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ally Correct Bedtime stories
[제임스 핀가너] 정치적으로 올바른 배드타임즈 스토리
< 제임스 핀 가너(JAMES FINN GARNER) >
제임스 핀 가너는 유럽계 백인 남성의 후손으로서 작가이자 코미디언이다.
그가 나무의 시체를 가공하여 책을 펴낸 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베드타임
스토리가'가 처음이라고 한다. 그의 책은 1995년에 걸쳐 불티나게 팔려 세
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지금도 그 인기는 여전하다. '워싱턴 포스트'
지는 그를 "놀라운 재능의 소유자"라고 격찬했고, '런던 데일리 텔레그래
프'지는 그를 "영리한 체하고 듣기 좋게 말하는 아첨꾼"이라고 혹평했지만,
가너 자신은 이 양극단 사이의 어딘가에 진실이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는 현재 생활을 같이하는 배우자와 둘 사이에서 태어난 어린이와 함께 미
국 시카고에 살고 있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순전히 허구의 소산입니다. 책 속에 나오는
이름과 인물과 장소와 사건 들은 모두 작가가 상상력으로 지어낸
것들입니다. 실제 사건이나 실존 인물과 비슷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우연의 결과일 뿐입니다.
'비자르 극단'의 페페,
아만도, 테드, 마테오, 니크, 줄리에타에게,
'팀스터스 아동 인형극단'의
켈킨스 주니어, 빌리, 스미티, 조코에게,
또한 여기서 이름을 다 밝힐 수 없는
수많은 분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협조와 격려를 아끼지 않은 캐롤과 라이스에게도
깊은 감사와 함께 이 책을 바칩니다.
< 머리글 >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널리 알려진 옛날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새롭게
고쳐 쓴 것들입니다. 이 옛날 이야기들은 처음 씌여졌을 때만 해도 확실히
자신의 임무에 훌륭히 이바지했습니다. 그 목적이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를 옹호하고, 인간의 자연스러운 충동을 억압하며, 객관적으로 보아 '나쁜
짓'을 하면 벌을 주고 '착한 일'을 하면 상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그림 형제를 비난하고 싶다 해도, 여성차별이나 환경문제나
소수민족 문화에 무관심했다는 이유로 그들을 탓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
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고향임을 자랑하는 코펜하겐에서는 인어들
의 기본권에 관해 조금이라도 생각해본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고전적인' 이야기들을 재검토하여, 이 이야기들이 처음 씌
어졌을 때보다 훨씬 깨우친 시대를 반영하도록 고칠 기회를 얻었고,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기도 합니다.
이 보잘것없는 책을 쓴 목적은 거기에 있습니다.
처음엔 이 책의 제목을 '현대 세계를 위한 요정 이야기들'(Fairy Stories
For a Modern World)이라고 붙였지만, 명백한 이유 때문에 제목을 바꾸었습
니다('fairy'에는 요정이나 선녀라는 뜻 외에 여자역을 맡은 동성애 남자라
는 뜻이 있기 때문에. 이 제목은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는 편집
자의 지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점을 지적해준 편집자에게
감사와 찬사의 뜻을 전하는 바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시면 내 의도가 무엇인지를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일 뿐입니다. '신체적 외모가 아니라 성
격적 장점으로 평가받은 오리새끼' 같은 몇몇 이야기는 지면이 부족해서 여
기에 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런 종류의 책을 쓸 작정이며, 이 책이 다른
작가들의 올바른 상상력에 자극제가 되고, 또한 우리 아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이 책 속에는 성적.인종적.문화적.민족적.지역적.연령적.용모적.능
력적.체격적.종(種)적.지성편중적.사회경제적.집단이기적.남근중심적.가부
장적 편견들과 그 밖에도 여기서 거론하지 않은 온갖 편견들이 본의 아니게
드러나 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에 그랬다면, 그것은 나의 태만이나 과실이
빚어낸 잘못임을 깊이 사과하는 동시에, 그런 잘못을 고칠 수 있도록 독자
여러분께서 서슴없이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편견에서 완전히 벗어난, 그리고 잘못된 과거 문화의 영향을 깨끗이
씻어낸, 나름대로 의미 있는 문학을 추구하려고 애썼지만, 그래도 몇 가지
실수는 저질렀을 게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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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적으로 올바른 베드타임 스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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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 모자 >
옛날 옛적에, '빨간 모자'라는 이름을 가진 젊은 여자가 넓은 숲 언저리에
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어머니가 싱싱한 과일과 광천수를 광주리에 담아주면서, 그것을 할
머니 댁에 갖다드리라고 '빨간 모자'에게 일렀습니다(이런 심부름이 여자의
일이라서가 아니라, 할머니께 음식을 갖다드리는 것은 친절한 행위이고, 공
동체 의식을 낳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병들어 누워 계시는 게 아니라,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나 완전한 건강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성숙한 어른으로서 충분히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처지였습니다.
그리하여 '빨간 모자'는 광주리를 들고 숲길을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숲은 불길하고 위험한 곳으로 알려져 있어서, 사람들은 여간해서는 발
을 들여놓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춘기에 접어든 '빨간 모자'는 이
제 막 싹트기 시작한 자신의 성적 특징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처럼 뻔
한 프로이트적 이미지에는 겁을 먹지 않았습니다.
할머니 댁으로 가는 도중에 늑대 한 마리가 '빨간 모자'에게 다가왔습니
다. 늑대는 광주리 속에 뭐가 들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건강에 좋은 음식인데, 우리 할머니께 갖다드릴 거야. 물론 우리 할머니
는 자신을 충분히 돌볼 수 있는 성숙한 어른이시지만."
'빨간 모자'가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늑대가 말했습니다.
"어린 계집애가 이런 숲길을 혼자 다니는 건 위험해."
"너의 그 성차별적인 말투는 참으로 불쾌하지만, 안들은 걸로 하겠어. 너
희 늑대들은 전통적으로 사회에서 따돌림을 받아왔으니까. 그 스트레스 때
문에 그런 세계관을 갖게 된 건 아주 당연해. 자, 난 이제 가봐야겠어."
'빨간 모자'는 숲 속으로 난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갔습니다.
하지만 사회의 아웃사이더인 늑대는 직선적인 서양식 사고방식에 노예처럼
맹목적으로 집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할머니 댁으로 좀더 빨리 갈 수 있는
지름길을 알고 있었습니다.
늑대는 재빨리 집 안으로 뛰어들어가 할머니를 잡아 먹었습니다. 늑대 같
은 육식동물한테는 지극히 정당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늑대는 할머
니의 잠옷을 입고 침대로 들어갔습니다. 늑대는, 남성은 이래야 하고 여성
은 저래야 한다는 따위의 완고하고 저농적인 관념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
에, 아무 거리낌없이 그렇게 할 수가 있었습니다.
마침내 '빨간 모자'가 오두막으로 들어와서 말했습니다.
"할머니, 지방과 염분이 없는 음식을 가져왔어요. 할머니는 집안의 어른으
로서 자손을 낳아 키우고 가르치는 역할을 맡고 계시니까, 존경을 받아 마
땅하죠."
침대에서 늑대가 부드러운 소리로 말했습니다.
"얘야. 좀더 가까이 오렴. 내가 널 볼 수 있도록 말이다."
"어머나. 할머니가 박쥐처럼 시각적 장애를 겪고 있다는 걸 깜박 잊었군
요. 할머니 눈은 정말 크네요!"
"너무나 많은 것을 보고, 그 많은 것을 기꺼이 받아 들여서 그렇단다."
"할머니 코는 정말 크네요. 물론 상대적으로 크다는 뜻일 뿐. 할머니 코
자체는 나름대로 매력적이에요."
"너무나 많은 냄새를 맡고, 그 많은 냄새를 기꺼이 받아들여서 그렇단다."
"할머니 이는 정말 크네요!"
"나는 내 신분과 직업에 만족하고 있단다."
늑대가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침대에서 뛰쳐나와 '빨간 모자'를 발톱으로
움켜잡았습니다.
'빨간 모자'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늑대가 여장(女裝) 취미를 가진 것에
놀랐기 때문이 아니라, 늑대가 그녀의 사적 공간을 고의로 침범했기 때문입
니다.
때마침 지나가던 나무꾼(그는 목재 연료 공급자라고 불리는 것을 더 좋아
합니다)이 비명을 들었습니다. 오두막 안으로 뛰어들어간 나무꾼은 늑대와
젊은 여자 사이에 난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싸움판에 끼여들려
고 했습니다. 하지만 나무꾼이 도끼를 쳐들자 '빨간 모자'와 늑대는 둘 다
싸움을 그쳤습니다.
"이봐요,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예요?"
'빨간 모자'가 쏘아붙였다.
나무꾼을 눈을 슴벅거리며 뭐라고 대꾸하려 했지만, 아무 대답도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꼭 네안데르탈인처럼 뛰어들어와서는, 무기를 앞세우고 자기 생각대로 하
려 들다니!"
'빨간 모자'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성차별주의자! 종(種)차별주의자! 남자가 도와주지 않으면, 여자와 늑대
는 자기 문제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건가요? 어떻게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죠?"
이때 '빨간 모자'의 감동적인 연설을 들은 할머니가 늑대 입에서 뛰쳐나오
더니, 나무꾼의 도끼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단칼에 베어버렸습니다.
이런 시련을 겪은 뒤, '빨간 모자'와 할머니와 늑대는 하나의 목표를 공유
하고 있다는 일종의 연대감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상호 존중과 협력에 기초한 새로운 형태의 가족 공동체를 꾸미기로
결의하고, 그후 오랫동안 숲속에서 함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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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적으로 올바른 베드타임 스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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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거벗은 임금님 >
아주 먼 옛날, 어느 먼 나라에,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항상 이곳저곳 떠
돌아다니는 재봉사가 살고 있었습니다.
재봉사들은 낯선 고장에 가면 대개 혼자 얌전히 지내면서, 그곳 주민들이
지키는 관습과 예절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조심합니다.
그런데 이 떠돌이 재봉사는 지나치게 사교적인데다 예의 없는 사람이라서,
낯선 마을에 들어가자마자 주막을 찾아가 술을 퍼마시고, 여종업원들의 사
적 공간을 침해하고, 땜장이나 거름꾼이나 장사꾼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곤
했습니다.
이를 참다 못한 술집 주인이 재봉사를 당국에 고발했습니다. 경찰관은 재
봉사를 붙잡아서 임금님 앞으로 끌고 갔습니다.
여러분도 짐작하시겠지만, 임금님은 평생 동안 군주제의 절대적 정당성과
남성의 타고난 우월성을 굳게 신봉하고 있었기 때문에 허영심이 강하고 지
혜가 의심스러운 폭군이 되어 있었습니다.
재봉사는 임금님의 이런 성격을 한눈에 알아차리고, 그것을 이용하기로 결
심했습니다.
"너를 내 왕국에서 영원히 추방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나한테 부탁할 일은
없느냐?"
임금님이 말하자, 재봉사가 얼른 대답했습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 새 옷 한 벌을 지어드리는 영광을 베풀어주십시오.
제 부탁은 단지 그것뿐입니다. 저는 특수한 옷감을 가지고 있는데, 이 옷감
은 너무도 희귀하여 훌륭해서, 오직 틀별한 사람들 눈에만 보인답니다. 폐
하께서 백성으로 거느리고 싶어할 만한 사람들, 말하자면 정치적으로 올바
르고 도덕적으로 고결하고 지적으로 총명하고 문화적으로 너그러운 사람들,
게다가 술과 담배는 입에 대지도 않고, 성차별적 농담에 낄낄거리지도 않으
며,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보지 않고, 컨트리 뮤직도 듣지 않고, 베베큐도
즐기지 않는 사람들만이 그 옷감을 볼 수 있답니다."
임금님은 잠시 생각한 뒤, 이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왕국와 백성들은 오로지 군자 한 사람이 훌륭해보이도록 하기 위해서만 존
재한다는 생각에 임금님은 우쭐해졌습니다. 파시스트적이고 남성 호르몬적
인 그런 생각이 임금님의 허영심을 부추긴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아내를 전리품으로 얻은 기분, 아니 거기에 열 배, 백 배, 천 배,
만 배, 아니 십만 배나 곱한 것과 비슷한 기분일 것입니다.
그처럼 희한한 옷감은 물론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재봉사는 오랫동안 정상적인 사회의 아웃사이더로 소외당하며 살아왔기 때
문에 나름대로 독특한 도덕 기준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기준에 따
라, 그는 세계 각지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전문직 종사자들의 대표
로서 임금님을 속이고 곤경에 빠뜨리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했습니
다.
그래서 그는, 엄밀하게 객관적인 현실감각에서 보면 사실상 존재하지도 않
는 옷감을 마르고 바느질하고 부지런히 일하는 척하면서 임금님을 감쪽같이
속일 수 있었습니다.
재봉사가 일을 다 끝냈다고 보고하자, 임금님은 새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섰
습니다.
거울에 비친 것은,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나던 날처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피둥피둥하게 살찐 알몸뚱이뿐이었습니다. 농민을 착취한 오랜 세월
이 그의 몸을 이처럼 보기 흉한 살덩어리로 바꾸어놓은 것입니다.
임금님 자신도 이것을 보았지만, 아름답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옷이 보이는
척했습니다.
임금님은 그 화려한 새 옷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이튿날 퍼레이드를 열
라고 명령했습니다.
이튿날 아침, 임금님의 지배를 받고 있는 백성들은 성대한 퍼레이드를 구
경하려고 길가에 늘어섰습니다.
생활 방식이 건전하고 머리가 깨어 있는 사람만이 임금님의 새 옷을 볼 수
있다는 소문은 이미 퍼져 있었고, 그래서 백성들은 저마다 자기 이웃보다
더 올바른 생각을 갖기로 다짐했습니다.
요란한 환호성과 함께 퍼레이드가 시작되었습니다.
임금님이 허옇게 살찐 가부장적 몸뚱이를 드러낸 채 당당하게 거리를 지나
가자, 사람들은 모두 임금님의 아름다운 새 옷에 큰 소리로 감탄했습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어린 사내아이만은 예외였습니다. 그 아이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다!"
퍼레이드가 중단되었습니다. 임금님은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군중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이윽고 머리 회전이 빠른 한 농부가 외쳤습니다.
"아니야. 임금님은 옷을 입거나 안 입는 것을 자기 마음대로 선택하는 생
활 방식을 승인하고 계신 것뿐이야!"
군중 속에서 환성이 터져나왔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옷을 벗어 던지고, 자연이 시키는 대로 태양 아래서 알몸으
로 신나게 춤을 추었습니다.
이날부터 이 나라 백성들은 옷을 입거나 안 입는 것을 자기 마음대로 선택
할 수 있게 되었고, 생계 수단을 잃어버린 재봉사는 실과 바늘을 싸들고 떠
났습니다. 그후 그의 소식은 두번 다시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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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마리 아기 돼지 >
옛날 옛적에, 아기 돼지 세 마리가 서로를 존중하고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 셋은 그 지역에서 나는 재료를 이용하여 제각기 취향에 맞는 집을 한
채씩 지었습니다. 한 마리는 볏짚으로 집을 지었고, 또 한 마리는 나뭇가지
로 집을 지었고, 나머지 한 마리는 진흙을 네모나게 빚어서 작은 가마에 넣
고 구운 벽돌로 집을 지었습니다.
집이 완성되자 아기 돼지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자주적이고 평화로운 생활
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목가적인 생활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영
토확장주의 사상을 가진 크고 못된 늑대 한 마리가 나타난 것입니다. 늑대
는 아기 돼지들을 보고, 신체적인 의미에서 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인 의
미에서도 심한 허기를 느꼈습니다.
돼지들은 늑대를 발견하고, 볏집으로 지은 집으로 달아났습니다. 늑대는
그 집으로 쫓아 달려와, 문을 쾅쾅 두드리며 외쳤습니다.
"아기 돼지들아. 아기 돼지들아. 나 좀 들여보내 다오."
"자신의 가정과 문화를 스스로 지키는 우리 돼지들은 너의 무력 시위를 조
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기 돼지들은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늑대는 아기 돼지들을 잡아먹고 그들의 영토를 빼앗는 것이 자신에
게 주어진 운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호락호락 물러설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늑대는 입김을 후후 불어서 볏짚으로 지은 집을 쓰러뜨렸습니다.
놀란 돼지들은 나뭇가지로 지은 집으로 달아났습니다. 늑대가 바싹 뒤쫓아
왔습니다.
볏짚으로 지은 집이 서 있던 곳에서는 다른 늑대들이 땅을 사들여 바나나
농장을 경영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뭇가지로 지은 집 앞에서 늑대는 다시 문을 쾅쾅 두드리며 외쳤습니다.
"아기 돼지들아. 아기 돼지들아. 나 좀 들여보내 다오!"
"지옥에나 떨어져라! 육식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압제자 놈아!"
아기 돼지들은 큰 소시로 대답했습니다.
늑대는 우월감에 사로잡혀 돼지들을 비웃었습니다. 그리고는 속으로 생각
했습니다.
'저놈들의 방식은 너무 유치해. 저 어린 놈들이 죽는 꼴을 보는 건 유감스
러운 일이지만, 그래도 영토 확장을 위한 진보는 멈출 수 없어.'
그래서 늑대는 나뭇가지로 지은 집을 푸푸 후후 불어서 넘어뜨렸습니다.
돼지들은 벽돌로 지은 집으로 달아났습니다. 늑대가 그 뒤를 바싹 따라왔
습니다.
나뭇가지로 지은 집이 서 있던 곳에서는 다른 늑대들이 리조트 타운을 건
설했습니다. 이곳에 세워진 콘도들은, 늑대들이 저마다 편리한 시간에 찾아
와 휴가를 보낼 수 있도록 공동 분양되었습니다. 원주민인 아기 돼지의 나
뭇가지 집은 유리섬유로 복원되었고, 토산품 가게도 세워졌습니다. 스노클
링과 돌고래쇼도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벽돌로 지은 집 앞에서 늑대는 다시 문을 쾅쾅 두드리며 외쳤습니다.
"아기 돼지들아. 아기 돼지들아. 나 좀 들여보내 다오!"
이번에는 돼지들의 반응이 좀 달랐습니다. 아기 돼지들은 단결의 노래를
합창하고, 항의서를 작성하여 국제연합에 보냈습니다.
이제는 늑대도 육식주의자의 관점에서 사태를 보려하지 않는 돼지들의 태
도에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늑대는 씨근거리며, 푸푸 후후 푸푸 후후 ── 힘차게 입김을 불었
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더니, 그 자리에 쓰려져 죽었습니
다.
지방질은 많은 음식을 과식한 탓에 심장마비를 일으킨 것입니다.
세 마리 아기 돼지는 정의가 승리한 것을 기뻐하며, 늑대의 시체 주위에서
잠시 춤을 추었습니다.
다음에 해야 할 일은 고향을 해방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고향 땅에
서 쫓겨난 다른 돼지들을 규합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결성된 무장집단 '돼
지 산디니스타'는 기관총과 바주카포로 리조트 타운을 공격하여 잔인무도한
늑대 압제자들을 괴멸하고, 서반구의 나머지 늑대들에게는 돼지들의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는 경고를 보냈습니다.
뒤이어 돼지들은 의무교육과 의료보험제도를 실시하고 모든 국민들에게 싼
값으로 주택을 공급하는 모범적인 사회민주주의 국가를 세웠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늑대는 비유적인 개념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쓰
는 과정에, 실제로는 어떤 늑대도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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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적으로 올바른 베드타임 스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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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롬펠슈틸츠킨 >
먼 옛날, 어느 먼 왕국에, 경제적으로 불우한 방앗간 주인이 살고 있었습
니다. 그는 초라한 집에서 외동딸과 단둘이 살았는데, 딸은 독립심이 강한
젊은 여자로 이름은 에스메랄다였습니다.
방앗간 주인은 자신을 사회의 낙오자로 만든 경제체제에 분노하기는 커녕,
오히려 자신의 가난을 못내 부끄러워했고, 그래서 늘 벼락부자가 될 수 있
는 방법만 찾고 있었습니다.
'메스메랄다를 돈 많은 남자한테 시집 보낼 수 있다면, 딸에도 만족할 테
고, 나도 죽을 때까지 다시는 일하지 않아도 될 텐데.'
방앗간 주인의 생각은 이처럼 성차별적이고 고리타분했습니다. 이 몽매한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던 그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에스메랄다가 흔해빠진 지푸라기를 실처럼 짜서 황금을 만들 수 있다는
소문을 퍼뜨리자. 그러면 돈 많은 남자들의 관심을 끌어서 에스메랄다를 부
자한테 시집 보낼 수 있을 거야.'
소문은 들불처럼 순식간에 나라 전역에 퍼져갔고, 이내 왕자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왕자라는 신분에 있는 대다수 남자들처럼 탐욕스럽고 어리숙한 왕자는 소
문을 곧이곧대로 믿고, 성에서 열리는 오월절 축제에 에스메랄다를 초대했
습니다.
그러나 에스메랄다가 도착하자, 왕자는 그녀를 지하 감옥에 집어넣고, 그
곳에 가득 널려 있는 지푸라기로 황금을 만들라고 명령했습니다.
지하감옥에 갇힌 에스메랄다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흐느껴 울었습니다. 그녀가 가부장제의 착취구조를 이때만큼
절실히 깨달은 적이 일찍이 없었습니다.
그녀가 울고 있을 때,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쓴 작은 체구의 사내가 홀연히
나타났습니다.
"왜 울고 있지?"
그가 물었습니다.
에스메랄다는 흠칫 놀랐지만, 순순히 대답했습니다.
"왕자님이 여기 있는 지푸라기를 모조리 황금으로 만들어놓으라고 명령하
셨어요."
"그런데 왜 울고 있지?"
그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 일은 할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아저씨는 누구세요? 무슨 특별한 능
력이라도 갖고 계신가요?"
남다른 체격을 가진 남자는 껄껄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아가씨는 지나치게 좌뇌로만 생각하고 있군. 하지만 아가씨는 운이 좋아.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방법을 내가 가르쳐주지. 하지만 그 대신 내가 원하
는 것을 나한테 주겠다고 먼저 약속해야 돼."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에스메랄다는 그렇게 하겠노라고 약속했습
니다.
지푸라기를 황금으로 바꾸기 위해, 그들은 지푸라기를 가까운 협동농장으
로 가져갔습니다.
농부들은 그 지푸라기를 엮어서 낡은 초가지붕을 새로 지었습니다. 습기로
눅눅했던 집 안이 새로 지은 지붕 덕택에 건조해지자, 농부들은 건강이 좋
아지고, 노동생산성도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현지에서 먹고도 남을 만큼 풍
작을 이루었습니다. 그야말로 기록적인 수확량이었습니다.
어린이들은 한결 튼튼해지고 키도 커졌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열심
히 공부했고, 왕국은 차츰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탈바꿈했습니다. 경제
적 불평등이나 성차별은 완전히 사라지고, 유아사망률도 크게 낮아졌습니
다.
당연한 일이지만, 왕자는 노도처럼 일어난 군중에게 붙잡혀, 궁전 밖에서
쇠스랑에 찔려 죽었습니다.
세계 전역에서 이 나라에 투자하는 돈이 쏟아져 들어오자, 농민들은 그들
에게 지푸라기를 아낌없이 가져다 준 에스메랄다를 기억해내고, 그 보답으
로 그녀에게 황금이 가득 들어 있는 궤짝을 주었습니다.
이런 일이 모두 이루어지자,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쓴 작은 체구의 사내는
껄껄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그게 바로 지푸라기를 황금으로 바꾸는 방법이지."
그리고 표정을 험상궂게 바꾸며 위협적인 목소리로 덧붙였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다 끝났으니까, 이제는 아가씨가 약속을 지킬 차례야.
아가씨는 처음 낳은 아기를 나한테 주어야 돼!"
그러자 에스메랄다는 매섭게 대꾸했습니다.
"자식을 낳고 안 낳고는 내 자유에요. 그걸 간섭하는 사람과는 상대도 하
고 싶지 않아요!"
정면 도전이 아니라 수직 도전을 받은 남자는 에스메랄다의 목소리에 담겨
있는 신념에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술을 바꾸기로 마음먹고, 교활하
게 말했습니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도록 하지. 아가씨가 내 이름을 알아맞힐 수 있으
면, 우리가 맺은 계약에서 아가씨를 풀어주겠어."
"좋아요."
에스메랄다는 손가락으로 턱을 톡톡 두드리며 잠시 생각한 뒤에 대답했습
니다.
"당신 이름은...... 오오, 모르겠어...... 혹시...... 룸펠슈틸츠킨?"
"아아아아악!"
표준치 이하로 키가 작은 사내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았지?"
"당신은 '키 작은 사람들의 권리 증진을 위한 세미나'에서 받은 명찰을 아
직도 달고 있잖아요."
룸펠슈틸츠킨은 화가 나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발을 굴렀습니다. 그
순간 땅이 쫙 갈라지면서 지하에서 솟구친 유황 연기가 그를 삼켜버렸습니
다.
에스메랄다는 황금을 가지고 캘리포니아로 가서 산아제한 클리닉을 열었습
니다. 여기서 그녀는 다른 여성들에게 인간 재생산 시스템에 예속당하지 않
는 법을 가르치면서, 자신의 재능을 맘껏 발휘하여 일을 몰두하는 독신자
로, 생애가 끝나는 날까지 만족스럽게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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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적으로 올바른 베드타임 스토리 │
└──────────────────┘
< 상호의존적인 염소 삼형제 >
먼 옛날, 어느 아름다운 산자락에 염소 삼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음매'였고, 그들은 아주 사이좋은 가족이었습니다.
겨울에는 푸른 풀이 우거진 골짜기에서 싱싱한 풀을 뜯고, 자연법칙에 따
라 염소다운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여름이 오면 그들은 더욱 향기로운
목초가 자라는 산중턱으로 올라가곤 했습니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어느 한
곳에 지나친 풀뜯기를 피함으로써, 골짜기의 생태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
습니다.
산중턱의 목초지로 가려면, 염소들은 낭떠러지에 걸려 있는 다리를 건너야
했습니다.
여름이 오자, 염소 한 마리가 다리를 건너려고 길을 떠났습니다. 이 염소
는 삼형제 가운데 막내였고, 따라서 몸집도 제일 작았습니다.
다리에 이르자, 막내 염소는 안전모의 끈을 단단히 잡아매고 다리 난간을
움켜잡았습니다. 그런데 다리를 막 건너기 시작했을 때, 저 아래쪽에서 위
협적으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다음 순간, 트롤 --- 털투성이에다 지저분하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난쟁
이 --- 이 난간을 뛰어넘어 다리로 올라왔습니다. 그리고는 독특한 억양을
붙여서 말했습니다.
"야아아아아앗! 나는 이 다리의 수호자다. 염소들은 이 다리를 건널 권리
는 갖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 다리를 건너려고 하는 염소는 내가 모조리 잡
아먹겠다!"
"하지만 왜요, 트롤 씨?"
염소가 우는 소리로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트롤이고, 그걸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지. 트롤에
게는 꼭 필요한 게 몇 가지 있는데, 염소를 잡아먹는 것도 그 중 하나란 말
이다. 그러니까 너는 트롤의 요구를 존중해주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혼쭐이 날 테니까."
염소는 겁이 질린 나머지, 더듬거리며 말했습니다.
"알았어요, 아저씨. 저를 잡아먹는 것이 아저씨가 더욱 완벽한 트롤이 되
는 데 도움이 된다면, 저한테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거예요. 하지만 제
형을하고 먼저 의논해보지 않고는 제 마음대로 그런 행동을 취할 수가 없어
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좋다. 그럼 어서 다녀오거라."
염소는 재빨리 골짜기로 되돌아왔습니다.
다음에는 삼형제 가운데 둘째 염소가 다리로 다가왔습니다. 이 염소는 처
음에 왔던 막내보다 나이가 많았고, 따라서 몸집도 컸습니다(나이가 많고
키가 크다고 해서, 그것이 둘째를 막내보다 훌륭하고 가치 있는 염소로 만
들어준 것은 아닙니다).
그가 막 다리를 들어섰을 때, 트롤이 앞을 막았습니다.
트롤은 둘째 염소에게 말했습니다.
"조물주는 나를 트롤로 만들었고, 나는 트롤이라는 내 신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나는 트롤로서의 삶을 되도록 충실하고 효과적으로 살 권리가 있
다. 그런 내 권리를 부정하겠느냐?"
"제가요? 천만에요!"
염소는 당당하게 외쳤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가서 너를 잡아먹는 동안 거기 꼼짝말고 서 있거라. 도망
갈 생각은 아예 않는 게 좋을 것이야. 만약 그랬다가는, 그걸 나에 대한 모
독으로 간주할 테니까."
트롤은 염소의 사적 공간을 침해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한테는 가족이 있답니다. 제가 가족의 의견도 물어보지 않고 제
마음대로 잡아먹히는 것은 너무 이기적인 행위가 아닐까요? 저는 제 가족의
감정도 존중합니다. 제가 없어져서 제 가족이 스트레스를 받게 될 것을 생
각하면, 저는 너무 슬퍼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선......"
"좋다. 그럼 어서 다녀오거라!"
트롤이 외쳤습니다.
"가족의 동의를 얻는 대로 곧장 달려오겠습니다. 아저씨의 권리를 계속 정
지시켜 두는 건 공정하지 않으니까요."
"친절하기 하지."
트롤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염소는 다시 골짜기로 달려 내려갔습니다.
배가 슬슬 고파지자, 트롤은 염소들에게 정말로 불만을 느끼기 시작했습니
다. 최소한 한 마리만이라도 잡아먹지 못한다면, 염소들은 당국에 고발해야
겠다고 트롤은 굳게 결심했습니다.
세번째 염소가 다리로 다가왔을 때, 트롤은 그 염소의 몸집이 자기보다 거
의 갑절이나 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게다가 크고 날카로운 뿔과 단단하고
억센 발굽까지 갖고 있었습니다.
트롤은 염소들을 신체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특권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
을 느꼈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내장이 우무처럼 흐물흐물해지자, 트롤은 무
릎을 꿇고 간청했습니다.
"오오, 제발 용서해주세요! 저는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당신과 당신의 아
우들을 이용하려 했습니다. 왜 그런 짓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제 방식이 잘
못되었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러자 세번째 염소도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모든 책임을 당신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지요. 우리의 존재와
최상품으로 치는 고기 맛이 당신을 이런 상황으로 몰아넣은 것입니다. 내
아우들도 나도 모두 고통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용서할 게 아
니라, '당신'이 '우리'를 용서해주어야 합니다."
트롤은 흐느껴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닙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저는 당신들 모두를 위협하고 못살게 굴
었습니다. 오직 나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그런 못된 짓을 한 것입니다.
저는 너무나 이기적이었습니다!"
그러자 염소는 이 말을 수긍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이기적이었습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 목숨만 무
사히 건지고 싶어했을 뿐, 당신의 배고픔을 완전히 무시해버렸습니다. 제발
나를 잡아먹으세요!"
"아닙니다. 당신이 저를 뿔로 받아서, 비정하고 이기적인 나를 이 다리에
서 떨어뜨려야 합니다."
그러자 염소가 말했습니다.
"그런 짓은 절대로 하지 않겠습니다. 먼저 유혹한 건 우리 쪽이니까요.
자, 나를 잡아먹으세요. 어서요."
"분명히 말하지만......"
트롤은 일어나서 고집스럽게 말했습니다.
"죄를 지은 쪽은 당신이 아니라 접니다. 자, 어서 나를 이 다리에서 떨어
뜨리세요. 빨리요!"
염소는 뒷다리로 일어서더니 몸을 쭉 펴면서 말했습니다.
"이봐요. 이번 일에 대한 내 책임은 아무도 면제해 줄 수 없다구요. 당신
도 안돼요. 그러니까 어서 나를 잡아먹으란 말예요. 내가 당신 코에다 주먹
을 한 방 먹이기 전에......"
"아니. 지금 나하고 누가 더 죄가 많은지 시합하자는 거야? 나보다 죄가
많은 체하지 마, 이 뿔난 도깨비야!"
"뭐? 뿔난 도깨비라고? 이 냄새나는 털보 녀석아! 죄가 어떤 건지, 내가
가르쳐주마."
이 말과 함께 그들은 맞붙어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깨물고 주먹을 날
리고 발로 걷어차면서, 서로 책임을 망토처럼 뒤집어쓰려고 애썼습니다.
아우 염소 두 마리가 다리로 달려와서 싸움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들은 자
기한테 주어진 책임을 회피한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뭉텅이로 뽑힌 털과
뿔과 이발에 소용돌이치는 싸움판에 끼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작은 다리는 그런 무게를 지탱할 만큼 튼튼하게 지어져 있지 않았
습니다. 다리는 위아래로 출렁이고 좌우로 흔들리다가, 마침내 무너지고 말
았습니다.
트롤과 상호의존적인 '음매' 삼형제는 낭떠러지 아래로 내던져졌습니다.
골짜리 아래로 떨어지면서, 그들은 마침내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았고,
게다가 남들의 운명에 대한 약간의 죄책감까지 덤으로 얻은 것에 위안을 느
꼈습니다.
┌──────────────────┐
│ 정치적으로 올바른 베드타임 스토리 │
└──────────────────┘
< 라푼첼 >
옛날 옛적에, 경제적으로 불우한 땜장이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땜장이가 물질적으로 부족했다고 해서 모든 땜장이가 다 경제적으로 남
들보다 뒤떨어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고전적인 옛날 이야기들에 나오는 전
형적인 땜장이들은 대개 피해자였지만, 이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의 직업이
땜장이이고, 경제적으로 불우한 것은 단지 우연에 지나지 않습니다.
땜짱이 부부가 작은 오두막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 집 옆에는 마녀가 소유
하고 있는 꽤 너른 땅이 이었습니다. 오두막의 창문으로 내다보면, 마녀가
정성껏 가꾼 텃밭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질서에 대한 인간의 추상관념을 자
연에 강요하려는 구역질나는 짓이었습니다.
땜장이의 아내는 아기를 가졌습니다. 하루는 마녀의 텃밭을 바라보다가,
거기서 자라고 있는 상추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남편한
테, 울타리를 넘어가서 상추를 조금 갖다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마침내 굴복한 땜장이는 밤중에 몰래 울타리를 넘어가 상추를 조금 훔쳤습
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그만 마녀한테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마녀는 친절한 마음씨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그렇다
고 해서 모든 마녀 --- 또는 일부 마녀 --- 가 다 친절하지 않다는 뜻은 아
니며, 이 이야기에 나오는 마녀의 권리를 부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마녀
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마녀로서의 기질을 표현할 권리가 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게다가 그 기질은 분명 그녀가 어렸을 적에 받은 교육과
그후의 사회 활동에 포함되어 있는 여러 가지 요인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습
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하자면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불행히도 여기
서는 생략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마녀는 친절한 마음씨가 전혀 없었고, 그래서 땜장이는
겁에 질렸습니다. 마녀는 땜장이의 목덜미를 움켜잡고 물었습니다.
"내 상추를 가지고 어딜 가려는 거지?"
땜장이는 소유 개념에 관해 그녀와 논쟁을 벌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리고 배가 고픈 사람은 상추를 훔칠 만한 용기만 있으면 누구나 상추를 '소
유'할 정당한 권리가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땜장이는 비굴하게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모두 제 마누라 탓입니다. 마누라가 임신했는데, 마님의 싱싱한 상추를
먹고 싶어서 못견디겠다지 뭡니까. 제발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물론 결손
가정도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죽으면 앞으로 태어
날 제 아이는 안정된 구존(具存) 가정에서 자랄 수 없게 됩니다. 그러니 제
발 저를 죽이지 마세요. 제 아이한테서 안정된 가족 구성을 빼앗지 말아 주
세요."
마녀는 잠시 생각한 다음, 땜장이의 목덜미를 놓아주고 한 마디 말도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땜장이는 상추를 가지고 기분 좋게 집으로 갔습니다.
몇 달 뒤, 땜장이의 아내는 남자들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끔찍한 진통 끝
에 귀엽고 건강한 여자아이를 낳았습니다. 부부는 남편이 훔친 상추의 품종
이름을 따서 아기를 '라푼첼'이라고 이름지었습니다.
오래지 않아 마녀가 오두막에 문간에 나타났습니다. 그녀는 텃밭에서 땜장
이의 목숨을 살려준 대가로 아기를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땜장이 부부가 어떻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은 세상에서 아무 힘도 없는 지위 때문에 늘 착취를 면치 못했고, 이
번에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라푼첼을 마녀에게 내
주자, 마녀는 아기를 안고 재빨리 가버렸습니다.
마녀는 아기를 깊은 숲 속으로 데려가 높은 탑에 가두었습니다. 탑이 무엇
을 상징하는지는 그 생김새만으로도 명백할 것입니다.
이곳에서 라푼첼은 성숙한 여인으로 자라났습니다. 탑에는 출입문도 층계
도 없었지만, 꼭대기에 창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창문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은 한가지뿐이었습니다. 라푼첼이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을 아래로 늘어
뜨리면, 그것을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상징하
는지도 분명할 것입니다.
마녀는 라푼첼의 유일한 친구였습니다. 마녀는 탑 발치에 서서 소리치곤
했습니다.
"라푼첼, 라푼첼, 머리카락을 내려주렴.
내가 너의 황금빛 층계를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라푼첼은 순순히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그녀는 오랫동안 자
기 몸을 타인의 운송 수단으로 이용당했습니다.
마녀는 음악을 좋아해서 라푼첼에게 노래를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탑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루는 젊은 왕자가 말을 타고 근처를 지니다가 라푼첼의 노랫소리를 들었
습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으려고 탑으로 가까이 다
가갔을 때, 왕자는 마녀를 발견하고 얼른 말과 함께 나무 뒤로 몸을 숨겼습
니다.
그는 마녀가 라푼첼에게 외치는 것을 보았고, 그러자 탑에서 머리카락이
내려와 마녀가 그것을 타고 올라가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아름다
운 노랫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마침내 마녀가 탑에서 나와 다른 곳으로 사라지자 왕자는 숲에서 나와 소
리쳤습니다.
"라푼첼, 라푼첼, 머리카락을 내려주렴.
내가 너의 황금빛 층계를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머리카락이 창문에서 폭포처럼 떨어졌습니다.
왕자는 그것을 타고 올라갔습니다.
왕자는 라푼첼의 평균 수준을 훨씬 넘는 육체적 매력과 치렁하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보고, 그녀의 성품도 역시 아름다울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
다. 이것은 외모만 보고 여성을 평가하는 사람의 전형적인 방식입니다(그렇
다고 해서 모든 왕자가 오직 외모만 가지고 사람을 평가한다는 뜻은 아닙니
다. 또한 이 이야기에 나오는 왕자가 제멋대로 그런 판단을 내릴 권리는 없
다고 주장할 작정도 아닙니다. 앞에 나온 '자기 권리를 포기한 사람들'의
경우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오오, 아름다운 처녀여, 나는 말을 타고 지나가다가 그대의 노랫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를 위해 다시 한번 노래를 불러주지 않겠소."
왕자가 말했습니다.
라푼첼은 이제껏 남자를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눈앞에 나타난
이 사람을 무엇으로 여겨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는 이상한 생명체처럼 보였
습니다. 덩치가 크고, 얼굴에는 털이 나 있고, 게다가 독한 사향내를 풍기
고 있었습니다. 그녀 자신도 이유를 설명 할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라푼첼
은 이 몇 가지 특징의 결합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에 입을 벌려 노래하기 시
작했습니다.
그때 창문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당장 그만둬!"
마녀가 돌아온 것입니다!
"어떻게...... 여길 어떻게 올라오셨어요?"
라푼첼이 물었습니다.
"비상시에 대비해서 예비용 머리카락을 만들어두었지. 그런데 지금이 바로
그런 때인 것 같군."
마녀가 차갑게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왕자에게 말했습니다.
"내 말 잘 들어, 왕자! 나는 라푼첼을 당신 같은 남자들한테서 떼어놓으려
고 이 탑을 지었어. 나는 라푼첼한테 노래를 가르쳤고, 오랫동안 라푼첼의
목소리를 훈련시켰지. 라푼첼은 앞으로도 계속 여기 남아서, 오로지 나를
위해서만 노래를 부를 거야. 진정으로 라푼첼을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나뿐
이니까."
그러자 왕자가 말했습니다.
"당신들의 상호의존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해도 됩니다. 지금은
우선...... 라푼첼이라고 했나요? 라푼첼의 노래를 듣게 해주세요."
"안돼!"
마녀가 소리쳤습니다.
"나는 당신을 이 탑에서 저 밑에 있는 가시덤불 속으로 던져버리겠어. 그
러면 가시가 당신 눈을 찌를 테고, 당신은 앞으로 평생 동안 자신의 불운을
저주하면서 시골을 헤매다니겠지!"
그러자 왕자가 말했습니다.
"내 이야기를 들으면 생각을 바꾸고 싶어질 겁니다. 나한테는 음반업계에
서 일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 친구들은....... 라푼첼이라고 했나요? 라
푼첼한테 큰 관심을 가질 겁니다. 라푼첼의 노래는 아주 특이하고,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 같아요......"
"그럴 줄 알았어! 당신은 나한테서 라푼첼을 빼앗아 가고 싶은 거지!"
"아닙니다. 내가 바라는 건 당신이 앞으로도 계속 라푼첼을 가르치고 돌봐
주는 겁니다....... 라푼첼의 '매니저'로서."
왕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덧붙여 말했습니다.
"그리고 적당한 때가 오면...... 열흘이나 보름쯤 될까요? 그때쯤 당신은
라푼첼의 재능을 세상에 내놓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돈을 갈퀴로 긁어모
을 수 있을 거예요."
마녀는 이 제안을 생각하느라 잠시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녀의 태도가 눈
에 띄게 부드러워졌습니다. 마녀와 왕자는 레코드와 비디오 계약 문제를 의
논하기 시작했고, 라푼첼을 본뜬 인형과 그 인형에게 걸맞는 축소형 스테레
오를 각각 '라푼첼 인형'과 '멜로디 타워'라는 브랜드로 개발하는 문제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신상품에 대한 아이디어도 내놓았습니다.
두 사람의 수작을 지켜보는 동안, 라푼첼의 의혹은 격렬한 증오심으로 바
뀌었습니다. 오랫동안 그녀의 머리카락은 타인의 운송 수단으로 이용당해왔
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그녀의 목소리도 이용하려 하고 있는 것입니
다.
'정말이지 탐욕에는 남자나 여자나 별차이가 없군.'
그녀는 이 사실을 깨닫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라푼첼은 마녀와 왕자에게 들키지 않고 창문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갔습니
다. 마침내 창가에 이르자 얼른 밖으로 나가, 마녀가 걸어둔 예비용 머리카
락을 타고 내려갔습니다. 탐 밑에는 왕자가 타고 온 말이 기다리고 있었습
니다.
말에 올라탄 라푼첼은 예비용 머리카락을 벗겨서 말등에 싣고, 남근 모양
의 탑 안에서 로얄티와 수수료를 의논하느라 여념이 없는 마녀와 왕자를 남
겨둔 채 떠나버렸습니다.
라푼첼은 말을 타고 도시로 가서, 진짜 층계가 있는 건물에 방을 한 칸 빌
렸습니다.
그후 그녀는 '음악의 무료 보급을 위한 기금'이라는 비영리재단을 설립하
고, 머리카락을 잘라서 기금 모금을 위한 경매에 내놓았습니다.
그녀는 평생 동안 카페와 갤러리에서 무보수로 노래를 불렀고, 그녀의 노
래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이용하여 돈을 버는 짓은 단호히 거부했습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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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적으로 올바른 베드타임 스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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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데렐라 >
옛날 옛적에, 신데렐라라는 젊은 여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를 낳은 생모는 신데렐라가 여렸을 때 돌아가셨습니다. 몇 년 뒤에 아
버지는 과부와 재혼했는데, 계모는 신데렐라보다 나이가 많은 두 딸을 데려
왔습니다. 계모는 신데렐라를 몹시 구박했고, 의붓언니들은 신데렐라를 마
치 무보수 하녀처럼 마구 부려먹었습니다.
하루는 그들의 집에 초대장이 날아들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농민들에
대한 착취를 자축하기 위해, 왕자가 가장무도회를 연다는 것이었습니다.
신데렐라의 의붓언니들은 궁전에 초대되자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값비싼 드레스를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그 옷을 이용하여 타고난 모
매를 비현실적인 여성미의 기준에 맞도록 억지로 바꾸고 예속시킬 작정이었
습니다(그들은 유별나게 못생겨서 이 기준과는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
들의 경우에는 이것이 더한층 비현실적인 기준이었습니다). 계모도 무도회
에 갈 계획이었기 때문에, 신데렐라는 개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 했습니다
(이 표현은 불행히도 종차별적이지만 적절한 비유입니다).
무도회 날이 오자, 신데렐라는 계모와 의붓언니들이 야회복을 입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이것은 정말 만만찮은 일이었습니다. 마치 비인간 동물 시
체의 가공육 10kg을 5Kg들이 소시지 자루 속에 억지로 집어넣으려고 애쓰는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음에는 엄청난 양의 화장품을 덕지덕지 찍어바르는 작업이 이어졌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아예 말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저녁이 오자, 계모와 의붓언니들은 신데렐라에게 집안일을 다 끝내놓으라
고 이르고 궁전으로 떠났습니다.
신데렐라는 슬펐지만, 홀리 니어(페미니스트이며 좌익계 포크송 가수:역
주)의 레코드를 듣는 것으로 마음을 달랬습니다.
그때 갑자기 불빛이 번쩍하더니, 헐렁한 무명옷을 입고 챙 넓은 모자를 쓴
남자가 신데렐라 앞에 나타났습니다. 신데렐라는 그가 남부 출신의 변호사
나 악단장인 줄 알았지만, 그는 곧 자기 신분을 밝혔습니다.
"안녕, 신데렐라. 나는 너의 수호천사란다. 네가 원한다면, 신의 대리인이
라고 해도 좋아. 그런데 무도회에 가고 싶다고? 아름다움에 대한 남성들의
개념에 속박당하고 싶다고? 혈액 순환을 차단할 만큼 몸에 꼭 끼는 드레스
속에 네 몸을 억지로 쑤셔넣고 싶다고? 뼈의 구조를 망가뜨릴 하이힐 속의
네 발을 억지로 집어넣고 싶다고? 비인간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한 화장품을
네 얼굴에 바르고 싶다고?"
"네, 그래요."
센데렐라는 당장 대답했습니다.
수호천사는 긴 한숨을 내쉬고, 그녀의 대한 정치적 교육은 다른 날로 미루
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마술을 부려 신데렐라를 아름답고 눈부신 빛으로 감싼 다음, 눈 깜짝
할 사이에 궁전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날 밤 궁전 밖에는 수많은 마차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습니다. 마차를 여
럿이 함께 타고 온다는 생각은 누구의 머리에도 떠오르지 않았던 모양입니
다.
곧이어 노예 말들이 힘겹게 끄는 황금빛 마차를 타고 신데렐라가 도착했습
니다.
그녀는 몸에 꼭 맞는 비단 드레스를 입고 있었습니다. 이 비단은 아무 의
심도 하지 않는 누에한테서 훔친 것입니다. 그녀의 머리는 진주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이 진주는 열심히 일하는 무방비 상태의 진주조개한테서 강탈한
것이빈다. 그리고 위험한 생각처럼 여겨질지 모르지만, 발에는 아름답게 깎
은 크리스탈 유리로 만든 구두를 신고 있었습니다.
신데렐라가 들어가자, 무도장에 있던 사람들의 머리가 일제히 그녀 쪽으로
돌아갔습니다.
바비 인형(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플라스틱 인형 : 역주) 같은 여자를 이
상적인 여성으로 여기는 남자들은 그 이상형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신데렐라
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욕정을 불태웠습니다. 어릴 적부터 자신의 몸을 경멸
하가도록 길들여진 여자들은 시샘과 적개심이 뒤섞인 눈으로 신데렐라를 노
려보았습니다.
신데렐라의 계모와 의붓언니들은 질투에 눈이 먼 나머지, 신데렐라를 알아
보지 못했습니다.
마상 창시합과 곰 놀리기(곰을 묶어놓고 개를 덤벼들게 하는 구경거리 :
역주)에 대해 친구들과 의논하느라 여념이 없던 왕자도 곧 신데렐라를 보았
습니다. 무도장을 둘러보던 왕자의 눈이 신데렐라의 자태를 재빨리 포착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를 본 순간, 왕자도 거기에 있던 대다수 사람들과 마
찬가지로 한동안 말문이 막히는 일종의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왕자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저 여자야말로 내가 아내로 삼아 우리 왕가의 완벽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손을 수태시킬 만한 여성이다. 그리하여 주위의 모든 왕자들이 나를 부러
워하게 만들 수 있는 여성이다. 게다가 저 여자는 금발에 하얀 피부와 푸른
눈을 갖고 있다!'
왕자는 무도장을 가로질러, 점찍은 희생자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친구들도 신데렐라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무도장에 있던 다
른 사내들도 70세 이상의 노인과 음료를 시종드는 급사들을 제외하고는 모
두 그녀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신데렐라는 자기가 일으키고 있는 소란에 기분이 우쭐해졌습니다. 그녀는
머리를 꼿꼿이 쳐들고 걸으면서, 사회적 지위가 높은 여성처럼 굴었습니다.
하지만 이 소란이 추악한 것, 적어도 사회적 역기능을 갖고 있는 무언가로
변질되고 있다는 사실이 곧 분명해졌습니다.
왕자는 그 젊은 여성을 '소유하겠다'는 결심을 친구들에게 분명히 밝혔습
니다. 하지만 왕자의 결심은 친구들을 화나게 했습니다. 그들도 신데렐라에
게 욕정을 느낀 나머지, 그녀를 소유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내들은 소
리를 지르며 서로 밀쳐대기 시작했습니다.
왕자와 가장 절친한 친구가 두뇌 발달이 좀 뒤떨어지긴 하지만 덩치가 큰
공작이었는데, 그가 무도장 한복판에서 왕자를 가로막고는 '자기'가 신데렐
라를 갖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왕자는 친구의 사타구니를 걷어차는 것으로 자신의 기분을 나타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공작은 일시적으로 전신마비 상태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성적 욕망 때문에 제정신을 잃어버린 다른 사내들이 당장 왕자를
붙잡았습니다. 왕자는 수많은 인간 동물들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남성 호르몬이 광포하게 표출되는 것을 보고, 여자들은 질겁했습니다. 하
지만 싸우는 남자들을 떼어놓으려 해도 도저히 떼어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여자들한테는 신데렐라가 이 모든 말썽의 원인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들은 신데렐라를 에워싼 가운데, 같은 여성에 대한 동정이라고는 전혀 없
는 적대감만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신데렐라는 달아나려고 했지만 실용성과는 동떨어진 유리 구두를 신고 있
어서 도망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그녀에게는 다행한 일이지만, 다
른 여자들도 불편한 구두를 신고 있는 것은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소란이 너무 커졌기 때문에 탑의 시계가 자정을 알리는 소리를 아무도 듣
지 못했습니다.
종이 열두 번 울린 순간, 신데렐라의 아름다운 드레스와 신발은 사라져버
렸습니다. 그녀는 다시 촌스러운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습니다. 계모와 의붓
언니들은 이제 그녀를 알아보았지만, 입장이 난처해질까봐 입을 다물었습니
다.
여자들은 이 마술적인 변신에 깜짝 놀라서 조용해졌습니다.
드레스와 구두의 속박에서 해방된 신데렐라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면서 기
지개를 켜고 옆구리를 득득 긁었습니다. 그리고는 미소를 지으면서 눈을 감
고 말했습니다.
"자, 원한다면 나를 죽이세요, 여러분. 하지만 적어도 나는 즐거운 마음으
로 죽을 거예요."
그녀를 둘러싼 여자들은 또다시 샘이 났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반
응을 보였습니다. 신데렐라에게 앙갚음하는 대신, 그들은 고래수염으로 몸
에 꼭 끼게만든 조끼와 코르셋과 구두를 비롯해서 몸을 옥죄고 있던 옷가지
를 모조리 벗어 던졌습니다.
마침내 속박에서 해방된 그들은 완전한 기쁨에 겨워 속치마만 입은 채 맨
발로 춤을 추고, 팔짝팔짝 뛰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남성의 파괴의 품에 열중해 있는 남자들이 고개를 들었다면, 정숙한 여자
들이 마치 침실에 있는 것처럼 흐트러진 옷차림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남자들은 서로 때리고 주먹을 날리고 발로 걷어차고 할퀴
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 같은 짓을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모두
죽을 때까지 계속했습니다.
여자들은 혀를 찼지만 연민의 정은 전혀 느끼지 않았습니다. 궁전과 왕국
은 이제 그들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맨 처음 취한 공식 조치는, 그들이 벗어 던진 옷들을 죽은 사내들
에게 입힌 다음, 왕자와 그의 친구들이 여장 취미가 있다는 것을 폭로하겠
다고 누군가가 협박하는 바람에 싸움이 일어났다고 언론에 발표하는 것이었
습니다.
그들이 취한 두번째 조치는, 여성들을 위해 편안하고 실용적인 옷만 만드
는 의류협동조합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이어서 그들은 '신더웨어'(신제품 의복의 브랜드 이름임)를 광고하는 간판
을 성 위에 세웠고, 자주적인 결정과 현명하고 독창적인 마케팅을 통해 모
두 --- 심지어는 신데렐라의 계모와 의붓언니들까지도 --- 오래오래 행복하
게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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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적으로 올바른 베드타임 스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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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디록스와 곰 일가족 >
덤불을 지나고 강을 건너 숲 속으로 깊이 들어간 곳에 곰 일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빠 곰, 엄마 곰, 아기 곰 --- 이렇게 핵가족으로 구성된 세
식구는 작은 오두막집에서 마치 인간처럼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이런 생활을 무척 유감스럽게 생각했습니다. 핵가족은 전통적
으로 여자를 노예화하고, 가족 구성원들에게 독선적인 도덕관을 심어주고,
남녀의 역할은 각각 다르다는 고정관념을 다음 세대에 심어주는 데 이바지
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행복하게 지내려고 애썼고, 핵가족의 이런 위험
을 피하기 위해 자식을 부를 때에도 성(性)의 구별이 없는 호칭인 '아기'라
고만 부르는 등 여러 가지 조치를 취했습니다.
하루는 세 식구가 인간의 오두막 같은 작은 집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습니
다.
아빠 곰은 자연식으로 수프를 만들어, 커다란 사발 세 개에 나누어 담았습
니다. 하지만 수프는 조금 전까지 화덕 위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었기 때문
에, 너무 뜨거워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수프가 식도록 놓
아두고, 산책 삼아 이웃 동물을 방문하러 갔습니다.
곰들이 나간 뒤, 멜라닌 색소가 부족한 젊은 여성이 덤불 속에서 나타나
곰 일가족의 오두막집으로 살금살금 다가갔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골디록스(금발의 처녀라는 뜻 : 역주)였는데, 벌써 며칠째
곰들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인간처럼 살고 있는 곰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생물학자였습니다.
한때는 대학교수였지만, 과학에 대한 그녀의 접근방식은 지나치게 공격적이
고 남성적이었습니다. '자연'의 얇은 장막을 찢어 그 비밀을 까발리고, 자
연의 본질을 파헤쳐 이기적인 목적에 이용하고, 이처럼 자연을 모독하는 행
위를 여러 잡지의 투고란에서 자랑스럽게 떠벌렸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대
학에서 쫓겨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못된 생물학자는 한동안 오두막집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의도는 곰들의 목에 무선송신기가 달린 목줄을 맨 다음, 그들의 개
인적(아니,, 곰이니까 동물적이라고 하는 게 옳겠군요) 사생활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의 이동 형태와 그 밖에 생활 방식을 추적하는 것이
었습니다.
이처럼 과학적 스파이 활동밖에는 염두에 없는 골디록스는 곰들의 오두막
집에 몰래 침입했습니다.
부엌에 들어간 그녀는 수프 그릇에 신경안정제를 탔습니다. 그리고는 침실
로 가서 모든 베개 밑에다 덫을 장치했습니다. 약을 먹은 곰들이 한숨 자려
고 침실로 비틀비틀 들어가 베개에 머리를 눕히면, 덫이 작동하여 무선송신
기가 달린 목줄이 그들의 목에 씌워지도록 한다는 것이 그녀의 계획이었습
니다.
골디록스는 득의만면하게 웃으면서 중얼거렸습니다.
"이 곰들은 내가 최고 지위에 올라갈 수 있는 티켓이 될 거야. '진정한'
연구를 하려면 어떤 용기와 배짱이 필요한지, 대학의 그 속물들한테 보여주
어야지!"
그녀는 침실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기다렸습니다.
곰들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끈기있게 기다렸습니다. 하지
만 아무리 기다려도 곰들이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그만 잠이 들
고 말았습니다.
오랜 산책을 끝내고 집에 들어온 곰들은 아침을 먹으려고 식탁에 앉았습니
다. 그러다가 문득 손을 멈추었습니다.
"여보, 당신 수프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나지 않소?"
아빠 곰이 물었습니다.
"그래요. 이상한 냄새가 나요. 네 죽에서도 이상한 냄새가 나니, 아가야?"
엄마 곰이 말했습니다.
"네, 이상한 냄새가 나요. 일종의 화학약품 냄새예요."
아기 곰이 대답했습니다.
의심이 생긴 곰들은 식탁에서 일어나 거실로 들어갔습니다.
아빠 곰이 킁킁 냄새를 맡고 나서 엄마 곰에게 물었습니다.
"여보,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고약한 냄새가 나지 않소?"
"그래요. 고약한 냄새가 나요. 너도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고약한 냄새가
나니, 아가야?"
엄마 곰이 물었습니다.
"네, 고약한 냄새가 나요. 사향내와 땀내 그리고 조금도 상쾌하지 않은 지
독한 냄새예요."
아기 곰이 대답했습니다.
곰들은 점점 높아지는 경계심을 안고 침실로 들어갔습니다.
아빠 곰이 이리저리 둘러보고 나서 엄마 곰에게 물었습니다.
"여보, 내 베개 밑에 덫과 무선송신기가 달린 목줄이 보이지 않소?"
"네, 보여요. 너도 내 베개 밑에 덫과 무선송신기가 달린 목줄이 보이니,
아가야?"
엄마 곰이 말했습니다.
"네, 보여요. 그리고 그걸 장치한 사람도 보여요!"
아기 곰이 방구석을 가리켰습니다. 그곳에는 골디록스가 쿨쿨 잠자고 있었
습니다.
곰들은 화가 나서 으르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골디록스는 깜짝 놀
라 깨어났습니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도망치려고 했지만, 아빠 곰이 앞발
을 휘둘러 그녀를 때려눕혔습니다. 엄마 곰도 똑같이 했습니다. 골디록스가
기동력을 상실하자, 엄마 곰과 아빠 곰은 날카로운 엄니와 앞발로 그녀를
공격했습니다.
그들은 그녀를 맛있게 먹어치웠고, 독불장군 같은 생물학자는 눈 깜짝할
사이에 금발 한줌과 클립보드 한 개만 남긴 채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져버
렸습니다.
아기 곰은 놀란 눈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이 끝나
자, 아기 곰이 물었습니다.
"엄마, 아빠, 도대체 무슨 짓을 하신 거예요? 전 우리가 채식주의자인 줄
알았는데요?"
그러자 아빠 곰은 꺼억 트림을 하고 나서 대답했습니다.
"그래, 우리는 채식주의자란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를 해볼 준비는 항상
갖추고 있지. 유연함이야말로 다원문화적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누릴 수 있
는 혜택 가운데 하나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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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적으로 올바른 베드타임 스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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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설공주 >
먼 옛날, 어느 먼 왕국에, 젊은 공주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자태는
보는 사람에게 조금도 불쾌감을 주지 않았고, 성격도 대다수 사람들보다 상
냥하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었습니다.
그녀의 별명은 '백설공주'였는데, 이런 표현에는 유쾌하거나 매력적인 성
질을 흰색과 연관시키고 불쾌하거나 매력 없는 성질을 검은색과 연관시키는
차별적인 사고방식이 나타나 있었습니다.
따라서 백설공주는 어릴 적부터 본의 아니게 이러한 색차별적 사고방식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녀는 운이 좋은 표적으로서, 색차별주의자들의
찬사를 한몸에 받았지만, 이는 결코 그녀 자신이 원한 바가 아니었습니다.
백설공주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갑자기 병에 걸렸습니다. 어머니의 건강
악화는 점점 심해져, 결국에는 자력 생존이 불가능해지고 말았습니다.
백설공주의 아버지인 임금님은 마음이 아팠지만, 더이상 슬픔에 잠기는 것
은 건강에 해롭다고 생각되자 당장에 슬픔을 떨쳐버리고 다른 여자를 왕비
로 맞아들였습니다.
백설공주는 계모의 마음에 들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여
전히 차가운 거리가 남아 있었습니다.
왕비한테는 가장 아끼는 보물이 있었는데, 그것은 어떤 질문에도 정직하게
대답하는 마법의 거울이었습니다. 남성 중심의 계층 지배적 독재체제라는
사회적 조건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나머지, 왕비는 이제 자신의 가치를
확신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그녀가 관심을 갖고 있는 기준은 육체적
인 아름다움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오직 외모로만 자신을 규정했습니다.
그래서 왕비는 아침마다 거울 앞에 서서 묻곤 했습니다.
"거울아, 거울아, 벽에 걸린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그러면 거울은 이렇게 대답하곤 했습니다.
"아름다움에 가치가 있다면, 오오 나의 왕비님,
왕비님이야말로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아름답습니다."
이 대화는 아침마다 되풀이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거울의 대답이 달라졌습니다. 더구나 이날은 머리 손질이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아서 거울의 격려가 꼭 필요했는데, 왕비가 거울
앞에 서서 여느 때와 같은 질문을 던지자, 거울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
습니다.
"아아, 아름다움이 가치의 기준이라면,
백설공주가 왕비님을 능가했습니다."
이 대화에 왕비는 격분했습니다. 같은 여성으로서 백설공주와 강한 유대를
맺기 위해 노력할 기회는 저멀리 사라져버렸습니다.
그 대신에 왕비는 남성적인 권력 행사를 택하여, 왕실의 삼림보호관에게
백설공주를 숲 속으로 데려가서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궁정 남자
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 백설공주의 심장을 도려내어 자기한테 가져
오라는 야만적인 명령을 내렸습니다.
삼림보호관은 슬픈 마음으로 이 명령을 받아들이고, 이제는 사실상 젊은
여자로 성장한 백설공주를 숲 속으로 데려갔습니다.
하지만 그는 대지나 계절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기 때문에, 친절하
고 상냥한 마음씨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차마 백설공주를 해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가혹하고 무지비한 왕비의 명령을 백설공주에게 털어놓
고, 숲 속으로 되도록 깊이 달아나라고 말했습니다.
깜짝 놀란 백설공주는 삼림보호관이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삼림보호관은 왕비의 분노가 두려웠지만, 왕비의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
해 다른 생명을 빼앗을 마음은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시내로 들
어가자 캔디 제조업자를 찾아가, 심장 모양의 빨간색 사탕과자를 만들어달
라가 부탁했습니다.
이 과자를 왕비에게 바치자, 그녀는 식인풍습의 구역질나는 잔인성을 과시
하며 그 심장을 맛있게 먹어치웠습니다.
한편, 백설공주는 숲 속 깊이 도망쳤습니다.
문명과 그 불건전한 영향에서 최대한 멀리까지 달아났다고 생각한 순간,
그녀는 오두막 한 채를 발견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흐트러진 작은 침대 일곱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습니
다. 또한 싱크대에는 일곱 개의 접시가 쌓여 있고, 리모트 컨트롤로 작동되
는 일곱 대의 텔레비전 수상기 앞에는 휴식용 긴의자가 일곱 개 놓여 있었
습니다.
이 오두막 주인은 일곱 명의 난쟁이거나 아니면 한 사람의 칠칠치 못한 수
비학자(數秘學者 : 숫자가 사람의 운명에 미치는 신비한 영향을 연구하는
사람 : 역주)일 거라고 백설공주는 짐작했습니다.
침대가 너무나 유혹적으로 보였기 때문에, 피로에 지친 백설공주는 한 침
대 위에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고 눕자마자 잠이 들었습니다.
몇 시간 뒤, 잠에서 깨어난 백설공주는 턱수염을 기른 일곱 얼굴을 보았습
니다. 일곱 난쟁이가 침대를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놀란 나머지 비
명을 지르더니,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숨을 헐떡였습니다.
난쟁이 하나가 말했습니다.
"봤지? 변덕스럽기가 과연 여자답군. 방금 전까지 그토록 조용히 자고 있
더니, 느닷없이 벌떡 일어나서는 비명을 지르니 말이야."
그러자 또 다른 난쟁이가 말했습니다.
"맞아. 저 여자는 우애로 똘똘 뭉친 우리의 강한 결속을 무너뜨리고, 우리
가 저 여자의 애정을 얻기 위해 서로 다투도록 만들 거야. 저 여자를 자루
에 넣고 돌멩이를 가득 채워서 강물에 던져버리자."
그러자 세번째 난쟁이가 말했습니다.
"저 여자를 내쫓아야 한다는 데에는 나도 찬성이야. 하지만 무엇 때문에
자연환경을 오염시키지? 그냥 저 여자를 곰이나 다른 육식동물한테 먹이로
주면 되잖아. 그러면 저 여자는 먹이사슬의 한 고리가 될 거야."
"옳소! 옳소!"
"아주 건전한 생각이야."
백설공주는 그제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간청했습니다.
"제발 저를 죽이지 마세요. 여러분의 침대에서 멋대로 잠을 잔 건 사실이
지만, 여러분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어요. 저는 아무도 알아차
리지 못할 줄 알았아요."
그러자 한 난쟁이가 말했습니다.
"들었지? 여성의 편견은 항상 겉으로 들어나지. 저 여자는 우리가 침대를
정돈해놓지 않았다고 불평하고 있다구."
"죽여라! 죽여라!"
"제발 죽이지 마세요! 저는 계모인 왕비가 저를 죽이라고 명령했기 때문
에, 이렇게 숲 속 깊이 도망쳐 왔어요."
백설공주는 울부짖었습니다.
"들었어? 상호파괴적인 여성의 양심!"
"우리한테 가련한 희생자인 척하지 마, 아가씨!"
그때, 난쟁이들 중 하나가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조용히 해!"
그는 불타는 것처럼 새빨간 머리에 비인간 동물의 가죽을 쓰고 있었습니
다.
백설공주는 그가 이 무리의 지도자이고, 자신의 운명은 그의 손에 달려 있
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차렸습니다.
"솔직히 말해봐. 이름이 뭐지? 그리고 여기에 온 진짜 이유가 뭐야?"
"제 이름은 백설공주예요. 그리고 여기에 온 이유는 아까도 말했듯이 계모
인 왕비가 저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에요. 왕비는 저를 숲 속으로 데려가
서 죽이라고 삼림보호관에게 명령했지만, 그 사람은 저를 불쌍히 여기고 숲
속으로 최대한 멀리까지 도망치라고 말했답니다."
"과연 여자답군. 그런 비열한 짓을 남자한테 시키다니."
한 난쟁이가 낮은 소리로 투덜거렸습니다.
지도자는 두 손을 들어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백설
공주에게 말했습니다.
"좋아. 아가씨가 그렇게 말한다면, 우리는 당신 말을 믿을 수밖에 없겠지.
"
백설공주는 이런 대우에 화가 나기 시작했지만, 그런 감정을 내색하지 않
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도대체 누구세요?"
"우리는 '7인의 드높은 거인'으로 알려져 있지."
지도자가 말했습니다.
백설공주는 웃음을 참으려고 애썼지만, 난쟁이들 눈에 띄고 말했습니다.
지도자가 말을 이었습니다.
"왜 우리가 '거인'이냐 하면, 숲 속에 사는 남성들 중에서는 '정신적'으로
우리가 가장 드높기 때문이지. 한때는 광산을 채굴해서 생계를 유지했는데,
이 행성을 그런식으로 약탈하는 것은 부도덕하고 근시안적이라고 판단했어
(금속 시계가 폭락한 것도 광산을 그만둔 이유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우리
는 이제 헌신적인 지구 관리인이 되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다구.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연수회를 조직해서 지도하고 있지. 남성의
원초적 아이덴티티와 접촉할 필요가 있는 남자들을 위한 연수회를."
그러자 백설공주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남자의 원초적 아이덴티티에는 어떤 것들이 포함되나요? 우유를
컵에 따르지 않고 그냥 갑째로 마시는 건 빼구요."
"그렇게 빈정거리는 건 경솔한 짓이야. 내 동료 거인들은 아가씨를 없애버
리고 싶어해. 아가씨는 남성을 타락시키는 존재인 여성이니까. 내 동료들이
그러자고 주장하면, 나도 그들을 막을 수 없을지 몰라. 알겠어?"
'7인의 드높은 거인'의 지도자가 이렇게 경고의 말을 늘어놓더니, 동료들
을 향해 말했습니다.
"자, 형제들. 이제는 솔직하게 본심을 털어놓아야겠다. 한증막으로 자리를
옮기자!"
일곱 난쟁이들은 환성을 지르며 못을 벗어 던지면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오두막에 혼자 남겨진 백설공주는 너무도 곤혹스러웠습니다.
바닥에 널려 있는 잡동사니 사이를 무엇이 기어다니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밟게 될까봐 겁이 나서 침대 위에 머물러 있었지만, 밑으로 내려오
지 않고도 어떻게든 침대를 정돈해놓을 수 있었습니다.
이윽고 백설공주는 북소리와 외침소리를 들었습니다. 곧이어 '7인의 드높
은 거인'이 오두막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그녀가 생각했던 만큼 고약한
냄새를 풍기지 않았고, 고맙게도 모두 허리감개를 두르고 있었습니다.
"아이구 맙소사! 저 여자가 내 침대를 어떻게 했는지 좀 봐! 나는 저 여자
를 여기서 쫓아내고 싶어. 아까 찬성표를 던진 걸 취소하고 싶어!"
가장 앞서 오두막으로 들어온 '거인'이 외쳤습니다. 그러자 지도자가 말했
습니다.
"진정해. 모르겠어? 이게 바로 우리가 아까 이야기한 거라구. 콘트라스트
(대조) 말이야. 비교할 수 있는 여자를 가까이에 두고 있으면, 우리가 진정
한 남자로서 얼마나 진보했는지를 훨씬 잘 측정할 수 있지."
남자들은 이 결정이 과연 현명한 것인지를 놓고 자기들끼리 투덜거렸습니
다.
그러나 백설공주는 이제 질려버렸습니다.
"나를 단지 당신들의 에고와 페니스를 측정하기 위한 잣대로, 마치 물건처
럼 가까이에 두겠다고요? 정말 어이가 없군요."
"아주 공정한 게임이지. 원한다면 아가씨는 언제든지 이곳에서 나갈 수 있
어. 숲을 지나 성으로 돌아갈 수 있다구. 가서 왕비한테 우리 안부나 전해
줘."
지도자가 말했습니다.
"글쎄요. 새로운 계획이 생각날 때까지는 여기 머물러 있어도 될 것 같아
요."
백설공주는 물러섰습니다.
"좋아. 하지만 우리한테는 몇 가지 기본 규칙이 있으니까, 명심해둬. 청소
는 절대로 하면 안 돼. 물건을 정리하는 것도 안 돼. 그리고 싱크대에서 속
옷을 빠는 것도 안 돼."
"그리고 한증막을 엿보면 안 돼."
"그리고 우리 북에는 가까이 가지도 마."
한편, 성에서는 왕비가 자기와 미모를 다투는 경쟁자가 제거되었다는 생각
에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글래머'지와 '엘'지를 읽으면서 거실을
어슬렁거리고, 설사약도 먹지 않은 채 큼지막한 초콜릿을 세 조각이나 먹었
습니다. 그런 다음, 자신만만하게 마법의 거울 쪽으로 다가서서 어느 때처
럼 통탄할 질문을 던졌습니다.
"거울아, 거울아, 벽에 걸린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거울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왕비님의 체중은 왕자님의 몸매에 완벽하게 알맞습니다. 하지만 성적 매
력에서는 도저히 백설공주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이 뜻밖의 소식에 왕비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목청껏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불안감에 침식당한 나머지, 이제는 도덕적으로 주류에서
완전히 벗어난 인간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가진 교활함과 악의
를 총동원하여, 의붓딸을 확실하게 죽일 계획을 궁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뒤, 백설공주는 아무것도 만지거나 움직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오
두막 마룻바닥에 앉아서 명상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백설공주가 문을 열어보
니, 세월의 선물을 많이 받은 여자가 바구니를 들고 서 있었습니다. 옷차림
으로 보건데, 정규 고용의 굴레에서 벗어나 있는 게 분명했습니다.
바구니를 든 여자가 말했습니다.
"아가씨, 수입이 불완전한 여자를 좀 도와주구려. 사과 한 개만 사줘요."
백설공주는 잠시 망설였습니다. 그녀는 농업 관련 복합기업에 항의하는 표
시로 중간상에게서는 식품을 구입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었기 때
문입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불우한 노파의 처지가 가엾게 느껴진 나머지,
사과를 사겠다고 말했습니다.
백설공주는 몰랐지만, 이 여자는 과일 행상으로 변장한 왕비였고, 사과는
화학적으로 그리고 유전공학적으로 변질되어 있어서, 누구든 한 입만 깨물
면 영원히 잠들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이 대목에 이르러, 여러분은 아마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작전이 제대로
되어가는 것을 보고 왕비가 무척 기뻐했을 거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왕비는
백설공주의 아름다운 얼굴과 날씬하고 팽팽한 몸매를 보고, 부러움과 자기
혐오감이 물결처럼 번갈아 밀려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아니, 도대체 왜 그러세요?"
백설공주가 놀라서 물었습니다. 그러자 변장한 왕비가 흐느끼면서 말했습
니다.
"아가씨는 너무나 젊고 아름답군요. 그런데 나는 보기에도 끔찍하게 생겼
고, 게다가 날이 갈수록 점점 추해지기만 하니......"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돼요. 아름다움은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니까요."
"나도 오랫동안 나 자신한테 그렇게 말해왔다우. 그런데 아직도 난 그걸
믿지 않아요. 아가씨는 어떻게 그처럼 완벽한 몸매를 유지할 수 있지요?"
"저는 명상을 하고, 날마다 세 시간씩 스텝 에어로빅 운동을 하고, 제 몫
으로 주어진 음식은 무엇이든 절반만 먹는답니다. 제가 어떻게 하는지 가르
쳐드릴까요?"
"제발, 제발 가르쳐줘요."
왕비가 말했습니다.
두 사람은 우선 30분 동안 간단한 요가 명상을 수행한 다음, 한 시간 동안
스텝 에어로빅 운동을 했습니다. 나중에 잠시 휴식을 취할 때, 백설공주는
자기가 산 사과를 반으로 쪼개어 한 조각을 왕비에게 주었습니다 왕비는 무
심코 받아든 사과를 한 입 깨물었습니다. 그리고 두 여자는 당장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날 저녁, '7인의 드높은 거인'이 숲 속에서 열린 남성 연수회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짐승 가죽과 깃털과 진흙으로 정성껏 몸을 치장하고
있었습니다.
이웃 나라의 왕자가 그들과 함께 왔습니다. 왕자는 임포텐스(왕자 자신이
좋아하는 표현에 따르면, 남근 중추의 불수의적 활동 정지)의 치료법을 찾
으려고 이 연수회에 참가한 것입니다.
그들은 함께 웃고 떠들며 서로 손바닥을 마주치다가, 두 여자의 시체를 보
고는 우뚝 멈춰섰습니다.
"이게 어쩐 일이지?"
왕자가 물었습니다.
"두 여자가 사소한 문제로 말다툼을 하다가 서로 죽인 게 분명해."
한 '거인'이 추측했습니다.
"이 여자들은 이런 짓을 하면 우리를 연약한 감정의 노예로 만들 수 있다
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만약 그랬다면 그건 오산이야."
또 다른 '거인'이 발끈하여 말했습니다.
"어차피 우리가 저 시체를 처리해야 한다면, 언젠가 책에서 읽은 바이킹식
장례식을 이참에 한번 실행해보는 게 어때?"
세번째 '거인'이 말했습니다. 그러자 왕자가 말했습니다.
"내 말이 좀 병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당신들을 믿고 이야기하지요. 저
젊은 여자는 참 아름답군요. 아주 매력적이에요. 여러분은 저어...... 밖에
서 좀 기다려줄 수 없을까요...... 내가 여기서......"
그때 지도자가 말했습니다.
"잠깐! 저 먹다 만 사과 조각, 저 추잡한 의상...... 이것들은 일종의 마
법 같은 특징을 갖추고 있습니다. 저 여자들은 정말로 죽은 게 아니에요."
이 말에 왕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휴우.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군. 그러니까 여러분은 밖에
나가서 5분간 휴식을 취하고, 그동안 나는 여기서......"
"잠깐만요, 왕자님. 그러니까 백설공주를 보자 다시금 '사나이'다운 감정
이 일어난다는 말씀이신가요?"
"확실히 그래요. 자 그럼 여러분은 이제......"
"백설공주를 건드리지 마세요. 그러면 마법이 풀리게 됩니다."
지도자는 잠시 생각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들, 나는 여기에 어떤 경제적인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백설공주를 이런 상태로 여기두면, 우리 연수회가 임포텐스 치료에 뛰어난
효과가 있다고 선전할 수 있을 것이다."
'거인'들은 이 생각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왕자가 지도
자의 말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러면 나는 어떻습니까? 나는 벌써 연수회비를 다 냈습니다. 그러니까..
.... 저어,... 치료를 받을 수 있겠지요?"
"안 됩니다, 왕자님. 백설공주를 쳐다볼 수는 있지만 건드리면 안됩니다.
그러면 마법이 풀리게 되니까요. 하지만 원한다면 저 나이든 여자는 가져도
좋습니다."
그러자 왕비가 말했습니다.
"계급차별주의자처럼 보이고 싶진 않지만, 저 여자는 나한테 어울릴 만한
높은 '수준'이 아니에요."
"공포탄만 쏘는 주제에 허풍이 대단하군."
'거인' 가운데 하나가 말했습니다. 그러자 왕자만 빼고 모두 웃었습니다.
지도자가 말했습니다.
"자, 형제들. 이 두 여자를 마루에서 들어올려. 어떻게 전시하는 게 가장
좋을지 결정하자."
여자 하나를 들어올리는 데 '거인'이 세 명이나 필요했지만, 어떻게든 두
여자의 몸을 높이 들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들어올리자마자, 독이
든 사과 조각이 백설공주의 입에서 굴러떨어졌고, 그들은 마법에서 깨어났
습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우리를 당장 내려놔!"
두 여자가 소리쳤습니다. '거인'들은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여자들을 마룻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그보다 더 구역질나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어. 우리를
마치 사유재산이라도 되는 것처럼 어중이떠중이한테 팔아먹으려 하다니!"
왕비가 외쳤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백설공주가 왕자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당신! 기절해 있는 여자와 그 짓을 하려 들다니! 웩! 구역질 나!"
"이봐요. 나를 비난하지 마시오. 책임은 내 의학적 상태에 있으니까."
왕자가 대꾸했습니다.
"책임을 떠넘기지 맙시다. 그건 그렇고, 먼저 잘못을 저지른 건 당신들이
야. 당신들이 우리 소유지에 멋대로 침입했으니까. 나는 경찰을 부를 수도
있어!"
'거인'들의 지도자가 말했습니다.
"그건 꿈도 꾸지 마라, 나폴레옹. 이 숲은 왕실 소유지야. 남의 소유지에
불법 침입한 건 '네놈들'이란 말이다."
왕비가 말했습니다.
그러자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지만, 왕비가 다음과 같이 경고했을 때 일어
난 소동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거동불능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 그리고 네놈들이 성차별
주의자답게 실없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동안, 나는 개인적인 깨달음을 얻
었다. 앞으로 나는 여성의 영혼과 육체 사이의 균열을 치료하는 데 내 인생
을 비치겠다. 육체의 타고난 모습을 받아들이고, 영혼과 육체가 조화를 이
룬 통일체로서 다시 완전해지는 법을 여성들한테 가르칠 것이다. 백설공주
와 나는 바로 이 자리에 여성을 위한 휴양 및 회의 센터를 세울 것이다. 그
렇게 되면, 전세계 자매들을 위한 연수회와 지역위원회 그리고 난소연구회
도 개최할 수 있겠지."
많은 항의와 욕설이 난무했지만, 왕비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7인의 드높은 거인'을 그들의 무허가 주택에서 강제로 퇴거시키지
는 못했습니다. 그들은 쫓겨나기 전에 미리 한증막을 싸들고 더 깊은 숲 속
으로 이사했기 때문입니다. 왕자는 귀엽지만 해롭지 않은 테니스 코치로 휴
양 센터에 계속 머물렀습니다.
백설공주와 왕비는 사이좋은 친구가 되어, 여권운동에 이바지한 공로로 세
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거인'들의 소식은 그후 두번 다시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작은 진흙
발자국이 이따금 휴양 센터의 탈의실 창문 밖에서 발견될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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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적으로 올바른 베드타임 스토리 │
└──────────────────┘
< 치킨 리틀 >
치킨 리틀은 키 큰 떡갈나무로 둘러싸인 구불구불한 시골길 옆에 살고 있
었습니다(여기서 '리틀'은 크기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는 경멸적인 별명이
아니라, 성이라는 사실을 미리 언급해두어야겠군요. 치킨 리틀이 평균치 이
하의 작은 키를 갖고 있었던 것은 단지 우연일 뿐입니다).
하루는 치킨 리틀이 길에서 놀고 있는데, 나무들 사이로 갑자기 돌풍이 불
어왔습니다. 그 바람에 떡갈나무에서 도토리 한 알이 떨어져 치킨 리틀의
머리를 정통으로 때렸습니다.
치킨 리틀은 물리적인 의미에서 작은 두뇌를 갖고 있었지만, 그 작은 두뇌
를 최대한 이용했습니다. 따라서 그녀가 "하늘이 무너진다. 하늘이 무너진
다"고 비명을 질렀을 때, 그녀가 내린 결론은 잘못되거나 어리석거나 무분
별한 것이 아니라, 단지 논리적으로 충분한 뒷받침을 받지 못했을 뿐입니
다.
치킨 리틀은 길을 따라 이웃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이웃에 사는 헤니 페니는 텃밭을 가꾸고 있었습니다. 살충제나 제초제나
비료 따위는 전혀 쓰지 않았고, 먹을 수 없는 다양한 야생초 --- 이따금 '
잡초'라는 상표가 붙기도 합니다 --- 가 식용 작물과 뒤섞여 자라도록 허용
했기 때문에, 텃밭을 가꾸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헤니 페니는 잎사귀들 사이에 파묻혀 있어서, 치킨 리틀이 "하늘이 무너진
다! 하늘이 무너진다!"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도 한참 지나서야 그녀의 모습
을 볼 수 있었습니다.
헤니 페니는 텃밭에서 고개를 쑥 내밀고 물었습니다.
"치킨 리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소란을 피우는 거예요?"
"내가 길에서 놀고 있는데, 커다란 하늘 덩어리 하나가 내 머리에 떨어졌
지 뭐예요. 이거 보여요? 내 머리에 생긴 혹이 그 증거라구요."
"그렇다면 한 일은 하나밖에 없어요."
헤니 페니가 말했습니다.
"그게 뭔데요?"
치킨 리틀이 물었습니다.
"놈들을 고소하는 거예요!"
헤니 페니가 말했습니다.
이 말에 치킨 리틀은 어리둥절했습니다.
"고소해요? 무슨 사유로요?"
"신체에 상해를 입힌 행위, 차별한 행위, 고의로 감정적 고통을 준 행위,
과실로 감정적 고통을 준 행위, 불법으로 방해한 행위, 불법으로 폭력을 행
사한 행위 등 뭐든 좋아요. 아무튼 그런 혐의로 고소하면 돼요."
그러자 치킨 리틀이 말했습니다.
"좋아요! 그러면 우리는 뭘 얻게 되죠?"
"고통과 피해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어요. 보상적 손해 배상, 징벌적
손해 배상, 신체 장애와 신체 손상에 대한 보상, 정기 요양, 그 밖에 정신
적 고통과 소득 능력 손상과 명예 훼손에 대해서도......"
"인간이여! 오오, 인간이여!"
치킨 리틀은 기뻐서 외쳤습니다.
"그런데 누구를 상대로 고소하지요?"
"글쎄요. 하늘 자체를 고발하는 것은 아마 국가가 인정해주지 않을 거예
요."
헤니 페니가 말했습니다.
"변호사를 만나서 한번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내 경우에는 누구를 고소
할 수 있는지 말이에요."
치킨 리틀이 그 작은 두뇌를 지나치게 혹사하면서 말했습니다.
그러자 헤니 페니가 말을 받았습니다.
"그거 참 좋은 생각이군요. 나도 같이 갈게요. 변호사를 만나면, 그 기회
에 나도 물어볼 수 있을 거예요. 우스꽝스럽게 뼈만 앙상한 내 다리에 대해
서는 누구를 고소하면 되는지 말이에요. 이 다리는 평생 동안 나를 괴롭히
고 거동을 불편하게 했을 뿐이라구요. 이제는 그 모든 고통과 장애에 대해
어떻게든 보상을 받아야겠어요."
그래서 병아리와 암닭은 길을 따라 이웃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이웃에는 구시 루시가 살고 있었는데, 그녀는 개과에 속하는 동물 친구에
게 초식 방법을 가르치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 친구한테 가공된 동물
시체 통조림을 먹일 때마다 죄책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무너진다! 하늘이 무너진다!"
"놈들을 고소하자! 놈들을 고소하자!"
외치는 소리를 듣고, 구시 루시가 울타리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물었습니
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소란을 피우는 거죠?"
"내가 길에서 놀고 있는데, 하늘이 내 머리에 떨어졌지 뭐예요."
치킨 리틀이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헤니 페니가 덧붙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변호사를 만나러 가고 있답니다. 치킨 리틀이 입은
상해와 뼈만 앙상한 내 다리에 대해 누구를 고소하면 되는지 알아보려고 말
이에요."
"좋아요! 나도 함께 가서, 이 길쭉한 목에 대해 누군가를 고소할 수 없을
까요? 이 기다린 목 때문에 무엇을 입어도 모양이 나지를 않아요. 장담하건
대, 패션업계 내부에 목이 긴 물새에 대한 음모가 있는 게 분명해요."
그래서 병아리와 암닭과 거위는 법률적 조언을 얻으려고 길을 따라 달려가
면서 구호를 외쳤습니다.
"하늘이 무너진다! 하늘이 무너진다!"
"놈들을 고소하자! 놈들을 고소하자!"
"음모를 분쇄하자! 음모를 분쇄하자!"
한참 가고 있을 때, 그들은 감색 양복을 입고 서류가방을 든 폭시 록시를
만났습니다. 그는 앞발 하나를 들어올려 세 마리 새를 세웠습니다.
"이 화창한 날 밖에서 뭘 하고 있는 것입니까?"
폭시 록시가 물었습니다.
"우리는 고소할 상대를 찾고 있답니다!"
그들은 일제히 외쳤습니다.
"불만이 뭔데요? 신체에 상해를 입힌 행위? 차별한 행위? 고의로 감정적
고통을 준 행위? 과실로 감정적 고통을 준 행위? 불법으로 방해한 행위? 불
법으로 폭력을 가한 행위?"
"오오, 그래요. 맞아요. 방금 말씀하신 것들 말고도 더 있어요!"
세 마리 새는 흥분하여 말했습니다.
그러자 폭시 록시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운이 좋은 겁니다. 나는 방금 소송사건 하나를 처리했
기 때문에, 우리가 제기할 수 있는 모든 소송에서 여러분을 대리할 수 있을
겁니다."
병아리와 암닭과 거위는 환성을 지르며 날개를 퍼덕였습니다.
이윽고 치킨 리틀이 물었습니다.
"그런데 누구를 고소하지요?"
폭시 록시는 지체없이 대답했습니다.
"누구를 고소하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고소하지 않을 것이냐가 문제지요.
당신들 같은 불운한 피해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귀책 당사자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자, 내 사무실로 가서 이 문제를 좀더 자세히 의논해봅시다."
폭시 록시는 가까운 동산 비탈에 있는 검은색의 작은 금속 문으로 다가갔
습니다.
"자,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그는 빗장을 올리면서 말했습니다.
하지만 문은 열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폭시 록시는 한 발로 문을 잡아당기
다가, 두 발로 잡아당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폭시 록시는 문을 저주하고, 문의 낮은 지적 능력과 방탕한 성
적 내력을 저주하면서 거칠게 문을 잡아당겼습니다.
마침내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 순간, 거대한 불덩어리 하나가 밖으로 튀어나왔습니다.
이 문은 사실 폭시 록시의 오븐으로 들어가는 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
게는 불행히도, 불덩어리가 그의 머리를 삼켜 머리카락과 구레나룻을 모조
리 태워버렸습니다. 그 바람에 그는 완전히 긴장성 분열증에 걸리고 말았습
니다.
치킨 리틀과 헤니 페니와 구시 루시는 폭시 록시에게 먹히지 않은 것을 고
마워하면서 재빨리 달아났습니다.
하지만 폭시 록시네 가족이 세 마리의 새를 따라잡았습니다.
폭시 록시네 가족은 폭시 록시를 대신하여 오븐의 문을 만든 제조업자를
고소하는 한편, 세 마리의 새에 대해서도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들 셋이
폭시 록시를 사기쳐 위험에 빠뜨렸다는 것이 가족의 주장이었습니다.
폭시 록시네 가족이 요구한 것은, 고통과 피해에 대한 보상, 보상적 손해
배상, 징벌적 손해 배상, 신체 장애와 신체 손상에 대한 보상, 장기 요양,
그 밖에 정신적 고통과 소득 능력 손상과 명예 훼손에 대한 보상 그리고 맛
있는 저녁 식사를 손해본 것에 대한 배상 등이었습니다.
그후 세 마리의 새는 맞고소를 제기했고, 그래서 법정 싸움은 그날부터 오
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
│ 정치적으로 올바른 베드타임 스토리 │
└──────────────────┘
< 개구리 왕자 >
먼 옛날, 젊은 공주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성(城)을 지배하고 있는 남성 중심의 권력 구조를 머리로 들이받는
데 진저리가 나면, 숲 속으로 들어가 작은 연못가에 앉아서 마음을 달래곤
했습니다.
이곳에서 그녀는 황금공을 던지면서 놀거나, 그 시대의 환경보호와 남녀평
등을 위해 싸우는 전사의 역할을 곰곰히 생각하곤 했습니다.
하루는 여성들이 권력을 잡으면 자신의 여왕국(튄덤)은 어떤 유토피아가
될 수 있을까를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생각에 너무 골몰한 나머
지, 황금공이 그만 손에서 떨어져 연못 속으로 굴러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연못은 너무 깊고 탁해서, 공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녀는 울지 않고, 다음에는 조심해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웬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공주님, 제가 공을 갖다드릴 수 있는데요."
주위를 둘러보니, 연못의 수면 위로 개구리의 머리가 불쑥 나타나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니야. 내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위해 다른 종에 속하는 동물을 노예
로 부릴 생각은 추호도 없어."
공주가 말했습니다.
"그럼 성공 보수라는 조건으로 거래를 하면 어떨까요? 제가 공을 갖다드리
면, 그 답례로 제 부탁을 들어주세요."
개구리가 제의했습니다.
공주는 이 공정한 거래에 기꺼이 동의했습니다.
개구리는 물 속으로 잠수했다가 금세 황금공을 입에 물고 나타났습니다.
개구리는 공을 물가에 뱉어놓고 나서 말했습니다.
"자, 이제 저는 공주님께 호의를 베풀었으니까, 서로 다른 종(種) 사이의
육체적 매력에 대한 공주님의 견해를 알아보고 싶습니다."
공주는 개구리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짐작도 할 수 없었습니
다.
개구리가 말을 이었습니다.
"사실 나는 개구리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그런데 못된 마법사가 나한테 주
문을 걸어서 개구리로 둔갑시켜 버렸답니다. 이 개구리의 모습은 인간의 모
습보다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습니다. 다만 인간의 모습과 다를 뿐이죠.
그래도 나는 다시 사람들 틈에 섞여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마법의 주문을
풀 수 있는 것은 공주님의 입맞춤뿐입니다."
공주는 서로 다른 종 사이에 성희롱이 일어날 수 있는가를 잠시 생각했지
만, 개구리의 곤경에 동정이 갔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허리를 굽혀 개구리
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러자 당장 개구리의 몸이 커지고, 형태가
달라졌습니다.
잠시 후, 개구리가 있던 물 속에는 골프 셔츠와 야한 격자무늬 바지를 입
은 한 남자가 서 있었습니다. 키가 작달막하고 정수리의 머리카락이 듬성듬
성해진 중년 사내였습니다.
공주는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습니다.
"내 말이 계급차별적으로 들린다면 미안하지만....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마법사들은 대개 '왕자님'한테 주문을 걸지 않나요?"
"보통은 그렇죠. 하지만 이번에는 그 표적이 죄없는 사업가였답니다. 나는
부동산 개발업자인데, 소유지 경계선을 둘러싸고 마법사와 분쟁이 일어났지
요. 그런데 그 마법사는 내가 자기를 속이고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골프나 한번 치자고 나를 불러내서는, 내가 티에 공을 올려놓고 막 치려는
순간, 나를 개구리로 둔갑시켜버렸지 뭡니까. 하지만 나는 개구리로 지낸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어요. 나는 이 숲을 구석구석 알게 되었는데, 이 숲은
오피스 파크와 콘도와 리조트의 복합단지를 짓기에 최적지인 것 같습니다.
위치도 좋고, 수지타산도 맞춰봤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은행은 개
구리한테는 한푼도 대출해주지 않겠지만, 이제 나는 인간의 모습을 되찾았
으니까, 은행도 내가 원하는 대로 해줄 겁니다. 오오, 얼마나 신나는 얘기
입니까! 그야말로 굉장한 프로젝트가 될 거예요! 연못의 물을 빼내고, 이
숲에 나무를 80퍼센트쯤 베어내고, 지역권(地役權)을 따내고......"
그러나 그는 여기서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공주가 황금공을 그의 입
속에 쑤셔넣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음 공주는 그를 물 속에 밀어넣
고, 그가 더이상 버둥거리지 않을 때까지 꽉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성으로 돌아오면서, 한 사람이 고작 아침 한나절 동안에 좋은 일을
얼마나 많이 할 수 있는가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개구리가 없어진 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있었을지 모르나, 부동산
개발업자가 사라진 것을 아쉬워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
│ 정치적으로 올바른 베드타임 스토리 │
└──────────────────┘
< 잭과 콩줄기 >
옛날 옛적에, 어느 작은 농장에, 잭이라는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의 생활은 통상적인 경제활동권
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고, 이 가혹한 현실 때문에 그들은 줄곧 비참한
곤궁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던 어느 날, 어머니는 한가족처럼 키우던 암소를 읍내로 데려가서 되
도록 비싼 값으로 팔아 오라고 잭에게 일렀습니다.
그 동안 암소에게 갈취한 수천 갤런의 우유 따위는 잊어버리고!
이 암소가 그들에게 베푼 수많은 즐거움도 깨끗이 잊어버리고!
텃밭에 거름으로 준 쇠똥에 대해서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들에게 암소는 이제 단순한 소유물에 불과했습니다.
잭은 비인간 동물도 인간 동물만큼 많은 권리, 어쩌면 훨씬 더 많은 권리
를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
다.
읍내로 가는 길에 잭은 마법사 노인을 만났습니다.
채식주의자인 이 마법사는 쇠고기와 유제품을 먹는 것이 얼마나 건강에 위
험한가를 잭에게 경고했습니다.
그러자 잭이 말했습니다.
"이 암소는 제가 먹을 게 아니에요. 읍내에 내다팔려고 데려가는 중이라고
요."
"하지만 네가 그렇게 하면 축산업이 우리의 생태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나 육류 소비에서 생겨나는 건강상의 문제와 사회적인 문제를 무시하
고, 육식 문화의 신화 체계를 영속시키는 데 이바지하게 될 것이야. 하지만
너는 너무 단순해서 이런 복잡한 관계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구나. 내가 한
가지 제안을 할 테니 들어보렴. 너와 내가 물물교환을 하는 거야. 네 암소
를 나한테 주면, 이 마법의 콩 세 알을 너에게 주마. 이 콩에는 그 암소 한
마리분만큼 많은 단백질이 들어있지만, 지방이나 염분은 전혀 없단다."
잭은 기꺼이 콩과 암소를 교환한 다음, 집에서 기다리는 어머니에게 콩 세
알을 가져갔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는 몸시 화를 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직선적인 사고보다는 개념적인 사고를 할 뿐이라고 전에
는 생각했지만, 이제는 아들이 보통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별난 지능을 갖
고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화가 나서 마법의 콩 세 알을 낚아채어 창 밖으로 던져버렸습니다.
그날 저녁, 그녀는 '동화에 나오는 아이들의 어머니들'과의 후원회 모임에
처음으로 참석했습니다.
이튿날 아침, 잭은 해가 또다시 동쪽에서 떴는지를 확인하려고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습니다(그는 여기서 하나의 패턴을 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창 밖에는 콩들이 하룻밤 사이에 커다란 줄기로 자라나 있었습니
다. 콩줄기를 구름을 뚫고 하늘까지 뻗어 있었습니다.
이제는 아침마다 젖을 짤 암소도 없었기 때문에, 잭은 그 콩줄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꼭대기의 구름 위에서 잭은 거대한 성을 발견했습니다. 그 성은 단지 규모
가 클 뿐만 아니라, 평균치보다 훨씬 큰 스케일로 지어져 있었습니다. 그
크기로 보건대, 이 성에는 아마 거인이 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성으로 들어간 잭은 공기 속을 떠도는 아름다운 음악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는 이 소리를 따라가서, 그 원천을 발견했습니다. 만지는 사람도 없는데
저절로 연주하는 황금 하프였습니다.
스스로 작동하는 이 하프 옆에는 암닭 한 마리가 황금알 더미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황금 하프와 황금알을 낳는 암닭만 있으면, 손쉽게 재산을 모을 수 있
고 언제든지 음악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런 기대감은 잭의 부르
조아적 감성에 딱 들어맞았기 때문에, 그는 하프와 암닭을 집어들고 현관문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때, 우레 같은 발소리와 우렁우렁 울리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목소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페에, 피이, 포오, 품.
영국인의 피 냄새가 나는군나!
영국인의 문화와 인생관을 알고 싶다!
그리고 나 자신의 견해를 솔직하고 너그럽게 나누어 주고 싶다!"
불행히도 잭은 탐욕에 눈이 먼 나머지, 문화를 교류하자는 거인의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잭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저건 속임수일 뿐이야. 게다가 이렇게 훌륭하고 섬세한 물건이 거인한테
무슨 쓸모가 있겠어? 어차피 다른 데서 훔친 물건인 게 분명해. 그러니까
나도 이걸 가져갈 권리가 있어.'
그의 필사적인 자기합리화 --- 자신의 지적 자원을 지나치게 써버린 사람
한테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 --- 는 거인의 인권에 대한 무신경을 드러냈
습니다. 분명히 잭은 몸집의 크기로 사람을 차별하는 완벽한 사이즈차별주
의자로서, 거인은 모두 굼뜨고 무식하고 어리숙해서 쉽게 이용해먹을 수 있
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물건을 왜 가져가는 거지?"
잭은 거인한테서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재빨리 머리를 굴
려야 했습니다. 그는 엉겁결에 불쑥 말했습니다.
"이걸 가져가려는 게 아니라, 관리하려는 것뿐이에요. 이것들을 적절히 관
리해서,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하려구요. 기분 나쁘게 들리겠
지만, 솔직히 말해서 당신네 거인들은 머리가 너무 단순해서 재산을 제대로
관리할 줄 몰라요. 나는 그래서 당신의 이익을 돌보고 있을 뿐이라구요. 나
중에는 당신도 나한테 고마워할 거예요."
잭은 숨을 죽인 채, 이런 허풍이 자기 목숨을 구해줄 것인지를 확인하려고
거인의 기색을 살폈습니다.
거인은 한숨을 내쉬고 다시 말했습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우리 거인들은 재산을 정말 어리석게 관리하고 있
어. 콩만 해도 그래. 콩줄기를 보고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새 콩줄기를 찾
아내기도 전에 콩을 마구 따다가, 결국 그 가엾은 콩줄기를 땅에서 뿌리째
뽑아버렸으니 말이다."
잭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그는 얼른 돌아서서 현관문 밖을 내다
보았습니다. 거인의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거인은 잭이 타고 올라온 콩줄기
를 뽑아 버린 것입니다.
잭은 우는 소리로 외쳤습니다.
"나는 이제 구름 속에 당신과 영영 갇혀버렸군요."
"걱정하지 마라. 이 구름 위에 사는 우리는 엄격한 채식주의자이고, 먹을
콩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게다가 너는 혼자가 아니란다. 너만한 크기의 사
람이 벌써 열세 명이나 콩줄기를 타고 올라와서 여기 머무르고 있으니까."
그래서 잭은 운명을 감수하고, 구름 위의 거인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습니
다.
그후 그는 어머니나 농장을 별로 그리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늘 위에는 해
야 할 일도 별로 없고, 먹을 것은 언제나 남아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사람을 크기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차츰 깨닫게 되었
습니다. 자기보다 작은 사람에 대해서는 여전히 편견을 갖고 있었지만.
┌──────────────────┐
│ 정치적으로 올바른 베드타임 스토리 │
└──────────────────┘
< 하멜린의 피리 부는 사나이 >
그림처럼 아름다운 작은 도시 하멜린.
이곳은 공동체가 바랄 수 있는 모든 것을 두루 갖추고 있었습니다.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공장들, 효율적인 대중교통 수단, 다양한 민족과 다양한
종교의 균형잡인 공존......
사실 이 도시의 지도자들은 시민들의 쾌적하고 섬세한 생활을 방해할 수
있는 요소들을 없애기 위해 갖가지 법률을 제정했고, 그래도 안 되면 협박
을 가해 내쫓는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다한 한 가지, 트레일러(이동주
택) 주차장만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하멜린 변두리에 있는 트레일러 주차장은 시민들의 골칫거리였습니다.
녹슨 픽업 트럭들과 뒤뜰에 쌓여 있는 쓰레기더미도 눈에 거슬렸지만, 문
젯거리는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주차장 안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사악하고 구제 할 길 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비가축 동물 살해자
들, 교도시설의 단골 고객이었던 전과자들, 자동차는 달릴 수 없는 일반도
로를 질주하는 폭주족들......
그들은 플라스틱 폭약을 이용한 강력한 불꽃을 쏘아 올리고, 요란한 음악
을 연주하고, 주말이면 술에 취해서 소동을 벌였기 때문에, 하멜린의 점잖
은 시민들은 모두 몸서리를 쳤습니다.
어느 날, 트레일러 주차장을 가로지르는 도로에서 유난히 떠들썩한 폭주
소동이 끝난 뒤, 하멜린의 지도자들은 회의를 열었습니다. 열띤 토론 끝에
그들은 어떻게든 트레일러 주차장을 없애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거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인권을 무시하거나 권리를
침해하지 않고 주차장을 없애버릴 수 있을 것인지,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온갖 수사를 동원한 연설이 이어진 뒤, 결국 그들은 그 문제를 걱정하는
건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더 중요한 걱정거리
--- 예를 들면 부동산 가격 하락 --- 를 잔뜩 짊어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도자들은 광고를 내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줄 사람을 찾기로 결
정했습니다.
광고가 나가자마자 한 사내가 하멜린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위아래 길이가
별나게 길고, 키에 비해 평균 이하의 몸무게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일찍
이 아무도 본 적 없고 상상해본 적도 없는 기묘한 방법으로 옷을 짜맞춰 입
었고, 말투와 행동에 특이한 버릇이 있었을 뿐 아니라, 높고 날카로운 목소
리도 확실히 독특했습니다.
그는 다른 세계(하지만 우리 세계와 다르지 않은 세계)에서 온 것처럼 보
였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하멜린 지도자들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도시에서 트레일러 주차장에 살고 있는 자들을 몰아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답례로 금화 100냥을 지불하겠다고 약속해주셔야
합니다."
괴상하게 생긴 사내가 말했습니다.
지도자들은 골칫거리가 되도록 빨리 해결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의 요구
에 당장 동의했습니다. 트레일러 주차장이 빨리 철수될수록 그들은 원만하
고 진보적인 자아로 더 빨리 되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괴상하게 생긴 사내는 일에 착수했습니다.
그는 우선 낡은 배낭 속을 뒤져 정교한 소형 녹음기를 꺼냈습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그가 테이프 몇 개를 집어넣고 스위치를 돌려 음향을 점검하
는 것을 흥미롭게 지켜보았습니다.
이어서 그는 내장 마이크에데 대고 무어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가 무어라고 말하는지 아무도 정확하게 들을 수 없었지만, 아무래도 그의
말에는 논리적인 일관성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갑자기 그는 중얼거림을 멈추고 일어나더니, 확성기가 장착된 트럭이 필요
하다고 지도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지도자들은 이 묘한 운명에 응하려고 바쁘게 뛰어다녔습니다.
마침내 환경청 산하의 '생물다양성(Biodiversity)'국(局)에서 겨우 가두선
전용 투럭을 찾아내어, 괴상하게 생긴 사내에게 자동차 열쇠를 건네주었습
니다.
그는 트럭을 타고 떠나면서, 카스테레오에 아까 만든 카세트를 집어넣었습
니다. 트레일러 주차장쪽으로 달려가는 트럭을 모두 따라갔습니다.
곧이어 천천히 움직이는 트럭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대개
는 컨트리 뮤직이었지만, 때로는 '그린베레'나 '고스트 라이더스 인 더 스
카이' 같은 클래식도 나왔습니다.
지도자들은 어리둥절했지만, 이윽고 트레일러와 연장 창고와 술집에서 사
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차장 주민들은 멍한 표정으로 비실비실 걸으면서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일자리를 찾으러 가야겠어. 순회공연단이 사람을 구하고 있다는 말
을 들었거든."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나는 트랙터 당기기 대회에 프로 선수로 참가할 생각이야."
또 다른 사람이 말했습니다.
"의학적 인체실험에 자원하면 먹고 살 수 있을까?"
세번째 사람이 물었습니다.
트레일러 주차장의 주민들은 도시 변두리를 향해 천천히 달리는 트럭을 따
라갔습니다. 곧이어 그들은 트럭은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고, 하멜린의 지도
자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한 시간쯤 지난 뒤, 트럭은 추종자들을 떼어놓고 돌아왔습니다.
괴상하게 생긴 사내가 트럭에서 내리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그들을 모두 간선도로로 안내했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차를 얻어타
고 하멜린이 아닌 다른 곳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 주차장은 이제 여러
분이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지도자들 가운데 대변인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이 외쳤습니다.
"참으로 놀랍군요. 그들이 떠났으니, 이제는 '제3세계 난민 재교육 센터'
건설계획에 착수할 수 있겠어요. 고맙소. 정말 고맙소이다."
"자 그럼, 약속하신 금화 100냥을 주시면 나는 떠나겠습니다."
"저어...... 하멜린은 단순히 물질 자원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
원에 기초한 경제를 확립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목적을 위해
이 쿠폰을 드리고 싶군요. 이 쿠폰이 있으면, 하멜린에서 각종 서비스를 받
을 자격이 생기지요. 공짜로 마사지를 받을 수도 있고, 당신의 내면에 있는
아이를 해방시키는 세미나에도 참석할 수 있습니다."
괴상하게 생긴 사내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분노를 드러내면서 말했습니
다.
"당신들은 금화 100냥을 주겠다고 약속했소. 자, 어서 돈을 주시오. 돈을
안 주면 후회하게 될 거요."
그러자 대변인이 말했습니다.
"세상을 좀더 공정한 곳으로 만들어야 할 책임을 포기하고 싶다면, 어쩔
수 없지요. 정 그렇다면, 하멜린의 공식 차용증(IOU)을 드려야겠군요. 이
채권을 하멜린의 주변 도시에 있는 환전소나 술집에 가져가면, 현금으로 상
환받을 수 있습니다."
괴상하게 생긴 사내는 잠시 침묵을 지킨 다음, 기분 나쁘게 킬킬거리며 트
럭에 올라탔습니다. 그리고는 미처 말릴 새도 없이 트럭을 몰고 하멜린의
동네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트럭에서는 으스스하고 높은 음조의 음악이 흘러나왔지만, 아무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음악이었습니다.
곧이어 아이들이 하나둘씩 집에서 나오고, 놀이터에서도 줄지어 나타났습
니다. 아이들은 멍한 표정으로 거리를 어슬렁거렸습니다. 지도자들은 아이
들이 서로 진지하게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자유경쟁시장만이 사람들을 자극해서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유
일하고도 확실한 방법이야."
한 아이가 말했습니다.
"각 지역에서 민족적 단일성을 지키며 살려는 시민들의 권리는 존중되어야
해."
또 다른 아이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의 사회로서 짊어지고 있는 유일한 의무는 모든 사람이 공정
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게 해주는 거야."
세번째 아이가 말했습니다.
아이들이 조세제도에 항의하는 단체와 사격 클럽을 결성하기 시작하자, 지
도자들은 오랫동안 추진해온 신중한 사회사업계획이 모두 물거품이 되리라
는 것을 깨닫고 슬픔에 잠겼습니다.
이튿날 그들은 확성기가 장착된 트럭을 교외에서 발견했지만, 그들이 사기
치려고 했던 그 수수께끼의 사내는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
│ 정치적으로 올바른 베드타임 스토리 │
└──────────────────┘
< 옮긴이의 덧붙임 >
이 책은 미국의 작가 제임 핀 가너(James Finn Garner)의 '정치적으로 올
바른 베드타임 스토리'(Politically Correct Bedtime Stories)를 우리말로
옮긴 것입니다.
참, 제목부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만큼 알쏭달쏭하다는 이야기지요.
'베드타임 스토리'가 무슨 뜻인지는 금세 짐작이 갈 것입니다. 잠자리에서
듣거나 읽는 이야기, 그러니까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나 어머니가
읽어주는 동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혼자서 동화책을 읽다가 시나브
로 잠에 빠져들기도 하겠지요.
우리의 어린 시절은 동화 속의 세계를 넘나들며, 때로는 놀랍고 때로는 겁
게 질리고 때로는 신나던 기억들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도깨비, 마녀, 요
정...... 백설공주와 개구리 왕자 이야기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세상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우리는 동화가 환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어느새 우리 마음속에 어떤 틀, 말하
자면 하나의 세계관을 심어놓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이야기들 속에는
인간 중심적이고 남성 중심적이고 백인 중심적이고 부르주아 중심적이고 유
럽 중심적인 사고방식 ---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종(種)차별적.성(性)차
별적.인종차별적.계급차별적.문화차별적 편견 --- 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입
니다.
그런데도 이솝이나 안데르센이나 그림 형제의 동화들은 '고전'이라는 명성
과 함께 몇 세기에 걸쳐 전해져왔고, 그 속에 담긴 편견들은 보편적 진리인
양 우리(또한 우리의 아이들)의 세계관을 형성해왔습니다. 그런데 제임스
핀 가너가 마침내 그 고전적 옛날 이야기들에 메스를 가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훨씬 걸맞도록 고침으로써, 그 이야기들은 편견에서 해방
시키는 일에 착수했습니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은 바로 '정치적으
로 올바른 베드타임 스토리'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너는 어떤 잣대를 가지고 작업에 임한 것일까요? 그 해답은 바
로 '정치적으로 올바른'에 있습니다.
196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은 정치.사회적으로 커다란 변혁을 겪었습니다.
이 흐름을 주도한 세력은 크게 두 갈래인데, 여성해방운동과 흑인민권운동
이 그것입니다. 이들의 노력에 힘입어 여성의 인권과 흑인의 민권이 '백인
남성 엘리트' 중심의 미국 사회에서 크게 신장된 사실은 여기서 세삼 언급
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또한 이들은 성차별적 인종차별적 표현을 시정하
는 데에도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남성은 '미스터' 하나면 족한데 왜 여
성만은 '미스'나 '미세스'로 나뉘어 미혼인지 기혼인지를 밝혀야 하는가?
왜 인류(mankind)나 인간(human)에는 남자(man)밖에 없는가? 남자는 그냥
man인데 여자는 wo-man인가? 이런 반론이 제기된 결과 '미즈(Ms)'가 생겨나
고, 인류는 human being이라는 말로 표현하게 된 것입니다. 또 최근 들어
미국 언론에서 흑인 시민을 지칭할 때 '아프리카계 미국인(African America
n)'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한 것은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페미니즘과 민권운동에서 비롯한 이 같은 노력은 1980년대에 들어와 미국
각지의 대학을 중심으로 PC(Politically Correct), 즉 '정치적으로 올바른'
표현을 지향하는 운동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이 운동의 취지는 차별이나 편
견에 바탕을 둔 언어적 표현이나 '마이너리티(소수파, 약자)'에게 불쾌감을
주는 표현을 제한하자는 것입니다(요즘엔 우리나라에서도 '여류'라는 말을
쓰면 시대착오적이라는 비난을 받기 쉽고, 신문이나 잡지에서도 '그녀'라는
3인칭 대명사를 삼가는 추세입니다).
이 PC 운동에는 페미니스트와 민권운동가만이 아니라 '동물의 권리' 운동
가, 환경보호 활동가, 뉴에이지 운동가 등 여러 그룹이 가담했습니다. 이들
이 내세운 구호는 '마이너리티에게 경의를!"입니다. 이들은 연령차별, 체중
차별, 신장차별, 소득차별, 체취차별 등 온갖 종류의 차별적 표현과 맞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인간과 비인간 동물 사이에 존재하는 종차별도 그 중
하나입니다.
요즘에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대신 '다원문화적(multicultural)'이라는
용어를 쓰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과거의 '유럽계 백인 남서 엘리트
의 눈'이라는 일원적 관점에서 벗어나, 혼성민족의 다중문화적 눈, 나아가
서는 동물들의 눈까지 포함한 다원적 관점을 갖자는 것이지요. 이미 알고
있던 차별만 해도 놀랄 만큼 오랜 역사와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막
상 다원문화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자 사방에 보이는 것들이
온통 차별투성이인 것입니다.
가너는 바로 여기에 착안하여, 명작으로 알려진 동화들을 개작하는 일에
착수했습니다. 표현은 물론이고, 줄거리에서부터 주인공의 성격이나 생활방
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PC적으로 고쳐 쓴 것입니다(예를 들면 '여성'은
woman이나 womyn으로 표기했고, 그 밖에 신조어까지 만들어 쓰고 있어서,
독자 여러분은 책 속에서 왠지 생소하게 느껴지는 표현들을 자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차별과 편견을 없앤 PC 동화집 '정치적으로 올바른 베드타임 스토리'는 이
렇게 하여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출산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닙니다.
스물일곱 번이나 거절당한 끝에 스물여덟 번째 출판사에 의해 간신히 받아
들여졌기 때문입니다. 널리 알려질 때까지는 얼마간 시간이 걸렸지만, 이
책은 어느 날 갑자기 팔리기 시작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베스트셀러 목록
의 윗자리로 치달았습니다. 아마 경악한 것은 가너 자신보다 그를 퇴짜놓았
던 스물일곱 개의 출판사들 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책으로 어린 시절에 동화책에서 만났던 주인공들을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거울을 심리치료사로 삼고 있는 왕비, 생태적 균형에 신경을
쓰는 염소 삼형제, 요가 명상을 수행하는 백설공주, 여성해방운동의 기수가
된 신데렐라...... 이들의 달라진 모습은 그러니까 세상을 PC적으로 바라보
는 관점을 예시해주는 본보기들입니다. 그리고 그 관점을 체험하는 것, 그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 책에서 보람을 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작가는
코미디언답게 독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픈 마음에서 이 책을 썼겠지만 말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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