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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아이작 싱어] 내 친구 빙고

by Casey,Riley 2023.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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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친구 빙고


A.L. 싱어


  
         차례

  서커단의 재롱둥이
  안녕! 빌리, 안녕! 처키
  처키를 구하라!
  돌아온 처키
  우리는 친구
  이별은 정말 싫어!
  악마의 음식점
  지옥 대탈출
  강도를 잡아라
  스타가 된 빙고
  감옥에 간 빙고
  처키야, 어디 있니?
  수술대 위에 누운 빙고
  무서운 사냥꾼
  포로가 된 우정
  공포의 협박전화
  SOS 메아리
  불타는 창고
  사느냐? 죽느냐?
  폭탄을 찾아라!
  내 사랑! 빙고
  
    서커스단의 재롱둥이

  킁킁, 맛있는 냄새!
  달콤한 냄새는 '하니발--함린서커스단'이라 쓰여진 천막 안에서 흘러나왔다. 
그곳은 서커스단의 광대들이 쓰는 천막이다.
  빙고는 천막의 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물고 있던 양동이를 내려놓고는 
뭔가를 찾는 척,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주 부드럽고, 달콤하고, 크림으로 된 시원한 
것이 빙고의 눈에 번쩍 띄었다.
  천막 안에서는 광대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얼굴에 희고, 붉고, 푸른 분장을 
하고, 알록달록한 무대 의상을 입느라 모두 정신이 없었다.
  "너 배고프구나?"
  광대 중의 하나가 부드럽게 웃으며 빙고에게 말했다.
  다정한 그 말에 빙고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빙고는 막 흘러내리는 침을 
삼키느라 애를 써봤다. 그리고 배고파서 낑낑거리는 소리가 목구멍에서 새어 나오는 
것을 참아 보려고 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그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저 앞에 있지 않은가.
  그건 바로 콜드 크림인 것이다.
  대부분의 개들은 콜드 크림 따위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빙고는 다른 개들과는 달랐다.
  그럼 빙고는 대체 어떤 종류의 개인가. 그것을 한마디로 정확히 말하기는 무척 
어려다. 아마, 콜리 종, 퍼그 종, 스파니엘의 일종인 코커종일지....
  사실 그는 잡종이고 식성 또한 그렇다.
  서커스단에서 빙고가 일하는 구역은 정확히 무대의 뒤편이다. 그는 화려한 의상도 
걸치지 않았고, 코끼리의 등 위에 뒷발로 서 있는 묘기도 할 필요가 없다. 빙고는 
서커스단에서 잔심부름을 하는 개일 따름이니까.
  사실 빙고처럼 일하는 개들이 묘기를 부리는 개들보다 훨씬 더 우수한 개일지도 
모른다. 빙고는 묘기를 부리는 개들을 위해 물을 떠 날라야 했고, 그들을 돌보는 
일을 했다. 쇼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천막 안에 쭈그리고 앉아, 온갖 갈채와 환호를 
받는 그들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러나 빙고는 자신이 그다지 불행하다고는 여기지 않았다. 서커스단에 오기 전에, 
그는 집도 없고 돌봐 주는 사람도 없는 떠돌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엿한 
일자리도 있고, 또 빌리 같이 좋은 사람들도 주위에 있어서 빙고에게 콜드 크림을 
주기도 하는 것이다.
  "왈! 왈! 왈!"
  빙고는 빌리를 향해 꼬리를 마구 흔들며 어리광을 부렸다.
  "알았다, 알았어."
  빌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빙고를 쓰다듬었다.
  "사람들이 네게 먹을 것을 안 주었구나?"
  빌리는 콜드 크림이 든 병을 빙고에게 던져 주었다. 빙고는 행복에 겨운 소리를 
내며, 크림을 깨끗이 핥아 먹었다.
  그 때 다른 광대 하나가 천막 안으로 불쑥 머리를 들이밀고 소리를 질렀다.
  "녀석들아 뭐하는 거야! 벌써 열한 시가 됐잖아! 연습할 시간이란 말이야."
  '열한 시라구?'
  빙고는 갑자기 입맛이 따 떨어져 버렸다. 먹는 정신이 팔려 자기가 할 일을 
완전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만일 할 일을 제대로 못하면 빙고는 곧 보신탕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빙고는 재빨리 뛰어나가 양동이를 입에 물고는 수돗가로 달려갔다. 그리고 
양동이를 수도 밑에 내려놓고는 발로 수도꼭지를 돌렸다.
  힘찬 물줄기는 곧 양동이를 채웠고, 빙고는 발로 수도꼭지를 잠갔다. 그리고는 
양동이를 물고 왔던 길로 다시 뛰어갔다.
  '놀라운 스와미 람자미' 앞에서 빙고는 잠시 멈춰 섰다. 스와미 람자미는 못이 
거꾸로 박힌 침대 위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날카로운 못위에서 태연하게 잠을 
자다니, 과연 그의 이름 앞에 '놀라운'이란 말이 붙을 만도 했다.
  빙고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스티브의 세계적인 허리우드 푸들과 조랑말 
페넬로프'라고 쓰여진 트레일러로 뛰어올라갔다. 그 트레일러 밖에서는 세 마리의 
하얀 푸들이 선글라스를 낀 채로 빙고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래, 선글라스, 마린, 로렌, 그리고 베티는 정말 세계적으로 유명한 개들이었고, 
그 명성에 걸맞게 과연 멋있었다.
  녀석들은 비치 파라솔 아래 윤기 흐르는 모피가 덮여 있는 의자에 하릴없이 
늘어져 있었다. 그 옆에서 선풍기의 큰 날개가 천천히 돌아가며 시원한 바람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 옆에서 조랑말 페넬로프는 휴대용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발을 
구르고 있었다. 페넬로프는 한 번 음악에 몰두하기 시작하면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때도 페넬로프는 빙고가 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니, 이 똥개 녀석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트레일러 안에서 스티브의 고함이 들려 왔다.
  "벌써 삽십 분이 지났잖아, 그리고 물통엔 물도 하나도 없고!"
  빙고는 멈칫 물러서고 말았다. 스티브는 성질이 아주 난폭한 사람이었다. 그는 
푸들들의 주인이었고 그 개들을 친자식처럼 대했다. 하지만 빙고뿐 아니라 모두들 
그것이 스티브의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너무 닥달하지 마세요. 빙고는 하루종일 일했잖아요."
  이번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빙고는 꼬리를 흔들었다. 스티브의 비서 진저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그녀는 
스티브보다 한 뼘 이상이나 키가 크고, 정말 멋진 여자였다. 더욱이 그녀가 빙고에게 
늘 친절하게 대해 주므로 빙고는 그녀를 몹시 좋아했다.
  빙고는 그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스티브는 바닥에 앉아서 로렌의 옷깃에 
장식을 달기 위해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진저는 개들에게 먹일 고깃덩이를 굽느라 
바빴다.
  '여기 물 떠왔어요.'
  빙고는 양동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컹' 짖었다.
  그런데 그 소리에 놀란 페넬로프가 소리를 내며 사납게 발길질을 하는 것이었다.
  와당타아아!
  양동이가 넘어져 굴렀다. 물은 바닥에 다 쏟아져 텐트를 가로질러 스티브에게로 
흘러갔다.
  스티브는 자기 발과 바지가 축축해지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얼굴까지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이게 도대체 뭐야! 이 쓸모 없고 멍청한 똥개야!"
  그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네가 한 걸 좀 봐라 이 멍청아!"
  빙고는 꼬리를 감추고 뒷걸음질쳤다.
  빙고는 스티브가 저런 식으로 나올 때가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 스티브는 성격이 
거칠긴 하지만, 빙고에게는 생명의 은인이었다.
  스티브는 낡고 더러운 가방 하나를 집어들고는 빙고 앞에 내밀었다.
  "너 이게 뭔지 기억 나냐?"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너, 다시 이 가방 속으로 들어가 전에 내가 널 발견한 그 강가로 돌아가고 싶냐, 
응?"
  돌아간다구? 빙고는 예전 생활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목이 메었다. 그것이야말로 
빙고가 제일 겁내는 일 주의 하나였다. 스티브가 그 가방에 담겨 버려진 빙고를 
발견했을 때 빙고는 거의 굶어죽을 지경이었다.
  스티브는 빙고를 데려다가 잠잘 곳과 음식과 일자리를 주었다. 잠자리라고 해야 
고작 트레일러 밑에 있는 낡은 종이 상자가 전부고, 해야 할 일이란 또 한없이 
지겹고 따분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가방 속에서 죽어가던 때보다는 훨씬 나은 
상태였다.
  빙고는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그 시절과 현재를 비교하면 많은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 스티브의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 앞에서는 도저히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바로 그때, 진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스티브!"
  그녀가 다급하게 외쳤다.
  "로렌이 뭔가 이상해요!"
  빙고와 스티브가 로렌을 쳐다보자 그 푸들은 절뚝절뚝 그들 쪽으로 고통스레 
걸어오고 있었다.
  "켄달 박사 어디 있어!"
  그러나 진저는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잠시 후 진저는 서커스단의 수의사인 켄달 
박사와 함께 돌아왔다.
  의사는 곧 로렌의 발을 잡고 진찰을 시작했다. 그리고는 휘고 녹슨 못 하나를 
로렌의 발에서 힘들여 뽑아냈다.
  로렌은 몹시 아픈지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그럼 그렇지!"
  스티브가 말했다.
  "이 못 크기 좀 보라구."
  켄달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로렌이 또 스와미 근처에서 놀았나 보군."
  "람자니?"
  스티브는 화가 나서 어쩔 줄을 몰랐다.
  "내가 이놈을 잡기만 하면 그 냄새 나는 쇠못침대 위에 놓고 망치질을 해버리고 
말 테다."
  "진정하게, 스티브."
  수의사가 말했다.
  "로렌은 괜찮네. 내가 주사를 놓아주면 이삼일 안에 회복될 걸세."
  "이삼 일이라구?"
  스티브가 화가 나 소리쳤다.
  "이것 봐, 오늘 밤 당장 나는 텔레비전 쇼 프로담당자를 만나야 한다구! 그들은 
개들과 조랑말의 쇼를 보기 원한단 말이야. 나는 그들에게 우리의 최고 자랑거리를 
보여줘야 한다구. 그런데 로렌이 다쳤으니, 이제 다 틀린 거라구!"
  이때 진저가 끼어들었다.
  "대신 빙고를 쓰면 어떨까요?"
  처음에 스티브는 제정신이 아니라는 듯한 눈초리로 진저를 쳐다보았다.
  "빙고라구?"
  그러더니 잠시 후 스티브의 표정이 환해지며 웃음을 지었다.
  '그래, 어쩌면, 어쩌면...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스티브는 마음 속으로 되뇌었다.
  그리하여 빙고는 유명한 허리우드의 푸들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날 밤 
빙고는 로렌 대신 멋진 의상을 입고 서커스 쇼에 처음으로 출연하게 되었다.
  관중은 그리 많지 않았으나 천막 안은 몹시 소란스러웠다. 텔레비전 쇼 
담당자들은 무대의 중앙과 앞쪽에 진을 치고 있었다. 관중석에서는 솜사탕과 팝콘 
냄새가 뒤섞여서 풍겨 왔다.
  드디어 푸들이 등장할 차례가 되었다. 빙고는 자랑스레 으쓱거리며 무대로 걸어 
들어갔다. 로렌의 의상이 빙고에게는 좀 작은 듯했다.
  빙고는 여태껏 묘기를 한 번도 해 보지 않았지만 그리 긴장되지는 않았다. '불붙은 
링 넘기' 의 묘기를 학 전까지는 말이다.
  진저가 불꽃이 넘실대는 커다란 링을 무대 위에 설치했다. 불을 보자 빙고는 
온몸이 다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베티와 마릴린이 차례로 링을 뛰어넘었고 이제 
빙고가 뛸 차례였다. 빙고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리고 몸이 굳어 한 발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링과 진저의 모습이 희미하게 겹쳐보이는 듯했다.
  화려한 의상을 입은 스티브가 채찍을 휘둘렸다.
  "뭐 하는 거야?"
  그가 사납게 소리쳤다.
  "어서 뛰어넘어!"
  빙고는 이제 그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정신이 아득해지며 두 번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먼저 빙고가 자랐던 낡고 좁아터진 애완동물 
가게가 떠올랐다. 가게엔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어린 강아지인 빙고는 구석에 
처박혀서 발발 떨며 울부짖고 있었다. 불길이 거의 빙고를 휩싸게 되었을 때 
소방관이 호스를 잡고 뛰어 들어왔다. 불에 타기 직전에 빙고는 가까스로 
구출되었다. 하지만 빙고의 엄마는 불행하게도 그만 불에 타 죽고 말았다.
  장면이 바뀌어 애완동물 공동묘지 안에 아직 흙이 마르지 않은 작은 무덤이 
보였다. 묘비에는 '사랑하는 엄마, 타피'라고 쓰여 있었다. 묘비 옆에서는 빙고가 
서럽게 울부짖고 있었다.
  여기서 스티브의 사나운 목소리 때문에 빙고는 회상에서 깨어났다.
  "빙고, 넌 이걸 해야 돼! 넌 이걸 하기로 되어 있단 말이야! 내가 너 때문에 
창피를 당해야 되겠니, 응? 자, 자, 어서 뛰어 보렴!"
  그러나 빙고는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저 불꽃이 엄마를 삼켜 버렸다고 생각하니, 
빙고는 스티브가 아니라 그 누가 소리쳐도 뛰어넘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빙고는 꽁무니를 빼 버렸고 관중석은 곧 웃음바다가 되었다.
  묘기가 흐지부지 끝나자 스티브는 분노가 끊어 오르기 시작했다. 서커스가 끝날 
무려 그는 거의 폭발 직전이었다.
  서커스가 끝나자마자 스티브는 살기 띤 얼굴로 트레일러 안으로 뛰어들었다. 
안에서는 진저가 빙고를 안고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오호라, 그래 너 여기 있었구나."
  스티브가 얼굴을 흉하게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텔레비전 황금 시간대에, 그것도 내가 출연하는 장면에서, 이 멍청한 똥개가 내 
쇼를 일부러 망쳐 놓았단 말이야!"
  "그건 오해예요, 스티브."
  진저가 스티브를 설득하려 했다.
  "빙고는 두려웠던 거예요. 불에 대한 나쁜 기억 때문에 그렇게 된 거란 말이에요."
  "그럼 내가 고쳐 놓겠어!"
  스티브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비틀거리며 방을 나가 버렸다.
  스티브는 무언가 찾느라고 이리저리 뒤지고 다녔다. 빙고는 심장이 마구 뛰는 걸 
느꼈다.
  '도대체 뭘 찾는 걸까?'
  스티브가 돌아왔을 때 진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스티브, 당신 지금 뭘 하려는 거예요!"
  진저가 소리치며 스티브의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스티브는 진저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갈색의 큼지막한 
엽총을 들고 빙고를 겨냥했다.
  
    안녕! 빌리, 안녕! 처키

  진저는 겁에 질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스티브! 빙고는 원래 서커스 훈련을 받은 개도 아니잖아요. 빙고에게는 잘못이 
없어요. 빙고는 지금 그를 돌봐 주고 사랑해 줄 가족이 필요해요. 원반을 던지며 
함께 놀아 줄 아이들이 더 필요하단 말이에요."
  총을 겨누고 있던 스티브가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원반 놀이? 흥, 웃기지 말라구. 이 똥개가 받아야 할 건 원반이 아니라 이 
총알이야."
  "안 돼요!"
  진저는 재빨리 빙고를 문 쪽으로 밀어냈다.
  "빙고, 어서 도망쳐! 숨어!"
  진저가 외치며 스티브를 힘껏 밀었다. 스티브는 쓰러지며 총을 떨어뜨렸다. 그 
총을 서로 잡으려고 진저와 스티브는 바닥에서 서로 밀며 뒹굴었다.
  빙고는 깜짝 놀라서 얼른 트레일러의 큰 방으로 달아났다. 그리고는 숨으라는 
진저의 말을 떠올리며 이빨로 담요를 물어 당겨 덮었다.
  빙고의 모습을 본 진저가 또다시 외쳤다.
  "빙고! 이 바보야, 숨으라는 게 아니고 도망치라구! 자유를 찾아 떠나란 말이야! 
네가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을 찾으라구!"
  빙고는 공놀이를 할 때가 가장 행복했다. 이번에 빙고는 뒷방으로 가서 테니스 
공을 물어 왔다.
  "그런 걸 말한 게 아니야. 이 바보야! 너의 행복. 네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찾으란 말야."
  진저는 안타까워서 계속 소리쳤다.
  "어서 가. 가서 가족들을 찾으란 말이야."
  진저는 번개같이 엽총을 낚아채고는 스티브를 테이블로 밀어붙였다. 그 때 빙고가 
그녀의 가족 사진이 담긴 액자를 물고 다시 들어왔다.
  "그게 아니야, 이 멍청아!"
  진저가 발을 굴렀다.
  "내 가족이 아니고 너의 가족 말이야!"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목하고 총으로 빙고를 겨누며 말했다.
  "스티브, 당신이 옳아요. 차라리 저 녀석은 죽는 게 낫겠어요."
  그제서야 빙고는 상황을 알아차렸다.
  빙고는 쏜살같이 트레일러를 뛰쳐나왔다. 등뒤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금방이라도 
빙고의 몸에 총알이 박힐 것 같았다.
  빙고는 숨을 헐떡이며 달렸다.
  총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았다.
  빙고는 광대들의 천막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마지막으로 빌리를 보고 가야 할 
것 같았다. 늦은 시간인데도 빌리는 아직 천막 안에 남아서 연습을 하고 있었다. 
빙고는 뒤를 힐끗힐끗 돌아보며 초조하게 짖어댔다.
  "그래, 녀석아 넌 가야해."
  빌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모든 걸 알아차린 눈빛이었다.
  "그래 언젠간 이런 날이 오리라 생각했어."
  그는 말아올린 천막의 문을 당겨서 닫았다.
  "너에게 필요한 걸 좀 싸줄 테니 가지고 가렴. 자, 여기 조그만 텐트하고 밧줄, 
그리고 네가 좋아하는 콜드 크림이다."
  빙고는 빌리가 짐싸는 걸 초조하게 지켜봤다.
  빌리는 서둘러서 배낭을 조그맣게 싼 뒤 빙고의 입에 물려주며 말했다.
  "자, 이제 가라. 어서! 뒤돌아보지 말고 뛰어."
  짐이 제법 묵직했지만 빙고에게는 공기보다도 가볍게 느껴졌다.
  빙고는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집들을 지나쳐 푸른 풀밭과 나지막한 언덕을 
넘어 달렸다. 달리는 동안 두려움은 날아가 버리고 새롭고 가슴 벅찬 느낌이 찾아 
들었다. 그것은 빙고가 태어나서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자유와 행복의 느낌이었다.
  빙고는 자신이 가고 있는 곳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상관하지 않았다. 서커스단만 
아니면 어디라도 좋은 것이다.

  서커스단이 자리잡은 곳은 콜로라도 주 덴버의 변두리였다. 이곳 덴버에는 마침 
처키와 치키 데브린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서로 미워하며 늘 싸우는, 다시 말해 
전형적인 이복형제였다.
  그들은 빙고를 알지 못했고, 빙고 또한 그들을 결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이들의 관계에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그들 모두의 인생을 바꿔놓게 될 
큰 변화였다.
  자전거를 탄 치키는 신바람이 나서 소리를 지르며 숲속을 씽씽 달리고 있었다. 
치키의 뒤에는 친한 친구 둘이 역시 자전거를 타고 바싹 따라가고 있었다. 그들은 
구덩이를 건너뛰고 덤불을 뛰어넘으며, 꼬불꼬불 나무 사이를 굽이돌아 즐겁게 
달리고 있었다.
  저만치서 미친 듯이 페달을 밟으며 처키가 쫓아왔다.
  "기다려 줘."
  숨이 차서 헐떡이며 처키가 소리쳤다.
  처키는 이복 형인 치키보다 두 살이 어린 열두 살이었다. 또한 처키는 치키보다 
키가 작았고, 힘도 세지 못했다. 처키가 항상 이 점을 잊지 않도록 골탕을 먹이는 
것이 치키의 일이었다.
  아이들이 달리고 있는 바로 앞에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냇물을 다라 
양쪽에는 둑이 있는데 매우 가파랐다. 치키는 페달을 힘껏 밟으며 앞으로 곧장 
달려나갔다.
  그리고 핸들을 힘껏 들어 올려 경사진 둑에 뛰어오른 뒤 맞은편 둑에 사뿐히 
멋지게 내려앉았다.
  치키의 뒤를 이어 그의 친구들도 차례로 냇물을 뛰어 넘었다.
  처키는 온 힘을 다해 페달을 밟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고, 
겁에 질려 어쩔 줄을 몰랐다.
  둑에 거의 다다랐을 때 처키는 그만 브레이크를 당기고 말았다. '끼이이이익!' 거친 
소리를 내며 둑 바로 앞에서 자전거가 멈췄다.
  그 모습을 보고 치키와 그의 친구들은 비죽비죽 웃기 시작했다.
  "이 바보! 무엇을 겁내는 거지?"
  치키가 비웃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겁내지 않아!"
  처키가 무섭지 않다는 듯 소리쳤다.
  "그러면 뭘 기다리는 거냐?"
  "무서워 떨고 있잖아!"
  치키의 친구들도 처키를 놀려댔다.
  치키가 심술궂게 웃으며 말했다.
  "얘들아 가자, 이제 저 녀석을 우릴 따라오지 못할 거야."
  치키가 앞장서고, 아이들이 그 뒤를 따라 달려갔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숲 저편에서 울려왔다. 그 소리는 처키의 귀 속에서 
윙윙거렸다. 뜨거운 것이 서서히 처키의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올라와 머리로 
솟구쳤다.
  처키는 그들에게 바보 취급 당하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이제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키는 이를 악물고 뒤로 물러서며 냇물을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마음을 다잡으며 
페달을 힘껏 밟기 시작했다. 너무 힘을 주어 다리가 아팠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자전거 바퀴가 부드러운 흙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둑 위에 다다르자 
자전거의 앞바퀴가 위로 솟았다. 처키는 페달 위에 올라선 채 핸들을 위로 잡아 
당겼다.
  처키가 아주 조금만 빨리 핸들을 잡아당겼더라면 맞은편 둑으로 무사히 건너갈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그가 좀더 튼튼하거나 가벼웠어도 좋았을 텐데.
  그러나 그 중 어느 것도 아니었다. 자전거가 공중에 뜨는 듯하더니 곧장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처키는 미처 피할 겨를도 없이 날카로운 바위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처키를 구하라!

  빙고는 숲길의 부드러운 감촉이 좋았다. 두텁게 깔린 솔잎의 감촉을 맨발로 
느끼며 천천히 숲속을 걸어가고 있었다.
  냇가에 다다르자 빙고는 가볍게 냇물을 건너뛰었다.
  검푸른 숲의 그늘 속에서 언뜻 스쳐본 하얀 색의 물체를 빙고는 놓치지 않았다. 
그것은 쓰러져 축 늘어진 처키의 몸이었다.
  순간 빙고는 펄쩍 튀어오르며 처키 쪽으로 달려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빙고의 
가슴도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빙고가 그곳에 도착해 보니 처키는 냇물에 얼굴을 처박고 엎어져 있었다. 그는 
얼마나 오랫동안 여기 쓰러져 있었을까? 만일 이 분 이상 지났다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빙고는 배낭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처키의 바지를 단단히 물고는 온 힘을 다해 
뒤로 끌어당겼다.
  서서히 처키의 얼굴이 물 속에서 빠져나왔다. 빙고는 있는 힘껏 네 다리로 땅을 
밀며, 처키의 몸이 마른 땅 위로 올라올 때까지 잡아당겼다.
  그러나 처키의 몸은 아직도 엎어진 채였다. 빙고는 주둥이를 처키의 몸 아래에 
넣고 힘껏 밀어 올렸다. 감자 자루가 구르듯이 처키의 몸이 천천히 뒤집어지며 
얼굴이 하늘을 향했다.
  빙고가 처키의 입에 귀를 대어 보았으나 숨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번엔 처키의 
목을 만져 밭으나 맥박도 느낄 수 없었다.
  빙고는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이 소년에게 조금의 희망이라도 남아 
있다면 지금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빙고의 마음은 서커스단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외줄타기를 하다가 떨어지거나, 
공중그네타기 도중 서로 부딪치는 사고가 일어났을 때 서커스단의 의료진들이 
응급조치를 하던 것이 퍼뜩 떠올랐다.
  바로 그거다! 빙고는 바로 지금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빙고는 처키로부터 물러났다. 그리고는 냇물을 가로질러 둑 위로 달아갔다. 냇물에 
흠뻑 젖어 둑 위에 도착한 빙고는 다시 처키의 가슴 위로 떨어졌다.
  그 충격은 의식을 잃은 처키를 깨우기에 충분한 강도였다. 마침내 처키는 
신음소리를 냈다.
  "에에취이."
  처키는 뱃속에 든 물을 토해 내고 힘겹게 기침을 했다. 이제 처키는 살아난 
것이다!
  처키는 천천히 눈을 떴다. 먼저 나무들이 희미하게 다가왔고, 그의 눈앞에 
털북숭이 같은 것도 보였다. 그는 얼핏 개 짖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이내 다시 의식을 잃고 말았다.

  처키가 다시 깨어났을 때, 그는 벌거벗은 채로 혼자 있었다. 그는 누운 채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숲이 천천히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자신이 누워 있는 조그마한 
간이 텐트가 보였다. 빨랫줄이 그 작은 텐트와 옆의 나무 사이에 팽팽하게 매어 
있었다. 빨랫줄에는 그의 옷과 개 목걸이 하나가 걸려 있었다.
  처키는 비틀거리며 일어섯 개 목걸이에 적힌 이름을 보았다.
  "빙고."
  그는 소리내어 읽었다.
  그러자 바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키는 얼른 고개를 돌려 소리나는 곳을 
쳐다보았다. 그가 누워 있던 평평한 풀밭 가장자리에 개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처키가 빙고를 처음 보게 된 순간이었다.
  "이거 네 거니."
  처키가 그 목걸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빙고가 다시 짖었다. 처키는 그것이 빙고의 
대답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조그만 텐트도 네 것이겠구나."
  처키는 흥미롭다는 듯 말을 계속했다.
  "좋았어, 아주 좋은데. 자 이리 와 봐. 내 이름은 처키야."
  천천히 빙고가 다가갔다. 빙고는 주의깊게 처키를 살펴보았다. 그가 좋은 
사람인지, 아니면 스티브처럼 난폭한 사람인지 알기 위해서였다.
  "괜찮아."
  처키가 다정하게 말했다.
  "너는 여자..."
  그 말에 빙고는 이빨을 드러내며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오... 미안, 미안. 그래 넌 씩씩한 남자로구나 응? 그렇지?"
  빙고가 이번엔 꼬리를 흔들었다.
  "나를 구해준 게 너지? 그렇지?"
  빙고는 꼬리를 더 크게 흔들며 낑낑대기 시작했다.
  "좋아!"
  처키가 큰 소리로 외쳤다.
  "자, 한번 일어서 봐."
  빙고는 뒷발로 서서 앞발을 들어올렸다.
  "너 정말 굉장하구나!"
  처키는 빙고를 들어올려 다정하게 끌어안았다.
  "네가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지만 이제부터 너와 나는 영원히 친구가 되는 거야. 
알았지?"
  빙고는 신이 나서 달려가 조그만 막대기를 물어왔다.
  "지금은 놀 시간이 나이야."
  처키가 빙고를 달랬다.
  "우선 옷부터 입고, 뭔가 먹을 걸 좀 찾아야겠어. 난 지금 배가 몹시 고프거든."
  처키가 빨랫줄에서 옷을 걷는 순간 빙고는 숲속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리고 
처키가 미처 옷을 다 입기도 전에 돌아왔다. 빙고는 살아서 펄펄 뛰는 송어 한 
마리를 물고 있었다.
  "와우! 너 정말 굉장하구나!"
  처키는 옷을 허겁지겁 입고 물고기를 받았다. 빙고와 나란히 앉아서 물고기를 
보고 있자니 처키는 식욕이 서서히 사라져 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이따금씩 
엄마, 아빠가 일본 식당에서 생선회를 먹건 걸 기억해냈다.
  '아빠, 엄마는 이걸 참 맛있게 드시는 것 같았는데...'
  한 입을 뜯어 먹고 나자 처키는 부모님들의 입맛이 의심스러웠다. 대체 생선회를 
어떻게 먹을 수가 있었을까? 맛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구역질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네 차례야. 난 다 먹었어."
  처키는 고기를 빙고에게 던져 주었다.
  "난 점심 때 참치를 먹었거든."
  빙고는 송어를 기다렸다는 듯 맛있게 씹어 먹었다.
  "좋아, 이제부터는 내가 널 돌봐 줄게."
  처키가 다소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런데 문제가 좀 있기는 해... 엄마와 아빠 말이야."
  빙고는 궁금한 듯 머리를 쫑긋 세웠다.
  "애완동물을 싫어하시거든."
  처키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렇지만 걱정하지마. 치키가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잘 해낼 수 있어."
  빙고가 크게 한 번 짖어서 처키의 말을 잠깐 끊었다.
  "치키는 내 형이야."
  처키가 빙고의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치키는 나의 의붓 아버지가 우리 엄마와 결혼하기 전에 낳은 아들이야. 그리고 
엄마도 사실을 나의 친엄마가 아니야. 나는 수양아들이거든. 우리 집은 좀 복잡해."
  빙고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며 숲 쪽을 노려보았다. 처키의 등 뒤에서 나뭇가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뭐지?"
  처키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으으으으--르--릉!"
  수풀 속에서 무서운 짐승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처키는 어마어마하게 큰 
갈색의 물체가 이빨을 드러내고 벌떡 일어서는 것을 보았다.
  "곰이다!"
  처키는 놀라 소리쳤다.
  "덤벼 들어, 빙고!"
  그러나 처키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빙고는 거기에 없었다.
  "빙고! 어디 간 거야?"
  "왈왈!"
  위 쪽에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키가 올려다보니 빙고는 나무 위에 있었다. 
빙고는 무언가 말하려는 듯 다급하게 짖어댔다.
  처키는 곧, 빙고가 말하려는 것을 알아차렸다. 곰은 먹을 것을 찾아 여기가지 왔고 
주위에 먹을 것이라고는 빙고가 먹다 남긴 송어뿐이었다.
  "그래 물고기야! 맞아 빙고, 물고기야!"
  그는 얼른 물고기를 집어 곰을 향해 던졌다. 곰이 물고기를 덥썩 집어먹기 
시작했다. 그 틈을 타서 처키는 빙고가 있는 나무 위로 재빨리 기어 올라갔다. 
그리고 빙고와 나란히 굵은 나뭇가지 위에 걸터 앉았다. 그곳은 곰의 날카로운 
발톱으로부터 안전했다. 처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곰이 물고기로 배를 
채우고 물러가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운이 나빴다. 한 시간이 지나도록 곰은 그 자리에 버티고 있었다. 아직도 
배가 고픈 게 틀림없었다. 처키는 지루함을 잊기 위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옛날에 개를 가진 어린이가 살았지요. 빙고는 새의 이름이지요. 비--이--이--잉."
  "왈왈!"
  빙고도 리듬에 맞춰 짖었다.
  "비--이--이--잉--"
  "왈왈!"
  "비--이--이--잉--"
  "왈왈!"
  "빙고는 개의 이름이지요.!"
  처키는 크게 웃으며 빙고에게 엄지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처키와 빙고는 나뭇가지 위에 느긋하게 앉아 나뭇잎 사이로 비쳐드는 황금빛 저녁 
햇살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서서히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자 나무 아래가 잘 보이지 않았다. 처키는 
곰이 아직도 있는지 알아보려고 솔방울을 따서 아래로 던졌다.
  "으으으르르..."
  곰의 소리가 들려왔다.
  "걱정 마, 빙고."
  떨고 있는 빙고에게 처키가 속삭였다.
  "누군가 우릴 찾으러 올 거야. 조금만 기다려보자."
  그러나 곧 해가 지고 숲은 점점 어둠에 잠겨들기 시작했다. 처키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는 두 손을 입에 모으고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을 힘차게 외쳤다.
  "도와줘요!"
  그러나 유일한 대답은, 무겁고 괴괴한 침묵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숲 속의 
칠흑 같은 어둠이 그들을 뒤덮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처키는 빙고조차도 지금은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음을 깨닫고 으스스 몸을 
떨었다.
  
    돌아온 처키

  그날 저녁 처키를 뺀 데브린 가족들은 침울하게 저녁 식탁에 둘러앉았다. 누구도 
말이 없는 가운데 오직 음식을 씹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처키의 아버지, 홀 데브린은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처키가 
자리에 없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오직 자신의 일에만 관심이 있었다.
  홀 데브린의 일이란 덴버 브롱크스 미식축구팀에서 필드골을 넣는 것이다. 그는 
미식축구에 반쯤 미쳐 있는 사람 같았다. 운동장 밖에서는 언제나 유니폼을 입고 
다닐 정도였다.
  그는 언제나 축구 연습을 하며, 축구만 생각하고, 축구에 관한 이야기만 입에 
올렸다.
  데브린 집안에서는 브롱크스 마크가 새겨진 접시나 은그릇으로만 식사를 했다. 또 
집 안은 온통 브롱크스 팀의 색깔로 치장되어 있었다.
  홀 데브린은 그의 맨발차기로 이미 유명해져 있었고, 수년 동안 아주 아주 잘 
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시즌 만큼은 성적이 그리 좋지 못했다. 그의 발이 더 
이상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최근에는 열두 번의 시도에서 겨우 한번 
필드골을 성공시켰을 뿐이었다.
  필드골을 실패한 때마다 홀 데브린은 점점 더 침울해졌다. 6피트의 키에 
180파운드 몸집의 가장이 이렇게 침울해져 있으니 집안 분위기 또한 말이 아니었다.
  처키의 엄마인 나탈리 데브린은 신경질적으로 튀긴 닭다리를 집어 치키에게 
건네주었다.
  "치키 좀더 먹을 테냐?"
  데브린 부인은 얼른 덧붙였다.
  "치킨 말이야, 처키... 아--아니 치킨 말이야 치키!"
  그녀는 맥빠진 듯 중얼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자, 여기 있다.!"
  치키는 돌아서며 싫은 표정을 지었다.
  홀 데브린 씨가 몸을 앞쪽으로 기울였다. 그는 오른쪽 맨발을 바닥에 있는 베개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베개에도 역시 덴버 브롱크스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치키! 닭다리를 마저 먹어라."
  그가 치키에게 퉁명스럽게 명령했다.
  "치킨, 치킨...치키!"
  데브린 씨의 못마땅한 눈초리가 이번엔 그의 아내에게 향했다.
  "난 피자가 먹고 싶다고 했잖소?"
  치키가 장난스레 웃으며 끼어들었다.
  "처키 치즈를 넣은 피자 말이죠?"
  데브린 씨는 냅킨을 테이블 위로 집어 던졌다.
  "주제넘게 나서지 마!"
  그리고 참을 수 없다는 듯 고함을 쳤다.
  "오늘은 정말 되는 일이 없군."
  남편의 짜증을 보다 못해 이번엔 데브린 부인이 나섰다.
  "여보, 그만 좀 해요! 제발 애들한테 그런 식으로 대하지 말아요. 치키 때문에 그 
킥을 놓친 건 아니잖아요!"
  "아까는 코치가 그러더니, 이젠 당신이야!"
  데브린 씨는 신경질적으로 대꾸하며, 자기의 오른쪽 맨발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주무르기 시작했다.
  "도대체, 주위에선 왜 나를 조금도 이해하려 하지 않지? 이 발이 말이야, 좋지 
않았다구. 젠장! 버팔로팀과의 시합 이후 계속 이 발이 좋지 않았단 말이야."
  "그 발을 당장 내려놓지 못해요! 그리고 경기 얘기는 운동장에 가서나 하란 
말이에요!"
  데브린 부인은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난 우리 아들을 걱정하고 있다구요."
  "수양아들이더라도 말이죠?"
  치키가 불쑥 끼어들었다.
  데브린 씨와 부인은 동시에 그를 노려보며 타일렀다.
  "처키는 소중한 우리 가족이야. 그리고 너를 무척 사랑한단다."
  "그래요. 하지만 처키는 지금 숲 속에서 빈둥거리며 놀고 있을 거예요."
  치키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처키는 길을 잃은 게 틀림없어!"
  데브린 부인이 목소리를 높였다.
  "처키는 지금 위험에 빠져 있다구요. 왜 모두들 내 말을 안 믿는 거지요?"
  "이제 그만 진정하라구!"
  데브린 씨가 고함을 쳤다.
  "만약 내일 아침까지 아무 소식이 없으면..."
  "아침이라구요?"
  걱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데브린 부인이 물었다.
  "그래요, 아침까지."
  데브린 씨가 좀 진정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일 아침까지 소식이 없으면, 그 때 내가 경찰에 신고를 하겠소. 됐지?"
  아무도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데브린 씨가 한번 결정을 내리면 그것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브린 씨 부부는 여전히 
불안했다. 심지어는 치키까지도 걱정 어린 얼굴이었다.
  그들 모두는 잘 알고 있었다. 내일 아침까지 기다리는 것이 처키를 찾기에는 너무 
늦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좋아."
  침울한 분위기를 견딜 수 없다는 듯 데브린 씨가 입을 열었다. 그는 식탁에서 
발을 내려놓으며 조용히 덧붙였다.
  "치킨을 이리 줘요. 식사를 계속 해야겠소."

  데브린 씨와 부인은 밤새 한숨도 못 잤다.
  홀 데브린은 지금 비록 슬럼프에 빠져 있지만, 자신의 원칙만큼은 철저히 지켰다. 
그가 말한 아침이란 정확히 해가 뜨는 시간을 가리켰다.
  신문에는 월요일 아침 해 뜨는 시간이 7시 14분이라고 나와 있었다. 데브린 씨는 
그 시간이 되기 전에는 절대로 경찰에 연락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신문에서 몇 시에 해가 뜬다고 한 게 뭐 그리 중요해요?"
  데브린 부인이 침실 창문 밖을 내다보면서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동이 트고 있어요. 저것 봐요 여명이 보이잖아요. 난 경찰을 부를 거예요."
  "잠깐, 기다려!"
  데브린 씨는 자신의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그녀를 막았다.
  "잠깐, 몇 초만 더 기다리면 돼. ...오십육 초 ...오십칠 초 ...오십팔 초 ...오십구 초... 
이젠 됐어. 일곱시 십사 분이야. 이제 경찰에 알려야지."
  그는 침대에서 내려와 전화기로 다가갔다. 그가 막 수화기를 드는 순간, 갑자기 
데브린 부인이 소리를 쳤다.
  "여보! 처키예요!"
  데브린 씨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창가로 달려갔다.
  "그것 봐, 처키는 꼭 돌아올 거라구 내가 말했잖아!"
  데브린 씨의 얼굴이 반가움으로 환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또다시 화가 
치밀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저 녀석의 두 팔을 모두 분질러 버리겠어!"
  "안 돼요, 홀!"
  데브린 부인이 화난 남편을 달랬다.
  "당신이 한 말 기억해요? 이제 더 이상 마음에 없는 말 하지 말아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데브린 씨가 중얼거렸다.
  "한 쪽 팔만이라도 안 될까?"
  처키는 자전거를 타고 뒷마당으로 들어섰다. 한 가지 생각에만 골몰하여 
부모님들이 창문으로 보고 있다는 걸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그는 오로지, 식구들 
모르게 빙고를 집 안으로 데러갈 일만 궁리하고 있었다.
  처키는 자전거에서 뛰어내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뒤따라 온 줄로만 알았던 빙고가 
보이지 않았다. 그 때 빙고는 옆집의 나무 울타리 사이에 코를 들이밀고 있었다. 그 
반대편에서는 이웃집의 조그만 스파니엘 개가 반갑게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이봐, 멋쟁이!"
  처키는 목소리를 낮추어 외쳤다.
  "지금은 친구를 사귈 때가 아니야!"
  빙고가 즉시 처키 쪽으로 달려왔다. 둘은 뒷문을 통해 부엌으로 살며시 
숨어들었다. 그들은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걸어서 찬장 앞을 지나 거실 쪽으로 
향했다. 만약 빙고를 2층에 있는 처키의 방에 데려가서 옷장 속에 넣어둘 수만 
있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저벅! 철썩! 저벅! 철썩!"
  슬리퍼 신은 발과 맨발이 번갈아 내는 소리였다. 데브린 씨가 2층에서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처키는 얼른 무릎을 굽히고 빙고를 싱크대 밑의 찬장 속으로 
밀어넣었다.
  찬장 문을 닫는 순간, 데브린 씨가 부엌으로 들이닥쳤다.
  "잘 잤니, 얘야?"
  처키는 아버지가 이렇게 다정한 목소리를 내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조금도 화가 나 있지 않은 것이다.
  데브린 씨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현관으로 걸어 나가서 조간 신문을 
집어들고 돌아왔다. 그리고 식탁의자에 털썩 주저앉아서는 스포츠란을 읽기 
시작했다.
  데브린 씨의 눈길이 '데브린, 슬럼프에서 헤어나지 못하다.'라고 쓰인 기사 제목에 
닿는 걸 보며 처키는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곧 데브린 부인과 치키가 내려왔다. 데브린 부인은 가볍게 "잘 잤니."하고는 
곧바로 스토브로 걸어갔다.
  부엌은 금세 계란 스크램블과 소시지 냄새로 가득 찼다.
  처키는 이제 안도의 기분이 사라져 감을 느꼈다. 이 집 안에서는 아무도 처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것이었다.
  데브린 부인이 접시들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고, 처키는 달걀 요리를 묵묵히 자기 
접시에 덜었다. 그것은 단란한 가정의 아침식사같이 보였지만, 처키는 입맛이 뚝 
떨어져 버렸다.
  "제가 간밤에 어디 있었는지 궁금하지도 않으세요?" 처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물었다.
  "제 사진이 우유팩의 미아 찾기 광고에 나와야 시원하겠어요?"
  "아침이나 마저 먹어라, 처키."
  데브린 씨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제가 학교에 지각하는 걸 원치 않아."
  "먼저 샤워부터 해라, 처키야. 네 몸에서 개 냄새가 나는 것 같구나."
  데브린 부인도 거들었다.
  처키는 재빨리, 변명할 말을 생각해냈다.
  "그건요, 제가 지독한 쓰레기더미에 빠졌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아무도 그 말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처키는 빙고가 숨어 있는 찬장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 찬장 앞에는 소시지 토막이 떨어져 있었다.
  천천히 찬장 문이 열리면서 지저분한 빙고의 발이 소시지 쪽으로 뻗어 나왔다.
  처키는 깜짝 놀라, 먹고 있던 달걀이 목에 걸렸다. 그가 숨을 몰아쉬자 그의 
엄마와 아빠가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아무 것도 아니에요."
  처키가 중얼거렸다.
  "비이잉잉!"
  갑자기 빙고가 숨어 있는 싱크대 위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토스터에서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빵 두 쪽이 튀어나왔다.
  처키의 아버지가 토스트를 가지러 일어섰다. 처키는 초조한 나머지 벌떡 일어서 
아버지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런데 그만 아버지의 맨발을 밟고 말았다.
  "조심해...이 발이 너를 먹여 살려준다는 걸 잊었냐!"
  데브린 씨가 처키에게 면박을 주었다.
  "그런데 너 지금 뭘 하려는 거냐?"
  "저...토스트!"
  처키가 불쑥 말을 꺼냈다.
  "제가 토스트를 가져다 드릴려구요!"
  처키는 싱크대 앞을 막아서며 토스트를 뽑아들고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곧 
토스트를 아버지에게로 가져갔다.
  데브린 씨가 식탁으로 돌아가 앉자, 처키는 마음이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빙고가 
배고프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빙고는 지금 몹시 더럽기 때문에, 어머니가 
그 냄새라도 맡게 되면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처키는 지금 당장 빙고를 먹이고 
씻겨야 했다.
  처키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이복형을 차례로 쳐다보았다. 그들은 지금 모두 
신문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다른 것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었다.
  "저기, 잠깐 제 말 좀 들어 보세요."
  처키가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제가 어젯밤에 유괴될 뻔했거든요."
  "잼 좀 이리 줘요, 여보."
  아버지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무심하게 말했다,
  지금이 바로 기회다. 아무도 처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처키에게 
철저히 무관심했다. 어쩌면 이것이 처키에게 내리는 벌인지도 모른다. 처키에게는 
이런 무관심이 매보다도 더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빙고의 일이 더 
급했다.
  처키는 아무도 모르게 소시지 몇 개를 얼른 집었다. 그리고 싱크대 문을 열고 
빙고를 밖으로 꺼냈다.
  "제가 만일 국제 테러단에 끌려갔으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처키는 두서없이 얘기하면서 빙고를 복도 쪽으로 밀어냈다.
  "폭주족이었으면 어땠을까요? 아니면 잔인한 칼잡이들한테 잡혔으면은요?"
  "계란 좀 더 드실래요, 여보."
  어머니는 무관심하게 아버지에게 말했다.
  그 때 갑자기 아버지의 큰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얘야! 잠깐, 잠깐만 거기 서 봐라!"
  처키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의 아버지가 거실 창문으로 불쌍한 빙고를 걷어 
차 내던지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저... 저는 목욕을 좀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겠죠?"
  처키가 그의 아버지에게로 뒤돌아서며 말했다.
  "뭐가 잊은 게 없니, 처키야?"
  아버지의 얼굴엔 어느새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데브린 씨는 육중하고 굵은 
오른팔을 뻗어 처키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처키, 처키, 나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처키!"
  아버지는 큰 소리로 즐겁게 외쳤다.
  처키는 그만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그는 정말 그런 게 싫었다.
  "됐다, 이제 올라가 씻으렴."
  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2층으로 올라온 처키는 마음이 따스해져 왔다. 확실히, 처키의 가족들은 그가 
죽든지 살든지 관심이 없다. 그러나 이제 처키에게는 가족보다 더 소중한 것이 곁에 
있는 것이다.
  처키에게는 빙고가 있다. 그리고 처키는 절대로 빙고를 떠나 보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친구

  따뜻한 샤워기의 물줄기는 더러워진 처키의 피부에 상쾌하게 느껴졌다. 처키는 
하루 종일 따뜻한 물 속에 잠겨 있고 싶은 기분이었다. 샤워기 바로 옆에서는 
빙고가 마지막 소시지를 게걸스럽게 먹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그 둘은 깜짝 놀라 움찔했다.
  "처키!"
  데브린 부인의 목소리였다.
  빙고가 얼른 욕조 안을 뛰어들었고, 처키는 데브린 부인이 문을 여는 순간 재빨리 
커튼을 쳤다.
  "왜 그러세요, 엄마?"
  처키가 커튼 사이로 머리만 내민 채 물었다.
  "빨랫감 좀 가지러 왔다."
  데브린 부인이 욕실 바닥에서 때묻은 옷가지를 지어 올리며 처키를 향해 웃음을 
지었다.
  처키가 집에 돌아온 이래 처음으로 듣는 어머니의 다정한 목소리였다.
  "아버지는 말이다, 처키야. 요즘 몹시 힘들어 하신단다."
  "왜 그러신지 얘기 좀 해 주세요."
  처키도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열두 번에 한 번 성공이라니. 왜 그렇게 되셨죠?"
  "글쎄, 나도 그걸 모르겠다."
  데브린 부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엄마와 아빠가 너를 무척 사랑하고 있다는 거야. 그리고 이건 
비밀이니까 아무한테도 얘기하면 안 된다. 알겠지?"
  처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정말로 너를 걱정했단다, 처키야."
  데브린 부인이 계속 말을 이었다.
  "이건 우리끼리 얘기니까, 아버지가 알면 안 된다. 하지만 우리 모두 너를 
사랑하는 건 사실이야."
  "고마워요, 엄마."
  처키가 대답했다.
  데브린 부인이 이마를 찡그리더니 이리저리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아이구, 들켰구나 하고 처키는 생각했다. 엄마가 드디어 빙고의 냄새를 맡았고, 
이제 곧 커튼을 젖히면 빙고를 발견할 테고, 그리고 처키는 야단을 맞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데브린 부인은 곧 문을 열고 나가며, 
  "겨드랑이 밑을 특히 깨끗이 씻어라."
  라고 말했을 뿐이다.
  처키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오늘은, 데브린 가족 모두에게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범한 월요일 아침이었다. 
치키는 자전거를 타고 고등학교에 갔고, 데브린 씨는 친구의 차로 경기장에 갔다. 
그리고 데브린 부인이 처키를 중학교까지 태워다 주었다.
  처키는 빙고를 혼자 집에 놔두고 왔지만 조금도 걱정이 되지 않았다. 빙고는 
영리한 개니까 아무 문제도 일으킬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가 학교 앞에 서자, 처키는 얼른 뛰어내렸다. 그리고 데브린 부인이 있는 창문 
쪽으로 다가가자 데브린 부인은 가방에서 열쇠꾸러미를 꺼냈다.
  "여기 현관 열쇠다."
  창문으로 열쇠를 건네주며 데브린 부인이 말했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면 오븐 켜는 걸 잊지 마라. 갑자가 익으려면 한 시간은 
걸릴 거다. 알았지?"
  처키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처키에게 열쇠를 맡기고 
엄마가 어디에 가려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경마장에 가려는 것이다. 
처키는 경마장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지만, 엄마가 그곳에 가는 건 시간 낭비일 
뿐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저는 정말 모르겠어요."
  처키가 불평을 했다.
  "경마에 돈을 거는 게 뭐가 그리 재미있어요?"
  데브린 부인은 그 말을 듣자, 슬픈 듯 기운 없는 표정을 지었다.
  "엄마에게도, 뭔가 신나는 일이 있어야 한단다. 일종의 해방감 같은 것 말야."
  그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처키는 그의 엄마가 비록 외출을 하지 않거나, 그렇게 말하지 않더라도 그 심정을 
짐작할 수 있다.
  아버지의 우울한 기분이 엄마를 지치게 만들고 있었다. 만일 그의 아버지가 다시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올린다면 생활이 예전처럼 돌아갈 것이고, 엄마도 보다 
행복해질 텐데...
  "그만 해두자."
  데브린 부인이 미소를 띠며 말했다.
  "만약 내 말이 픽 씩스를 이기면, 올 여름엔 디즈니랜드에 가자!"
  그녀는 곧 장난기 섞인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자, 얘야 엄마한테 뭐 잊은 거 없니?"
  처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의 엄마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오, 엄마, 여기서요? 봐주세요!"
  하지만 데브린 부인의 완강한 눈빛을 보자, 처키는 어쩔 수 없었다. 내키지 
않았지만 처키는 머리를 숙여 창문 가까이에 댔다.
  데브린 부인은 손을 뻗어 처키의 머리칼을 장난스럽게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귀여운 처키야, 사랑스런 처키야, 엄마에게 행운을 가져다 다오!"
  처키는 엄마가 자기에게 키스까지 하고 놓아줄 때 기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엄마, 동물이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도, 
엄마나 그 말을 위해서, 그리고 치키의 성적, 그리고 아빠의 킥을 위해서도..."
  "잊어 버려라 얘야."
  데브린 부인이 딱 잘라 말했다.
  "애완동물은 절대 안 된다!"
  데브린 부인은 작별 인사를 하고 차를 몰아 떠났다. 처키는 좌절감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학교가 끝나자, 처키는 할 수 있는 한 가장 빠르게 집으로 달렸다. 데브린 부인의 
좋지 않은 취미도 한 가지 좋은 점은 있었다. 처키가 집에 돌아왔을 때 집이 텅 
비어 있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오직 처키의 사랑스런 개 말고는 아무도 없는 
것이다.
  "빙고, 내가 왔다!"
  처키는 뒷문으로 뛰어들어가면서 소리쳤다.
  빙고가 계단에서 뛰어내려와, 낑낑거리고 뛰어오르면서 좋아 어쩔 줄을 몰랐다.
  "그래, 그래, 알았어!"
  처키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자! 놀러 나가자!"
  처키가 먼저 밖으로 뛰어나오고, 빙고가 그 뒤를 바싹 따랐다.
  그들이 맨 처음 멈춘 곳은 상가에 있는 전자오락실이었다. 빙고는 기계들 중 
하나에 뛰어올라 열심히 놀기 시작했고, 게임에서 처키를 가볍게 이겼다. 여러 
게임을 했지만 빙고가 네 게임 중에 세 게임을 이겼다.
  "와우! 정말 너 대단하구나. 너 또 뭘 할 줄 아니? 아, 좋은 생각이 났다!"
  그들은 곧장 집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처키가 안을 들어가 그와 치키의 
스케이트보드를 가지고 나왔다. 처키가 길을 따라 이리저리 스케이트보드를 몰아 
나가자 빙고도 치키의 보드를 타고 곧바로 처키를 따라오는 것이었다.
  처키는 또 한 가지 기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처키는 스케이트보드를 집에 가져다 
놓고 수학책을 가지고 나왔다.
  "자, 네가 얼마나 영리한가 알아보자."
  처키가 기대에 찬 눈으로 빙고를 보며 말했다.
  그들은 집 근처의 공원으로 가서 단풍나무 아래의 풀밭에 느긋하게 엎드렸다. 
처키는 책을 펴서는 숙제해야 할 부분은 큰 소리로 읽었다.
  "일 에이커의 딸에서 마흔 여덟 자루의 밀을 거둘 수 있다. 농부가 폭풍우가 치기 
전에 백삼십 팔 자루의 밀을 거두었다면 몇 에이커의 땅에 밀을 심었을까?"
  빙고는 머리를 잠깐 갸웃거리더니 이내 앞발로 땅을 세 번 쳤다. 처키가 계산을 
해보고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맞았어!"
  처키는 빙고에게 자기의 숙제를 모두 풀게 했다. 그리고도 저녁 식사까지는 
얼마간 시간이 남았다. 낚시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처키는 집으로 돌아가 자기 방에 있는 카세트와 헤드폰 두 개, 그리고 낚싯대를 
가지고 나와 자전거에 실었다.
  처키가 근처의 연못으로 자전거를 몰자 빙고는 쫄랑거리며 뒤를 따랐다. 그들은 
버드나무 아래의 풀이 무성한 둑에 자리를 잡았다. 처키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었다.
  여기서 그들은 해질녘의 평화로운 한때를 보냈다. 노을 아래에서 느긋하게 음악을 
들으면서, 비록 고기는 한 마리도 잡지 못했지만, 그들은 편안하게 쉴 수 있었다.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자 처키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
  처키는 낚시 도구를 자전거에 실으며 빙고를 찾았다.
  "빙고, 이제 갈 시간이야."
  빙고가 얼른 눈에 띄지 않았으나, 처키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빙고는 
아까부터 나비를 쫓아 이리저리 누비고 다녔었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나비를 쫓고 
있을 것이다.
  "빙고!"
  처키가 다시 불러 보았다.
  역시 대답이 없었다.
  "빙고고오오...!"
  처키의 목소리가 호수 건너에까지 메아리쳤다. 처키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빙고, 어디에 있니? 저녁 먹을 시간이야!"
  처키는 근심어린 눈으로 사방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리고 덤불 사이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지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았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빙고!"
  처키는 이제 겁이 나기 시작했다. 혹시 숲 속에 늑대가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이리들이? 아니면 찻길을 헤매다 차에 친 건 아닐까?
  처키는 이제 울먹이는 목소리로 있는 힘껏 외쳤다.
  "빙고오오오...!"
  그 때 처키의 뒤쪽에서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키가 뒤돌아보자 빙고가 
쓰레기통에서 기어나오고 있었다.
  빙고는 일부러 숨어 있었던 것이다!
  처키는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안심이 되면서도 한편 화가 치밀어 올랐다.
  "너 다시는 이런 짓 하지마!"
  처키가 성난 목소리로 꾸짖었다.
  빙고가 고개를 떨구며 부끄러워하지 처키도 곧 화가 가라앉았다. 처키는 빙고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왜 빙고가 그렇게 숨어서 자기를 애타게 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빙고는 처키의 반응을 보고 싶었다. 빙고는 처키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처키는 오늘 아침 그가 집에 돌아갔을 때 가족들의 반응을 생각해 보았다. 자기는 
지에서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가. 가족들이 필요로 하지 않는,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가를 생각했다.
  처키는 곧 빙고와 자기가 모두 똑같은 것에 굶주려 있음을 알았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비록 집에서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지 못하는 처키지만 빙고에게는 
사랑을 충분히 주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처키는 쓰레기통 속에서 빙고를 꺼내 덥석 안아 주었다.
  "미안해, 빙고. 난, 그저... 난 결코 너를 잃고 싶지 않아. 알지? 이제 날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지?"
  빙고는 행복에 겨워 처키의 뺨을 핥았다. 그 순간 처키는 둘 사이에 평상을 같이 
할 수 있는 믿음이 생겼음을 알았다.
   
    이별은 정말 싫어!

  처키는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뒷문으로 뛰어들어가며, 큰 소리로 신나게 외쳤다.
  "야호! 여러분, 저는요..."
  처키는 마지막 말을 속으로 삼켰다. 부엌에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치키가 
말뚝처럼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동상처럼 곧은 얼굴로 처키를 
쳐다보았다.
  그들의 어깨 너머로 빙고가 살금살금 현관으로 들어와 2층으로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이것이 바로 처키가 계획했던 것이다.
  "내 콜드 크림에 뭔가가 떨어져 있더구나."
  데브린 부인이 말했다.
  "누군가 내 상패를 씹어 놨던데."
  치키가 덧붙였다.
  "그리고 어떤 녀석이 안뜰의 진입로까지 더럽혀 놨더구나."
  데브린 씨까지 나섰다.
  처키는 온몸에서 진땀이 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무슨 말들을 하는 거예요?"
  처키가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제가... 개라도 숨겨 놨다는 건가요?"
  "빙고."
  데브린 씨가 외쳤다.
  '뭐라구?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았지?'
  처키는 잠시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곧 '빙고'란 말이 '틀림없어!' , 
'바로 그거야!' 라는 의미로 쓰이던 옛말이라는 걸 기억해 냈다.
  "조만간 찾아내고 말겠어.'
  치키가 자신만만하게 빈정거렸다.
  "그걸 찾기만 하면..."
  "그만해라, 치키야.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데브린 씨는 이렇게 말하고 처키를 노려봤다.
  "너는 어서 네 방에 가서 짐을 꾸려라."
  "짐을 싸라구요?'
  처키는 너무 놀라 다시 물었다.
  "너무 하신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어서, 이 녀석아!"
  아버지가 고함을 쳤다.
  처키는 모든 게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들이 자신을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대로 이건...
  그러다가 처키는 무슨 영문인지 알 것 같았다. 처키는 데브린 씨 쪽으로 몸을 
돌려 물었다.
  "아빠. 또 다른 팀으로 가시는 거죠? 그렇죠?"
  "우린 내일 아침에 떠나야 해."
  데브린 부인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위스콘신에 있는 그린베이로 간단다."
  "그린베이요? 아, 어딘지 알아요!"
  처키가 축 처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겨우 이곳에 정이 들었는데. 너무 성급한 거 아니에요?"
  "그만해라!"
  데브린 부인이 말을 가로챘다.
  "아빠는 지금 도움이 필요하지 불편이 필요한 게 아니란다. 자, 어서 올라가거라!"
  처키는 그대로 따랐다.
  처키가 방 안에 들어서자 빙고가 반기며 달려 들었다.
  "가만 있어, 녀석아. 난 지금 할 일이 있어."
  처키는 빙고를 밀어내며 벽장 속에서 가방을 꺼냈다. 그 가방은 아버지가 팀을 
달라스에서 뉴욕으로, 뉴욕에서 덴버로 옮길 때도 썼던 가방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처키에게는 꽤 크게 느껴졌었는데 이제는 고작 바지나 셔츠 몇 벌만 넣어도 꽉 찰 
것 같았다.
  "처키야! 여기 저녁 가져왔다!"
  문 밖에서 데브린 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빙고가 잽싸게 침대 밑으로 뛰어들어가자마자, 데브린 부인이 식사를 들고 
들어왔다.
  "며칠 동안 지낼 수 있을 만큼만 싸도 될 거야."
  데브린 부인이 처키의 가방을 보며 말했다.
  "나머지는 이삿짐 센터에서 옮겨 줄 거다."
  "그들이 제가 아끼는 걸 모두 옮겨줄 수 있을까요? 내가 정들었던 이곳의 
경치들이나, 여기 두고 가는 내 마음까지도요? 그리고 나의... 나의...."
  "개 말이냐?"
  어머니가 마치 알고 있는 것처럼 대답한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처키야, 난 네가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하는 걸 안단다. 그렇다고 해서 개가 너의 
친구가 될 수는 없어."
  "하지만 엄마도 저를 입양하셨잖아요. 왜 애완동물은 안 된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개는 냄새가 나고, 가구를 씹어먹고, 병을 옮기고, 또 마당을 더럽히기 
때문이야."
  데브린 부인이 차근차근 타일렀다.
  "네가 좀더 나이가 들면 어쩜 열대어 같은 건 키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열대어요?"
  처키가 빈정대며 말했다.
  "열대어를 안아줄 수 있어요? 열대어랑 공놀이도 할 수 없잖아요. 그리고 
열대어랑은 낚시 같은 것도 할 수 없구요!"
  데브린 부인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처키의 트렁크에 옷을 챙겨 넣기 시작했다.
  "얘야, 네 나이 때는 너희들 생각이 다 옳은 것처럼 느껴진단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 엄마 아빠가 하는 말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단다."
  "부모님들 말씀에 다 이유가 있다구요?"
  처키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렇게 쉬운 게 아니란다, 처키야. 집세 따위나, 도시의 범죄, 
밀린 대금 청구서나 너의 아버지가 겪는 불행이 아니더라도 어른이란..."
  그녀의 목소리에서 점점 힘이 빠지고 있었다. 처키는 감자를 자르려고 이리저리 
찔러 보았으나 잘 되지 않았다.
  "엄마 감자가 왜 이 모양이죠?"
  처키가 투덜대며 물었다.
  데브린 부인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누군가 집에 와서 오븐 켜는 걸 잊었나 보더구나."
  "아!..."
  처키는 곧 자기의 잘못이란 걸 알고 얼굴이 붉어졌다.
  "어쨌든 중요한 건 말이다. 우리 가족은 서로 협조해야 한다는 거야."
  옷가지를 정리하다가 데브린 부인은 이상하게 생긴 가죽 벨트 하나를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거기에는 조잡하긴 하지만 뭔가가 새겨져 있었다. 마치 참나무 잎같이 
생긴 조그만 축구공과, '아빠'라는 글씨였다.
  "이게 뭐니?"
  "아버지날 드리려고 만들었는데요. 축구공을 새기다가 잘 안돼서 그냥 
올드스파이스 화장품으로 드렸어요."
  "왜 아버지께 안 드렸니?"
  데브린 부인은 그것이 대단한 보물이라도 되는 양 조심스레 어루만지며 말했다.
  "정말 멋지구나!"
  "저희 기술 선생님이요, 쓸 데 없는 짓이라고 했어요."
  "하지만 기술 선생님이 너의 아버지는 아니잖니. 난 말이다. 지금 이것이 네 
아버지를 기쁘게 해줄 수 있는 가장 멋진 선물이라고 생각한단다."
  데브린 부인은 흐뭇하게 웃으며 그것을 처키에게 내밀었다.
  처키는 그것을 받기 전에 잠시 망설였다.
  "정말 좋아하실까요?"
  "그렇고 말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 처키는 방을 나섰다. 벨트를 들고 아빠가 계시는 침실로 갔다. 
처키의 아버지는 그곳에서 발톱을 깎느라 분주했다.
  "아빠."
  처키는 벨트를 등 뒤에 숨긴 채 조용히 아버지를 불렀다.
  "얘야, 저기 발가락에 바르는 약 좀 집어 죽겠니?"
  데브린 씨는 약병과 튜브가 널려 있는 책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끝에 있는 거 말이다."
  처키가 약을 건네주며 말했다.
  "아빠, 드릴 말씀이 있어요. 으음, 그러니까 아빠가 새 팀으로 가게 되서 기뻐요. 
새 친구도 사귈 수 있고, 새 집, 그리고 새로운... 날씨, 그래요. 새로운 건 좋잖아요. 
사실은 저, 이거 드리려구요."
  처키가 벨트를 쑥 내밀었다.
  "아버지날에 드리려고 했었는데..."
  데브린 씨는 그걸 집어들고는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에 흐뭇한 
웃음이 번졌다.
  "네가 이걸 만들었담 라이지?"
  처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이 둥근 것이 뭐냐? 도토리냐?"
  "축구공이에요."
  "오, 정말 그렇구나."
  엄격하기만 하던 데브린 씨의 표정이 부드러워지자, 처키는 다사로운 행복감에 
잠겼다.
  "정말 잘 만들었구나. 내 마음에 쏙 든다."
  "아버지는 곧 좋아지실 거에요."
  처키가 아버지를 위로하며 말했다.
  "언젠가는 아빠가 가장 원하시는 특별한 일이 꼭 일어날 거예요. 아버지의 인생을 
바꿔놀, 뭔가 따뜻하고 신나고, 사랑으로 가득찬 그런 거 말이에요."
  "그래, 이 벨트는 정말 고맙구나, 얘야."
  데브린 씨가 처키의 말을 중단시켰다.
  "하지만, 개를 집 안에 들일 수는 없단다."

  처키는 맥이 빠졌다. 만일 부모님이 개를 키우는 걸 끝까지 허락하지 않는다면, 
처키는 일생 동안 빙고를 숨겨서 키워야 할지도 모른다.
  밤이 되자 처키는 힘겹게 트렁크 한쪽에 구멍을 내려고 애썼다. 그건 공기 
구멍이었다. 빙고는 그런 처키의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보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친구야."
  처키가 빙고에게 말했다.
  "너는 나랑 같이 그린베이에 가게 될 거야."
  그 가방 속은 빙고의 몸집에 맞춘 것 같이 딱 알맞았다. 사실 처키는 그걸 빙고의 
침대로 쓸 작정이었다.
  처키는 잠잘 준비를 마치고, 빙고를 꼭 껴안아 저녁 인사를 한 뒤에 침대에 
들어갔다. 따뜻하고 기분좋은 밤이었다. 그래서 처키는 창문을 열어 놓은 채로 
잠자리에 들었다. 누가 또 알겠는가? 그린베이의 공기도 이곳 덴버의 공기만큼 
싱그러울지. 처키는 크게 심호흡을 몇 번 하고, 침대에 털썩 드러누웠다. 처키는 
빙고와 새 집에서 함께 생활하게 되리라 믿고 편안하게 잠자리에 든 것이다.
  처키가 단꿈을 꾸면서 잠에 빠졌을 때, 트렁크의 뚜껑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빙고는 처키가 잠든 것을 확인한 뒤 트렁크에서 천천히 빠져 나왔다.
  그리고는 아주 조용조용 방을 가로질러 창문을 뛰어 넘었다. 빙고는 나름대로의 
볼일이 있었다. 옆집의 귀여운 개 스파니엘을 만나는 일이었다.

  다음날 아침, 데브린 씨는 처키의 트렁크를 스테이션왜건의 꼭대기에 올려놓고 
단단히 고정시켰다.
  "자, 이젠 다 된 것 같군."
  데브린 씨가 부인에게 말했다.
  "여보 아이들이 자기 물건은 모두 잘 챙겼겠지?"
  이 때 집 안에서는 처키의 다급한 목소리가 이방 저 방에서 울렸다.
  "빙고... 빙고... 빙고..."
  처키는 서랍과 옷장, 그리고 찬장과 박스들을 열어 보았다. 그리고 쓰레기더미마다 
살펴보았다. 또한 냉장고 안, 욕실, 화장실도 뒤져서 찾아보았다.
  하지만 빙고는 어디에도 없었다.
  처키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허겁지겁 포장한 박스들을 뜯어보고, 가구들을 밀쳐 
보았다. 그러다 문득 창문 너머로 뒤뜰에 있는 쓰레기통을 보게 되었다.
  '그래 맞아! 어쩌면 녀석이 또 장난을 치고 있는지도 몰라!'
  처키는 밖으로 뛰어나가 쓰레기통 뚜껑을 열어 보았다.
  거기에도 없었다.
  처키는 속이 타기 시작했다. 잠시 후면 그는 영영 덴버를 떠나야 한다. 그것도 이 
세상에서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잃어버린 채 말이다.
  처키는 이제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가족들이 듣건 말건 개의치 
않고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빙고오오오!"
  그러나 대답은 데브린 씨의 차에서 들려오는 거칠고, 놀리는 듯한 
경적소리뿐이었다. 처키는 나무에서 곧 떨어져버릴 가을날의 낙엽처럼 마음이 
시들어버린 걸 느꼈다.
  그것은 참으로 당연하다.
  이제 막 그의 인생에서 빛나는 의미를 찾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그것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빙고까지도 그를 배반했다.
  좌절감으로 풀이 죽어서, 처키는 집 앞으로 힘없이 걸어 내려갔다. 그는 너무나 
마음이 상해서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악마의 음식점

  "힘 내거라, 얘야."
  데브린 씨가 스테이션왜건의 뒷문을 닫으면서 처키에게 말했다.
  "위스콘신은 굉장할 거야. 그만 그쳐라."
  처키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건의 뒷자리에 홀로 앉아, 창문 
밖을 둘러보았으나 그가 찾는 것은 없었다. 이제 그의 인생은 아무 의미도 없다. 
위스콘신에 가게 되면, 그는 돼지고기나 치즈 따위의 먹을 것이나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비참하게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데브린 씨는 운전석에 앉아 차를 출발시켰다. 차가 안뜰을 벗어나자 처키의 몸이 
차 뒤쪽으로 홱 쏠렸다.
  바로 그 때 처키는 이웃집의 개지 앞에 있는 빙고를 보았다.
  "빙고!"
  처키는 손과 얼굴을 창문에 바짝 대고 힘껏 소리쳤다.
  데브린 씨가 백 미러를 보면서 말했다.
  "이럴 줄 알았다. 정원을 망친 게 바로 저 개였구나!"
  그는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아 빠르게 차를 몰았다. 타이어가 미끄러지는 소리를 
내면서 차는 커브를 돌아 큰 길로 나아갔다.
  "이젠 개가 쫓아오지 못할 거야."
  데브린 씨가 차갑게 잘라 말했다.
  처키의 어머니는 곧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개가 있었구나."
  "나는 알고 있었다구!"
  치키가 끼어들며 거들었다.
  "그래요! 난 개를 숨기고 있었어요!"
  처키가 고함을 쳤다. 처키는 이제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차를 세워 주세요."
  "그냥 달리세요, 아버지!"
  치키가 소리쳤다.
  데브린 씨는 마치 풋볼 경기에서 수비를 뚫고 공격하듯 거리를 달려나갔다. 
교차로의 빨간불도 무시했다.
  다른 차들이 그들을 피해 옆으로 비켜 나는 동안 처키는 그저 뒷자리에 웅크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 가지 않아 사방에서 처키네 자동차를 비난하는 
경적소리가 울렸다.

  처키는 가슴이 찔리는 듯 고통스러웠다. 자신의 모든 행복이 마치 자동차 매연 
속으로 사라져 가는 것 같이 느껴졌다.

  데브린 씨의 난폭한 운전 때문에 덴버 시의 교통이 아주 엉망이 되어 버렸다. 
빙고가 시내 중심가에 도착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빙고는 가장 혼잡한 교차로의 한가운데에 뛰어들어 처키가 타고 있는 
스테이션왜건의 냄새를 찾기 시작했다.
  "저 개 좀 치워!" 누군가 외쳤다.
  "저 개 때문에 이렇게 길이 막히는 거야?"
  다른 한 사람도 화난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치든 말든 그대로 달려!"
  이곳 저곳에서 소리가 들렸다.
  빙고는 냄새를 쫓는데 정신이 팔려 뒤에 경찰 오토바이가 와서 서는 것도 알지 
못했다. 경찰의 우악스런 손이 곧 빙고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너, 여기서 차에 치어 죽고 싶냐?"
  경찰은 빙고를 번쩍 들어올렸다. 그리고 차도 밖으로 들고 나와 내려놓으며 
빙고의 눈을 노려보았다.
  "음, 넌 꽤 괜찮은 개인 것 같구나."
  경찰은 표정이 좀 부드러워지면서 빙고에게 주의를 주었다.
  "이번엔 이렇게 말로 하지만 다음에 또 여기서 너를 보게 되면 내가 먼저 너를 
치어 버리겠다!"
  경찰은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졌고, 차들은 다시 정상적으로 움직였다.
  도로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차들이 밀려들고, 그 차들이 내뿜는 배기 가스가 
빙고가 찾는 냄새를 지웠다. 빙고는 그 속에서 다시 냄새를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빙고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데브린 씨 가족은 두 시간 가량 달린 뒤에 길가의 한 휴게소에 멈춰 섰다. 처키는 
이곳이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지만, 미국 중부의 메마른 지역 어디쯤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 휴게소도 지금까지 오면서 볼 수 있었던 다른 휴게소와 별다를 게 없었다. 
건물은 오래 되어 낡았고, 주위엔 주차해 있는 트럭들과 오토바이들로 가득했다. 
단지 색다른 것이라면, '바로 그 맛, 듀크 다운 홈 핫도그!'라고 쓴 간판뿐이었다.
  처키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배고 고팠지만, 이곳에 도착하자 밥맛이 딱 떨어졌다.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기 때문이었다. 밖에 있는 주문대에는 트럭 운전사들과 
오토바이를 몰고 온 사람들로 붐볐는데 그들의 구두는 기름때가 덕지덕지 끼어 몹시 
더러웠다. 그 주문대 뒤로는 회갈색 옷을 입은 요리사들 열댓 명이 요리를 하고 
있었다.
  데브린 씨 가족들도 주문대의 빈 자리로 다가갔다. 데브린 부인이 너덜너덜하고 
때묻은 메뉴판을 들었다.
  "당신은 지금 실수하는 거예요."
  그녀가 불평을 했다.
  "이건 운동장에서나 파는 음식이라구요!"
  "이건 아주 미국적인 음식이라구!"
  데브린 씨가 대꾸했다.
  "이런 곳이 지금은 점점 귀해진단 말이야. 얘들아, 너희들은 이런 것이 영영 
사라지기 전에 이 휴게소에서 기막힌 음식을 맛보게 될 거다."
  그들은 '엠마 루이스'라고 쓴 이름표를 달고 있는 따분하게 생긴 여종업원에게 
주문을 했다. 그녀는 그릴 옆에서 담배를 질겅질겅 씹으며 핫도그를 굽는, 턱수염이 
많이 난 남자에게 주문서를 넘겨주었다.
  "여기 있어요, 듀크. 저기 있는 사람들 거예요."
  듀크는 핫도그 네 개를 두 손으로 집어서는 플라스틱 그릇에 담았다. 다른 
사람들이 먹고 난 그릇을 닦지도 않았는지 기름 종이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갑자기 처키는 속이 거북해졌다.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처키는 재빨리 건물 뒤쪽으로 돌아가 그 역겨운 냄새가 가시길 바랐다. 그런데 그 
휴게소 건물 옆에는 작고, 아주 낡은 헛간이 하나 붙어 있었다. 처키가 헛간 
모퉁이를 막 돌려고 하는데 새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키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런데 개 소리는 헛간 안쪽에서 들려왔고, 한 마리가 짖는 것 같지 않았다. 
처키는 조심스럽게 그쪽으로 다가가 문을 열고는 안을 들여다보았다.
  순간 처키는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뱃속에 있는 것이 모두 다 넘어올 것만 
같았다. 냄새는 그리 괴롭지 않았지만, 그 광경은 처키를 기절시키고도 남았다.
  거기에는 열댓 마리의 개들이 벽을 따라 쌓인 나무 우리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정작 처키가 놀란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그곳에 고기를 가는 분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몸집이 큰 괴물같이 놓여 있었는데, 컴컴한 그 주위를 파리떼들이 
웽웽거리고 있었다. 그 뒤로는 소시지 다발들이 커튼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 소시지들 속에 무슨 고기가 들어 있을지 생각해 보니 처키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아주 싱싱한 겁니다, 손님."
  소시지 커튼 뒤쪽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 내 손 하나가 쑥 튀어나와 소시지를 
한쪽으로 밀치더니 안에서 듀크가 걸어 나왔다.
  "아니면 돈을 돌려 드립니다."
  처키는 교활하게 웃으며 빈정대는 듀크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피 묻은 앞치마를 
허리에 걸치고 있었다. 우리 안에서는 개들이 힘없이 짖어대고 있었다.
  처키가 죽을 때까지도 잊지 못할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지옥 대탈출

  "맥도날드 햄버거 회사는 왜 이런 곳을 후원하지 않는지 모르겠어."
  데브린 씨가 차를 몰아 듀크 가게를 빠져나오며 중얼거렸다.
  "왜들 그래? 개고기를 조금 먹었다고 해서 뭐 잘못되기라도 할까봐? 어떤 
나라에서는 개고기가 최고의 진미라구!"
  처키는 그 말을 듣자, 또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아버지가 이제 듀크 
가게에 대한 이야기를 그만 하기를 바랐다. 아니, 두 번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를 바랐다.
  데브린 부인과 치키의 표정을 슬쩍 보니 그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처키는 좌석에 깊숙이 기대앉아서 빙고와 지냈던 행복한 순간들을 떠올렸다.

  이 순간 처키가 빙고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만일 빙고의 
모습을 보았다면 처키는 가슴이 찢어졌을 것이다.
  빙고는 이글이글 타는 한낮의 태양 아래에서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차들은 쌩쌩 뜨거운 바람을 일으키며 빙고의 곁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하늘 위에서는 굶주린 한 무리의 독수리떼가 빙고가 쓰러지기만을 기다리며 
주위를 뱅뱅 돌고 있었다.
  따가운 햇빛 사이로 빙고는 어렴풋한 형상을 보았다. 아스팔트의 열기 때문에 
가물거리는 그 형상은 빙고에게로 서서히 다가왔다.
  빙고는 눈을 깜박여 두 번, 세 번 다시 보았다. 그 희미한 물체는 가까이 
다가올수록 점점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어깨에는 물통을 메고, 덥수룩한 머리에다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덴버 브롱크스의 모자를 쓴...
  처키였다.!
  빙고는 마지막 힘을 다해 꼬리를 흔들었다. 처키가 달려와 빙고를 안아 올렸다. 
빙고는 말라버린 목소리로 끙끙거리며 발로 처키의 어깨에 걸린 물통을 더듬었다.
  처키는 빙고를 내려놓고 다정하게 말했다.
  "목마르지, 얘야?"
  처키가 모자를 벗어 뒤집고는 거기에 물을 따르려 했다. 빙고는 그저 무어라 말할 
수 없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물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물통에서 쏟아지는 건 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모래였다. 빙고는 깜짝 놀라 
위를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 빙고는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처키가 갑자기 스티브로 바뀐 것이었다. 그는 사악하게 웃으면서 마로 짠 자루를 
꺼내들었다.
  "물이 먹고 싶지?"
  그가 을러댔다.
  "난 강이 있는..."
  그 때 갑자기 스티브 뒤에서 세 마리의 푸들이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나타났다. 
그리고 진저도 함께 나타났다. 진저는 스티브가 들고 있는 자루를 낚아채며 외쳤다.
  "스티브 그만둬요!"
  그리고 그녀는 빙고 쪽으로 고개를 돌려 빙긋이 웃었다.
  "자, 이리 온!"

  빙고가 악몽에서 깨어나 보니, 그는 입에 권총을 문 채로 길가에 누워 있었다.
  빙고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꿈이 아니었다. 빙고의 이빨이 둥글고 길쭉한 권총의 총열을 꽉 물고 
있었다, 그것은 차고 딱딱한 진짜 권총이었다. 그리고 권총을 쥐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있는 손도 보였다.
  빙고는 눈을 감아 버렸다. 너무나 지쳐서 달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빙고는 
죽은 일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지금의 빙고에게는 죽는 게 가장 나은 일이 
될 것이다.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겼다.
  빙고는 어떤 것이 입 안에 발사되는 걸 느꼈다. 곧이어 섬뜩한 것이 목구멍에 
닿았다. 빙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웬일일까? 빙고는 죽지 않았다. 그리고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다시 방아쇠를 당겼을 때야 비로소 빙고는 깨달았다. 총에서 액체가 
나와서 그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을. 그것은 바로 물총이었다.
  꿀꺽꿀꺽 빙고는 물을 들이켰다. 다시 기운이 솟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마침내 
물총의 물이 떨어졌을 때 튼튼하게 생긴 두 팔이 빙고를 번쩍 들어 트럭의 조수석에 
올려놓았다. 차가 길을 따라 움직이자 빙고는 구 좌석에 편안하고 아늑하게 
엎드렸다.
  잠시 후 빙고는 트럭이 멈추는 것을 느꼈다. 빙고를 구해준 그 남자는 조수석에 
있는 빙고를 안아 들었다. 빙고는 희미한 의식 속에서 개들이 짖는 소리를 어렴풋이 
들었다. 처음에는 친구들이 있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설레었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 
보니 그 짖는 소리가 뭔가 이상했다. 왠지 절박하고, 불행하게 들렸던 것이다.
  "또 길 잃은 놈이야?"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재수가 좋은 날인데, 듀크."
  빙고가 고개를 들어보니 '듀크 핫도그'라고 간판이 보였다. 그리고 '엠마 
루이스'라는 이름표를 달고, 앙칼지게 생긴 여종업원의 얼굴도 보였다. 이어서 
빙고를 구해준 그 남자의 목소리가 들러왔다.
  "이 녀석에게 먹을 것 좀 주지 그래. 살이 좀 붙으면 고기가 꽤 많이 나오겠는데!"
  그가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 헛간 쪽으로 들어서자 개 짖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빙고는 고개를 들어 헛간 안을 둘러보았다. 거기에는 테리어, 닥스훈트, 
스파니엘, 비글 등 온갖 종류의 개들이 나무로 된 개장 속에서, 핏발 서고 참담한 
눈빛으로 빙고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얼마 있지 않아 개고기가 도리라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빙고가 이곳의 상황을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빙고는 고기 
가는 기계를 보고는, 차라리 아까 그 길 위에서 죽는 게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 착하지 요놈아."
  듀크는 빙고를 개장 속으로 밀어넣었다.
  그것을 본 엠마는 고개를 저으며 냉담하게 말했다.
  "당신 마치 목동 같군요."
  빙고는 겁에 질려 개장 안을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듀크가 개장 뒤쪽에 있는 
플라스틱 그릇에 물을 채우는 것을 잊었으나, 빙고는 목마른 것조차 잊었다.
  두 사람이 떠나자마자, 옆에서 테리어가 미친 듯이 짖어댔다. 그것은 일종의 
신호였다. 빙고는 곧 알아차렸다. 물그릇 밑을 보라는 뜻이었다.
  빙고는 물그릇 쪽으로 가서는 그것을 옆으로 치웠다. 과연 거기엔 밑으로 통하는 
구멍이 나 있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빙고보다 먼저 그곳에 있던 개가 도망치기 위해 
이 굴을 파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굴은 제법 깊었다.
  "어서 굴을 완성해!"
  테리어가 짖어댔다.
  빙고는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러자 힘이 불끈 솟아났다. 빙고는 앞발로 땅을 
파헤치고, 흙은 두 다리 사이로 힘차게 뒤로 밀어냈다.
  빙고가 굴을 파는 동안 테리어는 조그만 거울로 헛간 문을 비춰보며 망을 보았다. 
갑자기 테리어가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그가 거울을 감추자 바로 문이 열렸다.
  빙고는 번개같이 물그릇을 구멍 위에 밀어 놓았다. 그리고 한쪽 구석으로 가서는 
지치고 무기력한 모습으로 쭈그리고 앉았다.
  듀크는 커다란 식칼을 들고 콧노래를 부리며 헛간으로 들어왔다. 식칼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에 반사되어 칼날이 번뜩이고 있었다.
  고기 가는 기계 뒤에는 칼 가는 조그만 그라인더가 있었다. 듀크는 그라인더를 
켜고는 돌아가는 숫돌에 식칼을 대었다. 그라인더에서는 빨갛고 파란 불꽃이 
이리저리 튀면서
  "지이--잉 지이--잉."
  칼 가는 소리가 헛간 안을 진동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정적이 감돌고 이어서 듀크의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저벅저벅 
들려왔다.
  빙고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듀크의 발걸음이 빙고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듀크는 빙고의 개장 앞을 그대로 지나쳐 테리어 앞에서 멈춰 섰다.
  "이젠 네 차례다."
  듀크가 개장을 열면서 말했다.
  "꺄--아악!"
  갑자기 비명 소리가 터져나왔다. 빙고는 그 소리가 테리어에게서 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소리는 좀 떨어진 곳에서 들려왔고, 사람 소리 같았다.
  그 소리는 테리어가 핫도그가 되는 것을 잠시 나마 멈추게 했다. 듀크가 화닥닥 
문 밖으로 뛰쳐나가면서 소리쳤다.
  "무슨 일이야, 엠마!"
  빙고는 엠마가 부엌에서 바퀴벌레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는 걸 알았다. 부엌에서 
듀크와 엠마가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빙고는 다시 행동에 들어갔다. 그리고 먼저보다 더 맹렬하게 땅을 파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 그의 몸 전체가 굴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근은 개장의 끝이 
허리에 닿는 것을 느끼며 힘껏 땅을 파헤쳤다.
  마침내 빙고의 앞발이 땅 위로 나왔다. 잠시 후 헛간 안은 개들이 흥분하여 
끙끙거리는 소리로 가득찼다. 개장에서 빠져나온 빙고는 다른 개장의 빗장을 
하나하나 열기 시작했다. 밖으로 뛰쳐나온 개들은 모두 기뻐서 날뛰었다.
  개들은 개장들을 한데 모아 높이 쌓아 올렸다. 빙고가 그 위에 뛰어올라 맨 
꼭대기의 개장을 앞발로 힘껏 밀었다.
  쌓아 올렸던 개장들이 큰 소리를 내며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듀크와 엠마는 부엌에서 그 요란한 소리를 들었다.
  "이게 무슨 소리지?"
  듀크가 말했다.
  그들은 황급히 뒷문을 열고 부엌을 빠져나왔다. 헛간 안으로 들어서자 개들이 
그들은 겹겹이 에워쌌다. 분노에 찬 개들이 짖고 으르렁거리며 그들을 몰아붙여 두 
개의 큰 개장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빙고가 얼른 빗장을 걸었다.
  개들은 힘을 모아 개장을 밖으로 밀어내서, 듀크의 트럭에 간신히 밀어 올렸다. 그 
트럭은 식당을 향한 채 삼사십 야드 정도 떨어진 곳에 세워져 있었다. 개들이 
트럭을 밀자 빙고는 운전석으로 뛰어올라 크러치를 눌렀다.
  "안 돼. 이러지 마!"
  트럭 뒤에 실려 있는 듀크는 거의 미친 듯 소리를 질러댔다.
  "가만두지 않겠다. 이 똥개들아!"
  트럭에 어느 정도 속도가 붙자, 빙고는 크러치를 놓았다. 그러자 차는 픽픽거리며 
시동이 걸렸다. 빙고는 재빨리 차에서 뛰어내렸다.
  빙고와 다른 개들은 기대감으로 눈을 반짝이며 차를 지켜보았다. 트럭은 식당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굴러갔다. 트럭에 실려가면서 듀크와 엠마는 개들에게 마구 
욕설을 퍼부었다.
  곧이어 차가 식당에 충돌했다. 폭탄이 터지는 듯한 큰 소리가 사막 하늘에 
메아리쳤다. 유리가 산산조각나는 소리, 나무가 부서지는 소리, 쇠가 찌그러지는 
소리들이었다.
  얼마 지나서 소리가 그치자 듀크의 핫도그 가게는 먼지구름을 피워 올리며 폭삭 
무너져 내렸다.
  빙고는 다른 개들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빙고를 보며 일제히 짖어대기 시작했다. 
짖는 소리는 각각 달랐지만, 그들의 의견은 모두 같았다.
  그들의 영웅에게 바치는 감사의 소리였다.
  
    강도를 잡아라!

  데브린 부인과 처키는 코를 맞대고, 3점짜리 거리 안에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뒤에는, 천정에서 침대까지 두꺼운 네트를 쳐놓았다.
  처키는 축구공을 다리 사이의 마룻바닥에 대고, 뒤에 있는 치키에게 재빨리 던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홀 데브린 씨는 치키가 공을 받쳐주면 언제라도 찰 수 있는 지점에서 치키의 손을 
뚫어질 듯 바라보고 있었다. 처키가 치키에게 공을 건네주면 치키는 그것을 
잡아주고, 데브린 씨는 네트에 차버릴 것이다. 그가 빠른 자세로 차기만 한다면 공도 
네트의 중앙에 정확히 날아가 꽂힐 것이다.
  "얘야, 너 이거 한번 계산해 볼래?"
  데브린 부인이 처키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우리는 시속 육십 마일의 속도로, 하루에 여덟 시간씩 이틀을 달려왔다. 우리는 
지금 개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알겠니?"
  처키는 치키에게 넘겨 주려던 공을 바닥에 내려놓고 손가락을 꼽으며 열심히 
계산을 했다.
  "오 곱하기 팔은 사십이고, 육 곱하기 팔은 사십팔, 거기에 십을 곱하고..."
  그 때 치키가 빨리 공을 던지라며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열둘... 열여덟...서른둘...일흔여섯...."
  그 소리 때문에 헷갈려서 처키는 셈을 잊어버렸다.
  "몰라요, 한 몇백 마일은 되겠죠!"
  처키는 그의 엄마한테 되물었다.
  "그래서 어쨌단 말이에요?"
  "어떤 개도 이렇게 먼 거리는 따라올 수 없단다."
  데브린 부인이 이젠 포기하라는 듯 말했다.
  "빨리 공을 넘겨!"
  치키가 기다리다 못해 소리쳤다.
  처키는 방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데브린 가족은 지금 노웨레스빌 
시내의 모텔 방에서 필드골 연습을 하던 중이었다. 그는 지금 축구공을 치키에게 
넘겨줘야 하는 것이다.
처키는 공을 힘차게 쥐고는 재빨리 뒤로 던졌다. 그런데 손에 너무 힘이 들어갔다. 
공은 그만 공중으로 솟구쳐서 천정에 부딪치고 말았다. 치키가 날쌔게 뛰어올라 그 
공을 잡고 끌어내렸다. 그와 동시에, 날카로운 데브린 씨의 맨발 킥이 공을 힘껏 
차버렸다.
  쉐엥! 공은 방 안을 가로질러 거침없이 날아갔다. 처키와 데브린 부인의 머리 위를 
지나고 침대와 네트도 지났다.
  그리고 큰 소리를 내며 창문을 부수고는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깨진 유리조각들이 바닥에 흩어졌다. 치키는 아버지를 쳐다보고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제 잘못이 아니에요. 처키의 패스가 너무 높았어요."

  미 대륙의 중부 어디쯤에서 고속도로를 따라 걷던 빙고는 어떤 캠프장으로 
들어섰다. 그곳에서는 바베큐  굽는 냄새가 진동하여 배고픈 빙고를 더욱 괴롭혔다.
  저녁 나절의 옅은 햇살 속에서 빙고는 주차되어 있는 트럭과 차들 그리고 
캠핑카들의 그림자 사이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거기에는 많은 쓰레기통들이 
있었다. 그 쓰레기통들은 마치 반쯤 먹다 남은 음식들이 잔뜩 쌓여 있다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빙고가 쓰레기통 하나를 넘어뜨리자 쓰레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빙고가 
쓰레기들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플래시 불빛이 갑자기 그의 얼굴에 비춰졌다. 빙고가 
웅크리며 불빛을 쳐다보니 거기엔 두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았다.
  "개였잖아."
  키 큰 사람이 말했다.
  "넌 겁을 집어먹은 거야. 그렇지 않아, 레니?"
  이번엔 키 작은 사람이 말했다.
  "지금 나를 나무라는 거야?"
  레니가 맞받았다.
  "알았어, 그만하자구. 이놈을 해치우고, 가서 눈 좀 붙이자."
  "해치운다구? 엘리, 너 도대체 왜 그래? 넌 어렸을 때 개를 키운 적도 없냐?"
  "이것 보라구.'
  엘리가 말했다.
  "다음엔 또 뭘 구래 줄래, 고래?"
  그 말은 들은 척도 안 하고 레니는 빙고 쪽으로 돌아섰다.
  "너 배고픈 개로구나. 그렇지, 응?"
  빙고는 그 말이 반가워서 열광적으로 짖었다.
  "그래, 그래. 너 꽤 영리하구나!"
  레니가 다정하게 말했다.
  "이리 온. 내가 먹을 걸 좀 주지."
  레니와 빙고가 근처의 캠핑카 쪽으로 걸어가자 엘리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시가를 
피워 물었다. 성냥불을 켜는 순간, 불빛에 그의 얼굴이 환하게 드러났다. 빙고에게 
그의 얼굴은 마치 공포영화의 등장 인물처럼 보였다. 빙고는 무서워서 얼른 레니의 
다리 뒤로 숨었다.
  "엘리를 무서워할 것 없어."
  레니가 낄낄거리며 빙고에게 말했다.
  "겉모습만 저렇지, 마음은 별로 나쁘지 않단다."
  캠핑카 안으로 들어섰을 때 빙고는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바닥에는 맥주 깡통과 음식을 쌌던 종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가운데 무기 상자, 총 그리고 다이나마이트 같은 것들이 널려 있었다.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이지?'
  빙고가 왼쪽을 돌아보자 그 궁금증은 곧 풀렸다. 묵직한 돈가방들이 벽에 걸려 
있었고, 그 가방에는 장갑차 회사의 마크가 찍혀 있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저 
회사의 직원이거나 강도일 것이다. 빙고는 어느 쪽이 옳은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엘리는 신문을 집어들고 스포츠 면을 펴서는 내기란을 훑어 봤다. 그리고 신문 
여백에 뭔가를 적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번에 미네소타가 확실해 보이는데."
  "아, 안돼."
  레니가 주방에서 소리쳤다.
  "너는 또 나를 내기에 끌어들일 셈이야?"
  "잠깐 기다려 보라구."
  엘리가 소리쳤다.
  "이번에 바이킹 팀에 걸면 두 배는 벌 수 있다구."
  "너는 저번에도 그런 소리를 했어."
  레니가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잃은 돈을 메꾸느라고 한탕을 더 해야 했다구."
  "하지만 이번엔 확실하다구."
  엘리가 계속 주장했다.
  "이걸로 저번 것까지도 만회할 수 있다구. 오늘 저 개가 우리에게 온 것은 행운을 
가져온 거라구!"
  "네 몫으로 너하고 싶은 대로 해."
  레니가 냉장고에서 치즈를 꺼내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빼 줘."
  "이봐!"
  엘리가 소리쳤다.
  "치즈는 내가 포테이토 칩이랑 먹을 거라구."
  "포테이토 칩이라구? 그건 벌써 다 먹었어!"
  엘리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작은 방으로 가 문을 열어 젖혔다.
  빙고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방 안에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여자 
아이 둘이 손발이 묶이고 입에는 재갈이 물린 채 있었다. 그들의 눈은 모두 공포에 
떨고 있었다.
  "칩 더 없고?"
  엘리가 여자에게 물었다.
  여자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좋소."
  레니가 그들을 안심시키려고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우리는 내일 아침 나절에 갈 테니."
  그는 손잡이를 움켜잡고 밀어서 문을 닫았다.
  "치즈는 너나 먹어. 잠이나 자자구. 내일은 굉장한 날이 될 테니까."
  엘리는 침대 위의 빈 맥주 깡통들을 팔로 쓸어 내렸다. 맥주 깡통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굴렀다. 레니도 똑같이 다른 침대를 깨끗이 하고는 침대 
시트를 벗겨 빙고에게 던져 주며 말했다.
  "너는 이걸 두르고 자라구, 친구."
  빙고는 여전히 그 작은 방의 문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안에 한 가족이 있다. 
데브린씨 가족처럼 선량한 사람들이다.
  '그래, 이 캠프카의 주인은 엘리와 레니가 아니고 바로 저들이야.'
  빙고는 그들이 갇혀 있는 것을 알고도 가만 있을 수는 없었다.
  찰칵! 빙고가 쉿소리에 놀라 돌아보니 엘리가 총을 겨누고 있었다.
  "거기서 비켜, 임마. 가서 자지 않으면 아주 잠재워 주겠어."
  황급히 빙고는 레니의 침대 옆으로 가서 엎드렸다. 엘리가 불을 끄자 캠프카 안은 
어두운 침묵에 잠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레니와 엘리의 코고는 소리가 캠프카 안을 가득 채웠다. 리듬감 
있게 울리는 그 소리를 듣다가 빙고는 깜짝 놀랐다. 레니의 손이 침대에서 내려와 
빙고의 등에 닿았던 것이었다.
  빙고는 잠시 숨을 죽이고 있다가 살금살금 그 손에서 빠져 나왔다. 저만치 창문 
하나가 열려 있는 것이 보였다.
  빙고는 널려 있는 쓰레기들을 지나서 창문 쪽으로 한 발자국씩 조심스럽게 움직여 
갔다.
  그러다가 빙고는 빈 맥주 깡통을 살짝 건드리고 말았다. 고요한 한밤중이라서 그 
작은 소리는 마치 자동차 사고라도 난 것처럼 크게 들렸다.
  엘리가 몸을 뒤척였다. 빙고는 조마조마하여 머리의 피가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빙고는 자는 체 엎드려서 실눈을 뜨고는 엘리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다행히도 엘리는 그대로 자고 있었다. 총이 장난감 곰이라도 되는 양 여전히 품에 
안은 채였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빙고는 창문을 훌쩍 뛰어 넘었다. 그리고 캠핑카를 
돌아서 캠프장 한가운데 있는 휴게소로 달려갔다.
  거기엔 공중전화가 한 대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빙고가 바깥 세상과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빙고는 전화기 아래에 쓰레기통을 밀어 놓고는 그 위로 뛰어 올라갔다. 뒷발로 
서서 몸을 곧추세우고는 앞발로 수화기를 쳐서 떨어뜨렸다. 수화기가 공중전화 
아래로 늘어졌다. 빙고는 오른쪽 앞발로 911을 눌렀다.
  "여보세요."
  여자의 지친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들려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왈!"
  빙고는 자기 앞에 매달려 있는 수화기에 대고 짖었다.
  "좀 크게 말씀해 주세요."
  교환이 한층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왈!"
  빙고는 거듭 짖었다.
  "말씀하세요. 지금은 당신의 개가 짖는 소리밖에 안 들리는군요."
  교환이 말했다.
  "하지만 당신의 전화 번호와 지금 있는 곳을 찾도록 하죠. 사고가 생긴 것 
같군요."
  빙고는 전화기의 버튼 하나를 일정한 박자로 계속 눌렀다. 
삐삐삐...삐이이이...삐이이이...삐이이이...삐삐삐...
  신호를 보내면서 빙고는 교환이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는 것을 얼핏 들었다.
  "댄, 여기 말이에요, 1__75 공중 전화에서 계속 장난을 치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이번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빙고는 같은 박자로 버튼을 계속 눌렀다. 그러나 수화기 저편에서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빙고는 제발 그들이 전화를 끊지 말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그 때였다. 빙고는 또렷하게 들리는 남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연필을 줘요. 이건 모스 부호야!"
  '됐다!' 빙고는 속으로 외쳤다. 그들이 알아들은 것이다.
  빙고는 계속 신호를 보냈다. 신호의 내용은 SOS였고, 댄은 그것을 알아차리자마자 
소리쳤다.
  "알았다! 경찰을 부르겠다. 잠시만 기다려라."
  기다리라구? 무슨 뜻이지? 제일 가까운 경찰차가 여기서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 
이런 시골에서는 분명히 몇 마일은 떨어져 있을 것이다.
  빙고가 쓰레기통에서 뛰어내려 보니 캠프장이 아까 같이 고요하고 컴컴하지 
않았다. 동쪽 하늘이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했다.
  빙고는 강도들은 분명 일찍 도망갈 거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들이 그 가족들을 
해치지 않고 떠나리라고는 결코 믿을 수 없었다.
  빙고는 경찰이 올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직접 구출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빙고는 캠프타의 뒤를 돌아 창문 안으로 넘어 들어갔다. 레니와 엘리는 여전히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빙고는 작은 방으로 다가갔다. 뒷발로 서서 빙고는 천천히 문고리를 돌렸다.
  어렵지 않게 문이 열렸다. 가족들은 한데 묶인 채 구부리고 포개어져 불편하게 
자고 있었다. 그러다가 누군가 들어온 것을 알고 하나씩 깨어났다. 빙고는 그들은 
묶고 있는 굵은 줄을 이빨로 갉았다. 그러자 밧줄이 느슨해졌다.
  여자애 중 하나가 먼저 빠져 나왔다. 그 뒤로 다른 여자애,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그들은 입을 막았던 헝겊도 모두 풀었다. 그리고는 발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방을 
가로질러서 문 밖으로 빠져 나갔다.
  그 때 여자애 중 하나가 고마운 마음에 빙고를 안아주려 몸을 뒤로 돌렸다.
  그것이 실수였다. 그 애의 신발 끝이 그만 맥주 깡통을 차고 말았다. 그것은 
떼구르르 마루 위를 굴렀다.
  빙고는 당황했다. 여자애도 마찬가지였다.
  그 소리를 듣고 엘리가 침대에서 뛰어 내려왔다.
  "아니 어디를 가려는 거지?"
  그가 고함을 질렀다.
  그는 오른손에 총을 쥐고서 여자애의 머리를 겨누었다.
  
    스타가 된 빙고

  "으아아앙!"
  여자 아이는 그만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고, 빙고는 이빨을 부딪치며 떨었다.
  긴박한 순간이었다.
  빙고는 엘리에게 덤벼들어 그의 필을 힘껏 물었다.
  그 순간 엘리의 총이 불을 뿜었다. 그러나 총알은 캠프차의 지붕을 뚫고 날아갔다.
  그 혼란을 틈타서, 여자 아이는 재빨리 문 밖으로 도망을 쳤다.
  빙고와 엘리는 침대 밑으로 구르며 서로 총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레니!"
  빙고를 떼어내려고 발버둥치며 엘리가 소리쳤다.
  "레에니이이이!"
  그제서야 레니가 뒤척이며 일어났다. 그리고 늘어지게 하품을 하면서 중얼거렸다.
  "정말 끔찍한 꿈을 꾸었어..."
  "레니, 이 끔찍한 개나 좀 나한테서 치워 줘!"
  엘리가 소리쳤다. 그리고는 다시 권총을 집어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총알이 
없었다.
  "빵!"
  엘리와 빙고는 총소리에 깜짝 놀라 싸움을 멈추었다. 그것은 레니의 총이었다.
  레니는 아직도 연기가 나는 총으로 천장을 가리키고 우뚝 서 있었다.
  "그만해."
  레니가 몹시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너희 둘 때문에 우리는 위험하게 되었어."
  그가 말하자마자, 밖에서 경쾌하고 리듬감 있는 '삐꼬--삐꼬--삐꼬--' 소리가 
들려왔다. 레니와 엘리는 깜짝 놀라 말도 잊은 채, 점점 소리가 크게 들려오는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그 안에 있다는 걸 다 알고 있다!"
  확성기를 통해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을 들고 밖으로 나오면 해치지 않겠다."
  엘리는 창문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헬리콥터가 머리 위에서 그들에게 
서치라이트를 비추고 있는 것을 보고는 입이 딱 벌어졌다. 그뿐이 아니었다. 수십 
대의 경찰차가 캠프카를 에워쌌고, 경찰들은 그 뒤에서 총을 겨누고 있었다.
  게다가 헬리콥터 아래쪽엔 텔레비전 뉴스 중계차까지 몰려와서 카메라맨들이 한창 
카메라를 설치하고 있었다.
  "저들이 벌써 우리를 다 포위해 버렸어!"
  엘리가 말했다.
  "우린 괜찮아."
  레니가 태평하게 대답했다.
  "우리에겐 인질들이 있다는 걸 잊었어?"
  레니는 작은 방으로 달려가 거칠게 문을 열어 젖혔다.
  그리고 빈 방을 보더니 어이가 없어 입을 딱 벌렸다. 그 모습을 보고 빙고는 
속으로 웃음이 나와 견딜 수 없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레니가 소리쳤다. 그는 빙고를 삼킬 듯이 노려 보고 있는 엘리를 보았다.
  천천히 증오와 분노의 표정이 레니의 얼굴을 스쳐갔다.
  "내가 너를 여기에 데려와서--."
  레니가 분해서 이를 갈며 말했다.
  "--밥까지 줬더니!"
  엘리가 총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빙고를 오락 붙잡고는 머리에 총을 겨눴다.
  엘리는 문을 활짝 열고는 경찰이 빙고와 총을 잘 볼 수 있도록 높이 들었다.
  "아무도 움직이지 마."
  그가 소리쳤다.
  "안 그러면 이 개는 죽는다."
  빙고는 떨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침착하게 마음을 가다듬어 보았다. 경찰은 
틀림없이 엘리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혼자서 가족들을 살려낸 무고한 개를 
죽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빙고의 생각이었다.
  총알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총알들이 캠프카에 맞고 튀었다. 엘리는 빙고를 
팽개쳤고, 그 둘은 차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레니가 흰 수건을 흔들고 항복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레니와 
엘리는 곧 체포되었고, 텔레비전 카메라를 피하기 위해 얼굴을 숙인 채 호송차로 
끌려올라갔다.
  빙고가 목숨을 구해줬던 여자 아이가 달려와 빙고를 품에 안았다. 이어서 여자 
아이의 여동생과, 그 아버지와 어머니의 포옹으로 빙고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또 
그에게 비춰지는 카메라의 조명은 마치 사막의 태양같이 뜨거웠다.
  텔레비전 중계반은 어린 여자 아이들과 빙고의 뒤로 아이들의 부모가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을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톰슨 씨 가족은 이 용감한 개에 의해 목숨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기자가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그리고는 그 톰슨 씨에게로 돌아서며 물었다.
  "자, 이제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습니까. 톰슨씨?"
  "우리는 아직 휴가가 며칠 더 남아 있어요.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서 우리를 
구해준 저 개에게 최고의 가족이 되어주고 싶군요."

  '최고의 가족이라구?'
  처키는 모텔 방에서 멍하니 텔레비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빙고였다. 
틀림없는 빙고의 얼굴이었다.
  가엾게도 빙고는 두 여자 아이 틈에 끼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여자 아이들은 마치 스타 선발 대회에라도 나온 것처럼 역겹게 달콤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떻게 저 애들이 빙고의 새 주인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결코 저 여자 
애들은 빙고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을 거야.
  처키는 주저앉고 말았다. 그는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의 가장 소중했던 
친구가, 이제...톰슨 씨의 가족이 되려는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 처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고통스러운 외침이 처키의 입에서 터져 나와, 모텔 방을 흔들었다.
  "빙고오오오!"
  처키는 마치 빙고가 자신을 느낄 수 있기라도 한 듯 텔레비전 화면에 손을 
갖다댔다.
  바로 그 순간, 놀랍게도 빙고가 돌아서더니 카메라에 앞발을 갖다대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이것은 우연이었겠지만, 처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과 빙고 
사이가 여전히 굳게 맺어져 있다고 여겼다. 어떤 바보 같은 가족이 제멋대로 빙고의 
주인이 된다고 해도, 빙고와 처키 사이의 관계는 변함이 없다고 자신했다.
  '그래, 빙고를 자기 집에 데려가 보라지, 하지만 빙고는 언제나 내 영혼 속에 있을 
거야.'
  그런 자신감에도 불구하고, 텔레비전을 끄자 처키는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감옥에 간 빙고

  강아지 빙고
  톰슨 씨 가족에게
  KYAP 텔레비전
  채널 9
  인디아나 스모크스텍

  처키는 겉봉에 주소를 쓰고 서둘러 편지를 봉했다. 밖에서는 그의 아버지가 
급하게 경적을 울려대고 있었다.
  처키는 그의 아버지가 필드골 연습을 하다가 깨뜨린 유리 조각들을 밟으면서 문 
밖으로 나왔다. 그는 모텔의 사무실 밖에 있는 우체통으로 뛰어가 편지를 넣었다.
  "널 잊지 않고 있단다, 친구야."
  처키는 빙고가 편지를 받아든 모습을 상상하면서 가만히 속삭였다.
  "포기하지 마. 너는 꼭 나를 찾을 수 있을 거야."
  "이봐요!"
  화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아니 여기서 도대체 뭘 한 거지. 부수기 시합이라도 한 거야?"
  처키는 뒤를 돌아보았다. 모텔의 지배인이 복도에 서서 데브린 가족이 쓰던 방을 
보고 있었다. 한 손에는, 역시 아버지의 킥으로 깨진 전등을 들고 서 있었다.
  처키는 재빨리 차 속으로 뛰어들었다.
  "잠깐 기다려요!"
  지배인이 소리쳤다.
  "누가 이것들을 보상할 거요?"
  "계산서는 브롱크스 팀으로 청구하시오!"
  데브린 씨가 차창 밖으로 소리쳤다.
  그가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자, 차는 미끄러지듯 단숨에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스테이션왜건은 타이어 타는 냄새를 내면서 무서운 속력으로 큰길로 들어섰다.
  빙고는 여자 애들이 입혀준 옷이 싫었다. 주름이 진 레이스까지 붙어 있었고 
그것이 빙고를 괴롭혔다. 머리에 쓰여진 것은 자꾸 눈으로 흘러내려서, 빙고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빙고에겐 침실까지 있었다. 거기엔 온통 핑크색으로 뒤덮여 있었고, 벽에는 
장미빛 뺨을 한 10대 스타들의 사진들과 하트 무늬로 장식되어 있었다.
  빙고는 샌디 톰슨이 안아서 태워준 유모차에서 불편한 듯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것이 생명을 구해준 대가란 말인가?
  도대체 누구 빙고는 이런 걸 좋아한다고 이 여자애한테 말했단 말인가?
  신디 톰슨이 방으로 뛰어들더니 빙고를 살펴보았다.
  "너 도대체 유진한테 무슨 짓을 했어?"
  그녀가 울며 소리쳤다.
  "커들 말이니?"
  샌디가 대답했다.
  "네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는구나."
  신디가 대들며 말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유진이야."
  "커들이야!"
  "유진이라구!"
  빙고는 당장 여기서 나가고 싶었다. 이 소란을 견딜 수 없어서 빙고는 
신경질적으로 울부짖었다.
  "다시는 이러지 마!"
  신디가 유모차 안의 빙고를 쳐다보며 말했다.
  "빙고는 이런 어린애 놀이를 좋아하지 않아!"
  "하지만 이건 내 강아지이기도 해."
  샌디도 지지 않았다.
  "너 혼자만 개를 독차지하려 하지 마."
  말다툼은 톰슨 씨가 들어와서야 끝이 났다.
  "너희 둘 다 빙고와 놀려면 좀 기다려야 될 것 같구나."
  톰슨 씨가 아이들에게 말했다.
  톰슨 씨의 뒤를 따라 평범한 옷차림의 평범하게 생긴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그는 
빙고를 쳐다보더니 주머니 속에서 접혀진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당신이 빙고요?"
  그가 물었다.
  "왈!"
  빙고가 대답했다.
  그 사람은 종이를 빙고의 입에다 물려주며 말했다.
  "이것은 소환장이오."
  "얘들아."
  톰슨 씨가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뭐냐하면, 너희들의 개는 법정에 가야 한단다."

  빙고는 그 여자애들의 틈에서 빠져나온 것이 무엇보다도 기뻤다. 그러나 빙고는 
증인으로 법정에 서서 성경에 발을 얹고 양심 선서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아주 조용한 방에 늙고 지루하게 생긴 판사가 높다란 책상을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한 무리의 사람이 피고 쪽 자리에서 빙고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는데 거기엔 
레니와 엘리도 끼어 있었다.
  "당신은 신 앞에서 오직 진실만을 말할 것을 맹세합니까?"
  엄격하게 생긴 사람이 빙고에게 물었다.
  "왈!"
  빙고가 대답했다.
  레니와 엘리의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그가 외쳤다.
  "이곳은 신성한 법정이지 개집이 아닙니다!"
  "기각합니다."
  판사가 반대했다.
  "당신은 어렸을 적에 개와 논 적이 한 번도 없습니까? 시작하시오, 검사."
  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검사의 임무는 레니와 엘리의 죄를 밝혀내어 그들을 
감옥에 보내는 것이다. 빙고에게 돌아서며, 그가 말했다.
  "당신은 이 무자비한 강도들이 톰슨 씨 가족의 캠프카에 침입해서, 다음날 
아침까지 그들을 인질로 잡고 있었던 그 사건 당일 밤 거기에 있었습니까?"
  "왈! 왈! 왈왈왈!"
  "그들이 이 법정 안에 있습니까?"
  검사가 물었다.
  "왈!"
  "우리들 가운데서 그들을 찾아낼 수 있습니까?"
  빙고는 증인석에서 뛰어나와 피고인석으로 갔다.
  "으르르릉...."
  빙고는 그들을 향해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배신자!"
  레니가 이를 악물고 중얼거렸다.
  "기다려라. 반드시 복수하고야 말겠다!"
  엘리가 덧붙였다.
  검사가 흡족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이상입니다, 판사님."
  그러자 피고측 변호사가 일어섰다.
  "증인에게 반대심문을 하겠습니다!"
  그는 증인석으로 걸어 나오며 말했다.
  "당신은 지금 톰슨 씨의 캠프카에 있었던 범인을 지목했습니다. 그러나 왜 당신이 
거기에 있었는지는 말하지 않는군요. 자, 그럼 캠프카가 강도 당하기 전 당신은 무얼 
했는지 밝혀 주시겠습니까?"
  "이의 있습니다, 재판장님!"
  검사가 나섰다.
  "이것은 본 건과 무관한 질문입니다!"
  "판사님 저는 그날 사건이 발생하기 전 이 개를 쓰레기더미 속에서 본 목격자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변호사는 책상 위에 있던 작은 석고 덩어리 하나를 집어 판사에게 
제시했다.
  "저는 또한 저 개가 그날 그 범죄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그의 
발자국을 뜬 이 증거물을 제시합니다."
  "잠깐 기다리시오!"
  검사가 말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피고측 변호사는 빙고의 주위를 돌며 질문을 계속했다.
  "증인은 그 '파고' 장갑차 회사를 강탈한 범인중의 하나가 아닙니까? 그리고 또 
당신은 교묘한 음모를 꾸며서 피고들을 교도소로 보내고, 재물과 사람들의 존경과 
당신의 보금자리를 얻어려 했던 것이 아닙니까?"
  변호사의 말에 법정 안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검사가 책상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이의 있습니다. 지금은 증인을 재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충분한 혐의가 있다는 걸 주장하는 바입니다."
  피고측 변호인이 거듭 강조했다.
  "그리고 증인이 사건이 일어났던 시간 동안의 알리바이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증인에게 유리한 증거가 발견되기 전까지 증인을 구속해야 합니다."
  빙고는 지금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왠지 좋은 이야기 
같지는 않았다.
  "증인은 어서 질문에 대다하시오."
  판사가 빙고에게 말했다.
  "알리바이가 있습니까?"
  "대답하지 마시오!"
  검사가 막아섰다.
  "당신에게는 말하지 않을 권리도 있소."
  "대답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법정모독죄로 구속될 것이오!"
  판사가 몰아 붙였다.
  빙고는 절망적인 심정이 되어 법정 안의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바라보았다. 
그를 도울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했다. 빙고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조그맣게 낑낑대는 것뿐이었다.
  판사가 의사봉을 두드려 판결했다.
  "증인을 구속하시오!"

  정신없이 몇 시간이 지났다. 재판은 끝나고, 빙고는 '네눈'이라고 알려진 키가 작고 
안경을 쓴 기결수와 함께 방을 쓰게 되었다.
  빙고는 되도록이면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 애썼다.
  빙고는 레니나 엘리, 듀크 같은 지독한 인간들과 같은 방을 쓰지 않게 된 것만도 
큰 다행이라 여겼다.
  네눈은 좋은 사람 같았고 거기다 매우 영리해 보였다.
  네눈이 바닥의 헐거운 타일 몇 조각을 들어내고 거기에 나 있는 구멍을 보여 
주었을 때 빙고는 무척 기뻤다.
  빙고가 꼬리를 흔들자 네눈도 빙고에게 미소를 보냈다.
  "내 계획에 함께 참여하지 않을래?"
  네눈이 빙고에게 물었다.
  대답 대신 빙고는 감방 밑으로 난 구멍을 파기 시작했다. 그 동안 네눈은 거울을 
이용해 누가 복도로 오는지 감시했다. 가끔씩 빙고를 돌아보면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구멍을 파들어감에 따라 빙고의 모습이 그 속으로 서서히 사라졌다.
  "너 정말 잘하는데! 전에도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있니?"
  네눈이 감탄하며 말했다.
  이때 복도 끝에서 갑자기 휘파람 소리가 났다. 네눈은 얼른 거울을 재빨리 주머니 
속에 감추었다.
  "누군가 오고 있어!"
  그가 긴박한 목소리로 빙고에게 속삭였다.
  빙고는 구멍에서 기어나왔고, 네눈은 재빨리 그 위에 타일을 덮었다.
  빙고와 네눈은 테이블로 다가가 그 앞에 마주 앉았다. 네눈이 눈깜짝할 사이에 
카드 한 벌을 꺼내 그 위에 벌려 놓고는 빙고에게도 주었다. 누가 보아도 영락없이 
카드놀이 하는 모습이었다.
  간수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빙고의 방 앞에서 멈췄다.
  "네게 편지 왔다."
  간수가 알려줬다.
  네눈이 카드에서 눈을 떼며 말했다.
  "이제야 왔군."
  "네가 아니야."
  간수가 비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빙고에게 고개를 돌리고, 편지를 내밀었다.
  빙고는 기뻐서 짖어댔다. 빙고는 카드를 내려놓고 문 쪽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간수는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할 일을 마친 다음에 주겠다."
  빙고는 금세 풀이 죽었다.
  "괜찮아, 친구."
  네눈이 설명해 주었다.
  "우리가 교도소 세탁물을 모두 처리하고 나면 줄 거야."
  간수는 세탁기로 가득찬 커다란 방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네눈과 빙고가 엄청난 
세탁물을 세탁기 속에 다 집어넣고 기계를 돌리자 간수는 그때야 비로소 편지를 
빙고의 입에 물려 주었다.
  빙고는 기뻐 날뛰며 편지를 네눈에게 가져갔다.
  "알았어. 내가 읽어 주지."
  네눈이 편지를 받아들며 말했다. 그는 봉투를 열어 흰 종이에 손으로 쓴 편지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빙고에게, 나는 아직도 너를 친구로 생각하고 있단다. 난 네가 언제라도 나를 
찾아와 주기 바래. 그래서 전처럼 함께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 나는 
텔레비전에서 톰슨 씨네 여자애들을 보았어. 네가 묻는다면, 난 그들이 마치 칠면조 
같다고 말하겠어. 난 너에게 단호히 그들을 떠나라고 얘기하고 싶단다. 그 집에서 
네가 조금은 행복할지라도, 반드시 내 흔적을 찾아오길 바래. 난 지금껏 네가 나를 
따라왔다고 믿고 있어. 왜냐하면 나야말로 너에게 가장 좋은 친구이며 또 나도 
너처럼 외롭고 혼자거든.'

  네눈은 머리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도대체 누가 이 애한테 영어를 가르쳤지?"
  "왈!"
  빙고는 조급하게 짖었다. 이것은 처키가 보낸 편지가 틀림없는데, 처키는 지금 
어디 있지?
  네눈은 읽기를 계속했다.

  '그래서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우리는 행복해질 거야. 너도 그걸 원하지? 하루 
빨리 만나길 바래. 너의 가장 좋은 친구 처키로부터.
  추신:하마터면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얘기하는 걸 잊을 뻔했어. 내가 지금 어디 
있느냐 하면... 음... 이 편지의 냄새를 맡은 다음 이게 어디서 왔는지 찾아보렴(하! 
하!). 어쨌든 네가 할 일은 네가 알아서 해야 할거야...

  네눈이 편지의 다음 장을 폈다. 빙고의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네눈이 다음 장을 채 읽기도 전에, 어떤 손이 그의 어깨 너머에서 뻗어 나와 
편지를 채어 갔다!
  빙고는 고개를 들었다. 네눈의 어깨 너머로 레니와 엘리의 교활한 얼굴이 보였다.
  "개라면 엎드리고, 벼룩이면 일어서라."
  레니가 말하며, 한 손에 편지를 쥐고 웃고 있었다. 네눈이 주먹을 불끈 쥐고 
용감하게 일어섰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얼굴은 레니의 가슴 팍에 겨우 닿을 
뿐이었다. 네눈은 곧바로 엘리 쪽으로 돌아섰다.
  "나에게 말한 거냐?"
  "아니."
  엘리가 대답을 했다.
  "너와 함께 있는 저 녀석 말야. 우리는 저 쓸모 없고, 우리를 등 뒤에서 찌르고, 
배신한 저 개에게 말한 거다."
  그 때, 번개같이 움직여 네눈이 레니의 손에 있던 편지를 낚아챘다.
  하지만 레니도 편지를 힘껏 쥐고 있어서, 편지는 큰소리를 내며 두 쪽으로 
찢어졌다.
  "나머지 반쪽도 이리 내놓으시지!"
  네눈이 말했다.
  레니가 그 반쪽을 마구 구기는 것을 보고 빙고는 미친 듯이 짖었다. 그러자 
레니는 편지가 껌이라도 되는 양 입 안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불룩해진 뺨에 악마 같은 미소를 지으며 레니가 말했다.
  "자, 한번 뺏어 보시지!"
  그러면서 레니는 번득이는 사제칼을 뽑아 들었다.
  
    처키야, 어디 있니?

  엘리는 그보다 더 큰 사제칼을 뽑아 들었다.
  세탁실에 있던 다른 수감자들이 둥그렇게 원을 둘렀다. 그들도 모두 사제 칼을 
뽑아들고 레니와 엘리를 둘러쌌다. 레니와 엘리는 네눈을 에워쌌다. 네눈은 빙고의 
둘레를 막아섰다.
  빙고는 미친 듯이 짖어댔다.
  그 소리를 듣고 간수가 세탁실 안으로 들어섰다.
  "이것 봐, 시끄럽게 구는 게 누구야?"
  칼들은 즉시 수감자들의 주머니 속으로 사라졌다.
  간수는 인파 속으로 들어와 그들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살폈다.
  "이게 너희들이 원하는 놀이라면 좋다. 모두 각자 방으로 돌아가!"
  간수가 소리쳤다.
  간수가 수감자들을 문 쪽으로 밀어내고 있을 때 레니가 빙고에게 다가와서 
중얼거렸다.
  "널, 개고기로 만들어 버릴 거야, 친구!"
  "이걸로 끝난 게 아니야, 알겠지?"
  엘리가 덧붙였다.
  빙고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젠 끝났구나. 하지만 그것은 엘리가 말한 그런 끝이 
아니었다. 빙고는 더이상 살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처키의 주소가 악당의 위장 
속에 들어 있고 빙고는 다시 그것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감방으로 돌아와서, 빙고는 다시 구멍을 파기 시작했다. 처키를 찾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이 감방 안에서는 빠져나가야만 했다.
  해가 지기 직전에 빙고는 굴의 다른 편까지 도달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탈출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기 때문에 빙고와 네눈은 기다렸다.
  굴을 다 파고 나자 빙고에게는 피곤이 몰려왔다. 새벽 세 시가 되어 네눈이 그를 
깨울 때까지 빙고는 꾸벅꾸벅 졸았다.
  "자, 갈 시간이야."
  네눈이 속삭였다.
  "밖에 나가면 탑에는 보초가 한 명 있겠지만 근무가 끝날 시간이라 피곤해서 졸고 
있을 거야. 어서 나가자구."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그들은 굴을 빠져나갔다. 네눈이 긴 밧줄과 나무로 된 
좌변기의 시트를 가지고 나왔다.
  감방의 벽 아래로 기어서 교도소 마당으로 나오자, 탐조등이 앞뒤로 지나가고 
있었다. 땅바닥에 바싹 붙어 네눈이 마당을 가로질러 갔고, 빙고가 그 뒤를 바싹 
따라붙었다. 그들은 오른쪽 왼쪽으로 탐조등을 피해가면서 교도소의 담장으로 
다가갔다. 담벼락 밑에 이르자, 네눈은 빙고를 담 위로 밀어올렸다. 빙고는 가볍게 
담을 넘어 반대편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네눈은 가지고 온 변기 시트에 밧줄을 묶고는 그것을 담 너머의 빙고에게 
던져 주었다. 그러자 빙고는 변기 시트 가운데에 머리를 넣어 어깨에 걸치고 밧줄을 
당기기 시작했다.
  네눈은 교도소 안에서 밧줄의 한쪽 끝을 꼭 잡고 있었다. 빙고가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네눈도 천천히 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생각했던 대로 일이 진행되었다.
  빙고는 생각보다 힘이 세었다. 네눈은 완벽한 성공이라는 생각에 기뻐서 얼굴에 
웃음이 함빡 퍼졌다. 꼭대기에 이를 때까지만 말이다.
  그는 철조망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어두워서 미처 보지 
못했지만 날카롭고 뾰족한 철조망이 담 위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네눈은 
철조망이 그의 얼굴을 긁어대자 이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아...아악."
  그 소리에 감시탑 위의 보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읽고 있던 잡지를 
내던지고 옆에 있는 장총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한 손에 플래시를 들고 고양이 
걸음으로 살금살금 탑에서 내려왔다.
  "이 망할 놈의 총이 너무 무겁단 말이야."
  보초는 이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그리고 플래시를 입에 물고는 두 손으로 총을 
들었다.
  보초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방금 빙고와 네눈이 지나간 길 위를 비춰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그곳을 떠난 뒤였다.
  반대편 담 아래에서는 철조망에 긁혀 엉망이 된 네눈이 얼굴을 빙고가 핥아주고 
있었다. 불빛이 미친 듯이 비췄지만 그들은 찾지 못했다.
  "걱정마 친구. 난 그저 면도를 한 것뿐이야."
  네눈이 태연하게 속삭였다. 그리고는 그는 얼른 주머니에서 찢어진 편지 조각을 
꺼내서 빙고에게 냄새를 맡게 했다.
  "네가 뭘 해야 하는지 잘 알겠지?"
  네눈은 편지를 빙고의 목걸이에 꽂아 주었다.
  "우선 우체국에 가서 냄새를 찾아 봐.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넌 영리하니까 꼭 
해낼 거야. 행운을 빈다, 친구야!"
  빙고가 그의 뺨을 핥자, 네눈은 쓸쓸한 웃음을 지었다.
  "난 너를 절대로 잊지 못할 거야."
  둘은 각자 반대 방향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가닥 빙고는 네눈이 조그맣게 노래하는 소리를 들었다.
  "옛날에 개를 가진 사기꾼이 있었지요. 그 개의 이름은 빙...."
  "탕! 탕!"
  총알 두 발이 네눈이 바로 앞에 있는 나무에 맞았다.
  "서라!"
  보초가 소리쳤다. 그 순간 그가 입에 물고 있던 플래시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빙고와 네눈은 타이어 자국이 날 정도로 빨리 달렸다. 보초가 우북이 쏟아지듯 
총탄을 퍼부었지만 그들은 무사히 숲 속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빙고가 가까운 우체국을 찾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곳은 작고 
초라했지만, 빙고는 흥분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냄새가 아직 남아 있었던 것이다.
  빙고는 그것을 곧 알아차릴 수 있었다.
  빙고는 트럭 주변과 우편물 행낭 더미에서 냄새를 맡았다. 드디어 짐을 쌓아두는 
입구 쪽에서 냄새를 찾았다. 강하고 뚜렷한 그 냄새는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계속되었다.
  빙고는 기쁨에 찬 소리를 지른 뒤, 길고 긴 추적에 나섰다.

  처키는 그린베이가 썩 다음에 들었다. 날씨는 따뜻했고, 땅은 평평했다. 사람들은 
억양이 강한 사투리를 썼고 고기를 많이 먹었다. 처키가 살게 된 집도 덴버의 
것보다 훨씬 컸다. 그러나 처키에게는 빙고가 없는 허전함을 더 크게 느끼게 할 
뿐이었다.
  토요일 아침, 처키와 치키는 거실에서 비디오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어머니는 소파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신문의 스포츠란을 읽고 
있었다.
  큰 머릿글자가 금방 눈에 들어왔다.
  '데브린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패커의 게임 시작에서 킥을 기대해 본다!'
  갑자기 데브린 씨가 신문을 내려놓았다. 그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하얘지더니 
부드러운 쿠션 위에 올려놓은 맨발을 빤히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에요, 여보?"
  데브린 부인이 어리둥절해 물었다.
  데브린 씨는 발끝을 까닥까닥거렸다.
  "발에 전처럼 힘이 솟는 것 같아. 기억하지 여보!"
  "어머 세상에..."
  데브린 부인은 기뻐서 말을 잇지 못했다.
  데브린 씨는 쭉 뻗었던 발을 앞쪽으로 끌어들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발을 잡아 
얼굴 앞으로 갖다 대고는 찬찬히 살펴보는 것이었다. 처키는 살펴보았다.
  "이 느낌을 잊어버리는 줄 알았어, 여보!"
  그는 흥분하여 목소리가 떨렸다.
  "아, 이 촉감, 이 느낌, 이제 다시 돌아온 거야. 옛날의 그 발이 다시 돌아온 
거라구!"
  처키는 벙싯 웃었다. 그는 왜 아버지의 발이 다시 좋아졌는지 알 것 같았다. 
처키는 마음이 온통 흥분으로 들떴다. 처키는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단 한 가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빙고!"
  처키는 조그맣게 속삭여 보았다.
  "그가 오고 있어! 틀림없어!"
  그는 처키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알아! 틀림없이 빙고는 돌아올 거야!"

  많은 날이 지났다. 빙고는 지금까지 훌륭하게 처키의 흔적을 쫓아왔다. 지프를 
얻어 타기도 하고, 때로는 트럭의 짐칸이나 비행기에 몰래 올라 탄 적도 있었다. 
기차에 뛰어올라 타기도 했다. 강물을 건너고 사막을 지나 폭풍우를 맞아 가며 잘 
추적해왔다.
  유타, 오레곤, 와이오밍, 사우스 다코타, 일리 노이즈, 미시간, 켄터키, 캔저스... 
이러한 이름들이 빙고가 본 도로표지판의 지명들이었다.
  빙고가 인디애나의 어디쯤에서 상자처럼 생긴 모텔을 지날 때였다. 그는 처키를 
영원히 못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여기까지 빙고를 이끌어 온 
흔적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아무래도 잘못 추적해 온 것 같았다. 빙고는 뒤로 돌아서 거꾸로 냄새를 추적해 
보았다.
  빙고가 잘못 추적한 것은 분명 아니었다. 냄새의 흔적은 길을 따라가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런데 없어진 줄로만 알았던 냄새는 다시 모텔 쪽으로 향해 있는 
것이었다.
  빙고는 냄새가 나는 곳까지 따라가 보았다. 그곳은 바로 모텔의 우체통이었다.
  그래 이거구나! 이곳이 바로 처키가 나에게 편지를 부친 곳이야! 그런데 이곳은 
지금까지 빙고가 생각했던 데브린 가족의 집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런 건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들의 취향은 가지가지니까.
  빙고는 승리에 차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으나 입에서 목쉬고 탁한 소리만 새어 
나왔다.
  너무나 긴 여행이었다. 빙고는 지금까지 처키를 만나겠다는 열망만으로 자신을 
지탱해 왔다. 그런데 지금 그 꿈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니 몸이 나른해지기 
시작했다.
  빙고는 다시 코를 땅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느껴지는 것이라고는 오직 
처키의 냄새뿐이었다. 그에겐 지금 다른 것들... 꽃, 음식, 쓰레기까지도 아무 냄새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 빙고에게는 더 이상 아무 문제도 없다. 곧 처키의 힘센 팔에 안길 것이기 
때문이다. 처키는 빙고를 위해 모든 준비를 다 해놓고 기다릴 것이다.
  계속 처키의 냄새를 추적하다 보니 모텔의 방문 앞에 이르게 되었다. 빙고는 
마지막 힘을 다해 방문을 긁어댔다.
  마침내 문이 열렸다. 빙고는 새로운 힘이 솟구치는 걸 느꼈다. 빙고는 감옥을 
탈출한 이래 처음으로 꼬리를 흔들었다.
  그러나 기대가 무너지고, 빙고는 온몸의 힘이 다 빠져버렸다. 문 안에는 처키가 
없었다. 아니, 데브린 가족 누구도 없었다.
  웬 여자가 빙고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머리가 불꽃처럼 빨갛고 
화장을 너무 짙게 해서 마치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어머, 정말 귀여운 개로구나!"
  그녀는 빙고를 안으려고 무릎을 굽혔다.
  그 순간 빙고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깨어나 보니 빙고는 벽이 온통 하얀 방 안에 누워 있었다.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젊은 남자와 여자에게 무엇인가를 지시하고 있었는데, 그들도 역시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빙고가 일어나 보려고 애썼지만 그의 네 발은 모두 묶여 있었다. 빙고는 
낑낑거리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진정해라, 얘야."
  어떤 목소리가 그를 진정시켰다. 빨간 머리의 여자였다.
  "나야, 내 이름은 버니야."
  그녀가 말했다.
  "모든 게 다 잘될 거야. 너는 지금 프릭 박사의 병원에 있는 거야. 박사님은 
수의사시란다."
  빙고는 프릭 박사를 바라보았다. 박사는 손에 수술용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다.
  "이봐, 이식할 후각 기관은 어떻게 됐나?"
  그가 조수에게 물었다.
  "네, 여기 준비됐습니다."
  조수는 박사에게 두꺼운 냉동상자 안을 보여 주면 말했다.
  "도베르만 종에서 얻은 겁니다."
  "도베르만이라구?"
  박사가 되풀이했다.
  조수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이것밖에는 없었어요."
  "그래, 하는 수 없지!"
  박사가 말했다.
  "지금 이식 수술을 하지 않으면 저 개는 냄새를 맡기 어려울 거야. 코를 지나치게 
혹사했더군. 후각 조직이 마치 닳아빠진 신발처럼 망가져 버렸어. 너무 늦지 않았길 
바래야지."
  그는 자기의 손가락 마디를 꺾어 소리를 내 보고 초조하게 팔을 흔들었다.
  "자, 이제 녀석을 마취시키고 시작하자구."
  '도베르만이라구? 후각 기관 이식 수술이라구?'
  빙고는 자기가 들은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조수가 조그만 가스 마스크를 빙고의 얼굴에 씌우자 빙고는 있는 힘을 다해 
발버둥을 쳤다.
  "자아, 얘야 걱정하지 마."
  조수가 빙고를 안심시키려 했다.
  "박사님 실력은 최고란다. 열부터 거꾸로 세거라."
  빙고는 마스크 때문에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떨면서 빙고는 10부터 거꾸로 세어 
나갔다.
  채 일곱도 세기 전에 빙고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수술대 위에 누운 빙고

  "빙고! 비잉고오오오오!"
  처키의 목소리가 학교의 복도에 메아리쳤다. 그는 빙고가 거기 어딘가에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빙고에게 뭔가 무서운 일이 생겼다는 것도 알았다.
  처키는 눈을 깜박이자 고였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슬픔을 이기려 가느다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예엣...날에 개를 가진 아이가 하나 있었지요오오... 그 개...애의 이름은 
빙고오랍니다. 빙...고..."
  그는 잠시 기다려 보았지만 아무 대답도 없었다.
  "나는 네가 여기 있는 걸 안단 말이야!"
  처키는 안타까워 소리쳐 보았다.
  "뭐라고 말 좀 해봐! 대답 좀 하란 말이야!"
  "꼬마야, 너 여기에 어떻게 들어왔니?"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처키가 뒤돌아보니 그림블비 선생님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처키가 가장 
싫어하는 선생님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영화 '나이트 메어'에 나오는 프레디 크루거 같이 흉칙했고, 마녀 
같은 사악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치키, 넌 지금 생물 수업 시간 아니니?"
  그림블비 선생이 물었다.
  "아녜요, 저는 처키예요."
  "말대꾸 하지 마라. 이 녀석아! 이곳 출입증은?"
  "저...전 그런 거 없어요. 하지만 제 개의 소리가..."
  그림블비 선생의 눈이 가늘어졌다.
  "개라구? 도대체 무슨 개란 말이냐?"
  "왈! 왈!"
  저기다! 그 소리는 빙고가 마치 캐비닛 속에 갇혀 있는 것처럼, 둔한 
금속성이었다.
  처키는 그림블비 선생님으로부터 도망쳤다.
  "빙고!"
  그는 소리치며 복도에 있는 개인 캐비닛 문을 확 잡아당겨 열었다.
  그는 초인적인 힘으로 캐비닛 문을 하나 하나 열어 보았으나 모두 비어 있었다. 
그런데도 개 짖는 소리는 계속 났고 점점 크게 들려 왔다.
  이제 안 열어 본 캐비닛은 단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그만 처키는 
그림블비 선생 손에 붙들리고 말았다.
  "왈! 왈!"
  빙고의 짖는 소리가 점점 다급하게 들려왔다.
  "안 돼요!"
  처키는 날카롭게 소리치며 그림블비 선생의 강철 같은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쳤다. 
  "저건 내 개예요!"
  그림블비 선생은 처키의 코 앞에 얼굴을 바싹 갖다 대며 징그럽게 말했다.
  "너는 정말 문제가 많은 것 같구나. 이 녀석! 넌 스물다섯 살이 될 때까지는 이 
학교를 졸업하지 못할 줄 알아라. 알겠니!"
  처키는 급한 김에 그녀의 코를 깨물어 버렸다. 그녀가 소리를 지르며 물러나자 
처키는 마지막 캐비닛의 문을 열어 젖혔다.
  그리고 처키는 그 안에 있는 걸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얼굴이 굳어지고 
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거기엔 빙고가 있었다. 틀림없는 빙고였다. 그런데 그의 코는 길고, 점이 있고 
시커멓게 생긴 도베르만의 코였다.

  "아아... 안돼!"
  처키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풋볼 포스터, 비디오 게임상자, 잡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처키의 방 안이었다.
  "꿈, 꿈이었구나."
  그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의 심장이 쿵쿵 뛰었고, 이마는 땀에 흥건히 
젖어 있었다. 꿈이라기엔 너무 생생했다.
  방문이 열리고 데브린 부인이 고개를 내밀었다.
  "너 괜찮니, 얘야?"
  "나쁜 꿈을 꾸었어요, 이젠 괜찮아요."
  처키가 대답했다.
  데브린 부인이 방 안으로 들어와서 그의 이마에 부드럽게 입맞추었다.
  "자기 전에 공포영화는 보지 말랬지, 그렇지?"
  처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의 말이 옳았다. 단지 비디오 때문일 것이다. 
그밖에 다른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처키는 다시 잠을 청하려 했지만,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다.

  일 주일 후, 인디애나 스모크스텍. 버니의 모텔 방에서는 프릭 박사가 빙고의 
코에서 붕대를 풀어 주고 있었다.
  "이 코가 정상적으로 냄새를 맡으려면 많은 자극이 필요할 거야."
  박사가 설명했다.
  "우선은 사람들과 좋아했던 음식에 대해 반응을 보이는지 살펴요...오, 이젠 다 
됐구나!"
  그는 친절하게 설명하면서 마지막 붕대를 벗겼다. 버니는 두려운 나머지 숨을 
몰아쉬며 물러섰다. 빙고의 눈에도 걱정이 가득했다.
  "어머, 예쁘다."
  버니가 갑작스레 미소를 띠며 말했다. 프릭 박사는 거울로 이리저리 빙고를 비춰 
주었다. 그의 코는 아주 완벽했다!
  빙고는 기쁨에 겨워 즐겁게 짖어댔다. 버니와 프릭 박사도 박수를 쳤다.
  "자, 이젠 저 코가 얼마나 훌륭하게 능력을 발휘하는지 알아봐야지."
  박사가 말했다.
  박사는 카드 한 벌을 꺼냈다.
  "내가 너에게 카드 세 장으로 몬트 놀이 하는 걸 가르쳐 주겠다."
  그는 빙고에게 카드 세 장을 보여주었는데 거기엔 퀸 스페이드가 포함되어 
있었다.
  "자 이젠 이 퀸 스페이드에 나의 냄새를 묻히겠다."
  박사는 카드를 자기 얼굴에 문질렀다.
  그는 그 카드를 침대 위에 내려놓고 나무지 두 개도 옆에 놓았다. 그리고는 한 번 
뒤집어 보여 주고는 다시 엎어놓았다. 이번에는 세 장의 카드를 마구 섞기 시작했다.
  "자, 퀸을 잘 보라구."
  박사가 말했다.
  "움직이고, 그대로 있고, 여기, 저기, 아래로, 위로, 이렇게, 저렇게..."
  마침내 그가 멈췄다. 카드는 한 줄로 놓여 있었는데 모두 같아 보였다.
  "자, 이제 퀸을 찾아보라구, 친구."
  박사가 빙고에게 말했다.
  버니는 난처하다는 듯 카드를 쳐다봤다. 빙고는 코를 가까이 하고 주의 깊게 
하나하나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는 앞발을 들어 가운데 있는 카드를 가리켰다.
  프릭 박사가 뒤집어 보니 틀림없이 퀸 스페이드였다.
  "축하한다! 수술은 성공이구나!"
  박사도 기쁜 듯 소리쳤다.
  "내가 보기엔 왼쪽 것 같았는데."
  버니가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그것은 당신이 눈으로만 봤기 때문이오."
  박사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자, 이젠 치료비 얘기를..."

  프릭의 계산서를 보고 나서, 버니에게는 새로운 돈벌이가 필요했다. 빙고와 
함께라면 그것이 얼마든지 가능할 것 같았다. 그녀는 빙고와 함께 시내의 왼쪽 
길모퉁이로 갔다. 거기에서 야바위꾼들이 세 장의 카드로 몬트 놀이를 하고있었다. 
그녀는 어떻게 하는지 전혀 모르는 체하면서 퀸을 집어들고는 손가락을 문질러 
그녀의 냄새를 묻혔다. 그녀가 카드를 돌려놓고 빙고의 코는 그 것에 주의를 
기울였다.
  며칠 동안 그들은 모든 게임에서 승리했고, 버니는 20달러 짜리 지폐 몇 뭉치를 
모텔 방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버니는 신이 났지만, 빙고는 그런 것이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빙고는 풀이 죽고, 기운이 빠졌다. 하지만 버니에게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무척이나 애썼다. 어쨌든 빙고는 그녀에게 그의 코를 빚지고 있었다. 아니 그녀는 
빙고에게 생명의 은인이었다. 또한 빙고를 무척 친절하게 대해줬다. 그래서 빙고는 
그녀를 위해 충직한 개가 되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빙고에게는 처키뿐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을 숨기는 것이 
빙고에겐 몹시 힘이 들었다.
  빙고가 이곳에 온 지 한 주 반 정도 지난, 어느 비오는 저녁이었다. 버니와 빙고는 
모텔 방에 앉아 창문 밖을 우두커니 내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따분해진 버니가 고무공을 바닥에 튀기며 말했다.
  "이봐! 공놀이 하지 않을래?"
  그녀가 공을 던졌으나 빙고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공은 벽에 맞고 튕겨 나와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빙고의 눈은 가끔씩 공을 쫓다가 이내 창 밖을 바라보며 처키는 지금 얼마나 먼 
곳에 있을까를 생각했다.
  "막대기를 가지고 놀까?"
  버니가 다시 물었다.
  "소리나는 장난감은 어때? 날고기 먹을래?"
  빙고는 처키를 생각하는 일 말고는 만사가 귀찮았다.
  버니는 빙고 쪽으로 걸어가서는 빙고 옆에 앉았다.
  "왜 그러니 빙고? 너 왜 전처럼 내 발 밑에서 구르지도 않고, 놀지도 않니? 
신문을 물어오지도 않고, 낯선 사람이 오면 짖지도 않니? 화분에 물도 안주고... 난 
살아 있는 개가 필요한 거지 움직이지 않는 문지기가 필요한 게 아니란 말이야!"
  그녀는 한숨을 쉬고는 다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 처키한테 가고 싶은 거지, 그렇지"
  빙고는 화들짝 놀라며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그녀가 처키를 알고 
있을까?
  "편지를 읽었단다."
  버니가 설명해 주었다.
  "그것이 방에 떨어져 있더구나."
  그녀는 일어서더니 옷장으로 다가갔다.
  "너는 여기에 처키를 찾으러 온 거였지?"
  그녀가 빙고를 돌아보며 물었다.
  "너는 이렇게 먼 곳까지 찾아왔는데... 하지만 편지는 반쪽밖에는 없더구나."
  서랍에서 처키의 구겨진 편지를 꺼내 빙고에게 넘겨주며, 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
  "나는 네가 잊기를 바랬는데... 그래서 나의 개가 되기를 바랬단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처키와 경쟁할 수 없다는 걸 알았어. 내 욕심만으로 너를 언제까지나 붙잡아 
둘 수는 없구나."
  빙고는 기뻐서 훌쩍이며, 이제 희망으로 눈이 빛났다.
  "어떻게 처키가 있는 곳을 알 수 없을까?"
  버니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네가 풀어야 할 문제 같구나."
  빙고는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머리를 그녀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버니의 침울했던 마음도 곧 풀렸다.
  "오, 그래. 내가 한번 알아볼게."
  그녀는 방을 나가서 삼십 분쯤 뒤에 돌아왔다. 그녀가 돌아왔을 땐 그녀의 얼굴에 
어떤 결심이 선 듯했다.
  "자, 가자. 우린 버스 정류장으로 가야 해."
  버니는 부엌으로 가더니 부산하게 냉장고에서 먹을 것들을 꺼내 챙겼다. 음식이 
마련되자 옷장으로 가서는 구두상자 하나를 꺼내 왔다. 요란한 장식과 개의 
사진으로 꾸며져 있는 상자였다.
  "마음에 드니?"
  그녀가 물었다.
  "어느 날 밤, 네가 자는 동안에 너를 주려고 만들었단다."
  개이기 때문에 좋은 점 하나 가지는 마음 속의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빙고는 상자를 보며 조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빙고는 꼬리를 
흔들어 버니를 기쁘게 해주었다. 그녀는 상자 속에 물건들을 챙겨 넣기 시작했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할 때까지 그녀는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듯했지만 빙고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빙고는 그녀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그녀는 빙고와 
헤어지는 것을 생각하기 싫었고, 말을 하게 되면 곧 울음을 참지 못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정류장 대합실의 의자에 앉아서야 그녀는 이야기를 꺼냈다.
  "모텔의 지배인이 그러는데, 그들은 위스콘신의 그린베이로 갔다더라. 버스를 타고 
그곳으로 가렴. 거기 도착해서는 네 힘으로 찾아야 해. 꼭 그 소년을 찾아 행복하게 
살아라. 내 걱정은 말고."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너를 위해서 목도리를 하나 짰단다."
  그녀는 조금 이상하게 생긴 목도리를 구두상자에서 끄집어냈다.
  "그리고 이 상자에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좀 넣었다. 비스킷, 퍼즐, 잡지들. 그리고 
네가 제일 좋아하는 콜드 크림과 젤리로 만든 샌드위치도 넣었단다."
  "그린베이로 가시는 손님은 어서 승차하세요!"
  안내 방송이 스피커에서 들려왔다.
  "바보같이...!"
  버니가 힘껏 빙고를 안으며 말했다.
  "나는 너를 만나기 전까지는 진정한 사랑을 몰랐었어."
  버니는 빙고를 버스에 올려 주었다.
  빙고는 좌석 위로 뛰어올라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빙고는 버니의 눈화장이 흐르는 눈물로 얼룩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빙고 역시 버니와의 이별이 슬펐다. 그러나 빙고의 마음은 곧 설레임으로 들뜨기 
시작했다. 버스의 행선지는 그리네이라고 적혀 있었다. 버스가 달려감에 따라 빙고도 
점점 처키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빙고는 다음 정류장에 이르기도 전에 구두상자 안의 음식을 모두 먹어치웠다. 
그리고는 빈 상자를 다음 정류장에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버니에게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버스가 다시 정류장을 떠나자, 빙고는 어느새 그 일을 잊어 버렸다.
  그날 밤 쓰레기차는 그 상자를 치우지 않았다. 그것은 다음날 아침 사냥개가 와서 
냄새를 맡고 짖어댈 때도 그대로 거기에 있었다.
  상자를 발견한 것은 개와 더불어 두 남자였다. 그 중 킨 큰 남자가 개를 끌어 
당기고 있었고, 나머지 한 명은 그 구두상자에서 기름종이를 끄집어내 거기 묻은 
하얗고 빨간 음식찌꺼기의 맛을 보았다.
  "그게 뭐지?"
  키 큰 남자가 물었다.
  "콜드 크림하고 젤리."
  작은 키의 남자가 대다했다.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두 남자는 바로 엘리와 레니였다.
  그들은 점점 빙고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무서운 사냥꾼

  빙고는 버스 터미널의 환영 문구를 읽고 또 읽었다.

  카우보이의 고향 그린베이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빙고는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빙고는 사람들과 무릎과 다리들 사이를 
가로질러서 버스의 앞쪽으로 서둘러 나아갔다.
  버스에서 내려서자, 빙고는 곧바로 일을 시작했다. 그는 땅과 벽과 보도의 냄새를 
맡았다.
  그러나 처키의 냄새는 없었다.
  빙고는 가까운 여인숙으로 달려갔다. 계산대 근처에 공중전화 박스가 있었고 
아래쪽 선반에는 전화번호부도 놓여 있었다. 그는 전화번호부를 입에 물고는 선반 
위로 올라가 앉았다. 그리고는 책을 펼쳐서 D부분을 찾기 시작했다.
  전화번호부를 뒤지는 개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신기한 
듯 입까지 벌리고 있었으나 빙고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빙고의 눈은 책장을 
세세히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데니슨...데스트리...도이치맨...데바론..."
  거기 있었다. 바로 거기에!

  데브린, H 필버트 코트 1801
  555__3370

  책 뒤에는 그린베이의 지도가 접혀 있었다. 빙고는 지도를 펼쳐 필버트 코트를 
찾았다. 그리고는 얼른 공중전화 박스를 나왔다.
  필버트 코트는 그곳에서 시내를 가로질러 3분 거리에 있었다. 필버트 가에 
접어들자, 빙고는 단풍나무와 전나무, 멋진 잔디밭 그리고 잘 구비 된 소화전을 볼 
수 있었다.
  빙고는 정말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 빙고는 그들을 보았다. 거기엔 처키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었다. 빙고는 
기뻐서 거의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러나 빙고는 입을 다물었다. 만일 저들의 눈에 
띈다면 다시는 처키를 만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빙고는 참을성 있게 이웃집 담 밑에서 기다렸다.
  데브린 씨가 현관에서 아내에게 키스를 한 후 자기 차로 걸어갔다.
  "여보, 잘하세요!"
  데브린 부인이 외쳤다.
  "디트로이트 팀을 꼭 이기세요!"
  데브린 씨는 부인에게 윙크를 하고 집 안의 찻길을 빠져나갔다. 빙고는 
스테이션왜건이 거리를 달려나가는 걸 주의 깊게 지켜봤다. 한 구간... 두 구간...
  처키의 모습을 본 건 그때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건 처키의 머리였다. 두 
구간쯤 떨어진 울타리 너머로 처키의 머리가 조금씩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었다. 
데브린 씨는 자기 아들에게 경적을 울리고 창밖으로 손을 흔들며 지나갔다.
  빙고는 너무 기쁜 나머지 움직일 수조차 없을 것 같았다. 빙고는 있는 힘을 다해 
처키 쪽으로 달려갔다. 그의 눈은 오직 처키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것이 꿈은 아니겠지?'
  빙고는 자신에게 계속 물었다. 정말 그건 착각이 아니었다. 저 걸음걸이, 저 냄새 
그리고 저 머리모양... 저건 확실히 처키 데브린이 분명했다.
  빙고는 뛰느라 숨이 가빠 혀를 내밀고 있었다. 이 믿어지지 않는 기쁨을 마음껏 
짖기 위해 빙고는 혀를 끌어 당겼다.
  그런데 처키가 울타리를 지나 걸어 나오는 걸 보고 빙고는 그만 우뚝 서고 
말았다.
  목구멍에서 나오려던 소리가 멎었다. 빙고는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그리고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발이 길바닥에 붙어 버린 것 같았다.
  처키는 손에 가죽끈을 쥐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죽끈엔 개 한 마리가 묶여 
있었다. 그들은 아주 행복한 모습으로 걷고 있었던 것이었다.
  '다른 개가 있었어.'
  '처키에게 다른 개가 있었다.'
  이런 말들이 마치 망치로 두들기는 것처럼 빙고의 머리를 쳤다. 그 생각은 빙고의 
영혼까지 싸늘하게 만들었다.
  빙고는 처키가 새 친구들을 사귀었을 거라는 생각은 했었다. 새로운 취미도 
생기고, 그의 어머니가 제안했던 열대어도 기르고... 그런데 다른 개를 가졌다니? 
결코 믿을 수가 없었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이 그를 감싸고 누르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빙고는 한편으로 
냉정한 판단을 하기 시작했다.
  '왜, 처키는 다른 개를 가지면 안 되나? 처키는 충분히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는 
거야! 처키가 언제까지고 외롭고 비참하게 빙고만을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이기적인 생각이다.'
  빙고는 머리를 떨구었다. 그리고 뒤돌아서 도망치다시피 거리를 거슬러 올라갔다.
  빙고가 조금만 더 거기서 지켜봤더라면, 처키가 개를 옆집 문 앞에 데리고 가서 
초인종을 누르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자가 나와서 처키에게 일 
달러 짜리를 주며,
  "여기 있다, 처키야. 프리스커와 함께 산보를 해줘서 고맙구나."
  라고 말하는 소리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처키가 오직 빙고만을 생각하며 혼자서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도 
보았을 것이다.

  빙고는 그린베이의 길거리를 몇 시간이고 정처없이 배회했다. 맛있는 음식 냄새가 
풍기는 레스토랑 앞을 지나칠 때 빙고의 뱃속에선 꼬르륵 소리가 났다. 버니가 
만들어 준 샌드위치를 먹은 뒤로 빙고는 아무것도 먹지를 못했다. 빙고는 참을 수 
없이 배가 고팠다.
  '빅의 카페'라는 그 레스토랑은 손님들로 붐볐다. 그것은 곧 빙고가 먹을 만한 
음식 찌꺼기가 많다는 것을 의미했다.
  빙고는 조용히 식당 뒤쪽으로 가서는 거기 있는 쓰레기통을 넘어뜨렸다. 
쓰레기통은 큰 소리와 함께 많은 음식 찌꺼기를 쏟아 놓았다. 빙고는 입맛을 다시며 
음식 찌꺼기를 뒤적였다. 거기엔 반쯤 먹은 갈비와 송아지 고기 따위도 있었다. 
그런데 쓰레기통 넘어지는 소리는 식당 주인까지도 서둘러 불러냈다.
  주인은 빙고의 목덜미를 잡아 올려 눈을 노려 보았다.
  "새로운 떠돌이구나."
  그가 말했다.
  "잘 들어둬, 네가 얼마나 딱한 처지인지는 내가 알 바 아니다. 빅의 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려면 돈을 벌어야 돼!"
  그 다음은 뻔했다. 빙고는 주방에서 흰 모자를 쓴 채 일해야만 했다. 빙고 옆에는 
말라빠지고 겁먹은 듯한 십대 소년도 같이 일하고 있었다.
  식당 주인 빅의 잠시 나가더니만 닦아야 할 접시들을 한아름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빙고 앞에 쌓아 놓고 지시했다.
  "이걸 다 닦을 때쯤 더 가져오겠다. 그리고 닦는 방법은 데이브가 잘 가르쳐 줄 
거다."
  데이브는 말없이 고무장갑을 끼더니 맨 위의 접시를 집어들었다. 빙고는 데이브가 
우선 수돗물을 틀어서 접시를 씻어 낼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기막히게도 그것을 
빙고의 입에 갖다 대는 것이었다.
  빙고는 어리둥절해서 데이브를 쳐다봤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뜻을 알아차렸다. 
빙고더러 접시를 핥아서 깨끗이 하라는 것이었다.
  이건 정말 이상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으나 빙고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수돗물 값을 아껴야 된다구!"
  빅이 낄낄대며 말했다. 그리고는 데이브를 부추겼다.
  "너도 더 열심히 일해야 될 거야. 저 개는 야심이 많은 것 같아."
  곧 데이브의 얼굴은 긴장과 걱정으로 가득 찼다. 마치 빙고가 자기 일자리를 
빼앗을까봐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데이브는 빙고에게 연달아 접시를 내밀면서 빙고가 접시에 음식 찌꺼기를 
조금이라도 남가지 않나 유심히 감시했다.
  빙고는 몹시 배가 고팠으므로 접시에 남은 음식 찌꺼기가 무척 맛있게 느껴졌다. 
그는 접시에 있는 것을 조금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핥았다.
  빙고는 쉴 새 없이 접시들을 핥아서 깨끗이 했다. 일하는 것이 처키에 대한 
생각을 잊게 할 수는 없었지만 마음의 아픔을 조금은 잊게 해주었다.
  다음날 레니와 엘리는 포스터 뭉치를 들고 공중전화 박스 쪽으로 걸어갔다. 그 
옆에는 그들의 사냥개가 따라가고 있었다.
  "이곳이 틀림없을 거야."
  레니가 말했다.
  "맞아, 그린베이. 그 버스 정류장에 있던 녀석이 말해준 게 바로 여기야."
  엘리가 맞장구를 치며 전봇대에 포스터를 붙였다.
  "구두 상자를 문 잡종개가 그린베이로 가는 버스를 탔다고 틀림없이 그 녀석이 
말했어."
  그는 뒤로 조금 물러서서 포스터를 살펴보았다. 한가운데에 빙고의 얼굴이 
조잡하게 그려져 있었고, 그 위에는 큰 글씨로 '잃어버린 개를 찾습니다. 현상금 
500달러'라고 적혀 있었다. 또 그림 아래에는 '이 개, 빙고를 아시는 분은 하이웨이 
모터 여인숙 12호실로 연락해서 스미스씨를 찾으십시오.'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이해가 안 가."
  레니가 불평했다.
  "오백 달러 현상금은 너무 많은 것 같아."
  엘리가 눈을 크게 뜨며 어이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누가 그 돈을 준대?"
  "그럼 현상금을 안 줄 거야?"
  레니가 놀라며 물었다.
  "이것 봐. 우리는 강도야, 레니. 지불할 필요가 전혀 없는 거야. 그런 바보 같은 
소리 좀 그만 하라구. 우린 아직 해치워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저녁 무렵이 되서야, 그들은 그린베이 곳곳에 포스터를 다 붙였다. 그리고 
여인숙으로 돌아와 식사준비를 하고 있었다.
  레니가 욕실에서 이를 닦고 있을 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레니가 문을 
열자, 빅 카페에서 일하는 소년, 데이브가 서 있었다.
  "으흠?"
  레니가 데이브를 맞아들이며 물었다.
  "무슨 일이지, 꼬마야?"
  "당신이 스미스 씨인가요?"
  데이브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레니가 기가 막혀서 이마를 찌푸리며 부엌에 있는 엘리를 불렀다.
  "이봐, 여기 스미스라고 있나?"
  엘리가 그 소리에 깜짝 놀라 허겁지겁 뛰어왔다. 그리고 팔꿈치로 레니의 
옆구리를 치며 불쑥 내뱉었다.
  "그래, 우리가 스미스야."
  "개 한 마리가 빅 카페에서 접시 닦기 조수로 일하고 있는데요, 그 개가 바로 
당신들이 찾고 있는 개인 것 같아요."
  그는 조수라는 말을 강조하며 말했다.
  "정말이냐?"
  엘리가 물었다.
  데이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개는 지금도 거기서 일하고 있을 거예요."
  "가자, 레니!"
  엘리가 소리쳤다.
  "너도 이리 와, 올 블루!"
  바닥에 엎드려 자고 있던 사냥개가 벌떡 일어났다.
  레니는 올 블루의 개줄을 집어서 데이브의 손에 쥐어 주었다.
  "자, 이걸 잡아라."
  말을 마치고 그와 엘리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데이브는 어리둥절해져서 그들의 귀에 대소 소리쳤다.
  "이봐요, 현상금은요?"
  레니와 엘리는 그들의 푸른 시보레 차로 뛰어 들어 문을 닫았다.
  "올 블루를 팔아!"
  레니가 창문 너머로 소리쳤다.
  시보레의 타이어가 검은 바퀴자국을 내며 길거리를 달려나갔다. 당황과 분노로 
얼굴이 붉어진 데이브는 돌을 집어서 달리는 그들의 차에 던졌다.
  이때 데이브는 팩커스 모자를 축 눌러 쓰고 여인숙을 향해 미친 듯이 페달을 
밟으며 오는 처키를 미처 보지 못했다. 처키는 포스터를 보자마자 전속력으로 
자전거를 몰아 달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처키는 사냥개와 같이 있는 데이브가 자기에게 돌을 던질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었다.
  처키가 소리쳤다.
  "야! 너 지금 뭐하는 거야?"
  달아나는 차를 보고 있던 데이브는 처키가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데이브는 이제 
처키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마침내 그는 잡고 있던 개줄을 보여주며 말했다.
  "네가 이 개를 사구 싶다구?"
  
    포로가 된 우정

  "너 참 일을 잘하는 구나, 빙고."
  그날 밤 빙고가 일을 마치고 식당을 나서려 할 때 빅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네가 굉장히 마음에 든단다. 내일 여섯 시에 다시 와라. 그때 너의 대우에 
대해 다시 한번 얘기하자."
  빙고는 주방에서 나와 골목길로 들어섰다. 어쩌면 빙고가 빅 카페에서 일하는 
것은 그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빙고도 뭐가 자신의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할 
일이 있어야 한다. 처키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생각에 잠겨 걷던 빙고는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무언가가 그의 목을 졸랐던 
것이다. 빙고가 벗어나려 애쓸수록 그것은 점점 더 목을 조여 왔다.
  어둠 속에서 빙고는 레니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오른손에 올가미가 달린 긴 
막대를 쥐고 있었고, 그 올가미가 빙고의 목을 감고 있었다.
  레니는 유령처럼 음산하고 거친 목소리로 지껄였다.
  "자, 여기 오직 정의만을 따르는 용사들이 간사한 배신자를 처단하러 왔다!"
  이어서 엘리가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울퉁불퉁한 얼굴이 희미한 불빛을 받아 
공포의 가면처럼 보였다.
  "우리가 너를 없애기 전에, 네가 태어난 것을 후회하게 해줄 테다."
  엘리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쉬시시시시이이이이!"
  이상한 소리가 들려 그들 셋은 모두 보도를 향해 돌아섰다. 처키가 자전거를 타고 
골목 안으로 질주해 오고 있었다. 그는 중심을 잃지 않고 레니를 향해 곧바로 달려 
왔다.
  "내 개를 풀어 줘, 이 도둑놈들아!"
  레니가 얼른 피하려 했으나, 골목이 너무 좁았다. 처키는 있는 힘을 다해 그에게 
부딪쳤다.
  자전거가 땅바닥에 넘어지고 처키도 길 위로 굴러 떨어졌다. 레니 역시도 
옆구리를 감싸며 땅바닥에 고꾸라졌다. 그러자 곁에 있던 엘리가 처키에게 달려들어 
그의 팔을 비틀었다.
  "도망쳐, 빙고! 어서 도망쳐!"
  처키가 외쳤다.
  이 틈을 타서 빙고는 얼른 그 올가미 막대를 풀었다.
  엘리가 빙고를 잡으려 했으나 너무 늦었다. 빙고는 벌써 골목을 다 빠져나간 
뒤였다.
  "일어나, 이 녀석아! 저리 가!"
  엘리가 소리치며 처키와 레니를 일으켜서 골목 밖으로 밀어냈다. 그들은 길가에 
세워 두었던 시보레 차 안으로 처키를 밀어넣고 자기들도 차에 탔다.
  그들이 어둠 속으로 차를 몰아 사라지는 것을 빙고는 길가의 나무상자 뒤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

  차는 어둡고 적막한 그린베이의 도로 위를 질주해 나갔다. 달리면서도 레니와 
엘리는 어두운 골목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엘리가 시거 연기를 뽀얗게 내뿜으며 처키에게 말했다.
  "얘야, 나는 이제 참을성을 잃었어, 알겠냐? 그 개가 네 거란 말이지? 그럼 그 
개가 지금 어디 있는지 말해라."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처키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엘리는 시거 끝이 시뻘개지도록 여러 번 빨더니 그것을 처키의 뺨 가까이에 
가져갔다.
  "잘 생각해 보라구, 이 영리한 녀석아."
  "다, 다, 당신들 이런 식으로 나를 겁줄 수는 없어요."
  처키가 뒤로 몸을 젖히며 말했다.
  "만일 우리 아버지가 이걸 알면 당신들 머리통을 차서 날려 버릴 거예요."
  "그래?"
  레니가 가소롭다는 듯 씩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 말고 또 누가 있냐?"
  처키도 빈정거리며 말했다.
  "그린베이 팀의 공격수들은 어때요?"
  엘리가 깔깔대며 웃었다.
  "그래, 너희 아버지가 그 팀 후원회 회장이라도 되냐?"
  "홀 데브린도 몰라요?"
  처키가 되물었다.
  "데브린, 그 플레이스키커 말이냐?"
  엘리가 눈을 크게 뜨며 아는 체를 하자, 처키는 자랑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덴버에서 한때 굉장했지. 덕분에 나는 돈을 잃었지만."
  "맞아요. 아버지는 이번에 그린베이와 계약을 했어요. 이번에 디트로이트를 이기면 
플레이오프에 나간다구요!"
  레니가 그들의 대화를 가로막았다.
  "지금 뭐하는 거야, 오늘이 내셔널 풋볼 리그라도 열리는 날이냐? 둘 다 
입다물어!"
  "아냐, 잠깐만!"
  엘리가 말했다. 그는 이빨을 드러내며 교활하게 웃었다.
  "이봐, 이번에 정말 돈 한번 벌어 보는 게 어때, 레니?"
  "개는 어떻게 하구?"
  레니가 말했다.
  "우리는 여기까지 개를 쫓아 왔다구!"
  "그 개는 잊어 버려!"
  엘리가 말했다.
  "이 애는 말이야,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 줄 보물 덩어리란 말이야!"
  엘리의 계획을 듣자 처키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계획은 처키를 이용한, 
아주 위험한 것이었다.
  다행히도 빙고 역시 그 얘기를 듣고 있었다. 그는 조금 전에 차 지붕 위에 몰래 
올라와 거기에 엎드려 있었다.
  빙고도 악당들의 계획을 방해할 방법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차가 낡은 창고의 주차장에 들어서자, 빙고는 얼른 차에서 뛰어내려 숨었다. 
레니와 엘리는 처키를 낡은 창고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거기는 조용하면서도 조금 
어수선했다. 조심스럽게 빙고는 가까운 창문으로 다가갔다.
  창문 아래에는 박스 더미가 있었다. 빙고는 그 위에 올라가 뒷발로 서서 창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창고의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기계 장치들이 공룡같이 버티고 서 있었다. 벽을 
따라서는 박스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것들은 몇 년 동안 아무도 손댄 일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박스 중에 하나가 열려 있었는데, 그 안엔 가죽으로 된 여행용 
가방들이 들어 있었다.
  창문과 벽 밑의 구멍을 통해 빛줄기가 안을 비스듬히 비추고 있었다. 한쪽 
편으로는 사무실이 있었는데, 젖빛 유리를 끼운 창에 엘리와 레니의 그림자가 
비쳤다.
  그리고 처키가 보였다. 처키는 창고 한가운데에 기계들에 둘러싸인 채 의자에 
힘없이 앉아 있었다.
  처키는 입과 손이 모두 묶여 있었는데, 불편한지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고 있었다.
  빙고는 빛이 새어드는 벽 밑의 구멍을 살펴보았다. 그곳은 빙고가 들어가기엔 
안성맞춤이었다.
  빙고는 상자에서 내려와 창고 건물을 빙 돌았다. 그리고 안쪽 사무실과 통하는 
문을 지나 아까의 구멍으로 가려고 했다.
  사무실 문을 막 지나려 할 때, 갑자기 그 문이 열렸다. 빙고는 재빨리 벽에 몸을 
붙여 그림자 속에 숨었다.
  엘리의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려 왔다.
  "너는 빨리 폭탄을 설치해. 우선 전화가 어디 있는지 알아보고,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우리가 돈을 걸 팀을 찾아본 뒤 바로 돌아올게."
  "그래, 엘리."
  레니의 목소리가 사무실 안에서 들려왔다.
  "이번 한 번으로 끝내는 거다."
  "레니, 이건 운으로 하는 도박이 아니야. 확실한 돈벌이라구. 넌 저 꼬마하고 폭탄 
장치나 걱정해."
  그리고 엘리는 문을 열어 둔 채 밖으로 나갔다. 빙고는 그가 안 보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무실 안을 살그머니 들여다보았다.
  사무실 안에서는 레니가 가방 위에 몸을 구부리고 뭔가를 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그 가방도 이 창고에서 훔친 물건이 틀림없었다. 가방 안에는 다이너마이트가 가득 
차 있었다.
  레니는 가장 안에 작은 물건을 설치하고 있었다. 빙고는 그 물건 위에 디지털 
시계가 붙어 있는 것을 얼핏 보았다.
  가방에서 물러서더니, 레니는 검은 색 리모콘을 조작해 보았다. 그가 리모콘을 
만지자 디지털 시계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다시 만지자 멈췄다.
  빙고는 그것이 타이머라는 걸 알아차렸다. 폭발 시간을 맞춘 타이머였던 것이다. 
그러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빙고는 등의 털이 다 곤두서는 것 같았다. 빙고의 마음 속에는 분노와 공포, 
미움이 마구 뒤엉켰다. 처키가 지금 곤경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니 빙고의 
머릿속에는 해야 할 일들이 떠올랐다.
  레니의 뒤로는 창고로 통하는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빙고는 레니가 등을 돌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소리내지 않고 레니의 등 뒤를 살금살금 지나서 빙고는 처키에게 다가갔다.
  빙고를 보자 처키는 반가워서 눈이 휘둥그래졌다.
  "어떻게 여기에 왔어?"
  처키의 입에는 재갈이 물려져 있어서, 말소리가 웅웅거렸다.
  빙고는 안타까운 마음에 발을 구르며 낑낑거렸다. 어떻게 처키에게 레니와 엘리가 
꾸민 무서운 계획을 말해 줄 수 있을까?
  "가서 도움을 청해!"
  처키가 말했다.
  "우리 집으로 달려가. 가서 누구든지 데려와. 어서!"
  빙고는 잠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물쭈물했다. 처키를 그곳에 혼자 두고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서 가!"
  처키가 애타게 소리쳤다.
  빙고는 뒷걸음질쳤다. 그리고 벽 밑에 난 구멍을 찾은 뒤 그쪽으로 뛰어갔다. 
뛰다가 한구석에 세워져 있던 사다리를 미처 보지 못하고 그만 사다리에 부딪치고 
말았다.
  꽈당탕탕! 사다리가 바닥에 넘어지는 소리가 창고 안을 요란스레 울렸다.
  처키는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 소리를 듣고 레니가 사무실에서 뛰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빙고는 아직도 창고 안을 달려가고 있었다.
  빙고가 구멍에 미처 도착하기도 전에 레니가 사무실 문을 벌컥 열어 젖히고 
뛰어왔다. 그의 얼굴은 긴장해서 시뻘겋게 달아 있었다.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
  그가 소리를 치자 그의 목소리는 마치 종말을 고하는 소리처럼 창고 안에 울려 
퍼졌다.
  
    공포의 협박전화

  처키는 숨을 멈췄다. 레니가 옆으로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빙고는 들키고 말 
것이다. 처키가 잠시만 레니의 주의를 끈다면 그 틈을 타서 빙고가 얼른 도망갈 
수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어떻게?
  지금은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처키는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대로 했다. 
그는 갑자기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옛날에 개를 가진 농부가 있었지요. 그 개의 이름은 비이--잉--고..."
  레니가 처키를 신경질적으로 노려보며 소리쳤다.
  "조용히 해! 듣기 싫어, 이 녀석아!"
  레니가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자, 처키는 얼른 빙고 쪽을 돌아봤다. 빙고는 이미 
가고 없었다.
  그는 안도감에 몸의 힘이 쭉 빠졌다. 정말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이제부터는 
모든 게 빙고에게 달려 있었다.

  데브린 부인이 부엌에서 경기를 보면서 먹을 팝콘을 튀기고 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그녀는 손에 묻은 기름을 닦은 뒤 현관으로 가 문을 열었다.
  거기엔 빙고가 미친 듯이 짖으며 뛰고 있었다.
  "너 누구니?"
  그녀가 말했다.
  "필요 없으니 어서 나가. 쉬! 쉬!"
  그녀는 현관문을 닫고 부엌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 튀긴 팝콘에 버터를 바르고 
과자와 함께 쟁반에 담았다. 그것을 들고 거실로 나와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조금 있으려니까 초인종이 또 울렸다.
  "치키야--아!"
  그녀가 치키를 불렀다.
  "네가 좀 나가 보겠니?"
  치키가 이층의 자기 방에서 뛰어 내려와 문을 열었다. 이번에도 또 빙고였다. 
빙고는 그새 창고로 다시 뛰어가 처키의 패커스 팀 모자를 물고 온 것이었다.
  "너 이거 어디서 났니?"
  치키가 모자를 뺏어 들었다.
  "왈!"
  빙고가 짖어 댔다.
  "잠깐만 기다려 봐라."
  치키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거실로 갔다.
  "누구니?"
  데브린 부인이 물었다.
  "어떤 개가 이 모자를 가지고 왔어요.'
  치키가 모자를 내밀며 말했다.
  "이거 처키 거 같은데요."
  "바보 같은 소리 마라. 이 도시에 얼마나 많은 패커스 모자가 있는데 그러니?"
  치키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현관으로 가서 빙고를 향해 모자를 
던져 버리고는 문을 닫아 걸었다.
  잠시 후, 전화벨이 울렸다. 데브린 부인이 부엌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그런데 전화 건 쪽의 목소리는 마치 물 속에서 전화하는 것처럼 무슨 소리인지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네? 네?"
  그녀가 수화기에 대고 물었다.
  리이--잉잉잉! 초인종이 다시 울렸다.
  "저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양해를 구한 뒤, 그녀는 손으로 수화기를 막고 소리쳤다.
  "치키이이! 문에 좀 나가 봐라!"
  그리고는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좀 크게 말씀해 주세요. 잘 안 들리는군요."
  길가의 공중 전화 박스에서는 엘리가 데브린 부인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는 
손수건으로 수화기를 막은 채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 목소리를 위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우리가 당신 아들을 데리고 있다고 말했소!"
  데브린 부인이 잘 알아듣지 못하자 마침내 엘리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
  한편 치키가 현과 문을 열어 보니, 또 빙고가 와 있었다. 이번엔 처키의 셔츠를 
물고 있었다.
  "또 너냐? 동물 보호소에 연락하기 전에 어서 꺼져!"
  그는 문을 닫아 버리고 부엌으로 갔다. 엄마가 하얗게 질린 채 전화를 받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엄마?"
  치키가 놀라 물어 보았다.
  "유령이라도 보셨어요?"
  데브린 부인은 멍하니 있다가 새삼 생각난 듯이 물었다.
  "밖에 누가 왔었니?"
  "또 그 바보 같은 개예요."
  치키가 시들하게 대답했다.
  데브린 부인은 현관으로 달려가 문을 열어 보았다.
  "어디 갔지?"
  부인은 길거리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했다.
  "제가 쫓아 버렸어요."
  "너 어서 그 개를 찾아 보아라!"
  "왜요?"
  "누군가 처키를 유괴한 것 같다! 그 개가 처키 있는 곳을 알지도 몰라."
  디트로이트의 실버돔에서는, 밴드가 연주를 하고, 응원단이 빅토리를 외치고, 
관중들이 서로 소리지르며 선수들에게 열광적인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곧 경기가 
시작될 시간이다. 한쪽에서는 홀 데브린이 공 하나 하나를 차서 네트에 꽂으며 킥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한 달 전보다 훨씬 상태가 좋아졌다. 그의 필드골이 지난 세 게임에서 모두 
종료 직전에 성공했었다. 그래서 삼등이었던 팀을 혼자서 일등이나 다름없는 
성적으로 올려놓았다. 이제 오늘만 이기면 패커스 팀은 당당하게 플레이 오프에 
진출하는 것이다.
  그가 다른 공을 차려고 준비할 때였다. 코치가 그의 어깨 보호대를 치며 무선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자네한테 온 전화야."
  데브린 씨는 기분이 상했다. 그는 경기 전에 그의 집중을 방해하는 것을 정말 
싫어했다.
  "네?"
  그가 말했다.
  "저예요."
  그의 아내의 목소리였다.
  "경기 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전화하지 말랬잖소!"
  그는 잘라 말했다.
  "그들이 처키를 데려갔어요!"
  부인이 허둥대며 말했다.
  "누가 처키를 데려갔다는 거요?"
  "유괴범들이요! 처키를 다시 보고 싶으면 시키는 대로..."
  데브린 씨는 그의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뭐든지 다 줘! 알았어? 그 아인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야. 하느님 맙소사, 뭐든지 
달라는 대로 다 줘요!"
  "그들이 원하는 건 몸값이 아니에요."
  데브린 부인은 차마 이야기하기가 어려웠다.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건..."
  "어서 말해 봐요!"
  "그들은 당신이 필드골을 실패하기 원해요!"
  데브린 씨는 어이가 없어서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뭐라구?"
  코치는 시계를 가리키며 재촉했고, 그의 동료들은 모두 경기장으로 나가기 위해 
모여 있었다.
  "이봐, 그들이 다른 건 원하지 않던가?"
  "아니오."
  "알았어. 잘 들어둬. 우선 경찰에 연락을 하고..."
  선수들이 모여서 함성을 질렀다. 동료 선수들이 서로를 격려하는 소리가 사이드 
라인을 따라서 데브린 씨에게도 들렀다.
  "그들이 경찰에 연락하지 말랬어요!"
  데브린 부인이 말했다.
  데브린 씨는 수화기를 귀에 바싹 갖다 댔다.
  "뭐라구? 잘 안 들려!"
  "그들이 절대로 경찰은 부르지 말래요! 그리고 어떤 개가 처키의 옷을 물고 
왔어요."
  "놈들이 개까지 동원했단 말이야?"
  "그런 것 같아요. 치키가 그 개를 쫓아갔어요. 그렇지만 홀..."
  팀의 풀백이 데브린의 배를 두드렸다. 코치가 이젠 화가 나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제 난 가 봐야 해."
  데브린이 서둘러 말을 맺으려 했다.
  "당신이 잘 생각해서 해요. 어쩌면 장난인지도 모르니까."
  "홀! 처키는 우리의 아들이에요!"
  이제 팀 동료들이 그에게로 몰려와 염소 떼처럼 헬멧으로 들이받고, 어깨를 
두드리며 그를 밀기 시작했다.
  "난...난 가야 해!"
  그가 소리쳤다.
  그가 전화기를 코치에게 주자 팀 선수들은 모두 짐승이 울부짖는 것처럼 소리를 
질러 용기를 북돋았다.
  "잘할 수 있겠지. 데브린?"
  코치가 물었다.
  "물론이죠."
  데브린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아내로부터 격려 연설을 들었는걸요."
  코치가 미소를 지었다.
  "바로 그거야."
  데브린 씨는 처키가 만들어 준 벨트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바지를 단단히 
졸라매고 있는 그 벨트의 뒤쪽에는 '아빠'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코치님, 대답해 봐요. 풋볼과 가족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하죠?"
  데브린 씨가 벨트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말했다.
  "지금 농담하는 거야? 풋볼은 내 인생이라구!"
  코치가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데브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내 생각도 그래요."
  그는 공을 잡았다. 그것을 가만히 내려놓고 있는 힘껏 찼다. 공이 하늘로 
솟구치더니 연습용 네트를 넘어갔다.
  코치가 깜짝 놀라 그를 쳐다봤다. 데브린의 얼굴은 결심이 선 듯 단호해 보였다. 
그는 자기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SOS 메아리

  창고 사무실에서는 중계방송을 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라디오를 통해 시끄럽게 
들려왔다.
  "... 곧 삼 쿼터가 시작되겠습니다. 데브린이 삽십이 야드 필드골을 차게 
되겠습니다. 성공한다면 패커스 팀이 앞서겠지만... 볼을 잡았습니다.... 찼습니다..."
  레니와 엘리는 라디오 앞에 바싹 다가앉아 귀를 기울였다.
  "...너무 치우치는군요! 별로 좋지 않습니다! 데브린의 킥은 삼십오 야드에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양 팀 모두 아직 득점이 없습니다."
  "우우... 와와하하!"
  레니와 엘리는 소리를 지르고 환호하며, 서로 손바닥을 부딪쳤다.
  "퍽석!"
  창고 안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에 그들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엘리가 플래시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사무실 문을 나가 창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레니가 그 
뒤를 바싹 따랐다.
  엘리는 플래시로 창고 안을 이리저리 비춰보았다. 불빛이 닿을 때마다 공기 중에 
떠 있는 먼지들이 보였다.
  불빛이 처키를 비추었다. 처키는 의자에 입과 손발이 묶인 채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의 모자와 셔츠가 없었다. 게다가 신고 있던 운동화까지 없었다.
  운동화 한 짝이 저만치 떨어져 있는 것이 엘리의 플래시 불빛에 드러났다.
  엘리는 잔뜩 긴장하여 운동화 쪽으로 다가갔다.
  "아니 도대체..."
  "퍽석!"
  말을 하려던 엘리는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위에서 운동화 한 짝이 마저 떨어진 
것이다.
  엘리는 플래시를 들어 위를 비춰보았다. 불빛이 나무로 된 서까래들을 천천히 
비추고 지나갔다. 그러다가 불빛이 한 곳에 멈추었다.
  서까래 위에 웅크리고 있는 조그만 물체가 불빛에 드러났다.
  빙고였다.
  엘리가 미처 손을 쓰기도 전에 빙고가 먼저 덤벼들었다. 빙고는 뒷발로 뛰어올라 
날쌔게 엘리의 어깨를 덮쳤다. 엘리가 놀라 소리지르며 바닥에 뒹굴었다. 엘리가 
쥐고 있던 플래시도 떨어져 불빛이 이리저리 뿌리며 뒹굴었다.
  "레니."
  엘리가 비명을 질렀다.
  "이놈 좀 치워!"
  레니가 그들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들 셋은 바닥에서 서로 차고, 때리고, 물면서 
마구 뒹굴었다.
  처키는 겁먹은 얼굴로 그들을 지켜봤다. 그는 지금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빙고는 원래 싸우는 개가 아니었다. 빙고는 당장 레니와 엘리를 골탕먹일 수 
있겠지만 결코 그들의 적수를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처키는 의자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며 있는 힘을 다해 빠져나가려 애써 보았다. 
움직일 때마다 밧줄이 그의 살을 조였다. 그는 손을 묶은 밧줄을 늦추어 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레니와 엘리는 그들의 경험으로 밧줄을 단단히 매는 법을 알고 있었다. 
처키가 밧줄을 풀려고 하면 할수록 밧줄은 더욱더 그를 세게 죄는 것 같았다.
  처키는 땀에 흥건히 젖었다. 처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듯했다. 
가냘픈 희망의 불빛이 절망의 어둠으로 변해 버렸다.
  그러나 처키는 지금 누군가가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기계 그림자 뒤의 창문에 치키가 얼어붙은 듯이 서서 창고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뜻밖의 광경에 어리둥절해 있던 치키는 땅으로 내려와 달리기 시작했다. 치키가 
그렇게 빨리 달린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잠시 후, 집에 도착한 치키는 문을 
박차고 뛰어들었다.
  "엄마!"
  그가 소리질렀다.
  "찾았어요!"
  데브린 부인의 눈은 텔레비전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그녀의 손은 반쯤 먹다 남은 
팝콘 그릇에 맥없이 놓여 있었다.
  "찾다니, 누구를?"
  그녀는 치키를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처키요! 그들이 처키를 창고 안에 가두고 있어요. 거기엔 폭탄두 있다구요!"
  "쉬이이히히!"
  텔레비전에 패커스 팀의 선수들이 필드골을 위해서 정열해 있는 모습이 비쳤다.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기대감으로 잔뜩 흥분되어 있었다.
  "...데브린이 이십이 야드 필드골을 차겠습니다. 이것은 오늘 그의 세 번째 
시도입니다. 패스는 좋군요. 아무도 그를 막는 사람이 없습니다. 찼습니다! 너무 
왼쪽이군요. 지금, 사쿼터까지도 양팀 모두 아직 득점이 없습니다. 데브린 선수, 오늘 
너무 긴장하는 것 같습니다."
  치키가 뛰어들어 텔레비전 앞을 막아섰다.
  "엄마!"
  그는 있는 힘껏 소리쳤다.
  "처키를 찾았단 말이에요!"
  데브린 부인이 이제야 정신을 차렸다.
  "이런, 세상에! 어디, 어디에?"
  "어떤 오래된 창고예요. 경찰에 연락해야 되요. 빨리요!"
  "그럴 수 없어!"
  데브린 부인은 남편이 한 말을 기억했다.
  "망설일 틈이 없어요!"
  치키가 우겨댔다.
  "그들이 처키를 죽일 거예요!"
  데브린 부인은 치키를 안타까움과 흐뭇함이 섞인 얼굴로 바라봤다.
  "너.. 정말로 동생을 걱정하고 있구나?"
  치키는 눈길을 피하며 둘러댔다.
  "그게 아니라... 처키가 없으면 내가 집안 일을 두 배로 해야 하니까 그렇죠."

  창고에서의 싸움은 끝났다. 빙고의 구출 작전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처키는 
아직도 묶여 있었고, 빙고도 처키가 앉아 있는 의자 다리에 재갈이 물린 채 묶여 
낑낑대고 있었다.
  레니가 의자 쪽으로 걸어왔다. 레니는 가방 안에 있는 타이머를 만지작거리며, 
놀리듯 노래를 불렀다.
  "옛날에 개를 가진 농부가 있었지요. 그리고..."
  "그 노래 좀 집어치워!"
  엘리가 입에서 시거를 빼며 소리쳤다.
  "정말 이해할 수 없단 말이야."
  레니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엘리는 어깨 뒤로 시거를 던져 버렸다. 시거는 박스 뒤쪽으로 떨어졌다.
  "준비 다 됐냐?"
  그가 조급하게 물었다.
  "난 어서 이 버튼을 누르고 싶단 말이야."
  "야! 폭발 전문가는 나야."
  레니가 막았다.
  "내가 버튼을 누를 거야."
  레니는 리모콘을 쥐고 열려 있는 가방에서 물러섰다. 그는 폭탄을 점검하고 있는 
엘리를 바라보며 거만하게 말했다.
  "손가방만한 크기지만 도시의 한 블록 정도는 날려 버릴 수 있는 위력이라고. 
그리고 이 리모콘은 몇 마일 떨어진 곳에서도 조종이 가능하다구."
  복수심에 차서 능글맞게 웃으며, 엘리가 빙고에게 몸을 굽히고 노래를 불렀다.
  "옛날에 폭탄을 가진 강도들이 있었지요... 그리고 콰아앙...!"
  낄낄거리며 레니는 가방을 들어 똑같은 가방들이 잔뜩 들어있는 박스 속에 
넣었다. 그리고 두 강도들은 창고를 빠져나갔고, 그들의 웃음 소리만이 창고 안에서 
메아리쳤다.
  처키는 새파랗게 질렸다. 그는 입 안이 마르고 속이 탔다.
  그것은 폭탄 때문이 아니었다. 연기 때문이었다.
  박스들 사이, 엘리가 시거를 던진 곳엣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연기 밑으로 
조그만 불길이 보였다. 불길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불타는 창고

  "저기 저놈들이에요!"
  치키는 코넬리 경관에게 허둥지둥 창고를 빠져 나오는 레니와 엘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경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관, 치키, 그리고 데브린 부인은 차창을 통해 창고 
안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그들은 강도들이 시보레 차를 타고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걸 볼 수 있었다.
  지체없이 코넬리 경관은 근처의 빌딩 뒤에 있던 순찰차를 몰고 나갔다.
  경관은 시보레를 쫓아 시내로 들어섰다. 두 차는 미끄러지듯 코너를 돌아, 시내를 
질주해 나갔다. 경찰차의 라디오에서 나오는 패커스 게임 중계방송은 엔진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경관은 라디오 볼륨을 높이려고 몸을 기울였다.
  "더 빨리 갈 수 없어요?"
  치키가 시끄러운 속에서 소리쳤다.
  "너 이 차 엔진을 날려 버리고 싶으냐?"
  경관이 대꾸했다.
  "아저씨는 우리 아버지가 또 필드골을 잘못 차길 바래요?"
  치키도 지지 않았다.
  경관이 액셀러레이터를 밟자 차는 덜컹거리며 속력을 높였다.
  시보레 차 안에서 레니와 엘리도 그 게임을 듣고 있었다.
  "...주심은 이제 사 분이 남은 경기를 계속하려고 합니다..."
  레니는 리모콘을 눌렀다. 그러자 길가에 있는 차고들 중에서 리모콘으로 작동되는 
문들이 모두 열렸다.
  한편, 차고에서는 시한폭탄의 타이머가 남은 경기 시간에 맞춰 작동되기 시작했다. 
4:00... 3:59... 3:58...
  처키는 숨쉬기가 힘들었다. 뒤에서 빙고는 묶은 끈을 열심히 이빨로 갈고 있었다.
  몇 번을 힘차게 물어뜯자 끈이 끊어졌다. 자유로워진 빙고는 처키의 밧줄을 
풀으려 했다.
  "빙고, 소용 없어!"
  아직도 이에 재갈이 물린 채로 처키가 소리쳤다.
  빙고가 그를 쳐다보더니 무릎 위로 뛰어올라가 입에 묶인 수건을 잡아당겼다.
  "소용 없다니까!"
  처키가 막힌 입으로 외쳤다.
  "화재 경보기나 울리도록 해 봐. 저기. 빙고!"
  처키는 연기가 나는 박스 쪽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빙고가 그 쪽을 쳐다보니 저쪽 벽 위의 유리 막 안에 빨간 경보기가 있었다.
  문제는 어떻게 그곳에 가느냐 하는 것이었다. 빙고가 그리로 가려면 기계장치를 
타고 연기가 막 피어오르고 있는 박스들을 뛰어넘어야 했다. 빙고는 연기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지만 연기가 나는 곳은 곧 불길에 휩싸이게 된다. 문제는 바로 
불이었다.
  빙고의 오래 된 공포가 다시 살아났다. 그 공포가 그를 서커스단에서 쫓겨나게 
하지 않았던가.
  "자, 빨리 가!"
  처키가 소리쳤다.
  "너는 저기에 가서 경보기를 누를 수 있어. 너는 할 수 있단 말이야, 빙고! 너는 
그걸 해야돼!"
  빙고는 그 기계들 쪽으로 가더니 위를 올려다봤다. 그는 천천히 낡은 컨베이어로 
올라갔다. 그리고 녹슨 기계장치를 타고 대들보 위로 기어올라갔다.
  폭이 좁은 그 대들보는 연기 나는 박스 위를 가로질러 경보기 쪽으로 통해 
있었다. 만일 운이 좋고, 빨리 뛴다면 빙고는 박스를 통과해 앞발로 화재 경보기를 
누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빙고는 뒤로 물러서 뛸 준비를 했다. 바로 그때 박스가 불길에 휩싸였다.
  빙고는 떨기 시작했다. 그는 겁에 질려 처키 쪽을 뒤돌아봤다.
  "그래, 어서, 빙고."
  처키는 연기 속에서 다급하게 외쳤다.
  "상자를 뛰어넘어, 유리를 깨라구! 뭐가 문제야?"
  지난 일들이 빙고의 뇌리를 스쳐갔다. 빙고는 불 붙은 링을 뛰어넘으라고 
소리치는 스티브의 얼굴을 다시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린 시절 그를 둘러쌌던 
불길과, 엄마의 무덤 앞에서 울던 자기 모습이 떠올랐다.
  빙고는 도저히 할 수 없었다.
  빙고는 다시 처키를 돌아보았다. 처키는 실망의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빙고와 처키는 둘 다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빙고가 무릅써야 할 위험과, 
또 그에 따른 결과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래, 우린 별수 없이 죽게 되는 거야.'
  파르르 떨다가 이젠 감겨 버린 처키의 눈이 빙고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사느냐? 죽느냐?

  처키는 연기에 질식해서 의자에 축 늘어졌다. 그의 핏기 없는 얼굴은 어찌 보면 
평화스럽기까지 했다.
  빙고는 처키의 얼굴을 보면서, 옛날 그가 강가에서 처키를 처음 발견했을 때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날 처키는 심장도 뛰지 않고 있었다. 그때는 빙고가 처키를 
살렸는데 지금은 빙고 때문에 처키가 죽게 되다니.
  '그래 다시 해보자!'
  두려워 떨면서, 빙고는 대들보 위에서 발을 옮겼다. 불꽃이 빙고의 발 아래에서 
화장터의 불꽃처럼 춤을 추었다.
  그때 빙고는 처키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 처키는 아직 
살아 있어. 그러나 얼마나 오래 갈지? 일 분? 한 시간?
  그때 한 생각이 모든 것을 밀쳐내고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금 처키는 그 냇가에 쓰러져 있을 때보다 훨씬 더 희망적이지 않은가. 그때는 
죽어 있었지만 ... 지금은 살아 있다.
  빙고는 처키로부터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는 타오르는 불꽃에 녹아서 젤리처럼 
흐느적거리는 화재 경보기를 응시했다.
  '그래, 그는 아직 살아 있어!'
  빙고는 불길로부터 멀리 떨어진 대들보의 끝으로 걸어갔다. 빙고는 아까보다는 
낮은 온도라 생각하고 몸을 낮게 움츠렸다.
  그리고는 폭발하듯 튕기며 뛰기 시작했다. 박스들을 향해서.
  주위가 점점 뜨거워졌다. 그의 시야는 온통 밝은 오렌집 빛으로 일렁였다. 
경보기는 불꽃 너머에 있었다. 빙고는 그의 뒷발로 대들보를 박차고 뛰어오르며 
앞발을 뻗었다.
  빙고의 몸이 허공에 떴다. 배에 있는 털이 불꽃에 그을려 꾸불꾸불하고 시커멓게 
되었다. 벽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그의 앞발이 딱딱한 조각에 닿았다. 그 순간 빙고는 그것이 화재 경보기라는 
걸 알았다. 빙고는 앞발에 더욱 힘을 주었다.
  거의 들리지 않는 소리와 함께 유리막이 깨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빙고는 경보기를 눌렸다.

  시내의 다른 편에서는, 경찰차가 80마일의 속력으로 거리를 질주하는 레니의 차를 
뒤쫓고 있었다.
  "저 차를 따돌릴 수 있겠어?"
  엘리가 소리쳤다.
  "보고만 있으라구!"
  레니가 자신있게 외쳤다. 그는 핸들을 오른쪽으로 힘껏 꺾었다. 차는 큰 소리와 
함께 오른쪽으로 미끄러져 나갔고, 엘리는 왼쪽으로 쏠려 레니의 어깨와 부딪쳤다.
  그들이 커브를 다 돌았을 때, 거기엔 이미 경찰차들이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었다.
  끼이이이이이익익익익...
  레니는 브레이크를 있는 힘껏 밟았다. 차는 좌우로 흔들리며 미끄러졌다. 경찰들은 
모두 차에서 뛰어내려 인도 쪽으로 몸을 피했다.
  차가 바리케이드에서 고작 몇 인치 앞에 멈추자, 거기엔 오직 한 목소리만이 
들리고 있었다.
  그것은 모든 차의 라디오에서 나오는 패커스 게임의 중계 방송이었다.
  "...패커스는 게임 종료 사십 초를 남기고 다시 정렬하고 있습니다."
  레니는 재빨리 그의 리모콘을 지어 눌렀다. 그러자 요란한 금속성 소리가 길을 
따라 들려왔다. 그것은 아까 열렸던 차고의 문들이 다시 일제히 닫히는 소리였다.
  그리고 창고의 타이머도 카운트 다운을 멈췄다.
  "...그리고 데브린 오십사 야드 필드골을 시도하려 하고 있습니다."
  "뭐하는 거야, 레니?"
  엘리가 물었다.
  "우리는 지금 포위됐는데 리모콘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어?"
  "네가 내 두목이라도 되냐!"
  레니가 맞받았다. 그는 다시 리모콘을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누르고, 또 
눌렀다. 근처의 차고 문들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일제히 열렸다 다시 닫혔다.
  "아이의 햄버거가 있다네, 아이는 지금 없다네."
  그는 단조로운 목소리로 노래했다.
  "아이는 없다네..."
  차고 안의 타이머도 다시 가다가 곧 멈췄다.
  경찰차의 문 뒤에 숨어서 경관이 핸드 마이크를 들고 소리쳤다.
  "아이를 보내라, 그러면 해치지 않겠다!"
  엘리는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소리쳤다.
  "데브린의 마지막 킥이 실패하는 걸 확인한 후에 보내 주겠다. 그러면 애는 
안전할 것이다."
  경관이 다시 핸드 마이크를 들고 대답했다.
  "잠시만 기다려라, 생각해 보겠다."
  "뭘 생각해요?"
  데브린 부인이 소리쳤다.
  "뭘 생각해요? 우리 아이는 요?"
  그녀의 말에 대답도 없이 경관은 차 속으로 몸을 기울여 무전기를 잡았다.
  "통제실, 통제실, 풋볼 경기장을 연결하라. 초긴급 사태이다."
  "당신 지금 뭐하는 거예요?"
  데브린 부인이 물었다.
  "우선 중요한 일부터 해야죠."
  경관이 대답했다.
  데브린 부인은 기가 막혀 입이 벌어지고 말았다. 충격적인 침묵 속에서 
아나운서의 목소리만이 라디오에서 계속되었다.
  "...그린베이가 작전타임을 요청했습니다. 그들은 데브린에게 마지막 킥에 대해서 
지시를 하려나 봅니다. 데브린은 지금 선수 대기석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여보세요?"
  데브린의 목소리가 무전기에서 들려왔다.
  "나는 그린베이의 코넬리 경관이요."
  경관이 무전기에 대고 얘기했다.
  "우리가 지금 당신 아이를 데리고 있소. 모든 게 잘 해결됐으니 나가서 처키를 
위해 멋진 킥을 날려 주시오."
  "물론이죠!"
  데브린 씨는 마음이 놓인 듯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고맙소, 경관!"
  경관이 무전기를 내려놓기도 전에 데브린 부인이 그의 등을 후려쳤다.
  "어떻게 그렇게 얘기할 수가 있어요?"
  그녀는 울부짖었다.
  "이 거짓말쟁이. 이 살인마..."
  "이봐요, 부인."
  경관이 그녀를 밀어내며 말했다.
  "우리는 모두 패커스 팀에 돈을 걸었다구요. 그리고 저놈들이 지금 허풍을 떨고 
있는지도 모른다구요."
  "이제 시간이 없다, 경과!"
  엘리의 목소리가 그들의 차에서 들려왔다.
  경관은 다시 핸드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그래, 좋다! 우선 아이부터 보여달라."
  "아이는 여기 없다."
  엘리가 대답했다.
  "여기 없다니?"
  경관이 어이가 없다는 듯 외쳤다.
  "그럼 어디 있나?"
  "곧 찾게 될 거다."
  엘리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어떤 상태로 아이를 찾는가는 게임의 결과에 달려있다."
  
    폭탄을 찾아라!

  처키가 깨어났을 때 그는 창고의 바닥에 누워 있었다. 방화모를 쓴 두 명의 
얼굴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빙고는 폭탄 가방이 들어 있는 박스 옆에서 마구 짖어 대고 있었다.
  "저 개가 왜 저러지?"
  소방관 하나가 처키에게 물었다.
  "신경 쓰지 말라구."
  다른 한 소방관이 말했다.
  "인명 구조반이나 불러!"
  처키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았다. 서서히 모든 게 
기억났다. 화재, 불은 이미 꺼져 있었다. 빙고가 어떻게 경보기를 울렸나 보다. 
처키를 묶은 밧줄. 그것은 풀려 있었다. 폭탄.
  처키는 벌떡 일어나서 빙고를 쳐다봤다.
  "기다려요! 폭탄이 있어요! 박스 안의 가방에 시한 폭탄이 들어 있어요! 그놈들은 
그걸 아무데서나 폭발시킬 수 있다구요!"
  소방관 하나가 상자 쪽으로 가서 상자를 기울였다. 그러자 열댓 개의 똑같은 
가방이 쏟아져 나왔다.
  "이곳은 가방 공장이라구, 얘야."
  소방관이 말했다.
  "이 중에서 어느 거니?"
  "빙고!"
  처키가 대답 대신 소리쳤다.
  "네가 찾아야 해!"
  빙고는 가방이 있는 곳으로 뛰어가서 미친 듯이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는 마침내 
가방 하나 위에 발을 얹었다.
  "확실하니?"
  처키가 물었다.
  "나는 그 옆에 있는 가방이라고 생각했는데!"
  "왈!"
  빙고가 아니라는 듯이 짖었다.
  "그래, 그래!"
  처키가 말했다.
  "어서 그것을 치워."
  빙고는 가방을 이에 물고 문 밖으로 뛰어 나갔다. 처키는 빙고의 이에서 
금방이라도 폭탄이 터질 것 같아 심장이 마구 뛰었다.

  다시 시내. 경찰의 바리케이트가 오후 거리의 바람마저 막고 있는 것 같았다. 
데브린 부인은 긴장감에 혼자 서 있기가 힘들어 치키의 팔을 꽉 붙잡고 있었다.
  "... 참 어려운 상황이군요. 데브린은 오십삼 야드 킥에서 최선을 다해야겠군요. 
이제 경기 종료까지는 사십 초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패커스 팀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찬스입니다. 데브린, 준비하고... 신중해 
보이는군요. ...잡았습니다. ...찼습니다."
  레니는 리모콘을 손에 쥐고 만지작거렸다. 지금은 타이머가 꺼진 상태였다. 하지만 
만일 데브린이 킥에 성공한다면...
  "네 실패군요! 게임은 아직 동점입니다!"
  경관은 맥이 빠져서 들고 있던 핸드 마이크를 떨어뜨렸다. 데브리 부인은 
안도감에 힘이 풀려 치키의 품에 기댔다. 다른 경찰들도 어이가 없는지 서로 얼굴만 
쳐다봤다. 근처 차고의 문들은 아직 닫혀 있었다.
  레니와 엘리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야호! 이제 됐어! 성공이야!"
  그러나 경관의 얼굴은 화가 나서 빨개졌다. 그는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반드시 
이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그의 몇 주일치 봉급이 연기처럼 날아가게 된 것이다.
  "이제 저 녀석들을 체포해야겠군. 순순히 차에서 내리시지."
  경관이 핸드 마이크에 대고 외쳤다. 그러나 엘리가 총을 꺼내어 경관에서 
겨냥했다. 막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차문 뒤에 숨어 있던 경관 하나가 엘리의 
팔을 꺾었다.
  총이 발사되었고, 빗나간 총알이 레니에게 맞았다.
  "아아아아악!"
  레니는 엄청난 고통에 오른팔을 움켜잡고 쓰러졌다.
  그 바람에 레니가 들고 있던 리모콘이 길바닥에 떨어졌다.
  그런데 근처의 차고의 문들이 다시 열리는 것이다.
  "저게... 작동 됐어."
  치키가 말했다.
  과과과과... 쾅쾅쾅!
  멀리서 엄청나게 큰 폭발음이 들려왔다.
  그런데 더 크고 처절한 소리가 폭발음에 이어서 터져 나왔다.
  그것은 절망에 찬 데브린 부인의 울부짖음이었다.
  
    내 사랑! 빙고

  처키는 정신이 들었다. 아직 눈을 뜰 수 없었으나 의식은 또렷했다. 조금씩 조금씩 
그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소방관들이 자신을 병원으로 데려온 
것이 생각났다. 그것은 창고 밖에서 어마어마한 폭발이 있은 다음이었다.
  폭발이 있었을 때, 그는 빙고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엔 어떻게 됐지? 
앰뷸런스, 병원, 의사들의 질문. 아주 중요한 질문이었는데 대체 그런데 무엇에 관한 
거였지?
  그는 눈꺼풀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소리도 들려 왔다.
  "아이는 괜찮겠죠?"
  누군가가 낮게 소근됐다.
  "그에게 말을 시켜도 됩니까?"
  다른 사람이 말했다. 
  처키는 눈을 떴다. 어렴풋이 어머니의 어깨를 감싸고 서 있는 아버지가 보였다. 
그리고 치키와 프릭 박사가 옆에 서 있었다.
  "야, 친구."
  홀 데브린이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의 늙은 친구다."
  "아빠?"
  처키가 겨우, 작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는 널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신단다, 처키야."
  이번엔 데브린 부인이 말했다.
  "아버지는 연장전에서 오십이 야드 킥을 성공시켜 게임을 이기셨단다."
  "아,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아버지가 말했다.
  "우리 아들이 한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개에게 콩팥을 기증한 것에 
비하면 내가 한일은 정말 하찮은 거야."
  "그 개는 보통 개가 아니에요, 아빠."
  이번엔 치키가 말했다.
  "빙고는 영웅이라구요!"
  그래, 그랬지! 처키는 모든 것이 기억났다. 빙고는 겨우 목숨을 구했었다. 그런데 
그에겐 이식할 콩팥이 필요했다. 그래서 처키는 자기 콩팥을 기증했던 것이다.
  "비, 빙고는... 어, 어떻게...?"
  처키가 물었다.
  "간신히 수술에 성공했단다."
  프릭 박사가 말했다.
  "폭탄 가방이 천만 다행으로 빙고의 반대쪽으로 터졌단다. 그렇지 않았다면 네 
콩팥을 이식할 곳이 남아 있지 않았을 게다."
  "빙고는 볼 수 있나요?"
  처키가 가슴을 조이며 물었다.
  "물론이지."
  프릭 박사가 잠시 밖으로 나가서는 휠체어를 가지고 돌아왔다. 데브린 씨가 
처키를 안아서 휠체어에 태우고 복도로 나갔다. 앞장 선 프릭 박사가 문 하나를 
열었다.
  휠체어를 탄 처키가 안으로 들어서려 하자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로 돌아섰다. 몇 
명은 낯이 익었지만 대부분이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레니와 엘리가 수갑을 찬 채 나란히 서 있었고, 코넬리 경관이 그 옆에 있었다.
  그림블비 선생님이 돌아서면서 처키에게 미소를 보냈다.
  스티브와 진저도 허리우드의 푸들들과 함께 있었다. 그리고 듀크와 엠마도 거기에 
있었다. 그들은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장'이라고 쓴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 톰슨 씨 가족도 있었다. 그들 옆으로 네눈, 버니, 빅, 빙고에게 선고를 내린 
판사, 변호사, 검사 그리고 덴버에서 빙고를 잡았던 경찰도 있었다.
  "저 사람들이 어떻게 여기에 왔죠?"
  처키가 물었다.
  데브린 부인이 벙긋 웃었다.
  "저 사람들은 모두 저녁 뉴스에서 빙고의 이야기를 듣고 병 문안을 온 거란다."
  처키는 손으로 바퀴를 굴리며 안으로 들어섰다.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길을 
비켜주며 대견하다는 듯 웃으며 바라보았다.
  레니가 그의 수갑 찬 손을 들어 처키에게 행운을 표시했다.
  엘리도 웃으며 말했다.
  "네 개가 죽지 않기를 바란다!"
  듀크는 처키에게 당근을 하나 주며 인사를 했다.
  그러나 처키는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었다. 그의 눈길은 오직 방 한가운데 있는, 한 
커튼이 드리워진 침대에 고정돼 있었다.
  처키가 다가가 보니 누군가가 그 안에서 빙고와 함께 있었다. 주름진 손이 안에서 
나와 커튼을 젖혔다.
  처키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빙고가 거기에 있었다. 빙고는 흰 붕대로 칭칭 감기고, 여러 개의 기계 장치에 
연결된 호스와 줄에 뒤엉킨 채 꼼짝도 않고 누워 있었다. 눈을 꼭 감고,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살아 있었다.
  빙고의 옆에 서 있는 사람은 키가 크고 회색 머리털을 가졌으며 친절해 보였고, 
영화 속에 나오는 선장 같은 모습이었다.
  "이 개는 이제 네 것이다."
  그 남자가 말했다.
  "잘 돌봐 주도록 해라."
  "아저씨는 누구세요?"
  0처키가 물었다.
  "빙고의 옛 주인이란다."
  남자가 대답했다.
  "너는 이런 얘기를 아니? 옛날에 개를 가진 농부가 있었는데 그 개의 이름은 
빙고..."
  처키의 눈이 커졌다.
  "그러면 그 농부?"
  "그래."
  "그런데 어쩌다 헤어지게 됐죠?"
  그는 그냥 껄껄 웃기만 했다.
  "그 얘기를 하자면 너무 길단다. 얘야."
  처키도 웃음을 지으며 빙고의 머리맡으로 갔다. 그는 얼굴을 붕대가 감긴 빙고의 
얼굴에 살며시 갖다댔다.
  "오, 빙고, 너는 곧 좋아질 거야."
  처키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에겐 네가 필요해, 빙고."
  갑자기 빙고가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는 눈을 한 번 깜빡이더니 머리를 들었다. 
빙고의 눈이 처키를 바라보고는 갑자기 입을 열었다.
  "왈!"
  처키는 뛸 듯이 기뻤다. 모여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프릭 박사가 빙고를 살펴보더니 말문을 열었다.
  "내 생각에는 빙고가 곧 회복될 것 같구나. 처키야, 네 덕분이다."
  처키는 빙고에게 달려들었다.
  "오, 빙고!"
  그는 소리치며 빙고를 끌어안았다.
  "제가 키워도 되죠, 아빠? 그렇죠?"
  방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모든 눈이 데브린씨에게로 향했다.
  그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때 불행하게도 그의 유명한 
맨발에 통증이 왔다. 처키는 마음이 조마조마 하여 침을 꿀꺽 삼켰다.
  "물론 괜찮다."
  데브린 씨가 장난스레 웃으며 대답했다.
  "젠장, 이제 빙고를 위해서 시즌 티켓을 한 장씩 더 사야 되겠구나!"
  병실에서 기쁨의 환성이 울려 나왔다. 사람들은 데브린 씨의 등을 마구 두드리며 
환호했다.
  처키는 빙고를 품에 안았다. 이제야 자기의 인생이 제 모습을 찾았다고 생각하니 
처키의 눈에서는 기쁨의 눈물이 넘쳐 흘렀다.
  빙고도 기쁜지 꼬리를 흔들며 낑낑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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