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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미셸 코스타 마냐] 오이디푸스의 결혼

by Casey,Riley 2023.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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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이디프스의 결혼 1

미셸 코스타 마냐

  

    제1장  바빌론 카페
  "기욤을 보려고 그렇게 골목에서 서성거리지 말고  바빌론 카페에 가서 나랑 차나 한  잔 하지 
않을래?"
  학교를 나서며 악셀은 이렇게 농담을 하곤 했다.  서로 자주  싸우기는 했지만 항상 웃는 얼굴
어서 그애와의 싸음운 늘 싱겁게 끝났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우리 두사람은 한시도 쉬지 
않고 티격대격했다.  그런 입씨름은 늘 자신의 생일  파티에 초대하지 않겠다는 악셀의 협박으로 
끝났는데, 이제 그 협박은 결혼식에 초대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순진한 나는 그애의 말
을 곧이곧대로 믿을 때가 많았다.  하기야 그애는 어떤 일에서나 나보다 늘  한발 앞서가곤 했다. 
  작년 여름만 해도 한 젊은 영국 사나이가 '나의 오필리아'라고 부르며 그녀를 끌어안고 입을 맞
추었는데, 쉽게 감동하곤 하는 내 성격을 이용해 그애는 계속 내게 충고를 늘어놓으면서 나를 괴
롭혔다.  
  악셀은 부다페스트와 부카레스트를 구분할 줄 알았고 푸아티에전투가 발생한  정확한 날짜까지
도 기억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마라 살해 사건이나 수에주  운하의 개통에 대해서도 당시 현
장에 있었던 것처럼 훤히 알았다.  그애가 이탈리아의  철학자 지오바니 피코델라 미란돌라의 삶
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한 시대에 대한 모든 지식을 담고 있는  그애의 두뇌가 신비해보이기까지 
했다.
  악셀 티쎄랑, 그애는 이제 열여섯 살밖에 안 되었다.  열일곱인  나보다 한 살이 어렸다.  하지
만 어떻게 훈련을 받얐는지 그애는 내가  운동장에서 뛰어놀 때 이미 유명한  사상가들의 이름과 
관념들을 마음대로 주워섬기면서 자유자재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악셀의 집에 놀러 갔던 어
느날, 불문학 교수인 아버지가 집에 들른 누군가로부터 질문을 받자 책들이 꽉 들어찬 개인 서재
에 들어가 두툼한 책 한 권을 꺼내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9월부터 악셀은 바빌론 카페에서 철학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열 거라고 했다.  이 토론회에서 
그애의 어머니와 오빠뿐만 아니라 졸업반 동기들도 참여하기로 했다.  마농은 물론이고 변증법적 
논증보다는 컴퓨터 도사라고 해야 옳을 방자멩과 보리스도 함께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까지 주말이면 시골로 여행을 떠나시는 부모님들이 나를 파리에 홀로  남겨두려고 하질 않는다는 
핑계로 확답을 주지 않았다.
  기욤은 악셀의 바로 옆집에 살아서 유연히 알게 된 대학생이다.  인류학을 공부하기 위ㅏ해 파
리의 사촌집에 와 있는 중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골목에서  그를 기다린다는 악셀의 말은 옳
지 않다.  악셀을 만나러 가서 기욤의 해맑은 눈망울을 보았고  그가 언제 집을 나서고 귀가하는
지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쉽게  기욤이 집을 나서는 시간에  맞추어 함께 움직일 수는  있었다.  
승강기에서 마주치면 '봉 주르' 정도의 간단한 인사만 나누었을 뿐이지만.
  하지만 어제는 사정이 좀 달랐다. (비상 탈출구가 있기는 했지만)승강기가 중간에  멈추는 바람
에  기욤과 나는 꼼짝없이 그 안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우리 두  사람은 누군가가 도와주길 
기다려야만 했다.  그때 기욤이 나보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을 걸어왔던 것이다.  다행히 승강기는 
곧 작동했다.  바밀레카의 풍습이나 언어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것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
까!  대학생인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 후 파리가 마음에 드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는 편지를 
뜯으면서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했을 뿐이다.
  나는 마침내 인류학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내 친구에게 도전장을 내기로 했다.
  악셀의 집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청바지를 골라 입는데 무척  고생을 했다.  시간이 늦어 급히 
달려갔지만 아니나다를까 초인종을 눌렀을 때 악셀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냥 집으로 돌아
갈까 하다가 월요일에 악셀이 했던 농담을 떠올리며 바빌론 카페로 발길을 돌렸다.  바빌론 카페
는 지겨운 학교 급식을 피해 가끔 들르곤 했던 맥도널드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카페 종업원이 빙긋 미소지으며 뒷방을 가리켰다.  토론은  이미 시작되어 한참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나를 보고 어서 앉으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보아  악셀은내가 올 것을 예상하고 있
었던 것 같았다.  이 사람  저 사람 발 등을 밟고, 등에 멘 배낭으로 잔을 넘어뜨릴 뻔해 가며 간
신히 밀치고 들어갔다.  나는 악셀이 자신과 보리스 사이에 마련해준 의자에 간신히 앉았다.   마
농과 방자멩의 모습이 안 보였다.  두 친구는 아마도 으슥한 곳에서 둘만의 시간을 갖고 있을 것
이다.
  토론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모두들 상대방을 부를 때도  성을 부르는 대신 이름만 불렀으며, 가
차없이 상대방의 말을 자르고 들어와 반론을 펴기도 했다.  꽤 나이 들어보이는 어른들도 있었고 
내 나이 또래의 젊은이도 있었다.  누군가가 의견을 말하면 귀기울이던 사람들 가운데 한 청년이 
나서서 철학적으로 볼 대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며 고치기고 하고, 어떤 때는 얼토당토않은 논
리를 펴가며 반박을 하기도 했다.
  한참 듣고 있던 나는 이 지옥 같은 곳에 뭐 하러 왔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꽤나 아는 척을 
하던 바로 그 남자가 막 도착한 갈색머리  소녀가 누구냐고 심문을 하는 것처럼 물었을  때 나는 
당황하여 얼굴이 화끈거렸다.  악셀이 나서서 말했다.
  "내 친구, 뤼실이에요. 소심해서 말은 잘 안 해도  보기보다 아는게 많아요."
  그러고 나서 악셀이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저 남자가 바로 로돌프야.  언젠가 말했잖아, 우리 카페 모임을 이끄는 사람이라고."
  악셀이 열광해가며 그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 사실 나는 좀 신경이 거슬렸었다.  로돌
프의 엄숙한 목소리를 직접 들으니 신뢰감이 좀 느껴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신경이 거슬리기는 마
찬가지였다.  그 남자의 쏘아보느  듯한 날카로운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마침내 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가라앉자 나는 기욤을 찾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기까지 온 것도 사실 그를 보기 위해서였다.  기욤은 우리 뒷줄,  멍청한 질문만 늘어놓는 어떤 
금발머리 여자아이 곁에 바싹 붙어 않아 았었다.  새침데기처럼 생긴 금발의 그녀가 어울리지 않
는 음성으로 말을 시작하면 기욤은 턱을 끄덕이면서 그녀가 늘어놓는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동의
를 해주었다.  정말 화가 치밀어 올라 봐줄 수가 없었다. 
  내가 도착하기 전에는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알 수 없었지만, 오이디푸스가 겪었던 불행
한 일들울 이야기하며 예측하지  못할 일들로 가득  찬 운명에 대한  토의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어렸을 때<그리스 신화와 전설>이라는 책에서 어떻게 오이디푸스가 끊임없이  질문을 해대는 스
핑크스로부터 벗어났는지 읽은 기억이 났다.  아침에는 네발로 걷다가 점심에는 두 발로 걷고 저
녁에는 세 발로 걷는 동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오이디푸스는 망설이지 않고 그런 동물은 인간밖
에 없다고 답을 했다.  인간은 네발로 기어 다니는 아기로  태어나 두 발로 걸어다니다가 지팡이
에 의지하는 노인으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그때 난 이 이야기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이
빨을 닦으며 거울 속에 비친 나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만일 내가 이 이야기를 읽
지 않았다면 죽어도 혼자서는 그 수수께끼의 답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내 얼굴
은 파랗게 질렸었다. (실제로 나는 수학 시간에  악셀이 내는 수수께끼도 못 풀어서 쩔쩔매곤 했
다).
  카페에 모인 철학자들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나 오이디푸스의 명철한 답변에는 별로 흥미가 없
어보였지만 그리스 신화에 대해서는 모두 나름대로의 독특한  의견이 있는 듯했다.  로돌프가 갑
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수수께끼를 냈다.
  "언니가 동생을 낳고 동생이 언니를 낳는 두 자매가 있다면 누구 일까요?"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악셀의 어머니 수잔이 그건 낮과  밤이라고 답을 맞추었다.  어쩌면 낮과 
밤은 항상 둘이 함께 움직이는지도 모른다.  낮과 밤만 그렇겠는가. 신화에 대한 앎과 수수께끼에 
대한 앎도 항상 둘이 함께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대충의 짐작으로만 알고 있을뿐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고 옛날처럼 열등감을 곱씹고 잇을 
사이도 없었다.  로돌프가 곧바로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로돌프는 마치  학자라도 
된 듯이 자세를 가다듬으면서 이야기를 해 나갔다.  라이오스(아버지)는 오이디푸스가 태어나자마
자 이오카스테(어머니)에게서 아이를 빼앗았다.  그러고 나서 병사들에게 오이디푸스를  죽여버리
라는 명령을 내렷다.  델포이의 신탁이 그의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 다음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고 예언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로돌프는 마치 굉장한 비밀이라도 털어놓
듯이 조용히 귀기울이는 사람들을 향해 나지막한 음성으로 속삭이듯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하지만 악역을 맏은 병사들은 아이가 불쌍했습니다.   아이를 죽이는 대신 나뭇가지에 아이의 
두 발을 묶어 매달아놓은 채 돌아갔죠.  다음날 아침,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은 목동들은 젖먹이를 
나무에서 풀어주고. 그 아이를 후손이 없어 걱정하는 코린트의 왕과 왕비에게 데리고 갔어요."
  그때였다.  심한 남부 사투리를 쓰는 털보 청년 장 마르탱이  미소를 지으며 로돌프의 말을 가
로막고 나섰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이디푸스는 숲 속에 버려진 게  아니라 상자에 실린 채 바다에 던져졌어
요.  코린트의 왕비인 메로페는 바닷가에서 직접 아이를 발견했죠.  그런 다음 그녀는 남편인  폴
리보스에게만 진실을 밝힌 채 자신이 낳은 아이라고 주장하면서 양자로 삼아버린겁니다."
  한방 먹은 셈이었지만 그렇다고 쉽게 물러날 로돌프가 아니었다.  신경질적인 몸짓으로 안경을 
고쳐 쓰더니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어쨌든 이 이야기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모두의 의견이 일치할 겁니다."  예언을 
들은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을  죽일까봐 겁이 난 나머지 그 방법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울어대
던 아이를 죽여버리라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는 거죠.  그게 바로 이 이야기 의 핵심입니다."
  로돌프는 얼굴에 살짝 미소를 내비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가 한 이야기 속에 나오듯이 그의  발목에 줄을 너무 세게 동여맸기 때문에  '부은 두 발'을 
의미하는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전하죠."
  "어쩌면 물 속에 발을 너무 오래 담가서 그랬는지도 모르고...."
장 마르탱의 말에는 확신이 없어보였다.  보리스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오늘 우리가 이야기하는 영웅이 모세나 백설공주처럼 인생을 시작한 것 같은데..."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삼킨 채  로돌프의 말에  다시 귀를 기울였다.  그는 온갖 흥미진
진한 이야기들을 섞어가며 오이디푸스가 코린트에서 보낸 행복했던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묘사
해 나갔다.  그의 말로는 오이디푸스는 자신과 양친 사이에 닮은  점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 사람
들 입에 오르내리기 전까지는 행복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던 나는 문득 오빠 세르주가 생각
났다.  세르주는 집안에서 유일하게 고수머리에 금발이었다.  그는 자신이 원래는 스칸디나비아에
서 태어났는데 짓시들이 훔쳐다 기르다가 내버린 것을 엄마 아빠가 주워다 길렀다고 했다.  집안
에서 유일하게 금발에 고수버리인 것이 그 증거라고 우겼다.  이 우연의 일치에 마음을 빼앗겼던 
나는 하마터면 오이디푸스가 성년이 되어 그 자신 역시 아폴론의 여사제인 피티아가 내리는 시련
을 받기위해  델포이의 그 험난한 길을 가야만 했다는 이야기를 못 들을 뻔했다.  여사제는 오이
디푸스에게 외쳤다.  '꺼져라! 나의 이 창백해진 얼굴을 보아라. 애비를 죽이고 자기 어미와  결혼
할 아들을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하겠노라!'
  이야기를 마치자 로돌프는 물을 한 모금 마시려고 컵을 입에  갖다 댔는데, 이 틈을 이용해 장 
마르탱이 끼여들어 이야기를 해나갔다.  그의 태도에는 어딘지 빈정거리는 투가 엿보였고 대가인 
체하는 오만함이 느껴졌다.
  "오이디푸스는 죄를 짓지 않으려면 자신이 부모를 더나  멀리 가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죠.  하
지만 그에 앞서 그이 아버지가 그랬듯이, 그 역시 운명을 돌려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점점 더 운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는데...."
  이때 서른쯤 돼 보이는 여인이  말을 가로막았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이 주근깨투성이인 
그녀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신탁은 오이디푸스가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잖아요? 그에게 폴리포스가 사실은.."
  "폴리포스가 아니라 폴리보스....."
  장 마르탱이 이름을 고쳐주었다.
  "폴리보스와 그의 부인인, 뭐라고 하더라 이름은 모르겠는데. 하여튼 그의 부인이 오이디푸스의 
진짜 부모들이 아니라고...."
  말이 오가는 사이 기억력이 좋지 않아 한방 먹고 만 그 갈색머리의 여인 못지않게  나 또한 당
황스러웠다.  하지만 대화의 수준을 가늠한 후 대담해진 악셀은 확신이 선 표정으로 대화에 끼여
들었다.  그런 그애가 나는 한없이 부러웠다.   악셀은 마치 자기와 동갑내기들만이 모였다는 듯
이, 혹은 마치 자기가 마음씨 좋은 교수에게 질문이라도 받았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다음 이야기는 나도 알고 있어요.  달리아로 가는 길 위에서 오이디푸스는 마차를 만나죠.  마
차꾼은 지체 높은 분이 지나가니 길을 비키라고  했지만 오이디푸스는 거절했어요.  그러자 마차
는 그를 치고 지나가버렸고, 화가 난 오이디푸스는 창을 던져 지체 높은 양반을 찔러 죽였죠.  그
자가 바로 라이오스였어요! 이렇게 해서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만 거예요!"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잖아!"
  장 마르탱이 말했다.
  나는 기욤이 끼여들어 멋진 논리를 펴주길 바라며 몰래 곁눈질로 그를 쳐다보았다.  내 가슴이 
뛴 것은 단지 그가 내게 미소를 보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는 듯이 태연하게 로돌프가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만 있었다 로돌프는 신이 난  듯이 계속 떠벌렸
다.
 여행을 계속하던 중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로 인해 공포에 떠는 테베의 성벽에 도착했다.  여기
에서 오이디푸스는 그 유명한 수수께끼를 풀었고, 분을  삭이지 못한 스핑크스는 자살을 하고 만
다.  열광한 테베의 주민들은 승리를 축하하며  오이디푸스를 왕비에게 데려갔다.  이때  수잔이 
끼여들어 질문을 던졌다.
  "오이디푸스가 왕이 되어 미망인 이오카스테와 결혼한다고 선언 한 것이 바로 그때였지?"
  "맞아요, 그때였어요."
  모임을 이끌던 그 젊은 철학도는 이야기의 스릴을 위해 준비해두었던 대목을 다른 사람이 가로
채자 실망하는 빛이 역력한 표정으로 수잔의 말을 인정했다.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잖아요?"
  이번에도 역시 장 마르탱이었다.
  이후 모임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을 꺼내놓으려고 조금은 안달이 난 듯했다.  오
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태어난 네 명의 아이들이 문제였다.  모두둘 중구난방식으로 한
마디씩 거들었다.  안티고네도 있었고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의 이름도 나왔다.   누군가가 
넷째아이의 이름을 묻자 어디선가 이스메네라는 이름이 튀어나왔다.  이어 테베에 창궐했던 페스
트 이야기도 나왔고 오이디푸스가 다시 델포이를 방문했던 이야기도 나왔다.  그때는 오이디푸스
가 전차를 타고 떠낫다고 누군가가 끼여들었다.  또  누군가는 당시에 여사제 피티아가 동행했다
고도 했다.  그라자 누군가의 입에서 그 피티아는 여사제 피티아가  아닌 이름만 같은 다른 피티
아라고 했다 오이디푸스가 다시 델포이의 신전을 찾은 것은 그 끔찍한 전염병을 몰아내고 선왕을 
살해한 자를 찾아내 유형에 처하기 위해서 였고...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나는 이야기 도중에 나온 모든 이름을 늘 가지고 다니던 수첩에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꼼꼼이 
적었다.  이때 보리스가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에이즈와 광우병도 아버지를 죽인 자를 찾으면 없어질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마!"
  이야기에 골몰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그만 소리를 버럭 지르고 말았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갑자기 내게로 쏠렸다.  부끄러워서 얼굴이 붉어진 나를 보자 로돌프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해 분
위기를 수습했다.
  "찾던 사람이 누구인가 알게 되자 페스트는 갑자기 수그러들었습니다.  하지만 장 마르탱이 말
한 것처럼 오이디푸스는 동시에 점쟁이 테레지아스로부터 그가 모르고 있던 사실을 알게 되죠 자
기가 찾던 살인자가 자기 자신이라는  거.  게다가 자신과 결혼한 여인이  바로 자신의 어머니란 
걸.  그 여인이 낳은 네 명의 아이들과 자신이 형제지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이야기꾼은 이야기를 마치려는 듯 긴 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그의말이 다시 이어졌다.
  "불행한 운명의 희생물이 된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두  눈을 도려냅니다.  장님이 된 그는 처남 
크레온을   섭정으로 남기고 지팡이와 큰 딸 안티고네의 어깨에 몸을 의지한 채 유랑의 길을  떠
나죠."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신탁의 예언이 빈틈없이 적중했다는 거야?"
  "아니면 보다 일반적으로 말해 운명은 이미 어딘가에 기록되어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만일 이 모든 이야기가 일이 벌어진 후 나중에 짜맞춘거라면?"
  로돌프는 연신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때 느닷없이 기욤이 끼여드는 바람에 나는 너무 놀란 나
머지 가슴이 울렁거리고말고 할 틈도 없이 숨이 탁 막혀왔다.
  "이런 신화들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들에 대해 얼마나 탁월한 지혜로  답을 찾아왔는지 
깨닫는다면 그 사람의 지적 능력은 인정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때 보리스가 짓궂게 우스갯소기를 했다.
  "내 얘기 좀 들어볼래? 좀벌레 얘기야. 어느 날  좀벌레가 영화를 보고 나오다가 옆에 있는 여
자 친구에게 물었대. '너 그냥 걸어갈래 아니면 개를 잡아타고 갈래'라고"
  "좀벌레가 아니라 빈대야."
  이렇게 말을 한 것은 내가 아니라 이야기를 엿들은 악셀이었다.  나직한 목소리로 농담을 하는 
사이 큰소리로 논쟁이 벌어졌다.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란 말입니다, 역사!"
  장 마르탱이 큰소리로 기욤에게 화를 냈다.  그 바람에 우리가 주고 받던 우스갯소리는 사그라
들고 말았다.  누군가가 계속해서 열변을 토했다.  하지만 목소리에 그리 자심감이 있어보이진 않
았다.
  "그런 신화들은 종교적인 축제가 벌어지면 이야기되거나 공연되어야 했기 때문에....  뭐라고 할
까.... 호메로스 같은 시인이 문자화하기 아주 오래 전부터  수백 번, 아니 수천 번씩 이미 회자됐
던 것들이야. 그러니까.... 그러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이야기가 추가되고 섬세해지고 뭐 
그렇게 되다가..... "
  장 마르탱이 말을 가로 막았다.
  "그렇지 않다니까! 지금 얘기하는 건 저승의 신인  하데스가 제우스의 딸 페르세포네를 납치했
다는 이야기나 지옥에 내려간 오르페우스 이야기 같은 거고.  그런   것들이야 다 지어낸 이야기
지만 오이디푸스는 다르죠.  오이디푸스는 실존 인물이란 말입니다.  테베의 군왕들도 실제로  있
었다니까.  사람들은 그들을 독재자로 부르곤 했죠. 그만큼 강력한 권력을 가진 인물들이었어요."
  보리스는 여젼히 비꼬는 투를 버리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다.
  "그래서 그들의 오만방자함을 꺾기 위해 그런 가혹한 운명이 필요했단 말입니까?"
  모두들 웃었다. 논쟁을 좋아하는 역사 선생만이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우리의 역사이기도 한 그리스인들의 역사는  크게 보아 대략 기원전 7세기, 트로이전쟁  때부
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고고학자들이 올림포스에서 발견한 운동 경기들
의 흔적은 그들의 것이 아닐수도 있죠.  정확한 연대 측정이 어려워 연구하기 까다롭지만 그렇다
고 해서 모든 사건을 다 지어낸  이야기로 볼 수는 없어오.  깊이  생각을 해보지도 않고 과거에 
대한 이야기들을 빈정대는 것도 좋은 태도는 아닙니다."
  그러나 보리스는 물러날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핵심적인 사건들이 너무나도 많은  전설 같은 이야기들에 둘러싸여 있는  것은 사실 
아닙니까?"
  보리스는 잠시 망설이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물론 그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정말 사람을 매혹시키는 힘이  있고 기발한 것들로 가득하다는 
것은 나도 기욤처럼 인정합니다."
  보리스는 기욤을 끌어들였지만 그와 의견을 같이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너는 지금 전설이나 전해 내려오는  민담 같은 것들을 신화와 혼동하면서  신화의 중요성이나 
그것이 우리 인간에게  미친 영향을 과소평가하고 있어."
  나는 고개를 돌려 기욤을 바라보았다.  그의 말은  거침없었고 표정에서는 약간 경멸하는 듯한 
낌새마저 느껴졌다.  그때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갈색머리의 스테파니가 갑자기 논쟁에 끼여들
었다.  그녀는 수많은 인물들의 이름이나 복잡한 사상들에는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요 나도 한마디만 하죠.  그리스는 우리들의 기원이지만 동시에 언제나 
우리들 눈앞에 있는 현실이기도 하죠.  진정으로 문제되는 것은 역사도 지리도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 다시 살아나 우리들의 가슴에 충격을 주고,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사실들이 존재
한다는 거죠.
  수잔이 끼여들었다.
  "맞는 말이지만 한마디하자면, 스테파니가 잊은 게 하나 있어.  네가 말하는  그 그리스는 우리
들에게 전해 내려오면서 여러 과정을 거쳤을 거야. 너는 그 과정을 잊고 있어. 화가들이나(아닌게 
아니라 수잔은 화가였다)신부들이 그런 역할을 하기도 했고, 조각가나 철학자들도 한몫을 했지."
  말을 듣고 있던 장 마르탱이 투덜대듯이 개입했다.
  "그 사람들 이야기를 좀 해봅시다.  몇 세기 전부터 사람들은 그리스를  재창조하려고 했죠. 하
지만 예술가들은 더 이상 그리스에 발을 들여놓지도 않았습니다.
  "바이런의 경우에는...."
  "그래요. 바이런은 그리스 여행을 했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좀 볼까요. 그들은 그리스의 풍
경을 보러 가지도 않았고 조각 작품이나 어떤 문학 작품의 원본도 보려고 하지 않았어요."
  "하기야, 스랜시스 베이컨도 모델이 아니라 사진을 갖다 놓고 작업을 했으니까."
  토론이 서서히 열기를 더해가자 다시 로돌프가 끼여들었다.  그는 몸을 돌려 장 마르탱을 향해 
자신의 물컵을 들어 보였는데, 이 행동은 왠지 비꼬는 듯한 분위기를 불러일으켰다."
  "이야기가 다른 데로 새나가는 것 같은데, 예술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합시다.  또 조
금전에 하던 전설에 관한 이야기도 불꽃이 재 속에 숨어 있다가 다시 타오르듯이 역사도 신화 속
에 숨어 있다가 타오르는 것일 테니 그쯤 해두는  것이 좋을 듯하고..... 사실 신화를 보고 말하고 
생각하고 꿈꾸었던 사람은 우리들만이 아닐 테니까....  다시 운명이라는 주제로 돌아갑시다."
  하지만 스테파니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나 보다.  그녀는 머리를 쓸어올리며 단단히 각오를 한 
표정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오직 인간의 영혼만이, 영원하고 그래서 신화를 만들 수 있었던 인간의 영혼만이, 어떤
시대든 신화 속에서 인간의 영혼을 재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인간은 단순히 합리적이고 이
성적이고 잇속에 밝은 것만이 아니라 희의하고 무서워할  줄 아는 존재거든요.  신화가 우리들의 
가슴에 뭔가 와닿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 일 거예요."
  듣고 있던 장 마르탱이 희뿌연 음료를 한 모금 마신 후 스테파니의 말을 받았다.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에요. 하지만 지금 너무 건너뛰는 거 아닌가요? 시간을 정지시킬 수는 
없습니다.  일어난 사건들을 부정해서는 안 돼죠.  모든 것이 다 상징이고 종교인 것은 아닙니다.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어떤 제의나 심지어 종교적인 경배  행위도 인간들에게 충격을 준 어떤 사
건을 다시 반복함으로써 기념하려는 것이라고 볼수 있을 겁니다.  인간은 꿈을 꾸지만 자신의 상
상력을 유발시키기 위해서는 논리가 필요한 것 또한 사실이구요. 생각이 깊어질수록 더욱더 그렇
죠 내가 고대의 그리스인이라고 가정을 한 번 해봅시다.  그런 내가 폐허가 된 옛 도시를 발견했
다면 나는 당연히 이 도시를 만든  사람은 누구였을까, 라는 의문을 가질겁니다. 어떤  한 민족을 
내가 찾아냈다고 해봐요.  내가 종교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라면 머리를  긁적이면서 (그는 이 
대목에서 얼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 듯 머무적머무적거렸다) 대지의 여신과  하늘의 신이 짝을 이
루는 날 태어난 최초의 인간까지 거슬러올라가며 도시를 건설한 민족에 대해 설명을 하겠죠.  하
지만 내가 역사적인 감각이 있는 사람이라면(그의 얼굴에 웃음빛이 흘렀다),  오히려 최초의 왕까
지 거슬러 올라가 그 왕 이후 2,000년 넘게 지속된 복잡한 족보를 작성하겠죠.
  이 대목에서 로돌프가 끼여들어 말을 가로 막았다.  하지만 이미 불붙은 논쟁은 갈수록 열기가 
고조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가 과연 더 진실에 가까이 다가간 걸까요? 내가  보기에 그건 역사적인 죄 
의식을 객관적인 서술 행위 속에 숨기는 한 방법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까 말한 그 왕들의 족보
라는 것이, 사실은 그 왕들의 이름 가운데 반 정도가  지어낸 것이고 설득력 있는 우의적 표현들
로 가득 찬 것이라 해도, 교묘하게 이루어진 것이기만 하다면 우리들은 한 편의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한 것을 얼마든지 마치 진실인 양 내보일 수 있을  겁니다.  모르긴 몰라도 호메로스가 살았
던 시대는 사람들이 증거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을 거고 따라서...."
  "왜냐하면 셜록  홈즈가 아직 탐정소설을 쓰기 이전이었으니까.  누군가 했더니 역시 보리스였
다.  그는 말을 하면서 남의 눈치 같은 것을 보는 적이 없었다."
  " 어쨌든 왕들의 족보가 안심하고 믿을 만큼 그렇게 확실한 것일까?"
  장 마르탱이 긴 숨을 토해냈다.
  "서술만 확실하게 되었으면 언제나 안심하고 믿어버리죠....  오늘날에도 말입니다."
   분위기가 좀 딱딱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는재 로돌프가 제안을 했다.
  "자, 자, 다시 오이디푸스로 돌아가는 것이 어떨까 싶은데요?"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마침 카페 종업원이 빈  컵들을 거둬가느라 탁자 사이를 비
집고 들어왔다.  그러자 모임을 진행하던 로돌프는 잠시 쉬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어기저기서 잔기침 소리와 의자 끄는 소리가 들렸고 새로 주문받고 취소하는 소란스러운 사이, 
악셀이 내게 물었다.
  "어때, 재미있지?"
  마치 나를 위해 오늘 모임을 주선한  것 같은 말투였다.  하지만 대답을  한 것은 내가 아니라 
곁에 있던 보리스였다.
  "내 매킨토시 안에 있는 '영웅환상곡' 게임 정도는 되는 것 같아, 방자멩이 들으면 사이버 카페
가 훨씬 낫다고 하겠지만..."
  나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한마디씩 하는데  놀랐다고 대답했다.  악셀이 손가락을 입
에 갖다 댔다.  곧 토론이 다시 시작되려 했다.  로돌프가 좌중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자, 그러면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오이디푸스의 불행한  이야기는 순수한 허구였을까요, 꾸며
낸 역사일까요? 아니면 신들의 권능을 나타내기 위한  삽화일까요, 운명의 힘을 보여주는 증거일
까요?"
  이럴때는 앞에서 재미를 못 본 사람이 나서게 마련이었다.
  "다신교의 신들은 권력의 측면이  아니라 신비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합니다만, 워낙 까다로운 
문제니까 누굴 골려주려는 게 아니라면  그런 문제는 그만 잊어버립시다.   하지만 오이디푸스의 
이야기가 역사적인 것이라면 스핑크스가 왜 그  이야기에 등장했는지 설명이 있어야 할  것 같은
데..."
  기욤이 입을 열려고 했다.  그러나 장 마르탱이 선수치고 나왔다.
  "여자 머리에 몸은 사자고 꼬리는 뱀인 그 괴물은 호메로스  이후 그리스인들조차도 존재를 의
심했던, 상상력이 만들어낸 전형적인 합성품이지."
  다시 주제에서 벗어나려는 조짐이 보이자 로돌프가 방향을 바꾸었다.
  "아이 보는 여자들부터 학자에 이르기까지 오이디푸스의 불행한 운명을  만든 신탁과 수수께끼
에 대한 그의 명쾌한 답변을 의심한 적은 없죠."
  수잔이 특유의 가라앉은 음성으로 자신의 관점을 개진했다.
  "어쨌든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이야기꾼들과 천재적인 예술가들의  창조적인 상상력이 만들어
낸 그 이야기들은 특정 계층의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말을 하죠."
  스테파니가 동감을 표시하고 나섰다.
  "길은 서로 달랐지만 이제 나랑 다시 만났네요. 영원히 남아 있는  것, 그리고 우리에게 전해오
지 않을수 없었던 것, 그것은 영원한 정신의 요소들이죠.  우리 각자는 모두 정신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는거구요."
  장 마르탱은 두 여자를 번갈아가며 올려보았다.
  "두 사람 다 멋졌고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말들을 했는데....
(그의 목소리에는 윤기가 느껴지지 않았고 갈수록 말이  빨라졌다) 하지만 전체가 처음부터 전체
인 것은 아니고 또 부분이 모였다고 해서 항상 전체가  되는 것도 아니지. 자꾸 영원, 영원, 하는
데 영원한 것 이전에 과정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 말입니다.   고대인들이 읽고 쓸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은 신화의 여러 다른 판본들을 모았고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겁니다. 형편없는 판본들
은 망각 속으로 잊혀졌죠. 내가 조금 전에 아기 오이디푸스를  내다버린 상황을 이야기 할 때 여
러분이 보았다시피 열등한 판본은 그렇게 사라지는 겁니다.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감돌았고 의
기양양해하는 느낌 마저 주었다.
  장 마르탱이 펼친 논리는 얼마든지 공격받을 여지가 있었다.  고집센 사람이 그의 약점을 물고
늘어졌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한편, 이야기꾼들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기 위해 얼마든지 멜로드라마
식의 이야기들을 덧붙였을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예를 들어보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부부, 
업둥이 이야기, 아무도 모르는 탄생의  비밀 등등은 모두 전형적인  신파조들인데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진실의 수호자들은 모두 재미없다고 했을까요?"
  말을 마친 역사 선생은 이번에는 방향을 완전히 바꿔 수잔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이 맞긴 맞아.  하지만 수잔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수잔의 의견은  더군다나 아리
스토텔레스의 의견이기도 하죠."
  "어머, 그래요!"
  장 마르탱이 말한 것과 달리 철학과는 담을 쌓은 수잔은 정말로 놀라는 표정이었다.
  "물론입니다.  예술과 예술가들이야말로 진실을 알고 있죠. 학자들은 아니에요.  뇌졸증을 반인
반마인 켄타우로스의 담즙으로 치료할수 있을지 평생을 고민했던 그리스 의사 갈레노스를 보십시
오. 반면 에우리피데스  소포클레스 아이스킬로스 간은 시인들은 달랐습니다.  요컨대 신화에  역
사적 근거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아리스토텔레스는<시학>에서, 신화
는 비극이 될 때만 진정한 힘을 갖게 된다고 했잖습니까.
  말을 마치고 잠시 쉬려는 눈치를 보이자 스테파니가 다시 뛰어들었다.
  "나는 의학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켄타우로스나 스핑크스는 융의 견해에 따
르면 집단무의식이 존재한다는 명백한 증거로서 집단무의식이 외부로 표현된 것이라고 하던데.....
  스테파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로돌프가 거칠게 가로막고 나왔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융은 신화를 상상력의 순수한 환상으로 봄으로써, 다양한  신들이 겪는 대
모험의 이야기들이 어떤 신학적인 영향력을 끼쳤는지 대강 보아 넘기고 말았어요.
  그때 누군가가 멀리서 소리를 질렀다.
  "어디 한 번 증명해보시지!"
  그러나 로돌프에겐 그럴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장 마르탱이 기회를 노렸다는 듯이 고삐 풀
린 망아지처럼 끼여들었다.  그의 의기양양한 표정 속에는  줄줄이 꺼내놓을 수 있는 인용문까지 
준비되어 있는 듯했다.
  "융은 신비주의의 날개를 달고 원형들이  전시되어 있는 화랑을 날아다녓지. (스테파니가  크게 
말은 못하고 뾰로통해서 투덜댔다.)반면 프로이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만들어놓은 물레방아에 물
을 부어 돌아가게  했고, 분석을 햇단 말입니다.  프로이트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발견한 것은 
연극 <오이디푸스 왕>을 보면서 스스로가 공포와 연민에 사로잡혔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습
니다.  다들 알다시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정신분석의 핵심 개념이비니다.  정신분석의 대들보
라고 할 수 있죠.  프로이트도 자신의 그 강렬한 경험을  환자들의 이야기나 자신의 꿈과 연결시
켜가면서 무척이나 당황했어요.  끝내는 우리 모두가 어린 시절에 근친상간을 저질렀고 아버지를 
죽인 살해자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말았죠.   그의 말이 틀렸다면 신탁이 들려준  그 예언 앞에서 
왜 우리가 합리적인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말았는지가 설명이 안 됩니다.  우리는 신탁이 하는 
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수잔도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왜냐하면 믿지 
않을 수 없는 내적 필연성이 있었기 때문이죠.  주인공이 자신도 모른 채 또 자신의 의도와는 전
혀 관계없이  죄를 지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죄악의 동기가 무의식적인 것이라는 기가  막힌 증거
인 겁니다.
  로돌프가 처음으로 신경질을 좀 내면서 끼여들었다.
  "이제 그 범죄 이야기를 좀  해보죠.  나 또한 여러분들에게 판본에  얽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연극을 즐겨 보았던 프로이트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에 근거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는 역사적 사실을 고려ㅛ하지 않았고 그래서 테베에서는 흔히..."
  가만히 듣고 있을 장 마르탱이 아니었다.
  "역사상의 우연들을 위하여 이제는 완벽한 이론이라도 희생하시겠다, 이 말씀이신가?"
  토론을 이끌고 있어서인지 로돌프는 얼른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테베만이 아니라 당시엔 다른 도시들에서도 모두, 종교적인 관례에 따라 새로 왕위에 오른 사
람은 이전의 왕과 전투를 벌였고 그후 왕비를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신화를 입에서 입으로 옮기
고 다녔던 이야기꾼들이 공연히 불확실한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이야기들을 지어서 유포시키고 다
녔던 거죠."
  그때 보리스가 다시 내게 속삭였다.
    '앙티미트 좀 줄래!'
  이야기를 엿들은 기욤이 조용히 하라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명령을 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좀 상했다.  그 바람에 그때까지 어떤 대화에도 끼지 않고 앉아  있던 어떤 부인이 나서서 한 말
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하지만 모였던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말에 동의를 표하고 있었다.
  "여러분들은 지금 프로이트, 융, 무의식, 콤플렉스를 이야기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여
러분들이 정신분석에 대해 상당히 많이 아는 듯한 인상을 받았어요."
  로돌프가  깊은 한숨을 내뿜었다.
  "그랬군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야기에 끌려가다 보니  그만....  게다가 나는 사회자로서 아
무리 문외한이라도 발언권을 달라고 하면 주어야 되고 해서......"
  "저 사람은 궁지에 몰리기만 하면 늘 저 타령이야."  
  어떻게 알았는지 악셀이 나 대신 시원하게 한마디했다.
  정신분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나는 그렇게 당황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자라면서 외할
아버지가 토마 칼리넹스키라는 프로이트파의 정신분석가였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하지만 안
타깝게도 지금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나를 안아줄 때 하얀 수염으로 간지럽히던 모습과 나보다 언
니 리자를 더 좋아하셨던 씁씁한  기억이 떠오를 뿐이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질문들에 나는 이전보다 호기심을 갖고  귀를 쫑긋 세웠다.  질문들은 쉽
게 답할 수 없는 황당한 것부터 뭘 물어보는지 종잡을 수 없는 것까지 마구잡이였다.  수잔이 시
계를 보며 너무 늦었다고 제동을 걸지 않았더라면 밤이라도 샐 기세였다.  정신분석 이야기는 다
음번으로 미루자는 수잔의 제의가 받아들여졌다.
  로돌프는 다음번 주제에 그렇게 마음내켜 하지는 않았지만 모두들 열광하는  모습을 보자 수잔
의 제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모두의 생각이 정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준비를 해왔으면 합니다.  나는 그 
방면의 전문가가 아니니까.
  악셀은 나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 함께 밤참도 먹고  밤을 새웠으면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나를 보고 싶어하던  할머니와 이미 약속을 해놓았던 터였다.   우리 가족들은 모두 
르 페르슈로 내려가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제2장 어머니들, 아버지들, 그리고 조상들
  일요일이면 할머니는 이웃집에 가서 점심을 드시곤 했다.   그래서 나도 할머니댁에 가는 날은 
한 번도 빼놓지 않고 그 이웃집에 함께 초대를 받아 갔다.  빈손으로 가기가 좀 뭣해 후식거리라
도 사가려고 할머니와 역 시쯤 장이 서는 에드가 끼네 가로 나갔다.  그곳 상인들은 할머니와 내
가 나타나면 '작은 아씨들'이 나왔다고 하면서 반가워했다.
  꽤 쌀쌀한 날씨였지먄 좌판들 앞에는 여기저기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한 남자가 아이에게 
모자를 푹 눌러 씌우면서, 막대사탕을 사 달라고 울며 보채는 아이의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상
관할 일은 아니었지만 왠지 보기에 애처로웠다.  장바구니를 든 여인네들은 서로 아는 얼굴을 마
주칠 때마다 날씨와 어려워진 살림살이 이야기를 하느라 바빴다.
  나는 과일을 밑에 깐 초콜릿케이크가 엎어질까 봐 조심조심 걸었다.   할머니는 안에 받쳐입은 
코르셋과 복대로 단단하게 조여진 배를 이따금 손으로  쓰다듬어보았다.  어렸을 때도 그런 할머
니의 모습을 보면서 우스워 깔깔대곤 했었다.  어릴 적 나는 말라깽이였다.  숨을 깊이  들이마셔 
브래지어를 한 덕택에 꽤 많이 나아진 가슴을 치켜 올려보았다.   문득 걸을 때마다 청바지에 달
라붙는, 아직도 훌쭉하기만 한 배를 한 번 만져보고 싶었다.  옆집 할머니를 만나자  할머니가 한
마디 했다.
  "그렇게 바지만 입고 다니니.... 얘야, 언제쯤이면 치마 입은 모습을 한 번 볼 수 있을지 모르겠
구나!"
  어제 저녁 바빌론 카페에서 밤늦게까지 토론을 벌여서인지 나는 밤에 거대한 젖가슴이 달린 스
핑크스를 죽이는 오이디푸스의 꿈을 꾸며 잠을 설쳤다.   굼속에서 야릇한 신화의 세계를 여행했
기 때문에,  놎잠 자는 것은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하며  할머니가 카페오레를 끓여가지고 쾅쾅 방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면 아마도 늦잠을 자고 말았을 것이다.  할머니는 아홉 시에 나를 깨웠다.
  내 어머니의 어머니인 할머니는 푸른빛이 감도는 백발의 노인으로 키가  작고 얼굴이 동글동글
하게 생기신 분이다.  흰머리는 퍼머를 강하게 해서 곱슬거렸다.  할머니 말에 따르면 젊었을  때
는 나보다 더 컸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몇 센티미터씩 키가 줄어들더니 뭐가  자꾸 먹고 싶어지면
서 그렇게 뚱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짓궂은 미소를 머금으셨다.
  "다행인 것은 네  할아버지가 펑퍼짐한 여자를 싫어하지 않으셨다는 거야."
  할머니는 언제나 명랑하셔서 엄하기만 한 어머니와 좋은  대조를 이루었다.  나는 할머니의 이
야기를 듣기 좋아했는데, 특히 어머니와 아버지가 처음 만났던 당시의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었다.  
할머니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1968년 5월, '그 난리 구석에서' 만났다고 했다.
  "마틸드가 (할머니는 손텨딸에게 말하면서도 결코  '네 엄마는' 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어느 
날 선언하더구나. '금지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어요'라고 오를랑도는 R  발음을 이탈리아식으로 하
면서 마틸드에게 말했단다.  변호사가 더 이상 필요없는  사회가 되었으니 이제 자신은 시칠리아
로 돌아가서 포도 농사나 지을 수밖에 없다구.  도시에서만 산 그애는....(할머니는 잠시 한숨을 지
으며) 파리만 벗어나도 재채기를 해대면서도 긴 시골 치마를 두르고  붉은 개양귀비꽃을 꺾고 있
는 자신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하더구나.
  할머니에게 빌린 분홍색 매니큐어를 칠하며, 나에겐 그럴 권리가 있다고 우기면서 당시 사진들
을 좀 보여달라고 졸랐다.  그런데 할머니는 착각을 하셨는지 당신의  젊었을 적 사진을 들고 나
오셨다.  전에 한 번 본적은 있었지만 너무 오래돼서 나는 한장 한장 사진첩을 넘길 때마다 설명
을 해달라고 했다.  소싯적 할머니를 보는 것은 아기자기한 즐거움이 있었다.  사진 속의  꼬마는 
스타킹 대신 하얀 행전을 차고 머리에는 테가 둥그런 모자를 쓰고 있었다.
  "마틸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옷에 큰 리본을  다는 게 유행이었지. 리자하고 네가 신고 다녔던 
그런 나일론 스타킹은 아직 없었어."
  손가락을 동원해서 대충 나이를 헤아려보았더니 약혼식날 찍은 사진 속의  어머니는 지금의 나
보다 어렸지만 벌써 퍼머머리를 하고 있었다. 결혼식 때 찍은 사진은 나를 더욱  놀라게 했다. 특
히 남자들이 쓰고 있었던 실크 모자와  여자들이 머리에 간신히 얹어놓은 작은  비비모자를 보자 
신기하기만 했다.  어머니의 여동생과 시누이는 양장점에서 옷을 맞춰 입었는데 머리에는 밀짚모
자처럼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한켠에서는 한 어여쁜  부인이 놓이는 낮고 챙은 넓은 카
플린 모자를 벗어 손에 든 채로 다른 한 손으로 자꾸 흘러내리는 머리를 쓸어올리고 있엇다.  난 
처음으로 내게는 증조할아버지 되는 그 어여쁜 부인의  아버지를 보았다.  그분은 어깨를 드러낸 
예쁜 딸 뒤에 서 있었다.  당시 그분은 몇 년 전에 상처를 해 혼자였다고 했다.  재혼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기억이 확실하질 않았다.  나는 확인해보고 싶었다.
  "여기 가슴이 많이 파인 옷을 입은 이 여자는 누구예요?"
  "아, 그여자, 후작부인이라고 불리는 여자야. 이름은 마그리트아르자크였지.  후작부인이라는 별
명은  '후작부인의 규방'이라는 골동품 가게를 연 후에 생긴 거고."
  "그런데 증조할아버지가.... 그 여자......  아주 가까이 서 있는데...."
  "이웃집에 살았단다.  어머니와 함께 우리 아래층에 살았지. 그어머니라는 사람은  옛날에 관현
악단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는데 나와 내 동생에게  무료로 피아노를 가르쳐주었어. 무료였지만 얼
마나 무섭게 가르쳤는지....."
  할머니는 구레나룻이 덥수룩한 삼촌 뒤에 서 있는, 터번을 쓴 한 여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
만 나는 마그리트라는 여자가 궁금했다.
  "증조할아버지는....  마그리트인가 뭔가 하는 이  여자를 마치 자기 딸처럼 다정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우리 큰언니보다 조금 나이가 많았는데.... 아버지가 그 여자와 몇 년 동안 사랑에 빠졌었지."
  사랑에 빠졌었다고? 증조할아버지가? 젊은 이웃집 여인과 사랑에 빠졌었다니!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매니큐어를 말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과일과 케이크를 집어드는 바람에 
매니큐어를 결국 망치고 말았다.  할머니는 사진첩을 접으로 내려갈 시간이 되었다고 했다.
  후작부인은 세상에 사랑할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는 몸짓을  해가며 우리를 맞았다.  평범한 케
이크였는데도, 케이크를 보더니 감동해서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점심식사가 준비되는  사이 그냥 
기다려도 되는데 토마토주스와 땅콩을 내왔다.  물건들이 도착하는 시기였는지 고비사막만큼이나 
텅 비어 있곤 했던 살롱이 그날따라 각종 가구와 상자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이것저것 한쪽으
로 밀어낸 다음에야 겨우 앉을 수 있었다.
  "우리는 절대로 같은 음식을 두 번 먹지 않아요."
  그렇게 연로한 나이에 그런 습관은 큰 모험일 텐데..... 하지만 같은 것을  두 번 먹어도, 먹었다
는 사실을 잊어버렸다면 처음 먹는 것이리라.
  나는 은근히 그날 후작부인이라는 할머니가 옛날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런데 내가 메
추라기 기름에 튀긴 포도에 손을 대고  있을 때 후작부인은 샤스 스플린이라는  이름의 보르도산 
포도주를 홀짝홀짝 마시면서 알렉상드르라는 한 청년과 나누었던 연애 이야기를 시작했다(아마도 
내가 온다고 하니까 미리 생각해두었던 것 같았다). 후작부인은 '애인'이 자기에게 얼마나  정성를 
기울였는지에 대해 이야기했고 자기 딸은 원고 교정을 보며 돈을 벌고 있었음에도  그가 유명 양
장점에 데리고 가서 직접 옷을  사준 이야기도 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증조할아버지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나는 평소 입에 대지도 않던  술을 단숨에 털어넣었다.  그러자 이상한  자신감과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우울한 기분이 동시에 엄습해왔다.
  "그러니까, 홀아비로 지내던 증조할아버지를..... 나이도 훨씬 많은  증조할아버지를 사랑한 것이 
사실이란 말인가요?"
  "사실이고말고."
  후작부인은 내밀지도 않은 술잔에 다시 포도주를 가득 채워주면서 말했다.
  "그분은 세련되고 경험 많고 또 사려 깊고, 게다가 잘생기신 분이었지.  아니 잘생긴 정도가 아
니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분이었고 열정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어.  내가 그분을 만나
지 않았더라면 진짜 나이를 속이기 위해 어머니가 입으라 한 소녀티가 줄줄 흐르던 그 옷을 평생 
못 벗어던졌을 거야.  모든 게  알렉상드르 덕택이었어.  간호사 공부를 하게  된 것도, 영국으로 
바캉스를 갔던 것도 또 놀러 갔던 영국에서 골동품점을 운영하던 윌리엄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된 
것도 다 알렉상드르 덕분이었어."
  나는 이 이야기가 정말인가 싶어 할머니를  쳐다보았는데 할머니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투였다.  
할머니는 메추라기의 잔뼈가 성가시다는 듯이 뱉어내더니 나더러 종이 한 장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러고는 굵은 줄기 몇 가닥에서 무수히 많은 곁가지들이 뻗어나가는 우리집 족보를 그렸다.
  "우리 아버지는 (할머니는 족보 나무 그림 위에 아버지라는 단어를  쓰고 그 위에 조그만 동그
라미를 했다) 1888년에 태어나셨는데(1888년이라는 연대를 듣자 나는 지금부터 1세0기도 넘는 옛
날이라는 느낌에 문득 섬뜩해졌고, 샤스 스플린이라도 한잔 마셔야만 했다) 고향인 러시아를 버리
고 어머니와 함께 여기서 할머니는 다시 어머니라는 글자 위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프랑스로 오
셨어. 그때가 1928년이었는데 어머니는 나를  배고 계셨지.   나는 다섯째였는데,  위로 오빠둘은 
죽었어. (할머니는 다섯 개의 동그라미를 그렸다)나를 낳고 몇 개월 안 돼 어머니도  병명조차 모
르는 병에 걸려 돌아가셨고....아버지가 언니, 오빠 그리고 나 그렇게 남은 세 아이를 혼자 키우신
거야.  물론 마리 앙주라는 브르타뉴에서  올라온 씩씩한 아주머니가 집안일을 도와주긴  했지만. 
이 아주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곁에서 돌보아주셨지.   30년 넘게 홀로 지내시면서 아
버지는 물론 몇 몇 여자들을 사귀긴 했지."
  할머니는 잠시 튀긴 감자를 나이프 끝으로 툭툭 건드려보더니 다시 이야기했다.
  "사실 지금이야 별일 아닌 것처럼 이렇게 이야기하지먄 그때는 나나  언니나 모두 괴로워서 죽
을것만 같았어.  오빠가 우리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줬지만 우리는 들은 척도 안했단다. 함께 인
생을 살아왔으면서도 가족들이 어느날 갑자기 소설 속의 인물들처럼 느껴지더구나.  한 가족이면
서도 그렇게 멀게 느껴지다니....."
  이때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그게 바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예요!"
  갑자기 포크 소리가 멈추었다.  나도  모르게 나온 소리였지만 어쨌든 이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할머니는 대체 누굴 보고  그렇게 당돌하게 콤플렉스라는 말을 하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짐짓 모른체하고  할머니가 못알아들을 말로 허세를 부렸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란 한 여자아이가 자신ㄴ보다 나이 많은 남자를 사랑하는 것을 말하는데, 
딸이 아버지를 사랑하는 경우가 전형적인 예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흔히 남자아이들을  두고 한는 말인데, 도대체 너는 어디서 그런 이야
기들을 들었니?"
  할머니는 당황해했고 후작부인은 무슨 이야기인지 몰라 어안이 벙벙한 듯 했다.   그러자 문득  
작은 오기가 치밀어올랐다.
  "할아버지가 애지중지하시던 그 우상한테서  배웠죠."
  "할아버지가....  애지중지하던...... 우상한테?"
  더 이상 말을 하면 안 될 상황이긴 했지만, 이미 선을 넘어버린 다음이었다.
  "할아버지가 프로이트주의자였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는데 그게 뭐하는 건지 알고 싶어요."
  할머니 얼굴에 갑자기 안도의 빛이 찾아왔다.  후작부인도 그러면 안심이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니트 투피스의 조끼를 매만지며 야채가 남았는데 더 먹을 사람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무엇 때문에 분위기가 긴장되었는지, 또 무엇 때문에 긴장되었던 분위기가 갑자기 풀어졌
는지 알 수가 없었다.  메추라기 스프를 빵조각으로 찍어 먹고 있는데, 할머니는 대답을 들려주는 
대신 내게 질문을 했다. 
  "학교에서 프로이트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배우니?"
  "아직은 안 배워요.  친구들하고 공부하다가 배운 거예요."
  "네 또래 아이들이 벌써? 친구들 중에 신경정신과 학생이라도 있니?"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우리끼리 모여서 철학 카페를 하나 열고 있는데  거기서 들은 이야기
에요.  그런데 대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게 뭐예요?"
  "좋은 질문이야.  정신분석가와 결혼해서 오래 살았으니  이 질문은 엘사가 답을 해주어야겠는
데....."
  자기보다 열 살 아래의 할머니에게 공을 넘기면서 증조할아버지의 애인인  후작부인은 빙긋 미
소를 지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표정은 담담하기만 했다.
  "글세 뭐라고 해야 되나..... 다 큰 손녀딸에게..... 후작부인이  내게 옛날이야기를 하라는가 본데 
어느 날 여자 친구들과 함께 멱을 감다가 여자애들이 자기하고 다르게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
지."
  "그렇지. 이야기를 잘 하는구만...."
  "그래요?  그러면 계속해볼까? 깜짝 놀랐지만 아직 그가 본 것을 납득할 수 없었던  소년은 자
신의 고추를 만지작거리지 말라는 야단을 맞기도 하고 또 그러면서 자기가 사랑하는 어머니가 나
의 여인이라고 큰소리로 선언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기도  하고, 바로 이 성기를 만지지 말라
는 금지와 아버지의 큰 목소리가 관계 있다는 것을 알았을대 자신이 위협당하고  있다는 것을 느
꼈지."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어느날 소년은 자신이  사랑했던 엄마가 함께 놀던 여자 소꿉동무들
처럼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소년은 어머니에  대한 위험천만한 사랑을  단념하게 되는
데......."
  "이해가 잘 안되는데요.....  그러니까 할머니가 말한 그  소년이 어떻게 해서 모든 위협이 고추
에 관년된 것이라는 걸 알았는지 모르겠어요. 뺨따귀나 볼기짝을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
잖아요."
  "자신이 가장 귀중하다고 여기던 것을 보호하려고 한  것이지. 게다가 다른 데는 별 느낌이 없
었는데 반해 고추를 만지니까 어떤 느낌이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고...."
  "그런데 아이는 외 그 느낌과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
  "바로 그 점이 복잡한 문제인데, 그래서 복잡하다는 뜻의 콤플렉스라는 이름이  붙은 거야.  소
년은 아버지의 금기를 받아들임으로써만 자신의 남성적 특징들을 잃어버린다는  공포로부터 벗어
날 수 있거든"
  "하지만 아버지가 금지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죠?"
  "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들도그런 법을 발할 수 있지. 인간 사회속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근
친상간적인 욕망을 포기해야만 한다는 법 말이야. 허락될 수 없는 것이 먼저 정해지고 나서야 비
로소 가능한 것들의 영역이 열릴 수 있는 거야. 그래서  금지된 죄악을 저지른 신화에 나오는 그 
영웅은 허락될 수 없는 것을 먼저 저질렀기 때문에 자신의 두눈을 파냄으로써 스스로를 응징하는 
것 이외의 다른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던 거고."
  "방금 할머니가 이야기한 것들을 과연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심스럽네요."
  "바로 그렇단다.  나도 그렇기 때문에 너에게 이렇게 간단하게 요약해서 설명해주는 것이 괜찮
은 것인지 아닌지 망설여지는구나.  너의 할아버니지 토마가 정신분석을 아무렇게나 퍼뜨리는 사
람들을 경계해야 한다는 말을 얼마나 자주 했는지 모른단다."
  "아무렇게나 퍼뜨린다고요?"
  "그래. 가령 정신분석의 한 개념이나 어위를 하나만  따로 떼어내 말하는 순간 이미 오해는 피
할 수 없게 되어버린단다.  무의식이라는 말이 이제는 일상어가  되어 있지 않니? 프로이트가 환
자들이 말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떻게 점진적이고도 과학적으로 정신분석의  이론을 마련해나
걌는지 고려하지 않고 어떤 한 개념을 따로 떼어내서 정의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의미 없는 일
인 거야."
  할머니는 자신이 너무 고자세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싶었는지 이내 태도를 바꾸어 계속 이야
기를 들려주었다.
  "얘야, 너 혹시 어떤 소아과 의사가  코엔이라는 부인에게 당신의 아들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를 앓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는 유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니?"
  "들어본 것 같아요.  그때 아이 엄마가 의사에게 '아들이 엄마를 사랑하는 것이 뭐가 문제죠'라
고 반문을 했다면서요?
  "너도 알고 있었구나..."
  이때 후작부인이 끼여들었다.
  "자, 너무 극단적인 예만들지 말고...그 소아과 의사는 마치 자신이 정신과 의사인 양 아무런 근
거도 없는 해석을 했던 거지.  하지만 정확하게 설명될 수 있는 개념들이 없는 건 아니야."
  "그렇기는 한데...(할머니는 여전히 망설이고 계셨다)자  우선 먹던 점심이나 마저  끝내는 것이 
어떨까? 그러고 나서 우리집으로 가서 커피를  한 잔씩 들면서 이야기도 하고 또  토마가 남기고 
간 책들을 꺼내보기도 하고 그러자구."
  하지만 나는 정확히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한 가지만 더요.  사람들이 콤플렉스 같은 것을  갖고 있다고 할 때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할 때, 그때으리 콤플렉스라는 것은 정확히 뭘 말하는 거예요?"
  질문을 받자 할머니는 다시 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콤플렉스라는 말이 그런 경우에 쓰인다고 해서  잘못이라고는 할수 없지.  어쨌든 콤플렉스라
는 것은 아까 말했듯이, '복잡하다'복합적이다,라는  말에서 온거야.  하지만 '콤플렉스를 갖고  있
다'는 말은 '아무것도 아닌 특징들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보면 될 게다.  가령  유난히 큰 
코라든가, 작은 가슴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특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 같은 거  말이야.  반
면 우리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할 때의 그  콤플렉스는 누구도 비-켜-갈-수 없는 어린 시
절의 갈 등을 의미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부터 벗어난다거나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제
대로 인식하고 극복해내는 것이 중요한 거야.  인간은 단념했을 때에만 지혜로워지고 아름다워질 
수 있거든."
  "이 사람, 자꾸 어렵게만 말을 하네.  나도 무슨 이야기인지 못 알아듣겠구먼."
  후작부인이 끼여들었다.  나는 순간 후작부인이  우리 할머니에게 이렇듯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는 것은 오래 전의 가족 관계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랬나? 그럼 좀 다르게 이야기해볼까요? 여자든 남자든 아이는 모두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
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두 살에서 다섯 살 사이에 거세 단계를 맞게 되는데..."
  "그 이전에는 아니구요?"
  "그 이전에는 아이들이 질문을 하지 않거든. 그 이전의 어린아이들은 신체의 한계를 아직 모르
는 상태에 있어.  물론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도 모르고.   남자아이든 여자아이든 아이는 엄마
를 사랑하게 되고 그들의 생각으로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그때 내가 할머니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런데 할머니, 나는 그런 게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데... 게다가 할머니는 엄마가 아주 어려
서 죽었다면서 어떻게 엄마를 사랑 할수 있었어요?"
  "그것은 무의식적이고 억압되어 있기 때문인데... 살았든 죽었든, 우리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사
람은 어머니이지. 물론 나를 기른 것은 마리 앙주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할머니가 엄마를 사랑하는 것을 할머니의 아버지가 금지할 수는 없었잖아요?"
  "아버지는 딸이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을 금지하지는 않아, 딸 스스로 어머니에게서 돌아서니까. 
딸은 어머니가 자신과 똑같은...."
  "하지만 할머니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었잖아요?"
  "얘야, 너도 잘 알겠지만 이런 문제는 경솔하게 수다를  떨 듯이 다뤄서는 안된다."
  나는 계속해서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정신분석가의 딸인 어머니의 경우엔 일이 어떻게 되었지는
지 물어보기도 하고 졸라보기도 했지만 헛수고였다.   할머니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진행되는 
과정은 보편적인 것이고 또 한 세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현상이라고  만 일러주었
다.
  후작부인이 치즈를 내왔지만 내가 계속 실망한 표정으로 않아 있자  후작부인은 치즈를 내왔지
만 내가 계속 실망한 표정으로 앉아 있자 후작부인은 내게  묘한말을 했다.  우리 모두는 나이가 
들어서도 어려운 상황에 처하거나 극복해야 할 시련에 맞닥뜨리게 되면  다시 오이디푸스 콤플렉
스를 겪는다는 것이다.  특히 내 내 나이 또래에서 그렇다고 했다.
  치즈와 케이크를 다 먹은 우리 세 사람은  커피를 마시려고 일어섰다. 하지만 장소를 바꿔서인
지  두 할머니는 전혀 다른 이야기들만  했다.  고가구 수리업자의 잘못으로 게약이 취소되었고, 
단골 치과 의사가 예고도 없이 바캉스를 떠났으며,  하수도 뚫어주는 인부가 아무리 전화를 해도 
오지를 않고....
  내가 지루해하는 눈치를 보이자 그제서야 할머니는 서재로 들어가 프로이트의  책들과 생전 들
어보지도 못했던 자크 라캉이라는 사람의 책, 어머니가  언젠가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꼭 봐두
어야 한다고 말했던 프랑수아즈 돌토의 책들을 한아름 꺼내왔다.
  나는 낡고 드문드문 밑줄이 쳐진 그 책들을 뒤적뒤적 건성으로 넘겨보았다.  그러다 나도 모르
게 소파에 몸을 묻은 채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후작부인은 돌아가고 없었
다.  공상과학 연속극을 보고 있던 할머니는 텔레비전을 보고 가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할머니는 책들을 담아 가라며  비닐가방을 내주면서 다 
읽고 돌려달라고 했다. 발꿈치를 들어 내 뺨에  보뽀를 해주는 할머니를 뒤로하고 할머니댁을 나
섰다.  지하철 입구까지 가는 동안 내 머리 속에는 후작부인 같은 여자와 바람난 아빠를 둔 작은 
소녀의 이미지가 할머니의 얼굴과 함께 떠오르더니 사라지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집안은 주말을  마치고 돌아온 식구들로 북적댔다.  오빠
는 새로 사귄 여자 친구 옹딘과 외출하려고 게단을 막 내려오는 참이었으며, 언니는 자기 방에서 
밀린 공부를 하고, 엄마는 가방에서  빨래감을 꺼내 세탁기에 넣으면서  직장 여성에게는 휴가를 
더 주어야 한다며 투덜댔다.  아빠는  거실에서 아까 할머니가 함께 보자던  그 티브이의 프로를 
보고 있었다.
  엄마가 눈위로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올리면서 내게 물었다.
  "너 오늘 후작부인댁에 가서 점심 먹었다면서?"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엄마는 아니나다를까 또 야단이었다.
  "숙제는 어떻게 하고 그렇게 돌아다니가만 하니?"
  내 방으로 올라가던 나는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기 시작한 이 모든 것들을 어른
들은 다 알고 있을 텐데, 어떻게 저렇게 태평하실수 있단 말인가?

    제3장 영원한 사랑
  어제 저녁 나는 정말 세상에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아 외로웠고 그래서 기
욤에게 편지를 썼다.  마치 내 마음을 이해해줄 상대자라도 만난  듯이 단숨에 여섯 쪽이나 써내
려갔다.  조금 흥분한 나머지 편지를  부치려고 봉투까지 넣었는데 우체통에  집어넣으려는 순간 
그만 용기가 사라졌다.  지금도 그 편지는 내 가방 어딘가에 처박혀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실 내가 기욤에 대해 하는 것이라곤 인류학을  공부하고 철학에도 관심이 
있으며 또 밀실공포증 같은 것은 없다는 정도가 고작이다.
  지난 수요일 배구를 하려고 악셀을  찾아가다가 우연히 그와 마주쳤다.  그는  양쪽 볼에 입을 
밪추면서 인사한 뒤 지난번에 헤어진 후 소포클레스를  읽었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못 읽었다는 
말을 하기가 쑥쓰러워 멍청하게도숙제가 너무  밀렸다는 핑계를 대며 어물거렸다.   만일 편지를 
우체통에 집어넣었더라면 너무 당황해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찢어버리지도 
못하고 다시 꺼내 읽지도 못하는 그 편지는 여전히 내 가방 속에 있다.
  목요일 점심때쯤 남자 친구들과 바빌론 카페 앞을 지나다가 로돌프가  붙여놓은 게시문을 보았
다.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서 토요일 열리기로 했던 모임을 일주일 연기한다는 것이었다.  악셀은 
나보다 더 실망한 눈치였다.  그애를 달래줄 겸해서 나는 할머니가 빌려준 책들을 토요일에 함께 
읽어보지 않겠냐고 제의했다.  악셀은 금방 미소를 되찾으며 말했다.
  "토요일까지 기다릴 필요 뭐 있어? 내일 학교 올 때 갖고 와서 우리끼리 집에 가서 읽어보자."
  내가 잠시 망설이자, 악셀은 아양을 떨었다.
  "<오이디푸스 왕>  다 읽었는데, 너한테 빌려줄게."
  나는 교과서와 공책들은 만지지도 않은 채, 하루종일 그 낡은  책들을 한 무더기 끼고 다닐 생
각을 하니 벌써부터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나혼자 읽을 능력은 없었기 때문에 악셀의 생각대로 
하기로 했다.
  악셀의 방에서 우리는 방바닥에 책상다리로 앉아 내가  가져온 책 보따리를 풀었다.  일요일의 
나처럼 악셀도<성 이론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 <성 생활>,<여성의 성>등  등의 책들을 놀란 
눈으로 훑어보았다.  우리는 여성지 등에서 읽은 적이 있는 그런 종류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을 
기대하며 책들을 뒤적였다.  하지만 진작에 할머니의 말에서  느꼈듯이 대부분의 책들은 여섯 살
도 채 못 된 어린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악셀은 그런데도 내가 듣도 보도 못한 개념들을 열거하며 폼을 잡았다.
  "이건<카미수트라> 같은 책들은 아니군. 네 할아버지가 좋아했다던  작가들은 모두 페니스, 자
궁, 음부, 음핵, 남근, 자위행위,등 성애 이야기만 하고 있어."
  나와 함께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그런 단어들을 줄줄이 꿰고 있는 악셀  앞에서 나 또한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어보여야만 했다.  '섹스'라는 말은 그런 끔찍한 단어들에 비하면 정말 
얌전한 단어였다.  악셀이 얼마나 학자인 체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익히 알고 있던 나는 오나니즘
이 뭐냐고 물어보았다.  그애는 이 개념은 그리스인이었던 오난이라는 사람에서 비롯된 단어라는 
등, 오난은 그리스 섬지방에서는 꽤 알려진 인물이었지만 본토에서는 인정을 못 받 던 사람이라
는 등 복잡하게 설명하면서 그 박식함을 십분 발휘했다.  그애의  고분고분한 팬 이었던 나는 웃
으면서 좀더 정확하게 설명을  해달라고 했다.  악셀도  이번에는 좀더 구체적인  자료가 팰요한  
것  같았다.
  "잠깐만 기다려봐, 가서 사전을 가지고 올게."
  악셀은어머니가 화실로 쓰는 방에서<로베로 소사전>을 들고 오면서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얘, 글세 스테파니가 우리집에 와 있어..."
  "바빌론 카페에서 만났던 그 스테파니?"
  "그래 맞아. 그날 원형 이야기를 한참 늘어놓던 그여자말이야.  무용 선생인데, 지금 우리 엄마
하고 우리처럼 토론을 벌이고 이 어.   두세 살쯤 된 딸을 데리고  왔는데 그애가 그림물감으로 
장난치는데도 엄마하고 그 여자는 서로 자신의 애정 문제를 털어놓고 수다를 떠느라 아이가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니까."
  옆방에서 담소를 나누는 부인들보다 경험은  적었지만 훨씬 열정적이었던 우리는  사전을 뒤져 
오나니즘이라는 단어를 찾았다.  오난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이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인
물이며 그의 이름은 정상적인 성교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쾌락을 얻는 모든  성 행위를 지칭하는 
데 쓰였다.
  "그렇게 얼굴 붉힐 필요 없어, 우린 지금  어휘를 알아보려고 사전을 뒤지는 것이지 어디 섹스
숍이나 인터넷 같은 데를 헤매는 게 아니거든.
  나는 갑자기 내 가방 속 어딘가에 구겨진 채 처박혀 이 을 편지 생각이 떠올라 얼굴이 달아올
랐다.  얼른 화제를 돌리고 싶어 악셀에게 제안을 했다.
  "우리 각자 책을 읽고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자."
  아무 대답도 없이 그애는 내게 책 한 권을 내밀었고 자기도 한 권을 집어들었다.  우리는 어색
한 분위기를 달래려는 듯 책상에 앉지 않았다.  다소 불편하긴 했지만 그냥 되는 대로 바닥에 깔
린 양탄자에 비스듬히 누웠다.  내 등뒤로는 체 게바라의 대형 브로마이드가  걸려있었고, 악셀은 
그냥 배를 깔고 엎드린 채 한 발을 허공에 들어 마치 메트로놈처럼 흔들었다.  정신집중이 잘 되
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뭐 읽니?"
  "한 어린 소녀가 남자 친구의 고추를 보고서 이제까지 흡족하게 여기고 있던 자신의 음핵이 사
실은 정말 형편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는데... 너도 그런 적 있니?"
  일요일에  점심을 먹으면서 얻어들은  것들이 떠올라 나는 조금 자신감을 갖고 대답했다.
  "그런 건  기억의 문제가 아니야.   오빠 에두아르가 샤워를 마치고 알몸으로  나왔을 때 나도 
오빠 나이가 되면 오빠처럼...   하지만 며칠  후 엄마 친구가 아기를 데리고 집에  놀러 왔을 때 
옆에서 그 아이 기저귀 가는 것을  도와주다가 깨달았지.  난 평생 가도  오빠처럼 될 수 없다는 

  "나는 엄마처럼 젖가슴을 갖게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다음을 달랬었는데..."
  "하지만 넌 아직도 절벽이잖아."
  악셀의 말에 난 창피하기도 하고 분통이 터지기도 해서 어떻게 하면 따끔한 반격을 할 수 있을
까 궁리했다.
  "프로이트도 소녀가 자신이 거세당했다고 여기면서 자기를 아들로 낳아주지  못한 엄마를 비난
하는 건 정상이라고 했어.  프로이트는 또 소녀가 성기가 없다고 엄마에게 투덜대지만 결국은 마
음을 바꿔 아버지의 아이를 낳아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면서 아버지를 흠모하게 된다고도 했는
데..."
  악셀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말도 안 돼! 그런 게 어딨어?"
  이야기가 나도 모르게 술술 풀려나갔다.   악셀이 기가 막혀 하자 내친김에  한발 더 내딛기로 
했다.
  "내가 한 말이 아니라 프로트의 이론이야 그런 건 무의식이거든, 왜냐하면 콤플렉스니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같은 거란 말야?"
  잘 모르는 아야기를 마구 하다  보니 너무 멀리 나가고 말았다.   밑천이 떨어졌지만 일요일에 
나누었던 대화를 아무리 떠올려봐도 더 이상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눈치를 챘는지 악셀이 반격
을 해왔다.
  "어쨌든 그게 똑같을 수는 없어. 왜냐하면 프로이트는 남자였으니까."
  "아니야, 처음에는 여자아이나 남자아이나 똑같애.(할머니 정말 고마워요!)서로 달라지기 시작하
는 것은 그러니까..."
  잠시 망설이자 악셀의 얼굴에 미소가 돌았다.
  "똑같았다가 그 이후 남자아이들은 아버지를 죽이고 엄마와 함께 자지."
  이 말을 듣자 나는 악셀이 이번만은 나보다 모른다는 확신이 들어서 기분이 상쾌했다.
  "아니야.  그렇게 말하면 안돼.  남자아이들은 고추를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엄청난  두려움
을 느끼게 되는 거야.  누나나  여동생에게  고추가 없다는 것을 남자아이들은  자기들이 엄마와 
결혼하는 꿈을 꾸지.  그러면서 구약에 나오는 오난처럼 계속 혼자서  고추를 만지면서 즐긴다면 
자기들도 연젠가는 누나나 여동생처럼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말도 안 돼! 그게 사실이라면'오이디푸스'는 뭐고 또 컴플렉스는 뭐니?
  "콤플렉스는 복잡하니까 콤플렉스인 거고...(나는 이 대목에서 말이  막혔다.  사실 할머니가 설
명할 때도 무슨 소린지 거의 알아 듣지 못했었다.)그리고 오이디푸스는...
  악셀이 내 말을 나꿔챘다.
  "그것도 모르면서...오이디푸스라는 것은 그 그리스 영웅이 끔찍한 운명에 넋이 나가 사신의 두 
눈을 파내기 전에 신탁을 실제로  실현시켰기 때문에 그 영웅의 이름에서  따온 말이야.  그리고 
콤플렉스라는 것은 내 기억이 아마 틀림없을 텐데, 장 마르탱이 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 그리스 
비극이 가슴속에 깊이 숨어 있는 유사한 욕망을 우리들 각자에게 상기시키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
는 거라꾸.
  악셀의 말을 듣던 나는 문득 그렇다면 아버지를 사랑하게 된 딸은 어머니를  죽이려고 하지 않
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대 에두아르가 어린아이를 목말태운 채 방으로 들어오면서 빈정댔다.
  "기가 막히군! 한쪽에선 젊은 처녀들이 공부를 하고 다른 방에서는 아주머니들이 성 생활 상담
을 하고... 아이는 이렇게 남자가 돌봐야 하니!"
  그의 말이 틀린 것만이 아니었다.  에두아르가 아이를 바닥에 내려 놓으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자, 여러분, 지젤을 소개합니다.  나이는 세 살이고요, 이빨도 제법 많이 났답니다, 보세요.
  세 살배기 지젤이 내게 이름을 물어와 답을 하는 사이 우리 곁에 앉아 에두아르는 책가방 밑에 
얼른 밀어넣어 삐죽 튀어나온 책들을 찾아내고 말았다.  그의 얼굴에 짓궂은 미소가 돌  다.
  "이런 이런, 하라는 공부들은 안 하고... 수학이나 지리는 다 끝냈다 이거지.  아직 포르노 같은 
것을 읽기엔 좀 이른 것 같은데..."
  가만히 듣고 있을 악셀이 아니었다.  나는 모른체하고서 아이를 간지럽히며 장난쳤다.
  "포르노가 아니야! 우리는 지금 오빠가 갖고 있어서  한없이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오빠가 잃어
버리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는다는 사실을 책에서 배우고 있는 거라꾸."
 "내 말이 바로 그말이라니까... 게다가 너희들은 지금 책을 잘못 읽고 있어."
 "우리도 알아.  그게 무의식에 관한 이야기라는 건 우리도 안단 말이야."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는 어색한 나머지 지젤에게 말끝을 돌렸다.
  "지젤, 너 엄마를 사랑하니?"
  "그럼."
  흡족하는 표정을 지은 아이는 입고 있는 치마를 끌어당기면서 계속 이야기를 했다.
  "엄마가 이 빨간 치마 사줬다."
  우리 세 사람은 웃음을 터뜨렸고  그사이 아이는 '엄마엄마'를 흥얼거리며 바닥에  앉더니 마치 
좀 찾아볼 것이 있는 듯, 프로이트의 <성 이론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를 집어들어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에두아르는 키가 크고 금박에 얼굴이 아주 창백한 스물다섯쯤 된 총각이었다.  가끔 옆에 있는 
사람들도 착각을 할 정도로 자신이 미남이라고 확고히 믿었다.  연기학교에 등록한 후 작은 기회
라도 주어지기만 하면 ' To be or not to be' 를 읖조리는 사람이었다.  장래의 꿈은 물론 햄릿역
을 해보는 것이었고 최근에는 세제  선전에 잠깐 단역으로 얼굴을 비치기도  했다.  아무 말이나 
해도 껄껄댔기 때문에 우리 오빠인 세르주보다는 훨씬  이야기하기가 쉬운 사람이었다.  단지 그
와 이야기할 때는 그의 농담을 각오해야만 했다.  내가 먼저 시비를 걸었다.
  "오빠는 알아? 나중에는 아빠를 사랑하게 되지만,  여자아이들도 어릴 때는 남자아이들 못지않
게 엄마를 사랑한다는 거?"
  에두아르가 내 아픈 데를 찌르고 나왔다.
  "네가 아까 말했듯이 무의식에 관한 이야기지."
  "우리 증조할아버지 애인이 그러는데, 그렇기는 해도..."
  악셀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증조할아버지의 애인?"
  "그래.  우리가 그냥 후작부인이라 부르는 그 할머니 말이야. (나는 지나가는 말투로 누구 이야
기인지를 밝혔다.)그 할머니가 그러는데 무의식이라고 해도 다는 아니지만 설명이 가능하다고 했
어."
  "안다면 오히려 너희 할머니가 더 많이 알고 계실 텐데?"
  "할머니 이야기는 하지도 마! 할머니는 언제나 할아버지 흉내만 내거든.  "얘, 뤼실. 정신분석이
란 깜짝쇼 같은 것이 아니란다.  정신분석은 환자들이 하는 말을 기초로  해서 세워진 이론이야."   
늘 이러신단 말이야.  그러고는 유대인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면서 여기 있는 이 책들을 읽어보라
고 하시더라구."
  이야기를 하느라고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다.  지젤이 막 책을 찢으려는  찰나 내가 간신히 책
을 빼앗은 것이다.  책을 빼안긴 지젤은 통통한 두발로 뒤뚱거리며 나가버렸다.  구겨진 쪽을  다
시 펴면서, 에두아르에게 계속해서 여자아이들의 욕망이 어떻게 변하는지 물었다.
  "여자아이들도 처음에는 엄마를 사랑하지.  하지만  아버지는 여자아이들이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을 그렇게 빨리 금지하지 않아."
  "그것은 아마도 그때쯤 되면 여자아이들이 어머니에게서 멀어져 아버지를  사랑하게 되기 때문
이겠지?"
  "그것만이 아니라 여자아이들은 아이를 갖고 싶어하거든."
  듣고 있던 악셀은 또 현학적인 논리를 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지금 가장 이상적인 경우를 이야기하고 있어. (악셀은 방금 전에 지젤이 찢을  뻔했
던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를 보면, 어떤 여자아이들은 자기들이 남자아이들처럼 생기지 
않은 것에 너무나도 실망을 한 나머지 결국에는  성 자체를 단념하고 마는 수도 있다고  씌어 있
어."
  에두아르는 동생이 조금 흥분했다는 것을 알아챘다.
  "좀 진정해."
  하지만 악셀은 이미 시동이 걸린 상태였다.
  "또 어떤 여자애들은 자신이 페니스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혹은 갖고 있는 척하기도 
하는데, 반면..."
  에두아르는 어려울수록 재치를 발휘했다.
  "이야기들을 들어보니 너희들은 무의식적인 현상들을 마치 방금 끝난 텔레비전 뉴스 정도로 생
각하고 있는 것 같구나.  그런 경향은..."
  "그러면 콤플렉스란 게 대체 뭘 말하는 거야?"
  "콤플렉스란 음...겉으로 드러나 눈에 보이는 것 속에  숨어 있는 잠재적인 것을 가리킨다고 해
야 할까! 이가 빠지는 꿈을 꾼다거나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는 것은 뭔가 다른 것을 상
실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의 표현인 것인데...그게 바로 거세공포라구."
  아닌게아니라 후작부인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물론 나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할 수가 없었지
만.
  "정말 여자아이들은 누구나 다 그렇게 거세되었다고 느끼거나 거세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한단 
말이야? 남자아이들을 부러워하다가 실망을 하고? 그냥 솔직하게 사랑을 하면 되는 거 아냐?"
  에두아르는 빙긋 웃었다.
  "이런 순진한 친구들 같으니라구! 너희들 이야기가 아니라 젖먹이들 이야기야.   단지 어린아이
들만이 그런 환상을 갖고 있는 거라구.  금지 없는 사랑은 없어.   또 위협 없는 금지도 없고. 그
래서 인간은 근친상간을 저지르지는 않지만, 자신의 욕망을 가슴속에 숨기게 되고 이것이 나중에, 
뭐라고 할까...무의식이 되는 거지."
  "만일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면?"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지.  어린아이들에게는 이런  일이 자신들이 바라지도 않았는데 일어나
는 거거든."
  나는 놀란 눈으로 에두아르에게 반문을 했다.
  "오빠는 그런 걸 어디서 배웠어?"
  에두아르는 은근히 목에 힘을 주었다.
  "철학 시간에 배웠지, 뭐. 심리학 강의도 1년 들었고..."
  그는 자신이 공부를 잘 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서 
연극적인 몸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지젤이 사신의 옷과 똑같은  붉은색 옷을 입은 인형을 흔
들면서 방으로 들어왔다.  모두들 아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악셀이 물었다.
  "얘, 너는 저 조그만 아이가 성욕을 갖고 있다는 게 믿어지니?"
  "머리 속에 든 걱 내가 어떻게 알아!"
  에두아르는 다시 바닥에 앉아 책들을 이것저것  훑어보다가 우리처럼 지젤에게 관심을 보였다.  
아이는 인형의 옷을 벗겼다 입혔다 하면서 다정한 말을 건네기도 하고 가슴에 껴안은 채 젖을 먹
이기도 하고 기저귀를 갈아주기도 했다.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미래의 연극인은 문득 생각나
는 것이 있다는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무대에 선 것처럼 손가락으로 아이를 가리키면서 큰
소리로 대사를 외우기 시작했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복음서에 나오는 
말이었다.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를 못하는구나!"
  더 이상 질문을 한다는 건 불가능해보였다.  악셀이  운동복을 걸치더니 같이 산책이나 하자고 
했다.  아직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나는 한숨을 내쉬며  주섬주섬 바닥에 흩어진 책들을 가방
에 챙겨넣었다. 악셀이 내게 다가와 속삭였다.
  "다음에 차분하게 좀더 이야기하자."
  악셀은 걸음이 아주 빨라서 따라가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하지만  그애는  빨리 걸으면서도 
옷가게 진열창 앞에서는 또 매번 멈춰  서곤 했다.  지나다가 어떤 가게  안에 진열돼 있는 빨간 
드레스를 보더니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네 엄마가 너에게 저 옷 한 벌 사주었으면 좋겠지?"
  나도 웃었지만 왠지 마음은 편치 않았다.
  거의 우리집 근처에 도착했을 때 악셀은 다시 자기네 집까지  바래다 달라며 떼를 썼다.  우리
는 길에서 기욤이 그 금발의  멍청한 여자애와 뭔가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며 가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우리를 못 본 것 같았다.  둘이서 함께 밤을 보낸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어 악셀에
게 물었더니 그애 역시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뻔한 거 아니니? 기욤은 스무 살이 넘었고 저 여자도 거의 비슷할걸?"
  내가 어안이벙벙해 아무 말도 못 하자 악셀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너도 편지라도 좀 보내보지 그래? 아마 지금쯤은 기욤도 여자에게 싫증이 나 있을걸?"

    제4장 불안과 공포의근원, 오이디푸스
  지난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시험을 치르고 리포트를 내고 또 언니 리자와 성
탄절 선물들을 사고 하느라 나는 기욤도 프로이트도 또 이이디푸스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어
제 아침 체육시간에 방자멩이 내게 다가왔다.
  "너도 이제 바빌론 회원이 된 것 같더라."
  "바빌론 회원?"
  "바빌론 카페 말이야!"
  "응, 그거. 그날 한 번 가봤을 뿐인데 뭘."
  하마터면 그런 데는 가본 적이 없다고 할 뻔했다.
  아임을 먹으면서 나는 엄마에게 정신분석이나 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대신 고대사 
이야기만 했다.  주말을 보내려고 떠나는 가족들과 함께 가지 않으려면 별수 없었다.  나를  진짜
로 사로잡고 있는 문제를 이야기했더라도 엄마가 그렇게 흡족한 표정을 지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왠지 아무도 몰래 비밀 정원이라도 가꾸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나는 요
즈음 들어 누구도 나를 이해해 줄 수 없을 것 같은 불행한 기분이었다.  내 친구 악셀은 엄마 아
빠와 친구처럼 지내는데, 우리 부모님들과 난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불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악셀이 이때 보리스와 마농을 데리고 나에게 다가와 내일 자기네 집에 모두  모였다가 함께 모
임에 가자고 했다.  보리스가 농담을 던졌다.
  "전세기라도 빌렸다는 거야 뭐야?"
  "전세기는 아니지만, 침대차 정도는 빌려놓았지."
  악셀이 응수였다.
  다시 우리와 합류한 방자멩 역시 엇비슷한 농담을 던졌다.  어릴  대 구슬치기를 하면서 늘 그
랬듯이 사내아이들이 한바탕 시끄럽게 굴겠구나 싶었다.  아주 착한 여자였던 마농은 소꿉동무이
기도 한 보리스의 팔을 잡아 끌면서 그만하라고 졸랐다.
  마농만 보면 나는 신기했다.  어릴 적 소꿉동무와 사랑을 한다는  것이 내겐 너무 우스웠던 것
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가족끼리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라면 여자들의 경우에는 왕왕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록 자신은 고향인 시칠리아의 속담을 따르지 않고 엄마와 결혼을 했지
만 아버지 고향에서도 그런 일이 흔히 있다면서 이탈리아 말로 속담을 들려준 적이  있었다.  '동
네에서 결혼하지 못한다면,고향에서 결혼해라.  고향에서 결혼하지 못한다면 조국에서 결혼해라.,
  서로 고향이 달라서 아빠와 엄마는 그렇게 자주 싸웠던 것일까?  물론 ㅆ움도 자주  했지만 그
만큼 화해도 자주 한 셈이고 그때마다 우리들은 매번 피자를  배불리 먹곤 했다.  싸우고 화해를 
한 날이면 으레 피자집에 갔다.  언젠가는 밤에 엄마와 아빠가  너무 심하게 다투자 리자는 엄마 
아빠가 아예 이혼을 했으면 좋겠다고 한 적도 있었다.  그러면  크리스마스 선물도 두 배로 받아 
좋을 것 같다고.  그날 밤은 모두 제정신이 아니었다.  결국 모두 화해를 하긴 했지만  그날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악셀의 집에 모인 사람들 모두 함께 바빌론 카페를 향해 출발했다.  나는 악셀의  어머니, 오빠
와 친구들 뒤에 처져서 아버지가 들려준 시칠리아의 속담이 혹시 그 유명한 근친상간을 저지르면
서 가족들 간에 결혼을 하라는 말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언젠가 매부리코
를 가진 이탈리아 남자하고만 결혼하겠다고 우기던 때가 떠올랐다.  얼른 그 기억을 떨쳐버렸다.
  모임의 참가자들이 거의 동시에 카페에 도착하고 있었다.  기욤도  곧 왔는데(그는 아무하고도 
포옹을 하지 않았다.)못 보던 새로운 금발의 아가씨를 데리고서였다.   남자아이들이 일제히 일어
나 휘파람을 불면서 한동안 야단법석이었다.  새로 산 부츠를 신고 간 나는 발도  아프고, 기분도 
다시 우울해졌다.
  의자를 끄는 소리가 그치자 로돌프가 일어섰다.  로돌프는  우선 지난주에 모임이 취소된 것에 
대해 사과한 다음 오늘의 주제가 신화라고 공고했다.  이어 그는 단단히 준비를 해왔다는 표정을 
굳이 숨기려고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이 먼저 논쟁에 불을 지폈다.
  "그러니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프로이트가, 어린아이의  성욕이 무엇을 지향하고 또 근친상
간의 욕망이 어떻게 포기되는지를 밝히기 위해 그리스 신화에 입각해서 연구해낸 것입니다."
  "그건 남자아이들 이야기이고 여자아이들은 엘렉트라 콤플렉스 같은 것을 갖고 있지 않나요?"
  "물론 그런 이야기도 있지먄, 프로이트는 인정하질 않았습니다.
  리비도는 여자에게나 남자에게나 똑같기 때문이죠."
  "리비도란 뭘 말하는 거죠?"
  "어린아이의 성을 말하는 겁니다.  어린아이들은 모두,  물론 나중에는 잊어버리자만, 태어나서 
처음 몇 년 동안 자신의  신체 기관의 일부분인 성감대의  자극과 관련된 욕망을 경험하게  되는
데..."
  "좀더 자세하게 설명해보세요."  
  "그러니까... 뭐라고 할까, 입이나 항문이나 혹은 성기 같은부분들에서 아이는 생리적 욕구를 충
족시키면서 동시에 쾌락을 느낍니다.  또 동시에 자신을  보살펴주는 사람에 대해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도 하죠. 심지어 혼자 걸을 수 있는  신체적인 자율성을 확보하기도 전에 자신에게 쾌락을 
주었던 신체적 접촉이나 마찰들을 다시 느끼려고 한다는 겁니다."
  "아이가 자위 행위라도 한다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는 곧이어  자신이 어머니의 모든 욕망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다고도 상상하죠."
  "글세, 그건 남자이이들 이야기라니까..."
  "여자아이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자아이는 대개 두세살쯤에  다른 방식으로 반응을 보입니
다.  남자와 여자가 성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럼으로써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힘의 상
징인 눈에 보이는 남성적 특성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거세되었다고 여기죠."
  성욕이 요람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말에 마농과 방자멩이 깜짝 놀라 서로  불안하게 쳐다보는 모
습이 눈에 들어왔다.  만일 두  사람이 그럴 용기만 있었다면, 그들은  아마도 자신의 딸, 지젤이 
하는 행동에 전혀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던  스테파니처럼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을 것이다.   
스테파니는 팔을 들어 조용히 하라는 듯한 몸짓을 취하면서 좌중을 둘러 보았다.  비난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도대체 여러분들이 어떤 근거에서 어린아이들에 대한 이런 끔찍한  이야기들을 쉽게 받아들이
는지 모르겠군요.  우리 어른들은 오히려 어린아이들의 그  천진무구함을 부러워하지 않나요? 어
린아이들의 잠재성을 망쳐놓는 것은 정말이지 바로 우리들, 어른들이고 이 타락한  사회에요.  만
일 우리가 갖고 있는 어리석은 생각들을 어린아이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그냥 자라도록 내버려둔
다면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창조성과 자기  계발의 모범을 보여주고도 남을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어떤 이유에서 아이들이 엄마 젖을 빨면서 쾌락을 얻으려고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
겠군요.  변을 누지 않고 참음으로써 대체 어떻게 쾌락을 얻는다는    거죠? 또 아이들이 성기를 
만지작거리면서 쾌락을 얻고, 신화에 나오는 오이디푸스처럼  엄마와 자고 아빠를 죽이려 한다는 
것을 정말 믿을 수 있다는 거예요?"
  스테파니가 열변을 토한 것과 달리 로돌프는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언제나 차분한 그
의 표정은 사실 그의 어떤 말보다 더 권위를 느끼게 해싿.
  "맞는 말입니다.  이제 장 마르텡이 자신의 전공인 역사적인 관점에서 전반적인 개관을 해보겠
습니다."
  장 마르텡은 길게 기른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싱긋 미소지었다.  그 미소  속에는 기회가 오길 
기다렸다는 뜻과 사회자의 권유를 받아 흡족하다는 의미가 함께 들어 있었다.   
  그는 이번에는 확실하지 않은 신화 시대의  연대기를 나열하는 대신 채 100년도 안  된 과거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타고난 이야기꾼이자 사람을 휘어잡는  열광적인 어조의 소유자인 장 마르
텡에 이끌려 우선 히스테리 환자를 암시요법으로 치료하는 살페트리에르 병원으로 가서 샤르코와 
프로이트를 만난 후 베른하임이라는 사람이  "이 이름은 할머니의 처녀때 성이기도  해서 기억에 
남아 있다." 최면요법을 사용하던 낭시로 가다가 빈으로 돌아왔다.   좀 지루한 여행이었다.   그
래서인지 보리스가 그새를 못 참고 제법 큰 소리로 말했다.
  "오이디푸스는 언제 무대에 등장하는 거야?"
  "다리가 묶여야 무대에 나오지.  좀 기다려봐"
  악셀이 톡 쏘아붙였다.
  장 마르텡은 소포클레스의 비극을 보고 충격을  받은 프로이트가 자기 분석을 하면서  친구 한 
사람과 편지를 주고 받앗다는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반복했다.
  "지난번 만났을 때 말했지만, 프로이트가 최초로  오이디푸스를 언급한 것은 1987년 10월 15일
자 편지에서입니다.  하지만 개념 자체를 생각해낸 것은 몇 년 간의 분석 작업이 끝난 후죠."
  "무슨 개념을 생각해냈다는 거예요?"
  기욤이 새로 데리고 온 새치미데기가 물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든 개념을 말하는 거죠."
  다정한 목소리로 답을 한 것은 로돌프였다.  금발의 여자애들은 하나같이 멍청하지만 그녀들에
게 말을 할 때면 어떤 남자도 미소를 잊지 않는다.
  그러자 승강기가 고장나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던 기욤이 대신 사과를 한다는 듯이 나섰다.
  "샤롤로트는 지난번 만남에 나오질 않았거든..."
  이야기가 끊기는 것을  원치 않았던 장  마르텡은 계속해서  연대순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프로이트의 초기 제자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가졌던 만남, 서신 왕래,  내부의 알력, 결별, 출간된 
책들, 그리고 중부 유럽에서 프로이트를 찾아와 집  맞은편에 있는 포텔에 묵으면서 스승의 정신 
상담을 받았던 사람들 등 등을 막힘없이 열거해나갔다.  마침내 아무도 중단시킬 엄두를 못 냈던 
긴 여행이 끝나자 할머니가 내개 빌려주었던 세기 초에 쒸어진 책들과 함께 오이디푸스가 등장했
다.  방자멩이 마농에게 속삭였다.
  "내가 알기론 정신분석은 태초부터 있어왔어!"
  나보다  한술 더 뜨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라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이때 스테파니가 언성
을 높이면서 끼여들었다. 
  "지금 이야기한 사람은 융이  아들러 처럼 어린아이의 성에 관해 이견이 생겨 1913년에 프로이
트와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녀는 곧 얼굴을 붉혀야만 했다.  장 마르탱이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직격탄을 던
졌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 이야기를 하려던 참이었습니다만, 한 가지만 미리 밝혀두겠습니다.  만일 학
파 간의 이견과 논쟁을 다루자면 내일 아침까지 그 이야기만 해도 시간이 모자랄 겁니다."
  로돌프도 전공은 아니었지만 그새 정신ㄴ분석을 공부한 덕에 장 마르탱의  말을 수긍하고 나섰
다.
  "그 문제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프로이트는 실제로 정신분석의 고갱이라고 할 수 있는, 자
신이 리비도라 이름붙인 무의식적 성욕과 이 성욕의 형태를 파악하도록  해준 오이디푸스 콤플렉
스를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쳐 싸웠습니다."
  샤를로트보다 별로 똑똑하지도 않으면서 그녀처럼 솔직하지도 못한  나는 '리비도'와 '콤플렉스'
가 무엇인지, 또'고갱이'란 말이 무엇인지 못 알아들었다.  왼발의 부츠를 벗겨내면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귀가 솔깃했다.
  "의식이 증가하면 무의식의 감소하는 것인지도 모르잖아요?  20세기 초만 해도  사람들은 성기
를 밖으로 꺼낼 수 있도록 구멍 뚫은 옷을 입고 섹스를 했었는데 그에 비하면  오늘날에는 성 생
활을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스러워졌죠."
  모두들 키득키득 웃었다.
  "도미에 같은 소리군요!"
  악셀이 제법 큰소리로 외쳤다.  악셀이 어머니와 나는 그런 악셀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장 마르탱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침착성을 잃어갔다.  그는  한숨을 내 쉬더니 이야기를 계속
했다.
  "포르노 비디오나<플레이 보이>같은 것들을 볼 수 있고 아무  거리낌없이 여자 친구에게 팬티
스타킹을 사줄 수 있다고 해서 어린 시절의 리비도로부터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
죠."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한 남자가 항의조로 소리를 질렀다.
  " 지금 그런 것들을 비난하자는 건가요?"
  "아닙니다.  나는 바티칸의 교황도 아니고 성 생활  클리닉의  상담요원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
들의 성생활에 이러쿵 저러쿵할 의향은 전혀 없습니다.  단지 나는 프로이트는  얼마나 대담했는
가를 여러분에게 말하고자 할 뿐입니다.  프로이트는 페티시즘, 간음증,피학대음란증 등의 기원을 
연구한 후인 1905년 어느누구도 이러한 변태적 성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밝혀
냈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든 사람들이 어린 시절 지녀온 성향들이기 때문입니다.  프로이트는 어
린아이들을 다형변태성욕자로 부르는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벗어나면서 이런 성향들은 없어지
거나 어느 한 가지 성향이 고착되거나 하면서 재배치된다고 합니다.
  조금 전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던 남자가 호기심이 생겼는지 조금 누그러진 태도로 물었다.
  "재배치된다고요?"
  "어떤 성향들은 억압되고 또 어떤 것들은 승화된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끝까지 남는 것은 없다는 말인가요?"
  "억압되지도 않고 승화되지도 않은 것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남아, 뭐라고 할까요... 특수화
된다고나 할까요?  어쨌든 계속 성인의 변태적 성욕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형적이 
아니라 하나의 형태를 띠게 되죠."
  자신의 눈동자 색깔과 똑같은 초록색으로 몸의 윤곽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꼭 끼는 윗옷을 입은 
스테파니는 장 마르탱에게 한방 먹은 후로는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  힐끗 보니 얼굴이 새
하얗게 질려 있었다.  잠시 후 다시  용기를 내어 뭔가 해야 할말이  있다는 듯이 몸을 일으키는 
스테파니의 안색은 다시 돌아와 있었지만 탁자를 짚고 있는 손은 여전히 떨렸다.
  그녀는 '꿈의 열쇠'들의 중요성과 보편적인 상징들에 대해 간략히 언급을  하고 나서는, 어머니.
영웅.영웅.현자 등의 위대한 이미지들인 원형들이 열어보이는 멋진  관점들을 묘사했다.  장 마르
탱이 들어 내놓고 한숨을 내쉬자 스테파니는  어조를 조금 낮추더니 장 마르탱을  보지않고 좌중 
전체를 둘러보며 자신이 3년간 융의 심리치료법을 배웠음을 상기시켰다.   그러자 역사학 전공의 
장 마르탱이 발끈해서 일어섰다.
  "나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6년 동안 했습니다."
  사회자인 로돌프가 나설 때였다.
  "이렇게 풍부한 경험을 가진 두 사람의 말을 듣게 되다니, 우리로서는 정말 큰 행운이군요."
  이 말만 들은 사람은 스테파니와 장 마르탱이 서로 으르렁 거리지 않고  마치 자신들의 경험을 
차분하게 들려주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로돌프의 말이 끝나자마자, 깡마른 얼굴을 한층 돋보이게  하는 검은색 터틀넥을 입고 마치 고
전 비극의 배우처럼 근엄하게 앉아 있던 에두아르가 입을 열었다.  자신도 정신분석을 받아본 적
이 있는데 무의식과 환상의 형태로 나타나는  욕망은 물론이고  억압되었던 것들이 돌아올  때의 
고통과 역겨움을 충분히 경험했다고 털어놓았다.  다시 로돌프가  발언권을 가져갔다.
  "그래요, 그래... 성인들은 모두  어려운 경험들을 하고 있고 또 뭐라고 할까... 그렇지요, 모두들 
옛날 언젠가는 어린 오이디푸스였겠지요.  프로이트가 설명한 대로 말입니다.  그 기원과  복잡하
기 이를 데 없는 그 과정들은 정말...
  잠시 무거운 침묵이 좌중을 짓눌렀다.  이번에는 사회자  로돌프가 아마 처음이 아니었나 싶은
데, 새로운 이야기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악셀의 오빠가 얼마 전에 우리를 만났을 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오늘 이 자리에서 길게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때 악셀의 어머니 수잔이 쾌활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토론에 끼여들었다.
  "자, 자.... 여러분들이 말하는 그 꼬마  오이디푸스들은 어머니 무릎 사이로 깡충깡충 뛰어다니
며, 어른들이 하는 말을 뜻도 모르고 지껄이게  되면서부터 인간의 운명의 대한 수수께끼를 풀려
고 하죠.  물론 그들 나름대로의 방식을 통해서지만. 가령 "엄마, 아기는 어디서 오는 거야?" 라는 
질문을 하면서 말이에요."
  "아니, 아기는 황새가 물어다 주는 것 아닌가요?"
  보리스가 빈정댔다.  악셀도 한마디 거들었다.
  "황새는 무슨 황새.  아이들은 부엉이들이 둘러싸고 있는 자갈밭 한가운데 돋아난 배추 속에서 
솟아나는 거야."
  "그 어린애 같은 장난들 좀 그만할 수 없어?"
  악셀의 오빠가 이번에는 진짜로 화를 냈다.  로돌프는 갑자기 선생님 같은 목소리로, 사적인 대
화는 그만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발언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고 했다.  모두들 다시 이비을 다
물었다.... 아빠는 인류가 찾아낸 가장 위대한 체제가 민주주의라 했지만 이런 모임에서 모든 젊은
이들이 한마디씩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잔이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체가 제공하는 감각이 있으니까,  아이들이라고 해서 자신들이  성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아요.  또 아이들도 감정을 갖고 있기에 자신들이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도 알고 있죠.  
아이들은 마치 꼬마 박사들처럼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을 동원해 성에 관한  이론들을 만들어내
죠."
  나는 악셀에게 '야, 너희 엄마  정말 멋있다'라고 살짝 귀띔했다.  그때였다.   그 다갈색머리의 
어여쁜 부인이 뭐가 불만인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반론을 펴기 시작했다.  그녀는 더 이상 떨지 
않았다.
  "아니야, 절대 그렇지 않아요! 아이들은 말을 횡설수설할 뿐이지. 그렇다고 아이들이 그 애연구
가가 찾아낸 원형을 다시 반복하는 것도 아니고 또..."
  수잔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바람에 의자가  뒤로 넘어졌는데도 의자를 다시 일의켜세
울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반격을 가했다.
  "당신도 당신 입으로 아이들이 창조적이라고 말했잖아요!"
  "창조적이죠.  그렇지만 아이들이 성에 관심을 갖고 이 는 건 아니에요."
  두 부인은 턱을 세운 채 눈을 부라리며 서로 마주보았다.   그들은 서로의 탐구욕과 문제의 기
원, 또 예술적 충동에 대해 아는 것을 총동원해 논쟁을 벌였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넌지시 악
셀에게 물었다.
  "너희 엄마와 스테파니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인 줄 알았는데, 어떻게 된 거니?"
  물어본 내가 바보였다.
  "그렇지만 논쟁할 때는 논쟁을 해야지.  엄마하고 나 사이도 그래."
  "그래도 남들 앞에서는 안 그렇잖아."
  사회자가 미소를 머금은 채  객관적인 어조로 중재에 나섰다.
  "사실 따지고 보면, 두 사람이  이렇듯 흥붐한 것은 어린아이의 성  때문인데, 그것만 정확하게 
정의가 되었다면 서로 이렇게 오해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자 열변을 토하던 장 마르탱이 아무도 그의 이름을 호명하지  않았는데도 당연하다는 덧이 
무대에 복귀했다.
  "여자아이들은 사내아이들보다 훨씬  승화에 능숙합니다. (곳곳에서  '우'하는 야유가  터져나왔
다.)그렇게 말할수 있는 것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인 자신들의 첫 번째 사랑을 여자아이들은 완전
히 포기하지 않은 채 그 사랑을 아버지에게로 돌리고, 또  이어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속을 끓
이다가 어린 시절 우상이었던  아버지에  필적하는 남자 친구를 만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의 
친구 스테파니가 조금 전에 보여준 반응들은 프로이트의 <성 이론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가 출
간되었을 때 일어났던 반응들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 실린 몇  편의 짧은 글들 때문에 프로이트
는 음란하고 위험한 사상을 지닌 사람으로 알려졌죠.  어린아이들의 순수성을 모독했고, 정상적인 
사람들의 성과 변태적인 성 사이에 존재한다고 믿었던 분명한 구분을  무시했다고 사람들은 그를 
몰아붙였던 겁니다."
  그러나 스테파니는 굵은 머리결을 예쁘게 쓸어올리면서 쉽게 물러서려고 하질 않았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어린아이의 성에 대한 설명이  충분치가 않네요.  게다가 어린아이의 성이 
아니라 우선 성 그 자체에 대해 보다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할 것 같아요.  어떻게 정의할 
생각이죠?
  거의 모든 사람이 동시에 한두 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서로 욕망하고 하나가 되려 하는 것!"
  "이성의 품속에서 맛본 쾌락!"
  "사랑 행위!"
  "아이를 만들고 싶다는 목적에서 이루어지는 남자와 여자 사이의 성교!"
  한바탕 폭풍우가 쓸고 지나간 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로돌프가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마지막 정의를 들으니 구멍을 뚫어놓은 잠옷이 있어야만 했겠습니다.  하지만 이 정의를 받아
들이려면 서로 욕망한다고 해서 반드시 육체적으로 결합하는 것도 아니고  또 사랑하지 않으면서
도 얼마든지 서로 몸을 섞을 수도 있다는 것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스테파니가 쾌재를 불렀다.
  "거 보세요. 아이들은 그런 육체적 관계를 가질 수 없으니 성욕이 없는 거죠."
  "형식 논리로 따지면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욕망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
죠."
  토론은 갈수록 처음에 내가 기대했던  것으로부터 멀어져갔다.  테크닉에 관한  이야기도 거의 
나오지 않았고(어쩌면 나는 은근히 성 교육 같은 것을 상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갈수록 상대
방을 비꼬는 분위기를 띠어갔다.  기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애정 어린 눈길로 샤를로트만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보자 울화가 치밀었다.  옛날에 아주 '어린'후작부인에게 반해버렸던 증조
할아버지까지 올라가지 않는다 해도 나를 포함해 우리집 식구들은 아주  다르고 신비하기까지 한 
존재들처럼 생각되었다.  나는 성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울렁거리고 이상했는데 이제 보니 
성은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존재의 모든 문제가 시작되고 끝나는 중심축이었던 것이다.
  내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기욤이라는 사내의 아름답고 지적인 옆모습이  내 가슴에 불러일으
킨 동요, 혹은 욕망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나는  어떤 말이 스테파니로 하여금 다시 열변을 
토하게 만들었는지 듣지 못하고 말았다.
  "융만 있는 게 아니에요.  루소도 라이너 마리아 릴케도 어린아이를 찬양하면서 어린아이를 타
락에 빠뜨리는 것은 문명이라고 비난했어요."
  장 마르탱은 빈정거렸다.
  "프로이트 역시 사내아이들이 볼기를  맞을 때 경험하는  감각적 쾌락과 만족감을 이야기하며, 
신빙성을 주기 위해 장 자크 루소의<고백록>에 의존한 바 있죠."
  "내 아야기는 그 이야기가 아니에요."
  스테파니는 항의를 했다.  장 마르탱이 말을 받아넘길 차례였다.
  "융에 대해 한마디하자면, 그는 어린아이의 리비도를 완전히 부정했어요.   그가 보기에는 너무
나 충격적이었죠.  그러면서 그는 프로이트에게 성적 에너지를  보다 넓은 전체적인 에너지 속의 
한 에너지로 간주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나쁜 아이디어는 아니네요."
  샤를로트였다.
  "융의 제안은 단지 충격을 완화시키려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관념론에 문을 열어주
는, 프로이트의 이론에 대한 일대 변형인 거죠."
  "관념론이 뭐가 그렇게 나쁘죠?"
  "관념론 자체가 아니라... 관년ㅁ론의 비현실적인 측면들이 나쁘다는 겁니다.   프로이트는 모든 
사람들이 경험하는 유아기의 성적경험들 속에 인간의 창조성, 탐구욕, 제반 사회적 관계들의 기원
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해서 그러한 덕목들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사실, 본능적인  것들을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고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것으로 변형시킨다는 것은 정말 고귀하고 숭고한 일 아닐까요?"
  하지만 열렬한 융 지지파였던 스테파니는 모든 것이 처음부터 완벽하다는  쪽을 지지하고 싶어
했다.
  "나는 아이들이 에로틱한 만족을 얻으려 한다는 관념이 인간을 절망을 빠뜨린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군요... 뭐라고 했죠... 그무슨 변태적인..."
  "다형적 변태라고 합니다!"
  "나는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런 가설들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지지하는 이유를 모르겠어
요."
  "모를 수밖에 없지요.  사랑과 창조성은 이상화하면서도  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판단을 하니
까. 사물을 좀더 넓은 관점에서 보면, 별로 달갑지는  않겠지만, 우선 당신부터 스스로 그러한 것
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이때 로돌프가 제지를 하고 나섰다.
  "개인 신상에 대한 지적은 안 됩니다!"
  장 마르탱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말을 이어갔다.
  "프로이트의 가설들에 대해 잠깐  이야기 하겠습니다.  프로이트가  그런 가설들을 만들어냈을 
때 그는 자신의 임상 경험들에 의존해 매우  신중하게 논리를 진전시켜나갔습니다.  그러면서 그
는 다른 이들이 아무런 결론도 이끌어내지 못하고 그 학문적 가치도 예감하지 못한채 방치해두었
던 관찰 기록들을 함께 고려했습니다.  프로이트는 과학자로서, 우리 인간이 어린 시절에 대해 기
억상실증에 걸려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문해보았습니다.   주
위 사람들은 우리가 어릴 때 했던 놀라운 말들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왜 우리 
자신은 그런 것들을 기억하지 못할까 하구요."
  "그런 망각이 있다고 해서 왜 아이를 다형이든 아니든 변태로 보아야 하는지 모르겠군요."
  스테파니는 여전히 굽히지 않았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모든 아이들이  육체의 여러 다양한  부위에서 얻어진 만족들을 그렇게도 
쉽게 잊어버리는 것은 사람들이 어린시절의 만족들을 망각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고상한 사람들을 
화나게 했던 것이 바로 이 부분이죠.  훗날 융은 이러한 만족들을 어린 시절이 아닌 보다 이후에 
얻어진 것으로 보고자 했습니다.  가족 간의 사랑은 그것이 아이가 부모에게 보이는 것이든 혹은 
부모가 아이에게 보이는 것이든, '그-기-초-에'  성적인 요소를 간직하고 있는 거죠.(장  마르탱은
'그 기초에'라는 말을 할 때 한 음절씩 끊어 힘을 주었다)
  "나는 어린 시절에 잠재된 그런 쾌락이, 융 같은 사람이 이상적으로 본 어린 시절과 어떻게 관
계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또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루소 같은  사람이 어린 시절에 대해 갖고 있
는 신성한 이미지가 틀렸다고 할 수 있는지 이해를 못하겠군요."
  "정말 이해해볼 생각을 전혀 안 하는군!"
  "자, 좀 진정합시다!"
  사회자가 언성을 높였다.  장 마르탱은 한숨을 내쉰후 다시 말을 이었다.  
  "좋습니다.  차분하게 루소부터 시작해보지요.   루소는 자연과 사회를 대립시켰습니다.   그가 
보기에 자연은 진실하고 사회는 인위적인 규약들에 기초한 것입니다.  또 그는 아이는 본래 선하
기 때문에 성장해서도 선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교육론인<에밀>을 
쓰면서 주인공 에밀 같은 인물을 만들 수 있었죠.  에밀은 오직 본 등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원래
의 순진함을 입증해보입니다."
  "그거 멋진 이야기인데요!"
  샤를로트였다.
  그러자 다갈색머리의 여인도 금발머리의 여인도 더 이상  배려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듯, 장 마
르탱이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멋진 게 아니라 멍청한 거죠! 정신분석은 우리에게  인간이 된다는 것은 우리보다 먼저 존재
하고 사물과는 순수한 형식적 관계만을 갖고 있을 뿐인 언어  안에 사는 것임을 일러줍니다.  성
장에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인간은 자연에서 벗어난 동물입니다.  본능은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
의 생리적 욕구들은 욕망들과 서로 얽히게 되죠."
  장 마르탱이 잠시 숨을 돌리자, 이번에는 로돌프가  논쟁을 완화시키는 대신 오히려 더 이야기
해보자는 식으로 부추켰다.
  "루소는 자연의 원칙에 따라 교육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인간들만이 보다 나은 사회를 만
들 수 있다고 가정함으로써, 프로이트가 말한'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명제를 약 한세기 반 
이전에 먼저 말했던 거 아닐까요?"
  증명하기 수월해보이는 문제가 제기되자 마음의  평온을 되찾은 장 마르탱이  로돌프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 답을 했다.
  "물론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프로이트와 루소는 비록 그 이유와 각자 도달한 결론은 달랐
지만 두 사람 모두 성인의 뿌리를 이루는  어린 시절의 중요성을 인정했다는 면에서는 일치하죠.  
하지만 계몽주의 시대의 백과전서파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루소는 어린아이를 약간 동물적일지는 
모르지만 천사로 보았고, 반면 정신분석은 어린아이를 성적 감각이 제공하는 쾌락을 반복해서 추
구하는 성적 감각의 노예로 보았습니다.  프로이트는  어린아이들은 감각이 쾌락아냐 아니냐만을 
따질 뿐이라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 첫 번째 경험들이 모델이 되어 인간은 
자신을 창조해나가며, 인간의 사고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거치면서 이 모델에 의해 단계적으
로 형성됩니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어린아이는 천진무구하다고 믿음으로써 루소는 겉으로는 철
학적 작업을 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 단지유토피아를 쌓아올렸던 것입니다.
  장 마르탱의 말은 가슴을 파고들었고 서정적이기조차 했지만, 그럼에도 스테파니를 설복시키기
에는 부족했었나 보다.
  "하지만 그래도 난 납득이 안 돼요. 어린아이가 쾌락을 경험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전체적
으로는 아니라 하더라도 어쨌든 부분적으로는 어린아이를 쾌락으로부터 떼어놓는 길로 인도할 수 
없다는 것과 왜 그게 이상주의적인지를 알 수가 없군요."
  "그 문제라면 우리는 다시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
가 어린아이의 쾌락을 부정한다면 우리는 동시에 어린아이가 느끼는 쾌락에  제한을 가해야만 한
다는 것도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 끝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결코 자신의  모든 운명
이 실현되는 것도 충만하게 충족되는 것도 보지 못하는 불완전하기만 한 인간의  조건이라는  특
이성도 인정할 수 없겠죠."
  말을 마친 장 마르탱은 미소를 지으며 상대방이  반박해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스테파니가 아
무 말도 하지 않자,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러나 스테파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다시 말을 이
어갔다.
  "어린 시절의 순수함에 매혹된  나머지 사람들은  낙원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잃어버린 낙원이
었고 그래서 그 낙원이 잃어버린 낙원이 되지 않도록 하기위해 애를 써야만 했습니다."
  "바로 그게 루소의 문제였습니다."
  로돌프가 확인을 했다.  그러나 조금  흥분한 장 마르탱은  바빌론 카페의  사회자마저 안중에 
없는 눈치였다.
  "하지만 루소는 잘못된 답을 내놓고 말았어요  루소는 전적으로 틀렸다.  이겁니다! 어른이 원
했든 원하지 않았든 어린아이들에게서 욕망에는 넘지 말아야 할 한계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줍니
다.  그런데 어린 시절의 천국이 계속해서 이 한계를 넘어서려고 한다면, 그때 어린시절이라는 천
국은 지옥으로 변하고 말겠죠."
  "어떻게 알아요?"
  놀랄 정도로 침착을 되찾은 스테파니의 입에서 툭하고 튀어나온 말이었다.
  "정신분석은 철학이 아니에요.  정신분석은 불가능한 꿈을  버리지 못하고 애착을 드러내는 환
자들의 말에 입각하여 축조되는 이론이죠."  
  "나하고는 관계가 없는 것 같은데요."
  "아니죠.  바로 당신이 한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들어보세요.  정신 기능에 장애가 생겼을 때, 
그때가 지옥입니다.  별 것 아닌 것부터 최악의  것까지 여러 종류의 기능 장애가 있겠죠.  어던 
것이든 한 인간을 고립시키고 어떤 사회에서도 적응할  수 없도록 만들어버립니다.  자신의 아름
다운 이론들로 인해, 루소는 갈수록 학대를 받고 있다고 느끼지 않던가요?"
  모인 사람들을 다시 진정시키려고 하면서 로돌프는 누구의 생각도 절대로 옳은 것은 없다고 했
다.  덧붙여 그렇기는 해도 사실 오이디푸스기를 거치면서  아이는 어머니에 대한 신화적인 향유
를 단념하고 아버지의 금기로 인해 형성된 초자아와 함께 성 이외의 다른 관심사들쪽으로 선회한
다고 했다.  그때까지 입을 다물었던 기욤이 느닷없이 끼여들었다.
  "그것이 바로 충동을 승화한다는 것 아닐까요?"
  기욤은 왜 그때서야 입을 열었을까?  충동이나 승화라는 말은 이제까지 진행된 토론에서  그냥 
지나쳤던 말들이다.  모인 사람들이 기욤의 말을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겼기에 나는 한층 더 안
타까웠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쓸데없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토론을 방해하지 않으려면 그 문제는  그만하고 넘어갑시
다!
  그러자 분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로돌프가 나섰다.
  "승화라는 것은 정신분석 용어가  아니라 원래 프로이트  이전부터 쓰여왔던 화학 용어입니다.   
액체가 기체로 변하는 것을 지칭하죠.  충동이라는 것은  뭔가 우리들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것....  
어떤목적이나  대상을 향해... 어떤 계획이나 어떤 존재를 향해 우리를 밀어올리는 것이죠."
  로돌프가 말을 더듬자 장 마르탱이 차분한 음성으로 그를 도왔다.
  "정신분석에서는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당장 너무 서두르지는 맙시다.  
옛말에도 있듯이 상자 뚜껑을 닫기전에  조금 기다려보는 것이 어떨까  싶은데... 그 동안 새로운 
경험들을 하면서 우리가 상자 속에서 분간 못 했던 것들을 알게 되겠죠."
  사회자는 기회다 싶었다.
  "지금 말한 사람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오늘 모임은  여기서 끝냅시다.  각자 돌아가서 오늘 나
왔던 이야기들을 곰곰이 한 번씩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안타깝군!"
  스테파니였다.  의자 끄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고 사적인 이야기들을 나누느라 분위기가 갑
자기 소란스러워졌다.  고개를 돌려보았더니 장 마르탱이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스테파니에게 다
가가고 있었다.
  마치 오늘 논쟁에 내가 적극적으로 참가하기라도 한 듯 온몸이 피곤했다.  뒤에서 악셀이 부르
는 소리가 들렸지만, 못 들은 체하고 부츠를 겨우겨우 신자마자 일어나 의자 사이를 빠져나왔다.



    제5장 폭풍을 만남 뤼실
  아니 벌써 오스테를리츠 역이야! 할머니댁에 가려던 나는 내려야 할  역을 그만 지나치고 
말았다. 하지만 반대 방향으로 건너가서 다시 지하철을 타는 대신 사람들이 미는 대로 몸을 
맡긴 채 출구를 행해 걸어갔다. 식물원 앞에 오자 마치  철책 너머의 어두컴컴한 곳에 짐승
들이 웅크리고 있는 것만 같아 걸음을 재촉했다.
  일단 센 강변으로 접어들자 나는 주위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 걸음을 재촉했다. 마치 어디 
갈 곳이라도 정해놓은 것처럼. 바빌론 카페를 나온 후 줄곧 나는 토론에서 있었던 이야기들
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
다. 기억이 날 때마다 점점 더 커가기만 하는 혼란 속에서 프로이트를 믿어야 할 것인지, 아
니면 루소를 믿어야 할 것인지, 혹은 스테파니가 보여준  그 고상하기만한 이야기들을 믿어
야 할 것인지 심한 망설임에 쫓기고 있었다.
  가로등이 환하게 밝혀진 생 미셸  가에 들어서면서 하마터면 전화부스에  부딪힐 뻔했다. 
부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저녁에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할머니에게 어떻게 설명해
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던 나는 꽂았던 전화카드를 다시 뺐다. 난 자신을 참을 수 없었다. 다
시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걸었다. 그러나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막 포르 루아이알 가로 들어서려던 참이었는데 한 거지가  다가오더니 손을 내밀었다. 하
지만 동전이 하나도 없어서 줄 수 없었다. 깊은 밤 길거리에서 거지에게  욕을 먹고 한 3-4
분 정도 더 걸었을까, 상가에서 제법 떨어진 외진  곳에서 왔다갔다하던 산타클로스가 나를 
보더니 다가와서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빨간 망토를 휙  벗어제쳤다. 제법 추운 날시였음
에도 불구하고 산타는 속옷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뚱이었다. 나는 걸음아 날 살려가 뛰었다. 
넘어지기도 하면서 제정신이 아닌 채 뛰다가  자칫 잘못하였더라면 차에 치일 뻔하기도  했
다. 운전사는 시끄럽게 빵빵거리며 창문을 내리더니 똑바로 보고 다니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얼마를 그렇게 뛰었을까. 문득 눈앞에 마로니에나무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인도가 
나타났다.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어둠에 둘러싸인 그 긴 터널을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어딘가 들어가 쉬고 싶다는 마음밖에 없었다.
  찬찬히 둘러보니 익숙한 거리였다. 바로  오빠 세르주가 사는 동네였다. 한달음에  달려간 
나는 반가운 마음에 초인종을 눌렀다.
  문은 열어준 것은 오빠의 여자 친구 옹딘이었다. 집에는 그녀밖에 없었다. 옹딘은 둘이 함
께 사는 게딱지만한 원룸 한가운데 책을 수북이 쌓아놓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 옹딘은 아무
것도 묻지 않은 채 스웨터를 가져다가 내  어깨를 덮어주었고 곧 뜨거운 커피를 끓여 내왔
다. 아마도 내 몰골이 가련할 정도로 헤쓱했었던 것 같다.
  보통 나는 옹딘을 주말에 부모님집에서 보곤 했다. 그럴 때면 그녀는 어딘지 조금 부자연
스러운 것 같았다. 오늘 오빠네 집에서 낡은 청바지에 티셔츠를 걸치고 긴 생머리로 얼굴을 
반쯤이나 가린 그녀를 보자 나보다 겨우 한두 살 정도 더 많아 보였을 뿐이다. 나는 그녀를 
잘 몰랐지만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목소리들을 높이곤 하는 집에서 자란 탓인지 그녀의 조
용조용하고 부드러운 말투는 참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커피에 설탕을 넣어 마시려고 하면서, 거절하는 내 컵에 각설탕 두 조각을 넣어주
었다. 세르주는 야간 당직이어서 생 탄느 병원에 가 있었다. 그녀는 지금 냉장고에 아무것도 
없으니 하던 일만 끝내고 함께 밖에 나가서 뭔가 먹고 돌아오자고 했다.
  옹딘은 책들을 뒤지고 다시 덮었다 또 펴  문장을 베끼고 지워버린 것을 다시 찾고 하며 
공부에 몰두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차츰 마음의 평온을 되찾은 나는  언 몸이 녹으면서 
그만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를 잤는지 옹딘의 따뜻한 손이 나를 흔들 때 따뜻한 바닷
물 속에서 헤엄치는 꿈을 꾸고 있었다.
  "자, 나가서 뭐 좀 먹고볼까?"
  오래 밤거리를 걷고 나서도 새로 사 신은 부츠를 벗을 생각을 하지 모했던 나는 발이  퉁
퉁 부어 있었지만 차마 그것까지는 얘기할 수 없었다. 열 시가 지난 시각이어서, 많은  카페
들이 철제 셔터를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발 드 그라스까지 걸어가야만 했다. 퉁퉁 부은  내 
발은 그날 밤 혹사당하고 있었다.
  옹딘은 토요일 밤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오빠네 집으로 쳐들어온 내게 아무런 질문도 하
지 않았다. 오히려 답답해진 것은 내 쪽이었다. 나는 바빌론 카페에서 있었던 그날의 토론에 
대해 들려주었다. 아무튼 그녀는 오빠 세르주와 함께 생 탄느 병원의 신경정신과 인턴을 준
비 중이었고 오이디푸스, 유아 성욕, 다양한 형태의 변태 성욕 등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
다. 어두운 길을 걸어가며 그녀가 돌릴때만 가로등에 비친 희미한 얼굴을 마주볼 수 있어서 
얘기하기는 훨씬 덜 쑥스러웠다.
  손님 몇 사람이 드문드문 앉아 있는 한 허름한 식당에  들어가 마주 보고 앉았다. 옹딘은 
샌드위치를 주문하면서 향연을 베풀어줄 돈은 없다고 미소지었다. 만일 푸짐한 성찬을 사주
었다면 나는 미안해서 먹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젊어서 좋은 것도 있지만, 마음 고생이 너무 심해서.... 난 청춘을 거의 다 잊어버렸어. 아
무튼 토요일 저녁을 이렇게 혼자 보내지 않게 돼서 정말 기뻐."
  나는 그날 밤 걸어오면서 오이디푸스보다는 기욤에 대해서 더 많이 얘기했다는 것을 그제
야 깨달았다. 상대가 바뀌면 이야기도 달라진다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 또 옹딘이 악셀이
나 할머니가 보여준 것처럼 반응을 하지 않았다는 것도  내게는 이상해보였다. 그녀는 관심
을 갖고 나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니 거의 애정 어린 눈초리를 내게 보냈다. 곧 우리 두 사
람의 화제는 사랑, 정념, 비밀스런 꿈 등으로 옮겨갔고 서로 내밀한 비밀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어갔다. 심지어 그녀는 오빠를 알기 이전에 나와 똑같이  기욤이라는 한 남자를 사랑했었
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더럭 겁까지 났다.
  "어쨌든, 그게 그것 아니에요?"
  "뤼실, 나도 여고 시절이 있었고, 또 나는 너보다 열 살이나 위야."
  "그래도, 누가 알아요.... 게다가 이렇게 예쁜 여자를...."
  옹딘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나도 오빠가 에밀리라는 여자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얼마나 화가 났었는지 몰라. 그 에
밀리라는 네가 말하는 샤르로트같이 멍청한 여자애였거든."
  우리 두사람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옹딘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연애할 당시 나는 너보다 더 일방적으로 밀어붙였어. 너처럼 승강기도 없었고 바빌론 카
페 같은 것도 없었다구. 내가 꿈꾸는 남자에게 접근할 수 있는 방도가 없으니까, 어떻게  했
겠어? 그 사람이 보는 앞에서 차에 치어볼까 하는 마음까지 먹어보고, 말도 안 되는 스토리
를 꾸미기도 했지."
  "정말로 그런 건 아니죠?"
  "아니지, 물론, 하여간 기발한 아이디어를 하나 생각해냈지. 그게 뭔지 알아? 열심히 도서
관에 나가 거의 모든 책들을 읽어치우면서 아름다운 문장들이  나오면, 특히 아름다운 사랑
을 묘사한 대목이 나오면 빠짐없이 공책에다 옮겨놓는 거야."
  "그걸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냈단 말이에요?"
  "그건 아니고, 아예 외어버렸지."
  "그 사람을 보면 들려주려구요?"
  "순진하긴. 우린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는걸.  너는 지금 길거리에서 한 남자에게  다가가 
베를렌이나 아이작 바쉬비스 신저를  암송하는 나를 상상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건 아니었
어."
  "그러면 그 사람 이름이 기욤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그낭 나 혼자 기욤이라고 부르기로 했었어."
  우리는 다시 배꼽을 잡고 웃었다. 나는 마음도 몸도 완전히 녹아 있었다.
  "다른 이야기 있으면 또 해줘요!"
  "다른 이야기는 아니고, 아무튼 나는 그렇게 해서 국어는 거의 만점을 받았지."
  "아니, 그거말고, 그 사람하고 어떻게 됐냐구요...."
  "난 사람을 사랑하게 된 게 아니라 책을 사랑하게 된 거야. 나는 예쁘기도 했지만 거기다
가 사랑을 노래하는 시인이기도 했던 거지. 슬프면서도 즐거운 시인, 외로우면서도 시를  쓰
면서 그 고독을 잊을 수 있는 시인이 된 나의 가슴 한곳에는 언제나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
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줄 누군가가 있었던 거야. 나는 그때 엄청난 양의 뜨거운 글들을 
썼었는데, 지금도 내 비밀 서랍 안네 그 글들을 그대로 간직해두었어."
  "나는 그런 편지 딱 한 번 써봤는데.... 그것도 별 열정 없이...."
  "그런면서도 나도 너처럼 그 사람을 만나려고 그 사람의 강의 시간표와 잘 다니는 길들을 
알아냈지. 몰래 숨어서 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그 사람의  표정이 좀 창백해보인다거나 다른 
옷이라도 입고 나오는 날이면, 또 좀 빠른 걸음으로 어딜 가거나 유난히 명랑해보이거나 해
도 나는 그때부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어.  어느 날인가 그 사람이 반
대편에서 걸어오는 한 여자애를 보고 큰소리로 이름을 부르는  거야. 난 그때부터 에밀리라
는 이름을 끔찍하게 증오했어."
  "그 사람이 언니 아빠를 많이 닮았었나요?"
  그녀는 뭔가를 생각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얼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글세....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될지, 또 너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야  될지 잘 모르겠는
데.... 아마도 그 반대였던 것 같애."
  이 말을 하고 그녀는 얼굴을 좀 찌푸렸는데, 찌푸린 얼굴이 한결 더 예뻐보였다.
  "나는 계속해서 멍청한 짓을 해댔어."
  "그 사람하고 잤어요?"
  "아니, 다른 사람하고...."
  "우리 오빠하고?"
  "아니, 어릴 때부터 친구였고 초등학교도 같이 다녔던 남자애가 있었어.  잘생기지도 못생
기지도 않았던 아이였는데. 나한테 진심으로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닌데도 계속 추근대던 아
이였지. 반항 심리에서 그랬던 건데, 성 경험을 하면 보다 매력 있게 보일 수 있다는 희망도 
있었고 또 나 혼자 기욤이라고 부르던 그 남자에게 질투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
애."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뭐가 어떻게 돼. 도대체 그 사람에게 내가 다른 남자하고 잤다는 것을 알릴 방법이 뭐가 
있겠어? 또 그 사람이 그걸 알았다고 해도 질투를 했겠어?"
  그녀의 입에서도 내 입에서도 한숨이 새어나왔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한 쌍의 남녀가 식당에 들어와 반대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둘은 다투고 있었다. 처음에는 조용조용 이야기를 하더니 차츰 언성이 높아졌다. 그런데  남
자 목소리가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였다. 몸을 조금 옆으로 틀어 거울에 반사되는 모습을 
보는 순간 숨이 막히고 가슴이 마구  뛰었다. 기욤이었다. 기욤이 처음 보는 금발의  여자와 
앉아 있었던 것이다. 옹딘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 어질 않았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한
마디도 놓칠 수 없었던 나는 식당 끝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조금 전만 해도 우리 즐거웠잖아!"
  "너만 즐거웠지, 난 아냐!"
  "꼭 그렇지는 않았어."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지금! 너는 눈도 감지 않고 내내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잖
아!"
  "좋아, 하지만 너는 내가 수줍어하지도 않는다고 놀렸잖아!"
  "아냐, 나 그런 적 없어!"
  조금 더 몸을 기울이자 그들의 몸짓까지 눈에 들어왔다.
  여자는 기욤에게 손을 내밀었다. 기욤이 담배를 피우려고 라이터를 켰으나, 몇 번을  켜도 
라이터가 말을 듣지 않다가 겨우 불이 붙었다. 여자는 탁자를 신경질적으로 톡톡 치면서 기
욤에게 왜 이 여자 저 여자를 만나고 다니느냐며 대들었다.  그렇게 모든 여자들을 다 소유
할 수 있을 것 같냐고, 그러다가 큰코다칠 날이 있을 거라고 위협을 하기도 했다. 기욤은 자
기는 그런 적이 없다고 잡아뗐다. 여자가 기욤의 손을 잡자 기욤이 얼른 손을 뺐다.  여자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여자는 그러나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계속 말
을 했다.
  "넌 나를 속였어! 네가 얼마만큼 날 속였는지 너는 상상도 못할 거야! 하지만 난 널 믿었
어. 그런데 어느 날 사람들이 너를 두고 변심의 천재라고.... 벌써 한두 여자가 아니라고...."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말은 하지도 말고 듣지도 말아!"
  "변심이라는 말의 뜻을 내가 모른다고? 나는 언제나 내가 희생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불안했고 너를 미워할까 봐 두려웠어! 그런데 두려워하던 일이 이제 현실로 나타났어!"
  여자는 이제 아예 엉엉 소리를 내며 울었다. 그래도 흐느끼는 중간 중간 딸꾹질을 해가며 
여전히 큰소리로 말했다.
  "네가 그랬지, '너를 나에게 줘'라고. 나는 네가 이미 너에게 바친 나  마음을 달라고 하길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기욤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이 신경질을 내며 고개를 돌려  식당안을 살폈다. 하지만 
나를 알아보지는 못했다. 기욤도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 앞에서 이게 뭐야! 창피하지도 않아?"
  탁자를 밀치며 일어나더니 기욤은 여자의 팔꿈치를  잡아끌었다. 여자는 여전히 큰소리로 
울면서 몸을 이르켰다. 기욤은 의자등에 걸쳐놓은 여자의 반코트를  집어 거의 여자 얼굴에 
던지다시피하면서 문을 나설 때까지 끝내 나를 보지 못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옹딘도 조용히 두 사람이 다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조금 아까 
싸웠던 그 남자에가 바로 기욤이라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옹딘은 주석을 달고 싶어
했다.
  "무척이나 고전적이군. '날 떠나지 마.'  영원한 하소연이지만 가는 사람을  붙잡지는 못하
지."
  나는 옹딘에게 좀더 자세히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다. 그때 종업원이 다가와 곧 문을 닫
는다고 했다. 우리는 식당을 나왔다. 온몸이 노곤했다. 문득  일상의 삶이 다시 시작되는 느
낌이 들었다.
  "아이 참, 할머니에게 전화한다는 것을 깜박 잊고 있었네! 거기서 자야 하는데...."
  옹딘은 시계를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자정이야. 내 생각으로는 할머니께서 아직도 못  주무시고 기다리실 것 같은데.... 지금이
라도 전화해."
  "언니가 나 대신 전화 좀 해줘요. 할머니께 말 좀 잘 해줘."
  옹딘은  한숨을 내쉬며 길모퉁이에 있는 전화 부스로 갔다. 문을 연채로 잠시 망설이더니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도 네가 직접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난 못해요."
  "알았어. 번호가 어떻게 되더라...."
  옹딘은 전화번호를 돌렸고, 신호가 가자 얼른 내게 수화기를 내밀었다. 하는 수 없이 수화
기를 넘겨받았다. 내 목소리를 들은 할머니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어이쿠, 이 녀석!"
  "할머니, 나 지금 옹딘과 함께 있어요. 오빠를 만나려고 왔는데, 깜박 잊고 전화를 못했어
요. 죄송해요, 할머니."
  "그래, 아무 일 없는거지?"
  "그럼요."
  "지하철 타기엔 시간이 너무 늦었다. 옹딘에게 택시 좀 태워달라고 하렴."
  "샌디위치값도 옹딘이 냈는데. 어떻게.... 그리고 우린 지금 둘 다 돈이 없어요."
  "지금 어디들 있는데?"
  "발 드 그라스 병원 앞이요."
  "그렇게 멀지 않구나. 아무 택시나 타고 어서 집으로 오거라. 내가 내려가 있을 테니."

    제6장 카네이션을 꽂은 여인
  할머니는 계단을 올라가면서 말씀하셨다.
  "아까 마틸드가 전화를 했더구나. 그래서 친구하고 영화 구경 갔다고 둘러댔다. 네가 열두 
시가 넘어서도 안 들어오면 엄마한테 전화하려고 했다."
  할머니의 말씀은 늘 하시던 꾸중 정도였으나, 나는 그날 저녁내 당황해하기만 하던 내 모
습이 떠올라 그만 고개를 떨구었다. 할머니는 더 이상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평소보다  더 
따뜻하게 나를 끌어안으시더니 두 뺨에 입을 맞춰주셨을 뿐이다. 나는 곧 깨끗하고 하얀 침
대보 속으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
  그 다음날 아침, 여느 일요일처럼 할머니는 정확히 아홉 시에 내게 더운 카페오레를 갖다 
주셨고, 점심 시간이 되자 후작부인의 집에 초대를 받아 관례화된 점심 식사에도  참석했다. 
전에는 가급적 논쟁을 피하려고 하던 두 노부인이 이번에는 내게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그 
사이 두 할머니는 토론 카페들이 성황을 이룬다는 신문 기사를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당신
들이 직접 토론회에 참석할 수는 없으니 내게 상황을  보고해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그날의 이야기들을 전해주자 할머니들은 마치 텔레비전 토크쇼라도 보는  것
처럼 내 이야기를 중단시켜가며 토를  달았다. 피곤이 덜 가시고 잠도  모자랐지만 나 또한 
두 할머니와 벌이는 게임에 스스로 재밌어하며 말려 들어갔다. 그래서 있었던 일과 오고 갔
던 모든 말을 거의 하나도 빼놓지 않고 들려드렸다.
  두 분은 우선 로돌프의 능숙한 진행 솜씨를 높이 평가했고 어린 학생들이 어른들 틈에 끼
여 이야기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겠다고 했다. 식사가 거의 끝나고 치즈가 나올 때쯤 할머
니는 장 마르탱이 지나치게 학교 선생티를 냈다고 비난했다.  반면 후작부인은 이론적인 내
용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다룬 그의 빼어난 솜씨를 칭찬했다. 두 분은 또한 스테파니가 보여
준 고집이 귀엽다고 하면서 재밌어했고 수잔과 아이들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며 정확한 것을 알아 볼 필요가 있겠다고도 했다. 내가 악셀의 집이 상당히 지적이라고 
하면서 부러워하는 눈치를 보이자 할머니는 갑자기 내 말을 끊으면서 물으셨다.
  "걔 아버지는 뭐 하는 분이시니?"
  "지난해에 돌아가셨대요, 비행기 사고였는데 그때 큰언니도 함께 죽었나 봐요.  그래도 악
셀은 하루도 수업을 빼먹지 않았어요. 가끔 아무런 이유 없이 울음보를 터뜨리곤 했지만 아
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악셀은 오빠 에두아르와 함께 어머니 일을 많이 거들어주고 있대
요. 이제는 옛날보다 더 명랑해졌어요."
  후작부인이 할머니를 보며 말을 꺼냈다.
  "이런 경우 알다시피, 어머니가 다시 아이들을 차지하게 되지."
  후작부인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전에 만났을 때  들었던 후작부인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후작부인은 멋진 수염의 사나이였던 우리 증조할아버지 덕택에 너무나도 억압적이었던 어머
니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가 살아 있어도 아이들을 두 손에 꼭 쥐고  사는 어머니들이 있는 법이지. 뤼실은 
이런 이야기가 별로 재미없겠구나. 아이들의 사랑 이야기가 너에게는 더 신나겠지?"
  이때 엄마가 내가 입고 싶어하는 옷을 못 입게 한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왔지
만 참아버리고, 식탁을 치우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후식 접시를 갖고  식탁으로 
돌아오다가 무심코 이야기를 꺼냈다.
  "어젯밤에 사랑이 파탄나는 장면을 목격했어요."
  하지만 더 이상은 얘기할 수 없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말도 할 수 없었고,  아
무리 어린아이들의 성욕이 중요하다고 해도 내게는 젊은이들의 사랑이 더 중요하게  느껴진
다는 얘기도 할 수 없었다. 공연히 뾰로통해진 나는 단지  다음과 같은 말만 덧붙였을 뿐이
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니라 괴로운 일인 것 같아요."
  후작부인은 시럽을 친 파이 한 쪽과 셔벗을 마저 들고 다서는 입을 쩝쩝거리면서 자기가 
카네이션 부인 이야기를 알고 있는데 들어보겠느냐고 했다. 그러고는 벽에 기대놓은 그림들
을 젖히더니 초상화 한 점을 꺼냈다. 어두운 빛깔을 배경으로 한 여인의 초상화였는데, 붉은 
꽃 한 송이가 퍼머를 한 머리에 꽂혀 있었다.
  "1930년경의 이야기지. 꽃 농장을 하는 남편과 이 아름다운 부인 사이에는 쌍둥이가 있었
다. 하나는 딸이었고 하나는 아들이었지.  아이들이 당시 여섯 살이었을  거야. 매일 새로운 
꽃을 머리에 꽂았던 부인은 쌍둥이 아이들을 위해 카네이션 게임을 생각해냈어. 어느 비 오
는 늦은 오후 차양이 쳐 있는 마당에서 아이들은 양탄자 위에 널브러진 장난감들을 발로 차
며 놀고 있었거든. 아이들을 놀려줄 속셈으로 부인은 머리에서  꽃을 뽑아 보여주면서 꽃과 
똑같은 색깔의 물건을 누가 더 빨리 집어오나 시합을  시켰던 거야.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보
다 빨리 집어왔고 그래서 꽃은 그애 차지가 되었지. 여자아이가 그만 토라지고 말았어. 그러
니까 어머니는 꽃을 빼앗아서 이번에는 꽃이 어떤 냄새를 내는지를 알아맞추는 사람에게 주
겠다고 했지. 남자아이는 냄새를 맡아보더니 그 자리에서 대답하기를 '아무 냄새도 안 나요'
라고 했고, 냄새를 맡고도 망설이던 여자아이는 꽃이 다시  어머니의 머리로 올라가는 순간 
'엄마 머리 냄새가 나요'라고 말을 해서 점수를 땄어.  어머니는 미소를 띠며 약속을 지키느
라 딸에게 꽃을 주었지. 이 후에도 어머니는 기회만 있으면  게임을 했고 날이 갈수록 게임
의 규칙과 아이들이 선택해야 하는 물건들이 늘어갔어. 그러던 어느 날 날씨가 갑자기 나빠
져서 아버지가 거두어들여야 하는 꽃들이 모두 망가지고 만 거야.  게임을 못 하게 되면 아
이들이 얼마나 낙담을 할지 잘 알고 있던 부인은 다 큰 아이들에게 하듯이 집안에 어떤  일
이 벌어졌는지를 아이들에게 설명해주었지. '아버지가 이 세상의 주인은 아니란다. 아버지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계절에 맞춰 살아야하고 변덕스러운 날씨로 인해 피해를  보기도 
하는 거야. 햇볕이 비칠 때는 꽃도 마음대로 딸 수 있지만, 오늘은 꽃을 딸 수가  없게 되었
구나. 우리 모두 이 새로운  상황을 받아들여야만 한단다.' 아이들은  엄마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었고 여자아이는 심지어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 사내아이의  표정도 마치 사탕을 빨
아먹다가 매운 겨자라도 씹은 것처럼  울상이 되었어. 엄마 이야기가 다  끝나자 두 아이는 
그만 울음보를 떠뜨리고 말았어. 그날 밤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자 엄마는 아빠에게 어떻게 
카네이션꽃을 좀 구할 수 없겠느냐고 물었지만 아빠 대답은 이제 겨우 새싹들이 돋기 시작
했는데 어디 가서 꽃을 구하느냐는 것이었어. 꽃만 없었을 뿐 집안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기쁜 일 슬픈 일이 번갈아 생기며 세월이 흘러가고 있었지.  하지만 꽃이 언제 핀다는 것을 
잊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몇 달  후 엄마가 보는 가운데 숙제를 하던 아이들은  '장
미'라는 단어를 쓰게 되었지. 그때 사내아이가 말했어. '이번 여름에는 나도 아빠처럼 정원에
다 카네이션을 심을 거야.' 그 말을 듣고 있던 여자아이도 말했지. '나는 아빠가 꽃을 포장하
는 걸 도와드릴 거야.' 집에 들어오면서 아이들의 말을 듣게 된 아빠는 풍족하게 꽃을  갖고 
놀던 아이들이 꽃이 없는 가난한 시기를 꿋꿋하게 이겨내는 모습을 보고 흐뭇한 마음을 금
할 수가 없었어. 아빠는 빗방울이 떨어지는 파카를 벗으면서 아이들에게 말했어. '아빠는 너
희들이 꽃을 가꿀 수 있고 포장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는지 아직은 모르겠구나. 하지만 너
는 그림을 아주 잘 그리니까 데이지와 만병초도 그릴 수  있을 것이고, 또 너는 종이접기를 
아주 잘 하니까 멋지게 동백꽃을 접어보거라.' 아빠의 말을 들은 아이들은 너무나도  좋아서 
아빠를 끌어안았고 아빠도 신이 나서 이후 새로운 숙제를  아이들에게 계속 내주게 되었지. 
먼 훗날 사내아이는 틀림없이 이때를 생각하며 사랑하는 여인에게 카네이션꽃을 꽂아줄  것
이고, 여자아이는 이 세상의 그 어떤 아름다운 난초꽃보다도 카네이션꽃을 좋아하는 남자를 
사랑하게 되겠지.... 뭔가 재미난 이야기를 기대했겠지만...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야. 잃어버
린 행복은 아름다운 음악소리 같아서 우리는 그 소리에 맞추어 각자의 인생을 노래하게 되
는 법이지."
  우스운 이야기가 아니었는데도 우리 모두는 한바탕 웃고 말았다.
  이야기를 끝낸 후작부인은 가게 문을 열 게 자신의 가게까지 함께 가주겠냐고 물었다. 물
건들을 가리고 있던 커튼을 걷어내자마자 후작부인은 고풍스러운 정치가 그윽한 유리  구슬
과 수를 놓은 페티코트들로 장식된 옛날 커피 중탕기를 꺼내 커피를 끓이기 시작했다. 그러
면서 이제 할머니 차례가 되었으니  어디 이야기보따리를 한번 풀어보라고  제안했다. 선반 
위에는 '점토로 구운' 자질구레한 소품들이 많았다.  그것을 보자 어린 시절 'biscuit'(biscuit
이라는 말은 도예 용어로 '점토로 구운'이라는 뜻도 있지만 동시에 흔히 '비스킷', 즉 딱딱하
게 구운 건빵 종류의 과자를 지칭하기도 한다.-역자 주)이라는 말에 먹어도 되는 것인지 의
심쩍어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할머니는 커피를 한 모금씩 천천히  다 마시고 색유리로 만든 
촛대 가격을 물어보고 나서야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야 후작부인처럼 재미없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할  재주도 없고 하니, 바빌론 카페에서 
오고 갔던 이야기에 대해 몇 가지만 얘기해 볼까.(할머니는 내게로 몸을 돌렸다) 뤼실, 우선 
이것을 알아야 한다. 네 개인적인 경우에 대해 설사 네가 모르고 있다 해도, 아니 보다 정확
히 말해 너의 무의식에 대해 네가 모르고 있다고 해도,  너는 정신분석의 이론에 대해서 얼
마든지 많은 것을 알 수가 있는 거야.
 나는 할머니에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후작부인도 그렇고 할머니도, 또 모두들 어떻게 해서 그렇게 정신분석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겨죠?"
  "모두 나름대로 대가를 치르면서 배운 것이란다. 나도 무의식이 표출되는 것을 정말 고통
스럽게 지켜보면서 비로소 내 무의식에 어느 정도 친숙해질 수 있었지. 무의식은 심지어 상
담을 하는 도중에도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한단다. 마치 사냥꾼을 놀리는 산토끼
처럼 여기 숨었다 말이야. 알려져 있지 않은 내면적인 그  담론의 고리가 풀어져서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기 위해서는 몇 년 동안 두 사람이 인내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또 연구해야 하
지."
  "무의식으로 인해 더 이상 고통을  받지 않게 된 사람들은  무의식을 안 갖고 있는  건가
요?"
  "그건 물론 이니지. 단지 무의식을 형성하고 있던 매듭들이 이전처럼 잔인할 정도로 옥죄
지는 않고 또 무의식을 분명히  보려고 하는 욕구가 훨씬 덜해진  것뿐이야. 네 할아버지는 
심지어 무의식이란 단지 정신분석가와 그의 환자 사이에서만 존재한다고까지 말했단다."
  후작부인이 끼여들었다.
  "그렇긴 해도 무의식이 어린 시절에 형성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아까 말했던 카
네이션 부인도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함으로써  애들이 맛보았던 쓰라린 실망감을  건설적인 
것으로 변화시키려고 했던 거지. 엄마와  아빠는 각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사랑은 욕망의 
충족이 아니라 오히려 욕망을 승화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이해시켰던 거란다. 어
마 아빠가 들려준 마음을 사로잡는 달콤한 이야기들이 아이들에게 제대로 받아들여질지  아
닐지는 오직 나중에 가서야 알 수 있는 문제겠지."
  "그런데 저는 그 꽃이야기가 어떤 면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연상시키는지 모르겠어
요."
  "꽃이야기는 오이디푸스 신화와 거세 개념의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지. 꽃이야기는 어머
니가 원하는 것이면 뭐든지 다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가는 오이디푸스기에 들
어선 아이들을 보여주는 거야. 이 점이 바로 아버지도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들 모두를 초
월해 있으면서 동시에 그들 모두들 거세하는 비개인적인 하나의 법에 복종한다는 것을 인정
하면서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말하려고 했던 것이지."
  "나는 이제까지 거세라는 말은 남자아이들이...."
  듣고 계시던 할머니가 말을 받았다.
  "그런 혼동은 누구나 하는 거지. 어쨌든 잘 말했다. 사람들이 흔히 그렇게  혼동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아이가 남녀의 성적 차이를 지각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려고 할 때 모든 아이
들은 나름대로 이론을 세우는데 바로 그 이론에서 혼동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일
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여자아이가 처음부터 육체적으로 거세를 당했다고 여
기지 않지. 또 남자아이도 언젠가는 거세를 당할 거라고 생각하고. 하지만 남자이이든  여자
아이든 건강하게 자라나기 위해서는 그들이 그때까지 믿어왔던 전지전능한 힘에 대한  믿음
을 자신들이 갖고 있지 않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단다."
  이야기를 하는 사이 한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가게에 들어와 이것저것 물건을 둘러보면서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이야기를  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 신사의 잔꾀를 간파한 후 후작부인은  가까이 다가가 3프랑짜리 작은 조각품 하나를  판 
다음 문 앞까지 가서 배웅을 하고 돌아왔다.
  조금도 기가 꺾이지 않은 할머니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한 가지 조심해서 들을 것은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것이 무능하다는  것을 뜻하지
는 않는다는 거야.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것은 각자가 자신이 처해 있는 성적 현실에서, 그러
니가 넓게는 인생 전체에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지. 이
러한 해부학적 현실들과 그러한 현실들이  어린아이들의 머리 속에 불러일으키는  상상적인 
설명들을 인간만이 소유하고 있는 언어라고 하는 특수한 영역에 위치시키는 기능을 맡고 있
는 존재가 아버지란다. 이러한 아버지의 역할은 프로이트가 발견해냈지. 라캉의 어법을 빌려 
표현해본 거야. 그 역할이 상상적인 것으로 계속 남아 있게 되면-물론 상상적인지 아닌지를 
알게 되는 것은 훗날에 가서지만-아이를 신경증에 걸리게 하는 조건이 될 수도 있고....
  "라캉은 누구에요? 또 신경증은 뭐예요?"
  "엄청난 질문이구나! 신경증은 다양한 장애 현상들을 통해 밖으로 나타나는데, 오이디푸스
를 거치면서 억압된 어린 시절의 성이 주요 원인이 된단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다 신경증 환자란 말인가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지. 많은 경우 어린 시절의 충동들은  징후들을 통해 가려진 채로 지
속되는 대신, 승화되거나 탈성화되거나 한단다.  예술적 활동 같은 거  말이다. 또 애정으로 
변하기도 하고...."
  "바빌론 카페에서 이야기할 때는 애정 이야기는 안 나왔는데요."
  질문을 받은 할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네 친구들이 아직 너무 어려서  그렇거나 아니면 너무 지적이어서  그랬나 보구나. 이제 
라캉이란 사람에 대해 말을 좀 해볼까. 자크 라캉은 한마디로 뛰어난 인물이었고 동시에 많
은 논란을 일으킨 사람이기도 하지. 1900년에 태어나 1981년에 사망했는데.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에 입각한 정신과 의사가 된 이후, 빈의 스승이 그랬던 것처럼, 거센 반항을 통해  기존
의...."
  이때 후작부인이 끼여들었다.
  "라카의 강연회는 정말 너무나 멋있었어!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우리들의 머리를 떠
나지 않고 있었던 모든 문제들이 다루어진다는 인상을 받게 되지."
  "하지만 라캉을 평가할 때는 조금 거리를  돌 필요도 있을 텐데.... 그의  이론적인 작업이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것이어서...."
  "아니. 나는 최고 지식인은 아니었지만 그의 강연을 들으러 가면서 적어도 배우기 위해서
는, 내가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고물들을  수집할 때와 마찬가지로, 어딘가에 보물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어. 보물은 노력을  하지 않으면 발견 
할 수 없는 것이거든."
  이때 한 여자 손님이 들어와  심각한 표정으로 은제 식기들을 들어  보면서 무게를 쟀다. 
후작부인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도망을 갔다. 대신 할머니가 말을 이어갔다.
  "확실히 라캉의 주위에는 언제나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전이 현상이 일어나곤 
했단다."
  "전이라고요?"
  "정신분석에서는 사랑을 그렇게 부른단다."
  후작부인이 돌아와 자신이 경험했던 전이에 대해 들려주었다.
  "정신분석이 전이의 문제이고 사랑의 문제임을 라캉은 여러 사람들에게 느끼도록 했지."
  할머니가 후작부인의 말을 보충했다.
  "라캉이 말하는 욕망은 변덕스러운 그런 일상적인 욕망이  아니야. 라캉은 욕망의 물리칠 
수 없는 요구성을 지적했던 거고, 또 자신의 특이성으로 인해 괴로워하며 이야기를 하는 사
람의 말을 들어줌으로써 그가 갖게 되는 비전들도 지적했지. 동시에 그는 죽는 날까지 세도
들의 현실순응적인 경직성을 무너뜨리려고 했는데. 심지어  자기가 만든 학파가 현신순응적
이 되어가자 그것조차 무너뜨리려고 했단다."
  "저는 그 점이 참 마음에 드는데요."
  "젊은이들이 변화를 좋아한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고말고!"
  후작부인은 어릴 때 몇 개 깨뜨렸을 뿐  그 이후로는 그런 일이 없었건만 계속 유리잔을 
힐끔힐끔 바라보면서도 내 말이 옳다고 인정을 했다.
  할머니는 이때 조금 전만 해도 나무라던 장 마르탱의 편을 들면서 끼여드셨다.
  "개혁도 좋지만, 그렇다고 정신분석을 살펴보면서 역사적 문맥을 도외시해도 된다는 이야
기는 아니야. 1960년대 초, 그러니까 창시자가 죽은 지 약 20여 년 후 정신분석의 이론과 실
천은 모두 본질에서 벗어나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침체에 빠져 있었단다. 라캉은 동맥경화에 
걸린 것 같은 제도들과  미국화된 정신치료술에 맞서 싸우면서,  프로이트를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만 한다고 선언했어. 이 선언은  원래부터 언어에 의해 창조되고  우회적으로 돌려서 
말을 할 때만 표출되는 프로이트가 발견한 무의식으로의 회기를 선언한 것이었지."
  할머니의 말을 듣고 있던 나는 다시 엉뚱한 말을 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할머니 말은 정신분석의 모든 어휘들을  머리 속에 암기하고 있어야만 한다는 
건가요?"
  후작부인이 나를 도와주었다.
  "굳이 말하자면, 정반대지. 사람들은 보통 자기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이 말을 한단다. 
이것을 잊어서는 안 돼. 지난 주에 들려주었던 소아과 의사 이야기는 일일이 분류를 해가면
서는 정신분석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은연중에 일러주기 때문에 우스웠던 거야. 소아과 의사
는 인간의 내면적인 정신적 움직임들을 마치 일일이 이름이 매겨진 채 약국의 선반에 진열
된 약병들처럼 기계적으로 지적을 했잖니.  한 어머니에게 당신의 아들은  지금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앓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일 뿐만 아니라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
이란다. 그런 식으로 말을 해서는 아이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포기할 때 억압이 어떤 방
식으로 작용을 하는지도 알 수 없고 또 아이가 아버지에 대해서는 어떤 감정들을 품고 있었
는지도 설명이 안 돼."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어쩌면 거의 할 일이 없는지도 모르지.... 내 말은 그러니까, 기다려야  한다는 거야. 패를 
나누어가졌을 뿐, 게임은 아직 시작하지 않았거든."
  "그렇지 않으면 어머니에게 아들이 자신을 너무나도 사랑한다는 사실을 누군가 다른 사람
을 찾아가 말해보도록 권해보아야겠지."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아이가 정말 괴롭다면, 아이는 자기를 괴롭히고 있는  것을 자
신의 말들 속에서 풀어버릴 수도 있을 거야. 돌토의 치료  기록을 보면 어린아이들이 늘 솔
직하게 다 털어놓는 것은 아니지만, 오이디푸스의 갈등을 그대로 간직한 채 어떻게 엄마, 아
빠에 대한 그들의 상반된 감정을 드러내는지 잘 설명되어 있지."
  나는 잠시 생각을 해본 후 다시 물었다.
  "어린 시절만 잘 넘기면, 사람들은 대부분 평생 부모들과 평온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말인
가요?"
  "그건 아니란다. 사춘기가 찾아와 청소년들이 이번에는 성장한  육체 속에서 일어나는 성
덕 욕구들 앞에 서게 되면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는데...."
  나는 얼마나 놀랐는지 거의 기절할 뻔했다.
  "오이디푸스가 숲 속에 숨어서 사람을 노리고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  아무도 그런 
이야기는...."
  두 할머니는 웃음을 터뜨렸다. 할머니가 답을 했다.
  "토론회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다시 찾아온다는 이야기를 아무도 암시조차  안 했다
니 나도 놀랍구나. 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네가 옆으로 비켜놓았을 뿐이야. 마치  너
는, 위험한 편지를 한 통 쓴  후 서랍 속에 넣어두고는 잊어버렸다가 어느  날 편지가 눈에 
띄자 주소도 쓰지 않은 편지를 그냥 부쳐버린 형국이구나."
  두 할머니들은 전혀 모르는 일이었지만 어쨌든 그런 비슷한 편지가 내게도 한 통 있다는 
것이 화가 날 정도로 싫었다.
  "그냥 재미난 이야기만은 아니네요!"
  "무의식과 거기에서 발생하는 갈등에 관한  이야기들 중에는 더 재미없는 이야기도  많단
다."
  할머니는 한 숨 돌리시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네가 관심이 대단한 것 같으니 이야기를 좀 해보마. 하지만 네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
도 아니고 또 네가 장차 엄마가 됐을  때를 위해서 하는 이야기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두고 
들었으면 좋겠구나. 너 같은 여자아이가 어린아이였을 때 엄마 아빠에 대해 가지고 있던 사
랑은, 오직 인간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긴 중단 기간을 거친  후 지금 네가 겪고 있는 이 
시기, 즉 두 번째로 성이 다시 깨어나는 이 시기까지 따라오는 거야. 흔히들 '예민한 청소년
기' 또는 '위험한 청소년기'라고 말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바로, 자기 스스로의  날개로 
날아가기 전에 그때까지 부모님들에 대해 갖고 있었던 이미지들을 포기해야 되기 때문인데, 
이 일이 아무런 죄 의식 없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란다."
  곁에 있던 후작부인이 한마디 거들었다.
  "뿐만 아니라 지금 만들어가고 있는 이상적인 배우자의 이미지마저도  안타깝지만 단념해
야 되지."
  두 할머니의 이야기를 나는 계속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조금 아까 라캉에 대해서 말을 하다가 만 것 같은데...."
  "그랬구나. 라캉에 현대 언어학에서 특히  시니피앙과 시니피에가 본원적으로 상이하다는 
이론을 빌려오면서 어떤 방식으로 프로이트의 무의식을 언어를 매개로 다시 문제화했는지를 
이야기 했었지."
  "시니피에라구요? 그건 뭔지 알아요...."
  "어디 한번 말해보렴."
  "예를 들면 할머니가 나보고 조용히  하라는 뜻으로 손가락을 입에  갖다댔을 때, 조용히 
하라는 것, 그것이 시니페에죠."
  "그럴 줄 알았다. 네가  말한 것은 시니피에가 아니라  시뉴(signe), 즉 기호란다. 단어들, 
혹은 언어학에서의 시니피앙들은, 예를 들어, '떼  뚜아 뤼실!(tais-toi Lucile! 조용히 해, 뤼
실)' 같은 문장에서 있어서, 그것들이 의미하는 것과 관례적이고 모호한 관계 속에 있지. 위
에서 예로 든 말은 그래서 너보고 조용히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남하고 다르다
는 것으로 인해 불안해하는 너를 보고 너에게 힘을 주기 위해 내가  한 말일 때는 '떼-뚜아 
뤼실!(T'es toi Lucile! 너는 뤼실 바로 너야)'라는 말로 들릴 수도 있지.  정신분석의 관점에
서 볼 때는, 시니피앙은 그것이 의미하는 것과 한층 더 간접적인 관계를 갖게 된단다.  가령 
오늘 들려준 이야기에서 카네이션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고 볼 수 있을 게다. 카네이션은 욕
망과 충족을 경험하는 동안, 처음에는 눈앞에 있었다가 없어졌고  마침내는 다른 것으로 대
체되고 만거야."
  나는 대충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은 것 같았지만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이상하게도 정신분석은 거의 모든 학문 분야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 같아요. 마치 비교
를 해야만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것처럼 말이예요."
  "인간의 정신적 움직임을 밝혀내기 위해  프로이트는 처음부터 자신의 정신 치료  작업을 
다른 여러 분야와의 관련 속에 놓고 일을 했단다. 민속학자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였고, 철학
자들의 생각과 극작가나 소설가의 작품들, 또 과학자들의 이론에도 주의를 기울였지. 라캉도 
프로이트처럼 일을 했어.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풍요롭게 하는 하나
의.... 왜냐하면 인간은 각기 자신이 말하는 언어에  의해 표현되는 것이니까.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동시에 언어의 지배를 받기도 하지."
  "이제 내가 살고 있는 곳으로 돌아가봐야겠어요."
  할머니들을 웃기려고 한 것은 아니었는데 내 말을 듣자  할머니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어
느새 밤이 되었고 나는 배낭을 멨다. 장갑이 없는 것을 보자 할머니가 당신 것을 끼고 가라
며 내주셨다. 지하철 역 앞에서 내 나이 또래의 두 젊은 남녀가 추운 날씨에 옷깃을 여미며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 틈에 서서 서로 부둥켜안은 채 오랫동안 입을 맞추고 있었다.

    제7장 소동들
  월요일에 학교에 갔더니 악셀이 뭔가 좀 이상해보였다. 말을 좀 붙여볼까 하는데 그만 종
이 울리고 말았다. 나는 오전 내내 악셀을 몰래 훔쳐보았다. 선생님들이 기분 나쁜 이야기나 
재미난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는데 악셀은 혼자 인상을 찌푸리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점심 
시간이 돼서야 악셀에게 무슨 일 있느냐고 물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악셀은 나중에 이야기하
자며 나를 뿌리쳤다.
  "이야기하자면 길어!"
  같이 숙제나 하자고 달랜 끝에 겨우 악셀을 우리집으로 데리고  올 수 있었다. 그애는 집
에 전화를 한 후 곧 나와 함께 우리집으로 왔다. 가방에서 수학 공책을 꺼내면서 시작한 악
셀의 이야기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됐다.
  "지난 토요일 바빌론 카페에서 네가 혼자 나가버린 후, 나는 찻집 한구석에 앉아 엄마, 오
빠, 스테파니가 장 마르탱과 다시 토론을 벌이는 것을 몇 시간이나 듣고 있었어."
  "너도 끼여서 같이 이야기하지 그랬니?"
  "이미 이야기는 상당히 어려워져 있었고.... 아니 너 또  내 말을 가로막고 그러는구나! 아
무튼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그냥 투덜거리며 한구석에서  기다리고 있었어. 마침 찻집을 
나가던 로돌프가 나를 보더니 다가오더라.  그러더니 왜 그날 젊은 학생들이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느냐고 묻잖아. 나는 그  사람이 내게 관심을 기울여주자  갑자기 우쭐해져가지고 
내가 생각해도 멍청하게 웃음을 흘리며 그렇지 않아도 루소가 부당하게 취급당하고  있었을 
때 끼여들려고 하다가 그만두었다고 했지. 그러자 그 사람이 놀란 표정을 지었어. 나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른 채, 그날 모임에서 아무도  백과전서파의 한 사람이었던 루소
가 과학이 인류에게 가져다줄 행복에 대해 회의함으로써 이미 당대를 초월하고 있었음을 지
적하지 못해 안타까웠다고 말했고...."
  "그런 이야기는 또 어디서 주워들었니?"
  "모르겠어, 나도. 어디선가 읽었든가 아니면 누가 하는 말을 들었겠지....  하지만 로돌프는 
그래도 그날 주제가 루소가 아니었으니 조용히 있기를 잘 했다고 하면서 나를 깔보기는 마
찬가지였어. 하지만 바삐 가봐야 된다는 표정은 아니더라구. 반쯤 입다 만 외투를 다시 벗더
니 앞 탁자에 걸터앉아 내게 담배를 한 대 권했지만  사양해버렸어. 그리고 우리 둘은 이야
기를 시작했는데, <고백록>과 <신 엘로이즈> 등에 대해  내게 물었고 나는 정말 너무나도 
술술 대답을 해주었지."
  악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입에서는 저절로 탄성이 새어나왔다.
  "네가 언제 기죽은 적 있니?"
  악셀은 날아갈 듯한 기분이면서도 순간 어딘가 신경이 거슬린다는 표정이었다. 그애는 계
속 이야기를 해나갔다.
  "너도 알지만, 우리 아빠가 불문과 교수셨잖니.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엄마와 이야기
를 나누던 사람들이 우리 앞을 지나가는 거야. 엄마는 내가 모임의 사회자와 단둘이서 이야
기를 나누고 있는데도 하나도 놀라지 않은 채, 뭘 좀  먹으려고 옆에 있는 크레이프 가게엘 
가는데 그리고 올 테면 오라는 거야.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그리 마음이  편
하지는 않더라구. 하지만 로돌프는 다른  사람들 틈에 섞여 같이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내 
옆에 내 옆에 와서 앉더니 계속 말을 시키는 겨야.  나는 태어나서 그때처럼 이야기를 지적
이고도 논리 정연하게, 그러면서도 재미있게 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 마치 미리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말할 것들이 척척 머리에 떠올라주는 거야."
  "도대체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데?"
  "로돌프는 자기도 장 마르탱이 프로이트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관찰시키기 위해 루소를,
뭐라 그럴까.... 옛날 사람을 현재에 다시 불러냈으니까  소급했다고나 할까, 어쨌든 자연 상
태가 존재한다고는 한번도 말한 적이 없고 단지 그런 세계를 가정하기 위해 윤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허구적인 시대를 상정했을 뿐인 루소를 홀대했을 때 정말 난처했다고 털어
놓았어."
  "그 사람이 너에게 그런 이야기까지 다 털어놓았단 말이야?"
  "말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됐겠지.... 어쨌든 우리 두 사람은 곧 자연에 대한  사랑과 낭만주
의 시인들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갔고 로돌프가 망설이길래 내가 나서서 그 긴 시들을 암송
하기도 했어. 하지만 로돌프도 곧 시를 외우기 시작했고 그렇게  해서 우리 두 사람은 거의 
눈물까지 글썽거리면서 언젠가 우리가 외웠던 시들을 암송하며 서로 시로 화답을 하게 됐는
데...."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정말 감동했다.
  "야, 멋있다. 영화의 한 장면같애!"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야. 좀 들어봐. 그 다음날, 엄마가 빵을 사러 잠시 나간 사이에 로
돌프가 전화를 했어. 자기는 솔직함과  교양과 내 성격과 또  다이아몬드같이 단단한 내 마
음에 매혹을 당했다는 거야."
  "사랑의 고백이었구나!"
  "그렇게도 볼 수 있겠지, 뭐.... 하지만 나로서는 좀 난처했어. 어쨌든 그날 밤은 괜찮은 밤
이었고 나도 즐거웠어. 하지만 완전히 그 사람에게 몰입했던 건 아니었거든. 오히려  날씨는 
쌀쌀했지만 겨울답지 않게 밝은 햇살이 비치는 것을 보자 너를 불러서 같이 배구나 하러 갈
걸 하며 후회를 했다니까."
  악셀은 약간 기운이 빠진 표정으로 다정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애에게 나 또한 들
려줄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그 말이 악셀에게 힘을 북돋아주었는지 내 이야기는 자기 이야
기가 끝난 다음에 듣기로 하자며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얼마나 심란했었는지 몰라. 어쩌다 보니 그 사람과 세 시에 앙드레 시
트루아이엥 공원에서 만나기로 약속해버린 거야. 로돌프와 약속이 있다는 것을 차마 엄마에
게는 말을 할 수가 없었어. 엄마가 먼저  영화나 한 편 보러 가자고 했을 때  거절을 할 수 
있었으니 망정이지, 내가 먼저 나간다고 했으면 털어놓고 말았을 거야."
  말을 마치자 악셀은 뭔가 깊이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점점 궁금증이 더했
갔고 악셀이 존경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니? 나가서 만났어?"
  "한참을 망설이다 나가긴  나갔지.... 가보니까 먼저 와 있더라. 상당히 신경이 날카로워진 
표정으로 왔다갔다하고 있더라구. 왠지 피곤하고 슬퍼보였어. 나를 보자 끌어안더니  이마에 
입을 맞추고는 머리를 쓰다듬더라.
  "꼭 아빠가 딸에게 하듯이 말이지."
  "아빠가 나를 그렇게 안아주셨을 때 어땠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어쨌든...."
  악셀의 눈에 살짝 눈물이 맺혔다. 나는  얼른 화제를 돌려야만 했다. 악셀은 약간  교태가 
느껴지는 몸짓으로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넘겼는데 이전에는 보지 못하던 모습이었다. 하지
만 그애의 웃음은 그대로였다.
  "날씨는 꽤 싸늘하고 찼지만 우리는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어. 로돌프는 걸어가면서 
길과 구조물의 배치에 대해 설명해주었고 다양한  식물 종에 대해서 이것저것 묻더니  내가 
답을 하지 않고 있으니까, 라틴어 학명까지 대며 원산지가  어디라는 것까지 자세하게 일러
주었어."
  "그 사람, 생물 선생은 아니잖아?"
  "아니지. 물론! 단지 자연을 사랑해서 그렇게.... 그러다 그 사람이 내 어깨에 손을  얹어놓
았어. 나는 몸이 좀 떨렸지만...."
  "그 사람 또 만날거야?"
  악셀의 두 뺨이 붉어졌고 눈에서는 초롱초롱 빛이 났다. 미소를 지으며 악셀이 다시 입을 
열었다.
  "비밀이야."
  나는 비록 악셀이 시간을 미루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로돌프와의 사랑 이야기를 내게 
다 털어놓고 말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얼마 뒤 우리는 다른 사랑 이야기에  개입하게 되었다. 마농과 방자멩 이야기였는데,  1년 
전부터 연민과 선망이 뒤섞인 감정으로  지켜보면서 부르주아의 이상적인 커플로  여겨졌던 
두 사람이 갈라서게 된 것이다. 남의 이야기를 듣기 좋아하던 악셀은 내게 그런 자격이라도 
있다는 듯이 나를 증인삼아 데리고 다니며 마농의 고백을 들어주었고 그러면서 마농에게 여
러 가지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 충고들이라는 것이 겉으로는 하나같이 옳은 것들
이었지만 듣는 사람을 한 층 더 심한 절망으로 떨어지게  하는 것들이었다. 사실 우리도 어
떻게 해야 마농을 위로해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사랑문제에 개입하며 
전문가로 자처하던 악셀 자신도 마침내 로돌프와의 연애에서 발을 빼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애는 로돌프에게 그리 마음이 끌리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악셀의 집에 자주 드나들다 보니 나는 아름다운 스테파니가 인정머리 없이 자신을 몰아세
우던 장 마르탱과 사랑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악셀의 어머니와 오빠는 스테파
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야기로 미루어볼 때 둘의 사랑이 여간 깊은 것이  아
니었다. 물론 두 사람은 내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하면서  이야기를 하곤 했지만 누구의 
이야기인지 감출 수는 없었다.
  허전한 마음을 채울 길이 없게  된 에두아르는 바빌론 카페에 더 이상 발을 들여놓지 않
았다. 뿐만 아니라 밥도 잘 먹지 않았고 잠도 잘 자지 못했다. 햄릿의 그 긴 독백을 외우고 
다녔던 것도 꼭 절망의 파도가 휘몰아치는 이런 상황이 올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인 것 같았
다. 에두아르는 융 전집을 샀는데, 그것은 그 매력적인 붉은 머리의 여인이 잘못 생각을  하
고있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그녀를 잊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녀를 생각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는 융을 읽기만 한 것이 아니라 숙제를  하러 악셀을 만나러 가면 우
리들에게 읽어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상당히 신경이  날카로워져 보였고 융에 대해 
거의 신경질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수잔은 냉정한 그 역사 선생에 대해 거의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그녀의 나이 탓일 수도 
있고 혹은 경험  탓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악셀은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이해했다.
  "엄마가 아빠의 죽음을 얼마나 슬퍼했는지 몰라. 엄마는 그래서 20일이 아니라 서로 사귄 
지 20년이 된 사람이라 해도 다시 사랑 같은 것을 시작할 수가 없을 거야."
  내가 보기에 어른들은 너무나도 빨리 사랑을 포기하시는 것  같다. 나에게 어른들은 실망
스러운 존재들이었고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 듯했다. 악셀은  엄마가 다른 남자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을 흡족해 했다.
  몇 주일 지나자 과연 악셀은 나에게 다시 로돌프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우리가 바빌
론 카페에 들어섰을 때 그는 악셀에게 특별히 관심을 나타내지는 않았다. 나를 대하는 태도
나 악셀을 대하는 태도나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악셀은 그 동안 로돌프를 여기저기 한두 시
간씩 만났을 뿐 그 이상 오래 만난 적은 없다고 했다. 로돌프가 늘 바빴기 때문이었다. 그애
로서는 다행이었다. 악셀은 로돌프의 저돌적인 애정  공세를 무서워하면서도 한편으론 그가 
하는 사랑의 말에 매혹당하곤 했다. 특히 로돌프가 악셀을 만나기 이전에 다른 여인들과 나
누었던 서정적이고 가슴 뛰게 하는 사랑의 이야기들은 그애를  황홀하게 했다. 내게는 다이
아몬드처럼 단단한 마음도, 남자들에게 매혹을 느끼게 하는 힘도  없을까 하는 의문이 자꾸 
고개를 들었지만 나는 가능한 한 그런 질문을 피하려고 했다.  내게 매력이 없는 것이 아버
지가 아직 살아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는 의혹도 들었지만 이 생각도 떨쳐버리려고 했다.
  어느 날 저녁, 악셀과 둘이서 이탈리아 단어들을 외우느라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데 에
두아르가 들어오더니 마침내 라비슈의 희극에서 역할을 맡게 되었다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몰
라 했다. 어떤 말이라도 해주어야 할 상황이었다. 그 동안 그의 얼굴을 물들이고 있던  비극 
배우의 창백함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대신 작은 미소가 감도는 그의 긴 얼굴에서는 어딘
지 익살스러움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연극은 극단의 공연 사정 때문에 연기되고 말았다. 환멸을 느낀 에두아르는 이 위
기를 철학적으로 해결하려는 듯이 융을 던져버리고 대신 라캉을 집어들었다. 학기말 시험과 
공부에 쫓기고 있던 우리는 에두아르가 가족에 관계된 콤플렉스들이 어디서 연유하고 그 결
과는 어떠한 것인지 열광적인 목소리로 설명을 해주겠다고 해도  들을 시간이 없었다. 어느 
날 내가 악셀에게 물었다.
  "혹시 너희 오빠 지금 정신분석 받고 있는 거 아니니?"
  "네가 이미 오래 전에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리고 언젠가 바빌론 카페에서  직접 말
했었잖아."
  스테파니와 장 마르탱이 논쟁을 벌이고 있을 때 에두아르가  하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래도 나는 놀랍기만 했다.
  "너희 오빠 아직은 너무 어리지 않니? 조금 기다려봐도 되는 거 아닌가...."
  "스물다섯 살이면 결코 어린 나이가 아니야!"
  순간 로돌프가 에두아르보다 열 살이나 위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너보다 스무 살이나 위인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거 괜찮니?"
  내가 물었다. 악셀은 금방 부정하고 나왔다.
  "나는 로돌프를 한번도 사랑하는 사람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어. 그렇지 않아도 어제 만났
을 때 이제 그만 만나자고 분명하게 이야기 했어"
  말을 마치자 악셀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네가 먼저 그만 만나자고 했다면서 울기는 왜 우니?"
  악셀은 눈물을 닦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제8장 신화의 전설
  방으로 돌아온 엄마가 울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흐느끼고  나를 끌어안으면서 엄마가 나
지막이 속삭였다.
  "울고 있어서 노크 소리를 못 들었구나."
  나는 엄마가 물어보기도 전에 먼저 선소리를 했다.
  "나만 빼놓고 모든 애들이 다 누군가 자기를 사랑해주는  남자를 갖고 있어, 나만 빼놓고 
말이야!"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네 언니도 파브리스가 떠난 후 혼자 있지 않니'라는 말도 
하지 않았고, '네 나이에는 아직 어려'라는  말도, 또 '우선 대학에나 들어가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엄마는 내 얼굴을 들어 엄마를 쳐다보게 한 다음 미소를 띠며 말했다.
  "꼭 둥지에서 떨어진 어린 새 같구나. 둥지에서 떨어져  다시 올라갈까 말까 망설이는 새 
같아. 인생의 큰 문제들에 용감히 맞서기가 두려워 자신의 날개를 닦지도 않고 주저앉아 있
는 새 말이야. 엄마랑 같이 가서 저녁상 차리는 거 도와줄래?"
  울음 끝이라 훌쩍거리다가 나는 아무리 끙끙대도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를 접어두고 부엌
으로 갔다. 식탁 위에는 엄마가 막 까놓은 콩이 있었다. 콩을 즐겨하지 않는 나는 인상을 찌
푸리면서 혹시 다른 야채가 없나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그러면서  내가 좀 덜렁대거나 화가
난 듯 거칠게 행동했었나 보다. 그만 냉장고 안에 비스듬이  놓여 있던 샐러드 그릇이 바닥
에 떨어져 박살나고 말았다. 하지만 다가온 엄마는 보통 때와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그릇에 이가 빠져서 바꿔야 할 텐데 하면서도 아까워서 버리질 못하고 있
었는데 잘 됐다."
  엄마는 몸을 굽혀 깨진 유리조각과 익힌 콩들을 주워담았다. 나는 빗자루를 가지로  갔다. 
창밖을 보니 체증에 시달리는 차들이 네거리에서  경적을 울려대며 야단법석이었다. 옹딘과 
나눴던 이야기가 문득 떠올라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어떻게 보냈어요?"
  "오늘?"
  "아니, 엄마가 나만 했을 때 어떻게 보냈느냐고...."
  엄마는 대답은 하지 않고 내게 냄비와 감자와 칼을 건네주었다.
  "다시 한번 바특하게 졸이기만 하면 된다."
  "엄마는 어땠냐니까?"
  나는 거의 억지로 부리고 있었다. 엄마는 내 청바지를  바라보더니 해어진 무릎에서 빠져
나온 실밥을 당겨서 끊었다.
  "엄마가 너만할 때는 바지를 입고는 학교에 갈 생각도 못 했는데.... 그뿐인 줄 아니, 얼굴
에 조금이라도 화장기가 있으면 선생님들이 가서 얼굴을 씻고 오라고 야단들을 치셨지."
  나는 언제 울었느냐는 듯이 할머니가 들려주신 엄마의 옛날이야기가 떠올라 우습기만  했
다.
  "할머니가 그러시는데, 엄마는 1968년 5월에 이상을 쫓는 맹렬 여학생이었다면서?"
  "1968년에? 음... 그때 엄마는 법대 2학년이었지. 오를랑도도 총학생회가 열리는 날 질문을 
하려고 한번 이름을 불러봤을 뿐이었어. 늘 굽이 없는 단화를 신고 다니면서...."
  "할머니는 엄마 구두 이야기는 안 하고 촌티나는 치마 이야기만 하던데...."
  엄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당시는 히피풍이 유행이었단다. 모든 학생들이 열성 혁명분자였고, 그건 거의  전염병 같
았어. 어딜 가나 대자보가 붙어 있었고 격한 구호와.... 나는 또 누구도 빨간 가죽으로 된 걸 
사서 여봐란 듯이 신고 다녔고, 말끝마다 '금지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어요'를 붙여서 그 말
을 안 하면 말을 못 할 정도였지"
  "그 얘기 할머니한테 들은 것 같아요."
  "나는 모든 것을 원했고 또 모든 것을 비판했지.  관례들, 원칙들, 그리고 권력.... 낡은 세
대들이 살고 있는 대륙을 지도에서 지워 버릴려고 했고, 모든 세상이 다시 시작되는 아침의  
해안가에 첫발을 내딛겠다고 떠들고 다녔단다."
  "그러니까 엄마도 지금처럼 그렇게 합리적인 사람은 아니었네? 내가 보기에  엄마는 그러
니까, 뭐라고 할까.... 다시 사회에 동화된거잖아."
  엄마는 이 말에도 별로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내 몸만 이렇게 둥그레진  게 아니라 생각도 많이 둥그레졌지.  생각해봐라. 
자기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는데 어떻게 자기 고집만 펴고 살 수 있겠니. 그러니 자연히 
'소외'. '도전'. '투쟁' 같은 단어들을 포기하게 됐고. 그때에는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친
두들 머리 속에는 어떤 종류의 차별도 존재해서는 안 되는 걸로 되어 있었어, 성 차별, 나이 
차별, 계급 차별 등은 모두 우리의 적이었지."
  "엄마가 그런 사람이었는지 정말 몰랐어요."
  "사람이란 늘 겉보기보다 복잡하단다. 또 차이를 부정한다고  해서 차이고 극복되는 것은 
아니고. 당시 우리들의 뜻은 모든 갈등을 일소하자는 것이었지만 몇몇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는 이미 반대되는 입장이 생기고 있었지. 세계를 변화시켜보려고 하면 할수록 내 자신이 꿈
의 기준을 따라야 할 것인지  아니면 현실의 무기력에 굴복해야 할  것인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어떤 식으로든 타협을 해야 할 것인지 너무나 갈등이 심했단다."
  "엄마는 젊었을 때 정말 맹렬 여성이었구나!"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오를랑도를 알게 된 후 나는 내가 더 이상 이상을 실현
시켜 세계를 비출 수 있는 자유의 여신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엄마는 아빠가 시칠리아로 데리고 가기를 원했어요?"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시칠리아의 옛 수도인 팔레르모에 가볼 수 있었어. 엄마하고 아빠
가 단번에 의견 일치를 본 건 아니었고 서로 사랑했기 때문에 힘과 열정을 갖고 함께  타협
점을 찾아낸 거란다."
  엄마는 얼굴을 붉히면서 문득 말을 중단하더니 영 서툰 솜씨로 감자를 깎고 있는 내 모습
을 보고는 쌀을 우유에 쪄서 설탕을 끼얹는 리오레를 준비하라고 했다. 엄마의 잔소리가 오
늘따라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때 비로소 엄마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
을 깨달았다. 나는 다른 질문을 계속 던졌다.
  "아빠는 엄마를 만날 때부터 변호사였어요?"
  "그래. 막 일을 시작한 신참 변호사였지. 신참이었기 때문에 특히 결혼 소송에서  좋은 결
과를....  그리고 아빠는 무엇보다도 시골 사람이었기 때문에 뭔가 해볼려고 하지만 구체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는 무모한 혁명 투사인 나를 다독거려줄 수 있었어. 만나면 만날수록 우리 
두 사람은 서로 의견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단다. 아빠는 늘 열에 들떠 있던 내게 개인과 인
간을 초월해서 집행되는 법의 엄정함과 중립성을 보라고 했지."
  "하지만 그건 법을 대변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하는 이야기잖아요."
  "그래. 경찰, 판사, 변호사들은 사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 법을  대표하는 자들일 뿐이지. 
그들이 법 자체는 아니라는 거야. 그들마저도  종속되어 있는 또 다른 의미의 법이  있는데, 
그들마저도 복종해야 되는 이 두 번째 법은 입법부에서 만드는  거야. 하지만 이 법은 보다 
본원적이고 비언어적이고 암묵적인, 모든 인간을 지배하고  모든 인간적 행동들을 결정하는 
또 다른 법, 즉 '근친상간을 금지하는 법'에 기초해 있는 거란다. 그러고 보니, (그때 우유가 
끓으면서 냄비 밖으로 넘쳐흘렀다. 엄마는 잠시 말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네가 참가하고 
있는 바벨 카페에서도 오이디푸스가 주제였다면서?"
  "바벨 카페가 아니라 바빌론  카페! 어쨌든 오이디푸스는 근친상간을  저지르고 말았잖아
요."
  "오이디푸스는 금지된 것을 경험했지."
  "나도 알아. 오이디푸스는 신탁이 예언한 운명에 너무나도  불안해한 나머지 자신을 낳아
준 부모님들 곁은 떠났죠."
  "그랬지, 그런데 그가 대재앙과 신들의 분노를 알았을 때 그는 이미 근친상간을 저질렀고 
아버지를 살해한 후였어. 물론 아무것도 모른 채 저지른 것이었지만. 그런 면에서 그는 신화 
속의 영웅이었지. 불안, 불확실성 등으로 인해 한 개인의 비극이 인간 누구나의 비극으로 보
편성을 얻게 된 거고."
  "엄마 말은 그러니까,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신문이나 법정 등에서 볼 수 있는 사건들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는 거예요?"
  "그의 이야기는 하나의 예에 지나지 않는단다. 소포클레스가  비극 속에서 말하려고 했던 
것은 근친상간의 범죄가 아니라 운명과의 만남이었어.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피하려고 했던 
것을 다시 만나게 되고, 그는 알게  되지. 자신의 실수와 죄를. 그리고  이 세상에는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것과 어찌해볼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 끔찍한 운명의 메아리들
은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서 아직도 울리고 있지. 위대하면서도 또 미천한 존재들인 우리 인
간은 이 물질적인 세계의 어려움으로부터 빠져나갈 수 없는 포유동물이지만. 동시에 자신들
에게 비물질적인 추상적 사고를 가능케 하는 언어를 통해 풀 수 없는 수수께끼들에 대해 끊
임없이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는 존재들이기도 한 거란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짝을 짓
고 성교를 하는 것만으론 만족을 못하고 뭔가 불가능한 것, 그것이 욕망이든 사랑이든, 뭔가 
불가능한 것을 찾아나서는 것이고...."
  바로 이때 아빠가 들어오셨다. 외투를 벗은 채 목에는 스카프를 그대로 걸치고 아직 손에
서 가방도 채 놓지 않은 상태였다. 아빠의 얼굴은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아니, 전화가 왔는데 뭣들 하고 있어? 뤼실 네 전화다. 기욤인가 뭔가 하는  친구가 너한
테 할말이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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