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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지 스윈델스] 슬픔보다 깊은 사랑

by Casey,Riley 2023.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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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픔보다 깊은 사랑 제1권
맷지 스윈델스

 
  
    제1부 그대의 눈길
  도버의 새하얀 절벽은 바로 그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햐얗다기보다 푸르게 보였다. 존재의 
참혹함에서 벗어난 자연의 정원으로 현지인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는 곳이었다. 컴프리와 야
생 백리, 보라색 난초와 실잔대 뿐 아니라 파슬리가 만발했다. 한 바퀴 둘러보는 보통  여행
객들에게 그 절벽은 백악질 구릉지대의 날카로운 끝자락에 지나지  않았다. 겨울이 되면 그 
능선을 뒤덮었던 관목과 풀이 자취를 감추는 바람에 백악질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지만  절벽
은 늠름하게 제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태풍과 포효하는 바다에 맞서  이렇게 말하는 듯 했
다.  '더 이상은 안돼!' 이 절벽처럼 말없고 강인한 주민들은  그 인내력에 경외심을 품었다.  
여기까지가 자갈 해변에서 성을 바라보던 후리후리한 청년의 생각이었다.  그는 이 곳의 본
질을 파악하고 그 직관을 언어로 표현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한동안 해변가를 어
슬렁거리던 그는 저 멀리 영국 해협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반짝이는 햇살이 일렁이는 바
닷물에 반사되어 빠르게 항해중인 호버크래프트에 눈부신 아지랑이가  겹쳐졌다.  6월 중순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맑았고 태양은 중천에 떠 있었지만 묘하게 피를 끓게 만드는 동풍의 
기운이 감돌았다.  
  "여름의 절정에서 겨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네....."  
그는 활력이 온몸에서 샘솟듯 영감이 분출할 듯한 예감을 느끼며 속삭였다.  하지만 참담한 
공백의 시간만 연장되었고, 그는 수첩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반바지를 벗었다.  차가운 바닷
물이 몸을 움츠리게 했지만 그는 온몸에 박차를 가했다.  그는  무릎 깊이의 바닷물에 배치
기로 뛰어든 다음에 방파제를 향해 일사불란하게 빠른 크롤형으로 헤엄치는 짬짬이 물에 둥
둥 떠서 휴식하며 해안선을 뒤돌아보았다.  평서처럼 위풍당당한 성과  초라한 마을의 대조
에 우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과연  저 마을이 서사시 감일까?  영어 선생인  피트만 씨는 
그에게 다음 호 대학잡지에 실을 작품을 기대하고 있었다.  소금기어린 물방울에 눈이 아렸
다.  그는 찝찌름한 바닷물을 거푸 들이켜 가며 전속력으로 수영했다.  그때 작은 배 한척이 
눈에 띄었다.  돛이 느슨해진 채 바람에 펄럭이고 파도에 이리저리 떠 밀려다니는 모양새가 
승선한 사람이 없는 듯했다.  그는 방향을 바꿔 그쪽으로 향했다.  뱃전을 부여잡고 힘차게 
몸을 솟구친 반동력으로 가뿐하게 갑판에 올랐다.  순간 그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예
쁘장한 나체의 소녀가 몸을 쭉 펴고  누워 있다 말고 얼른 수건을 잡고  몸을 가리려 했다.  
하지만 바람이 불어오는 바람에 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의 속에서  환희와 욕망이 
동시에 솟구쳤다. 
 "우와!" 
 그가 말했다.  
"미안해요, 저기 뒤쪽에서 보니까 이 배가 표류한 것  같아서요.  저기, 아무도 보이지 않기
에....."  
"돌아서요, 아니면....."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그 말투로 보아하니 그녀는 이 지방 소녀였다.  격렬한 성적인 흥분
에 동요한 그는 마지못해 뒤돌아 섰지만 그녀의 영상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녀의 피부는 
흠집 하나 없이 매끈했고 황금빛  긴 고수머리는 햇살에 반짝거렸다.  그녀의  큰 눈동자는 
바다처럼 초록인 동시에 푸르렀고 종알거리던 그 입술은 키스를 절로 불러들일 만큼 매혹적
이었다.  
"서두르는 편이 좋을 겁니다!  방파제에 너무 가까이 왔어요."  
그는 그녀의 씨근거리는 숨소리를 들었다.  
"어휴!  내가 잠들었어요.  일광욕을 하던 중이었거든요.  이제  뒤돌아서도 돼요.  난 옷을 
다 입었어요."  
  그는 반색을 하며 그 말에 따랐지만, 그녀는 닻을 걷어올리느라 그런 눈치를 채지 못했다.  
"풍향이 바뀌었어요."  
그녀가 소리질렀다.  물 빠진 청 반바지와 낡은 회색 저지  차림인 그녀는 여전히 매혹적이
었고, 그는 몸을 감출 수 있는 옷가지가 그리웠다.  이제 스스로를 소개할 시간이 된 것  같
은데.....  
"난 로버트 맥라렌이고, 도버대학에 재학중이에요."  
"그럴 줄 알았어요."  
그녀가 중얼거렸다.  이제 배는 경쾌하게 파도를 갈랐고, 그녀는 미소지으며 고물에 앉아 키
를 잡고 있었다.  "꽤 좋은 배인데요." 그가 말을 걸었다.  
"어떤 기후도 견딜 수 있는 배예요.  오늘처럼 좋은 날씨에는 즐거움을 주지만 악천후 속에
서 생명을 의지할 수 있을 만큼 튼튼하죠.   우리 아빠가 이 배를 건죠하셨어요.  돌아가기 
전에 한바탕 달려 보고 싶으세요?" 그녀가 방파제 쪽을 가리켰다. "좋다마다요."  
  그가 동의했다.  그녀가 배를 조정하는 솜씨는 일류급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 그는 그녀
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그에게 복수를 하려는 것 같았다.  그녀는 
전복될 만큼 돛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거친 해수면에 배의 옆구리를 거의 맞댄 상태에서 숨
이 멈출 만큼 빠르게 항해했다.  세찬 마파람에 배가 전복되려는 아찔한 순간, 그들의 배는 
집어삼킬 듯 돌진하는 파도 사이를 날쌔게 달렸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물에 젖고 두 눈은 
발갛게 충혈되고 젖은 상의는 풍만한 가슴에 착 달라붙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
고 웃고 있었다.  얼마나 아름답고 용감한 소녀인가.  마침내 그녀는 그에게 겁을 주려던 시
도를 포기하고 방향을 돌렸다.  
"그래서 당신은 항해하지 않을 때 뭘 하죠?" 정신을 되찾자마자 그가 물었다.  그녀는 여전
히 화가 덜 풀린 눈치였다. "이봐요, 내가 잘못했어요.  이 배가 무인 상태로 방파제 쪽으로 
표류하는 줄 알았어요. 그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옳았겠어요?  당신이 정  원하면 난 
그냥 헤엄쳐서 돌아갈께요." "아녜요, 이제 됐어요.  당신을 데려다 줄께요.   내가 고마워해
야 마땅하겠지만 사실.... 그런 모습을 들킨 게 좀 약이  올랐어요.  음, 일광욕이란 게..... 기
회를 잘 잡아야 하잖아요."  
  그녀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삐진 걸까? "차와 스콘을 들면서  그 지루한 상견례를 하
는 게 어때요?" 배가 항구에 도착하자 로버트가 제의했다.  
"난 알아야 할 것을 전부 알고 싶어서 몸살이 날 지경이에요.  가령, 당신이 언제부터  변기
를 사용했는지, 매일 플로스로 이빨을 닦는지, 키스를 몇 번이나 해봤는지 등등 모든 남자들
이 알고 싶지만 물어 보길 두려워하는 그런 질문들이죠."  
그가 오랫동안 뜸을 들인 다음에 재차 물었다.  
"케이크를 좋아해요?"  
"쵸코렛 케이크라면."  
그녀가 웃음을 터뜨리자 불그스레한 양볼에 보조개가 들어갔고 길고 관능적인 목이  진동을 
쳤다.  저지 상의 속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탓에 풍만한 가슴이 흔들렸다.  
"댁은 꽤 괜찮네요.  하지만 내 대답은 '싫어요'예요.  그런 것을 알기 위해 케이크를 살  필
요는 없어요.  그냥 가르쳐 드릴께요." 
"함께 가겠다는 거죠?"  
"물론이에요. 그리고 내 이름은 마조디 하디예요."  
그녀는 짤막하게 말했다.  
   
어깨에 책가방을 맨 두 소녀가 사이좋게 팔짱을 끼고 집으로 향했다.  그 옆에 펼쳐진 바다
의 부드러운 동작에 따라 미묘한 광채가 반짝거렸다.  바다는 성숙한 여성처럼 끝없는 가슴 
한가운데 불타오르는 정열을 감추고 다정하게 속삭였다.  그 바다와  닮은 소녀들이 재잘거
리며 황혼 속을 걷는 모습은 마치 천상의 것 같았다.  친구이자 이웃인 바바라는 눈치 없이 
마조리의 변변찮은 옷가지에 대한 화제를 계속 입에 올렸다.   마조리에게는 가족에게만 털
어놓을 수 있는 민감한 그 화제를.  
"자, 어서 털어 놔.  너는 오늘 뭘 입고 합창 연습을 갈거니?"  
마조리의 심장이 아래로 쿵 떨어졌다.  
"교복을 입고 가는 줄 알았는데."  
"아냐! 선생님 말씀이 수수한 복장을 하래.  청결한 흰 블라우스를 받쳐입은 얌전한 정장 차
림 말이야."  
마조리는 친구의 말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녀의 감색 교복 코트는  인물을 몇 곱절 볼품
없고 뚱뚱해 보이게 했지만, 다들 교복이란게  워낙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외에 야광 
노랑색 방수 코트와 3 년 전에 구입한 야한 오랜지색 코트가 각각 한 벌씩 있었다.  하지만 
그 코트는 길이도 짧고 품도 작아졌기 때문에 단추를 전부 잠그면 아예 숨쉬기를 포기해야 
할 정도였다.  엄마가 두 벌뿐인 치마와 단벌 바지의 단을 덧댔지만,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여전히 바지는 우스꽝스러울 만큼 깡총했다.   게다가 아무리 적게 먹어도 가슴은  왜 자꾸 
부풀기만 하는지.  그녀에게는 점잖은 블라우스는 한장도 없는 실정이었다.  바바라가 옆에
서 계속 수다를 떨었지만 그 말이  마조리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한  손이 그녀의 
팔 위에 살포시 얹혀졌다.  
"고양이가 네 혀를 잘라먹어 버렸니?"  
친구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미안해.  네가 무슨 말을 했더라?  난 깜박 다른 생각에 빠졌어."  
"전에 만났던 그 대학생 생각을 했구나?"  
"어머! 아예 그를 잊고 있었는걸."  
그녀는 거짓말을 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의 모습이 좀처럼 그녀의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파르스름한 빛이 감도는, 결이 굵고  곱슬거리던 머리칼과 깊고 맑은 암갈색의 그 
눈동자.  항상 미소가 떠나지 않는 얼굴에 스치는 바람같은 표정  변화는 그의 성질이 만만
치 않은데다 감정 기복이 심하고 정열적임을 말해 줬다.  가무잡잡한 구릿빛 피부.  키가 크
고 강한데다 내적인 차분함까지 갖췄다.  그래, 그는 집시여야 마땅해.  아니면 스페인의 혈
통이 흐르거나.  하지만 그 멋진 목소리에는  스코틀랜드 억양이 희미하게 묻어났다.  함께 
차를 마셨던 그 짧은 한 시간 동안 그는 그녀를 계속 웃기면서 그녀의 인적사항을 모두  이
끌어냈지만, 그녀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의 영어에 대한 애착뿐이었다.  그는 전력을 기울여 
옥스퍼드로 진학하여 영어를 공부하고 시인이 되기를 희망했다.  
"시를 써서 먹고 살 수 있어요?"  
그녀가 그에게 물었다.  
"글쎄?  한평생 죽도록 가르쳐야 나의 뮤즈를 먹여 살릴 수 있을  거야.  워낙 뮤즈란 돈이 
많이 들어가는 요정들이거든."  
그와 같은 사람은 처음이었다.  로버트가 카페 밖에서 명랑하게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했을 
때, 그녀는 마음 한귀퉁이를 그에게 남겨두고  가는 기분이었다.  그는 다시 만나자는 말도 
하지 않았다.  하긴 그가 꼭 그래야 할 이유도 없지 뭐.  그날 이후 그녀는 밤마다 그의 꿈
을 꿨지만 어젯밤은 특히 생생했다.  그가 나체로 수영해 와서  일광욕을 하고 있던 그녀의 
보트로 쓱 올라왔다.  두 사람은 갓 태어난 아기들 마냥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서
로에게 가까이 다가갔고, 그 다음에 얼굴 붉힐 만한 일이 벌어졌다.  
"어머머! 네 뺨이 발개졌어.  왜 그러니?" 
"그냥 좀 더워서 그래.  햇살이 뜨겁네."  
"흥! 알 만하다.  얘, 해는 이미 지평선으로 넘어갔어.  그 남자 생각에 온몸이 달아오른 거
지?"  
바바라는 깔깔거리며 웃은 다음 마조리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소녀들은 
마조리의 집에 도착했다.  마조리는 친구에게 재빨리 작별인사를 건네며  대문을 열고 집안
으로 들어갔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엄마."  
지하 부엌에서 그녀의 인사를 받아 주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지금이 옷 이야기를 
꺼낼 좋은 기회야.  그녀는 계단 주변에서 서성거리다가 결국 마음을 굳혔다.  최근에 뭘 해
달라고 졸라 본 적도 없다.  요즘 부쩍 아빠에게 걱정거리가  많은 눈치였지만 지금쯤 차를 
마시고 쓴 맥주 한잔으로 빵과 청어 맛을 가셔냈을 테니까 기분이 좋으실 거야.  게다가 오
늘은 수요일, 좋은 날이었다.  아빠의 생활은 축구내기를 축으로  돌아갔다.  토요일 오후에 
벌어지는 시합은 아빠의 기분을 최저로 떨어뜨렸다.  번번히 내기에서 졌기 때문이다.  주말
과 월요일에는 바닥세를 기었지만, 화요일에 희망이 다시 솟아났고 수요일은 낙천적으로 전
환되었다.  그러다가 목요일에 기대감이 고조되었고,  금요일에 절정에 이른 기분이 토요일 
정오까지 계속 유지되었다.  항상 그런 식이었다.   따뜻한 오후였다.  아빠와 엄마는 조금 
있다가 바닷가를 한바퀴 산책하고 선술집에서 목을 축이시겠지.  아래층으로 뛰어내려간 그
녀는 짐작이 옳았음을 확인했다.  두 분은 마침 외출 준비를 하고 이었다.  
"차시간에 늦었구나."  
엄마가 말했다.  
"네가 먹을 것을 남겨 뒀다.  저기 보자기로 덮어놨어." 
"고마워요.  그런데 엄마, 난 도버대학에 가야 해요.  우리가  거기 학생들과 헨델의 메시아
를 노래하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내일  저녁부터 얼마 동안 본격적인 연습이  시작될 거예
요."  
엄마가 그녀의 어조에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그래서?"  
"엄마, 새 코트를 사주실 수 없어요?  내 것은 품이 너무 꼭 껴요.   겨드랑이 아래가 아플 
지경이라구요. 그리고 길이도 너무 짧아요."  
"바보같은 소리! 물과 기름을  섞는 꼴이야.  그  대학생 나부랑이들을 쳐다보지도  말아라.  
얘야, 부자는 부자들끼리 결혼하는 법이야."  
"어휴, 엄마는! 난 합창 연습을 하러 간다는데 엄마는 왜 결혼 운운하세요?"  
그녀가 깔깔거렸다.  
"지금 당장은 새 코트를 사줄 형편이 못돼.  불경기의 조짐  덕분에 화물 선적이 큰 타격을 
입었거든.  네 아빠가 벌써 여러 주일 동안 과외 수당을 벌지 못하셨기 때문에 걱정이 태산
같단다.  하지만 생각해 보렴, 이제 몇주만 있으면 네가 스스로 돈을 벌게 되잖니.  넌 어엿
하게 자립한 아가씨가 될 거야.  나 같으면, 내가 내 주머니를 꿰어찰 때까지 꾹 참고  기다
리겠다."  
마조리는 솟구치는 공포를 꾹 삼키려 했다.  엄마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지, 주말 아
르바이트?  두분 모두 그녀가 교사가 되려는 것을 아실 텐데.  항상 엄마는 모든 사람을 어
물쩡 속여넘겼고, 엄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중요한 것인 양 왜곡하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아빠는 신문을 읽는 척하고 있었지만 실은 모녀의  대화를 다 듣고 있었
다.  
"아빠, 용돈 좀 주실 수 없으세요?"  
마조리가 아버지에게 호소했다.  
"쟤가 도버대학의 합창단에서 노래를 하게 된대요."  
엄마는 아빠가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아빠는 거북한 눈치였다.  
"네 교복 코트는 아무 문제도 없어.  학교에 입고 가기  적당한 옷은 고관대작과 만나는 자
리에도 통해."  
"하지만 밤에는 사복을 입어요."  
그녀가 말을 받았다.  
"그럼, 네 오랜지 색 코트를 입으렴."  
엄마가 제안했다.  
"그건 정말 예쁘잖니."  
"너무 짧고 꽉 낀다니까요."  
마조리가 받아쳤다.  
"그건 그래.  우스꽝스러워 보여."  
아빠가 동의했다.  
"내 치마랑 바지도 전부 짧아요.  난 도대체 뭘 입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마조리는 드디어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말해줬잖니.  교복을 입으라니까."  
아빠가 다시 신문으로 눈을 돌렸다.  
"안될 말이에요." 
이번에는 엄마가 나섰다.  
"다른 아이들이 다 사복을 입는데 쟤 혼자 교복을 입을 수는 없어요.  얘, 코트가 좀 짧으면 
어떠니?  짧은 게 유행이잖아."  
"그렇게 짧은 게 아니잖아."  
아빠가 투덜거렸다.  마조리는 의자를 제치고 벌떡 일어나 부엌 밖으로 뛰쳐나갔다.  부모님
을 설들할 만한 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  
"요즘 쟤는 점점 더 다루기 힘들어지고 있어."  
그녀의 귓전에 아빠의 불평이 들렸다.  
"아, 별거 아녜요. 크느라고 그러는 거예요.  언젠가 쟤도 우리 품에서 날아가게 될 거예요."  
마조리는 말할 수 없는 외로움과 사랑에 굶주린 심정으로 위층으로 뛰어 올라가 침대에 주
저앉았다.
   
마조리의 다락방은 두 개의 들창으로 스며든 노을 빛으로 가득찼다.  전형적인 십대의 침실
답게 우상의 포스터가 사방 벽과 반쯤 경사진 천장에 빠짐없이 붙어 있었다.  마크 볼란, 로
드 스튜어트, 도니 오스몬드, 엘비스 프레슬리가 공포에 질린 베트남 모자와 시위하는  미국 
인디언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중고 서점에서 하나 둘 주워  모은 예술과 음악, 고전과 시, 
패션에 대한 책들과 라디오 한 대가 세간의 전부였다.  방바닥에는 쿠션들이 뒹굴었다.  마
조리는 창문 아래의 바닥에 앉아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온 패션 잡지를 펼쳤다.  여기에 뭔
가 응용할 만한 게 있을 거야.  하지만 잡지 모델들이 그녀의 기를 죽여 놨다.  흠 하나 없
이 매끄럽고 긴 다리, 완벽한 얼굴, 오만하고 자신만만한 저  표정들.  거울을 들여다 본 그
녀는 죽고 싶었다.  조금만 더 예뻣다면..... 하지만 그녀처럼 길고 야성적인 스트레이트의 머
리칼을 가진 모델은 없잖아.  그 부분은 걱정할 거리가 못돼.  화장은 갈색 아이라이너아 검
붉은 립스틱으로 때우기로 하자.  그런데, 옷은 어쩌지?   그녀는 잡지 속에 화려한 세계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처럼 한 글자도 놓치지 않았다.  '70 연대는 패션에  현실감
을 불어넣었다.  환상적인 패션이 퇴조하는 경향이고, 세련된 현대 여성이라면 거친 경제 현
실에 부합해야 할 것이다.'  
"그야 주지의 사실이지."  
그녀가 중얼거렸다.  절망감이 엄습해왔다.  그녀가 응용할 만한 소재가 하나도 없었다.  그
때, 팔짱을 끼고 즐겁게 거리를 뛰어 다니는  두 소녀의 사진이 눈에 확 들어왔다.  그들은 
'큐롯'이라는 무릎 길이의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그 사진을 열심히 연구한 다음 뛰어
나가 엄마의 바느질 가위를 가져왔다.  단을 얼마나 많이 잘라야 할까?   꽤 많이 잘라야겠
는걸.  싹둑싹둑 가이 소리에 맞춰 그녀의  심장이 방망이질을 쳤다.  바지를 망쳐놓았다간 
아빠에게 혼이 날  텐데.  그녀가 바지  단을 자르고 있을  때, 아래층에서 엄마가  불렀다.  
"얘, 우리는 밖에 나갔다 올게."  
아빠 엄마가 선술집에서 뿌리는 돈으로 나의 새 옷을 다섯 벌쯤 살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소용없는 일로 마음을 끓여 봤자 헛수고였다.  그녀는 부엌으로 내려가 큐롯을 다림질한 다
음에 시험삼아 몸에 대봤다.  와!  괜찮은데.  이제 블라우스 차례였다.  대부분의 모델들은 
블라우스의 단추를 허리춤까지 풀어 놓은 스타일이 잘 어울렸다.  하긴, 다들 모델들이 훌러
덩 벗기를 기대하는 데다 그들에게는 앙상한 뼈밖에 보여줄게 없으니.  그래, 블라우스 단추
를 채우지 않으면 그게 작다는 사실이 표나지 않을 거야.  그녀의 생각에 잠긴 눈이 검정색 
학교 수영복에 닿았다.  몇 벌의 옷을 주서모아 아래층으로 뛰어내려  온 그녀는 엄마의 큰 
거울앞에서 옷을 벗었다.  그녀는 맨 몸을 거울에 비쳐 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녀는 오랫
동안, 그리고 진지하게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얼굴을 붉혔다.  전보다 가슴이 더 커졌네.  젖
판의 색도 짙어지고.  이게 나일까?  꼭..... 처음 보는 사람 같아.  그녀는 생각보단 훨씬 늘
씬했다.  한참 후에 그녀가 손을 들어 가슴을 움켜잡자 부드러운  상아빛 피부 아래로 가슴
이 단단해졌다.  로버트의 손이었다면.....?  망측한 생각에 그녀의 얼굴이 더 붉어졌고 유두
가 커지고 단단해짐과 동시에 허벅지 사이가 축축하게 젖어 왔다.  
"아, 로버트."  
그녀가 속삭였다.  
"이런 바보 같은 짓은 이제 됐어."  
그녀는 소리내서 말했다.  얼른 수영복을 입은 그녀는 큐롯을 입고 벨트를 맨 다음 교복 셔
츠를 단추를 채우지 않은 채 슬쩍 위에 걸쳤다.  음, 봐줄 만 한걸.  하지만 신발은 어쩌지?  
그녀는 한 번에 두 계단씩 위층으로 뛰어올라 가서 하나밖에 없는 하이힐을 가지고 다시 내
려왔다.  사촌의 결혼식때 얻어 신은 하얀 색 신발이었지만 구두 염색약을 칠하면 돼.  이제 
패션 잡지에서 빠져나온 듯한 의상을 갖게 될  거야.  오후는 금방 흘러갔다.  마침내 모든 
준비를 다 마쳤지만, 뭔가 미진한 부분이 있었다.   귀걸이!  동급생의 절반이 귀를 뚫었다.  
바바라도 생일 날 귀를 뚫었고 금으로 된 링 귀걸이를 선물로 받자 마조리에게 헌 것을  줬
다.  마조리는 솜을 깐 성냥갑 속에 보관했던 귀걸이를 꺼내 귀에 댔다.  그렇게 아프지 않
겠지?  그녀는 커다란 안전핀을 찾아 주변을  뒤지는 동안 마음을 다졌다.  그리고  그것을 
찾아냈을 즈음 마음의 준비를 끝낸 그녀가 과감하게 안전핀으로 귀를 찔렀다.  아얏!  너무 
아파서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다.  핀을 살 속에 더  깊이 찔러 넣자,  아픔이 참을 수 없는 
단계에 도달했다.  그녀는 서둘러 얼음을 가지러 내려갔다.  얼음을 귓볼에 대고 돌아온 그
녀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마조리 하디, 너 패션 모델같이 보이고 싶니, 아니면 어리숙한 시골뜨기처럼  보이고 싶니? 
그건 전부 귀에 달렸다구."  
그녀는 안전핀을 소독 병에 담갔다가 다시 일에 착수했다.  십분 후, 그녀의 가슴은 두근거
렸고 눈에는 눈물이 맺힌데다 얼굴은 절벽처럼 새하얗게 질렸지만 귀걸이는 단단하게  제자
리에 달려 있었다.  
   
줄 사다리가 있으면 원이 없겠어.  마조리는 나선형의 계단 참에 서서 용기를 불러 모았다.   
모임에 늦겠다는 공포에 몰려서야 그녀는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이힐 소리가 망치
질처럼 크게 울려 퍼졌다.  또각, 또각, 또각!  제기랄!  그녀가 허리를 숙여 구두를 벗었지
만 이미 때는 늦었다.  아빠가 신문을 한 손에 쥐고 뛰어 나왔다.  그는 한참 보고만 있다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맙소사!  여보.  이리 와서 이것 좀 봐.   얘가 저렇게 차려입고 어디를 갈 생각인  거야?"  
엄마는 폭탄을 맞은 사람같았다.  
"얘, 너무 심하구나."  
"괜찮아요, 정말이라구요.  난 잡지를 모방한 거예요."  
엄마는 검정색 바지가 무릎 길이로 짧아졌음을 알아차리고 헐떡거렸다.  
"너에게 한마디 해야겠구나....."  
하지만 엄마는 아빠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테고, 마조리는 속으로 그 점을 고맙게 생
각했다.  
"그 립스틱은 어디서 났니?"  
"돈을 모아서 샀어요."  
"너에게 잘 어울리는 색이구나.  하지만 머리를 왜 그렇게 한 쪽으로 모아 늘어뜨렸니?  뭘 
숨기려는 것처럼 보이잖아."  
엄마가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마조리가 움찔 뒤로 물러서 난간에  몸을 기대는 바람에 머
리칼이 뒤로 넘어갔다.  

"하느님 맙소사!  너 귀에 무슨 짓을 한 거냐?" 
 "별거 아니에요."  마조리가 뚱하니 대답했다.  
"이 바보같으니!  심하게 감염되었잖니.  굉장히 아프겠는걸.  내가 치료를 해줄  테니 잠깐 
기다리렴.  나는 네가 아주 근사해  보인다고 생각해."  
마조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는  이런 다정함이 아니라 검열을  받게 될 줄 알았다.   
잠시 후, 그녀는 무지막지하게 아픈 귓볼 치료와 아빠의 엄격한 훈계와 함께 엄마의 엄지손
가락에 눈 화장이 다 지워지고 화장지로 입술을 닦아 낸 다음에야 요란한 또각 소리와 함께 
버스 정류장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는 거기에  없었다.  대학 강당 주변을 재빨리 훑어본 
후에 찾아온 실망감에 그녀는 배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대학 합창단 지휘자가 그
들을 정렬시켰다.  여자는 오른쪽, 남자는 왼쪽, 독창자는 맨 앞으로.  마조리는 그중 한 명
이었다.  합창단 지휘자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합창을 준비했다.  그들이 노래를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큰코 다칠걸.  합창단의 절반은 웨일즈 출신이었다.  그들의 선조는 웨일즈 광산
이 폐쇄되기 시작했을 때 이곳으로 이주해  왔다.  잠시 후 백여 명의 애띤  목소리가 낡은 
건물 안에 울려 퍼지자, 지휘자는 충격과 동시에 환희에 젖었다.  마조리의 실망감과 불안함
은 씻은 듯 사라졌다.  노래는 그녀의 몇 가지 안돼는 장점 중 하나였다.  이제 그녀가 독창
할 차례가 되었다.  
'저기 황야를 지키는 양치기들은 밤의 외투가 드리워도 제자리를 지키네' 그녀는 독창  부분
이 끝날 즈음 자신이 멋들어지게 해냈음을 알았다.  그녀의 맑은 목소리는 아빠에게 물려받
았다고 엄마가 노상 말씀했었다.  아빠는 술에 취했을 때만 노래를 불렀지만, 그 맑고 청아
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뽑아 내는 '대니 보이'에 듣는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감동하곤 
했다.  지휘자는 대학 합창단의 실력에 얼굴을 붉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수준 이하였
다.  뭐, 웨일즈 광부들이 자식을 도버대학에 보내진 않잖아?  지휘자에게는 정말 안될 일이
야.  그녀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녀와 합창단원은 힘차게  마지막 부분을 마무리했다.  
'그의 임무는 쉽고 멍에는 가벼워라' 곧 그들은 수다를 떨며 무대에서 내려와  우왕좌왕하며 
끼리끼리 어울리거나, 한숨 돌릴만한 장소를 물색하러 갔다.  '다 부질없는 짓이었어' 그녀는 
안전핀으로 용을 썼던 노력을 떠올리며 결론을 내렸다.  
"다시 만났네."  
그의 목소리야!  그녀는 숨을 몰아쉬며 몸을 돌렸다.  거기에 그가 있었다.  6피트  2인치의 
훤칠한 그가 미소 띤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당신이군요."  
그녀는 한숨을 쉬었지만 방어벽이 사라진  그녀의 눈빛은 그 이상의 말을  전했다.  그녀는 
얼굴을 돌렸지만 이미 늦었다.  그는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여기서 나가자."  
그가 속삭였다.  
"내가 차를 책임질게.  난 오랫동안 기다렸다구.  어때, 좋지?  여기에는  곰팡내 나는 비스
킷과 희여멀건한 차가 전부야."  
그녀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할 말이 많지 않았다.  유원지에서  놀이기구를 탄 
기분이었다.  온몸의 피가 거꾸로 돌았고 숨이 가빴으며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는 
순순히 그를 다라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의 자동차 검정 가죽 좌석에 앉았을 때야, 그녀는 
바바라에게 작별 인사도 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집에 너무 늦게 들어가면 아빠에게 혼날 거야."  
그녀는 겨우 또박또박 말했다.  
"나는 네가 합창단원이길 바랬어."  
그의 미소에 그녀의 속이 울렁거렸다.  그는 곧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난 강단 구석에서 노래를 들었는데, 너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난 명화나 티에스 엘
리옷의 시를 접하거나 멋진 노을을 보면 몸에서 소름이 돋아.   명품에 알레르기가 있는 것
처럼 말야.  내 팔을 만져 봐."  
그녀는 시험삼아 한 손가락으로 그의 피부를 살짝  만지고 그의 팔에 난 검은 털의 촉감에 
전율했다.  
"이건 너와 네 목소리 때문이야.  네 노래는 훌륭했고 넌 너무 아름다워."  
"아부하지 마."  
그녀는 어색해 하며 대답했다.  
"넌 모르니?"  
"뭘?"  
"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그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때부터 그녀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또 어디로 가는지 의
식하지 못했다.  그녀에게 유일한 현실은 그의 손가락의 감촉이었고 그 느낌은 여름 태풍의 
요란한 천둥 번개처럼 그녀의 속을 뒤흔들어 놨다.  반쯤 정신이 나간 그녀는 그를 따라 강
변도로 옆에 위치한 낯선 펍으로 들어갔다.  호샌디를 마셨고 그가 독특한 스코틀랜드 억양
으로 들려주는 어린 시절의 추억과 로비 번즈의 시를 들으며  사랑에 빠졌다.  자정 무렵이 
되어서야 그는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줬다.  
"일요일에 시간이 있니?  교외로 나가면 어떨까?  넌 승마를 하니?"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가르쳐 줄까?"  
"좋아."  
그녀는 황홀하게 중얼거렸다.  
"좋아. 내가 11시에 데리러 올게."  
"나중에 봐요."  
그녀는 대책없이 빠져들었다.  마음속은 온통 옷 걱정으로 가득찼다.  가진 것을 이미 오늘
밤에 다 선보였잖아.  왕자와 그의 마차는 떨리는 그녀를 뒤로하고 떠나 버렸다.  그녀는 한
참 동안 아쉬움으로 서성거리다가 결국 집안으로 들어갔다.  엄마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
다.  엄마는 그녀를 흘겨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이것아!"  
   
일요일 아침 마조리의 집으로 향하는 로버트의 마음속에서 상반된  갈등이 충돌했다.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결국 그냥 밀고 나갔다.  그를 잡아끄는 것은 
마조리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좀더  깊은 매력이었다.  그 속에  그가 원하는 것이 있었다.   
그녀는 가졌지만 그에게는 부족한 그 무엇이.  하지만 그 욕구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그는 그녀의 용기에 대해 생각했다.  갑작스런 광풍 속에서 그녀가  그 작은 보트를 얼마나 
잘 다뤘던가!  그녀는 그보다 더한  것에도 맞서 싸우고 미소로 이겨내리라.   그녀는 도버 
절벽에 핀 푸른 실잔대처럼 차가운 바람과 눈과 얼음을 견디고, 짓밟힘에도 굴하지  않으며, 
박약한 토양 속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아 그 연약한 아름다움을 세상에 알렸다.  그녀도 영국
의 토양에 깊이 뿌리를 내린 결과 태어난 탄력적이고 아름다운  소녀였다.  그는 그녀의 도
덕적인 힘과 선의를 감지했다.  그녀의 눈빛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최선이라고 판단되는 
바대로 행동할 수 있어요.  그리고 흔들리지 않을 거예요.  단  한순간도.  로버트는 그에게 
이런 힘이 결여되었음을 느꼈다.  그는 돈과 권력이 결합된 상류 세계에서 성장해 왔다.  그
의 개성은 그녀보다 훨씬 약했고,  그녀가 별  생각 없이 웃어넘길 고난을 견딜 수 없었다.   
마조리 이 세상과 유머 감각과  뿌리에서 생명력을 취했고, 그는 그녀의  강함과 삶에 대한 
싱싱한 정열을 열렬히 회구했다.  그녀의 집에 가까워질수록 그의  가슴에서 공포감이 분출
했다.  하이 다이빙이나 고공 낙하, 또는 스쿠버 다이빙을 하려고 보트에서 깊은 심해로 뛰
어들기 일보 직전이라고나 할까.  미지의 세계로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하는 심정이었다.  그
는 탈출하고픈 기분을 못 이겨 차의 속력을 높였다.  지금이라도  상류 사회 친구들과 특권
층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어.  하지만..... 한 남자가 되기 위해선 마조리와 그녀의 세상을 경
험할 필요가 있다.  잠시 후 그는 속력을 늦추고 유턴을 한 다음 모퉁이에 차를 세웠다.  열 
두어채 되는 이웃의 절반 이상이  그를 내다봤고 어디선가 본듯한 소녀가  '안녕하세요'하고 
외쳤다.  화창한 아침이었고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로버트는 안으로 들여다보이는 알록
달록한 노움 상이 거기에 없는 양 무시하고 노크를 했다.  그 다음에  망사 커튼과 딸기 무
늬 투성이의 커다란 초록색 깔개, 복도의 호두나무 선반과  거기에 얹혀진 싸구려 장식물이
며 조화까지 전부 없는 척해야만 했다.  맙소사!  이렇게 볼쌍사나울 수가.  마조리와  조금 
닮은 여자가 종종걸음으로 나왔다.  
"안녕하세요, 청년이 로버트군요.  나는 마조리의 엄마예요.  들어와요.  걔는 곧 내려올 거
예요.  자, 안으로 들어와요, 로버트."  
그녀는 꽤 호리호리한 체구였고 창백한 얼굴에 주름이 아로새겨졌다.  검은 눈썹과 푸른 눈
동자.  희끗희끗한 머리를 보브 스타일로  짧게 다듬고 작은 입술이 묘하게  젊어 보이지만 
그녀의 미소는 딱딱하고 부자연스러웠다.  그녀는 그를 데리고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 듯한 
작은 거실을 가로질러 뒷정원으로 갔다.  거기에 그녀의 남편이 멜빵 바지와 조끼 차림으로 
단풍나무 밑에 앉아 있었다.  구두를 손질하던 그는 아내가 로버트에게 남편을 소개하는 말
에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로버트는 그 남자의 낭패스런 기분과  아울러 불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는 키가 작고 땅딸막한데다 주름이 깊이 파이고 풍파에  시달린 얼굴을 하고 있
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선생님.  저는 로버트 맥라렌이라고 하는데,  따님을 교외 드라이브에 초
대했습니다.  우리는 승마를 할 예정입니다.  참 좋은 날씨지요?"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하디씨는 인사말로 무겁게 입을 뗀 다음에 여전히 같은 톤으로 말을 이었다.  
"내 보기에, 자네는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거야.  내 딸은 엄하게 자라났고, 전에 사내 녀석
들과 어울려서 외출해 본 적이 없어.  그 애는 착한 딸이니, 자네가 걔를 존중해 주지  않는
다면 내 손에 쓴 맛을 보게 될 걸세, 로버트."  
갑자기 고개를 쳐든 그의 반짝이는 초록 눈에 담긴 메시지는  분명했다.  그 내용은 극도의 
악의에 차 있었다.  맙소사!  정말 끔찍하군!  그의 서투른 경고는 아까 봤던 싸구려 장식물
이나 조화의 수준과 일치했다.  
"선생님,"  
로버트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저는 따님의 의사를 최대한도로 존중하겠습니다."  
그는 다른 화제거리를 찾아 절망적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뒷 문 옆 궤짝 속에 있는 커다란 
갈색 토끼를 발견했다.  토실토실하게 살찐 그 놈은 귀를 앞으로  축 늘어뜨리고 코를 쫑긋
거리며 상냥한 눈으로 그들을 봤다.  로버트가  녀석의 털이 북식북실한 뺨을 긁어 주었다.   
"좋은 토끼군요."  
그가 말을 붙였다.  
"놈의 이름은 프랭크라네.  플레미시 자이언트  종이야.  다른 종보다 뼈에  살점이 많다네.  
다음 주 일요일 정찬 거리로 놈을  살찌우고 있어.  아내의 토끼 파이는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거든."  
"아!"  
로버트는 가까운 의자에 주저앉았다.  고개를 떨군 하디 씨는 더  열심히 구두를 닦으며 날
씨 이야기며, 이맘 때 농작물과 장미가 잘 자란다는 둥 혼잣말을 늘어놓았다.  그의 억양에 
여러 방언이 뒤섞여 있었다.  조심스러운 말 한마디 한마디에 희미한 아일랜드쪽 여운이 묻
어 났지만 '흐' 발음은 스코틀랜드 식이었다.  그때 마조리가 달려왔다.  발그레한 양 뺨, 쏙 
파인 보조개, 반짝이는 눈.  반바지와 함께 눈 색깔에 맞춘 터키색 저지 상의와 잘 어울리는 
스카프를 매고 있었다.  그녀의 밤색 머리카락이 빛을 발했고 콧잔등에  주근깨가 몇 개 보
였다.  
"새 옷이구나."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아냐, 엄마 거야."  
"그 주근깨도?"  
그녀는 키득키득 웃었다. 
"저번에 봤을 때는 없었는데."  
"기억이나 하는 것처럼 말하네!"  
"난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  
"텃밭을 가꿨어.  우리는 거기에 온갖 것을 다 기르거든.  보고싶니?  그럼, 빨리 가자.  더 
이상 시간을 놓치지 말자구!"
   
집을 벗어나자, 로버트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그름 한
점 없는 따뜻하고 나른한 날이었다.  차창 밖으로 들판과 작은  잡목 숲과 채석장이 지나갔
다.  초원에는 양귀비와 보라색 디기탈리스가 만발했고, 금잔화와 민들레가 점점이 색을 더
했다.  그리고 일렬로 쫙 늘어선 관목 울타리가 산사 나무와 더불어 싱그럽게 빛났다. 
"너는 곧 졸업하겠구나."  
그가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응.  두렵기도 해."  
"그 다음에 뭘 할거니?"  
그녀는 얼굴을 찌푸리고 시선을 돌렸다.   그는 그녀가 입술을 깨무는 모습을  보고 그녀의 
불안을 알아차렸다.  
"브리스톨 대학 입학시험을 봤는데 잘 본 것 같아.  문제는, 엄마가 나에게 곧 밥벌이를  해
야 한다고 암시하는데 있어.  난 그 이유를 모르겠어.  우리는  작년에 이야기를 다 했거든.  
일단 시험 결과를 기다렸다가 그 다음에....."  
그녀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자, 네 이야기를 해봐."  
그녀가 서둘러 말을 잇자, 그는 그녀가 화제를 바꾸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너는 너희 집에 대해서 한번도 말하지 않았잖아.  왜 하필이면  도버대학을 선택했니?  시
인 지망생에게 적당한 곳이어서?"  
그가 웃었다.  
"그런 것 같아.  나는 셋째 아들이야.  장남은 가업을 잇고, 둘째는 법조계에 입문해.  셋째, 
즉 나는 해군에 가야 마땅하고.  그게 우리집 전통이야.  하지만 나는 해군에 입대하지 않을 
거야.  난 시를 쓰고 싶거든.  전에는 그 점을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해군이 좋은 방안처
럼 보였어.  하지만 마음이 변한거야.  우리 모두 그렇듯이 말야."  
그가 그녀의 손을 꽉 쥐었다.  
"너는 절대로 변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줘.  나는 네가 지금 이대로 영원히 있어  주길 바래."  
입 밖으로 꺼내기 쑥스러운 말이었지만 그는 진심이었다.  그녀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한 손에 소원을 빌고 다른 손에 침을 뱉은 다음에 어느  손이 위로 오는지를 봐.  우리 엄
마가 그렇게 말씀하셨어."  
그녀의 말에 유감스러운 그녀의 가족이 불쑥 떠올랐다.  그는 솟구치는 혐오감에 가책을 느
끼며 그녀의 손을 슬며시 놨다.  그녀가  겉보기보다 부모님을 더 많이 닮았을까?   갑자기 
그 사실을 밝혀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마조리."  
오랜 침묵 후에 그가 말을 꺼냈다.  
"넌 애완동물을 기르는 게 걱정되지 않니?  그러니까, 그  불쌍한 프랭크처럼 잘 따르고 친
근한 동물이 나중에 잡아먹히잖아?"  
"아!"  
그녀의 온몸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그는 그녀의 가슴 윗부분의 흰 살결이 장미빛으로 붉어
지는 모습에 하마터면 차선에서 벗어날 뻔했다.  
"저기, 나는 될 수 있으면 토끼들을 보지 않아."  
그녀가 말을 더듬었다.  
"어렸을 때, 내가 특별히 귀여워했던 토끼가 한 마리 있었어.  한쪽 눈 주변만 새까만  점이 
있던 토끼였기 때문에 '넬슨'이라고 불렀었어.  그런데 어느 날 오후 학교를 갔다 왔더니 넬
슨이 배가 갈린 채 뒷문에 대롱대롱  걸려 있는 거야.  그 이후 나는  녀석들을 쳐다보지도 
않아.  그 것만이 내가 상처를 받지 않는 방법이니까."  
로버트의 일부는 노래를 잘 부르고, 한때 토끼를 사랑했던 이  예쁜 소녀에 대한 연민을 느
꼈다.  하지만 또 다른 부분은 여전히 안달을 부리며 확신을 구했다.  
"넌 토끼 고기를 먹었니?  네 토끼 말야?"  
"로버트, 이제 그만 둬."  
그녀가 벌컥 화를 내며 항의했다.  
"뭘 하자는 거니? 날 취조하지 말란 말야.  이건 공평치 못해.  넌 우리 부모님에게도 공평
치 못한 짓을 저지르고 있어.  아빠는 텃밭에서  토끼를 사육해 오셨어.  거기에 있는 것은 
모두 취사용이야.  양배추 양파 양상추 등 모두 말야.  가계에 큰 보탬이  되거든.  너도 알
다시피, 우리 집은 부자가  아냐.  아빠는 토끼를 길러서  한 번에 한  마리씩 살찌우셨어."  
그녀는 말을 멈추고 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게 뭐가 잘못됐니? 넌 채식주의자가 아니잖아.  내가 장담컨대, 너는 사냥을 나가고 사냥
개를 풀어 그 불쌍한 여우들을 갈가리 찢어 놓게 만들걸, 안 그래?"  
그녀의 말이 옳았다.  그의 뺨이 붉어졌다.  입이 열 개라고 무슨 말을 하리오?  
"하지만 네 질문에 대한 답을 할게, 로버트.  아니, 난 먹지 않았어.  전혀 배가 고프지 않았
거든.  당시 아빠는 그게 엄마가 만든 파이 중에서 최고라고 맹세까지 했지만 나는 먹을 수
가 없었어.  넌 이걸 모르지?  나는 아빠보다 엄마의 잘못이 더 크다고 생각해.  엄마가 토
끼 요리를 너무 잘해서 아빠에게 넬슨을 잡게 하셨으니까.  엄마는  다 알고 있었지만 아빠
는 아무것도 몰랐으니, 아빠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어."  
"넌 그들과 천양지차야."  
그는 그녀 어머니의 배반에 깊은 유감을 느끼며 단언했다.  
"그게 무슨 뜻이니? 네가 뭐길래, 그 허풍스런 태도와 속물스런 억양으로 다른 사람을 비판
하는 거야? 우리 부모님을 깔보지마, 로버트.  그렇지 않으면 나를 보는 게 이번이 마지막인 
줄 알아."  
"미안해."  
그가 서먹서먹하게 사과했다.  그는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여 그녀의 끔찍한 가족에 대한 생
각을 떨쳐 버렸다.  그들은 한동안 침묵 속에서 드라이브를 했고, 그는 화해의 몸짓으로 그
녀의 손을 잡으려다가 호되게 거절당했다.  그는 부드럽게 브레이크를  밟고 자동차를 도로 
가장자리 풀숲에 세웠다.  그리고 그녀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적대감 어린 눈초리로 
그를 노려보았다.  꾹 다물린 그녀의 입꼬리가 아래로 축 쳐져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여자의 아버지를 꼭 좋아해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니?  내가 그렇지 않다고 
해서 네 신경에 거슬린다는 거야? 나는 너를 굉장히 많이 좋아해."  
그는 마조리를 끌어당겼고 그녀의 몸에서 방출된 열기에 충격을  받았다.  갑자기 솟구치는 
정열이 그의 사고 흐름을 단절시켰다.  머리가 몽롱해서 생각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오직 
불이 당겨진 정열만이 고통스럽게 인식되었다.  그의 피부가 뜨겁게 달아올랐고, 입술은 그
녀의 것과 하나가 되고픈 묘한 갈망에 타올랐다.  그는 그녀의  턱을 위로 들어올렸고 그의 
입술에 녹아드는 그녀의 달콤하고 부드러운 감촉을 느꼈다.  그는 진저리를 치며 정열의 신
음을 내뱉을 뻔했다.  마침내 그가 고개를  들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매달려 있었다.   
"아,"  
그가 한숨을 쉬었다.  
"난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  이런 기분은 처음이야.  차에서 내려서 좀 걷도록 하자."  
그녀는 모호하게 자동차 문에 기대 서 있었다.  그가 그녀의 손을 잡고 풀이 우거진 방둑으
로 이끌었다.  그들은 팔짱을 끼고 도랑을 따라 걸었다.  둘다 성적인 흥분과 좌절감으로 쑥
스러웠고 다리는 뻣뻣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어디 숨을 데
가 없을까?  저기 관목 울타리 사이에 움푹 파인 곳이 있었다.  그는 그녀를 데리고 화사한 
유채꽃이 무리지어 핀 들판을 가로질렀다.  그는 코트를 벗어 풀 위에 깔았다.  
"여기에 앉자."  
그녀는 마지못해 하며 자리에 앉았다.  
"우리가 승마를 할 줄 알았는데.  오늘은 못하겠지?"  
그녀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곧 하게 될 거야.  하지만 난 지금 당장 운전할 수 없어."  
그는 어렵게 설명을 시도했다.  
"이건 산불과도 같아.  한번 불꽃이 일면  금방 자제력의 범위를 벗어나거든.  너도 나처럼 
느꼈니?"  
"난 너를 생각할 때마다 항상 그래.  매일 밤 네 꿈을 꾸는 걸."  
마조리는 신뢰감이 담뿍 담긴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로버트는 용기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렇게 사람을 믿으려면 배짱이 두둑해야 한다.  
"나도 그래."  
그가 동의했다.  
"하지만 아까 일로 돌아가자.  아까 그 키스는 대단했었어.  두렵기도 하고..... 너 누구랑 자
본적 있니?"  
"아니."  
"나도 마찬가지야."  
"내가 너와 무슨 짓 하리라고 생각하지 마.  난 절대로 하지 않을 테니까."  
그녀가 별나게 고풍스런 반응을 보였다.  
"나는 널 유혹하려고 밖으로 데리고 온게 아냐.  그 생각에 오히려 내가 놀랐다."  
그가 장난삼아 그녀를 몸위로 끌어당기는  바람에 그녀의 맨 가슴이 살짝  드러났다.  그는 
그녀의 피부에 입술을 대고 혀로 간지럽혔다.  그녀가 반항하리란 그의 예상과 달리 그녀는 
오히려 끼득끼득 웃으며 몸을 붙여 왔다.  로버트는 그녀보다 훨씬  나이를 많이 먹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아직 어린 소녀였다.   그러니 그가 돌봐 줘야 한다.  그는  격렬한 
고통과 함께 그녀를 떼어놓았다.  
"내 기분이 약간 진정되었어.  이제 가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그를 끌어당기려고 했다.  
"어서 가자니까.  넌 승마를 배우고 싶지?  하지만 내가 너에게 다시 키스하면, 우리는 거기
에 가지 못하게 될 거야."  
그는 항상 여자들이 데이트에서 내숭을 피운다고 상상해 왔다.  그에게는 데이트 경험이 많
지 않았고, 누이나 여동생도 없었다.  하지만 마조리가 대단하다는 것을 금방 발견했다.  그
녀는 별 어려움 없이 승마의 기초를 터득했고, 안장에서  떨어져서 연못에 처박혔을 때에도 
방긋 웃으며 다시 말잔등에 올라탔다.   그리고 젖은 머리칼을 햇빛에 말리고  그에게 저지 
상의를 빌려 입었다.  그녀는 즐거운 상대였다.  
   
토요일 밤인데 로브가 늦었다.  함께 춤을  추러 가기로 했는데, 마조리는 바바라에게 빌린 
치마가 너무 짧고 어울리지 않을까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지난 30분 동안 
복도를 오락가락하다가 아버지에게 불려갔다.  아빠는 사랑에 빠진 청중에게 헛고생을 하시
는 거야.  그녀는 쓰게 생각했다.  그녀에게 스무마디  이상 말하는 법이 없던 아빠가 다른 
때와 달리 오늘밤에는 할 말이 많으셨다.  이번 주초에 아빠는  오랫동안 염려해 왔던 나쁜 
통지를 받았다.  조선소가 대규모의 인원 감축을 감행했고, 그중  아빠도 포함되었다.  다른 
일자리를 갖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은지라 이제 쥐꼬리만한 연금에 의지하는 조기 은퇴 생활
을 눈앞에 둔 것이다.  이러한  상황으로 말미암아 아빠의 모든 불만과  비통함이 표면으로 
떠올랐다.  
"넌 그 로버트란 녀석을 지난 3주일 동안 하루도 걸르지 않고 밤마다 만나 왔어."  
아빠가 다시 되풀이했다.  
"내 딸아, 넌 문제를 불러들이고 있어.  부자는 부자와 결혼한다고 했잖니.  보나마나 그 녀
석은 자기 계급의 부유한 처녀와 결혼을 할 테고, 넌 가슴만 미어지게 될 걸.  내가  녀석의 
뒤를 조사해 봤다.  명망높고 작위를 가진 스코틀랜드 집안 출신이더라.  가령 그가 너와 결
혼할 생각을 한다 해도,  그의 가족들은 우리같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지 않으려고  할거야.  
로버트가 한번이라도 결혼 말을 꺼낸 적이 있더냐?"  
"왜 그가 그래야 하지요?  우리는 좋은 친구 사이에요."  
그녀는 오늘밤에 벌써 여러차례 같은 대답을 했다.  
"지금은 네 말을 믿겠다만, 그게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겠니? 바보짓은 그만 해라.  이제 
그와의 관계를 정리해."  
눈물 섞인 커다란 딸꾹질이 그녀가 계획했던 반응을 망쳐  놓았다.  "로버트와의 우정은 내 
인생에서 오직 하나뿐인 고귀한 거예요."  
"네 마음대로 해봐.  하지만 녀석에게 차이고난  다음에 나에게 울면서 달려오지나 말아라.   
넌 주제를 파악해야 해."  
아빠가 부엌으로 내려갔다.  
"그만두세요, 아빠."  
그녀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아빠의 그 시시한 계급 차이에 대한 말은 너무 침통한 나머지 아빠가 내일  아침에 자리에
서 일어나실 수가 있을지 의문인걸요."
그 특별했던 첫 번째 일요일 이후 그들이 매일 밤마다  데이트를 해온 것은 사실이었다. 두 
사람은 큰 즐거움을 맛보았고, 굳게 정열을 자제해 왔다. 
초기에 영화와 콘서트를 다 섭렵했고 매일 값비싼 요리로  배를 채웠다. 그러다가 방파제를 
따라 산책하거나, 해변에 앉아 이야기를 하는 편이 더 낫다고 합의하는데 이르렀다.  하지만 
토요일은 춤추는 밤으로 결정을 보았다. 그리고 오늘밤은 그들이  함께 지내는 마지막 토요
일밤이 될 것이다. 이번 주로 도버대학의 학기가 끝났으므로 , 그런데 그는 어디에 있을까?
 한 시간 후 그가 차사고를 당했을  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들었다. 자정쯤  되자 그 생각은 
강박관념이 되었다. 병원에 전화를 해야  할까? 새벽 두시가 되자  속단을 내렸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냥 참았다. 그녀는  하얗게 밤을 지새우며 그가 오지  않은 이유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면밀히 분석했다. 
 다음 주가 고통스러울 만치 느리게 지나고 나서야 마조리는 로버트가 작별 인사도 없이 집
으로 내려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마지막 데이트를 아무리  되새겨 봐도 그녀가 실
수한 기억은 찾을 수 없었다. 그녀의 눈밑에 어두운 그림자가 생겼다. 그녀는 활기 없이  걸
어다녔고 먹지도 못했다. 그동안 알아왔던  로버트와 그녀를 잔인하게 내팽개친  그 남자가 
동일 인물이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무가치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학기말이 다가오자, 그녀는 또 다른  문제 그녀의 미래와 당면했지만  너무 두려운 나머지 
부모님께 그 화제를 꺼내지 못했다. 그 때 , 아빠가 기회를 제공했다. 부엌에서 엄마가 애플 
푸딩을 만드는 동안 그녀는 아빠와 함께 신문을 읽고 있었다.
 "아직 시험결과가 나오지 않았니?"
 아빠의 부드러운 음성 아래에는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호전성이 깔려 있었다. 특히 전에 
없던 말을 할 때는 더 그랬다. 하지만 하루의 첫 맥주를 반쯤 들이켰을 때는 예외였는데. 지
금이 그 때에 속했다. 그녀의 사기가 고조되었다.
 "미스 앨릴턴은 제가 에이급이나  비급을 받길 기대하고 계세요.  하지만 이미 브리스톨의 
입학 허가를 받아 놓은 상태예요. 그리고 옥스브릿지에 진학할 가능성도 있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저도 모르게 떨려 나왔지만 그녀는 불안을 감출 수 없었다.
 아빠가 잔을 밀어 놓고 벌떡 일어났다.
"넌 18살이다. 난 그나이가 되기 전부터 밥벌이를 했어. 에이급은 우리에게  과분해. 마조리. 
사실 우리형편에 주제를 넘어도 훨씬 넘어.  우리는 부자가 아니고, 이제 내 연금으로  먹고 
살아야해. 그리고 네가 돈을 벌기에는 지금이 적기야. 이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에게 
좋은 직장이 도처에 깔렸더라. 그러니, 넌 고마운 줄 알아야해. 내가 알아보니, 알프의  정육
점에서 경리 여직원을 구한다더라. 보수가 후하더구나."
 마조리의 얼굴이 분노르 불타올랐지만,  그녀는 평정을 잃지 않고 충격적인 배신감을 가라
앉혔다. 그녀가 영어와 현대어 수상자 명단에 올랐다는 미스  앨릴턴의 말은 아빠에게 먹히
지 않을 거야. 그랬던 적이 없잖아?  아빠의 말대로라면 그녀는 토막난 고깃덩어리와  내장, 
끔찍한 돼지 머리만 보며 남은 평생을 보내게 되겠지. 지난주 고기를 갈아왔던 정육점의 저
장실 생각에 그녀는 진저리를 쳤다. 
"다시 제자리로군. 이건 다 당신 탓이야."
아빠가 투덜거리며 아내에게 공격의 화살을 쏘았다. 
"당신이 저 아이의 머릿속에 미래에 대한 어리석은 생각을 심어주는 바람에 애 버릇을 망쳐 
놨어. 쟤는 직장을 잡아야 해. 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단 말야."
"술집에 가서 다트나 한 게임 하시구려."
엄마는 현금 깡통을 뒤졌다. 가계비가 바닥나는 일이 있다 해도 정면 충돌을 피할 분이었다. 
아빠가 돈을 받아들고 아무 말없이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마조리는 아
빠가 화난 이유는 죄책감 때문임을  알아차렸다. 그래. 바로 그거야! 그녀는  밥그릇을 밀어 
놓았다.
"난 항상 네가 나보다는 낫기를 바랬단다."
엄마가 시작했다. 
"내가 15살 때 ......."
마조리는 외할아버지의 병환으로 엄마가 하녀로 고용살이를  하다 아빠를 만났다는, 집안의 
서사적인 일화를 귓전으로 흘려 들었다. 버릇없는 고양이 티비가 하필이면 이 때를 골라 앞
발로 그녀의 무릎을 긁었다. 녀석은 청어를 달라고 난리였다. 그녀가 한 조각을 뜯어 줬다.
"맙소사, 이제 일주일에 청어 한 마리를 겨우 먹는 형편인데, 그걸 고양이에게 꼭 줘야겠니? 
네가 고양이 버릇을 잘못
들여서 식사때마다 밥을 달라잖니."
마조리는 용기를 내서 엄마에게 다시 간청했다.  
"엄마가 항상 나에게 ..... 생할비를 분담하기..... 기대하시는 건 알지만...."   
"다른 집도 다 똑같아, 마조리."
엄마가 엄하게 말했다.  
"우리는 능력껏 최선을 다해 네 뒷바라지를 해왔다....."
엄마가 또 집안 이력을 늘어놓았다.  마조리는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다시 한번 시도
했다.  
"네, 맞아요, 엄마.  하지만 자식이라고는 나 하나 뿐이잖아요.  내가 적당한 훈련을 받으면 
더 많은 돈을 벌거예요.  단 1년만 기술을 배우게 해주세요.  엄마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을
께요.  어제 기술 학교에 다녀왔는데 학비가 무료래요.  난 돈을 아껴 쓰고 걸어서 통학할께
요.  밥도 많이 먹지 않겠어요."  
"넌 월급을 손에 쥐면 뛸 듯이 기쁠 거야."  
엄마가 쏘아붙였다.  
"네가 살 수 있는 그 예쁜 옷가지 들을 생각해 보렴.   다른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 네 돈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아니?  너희 선생님들이 대학에 대한 허황된 생각을 불어넣었나 
본데, 넌 나중에 나에게 고마워할게다.  공부를 해서 뭘하니?  나이가 차서 써먹지도 못하고 
결혼할텐데.  넌 시집을 잘 가야 해..... 우리를 좀 도와줄 수 있는 부유한 사람을 잡으란  말
야.  그는 오랫동안 너에게 눈독을 들여왔단다."  
"알프는 나이가 많고 밥맛이에요."  
"바보 같은 소리! 그는 이제 겨우 삼십대야."  
"저에게는 너무 늙었어요.  엄마는 어떻게 그런 말을 하실 수  있어요? 난 사랑하는 상대와 
결혼할 거예요."  
"이 헛똑똑 아가씨야, 잘 들어  두렴.  가난한 사람보다 부자와  사랑에 빠지기 더 쉬운 거
야."   
"내가 엄마와 아빠에게 맥주와 청어를 대기 위해서 높은 갚에 팔려 가야 한다는 뜻인가요?"  
"그런 버르장머리없는 말을 하다니."  
엄마의 눈이 분노로 빛을 발했다.  이제 진짜 성질이 났다.   
"가끔 네가 정말 내 속으로 난 딸인지 모르겠구나.  제 어미에게 그런 말을 하는 딸은 세상 
천지에 너밖에 없을 거야."   
아 맙소사! 그녀가 일을 다 망쳐 놨다.  해고를 당한 사람은 아버지였지만,  그 진정한 희생
자는 그녀였다.  마조리의 모든 꿈과 계획이 앤 볼링의 머리처럼 희생당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그녀의 낙천성과 좋은 성적에 대한 자부심, 대학 교육을 받을 만하다는 선생님의 칭
찬도 사라졌다.  게다가 어딘가 그녀를 원하는 사람이 있으리란 굳건한 믿음마저 시들어 버
렸다.  
   
학창 시절의 마지막 날은 너무 빨리 왔다..  그 비통한 날에 태양마저 광채를 잃으리라는 기
대는 빗나갔다.  그 반대로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화창했다.  훈훈한 남서풍에 풀과 나뭇잎
들이 살랑살랑 흔들렸고 새들이 노래를 불렀으며 벌과 곤충들이 달콤한 여름 내음이 밴 대
기를 날아 다녔다.  그리고 정원은 장미와 인동 덩굴과 꽃무의 향기로 그득했다.  바바라가 
달려와서 그녀의 팔짱을 꼈다.
"내, 너 왜 그러니? 몇 주일 동안 나를 피해 다녔잖아."  
그녀는 장난기와 슬픔을 반반씩 섞어 친구를 응시했다.  그녀의 커다란 눈은 애정으로 빛났
고, 마조리는 로브 때문에 친구를 소흘히 대했던 죄책감을 느꼈다.  
"바바라, 우리 사이에는 아무 문제도 없어.  최근에 내가 정신이  좀 나가서 그래.  시험 결
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거든."  
"하지만 넌 항상 성적이 좋았으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야.  넌 나랑 다르잖니.  난 입에 
풀칠만 해도 다행일걸."  
바바라는 항상 마조리의 명석한 두뇌와 누구나 보장하는 미래의 성공을 들어 그녀를 우상시
해왔다.  그녀가 속사정을 안다면.  
"넌 뭘 할거니,  바바라? 아직도 요리사가 될 생각이니?"   
"물론이지, 요리업계에는 돈이 돌잖니.  나중에 자리를 얻어 분식점이나 큰 레스토랑을 경영
할 수 있구.  그건 나 하기에 달렸어."  
마조리는 왜 그 생각을 미쳐 못했는지  통탄스러웠다.  엄마는 요리 솜씨를 타고났고, 그녀 
또한 그 재능을 물려받았다.  어쩌면 엄마가 3개월 과정에 대해 다시  생각해 주실 지도 몰
라.  
"얼마나 공부해야 돈을 벌 수 있니?"  
"난 2년 과정의 기술학교에 입학할 거야."  
"그래, 대단하구나."  
마조리가 중얼거렸다.  요리사가 되는 것마저 그녀의 능력 밖이었다.  그녀는 이 새롭고 열
등한 상황에 적응할 수 없었다.  높은 꿈을 안고 살아왔고 교사가 되기 위해 매진해 왔건만.  
마조리는 바바라의 수다에 귀를 기울이려 했지만 마음이 자꾸 딴 길로 샜다.  일단 적은 보
수를 받으며 일하는 동안 배울 수 있는 기술들이 많이 있을 거야.  그걸 찾아내야만 해.  갑
자기 9시부터 5시까지 책상 앞에 앉아 하품을 참는 자신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
녀는 뜨끔했다.   
"최근에 로버트가 안 보이더라, 마조리."  
바바라의 지적에 마조리의 생각은 또 다른 재난으로 옮겨갔다.  
"아, 그는 이제 학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갔어."  
그녀는 원래 비참한 사정을 남에게 털어놓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는 돌아올 거야."  
바바라가 자신만만하게 예측했다.  
"네가 가진 것 모두를 걸어도 좋아.  그는 슬슬 네가 그리워지기 시작할 테고, 곧 너를 만나
러 올 거야."  
모든 여학생들이 마지막으로 학교 강당에 속속 들어왔다.  모두들 잔뜩 흥분하고 행복해 하
는 기색이 역력했다.  마조리만 제외하고.  그녀에게  오늘은 꿈의 종말을 뜻했다.  확고한 
여권론자인 여교장이 가장 즐기는 말로 졸업 연설을 시작했다.   
"여러분들은 어려운 시기에 세상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평등이라는  맛있는 홍당무가 손
안에 떨어질 듯 보이지만, 조만간 그걸 획득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될거예요."  
마조리는 교장 선생님을 흠모했다.  그분은 키가  크고 잘 생긴 여성이었다.  엄격하면서도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서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그런  분이었다.  한번도 결혼하지 않
았지만, 미술 선생님과의 염문은 상급생들에게 큰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산업 혁명으로 여성은 제자리를 잃었습니다."  
교장의 말이 계속되었다.  
"그 전에 우리는 생명수와 같은 역할을 했고, 그로  인해 존중받았어요.  자녀 양육과 요리, 
비누와 미간 약과 양초 제조, 가축 돌보기, 양잠고 직조 등.  하지만 산업 혁명으로 그 대부
분의 일을 남성들에게 빼앗긴 것입니다.  이 세상의 절반인 모든  여성은 오로지 아이를 낳
는 역할에만 매달리게 되었지만, 과잉  인구 사태로 요람을 지키는 자리마저  더 이상 바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70년대를 살아가는 여러분들은  백척간두같은 미래에 당
면했습니다.  즉 외양으로 발전과 전진을 거듭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막을 들쳐 보면 후퇴한 
상황에 처한 거예요.  남성 우월주의자들은 결혼  여부를 떠나 모든 여성을 성적 대상물로, 
그리고 열등한 시민으로 간주합니다.  우리 대다수는 남성 우월적인 사회에서 '하녀'로 일하
고 있습니다.  특히 '사무실 아내'의 역할로 말입니다.  많은 여성들이 결혼을 경력으로 선택
하는 심각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결혼은 가장 남성에게 유리한, 합법적인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무슨 희망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우리는 우리 자신
이 누구인지, 뭐 하는 사람인지, 사회가 우리에게 뭘 기대하는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성 평
등은 투쟁없이 쟁취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 투쟁의 최전방에 서게 될 겁니다.  그러니 
힘을 기르세요.  가능한 최고의 배움을 추구하세요.  차선에 만족하지  말고, 남성이 여러분
의 지위를 깍아내리도록 허락하지 마세요."  
그녀는 잠깐 뜸을 들이며 미소를 지었다.  
"다음은 나에게 큰 만족을 가져다준 발표를 하겠어요.  네  명의 모교 학생들이 시험결과에 
상관없이 대학 입학 허가증을 따냈습니다."  
우뢰와 같은 박수 속에서 마조리의 이름이 불리어졌다.  그녀는 지금  이 자리에서 당장 고
꾸라져 죽고 싶었다.  사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두 사람으로 분리된 것 같았다.  
그중 한 존재는 천장을 맴도는  파리처럼 그녀 위에서 모든 과정을  구경했다.  비현실감에 
휩싸인 그녀는 영어와 현대어 상을 수상하러  연단으로 올라가다가 두 번이나 발을  헛디뎠
다.  어떻게 계속 미소를 지었을까? 교장 선생님이 악수를 청하며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
다고 말했을 때에도 마조리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식이 끝났다.   
"마조리, 네가 부러워 죽겠어."  
바바라는 한 팔을 그녀의 몸에 감으며 말했다.  두 소녀는  밖에서 불타오르는 석양에 눈을 
껌벅였다.  
"왜?"
"여기 있는 아이들이 다 내 맘 같을 거야. 넌 미래를 보장받았잖니."  
"아, 글쎄.  난 브리스톨에 진학하지 않을거야."
마조리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거든. 난 좀더 근사한 것을 하고싶어. 음 여행같은 것 말야! 유
람선의 승무원이 되어 세상구경이나 할까 봐."  
그녀는 어깨 너머로 바바라의 응원을 확인했다.  친구는 눈물이 글썽이며 입술을 꼭 깨물고 
있었다.  얘가 다 알아차렸어! 이제 수치심이 아물어 가는 불행에 더해졌다.  마조리는 바바
라의 품에서 빠져나와 손을 흔들었다.  
"얘, 행운을 빌어.  난 이쪽 길로 갈래.  나중에 보자."  
그녀는 모퉁이를 돌자마자 절벽을 향해서 뛰기 시작했다.  바바라와  신물나는 동정에서 벗
어나야 해! 
    
로버트는 혐오감어린 낯빛으로 서재를 둘러봤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만해도 이 방은 그
가 가장 좋아하던 은신처로, 푹신푹신한 의자와 늘어지게 낮잠에 빠진 개들이 있었다.  하지
만 이제 어두운 색조의 페르시아 카펫이나 세심하게 배치된 검정 가죽 소파는 음울했고 밀
실 공포증마저  일으켰다.  질서 정연함 속에서 아늑한 분위기는 사라졌고  개는 집안에 발
을 딛지도 못했다.  심지어 고양이조차 동거 불가 판정을 받았다.  계모인 로다는 항상 자기 
멋대로였고, 그 공공연한  동물 알레르기는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조작임에  틀림없었다.  
왜냐하면 모피 코트에는 알레르기를 일으키지 않으니까.  로버트의 속에서  뭔가 욱하고 치
밀어 올라 그의 오랜 동면 상태를 깨워 놓았다.  암담함이랄지  어떤 분노가 결집되어 내적
인 성숙을 촉구했다.  하지만 아직 시기 상조였다.  그에게는 새로운 삶에 적응할 만한 시간
이 필요했다.  사흘 전에 아무 책임도 없었고, 대책없이 사랑에 빠져 있던 십대의 시인 지망
생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드디어 다 끝났구나."  
로다가 담배불을 붙이며 말했다.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로버트가 반박했다.  이번이 그녀에 대한 최초의  공격이었다.  그는 극히 정중하고 나무랄 
데 없는 예의로,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6개월만에 그분의 침대를 가로챈 이 여자에 대한 적
의를 감춰 왔다.  그리고 이제 두 형인 던컨과 조지 역시 비극적으로 죽어 버렸다.  그것도 
조지 형이 오랫동안 탐내왔던 경비행기의 추락 사고로.  당시 그들은 술에 취해 있었다.  로
다가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온갖 짓을 다 했지만 결국  심리에서 드러나고 말았다.  아버지
는 그 소식을 접하고 경미한 심장 발작을 일으켰다.  로버트는 슬프고 화가 났으며 또한 두
려웠다.  사랑하는 형들을 영영 보지 못하리란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소름끼
치는 사실은 새로운 공포를 일으켰다.  이제 작위와 맥라렌 성의 후계자이자 일족의 수장으
로, 공장을 운영하고 글렌티란 증류소의 배당금으로 살아가는 방계친족들을 돌봐야 할 위치
에 오른 것이다.  그의 피붙이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아버지는 최선을 다해 그 의무
를 이행해 오셨지만, 안타깝게도 재정적인 재능이 부족했다.  아무리 하이랜드 일대에서 최
고의 위스키를 생산해 낸들 별 수 없었다.  로버트는 사업 요령을 배웠던  지난 몇 달 동안 
그 증거를 충분히 보아온 터였다.  아니, 그게 전부였다.  
"저는 여름 휴가를 떠나겠습니다."  
그가 계모에게 말하고 그 선언에 그녀가 눈을 떨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하던 일의 끝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데다 생각할 것도 있습니다.  이 새로운  상황에..... 
익숙해지기 위해서요."  
그는 사랑하는 소녀를 마지막으로 만나야 한다는 설명을 늘어놓을 생각이 없었다.  
"휴가라니, 말도 안돼.  네가 그런 제안을 꺼냈다는 것조차 놀랍구나."  
그녀가 호되게 쏘아붙였다.  로버트는 생각에 잠긴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불쌍한 아버지
는 둘째 아내의 강철같은 의지를 당해내지 못하겠지만, 그가 평생 동안 여기에서 살면서 그
녀와 맞서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지금이 그 첫발을 내딛을 좋은 때이다.  
"저는 제안한 게 아니라 제 계획을 말씀드린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아버님께 말
씀드리겠어요.  그 분은 이해하실 겁니다.  그래이엄 포브스가 공장을  잘 꾸려나갈테고, 은
행은 여름 휴가 동안 우리를 들볶지 않을 거예요."  
"네 아버지가 널 필요로 하신다면?"  
그녀가 냉정하게 물었다.  
"그러지 않으실 겁니다.  이제 아버지의 건강이 좋아지셨잖아요.  저는 지중해로 항해를 떠
나겠으니, 연락할 일이 있으시면  도버의 리버풀 스트리트 11번지에  사는 마조리 하디라는 
소녀를 찾으세요.  그녀에게 연락처를 남기겠습니다."  
"여자가 있을 줄 알았다.  넌 무책임했던 네 형들과 똑같아."  
그녀는 그의 등뒤에 철천지원수가 있는 것처럼 그를 비스듬히 노려보았다.  어렸을 때, 그는 
이런 눈길에 기가 죽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자기 맘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약간 두려워
하는 눈치였다.  그는 침울한 분노가 드러난  얼굴로 그녀를 한번 쏘아보고 서재를 나섰다.   
그리고 10분 후 달랑 가방 하나만 꾸려 남쪽으로  차를 몰았다.  이 신선한 자유의 공기여! 
소중한 6주를 어떻게 보낼까?  
   
마조리는 제방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바라의 선의에 가득찬  동정에서 도망친 다
음부터 자주 여기에 돌부처 마냥 앉아 있었다.  꼭 쥐어진 두 주먹이  그녀의 무릎 위에 얹
혀 있었다.  그녀는 절벽 아래에서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로버트와 마지막 데이트를, 그리고 
그의 부드러운 키스와 다정한 손길을 떠올렸다.  억압된 정열이 밖으로 분출하자, 그는 저도 
모르게 신음하며 온몸으로 그녀를 벽에 밀어붙이고 그녀의 입술을 갈랐다.  그들이 숨을 가
뿌게 쉬며 서로에게 엉켜든 것도 잠시 잠깐.  돌연 그가 뒤로 물러났다.  
"제기럴!"  
평소에 욕을 하지 않는 그가 자제력을 상실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갈 데까지 다 가든가, 아니면 더듬는 짓을 관두기로 하자.  난 발정
한 수소처럼 계속 흥분해 있었어.  고통스러워 죽겠다구!"
"내가 언제 키스해 달라고 했니?"  
그녀는 그처럼 거센 욕망에 몸을 떨었지만 그 욕구를 숨겼다.    
"넌 얼음 덩어리야.  하여튼 난 오늘밤에 더 이상 못 참겠어.  내일  보자.  항상 만나는 시
간에."  
그가 성질을 내며 떠났던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어떻게 그녀에게 이럴 수가  있을까?  
그녀는 화가 났지만 육체는 마지막 키스의 추억에 솔직하게 반응했다.  
"아, 로버트.  난 너를 사랑해."  
뉘엿뉘엿 해가 기울었고 그녀는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때 절벽으로 올라오는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눈에 익은 모습인데..... 설마..... 하지만 저렇게 훤칠한  이가 또 누가 있지?  
튀듯 성큼성큼 걷는 사람이 또 있단 말야?  그이외에 까치집처럼 덥수룩한 흑발을 한 사람
이?  그녀는 뛰기 시작했지만 두 다리가 젤리처럼 흐느적거렸기 때문에  자리에 멈춰 섰다.  
저건 환영이야.  드디어 내가 돌았구나.  하지만 진짜 그였다.  
"마지!"  
그가 불렀다.  그는 크게 한번 휘파람을 불어제낀 다음 그녀에게 달려왔다.  하지만 그의 헤
벌쭉한 미소가 그녀의 화를 불렀다.  감히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미소를 짓고 휘파람 한
번에 그녀가 달려오길 기대하다니!  그녀는 그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의  배에 힘찬 주
먹을 날렸다.  
"이건 날 내팽겨친 대가야, 로버트 맥라렌."  
그리고 눈물을 펑펑 흘리며 맹목적으로 냅다 달렸다.  
"아,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로버트가 그녀를 따라 잡았다.  그 바보같은 미소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이렇게 거센 
분노는 처음이었다.  
"거 참 대단한 환영이구나."  
그가 침착하게 말했다.  
"로버트,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전화도 한 통 하지 않다니.  아, 이 망할 녀석!"  
그는 그녀를 끌어당기고 풀 한 줌을 뜯어다가 그녀의 팔과 다리에 문지르기 시작했다.  
"이 바보!"  
돌연 더 이상의 말이 필요없어졌다.  로버트가 그녀를 꼭  껴안자, 그녀의 기쁨이 폭발했다.  
아무 설명도 필요없었다.  로버트가 돌아왔어! 그는 나를 사랑해!  보랏빛 그림자가  바다와 
절벽을 은은하게 물들였고, 미묘한 및 한줄기가 메아리인양 황혼을 갈랐다.  어두워질 때까
지 두 사람은 서로의 체온에 사로잡힌 채 앉아 있었다.  그녀가 부르르 몸을 떨자, 그때서야 
로버트는 황홀경에서 깨어났다.  그는 쟈켓을 벗어 그녀에게 덮어 줬다.  옷은 따뜻하고 푸
근했으며 그의 냄새가 풍겼다.  
"마지, 내 말을 잘 들어.  난 너를 사랑하지만 우리 사이는 끝났어.  난 설명을 하려고 돌아
온거야.  음, 나는 자유롭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떤 일이 일어나는 바람에  지금은 그렇지 
못해."  
그의 목소리는 너무 잠겼기 때문에 알아듣기 힘들었다.  로버트는 그녀를 더 바짝 끌어당기
고 두 형의 죽음과 아버지의 심장 발작으로 그의 세상이  뒤바꿨음을 설명했다.  그녀는 진
저리를 쳤다.  
"마지, 정말 미안해.  나는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웠어.   너 춥지? 나도 그래.  내 차가 바로 
저기에 있으니까, 셰퍼드 웰에 있는 펍으로 가자.  함께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는 거야"  
그녀는 화장도 하지 않은 얼굴에 교복  차림으로 멋진 펍에 들어가기가 망설여졌지만  그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들은 창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손을 꼭 마주 잡았다.  로버트가 입
을 열었다.  
"난 9월 초부터 일을 시작해.  믿어지지 않지만 내가 경영 일선에 나서게 될 거야.  물론 공
장이 있기는 해.  하지만 아버지는 사업에 별 재주가 없으시고 던컨도 마찬가지야."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조리는 경외심을 느꼈다.  귀족 아버지, 여왕의 먼 친척 뻘인 계모, 
스코틀랜드산 최고급 위스키를 생산해 내는 증류소라.  그는 밤에  경영과 경제학을 공부하
고 낮에 공장 운영을 배울 참이었다.  이제 옥스퍼드는 물 건너간 셈이었다.  
"우리에게는 6주일이 전부야.  지금 헤어지든가 함께 휴가를 보낼 수 있어.  어떠니?  내 친
구들이 지중해를 돌아 코르시카까지 항해하는데 우리를 초대했어.  모든  것은 너에게 달렸
어, 마조리.  하지만 9월에 이별을 앞둔 마당에 기분이 어떤지 모르겠구나." 
마조리는 불같은 분노를 느꼍다.  내가 그에게 모자란다 이거지? 그는 그 점을 똑똑히 밝혔
다.  하지만 왜? 그는 원래 가문의 후계자가 아니었잖아.  증류소 하나와 몇 가지 자질구레
한 것이 손에 떨어졌다고 잘난 척하기는.  그녀는 그가 집과  학교에서 속물 근성을 주입받
았음을 감지했다.  천천히 강철같은 의지가 하나로 모아졌다.  로버트는 내 남자야.  이렇게 
소중한 사람이 또 나타날 리 없어.  그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야 말 테야.  
"네 제안을 받아들이겠어."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토요일 아침이 두려움과 함께 밝아 왔다.  마조리는 벽에서 춤추는 나뭇잎 그림자를 응시했
다.  똑딱똑딱 초침 소리에 맞춰 그녀의 마음은 양갈래로 찢어졌다.  집은 여전했지만 모든 
것이 달라졌다.  왜냐하면 그녀가 로버트를 사랑하므로.  그들은 지난 2주일을 함께 보냈고 
조만간 한 달에 걸친 휴가 여행을 떠날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부모님께 말씀드
릴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녀는 손으로  허벅지와 배를 어루만지며 쉼없이 몸을 뒤척였다.   
로버트의 손길일 닿은 이후 그녀의 몸은 새로운 상태에 빠졌다.  그녀는 눈을 감고 그의 입
술과 손의 감촉을 떠올렸다.  뜨거운 정욕의 물결이 지나가고 죄의식과 부끄러움이 뒤에 남
았다.  그녀의 얼굴은 모닥불을 펴놓은 듯 발갛게 달아올랐다.  로버트는 최후의 선을 넘고 
싶어했다.  
"네가 날 충분히 사랑한다면, 그 노동자 계급의 뿌리깊은  정조 관념을 극복하고 나에게 너
의 모든 것을 줄 거야."  
어젯밤 그가 투덜거렸다.  
"우리의 의견 차를 보일 때마다 계급 전쟁을 치뤄야하니?"  
그녀가 웃으며 반박했다.  
"네가 한번만 더 그런 낡은 수법을 쓰면 난 집에 갈 테야."  
그말에 그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가 옳을까?  대체 누구를 위해  그녀가 정절을 지켜
야 하는 거지?  로버트보다 더 깊이 사랑  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길까?  그러자, 첫  경험을 
그와 나눠야 한다는 대의명분이 섰다.  그녀는 꾸물거리다가 결국  아침을 먹으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들었다.  아침상에서 적당한 말을 꺼내느라, 밥이 거의 넘어가지 않았다.  
"포리지를 다 먹어라."  
엄마가 중얼거렸다.  아빠가 막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 데가 있어서....."   
지금이 아니면 안돼!  
"엄마, 아빠, 저기요..... 제가 한숨 돌리고 싶은 차에 한달동안 지중해를 항해하는 초대를 받
았어요.  일을 시작하기 전에 쉴 필요가 있는데다 여섯 명이  그룹으로 가니까 염려하실 필
요도 없어요, 아빠..... 제발 진정하세요."  
그녀가 숨을 깊이 들여마셨다.  아빠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고, 엄마는 약간 난처한 기색으로 
부녀를 번갈아 보았다.  아빠가 그녀를 노려보았다.  식탁 모서리를 쥔 그의 손가락 관절이 
하얗게 드러났다.  
"안돼, 넌 못 간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안돼."  
"걱정하실 게 없다니까요.  그리고 다들 여름 휴가를 가잖아요."  
마조리는 집요하게 매달렸다.  
"쟤가 재미를 좀 볼 때예요."  
엄마가 옆에서 거들었다.  
"재미는 무슨 얼어죽을 놈의 재미야!"  
아빠의 목소리는 천둥소리를 방불케 했지만, 그녀는 태풍이 한 차례 지나갔음을 감지했다.  
"난 갈 테니까 그런 줄 아세요."  
마조리가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식탁 밑으로 밀어 넣었다.  노기 
짙은 그녀의 목소리는 그녀의 귀에도 낮설었다.  아빠가 어깨를  으쓱거리고 신문을 집어드
는 동안 엄마는 그녀를 따라 방까지 올라왔다.  
"네가 집밖에 나가 잔 적이 없으니, 우리가 걱정하는 것도 당연하잖니.  난 너를 믿는다, 마
조리.  난 네 나이에 결혼했으니까 당연히....."  
엄마의 잔소리가 길어지자, 마조리가 엄마의 팔을 움켜잡았다.  
"엄마, 제 걱정 마세요."  
그녀가 못박았다.   
    
'콜롬부스'호는 두 개의 돛대를 가진 아름다운 범선으로,  마르세이유 요트 클럽에 정박되어 
있었다.  로버트와 마조리는 그보다 더 단출한 규모를 예상했으므로 그  옆을 두 번이나 지
나면서도 그 배에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마침내 찾던  배가 그것으로 판명되자 마조리는 
압도당했다.  로버트의 친구는 백만장자구나.  배 갑판에는 아무도 없었으므로 그들은 예약
해 두었던 호텔로 가기로 했다.  로버트는 그곳에서 친구들과 만나  아침을 먹고 항해에 나
서기로 수배해 놓은 것이다.  드디어 그들은 버스를 타고 태양에 달궈진 교외로 나갔다.  노
을이 질 무렵에야 호텔로 개축된  고성에 도착했다.  정원은 백리향과 라벤더  향기로 가득 
찼고, 돌 투성이의 언덕에 심어진 올리브 나무에 꽃들이 만발했다.  
"로버트, 정말 근사한 꽃이야.  아, 고마워."  
마조리는 높은 돔 형식의 천장과 타일이 발라진 홀에서 속삭였다.  로버트는 목욕탕을 사이
에 둔 독실을 두 개 예약했다.   옷을 벗고 샤워실에 들어가는 이  기분이란!  그녀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다.  그녀가 따뜻하고 수증기가 가득한 그곳에 발을 디디자, 육감적인 또 다
른 세상이 펼쳐졌다.  따뜻한 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가운데 그의  입술이 그녀의 것에 녹
아들었고, 그의 젖은 피부가 그녀의 매끄러운  가슴과 배를 힘차게 눌렀다.  그들은 키스하
고, 느끼고, 애무하며 경이로운 감각에 정신을 잃었다.  그녀는 그의 몸에 비누칠을 하며 강
단있는 사지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비누거품이 묻은 그녀의 손가락이 그녀의 남성을 아래
위로 스치자 그가 고통스런 신음을 발했다.  
"널 사랑해."  
그녀가 그에게 온몸을 밀어붙이며 속삭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절실한 욕구로 그에게 몸
을 뗄 수 없었다.  그때 갑자기 온수가 냉수로 바뀌었고, 그들은 비명과 웃음을 동시에 터뜨
렸다.  로버트의 품에 안겨 샤워실에서 나와 그의 손에 얼굴이며 귓속, 부드러운 허벅지 안
쪽이 닦이는 기분이 너무 기묘했다.  그가 그녀를 꼭 안은 채 그녀의 머리를 말려 주자,  그
녀는 이 자세로 영원히 서 있고 싶었다.  
"전에 이래 본 적 있니?"  
그녀가 나른하게 물었다.  그는 장난기어린 시선으로 그녀를 말끄러미 응시했다.  
"모르겠는데."  
"무슨 대답이 그래?  네가 모르면 누가 안다고."  
"옷이나 입자.  벌써 늦었어.  난 저녁을 거르고 싶지 않단 말야, 넌 어때?"  
    
그들은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테라스에 앉아 머리를 맞대고 메뉴를  검토했다.  램프 불빛이 
부드러운 미풍에 일렁거렸다.  촉촉한 풀과 대지의 짙은 내음에 라벤더와 재스민 향이 실려 
왔다.  사방에서 마을 불빛이 반짝거리고, 부엉이의 먼 울음소리와 함께 인근 주택에서 기타 
선율이 흘러 나왔다.  한도안 그들은 경외심에 침묵을 지켰다.  다음 순간, 로버트가 마법을 
깼다.  
"소테 드 라펭 오 빙 블랑를 추천할게."  
그는 진지한 얼굴로 그녀를 놀렸다.  
"어휴, 이제 그만 해.  그 불쌍한 토끼 한 마리를  가지고 두고두고 울궈먹는구나.  난 절대
로 토끼 고기를 먹지 않을 거야.  그럴 수야 없지."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버트 삼촌댁 양돈장에서 화재가 난 다음부터 돼지고기도 안 먹어."  
로버트는 그녀가 그 사연을 건너뛰기를 바랬지만, 그녀는 기어코 이야기를 했다.  양돈장에 
불이 붙었을 때의 소름끼치던 돼지 울음소리며, 소방수들이 보라색으로 그을린 돼지들을 밖
으로 몰아냈던 광경을 생생하게 늘어놨다.  
"돼지고기는 관두자."  
로버트는  밥맛 떨어지는 이야기를 다 듣고 단호하게 말했다.  
"난 양계장에서 사육된 닭고기도 안 먹어."  
"그럼, 뭐가 남니? 파테 드 포와 그라?"  
"파테의 파 자도 꺼내지 마.  사람들이 거위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 아니.....?"  
"송아지 고기도 싫으니?"  
"당연하지."  
"좋아 그려면 이렇게 하자.  다르네 드 소몽 그릴레 오  보르 다음에 수플레 오 프로마지와 
포도주에 절인 배를 먹는 거야.  어때?"  
저녁 식사가 진행되는 동안, 달이 두둥실 올리브 나무 위에 떠올라 온 세상을 푸르스름하게 
비췄다.  
"여기는 달조차 더 아름다워."  
그녀가 속삭였다.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은 마법에 걸린 밤과 서로의 유대감을 깨고 싶지 않
은 마음에 오랫동안 커피를 마셨다.  
    
누군가 큰소리로 말했다.  
"이 쪽은 누구야?  로브, 빨리 소개해 줘."  
일행은 전부 네 명이었다.  네 명의 적군들이군.  마조리는 재빨리 상황 파악을 했다.  여자
들은 전부 디오르와 입셍로랑의  의상을 걸치고 다이아몬드가 박힌  시계를 찼고, 남자들은 
멋지게 재단된 셔츠와 바지 차림이었다.  다들 로버트와 같은 세계의 일원으로, 마조리가 국
외자임을 한눈에 알아차렸다.  클리브 로렌스와 쟝 마젤은 그녀를  로버트가 시장에서 사온 
물건이나 되는 것처럼 대하면서 공공연하게 추파를 던졌다.  그리고  클라우디아 와인 로버
츠와 다이아나 해밀튼은 전형적인 험담꾼이었다.  그녀들은 마조리의 말을 전적으로 무시하
며 대화에 끼워 주지 않았다.  특히 쟝의 상대이자 푸른  눈동자에 금발 머리인 다이아나는 
마조리를 위협 거리로 간주한 눈치였다.  곧  그들은 짧은 스키대의 장점, 최근에 방문했던 
리조트, 허례허식으로 치우치는 런던 파티의 경향, 누례예프의 발레 공연, 경매에서 영국 미
술품을 독식하는 일본인의 행태, 영국 팀이 대서양 횡단  레이스에서 참패한 요인과 마이크 
맥밀란이 어려움을  딛고 유일하게 승리한  이유를 놓고 토론에 빠졌다.  마조리는  항해에 
관한 한 일가견이 있었다.  
"그가 프랑스 구동선을 몰았다면 승리했을 거야.  그는 비범한 항해 실력을 가졌어."  
클라우디아가 피식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콧날이 길쭉한, 금발의 장신이었다.
"항회? 참 상큼하네.  난 우리나라의 사투리가 좋더라.  그 덕분에 영어가 풍요한 어휘력을 
갖게 되었잖아."  
"얘, 너도 항회하니?"  
다이아나가 희희낙낙해 하며 장단을 맞췄다.  마조리는 다른 여자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
며 오랫도안 냅킨을 차곡차곡 접어 깔끔한 정사각형으로 만든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자."  
그녀는 똑똑하게 발음했다.  로버트는 얼굴을 붉히고 그녀를 마주보지 못했다.  
"편히 쉬어."  
그녀는 계단참에서 멈춰 섰다.  그렇게 맥없이 항복하지 말걸.  하지만 이제는 너무 늦었어.  
그때 클라우디아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사투리가 심하네.  런던 방언이야?"  
"못 되게 굴지 마.  클라우디아. 그녀는 굉장히 아름답잖아."  쟝이 섹시한 프랑스 억양으로 
그녀를 비나했다.  
"그 미모가 아깝지 뭐." 
다이아나가 한술 더 뜨면 로버트에게 물었다.  
"넌 어떻게 그 심한 발음을 참을 수 있니?"  
마조리는 어깨 너머로 클라우디아가 로버트의 어깨에 팔을 두르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녀
가 한껏 몸을 숙인 탓에 젖가슴이 훤하게  들여다보였다.  블래이지어도 안 입었잖아! 버르
장머리 없는 것.  아무리 영국 백장미 같은  혈색을 지녔으면 뭣해.  큼지막한 코와 치아가 
말같은 걸.  마조리는 되돌아가서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첫 질투를 경험한 그녀는 당장 
살인이라도 불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그의 방과 연결된 문을  열어 놓고 맨 몸으
로 자리에 누웠다.  로버트가 그 계집에들의 조롱을 잊을 만한  획기적인 짓을 저질러야 할 
긴박감을 느꼈다.  그런데 왜 그가 이렇게  꾸물거릴까?  그녀는 눈을 감고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가 천천히 잠들었다.  
    
로버트는 분노와 죄책감이 섞인 심정으로 방으로  돌아왔다.  마조리는 너무 어려.  그렇게 
뛰쳐나가는 바람에 그녀의 꼴만 우습게 되었잖아.  맞서 싸웠어야지.  그녀가 그녀들보다 열 
배는 더 낫다.  둘다 영리하지 못한 계집애들인데.  그의 세계에 속한 대다수의 여자들은 줏
대가 없었지만 마지는 한번도 변덕을 떨지 않았다.  최근에 그는 그 점을 고맙게 생각했다.   
그 덕에 그들은 시간을 들여 견고한  우정을 쌓을 수 있었다.  그가 그녀를  사랑하는 주된 
이유는 그 아름다움 때문이었지만 그 외에 다른 이유도 많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할
까?  오늘 밤 계급간 편견으로 비롯된 아슬아슬한 상황이 펼쳐졌다.  그는 그녀에게 미래를 
제시하지 않았다.  그게 문제였을까?  그녀는  고지식했지만 그것은 편협한 양육  방식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그 결과 배양된 그녀의 정숙함은 그를 짜증나게 하는 동시에 매료시켰다.  
그런데 그녀의 부모님들은 너무 끔찍해..... 그는 중간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살그머
니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침대에서 피어오르는 희미한 치약과 향수와 파우더 냄
새가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꽃향기에 뒤섞였다.  아, 정말 아름다워.   그녀는 한 팔을 베개 
위에 던지고 나체로 잠들어 있었다.  구겨진 깃털 이불이 아래로  흘러내려 완벽한 한쪽 가
슴이 드러났다.  열린 입술 사이로 살짝 보이는 하얀 치아, 뺨 위에 내려앉은 긴 속눈썹, 축
축하게 헝클어진 머리카락, 그녀는 따뜻하고 육감적이었고, 그는 그녀의 곁에 눕고 싶은  마
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그는 한숨을  쉬며 클라우디아를 떠올렸다.  그녀는 
마조리가 처녀임을 간파하고 깔깔거리며 속삭였다.  
"그녀가 잠들었거든 내 방으로 와."  
하지만 그 제안에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는 마조리와 불가해한 연대감을 느꼈다. 그들의 
다른 배경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여기 프랑스에서 그는 고삐 풀린 망
아지가 된 심정이었다.  그러나 오늘밤에 휴가 기분이 망쳤다.  이런 유감스러움에서 행방되
어 그녀를 사랑할 수 있을까?  글쎄.   그는 깃털 이불을 그녀의 목까지 여며  주고 조용히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 그들은 쟝의 차를 타고 마르세이유로 돌아가  콜럼부스 호에 승선했다.  그리
고 잠시 후에 범선은 남동쪽을  향해 느린 속도로 나아갔다.  일행은  갑판을 서성거리거나 
일광욕을 했고, 쟝이 규칙적으로  닻을 고정시키고 사다리를 내릴  때마다 따뜻하고 투명한 
바다에서 수영을 즐겼다.  마조리는 그가 코르시카 출신이고, 이 배가 그의 아버지 소유임을 
알았다.  가무잡잡하고 핸섬한데다 균형잡힌 체격의 그가 뭘 보고  마녀같이 생긴 다이아나
와 사귀게 되었을까?  마조리는 감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밤에 쟝은 기타를 치고 아랍 풍
의 단조 코르시카 양치기 민요를  불렀다.  준비한 식료품이 남아도는데 그들은  직접 잡은 
생선과 적포도주로 저녁을 때웠고, 밤이 지새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마조리는 쟝과 
친해졌는데도 여전히 소외감을 느꼈다.  앞으로 체류하게 될 코르시카의  호텔이나 스키 별
장 이외에도 쟝의 아버지는 마르세이유에 많은 사업을 벌이고 있었지만 쟝은 그 내용을 속
속들이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코르시카 마피아가 틀림없어."  
마조리와 단 둘만 있는 자리에서 로버트가 투덜거렸다.  
"그는 클리브의 친구이고, 난 그의 가족에 대해 아는 게 업어."
"어머 말이 지나치다.  네가 쟝을 싫어하는 것과  달리 난 그가 마음에 들어.  그는 굉장히 
멋있어."  
"그거야 네가 그 반지르르한 얼굴에  넋이 나갔으니까 그렇지.  다이아나는  그와 결혼하고 
난 다음에 톡톡히 후회할걸.  아마 시커먼 옷을 입고 산 속에 갇혀서 밤나무나 쪼개며 살게 
될 거야."  
"최소한 그의 곁에 있잖아." 
그녀는 톡 쏘아붙인 즉시 그 말을 후회했다.  로버트는 자신의  내부로 깊이 침잠해 버렸고 
그 시간 이후 왼종일 그녀는 그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며칠 후, 조개빛 회색 안개가 걷히고 해가 떠오를 때 코르시카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다와 
하늘이 혼연일체가 된 새벽 빛 속에서 윤곽을 드러낸 코르시카는 아련한 보랏빛 안개로 감
싸인 신비의 섬이었다.  마조리와 로버트가 난간에 기대어 구경하고 있을 때, 쟝이 쑥쓰러워
하며 다가왔다.  
"너희 두 사람은 지난 이틀 동안  각 방을 쓰는 눈치니까, 규칙을 별  어려움 없이 따를 수 
있을 거야.  우리 아버지 호텔과 별장에서는 서로 거리를 줬으면 좋겠어."  
"우와!"  
쟝이 자리를 떠나자, 마조리가 로버트에게 말했다.  
"우리가 계획했던, 죄악에 가득찬 휴가에는 너무 심한 규칙인걸."  
"네 문제점은 말만 많고 실행이 따르지 않는다는 거야."  
로버트는 입술을 일그러뜨리고 심술궂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
었다가 그의 슬픈 표정을 보고 그만 얼어붙었다.  이제서야 그가 지난 며칠 동안 긴장해 있
었던 이유가 감 잡혔다.  
     
콜럼부스 호가 칼비 항에 들어가자, 바다 위로 우뚝 솟은 절벽에 화강암으로 세워진 거대한 
노트르 담 드 라 세라 성당이 보였다.  화려한 일출은 산을 쪽빛으로 물들였고, 그 깎인  모
서리와 틈에 짙은 제비꽃 색의 그림자가 어렸다.  그들은 날이 저물어서야 배에서 내렸지만 
바다는 항구를 따라 펼쳐진 카페 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루었다.  여기저기에 설치된 룰렛 테
이블과 인파 가득한 부두를 따라 그들은  기분 좋게 쟝의 삼촌 피에르를 찾아  나섰다.  한 
카페에서 금반지와 목걸이로 장식한, 험한 눈초리의 사내가 그들을 맞았다.  
"우리는 뒤로 빠지자."  
로버트가 속삭였다.  그는 남몰래 그녀의 손을 부풀어오른 남성에 대고 눌렀다.  
"내가 피곤해 하니까, 네가 날 요트로 데려다 주겠다고 말해.  쟝은 이해할 거야."  
그녀가 부들럽게 대답했다.  그들은 삼각 경주에 나선 것처럼 팔짱을 끼고 허벅지를 맞댄채 
배로돌아갔다.  
"네가 왜 이렇게 슬퍼 보일까?"  
로버트는 그녀의 얼굴을 들어올리며 물었다.  그의 눈은 절실한 욕망으로 핏발이 서 있었다.  
"난 슬프지 않아."  
그녀는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슬펐다.  그녀만의 특별한 딜레마가 서로 다른 배경을 지속
적으로 상기시키는 다이아나와 클라우디아 때문에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녀가 성공
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로버트의 세상에 들어갈 수 있지?   그리고 별  재주나 훈련도 받지 
못한 그녀가 무슨 수로 성공을 해?  하지만 어떻게든 로버트가 그녀를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만들어야 해.  그녀는 눈물을 꾹 참았다.  
"아무것도 아냐, 로버트.  저기 좀 봐!"  
요염한 달이 험준한 산봉우리에 걸렸고,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  속에 따뜻한 밤과 씁쓸달콤
한 마키 내음이 담겨 있었다.  
"아름다운 밤이야."  
그녀가 중얼거렸다.  범선에 도착하자, 로버트는 시선 높이보다 위에 묶여 있는 구명선이 이 
배에서 유일하게 사적인 공간이라고 결정했다.  그래서 그들은 방수  천으로 침대를 만들고 
그 위에 수건으 깐 다음 나란히 누웠다.  로버트는 떠리는 손길로 서툴게 그녀의 옷을 벗겼
다.  그녀도 그의 피부를 온몸으로 느껴야만 했다.   그의 반바지와 티셔츠가 참을 수 없는 
장애물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찢다시피 그걸 제거해 나갔다.  헐떡거리며 그녀는 그의 엉덩
이를 힘차게 잡아 당겼고, 두 사람은 저 달처럼 알몸이 되어 부끄러움을 잊은 채 눈과 입을 
맞추고 서로를 부드럽게 애무했다.   이제 뭘 해야 하지 젊은 두 사람은 두렵고도 난처했다.  
"사랑을 나누자."  
로버트가 쉰 목소리로 간청했다.  
"약속해!  안전할 거야.  난 굉장히 하고 싶어."  
"나도 그래."  
아팠다.  그게 첫 충격이었다.  그에 이어 파괴할 수없는 긴밀한  유대감이 찾아왔다.  그녀
는 한껏 엉덩이를 들어올렸고거듭되는 결합에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의 달콤한 침범이
그녀의 가슴을 관통했고, 그는  그녀의 영혼을 꿰뚫을 듯 돌진해 왔다.  정열에 한껏 달아오
른 그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고 땀에 흠뻑 젖어 최후의 절정에 올랐다.  그리고 나중에 서로
의 품에 안겨 사랑의 말을 주고받으며 동쪽 하늘이 미세하게 밝아 오는 새벽을 맞았다.  그
제야 그들은 마지못해 몸을 풀고 살그머니 사랑의 보금자리로 찾아갔다.   
    
그들의 아침은 몽롱하고 나른했다.  쟝과  그의 삼촌의 재촉에 일어난 두  연인은 허겁지겁 
커피를 마시고트럭에 탔다.  마조리는 산을 오르는 동안 내내 잠을  잤다.  눈을 떠보니, 어
느덧 차는 협곡이 내려다보이는 구불구불한 길을 빠른 속도로 달릴고 있었다.  
"우리 마을 카스티리아로 통하는 유일한 길이야."   
쟝이 설명했다.  
"예전에는 노새만 간신히 가는 길로 여러 날에 걸쳐 외부와  교류했었어.  이 길은 개통 즉
시 니올로 주민들의 밥줄이  되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예전의 생활 방식대로  살고 있어.  
남자들은 돈을 벌러 집을 떠나고 가족들은 고향을 지키지."  
마조리가 다이아나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  
"너, 잘 들었니?"  
다이아나는 거만한 시선으로 그녀를 째려보았다.  트럭이 덜컹거리며 오래된 암벽층을 지나 
마지막으로 가파른 모퉁이를 돌자, 사발 모양의 평지가 나타났다.  그 곳을 사면에서 둘러싼 
산의 꼭대기에 쌓인 눈은 신비스럽고 접근할 수 없는 불가능을  풍겼다.  강렬한 태양이 사
정없이 내리쬐였고 푸른 하늘이 끝없이 펼쳐졌다.  차는 섬의  중앙부에 해당하는 니올로로 
들어가 붉은 기와가 얹혀진 삼층 건물 앞에 섰다.  트럭에서 내린 마조리는 서늘한 산의 냉
기에 몸을 떨었다.  저택의 대문이 열리고, 날씬한 한 여인이 안에서 뛰어나와 계단을 구르
듯 내려왔다.  그녀는 쟝을 보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검정 일색인 의상으로 감춰지지 못
한 피부가 목련처럼 투명했다.  그녀는 금발을 뒤로 모아 쪽을 올리고 아무 화장도 하지 않
았다.  그녀만한 피부와 용모의 소유자라면 화장을 할 필요가 없으리라.  쟝의 어머니는 보
기 드문 미녀였다.  백랍 같은 피부에 암청색의 큰 눈동자가 두드러진, 마담 마젤은 차분하
고 상냥해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미소는 다이아나를 소개받는 순간 금세 사라졌다.  아들
의 여자를 탐탁찮게 여김이 분명했다.  
"어서 와요!  내가 여러분을 방으로 안내할께요.   다행히 여기에는 여분의 방이 많아요."  
마조리는 그녀의 코르시카 억양이 강한 불어를  쉽게 알아들었지만, 다이아나와 클아우디아
는 난색을 표했다.  
"오후 6시에 테라스에서 주연이 있어요."  
마리아나 마젤이 말했다.  
    
마조리는 테라스 계단을 통해 정원으로 내려갔다.  거기에 열다섯 명 정도의 남자들이 식탁
에 둘러앉아 있었다.  그녀의 출현에 그중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버트와 쟝이었
다.  늙은 장신으 한 남자가 의자에서 몸을 돌려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순간 그의 안색
이 놀라움과 기쁨으로 환하게 밝아졌다.   
"칭송할 만한 여신이로다!"  
그가 강한 억양의 영어로 외쳤다.  
"네가 다이아나로구나."  
맙소사? 어떻게 하지? 못 들은 척 할까?  그는  생판 딴 사람에게 서정시를 바쳤다는 실수
를 깨닫고 어떤 식으로 나올까?  그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검정색 정장에 흰  와이셔츠를 
받쳐 입고 선홍색 장식 수건과 허리띠를 맨 풍모가 당당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는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반 세기 동안 효력을 발휘했을, 옛 마법이 통하기를 기다렸다.  
"저는 다이아나가 아니에요. 그 친구 마조리 하디에요."  
그녀가  불어로 중얼거렸다.  
"아, 하지만 한시름 놓았다."  
그가 유연하게 말을 받았다.  
"네가 나를 파파라고 부를 일은 없겠구나.  아주 좋았어."  
그는 마조리의 손을 잡아 옆구리에 끼고 그녀를 식탁으로 이끌었다.  
"그럼 너는 바로 로버트의 친구로구나.  아가씨는 저 젊은이에게  과분한 상대야.  자, 이리 
내 옆에 앉아서 영예의 손님이 되어주렴."  
  그녀는 쟝이 허물없이 비워준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무슈 마젤이 요란한 몸짓으로 최고
급 포도주를 따르며 그게 왜 상급풍 인가를 구구절절히 설명했다.   저녁상은 나무 아래 차
려졌다.  생선 전채 요리와 염소 치즈, 야채가 곁들여진 돼지고기, 올리브와 각종 과일, 그리
고 밤나무 열매로 만든 패스트리 등 식단은 풍성했다.  마담  마젤과 두 시누이들이 한결같
이 검정색으로 차려입고 요리를 다 나른 다음에야 동석해서 식사를 했다.  다 먹고나자, 그
들이 식탁을 치우기 시작하기에  마조리도 자리에서 일어나 거들려는  찰라, 뒤에서 요란한 
호통 소리가 들려 왔다.  
"마조리, 이리 돌아오너라. 집에는 일손이 많아.  이리 오라니까." "가 봐요."  
마담 마젤이 그녀를 슬쩍 찌르며 말했다. "우리집 양반은 사람들과 이야기 하기를 좋아한다
우.  착한 사람이니까.  아가씨가 참아 주구려."  
그리고 그녀는 다이아나 쪽을 가리키며 남편에게 코르시카 말로  퍼부어댔다.  마조리는 그
중 '친절' '의무' '둔감한' 등의  몇마디를 알아들었다.  무슈 마젤은  의무적으로 다이아나를 
남은 쪽 옆자리에 불러 앉히고 콕르시카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자정이 지나서야 모
임은 막을 내렸다.  마조리는 조심스럽게 테라스 계단을 올라갔다.  온갖 전설과 독한 곡주
로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넌 큰 반향을 일으켰어."  
그녀는 로버트의 목소리에 몸을 돌렸다. "아, 로버트."  
  그 순간 그녀는 그를 꼭 안아 주고  싶었다.  그의 눈은 사랑과 애정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녀가 달려들자 그가 양손을 들어올리고 뒤로 물러섰다.  
"어험!  쟝의 경고를 명심해.  너는 참아야 되느니라." 그가 그녀에게 웃었다.  그의 말이 절
대적으로 옳았다. "네가 그리워." 그녀가 안타깝게 속삭였다.  
  "30분 후에 정원에서 만나자."  
무성한 마키 속에 안전하게 숨어 따뜻한 대지 위에 눕는 기분은 짜릿했다.  어둠 속에서 옷
을 벗고 달빛에 반사된 로버트의 열굴을 보는 것 또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바조리
에게 성행위는 순수하고 숭고해 보였다.  사랑의 물결은 그들을  휩쓸고 어둠속으로 흩어졌
다.  사랑은 성스러웠다.  그리고 그들은 사랑했으므로 축복 받았다.  
    
새벽녁에 마조리는 부드러운 노크 소리를 드었다.  로버트를 기대하며 문을 열었던 그녀 앞
에 다이아나가 서 있었다.  그녀의 눈은 울었던지 시뻘겋게 짓물러 있었다.  놀람과 회의가 
교차한 순간 다이아나가 애원했다.  
"마조리 부탁이야..... 난 잠을 잘 수가 없어.  이야기를 할 사람이 필요해.  쟝과 나는.....  일
이 순조롭게 풀리기를 기대했지만, 그의 부모님들이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이 일을 
어쩌지!" 그녀는 침대에 앉아 양손에 얼굴을 묻었다.  
  "쟝은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지 않을 거야.  그러기엔 위험 부담률이 크거든.  워낙 재산이 
많잖아.  난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쟝은 안그래.  그래서 난 좋은 인상을 심어  줘야 해.  그 
동안 내가 못되게 굴어서 미안해.  그분들은 널 좋아하고 넌 프랑스어도 잘 하잖니.  우리가 
친구라고 생각한다면.....  부탁이야, 제발 도와줘."  
마조리는 맥없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미안해, 하지만 난 항회하러 갈거야'라는 말이 목구멍
까지 올라왔지만, 그녀는 그만큼 모질지 못했다.  
"네가 정말 쟝과 결혼하길  원한다면, 그보다 그의 어머니에게  신경 쓰는 편이 좋을  거야.  
이집의 실세는 바로 그분이셔.  남편이 아니라구." "정말?" "그렇다니까.  그게 신상에 이로
울걸.  너 요리할 줄 아니?" "아니."  
"내 솜씨를 눈썰미로 익히면 금방 요리를 잘 하게 될 거야."  
"나만 혼자 그들과 지내도록 하지 않겠지?  약속하지?"  
"한 며칠 동안 네 옆에 있어줄께.  하지만 네가 자신감을 얻을 때까지야.  이제 가서 눈이나 
붙여."  
  다음날 아침 로버트는 그녀와 해변에 가려고 차를 빌려 놓고 기다렸다.  마조리는 어렵게 
다이아나와의 약속에 대해 설명했다.  
"무슨 상관이야?  그녀는 형편없는 계집애라고."  
"그렇다고 나까지 형편없이 굴어야겠니?"  
"빌어먹을!  대체 우리가 왜 여기에 온 거야?  난 너랑 단둘이만 있고 싶어."  
그는 절망감에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두 소녀는 일을 하겠다고 주방을 찾아갔다.  다이아나
가 서툰 프랑스어로 여자들의 일손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네가 정 한몫을 하고 싶다면 영국 요리를 해보거라."  
마젤 부인이 다이아나에게 도전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싸늘한 미소를 교환했다.  마조리는 
약속에 묶여 꼼짝없이 그 날과 다음 날의 대부분을  주방에서 보냈고, 다이아나는 전력투구
를 다해 마담 마젤의 비위를 마췄다.   하지만 20인분의 점심 및 저녁 준비는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로버트는 남자들과 어울려 사냥을 나갔다가 땅거미가 질  무렵 요란스럽게 집으
로 돌아왔다.  포도주에 잔뜩 취해 다른 남자들 흉내를 냈지만  그에게는 여성의 시중을 당
연히 받아들이는 태도가 부족했다.  로버트는 형편없느 남성 우월주의자였다.  참다 못한 마
조리는 둘째 날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그를 한쪽 구석으로 불러냈다.  로버트는 나무 아래 의
자에 기대고 앉아 병나발을 불고 있었다.  이미 만취한 상태였다.  
"굳이 샐쭉해져서 뿌루퉁할 이유가 없잖아.  내가 잘못하긴 했지만  이미 디와 약속을 했단 
말야."  
"네 속셈이야 네가 나보다 더 잘 알겠지.  우리의 휴가는  의문 투성이야.  제발 청컨대, 네
가 새로 개발한 심리적인 통찰력을 발휘해서 설명 좀 해주겠어?  혹시 내가 너를 원치 않는 
상황으로 몰아넣었던 거니?"  
"난 디가 그녀의 남자를 잡도록 도와주는 것뿐이라구."  
"아하, 디?  우리 관계는 어쩌구?"  
"그야 나도 기회가 있을 때 너를 잡고 싶지."  
그녀는 농담조로 받아 넘겼다.  
"정신차려, 마조리.  네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  
기가 막혀서! 또 다시 백마 탄 왕자님 행세를 하잖아? 그녀는 샘솟는 분노를 느꼈지만 매서
운 응수를 꾹 참았다.  
    
  주말경에 두 소녀들은 레몬 응유로 마담  마젤과 친해졌고 브랜디 과자로 그녀의  환심을 
사 뒀으며 돼지 고기와 사과 파이로  경계심을 해제시켰고 콕카레키 스프로 그녀를  휴혹했
다.  그리고 체리 잼으로 승리를 거며쥐었다.   이제 더 이상 마조리의 도움은  필요없었다.  
로버트는 차를 빌렸고,  그때부터 매일 아침마다  그들은 좁고 가파른 도로를 따라 바다로, 
해변으로, 또는 광대하고 아름다운 자연림으로 놀러 다녔다.  세상의 눈을 피해 태양 속에서 
사랑을 나누고, 포도주와 다이아나가 싸준 맛있는 간식을 먹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미
래에 대한 것만 제외하고.  마지막 날 산행을 나선 두 사람은 얼음처럼 차가운 시냇물이 바
위 웅덩이로 괄괄 쏟아져 내리는 깊은 계곡을 찾아냈다.  
"난 쉬어야겠어."  
마조리는 쓰러지다시피 바위에 앉았다.  
"우와!  장관이다."  
만화경같은 경치였다.  강렬한 터키색 바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는 아련한 보랏빛 수평선과 
그 사이에 멀리 펼쳐진 초록의 물결이 삼박자를 이루었다.  바다를 바라보는 로버트의 얼굴
에 그림자가 졌다.  
"우리가 꼭 포기해야 할 필요는 없어, 로버트."  
돌연 마조리가 온몸으로 간청하듯 말했다.
"난 자기를 사랑해.  우리를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은 자기 마음 속에만 존재하는 거야."  
그녀는 설득하려 했지만 이미 실패를 예감했다.  
"수영이나 하자."  
그녀는 바위에서 일어나 옷을 훌훌 벗어 던졌다.  맨살에 와  닿는 따뜻한 태양이 기분좋았
다.  잠시 후 로버트가 그녀의 뒤를 따랐다.  
"난 네 가슴을 사랑해."  
그는 그녀를 옆자리에 끌어다 앉히고 꼭 안았다.  
"너를 원하는 마음이 강박 관념에 이르렀어.   난 너때문에 미쳐 가고 있어. 너와  헤어지는 
생각을 도저히 못 참겠어." 
그녀는 그의 눈 속에서 진실을 읽고 가만히 속삭였다.  
       
  마조리는 월경을 걸렸다.  
"난 자주 즞어."  
그녀는 단조로운 목소리로 바바라에게 말했다.  
"최근에 꿈자리가 뒤숭숭하지 않았다면 아예 생리 주기를 의식조차  못했을 거야.  그깟 꿈
에 난리를 떨다니.  내 주기가 항상 규칙적일 수야 없지."  
"가끔 넌 너희 엄마처럼 말하더라."  
"아, 바바라!"  
그녀는 친구의 손을 꼭 잡았다.  바바라는 절대로 속아넘어가지 않았다.  
"걱정할 필요없어."  
바바라가 말했다.  
"며칠내로 병원에 가서 확인하고 깨끗이 잊어 버려."  
"그래."  
그녀는 양손으로 배를 감쌌다.  그녀가 결국 찾아낸 일자리는 해변 호텔의 웨이트레스 직이
었는데, 다행이도 근무 시간이 정오부터 오후 11시까지였다.  마조리는 아침에 정신을 못 차
렸다.  팁이 짭짤했기 때문에 이럭저럭 저금도 좀 했지만 야간 강좌를 들을 시간이 없었다.   
그녀의 거짓된 만족을 일깨운 사람은 바바라였다.  
"넌 현실에서 도피할 수 없어.  나와 함께 폭스톤에 다녀오자.  거기에 그런 일을 처리해 주
는 의사가 있대.  너희 부모님께는 적당히 둘러대."  
마조리는 산부인과 진찰에 지례 겁을 먹었지만 의사는 여성이었고  친절했다.  그녀의 진단
은 사형 선고와 같았다.  마조리는 하얗게 질려 사시나무처럼 떨며 바바라에게 격렬하게 말
했다.  
"난 로버트의 분신을 중절하지 않을 거야."  
11월 중순경에 그 의사가 그녀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 왔다.  "해줄 말이 있어요.  내가 웨일
즈의 수녀원에 당신 자리를 만들어 놨어요.  임신한 티가 나기 시작하면 거기에 들어가세요.  
당신은 거기 세탁소에서 일하고 밤에 타자와 속기 수업을 듣게  될거예요.  그곳을 떠날 즈
음 사무직을 구할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출 수 있어요.  그리고 그쪽에서 입양을 주선할 거
예요.  매우 효율적인 방법이지요?  당신은 행운인 셈이에요.  이제 그곳 주소를 받아 적으
세요."  
"뭐라고 감사드려야 하지요?"  
"내 일인데요 뭐.  하지만 절대 시기를 놓치지 말아요."  
그때부터 마조리는 아이와 헤어질 순간이 두려웠다.  임신 기간이 자식과  함께 있을 수 있
는 유일하고 소중한 기회였다.  그녀는 로버트의 분신이 태어날 때까지 그 아이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녀의 부풀어오르는 육체는 그녀와 
아이가 공유한 작은 요람이 되었다.  그녀는 아기에게 말을 걸고 그 애를 위해 과식을 삼가
고 과로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여행 비수기 철이라 힘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상황의 도
덕성이 마음에 걸렸다.  로버트는 사실을 알고 자식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가 있어.  그에게 
연락해야 해.  그녀는 감히 아이를 기를  수 있는 방법을 로버트가 찾아 주기를  기대할 수 
없었다.  그때, 편지 한 통이 비관적인  상황을 타개했다.  글렌티란의 소인이 찍힌  편지는 
그녀를 기쁘게 했다.  
    
  안녕 마조리 몇자 적는다. 난 여전히  양조장에서 죽도록 일하고 있다.  아버지는 건강을 
회복하셨지만 은퇴하셨기 때문에, 내가 늙은 직원 한 명과 함께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가야 
해.  난 전에 흥미조차 없었던  술 제조 방법과 세부 사항들을  하나 둘 익혀 나가고 있어.   
하지만 의외로 재미있다.  아침 여섯시부터 밤 아홉시까지 머리속에는 온통 일 생각뿐이다.   
언젠가 네가 글렌티란의 성공담을 듣는 날이 오겠지.  하지만 그때까지  난 모든 꿈을 접어 
두고 일에만 매진해야 해.  답장을 보내 주겠니? 어떻게 지내?  
사랑을 담아 
로버트
    
  '사랑을 담아, 로버트'가 유일하게 인간적인 냄새를 풍겼다.  하지만 이편지는 그가 그녀를 
잊지 않았다는 증표였다.  그녀는 반복해서 편지를  일고 몸에 지니고 다녔다.  로버트에게 
사실을 전해야 하겠지만 그가 전혀 듣고 싶어할 내용이 아니었기에 그녀는 쉽게 용기를 내
지 못했다.
   
  기차 화장실에서 한바탕 속을 비운 터라 그녀는 춥고 풀이  죽었다.  하지만 발을 단단한 
대지에 딛자,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그녀는 역 카페에서 빵과 설탕 커피를 곁들여 먹었다.  
웨스트 린턴 행 버스가 없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택시를 탔다.  그녀는 장대처럼 쏟아지
는 비와 택시 밖으로 스치는 주택을 곁눈질하지 않고 무표정하게 앞만 바라보았다.  마지막
으로 로버트와 함께 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죽는 날까지 그의  표정을 잊지 못하리.  '냉담
하다'는 표현은 모자랐다.  그는 오직 자기 문제에만 골몰해서 그녀를 없는 사람처럼 취급했
다.  그리고 지금은?  당연히 동요할 거야.  내가 꼭 이래야만 할까?  하지만 그녀에게는 선
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녀는 이런 결정을 단독으로 내릴 권리가 없었다.  수치심에도 불구
하고 매번 똑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이 아이가 나와 그의  자식이니 만큼 로버트도 아이의 
운명에 대해 결정을 내려야 해.  택시가 진입로로 들어서자, 그녀의 속이 울렁거렸다.  티란 
장원 바로 여기구나!  철제 대문 뒤에 작은 집  한채가 그녀의 희망에 불을 지폈지만, 택시
는 그 옆을 지나 저택으로 향했다.  아니, 성이라는 편이 옳았다.   
"맙소사!"  
그녀가 속삭였다.  웅장한 저택이었다.  그녀는 이틀치의  소중한 팁을 택시 기사에게 주고 
가방을 집어들었다.  그녀는 포치에 섰다.  자신의 부족함과 외로움이 왈칵 밀려들었다.  그
때 문이 열리고 검정색 정장을 갖춰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나뵙게 되어서 정말 반갑습니다.  맥라렌 씨."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그 남자는 뒷걸음질치며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  
"안녕하십니까, 아가씨.  만나러 오신  분이 젊은 주인님이십니까, 아니면  큰 주인님이십니
까?  던컨 경께서는 지금 몸이 좋지 않으셔서 의사의 진찰을 받고  계십니다.  맥라렌 마님
을 불러 드릴까요?"  
그의 시선이 그녀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훑더니 의미심장하게 배 부분에 고정되었다.  
"로버트 주인님은 여기에 안 계십니다."  
그는 말을 덧붙이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가 양조장을 경영하는 줄 알았어요.  내가 받아본 편지에 의하면....."  
그녀는 말꼬리를 흐렸다.  
"양조장은 하이랜드에 있습니다.  제가 맥라렌 마님께 말씀드릴 테니 서재에서 기다려 주십
시오.  이쪽입니다."  
지금 떠나는 게 좋지 않을까?  하지만 택시도 없는데  당장 무슨 수로?   서재는 마조리네 
집 한 채가 전부 들어갈 만큼 크고 음습했다.  
"빛이 더 필요한 것만은 사실이네."  
레이디 맥라렌이 들어왔을 때 마조리는 긴장했다.  그녀는 몸에 달라붙는 적색 모직 드레스
와 적색 스카프, 의상에 맞춘 붉은 립스틱으로 방에 색채와 온기를 불어넣었다.  세련된 머
리 모양에서 반지와 목걸이에 이르기까지 부티가 흘렀다.  한때는  진짜 미인이었겠지만 지
금은 핏기 없는 피부와 대조적으로 머리가 너무 새까만 탓에  딱딱해 보였다.  마조리는 그
녀의 눈에서 그녀가 그다지 마음 따뜻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읽었다.  아까 느꼈던 온
기는 환상이었다.  마조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학교 방수 외투를 입고 신발 위에 방수용 덧
신을 신은 꼴이 얼마나 촌스러워 보일까?  레이디 맥라렌은 담배불을 붙이고 신기한 듯 그
녀를 쳐다보았다.  아까 집사와 똑같은 저 표정!  마조리는 배 위에 손을 맞잡았다.  
"당신이 로버트를 만나러 왔다는 아가씨로군요.   그런데 그가 여기에 없어서  어떻게 하지
요?  사실 그는 미국에 가 있어요."  
마조리의 심장이 쿵 떨어졌다.  갑자기 말할 수 없는 피로가 엄습했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편지를 썼어요."  
"약혼했다는 말도 하던가요?"  
레이디 맥라렌이 오만하게 물었다.  충격이 얼음 칼처럼 마조리의 복부를 갈랐다.  신경 끝
이 바르르 떨리고 눈앞에 빙빙 돌았다.  말을 하려 했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내가 바보
였어' 그녀는 수치심으로 온몸이 떨렸다.  마침내 용기를 낸 그녀가 말했다.  
"저는 로버트와 함께 8월에 코르시카에 갔었고 지금 임신한  상태예요.  전 그가 원하는 바
를 모르겠기에 미혼모의 집에 입소하기로 했어요.  그쪽 기관에서 출산과 입양을 돌봐 주지
만 먼저 로버트에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리 아기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요."  
"아가씨는 굉장히 현명하군요."  
레이디 맥라렌이 미소를 지었지만 왠지 마조리는 소름이 끼쳤다.  
"정말 심지가 굳은 아가씨예요.  내 말이 당신의 결단에 도움이 될 거예요.  로버트는 작위
를 계승할 테고 그의 아내는 자연적으로 레이디 맥라렌이 될  거예요.  그는 가문의 수장이
자, 이 일대 토지를 거의 소유한 대지주예요.  우리는 존경받는  생활을 해야 한답니다.  다
들 그걸 요구하기 때문이지요.  나는 많은 환영을 받고 있어요.  여기는 왕실에 대한 충성심
이 건재하거든요.  내 말뜻을 알아들었겠지요?  당신은 이런 역할을 수행할  재목이 아니에
요.  우리로서는 수수방관만 할 일이 아니에요."  
"당신네들이 뭐가 그렇게 잘났기에 내가 그렇게 큰 폐를 끼친다는 거예요?"  
마조리는 주먹을 불끈 쥐고 눈물을 참으며 대들었다.  
"그는 황태자가 아니에요.  당신네들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고요.  겨우 양조장을 
경영하면서.  임신은 나에게도 달갑지 않아요.  그리고 내 아이는 어떻게 해요?"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군요."  
앙심 깊은 목소리가 말을 이었다.  
"아가씨는 객지에 나가 있는 외로운  아이의 등을 쳐먹은 거야.  그가  안락한 삶을 보장해 
주리라 생각하고 결혼을 노리고 임신했지?"  
살모사같은 여자야.  마조리는 그녀의 냉정한 검은 눈을 바라보며 절망했다.  뱀 앞에 선 토
끼 같은 심정이었다.  저 여자는 날 한입거리로 생각하고 있어.  순간 이세상에는 두 종류의 
여성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모성적인 관대함이 말과  행동에서 풍기는 여자
와 여성적인 모든 기질을 거부하고 남성보다 더 잔인하게 구는 인간 이하의 여자.  
"로버트가 아이 아버지라는 증거라도 있나?"  
그 말에 담긴 악의에 마조리는 현기증을 느꼈다.  제대로 생각 할 수조차 없었다.  
"이만하면 당신에게 충분한 모욕을 당했어요."  
마조리는 위엄있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20세기예요.  내가 여기에 온 이유는 로버트와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 이외에 아
무것도 없어요.  그만 가보겠습니다, 레이디 맥라렌.  택시를 불러 주시면 고맙겠어요."  
"안돼요!  내가 당신을 잘못 봤어요.  잠깐 기다려요."  
그녀가 돌연 방을 나갔다.  책상에 필기 도구가 갖춰져 있었다.  마조리는 이곳을 방문한 이
유와 그의 계모에게 오해를 산 경위에 대한 편지를 로버트에게  썼다.  그리고 수녀원의 주
소를 남겼다.  '내 출산 예정일은 5월 15일이야.  그때까지 자기의 연락이 없으면, 아이의 입
양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알겠어' 그녀는 그것을  봉투에 넣고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잠시 
후 로다 맥라렌이 서둘러 돌아왔다.  
"조지."  
그녀가 인터콤에 대고 말했다.  
"손님을 역까지 배웅할 자동차를 준비시켜요."  
그리고 책상 서랍에서 수표를 꺼냈다.  
"이 수표는 내가 주는 선물이에요.  더 이상은 곤란해요.  이것으로 내 의붓 아들이 어떤 약
속을 해주리란 생각을 깨끗이 정리하도록 해요."  
사각사각 펜 소리와 함께 마조리는 비참해졌다.  레이디 맥라렌이  변호사에게 전화를 했구
나.  그런 절차가 필요하다고 느끼다니, 정말 불쌍한 여자야.  5천 파운드. 마조리는 그 숫자
를 읽었다.  처음에는 그 수표를  갈기갈기 찢어 버릴까 하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수녀원에 
기부하기로 했다.  그곳은 이 돈을 유용하게 쓸 수 있어.  
"당신의 잔인함을 고스라니 되돌려 받는 날이 올 거예요.  레이디 맥라렌."  
마조리가 말했다.  
"그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예요.  언젠가 당신이 나에게 무릎꿇고 빌게 될 거예요.  그럼 나
는 포치에 나가 차를 기다리겠습니다."  
그녀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상대의 오만방자한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이 편지를 로버트에게 전해 주세요."  
그녀가 집사에게 부탁했다.  차에 타고 대문을 지나서야, 안도감에 그녀의 사지가 떨리기 시
작했다.  
    
  월요일 아침이었다.  8시인데도 밖은 아직 어두웠다.   바람에 시달리는 단풍나무 가지가 
창들을 때렸고 빗방울이 지붕을 두들겼다.   리즈 하디는 마조리의 방에 불을  켜고 먼지를 
털었다.  아직 톰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지만 청소기를 돌려야겠어.  습관의 노예인 그녀
와 달리 30년 동안 일찍 일어나던 사람이 늦잠을 잘 수 있다니, 정말 웃기잖아.  딸의  책상
과 손때가 묻은 물건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아이가 여섯 살 때 유원지에서 딴 줄
무늬 호랑이 여전히 물방울 앞치마와 모자를 쓴 곰돌이 인형  푸, 적은 용돈을 쪼개 한두점
씩 사 모은 도자기 인형들 현대 시집과 불어로 된 책들과 낡은 만화책 무더기 위에  립스틱
과 브레이지어가 널려 있었다.  아이가 이렇게 빨리 성장하고 변하다니.  너무 빨라!   오래
지 않아 걱정스런 생각이 리즈의 뇌리를 스쳤다.  왜 선반 위에 새  생리대가 세 봉지나 있
을까?  그녀가 마조리에게 한 달에 한번씩 공판장에서 사다 준 것도  항상 빠듯했는데.  순
간 최근에 딸의 속옷을 삶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설마!"  
그녀는 바삐 일손을 움직였지만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남편이 일어날 즈음, 집안은 티
끌하나 없이 깨끗했다.  세탁기 회전이 '탈수'에 이르렀고 천둥 같은 소음이 부엌을 메웠다.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저 빌어먹을 기계의 스위치를 끌 수 없어?"  
남편이 투덜거렸다.  
"여보, 얼굴 좀 펴요.  3분이면 끝난다구요.   예전 같지 않지요?  당신이 보일러에  석탄을 
채워넣고 그 밑에 달린 스토브에 불을 지폈던 때가 생각나요?  당신은 한번도 빠지지 않고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그 일을 해주셨더랬어요."  
그녀는 세탁기가 뚝 그칠 때까지 남편의 비위를 맞추었다.  
"세탁기로 한 빨래는 영 신통치 않아."  
그가 말했다.  
"보일러도 마찬가지였어요."  
"마조리는 언제 돌아온대?"  
"내일이요."  
"흠, 신참 직원에게 휴가를 주다니, 거어참."  
"그럴 수도 있지요."  
그녀는 말을 흐렸지만 남편과 생각이  같았다.  그래, 맞아. 마조리가  12월에 스코틀랜드를 
가다니.  정말 이상해.  그녀가 삶에서 도피하고 싶을 때마다 항상 그렇듯이 요리를 하고 있
을 때, 쿵쾅거리며 계단을 내려오는 마조리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 왔다.  저 애가 예정보다 
일찍 올아왔네.  일이 잘못됐구나.  리즈의 추측을 확인이나 해주듯,  딸이 의기소침한 표정
으로 부엌에 들어왔다.  
"네가 내일 돌아올 줄 알았는데."  
리즈가 말을 걸었다.  
"일찍 왔어요.  어제 막차를 놓치는 바람에 여자 화장실에서 잤어요.  한숨도 못 잔데다 음
식 사 먹을 돈이 있어야지요.  그래서 오늘 첫차를 탔어요.  엄마, 저 배고파요.  집에 오는 
길 내내 가장 그리웠던 게  뭔줄 아세요?  당밀을 끼얹은  크럼펫이에요.  집에 당밀 있지
요?"  
그녀가 찬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어, 당밀을 어디에 두셨어요, 엄마?" 
"거기 윗칸에.  하지만 크럼펫이 없어.  대신 토스트는 어떠냐?"  
"아, 좋아요.  코트를 벗어 놓고 돌아올께요."  
리즈는 빵을 토스트기에 넣고 앞치마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그녀는 단풍나무의 헐벗은 가
지 틈새로 엿보이는 손바닥만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가 그친  하늘에 수상쩍은 황색기
가 어렸다.  눈이 올려나?  12월 중반에?  그리고 쟤들이 언제 프랑스에 갔었더라?  아마 8
월이었지? 넉 달째로구나!  무슨 수를 쓰기에는 너무  늦었어.  그래서 저 얘가 로버트에게 
달려갔던 게지.  그녀는 딸의 절망적인 표정을 상기하며 몸서리를 쳤다.  리즈는 아무 의식
없이 부엌일을 했다.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고 손발이 떨렸으며 심자이 쿵쾅거리고 머리가 
빠듯하게 조여들었다.  그래선 안돼!  하느님, 안됩니다!  전 헤쳐 나갈 수 없어요.  하지만 
아직 닥치지도 않은 문제에 큰일이 나지는 않겠지.  그녀는 마음을 달랬다.  
   
  3주가 지났고 마조리는 점점 창백하고 우울해졌다.  크리스마스에 이어 매서운 바람을 동
반한 1월이 찾아왔다.  하디 일가는 매일 밤 텔레비전  앞에 둘러앉아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영국이 유럽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순간을 지켜보았다.  특히 리즈는 변화가 두려웠지만 그 
중 임금 및 물가 동결 조치에 반색을 했다.  남편의 빈약한 연금과 마조리의 보조로 가계를 
꾸려 나가기가 힘들었다.  지난 여섯 달 동안의 인플레이션은 가히 살인적이었다.  1월22일 
하루에 주가가 폭락했고, 생활이 더 어려워지리란 것이 눈에 보였다.  
"이건 시작에 불과해."  
아빠가 불길하게 말했다.  29일 자로 마조리가 19살이 되었기 때문에 부모님은 돈을 긁어모
아 그녀가 하이 스트리트의 최고급 상점에서 봐 뒀던 하이힐을 사줬다.  앞 장식이 달린 검
은 양가죽 구두였다.  그날 밤 그녀가 신발을 선보이자, 아빠가 힐끔 보고 말했다.  
"몸무게가 늘었구나?"  
딸은 얼굴을 붉혔다.  리즈는 뜨개질거리를 내려놨다.  
"이제 내가 저 애의 문젯거리를 알아낼 때가 됐어요."  
    
  어떻게 하지? 그녀는 침대에서 몸을 뒤척거렸다.  왜 그에게 아무  소식이 없을까?  그녀
의 분노는 공포보다 강했다.  그가 모르는 척 한다면, 그녀는  자식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  
비정한 행동이지만 제대로 된  가정을 꾸리지 못한  상황에서 아이를 기를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아이는 최고를 누릴 권리를 가졌다.  
"하느님 도와주세요."  
그녀는 속삭였다.  아빠가 그녀의 불어난 체중을 눈치챘으니, 이 집을 떠나야 해.  그 때 노
크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문간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다 아셨구나.   
하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으신 거야.  엄마는 항상 문제를 회피했다.  그건 엄마의 
살아가는 방법일 뿐 잘못이 아니었다.  
"엄마, 난 6개월 동안 직장을 구해서 멀리 가게 되었어요.   하지만 내 한몸을 잘 돌볼께요. 
모든게 다 괜찮아요.  내 말뜻을 아시지요?" 
리즈는 망연한 표정으로 침대에 앉았다.  그녀는 더 이상 공포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위
로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네가 모두 괜찮다고 약속한다면야..... 엄마가 얼마나 걱정해 왔는지....."  
그녀는 말꼬리를 흐렸다.  
"다 생각해 뒀어요.  엄마, 내가 입주직을 구했다고 아빠에게  말씀해 주세요.  수녀원의 세
탁소 일이지만, 밤에 타자와 속기 수업을 듣고 실습할 기회가 있어요.  난 자격증을 취득할 
거예요.  이상적이잖아요?  한 가지 집을 떠나는 게 마음에  걸려요.  그런데 여러 달 동안 
생활비를 낼 수 없으니까 아빠의 부담이 커질텐데....."  
"여섯 달 정도는 괜찮아.  마지, 넌 항상 영리한 아이였다.   네가 일을 제대로 처리할 것으
로 믿는다."  
엄마는 이제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날 힘이 생긴 모양이었다.  
"그럼, 난 더이상 걱정하지 않으마."
그녀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말했다.  
"네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를 안심시키자 그녀의 기분도 좋아졌다.  다 사실이잖아?  여섯 달만 참으면 모든 문제
에서 행방될 거야.  하지만 이런 식으로 성인의 삶에 첫발을 내딛다니.  그녀가 품었던 원대
한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땅바닥을 기어다니는  하등 동물로 전락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엄마의 입버릇이 떠올랐다.  
"밑바닥까지 떨어지면 위로 올라가게 되어 있어."  
그녀는 거울 속의 자신을 오랫동안 주시했다.  부은 얼굴과 기미낀 피부, 눈 밑의 시꺼먼 그
림자.  '마조리 하디, 넌 바보야.  네 계획들을 생각할 때마다  웃겨서 배꼽이 튀어나오겠다.  
더 이상 재난을 부르지 마.  내년 크리스마스에 넌 행복하고 부자가 되어 있을 거야.  그리
고 뭘 해야 할지도 알게 될  거야.  긍정적으로 생각해.  성숙해지란 말야'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에게 약속했다.  
"좋아 넌 해낼 수 있어.  내가 보장할께."  
     
  마조리는 수녀원의 세탁실에서 목청껏 노래하며 다림질을 하고 있었다.  잠자면서도 다림
질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각각 임신 개월 수가 다른 스무 명의 미혼모들과 합창하는  '워
터루'의 음률이 마음 속 가득히 울려퍼졌다.  그들은 이 지역  최고의 합창단일 것이다.  대
중 앞에서 공연이야 못하겠지만 그 모습을 상상하면 웃음이 터져나왔다.  노래는 시간을 보
내는 특효였다.  지난 5개월 동안 그녀의 손을 거친 셔츠가 수 백장에 이르렀고, 그녀는 가
장 빠르고 깔끔하게 다림질을 할 수 있다고 자부했다.  세탁소에서  나오는 이윤은 이 기관
의 윤영 자금이었기 때문에, 미혼모들은 그냥 자선을 받는 대상이 아니라 뭔가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사실에 자긍심을 느꼈다.  이제 곧 많은 친구들을 뒤로하고 이곳을 떠나게 되겠지.  
수녀들은 친절했고, 미혼모들은 그녀의 친구였다.  그녀는 여기까지 오게 되었던 그들 하나 
하나의 삶과 실망감과 실수를 알고 있었다.  마조리도 감감 무소식인 로버트에 대한 비통함
에 괴로워했다.  그녀와 자식을 도외시한  로버트의 처사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일각이 
여삼추처럼 느리고 지루한 생활 속에서  후회의 불꽃은 전보다 더 켜졌다.   최근에 그녀는 
태내의 꼬마 로브와 나누는 미묘한 대화에 열중하게 되었다.  불어나는 체중은 고역이 아니
라 기쁨이었다.  그녀의 임신 기간 중 절반은 최소한의 불편과  최대한의 경이와 만족이 뒤
엉킨 나날이었다.  어서 아이를 품에 안고 싶었다.  다른 미혼모들처럼 그녀는 아기를 떠나 
보내는 그 날이 두려웠고, 밤잠을 설치며 자신의 결정을 고민했다.  하지만 항상 결론은 똑
같았다.  그 외에 뾰족한 수가 없었다.  훈련도 받지 못하고 직업도 없고 가난한 부모를 모
신 몸으로 어떻게 아기를 제대로 키울 수 있단 말인가?  감독 수녀가 옆으로 다가왔다.  
"그만하면 됐어요, 마조리.  이제 휴식 시간이에요."  
그녀는 신기하게 온몸에서 활기가 넘쳐흘렀기 때문에 숙소로 돌아가 우유를 한잔 마시고 자
리에 누웠다.  
"잘 있었니, 로브.  운동할 시간이란다."  
그녀가 노래하듯 흥헐거렸다.  꼬마 로브는 축구 연습을 즐겨했지만, 지난 며칠 동안 태내의 
발길질이 뚝 그쳐서 걱정스러웠다.  그녀는 마음이  부산했다.  침실에 먼지 하나 없었지만 
다시 청소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녀는 다시 일어나 양도이와 걸레를 가져다가 선반을 닦
기 시작했다.  사람 한 명이 겨우 누울 만큼 작은 방이었지만 그녀는  항상 꽃 장식을 잊지 
않았다.  때는 5월 중순이었고,  매일 아침마다 장미와 데이지 아이리스를 꺾어다가 꽃꽂이
를 했다.  선반을 반쯤 문질러 닦았을 때, 오장 육부를 끊는 듯한 기피은 통증이 슬슬  찾아 
들었다.  아픔은 점점 심해졌다.  결국 그녀는 바닥에 쓰러져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이게 
산통일까?  이만큼 아플 수도 있을까?  그녀는 출산에  대한 교육을 충분히 받았지만 참을 
수 없는 아픔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었다.  마조리는 아그네스 수녀를 불렀다.  그녀가 즉
각 달려왔다.   
"이제 겨우 시작이에요.  서두르지 말아요."  
그녀가 마조리를 안심시켰다.  
"한참 있다가 다음 고통이 찾아올 거예요.  한 6시간쯤 지나야 본격적인 출산이에요.  격통 
주기를 잘 헤아리고 밖으로 나오지 말아요."
마조리는 마루 청소를 끝내고 꽃병의 물을 갈았다.  오늘 타자수업을 거르겠네.  
"이런 고통을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녀가 중얼거렸다.  
"견딜 수 있을 테니 아무 걱정 말아요.  나중에는 다 잊고 다시 임신하게 될걸요."  
아그네스 수녀는 야박하게 말하고 방에서 나갔다.  제 자식을 낳아보지 않은 수녀님이 알면 
얼마나 알겠어?  마조리는 공포에 질린 채로 침대에 앉아 기다렸다.  고통이 돌아왔다.  이
번에는 마음의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픔은 그녀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세상에 오
직 이 고통만이 존재했다.  고해의 바다 속에 퐁당 빠진 것 같았다.   시간이 정지했다.  그
녀는 비명을 지르고 침대 머리에 매달렸다.  이제 지나갔다.  그녀에게는 도와줄 사람이 필
요했다.  그녀는 몽롱하고 머리가 붕 뜬 기분으로 복도로 나갔다.  발자국 소리가 달려왔다.  
아그네스 수녀였다.  
"마조리, 긴장을 풀고 누워요.  출산을 하려면 아직 멀었어요.   그동안 공부했던 내용을 기
억해요. 아픔을 받아들여요.  긴장하면 아이에게 나빠요."  
"하지만 ..... 이렇게 아프다고..... 말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우리가 출산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일 거예요.  이 점을 명심해요, 마조리.  고통은 지
나가요.  자연은 격통 사이에 당신이 회복할  시간을 줬어요.  당신은 모든 것을  견뎌내고, 
최고 의료진의 도움을 받게 될 거예요.  하지만 지금 병원에 가기에는 너무 일러요.  진정하
도록 노력해 봐요."  
"아, 하느님..... 하느님..... 또 와요."  
그녀는 수녀의 손을 꼭 잡고 몸부림치며 터지는 비명을 참으려 했지만 결국 아픔에 굴복했
다.  
"내 아기도 아플까요?"  
"산모가 긴장하면, 아이가 나오기에 더 힘들어진다고 들었어요."  
    
  5시간 후 그녀는 병원 침대에 누워 아픈 와중에 초 단위로 짧아진 격통 주기를 헤아렸다.  
아그네스 수녀가 그녀의 손을 잡고 병원까지 동반하여 그녀에게 정신적인 원조를 했다.  더
이상 고통스러울 수 없었다.  마조리는  관장과 면도와 몸 여기저기를 쿡쿡  찔러대는 진찰 
등 모욕적인 대우를 받았지만 이 아픔과 비견될 만한 것은 없었다.  이제 그녀는 고통의 노
예였다.  그져 순종하고 참고 싸우지 않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육체는 더 이상 그녀의 
것이 아니라 고통스런 고문을 당하는 조개가 되었다.  그 안에 담긴 꼬마 로브는 시간을 끌
며 꾸물거렸다.  한 간호사가 오더니 그녀의 다리 사이를 들여다보았다.  
"검은 머리예요."  
간호사는 지극히 객관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산도가 꽤 넓어져서 아기의 머리가 한 1인치  가량 보여요.  계속 하세요.  순산하실 거예
요."  
"순산?"  
그녀가 아그네스 수녀에게 중얼거렸다.  
"난 금방 죽게 될 거예요.  지금이 20세기 맞아요? 무슨 수를 쓸 수 없는 거예요?"  
그녀는 너무 지친 나머지 그냥 누워 신음이나 하는 게 고작이었다.  한참 후에 그 간호사가 
그녀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됐어요.  아기가 나오고 있어요.  일어날 수 있겠어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마조리는 간호사와 아그네스 수녀의 부축을 받고 출산실로 들어갔다.  
그녀가 높은 출산 테이블에 올라갔을 무렵,  꼬마 로브는 세상 빛을 보기 일보  직전이었다.  
"밀어요."  
의사가 소리를 질렀다.  
"잠깐 기다려요.  탯줄이 아기의 목에 감겼어요.  꾹 참아요."  
"못해요..... 못해요....."  
"힘을 빼지 말아요!"  
근육에 힘을 주고 아이를 밖으로 밀어내고픈 충동을 참는데 초인적인 의지가 요구되었다.  
"됐어요.  탯줄을 절단했습니다.  이제 있는 힘껏 밀어요. 숨을 크게 쉬고! 당신은 할 수 있
어요.  밀어요..... 조금더..... 어서요.  꼭 해야만 해요.  더 세게....."  
하느님, 저에게 힘을 주시고 아기를 살려 주세요!   간호원들에게 고정된 그녀는 온몸의 근
육을 불러 모아 마지막으로  영웅적인 노력을 기울였고.....  헐떡거리고..... 또 헐떡거리고..... 
신음했다.  그 때 아이가 다리 사이로 주르르 빠져나왔다.  
'잘 했습니다."  
의사가 말했다.  
"이제 조금만 더 미세요.  아직 끝난게 아닙니다.  후산이 남았어요."  
그녀는 너무 지쳤다.  완전히 탈진했다.  의사의  지시에 따르려고 노력했지만 깊은 무기력 
상태에 빠졌다.  
"아기는 건강합니다.  완벽하게 정상이에요.  건강하고 예쁜 아기예요."  
그녀의 귀에 의사의 말이 들어왔다.  
"사내예요, 계집애예요?"  
그녀는 궁금한 듯 중얼거렸다.  점점 깊은 호수 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건 말해 줄 수 없어요, 마조리.  당신을 위해서 이러는 겁니다."  
"내 아기를 보여주세요. 제발 제발요."  
"미안하지만 안돼요.  지금 아기를 보면 나중에 마음만 괴로울겁니다."  
"내 자식이에요.  아기를 나에게 주세요.  부탁이에요.  그 애를 꼭 안아 봐야만 해요."  
그녀는 일어나 앉으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이미 간호사가 아기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마
조리는 처량하게 다시 누웠다.  후산은 더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아기와 헤어진 슬픔에 압
도당한 마조리는 거의 해탈한 상태에 이르렀다.  나중에 병실의 구석  침대에 혼자 있게 되
자, 마조리는 오열을 터뜨렸다.  
      
  책상을 가운데 두고 원장 수녀와 마주보고 앉은 마조리는 애써 평온을 유지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손에서 땀이 나고 위장이 요동쳤다.  그녀는  문화인답게 행도하려 했지만 
젖이 불어 팔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아픈데다 너무 슬펐다.  비타으로 머리가 무거웠기 때
문에 고개를 들고 있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평상복으로 갈아입었군요. 잘 됐어요."  
원장 수녀가 말했다.  마조리는 아기 이야기가 나오기를 바라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너무 힘든 경험이 아니었기를 바래요.  당시은 모든 사람에게 기쁨이었어요.  그리고 당신
이 기부한 5천 파운드 수표를 돌려줘야 할 것 같아요.  그 돈은 당신에게 필요할 거예요."  
성스러운 원장 수녀는 사랑하는 것과 몸을 파는 것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결코 이해하지 못
하리라.  
"받고 싶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마조리가 대답했다.  
"알겠어요. 그럼 고맙게 받겠어요.  자 이 안에 당신의 타자와 속기 자격증이 있어요.  그리
고 당신이 사무를 과외로 도와준 보답으로 추천서를 썼어요.  직장을  찾는데 도움이 될 거
예요.  숙식비를 제외한 세탁소 보수도 계산해 뒀어요."  
그녀는 봉투를 열었다.  10파운드 주급에서 공제액을 제한 현금 1백 파운드가 들어 있었다.
"정말 친절하시네요."  
그녀가 중얼거렸다.  현명하고 늙은 한 쌍의 눈이 걱정스러운 듯 그녀를 주시했다.  
"아이를 빨리 잊도록 노력해 보세요.   이미 놓친 것에 마음 아파하지  말고 열심히 일해서 
성공적인 삶을 이끄세요.  당신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있어요.  신의 은총으로 좋은 남자와 
결혼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게 될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당신에게 아이와  연결될 만한 
기회를 줄 수 없어요.  미안해요."  
아이와 연결될 만한 기회?   9달이나 한 육체를  공유했던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란 말야?  
하지만 그녀의 등을 떠밀어 이 곳에 보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타인을 돕는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그때 비서가 입양 동의서를 가져와서 그녀의 앞에 내밀었다.  펜도 손에 쥐
어졌다.  한참 후에 그녀는 팬을 내려놓았다.  
"못 해요..... 제가 어리석어 보이시겠지만  입양을 동의할 수 없어요..... 아이를  보기 전까지
는."  
"하지만 내가 이미 그 이유를 설명했잖아요.  당신을 위해서 이러는 거예요."  
원장 수녀가 다정하게 말했다.  
"글쎄..... 모르겠어요..... 전 당연한 일을 하고 싶어요."  
"이 편이 당신과 아기의 미래를 위해 좋아요.  내 말을 믿어요. 당신 아기는 풍족하고  카톨
릭적인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한 전문직 부부의 가정으로 입양될 거예요.  그분들은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 왔어요."  
맹렬한 질투가 심술궂은 회오리바람처럼 그녀를 갈가리 찢어놓았다.  그녀는 숨을 헐떡거렸
다.  내 아이에게 가장 좋은 엄마는 바로 나야.   마조리가 펜을 집고 동의서의 첫 장을 죽 
훑어보았다.  계집애로구나!
"제가 딸을 낳았군요."  
이 수녀원의 육아실에 나와 로버트의 분신이 누워 있어.   귀여운 내 딸이!  그녀는 아찔한 
기분으로 펜을 내려놓았고 서류를 밀었다.  
"동의하지 않겠어요.  저는 아기를 원합니다.  죄송해요.  제가 실수한 거예요.  아기를 포기
할 수 없어요.  그 아이에게는 제가 필요해요.  난 그애를 봐야만 해요.  제발..... 제발요......
저는 그 아이를 사랑해요. 도와주세요.  
"하지만 당신은 너무 젊고 직업도 없잖아요.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아, 마조리. 방
에 가서 기도하세요.  점심을 올려보내고 사회 복지원에게 도움을 요청하겠어요.  준 톰턴은 
아주 좋은 여성이에요.  그리고 신부님과도 이야기해 보세요."  
원장 수녀는 걱정스러운 듯 말을 맺었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지 주님이 함께 하시기를."  
    
  4시간 후에 마조리와 신부와 준 톰턴은 휴전 상태에  도달했다.  마조리가 직장과 적당한 
집을 마련할 때까지 아기는 수녀원의 탁아소에 남게 되었다.  
"당신이 아이 곁을 떠나는 순간부터 그 아이는 법원의 감독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세
요."  
준이 설명했다.  
"나중에 당신이 장시간 노동을 하다가 적발되면 복지 기관이 당신과 아기를  떼어놓을 거예
요.  더 심각한 사태가 생길 수도 있어요, 마조리."  
"난 내 딸을 포기할 수 없어요."  
마조리가 되풀이했다.  
"아기를 보러 갑시다.  우리가 왜 강경하게 입양을 권유하는지 궁금하지요?   이제 그 이유
를 보여줄께요."  
가까운 마을에 위치한 한 채의 집에 15명의 소녀들이 '여사감'의 보호하에 살고 있었다.  그
중 16살이나 먹은 소녀도 한 명 있었다.  짙은 금발을 쫑쫑 땋아 늘어뜨린 머리채와 주근깨 
가득한 콧잔등이 예쁘장한 그녀는 무려 4살 때부터 이곳에서 엄마가 집으로 데려가길 기다
리고 있었다.  11살 짜리 가무 잡잡한 피부의 한 소녀는 세살 때 보호 시설에 들어왔고,  매
주 엄마의 방문을 기다렸지만 대개 실망만 맛보았다.  가슴 절절한  사연들이 하나 둘이 아
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친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어요."  
준이 마조리의 마음을 떠보았다.  
"그리고 대부분 실망하게 될 거예요.  가끔 여러 주일만에  친모가 자식을 찾아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1년에 한 두번 방문 하는게  고작이에요.  그런 주제에 약속들은 잘 하지요. 
주말이 되면 저 소녀들은 잔뜩 희망을 품고 대문 앞에 하염없이 앉아 있답니다.  아무리 주
의를 돌리려고 해도 소용없어요."  
"준 그만 비수를 들이대세요.  말뜻을 알아들었어요."  
"그럼, 갈까요?"  
준이 엄격하게 말했다.  드디어 탁아소에 도착하자, 마조리는 누가 가리키지 않아도 한눈에 
제 자식을 알아보았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아기를 안은 그녀의 마음속에서 뜨거운  사랑이 
솟구쳤다. 그녀는 '하느님!'하고 속삭였고 경외심에 사로잡혔다. 믿을수  없을 만큼 슬프면서
도행복했다. 자기도 모르게 그녀는 웃으면서 울고 있었다. 그녀의 딸은 어디 한군데  빠지지 
않고 완벽했고 연약한 동시에 아름다웠다. 로버트를 닮은 검은머리, 그녀를 닮은 입술, 푸른 
기 도는 검은 눈동자는 로버트처럼 갈색으로 변하리라. 고사리  같은 손가락이 어쩌면 이렇
게 길까!
"이 조그만 손톱 좀 보세요, 정말 아름다워요. 이렇게 사랑스런 아기는 처음 봤어요."  
눈물이 아기의 손으로 떨어졌다. 그녀는 아기를 안은 채 자리에 앉았다. 당장 아기를 데리고 
멀리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어디로? 그녀는 아기의  이마에 키스하고 탐욕스럽게 아기의 
모습을 마음에 새겨 뒀다. 한동안 못 보게 되겠지. 살살 아기를 어루면서 그녀는 미래를  꿈
꾸었다.
"그만 가야 해요, 마조리."  
준이 그녀에게 말했다.
"수녀님들은 당신이 없는 동안 아기에게 세례를 주실 거예요. 생각해 둔 이름이 있어요?"  
"이름이요?"  
사내아이 이름은 수 백개도 넘었다.
"라나는 어떨까요? 예쁜 이름이잖아요?"  
"라나, 좋네요."  
마조리는 다정하게 딸을 침대에 내려놓았다.
"때때로 삶이란 말할 수 없이 잔인하군요."  
그때, 라나가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들은 소리는 딸의 울음이었다.
"다른 아이들을 기억해 두세요. 빨리 아이를 데려갈 수 없다면 입양시켜야 해요."
준은 마조리를 수녀원까지 데려다 주며 말했다. 마조리는 딸이 버림받은 채 울고 있을 걱정
에 밤잠을 설쳤다. 그녀는 일찍 일어나 런던행 첫차를 탔다. 이제 직장을 구해야 할  시간이
야. 덜커덩거리는 기차 소리가 준의 말처럼 메아리쳤다. '빨리  아이를 데려갈 수 없다면 입
양시켜야 해요......입양시켜야 해요......입양시켜야 해요'
"내가 황소처럼 열심히 일해서 널 빨리 데리러 올께. 그때까지 참고 있어. 다링."  
하지만 암담한 현실은 그녀의 젖이 퉁퉁 불어 있는데도 예쁜 딸아이는 분유를 먹어야 했다.
    
  마조리에게는 집과 직장과 탁아소가 차레대로 필요했다.  그녀가 전화한, 첫번째 직업 소
개소는 자식이 딸리지 않은 여성만을 직원으로 채용했다. 
"아이는 안됩니다. 이 업계에서 아이를 둔 여성을 원하는 고용주는 한명도 없어요."  
다른 곳에 연락했지만 똑같은 대답을 들었다.  그리고 또 다른 곳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직업 소개소마다 뛰어다녔지만 대답은 한결같았다. '아기사절' 날이 어두워지고 비마저 내리
기 시작했을 때, 그녀의 신발굽이 하숙집 '스위스 코티지'의 밖에서 부러졌다.  
"빌어먹을!"  
그녀는 1주일에 5파운드짜리 작은 방을 구했다.  여주인은 아이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
했지만 딱 부러지게 거절하진 않았다.  잠시 후에 그 이유가 밝혀졌다.   작고 어둡고 외풍
이 심한 형편없는 방이었다. 창문이라곤 좁고 그을린 발코니로 통한 프렌치 문이  전부였다.  
그녀는 비극적인 분노를 경험했다.  이 따위 방이 그렇게 비싸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가
스대 하나와 작은 히터가 고작인 곳에서 아기를 키울 수 있을까?  이건 범죄야.  하지만 그
녀는 그 방에 입주했다.  이미 날이  저문데다 신발까지 망가졌기 때문이었다.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방은 어둡고 습기 찼다.  그래서 마조리는 여주인에게 빌린  얇은 담요를 덮고 오
들오들 떨며 밤을 보냈다.  아침이 되자 그녀의 목이 컬컬했고 머리가 쪼개지듯 아팠다.  
    
  지하철이 고장으로 선로에 멈췄기 때문에 그녀는 두 시간이나 서서 생고문을 당했다.  10
시에 직업 소개소에 도착하자 명랑한  요크셔 아가씨가 그녀의 자격을  철처하게 확인했다.  
교장선생님의 졸업사 이후 '사무실 하녀'란 용어가 가슴 깊이 심어졌지만 찬밥 더운밥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귀한 목돈을 까먹지 말고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초보자를 받아 주는 곳
은 보험사 타자실 밖에 없었다.  보수는 주급 12파운드에  불과했지만 단 1주일만 근무해도 
'경험자' 딱지를 붙일 수 있다고 요크셔 아가씨가 지적했다.  그래, 12파운드로 라나와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 방에선 아기를 못 키워 반경을  더 넓혀서 집을 찾아봐야 
하겠지만 아직 산후 조리중이었기 때문에 여럭이 없었다.  그녀는  초콜릿으로 저녁을 때우
고 깊은 잠에 빠졌다.  
     
  지루해, 지루해, 지루해.  이게 나의 인생이란 말야?  절망감을 안은  채 그녀는 사무실을 
둘러 보았다.  황량한 형광등 불빛 아래 모든 것이 칙칙해 보였고 꼭  닫힌 창문 덕분에 먼
지가 밖으로 빠지지 않았다.  네 명의 창백한 타이피스트들은 이  무덤 속에서 늙고 시들어 
갔다.  애미 베이츠 양같은 경우는 35년째 여기에서 근무해 왔다.  오늘로 마조리의 보험회
사 근무가 3주째 접어들었다.  그녀는 자리에 앉아  타자기에 전원을 꼽았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아니면 인내를 배우게 될까?  다른 동료들은  임 이어폰을 꽂고 팔자 눈썹과 
강렬한 눈빛을 한 채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손가락이 자판 위를 쏜살같이달렸다 그들은 9
시부터 5시까지 로봇이었고, 자유시간에도 점점 로봇이 되어 가로 있을 거야. 마조리는 씁쓸
하게 생각했다. 앞으로 그녀는 어떻게 되어  갈까? 모든 창의력과기쁨이 곧 말라  버리겠지.  
그녀의 마음 한귀퉁이에는 항상 요람에서 울고 있는 가녀린 딸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울
음소리에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있을까? 라나는 배불리  먹고 있을까? 외로울까? 자기가 버
림받았다는것을 알고 있을까? 아,우리 아기.  난 열심이란다, 노력중이야.  휴식 시간에 마조
리는 두 명의 자식이 딸린 기혼동료에게 일과 양육을 병행하는 방법을 물어 보았다.  
"아이들이 병에 걸리는 날에는 모든 게 엉망진창이야. 전업 주부인 동생이나 엄마에게 아이
들의병간호를 부탁하는 수밖에.  평소에는 아이들을  탁아소에 막기지만, 그 속은 불결하고 
정원이 초과된지라 세심한 보살핌을 기대할 수없어."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난 아침 여덟시에 출근하려고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점심 시간에  미친듯이 쇼핑을 하고 
퇴근 후에 전철로 탁아소에 들렸다가 또 다시 전철과 버스에 30분간 시달려야 집에 도착해. 
저녁에 아이들 밥먹이고 목요시키고 재운 후에야 집안 일을 시작하는  거야.  난 계속 생각
하지, 내 인생이 영원히요모양 요꼴은 아닐 거라고말야. 마지  내 충고를 잘 들어둬. 자기를 
돌봐 줄 수 있는 남자와 결혼 해.  그렇지 안으면 자식을 갖지 말든가. 언젠가 국가에서 예
산을 들여 좋은 수준의 탁아소가 늘어나겠지만, 지금 당장은 가슴 답답한 실정이야."  
    
  다음 날 마조리는 두명의 세일즈맨이 제기한수수료 지불 요구서를  작성했다.  두건 모두 
월급에 대한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이 월급 액수를본 순간 동요를 감추
지 못했다. 그리고 11시에 사장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페티 씨와 면담을 하게 해 달라고 졸
랐다.  
"좋아요, 하지만 오늘이 당신 제삿날인 줄 알아요." 
비서가 말했다.  
"사장님이 잠깐 휴식을 취하시는 정오에 올라와요."
12시 정각에 그녀가 모습을 보였다.  사장은 좀 실망스러웠다. 회색 정장을 걸친 지루한 남
자로 실내 장식과 꼭 어울렸다.  약간 머리가 벗겨졌고 뿔테 안경으로 커버한 눈이 약간 사
팔이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당신이 여기에 온 행위는실수였소, 하디 양."  
그는 도버대학 출신 풍의 점잔빼는 어조로 말했다.  
"직원들 문제는 인사과장에게 맡기고 있지만, 당신이  여기 온이상 문제를 드러보기나 합시
다."   
"제가 보험 상품을 팔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페티 씨. 저는 매우  근면 성실
하고 유능하다고 자신합니다. 하지만 사장님께서는 저를 잘 모르실 테니까 이렇게 이력서를 
작성해 왔습니다.  보시다시피 제 성적은 에이급 이었고 수학도 잘 했으며....."  
그는 손짓으로 그녀의 장광설을 잘랐다.  
"당신이 당신과 내 시간을 낭비한  점이 유감이오, 하디양. 문제의 관건은  아이큐가 아니라 
신뢰감을 파는데 있소.  우리는 고객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팔고  있소. 즉, 고객들이 우리를 
믿게 만들어야 하오. 그 때문에 세일즈맨은 올바른 이미지를 가질 필요가 있는 거요.  얼굴
좀 반반한 아가씨가 나선다고 되는 일이 아니오, 알겠소?" 
"모르겠는데요."  
그녀는 약이 올라서 가늘어진 사장의 눈을 똑바로 주시했다.  
"여기 세일즈맨의 관심사는 오직 자기들 앞에 떨어지는 수수료뿐이에요. 제가 그걸 아는 이
유는, 그들의 요구서와 사장님의 답장을 제 손으로 작성했기 때문이에요, 페티 씨." 
사장은 화가 머리끝까지 오르자 그  고상한 억양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그녀는 그의 
변화에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이봐, 하디 양. 아가씨가 열심히 일하고 야심이 큰  건 알았어. 그러나 보험 판매는 어림도 
없어. 아가씨에게는 태도 이미지 억양이 전부 결여되었어.  그러니 착한 여자답게 어서 타자
실로 돌아가시지."  
아, 저 눈 사이를 한방 먹이면 속이 시원할 텐데.  
"가정 주부들은 어떨까요, 페티 씨? 저는 그들을 상대로 보험을 팔 수 있어요. 제 수준은 그
들과 동등하잖아요.  가가호호 다니며 방문 판매를 하겠어요.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딱 한번만 기회를 주세요. 첫 달에는 무보수로 일하겠어요.  그저 일을 가르
쳐만 주세요."  
"내 말을 잘 듣게, 하디 양."  
그는 시간을 확인 했다.  
"대다수의 아낙네들은 지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남편에게 의존해. 보험 같은 문제는 남편이나 
아버지, 혹은 남자 형제들에게 떠넘긴다네.  그런데 문제의 남자들은  여자를 믿지 않아. 아
가씨는 양성 모두를 잘못 봤네.  난 세일즈의 법칙을 파악한 몸인데 아가씨는 그렀어."  
그녀의 분노가 보글보글 끓어올랐다.  이 자기 만족에  겨운 독선적인 남자 같으니! 그녀는 
뒤집어엎고 싶었지만 꾹 참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 회사에 판매 여사원은 한  명도 없지요? 이것은 명백한 성차별입니다.  여성 인력이 전 
노동력의 40퍼센트에 육박하고 있는 이 마당에  여성들도 얼마든지 보험 가입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맞아, 하디 양. 그리고 난 내 고용인들을 선택할 수 있지.  아가씨는 모가지야!"  
결과적으로 마조리에게 행운의 날이었다.  직업 소개소에서 해고 석달 전 사전 경고 조항을 
들어 석달치 봉급을 지불하지 않으면 고소를 걸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덕에 페티 씨가 돈을 
내놓았다.  마조리는 방을 내놓고 총 244파운드를 가지고 도버로 돌아갔다. 
    
  7월의 마지막 일요일이었다.  하늘은 들채꽃처럼 파아랬고 바다는 그보다 더 짙었다.  미
풍에 살랑거리는 꽃송이들은 윙윙거리는 벌의 침입에 다소곳이 복종했다.   마조리 역시 로
버트와 가정, 라나와 안정감이 그리워 비탄에 굴복했다.  그녀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면접
을 보았다.  그 외에는 절벽이나 들판을 쏘다니며 자연과의  일체를 향유하고 타자실에서의 
탈출을 자축하거나 미래를 걱정했다.  그때 대형 사고가 터졌다.  아빠의 옛 하역 회사가 부
도가 나는 바람에 연금도 날아갔다.  커피타임에 엄마가 그 나쁜 소식을 전했다.  마침 아빠
는 낮잠을 취하고 있었다.  
"마지, 아빠는 일자리를 구해야 하지만 엄두가 나지  않으신가봐. 회갑이 다 되셨으니, 마땅
한 자리도 많지 않을 테고. 그래서 우리는 한동안 네 벌이에 의존해야 할 형편이야. 제발 알
프의 제의를 받아들이렴. 그는 항상 널 원해 왔어."  
"최소 생활비가 얼마나 들어요?" 
마조리는 절호의 기회가 왔음을 알아차렸다.  
"네 아빠에게 받던 생활비는 주당 16파운드였어.  워낙 빠듯해서 아빠의 맥주 값을 대지 못
하겠지만, 아빠는 보트 모델을 만드는 솜씨로 용돈을 벌 수 있을 거야."  
"엄마, 난 그정도는 벌 수 있어요.  지금 당장 1주일  가계비를 현금으로 드릴께요.  한동안 
먹고 살만한 돈은 충분해요. 대신 나에게도 엄마의 도움이 필요해요. 즉 엄마가 내 등을  긁
어 주면 나도 엄마 등을 긁어드릴께요 어떠세요?"  
마조리가 로다 맥라렌의 말까지 포함한 모든 사연을 다 털어  놓을 즈음, 엄마는 앞으로 놓
인 시련에 눈물을 흘렸다.  
    
  아빠가 다시 법령을 선포했다. 비록  마조리는 아빠가 무슨 권리로  주도권을 장악했는지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엄마와 내가 네 딸을 입양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빌어먹을 사회 복지원  등쌀에  배겨날 
수 없을 거야.  그들은 아기를 데려가려고 별 트집을 다 잡을 거야. 게다가 네 평판도 생각
해야지.  언젠가 너도 결혼할 날이 올텐데. 네  엄마와 나는 먼 친척을 맡았다고 둘러댈 거
야. 그러니 너는 엄마를 모시고 웨일즈에 갓서 아기를  데려오너라. 빠르면 빠를 수록 좋아. 
아기를 이렇게 오랫동안 내버려두면 어떻게 하니?"  
"그럼요, 그 불쌍한 것을 당장 데려와야만 해요."  
엄마가 장단을 맞췄다.  
"급살을 맞아 죽을 맥라렌 놈들!"  
아빠가 말했다.  
"그 놈들이 네 딸에게 손만 댔다 봐라,  내 본떼를 보여줄 테다.  그런 일을 미연에  막고자 
입양을 하자는 계야.  그 놈들은 반드시 응보를 받게 될 거다.  내 말을 새겨들어."  
마조리는 행복하게 가방을 꾸렸다.
    
    제2부 시련
  마조리는 햇살에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깼다.  미친 방망이처럼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
여안고 침대에서 일어나 요람을 들여다보고, 소중한 딸이 아무 탈없이 잘 자고 있음을 재빨
리 확인했다.  새까만 머리카락과 긴 속눈썹과 발그레한 두 뺨. 너무 사랑스러워서 딸의 모
습에 마조리의 몸에서 힘이 솟았다.  잠옷 바람으로 부엌에 내려간 그녀는 아기의 인기척에 
귀를 세우고 분유를 타고 우유병을 데웠다.  그리고 침실로 돌아와  커튼을 제치고 옹녘 하
늘을 살폈다.  보라색 기운이 감도는 연한 굴빛의 하늘이었다.  
  "오늘은 화창한 날이 되겠구나, 우리 아기야. 붉은 밤하늘은 양치기의 기쁨, 붉은 아침 하
늘은 양치기의 경고라네."  
  그녀는 낮게 흥얼거렸다.  어린 시절을 풍요하게 채워 준 흘러간  옛 가락과 민간 지식을 
딸에게 가르치는 일은 무한한 즐거움이었다.  갓 석달이 된 라나는  엄마의 말을 알아 듣는 
것처럼 보였다.  마조리가 요람에서 딸을 들어올리자, 라나가 제 아비를 꼭 닮은 갈색 눈을 
뜨고 처음으로 방긋 웃었다.  어머  세상에! 믿음과 사랑과 일체감이 모두  그 미소에 담겨 
있었다.  
  "라나, 네가 날 알아봤구나..... 아! 요 이쁜 것!"  
  커다란 혹 덩어리가 목에 걸렸고 콧날이 시큰거렸다.  그녀는 라나를 포대기에 싸고 젖꼭
지를 물려 부엌으로 내려갔다.  엄마가 커피를 만들고 있었다.  마조리는 식탁 의자에 앉으
며 말했다.  
  "진짜 사람을 알아보고 짓는 미소였어요. 얘는 나를 사랑해요, 엄마. 이거 보세요." 
그녀가 딸의 통통한 턱 밑을 간지럽히자 아기는 까르르르 웃으며 손을 허공에 뻗고 뭔가 집
는 시늉을 했다.  리즈는 딸에게 커피를 따르며 담담하게 말했다.  
  "3개월은 그맘때야."  
  그녀는 손녀에 대한 강한 사랑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딸이 아기를 어르는 모습을 
지켜보던 리즈는 놀라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마지가 일자리를 구하러 집을 비운 동
안 라나가 지난주에 할머니에게 웃어 보였다는 말을 해봐야 아무 소용도 없어. 딸이 행복하
면 그만이지.  하지만 앞에 놓인 험난한 역경에 눈물이 절로 쏟아졌다.  그녀는 부정적인 생
각을 떨쳐 버리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아기는 젊은이들에게 너무 벅찬 존재야.  내 나이쯤 
되면 아기가 다음에 뭘 한다는 것을 훤히 알게 되지. 그리고 마지가 무슨 수로 이 어린것을 
키우면서 우리들까지 부양할 수 있겠어?  그건 옳지않아. 어쩌면 나도 일을 구해야 할 거야.  
그럴 필요가 있어. 하지만 최소한 라나를 좀더 키워놓는 일이 급선무야.  그리고 아빠는 누
가 돌봐 드리지?  요즘 그는 술집은 고사하고 집밖에 나가지도 않는데.   아빤는 마치 며칠 
전에 전쟁이 일어나서 생명이 경각에  달린 것처럼 굴어.  참 이상도  하지! 도화선에 불이 
당겨진 폭탄같다고나 할까?  아니면 더 이상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망가져버린 비만 어깨에 
너무 무거운 짐이 얹혀졌어. 저 애가 행복해 하는 모습이 보기 좋네. 리즈는 이 집에서 가장 
따뜻한 부엌에서 딸이 라나를 목욕시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엄마, 도와주세요! 난 늦었어요. 옷을 입어야겠어요."  
  나중에 마조리가 외쳤다.  
  "라나가 쉽게 잠들지 않네요. 엄마, 좀 봐주세요."   
  마조리가 위층으로 올라간 후, 리즈는 요람을 들여다 보았다.  아무 이상 없었다.  아빠가 
대들보에 줄을 연결하여 흔들 요람을 만들었기 때문에 리즈는 부엌에서 일하면서도  아기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고양이가 접근하지 못한다는 이점도 있었다. 티비는 흔들거리는 것을 
싫어했다.  항상 유모차와 아기  침대에 기어드는 녀석이 흔들요람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대산 그 노랑색 눈을 아기에게 고정  한 채 장식장 꼭대기에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지가 
서둘러 내려왔다.  
  "아주 예뻐 보이는구나. 하지만 뭘 좀 먹어야지."   
  "안돼요! 너무 신경이 날카로워요.  엄마, 행운을 빌어 주세요."  리즈는 딸이 마지막으로 
머리를 매만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보험회사  타자실에서 근무할 때 구입했던  스위스제 
레이스 블라우스와 감청색 스커트가 딸에게 잘 어울렸다.  항상 우리의 곁에 있으면 좋으련
만.  마조리는 매일 기운차게 나갔다가 힘없이 집에 돌아왔다.  저애에게는 좋은 남편이 필
요해.  마조리와 라나에게 행복한 가정을 줄 수  있는 남자 말이야.  리즈가 잠깐 세탁기에 
시선을 준 틈에 딸은 나가고 없었다.  
     
  완벽한 날이야. 마조리는 버스 정류장에 서서 생각했다. 8시 30분에 지방 광고지를 출판하
는 작은 인쇄소 주인과 면접 약속이 되어 있었다.  시시한 겉보기와 달리 그 광고지에는 켄
트의 남부를 포괄하는 수 백가지의 서비스와 매매와 구인 광고가 빽빽하게 실려 있었다. 이
름도 거창한 '켄티쉬 홈 뉴스'는 격주 간행물이었고, 그 사장 제임스씨는 세일즈맨을 구한다
는 광고를 낸 바 있었다.  그녀가 잘 말해서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인쇄소는 항만 뒤쪽 
창고에 위치했지만 버스 정류장과 가까워서  찾기 쉬었다. 지저분한 계단을  올라가서 종이 
간판이 붙은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녀는 잠깐 망설였다.  
  "제임스 씨."  
  "안으로 들어와요."  
  그녀는 어두운 사무실 한구석  책상에 구부정하니 앉은 인물을  포착했다.  너무 추레해! 
충격과 실망감이 교차했다.  그는 최소한 이틀  동안 면도를 하지 않았다. 덥수룩한 갈색머
리, 실핏줄이 얽힌 피부, 충혈되고 흐리멍텅한 저 눈빛 좀 봐! 곤드레만드레 취했구나. 그녀
가 발을 내딛자 먼지가 풀풀날렸다.  그녀는 치마에 의자의 때가 묻지 않도록 살짝 앉아 다
리를 꼬았다.  
  "저는 일을 구하러 왔습니다."  
  "하지만 남자 사원을 구한다고 광고를 냈는데."  
  그는 약간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그럼 그 광고가 사람들 눈에 띄지 않기를 바라세요? 정부는 그런 일을 금지하는 안을 발
표했고, 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어요. 당신은 시대에 뒤지셨군요. 제임스 씨.  혹시 '성차별'이
란 말을 들어나 보셨어요? 스스로 부끄러운 줄 아세요."  
  그의 눈에 지펴졌지만 그는 짐짓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위험한 남자로구나. 이런 결론을 
내린 타당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본능이랄까?  갑자기 그가 사과조의 변명을 늘어놨다.    
  "이 일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발로 뛰어다니는 일이오."  
  "저는 힘든 일에 이력이 붙었어요."  
  그때 전화가 왔고, 제임스 씨는 바삐 광고 문안을 받아 적었다.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도 
않네.  마침내 그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세일즈맨은 기상 조건에 상관없이 하루에 8에서 10시간 씩 광고 수주를 올려야 해요. 보
수는 주급 10파운드에 건당 20퍼센트의 수수료를 더한 금액이오.  수수료는 네 번으로 나눠 
지불하겠소."  
  전화벨이 다시 울렸고 그녀는 속에서 안달이 났다.  제임스 씨가  수화기에 대고 열 번째
로 '어니라고 불러요'라고 말했을 때 그녀는 여전히 거기에 앉아 계약서 작성하는 법과 광고 
게재 가격을 귀동냥으로 배웠다.  광고면 인치 당  평균 가격은 75펜스, 한 면의 총 가격은 
36파운드였다.  최근호가 48면을 발행했으니까, 한 부당 1만 7천 파운드 어치 광고가 실리는 
셈이다.  그녀가 절반만 따낸다 해도 한 달에 수수료는  170파운드를 두번씩이나 받게 되잖
아!  전화로 나머지 주문  절반도 받지 못 하는게  안타까워. 그녀는 탐욕스럽게  생각했다.  
그가 수화기는 내려놓고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었다.  
  "좋아 당신을 채용하겠소."  
  이럴 수가! 그가 통화하는 중간 중간에 그녀의 이름과 주소를 겨우 말했을 뿐인데.  그는  
  그녀의 놀람을 알아차렸다.  
  "그렇고, 이런 식이오. 내가 2파운드의 지출 경비를 준비해 뒀으니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
쳐 봐요. 이것이 당신의 능력을 알아보는 유일한 방법이오.  그리고 날 속일 생각은 하지 말
아요. 근무 시간은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요. 매일 아침 8시 정각에 사무실에 출근
해서 경과보고를 하고, 1주일에 한 번씩 실적 보고서를 제출하시오."  
  "언제부터 일을 시작할까요? "  
  "지금 보다 더 좋은 때가 또 있으려고?"  
  "감사합니다.  당장 시작하겠어요."  
  오늘은 틀림없는 행운의 날이었다.  첫 수수료 수표를 보고 감탄하실 아빠의 표정이 눈앞
에 어른거렸다.  
  "아빠가 얼마나 흐뭇해하실까."  
  그녀의 도전적인 태도 뒤에는 아빠의  인정을 갈구하는 깊은 열망이 숨겨져  있었다.  난 
자신을 증명해 보일 거야.  아빠는 날 의심한 게 실수 였음을 깨닫게 되실 거야.  
     
  마조리는 계약서와 요금표를 서둘러 챙겼다.  
  "내 운이 트일 때가 된겨야."  
  그녀는 마치 공중에 두둥실 떠가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거리로 나섰다.   도건 씨가  운영
하는 동네 약국이 첫 고객으로 안성마춤으로 보였다. 그녀가  샴푸나 엄마의 두통약을 사러 
들를 때마다 그는 항상 친절하게 반겨 줬다.  
  "잘 지냈어요, 마조리? 뭘 드릴까요?"  
  그가 말했다.  
  "난 오늘 물건을 사러온 게 아니라 팔러 왔어요."  
  그녀는 함박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순간  도건 씨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배가 
아픈가? 그녀는 의아해 하며 '홈 뉴스'지를 내밀었다.  
  "당신은 적은 돈으로 3만 5천 명의 가정에 약국을 선전할 수 있어요......" 
  그녀가 판매 교육을 실습하려는 찰라, 한 손님이 징징 우는 아이를 데리고 약국에 들어왔
다.  한마디 말도 없이 마조리에게 고개를 싹 돌린 도건 씨는 다시  미소와 동정이 담긴 표
정을 되찾았다.  그녀는 경악했다.  그는 손님과 세일즈맨을 대하는 두  얼굴의 남자야.  그
가 다섯 통의 전화에 응대하고 네 명이 넘는 손님을 상대할 때까지 그녀는 기다렸다.  마침
내 소강상태가 되었고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균열이 갔다.   본능적으로 마조리가 침묵을 지
키자, 그가 말을 걸었다.   
  "아직 거기에 있었어요, 마조리? 난 광고따윈 필요치 않아요.  감당할 능력이 없다구요."  
  "하지만....."  
  또 다른 손님이 들어오는 바람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두  손을 든 그녀는 분해서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다섯 군데의 상점을 돌아본 다음에야  그녀는  이 동네에서 도
건씨만 두 얼굴의 상인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제 친구는 다 사라지고 낯선 타인만 남았다! 
5분 후에 또 거절을 당한 그녀의 몸이 떨렸다.  다른 동네를 시도해 봐야겠어.   
    
  3시 30분이었다.  마조리는 하루종일 굶었고 현기증마저 났다. 
  "이런 추세로는 먹고살기 힘들겠어."  
그녀는 중얼거렸다.  아직 한 건의 수주도 받지 못했다. 그녀는 중소 기업촌이 조성되고 있
는 스나게이트 스트리트로 내려갔다.  '죠셉 시걸 경영 상담소'라.  그녀는 한 사무실의 명판
을 읽었다.  그 회사명 아래 '죠의 포장 디자인, 무한 투자 주식회사, 스포츠용품 염가상, 도
매가 판매'라는 상호가 꼬리를 물었다.  
  "보다 보다 이런 회사는 처음이네!"  
  진열실에는 보트 낚시 스쿠버 다이빙 장비가 즐비했다.  한번 시도나 해보자. 그녀는 용기
를 불러 모아 안으로 들어갔다.  우유빛 피부, 푸른 눈동자,  오똑한 코의 육감적인 금발 미
녀가 마조리를 얕잡아 보았다.  
  "사장님은 너무 바쁘셔서 당신을 만날 수 없어요!"  
  "나 역시 바쁜 사람이지만 시간을 쪼개어 좋은 소식을 전하러 왔어요.  당신 상관이 들으
시면 아주 좋아하실 거예요."  
  그녀가 톡 쏘아 붙였다.  
  "그렇다면 들어와요."  
  안쪽 사무실에서 큰 소리가 들려 왔다.  그곳에서 한 남자가 책상에 고개를 박고 있었다.   
턱이며 긴 목의 윤곽은 청년이  분명했지만 그 검은 눈동자는 노인의  것이었다. 너무 많은 
고통을 보아 버린 듯한 그런 눈이었다.  그는 키가 크고 가무잡잡했고, 태양에 바랜 흑발이 
어깨에 닿았다.  그가 미소를 짓는 순간 영혼에 불이 들어온  것처럼 얼굴이 밝아졌고 눈에 
관용의 빛이 흘렀다.  콧날에 한 두번 부러진 흔적이 있는데도 그는 아름다웠다.  민감하고 
친절해 보이지만 한없이 잔인해질 수도 있는 그런 남자였다.  그녀는 사무실의 반투명 유리
문을 힐끔 보았다. 거기에 '영업 부쟝 죠셉 시걸' 뒤를  이어 긴 직함이 검정색으로 적혀 있
었다. 
  "좋소 포문을 열어 봐요."  
  그는 런던 사투리와 외국어가 반반씩 섞인 묘한 억양으로 천둥치듯 으르렁거렸지만  여전
히 미소를 지으며 상대방의 기를 북돋았다.  
  "죠셉 시걸 씨를 뵙고 싶은데요."  
  "당신 소원이 이루어졌소.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이 바로 장본인이오."  
  "어머!" 
  이렇게 젊은 나이에 무슨 수로 영업부장이  되었을까?  그녀는 의자에 앉아 약간 파리한 
미소를 지었다. 의기 소침한 티가 나지  않으면 좋으련만. 그녀는 판매 권유의 말을  암송했
다.  그때 일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뒤틀렸다.  온기 가득했던 눈매가 싸늘하게 얼어 붙어 
갔기 때문이다. 그의 화난 표정은 험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왜 저런 반응을 보일
까? 그녀는 허둥거렸다.
 곧 온몸에서 식은땀이 났다. 공교롭게도 오후 내내 위태로웠던, 하나로 묶은 머리가 주르르 
흘러 내렸다. 그녀는 한 손으로 머리 모양을 바로 잡으려  했지만 핀의 잠금 장치가 열리지 
않았다. 
 제기랄! 손으로 머리채를 잡고 무슨 말을 해 ? 마지못해 손을  내리자 머리가 한쪽으로 축 
기울었다. 암송이 거의 끝났지만 그 노력의 잔인한 결과가 눈에 보였다. 그는 그녀가 팔려는 
게 뭔지나 알았을까? 그녀는 구사일생의 심정으로 말을 끝맺고 숨을 가슴 깊이 들이마셨다.
  "고맙지만 오늘은 사양하겠소, 아가씨."
  그는 명랑하게 말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무실 문을 열었다. 되도록 빨리 그
녀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 맙소사! 치 떨리게 모욕적인 몇 초후, 그녀는 터벅
터벅 거리를 걸었다.
  "그는 계약을 하려고 했어. 난 알아. 그런데 내가 일을 망쳐 버린 거야. 차라리 입을 다물
었어야 했는데. 내가 방정맞은 입을 놀려서 일을 망쳤어. 하지만 어떡해?"  
  그녀는 거래를 망친 장본인이 자신이었음을  확신했다. 실패감으로 미칠 것  같았고 너무 
창피해서 집에 갈 수 조차 없었다. 
     
  자책감에 빠진 그녀는 어느  까페에 들어갔다. 안전한  여자 화장실의 거울을  보는 순간 
'아'하는 한숨과 함께 웃음이 터져나왔다. 포니테일 스타일을  고정한 머리핀이 줄줄 흘러내
렸고 묶은 머리는 귓가에서 흔들렸다. 그녀는 찬물로 얼굴을 씻고 머리를 깔끔하게 빗은 다
음 카페 실내로 돌아왔다.
 난 포기했어. 그녀는 의자에 축 늘어졌다. 속이 메스꺼웠다. 이만하면 됐어! 망할 녀석에게 
퇴짜나 맞을려고 지난 몇 시간 동안 구두 굽이 닳고 비에 흠뻑 젖고 추위에 덜덜 떨며  거
리를 헤맸다니. 흥, 긍정적인 면도 있어. 남자의 추악한 면을 알려거든 세일즈가 최고야.
 그녀는 커피와 샌드위치를 주문했고 맛에 상관없이 음식을 먹어치웠다.
 이제그녀에게 뭐가 남았을까? 타자실? 하지만 타이피스트  월급은 가족들의 입에 겨우 풀
칠이나 할 정도였다. 여자 한몸 추스르기도 어려운 액수로  하물며 세 가족들까지...... 그 전
망에 소름이 끼쳤다. 최소한 우리 예쁜 라나는 안돼. 그 아이는 다른 애들처럼 고이  자라야 
해.
  "라나, 넌 싸울 가치가 있는 아이야. 내가 더 열심히 노력할거야."
  그녀는 눈물을 참으며 속삭였다.  본능적으로 그녀는 자기 손으로 좀 전의 기회를 무너뜨
렸음을 알았다. 죠 시걸은 그녀의 편이었는데 스스로 그를 밀어냈다. 하지만 그녀는  철저한 
구제불능은 아니었다. 그의 생각을 눈치챘으니까. 생전 처음으로 그녀는 직관력의 가치를 깨
닫게 되었다.   바짝 긴장한 그녀는 잰 걸음으로 그의 사무실로 향한 계단을 올라갔다.
 다행스럽게도 풍만한 비서는 보이지 않았다. 마조리는 까치발로 영업부장실까지 가서 문을 
열어 제쳤다.  시걸이 고개를 들고 소리질렀다.
  "뭘 남기고 갔소?"
  "내 자신감이요!"
  그녀는 허락을 받지도 않고 의자에 앉았다.
  "처음부터 당신은 그딴 것을 갖고 있지도 않았소. 왜 돌아온 거요?"
  그가 고압적으로 쏘아붙였다. 
  "오늘은 내 근무 첫 날이예요. 당신 이전에 열  사람을 찾아갔었는데 다들 하나같이 나를 
퇴짜놓았어요. 난 처음부터 그들이 그러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당신은 내 첫 고객이 될 뻔했
는데 그만 내가  망쳐 버린  거예요. 내가  어느 부분에서  잘못한 거죠?  제발 말해  주세
요.......?"
  "그 점을 눈치챘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오. 당신에게 대성할 가망성이 있다는 뜻이거든. 난 
당신의 이름조차 모르오. 그게 당신의 첫 번째 실수였소."
  그녀가 입을 열자 그는 손을 흔들어 그녀의 말을 막았다. 
  " 이젠 너무 늦었소. 나 역시 같은 세일즈맨으로서 당신같은 사람들이 안타깝소. 세일즈는 
예술이요. 그리고 다른 예술처럼 많은 연구와  힘든 연습이 필요한 거요. 가령 어떤  사람이 
당신 사무실에 불쑥 들어와서 바이올린을 형편없이 연주한다면 어떻겠소? 이제 당신은 아까 
내가 겪은 괴로움을 알았을 거요. 세일즈에 대한 책을 한  권이라도 읽어봤소? 당신이 자신
의 일에 애착이 없다면 실패는 따 놓은 당상이요."
  "세일즈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요? 끔찍한 직업이예요."
  "예술의 한 형태라고 했잖소. 당신 생각이 정 그렇다면 그냥 포기해요."
  "그럴 수 없어요. 사람 목숨이 달렸다구요.  그런데 이 일에 좋아할 만한 부분이  뭐 있나
요? 그저 직업일 뿐인데."
  "당치도 않은 소리!"
  그가 벌떡 뛰어 일어나 책장을 살폈다.
  "왜 세일즈를 하고 싶은지 다시 말해보겠소?"
  "돈 때문이예요. 난 우리집의 가장이예요."
  "당신은 오늘 상대했던 남자들이 마음에 들었소?"
  "한명도 빠짐없이 악당들이었어요."
  "남자들의 게임에서 남자를 이기고 싶지 않소? 좀  상상해 봐요. 당신이 도전장을 던지고 
세치 혀를 놀려 승리하는 기쁨은,  검을 휘두르거나 좋은 차를 몰거나  권투 글러브를 끼는 
것보다 훨씬 만족스러울 거요. 노력에는 결실이 따르는 게 아니겠소? 하지만 펜싱처럼 당신
은 먼저 그 방법을 터득해야 하요."
  "네, 고맙군요. 나보고 서점에 가서 책이나 사라는 거예요?"
  이 사람, 미치광이 아냐?
  "이 책을 가져가요. 아주 유익한 내용이니 오늘밤에 다 읽어요. 그리고 내일  저녁에 여기
에 와서 다시 날 설득해봐요. 당신이  정정당당하게 승리하는 날 내가 광고 계약을  하겠소. 
하지만 그 전에는 안돼."
  "고마워요."
  그녀는 급히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며 시간을 확인했다. 일곱시가 넘었다. 어휴, 엄마가 걱
정하실 거야. 라나가 깨어 있기를.  그녀는 너무 피곤해서 버스 안에서 잠들었다. 나중에 집
으로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악몽같은 하루였어 ! 하지만 두고  봐라 ! 모든 가게  주인들의 도장을 받아내고야 말겠
어."
    
  세찬 동풍에 맞추어 가랑비가  흩날리는 오후 6시였다.  8월치고는  아주 고약한 날씨야.  
여름은 오지 않으려나 봐. 코트도 없이 달랑 감청색 정장만  걸친 마조리는 춥고 흠뻑 젖어 
있었다.  쑤신 발가락 과 피곤의 대가는 연속적인 거절이었다.  그녀는 극한점에 도달했지만 
패배를 자인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아직 죠가 남아 있어.  죠는 새로운 비서를 구했
는데 전임자와 똑같이 금발의 요염한 미녀였다.  어디서 이런 여자들을 구하는 걸까?  비서
는 그의 사무실을 가리키며 프랑스 억양의 영어로 말했다.  
  "들어가 보세요."  
  "그녀는 얼마나 버틸지 궁금한데요?" 
  마조리는 죠에게 일부러 들릴 만큼 크게 말하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는 커다란 검정색 
상자와 스크류 드라이버를 가지고 씨름하다가 그녀 쪽을 힐끔 돌아보았다.
  "그녀가 날 귀찮게 하지 않는 한 난 임시 직원만 둬요. 그 편이 안전하거든!"  
  그는 험악한 표정으로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척 보기만 해도 당신이 실패했다는 걸 알겠군. 여기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요. 이번에는  
  오늘 만났던 모든 사람들에게 계약을 따냈다는 분위기를 풍기면서 말이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그녀는 의자에 주저앉아 다리를 꼬며 물었다. 그리고 그가  일손을 놀리며 투덜거리는 모
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내가 로버트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죠, 당신에게 빠졌을 거예요.  
  "난 모르겠소. 하지만 당신이 한건도 올리지 못했다는  것을 내가 어떻게 알았겠소? 얼른 
나가요. 그리고 더 자신만만하게 들어오란 말이오." 
  "못 하겠어요. 난 너무 기가 죽었단 말이에요. 내일 그렇게 할께요." 
  "썩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럼,  내가 옛 말을 상기시켜 주지.  '결정을 내리길 원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당신의 승승장구하는 외양에 고객들은 더 만은 신뢰감을 품게 될 거요. 대부분
의 인간은 어리석은 양떼와 같소."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사람들이 얼마나 무례한지 당신은 모를 거예요. 난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요.  그냥  타자
나 칠래요!"  
  "겁쟁이들의 전형적인 반응이군. 이스라엘에선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소. 
온 세상이 재난의 벼랑에서 비틀거리고, 미군은 전 세계에 주둔했으며, 소련은 자국 군을 중
동에 파병할 계획인데다, 나토는 심각하게  분열되었소. 즉 세계는 막다른 골목에  몰렸지만 
아무도 물러나지 않았는데, 하디 양만 도부의 몇몇 장사꾼들에게 퇴자를 맞았다고 풍요로운 
미래를 포기하는군."
  그녀가 고개를 쳐들었다.
  "그럴 듯하게 갖다 붙이기는! 고마워요, 죠!"
  그녀의 표정은 무감각했지만 속에선 화롯불에 석유를 끼얹은 것처럼 분노가 더 깊어졌다.
  "이건 전략상의 문제요. 이달 말에 당신은 평균 8명 당 한명 꼴로 계약을 따내게 될 거요. 
그 다음에 지금의 모든 거절이 승낙으로 변할 거요."
  그녀는 처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그럼 나를 설득시켜 봐요. 시간이 산처럼 쌓인게 아니잖소."
  그는 짐짓 극적인 한숨을 쉬었다.
  "당신이 꼭 이럴 필요는 없어요."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아는 거요? 자존심이 당신을 망쳐  놓고 있소. 당신은 나와 장
기 약속을 체결했쇼. 점점 호전되어가는 이 마당에 나를 쉽게 놓지 말아요. 조만간 나는  계
약서에서 명을 하게 될거요. 그걸 모르겠소?"
  "공평치 않아 보여요."
  "아! 세일이 영국에서 경시되는 이유를 알겠군. 당신의 시덥지 않은 페어플레이 정신으론 
백날 가도 안돼. 내 말을 잘 들어요, 마조리."
  그가 갑자기 심각하게 말했다.
  "그런 태도라면 당장 그만둬요. 내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가봐요. 하지만 당신이  마음을 
바꾸겠다면 여기 다른 책이 있소. 그 페어플레이 운운하는 말을  접어 두고 첫 광고를 따낼 
준비가 되기 전에는 돌아오지 말아요."
  "맙소사.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거죠? 내가 흙털이판인 줄 아세요?"
  "그래요, 당신이 스스로 그런 대접을 자청한 거요."
  책을 집어든 그녀는 비참한 심정으로 밖으로 뛰어나갔다. 죠가 뒤를 따랐다. 
  "난 내일 다시 올거예요. 하지만 그렇지 않을지도 몰라요."
  그녀가 어깨 너머로 소리질렀다.
  "내일 온다면 난 당신이 하루  종일 올린 실적의 두 배를  팔아 줄거요. 이만하면 용기가 
나오"
  그녀는 깜짝 놀라 멈추어 섰다가 천천히 되돌아갔다.
  "동정은 관두세요, 죠 시걸."
  그녀의 목소리에는 험악한 분노와 도전이 담겨 있었다.
  "미안하요. 그말을 철회하겠소. 동기는 좋았지만 표현이 잘못됐군. 날 용서해요."
  그녀는 거짓 웃음을 지어 보이고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갔다.

  죠는 얼굴을 찌푸리고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내가 왜 저  여자를 돕는 걸까? 그녀
가 예쁘다는 거야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 세상에는  가시가 없는 여자들도 많다. 그
의 비서를 포함해서.  그렇다고 그녀와 잠자리를  하거나 친구가 되려는 것도 아니었다. 사
실, 그는 고독했다. 때때로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한  이방인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건 부
분적으로 부모님의 탓이었다. 그의 모친인 버샤 골드만은 골더  그린에 있는 의상실의 재단
사였고, 부친인 클라우스 시걸은 베를린에서 수학 교수로 재직했지만 전쟁통에 런던으로 피
난 와서 버샤를 만났다. 그 후 아버지는 비행기  조종사, 세일즈맨, 부동산 개발업자로 차례
차례 변신했다. 나중에 사업체를 팔고 아내와 이혼한 후 독일로 돌아가 랍비의 딸과 결혼하
고 수학 저서 집필에 몰두한 결과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죠는 부모님들이 애초에 결혼한 이유를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지적이었고 독
일 문화에 푹 젖었는데 반해 어머니는 런던 토박이였고 세상 물정에 통달하신 분이었다. 부
모의 이혼으로 죠는 부모와 두 할머니 댁을 오가며 성장했다. 파리에 사는 친할머니 그레타
는 아우슈비츠 감옥의 생존자로 감상적이면서도 약간 광기를 보였고, 외할머니 모드는 소호 
거리에서 핫도그와 감자를 팔았지만 항상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랍비의 딸인 계모와,  이스
트엔드의 선술집 벽화쟁이 계부는 모두 최선을 다해 그럴 자신들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그 결과 죠는 어느 곳에서도 적응했지만 실상 아무 곳에도 적응하지 못했다. 그는 전통 종
교나 문화에 편입되는 대신 독자적인 길을 발견했다.  스스로를 '탐색자'로 생각하고 진리를 
추구했지만 이승에서 그것을 이룰 수 있을지 회의했다.  
  그는 나름대로의 법칙을 세웠다. 그를  스쳐가는 사람 중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를 성심 
성의 껏 돕는 다는 것이었다. 그는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동시에 끊임없이 바쁘게 지
내고 목표를 추구함으로써 너무 지적인 정신이 광기로 치우치지  않도록 신경을 섰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마조리가 그를 스쳤고 옳은 방향으로 끌어 줘야 했다. 그렇게 애잔하고 슬픈 
분위기를 풍기기에 너무 어린 그녀의 절망감이 겉으로 확연히  드러났다. 그는 그녀가 생존
의 벼랑에 몰려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제 그녀는 화가 나서 다시 찾아오지 않을 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괜찮았다.
  죠는 저녁 스케줄을 짜기 시작했다. 지나 쉬프오 협연한 콘의 바이얼린 콘서트 음반을 감
상하고 한 시간 정도 클라리넷을 연습한 다음에 명상해야지.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발명
을 해야겠다.
  버스가 왔고, 마조리가 차에 올라탔다. 그는 손을 흔들었지만 그녀는 그의 존재조차  의식
하지 못했다. 이 동네는 밤에 우범 지역이었다. 안으로 들어간 그는 문을 잠그고 자동  응답
기를 켰다. 순간 저녁 데이트 생각이 떠올랐지만, 콘의 음악이 더 유혹적이었다.

  마조리는 궂은 날씨에 5일이나 더 도버 일대를 쑤시고  다녔다. 그녀의 문제는 별 진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많은 것을 배웠다.  그녀는 항상 일이  꼬이기 시작한 부분을 눈치
채고 밤에 죠와 토론을 나누었다. '건수 좀 올렸소?' 하는  그의 질문은 그녀의 기분에 따라 
수치심과 분노와 두려움을 야기시켰다.
  "난 포기할래요. 죠! 오늘은 벌써 금요일이고 난 1주일  내내 호된 대접만 받았어요. 가슴
에 사무쳤다구요. 난 앞으로 커피 한잔에도 '싫어요'라는 말을 하지 않을래요."
  "광고 지면을 한칸도 못 팔았소?"
  "그건 공수표가 아니라 미래의 세일이요. 당신이 제대로 하면 그 공슈표들이 진짜 돈으로 
변할거요. 내 말을 명심해요 ! 소심한 죠가  뜸을 들이거든 마음속으로 서명된 계약서를 쥔 
당신 모습을 떠올려요."
  "당신은 괴짜예요. 그걸 알아요,죠?"
  "당신은 말을 돌리고 있군. 어서 해봐요."
  "시걸씨 당신의 흥미를 자아내게 하는......."
  "맙소사! 더 자연스럽게 할 수 없소?"
  "빌어먹을 ! 난 더 이상 못해요."
  그녀는 신경질을 내며 밖으로 뛰어나갔다. 누군가를 한방치면 헛탕만 쳤던 스트레스가 시
원하게 풀릴텐데. 다운타운에는 중고차 대리점이 있었다. 그 진열장에 한 남자가 세  꼬마를 
껴안은 대형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중고차는 믿을 수 있는 짐 아저씨에게! 그녀는 그 것을 
볼 때마다 신물이 났다.  그녀는 안으로 들어가 분노를 토해냈다.  마조리는 광고지를 그의 
책상에 던졌다.
  "계약을 따냈어요."
  그녀가 죠의 사무실로 뛰어들어갔다.
  "1년간 반 페이지 광고 계약이에요. 아 주여!  내가 드디어 해냈어요.  난 정말 충격을 받
았어요 "
  그녀는 죠에게 몸을 던져 그를 꼭 껴안았다.
  "고마워요, 죠. 그리고 짜증을 내서 미안해요."
  그녀가 계약서를 그의 코밑에 들이밀었다. 
  "서명하고 도장을 찍는데 5분도 안 걸리더라구요. 어때요?"
  "좋은 시작이요."
  그가 코믹하고 슬픈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이제 나를 설득해봐요."
  "당신에게? 어휴, 죠, 난 처음에 당신에게 말할 필요조차  없었어요. 당신은 날 놀리는 동
안 정작 자신의 세일 기회를 잃었어요. 그저 소심한 토끼처럼  이 굴에 앉아만 있으면서 뭘 
팔겠어요? 이 작은 과고로 당신은 2만건의 주문 전화를 받게  될 거에요. 그러니 당신이 정 
넝마 굴을 벗어나고 싶지 않거든 여기에 광고를 내세요."
  그녀는 무의식중에 힘찬 설득조로 말하고 있었다. 
  "이제 당신은 내 계약을 따냈소! 난 매 발행면 뒤 페이지에 1년 내내 광고를 내겠소."
  그녀는 그를 보며 헐떡 거렸다. 발끝에서 양 볼까지 열기가 확 번졌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당신은 그럴 돈이 없잖아요."
  "아니야. 난 할 수 있고, 그렇게 할 거요."
  그가 으르렁거렸다. 
  "당신에게 너무 과해요."
  "난 그걸 원한다구 당신이 내 주문을 받지 않으면 당신 상관인 그 비열한  제임스 씨에게 
전화를 걸겠소. 이걸 봐요.!"
  그는 몇 장의 낡은 복사지를 흔들어 댔다.
  "난 항상 광고지 뒷면을 갖고 있었소. 발행 날짜를 살펴보며, 이걸 놓고 간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을 걸. 그건 생각 못했지, 헛 똑똑 양? 묘한 우연의 일치지만 내가 전에 어니  제임
스에게 전화를 하려더 찰라 당신이 날 찭아와서 기회를 망쳐 놓았었지."
  "이 악당! 당신은 맞아야 해!"
  "날 때리고 싶소? 자, 해봐요. 어서. 여기를 때려요."
  그는 손가락으로 턱을 가리켰다.
  "어서 해보래두. 있는 힘껏 쳐요."
  그는 얼굴을 그녀에게 들이밀었다. 
  "하지만 그럴 배짱이 없겠지?"
  전광화석같은 분노의 주먹이 그의 턱을 강타했다. 그러고도 그녀는  계속 공중에 헛 주먹
을 날리다가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죠가 그녀를 잡았다. 
  "내가 싸우는 법도 가르쳐 주겠소. 이번에는 당신도 재능을 발휘해야겠는걸."
      
   정말 멋진 날이야. 굴뚝 위에 걸린 먹구름이나 추적추적  내리는 비도 그녀의 기분을 꺽
어놓지 못했다. 오늘은 10월의 마지막  날, 즉 월급과 수수료를 받는  날이었다. 총액이 4백 
파운드나 됐다. 지난 며칠 동안 눈요기 쇼핑을 다녔던 그녀의 욕구는 끝이 없었다. 아기 옷, 
장난감, 유모차, 엄마에게 드릴 냉장고, 바바라에게 선물한 향수등. 부두에서 싸게 파는 냉동 
청어와 맥주도 들여 놔야지. 4백  파운드라! 와 !그녀는 황홀경에  빠졌다. 부유해진 상태에 
전율을 느끼며 돈 쓸 궁리에 빠졌다.
  "안녕하세요, 제임스씨."
  그녀는 노래를 부르며 한번에 두계단씩 뛰어올라 갔다.
  "미끄러운 계단을 조심하라고 내가 몇 번이나 주의를 쥐야 하나?"
  최근에 사무실은 몰라볼 정도로 청결해졌고 그녀의 책상 위 꽃병에서 향긋한 내음까지 풍
겼다. 마조리는 세일즈맨이 타박 맞는 금요일 오후와 월요일 오전에 사무실 청소를 했다.
  "최근호가 내 광고들로 꽉 차 있는 것을 아세요?  다른 것은 별로 없더라구요!"
  그녀가 행복하게 상관에게 웃어보이자, 그는 투덜거리며 슬며시 눈을 피했다. 
  "고깝게 듣지 마세요. 당신이 절 고용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잖아요."
  "난 당신의 자랑에 아무 불만이 없소."
  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오늘은 그의 기분이 썩 좋지 않나 봐. 하긴, 그녀에게 수수료를 
지불할 생각으로 속이 쓰리겠지. 그녀는 약제사 도건씨의 계약서를 꺼내 책상위에 놓았다. 
  "정말 힘들었어요, 진짜 지독한 구두쇠더라구요. 네 번이나 방문한 끝에야 그가 착한 아이
처럼 순순히 서명했어요. 1년치 계약이예요. 이만하면 괜찮겠지요?"
  "아주 좋아."
  "오늘은 월급날이고 난 갈 데가 있어요. 지금 월급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는 그녀를 교활하게 째려보며 봉투를 꺼냈다. 
  "내 첫 번째 수수료네. 얼마나 흥분되는 지 몰라요."
  그녀가 봉투를 열자 안에서 10파운드 짜리 지페 한 장과 25페니가 나왔다.
  "이게 뭐예요?"
  그녀는 불붙은 종이처럼 돈을 떨궜다. 
  "당신의 주급 10파운드와 보너스야."
  "하지만 난 보너스를 바라고 일한 게 아녜요. 제임스 씨 . 20%  의 커미션을 주시기로 했
잖아요."
  "당신이 그랬잖아요. 잘 아시면서 왜 그러세요? 그 말을 수 십번이나 하셨잖아요." 
  "당신은 그 돈을 주셔야 해요. 그게 우리의 기본 계약이었어요."
  "그건 변명이 안돼요. 당신이 규칙을 정하셨잖아요. 이따위 돈 몇푼을 받자고 내가 열심히 
뛰어다닌 줄 아세요....."
  그녀는 입을 다물고 재빨리 전략을 수정했다. 
  "타자실 주급보다 2파운드가 많네요. 하지만 버스비, 전화료, 구두와 옷갑,  악천후에도 밖
에 나가서 흘린 땀과 사람들에게 받은 모욕과 거절은 어쩌고요....... 아! 당신이 이러실 수는 
없어요. 내 돈을 주지 않으면 경찰에 고발하겠어요."
  "진정해 마조리. 내가 두둑하게 보너스까지 줬잖아. 난 당신에게 아무것도 빚진게 없어."
  "우리는 계약을 했어요."
  "계약서를 내놔 봐."
  그녀는 숨을 몰아쉬었다. 계약서를 작성했어야 했는데. 사태를 파악한 그녀는 책상 속에서 
계약서를 전부 꺼내 가방에 넣었다. 
  "이봐. 그것들은 내 거야"
  그의 동작이 너무 굼떴다. 그녀가 이미 계단을 쏜살같이 내려간 뒤였다. 
  "아, 난 어떡해."
  그녀는 거리를 따라 걸으며 중얼거렸다. 집에 큰소리를 쳤던 허풍, 그들의 계획, 엄마에게 
약속했던 것들이 모두 날아갔다. 
 그녀의 수중에는 겨우 백 파운드 밖에 남지 않았고 그 절반 이상을 엄마에게 드려야 할 형
편이다. 그 지독하고 잔인한 두 얼굴의 사기꾼을 가만두나 봐라!
 그녀는 경찰서에 신고했지만, 그들은 그게 민사 사건이라며 발뺌했다. 그래서 유일하게  알
고 있는 변호사 록카이어 씨를 찾아갔다. 그는 라나의 입양을 처리해 줬던 변호사이다.
 그의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사정을 호소했다.
  "록카이어 씨, 제발 그가 내 돈을 지불하게 해주세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탄원했다. 공포에 질려 제정신이 아니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눈에서 
불이 났다. 
  "진정해요, 마조리. 차를 한 잔 하겠소?"
  "고맙지만 싫어요. 돈 말인데요, 우리 집에는 그 돈이 꼭 필요해요."
  그가 그녀의 손을 토닥거렸다. 
  "마음을 굳게 먹어요, 마조리. 다음 번에 수수료나 보너스를 준다는 세일즈 일을  하게 되
면 서면 계약서를 받아서 나에게 가지고 와요. 그의 구두  약속 만으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소.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거든 향후 조건에 대한 계약을 체결해요."
  "난 다시는 그의 밑에서 일하지 않을 거예요."
  그녀가 분개해서 맹세했다.
   "미안해요, 마조리. 내가 그에게 말해 보긴 하겠지만, 좋은 경험을 치렇다고 생각해요. 당
신은 앞으로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겨우 석달이었잖소? 더 오랫동안 
고생했을 수 도 있었소."
  그녀는 계속 그녀의 분노를 달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 어떤 위로의 말도 라나와 엄마
가 빼앗긴 것을 만회하지 못했다. 그녀는 실패감에 사로잡혔다. 가족들에게 뭐라고  말하지? 
내가 바보였어. 심장이 뛰고 온몸의 피가 거꾸로 돌아 기절할 것 같았다. 
 그녀는 변호사 사무실을 떠나 해변가를  배회했다. 돈 없이는 너무  창피해서 집에 돌아갈 
수 없었다. 그렇게 이기적인 사람이 또 있을까? 그는 그녀가 얼마나 열심히 일해 왔는지 다 
알고 있었다. 그렇게 이기적인 사람이 또 있을까? 그녀는 얼마나 열심히 일해 왔는지 다 알
고 있었다. 사업이 항상 그런 걸까 ? 그녀는 성공의 사다리를 반쯤 올라갔다고 확신했었다.
 그는 거짓말을 했어. 그 노랑이는 내 돈을 지급할 형편이  됐어. 흥, 그런 엉터리 광고지를 
인쇄하는데 돈이 많이 들겠어? 가장 싼 종이를 사용하고 딱  한가지 덧색만 썼는데. 그녀의 
놀 리가 타당하다는 것을 누가 알아줄까? 죠라면.... 그는 작은 인쇄기로 광고 전단지를 찍어 
고객에게 직접 우송했다. 최근에야 그녀는 그의 사업 방식을 알아냈다. 
 그녀는 죠의 사무실로 향했다. 
     
   건물 문은 닿혀 있었다. 마조리는 불안에 떨며 벨을 누르고 대답을 기다렸다. 
 "제발 안에 있어줘요. 죠."
 세 번째 벨 소리에 죠의 퉁명스런 목소리가 인터컴으로 흘러 나왔다.
 "죠, 나예요....... 저기...... 일하고 있었어요?"
 "그만 더듬거리고 용건만 말해요."
 그는 백년이 가도 매너 상은 받지 못할 거야.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지금?"
 "네."
 오랜 침묵이 흐른 다음 한숨 소리가 흘러 나왔다. 
 "맨 위층으로 올라와서 집으로 들어와요. 벨은 생략해요. 소음이라면 질색이니까."
 마지만 계단에 올랐을 때 강령하고 격한 클라리넷 선율이  들렸다. 그녀는 문간에 서서 신
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얀 벽과  천장과 맨 마룻바닥의 넓고 텅빈 공간에,  알루미늄 
테를 두른 검정 가죽의자 두 개와 걸려 넘어지기 딱 좋은 유리 테이블이 고작이었다. 딱 한
점뿐인 그림은 음악처럼 불가사의했다. '코코스카'라는 제목이었다.
 죠는 검정색 반바지와 스웨터를 입고  보면 앞에서 클라리넷을 불고  있었다. 그의 다리는 
가무잡잡하게 탄 근육질이었다. 꽤 멋진데, 상처가 있기는 해도. 그는 차갑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오디오를 켠 다음 전문가의 연주에 맞춰 클라리넷을 불었다. 그가 앞뒤로 움직일 때
마다 그의 다리와 어깨 근육이 꿈틀거렸다.  몸매와 피부 관리를  어떻게 했을까? 하루종일 
사무실에서 보내지 않은 것은 확실해.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춘  그의 음악은 더욱 실감났
다. 열중한 죠는 그녀를 의식하지 않은 채 얼굴을 찌푸리고 눈을 부라렸다. 그의 손은  강하
고 아름다웠다. 
 갑자기 음악이 뚝 그쳤다. 그는 오디오를 끄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당신탓에 정신이 흩어졌소. 그만 쳐다봐요."
   시작이 좋지 않은데.
   "어디서 그런 근육과 지중해서 피부를 갖게 되었어요?"
   "이스라엘에서. 난 한 동안 군에 복무했었소."
   그녀는 최고의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죠는 이미 고개를  돌린 뒤였다. 그는 자신의 세상
에 푹 빠졌다. 
 어떻게든 그의 지지를 얻어내야 해. 그에게 사업에 대해 더 배워야 해. 그가 종이와 적당한 
인쇄소를 주선해 줘야 해. 그런데 그가 그녀를 도와줄까?  그녀는 의자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악몽같은 날이야. 죠가 도와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지? 그때 그녀는 죠에게 배운 가르침
을 상기했다. 긴장을 풀고 마음을 비우고 원한을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돕는 모
습을 상상해요. 당신 장단에 맞춰 춤추는 그들을 그려 봐. 하지만 안타깝게도 수수료에 대한 
원한은 도저히 잊을 수 없었다. 이제 죠의 방법을 죠에게 써 먹어 보자. 그녀는 정신을 하나
로 모으고 죠와 그녀가 함께 일하는 모습을 그렸다. 
 죠는 자랑스럽게 그녀에게 집 구경을 시켜줬다. 딱히 아늑하지 못한 분위기에 괘념치 않는 
눈치였다. 위층을 그 혼자 쓰고 있었기 때문에 공간은 넓었지만 가구가 많지 않았다. 침실에
는 침대 하나가 전부였다. 그러나 다른 방은 책장과 조명, 설계 테이블과 장비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게 뭔지 아오?"
  그는 줄이 달린 검정색의 작은 상자를 들어 올렸다. 
  "인간에게 감지되지 않는 초음파를 방출해서 반 마일 내의 쥐를 쫒아내는 기계요."
  "돈이 되겠는데요. 특허를 냈나요?"
  "아니. 쥐뿐만이 아니라 망할 놈의 고양이들도 귀앓이를 하고 집을 나가 버렸거든. 하지만 
문제점을 개선하고 있는 중이요. 이것은 내 최신작인 원형 주차장의 모델이요. 내가 이걸 런
던의 한 건축가에게 팔았소."
  "정말이에요? 때때로 발명품으로 돈을 버나요?"
  "발명비를 벌 만큼은 충분히."
  "발명 아이디어를 나에게 점검을 받는 게 어때요? 그럼 내가 쓸 만한지 여부를  판정내릴
께요.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밤에 마루를  쓸고 돌아 다니는 원격 청소기를 발명해 보시죠? 
아니면 자동 감자 껍질 벗기기는 사회에 유용한 발명이 될 거예요. 아, 당신이 천재인지  아
니면 정신병자인지 분간이 안되요."
  "내가 당신에게 세일하는 법을 가르쳤잖소. 그렇지?"
  "네. 하지만 책에서 배운 내용을 나에게 반복한 거잖아요. 당신이 나에게 빌려준  책이 동
일한 내용이기 때문에 알아챘어요."
  "사실이요. 하지만 내가 당신에게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 줬지."
  "그건 그래요. 고마워요. 저기 더러운 벽돌과 한 무더기의 시멘트는 뭐예요?"
  "일급 비밀이니 묻지 말아요. 저걸 보았다는 것조차 잊어줘요."
  "그거야 쉽지요."
  "그런데 당신의 문제는 뭐요? 아, 우선 한잔 마시기로 합시다."
  그들이 넓은 공간으로 돌아오자 그가 말했다.
  "흔들어서 마셔요. 독한 거요. 좋아 , 이제 말해봐요."
  "그래서 난 내 광고지를 출판하고 직접 기사도 쓸  거예요. 하지만 회사를 세우는 방법에  
  대한 충고가 필요해요. 인쇄비가 얼마나 될까요?
  "한가지는 분명한 사실이요. 제임스씨가 이윤도 없는 사업에  괜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거요. 그러나 요술 방망이를 휘둘러서 수치를 뽑아 낼 수야 없는 것 아니겠소? 최소한 하루
는 필요하오. 마조리, 이제 분을 삭혀요. 그건  겨우 돈일 뿐이요. 제임스씨는 그가 한  짓에 
대한 응보를 받게 될 거요. 난 당신이 걱정되서 하는 말이요. 당신은 물건과 돈을  소유하겠
다는 잘못된 목적에 사로잡혀 있소. 물질에서 자유로워지도록 노력해봐요. "
  "내가 당신을 돕는 수고를 감수하기 전에 그 이유를 알고 싶군."
  그녀는 혀에 무슨 이상이 생긴 사람처럼 말을 멈추지 못하고  모든 꿈을 다 고백했다. 라
나의 생득권을 찾아 주는 꿈, 엄마와 아빠를 위한 꿈, 그리고 로버트에게 그녀의 가치를  증
명하는 특별한 꿈까지도.
  그녀 말을 듣던 죠는 고민스러웠다. 불쌍한 여자같으니. 그녀는 비참한 시작을 했고  교육
도 많이 받지 못했다. 하지만 배짱이  두둑하고 근면 성실하며, 자기 연민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단호한 결심을 했다. 그녀를 보살펴 줘야지. 누군가가 그렇게 해야만 해.
  "우리는 광고지의 공동 설립자가 될 수 있소."
  그가 말했다.
  "공정이 이 일과 무슨 상관이 있지? 이건 거래요 ! 받아들이든가 거절하면 그뿐이오. 당신
이 세일만 하는 동안 난 모든 문젯거리들을 처리하게 될  거요. 그리고 초기 자본금과 아울
러 이윤을 올리기 전까지 당신의 주급 16파운드를 지불하겠소."
  "거래를 받아들이겠어요."
  그녀가 행복하게 말했다.
  "좋소. 사업을 계속 성장시켜야지 그렇지 않으면 무너져 버릴거요. 아주 지루한 일이고 당
신도 곧 흥미를 잃을 거요. 글피  아침 8시 정각에 내 사무실로  와요. 내일은 쉬도록 해요. 
이제 우리가 동업자가 된 것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내가 가장 놓아하는 곡을 연주해 주지."
  그는 좀더 강한 술을 더 따라 줬고, 그녀는 몽롱한  술기운에 빠져 그의 이상하지만 감동
적인 연주 선율을 따라 둥실둥실 떠다녔다. 어떤 의미에서 그 음악은 그와 비슷했다. 놀라울 
만큼 자유롭고 강한 정열이 놀라울 만큼 기교적으로 숨어 있었다. 
  아빠가 이렇게 화를 내고, 엄마가 저렇게 두려워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쟤가 우리를 파탄에 빠뜨릴 거야."
  아빠는 엄마에게 삿대질을 했다. 분노로 입술을 떨면서.
  "우리는 빚을 잔뜩 지고 저 애는 감옥에 가게 될  거야. 불경기가 시작되는 이 마당에 뭘 
하겠다고?  그저 문제를 일으키는 것밖에 모르는 아이야. 평범한 직장이나 쓸만한 청년에게 
눈을 돌리지 않았어. 대신 그  대학생 놈과 연애질을 하고 애새끼를  낳아 우리에게 부담을 
줬다구."
  "부끄러운 줄 아세요. 여보. 귀여운 라나 없는 우리생활이 어땠겠어요?"
  엄마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훨씬 좋았겠지. 그리고 쟤는 돈을 많이 벌겠다고 큰 소리만쳤지. 벌긴 뭘 벌어?"
  "넌 말 뿐이야. 내 딸아. 허풍 뒤에 남은 결과는 언제나 부끄러움이 전부였어."
  "아......."
  그녀는 항상 하던 식으로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침실로 달려 올라갔다 그러다가 이번에
는 계단 중간에 멈춰선 다음 천천히 되돌아 왔다. 생전 처음으로 맞서 싸울 상대를 만났다. 
  "아빠의 눈에는 제가 사업을 시작하기에 적당한 때가 절대로 오지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아빠는 항상 두려우실 테니까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전 아빠와 했던 거래를  지키겠어
요. 제가 생활비를 버는 대신, 아빠가  예전에 저에게 했던 식으로 라나의 기를  죽이신다면 
당장 라나를 데리고 떠날 거예요. 어떤 누구도 내 딸을 구박할 수 없어요. 알아들으셨어요? 
아빠?"
   그녀는 긴장하며 헐떡거리며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요람을 들여다 본  그녀는 자못 
흡족하게 자는 아이를 응시했다. 라나는 이런 말싸움을 듣지 않을거야. 최상의 교육과  최고
의 기회를 갖게 될 테니까.
   "넌 생득권을 되찾게 될거야. 내 딸아. 내가 너에게 그걸 찾아줄게!"
        
  "당장 가라니까!"
  죠는 주차구역에 차를 세우고 책을 집어들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마조리는 혐오스럽게 자
동차의 바람막이 창을 때리는 빗줄기를 보았다. 거센 비바람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목에 나비매듭을 묶는 흰 실크 블라우스와 가장 좋은  감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시
뇽 스타일의 머리, 바바라에게 빌린 진주 귀걸이, 굽  낮은 신발, 서류가방이 영락없이 성공
한 여류 사업가의 모습을 창조해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  모든 것이 낡은 노랑색 방수 
코트와 덧신에 가려져 있었다.
  그녀는 세련된 분위기를 풍기는 테드 리틀 씨의 사무실로  들어가야만 했다. 이번이 그들
의 새 잡지 '더 핸디 홈 가이드'의 첫 세일  방문이었다. 그녀는 최상의 견본과 요금표와 계
약서를 준비했다. 첫 방문을 성공으로 이끄는 중요함에 그녀의 몸이 떨렸다. 
  "당신은 모든 것을 두려워하잖소. 세일, 부자가  되는 것, 사는 것등. 당신은  머리를 박고   
 숨을 굴이 필요한 거야, 아니, 타자실이 더 좋겠군."
  "나도 매일 밤마다 나 자신에게 그렇게 말해요. 이걸  하지 않으면 평생 남의 타자실에서 
썩게 될 거라고 말예요. 보험 회사의 늙고 불쌍한 애니처럼요. 그녀는 그 곳에 35년이나  있
었대요. 정말  슬프지 않아요?"
  "이제 나가서 세일을 하겠소?"
  "좋아요. 고단수 양반 같으니."
  그녀가 거세게 몰아치는 비바람 속을 헤치고 회전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리틀씨 본인과 
정통으로 마주쳤다. 
  "잘 있었소, 마조리. 안색이 핼쓱해 보이는데?  저쪽 카운터로 갑시다. 사무실에 바이어가 
와 있기 때문에 그곳으로 당신을 모실 수 없소. 우리 광고  때문에 왔소? 평소와 똑같이 게
재하도록 해요. 아, 코트를 벗지 말아요. 시간이 얼마 없소."
  "리틀씨."
  그녀는 만사가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징조에 머리를 짜내어 전략을 세웠다. 
  "저는 정반대의 이유로 여기에 왔어요. 곧 새로운 광고지가 출판될 겁니다. 이  견본을 좀 
봐주세요! 정말 근사하잖습니까? 기존보다 저렴한  비용과 더 좋은 품질로 한층  수준 높은 
고객 층을 대상으로 했어요."
  "아, 글쎄, 마조리... 첫 발행 본을 보고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아 맙소사?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그는 기절할 거야.
  "리틀씨." 
  그녀는 단호한 용기로 절망감을 누르며 고집스레 말을 이었다. 
  "제가 당신을 처음으로 찾아 뵌 이유는 당신이 이 곳의 지도자 격인 사업가이기 때문입니
다. 나머지 지방 사업가들은 당신의 지도에 따를 테니, 당신의 결정에 막중한 책임이 부과됩
니다. 그러니 이 광고지를 그냥 사장시키지 말아 주세요. 저는 당신의 신중하신 결정의 가치
를 잘 알고 그 심판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에요. 그 점을 꼭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정 바쁘시다면 나중에 찾아 뵙도록 하겠어요."  
  그는 자못 호탕하게 껄걸 웃고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그녀는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담긴 
시선으로 그를 마주보았다.  
  "그래, 당신 말이 옳소. 나에게는 책임이 있지. 한 번 보도록 합시다."  
  그가 중얼거렸다.  
  "그런데 이 광고지의 사장이 누구요?"  
  "제가 회사 지분의 반을 가졌고, 나머지 반은 회사 설립 후원자의 몫입니다.  세부적인 등
록증이 여기에 있어요......."  
  그녀는 가방에서 여러 가지 사업 보증서를 꺼냈다.  영겁과도 같은  몇 분이 흐르는 동안 
그는 그녀의 정보를 컴토 했다.   
  "내가 가장 좋은 지면을 가져야 할 것 같은데."  
  그의 점잔빼는 표정에 그녀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아야 했다.  
  "당신 몫으로 여기 창간호 컬럼 자리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만은......."  
  그녀가 빨간 색으로 테두리가 둘려진 지면을 가리켰다.  
  "내가 당신 광고지에 칼럼을 쓸 수 있소?"  
  "제발 그렇게 해주세요."  
  "좋아! 리틀 앤 햄프톤 스포츠 사의 지면을 남겨 둬요."  
  그는 계약서를 쓰며 중얼거렸다.  
  "당연히 모든 발행지에 말이오. 나중에 복사본을 갖고 오도록 해요. 참, 행운을 빌겠소, 마
조리."   
  "감사합니다, 사장님."   
    
  그녀는 극도로 흥분된 상태로 차에 올랐다. 손발이 떨리고 입술이 말랐다.  
  "빨리 차를 출발시켜요, 빨리요. 내가 쉴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 줘요."  
  그녀가 겨우 유지하던 평온은 사람들의 시야에서  벗어나자마자 사라졌다. 그녀는 양손에 
얼굴을 묻고 가랑잎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그가 거절했소?"  
  "승낙했어요."  
  "그런데 왜 그러는 거요?"  
  "아무것도 아니예요."  
  "속 시원하게 털어놔 봐요."  
  "난 내 자신이 점점 싫어져요. 사실, 난 그를 속여넘겼어요." 
  "그래선 안돼, 마지."  
  죠가 갑자기 진지하게 말했다.  
  "사업은 공명정대하게 해야 하오."  
  "세일은 그렇지 않아요. 난 사람들이 바라는 것을 알고  내가 파는 물건에 그것을 붙였어
요. 그런 방법으로 성공한 거예요."  
  "그가 뭘 바라는데?"  
  "그는 자기 부친처럼 되기를 원해요.  지역 사회에 존경받는 지도자, 만인의  추앙을 받는 
인물, 자수성가한 남자 말예요. 그는 중요한 인물이 되고  싶어하기에, 내가 그걸 그에게 팔
았어요."  
  "그래서?" 
  "하지만 그는 그의 부친이 아니고, 그렇게 될 수도 없어요. 그의 아내는 남편이 만만한 틈
을 타서 돈을 물 쓰듯 쓰고, 상속받은 그의 스포츠 사업은 매일 적자만 기록하고 있어요. 벌
써 3군데의 지점이 문을 닫았단 말예요." 
  "알겠소. 음,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어떻겠소, 마지? 당신의 암시로 말미암아 그가 고무되
고 성장하여 이상형에 가까워질 수도 있잖겠소?"  
  그녀는 웃기 시작했다. 갑자기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긴장을 푸는데는 그만이었다. 그래, 
계약을 하나 체결했다면 나머지도 다 해낼 수 있어. 드디어 해낸 거야.  
      
  오후 6시, 마조리는 모두 9명의 고객을 확보했다.  
  "출판업은 누워서 떡 먹기야. 내가 연구를 더 해야겠는걸."  
  죠가 말했다.  
  "그거야 다 아는 사람들이니까 그렇지요."  
  "겸손해 하지 말아요. 당신은 세일즈에 천부적인 재주를 타고 났어. 내가 당신을  두 번째 
봤을 때 이미 알아봤소."  
  그녀는 그 말을 곰곰이 되씹었다. 꼭 그렇지만은 않아.  
  "세일즈가 어떤 것인지 말씀드릴께요, 죠. 대어들이 사는 깊고 큰 호수에서 스쿠버 다이빙
을 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일단  물고기들의 종류와 습관 기호를 터득한  다음에 모이를 좀 
주는 거예요. 그러다가 그것들이 당신 손으로부터 먹이를 받아먹는 단계에 도달하면 적절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번에 한 마리씩 날카로운 작살로 잡는  거죠. 우정이란 어둠 속에 숨
어 있다가 빵! 물고기들은 죽은 목숨이에요!"  
  "하지만 당신 고객들은 팔팔하게 살아 있다는 점을 명심해요."  
  죠가 펍 앞에 차를 세웠다.  
  "자, 우리끼리 자축연을 엽시다."  
  그녀는 불가에서 몸을 녹이며 진토닉을 마시고 술집의 왁자지껄한 목소리와 다트  소리에 
긴장을 풀었다. 귀에 익은 소음, 행복한 목소리들.  죠의  아름답고 동정적인 미소는 그녀에
게 안도감과 자신감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비밀스런 공포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그 무엇
보다 그의 옆자리에 앉아 애무와 키스를 받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는 그녀에게 한 번도 
키스하지 않았다. 그의 느낌은 어떨까?  감각적일 거야. 그녀는 그의 관능적인 입술과 아름
다운 얼굴을 탐욕스럽게 응시했다.  그의 강한 손가락이 잔 옆에 쉬고 있었다. 그녀는 손을 
그 위에 포갰다. 언젠가 우리의 관계가 시작되어야 해. 죠는 다른 손을 그녀의 것 위에 포갠 
다음 꼭 잡았다가 놓았다.  
  "마지, 세일즈가 당신에게 해로운 것  같으면, 너무 늦기 전에  그만enq시다. 돈은 그만한 
가치가 없어."  
  아, 그게 아니에요. 난 그만두고 싶지 않아요.  
  "난 워낙 상상력이 풍부해요."  
  그녀가 쏘아붙였다. 그 순간 그녀는 죠에게 다시 마음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도덕에 너무 연연했다. 그녀는 성공할 필요가 있었다. 라나를 위해서라면 도
버의 모든 대어를 작살로 잡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마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봐요.  광고주들이 당신과의  계약
으로 더 많은 이익을 보게 될까?"  
  "두말하면 잔소리예요."  
  "그렇다면 당신이 그들을 괴롭히든 말든 난 더 이상 걱정하지 않겠소. 그게 다 그들을 위
한 일이니까."  
  그는 그녀에게 웃어 보였다.  다음 2주일 동안 그녀는 그의 위로를  지주삼아 더 많은 계
약을 체결했고 그 결과는 어니 제임스보다 두 배나 많은 광고주를 확보했다.  
      
  죠의 스나게이트 스트리트 건물 내의 출판 및 편집실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첫 번째 종
이가 인쇄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죠는 중고 석판 인쇄기를 사들이고 상업 미술가인 마크 발
렌타인을 고용했다. 땅딸보 마크는 검정 고수머리에 주근깨가 많고  항상 웃음기 어린 갈색 
눈동자의 소유자였다. 영리하고 학교를 갓 졸업한 그는 일을  가리지 않고 열성적으로 임했
기 때문에 인쇄공 역할까지 해냈다. 하지만 타자만은 전문 회사에 용역을 맡곁다. 죠는 샴페
인 병을 따서 세 잔을 채웠다.  
  "축배를 듭시다. 어려운 고비도 많았지만 모두 잘 극복해 냈소. 마지, 당신의 수수료와 봉
급과 기타 경비를 제하고도 창간호는 5백 파운드의 이윤을 남겼소."  
  마조리가 죠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동안 그들 사이에 은밀한 메시지가 오고 갔다. 그는 생
각을 감추는데 도통했지만 그녀에게 마음이 있는 눈치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의 감정이 
정확히 어떻지? 로버트에 대한 사랑은 여전했고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다.   하지만 죠는 그
녀가 만난 가장 섹시한 남자였다. 지금 그의 눈빛이 경고를  보내 왔기 때문에 그녀는 어리
석은 상상에서 깨어났다.  갑자기 아래층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려 왔다.  
  "내가 갔다 올께요."  
  그녀가 말했다.  이 늦은 밤 시간에 누가 찾아왔을까? 죠의 여자 친구들 중 한명일까? 낙
심한 그녀가 잠금쇄를 딴 순간 문이 그녀를 벽으로 밀어젖히며  기세 좋게 열렸다. 그 바람
에  그녀는 균형을 잃고 매트위에 쓰러졌고, 각목을 든 두 명의 강도가 그녀를 뛰어넘어 계
단을 올라갔다. 쨍그랑 잔이 깨지고  몸싸움에 이어 '쿵' 소리가 들려  올 즈음 그녀가 겨우 
일어나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렀다.  
  "죠, 조심하세요. 죠! 강도야!"  
  그녀는 그들을 뒤따라갔다. 맙소사! 어니 제임스가 사주한 거야. 이런  일이 생길 줄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그들이 제 때를 딱 맞췄을까?  인쇄실 문에 도착한 그녀는 영화의 슬로우 
모션처럼 강도 중 한 명이 죠에게 달려드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 녀석은 각목으로 죠의 얼
굴을 치고 다시 몸을 날리려다가 제도 탁자에 부딪쳐 벽에 곤두박질쳤다. 죠가 비호처럼 그
를 덮쳤다. 각목을 뺏어 든 죠는 큰 호를  그리며 그것을 녀석의 머리 위로 내리쳤다.  1초 
간격으로 다른 방향에서 '우지끈 '하는 소음이 났다.  다른 강도가 마이크와 엎치락뒤치락했
지만, 죠가 놈의 덜미를 잡아 한 바퀴 돌려 벽에 얼굴을 박아 버렸다. 이제 이  사건의 피해
자가 된 강도들이 바닥에 누워 신음했다. 그들 주변에 피가 낭자하게 튀어 있었다.  빨리 걸
레질을 하지 않으면 핏자국이 영원히 남을 거야. 그녀는 생각했다. 죠가 잠깐 자리를 비켰다
가 권총을 들고 나타났다.  
  "썩 꺼져, 이 놈들아. 어니  제임스에게 몸조심하라고 해. 그렇지  않으면 내가 몸소 그를 
찾아갈 테다."  
  "어디에서 격투술을 배웠어요, 죠?"    
  10분 후 그녀는 마지막 핏방울을 닦아 내며 물었다.  죠는 마이크의 이마에 난 상처에 반
창고를 붙이고 있었다.   
  "격투술 따위는 배운 적도 없소 싸움이 나의 자구책이었을  뿐. 난 베를린의 모 학교 3백
명의 기독교 전교생들 중에서 유일한 유태인이었거든. 그런 상황에서 싸움질을 얼마나 빨리 
배우는지 알면 놀랄 거요. 그 다음에 군 복무중에 훈련을 받았소."  
  베를린?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죠의 성격이나 과거는 조각 그림 맞추기와 비슷했지만, 대
부분의 조각이 사리진 상태였다. 그 조각들은 전혀 예상치 않은 상황에서 한 둘 발견되었다. 
    
  만사가 술술 잘 풀려 갔다. 그녀는 조만간 운전 면허증을  발급 받게 될 테고 회사측에서 
차를 사줬다. 그녀는 인근 도시로 세일 반경을 넓힐 계획을 세웠다. 그녀의 놀라움은 월말에 
주급을 받았을 때 극에 달했다. 주급 18 파운드에 보너스로 1백 파운드까지 받았다.  
  "하지만 죠......"  
  그녀는 그가 만용을 부리는 게 아니기를 빌면서 항의했다.   
  "잡지가 아직 나오지 않은데다 광고주들은 후불을 내잖아요."  
  "요즘은 자금이 부족하지 않소. 내 돈을 좀 투자했거든. 내가 밑천을 대고  당신이 세일을 
하기로 했잖소? 내가 당신을 속이고 있다고 당신이 가끔 생각하는 것 같아. 이건 당신이 벌
고, 계약상 월말에 지급하기로 한 당신의 수수료요. 단, 광고 계약이 취소되는 건은 다음 달 
당신 급료에서 그만큼의 수수료를 제하게 될 거요."  
  어휴, 죠는 마음만 먹으면 피도 눈물도 없는 노랑이가 될 수 있다니까. 그녀는 그가  그녀
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뒤로 물러나 일부러 경계선을 쳤다. 그녀가 
그에게 로버트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기 때문일까?  
  "내가 축하하는 뜻으로 당신에게 저녁을 대접하면 어때요?"  
  그녀는 가장 유혹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데이트가 있소. 하지만 억지로 짬을 내면 술 한잔은 함께 할 수 있을 거요."  
  그녀는 호기심을 갖고 그를 바라보았다.  죠는 의문의 수수께끼였다. 언젠가 그녀가  다른 
물고기들처럼 그 역시 잡게 되겠지만 이직 그렇게 깊은 바다 속을 수영할 능력이 부족했다. 
네스 호의 괴물처럼 그는 심해에  속했다  그녀는 죄책감을 느끼며 스스로를  추슬렀다. 더 
이상 사랑을 하지 않을 거야. 남은 인생을 라나를 키우는데 바쳐야지. 험한 방법을 통해  배
웠잖아? 남자를 이용하되 다시는 방어벽을 낮추지 않을 거야. 상처를  받지 않으려면 그 방
법밖에 없어.  
     
  새벽 6시 30분 로버트가 키이스를 출발할 당시 어두웠던 주변이, 북서쪽으로 차로 달린지 
반시간만에 부드러운 빛으로 감싸였다. 하늘은 아직 어두웠지만 눈  자체가 발광체인 것 마
냥 빛을 내뿜고 있었다. 드디어 전방이 보이고 눈 덮인  길을 가로지르는 검정색 얼음 빙판
이 드러났다. 그는 발로 액셀레이터를 눌렀지만,  잠시 후 무너진 제방 더미가 일부  도로로 
흘러내린 지점에서 아차 운전대를 놓쳤다. 차가 도로변의 눈더미 쪽으로 주르르 미끄러지는 
순간 그는 충격에 대비해 몸을 긴장시켰다. 하지만 부드러운  '쿵'소리와 함께 차가 눈에 파
묻히는 정도로 끝났다.  
  "젠장!"  
  트렁크에 있는 삽을 어떻게 꺼내지? 몇 차례 힘을 쓰자 사람 하나가 겨우 드나들 만큼 자
동차 문이 열렸다. 잠시 후 그는  삽질을 하며 계속 무너져내리는 눈더미와 싸웠다.  빌어먹
을! 내가 남부 지방에서 녹녹하고 부주의해졌구나. 이러다간 공장에 늦겠는걸.  세시간 후에
야 자유를 되찾았고 그 15분 후에  그의 여행이 끝났다.  예정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늦은 
11시 10분에 그는 글렌티란 증류소에 도착했다.  
  "당신을 찾으러 사람을 보내려던 참이었습니다."  
  공장장 그래이엄 포브스가 태평하게 말했다. 그는 60대 중반의 바싹 마르고 강단 있는 남
자로, 눈가의 주름과 듬성듬성한 머리카락만이 제나이를 말해 줬다. 그 외에 맑고  부드러운 
피부, 엷은 푸른 눈동자, 모랫빛 머리는 사십이나 오십대로 통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증류소
를 잘 운영했고 로버트는 그를 높이 평가했다.  
  "최고급 위스키를 한잔 할 수 있을까요, 보브스 씨?"  
  로버트는 몸을 녹이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말했다. 넓은 사무실 한쪽 끝의 벽난로에 불이 
지펴져 있었다. 그는 반색을 하며 그 앞에 서서 손발을  녹이려 했지만 떨림이 가시지 않았
다.  
  "이건 진짜 명품입니다. 당신 부친께서 1950년에 담그신 술이에요."  
  포브스가 술을 두잔 따르며 말했다.  
  "사장님의 건강을 위하여! 내 소견으로 이 술은 이 나라 최고의 위스키예요." 
  "물론이지요."  
  로버트는 독한 술이 그의 혈관을 타고 퍼지며 얼어붙은 손발에 생명을 되살려 놓는 느낌
을 받았다.  
  "추위로 얼굴이 시퍼래지셨어요, 맥라렌 씨. 남부의 편안한 삶으로 피가  맑아지신 모양입
니다."  
  "예, 그런가 봐요. 세시간 전에 차를 눈더미에 처박는 바람에 여태까지 빠져나오느라 고생
했어요."  
  "네에. 어젯밤 날씨가 험악했어요. 눈은 여러 날에  걸쳐 녹았다가 다시 얼어붙어요. 검정
색 얼음 빙판은 다루기 쉽지 않지요."  
  포브스는 로버트에게 잘못이 있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곧 익숙해지겠지요."  
  로버트는 웃으면서 말했지만 포브스는 노기 띤 얼굴을 돌려버렸다. 로버트는 슬퍼졌다. 그
레이엄 포브스는 아버지의 친구인 동시에  스코틀랜드의 최고 위스키 제조자였고  글렌티란 
증류소에 평생을 바쳤다. 심지어 아버지와 던컨 형이 3년  산 위스키 전액을 전부 로우랜드
의 영국인 양조장에 팔아치웠을 때에도. 이 제 얼마 안 되는 개인 보유액 외에 위스키가 많
이 남지 않았지만 포브스는 변함없는  충성심으로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로버트는 공장을 
둘러 보았다. 가열된 원액 위스키의 톡 쏘는 친근한 냄새를 맡으며 물탱크와 아궁이, 여전히 
양파 모양의 천장처럼 보이는 청동 솥단지를 차례로 지나는 동안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올
랐다. 아버지가 일하실 때 그는 형들과  함께 여기서 놀았었고, 나중에는 이 공장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을 배웠다.   요즘은 옛날과 많이 달라졌다. 고용인들이 불안에 
떨었다. 그는 그것을 그들의 눈에서 봤고 그들의 걱정을 몸으로 느꼈다. 그들이 짧은 목례만 
하고 그를 외면하며 악수를 피하자, 로버트는 상처를 받았다. 사무실로 돌아간 그는  격려의 
말이 사기 진작에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다.  
  "포브스 씨, 작은 축하연을 열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가장 좋은 17 년산 위스키와 잔을 준
비하세요. 우리 증류소 식구가 전부 몇 명이나 되지요?"  
  "청소부까지 합해서 32 명입니다."  
  포브스는 내키지 않아했다.  
  "그리고 회계사가 와 있습니다."  
  "그에게 동석해 달라고 하고, 34개의 잔을 준비하세요."  
그가 불가에서 몸을 녹이고 있을 때 첫 번째 무리가  쭈빗쭈빗 하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
는 고개만 끄덕여 보이고 침묵을 지켰다 술잔이 채워지고  사람들에게 돌려졌다. 그때 그가 
잔을 높이 들었다.   
  "하이랜드에서 가장 좋은 위스키를 위하여! 그리고 여러분 모두의 안녕을 기원합니다."  
  그들은 로버트를, 그들 모두를  파멸로 이끌어 갈 멋모르는  도령쯤으로 생각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로버트는 아버지가 '셀비'라는 영국인 양조 그룹에 위스키를 팔지 못하도록 했다. 
계모 로다는 수년 전에 아버지를 설득하여 '셀비'와 거래를  함으로써 쉬운 길을 택했다. 전 
생산품을 그들에게 공급함으로써 로우랜드의 저질 위스키와 혼합이 가능하게 도운 꼴이  되
었다. 이는 가문의 명성에 먹칠하는  결과가 되었고, 그 책임을 던컨형에게  전가시키기까지 
했다.  아버지가 지속적인 심장 문제로 사업을 등한시하는 동안  증류소 경영은 자리멸렬해
졌다. 로버트는 이곳으로 돌아와 모든 책임을 걸머졌고 셀비 그룹과의 거래를 끊었다.  지금 
글렌티란 증류소는 은행 빚으로 간신히 운영되고 그 시한에 쫒겼다. 직원들은 모두 이 사정
을 알고 분개했다. 다들 로버트가 무모하게 그들의 생존권을 놓고 도박을 걸었다고 느꼈다.  
  "여러분,"  
  그가 말을 시작했다.  
  "소중한 우리의 위스키를 장악하려는  영국인과 전쟁을 치른게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선조들은 우리를 자랑스러워 할 것입니다. 중세에 첫 글렌티란  스카치 위스키를 만들어 낸 
이들이 그분들이셨고, 1483년 이안 맥라렌이 처음으로 그 강한  돗수와 월등한 품질에 대한 
글을 남기셨습니다. 1644년 우리는 영국인의 세금을 피하기 위해 위스키를 지하에 감췄습니
다 그 옛날 저장실이 바로 발 밑에 있습니다. 1707년 또 영국이 부과한 높은 주류세에 맞서 
다시 한번 지하 저장실을 이용했습니다 그 후에도 국회가  불합리하게 주류세를 높였을 때, 
위스키를 저장실에 숨겨놓고 영국인에게 저항했습니다. 이러한  항거에는 가혹한 처벌이 뒤
따랐지만 영국인들은 우리 모두를 상대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스카치 위스키의 원조가 이곳
임을 인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일차 세계대전, 미국의 금주법, 식량 부족 등으로 위
스키 생산을 제한했던 이차 대전의 시련을 겪었지만, 그 어떤 것도 강인한 스코틀랜드 인의 
기를 꺾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60년대에 하이랜드에 번영이 찾아왔습니다. 그 번영은 
우리가 쟁취한 것이었기에 그것을 누릴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수세기에 걸친 
노동의 결실에 대한 보답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위스키는 전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술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영국인은 그것을 차지하고 싶어서 많은 스코틀랜드  인의 증류소를 사
들였습니다.  우리 공장의 경우, 경영 부실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영국인 측
은 투자했던 대부의 상환을 요구하는 동시에 성숙한 위스키 제품 구입을 거절함으로써 증류
소 경영권 이전을 요구했습니다. 이제  제가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우리가 항복해야만  합니
까? 저는 이 질문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대답했습니다. 고맙지만  사양하겠
노라고요. 가서 다른 햇병아리들이나 찾아보라고 말입니다. 이  곳은 우리의 터전입니다. 우
리는 때를 기다리고 더 많은 희생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 빌어먹을 싸구려 양조업자들에
게 최고의 위스키 제조는, 돈이나  증류소 또는 토탄 성분이 많이  함유된 소택지와 순수한 
광천수 이상임을 보여줄 것입니다. 저는 진짜 훌륭한 스카치  위스키는 그것을 만드는 사람
에게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여기에 있는 우리들의 손에 말입니다."  
그가 말하는 동안 포브스가 두 번째 잔을 채웠다.  
  "맞아, 그건 그래." 
  그의 귀에 방안의 웅성거림이 들려 왔다.  
  "우리는 승리를 쟁취할 때까지 버틸 재정원이 있습니다.  그 점을 여러분께 약속드리겠습
니다. 이제 여러분의 지지를 기대하는 바입니다."  
  그들은 그의 등을 두들겼고 입을 모아 그가 이안 맥라렌의 진정한 자손임을 선언했다. 그
리고 감격에 겨워 노래를 합창했다. 술통이 빌 때까지 건배를 한 다음에야 그들은 아까보다 
훨씬 행복한 표정으로 일터로 돌아갔다.  
  "연설을 아주 잘 하시더군요."  
  회계사 바트 쇼가 둘만 있는 자리에서 말했다. 쇼는 30대 중반이었고,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만큼 철두철미하고 야망이 높았다. 짧은 갈색 머리와 불그스레한 혈색의 황소 같은 외
모를 지녔지만 그의 영리한 눈에 어김없는 사업적인 통찰력이 드러났다.  
  "문학을 천직으로 삼으려고 했다면서요?"  
  로버트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었다고 해두지요."  
  지나간 일에 대한 대화는 여전히 고통스러웠다. 왜냐하면 지나간 일에는 마조리도 포함되
었기 때문이다. 그는 참을 수 없을 만큼 그녀가 보고 싶었다.  
    
  "이제 웅변은 끝났으니 실제적인 문제로 돌아갑시다. 돈 얘기입니다!"  
  바트는 스코틀랜드 억양으로 우울하게 말했다.  
  "당신과 부친을 위하여 제가 은행 담보물을 설정해 왔습니다. 가문 소유의 그림과 가보들, 
희귀본 고서와 여러 대의 차, 하이랜드 성과 증류소, 모든 부동산들이 해당됩니다. 단,  농장
과 두채의 저택은 신탁에 묶여 있기 때문에 손을 댈 수 없습니다.  
  "당신은 처해진 상황을 잘 알고 계시므로 장황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넌지시 운을 떼
려고 했지만 아까 연설을 통해  당신이 매우 영리한 청년임을 깨달았어요.  이 서류들을 좀 
검토해 보십시다."  
  두 채의 저택이라! 로버트는 조용히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키이스의 현대적인 주택을 까
맣게 잊고 있었다.  
  "키이스의 집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가 물었다.  
  "비어 있습니다. 당신 부친께서 하이랜드에 오실 때마다 그곳에 머무르셨습니다.  한 이웃
이 그 곳을 돌보고 있습니다."  
  바트가 서류 가방을 뒤지는 동안 로버트의 생각은 마조리에게  돌아갔다. 그가 집에 돌아
온 이후에도 그녀는 좀처럼 로버트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몹시 보고 싶었
다. 싶대 시절의 로맨스로 생각했던 마조리와의 사랑은 깊은 사랑으로 판명되었다.  그는 그
녀를 자식들의 어머니로 원했다.  최근에 그는 가정을 꾸리는  문제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오래된 저택은 텅 비었고, 아버지는 서서히 죽어 가고 있었다. 그에게는 의지할 가족이 필요
했다. 계모가 티란 영지에서 물러나려면 몇 년이 걸릴 테니, 그 때쯤 마조리는 안주인이  될 
능력을 갖추게 되리라. 그가 최근에 그녀에게 소식을 전하지 않은 이유는 거짓 약속을 하고 
싶지 않았고 그에게도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바트가  그 앞에 서류
를 내밀었을 때에야 로버트는 현실로 돌아왔다.  
  "여기에 서명하세요...... 그리고 여기에도...... 또 여기에도...... "  
  끝이 없었다.  
  "저당에서 풀려날 날이 올 것 같습니까?" 
  그가 바트에게 물었다.  
  "저는 당신을 굳게 믿고 있어요. 그리고 그람피안 은행에도 똑같이 말해 줬습니다. 참, 가
기 전에 마지막으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당신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는 이유로 마님께 원
성을 듣겠지만, 그래도 드려야겠습니다. 작년 12월 16일 자로 5천 파운드의 수표가 회사  잔
고에서 빠져나갔습니다. 처음에는 마님의 개인 지출로 상정했습니다만, 마님께선 당신을  위
해 쓴 돈이라고 주자하시더군요. 그에 대해 아시는 바가 있습니까?"   
  "아니오, 하지만 곧 알아보지요." 
  "빠른 시일 내로 연락해 주세요."  
  "내일 아침에 그곳에 다녀오겠어요."  
  아버지가 재혼한 이래 그는 영지를 '집'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로버트는 서재에 서서 정원을 내다보았다.  지금은 초라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저 정원도 
한때 향기로운 꽃으로 만발했던 때가 있었지. 그는 기분이 묘했다. 그는 어느덧 시간을 거슬
러 올라가 예전에 즐거움과 훈훈함으로 가득했던 이 방에 다시 서 있었다. 그의 스코틀랜드 
정신은 로다가 아버지와 결혼한지 2주일만에  저택에서 편안한 가구들을 전부 치워  버리고 
재 단장했던 실내 장식에 반발했다. 이제 그들은 거친 스코틀랜드의 성에 어울리지 않는 벨
벳, 긴 의자와 술 달린 쿠션, 섬세한 도자기에 싸여  살았다.  그는 오랫동안 마음을 괴롭혀 
왔던 그 생생한 장면을 되살렸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걸쳐진 사다리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계신 어머니, 사다리가 기우뚱하고..... 떨어지는 어머니를 막으려던 그의 힘없는 
노력, 너무 늦게 도착한 구급차의 웽웽거리던 소리, 아버지가 여섯 달 동안 집을 비운  동안 
안살림을 도맡아 했던 붉은 혈색의 가정부. 그리고 아버지는  영국인 계모를 데리고 돌아왔
고, 로다는 조직적이고 야만적으로 유령이된 라이벌의 흔적을 모두 지워 버렸다. 그리고  이 
방에서 그 역시 같은 꼴을 당했다. 아버지의 말을 빌자면 '계모에게 용서할 수 없는  무례한 
행동을 한'이유로 그는 도버대학으로 추방당했던 것이다. 방문이 열리고 로다가 안으로 들어
왔다. 그녀는 하이힐 가죽부츠와 점잖은 트위드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녀가 가장 싫어해 마
지않는 복장이었지만 현지 부인들을 접대하려면 별 수 없었다.  
  "로버트," 
  그녀는 그를 염증나게 하는 그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  생활이 그녀를 늘게 만
들었구나. 그는 덤덤하게 생각했다. 그녀는 기대하고 찾던 것을 아버지의 품과 이  가정에서 
발견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어떠세요?"  
  "그저 그러시다. 네가 가서 직접 만나 뵙지 그러니?"  
  "곧 그럴 겁니다."  
  그녀는 항상 자신만만했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허둥거리며 담배를 꺼냈고  불을 붙이는 
모양새가 마치 온 생명이 그것에 달린 마약 중독자를 연상시켰다.   로버트는 몸을 돌려 프
렌치 창문을 열었다.  
  "그 나쁜 버릇이 당신을 죽일 겁니다."  
  그는 처음으로 그녀의 머리 뿌리가 하얗게 샌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점점 몸 매우새가 
허술해졌고 한 때 암갈색 머리칼을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새까맣게 염색했다. 이제 트위드
를 걸친 모습은 왜 그녀가  화려한 색상의 옷만 선호했는지를 대변해  주었다. 그녀는 늙고 
초라해 보였고 그 옷은 진홍색 손톱과 입술과 현격한 대비를 이뤘다. 항상 빈틈없던 눈밑에 
물기가 살짝 고여 있었다.  전에 없던 새로운 변화로군. 그는 생각했다. 그녀는 심술궂은 표
정으로 그의 경멸에 맞섰다.  
  "아직 공장을 그만둔 사람은 없니?"  
  그녀가 난데없이 물었다. 그녀는 그의 장기  계획에 반대해 왔다. 그 어떤 것보다  그녀의 
영향력이 이 위기를 불러 들였음을 로버트는 알고 있었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모호
한 미소를 지었다.  
  "네, 없습니다. 제가 뵙자고 한 이유는 사소한 돈  문제 때문입니다. 5천 파운드의 수표가 
제 허락도 없이 회사 잔고에서 결재 되었어요. 당연히 그 용도를 알고 싶은데요."  
  "어디 보자,"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오른쪽 눈가를 톡톡 치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러다가 어떤 결론
을 내린 모양이었다. 
  "네가 꼭 알아야 겠다면 어쩔 수 없지. 난 그  도버 계집의 입을 막고 너로부터 떼내는데 
그 돈을 썼다."  
  그는 충격과 혐오감을 감추려고 노력했다.  
  "마조리에게? 언제 그녀를 만나셨어요?"  
  교활한 즐거움이 그녀의 눈빛에 드러났고 로버트는 감정을 드러낸 자신을 저주했다.  
  "작년 연말이었지, 아마?"  
  그녀는 책상에서 다이어리를 뒤졌다.  로버트는  주머니에서 수표를 꺼내 책상에 내놨다. 
그는 증오와 공포를 감추려고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수표 발행일은 12월 16일입니다. 그러니 요점만 말하세요."  
  "그녀는 임신한 티가 역력했어. 넉달 쯤 된 것 같더라. 그녀는 아기를 입양시킬 수속을 다 
끝냈다고 말했어. 사실상 아이를 팔아 넘긴 거야. 그 방법이 꽤 유행한다며? 그녀는 널 협박
하려고 여기에 왔었어. 1천파운드를 내놓지 않으면 너에게  유혹당한 후 버림받았다는 사연
을 언론에 공개하겠다더라."  
  그녀는 기침 때문에 말을 끊었다. 저런 기침이 꽤 오래되었다고 그는 상기했다.  
  "아기를 이미 처리했으니 양육을 요구할 수 없었겠지. 하지만 스캔들을 일으켜서 우리 모
두를 파멸시키겠다고 했어. 나는 네 아버지가 격노하실 것이 두려워 5천파운드로 그녀의 협
박을 막았다. 그 다음에 그녀의 소식을 들은 바 없다."  
  "당신과 상관없는 일이었는데...... 난 내 자식에 대한 결정을 내릴 권리가 있기  때문에 그
녀가 날 찾아왔던 게 분명해요."  
  로버트는 현재 심정보다 훨씬 침착하게 말을 이끌었다.  
  "왜 그녀가 당신을 만나고 싶어했겠습니까?"  
  "그녀는 건달같은 남자를 데리고 왔었어. 그 때문에 널 보고 싶지 않았던 게지."  
  "그녀가 날 만나게 해 달라고 하지 않던가요?"  
  "아니. "  
  "다시는 내 일에 끼어들지 마십시오."  
  그가 화를 내며 말했다.  
  "로버트, 넌 아직 어려. 너는  엄청난 실수를 한거야. 그녀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여자가 
아니다. 교활하고 무정하고 돈만 밝히는 계집이야. 게다가 네가 그녀와 결혼할 수도 없는 일
이었잖니? 그녀는 어울리지 않는 상대야."  
  "왜요?"  
  "그녀의 억양, 출신 배경, 교육, 옷 입는 법, 심지어 앉은 매무새까지도 말야."  
  "당신은 반세기가 뒤떨어지셨어요, 로다. 그 때문에 늙는 겁니다."  
그는 그녀가 움찔하는 모습을 보고 덧붙였다. 
  "그 켸켸묵고 어리석은 계급 감정은 이미 사라졌어요."  
  "그럼 이건 어떠냐? 그녀는 너에게 말 한마디 없이 네 자식을 팔아치운 다음에 나에게 협
박을 했어. 그런 여자가 네 자식의 어머니 감이란 말이니?" 
  그가 사랑했던 그 소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그녀가 정말 로다의 묘사대로 잔인하고 
탐욕스런 여자일까? 마조리가 그들의 아이를 팔았다는 생각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로
다의 심술궂고 교활한 미소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기에 그는 몸을 돌려 방에서 나갔다. 밖
으로 나온 그는 다음에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며 정처없이 걸었다. 그는 로다를 믿지  않았다. 
그래서 따로 그 진상을 확인하기로 결심했다.  세인트 메리 수녀원의 원장은 그를 반시간이
나 기다리게 만들었다. 로버트는 외풍이 심한 복도에 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원장 수녀는 변
호사와 의논중인 눈치였다. 벌써 12월 중순이었다. 로버트가 마조리의 임신 소식을 안지 2주
일이나 지났고, 그 이후 바트가 조사를  해본 결과 마조리의 여아가 5월  15일 세인트 메리 
수녀원에서 태어났다는 출생 기록을 찾아냈다. 로버트가 첫 자식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그 
아이가 생후 일곱 달이 되었다는  사실뿐이었다. 아이는 마조리처럼 붉은 머리일까,  아니면 
그를 닮았을까? 그는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아이를 입양할 
길을 찾아내겠어. 마침내 그는 원장 수녀의 사무실로 안내되었다.  돔 모양의 천장과 흰 벽, 
스테인드 글래스 유리창으로 된 그 방은 금욕적이었지만 아늑했다.  원장 수녀는 빳빳한 속
치마가 부딫치는 소리와 짙은 파우더 냄새로 그를 맞아 들였다. 그녀의 얼굴은 약간 상기되
었고 테 없는 안경 뒤에서 푸른  눈이 반짝거렸다. 영리하고 만만치 않은 상대야.  로버트는 
단정했다. 
  "맥라렌 씨, 이렇게 오랫동안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녀는 아일랜드 억양이 묻어나는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은 법적 자문에게 확인을 해봤습니다.  당신이 이미 아시는 것과  같이 마조리 하디 
양의 아기는 여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두 달동안 탁아소에 있다가 입양되었어요."
  그녀는 고통스런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우리에게는 아기의 이름이나 입양 부모에 대한 정보를  발설한 자유가 없습니다. 유감입
니다만 당신은 그 아이에 대한  법적인 권리를 주장하실 수 없습니다.  또한 현행법에 따라 
그 아기를 찾지 못할 겁니다.  미안하지만 당신에게 그냥 이대로 떠나고  아이를 찾지 말아 
달라고 부탁드릴 수 밖에 없군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로버트는 망설였지만 결국 따라  일어나 그녀의 
손을 살짝 맞잡았다.
  "주님께서 당신에게 이 시련을 견딜 힘을 주시고, 현명한  결혼을 하셔서 이런 비극을 재
현하는 육욕적인 죄를 더 이상 범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안녕히 가세요, 맥라렌 씨."
  그것으로 끝이었다. 오랫동안 기다림 끝에 이렇게 짧은 면담을 하다니?
  "몇 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그는 말을 더듬었다.
  "미안합니다. 저는 더 이상 당신에게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녀는 또 다른 문으로 나갔다. 그래, 여기에 바보처럼 서 있을 이유가 없지. 그는 터벅터
벅 수녀원 정원으로 나와 신선한 공기를 가슴깊이 들이마셨다. 인적이 없는 곳에 이르자 그
는 정원 벤치에 앉아 빼앗긴 딸과 잃어버린 꿈을 애도했다. 그의 첫 아이가 어떤 이의 삶과 
요람을 채우고 있을까? 그 아이는 행복할까?  너무 비통한 나머지 구역질마저 치밀어 올랐
다. 그는 여전히 마조리를 사랑했지만, 그와 동시에 증오했다.  오래지 않아 그의 사랑은 완
전히 부식되어 버리리. 그는 그곳에 앉아 갑작스럽게 결단을 내렸다. 일류 경영인을  고용하
고 뉴욕으로 가서 향후 몇 년 동안 위스키 영업망을 구축하자. 여기에 그를 잡아둘 것은 아
무것도 없어. 낮은 부드럽게 도망가고 슬픔이 밤과 함께 찾아왔다. 뭔가 아름다운 것이 영원
히 파괴되었다.

  최고의 크리스마스였다. 트리는 천장에 닿았고, 하늘에서 하강한 듯한 천사가 그 끝에  달
려있었다. 장식 전구에 불이 들어오고  화려한 종이가 반짝거리자 라나는  경이로움에 눈을 
빛내며 주변을 기어다녔다. 이제 여덟달이 꽉찬 라나는 일어나서 뒤뚱거리는 연습으로 날을 
보냈다. 그녀는 불에 끌리는 나방처럼 트리 밑에 있는 선물 꾸러미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그
것은 대부분 그녀의 것이었다.  라나가 하나씩 포장지를 뜯기로  작정했으므로 그들은 선물
을 그녀의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치웠다. 하지만 이제 라나는 몸을 늘여  트려 아랫 가지를 
잡아뜯는 법을 배웠다. 그 다음에 그  고사리같은 손에 예쁜 종이 장식이 찢어지자,  그녀는 
명랑하게 웃으며 환희로 눈을 빛냈다.
  "쟤가 또 저러는 구나."
  엄마가 말했다.
  "다른 것도 망쳐놓고 있어. 쟤는 억척꾼이 될거다."   
  엄마는 비 정상적으로 들떠 있었다. 라나가 장난감을 보는 순간을 기다릴 수 없는 모양이
었다. 이제 죠만 오면 되는데.
 엄마는 이틀전에 미리 받은 냉장고를 보고 황홀경에 빠졌지만 저기에 다른 선물들도 준비
되었다. 쵸코렛과 향수와 새 옷등.
 그런데 죠가 왜 이렇게 늦지?  마조리는 그의 집에 전화를  걸었다. 마침내 누군가가 전화
를 받았다. 
  "죠, 당신이예요? 무슨 말 좀 해 보세요. 왜 이렇게 안 오세요? 당신을 기다리느라고 저녁
이 늦어지고 있어요."
  "난 가지 않겠소."
  그는 무뚝뚝하고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왜요? 약속했잖아요? 다들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엄마는  당신을 위해서 요리를 하고 
선물까지 장만하셨어요. 우리 모두 실망할 거예요. 제발, 죠, 빨리 오세요."
  "난 당신네 크리스마스의 불청객이 되고 싶지 않소."
  "우리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는 만인의 것이에요, 하지만  우리 집에서는 특별히 당신의 
크리스마스라구요. 당신 덕분에 오늘이 있는 거예요.죠."
  "난 한번도 영국식 크리스마스를 축하해 본적이 없소. 게다가 난 유태인이고 사실상 불교 
신자요."
  "제발, 죠, 와주세요. 빨리요."
  "하지만 난 채식주의 자인걸."
  "당신은 못말리는 괴짜군요. 아무래도 좋아요, 어서 오세요."
  "내가 거절할 수 없는 초대군."
  마조리는 그의 목소리에 담긴 웃음기를 들었다. 이제 된거야.
           
  그녀는 수화기를 놓고 위층으로 올라가 머리를 다듬고 향수를  더 뿌렸다. 몸매의 곡선이 
들어나는 검정색 모직 바지와 눈 색깔과  잘 어울리는 에메랄드 초록색 캐쉬미어  스웨터를 
입은 터였다. 최고의 모습에 자못 만족한 그녀는 밖에서 들리는  차 소리에 계단을 뛰어 내
려갔다. 잠시 후 그가 가슴 한아름 선물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어떻게 오지 않을 생각을 다 할 수 있수? 자네는 한 가족이나 마찮가지야, 죠."
  "저기, 미처 몰랐습니다."
  라나에 대한 그의 애정은 남달랐다. 그는 아이를 번쩍 들어올려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평
소처럼 프랑스어로 말을 걸고 프랑스  노래를 부르며 아이를 안고 왈츠를  췄다. 곧 그들은 
함께 마룻바닥에 앉아서 그녀의 선물을 개봉했다. 
 죠는 아빠의 꼬냑을 한 두잔 마시고 얼큰하게 취했다. 가끔 저 이는 너무 멋지단 말야.  짜
릿하게 색시하고 무모한 면이 있어. 마조리는 그에게 고개를  돌릴 때마다 자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그의 시선을 포착했다.  그녀는 저 감각적인 입술을  느끼고픈 불가항력적인 
충동을 느꼈다. 그에게 풍기는 섬뜩한 분위기는 지금도 여전했지만 포도주가 그녀의 용기를 
북돋았다. 죠가 우연히 미슬토우로 장식된 문가에 서자, 그녀는 목에 팔을 감고 까치발로 서
서 입술을 그의 것에 살짝 눌렀다.
  "메리 크리스마스, 죠."
  항상 그렇듯이 죠는 종잡을 수 없었다. 순식간에 그의 왼쪽  손이 그녀의 작은 등을 힘차
게 눌렀다. 그의 단단한 근육질의 몸이 느껴졌다. 그녀는  숨을 헐떡거렸다. 그가 이렇게 강
할 줄이야. 그의 눈이 그녀의 것을 잡고  놔주지 않았다.k 서로 코가 맞닿을 거리에서 보는 
그는 너무 짜릿한 흥분을 자아냈다.
 그가 그녀를 더 가깝게 끌어당기자, 애프터 세이브 향과 뒤섞인 남자만의 독특한 사향내를 
맡을 수 있었다. 그의 입술이 부드럽게 와 닿고 그의 혀가 그녀의 입술을 애무하는 순간 그
녀는 이와 같은 기분을 두 번 다시 맛볼 수 없으리란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녀의 몸에 불씨
가 당겨져 걷잡을 수 없는 기세로 번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순간 발자국 소리가 들려 왔고, 
그는 그녀를 놔주었다. 
    
   오후 세시에 그들은 브랜디 소스를 끼얹은 미스 파이를 먹고 폭죽을 터뜨린 다음 의무적
으로 우스꽝스런 종이 모자를 썼다. 마조리는 식탁 근처를 서성이며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높은 의자에 앉은 라나는 새 장난감을 보고 웃고 있었고, 아빠는 시를 읽고 있었으며,  엄마
는 꿈같은 표정으로 포도주를 홀짝거렸다. 그 때 죠가 폭탄 선언을 했다.
  "우리의 새로운 잡지를 위하여 건배합시다."
  그가 포도주 잔을 높이 들었다.  어머, 저이가 취했나 봐.
  "무슨 새로운 잡지요?"
  마조리는 웃으면서 물었다.
  "우리의 새로운 경영 잡지. 난 좋은 이름도 생각해 뒀소. '리더쉽' 어때 감이 오지 않소?"
  마조리는 무릎에서 힘이 빠져나감을 느꼈다. 그녀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난 새로운 잡지 따윈 원치 않아요.  지금 이 상태로 행복해요. 우리는 많은  이윤을 내고 
있는데, 왜 변화를 모색하는 거예요?"
  "사업은 정지된 상태로 멈춰 있지 못해, 마조리. 우리는 최상의 파도를 타고  있으니 그와 
함께 전진할 필요가 있소. 전국으로 진출해야 돼."
  "당신은 미쳤어요. 경영잡지를 원하는 지방 광고주는 한명도 없어요. 영국과  유럽 전역에 
쫙 깔리 게 그런 잡지들이라고요. 그런데 누가.....? 아 안돼요! 잊어 버려요!"
  공포감에 그녀의 입술이 마르고 즐거운 하루가 망쳐졌다.
  "게다가 난 라나의 곁을 떠날 수 없다고요."
  "우리 광고지는 조만간 심각한 위기에 봉착할 거야."
  "그 많은 광고주들은 다 어쩌고요."
  "마조리, 내 말을 잘 들어요. 우리는 광고지를 무료로 배포하고 있소. 하지만 지방 신문사
는 거대한 유료 판매망을 구축했기 때문에 벌레 한 마리를 죽이는 것처럼 쉽게 우리의 숨통
을 조를 수 있소. 그것도 한 두달안에. 그들은 우리의 흑자 액수를 알아내는 즉시 그렇게 할
거요."
  그녀는 두려움으로 질렸다. 이 모든 것이 그녀의 수수료 덕분이었다. 그런데 전부를  읽게 
된다고? 거의 공포에 질렸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죠는 그녀의 불안에 찬 반응을 즐기는 
거야.
  "그렇다면 난 더 열심히 일해서 더 많은 계약을 따낼 거예요."
  "여자들은 항상 그렇게 시야가 좁은가?"
  "두 사람은 항상 개와 고양이처럼 으르렁거리는구나. 서로  단 5분도 견디지 못하고 말싸
움을 해대다니, 원. 자네는 내 딸을 어떻게 생각하나, 죠? 뭔가 있을 법한데."
  "엄마,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할 수 있어요? 우리는 사업상 동업자예요."
  마조리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발갛게 물들었다.  생전 처음으로 죠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질문은 그가 스스로에게 자주 해 왔던 것이었다. 오늘  그들의 짧은 육체적 접촉은 그를 
충격에 빠뜨리고 연약한 느낌을 안겨 줬다. 그는 마조리의  현실적인 인생관과 용기와 유머 
감각을 사랑했다. 그녀의 육체적인 매력에도 끌렸 그는 아름다움에 집착력이 강하므로 당연
히 그녀를 눈요기로 즐겼다. 가끔 외로운 밤에 그녀에 대한 정욕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하지
만 죠는 사랑과 정욕을 착각해 본 적이 없었고, 그런  오도된 감정으로 결혼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마조리에게는 그가 질색하는 부분이 있었다. 예를 들어,  사업에 대한 단기간 적인 
안목이나 라나의 아버지에 대한 강박관념,  변화에 대한 거부, 영역 밖의 문제에 대해서 전
혀 관심을 갖지 않는 무심함 등이었다. 결론적으로 그녀는 똑똑한 시골 처녀인 것이다.
  "하디 부인, 저는 여동생을 갖고 싶었는데 마조리가 그 자리를 채워 주었습니다."
  그는 존재하지도 않는 피붙이를 만들어 내서 거짓말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로운 잡지에 대해 생각해 봐요, 마조리. 이제 가보겠습니다. 하디부인. 맛있는 크리스마
스 저녁을 대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리즈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죠를 배웅했다.

  마조리는 죠의 전국 잡지에 대한 야망에 충격을 받았다. 또한 그의 우울한 전망에 두렵기
도 했다. 오한을 느낀 그녀는 벽난로 옆에 앉았다. 몇분 후 바바라가 도착했을 때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조리는 트리 아래의 선물 꾸러미 속에서 바바라의 것을 찾으며 크리스마스 기분을 되찾
으려고 노력했다.
  "죠가 떠나는 것을 봤어. 그가 여기에 왔었다니, 정말 놀랍구나."
  바바라는 죠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너무 영리하다는 이유때문이었지만 실상은 죠가 그
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는 너에게 아무 선물도 주지 않았을걸?"
  "응. 하지만 라나에게 선물을 12개나 줬어."
  "그래도 내 생각에는 ......?"
  "난 아직 로버트에게 마음이 있고 죠도 그걸 알아."
  "그렇다면 이제 로버트에 대해 뭔가를 할 때야. 그에게  찾아 가든가 아니면 완전히 잊어
버려."
  "그래, 알았어 생각좀 해 보자  로버트는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  이후 성장했을 테니 넌 
그에게 연락을 해야 해. 지금 전화를 걸면 어떻겠니? 즐거운 성탄을 빌고 데이트 약속을 하
란 말야. 네가 앞으로 10년 동안 여기에 앉아서 인생을 낭비하는 꼴이 눈에보인다. 마지, 어
서 내 말대로 해. 그의 전화번호가 뭐니? 그는 집에 있을 거야. 내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서 
너에게 바꿔줄게."
  잠시 후 마조리는 로버트의 부친에게, 아들의 약혼설은 사실  무근이고 뉴욕에 마케팅 회
사를 세웠으며 영원히 그쪽에서 지낼 계획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그녀
는 울음을 터뜨렸다. 
  "왜 그가 편지를 쓰지 않았을까? 왜 나에게 말하지 않았지?  아무 소식도 없이 떠날수가! 
아, 바바라 이일로 내 남성관이 굳어졌어.  앞으로 난 절대로 남자를 사랑하지 않고  이용만 
할거야."
   마조리는 웃으려고 했지만 웃음은커녕 눈물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널 차버린 남자를 위해 눈물 흘릴 가치가 없어."
   "이걸 잊어 버렸소. 방해해서 미안해요."
   그들은 복도에서 들려오는 퉁명스런 소리에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죠가 창피하고 당황
한 표정으로 거기에 서 있었다. 그는 작은 상자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얼른 자리를 피했
다.
 마조리는 별 관심 없이 선물을 풀었다. 비싸 보이는 감청색의 긴 상자를 여는 순간 그녀의 
숨이 막혔다. 거기에는 단순한 금줄에 에메랄드와 사파이어가 박힌  팔찌가 얌전히 누워 있
었다.  
  "하느님 맙소사."  
  아빠가 방으로 들어오다 선물을 보고 중얼거렸다.  바바라는 질문 보따리를 풀었다. 두 사
람이 언약을 했니? 함께 춤을 췄어? 관계를 가진 거야?  
  "처음 죠를 만났을 때,"  
  마조리는 서투르게 설명했다.   
  "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어. 나중에 그가 라나의  존재를 발견했을 때 로브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어. 우리는 사업상 동업자로 시작했고 그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그리고  영원
히 그럴 거야."  
  특히 그의 상처받은 눈빛을 본 지금.  
           
  마조리는 불행에 젖어 1월을 보냈다.  그녀는 항상 로버트가 자기의 것이 되는 날을 기다
려 왔지만 이제 희망을 완전히 빼앗겼다.  비행기로 뉴욕은 짧은 거리였지만 그가 그녀에게 
작별 인사도 남기지 않고 떠난 이 마당에 마치 코앞에서  문이 꽝 닫힌 기분이었다. 게다가 
죠마저 쌀쌀맞고 냉정하게 구러 그녀를 더 섭섭하게 만들었다.   월말에 죠의 잡지 '리더십' 
견본이 그녀의 책상 위에 올라 왔다. 아직 쓰여지지 않은  샘플 기사들과 현재 시판중인 타
자기 책상 계산기 및 구술용 레코더에 대한 샘플 광고가 보기 좋게 편집되어 있었다.  사무
기기라면 지긋지긋해! 마조리는 질색을 하며 견본을  훑어보았다. 죠가 그녀의 반대를 무릅
쓰고 이 계획을 추진해 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제 그와 담판을 내야겠어.  그녀
는 쟁반에 두 잔의 커피와 잡지 견본을 받쳐 가지고 그의 사무실로 갔다.
  "그거 조심해서 다뤄요."  
  그가 말했다.  
  "죠, 멋진 잡지예요. 내가 생각해 봤는데, 당신 말이 옳아요. 언젠가 회사를 확장하긴 해야 
해요. 그런데 패션 잡지가 더 좋겠어요. 아무래도 그 쪽이 내 적성에 더 잘 맞거든요."  
"흥, 난 포르쉐를 좋아하오.  내 적성에 딱 들어맞는 자동차이지만 돈이 없다는 게 문제지."  
  "난 사무기기를 못 팔 것 같아요. 자신 없어요. 최소한 지금 당장은요."  
  "당신은 막다른 골목에 몰려야만 싸우더군. 뭐, 그때가 조만간 올 거요."  
  짧은 대화 후에 죠는 더욱 소원해졌다.  그는 출판업에 관심을 잃은 것처럼 하루 종일 더
러운 벽돌 조각이나 주물러 댔다.  그러나 이틀에 한번씩 빼먹지  않고 라나에게 선물을 사
다 줬다.  그 와중에서도 그들의 광고지 사업은 순조롭게 굴러갔다.  마조리는 돈이란 것이 
로버트가 남긴 상처에 아무 효과가 없음을 깨달았다.  밤마다 잠을 못 이루고 괴로워했지만 
사랑하는 라나의 존재로 그 고비를 넘겼다.  그리고 돈은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지 못했지만, 
그녀의 수입으로 가족이 배불리 먹고 편안히 지낸다는 사실은 뿌듯한 만족감을 주었다.  마
조리는 가족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샀다.  식료품 저장실과 냉장고는 그 용량이 
허용하는 만큼 꽉 들어찼고 새 옷은 새로운  문제를 야기했다.  장롱이 너무 작았다.  격주 
발행일에 맞추어 광고 계약을 따야 하는 시간 제한에 쫓겨 마조리는 일에 전념했다.  
    
  그녀의 안전한 세계에 돌을 던진 사람은 약제사 도건 씨였다.   그가 새 광고를 게재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마조리는 쏜살같이 달려갔다.  평소에는 광고비 지출에 속 쓰려 하던 그가 
오늘따라 눈을 반짝거렸다.  저 눈빛의  정체가 뭘까? 동정? 즐거움?  이상도 해라! 그녀는 
속으로 궁리하며 그의 다음 6개월 계약에 서명을 받았다.   
  "저기 있잖소, 마조리."  
  그가 말을 꺼냈다.  
  "허벅지가 훤히 드런난 미니 스커트를 입고 금발 머리를 허리까지 기른 웬 아가씨가 지방 
신문사에서 나왔었어. 그쪽이 당신과 경쟁을 할 모양이던데. 당신 것과 똑같은 광고지를  매
주 발행한대. 당연히 유료로 배포하고 크기도 훨씬 크다던데. 하지만 가격을 깍아먹는  식의 
경쟁이 문제야. 그쪽의 목표는 당신을 이 업계에서 몰아내는 것 같아. 아무래도 내가 당신에
게 귀뜀을 해주는 게 좋겠더라구."  
  그녀는 공포에 질려 헐떡거리며 사무실로 돌아왔다.  2월말의 춥고 눈 내리는 날이었지만 
온몸이 후끈거렸다.  보이지 않는 손이 그녀의 목을 조르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곧 망할 거야."  
  그녀는 중얼거리며 죠를 찾으로 다녔다.  한참 헤맨 끝에야 조사실에서 그를 발견했다. 언
제나처럼 그는 찐득거리는 흰 액체를 벽돌 단면에 바르고 있었다.   단단히 심취한 게 분명
했다.  고개를 들어올린 그는 차가운 미소를 띠고 그녀에게 도건 씨의 말을 전해 들었다. 
  "그래서 이제 당신은 어떻게 할 거요?"  
  그는 '내가 전에 그랬잖소' 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마조리는 그런 그가 고마웠다.  
  "우리는 이사회를 열어야 해요."  
  그럽시다.  듣고 있으니 어서 말해 봐요.  
  "그 지저분한 벽돌 좀 치워요." 
  "당시이 내 출판 아이디어를 좋아하지 않는 지금 이게 내 미래요."  
  "아이구 맙소사!"  
  "마조리, 이제 벼랑에 몰렸으니, 내 책상 오른쪽 윗 서랍에서 유망한 광고주  명단을 갖고 
가서 계약이나 따오는 게 어떻소?  성공한다면, 당신이 잘 나가리란 예시로 받아들여요."  
  일이 꼬여도 단단히 꼬였구나. 왜 그가 이렇게 차갑고 심드렁하게  나올까? 그리고 왜 나
는이 문제를 오랫동안 외면했던 걸까?  
  "죠, 내가 꼭 해야 할 말이 있어요. 크리스마스 때 당신이 내 선물을 주려고  도로 왔다가 
내가 울고 있던 장면을 봤잖아요, 기억나지요? 저기, 나는 항상 로버트와 나의 관계가 잘 풀
리기를 바래 왔어요. 하지만 다 끝났어요. 그는 ..... 뉴욕으로 떠났어요. 그곳에서 영원히  살 
거래요. 그러면서 나에게 작별 인사도 하지 않았으니, 우리 우정은 막이 내린 셈이에요."  
그녀는 그 날 죠의 표정을 상기하며 얼굴을 붉혔다.  
  "라나는?"  
  "난 임신 사실을 알고 그에게 편지를 써서 와 달라고 간청했어요. 그가 우리를 원치 않는
다면 내 아기를 입양하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는 분명히 우리를 원치 않았어요."  
  "그렇다면 그는 구제 불능의 바보야. 그가 없는 편이 당신에게 훨씬 났소."  
  이제 난 자유예요, 죠. 그게 당신에게 아무 의미도 없나요? 그 미슬토우를 기억하세요? 그
녀는 그 침묵의 말이 그에게 들리기를 염원했다.   하지만 그가 이미 다 알고 있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람? 그녀는 한 손을 그의 어깨에 가볍게 얹고 그의 힘을 느꼈다.  그의 등은 강
철판 같았다. 그리고 그녀의 손가락이 위쪽으로 이동해 숱  많은 머리카락 사이를 장난스럽
게파고들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그의 광대뼈에 키스하고 입술을 그의 귀까지 미끄러뜨렸
다.  그는 고개를 천천히 들고 방어적인 표정으로 그녀는 응시했다.  
  "당신 옷이 더러워질 거요. 저리 가요! 그  명단을 가져가서 새 일을 시작하는 편이 좋을 
거요. 당신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계약을  따낼 수 있소. 어찌 되었건  나야 편하지. 내 
발명품이 있으니까. 참, 그리고 '핸디 홈 가이드' 지를  지방 신문사에 매각할 수도 있소. 내
가 당신이라면 그 방법을 곰곰이 생각해볼 거요."  
  "내가 제대로 들은 건가요? 당신이 이 더러운 벽돌에 집착하는 이유가 뭐예요?"  
  오랜 침묵이 흐르자 그녀가 덧붙였다.  
  "우리는 동업자가 아니었던가요?" 
  "그랬었지만 내가 잘못한 것 같소."  
  이제 그녀는 화가 나서 싸움을 걸었지만 마음에 생채기가 생겼다.  
  "당신은 내가 그 잡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샐쭉해 있군요."  
  "그 반대야. 난 도와주려는 것뿐이오. 다른 관심거리만으로 바빠서 정신을 못차린다구."  
  "출판업에서 손을 떼겠다는 거예요? 새로운 장난감이 생겼다 이거군요. 후회나 변명도 없
이 낡은 것을 내팽개치고 새 것에 눈을 돌리셨다?"  
  "요약하자면 그래."  
  "내가 사업을 하고 싶지 않다면?"   
  "그 선택은 전적으로 당신의 몫이오. 난 항상 당신 곁에 있을 거요."  
  "그럼, 우리 사이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거죠?"  
  그녀는 반쯤 울먹이며 말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한다면. 하지만 난 당신 결정에 따르지 않을 거요."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녀는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지만 그  고통을 연장할 생각이 없었
다.  
  "그렇다면 나 혼자 해 나가겠어요."  
  그녀는 집으로 가는 길에 자신의 실수를 하나씩 되짚었다.  바보같이 안저한 기반을 구축
했다고 상상하다니. 그리고 로버트에게 받은 상처를 회복할 때까지 죠가 언제까지고 출발선
에서 기다려 주리라 믿다니.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만 하는 걸까?  사업 그녀는 증오감을 느
꼈다. 남자들이 그 체계를 구축한 이유는 옛날의 칼싸움이나  개인의 행복에 위협을 가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지방 신문사가 떼돈을 번다는 사실이야  삼척동자도 다 알았다. 그런데도 
그녀의 작은 몫에 눈독을 들여?  죠는 그러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을까? 그의 
사고 방식이 그들과 비슷해서?  그점에 대해 죠는 이렇게 말했었다.  
  "당신이 호황을 누린다면, 다른 사람이 그것을 빼앗으려고 달려들 거요."  
  그녀는 그 뒤에 숨은 논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안정과 가족 부양과 함께 이세상
의 모든 가족도 넉넉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사업계는 그녀의 마음처럼 돌아가지 안았다. 
     
  엄마가 차를 준비했다. 오늘 밤  식단은 특별했다. 청어와 소시지,  집에서 만든 자두잼과 
오븐에서 갓 구워낸 빵. 아, 잘 먹었다. 그 순간 생활비가 머지않아 바닥나리란 생각이 떠올
랐고, 갑자기 속이 더부룩해졌다.  
  "인생은 주사위 놀이와 똑 같아요, 엄마."  
  그녀는 탄원하듯 고개를 들고 이해와 동의를 구했다.  
  "소처럼 열심히 일해서 염원했던 목표를 달성한 순간 인생은 혹독한 시련을  안겨 주잖아
요. 저 위에서 어떤 존재가 보고 있다가, 누가 좀 잘 나가고 행복하다 싶으면 그를 사정없이 
후려쳐서 진흙탕에 빠뜨리는 것 같아요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너무 공평치 못하게 말이
에요. 그리고 그런 일은 단 한번만 일어나는 게 아니에요.  가끔 인생은 주사위를 던지는 정
도의 의미밖에 안돼요. 정상에  도달하면 내리막길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조차 모르잖아요? 
미리 그것을 알았다면 기를 쓰고 정상으로 돌진하는 대신 시간을 들여 올라가는 과정을 즐
겼을 거예요.  갑자기 원점으로 곤두박질치고 남은 용기를 불러모아 긴 오르막길을 또 시작
하는 거예요 그리고 뭘 발견하는지 아세요? 한  발자국도 움직일 힘이 없다는 사실이에요."  
    "난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다."  
  엄마가 말했다. 
  "오늘은 좋은 저녁이잖니. 아빠와 나는  잠깐 선술집에 다녀올 생각인데  너는 집에 있을
래?"  
  "네. 항상 그렇잖아요."  
  "기분이 좋지 않은 모양이구나. 마조리.  이 점을 명심하렴. 네가 최악의 순간에 처했다고 
생각할 때, 인생은 해결책을 찾아 주는 습관이 있단다. 마술 모자에서 토끼가 나오는 것처럼
말야. 세상이 꼭 그렇게 어둡고 비참한 것은 아냐.  우리는 항상 행운이었잖니. 무슨 방법이 
있을 거야."  
  우리가 행운이었던 것은 내가 뼈빠지게 일했기 때문이에요. 마조리의 성질이  끓어올랐다. 
내가 엄마와 똑같았다면, 더 행복하겠지. 하지만 평생 가난에서  못 벗어날걸.  그녀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대신 온 인생이 마조리에게 달린 라나, 정신적인 충
격을 받고 굼뜨게 반응하는 불쌍한 아빠, 제대로 문제를 보지 못하는 엄마를 생각했다. 그들 
모두 인생의 희생자가 될까?  처음으로 저 하늘에도, 정부에도, 경찰서에도 정의를 주관하는 
절대적인 존재가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모든 사람을 공정하게  경기에 임하게 하는 심판
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쑥한 맞춤양복과 실크 셔츠를 걸친 모든 속물스런 남자들은 해적이
나 다름없다. 그들은 타인의 것 사업, 건강, 젊음, 성을 뭐든지 약탈하고 희생자를 가난에 찌
든 절망 속으로 밀어 넣는다.  아니, 그보다 더한 상황으로도. 하지만 그런다고 누가 상관하
니? 아무도 없다.  그녀가 그런 세상에 합류하여 그들처럼 약탈자가  될 수 있을까? 동정심
을 말려 죽이고 양심의 가책도 없이 승리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미안해하지 않고 적을 
파산으로 밀어 넣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면  지금 당장 포기하는 편이 좋아.  그래, 난 
할 수 있어. 그렇게 될 거야.  
  "빌어먹을, 그렇게 하겠어."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그리고 편히 잠들었다.
    
  새 개버딘 정장, 가죽 핸드백, 하이힐 덕분에 유능한 사회인이 된 듯 했던 마조리의  자신
감은 지방 신문사의 영업국장과 약속했던 장소에 도착한 순간 눈 녹듯 사라졌다. 어느덧 그
녀는 중년의 사업가들(언론인이 아닌)에게 둘러싸여 회의석상에 앉아 있었다. 귀족적인 코와 
군살 없는 배, 아르마니 정장과 구찌 애프터세이빙 로션 등  그들에게 일류가 아닌 것을 찾
기 힘들었다. 그녀는 회장, 비서실장,  변호사, 영업국장과 차례로 인사를 나눴다.   다들 할 
일이 없어서 쩔쩔 매나? 거래를 하는데 한사람으로 부족한가보지? 
  "하디 양....."  
  영업국장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길고 핏기 없는 얼굴이 엷게 핑크 빛으로 물드는 동안 
금테 안경 뒤에 숨은 그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하여 논의해 본 결과 '핸디 홈 가이드'가 ....."   
  그는 말을 끊고 빈정대는 웃음을 지었다.  
  "매입하고 싶을 만큼 쓸만한 가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사람들이 지금 농담하나? 이런 말은 전화로 얼마든지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녀는 주변
을 둘러보았다. 그들의 '남성'에, 지위에, 또박또박한 억양에, 그리고 자신감에 차  있는 태도
에 협박을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여보세요."  
  그녀는 자신의 무경험과 사투리에 얼굴을 찡그리며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은 우리와 싸우든가 매입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인쇄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출판 
비용이 몇 푼 들지 않아요. 당신네가 가격을 내리겠다면 우리도 똑같이 가격 인하 정책으로 
맞서겠어요. 끝판에는 여러분이 승리하겠지만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그 후에 요금을  정상
적인 수준으로 인상하려면 골치깨나 썩을테구요."  
  그녀는 미소 띤 얼굴로 그들을 하나 하나 돌아보며 그들의 생각을 쟀다.  
  "하지만 매입 쪽을 택하신다면, 우리 가격이 이 업계의  최고 수준임을 깨닫게 되실 겁니
다. 게다가 우리 광고지는 만인에게  유용하니, 괜한 가치 평가는  삼가주세요. 사태를 이런 
식으로 볼까요? 다윗과 골리앗 식의 전쟁은 여러분들께 그다지 이롭지 못할 겁니다. 일간지 
광고에도 영향을 미칠 걸요. 이만하면 후한 값을 부르셔야 할 명분이 섰겠지요?"  
그녀는 잔뜩 흥분했음을 자각하고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세련된 한 여성이 은제 주전자와 
찻잔이 담긴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아, 안돼! 마조리는 공포에 질렸다. 저 여자가 이쪽으로 
오고 있네! 나에게 차 대접을 맡기진 않겠지? 난 다도를 잘 모르는데. 살려줘요!  쟁반이 그
녀의 바로 옆에 놓여졌다. 그 여성은 방에서 나갔다.  마조리가 벌떡 일어났다.  
  "여러분은 하루 종일 할 일이 없으신 듯 하지만 저는 몇 개의 계약서에 서명을 받아야 합
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제 말을 잘 생각해 보시고 서면으로 알려 주세요. 명함을 놓
고 가겠어요."  
  그녀는 명함을 내려놓고 도망갔다.  뒤에 남은 남자들은 깜짝 놀라 입만 뻐끔거렸다.  
    
  "왜 꽁무니를 뺐지?"  
  죠가 화를 내며 다그쳤다.  
  "당신은 광고지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이점을 살려서  끝까지 버텼어야지. 지금쯤 수표가 
주머니 속에 있어야 했단 말이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나 있소? 그들은 제2의 매
입자가 나타나서 지기들과 경쟁을 하게 될까봐 두려워하고 있단 말이오."  
흥, 드디어 공동 사업에 대해 흥미를 보이시는군. 마조리와 지방 신문사의 접촉은 별 소득이 
없었지만 죠의 무관심을 뒤흔들어 놓은 것만은 확실했다. 그래도  그들의 생각은 동일 선상
에 있지 않았다. 
  "죠, 미안해요. 난 당신의 '리더십'에 대해서  열심히 생각해 봤지만 도무지 잘될  것 같지 
않아요."  
  "왜?"  
  "그 잡지는 너무 격이 높아요. 하지만 난 그렇지  않고 이번 모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
어요. 그런데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주제에 이 사투리로 무슨 말을 해요? 그 사람들이 얼
마나 귀족적인데요. 너무 굴욕적이어서 테이블  아래에 숨고 싶었단 말이에요. 용기가  점점 
줄어들었어요. 단 1초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도망나왔다구요. 난 협박당하는 기분
이었어요."  
  "하지만 왜?"  
  그는 정말 당황해 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붙어 있는  코만큼 당연한 말을 
왜 못 알아들을까?  그녀는 애써 설명했다.  
  "그들의 거드름빼는 억양, 고상한 말, 의상, 이세상의 주인인양 행세하는  태도 등등. 나까
지 소유한 것처럼 굴더라구요."  
  "그게 전부요? 그들의 억양이?"  
  "그리고 자신감이오."  
  "그 거드름빼는 억양이 그렇게  무섭다면 당신도 그렇게 되면  되잖소? 그리고 서둘러요. 
당신은 봄부터 세일즈를 시작해야만 해 제대로  된 옷을 입고, 제대로 된 억양으로  말하고, 
제대로 된 태도로 말이오. 모델 양성 학교에도 다녀요.  자신감이 붙을 거요. 회사가 비용을 
전담하지."  
  "정말이에요?"  
  "그렇소, 하지만 당신은 정말 웃겨. 대부분의 문제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의 머리속
에 존재하는 거요."  
  "당신은 가끔 말이 안 통해요. 아, 모르겠어요,  죠. 정말 모르겠어요. 하지만 한번 시도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뭐든 출판을 하려면 말이에요."  
    
  "이제 한 번만 더 말하면 벌써 열 번째야. 돼지가 진주 목걸이를 하는 꼴이야."  
그날 밤 하디 가의 부엌 풍경은 아늑했다.  석탄이 난로 속에서 활활  탔고 그 위에서 물주
전자가 끓었으며 라나는 고양이 티비를 쫓아 기어다녔다.  그녀는  녀석의 꼬리 잡아당기는 
것을 좋아했고 티비는 절대로 아기에게 발톱을 들이대지 않았다.   너무 평범하고 가족적이
었다.  마조리는 돌연 평범한 남편과 규칙적이고  안정된 수입, 가사일 외에 두려워할 것이 
없는 생활이 그리웠다.  엄마는 개수대에서 바삐 일했는데, 마조리는 그녀에게 발산되는 두
려움과 실망을 감지할 수 있었다.  
  "우리가 그렇게 창피하니, 마조리? 아니면 왜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는 식에서 등을 돌리
려는 거니?"  
  "아휴, 엄마. 제 선호도가 아니라 돈 문제라고  누차 말씀드렸잖아요. 나는 속물들에겍 광
고를 팔고 그들과 점심을 함께하고 그들의 문제를 토론할 수 있어야만 해요. 그게 세일즈를  
하는 방법이나까요. 내가 지방 상인들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아는지  아세요? 누가 아내나 자
식 문제로 골치를 썩고 누가 통풍이나 편두통을 앓고 있는지  다 알아요. 나는 그들의 꿈과 
희망과 두려움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단  말이에요.  심지어 은밀한 비밀까지도. 그들은 날 
아예 없는 사람 치부하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런데 이제 난 진짜 문제에 봉착
한 거예요. 난 오늘 만난 남자들과 똑같은 수준에서 대화를 할 수 없었어요. 이것은 내가 하
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이에요."  
  그 말은 전적으로 사실이 아니었으므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렇다고 네 타고난 천성이 변하진 않아. 내가 말했던 것처럼 말이야."  
  "아, 그만하세요 엄마."  
  마조리는 라나를 바닥에서 안아 올려 높은 의자에 앉혔다. 엄마의 차 준비가 끝나고 마조
리는 차를 스푼으로 휘휘 저었다.  라나에게 음식을 먹이는 것은 자식 키우는 즐거움 중 하
나였다. 딸은 좋아서 까르르 웃으며 새 새끼마냥 입을 벌렸다. 라나가 커서 예뻐질까? 마조
리는 자신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열달 배기치곤 너무 똑똑하기 때문이다.  
  "라나, 우리 귀염둥이야. 너와 내가 별을 따자꾸나."  
  그녀가 속삭였다.  
  "흥, 네가 전에 별을 따려고 했을 때 어떻게 됐는지는 잘 알고 있겠지?"  
  엄마가 쏘아붙였다.  마조리는 엄마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가족 모두를 위
해 일하고 있는데, 왜 엄마는 딸의 성공을 시기하는 걸까?
    
  미스 드 프트롱은 정말 충격거리였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은  데다 관절염으로 반쯤 절
둑거리는 그녀는 버섯동자같은 머리 모양으로 더 남자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한때 스키, 라
크러스, 승마 종목의 영국 대표로 뛰었던 영광의 자리에서 추락을 거듭해 이제 교양 수업으
로 먹고살았다.  초라하고 냄새나는 그녀의 집에 킹 챨리 스파니엘  종의 개들과 말벗 스미
스 양이 함께 살고 있었다.   스미스 양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어물쩡거렸고  툭하면 눈물을 
쏟았다. 눈물샘이 고장난 모양이다.  죠가 미스 드 프트롱을  찾아낸 장본인이었다. 이 대가
는 톡톡히 치러 주겠어, 죠. 마조리는 벼룩에게 물린 다리를 긁으며 마음을 굳혔다.  
  "당신은 커피 잔 하나 제대로  못 다룬다는 말을 들었어요. 우선  그 것부터 시작해 봅시
다."
  미스 드 프트롱은 불쌍한 스미스  양에게 오만하게 신호를 보내며 말했다.   벼락을 맞을 
반역자 죠! 마조리는 속에서 화가 치밀었다.  
  "네, 옳아유." 
  "네, 올아요예요! 네, 옳아유가 아니에요."  
  미스 드 프트롱이 쏘아붙였다. 여주인의 대갈일성을 신호로 착각한 개들이 합창으로 짖어 
댔다.  그녀는 벽에 걸린 사진과 상장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차가 들어왔다.  난 이 
늙은 할망구들이 두렵지 않아. 마조리는 한 손에 찻잔을, 또 다른 손에 주전자를 들고  차를 
따랐다.  
  "이 찻잔은,"  
  미스 드 프트롱이 말했다.  
  "여왕 폐하의 모친께 하사 받은  거랍니다. 이 선물을 받던 날  찍은 사진이 바로 이거예
요."  
  마조리는 사진을 힐끔 쳐다보고 혐오감에 질렸다. 저 젊고  날씬하고 아름다운 소녀가 이
렇게 될 수가! 그녀는 사진과 미스 드 프트롱을 번갈아 보았다. 세월이 이렇게 파괴적일까? 
정말 끔찍해! 그녀는 몸서리를 쳤다. 어제 저녁에 영양 크림을 바르고 잤던가? 아냐, 건너뛰
었어.  
  "이제야 당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겠군요."  
  미스 드 프트롱이 호되게 질책했다.  
  "당신은 차를 양탄자에 쏟았어요. 나처럼 세련되게 균형을 잡아야지요. 바로 이렇게요. 당
연히 드라이클리닝 값을 당신에게 청구하겠어요. 커피를 더 가져와요, 스미스 양. 다시 해야
겠어요."  
  "죄송해유."  
  마조리는 가능한 한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 여자는 폭발 일보 직전이었다.  
  "당신 입에서 '죄송'하다는 말이 제대로 나오려면 양탄자를 백개도 더 버려야 될 거예요."  
  "아!" 
  마조리는 바짝 쫄아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서 벗어나야 해! 다시 학교로 돌아온 기분
이었다. 
  "청컨대, 손을 씻고 와도 될까요?"  
  "화장실을 가겠다면 떨거나, 부탁하지 말고 그렇게 말하세요."  
  "하지만 제 생각에 ....."  
  "이 집에서 당신의 흐리멍텅한 완곡  어법은 통하지 않아요, 젊은 아가씨.  확실하게 의사 
표현을 하세요."  
  가방을 부여쥔 마조리가 뒷걸음질을 쳐서 복도로 물러 나오는 순간 커다란 장식 도자기에 
부딪쳤다. 도자기는 건들거리더니 아래로 떨어져 박살이 났다.  마조리는 입을 벌리고 미스 
드 프트롱을 보았다.  
  "우리가 할 일이 하나 둘이 아니겠군요. 당신은 우선 화장실에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당신
의 현재 위치부터 파악하세요. 그다음에 꼭 이방으로 돌아올 필요는 없어요. 난  징기스칸이 
아니에요."  
  젠장! 젠장! 젠장!  
     
  "저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합니다."  
  그녀는 오늘 아침 같은 말을 벌써 열다섯번씩이나 했다.  이번이  그녀의 다섯 번째 방문
이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목 안쪽과 설근이 아팠다.  키가 크고 우아하지만 미스 드 프트
롱보다 더 가난한 개인 교사 던비 죤스 씨가 테이프 레코더를 틀었다.  
  "지는 아이스키림을 좋아해유."  
  그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말을 잘 들어요...... 잘 들어봐요."  
  그는 절망적인 어조로 말했다.  
  "저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합니다. 당신과 나의 차이를 알겠소?"  
  "저는 청각 장애자가 아니에요. 하지만  할 수 없어요. 그게  문제의 핵심이에요. 저는 할 
수 없어요."  
  "포기하고 싶소?"  
  "아니요!"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디 양, 왜 이 고생을  자청하세요? 스스로를 하찮다고 생각하오?  당신의 억양은 애교 
있고, 당신 표현이나 표정은 상상력이 풍부하고 생기발랄하니까....."  
  "허튼 소리 집어치우세요. 난 표준어로 말하고 싶어요. 그렇게 해달라구요!"  
  그녀가 윽박질렀다.  그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우리는 이 특별한 표현을 가지고 오랫동안 씨름을 해오지 않았던가요? 내가 한마디 하겠
소. 발음은 어렸을 때부터 형성됩니다. 일부 외국인들이 영어를 제대로 말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의 구강 근육이 적절하게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이오. 당신의 근육은 '저'라는 말조차 똑
바로 할 수 없소."  
  "제가 백 파운드나 쏟아 부은 다음에야 그런 말을 하시다뇨?"  
  "그러나,"  
  그는 그녀의 분노를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모든 근육은 충분한 연습을 통해 개발될 수 있소. 그 과정에 고통이 수반됩니다." 
  그는 그녀가 목을 문지르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  
  "아픈 게 당연해요. 하지만 계속 연습을 해 나가다보면 제 소리를 낼 수 있어요."  
  "제가 좀 개선되었다고 생각하세요?"  
  "아니, 아직은."  
  "난 평생 이 모양일 거예요." 
  그가 고개를 들고 그녀에게 웃어보였다. 그 냉소적인 웃음에는 적의가 담겨 있었다.  
  "당신은 마음먹은 일에 반드시 성공할거요. 그 점에 있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소. 당신은 
인생의 승리자가 될 그런 사람이오."  
  그의 반감어린 말에 마조리는 한결 기분이 좋아져서 집으로  돌아갔다. 모델 양성 학교는 
별 문제가 없었다. 10파운드의 교습비도 도버 억양에 들이는 비용보다 훨씬 쌌다. 하지만 만
사가 옳은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어,  그녀는 낙천적으로 생각했다. 신문 경영진이  광고지의 
매입가를 세 번에 걸쳐 변경, 제의한 결과 그녀와 죠는 5천 파운드라는 거금을 손에 쥐었다. 
'리더십' 창간에 도움이 되는 액수였다. 그녀는 바바라를 불러 축하 저녁을 먹었다.  다시 일
에 착수할 때가 가까워졌다.
     
  봄. 나뭇가지마다 싹이 돋았고, 들판에는 기운 좋은 양들과 꿋꿋한 꽃봉오리가 점점이  수
를 놓았다. 새들은 환희에 젖어 노래를 불렀고 마조리는 수줍게  껍질을 벗고 전 세계의 엘
리트에게 광고를 팔 준비를 마쳤다.  '시갈 앤 하디 출판사'  명판이 죠의 사무실 문에 더해
졌고 일층을 새로 칠할 페인트 공이 고용되었다. 조만간 신입 직원을 뽑을 예정이었다.  그
녀가 필요한 광고량을 팔았을 때.  마조리는 그들의 새로운 시도와 당좌대출금은 말할 것도 
없고 앞으로 짊어질 빚을 생각하면 새록새록 두려워졌다. 아직  1천 파운드 수준에 머문 빚
이 탐욕스럽게 늘어나고 있었다.  아 맙소사!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하지만 이미 주
사위는 던져졌다. 그녀의 새 이미지, 새 옷,  빨강색 소형차에 한 재산 쏟아 붓지  않았던가. 
지난주 일요일 그녀는 가족들을 데리고 템즈 강을 따라 드라이브하고 에윌 미니스에서 피크
닉을 했다. 라나는 블루벨과 백조에 매료되었다.   그 기억에 그녀는 이런 모험을 감수하는 
이유를 되살렸다. 라나를 최고로 키우려면  수입이 필요하고, 돈을 벌려면 광고를  팔아야만 
한다. 그 생각을 하면 할수록 더 불안해졌다.  
  "오늘은 기념비적인 날이에요."  
  그녀는 죠의 사무실에 들어서며 말했다.  
  "당신은 사무실이 다 칠해질 때까지 여기서 일해야 할거요. 봐요! 내가 당신 책상을 저기
에 갖다 놨소."  
  정말이네.  
  "젠장."  
  그녀가 중얼거렸다. 혼자 전화 판매를 해야 더 마음이 편한데. 하지만 상관없어. 일시적인 
거잖아. 그녀는 예상 고객 명단을 집어들었지만 손이 너무 떨리는 바람에 도로 내려놨다.  
  "나 어때요?"  
  그녀는 한바퀴 돌며 물었다. 연한 청색 저고리와 주름 치마에 나비매듭을 묶는 흰 블라우
스를 받쳐입고 청색 신발과 장갑과 서류 가방을 맞췄다.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는 세련된 커
트 스타일이 그녀에게 잘 어울렸다.  죠는 냉정하게 그녀를 훑어보았다.  
  "당신은 잘 해낼 거야."  
  그녀가 새로 고용한 사환에게 커피를 시키자마자 은쟁반에 받쳐  대령되었다.  모든게 신
속했지만 거기에는 대가가 지불되어야 했고, 그녀만이 돈을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
녀는 눈에 띄게 떨기 시작했다.  
  "일을 시작하는 편이 좋겠어요."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잠시 후 그녀는 철제 책상을 용접하고 칠하는 공장 사장과 
통화를 했다.  그는 바쁜 와중에도 그녀의 제안에 흥미를 보였다.  
  "언제든지 찾아 주세요. 저는 항상 이곳에 있습니다."  
  "외국인 같아요."  
  그녀는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죠에게 말했다.  
  "누가?"  
  "아토믹 시트 메탈 사의 커비스 씨요."  
  "그 이름만으로도 외국인이 자명하지. 왜 그를 첫  타자로 뽑았소?"  
  "나는 중소 기업부터 단계적으로 시작할 거예요. 그는 구켄트 거리에 작은 공장을 가졌어
요."  
  죠가 호통을 쳤다.  
  "먼저 대어부터 낚아요. 그럼 잔챙이들이 줄줄이 따라올 거요."  
  "난 연습이 필요하기 때문에  소규모 기업부터 공략하려는  거예요. 그들에게 거절당하면 
그것으로 이 업계의 끝이죠, 뭐."  
  "당신답구려!"  
  그는 그녀를 째려보았다.  그녀는 그의 생각을 잘 알았다.  그리고  그가 옳았다.  하지만 
긍정적인 생각이 종종 그녀로부터 빠져나가는 게 문제였다.  특히 절실히 필요로 할 때 
     
  놀랍게도 얀 커비스 씨는 그녀의 예상과 딴판이었다. 멜빵 바지를 걸치긴 했지만 그 속에 
깔끔한 흰 셔츠와 넥타이를 맸고 모직 저고리는 사무실 문 뒤에 걸려 있었다. 그는 속을 꿰
뚫어 보는 듯한 검은 눈동자로  그녀를 살폈다.  웃기게 생긴  녀석이네. 하지만 곧 그녀는 
'보기드문 용모의 소유자'라는 표현으로 정정했다. 그는 먼지를  턴 의자를 그녀에게 권하고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한 칭찬과 더불어 내왕에 감사의 뜻을 전한 다음에야 잡지에 대한 화
제를 입에 올렸다.  
  "당신이 이 업계에서 진정한 승리자가 되리라는 감이 오는군요. 1면 광고를 1년간 계약하
겠습니다. 우리 광고 대행사가 찬성한다면 말입니다. 여기 그들의 주소를 드릴 테니 일단 연
락해 보십시오."  
  커비스 씨의 거래처 대표 케빈 오도노르는 그녀의  다른 예상 고객들 중 세 사람의 일을 
맡아보고 있으므로 그녀는 그를 점심에 초대하여 회사 소개를 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소. 난 고객에게 당신 잡지를 추천할 수 없소."  
  그는 그녀의 희망을 산산조각냈다.  그녀를 응시하는 그의 푸른 눈동자가 테없는 안경 뒤
에서 반짝거렸고 두 겹으로 포개진 턱이 와이셔츠 칼라에 닿았다.  
  "잡지 창간에는 엄청난 액수의 현금이 필요하오.  당신이 갖고 있는 이상의 돈이  말이오. 
광고 대행사 입장에선 당신네의 성공  여부에 관심의 촉각을 세우지 않을  수 업소. 세상에 
차이고 널린게 광고 언론 매체란 말이오 . 하지만 당신네가 좋은 잡지를 만들고 최소한 5만
명의 유료 광고주를 확보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추천하겠소. 하지만  그쪽에 지출 가능한 고
객의 광고 책정비는 얼마 되지 않을 거요."  
  "그렇다면 우리보고 어떻게 시작하라는 거예요? 저희는 잡지를 창간할 수 있는 광고가 필
요해요."  
  그녀는 그에 대한 본능적인 혐오감을 감추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거야 당신네 문제예요. 내가 보기에 당신네는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적으니,  난 고
객들에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소."  
  그는 말하는 와중에도 굴12개, 파테, 필레미뇽과 크렘 브릴레를 먹어 치웠지만 그녀는  다
이어트를 하는 척하며 스프만 먹었다.  
  "개인적으로 난 경영 출판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소."  
  그의 입이 포도주에 얼큰해져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같은 값으로 소매업자와 최종 수요자, 두 마리의 새를 명중할 수  있거든. 게다가 
소비자 광고의 수수료가 더 많소. 그러니 티브이와 라디오 신문의 비중도가 더 높아질 수밖
에.  또 다른 경영 잡지가 세상에 나오지 않는다면, 난 더 행복해질 거요."  
  망할 놈. 그녀는 눈물을 감추며 천문학적인 식대를 계산했다. 
      
  다음 서른 명의 면담자들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매번 그녀의  자신감은 줄어들었고 
희망찬 전망이 위축되었다. 꼭 소용돌이에  휘말린 꼴이었다.  다들 핑계는  많았다. 잡지의 
창간호가 발매된 다음에 광고 게재를 생각해 보겠다는 둥,  올해 광고비가 다 지출되었으니 
내년 예산 책정 때나 보자는 둥, 잡지의 발행 부수에 따라 결정하겠다는 둥.  잡지를 제작하
지 않고 발행 부수를 확보할 수 있을까? 그녀는 이 문제를  놓고 죠와 머리를 쥐어짰다. 그
는 수십 가지의 세일 아이디어를 제안했지만, 창간호를 출판해야만  직접 우편 캠페인을 시
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창간호를 출판하려면 광고비가 필요했다. 그야말로 악순환의 고리였
다.  부채에도 불구하고 죠는 돈을 흥청망청 뿌려 댔다. 워드 프로세서, 책상, 의자, 인터컴 , 
편집대 , 테이프, 레코더가 이미 주문되었다. 그리고 그 목록은 끝이 없었다. 그녀가  걱정을 
할 때마다 그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당신은 광고를 팔게 될 거요, 마조리. 당신이 해내리란  것을 알아. 난 당신을 굳게 믿고 
있소."  
  '나중에 두고보자'는 대답을 쉰번째  들은 그녀는 포기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벌써 은행 대출금이 1만 3천 파운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들이 돌아갈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는데, 그녀는 창피하게도 겨우 열 페이지의 광고를 따냈다.  수입도 없고 파산
할 전망에 당면한 그녀는 고질적인 긴장 상태에 몸부림쳤다.  
   
  다음 한달 동안 그들의 부채는 1만 5천 파운드에 달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
다. 창간호 제작에는 직원 봉급, 기사 및 사진 원고료,  그녀의 자동차 유지비 뿐 아니라 굴
이나 캐비어를 먹어 치우는 탐욕스런 광고주에 대한 접대비까지  들어갔다.  공포감이 그녀
의 배짱과 목과 위장에 만성적인 고통을 야기시켰다.  그녀는 위궤양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8월 말경 그녀는 연말에 창간호를  발매하겠다는 약속 하에 필요치의 10퍼샌트에  해당하는 
광고를 계약했다.  그때부터 그녀는 철저한 내핍 생활에 들어갔다. 기름 값을 절약하기 위해 
그녀는 다 쓰러져가는 챨크 팜 아파트에 지하  공동 부엌과 목욕탕이 딸린 방 하나를 얻어 
지냈고 지하철을 이용했다. 공장과 사무실 단지 돌아다니며 힘든  하루를 보내고 파이 한조
각과 토마토 하나, 빵 반 정어리와 우유를 좀 사서 집에 돌아왔다.  생선 튀김 냄새나는  싼 
레스토랑 옆을 지날 때마다 입에 군침이 돌았다. 일단 초라한 방에 돌아오면 음식을 먹어치
우고 쓰러져 자기 일쑤였다.  그녀는 외롭고 두려웠으며 하루종일 딸아이가 보고 싶었다. 낮
에는 로버트를 생각할  짬도 없었지만 밤에는 무의식이 저 심층 속에서 그를 불러냈고 어느
틈엔가 그와 코르시카 해변을 뒹구는 꿈에 빠져들었다. 잠에서  깨는 것은 고역이었지만 그 
다음은 더 최악이었다. 왜냐하면 사업상의 현실이 역겨울 만큼 강렬하게 밀어닥치기 때문이
었다. 그녀는 오직 생존만이 존중되는 새롭고 두려운 세계에서 악전고투했다.  여름이 지나
고 가을이 찾아 들자 그녀의  방에 냉기가 돌았지만 난방비를 아끼려고  덜덜 떨며 지냈다. 
그녀는 점점 산업 분야에 정통하게 되었다. 광고부 과장들과  영업부 부장들과 서로 이름을 
부르는 사이가 되고, 그들의 생산 제품을 알게 되었고, 그들이 원하는 '리더십'의  출판 방향
에 대한 정보를 차곡차곡 습득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판매  목표량은 좀처럼 달성되지 않았
다.  이미 총 50여개의 광고 지면을 채우기에 충분한 약속은  받아냈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
은 한결같았다.  잡지 발행본을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자금만 넉넉하다면 석달치의 무료 
광고를 게재해 줄 수  있으련만 지금으로서는 출간  여부조차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부채가 점점 늘어나는 속에서 마조리는 쉬지 않고 뛰어다녔다. 영국 내의 회사를 하나도 놓
치지 않고 쫓아다닌 결과 여행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왔고 마조
리는 마지못해 짐을 꾸려 3주간 예정으로  집으로 내려갔다.  더 이상 런던에  버틸 이유가 
없었다.  이런 시즌에 누가 그녀를 보고 싶어하겠는가?  그녀는 집안 일을 도우려고 했지만 
라나와 놀아 주는 것조차 마음이 아팠다. 딸에게 약속했던 많은 것들 중  뭐 하나 해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올해는 검소한 크리스마스가 될 거예요."  
  그녀가 엄마에게 경고하듯 말했다.  
  "하지만 내년에는 달라질 거예요. 지금은 창간호를 출간해야만 하거든요."  
  그녀는 긴장을 풀고 재충전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2만 파운드의 부채에 대한 걱정이 머리
에서 떠나지 않았다.  
  "사업은 게임이오." 
  죠는 어느 날 그녀가 사무실에서 미래의 기사들을 울적하게 검토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말
했다.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법이오.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항상 뭔가를 배우게 되
지."  
  "난 빚에 깔려 지내는 것을 참을 수 없어요."  
  "그거야 은행이 할 일이오. 대부와 대출말야. 그들도 가끔 손해를 볼 때가 있소." 
  그는 명랑하게 웃었다.  마조리는 그런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은행 지점장은 죠
의 빌딩이 담보 대출로 잡혀 있다는 말을 그녀에게 귀뜀했지만 그는 그녀에게 그런 내색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은행이 타격을 입겠지만 누가 상관하겠소?"  
  그가 쾌활하게 말했다.   
  "뭐, 우리는 미안하다고 말하고 다른 일을 찾아보면 되는 거요. 최악의 상황이 닥쳐오더라
도 당신에게는 내 비서 자리가 남아 있소."  
  "그거야말로 진짜 최악이군요."  
  하지만 그녀의 마음 뒤편에는 죠가 그녀를 돕기 위해 건물을 내놓았다는 생각이 자리잡았
다. 그녀는 결코 그를 파산시킬 수 없었다. 포기할 수  없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뭔
가를 해야만 했다.  더 관대하게도 죠는 그녀에게 한달치 월급을 크리스마스 보너스로 지급
했다. 그녀는 거의 울음을 터뜨릴 뻔했지만 겨우 참고 그 돈을 받았다. 덕분에 가족들은  초
라한 크리스마스라도 보낼 수 있었다. 마침내 명절은 지나갔고  그녀는 런던으로 돌아와 다
시 전투를 개시했다.  
      
  1월의 세 번째 금요일 새벽 6시에 마조리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친숙한 두려움에 휩싸였
다. 이제 2만 3천 파운드에 달한 부채 생각을 머리  속에서 몰아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하루
의 약속 계획을 점검했다.  그녀가 막 목욕을 하려는 찰라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 왔다.   
  "망할!"  
  웬 자메이카 인이 일찍 일어난 모양이다.  이제 목욕탕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거나 아
예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수건과 세면 도구를 가지고 문 앞에서 떨며 기다렸다.  
 결국 한 남자가 나온 뒤를 따라 목욕탕에 들어가  보니, 바닥은 온통 물 천지에 시꺼먼 때
와 비누 거품들로 엉망인데다 잔뜩 김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창문을 열고 목욕탕을 청소
했다. 5분 후에야 따뜻한 물을 온몸에 받으며 비누칠을 할 수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문을 
쾅쾅 두드렸다.  
  "기다려요, 난 방금 들어왔다구요!"  
  그녀가 고함을 쳤다.  아침은 롤빵 한 조각과 커피 두 잔이 전부였다.  8시경에 사람이 붐
비는 지하철역을 헤집고 다녔고 9시 30분에 첫 번째  거절을 당했다. 그리고 계속 그모양이
었다.  그녀의 마지막 약속은 3시 30분이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공교롭게도 구두굽
이 부러졌다.  프랭크 암브로스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에서 그대로 걸어나온 인물이었다.  창
백하고 구부정한데다 영양실조에 걸린 듯했다.  그 더운 사무실에서도  검정색 정장 양복과  
빳빳하게 다린 흰 셔츠, 보수적인 넥타이와 함께 장식 허리띠마저 두르고 있었다.  그의 비
서가 강하고 달착지근한 차와 함께 다이제스티브 비스킷을 가져왔다.  
  "당신에게는 그게 필요해 보이더군요."  
  그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그녀의 나달나달해진  잡지 견본을 들고 근시
처럼 뚫어지게 살폈다. 검은 머리카락이 이마로 흘러냈렸다.  그녀는 그가 최근에 가업인 문
구 제조 회사를 물려받았고 매우 부자인데다  보수적인 성향이라는 개인 정보를 알고  있었
다.  그가 그녀에게 '리더십'의 판매 현황을 물었을 때, 그의 솔직한 회색 눈동자 속에  어린 
걱정스런 빛에 그녀는 사실을 그대로 털어놓았다.  
  "저는 광고 대행사를 뚫을 수가 없어요. 이미 15건의  계약을 체결했지만 모두 작은 업채
들이에요. 대행사는 아예 우리와 상종조차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의  입장
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열을 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들의 추천을 받은 우리가 실패하면, 그쪽에서 모든 책임과 비난을 뒤집어쓰게 될 테니
까요. 전혀 안정성이 없는 셈이지요. 게다가  경영 잡지 광고는 그들에게 돈이 되지  않습니
다. 또한 고객 당사자들은 모두 뒤로 물러서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산업계
는 이 잡지를 필요로 하지만 사람들은 확신을 원해요. 하지만  애쓸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
에요."
  그녀는 어렵게 침을 삼키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보통 광고의 지불은 어떻게 됩니까?"  
  그가 물었다. 그녀는 그 질문이 그에게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출판 후 30일이 정상이라고 배웠습니다. 대행사에서는 45일 후에 결재를  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는 은행에 어음을 결재하여 인쇄 및 우편비를 충당하게 됩니다."  
  "알겠습니다."  
  이제 그는 엷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당신을 돕고 싶군요, 하디 양. 저는 사무 및  컴퓨터 기기 생산 협회의 간사로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 잡지에 대한 대다수의 의견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군요. 그밖에 제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합시다."   
  1년치 계약을 해주는 것 이상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 텐데. 하지만 다시 한번 그
는 다른 사람들처럼 사태를 관망하는 입장에 섰다. 
     
  마조리는 집에서 지긋지긋한 주말을 보냈다. 엄마는  유모차를 사야한다고 잔소리를 해댔
지만 그녀는 한푼도 쓸 수  없었다. 그렇다고 엄마에게 지금 그녀가  처한 곤경을 털어놓을 
수도 없는 데다 라나에게 기본적인 필수품조차 줄 수 없는 현실에 이중으로 괴로웠다.   
  "넌 요즘 사업에만 정신을 쏟고 있어."  
  엄마가 질책했다.  
  "넌 쇼핑할 시간조차 내지 못하잖니. 정 네가 그렇게 바쁘다면, 나라도 가서 사게 돈을 내
놓으렴, 라나는 포대기에 싸서 안고 다니기에는 너무 컸어."  
  신이여 굽어살피소서! 내가 나가떨어진다면 무슨 수로 부채를 갚지?  일을 그만둔다면 우
리 가족들을 어떻게 먹여 살리지?  라나가 노는 모습은 마조리에게 더 심한 죄책감을 느끼
게 했다. 라나는 친부가 마땅히 베풀어야 할 좋은 생활을 누릴 자격이 있었고, 어떻게든  누
리게 해줘야 해. 이 재난을 승리로 이끌 묘책이 있어야만 해. 소심한 사업가들이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서서 나를 후원하게 만들어야 해. 그러기에 너무 늦은 것은 아냐. 아직 기회는  있
어.  엄마가 계속 잔소리를 했지만 그녀는 한마디도 듣지 않았다.  
  "엄마, 미안해요. 난 생각중이에요."  
  그녀가 중얼거렸다.  충동적으로 그녀는 프랭크 암브로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놀랍게도 이 
늦은 토요일 오후에 그는 여전히 사무실에 있었다. 그녀는 운을 뗐다.  
  "저를 도와주겠다고 하셨지요? 그렇다면 저를 여러분의  연례모임에 초대해 주세요. 저는 
회원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뒷짐을 지고 서서 결단을 내리고 
싶어하지 않는 상황은 좋지 않아요. 그러니 그룹으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저를 위해서 그
렇게 해주시겠어요?"  
  "시도할 가치는 있군요." 
  그가 대답했다.  마조리가 부엌으로 되돌아오자, 엄마는 아까 하던 말을 다시 꺼냈다.  
  "넌 돈에 환장을 했구나. 그리고 언제쯤 그 창간호를 볼 수  있는 거니? 넌 계속 말만 하
지만 그 창간호라는 건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라."  
  "곧 보시게 될 거예요. 그리고 엄마, 그 유모차 이야기를 꺼내줘서 고마워요. 덕분에 돈을 
벌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그 순간부터 긍정적인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제 우울하고 암담한 날들이여,  안
녕! 저 망할 사업가들에게 총이라도 들이대서 계약서에 서명을 받겠어.  
     
  다음주 금요일 아침 마조리는 일찍 일어났다.  신경이 날카로웠다. 오늘은 협회 모임이 있
는 날이고 이제 약 12시간 후에 그녀는 사업가들로 꽉 들어찬 방에  서게 될 것이다.  그녀
는 전날 밤 도버로 돌아왔다.  당일 아침 내내 연설문을 작성하고 연습하고 입을 옷을 고르
면서 보냈다.  마침내 단순한 검정색 실크 정장과 흰 실크  블라우스가 예측 불가능한 상황
에서 가장 안전해 보였다.  그녀는 라나를 꼭 껴안았다.  
  "행운을 빌어주렴, 달링. 엄마, 라나를 재워 주세요." 
  "넌 더 이상 가족과 보낼 시간을 내지 않는구나. 너  자신과 사업에만 온 정신이 팔려 있
어."  
  엄마가 항상 그렇듯이 투덜거렸다.  
  "미안해요, 엄마."  
  그녀는 돌아섰다. 그녀가 가족 모두를 재난의 구덩이에 몰아 넣었으며, 베 식구가  가파른 
벼랑 끝에 매달려 있는 일촉측발의 상황임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공기가 맑고 쌀쌀한 겨
울날이었다. 마조리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런던으로 차를  몰았지만 부정적인 의혹이 연거
푸 떠올랐다. 파산하면 어떡하지? 그 생각만으로도 머리끝이 쭈뼛 일어섰다. 차라리  안면이 
넓은 전문 연사를 고용할 걸 그랬나? 하지만 마음을 바꾸기에는  너무 늦었어. 그녀는 도체
스터의 회의장 출구 밖에서 서성거렸다 잘  차려입은 귀빈들이 향수 냄새를 풍기며  안으로 
들어갔다. 좋아, 내가 고아 소녀 애니는 아니잖아? 이 옷과 던비 죤스에게 쏟아 부은 한  재
산을 기억해.  
  "열등감은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겁니다." 
  그는 안도의 기색을 역력하게 드러내며 마지막 수업을 마쳤다. 
  "당신에게는 화술 훈련이 아니라 정신 상담이 필요해요."  
  지옥에 떨어진 던비 죤스 하지만 그의 생각에 그녀는 훨씬  자신감을 느꼈다.  회의장 안
에 들어선 그녀는 5백 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홀의 규모에 질렸다. 빈자리는 회원 부부들로 
빠르게 채워졌고, 모든 여성들이 이브닝 드레스와 보석으로 단장한 모습이었다. 마조리는 자
신의 복장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다.  프랭크 암브로스가 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는 그녀의 팔꿈치를 잡고 가장 가까운 그룹으로 데려가 타자기 회사 회장과 일본 사무 기기 
수입상을 소개시켰다.  그녀는 많은 초대객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과 대화를 두 마디도 나누
기 전에 프랭크에게 이끌려 구술 기기 제조 회사의 사장과 혁신적인 사무용 의자로 상을 받
은 산업 디자이너와 인사를 나누었다.   세상에! 새로운 면면들을 전부  기억할 수 있을까? 
그녀는 죽도록 두려웠다.  이제 프랭크가 안내한 문가의 테이블에 앉은 그녀는 잡지 견본과 
요금표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가끔 사람들이 멈춰 서서 그것을 훑어보았지만 요금표를 집어
들지는 않았다. 마조리는 행인의 이목을  끌지 못하는 마네킹이 된 기분이었다.  도망가고픈 
심정이 굴뚝같았지만 프랭크가 그녀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주요 인물들과, 그동안 그녀를 
박대하고 기를 꺾어 놓았던 영업부장들의 고용주를 소개시켰다.  모두들 분위기가 고조되고 
관대한 기분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은 잡지에 대한  말을 할 때가 아님을 눈치
채고 대신 업계의 다양한 소식과 정보에 귀를 기울였다.  마조리는 현기증이 나기 시작했다. 
어떻게 5백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설득할 마음을 먹었을까? 어떻게 저들이 그녀의 말을 들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을까? 한 젊은 청년이 마이크와 전선을  갖고 오자, 그녀는 당장 기
절할 것만 같았다.  저녁식사는 악몽이었다. 파테와 셰리, 생선과 백포도주, 오리 요리와 적
포도주가 차례로 선보였다. 그녀는 한입도 삼킬 수 없었기 때문에 먹는 시늉만 했다.  그녀
는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꼭 두꺼비처럼 몸이 점점 부풀어오르고, 쇠망치가 갈비뼈를  쳐대
고, 양 뺨은 모닥불을 지펴 놓은 듯 화끈거렸다. 화장실에 가는 척하고 도망갈까?  마지막으
로 디저트가 나오면 그렇게 해야지. 갑자기 이곳을 꼭 빠져나가야 할 것 같았다. 그녀가  이 
일을 해 낼 리 없다. 아무리 파산을 눈앞에 두고 있기로, 이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연설을 
할 수 없었다.  그 순간 프랭크가 일어났다. 그들의 시선이 잠깐 마주쳤다.  
  "신사 숙녀 여러분, 잠깐 대화를 멈추시고 마조리 하디  양의 말을 경청해 주시기 바랍니
다. 자, 이리 와요, 마조리."  
  하느님 맙소사!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연단으로 걸어가서 마이크를 조정했다. 그 몇 초
가 영원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모든 상황이 현실인 척 했지만 당연히 그렇지 못했다 그녀
는 목소리를 내려고 시도했다. 어,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네. 거참 이상하다.   
  "즐겁고 흥겨운 밤에 저를 초대해 주신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그녀가 말을 시작했다. 잔뜩 곤두선 신경이 누그러들었다. 그와 함께 진짜 마조리도  어디
론가 뿅하고 사라졌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려고 했다. 미소도 됐다. 그녀는 뒤적거리며 연설
문을 찾다 말고 그것이 의자에 걸쳐진 핸드백  속에 있음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맙소사! 그
녀는 깊은 숨을 들여마셨다.  
  "한 시간 전에 이곳에 도착했을 때 저는 가히 혁명적인 소형 전자 계산기의  등장이 목전
에 다가왔다는 사실도, 소매상들이 신상품을 6개월씩이나 창고에  쳐박아 둠으로써 구 상품
으로 만든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또한 컴퓨터로 버스 운행 시간표를 짜고, 시각  장애자가 
컴퓨터로 읽고 쓸 수 있고, 새 프로그램이 비행기 추락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거나 도난 방
지 장치를 작동시켜 준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아마 여기에 계신 대다수의 분들 역시 모르셨
을 겁니다. 혹은 서로 그러한 새로운 발전에 대한 대화를 나누지 못하셨을 겁니다. 한  달에 
한번 다 함께 모이는 이런 회의를 통해서만 여러분들은 제가 들었던 기술 진보를 비롯한 영
업, 시장 경기, 자금에 대한 생생한 정보 등 각종 산업계 소식을 들으실 수 있겠지요?  오늘
밤 여러분이 공급자로서 한자리에 모인 것처럼 소비자들과 함께 할 수 없음을 진심으로 안
타깝게 생각합니다. 그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은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겁니다."  
그녀는 잠깐 뜸을 들이며 걱정스럽게  회의실 안을 둘러보았다. 프랭크가  그녀에게 윙크를 
보내며 엄지손가락을 번쩍 치켜 들었기 때문에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소비자들은 여러분의 영업 직원을 통해서만 각종 소식을 들을  테지만, 제가 오늘 이 자
리에서 얻어들은 그 모든 정보를  다 입수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겁니다. 산업계 전체와 
소비자들은 지금 당장 업계의 심장부에서 벌어지는 사건, 진행 상황, 핵심 소식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회의실은 조용했다. 사람들이 저녁 식사를 하다 말고  그녀
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건 기적이야!  
  "신사 숙녀 여러분, '리더십'은 여러분 모두를 위한 소중한 영업 도구가 될 것입니다. 소비
자들에게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여러분의 판매량이 가일층  신장될 겁니다. 이 잡지
는 여러분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대동맥 역할을 다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대부분 광고 대
행사에게 홍보 계획을 맡깁니다. 하지만 여러분을 위해 사업적인  도박을 감수하는 것은 그
들의 몫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 단계에서 '리더십'을 전폭적으로 밀어 줄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충분한 유료 판매 부수를 확보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겁니다. 그러기 위하여 여러
분의 조력이 필요합니다. 즉, '리더십'이 세상 빛을  보기 위하여 여러분이 한몸처럼, 그리고 
한 회사처럼 결정을 내려 주시고 후원해 주셔야만 합니다. 그리고 지금 결정을 내리셔야 합
니다. 여러분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경영잡지가 필요하다는 용단을 내려 주세요. 더 이상  오
랫동안 여러분을 앉혀 두고 지루한 이야기를 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우리 잡지의 견
본을 구경하고 미래의 구상을 들으실 기회를 이미 가지셨습니다.  저는 마지막으로 이 한마
디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잡지가 현실화될 수 있도록 결단을 내려 주세요. 여러분 모두 
그 혜택을 보게 될 겁니다."  
  마조리는 여기서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프랭크에게 시선을 준 채 말을 마쳤다.  
  "이제 여러분께서 괜찮으시다면, 이 문제를 찬반 투표에 붙이고 싶습니다. 당신 생각은 어
떠세요, 프랭크?"  
  그녀는 정말 이상한 기분으로 자리로 돌아왔다. 시간의 행보가 변해, 매초가 생동감  있고 
의미심장해졌다. 묘한 힘이 몸 속에서 들썩거리는 느낌 속에서  그녀는 프랭크의 말을 들었
다. 그는 이 잡지가 업계에 필수적이라는 의견을 개진하며  '찬성' 쪽에 한 표를 행사하겠다
고 말했다.  선두주자 격인 컴퓨터  회사의 회장이 일어나 신제품에 대한  기사를 싣겠다는 
보장을 하겠냐고 물어왔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이 빙그르 돌았다. 투
표 결과가 '반대'로 나온다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  다음에 어떻게 하지? 여기에서 살금살금 
도망갈까? 그 다음에는? 참담한 미래를 당면해야 하겠지. 맙소사! 아빠  말씀이 옳았어.  프
랭크는 조용히 거수로 투표를 진행했고 웨이터들이 그 숫자를 집계했다.  그 긴장감은 살인
적이었다. 두 다리가 점점 굳더니 등까지 퍼졌다. 줄에  조종되는 인형이 된 기분이었다. 왜 
프랭크가 저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협회  이사진들과 쑥덕거릴까? 그녀는 포도주를 한  모금 
마셨다.아, 애당초 여기에 오지 말걸.  그때 프랭크가 자리로 돌아와 말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새로운 잡지 '리더십'의 탄생과  더불어 강한 투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 여기 젊은 아가씨를 위해 건배를  합시다. 찬성이 450명, 반대가 23명으로  나왔습니
다.  마조리, 어떤 일에나 만장일치는 드문 법이지요. 당시은 신제품 홍보 기사를 반드시 게
재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리더십'을 업계  여러 협회의 공식 잡지로  지정했고 모든 노력을 
다해 당신네를 원조할 것입니다.  마조리, 이런 소식을 전하게  되어 정말 기쁘게  생각합니
다."  
  그녀는 빨강색 소형차를 타고 하늘을 날 것같은 기분으로  도버로 돌아왔다. 죠의 소중한 
기사면에 8쪽이나 상품 소식을 넣어야 된다는 말을 듣고 그가 뭐라고 말할까?  하지만 그게 
뭐 대수야? 살아날 구멍이 생겼는데.  
  혈관을 타고 흐르는 승리감은 끝에서 진동하고 두 뺨을  붉게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드디
어 첫 번째 장정본이 그녀 앞의 제본대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여기, 은청색 바탕에 흰색으로 
'리더십'이란 글자와 사각형 창문 속에 멋진 타자기가 그려진 그녀의 잡지가 있다. 마조리는 
가슴이 너무 벅찬 나머지 숨을 쉴 수 없었다.  모두 창간호의 제 일본을 원했다. 편집장 가
스 클락은 내성적이지만 번뜩이는 감각과 재주가 많은 영리한  사내였다. 그가 주변을 맴돌
며 그것을 잡을 기회를 노렸다. 6피트가 넘는 키에 깡마른데다 자루걸레같은 암적색 머리카
락은 허수아비를 연상시켰다. 마이크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심지어 날씬한 금발의  제작 
편집자마저 평소의 지루한 표정을 잃었다. 그야말로 흔치 않는 특별한 순간이었다. 여기  잡
지가, 그들의 아기가 누워 있었다. 곧이어 다른 장정본도  속속 제본대로 활강했다. 죠는 제 
일본을 그녀에게 건넸다.  
  "당신이 이걸 만들었소, 마조리. 그러니 당신이 갖도록 해요."  
  그녀는 잡지를 꼭 껴안았다. 평생의 보물이 되리라. 이것은 그녀가 태어난 이래 가장 피눈
물 쏟는 공을 드렸던 기념물이었다. 3개월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절처부심해왔던 노력의 결
실인 총 80쪽의 광고. 그 모든 방문, 끝도 없는 대화,  약속, 수백잔의 맛없는 커피, 수 십회
에 달하는 점심과 저녁 접대, 최소한 여든 번의 퇴짜,  이십 번의 성적인 유혹, 손으로 꼽을 
만한 외설적인 협박 등 모든 순간이 주마등처럼 명멸했다.  이것은 미래의 희망이자 라나의 
교육이었고, 부모님의 연금이자 그녀의 안전이었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마침내 해냈어!  
    
  그녀는 고독을 찾아 한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잡지를 훑어보았다.  매쪽마다 각각의 
사연이 담겨 있었다. 여기 에이스 오피스  기계의 광고가 실렸네. 그녀는 그 특별한  재난을 
상기할 때마다 소름이 끼쳤다. 다니엘 무어 주니어는 회장의 조카로, 번들번들한 푸른  눈동
자를 한 잘생긴 망나니였는데 대학을 졸업한 후 2년만에 영업부장으로 낙하산 발령을 받았
다. 그는 손을 써서 그녀의 런던 주소를 알아내어 다음날 10시에 집으로 찾아왔다. 당시  파
자마 바람으로 티브이를 보고 있었던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었고, 다니엘이 힘으로 
밀고 들어와 그녀를 덮쳤다. 5분 동안 온 방을 굴러다니며 몸씨름을 한 끝에야 그녀의 비명 
소리를 듣고 달려온 6피트의 자메이카 거인 존슨에게 겨우 구조를 받았다.  
  "세상에.....? 도대체 무슨 생각을.....? 왜.....?"  
  겨우 말할 수 있게 되자 그녀가 질문을 퍼부었다. 그녀는 숨을 몰아쉬며 존슨이 다니엘을 
거칠게 대하는 광경을 보고 소리질렀다.   
  "그에게 상처를 입히지 말아요. 그는 유망한 고객 중 한 명이에요."  
  "입 다물어요, 아가씨. 대체 무슨 사업을 하고 돌아다니는거요? 경찰을 부를까요?"  
  존슨이 물었다.  
  "네, 눈가에 멍이 든 것 같아요."  
  그녀는 검지 손가락으로 눈 주변을 만지며 말했다. 아얏!  
  "이봐, 잠깐만 기다려요."  
  다니엘이 통사정을 했다.  
  "그러지 말아요 , 제발! 난  당신의 신호를 잘못 읽었소. 당신이  원한다고 생각했기 때문
에..... 진심이오...... 당신은 목표를 달성해야잖아?"  
  "이런 식으로는 아니에요."  
  "이봐요, 당신이 이번 일을 눈감아 준다면...... 내 약속하겠소."  
  "아무것도 약속하지 마세요."  
  그녀가 쏘아붙였다.  
  "이 바보를 여기서 끌어내요."  
  그녀는 존슨에게 말했다. 이 형편에 오명까지 뒤집어쓸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정확
히 3일 후, 다니엘의 광고 대행사가 죠에게 전화를 걸어 전면 칼라 광고를 1년 동안 계약했
다. 그녀는 다니엘의 삼촌이 은퇴하고 그가 경영 일선에 부상하리란 소문을 들었다. 쯧쯧쯧, 
불쌍한 여직원들 같으니..... 
     
  마조리는 몇 쪽을 더 넘겼다.  
  "맙소사, 이 사람!"  
  그녀가 중얼거렸다. 볼드윈 경은 명예회장직을 맡고 있는 여러 기업체의 이사회와 관심을 
쏟는 환경단체 문제로 바쁘다고 말했다. 그이 집안은 대대로  만년필 제조 회사를 운영해오
고 있다.  그는 그녀가 계약을 맺고 싶다면  토요일 오후에 시간을 내겠다고 했다.  그래서 
마조리는 옥스퍼드에 있는 그의 포트윅 영지로 갔다. 화창한 여름 오후의 기분에 젖어 찾아
간 그곳은 천국이었다. 아름다운 앤 여왕  시대의 저택이 넓은 정원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잘 손질된 관목과 잔디, 눈이 부실 만큼 만발한 꽃의 장관에 그녀는 숨이 막혔다.   볼드윈 
포트윅 경은 다부지고 튼튼한 체격이었고 불그레한 얼굴과 눈처럼 하얀 머리칼의  소유자였
다. 그는 자부심어린 태도로 그녀에게 집 주변을 구경시켜 주며 정확히 1전 전에 아내와 사
별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깊은 유감을 느꼈으며 그의 1년  상 동안의 조신한 생활에 존
경심마저 품었다.  볼드윈 경은 그녀를 세어 종마를 사육하는 마구간으로 데리고 갔다.  
  "어떻소?"  
  그는 사육사가 끌고 온 거대한 종마에 감탄사를 발했다.   
  "저 엉덩이를 만져 봐요!"  
  그녀는 종마를 쓰다듬으며 갖은 칭찬을 다 했다. 그들은  그의 아일랜드 울프하운드 종의 
개 사육장으로 갔다. 사냥개들의 마리당 가격이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함부로 풀어 놓을 
수 없다고 그가 설명했다.  
  "어떻소?"  
  그는 생후 6주일 된 투실투실한 강아지를 그녀에게 넘겨주었다.   
  "한번 안아 봐요!"  
  그 다음 그는 그녀를 장미 정원으로 안내했고 원예상을 수상한 장미들을 한 송이씩 구경
시켰다. 
  "이 꽃은 포트윅 빨간 장미요." 
  그는 한 송이를 꺾어 필요 이상으로 시간을 끌며 그녀의  가슴팍에 꽂아 줬다.  마조리는 
그의 저의를 서서히 눈치채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바둑판처럼 경작된  채소 정원으로 
갔다. 그곳에는 호박과 토마토와 오이 등이 잘 여물어 있었고, 그는 토마토와 오이, 수상 품
종인 포트윅 콩을 따 주었다.  그녀는 그것들을 핸드백 속에 밀어 넣었다.  
  "어떻소?"  
  그가 소리를 질렀다.  
  "이 포트윅 고추를 한번 먹어 봐요."  
  그는 그녀에게 큼지막한 빨간 고추를 건넸다.  
  "맛을 봐요!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이런 고추를 보지 못할 거요. 자,  한입 먹어 보라니
까."  
  그녀는 고추를 베어 물고 씹은 다음 남은 부분을  만지작거리다 손아귀에서 으깨 버렸다. 
다행스럽게도 저택으로 가는 길에 또  다른 정원을 통과해야 했다. 사면이  키 큰 울타리로 
둘러싸인 한가운데 잉어들이 뛰어노는 연못과 분수가 있었다.  
  "네, 그렇네요."  
  발걸음을 멈추고 물고기를 칭찬하는 자리에서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신음을 내뱉었다.  저
택으로 통하는 프렌치 문을 볼드윈 경이 열어 졎혔다. 그의 서재가 틀림없었다. 실내는 티브
이 수상기, 바, 아늑한 양탄자, 큰 사슴 머리와 벵갈 호랑이로 치장되어 있었다.  이제 저 망
할 박재들을 칭찬할 차례로군.  하지만 그녀의 착각이었다!  볼드윈 경은 바지 지퍼를 내리
고 그녀가 본 중 가장 굵은 남성을 꺼냈다.  
  "어떻소? 이 물건은 지난 365일 동안 휴식을 취했다오."  
  그리고 그녀는 366일 째 포트윅 영지에  뛰어든 바보였다. 그 명품은 더  이상 쉴 의향이 
없어 보였다. 그녀의 눈앞에서 남보라 색으로 변하면서 고동쳤다.   
  "쟈, 손을 대봐요! 만져 봐요! 잡아 봐요!"  
  그가 명령했다. 그녀는 그 말에 따랐다. 아까 포트윅 고추 즙이 밴 손으로 그것을 잡고 꽉 
눌렀다. 볼드윈 경은 아픔으로 귀청이 떨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잠시 후 그는  연못으로 
뛰어들어 그의 살찐 잉어들과 함께 물장구를 쳤고 그의  살찐 울프 하운드처럼 투덜거렸다. 
그녀는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마조리는  잡지에 포트윅 만년필 광고가  게재되지 않으리라 
예상했지만 그것은 그녀의 오산이었다. 왜냐하면 그 1주일 후  그의 광고 대행사가 양면 컬
러 광고를 1년 동안 발주해 왔다. 결국 볼드윈 경은 우아한 패배자였던 것이다.  
   
  대다수의 광고업자들과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녀는 잡지를 넘기며  그들과 함께 한 점심 
식사와 공유한 신뢰감을 떠올렸다. 하지만 단 한명의 치명적인 적을 만들었다. 알프레드  케
이브는 거대 광고 대행사의 미디어 부장이었다. 케이브는 아무리 좋게 묘사하려 해도 할 말
이 없었다. 키가 작고 말랐지만 온화한 인상과 달리 그의  회색 눈에는 권력에 굶주린 빛이 
번들거렸다. 그는 언론 매체를 검토하여  그 광고 효율성에 따라 다양한  영업 분야에 적소 
배치했으므로, 그의 노련한 안목을 거쳐야만 회사 중역진의 검토 대상에 올라가고 최종적으
로 고객들에게 추천될 수 있었다. 그녀의 첫 방문에 그는  그녀에 대한 음흉한 저의를 노골
적으로 드러냈다.  
  "하디 양, 당신이 제의한 내용이나  수치는 꽤 근사하게 들리지만  좀더 창조적인 전략을 
채택할 수 있을 거요. 내 말을 알아들었소?"  
  그녀는 이해를 못한 채 얼굴을 찡그렸다.   
  "우리는 당신네에게 한 꾸러미의 광고를 밀어 줄 수 있소. 거물 고객들과 큰 자릿수의 계
약만 골라서 말이오. 그건 전부 내가 당신네를 우리  윗분들에게 어떻게 소개하느냐에 달려 
있소. 당신이 나에게 잘해 준다면, 나도 그만큼 보답을 하리다. 이제 내 말뜻을 알겠소?"  
  "어떤 식으로 잘해 달라는 거예요?"  
  그녀는 가방 속에 든 테이프 레코더를 작동시켰다.   
  "순진하게 굴지 말아요, 마조리. 내 물건을 갖고 놀아 준다면 수십개의 광고가  당신 회사
로 떨어질 거요."  
  "저기, 내가 어떻게 하면 되나요?"  
  그녀가 말을 더듬었다.  
  "평소대로 해요, 마조리. 당신이 뒷 수작으로 광고 지면을 팔았던 식으로 말야."  
  "당신같은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어요. 이건 파워 게임이지요?  당시은 그저 날 
굴복시키고 싶은 거예요. 정말 잔인한 사람이군요."  
  "잔인하든 말든, 내가 당신이라면 저 탁자 위에 누워 다리를 벌릴 거요. 예쁜이, 수십쪽이  
  넘는 올 컬러의 광고를 생각해 봐요. 당신은 두둑한  수수료를 받게 될 거요. 자, 내가 문
을 잠그겠소."  
  "그러실 필요 없어요. 난 가겠어요."  
  그 다음날 아침 그 테이프는  복사되어 그의 회사 총 경영  책임자에게 전달되었다. 이제 
알프레드 케이브는 좌천당했지만, 그 대행사는 그녀의 잡지를 거부했고 아무도 그녀를 만나 
주려 하지 않았다. 가재는 게 편이라는  전형적인 본보기였다.  하지만 그녀가 정말 그토록 
고결한 사람일까? 매일매일 그녀의 영혼을 팔지 않았던가? 바바라가 그녀의 새로운 이미지
와 머리 모양, 사투리 없는 억양과 뛰어난 세일 능력을  칭찬하는 동안 그녀 자신도 달라진 
모습에 적응해 나갔다.  목표물이 방어벽을 낮추는 순간 조금의 양심의 가책도 없이 먹이를 
낚아채는 기회주의자, 편의적이며 감언이설로 꾀는 무자비한 세일즈맨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그 순간은 항상 존재했다. 한동안 기다리다 보면 결국 먹이감은  긴장을 풀었고 바로 그 순
간 홱, 결국 그들은 그녀의 갈고리에 걸려 바둥거리는 신세가 되었다.   
     
  "이리 와요, 마지. 기분좀 내라구. 축제 분위기잖소." 
  죠가 소리쳤다. 그녀는 재빨리 우울한 상념에 빠졌던 변명거리를 찾았다.  
  "우리 빚이 얼마나 되죠?"  
  "이런! 마조리, 당신은 분위기 때는데  도통했구려. 모두 5만파운드지만, 창간호  발행으로 
이번 달 경상 경비와 대출 이자를 모두 제하고도  원금을 5천파운드나 갚았소. 올해 안으로 
부채를 전부 청산하게 될 거야."  
  "하지만 지출 경비가 급상승할 거예요." 
  그녀가 침울하게 말했다. 
  "나에게는 런던 사물실과 각각 한 명씩의 비서와 보좌인이 필요해요. 아니, 가장  좋은 방
법은 회사를 런던으로 이전하는 거예요."  
  "당신같은 여자 세일즈맨을 더 뽑는 게 어떻겠소?"  
  "난 이혼, 혹은 배우자와 사별한 여자와 미혼모만 고용할 거예요."  
  그녀에게 갑작스런 직관이 떠올랐다.   
  "단기 계약과 저임금, 그리고 높은 수수료를 제공하겠어요. 그들은 이 세상의 진정한 절망
을 맛본 자들이기 때문에 사소한 고객도 놓치지 않을 거예요."  
  약간 몽롱한 기분으로 그녀는 몸을 뒤로 젖히고 상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걱정 많은 엄마 
비둘기들이 런던 주변을 배회하다가 통통한 벌레들이나, 카멘 주택가나 챨크 팜 하숙  단지, 
혹은 과밀한 탁아소 주변의 보잘 것 없는 먹이감도 소흘히 하지 않고 낚아채는 광경이 눈에 
선했다.  
  "이만 퇴근할께요, 안녕. 열흘 후에 봐요."  
  그녀가 크게 소리질렀다.  
  "가지 말아요. 재미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구!"  
  죠가 새 비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난 라나에게 가 봐야 해요. 그리고 이 잡지를 엄마에게 보여 드리고 싶어요. 나에게는 그
게 재미라고요."  
  그녀는 딸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던  시간을 지금부터 보충할 생각이었다.  우선 라나와 
단둘이서만 데본에 가서 휴가를 보내야지. 그들뿐 아니라 엄마도 숨돌릴 필요가 있었다.  
     
  1975년 6월말에 창간호를 발매한 이후, 마조리는 구름에 닿을 만큼 성공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이제 그녀는 중요 인사 였고 전국적으로 유명한 잡지의 공동 발행인이었다.  고객
들은 붉은 융단을 깔고 그녀를 맞이했고, 기본 업무를 중단한 채 그녀와 면담했다. 색정적인 
야수와 잔인한 제안과 저질 협박은 과거의 일이었다. 마조리는 그녀의 성적, 사업적인  힘을 
행복하게 인식했다.  첫해 연말에 그녀는 챨크 팜에서 햄스테드의 안전하고 쾌적한 새 아파
트로 이사했다. 그리고 라나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부모님들을  런던 근교로 모셔 
올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이듬해 1월, 마조리는 '올해 영국의 여류 사업가'로 선정되어  저
명한 사교 잡지를 장식했다. 별을 향한 마법의 사다리를 한층 더 올라간 것처럼 보였다.  사
랑에 둘러싸인 라나는 튼튼하고 명랑하게 성장했다. 세 살 배기치곤 말도 잘 했고 영리했다. 
그녀의 사전에 '아빠'라는 단어는 없었지만 대신 '죠'가 그 자리를 메웠다. 마조리가 멀리 떨
어져 있는 동안 바바라가 양육을 도왔다.  매주 금요일마다 마조리는 런던을 출발, 오후 5시
에 집에 도착한 다음 라나를 목욕시키고 함께 놀아 준  다음에 잠자리를 봐 주었다. 일요일 
저녁에 딸을 떼어놓고 떠날 때마다 그녀의 가슴이  찢어졌다.  1976년 7월, 죠는 다섯 개의 
경영 잡지로 구성된 출판 그룹의 도산 소식을 듣고  채권단으로부터 회사를 사들였다. 가스 
클락은 사주의 10퍼센트를 받고 경영 이사직을 수락했고. 전 동료이자 친구를 '리더십'의 편
집자로 스카웃해왔다.  마조리에게 새로운 영역이 열렸지만, 이번에는  보석과 호텔, 플라스
틱과 섬유, 교통에 대한 무지에 겁먹지 않았다. 그녀는 여러 날에 걸쳐 그 분야에 대해 공부
하는 동시에 사무실을 찾아다녔다. 다행히 핀클렌이의 복합 쇼핑  단지 내에 3개의 임대 사
무실을 얻었다.  이제 저문 영업 팀을 발족하겠다는 그녀의 꿈을 현실로 옮길 차례였다. 그
녀는 광고를 내고 면담한 결과 주부 사원들을 채용했다. 너무  많은 책임을 걸머진 것에 반
해 훈련을 거의 받지 못한 걱정  많고 야심찬 엄마들이었다. 그녀는 단기 계약을  기본으로, 
적절한 자격을 소지한 보모들이 있는 청결하고 믿을 수 있는 탁아소를 공식 후원했고 아픈 
자녀들을 간호할 수 있도록 관대하게 근무 시간을 조정한데다 교통비를 보조하고 의상을 지
급했다. 이렇게 생명 줄을 던져 준 보답으로 그들은 모두 헌신적인 일꾼으로 변했다. . 그녀
는 그들을 교육시키는 과정에서 자신이 경험을 통해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웠느지를 새삼 실
감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새로운 팀은 도버 건물의 2,3층을 빠르게 독식해 나갔고, 원
격으로 편집부를 운영하기란 쉽지 않았다. 죠는 도버를 떠나야 했지만, 이 건물에서 그를 떼
어 내는 일은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것보다 힘들었다.  1976년  연말에 회사가 흑자를 냈기 
때문에 마조리는 첼시에 템스 강이 내려다보이는 멋진 아파트를 구입했다. 마조리에게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그녀가 1주일간의 휴가를 얻어 새 보금자리의  단장에 나섰을 때 죠
가 등장했다. 그들은 그녀의 계획을  놓고 오랫동안 격렬하게 싸운 결과  그 노력의 대가를 
받았다. 단순한 나무 바닥 위에  깔린 화려한 아프간 러그, 현대적인  스웨덴 가구, 탁 트인 
공간과 몇 점의 명화 등. 그녀는 집들이 파티를 열었고 예상밖으로 많은 지인들이 참석했다.  
거의 런던 인구의 반이 모든 방과 지붕식 정원까지 가득 메웠다.  곧 유럽으로 진출하게 되
었다.  그녀는 한달 동안 그곳에 머물며 '리더십'의 유럽 증보판 창간을 지휘했다. 특유의 영
업 방식은 목표량을 초과 달성했고,  증보판의 지면은 남김없이 광고로 채워졌다.  마조리는 
여행을 하면서도 잡지의 성장세를 지켰다.  놀라울 만큼 그녀는 빨리 부유함에  익숙해졌다. 
하루아침에 제트 족에 편입한 그녀는 돌발적인 비행을 대비하여  항상 가방을 풀지 않았다. 
그녀는 유명했고 젊고 아름다웠다. 그녀가 이룩한  승리자로서의 외양이 거짓이라는 사실은 
오직 그녀만 알았다. 그녀의 속은 딴사람이었다. 누구일까?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실패자로
보았다. 사랑하는 남자의 사랑을 획득하지  못한 여자, 딸의 생득권을  확보하지 못한 여자, 
사랑하는 법을 잊어버린 여자. 이렇게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면서 그녀는  마조리 하디라는 
화려한 외양에 피신처를 찾았다.  
        
  마조리는 맨 어깨와 얼굴에 와 닿는 따뜻한 바람의 감촉을 만끽하며 일등석 승객들과 어
울려 공항 청사로 향했다. 냉기어린 영국을 벗어나니 살 것 같았다. 그녀는 고개를 뒤로  젖
히고 바람에 머리카락을 맡긴 채 얇은 실크 정장이 몸에  와 닿는 감각을 즐겼다. 침대에서 
맞는 기분 좋은 아침 같았다. 한 남자가 멀리서 손을 흔들었다.  
  "마조리, 마조리, 달링......."  
  그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 왔다.  하지만 저 남자가 누굴까? 여기가  어디지? 순간 기억이 
끊어졌다.  물밀 듯 닥쳐온 까마득한 공포감에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고 가방을 뒤져 일정표
를 꺼냈다. 이탈리아........아, 밀라노로구나. 그렇다면 저이는 안젤로가 분명해. 친애하는 안젤
로는 침대 속에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지만 약간 변덕스럽고 소유욕도 강했다. 그녀는 입
국 절차를 밟고 세관을 통과한 뒤 안젤로의 품에 안기는 평소의 과정을 떠올리며 손을 마주 
흔들었다. 이 곳에서 체류할 5일은 전혀 고역이  아니었다. 로마인다운 뚜렷한 용모, 관능적
인 입술, 표정이 다양한 갈색  눈동자와 흑발 고수머리의 안젤로는 현생  인류 사상 최고의 
남성'호모 사피엔스'였다. 게다가 6피트나 되는 장신인데다  강하고 섹시했으며 뛰어난 댄서
였다. 또한 정열적이고 웃음을 사랑하는 천부적인 재능의 화가였다. 그녀는 그의 그런  점을 
사랑했다. 최근 마조리는 사업과 유리된  분야에서 친구를 찾았다. 힘들게 터득한  요령이었
다. 대다수의 광고주들이 그녀에게 데이트를  청해 왔지만 바람직한 상대가 극히  드물었다. 
덧붙여 고객과의 데이트는 그 광고 계약과의 결별을 의미했다. 그들과의 정사는 세 가지 결
말을 초래했다. 그녀가 차거나, 그들에게  차이지 않으면 결혼! 어느 쪽이든  그녀는 손해를 
보았다. 그녀는 여행용 가방을 끌고 흰 가죽 가방을 어깨에 맨 채 입국대로 향했다.  그녀의 
인생이 점점 복잡해졌다. 브뤼셀에는 프란이 있었다. 그는 남아프리카 출신의 귀화인으로 다
른 귀화인들을 대상으로 모국어로 책을  출판했고 귀향을 꿈꿨다. 그는  따뜻하고 인내심이 
많은데다 강한 남자였고, 그녀는 그의 이타적인 성격과 건전한 상식을 사랑했다. 그녀는  평
소 그의 시내에 있는 집에 머무르며 현지 사무실 일이 바쁘지 않을 때마다 그의 취미인  비
행을 함께 즐겼다.  파리의 피에르는 작가였고,  그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가끔 정열적인 
정사를 제공하는 여자를 원했다. 하지만 최근에 그 역시  점점 질투심과 소유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피에르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고통과 맞물려 있었다. 그는 까다롭고 절망적인  분
위기에 쉽게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기 넘치는 연인이기도 했다.  함부르크에선 헬
무트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꿈꾸듯 그를 사랑하는 이유를 생각했다. 그가  모든 
일에서 끊임없이 완벽을 지향하기 때문일 거야.  심지어 잠자리에서도. 그는 심각하고 진지
했으며 토목 사업으로 떼돈을 벌어들였다. 아냐,  그의 연약함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걸까? 
강인한 푸른 눈동자와 순수한 금발, 귀족적인  외모 뒤에 고독한 소년이 어려  있었다.  아! 
그 이유에는 끝이 없었다.  그녀의 마지막 기착지는 말타였고, 한 귀화한 영국인이 회의 센
터와 주말 별장을 제공했다. 그녀는  말타에 초행이었으므로 혼자 일광욕을  즐기는 사치를 
기대했다. 여행은 힘에 버거운 수위에 도달했다.  지난 몇 달 동안 그녀는 죠에게 런던으로 
회사를 이전하자고 졸라댔다. 그러던 중 난데없이 그가 도버의  모든 사업체를 팔고 이전하
는데 동의했다. 그 이유가 뭘까? 그녀가 멀리 떠나 있는 관계로 그가 자신의 약속에서 자유
로워졌을까? 죠가 출판업에 흥미를 잃었다는 사실을 그녀는 눈치챘다. 하지만 그 점은 그다
지 큰 문제가 되지 못했다. 그가 더 이상 필요 불가결한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편 그가 모든 여유 자금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이 큰 걱정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원하는 
것을 모두 가졌지만 공동  이윤의 총액이나 거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아 드디어! 
그녀는 출입국 공무원에게 여권을 내보이고 입국을 허락 받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는 
안젤로의 품에 안겨 있었다. 항상 그렇듯이 그의 압도적인 성적 매력과 피부 내음과 웃음진 
갈색 눈동자에서 빛나는 강렬한 즐거움이 그녀의 방어 벽을 허물었다.  이 순간 그는 이 세
상에서 유일한 남자였고 그녀는 행복감을 맛보았다. 그의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오
랫동안 헤어져 있었던 연인만이 보일 수 있는 긴박함으로 서로의 옷을 벗기고 사랑을 나누
었다.  
  "당신을 사랑해요."  
  그녀가 그의 어깨를 베고 누워 꿈같은 기분에 젖어 있을 때, 안젤로가 말했다.  
  "바보같은 소리. 그건 욕망이에요."  
  "그것도 그래요. 난 항상 당신 꿈을  꿔요. 하지만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왜 믿지 
않죠? 당신은 나를 사랑해요?"  
  그녀는 그의 아름다운 손을 잡고 혀로 긴 손가락과 손바닥을 핥고 체모가 난 팔을 애무했
다.  
  "사랑은 존재하지 않아요. 아니,  존재한다 해도 순수한 고통일  뿐이에요. 나에게 사랑을 
말하지 마세요. 정욕에 대해 이야기해요. 당신은  너무 아름다워요, 안젤로.  당신을 보기만 
해도 난 정신을 잃어요. 말에 연연해하지 말아요. 말보다 행동이 더 호소력 있잖아요? 그저 
당신을 향한 내 욕망의 크기를 느끼세요."  
  그녀는 그의 위에 누워 양손으로 얼굴을 부둥켜안고 짧고 가벼운 키스를 퍼부은 다음 입
술을 그의 것에 대고 혀로 간지럽혔다. 그가 부드럽게 신음하자, 그녀는 좀더 아래쪽으로 내
려가 온몸으로 그의 배를 간질이며 그의 가슴을 빨았다.  
  "만족을 모르는 여자야, 당신은."  
  그는 그녀를 베개 위로 끌어다 눕히며 속삭였다.  
  "당신 같은 여자는 생전 처음이야. 난 당신을 항상 원해요. 사랑해요."  
  다시 그 우스꽝스런 표정이 어렸다. 그녀 자신이 사랑할 만한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뻔
히 알고 있는 이 마당에 그가 어떻게 그녀를 사랑할 수 있을까? 그녀는 잠깐 그의 진심 여
부를 모색하다가 생각을 그만 두고 안젤로가 주는 기쁨과 만족에 빠져들었다.  
        
  신데렐라처럼 그녀의 꿈은 자정에 깨졌다.  그녀는 편안하게 안젤로의 어깨를  베고 누워 
그가 친구인 로마 귀족들, 정치인들과 예술가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말에 즐겁게 
웃고 있었다. 그는 말을 멈추고 포도주를 한 모금 마신 다음 그녀에게 팔을 둘렀다.  
  "달링, 당신이 깜짝 놀랄 만한 즐거운 일이 있소."  
  "그래요?"  
  그녀가 하품을 했다.  
  "우리 숙모님이 돌아가셨소."  
  "부끄러운 줄 아세요! 어떻게 그게 즐거운 일이에요?"  
  "그분은 연세가 많이 드셨었고, 이제 난 부자가 됐어."  
  "안젤로, 정말 잘 됐어요. 하지만 그림을 포기하지 마세요. 당신은 곧 유명해질 거예요." 
  "당연히 포기하지 않지. 하지만 결혼할 계획이오." 
  "당신이 그리울 거예요."  
  그녀는 진짜 깊은 상실감을 느끼며 속삭였다. 그녀는 눈물 맺힌 눈을 하고 그를 부둥켜안
았다.  
  "안젤로. 당신은 최고예요."  
  "하지만 모르겠소? 난 당신과 결혼 할거야."   
  잠이 싹 달아났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일어나 앉았다.
  "나와 결혼을 해요? 하지만 피에르, 난 당신과 결혼할 수 없어요." 
  "피에르가 대체 누구요?"  
  "헬무트라고 하려다가...... 아니, 안젤로라고요. 젠장!"  
  그녀는 침대에서 빠져나와 포도주를 버컥벌컥 마셨다. 그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고 그녀
를 바라보았다.  
  "난 당신의 그 잦은 여행에 대해  종종 의심해 왔소. 이번에는 내가 당신을  동행할 거요. 
그리고 런던에서 결혼합시다."  
  마조리는 잔을 채우고 침대로 돌아갔다. 턱을 손에 괴고 그녀는 자신의 삶에 대한 설명을 
시도했다. 집에서 그녀는 헌신적인 직장 여성이자 아버지 없는 딸의 어머니이다. 그녀의  삶
에 그를 위한 자리는 없다. 그녀는 살기 위해 유럽 출장을 다녀야 하고 그 몇 주일간 그 동
안 못누린 즐거움을 찾는다.  
  "그렇다면 내가 작은 강아지처럼 당신의 여행을 따라 다니겠소. 내 항공료를 직접 물면서 
말이오."  
  "하지만 당신은 그럴 수 없어요. 이 곳이 당신의 영역이라구요. 당신이 뮌헨이나 브르셀에 
갈 수 없어요......"  
  그녀는 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안젤로는 절망감에 북받쳐 화를 냈다.    
  "당신은 모든 영국인처럼 불성실해. 그 악명높은 영국 해군처럼 모든 공항마다 남자를 두
고있군!"  
  "영국인이 이 일과 무슨 상관이에요? 흥. 내가 당신 삶의  유일한 여자라는 말은 아예 하
지도 말아요."  
  안젤로가 한번 토라지면 대책이 없다는 사실을 그녀는 처음  알게 되었다. 밀라노의 남은 
체류 기간 동안 그녀는 그에게 틈을 주지 않고 피해  다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함부르
크로 떠나는 날, 그가 그녀에게 뼈있는 한 마디를 했다.  
  "이런 어리석은 삶은 그만두고  행복을 찾으세요. 당신은  스스로를 승리자로 생각하지만 
그건 틀린 거요. 제대로 된 남자를 만나서  결혼해요. 그까짓 일이 무슨 소용이 있소? 그게 
침대에서 당신을 안아 주나? 따뜻하고 행복하고 사랑 받는다는 느낌을 주나? 남편 없는 여
자는 반쪽 짜리요."  
  "제발 좀 자라서 20세기에 합류하세요, 안젤로."  
  그녀는 소리를 뻑 지르고 가방을 질질 끌며 그의 옆을 지났다.  
  "난 당신을 택시까지 배웅하지 않을 거요. 그리고 당신을 욕하고 싶지도 않소."  
  그는 그녀가 짐과 씨름하는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마조리는  택시 안에서 엉엉 울었지
만, 평생 처음으로 그 이유를 알아낼 수 없었다.  
     
  히드로 공항에서 죠를 발견하는 순간 그녀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당신이 왜 여기에 왔죠? 무슨 일이라도? 라나가 잘못 되었군요?"  
  그녀는 그의 팔을 붙잡았다. 
  "이런! 아무것도 잘못되지 않았소. 진정해요."  
  "그런데 왜 여기에 왔어요?"  
  "나를 만나기 싫다는 거요?"  
  "물론 아니에요. 당신이야말로 질문에 대답하기 싫어요?"  
  경계 경보가 해제되었다. 그녀는 상큼하게 미소지으며 그가 얼마나 잘났는가를 거듭 깨달
았다. 그의 눈과 이빨이 가무잡잡한 피부와  대조적으로 빛났고, 최근에 양 뺨에 깊은  홈이 
파였지만 검은 고수머리는 여전히 어깨까지 닿았다. 평소처럼 그들의 남매같은 관계가 유감
스러웠다. 그녀는 애정을 담아 그를 꼭 껴안았다.  그가 미소를 지었다.  
  "당신을 놀라게 해줄 일이 있소. 내가 우리 사무실을 옮겼소."  
  깜짝 놀란 그녀는 뒤로 물러선 다음 화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본능은 항상 
적중하는데, 왜 계속 그 울림을 무시해 왔을까?  
  "죠, 난 당신이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았어요. 내가 일할 곳을 결정하는 문제에 
할 말이 전혀 없을 것 같던가요?"  
  "더 좋은 소식이 있소."  
  그는 그녀의 분노를 무시하고 겸연쩍게 미소지은 얼굴로 그녀를 곁눈질했다.  
  "우리는 이사했소. 그래서 내가 여기에 온 거요."  
  "한 달 사이에 이사를 했단 말이에요? 그렇게 빨리 옮길 수 없었을 텐데."  
  "사실이오! 그래서 임대료를 지불하는 게 아니겠소?"  
  그녀는 토라진 채 입을 꼭 다물고 그의 자동차로 갔다.  런던으로 가는 동안 이런 어리석
은 태도로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음을  자각했다.  이미 다 끝난 일이었으므로, 그녀는 
나쁜 기분을 접어 두고 유럽에서 갈무리해 온 경영 방침과  요구 사항, 새로운 계약과 편집 
아이디어를 상의했다.  한 시간 후 그녀가 이야기 보따리를 겨우  반밖에 꺼내지 않았을 때 
죠가 재규어를 킹스브릿지 광장에 주차시켰다. 고풍스런 테라스가 달린 높은 주택들이 작은 
개인  공원을 면하고 있는 그런 곳이었다. 척 보기에도 매우  조용하고 품격 있으며 부티가 
났다.  '한스 플레이스' 그녀는 충격 속에서 건물 이름을 읽었다.   
  "임대료가 얼마예요?"  
  그녀는 경악한 나머지 숨이 막혔다.  
  "10만 파운드."  
  "한 재산이네! 우리는 남은 평생 동안 빚더미 속에서 살게 될 거예요."
  "아!" 
  그녀가 헐떡거렸다. 죠는 일단 화가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이제 그의 입술이 꾹  다
물어져 얇은 선을 그렸고 그의 표정은 그녀가 매우 싫어하는 샐쭉한 것이었다. 그녀는 그를 
따라계 단을 오르고 안으로 들어갔다. 회색과 흰색의 타일이 발라진 바닥, 하늘색과  흰색의 
장식, 사방 벽에 걸려진 새 그림과  스웨덴 가구의 적절한 배치에 경탄이 절로  흘러나왔다. 
못 보던 접수 계원이 큰 엘자형 책상 뒤에 앉아 있었다. 커다란 푸른 눈동자와 완벽한 용모, 
풍만한 몸매가 보기 드문 미녀였다. 마조리를 경쟁자로 의식한  그녀의 차가운 평가와 무시
가 마음에 사무쳤다.  
  "이쪽은 내 동업자요. 마조리, 스웨덴 출신 헬가와 인사해요."  
  죠가 말했다. 마조리는 손을 흔들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  
  "와, 당신 꽤나 바쁘셨겠어요. 그녀의 월급은 얼마나 되요?" 
  그녀는 작게 속삭이며 그와 함께 통로 쪽으로 갔다. 마조리는 심드렁하게 입을 다물고 실
내를 구경했다. 1층 접수대 뒤에 영업부  사무실들과 그녀의 독립 업무실이 포진해  있었다. 
높은 천장 덕에 채광이 좋고 공기가 잘 통하는데다 후원의 나무 한 그루가 엿보였다. 2층에 
가스 클락이 '리더십'팀을 관장했고, 여러 경영 잡지들의 편집부 직원들이 3,4층을 점유했다. 
죠는 맨 위층을 개인 아파트로 삼았다. 흥, 그가 여기다 돈을 쳐들였단 말이지. 뭔가 조치를 
취해야만 해.  
  "당신 할 말을 잊지 않았소?"  
  그들이 다시 원위치로 돌아오자, 죠가 투덜거렸다.  
  "지하에는 뭐가 있어요?"  
  "회계 및 경리부. 당신이 잊은 게 있다니까."  
  "예를 들면?"  
  "감사같은 것."  
  "우리는 저당을 갚느라고 땀깨나 쏟아야 할 거예요."  
  그녀가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이건 지나쳤어요. 당신은 나를 기다렸어야 했다구요. 게다가 아무리 이곳이  완벽하고 돈 
문제도 없다손 치더라도, 당신 단독으로 결정을 내릴 권리는 없어요."  
  그녀는 차마 그의 얼굴을 마주보지 못했다. 죠와의 싸움은 항상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괜
히 손장난을 쳤다.  
  "당신은 항상, 우리가 결혼한 부부이고 당신이 곳간 열쇠를  쥐고 있는 것처럼 행동해 왔
어요.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잖아요? 난 당신에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생가해요."  
슬쩍 그를 올려다본 그녀는 그의 비틀린 입매와 가늘게 떠진 실눈으로 분노의 정도를 측정
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잘 알았다. 사실 너무 잘 아는 게 문제였다.  
  "마조리, 난 부동산 회사를 세워서 이 건물의 명의를  변경했고 그 회사의 지배주를 갖고 
있으니 곳간 열쇠를 쥔 셈이오. 그게 다 내가 당신보다 돈을 더 많이 투자했기 때문이오. 알
겠소? 난 도버의 건물과 항구 근처 창고를 팔았고 지난달에 선박 관련가게를 인수하겠다는 
구매자를 찾아냈소."  
  "뭐요! 한 달만에 그 일을 다 해냈단 말이에요? 다른 변명을 대보시지 그러세요."  
  "하지만 마조리, 난 작년부터 이곳을 매입하기 위해 일해 왔소. 난 우리가  런던으로 이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예상보다 더 오래 걸린  것은 매매가가 맞지 않았기 때문
이오. 그리고 당신도 날 귀찮을 정도로 졸라왔잖소."  
  그녀는 그의 반박을 무시했다.   
  "그럼, 내 소유분은 얼마나 되나요? 절반의 절반 정도?"   
  "당신 개인적으로는 아무것도 없소. 하지만 우리 출판사가 지분의 49퍼센트를,  내가 개인
적으로 51퍼센트를 가졌소,  향후 20년동안 우리는  함께 대부금을 상환하게 될 거요. 이제 
만족하오?"  
  "나도 회사 설립에 협조했을 거예요. 당신은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군요. 이건  돈이 
아니라 기분 문제예요." 
  그녀의 상처는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나도 그랬을 거요. 하지만 난 당신이 영업 쪽에 전념하기를 원했고. 그게  당신의 주특기 
분야니까."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암시하려는 뜻이 정확하게 뭐예요?" 
  "난 우연찮게도 재정 및 부동산 분야에 재주를 가졌다는 거요."  
  "내 재산은 얼마나 되나요. 죠? 꼭 알았으면 좋겠군요."  
  "딱 잘라서 말하기 어렵소. 잠깐  기다리도록 해요. 조만간 회계  감사를 실시할 테니, 그 
결과를 들어봅시다."   
  평소처럼 그는 정면 대결을 교묘하게 피했다.  정말 웃기게도 죠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
다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다. 지금은 곰의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비슷한 정도였다. 아마  죠는 
한 두 가지 실수를 만회할 시간이 필요한 게지. 그녀는 한 동안 휴전을 하기로 결심했다. 하
지만 그렇게 오래지는 않을거야.  
    
  마조리는 죠에게 약간의 정보를 캐묻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그를 특별한 단골집인 베르베
넬라 레스토랑으로 초대했다 그녀의 사무실에서 한 모퉁이 건너 보샹프 플레이스에  위치한 
그 곳에서 중요한 계약이 수 없이 많이 체결되었다. 친근한 분위기와 예술적 경지에 다다른 
음식 맛은 그녀 고객의 마음을 백발백중으로 풀어 줬다.  
  "서류를 전부 가져오세요, 죠. 난 일이 돌아가는 상황을 알고 싶어요."  
  마조리가 고집을 피웠다.  그녀는 걱정스런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죠의 말에 따르면 그
녀의 저금이 많아지고 있다지만,  그녀가 지금까지 본 것이라고는  정상적인 거래에서 나온 
이윤 목록뿐이었다. 출판사의 주식은 제쳐 두더라도 자신의 총  자산액에 대해 아무것도 몰
랐고, 특히 현금을 만져 보지도 못했다. 그들은 신용 대부로 살았고 동전 한푼까지도 죠에게 
결재 받았다. 그가 도박을 하는 걸까? 그들이 큰 곤란에 처한 것은 아닐까? 정말 그렇다면, 
그녀가 알아야 했다. 주머니를 톡톡 털어서라도 죠의 빚을 갚아  줄 테지만 우선 일을 막는 
것이 급선무였다.   
  "죠."  
  그녀는 최고의 전략을 발휘하여 송아지 간 요리와 이 집의 장기인 크렘 브릴레를 먹는 중
간에 말을 꺼냈다.  
  "내 몸값이 얼마나 되요?"  
  "시중 금값을 호가한다고 누차 말했잖소. "  
  죠와 논쟁을 벌이는 짓은 체스를 두는 것만큼이나 힘들었다.  넌 패자야!  
  "내 재산은 얼마나 되는데요? 즉, 출판사와 독립적으로 당신은 모든 경영 활동을 통해 이
윤을 창출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길 바래야지. 난 그많은 세월을 허탕으로 낭비하는 짓 은 사절이거든."  
  "하지만 죠, 우리 출판사 이윤은 모두 어디에 있어요?" 
  "투자를 했지. 그럼 당신은 뭘 기대했소? 침대 속에 금 덩어리라도 감춰 두었어야 했나?"  
  그는 돌같이 딱딱한 표정을 짓고 도전적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그의 코를 꼬집
었다.  
  "빨리 말해요! 내 돈은 얼마나 되요?  현금은 어디에 있죠? 난 부모님께  집을 사 드려야 
해요. 20세기에 발 맞춰 살아야 한다구요. 여성들이 자기 통장을 관리한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어요? 그리고 우리는 결혼한 부부도 아니잖아요."  
  "재정적으로 50대 50 동업자 관계는 결혼한 것보다 더 나빠." 
  죠가 침울하게 말했다. 그녀는 전술을 바꾸었다. 
  "죠, 난 스물세살이에요. 너무 늦기 전데 돈을 쓰며 즐기고 싶다고요." 
  "당신에게 너무 늦은 나이가 몇살이오?"  
  "서른이요!"  
  "좋아, 당신이 서른이 되기 전에 내가 투자 회사를 설립하겠다고 약속하지." 
그녀는 도끼로 자기 발등을 찍었다. 멍청한 마조리. 그녀는 포기하고 디저트에 전념했다. 침
묵이 백 마디 말보다 더 큰 힘을 가졌다. 그녀는 그 깨달음에 놀랐다. 죠는 그녀가 결정적인 
질문을 던지기에 앞서 야멸차고 오랜 침묵의 형벌을 가한 고객들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헛기
침을 했다. 
  "저기,"  
  그가 결국 입을 열었다.  
  "당신은 투자 회사 주식의 50퍼센트를 갖게 될 거요.  내가 우리의 돈으로 회사를 설립했
기 때문이지. 즉, 당시이 모든 이윤의 50퍼센트를 차지하게 된 이마당에 왜 불평만을 토로하
는 건지 모르겠군."  
  그녀는 여전히 침묵을 지킨 채 커피에 관심을 돌렸다.  
  "당신이 영리하기 때문에 '올해의 영국 여류 사업가'로 선출되었지만 애초에  내 아이디어
로 성공한 거잖소. 자, 욕심쟁이 양......"  
  그는 서류 가방을 뒤져 서류를 식탁 위에 꺼내 놨다.
  "이건 나의, 아니 우리의 총 자산 세부 서류요. 당신의 복사본 이니까  회게사에게 가져가
요. 검토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요.  핵심은 바로 이 부분이오. 당신 몫은 ....."   
  그가 서류를 몇 장 넘긴 다음 어떤 수치를 가리켰다. 1천 2백만 파운드!  
  "우와! 내가 좀 쓸 수 있어요?"  
  "이 수치는 서류상으로만 존재하오. 현금은 주식 및 기타 비용에 묶여 있소.  사정이 급박
할수록 돈을 쥐기란 어려운 법이오. 우리가  갑자기 제 몫을 처분한다면, 이만큼 많이  받지 
못할 거요."  
  "세상에! 당신이 우리를 말아먹는 줄 알았는데. 왜 그동안 수상쩍게 행동한 거예요?"  
그녀는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커다란 떡갈나무도 작은 도토리에서 시작된다네....."  
  그리고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입을 틀어막았다. 엄마의 입버릇이 그녀의 유전자에 뿌리내
리고 있다가 약한 틈을 놓치지 않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난 백만장자예요."  
  그녀가 말했다.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리겠는걸. 하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한 몇분 생각한 후에야 그 이유를 알아냈다.  
  "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내 배의 선장이  되는 거예요. 난 열심히 일해서 출판사
를 세웠고, 내 성취에 큰 자부심을 느껴요. 하지만 이것은 자랑스럽지 않아요."  
그녀는 식탁 위의 서류를 가리켰다.  
  "이건 모두 당신이 이룬 것이니까요. 난 돕기는커녕 알지도 못했어요. 네, 고맙긴 해요. 하
지만 죠, 난 내 삶을 책임지고 싶어요. 당신은 내 마음을 이해하시지요? 난 보살핌을 바라는 
어린 여성이 아니에요. 한때는 그랬을지 몰라도, 더 이상은 아니에요. 난 내 발로 혼자 서는 
법을 배웠고 그게 마음에 들어요. 그리고 언젠가는 완전히 독립할 거예요."  
  죠는 상처를 받았지만 그녀의 말은 진실이었다. 잠시 후 죠는 떠났고 마조리는 다음 약속 
장소로 향했다. 내가 잘못한 걸까? 어린 여성에게도 나름대로의 이점이 있어. 그녀는 안젤로
의 경고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슬픔보다 깊은 사랑 제2권
맷지스윈델스


 
    41
  해미쉬 카메론과의 만남은 운명적이었지만 그것이  운명이었음을 깨달은것은 시간이 훨씬  
지난 다음 
이었다. 당시 마조리는 보기 드물게 도버 부둣가의 악명높은 성질을 냈다.
"엿먹어요."
그녀는 경악한 남자에게 소리질렀다.
"이 잘난 회사나, 잘난 당신도 엿이나 먹어요."
욕을 퍼부으며 마조리는 기사 자료를 쓰레기통에 처박고 나가 버렸다.
그리고 훨씬 훗날 사과 비슷한 것을 했다.
"내가 자제력을 좀 잃긴 했지만 얼마 가지 않았잖아요."
"흥, 지진이 난 줄 알았소."
해미쉬가 톡 쏘아붙였다.
그녀가 서서히 열을 받기 시작한 시점은 수요일 아침  10시  정각이었다. 당시 그녀는 첼시 
아파트의 침
대에 누워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으며 넉넉한아침을  즐기고 있었다. 런던은 온화하고 화창
한 6월의 날
씨를 자랑했고, 마조리는 막 샤워를 하고 옷을 입은 다음  라나와 엄마를  역으로 마중나갈 
참이었다. 라
나와의 짧은 휴가를 목놓아 기다려 왔던 터였다. 할렐루야!  그녀는 뭘 입을까 궁리하며 기
지개를 폈다. 
괜히 웃음이 나왔다. 그때 전화벨 소리가 그녀의 좋은 기분을 망쳤다. 가스가 다급하게 설명
했다
"데이비드가 등을 다쳤고, 당장 안내버스로 날아갈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수천 파
운드가 걸린 
중요한 일이에요, 쇼핑이야 다음 주에 해도 괜찮잖아요?"
가스 클락같은 사람은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리라. 그에게는 자식이 없으니까.
그게 바로 어제 일이었다. 엄마는 그녀의 회사에서 누가 누구를 위해서 일하느냐고  따졌고, 
라나는 실망
해서 엉엉 울었다. 그런 생난리를 겪은 후에 기다리며 오늘 아침나절을 다 낭비했다.
마조리는 신임하며 시간을 확인했다. 인터뷰 약속 시간은 11시  이었는데 거의 오후 한시가 
되었다. 분노
가 피곤함을 물리쳤다. 글레너드 증류소 창립 10주년 특집판의  사전 조사를 위해 카메라와 
케이프 레코
더를 들고 런던 히드로 공항을 출발, 글래스고우를 경유하여  인버네스까지 달려온 참 이었
다. 그녀는 화
가 단단히 났다.예전에도 10분 이상  기대려 본적이 없었던 데다가 이미  얼굴도 보지 못한 

황이자 죤 에스킨에게 강한 반감을 갖고 있었다.  어떻게 그가  이럴수가? 밖에서 기다리고 
약속을 구걸
했던 날은 이미 지나간 과거였다. 최근에는 붉은 카펫트가 깔린 칙사 대접이 보통인데, 그녀
는 모욕감을 
느끼는 한편 전에없던 자신의 오만함에  실소를 감출 수 없었다. 15분이  더 지나자 그녀는 

리에서 일어났다.
"좋아요, 그가 이겼어요, 난 이만 가보겠어요."
그녀는 한숨을 쉬며 접수원에게 말했다. 막  몸을 돌리는 순간 그윽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막 몸을 돌리
는 순간 그윽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스킨 씨는 않게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제가  도와 드
리지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녀는 이 매력적인 목소리의 주인공이  관리인이나 수리공임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의 
울이 굵은 코
듀로이 바지나 체크 무늬의  반소매셔츠, 그리고 친절하지만 비굴한  태도는 깔끔한 사무실
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때 그녀의 성질이 폭발했다. 이런 사람으로 나랄 달래려고 해?  주차장을 성큼성
큼 가로 질러
서야, 택시로 여기에 왔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제  인버테스까지 5마일을 걸어 가든가, 차
를 얻어타든
가, 아니며 그런데 바보처럼 사무실로 다시 돌아가 전화를 사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뒤를 따라오
는 발자국 소리에 절로 안심되었다. "이러지 마십시오."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를 들었다.
"최소한 커피라도 한잔 하세요. 여기, 제가 당신 자료를 쓰레기통에서 주워 왔습니다.
또 그였다. 그는 재미있으면서도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오늘 처음으로 대한 우호적인 인물
이었기에 그
녀도 미소를 되돌렸다.
"맞아요, 나에게 커피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그는 그녀의 팔을 잡고 다시 접수대로 돌아왔다.
"에스킨 씨에게 전해 줘요, 제가 미스......"
"하디 양을 모시고 식당으로 간다고요"
그는 그녀를 데리고 복도를 따라 셀프 서비스제의 큰 레스토랑으로 갔다.
"여기 앉으세요, 하디
그는 의자를 당겨 주었다.
"뭘로 드시겠습니까? 죄송하지만 생선. 햄버거.  치킨. 칩이 전부입니다. 아니면  샌드위치는 
어떠세요?"
"아, 고마워요. 샌드위치가 좋겠네요. 그리고  커피도 부탁해요. 아, 나도함께 갈께요.  내 음
식값은 내가 
내야지요."
"않뇨. 이곳은 사원 무료 식당이에요."
그녀의 구원자가 길게 늘어선 줄을  따라 움직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상냥하고 사과하는 듯
한 미소를 던
지는 동안, 그녀는 그의 동양적인 눈, 광대뼈, 뚜렷한  코와 반드시 자꾸 이마로 흘러내리는 
검은 머리카
락을 살폈다. 저렇게 아름답고 겸손한 사람은 이 세상에 다시없을 거야.  음식을 갖고  돌아
온 그는  그
녀의 곁에 앉기 두렵다는 듯 옆에서 서성거렸다.
"여기 앉으세요. 그런데, 당신 커피는 어디에 있어요?"
"곧 가져올게요, 저는 보통 이곳에서 식사를 하지 않아요."
그가 다시 줄로 돌아갔다.
아! 그녀는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치즈는 부드럽게 잘  녹았고 진짜 버터를 발라  구운 빵
은 바삭바삭했
다. 그녀의 기분이 한결 좋아지기 시작했다.
"당신에게 뭐라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녀는 구원자에게 말했다. 그는 그의 몫과 함께 그녀의 커피를 한잔 더 가져왔다.
그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곳은 앉아 있던 당신을 지나가면서 한 두 번 봤습니다. 당신 안색이 점점 창백해지고 노
기가  짙어지
더군요."
"그게 눈에 보였어요?"
그가 웃었다.
그녀는 설명하기로 작정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대타로 여기에 왔어요. 그것도 막판에요.
라나오 함께 쉴 생각이었는데...... 아,  그 아이는 부모님께서 입양한 네살짜리  딸이에요..... 
나는 동생을 
무척 사랑해요. 동생도 나를 만날 날을고대했기 때문에  울고 날 리가 났어요. 얼마나 심란
하던지, 아이
들을 실망시키는 일보다 더 가슴 아픈 일은 없을 거예요. 자식을 두셨어요?"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미혼입니다."
"나는 그래요."
그녀의 얼굴에 홍조가 일었다.
"어쨌던, 그런 다음 오늘 아침 내내  기다렸더니 기분이 나쁘 더라구요. 하긴 내  잘못이 커
요...... 내가 통
화로 당신네 상무이사의 반감을 샀거든요.
"우리 회사는  글렌너드 창립 100주년 특집판을 내기로 했어요. 그래서 기사를 맡자마자 여
기로 전화를 
걸어 당신네 회장 해미쉬 카메론과 인터뷰를하고 그분의 사진을 '리더쉽'의  표지에싣고 싶
다고 했어요. 
그런데 에스킨씨의 말씀이, 해미쉬 카메론은  보통 알프스의 처박혀 있거나   꼭지가 돌 만
큼 술에 취해 
있기 때문에 만나기가 힘들다더군요. 그려면서  그가 대신하겠다는  여운을 풍겼기  때문에 
여기에 온 거
예요." 그녀는 뜸을 들였다.
"이러 뒷이야기를 하지 않는 건데. 자, 이젠 당시그런데  이야기를 해 보세요. 나는 아직 당
신  이름도 몰
라요. 여기에서 무슨 일을 하세요?"
"꼭 이렇다 할 일은 없어요. 가 끔 한바퀴 둘러보며 주변이 깨끗한지 확인해요."
  그래, 관리이었구나. 저 울퉁불퉁한  근육과 강한  a고을 보아하니  재고품관리도 겸하고 
하고 있나봐. 
그녀는 저도 모르게 그이 가무잡잡하고 강한손을 훔쳐봤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왠지 부
조화를 이뤘
다.
"어디서 점잖은 영국식 억양을 배웠어요?"
그녀가 물었다.
그의 얼굴에서 적나라한 충격이 드러났고, 주의의 온도가 급속하게 영하로  떨어졌다. 갑자
기 그가 그녀
의 말을 그의 동양적인 용모에  대한 지적으로 오해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녀는 
서둘러 말을 
바로 잡았다.
"즉, 당신같이 강인한 스코틀랜드 사람은 하이랜드 식으로 말 해야 한다는
거죠. 당신은 항상 원목 던지기를 하시겠죠?"
그녀는 수줍은 기색을 감추고 밝게 미소지었다.
"그렇지라우. 샤시. 저는 당신이 원하는 대로 말할 수 있지만 에딘버러에 있는  영국인 학교
를 아녔어요."
  그는 그녀를 용서할까 말까 망설이는 눈치였다. 그녀는  그가 외모에 굉장히 민감하고 항
상 방어적임
을 눈치채고 그의 불편을 풀어 주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
는 진정한 스
코틀랜드 인이 되길 모든  원했고, 그들은 하이랜드의 전통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곧 그녀

그가 백파이프를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녀가 석잔째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험악한 눈
과 심술궂은 입내를 한 장신의 남자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하디 양, 여기에 계셨군요."
그녀가 의자를 제치고 일어나련 모든 찰라 그의 손이 그녀를 말렸다.
"죤, 괜찮다면 당신도 합석해요."
그는 아첨떠는 기미없이 말을 던졌다.
"커피 좀 드세요. 하디 양이 원하는 사람은 바로  저예요. 그리고 이제 저를 만났으니, 그녀
는  서두를 필
요가 없어요"
마조리는 온몸이 붉게 물들었다. 그가 그럴 리가......? 그가 ...... 정말......?
"당신이 ......?"
해미쉬 카메론이 윙크를 했다.
"좋습니다. 당신이 회장을 만났으니 만음껏  일을 해보시죠.하지만 전화로 설명했다시피, 해
미쉬는  회사 
경영에 아는 것이 없습니다.명목상 회장이에요."
  그녀는 해미쉬를 곁눈질했다. 그는 죤 에스킨의 확언에 고개를 끄덕이고있었다. 왜 이렇게 
화가 날까?
"사실 전 사업이 질색입니다."
그는 부끄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니 에스킨 씨가 표지에 어울릴 겁니다. 저는 정말 적당치 않아요."
그녀는 한 가지 묘안에 즉석으로 말을 지어냈다.
"나는 당신네 글렌너드 광고를 봤어요. 위스키를 마시면 누구나 다 강인한 스크틀랜드 남자
가 될 수  있
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더군요. 광고 회사가  멋진  남성 모델들을 고용하고 창울해 
낸 분위기는 
실제 모델이 있었어요. 바로 당신이에요. 참  아이러니컬하지요? 그게 우리가 쓰고 싶은  소
재중 하나예
요."
두고두고 곱씹어 볼수록 괜찮은 생각이었다. 그녀는 섣불리 해미쉬를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근모든  매
력적인데다 친절하기까지 했다. 이 세상에 친절한 남자가  몇명이나 되겠는가? 겸손한 태도
도 타고난 정
열이나, 석탄처럼 새까만 눈동자에서 뿜어져나오는 성적 매력을 다 숨길 수 없었다.
"언제 런던으로 돌아가십니까??
그가 물었다.
"내일 밤에요."
"오늘 밤 바쁘지 않으시다면, 함께 저녁을 하면서 사업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요.?"
  나중에 마조리는 해미시와의 만남을 주선한 운명의 장난에 대해 종종  생각했다. 그는 좀
처럼 회사에 
출근하지 않지만 그 날은 특별히 컴토해야 할서류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쪽도, 등을  다쳤던 
기자 데이비
드가 건강이 호전되어 그 다음날 복귀했다. 가스가 이만 돌아와서 남은 휴가를 즐기고 전화
를 걸어왔을 
때 그녀는 시작한 일을 잘 마무리짓고 주말에나 상경하겠다고 대답했다.
  
    42
  마조리가 인버네스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  그들은 강변의 아담하고  호화스러운 집에서  
식사를 했다. 
해미쉬는 그녀와의 작별에 동요하여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고  그녀 역시 아쉬웠다. 해미
쉬는 말이 잘 
통하고 춤도 잘췄다. 등반을 가장 반드시 좋아했기 때문에 장황하게 이야기 했지만 전혀 지
루하지 않았
다. 그녀는 그가 정열적이고 다정한 연인이 되리란 것을 감지했지만, 고객이나 잡지와  연루
된 인물과 관
계를 갖고 싶지 않았다. 그의 감각적이던 입술이 일렁이는 램프 불빛에 맞춰 움직이며 그녀
에게 하루더 
있어 달라고 설득했다. "당신에 대해 말해 보세요, 오늘이 나의 마지막 기회잖아요. 어서요."
그녀가 명령했다. 그는 구슬프게 미소 지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최근부터 시작해서 뒤로 거슬러 올랐어요."
"좋습니다. 지금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영리한 여성과 저녁을 먹고  있어요. 제가 
무슨 운명의 
조화로 이런 행운을 잡았는지, 그녀가 또 만나 줄지  가늠할 수 없군요. 특히, 머지 않아 글
렌너드 회장
직에서 물러나게 될 판에 말입니다."
"왜요?"
그녀는 그의 절망적인 목소리에 마음이 산란해 졌다.
"글렌티란 증류소가 글렌너드를 인수하게 될 겁니다......"
그녀는 충격을 받았다. 로버트의 글렌티란을 의미하는 걸까?"
"어떻게 된 일이에요?"
"맥밀란 가문이 소유한 에딘버러의 글렌티란 증류소를 아십니까? 종종 광고를 많이 하는 회
사인데......"
그녀는 거짓말이 서툴렀지만 해미쉬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당신을 지루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애초에 말을 꺼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를 지루하게 해보세요."
"우리 가문은 저를 몰아내고 싶어합니다. 특히 삼촌 앤드류 카메론은 글렌티란과 손잡고 그
들의 인수를 
돕고 있어요. 죤 에스킨도 그들과 한패라는 의심이 들어요."
  그는 저녁 식사를 하는 중간중간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털어 놨기 때문에  그녀는 어렵게 
그 조각들을 
하나로 꿰어 맞췄다. 로버트와 그의 계모 로다 맥라렌이 글렌너드 증류소의 인수 계획에 깊
이 개입되었
다. 글렌너드는 좋은 순수 원액 위스키를  생산하는데, 현재 경영이 어려운 상태였고  회사 
주식은 조로 
카메론 일가가 갖고 있었다.
"제가 글렌티란 측과 싸워야 마땅하지만 결국 그들이 승리하리란 감이 들어요. 게다가 저에
게는 이길 만
한 힘도 없고, 설령 있다 손쳐도 글렌너드를 회생시킬 자금이 부족해요, 제가 사업에 재능이 
없는 이 마
당에 그 편이 주주들에게 훨씬 이로워요."
"자기 비하는 그만하세요."
  그녀가 그에게 간청했다. 그녀는 해미쉬에게 동지 의식을 느꼈다. 두 사람 모두  로버트의 
피해자구나. 
정말 대단한 인연이네. 갑자기 인버네스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그녀는 이  대 결 
국면이 갖는 
수많은 가능성에 매료 되었다. 
"난 당신의 모든것을 알고 싶어졌어요. 우선, 왜 그렇게 형편 없는 자기 이미지를 갖고 있어
요?"
그가 나른하고도 다정하게미소지었다.
"내가 증류소와 성을 물려받기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니까요. 천한 아시아인이 일족
의 수 장이라
는 말을 들어 봤어요?"
"그만하세요. 그런 심한 자기 비하는 하지 마세요."
그녀는 한 손으로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순간 해미쉬를 조종하여  로버트를 이긴 만족감이 
말할 수 없이 
크리란 사실이 뇌리를 스쳤다.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세요. 이번에는 맨 처음부터요."
그녀가 단호하게 말했다.
  이리하여 슬픈 사연이 전개되었다. 그의 선친이 가문의 재산을  도박과 투기 사업으로 날
려 버렸기 때
문에 시문은 도산 위기에 처한 홍콩의 무역상을 거점으로 과거의 영화를  회복하려고 스물
한 살에 고향
을 떠났다. 그러나 곧 일본이 사업 자문 이었던 해미쉬의 모친과 사랑에  빠져 결혼했고, 아
내를 일족에
게 소개시키려고 딱한번 고향을 찾아온 것을 마지막으로 가문에 등 을 돌렸다. 두사람은 자
동차 사고로 
죽었고 당시 여덟 살이었던 해미쉬는 스코틀랜드로 보내 졌다.
"제가 환영받지 못하리란 것은 불을 보듯 자명한 일이었어요."
해미쉬가 고백했다.
"저만 없었던들, 사촌 이안이 직계 후손으로 농장과 가축  뿐 아니라 저택과 증류소까지 물
려받았을 겁니
다. 이안의 친구들은 저를 천민. 동양 얼간이. 일족의  수치.  황인종 놈이라고 놀렸어요. 저
는 너무 어렸
기 때문에 제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에게  큰  폐가 된다는 것이 이해하지 못했어
요. 하지만 제
가 저의 이름이나 집.유산을 물려받을 권리가 없다는 사실만큼은 눈치챘어요."
"하지만 당신은 맞서 싸웠겠지요?"
그녀는 자신의 강한 호전성을 그에게 주입시키려는 듯 그의 손을꼭 잡았다.
"여덟살의 나이로? 그 짧은 영어로 말입니까? 유감스럽게도  그러지 못했어요. 저는 감정을 
억누르고 분
노를 자격지심으로, 호전성을 무저항으로 산에는 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 그렇게  했
어요."
"내가 옆에 있었다면 당신을 이해서 싸웠을 텐데."
그녀는 그의 눈에 아른거리는 상처를 지워 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몸을 앞으로 내밀고 그
의 눈 커플에 
키스한 후 그의 손을 뺨에 대고 강하게 눌렀다.
"아. 해미쉬."
그는 그녀에게 부드럽게 입맞추었다.
"저는 오랫동안 회장 자리를 지키지 못할 겁니다. 미안해요, 마조리."
하지만 왜 갑자기 사과를 하는 걸까?
"우리가 이만 일어서는 편이 졸겠어요. 산책은 어떻습니까? 강변 오솔길의 경치가 좋아요."
그가 물었다.
"네, 그렇게 해요."
  밤의 고독함과 고즈넉한 달빛이 그들에게 묘한 친밀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녀는 어느덧 
인생 역정을 
털어놓고 있었다. 대학 진학의 꿈이 좌절되었을 때 느꼈던  쓰디쓴 실망감 코르시카의 여름
과 웨일즈 수
녀원에서 딸을 출산했던 과거 전부를 
"그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묻지 마세요. 난 절대로 대답하지  않을 테니까요. 라나는 아
버지가 없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사람들은 그 아이가 입양되었다고 생각해요.   네, 그리고 그게 옳아
요, 아, 왜 당
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늘어 놓았을까? 미안해요."
"제가 느끼는 것을 당신도 느끼기 때문일 겁니다."
그는 발걸음을 멈춰 서서 그녀를 끌어당겼다. 그녀는 그의 힘찬  양팔과 등의  감촉에 숨이 
막혔다. 그녀
의 손이 목까지 기어올라갔다. 그곳 역시 단단한 근육질이었다. 그녀는 그의 모든  것을 흡
수할 듯 그를 
응시했다. 표정이 다양한 그 눈은 그이 마음을 숨김없이 보여주었다. 유혹적인 미소, 육체적
인 강인함과 
대조를 이루는 강한 인내심 등. 그는 퍠배를 예상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충동적으로 그녀는 그의 숱 많은 머리 카락을 어루만졌다.  그녀의 손가락은 그 아름답고 
높은 광대뼈
로 미끄러져 내려와 그를 끌어당겼다. 그녀는 계속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오히려  눈을 감
은 쪽은 그였
다. 부드럽게 그녀의 입술이 그의 것에 포개졌다. 그 순간 긴장한 그의 양팔이 강철  수갑처
럼 그녀를 조
여들었지만 그 입술은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남성이 뜨겁고 단단하게 
일어나는 것
을 느꼈다.
"아, 해미쉬."
그녀의 욕망은 기절할 만큼 강했다. 그는 그녀를 조용히 응시하며 몸을 떼었다.
"왜 당신은 압도적으로 섹시한 거예요?"
그녀는 몸을 추스르며 한숨을 쉬었다.
"제가 가증스러울 만큼 추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게 생각해요?"
그녀의 목소리가 높게 튀어나왔기 때문에 두 사람은 웃음을 터뜨렸다.
"아, 해미쉬 ...... 당신이 알기만 한다면......"
나중에 호텔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이상한 후회에 사로잡혔다.  해미쉬는 주말을 함께 지내
자고 통 사정
했다. 허락해야 했을까? 아니야.!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이 될거야.  그리고 라나도 보고 싶어. 
결국 그녀느  
잠들었지만 자꾸 해미쉬의 이름을 중얼거리다가 깨어났다.

    43
  매일 신선한 꽃다발이 마조리의 사무실로 배달되었고 해미쉬는 페루 산악 기지에서  틈만 
나면 전화를 
걸었다. 그는 영국 팀을 이끌고 후아스카란 산을 등정하고 있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
는 그의 고백
은 마조리의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눈에 비친 본인의 영상을 사랑
하는 게 아닐까? 그다지 믿음직스럽지 못해했다. 어쩜  스물여덟살을 먹도록 저렇게 순진할 
수 있지? 그
녀는 그의 귀향이 몰고 올 상황이 고민스러웠다.  우유부단하게 2주일을 보낸 후 그녀는 죠
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지만 사무실 앞에서 다시 한번 냉정히 생각했다.  그가 그녀의 커다란 걱정거리로 
부각된 지금 
왜 그의 도움을 기대하는 걸까? 그는 출판업에 흥미를 잃었다. 심지어  발명거리도 뒷방 신
세였다. 이제
온 사무실이 런던 주식 시장에 상장된 회사 별 주가 그래프와 상품 선물 거래 현황  판으로 
도배되었다. 
최근 그가 열을 올리는 대상은 바로 그것이었다. 그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는 순간, 
그녀는 한때 
그에게 받았던 관심을 떠올렸다.
"해미쉬가 카메론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요."
  그녀는 그의 책상 위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최소한  그의  또 다른 관심분야에 적극적으
로 동참할 수 
있다는 점이 기뻤다. 
"글렌티란 사의 로버트 맥라렌은 최대의  라이벌 글렌너드 증류소 인수에 깊이  개입되었어
요. 내가 우연
찮게 그 정보를 입수하게 된  경위는, 데이비드가 등을 다치는 바람에  대신 글렌너드 창립 
백 주년 기사
를 맡았기 때문이 에요. 물밑에서 더로운 공작이 벌어지고 있더군요."
그녀는 뜸을 들이며 반응을 기다렸지만 죠는 침묵을 지켰다.
"당신이 흥미로워 할 줄 알았어요. 횡재를 잡을 수  있는 건이잖아요? 항상 이런 기회를 노
리고 있지 않
았던가요?"
죤는 한숨을 쉬었다.
"사실이오. 하지만...... 좋아. 글렌너드의 소유주는 누구지?"
"좀 복잡해요. 한 신탁회사가 종손 해미쉬 카메론을  위해 증류소 주식.부동산.성 등 일체의 
재산을  전부 
보유하고 있어요. 정작 해미쉬 본인은 사업보다 등반 쪽에 더 관심이 많아요. 사업을 싫어하
지만 우리잡
지의 표지를 장식하기로 했어요. 증류소는 사기업이에요.
원래 카메론 적자가 주식을 전부 물려받았지만, 약 50년전에  여러   자식들에게 조금씩 분
배 되었고 지
금은 대다수가 방계 친척들의 손에 넘어 갔어요. 해미쉬는 주식을 24%나 보유한 최대의 단
일 주주로서, 
대고모와 다른 친척들의 지지를 얻는다면 과반수 이상을 확보할  수  있어요. 사실 그 일족
은 뿔뿔이 흩
어졌고 일부는 해외로 이주했어요. 하지만  글렌티란은 해미쉬의  삼촌 앤드류와 손잡고 헐
값으로 주식
을 매입하고 있어요. 난 그들을 방해하고  싶어요.  해미쉬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범위에서 
말이에요. 아
니면 그를아예 회사에거 몰아내든 가요."
그녀가 서둘러 덧붙였다.
"당신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텐데."
죠가 윽박질렀다.
"우리가 주식을 구입해서 로버트 맥라렌의 행보에 방해를 놓을  수 있을 것같은데. 당신 생
각은 어때요?"
"뭐라 말하기엔 시기 상조야. 이제 슬슬 바빠지겠는 걸. 아, 정보를 줘서고맙소."
"투자 회사의 동업자로서 내가 할 도리를 한 거예요."
죠는 약이 올랐다.
"흥 내가 당신에게 점심을 사지. 갑시다."
죠의 열광적인 반응은 안타까울 만큼 부족했다. 하지만 며칠  후 그녀가 해미쉬와 통화하고 
있을 때 그
가 그녀의 사무실로 뛰어들어왔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의자를 가르켰다.
"휴! 이렇게 자주 전화를 해대니, 그의 전화료가 만만치 않겠어요."
"그 해미쉬였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페루에서 귀향 비행기편에 오른대요."
"불쌍한 녀석! 그에게 증류소 경영은 끝이 뾰족한 우산으로 무장한 탐욕스런 친척 아주머니
들에게 태형
을 당하는 꼴이었을 거요. 우리가 글렌티란의 행보에 제동을 걸만큼 주식을 획득했소. 어때, 
반갑지? 내
가 일단 해미쉬와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소."
"왜요.?"
"아, 마음을 정하기 전에 그를 제대로 알고 싶다 고나 할까.  하지만 성숙된  위시키를 담보
로 돈을 빌려
줄 가능성이 있소. 글렌티란은 지저분한 수를 쓰고 있더군.  뭐, 진짜 악한은 해미쉬의 삼촌 
앤드류와 그 
아들 이안이라는 소문이 파다하지만 , 그들이 죤 에스킨을 경영 이사로 임명했는데,  그 죤
이 한몫 톡톡
히 해내고 있더군. 일설에 의하면 그가 로버트의 계모 라고 맥라렌에게 직접 보고서를 올린
다는 거야."
"어떻게 그럴 수가? 정말 못된 사람들이네. 어쩐지 그가 첫눈에 마음에 들지 않더라니."
"해미쉬가 여덟 살의 나이로 증류소를 물려받았을 때 부터  지금까지 삼촌 앤드류가 경영권
을 장악하고 
있었다는 점이 문제요. 해미쉬는 제대로 힘도  못써 봤소. 앤드류 카메론이 글렌티란  측과 
거래를 한 모
양이오. 양쪽 증류소에서 출하되는 최고의 원액 위스키를  판매할  새로운 자회사의 경영권
을 아들의 대
까지 확보받았다는 거군."
"맙소사! 그 정보를 어떻게 얻었어요."
"주식 동향에 관한 한, 산업 정보 조사 관의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소."
"스파이란 말을 뭐 그렇게 길게 해요."
"그가 그 표현을 좋아하지 않거든. 캠브릿지 경영학 박사 출신의 거물이야."
죠가 낄낄거렸다.
"스파이 중의 왕 스파이네."
"당신 마음대로 불러요."
"그런데, 총 주식의 25%만 소유한 해미쉬가 어떻게 회장이 됐을까요?"
"틀렸소! 그는 빈털터리요. 해미쉬 가문의  남자 후계자를 위해 일하는 신탁자가  예전에 해
미쉬 부친의 
요청으로 주식의 25퍼센트가 그램피안 은행에
저당 잡혔지만 약정 기간에 도로 사들이지  못했소. 결국 은행이 관건이오. 만약  충분한 수
의 주주들이 
소유권 이전이 증류소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뜻을 모은다면 은행은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는 뜻이지."
"참 복잡하네요. 불쌍한 해미쉬. 우리 주식은 얼마나 되요?"
"얼마 되지 않소. 한 3퍼센트 정도."
"해미쉬를 위협하지 않를 거죠?"
"그저 그의 목숨을 간신히 연명시켜 고통을 연장시킬 거요.  어쨌든 일을 더 진전시키기 전
에 그와  이야
기를 나눠 보고 싶소, 주식 구매는 일단 보류합시다."
"서두르세요. 내가 해미쉬를 막바지까지 몰아붙였단 말이에요."
"최소한 얼어죽지는 않겠지."
"곧 그렇게 될 것 같아요."
그녀가 반박했다.
"난 잡지 표지를 봤소. 그는 아름답더군."
"네, 하지만 그의 눈에 그는 스코틀랜드 최악의 추남이에요."
"왜?"
"그가 원치 않은 석탄처럼 새까만 눈동자에다. 핑크색이 아닌 황금색 피부이고 모래색 머리
칼이나 대머
리가 아니라 숱많은 흑발이니까요......"
"대충 알만 하군. 지금 먼 재종 친척과  대고모 한 분과 협상 중이오. 워낙  회사 이윤이 때
문에 주식을 
팔도록 설득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소. 주주들은 대부분  글레너드 배당금에 의지해 살기 때
문에 곤궁한 
생활을 하고 있소."
"아!"
웬일인지 그녀의 가슴이 뜨끔했다. 그녀는 화제를 바꾸어 농을 걸었다.
"당신은 여전히 그 더러운 벽돌들을 만지작거려요?"
"더 이상은 아냐. 이미 연구가 끝나 국제 특허를 받았소. 영국 건물의 때를 벗겨  내려고 안
달을 떠는 건
축 업자들에게 그 사용권을 팔아  벌어들인 돈이 백만  파운드가 그러므로  넘소. 미국에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게 될 거요. 내 방법은 기존의 어느 것보다 훨씬 싸고 쉽고 효과적이거든."
  마조리는 헐떡거리며 고통스런 전율을 맛봤다.  이게 뭘까 질투? 아니다, 날이  갈수록 더
욱 흔들리는 
그들의 일체감에 대한 슬픔이었다. 백만장자인 죠와 내가 어찌 한 팀이 될 수 있으랴.
"당신 말은 꼭 광고 전단 같아요."
그녀는 반감을 숨기며 중얼거렸다.
"그럴지도. 30분전에 가스의 원고를 봤거든."
"커피를 드실래요?"
"고맙지만 사양하겠소, 마조리. 이미 너무 많이 마셨어."
그녀는 그가 방을 나서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미래에  대한 모호한 두려움과 더 진한 외로
움이 뼈속까
지 파고들었다. 이틀후 그녀는 죠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난 준비가 됐소. 해미쉬를 저녁 식사에 초대해요. 표면상사교 모임을 위장한 더블 데이트로 
합시다."
"흥, 최악의 사교 모임이겠네요. 그리고 약속을 잊지  마세요. 해미쉬의 면전에 대고 총구를 
겨누지  않는 
거예요."
"알았소, 알았다니까 이미 다 끝낸 이야기 잖소. 그리고 난 그렇게 도덕성이나  은근미가 없
는 놈이 아니
오."
"핵심을 알아들으셨군요. 하지만 죠, 누구를 데리고 올 거예요?"
"글쎄, 베로니크가 될까?"
"베로니크가 누군데요?"
"당신도 프랑스의 새 화장품의 광고를 도배한 그 얼굴을 본 적이 있을 거요."
"그 베로니크?"
"유명한 모델로 밥은 먹고 산다오."
"이 능구렁이, 그 이름은 죠 시걸이에요."
그녀는 수화기를 꽝 내려 놓았다. 죠가 유명한 모델과  알고 지내는 사이라니, 신기해라. 그
리고 왜 그가 
태연자약하게 구는 걸까? 그녀는 궁금해하며 해미쉬에게 전화를 걸었다.
  
    44
  죠는 사랑에 빠졌다. 그가 차갑고 세련된 태도를 벗어 던지고 스파니엘
개처럼 헌신으로 눈을 빛내는 고통을 자아냈다. 마조리는 처음 대하는 이런 그의 표정에 충
격을 받았다.
그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예전의 상상은 착각이었다. 사랑에 빠진  죠는  강박증에 사로잡힌 
남자였다. 불
합리했지만 그녀는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그가 왜 아무말도 하지 않았을까? 그녀는 어제까
지 베로니크
의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다. 베로니크는 화장품 광고 사진보다 실물이 더 아름다웠지만,  평
소 죠의 이
상적인 아내상과 정반대였다. 착하고 차분하고 근면하고 협조적이고 교양 있으며 지적인 유
태인 여성에 
부합되는 면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외모는 출중했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꿈이 막히는 
그런 미녀였
다. 너무 아름다운 나머지 진짜 사람 같지 않은 그녀는 백금색 머리와 몽롱한 보라색 눈, 완
벽한 이목구
비와 더불어 흠 하나 없는 피부의 소유자 였다.  북구  계통처럼 보였지만 프랑스인 이었고 
그 억약조차 
섹시했다.  밤이 깊어 갈수록 베로니크가 철저한 이기주의란 모든  사실이 명백해졌다. 마조
리는 순수한 
얼음 덩어리라고 결론내렸다. 그녀는 자신의 경력.외모.죠의 돈  이외의 다른 화제에 싫증을 
내고 초조해 
했다. 그녀가 남 보란 듯 손을 식탁에 올려놨을 때, 마조니는 세 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다이
마몬드와 에
머랄드 반지를 발견했다.
"어머나! 정말 아름다운 반지예요. 이게......?"
"우리는 약혼했소."
죠가 냉담하게 중얼거렸다.
"죠가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어요?" 사실 너무 갑작스럽긴 했어요. 그렇지요, 죠?"
베로니크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마조리는 숨을 몰아쉬고 얼어붙은 입술로 선언했다.
"축하해야겠내요."
"당신이 주문해요."
죠가 귀찮다는 듯 말했다.
  마조리는 포도주 담당 웨이터를 불러 맛좋고 담백한 샴페인을 골랐다.
"나는 달콤한 샴페인 쪽이  좋아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로랑페리에 크레망이  어떻겠어요, 
죠?"
베로니크가 눈웃음을 치며 애교를 부렸다.
"내가 입맛에 맞지 않지만, 자기가 좋다면야."
죠가 맞장구를 쳤다.그의손이 그녀의 어깨에서  떨어지지 알았다. 정 그렇게 소유권을  자랑
하고 싶으면 
아예 그녀에게 침을 발라 놓지 그래요? 마조리는 속으로 울부짖었다.
죠는 몸을 앞으로 내밀고 해미쉬에게 얼뜨기 사이몬 역할을 그럴 듯하게 연출했다.
"해미쉬, 난 아마추어 수준으로 주식과 상품 거래에 손을 대고 있었다.  마침 글렌너드 주식
을 몇 주 가
졌는데, 당신 정적들이 회사주를 사들인다는  소문이 들리더군요. 그들의 매입가가  얼마나 
되는 줄 아십
니까?  당신도 그런 제의를 받았어요?"
  해미쉬는 고통스러울 만치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죠와 해미쉬는 고통스
러울 만치 불
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죠는 해미쉬에게 사업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
을 깼다. 그리
고 왜 그녀에게 베로니크에 대해 침묵을 지켰을까? 마조리는 비통함을  금치 못했다.  그들
의 관계는 끊
으셔야 만의 환상이었다. 그녀는 죠에게  어떤 존재일까? 세일즈를 할 수  있는 사람? 죠가 
주변에 둘 필
요가 있는 사람? 최근 잦아진 그들의 싸움이 그녀의 머리 속에서 소용돌이 쳤다. 그녀가 유
럽에서 돌아
왔을 때 그가 뭐라고 했더라? '세일에만 전념하는 게 어떻겠소? 당신은 그분야의 일류요'
그들의 우정이 그게  전부니까? 그녀는 모든 기억과 불길했던 징후를 파헤치며 우울하게 궁
리했다.  마
지막으로 함께 저녁 식사를 했던 때가 언제였더라? 요즘 사업만이  그들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었음을 
왜 깨닫지 못했을까? 그녀가 견인마의 역할에 너무 충실했기 때문이리라. 그녀는 '세일즈맨
'이란 딱지에 
너무 연연해 왔다. 그 순간 미래가 끔찍하고 불괘할 만큼 단조롭게 보였다.  식탁 아래로 해
미쉬가 그녀
의 무릎을 꼬집어 현실을 일깨웠다.  베로니크가   선택한 샴페인은 지독할 만큼 달콤했다.  
그들은 춤을 
추었다. 죠가 재미없는 이야기를 하는 짬짬이 해미쉬에게 정보를 캐물었지만, 해미쉬는 고집
스럽게 입을 
다물었다. 해미쉬를 초대할 만한 자리가  아니었다. 그는 이런 분위기를 싫어했다.   그래서 
그는 할 수 
있는 한 취하기로 작정하고  술을 쉬지 않고  마셨다. 그 목표는 오래지 않아  달성되었다.  
해미쉬의 혀
가 구부러지고 잔을 뒤엎자 죠가 베로니크가 동시에 일어났다.  죠의 팔은 여전히 그녀에게 
감겨 있었다.  
 "내가 베로니크를 집에 데려다 주는 편이 좋겠소.  당신은 해미쉬를 배웅해요.  웨이터들의 
도움을 청하
고 계산을 해요. 월요일 사무실에서 내가 처리해 주겠소."
  그녀는 기가 막혔다. 죠가 그녀에게  술취한 손님을 떠맡겼다는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머리
를 한대 후려지는 충격과 함께 고통스런 결론에 이르렀다. 아, 밤새도록 여기 앉아 있을  수 
없어 그녀는 
지배인을 불러 계산하고 현재의 난국을 설명했다. 즉시 건장한  두 명의 웨이터들이 해미쉬
를 부축해 택
시에 태웠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신속했다.  그녀는 그를 집으로 데려왔다. 그의 숙
소도 몰랐기 
때문에 그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마조리는 자신을 속인 적이 없었다.  해미쉬를 
향한 그녀의 
감정은 심한 갈등을 겪고 있었다.  정욕과 진정한 호감이 맞물렸고,  해미쉬가 로버트를  방
해할 수단ㅇ
르 제공했다는 인식과 함께 어느날 그에게 심한 상처를 주리라는 전망이 충돌했다.  청천벽
력처럼 뇌리
를 스친 그 예상에 그녀는 몸서리를 쳤다. 팔에  소름이  돋았다. 마조리 하디, 도데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녀는 스스로를 꾸짖었다.  동시에 해미쉬에게는 그녀가  필요하다는 추측이 떠올렸
다. 하지만 사
랑은 아니었다. 절대 사랑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런 말도 생각에 등을 돌렸다.
  
    45
  마조리는 9시에 눈을 떴다.  침실 창문 가득히 아침 햇살이  들어왔다. 아차, 늦잠을 잤구
나! 그녀는 죄
책감으로 벌떡 일어났다가 오늘이 일요일이란 사실을 떠올렸다.  다시  베개에 누워 일요일 
아침에 런던
에 있는 이유를 궁리했다.  눈 깜박할 사이에 모든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녀는  허둥지둥 침
대에서 일어
나 재빨리 옷을 걸쳤다.
객실을 살짝 들여다보니, 해미쉬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그가 이불을 차버린 탓에  나체
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녀는 그 아름다움에 숨이 막혔다. 은은한 황금을 연상시키는 그의 피부에  정욕
의 물결이 솟
구쳤다. 유연하고 초근육질의 팔다리와 길고 강한 목덜미, 방어적인 표정이  사라진 그의 얼
굴에서 그녀
는 감각적인 입술과 곧은 콧날을 봤다. 그녀는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고 검지로 그의 높은 
광대뼈를 따
라 그렸다. 돌연 한 손이 튀어나와  그녀를 낚아챘다. 어느 틈에 그녀는  그의 위에 누웠고, 
그는 함박 웃
음을 짓고 있었다.
"당신이 훔쳐보는 현장을 잡았으니까 처벌을 받을 시간이오."
하지만 그는 키스를 하는 대신 그녀의 머리를  그의 어깨에 기대게 하고 그녀를 꽉 껴안았
다. 푸른색 면 
드레스차림으로 해미쉬의 품에 안기자, 욕망과 함께 근심 걱정이 솟구쳤다.
어젯밤 그녀는 그와 결혼할  필요성에 대해  고민했다.  하지만 어제는 어제였고, 샴페인에 
너무 취한 상
태였다.  로버트를 위해 아껴 둔 사랑을 이 남자에게 쏟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를 이용하
여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복수 할 수 있을까? 과연 정당한 행동일까?
하지만 해미쉬는 아무것도 모를 거야. 짐작도 못할 거야.  그녀는 사족을 달았다. 나는 그를 
행복하게 만
들어줄 거야. 정략 결혼은 예나 지금이나 성행하잖아. 하지만 왜 창녀가 된 기분이 들지? 해
미쉬가 다정
하게 가슴을 애무하자. 그녀가 선택한 길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상
만큼 단순하
지 않았다.  그녀가 해미쉬를 끌어당기려 하자 그는 몸을 피했다.
"사랑과 배려 없는 섹스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는 침울하게 말했다.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습니다.  난 알고 있어요.  당신은  오직 정욕만 느낄 뿐이에요." 그
녀는 말할  수 
없이 슬펐다. 그가 원하는 사랑을 더 이상 느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라나의 아버지
를 정열적으
로 사랑했지만 이제 자신을 위해 그 마음을 봉쇄했다.  세일즈를 위하여, 사업을  위하여 단
순히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앞으로도 사랑에 빠지지 않기 위해 세심한 주의를  아끼지 않으리라, 하
지만 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잖아요. 나에게 시간을 주세요."
그녀는 그를 구슬렀다.
"난 이미 당신에게 많은 감정을 느끼고 있어요."
"나에게 어떤 마음을 품었는데요."
그는 심각하게 물었다.
그녀는 심각하게 물었다.
"건강하고 생생한 욕망."
그녀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는 그녀의 얼굴과 눈까풀과 입술에 짧고 다정한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만으로 우리 두 사람 몫이 될 거예요."
  그는 한숨을 쉬고 우리 두 사람 몫이 될 거예요."
그는 한숨을 쉬고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벌처럼  재빨리 
키스했다.  그
의 혀가 입술을 파고들어 그녀의 혀를  애무했다.  그는 다급한 동작으로 그녀의  드레스를 
잡아당겼고, 
그녀는 그의 뜨겁고 헐떡이는 숨결을 목덜미에 느꼈다. 그녀는 손을 뒤로 넘겨 지퍼를 내렸
다. 드레스가 
스르르 흘러내린 동시에 해미쉬도 몇 번에 걸친 서투른 시도 끝에 브레지어의 고리를 푸는
데 성공했다. 
옷가지를 던져 버린 그는 입술을 그녀의 가슴에 대고  차례로 애무하며 그녀를 감질나게 했
다.  그녀는 
허벅지 안쪽의 부드러운 살에 와 닿는 그의 부풀어 오른  남성을 느꼈다.   그 뜨겁게 고동
치는 것은 그
녀를 촉촉하게 달구어 놓았다. 그녀의 숨이 가파졌다. 그녀의 꼬인 몸이 그에게  들어올려졌
다.
"제발, 아 제발."
  공기에 남성의 독특한 사향 냄새가 어렸다. 그녀는  한 손만으로 자기를 들어올리고 속옷
을 끌어내리
는 그의 무한한 힘에 진저리를 쳤다. 이제 그는 입술을  그녀의 허벅지 안에 대고 애무하며 
아래로 파고
들었다.  그의 혀가 여성을 애무하자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나왔다. 충격적인 감각이었
다. 충격이었
다.  거의 숨 쉴 수 없었다.
"아! 난 몰랐어요. 여태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어요...... 제발......"
그는 입술로 온몸을 탐색하고 조사한 끝에 그녀를 미치게  만드는 성감대를 찾아냈다. 그는 
그녀를 엎드
려 눕혀 놓고 양손으로 등을 애무했다.  온몸의 피부가  화끈거렸고 그의 뜨거운 숨결에 진
저리가 쳐졌
다. 천천히 그는 그녀의 허벅지 뒤쪽에 키스하고 혀로 다리를  따라 내려가  발가락을 하나
씩 핥았다. 그
리고 마침내 똑바로 눕혀진 그녀는 애무를 받은 이상이었다.  그저 속수무책으로 누워 짧은 
숨을 신음하
기 시작했다.  관능의 바다에 풍덩 빠진 기분이었다.
"당신을 원해요."
그녀는 터질 듯한 허파에서 간신히 말을 뱉어냈다.
"당신이 필요해요. 사랑해 주세요, 해미쉬."
"과거를 지워 버리기 위해?"
"당신...... 당신 ...... 난 당신만 원해요, 제발 ...... 해미쉬."
그녀느  긴 고통의 신음과 그를 제촉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는 그녀를 기묘한  
감각으로 채
웠고, 양팔을 머리 위에 고정시킨 채 온몸으로 그녀에게 구애했다.  "난 더 이상 참을 수 없
어."
그가 속삭였다.
  그는 온몸을 긴장하고 신음하며 등을 휘는 한편, 그녀의 배를 들어올리고 다리 사이로 강
하게 파고들
었다.  그녀는 그가 그녀 안에서 움직이고 맥박치는 것을 느꼈고,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는 
강렬한 기쁨
에 온몸을 내맡겼다.
"아! 멈추지 마세요, 제발, 제발, 멈추지 말아요."
그녀가 속삭였다. 난생 처음 느껴 보는 이상한 감정이 안에서 차 올랐다. 황홀한 절정  속에
서 온몸의 신
경 끝이 일제히 바르르 떠올랐다. 기쁨이  점점  짙어지자,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
다. 그녀는 환
희의 손아귀에서 속수무책이었다.  그녀는 길게 비명을 지르며  해미쉬에게  매달려 눈물과 
웃음을 동시
에 터뜨렸다.  말이 절로 흘러나왔다.
"아! 그게 뭐예요? 정말 근사해요. 아, 해미쉬, 도저히 못 믿겠어요."
그녀는 사지를 쭉 펴고 누워 노래하듯 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전에 절정에 오른적이 없어요?"
그는 믿지 모하겠다는 듯 물었다.  이제 그녀의 떨림이 멈췄다.
"그랬다고 확신했지만 내 착각이었어요.  다시 느낄 수 있을까요? 꼭 지진 같았어요."
"이제 당신이 뭘 좋아하는지 아니까 언제든지 다시 할 수 있소."
그는 잘난 체하는 표정을 지으며 호언장담했다.
  그녀는 그의 가슴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녀만의 특별한 장소를 발견했다.  
고개를 그
의 어깨에 대고, 한쪽 무릎에  그이 배에 걸쳐놓고,  배꼽을 그의  뜨거운 허벅지로 데웠다. 
한 시간 후에 
깬 그녀는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당신에게 아침을 차려 줄께요. 당신은 힘치  필요해요.  아주 중요하다구요, 하지만 사업을 
위해서  만은 
아니에요."
그녀는 그를 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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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성적인 패배자 해미쉬 카메론은 인내심 있게 주방 식탁에 앉은 채 사랑하는 여자의 등
을 응시했다.  
조리대 앞에 선 마조리는 자기를 꿈의 연장  속으로 밀어 넣으려는 그이 뻔한 시도를 눈치 
챘다. 하지만 
그는 거기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지난 2중일 동안 그 꿈에  사로잡혀 온데다 난생 처음
으로 그 자신
과 그녀로 인해 행복하고 자랑스러웠으므로, 그녀가 이런  기분을  연출하는 재주를 사업에 
발휘해 왔음
을 그는 알았다.  그래, 그 역시 그녀의 사업이잖아? 그는 건전한 이성과 상식을  지녔고 그
녀에게 눈이 
먼 바보가 아니었다. 하지만 왜 인사불성이 될 정조로 술을 마셨을까? 그는 대답을 알고 있
었다. 고통스
런 절망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의 보다  모든 이가 그의 것을 탐했고, 그는  가진 
것이 많지 않
았다.  더 이상은.
그는 다시 그녀의 충고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한 손에  스푼을 들고 달걀을  볶는 동안 
다른 손에 든 
포크로 베이컨을 뒤집었다.  저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너무 섹시한 여자야. 
저 길고 우아
한 목덜미 탓일까? 아니면  반듯한 어깨나  얇은 허리에서  탄력있는 엉덩이까지 이어지는  
굴곡? 그녀의 
푸른색 면 드레스는 굉장히 도발적이었다.  그는 그녀를 다시 갖고 싶었다. 사랑을 나누기에 
말할 수 없
이 멋진 상대였지만 그녀가 흑심을 품고 그와 사랑을 나눴다는 의혹이 그의 폐부를 왔었던 
걸까?
"맞서 싸우세요, 해미쉬."
그녀가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했기 때문에 그는 처음에 그 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들이 당신의 것을 가로채고 있어요.  당신은 바보였어요.  당신에게는 손을 뗄 이유가 없
다고요.  에
스킨은 이윤을 낮추어서 주주들로 하여금 글렌티란 측에 주식을 팔도록 유도하고   있어요.  
결국 그들
이 회사를 장악하고 당신은 밀려날 거예요. 그런 사태를 원하세요?"
"그러면 안되나요?"
그는 실패감을 감추기 위해 초연하게 쏘아붙였다.  이제 마각이  드러나는구나 그는 마음을 
옹골차게 먹
었다.  죠와 마조리가 원하는 것이 서서히 밝혀지려는 순간이었다.
"어머, 당신에게 상관없다니 참 잘 됐네요.  "
마조리가 명랑하게 말했다.
"그래야 상처를 받지 않겠죠? 하지만 해미쉬, 난  상관  있어요.  난 당신이 맞서 싸우기를 
바래요. 내가 
일고의 가치도 없어요?"
"죠의 해결 방안이 뭔대요?"
그는 냉담하게 물었다.
그녀는 뜸을 들였다. 그들의 책략을 죠의 탓으로 돌리는 짓이 옳지 않을까? 그러나 내가 중
요한 결론에 
도달한 지금 그게 과연 문제가 될까?
"죠는 항상 최소한의 시간에 최대한의 이익을 추구해요. 나도 마찬가지예요.  그리고 당신에
게 그낌새를 
맡았어요. 그는 잔인하거나 다른 사람을 파멸로 몰아넣는 사람이 아니지만, 당신이 자기  파
멸의 길을 걷
는 동안 거리낌없이 단물을 뽑아낼 거에요. 그는 우리 두  사람을 위해 당신네 주식을 구입
해 왔어요. 글
렌티란을 방해하려고요. 그는 약 8%의 주식을 손에 넣었고 그 이상을 원하고 있어요.  그의 
계획은,  당
신네 위스키의 한 통당 적자 투성이인 대차대조표를 악용한 가격으로 쳐서  담보로 잡고 거
액의 현금을 
빌려주는 거예요.  당신은 그게 말도 안되는  헐값임을 깨닫지 못할걸요.  지난날 친애하는 
죤 에스킨 씨
의 농간 덕에 말이에요. 그 현금으로 말미암아 몇 달  동안 늑대는  문 밖에 머물테고 당신
은 스스로 만
든 소용돌이에서 옴짝달짝 도 할 수  없게 될 거예요. 결국 적들은   지배력을 획득하기 위
해 울며 겨자 
먹기 죠에게 위스키 값을 톡톡히 제의할 거예요.   그리고 한술 더 떠, 죠는 8%의  주식을 
매입가의 두 
배로 글랜티란에 팔 거예요.  일단 그들이 더 이상의 주식을  모를 수 없음을 알고 그의 제
의를 받아들
이게 될걸요.  그러니 아주 훌륭한 계획이에요.  "
"나에게?"
"아니오! 바보같이! 죠와 나에게요.  하지만 그 계획은 현실화되지 않을 거예요.
  해미쉬는 깊은숨을 들이켰다. 그의 심장  고동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릴까?  그녀는 그의  
편이야. 그는 
귀를 울리는 요란한 심장 박동으로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당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대체 나에게 원하는게 뭡니까, 마조리?"
"난 당신이 투쟁하기를 바래요. 당신이 승리하길 바래요.  당신이 그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일어나 아니
면 그 눈 덮인 알프스 산에서 하산하여 진짜 모험에 달려들기를 바래요.  "
"진짜모험!"
그의 숨이 다시 막혔다. 드디어 일의 전모가 드러났다.
"좋아요. 설명해 보세요. 나보고 어떻게 진짜 모험에  뛰어들라는 거요? 내가 뭘 위해서  그
래야 합니까, 
마조리?"
  그는 그들 사이에 불꽃을 튀는 긴장을 완화하려고 노력했다.
"당신의 명성과 당신의 도덕을 위해서요.  상관없는 척하고 손을 떼면 당신 체면을 살릴 수 
있어요.  일
본인들이 그렇게 하잖아요? 그들은 체면을 중요시 여겨요.   하지만 난  당신이 스코틀랜드 
인이 되기를 
바란다고 생각해요."
"당신에게 진짜 상관이 있어요?"
"상관? 물론이에요. 난 당신의 이 고귀한 검은 눈동자를 상관해요.  아름답고 강한 두 손을, 
높은 광대뼈
를, 사무라이 선조에게 물려받은 힘과 육체적인 용기를 상관해요. 하지만 그 아름다움  속에 
면밀히 숨쉬
고 있는 비열한 앵글로 섹슨족의 투사를 보고 싶어요.
"자, 드세요."
그녀는 바삭바삭하게 익혀진 계란과 베이컨이 담긴 접시를 내놓았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계획을 세워요.  봐요, 난  지금 협조를 제의하는 거예요.  해미쉬, 날 
과소평가하지 
마세요. 난 사업에 능해요. 내가 싸우는 법을 보여드릴께요. 그러니 일을  주세요. 직위 고하
를 막론하지 
않겠어요.  비서, 영업 부장 ...... 난 당신을 돕고 싶어요.  "
"아내는 어때요?"
그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몸을 돌려 얼굴을 숨겼다. 그 자리에 얼어붙어 꼼짝할 수 없었다.  심장이 두근두근
했다.
이게 원했던 걸까? 그래, 하지만 도구로 이용하기 위해 한 남자와 결혼할 수 있을까? 난 그
를 사랑하지 
않아. 하지만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그 모든 것을 그에게 되돌려줄 테야.  절대로 그를 상
처 입히지 않
겠어. 난 그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어. 그만하면  좋은 거래잖아. 난 그의 망할 친척들을 모
두 떨궈버리
고 그를 유명하게 만들 거야. 그리고 그가 정상에 우 뚝 서는 날, 난 로버와  그의 가족에게
도 한수 보여
줄 거야.
"그 자리는 어때요?"
그가 초조하게 물었다.
그녀는 몸을 돌리고 양손으로 그의 얼굴을 잡았다. 그리고 그의 눈을 오랫동안 지그시 응시
했다.
"당신의 프로포즈를 수락하겠어요.  "
  
    47
  월요일 오후 2시 였다.  변호사에게 다녀온 마조리는 우리에  갇힌 야수처럼 긴장되고 두 
배나 위험한 
상태였다.  마음을 가라앉혀야 해. 죠와 싸워서 이긴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녀는 이성적으
로 대처할 필
요가 있었지만 오직 분노만을 느꼈다.
비서가 질문을 연달아 퍼부었다.
"나중에요. 죠는 어디에 있어요?"
평소처럼 그는 사무실에 있었다.
그녀는 한 2분 정도 죠의 사무실 밖에 서서 그의 전화 통화 소리를 들었다.  수화기를 내려
놓는 소리에 
그녀는 벽에 기대서서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진정해"
그녀는 속삭였다. 그리고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지만, 너무 침착하고 만족에 찬 죠의  모습이 
전날 해미쉬
의 추태를 다시 불러 일으키는 바람에 그녀의 각오가 눈 녹은 듯 사라졌다.
"이 악당! 가끔 당신이 정말 가증스러워요."
그녀는 소리지르며 문을 힘차게 닫았다.
"무슨 일이 잘못되었소?"
그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말했다.
주먹을 불끈 쥔 마조리는 가까운 의자에 앉았다.
"당신은 사업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해미쉬를 깍아내리지 않고, 창피를 주지 않기로 약속했
어요.  그런
데 사업을 거론했을 뿐 아니라 그를 깍아 내리고 수치심을 쟁반 위에 바쳐 들이 밀다니요!
당신은 아무도 속아넘어가지 않을 얼뜨기 사이먼 흉내를  내며 그를 저능아 취급했어요. 그
리고 그에게 
정보를 캐냈어요.  그가 입을 열고 싶지   않고 너무 상처받고 창피한 나머지  혼수상태가 
될 만큼 술에 
취하자, 당신은 뒤처리를 나에게 남겨 두고 조용히 자리를  피했구요. 흥, 취한 모습을 보일 
수 없을 만
큼 그 돈에 환장한 얼음 덩어리가 특별난 존재인가요? 당신이 어떻게 나에게 그럴 수 있어
요?"
"당신이 처리 할 수 있으리란 것을 알았어. 그래서 어떻게 됐소?"
"그를 우리 집으로 데려갔어요. 그의 거처조차 몰랐으니까요.  "
"이제 제정신을 차렸소?"
"네, 숙취로 고생하진 않았어요.  "
"술꾼들은 안 그래. 그가 사과를 했소?"
"아뇨, 청혼했어요.  "
"그는 눈물 흘리며 가슴아파 했겠군?"
"기뻐하던데요."
"당신의 거절에?"
"난 승낙했어요.  축하해 주세요. 난 해미쉬와 약혼했어요.  그리고 난 내돈을 원해요. 전부
요! 증류수를 
살릴 돈이 필요해요. 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할래요.  출판사와 이 건물과 모든 주식을 지금 
당장요! 내 
몫의 일부는 글렌너드  주식으로 대체해 주세요."
  침묵은 말보다 더 웅변적이었다.  죠는 입술을 꼭깨물고 실눈을 뜨고 있었다.  하얗게 질
렸던 그의 안
색이 시뻘겋게 변해 갔다. 결국 그의 분노가 전에 없던 수위로 폭발했다.  그녀의 짧은 프랑
스어 육두어 
지식으로 그의 풍부하고 방대한 표현을 미처 통역할  수 없었지만 '배반자'와  '사기'등 몇  
단어가 귀에 
들어왔다. 그녀는 밖으로 나가 커피를 투잔 탔다. 다시 돌아오자 죠는 등을 돌린 채  창밖을 
응시하고 있
었다.
"이제 자제력을 응시하고 찾았나요?"
그녀가 물었다.
"잘 됐어요.  사업 이야기를 해요.  하지만 우선 알고 싶은  게 있어요. 왜 약혼했다는 말을 
하지 없었나
요?"
"난 당신의 반발이 두려웠소. 지금은 더 두려워. 당신은 처음 눈에  뛰는 남자를 집어 내 선
례를 필요가 
없소."
"해미쉬와의 결혼은 반발이 아니에요.  잘난 척하지 마세요!"
"거절당한 여자들이란......"
그는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그 말을 못들은 척했다.
"난 항상 당신에게 모든 말을 다 했어요.  "
"당신은 울며불며 바바라에게 로버트를 죽도록 사랑했다고  했소. 그러나 다시는 남자를 사
랑하지  않고 
이용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잖소. "
"그건 오래 전 일이에요. 그 당시에 우리는 그렇게 친하지 않았어요.  "
"난 그런 줄 알았었어. "
세상에 이렇게 이상하고 내성적인 남자가 또 있을까? 그 때문에 그녀에 대한 관심을 꺼버렸
단 말야?"
그녀가 물었다.
"한번 흘러간 강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소, 친애하는 모조리."
"아, 죠! 정말 그 돈만 밝히는 여자와 결혼할 거예요? 그녀가 당신의  돈을 벌어들이는 능력
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을 모르겠어요?"
"날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오?"
"물론 아니에요. 하지만 그녀가 돈만 노린다는 게 분명하잖아요. 그녀는  어젯밤 내내  당신
의 가치를 정
확히 파악하려고 애를 썼어요.  "
"그녀는 우연찮게도 전유럽에서 가장 섹시한 여자야. 난 그 때문에 아주 이성적인 요구잖아
요? 난 오랫
동안 열심히 일해 왔어요."
"당장 융통할 현금이 없으니까 기다려야 할거요.  한 몇년 걸릴거야
. 그 덕에 당신은 자신과 해미쉬를 구하고 파산을 모면하게 될 거요."
"죠, 난 변호사에게 다녀왔어요. 이제 내가 아니라 엔죠 아마르티와 상대하세요.  그 이름을 
들어보셨어
요?"
  이번에 죠는 진짜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고 안색이 백지 장처럼 질
렸다.
"당신은 진심이군. 하필이면 왜 가장 악질적인 이혼 변호사를 골랐소?"
"당신이 전에 50:50 동업자 관계는 결혼보다 더 나쁘다고 했잖아요."
죠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들겼다.
"당신에게 이 어리석은 계획을 포기하도록 만들 말이 있소?"
"없어요."
"해미쉬는 패배자요. 바보짓을 하지  말아요, 마조리. 당신은 남은  평생동안 그의 뒷감당을 
무슨 수로  할 
거요?  돈을 전부 잃은 다음에 뭘 할 거요?"
"그의 증루소가 우리 모두를 먹여 살리 거예요.  그렇게 하겠어요.  "
"제 정신이오? 당신이 성공할 가능성은 없어. 모두 돈 문제야. 대중은 고급 위스키를 원하고 
있소.  요즘
은 기본이 8년산 원액 위스키요. 그리고 향후 12년 산 순수  원액 위스키가  시장을 풍미할 
거요. 상류층
을 대표하는 고급스러움과, 생산에 소요되는 값비싼 비용 덕택에 말이요."
  죠의 표정이 갈수록 진지해졌다.
"술 한병에 들어가는 엄청난 투자를 생각해 봐요.  그래서  70년대 위스키 산업계에 통합과 
인수의 바람
이 불고 있는 거요. 이런 잔인한 경제 원리에 따른  운영 방침으로 대부분의 전통 증류소가 
전후의 충격
에서 회복할 기회조차 박탈당했단 말이오.  거대하고 잘 조직된 영국  양조업자들이 닥치는 
대로 먹어 삼
키고 있소. 일부 스코틀랜드 인이 자체적으로 합병하여 위스키의 명맥을 지키고 있고,  그중 
한 사람일
바로 당신의 예친구 로버트 맥라렌이오.  그래서 그가 글렌너드를 인수하려는 거야.  글렌러
드는 끝장났
소. 이미 무너졌단 말이오. 당신은 성공할 수 없어.
지금 하려는 짓을 제대로 인식해요, 마조리."
죠는 격한 감정으로 부들부들 떨었고 스 순간 그녀의 마음이 약해질 뻔했다.
"당신이 모든 돈을 잃으리안 것을 모르겠소? 당신은 가문 전체와 맞서 싸울 만큼 강하지 못
해. 스코틀랜
드에서 계급간의 장벽은 맞서 싸울 만큼 강하지 못해.  스코틀랜드에서 계급간의 장벽은 영
국보다 더 심
하고 그 가문 사람들은 수세기에 걸쳐 배척의 기교를 갈고 닦아 왔소."
"난 온몸의 뼈가 부러질 만큼 열심히 노력할 거예요.  그리고 백만 파운드는 상당한 투자액
이에요.  "
마조리가 반박했다.
"헛소리! 해미쉬도 당신보다 똑똑해.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과 인종과 스크틀랜드 민족
주의 장벽을 
깨뜨릴 수 없다는 사실을 몸소 어렵게 터득했소. 은행과 주주들은 한패만 지지할거요.  앤드
류 삼촌과 그
의 아들 이안, 글렌티란의 합병을 추진하고 있느  그 작자들을!"
"그들이 성공한다면, 난 내 몫의 주식을 팔겠어요. 그게 당신의 원래 계획이었잖아요."
  그녀는 문득 입을 다물었다. 왜 내가 죠의 승낙을 간청하고 있지?
"마조리, 인수 제의가 시간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 당신이 시간을  끌거나 구매자의 
끌거나 화를 
둘거요.  그 다음에 풍지박산난 회사의 주식을 거저 얻을거야.  당신은 모든 재산을 잃게 될 
거요, 전부
다."
"난 그래도 할거요.  죠, 난 꼭 해야해요.  내 아파트를  현재 시세의 90% 가격으로 내놓을 
테니, 당신이 
사세요."
"출판사는 당신에게 필요해. 난 내 몫만 지키겠소. 당신 것까지 사들이지 않을 거요.  "
"아, 죠!"
그녀는 그의 어깨를 잡았지만 그가 그녀의 손을 털어 버렸다.
"이 점을 기억해요.  마조리. 당신은 큰 판돈을 걸고 도박을 하려는 거요.  하지만 나그런데 
그런  위험
을 감수하지 않겠소. 난 다 알고 있소.  로버트에게 한수 가르쳐 주는 거지  당신이 그만큼 
잘 났다는 사
실을 보여주고 싶은 거지?"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너무 빨랐다.
"당신은 사랑 이외에 다른 이유로 결혼함으로써  스스로를 타락시키고, 해미쉬가 마땅히 받
아야 할  사랑
을 빼앗고 있어. 그것은 결국 긁어부스럼이 되어 당신에게 돌아올거야.  그리고 종국에 당신
이야말로 사
랑을 빼앗기게 될 거야."
그의 예언처럼 들리는 말에 마조리는 떨었다.
"당신의 신임 안에 감사를 표하겠어요.  "
그녀는 억지로 침착한 목소리를 가장했다.
"아, 마조리. 당신은 바보야, 어리석은 바보."
그의 말을 뒤로 한 채 그녀는 밖으로 나왔다. 이제 그 어떤  말도 그녀의 마음을 흔들지 못
했다.
  
    48
  한때 위풍당당했던 인버레이드 장원은 버림받고 황폐해졌다.  정교한 석조물은 때에 찌들
었고 유리창
은 깨졌으며 바람에 덜커덩거리는 문소리리만이 서글픈 침묵을  깼다.  마조리는 견고한 대
문의 부식된 
자물쇠와 손안에 쥔녹슨 열쇠를 번갈아 보았다.   단박에 용기가 사그라 들었다.  해미쉬가  
결혼한 다음
에 저택을 봐야 한다고 우길만 했구나. 그는 그녀와 동행을 거절했다.  그 이유로 사업상을 
압박을 들었
지만 실은 꽁무니를 뺀 것이다. 그는  죄책감을 느낄 때마다 심한 긴장   상태에 빠져 끙끙 
앓거나 술을 
과음하지 않으면 격렬한 운동으로 고통을 초월했다. 전부 다 천천히  변화시켜야지. 하긴 그
녀의 손으로 
퇴주로를 끊은 마당에 그 외에 무슨  선택의 여지가 있을까? 그 생각은 고통스러운  공포를 
일으켰다. 만
사가 잘 돌아가거던 시점에서 이 폐허와 망하기 직전의 증유소에 전 재산을 던져 버림으로
써 어렵게 획
득한 안전에 위험을 초래하다니.  죠가 옳았어. 나는  바보야. 엄마의  말이 귓전에  생생하
게 들린 모든   
듯했다.
"너의 하잘데없는 겉멋이 우리를 망칠 게야. 내가 수도 없이 경고했듯이, 호박에  줄 긋는다
고 수박이 되
진 않아......"
  그녀는 으스스한 분위기에 질려 감히 저택  안에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무릎  높이
의 잡초 밭을 
할일 없이 돌아다녔다.  들판은 부드러운 능선을 그리며  먼 호수와 맞닿았다.  무성한 풀숲
에 놓인  몇 
개의 석조 벤치가 이곳이 예전에 잔디밭이었음을 말해 주었고 야생화가 화려한 색깔을 자랑
하며 만발하
게 피었다. 빨강 양귀비. 흰 광택을 내는 야생 파슬리. 무더기로 핀 산토끼 꽃.  사방 온 천
지에 깔린 물
망초 등. 노랑 붓꽃은 과거 꽃밭의 경계선 주변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앞으로  계속 나가자 
비옥한 대지
와 야생 허브 향이 알싸하게 피어올랐다.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고 가시에 걸린 스타킹을 살
폈고. 버려진 
장미 정원을 걷고 있던 참이었다.  덤불이  웃자랐긴  했지만 이른 장미 봉오리가 몇  송이  
맺혀 있었다.  
순간 아빠가 이곳을 가꿀 수 있으리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들의 경계선에 떡갈나무. 자
작나무. 느릅
나무가 울창한 작은 숲이 자리잡았다. 그녀가 접근하자 다람쥐들이 이리저리 도망가고 비둘
기들이 '구
구'하며 항의했다.  숲은 온통 새와 여름 곤충 소리로 메아리 쳤다.
"아, 너무 아름다워, 라나가 이 곳을 좋아할 거야."
그녀의 기분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작은 숲 너머에 다  쓰러져가는 별채가 있다고 해미쉬가 
말했었지. 그
녀는 숲을 빠져나가 버드나무 옆에 섰다.  한 장의 그림 엽서 같은 풍경이었다.  이영진 지
붕과 대문 가
에 심어진 덩굴장미와 만발한 라벤더. 손톱을 두 개나  부러뜨린 다음에야 그 집에 맞는 열
쇠가 없음을 
발견했다.  잔뜩 약 오른 그녀는 휴지로 유리창 먼지를 닦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더
러운 천에 뒤덮인 가구 몇 점과  함께 먼지와 쓰레기가 굴러 다녔다. 위층   침실이 두개인 
것 같은데. 저 
택 술기 끝날 때까지 라나가 부모님과 이곳에 머무를 수 있을 거야.
  용기 백배한 그녀는 서둘러 저택으로 돌아가 열쇠를 자물통에 밀어 넣었다.  대문이 알프
렛 히치콕을 
만족시킬 만큼 음산한 비명과 함께 열리며  그랜드 홀이 공개되었다.   여기 바닥재가 돌일
까?,  아니면 
대리석 일까? 층층이 쌓인 때자국으로 뭐라 말 할 수  없었다.  가구들은 전부 먼지와 얼룩
으로 새까매
진 천으로 덮여 있었다.  그녀는 그중 하나를 제쳤고, 풀석거리며 치어오르는 먼지  틈으로 
겨우 오래된 
수도사들의 의자임을 알아보았다. 우선 진공청소기로 무장한  청소부들이 열댓명  필요하겠
어. 그녀는 방
방마다 돌아다닌 끝에 결국 인내심을 상실했다.   그나마 천장이  깨끗해서  다행이야 하지
만 부엌을 발
견한 그녀는 기쁨으로 숨을 몰아쉬었다.   꽤쓸만한데. 더러운 천을  걷어내자, 암갈색 떡갈
나무로 된 긴 
식탁과 두개의 웰시 장식장과 구식  스토브가 드러났다.  그녀는 서랍과 찬장을  뒤지기 시
작했고 구리 
솥단지와 후라이팬, 멋진 골동품 컵과 접시  세트를 자못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일부  금이 
가고 짝이 맞
지 않았지만 감탄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식품 저장실과 식기실과  낡은 부츠들이 버려
진 뒷방이 딸
려 있었다. 여전히 바닥에는 시꺼먼 때가 덕지덕지 앉아 있었다. 이게  무슨 재질일까? 그녀
는 알아야만 
했다.  수색을 거듭한 끝에 드디어  식기실 창턱에서 암모니아 반병과 낡은  수세미를 하나 
찾아냈다.
"시작해볼까."
그녀는 차에 코트를 벗어 놓고 그랜드 홀로 돌아왔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앞문 근처의 
바닥을 문질
렀다.  몇 분 동안 강도 높은 운동을 한 결과 시꺼먼 때의 일부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신은 미치광이를 사랑하셔!"
그녀는 탄성을 올렸다.  그리고 목숨이 거기에 달린 양 일손을 멈추지 않았다.  더  많은 먼
지가 벗겨졌
지만 수세미의 강모도 다 빠졌다. 주먹 칼이 있었다면......
  5분후 그녀는 여전히 땟자국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이제 거의 다 됐어.
"고고학자가 된 기분이네"
암모니아의 마지막 한 방울이 코를 자극하고  눈을 찔렀다.   그러나 마른걸레로 훔쳐내자,  
핑크와 선홍
색, 청색과 연한 자주색의 복잡한 문양으로 된  모자이크 타일이 바로 보았다.   그녀는 불
신에  가득찬 
눈으로 그 정교한 색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들긴 하겠지만 제모습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
녀는 발굴해 
낸 보물에 압도되었다.  뭐라 정의할 수 없는 강렬한 감정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안도감
일까? 기쁨? 
아니면 먼지와 거미줄과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시간을 낸 아름다운 것에 대한 감사함? 그녀
는 밖으로 나
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거기에 진짜 주님이 계실 것 같았다.
"주님, 저는 그 자신보다 가진 것을 위해,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려  합니다.  네,  옳
지 않은 짓이
에요. 그러기에 미리 주님의 용서를  빕니다.  하지만 그를 보살피겠노라고  약속드릴 께요.  
온힘을 다해 
그의 증류소를 지키고 그를 행복하게 만들겠습니다."
그녀는 말을 멈추고 생각다.  생각했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을 표현 할 수 없었다.
"엄마의 말씀처럼 저는 호박에서 수박이 될  수 없지만 라나는 다르잖아요? 내 딸은  이런 
집을 가져야 
마땅합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우리를 원치 않지만  해미쉬는안 그래요. 저는 그에게 해 될 
짓을 하지 않
겠어요.  맹세합니다.  이 집과 증류소의 농장과 해미쉬 그  자신까지  갈고 닦겠습니다. 너
는 이 바닥처
럼 그에게 더러워진 온갖 과거의 파편과 때를 말끔히 지워 버리고 그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빛나게 하겠
습니다.  그러니 주님, 저를 도와주세요. 네, 바로 그거예요. 저를 도와주세요. 주님."
  갑자기 그녀의 기분이 한층 더 명랑해졌다. 그녀는  행복하게 휘파람을 불며 양동이를 뒤
꼍에 내려놓
았다.  빨리 일을 하고 싶어 손이 근질거렸다.
"한 부대를 데려와야지, 아니, 최소한 청소부들을 한 버스로  대절해 올 거야. 저 깨진 유리
창이나 벽지만
도 돈 깨나 잡아먹을 거야, 아예  작은 건축 회사를 불러올까? 제대로  일을 하려면 평생걸
릴 거야. 참, 
중앙 난방시설이 작동할까? 어디보자, 그걸 살펴봤던가?"
그녀는 문간에 서서 얼룩이 벗겨진 작은 모자이크 타일 부분을 내려다 보았다.
"얘, 넌 자 견뎠구나. 내가 곧 돌아와서 네 묵은 때를 말끔히 씻어줄께 넌
새것처럼 깨끗해질 거야. 하지만 널 다시  보기 전에 해야 할일이 있어.'  그녀는 문을 잠그
고 자동차로 
돌아갔다.  머릿속은 온통 앞으로 해야 할 일로 가득 차 있었다.  우선  해미쉬가 맑은 정신
으로 '이 여
자를 아내로 맞이하겠습니다.'하고 서약하게 만들자. 결혼 식  따윈 필요 없어. 그리고 죠에
게  돈을 받아 
내야지. 아, 그문제는 변호사에서 맡기자. 부모님은 도보에서
이곳으로 생활의 터전을 옮기는 일에 내켜 하시지  않을거야. 잠깐, 이 근처에 선술집이 없
잖아. 그녀의 
가슴이 내려 앉았다. 그 다음에 증류소를 원상  복귀 시켜야 해. 그러려면 돈을  벌어 들일 
수 있는 최고
의 두뇌가 필요하고. 죠가 안성마춤이지만 그는 나를 돕지  않을 거야. 뭐, 차선으로 만족할 
수밖에. 그녀
는 진입로를 따라 내려와 녹슨 철제 대문 옆에 차를 세웠다.  이것도교체해야 해. 그녀는 경
외심에 가득 
찬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멀리 보이는 인버레이드 장원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그녀는 
손을 흔들어 
작별을 고했다.
"곧 돌아올께. 날 믿어."
  
    49
  "내가 충격을 받았구나."
마조리는 혼잣말을 했다.
"그래서 삶이 현실처럼 보이지 않는거야. 저산도, 이길도,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마을의 지
붕들도 말야. 
모든게 꿈 같아. 그런데 왜 인버레이드까지 귀찮게 차를  몰아야 하지/ 하늘을 날아갈 수는 
없을까?" 
그녀는 입을 다물고 에델튼에서 북쪽으로 펼쳐진 구불구불한  도로에 정신을 집중했다.  아
무리 혼잣말
을 해도 꿈간은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문제는  그녀의  계획이 야생마처럼 무모하게 
돌진했고 그
녀는 두려웠다  아차 낙마라도 하는 날에 이  사나운 야수가 그녀를 넘어 거침없이 도망갈 
테니까. 그리
고 여기 마조리 카메론 부인은 전문 용역회사에서 파견된 열명의 필리핀  청소부와 책임자
와 청소 장비
가 가득 실린 두  대의 미니버스를 앞장서서  달렸다.  그 뒤를 여러대의 자동차가  줄줄이  
따랐다.  오늘 
아침부터 장원을 책임지게 될 전문가들이었다.  배관공. 전기동. 카펫 및 가구업자.  더로운 
천을 담당할 
세탁부. 커튼 책임자. 가구를 옮길 운송업자. 지붕 전문가. 홈통점검과 창문 및 판자  수선을 
담당할 작은 
건설회사 직원과 페인트공 등등. 심지어 기술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할 요리업체까지  대동했
다.  미처 생
각하지 못한게 또 있을까?
겨우 2주일만에 해미쉬와의 결혼을 포함한  모든 성가진 법적절차들은 종결  지어졌다.  그
리고 그녀가 
여기에 있다.  미조리어떻 부모님들은 충격을 받고 경악했으며 마직막에는  역적을 내고 말
았다.
"네가 억지로 우리를 이사시키겠다면 야 우리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겠지."

아빠는 살기 등등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마조리."
엄마가 우는 소리를 냈다.
"우리는 항상 라나를 돌보겠다고 약속했고 그것을 지켰어. 하지만 우리의  터전은 여기란다. 
좋은 친구들
도 많이 있고 아빠는 지방 다트 팀의 주장이 시잖니."
"흥, 스코틀랜드 놈들이 다트를 하리라곤 기대도 안한다."
아빠가 투털거렸다.
"게다가 근처에 선술집도 없을걸. 이미 지도를 찾아봤어."
"하지만 자전거나 차를 타시면 돼요."
아빠는 운전을 배운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으리라.
"엄마가 운전면허를 따실 수 않잖아요."
"뭐야! 이 나이에? 어림도 없다.  "
"생각만큼 어렵지 않아요. 두분의 생활이 완전히 바뀌실 거예요.  차를 사
드릴께요."
"당신은 그렇게 해야 해, 리즈."
아빠의 동의에 모녀는 기겁을 했다.
"우리가 산간벽지에 처박힌다면 교통편이 필요해. 그지  않으면 무슨 수로 라나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겠
어? 당신은 아예 그 생각조차 못해 봤을 걸."
"난 친구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아."
라나가 투덜거리며 볼품없는 아이리쉬 테리어 잡종개를 껴안았다.   패디,또는 패디용크라고  
불리는 녀
석이었다.  라나는 좀처럼 울지 않았다.   제나이보다 훨씬 조숙하고 침착한 아이였다.   마
조리는 딸이 
어느 곳에서나 잘 적응하리라고 믿었다.
"그렇게 나쁘지 않아요.  "
마조리는 공들여 설득했다.
"겨우 에델톤에서 5마일 떨어진, 퍼스 주변의 작고 아름다운 마을이에요.  맑은 날에 장원에
서 크녹 뮤이 
블라라디나 스투뤼 산맥도 보여요.  그리고 우리가 여름에 숲에서 피크닉하는  상상 좀  해
보세요.  아주 
재미있을 거예요. "
조부모의 분노를 감지한 라나가 마조리의 무릎위로 기어 올라왔다.
"아주 멋질거야, 라나. 거기에 넓은 정원이 있단다. 패디용크가 좋아할 거야."
"맙소사, 저 녀석이 온 집안에 흙을 묻혀 놓을 거야."엄마가 소리를 꽥 질렀다.
"우리는 개를 묶어 놔야 해."
"안돼! 절대로 안돼! 아무도 패디용크를 묶어 놓지 못해."
라나가 비명을 지르며 마조리의 무릎에서 뛰어내려 개를 껴안았다.  패디는 숨이 막혀 컥컥
거리며 몸부
림를 쳤다.
"그곳에는 망아지를 키울 수 있는 마구간도 있어."
"그리고 그걸 누가 돌볼 거냐?"
아빠가 쏘아붙였다.
"망아지까지 우리에게 떠넘길 생각은 말아라. 다른 아이도 안돼!"
그때 마조리는 딸의 황홀한 표정을 눈치챘다. 이상하게  생긴 아이였다.  넓은 미간, 노르스
름한 피부와 
악동같은 표정 등. 코는 작고 오똑하고 입술은  선명한 버찌 색이었다.  아낌없이 웃는 미소
를  지닌 그 
아이는 이제창문 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망아지, 아아...... 내 망아지."
"하지만 네가 먹이를 주고 돌봐 줘야 한다."
마조리가 경고했다.
"네가 해미쉬와 헤어지는 날이면 우리는 줄 끊어진 연 신세가 되고 말거야."
엄마가 끼여들었다.
"엄마, 그렇게 되지 않을 거예요.  우리는 평생 함께 살 거예요."
엄마가 끼여들었다.
"그가 우리와 같이 살고 싶지 않다면 어떻게 할래? 우리는 얹혀사는 기분이 들 거야."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두 분을 좋아할 거예요.  "
"그런데 왜 우리를 보러 오지 않니?"
  좋은 질문이었다.  해미쉬가 그녀의 가족과 상견례를 했어야 했는데. 하지만 그녀의 간청
에 그의 대답
은 평소와 똑같았다. '결혼 후에'. 해미쉬는 그녀의 생각만큼 녹녹하지 않았다.  그녀는 애써 
설명했다.
"난 두 집 살림을 할 형편이 안돼요. 라나가 도버에 산다면 난이 아이를  만나지 못할 테니, 
그 안은 즐
렸어요.  그리고 내가 얘를 스코틀랜드로 데려 간다면 두 분이 언제 우리를 만나시겠어요?"
아빠는 조약돌같이 단호한 시선으로 그녀를 노려봤다.
"딱 1년만이 에요.  "
그녀가 애걸복걸했다.
"두분이 행복하지 않으시면 제가 다른방법을 찾아볼께요. 제발요! 두 분은그곳을  좋아하시
고 우리 모두 
함께 살게 될 거예요."
"그 점이 최악이라는 거야."
아빠는 통렬하게 판결을 판결을 내리고 다시 신문에 고개를  박았다. 결혼은 되도록 기억에
서 지워 버리
고 싶은 행사였다. 그녀는 가족과 몇몇 친구들이 메릴본 등기 사무소에 모였다. 그 음침하고 
몰개성적인 
건물 선반에 쌓인 먼지에 라나가 건초열을 일으켜 콧물을 질질 흘리는 바람에 일어나 그의 
정강이를 세
게 걷어찼다.   아빠가 재빨리 아이의 뒤통수를 후려쳤고 콧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 가족을 봤으니 결혼을 취소하고 싶어요?"
그녀가 해미쉬에게 도전했다.  배경 음악으로 라나의  우는 소리, 아빠의 꾸짖는 말과  바바
라의 달래는 
소리가 깔렸다.
"당신은?"
해미쉬가 쏘아 붙였다.  그의 눈동자는 돌덩어리처럼 냉철했다.
"아니에요."
"그렇다면 그런 말을 하지 말아요."
예식이 진행되는 동안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딱 한마디'네'라는 대답도 그녀에게가  
서기에게 향
한 것이었다.  식이 끝난 다음 신랑 신부와 가족들은 택시 한대에, 바바라가  가스와 데이비
드는 베로니
크와 함께 죠의 차를 탔다. 라나는 엄마를 잃으리란  가상의 위협에 너무 흥분한 나머지 해
미쉬의 무릎
팍에 구토했다.  아빠는 최선을 다해 해미쉬를 무시했다.  엄마는 너무 어리둥절해서 정신을 
못 차렸다.
  가족들의 환영에 해미쉬도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일단 그가  입을  열자 거침없는 웅변
이 흘러 나왔
다.
"라나가 아는 인생은 더 이상 없을 겁니다.  "
해미쉬는 라나를 무릎에 앉히고 꼭 껴안았다.
"이 아이는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아이에게 인버
레디드를 구
경시켜 줘야 놓았어요. 하지만 문제는 제가 그곳을 싫어한다는데 있죠."
그가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자식을 소유했다든가, 자식이 우리에게 속했다는 생각은 어리석어요.  라나는  성장
기간 동안 우
리에게 위임된 한 개인이에요.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  함께 있다 해도 그녀는  독립적인 
인간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방식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어린육체  속에 깃들여진  영겁의 영혼이에요.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이곳에 배우러 왔습니다.   아이를 때려 봤자아무것도 가르치지 못해요.   
저는 매질의 
효과를 믿지않아요.  오늘 아침라나가 두려워한 이유는 엄마를  잃었다고 생각하고 내가 마
음에 드는지
의여부를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욕을 먹어야 할 사람은 바로 저예요. "
어색한 침묵이 짙게 드리워졌다.
"참 훌륭한 기독교 정신이에요.  "
마침내 엄마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제 아빠는 반감을 노골적으로 표출했다.
"저는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 하디 부인."
해미쉬가 설명했다.
"저의 어머니처럼 불교 신자에요.  . 아시겠지만 어머니는 일본인이셨어요.  "
"일본인? 난 몰랐수."
엄마가 비명을 질렀다.
아빠는 마조리를 째려보았다. 그 눈에 살의가 가득했다.
"그는 완전히 미쳤어."
나중에 택시에서 내릴 때 엄마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착한 미치광이야. 내 말 뜻을 알지?"
"아뇨, 모르겠는데요."
마조리는 차갑게 대답했다.  그녀는 최선을 다해 엄마를 무시했다.  그녀와 바바라가 라나를 
목욕시키고 
재우는 동안, 하객들은 건배하고 피로연 음식을 먹은 후 총총히 제 갈길을 갔다.
  
    50
  부모님 생각을 지워 버리며 마조리는 버리며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날이 이렇게  화창
하다니, 좋은 
징조야. 그녀는 차를 몰면서 자신의 몸값을  계산해 보았다. 서면상 그녀의 가치는  백만 파
운드가 넘었
다. 그녀는 일시불현금이 부족했지만 런던 아파트를 담보로 은행의 단기 융자를  받았다.8월
초 그녀와 죠
의 결별은 공식화 되었다.  그는 마지 못해 경영  출판사를 인수했고 가스가 세일즈 부서까
지 전담하게 
됐다.  그는 자신도 놀랄 만큼 잘 해 나갔다.
죠는그녀의 몫 절반을 마련했고, 그들은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나 동업자 관계를  청사했다.  
마조리는 그 
날의 기억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죠의 하얗게 질린 얼굴, 충격 받은 눈동자와  떨리던 손을 
영원히 잊지 
못하리라. 그가 3년전에 라나를 위해  신탁을 마련했고 최근 발명품에서  벌어들인 총 과세 
이익의  5%를 
적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녀의  죄책감은 더 깊어졌다.  라나는 스물한살  때 그 돈을 
수령받지만, 
그 전에 필요한 경우 교육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마조리의 결심을 무
너뜨리지 못
했다. 그녀는 죠의 말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내가 지금 돈을 전부 날리고나서 그나마 기댈 데가 있을 테니까."
그는 입술을 꽉 다물고 눈을  빛내며 그녀의 팔을 잡았다.
"복수는 당신 삶의 신조가 아니야, 마조리.  내 말을 명심해  둬요.  아직 되돌리기에  너무 
늦지 않았소. 
이 미친 결혼을 제발 그만둬요."
그녀는 마음이 상해 그에게 덤볐다.
"당신이 틀렸어요. 그리고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더니. 당신이야말로  미로에 
홀려 결혼했
잖아요.  "
그러나 그의 진정한 염려에 눈물이 속았다.  갑자기 그녀는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
"난 당신과 싸우고 싶지 않았어요.  죠, 하지만 당신이 그 프랑스 수전노와 결혼한  지금 모
든 것이 바뀌
었어요."
"어이, 이봐. 내가 언제 당신의 일본인 술주정뱅이에 대해 욕을 하던가?"
그가  윽박질렀다.
  그녀는 웃으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침통한  얼굴로 두 사람은  서류에 서명하고  악수한 
다음 서로 각
자의 길로 갔다.  그리고 그녀는 눈물이 앞을 가리는 통에 변호사 사무실 밖 모퉁이에서 넘
어져 다쳤다.
아직도 아파. 그녀는 정강이에 앉아 딱지를  만지며 골똘이 생각했다. 더 깊은  아픔이 존재
했지만 그녀
는 그것을  외면했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녀는 차를 세우고 열망에 찬 눈으로 철제 대문 사이를  바로 
보았다.  멀
리 보이는 이버레이드 장원은 황폐의 기색없이 장엄해 보였다.  해미쉬가  함께 왔어야  했
는데. 그는 왜 
그렇게 이상하게 굴까? 그녀는  그에게 저택 개조를 도와  달라고 부탁했지만, 어떤 간청과 
애교도 통하
지 않았다.
"당신이 일을 마치기 전 까진 안돼요.  "
그는 그 공헌한 표정으로 버텼다.  이미 그의 마음의 문이 닫힌 것이다. 그 특유의 자기 보
호막이었다.
"내가 발기불능이더라도 놀라지 말아요. 그 지옥 굴은 내 정력을 모두 빼앗아간다오."
그리고 그는 알프스로 날아갔다.  떠나는 그의 뒤통수에 대고 그녀가 앙칼지게 작별을 고했
다.
"당신 물건이 얼어붙었다면 좋겠어!"
해미쉬와 행복하게 살수 있을까? 사랑에 대한 예상치 않은 갈망에 그녀는 문가에  서서 결
혼 반지를 만
지작거렸다. 그 다음 순간 그녀가 차량 행렬을 가로막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진저리를 치고 녹슨  대문을 열었다.  무슨 걱정이야?  그녀는 무거운  철제문를 밀
며  생각했다.  
난 행복을 쫓지 않을거야. 그래 봤자 뭐해? 그 결말은 어느 춥고 안개  깔린 새벽녘의 도버 
역이었잖아. 
공책에'대문에 원격 조정 장치를 달것!'이라고 메모하고 그녀는 장원을 향해 차를 달렸다.
"간호해, 인버레이드 장원아."
그녀는 저택 문을 열며 소리쳤다.
"너에게 이런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거야."
그리고 소리내어 웃었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거칠고 음산하게 텅빈 홀에울려 퍼졌다.
  정오 경, 먼지로 3미터 밖도 보이지 않는  실내에서 모두 마스크와 안경을 끼고  있었다.   
그래도 청소 
불들은 쉬지않고 눈을 비비며 기침을 했다.   그 소동의 일부는, 건축업자들이 같은  방에서 
복작거리며 
묵은 벽지를 벗겨내는데 있었다.  그들은  작업이 곧 끝나리라 장담했다.  굽이  납작한 샌
들과 청바지. 
티셔츠와 낡은 스웨터를 걸치고 스카프로 머리를 질끈 묶은 마조리는 기쁜  드러나는 멋진 
모자이크 바
닥을 바라보았다. 청소 책임자가 그녀에게 소리를 질렀다.
"뭐라구요?"
실내 소음은 먼지만큼 심했다. 그가 양손은 입에 대고 그녀의 소리질렀다.
"벌써 바닥 솔이 여섯 개나 망가졌다구요!"
"놀랍지도 않네요.  "
그녀는 그의 팔꿈치를 잡고 밖으로 끌고 나왔다.  소음과 인간에 놀란 새때가 나무 위를 빙
빙 맴돌았다.
" 별채를 빨리 청소해야 해요.  우리 부모님이 가구를 처분하시는 즉시 여기에 오실 거예요.  
"
마조리를 앞장서서 숲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열쇠를  만지작거렸다.
"안색이 창백하시네요."
책임자가 동정을 표했다.
"난 억지로 가족들을 이 곡으로 이사하게 했는데, 아직 집안에 들어가 보지 못  했어요.  이 
곳이 그럴듯
하게 보이는 보이는 게 중요해요."
"그분들이 언제 오시는데요?"
"조만간요."
"네 알겠습니다.  영순위라!"
"아! 정답이에요.  "
문이 열렸고 그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발을 내딛 을 때마다 피어오르는 먼지 외에도, 바닥을 슬금슬금  기어다니는 거미와 딱정
벌레들, 깨진 
유리창과 찢어진 커튼, 굴뚝에서 내려앉은 그음으로 실내는 엉망이었다. 이곳을 뭐라 표현할
까......? 그녀
는 적당한 묘사를 찾았지만 실패했다. 칙칙한 갈색과 베이지로  칠해진데다  새까맣게 변색
된 천장, 그리
고 때에 절은 시멘트 바닥 등 어두컴컴했다.
"굴뚝 청소부로 부르셨어요?"
"아뇨!"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걸 잊었구나.
"우리가 청소를 하기 전에 굴뚝부터 손을 보시는 편이 좋을 겁니다.   저택도 마찬가지예요.  
바람이 불 
때마다 그을음이 날린다면 아무리 집을 청소한들 무슨 소용입니까?
"충고 고마워요.  "
그녀는 공책에 끄적거렸다.  그리고 속으로 신음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래층 공간의 태
반은  큰 방 
하나가 차지했고  북쪽 벽에 위층 계단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반쯤 눈을  감고 여러 가지 
장식을 상상
했다. 순간 하얀 벽과 타일을 바른 마루, 밝은  나무로  이은 천장이 떠올랐다. 단열재 바닥 
난방도 설치
해야지. 이제 주방을 본 그녀는 기가 막혔다. 여기에서 건질 것이라곤 사방 벽 뿐이야. 그러
다가 생각을 
바꿨다. 벽 하나를 허물어서 채광을 높여야지 시간 여유가 있으면 좋으련만, 하지만  지금쯤 
엄마와 아빠
는 집을 세놓았을 테니 더 이상 할 일이 없으실 거야. 그녀는  어깨를 집는 손에 깜짝 놀라 
현실로 돌아
왔다. 
"기운 내세요, 부인.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른 모택동이 그랬잖습니까. 난 공산주의는 아
니지만 가장 
좋아하는 말이에요. 나같은 업종에 도움이 되거든요."
"네."
그녀의 절망감이 더 깊어졌다. 위층은 찢어진 벽지와 낡고 더러운 가구들, 수도꼭지  받침대
가 달린 진짜 
구식 욕조와 시퍼런 구리 파이프로 들어 판 난장이었다.
"아 맙소사, 맙소사......"
빨리 돌아가서 새로운 공격 침을  불러야지.  휴식 시간에 마조리는 샌드위치  한쪽과 커피 
잔을 들고 식
품 저장실 바닥에 앉아 선반 위치를 구상하고 있었다.
"당신을 찾아 해 맸습니다. 밖에 웃기게 생긴 녀석이 당신 석조물에  손을 대고 있어요.  어
서 나와 보시
는 게 좋겠습니다.
"지금요."
그녀의 몸은 천근같았고 무릎은 생고무처럼   후들거렸다. 밖에는 소형 트럭 한대와   함께 
웬 남자가 흰 
아교같은것을 분사하는 청고 기계를 작동하고 있었다. 그는 익히 잘 아는 인물이었다.
"죠!"
그녀가 소리 질렀다.
"아, 죠!"
그녀가 양팔을 버리고 그에게 뛰어들려는 찰라 그가 재빨리 한 손으로 그녀를 막으며 뒷걸
음질쳤다.
"마조리, 잠깐만. 그 재 투성이에 가려진 사람이 당신 맞소? 굴뚝청소를 하다 온 거요?'
그리고 그는 옛날처럼 진짜 더러운 저택을 찾고 있었소. 내가 무료로 봉사할 테니, 그  대신 
청소 전후의 
저택 사진을 미국 선전용으로 사용하게 해줘요.  "
"고마워요, 죠. 난 정말 기뻐요. 당신 협력을 받아들이겠어요. 얼마나 걸릴까요?"
"영원히! 석조물에 수백년에 걸친 먼지가 눌러 붙었소."
"제 색깔이 회색 아녜요?"
"아냐! 이리와서 수정처럼 광체 나는 핑크와 흰 대리석을 봐요. 멋지지?"
그는 열을 올리며 작업중이었던 지점을 가리켰다.
그녀는 헐떡거렸다.
"정말 아름다워요, 죠. 그리고 내가 다른 것도 발견해 냈어요. 홀 바닥이요!. 얼른 보여 드릴
께요.  "
"해미쉬는 어디에 있고?
"알프스를 등반 중이에요. 난 이곳을 수리하고 싶었지만 그는 끼고 싶지 않대요.  하지만 우
리에게는 살 
곳이 필요해요."
"그는 그 동안 어디에서 지냈답니까?"
"친구 집을 전전했대요.  "
"당신이 돈 낭비를 하고 있다는 걸 알고나 있소?"
"나네요, 죠, 이곳은 집을 구경시켰고 자랑스레 구상을  설명했다.  죠는 빈틈없는 눈초리로 
가구들을 조
사했다.
"오래 되었군. 아주 오래 되었어. 개중에 좋은 물건이 몇점 있지만 당신에게 그걸 가려낼 안
목이 모자란
다는 점이 문제요.  내가 아는 평판좋은 골동품 수복가를 불러다가  수리 견적을 뽑고 진품 
가격을 매겨 
봐요.  전화 통화가 되오?"
"네. 제대로 작동되는 것은 전화뿐 이에요. 지난주에 새로 가설했어요.  "
"그에게 전화해야지."
그는 화장지로 까탈스러울 만큼 꼼꼼하게 수화기를 닦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어요, 죠 전에 이야기했던  산업 정보원 기억나요? 죤 에스킨이 누구
를 위해서 일
하는지 알아냈던 그 사람말이에요.  "  죠는 언제나 방어적인 태세를  갖춘 다음 별 위험이 
않으면 없다 
싶으면 반응을 보였다.
"그의 연락처를 알려 줄래요? 내가 그에게 의뢰할 일이 있어요.  "
"그는 아무 고객이나 상대하지 않소."
"그럼 나를 추천하고 약속 날을 잡아 주세요."
마조리는 속구치는 짜증을  눌러 참았다.  그가 다시 큰오빠 행세를 하려 드는군. 죠의  눈
에 그녀는 항
상 수수료를 사기 당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도버의 여학생으로 보일 거야.
"죠, 나를 믿으세요."
일단 화를 낸 다음 살살 구슬렀다.
"당신이 와 줘서 얼마나 기쁜지 몰랑요."
"그래, 그렇겠지. 내가 꿰 쓸모가 있을 테니까."
"아네요, 그래서가 아녜요."
"마지, 내 눈을 속이려 들지 말아요.  지난 5년이란 세월을 없었던 것처럼 지워 버릴  수 없
어. 난 그 사
실을 당신이 떠나자마자 발견했소. 우리는  공동체야.  당신만 좋다면 내가  여동생으로 삼
지. 이제 사업 
이야기를 해 봅시다. 당신에게 도움이 필요한 것 같은데?"
"정확해요.  "
갑자기 방안이 훤히 밝아지고 두 어깨가 가벼워지며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녀는 콧 노래를 
흥얼거리며 
죠의 몫인 커피와 샌드위치를 가지러 갔다.
  
    51
  완벽해. 부모님의 별채는 그녀가 꿈꾸었던 그대로 예정된 시간에 공사가 완료되었다.
마조리는 위층으로 올라가 만족스럽게 라나의 침실을 둘러  보았다.  농장무늬의 벽지와 청
색 커튼으로 
단장되었다.  그녀가 출장갈 때 딸이 머무를 곳 이었다.  그리고 다음 몇 주일 후 아니면 몇
달 후? 저택
공사가 끝날 때 까지 여기서 잠들게 되리라.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숲을 가로질렀다.    빨강
과 금색으로 
물든 나뭇잎들과 촉촉한 안개 향이  감도는 대기, 그리고 버찌.  야생자두.  말 오줌나무 등 
각종 열매가 
맺힌 관목 등 이곳은 전과 변함이 없었다.
서둘러 문을 열고 들어가자 홀에서  새 하녀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청소를  하고 있었다.  
빗자루와 진
공 청소기로 무장한 청소 부대는 졸라를 뒤에 남겨 놓고  떠났다.   자메이카  출신 그녀는 
뇌에 손상을 
입은데다 약간 귀가 멀었기 때문에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녀에게는 일이  아편
과도 같았다.  
숲에서 열매를 낚아채는 새들처럼 그녀는 일에 달려들었다.  졸라는  이  곳을 마음에 들어 
했기 때문에 
자진해서 남았다.  마조리는 감사하게 생각했다. 탁자가 광택재로 흠뻑 젖어 있었다.
"윤아 나지 않아요, 사모님."
졸라가 투덜거렸다.   그려가 막 병을 흔들려는 찰라 마조리가 종이 타월을 쥐고 박박 문질
렀다.
"팔뚝 힘보다 더 좋은 광택재는 없어요.  졸라, 날 보고 배워요.  "
"내 의견도 같아요.  "
그녀의 뒤에서 어떤 목수가 동의를 표했다. 마조리가 돌아섰을  즈음  이미 그 목소리의 임
자에 대한 평
가가 끝나 있었다.  나이들고  교양있는 스코틀랜드 여성. 하지만  닳고닳은 모피와 반지가  
끼워진 매 발
톱같은 손, 주름투성이의 얼굴은 의외였다.
"들어 오세요."
마조리가 말했다.
"마조리 카메론이라고 합니다.  손에 광택제가 묻어서 악수를 청할 수 없네요.  제 꼴이 좀 
우습지요?"
"당신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젊고  심지 굳은 아가씨처럼  보여요.  난  당신남편의 수많은 
대숙모 중 한 
명인 베아트리스 카메론이에요, 해미쉬를 만나러 왔어요.  "
"해미쉬는 여행을 떠났어요.  하지만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
"지금 말해 두건데, 당신에게 대숙모만큼은 부족하지않을 거예요, 마조리."
  노부인은 단장을 짚고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그들을 대표해서 여기에 온 이유는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서요.  당신이 해미
쉬의 폐허에 
돈을 쏟아 붓고 있다 던데요?"
"아니에요. 이곳은 폐허가 아니라  좀 황폐해진 거예요. 좋으시다면  집 안내를 해드릴께요.  
"
자랑스럽게 모자이크 타일과 새 벽지, 수복된 떡갈나무 벽  서재와  수백년에 걸친 회색 코
트를 벗어 던
진 석조물을 보여줬을 때, 그녀는 베아트리스 숙모의 눈에 차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오히
려 그 반대였
다.  노숙녀가 적나라한 분노를 표출했다.
"해미쉬가 당신에게 헛돈을 낭비하라고 했나요? 우리 대다수는  글렌너드의주식 배당금으로 
생계를 유지
하는데, 몇년동안 그 액수는 쥐꼬리만큼도 안됐어요.  우리가 고생하는 이 마당에 당신  혼
자 돈을 펑펑
쓸 수 있어요?"
마조리의 첫 느낌은 불쾌감이었다.  하지만 연약하고 바싹 마른  이불쌍한  여성을 보며 마
음알모든  돌
렸다.  쯧쯧, 얼마나 생활고에 허덕이고  있을까? 조만간 이분같은 주주들과  얼굴을 맞대야 
할텐데, 한 
명이라도 내 편을 만들어 두자.
"이 쪽으로 오세요.  제가 차나 커피를 한잔 대접하면서 말씀을 드릴께요.
 부인께서 부엌을 괘념치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유일하게 수리가 끝난 곳이거든어요.   저
는 우리  어
머니의 충고를 받아들였답니다.  "그녀는 베아트리스  숙모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그녀는 
한 마리의 새
처럼
가볍고 연약했지만 그 눈초리는 매처럼 빈틈이 없었다.
"어머니는 제일 먼저 침실과 부엌에 손을 대야 한다고  하셨어요.   일단 편안하게 자고 잘 
먹으면 못할 
일이 없대요.  "
"칭찬할 만하군."
노부인이 톡쏘아 붙였다. 그녀의 표정은 변함없이 악의에 가득 차 있었다. 따뜻하고 윤이 흐
르는 부엌도 
강철같은 눈매를 풀어 주지 못했다."카메론 부인, 저는 런던의 제  아파트를 저당 잡히고 관
련 사업체의 
주식을 팔았습니다. 그리고 그 돈을 해미쉬의 집과 사업에 투자할 거예요.  우선이  멋진 집
을 수리하고 
청소하던 중이었어요. 우리  주주들이 주식을 글렌티란에   팔 생각이니, 당신은  아무것도 
못할 거예요.   
방계 혈족 주주들이 조만간 한 자리에 모여 글렌티란에게 더 높은 가격을 받아  낼 방법을 
협의할 예정
이에요.  "
  마조리는 애써 평온을 유지하며 커피와 비스킷을 노숙에게 접대했다.
"회의 날짜는요?"
"다음주 목요일이에요.  "
온몸의 피가 한꺼번에 얼굴로 몰렸지만 마조리는 낭패감을 감추었다.  난 망했구나. 그  시
간 내에 무슨 
재주로 주주들의 마음을 돌릴 수 했겠어? 베아트리스 숙모가 작은 초대장을 건넸다.
"여기 있어요.  "
"누가 회의를 소집했어요? 전 연락을 받은 바가 없습니다.  "
"왜 당신에게 연락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저는 주주니까요."
"저도 가족이에요.  "
그녀는 가능한 한 따뜻한 미소를 보였다.
"네, 그래요. 하지만 당신이 아무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결혼식을 치렀는데  우리가 아찌 
알겠어요? 이
건 글렌티란 측의 제의서 복사본이에요.  "
"해미쉬와 저는 주식을 팔지 않을 겁니다."
"주주들의 동의 없이 당신은 아무것도 못할겁니다."
"주주들의 동의없이 당신은 아무것도 못할 거예요." 마조리."
노부인의 말똥말똥한 눈은 거만한 동시에 대담했다.
"그렇다면 제가 그 회의에 참석하여 주주들께,  죤 에스킨이 글렌티란 앞잡이이고 조직적이
며 의도적으로 
배당금을 낮춰 왔다는 사실을 증명하겠어요. 그분들은 저를 지지해주실 거예요.   그리고 우
리가 장기적
인 안목으로 더높은 수익을 제공할 수 있음을 확신시키겠습니다.  "
"나부터 시작해 보세요.  "
"음, 시간이 더 있으면 좋았겠지만 그냥 할께요."
마조리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다음 15분 동안 그녀는 죠와 구상했던 계획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5년, 10년, 15년 계획에 
의해 글렌너
드 증류소는 높은 이익을 올리게 되겠지만 처음 몇년 동안 최소 배당금 지급이 불가피했다.
"솔직히 처음 5년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해요.  "
그녀가 말을 맺었다.
"당신 계획에는 은행의 대규모 융자가 수반되어야 해요.  하지만  작은 공장 하나에 그렇게 
많은 돈을 빌
려줄 은행은 눈씻고 찾아봐도 없어요.  우선 충분한 담보가 없잖아요."
"한 은행이 그러기로 했습니다.  "
마조리의 말은 노부인를 놀라게 만들었다.
"어떤 은행이지요?"
"4년 전 우리가 작은 출판사를 시작했을 때 거래했던  도버 은행이에요.  내 동업자가 얼마 
전 발명품으
로 떼돈을 벌었고 출판사의 경영 실적이 좋기 때문에 그들이 돈을 대기로 했어요.  "
  그녀는 정말 열과 성을 다 바칠 거야.  베아트리스는 마조리의  구상을 들으며 단정 내렸
다.    하지만 
열성만으로 충분치 않다. 그녀에게  끈기와 강인함이 있을까? 세상  물정에 밝을까? 칼륨의 
미망인이자 
그램피안 은행의 총수인 베아트리스 카메론은 마조리의 배경을 조사  시켰다.  그래서 그녀
의 성공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중 전 동업자 죠 시걸의 공이 얼마나  되었을까?  자신의 것도 아니 집에 
돈을 흥청망
청 쳐들인다는 것 자체가 소갈머리 없다는 증거였다.
그녀는 입술을 꼭 다물고, 온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것처럼 식탁을 쥔 마조리의  손을 봤다.   
그녀가 정말 
영업을 책일질 수 있을까? 그리고 해미쉬는? 그는  머리도 나무랄 데 없고 학업 성적도 좋
았지만 삶에서 
도망만 쳤다. 하지만 여자가 남장에게 힘을 불어넣는 경우가 왕왕 있지.
해미쉬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는  일이 주주들에게  공정할까? 노숙녀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조금만 
더 젊었어도. 좋아, 그들에게 시간을 줘보자. 그녀는 마음을 정했다. 그녀는 한때 남편을  위
해 사업의 고
삐를 잡았던 때를 떠올렸다.  당시 여자가 사업에 참가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으므로 
그녀는 남편
의 그림자로 남았다.  그리고 사업 전면에 나선 남편의 반석  같은 의지가  되고 통찰력 있
는 눈 역할을 
했다.  이 젊은 여자가 할 수 있을까?
"내가 우리 가문의 주주들을 대표하여 회의를 한 달 뒤로 연기 할 테니 당신은 서면 계획서
를 작성하세
요.  그리고 해미쉬도 그 자리에 참석하길 기대하겠어요.   마조리,  주주들을 설득시키려면 
공허한 약속
만으로 안돼요.  뭔가 확실한 것을 회의에 가져오세요."
노부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단장을 짚고 돌아갔다.  그리고 차에 도착해 소리쳤다.
"그리고 서둘러서 후계자를 생산해요.  그게 가장 중요해요.  "
"난 젓소 가 아니에요.  "
마조리는 달콤하게 미소짓고 손을 흔들며 작게 중얼거렸다.  "
  
    52
  베아트리스 카메론이 떠나자, 마조리는 쥐어짠 누더기가 된 심정이었다. 그녀가  우울하게 
포치 윗계단
에 앉아 깊은 상념에 잠겨 있을 때 진입로를 따라 달려오는 차 한대가 보였다.  엄마와  아
빠야! 가슴이 
울렁거렸다. 부모님이 이곳을 좋아하셔야 할텐데.
잠시 후 자동차 문이 열리고 강아지 패디가 뛰어나왔다.   녀석은 가까운 덤불로 달려가 다
리를 쳐들었
다.   너무 용모가 급한 나머지 그녀에게 인사를 생략했다.
"엄마!"
라나가 달려와 그녀에게 안겼다.   마조리는 딸을 꼭안고 한 바퀴 돈 다음  다시 땅에 내로  
놓았다.  아
이의 얼굴을 살피는 동안 큰 혹덩어리가 목에 걸린 같았다.  드디어 사랑하는 딸을 돌봐 줄 
수 있게 되
었어. 엄마는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차에서 내려   한숨을 몰아쉬었다.   푸른 원피스는 
구김과  얼룩 
투성이였고 얼굴은 땀에 젖었으며 두 눈덩이가 부어 있었다.
"저 고양이 때문에 미치는 줄 알았다.  "
엄마의 모습에 마조리의 죄책감이 더 깊어졌다. 자동차 뒷좌석에서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
려 왔다.  그
녀는 라나의 손을 잡고 차로 달려가 들썩거리는 바구니를 집었다.
"자, 자, 티비. 진정해. 이 녀석을 한 며칠 동안 엄마네 식기실에 풀어 두세요.  워낙 쥐들이 
많아서 녀석
이 아주 좋아할 거에요.  "
"아이고 맙소사! 이게 웬 난리인지!"
리즈는 시뻘건 얼굴을 큰 손수건으로 닦었다.
"날이 너무 덥고, 라나는 보채고......  쟤가 착하고 하지만  얌전히 앉아  있기에는 여행길이 
너무 멀었어. 
불쌍한 패디용크, 저녀석 좀 보렴!"
개는 여전히 세 발로 서서 볼일을 보고 있었다.
"차를 세워야 한다고 했잖아요.  "
라나는 깔깔거리며 주변을 뛰어다니고 꽃들을 만져 본 다음에 잔디밭을 힘차게 달려가 양귀
비가 꽃무덤
에 몸을 던졌다.  아빠가 충격을 받아서 인지 피곤하고 약간 어리둥절해 보였다.
큰 언니는 삶의 부상병이라고나 할까? 인간의 의무 이상을 완수하고 전쟁 후에  마음의 병
을 앓고 왔던 
남성들이 영국 전역에 많이 있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깊숙이  곪아 문드려진 후에야 발병
한 환자들. 아
빠가 이 곳에 뿌리를 박고  행복해질까? 갑자기 솟구친 애정의  물결에 그녀는 아빠를 껴안
고싶었지만, 
워낙 가족간 애정 표현을 터놓고 분위기가 아니었으므로 아빠가 쑥스러워할 것이다.
"다 오셨어요! 여기가 인버레이드 장원이에요! 아직   정돈이 덜 되었지만 천천히 제모습을  
찾아갈 거예
요.  "
"그리고 우리가 묶을 곳은 어디니?"
아빠가 부드럽게 질문했다.
"먼저 집 구경을 하신 다음에 이 근처를 둘러 보시 겠어요?"
"너 좋을 데로 하려무나."
아빠는 말수를 줄이고 참견하지 않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꼭 처형을  앞둔  사형수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누구에게 신세지는 것을 싫어하는 분이었다.
"좋아요! 그럼 어느 길로 갈까요? 이 진입로는 마구간 뒤쪽으로  해서 두 분의 집으로 연결
되었어요.  그
리고 이쪽 길은 지름길이에요.  작은 숲을 가로지르면 바로 집현관이에요.  그럼 슬슬 산책
을 좀 하시겠
어요?"
그녀는 괜히 익살을 떨며 분위기를 가볍게 했다. 엄마는 걱정스럽게 아빠를 가볍게 했다.
"우리가 다리를 폈으면 좋겠구나."
엄마는 걱정스럽게 아빠를 본 다음 고용한 택시 기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당신은 어떻게 할거요? 곧장 돌아갈 거예요? 하룻밤 묶어 가도록 해요. 그래도  되지, 마조
리?"
"아닙니다.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하디부인.  저는 인버네스에 있는  친구  집에서 자
기로 했어요.   
그러니 짐을 내려 놓는 즉시 떠나겠습니다."
마조리는 그에게 별채로 통하는 마구간 뒤쪽 길을 알려줬다.
"여기는 섣불리 손 델 수 없는 상태구나.'
아빠가 투덜거리며 바지가락에 붙은 솜털을 털어 냈다.
"저 앞에 보이는, 들판이 딸린 불그레한 큰 저택에 네 집이냐?"
"전에는 잔디였던 것 같은데 미처 정원에 손을 못 댔어요.  시간이 없어서요.  "
"음, 내가 돌 볼 수 있을 거야. 잔디깍이 기계가 있니?"
아빠의 목소리가 떨렸다.
마조리는 지방 조경업자와 계약을 할 생각이었지만 그 순간 마음을  바꾸었다.   아빠의 눈
에 갈망이 어
려 있었다.
"아빠가 하실 수 있겠어요? 참 좋겠네요. 내일 기계를 사올께요.  차라리 아빠가 직접  고르
세요.  걸터앉
아서 모는 식은 어떠세요?"
"그건 너무 비싸."
"일단 구경이나 해보세요.  "
"해미쉬 이 넓은 땅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떻게 파산을 모면했니?"
"이곳은 가족 신탁에 묶여 있는 관계로 일부를 팔거나 저당 잡히거나 담보로 설정될  수 없
어요.  하지만 
죽도록 버거운 의무와 세금 등으로 영구적인 빚에 허덕여요.   그의  사업적인 경험 부족과 
더불어 말이
에요.  "
"그렇게 설치지 말아라, 마조리."
엄마가 잔소리를 했다.  "
"바보들만이 천사가 꺼리는 곳에 달려드는 법이야. 넌 이방인이고 증류소 책임을 떠맡을 필
요가 없어요.  
이제 집안 일이나 건사하거라."
  엄마의 삶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나 독립에 대한 진부한 생각은 항상 마조리의 짜증을 불
러 일으켰다.  
엄마는 그녀가 출판사의 주식을 팔았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네. 어마."
엄마는 한숨을 쉬었다.
"진정하게 굴어. 넌 그 세계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잖니?"
그녀는'불쌍한 해미쉬는 더 몰라요'하고 반반하고 싶었지만 그냥 참았다. 그들이 무성한 장
미 정원에 도
착했다.  아빠의 얼굴에 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일부는  장미의 방대함에 대한 놀라움이었
고,  일부는  
그곳이 방치된 데에 대한 분노, 그리고  나머지는 어서 손보고 싶은 열망이었다.
"이것 좀 봐라. 이건 파스칼리, 여건  미니 펄, 저건 헨델 종이야. 웃자라긴  했지만  손보기
에 너무 늦진 
않았다."
숲에서 라나가 비명을 지르는 통에 그들은 서둘러 다가갔다.
"여우예요, 여우! 내가 저기에서 여우를 봤어요!  패디용크가 쫓아갔어요. 여우를 구해 주세
요 ! 빨리요!"
"패디는 여우를 못잡을 거야, 걱정하지마."
마조리가 딸의 손을 잡았다.  "여기는 다람쥐도 많아요. 난 다람쥐가 좋아."
"그리고 새들도 많구나. 저 소리좀 들어봐."
리즈가 끼여들었다.
"어젯밤에 나이팅게일의 노래 소리를 들었어요.  정말 아름다웠지만 어찌나 외롭던지...... 두
분이 여기 와 
주셔서 정말 반가워요."
"해미쉬가 여기에 없니?"
"네. 그는 알프스를 등반중이에요.  "
그녀는 얼굴을 찡그리며 그에 대한 수치심을 감추었다. 그는 도망가지 말았어야 했어.
"뭐! 신혼에?"
"그가 여행을 가고 싶어했던 반면 저는 여기 일 을하고 싶었어요.  "
"마조리, 년 이제 결혼했으니까 네 고집대로 할 수  없어. 너희 두사람 일에 그래선 안된다.  
그는 신혼 
여행을 떠날 자격이 있어요.  너희는 결혼했잖니."
"네, 엄마 말씀이 옳아요.  "
그녀는 해미쉬의 불안한 재정 상태와 영국에 있어야 할 필요성을 들어  가족들을 걱정시키
고 싶지 않았
다.  특히 죠가 그녀를 위해 글렌너드의 주식을 사들이는 지금  절대적으로 영국 땅을 지켜
야 했다.
  별채에 도착한 순간 마조리는 미래가  순탄하리란 것을 알았다.  엄마는  아담한  꽃밭과 
전망과 멋진 
찬장에 말을 잃었다.
"준비가 충분치 못해서 미안해요, 엄마."
"네가 여기에 한재산 들였겠구나.  어느날 사랑에서 깨어나면 어쩔려고  그러니? 그 생각은 
해봤니?"
엄마는 익숙지 않은 단호한 태도를 취하느라 땀까지 흐렸다.  "난 사랑에 빠지지  않았어요.  
"
"이런 바보같으니. 사랑없이 어떻게  결혼 하니? 네가 얼마나  부자고 성공했는지 모른다만 
결혼의 생명은 
친밀감이야. 네가 그를 간호하거나 그를 위해 특별한 일을 해야  할 순간이 얼마나 많은 줄 
아니? 튼튼
한 생활의 터전은 의미심장한 것 위에  세워지지만, 삶의 파고를 넘나들며 그  의미를 상실
하는 법이야. 
네가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의  셔츠를  빨고 양말을 깁고  간호하는 단순한 일들이  
참을 수 없이 
지겨울 거야. 사랑이 그 대답이야.   사랑만 있으면 시시한 일도  최상의 의미를 갖게 된단
다."
엄마 평생에 가장 긴 연설이었다.
"난 어느 누구의 양말도 깁지 않을 거예요.  "
"그럼 부자들은 서로를 위해 뭘 하니?"
"아무 것도 안해요. 하녀가 있잖아요.  "
"아휴, 내가 가나해서 천만다행이구나."
"엄마, 잔소리 좀 그만하세요.  "
아빠는 조용히 모녀 뒤를 따라다녔지만 침실 창문을 건너다보는 순간 그 자리에 못 박혔다.
"저게 뭐냐?"
그는 남쪽을 가리켰다.
"뭐요? 어디요? 아 저거."
  그녀는 짐짓 대수롭지 않은 척하며 중얼거렸다. 아빠의 야망은  오리를  키울 수 있는 연
못을 갖는 것
이었다.
"호수예요.  오리랑 여러 종류의 새들이 있어요.  "
"이웃집 거니?"
"아뇨. 해미쉬 거예요.  "
"우리가 저기에 가볼 수 있는 거냐?"
"그럼요, 난 황혼녘에 가서 오리에게 먹이를 줘요.  나무  근처에 콩깍지 부대가 있어요. 지
금 백조를  한 
마리 살까 생각중인데. 아빠 생각은 어떠세요?"
"두마리로 하거라. 너무 비싸지 않다면 말야. 마조리야, 내가 해미쉬에게  일을 달라고 해야
겠다.  이 집
의 임대료 대신 정원 일을 하마. 월급은 필요없어.  당연히 그렇고 말고. 정원사가 실직자보
다 훨씬 낫잖
니. 이 일에 대해 내가 좀 아니까  즐겁게 할 수 있어.  이 곳을 잘  손질하마. 그리고 꽃을 
내다 팔면 수
입도 올릴 수 있어."
"네, 아빠는 잘 하실 거예요.  그리고 저 너머에  오래된 채소밭도 있어요. 신선한 샐러드와 
야채 대실 수 
있겠어요? 요즘 채소값이 얼마나 비싼지 잘 아시죠?"
"하다마다. 좀 기다리거라.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어."
"그럼, 됐어요."
마조리는 지난날 오래오래 가슴에 뭉쳐 두었던 근심을 한숨으로 내뱉었다.
"이제 됐어요......"

    64
  장례식이 막바지에 이르렀지만 마조리의 귀에는 해미쉬의  목소리만  울려퍼졌다.  '당신
이 최고
야, 마조리. 그래, 당신은 날 사랑하지만   이용해 왔던거야. 당신은 자신을 팔아서  이 모든 
것을 
손에 넣었소."
청명한 햇살 속에서 그녀는 얼어붙은 듯이 서 있었다.  그의  말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으리
라. 그
녀는 방어적으로 눈 만 깜박거리며 서서 과거 속에서 못  박혔다. 닷새 전, 마조리는 스위스 
가서 
해미쉬의 시체를 확인했다. 한  젊은 경찰이 그녀를  영안실로 안내해 냉동칸의  긴 서랍을  
열고 수
의를 제쳤다. 해미쉬의 만신창이 된  얼굴을 본 순간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미래의 약
속으로 
저 상처를 씻고 과거를 묻고 싶었다.  절망에 무릎에 꿇고 여전히 너무나  사랑하는 저  육
체에 매
달려 영원히 놔주고 싶지 않았지만, 그런 행동은 논의의 여지가 없었다.
"해미쉬 칼륨 토하라 카메론의 시체가 맞습니까?  "
담당 경찰이 프랑스어로 물었다. 슬픔과 죄책감과 아울러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비현실성
에 몸이 
굳은 그녀는 옴짝달짝도 할 수  없었다.  아, 해미쉬, 무슨 짓을  한거예요? 내가 무슨 짓을  
한 거
죠?
이 참담한 마지막이 믿어지지 않았다.  한마디 인사조차 나누지 못했다.   그가 단 5분만 살
아 돌
아와 작별인사를 할 수 있다면 이별을 참을 수 있으련만.
마조리는 절망한채 교회 밖에 서 있었다.  문득 엄마가 그녀의 팔을  잡는 감촉이 느껴졌다.  
 바
바라가 다른쪽 팔을 부축했다.  그들은 다 함께 장지로 향했다.
라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칭얼거리더니 결국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장 집에 보내버리
겠다는 
엄마의 엄포에 질려 소리 내어 울지도 못했다.  라나의 슬픔에  마조리의 죄책감이 더 짙어
졌다.
  재는 재로, 먼지는 먼지로. 이말이 무슨 뜻일까? 그녀는 땅속으로 내려지는 해미쉬의 관을 
무표
정하게 보며 곰곰히 상념에 잠겼다.  해미쉬의  영혼이 이 자리에 있을까? 그는  그녀를 볼 
수 있을
까? 추억이 주마등처럼 그녀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회사 접수계에서  겸연쩍게 웃던 
해미쉬. 
그녀가 청혼을 받아들이자 사랑으로 눈을 빛내던  해미쉬. 라나를 등에  업고 아빠와  다트 
놀이를 
하던 해미쉬. 그때 그녀가 사랑에 빠졌던 걸까? 눈물이 주체 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
시간이 얼킨 실타래처럼 뒤죽박죽 이었다.  1초가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지만 그녀의 생각은  
광속
보다 더 빠르게 흘러갔다.  표현은 달랐지만 그 내용은 오직 한가지였다.    해미쉬가 산에
서  실
족했을까? 아니면 스스로 몸을 던졌을까? 왜 몸에 줄을 매지  않았을까? 알 방법이 모연한 
이 질
문들은 그녀를 평생동안 따라다니며 고무하리라.
누군가가 그녀의 팔을 살짝 건드렸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두꺼운  검은 베일 속에서 빛나
는 갈색 
눈동자를 응시했다.
"뭐라 말할 수 없이 유감이에요.  "
"감사합니다.  베아트리스 숙모님."
마조리가 속삭였다.  노부인은 지팡이를 짚고 차로 향했다.   더 이상 서로 나눌 말이 없었
다.
죤 에스킨이 앤드류 삼촌과 그이 아들 이안과 함께  사람들 속에 섞여 있었다.
"저 악당이 삼총사들이 멀리 가버렸으면 좋겠어."
그녀는 바바라에게 소리죽여 말했다.
입관이 끝나자 다시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  물기어린 시야에  커다란 그림자가  
뛰어들
어옴과 동시 억센 팔이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유감이오, 마조리."
눈을 깜박거리며 그녀는 앤드류 삼촌의 푸른 눈을 바라보았다.  믿을  수 없게도 그의 표정
에는 걱
정과 염려의 빛이 어려 있었다.  생각만큼  나쁜 사람은 아니구나. 그녀는 여리게 미소지었
다.
"해미쉬는 아슬아슬한 삶을 좋아했소. 산이 아니었다면 술이 그를 죽였을 거요.  "
그의 걸걸한 목소리가 장지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악의적인 모함이에요.  그는 술을 마시지 않았어요.  더 이상 은요."
그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마조리, 이런 때에 당신을 괴롭히고 싶지 않지만,  가능한 한 빨리 인버레이드 장원에서 개
인 소
지품을 꾸려 나가 주겠소?'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녀는 그 의기양야한 푸른 눈 속에서 말뜻을 알아차렸다.  그는 좋아서 터져나오는 웃음을  
억지
로 참고 있었다.
"이제 내가 적합한 후계자요. 우리 일을 질질 끌지 맙시다.   난 이런 슬픔을 겪은 당신에서 
소송
을 걸고 싶지 않소."
그는 해미쉬의 무덤쪽을 가리켰다.
"아니예요.  "
말도 안돼! 미쳤어! 하지만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가 두손으로 힘들게 쌓아올린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없었다.  모든 재산을 증류소와 저택에 투자했다.  가진  것 모두를. 정신이 혼미
한 가운
데 그녀는 아빠가 앤드류를 밀쳐내는 광경을 지켜 보았다.
"이 나쁜 놈! 썩 꺼지지 않으면  네 콧잔등알모든  뭉개줄케다. 여기서 없어져...... 당장.  널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리고 너무 많은 감정이 한꺼번에 그녀에서 몰아닫쳤다.   수치심.분노.죄책감에 이어 아빠
에 대한 
따뜻한 감정. 그리고 공포가 찾아왔다.  아빠가 앤드류의 말을 들었을까?
그녀는 앞으로 쓰러졌다.  바바라의 비명소리가 들여왔다.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어두워
졌다.   
 온몸이 차갑게 식었다.  너무 이상했다.   그래, 나도 죽어가는 구나. 제발 그랬으면.
그녀는 아빠의 손을 쥔 채 집에서 정신을 차렸다.
"얘야! 얘야!"
그녀는 비탄의 눈물을 감추려고 눈을 감았다.
"용기를 내라. 그래야 내 딸이지."
아빠가 중얼 거렸다.
"우리는 너을 사랑하고 있어. 내가 이 비극을 견디도록 곁에 있어주마. 마음을 굳게 먹어."
"아빠, 아빠......"
  그녀는 목에 걸린 커다란 혹덩어리에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그녀는 아빠의 눈에서 분노
나 후회
의 기운일 찾았지만 그런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직 사랑만이 빛났다.
"우리는 감정을 드러내는 가족이 아니다면  언제나 우리가 네뒤에 있다.   마지야, 해미쉬는 
좋은 
남자였고 우리 모두 그를 추모한다만은  너에게는 아직  라나와 우리가 있잖니.  넌 혼자가 
아니야. 
이 점을 명심해라. 내딸아."
아빠가 그녀의 손을 꼭 쥐자 그녀는 눈을 감았다.  이런 아빠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아빠는 
나를 
사랑하셔.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돈이 뭔데? 돈은 중요하지 않아. 당신은 더 이상 돈에 의지해서 살 수 없어. 포기해 당신은 
알거
지가 됐어."
죠의 목소리였다.
마조리는 귀를 막으려 했다.  현실을 마주 대하기가 두려워 눈을 꼭 감았다.  자신이 앤드류
를 죽
이든가 저택을 폭파하는 짓을 저지를까봐 두려웠다.  얼마동안 잃고 있었을까? 좀처럼 기억
이  나
지 않았다.  지난날이 길고 비통스러운 단 하루동안의 일처럼 느껴졌다.
베로니크에게 막대한 위자료를 지급한 지금도 변함없이 백만장자인  죠는 돈이 하찮다는 등 
장광
설을 늘어 놓았다.  그녀의 속에서 악에 바친 분노가 솟구쳤다.
"돈 때문에 아니에요.  하느님 맙소사! 돈때문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녀는 벌떡 일어나 앉아 소리를 질렀다.
"당신이 일어나 앉는 모습을 보니 반갑군. 그래, 그럼 무엇 때문이오?"
"해미쉬요!"
그의 이름이 다시 뜨거운 눈물을 자아냈다.  그녀의 얼굴과 눈은 아파서 울  수도 없을  만
큼 퉁퉁 
부어 있었다.
"최소한 우선 순위는 알고 있군."
밉살스런 죠! 하지만 그를 째려본 그녀는 그것이  허세임를 담박에 알아차렸다.  그의 입가
에는 깊
은 주름이 패였고 눈가는 퀭했으며, 체중도 줄은 모습이었다.
"우리 부모님이 카메론 가의 신탁에 대해 아세요? 장원을 비워줘야 한다는 말을 했어요?"
그녀가 물었다.
"아니. 쓸데없는 걱정은 그만해요.  "
"내가 평생 번 돈이 전부 증류소와  이  집에 투자 되었어요.  그리고 부모님의  도버 집의  
말이에
요.  아빠는 정원과 오리들을 사랑하신단 말이에요.  난 가진 것을  모두 긁어모은데다 빚까
지 져
서 한재산 날려버렸다구요.  게다가 아빠의  건강이 최근에 좋지 않기 때문에  이소식에 큰  
충격을 
방으실 거예요.  "
"돈이야 다시 벌면 돼."
"돈 때문이 아니라고 했잖아요.  이곳은 우리  집이에요.  당신은 이해 못할거 예요.   어서  
가버려
요.  날 혼자 있게 내버려둬요.  "
하지만 지금까지 이 저택에 들인 공보다 앞으로  계획해두었던 수영장과 해미쉬의 당구실이 
가슴
을 미어지게 했다.  철부지 아이처럼 그녀는 베개 아래에 고개를  박았지만 아무 도움이 되
지 않았
다.
"안돼! 난 당신이 지금 뭘 애도하는지 당신 마음을 정확하게 파악했으면 해."
"해미쉬예요.  "
"그렇다면 이 저택과 아빠의 정원, 증류소에 투자된 당신  돈을 전부 잊을 수 있고? 왜냐하
면 그건 
단지 돈이기 때문이야. 가장 애도할 가치가도대체 없는  것이라구. 당신이 벌어들인 돈 이외
에 25
년 이란 세월에 대해 할말이 없소?"
"나가라니까요.  "
"마조리, 내말을 들어. 우리는 영혼이  깃든 육체가 아니라  육체를 지닌  영혼이야. 그래서 
육체가 
죽어도 영혼은 살아 있소. 사랑은 죽음을 극복하는  법이오. 해미쉬는 여전히 존재하고 여전
히 당
신을 사랑하고 있소 그리고  드디어 당신을 이해했을 거요.   이제 당신이 그를 전보다  더  
깊이 사
랑하는 것을 가로막는 방해물은 없소."
"입 다물어요, 죠. 당신은 내신경을 건드리고 있다구요."
이 순간 그녀는 그를 목졸라 죽이고 싶었다.
"인생은 흐르는 강물과 같은 거요.  "
그가 말을 계속 잇자 그녀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삶의 지혜는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다음에 오는 것을  수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한편 기
쁨과 슬픔 또한 영원하지 않으리라란 것을 알며 그 급류를  따라 흘러가는 것에 있소. 변화
는 인생
에서 유일한 불변의 진리야. 마조리, 1년 전에 당신은  복수와 거짓과 기만을 바탕으로 일련
의 행
동을 실행에 옳겼소. 선하지 않은  동기가 부메랑처럼 당신에게 돌아온  거야 당연하지. 그
야말로 
사필귀정이며 당연한 응보가 아니겠소? 희생을 자처한 자는  반드시 구원받고, 이기적인 자
는 그렇
지 못한 거야. 당신은 그릇된 행동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배웠잖소?  그 은총을 감사하게 생
각해요.  
"
"당신은 뭐가 그렇게 잘났다는  거예요" 다른 여자의  얼굴이  더 예쁘다는 이유로 아내를   
차버린 
주제에!"
"그리고 난 그녀에게 버림을 받게 생겼소. 그녀는 날  만나기전에 사귀었던 여인을 다시 만
나고 있
소. 그는 그보다 젊고 잘 생겼고, 두 사람은 내 돈으로 행복하게 살 계획을 세웠어."
흥, 그렇게 될 둘 알았어요.  "
"성미 고약하게 굴지 말아요.  내가 여기 온 이유는 당신에게  바바라와 휴가를  가라는 제
안을 하
기 위해서였소. 그녀는 당신이 회복될 때까지 곁을  떠나지 않겠다더군. 라나도 데려갔어요.  
그 아
이 안색이 영 좋지 않더군.  그 동안  난 일류 변화사를  고용해서 한푼이라도 건져보겠소. 
앤드류 
카메론은 인버 아시아 사에 손 댈 수없소 그리고  내가 빨리 행동한다면 글렌너드의 재산을 
인버 
아시아 쪽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 거요.   증류소에 투자한 당신 돈을 사채로 돌려  받을 테
니, 큰 
손해를 보지는 않을 거요.  나에게 당신 변호사의 연락처를 알려줘요."
마조리른 그의 제안에 대해 궁리했다.
"이제야 당신이 쓸만한 말을 하는군요.  난 여기에서 요양을 하겠어요.  이  곳에서 지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니까요.  당신이 날 도와주겠다니 정말 고마워요.  죠, 아까 당신말은  진심이었
겠지만 
지금으로선 도움이 안돼요."
그녀는 자기 혐오의 지옥에 빠졌다는 진실을 차마 고백 할 수 없었다.
  
    65
  바바라는 마조리를 도와 주고 싶었지만, 차 한잔이 친구의  유일한 청이었기에 하루 종일  
차 만 
끓였다.  우려낸 차를 잔에 따를 때가  되어서야  죠가 오늘 아침에 떠났다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
다.  그런데 3인분을 끓어다니, 젠장! 쟁반을 마조리의 침실로 가져간 그녀는 친구의 모습에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  마조리는 무릎을 꿇고  앉아 가방을 꾸리고 있었다.  남의 옷을  얻어 
입은 
것처럼 초췌하고 눈 밑에 시꺼먼 그늘이 진데다 끊임없이 편두통과 구토에 시달렸다.  그러
나  슬
픔에 망연자실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고집스럽게 바바라의 부축을 거절했다.
"넌 죽은 사람을 그만 놔줘야 해, 마조리."
바바라는 찻잔을 내밀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청상과부가 된 사람이 어디 너뿐이니? 네 앞날이  창창하게 남았잖니. 라나를 키우면서 잘 
살아야
지. 이런 말하기는 싫지만 세월이 약이라고들 하잖아."
마조리는 고개를 돌리고 찰모든  마셨다.
해미쉬를 육체적으로, 감정적으로  보고 싶은 와중에도 죄책감과 자괴감으로   반쯤 돌아버
린 심정
을 친구에게 설명 하랴? 그녀는 해미쉬를  이용했고, 그는 그 사실을 알아낸 충격으로 죽음
을  택
했다.   요리조리 생각해 봐도 사고든 자살이든 용서할 수 없었다.  슬픔이  어떨 수가 몰아
간 자
리에 진한 외로움이 남았다.  뭐라 저의할 수 없는 상실감이 가슴을 쳤다.
"넌 이 집을 빨리 떠나선 안돼. 나중에 후회할 거야.  일단 건강이 좋아 질 때까지 한자리를 
지키
도록 해."
바바라의 다정한 언행에 마조리는 고민을 털어놓고  싶어졌다. 죠는 아직도 피신탁인들에게 
별채를 
장원에서 분리시켜 그녀의 부모가 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우리 부모님 귀에 들어가선 안된다.  "
그녀는 망설이며 입을 열었다.
"바바라. 형편이 네 생각보다 훨씬 복잡해. 처음에  난  해미쉬를 사랑하지 않았어. 그를 이
용했어. 
내 평생의 소원이 있다면 라나에게  로버트가 거둬간 것을 해미쉬로  하여금 다시 찾아오게 
하려  
했던 거야. 해미쉬는 나를 사랑했고 나는......"
그녀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난 그를 이용했어. 글렌너드는 내 손에 로버트와 싸울 무기를  쥐어줬고 난  그 기회를 놓
치지 않
았어. 하지만 그것은 정당한 거래처럼  보였어. 난 해미쉬의 증류소를 회생시켰어.  백만 파
운드도 
넘는 돈을 이 저택과 사업에 쏟아 부었고, 그를 외삼촌 토하라 상과 화해 시켰어. 그리고 난 
그와 
깊은 사랑에 빠져 버렸어.
난 너무 행복했단다.  그래서 바보처럼 방어벽을 낮추고 그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던 거야.
"아!"
바바라가 말했다.
"넌 이해 하겠지? 그는 상처를 받고  크게 화를 냈어. 그리고 우리는  대판 싸웠단다.  그는 
모든 
기억을 수정해야만 한다고 했어.
그래서 어렸을 때 부터  늘상 해왔듯이 산으로 도망을  갔고 거기에서  실족한 거야.  아니
면......그내
막을 누가 알겠니? 분명한 것은 내가 그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것뿐이야."
"아냐, 그렇지 않아. 어떤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시킬 수 없어. 그
는모든 
것을 용서하거나 이혼하거나 바람을 피울 수 있었어. 또한 한동안  산에 틀어 박혀서  너에
게 벌을 
줄 수 있었지. 그는 그 방법을 염두에 두었을 거야."
"하지만 더 최악인 부분이 있단다. 난 로버트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느껴. 이제 그의 
죄는 
더 무거워진 거야. 내가 왜 이렇게 힘들어 하는줄아니? 단순히  해미쉬를 잃었다는 슬픔 때
문이 아
니야. 참을 수 없는 나의 죄책감 때문도 아니야. 로버트를 망쳐놓고 라나를 위해 글렌티란을 
손에 
놓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인 글렌너드를 잃었기 때문이란다. 그  생각에 너무 원통해서  미
칠 것만 
같아."
"아, 마조리! 정말 안됐구나."
바바라는 글렌너드를 잃었다는 마조리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자세히 추궁하지 않았다.  
 언젠
가 때가 되면 마조리가 말해주겠지.
"넌 증오심을 흘려버려야 해. 네가 망쳐놓고 싶은 대상은 로버트가 아니라 너 자신이야."
마조리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난 이제 하고 싶은 말을 다 했어. 다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그녀의 의기소침한 모습에 바바라는 울고 싶었다.
그날 이후 마조리는 더욱 자신의 껍질 속에 틀어 박혔다.   바바라가 아무리 외출을 권해도  
그녀
는 전화기 옆을 떠나지 않았다.
"난 죠와 연락해야만 해. 현상황이 유동적이거든.  피신탁인들은 우리측 요구에 수긍을 하지
만 신
탁에 묶여 있는 모양이야.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난 일단 확신을 가진  다음에 
부모님
께 이사에 관한 알을 꺼내고 싶어."
바바라는 마조리의 공포를 눈치챘다.
다음 며칠이 지루할 만큼 느리게 흘러갔고, 마조리는 씁쓸한게 정원과 집 주변을  산책했다.  
바바
라의 크리스마스는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꼴로 보였다.
  12월의 세번째 금요일, 두 여자는 일어나 장원이  눈으로 뒤덮혔음을 발견했다.  마조리가 
창문
을 열었을 때, 지난날의 기쁨이 송곳이   되어 마음을 찔렀다.  정말 아름다운  날들이었어.  
라나를 
바바라에게 맡겨둔 그녀는 숲속과 호수 주변을 산책하며 과거를 회상하고 그 속에서 한가닥 
놀리
를 찾으려 애썼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그렇게 정열적으로 사랑할 수  있었다는 게 말이  
될까? 
로보트에 대한 기억은 너무도 생생하여 손을 뻗으면 그가 만져 질 것  같았다.   그의 반짝
이는 눈
과 검은 머리카락, 장난기 어린 미소가 눈에 어른 거렸다.   그후에 해미쉬를 사랑하게 됐지
만 결
국 그들을 모두 잃었다.   최근에 그녀는 마음속에 도사린 해미쉬에 대한 깊은 분노를 알아  
차렸
다.   그가 어떻게 우리 두 삶에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지? 그는 인생을 망쳐 놨어. 아름다운 
추어
과 기억들은 빛이 바랬지만 로버트에 대한 증오심만은 전보다  더 강열하게 불타올랐다. 그
녀의 일
용하는 양식은 증오였다.
그 순간 증오와 악마는  동의어이며 그녀가 악의  유혹에 빠졌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녀는 
검은 수렁을 방황하는 카멜론처럼 그  수렁만큼, 어두운 밤 만큼, 그녀가  키워온 증오 만큼 
검게 
물들었다. 그녀의 인생이 한편의 영화처럼 머리속에 펼쳐졌다.  악이란 뭘까? 사랑이나 선의 
부재
일까? 아니면 사랑을 빼앗긴 무방비한 사람들의  가슴속에  찾아드는 강력한 힘일까? 그리
고 악은 
스스로를 돌본다던데?
갑자기 증유소를 잃지 않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그녀는 운명적인 비장함에 빠져  집으로  
돌아갔
다.
"그렇게 될 거야."
"어디 갔다 왔니?"
바바라의 얼굴에 안도감과 분노가 교차했다.
"너를 차자아서 안가본데가 없어. 너희  부모님은 30분전에 오셨단다. 함께  저녁을  하기호 
했잖아. 
죠가 잠시후면 곧 도착할거야."
엄마가 성심성의껏 준비한, 마조리가 좋하하는 카레를넣은  양고기 파이와 크림을 먹으라고 
성화를 
하느  바람에 좀처럼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바바라는 홀로 대화를 이어가려고 고분분투 
했다.
  죠가 마조리를  한켠으로 데려가서 속삭였다.
"미안해, 이제 모든 게 끝났소. 난 최선을 다했지만  앤드류가 별채를 원하고 있소. 두 달이
라는 시
한을 얻었으니 부모님께 말씀드리는 게 좋겠소."
"알았어요. 그동안 애써줘서 고마워요.  죠"
"그 외의 소득은 나쁘지 않았소 . 나중에 이야기 합시다."
충동적으로 마조리는 몸을 돌려 바바라를 보았다.   친구에게 방출되는 친절함과 동정이 겨
울날의 
따뜻한 코트처럼 그녀를 감쌌다.   그 눈빛 속에서 마조리는 벌거벗은듯한 수치감을 맛보고 
심하
게 진저리를 쳤다.
아빠가 벌떡 일어나더니 창문을 닫았다.
"얘야, 이번에는 입덧이 심하구나. 출산일은 언제니?"
묘한 침묵이 깔리는 가운데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괜찮니? 네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어."
엄마가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임신하지 않았다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난감한 심정으로 
충격어
린 사람들의 얼굴을 둘러 보았다.  부모님이 그렇게 생각했단 말이지?  해미쉬에 대한 비통
함을 임
신 초기 증상으로 이해 하시다니. 월경이 조금 늦춰졌을 뿐 인데. 마지막이 언제 였더라? 죠
의 결
혼식 며칠전 이었던가.
아냐, 2 주일 전이었다.  벌써 그렇게 됐나? 해미쉬가 죽기  2주일 전에 마지막 달거리를 했
어 그
녀와 죠의 눈이 마주쳤다.  그는  한쪽  눈썹을 들어올린채 의아한 시선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바보"
그는 중얼거린 다음 웃기 시작했다.
그녀도 따라 웃었다.   처음에는 부드럽던 웃음이 점점 요란해 졌다.  뱃속의 아기는 남아가 
분명
할 거야. 난 이제 살았구나. 그녀는 이 아기가 사랑 속에 잉태 되었음을 감사하며 두 손으로 
복부
를 껴안았다.
  
    66
  마조리는 짜증스런 몸짓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알래스데어는 어디 있지? 기다렸다는  
듯이 
아들이 그녀의 서재 창문 밖에서 '엄마'하고 불렀다.
"알래스데어, 너 또 문제를 일으켰지?'
아들의 모습에 그녀의 숨이 막혔다.  그는 11살 짜리 다른 또래보다 훨씬  잘 생겼고  키도 
큰데다 
당당한 자신감 마저 풍겼다.
외할머니의 하트형 얼굴과 미소, 할아버지의  높은 광대뼈, 해미쉬의 아름답고  동양적인 눈
매 등 
온가족을 한 군대씩 닮았다.  그리고 해미쉬의 초연함과 강인한 성격도 물려 받았다.
그래, 이 아이는 특별하지만 천사와는 거리가 멀어. 마조리는 아들에게 상을 찌푸려 보았다.  
그는 
고집세고 영리한 장난꾸러기였지만 친절하고 다정했다.  특히 동물들에게 그리고 지금 그의  
표정
은 돌기둥에 붙들어맨 늙고 굶주린 당나귀만큼 완고했다.
"네가 저 놈을 훔쳤구나."
그녀가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고 당나귀를 손가락질했다.
"경찰로부터 전화가 왔어. 집시들이 고소할 생각이래. 넌 이제 어쩔래?"
그는 돌처럼 굳은 얼굴로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어깨를 으쓱  들어 올렸다.  그녀의 가슴이 
두근거
렸다.  저 눈빛만으로 살인자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아이야.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항
의했다.
"생명 법보다 우위예요.  어떻게 한 생명체가  다른  존재에게 소유될 수 있죠?  생명은 그  
자신의 
것이에요.  "
"네가 나중에 법률을 바꾸렴. 하지만 지금은 저 당나귀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줘, 빨리."
"엄마가 한번 돌려주라고 하신다면 당장 그렇게 할께요, 네?"
시험대에 오른 기분으로  마조리는 이른 6월의  햇살속으로 나가, 뼈가  앙상하게 드러나고  
털이 반
쯤 빠진 당나귀가 고개를 힘없이 떨군 모양새를 훑어 보았다.
"이 녀석을 라나의 암말 주위에 얼씬도 못하게 해라."
어휴!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  저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고,   한번 뱉은 말을 돌이킬 
수 없었
다.
"녀석이 아니라 아가씨예요.  "
그때 반쯤 취한 한 패거리가 어슬렁 거리며 진입로를 따라 들어왔다.
마조리는 위협감을 느꼈다.
"네가 대문을 열어 놨니?"
그녀가 아들에게 투덜 거렸다.
"죄송해요."
"넌 이 아가씨를 데리고 가는 편이 좋겠구나."
"싫어요!"
그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싸구려 맥주와 땀과 찌든 담배 냄새가 주변에 진동했다.
알래스데어가 당나귀 고삐를 쥐고 마조리의 앞으로 나섰다.
"충고하겠는데, 이 당나귀에게 손대지 마세요. 지금 경찰과 동물  보호소 직원들이 오는  중
이에요.  
"
알래스데어가 당나귀 고삐를 쥐고 마조리의 앞으로  나섰다.
"충고하겠는데, 이 당나귀에게 손대지 마세요.  지금 경찰과 동물 보호소 직원들이 오는  중
이에요.  
"
"어쭈, 이 꼬마야. 저리 비키지 않으면 한대 믿을 줄 알아."
왈칵 겁이 난 마조리가 얼른 아들의 앞으로 나섰다.  집시들이 어정쩡하게 뒷걸음질쳤다.
"여보세요.  저 당나귀만 주신다면 더 이상 아무 말 않겠수다."
마조리는 망설였다.  이 문제는 동물 보호소  소관이야.  일단 당나귀를 저들에게 돌려주고 
당국에 
전화를 거는 편이 좋겠다.   그녀가  아들에게 고삐를  달라고 손을 내밀자,  알래스데어는 
고개를 
흔들며 애원하는 눈초리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속으로 뜨끔했다.
"얼마나 원해요."
마조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패거리 중 가장 나이많은 남자가 그녀의 약점을 포착하고 알래스데어을 가리켰다.
"5백 파운드를 내지 않으면 저 꼬마를 도둑으로 신고하겠수."
거래는 재빨리 이루어졌다.
"엄마가 바가지를 쓰신 거예요."
알래스데어는 패거리의 뒤통수에 대고 재미있다는 듯 중얼거렸다.
"난 저 당나귀가 아니라 너를 위해서 돈을 낸 거야. 넌 정원 일을 위해 돈을 갚아야해."
그녀가 윽박 질렀다.  그녀는 부모로서의 권위를 조금이나마 지켜려고 안간힘을 써왔다.
문제는 아들을 벌주기보다 사랑을  받고 싶은데 있었다.  라나와는 이런 문제가 없었는데.
"엄마가 뭐라고 하시든 난 동물 보호소에 전화하겠어요.  그곳에는 더 나쁜 취급을 받는 당
나귀들
이 많이 있어요.  "
"정말 부끄러운 일이구나."
그 순간 전화 벨이 울렸다.
"우선 당나귀를 수의사에게 데려가라."
그녀는 서둘러 서재로 가면서 어깨 너머로 소리질렀다.
"카메론 부인이십니까?  "
"네, 그런데요.  "
"휴 로스입니다.  "
라나의 교장 선생님이다! 웬일이실까?
"라나의 학업에 대해 전화드렸습니다.  즉시 만나 뵙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로스는 장황한 인사말을 늘어놓은 다음에야 본론을 꺼냈다.
"하지만 라나는 전 과목에서 우등을 놓친 적이 없어요.  그런 딸이 공부을 등한시한단 말이
에요?"
"아닙니다.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만나뵙고  싶은 겁니다.  
"
그의 목소리에 희미한 조롱기가 담겨 있었다.
"내일 미국 출장이 잡혀 있으니까 돌아와서......"
"카메론 부인,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면 연락조차 드리지 않았을겁니다.  "
"저런! 알겠어요.  내일 아침 10시 어떠세요?"
그녀는 수화기를 내려 놓으며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지?"
라나는 영리하고 우수한 성적을 올리는 동시에 반항적이고  고집세고 의지가 강했기 때문에 
종종 
교사들과 마찰을 빚었다.  마조리는 라나가 술에  취한 학우들을 6층 침실까지 하나씩 옮겨  
놓은 
다음에 사감 선생에게 다들 식중독에 걸렸다고 둘러댔던 기억에 미소를 지었다.  사감 선생
은  그
녀의 말을 그대로 믿고 의사를 불렀고 집단 급성 알코올 중독증으로 판명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성적 문제는 없었다.   라나의 학업 성적은 완벽에 가까웠다.   찜찜한 기
분으로 
마조리는 증류소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비행편을 변경했다.
  벨이 끊이지 않고 울렸다.  겨우 잠에서 깬 마조리가 자명종 시계를 껐다.  10시에 라나의 
학교
로 치ㅗ소한 6시 30분에  집을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갔다.   
파리한 
얼굴과 코에서 입가로 이어진 긴  주름. '웃음선' 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웃음을 잃어버린지 
이미 
오래였다.  피부는 아직 젊고매끄러웠지만 자세히 보면 눈가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잡혀있었
다.
그녀는 36살 치고 젊어 보였다.  아마 해미쉬가 죽고 난 뒤 11년  동안 감정적인  지공상태
에서 살
았기 때문이리라. 그날 이후 그녀의 성숙은 멈추었고 진정한 사랑도, 삶도 없는 생활이 이어 
졌다.  
겉에서 보기에 그녀는 남편을 잃은 슬픔을  극복하고 아버지 없는 자식들에게 양친  부모의 
역할릉 
다하는 동시에 증류소까지 경영하는 용감한 여인이었다.
하지만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그녀는 특별한 마약, 즉 일에 중동되었다.  그리고 여느  
중독
자들 처럼 성공과 복수에 맹목적으로 집착했고  마취 효과가 사라지면 칠면조처럼  마음이 
허했다.  
팩스 없이는 아이들과 휴가를 보낼 수 없을 정도 였다.
밤마다 그녀는 홍콩이나 미국의 영업 담당과 통화했고 여러 시간에 걸쳐 계획을 짰다.   글
렌너드 
영업 사무실에는 해가 지지 않았고 괴롭히고 구슬릴 사람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손을 댈 수 없는 유일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라나 였다.   그녀는  라
나에게 
의문을 제기하고 스스로 사고하도록 키웠다.
가끔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맙소사, 내가 빈둥거리고 있네. 그녀는 서둘러 옷을 입고  커피를 마셨다.  졸라에게 운전사 
젠킨스
씨를 대기시키도록 시켰다. 미국 출장 탓으로 알래스데어는 어젯밤 외가댁에서 잤다.
 차가 별채에 도착하자, 마침 대문이 열리고 패디용크의 후임인, 라브라도와 아이리쉬  울프
하운드 
잡종 앵거스가 밖으로 뛰어나와 아침 공기를 맡고 호수 쪽을 바라봤다.
"금방 돌아오겠어요. "
그녀는 문간에서 서성거렸다. 묘한 열마에 사로잡힌 그녀는 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검소하
그런데 
거실의 온기와 훈훈함과 더불어 아침 냄새를 맡았다.  금잔화 화분은  식탁 위에, 민트를 심
은 여
러개의 컵은 창턱에 놓여 있었다.  복실복실한 새끼 고양이 티비 2세가  의자 위에 앉아 엄
마의 요
리하는 동작을 지켜봤다.
알래스데어는 아침을 먹고 있었다.  계란. 베이컨. 소시지.  콩팥과 간이 접시에 가득  담겨 
있었다.  
저렇게 왕성한 식욕은 생전 처음이야. 그녀는 그를 금쪽처럼 사랑했지만 그 표현을  삼갔다.  
아들
이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
"다녀오겠소.  다들 잘 있어요.  "
그녀가 소리쳤다.
알래스데어가 고개를 들고 싱긋 미소 지었다.  그는 달려와 힘차게 엄마를 안았다.
"다녀오세요, 엄마. 라나 누나에게 내 인사와 함께 열심히 공부하라고 전해 주세요.  "
"아주 근사해 보이는구나. 새 프랑스 옷이니?"
엄마가 샤넬 정장을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는특히 어떠세요?"
"좋아지신것 같더라."
"하지만 꼭 병원에 가세요.  네?"
"네 아버지가 역정을 낼 거야."
"내가 서두르지 않으면 젠키스 씨가 알애스데어를 학교에 늦게 데려다 주겠네요.  "
"아침 예배를 빼먹으면 지옥에 빠져요."
그는 능글거렸다.
그녀는 미소 띤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아들은 아침을 목느라고 정신없었다.   저아이는 
내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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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나쁜 일부터 말해 주세요. 라나가 무슨 짓을 했지요?"
마조리가 말했다.
로스씨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양손을 펴 보였다.
"카메론 부인, 제가 학부형에게 이런  불평을  해보기는 처음입니다.  라나는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요.  지나치게 성실합니다.  저, 커피를 좀 하시겠습니까?  "
비서가 쟁반을 가지고 들어오자. 마조리는 침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딸이 공부를 너
무 열
심히 한다는 말을 듣기 위해 중요한 출장과 열 건의 약속을 뒤로 미뤘단 말인가? 그녀는 약
이 올
랐다.
"그녀는 최우등상을 받게 될 겁니다.  "
그는 그녀의 분노를 감지한 듯 부드럽게 말했다.
"그녀가 빽빽한 수업 일정에 일본어까지 의무적으로 들었을 때  걱정을  금치 못했지만, 그 
학과에
서 도 우수한 성적을 올리고 있다더군요.  "
"의미가 아니라 내 제안이었어요.  "
"라나는 체력적으로 벅찬 학습량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지금도 하루 종일  공부만  하고 
있어요.  
심지어 우리가 기숙사의 침실 전기를 차단할  정도예요.  그래서 밤마다 화장실에서 공부를  
하다 
발각되었습니다.  사흘 전에는 일본어 교과서를 베고 화장실 바닥에서 잠들어 있더군요.  "
그는 그가 막힌다는 듯 덧붙였다.
"당연히 심한 독감에 걸렸습니다.  "
마조리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교장의 비판저인 어조를 무시했다.
"부인께서는 따님이 비범함를 지향하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이유를 아십니까?  "
"가문의 성취욕을 물려받은 모양이에요.  "
"혹은 소속감을 느끼지 못해서가 아닐까요? 그녀는 입양아이지요?"
"무의미한 사실이에요.  그녀는 나의 유일한 딸이고 아쉬운 것 없이 컸어요."
"그래서 더 분담을 느끼는 겁니다.  "
"부담?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마조리는 끓어오르는 성질을 간신히 참았다.
"그녀는 죄책감 어린 부담을 느끼고 있습니다.  "
"말도 안돼요.  나는 라나를 사랑하고 그  아니는 최선이라 생각하는 바대로 자유롭게 살고  
있어
요.  "
"카메론 부인, 헌신적인데다 사업계의 거물인 어머니  밑에서 누리는 호화스런 생활이 우연
해 의해 
얻어졌다는 사실 리 열일곱살 짜리 소녀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라나는 너무 많은 은혜를 입었기에 부인을 실망시켜 드릴 수 없는 겁니다.  "
"끔직한 거짓말이에요.  "
마조리는 자제심을 잃어갔다.
"라나는 그렇지 않아요.  그 아이는 영리하고 재기 발랄하고 다정해요.  한번도 입양한 티를 
내지 
않았어요.  왜 그래야 하겠어요? 그래  봤자 무슨 차이가 생기나요? 라나는  실질적인 가정  
주부예
요.  "
"열일곱살에? 아직 어린 나이가 아닙니까?  "
"그럼요! 하지만 제 동생 알래스데어를 키우다시피 했어요.  "
난 항상 일을 했으니까 나는 ...... 우리는 ......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물론 우리 
어머니
가 옆에 계겠어요.  "
"알겠습니다. "
그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카메론 부인, 저는 재량껏 따님을 정신과 의사에게  진찰 시켰습니다.  라나가 생모에 대한 
환상
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이글을 들어보세요.  "
  마조리는 비현실감에 빠져 고개를 끄덕였다.   로스 씨는 파일을 펼치고   목소리를 가다
듬었다.   
그녀는 웃음을 터뜨리고 싶었다. 기가 막혀!  완전히 미쳤어! 하지만 라나에게는  충분히 현
실적이
었다.  다시 한번 몸 속에서 치 솟는 공포감에 그녀는 진저리를  쳤다.  내가 사랑하는 딸에
게 무
슨 짓을 한 걸까?
"다음은 라나의 작문입니다.  "
그가 시작했다.
"어렸을 때, 난 우리엄마를  신데렐라의 동화  속에  나오는 착한 요정 같을  거라고  상상 
했었다.   
빛나는 푸른눈과 금발의 부드럽고 다정한  분, 내 문제에 항상 귀를  귀울여 주시는 분, 피
크닉을 
좋아하고 우리와 함께 있어 주시는 분. 하지만 이제 나이가  든 만큼 그것은 꿈에 불가하다
는 사실
을 깨달았다.  하지만 나의 생모는 이세상 어딘가에 살아 계실 테니 꼭 그분을 찾아내겠다.   
우리 
엄마는 다정하지만 사업가 타입은 아닐  것이다. 아마 보육원이나 병원에서 일하시거나  수
녀로서 
불쌍한 아이들을 돌보고 계실지도 모른다.
"그만 하세요."
마조리는 손가방 속에서 휴지를 찾았다.
"환자의 신뢰를 배반하는 짓은 주제 넘어요.  그리고 내가 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유감
이로군
요.  난 어렸을 때 우리 엄마가 여왕이기를 바랬어요.  사람은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다 가
질 수 
없는 법이에요.  "
"카메론 부인, 흥분하지 마세요.  저는 부인의 생활 방식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부인의 
협조를 
빌어 라나를 도우려는 것 뿐 입니다.  부인께서 딸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신다고 설명하세
요.  그 
아이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상관없이 사랑한다고 발해 주세요."
"라나는 알고 있어요.  그 아이는 내가 자기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아요.  가
령, 알
래스데어는 체육밖에 잘하는 과목이 없지만 난 그 아이를 사랑해요.  교장 선생님은 핵심을  
완전
히 빗나가신 거예요.  "
"그럴까요?"
"내딸은 나를 끔찍하게 사랑하고 가능한 한 빨리 나의  사업상 부담을 덜어 주고 싶어해요.  
"
"라나는 알래스데어를 당신의 '친자식'으로 지칭했습니다.   그걸  모르시겠습니까? 한번도 
아니라 
여러번에 걸쳐서 말이에요."
그는 중간 빨간 밑줄이  쳐진 작문지를 들어 보였다.
"그 아이는 당신에게 은혜를 갚고 싶은 겁니다.  그 작은  어깨위에 무거운 보은의 짐을 지
고 있어
요.  당신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지금쯤 고아원에서 ......"
"그만 하세요. 라나는 고아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요.  무슨 수로 알겠어요? 그 아이의 
친부모
는 우리의 먼 친척으로 이민갔고  내가 우리 부모님의 보증을 받아  그 아이를 입양했어요.  
예전에 
한번 그 아이가 왜 성이 나와 같고 제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렀을 때 우리 어머니가 전부 
설명해 
주셨어요......"
마조리는 당시 직접 대답을 회피하고 엄마에게 떠맡겼던 기억에  말을 얼버무렸다.  엄마가 
뭐라고 
대답하셨을까?
"당시 라나는 여섯 살이었고 전부 잊어 버렸을 거예요.  그녀는 내 딸이에요.  "
눈물이 뺨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카메론 부인, 마음 상해하지 마세요. 그 아이에게 부인보다 더 잘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
을 겁
니다......"
아, 주님!
"하지만 제 말을 끝까지 들어 보세요......"
그가 다시 파일을 넘겼다. 저 망할 파일을 불 태워 버려야 해.
"가끔 우리 엄마가 나에게 가정을 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상상해 본다. 그
러면 소
름이 끼치고 밤에 악몽에 시달린다. 난 엄마에게 나의 감사함을 보여줘야 한다. 모든 은혜를 
갚아
야 한다."
"아, 그만사세요.  제발 그만하세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요.  "
"라나는 친부모을 찾겠다는 각오가 대단합니다.  "
"네? 맙소사. 안돼요."
마조리는 죄책감으로 속이 불편해졌다.
"내가 금지시키겠어요.  난 그 아이의 유일한  엄마예요.  이 문제는 이것으로 마치기로 해
요.   어
떻게든 라나에게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가보겠어요.  다른 약속이 있어요.  "
그녀는 거짓말을 했다.  여기에 1초도 더 있을 수 없었다.  이것은 그녀가  용기를 낼 수 없
는 유
일무이한 문제 였다.
내 딸이 사심없는 기만을 힘들어 하는 마당에 진실을 알게 되면 얼마나 괴로워 할까?
  
    68
  "정말 화창하구나. 피크닉에 딱 좋은 날씨야. 얘들아, 피크닉을 가자꾸나."
마조리가 아침상에서 자실들에게 말했다.  라나가 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온 첫 주말이었
다.  7
월초의 날씨는 쾌청했다.
"피크닉이요......?"
아이들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합창했다.   별로 좋아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특히  라나의 
표정에 
경계심이 어려 있었다.  크고 표정이 풍부한 그 눈동자는 의심의 구름으로  어두웠다.  라나
는 그
녀의 바람이상이었다.  얼굴형은 여전히 가기 졌지만 넓은 이마와 두툼한 갈색 눈썹이 오밀  
조밀
한 눈코입과 섬세한 조화를 이뤘다.   마조리는  딸의 성격을 망칠까봐 라나에게  예쁘다는  
칭찬을 
삼갔다.
"다른 가족들이 다 하는 거 잖니?"
마조리가 명랑하게 반문했다.
"하지만 다른 가족들은 호수나 보트도 없고 시중들 하녀도 두지 못했어요.  "
알애스데어가 투덜거렸다.
"또, 별채가 딸린 숲도 갖지 못했죠"
라나가 동생에게 장단을 맞췄다.
"또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요리를 잘하는 할머니도."
항상 현실적인 알래스데어가 지적했다.
"그리고 우리처럼 마음 내킬 때 마다 스페인이나 프랑스 혹은 코르시카로 가지 못해요.  뭐, 
그들
은 작은 아파트에서 살며 외식을 손꼽아 기다릴걸어요.  오호라, 통재라."
마조리는 딸을 의심스럽게 훔쳐보았다.  저 아이가 정신과 의사에게 거짓말을 했을까?
"우리는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게 될 거야. 졸라가 피크닉  음식을 싸고 있으니까 10시 떠나
자."
"졸라."
아이들이 공포의 합창을 했다.
"내가 확인하는 편이 낫겠어."
라나는 숨 가쁘게 말하고 마조리는 말리기도 전에 부엌으로 달려갔다.  저 아이가 심부름꾼  
기분
을 느끼진 않을까? 마조리는 서둘러 딸의 뒤를 쭟았다.
"넌 하녀가 아니야, 라나. 내 일은 내가 할께."
라나는 그녀답지 않게 의자에 몸을 던지고 울음을 터뜨렸다.
"왜 그러니? 내가 무슨 말을 했기에?"
라나는 그녀답지 않게 의자에 몸을 던지고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요. 엄마는 질투심 많은 암사자처럼 영역을  지켜요.   이 집에서 유일한 여자가 되고 
싶으신 
거지요? 그러니 내가 항상 어린아이로 머무를 수 밖에요. 심지어  나에게 피크닉  준비조차 
맡기지 
않잖아요.  ?
"맙소사."
충격을 받은 마조리가 부엌 의자에 주저 앉았다.
  라나는 막무가내로 피크닉 가방을 비우고  다시  싸기 시작했다.  마조리는 다시  대화를  
시작했
다.
"나는 네가 우리를 위해 일을  너무 많이 해서 그랬던 거야.  정말이야. 내가 절 사랑한다는 
것을 
알지? 무조건적으로 말야. 그 '무조건적'이라는 말의 뜻을 알고 있겠지?"
"엄마, 관두세요. 내가 몇살로 보이세요? 열살?"
마조리는 포기 했다.
"나중에 차에서 보자."
대책없는 무능력자가 된 기분으로  마조리는 장부  정리를  끝내고 모자와 신발을  찾았다.   
그녀는 
그것들을 큰 가방에 쑤셔 넣고 바삐 홀로 내겨갔다.
"앵거스가 마실물을 잊으셨죠?"
알래스데어는 현관문 앞에서 꼼짝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앵거스는 남아서 집을 지켜야 해."
"그럼 난 빠질래요.  "
"저 놈을 내 차에 태우자는 말이니?"
"그럼 녀석을 뛰게 만들 생각이에요?"
맙소사! 그녀는 앵거스가 깔고 앉을 수건을  찾으로 갔다.   젠킨스씨에게 낡은 차를  줘서 
휴가를 
보냈던  결정이 후회 스러웠다.남은 차라고는 그녀가 아끼는 개 재규어 뿐 이었다.
그들이 차에 오르자마자 개는 흥분해서 짖어대기 시작했다.
그 어떤 것도 녀석이 입을 막을 수 없었다.  앵거스의 짖는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마조리
는 북
쪽 도러를 타고 다리며 적당한 곳을 물색했지만 마땅한 장소가 보이지 않았다.
한시간 후, 앵거스가 발버둥을 치자 그녀는 그만 포기했다.
그리고 허허벌판에서 서 있는 나무  아래 차를 세웠다.  그녀는 버드나무와  시냇물과 풀이  
우거진 
초원을 상상했지만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그녀와 알래스데어는 피크닉 바구니를, 라나는 방수 깔개를  날랐다.  큰 파리들이 정신없이 
날아
다녔고, 그들의 발은 축축한 땅에 빠져들었으며 이상한 냄새마저 풍겼다.
곧 마조리는 땀에 흠뻑 젖고 팔이 아팠다.
꽤 한적한 곳에 이르자. 그녀는 바구니를 내려 놓았다.
"재미있지?"
그녀가 가볍게 말했다.
"배고파요.  "
알래스데어가 대답했다.
라나는 너무 바빠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깔개 위에 접시.나이프와 포크등으로 척척 상을 
차렸다.  
마조리는 라나가 포도주까지 챙겼음을 알아차렸다.  뭐 안될 것도 없지.
"건배하자."
몇분 후, 마조리는 라나가 건넨 잔을 받으며 말했다.
"나도 맛을 볼께요.  "
알래스데어가 졸랐다.
"그러렴. 라나, 동생에게도 좀 줘라."
그는 포도주을 한입에 꿀꺽 마시고 잔을 내밀었다.
파리들이 음식에 환장을하고 달려 들었다.   그들이 먹고 마시는 동안  파리들이 연합 편대
가 저공 
비행을 하며 시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알래스데어는 포도주 감별사 흉내를 낸  다음에 왕성한 식욕을 발휘하여  손애 닥치는 대로 
먹어 
치웠다.  갑자기 그가 막 베어 물었던 소시지  샌드위치에 딸려 큰 파리  한마리가 그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내가 파리를 삼켰어. 파리를 삼켰다구."
그가 소리를 질렀다.
"이제 넌 죽었다.  "
라나가 놀렸다.
그리고 알래스데어가 나무뒤에서 '컥컥'거리며 토하는 소리에 맞춰  라나는 시끄럽게  노래
를 불러
댔다.
"파리를 삼킨 한 아줌마가 살았더래요......"
"정말 재미있지?"
마조리는 샐러드를 먹으며 흥을 맞췄다.
"최소한 한가족 같기는 하네요."
하나가 소리 죽여 중얼 거렸다.
마조리는 복부를 강타하는 듯한 공격에 발끈 화를 냈다.
"그래, 내가 고약한 계모처럼 보이겠지."
말을 마친 순간 그녀는 혀를 깨물고 싶었다.
라나는 공포에 어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우리가 피크닉을 나왔군요.  "
"다시 피크닉 말이 나오면 난 십리 밖으로 도망갈 거야."
알래스데어는 모녀 사이에 흐르는 긴장을 눈치해지 못한 채 그들에게 합류했다.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 내용은 비밀인 둘 알았어요.  "
라나가 앙칼지게 쏘아붙였다.
마조리는 딸의 분노 앞에 기가 죽었다.
"미안하구나.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이번  경우에 그는 학교 정신과 의사이고 너에
게 관
심이 있어서......"
갑자기 라나가 마조리에게 달려들어 꼭 안았다.
"됐어요.  엄마, 초조해 하지 마세요. 엄마는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신 거예요.  난  이 세
상에서 
엄마를 가장 사랑하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결혼한다 해도  엄마는 영순위에요.  항상요. 
하지
만 어딘가에 나를 낳아주신 분이 살아 계세요.  예전에 할머니가  그분은 먼 친척이고 연락
이 끊겼
다고 말해 주셨어요.  난 생모를 찾아내서 날 버린 이유를 알아내야 해요.  엄마는  내 마음
을 이
해하시죠? 유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세요? 난 생물 시간에  배웠어요.  한 인간의  90%
는 유전
인자에 의해 결정돼요. 내 생모는 살인을 저질렀을지도 몰라요. 나는 어떤 유전자를  물려받
았는지 
알아야 한다구요.  엄마, 내 말을 들어 보세요. 엄마를 항상  내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주였
잖아요? 
그러니 뿌리를 찾도록 도와주세요.  나에게는 중요한 일이에요.  "
마조리는 눈물을 참으려고 애썼다.
"넌 너무 어려.  그리고 네 양친  부모 중 어느 쪽도 선천적인 결함을  지니지 않았어. 둘다 
근면 
성실하고 우수했어. 네가 스물 한산이 되면 내가 도와줄게, 맹세해."
"제자식을 버린 사람들이 어떻게 비범할 수 있죠?"
라나가 중얼 거렸다.
그 말이 신호일까? 지금이 모든 것을 고백할 때 야. 문득 한 발의 총성이 대기를 갈랐다.
몇초 후 여러발이 그 뒤를 따랐다.
가까운 곳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들이 깜짝 놀라 가만히 앉아 있는 동안 세발의 총성이 더 
났다.
"앵거스는 어디 있죠?"
알래스데어가 소리 쳤다.  파리떼는 잊혀졌다.
"앵거스, 앵거스! 이리와, 어서."
그가 소리를 지르고 휘파람을 불렀다. 더 가까운 곳에서 총성이 또 울려 퍼졌다.
"녀석이 양을 쫓았나 봐요.  "
라나가 불길하게 말했다.
"사람들이 녀석을 쏘아 죽일 거예요.  그들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어요.  "
세사람은  음식을 내 팽개치고 개를 부르며 총성이 들리는 쪽으로 달려 갔다.  그때 앵거스
가  덤
불속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쫓기든 여우처럼 바들바들 떨면서 눈을 희번떡 거렸다.   녀석은 
피와 
진흙 투성이였다.
마조리가 헐떡거리며 개를 잡았다.  라나는 비명을 질렀다.  "두 사람 모두 진정해요.  어휴  
여자
들이란! 이건 앵거스의 피가 아니예요.  "
알래스데어가 소리질렀다.  "
"다른 동물의 피예요.  양을 공격한 거예요.  다들  저쪽으로 뛰어요.  도로로 통할 거예요.  
"
그들은 흙탕물을 튀기며 도로와 차가 있다고  생각한 방향으로 달렸지만,  오래지 않아  길
을 잃고 
적과 파리의 영역에서 헤맸다.
전쟁이 따로 없었다.  마침내 도로변에 도착했다.  그러나 도로와 그들  사이를 가시 철조망
이 가
로 막았다.
"어서가요, 별거 아니라구요. 겁쟁이처럼 굴지 말아요.  "
알래스데어가 철조망을 기어 올라 펄쩍 뛰어내리다가 도랑 속을 굴렀다.  앵거스는 미친 듯
이  짖
으며 아래쪽 작은 개구멍을 통해 겨우 빠져나갔다.
라나 역시 철조망을 기어올라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아얏'소리와 함께 그녀는 무릎을 비비
며 일
어섰다.
"괜찮니, 라나?"
"네, 괜찮아요.  엄마, 빨리 오세요.  "
마조리는 기중에 매달려 더 높은 철조망을 잡으려고 바둥거렸다.  이걸 어떻게 넘지?
그때 뒤에서  총성이 울려 퍼졌다.
갑자기 알래스데어가 공포에 질린 눈을 하고 그녀쪽으로 들려왔다.
"엄마, 저 사람들에게 잡히면 경찰이 앵거스를 사살할 거예요.  어서 오세요."
저 아이가 걱정하는 쪽이 엄마야. 아니면 앵거스야? 그녀는 끝까지  기어올라간 다음에  균
형을 잃
었다.  그녀가 가시 철조망에 얼굴을 박기 일보 직전, 라나가 재빨리 몸을 날려 철조망을 위
에 납
작 드러누웠다.  마조리는 딸의 몸위로 떨어졌다.
"맙소사, 라나 왜 이런 짓을 했니?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라나를 일으켜 세웠다.  뻔한 질문을 왜 물었을까? 그녀는 휴지로 딸
의  상
처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줬다.
그들은 도로를 따라 차를 세워 둔 곳으로 갔다.
"누가 물으면, 산보를 하는 중이라고 대답하기예요.  "
알래스데어가 우울하게 말했다.
"흥, 그래. 우리가 산보를 즐기는 것처럼 보이겠지."
라나는 그들의 더러워지고 찢어진 옷을 가리켰다.   마조리는 라나와 앵거스의 하얗게 질린 
얼굴
과 핏자국에 충격을 받았다.  갑자기 그들은 웃기 시작했다.  마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마음
을 놓고 노래불렀다.
"파리를 삼킨 소년이 살았더래요......."
"파리를 삼키자니 어리석기도 하지.
'"그 소년은 곧 죽을 거야."
알래스데어의 소프라노가 장단을 맞췄다.
그들은 즉흥 노래를 지어 부르며 차에 도착한 다음 병원으로  갔다.  라나는 상처를 꿰메고 
파상풍 
주사를 맞았다.
그 다음 라나는 뿌리에 대한 말을 두번 다시 꺼내지 않았고,  마조리는 그 문제가  향후 몇 
년동안 
덮어지기를 바랬다.
  
    69
  재수없는 일은 항상 그렇듯이 사전 예고도 없이 세번이나 연거푸 들이닥쳤다.
세번의 재난을 겪은 후 리즈 하디는 음울한 만족감을 느꼈다.  변덕스러운 운명 속에서  검
증받아
온 그녀의 미신적인 믿음은 이번에도 빗나가지 않았다.
처음에 라나가 고양이를 치여 죽였다.  그녀는 엄마의 허락을 받고, 마조리는 자식들 버릇을 
망쳐
놨어. 낡은 자동차를 차고에서  후진시키려다 뒤따라온 티비를 치였다.
라나는 깊은 슬픔에 잠겼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치는 티비를 간호했고  나중에  
숲속에 
묻어 주었다.  알래스데어 십자가를 만들어 세웠다.
"할머니, 난 다시는 운전하지 않을 거예요.  "
그녀는 울먹이며 말했다.
"티비는 정말 예쁜 고양이었고 나를 믿었어요.   그렇게 똑똑한 고양이는 세상에 둘도 없을  
거예
요.  아, 내가 조금만 조심했더라면......"
리즈는 특정한 고양이에게 과도한 애정을 쏟지 않는 요령을 경험으로 익혔다.  어쨌든 라나
와  알
래스데어가 너무 애통해 하는 통에 리즈는 고양이를 구하자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두번째 재난은 첫번째 불행의 빛을 퇴색시킬  만큼 충격적이었다.  늙은 베아트리스 숙모가  
죽었
다.
방학인데도 마조리가 뉴욕 출장중이었기 때문에 두 아이들이 그녀와 함께 식사하던 어느 날 
아침 
그 비보가 전해 졌다.  전화를 받은 리즈는 상념에 잠겼다.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야.
베아트리스 숙모는 아흔 다섯 살이었고 이집트 피라미드처럼 말라 비틀어진 몸이었다.
"내 말을 명심해라."
그녀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마지막까지 그녀는 정신이 말짱하셨어. 너희들은 그분에게 존경과 경의를 표해야해."
차를 마시던 남편이 신문을 옆으로 치우며 동의했다.
"그녀는 머리를 좋은 쪽으로 쓰셨어. 여보, 마조리에게 연락해요.   그 아이가  장례식에 참
가 해야
지."
  리즈는 불안에 사로잡혔다.  재난이 연거푸 두번이나! 아직  세번째가  기회를 노리는 마
당에 마
조리 에게 집으로 돌아오라고 해도 될까?  그러다가 비행기 사고라고 나면? 두려움에 사지
가 얼어
붙었고 손에 있던 마말레이드 병이 식탁을 거쳐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중에 그녀와 아이들
은  사
방으로 튀긴 진득진득한 파편을 닦았다.   이것으로 세번째 재난의 액땜이  됐을까? 어림없
어! 사소
한 사고에 불과한 걸. 다음에 뭐가 올까?
그들이 설거지와 청소를 할 때 남편은 모이 주머니를 나룻배에 싣고 호수 한가운데로 갔다.  
서서
히 그의 오리 섬은 해안선이 침식되고 있었다.
잠시후 섬쪽에서 그의 비명이 들여왔다.
"사고가 틀림없어요.  "
알래스데어가 말했다.
"들어보세요.  할아버지가 구조를 요청하고 있어요.  "
그리고 소년은 총알 같이 달려나가 셔츠를 벗어 던지고 호수에 뛰어 들었다.  알래스데어의  
수영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리즈는 얼굴을 찡그리며 남편을 보았다.  왜 바닥에 누워있을까?
동생 뒤를 열심히 따라간 리즈는 알래스데어와 함께 할아버지를 나룻배로 들어 옮겼다.
그는 모이 주머니를 거칠게 부리다 디스크에 거렸다.  마침  젠킨스 씨가 외출중이었으므로 
라나가 
차를 몰로 할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셔갔다.
나중에 남편이 자리에 눕고 아이들이  동물 보호소로  다른 고양이를  구하러 가자 리즈는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다.
"재난은 세번 연거푸 찾아와요.  "
그녀는 남편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훨씬 나쁜일이 생길수도 있었어요.  이제야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겠네요.  "
그녀는 침착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마조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70
  뉴욕은 마조리에게 제2의 고향이었다.  그녀는 힘과 우아함을 겸비한 마천루, 현격한 대조
를 이
룬 수직과 수평선의 이 도시를 사랑했다.   맨하탄을 걷고 있노라면  예외없이 그녀의 안에
서 활기
가 솟았다.  런던의 거리는 영원성과 함께 정체된 국가의 고즈넉함을 풍겼지만 뉴욕은 바쁘
게  활
보하는 사람들도 살아 숨쉬고 약동했다.
마조리는 유일하게 미국에서 민주주의를 피부로  느꼈다.  이곳 어디에서나, 그리고 누구나 
그것을 
느끼고 실천하고 표현하고 먹고 자고  마셨다.  그 모습 속에서 진정한  민주주의의 광채가  
포착되
었다.  모든 시민들은 나름대로 국가가 지향할 최선의 목표에  대하여 결정내리고 거리낌없
이 표현
했다.  세계 어느 곳도 이런 주인의식과 애정과 책임감에 필적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것을 
사랑
했다.
마침내 그녀는 고층 호텔 방의  창문에서 시선을 돌렸다.  이미 정신적으로  미국에 동화된  
자신에
게 슬쩍 고소를 지었다.
탁자 위에 메모지가 얹어 있었다.  '긴급. 오시 토하라의 사무실로 연락 바람. 즉시 내사 요
망"
그녀가 토하라 상을 만나기 위해 뉴욕에 오긴 했지만 왜 지금 만나자는  걸까? 데이트 약속
이 있
는데. 가족의 귀에 소문이 들어갈 위험이 희박한 여기 뉴욕이 그녀는 연인을 두었다.
그는 스물 아홉살의 경솔하고 오만하고 막무가내인 동시에 정열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이
탈리아
계의 전형적인 미남이었다.
카를로 로사피오는 글렌너드의 미국 판매업자 였다.  그런 중책을  맡기기에는 젊은 나이였
지만 지
금까지 일을 잘해왔다.
그녀는 한숨을 쉬고 토하라 상에게 전화를 걸었다.
  5번가에 위치한 인버 아시아의 영업 사무실은 호텔에서 도보로 5분 거리였다.  늦은 저녁
이었지
만 마조리는 홀로 걷는 것을 좋아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대도시의 위험에 대한 
경고와 
달리 이 거리는 안전하고 항상 사람들로 붐볐다.
오늘의 습도는 발걸음을 재촉하기 힘들 정도였다.  거리는 반쯤 비어  있었다.  능력이 있는 
이들
은 시원한 장소로 8월 휴가를 떠났다.  텅빈 주차장은 눈에  낯설었다.  지금은 뉴욕 방문의 
적기
가 아니었지만 토하라 상의 소환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는 이맘 때  이곳에 온 적이 없었
다.
그녀는 인상적인 건물에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까지  오른뒤 유리 회전문을 열고 인
버 아
시아의 로비에 들어섰다.
그녀는 그곳에 잠깐 서서  주변을 둘러 보았다.  토하라  상이 옳았어 그들은 실내  장식을  
놓고 오
랫동안 혈전을 벌였다.  그녀는 밝은 일본풍의 장식을 원했지만 그가 완강히 반대했다.
"일본은 좋은 위스키를 생산하지 못하오."
그리고 의자의 덧천은 모두 맥킨토쉬 타탄으로 결정되었다.
"하필이면 왜 맥킨토쉬예요?"
"유일하게 조화로운 타탄이니까"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그녀는 연두색  카펫과 베이지색 커튼이 그  바랜 듯한  가을  
색상과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벽에는 스코틀랜드 풍경화가 걸렸고 금발에 푸른 눈을 한  
날씬
한 스코틀랜드 풍경화가 걸렸고 금발에 푸른 눈을 한 날씬한 스코틀랜드 아가씨가 접수계를 
지켰
다.
"안으로 들어가세요.  카메론 부인."
그녀는 부드러운 인버네스 억양으로 말했다.
요시 토하라의 사무실은 로비와 완전히 달랐다.  온통 흰색과 베이지색 천지였다.  죠와 마
찬가지
로 그 역시 공간에 집착했다.
왜냐하면 그의 모국은 너무 협소했기 때문이다.
토하라 상은 자리에서 일어나 일본식으로 절했다.  그리고 영국식으로 악수하고 프랑스식으
로  그
녀의 양 볼에 키스했다.
"대단한 환영이네요, 토하라 상."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국제적이지? 실수할 리 없는 방법이오. 마조리, 앉아서 술을  한잔합시다.
"나는 많이 마시고 싶지 않아요.  "
"왜, 당신이 얼큰하게 취한 모습은  너무 영구인 답고 항상 객쩍은  소리로 날 웃게 만들잖
소."
그는 그녀에게 술을 조금 따라 주고 자신의 몫을 따른 다음 단번에  마셔 버렸다.  그녀 역
시 그의 
선례를 따랐다.  그녀는 그에게 다음 잔을 받으며 천천히 마시기로 작정했다.
"당신은 내 기분을 풀어 준 다음에  결정타를 먹이려는 거군요. 난 당신을 너무  잘 알아요.  
"
그녀가 부드럽게 불평했다.
"어서 용건을 털어 놓으세요."
"우선 당신 잔부터 채운 다음에. 자, 옛날을 위해 건배합시다.
당신은 점점 아름다워지는 구려.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여성이오.
그때서야 그녀는 그 결정타가 여성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임을 눈치챘다.  토하라  상은  
그녀의 
기분을 좋게 해주려고 노력했다.
"그가 무슨 짓을 했죠?"
그녀가 중얼 거렸다.
"당신은 심령술사로군 좋소. 마조리. 용기를  잃지 말아요......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여인은 
구한 행동은 분별 있었지만 그 선택이  잘못되었소. 로사피오에게서 손을 떼도록 해요."그런 
말을 
하시는 타당한 이유가 있겠죠?"
"물론 이로. 그는 공적으로, 그리고 사적으로 당신을 이용하고 있소."
그의 검은 눈동자가 돌처럼 냉혹해졌다.  그는 그녀를 외면했다
"왜 내 뒤를 염탐하셨죠? 그걸 어떻게 알아내셨어요?"
"말을 하려던 참 이었소?"
  마조리는 술을 마시며 이 정보를 소화 시켰다.  왠지 가슴이  아팠다.  이게 뭘까? 그녀는 
카를
로를 원했지만 사랑하지 않았다.
이 아픔은 사업적인 배신 때문일까?"
"우선 사업 면부터 설명해 주세요."
토하라 상은 웃었다.
"당신이 그걸 먼저 거론 할 줄  알았소. 로사피오는 심한 자금 압박을 받고  있고. 탐욕스런 
인간이 
다 그렇듯이 그는 불성실했소. 당신과의 계약에도 불구하고 경쟁력을  갖지 못하자 그는 완
전히 독
립된 회사를 하나 설립하고 글렌티란 측과 접촉하여 그들의  미국 판매권을 따냈소. 로사피
오는 그
들에게 당신과의 거래에 대해 거짓말을  했으리라 확인하는 바이오. 그렇지 않았으면  글렌
티란이 
그의 제의에 응할 리 없소  ...... 글렌티란의 전임 판매업자 아믹스는  빠른 확장 계획을 거
부하고 
보수적이고 점진적인 운영을 선호해 왔소. 하지만 전임자의 죽음으로  본사 경영자는 더 많
은 이윤
을 찾아왔고 로사피로는 그것을 약속한 거요.'
토하라는 말을 계속했다.
"로사피오는 현금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오늘 밤 당신에게 은근히  압박을  가할 거요.  당
신이 여
느 마흔을 앞둔 여자처럼 절망적으로 그를 원하고 한밑천 대리라 생각했겠지.'
"그걸 전부 어떻게 아세요?"
그녀는 애써 상한 자존심을 감추었다.
"그는 내 동포에게 사기치가 있소. 사실 그녀에게 청혼했소.
어리석게도 그는 내 밑에서  일하는 그녀에게 정보를 빼돌리고 있다고 생각하오. 물론 그녀
는  내
가 허락한 정보만 그에게 제공해왔소. 기운내요.  내가  그 녀석을 위한 좋은 계획을  세워 
두었소. 
장기적이지만 만족도가 높은 계획이오. 오늘밤   그에게 대부분의 주식을 자식들  신탁으로  
설정해 
놓았기 때문에 거금을 구할 수 없다고 사실대로 말해요. 그리고 나의 결정에 큰  영향을 받
는다는 
말로 그를 나에게 보내요.  그 다음에 그를 차버리는 거요."
마조리는 웃기 시작했다. 위협받지 않은 안전 때문일까? 아니면 토하라  상읭 교활한  계획 
때문일
까? 그러나 곧 그녀의 웃음은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마조리, 그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요. 그리고 매우 그럴듯한 이유를  대며 돈을 요구할 
거요. 
여기 내 말을 입증할 사지이 있소."
  그는 봉투를 건냈다.   그녀가 미국을 방문할 때마다 청혼해 왔던  믿음직한 연인이 아름
다운 흑
발 미녀와 뒤엉켜 있었다.  처음으로  그녀는 그의 어깨가 좁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의 
등에 군살이 끼기 사작했다.  로사피오가 틀림없었다.  그녀는 재빨리 그의 황갈색 눈, 반지
르르한 
흑발과 완벽한 옆보습을 훑어보았다.
그녀는 봉투을 내로 놓았다.
"이 사진을 어떻게 입수하셨어요?"
"그녀가 준비했소."
그는 봉투를 서류 분쇄시에 집어 넣었다.
"과거는 과거요. 함께 저녁을 들겠소?"
"오늘은 안돼요, 토하라 상, 하지만 내일 연락 드릴께요."
그녀는 천천히 호텔로 돌라가며 카를로를 '과거'의 영역 속으로  추방했다.  그의 젊음 속에
서 코
앞으로 다가온 마흔이란 나이를 망각하다니.
엄마로부터 베아트리스 숙모의 사망을  알리는 전화를 받을 즈음,  로사피오는 이미 역사가 
되었다.
  
    71
  단결된 가족의 화합을 과시하며 그들은 통로를 따라 걸었다.
그러나 한결같이 장례식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다행스럽게 여겼다.   네 명의 조사와 
긴  설
교로 구성된 장례식은 지루하기 짝이없었다.   이제 문에 일렬로 서서 조문객  들과 악수를 
나눌 일
만 남았다.  제자리에 선 마조리는 베아트리스  숙모와 마지막 만남을 상기했다.
"당신은 주주들에게 했던 약속을 잘 지켰어요, 마조리."
노부인이 말했다.
"십년 계획을 성공적으로 현실화했고 항상 제때 배당금을 지급했어요.   그러기가  쉽지 않
았을 거
예요.  "
"사실이에요.  베아트리스 숙모님, 최근에야 우리는  긴 터널을 빠져 나와 빛을  보기 사작
했어요.  
그 동안......"
그녀는 말을 흐리며 재빨리 속셈을 했다.
"11년인가요?" 아니, 12년 동안 악전 고투했어요.  하지만 그럴 가치는  있었어요.  "
"아주 잘했어요.  "
노부인은 그녀의 팔을 다독거렸다.
"그런데 당신으그런데 인버 아시아 주식을 가족 신탁으로 돌려 놓고, 라나를 대주주로 만들
었더군
요.   한편 당신 몫은 아무것도 없던데 왜 그랬나요?"
"글렌너드를 제 소유물로 느낀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게다가 두  자식 중에서  한 아이는 
거지로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이미 저는 충분히 가졌어요.  "
"네, 그 심정 알만 해요.  "
베아트리스는 미소 지었다.  그녀의 빈틈없는 눈매가  부드러워졌다.   그 모습을 모노라니 
마조리
의 가슴이 뭉클해졌다.
"난 그램피안 은행의 주식과 저택을 당신 아들 알래스데어에게  남겼어요.  그 아니는 내가 
존경하
는 제 할아버지와 닮았어요.  게다가 나는 자식을 두지 못했으니  그가 유일한 선택이에요.  
내가 
죽은 후 당신은 알래스데어 가 스물다섯살이 될  때까지 은행 이사회의 회장으로 임명  될 
거예요.  
여러 이사들중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는 우리 변호사 마크 백스터예요.   그리고  내가 크게 
신임하
는 당신 친구 죠 시걸을 중추적인 이사로 선임할 거예요.  그가 라나를 위한 신탁을 설정했
다면서
요?"
"어떻게 아셨어요?'
"나름대로의 정보원이 있어요.  "
"숙모님은 정보원을 둘 필요가 없어요.  그냥 저게게 물어 보시기만 하면 돼요.  "
마조리는 아주 드물게 애정을 드러내며 노 부인의 앙상한 손을 부여잡았다.
"나 역시 라난에게 신탁금을 약간  남겼어요.  그 외의 재산 전부와  은행은  알래스데어가 
물려 받
을 거예요.  그리고 당신은 개인적인 부가 아니라 거대한 권력을 갖게  될 거예요.  부디 그 
힘을 
현명하게 쓰도록 해요."
노부인의 말이 마조리의 귀를 쩌렁쩌렁 울리는 가운데 관이 교회 밖으로 운반 되었다.
로다 맥다렌은 교회 문 옆에 일렬로 쭉 늘어서서 문상객과 인사를 나누는 카메론 일가를 보
며 코
웃음을 쳤다.  저 말처럼  긴 얼굴들 좀 봐! 그들은  늙은 베아트리스  카메론의 죽음을 비
통해 하
는 척하지만 사실 오늘만을 손 꼽아 기다려왔을 거야. 이제  저쪽벽에 서 있는 얼빠진 소년
이 엄청
나 갑부가 되었다던데. 소년은 검정색 정장이 불편한지 안절부절 못하며 손으로  셔츠 칼라
를  늘
였다.
그 옆에 선 키 큰 소녀가 그녀의  관심을 끌었다.  왠지 눈에 많이 익은  모습이었다.  그녀
는 그 
이유를 궁리했다. 한창 때로구나
로다는 소녀의 젊음과 보기 드물게 초롱초롱한 갈색 눈을 질투했다.  아, 젊음은 가능한빨리 
통과
해야 할 재난이었지만 요즘은 가장 중요한 것으로 떠올랐다.  저 소녀는 신세대의 일원이자  
주요 
도시에 저택을 둔 유럽의 시민이다.  저 의상이  그녀의 개성을 반영했다.  로다는 한 눈에 
검정색 
맥스마라 치마, 에스카다 블라우스와 챨스 쥬르당 신발을 알아보았다.
버르장머리 없는 것이로군. 하긴 벼락 부자들에게 뭘 바라겠어?
그녀는 은행 직원들에게 둘러 싸인 카메론 부인 쪽으로  다가갔다.   로다는 그녀를 만나지 
못했지
만 과거의 적으로 알고 있었다.
글렌너드를 살리고 불쌍한 앤드류 카메론의 밥상에 재를 뿌린  장본인이었다.  사업적인 능
력을 타
고 났지만 하찮은 집안  출신이라 들었다.  그녀는 카메론  부인을 더 잘 보려고  까치발로 
섰다.   
하지만 그녀는 사람들로 둘러싸인데다 검정색 베일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다.  초조해진 
로다는 
한숨을 내쉬었다.  동반자를 데려왔어야 했는데. 그녀는 항상 혼자라는  사실에 지쳤다.  빌
어먹을 
로버트, 그녀는 속으로 화를 냈다.  그는 벨리세의 원숭이를 구한 납시고 여행을 떠나 버렸
다.  사
실상 탈출에 가까웠다.  그는 그녀를 싫어했다.
마침내 그녀의 차례가 되었다.  그녀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카메론 부인은 악수를 받는 대신 베일을 들어 올렸다.  어느새 로다의 눈이 로버트의 옛 연
인. 도
버 여자의 초록 눈동자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로다는 숨을 들이키며 뒷걸음질쳤다.  어떻게 이런 일이? 순간 그녀는 현기증을 느꼈다.  입
을 벌
렸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내가 환각을   일으키고 있는 걸까? 자선 파티에서  봤던  
여자가 
아닐까? 하지만 그때 검정색 모자에 가려진 빨강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여전히 아
름다웠
고 화장도 흠잡을 데 없었다.
세련된 태도와 완벽한 옷매무새까지 갖췄다.
"다시 만났군요. 맥라렌 부인. 그리고 이번에도 슬픈 만남이 네요.  "
과거의 환영이 말을 했다.
"이제 우리가 최종회에 돌입한 것 같군요.  "
하지만 그녀일 리가 없어. 억양이 틀려. 로다는 거의 혼잣 말을 중얼거리고 밖으로  나갔다.  
햇살
에 앞이 안 보이는 순간, 먼 옛날 티란 장원을 찾아왔던 마조리 하디의 모습과 억양이 떠올
랐다.
"당신의 잔인함을 고스란히 되돌려 받는 날이 곧 올 거예요.
그게 세상 이치예요.  "
그래서 였을까......? 그녀가 오랫동안 준비해 왔을까......?
로다는 발을 헛딛고 나뒹굴었다.  무릎이 아팠지만  수치심이 더 컸다.  사람들이 달려와서 
그녀를 
부축했다.
"별거 아니에요.  "
그녀는 피 맺힌 무릎과 찢긴 스타킹을 걱정하는  사람에게 거듭 말했다.  완전히 늙은 바보
가 된 
기분으로 그녀는 부축을 받으면서 차로 갔다.
차안에 앉아 느린 속도로 도로를 따라  달릴 때 로다는 과거를 회상했다.  내가  그 처녀를 
잘못 봤
구나. 하지만 가족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했어.  그런 여자는  절대로 ...... 하지만 
그녀는 
그들의 세계에 입성했고 완벽한  승리를 얻어냈으며 이제  인정 받았다.  로다는  뼈속까지  
두려워
졌다.
  
    72
  로버트의 회계사 바트 쇼는 지난 20년 동안 성공을 거듭했고  번창했다.  이제 그의 회사
는 건물
의 한층을 다 차지  했지만 그의 사무실은 예전  그대로였다.  로버트가 드물게 방문할  때  
마다 변
함없는 모습에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다.  그의 존재는 다른 것의  빛을 바래게 하고 공간을 
꽉채웠
다.
"아, 로버트."
바트가 그를 반겼다.
"와 주어서 감사합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베아트리스 카메론이 죽었어요.  "
"알고 있소. 내가 벨리세에 가지 않았더라면 장례식에 참가했을 거요.  당신은 다녀왔소?"
"아니오. 하지만 맥라렌 부인이 참석하셨습니다.  "
"잘 됐구려. 그런데 무슨 문제요?"
"그램피안 은행 건입니다.  해미쉬 카메론의 아들 알래스데어가 은행을 상속받았어요.  "
"음, 알겠소. 하지만 우리는 지난 5세기 동안 그램피안 은행과 거래를 해왔소."
"알래스데어 카메론은 열한살이기 때문에 그의 모친이 은행 회장으로 선임 되었습니다.  "
"적절치 못한 조치로군. 은행 경영은 일류 전문인의 손에 맡겨야지. 하지만 우리  쪽에서 가
타부타
할 문제는 아니잖소?"
바트가 한숨을 쉬었다.
"당신이 모친이 저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굳이  이 문제를 꺼내지 않았을 겁니다.  그분께서  
은행 
회장 카메론 부인이 당신에게 개인적인 원한을 갖고  있다는 드하여금 이상한 이야기를 하
시더군
요.  1977년 글렌너드 인수 건의 실패와 관계가 있답니다."
오랜 침묵이 흐른뒤 로버트가 입을 열었다.
"글렌너드와 거북한 관계에 빠진 적은 떨어딱 한번으로  거억하는데 그리고 그게 무슨 상관
이오? 
우리의 신용도는 우수하니 만 약 그램피안  은행에서 자금 대출을 거절한다면 다른  은행과 
거래를 
트면 그 뿐 이잖소."
"그럼, 다음은 당신 따님에 관한 문제입니다.   최근  사생아의 친부에 대한 법률이 개정될 
전망입
니다. 법은 급변하는 현대사회 조류를 따라가지  못해요.   하지만 여전히 친모만이 자식이 
친부를 
아는 관습법을 근간으로  합니다.  "
바트는 입술을 축이고서 말을 합니다.
"오늘날 아버지의 권리가 점점 확대되는  추세이므로 조만간 친부가 사생아에 대한  권리를 
약간이
나마 갖게 될 겁니다. 매우 복잡하고 미묘한 사안이지만 꼭  그렇게 됩니다.  그러나 당신은 
1973
년에 자식을 입양시킨 친부로서 아이의 소재는 물론 아무런 권리를 갖지 못합니다.  "
"그 이야기는 이미 충분히 나눴잖소."
로버트가 말을 끊었다.
"네, 하지만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수녀원은 아이의 최고의 이익을  보호하는 규정에 
묶여 
있습니다.  그러니 원장 수녀님께 마조리 하디의  장녀를 위한 신탁을 설립하고 싶다는  방
향으로  
접근하면 어떻겠습니까?  그 아이가 당신 자식이라는 주장은 많은  실패를 거듭했지만 우리
가 신
탁인을 지정하는 문제를 막을 방법이 없거든요.  "
"좋은 생각이오."
"수녀원은 아이의 소재를 맥박으로 수소문할 겁니다.  그리고  연락이 끝내 되지 않는다 해
도, 당
신 따님이 신탁을 수령하는 연령이 되면 직접 당신에게 연락할  거예요.  아마 그녀는 친부
를 모르
고 있겠지만 이런 방법을 통해 당신을 알게 될 겁니다.  "
"그렇겠지."
로버트는 한숨을 쉬었다.
"로버트, 여기 관련 서류에 서명하세요. 이제 당신이 오지에서 행방불명이 된다 해도 유언장
을 놓
고 이러쿵저러쿵 싸우는 악몽을 꾸지  않겠군요.  어떤 누구도 이 신탁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겁
니다.  "
다음 10분 동안 로버트는 방대한 서류에 서명했다.  그 일이 다 끝났을  때 그는 바보가 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난 딸을 영원히 보지 못할 거야. 이제 현실을 인정할 때 가 됐어.
  
    73
  내가 누구일까? 난 어떤 사람일까? 라나는 그녀의 실체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친구들은  
연애
하고 성적인 힘을 발견하고 사랑을  찾으며 어른으로  변모하는 동안, 라나는  암울한 자기  
의심의 
수렁에서 뒹굴었다.  진정한 나 자신을 모르는 주제에 어떻게 다른 사람과 사귈 수 있겠어?  
그리
고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 모르면서 무슨 방법으로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지?
그녀는 충격에 빠져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서서히 말라죽어 가는 이식된 나무였다.
왜 생모는 나를 버렸을까? 그러나 왠지 그 얼굴도 모르는 여인을 욕할 수 없었다.  산 안드
레아의 
균열처럼 내 안에 숨어 발병을 기다리는  남모를 인자 때문에 나를 버렸을까? 내가  광기나 
치명적
인 질환처럼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유전 인자를 갖고 있을까?  그녀는 
걸어다
니는 폭탄 같은 심정이었다.  비밀리에 의사의 진찰을 받고 모든 검사를 다  해 봤지만  아
무 이상
도 발견되지 않았다.
우리 엄마가 창녀였을까? 그것은 상상이었다.  청년들이 추파를 던질 때 마다 그녀는  매춘
부처럼 
보인다고 상상했다.
데이트 신청을 받으면 모욕당한 기분이었다.  남자들이 사냥개처럼 그녀의 유전적인 바람기
를  냄
새마트은 게 분명해. 그들이  주변을 얼쩡 거리고  사랑을 구하고 그녀를  좋아하는 척하는  
것은 모
두 거짓말이야.
가장 친한 친구인 바르셀로나 출신 스페인 처녀가 어느 날 그녀를 점심에 불러 내 간곡하게 
설득
했다.
"남자들은 너보고 동성연애자래. 네가 남자를 싫어한다는 거야."
그녀는 포도주를 마시며 부끄러움을 감추었다.
"심지어 네가 나에게 수작을 걸었느냐고  묻더라. 내가 그들에게 넌  공부 때문에 바쁘다고 
말해 주
었어. 하지만 라나야, 넌 약간 맹목적이지  않니? 오늘 밤 나와 함께  춤추러가는 게 그렇게 
나쁜 
거니? 거기에 정말 괞찮은 사람들이 올 거야. 네 마음에 들걸."
라나는 고개를 저었다.
"시험을 잘 봐야 해. 나에게는 중요한 일이란다.   얼마 전  우리 어머니는 여왕님께 '경'의 
칭호를 
하사 받았어. 영국 수출 진흥에 끼친 공로를  인정 받으신 거야. 상상이 가니? 이제 마조리 
경이란 
말야. 난 죽어도 그렇게 되지 못할 것이랍니다.  . 난 빨리 어머니의 일에 돕고 싶어.  사실, 
그 세
계에 합류하는 날을 열망하고 있어.  내가 어머니와 유대감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야. 나 
같은 가족을 둔 사람에게는 우수한 성적을 올리는 게 중요하단다. 이해 하겠니?"
"하지만 라나, 넌 항상 좋은 성적을  받았잖니. 일보다 삶이 더 중요한  거야.  그리고 네가 
너희 어
머니에게 집착하는 이유가 뭐니?  엄마들이란 목덜미의 통증과도 같은  존재들이야. 그런데 
넌 어머
니를 신성한 제단 위에 모셔 놓았어. 대체 그 이유가 뭐야?"
넌 네가 자신의 인생을 살아애 해. 넌 지금 사는게  아니라 공부만 하고 있어."
라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공부만 하고 쉬지 않았다간 고리 타분하게 될 거야."
친구의 의도는 좋았지만, 그날 이후 라나는 그녀를 피해  다녔다.   그녀는 끔찍한 결점 목
록에 '
동성 연애자'를 첨가했다.
엄마가 날 입양해서 가족과 동생과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집을  주셨으니 난 정말 행운아야. 
그러니 
밤낮을 가리지 않고 평생 공부해도 모자랐다.  그러나  분노도 존재했다.   왜 내가 거부를 
당했을
까? 무엇 때문에 한 가족이라는 일체감 대신 이질감을 느껴야 하지?
그녀는 엄마의 사업과 더불어 훗날 알래스데어를 돕기 위한 최고의 수단으로 법률을 전공으
로 선
택했다.  그리고 2년만에 학위를 딸 수 있는  버킹햄 대학으로 진학했다.  대학은 런던에서 
가까웠
고 그녀는 종종 죠와 함께 주말을 보냈다.  그 역시 두번째 이혼이후  외로웠기 때문에  항
상 그녀
를 환영했다.
  1월 버킹햄 대학에  도착했을때 대지는 서리와  눈으로 덮였고 헐벗은  나무들은 추했다.   
그리고 
그녀는 항상 추웠다.  부정한 봄은 믿을 수 없는 고통을  수반했다.  파릇파릇 돋아난 새싹, 
갓  태
어난 새끼 새, 엄마를 따라다니는 새끼 양이 왠지 그녀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세상에 괴
리감을 
느낀 그녀는 악에 바쳐 오로지 공부에만 매진했다.
여름에 찾아왔고 그녀는 어느덧 꽃이 만발하고 새들이  날아다니는 아름다운 영국의 신록에 
둘러
싸였다.   거부당한 분노는 예전봐 더 커졌다.  그녀는 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와 책에 파
묻혔다.  
너무, 너무 심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자연에 버림 받았다.   그녀는 '입양'
의 뜻을 
깨닫기 전에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안젤라의 폭로와 함께 그녀의 세상은 뒤집혔고 나중에 훨신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그녀는  
엄마
의 새 아기를 질투한 나머지, 어느 날 아침 유모차를 끌고 호수로 갔다.  그저 예쁜 옷만 망
쳐 놓
고 싶었을 뿐 아기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할아버지가 즉각 달려와 진흙 투
성이가 
된 알래스데어를 구해 집으로 데려갔다.
할머니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부들부들 떨어 떨었다.
"내가 너라면, 질투심을 버리고 착하게  굴 거야. 다시 알래스데어에게  손을 댔단 봐라. 그 
즉시 고
아원으로 돌려 보낼 줄 알아."
그리고 그녀는 다시  철부지 어린애가 될 수 없었다.
  
    74
  발명품과 음악에도 불구하고 죠는 고독했다.  그는 라나와 지난  부활절 휴가를 스페인에
서 보냈
고 초조하게 다음 방학을 손 꼽아 기다렸다. 그는 행선지를 놓고 고민하던  중 어느 날  밤 
무작위
로 지구본의 한 지점을 찍었다.   그렇게 뽑힌 곳이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였지만, 상어에 대
한 두
려움 때문에 그만 포기했다.  마침내 세이셀로 결정하고 요트와 선장  및 선원을 고용했다.  
그가 
라나와 약속한 날 이틀 전에 현지에 도착해 보니, 그 선원의  정체는 선장의  여자  친구이
자 요리
사 였다.  요트는 본섬 마헤의 중심 도시 빅토리아의 한 클럽에 정박해 있었다.  이틀 후 죠
는 빅
토리아 공항에서 오후 7시 도착 예정이었던  모리셔스 출발 비행 편을 기다렸다.  비행기는  
벌써 
여섯 시간째 연착이었다.  드디어 라나가 승객들 틈에 껴서 나오자  죠는 그녀가 충격 상태
임을 한
누에 알아 보았다. 퀭한 눈매, 하얗게 질린 얼굴, 꼭  다물어진 입술 등  그녀는 희희낙락한 
휴가객
들 틈에서 외계인처럼 보였다.  라나는 그의 품에 달려들어 더위와  지루한 연착에 대한 불
평을 털
어 놓았다.
"알겠다.  네 꼴을 좀 봐! 너에겐 휴가가 절실히 필요해."
그가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는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죠 삼촌, 시험을 망쳤어요.  난 너무  화가 나요.  내가 그런 실수를  저질렀다고 믿어지지 
않아요.  
"
그녀의 하소연이 쏟아졌다.
"난 졸업 시험을 앞두고 신경이 날카로워졌어요.  한 며칠 동안 먹지도, 자지도 못한 상태로 
비틀
거리며 시험을 쳤어요.  꼭좀비처럼요.  난 문제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순간 머리가 멍해지
더라구
요.  뭐라고 썼는지도 기억나지 않아요. 분명히 횡설수설 했을 거예요.  "
그녀는 평온을 유지했지만 택시에 오르자 마자 죠의 품에 안겨 눈물을 터뜨렸다.
서서히 라나는 그 재난에서 회복  되었다.  따뜻한 바람이 그녀를 진정시켰다.   그녀는 일
광욕을 
하며 잠를 자거나 죠와 함께  수영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스노클링을  즐겼다.  마법같은  
나날이
야. 죠는 라나가 예날 행복했던 아이로 돌아노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마지막 날, 그들은 마헤에 정박했고 선원들에게  임금을 지불한 다음  만이 내려다  보이는 
호텔에 
투숙했다.  라나가 만에서 스토클링하는 틈을   타서 죠는 버킹햄 대학에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졸업 시험을 2등으로 시험을 2등으로 통과하고 학위를  받았다.  어리석은 소녀! 라나 본인
만 빼고 
모두들 그녀가 잘 해 내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밖으로 나가 그녀에게  그 소식을 
전했다.  
라나는 기뻐서 길길이 뛰었다.  그녀는 물장구를  치며 그를 물속으로 끌어당겼다.  그들은 
물개처
럼 장난하고 웃었다.
그날밤, 죠는 그녀를 해산물 식당으로 데려갔다.   라나는  가재의 마지막 살까지 파먹으며 
시원한 
포르투칼 포도주를 과음했다.
"죠 삼촌, 고마워요.  "
"뭐가?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야. 이렇게 재미있는 휴가는 생전 처음이었어."
"지금 휴가 이야기가 아니 잖아요. 삼촌은 항상  제 기분을 좋게 해주셨어요.  왜냐하면 진
심으로  
저를 좋아하시기 때문에."
그는 얼굴을 찡그리고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네가 유아복을 입고 요람을 기어다닐 때  부터 난 항상 그래 왔어. 나에게는  딸이 없잖니, 
라나. 
넌 내 딸같은 존재야.
"오래 전에 네  엄마와 내가 함께 일했을때, 네가 내딸이  될수 있었던 가능성이 약간 있었
어. 법
적으로 말이다. 난 너를 매우 사랑하고 앞으로도 영원할 거야.
그는 웨이터에게 포도주 한 병을 더 주문했다.  그녀의 잔을 채우며 그는  뒤로 기대  앉아 
그녀를 
살폈다.  휴가는 그녀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다.  한달전에 공항에서 비실거리던 젊은 아가씨
와 딴 
사람이었다.  하지만 시럼 결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녀에게 어두운  그늘이 가시지 않았
다.
"라나, 고민을 털어 놓으렴. 무슨 문제가 생겼지?"
"삼촌이 저를 휴가에 초대한 게 그 때문인가요? 엄마가 삼촌에게 직접 부탁하겠어요?"
그녀는 즉각 방어 태세를 갖췄다.
"아니야. 난 외로웠고 항상 네가 그리웠단다. 차라리 딸로 입양할 걸 그랬어"
"다시 한번 그 '입양'이란 단어를 꺼내시면, 이 포도주를 끼얹을 거예요.  "
마조리는 눈물을 꾹 참고 엄포를 놓았다.  갑자기 오늘밤이 지겹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 그게 네 대답이구나. 이야기를 할 수 있는거니, 아니면 너무 가슴아파서 못하겠니?"
"할 수 있어요.  엄마는 내 생모를 알고 있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내가 스물한살이 될때까
지 말
씀해 주시지 않을 거예요.  난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릴 수 없어요.  지금 지옥을 헤매는 기
분이라
구요.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앞으로 전진할 수 없어요.  "
죠는 한숨을 쉬었다.
"네 엄마가 사실을 밝히는 쉽지 않을거야. 넌 수색을 중지 할 만큼 엄마를 사랑하지 않니?"
"물론 엄마를 사랑하지만, 이 일은 엄마에 대한 내 감정과  아무 상관 없어요.  꼭 줄타기를 
하는 
것 같아요.  "
"넌 인버 아시아의 주식 절반을 상속받게 될거야. 네가  알래스데어처럼  부자가 되도록 네 
엄마가 
배려했어. 스물 다섯살이 되는 해에  주식을 상속  받게 될 거야.  이런데도 마조리가 너의 
뿌리가 
되지 못한다는 거니?"
라나는 포도주를 들이켰다.  그녀는 충격적인 소식에 오랫동안 말문을 잇지 못했다.
"엄마다워요. 그분은  너무 친절하시지만 그래서 ...... 난 더 죄책감을 느껴요.  "
"왜 죄책감을 느껴요.  "
"왜 죄책감을 느껴야 하지?"
"난 다른 둥지에 끼여든 뻐꾸기니까요.  원래 내 자리가 아니니까요.  조, 삼촌,  이해하시겠
죠?"
"맙소사!"
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75
  알래스데어는 열한살 때부터  증류소와 사랑에 빠졌다.  그 이후 그는  좋은 위스키를 제
조하는 
기술을 배우겠다는 일념하에 시간이 날 때마다 글렌너드에서 일했다.  유명한 장인 짐 루더
포드는 
그에게 차근차근 비법을 전수했다.
마조리른 아들의 정열을 약간이나마 이해했다.  해미쉬가 죽은 다음 그녀는 아이들과 더 많
은  시
간을 보내기 위해 런던의 영업 사무실을 증류소로 이전했고, 여러  해에 걸쳐 독특한  토탄 
냄새와 
순수한 물 냄새가 혼합된 미묘한 향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녀는 알애스데어가 땀을 흘리며 삽으로  토탄을 떠서 아궁이에 넣는  모습을 바로보았다.  
11월초
인데도 그는 티셔츠 한장과 반바지.  고무장화 차림이었다.  정말 건장한  아이야. 마조리는  
듬직해
지는 그의 어깨를 바라보며 흐믓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큰 갈색  눈동자는 대개  애정
으로 반
짝거렸지만 차갑고 냉정해질 수 있었다.  지금 결이 고운 갈색 머리 카락이  땀에 젖어  이
마로 흘
퍼 내렸다.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고 피부는 아직  맑고 깨끗했다.    그 부드러운 목소리는 
해미쉬
의 것이었지만 성질은 그녀를빼다 박았다.  조용하고 겸손한 모습이  양처럼 온순한 인상을 
풍겼지
만 잔인한 광경을 목격하면 용맹스런 바이킹으로 변신했다.
오늘 그는 위스키 발효 냄새 속에서 긴장을 풀고 즐겁게 일하고 있었다.
"춥지 않니?"
알래스데어는 고개를 들고 짐짓 상을 찌푸렸다.
"훨훨 타는 아궁이 앞에서요? 지금 농담 하세요?"
"사장님 자제분은 드문 소질을 타고 났어요.  언젠가 세계 최고의 위스키를 생산하게 될 겁
니다.
짐이 소리쳤다.
그녀는 만족스럽게 알래스데어와 짐에게 손을  흔들고 서둘러 거대한 백조의  목 모양를 한 
구리 
증류기와 첫번째 저장고를 지나쳤다.  저 안에서 5천통의 위스키가   조용히 성숙되고 있었
다.  상
품이 되기 위한 마지막 공정은 전적으로 인간의 손에  달려 있었다.  특히 짐은'중간감별'을 
하는 
특별한 시기를 귀신처럼 집어냄으로써 최고급 위스키 제조에 달인 경지에 올랐다.  그가 이
미  은
퇴할 나이를 훨씬 넘었기 때문에 마조리는 고민이었다.
그녀는 다음 몇시간을 회계사와 보냈다.   모두 좋은  소식뿐이었다.  그들의 상담이  거의 
끝났을 
무렵 비서가 미국에서 요시 토하라 상의 전화가 왔다고 알렸다.   그녀는 시간을 확인했다.  
아침 
10시에? 그가 이 시간에 전화한 것을  보니 중요한 일이 분명했다.  토하라  상은 평소처럼 
곧장 본
론을 꺼냈다.
"마조리, 전에 카를로 로사피오란 친구에 대해 내렸던 결정에 대해 기억하고 있소?"
그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배어 있었다.
"불쌍하게도 내가 오판을 했소. 그는 내  예상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거금
을 쥐어 
줘야 했소. 내 말을 이해 하겠지?
"그럼요."
"그가 남미 포도주에 깊이 손을  댔지만 미국에서 판매가 신통치 않다는  소식을 접하자 마
자 난 
조종끈을 잡아당겼소. 어리석은 놈, 여자 친구 말을 듣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제 그는 파
산했소. 
문제는 그 재난이 우리 경쟁자 글렌티란 위스키  측에 가장 불리한 시점에 일어났다는  거
요. 카를
로가 최근에 받은 글렌티란의 뉴욕 주식과 다량의 위스키 상품들이 모두 압류당했소."
  갑자기 그녀의 입술이 말랐다.  그 오랜 세월 후에야. 참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구나.  그
녀는 항
상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만 그 정확한 시기와 방법은  모호했다.  이제 때가 무르익었다.  
그녀
에게 적을 휘어잡을 운과 힘이 돌아 왔다.
"마조리, 이제 글렌타란은  곤란한 처지에 빠졌소.  로사피오는 6백만 달어의  미수금알모든  
빚졌소. 
게다가 올해 생산량의 65%가  이미 미국으로 선적 되었거든.  새로운 판매업자와 계약하고 
재 정상
의 손실을 메우는데 엄청난 돈이 들어갈  거요. 같은 금융인으로  말하건대 그들은  최악의 
위기에 
봉착했소. 그러니 당신도 즉시 대출을  중지하고 인수  제의를 해요. 1977년에 그들이 글렌
너드에 
제의했던 것과 비슷한 조건의 거래를 하라고 제안하는 바이오."
마조리는 호흡 곤란을 느꼈다. 팽팽한 끈으로 가슴이 졸리고, 목에  혹이 생겨 말조차 할 수 
없었
다.
"지금 듣고 있소, 마조리?"
"물론 이에요."
"그들이 자금난에 처한 기회를 놓치지 말아요.  당신이 그들의 돈 주머니를 잡고 있는 동안 
난 그
들의 시장을 장악하겠소. 평균 생산량의 네 배를 선적해 줄 수 있겠소?"
"13년산 원액 위스키는 불가능하지만  혼합주와 8년산은 가능해요.  토하라 상, 수고하세요.   
"
5분 후, 그녀는 여전히 떨리는 손으로 은행장 제임스 리틀우드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임스, 마조리예요.  방금 좋지 않은 소식을 들었어요.  우리의 최대 고객 중 하나인 글렌
티란이 
심각한 재정 위기에 처했어요.  "
"대단히 심각하지는 않을 겁니다.  카메론 부인."
리툴우드는 점잖은 어조로 반대했다.
"그들은 매우 건실하게 운영해 왔어요.  아마 판매업자 쪽이 곤경에 빠졌겠죠."
"그보다 더 심각해요.  글렌티란은 조만간  대출을 요구할 테지만 우리는 그런  모험을  할 
수 없어
요.  아예 담보를 차압해야 해요.  일단 장부를  살펴 그들의 담보를 현금으로 환산한 다음 
글렌티
란의 차용금을 알려주세요.  참, 담보에 현시세를 적용해선 안돼요.  오늘 오후 3시에 봐요.  
'
한참 후에야 그녀는 마음을 진정 시킬  수 있었다.  이상해라. 좋은 소식이 나쁜  것만큼 신
체 각 
기관에 충격을 주다니. 승리감은 절정의 순간처럼 맥박을 증가시키고  시력과 청력의  높였
으며 사
정없이 떨게 만들었다.   그녀는 온 세상과 함께 카다란 맷돌에 갈려 터무니 없는 혼합물이 
된 기
분 이었다.
  
    76
  단 한번의 치명적인 실수가 그를 재난으로 몰아 넣었다.  로버트는 무덤덤한 얼굴로 서류
를  보
았지만 책상 맞은 편의 바트는 허탈한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철저하게 파산했다.
"당신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남았습니다.  "
바트는 억지로 말을 꺼냈다.
"우선 위스키를 로우랜드의 제조업체에 파는 겁니다.  그러면 한동안 현상유지를  할겁니다.  
그리
고 향후 몇년에 걸쳐 천천히 확장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 점을 유념하세요. 당신이 
선친으
로 부터 사업을 물려받았을 때처럼 긴 세월이 소요될 겁니다.  게다가 재정이나 영업면에서 
볼 때 
다시 미국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 만큼 충분한 기반을 쌓으려면 더 많은 시간이 들  거예요.  
그때
쯤 글렌너드는 아성을 구축했을 테니 그만큼 시장확보가 어려울겁니다.  둘째 방법은 이 방
법이 훨
씬 좋습니다.  합병 제의에 응하는 겁니다.  글렌너드도 그 점을 알고 있어요.  그들은 주식
을 사
서 당신을 쫓아낼 수도 있지만 그런  방법은 일부 주주들의 반발을 살 수  있어요.  그러나 
그 쪽의 
배당금은 매우 많고 제때에 나와요.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어요."
"시간이 필요하오. 그러니 당신이 그들을 만나  시간을 벌어 와요. 난 가지 않는  편이 좋겠
소. 내가 
부도를 낸다면 그들은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리란 점을 강조해요.   그들에게 거짓말을 설득
할 테니 
2개월 동안 임금과 대여료 등 기본 지출 비용을 대부해 달라고 해요.
"그 동안 우리는 자구책을 찾아봅시다.  "
로버트는 쓸쓸하게 말을 맺었다.
그는 글렌티란을 딸에게 물려줄 생각 이었다.  그녀는 그의 유일한 후계자였다.
"그런데"
바트는 그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말했다.
"이런 말을 꺼내기에 적합하지 않지만 원장 수녀님이 또한 당신 친 딸의 행방을 찾아보기로 
결정
했다는 소식입니다.  "
"그게 우리가 패배에 항거해야 할 이유요. 난 싸워야 할 목적이 필요하오."
로버트는 슬픈 목소리로 힘주어 말했다.
  마조리는 글렌너드 증류소 사무실 창문 밖으로 흩날리는 눈발을 바라 보았다.  손님이 벌
써  30
분째 기다렸지만 그녀는 서두르지 않고 라나가 자리를 비우기만 기다렸다.   이 만남은  은
밀히 이 
루어 져야 해. 하지만 나중에 이 특별한 승리를 라나와 함께 나누어야지.
그녀는 눈을 감았다.  21년 전의 그 운명적이 날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녀는 춥고 비참한 
심정
으로 뱃속의 아이를 위해 로버트의 집으로 찾아가 선처를 구걸했다.  당시 그녀를 매정하게  
쫓아
냈던 그 여자가 지금 애걸하러 찾아 왔다. 그러나 헛수고야. 운명은 이렇게 돌고 도는 구나.
그 뱃속의 아이가 이제 그녀의 가까운 동반자가 되었다.  라나는  남은 공부를 시작하기 전
에 앞서 
지난 몇달 동안 그녀의 비서로 일했다.  딸은  빨리 빼웠고,  글렌너드의 영업 전략에 대해 
회사의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다.
  마조리 고개를 들었다.  처음 라나의 창백하고 피곤한 안색을 발견했다.   내가 저 아이를 
어무 
밀어 붙였구나 하지만 라나는  강했고 힘든  노동을  이겨냈다.  그녀는 딸에게  자부심을 
느꼈다.  
라나는 마조리가 저 나이 때 갖고 싶었던 모든 것을 다 지녔다.   자신감, 세련된 매너,  나
무랄 데 
없는 교육 등 누구든 첫눈에 그녀를 '상류인사'라고 알아 볼 것이다.  게다가 사업에도 탁월
한 능
력을 보였다.
"라나야, 이리 와서 이 기사를 보렴. 사실 내가  이 이야기를 언론에 흘렸단다. 언론 매체는 
제데로 
이용하면 소중한 사업사의 무기가 될 수 있어. 절대로 언론을 적으로 만들어선 안돼."
'글렌너드의 글렌티란 인수 제의는 주주 및 투자가를 구할 것이다'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라나는 옆의 마조리를 의식하며 기사를 읽었다.   엄마의 긴장과 즐거움이  느껴졌다.  이렇
게 흥
분한 엄마는 처음이었다.
"아주 좋은데요."
그녀는 뒤로 물러나 엄마를 자세히 보았다.
"즐거워하시는 이유라고 있으세요? 무슨 일이에요?"
엄마는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사업 이상의 이유가 있단다. 일종의 복수라고나 할까.  이 오랜 싸움은 너와 긴밀한 관련이 
있단
다.  지금은 말할 수 없지만 오래지 않아 모든 전말알모든  이야기 해 줄 께."
그녀는 딸을 꼭 안았다.  라나는 깜짝 놀랐다.  엄마는 애정  표현을 집에서만 했는데. 호기
심이 끓
어 올랐다.
"커피를 두잔 부탁해 놨어요. 엄마. 하지만 왜 내가 여기에 있어선 안돼요?"
"좀 참으렴. 곧 알게 될 거야. 그 오랜 세월 후에야 드디어 끝이 나는구나."
엄마는 창문과 책상 사이를 오락가락 했다.  정말  이상해! 충동적으로 라나는 책상으로 돌
아가 윗 
서랍을 반 쯤열어 놓고 테이프 레코더를 작동시켰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늦은 아침을 
먹으러 
식당으로 달려 갔다.
  
    77
  로다 맥라렌은 글렌너드 회장실의 문간에 서서  오만하게 코웃음을 쳤다.  흥, 돈 잔치를  
했군. 
카메론 부인은 자신을 여왕으로 아나? 하지만 최근에  '경'칭호를  하사 받았지. 이 실내장
식은 그
녀의 신분 상승에 대한 환상을 여실히 보여주는군.
전체가 이중 유리창으로 된 서쪽 벽으로 공원이 내다 보였다.  아름다운 베이지색 대리석이  
깔린 
바닥에서 미열이 느꼈졌다.  창문 앞에 푸른 카펫이 딱 한점 깔렸고 밝은 색 나무로  된 가
구들은 
현대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카메론 부인은 값비싼 터너의 작품 앞에  서 있었다.  이제 확
실해졌
다.  바로 그녀야! 로버트의 창녀! 틀림없었다.
"다시 뵙게되서 기뻐요, 맥라렌 부인."
카메론 부인은 옛친구를 대하듯 반갑게 말을 건냈다.
"커피를 드시겠어요?"
그녀는 은제 주전자를 들고 섬세한 본차이나 잔에 커피를 따랐다.
"올해 겨울은 춥네요.  바닥 난방 장치를 깔길 잘 했어요.  너무 더우시면 말씁하세요.  "
그녀는 차갑고 침착하게 미소지었다.
"당신은 개인적인 복수극을 당장 멈춰야 해요.  "
로다는 준비했던 말을 꺼냈다.
"그리고 수고 스럽겠지만 당신의 진정한 적을 평가해요.  그건  로버트가 아니라 바로 나예
요! 맥
라렌 부인? 복수극? 적이라뇨?"
"내 말뜻을 잘 알고 있을 텐데요.  당신은 글렌티란을 파산의  궁지로 몰아 넣었어요.  은행
의 힘
을 개인적인 복수의 도구로 남용하고 있어요.  이런 짓은 당신에게  좋지 않았다.  여기 사
란들으
그런데 사소한 일도 잊지 않아요.  당신이 우리를 파산시킨다면  스코틀랜드 투자자들이 거
래 은행
을 바꿀 거예요.  당신 아들의 은행을 망치고 싶어요?"
"맥란렌 부인, 귀사는 극도의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어요.   그리고 더 이상 과도한 융자를 
상쇄시
킬 만한 담보를 제공하지 못해요.  "
"내가 당신에게 속을 줄 알아요? 내 말을 똑똑히  들어요. 카메론 부인. 맥라렌 가문은 여섯 
세대
에 걸쳐 그램 피안 은행과 거래를 해 왔어요.  당신같은 사람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다뤄
야 할지 
모르겠죠? 이건 명예에 대한 문제예요.  여섯  세대 동안 유지된 좋은 관계를 일시적인  재
정난을 
이유로 매정하게 끊어 버리진 못해요.  사람들이 당신 뒤에서 뭐라고 수군거리겠어요? 불쌍
한  베
아트리스 카메론의 돈을 이용해서 파렴치한 목표를 달성했다고들 할 거예요.  "
"맥라렌 부인, 나는 오랜 세월동안 딸의  생득권을 되찾기 위해 싸웠어요.  그것이 내  손에 
들어오
는 것은 시간 문제예요.  난 내 딸에게 친부의 신분을 밝히고 그 아이의 정당한 유산. 글렌
티란을 
돌려줄 거예요.  그게 바로 내 계획이에요.  "
로다는 충격을 받았다.  순간 장례식에서 봤던  젊은 아가씨가 떠올랐다.  그래서 눈에 익었
구나. 
로버트의 딸이야! 카메론 부인은 아이를 입양시키지 않았어. 그녀가 거짓말을 한 거야.
"이곳을 찾으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맥라렌 부인? 특별히 하실 말씀이라도?"
로다는 폭발 직전에 이른 분노를 참기 위해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렸다.
"왜 내가 한 짓으로 로버트가 벌을 받아야 하죠?"
"난 로버트 경을 벌 주는 게 아니에요.  그램피안 은행이 저장권을 유실  처분한 이유는 글
렌티란
이 적절한 사업상의 전망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귀사는 미국 판매업자를  통해  
막대한 
손해를 입었어요.  글렌너드의 인수 제의를 거절한다면 은행은 부득이  담보를 차압할 수밖
에 없어
요.  이 순간부터 당신의 개인적인 구좌는 몰수되었습니다.  이만, 안녕히 가세요.  "
분개한 로다가 벌떡 일어났다.
"베아트리스 카메론이 무덤에서 돌아누울 거야. 넌  은행을 내것은 향 행세하는 구나.  로버
트에게 
차이고도 여지껏 정신을 못차렸군?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네가 나를 사회적으로 매장 시킨다면 네 딸은 글레티란을  손에 넣지 못할 거야. 눈곱만큼
도 어림
없어. 나 역시 채권자이니만큼 너보다 먼저 장원을 팔아치울 거야. 결국 네 딸마저 아무것도 
갖지 
못하게 될 거야."
로다는 흥분을 가라 앉히려 노력했다.  카메론 부인이 약해지는 기미를  보였다.  그녀는 21
년 전 
저 여인의 가련했던 모습을 떠올렸다.   눈에는 눈물이 고였고 얼굴은  하얗게 질렸으며 분
노로 입
술을 떨고 있었다.  지금 또는 다시  그녀의  창백해진 안색을 보며 분노로  입술을  떨고 
있었다.  
지금 또는 다시 그녀의 창백해진 안색을 보며 로다는 협박이 먹혀들었음을 알았다.  카메론  
부인
은 펜을 만지작 거렸다.
"은행에 다른 담보 목록을 제출하세요.  그러면  향후 몇달동안 부인의 지출 기한을 연장해  
드릴 
겁니다."
승리감이 치솟았다.  로다는 적의 약점을 발견했다.  바로 그녀의 딸을 이었다.
"그만 나가 주세요.  "
마조리가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로다는 팔꿈치를 잡혀 문까지 안내 되었다.
"넌 잔인하고 탐욕스러웠구나. 하지만 승패를 단정짓기에는 안내 되었다.
"넌 잔인하고 탐욕 스러워졌구나. 하지만  승패를 단정짓기에는 아직 일러."
"21년전에 내가 당신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하시에요.  기억나세요, 맥라렌 부인?"
마로리는 잔인하게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로다의 지으며 로다의 면전에 대고 문을 닫았다.
서둘러 사무실로 돌아온 라나는 엄마에게 팔꿈치를 잡혀 문간에 서 있는 한 노부인을  보았
다. 맙
소사! 엄마가 부인을 거의 밀다시피 하네! 라나는 멈춰  서서 숨을 죽였다.  멀리서도 두 여
인 사
이에 흐르는 적의를 느낄 수 있었다.  저 부인을 어디선가 봤는데? 아, 베아트리스 숙모님의 
장례
식에서 나자 빠졌던 맥라렌 부인이다. 갑자기 라나는 테이프를 듣고 싶어 좀이 쑤셨다.

    53
  부모님이 도착한 다음날, 마조리는 일찌감치 주변에 사는  친척  주주들을 방문하러 나섰
다.  다
가올 회의에서 그들의 투표 방향을  알아보고 온힘을  다해 자신을  알아보고 온힘을 다해 
자신을 
지지해 달라고 설득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처음 세 차례의 방문은  철저한  실패로 돌
아갔다.  
거의 정오가 되자, 그녀는 많은 이의  적대감과 호전성의 과녁 노릇에 지치고 풀이  죽었다.   
그녀
는 한숨을 쉬며 리버사이드 드라이브 10번지에서 차를 세우고 목록을 살폈다.
루시 카메론 부인은 초라한 방갈로에 혼자 사는 과부였다. 
  그녀는 문을 열고 마조리를 보자마자, 투터운 안경알로 확대된  분노로 눈을 빛내며 묵은 
원한을 
쏟아 부었다. "난 당신이 누군지, 여기 왜 왔는지 알아요.   그러니 쓸대 없이  시간 낭비하
지 말아
요. " 이 더운 날에 그녀가  가디건를 추스리는  이유는 추위 때문이 아니라  방어용이었다.  
그 모
습을 바로보던 마조리는 그녀가 남편을 잃은 외롭고 독신 생활을 힘겨워 한다는 사실을 눈
치챘다.
"마음 푸세요, 카메론 부인. 저는 부인을 만나뵈서 기뻐요.   업무 말고도  해미쉬의 가족들
과 만나
뵙고 싶었어요.
  "가족! 흥! 난 그의 코빼기도 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들어와요.  차를 한잔 들겠수?"
그녀의 타고난 좋은 매너가 적대감을 이겼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벌써 여러 시간째 운전했어요.  "
부인은 절뚝거리며 천천히 안으로 안내했다.  마조리는 텅 빈 거실에서 고독과 가난의 냄새
를  맡
을 수 있었다.  아, 해미쉬. 당신도 왔어야 했어요.  그리고 죤 에스킨, 당신도.
그녀는 차를 마시며 세상사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 마음속으로 세일 전략을 숙고했다.  장미
빛  전
망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는데도 불구하고 가는 곳마다 퇴짜를  맞은 이유가 뭘까? 그녀는 
총천
연색의 도표이더라도  브로셔, 향후 위스키 가격에 대한 전략 및  전망서 뿐 아니라 해미쉬
가 산꼭
대기에 서서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실린 '리더십'의 최근호까지  치참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잘 먹혀들지 않았고 이미 세명의 소중한 주주들을 잃었다.  그들은  회
의에서 
그녀에게 반대표를 던지리라. 그녀에게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다.  본능적으로 그녀는 재
정적인 
설명보다 감정적인 호소가 더 유리하리란 느낌을 받았다.
"카메론 부인, 당신은 배당금에 의지해서 힘든 세월을 견디셨는데 왜 주식을 팔지 않으셨나
요?"
그녀는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부인은 신경질적으로 잔을  만지작거렸다.
그녀는 몸짓으로 벽난로 선반 쪽을 가리켰다. 거기에 대위 군복을  입은 한 남자의  빛바랜 
사진이 
자랑스럽게 장식되어 있었다.
  "남편은 항상 글렌너드 위스키가 번창하리라고 믿었어요.  회사가  2차대전과 전후의  어
려운 시
기를 딛고 일어날 때, 우리  가문이 스코틀랜드 최고의 증류소로 우뚝  서고 많은 배당금을 
받게 될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답니다.  그래서 유산은 말할 것도 없고 연금과 쌈짓돈까지 털어 그  
주식
을 샀던 거예요.  "
마조리는 천천히 차를 마시며 카메론 부인의 넋두리를 다 들은 다음 공략에 나섰다.
  "사실, 제 남편과 저는 경영  일선에 복귀하여 회사를 되살리기로 결심했어요.   왜냐하면 
해미쉬 
본인을 포함한 많은 주주들이 도둑질을 당해  왔기 때문이죠. 제가  그 동안의 경위를 설명
해 드릴
께요......"
그녀는 자세히 설명했고, 그곳을 떠날 때는 부인의 전폭적인 신임과 지지를 얻어냈다.
저녁이 되자 마조리는 여러 잔의 차와 프르츠 케이크로 속이더부륵했지만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
하고 겨우 가족 주주의3% 지지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그녀는 집에  가고 싶었지만 다음날 
아침 일
찍 죠의 스파이와 약속을 한데다 가스도 만나기를 청했기  때문에 밤 비행기를 타고 런던으
로 그
녀의 아파트에서 묵어야 했다.  그녀는 기가 죽은 채 자동차를인버네스 공학에 주차시켰다.   
오직 
기적만이 유일한 살길이었다.
  데릭 올리버는 그녀의 상상과 딴판이었다.  그의 사무실은 땅값이  비싼 콘듀이트 스트리
트에 있
었다.  검정색 정장과 보수적인 넥타이, 회색과 흰색의 줄무늬 셔츠를 걸친 깔끔한 올리버는 
노련
한 변호사나 은행가를 연상시켰다.  그의 눈만이 본색을 보여줬다.  푸른  광채가 돌고 얼음 
수정
처럼 투명한데다 재미와 모험에 대한 열망으로 반짝거리는 젊은 청년의 눈이었다.
마조리가 다짜고짜 본론에 들어갔다.
"내 남편은 글렌너드 위스키 사의 회장이에요.  우리는 최근의  인수 공작에 대항하여 회사
의 존망
을  놓고 싸우고 있어요.  죤 에스킨이 적의  진영에 한발을  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분이 당
신이라고 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분이 당신이라고 듣고......"
  "진정하십시오, 카메론 부인. 차를 드시겠습니까?  제발  서두르지 마세요. 정 급하시다면 
나중에 
다시 오세요. "
그녀는 차를 거절하고 모자에서 토끼를 꺼내  보여야 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리고  글렌
티란의 
응큼한 전략을 자세히 알고 싶다는 말도 덧 붙였다.
"올리버씨, 나는 글렌티란 의 응큼한 전략을 자세히 알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올리버씨 나는 글렌티란의 방법을 파악하여 그들의 확장 계획,  영업이나  투자등 향후 사
업 방향
을 정확하게 집어낼 생각이 에요. 그들의 장점과 약 알아야 합니다.  "
"당신은 코앞으로 다가온 인수를 모면할 수 있다고 확신하십니까?  "
"네"
그녀는 깊은 숨을 들이쉬고 눈을 돌렸다.
"진짜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우린 모든  꼭 성공해야 해요.  "
올리버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 빈틈없이 평가의 빛이 어렸다.
"저는 시걸 씨가 관심없이 했던 배경 정보를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당신을 위해 글
렌티란 
주식을 매입했다고 하시더군요."
  "그애요."
  "음, 좋은 친구들 두셨어요.  "
  그녀는 그의 말을 무시했다.  죠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털어 놓았을까?
"해미쉬 카메론은 모계 친척에 등을 돌리신  것 같군요.  제가 보기에, 그 점이  글렌티란의 
최대의 
약점이자 부군의 최대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
"네? 이게 무슨 말씀이세요?"
  흥분의 물결이 솟구쳤다.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마른 입술을  축였다.  홍공의 무역회사가 
이미 
망한 줄 알았는데.
"당신 부군의 동양쪽 끈에 대해 말씀드리는 겁니다.  선친이신  시몬은 홍콩의 인버 아시아 
무역상
을, 전세계에 지점망을 둔 처남의  한국 회사와  합병시켰어요.  그 회사는  최근 싱가폴에 
거점를 
두고 있습니다.  요시 토하라, 부근의 외삼촌께선 세금 혜택에 따라 바람처럼 움직이며 사업
을 아
슬아슬한 선상에서 경영합니다.  정확한 액수를 집어내긴 어렵지만, 토하라 씨가 어마어마한 
거부
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당신 부군의 몫이 그 절반이라는  뜻이지요.  소문이 파다합니다.  
아무
리 그들이 부인한다 해도 부군께 빚을  진  것만큼은 사실이니까요.  시걸 씨가 관심  없어 
하시는 
통에 이에 대한 심층 조사를 못했습니다.  "
"빨리 하세요.  이제 한 달밖에 남지 않았어요.  "
"그럼, 그 시작으로 이 정도는 어떻습니까?  "
올리버는 잘난 척하며 캐비넷에서 서류철을 꺼내 공손하게 책상 위에 놓았다.
서류를 검토하는 동안 마조리의 눈에 어린 눈물로 글자가 부옇게 번졌다.  이게 그토록  갈
구하던 
기적일까?
  
    54
  해미쉬는 밤마다 꿈에 시달렸다.  한 고지식한 여자가 접수대 옆에 서서 카운터를 주먹으
로  꽝
꽝 내리쳤다.  그 에머랄드 같은 눈은 결의로 빛나고 불꽃같은 머리카락은 석약 속에서  불
타올랐
다.  그 다음 또 다른 여자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암사슴처럼  다정하고 부드럽게 미소지으
며 딸
을 안았다.  그녀의 눈은 이상할 만큼 자유자재로 변했다.  어떤  때는 송곳처럼  날카롭게, 
또 어
떤 때는 한없는 따뜻함과 약속으로 녹아들었다.
그 사람이 바로 그의 마조리였다.   그는 또한 그녀의 아름다운 가슴,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곤히 
자는 모습도 생각했다.  그녀는 청순한 동시에 관능적이었다.
  그는 마조리에게 집중포화를 맞게하고 주주총회에서 도망친 결정을 후회했다.  인수 문서
에  조
인하는 자리에 극성스런  기자들이 서성거리며 질문의  화살을 쏘아댔으리라.  그가 그녀의  
곁을 지
켰어야 했는데. 사실, 아내를 대할 면목이 없었다.  그가  앤드류 삼촌과 이안에게 경영권을 
뺏기고 
베아트리스 숙모와 글렌티란에게 밀려나는 일은 시간 문제였다. 그렇다고 내가 겁쟁이는 아
냐. 해
미쉬는 자기 합리화를 했다.  나는 투사지만 바보는 아니거든. 그는 스코틀랜드 카메론 일족
의 지
지를 얻어내지 못하리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협력없이 삼촌과 사촌과 맞서 싸
울  수 
있는 가능성은 없었다.  육중한 체구와 넓은 어깨, 푸른 눈동자와 모래빛 머리칼의 진짜베기 
스코
틀ㄹ내트 남자 앤드류 삼촌은 주주들이 원할 만한 그런 인물이었다.
그래서 미래를 수수방관한 채 알프스 등반을 선택했지만, 그를  처벌하듯 산악 등반은 처음
부터 꼬
였고 재난이하여금 꼬리를 물로 일어났다.  바람과 눈보라가 그치지  않는데다 선봉팀을 잃
은 통에 
그들 모두 죽을 뻔했다.  결국 일행은 투표를 통해 귀향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사업을 
잃었
다는 소식을 마조리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지 대책이 서지 않았다.   그녀는 이 세상의 승리
자인 반
면 그는 패배자였다.  조만간 그는 그녀가 마련해 준 대좌에서  굴러 떨어지게 되리라. 그리
고 그 
다음에는?
  오후 3시경, 해미쉬는 인버네스 공항에 남겨 둔 차를  타고 질풍처럼 집으로 달렸다.  그
곳에서 
뭘 발견하게 될까? 가을 안개가 계곡 허리를 감돌았고  나뭇잎들은 황금 옷으로 갈아입었으
며 일
렬로 늘어선 관목은 열내를 잔뜩 달고 있었다.  새들이 긴  남쪽 여행을 준비하며 끊임없이 
모였다 
흩어졌다.  그러나 해미쉬의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마조리가 폐허가 된 집에서 
먼지
와 망가진 가구들을 상대로 씨름하는 모습이 어른거렸다.  내가 어쩌자고 그녀에게 그런 짓
을  했
지? 그녀가 날 보고 싶어할까? 날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짐을 싸가지고  런던으로 돌아
갔을까? 
설령 그랬다 해도 그는 그녀를 조금도 책망하지 않으리라.
그가 대문을 열려고 했지만 문은 꼼짝도하지 않았다. 그의 입이  탔다. 그 다음에야 전에 없
던 초
인종과 음성함을 발견했다.  근모든 초인종을 눌렀다. "여보세요." 라나의 목소리였다.
  "문을 열어 줄래, 라나야? 난 해미쉬야."
  아빠라고 말할 걸 그랬나?
  "가세요. 여기서 아저씨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라나는 앙칼진  말로 그를 퇴짜
놨다.
  해미쉬는 한숨을 쉬었다.  라나의 환심을 사는 일이 최선 임무구나. 하지만 그녀가 여기에 
있다
는 것은 마조리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의 가슴이  뛰었다.  그는 차를 세워 놓고 대문을 넘
었다.   
잠시 후 진입로를 따라 조깅하기 시작했다.  모퉁이를  돌아 집 앞에 이르렀을  때 그는 호
수까지 
이어지는 긴 잔디밭에 경악했다.  세발 자전거가 한쪽에 놓여있었고, 저  멀리 하디 씨가 기
계 위
에 앉아 잔디를 고르고 있었다.  개 한 마리가 컹컹 짖으며 그 뒤를 다랐다.  저택으로 시선
을 돌
린 그는 그 사이 달라진 풍경에  숨을 몰아쉬었다.   그가 더러운 회색 돌을   얼마나 싫어
했던가. 
그는 계간을 따라 올라가 손가락으로 깨끗한 석조물을 만졌다.  이제 회색이 아니라 아름다
운  핑
크와 흰색을 발했다.  마조리가 한재산들였구나.
그는 서둘러 문을 열어 젖히고 소리쳤다.
"마조리...... 어디 있소? 이런 세상에!"
그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오랫동안 주변을 둘러봤다.  그랜드  홀은 깨끗하게 새로 
칠해졌
고 바닥은 숨을 멈추게 할만큼 아름다웠으며 옛 그림들이 말끔히 수복되었다.  완전히 달라  
보였
다.  저 벽들이 어떻게 된 거지 색이 바뀌었나?
그는 뭔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저  동화 속의 요정이 마술 봉을 휘둘러  썰렁한  
저택을 
집으로 바꿔 놓았다는 것밖에. 그리고 그 요정은 마조리였다.  그 사람 외에 누가 2주일만에 
이런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겠어?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대다수가 반만  완성된 상태였다.  넋을 잃은   그는 부엌으로 갔다.  
아늑한 
가정의 분위기가 흐르는 그곳 바닥은 먼지 한톨 없이  반짝거렸고 긴 식탁은 저녁 빛에 반
짝거렸
으며 레이스 커튼이 하늘거리고 구리 냄비들이 벽에 걸려있었다.  항상 눈살을 찌푸리게 했
던  시
꺼먼 웰시 장식장이 이제 밝으 갈색으로 바뀌었고 선반마다 예쁜 접시와 컵과 꽃병으로 장
식되었
다.  식품 저장실과 뒤에 있던 총기실은 세탁실로 바뀌었고, 새로 마감한 시멘트벽이 마르는 
중이
었다.
  그때 초록색 멜빵 바지를 걸친 가무잡잡한 여자가  총총걸음으로 들어오는 통에 해미쉬는 
깜짝
놀라 위로 뛰어 올랐다.  "당신이 주인님이세요?" 그녀가 무감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해미쉬 카메론이오." "난 졸라예요." 그녀는 자신을 가리키고 웃었다."
  "식사를 하시겠어요?"
  "고맙지만 사양하겠소. 마조리는 어디에 있소?"
"외출하셨어요. 라나는 노마님과 함께 있었어요.  "
"그 노마님은 어디에 계시지?"
그는 황당한 기분으로 물었다.
"저쪽 별채예요.  "
그는  서둘러 계단과 잔디를 가로질러 잔디깍기 기계쪽으로 향했다.  가족들이 벌써 여기에 
살고 
있단 말야? 그는 하디씨가 자신을 싫어하고 그와의 동거를 원치  않으리란 것을 잘 알았다.  
 순간 
아까 라나의 목소리가 귀에 메아리치며 긴박감을 불러 일으켰다.
'가세요, 여기서 아저씨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
"안녕히 지내셨습니까?"
그는 성의를 갖춰 하디 씨에게 악수를 청했다.
"해미쉬? 내가 자네 이름을  불러도 될까? 다음주에야 돌아올  줄 알았는데. 마조기가 좋아
할  거
야."
"그런데 그녀는 어디에 있습니까? "
"당연히 일하러갔지. 걔는 항상 이일 저일 손을  댄다네, 자네도 익숙해질 거야. 저기...... 자
네를 봐
서 반갑네."
그가 기계에서 내려왔다.
"참견쟁이 여자들이 없는 지금 자네에게 남자 대 남자로 할 말이 있네. 이런,  내 정신 좀보
게. 잠
깐 기다리게."
그는 기계 쪽으로 되돌아가 시동 열쇠를 뺏다.
"이 열쇠를 저기에 남겨 둬선 안된다네. 자네도 잔디를 깍고 싶을 때마다 내 말을 명심하게
나. 라
나가 기회를 노리고 있어. 어제는 걔가 기계를 작동하려는 현장을 잡았다네, 워낙 영리한 데
다 물
불을 가리지  않는 아이야. 저기에 열쇠를 꽂아 둔 채 등을 돌렸다가는 라나가 금방 달려들
걸."
하디씨는 잠시 뜸을 들리고 나서 말했다.
"해미쉬, 시실 하고 싶은 말은 이거라네."
그의 이갸기가 봇물처럼  흘러나왔다.  해미쉬는 그가 이 말을 반복해서  연습해 왔음을 눈
치챘다.
"마조리가 하도 고집을 부리는 통에 우린모든  도버집을 단기  임대 놓았네. 이곳이 마음에 
들지만 
자네가 싫다면 우리는 당장 떠날 거야. 우리는 원치 않는  곳에서 머무는 그런 사람들이 아
냐.
마조리는 머리도 좋고 당찬 아이지만 나름대로 결점이 있다네.
그중 하나가 다른 가족들의 생각을 무시한다는 거야. 우리는 집도  절도 없는 떠돌이가  아
니라 도
버에 당당한 집을 가졌네. 마조리는  그곳을 팔려  들지만 우리가 허락하지  않을 거야. 그 
아이는 
이 저택과 증류소에 투자하려고 손에 닥치는 대로 돈을 끌어 모았어."
  아 맙소사! 해미쉬는 기가 막혔다.  그녀가 이 집과  이제 더 이상 그것도 아니 증류소에 
재산을 
쏟아 붓다니. 아직 총회에 대해 모르고 있나? 그는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모든 주식을 팔
아 그
녀의 돈을 마지막 일전까지 갚아 줘야지. 그 마지막 수단에 더 비감한 심정이 들었다.  이제 
노인
은 설명을 다 마친 것처럼 보였기에  해미쉬는  반색을 했다.  그가 악전 고투하는  모습을 
보기가 
민망했기 때문이다.
그는 노인의 어깨를 잡았다.
"두분께서 여기에 계서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
그는 하다 시가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메달리는 광경에 서글픔마저 느꼈다.
"제가 여행을 떠나고 나면 마조리가 얼마나  외롭겠습니까. 그리고 라나에게는 모두가 필요
합니다.  
두분은 라나와...... 마조리에게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저에게도.  근방에 이웃이 없어서 
무척 
고독했거든요. 옛 저택들은 대 가족용으로 세워 졌어요. 이제 우리는 한잔 꼭이잖습니까?  "
그는 뜸을 들였다.
  "마조리가 걱정되는 구요. 제가 그녀의 곁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어떤 변명을 할 수 있을까?
"마조리는 걱정 말게. 그 아이는 제 앞가림을 잘해. 자, 나와함께  별채에 가서 한잔 들도록 
하세, 
해미쉬, 애 어멈이 햄 샌드위치를 만들어놨을 거야. 불교 신자도 햄을 먹나?"
"아무거나 다 먹습니다.  "
별채의 황량하고 폐허가 된 모습을 떠올린 해미쉬는 진저리를 치며 노인을 따라 숲을 가로
질렀다.  
  그리고 집안에 들어서는 순간 이  곳이 아늑한 가정으로 변모했음을 알았다.   라나는 다
림질을 
하고 있었고 리즈는 바닥에 앉아 장남감을 갖고 놀았다.  아이는  그를 강렬하게 노려 보았
다.
"아저씨가 내 아빠가 될 거예요?"
라나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네가 원한다면 그러고 싶구나. 하지만 그건 너에게 달렸어.
며칠 기다렸다가 내가 충분한 자격이 있는지 보면 어떠니? 그 다음에 선택하렴."
  "뭘 선택해요?" "내가 네 마음에 드는지 어떤지를 말야." "아저씨는 뭐가 될 수 있는데요.  
"
  아이는 이마를 찌부렸다.
"강아지 빗질하는 사람, 오리 먹이 주는 사람, 또는  자동차 수리하는 사람, 그리고 창문 닦
는 사람
이될 수 있어. 네가 결정하렴."
"내가 못되게 굴면 날 때릴거예요?"
"아니, 절대로 안 그래."
"내가 아저씨의 입양한 딸이 되는 거예요.  아니면 진짜 딸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아저씨는 아빠가 될 수 있어요.  하지만 아까 말한 것도 다 되어야 해요.  "
그녀는 그의 무릎에 기어올라 손가락으로 머리를 만지작 거렸다.   그 운명적인 몇 초 사이
에  해
미쉬는 라나에 대한 사랑에 흠뻑 빠졌다.
  
    55
  마조리는 만족스럽게 차를 몰았다.  밤 아홉시가 다  되었건만, 아름다운 스코틀랜드 황혼
이 가
시지 않은 대지는 하얗게 빛나는 한 점 태양과 은은한 색조 아래 마법의 장소로 변해  있었
다.  마
지막 교차로에 접어들었을 때, 사슴  한 마리가 도로로 뛰어나가서  8피트가 넘는 울타리를 
쉽게 뛰
어넘었다. 그에 이어 갈색 산토끼가 브레이크를 밟고  헤드라이트를 껐다. 그제야 공포에 질
린 토
끼는 부리나케 도망갔다.
평화와 만족감이 그녀에게 스며들었다.  내집! 겨우 한  달밖에 살지 않았건만, 그  어느 곳
에서도 
느끼지 못한 깊은 애정이 우러 나왔다.  아빠가 정원을 가꾸며  행복해 하는 모습은 안심이
자 기쁨
이었다.  그녀는 아빠가 황혼녘에 호숫가에 서서 오리들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을 즐겨보았
다.
라나는 정열적으로 숲을 사랑했다.  이제 그곳은 각종 열매의 보고였고 가시 금잔화가 때를  
만발
했다.  여우가 덤불 옆에 굴을 팠으며 붉은 다람쥐와 새들이 수백마리가 넘었다.  딱다구리.  
검은 
방울새. 멧도요새. 개구리매, 그리고 여러종의 올빼미 등.
  마지막 모퉁이를 돌자 대문 옆  떡갈나무 아래 세워진 차가 보였다.   해미쉬가 돌와왔구
나! 그녀
는 행복감에 젖었다.  그런데 왜 차를 밖에 남겨 뒀을까? 알듯말듯한  그 내막에 그녀는 대
문을 열
고 저택으로 향했다.  눈에 보이는 것마다 마음에 쏙 들었다.
차고에 주차시킨 그녀는 서둘러 연결 통로를  따라 식기실로 들어갔다.  졸라가 흔들의자에  
앉아 
하품하고 있었다.
"왜 늦게까지 여기에 있어요.  졸라?"
졸라의 눈과 입술이 큰 미소로 이지러졌다.
"주인님이 노마님과 댁에서 돌아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주무실 곳을 알려 드리려구요."
"주인님이 아니라 카메론 씨라고 불러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만 가서 자도록  해요.  
"
  식기실 선반에서 찾은 회중전등을 들고 그녀는 서줄러 잔디밭을  가로질렀다.  숲에서 두
쌍의 초
록 눈과 만났다. 그녀는 멈추어 서서 얼어 붙은 듯 정지한 여우를  쏘아보았다.  잠시 후 그 
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별채에 도착한 그녀는 걱정스런 마음을 참을 수  없었다.  만사가 
다 괜
찮을까? 그때 라나의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프렌치 창문이 열려 있었고 방에서 밝은 불빛이 흘러나왔다.  그녀가  라벤더 향기와 갓 손
질한 잔
디 향을 즐기며 살며시 창문을 들여다보았을 때 훈훈한 분위기가 풍겨 났다.   그 순간  아
무도 그
녀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아빠가 한쪽 벽에 다트 판을 걸어  두었고 해미쉬가 다트를 겨냥
하는 동
안 라나는 그의 등에 매달려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 라나. 동작 그만!"
해미쉬가 명령했다.  그의 손이 앞으로  번개같이 나가는 순간 라나가 다리를  흔드는 통에  
다트가 
빗나갔다.  아이는 전보다 더 크게 웃었다.
"그 아이를 그만 내려놓게, 해미쉬."
엄마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얘는 저의 약점이에요.  "
해미쉬가 인내심 있게 설명했다.
  "저는 우연찮게도 다트의 명인이에요.  라나가 지칠 때까지 매달려도 좋습니다. 자,  제가 
한 두
가지 묘기를 보여드릴께요. 하디씨."
"음, 그러게. 하지만 해미쉬,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는게 어떻겠나?"
"엄마, 엄마, 엄마."
이때 흥분에 찬 비명과  함께 라나가 바닥으로  주르르 내려왔다. 마조리가  허리를 숙이고  
팔을 벌
렸고, 다음 순간 딸의 헝클어진 검은 고수머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몸을 펴고 일어 
난 그
녀의 눈이 방을 가로질러 해미쉬와 마주쳤다.   그들의 눈이 서로 얽혔다.   그는 헤아릴 수 
없이 
깊은 애정을 담아 그녀를 바라봤다.
  잠시 그녀는 사랑 받고 보호받고 있음을 피부로  느꼈다.  하지만  상식이 시계추처럼 돌
아왔다.  
사랑은 환상이다. 그리고 보호? 해미쉬는 그녀를 고사하고 자기 한몸도 건사할 수 없다.  그
의 눈
에 빛나는 저것은 사랑은 아니라, 주주  및 채권자와의 대결을 도울 수 있는  강한  여자에 
대한 갈
망과 인정받고픈 열망이다.
그녀는 순순히 해미쉬의 품에 안겨 미소지으며 아내역할을 했다.
"놀랐어요? 저택에 들어가 봤어요? 마음에 들어요? 집에 오는 길에 정원을 구경했어요?"
"믿을 수 없을 정도요. 당신은 마법의 손을 가진게 틀림없어요."
해미쉬는 기쁨보다 죄책감 어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당신 마음에 들어요?"
해미쉬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연스럽게 식탁에 앉았다.  평생 여기에서  살아온 듯한 태도였
다.  그
는 엄마가 만든 햄 샌드위치를 맥주와 곁들여 깨끗하게 먹어  치웠다.  아빠와 그는 허물없
이 어울
렸다.   해미쉬가 가족들과 잘 어울린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그녀는 진정으로 그래본 적이 없는데.
"어서 먹어요."
해미쉬가 잔소리를 했다.
"이건 명령이에요, 아내여. 당신은 하루 종일 굶고 다녔을 걸, 그렇지요?"
아내라. 정말 이상해!.
  마조리는 너무 피곤했기 때문에 라나 목욕 시키는 일을 건너뛰었다.  그리고 저택의 낡은  
난방
시설이 수리될 때 까지 아이가 이곳에 묵어야 한다는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엄마가 라나를 재우는 동안 마조리는 식탁에 앉아 두 남자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녀는 불쌍하고 가난한 주주들에게 안전하게 격리된 듯한 기분에 젖어 위스키를 마셨다.
아빠는 최근의 문제를 해미쉬에게 털어 놓았다.
"여우들이 밤에 오리새끼를 잡아먹고 있어. 멍청한  오리들은 호숫가 모래턱의 버드나무 가
지 아래
에서 잠을 잔다네. 보호 대책을 강구해야 해. 내꿈은 호수 중간에 섬을 하나 만들고  버드나
무들을 
심는 것이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그 동안 그 교활한 여우 놈들이 설쳐댈 거야. 패디를 
거기
에 둬보기도 했지만 아무 차이가 없더군. 그래서  이 놈이 오리들 곁이 아니라 여기에 있는  
거라
네."
"보트하우스 주위에 파손된 목재  방파제로 뗏목을 만들어서 호수  중간에 밀어 놓으면 오
리들도 
곧 거기에서 자게 될겁니다.  "
해미쉬가 제안했다.
곧 지루해진 그녀는 마음속으로 묘안을 강구하기 사작했다.
어떻게 하면 은행과 주주들을 그녀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 총회까지 식탁 밑에서 
그녀의 
손을 잡아 그의 남성에 대고 누르는 것을 느꼈다.  그의 것은 청바지 밑에서 단단하게 부풀
어올랐
다.
부끄러움에 고개를 든 그녀는 엄마가 차를 만드는 모습을 보았다.
"아빠는 어디 가셨어요?"
그녀가 상기된 목소리로 물었다.
"패디를 데리고 오리를 돌보러 가셨다.  난 차 생각이 없는데, 넌 어떠니?"
"넌 어떠니?"
"됐어요."
"그럼, 라나에게 인사하고 갑시다. 난 당신이 보고 싶었어요."
해미쉬가 그녀의 손을 더 힘차게 누르며 속삭였다.
"난 당신을 간절하게 원하오."
"나도 그래요."
그녀는 자동적으로 대답한 다음 그 말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아, 해미쉬, 네, 정말이에요."
  그날 밤 마조리 안에서 뭔가가 일어났다. 일부는  그녀의 육체적인 각성이요, 관능과 만족
의 울
타리의 확대였다. 또한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신회와  일체감이 자리잡았다.  처음으로 한치 
한치
의 살이, 신체 각 부위가 특별한 기쁨의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그이상의, 더 많은 탐색의 
가능성
을 영원히 약속 받았다.   그녀는 여성을 경외하는 남자로부터  사랑받고 있음을 깨달았다.  
해미쉬
에게 남성적인 오만함이나 여성에 대한 무시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그저 단순하고 완
전하게, 
그리고 부드럽게 그녀의 육체를 사랑하고 경외했다.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이 존재했다.  두 
사람
이 공유한 것은 아주 예외적인 것이며, 이 일체감과 인연의  선물의 소중히 아끼고 잘 키워 
나가리
란 상호간의 지적인 이해가 그것이었다.  그녀는 해미쉬와, 그리고 그가 창조한 기쁨과 하나
가 되
었다.  자정에 그가 그녀를 다시 깨웠다.  그녀는 온몸에 와 닿는  그의 맨 살의 감촉에 전
율했지
만 너무 피곤했다.  지친 나머지 움직일  힘조차 없었다.  그녀는 반 혼수 상태로  나른하게 
누워 
있었지만 그녀의 모든 맥박과 신경은 다가오는 감각을 붙잡기 위해 몸부림쳤다.
  다시 한번 그가 혀와 손으로 조심스럽게  어루만지고 느끼고 수도 없을 숨겨진  성감대를 
찾아내
며 그녀에게 구해하는 동안, 그녀의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욕망의 용암이 점점 더 뜨겁고 
격렬하
게 들썩거리고 속구쳤다.  가라앉았다.  그리고 마침내 자체의 참을 수  없는 압력으로 지상 
박으
로 분출한 화산처럼 그녀 역시 절정으로 향해 달려가 비명을 지르고 환희의 경련에 몸을 떨
었다.
"해미쉬, 아 내 사랑, 당신을 사랑해요."
그녀는 흐느겼다.   하지만 그녀의 아주 작은 부분은 여전히 뒤로  물러서 고고하게 버텼다. 
그녀
는 가장 깊은 속마음까지 터놓을 수 없었다.  파멸로 가는 길이었으므로.
  
    56
  해미쉬는 반듯하게 누워 잠들어 있었다.  그의 얼굴이 약간 열린 창문 쪽으로 향했고  아
름답고 
부끄러움을 모르고 달이 그이 육체를 탐색하고 향유하고 모든  근육과 관절을 따라 그리며 
그 선
정적인 빛으로 그를 물들였다.  그의 쭉 뻗은 콧날, 단호한  어깨선, 두드러진 광대뼈와  높
은 이마
는 힘과 탄력성을 보여줬지만 해미쉬는 인간에게 등을 돌렸다.  대신 그의 적응력과 용기는  
어느 
이름 모를 산에 낭비되었다.  그가 얼마나 많은 전투를 홀로 치르고 의외의 승리를  거두었
는지는 
오직 신만이 아실 거야. 지금 마조리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그의 자신의 핏줄을 부끄러워했지만, 그것은 고스란히 그의 비범한 힘 속에 흐르고  있었다.  
그의 
재능과 순응성은 일본인 어머니의 유전이었다.  순간 머리를 치는 어떤 생각에 그녀는 벌떡  
일어
나 앉았다.   그리고 해미쉬를 흔들어 깨웠다.
"해미쉬, 내 말을 들어봐요. 당신이 그걸 숨길 수 없다면 과시 해야해요."
그녀가 다급하게 말했다.
"마조리, 왜 안자요?"
그가 잠에 취해 중얼거리며 침대 옆에 시계를 확인했다.
"맙소사! 새벽 두시잖아. 한밤중에 웬 봉창 두들기는 소리요?"
"해미쉬, 당신 어머니에 대해 말해 주세요. 이건 중요한 일이에요.  "
그는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갓 결혼했으니까 당신 변덕을 받아 주겠지만 영원히 이런 상태가  계속되리라고 기
대하지
는 마세요. 아, 난 어머니를 아주  기억하고 있소. 그분은 아주 다정하고  고상하고  나무랄 
데 없는 
몸가짐을 지니셨어요.  영리하고 실수가 없는 데다가 항상 여성적이었을 뿐 아니라 ......"
"그리고 당신 아버님은 처남과 동업을 하셨어요."
마조리가 초조하게 끼여들었다.
그는 깜짝 놀랐다.
"사업에 대한 대화였소?"
"네, 당연하죠. 그게 아니면  뭐겠어요? 당신 외가댁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세요.  
아주 중
요한 일이에요.  해미쉬."
"난 그런 줄도 모르고...... 그게 긴박한 일인가요? 꼭 알아야 할만큼?"
"네, 우리는 살아남아야 해요, 해미쉬."
"우리 아버지는 인버.  아시안 무역회사를 외삼촌  요시 토하라의 토하라  무역회사와 합병
시켰어
요......"
"그리고 토하라는 어디에 계세요?"
"토하라 상이오."
그는 정정해 주었다.
"그분과 당신 몫인 이윤의 절반은  어디에 있어요?  당신 아버지가  힘들여 일하신 결과가 
어떻게 
된 거죠? 그들이 당신에게 빚을 졌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어요?
"잠깐만.'
그는 투덜거리며 일어나 앉았다.
"밤새도록 고문을 견디려면 우선 커피가 좀 먹읍시다.  "
"찬성!"
그녀는 고개를 숙여 그의 눈과 이마와 사랑스런  뺨에 키스를 퍼부었다.  그가 그녀를 잡으
려 하
자, 그녀는 소리를 지르며 침대 밖으로 뛰어나갔다.  5분후, 그들은  침대에 나란히  앉아서 
커피에 
비스킷을 적셔 먹으며 구름이 달을 지나는 모습을 구경했다.  마조리는 해미쉬와 한몸이 된  
듯한 
묘한 감정에 빠졌다.  그는 사랑스럽고 충성스러우며 섹시한 남자였다.  그를 처음에 만났다
면 어
떻게 되었을까?
"난 스코틀랜드로 온 후로 삼촌 소식을 듣지 못했소."
해미쉬가 입을 열었다.
"내가 알아본 바로, 그는 아주 부자이고 큰  권력을 가졌어요. 게다가 18년 동안이나 당신의 
이윤
을 떼어먹었어요.  물론 그걸 돌려주지 않을거요. 그는 오리발을 내밀겠지만, 내심 당신에게 
진 빚
을 잘 알고 계실 테니 우리는 그의 죄책감을 이용해야 해요.  더 자세히 말해 보세요."
"베아트리스 숙모님이 사람을 시켜 토하라상에게 신탁금을  상환할 돈을 받아내려 하셨지만 
외삼
촌은 만만치 않으셔요. 토하라상은 카메론 누이에게 무례했었다는 이유로 일체의 거래를 거
절하셨
고 우리 아버지가 파산 직전에 죽었다고 주장했어요.  당연히 그분이  모든 회계장부를  장
악했죠. 
융자 상환시기가 닥쳐  오자, 베아트리스 숙모님은  은행에서 글렌티란 주식을  사들였어요.  
그분은 
막강한 힘을 가졌기 때문에 다른 혈족 주주들은 그분의 지도에 다라요.  "
'베아트리스 ? 당신 가문에 베아트리스 카메론이 몇 명이나 있어요.  ?"
"내가 알기론 딱 한분이오. 그분은 살짝 맛이 간 갑부예요.  "
"까마귀처럼 구슬같은 눈과 반지를 잔뜩 낀 참새같은 체구인 가요?"
"비슷해요.  "
"그분 정신은 말짱해요.  그런데 숙모님이 주식을 얼마만큼 가지고 계세요?"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모두 부질없어요.  여보, 사실은 지난 14일에 총회가 있었는데......"
그는 면목없는 얼굴로 말했다.
"아니예요.  당신이 없는 동안 베아트리스  카메론이 오셨고, 내가 시간을  달라고 통사정한 
결과 
회의를 9월 13일로 연기했어요.  "
마조리는 좀처럼  흥분을 자제할 수 없었다.
"해미쉬, 내말을 들어 보세요.  상황을 바로 잡을 기회가  생겼어요.  당신의 문제는, 당신이 
가문
의 일원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있어요.  당신의 동양계 핏줄을 숨길  수 없다면, 그걸 내놓
고 과
시해야 해요.  호랑이 들어가야 범의 새끼를 잡는 다잖아요......"
"숨을 좀 돌립시다, 마조리. 당신은 꼭 장모님처럼 말하는군."
"해미쉬, 우리는 이길 거예요.  "
그녀는 그의 눈이 고통으로 가늘어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기고 난 다음에는? 우리에게는 버틸 만한 자금이 없잖아요.  "
"내 재산을 전부 글렌티란에 쏟아 부을 거예요.  그리고 내가  거래하던 은행이  뒷돈을 대
기로 약
속했고, 남은 출판사 주식을 현금으로 받아 낼 거예요.  죠도  조와 주기로 했어요.  어떻게
든 사업 
자금이 마련될 거예요.  "
"날 위해서 그 모든 일을 하겠단 말이오?"
그는 못 믿겠다는 듯 하고 물었다.
그녀의 죄책감이 솟아 올랐다.
"우리는 결혼했잖아요? 그러니 우리 두 사람을 위해서예요.  아,  우리는 언젠가 큰 부자가 
될 거
예요.  "
"그게 원하는 전부요?"
"아니에요, 전부는 아니에요.  해미쉬, 당신이 승리하길 바래요."
오랜 시간이 흐른후, 해미쉬는 잠들었지만 마조리는 가만히 누워 작전 계획을 짰다.  열쇠는 
싱가
폴에 있어. 그 토하라를 설득시켜 우리를 돕도록 해야 해. 뭐, 그분을 부추길 방법이야 무궁
무진하
지. 글렌티란은 확실한 사업 전망이 보이기 때문에 글렌티란를 간절히 원할테니, 토하라상도 
값만 
맞으면 구미가 당길거야. 하지만 어떻게 그를 끌어들인다? 나는 항상 힘과 거래  경험에 의
존했지
만, 일본어를 할 수 없으니 한수 접고 들어가는 꼴이야.
해미쉬는 의지가 못 돼. 사업이라는 정글에서 그는 아기 사슴보다 더 연약한 존재야. 일본어
를 하
는 나의 편이 있어야 해. 그래, 죠가 방법을 마련해 줄 거야.
그녀가 해미쉬의 등에 달라붙자다, 그는 잠결에 한 손을 뒤로  더듬어 그녀의 손을 잡고 남
성에 대
고 눌렀다.
"그만 주무세요. 난 생각할 게 있어요.  "
그녀가 속삭였다.
토하라 상에게 글렌티란 위스키의 극동 독점 판매권을 주면 어떨까? 아니면 그와 동업 계약
을 맺
고 증류소의 전 생산품 중 절반을  준다면? 그의 돈으로 배당금을 지급하고 회사를  확장하
고..... 그
리고 ......
마침내 그녀는 잠들었다.

  57
  구름이 잔뜩 낀 후덥지근하고 숨막이는 정오였다.  하지만 토라하의 중역 열 사람은 값비
싼  여
름 양복을 빠짐없이 갖춰 입고 싱가폴의  명소 레이플 호텔바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맥주를 
마시며 
잡담하고 있었다.  그 위로 거대한 선충기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검은 피부의 웨
이터들
이 흰 상하의 붉은 장식 허리띠를 매고  페즈 모자를 쓴 차림으로  음료수 쟁반를  날랐다.  
'페일 
핸드 아이러브'의 피아노 연자가 배경으로 깔렸다.
마조리는'사자'의 도시에 실망했다.  이국적이고 동양적인 것을 기대했던  바람과 달리 호화 
고층 
호텔들과 상점들, 홀리헉 크레즌트나 스프링필드 레인 같은 이름의 중심가는 그녀의 짜증을  
유발 
시켰다.  심지어 이 유명한 호텔도 식민지 시대의 원형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었다. 웃기기도 
영국
인들은 이 먼 이국 땅에 그 족적을 확연하게 남긴 것이다.  그녀는 아직 푸른  잔디에서 펼
쳐지는  
크리켓 게임을 못했지만 곧 보게 되리란 것을 확신했다.
  구 시가를 구경했더라면 사정이 달라졌겠지만, 주최측은  그들을 호화스런 나이트 클럽으
로만 끌
고 다녔고 대부분의 사업 모임은 그림처럼  아름다운 항구가 내다  보이는, 현대적인  고층 
건물의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다.  그들이 지금 여기에서  음료수를 마시는 이유는, 전적으로  분위기 
있는 
곳을 보고 싶다는 그녀의 간청에 대한 부응이었지만 그녀의 원뜻과 거리가 먼 곳이었다.
요시 토하라느  해미쉬보다 작고 살색도 더 짙었지만, 그들은 부자지간처럼 보였다.  해미쉬
는 처
음에 더듬거렸지만 점점 가속이  붙어 나중에는  유년기의  언어를 꽤 유창하게  구사했다.   
그리고 
그들은 마조리를 존중하여 가끔 영어로 말했다.   지난 사흘동안 마조리는 거래를 성사시키
고  픈 
열망을 어떻게든 전달하려고 노력했지만 해미쉬를 거쳐 들어오는 반응은 속 상할 만큼 미미
했다.
토하라 상은 성공의 규모를 축소하고  이윤을 내지 못했었다고 주장하는  한편 확장 계획에 
굼뜬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해미쉬의 향후 권리마저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한 가지 
일치점
에 도달했다.  이제 때가 됐다.  그들은 외삼촌의 선의와 관리 능력을 원했다.   그 분을 한
편으로 
끌어들이되 만전의 경계태세를 취하는 조치가 필요했다.
죠사 모자에서 토끼를 꺼내듯 만들어낸 그  조치 중의 일부가 싱가폴에 발효되기  직전이었
다.   그 
유명한 불가사의가 과연 실전에 통할까? 마조리는 그 확인을 기다릴 수 없었다.  5일전  마
조리는 
죠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의 계획과 함께 일본어를 못하는  악조건을 장황하게 설명하며 그
의 협력
을 부탁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죠는 적당한 인물을 찾아냈다.   마델라인 로빈슨 영국인
과 일
본인의 혼혈아였고 극동 무역을 전문으로 하는 계약 및 사업 분야의 신진 변호사였다.   런
던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았지만 2개국어에 능통한 그녀는, 마조리가 토하라와  동업으로 발족할  계
획인 새 
위스키 수출 회사의 벌률 및 영업 고문으로 글렌티란의 이익을 대표하기도 했다.
"놀라지 마."
죠가 경악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유능하다는 점을 명심해요.  그리고 마조리,  제발 이번만은 날 믿어요.  
"
참 이상한 말도 다 있지 그녀는 항상 그를 믿어 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토하라의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마델라인 로빈슨 양을 보
는 순
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렇게 아름다운  생명체가 지성을 갖출 수 있을까? 저렇게  완전
무결한 
맵시의 소유자가 거울을 보는 것 이외에  다른일을 할  시간이 있을까? 만델라인이 편안한 
자세로 
좌중에 소개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햇빛이 그녀의 섬세한 윤곽을 샅샅이 비췄다.  그녀는 36
기간의 
여행이 아니라 방금 패션소 무대에서 내려온  사람처럼 보였다.  심지어 초하라 상의  추론
적이고 
빈틈없는 눈초리에 엉큼한 기미가 엿보일 정도였다.  어림없을걸.  마조리는 속으로 웃었다.  
그녀
의 눈에 집요하고 만만찮게 보이는 로빈슨  양이 남자들에게 다르게 보인다는 점이  이상했
다.   마
조리는 그녀를 글렌티란의 '동서 관계 보좌관'으로  소개했다.  하지만 '감시견'이라는 묘사
가 더 
정확했다.  그들은 화기애애하게 회의실로 향했다.  해미쉬는 로빈슨양의  팔을 잡았지만 그
의 걸
음새가 묘하게 딱딱했다.  그제야 마조리는 그가 분노를  겨우 참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남
자들은 
로빈슨양이  앉을 자리를 놓고 엉거주춤하게 서서 해미쉬의 눈치를 봤고, 그 장본인은 마조
리에게 
당황과 수치가 담긴 시선을 던졌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로빈슨 양에게 말했다.
"마델라인, 내 옆에 앉는 편이 좋겠어요.  신사 여러분,  저는 일본어를 못하기 때문에 여러
분과 직
접 협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 단점을 보충하기 위해 마델라인 로빈슨 양을 여기 모셔
왔습니
다.  마델라인, 통역을 부탁해요.  "
"그럴 필요없소."
토하라 상은 불편한 내색을 보이며 무뚝뚝하게 중얼 거렸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제가 우리의 현재 상황과  계획을 간략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여러분에
게 명확
하지 못한 부분은 로빈슨양이 통역해  드릴 겁니다.  우리는 본국에서 큰  위기에 직면하고 
있어요.  
카메론 일가는 해미쉬를 증류소 경영에서 밀어내려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항상 스코틀랜
드 인의 
유산으로 여겨졌던 것을 반 일본인이 갖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해미쉬는 맞서 싸우고 있
고, 저
는 그와 운명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저는 백 만 파운드의 재산을  그에게 투자했
습니다.  
우리가 승리한다면 해미쉬는 공장과 생산. 관리 및 품질 관리에  이르는 모든 분야를  책임
지고 저
는 영업을 맞게 될겁니다.  우리는  글렌티란 위스키의 동양 수출회사를 설립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여러분은 한가족이고, 우리는 가족 내에서 사업을 벌이고 싶었지만......"
그녀는 못다한 말을 청중의 상상에 맡겼다.
  "여러분이 글렌티란에 3백만 달러를 투자하신다면, 그 대가로 글렌너드는 토하라 상과 공
동으로 
독립된 동양 무역 회사를 설립할 것입니다.  저는 글렌너드보다 이  수출 회사에 돈을 내고 
사주의 
50%를 갖겠습니다.  그리고 토하라 상의 투자금은  글렌너드가 동양에 원액 위스키를 수출
할  때 
까지 소요되는 자금수입의 기간동안 회사의 운영 자금으로 소요될 것입니다.  "
그녀는 글렌너드 12년산 고급 위스키의 생산 및 영업으로 발생될  이익과 함께, 그  과정에
서 현재 
보유하고 있는 5년산 싼 위스키를 판촉 함으로써 올릴 단기 이익 수치까지 낱낱이 거론하며 
말을 
맺었다.
그녀의 발표가 끝나자 회의가 돌연 중단되었다.  그녀가 토하라 상과 임원들에게 붙인 별명
인, 톰 
코블리 삼촌과 그 일당들은 해미쉬와  사적인 모임을 갖고 싶어했다.  토하라  상은 미안한  
표정으
로 여성들을 엘리베이터까지 안내했다.
"해미쉬는 어덟 살 때 이곳을 떠나서 편지도 한 장  보내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해요.  우리
는 그가 
동양에 등를 돌렸다고 생각했소. 그가 일본인 핏줄을 부끄러워한다고 단정했던 거요.  "그가 
사별
한 부모님에 대한 불행한 기억에 등을 돌렸을지는 모르지만."
마조리는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부친의 사업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의  생득 권이에요. 그리고 해미쉬가 
먼 외
국 땅의 적대감 어린 환경에서  홀로 두려워하고 있을 때 당신은  어디에 계셨나요, 토하라 
상?"
적시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몸둘바 몰라 하는 톰 코블리  삼촌을 마겨 두고 마조리는 
로빈슨 
양과 안으로 들어갔다.
  
    58
  "당신은 날 부 끄럽게 했어요.  어떻게 그렇게 행동할 수  가 있소? 그때  당신이 자신이 
얼굴을 
봤어야 했는데. 당신은 아부 험악하고 적대적이었고, 너무......"
해미쉬가 그녀에게 돌아섰고, 그녀는 그 눈에 담기 호소를 정면으로  보았다.  그녀 역시 첫 
번째 
부부싸움에 가슴 아팠다.
"너무 뭐요?"
그녀가 담담하게 물었다.
"너무 승리에만 집착해 있었소. 난 그런 사람을  싫어해요.  "
마조리는 속으로 눈물을 흘렸지만 지금은 약해질 때가 아니었다.
"당신이 날 대화에 끼어 주지 않았잖아요.  당신은 진행 상황에  대해 주거나 말해 주지 않
았어요.  
"
"그게 일본식에요.  "
"아내가 평생 피땀 흘려 모은 돈을 남편의 사업에 투자하는  것도 일본식인가요" 난 돌아가
는 형편
을 알고 싶어요. 왜 그러면 안되나요? 난 그 갑을  치르고 있는데요.  게다가 이건 내 생각
이었고 
당신이 일을 유리하게 끌어내지 못할까 봐 두려웠어요. "
"고맙구려! 그 마음을 똑똑히 보여줘서."
"미안해요, 해미쉬. 하지만 이 거래에  당신 목숨이 달렸는데도 가끔  당신은 별로 상관하지 
않는 
눈치예요.  "
"당신이 그 '감시견'을 불러들이는  통에 우리가 그들을 불신한  다는  게 노골적으로 드러
났어요.   
"
"잘됐네요! 나는 그들을 믿지 않아요.  18년 동안 당신은 한장의  대차대조표도, 한푼의  이
익도 못 
받았잖아요.  하지만 이제부터 마델라인이 그들을 감시할 거예요.   그녀는 굉장히 유능하니
까 그
들이 다시는 당신을 속이지 못할 거예요.  "
"그들은 가족이야. 토하라 상은 거의 눈물을 글썽였어."
"말은 쉽지만 행동은 어려운 법이에요.  그들이 당신들을 이  곤란에서 구해낼 만큼 충분히 
마음을 
쓰고 있는지 한번 보자고요. 우리는 자선을 구하는 게 아니에요.   그들도 이 거래에서 충분
한 이
윤을 뽑아낼 거예요.  믿음은 시간에 걸친 행동 위에서 싹트는 거예요.  그들이 신뢰를 받고 
싶다
면 지금부터 믿을 만한 일을 하라고 하세요. 난 당신을 위해 그것을 보여줄 거예요.
그것도 무료로!"
"마조리, 당신은 어디서 자랐기에 이렇게 강하지?"
"거칠고 모진, 사회라는 학교에서요."
"마조리, 난 당신과 싸울 수 없어요. 당신을 사랑하오."
그는 그녀를 다정하게 껴안았다. 마조리는  마음을 굳게 먹지 않으며  금방이라도 허물러질 
것 같았
다.  싱가폴에서 안전하게 빠져나간 다음에  허물어질 것 같았다. 싱가폴에서  안전하게 빠
져나간 
다음에 허물어질 시간은 많아. 지금은 이성이 필요해.
해미쉬는 여전히 위로를 원했다.
"마조리,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때에 대하여 충분히  생각해 봤어요?  베아트리스 숙모님
이 글렌
티란에 주식을 팔면 어떻게 할 거요? 당신은 이미 발을 깊이 들여 놓았는데, 이  여행에 로
빈슨이
란 여자의 수수료까지...... 왜 이런 고생을 자처하는 거요?"
"우리는 글렌티란과 막서 싸우고 승리를 거둘 테니까요."
"때때로 난 내 행운이 믿어지지  않아요.  내가 어떻게 당신처럼 날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게 되
었을까?  그리고 실패할 경우, 내가 당신에게 이 사랑을 무슨 수로 보상할 수 있겠소?"
"우리는 실패하지 않을 거예요.  나를 믿으세요.  "
잠시 그들은 창가에 나란히 서서  어두워져가는 만을 바라보았다.   불빛 하나가  반짝였고 
그 뒤를 
따라 또 하나가 켜졌다.  곧이어 모든 삼판에 불이 들어왔고 항구는 불야성을 이뤘다.
"너무 아름다워."
해미쉬는 그녀를 꼭 껴안으며 중얼 거렸다.
그러나 마조리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녀의 눈에는 로버트의 패배한 얼굴이  어른 거렸다.  
 이
건 시작에 불과해, 로버트. 지금부터 당신과 나의 대결이  시작된 거야. 라나는 생득권을 되
찾게 되
고, 당신은 우리 모녀를 버린 그 날을 후회하게 될거야. 돌연한 얘기에 그녀는 몸서리를  쳤
다.
"왜 그래요, 여보? 무슨 문제라도 있소?"
해미쉬가 입술을 그녀의 것에 대고 비통함을 걷어냈다.
"해미쉬, 난 사랑받고 싶어요.  제발 날 안아 주세요.  나에겐 당신이 필요해요.  "
너무 강한 남자야. 그는 그녀를 번쩍 안아 들고 침대로 데려갔다.  그녀는 진정으로 그를 원
했다.
  라나가 엄마를 그리워하는 모습에 리즈의 가슴이  아팠다.  그녀는 마조리와 라나 사이의  
강한 
유대감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라나가  손녀가 아니라 친딸이었다면  난 저  아이를 
키웠을
까?"
"엄마는 어디 있어? 난 엄마가 보고 싶어?"
라나는 두려움에 질린 눈으로 리즈를 보며 칭얼 거렸다.
"말래줬잖니. 엄마는 싱가폴에 있어. 내가 지구본에서  그곳을 보여줬지? 할아버지가 도시의 
사진
을 보여주지 않았니? 엄마는 금방 집에  오실 거야. 그리고 네가 착하게  선물을 사 오실거
야."
"그런데 왜 전화도 안해? 엄마는 항상 나에게 전화했는데."
"곧 전화가 올거야. 하지만 워낙  멀어서 돈이 많이 드나보지."
이제 그만 울고 착하게 굴어야지."
"난 울지 않았어. 울지 않았단 말야."
라나는 그 말이 거짓임을  알았다.  두뺨을 타고 계속  흘러내리고 짭짭한 눈물 맛을  느낄  
수 있었
기 때문이다.  손으로 입을 막고 눈까풀을  힘차게 감았다가 뜨자 그림책이 또렷이 보였다.   
난 울
기에는 너무 컸어. 네살반이나 먹었으니 벌써 다 자란 아이야.
"기운을 내렴."
할머니가 말했다.
"안젤라가 오후에 놀러올거야. 어때 좋지?"
라나는 안젤라를 굉장히 싫어했지만 그녀는 겁많은  '아기' 였다.  지금으로선 유일한 놀이 
상대처
럼 보였다.
"언제 오는데?"
"점심 먹고나서. 멀지 않았단다."
라나가 인지할 수 있는  시간은 딱 두  종류였다. 현재, 아니면 까마득한  과거나 미래였다.  
주로 지
금, 점심인 양고기와 강낭콩, 그레이비 소스가 곁들여진 매쉬드 포테이드를 먹고 싶지  않았
다.  지
난 2개월 동안 포동포동한 햐얀  양들이 천진난만하게 들판을 뛰어다녔고 모두들  예쁘다고 
칭찬해 
놓고 지금은 그 고기를 먹다니. 어른들은 정말 웃겨. 라나는 어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
만 엄마는  예외였다.  엄마는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아름다웠고, 그 초록 눈과 빨간 머
리카락
만 생각해도 라나는 울고 싶었다.
  안젤라는 토끼처럼 생겼다.   거의 항상 핏발이 서 있느  눈, 핑크빛 살결, 흰색에 가까운 
머리
털 등. 거미와 딱정벌레를 비롯한 기어다니는 모든 생명체를 무서워했고 아무것도  하고 싶
어하지 
않았기 때문에 별로 재미없는 상대였다. 그녀는  라나보다 생일이 빠른데도  훨씬 작고  바
싹 말랐
다.
그녀의 할머니인 로즈 부인은 할머니와 차를  마시며 카드놀이를 즐겼다.  소위 '차시간'에 
할머니
들은 맥주 한두 잔과 호두를,  아이들은 레모네이드와 케이크를 들 겼다.   가끔 할아버지도 
한몫 
끼었지만, 로즈 부인과 마음이 맞지 않기 때문에 채소밭에서 일을 하는 게 보통 이었다.
오늘 안젤라는 제 엄마가 짜 줬다는 핑크색 드레스를 입었다.
치맛단에 레이스가 주렁주렁 달린 역겨운 것이었다.  그녀는 그 길고 하얀 손가락으로 계속  
치마 
주름을 폈다. 움직일 때마다 소리나는 얇은 금속 팔찌를 끼고 있었다.
  안젤라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으스대기를 좋아했지만, 라나는 그런  그녀의  코를 납작
하게 만
드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스냅 카드놀이에서 안젤라는 라나를 못당했다.
잠시후 라나가 소리질었다.
"스냅!스냅!스냅!"
그리고 까르르르 웃었다.
"라나, 너무 시끄럽게 굴지 말아라. 안젤라는 조용한데 왜 너만 소리를 지르니?"
할머니가 부엌쪽에서 소리쳤다.  "
"그거야 얘가 한번도 못 이겼으니까 그렇지요."
라나가 말대꾸를 했다.  안젤라의 눈에 질투심이 어렸다.
한쪽만 계속 이기는 게임에 두 소녀는 지루해졌다.
"산책하러 나갈래? 할아버지가 뭘 하시나 보러 가자."
라나가 제안했다.
"그네를 타자. 네가 날 밀어 줘."
"좋아."
"둘다 코트를 입어야 한다.  "
할머니가 소리쳤다.  안젤라의 옷은 하얀  털이 복슬복슬 나 있었지만 너무  작았기 때문에  
우스꽝
스럽게 보였다.
"아이들이 너무 빨리 자라요."
로즈 부인이 불평했다.
"글쎄 말이에요.  "
라나는 식기실 아래쪽에 박힌 못에서 겉옷을 내려 얼른 입고,  로즈 부인이 안젤라의 옷 단
추를 채
워 주는 모습을 초조하게 지켜 보았다.
"옷을 더럽히지 말아라."
로즈부인은 달려나가는 아이들의 등뒤에 대로 말했다.
문이 닫혔고, 두 소녀는 안개에 감싸인 호수 쪽을 바로 보았다.   톡톡 첫 빗방울과 함께 언 
땅을 
갈구는 할아버지의 삽질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 왔다.  순간 그 소리가 멈췄다. 그리고 할
아버지
가 옥수수 부대를 이고 터벅터벅 걸어왔다.  숨은 하얀 구름이 되고, 뺨과 코는  추위로 빨
개졌다.  
멀리서 패디가 짖었다.
"오리 먹이를 주러 가는 길인데 너희들도 같이 갈 테냐?"
"아뇨, 저기는 어두워졌잖아요."
안젤라가 투털거렸다.
라나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럼 그네를 타자."
  두 소녀는 쥐 죽은 듯 가만히 할아버지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오
리들이 
작고 흰 덩어리가 되어 우르르 그에게 몰려갔다.
"저 놈들이 옥수수 한 자루를 다 먹니?"
"그럼. 얼마나 탐욕스러운데."
"하디 씨가 일요일 정찬 거리로 오리를 한 마리 줄지 모른다고 할머니가 그러셨어."
라나는 숨을 멈추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설마 할아버지가!  아냐, 그럴 리  없어. 절대로 
그러지 
못하게 할 거야.
"아냐. 할어버지는 너희에게 오리를 주지 않으실 거야. 우리도  안 먹는 걸. 저건 우리의 애
완 동물
이야. 그리고 할아버지가 아니라 우리아빠 오리야."
안젤라는 새침하게 그네 의자의 먼지를 떨고 사뿐하게 앉았다.
"밀어"
라나는 그녀의 소심한 성격을 감안해서 살살 밀었다.
"아까 너희 아빠라고 했니? 너에게는  아빠가  없어. 난 우리 엄마가  아빠에게  하는 말을 
들었어. 
이곳으로 입양된 너는 행운아래."
"나도 입양됐다는 것을 알아. 그래도 나에게는 엄마와 아빠가 있어."
'입양'이란 단어는 그녀에게 안정감과 우월감을 주는 말에 지나지 않았다.
"넌 입양의 뜻도 모르는 구나."
"아냐, 난 알아."
"한번 말해 봐."
아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그 뜻을 말해줄께. 그건 너에게 부모님이 없어서 고아원에 버려졌다는 뜻이야.  넌 오
랬동안 
고아원에 있었을 거야. 난 알아. 왜냐하면 엄마가 낡은 옷을  그곳에 갖다 주셨을  때, 거기 
아이들
은 돌봐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가진게 없다고 하셨어. 넌  너희 진짜  엄마와 아
빠를 본 
적이 없지?"
라나는 넋이 빠진 듯 그네를 밀었다.  그녀의 시선은 호수에 구원이 있는  양 그곳에 못 박
혔다.
"해미쉬가 나의 진짜 아빠라고 했어."
"바보같이! 해미쉬 아저씨가 네 진자 아빠라면,  왜 네 이름이 라나 카메론이 아니니?  너히 
엄마도 
네 진짜 엄마가 아냐. 그저 널 돌봐 주는 사람이야."
라나는 있는 힘껏 그네를 밀기 시작했다.
"멈춰! 너무 높아!"
안젤라가 비명을 질렀다.
그래도 라나는 온 힘을 다해 밀었다.
안젤라가 목청껏 비명을 질렀다.
그네 줄을 잡은 그녀의 손가락 관절이 하얗게 드러났다.
빠르게 뒤로 돌아온 그네를  미쳐 피하지 못한  라나는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벌떡 일어나  
팔을 쭉 
내밀고 앞으로 돌진한 힘으로 그네를 밀었다.
  안젤라가 고막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그네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숨 넘어가게 
울부
짖으며 축축한 진흙 위를 굴렀다.
처음에 그네는 라나의 머리위를 스쳤지만, 그녀가 두려움과 분노에  젖어  엉거주춤 일어나
는 바람
에 다시 돌아온 그네에 이마를 정통으로 맞았다.
그녀의 우는소리에 할머니가 별채에서 달려나왔다.
"이런, 우리 불쌍한 것, 무슨 일이니?'
로즈 부인이 손녀딸을 품에 안고 시퍼렇게 혹이 난 이마를 살폈다.
"쟤가 그네를 너무 높게 밀어서 내가 떨어졌어요.  난 다시는 여기 안 올래요."
안젤라는 헉헉거리며 고자질했다.
라나는 신발만 뚫어지게 주시했다.  앞으로 다가올 처벌보다 더  무서운 두려움이 마음속에 
도사렸
다.  엄마는 나의 진짜 엄마가 아니라니. 그녀는 당황스러웠다. 그럼,  누가 진짜 엄마일까? 
왜 나
를 버렸을까? 닭똥 같은 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할머니는 벌로 차도 주지 않고 라나를 방에 머물도록 명했다.
그녀는 살그머니 방에서 나와 층계참에 서서 로즈 부인의 말을 들었다.
"당신은 저 버려진 아이를 데려오  날, 화를 불러들인 거예요.  저런  아이들의 진짜 실체를 
누가 
알아요.  다들 이유가 있어서 버려진 거예요.  부모들이나  저 아디들에게  결점이 있는 게 
분명하
다고요.  보통 사람들이 왜 제 자식을 버리겠어요? 뭔가 잘못된  게  있으니까 그런 거라구
요.  당
신은 앞으로 저 아이 때문에 고생깨나 할걸요. 내말을 새겨들어요.  "
라나는 그 의미를 정확히 몰랐지만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할머니가 손녀를 옹호하며  반
반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발뒤꿈치를 들고 방으로  돌아와 문을  닫았다.   방은 안전하고 전과  다름없이 
보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곳은 당연히 그녀가 누려야 될 것이  아니라 엄마의 선물이었다.  
조만
간 안젤라의 낡은 코트가 고아들에게 주어진다. 하더라고 그것이  원래 그들의 것이 아니었
던 것처
럼 .
침대에 누워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을 때, 라나는 밤의 공포를  감지할 수 있었다.  오리들은 
여우
와 로즈 부인처럼 탐욕스런 인간의 먹이가 되겠지. 다람쥐와 새들은 올해 겨울 추위와 배고
픔으로 
죽게 될지도 몰라. 사슴은 인간의 놀이로 총에 맞을 테고, 예쁜 양들은 도살되어  먹혀질 거
야. 이
상하게도 그것들과 그녀는 똑같은 운명을 타고난 것처럼 보였다.
  
    59
  로버트는 어렸을 때 딴판이야. 로라는 의붓아들이 포리지를  먹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수줍
음 많고 따듯하고 다정했던 어린 소년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그녀는 항상 애정에 목말라했
던  소
년의 욕구에 부응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남자는 초연하고 냉정했다.
그녀는 자신을 향한 로버트의 증오에 타당한  이유나 정당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시
작부터 
어려운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왔다.  그녀의 유일한 죄는 그의 친엄마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 
그녀가 아름다운 집을 잡동사니와 지저분한 애완 동물들로  가득 채우고 자식들을 마구 뛰
어다니
게 했던, 그 무른 여자가 아니어서 신에게 감사드릴 일이다.
그녀는 이 저택과 가족에게 규율과 가치를 심어 주려 갖은 노력을 다 했지만 로버트는 그녀
의 실
패작이었다. 그녀는 그를 비판적으로 살폈다.  아침상에 반바지와 티셔츠 차림으로  앉아 있
는 꼴
이라니. 턱수염을 기르고 머리를 너무  짧게 자른  그의 눈동자는 냉철하게  빛났다.  특히 
그녀를 
볼 때 그는 포리지에서 설탕 대신  소금을 처 먹는  진짜 스코틀랜드 야만인이다.   계란과 
베이컨.
푸딩과 콩팥 요리를 먹어 치우는 그 식욕에 그녀의 속이 메스꺼워졌다.
  담배를 한대 피웠으면 딱 좋겠지만  로버트는 식당에서 끽연을 금지 시켰다.   물론 그의  
권위에 
도전 할 수 도 있다.  그리고 그녀는 고백해야 할 말이 있었고, 지금이 그와 대화할 수 있는 
유일
무일한 기회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하늘이 두쪽이 나도  아침상에 나오지 않았으리라. 최근
에 로
버트는 말을 붙이기 어려운 상태였다.  스포츠나 그린피스 활동, 또는 야생 동물 보호 계획 
등 이 
집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변명은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뭐, 증류소는 그의 수많은 
전문 
경영인을 통해 훌륭하게 경영되고 있었지만.
로버트는 로라에게 발산되는 긴장과 심난함을 눈치챘다.   계모가 이른 아침 시간에 일어나
야  할 
만큼 심각한 일임에 틀림없었다.  점점 추악해지는 군. 그는 될  수 있으면 그녀의 허물어지
는 얼
굴에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녀의 피부는 자갈밭을 연상 시켰다.   연상시켰고 심술궂은 눈
은 축 
늘어진 살에 반쯤 파묻혔다.
그녀가 신경질적으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로버트, 오늘 신문에 너의 글렌너드 인수 실패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가 실렸더구나."
"그건 모함입니다.  저는 증류소를 영국인 양조업자들에게 하기 위한 계획을 베아트리스 카
메론에
게 제의했습니다.  흠 잡을 데 없이 이성적인  제의였어요.  베아트리스는 증류소를 스코틀
랜드의 
손으로 지키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실패했어.  카메론 가문이 맞서 싸웠지만,  그 일본인 투자 덕분에  살았
어."
"잘 됐어요.  "
"네 생각만큼 일이 간단하지 않아."
로버트는 고개를 번쩍 쳐들고 얼굴을  살폈다.   그 죄책감어린 표정에  그는 깜작 놀랐다.  
그녀는 
작은 구슬땀마저 흘리고 있었다.  그녀의 충혈된  눈이 걱정스러운 듯, 아침 식사를 거드는 
가정부 
톰슨 부인을 노려 보았다.
"할 말이 있으시다면 어서 하세요.  "
"톰슨 부인, 커리를 더 갖다 주시겠어요?"
가정부가 식당을 나가자마자 로다가 설명을 시작했다.
"카메론 일족의 절반은 후계자인 해미쉬를  내쫓고 싶어했기 때문에 내  부 분열이 생겼어. 
그이 심
촌 앤드류 카메론은 친구 죠  에스킨릉   영업이사로 임명하여 주주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았어. 
에스킨은 앤드류와 나에게 직접 보고서를 올렸다.
"그 마키아벨리 적인 사업 술수를  알면 알수록 더욱 걱정되는군요.  아무래도 회사 일에서 
손을 떼
시는게 좋겠습니다.  그밖에 더 할말이 있으세요?"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저는 나가 보겠습니다.  "
'안돼, 기다리거라! 넌 이해를 못했구나. 언론이  그 꼬투리를 냄새 맡고 몇 배나  부풀었어. 
신문마
다 우리를 모함하는 기사들로 가득 찼다."
"지금 당장 손 쓸 방법이  없습니다.  다시는 앤드류 카메론과 접촉하지  마세요. 그는 내가 
특히 
싫어하는 인물입니다.  당신은 그 엉큼한 음모로 우리 얼굴에 먹칠을 했어요.  "
로라는 분노의 탄성과 함께 식당을 나갔다.
로버트의 식욕이 싹 달아났다.   그는 접시를 옆으로  치우고 커피를  마셨다. 모든 종류의 
술책이
나 이중 거래는 질색이었다.  인간의 거짓말하고 속이는 능력에 혐오감을 느낀 그는 자연과  
야생
동물에게 매료되었다.  자연은 깨끗하고 솔직하고 순수했다.  오직 생존에의 욕구가 존재할 
뿐 악
의나 사기는 없었다.  그는 변호사를 시켜  로라가 증류소 경영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조치
하기로 
결심했다.  아버지의 생명은 빠른 속도로 꺼져 가고있었다.
그분이 돌아가시면, 로라를 두번 다시 글렌티란 증류소에 들여 놓지 않으리라.
그는 신문을 집어들고 경제면의 표제를  살폈다.  기사를 읽다보니, 카메론 가의 새 안 주인
이 막
후에서 증류소를 살린 실력자임이 드러났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역사는 항상 정의가 승리한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글렌티란은 야비한 농간과   술수를 
부린 대
가를 치렀지만, 저는 그들에게 이미 획득한 글렌너드  주식을  갖고 있으리란 충고하겠습니
다.  그
들이 최근에 글렌너드 증류소에 쏟은 돈보다 더 많은 배당금을  받게 될 테니까요.  우리의 
새로운 
아시아 영업 회사는 글렌티란의 미국 및  유럽시장에 맞서 경쟁할 것입니다.  그러니  몸조
심하세
요."
로버트는 신문을 던져 버렸다.   새로운 카메론 부인은 건방지고 뻔뻔스러웠다. 마치 마조리
처럼. 
갑자기 그가 잃어버린것에 대한 열망과 함께 박탈감이 솟았다.
  
    60
  마조리는 일찌감치 준비를  마쳤다.  그녀는 몸매의 선을 드러내는, 디오르의 실크 드레스
에 맞
춰 커다란 흑진주 귀걸이와 목걸이를 달았다.  몇몇 사업상의 지인을  초대한 첫 만찬 파티
에 죠와 
베로니크도 오기로했다.  그들은 이곳에서 하룻밤 묵은 다음 아침에 웨스턴 군도로 긴 휴가
를  떠
날 예정이었다.  죠의 말에 따르면 그들 부부는 사이가 나빠졌기 때문에 이번 휴가를  통해  
허심 
탄회한 대화를 모색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녀는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가 신문을 읽었다.'글렌너드  증류소, 인수에 박차를 가하다' 
그녀는 
만족스럽게 기사를 읽었다.
6개월 전 그들이 공동 회사 설립 서류에 토하라의 서명을  받아 온 이래,  경제와 언론계는 
우호적
인 태도를 보여 왔다. 토하라는 향후 5년 동안 최소한  3백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약속했고, 
그 첫 
신호탄으로 올해 백만 달러를 지원했다.   글렌러드의 아시아 영업은 예상   이상으로 순항
이었고, 
토하라는 크게 기뻐하며 위스키 생산량을 증가시키기 위해  올해 백만달러를 더 투자할 생
각이었
다.  후에 인버 아시아 사는 미국으로 시장을  확장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은행 융자금의 
이자를 
갚기 위한 그들의 몸부림과, 실수입이  들어오기까지 최소한 5년  동안 글렌너드의  위태로
운 경영 
사정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에 인수한  로우랜드의 작은 정류소 덕분에 고품질의  
원액 
위스키를 토하라 상에게 공급할 수 있으리라.
인터폰 소리에 깜짝놀란 그녀는  현실로 돌아왔다. 맙소사,  벌써 일곱시야? 그녀는  시간을  
확인했
다.  라나가 인터폰을 받고 좋아서 소리를 지르며 현관으로 달려가는 소리가 들려 왔다.  잠
시 후 
죠의 최신 자동차인 은회색 롤스로이스가 현관 계단아래 섰다.   마조리는 허둥지둥 마중하
러 나갔
다.  죠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라나를 덥석 안고  한바퀴 돌렸다.  하지만 그 행동은 실수였
다.  베
로니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기 때문이다.  라나는  그에게 찰싹 붙어 깔깔거리며 양손을  
그의 
주머니에 넣어 선물을 찾았다.  결국 그가 고개를 흔들며 야옹  거리는 장난감 고양이를 꺼
냈다.
"고마워요, 조. 정말 생각이 깊으 시네요."
마조리는 대책이 없다는 듯 양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웃었다.
계단을 올라오는 조와  베로니크 부부에게 침울한  분위기가 차가운  오로라처럼 풍겨났다.   
그녀는 
두 사람 모두에게 키스하며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마조리, 아주 행복해 보이는데."
  죠의 목소리에 씁쓸함이 묻어 있었다.   그녀는 뒤로  물러서서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비참해 
보였다.  이런 모습은 처럼 이었다.   그녀는 그에게 더  신경을  써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1주일 
전에 런던에서 그와 함께 한 간단한 점심으로 충분치 않아.
베로니크는 금속 장식이 달린 멋진 검정색 드레스를 갖춰 입었다.   그녀는 거실 문간에 서
서  오
만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 정리가 덜 되었군요?"
그녀는 섹시한 프랑스 억양으로 거드름피웠다.
"다 끝났어요.  "
마조리는 차갑게 대답했다.  베로니크는 집안을 꼼꼼히 살펴 보았다.  평균보다 넓고 거실은 
크고 
푹신푹신한 긴 의자와 꽃, 양탄자와 쿠션으로 장식되었다.  하지만  책과 잡지. 신문들이 탁
자 위에 
수북했고 소파는 고양이 털 투성이었으며 새 위스키 라벨 디자인이 널려 있었다.  어휴! 정
리한다
는 것을 깜박 잊었네. 쿠션과 장남감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고,  세롭게 한 식구가 된 늙은 
고양이 
스카시가 편한한 의자에서 졸고 있었다.  라나의 인형들이 벽난로 앞을 뒹굴었다.
"저 놈을 어디서 대려왔소?"
죠가 고양이를 가리켰다.
"그냥 눌러 앉았어요.   창문으로 식료품  실에  들어왔다가 현행범으로 잡혔는데  통가질 
않아요.  
저놈이 티비와 싸우는 통에 엄마는 질색을 하세요."
"영리한 고양이로군! 보통 드센 놈이 아니겠는걸. 저  찢긴 귀와 상처  자국 좀 봐,  싸움께
나 했겠
어. 이름을 지어 줬소?"
"프라이드예요. 난 냄새를 참을 수  없었지만 해미쉬가 여행중 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
었어요.   
그는 자기가 예민하지 않다는 걸 몰라요."
그녀는 작게 덧붙였다.
"그에게 말하면 안돼요.  "
"라나는 좋아 보이는데."
"네. 저 아이는 해미쉬와 단짝이에요.  "
그녀는 베로티크에게 고개를 돌렸다.
"우리는 이곳을 좋아한답니다.  전에 와 본적이 없지요? 참  안타깝네요.  우리는 주일을 런
던 아
파트에서 주말을 이곳에서 지내요. 일이 끊이질 않아요.  "
베로티크는 창가로 다가가 호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지루하고 불행한 표정은  해미쉬를  
발견한 
순간 눈 녹은 듯 사라졌다.  그는  허리에 수건 한 장만 감은 맨몸으로  호수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그 어떤 그리스 조각도 그보다 더 우아하고 남성적이지  못하리라. 베로니크는 먹이를 앞에  
둔 고
양이 같은 표정으로 그 황금 빛 육체를 뚫어지게 바라 보았다.  그리고  참문 밖으로  몸을 
내밀고 
손을 흔들었다.
해미쉬가 나른하게 미소 지었다.
"아, 안녕하세요, 베로니크, 그리고 죠! 만나서 반갑습니다.  난  오늘 늦게까지 일해서 수영
으로 피
로를 풀어야 했어요.  "
그는 창문 아래에 서서 베로니크에게  윙크했고  베로니크는 다정한 미소를 머금었다.   저  
두사람 
사이에 뭐가 오고간 거지? 마조리는 불같은 질투를 느꼈다.
"다른 손님들을 몇 시에 오기로 했소?"
해미쉬가 소리쳤다.
"30분 내로요. 서두르세요! 저녁은 8시 30분이에요.  "
"거기에서 음료수를 할 거요?"
"서재에서 할까해요.  그리고 식당으로 갈 거예요.  "
"잘 생각했소."
그가 계단을 두 개씩 뛰어올라 왔다.
죠는 백만장자가 된 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그녀가 브라이언 퍼니하우의  '트랜짓' CD 를 
샀다
는 말을 하자마자, 그는 얼른 곡을 틀고  음악 감상에  심취했다.  해미쉬는 거실로 들어와 
베로니
크를 한쪽 긴 의자로 이끌었다.  그들은 고개를 맞대고 다정하게  속삭이며 가끔 숨죽인 웃
음을 터
뜨렸다.  마조리는 뚱하게 앉아 있었다.  흥! 그의 변화는  놀라웠다.  이제 더 이상 풀죽은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는 발을 질질 끄는 대신 똑바로 서서 힘차게 걸었고 여성에게  스스
럼없이 
대했다.  지금 그를 향한 욕망이 속았다.  그녀는 위안을 바라며 그에게 눈을 떼지 않았지만 
정작 
당사자는  베로니크에 푹 빠져 있었다.
  그때 새로운 오페어 인 스웨덴 출신 그레타가 나타났다.  라나는 해미쉬에게 달려가 안겼
다.
"날 사악한 마녀로부터 구해 주세요."
"버릇없이 굴지 말아라, 라나."
마조리가 야단쳤다.
"내가 너라면 그녀를 얼른 따라가겠다.  "
그레타가 아이에게 밤인사를 시키자 죠가 농을 걸었다.
"정말 대단한 미녀야!"
"누구? 그녀? 난 몰랐는데."
"아, 마조리. 지금 농담하는 거요? 그녀는 틀림없는 할리우드의 여배우감이야."
마조리는 전율을 느꼈다. 왜 그레타의 미모를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그리고 왜 해미쉬에게 
마음을 
놓았을까? 그녀는 그레타의  꿀같은 금발과 커다란  푸른 눈동자, 나긋나긋한  몸매를 주의  
깊게 살
폈다.  죠의 취향에 딱 들어 맞아. 하지만 해미쉬에게는? 갑자기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적으
로 보
였다.
손님들이 속속 들이 닥치자, 마조리는 불안을 지워 버리고 여   주인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
다.  24
명의 손님에게 만찬을 베풀기는 처음이었지만 놀랍게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지방 연회 업
자들이 
만찬 30분 전에 음식을  가져왔다.  시중 준비를 갖춘 웨이터들과  긴 떡갈나무 식탁, 펄럭
거리는 
촛불과 불을 지핀 벽난로 등 식당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과 같았다.
잠시후 그레타가 자리를 함께 했고 죠는 좌석을 재배치하여 그녀를 옆에 앉혔다.
저 뻔뻔스런 배창하곤! 마조리는 화가 났지만  공석에서 잔소리를  할 수 없었다.   그때부
터 죠는 
온정성을 그레타에게 쏟았다.
마조리는 무시당한 베로니크에게 연민을 느꼈다.  하지만 저 프랑스  여자는 처음부터 돈만 
밝혔고 
그걸 충분히 향휴했다.  죠는 특허낸 벽돌  청소  아교를 전 세계에서 상품화 시켜  떼돈을 
벌었고 
증권 거래로도 한몫 잡았다.  그들은 템즈 강 옆에 거대한  저택을 마련했지만 그곳에 머무
는 대신 
제트족의 족적을 따랐다.
스키, 런던 사교계 행사, 사냥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일류 연주회를 쫒아 다녔다. 그리고 집
에 머무
르는 동안 유명 인사들과 파티를 즐겼다. 그가 그런 생활을  어떻게 견딜까? 조심스럽게 그
를 살펴
본 그녀는 그가 참지 못리란 것을 깨달았다.
만찬이 반쯤 진행되고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그레타가 문득 창문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손님
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창문 밖에서 라나가 한손으로 발판을 자고 버둥거리고 있었다.
해미쉬가 재빨리 움직였다.  그는 전광석화처럼 달려가 창문을 열고 라나를 잡았다.
"이제 손을 놔라. 내가 널 잡았어."
라나는 신경질적으로 웃으며 발판을 놓았다.  한동안 아무도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때 마
조리가 
안도의 눈물을 터뜨렸다.  라나는 엄마의 목에 팔을 감고 진정시키려했다.
"엄마 아빠가 날 잡을 줄 알았요.  "
그녀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리고 비난에 찬 시선을 그레타에게 던지며 말을 이었다.
"그녀는 항상 날 가둬 놔요. 난 그게 싫어."
"그녀가 누구니, 혹시 마녀?"
해미쉬가 물었다.
그레타가 분노를 감추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라나를 침실로 데려갈께요."
"내가 라나에게 이야기 책을 읽어 주겠소."
죠도 얼른 따라 일어나며 덧붙였다.
"금방 돌아오겠소. 하지만 우리를 기다리지 말아요."
흥, 저 두사람은 라나의 방에 있는 동화책을 다 읽을 걸. 마조리는 이렇게 생각했다.
11시가 되자, 손님들이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모두 떠난 다음에야 죠가 겸연 쩍
은 얼
굴로 돌아왔다.  그레타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코냑에 잔뜩 취한 베로니크가 의자에 몸을 던지고 눈물을 터뜨렸다.
"내가 원한 것은 이게 아냐! 죠는 음악과 발명품에만  마음을 쏟아요. 그에게는 내가 끼여들 
자리
가 없어. 마조리, 난 당신이 부러워한다는 게 믿어져요?"
죠는 음악 소리를 높여 그녀의 흐느끼는 소리를 죽였다.  그리고 묘한 표정으로 베로니크를 
봤다.  
그가 아내에 대한 마음을 이미 접었구나. 마조리는 그를 곁눈질하며 낌새를 눈치챘다.
"우리가 휴가를 같이 지내봐야 별 소용없을 거요. 그냥  관두는 게 어떻소?  런던으로 돌아
가서 변
호사를 만나러 갑시다."
그가 차갑게 제안했다.
베로니크는 더크게 울기 시작했다.
짐을 꾸려 떠날 준비를 마친 베로니크가 비극적인 표정으로 홀에 멈추어 섰다.
"잘 있어요, 해미쉬."
그 다음에 마조리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떠났다.
"송구영신리라. 죠는 나중에 큰코 다칠 거야."
해미쉬가 깜짝 놀라 한마디했다.
"이게 웬 난리람. 우리의 첫번째 만찬 파티가 엉망이 되었어요."
"음식은 맛있소."
해미쉬가 그녀의 마음을 풀어 주었다.
"하지만 라나는 왜 위험한 짓을 자꾸 하는 걸까?"  꼭 우리를  시험하는 것처럼 말이오. 저 
아이는 
우리가 자기를 사랑하고, 구해 주리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해. 죠는 빨리 작업을 마감짓고 
발판
을 치워야 해. 그리고  내일 당장 라나의 방 창문에 철책을 설치하고 자물쇠를
없애 버리겠소. 다시는 그레타가 아리를 가두지 못하게 말이오. 아무래도 당신이 그녀를  내
보내야 
할 것 같소. 그녀는 아이를 맡기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냐."
그 순간 그녀는 해미쉬가 그레타의 미모에 무감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일 아침에 그녀가 자진해서 사표를  낼 거예요.  내가 잘못 보지  않았다면, 그녀와 죠는 
다른 
계획을 세웠을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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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릭 올리버는 항상 마조리 하디를 경계했다.   그녀는 영리하고 초능력에 가까운 직관을  
타고 
났지만 장미처럼 가시투성이였다.  조금 무시를 당한다 싶으면 가차없이 반격에 나섰다.  또
한 그
가 만난 중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기도 했다.  다른 시대였다면  저 불꽃같은 머리칼, 흠 하
나없는 
깨끗한 피부, 커다란 초록 눈동자로 전설적인 미녀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요즘은다들 가수나 
영화
배우들에게 정신이 팔려 진짜 미인을 못 알아본단 말야. 저  미모가 일 중도자 카메론 부인
에 의해 
썩고 있어. 올리버는 못해 안타까웠다.
그녀는 평소처럼 정시에 나타났다.  최근  동양에서 구입한 듯한 암록색 실크  드레스 위에 
잘 어울
린모든  초록색과 검정색 줄무늬 재킷할  걸치고 있었다.  그녀는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한 
그에게 
감사함을 표한 적이 없었다.  적다고 할  수  없는 수고비를 즉각 지불한 것으로  고마워할 
필요가 
없다고 느낀 모양이었다.
그녀의 과도한 사업적인 열의에 호기심을 품어 왔던 그는 오늘 작은 술책을 부렸다.
"어서 앉으십시오, 카메론 부인. 커리를 하시겠습니까?  "
그는 비서를 불렀다.
"저, 당신의 숙적 로버트 맥라렌이 죽음의 사자를 만났던 것 같습니다.  베네주얼라에서  실
종되었
답니다.  마르가리타에서 솔라노까지 현지 경비행기를 타고 가던 중......"
카메론 부인은 목이 졸리는 듯한 신음과  함께  앉은 채로 기절했다.  눈이 감겼고  창백한 
얼굴에 
진땀이 솟았다.  그녀의 몸이 앞으로 쏠리는 순간 오리버가 정신을  차리고 얼른 부축했다.  
그는 
비서에서 찬물을 가져오라고 소리질렀다. 잠시 후 그녀가 물을 마시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는 실종 되었다가 몇 시간 불시찰했지만, 다행히 그  주변에  관광지로 개발중이던 인디
언 부락
이 있었답니다.  그는 베네주엘라의 밀림을 살리기 위한  회의에 참석 중이었습니다.  아시
다시피 
몇해 전에 그린피스에 가입했거든어요. "
올리버는 흥미진진하게 고객을 주시했다.  그래, 사업 이상이었구나.  그의  짐작이 맞아 떨
어졌다.  
그는 두번째 방문을 상기했다.  그 당시 그녀의 태도가 그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글렌
티란의 
회장 로버트 맥라렌의 사생활에 대해 정기적으로 보고해 주세요."
그녀는 거만하게 말했다.
"저는 개인 탐정이 아니라 사업 조사관입니다.  때문에 사업과 관계되지  않은 일은  제 영
역 밖입
니다."
"그의 사생활은 우리회사의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다.  가령 맥라렌  씨가 셀비 양조 그룹의 
의식과 
결혼을 한다거나, 심장 발작을 일으킨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렇군요. 그런데 그이 부친이 최근에 돌아가겠으니 요즘은 맥라렌  씨가 아니라 로버트 경
입니다.  
보고서는 당신의 부근이 아니라 당신에게만 올려야 되겠지요?"
"당연해요. 재가 당신의 고객이잖아요."
그녀의 톡 쏘는 말과 달리 얼굴은 붉게 물들었다. 그는 빙그레 웃었다.  그런 모습에 발끈한 
그녀
가 자리에서 일어나 장갑을 끼며 반격할 시간을 벌었다.
"당신은 그럴 듯한 직함을 갖고  있지만, 우리 동네에선 스파이를  스파이라고 불러요. 돈을 
받는 
이상 누구를, 혹은 뭘 염탐질하든 상관없잖아요?"
이 여자가 감히! 그는 당시의 분노를 떠올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이미 예전에 그
녀를 용
서했다.
  "이제 괜찮으십니까?  잘 됐군요! 그럼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로버트 경은 사업을 궤도에 
올려 
놓았습니다.  초기 몇년동안 어려운 고비를 넘긴 지금은 그의  계획대로 순조롭게 운영되고 
있습니
다.  당신이 동양 시장을 공략하는 것처럼 그 분은 미국을 장악했어요.  믿을 만한 경영인들 
덕택
에 본인은 사업보다 취미에 없는 일로 생각하는지, 지난  3년동안 주로 해외의 환경 문제에 
전념했
습니다.
"좋아요."
그녀는 아마존 인디언에 대한 책과 작은 시집을  출산했습니다.  요즈음 '내셔널 지오 그래
픽'지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지난 봄 24시간  백로 보호팀을 조직했고 하이랜드 숲의  늑대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그는 로버트가 조직했던'환경' 보호 계획 목록을 쭉 읽었다.
"카메론 부인, 이제 사업 문제로 돌아가겠습니다.   이것은 글렌티란의 다음 시아즌광고 계
획입니
다.  가히 혁명적이지 않습니까?  이 안을 염두에 두시고 부인 회사에의  광고 계획을 세우
십시오   
그리고 말할 나위없이 이 정보의 출처에 대해서는 언급을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그녀는 그
를  차
갑게쏘아보고 서류철을 챙겼다.  그리고 쇼핑보다 심각한 일은 없다는 듯 가벼운 태도로 활
짝  웃
으며 손을 흔들었다. "내가 20년만 젊었다면 그녀를 어떻게 해봤을텐데."
올리버는 바보처럼 넋을 잃었다.
  마조리는 빛나는 태양의 온기를 즐기며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 갔다.  지금쯤  해미쉬가  
런던에 
도착했을까? 그럴거야. 그녀는 충동적으로 집에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다시 
런던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을 때 해미쉬가 등답했다.
"여보, 당신이 상경해서 정말 기뻐요.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요."
"나도 당신이 보고 싶었소. 5분전에 이곳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더군. 다들 식사를 하러 간 
모야
이야."
"난 나이트 브릿지의 '굿엇스"에서 죠와 점심을 하기로 했어요. 우리와 합석하시는 게  어때
요?"
"글쎄"
"부탁이에요, 해미쉬"
"글머 좋소, 금방 갈 테니까 내몫으로 가벼운 음식을 시켜놔요.  "
죠는 신수가 좋아보였다.  항상 앞서가는 패션 감각과 더불어 장발과 가무 잡잡한 살색으로  
여전
히 두드러졌다.   오늘은 암록색 셔츠와 멋진 양복 조끼를 갖춰 입고  있었다.  옷이 잘 어
울리긴 
했지만 약간 체중이 불어 보였다.  그는 한껏 들떠 있었다.
"이혼이 매듭되는 즉시 그레타와 나는 결혼하기로 했소. 축하해요.  "
죠가 말했다.
"축하해요. 그때가 언제일까요?"
그녀는 이미 반쯤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놀라지 않았다.
"다음 달 경에."
"맙소사, 불가능해요.  "
"우리 부부는 영국에서 결혼하지 않았소. 난 멍텅구리가 아니었거든."
"결혼할 때 이혼을 염두에 두었다는 말인가요? 그 결혼이 오래가지 못한 것도 당연하네요."
"사랑에 빠졌다고 해서 바보가 되는 것은 아니잖소? 뭐, 대부분 그렇게 보이긴 하지만."
"그럼 이번에는요?"
"이번은 진짜요, 마조리."
  그는 눈을 빛내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렇게 행복해하는 그의  모습은 생전 처음 이었
다.
"한가지 부탁이 있소. 인버레이드 장원에서  결혼 피로연을 열수 있을까? 난  정말  그렇게 
하고 싶
은데."
"물론이에요, 죠."
그녀는 죠를 위해 한번이라도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뛸 듯이 기뻤다.   그에게 너무 
많이 받
아만 오지 않았던가. 그녀는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여전히 현금에 쪼들리는 통에 장원의 반
을 폐
쇄해 놓고 정기적으로  청소했다.  전에 빛을 보지 못했던 큰 무도회장을 제  시간 내에 장
식할 수 
있을거야. 완벽한 피로연이 될걸. 그리고 5월에 다섯 살이 된  라나를 좋아할거야. 죠는  다
음 10분 
동안 그레타의 미모와 현명함을 칭찬했다.  마조리와 두달 동안 함께 생활했던 그 그레타와  
동일 
인물일까? 그녀가 바뀐 걸. 아니면 본바탕이 드러난 걸까?  해미쉬가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
오자 그
녀가 손을 흔들었다.
"여보, 여기예요.  "
그녀는 행복감에 저율하며 얼굴을 들어 키스를 가다렸다.
"좀 말라보이는군, 해미쉬, 여전히 등산을 하나?"
죠가 말했다.
"마음만큼 자주는 못가요. 워낙 집에 미녀들이 않아서."
그는 마조리의 옆자리에 앉으며 농담조로 받아넘겼다.
"참! 마조리. 이것을 잊을 뻔했군."
죠가 대봉투 안에서 서류를 꺼내 식탁에 올려 놓았다.
"나중에 ...... 봐요, 죠."
"지금 검토해 치웁시다.  "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1주일 전 죠에게  사람을 시켜 그렌티란의 미국 확장 계획과  판매
업자의 
재정상태를 조사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물밑공작을 싫어하는 해미쉬에게는 아무말도 
하지 
않은 터였다.
"조금 있다가요. 당신 쪽 사람의 솜씨가 빠르군요."
"이번에는 특히 쉬웠소. 그가 그곳에서 일하는 여자를  알고 있었거든. 여기 그들의 다음 시
즌 영
업 전략이 있소. 이 서류가 해미쉬의 삼촌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보안을 철저히 해요."
"두말하면 잔소리예요.  "
그녀는 해미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잠깐만."
해미쉬가 끼어 들었다.
"왜 이럴 필요가 있지? 우리 일은 잘 되어가고 있잖소.  두 회사가 공존할수  있을 만큼 시
장은 넉
넉해."
"해미쉬, 전쟁을 기도 시작한 쪽은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에요.  "
마조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의 정당성을 피력했다.
"그들이 당신을 잡아 먹으려고 했으니,  이제  우리가 그럴 차례예요.   시간이 걸리겠지만 
언젠가 
우리가 글렌티란을 차지하게 될 거예요.  약속드리겠어요.  이건 시간 문제라구요"
그는 그녀에게 서글픈 미소를 지어보였다.
"우리 호랑이 마누라! 당신은 복수할 능력도, 자신의 것을 지킬  능력도 충분히  갖췄소. 하
지만 마
조리, 글렌티란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은 품지 말아요.  이건  사업이오. 앤드류 삼촌이 비열
하게 행
동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사업은 사업이라오. 인수나 합병은 일어나는 일이니, 당신은 
상처
받고 모욕감을 느낄 필요는 없소. 여보, 사업에 감정을 개입시키지 말아요.  "
"그럼요."
그녀는 겨우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 배가 고팠는데."
웨이터가 참새와 샐러드를 들고오자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죠는 교활한 즐거움
을 담은 
눈으로 그녀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장난꾸러기처럼   그의 입술에 불가해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해미쉬는 그 문제를 다시 꺼내지 않았고 그녀는 이 일이 곧 잊혀지리라 확신했다.
  
    62
  아름다운 가을 오후 하이랜드 게임이 지방 스포츠 클럽의  경기장에서 펼쳐졌다.  마조리
는 부드
러운 미소를 짓고 점점 열기를 더해가는 각종 시합과 경연을 지켜봤다. 시선이 딸에게 닿자, 
그녀
의 안에서 자부심과 만족감이 솟았다.   라나는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  마조리가 염원해왔
던 그 
자리에 있었다.  믿지 못할 만큼 만사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현금  압박 속에서도 카메론 
가는 
차근차근 성장해갔다.  손대는 것마다 유리하게 돌아갔고,  그녀의  꿈이 실현된 것 이외에 
생각지
도 않은 보너스가 생겼다. 그녀는 해미쉬와  까무러칠 만큼 행복했다. 이유가 뭘까?  이것이 
사랑일
까? 그녀의 시선에 아름답고 용감하며 감수성이 강한 남자가  잡힐 때마다 기쁨과 즐거움으
로 가
슴이 뻐근하게 졸아들었다.  가끔 그녀는 온 세상을 새롭게 하고  눈에 덥힌 깍지를 벗겨내
는 묘한 
힘에 사로잡혀 평범속에 빛나는 아름다움을 새삼발견했다.   가끔 영혼 깊은 곳까지 열병에  
걸린 
기분이었다. 사랑이 그녀에게 방출되어 만나는 사람을 미소짓게 만들었고  그녀 역시  그들
을 사랑
했다.  사랑해서 해미쉬와 결혼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를 사랑했고 깊은 충족감을  느꼈
다. 그리
고 여기에 해미쉬와 그녀가 있었다.  이제 결혼 1주년을 맞은 그들은 진짜 한가족처럼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안정 되었다.  저쪽에 아빠와 엄마는 나란히 앉아 공작새처럼 자랑스럽게 손
녀딸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리고 라나는 한 바퀴 빙그르 돌아 새 카메론 킬트를 자랑했다.  6세 이
하 스
코틀랜드 전통 무용 경연의 우승에 도전하는 중이었다. 서서히  그녀는 행복한 상념에서 벗
어났다.  
우체국장인 쥬디 애플스웨이트가 왜 저렇게 잘난 척하며 무대에 올라와 마이크를 잡을까?
"신사 숙녀 여러분, 깜짝 놀랄 소식을 던해 드리겠습니다.  "
그녀는 부드럽고 노래하는 듯한 인버네스 억양으로 입을 열었다.
"방금 로버트 맥란렌 경께서 이곳에 도착했어요.  그분은 최근에  세계 환경을 보존하기 위
해 전력 
투구해 오셨습니다.  "
군중의 박수 소리에 그녀는 말을 끊었다.
"영광스럽게도 오늘 경연 우승자들에게  포상을  해주시기로 했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로버트 
경."
  마조리는 숨죽여 욕을 퍼부었다.  당장 비명이 터져나올 것그리고 같았다.  로버트가 훤히 
보이
는 연단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그녀는 서둘러 선글래스를  찾아끼고 모자창을 내려 얼굴
을 가렸
다. 로버트가 그들쪽으로 다가오자 그녀는 공포에  질렸다.  그가 라나 하디의 이름을 부르
고,  그 
숱많은 검정 고수머리와 갈색 눈동자를 들여다볼  때, 그의 얼굴에  떠오를 표정이  눈앞에 
생생했
다.  그리고 로버트가 알아 차린다면 해미쉬 역시 그럴 것이다.  그녀는 회람된 수상 명단을 
쥐고 
남몰래'하디' 활자 부분을 박박 긁어'타비'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이 정도면   통할 거야. 
그 다음 
사람들 틈을 헤치고 연단에서 내려가 부모님 뒤쪽으로 돌아갔다.  해미쉬의 깜짝 놀란 표정
은  상
처받은 것으로 바뀌었다. 수상자들이 속속 호명 되었다.   예년과 다름없이 글렌너드의 관리
인 빌
리 맥킨토쉬가 원목 던지기 부문에서 우승했고 몇몇 타자수들이 무용에서 좋은 성적을 올렸
다.
하느님! 드디어 차례가 되었다.  로버트가 바뀐 이름을  읽느라 애를 쓰는통에 순조롭던 진
행의 흐
름이 깨졌다.  그리고 익히 잘 알고, 한때 사랑했던 목소리가 들렸왔다.
"라나 타비."
"내 이름을 잘못 불렀어."
라나는 잔뜩 분노한 얼굴로 소리 질렀다.
"가, 어서 거렴......"
마조리가 딸의 등를 앞으로 밀었다.
"어서 가봐. 그가 널 부르잖니. 서두리지 않으면 너 대신 딴 사람이 받을거야. 네 이름은 신
경쓰지 
마."
라나가 계단을 뛰어오르자 사람들이러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킬트 치마와  레이스  
블라우
스 그리고 검정색 조끼를 갖춰 입은  아이는 인형처럼 깜찍했다. 로버트는 아이를  번쩍 치
며들고 
한바퀴 돌리고 나서 양  뺨에 키스를 한 다음에야  상을 건넸다.  군중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
왔다.  로버트가 딸을 안은 모습을보자, 마조리의 가슴이 터져 버릴듯 아팠다.  원래 저렇게  
되었
어야 옳았는데.
"이제 내려가렴."
로버트가 나라에게 말했다.
"아저씨는 내 이름을 불렀어요. 난 타비가 아니요.  "
여기저기에서 껄껄 웃는 소리와 감탄사가 일렁거렸다.  로버트는 놀란 표정를 지었다.
"미안하구나. 그럼, 네 이름이 뭐니?"
"엄마, 라나를 데리고 오세요.  "
마조리가 산청했다.
엄마가 소리질렀다.
"얘야, 이리 돌아 오너라."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의자에 발을 찍힌 패디용크가 크게 짖었다.  라나가 서둘러  
돌아
왔고 로버트는 다음 수상자를 호명했다. 이제 파이프 연주 차례였다.  갑자기 마조리는 사람
들 너
머로 로버트를 째려봤다.  그가 우리를 봤을까?  파이프 악단이 경기장을 한바퀴 돌자 군중
은  그 
음악과 북 소리, 그리고 일사분란한 행진에 이끌려갔다.  이만하면 충분해.
"엄마, 해미쉬를 데려 오세요, 부탁이에요.  내가 아프다고 하세요. 제발  그를 데려 오세요.  
"
그녀는 라나의 손을 잡고 주차장으로 이끌었다.
"왜 집에 가는 거야?"
라나가 투덜 거렸다.
"엄마, 난 가고 싶지 않아. 그네뛰기는  어떻게 해? 아직 아이스크림도 못 먹었잖아? 엄마가 
약속
해 놓구......"
즐거운 하루가 망쳐졌다. 해미쉬는 우울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다가왔다. 두 사람  사이에서 
양팔을 
잡고 걷는 것을 좋아 하는 라나가 오늘은 화를 내며  조부모에게 달려갔다.  심지어 패디용
크 마저 
풀리 죽어 다리를 절뚝거렸다.  "해미쉬, 난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해요.  "
마조리가 그의 손을 잡으며 외쳤다.
그의 얼굴에 놀란 표정이 역력했다.  그는 슬픈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당신이 날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소. 하지만 표현하는 것은 당신 답지 않은데. 왜 하필이
면 오
늘 이러는 거지?"
"그러면 안되나요?"
그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는 횡설 수설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이제 그가 얼굴을  찌
푸리자 
그녀가 말을 진정했다.
"처음부터 당신을 사랑했지만 이제야 진정한 사랑을 알았다는 뜻이에요. "
"고맙소."
그는 우거지상으로 중얼 거렸다. 맙소사! 내가 지금  무슨짓을 한 거지? 그녀가 더 그럴 듯
한 말을 
찾으려 애쓰는 순간 라나가 다시  달려왔다.   그들은 차에 도착했고,  이제 변명할 기회를  
놓쳤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사타구니에 친밀한 통증을  느끼고 서둘러  윗층으로 올라갔다.  
이 불편
함은 월경을 의미했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부부의 노력에도 불구라고   아직 임신이 되
지 않
다니. 그들은 만족스런 성생활을 영위했고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그런데 왜  아이가 서지 
않는 
걸까? 그녀는 해미쉬의 아기를 품에 안고  싶었다.  그러면  그들의 행복이 완벽하게  될것 
같았다.  
자꾸 불길한 예감이 드는 이유는 음식이나 치장 등 축제 준비에 막중한 의무를 다 했기  때
문이야. 
다음 달에는 좋은 소식이 있을거야. 그녀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1주일 후 마조리는 런던의 
개인 
산부인과를 찾아갔다.  소독약 냄새가 풍기는 대기실 안은 임산부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몇 
가지 
검사를 거친 후 그녀는 옷을 갈아 입고 담당 의사와 면담했다.
"당신의 일상 생활에 대해 말해보세요."
자비로운 눈매를  한 여의사 팻 매티슨이 말했다.
"정신없이 바빠요. 월요일 부터 금요일까지  런던에서  지내고, 금요일 오후에 남편과  함께 
인버네
스에서  주말을 보내요. 그곳에서 승마.원예.하이킹등으로 시간을 보내요.  토요일 밤마다 지
방 호
텔에서 춤을 추거나 몇몇 지인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열어요.  또는 부모님들을 모시고 마을
을  나
가 외식을 해요. 토요일 아침나절은 항상 증류소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
"주중에는요?"
"힘에 부치는 일과지만 감수할  가치는 있어요.  월요일  아침 일찍 난  비행기를  타고 상
경해요.  
해미쉬는 가끔 스코틀랜드에도 있고, 런던에서  지내기도  해요. 금요일에는 런던 아파트를 
정리하
거나 몸치장을 하곤 하지요.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켄싱턴에  위치한 글렌너드  영업본부
에서 보
내요. 해미쉬가 곁에 있을 때 점심시간에 쇼핑을 해서 퇴근후 음식을 만들어요. 너무 피곤해
서 베
개에 머리가 닫자 마자 잠에 골아 떨어지기 일쑤랍니다.
"그렇다면 사랑을 나누지 못하겠군요?"
"아니에요.  "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
"해미쉬가 보통 새벽 5, 6시 경에 저를  깨워요.  그 후에 시간에 쫓겨 샤워와 출근  준비를 
초특금
으로 해야 해요.  어머! 선생님께서 제 생활을 속속들이 다 아셨네요.  "
그녀는 글렌너드 영업부에서 차지하는 막중한 역할를 축소해서 전했다.  사실상 회사를  운
영하다 
시피 했고, 문제가 생길 때 마다 전문가에게 상담을 의뢰했다.   죠 역시 많은 도움을 줬다.  
 그녀
도 자신의 업무량이 많다는 사실을 익히 장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일을 사랑했다.
"꽉 짜여진 일정으로 육체적인 피로 이외에 정신적인 긴장감에 시달리겠군
요?"
"그런 셈이에요."
"네, 알만 합니다.  카메론 부인, 당신은 육체적으로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하지만 과도한 
스트
레스 상태에 있어요.  일을 줄이고 주중에 휴식과 수면시간을 늘이도록  하세요.  그리고 몇 
달만 
더 기다려 보세요.  그러고도 6개월이나 1년 후에 임신이 되지  않는다면 남편과 함께 오세
요.  부
인은 건강하고 이미 한 자리를 두셨으니 걱정을 하시기에는 시기장소입니다.  "
"하지만 우리는 후계자를 낳아야 해요.  몇 명의 아기를 낳아야만 남아를 얻을 수 있잖겠어
요? 그
러니 지금 임신을 해야 할 것 같은데요.  "
매티슨 의사는 동정적으로 미소 지었다.
"우리는 도움없이 잘 되시기를 바랍니다.  카메론 부인."
  인생은 엿같아. 마조리는 눈물 자국을 닦으며  택시를  잡았다. 이 세상 무엇보다 임신을 
두려워
했을 때는 한번에 덜컥 아이가 들어섰는데 지금처럼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에는 마음대로 되
지 않
다니. 엄마는 머피의 법칙이라고 하기겠지.  켈트족의 후에 답게 엄마는 온갖  미신을 신봉
하였고, 
악마가 어둠속에 숨어 방심 상태를 노린다고 믿었다.   즉, 승승장구는  몰락을 낳고 자만심
은 문
제를 부른다는 식이었다.  행운을 지키는 길 입 다물고 자중하는 방법이 최고이며, 알이 부
화하기 
전에 병아리수를 세지 말라고 했다.   일요일마다 교회에서 자비로우신 주님의   사랑을 청
했지만, 
그 외에는 고대의 심술맞은 잡신들을 공경하고 머리를 조아려  그눈 밖에 나지 않도록 조심
에 조
심을 더했다.  하지만 진짜 그런 존재들이 있을까?
"기운 내, 마조리. 아니면 스톤헨지에 살아 있는 재물을 받칠래?"
그녀는 자위했다.
  
    63
  한달 후 죠의 이혼이 매듭지어졌다.  10월 하순  어느날 오후 4시, 그와 그레타는 카메론 
일가가 
지켜보는 가운데 인버네스 등기소에서 간단한  결혼식을 올리고 인버레이드 장원으로  향한 
차량행
렬과  자욱한 먼지 틈에 껴서 생각했다. 아나는 주름이 잔뜩  잡힌 핑크색 화관동자 드레스
를 입고 
깡총거렸고 아빠가 만든 ㅘㅎ환을 성급하게 벗어  던졌다.  꽃으로 뒤덮힌 무도회장은 아름  
다웠
다.  바닥은 티끌 하나 없이 반들거렸고 식탁을 방 외곽 쪽에 집결되어  중앙에서 춤출  수 
있도록 
배치했으며 식탁 사이에는 빠짐없이 붉은 카펫이 깔려 있었다.  그들은  흥겹게  춤추고 축
사와 건
배를 즐기며, 다섯가지 코스의 요리를 먹었다.   엄마는 임시 직원을 고용하여 직접 요리와 
서비스
를총괄 지휘했다.
"엄마는 연회 사업으로 한재산 모을 수 있을 거예요.  "
마조리가 부엌으로  들어가 말을 건넸다.  가슴이 깊게 파인 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퍼머한 
엄마의 
모습이 근사해 보였다.
"난 안돼, 샥시. 재주는 모르겠지만 야심이 부족하거든. 그게 너와 차이점이란다.  "
"별말씀을 다하시네요.  "
마조리는 '샥시'라는 표현을 심사숙고했다.  엄마가 몇몇 현지  친구분들에게 여기 사투리를 
배웠
나봐.
"곧 우리와 어울리실 거지요? 밤새도록 여기에 계시면 안돼요.  아셨어요?"
"그래, 곧 가마."
"오늘 끝내주게 보이시는데요."
  마조리가 농담을 걸었다.  하지만 엄마는 귀 담아 듣는 대신  브랜디 소스를 맛보고 약간 
찌푸렸
다.  마조리는 서둘러 무도회장으로 돌아왔다. 그레타는 후광을 발하는  것 같았다.  플레어 
스커트
와 진주 장식이 달린 상의가 한 벌인 흰색 정장은 그녀의 매력을  한껏 빛내 주었다.  금발
을 어깨
위에 가지런히 늘어뜨리고, 투명한 피부를 죠의 선물인 값비싼  다이아몬드와  진주로 치장
한 터였
다. 흥청거니는 무도장을 가로지를 때  마조리는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했다.   본능적으로 
주변을 
두리번기리다가 해미쉬의 시선을 포착해냈다.  그는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난  몇 
주동인 
그는 서먹하고 종잡을 수 없이 행동했다.
이제 그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나가서 달 구경을 합시다.
청명하고 선선한 밤이었지만 멀리 구름이 몰려왔다.  낙엽 밟히는 소리와 함께 촉촉한 대지
와  신
선한 잔디 내음이 풍겼다.   숲에 걸린  달이  온 세상을 신비호운 천상의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마조리는 고개를 그의 가슴에 기대고  그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그러다가  진저리를 치며 
그의 품
속으로 더 파고들자 그가 물었다. 
"무슨 일이오? 뭐가 잘못되었나? 당신은 승리감을 느껴야 마땅해 평소처럼 놀라울만한 성공
을 거
뒀잖소."
"네, 그래요."
"다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소."
"당연하지요!"
"그런데?"
"그저......"
그녀는 한숨을 쉬고 그의 뺨에 키스했다.
"음, 우리도 이럴 걸 그랬어요.  오렌지 꽃.신부 들러리. 색종이 등등 결혼식을 제대로 할 걸 
그랬
나봐요."
"당신이 성대한 결혼식을 원치 않았잖소. 내가 사정을 했건만 당신은 반대했어."
"네. 그 당시에 난 낭만적이지 않았거든요. 당신이 나을 많이 바꿔 놓았어요.  "
그는 말할 수 없이 다정하게 물었다. 그녀는 별 생각없이 말했다.
"나를 사랑에 빠뜨렸어요.  "
"그럼, 처음에는?"
초조하게 그녀는 그이 팔을 어루만졌다.   어서 이 밤이 지나고  잠자리에서 사랑을 나눴으
면 좋으
련만.
"처음에 난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몰랐어요.  이제  당신은 나에게 온세상을 의미
해요.  "
"우리가 결혼할 무렵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요?"
부드러운 목소리가 물고 늘어졌다. 묘한 전율이 그녀를 관통했다.
"추워요. 그만 안으로  들어가요.  "
"안돼.'
그는 그녀의 팔을모든  붙잡았다.  강철 수갑같았다.
"우리는 안에 있어야 해요.  어서요, 해미쉬"
"안돼. 여기 있어요.  왜 나와 결혼했소, 마조리?"
"이 바보."
그녀는 짐짓 웃으며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야 수 천년동안 이어내려온 이유 때문이죠. 사랑 말이에요.  "
그녀는 거짓말을 증오하며 중얼거렸다.
"당신이 나에게 청혼했으니까, 당신이 나를 필요로 했으니까, 그리고 난 당신이 도전을 이기
길 바
랬으니가, 그리고 당신은 이겼어요.  이만하면 됐어요? 안에 들어가도 될까요."
그녀는 불안에 젖은 목소리로 말하며 그의 손에서 팔을 뺐다.
"당신은 두려운 표정을 짓고 있군. 뭘 두려워하는 거지?"
  그는 그녀를 더 가까이 잡아 당겼다.  잠깐 그의 뺨이 그녀의 머리위에서 쉬었지만, 곧 그
는 한
숨을 쉬고 그녀를 위로 밀어냈다.  그리고 계단에  앉아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의 
상처받
은 눈빛을 볼 수 있었다. 재빨리 허리를 숙인 그녀는 그의 뺨과  이마 그리고  턱에 가벼운 
키스를 
쏟아 부었다.
"난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을 사랑해요.  사랑해요.  "
"당신은 날 이용했어."
해미쉬는 울먹거리며 말을 이었다.
"난 글렌티란에 대한 당신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겨왔소. 사업적인 범위를   초월한 승리에 
대한 그 
집착을 말이오. 그래서 조사을 해봤소. 당신은 로버트  맥라렌을 망하게 하려는 수단을 얻기 
위해 
나와 결혼할 거야. 그는 라나의 아버지로서 당신들 두 사람을 내버렸어."
그녀는 그에게 매달렸다.   오랫동안 두려워했던  이 순간이 드디어 왔구나.  거가  발각되
었다는 
부끄러움은 해미쉬의 상처에 대한 비통함에 비하면 새발에 피였다.   그는 그녀에게 인생의 
등불이
자 삶의 모든 것이었다.
"해미쉬"
그녀가 간청했다.
"우리가 함께 이룬 모근 것을 생각해 보세요.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을 생각 하세요.  우리가 
거둔 
성공을 잊지 마세요.  난 예전에 신께 이렇게 약속드렸어요.  제 사랑은 저를 사랑하는 남자
의 것
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저에게 남은 사랑을 다 바치고 그를 돌보고, 그의 가문과 사업
을 일
으키고, 그를 행복하게 해주겠습니다.  절대로 그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테니, 저를 도와 주
소서"
"하지만 지금 난 상처를 입었소.  그걸 모르겠소?  사랑이 아니라 이용당  했음을 안 지금, 
지난날 
아름다웠던 사랑의 순간들을 고쳐써야 한단 말이오. 당신은 로버트를 공격하는 유일한   수
단으로 
글렌너드를 손아귀에 넣기 위해다리를 벌린거야."
"아니예요.  그렇지 않아요.  "
그녀는 울부짓었다.
"절대로 복수가 아니에요.  라나의 유산을 되찾기 위해서였어요.  이해 못하시겠어요.  ? 난  
항상 
당신을 내 방식대로 사랑해왔어요.  당신은 나에게 절실한 사랑을 가르쳐줬어요.  그게 전부
예요."
그는 고개를 돌리고 미소지었다.  가슴이 찢어질 만큼 슬픈 미소였고 그의뺨은 눈물로 젖어  
있었
다.  그녀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난 당신을 사랑해요.  "
"알고있고. 지금은......"
"왜 현재에 만졸할 수 없는 거죠?"
그러나 그녀의 애원에 대한 대답이 없었다. 그의 등 너머로  달빛에 젖은 검은 호수와 더불
어 미풍
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가지가 보였다.  해미쉬의 세계는 저 달처럼 차가왔다.  냉담하고 초
연하게 
세상을 흑과 백, 선과 악으로 이분하는 그의 눈에 그녀는 성녀나 악마여야 옳았다.   그리고 
그녀
는 제단에서 굴러 떨어졌다.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난 당신이 날 이용했던 고통을 참을 수  없소. 당신은 그  모든 것을 사랑 때문에  행했다
고 믿게 
했고, 난 당신처럼 아름답고 영리한  여자가  나에게 빠졌다고 생각하며  황홀경에 빠졌고. 
게다가 
당신은 모든 재산을 던져 내사업을 구하기까지  했소. 정말 대단한 도박 이었소. 난  당신의 
사랑과 
충성과 용기를 경회했소. 그리고 ...... 난 당신에게 눈을  떼지 않고 지켜봤고,  마조리. 당신
은 사람
을 조종하는 재주를 가진사람이오. 그리고 당신과 라나를 보아왔소. 왜 당신과 장인장모님은 
라나
를 입양했다고 거짓말을 했지?
"이해하실텐데요. 라나는 사생아라는 치욕을 당할 필요가  없어요.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정
말 그 
아이를 입양했고, 그녀가 이민간 먼 친척의 딸이라는  거짖말을 지어내셨어요.  다른 사람들
이 그
렇게 믿는 편이 더 좋아요."
"아냐, 마조리 그렇지 않소. 당신은  라나에게 진실을  고백해야하오. 당신은  당신자신마저 
조종하
니? 나에게 솔직해질 수 없는 거요? 나를  사랑한다고 스스로를 쇄뇌한 것은 아니오? 그도 
아니면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 기회를 포착한 거요?"
"난 당신에게 저항할 수 없었어요.   기억하시잖아요? 제발, 해미쉬, 당신과  나를 처벌하는 
짓은 그
만하세요.  우리의 만남은 운명이었어요.  "
"당신에게는 아니었소."
"하지만 우리는 잘 살아왔잖아요?"
"그래, 당신의 계획은 잘 들어 맞았소.  그리고 당신은 힘든 노력에  대한 보너스까지  얻었
지. 사랑
에 빠지기까지 했으니."
"그래서요....? 내 사랑이 당신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나요?"
그녀는 울부짓었다.
"아니! 당신은 최고야, 마조리. 난 일의 내막을  조금도 눈치  채지 못했소. 그저 당신이 날 
사랑한
다고 확신했었소. 그러다가 지난달 레스토랑에서  죠의 눈에서 진실을 읽었소. 그는  슬프고 
부끄러
운 표정으로 내 눈치를  살피더군. 그 다음에  하이랜드 게임에서 당신의  돌발적인 행동에  
난 뒷조
사를 시켰던 거요. 그래, 이 모든 것이 당신의 공이었어.  당신은 스스로를 팔아  이것을 얻
었던 거
요. 마조리, 난 혼자 생각하고 싶소."
  손에 잡힐 듯 선명한 두려움이 수의처럼 그녀를 에워쌌다. 꿈을 꾸는 것처럼 그녀는 무도
회장으
로 돌아와 춤 추고 이야기하고 파티를 준다던데 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은 지옥이었
다.  부
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했어. 하지만 왜 끝없는 어둠의 나락속에 빠진 기분이 드는  걸
까? 바
람이 점점 세차게 불어왔다.  창문 밖으로 먹구름이 달을 가리는  광경을 본 그녀는 밖으로 
뛰어나
갔다.  첫 빗방울이 얼굴에 떨어졌다.  그녀는 도착해 힘껏 외쳤다.
"해미쉬,해미쉬"
나무들이 신음했고 바람은 그녀를 날려 버릴 듯 기세를  더했으며 비가 본격적으로 내렸다.  
 그녀
는 집으로 돌아와 침실로 올라갔다.  그리고  안은 텅비어있었다.  해미쉬가 돌아올 때까지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 있으면 좋으련만,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과거는 과거야."
그녀는 중얼거리고 몸을 말린 후 파티에 돌아갔다.  그리고 남은 밤동안 해미쉬를 초조하게  
기다
렸다. 해미쉬는 어두운 밤을 헤치고 인버네스 공항을 향해 전  속력으로  달렸다. 그는 간편
한 옷
으로  갈아입고 등잔 장비를 꾸려왔다.   그녀에게 도망쳐야 해. 남서읭 자존심이 땅에 떨어
졌고, 
그의 결혼은 사업적인 전략으로 변질 되었다.   그녀는 겉과  속이 다른 여자 였다.   그는 
이넓은 
세상에서 그녀만이 보답을 바라지 않고 베푸는 유일한 사람으로  생각해왔다.  빗나가도 한
참 빗나
간 생각이었다.  평생 그의 것을 빼앗으려는 가족들에게 시달려온  그는 마조리만은 다르다
고 상상
했었다.  파산 일보 직전인 증류소와 다 쓰러져가는 저택 등.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시점에
서 도 
그는 그녀의 적을 공격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었고, 그녀는 그  도구를 갈고 닦아  날카롭
게 연마
했다.  얼마나 인내심 많은 여자인가. 그   얼마나 강한 의지와 결단력인가. 그녀의  마지막  
애원이 
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가 머무른 다면, 그녀는  그에게 억지로 잊게 만들도록, 그녀를 
사랑하
게 만들고, 처음 시작은 중요하지  않다고  설득시킬 것이다.  그녀는  그를 지배하는 힘을  
지녔고, 
지금 당장 그는 그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남자와 여자의 주도권 싸움과 추한 현실에서  평화를 찾을 수  있는 곳은 오직 한군데였다.  
 하늘
에 맞닿는 선봉의 절대적인 고독 속에서만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으리라. 마조리는 그로
부터 닷
새 도안 식음을 전폐하고 전화만 기다렸다. 해미쉬가 나를  그리워할 거야. 암, 그렇고말고, 
곧 전
화를 걸어야 올 거야. 그렇게 매초 매분을 자위했지만  시시각각으로 덮쳐오는 불길한 예감
을 버릴 
수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인버네스의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해미쉬가 스위스에서 등반
중 실
족해서 사망했으니, 마조리에게 시체를 확인하고 본국으로 데려오라는 연락이었다.

    78
  라나는 사무실을 박차고 나왔다.  잠깐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엄마가 진짜 
엄마였
어. 마침내 내 생모를 찾아 낸 기쁨에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오늘은 가장 행복한 날이야. 
하지만 
왜 이렇게 슬플까?
그녀는 길거리 한복판에서 눈물을 터뜨렸다.  그리고 얼른 휴지와 선글래스를 찾아들고  혼
자만의 
장소를 찾았다.
아무도 그녀를 버린 사람의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엄마는 멋진 분인 동시에  믿을 수  없
을 만큼 
사악한 짓을 했다.  아무 관련 없는 기억들이 마음 속에서 맹렬했다.   주로 다른 사람 주변
을 서
성거리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알래스데어를 거의 키우다 시피  했다.  왜냐고? 그는 
엄마
의 친자식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도 마찬가지야!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압박감이 사라지는 
동시에 
수많은 감정이 요동을 쳤다.  어깨가 가벼워진 대신 분노가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나에게 
본질
적인 소속감을 박탈하다니! 엄마는 진실을 말해주었어야 했어. 입안이  썼다. 생전 처음으로 
엄마에 
대한 비판 의식이 싹텄고 압도적인 분노에 이성이 달아났다.
순간 발이 미끌어졌다.  그때서야 그녀는 강둑을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추위조차 의
식하지 
못한 채 그녀는 땅바닥에 앉아 혼란스런 감정을 정리했다.  엄마는 결점을 가진 인간이었어.
보호 천사와 거리가 먼 분이었어. 갑자기 라나는 참을 수 없는 상실감에 오열을 터뜨렸다.
한참 후에야 도로 쪽에서 한 노 부인의 목소리가 들여왔다.
"내가 도와 줄까요? 샥시, 추운날에 코트도  입지 않고 그런  곳에 앉아 있다간  감기에 걸
릴 거예
요.  봐요, 비가 내리고 있잖아요.   어서 이쪽으로 올라와요.  "
"싫어요.  저를 혼자 내버려 두세요.  "
그녀는 중얼거렸다.  여기에 얼마나 있었지? 그 부인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자리를 떠났다.
눈물을 훔치며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걸음을 옮겼다.  계속 움직여야 했다.  그녀는 사
랑하고 
신뢰해왔던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한 기분이었다.   저 무정하고 사악한 가족들에게  감사를  
표해왔
던 지난날이 수치스러웠다.  이 일의 주범은 엄마였다.
가증스런 사기극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넌덜머리가 났다.   사생아가 창피하다는 이
유로 그
런 짓을 하다니! 그녀는 시간과 공간 개념을 잃은 채 비를 맞으며 정처없이 걸었다.
나중에 들은 바에 의하면 그 노부인이 경찰에 연락을 한 덕분에 그녀는 경찰의 호위를 받아 
집으
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미 심한 독감에 걸려 있었다.   그녀는  3주일 동안 폐렴으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분노는 전보다 더 강렬하게 불타올랐다.   반격을 가
하려면 
분노어떻 힘이 필요했다.  가족들의 정성어린  간호를 무시한 채 그녀는  알래스데어에게만  
사실을 
고백하고 복수 계획을 짰다.
그리고 일단 계획이 세워지자 그녀는 즉각 실행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라나는 재갈이 물려진 어린 망아지처럼 미친 듯  질주했다.  외출이 허용된지 삼일 째 되
는 날 
그녀는 지방 신문사의  편집장실에서 아침나절을 보내며  엄마에게 첫번째  타격을 가했다.  
즉 여론 
전쟁을 선언한 것이었다.  이제 그녀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자동차 운전은 분노를 발산하는 방법이었다.  모퉁이를  도는 순산 운전대를 놓치는 바람에  
차가 
도로 밖으로 벗어나 마른 풀잎을  뭉개며 언덕으로 질주했다.  그녀는 운전대와  씨름을 한  
끝에야 
겨우 차를 도로로 돌렸다.
"한바터면 죽을 뻔했네."
그녀는 숨가쁘게 중얼거렸다.  속력을 늦추고 싶었지만  맘대로 되지 않았다.  차와 그녀는 
혼연일
체가 되어 사납게 날뛰었다.
20분 후, 그녀는 인버레이드 장원의 진입로를 따라 달렸다.
알래스데어는 호수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다.
영하의 기온속에서 수영하는 짓은 동생다워. 그녀가 호숫가에 서서  손을 흔들자  알래스데
어가 물 
밖으로 나왔다.  터질 듯한 생명력이  그에게 오로라 처럼 방출되었다.  그녀는  알래스데어 
곁에 
있으면 더 살아있는 느낌을 받았다.  사내가 다  되었네. 그녀는  남 몰래 동생을 훔쳐보며 
생각했
다.  그의 다리는 길고 탄탄했으며 어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잘 생겼지만 무딘 
청년이 
될 거야. 얘가 날 도와 줄까? 내가 그 동안 동생에게 쏟은 정성을 그 누가 알랴.
"알래스데어, 난 너의 도움이 필요해."
그녀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주었다.
"어머니가 내 아버지의 공장을 차압하려는 중이야. 그러면 그 분은 큰 타격을  입으실 거야. 
난 그
냥 수수방관할 수없어. 이번에는 안된다구, 알레스데어. 날 도와줄 사람은 오직 너밖에 없어. 
지금
까지 너에게 한번도 부탁해 본적이 없지만 지금 이렇게 사정할께."
그녀의 절망적인 목소리에 알래스데어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큰 갈색  눈동자 속에  
간절한 
호소와 함께 일말의 흥분이 엿보였다.  그는 수건을 어깨에 두르며 추위를 참으려 했다.
"어머니는 은행의 힘을 이용해서 개인적인 복수를 하고 있어.  내 평생 어머니는 날 사랑의 
보금자
리에 끼어든 침입차처럼 느끼게 해놓고,  지금에 와서 내 유산을 빼앗아  나에게 돌려 주고 
싶어해. 
내 선물로 말이야. 하지만 그것은 나와 내 아버지의 것이야. 어머니의 것이 아니란 말이야."
알래스데어는 열내살짜리의 모든 이성을 총동원하여 문제의 요점을  포착하려고 갖은 애를 
다 썼
다.
"하지만 사랑의 보금자리에 끼여든  침입자 기분은 그저  누나만의 느낌으로 판명되었잖아. 
그건 사
실이 아니라구. 누나는 입양아가 아니었는데 뭐가 문제라는  거야? 이해를 못하겠는걸. 우린 
모든  
다른 아버지를 두었지만 엄마는 똑같잖아. 그 사실이 나와 누나에게 어떤 차이가 있지."
"네가 그 차이를 모른다는 게 문제야."
그녀는 샐쭉하니 쏘아 붙였다.  "
알래스데어는 바람을 피하려고 덤불을 등지고 돌 덩어리 위에 앉았다.  이빨이 딱딱 부딪치
고  추
위에 손발이 꼽았지만 자신의 문제에 푹 빠진 라나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좋아, 내가 설명해 주지."
라나가 말했다.
"하지만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은  다른  차원이야. 넌 입양아의  심정이나 외부인이 서글픔, 
그리고 
가장과 식구들이 우연의 산물이라는 인식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거야. 사실은 전혀 그렇
지 않았
다는 것을 알아봤자, 내 기분은 변하지 않는다구.
"이제야 난 뿌리를 발견했어. 진짜 뿌리를 말야! 알래스데어, 내가 그걸 얼마나  원해왔는지 
넌 모
를 거야. 난 소송을 걸어서라도 아버지에게 친자로 인정을 받고야 말 테야."
그녀는 당에 쭈그리고 앉아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제발 내 기분을 이해해줘, 알래스데어. 엄마는 나에게 소속감을 박탈하셨어."
"그건 엄마가 잘못하신거야."
알래스 데어는 반역자가 된 기분이었지만 사실은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나를 도와주겠다고 말해. 그리고 내 말을  들어봐.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일은 이
런 거
야."
그녀는 자세히 설명했다.
누나의 설명을 다 듣고난 후에 알래스데어는 '난 그렇게 할 수 없어'라고 생각했다.  미치지 
않고
서야 어느 한편을 들 수 없었다.   그는 엄마와 누나, 두 사람을 똑같이  사랑했다.  게다가  
은행에 
달려가서 엄마의 결정에 반론을  제기하다니? 엄마는  회장일 뿐  아니라 머리회전이 빠른  
분이다.  
아무 우리를 비웃으실 걸. 하지만 누나도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으리라.
"좋아.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어. 죠 삼촌에게 말씀드려야해."
"좋아. 제발 서둘러. 내가 젠킨스에게 은행에 데려다달라고 할께. 그 다음에  난 에딘버러로 
갈 거
야. 오늘 밤에 아버지의 성대한 사교 행사가  열리거든. 그야말로 언론에 공포하기에 완벽한 
시기
야. 알래스데어, 서둘러서 준비해. 난 짐을 싸러가야겠다.  "
"엄마에게 뭐라고 말씀드리지?"
"어머니에게......? 아, 네 마음대로 말씀드리렴."
"누나는 친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잖아."
알래스데어는 이성적으로 반박했다.
"엄마가 누나를 키어왔어. 우리를 위해서 뭐든지 다 해 주셨다구. 후회할 짓은 하지 마......"
하지만 라나는 이미 집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여자들이란 다 똑같다니깐......"
그가 중얼거렸다.
  
    79
  오후 3 시경에 두 대의 전화가 거의 동시에 울렸다.  마침  죠는 새로운 열광거리인 플룻
을 연습
하고 있었다.  그는 마지 못해 CD 플레이어를 끄고 핸드폰를 받았다.  그램피언 은행장 제
임스리
틀우드였다.  죠는 그의 목소리를 통해 긴급 사태임을 눈치 챘다.
"죠, 문제가 생겼습니다.  "
리틀우드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당신이 지금 당장 이곳으로 와주셔야 겠어요.  은행과 증류소에  막대한 손실을 끼치고 가
정의 불
화를 일으킬만한 문입니다.  카메론 일가를  진짜 단란한 가정으로 알았던 저는  큰 충격을  
받았어
요.  "
"무슨 문입니까? "
"그동안 카메론 부인의 지시하에 글렌티란에 당좌  대월을 줄여왔습니다.  그런데 알래스데
어 도련
님이 란나와 함께 여기에 와서  모친이 은행을  이용하여 글렌티란에  사적인 복수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셨어요."
죠는 복부를 한대 얻어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자제분들이 카메론 부인에  대한 그렇게 강경한  태도를 취하리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두 분은 
글렌티란에 대한 은행 결정을 안건으로 비상 주주총회를 소집해야  한다는 겁니다.  게다가 
라나는 
로버트 경이 친부라고 주장하더군요. 그런 말을 들어본적이 있으십니까?  전  생전 처음 듣
는 이야
기 예요.  "
죠는 한숨을 쉬었다.
"당연히 극비에 붙여야 합니다.  "
"그럼요. 라나는 그녀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싸우겠데요.  이미 언론에 사실을  폭로했답니
다.  "
"맙소사!."
그 아이가 제 어미에게서 교활한 술책을 배웠구나.
"그 스캔들로 은행과 글렌너드는 말할  것도 없고 글렌티란도 큰 타격을  입게  될 겁니다.  
당신은 
은행 이사이자 집안의 친구로서 지금 당장 이 곳에 와주시길 바랍니다.  "
"내일 아침 9시 30분에 봅시다.  "
그리고 1분 후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라나였다.
"이미 리틀우드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라나."
죠는 분노를 자제하며 말했다.
"네가 어머니에게 해를 입히려 한다면  내  도움은 기대하지 말아라.  넌 정도를 지나쳤어. 
가정의 
불화는 가족간에 해결해야 해. 언론매체를 찾아간  네 행동은 용서받을 수 없어. 그런  짓을 
저지른 
마당에 화해할 희망은 아예 버려라. 네 어머니는 절대로 너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 내일  아
침 9시 
30분에 은행에서 만나자. 널 개인적으로 만날 생각은 없다.  너에게 정말 실망했다.  라나."
라나가 전화기를 내동댕치치기 전에 숨죽인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근모든  한숨을 쉬고 여장을 꾸리기 시작했다.  마조리의 책임이 분명한  사안에 대한 가족
의 반역
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그녀에게 전화를 할까? 아니야, 직접  얼굴을 보며 말하는  편이 
좋을거
야. 최선을 다해야지.
우선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자!
그는 신문사 편집ㅈ아에게 전화를 걸어 라나 하디의 이야기를 기사화하는 경우 소송을 불사 
하겠
노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20여분에 걸친 통화가  끝날 즈음, 편집장은 기사를 로버트 경과 
마조리
에게 팩스로 송고하여 확인 절차를 밟겠노라고 약속했다.   이만하면 최소한  시간을 번 셈
이었다.  
죠는 대중에게 빙하기의 도래를 경고했지만 무시당한 후, 사태에  임박한  부상자들에게 도
움을 요
청당한 심정이었다.
  오후 내내 마조리는 따돌림을 당했다.  라나는  말 한마디 없이 퇴원하고 집에서  알래스
데어를 
만난 다음에 감감무소식이었다.  알래스대어에게 누이의 행방을 캐어물으려던 시도는실패로  
돌아
갔다.  그는 뒤늦게서야 친구와의 약속을 떠올리고 젠킨스의 차를 타고 집으로 나갔다. 그리
고 나
중에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친구네 집에서 자고 오겠다고 말했다.
왜 그녀가 아니라 할머니에게 전화를 했을까?  왜 자식들이 그녀는 피할까? 그리고 라나가 
입원기
간 중 적대적으로 행동한 이유가 뭘까? 애초에 비를 맞으며 강둑에 앉아 있어야 했던 이유
는?
지난 한달 동안 그녀는 라나와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려 했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마조리는 불길한 예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최근에 라나는 공공연하게 반감을 표출했다.   
그저 
성장의 고통스런 한 과정에 불과한 걸까?
오후 여섯시가 되자 그녀는 속상한 생각을 접기로 했다.
그래서 향수 비누를 푼 따뜻한 목욕물에  몸을  담그고 스카치 위스키를 마시며  소설책을 
읽었다.  
살이 에일듯한 추위 밤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물에서 목욕하는 기분은 그만이었다.  하지
만  좀
처럼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책을 내려놓고 자식들의 행동을 분석했지만 역시 별 소득이 없었다.  욕조에서  
나올 
즈음 그녀는 춥기보다 두려웠다.   푹신한 벨벳 가운으로 몸을 감싼  그녀는 아랫층으로 내
려가 차
를 끓였다.
막 서재를 지날 때 안에서 팩스 수신음이 들여왔다.  그녀는  불을켜고 팩스 용지를 확인했
다.  발
신자는 지방 신문사 였다.  어머, 이상해라! 부인,  우리는 다음 기사를 내일자 석간 신문에 
게재하
려 합니다.  따님 라나 하디와의 인터뷰를 그대로 인용한 본  기사에 만일 반박하실 말씀이 
있으시
면 자정 이내에 팩스를 넣어 주시기 바랍니다.
마조리는 다음 장을 넘길 수  없었다.  불안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안고  그녀는 계속  
읽어나
갔다.
글렌티란 증유소 및 그램피안 은행의 회장 마조리 카메론은, 아들  알래스데어가 소유한 증
류소의 
경쟁자 글렌티란 증류소에  대부를 거절함으로써 위스키  전쟁의 막판에  승리를 거두었다.  
본 조치
는 시기 적절하게도 글렌티란의 미국 판매사 로사피오 홀링 사의 파산에 이어 행해졌다.
 5백만 달러어치의 글렌티란 12년산 원액  위스키는 유욕의 채무자에게 압류당했고  조만간 
경매에 
부쳐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헐값에 팔리리란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최근의 전개호 14년간에 걸친 위스키  전쟁은 결론을 맺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 인지도가 
가장 높
은 위스키를 생산하는 글렌티란은  그램피안 은행이 대부를 회수하는  작금에 위스키와 판
매사의 
손실을 회복할 수 있을지는 극히 의문이다.
그렌티란의 수출사 인버 아시아는 미국과 일본에 영업망을 구축했으므로 빠르게 글렌티란의 
시장
을 잠실할 것이다.
이제 글렌티란을 살릴 방법은 지적밖에 없다는 소문이다.  그러나 라나 카메론(20세)은 자신
이 마
조리 카메론 부인과 그렌티란의 사장 로버트 맥라렌 경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라고 주장하
며 부
친의 사업아르 구할 기적을 찾고 있다.  그녀는 글렌티란의 숙성중인  위스키를 팔 수 있기
를 희망
하고 있다.  또한 런던의 유명한 주식 중개인과 손을 잡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금융계에 있다.
우선 정부 당국은 은행이 금권력을 휘둘러 경쟁 회사를  무너 뜨리지 못하도록 법률을 제정 
해야 
한다.
둘째, 은행의 힘을 빌어 개인적인 원한을 갚는다는 발상은 그  도덕적인 측면을 차치해  두
고 미래
의 고객 관계에 큰 파급 효과를 끼치게 될 것이다.
글램피안 은행장 제임스 리틀우드 씨의 말을 빌자면 은행주 알래스데어  카메론(14세)은 소
위 '위
스키 전쟁'에 대한 모친의 접근 방식에 '큰 우려'을 표명했다고 한다.
그램피안 은행이 잘못된 신념을 갖고 있는가? 정말 은행이  카메론 부인의 경쟁자를 말살하
는 도
구로 쓰인다면 다음 목표는 누가 될 것인가? 부인이  건축업이나 조선업, 혹은 소매업에 관
심이 없
다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은행의 주주들은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리라고 믿는다.
마조리는 팩스 용지를 휴지통에 쳐넣었다.  이곳을  벗어나야만  했다.  그녀는 헐떡거리며 
밖으로 
달려나왔다.
난 저주를 받았어. 로버트가 날 버렸고 해미쉬도 그랬어. 그리고 이제 아이들 마저.  어떻게 
내 속
으로 난 자식들이 나에게 등을 돌릴 수 있지? 난 아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다했어.  어떻게 
내 자
식들이 그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달이 교교한 빛을 발했고 올빼미 한 마리가 숲에서 울었다.   바람이 스산하게 나무들 사이
를 스치
고 니자갔지만 마조리는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했다.  공허감에 휩싸인  그녀는 망연히 어두
운 호수
를 바라 보았다.
  
    80
  마조리는 충분히 마음을 가다듬은 후 신문사에 팩스를 보냈다.  여저히 가운 차림으로 책
상에 앉
아 워드 프로세서 화상에 뜬 답변을 마지막으로  검토했다.  잔인할  만큼 솔직한 내용이었
다.  네, 
저는 글렌너드 위스키 회장으로 글렌티란 측에 대부를 중지하도록  권고했습니다.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하는 위치에서 그와 같은 조치를 취했던 것입니다.  저는 지난날 위스키 업계에서 쌓은  
충분
한 경험을 바탕으로 글렌티란의 위험한 상태를 누구보다 더 잘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제 글렌
티란은 어떤 자구책을 마련한다 해도 미국  시장의  패권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결국  큰 
손실만 
입고 대부분의 시장을 경쟁 업체들에게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중소 업체로  
전락하
고, 손해를 메꾸기 위해 많은 빚을  지게 되겠지요.  그래서 글레너드는 인수를 제의했습니
다.   이
런 상황하에서 그들에게 남은 최선의 선택이라고 보여 집니다.
그리고 라나는? 딸에 대해 뭐라고 말해야 할까?
그녀는 몇 분 동안 숙고한 다음 타자를 쳤다.
귀사의 기사에 실린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본건에 대해 제  변
호사가 
연락을 드릴 겁니다.
그 때 전화벨이 울렸다.  은행장 리틀우드였다.  평소처럼 그는 본란만 말했다.
"마조리, 내일 아침 9시 30분에 이사회가 열립니다.  죠 시걸이 오늘밤 비행기를 탔을  겁니
다.  "
그래, 죠가 오고 있는 중이구나. 그녀는 지난 몇 시간 동안 그에게 연락하려 했었다.
"이번 가족의 위기에 대하여 심심한 유감을 표하고 우리 모두  당신을 지지할 것을  약속드
립니다.  
그런데 신문사에 연락해 보시는게 어떨까요......"
"그쪽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취했어요.  "
그녀가 그의 말을 잘랐다.
"잘하셨습니다.  지난 몇시간 동안 여러 부장들과 긴급회의를 한  결과 우리는 당신의 판단
이 옳았
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글렌티란에 더 이상 재정적인  모험을 걸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결정을 고수할 것이며 신문에 성명서를 낼 생각입니다.  "
"네. 알려줘서 고마워요.  "
"그럼, 내일 아침에 뵙겠습니다.  "
"아, 아니에요......제임스......잠깐만 기다리세요! 난 당장 은행 및  증류소의 회장직을  사임하
겠어요.  
오늘 밤 당신에게 사임서류 팩스로 보내겠어요.  마땅한 사람을 찾을 때까지죠 시걸이 도와 
둘 거
예요.  "
"안돼요, 마조리. 서둘러서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당신의 심정은 상상이 가지만....."
그녀는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거대한 무도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라나는 사방을 둘러 보았다.  최소한 1야드 두께의 
오래
된 나무바닥은 오목하게 수세기 동안 닳은 자국이 패였고,  벽마다 묵직한 초상화들이 줄줄
이 걸려 
있었다.
가까이 서 있는 로버트 맥라렌  경를 발견하자, 라나의 속이 울렁거렸다.   그는 즐거운 모
습으로 
술을 마시며 장신의 한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의 주인공 마리아로 구나. 서
른한살
된 저 여성은 로버트 경의 계모 로다에게 며느리로 낙점되어 경의 아내 자리를 노리고 있다
는 소
문이 파다했다.  그녀는 친부의 결혼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음료수를 마시며 그를 남몰래 관찰했다.   듬직한 체구에 퀼트가 잘 어울렸다. 이미 
무수히 
많은 사진을 보았지만 전부 실물보다 못했다.  숱많은 검은 머리칼과  강렬한 갈색 눈, 힘찬 
용모
와 근육질 몸매는 고대 스코틀랜드 전사를 연상 시켰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활력으로 실제보다 더 커 보였다.  겉보기에 우하하고 양같이 온순
해  보
였지만 그 속에 내재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독립된 생명체처럼 반짝이는  저 눈이  무한
한 인내
심을 갖고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의 정적인 외관 속에 약동하는 기민함은  오
랫동안 
오지를 탐험했던 소득이리라. 웬지 그의 강인함과 고집스런 모습에 그녀는 울고 싶어졌다.
  어떻게 어머니가 저런 남자보다 사업면에서 월등할 수 있겠어? 하지만 어머니도 만만찬은 
분이
야. 인내심있고 교활하게 복수 계획을  세웠고, 해미쉬를 비롯한 글렌너드와  은행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조종해왔어. 심지어 알래스데어마저 어머니의 전쟁에 끌여들였어.
한순간 자의식이  그녀를 강타했다.
그녀의 뿌리는 저 두명의 영리하고 고집세고 가차없고 특별한  부모님에게 있었다.  그들의 
유전자
가 그녀의 것이며, 그들의 피가 그녀의 혈관을 타고 흘렀다. 그녀는 그들의 두뇌와 교활함을 
지녔
고 저 두사람의 합작품 이었다.
처음으로 그녀는 아버지를 원했다.  우울하고  슬프면서 행복이 교차된 심정에서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열망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 무엇보다 아버지를 어머니로부터  구해 드리고 싶었다.  
라나는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움직였다.  계획에 없었지만  그녀는 아버지에 대해 더 
잘알고 
싶은 충동에 따랐다.
저분의 책상을 만져보고, 저분의 사무실을 두 눈으로  보고, 저분의  침실을 통해 일상을 알
고 싶
었다.  그녀는 살그머니 무도회장을 빠져나가 복도를  따라 걸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
었다.   
그래서 첫번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81
  이 세상에서 자식에게 배신을 당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런 일이 또 있을까? 마조리는 책상 
앞에 
앉아 고개를 박고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지 를 따져 보았다.
왜 아이들이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을까? 그 오랜 세월동안  그들을 위해 노력해왔건만 이제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라나의 기억이 머리속에서 스물스물 올라왔다.  여우를 보고 감탄하던 모습, 처음 승마을 하
던 의
전한 태도, 패디용크가 죽었을 때 슬퍼하는 얼굴 등. 딸은 큰  위안을 주었다.  그런데  왜? 
라나가 
가시 철조망 위로 몸을 던져 그녀를 받쳐주었던 때가 떠올랐다.   라나는 항상 엄마를 사랑
해왔다.  
이제 가슴의 상처가 육체 적인 아픔이 되어 복부를 찔렀다.
"난 글렌티란을 이겼어."
그녀는 소리내어 말했다.
"이제 시간 문제야. 그 모든게 라나를 위해서였는데, 그 아이는 그의 편을 들었어. 왜?"
"어떻게 제 아버지에 대한  것을 알아냈을까? 그녀는 지저분하게  싸움을 걸어왔어. 하지만 
내가 이
빨과 손톱까지 동원해 싸우는 법만 가르쳤으니...... 그래, 난 그 아이를 자랑스러워 해야해."
마조리는 쓰레기통에서 내버린 팩스 용지를 다시 주웠다.  라나에 대해 뭐라고 쓰여져 있었
더라?
'......부친의 사업을 구할 기적을 찾고 있다......'
"미쳤구나. 기적은 없어, 라나. 넌 너무 늦었어."
지난 3주일 동안 요시 토하라 상은 발빠르게 글렌티란의  미국은 관로를 장악했고 악의적인 
보도
를 접한 글렌티란의 채권자들은 일제히 투자금 반환을 요구하고 있었다.  지난주 그 회계사
가  리
틀우드에게 직원 임금만이라도 대출해 달라고 통사정을 했을 정도였다.
자리에서 일아난 그녀는 서재를 서성거리며 혼잣말을 했다.
"물론 내가 이길 거야. 라나는 정보도  힘도 경험도 없어.  무엇 보다 시간이  부족해. 오래 
전부터 
천천히 조여들어간 덫이 표적의 숨통을 결정적으로 끊어놓으려는  찰라에 그것을 막을 사람
은 아
무도 없어. 네 아버지는 패배할 거야. 그 다음에 내가 라나에게 글렌티란를 쟁반 위에  받쳐 
줄테
야."
그녀는 시니컬한 웃음을 내뱉었다.
"내가 항상 꿈구어 왔던 것처럼 내 딸은  제 아비의 유산을  받게 될 거야. 하지만  반드시 
날모든  
통해서 이루어져야 해."
하지만 앞뒤가 맞지 않았다.  딸의 동기는  짐작할 만했다.  진짜  이유가 명백해져가자, 마
조리는 
그동안 딸의 존재를 부인해왔던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 보았다.  사실 냉대는 차가운 샤워만
큼이나 
충격적이다.
하지만 라나만 그런 대접을 받은게 아니었다.  난 복수에만 집착한  나머지 누가 상처를 받
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았어. 죠, 해미쉬, 내 자식들, 그리고  나 자신마저 속였다.  라나를 위한 이런  
짓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속여 왔던 거야.
창가로 간 그녀는 밤하늘을 올려가 보았다.
"내가 이긴다면, 내 딸은 나처럼 증오하는 법을 배우게 될까?"
참담한 분노에 입이 말랐다.  마조리는 깊은 숨을 들어마시고 소리쳤다.
"안돼! 내가 천벌을 받고 있구나."
일요일 주일 학교에서 배운 교리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녀의 안에서 대답이 흘러나왔다.  
'너에
게 벌을 내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유유상종이라고 내가 증오와 복수에 이끌린 거야.'
한가지 생각이 혼란에 가득한 배반의 밤을 뒤덮은 안개를 관통했다.  '라나는 이겨야만 해! 
난 그 
라나를 패배시키기에는 너무 그애를 사랑해.'
그녀는 책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난날  무수한 적과  대결을 앞두었을 때처럼  계획을 
세웠다.  
이번에는 자신의 마키아벨리 적인 음모를 뛰어넘는  것을 짜내야만 했다.  한참 후에야  자
리에서 
일어났을 때 춥고 온몸이 뻐끈했다.   그녀는  각종 증명서와 신탁 서류가  보관된 금고를 
열었다.  
갓 스무살이 된 라나는 스물 다섯살이 되는 날 백만장자가 될 것이다.
몇 가지 서류에 서명한 다음 그녀는 라나에게 간단한 편지를  썼다.
네 주식을 글렌티란의 제 2 차 담보로 잡히거라. 은행은  그 제의 를 받아들일 거야. 그리고 
개별
적인 브랜드를 유지하며 글렌티란 위스키 수출을 글렌너드 측에   귀속시킨다면,  글렌티란
은 오래
지 않아 경기를 회복할 거야. 행운을 빈다. 널 사랑해.
  그녀는 서류와 편지를  커다란 봉투에 넣고 그 위에'라나 하디에게  속달로 배달할 것'이
라고 메
모한 뒤 '우편 접수' 바구니에 넣었다.  내일 아침에 배달부가 수거해 가겠지.
한가지 할 일이 더 남아 있었다.  그녀는 죠와 리틀우드에게  각각 편지를  써서 팩스로 송
고했다.  
"마조리."
죠의 목소리였다.
"내가 오늘밤 그곳에 갈거요. 막 떠나려는 순간에 당신의 팩스를 받았소."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요.  "
"전화를 끊지말고 내 말을 들어요.  라나는 환상적인 소원에 푹  빠져 있는 거요.  글렌티란 
위스
키를 글렌너드 측에서  매각할 가능성은  희박해. 그리고  그애는 제  아버지를 만나지  못
했을테
니......"
"뭐요?"
마조리의 몸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오늘밤 라나는 그와 결판을 하겠다며 에딘버러로  갔어. 소송을 걸겠다고 위협적인 후계자
로 인정 
받을 생각인 듯하오. 최근에 발생된 비슷한  건에 대해 학교에서 배운 모양이야. 30분  전에 
알래스
데어가 나에게 전화하여 모든 사정을 다 털어놨소 그는  친구네 집에 있는데 오랫동안 뿌리
를 알
고 싶어했던 누이가 문전 박대를 당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이 대단하더군."
"하느님 맙소사......"
"마조리, 당신 생각과 달리 아이들은 당신에게  반감을 가진게 아니오. 라나가 당신과  알래
스데어
에게 등을 돌린거야."
"안돼! 이 일을 어쩌면 좋아."
그 순간 그 녀는 그 옛날 로라에게 당했던 모멸감을 또렷이 기억해 냈다.
"난 라나를 찾아야 해요. 고마워요. 죠."
그녀는 위층으로 달려가 옷을 갈아 입었다. 라나를 찾아서 주식을  줘야 해. 어린 딸을 원치 
않았
더그런데 그가 지금와서 그  아이를 원할까? 하지만 라나는  그곳에 사정을 하러 간게  아
니었다.  
그녀만이 아버니를 살릴 수있었다.  이번은 전과 사정이 달랐다.
달은 구름이 가리웠고 자욱한 밤안개로 시계가 선명하지 않았다.  그녀는 60마일이  속도로 
모퉁이
을 돌았다.  아직 기회는 있어. 운전대를 잡은 그녀의 손에 쥐가 날 정도였다.
인버네스를 5마일 앞둔 어두운 숲속에서  뭔가 뛰어나왔다.  그녀가 본능적으로 차를  오른
쪽으로  
트는순간 공중으로 펄쩍 뛰어오르는 생명체의 뿔과 반짝이는 눈,  공포로 허옇게 드러난 이
빨이 얼
핏 보였다.  그 아름다운 생물은 차와 충돌하기 일보 직전 이었다.
"이런......" 전광화석과 같은 공포의 그 순간 그녀의 머리속에는 단  한가지  생각 밖에 없었
다.  난 
너무 많은 이에게 상처를 줬어. 그녀는 힘차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운전대를 왼쪽으로 틀었
다.  차
가 썰매를 타듯 옆으로 미끄러질  때 그 우아한 동물이 차  옆을 지나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그리고 멀어져가는 발굽 소리, 찢어지는 듯한 타이어 마찰음과 더불어  그녀의 목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이 거대한 진동과 맞물렸다.   그리고 그녀는 쓰려졌다......
그녀는 로버트와 함께 도버 절벽을 걷고 있었다.  그녀가 풀 위에 눕자  그가 그녀에게  몸
를 겹쳐
왔다.  그의 헝클어진 머리카락 위로 가을 햇살이 후광처럼 빛났다.
엄마가 수녀원 육아실의 아기 침대에서 라나를 들어올렸다.
"우리 아기, 이제 집에 가자."
해미쉬가 카메라를 든 그녀에게 수줍게 웃어보이며  바위 위를 오르고 있었다.  해미쉬, 아 
사랑하
는 해미쉬, 난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했건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바보였어요.
스쳐 지나가는 영상들! 그리고 또 다른 시대의  모습들이 언뜻보였다.  호랑이 담배먹던 옛
날이야! 
그리고 그녀도 그곳도 있었다.
그 명멸하는 광경들은 그녀를 혼란에  빠뜨렸다.  꼭 수정처럼 맑은 호수에  파문이 일어나 
온갖 퇴
적물과 지난날의 실수가 남긴 파편들이 그녀 주변에 쌓이는 것 같았다.
영겁의 세월을 살아왔던 나는 누구일까? 그녀는 반쯤 열린 문을 통하여 마조리 하디의 육신
을 볼 
수 있었다.  그 다음에 거대한 사라의  밀물이 그녀를  채웠다.  그녀는 더 이상  예전처럼 
자신과 
아무 관계없는, 생명력과 강력한 힘과 큰 사랑으로 가득 채워진 시공을 떠다녔다.
  
    82
  오후 10시. 서재에서 고다 맥라렌은 의붓아들을 째려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타오르는 
용광
로처럼 이글거렸다.
"넌 존경을 가지고 우리 손님을 접대해야 해."
그녀는 성질을 누르며 침착하게 말했다.
"어머니의 손님들입니다.  "
그녀는 실눈을 뜨고 더욱 주의 깊게 아들을  살폈다.  아, 저 완고한 표정은 정말 지긋지긋
해. 그의 
얼굴은 침울한 초상처럼 굳어 있었다.  저런 표정의 그에게는 어떤 말도 통하지 않는다.
"우리가 처한 급박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니?"
"어머니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
"그런데 왜 이러는 거야?"
"저는 돈 때문에 결혼하지 않을 겁니다.  "
"그야말로 좋은 거래잖니? 그녀는 명예를, 너는 돈을  갖게 될거야. 그리고 우리는 후계자가 
필요
해."
로버트는 그녀를 노려 보았다.
그녀가 다시 시도했다.
"그녀는 너를 사랑해. 다들 네가 오늘밤 청혼하길 고대하고 있어."
"왜요? 어머니가 끊임없이 그녀를 나에게 밀어붙였기 때문에요?  제가 관연 결혼을 하게 될
지 의
문이군요. 하지만 만약 한다해도 돈 때문은 아닐 겁니다.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한마디 더 
하겠
습니다.  저는 글렌너드의 제의를 수락할 생각이 없습니다.   우리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처
음부터 
다시 시작할 겁니다.  "
그의 말은 그녀의 두려움을 불러 일으켰다.
"평생이 걸릴 거야. 그리고 우리는 다시 가난해질 테지 향후 20년 동안. 넌 항상 그래왔듯이 
체면
을 위해 실리를 져버리는 구나."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글렌티란은 우리 가문이 증류소예요.
그러니 앞으로도......"
노크 소리가 그의 말을 방해했다.  집사가 서재로 들어왔다.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주인님 하지만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로버트는 놀란 눈으로 집사를 보았다.   평소  벤자민의 무표정한 얼굴에 생생한  호기심이  
깃들어 
있었다.
"주인님 침실에서 젊은 아가씨를 발견했습니다.    경찰에 연락을 하기전에 주인님께  알려  
드려야 
할것 같아서요. 그 아가씨는 성난 암코양이 같더군요."
"이곳으로 데려와요.  "
로버트가 말했다.
"자요. 난 여기 있어요.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세요.  "
우와! 로버트는 당당하게 서재로 들어서는 젊은 아가시를  보며  생각했다.  새까만 눈동자
의 극적
인 생김새,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매가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저 드레스  좀봐! 온몸에서 멜
로 드라
마적인 분위기가 발산되었다.   복수의 천사 역에 도취했군. 저 여자가 누굴까?
그녀는 경비원의 손을 떨쳐 버렸다.
"내가 변호사로서 경고 하겠는데, 지금 당장 이 건달들이 내  몸에 손을  떼지 않으면 고소 
하겠어
요.  "
그녀의 호령에도 불구하고 로버트는 그녀가 기절하기 일보 직전임을 알았차렸다.
"내가 당신을 만난 적이 있소? 전에 본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당신 얼굴이 낯익군.  혹시 
TV 에 
출연하는 배우요?"
그는 양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집고 그 얼굴과 눈동자를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당신은 날 아셔야 마땅해요.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죠. 그건 전적으로 당신 잘못이에요.  
"
이 말이 무슨 뜻이지? 로버트의 심장이 박동을 멈췄다.   지난 몇 년동안 협잡꾼들을 수 없
이  경
험했지만, 희망이 모락모락 피어 올랐다.
"여기 테이프 레코드를 가져 왔어요.  일단 들어보고 경찰을  부르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
세요.  "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가방을 뒤지며 말했다.   그리고 로다에게 시선을 돌렸다.
"당신은 이 테이프의 내용을 짐작하실 거예요.  맥라렌  부인. 이 안에는 어제 그램피안 은
행에서 
당신이 우리 어머니 카메론 부인과 나누었던 대화가 담겨 있어요.  "
로버트는 얼굴을 찡그렸다.
"지금 당신 어머니가 카메론 부인이라고 했소? 인수 건 때문에 여기에 왔다면 헛 걸음을 한 
거요.  
그 제의는 거절하겠소."
그런데 계모가 글매피안  은행에서 뭘 하셨지?  그는 그녀의 얼굴에서  죄책감을 발견했다.   
그녀가 
그를 배반할 작당을 한 것일까?
어린 아가씨가 책상 위의 테이프 레코더를 작동하자 어렴풋하게 귀에 익은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잠시 후 로버트는 귀를 의심했다.
"맥라렌 부인.난모든  오랜 세월동안 딸의 생득권을 되찾기 위해 싸웠어요.  그것이 내 손에 
들어
오는 것은 시간 문제예요.  난 내 딸에게 친부의 신분를 밝히고 그  아이의 정당한  유산을 
돌려줄 
거예요.  그게 바로 내 계획 이예요.  "
이게 어찌된 일이지? 그는 카메론 부인을 만나본 적도 없었다.
그가 어린 아가씨에게 고개를 돌렸다.
"네 어머니의 결혼전 이름이 뭐지?"
그의 목소리가 너무 잠겨 있었다.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시 물었다.
"마조리 하디예요.  "
"그리고 네 이름은?"
"라나 하디."
로버트는 경악한 나머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바보처럼  입을 벌친 채 땅에 뿌리
를 내린 
것 처럼 꼼짝 하지 못했다.  그래, 얘는 내  딸이야. 나를 꼭 빼 닮았잖아. 입양된 게  아니
었구나. 
그는 이미 낭비되어 버린 지난 세월에 깊은 슬픔을 느꼈다.   마조리가 그 유명한 마조리이
자, 나
의 냉혹한 적이었구나. 이제서야 소위 '위스키  전쟁'의 전모가 이해  되었다.  그는 애매모
호하게 
로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내내 알고 있었을까......?"
"다음 대화가 더 이어져요."
그의 딸이 등을 돌리고 테이프 레코더를 감았다.  로버트는 방을  가로질러 가서 기계를 껐
다.
"나중에 듣기로 하자. 네가 마조리  하디의 딸이라면, 내 딸이  틀림없어. 의문의 여지가 없
다. 난 
네가 입양된 줄 알았었어. 그 동안 내 변호사가 너를 찾았단다.  "
라나는 뒤로 물러서서 턱을 바짝 들어 올렸다.
"난 당신의 합법적인 후계자로서 나의 권리를 되차지기 위해 소송을 걸 거예요.  "
로버트는 눈물어린 눈으로 딸의 표정을 살폈다.
"얘야, 난 너를 오랫동안 찾았어. 넌 어떤  누구도 고소할  필요가 없어. 어리석은 것! 그냥 
나에게 
오기만 한면 돼."
왈칵 딸을 가슴에 안은 로버트는 마조리와 한때 그들의 열렬한  사랑을 떠올렸다.  그의 자
식을 내
버린 그녀를 용서할 수 없었지만, 이제  그녀가 아예 용서받을 짓을 저지르지  않았음이 판
명되었
다.
  
    83
  "용서할 수 없구나! 라나, 어떻게 네 어머니에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니?"
로버트는 신문사에 팩스로 보낸 기사를 훑어보며 노발대발했다.
라나는 도가 지나쳤음을 알았다.  꼭  환희와 맹목적인 공포 사이를 왕래하는  시계추가 된  
기분이
었다.  그녀의 각본은 맹목적인 공포  사이를 왕래하는  시계추가 된 기분이었다.   그녀의 
각본은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즉각적인  인정이나 사랑 대신 싸움.   냉대. 말다툼을 예상
했었다.  
지금 아버지 좀 봐! 어휴, 아버지가  꼭 좋은 존재만은 아니구나. 몇분  전만 해도 애정으로  
빛나던 
눈동자 싸늘한 분노로 식어있었다.
"우리의 사생활을 언론에 공표할 필요가 있었니? 네가  네  어머니나 나에게 이런 짓을 할 
수있었
다는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구나."
"어머니는 나를 입양아라고 했어요.  어머니가 미워요.  "
"빼앗겨? 아, 라나. 넌 아직 배워야 할 게 많구나.  테이프를 다시틀고 네 어머니의 말에 귀
를 기울
여봐."
"흥, 이미 외울 정동예요.  "
그녀는 소리쳤다.  당장이라도 눈물이 터져나올 것 같았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뒤
돌아섰
지만 아버지가 그녀의 팔을 잡고 테이프 레코드 쪽으로 밀어 붙였다.
"빨리 틀어!"
그녀는 울먹이며 레코더를 작동 시켰다.  다시 한번 어머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로버트가 흘러나왔다.
"네 어머니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니?  어리석었던 내가 그녀에게 우리 
집안
에 부족하다고 말했기 때문에 그녀는 너 까지 인정받지 못했다고  생각한 거야. 그래서  너
에게 있
어야 할 자리를 찾아주기 위해 지금까지 싸워왔어. 이제 내가 절 찾은 이상 네가  걱정해야 
할 사
람은 바로 네 엄마야>"
아버지의 호소력 담긴 목소리가 방아네 쩌렁쩌렁  울렸다.  그 이성적인 논리는 차가운  칼
날과도 
같았다.  라나는 부끄러움을 금치 못했다.
"아버지 말씀이 옳아요."
그녀는 잘못을 선선히 시인했다. 어머니가 베푼 사랑의 기억이 하나  둘 떠올랐고 그  모습
이 눈앞
에 어른 거렸다.
"아, 엄마.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요?"
그녀가 속삭였다.  순간 갑자기 춥고 구역질이 났다.  뭔가 잘못 되었구나. 재난이 입박했다
는  감
이 들었다.  그리고 머리가 심하게 아프고  그녀  자신의 것이 아닌 심한 고통에  시달리기 
시작했
다.  항상 그녀와 엄마는 본능적로 연결되어 있었다.  엄마에게 나쁜일이 생겼구나.
"절대로 안돼요 ."
그녀가 소리 질렀다.
"뭔가가 잘못 되었어요? 즉시 인버네스로 돌아갈 수있을 가요? 지금 당장?"
"내가 널 데려다 주마."
아버지가 대답했다.
"눈을 뜨세요. 엄마! 눈을 떠요! 제발, 엄마, 부탁이에요.  엄마를 사랑해요.  "
그 목소리가 계속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
은은한 향수 냄새가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한 여인을 에워쌌다.  그녀는 코를 찡긋거렸다.   
라나
가 가장 좋아하는 샤넬 NO 5야. 얼굴을 간지럽히는 딸의  뜨거운 숨결과 고수머리의  감촉
이 느껴
졌다.
"나에게 말을 하세요. 엄마."
라나의 권위적인 어조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마조리는 순순히 눈을 뜨고 딸의 걱정스런 두 눈이 안도감으로 밝아지는 모습을 보았다.
"주님, 감사합니다.  "
아,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마조리는 손을 들어올려  머리 붕대를  만졌다.  이게 뭐지? 
그 때 
사고를 당한 기억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좀더 주의했어야  했는데. 눈을 감으며  그녀는 
달콤한 
수면 속으로 빠져들려 했지만 딸이 그녀를 방해했다.
"엄마!나에게  말을 하세요!"
"난 괜찮아, 라나. 정말이야. 내가 얼마나 오랬동안 여기에 있었니?"
"하루 반 동안이에요.  엄마, 제말을 들어 보세요.   난 엄마를 사랑해요.  알래스데어가 곧 
이곳에 
올 거예요.  걔도 엄마를 사랑해요.  내가 잘못했어요.  용서 받지 못할 짓 이었어요.  "
그녀는 말 한마디에 진심을 담아 천천히, 그리고 분명하게 발음했다.
"괜찮아, 라나."
라나가 붕대를 쓰다듬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엄마, 난 엄마를 용서했어요.  미리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정말 죄송해요.  "
나의 뭘 용서했다는 거지 ? 소처럼 열심히 일하고 네가 원하는  것을 모두 해 주고 네 버릇
을 망
쳐놓은 점? 너를 최고급 학교를 보내고 진학시킬  돈을 벌었던 것? 아니면 내가 누리지 못
한 모든 
특혜를 너에게 보장했던 사실? 네가 나에게 등을  돌렸을 때 잠자코 있었던 점? 기가 막히
고 가슴
이 찢어지듯 아팠다! 그 중 최악의 고통은  너의 공개적인 선전 포고였어.
그러나 그녀는 잛은 한마디로 말을 마쳤다.
"너무 피곤하구나."
"내 말을 듣고 계세요. 엄마? 난 엄마를 용서했어요."
마음 속에서 작음 목소리가 그녀에게 용기를 내라고 부축였다.
"나의 뭘 용서했다는 거니?"
아!말이 너무 험악하게 튀어나왔어. 지금은 정면 대결을 할 때가 아니었다.
"날 입양아라고 믿게 했던 것이죠. 내가 완전히 용서 했다는  사실을 엄마에게 알리는게 중
요하다
고 느꼈어요."
마조리는 속구치는 분노에 앉으려고 버둥거렸다.
"아!"
그녀는 고통으로 헐떡거리며 다시 자리에 누웠다.
"라나, 그럴 수 밖에 없었던 당시의 절박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니? 지금 같지 않은 시
대였어. 
예전 사람들의 가치관은 지금과 딴판이었어."
"그리고 엄마가 매일일만하고 우리 곁에 있어 주지 않았던 것도 용서했어요.  "
"너희들에게는 할머니가 있었잖니."
"난 엄마를 원했어요.  "
라나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라나, 그만 울어. 나에게는 꿈이 있었단다. 너를 네가  속산 사회에 되돌려 놓고 내 자존심
도 살리
기 위해서 너에게 유산을 되 찾아주고 싶었어. 난 이류 시민 취급에 상처를 받았었단다......" 
"알아
요.  아빠가 말씀해 주셨어요.  난 이제 엄마를 잘 이해 하고 있어요.   그리고 엄마의 편지
도 잇
지 못했다.
"내가 무슨 할말이 있겠어요? 정말 고마워요.  엄마가  제안하신데로 하겠어요. 이제 엄마가 
나게 
최선을 다 하셨음을 깨달았어요.
"아버지 덕분에 사태를 바로 볼  수 있었어요.  아버지는 지금 가고  안 계시지만 여기에서 
밤을 새
우셨어요.  며칠전 계모 로라가 예전에  엄마가  임신했다고 썼던 편지를 아버지에게  건내  
주셨어
요.  아버지는 훨씬 후에야 엄마의 임신 사실을 알고 수녀원에  찾아가 내가 입양되었다 말
을 들으
셨대요. 그 이후 그의 변호사가 내 행방을  찾으려고  애써 왔대요. 참 이상하지요? 우리는 
어젯밤
에 대화를 나눴을 뿐 인데 평생동안 아버지를 알고 지낸 기분이에요.  "
마조리는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밖의 풍경에 정신을  집중했다.  키 큰 나무에서  한  
마리 새
가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녀는 분노와 슬픔과 후회로 뒤섞인 감정을  가라
앉이려
고 노력했다.  라나를 옆에 앉혀두고 자기 연민에 빠질 수는 없었다.   저 아니는 그녀의 말
이 비
수가 되어 어미의 가슴을 찌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딸은 너무 어렸다.
그리고 나도 널 용서했단다. 그러나 마조리는 너무  현명하기 때문에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
다.
"난 자고 싶구나."
"난 언제나 엄마를 사랑해 왔어요.  그럴 거예요.  내말을 믿으시지요?
그런데 아빠가 병문안을 와도 되는지 알고 싶으시대요."
마조리는 꾹 참았다가, 라나가 떠난 후에야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눈물을 흘렸다.
  
    84
  정오경에 엄마가 오셨다.  마조리를 동정해야  할지, 책망해야 할지 마음을 정할  수 없다
는 듯 
혼란되고 걱정스런 기미가 역력했다.
"엄마, 오실 필요는 없었어요.  "
마조리는 죄책감을 느끼며 말했다.
"저는 괜찮아요.  곧 집에 가게 될 거예요.  "
"간호사의 말로는 내일 퇴원해도 된다더라. 내가 책을 몇권 가져왔어."
엄마는 죽는 그날까지 감정적인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리라. 최우선의  화제 대신  채소밭과 
거기에
서 벌어들이는 수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라나와 저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세요.  다 해결 되었어요.  "
마조리가 불쑥 물었다.
"뭐,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하지만 상황이 심상치  않았어요.  언론에서 우리의 사생활을 
까발리
는 통에 세상 사람들이 다 알게 되었어. 우리는 공들여  라나를 입양하라고 사람들에게  말
해 왔잖
니. 그리고 거짓말도 아니야. 정말 우리가  그 아이를 입양했으니 말이야, 네  아빠와  나는 
그 아이
에게 마음을 쏟았단다. 넌  아이 버릇을 망쳐놨어요.   내가 너라면, 너라면 라나를  그렇게  
쉽게 용
서하진 못했을 거다.   짐짓 상처받지 않은 척하지  말아요.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정신이 
없었으
면 칠흙같 야밤에 도로를 질주하다 차를  나무에 들이 받았겠니. 그런데 자동차  보험은 들
어놨겠
지?"
"네,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 사랑해요.  걱정시켜 드려서 죄송해요.  "
리즈는 휴지로 눈가를 닦았다.
"네가 일을 잘 해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너의 혹  덩어리라고 생각해왔단다......
우리가 
무거운 짐덩어리였지? 네 아빠가 얼마나 걱정하시는지 몰라.'
"아, 엄마! 난 나를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다  버릴 거예요.  두 분은 서로 
사랑하
시면서 잘 살아 오졌잖아요. 지금 그런 말씀으 하시는 척도가 뭐예요? 돈?"
엄마가 훨씬 차분해진 목소리로 화제를 바꾸었다.  "너의 그 로버트가 찾아왔더구나. 키이스
로 이
사했으니, 필요한 일 생기면 연락하래. 흥, 우리는  그 사람없이도 잘 살아 왔어. 그는  저택 
바%에
서 살고 싶은 것 같더라. 계모가 가구까지 몽땅 싸가지고 프랑스로 갈거래. 그가 뻔뻔스럽게
도 자
기 딸을 잘키워줘서 고맙다고 인사하기에, 내가 한 미디 해줬다.  "그 아기는 우리딸이니 언
감 생
신 꿈도 굳이 말아요! 하고.  전형적인 속물 같으니! 세상이 저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
하나봐. 
해미쉬와는 겪기 다르더라. 아빠는 해미쉬를 아끼셨어. 아니, 우리 모두 그랬었......"
그녀는 말끝을 흐렸지만 짧은 웃음으로 우울함을 씻어 버렸다.
"남자들 속은 너무 뻔히 들여다  보여서 웃겨. 로버트가 나에게 꽃을  가져왔더구나. 커다란 
아이리
스 꽃다발 이었어. 그는 너를 다시 되찾으려는 거야. 하지만 마조리, 그를 섣불리 믿지 말아
라. 전
에 너를 버렸던 남자야. 그 꽃을  여기로 가져올까  하다가 네 침실에 꽂아  놓았다.  네가 
퇴원할 
때까지 싱싱하게 피어있을거야."
"고마워요.  엄마."
마조리가 엄마의 손을 꼭 잡았지만 엄마는 슬그머니 손을 뺐다.  그리고 다시 딸의 손을 잡
아 마조
리를 놀라게 했다.
"우리는 애정을 표현하지  않았지, 맞지?  다른 집 식구들은 노상 서로  껴안더라. 아랫마을 
턴불 
부인만 해도 항상 딸들의 뺨에 키스를 하더구나. 내가 너를 그렇게 키웠으면 좋았을텐데."
"엄마는 잘 하셨어요.  "
마조리가 일어나려다가 두통으로 숨을 몰아쉬었다.
"내가 간호사를 부르마."
"아니, 됐어요.  "
그녀는 엄마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꼭 껴안은 다음 뺨에 키스를 했다.  엄마에게 향수와 비
누, 그
리고 친밀한 냄새가 풍겼다.
"기자들이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어."
엄마가 마조리에게 말했다.
"그들도 그게 직업이니 어쩔 수 없겠지. 우리는 그냥  무시해 버렸단다..  그리고 라나에 대
해서 말
인데. 그 아이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 네가 베푼 해동을 말해줬을 때 난 그만 울어 버렸단다. 
네가 
건강을 최찾는 즉시 라나는 미국으로 가서  요시 토하라상과 두 회사의 영업을  합병시킬거
래. 로버
트도 동의했단다.  그 아이가 그의  후계자이니  만큼 양측의 유산을 통합할  대의 명분이 
선다나. 
어휴, 라나가 주식에 손을 댄 지금 그 아이를 어떻게  견뎌야할지 모르겠구나. 전보다 더 대
장 노
릇을 하려고 들어요.  네가 취한 조치에 대해 후회하지 않기를 바란다."
"네, 엄마. 라나가 날 필요로 할 때마다 내가 곁에  있을 거예요.  그리고 요시 토하라 상가 
로버트
도 있잖아요.  나중에는 알래스데어도 그녀에게  힘이 되어줄 거예요.  그러니 잘목될  수가 
없어
요."
"네가 좋아보이니, 난 이만 가보마. 난 병원을 참을 수가 없어. 여기 냄새만 맡아도 속이 울
렁거리
거든. 아빠가 병문안을 오지 못해서 미안하시대. 새 감자밭에 거름을 주셔야 했단다.
"그럼요. 아빠에게 안부 전해 주세요."
"내가 알래스데어를 데리고 왔어. 그 아이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너무 오래 데리고 있지 
말아
라. 다시 학교로 데려다 줘야 해. 아, 그리고 로버트가 이걸 전해 달라더라."
그녀는 봉투 하나를 마조리의 무릎에 내려 놓았다.
  알래스데어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갈피를 못잡고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알레스데
어, 너
를 사랑해. 난 앞으로 부주의하게 운전하지 않을 거야. 날 용서하거라."
"엄마, 죄송해요.  내가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냐, 네가 잘한 거야. 내가 잘못했어.  나중에 네가 나이가  들었을 때 다시  이야기를 하
도록 하
자. 하지만 그때까지 ......"
"아, 엄마."
알래스데어가 침대로 달려왔다.  그의 목소리는 흐느낌에 젓어 간헐적으로  간간히 흘러 나
왔다.
"이번 일에 한가지 좋은 점이  있어요.  난  엄마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았어요.  전에는 
엄마가 
실수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거든요.  "
그녀는 아들의  손을 잡았다.
"난 일만 해왔어. 하지만 앞으로 오랫동안 쉴 생각이란다.  내가 곧 집으로 돌아갈께.  나를 
꼭 안
아주고 학교로 돌라가거라."
그가 떠나자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뜯었다.  21년전의 편지에 그녀는 숨이 막혔다.
사랑하는 마조리,
난 이번 일을 내 입장에서 충실하게 기록해봤소. 우리의 그늘진 삶에 한 줄기 빛이  췄다고 
할 수 
있겠지. 난 당신을 이해하지도, 신뢰하지도 않았던 나 자신을 영원히 용서할 수 없소.
마음을 다 하여
로버트
추신:난 '사랑'이란 말로 당신을 모욕하지 않겠소.  당신은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있지만 그  
뜻을 
이해하지 못 했었소.
나머지는 그저 역할에 불과했다.  그녀는 여러번 다시 읽은 다음에야  잠들었다.  훨씬 나중
에 눈
을 떴을 때 온 방안에 튜울립과 다알리아, 그리고 장미와 바이올렛이 가득했다.  라나의 선
물이었
다.  그 아이가 꽃집을 몽땅 사들인 모양이야.
  
    85
  다음난 오후 4시 경에  마조리는 퇴원하기로  결심했다.  꼭  마무리를 지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녀는 옷을 입고 운전사 젠키스와 로버트의 키이스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내가 당신을 데리러 가겠소. 아직 몸이 좋지 않은 당신이 운전하길 바라지 않소."
보기 드물게 강압적인 말이네. 그녀는 비판적으로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목소리에 온몸이 짜릿해졌다.  그녀는 깊고  풍부하며 관능적인 약
속에 가
득 찼던 그 목소리를 잊고 있었다.   불현듯 옛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건  그때이고 
지금은 
지금이야. 그녀는 엄하게 자신을 책망했다.
"운전사가 데리러 올 거예요.   그리고 당신에게  폐가  되지 않는다면 난 그쪽으로  가고 
싶어요.  
해야 할 말이 있어요.  "
그녀가 다섯시에 도착했을 때 날은  이미 어두웠다. 로버트가 작고 예쁘장한  주택 앞에 서 
있었다.  
그녀의 차를 보자 그는 그 특유의 껑충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많이 변하지 않
았구나. 
아니, 예전과 똑같아. 그저 더 성숙하고 쌓였을 따름이지.
"당신은 변함이 없구려."
그는 차에서 내리는 그녀에게 정중히 말했다.
내 주름을 좀 보세요.  하고 싶은 말을 참고 그녀는 가느다란 목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로버트."
사랑과 관용으로 빛나는 그의 눈이 그녀에게 과거를 되돌렸다.  그녀는 진저리를 치며 자신
을  추
스렸다.  내가 여기에서 뭘하는 거지? 난 떠나야 해. 이 남자는 나를 떨게 만드는 힘을 지녔
어. 우
스꽝스럽게도! 난 십대 소녀가 아니야.
"당신 운전사를 돌려 보내요. 내가 나중에 당신을 데려다 주겠소."
지금 그 말을 각서로 써 주실래요? 그녀는 신경질적인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젠킨스씨. 그만 집으로 돌아가세요.  내가 키이스의 친구와  같이  있다고  어머
니께 전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사모님."
그는 묘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안으로 들어갑시다."
로버트는 그녀의 팔 꿈치를 잡고 바짝  끌어  당겼다.  과거의 깜부기가 불리 훨훨  타오른 
동시에 
그녀는 그를 더 가까이 끌어당기고 싶었다.  우리 사이의 일은 다 과거지사야. 그점을  명심
해. 이
바보야.
그녀는 천정이 높고 벽난로가 지펴진 아늑한 방으로 안내 되었다.
"이제 하고 싶은 말을 해봐요.  "
로버트가 말했다.  두 사람이 미처 앉기도 전이었다.
그녀는 그의 조급함에 당황했다.  난 당신이 오만하고 고집 세고  속물이고 못 믿을 바로라
는 말을 
하러 왔어요.  그리고 아직도 당신을 사랑하는 것 같아요.  그녀는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
었다.
"나는 라나가 우리 사이에서 괴로워 할까봐 걱정이에요. 그  아이를  위해서 우리는 원한과 
비통함
을 묻어 버려야 해요.  우리의 불화는 백년 전쟁처럼  지루하게 질질 끌어왔어요. 누가 알겠
어요? 
먼 훗날 우리가 친구 사이가 될지 말이에요.  "
"오늘밤 그 우정에 불을 지피길 바라는 바요."
그녀는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할말이 없었다.  고통스럽고 긴 
침묵이 
흘렀다.
"사랑이 그대의 원수로군."
로버트가 중얼거렸다.
"당신은 라나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다 하겠지? 난  당신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소. 당
신은 아
주 잘 해 냈소......"
"당신 딸을 잘 키웠다는 말인가요? 그만 두세요! 엄마에게 이미 들었어요.  나에게 감사하지 
마세
요.  로버트. 그런 모욕이에요.
"사실이오! 그녀는 매우 영리하고 의지가 강한 아가씨지만, 당신이 애 버릇을 망쳐 놓았더구
먼. 당
신과 균형을 이룰 어머니가 계셔서 정말  다행스런  일이오...... 그리고 라나를 버리지 않고 
키워줘
서 고맙소."
그는 그녀를 강렬하게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나에게 단 한가지 유감이 있고. 왜 20년동안 나에게 내 딸의 존재를 부인해 왔소?
"당신 자신에게 물어 보세요. 로버트, 나를 믿어야  할  때 왜 로다의 말을 믿었나요? 당신 
계모가 
내 편지를 훔쳤으리라고 내가 어찌 상상이나 했겠어요? 난 당신을 만나러 갔었어요."
"당신이 나를 믿었다면 계속 연락을 했었을 거요."
"당신이 나를 믿었다면 로다의 말을 믿지 않았을 거예요."
"우리 두 사람이 서로를 믿었다면......"
"그만하세요."
그녀는 비명을 지르다 시피 했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서 작은 방안을 서성거렸다.
"이러지 말아요. 무의미한 일이에요. 그리고  해미쉬와  결혼했을때 나는 그에게 당신과  나 
사이에 
일에 대해 알리고 싶지 않았어요.  나중에 그가 그 사실을 알고....."
그녀의 입에서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매우 상처를 받고 등산을 갔었어요.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
"당신이 나와 싸우기 위해 그와 결혼 했다는 사실을 그가 알아냈소?
"그만 하세요."
"그를 사랑했었소?"
"네, 하지만 사랑은 너무 늦게 찾아왔어요.  난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활 거요."
"왜 당신은 심하게 상처를 받은 상태였소. 그래서 당신이 할  수 있는유일한  방법으로  반
격을 가
했던 거요."
"아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
"당신은 라나를 볼 때마다 날 떠올렸겠지. 그런데도  그 아이를 깊이 사랑하고 있소. 그  사
실에서 
뭔가 잡히는게 없소?"
그녀는 그를 오랫동안 바라 보았다.   둘 사이에 흐르는 침묵은  낯 뜨거울 만큼 은밀했다.   
그녀는 
자신을  옭아매지 않는 이상 그질문에 사실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내가 광고 지면을 팔 때 써먹었던  식으로  그는 침묵을 이용하고 있구나. 난  시치미을 뚝 
떼고 앉
아 손님들에게 진땀을 흘리게 했지. 그들이 침묵을 깨는 유일한 길은 '좋소'라는 대답 뿐 이
었어.
"지금 나에게 뭘 팔려는 건가요?"
그녀가 물었다.
"팔아?"
그는 얼굴을 찡그렸지만 곧 그녀의 말을 알아들었다.
"나 자신이오."
그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그녀는 경악했다.
"참 이상하군요. 라나는 몰랐는데도 당신처럼 말라고 생각하고 행동해요.  예전에 당신이 속 
상할
때 마다 머리카락을 긁어올렸던 기억이 나요? 그 아이가 그래요. 그 외에도 부지기수 예요.   
정말 
이상해요.  꼭 당신이 우리 곁에 있었던 것처럼 말예요.  "
"그리고 그 때문에 당신은 그 아이를 더 많이 사랑했겠지. 우리가 그 시절로 다시  돌아 갈 
수 있
을지는 모르겠지만, 난 한번 시도해  보고 싶소. 당신이 며칠  이곳에서 지내는게 어떻겠소? 
당신 
부모님이 알래스데어를 돌보실 수 있을거야. 내일 식료품을  사오기로 하고, 오늘 밤은 외식
을 합
시다. 이 주변에 토끼 파이을 맛있게 하는 식당이 있소.."
"엉터리!"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여기에 머무르겠소?"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어깨를 파고들었고 그의 눈은 한가지 메시지를 보냈다.  그녀가 예상
치  못
했던 그 메시지를.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여기에 온 게 실수였어요.  미안해요. 하지만 아직 유감이 많아요.  "
"유감에 대해 말하자면 당신을 정정당당하게 위스키  전쟁에서 승리한게 아니오. 당신이 생
각을 바
꾼 이유는 라나 때문이었고, 그 때문에 나는 당신에게 우선순위를  아는 지각이 있음을  알
게 되었
소. 하지만 난 오시 토하라가 카를로의 파산에 관여했음을 알고 있소."
"난 사업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요.  이미 손을 뗐어요.  "
그녀는 죄책감과 후회를 느꼈다.
"마조리, 우리는 원한으로 갚든가 아니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소.  그리고......아, 제발 울
지 말아
요. 내 사랑. 당신은 그저 반감을 버리고 날 만나주면 돼. 난 가족을 되찾고 싶소.'
그는 그녀의 목덜미와 입술에 키스했다.    사랑으로 빛나는 그의 갈색 눈동자를  바로보며 
마조리
는 짧은 열정적이었던 젊은날을 상기했다.
"정말 슬퍼요."
그녀는 눈물이 앞을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살 날이 점점 줄어드는데 우리의 불행은 오히려 강해지니 말이에요.  "
"최근에 과거를 되돌아보고 우리 사이에 일어난 일에 대한  이유를 찾아봤소. 난 당신이 나
에게 미
치는 힘을 두려워했던 것 같소. 난 사랑하는 것이 두려웠던 거야."
"그리고 난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고 느꼈어요.  우리는 잘 어울리는 패배자 한쌍이었군어요.  
"
그는 허스키하게 웃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어요.  로버트"
"아니, 당신이 틀렸소. 우리는 신뢰하는 법을 배웠다고 생각하오. 최소한 저녁이라고 먹고가
요."
그는 나와 똑같아. 나도 저런 방법을  써  먹었었지. 그는 나에게 거절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하
지 않을 거야. 약한 부분을 계속 물고 늘어지겠지. 내가  바보라면 함께 저녁을  먹을 거야.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계약서에 서명하게 될 거야.
그런데 왜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까?
"아 그래요? 저녁, 좋지요. 난 정말 배가 고팠어요.  단, 송아지 고기는 안돼요."
"돼지고기도."
"토끼고기도."
"그리고 '파테 드 포와그라'도 그곳의 '다르네 드 소몽 그렐레오 브르'는 별미요."
"하지만 난 선택의 문을 열어 놓겠어요.  "
"당신같은 여자에게 그 밖에 뭘 기대하겠소."
그들은 떳떳하게 레스토랑에 앉아서 식사를 했다.  이별의 세월이 그 의미를 상실한 것처럼  
보였
다.  그가 두 사람 사이의 어색함을 해소하려고  노력하는 동안,  그에 대한 그녀의 마음이 
풀어졌
다.  그녀는 그의 유머감각을 즐겼고 곧 웃음을 터뜨리게 되었다.  과거는 영원히 사라졌다.
그날 밤 두 사람은 신뢰에 가득찬 사랑을 나누었다.  20 몇 년전  처음으로 사랑을  나누던 
짜릿한 
쾌감이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듯했다.  아니, 오히려 그때보다 더 자극적이면서도 편안한 행
위였다.
한껏 만족감과 충족감에 빠진 마조리는 로버트의  따뜻한 가슴에 안긴 채 그의  리드미컬한 
숨소리
를 들으며 자신을 향해 속삭였다.
"마조리 하디. 이제 널 용서할 수 있어. 그리고 널  믿기 시작했어. 넌 마침내 네가 되고 싶
었던 사
람으로 변해 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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