에서 바싹 다가갔습니다. 이튿날 아침, 조는 터벅터벅 걸어서 캠프로 돌아왔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았습니다. 8마리의 말이 죽었고, 5명의 카우보이가 지쳐 버렸습니다. 그래도 검정말은 탈없이 달아나 버렸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자유의 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놈은 아무래도 안 되겠어. 내 기술로는 어쩔 수가 없어. 지금 같으면 권총으로 그 놈의 배에 구멍을 내 버렸을 거야. 억울해서 참을 수가 없어." 마침내 그렇게도 열심히 노력했던 조가 두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톰 할아버지는 이 사냥에 요리사로서 참가했습니다. 그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흥미를 가지고 이 추적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사냥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말을 듣고 톰 할아버지는 냄비를 보고, "헷헤헤... 그 검정말은 내 거야. 내가 바보가 아닌 다음에는 말이야."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톰 할아버지는 언제나 하던 것처럼 성서를 뒤져서 점을 쳤습니다. 그리고 냄비를 보고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흥, 단 5천 달러로 그 말을 달라고?" 여러 가지로 시달림을 받은 검정말은 지금까지보다 훨씬 거칠어져 있었습니다. 그래도 사슴 샘터에 물을 마시러 오는 일은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사슴 샘터에 물을 마시러 오는 일은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이 곳이 1킬로미터 사방에 걸쳐서 숨은 곳이 없는 오직 한 곳, 물을 먹을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검정말은 언제나 낮에 이리로 왔습니다. 땅바닥을 잘 살펴본 다음 안전하다고 생각이 들면 물을 마시러 왔습니다. 톰 할아버지는 이렇게 신경질일 되어 있는 검정말을 어떻게 잡겠다는 것일까요? 검정말은 자기가 거느리고 있던 암말들을 빼앗긴 뒤부터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톰 할아버지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암말을 미끼로 하여 오랏줄을 감아 버리려는 것이 톰 할아버지의 작전이었습니다. 톰 할아버지를 돕는 카우보이에는 작은 암말을 가지고 있는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이 암말이 좋은 미끼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톰 할아버지는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톰 할아버지는 이 암말을 빌렸습니다. 그리고 발을 묶을 강한 가죽 밧줄, 보습, 그리고 예비로 오랏줄 등을 준비했습니다. 이 밖에 굵은 기둥을 하나 암말에 싣고 사슴 샘터로 갔습니다. 들판에는 사슴 몇 마리가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소떼들이 여기저기에 누워 있었고, 종달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이미 눈이 내리는 계절은 지나고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여기저기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자연의 모든 것이 사랑을 속삭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암말을 풀밭에 풀어 주자 가끔 코를 들고는 '히힝' 하고 울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사랑의 노래 같았습니다. 톰 할아버지는 바람이 부는 방향과 땅바닥을 잘 살펴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전에 톰 할아버지가 힘들여 파 놓은 구덩이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물이 가득 괴어 있었고, 갖가지 짐승들이 빠져 죽어 나쁜 냄새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톰 할아버지는 이곳저곳을 조사한 다음 구덩이를 파고는 가지고 온 기둥을 단단히 묻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자기가 숨을 자리를 파고는 담요를 폈습니다. 그리고 암말을 기둥에다가 단단히 매어 두었습니다. 묶은 밧줄은 될 수 있는 대로 짧게 하고 빙글빙글 돌지 못하도록 해 두었습니다. 숨은 곳과 암말과의 사이에는 오랏줄을 펴서 그 끝을 기둥에 연결했습니다. 그리고 모래흙과 풀을 덮어서 밖에서는 보이지 않게 해 둔 다음 자기는 구덩이에 가서 숨어 있었습니다. 톰 할아버지는 이렇게 하고 오래오래 기다렸습니다. 낮에 서쪽의 높은 곳에서 암말의 울음소리에 대답하는 또 한 마리의 울음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것은 검정말의 소리였습니다. 그 쪽에는 파란 하늘을 등지고 검은 그림자를 세운 검정말이 서 있었습니다. 벼랑을 박차고
검정말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샘터로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말은 계속된 추적 때문에 무척 조심스러웠습니다. 멈춰 섰다가 울었다가 하고는 겨우 가까이까지 왔습니다. 또 한 번 암말이 울자 정신을 바짝 차렸습니다. 아직 마음 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바람에 날려 오는 적의 냄새를 맡기 위해 큰 원을 그리며 돌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야생 동물의 수호신이, "그 쪽으로 가면 안 돼!" 하고 속삭인 것 같았습니다. 암말은 또 검정말을 향해서 울었습니다. 검정말은 원을 그리며 그쪽으로 와서 힘차게 울었습니다. 암말이 대답하자 검정말은 두려움을 잊은 듯했습니다. 그의 가슴을 불탔습니다. 검정말은 다시 가까이 왔습니다. 마침내 코끝으로 암말의 코를 문질렀습니다. 암말이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받아 주자 위험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때 두 말이 오랏줄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순간 오랏줄이 날카롭게 좁혀지고 무서운 가죽 밧줄이 검정말의 몸을 묶었습니다. 검정말은 너무 놀란 나머지 콧소리를 내매 하늘로 치솟아 올랐습니다. 검정말은 바로 달아나려고 했습니다. 두려움이 그의 속력을 두 배나 강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검정말은 땅바닥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구덩이에 숨어 있던 톰 할아버지가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영리하고 힘이 센 동물도 톰 할아버지의 꾀에 걸려들고 만 것입니다. 검정말은 콧소리를 거칠게 내며 미친 듯이 날뛰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달아나려고 몸부림쳤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틀렸습니다. 이미 쓸데없는 노력이 되고 말았습니다. 가죽 밧줄은 그만큼 단단했던 것입니다. 두 번째 밧줄이 앞발을 묶었습니다. 검정말은 그 자리에 쓰러졌습니다. 말은 심하게 몸을 떨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처럼 흐느껴 울었습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톰 할아버지는 서서 이 광경을 지켜 봤습니다. 이상한 감동이 톰 할아버지를 감쌌습니다. 처음 수소를 밧줄에 건 것은 훨씬 젊었을 때였습니다. 그 때부터 한번도 느껴 보지 못한 것을 느꼈습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떨렸습니다. 톰 할아버지는 암말에게 안장을 얹었습니다. 그리고 암말에게 검정말의 머리를 안겨 주었습니다. 그 사이에 발을 오랏줄로 묶었습니다, 이 일은 간단히 끝났습니다. 이제 검정말은 완전히 톰 할아버지의 것입니다. 톰 할아버지는 걸었던 오랏줄을 풀려고 하다가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그렇다. 중요한 것을 잊었군.' 서부의 법률에서는 야생마에게 제일 먼저 쇠도장을 찍은 사람이 그 말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쇠도장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쇠도장이 있는 곳은 여기서 5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입니다. '어떡하지? 그렇다, 좋은 수가 있다.' 톰 할아버지는 암말의 발굽을 하나씩 들고 살펴보았습니다. 흔들리는 쇠발굽이 하나 있었습니다. 톰 할아버지는 이 쇠발굽을 떼냈습니다. 들판에는 들소의 똥과 그와 비슷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을 이용하여 급히 불을 피웠습니다. 톰 할아버지는 마침내 쇠발굽을 벌겋게 달구어 검정말의 왼쪽 어깨에 자기의 쇠도장인 칠면조 발자국을 그렸습니다. 이 쇠도장을 쓴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달구어진 쇠로 자기 살을 지지자 검정말은 부르르 떨었습니다. 이 일은 빨리 끝났습니다. 이제 검정말은 주인없는 야생마가 아닙니다. 이제 남은 일은 이 말을 끌고 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밧줄이 풀리자 검정말은 놓아 준 것이라고 생각하였는지, 펄쩍 뛰어올랐습니다. 순간 그는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앞발이 아직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톰 할아버지는 어떻게 해서라도 이 검정말을 골짜기로 끌고 가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검정말은 걷지 않았습니다. 사람에게 굴복할 생각이 없었던 것입니다. 검정말은 콧소리를 내며 앞발을 치켜들고 달아날 궁리만 했습니다. 그것은 치열한 사람과 말의 싸움이었습니다. 검정말의 번쩍이는 허리는 완전히 땀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쫓겨다녔을 때는 느끼지 못한 피로가 한꺼번에 닥쳤습니다. 몇 십 번이나 땅바닥에 쓰러진 것도 더욱 피로를 더해 주었을 것입니다. 몸부림도 처음과 같지 않았습니다. 검정말의 코에서는 피가 섞여 나왔습니다. 그래도 더욱 잔인하고 난폭하게, 톰 할아버지는 검정말을 끌어당겼습니다. 톰 할아버지는 말을 끌고 골짜기의 비탈을 내려갔습니다. 마침내 골짜기를 벗어났습니다. 이 곳은 검정말이 오랫동안 살던 마지막 북쪽 땅이었습니다. 여기서는 가축의 우리와 목장의 집들이 보였습니다. 톰 할아버지는 기뻐했습니다, 검정말은 또 한번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서 몸부림쳤습니다. 풀이 깊은 비탈 위로 올라갔습니다. 톰 할아버지는 화를 냈습니다. 그래서 가죽줄을 휘두르며 검정말을 야단쳤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보고 총을 쏘아 놀라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거의 헛수고였습니다. 검정말은 위로 위로 뛰어 올라갔습니다. 마침내 검정말은 치솟은 벼랑 위에 섰습니다. 순간 검정말은 단숨에 뛰어올라 허공에 몸을 던졌습니다.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검정말은 똑바로 떨어졌습니다. 이제는 자유의 몸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목숨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옐로 스톤 공원의 야생곰 이야기
자연 공원의 곰
조니는 무뚝뚝한 엄마곰 그랜비와 함께 옐로 스톤 국립 자연 공원에 살고 있었습니다. 누가 봐도 퍽 다른 이상한 아기곰이었습니다. 공원 안의 '샘터 호텔' 부근 일대에는 야생곰들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엄마곰과 아기곰도 그 친구들이었습니다. 이 호텔의 요리장은 부엌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가까운 숲속의 빈터에 버리게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여름 한철 동안은 이 근처의 곰들에게 먹이를 주는 것도 되었습니다. 이 자연 공원에서는 야생 동물을 쏘거나 잡거나 하는 일은 엄하게 금지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토지법에 의하여 야생동물의 보호 구역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야생 동물들도 어느 사이에 이런 것을 알고는 이 곳에 오는 동물, 특히 곰의 수는 해마다 불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친절한 선물을 받는 사이에 점점 사람들과 친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호텔 사람들의 얼굴을 아는 곰도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얼굴 생김새나 버릇 등을 생각하여 곰들에게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키다리 짐'이라는 곰은 마르고 유난히 다리가 긴 검정곰이었습니다. 그리고 '검정코 스내피'는 마치 불에 덴 것처럼 얼굴이 검정색입니다. '뚱보'는 굉장히 뚱뚱한 곰이고, 언제나 땅바닥에 앉아서 먹기만 하는 게으름뱅이입니다. 그리고 '쌍둥이'는 1년 내내 둘이 붙어서 다니고 있는 두 마리의 곰인데, 털이 보송보송하고 아직 제대로 어른곰이 되지 못한 곰입니다. 이러한 곰들 중에서도 엄마곰 그랜비와 아기곰 조니가 가장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엄마곰은 암컷이면서도 이 근처의 검정곰들 중에서 몸집이 가장 크고, 성질도 가장 거칠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조니는 외동곰이면서도 용맹이 없고, 언제나 입만 놀리고 있는 보통 곰과 같았습니다. 건강한 아기곰은 건강한 아이들과 마찬가지고 언제나 그렇게만 지내는 것은 아닙니다. 조니는 병을 앓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이렇게 보잘것없는 곰은 넓은 공원에서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그 모습을 살펴보니 조니는 소화불량에 걸린 것 같았습니다. 조니는 호텔의 부엌에서 나온 쓰레기장에 가면, 여러 가지 찌꺼기를 삶은 부드러운 것만 먹었습니다. 이것은 위장이 약하다는 증거입니다. 또 조니는 무슨 생각이 나면 그것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 나쁜 버릇이 있었습니다. 엄마곰은 어떤 일이라도 조니가 하는 대로 놓아 두었습니다. 아기곰이 제멋대로 하는 것은 엄마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엄마라면 자식을 이렇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게다가 조니의 발 하나는 절름발이였습니다. 털가죽도 더럽고, 네 발은 말았고, 귀와 배만이 유난히 컸습니다. 이렇게 형편없는 곰이었지만, 엄마곰은 조니를 애지중지했습니다. '우리 집 아기곰은 뛰기도 잘하고 솜씨도 좋아 곰 중의 왕자다.' 하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귀여운 아기곰이 무슨 일을 해도 상관없다는 그런 배짱이었습니다. 조니도 그것을 알고 일부러 엄마곰을 골탕 먹이는 일만 하였습니다. 이 외동곰은 결코 바보는 아니었습니다. 엄마곰에게 어떻게 어리광을 부리면 맛있는 것을 얻어 먹을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이 아기곰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1897년의 여름이었습니다. 이 때 나는 동물의 가정 생활을 연구하기 위해서 이 자연 공원에 왔었습니다. '샘터 호텔' 근처의 숲 속에 가면 언제나 곰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그 전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생곰이 사람이 살고 있는 호텔 근처에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호텔에 도착한 지 5분 만에 뒤쪽 문을 나선 순간, 2마리의 아기곰을 데리고 있는 큰 검정곰과 만났습니다. 깜짝 놀라서 멈춰 서자 곰들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코프, 코프." 하고 목 안에서 이상한 짧은 소리를 내면서 가까운 소나무 쪽을 보았습니다. 아기곰들은 곧 그 뜻을 안 것 같았습니다. 소나무 쪽으로 달려가서 마치 원숭이들처럼 나무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안전한 곳까지 올라가더니 가지에 허리를 걸치고 두 손으로 가지를 잡았습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하고 이상하다는 듯이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고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곰은 어슬렁어슬렁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 때는 정말 기분이 나빴습니다. 키가 2미터나 되는 큰 곰이 앞에 있으니. '자, 큰일났다.' 나는 내 몸을 보호하기 위한 막대기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 자연 공원의 곰은 언제나 사람과 휴전 조약을 맺고 있다는 이야기는 그 전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으르렁거리며 이쪽을 바라보는 곰 앞에서 나는 그만 기가 질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급히 호텔로 되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 위험한 순간에 엄마곰이 갑자기 멈춰 섰습니다. 곰과 나 사이의 거리는 겨우 10미터쯤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상대가 덤벼들려고 하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곰은 그 이상 다른 행동은 하지 않고 가만히 나를 보고만 있었습니다. 그 태도는 마치, '꼬마들을 위해서 위험한 일은 하지 말자.' 하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곰은 소나무 위를 쳐다보며 2마리 아기곰에게, "에르르르 에르르." 하고 콧소리를 냈습니다. 아기곰들은 가지를 타고 내려왔습니다. 느리다든지 무섭다든지 하는 곰다운 느낌이 전혀 없었습니다. 가벼운 몸 움직임이었습니다. 아기곰들은 엄마곰을 따라 숲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기곰들의 착한 성질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엄마곰이, "이렇게 해라." 하고 말하면 곧 그대로 했습니다. 자기 생각은 조금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아기곰들이 말을 잘 듣는 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엄마곰의 말을 듣지 않으면 아기곰들은 '끼끼' 하고 소리를 낼만큼 엉덩이를 맞기 때문입니다. 나는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생각하지 않던 관찰을 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만 해도 내가 여기에 온 값어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호텔에서 알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여기는 곰을 관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이 아닙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4백 미터쯤 숲 속으로 들어가면 쓰레기장이 있습니다. 거기에 가면 반드시 보고 싶은 곰을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모두 이렇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쓰레기장에 숨어서
이튿날 아침 일찍, 나는 이야기 들은 솔밭 속의 곰들의 잔칫집에 갔습니다. 숲 속에 숨어 있으니 과연 곰들이 왔습니다. 한 마리의 큰 곰이 숲 속에서 모습을 나타내고는 쓰레기장을 뒤지더니 뭔가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겁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조그마한 소리에도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서서 주위를 둘러보고는 4, 50미터나 멀리 달아나곤 하였습니다. 마침내 검정곰 한 마리가 나타나자 다시 귀를 쫑긋 세우고 재빨리 솔밭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뒤에 나타난 이 곰도 무척 겁쟁이였습니다. 내가 좀 자세히 살펴보려고 몸을 움직이다가 나뭇잎 소리를 내자 후다닥 달아나 버렸습니다. 물론 이 자연 공원에서는 누구든지 무기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나는 처음에는 겁을 집어먹고 있었으나 곰들이 겁내는 것을 보고 그러한 불안이 없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안심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들의 가정 생활을 살펴보겠다는 흥미로 나는 다른 일을 완전히 잊어버렸습니다. 내가 숨은 곳은 쓰레기장에서 70미터쯤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좀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충분한 관찰을 할 수 없었으나 가까운 곳에는 숨을 만한 곳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큰맘을 먹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쓰레기장에 내 몸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구덩이를 파서 그 속에 들어가 하루 종일 관찰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쓰레기장은 냄새가 지독했는데, 양배추 속, 오래 된 감자 껍질, 토마토 껍질, 썩은 고기 이런 것들이 심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런 냄새가 나는 곳에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파리 떼가 마치 검은 산처럼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정말 달갑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그 날 밤 냄새를 풍기면서 호텔로 돌아왔는데 숲 속에서 옷을 갈아입지 않으면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 관찰은 퍽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그 대신 내 눈으로 똑똑히 곰들의 생활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여러 가지 곰이 나타났습니다. 만약 그것들이 모두 다른 곰이었다고 한다면 모두 40마리 이상의 곰을 봤습니다. 그러나 같은 곰이 왔다갔다 했을 테니까 그만큼 많은 곰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13마리가 있었던 것은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한꺼번에 13마리의 곰이 왔기 때문입니다. 그 날 하루 종일 나는 스케치북에 나타난 곰을 모두 그려 두었습니다. 한참 이런 일을 하고 있을 동안에 나는 곰마다 습관과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전중 곰들은 내가 숨어 있는 것을 모르고 그 근처를 왔다갔다 하고 있었습니다. 한두 번 서로 싸움을 했으나 이렇다할 사건은 없었습니다. 오후 3시경이 되자 천천히 활기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큰 곰 4마리가 쓰레기장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가운데에는 뚱보 곰이 입으로 오물거리면서 길게 드러누워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쪽에서는 키다리 짐이 먹다 버린 새우를 만지작거리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나머지 2마리는 과일 통조림에 남아 있는 즙을 핥아먹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것을 완전히 스케치 할 수가 있었습니다. 갑자기 언덕 위에 뭔가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새로운 곰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가까이 오는 것을 보니 검정곰과 아기곰이었습니다. 내가 본 일이 있는 엄마곰 그랜비와 아기곰 조니였습니다. 엄마곰은 비탈길을 느릿느릿 걸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조니는 중얼거리면서 뒤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쓰레기장에서 30미터쯤 떨어졌을 때 엄마곰이 아기곰에게 뭐라고 소리쳤습니다. 그것은 대강 이런 뜻이 아닌가 하고 생각됩니다. "조니, 엄마는 저기 가서 다른 곰들을 쫓아 버릴 테니까 너는 여기서 기다려." 조니는 얌전하게 하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따라가 보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것 같았습니다. 뒷발로 벌떡 일어서더니 눈을 그 쪽으로 돌리고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엄마곰은 큰 걸음으로 4마리 곰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엄마곰은 굵고 낮은 목소리로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먼저 온 곰들은 곰이 또 한 마리 오고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실력으로 물리쳐야겠다고 엄마곰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곰은 큰 소리로 울면서 4마리 곰들 속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이상하게도 곰들은 상대하려고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뚱보 곰만은 뒤뚱거리면서 조니가 있는 쪽으로 갔습니다. 엄마곰이 달려가 뚱보 곰의 엉덩이를 두 번이나 공격했습니다. 그러자 뚱보 곰이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엄마곰은 두 번 다시 공격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뚱보 곰은 겨우 달아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엄마곰이 먹이를 다 차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엄마곰은 조니를 이렇게 불렀습니다. "엘엘... 르르..." 그러면 조니는 네 발로 껑충껑충 뛰어왔습니다. 그리고 먹이가 너무 맛이 있었기 때문에 잔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조니는 깡통 다루는 법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 그전에도 여기에 온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속알맹이를 먹는 일은 힘들었습니다. 어떤 깡통은 날카로웠기 때문에 앞발이나 입이 긁히고 맙니다. 참 맛있게 생긴 과일 깡통이 있었습니다. 조니는 억지로 그 깡통 속에 머리를 처넣었습니다. 한참 동안 정신없이 구석구석까지 핥아먹었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꺼내려고 하자 이거 야단났습니다. 머리가 깡통 속에 박혀서 좀처럼 빠져 나오지 않았습니다. 조니는 깡통을 치켜들고 울부짖으며 소란을 피웠습니다. 그래도 머리가 빠져 나오지 않았습니다. 엄마곰도 이것만은 어찌할 수가 없어 우물쭈물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잠시 후, 이리저리 흔들던 조니의 머리가 쑥 빠졌습니다. 조니는 화풀이라도 하듯 깡통을 손으로 짓눌러 납작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어서 즙이 든 깡통, 잼, 과일, 새우, 전갱이, 쇠고기 깡통을 차례로 열었습니다. 배가 마치 고무 풍선처럼 팽팽해졌습니다. 팔은 깡통 속을 뒤지느라고 마치 검은 실크 장갑이라도 낀 것처럼 반짝거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나는 정신이 아찔해졌습니다. 그것은 내가 지금 매우 위험한 곳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엄마곰 그랜비와 회색곰
'만약에...' 하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변덕스런 조니 녀석이 쓰레기 동산 이쪽까지 오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나를 보고 틀림없이 큰 소리를 지를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물론 엄마곰은 내가 아기곰을 해치려 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 말 같은 것은 듣지도 않고 엉뚱한 짓을 할 것이다.' 그러나 고맙게도 조니가 좋아하는 잼 깡통은 모두 저쪽에 있었습니다. 조니는 그 곳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엄마곰도 조니 옆에 있었습니다. 먹보 조니는 엄마곰이 자지가 지금까지 발견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깡통을 가지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빨리 쫓아갔습니다. "코프... 코프..." 그런데 조니는 보통 때와 다른 소리를 냈습니다. 엄마곰이 돌아서서 보았습니다. 나도 그 쪽을 보았습니다. '정말 큰 곰이구나!'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회색곰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털가죽을 덮은 큰 버스 같았습니다. 회색곰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조니는 재빨리 엄마곰 뒤로 숨어 버렸습니다. 엄마곰이 큰 소리로 한 번 울었습니다. 털이 치솟았습니다. 내 머리도 끝이 쭈뼛했습니다. 이럴 때 잘못해서 구덩이 속에서 튀어나오면 어떻게 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회색곰이 어슬렁거리며 이쪽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엄마곰이 이상한 소리를 냈습니다. 그것은 아마 이런 뜻이었을 것입니다. "조니야, 너는 나무 위로 올라가 있거라. 그 사이에 내가 저 괴물을 쫓아 버리고 올 테니까." 조니는 곧 가까운 소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제일 높은 나뭇가지에 올라가서 흥분하여 몸을 흔들며 킥킥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정말 어려운 일이 생겼습니다.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것을 쳐다보았습니다. 조니가 잡고 있는 가지는 너무 가늘어서 이쪽 저쪽으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만약 내가 있는 쪽으로 가지가 부러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조니는 틀림없이 내 머리 위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엄마곰이 가만히 보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다행히 가지는 보기보다 강했습니다. 조니도 잡고 있는 가지를 놓치지 않아서 가지로부터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한편, 엄마곰은 회색곰을 마주보며 걸어갔습니다. 내가 보건대 회색곰은 아직 엄마곰을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마치 거기에는 자기 혼자밖에는 없다는 듯이 회색곰은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3미터 반쯤 되었을 때, 엄마곰이 회색곰에게 덤벼들었습니다, 회색곰은 깜짝 놀랐습니다. 곧 왼쪽 발로 마치 마른 풀단을 던지듯이 가볍게 엄마곰을 던져 버렸습니다. 엄마곰은 조금도 쉬지 않았습니다. 아까보다 더 세게 회색곰에게 덤벼들었습니다. 두 마리는 서로 위로 갔다 아래로 갔다 하면서 뒹굴었습니다. 그 바람에 먼지가 심하게 일어나며, 대단한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나무 위의 조니가 더욱 크게 소리질렀습니다. 조니는 틀림없이, "엄마, 이겨라! 빨리 회색곰을 무찔러!" 하고 응원을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엄마곰은 확실히 회색곰의 적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체격부터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회색곰은 이 엄마곰을 무찌를지 않았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두 마리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서로 헤어졌습니다. 한참 동안 서로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엄마곰 쪽이 더 가쁜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회색곰은 처음부터 싸움은 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빨리 쓰레기장에 가서 조용히 식사를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회색곰이 한 발자국 내디뎠을 때, 엄마곰이 덤벼들었던 것입니다. 조니 쪽에 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회색곰이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뜻밖의 공격에 화가 단단히 난 회색곰은 몸을 날려 엄마곰을 공격하여 날려 버렸습니다. 엄마곰은 소나무가 있는 쪽에 나가떨어졌습니다. 정말 무서운 힘이었습니다. 성질이 날카로운 엄마곰도 그만 싸울 생각을 잃고 말았습니다. 엄마곰이 달아나려고 하자 회색곰이 또 덤벼들었습니다. 두 마리는 소나무를 사이에 두고 빙글빙글 돌아다녔습니다. 달리는 것은 엄마곰이 회색곰보다 빨랐습니다. 회색곰은 좀처럼 따라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조니는 나무 위에서 재미있다는 듯이 꽥꽥거리고 있었습니다. 회색곰이 그만 땅바닥에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아마 새로운 작전을 세우기 위한 짓일 것입니다. 한편, 엄마곰은 재빨리 조니가 있는 나무 꼭대기로 기어 올라갔습니다. 조니는 위에서 조금 내려와 엄마곰을 맞이했습니다. 이것은 잘못하다가는 나뭇가지가 부러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회색곰 앞에 서다
나는 3마리의 곰이 움직이는 모습을 카메라로 찍어 두었습니다. 이것은 참 재미있었습니다.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더 가까이에서 찍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구덩이에서 뛰어나와 나무 밑으로 달려갔습니다. 이것이 잘못이었습니다. 나뭇잎이 무성한 가지가 눈앞을 가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나무 꼭대기에 있는 곰 2마리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나무 기둥에 바짝 몸을 붙이고 사진을 찍으려고 했습니다. 그 때 엄마곰이 나무 위에서 슬슬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코프, 코프' 하는 소리로 나를 위협하면서 자꾸 내려왔습니다. 그 때 저 쪽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여보세요, 조심해요. 그 곰은 위험합니다." 돌아다보니 그 사람은 호텔의 카우보이였습니다. 가축을 쫓아다니고 있다가 나를 본 것입니다. 그 사람이 다가왔습니다. 내가 말했습니다. "저 놈이 내려오는 것을 사진에 담아 두고 싶소." 그 사람은 목을 갸웃하더니 곧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합니다. 나는 말 위에 이렇게 하고 있겠습니다. 만약 저 곰이 덤벼들면 내가 막아 주겠습니다." 카우보이는 엄마곰이 나뭇가지에 내려오고 있는 것을 말 위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엄마곰은 땅바닥 가까운 곳에서 저쪽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나에게 덤빌 생각도 않고 똑바로 숲 속을 향해서 달아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나무 위의 조니는 혼자 남아 있었습니다. 조니는 처음에 잡고 있던 나뭇가지를 잡고 계속 으르렁거렸습니다. 나는 그것을 찍으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조니는 목을 길게 빼서 '킥킥!' 하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까 엄마곰과 회색곰이 싸움하던 때 지르던 소리와 똑같았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 조니가 바라보는 쪽을 보았습니다. 회색곰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달리 공격할 태도는 아니었습니다.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나는 카우보이에게 물었습니다. "이봐, 저 곰을 알고 있나?" "알고 말고요. 저 곰은 회색곰입니다. 이 공원에서 제일 힘센 놈이지요. 저 놈은 함부로 싸움을 걸지 않습니다. 자기를 해치지만 않으면 얌전한 놈이지요. 오늘은 싸움을 했으니까 성질이 고약할 겁니다." "어떻게 해서 사진을 좀 찍었으면 좋겠는데? 자네가 도와준다면 한 번 해 보겠어." "좋습니다. 해 봅시다." 일을 좋아하는 카우보이가 웃으면서 승낙해 주었습니다. "나는 말을 타고 있겠습니다. 만약 저 놈이 선생님에게 덤벼들면 내가 가로막겠습니다. 그런데 한 번쯤은 괜찮겠지만 두 번째는 위험합니다. 그러니까 선생님께서도 올라갈 나무를 하나쯤 미리 봐 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봐 둔다고 해도 나무는 한 그루밖에 없고, 그 나무가 바로 조니가 올라가 있는 나무였습니다. 회색곰이 점점 가까이 오고 있었습니다. 나는 35미터쯤에서 한 장, 18미터쯤에서 또 한 장을 찍었습니다. 회색곰은 점점 가까이 왔습니다. 나는 쓰레기장에 주저앉아서 몸을 도사렸습니다. 16미터, 14미터, 11미터, 7미터. 그래도 자꾸 다가왔습니다. 나무 위의 조니는 더욱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4미터쯤 왔을 때 회색곰이 멈추었습니다. 회색곰이 나무 위를 쳐다보았습니다. 옆얼굴이 되었습니다. 좋은 기회입니다. 나는 '찰칵' 하고 셔터를 눌렀습니다. 이 소리를 듣고 회색곰은 천둥치는 소리를 냈습니다. "큰일났다!" 나는 그대로 주저앉은 채 벌벌 떨었습니다. '아, 나는 이제 마지막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회색곰의 두 눈은 초록빛 전등같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회색곰은 천천히 몸을 돌리더니 뭔가를 집어 올렸습니다. 큰 토마토 통조림 깡통이었습니다. 이제 조니도, 나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겨우 이 회색곰 앞에서 멀리 달아날 수 있었습니다. 이러는 사이에도 조니는 여전히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조니는 회색곰이 약간 멀리 가는 것을 보고 재빨리 나무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쏜살같이 달아나 버렸습니다. 고양이에게 쫓겨서
곰의 세계에서는 필요하면 엄마곰이 아기곰의 엉덩이를 탁탁 때리는 것이 당연한 일로 되 어 있습니다. 이렇게 버릇을 들여놓았기 때문에 2마리의 곰이 아무 탈없이 지낸 것 같습니다. 엄마곰이 조니 때문에 한바탕 떠들썩한 일이 없었던 날을 거의 없다고 해도 좋았습니다. 또 큰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산지기 세 사람으로부터 들었습니다. 그 후 자연 공원의 관리가 그것은 틀림없다고 증명을 해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호텔의 요리사가 자두 파이를 큰 가마솥에 넣어서 구웠기 때문에 그 냄새가 멀리 숲 속까지 퍼져 나갔습니다. 쓰레기장에서 조니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자두 통조림이었습니다. 엄마곰이 말려도 듣지 않고 조니는 호텔 부엌 앞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혼자서 부엌 안으로 뛰어들어갈 용기는 없었습니다.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서 '키키' 하고 소리질렀습니다. 그런데 엄마곰은 자기 새끼가 뭣이 먹고 싶어서 이렇게 울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조니는 나무 위에서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그 때 또 자두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정말 맛좋은 냄새였습니다. 엄마곰도 자두 잼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조심하면서 부엌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이 엄마곰뿐만 아니라 자연 공원의 곰들은 자주 호텔 부엌에 옵니다. 그리고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훔치면 재빨리 숲속으로 달아나 버립니다. 엄마곰은 자기가 필요한 만큼의 파이를 훔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 귀찮은 놈이 들어왔습니다. 그 무렵 호텔 사람들이 동부에서 새로 고양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아직 젊은 암코양이였습니다. 그러나 새끼를 둔 어미 고양이였습니다. 그 때 이 고양이는 새끼들과 양지바른 쪽에서 햇볕을 쬐고 있었습니다. 졸고 있다가 눈을 뜨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털복숭이의 괴물이 자기 앞에 서 있지 않겠습니까. 고양이는 아직 곰이라는 것을 한 번도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양이는 곰을 꼬리가 짧은 검정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재빨리 달아나려고 했습니다. 자기 혼자만 달아나면 새끼고양이들이 걱정입니다. '그렇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내 새끼들을 지켜야 한다. 적어도 도망칠 수 있도록 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어미고양이는 용기를 내어 입구의 계단 앞에서, "야옹(서라)!" 하고 소리쳤습니다. 그 말은 틀림없는 고양이들의 말이었지만 곰들은 잘 알아 들었습니다. 엄마곰은 곰들이 곧잘 하는 것처럼 뒷발로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것은 마치 항복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쪽 나무 위에서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엄마곰은 다시 앞발을 내리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고양이는 또 큰 소리로, "서라!" 하고 외쳤습니다. 엄마곰은 모른 척했습니다. 고양이는 새끼고양이들의 겁에 질린 목소리를 듣고 용기를 냈습니다. 이리하여 마침내 마지막 한 마디를 했습니다. 그것은 '전투 개시'입니다. 고양이에게는 18개의 날카로운 발톱과 입 안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있습니다. 고양이가 펄쩍 뛰어 엄마곰의 코를 할켰습니다. 엄마곰 그랜비는 어떻게 해서라도 고양이를 잡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고양이는 매우 영리합니다. 고양이는 엄마곰의 발톱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이리하여 다른 짐승들처럼 엄마곰도 자기 진지인 숲 속으로 뺑소니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고양이는 지금이야말로 적을 무찌르기에 가장 적절한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곰의 등에 올라탄 채로 작은 악마처럼 악착같이 물고 늘어졌습니다. 엄마곰이 지나간 자리에는 검정곰의 털이 여기저기 날리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핏자국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그 때 엄마곰의 귀에 조니가 오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나무 꼭대기에서 나는 소리였습니다. '그렇다. 저 나무 위로 달아나자.' 엄마곰은 이렇게 생각하고 그 나무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곳은 확실히 곰의 진지였습니다. 고양이는 이 이상 더 따라가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엄마곰의 등에서 뛰어내렸습니다. 그리고 그 근처를 빙글빙글 돌면서, '자, 내려와!' 하고 말하는 것처럼 으쓱대고 있었습니다. 새끼고양이들도 모여서 '야옹야옹' 하고 웃었습니다. 만약 호텔의 요리사가 와서 이 고양이들을 부르지 않았더라면 두 곰은 굶어 죽기 직전까지 갔을 것입니다. 이것은 이러한 광경을 구경하고 있던 산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나는 그 후 옐로 스톤의 국립 자연 공원을 떠났습니다. 마지막으로 본 조니는 변함없이 그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서 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엄마곰은 아기곰을 지키기 위해서 숲속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회색곰과 그 고양이와 상대하는 일은 사양하고 있었습니다. 이 일은 8월초에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엄마곰 그랜비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 곰을 변덕쟁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엄마곰은 헌신적으로 애정을 쏟고 있었으나, 이 애정도 때로는 변덕을 부렸습니다. 조니는 이 무렵 엄마곰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조니는 혼자서 나무 위로 올라가 반나절을 슬픈 듯이 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하는 조니의 이야기는 내가 옐로 스톤 국립 자연공원을 떠난 후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어느 날 아침, 조니는 엄마곰을 따라 호텔 뒤쪽으로 먹이를 찾으러 나섰습니다. 부엌에서는 이번에 들어온 아일랜드 아가씨가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아기곰이 이런 곳에?" 아가씨는 뛰어나와서 조니를 쫓으려고 했습니다. 놀란 것은 조니 쪽보다도 엄마곰 쪽이었습니다. 고양이가 있는 부엌문이 무서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엄마곰은 후닥닥 달아났습니다. 조니도 그 뒤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발걸음이 빠른 엄마곰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나무가 아니라 기둥이었습니다. 올라가자마자 꼭대기였습니다. 2미터 가량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엄마곰은 이런 일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점점 멀리 달아나 버렸습니다. 부엌에서 뛰어나온 사람들이 조니를 산 채로 잡는 것이 어떠냐고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이리하여 남자들 몇 명이 조니의 목에 밧줄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쇠줄로 기둥에 묶어 두었습니다. 조니는 정신없이 몸부림을 쳤습니다. 녹초가 될 때까지 큰 소리를 지르며 엄마곰을 불렀습니다. 엄마곰은 몇 번이나 멀리까지 나타났으나 고양이 쪽으로 갈 수가 없었는지 또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저녁에 조니가 완전히 지쳐 있을 때, 아가씨가 먹을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조니는 좋아하며 음식을 먹었습니다. 이 아가씨는 마음씨가 상냥한 아가씨였습니다. 자기가 엄마곰을 쫓아 버렸으니까, 지금은 대신 엄마곰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주위는 산 속이었기 때문에 밤이 되면 무척 추웠습니다. 조니는 부들부들 떨면서 기둥 꼭대기에서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견딜 수가 없게 되자 내려왔습니다. 이리하여 기둥 아래에 아가씨가 만들어 준 따뜻한 집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안녕 조니
그 후 엄마곰은 쓰레기장에 가끔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렇게도 소중하게 생각하던 조니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조니는 아침 저녁으로 먹을 것을 갖다 주는 이 아가씨와 친해졌습니다. 이 아가씨는 식사 이외의 것도 갖다 주었습니다. 어느 날, 조니는 먹이를 가지고 온 아가씨에게 덤벼들었습니다. 아가씨는 식사를 주지 않았고, 조니는 며칠을 울었으나 배가 고파서 견딜 수 없게 되자 항복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부터 조니는 아가씨의 말을 잘 듣게 되었습니다. 아가씨도 엄마곰의 버림을 받은 이 개구쟁이 아기곰을 귀여워하게 되었습니다. 2주일이 지나지 않는 사이에 조니는 이 생활에 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성질까지 달라졌습니다. 배가 고프면, "엘르르 엘르르." 하고 울면서 먹을 것을 졸라댔습니다. 그러나 울지는 않았습니다. 9월 셋째 주가 되자 그 변화는 한층 더 확실해졌습니다. 조니의 마음 속에는 아가씨밖에 없었습니다. 아가씨도 먹을 것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야단을 치기도 하며 이 아기곰을 얌전한 곰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아가씨는 가끔 이 개구쟁이를 자유롭게 해 주기 위해서 쇠사슬을 풀어 주었습니다. 아가씨는 조니가 단숨에 숲 속으로 도망칠 줄 알았으나 그녀가 일하는 부엌으로 뛰어들어와서는 뒷발로 서서 돌아다녔습니다. 이것은 숲 속보다는 사람이 있는 곳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조니는 그 무서운 고양이와도 친해졌습니다. 검정고양이도 검정곰 조니를 좋아했습니다. 옐로 스톤 국립 자연 공원 호텔은 10월에 문을 닫습니다. 그 후에는 날씨가 너무 추워서 관광객이 전혀 찾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니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의논하게 되었습니다. 숲 속으로 보내느냐, 아니면 워싱턴의 동물원에 보내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가씨는 자기가 기르겠다고 했습니다. 9월 하순의 추운 날씨가 계속되었습니다. 얌전해진 조니가 병에 걸려 가끔 기침을 하게 되었습니다. 절룩거리는 발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고 검사를 해 봤습니다. 나빠진 것은 발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엉덩이 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조니는 다른 곰처럼 살이 찌지 않았습니다. 보통 곰은 가을이 되면 무엇이든지 잘 먹고 살이 통통하게 찝니다. 그러나 조니는 반대로 자꾸 말라 갔습니다. 배는 홀쭉해졌으며 기침은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어느 날 아침, 조니가 너무 괴로워하는 것 같아서 집 안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따뜻한 집 안이 조니를 조금 낫게 해 주었습니다. 이 때부터 조니는 부엌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상한 것이 있으면 일어서서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는 것이 조니의 그 전부터의 버릇이었습니다. 병이 좀 낫자 이 버릇이 또 생겼습니다. 산 위에 반짝이는 햇빛이 그를 꾀었습니다. 출입문이 열려 있을 때는 이것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병은 그 이상 낫지는 않았습니다. 한 주일쯤 지나자 밖을 보는 것도 흥미를 잃고 몸이 점점 말라만 갔습니다. 마침내 어떤 이상한 소리가 나도 또 아무리 재미있는 일이 벌어져도 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심하게 기침을 했습니다. 아가씨의 무릎에 안겨 있을 때에는 좀 괜찮았지만, 혼자 있을 때에는 기분이 언짢은지 쓸쓸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무릎에서 광주리 속으로 들어갈 때에는 슬픈 듯이 울었습니다. 호텔의 문이 닫히기 4, 5일 전이었습니다. 조니는 완전히 지쳐서 아침 밥도 먹지 않고 끙끙 앓았습니다. 아가씨가 안아주자 조니는 힘없이 안겼습니다. "엘르르... 엘르르..." 그 소리는 전전 가늘어지더니 마침내 들리지 않았습니다. 30분쯤 지나 아가씨가 일을 하려고 조니를 무릎에서 내렸습니다. 이제 조니는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숲 속의 생활도, 엄마곰도 잊어버린 이 아기곰에게 마침내 이 공원의 호텔은 마지막 장소가 되었습니다. 작품해설
'동물기'를 지은 시튼이 작가로서 출발한 것은 매우 늦게였습니다. 이 책이 처음 나온 것은 서른 여덟 살 때였습니다. 시튼은 1860년 영국의 항구 도시 사우스 실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여섯 살 때에 아버지를 따라 대서양을 건너 캐나다로 옮겨 갔습니다. 교육은 캐나다에서 받았는데 캐나다의 토론토 대학을 마친 다음 영국 런던의 로열 아카데미에서 공부했습니다. 시튼은 어린 시절부터 특히 동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집안이 캐나다로 가서 살게 된 첫 집은 린제라는 곳이었습니다. 이 곳 원시림 속의 통나무 집에서 살게 되었는데 야생 동물들이 참 많았습니다. 시튼이 야생 동물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이 때부터였습니다. 시튼은 대자연 속에서 수많은 여러 야생 동물들과 친했습니다. 4년이 지난 후 시튼의 집은 숲 속의 생활이 싫어서 토론토로 이사를 갔습니다. 토론토는 도시로서, 시튼은 이 곳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도시라고는 해도 그 때는 옛날이었기 때문에 뱀, 쥐, 도둑고양이들을 자주 관찰할 수가 있었습니다. 시튼은 동물 학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미술을 공부하라고 했습니다. 시튼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열아홉 살 때에 영국 런던으로 가 유명한 미술 학교인 로열 아카데미에 입학했습니다. 그는 화가로서도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런던에서 그림 공부에 열중한 시튼은 대영 박물관 도서부에 있는 박물관 책을 보러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그런데, 스물한 살 미만은 들어갈 수 없다고 했기 때문에 입장을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념하지 않았습니다. 박물관 평의원들을 찾아가서 사정을 이야기하자 출입할 수 있게 허락해 주었습니다. 이리하여 그는 낮에는 동물의 그림을 그리고, 밤에는 박물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고학을 하다가 그만 병이 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그는 부모가 계시는 캐나다의 토론토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이 때 시골에 농장을 갖고 있는 형이 그를 오라고 했습니다. 그곳에는 여러 가지 동물들이 많았기 때문에 시튼은 기꺼이 응낙했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동물 연구가로서, 동물 화가로서, 또 동물 작가로서의 실력을 길렀습니다. 스물 다섯 살 때 시튼은 미국 뉴욕으로 갔습니다. 그는 센추리 대사전의 동물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야생 동물 이야기를 재미있게 써서 책으로 냈습니다. 시튼은 '이리 왕' 이야기를 서른네 살 때에 썼는데, 그 후 동물 이야기 책만 30여 권 썼습니다. 그리고 동물에 관한 연구 서적도 많이 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시튼을 동물 문학의 아버지로 부르고 있는데, 그만큼 시튼은 동물에 관한 작품을 많이 썼습니다. 이 책에 실린 작품은 그의 수많은 동물 이야기 중에서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골라서 옮긴 것입니다. 시튼은 1946년 여든 여섯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 때까지 그는 정력적으로 동물에 관한 책을 쓰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이 책에는 여러 가지 야생 동물들이 나옵니다. 시튼은 이런 많은 야생 동물들의 습성과 본능을 사랑의 눈으로 관찰하고 있습니다. 흔히 우리가 동물을 볼 때 생김새나 먹이 정도만 알고 끝납니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 야생 동물들의 생활을 구석구석까지 관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랑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이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책을 읽어 나가다 보면 참된 관찰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시튼의 동물기는 파브르의 곤충기와 함께 동물에 대한 기록으로 너무도 유명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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