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르 사전
밀로라드 파비치
그린 북
아크샤니 야비르 이븐(17세기)-아나톨리아의 음유시인들은 사탄이 한참 동안이나 '야비
르 이븐 아크샤니' 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는 것과 17세기의 가장 유명한 류트 연주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유수프 마수디를 앞에 그 모습을 나타내었다는 것을 믿었다. 이븐 아크샤니
역시 매우 능숙한 류트 연주자였다. 이븐 아크샤니의 주범 중에서 한 가지가 기록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븐 아크샤나가 악기를 연주할 때 열 개 이상의 손가락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븐 아크샤니는 외모가 훌륭한 사람이었다. 이븐 아크샤니는 그림자가
없었으며 두 눈은 얕아서 마치 진흙 위에 발자국이 나 있는 것 같았다. 이븐 아크샤니는 죽
음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널리 알리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이야기를 통해 그것을 간접적으로
전달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꿈을 읽거나 혹은 꿈사냥꾼들에게서 죽음에 대해 배우
라고 충고했다. 아븐 아크샤니가 만든 것으로 알려진 다음과 같은 속담 두 개가 있다.
1. 죽음은 잠의 성이지만, 우리는 그 성에 대해 알지 못한다.
2. 잠은 하루치 인생의 끝으로, 죽음에 대한 연습이다. 잠과 죽음은 자매 사이지만 모든 형
제, 자매가 똑같이 가까운 것은 아니다.
언젠가 이븐 아크샤니는 사람들에게 푹음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여 주기 위해 기독교 군
사령관을 본보기로 이용한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아브람 브란코비치 였다고 전해
진다. 아브람 브란코비치는 왈라키아 전투에 참가했다. 사탄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왈라
키아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시인으로 태어나서 도둑처럼 살다가 흡혈귀로 죽는다. 야비르 이
븐 아크샤니는 술탄 무라트의 투르베에서 잠시 동안 호위병으로 있었던 적이 있는데, 어느
익명의 방문객은 아크샤니가 이곳에 있을 때 했던 말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호위병이 투
르베의 문을 잠글 때, 육중한 자물쇠 소리가 어두운 실내에 울려 퍼졌다. 호위병은 무거운
소리에 기가 죽어서 둘 위에 걸터앉아 두 눈을 감았다. 나는 그 호위병이 졸고 있다고 생각
했는데, 바로 그 때 호위병은 한쪽 손을 들어올리며 나방 한 마리를 가리켰다. 그 나방은 출
입구 위에서 퍼덕거리고 있었다. 호위병은 그 나방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기를 잘 보
십시오. 저 나방은 출입구의 하얀 벽 앞에 있습니다. 우리가 저 나방을 볼 수 있는 것은 저
것이 지금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만약 저 벽을 하늘로 생각한다면, 이곳에서 볼
때 저 나방은 하늘 높이 떠 있는 한 마리 새와 같을 것입니다. 나방은 아마도 벽을 그런 식
으로 바라볼 것입니다.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아는 존재는 우리뿐입니다. 하지만 나방은 우
리가 그런 사실을 안다는 것을 모릅니다. 나방은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릅니다. 할 수
만 있다면, 당신은 나방과 의사 소통을 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방에게 단 한
가지라도 이해한는 방식으로 말해 줄 수 있습니까? 당신은 저 나방이 당신을 완전히 이해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 호위병은 낯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두 손을 서로 부딪쳐서 나방을
죽이고는, 그 짓뭉개진 나방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내가 한 말을 나방이 이해하지 못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촛불을 가지고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손가락 두 개로 촛불을 끄면 되지 않습니까?" 나
는 내 생각을 말했다. "물론입니다. 만약 촛불이 죽을 수 있는 것이라면....... 자, 이렇게 생각
해 보십시오. 우리가 나방에 대해 알고 있듯이, 우리에 대해 알고 있는 어떤 존재가 있다고
가정합시다. 우리가 하늘이라고 부르며. 무한하다고 생각하는 이 공간이, 어떻게, 무엇으로,
그리고 어째서 제한되었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
와서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은 단 한가지뿐일 것입니다. 바로 우리를 죽이는 것
이지요. 우리는 그 존재의 의혹을 먹고 살아갑니다. 우리의 죽음은 그 존재의 손바닥 안에
있습니다. 죽음은 혀와 마찬가지로 그 존재가 우리와 의사 소통을 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이
익명의 존재는 우리를 죽임으로써 자신에 대해 알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죽음이란 자
객과 나란히 앉아 있는 여행자에게 경고를 보내는 것에 불과하지요. 그렇게 해서 우리는 최
후의 순간에 죽음이라는 열려진 문을 지나 새로운 땅과 또 다른 지평선을 보게 되는 것입니
다. 여섯번째로 가장 높은 등급인 푹음에 대한 공포는, 비록 우리의 기억 속에 존재하지는
않지만, 이 인생 게임에 함께 참가한 익명의 다른 존재들과 우리들을 묶어 주고 연결시켜
주는 것입니다. 사실 죽음에도 서열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등급의 현실 사이에도 접촉 체계
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광막한 공간 속에서 죽음은 메아리 속에 메아리를
그리며 끝없이 반복될 것입니다......."
호위명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나름대로 판단을 내렸다. 이 사람이 나에게 이야기하
고 있는 것이 단지 지혜나 경험, 학식의 문제라면 주의를 기울일만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만약 이 사람이 나를 비롯한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혹은 이전의 자기 자신보다 더욱 높은
위치에 있는 존재라면 어떻게 될 것인가? 야비르 이븐 아크샤니는 한참 동안 부랑자 생활을
했는데, 당시에 그는 하얀 거북 껍질로 만든 악기를 가지고 돌아다녔다. 야비르 이븐 아크샤
니는 소아시아의 여러 마을을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면서 음악을 연주하고, 공중에 화살을 쏘
아 운명을 예언했으며, 일주일에 두 끼 분량의 밀가루를 홈치거나 혹은 구걸했다. 야비르 이
븐 아크샤니는 1699년에 기이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 무렵 야비르 이븐 아크샤니는 목요무
대를 따라 여행하고 있었다. 야비르 이븐 아크샤니는 사람들에게 항상 골칫거리였다. 사람들
의 파이프 담배에 침을 뱉었고, 마차 바퀴를 한 곳에 묶어 두거나 여러 사람의 모자를 줄로
연결해서 결국 서로 싸움이 붙도록 만들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화를 돋우어 자기에게 덤
벼들도록 해놓고, 사람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자신을 두들겨 패는 동안 지갑을 가로채거
나 주머니 속의 물건들을 털었다. 그는 마치 시간을 그저 흘려 보내는 사람 같았다.
어느 날 아침에 야비르 이븐 아크샤니는 시간이 정처없이 홀러가 버렸다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런데 어떤 농부가 다가와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누런 소를 약속된 시간에 어떤
장소에 갖다 달라고 하면서 돈을 주었다. 그 장소는 한 해 동안 어떤 소긱도 들리지 않유
있던 곳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농부가 소를 끌고 왔는데, 야비르 이븐 아크샤니는 그 소
의 날카로운 뿔에 들이받혀서 즉사하고 말았다. 이븐 아크샤니는 잠이 들듯이 손쉽게 그리
고 재빨리 죽었다. 그 순간 한 그림자가 이븐 아크샤니의 밑에서 나타났다. 어쩌면 그것은
이븐 아크샤니의 몸을 받기 위해 나타난 것 같았다.
이븐 아크샤니의 유물로 하얀 거북 껍질로 만든 류트가 있었다. 그 류트는 바로 그날부터
걸어다니기 시작하더니 다시 거북으로 변해서 흑해로 헤엄쳐 들어 갔다. 음유시인들은 야비
르 이븐 아크샤나가 이 세상으로 돌아을 때, 그의 거북도 다시 류트가 되어 그의 그림자를
대신할 것이라고 믿었다. 야비르 이븐 아크샤니는 네레트바 강변의 트르노보에 묻혔는데, 사
람들은 그곳을 아직까지도 '사탄의 무덤' 이라고 부른다.
그로부터 1년 뒤에 아크샤니와 잘 알고 지내던 네레트바 출신의 기독교도가 사업상의 일
때문에 테살로니카를 방문했다. 그 사람은 어느 상점으로 들어가 두 종류의 고기(돼지고기
와 쇠고기)를 집을 수 있는 갈라진 포크를 사려고 했다. 상점 주인이 손님을 맞기 위해 밖
으로 나왔을 때, 기독교도는 한눈에 상점 주인이 아크샤니라는 것을 알아보고는, 1년 전에
트르노보에 묻힌 것으로 아는데 도대체 지금 테살로니카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어 보
았다. "여보게, 친구. 난 죽었다네. 그러나 알리기 영원의 시간에 하루를 더 덧붙여서 나를
저주했다네. 그래서 나는 이곳에 있는 것일세. 보다시피 난 상인이야. 머리 속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다 팔지 하지만 저울에 달아 달라는 주문만은 하지 말게. 나는 이제
그 어떤 것의 무게도 달아 볼 수 없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사브르 검이나 칼, 포크, 연
장처럼 수를 셀 수 있는 것만을 팔고 있어. 무게를 달아야 하는 것은 팔지 않아. 나는 항상
여기에 있어. 해마다 열한번째 금요일만 빼고 말이야. 그날에는 내 무덤 속으로 들어가 있어
야만 하지 하지만 내 말 잘 듣게. 나는 자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빌려 주겠어. 하지만
자네는 그것을 모두 약속한 대로 돌려주겠다는 내용의 글을 써 주어야 하네." 그날은 파이
프 담배가 쉬잇거리면서 잘 빨리지 않았지만, 네레트바 사람은 아크샤니의 제안을 받아들
였다. 그 사람은 청구서의 날짜를 열한번째 금요일이 지난 라비-알-아왈의 달(이슬람 력으
로 3월)의 어느 날로 정해 물은 다음, 기름숫돌에 갈아서 메밀 씨앗처럼 날카롭게 날을 새
운 검은 지팡이를 들고 집을 향해 떠났다. 물론 자기가 원한 물품은 모두 가지고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다가 네레트바 강변에 이르렀을 때, 그 사람은 거대한 멧돼지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멧돼지가 그의 파란색 비단 허리끈을 한 조각 찢어 갔지만, 그는 지팡이로 멧돼지를
쫒아 버릴 수 있었다. 라비-알-아왈의 달이 다가왔다. 열한번째 금요일이 되기 직전에, 그
네레트바 사람은 테살로니카에서 사 온 권총과 포크를 몸에 지니고 '사탄의 무덤'을 파헤쳐
보았다. 그런데 그 안에는 두 사람이 들어 있었다. 한 사람은 누워서 기다린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옆으로 누워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네레트바 사람이
두 사람게제 권충을 겨누자, 담배를 피우고 있던 사람은 네레트바 사람 얼굴에 대고 연기를
내뿜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니존 세바스트 라고 합니다. 당신은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없소. 나는 다뉴브 강변에 묻혀 있으니까."
이 말과 함께 니콘 세바스트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 자리에는 파이프만이 담겨져
있었다. 그런데 무덤 속에 남아 있던 사람이 얼굴을 돌렸다. 네레트바 사람은 그 사람이 아
크샤니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아크샤니는 네레트바 사람을 꾸짖으면서 말했다. "친
구, 나는 테살로니카에서 자네를 끝장낼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어. 그 대신 나는
자네를 도와 주었지 그런데 자네는 마음을 굳게 먹고 나를 해치우기 위해 찾아왔군."
아크샤니는 이렇게 말하면서 미소를 지었는데, 네레트바 사람은 아크샤니의 입 속에 파란
허리끈이 한 조각 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네레트바 사람은 주춤 주춤 총을 겨누어 아크샤
니를 향해 쏘았다. 아크샤니는 네레트바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이미 너무 늦어 버렸다.
아크샤니는 그 사람에게 약간 상처를 내었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이미 총알이 아크샤니를
꿰뚫었기 때문이었다. 아크샤니는 황소처럼 울부짖었고, 무덤에는 피가 넘쳐흘렀다. 네레트
바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서 무기를 치우다가, 포크가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
다. 네레트바 사람이 권총을 쏘는 동안, 아크샤니가 포크를 훔쳐 갔던 것이다. 또 다른 전설
에 따르면, 야비르 이븐 아크샤니는 결코 죽지 않았다고 한다. 1699년의 어느 날 아침 콘스
탄티노플에서 야비르 이븐 아크샤니는 물통 속에 월계수 잎 하나를 던져 넣고 머리를 물에
담갔다. 그 동안에 시간은 불과 몇 초밖에 흐르지 않았다.
하지만 야비르 이븐 아크샤나가 물통에서 머리를 들어올리며 깊은 숨을 내쉴 때, 그곳은
더 이상 콘스탄티노플이 아니었다. 야비르 이븐 아크샤니는 킹스턴의 호화로운 이스탄불 호
텔에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의 시점은 1982년이었다. 그곳에서 야비르 이븐 아크샤니에게는
아내와 아이가 있었으며, 벨기에 여권을 가지고 있었다.
아테(ATEH: 9세기 초)-이슬람 전설에 따르면, 카자르 카간의 친척 중에는 카간의 궁전
에 살면서 뛰어난 미모로 명성이 잘 알려진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은빛 털이 나 있는 커다
란 경호견들이 그 사람의 방을 지키고 있으면서 꼬리로 자신들의 눈을 채찍질하곤 했다. 그
개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도록 훈련을 받았으며, 사람들은 가끔씩 그 재물이 움직이지
않은 채 앞다리에 오줌을 누는 모습을 보곤 했다. 그 개들은 기습 속 깊은 곳에서 돌을 굴
리는 듯한 소리를 내었는데, 여러 마리가 함께 그 소리를 낼 때에는 서로 조화를 이루었다.
그리고 개들은 잠자리 갈 때, 배의 밧줄을 감아 올리듯이 꼬리를 감아 올렸다. 아테의 두 눈
은 은빛이었다. 아테는 옷에 단추 대신 방울을 달았기 때문에 지나가던 사람들은 소리만으
로도 공주가 궁전의 자기 방에서 웃을 입고 있거나 벗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 것이
다. 하지만 아테 공주의 방울 소리를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테 공주는 두뇌가 명석했
으며, 엄청나게 느린 성격을 타고났다. 아테 공주가 숨쉬는 횟수는 다른 사람들이 재채기하
는 횟수보다 더욱 적었다. 아테 공주는 자신으로 하여금 재빨리 행동하도록 만들려는 사람
들과 사물들을 모두 경멸했다. 하지만 아테 공주 스스로 재빨리 행동하려고 마음먹었던 경
우도 있었다.
이처럼 느린 성격은 옷의 안감이라고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를 할 때, 아테 공주
는 전혀 다른 면을 내보이기 때문이다. 아테 공주는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하
는 일이 결코 없었다. 아테 공주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한 가지 주제에서 다른 주제
로 넘어가는 것을 보면, 마지 새가 한 나뭇가지에서 다른 나뭇가지로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것을 연상시켰다. 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고 나면, 아테 공주는 느닷없이 며칠 전에 했던
이야기의 중단된 바로 그 지점으로 돌아가서 천천히 생각하곤 했다.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
도 없었고, 당시에는 생각해 보기 싫었던 문제에 대해 구불구불한 자신의 생각을 차근차근
펼쳤던 것이다. 이처럼 중요한 주제와 보잘 것 없는 주제를 전혀 구별하지 않았던 것과 모
든 대화의 주제에 대해 전적으로 무관심한 것은 카자르 논쟁이 공주에게 영향을 주어 생긴
불쌍한 습관이라고 믿어진다.
아테 공주는 시인이었다. 하지만 아테 공주의 작품 가운데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것은
다음에 인용한 것이 전부이다.
두 개의 '예' 사이의 차이점은 '예'와 '아니오' 사이의 차이점보다 더욱 클 수도 있다.
그 이외의 작품들은 전부 아테 공주의 작품일 수도 있다고 추측하는 것들이다. 아테 공주
가 쓴 시나 아테의 지도를 받으면서 씌어진 글들이 아랍어로 번역되어 전해지고 있다고 믿
는 사람들이 많다. 카자르 민족과 카자르 민족의 개종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카자르
논쟁에 바쳐진 여러 편의 시에 각별히 관심을 갖고 있다. 이 식물은 원래 모두가 연애시였
다.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은 이 시를 논쟁의 일부분으로 여기게 되었는데, 그렇게 믿게 된
것은 연대기 편찬자들이 책상 앞에 앉아서 카자르 논쟁을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비롯된 것이
다. 아테 공주는 논쟁에 열성적으로 참여하여 유대측 대표와 기독교측 대표들을 성공적으로
따돌렸고, 결국 이슬람교를 대표하던 이븐 코라를 도와 주었다. 아테 공주는 자신의 군주이
자 주인이었던 카자르 카간과 함께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그리스측 대표는 상황이 자신에게 점점 불리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유대측 대표와 결
탁했다. 두 사람은 힘을 모아서 두 가지 지옥을 관장하는 지하 세력에게 아테 공주를 넘겨
주려고 했다. 아테 공주는 그러한 파국을 꾀하기 위해 스스로 제3의 지옥으로 가겠다고 결
심했다. 에블리스는 다른 두 지옥에서 나온 결정을 완전히 반복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테
공주로부터 성을 박탈하고 아테 공주로 하여금 자기가 쓴 시 모두와 자기 나라의 말을 완전
히 잊어버리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쿠(ku)'라는 단어만은 기억할 수 있도록 해 주었으며, 또
한 영원한 생명도 주었다. 에블리스는 아테 공주에게 이븐 하데라시라는 이름의 악마를 내
려 보냈다.
이븐 하데라시는 타조의 탈을 쓰고 나타나서 에블리스의 판결을 집행했다. 그렇게 해서
아테 공주는 영원히 살아남게 되었고 끊임없이 그리고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자신의 생각으
로 그리고 자신의 단어로 되둘아갈 수 있었다. 아테 공주는 영원이라는 시간 속에서 먼저
온 것과 뒤에 온 것을 명확히 구분해 낼 수 없었다. 사랑은 오로지 아테 공주의 꿈 속에서
만 존재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인해 아테 공주는 꿈 사냥꾼 종파에 완전히 빠져 버렸던 것
이다. 꿈 사냥꾼이라는 카자르 사제들은 경전에 언급돼 있는 천상의 명부를 지상의 것으로
참조해 보고자 많은 애를 쓰고 있었다. 아테 공주의 솜씨와 꿈 사냥꾼들의 솜씨가 합쳐지면
서, 아테 공주는 다른 사람들의 꿈 속으로 자기 자신의 생각이나 다른 사람의 생각, 심지어
는 물건까지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아테 공주는 자기보다 천 년이나 늦게 태어날 사람의
꿈 속에까지 손을 뻗칠수 있었고, 아테 공주 자신의 꿈을 꾸는 사람에게는 어떤 물건이라도
보낼 수 있었다. 그 방법은 포도주를 주식으로 하는 말에 전령을 태워서 보내는 것만큼이나
매우 안전하고 빠른 방법이었다. 그 가운데 한 가지 경우를 묘사해 놓은 기록이 지금도 남
아 있다.
아테 공주가 침실 열쇠를 입에 넣고 있을 때, 음악 소리와 함께 어떤 여자가 가냘픈 목소
리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하는 행동은 식사 때 먹는 음식과
같은 것이고, 그 사람의 생각과 느낌은 조미료와 같은 것이죠. 체리에 소금을 넣거나 과자에
식초를 붓는 사람은 누구나 다 비참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이 말이 끝나자 아테 공주의
입 속에 있던 열쇠가 사라졌다. 열쇠는 이러한 이야기를 듣도록 되어 있는 사람에게로 간
것이다. 다우브마누스의 주장에 따르면, 아테 공주는 다우브마누스 시대에도 여전히 살아 있
었다.
17세기에 마수디라는 이름의 류트 연주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은 아나톨리아 출신의 터키
인으로 아테 공주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마수디는 스스로 꿈 사냥꾼의 기술
을 익했고 아랍어로 된 '카자르 사전'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테 공주를 만날 무렵에는
사전의 표제어들을 아직까지도 완전히 파악하고 있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아테 공주가
'쿠' 라는 말을 했을 때 그것을 알아듣지 못했다. '쿠'라는 단어는 '카자르 사전'에 나오는 것
으로, 어떤 과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만약 마수디가 그 당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더라면 자
기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이며, 나중에 그토록 엄청난 노력을
들일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꿈 사냥에 대해서는 그 어떤 사전에서보다도 불행한
아테 공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수디는 아테 공
주를 알아보지 못했으며, 자기에게 찾아온 절호의 기회를 놓쳐 버렸다. 그런 다음에도 마수
디는 그것이 전혀 쓸모없는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마수디의 낙타가 마수디의 눈에 침을
뱉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알 바크리(AL-BAKRI, THE SPANIARD: 11세기)-스페인 출신. 아랍측을 대표하여 카
자르 논쟁을 기록으로 남겨 두었다. 알 바크리가 남긴 글은 최근에 출간되었는데, 이것은 아
랍어로 기록된 것을 마르카트가 번역한 것이다.
카자르 논쟁, 즉 개종에 대한 문헌은 알 바크리가 남긴 것 외에도 두 가지가 더 보존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불완전하기 때문에, 그 문헌에서 언급하고 있는 카자르 민족의 개
종이 유대교로 개종한 것을 말하는것인지 혹은 기독교나 이슬람교로 개종한 것을 말하는지
불확실하다. 알 이스타흐리의 보고서 외에도 소실된 부분이 마수디 1세의 보고서에 보존되
어 있다.
마수디 1세는 '황금 목장'의 저자로 하룬 알 라시드의 재위 기간(786~809년) 동안에 카자
르 민족이 자신들의 신앙을 버렸다고 믿었다. 그 기간 동안에 비잔틴과 칼리프의 영토인 압
바스 제국에서 카자르 땅으로 추방된 유대인이 많았는데, 그곳에서 유대인들은 별다른 저항
없이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이븐 알 아티르 역시 카자르 논쟁에 대한 기록을 남겼지만, 그
의 보고서가 원래 어떤 형태였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는 이븐 알 아티르의 문헌을 디마스
키의 작품에서 발견했다. 결국 가장 믿을 수 있고 모두를 망라한 자료는 알 바크리의 보고
서라고 할 수 있다. 알 바크리의 주장에 따르면, 카자르 민족은 731년 칼리프와의 전쟁이 끝
난 후에 아랍인들로부터 화평과 이슬람교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실제로 이븐 루스 타나 이
븐 파들란과 같은 아랍 역사가들은 카자르 제국에 이슬람 예배소가 많이 있었다고 말한다.
이 사가들은 '이중 왕국' 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어느 시기에 카자르 제국이 이슬람
교를 받아들이고 카간이 이슬람교를 신봉했던 반면에, 카간과 권력을 공유하던 또 다른 군
주 카자르 왕은 유대교를 옹호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뒤이어 카자르 민족은 기독교로 개
종했으며, 763년에 사브리엘 오바디야 카간의 주도하에 종교 논쟁이 벌어지게 되고, 결국 카
자르 민족은 유대교를 받아들였다. 그 논쟁에 참석하기위해 찾아오던 이슬람측 대표는 중도
에 독살당하여 논쟁에 참석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유대인 다우브마누스의 견해에 따르면,
알 바크리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 카자르 민족이 자신들의 종교를 버리고 이슬람교로 개종
한 시기라고 믿었다. 알 바크리의 글을 보면, 이슬람 경전인 코란에는 수많은 단계가 있고
마호메트 역시 다음과 같은 말을 통해 그러한 사실에 동의했다고 한다. "전사에게 보내는
이 책의 글들은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하늘에서 전사가 불러 준 대로 기록한 것이다. 나는
한 글자 한 글자 큰 소리로 따라 읽었으며, 전사는 각 단어를 나에게 여덟 번씩 설명해 주
었다. 글자 그대로의 뜻과 영적인 의미도 가르쳐 주었다. 각 행은 앞 행에 의해 달라지고
또한 뒤따라 나오는 행을 바꾸어 놓는다고 했다. 신비스러운 것과 애매모호한 것, 독특한 것
과 일반적인 것도 모두 설명해 주었다." 의학계의 권위자 자카리아 라지가 지적한 것처럼,
알 바크리도 이슬람교와 기독교 그리고 유대교를 비롯한 세 가지 종교가 경전의 세 단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믿었다. 각 나라는 경전의 여러 단계 중에서 자기 나라의 실정에 가
장 잘 어울리는 것, 다시 말하자면 자신들의 성격을 밑바닥까지 표현해 줄 수 있는 것을 받
아들인다는 것이다. 알 바크리는 의미의 첫번째 단계를 고려에 넣지 않았다. 이것은 글자 그
대로의 의미를 나타내는 단계로 '아밤(avam)' 이라고 불렀으며 어떤 종교를 믿는 사람이든
지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번째 단계는 암시 즉 비유적 의미의 단계로 '카바스(kavas)'
라고 불렀으며, 현명한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었다. 기독교 교회가 바로 이 단계에 해당하
며 현재의 순간과 경전의 소리(목소리)가 이 단계에 들어 있다. 세번째 단계는 '아블리아
(avlia)'라고 부르며, 초자연적 의미를 포함한다. 경전에 나타난 유대교의 단계, 신비로운 심
원과 음악의 단계, 책이 시작되는 단계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리고 네번째 단계 '안비아
(anbia)'는 예언의 및과 내일의 단계로 이슬람교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본질적인 것, 경전의
영혼, 일곱번째로 깊은 심연 등을 나타선다. 카자르 민족은 먼저 경전의 가장 높은 단계 안
비아를 받아들이고 나중에 가서야 다른 단계들을 순서없이 받아들이면서, 이슬람교의 가르
침이 자기들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그런 다음에 카자르인들은 기독
교로 개종하고 또다시 유대교로 개종하게 되지만, 결코 이슬람교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줄 만한 증거가 있다. 카자르 제국이 멸망하기 전에 마지막 카간은 애초에
받아들인 종교로 다시 개종하면서 이슬람교를 신봉했는데, 이븐 알 아티르가 여기에 대한
내용을 자세하게 기록해 두었다.
스페인 사람 알 바크리는 아랍어로 보고서를 작성할 때, 단어 선정에 각별히 신경을 써서
마치 전사의 말투와도 같은 글을 남겼다. 하지만 말년에 노인이 되자 알바크리의 문체가 조
금씩 변했다. 알 바크리는 예순일곱 살이 되면서 삶의 즐거움을 찾기 시작했다. 알 바크리는
대머리였으며 왼손잡이에 오른발잡이였다. 알 바크리가 여전히 자랑삼아 내세울 수 있는 것
이라고는 맑은 두 눈뿐이었는데, 어떻게 보면 작고 파란 물고기 두 마리 같았다.
어느 날 밤 알 바크리는 한 여자가 자신의 방문을 두드리고 있는 꿈을 꾸었다. 침대에 누
워 있던 알 바크리는 문 틈 사이로 달빛에 비친 그 여자의 얼굴을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그 여자는 마치 처녀처럼 생선가루 분을 얼굴에 바르고 있었다. 알 바크리가 문을 열어 주
려고 일어나 보니 그 여자는 일어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 여자의 앞은 키가 알 바크리의 서 있는 키와 비슷했던 것이다. 그 여자는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지만, 그렇게 하는데 시간이 아주 많이 걸렸다. 그 여자의 몸이 너무 컸기
때문에 덜컥 겁이 난 알 바크리가 눈을 떠 보니, 자기가 누워 있던 곳은 침대가 아니었다.
알 바그리가 꿈을 꾸고 있었던 곳은 물 위에 매달린 우리 속이었다. 알 바크리는 스무 살의
청년으로 머리카락이 길고 꼽슬거렸으며 턱수염도 무척 길었다. 그 턱수염에는 전혀 설명될
수 없는 기억이 묶여 있었다. 알 바크리는 턱수염을 포도주에 담근 채, 그것으로 소녀의 가
슴을 씻고 있었다. 알 바크리는 아랍어를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담당 간수는 파리를 빻아
서 그 가루로 만든 빵을 알 바크리에게 주었다. 알 바크리는 그 간수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유창하게 말할 수 있었지만, 알 바크리 자신은 자기가 한 말을 조금도 이해할 수 없
었다. 알 바크리가 들어 있던 우리는 물 위에 매달려 있었다. 밀물이 되면 파도 위로 알 바
크리의 머리만 살짝 올라왔지만, 썰물이 되면 바닷물이 물러가고 강물이 올라왔기 때문에
알 바크리는 손으로 게나 거북을 잡을 수도 있었으며 민물에 바닷물을 씻어 낼 수도 있었
다. 알 바크리는 우리 속에 갇힌 채, 이빨을 사용해서 게나 거북 껍질에 글자를 새겨 넣었
다. 하지만 자기가 써 놓은 것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그 동물들을 물 속에
다시 던져 넣었다. 알 바크리는 자기가 세상을 향해 어떤 전갈을 보내고 있는지 전혀 모르
고 있었던 것이다. 또 어떤 때에는 바닷물이 빠져 나갔을 때 거북을 잡아 보면 껍질에 어떤
전갈이 씌어 있곤 했지만, 알 바크리는 그것을 한 글자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알 바크리는
소금기가 밴 여자의 가슴을 꿈꾸면서 치통으로 죽었다. 알 바크리는 서서히 죽어가면서 자
기가 매달려 있던 나무로부터 경전의 언어를 다시 배우고 있었다.
운지법(FINGERlNG)-음악 용어. 악기를 연주할 때 가장 적절한 음색을 만들기 위한 손
가락 사용법을 의미한다. 17세기 소아시아의 류트 연주자들 사이에서는 유수프 마수디의 운
지법이 높이 평가되었다. '에블리스의 운지법'은 특별히 어려운 부분을 가리킨다.
스페인 식 에블리스 운지법이 있었기 때문에, 무어인들은 이 운지법을 사용했다. 스페인
식 에블리스 운지법 중에는 기타 연주용으로 바꾸어 놓은 것만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데, 이것을 보면 열한번째 손가락을 사용한다는 것이 눈에 뜨인다. 이슬람교 전설에 따르면
에블리스는 열 손가락과 한 개의 꼬리로 악기를 연주했다고 한다. 에블리스의 운지법이 원
래는 상당히 다른 무엇인가를 의미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은 금을 만드는 세부
과정이었거나 봄부터 가을까지 언제나 싱싱한 과일을 거두어들일 수 있도록 정원에 과일나
무를 심는 순서였을 것이다고 한다. 나중에 그것이 음악에 적용되면서 운지법의 형태로 탈
바꿈한 것이라 한다. 그런 식으로 하나의 지혜가 또 다른 오래된 지혜를 자취도 없이 땅 속
에 묻어 버리는 것이다.
바스라가 남긴 파편(FRAGMENT FROM BASRA)-요하네스 다우브마누스의 사전 가
운데 일부였을 것이라고 여겨지던 아랍어 문헌을 18세기에 복사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다우브마누스의 사전은 1691년에 프로이센에서 '카자르 사전'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지
만, 그 즉시 파기되었다. 그러므로 '바스라가 남진 파편' 이 실제로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
는 확인할 길이 없다. 또한 파편으로 남은 이 글이 정확하게 사전의 어느 부분에 나오는 것
인지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신의 영혼이 가장 깊은 곳에서 당신의 육신을 붙잡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번째 천
사 아담 루하니가 자기 영혼의 밑바닥에서 우주를 붙잡고 있다. 이게 1689넌이 지났으나 아
담 루하니는 자기의 궤도를 따라 하향 곡선을 그리면서, 달의 궤도와 태양의 궤도가 만나는
곳, 다시 말하자면 아흐리만의 지옥을 향해 접근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꿈 사냥꾼과 상
상력의 독자를 추격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들은 아담 루하니를 따라가서 그의 육신을 책 모
양으로 조립하려고 애쓰고 있다. 하지만 20세기 말에 아담 루하니는 방황의 상승 곡선을 따
라 올라갈 것이며, 아담 루하니가 다스리는 꿈의 나라는 창조주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우리는 당신들을 죽여야만 할 것이다. 당신들은 사람들의 꿈 속에 흩어져 있는
아담의 육신을 알아보고 그것을 한 곳으로 모아서 땅 위에 가져가 한 권의 책을 엮어 내려
고 하고 있다. 우리는 아담 루하니의 육신으로 만든 책이 형태를 갖추어 나가는 것을 허락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에블리스나 악마들만이 아담 루하니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
지 말아야 한다. 당신들은 기껏해야 아담 루하니의 엉덩이에 나 있는 사마귀나 새끼손가락
의 손톱 정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서 아담 루하니의 엉덩이에 나 있는 사마귀
나 새끼손가락의 손톱이 길어지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 다른 악마들은 아담 루하니의 다른
부위로 모여들려고 하는 사람들을 처리한다. 하지만 환상 속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된다. 당신
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아담 루하니의 거대한 육신에, 당신들이 말하는 그 꿈의 나라에, 손
가락 하나 대어 본 적이 없다. 아담 루하니를 정확히 읽어 내는 일은 아직까지도 여전히 초
보적인 단계에 있다. 이 땅 위에 아담 루하니의 육신이 그 형체를 드러내도록 하려는 책은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꿈 속에 있을 뿐이며, 그나마 그 중 일부는 죽은 자들의 꿈 속에 있으
니, 그 일은 마른 우물에서 물을 끌어내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다.
이븐 하데라시(IBN [ABU] HADERASH)-아테 공주로부터 성을 박탈한 악마. 이븐 하
데라시는 지옥에서 머무르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달의 궤도와 태양의 궤도가 만나는
곳에서 살고 있다. 이븐 하데라시는 시인이었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한 시를 지었다.
내가 그들 가까이 있을 때, 아비시나아 사람들은 소스라지게 놀란 표정을 짖고 있었다. 그
리스 사람들도 터키 사람들도 슬라브 사람들도 나를 만날 때마다 깜짝 놀랐다.
알 마즈루바니라는 사람이 이븐 하데라시가 지은 시들을 엮어 두었다. 알 마즈루바니는
악마들이 지은 시를 모아 12세기에 악마 시집 한 권을 출간했다. 아랍어로 된 아불-알라 알
-사마라 시집과 비교해 보기 바란다. 그 책에도 이븐 하데라시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븐
하데라시는 보폭이 아주 넓은 말을 타고 다녔으며, 지금까지도 그 말의 발굽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루에 한 번씩.
카간(KAGHAN)-카자르 군주를 의미한다, 타타르어 '칸'에서 온 단어인데 타타르어로
'칸'은 왕자 라는 뜻이다. 이븐 파들란의 주장에 따르면 카자르 민족은 카간을 강바닥에 묻
었다. 카간은 언제나 또 한 명의 군주와 권령을 나누었고, 단지 제일 먼저 아침 문안 인사를
받는 정도의 권워만을 더 지니고 있을 뿐이었다. 카간은 유서 있는 왕가에서 나왔는데, 이
가문은 아마도 터키 계통이었을 것이다. 그 반면에 왕 혹은 '베이' 라고 불리던 카간의 동료
군주는 카자르 제국의 평민 출신이었다. 9세기에 씌어진 야쿠비 문서를 보면, 카간은 6세기
에 이미 칼리프를 자신의 대리인으로 삼았다. 카자르 민족의 공동 통치에 대하여, 알 이스타
흐리가 가장 자세하게 기록해 두었다. 아랍 력으로 320년에 씌어진 이 기록은 다음과 같다.
카자르의 정치와 행정에서 그 군주는 카자르 민족의 카간이라고 불린다. 이 사람은 카자
르 왕 '베이'보다 지위가 더욱 높다. 하지만 카간을 임명하는 것('카간' 이라는 직위를 내리
는 것)은 바로 왕이다. 카간을 새로 임명하고 싶을 때, 왕은 카간으로 지명당한 사람을 데리
고 들어와서 비단 조각으로 목을 조른다. 그런 다음에 그 사람이 거의 숨이 끓어질 지경에
이르면 얼마나 오랫동안 지배할 생각입니까? 하고 묻는다. 카간으로 지명당한 사람은 '얼마
만큼이오' 라고 대답 한다. 만약 그 사람이 자신이 대답한 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죽는다면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람이 때가 되어도 죽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이 말
한 그 해를 채우자마자 살해된다.
카간은 유력한 집안 사람들의 거처에서만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카간에게는 명령을
내릴 권리가 없었지만, 사람들은 카간올 존경했으며 카간 앞에서는 모두가 엎드려 있었다.
권력이나 돈이 없어도, 명망이 높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한 명을 골라 카간으로 내세웠다. 누
군가가 그 자리를 떠맡을 차례가 되면, 사람들은 그 사람의 재산 정도를 조사해 보지 않고
카간으로 내세웠다. 이것은 믿을 만한 사람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인데, 그녀는 어떤 젊은이
가 길에서 빵을 파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카간이 죽자, 그 자리에 오를 만한 사람은
이 젊은 친구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젊은이는 이슬람 교도였고 카간이라는 직위는 유
대인에게만 주어지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카간의 동료 군주는 탁월한 전사였다. 한 번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적
으로부터 약탈해 온 노획물 중에 뻐꾸기가 있었는데, 그 뻐꾸기가 울면 땅 밑에 있던 식수
가 우물이 되어 솟아 나왔다. 이 뻐꾸기를 빼앗기게 되자, 적군들은 카자르 민족이 있는 곳
으로 찾아와서 함께 살게 되었다. 시간은 너무나 천천히 흘러가기 시작했다. 과거의 경우에
일곱 살을 먹을 동안, 이제는 한 살을 먹게 되었다. 카자르 사람들은 달력을 고쳐야만 했다.
새로 만든 달력은 기본 단위가 3개월로 구성되어 있었다. 1월은 해의 달, 2월은 달의 달, 3
월은 달빛이 없는 달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20일 만에 태어났다. 여름 동안 곡식을 아홉
번이나 거두어들였으며, 그런 다음에는 겨울이 계속해서 아홉 번이나 찾이왔기 때문에 여름
에 거두어들인 곡식을 먹으면서 살았다. 사람들은 하루에 다섯 번 잠자리에 들었고, 열다섯
번 음식을 먹었다. 우유는 달빛이 없는 밤에만 신선한 상태를 유지했는데, 달빛이 없는 밤이
너무나 오랫동안 계속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디에 길이 나 있었는지도 잊어버리고 말았
다. 마침내 아침이 밝아오면 사람들은 서로를 잘 알아볼 수 없었다. 밤이 계속되는 동안 부
쩍 자라 버린 아이들도 있고 늙어 버린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밤이 다시 다가
오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두 번 다시 이 세대를 보지 못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꿈 사냥꾼들이 새겨 넣었던 글자들은 점점 더 커졌다. 글자 가장자리까저 가보는 것도 힘들
지경이었다. 이제 책으로는 그 크기를 감당해 낼 수 없었으므로, 꿈 사냥끈들은 산비탈에 글
자를 쓰기 시작했다. 강물은 넓은 바다를 향해 끊임없이 홀러갔다.
어느 날 밤 말들이 달빛 아래에서 풀을 뜯고 있을 때, 천사가 카간의 꿈에 나타나 이런
말을 했다. "주님은 당신의 행동에 기뻐하지시 않고 당신의 속마음에 기뼈하십니다." 카간
은 꿈 사냥꾼을 불러 그 꿈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며, 어째서 카자르인들에게 불행이 닥쳤
는지 물어 보았다. 꿈 사냥꾼 가운데 한 사람이 말하기를, 위대한 사람이 오고 있는 중이며,
시간은 그것의 속도에 맞추어 흘러가고 있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카간은 다음과 같은 반
응을 보였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점점 더 작아졌으며, 그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카간은 카자르 민족 사제와 꿈 사냥꾼을 내보내고 유대인, 아랍인, 그리스인을 각
각 한 사람씩 불러다가 자신의 꿈을 설명하도록 명령했다. 카간은 자기 자신은 물론 국민들
까지 포함하여, 세 사람 중에서 가장 훌륭한 해몽을 내놓는 사람을 따라 개종하기로 결정했
다. 카간의 궁정에서 세 가지 종교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고, 카간은 아랍측 참석자인 이븐
코라의 주장에 마음이 흔들렸다. 이븐 코라는 다른 무엇보다도, 다음 질문에 대해 가장 만족
스러운 대답을 제시했다. "우리 눈 뒤쪽의 완전한 어둠 속에서 벌어지는 꿈을 밝게 비추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기억 속의 빛인가? 혹은 달도 밝기 전
에 우리가 미리 끌어다 쓰는 미래의 빛인가?" "어느 경우라도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빛이지
요. 그러므로 어느 대답이 옳은가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질문 그 자체가 존재하
지 않는 것으로 생각해야 하니까요."
이슬람교를 도입한 카간의 이름은 알 수가 없다. 그 카간은 엘리프 표시 아래 묻혔다고
알려져 있다. 다른 자료에 따르면, 그 사람은 원래 이름이 카티브였는데, 신발을 벗고 발을
깨끗하게 씻은 후에 모스크로 걸어 들어갔다고 한다. 그 사람이 기도를 마치고 태양 속으로
들어가자, 그의 이름과 신발은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카자르 민족(KHAZARS)-아랍어로는 '카자르', 중국어로는 '코사' 라고 한다. 터키 계통
의 민족이나. '카자르' 라는 이름의 어원은 터커어로 '카즈마크(떠돌아다니다, 옮겨 다니다)'
혹은 '쿠즈(산에서 그림자가 드리워진 북쪽 부분)'라고 한다. 또한 '하얀 카자르'란 뜻으로
'아크 카자르' 라는 이름이 있는데, 이러한 이름을 사용했던 것은 알 이스타흐리가 언급한
검은 카자르 민족(카라 카자르)과 구별하기 위해 쓴 것이다.
552년 이후에 카자르 민족은 아마 서돌궐 제국에 속해 있으면서 서돌궐의 초대 카간이 술
이나 다르반드에 위치한 메르시아 요새를 함락하는 전투에 참여하였다. 6세기에 사비르 민
족이 카프카스 북부 지역을 차지했다. 하지만 10세기의 역사가이자 서기였던 마수디는, 터키
인들이 카자르 민촉을 '사비르 민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슬람 문헌에서 카자르 민족을
언급할 때, 그것이 언제나 같은 민족을 지칭하고 있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하얀 카자르
민족' 과 '검은 카자르 민족'이라는 이름은 다른 각도에서 바라 볼 수 있다. 아랍어로 '카자
르'가 '하얀' 새와 '검은' 새를 모두 지칭하므로, 하얀 카자르 민족은 낯을, 검은 카자르 민족
은 밤을 대표한다고 가정할 수 있다.
카자르인들은 그들이 기억할 수 있는 역사의 초기에 '우-은-은드-르'라는 강력한 북방 민
족을 물리친 적이 있는데, 이 민족은 '후두드 알 람(세계의 경계)'에 언급되어 있다. 이 부족
의 이름은 그리스인들이 불가리아 사람들을 부르는 이름(온 오구르)과 비슷하다. 그러므로
카프카스 지역 내에서 카자르인들이 처음으로 충돌하 것은 불가리아인들과 아랍인들이다.
이슬람 문헌에 따르면, 아랍-카자르 사이의 첫번째 전쟁은 642년 카프카스에서 발발했다고
한다. 653년에 발란자르 전투에서 아랍 군 사령관이 전사하고 전쟁이 끝났다. 마수디 서기에
따르면, 카자르 민족은 발란자르에서 사만다르로 천도했고, 마지막으로 아틸이나 이틸로 옮
겼다고 한다. 제2차 아랍-카자르 전쟁은 772년이나 772년 직전에 시작되었으며, 773년에 카
자르 민족의 패배로 끝났다. 그 당시는 무하마드 마르완의 시대였고, 카간은 이슬람교를 전
파하고 있었다.
아랍 지리학자 알 이드리시가 제작한 지도를 보면, 카자르 민족의 국가는 볼가 강과 돈
강의 하류 지역에 자리잡고 있었고 사르켈과 아틸도 카자르 민족의 영토에 포함되어 있었
다. 알 이스타흐리는 카자르 지역에서 호레즘으로 향하는 '대상로'와 호레즘에서 볼가로 향
하는 '제국로'를 언급하고 있다.
이슬람 문헌에 따르면, 카자르인들은 밭을 갈고 물고기를 잡는 것에 소질이 있었다고 한
다. 카자르 민족이 사는 땅에는 계곡이 있는데, 겨울이면 그곳에 엄청난 양의 물이 모여들어
호수가 생겨난다. 카자르인들이 그 호수에서 기르는 물고기는 살이 아주 포동포동하게 찌고
기름 없이도 튀겨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불이 와서 물이 마르고 나면, 사람들은 이 계곡에
밀을 심고 비료를 준다. 농사도 역시 아주 잘 되어서, 한 해에 그 계곡에서 아주 풍성한 양
의 밀을 거두어들인다.
카자르 민족은 꾀가 아주 많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굴을 기를 때 나무를 이용했다. 해변
에 나무를 심어 놓고 그 나뭇가지를 구부려 물 속에 집어 넣은 다음, 바위를 매달아 고정시
킨다. 그렇게 하면 2년도 지나지 않아서 나뭇가지에는 굴이 빈틈없이 달라붙게 된다. 3년이
지나고 나면 바위가 떨어져 나가고 나뭇가지가 물 위로 올라오는데, 맛있는 굴을 가득 매달
고 있다.
카자르 제국을 가로질러 흘러가는 강은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하
나의 강이지만, 그 중 절반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나머지 절반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이 강의 이름은 카자르인들이 사용하는 두 가지 연도의 이름과 같다. 왜냐
하면 카자르인들은 사계절 동안 한 해가 아니라 두 해가 지나간다고 믿었으며, 그 두 해는
마치 카자르 강처럼 서로 반대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카자르 민족이 생
각하는 두 가지 연도는 카드를 뒤섞는 것처럼 날과 계절을 뒤섞는다. 그래서 겨울날과 봄날
을 적어 버리고 여름날을 가을날과 적어 버린다. 게다가 카자르 연도 가운데 하나는 미래에
서 과거로 흐르고 다른 하나는 과기에서 미래로 흐른다. 카자르인들은 살아가면서 벌어지는
독특한 사건들은 전부 자기의 지팡이에 새겨 두었는데, 그 때 기호로 사용하는 동물은 그
사건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상황이나 분위기를 나타낸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무
덤을 만들 때, 그 사람의 지팡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 모양으로 무덤을 만들었다. 그
래서 카자르인들의 무덤을 분류할 때 그 모양이 호랑이, 새, 낙타, 시라소니, 물고기 달걀,
염소 같은 것들 가운데 어느 것과 비슷한지를 먼저 살펴본다.
카자르 민족은 잉크를 풀어 놓은 것처럼 검은 카스피 해 깊은 곳에는 눈이 없는 물고기가
있다고 믿었다. 그 물고기는 시계처럼 이 우주의 정확한 시간만을 지켜보고 있다. 카자르 전
설에 따르면, 처음에는 과거와 미래의 모든 창조물과 모든 사건, 모든 사물이 불타는 시간의
강물 속을 헤엄치면서 녹아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전의 존재와 이후의 존재가 비누와 물
처럼 한 곳에 뒤섞였다. 그렇게 되었을 때, 생물체라면 어떤 것이든지 자기가 원하는 만큼
다른 생물체를 참조할 수 있었다. 카자르의 소금 신이, 어떤 생물체라도 자기와 모양이 같은
동물 이외에는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규정을 내리고 나서야 걷잡을 수 없는 방종이 막을 내
렸다. 카자르의 소금 신은 미래로부터 과거를 떼어 내고 현재에 자신의 왕좌를 세윘다. 카자
르의 소금 신은 미래 위를 걸어다니고 과거 위를 날아다니면서 감시의 눈을 돌리지 않았다.
카자르의 소금 신은 자기 자식으로부터 전세계를 창조했지만, 오래된 것은 무엇이든지 꾹꾹
씹어 삼켰다가 다시 젊어진 세상을 뱉어 낸다. 전 인류의 운명과 국가들에 대한 이야기가
우주에 새겨져 있다.
모든 별들이 이미 형성된 언어나 민족의 생명력을 보여 주면서, 동시에 언어나 민족이 편
안하게 휴식할 수 있는 둥우리 모양을 하고 있다. 그래서 우주는 영원을 보여 주며, 인류의
운명은 그 안에서 별처럼 반짝거린다. 카자르 민족은 음표나 문자나 숫자를 읽는 것처럼 색
깔을 읽을 수 있었다. 카자르인들이 모스크나 기독교 신전에 들어가서 벽화를 보고 그것이
채색화나 성상 혹은 어떤 종류의 그림이더라도, 그림에 묘사된 것을 그 즉시 모조리 적어
내거나 읽어 내거나 노래로 불러 내는 것을 보면, 과거의 화가들 역시 이 비밀스럽고 공인
되지 않은 기술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카자르 제국에 유대교의 영향이
미치면서 카자르인들은 그림을 멀리하고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기술을 모조리 잊어버렸다.
이러한 경향은 콘스탄티노플에서 성상 타파주의자들이 득세하고 있을 때 가장 극심했다. 그
후에는 카자르인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그 기술을 완전히 회복할 수 없었다.
카자르인들은 시간이 아니라 공간을 통해 미래를 상상한다. 카자르 신전은 미리 정해진
배열을 엄격하게 지켜서 지어 놓은 것인데, 그 배열을 연결시키면 세번째 천사 아담 루하니
의 모습이 되었다. 아담 루하니는 카자르 공주와 공주가 거느리고 있는 사제들의 표상이었
다. 그들은 어떤 인물이 한 사람의 꿈에서 다른 사람의 꿈으로 옮겨 다니는 경우에, 마을에
서 마을로 그 인물을 따라다닐 수 있었다. 아테 공주가 거느리는 종파의 사제들은 한 사람
의 꿈에서 다른 사람의 꿈으로 이런 인물들을 따라다니면서 성자나 예언자의 인생을 기록할
때처럼 이 인물들의 전기를 쓰는데, 그들의 행적을 기록한 후에 그들의 죽음을 상세히 설명
한다. 카자르 카간은 꿈 사냥꾼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들에게 어떠한 조치를 취할
수도 없었다. 꿈 사냥꾼들은 자신들이 비밀리에 기른 '쿠'라는 식물의 잎을 항상 가지고 다
녔다. 그 잎을 돛의 찢어진 곳이나 상처 부위에 올려 놓으면, 그 즉시 돛이 수리되고 상처가
치료되었다. 그 과정은 마치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 같았다.
카자르 민족의 국가는 매우 복잡한 행동으로 구성돼 있었다. 백성들은 바람 아래에서 태
어난 사람들과 바람 위에서 태어난 사람들로 나누어진다. 바람 아래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카자르 민족의 피를 그대로 이어받은 것을 의미하고, 바람 위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그리스
인, 유대인, 사라센인, 러서아인처럼 세계 각지에서 찾아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카자르 제국
에는 카자르인의 수가 가장 많았고 다른 민족들은 아주 적은 무리를 형성하고 있을 뿐이었
다. 하지만 카자르 제국의 행정 조직은 그렇게 짜여져 있지 않았다.
국가는 지역별로 나누어진다. 유대인, 그리스인, 아랍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에는 각기 알맞
은 이름을 붙였다. 반면 카자르 영토 중에서 카자르인들민이 거주하는 넓은 부분은 여러 개
의 지역으로 나누고 각기 다른 이름을 붙였다. 이렇게 하고 나자, 카자르 지역 가운데 카자
르 식 이름을 가지고 있는 지역은 단 하나뿐이었으며, 나머지 지역은 다른 방식의 이름과
국가 내에서의 위상을 얻게 되었다. 말하자면 북부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국가가 탄생했다.
즉, 카자르 이름과 심지어 카자르 언어까지 포기한 채, 자기들 나름대로 다른 이름을 지닌
국가가 탄생한 것이다. 제국 내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과 여러 가지 주위 상황을
고려해 본 후, 많은 카자르인들은 자신들의 조상과 언어 그리고 자신들의 종교와 관습을 포
기하고 그리스인이나 아랍인 행세를 하면서 더욱 나은 삶을 살아 나가기를 희망했다.
카자르 제국 서부에는 비잔틴 제국에서 온 그리스인과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리스
제국에서 학대받았던 유대인들이 다수를 점하는 지역은 단 한 곳뿐이다. 기독교도들이 다수
를 점하는 지역도 단 한 곳뿐이며, 카자르인들은 그 지역에서 '비기독교 인구'라고 불린다.
국가 전체로 보았을 때, 카자르인의 수는 그리스와 유대 정착민을 합한 수의 다섯 배가 되
지만, 그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권력 균형과 인구의 수는 전국적인 상황과 아무런
관계도 없이 각 지역의 상황에 따라 고려되기 때문이었다.
카자르 궁정 회의에는 각 지역의 대표들이 참여하는데, 그들의 비율은 자신들이 대표하는
인구 수가 아니라 지역의 수에 의해 결정된다. 이것은 국가 전체로 보면 카자르인이 다수이
지만, 궁정에는 카자르인들보다 비카자르인들이 언제나 더 많았다는 뜻이다. 상황이 이런 방
식으로 전개되고 권력이 이런 방식으로 분배되었기 때문에, 비카자르 대표를 따르는 것이
곧 출세의 지름길이 되었다. 카자르 이름을 갖지 않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권장 사항이
었으며, 카자르 궁정으로 향하는 첫걸음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카자르 민족을 맹렬히 공격하
고 카자르 민족의 이익보다 그리스, 유대, 터키 아랍, 고트의 이익을 앞세울 필요가 있다. 이
렇게 된 이유는 매우 복잡하다. 9세기의 아랍 역사가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내 또래의
카자르인이 얼마 전에 나에게 기이한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그것은 대춤충 이러한 내용이
었다. "미래의 일부분만이 우리 카자르인들에게 닥칠 것입니다. 그것은 가장 질기고 가장 꿰
뚫기 어려운 부분이어서, 우리가 그 미래의 주인이 되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강한 바람이 불어올 때처럼 옆으로 서서 그것을 맞이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썩고 닳은 미래의 부스러기와 쓰레기가, 우리가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넓게 퍼져 있다가
진흙 반죽처럼 우리의 발 위로 쏟아져 내릴 것입니다. 미래 중에서 가장 냉혹한 부분만이
우리에게 손길을 뻗고 있습니다. 또는 그 중에서 우리가 사용하면서 이미 짓밟고 부드럽게
만든 부분만이 다가오겠지요. 미래를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때 그리고 사람들이 미래
를 흠쳐갈 때, 아무도 씹어 보지 않았던 더욱 나은 부분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우리는 도
저히 알 수 없습니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카간은 젊은 세대가
권력을 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젊은이들로 하여금 쉰 다섯 살이 될 때까지 기
다리게 하는데, 이것은 오로지 카자르인들에게만 해당된다. 다른 민족 출신들은 지위 상승에
나이의 제한을 받지 않았다. 왜냐하면 카자르인이었던 카간 자신이, 다른 민족은 숫자가 너
무 적기 때문에 조금도 위험하지 않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가장 최근에 발표한 왕실 포고
령에 따르면, 카간과 같은 나이의 사람들이나 외국인이 행정부의 자리를 비워 공석이 생기
더라도 관직을 재임용하지 않고 오히려 자리를 없애 버렸다. 몇 년 안에 다음 세대의 카자
르인들이 쉰 다섯 살이 되어 관직에 오를 자격을 갖추게 되면, 공식으로 남아 있던 이 자리
들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거나 또는 중요성이 사라진 채 아무런 가치도 없는 자리가
되어 버릴 것이다.
카자르의 수도 이틸의 어떤 지점에서는 서로 전혀 알지 못하는 두 사람이 엇갈려 지나가
면, 두 사람은 마치 모자를 바꾸어 쓴 것처럼 상대방의 이름과 운명을 넘겨 받아서 남은 일
생 동안 서로 상대방의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이곳에 줄을 서서 누구든지 다른 사
람과 운명을 바꾸려고 기다리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언제나 카자르인들이 가장 많다. 이 전
쟁의 수도는 카자르 민족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일 뿐만 아니라 나라 최대의 인구 밀집
지역이다. 이곳에서는 포상과 훈장을 국민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기 때문이다. 카자르 제
국에 살고 있는 그리스인, 고트인, 아랍인, 유대인에게는 똑같은 숫자의 훈장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항상 신경을 쓴다. 이것은 러시아인이나 다른 민족들 그리고 카자르 민족에게도 동
등하게 적용된다. 카자르 민족은 수적으로는 가장 많지만 훈장과 재정적인 특혜는 다른 민
족과 똑같이 나누어 갖는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이 사는 남부 지방이나 유대인들이 사는 서
부 지방 그리고 페르시아인, 사라센인 등의 다른 민족들이 거주하는 동부 지방에서는 오직
각 지역 대표들에게만 훈장이 주어질 뿐 카자르인들에게는 돌아가지 않는다. 그 지역에 카
자르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많이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곳은 비카자르 지역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자르인들은 그들의 지역에서는 모든 사람들과 빵을 함께 나누지만, 나머
지 지역에서는 빵 부스러기조자 얻어먹지 못하는 것이다. 가장 숫자가 많다는 이유로 병역
의 의무는 대부분 카자르인들이 떠맡는다. 하지만 사령관은 다른 민족과 똑같은 비율로 배
출된다. 카자르인들에게는 국가를 지켜 나갈 책임이 있다. 카자르인들에게는 제국을 위해 전
쟁터에 나갈 의무가 있는 반면, 카자리아에 살고 있는 유대인, 아랍인, 그리스인, 고트인, 페
르시아인은 각자 개인적인 여건에 따라 자기 모국을 위해 행동한다. 물론 전운이 감돌기 시
작하면 모든 관계에 변화가 찾아온다. 카자르인들은 더욱 많은 자유를 누리게 되고, 어떤 행
동을 하든지 좀 더 관대한 대우를 받는다. 그리고 카자르인들이 과거에 거두어들인 승리를
높이 찬양한다.
카자르 민족은 모두 홀륭한 군인들이었다. 카자르인들은 발가락으로 창이나 칼을 휘두를
수도 있으며 양손을 사용해서 동시에 두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카자르인들 중에는 오른손잡
이나 왼손잡이가 한 사람도 없다. 어린아이들도 전투에 대비해 양손을 다 훈련시키기 때문
이다. 전쟁이 터지기만 하면, 다른 민족들은 모두 자신의 모국과 결탁한다. 그리스인들은 비
잔틴 군대와 함께 미쳐 날뛰면서 기독교 연합군에 들어가려고 노력한다. 아랍인들은 칼리프
와 그의 함대에 참가한다. 페르시아인들은 아랍인과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전쟁이 끝나고 나면, 이러한 것들은 모두 금방 잊혀진다. 카자르인들은 다른 민족에 속하는
사람들이 적군의 진영에서 얻어낸 지위를 정당하게 인정하고, 그들 자신은 물들인 빵으로
다시 되둘아간다. 물들인 빵이란 바로 카자르인들이 국가 내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상징한다.
물들인 빵을 생산하는 것은 카자르인들이다. 곡물이 자라는 지역에서 거주하는 것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카프카스 단층 지역의 저지대에서 살아가는 굶주린 하층민들이 바로 이
물들인 빵을 먹는데, 이 빵은 거의 거저나 다름 없는 값으로 살 수 있다. 물을 들이지 않은
빵 역시 카자르인들이 만드는데, 이 빵은 금화를 치러야 살 수 있다. 그런데 카자르인들은
값비싼 물들이지 않은 빵만을 사도록 되어 있다. 만약 어떤 카자르인이 이 규정을 어기고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는, 싸구려 물들인 빵을 사 먹으면 배설물에서 금방 표시가 난다. 그래
서 특별 단속반이 정기적으로 카자르인들의 변소를 점검해서 이 법을 위반한 사람들을 처벌
한다.
카자르 논쟁(KHAZAR POLEMIC)-디마스키의 기록을 보면, 카자르 민족이 어떤 신앙
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은지 결정하기 위해 논쟁을 벌이는 동안 대지가 심하게 동요했다고
한다. 카자르 카간의 호화로운 궁전에서 격론이 진행되는 동안, 카자르 제국이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카자르 제국 전체가 움직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도 같은 장소에서 다시
만날 수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한 무더기의 카자르인들이 거대한 바위를 여러 개 나르면서
다음과 같이 질문하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이것을 어디에 놓아야 합니까?"
그것은 카자르 제국의 경제적으로, 국경선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아테 공주가 국경 표시를
지우도록 명령했지만, 카자르 국교가 결정될 때까지 땅에 내려 놓아서는 안 된다고 했기 때
문이다. 이것이 정확하게 언제 벌어진 일인지는 입증할 수 없지만, 알 바크리가 적어 놓은
바에 따르면, 카자르인들은 다른 종교보다도 먼저 이슬람교를 받아들였으며 그 시기는 737
년이 지나고 난 다음이었다고 한다. 이슬람교로의 개종이 카자르 논쟁과 같은 시기에 일어
난 일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분명히 같은 시기는 아니다. 결국
논쟁이 벌어진 연도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논쟁의 성격만은 아주 분명하다. 세 가지 종교
(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 가운데 하나를 받아들이라는 강력한 압력을 받으면서 카자르 카
간은 세 사람의 학자를 궁전으로 불러들였다. 칼리프의 영토에서 추방된 유대인, 콘스탄티노
플에서 대학교를 나온 그리스 선학자, 코란을 아랍어로 해석하던 학자, 이렇게 세 사람이었
다. 마지막으로 언급한 사람의 이름은 파라비 이븐 코라였으며, 논쟁에 가장 마지막으로 뛰
어들었는데, 그 이유는 카간의 궁전에 도착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서 기독교 대표와 유대교 대표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고, 카간의 마음이 그리스인에게로
기울기 시작했다. 길쭉한 눈에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그리스인은 카자르 왕의 탁자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멍입니다. 주전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전자가 아닌, 비어 있는 부분이지요. 비어 있는 장소에 무엇인가를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
다. 영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이 아닌 부분이고 머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머리가
아닌 부분, 즉 말을 하는 머리가 아닌 부분입니다. 자, 나의 말을 잘 들으십시오. 사람은 침
묵을 먹고 살지도 않습니다. 사라센 사람들이나 유대인들과는 달리, 우리 그리스인들은 당신
들에게 십자가를 주면서 당신들의 언어를 담보물로 잡지 않을 것입니다. 십자가와 함께 우
리 그리스어를 받아들이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들의 카자르어를 그대로 사용해도 좋습
니다. 하지만 만약 유대교나 마호메트의 율법을 받아들인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입니다. 만약
그 두 가지 종교 가운데 하나를 받아들인다면, 그들의 언어 또한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카간은 이 말을 듣고 그리스인의 교리를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그런데 아테 공주가 다음
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이것은 새 장수로부터 전해 들은 어야기입니다. 카스피 해 기슭의
어느 마을에 유명한 예술가 두 사람이 있었답니다. 두 사람은 부자지간이지요. 새 장수의 이
야기에 따르면, 아버지는 화가인데 그 사람이 그리는 그림 속의 파란색은 세상 어느 파란색
보다 더 파랗기 때문에 누구나 그 사람의 그림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답니다 아들은 시인인
데 사람들은 누구나 그 아들의 시를 전에 한 번 들어 본 적이 있다고 생각한답니다. 다른
시에게서 들은 것이 아니라 식물아니 동물에게서 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한 번은 내
가 여행 반지를 끼고 카스피 해 기슭으로 떠난 일이 있습니다. 그 마을에 도착한 다음, 나는
사람들에게 물어서 두 사람을 찾았습니다. 나는 두 사람을 당장에 알아보았습니다 새 장수
가 설명한 그대로였습니다 아버지는 거룩한 그림을 그리고 아들은 경이로운 시를 지었는데
나는 그 언어를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사용하는 단어들이 사랑스럽
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두 사람 다 좋아했으며, 그들 역시 나를 좋아했습니다. 두 사람은
나에게 이렇게 묻더군요. '우리 두 사살 중에서 누굴 선택하겠습니까?' '나는 아드님을 선택
하겠습니다. 아드님은 번역자가 필요없느니까요.'"
그러나 그 그리스측 대표는 공주에게 말려들고만 있을 수 없어 이렇게 말했다. "불구인
두 사람을 합쳐서 한 사람의 인간을 만들었기에 우리 인간은 온전한 존재가 됩니다. 외눈박
이 두 사람을 합쳐 여자 한 명을 만들었기 때문에 여자들은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
스인은 이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청년이였을
때, 어떤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여자는 나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지요. 하지만 나
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여자의 이름은 소피아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소피아에게
내 사랑을 열정적으로 털어놓았습니다. 소피아는 결국 나를 끌어안았고, 나는 얼굴 위로 소
피아의 눈물이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는 소피아의 눈물을 맛보고는 소피아
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렸지만, 그런 것은 나에게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소피아를 끌어안고 있을 때, 가까운 숲 속에서 별안간 말발굽 소리가 들
렸습니다. 그런데 소피아가 나에게 이렇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입맞춤 소리보다 더
욱 커다랗게 들려오는 저 말발굽 소리는 하얀 말이 내는 소리지요?' '잘 모르겠소. 말이 모
습을 드러내기 전에 어떻게 알 수 있겠소?' 나는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이해하지 못하는군
요.' 바로 그 순간 숲 속에서 하얀 말이 모습을 나타내었습니다. '아니오, 그렇지 않소. 난
모든 걸 이해했소.'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소피아에게 내 눈이 무슨 색인지 물어 보았습니
다. '녹색입니다.' '소피아, 내 눈은 파란색이오......'"
카간은 그리스측 대표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고 기독교 신을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감지한 아테 공주는 자리를 뜨기로 결심했다. 아테 공주는 물러나오기 전에 카간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 아침에 나의 주인님은, 내가 마음 속으로 주인님과 똑같이
느끼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기다란 손톱 끝에 호각 소리가 나는 은 골무를 낀 채, 수
연 파이프를 피우면서 녹색 연기를 동그랗게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주인님의 질문에 나는
'아닙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파이프가 내 입에서 떨어져 배렸습니다. 주인님은 낙
담한 채, 그대로 떠나 버렸는데, 그것은 주인님이 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주인님이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쾌요!라고 대답했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거야!'라고 말입니다."
카간은 이 말을 듣고 어깨를 움찔거렸다. 그리스인이 신발 대신 천사의 목소리를 신고
있었지만, 전실은 반대편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카간은 마침내 칼리프가 보낸
이븐 코라를 돌아보면서 자기가 며칠 전에 꾸었던 꿈을 해석해 달라고 요청했다. 천사가 카
간의 꿈에 나타나서 '주님은 당신의 행동에 기뻐하시지 않고 당신의 속마음에 기뻐하십니
다.'라는 말을 전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이븐 코라는 카간에게 질문했다. "꿈에 나타난
것은 깨달음의 천사였습니까? 계시의 천사였습니까? 천사가 사과나무 모양으로 나타났습니
까? 아니면 다른 모양으로 나타났습니까?" 카간이 둘 다 아니었다고 대답하자, 이븐 코라는
자기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물론 둘 다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제3의 천사이니까요.
제3의 전사는 바로 아담 루하니 입니다. 당신과 당신의 사제들은 아담 루하니에게로 올라가
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의 속마음이고, 그것은 선한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
은 당신의 꿈과 당신의 꿈 사냥꾼들이 쓰고 있는 책을 아담이라고 생각함으로써 그것을 이
록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의 행동인데, 그것은 잘못입니다. 그 행동이란 것은 경전
이 없는 빈 자리에 당신 자신의 책을 참조해 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경전이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며 우리로부터 인정을 받고 우리가 함께 공유하며 우리 자신의 책을 없애 버
리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카간은 이븐 코라를 부등켜안았다. 그래서 모든 것이 끝나게 되었다. 카
간은 이슬람교를 선택한 다음 신발을 벗고 알라에게 기도를 드렸으며, 카자르 전통에 따라
출생 전에 이미 정해져 있었던 자신의 이름을 태워 버리라고 명령했다.
코라, 파라비 이븐(KORA, FARAB1 lBN : 8, 9세기)-카자르 논쟁 당시의 이슬람측 대
표. 이븐 코라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남아 있는 기록 중에는 서로 모순되는
내용이 있다. 카자르 논쟁에 관한한 가장 권위 있는 이슬람 역사가 알 바크리는 이븐 코라
에 대해 조금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렇게 한 것은 알 바크리가 이븐 코라를 존경했기 때문
이라고 믿어진다.
이븐 코라는 자기 앞에서 사람들이 누군가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을 싫어했으며, 심지어
이븐 코라 자신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조차 싫어했다고 한다. 이븐 코라는 이름 없는 세상이
더욱 깨끗하고 더욱 순수하다고 믿었다. 한 개의 이름 뒤에는 사람과 미움, 삶과 죽음이 동
시에 숨어 있다. 이븐 코라는 자신이 언제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했다. 한 번은 이븐 코라가 물고기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바로 그 순간 머리
가 물에 빠졌고 물고기가 그 파리를 먹어 버렸다는 것이다.
어떤 기록에 의하면 이븐 코라는 카자르 논쟁에 초대받았지만, 카자르 수도에 도착할 수
가 없어서 그 유명한 논쟁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한다. 알 바크리의 주장에 따르면, 카자르
논쟁에 참석한 유대측 대표가 사람을 시켜 이븐 코라를 독살하거나 칼로 베어 버리도록 명
령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자료에 따르면 이븐 코라는 길에서 자제하는 바람에 논쟁이 이
미 끝난 다음에야 도착했다고 한다. 그러나 논쟁 결과를 보면, 이슬람측 대표는 분명히 카자
르 카간의 궁전에 가 있었다. 논쟁 참석자들은 이븐 코라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왜냐
하면 이븐 코라가 죽었으므로 장례식에서 이븐 코라에게 끼워 줄 반지를 준비해야겠다고 생
각하던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븐 코라는 침착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서, 양파 수프
가 담긴 접시 같은 눈으로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래 전에 내가 어렸을 때, 나는 나비 두 마리가 풀밭에서 서로 부딫히는 모습을 보았습
니다 앝록달록한 가루로 된 점박이 무늬가 한 날개에서 다른 날개로 옮겨 갔으며 두 마리는
그렇게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난 그 일에 대해 완전히 잊어 버렸습니다 지난 밤에 길
에서 어떤 사람이 나를, 누군가 다른 사람으로 오해하고는 사브르 검으로 찔렀습니다. 내가
계속 길을 가려고 일어나 보니 얼굴에 피가 아니라 나비 가루가 묻어 있더군요."
이븐 코라가 이슬람교의 이름 안에서 행했다고 믿어지는 주요한 논쟁 과정 가운데 하나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카자르 카간은 세 가지 종교의 대표자(유대, 아랍, 그리스)들에게
한 개의 동전을 보여 주었다. 그 동전은 삼각형 모양이었다. 한쪽 면에는 다섯 개의 선으로
금액이 표시되어 있고, 다른 쪽 면에는 어떤 사람이 관 위에서 세 명의 청년에게 희초리 한
묶음을 보여 주고 있는 그림이 있었다. 카자르인들은 이런 식으로 돈에 표시를 했다. 카간은
다르위시, 랍비, 수도사에게 동전에 그려진 장면을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슬람측 자료
에 따르면, 논쟁에 참여한 기독교측 대표는 그 그림이 고대 그리스의 전설과 관련된 것이라
고 말했다. 다 죽게 된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부러지지 않는 회초리처럼 힘을 합쳐야만 강해
질 수 있으며 뿔뿔이 흩어지면 하나씩 하나씩 쉽사리 부러진다는 것을 보여 주는 장면이라
고 했다. 한편 유대인은 그 장면이 인체의 팔다리를 나타낸다고 주장했다. 팔다리가 같이
노력해야만 인체가 올바른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븐 코라는 이 두 가
지 해석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븐 코라는 삼각형의 동전이 지옥에서 주조된 것이라고 주장
했다. 그러므로 그 위에 그려진 장면은 자기 선조들이 했던 것처럼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
다. 그것은 살인자를 그려 놓은 것이다. 그 사람은 살인을 저질렀으므로 독약을 마시도록 형
벌이 내려졌으며, 자기를 위해 마련된 관 위에 벌써 누워 있는 것이다. 살인자 앞에 서 있는
것은 바로 지옥의 악마들이다. 유대교 지옥의 악마 아스모데우스와 이슬람교 지옥의 악마
에블리스와 기독교 지옥의 악마 사탄이다. 살인자는 회초리를 세 개 들고 있는데, 그것은 세
악마가 그 살인의 희생자를 보호해 준다면 살인자는 죽음을 당할 것이며 악마들이 그 희생
자에게 불리한 결정을 내리면 살인자는 목숨을 구한다는 뜻이다. 삼각형 모양의 동전이 전
하는바는 이렇듯 명백하다. 지옥에서는 인간들에게 경고할 생각으로 그 동전을 이 땅에 보
낸 것이다. 살해당한 자들 가운데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 악마 중에서 어느 하나도 편을
들어 주지 않는 자는 끝내 복수할 수 없을 것이며, 그를 죽인 자는 목숨을 구할 것이다. 그
러므로 가장 위험한 일은 세 가지 세상 중에서 어느 하나에도 속하지 않는 것이며, 카자르
민족과 그들의 카간이 바로 그런 위험에 처해 있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당신들을 보호해
주지 않을 것이며, 당신들이 살해당한다고 하더라도 복수를 해 주겠다고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이븐 코라는 카간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믿음을 버리고 세 가지의 유력한 신
앙 가운데 하나로 개종하는 것이 필수적이고도 의심할 바없이 유용하다는 사실을 카간에게
보여 주려고 한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렇게 개종을 할 때, 카간에게 이 세상을 가장 잘
해석해 줄 수 있으며 카간의 질문에 가장 올바른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따라가야 한다
는 것을 말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븐 코라가 동전 속의 장면을 가장 설득력 있게 해석한 것
같았으므로, 카간은 이븐 코라의 주장을 받아들여 이슬람교의 가르침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카간은 허리띠를 풀어 버리고 알라에게 기도드리기 시작했다. 이븐 코라가 도중에 독살당했
기 때문에 카자르 논쟁에 참여하지 못했고, 심지어는 카자르 카간의 궁전에 도착하지도 못
했다고 믿는 이슬람측 자료에서는 이븐 코라의 전기라고 주장하는 어떤 문헌을 인용한다.
이븐 코라는 자신의 전 생애가 어떤 책에 이미 적혀 있으며, 오래 전에 누군가가 말해 준
이야기에 의해 자기 인생의 형체가 잡혀 있다고 확신했다. 이븐 코라는 '천일야화'를 비롯하
여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아주 많이 읽었지만, 자기 인생의 기준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온
이야기는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븐 코라에게는 말이 한 마리 있었는데, 그 말
은 너무나 빨라서 새처럼 날아다녔고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때조차도 귀가 펼럭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사마리아의 칼리프가 이븐 코라에게 이틸로 가서 카자르 카간을 설득하여
이슬람교로 돌아서게 하라고 말했다. 이븐 코라는 다른 것보다도 카자르 공주 아테의 시를
손에 넣었으며, 그 가운데에서 자신이 오랫동안 찾아왔던 것, 즉 자기 삶의 모형이라고 여겨
지는 이야기를 발견했다. 단 한 가지만이 빗나가는 것이 있어 이븐 코라를 놀라게 했는데,
그것은 그 글이 남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자의 이야기였다는 점이다. 그것말고는 모두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이븐 코라는 그 글을 아랍어로 번역하면서, 진실이 어떻게 해서 속임
수에 불과한 것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그 글을 번역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행자와 학교에 해하여
그 여행자가 가지고 있는 여행 허가증을 동부에서는 서부식이라고 보고 서부에서는 동부
식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중부와 서부 양쪽 다 그 여자의 여행 허가증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된다. 그 여자의 여행 허가증은 두 개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남성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왼쪽으로는 여성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곳곳에 오솔길이 깊이 파인 숲 속을 걸으면서, 그 여
자는 긴 여행의 목적지인 유명한 학교를 찾는다. 그 학교에서 이 여행자는 가장 중요한 시
행을 통과해야만 한다. 이 여행자의 배꼽은 굽지 않은 빵의 배꼽과 같다. 이 사람의 여행은
너무나 길어서, 몇 해를 먹어치운다.
마침내 이 숲에 도착하고 나서, 여행자는 두 사람을 만나 그들에게 길을 묻는다. 그 사람
들은 학교가 어디에 있는지 안다고 해놓고서도 여행자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갖고 있던 무
기에 몸을 기대고 있다. 그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그러다가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손가
락질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저쪽으로 가시오. 첫번째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어지고, 다시
한 번 더 왼쪽으로 꺾어지시오. 그렇게 하면 바로 학교로 들어갈 수 있소." 여웽자는 그 사
람들에게 감사하고, 그들이 자신의 여행 서류를 검사하지 않은 것이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한
다. 그랬더라면, 그들은 자신을 외국인으로 의심하고 이렇게 여행하는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
지 알고 싶어했을 것이다.
여행자는 계속 길을 따라 걸어간다. 첫번째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어지고 그리고 다시
왼쪽으로 꺾어진다. 설명에 따라 가는 일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두번째로 꺾어져
서 가다 보니 학교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널따란 늪이 나온다. 그리고 무장한 두 사람이 그
늪 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여행자가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두 사람은 미소를 거두
지 않은 채 정중하게 사과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당신에게 엉뚱한 방향으로 가라고
했소. 당신은 첫번째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지고 다음번에도 다시 오른쪽으로 꺾어지
는 것이 좋았을 것이오. 그렇게 하면 그곳에서 학교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오. 하지
만 우리는 당신이 정말로 길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알아볼 필
요가 있었소. 하지만 이제는 너무 늦었소. 오늘중으로는 학교에 도착할 수 없을 것이오. 다
시 말하자면 당신은 결코 학교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오. 내일이면 학교
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당신은 이 작은 시험으로 인해서 전 생애의 목표를 잃었
소. 하지만 우리가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당신도 이해해야만 합니다. 사악
한 의도를 가지고 학교를 찾는 여행자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오. 그렇다
고 해서 당신 자신을 탓하지는 마시오. 당신이 만약 반대 방향을 선택해서, 왼쪽으로 가지
않고 오른쪽으로 갔다고 하더라도 역시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오. 우리는 당신이
길을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에게 길을 물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당신이 속임수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당신에 대해 조사해야만 했을 것이오. 당신의 목적이 분명히 의심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우리에게 숨기려고 한 것이기 때문이오. 그러므로 당신은 결국 학교
에 갈 수 없는 것이오. 하지만 당신은 인생을 헛되이 희생한 것이 아니오. 당신의 인생은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입증하는 일에 사용된 것이오. 그것은 결코 하찮은 일이 아니오."
그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말했지만, 여행자는 나름대로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여행자는
자기 여행의 허가증을 내보일 필요가 없었고 거대한 늪 옆에 서 있던 그 사람들은 여행자의
여행 허가증이 어떤 색깔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여행자는 그들에게 속임수를 쓰고
그들의 조사를 방해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녀의 인생은 헛되이 희생된 것이다. 물론 세
사람 모두 여행자의 인생이 헛된 것이었다고 생각했지만, 여행자 자신이 보는 관점과 두 사
람이 보는 관점은 서로 달랐다. 여행자는 두 사람의 조사에 대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신경
을 썼을까?
하지만 그 결과는 똑같다. 여행자의 인생 목표는 더 이상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여행자는 어쩔 수 없이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여행차의 목표는 학교 그
자제가 아니라, 학교로 가는 길이 어디인가 하는 것에 있었지만, 그것도 역시 결과적으로 헛
된것이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갑자기 이러한 탐색의 기억들이 점점 더 아름다운 것처럼 느
껴지지 시작한다. 뒤를 돌아보니, 여행의 여러 각지 아름다움들이 눈에 뜨이기 시작한다. 여
행자는 결론을 내리기를, 가장 중요한 일은 여성의 끝에 도착하는 학교 앞에서 벌어지는 것
이 아니라 훨씬 더 전에 여행의 전반부에 벌어졌으며, 이 여행이 헛되이 끝나지 않았더라면
그 중요한 일을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여행자는 대리점 주인이 재고를 정
리하는 것처럼, 기억 속에 남겨진 것들을 가지고 자신의 추억을 재배치하면서 자신의 머리
속에 거의 기록되어 있지 않았던 사소한 일들에 대해 새롭게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여
행자는 품목의 수를 계속 줄여 나가면서, 그 사소한 일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
었는지 찾아본다. 점점 더 엄격하게 선택하다 보니, 결국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한 장면에 도
달한다.
탁자가 있고, 그 위에는 두 가지 포도주를 섞어 놓은 술잔이 놓여 있다. 조금 전에 잡은
도요새를 낙타 똥으로 굽고 있다. 이 새는 간밤에 꾸었던 꿈으로 아직까지도 영양이 여전히
남아 있다. 뜨거운 빵에는 우리 아버지의 어두운 얼굴과 우리 어머니의 배꼽이 보인다. 섬
에서 기른 어린 양과 늙은 양으로부터 짜낸 우유로 만든 치즈, 음식을 차려 놓은 탁자 위의
타오르는 양초의 불꽃 그리고 경전과 흘러가는 주마드-알-아히르(이슬람 력 6월)의 달이 보
인다
쿠(KU)-카스피 해 지방에서 나는 열매의 일종. 다우브마누스는 이 열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어 두었다. 카자르 민족이 길러 내는 열매 중에는 카자르 제국 이외에는 이 세상 어
느 곳에서도 자라나지 않는 것이 있다. 이 열매는 외부에 생선 비늘이나 솔방울 껍질 같은
것으로 뒤덮여 있다. 이 열매가 열리는 나무는 키가 매우 크고 나뭇가지에 매달린 열매는
마치 살아 있는 생선처럼 생겼다. 이 열매는 때때로 검은 방울새 울음과 비슷한 소리를 낸
다. 열매를 먹어 보면 매우 차갑고 약간 짜다. 이 열매는 아주 가볍고 안에 심장처럼 박동하
는 씨가 들어 있기 때문에 가을에 나믓가지에서 떨어질 때, 잠시 동안 공중에 떠서 바람의
물결 속을 헤엄쳐 가듯이 깃털을 퍼덕거린다. 남자 아이들은 새총으로 이 열매를 겨누고, 배
조차 때때로 속아 넘어가서 이 열매를 생선으로 착각하고 주둥이로 채곤 한다.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 다음과 같은 카자르 속담을 이해할 수 있다. "매와 비슷한 아랍인들은 우리를
생선으로 알고 잡아먹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생선이 아니라 '쿠'다." 이 열매의 이름이었
던 '쿠'라는 단어는 카자르 공주 아테가 자기 나라 말을 완전히 잊어버린 다음에도 악마가
공주의 기억 속에 남기 두었던 단 하나의 단어 였다.
때때로 밤이면 '쿠쿠' 하는 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그것은 아테 공주가 잊어 버린 자신의
시를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단 하나의 단어로 소리내어 울고 있는
것이다.
마수디, 유수프(MASUD1, YUSUF : 17세기 중반~1689넌 9월 25일)-유명한 류트 연주
자였으며 이 책의 저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마수디의 고향은 아나톨리아였다. 많은 사람들
은 마수디가 왼손잡이 여자로부터 류트를 배웠는데, 그 여자는 자신의 악기 줄을 거꾸로 해
놓았다고 한다.
17,8세기에 아나톨리아의 음유시인들이 사용하던 운지법을을 최초로 만들었던 사람이 마
수디라든 점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전설에 따르면 마수디는 악기 소리를 들어 보
기도 전에 그 악기를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조율하지 않았던 류트가
있으면, 마수디는 신경이 몹시 예민해져서 먹은 것을 모두 토해 버릴 정도였다. 마수디는
별을 보면서 악기를 조율하고 음을 맞추었다. 마수디는 시간이 지나면 연주자의 왼손은 할
일을 잊어버리지만 오른손은 결코 할 일을 잊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마
수디는 매우 이른 나이에 음악을 그만두었고, 그것에 대한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
다. 마수디는 3일 밤을 계속해서 자기 가족이 한 사람씩 죽어가는 꿈을 꾸었다. 첫날 밤은
아버지가, 둘째 날 밤은 아내가, 셋째 날 밤은 남동생이 죽었다. 마지막으로 넷째 날 밤에는
두번째 아내가 죽는 꿈을 꾸었는데, 얼룩덜룩한 아내의 눈은 주위로 인해 마지 꽃처럼 색깔
이 바뀌었다. 아내가 눈을 감기 이전에, 두 눈은 씨까지 비쳐 보이는 노란 포도알 같았다.
아내는 배꼽 위에 촛불을 얹고 누워 있었으며, 누군가가 아내의 머리카락으로 턱을 묶어서
미소를 짖지 못하도록 해 놓았다. 마수디는 잠에서 깨어났으며, 그런 다음에 죽을 때까지 한
번도 꿈을 꾸지 않았다. 마수디는 온몸에 소름이 오싹 끼쳤다.
마수디에게는 두번째 아내가 없었다. 마수디는 다르위시를 찾아가서 이런 꿈에 대해 어떻
게 생각하는 것이 좋을지 물어 보았다. 다르위시는 경전을 펼치더니,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읽
어 주었다. "아,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형제들에게 너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말거라!
그들은 너를 제거해 버릴 음모를 꾸밀 것이다." 마수디는 이 대답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으
므로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아내에게 그 꿈이 의미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물어 보았
다. 아내는 이렇게 대답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마십시오! 그
꿈은 당신 자신이 아니라 그 꿈 이야기를 듣는 사람에게 해를 끼칠 것입니다." 그래서 마
수디는 꿈 사냥꾼 가운데 한 사람을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꿈 사냥꾼들은 이런 일에 대해
직접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꿈 사냥꾼들은 그 수가 점점 줄어들었으며, 그 당
시에는 예전에 비해 훨씬 더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마수디에게 꿈 사
냥꾼을 찾아가려면 서쪽보다 동쪽으로 가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충고 했다. 왜냐하면 꿈
사냥꾼들은 모두 자신들의 근원과 자신들의 기술이 막연하나마 카자르 민족으로부터 유대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자르 민족이란 카프카스 지방에 살던 사람들로 그들이
사는 곳에는 항상 풀이 까맣게 돋아났다.
마수디는 류트를 들고 동쪽을 향해 걸어갔다. 마수디는 머리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누군가 나에게 아침 인사를 하기 전에 그 사람을 속이는 것이 낫다. 나중에는 너무 늦지 때
문이다.' 그래서 마수디는 서둘러 꿈 사냥꾼의 사냥에 착수했다. 어느 날 밤 마수디는 잠
을 자다가 깨어났다. 눈앞에 어떤 노인이 서 있었는데, 그 노인의 턱수염은 고슴도치처럼 끝
부분만 회색이었다. 낯선 노인은 마수디에게 혹시 꿈에서 백포도주 색깔처럼 두 눈이 얼룩
덜룩한 여자를 본 일이 없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 눈은 마지 꽃처럼 주위로 인해 색깔이
변하지요!" 누군지 알 수 없는 방문자가 그렇게 설명했다. 마수디는 그런 여자를 본 일이
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습니까?" "죽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압니까?" "꿈
속에서, 그 여자는 나의 두번째 아내였는데, 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죽었습니다. 그 여자는
배꼽 위에 촛불을 얹고 얼굴을 머리카락으로 묶은 채 누워 있더군요." 이 말을 듣자, 노인
은 울먹이면서 간신히 말을 이어 갔다. "죽었어! 내가 바스라에서부터 줄곧 따라오고 있었는
데....... 그 사람의 혼령은 꿈에서 꿈으로 계속 옮겨 다녔습니다. 난 지난 3년 동안 계속 그
뒤를 밟았지요. 그 사람의 꿈을 꾸는 사람을 찾아 다니면서 말입니다." 비로소 마수디는 지
금까지 찾아 헤매던 사람이 바로 눈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 여자의 뒤를 쫒아
서 그겋게 먼 길을 여행하셨군요. 당신은 꿈 사냥꾼인가요?" "내가 꿈 사냥꾼이냐고요?"
노인은 깜짝 놀랐다. "어째서 그런 질문을 하는 것입니까? 이보시오, 당신이 바로 꿈 사냥
꾼입니다. 난 단지 당신의 기술을 존경하는 평범한 사람일 뿐입니다. 꿈에서 꿈으로 떠돌아
다니는 인간들은 타고난 꿈 사냥꾼의 꿈 속에서만 죽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수천 마일
을 여행하다가 당신의 꿈 속에서 죽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당신은 꿈을 꾸지 않을 것입
니다. 이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사냥을 계속해 나가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포도주
색깔의 눈을 가진 여자를 찾아 다니는 것은 아니지요. 그 여자는 당신과 다른 모든 사람들
을 위해 죽었습니다. 당신은 새로운 사냥감을 추격해야 합니다."
마수디는 바로 이 노인으로부터 자신의 새로운 직업에 대해서 처음으로 설명을 들었고,
꿈 사냥꾼에 대해 알아 두어야 할 모든 것을 배웠다. 노인은 마수디에게 다음과 같이 주의
를 주었다. "이 기술을 숙달하려면 홀륭한 문헌 자료와 구전 자료를 접할 수 았어야 합니다.
아마도 '타우바'를 겪었던 수피들은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모든 법칙을 따름으로써 '막캄'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누구나 그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을 하도록 타고난 사람
만이 정말로 성공할 수 있습니다. 전상의 밝은 빛 '할'을 얻어낼 수 있도록 신께서 친히 도
와 주시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가장 뛰어난 꿈 사냥꾼은 카자르인들이었지만, 그들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습니다. 오로지 그들의 기술만이 전해 내려옵니다. 그 중 일부는 그들이 남
긴 사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카자르인들은 사람들의 꿈 속에 나타나는 인물들을 모두 추
적할 수 있었고, 야생동물을 사냥할 때처럼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옮겨 다닐 수 있
었으며 심지어는 동물이나 악마의 꿈 속까지 드나들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당신도 분명히 눈치챘을 것입니다만, 사람들은 잠에 빠져들기 전에 의식과 꿈
사이의 애매모호한 영역에서 지구 중력과의 관계를 조정하지 않습니까? 인체에 작용하는 지
구 중력이 점점 더 증가함에 따라 인간의 생각은 지구가 잡아 당기는 힘을 박차고 나갑니
다. 바로 그 때에 생각과 세상을 가로막고 있던 칸막이에 구멍이 송송 뚫리게 되는데, 사람
들의 생각은 그 사이를 통해 빠져 나갈 수 있습니다. 냉기가 사람의 몸 속으로 가장 손쉽게
스며드는 그 짧은 순간에 사람들의 생각이 넘쳐 나오므로, 별로 힘들이지도 않고 그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방면으로 전혀 훈련받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잠
에 빠져드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바로 그 순간에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
는지 그리고 그 마음이 누구에게로 향하고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만약 꾸준히 노력
하여 인간의 영혼이 열리는 순간을 관찰하는 기술을 터득할 수 있게 된다면, 그 때에는 꿈
속의 훨씬 더 깊은 곳으로 훨씬 더 오랜 시간을 따라 들어갈 수 있을 것이며, 열린 눈의 물
속에 들어가 사냥을 하듯이 꿈 속에서 사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꿈 사냥꾼이
만들어집니다. 카자르 민족은 그들을 '꿈꾸는 자들의 고백자'라고 불렀는데, 이 꿈꾸는 자들
의 고백자들은 자신들이 관찰한 꿈의 내용을 정성껏 적어 두었습니다. 이것은 마지 하늘 위
에서 어떤 장소를 관찰하는 방법과 같았으며, 태양과 별을 보고 운명을 읽어 내는 사람들과
도 같았습니다. 꿈 사냥꾼의 후견인이었던 카자르 공주 아테는 가장 뛰어난 사냥꾼들과 그
들이 사로잡은 사냥감의 전기와 함께 꿈 사냥 기술에 관련된 모든 것을 카자르 민족의 사전
형식으로 모아 두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꿈 사냥꾼들은 '카자르 사전'을 다음 세대로 물려
주었으며,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각자 사전의 내용을 추가해 넣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목적
을 갖고, 수세기 전에 바스라에 학교를 건립하여 '순수한 형제들' 혹은 '충실한 형제들'이라
고 불렀습니다. 이 종파에서는 자신들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철학자 달력'과 '카자르 사
전'을 펴냈습니다. 하지만 알 무스탄드지 칼리프는 이 두 권의 책과 함께 꿈 사냥꾼 이슬람
지부에서 펴낸 책 및 아비센나의 글을 태워 없앴습니다. 그래서 아테 공주의 명령으로 편찬
된 '카자르 사전' 원본은 보즌되지 못했습니다. 내가 손에 넣은 사전은 아랍어로 번역된 것
일 뿐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이것을 받으십시오. 하지
만 이 사전에 수록된 내용을 전부 익혀야만 합니다. 만약 당신이 당신 기술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한다면 사냥하는 도중에 가장 중요한 사냥감을 놓쳐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입니
다.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꿈 사냥을 하는 일에 있어서 '카자르 사전'에 씌어진 말들의 역할
은, 사냥에 있어 사자가 모래 위에 남긴 발자국과 같습니다."
노인은 마수디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후, 사전과 함께 다음과 같은 충고를 주었다. "어떤
사람이라도 비록 서툴지만 류트를 연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늘에서 능력을 내려 주신
몇 안 되는 행복한 자들만이 꿈 사냥꾼이 될 수 있습니다. 류트 가르치는 일은 이제 그만두
도록 하십시오! 류트는 유대인이 발명해 낸 것입니다. 람코라는 사람이었지요. 그것들은 이
제 다 잊어버리고 사냥을 나가십시오 당신의 사냥감이 다른 사람의 꿈 속에서 죽지 않는다
면, 당신은 원하는 바를 이룩할 수 있을 겁니다. 내 경우와는 다를 수 있다는 거지요!" "하
지만 꿈 사냥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꿈 사냥의 목표는 매번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꿈에서
풀려 나오는 여러 단계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낮이 다른
사람의 밤에 불과하다는 것과 자신의 두 눈이 다른 사람의 한쪽 눈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사
람은 건설된 삶을 추구할 것입니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나듯 자기 자신의 현실로부터 진정
으로 깨어날 수 있게 됩니다. 의식이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을 수 있
죠. 그제서야 눈이 두 개 있는 사람들과는 반대로 자신은 눈이 하나뿐이라는 것과 깨어 있
는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자신은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런 다음에
노인은 마수디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아담 루하니 이야기
모든 사람의 꿈이 한 곳으로 모아진다면, 그것은 거대한 인간 모양이 되고 그 크기는 대
륙처럼 커다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그저 평범한 인간이 되고 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아담 루하니가 될 것이다. 그는 천상의 아담이고 인간의 조상이었던 천사라고 할 수
있다. 이맘들은 아담 루하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한다. 애초에 이러한 아담 이전의 아담은
세상의 세번째 정신이었다.
하지만 아담은 자기 자신에게 푹 빠져서 결국 빗나가 버렸다. 아담은 그러한 혼돈 상태에
서 회복되지, 함께 부정한 행위를 하면서 돌아다니던 에블리스와 아흐리만을 지옥으로 던져
넣어 버리고는 천상으로 돌아왔다. 아담은 이제 세번째 정신이 아니라 열번째 정신이 되었
다. 그 동안 천상의 일곱 거룹이 천사의 사다리에서 아담을 앞질러 올라갔기 때문이다. 그래
서 선각자 아담은 사다리에서 일곱 칸이나 뒤진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자신이 얼마나
뒤진 것인지 보여 주든 척도가 되었으며, 그와 동시에 시간이 어떻게 태어나는가를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시간이란 영원 중에서 가장 뒤에 처진 채 달려가는 부분이다. 그 당시에 천사로서의 아담
은 남자이면서 동시에 여자였다. 열번째 천사가 되어 버린 세번째 천사는 영원히 본래의 자
신에게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성공을 거두는 그 순간, 아담은 다시 떨어져
내리고 만다. 아담은 지금도 여전히 이성의 사다리에서 열번째 칸과 두번째 칸 사이를 떠돌
아다니고 있다. 사람들의 꿈은 천상의 천사 아담이 있든 곳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인간 본
성의 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아담은 우리가 꿈을 꾸는 방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담은
매우 재빠르지만 우리도 꿈 속에서는 그만큼 재빠를 수 있다. 천상의 천사 아담이 내는 속
도로부터 우리의 꿈이 짜여져 나온다. 아담은 무더기 꿈 속에서 말하는 식으로 말한다. 그래
서 현재 시제나 과거 시제 없이 오로지 미래 시제뿐이다. 그리고 꿈을 꿀 무렴의 우리처럼,
아담도 사람을 죽일 수 없고 씨앗을 심을 수 없다. 그래서 꿈 사냥꾼들은 다른 사람들의
꿈과 잠 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선각자 아담의 작은 조각들을 캐낸 다음, 완성된 모습을, '카
자르 사전'이라 불리는 온전한 것으로 그것들을 구성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사전은 이 땅 위에서 아담 루하니의 거대한 몸을 재현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
다. 우리의 선각자 천사가 천상의 계단을 올라갈 때, 그 뒤를 따라간다면 우리는 바로 신에
게 접근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불행하게도 아담이 밑으로 떨어져 내릴 때, 그 뒤를 따른
다면 우리는 신에게서 멀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능력으로는 그 두 가지 경우를 좀
처럼 구분하지 못한다. 우리는 언제나 요행을 바랄 뿐이다. 우리가 아담에게 가 닿았을 때,
아담이 이성의 사다리 두번째 칸을 향해 가는 길이기를, 그래서 아담이 우리를 더욱 높이,
진리에 가까운 곳으로 끌어올려 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꿈 사냥꾼이라는 우리의 직업은 상상할 수 없는 보상을 가져오거나 끔찍한 불행을
불러올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오로
지 노력하는 길뿐이다. 나머지는 기술상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경고 하겠다. 다른 사람의 꿈을 서둘러 따라가면, 때때로 그 길
에 선각자 아담이 지금 올라가는 중인지 내려가는 중인지를 보여 주는 표시가 숨겨져 있다.
그 표시는 서로 상대방의 꿈을 꾸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모든 꿈 사냥꾼들의 궁극적인 목
표는 그런 한 쌍을 찾아내서 그들에 대하여 가능한 한 자세히 알아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두 사람은 언제나, 각기 다른 단계에 있는 아담 신체의 작은 부분을 구성하고 있으며
이성의 사다리에서 언제나 다른 칸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높은 두번째 단계는 아니다.
이 두번째 단계에서는 신이 아담의 입에 김을 뱉어 넣고 아담의 혀를 네 가지 침으로 감싼
다. 그러므로 서로 상대방의 꿈을 꾸는 사람을 만나는 순간 우더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다! 그렇게 되면 잊어버리지 말고, 그 내용을 '카자르 사전'에 첨가해 넣어야만 한다. 그렇게
하는 동안 좋은 결과를 얻었던 꿈 사냥꾼들은 누구나 다 자기 나름의 기록을 남겼다. 그리
고 '카자르 사전'은 바스라의 모스크에서 여자 예언자 라비아에게 바쳐지게 되었다. 노인이
마수디에게 알려 주었던 것은 이상과 같다. 그래서 마수디는 음악을 버리고 꿈 사냥끈이 되
었다. 마수디는 사전 형태로 남져진 카자르 민족 관련 기록을 모두 읽어 보았다. 서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곳에서는 어느 집에서나 그렇게 하는 것처럼, 모든 사
람을 다 똑같이 환영하거나 존중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상석에 앉아서 가장 좋은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 사람은 어떤 음식을 날라 오는지 가장 먼저 볼 수 있고 가장 먼저
음식을 고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환기 구멍 앞에 앉아 있게 될 것이다. 그 자리에
서 먹는 음식은 모두 다 적어도 두 가지 냄새와 두 가지 맛이 날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평범한 자리에 앉을 것이며, 그곳에서는 입에 넣고 씹는 음식마다 맛이 다 똑같을 것이다.
그리고 문 뒤에 앉아서 묽은 수프를 먹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 아랍 글자가 계속 이어지면서 '카자르 사전'은 카자르인과 다른 민족의 전기
를 이어 놓은 사슬 모양이 된다. 특히 카자르 부족이 이슬람교로 개좋하는 과정에서 일익을
담당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다. 카자르 민족의 개종을 이루어 낸 중심 인물은 다르위시였
던 현자 이븐 코라 였다. 사전에는 이븐 코라에 대한 이야기가 길게 나온다. 하지만 그 부분
이 지나가면, 사전 곳곳에서 검은 구멍들이 입을 쩍쩍 벌리고 있다. 사제 새 사람(아랍인,
유대인, 기독교인)을 자기의 궁전으로 불러모은 카자르 카간은 그들이 자기의 꿈을 해석해
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카자르 문제에 대한 이슬람측 자료나 아랍어로 번역된 '카자르 사전'은 카자르 논
쟁에 참여한 세 사람을 모두 자세하게 다루지는 않았다. 이슬람측 자료에는 기독교나 유대
교측 꿈 사냥꾼이나 논쟁 참석자들의 이름
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 눈에 뜨일 수밖에 없다. 또한 이슬람교를 옹호한 아랍측
대표 파라비 이븐 코라에 대해 상세히 다루고 있는 반면 다른 두 사람에 대한 정보는 훨씬
미약하다. 마수디는 '카자르 사전'을 자세히 훑어보면서 다른 두 사람이 누구였는지 궁금했
다. 그렇게 하는 일에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카자르 궁정에서 열린 종교 논쟁에 참
여한 기독교측 대표나 그리스 종교의 대표자에 대해 알고 있는 기독교도가 혹시 있었을까?
기독교측 대표의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을까? 또 다른 참석자에 대해서, 논쟁에
참여한 유대측 대표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랍비가 있을까? 마수디와 마수디 이전
의 사람들이 이슬람 대표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었던 것처럼, 논쟁에 참여한 기독교나 유대
현자들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그리스인이나 유대인은 없었을까? 마수디가 관찰하고
나서 적어 준 바로는, 이 외국인들의 주장은 이븐 코라의 주장만큼 강력하거나 완전하지 않
았던 것 같았다. 이것은 이븐 코라의 주장이 그들의 주장보다 실제로 더욱 설득력 있고 납
득하기 쉬운 것이었기 때문일까? 만약 카자르 논쟁에 대한 유대나 기독교측 문헌이 존재한
다면 거기에는 그들의 주장이 이븐 코라의 주장보다 더욱 강력하다고 되어 있을까? 우리가
그들을 무시하는 것처럼, 그들도 우리를 무시할까? 카자르 문제에 대한 '카자르 사전'을 엮
어 내는 유일한 방법은 세 부류의 꿈 사냥꾼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모아다가 하나의 진실을
얻어내는 것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카자르 사전'에는 카자르 논쟁에 참석한 기독교
와 유대측 대표에 대한 이름과 전기도 하나의 표제어를 차지하여 알파벳 순으로 실리게 될
것이다. 이 사전에는 논쟁을 기록한 다른 역사가들, 즉 유대와 그리스에서 나온 역사가들에
대한 정보도 포함될 것이다. 아담 루하니 신체의 어느 부분이 없어져 버린 상태라면, 그를
참조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능성에 대해 숙고하면서 마수디는 몸을 떨었다. 마수디는 열린 옷장과 서랍장
사이로 자기의 옷이 나오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사전을 들고 앉을 때마다, 매번 옷장과
서랍장 문을 닫았다. 마수디는 카자르 민족과 관련된 유대와 그리스 문서를 찾기 시작했다.
마수디는 그 일에 대단히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마수디의 주름진 터번에 '코란'이라
는 단어가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수디는 그런 말에는 아랑곳하저 않고 이교
도의 뒤를 따라다녔으며, 그렇게 하면서 그리스인들과 유대인들에게 뇌물을 주었다. 마수디
는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배웠는데, 그 언어들은 세상을 다른 모습으로 비추어 주는 거울
과도 같았다. 그리고 마수디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이 거울에 비추어 보는 방법을 배웠다.
마수디의 카자르 관련 문서철은 나날이 늘어만 갔다.
어느 날 마수디는 거기에 자기가 사냥한 사냥감의 인생을 첨가해 넣기로 결심했다. 그것
은 직업적인 보고서로, 아담 루하니의 거대한 신체를 만들어 내는 일에 기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수디는 진짜 사냥꾼이었으면서도 어떤 종류의 사냥감을 잡아야 하는지를 몰랐다.
라비-울-아히르(이슬람 력 4월)의 달이 다가오고 있었다. 마수디는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꿈을 들여다보았다. 마수디는 여인숙에서 밤을 보냈는데, 바로 옆자리에 어떤 남자가 누워
있었다. 마수디는 그 사람의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그 사람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에 마수디는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잘 몰랐지만, 머리보다
귀가 빨리 움직였다. 마수디는 꿈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마수디는
그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마수디 옆에 누워 있던 남자는 절대로 노래를 부르
고 있지 않았다. 그 사람의 내부에 있는 누군가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얼굴을 알 수 없는
이 사람이 꿈꾸고 있는 누군가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침실은 너무나 조용해서 마
수디 주위의 이동 속 어디에선가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의 머리카락이 갈라지는 소리까지 들
릴 지경이었다. 바로 그 순간에 마수디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거울을 뚫고 들어가듯
이 꿈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바닥은 모래였고 비바람이 몰아쳤으며 들개와 목마른 낙타들
이 득실거렸다.
마수디는 자신이 뒤쪽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팔다리가 잘려 나갈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
을 금방 알아차렸다. 하지만 마수디는 여전히 모래 위를 걸어갔다. 모래는 밀물 때와 썰물
때 솟아 올랐다가 다시 아래로 꺼졌는데, 그것은 꿈을 꾸는 사람의 호흡에 따라 좌우되었다.
뒤를 돌아보니, 어떤 남자가 꿈의 한쪽 귀퉁이에 앉아서 나무로 류트를 깎고 있었다. 그 나
무 토막은 여러 해 동안 강물 위를 떠다니고 있었던 것으로 뿌리가 강 입구를 향하고 있었
다. 이제는 나무의 물기가 다 말랐다. 마수디는 이 남자가 300녀 전의 방법으로 악기를 만들
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는데,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쓰이지 않는 방법이었다. 그러므로
꿈 속의 남자는 꿈을 꾸는 자보다 나이가 더 많았다. 꿈 속의 남자는 때때로 일손을 멈추고
필라프를 한 입씩 먹었는데, 그렇게 한 번 먹을 때마다 마수디에게서 적어도 100걸음은 멀
어졌다. 그 남자가 뒤로 물러나면서 꿈의 밑바닥이 환하게 들여다보이기 시작했다. 그 안에
있는 불빛으로부터 참을 수 없는 악취가 품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 불빛 뒤쪽으로 묘지 같
은 곳에서 두 사람이 말을 매장하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은 노래를 부르던 남자였다.
이번에는 마수디가 그저 노랫소리만 들었던 것이 아니었다. 마수디는 갑자기 자기가 노래
를 부르고 있던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수디 옆에 누워 있는 남자
의 꿈에 나타난 것은 콧수염 절반이 회색이었던 젊은이였다.
세르비아 개들은 먼저 물고 나서 짖어 대고, 왈라키아 개들은 아무런 소리도 없이 물고
터키 개들은 짖고 나서 문다는 사실을 마수디는 알고 있었다. 꿈에 나타난 청년은 이 세 가
지 중에서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마수디는 그 노래를 기억해 두었다. 아침이 맑아 오
고 있었다. 지금부터 가장 중요한 사실은 콧수염 절반이 회색인 이 젊은이가 다음번에는 어
떤 사람의 꿈에 나타날 것인지 찾아내는 일이었다. 마수디는 당장 그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
다. 마수디는 류트 연주자와 가수를 불러모았다. 그들은 한 무리의 목동처럼 보였다. 마수디
는 그들에게 자기가 시키는 대로 노래하고 연주하도록 가르쳤다. 마수디는 여러 가지 색깔
의 반지를 끼고 있었는데, 각각의 반지는 마수디가 사용하는 10음계 중에서 한 음에 해당되
었다.
마수디는 가수들에게 한 손가락을 보여 주었다. 그렇게 하면 가수들은 마수디가 원하는
소리를 내었다. 그것은 마치 동물들이 자기의 먹이를 고르는 것과 같았다. 그런 방법 때문인
지 그들은 실수 없이 노래를 불렀다. 마수디에게서 배우기 전에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
는 노래였지만 말이다. 그들은 우물 앞, 도시의 광장, 거리 등의 공공 장소에서 노래를 불
렀다. 그 노래는 밤이면 자기의 내부에 마수디의 사냥감을 지니게 되는 행인에게 던지는 미
끼였다. 그런 사람들은 태양이 그들에게 달빛을 비추고 있기나 한 듯이 멈추어 서 서 마법
에 걸린 것처럼 노랫소리를 듣고 있었다.
흑해 연안을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사냥감을 추격하는 가운데, 마수디는 자기가
찾는 꿈을 꾸는 사람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꿈에 콧수염 절반이 회색이었던 젊은이를 만
난 사람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상하게 변해 갔다. 말을 하면서 동사가 명사보다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고, 가능하다면 어느 경우에라도 명사를 생략하였다. 때때로 여러 명
이 한꺼번에 그 젊은이를 꿈에서 보았던 적도 있었다. 아르메니아의 장사꾼들은 꿈에서 보
니까 그 젊은이가, 황소가 이끄는 마차에 세워 놓은 교수대 아래 있었다고 한다. 마차는 돌
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도시를 지나가는 도중이었으며, 교수형 집행인은 젊은이의 턱수염을
손가락으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군인들은 그 젊은이가, 바다가 바라보이는 아름
다운 말묘지에서 말들을 묻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젊은이는 어떤 여자와 같이 있었다고 하
는데, 꿈 속에서 그 여자의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었다. 단지 볼에 은화만한 작은 점이 있었
는데, 콧수염 절반이 회색이었던 젊은이는 그 점 위에 입맞춤 자국을 남겼다.
그런데 갑자기 마수디의 사냥감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마수디가 할 수 있는 일이
라고는 단 한 가지뿐이었다. 마수디는 자신이 관찰한 것들을 모두 '카자르 사전'에 적어 넣
었다. 마수디는 이 글들을 오래된 것부터 새로운 것까지 모두 다 알파벳 순으로 정리해서
녹색 가방에 넣어 두었는데, 그 가방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마수디는 많은 사람들이 아주
가까운 곳에서 꾸고 있는 꿈조차도 자기가 놓쳐 버리고 있으며, 그 많은 꿈들을 사람들 사
이에 갈라 주지도 못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꿈의 수는 꿈을 꾸는 사람의 수보다 훨씬
더 많았다. 마침내 마수디는 자신의 낙타에게 주의를 돌렸다. 그 동물의 꿈 속을 자세히 들
여다보니 바로 그곳에, 이상하게도 두 가지 색깔로 된 콧수염이 상처처럼 나있는 젊은이가
있었다. 저 높은 곳에는, 결코 바다에 몸을 담고자 않는 별자리 중에서 하나가 보였다. 창가
에 서 있던 젊은이는 발 아래 마룻바닥으로 떨어진 책을 읽었다.
책의 제목은 '리베르 코즈리'였는데 눈을 감은 채 낙타의 꿈 속을 들여다보고 있던 마수디
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사냥감을 따라가던 마수디는, 이리하여 과거에 카자르
국경이었던 곳에 다다른 것이다. 들판에는 검은 풀이 자라고 있었다. 밤이 깊어 가면서 '리
베르 코즈리'를 손에 든 젊은이가 또 다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꿈 속에 나타났다. 마수디
는 모든 세대나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때때로 똑같은 사람들이 나오는 똑같은 꿈을 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 중에서 어떤 꿈은 천천히 뒤틀리며 사라져 버린다는 것과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꿈을 꾸는 일은 그 당시보다 마수디가 태어나지 이전에 더욱 많이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이런 꿈은 분명히 역사가 오래된 것이었다. 하지만 국경에 이르러서 마수디는 무엇인가
새로운 사냥감에게로 눈을 돌렸다. 오래 전에 마수디는 콧수염 절반이 회색이었던 젊은이가
자신이 깆아 들었던 꿈을 꾸었던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은을 한 좀씩 벌려 주곤 하던 것을
눈여겨보았던 적이 있었다. 그 젊은이는 1넌에 1문이라는 매우 좋은 이자 조건으로 은을 빌
려 주었다. 소아시아의 구석진 지방에서 그런 식으로 은을 빌려 주는 것은 약속어음을 받아
두는 것과 마잔가지였다. 꿈을 꾸는 사람들은 자신의 쭙에 나오는 사람 앞에서 언제나 정직
해야 한다고 믿었다. 꿈에 나오는 사람은 모든 회계 장부를 수중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들은 이중 거래 체계 같은 것을 정확하게 지커고 있었는데, 이 거래 체
계에서는 의식과 무의식에서 나온 자금을 모두 취급했으며 이러한 거대에 관여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암묵적인 동의가 이루어져 있었다.
마수디는 이름도 없을 듯한 작은 마을에 도착해서, 어떤 페르시아인이 '목요무대'를 펼치
고 있는 천막 속으로 들어갔다. 천막 속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계란을 떨어뜨려도 땅바
닥에 닿지 않을 것 같았다.
사람들은 낄개 주위에 돌러앉아 있었으며, 그 위에는 화로가 물여 있었다. 누군가가 벌거
벗은 소녀를 관객들 앞으로 데리고 나왔다. 소녀는 부드럽게 신음소리를 내었으며 두 손에
검은 방울새를 한 마리씩 쥐고 있었다. 소녀는 왼손을 펼치기 시작옆다. 새가 날아오르려는
순간, 번개가 치는 것처럼 재빨리 그 새를 잡았다.
그 소녀는 보기 드문 질병에 걸려 있었다. 소녀의 왼손은 오른손보다 더 빨랐다. 그 소녀
의 주장에 따르면, 자기의 왼손은 너무 빨라서 자기보다 먼저 죽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내 왼손과 같이 묻히지 못할 거예요! 나는 이 왼손이 작은 무덤에 따로 묻혀 있는
것을 이미 볼 수 있어요. 묘비나 이름도 없이, 키도 없는 배처럼 말이에요."
옆에 서 있던 페르시아 사람이 모든 사람들에게 이 소녀에 대한 꿈을 꾸어 달라고 부탁했
다. 그렇게 한다면 소녀가 회복될 수 있다고 말혔다. 그리고 사람들이 어떤 쭙을 꾸면 좋을
지 세부 사항까지 설명해 주었다. 사람들은 불뿔이 흩어져서 돌아갔다.
마수디가 가장 먼저 자리를 떴다. 마수디는 혀 속에 뼈가 들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고 , 필기 도구에 아비시니아 커피를 묻혀 종이에 적어 두었다. 그 페르시아 사람도 분명히
자기 나름대로 카자르 민족에 대한 기록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람도 역시 꿈 사냥꾼이었다.
아담 루하니를 섬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였던 것이다. 과연 마수디의 방법은 올바른 것이었
을까?
그리고 주마드-앝-아왈(이슬람 력 5월)의 달이 찾아왔다. 마수디가 새로 도착한 마을은
강 안개에 둘러싸인 채, 모래 위에 서 있었다. 안개에 가려서 마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
다. 하지만 강물 속에는 이슬람 사원의 탑(미너렛)이 급류에 꼼짝없이 걸려 있는 모습이 보
였다. 깊은 침묵이 안캐 뒤쪽의 해변 위에 걸려 있었고, 이 침묵과 마을과 갈증난 물이 마수
디의 남성적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마수디는 여성스러운 빵을 몹시 먹고 싶었다. 마수디는
어떤 사람을 마을로 보내 노래를 부르라고 했는데, 그 사람은 돌아와서 무엇인가를 발견했
다고 보고했다. 이번에는 꿈을 꾸는 사람이 여자였다.
"큰 길을 따라서 가다 보면 생강 냄새가 날 겁니다. 바로 그 여자의 집에서 나는 냄새입
니다. 그 여자는 요리할 때 생강을 씁니다."
마수디는 마을로 들어가서 생강 냄새가 나는 곳에서 멈추었다. 어떤 여자가 불 주위에 앉
아 있었다. 그 여자가 국을 끓이고 있는 솥은 계속해서 터져 나갈듯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접시를 든 어린아이들이 손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는 국자로 국을 퍼서 어린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그것을 보는 순간 마수디는
그 여자가 솥으로부터 꿈을 나누어 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여자는 입술 색깔이
변했으며, 아랫입술은 긴 의자를 뒤집어 놓은 것 같았다. 그 여자는 절반 정도 먹다 남은 생
선 위에 누웠는데, 그것은 마치 사막의 개가 다 먹고 난 동물의 뼈 위에 엎드려 있는 것 같
았다.
마수디가 다가오자 그 여자는 마수디에게 국을 한 국자 퍼 주었지만, 마수디는 고개를 가
로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난 더 이상 꿈을 꿀 수 없소." 그 여자는 국자를 내려놓고, 자
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 여자는 자기가 여자라고 꿈꾸고 있는 왜가리 같았다. 마수디는 그
여자 옆에 드러누웠다. 마수디의 손톱은 감각을 잃어버렸고 시선은 절뚝거리다가 부러져 버
렸다. 이제는 두 사람 뿐이었다. 말벌들이 마른 나무 껍질에 침을 가는 소리가 들려 왔다.
마수디는 여자에게 입맞춤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여자의 얼굴이 완전히 변해
버렸다. 마치 다른 사람의 얼굴이 마수디의 입맞춤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마수디는 그 여
자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어 보았다. "아, 그저 세월이 흐르는 것뿐입니다. 당신은 신
경 쓰지 말아요. 세월이 내 얼굴을 휙 스치고 지나갈 때, 당신 얼굴이나 낙타 얼굴을 지나갈
때보다 열 배는 더 빠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외투를 뚫고 들어오려고 해도
아무 소용 없어요. 당신이 찾고 있는 것은 이 외투 속에 숨어 있지 않아요. 나에게는 검은
비버가 없어요. 이 안에는 육신이 없는 영흔들뿐이죠. 이것을 유대인들은 '딥북스'라고 부르
고 기독교들은 '카발라스'라고 부르죠. 하지만 이 안에는 성이 없는 육신들도 있어요. 영혼은
원래 성이 없지만, 육신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성이 없는 육신들은 모두 다 악마에게 성을
빼앗겨 버린 것입니다. 나도 바로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어요. 이븐 하데라시라는 악마가
내 성을 빼앗아 가버렸어요. 하지만 내 목숨을 살려 주었어요. 이제 내 애인은 코헨뿐 입니
다." "코헨이 누구입니까?" "내가 꿈을 꾸는 유대인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뒤를 쫓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죠. 콧수염 절반이 회색인 젊은이입니다. 그 사람의 육신은 세 개의 영혼 속에
갇혀 있지요. 그리고 내 영혼은 육체에 갇혀 있어요. 내 영혼을 나눌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 사람뿐입니다. 그 사람은 좋은 애인입니다. 나는 조금도 불평하지 않아요. 아직까지 나를
기억하고 있는 이는 그 사람뿐입니다. 그 사람말고는 이제 어느 누구도 내 꿈 속으로 찾아
오지 않아요."
마수디는 사냥감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 젊은이의 이름은 바로 코
헨이었다. "어떻게 그 사람 이름을 알고 있소?" 마수디는 그것을 확실하게 해 두고 싶었
다. "나는 그 사람의 이름을 들었어요. 어떤 사람이 큰 소리로 '코헨' 이라고 부르자, 그 사
람이 대답했어요." "당신 꿈 속에서 말입니까?" "예, 내 꿈 속에서....... 그것은 그 사람이 콘
스탄티노플로 떠나던 날 밤이었어요. 하지만 잊지 마새요. 우리가 생각하는 콘스탄티노플은
언제나, 진짜 콘스탄티노플 서쪽에 있는 백 개의 외추밭이니까......."
그 여자는 자기의 옷 속으로 손을 집어 넣더니 물고기처럼 생긴 열매를 꺼내 마수디에게
주었다. "이 열매는 '쿠'입니다. 한 번 맛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렇지 않으면 다른 것을 드
릴까요?" "난 당신이 내 앞에서 코헨 꿈을 꾸었으면 좋겠소." 그 말을 듣자 여자는 깜짝
놀랐다. "당신은 아주 점잖게 부탁하는군요. 너무 점잖아요. 상황도 고려할 줄 알고...... 하지
만 그렇다는 것을 당신 자신은 전혀 모르고 있어요. 어쨌든 당신이 바라는 대로 해 주겠어
요. 이것은 당신을 위해서 특별히 꾸는 꿈입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선물도 하나 주겠어요.
하지만 이제부터 조심하세요. 당신이 꿈꾸고 있는 사람을 추격하는 여자가 당신을 잡을 거
예요." 그 여자는 개를 베고 드러누웠다. 수세기 동안 그녀를 스치고 지나간,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눈길들이 그녀의 얼굴과 손을 할퀴고 있었다. 그 여자는 코헨을 꿈 속으로 받아
들였다. 코헨은 이런 말을 했다. "인텐티오 투아 그라타 에트 악셉타 에스트 크레아토리,
세드 오페라 투아 논순트 악셉타......." 마수디의 편력은 이제 모두 끝났다. 마수디는 이전의
다른 누구보다도 이 여자로부터 더욱 많은 것을 받았다. 마수디는 마지 앞이 돋아나는 것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다급하게 낙타 등에 안장을 얹고 서둘러 콘스탄티노플로 돌아갔다.
마수디의 사냥감은 수도에서 마수디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수디는 이번 사냥으로
어느 정도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는지 계산해 보고있었는데, 갑자기 타고 있던 낙타가 고개
를 돌려 마수디의 눈에 침을 뱉었다. 마수디는 고삐로 낙타의 얼굴을 마구 때렸으며, 낙타는
결국 두 개의 혹 속에 들어 있던 물을 토해 낼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마수디는 낙타
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수수께끼와 같은 행동을 했는지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마
수디는 코헨이 한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노래의 후령구처럼 계속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는 동안 신발은 자꾸만 길에 달라붙었다. 마수디는 숙소가 눈
에 뜨이기만 하면 우선 신발부터 씻을 생각이었다.
그리스어말고는 알고 있는 언어가 하나도 없었던 어떤 기독교 수도사는 마수디가 기억하
고 있는 내용이 라틴어라고 하면서 그 지방의 랍비에게 안내하였다. 랍비든 코헨이 한 말을
번역해 주었다. "주님은 당신의 행동에 기뻐하시지 않고 당신의 속마음에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마수디는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과 자기가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수디는 그 문장을 분명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마수디는 오래 전에 그
런 문장을 아랍어로 알고 있었다. 그것은 수백 년전에 전사가 카자르 카간에게 이야기한 것
과 같은 문장이었다. 마수디는 자기가 찾고 있는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코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카자르 민족의 흔적을 찾아내기 위해 마수디가 이슬람 전설을 이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코헨은 유대 전설을 이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수디가 '카자르 사전'을 읽
어 가면서 기다렸던 사람이 바로 코헨이었다. 마침내 사전과 꿈이 모여 자연스럽게 하나의
형체를 완성했다. 그러나 바로 이 순간, 마수디가 위대한 발견에 한쪽 발을 들여놓으려고 하
는 그 순간에, 마수디의 사냥감이 카자르 민족의 이야기를 찾아 다니는 과정에 있어서 마수
디와 그대로 닮았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마수디는 '카자르 사전'을 그대로 던져 버리고는 두
번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 일이 그렇게 된 경유는 다음과 같다.
일행은 가장 먼저 눈에 뜨이는 숙소에 들어갔다. 불그스름한 어둠이 펄펄 휘날리고 있었
으며, 마수디는 침대에 드러누워 깊은 숨을 쉬고 있었다. 마수디의 눈에는 자신의 몸이 파도
위를 떠다니는 배처럼 보였다. 옆방에서는 어떤 사람이 류트를 연주하고 있었다. 후세에 아
나톨리아의 류트 연주자들은 그날 밤 그 음악에 대한 전설을 이야기하곤 했다. 마수디는 그
류트가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 류트의 재료가 된 나
무는 도끼로 쓰러뜨린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무의 소리가 죽지 않았다. 게다가 그 나무는
물소리가 미치지 못하는 고원 지대에서 자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악기의 관은 나무로
만들지 않고 어떤 동물에서 나온 재료로 만들었다. 마수디는 그 차이를 분명하게 알 수 있
었다. 포도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백포도주에 취한 것인지 적포도주에 취한 것인지 구별
할 수 있든 것처럼 말이다. 마수디는 누군지 알 수 없는 음악가가 연주하고 있는 가락을 알
아들었다. 그 곡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이처럼 특별한 노
래를 듣고 마수디는 깜짝 놀랐다. 이 노래에는 극히 연주하지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과거에
마수디는 이 부분을 더욱 잘 연주하지 위해 특별한 운지법을 고안해 내었으며 그 방법은 류
트 연주자들 사이에 널리 퍼졌다. 하지만 누군지 알 수 없는 그 연주자는 전혀 다른 운지법
을 사용하고 있었다. 마수디가 귀를 기울여 들어 보니, 그것은 더욱 좋은 방법이었다. 마수
디는 그 운지법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가 없었으며, 그 운지법에 적당한 키를 생
각할 수도 없었다. 마수디는 정신이 아찔할 지경이었다. 마수디는 그 부분이 다시 돌아오도
록 기다렸다. 미지의 연주자가 그 부분을 다시 연주했을 때, 마수디는 마침내 알 수 있었다.
연주자는 그 부분에서 열 손가락이 아니라 열한 손가락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 순간 마수디
는 이 곡을 연주하고 있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에블리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악마들은 악
기를 연주할때, 열 손가락과 한 개의 꼬리를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에블리스가 나를 따라잡
은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내가 에블리스를 따라잡은 것일까?"
마수디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옆방으로 달려갔다. 그 방에는 어떤 남자가 머무르고 있었
다. 그 남자는 손가락이 아주 가늘었으며, 열 손가락 모두 길이가 똑 같았다. 회색 뱀들이
그 남자의 턱수엽 사이로 미끄러져 내렸다. 그 사람은 이름이 야비르 이븐 아크샤니였으며,
하얀 거북 껍질로 만든 악기가 그 앞에 놓여 있었다.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심신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소! 조금 전에 내가 들었던 것은 이 세상에서는 불가능한 소리였소!" 마수디
는 몹시 당황하여 성급하게 소리쳤다. 야비르 이븐 아크샤니는 아주 천천히 입을 벌리면서
하품했다. 입과 혀로, 눈에는 보이지 않는 아이를 낳고 있는 것 같았다. "무엇을 보고 싶다
는 거요?" 야비르 이븐 아크샤니는 이렇게 물어 보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이 꼬리를 말하
는 건가? 하지만 당신은 노래나 음악에 관심이 없잖소. 그런 것은 이미 오래 전에 포기하지
않았소. 이제 당신은 꿈을 읽는 사람이오. 당신이 관심을 갖는 것은 음악이 아니라 바로 나
요. 당신은 악마의 도움을 바라고 있소. 왜냐하면 경전에도 나와 있듯이, 사람들은 신을 보
지 않지만 에블리스는 신을 보기 때문이오. 당신이 나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은 무엇이오? 난
타조를 타고 다닌다오. 걸어다닐 때에는 나를 호위해 줄 악마를 데리고 다니지 어린 악마들
말이오. 그 악마들 중 하나는 시인이라오. 그 약사는 알리기 처음으로 '아뎀'과 '하바' 라는
인간을 창조하기 수세기 전부터 시를 썼소. 그 시는 우리 에블리스와 악마의 씨앗에 대한
것이오. 하지만 난 당신이 그것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라오. 시에 씌어진 단
어들은 진짜 단어들이 아니기 때문이오. 진짜 단어란 사과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 주위에
는 뱀 한 마리가 나무를 칭칭 감고 있고 나무 뿌리는 땅 속에 그리고 나뭇가지는 하늘 위에
있다오. 이제 나에 대해서 그리고 당신에 대해서 무엇인가 다른 이야기를 해 주겠소. 코란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보겠소. 다른 악마들처럼 나도
불로 만들어졌소. 하지만 그 반면에 당신들은 진흙으로 만들어졌소. 내가 가지고 있는 힘은
오로지 내가 당신에게 불어 넣고 당신에게서 가지고 오는 것뿐이오. 왜냐하면 진실을 열어
보면 언제나 우리가 그 안에 집어 넣은 것만큼 들어 있기 때문이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적
은 양이 아니오. 진실 안에는 모든 것을 담을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있소. 당신과 같은 인
간들이 만약 낙원에 가닿을 수 있다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소. 하지만 이 땅 위
에서는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형태 속에 갇혀 있을 뿐이오. 그리고 그 형태는 출생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오. 그 반면에 우리 악마들은 땅 위에서 어떤 형태라도 마음에 드는 대로
고를 수 있고, 마음대로 그 형태를 바꿀 수 있소. 하지만 케브세르 강을 건너 하늘나라에 들
어가자마자, 우리는 영원히 실제 우리의 모습인 에블리스로 살아가도록 운명지어진다오. 하
지만 우리는 불에서 나왔기 때문에 우리의 기억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소. 당신들의 기억이
야 진흙 속에 뒤섞여 자취를 감추어 버리지만 말이오. 그것이 바로 악마인 나와 인간인 당
신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이오. 알리는 양손으로 당신들을 창조했고, 단지 한쪽 손으로 우
리를 창조했소. 하지만 우리 에블리스들은 당신들 앞에 나타났소. 그러므로 나와 당신 사이
의 중요한 차이점은 바로 시간이라는 것이오. 우리가 한 쌍이 되어 고난을 당한다고 하더라
도 당신들보다 우리가 한 발 앞서 지옥에 도착할 것이오. 그리고 당신들 뒤로 새로운 제3의
무리가 도착할 것이오. 그러므로 당신의 고통은 영원히 나의 고통보다 짧을 것이오. 왜냐하
면 알리는 다가오는 제3의 우리들에게 이미 눈길을 돌렸으니 말이오. 그 무리들은 우리와
당신들을 가리키면서 알라를 향해 이렇게 소리지를 거요. '먼저 온 자들에게 두 배의 벌을
내리십시오. 그래서 우리에게는 더 가벼운 고통을 주십시오!' 다시 말해 고통은 무궁무진한
것이 아니오. 자, 이제부터 내 말을 잘 들으시오. 여기부터는 책에서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
라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당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소. 한마디도 놓치지 말고 잘 들으시오.
우리의 죽음은 당신들의 죽음보다 더욱 오래되었소. 죽는 과정에 있어서, 우리 에블리스들이
당신들보다 더욱 오랫동안 경험했고 그 경험을 더욱 잘 기억하오. 그렇기 때문에 당신들 중
에서 제아무리 현명하고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고 한들 죽음에 대해 나만큼 많이 알고 당신
에게 잘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오. 우리는 당신들보다 더욱 오랫동안 죽음과 같이 살
아왔소. 만약 당신 귀에 금고리가 있고. 또한 이 기희를 잘 이용하고 싶다면 내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오. 왜냐하면 오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내일 다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이야기
를 듣는 사람은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이 있는 바로 그 순간 이외에는 이야기를 듣지 못하
기 때문이오." 아크샤니는 차근차근 이야기를 해 나갔다.
어린아이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
사람들은 언제나 어린아이의 죽음을 보고 그 부모의 죽음을 가늠해 본다. 어머니는 아이
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출산한다. 어린아이는 자기 아버지의 죽음을 완성하기 위해 죽는다.
아들이 아버지보다 먼저 죽었을 때, 아버지의 죽음은 짝을 잃고 아무런 본보기도 없이 불구
가 될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인하여 우리 악마들은 그렇듯 쉽사리 죽는다. 우리에게는
자손이 없다. 그리고 우리의 죽음에 대한 본보기가 세워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어린아이
가 없는 사람들은 쉽사리 죽는다. 그들이 평생을 들여 노력한 것도 영원한 시간 속에서는
한순간 타올랐다가 이내 사그라드는 불꽃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부모들의 죽음은 마치 거울
처럼, 다가올 아이들의 죽음을 비추어 주고 있다. 이것은 마치 쌍방에게 적용되는 법률과 같
다. 오로지 죽음만이, 시간의 원칙을 거슬러 가면서 거꾸로 전해 올라간다. 젊은이가 늙은이
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죽음을 물려준다. 조상은 작위를 받듯 자손들로부터 죽음을 상속받
는다. 죽음을 들려주는 세포 '파멸의 문장'은 시간의 통로를 따라 미래로부터 과거로 나아가
면서 죽음과 삶을 연결시키고, 시간과 영원을 연결시키며 아담 루하니를 그 자신에게 연결
시킨다. 그래서 죽음은 한 가족이 공통적으로 물려받는 기질 가운데 포함된다. 이것은 검은
눈썹을 물려주거나 수두에 걸리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한 사람이 어떤 이유로 죽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식으로 죽음을 경험하는
가 하는 문제이다. 사람은 칼에 맞거나 병에 걸리거나 나이가 들어 죽는다. 그러나 언제나
그 과정에서 전혀 다른 무엇인가를 경험한다. 자기 자신의 죽음을 경험하는 일은 절대로 없
고, 언제나 앞으로 다가올 어떤 다른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다. 이미 말한 것처럼 자기 아이
들의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들은 죽음을 가족 공동의 사건으로 만들어 버린다. 어린아
이가 없는 사람에게는 오로지 자기 자신의 죽음만이 있을 것이다. 그저 그뿐이다. 하지만 그
반대로 어린아이가 있는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의 죽음은 없고 자기 아이들의 죽음이 몇 번
이고 반복해서 있을 것이다. 어린아이가 많은 사람의 죽음은 끔찍하다. 삶과 죽음 사이의 비
율이 언제나 1대 1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몇 배나 더 많이 죽어야 한다.
수세기 전에 무카다사 알 사파르라는 수도사가 카자르 수도원에서 살고 있었다. 그 수도원
에는 1만 명의 처녀 수녀들이 있었는데, 무카다사 알 사파르는 기나긴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줄곧 자기 방식대로 기도에 열중함으로써 이 수녀들 모두 다 아이를 배도록 만들었다. 그래
서 무카다사 알 사파르에게는 수녀들 수만큼의 어린아이가 있었다. 무카다사 알 사파르는
어떤 이유로 죽었을까? 무카다사 알 사파르는 벌 한 마리를 삼켜서 죽었다. 자, 그렇다면 무
카다사 알 사파르는 어떤 방식으로 죽었을까? 그는 동시에 1만 가지의 방법으로 죽었다. 그
는 1만 겹으로 된 죽음을 통과해야만 했다. 무카다사 알 사파르는 단 한 번에 모든 아이들
의 죽음을 다 경험한 것이다. 사람들은 무카다사 알 사파르를 땅에 묻어 줄 필요가 없었다.
죽음이 무카다사 알 사파르를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 놓았으므로, 그는 흔적도 없이 사라
져 버렸고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이 이야기 뿐이 었다.
잘 알려진 우화 가운데 회초리 묶음에 대한 것이 있는데, 인간들은 그 우화를 잘못 이해
하고 있는 것 같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가 아들 형제를 불러모아 회초리 하나는 얼마나 쉽
게 부러뜨릴 수 있는지 보여 주는 것의 의미는, 사실 아들이 한 명밖에 없는 사람은 얼마나
쉽게 죽을 수 있는지 보여 주려는 것이다. 그 아버지가 아들 형제에게 회초리 묶음을 부러
뜨리기는 어렵다는 것을 보여 줄 때, 사실은 아들을 여럿 둔 아버지 자신이 죽기가 몹시 어
렵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죽음이 각양각색인 경우에, 그 많은 아이들을 남겨 두고 가는 것은 너무나도 힘
겨운 일이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그 모든 고통을 미리 다 경험하기 때문이다. 회초리를 많이
묶어 두면 묶어 둘수록 당신은 더욱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많은 상처를 받게 된다. 여
자들과 그 자손들의 죽음은 언급하지 않겠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죽음이며, 남자들
의 죽음만큼 다양하지도 않다. 그러므로 그러한 죽음은 또 다른 법칙에 따른다. "유리한 입
장에 서 있는 우리 에블리스들이 보기에, 이것은 대체로 비밀 중의 비밀이오. 당신들보다 죽
음에 대한 경험이 어느 정도 더 많은 우리가 보기에는 그렇소. 앞으로 이런 것에 대해 잘
생각해 보시오. 당신은 꿈 사냥꾼이고, 만약 당신이 조심스러운 사람이라면 언젠가 당신 스
스로 이 모든 것을 알게 될 기회가 생길 것이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쓰레기 더미를 헤
집고 다니는 꿈 사냥꾼의 목표는 서로에 대한 꿈을 꾸는 두 사람을 찾는 것이오. 둘 중에
한 사람이 잠을 자고, 다른 한 사람은 깨어 있게 되는데 잠을 자는 사람은 언제나 깨어 있
는 사람의 현실을 꿈 속에서 보게 되지 내 말이 맞소?" "예." "자, 깨어 있는 사람이 죽었다
고 해 보시오. 죽음보다 더욱 야만적인 현실은 없으니까....... 죽은 사람의 현실을 꿈꾸고 있
는 사람은 실제로 이 사람의 죽음을 꿈꾸고 있는 것이라오. 그 순간 그 사람의 현실이란 것
이 바로 죽는 것이니까 말이오. 그래서 꿈꾸는 사람은 자기 손바닥을 내려다보듯이 다른 사
람이 죽은 모습을 볼 수 있지만, 그 자신은 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꿈을 꾸고 있는 사
람은 절대로 다시 깨어나지 못합니다. 죽어가고 있는 자가 더 이상 그 사람의 삶에 대해 꿈
을 꾸어 주지 않을 것이며, 그 사람의 현실을 자아내는 방직기가 되어 주지 않을 것이기 때
문이오. 그래서 둘 중에 한 사람이 깨어 있다가 죽게 되면, 그 사람의 꿈을 꾸고 있던 사람
도 역시 깨어날 수 없소.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그 꿈 속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도 우리에게
알려 줄 수 없는 것이라오. 꿈을 꾸고 있던 사람이 죽음이란 것을 직접 바라보았다고 하더
라도 죽어 가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경험하는 것이기에, 죽음이란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 우
리에게 알려 줄 수 없다는 것이오. 당신은 꿈을 읽는 사람이나 그 사람의 꿈을 읽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것이오. 그리고 죽음에 대해 당신이 알고 싶어 하던 것을 모두 찾아볼 수
도 있을 것이오. 당신이 알게 된 것을 나의 경험과 우리 에블리스들의 경험과 서로 대조해
보시오. 그러면 당신이 새로 알아낸 것도 있을 것이오. 누구든지 음악을 연주할 수 있고 사
전을 쓸 수 있소. 그런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 두시오. 당신처럼 한 장면과 또 다른 한
장면 사이에 나 있는 좁은 틈 속을, 죽음이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그 틈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소. 설사 있다 해도 극히 드물다고 할 수 있소. 꿈 사냥꾼이었던 당신의
재능을 이용해 크게 한 건 올리시오. 주도권을 잡고 있는 것은 바로 당신이오. 그렇기 때문
에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있어서 신중해야 할 것이오."
야비르 이븐 아크샤니는 경전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이야기를 정리했다. 밤이 피를
쏟아내자, 날이 밝아 오기 시작했다. 숙소 앞의 옹달샘도 맑은 물을 내뱉었다. 샘 주위에는
청동으로 만든 남근 모양의 파이프가 있었으며, 그 양 옆에는 쇠털로 술을 단 두 개의 금속
알이 박혀 있었다. 사람들이 입을 대는 끝 부분은 아주 부드러운 느낌을 주었다. 마수디는
샘물을 실컷 마시고 나서, 또다시 직업을 바꾸었다.
마수디는 '카자르 사전'을 쓰는 일과 유대 방랑자의 삶에 대해 기록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가방 속에 넣어 두었던 자료들이 죽음의 진실을 사냥하는 일에 필요한 안내서가 아니었다
면, 마수디는 그것을 모조리 내다 버렸을 것이다. 그래서 마수디는 새로운 목적을 가지고
예전의 사냥감을 계속 따라다니게 되었다.
사파르(이슬람 력 2월)의 달 첫번째 토요일이었다. 마수디의 생각은 아지 떨어지는 나뭇잎
과 같았다. 마수디의 생각들은 하나하나 줄기로부터 떨어져 나와 위로 떨어져 내렸다. 자신
의 생각들이 눈앞에 떠다니는 것을 보면서, 마수디는 한참 동안이나 그것을 잡기 위해 돌아
다녔다. 하지만 마수디의 생각들은 가을의 밑바닥으로 영원히 가라앉아 버렸다. 마수디는 자
기의 뒤를 따라다니던 음유시인들과 가수들에게 돈을 주어 모두 쫓아 버린 다음, 대추야자
수 줄기에 지내고 앉아 두 눈을 감았다. 장화를 신은 발바닥에 불이 났다. 마수디는 자기 자
신과 바람 사이에는 얼음처럼 살을 에는 땀뿐이라고 느꼈다. 마수디는 삶은 계란의 간을 맞
추기 위해 땀을 찍었다. 마수디에제 있어서 다가오는 토요일은 금요일과 마찬가지였다. 마수
디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감지하고 있었다. 마수디는 코헨이 콘스탄티노플로 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수디는 더 이상 코헨을 뒤쫓아 다닐 필요도 없었고, 다른 사람들
의 꿈 속에 나 있는 큰길이나 샛길을 뛰어다닐 필요도 없었다. 사람들은 자기의 꿈 속에 나
타난 마수디에제 오줌을 누고 강간하고 짓밟고 다니는 등 마치 가축을 대하는 것처럼 거칠
게 행동했다. 이제 무엇보다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는 콘스탄티노플에서 코헨을 어떻게 찾아
내는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마수디는 콘스탄티노플에서 코헨을 찾아낼 필요가 없을
지도 모른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마수디 대신 코헨을 찾아 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수
디는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마수디는 코헨이 꿈꾸고 있는 사람을 찾아야만
한다. 그리고 코헨이 꿈꾸고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마수디가 직관으로 이미 알아차린
그 사람일 수밖에 없었다.
"장미 열매 차에 집어 넣은 린덴 꿀 향기가 차 향기를 해치는 것처럼, 나로 하여금 내 주
위의 사람들이 어떻게 코헨을 꿈꾸는지 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무엇이 있다. 거기에는 다
른 누군가가 방해하고 있다." 마수디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미 오래 전부터 이 세상 어
딘가에는 자기 자신이 카자르 민족에 대한 아랍 문헌을 연구하는 것과 비슷한 일을 하는 사
람이 적어도 두 명은 더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 중 한 사람이었던 코헨은 카자르 민족 개
종에 대한 유대측 문헌을 연구하고 있었으며, 아직까지도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제3의 인물
은 분명히 같은 문제에 대한 기독교측 문헌에 말려들어 있을 것이다. 마수디는 제3의 인물
을 찾아야만 했다. 그리스인이거나 기독교도이면서 학식을 갖추고 카자르 문제에 관심이 있
는 사람. 코헨 역시 콘스탄티노플에서 바로 그 사람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찾아내야 하는
것은 바로 제3의 인물이었다. 마수디는 그 사람을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수디는 지금까지 할 수 있는 만큼 다 하고 이제 거의 폭발할 지경이 되었기 때문
에, 또다시 누군가의 꿈 속으로 비틀비틀 걸어 들어가는 것이 싫었다.
마수디의 주위에는 사람이나 동물이 하나도 없었다. 그저 모래가 있을 뿐이었다. 물기 없
는 모래가 하늘만큼이나 먼 곳까지 뻗어 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뒤쪽으로는 거대한 콘스탄
티노플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기운차게 밀려드는 물결은, 달콤하고도 맹렬하게 기습 속
깊이까지 달려 들어와서는 으르렁거더며 꿈 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마수디는 분명히 그것을
기억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마수디가 코란 제5장에 나오는 말씀의 모양을 흉내내어 쓰고
있던 터번 겹겹마다 으르렁거리는 그 소리가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마수디는 세상의 계절과
꿈 속의 계절이 같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마수디는 자기가 지내고 있는 대추야
자수가 꿈을 꾸고 있는 중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것은 물에 대한 꿈이었다. 꿈 속에서 다
른 일은 전혀 벌어지지 않았다. 마치 눈이 부시도록 하얀 터번처럼 강물이 밀려들었다. 마침
내 모든 것을 태워 버릴 듯한 더위 속에서, 마수디는 콘스탄티노플 시내로 들어갔다. 마수디
는 콘스탄티노플의 가장 큰 거리에서 '카자르 사전'한 장 분량의 두루마리를 팔려고 내놓았
다. 그것을 사겠다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는데, 그 사람은 테옥티스트 니콜스키라는 그리
스 수도사였으며, 그것을 구입하여 자기 주인에게 갖다 주었다. 테옥티스트 니콜스키는 값도
묻지 않고 그것을 사더니, 팔 것이 더 없느냐고 물어 보았다. 마수디는 지금까지 찾아 다니
던 세번째 사전 편찬자를 발견한 것이다. 세번째 사전 편찬자의 꿈 속에는 코헨이 나타날
것이며, 마수디는 코헨을 잡는 일에 이 사람을 미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코
헨은 분명히 이 사람을 만나기 위해 콘스탄티노플로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마수디의 가방에서 나온 카자르 문서를 모두 구입한 사람은 터키 주재 영국 특사를 위하
여 콘스탄티노플에서 일하고 있는 외교관이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아브람 브란코비치 였다.
그 사람은 기독교도였으며, 왈라키아의 에르델리 출신이었다.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으며, 옷차림이 무척 화려했다. 마수디는 아브람 브란코비치 밑에서 일하겠다고 부탁햇
으며, 그의 시종으로 고용되었다.
아브람 브란코비치는 밤이면 서재에서 일을 하고 낯에는 잠을 잤기 때문에, 마수디는 바
로 첫날 아침에 아브람 브란코비치의 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아브람 브란코
비치의 꿈 속에서 코헨은 말과 낙타를 번갈아 타고 다니면서 콘스탄티노플 가까운 곳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낯에 코헨의 꿈을 꾼 사람은 아브람이 처음이었다. 아브람과 코헨은 번갈
아 가면서 서로의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좋아! 낙타를 단단히 묶었으면 젖을 모두 짜내
야 하는 법이지 내일 아침에는 누가 그 낙타의 주인이 될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지!"
마수디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수디는 주인의 아이들에 대하여 물어 보았다. 아브
람 브란코비지는 고향 에르델리에 두 명의 아들이 있는데, 작은아들은 머리카락에 병이 걸
려 고생하고 있으며 마지막 머리카락이 머리에서 떨어져 나가면 죽을 것이라고 했다. 다른
아들은 그 당시부터 이미 사브르 검을 즐긴다고 했으며, 이름은 그르구르 브란코비치 였다.
그르구르 브란코비지는 이미 여러 차례 전투에 참가했던 경험이 있었다. "이제부터는 가만
히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거야." 마수디는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음악을 잊어버림으로써 시
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마수디는 노래를 하나하나 잊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많은 노래들을 한 부분씩 잊어 나갔
다. 마수디의 기억 속에서 가장 먼저 사라졌던 것은 낯은 음표들이었다. 망각의 물결은 밀물
이 되어 점점 더 높은 음까지 차올랐다. 그런 다음에는 노래의 살덩이가 사라져 버렸고, 남
은 것이라고는 박자의 골격뿐이었다. 마침내 마수디는 자기가 모아 놓았던 카자르 관련 자
료를 한 글자씩 잊어 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브람의 시종 가운데 한 사람이 '카자르 사전'
을 불 속에 집어 넣었을 때에도 마수디는 별로 슬프지 않았다. 하지만 마수디가 전혀 예상
하지 못했던 사건이 벌어졌다. 아브람 브란코비치가 콘스탄티노플에서 떠나게 된 것이다. 아
브람 브란코비치는 외교 업무를 그대로 놓아 둔 채, 모든 수행원과 시종들을 이끌고 전쟁을
하기 위해 다뉴브 강으로 떠났다.
아브람 일행은 바덴스키 왕자의 진영에서 여장을 풀었으며, 클라도보에서 왕자의 명령을
기다렸다. 마수디는 어떤 방식으로 생각해야 하는지 혹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유대인은 클라도보가 아니라 콘스탄티노플로 가버렸으며, 그래서 마수디의 계획은 엉망
이 되어 버렸다. 마수디는 다뉴브 강변에 앞아 터번을 빙빙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강물이
으르렁거리면서 돌진하는 소리가 들렸다. 강물은 마수디 아래쪽 깊은 곳에서 홀러 가고 있
었지만, 마수디는 그 고함 소리를 분명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강물은 마수디의 터번 한
겹 한 겹에 완벽하게 들어맞았는데, 그 터번은 코란의 제5장에 나오는 어떤 단어 모양을 하
고 있었다. 그것은 한두 달 전에 콘스탄티노플부근 모래 위에서 대추야자수가 꿈꾸던 것과
같은 물이었다. 마수디는 모든 것이 다시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과, 자신의 역정이 다
뉴브 강에서 끝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며칠 동안이나 마수디는 아브람의 서기와 함
께 참호에 앉아 주사위를 던지고 있었다. 그 서기는 많은 돈을 잃었지만, 놀이를 그만두려고
하지 않았다. 터키 군대의 대포가 참호에 와서 떨어질 때에도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 서
기는 자기가 잃은 것을 다시 딸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마수디 역시 참호
앞에서 일어나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마수디의 등뒤에서 아브람이 또다시 코헨의
꿈을 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코헨은 으르렁거리면서 아브람의 꿈 속으로 돌진하는 강물을
뚫고 말을 달리고 있었다.
마수디는 아브람의 꿈 속에서 으르렁거리는 강물 소리와 깨어 있는 마수디 자신의 귀에
들려오는 다뉴브 강물 소리가 서로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바람이 마수디의 얼굴에
진흙을 튀겼다. 마수디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미리 감지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주사위
를 던지고 있을 때, 터키 군대가 오즘 냄새를 풍기면서 참호 안으로 들어왔다. 터키 보병들
이 참호에 있던 사람들을 찔러 죽이고 있는 동안, 아수디는 그 많은 얼굴들 가운데 콧수염
절반이 회색이었던 젊은이를 필사적으로 찾아보았다. 갑자기 그 젊은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
왔다. 다른 사람들의 꿈 속에서 애타게 찾아 다니던 바로 그 코헨이었다. 코헨은 딱딱한 미
소를 짓고 있었다. 그 순간 터키 병사들은 주사위를 던지려던 서기를 조각조각 난도질하고,
잠자고 있던 아브람 브란코비치를 창으로 찔렀다. 터키 병사들은 마수디가 있는 곳으로 다
가왔다. 그런데 마수디를 구한 것은 바로 코헨이었다. 코헨은 아브람을 보는 순간 그대로 땅
바닥에 쓰러졌으며, 코헨이 메고 있던 가망 속의 종이들은 허공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다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마수디는 코헨이 가장 깊은 참 속으로 빠져들었으며, 이제는 결코 잠에
서 깨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통역이 죽었나?"
터키 군대의 파샤(장군)는 병사들을 돌아보면서 물어 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목소
리에는 기쁜 어조가 서려 있었다. 마수디가 아랍어로 대답했다. "아니오, 자고 있습니다."
이 대답은 마수디의 생명을 하루 더 연장해 주었다. 마수디의 대답을 듣고, 파샤는 깜짝 놀
랐다. 그리고 그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물어 보았다. 마수디는 야비르 이븐 아크샤니
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들려 주었다. 다른 사람들이 꾸고 있는 꿈의 고삐를 묶거나
늦추는 것이 바로 마수디 자신이다. 마수디 자신은 매개인을 따라 여기까지 찾아왔다. 그 매
개인은 사냥에서 일종의 미끼와 같은 역할을 하는데, 지금 창에 찔려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
이 바로 그 매개인이다. 마수디는 아침까지 자기를 죽이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코헨은 지
금 아브람의 죽음을 꿈꾸고 있기 때문에, 그 꿈을 따라가 보고 싶다는 것이 었다. "저 사람
이 깨어날 때까지 이 자를 살려 두어라."
파샤가 다른 병사들에게 명령햇다. 터키 병사들은 잠든 코헨의 몸을 들어올려 마수디의
등에 업어 주었다. 마수디는 어렵게 손에 넣은 것을 업고서, 병사들과 함께 터키 진영으로
들어갔다. 마수디의 등에 업혀서, 코헨은 아브람의 꿈을 꾸었다. 마수디는 마치 두 사람을
업고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젊은이는 마수디의 등 위에서 축 늘어진 채, 깨어 있을 때의 아
브람 브란코비치를 보고 있었다. 코헨은 아직까지 아브람이 깨어 있을 때의 현실을 꿈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아브람이 깨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터키 병사의 창이 아브람
을 꿰뚫고 있던 바로 그 시기였다. 죽음 속에는 잠이 없다. 마침내 야비르 이븐 아크샤니가
말하던 기회가 찾아왔다. 코헨은 그 때까지 아브람의 삶을 꿈에서 보았던 것처럼 이제 아브
람의 죽음을 꿈에서 보고 있었으며, 그렇게 하는 동안 마수디는 젊은이의 꿈을 사냥했다. 마
수디는 별과 같은 코헨의 꿈을 추적하면서 그날 낯과 밤을 보냈다. 많은 사람들은 아브람이
자기 자신의 죽음을 보는 것과 똑같은 위치에서, 마수디가 아브람의 죽음을 보았다고 말했
다.
아침이 되었을 때, 마수디의 눈썹은 하얗게 새어 있었고 두 귀는 덜덜 떨렸으며 길게 자
란 손톱에서는 냄새가 났다. 마수디의 생각은 너무나 급하게 돌아가고 있었으므로, 누군가가
단칼에 자기 허리를 베어 버렸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마수디의 허리끈은 울릴 틈도 없이 그대로 미끄러져 내렸다. 사브르 검은 구불구불한 자
국을 남겼으며 참혹하게 베인 상처는 입을 쩍 벌린 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뱉어 내고 있
었다. 그것은 살덩이들의 비명이었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소름끼철 만큼 구불구불한 사
브르 검 자국을 결코 잊지 못했다고 한다. 또 그것을 기억하고 있던 사람들은 나중에 '사브
르 검이 남긴 가장 훌륭한 서명'이라는 책에 그 검술법이 실려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
책은 아베르커에 스킬라라는 사람이 집필했는데, 그 사람은 가장 유명한 검술을 수집해서
자세하게 기록했다. 마수디가 그렇듯 처참하게 죽을 만한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마수디가 죽
기 직전에 파샤에게 털어놓은 이야기가 무엇 인지 아무도 모른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건너
가려면 머리카락보다 더 가늘고 사브르 검보다 더욱 날카로운 시라트 다리를 지나야 하는
데, 마수디가 이 다리를 건너갔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아무런 말도 없다. 어
떤 전설에 따르면 마수디의 음악은 천국으로 가고 마수디 자신은 지옥으로 가면서 이런 말
을 했다고 한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나는 내가 노래를 전혀 불러 본 적이 없었던 사람이
었으면 한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나는 다른 저속한 사람들이나 인간 쓰레기들처럼 낙원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진실이 내 손이 땅는 곳에 있을 때, 나는 음악을 따라다니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
마수디의 무덤 주위에는 다뉴브 강이 흐르고 있었다. 마수디의 비석에는 다음과 같은 내
용이 새겨겨 있다.
내가 이 세상에서 배우고 얻었던 모든 것들은 숟가락으로 이빨을 한 번 가볍게 치자 모두
사라져 버렸다.
무카다시 알 사파르(MOKADDASA AL-SAFER : 9, 10, 11세기)-수녀원에서 기거하던
카자르 사제. 무카다사 알 사파르는 길고 긴 인생을 살아가면서 다른 수도원에서 온 수도사
와 함께 말이나 판도 없이 체스를 두었다. 카스피 해에서 흑해까지 펼쳐진 넓은 공간 속에
서 두 사람은 1년에 말을 한 번씩 움직였다. 두 사람은 번갈아 가면서 매를 풀어 주었으며,
그 매는 상대방이 말로 사용하는 동물을 공격했다. 두 사람은 동물이 어느 지점에서 잡혔는
지만을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사냥터의 해발 고도까지 측정했다. 무카다시 알 사파르는 가
장 훌륭한 카자르 꿈 사냥꾼 가운데 한 명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아담 루하니의 꿈 사전 가
운데 무카다시 알 사파르가 아담 루하니의 머리카락 한 가닥 몫을 했다고 믿는다(마수디,
유수프를 볼 것).
무카다시 알 사파르의 독특한 기도법과 그가 속한 종단의 특성 때문에 1만명의 처녀 수녀
들이 아이를 배게 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그 중에서 가장 마지막 수녀였던 아테 공주는 무
카다시 알 사파르에게 자기 침실 열쇠를 보냈는데, 그 곳은 작은 여성 열쇠로 손잡이가 있
는 자리에 황금 동전이 달려 있었다고 한다. 무카다시 알 사파르는 목숨을 내놓음으로써 이
열쇠에 대한 대가를 치렀다. 왜냐하면 이 일로 인하여 아테 공주의 정부였던 카간이 질투심
에 불타 올렸기 때문이다. 무카다시 알 사파르는 물 위에 매달아 놓은 우리에 갇힌 채 죽었
다.
무아위아, 아부 카비르 박사(MUAWIA, DR. ABU KABIR: 1930~1982년)-유대교를 신
봉하는 아랍인. 카이로 대학 교수. 전공 분야는 중동 종교 비교 연구. 예루살렘에 있는 대앞
에서 수확하고 '11세기 스페인의 유대 사상과 무타칼림의 교육'으로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아부 카비르 무아위아 박사는 잘생겼으며 어깨가 아주 넓어서 양쪽 팔꿈치가
서로 붙지 않았다. 무아위아 박사는 유다 할레비의 시를 대부분 외우고 있었으며, 1691년에
다우브마누스가 출간한 '카자르 사전'을 오래된 책꽂이에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
다. 이러한 주장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하여 박사는 17세기와 그 이후 '카자르 사전'의
행방을 재구성하면서 간단한 목록을 작성했다. 그 목록에 올라 있는 사건은 대부분 파기되
어서, 사람들 사이에 돌아다닐 수 있었던 것은 몇 권밖에 되지 않았다. 결론을 내리자면 마
지막 판본 가운데 적어도 두 권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무아위아 박사는 누군가가 '카자르 사전'을 한 번 보여 주기만 한다면 계란을 통째로 삼킬
수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사전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박사가 터져 나오는 창조력으
로 3000번째 작품의 출판을 준비하고 있던 1967년에 이스라엘-이집트 사이에 전쟁이 벌어
졌다. 무아위아 박사는 이집트 군 장교로 전쟁에 나가서 부상당하고 포로로 잡혔다. 군사 기
록을 보면 박사는 머리와 몸에 심한 상처를 입었으며, 그 상처들 중 하나 때문에 영영 성
불구자가 되었다.
무아위아 박사가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얼빠진 미소를 얼굴에 붕대처럼 감고 있거
나 목도리처럼 뒤에 질질 끌고 다녔다. 무아위아 박사는 호텔에서 군복을 벗고 처음으로 상
처들을 구리 거울에 비추어 보았다. 그 상처에서는 새똥 냄새가 풍겼다. 박사는 자신이 두
번 다시 여자 옆에 누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아위아 박사는 천천히 옷을 입으면
서 이런 생각을 했다. "지난 30년 동안 나는 요리사였다. 나는 조금씩 요리 재료를 준비해서
한 곳에 섞어 두었다. 나는 빵을 굽는 사람이었으며, 동시에 밀가루 반죽이었다. 그래서 내
가 원하는 빵이 되도록 나 자신을 반죽했다. 그런데 갑자기 새로운 요리사가 칼을 들고 나
타나서는 나를 휘저어 놓았고, 나는 눈깜짝할 사이에 완전히 다른 음식으로, 도대체 무엇인
지 알 수도 없는 음식으로 바뀌어 버렸다. 이제 나는 신의 여동생이다. 나는 더 이상 존재하
지 않는다!" 그래서 무아위아 박사는 카이로에 있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대학
교에 다시 나가지도 않았다. 무아위아 박사는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아버지의 빈 집으로 옮
겨 가서 살았다. 그는 물고기 아가미에서 나오는 공기 방울처럼 하얀 공기 방울이 자기 손
톱 밑에서 부터 세상 속으로 빠져 나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무아위아 박사는 자신의 머리
카락을 땅에 묻고 베두인 사람들의 샌들을 신었는데, 그 샌들을 신고 지나가면 발굽 자국이
남았다. 커다란 빗방울이 쏟아 지던 어느 날 밤, 박사는 자기 생애에서 마지막 꿈을 꾸었고,
그것을 간단하게 적어 두었다.
두 여인이 앙상한 두 다리에 창백한 얼굴을 지닌 사람처럼 몸집이 작고 하얀 반점이 난
동물을 보았다. 그 동물은 강가의 덤불에서 뛰어나와 오솔길을 따라 달려갔다. 여인들이 소
리쳤다. "저기 봐(여인들은 그 동물의 이름을 똑똑히 불렀다)!" 그들이 그녀의 사족 중에서
한 사람을 살해했거나 그녀의 가정을 파과한 것이 틀림 없었다. 그 여인은 공포에 사로잡혔
을 때, 언제나 더욱 아름답고 더욱 눈부셨다. 이제 나는 그 여인에게 책 한 권과 영필 한 자
루를 누어야 한다. 그 여인은 그것을 받아 들고 읽거나 무엇인가를 쓰려고 하자만, 종이 위
에 쓰지 않고 꽃에다 쓸 것이다......
무아위아 박사의 꿈은 아주 이상한 것이었다. 무아위아 박사는 그 다음날도 역시 같은 꿈
을 꾸었다. 그런데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그 동물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 다음에 박
사는 자신이 꾸었던 꿈을 하나하나 다시 꾸었는데, 뒤에서 부터 거꾸로 꾸어 나갔다. 가장
처음으로 지난밤에 꾸었던 꿈을 꾸었고 그 다음에는 이틀 전에 꾸었던 꿈 그리고 다시 사흘
전에 꾸었던 꿈, 이런 식으로 계속 거슬러 올라갔다. 그런데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겨우 하
룻밤 사이에 지난 몇 년 동안의 꿈을 모두 다 꾸기도 했다. 서른일곱번째 밤이 지나자, 무아
위아 박사는 할 일을 다 마쳤다. 가장 어렸을 적의 꿈까저 돌아가 보았기 때문이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 꿈은 더 이상 박사의 머리 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무아위아 박사의 하인들
중에는 아슬란이라는 흑백 혼혈이 있었는데, 그는 턱수염으로 더러운 접시를 닦았고 오직
수영을 하는 경우에만 똥을 누었으며 맨발로 빵을 자를 수 있었다.
무아위아 박사는 37년 전의 자기 모습보다, 지금의 아슬란이 현재 자신의 모습과 더 닮았
다고 결론짓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인하여 무아위아 박사는 마지막 꿈을 꾸었던 것이다. 밤
이면 박사의 시간은 카자르의 시간처럼 인생의 마지막에서 부터 처음으로 흘러갔으며 그런
다음에는 영원히 끝났다. 그 뒤로 박사는 두 번 다시 꿈을 꾸지 않았다. 무아위아 박사는 정
결했으며, 새로운 삶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무렵 무아위아 박사는 저녁마다 '암캐
의 술집'에 출입하기 시작했다. '암캐의 술집'에서는 자리에 대한 요금만 받았다. 그곳에서는
술이나 음식을 팔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난뱅이들은 자기들이 직접 가져온 것을 먹고 마
썼으며, 자리에 앉아서 잠이 들곤 했다. 때때로 그곳에 사람이 잔뜩 들어차기도 했지만, 어
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곳에는 바도 없었고 부엌도 난로도 종업원도 없었다. 한 사
람이 문 앞에서 자리에 대한 요금만 받을 뿐이었다. 박사는 다른 손님들 사이에 자리를 잡
고 앉아 파이프 담배에 불을 붙이고 무엇인가 연습하는 일에 골몰했다. 무아위아 박사는 한
가지 생각이, 파이프를 빠져 나오는 연기보다 더 길어지지 않도록 조심했다.
무아위아 박사는 악취를 들이마시면서 자기의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곰팡이가 슬
어 있는 둥근 빵이나 포도가 들어 있는 호박 쨈을 입 안 가득 밀어 넣고 있었다. 박사는 많
은 사람들이 씁쓸한 표정으로 음식을 먹어지운 다음, 손 수건으로 이빨 닦는 모습을 지켜보
았다. 또한 사람들이 잠을 자려고 할 때, 입고 있던 옷이 벌어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
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무아위아 박사는 자신과 그들이 살아가는 1초 1초는 지난 세기에서
가져온 너덜너덜한 넝마로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거를 가지고 현재의 시간을
지어내는 것이다. 현재는 과거를 재료로 만들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재료라고는 그것 뿐이기
때문이다.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과거의 순간들을 가지고, 지난 수세기 동안 다양한 건축물
을 지었기 때문에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현재의 시간 속에 과거라는
재료를 분명히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베스파시 아누스 시대에 만들어진 금화를 알
아보고 그것을 시장에 내놓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무아위아 박사의 고통을
조금도 덜어 주지 못했다. 박사는 오히려 주위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커다란 위안을 받았다.
미래가 이미 자기를 속인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속일 것이라는 사실 이외에는 더 이상 바
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이 사람들이 박사에게는 위안이 되었던 것이다. 근심과 걱정에 찌
들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는 음식을 먹는 일이 전부였던 그 사람들의 도움으로, 박사는 새
로운 삶을 살아 나갈 수 있는 길을 찾게 되었다. 이곳에 앞아서 소아시아까지 악취를 풍기
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무아위아 박사 자신보다 더 불행하게 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는 사실이 무아위아 박사의 마음을 달래 주었다.
'암캐의 술집'은 박사에게 어울리는 곳이었다. 소금으로 반들반들해진 탁자와 생선 기름
램프가 있는 그곳은 실제보다 적어도 70년은 더 오래된 곳처럼 보였다. 그러한 사실 역시
무아위아 박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박사는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시대와 관련된
것은 모두 다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박사가 자신의 현재만큼이나 혐오하는 자
신의 직업이 과거에서 무아위아 박사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박사는 일종의 반과거 속
으로 빠져들었다. 그 곳에서는 오팔과 비취가 아직까지도 배다른 자매이며 사람들이 살기
위해 남겨 두고 간 날들을 뻐꾸기가 여전히 헤아리고 있고, 여전히 날이 무딘 칼들이 만들
어 졌다.
쇠고기와 양고기 요리로 저녁 식사를 한 후에, 박사는 아버지 집에서 오랫동안 문을 열지
않았던 방으로 들어갔다. 무아위아 박사는 그곳에서 밤이 늦도록 19세기 말에 알렉산드리
아에서 출간된 영지 신문과 프랑스어 신문을 한 장 한 장 훑어보곤 했다.
박사는 발꿈치로 중심을 잡은 채 웅크리고 앉아서 영양가 많은 고기가 어두 컴컴한 자기
의 몸 속을 따라 흩러가는 것을, 느끼며,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는 것처럼 관심을 가지고 신
문을 읽었다. 왜냐하면 그 신문은 박사 자신과 관련된 것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목
적에 더할 나위 없이 잘 들어맞는 것이 바로 광고였다. 무아위아 박사는 밤이면 밤마다, 이
미 오래 전에 묵은 사람이 신문에 낸 광고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는 아무런 의
미가 없는 제안들이, 무아위아 박사보다 더욱 오래된 먼지 속에서 받짝거렸다.
누렇게 바랜 종이 속에는 통풍에 잘 듣는 프랑스 브랜디, 남자들과 여자들 입에 맞는 물
광고가 인쇄되어 있었다. 그리고 흼가리의 아우구스트 지에글러는 자신이 운영하는 특별한
상점은 명원, 의사, 산과를 상대로 하며 배탈약과 스타킹, 잘 늘어나는 고 무 구두창 등을
취급한다고 광고 했다.16새기 칼리프의 후손은 1500개의 망이 있는 궁전을 내놓았는데, 튀니
지 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바다에서 보면 불과 20미터 아래에 해수
면이 있다고 했다. '타람' 이라고 하는 남풍이 불어오고 밝게 갠 날이면 언제나 이 궁전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았던, 나이 많은 부인은 자명종 시계를 내좋았는데, 그
시계는 장미 향기와 쇠똥으로 잠을 깨운다고 했다. 유리로 만들어진 머리카락이나 완장을
사라는 광고가 있었는데, 이 완장을 팔에 자게 되면 손을 집어삼킨다고 했다. '성스러운 삼
위일체 교회'에서 운영하는 '기독교 약국'에서는 레만 박사가 만들었던 주근깨 제거제, 아기
똥풀, 낭창에 잘 듣는 약 그리고 특별한 가루약을 파는데, 이것을 낙타, 말, 양에게 발라 주
면 식욕도 좋아지고 지저분한 질병이나 옴 그리고 극도의 피로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이
름을 밝히지 않은 사람이 유대인의 영혼을 의상으로 사고 싶다고 했다. 어떤 저명한 건축가
는 고객의 주문에 따라 호화로운 여름 별장을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천국에 지어 주겠다고
제안했다. 고객이 돈을 치르고 나면 살아 있는 동안에라도 열리를 받을 수 있는데, 돈을 치
를 때에는 건축가를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카이로의 하층민들을 상대해야 한다고 했다.
신혼여행을 갈 때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을 막아 주는 약도 나와 있었다. 도마뱀이나 중국
장미로 변하는 마법의 단어를 팔리고 내동은 사람도 있었다. 벌레를 없애 버리는 것처럼 여
드름, 주근깨, 낭창을 없애 버리고 나면 모든 여자들은 더욱 아름답게 변한다. 로니의 영국
식 표백제가 당신의 아름다움을 도와 드릴 수 있다고 하는 광고도 있었다. 페르시아 암탉과
병아리 모양처럼 생긴 녹차용 도자기 세트도 있었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회사와 판매원과 오래전에 문을 닫은 상점의 이름과 주소가 누렇
게 변색되는 신문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무아위아 학사는 자신의 고통이나 비애에 흥미
를 갖지 않는, 지나가 버린 세상 속으로 들어갔다.
1971년의 어느 날 저넉 무아위아 박사는 입 속의 이빨 하나하나가 독립된 글자처럼 느껴
지자, 조심스럽게 1896년으로부터 온 광고에 답장을 썼다. 무아위아 박사는 이름과 주소를
조심스럽게 옮겨 적었는데, 알렉산드리아 거리에 아직까지 그런 곳이 존재하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었다. 무아위아 박사는 그 편지를 우송했다. 그 순간부터 무아위아 박사는 저녁마다
19세기에서 보내 온 또 다른광고에 회신을 보내곤 했다. 아주 많은 양의 편지를 알지 못하
는 누군가에게로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첫번째 답장이 도착했다. 답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박사가 잡지
에 언급한 것처럼,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되는 프랑스 투룰 특허품 광고를 내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것을 팔지 않으며 그 대신 다른 것을 줄 수 있다고 했다. 바로 그 다음날 아침에
어떤 소녀와 앵무새가 광고와 관련해서 무아위아 박사를 방문했다. 소녀와 앵무새는 이중창
으로 나막신에 대학 노래를 불렀다. 그런 다음에 앵무새가 독창을 했는데, 무아위아 박사는
그것이 어느 나라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부 카비르 무아위아 박사가 두 가지 중에서 어느 쪽을 파는 것인지 물어보자, 그 소녀
는 무아위아 박사가 선택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무아위아 박사는 그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
소녀는 아름다운 눈을 가지고 있었으며, 가슴에는 두개의 계란 부침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무아위아 박사는 무기력한 생활을 털고 일어나서, 아슬란에게 다락에 있는 큰 망들 가운데
하나를 치우라고 지시했다.
무아위아 박사는 먼저 앵무새를 구입한 다음, 앵무새를 위하여 그 방에 유리받침대를 갖
다 놓았다. 오래 전에 다양한 광고를 냈던 사람들의 상속자들이 하나 둘씩 무아위아 박사의
편지에 답장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그 방이 조금씩 채워지게 되었다. 그 방에는 모양이 이상
하고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없는 수많은 가구들과 거대한 낙타 안장, 단추가 있을 자리에
방울이 달린 여자 옷, 사람을 천장에 매달아 놓았던 동물 우리가 들어 있었다. 그 방에는 두
개의 거울도 있었는데, 그 중에서 하나는 동작을 비추는 것이 약간 느렸고 다른 하나는 금
이가 있었다. 그리고 아주 오래 전에, 알 수 없는 활자체와 알 수 없는 언어로 기록한 노래
가사가 있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년 후 그 방은 여러 가지 물건들로 가득 차게 되
었다. 무아위아 박사는 어느 날 아침 이 방으로 들어와서 그 물건들이 어떠한 의미를 형성
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박사가 손에 넣은 것들 중 몇 개는 병원 비슷한
어떤 곳에서 사용하던 연장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득한 과거의 특수 병원으로 지금과 같
은 방식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 방에 놓여 있던 의자에는 이상하게 갈라진 틈새가 있었으며,
기다린 의자에는 둥근 모양의 꾀 손잡이가 달려 있어서 앉을 때 붙잡게 되어 있었다. 나무
로 만든 가면도 있었는데, 왼쪽 눈에만 틈이 벌어진 것, 오른쪽 눈에만 틈이 벌어진 것 그리
고 이마에 있는 제3의 눈에만 틈이 벌어진 것, 이렇게 세 종류가 있었다. 박사는 이 물건들
을 다른 방으로 옮겼다. 무아위아 박사는 외과 대학에 있는 동료를 불러다가 그 물건들을
보여 주었다.1967년의 전쟁 이후로 무아위아 박사가 대학 친구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었다. 친구는 그 물건들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어느 날 저녁 무렵에 죽은 사람이 무덤으로부터 돌아와서 가족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
다네. 그 사람은 살아 있을 때처럼 여전히 어리석었지 죽음은 사람을 한치도 더 현명하게
만들지 않았어. 꿈에서 사용하는 시력을 회복시켜 주기에, 이 도구들은 이미 너무 낡았다네.
어떤 사람들이 믿고 있는 바에 따르면, 우리가 깨어 있을 때 사용하는 눈과 잠잘 때 사용하
는 눈이 서로 다르다고 하지"
무아위아 박사는 이 말에 미소를 지었으며, 지난번의 커다란 방에 앵무새와 함께 남겨 두
었던 물건들에 주의를 집중했다. 하지만 꿈 속에서 눈이 어두워지는 것을 막아 주는 도구들
을 넣어 두었던 방과 비교했을 때, 이곳에 있는 물건들 사이의 연관성을 밝혀 내는 것은 더
욱 어려운 일이었다.
박사는 이러한 모든 것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을 찾아내기 위해 애쓰다가 결국에는 자신이
과거에 사용하던 방법을 써보기로 결심했다. 컴퓨터를 사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박사는 예전에 카이로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에제 전화를 겉었다. 그 사람은 가능성을 계
산하는 일에 대단한 전문가였다. 무아위아 박사는 그 사람에게, 편지를 한 통 보냈으나 거기
에 열거해 놓은 물건들의 이름을 모두 다 컴퓨터에 입력하라고 부탁했다. 컴퓨터는 사흘 뒤
에 자신이 발견한 사실을 내놓았고, 무아위아 박사는 카이로에서 보내 온 보고서를 받았다.
시에 대하여 컴퓨터가 알아낸 것은, 그 시는 1660년에 만들어전 종이에 슬라브어로 적어
놓은 것이며 그 종이에는 세잎클로버가 달린 깃대 아래에 양이 그려진 무늬가 찍혀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앵무새, 방울이 달린 낙타 안장, 물고기처럼 생긴 열매를 말려 놓은 것, 사
람을 가두는 우리 등의 물건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컴퓨터에 입력한 자료는 몹시
불충분했으며 그나마 그 자료들도 대부분 무아위아 박사 자신의 연구 결과였는데, 하지만
그러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한 컴퓨터가 밝혀 낸 사실은 이러한 모든 물건들이, 이제는 사라
져버린 '카자르 사전'에 언급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아부 카비르 무아위아 박사는 몇 해 전 전쟁터로 출발하던 바로 그 당시의
시절로 돌아갔다. 무아위아 박사는 다시 한 번 '암캐의 술집'에 가서 파이프 담배에 불을 붙
이고 주위를 돌아본 후에 담배를 껐다. 그리고 과거의 직장이었던 카이로 대학교로 돌아갔
다.
책상 위에는 한 무더기의 편지와 여러 가지 회의 초대장이 박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아
위아 박사는 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서 논문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회의는 '중세 흑해
연안 지역의 문화'를 주제로 1982년 10월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박사는 카자르
민족에 대한 유다 할레비의 글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논문을 써서 콘스탄티노플을 향해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 가면 카자르 민족의 이야기에 대해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알
고 있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무아위아 박사를 살해한 사람은, 무아위아 박사를 향해 총을 겨누면서
이렇게 말했다. "입을 벌려. 그래야 이빨이 상하지 않지!" 박사는 입을 벌렸으며, 총을 맞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살인범은 아주 정확하게 조준했기 때문에, 무아위아 박사의 이빨은 원
래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음악을 짓는 석공(MUSlC MASON)-카자르 민족 중에는 암염을 커다랗게 잘라서 바람
이 오는 길목에 쌍멕 올리는 석공들이 있었다.40개의 카자르 바람(그 가운데 절반은 싱싱했
고 절반은 달콤했다)이 불어오는 각각의 길목마다 소금기가 있는 대리석이 보기 좋게 세워
져 있었다. 해마다 불어오는 계절풍이 다시 나타날 무렵이면, 사람들은 그 길목마다 모여서
어느 석공이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지었는지 들어 보았다. 바람이 바위를 어루만지고 바위
틈새로 빠져 나가거나 옷자락을 끌고 지나가면서 항상 다른 곡조를 연주했기 때문이다. 암
염과 석공이, 빗물에 씻기 나가고 행인들의 눈길에 채찍질을 당하고 양과 소의 혓바닥에 닳
아서 영원히 사라져 버릴 때까지 그 음악은 계속되었다.
음악을 짓는 석공들 가운데 아랍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그 사람은 봄을 맞아 자기가 쌓
은 돌이 어떻게 노래를 부르는지 들어 보려고 유대인 한 명, 카자르인 한 명과 함께 걸을
떠났다.
많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같은 꿈을 꾸는 사원에 이르러, 유대인과 카자르인은 서로 치
고 받고 싸우다가 죽어 버렸다. 사원안에서 잠을 자고 있던 아랍인은 유대인을 죽였다는 협
의를 받게 되었다. 왜냐하면 아랍인과 유대인은 이웃에 살면서 무슨 일이든 서로 그냥 넘기
지 않는 사이였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대인은 기를 쓰고 아랍인을 죽이
려고 한 것이다. 아랍인은 이런 생각을 했다.
'삼면에서 공격해 오도록 야기한 사람은 누구든지 네번째 방향으로 빠져 나가지 못할 것이
다. 카자르 제국에서 그리스인은 기독교 법으로 보호받고 유대인은 유대 법으로, 아랍인은
이슬람 법으로 보호받고 있으며, 이러한 세 가지 법은 카자르 제국보다 더욱 강력하다.'
그래서 아랍인은 자기 자신을 변호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쳤다(이부분에서 원
본이 회손되었다).
겨우 아랍인은 사형을 면하고 노예선에서 일하게 되었다. 마침내 그 사람은 살아서 대리
석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아랍인이 쌓멕 올린 대리석은 결국 침묵 속에 무너졌는데, 그
것은 너무나 단단해서 사람의 이마를 단번에 박살낼 수 있을 정도였다.
무스타지 벡 사블작(MUSTAJ-BEG SABLJAK: 7세기)-트레비네(흑해 북부 도시)의 터
키 지휘관 가운데 한 사람. 그 당시의 사람들이 전하는말에 따르면, 무스타지 벡 사블작은
무엇인가를 먹을 때마다 동시에 배설했다고 한다.
사블작은 군대를 이끌고 출정할 때마다 물에 젖은 유모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자신에게 젖
을 먹이도록 했다. 하지만 여자들이나 일반 서민들과는 어울리려고 하지 않았다. 사블작은
오로지 죽어가는 사람 옆에만 누워 있을 수 있었다. 그래서 사블작의 시종들은 돈을 주고
죽어가는 여자, 남자, 어린아이들을 사서 목욕을 시키고 적당한 옷을 입힌 다음 사블작의 막
사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사블작은 그런 사람들하고만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사블작은 언제나 버릇처럼 말하기를 자신의 아이는 저 세상에서 태어나지, 이 세상에서는
태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사블작은 때때로 비탄에 젖기도 했다.
"그 아이들이 어느 천국에서 그리고 어느 지옥에서 태어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그
아이들이 길을 잘못 들어 유대 천사나 기독교 악마에게로 갈 수도 있어. 내가 천국에 간다
면 저 세상에서도 그 아이들을 결코 볼 수 없겠지"
사블작은 다르위시에게 자신의 기질을 아주 간단하게 설명했다. "죽음과 사랑, 이 세상과
저 세상이 서로 너무나 가까운 곳에 놓여 있을 경우에는 양쪽에 대해 대단히 많은 것을 배
울 수 있지 이것은 정기적으로 저 세상에 갔다 오는 원숭이들과 같아. 원숭이들이 이 세상
으로 돌아왔을 때, 무엇을 물어 보더라도 순수한 지혜가 흘러나오지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원승이에게 자기의 손을 내밀어 들도록 한 다음, 원숭이의 이빨 자국을 보고 진실을 읽는다
고 하는데, 그것은 조금도 놀랄 만한 일이 아니야. 하지만 난 그런 식으로 원숭이에게 물릴
필요가 없어."
그래서 사블작은 말을 사들이는 것 이외에도 죽어가는 사람들을 사들였다. 그는 말을 사
랑했지만 올라타지는 않았으며, 죽어가는 사람을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올라탔다.
무스타지 벡 사블작은 해변에 훌륭한 말묘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곳은 대리적으로 되어
있었으며, 사무엘 코헨 이라는 두브로브니크 출신 유대인이 관리했다. 이 유대인은 왈라키아
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사블작 진영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대로 적어 두었다.
사블작 파샤의 병사 중 한 사람이 규칙을 위반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었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 그 병사의 부대가 다뉴브 강변에서 적군과의 전투를 마친 후에 살아남은 것
은 그 병사뿐이었다.
지휘관의 주장에 따르면, 그 병사는 한창 전투가 벌어지는 도중에 도망쳐서 복습을 부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명사의 주장에 따르면, 그들은 어두운 밤에 공격을 받았는데 적군들
은 모두 옷을 벗고 공격했다고 한다. 그런데 일어나서 용감하게 싸운 것은 자기 혼자뿐이었
으며 자기가 살아남은 것은 두려움에 무릎을 꿇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그 병사를 사블작 앞으로 끌고 가서 유죄인지 무죄인지 가려 달라고 했다. 사람
들은 그 병사의 소매를 걷어 올린 후 파샤가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파샤는 이 조사에 참석
한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파샤는 짐승처럼 병사에게 달려들더니, 팔을 깨물어 크게 한 입 베어 내었다. 그런 다음에
불쌍한 병사로부터 냉담하게 등을 돌리고 돌아섰다. 그 병사는 즉시 막사 밖으로 끌려 나갔
다.
파샤는 그 병사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고 병사와 한마디의 말도 주고받지 않았다. 파샤
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병사의 살점을 씹고 있었다. 오랫동안 먹어 보지 못한 음식의 맛
을 기억해 내려고 애쓰고 있거나 혹은 포도주의 품질을 가려내려고 애쓰고 있는 것만 같았
다. 마침내 파샤는 병사의 살점을 뱉었다. 그 것은 밖에 있는 사람을 죽이라는 표시였다. 파
샤가 살점을 뱉어 내는 것은, 피고가 유죄라는 증거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나는 사블작 파샤 밑에서 오랫동안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재판을 여러 번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사블작 파샤가 물어뜯었던 살점을 삼키면, 고소는 즉각 취소되고 피고는 석방되었다.
사블작 파샤는 몸집이 크고 생김새가 울퉁불퉁했다. 그래서 마치 옷 위에 살갗을 걸친 것
같았으며, 머리카락과 두개골 사이에 터번을 두른 것 같았다.
카자르 사전 얼마 있지 않아서 우리는 불이 붙은 비둘기들이 터키 진영 위로 날아오르
는 모습을 보았다. 첫번째 비둘기가 날아올랐고 그 다음에 두번째 비둘기가 그리고 세번째
비둘기가 다시 날아올랐다. 총을 쏘는 소리가 몇 번이나 들렸다. 그런 다음에 아브람은 기병
대와 함께 아군 진영으로 돌아왔는데, 여전히 기다란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장군은
깜짝 놀라면서 무엇 때문에 대포를 공격하지 않았느냐고 물어 보았다. 아브람은 아무런 말
도 없이 파이프로 언덕을 가리켰다. 초록색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터키 군의 대포 소리
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요새가 함락된 것이다. 그 다음날 아침 아브람 브란코비치는 간
밤의 전투 때문에 녹초가 되어 막사 앞에서 쉬고 있었다. 마수디와 세바스트는 주사위 놀이
에 열중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사흘째 주사위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세바스트가
엄청나게 잃고 있었지만 마수디는 놀이를 그만두려고 하지 않았다. 아브람은 잠을 자면서
그리고 두 사람은 놀이를 하면서 그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런데 갑지기 총알이 빗발치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했다. 하지만 아브람은 대피하지 않고 여
전히 막사 앞에서 잠을 자고 있었으며, 마수디와 세바스트는 주사위 놀이에 열중하였다. 그
런데 바로 그 순간 터키 군인들이 참호를 공격해 왔으며,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을 칼로 내
리쳤다. 터키 군인들의 뒤를 따라서 트레비네의 사블작 파샤가 나타났다. 그는 오로지 죽은
자들만을 바라볼 뿐,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얼마 있지 않아 뒤를 따
라 그곳으로 달려온 젊은이가 있었는데, 그 사람은 얼굴이 창백하고 콧수염이 절반 정도 회
색이었다. 아브람의 비단 조끼에는 외눈박이 독수리가 그려진 브란코비치 가문의 문장이
수놓여 있었다. 터키 병사 하나가 수놓인 새에 창을 꽂아 넣었는데, 너무 힘을 준 나머지 쇠
로 만든 창날이 잠자는 사람의 가슴을 꿰뚫고 바위에 가서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죽는
순간 잠에서 깨어난 아브람은 한쪽 팔로 몸을 일어켰다. 아브람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본 것은 붉은 눈에 콧수염이 절반 정도 회색이었으며 유리 손톱을 가진 젊은이였다. 갑자
기 그의 몸에서 방울방울 땀이 솟아났으며 두 줄기의 땀이 목 주위레서 한 곳으로 모아졌
다. 아브람이 힘을 주고 있던 팔이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상처를 입었음에도 불구하
고 그쪽 팔을 신기한 듯이 바라보다가, 안간힘을 써 가면서 팔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그 팔은 한참 동안 계속해서 경련을 일으키다가, 떨림이 잦아드는 악기 줄처럼 움직임이 느
려졌다. 팔이 거의 움직이지 않게 되었을 때, 그는 조용히 허물어졌다. 바로 그 순간 창백한
얼굴의 그 젊은이가 자기의 그림자 속으로 무너져 내렸다. 마치 아브람을 보고 쓰러지는 것
같았다. 젊은이가 들고 있던 가방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죽은 사람이 사무엘 코헨이라는 말
인가?" 터키 군의 파샤가 이상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터키 병사들은 노름을 하고 있던 두
사람 중 하나가 젊은이를 쏘았다고 생각하고 지체없이 니콘 세바스트를 내리쳤다. 미처 던
지지 못한 주사위가 아직까지도 여전히 세바스트의 손 안에 있었다.
그런 다음에 병사들은 마수디를 바라모았는데, 마수디는 파샤에게 아랍어로 무엇인가 이
야기를 해 주었다. 창벡한 젊은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그저 잠이 들었을 뿐이라고 경고를
해 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수디는 목숨을 하루 더 연장했다. 파샤는 마수디를 칼
로 죽이되, 그날은 죽이지 말고 그 다음날 죽이라고 명령했으며, 병사들은 충실하게 그 명령
에 따랐다. 아베르키에 스킬라는 아브람 브란코비치에 대한 보고서를 다음과 같이 끝맺고
있다. 나는 사브르 검의 명수이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매번 다르다.
그것은 새로운 여자를 침대로 데리고 가는 것이 매번 다른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는 사람이 있고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당신이 죽인 사
람 가운데는, 당신이 침대로 데려간 여자들과 마친가지로 당신을 두고두고 잊지 못하는 사
람이 있다. 아브람 브란코비치의 죽음은 아직까지도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 당
시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파샤의 아들이 어디에선가 따스한 물을 한 통 가지고 달려 나오
더니 아브람으 축 늘어진 몸을 목욕시킨 후 어떤 늙은이에게 넘겨 주었다. 그는 향수, 향유,
대마를 가득 채운 신발을 목에 걸고 있었다.
나는 그 노인이 아브람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인은 빗질
을 해 주었다. 이렇게 몸치장을 한 후 아브람을 사블작 파샤의 막사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
다. `결국 또 한 명의 벌거벗은 세르비아인이구나.'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브람은 다
음날 아침, 그 막사에서 세상을 떠났다. 동방 정교회력으로 치면 1689년이었으며, 성스러운
순교자 유티키우스의 날이었다. 아브람 브란코비치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 사블작 파샤는
막사 앞으로 나와서 손을 씻어야겠으니 포도주 좀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브란코비치, 그르
구르(1676~1701년) `스튈리테스'를 보시오. 실라레보(7~11세기) - 유고슬라비아으 다뉴브강
유역에 있는 고고학 발굴지로 중세 무렵의 묘지, 하지만 묘지를 만들었던 정착촌은 발견되
지 않았다. 실라레보 묘지에 묻힌 사람들이 정확하게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들이
아바르족이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무덤 안에서 발굴된 물품
들은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았다. 게다가 메노라와 또 다른 유대 식 기호들 그리고 이상야릇
한 유대 식 비문 역시 이곳에서 발굴되었다. 크리미아 반도의 케르치 발굴지에는 실라레보
에서 발굴된 것과 같은 양식의 메노라가 보존되어 있다. 이러한 모든 사실들을 가지고 전
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노비사드에서는 일반적인 아바르 유적지와 다른 소집
단이 노비 사드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그들은 마자르족보다 먼저 판노니아
평원에 들어와 살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입증해 줄 만한 문헌이 보존되어 있다. 벨라 왕
밑에서 일하던 익명의 서기와 안달루시아의 압둘 하미드 그리고 시나무스, 이렇게 세 사람
모두 다뉴브강 유역의 이 지역에는 터키인의 조상인 이스마일리아 민족이 정착해서 살았다
고 믿었고 이 민족은 호레즘으로부터 온 정착민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사실로 미
루어 볼 때, 실라레보에 있는 고대 무덤들 가운데 일부는 유대 풍습을 따르게 된 카자르 민
족의 것인 듯하다. 이 지역 출신의 고고학자이자 아라비아 전문가 이사일로 수크 박사는 실
라레보 발굴 초기 단계부터 그곳에서 일했는데 그가 죽은 후에야 발견된 짤막한 기록이 있
다. 그 기록은 실라레보와 관련된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실라레보에 대한 수크 박사의 의견
을 말해 주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실라레보에 누가 묻혀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면, 마자르족들은 그것이 헝
가리인이나 아바르인이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유대인들은 그것이 유대인이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이슬람 교도들은 그것이 몽골인들이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것이 카자르 민족
이었으면 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카자르 민족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이 공
동묘지는 메노라로 장식된 도자기 파편으로 가득하다. 유대인들 사이에서, 깨어진 접시는 부
당한 대우를 받고 사라진 민족의 묘지인 셈이다. 지금 이러한 상황하에서 그것은 카자르 민
족에게 가장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꿈 사냥꾼 - 카자르 사제들의 일파로 아테공주의 보호
를 받았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꿈을 읽을 수 있었으며 물건이나 동물도 있었다. 가장 나
이가 많은 꿈 사냥꾼 부류에 들어가는 사람이 남긴, 짤막한 글이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꿈 속에 들어가면 우리는 마치 물을 만난 물고기가 된 느낌이다.
경우에 따라서 꿈의 수면 밖으로 나와 기슭에서 세상을 둘러본다. 하지만 우리는 금세 조바
심이 나서 서둘러 아래로 돌아간다. 우리는 오호지 물 속 깊은 곳에 있을 때에만 기분이 좋
기 때문이다. 이렇듯 잠시 물 밖으로 나와 있는 동안에는, 마른 땅 위의 낯선 생물이 눈에
뜨인다. 그 생물은 우리보다 동작이 더욱 느리고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숨을 쉬는 버릇이
있다. 또한 그 무거운 몸을 땅 위에 찰싹 붙이고 있다. 그리고 언제나 우리의 몸을 온통 감
싸고 있는 열정이 그 생물에게는 없다. 꿈 속에서는 열정과 몸을 갈라놓는 것이 거의 불가
능하다. 열정과 몸은 하나이며 서로 동일한 것이다. 밖에 있던 그 생물, 그것도 역시 우리
자신이다. 하지만 지금부터 백만 년이 지나고 나면, 세월이 가져다 줄 재난을 제외하고라도,
그 생물에 닥친 무시무시한 재난이 그것과 우리 사이에 놓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밖에
있는 그 생물이 열정으로부터 몸을 떼어 내었기 때문이다. 꿈을 읽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 알 사파르에 대한 기록이 있다. 알 사파르는 비밀을 구석구석까지 파고 들
어갈 줄 알았으며 사람들의 꿈에 나오는 물고기를 길들이는 방법을 알았고 사람들의 환영에
나타나는 문을 열기도 하였다. 알 사파르는 그 이전의 어느 누구보다도 더욱 깊이 꿈 속으
로 헤엄쳐 들어가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곧장 신이 있는 곳으로 헤엄
쳤다. 모든 꿈의 밑바닥에는 다름 아닌 신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슨 일인가 벌어졌고
알 사파르는 그 이후 단 한 번도 꿈을 읽을 수 없었다. 알 사파르는 오랫동안 자신이 절정
에 다다랐다고 생각했으며, 그리하여 더 이상 신지한 능력을 배울 곳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
었다. 이떤 길을 끝까지 걸어간 사람은 더 이상 그 길이 필요하지 않으며, 그 길이 더 이상
그 사람에게 주어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알 사파르 주위의 사람들은 생각이 달랐다. 그 사람
들은 아테 공주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았다. 아테 공주는 그들에게 알 사파르의
경우를 설명해 주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 달에 한 번, 소금 휴일에 카자르 카
간의 추종자들은 수도의 교외에서 나의 추종자이자 신도인 여러분을 상대로 죽는냐 사느냐
하는 전투를 벌입니다. 밤이 오면 우리는 카간 지영의 전사자를 유대, 아랍, 그리스 무덤에
붇고 우리 진영의 전사자는 카간의 무덤에 묻습니다. 그렇게 하고 있는 동안 카간은 내 방
의 구리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오는데 그는 손에 초를 들고 있습니다. 카간의 열정에 따라
일렁이는 불꽃은 정열의 냄새를 풍깁니다. 나는 카간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연인들처럼 그의 얼굴에도 행복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두 사람
은 함께 밤을 보냅니다. 새벽에 그 사람이 돌아갈 때, 나는 반들거리는 구리문에 비친 그 사
람의 모습을 지켜봅니다. 그 사람은 지쳐 있고 나는 그제서야 그 사람이 무엇을 하려고 하
는지, 그 사람이 지금껏 어디에 있었는지,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깨닫습니다. 당신들의 꿈
사냥꾼, 알 사파르도 역시 마친가지입니다. 알 사파르가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 그 동
안 다른 사람들의 꿈의 사원에서 기도를 올렸다는 것 그리고 꿈꾸는 사람들의 영혼 속에서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여러 번 죽음을 당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알 사파르
는 자신의 소임을 너무나 훌륭하게 처리했기 때문에 존재를 구성하는 요소 중에서 가장 훌
륭한 것, 다시 말하지면 꿈의 요소가 알 사파르에게 손을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알 사
파르는 분명히 돌아오는 길에, 자신이 다다른 높은 곳에서부터 이 세상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떤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그리고 알 사파르는 그 실수에 대해서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
다. 현실로 돌아올 때, 반드시 주의하도록 하십시오!" 아테 공주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산
을 제아무리 훌륭하게 올라갔다고 하더라도, 잘못 내려오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
다. 카간 - 카자르 군주에 대한 호칭. 카스피 해에 위치한 카간의 여름 저택은 `사만다르'
라고 불렀다. 카자르 궁정에서 그리스 선교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것은 정치적인 계산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기독교 율법에 정통한 선교사가 필요했던 카자르
카간 가운데 한 명은 서기 740년에 이미 콘스탄티노플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9세기에
이르러 공동의 위험에 직면한 그리스와 카자르 연합은 서로 결속을 다질 필요가 있었다. 왜
냐하면 그 당시에 이미 러시아가 콘스탄티노플 성문에 그들의 방패를 걸어 놓았으며 카자르
의 영토에서 키예프를 빼앗아 간 상태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또 다른 위험이 있었으미, 카간
에게는 왕위를 이어받을 후계자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리스 상인들이 도착했으며, 카
간은 그들을 성대하게 맞이했다. 그들은 모두 다 키가 작고 털이 많아서 그슴털과 머리털이
도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카간은 그들 가운데 거인처럼 앉아서 연회를 베풀었다. 폭풍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새들이 창문으로 날아와 정신없이 부딪히고 있었으며, 파리들은 거
울에서 부딪히고 있었다. 여행자들이 선물을 한 아름씩 안고 물러간 다음, 카간은 방 안을
둘러보았다. 식탁 위에 남겨진 음식이 보였다. 그리스 사람들이 남겨 놓은 음식은 어마어마
해서 거인의 그것과 같았으며, 카간이 남겨 놓은 음식은 얼마 되지 않아서 어린아이의 그것
과 같았다. 카간은 사람들을 급히 불러모아서 낯선 방문객들이 카간 자신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해 보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단 한마디도 기억해 내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리스 상인들이 내내 입을 다물고 있었다는 사실에 모두들 동의했다. 그 당시 궁정에서 하
인으로 일하고 있던 유대인이 카간 앞으로 나오더니 자신이 카간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번 해 보거라." 카간은 성스러운 소금을 씹으면서 명령했다. 그 유대인
은 노예 한 명을 이끌고 들어와서 팔을 걷으라고 말했다. 그 노예의 팔은 카간의 오른쪽 팔
과 완전히 똑같았다. "좋다. 그 노예를 이곳에 남겨 두거라. 일단 방향을 잘 잡은 것 같구
나." 카간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동의했다. 그 유대인은 카자르 왕국의 여러 지방으로 사자
를 보냈으며, 석 달이 지난 후에 두 발이 카간과 똑같이 생긴 젊은이를 카간 앞으로 데려왔
다. 카간은 그 젊은이 역시 궁전에 남아 았도록 명령했다. 이렇게 하면서 그 유대인은 무릎
과 한쪽 귀, 한쪽 어깨가 정확하게 카간과 똑같은 사람을 다시 발견했다. 카간의 궁전에서
머무르는 젊은이들이 조금씩 늘어나게 되었다. 그 중에는 군인도 있었으며 노예, 새끼를 꼬
는 사람, 유대인, 그리스인, 카자르인, 아랍인도 있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으로부터 팔이
나 다리와 같은 몸의 한 부분을 떼어 온다면, 카간과 모습이 똑같은 젊은 카간을 조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직 머리 부분만이 모자랐다. 머리 부분은 도저히 찾아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카간은 그 유대인을 불러다가, 그 유대인과 자신 둘 중에서 한 사
람의 머리를 선택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유대인은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놀란 카간은 유대인에게 어째서 두려워하지 않는지 물어 보았다. "왜냐하면 두려움
이 나를 엄습한 것은, 오늘이 아니라 벌써 한 해 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한 해 전에 나는
머리를 찾아냈습니다. 열두 달 내내 나는 그것을 줄곧 이 궁준에 놓아두고 있었지만 감히
내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카간이 유대인에게 당장 머리를 보여 달라고 하자, 유대인은 여자
아이를 한 명 데리고 왔다. 그 아이는 어리고 몹시 아름다웠으며 머리가 카간과 너무나 닮
아서 거울을 곁에 갖다 놓으면 카간이 아이 옆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거울에 비친 그 소녀
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다 카간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며, 카간이 단지 좀 어
려 보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마침내 카간은 궁전에 모아 둔 사람들을 모두 다 데리고 오
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유대인에게 그 사람들을 가지고 또 다른 카간을 한 명 만들어
내라고 말했다. 살아남은 불구자들이 떠나갈 무렵, 유대인은 그들의 팔다리로 두번째 카간
을 조립할 수 있었다. 그 유대인은 새로운 창조물의 이마에 몇 글자를 적어 넣었다. 카간의
후계자인 젊은 카간은 카간의 침대에 앉아 있었다. 이제 그는 시험을 거쳐야만 했다. 그 유
대인은 젊은 카간을 카간의 여인 아테 공주의 침실로 보냈다. 아침이 되자 공주는 진짜
카간에게 다음과 같은 전갈을 보냈다. "지난 밤에 내 방으로 들어온 남자는 할례를 받았습
니다. 당신은 할례를 받지 않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남자는 카간이 아닌 다른 사람이거나
혹은 카간 본인이 유대교에 귀의하여 할례를 받고 다른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 일을 결정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당신뿐입니다." 카간은 그 유대인에게 이 차이점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 보았다. 하지만 유대인은 도리어 이렇게 반문했다. "카간께서 스스로 할례를
받으신다면, 이 차이점은 깨끗이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곤경에 처한 카간은 아테 공주에
게 조언을 구했다. 아테 공주는 카간을 궁전의 지하실로 이끌고 가서 젊은 카간을 보여 주
었다. 공주는 젊은 카간을 쇠사슬에 묶어서 쇠창살 안에 가두어 놓았다. 하지만 젊은 카간
은 이미 쇠사슬을 전부 끊어 낸 채, 무시무시한 힘으로 쇠창살을 흔들고 있었다. 젊은 카간
은 하룻밤 사이에 너무나도 커다랗게 자라나서 할례를 받지 않았던 진짜 카간은 그에 비하
면 마치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저 사람을 풀어 주기를 바랍니까?" 아테 공주는 그렇게 물
어 보았다. 카간은 완전히 겁에 질려 있었으므로, 할례를 받은 카간을 죽여 버리라고 말했
다. 아테 공주는 거인의 이마에 침을 뱉었고 거인은 쓰러져 죽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에 카간은 그리스 사람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카간은 그리스와 새로
운 동맹 관계를 맺고, 그들의 종교를 카자르의 국교로 받아들였다. 카자르 민족 - 테오파
네스는 카자르 민족의 기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첫번째 사르마티아 사람인 베
르실리아가 가 보았던 곳 중에서 가장 먼 곳, 바로 그곳으로부터 위대한 카자르 민족이 나
타났다. 위대한 카자르 민족은 흑해에서부터 펼쳐지기 시작한 모든 지역을 다스렸다. 프리
스쿠스에 따르면, 5세기에 카자르 민족은 훈 제국에 속해 있었으며,아카치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성 쿠릴로스의 주장에 따르면, 카자르 민족은 그리스어나 히브리어
혹은 라틴어가 아닌, 그들 자신의 카자르어로 신을 섬긴 민족이라고 했다. 그리스어로 된
자료를 살펴보면, 카자르 민족을 ` '라고 부르기도 하고 ` '라고 부르기도 했다. 카자르 민족
의 국가는 그 넓이가 상당하여 크리미아 반도, 카프카스(코카서스의 원 지면)산맥, 볼가 강
유역에 이르렀다. 6월에 사르마티아로 드리워진 카자르 산맥의 그림자는 12일 동안이나 걸
어가야 그 끝에 다다를 수 있었으며, 12월에 북쪽으로 드리워진 산맥의 그림자는 한 달 동
안이나 걸어가야 끝에 이를 수 있었다. 서기 700년 무렵에 이미 카자르 관리들이 보스포루
스와 파나고리아에 상주했다. 러시아어로 기록된 네스토르 연대기와 같은 기독교 자료들을
보면, 9세기에 중앙 드네프르 남쪽의 부족들이 1인당 하얀 다람쥐 가죽 한 장과 칼 한 자루
씩을 카자르 민족에게 조공으로 바쳤다고 한다. 10세기부터 이 조공은 돈으로 지불되었다.
카자르 문제에 대한 그리스어 자료를 뒷받침해 주는 것으로, 다우브마누스판 `카자르 사
전'에 `위대한 가죽 문서'라고 언급된 중요한 기록이 있다. 이 자료에 따를 것 같으면, 카자
르 전영에서 비잔틴 황제 테오필로스에게 사절단을 보냈는데, 특사 가운데 한 명의 몸에 카
자르 역사와 지형이 문신으로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그 문신은 카자르어로 되어 있었지만
유대 문자를 사용했다. 그 특사에게 문신을 새겨 넣을 무렵, 카자르 민족은 그리스 문자와
유대 문자와 아랍 문자를 번갈아 가면서 자기들의 언어를 표기하고 있었다. 그들이 채택한
믿음의 글자를 사용하려고 한 것이다. 그리스인들의 믿음이나 이슬람교 혹은 유대교로 개
종한 카자르 민족은 카자르 언어를 일그러뜨리기 시작했다. 카자르 고유의 믿음을 지켜 나
가던 사람들이 쓰는 언어를 점점 더 비천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우브마누스가 언급한, 문신을 새긴 특사 사건이 누락된 자료들도 있다. 그러한 자
료들 속에는 그 대신 화려하게 장식한 소금 접시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 접시는 비잔틴
황제에게 선물로 보낸 것으로 황제는 그 접시에서 카자르 민족의 역사를읽을 수 있었다. 또
한 그러한 자료들에 따르면 `위대한 가죽 문서'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역사적인 자료를
잘못 읽었던 과정 속에서 나온 결과일 뿐이다. 이것은 온당한 가치 평가일 수 있음에도 불
구하고 한 가지 문제점을 보여 주고 있다. 만약 소금 접시 이야기를 받아들인다면 `위대한
가죽 문서'와 관련된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는 점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위대한 가죽 문서'에서 연도는 대 카자르 년에 의해 계산되었다. 대 카자르년이란
전쟁 기간만을 세어 나가는 것이므로, 연도를 소 카자르 년으로 환산해야만 한다. 문서의 첫
부분은 전해지지 않는다. 특사의 몸 가운데에서 카자르 민족의 위대한 제1년과 제2년을 기
록해 넣은 부분은, 어느 시점에서 형벌로 베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자르 민족 이야기
중에서 보존된 부분은 대 카자르력 3년부터 시작되었다. 이것을 현재의 시간 계산법으로 하
면 7세기 무렵이다. 그 당시에 비잔틴 황제였던 헤라클리우스는 카자르 민족의 도움으로 ㅔ
르시아를 향해 진군하였다. 카자르 민족은 티플리스 포위에 참가했다가 서기 627년에 퇴각
하고, 그리스 군대는 단독으로 적군과 맞섰다. 카자르 민족은 세 가지 사실을 믿고 있었다.
첫째, 세상 만사는 흥할 때의 규칙과 쇠할 때의 규칙이 따로 있다. 둘째, 떠날 때와 돌아올
때의 법칙이 서로 다르다. 셋째, 승리하기 전에 맺은 조약이 승리한 후에도 유효할 수는 없
다. 지진이 지나간 후에는 식물이 자라나는 모양조차 새롭게 바뀐다.
카자르 력으로 대 4년의 기록을 보면, 카자르 사람들이 불가리아 연합군에게 승리를 거둔
것을 알 수 있다. 그 당시 오노구르 훈족 가운데 일부는 카자르 군대에게 항복했고 나머지
는 아스파루흐의 지휘하에 다뉴브 강을 향해 서쪽으로 후퇴했는데, 그 지역에 살고 있던 부
족들은 바람에 채찍질을 하고 머리에 머리카락 대신 풀을 길렀으며 생각하는 것이 얼음과도
같았다. 대 5년과 6년 사이의 일들은 특사의 가슴에 기록되어 있었는데, 카자르 황제가 여
러 차례 전쟁을 치르던 그 무렵에는 유스티니아누스 2세가 비잔틴 황제의 권좌에 앉아 있었
다. 유스티니아누스 2세는 왕좌에서 쫓겨난 후에 추방당하고 불구가 되었다. 그는 헤르손에
갇혀 있다가 몰래 빠져 나와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카자르 민족이 있는 곳
으로 도망쳤다. 도중에 얼어 죽지 않으려고 무거운 바위 아래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카자
르 카간은 유스티니아누스 2세를 따스하게 맞아 주었다. 유스티니아누스 2세는 카간의 여동
생과 결혼했다. 카간의 여동생은 그리스의 종교를 받아들여 `테오도라'라고 불러 달라고 했
는데 테오도라는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왕비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하지만 카간의 여동생
은 카자르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믿어 온 것처럼, 하나님이 동정녀 마리아의 꿈 속에 나타나
서 예수를 잉태시켰다는 사실을 믿었다. 이것이 바로 유스티니아누스 2세가 첫번째로 카자
르 사람들에게로 도망쳐 목숨을 구했던 이야기이다. 그러나 두번째에는 카자르 사람들의 손
에 최후를 맞아야만 했다. 카자르인들에게로 피해 들어갈 수는 있지만, 그들로부터 피해 달
아날 수는 없었던 것이다. 티베리우스 황제가 카자르 궁정으로 사절단을 보내 유스티니아
누스 2세를 그리스 사람들 손에 넘겨 달라고 하자, 유스티니아누스 2세는 또다시 몸을 피해
서 수도로 향했다. 나중에 유스티니아누스 2세는 다시 황제가 되었는데, 자신이 과거에 카자
르 민족으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서기 711년에 헤르손으로 토벌대
를 보냈다. 헤르손이라면 유스티니아누스 자신이 한때 추방되어 지내던 곳으로, 당시 카자르
의 지배하에 놓여 있었다. 두번째로 카자르 제국을 찾아간 유스티니아누스 2세는 첫번째와
달리 이번에는 자기의 목을 내놓아야 했다. 카자르 민족을 제국의 반란군을 뒤에서 도와 주
었다. 그 무렵의 크리야마 반도는 이미 카자르 민족이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유스티
니아누스 2세와 그의 어린 아들 티베리우스는 반란군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티베리우스는
카자르 공주의 아들이었으며 비잔틴 헤라클리우스 왕조의 마지막 자손이었다. 요컨대 카자
르 민족은 추격당하는 사람을 보호해 주었고 추격해 온 사람을 파멸시켰는데, 그 둘은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위대한 가죽 문서'중에서 카자르 사절의 배에 써 넣은 부분을 볼 것 같으면, 카자르 력으
로 대 7년이자 마지막 해에 같은 이름을 가진 부족이 등장한다. 이 쌍둥이 카자르 민족은
진짜 카자르 민족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았다. 사람들은 이들을 종종 진짜 카자르 민족
과 혼동하곤 했다. 때때로 두 부족 출신의 여행자들이 서로 만나는 일도 있었다. 동일한 이
름을 갖고 있던 또 하나의 카자르족 사람들은 이름이 유사하다는 것을 이용하려고 했다. 진
짜 사절의 허벅지에 보면, 카자르 민족의 역사가 아닌, 이름이 같은 다른 종족의 역사를 비
슷하게 문신으로 새기고 다니는 사절이 여러 칼리프(이슬람교 군주)나 황제의 궁정에 나타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경고해 두었다. 이처럼 다른 카자르 민족 사람들은 심지어 카자
르어를 할 줄도 알았지만, 그 자식은 머리카락 한 가닥의 수명인 3, 4년 이상 지속되는 법이
없었다. 때로는 문장 중간에서 카자르어에 대한 지식이 끝나 버려 그 이상은 한 단어도 더
말할 수 없는 경우가 있었다. 그 사절은 상대방을 설득하는 능력과 문신의 내용을 이용하
여 자신이 진짜 카자르 카간과 진짜 카자르 민족을 대표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려고 했다.
그는 도한 언급하기를 어떤 점에 있어서는 그리스 사람들이 카자르 민족의 대역과 연관되어
있다고 했다. 그것은 카자르 력으로 대 7년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의 일이다. 현재의 계산법
에 따르자면 서기 733년에 성상 타파주의자였던 이사우리아 황제 레오 3세가 자기 아들 콘
스탄티누스를 카자르 카간의 딸 아레네와 결혼시켰다. 이 결혼으로 인하여 나중에 카자르
출신의 그리스 황제 레오 4세가 등장한다. 바로 이러한 때에 레오 3세는, 카자르 궁정으로부
터 기독교 교리를 설명해줄 사절단을 보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백여 년이 지난 후에 재
차 같은 요청이 있었다. 그것은 그리스 황제 테오필리우스가 권좌에 있던 무렵으로, 그 당시
에 러시아의 노르만족과 마자르족이 크리미아 반도와 그리스 제국 그리고 카자르족의 국가
를 위협하고 있었다.
카자르 카간의 요청에 따라, 그리스의 기술자들은 사르켈 요새를 세웠다. 사절의 왼쪽 귀
를 들여다보면 돈 강 어귀에 짓고 있던 성채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의 엄지
손가락에는 카자르 민족이 서기 862년에 키예프를 공격하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엄지손가락은 바로 그 포위 공격 때 상처를 입고 짓물러 버렸으므로 그 그림은 흐릿하니 영
원한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사절을 콘스탄티노플로 급파하기 전에 키예프 포위 공격은 아
직 벌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20년 후의 일이다. `위대한 가죽 문서'에 대한 기록은 여
기에서 끝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카자르 원본을 바탕으로 `발
췌본'을 만들어 낸 사람은 그리스-카자르 관계와 관련된 자료만을 포함시키고 카자르 외교
관의 피부에 새겨져 있었던 다른 사항은 모두 다 생략해 버림으로써, `걸어다니는 편지'가
또 다른 땅에서 그 임무를 계속 수행하도록 내버려둔 것이다.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해 줄
만한 정보가 있다. 카자르 사절은 어느 칼리프의 궁정에서 일생을 마쳤는데, 그는 안팎이
뒤집힌 장갑을 끼듯이 자신의 영혼을 뒤집어 낌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사
절의 살갗은 벗겨져 커다란 지도책처럼 무두질하고 제본되었다. 그리고 사마라에 있는 칼리
프의 궁전에서 명예로운 자리를 차지했다. 다른 자료에 따르면 그 사절에게는 견디기 어려
운 순간들이 많았다. 먼저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동안, 자신의 손을잘라 내도록 허락해야만
했다. 그리스 궁정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던 사람이, 사절의 왼쪽 손바닥에 씌어져
있던 카자르 대 2년의 기록에 대한 값으로 순금을내놓았기 때문이다. 세번째 자료를 볼 것
같으면 그 특사는 어쩔 수 없이 서너 차례 카자르 수도로 돌아가야만 했다고 한다. 그곳에
서 자기가 지니고 다니던 역사적 사실이나 기타 다른 사항들을 수정받아야만 했다 혹은 수
정되고 개정된 역사를 살갗에 새겨 넣은 다른 사절과 교체되기도 했다. `카자르 사전'에 따
르면 그 특사는 살아 있는 카자르 백과사전처럼 살았으며, 밤새도록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서 있는 대가로 많은 돈을 받았다고 한다. 사절은 밤을 새울 때마다 흩어져 나가는 여니 줄
기처럼 생긴, 보스포루스의 은 촛대에서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사절이 그렇게 서 있는 동
안 그리스 및 다른 나라의 필경사들은 사절의 등과 허벅지로부터 카자르 역사를 옮겨 적었
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사절은 카자르 전통을 지키기 위해 유리칼을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또한 그 사절이 주장하기를 카자르 알파벳 각 글자의 이름은 음식 이름에서 따온 것이며,
숫자는 카자르 사람들이 구별할 수 있는 일곱 가지 소금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했다고 한
다. 그 특사가 했던 말 중에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것이 한 가지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만약 카자르 사람들이 이틸에서 자기의 일을 훌륭히 해 내기만 한다면 콘스탄티노
플에서도 역시 잘 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 사절은 자기의 살갗에 씌어진
것과 반대되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이 사절이나 그 후임자 가운데 한 사람은 카자르 논쟁이 카자르 카간의 궁정에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고 설명했다. 한 번은 천사가 카간의 꿈에 나타나서 이렇게 말했
다. "주님은 당신의 행동에 기뻐하시지 않고 당신의 속마음에 기뻐하십니다." 카간은 그 즉
시 꿈 사냥꾼으로 잘 알려진 저명한 카자르 사제를 불러다가 그 꿈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
지 설명해 달라고 했다. 꿈 사냥꾼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신은 당신에 대해 아무 것도 모릅
니다. 신은 당신의 속마음이나 당신의 생각, 당신의 행동을 알지 못합니다. 천사가 당신의
꿈에 나타나서 이리저리 걸어 다녔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오로지, 그 천사가 달리 그날
밤을 보낼 곳이 없었고 그 당시 밖에 비가 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뿐입니다. 그 천사
가 오랫동안 모물지 않았다면 그것은 아마 당신의 꿈에서 고약한 냄새가 났기 때문이겠지
요. 다음번에는 당신의 꿈을 깨끗하게 씻으십시오." 카간은 이 말을 듣고 몹시 화를 내면서
이방인을 불러다가 다시 그 꿈을 해석하도록 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카자르 사절이
말했다. "맞는 말이야. 사람의 꿈은 끔찍할 정도로 냄새가 나니까." 사절이 세상을 떠난 것
은 카자르 역사를 써 넣은 살갗이 지독히 가려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가려움증은 도
저히 참아 낼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죽음을 맞이했다. 마침내 역
사를 씻어 낼 수 있다는 것을 기뻐하면서...... 카자르논쟁 - 이 사건은 기독교 자료에 서기
861년의 일로 기록되어 있다. 카자르 논쟁은 "테살로니카의 콘스탄티누스, 성 퀴릴로스의 일
생"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느데 이 책은 9세기경에 저작돼, 모스크바 심령학회 원고라고 불
리는 자료들 사이에 남아 있으며 문법학자 블라디슬라프의 1469년판 자료에도 남아 있다.
서기 861년, 그 해에 카자르 사절이 비잔틴 황제 앞으로 나아가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의 신만을 인정해 왔습니다. 그분은 우리 모두를 다스립니다. 우리는 동쪽을
바라보면서 그분에게 절하는 것을 비롯하여 당신들이 보기에는 이교도적인 여러 가지 관습
을 떠받들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우리를 설득해서 그들의 종교와 의례를 받아들이도록 하
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사라센 사람들은 우리를 자기의 종교로 끌어들이기 위해 평화와 여
러 가지 선물을 들고 와서는 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이 세상의 다른 어떤 믿음보
다 뛰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깊은 우정과 사랑을 되새기면서 당신의 의견을 묻고
자 합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신에게서 최고의 권력을 부여받은 위대한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조언을 갈구하고 있으니, 학식이 깊은 사람을 한 명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유대인 및 사라센 사람과의 논쟁에서 승리를 얻어낼 수 있다면 우리는 당신의 종교
를 채택하겠습니다."
그리스 황제가 퀴릴로스를 불러 카자르 사람들에게 다 주겠느냐고 물어 보자, 퀴릴로스는
그러한 여행이라면 당장 걸어서라도 떠나겠다고 대답했다. 다우브마누스는 퀴릴로스의 대답
을 자기 나름대로 이해했다. 퀴릴로스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러한 여행을 준비하려면 콘
스탄티느플에서 크리미아 반도까지 걸어가는 것과 비슷한 정도의 많은 시간이 든다는 것이
었다. 그 이유는 그 당시에도 퀴릴로스는 여전히 자기 자신의 꿈 속에서 갈피를 못잡고 있
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자물쇠를 열고 꿈 밖으로 나올 수 있는지를 몰랐다. 다시 말하자
면 그는 꿈에서 깨어나고 싶었지만 그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퀴릴로스
는 그 임무를 받아들였다. 퀴릴로스는 도중에 헤르손에서 머물면서, 카자르 카간의 궁정에
서 벌어질 논쟁에 대비하여 히브리어도 배우고 히브리어 문법을 그리스어로 번역하기도 했
다. 퀴릴로스와 그의 형 메토디우스가 메오트 호수를 지나 카프카스 산맥의 카스피 해 방향
관문에 이르렀을 때 카간의 특사와 만났다. 특사는 철학자 콘스탄티누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카자르 사람들은 모든 지혜를 가슴으로부터 끌어잰다. 지혜를 삼킨 사람처럼
말이다. 그런 반면에 콘스탄티누스 당신은 어이하여 말을 할 때마다 언제나 책을 앞에 들고
있는가.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은 책이 없으면 벌거벗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벌거벗은 사람이
실은 예복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누가 믿으려 할 것인가 라고 대답했다. 카자르 특
사는 콘스탄티누스와 메토디우스를 만나려고 수도인 이틸에서부터 돈 강의 사르켈까지 그리
고 헤르손까지 여행한 것이었다. 그는 비잔틴 사절단을 사만다르라는 카스피 해변의 도시로
안내했는데, 논쟁이 벌어질 카간의 여름 저택이 바로 그 도시에 있었다. 그곳으로 가 보니
유대와 사라센 대표들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카자르 사람들은 만찬 식탁에서 콘스탄티누스
가 어느 자리에 앉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질문하였다. 콘스탄티누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
내 할아버지는 훌륭하고 매우 유명했으며 황제에 버금가는 사람이었소. 그러나 할아버지는
당신에게 주어진 명예를 거절하셨기 때문에 추방당했고 빈털터리로 낯선 땅에 도착하였습니
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태어났소. 나는 나의 할아버지가 한때 누렸던 영광을 손에 넣어
보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소. 다들 알고 있겠지만 나는 아담의 손자일 뿐이오."
카간은 만찬에 참석한 다음, 건배를 하면서 퀴릴로스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은 삼위일체
를 숭배하지요. 하지만 우리는 오로지 하나의 신만을 숭배합니다. 여러 책들에 씌어진 것처
럼 말입니다. 왜 그렇까요?" 철학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책에서는 말씀과 영혼에 대
해 설교합니다. 어떤 사람은 당신을 존경하면서도 당신의 말씀과 영혼을 존중하지 않는 반
면, 어떤 사람은 그 세 가지를 모두 존중한다고 합시다. 그 두 사람 중에서 누가 당신을 더
많이 존경하는 걸까요?" 유대교 대표가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한 여인이 자기
의 자궁 속에 신을 가져다 놓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 여인은 신을 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
여인이 신을 낳았다는 것은 일단 논외로 합시다." 철학자는 카간과 그의 수석 고문을 가리
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수석 고문은 카간을 받아들일 수 없지만, 가
장 신분이 낮은 하인은 카간을 받아들일 수 있고 카간을 존경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면, 우
리는 그렇게 말하는 자에게 무슨 말을 해 주어야 할까요? 그 사람은 실성한 사람입니까? 분
별력이 있는 사람입니까?" 사라센 사람들도 논쟁에 끼어들었다. 사라센 사람들은 기독교도
들의 집 바깥에 익마 그림을 걸어 두고는 했다. 그래서 기독교도들이 사는 집 대문마다 악
마 그림이 걸려 있었다. 철학자 콘스탄티누스도 사라센 칼리프의 궁전이 있는 사마라에서
그런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오랫동안 콘스탄티누스에게 해악을 끼치려고 노력하던 사라센
사람은 콘스탄티누스에게 바로 그러한 관습에 대해 질문했다. "철학자인 당신은 이것이 의
미하는 바를 잘 알고 있습니까?" 콘스탄티누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도 그 악마 그림
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것을 보고 집 안에 기독교도들이 살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악
마들은 기독교도들과 함께 살 수 없기 때문에 밖으로 달려 나오는 것이지요. 그리고 만약
바깥에 악마 그림이 없다면, 그것은 악마가 집 안에서 함께 살고 있다는 뜻이지요." 카자르
논쟁에 대한 기독교의 또 다른 자료를 구할 수 있었는데, 그것도 역시 심하게 훼손된 상태
였다. 그 자료에는 키예프 사람들이 10세기에 기독교로 개종한 것에 관한 전설이 기록되어
있다. 그 전설에 따르면 철학자 콘스탄티누스는 키예프에서 벌어진 세 가지 종교에 관한
논쟁에 참가했다고 한다. 하자만 콘스탄티누스는 그보다 백 년 전 사람이었다. 10세기 및 그
이후에 첨가되고 개정된 내용을 요약해 보면, 카자르 논쟁에 대하여 전해져 내려오는 내용
은 다음과 같다. 카자르 카간 중에 페체네크 및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헤르
손을 손에 넣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전쟁에서 여러 차례 이기고 나자, 이제부터는 여유롭게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는 전쟁에서 잃은 병사들만큼이나 많은 수의 여인을 갖고 싶어했다.
세르비아어로 출간된 1772년판 전설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카간에게는 여자가 많
았는데 그는 여자들을 통해 이 세상의 모든 종교를 다접해 보고 싶었다. 그는 다양한 우상
을 숭배할 뿐만 아니라 각기 다른 신앙 고백을 하고 싶어했으니, 이것은 모두 여자들에 대
한 애정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이 일에 자극을 받은 그리스와 아랍, 유대에서는 너도나도 특사를 파견했다. 카간이 당장
자기들의 종교로 개종했으면 하는 기대에서 그렇게 한 것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카자르 카
간의 궁정에서 논쟁이 벌어졌으며 그리스 황제가 보낸 철학자 콘스탄티누스가 유대 사람이
나 사라센 사람보다 더욱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카간이 마지막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계
속 머뭇거리고 있을 때, 마침 카간의 친척 가운데 한 명이 그 논쟁에 끼여들었다. 우리는 그
사람이 아테 공주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테 공주를 따르는 사람들은 카간에게 그들이
유대, 그리스, 사라센의 교리를 직접 조사해 보겠으니 각 나라로 보내 달라고 설득했다고 한
다. 아테 공주의 사절단은 조사를 마치고 돌아와서 가장 적합한 종교로 기독교를 추천했다.
그리고 특사들은 그들이 섬기고 있는 카간의 친척은 이미 오래 전에 기독교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카간에게 알려주었다. 카자르 논쟁에 대한 기독교 자료 중에서 세번째 것(다우브마
누스)에 따르면 카간은 이 소식을 듣고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카간이 기독교도들도 유대
교도들처럼 구약의 말씀을 따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결과적으로 유대측 대표에게로 행운
이 굴러갔다. 콘스탄티누스가 그것이 사실임을 확인해 주자, 카간은 그리스에서 카자르로 도
망쳐 온 유대인을 돌아보았다. 그 유대인은 유대교를 강력하게 옹호했다. "우리 세 사람의
꿈 사냥꾼 가운데 카자르 민족이 전혀 겁낼 필요가 없는 사람은 오로지 이 랍비뿐입니다.
칼리프에게는 녹색 돛을 달고 있는 선단이 있고 그리스 황제에게는 십지가를 높이 치켜든
군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쪽도 유대인들의 뒤에는 서 있지 않습니다. 테살로니카의
콘스탄티누스 뒤에는 창과 기병이 있지만 이 유대교 랍비는 뒤에 기도복을 질질 끌고 다닐
뿐입니다." 랍비가 그렇게 말하자 카간은 랍비에게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런데 아테 공주가
다시 논쟁에 끼여들어 대화의 결과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카자르 논쟁에서 아테 공주는
유대 참가자에게 결정적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당신들은 이런 말을 한다지요. 부를 원하는 자는 북쪽으로 가게 하고 지혜를 원하는 자는
남쪽으로 가게 하라! 그런데 정작 당신은 왜 그렇듯 달콤하고 지혜로운 말을 여기 북쪽에
있는 나에게 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런 것은 현자들에게 해야 할 말이 아니던가요. 그들은
당신 아버지들의 땅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당신은 왜 그곳으로 가지 않았
습니까? 그곳에서는 빛이 알을 낳고 수백 년의 세월이 다른 수백 년의 세월에 몸을 비벼 대
고 있습니다. 그곳으로 가서 사해의 시큼한 빗물을 받아 마시고 모래에 입을 맞추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곳의 모래밭은 비스듬히 흘러내리는 강물을 따라가지요, 마치 예루살렘의 샘에
서 솟아 나온 물이 흘러가는 길목에 황금 밧줄이 길게 뻗어 있는 것 같겠지요, 그런데 당신
은 나의 꿈은 칠흑처럼 짙은 어둠이라고 하고 오로지 당신의 현실 속에서만 달빛을 볼 수
있다고 하는군요. 왜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까? 또 다른 한 주일이 비참하게 시들
어 가고 있습니다. 가장 장엄한 날은 이제 지나갔습니다. 당신은 그날이 팔레스티나에서 시
작된다고 말하지요. 한 주일의 다른 날들은 그날이 오지 못하도록 시샘하고 막아 섰지만, 결
국 그날은 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한 주일은 마지못해 그날을 조금씩 꺼내 놓습니다. 당신
의 시간을 지키십시오. 당신의 안식일을 가지고 가십시오. 현자들에게 가서 당신이 내게 말
해 주고 싶었던 모든 것을 이야기하십시오. 당신은 한결 행복할 것입니다. 하지만 주의하십
시오. 성채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의 영혼을 정복해야 합니다. 하지만 내가
당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눈
을 입 속에 가지고 다니므로, 입을 열어 말하기 전에는 아무 것도 보지 않으니 말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이렇습니다. 당신이 말한 내용이 틀린 것이거나, 혹은 남쪽에서 기대하
고 있는 것이 당신이 아닌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당신이 북쪽에서 나와 함
께 있는 이유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단 말입니까? 아테 공주의 말을 듣고 카자르 카간은
몹시 놀랐다. 카간은 랍비를 바라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들었던 이야기를 하겠
소. 유대인들은 신이 자신들을 저버렸으며 또한 신이 자신들을 전세계로 흩어 놓았다는 사
실을 스스로 인정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우리를 당신의 종교로 끌어들여서 우리도
역시 당신과 같이 비참한 상태에 빠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오? 우리 카자르 민족도 역시
당신들처럼 신의 형벌을 받아 온 세계로 흩어져 버리기를 바라는 것이오?"
마침내 카간은 유대인이로부터 등을 돌렸으며, 가장 수긍이 가는 것은 역시 철학자 콘스
탄티누스의 주장이라고 생각했다. 카간과 그의 신하들은 기독교로 개종하고 그리스 황제에
게 편지를 보냈는데, 퀴릴로스의 전기에 편지 내용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전하께서
우리에게 보내 주신 사람은 말과 행동으로써 기독교의 영광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진실된 믿음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으며 우리 국민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세례를
받도록 명령을 내려놓은 상태입니다. 다른 자료에 따르면 카간은 콘스탄티누스의 주장에
동의한 다음, 그리스 사람들의 종교를 받아들이는 대신 느닷없이 그리스와 전쟁을 벌이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카간은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종교를 구걸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칼로써 손에 넣어야 한다!" 카간은 헤르손으로부터 군사를 이끌고 그리스를 공격했다. 카간
은 싸움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난 후 그리스 황제에게 요구하기를 그리스 공주를 아내로
달라고 했다. 그리스 황제는 먼저 조건을 달았다. 카자르 기독교로 개종해야 한다는 것이었
다. 카간이 이 조건을 받아들이자 콘스탄티노플측에서도 몹시 놀라고 말았다. 카자르 민족
은 그런 식으로 개종을 한 것이다. 퀴릴로스(테살로니카의 콘스탄티누스 또는 철학자 콘스
탄티누스, 서기 826 혹은 827~869년) 그리스 정교회의 계도자. 카자르 논쟁이 벌어졌을 당시
에 그리스 대표로 참가했다. 그의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들과 함께 슬라브 민족의 교육을 주
창했으며, 사령관 레오의 아들 중에서 일곱째였다. 사령관 레오는 테살로니카에서 비잔틴
궁정을 위해 일했는데, 특히 군사 및 행정 문제를 관정했다. 콘스탄티누스는 여러 가지 사무
직과 외무직을 담당했으며 당시 콘스탄티노플에서 세력을 떨치고 있던 성상 타파주의자들이
세운, 예수 성상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교회들 가운데에서 자랐다. 성상 타파주의자들 가운데
에는 테살로니카 사람도 상당히 많았는데, 콘스탄티누스는 유력한 성상 타파주의자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수학자 레오는 콘스탄티누스에게 호메로스(호머), 기하학, 산술, 천문학, 음악을 가르쳤다.
레오는 성상 타파주의자였으며, 콘스탄티노플의 주교이자 문법학자였으며 성상 타파주의자
였던 요한의 친척이었다. 레오는 사라센 사람들 및 그들의 칼리프 마문과의 관계를 유지해
나갔다. 콘스탄티누스에게 가르침을 주었던 사람을 한 명 더 선정하자면, 이미 고인이 된
포티우스 주교를 들 수 있다. 포티우스 주교는 유명한 철학자로서 콘스탄티누스에게 문법,
사사학, 변증법, 철학 등을 가르쳤다. 그는 `기독교 세계의 아라스토텔레스'라고 불렸으며
수학자 레오를 도와 인간 중심의 전통을 되살리는 일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러한 전통이
되살아나게 되자 비잔틴 세계에서는 그들이 고대 헬레니즘 문화 유산의 계승자라는 생각을
다시금 갖게 되었다. 포티우스는 연금술 및 금지된 과학을 연구했으며 천문학과 마술에도
관심이 많았다. 비잔틴 황제는 포티우스를 `카자르의 얼굴'이라고 불렀다. 궁정에 떠도는 전
설에 의하면 포티우스는 젊은 시절에 유대인 마법사에게 자기의 영혼을 팔았다고 한다. 콘
스탄티누스는 여러 가지 종류의 언어에 남다른 애착을 가졌다. 콘스탄티누스에게 있어서 언
어는 바람처럼 영원한 것이었다. 카자르 카간이 자기와 다른 믿음을 갖고 있던 여자들을 결
국 바꾸어 놓았듯이 콘스탄티누스는 언어를 바꾸어 놓았다. 콘스탄티누스는 그리스어와 슬
라브어, 히브리어, 카자르어, 아랍어, 사마리아어를 공부했으며 고딕어나 러시아어 활자로 씌
어진 언어들도 공부했다. 그는 충족될 줄 모르는 방랑벽을 가지고 살아갔다. 콘스탄티누스
는 언제나 깔개를 가지고 다니면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깔개가 있는 곳이 내 집이오." 콘
스탄티누스는 인생의 제일 좋은 시절을 매우 거친 부족들과 함께 보냈다. 그 부족들은 너무
나 사나워서 그들과 악수를 하고 나서는 언제나 자기 손가락 수를 헤아려 보아야만 할 정도
였다. 그는 오로지 병이 들었을 때에만 비로소 평화의 섬을 찾아가곤 했다. 병으로 인해 자
리에 누운 콘스탄티누스는 곧 모국어를 제외한 다른 언어를 모조리 잊어버리곤 했다. 콘스
탄티누스가 그렇게 몸이 아플 때에는 언제나 적어도 두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었다. 서기
843년에 테살로니카의 성상 타파주의자들이 실각하였다. 그리고 테오필로스 황제가 죽자 성
상 숭배가 다시 도입되었다. 그러므로 콘스탄티누스는 어쩔 수 없이 소아시아 해변에 있는
사원으로 몸을 피하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신은 이 세상에 빈 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한
걸음 물러나 것이다. 우리의 눈은 앞에 놓인 사물의표적이다. 모든 사물은 우리의 눈을 겨냥
하고 있다. 우리의 눈이 사물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다가 콘스탄티누스는 더 이상 강압을 견디지 못하고 수도로 돌아와서 과거 자신의 스
승이었던 사람들과 동료였던 사람들을 비난하는 대중 연설을 하면서 성상을 옹호했다. 그러
다가 콘스탄티누스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머리 속에 있다는
것은 단지 착각일 뿐이다. 우리의 머리와 우리는 한 덩어리가 되어 우리의 생각 속에 있다.
우리의 생각이 바다라면 우리는 바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흘러가는 물의 흐름이다. 우리의
몸이 해류라면 우리의 생각은 바다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몸은 이 세상에서 생각 속으로
녹아 들어감으로써 자기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영혼은 몸과 생각의 해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다음에도 콘스탄티누스는 옛날 스승 가운데 한 명을 저버리게 된다. 그
것은 바로 콘스탄티누스의 맏형 메토디우스였다. 메토디우스는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사람
은 좀처럼 공격하지 않았다. 퀴릴로스는 과거에 자기 영혼의 아버지였던 사람과 형이였던
사람을 저버리고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콘스탄티노플 궁정의 명령에 따라 퀴릴로스는 우
선 슬라브 지역의 집정관으로 있다가 수도의 왕립 학교에서 수학했다. 퀴릴로스는 사제였으
므로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성 소피아 교회의 주교 대우 사서관이 되었으며 콘스탄티토플 대
학의 철학 교수가 되었다.
퀼리로스는 보기 드물게 박학다식한 사람이었으므로 대학에 있으면서 `철학자'라는 영예
로운 호칭을 얻었고 죽을 때까지 `철학자'라고 불렸다. 하지만 퀴릴로스는 다소 특이한 견해
를 굳건히 견지해 나갔는데, 그것은 뱃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난 믿음으로, 영리한 물고기의
살은 사람의 몸에 해로우며 어리석은 물고기의 살보다 더욱 질기다는 것이었다. 오로지 어
리석은 사람들만이 어리석은 물고기와 영리한 물고기를 둘 다 먹는다. 그런 반면 영리한 사
람은 어리석은 물고기만 선택해서 먹는다.
퀴릴로스는 성상으로부터 도망치면서 인생의 절반을 보냈고, 나머지 절반 동안은 성상을
방패처럼 지니고 다녔다. 퀴릴로스는 성모 마리아 상에는 익숙할 수 있었지만 성모 마리아
그 자체에는 친숙할 수 없었다는 사실에 비밀처럼 알려져 있다. 다시 세월이 흐르고 카자
르 논쟁이 벌어졌을 때, 퀴리리로스는 성모 마리아를 카간이 주위에 거느리고 있는 하인들
에 비유하였다. 성모 마리아를 여자가 아닌 남자에 비유했던 것이다. 퀴릴로스는 세 개의 금
화를 자기의 가방 속에 넣어 두었다. "첫번째 금화는 나팔수에게 주고 두번째 금화는 교회
에서 노래부르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세번째 금화는 높은 곳에서 노래하는 천사들에게 주는
것이 좋겠어." 그런 다음에 퀴릴로스는 끝도 없는 여행길에 올랐다. 그렇게 때문에 점심을
먹고 남은 부스러기와 저녁을 먹고 남은 부스러기가 한 곳에 섞이는 일이 결코 없었다. 퀴
릴로스는 끊임없이 이동했다. 서기 851년에 퀴릴로스는 바그다드 근처, 사마라에 있던 아랍
인 칼리프를 방문했다. 퀴릴로스가 외교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와 거울을 보았더니 이마에 처
음으로 주름살이 생겨 있었다. 퀴릴로스는 그것을 `사라센의 주름'이라고 불렀다.
서기 859년이 끝나가고 있었다. 퀴릴로스는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 대왕과 같은 세대였
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서른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퀴릴로스는 그 당시에 서른
세 살이었다. 그 무렵 퀴릴로스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 나이 정도가 된 사람들 중
에는 땅 위에 있는 사람들보다 땅 밑에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 어느 시대에나 그러했다. 라
메스 3세 때도 그랬으며 크레타에 미궁이 있던 시대에도 그랬으며 콘스탄티노플이 처음 포
위되었을 당시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언젠가 내가 땅 밑으로 들어가게 되면, 역시 이 땅
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 땅 위에서 나이를 먹어 가면서,
나보다 어린 나이에 죽은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있다." 퀴릴로스가 이름을 빌렸던 도
시가 얼마 후에 또다시 포위되었다. 서기 860년에 슬라브인들이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하고
있는 동안, 콘스탄티누스는 소아시아의 올림포스에 있는 조용한 수도원 방에서 슬라브인들
을 사로잡을 덫을 치고 있었다. 그는 슬라브 알파벳으로 된 최초의 문자를 만들어 내고 있
었다. 처음에는 둥그런 문자를 사용해 보았다. 하지만 슬라브 언어는 너무나 거칠기 때문에
잉크가 남아나지 않았다. 그래서 퀴릴로스는 가로 줄무늬가 들어가는 제2의 문자를 만들어
서, 제멋대로인 언어를 새장 속에 가두듯이 우리 속에 집어 넣었다. 하지만 그런 다음에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슬라브어를 길들이고 난 후에 다시 그리스어를 가르쳐야만 했기
때문이다.
언어는 항상 다른 언어를 배운다. 그제서야 슬라브어는 글라골루 문자 속으로 들어갔다.
슬라브 문자의 기원과 관련해서 다우브마니우스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야만인의 언어를 길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느 해에 재빨리 찾아온 가을이 한
달 정도 무르익었을 때, 퀴릴로스 형제는 수도원 방에 앉아서 사람들이 후에 `퀴릴 문자'라
고 부르게 될 문자를 만들기 위해 애를 먹고 있었다. 문자를 만드는 일은 조금도 진척이
없었다. 그 방에 앉아 있으면 10월의 절반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또한 그 방에서는 한
시간을 걸아야 침묵의 길이를 알 수 있었으며, 두 시간을 걸어야 침묵의 너비를 알 수 있었
다. 그 때에 메토디우스가 동생에게 그 방의 창틀에 놓여 있는 항아리 네 개를 한 번 잘
살펴보라고 말했다. 그 때에 메토디우스가 동생에게 그 방의 창틀에 놓여 있는 항아리 네
개를 한 번 잘 살펴보라고 말했다. 항아리는 창살 너머 바깥쪽에 있었다. "만약 방문이 잠겼
다면 어떻게 저 항아리를 손에 넣을 수 있을까?" 메토디우스가 신중한 목소리로 물어 보았
다. 콘스탄티누스는 항아리 한 개를 깨뜨린 다음, 한 조각씩 창살 사이로 가지고 들어와서,
침과 발 밑의 진흙을 이용해서 항아리를 재조립했다. 그들은 이런 방법으로 슬라브어를 길
들이기 시작했다. 슬라브어를 조각조각 부순 다음, 퀴릴로스가 가지고 있던 문자의 창살 사
이를 통과하여 그들의 입 속으로 가지고 들어간 후에 침과 발바닥 밑에 있는 그리스 진흙으
로 파편을 맞추었다.
바로 그 해에 카자르 카간이 비잔틴 황제 미카엘 3세에게 사신을 한 명 보냈다. 카자르
카간은 콘스탄티노플 사람 중에서 기독교 교리의 기본 원리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을 한
명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황제는 포티우스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그는 포티우스를 '카자르
의 얼굴'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자문을 구하는 일에는 무엇인가 미심쩍은 구석
이 있었다. 그렇지만 포티우스는 황제의 요청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자기의 문하에 거느리
고 있던 철학자 콘스탄티누스를 추천했다.
콘스탄티누스는 메토디우스와 함께 두번째 외교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사람
들은 콘스탄티누스 형제를 '카자르 사절단'이라고 불렀다. 카자르로 향하던 도중 두 사람은
크리미아 반도의 헤르손에 잠시 머물렀다.
콘스탄티누스는 그곳에서 카자르어와 히브리어를 공부하면서, 앞으로 처리하게 될 임무에
대비했다. 콘스탄티누스는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십자가를 달아서 다른 누군
가를 희생시킨다. 하지만 못은 십자가까지 뚫고 들어간다.'
콘스탄티누스는 카자르 카간의 궁전에 도착해서 이슬람교와 유대교 대표자들을 만났다.
그들도 역시 카간의 초대를 받고 온 것이었다.
콘스탄티누스는 그들과 논쟁에 들어가서 '카자르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메토디우스는 나
중에 이 연설 내용을 슬라브어로 번역했다. 철학자 콘스탄티누스는 각각 유대교와 이슬람교
를 대표하는 랍비와 다르위시의 주장에 논박을 가한 다음, 카자르 카간을 설득하여 기독교
를 받아들이도록 했으며 부러진 십자가를 향해 기도해 보았자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카자르 카간의 궁전을 떠나는 콘스탄티누스의 얼굴에, 이번에는 카자르 주름
살이 깊게 파여 있었다. 그것이 두번째 주름이었다.
서기 863년이 끝나가고 있었다. 알렉산드리아의 필로라는 철학자는 서른일곱살의 나이로
죽었는데, 이제 콘스탄티누스도 서른일곱 살이 되어 그 사람과 같은 세대가 되었다. 콘스탄
티누스는 슬라브 문자를 완성한 후, 형과 함께 고향을 떠나 모라비아로 향했다. 슬라브인들
사이에서 실제로 한 번 생활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콘스탄티누스는 그리스어로 씌어진 교회 관련 문헌을 슬라브어로 번역하였다. 많은 사람
들이 무리를 지어 콘스탄티누스 주위로 몰려들었다. 슬라브 사람들은 허리에 뱀을 감고 있
었으며, 머리를 남쪽으로 두고 잠을 잤다. 그리고 이빨이 빠지면 지붕 너머로 던졌다.
콘스탄티누스는 그 사람들이 손가락으로 콧물을 문지르거나 콧물을 먹으면서 나지막이 기
도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슬라브 사람들은 신발을 벗지 않은 채 발을 씻었으며 식사하기
전에 음식에 침을 뱉었다 슬라브 사람들은 또한 '우리 아버지' 안에 있는 모든 단어에 야만
적인 남성 이름이나 여성 이름을 붙였다. 그리하여 그 '우리 아버지'는 빵처럼 부풀어 올랐
다가 이내 사라졌다. 이처럼 거친 이름들이 '우리 아버지'를 삼켜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슬라
브 사람들은 사흘에 한 번씩 '우리 아버지'를 삼켜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슬라브 사람들은
사흘에 한 번씩 '우리 아버지' 속에서 농담을 깨끗하게 닦아 내었다. 그럴 때에는 아무런 소
리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슬라브 사람들은 썩은 고기 냄새를 유난히
싫어했다. 슬라브 사람들은 머리 회전이 아주 빨랐다. 슬라브 사람들은 몹시 아름다운 노래
를 불렀다. 콘스탄티누스는 그들의 노랫소리에 눈물을 흘렸으며, 이번에는 슬라브 주름이 빗
방울처럼 자기 이마에 떨어져 내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것이 세번째 주름이었다.
콘스탄티누스는 서기 867년에 모라비아를 떠나 판노니아 왕자 코첼을 찾아 갔으며, 그곳
에서 다시 베네치아로 들어갔다. 콘스탄티누스는 베네치아에서 '3개 언어 연구자들'과 논쟁
을 벌이게 되었다. '3개 언어 연구자들'은 예배를 드릴 때 사용할 만한 언어라고는 그리스어,
히브리어 그리고 라틴어뿐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베네치아의 '3개 언어 연구자들'은
콘스탄티누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유다가 예수를 죽인 게 맞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불분명한 사실입니까?"
콘스탄티누스는 이제 네번째로, 베네치아의 주름이 볼에 파이는 것을 느꼈다 그 주름은
생긴 지 이미 오래된 사라센 주름, 카자르 주름, 슬라브 주름과 함께 콘스탄티누스의 얼굴을
가로지르면서 그의 얼굴을 조각조각 갈라놓았다. 생선 한 마리에 네 개의 그물을 던져 놓은
것 같았다.
콘스탄티누스는 자루 속에서 금화를 하나 꺼낸 다음 나팔수에게 주면서 나팔을 불라고 말
했다.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자 콘스탄티누스는 '3개 언어 연구자들'에게 질문하기를, 병사들
이 나팔 신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나팔 소리에 따라 행동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
다.
세월이 흘러 서기 869년이 되었다. 콘스탄티누스는 라벤나의 보에티우스를 생각하게 되었
다. 보에티우스는 마흔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며 콘스탄티누스도 이제 마흔세
살이었다.
교황이 콘스탄티누스를 로마로 초대했다. 콘스탄티누스는 로마에 가서 자신의 원칙과 자
신의 슬라브어 예배를 변호하는 일에 성공했다. 콘스탄티누스의 주위에는 메토디우스와 여
러 연구생들이 있었는데, 그 연구생들은 로마에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었다.
콘스탄티누스는 교회에서 신도들의 찬송가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어떠한 일을 하기에 적절한 소질을 타고난 사람도 몸이 아플 때, 마지못해 일을 하게 되
고 일손이 서툴러진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에게 걸맞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은 건강할 때
조차 마지못해 일을 하며 일손이 서툴게 마련이다."
콘스탄티누스는 로마에서 예배를 올리고 있었는데 성가대원들은 슬라브어로 찬송가를 불
렀다.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의 두번째 금화를 성가대원들에게 주었다. 그리고 여러 세대에 걸
쳐 선배들이 해 온 방식대로, 콘스탄티누스는 세번째 금화를 혀 밑에 넣고 로마에 있는 그
리스 수도원에 들어갔다. 서기 869년에 그는 퀴릴로스라는, 수도원에서 붙여 준 새로운 이름
으로 죽었다.
메토디우스(METHODIUS OF THESSALONICA: 서기 815~885년)-카자르 논쟁을 기록으
로 남긴 그리스인. 슬라브 계통의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며 그리스 정교회 계몽 운동가
였고 테살로니카의 콘스탄티누스, 즉 퀴릴로스의 형이다. 메토디우스는 테살로니카를 다스리
던 비잔틴 사람인 드룬가르 레오 집안 출신이었으므로 자신이 슬라브 지역 관리로 적합한
것인지 그 여부를 스트루미차 강 유역에서 시험해 보았을 것이다.
메토디우스는 슬라브 주민들의 언어를 알고 있었다. 슬라브 사람들은 턱수염을 기르고 겨
울이면 따스한 기운을 유지하기 위해 옷 속에 새를 넣어 가지고 다녔다. 서기 840년이 시작
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메토디우스는 프로폰티스 바다근처에 있는 비티니아를 향해 떠났다.
하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자기가 다스리던 슬라브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공처럼 앞으로 굴
리고 다녔다.
다우브마누스가 인용한 책에 의하면 메토디우스는 비티니아의 수도사 밑에서 공부했는데,
그 수도사는 메토디우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책을 읽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책에 씌어진 것을 모두 다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
다. 우리의 생각은 시기심이 많기 때문에 항상 다른 사람의 생각을 지워 버리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냄새를 한꺼번에 맡을 여유가 없기 때문이지요. 성스러운 삼위일체의
표시 아래 있는 사람들, 그 남성적인 표시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책을 읽을 때마다 홀수 문
장만을 받아들입니다. 그 반면에 우리는 4라는 여성적인 숫자의 표시 아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책에서 짝수 문장만을 받아들입니다. 당신과 당신의 형제는 같은 책에서 같
은 문장을 읽어 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읽는 책은 모두 다, 남성 표시와 여
성 표시의 결합으로써만 존재하니까요."
이 수도사 외에도 메토디우스에게 가르침을 준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그것은 바로 메토
디우스의 동생 콘스탄티누스다. 메토디우스는 때때로 자신이 근래에 읽고 있던 책의 저자보
다 동생이 더욱 현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메토디우스는 자신이 시간
을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책을 덮으면서 동생과 대화를 나누었다.
메토디우스는 소아시아 해안 지방에 있는 금욕주의자 부락의 수도사가 되었는데, 그곳의
이름은 올림포스였으며 나중에 퀴릴로스도 그곳에서 함께 일했다. 두 사람이 밖을 내다보고
있으면 부활절 바람에 모래가 날려가 버렸으며 주일마다 다른 자리에 새로운 고대 사막 사
원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두 사람이 간신히 꼭대기의 십자가를 알아보고 '우리 아버지'를 큰 소리로 읽어 낼 무렵이
면 그 사원은 또다시 영원 속으로 묻혀 버렸다. 바로 그 무렵부터 메토디우스는 두 가지 유
사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국에는 메토디우스의 무덤이 두 개라는 전설까지 생겨
난 것이다.
서기 861년에 메토디우스는 동생과 함께 카자르 민족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났다. 두 사
람에게는 스승이자 친구였던 포티우스로부터 강력한 민족에 대해 이미 들어온 정보가 있었
다. 포티우스는 카자르 민족과 친분이 있었다. 그래서 두 형제는 카자르 민족이 그들 자신의
언어로 그들 자신의 믿음을 설교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메토디우스는 수도로부터 명령을 받고, 콘스탄티누스의 동료이자 중인 자격으로 카자르
궁정에서 벌어진 논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1691년판 '카자르 사전'에 따르면 카자르 카간은
외국 손님들 앞에서 꿈 사냥꾼에 대하여 무엇인가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카간은 그들을 무시했지만, 꿈 사냥꾼들은 카자르 공주 아테에게 충성을 다했다. 카간은
부질없는 짓을 하고 있는 꿈 사냥꾼들을 그리스 설화에 나오는 바싹 마른 쥐에 비유했다.
이야기 속의 쥐는 밀 바구니에 나 있는 구멍을 통해 쉽사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실
컷 먹고 난 뒤에는 배가 불러서 구멍으로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배가 부르면 바구니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지. 배가 고플 때에는 바구니로 들어갈 수 있
었지만 말이야. 꿈을 먹는 사람들도 이것과 똑같지. 배가 고플 때 에는 현실과 꿈 사이에 나
있는 좁은 틈새로 손쉽게 지나갈 수 있지. 하지만 먹이를 손에 넣고 열매를 따고 나면 사정
이 달라지지. 꿈을 한 아름 안은 채 현실로 돌아올 수는 없으니까. 그곳으로부터 나오기 위
해서는 들어갈 때와 같아야 하거든. 그렇기 때문에 손에 넣은 것을 두고 나오거나 안 그러
면 영영 꿈 속에 남아 있는 거야. 꿈 사냥꾼은 우리에겍 아무런 소용도 없어......"
메토디우스는 카자르에서 돌아온 다음, 또다시 소아시아의 올림포스로 들어가서 은둔 생
활을 했다. 메토디우스가 같은 성상을 두번째로 보았을 때, 그것은 이제 낡아 버린 것 같았
다. 메토디우스는 폴리크론 수도원 원장이 되었는데 수세기에 걸쳐서 그 수도원에 대하여
알려진 것이라고는 아랍, 그리스, 유대, 이렇게 세 가지 시간 단위의 업합점에 세워졌을 것
이라는 사실뿐이었다. 그것도 단지 이름을 통하여 추측했던 것이다.
서기 863년에 메토디우스느 슬라브 중부로 돌아갔다. 그는 그리스의 힘을 빌려서 슬라브
어 학교를 세우고 싶었다. 학생들에게 슬라브어 알파벳을 가르치면서 그리스 책을 슬라브어
로 번역하고 싶었던 것이다. 메토디우스와 그의 동생 퀴릴로스는 어린 시절부터 테살로니
카의 새와 아프리카의 새가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과 스트루미차 강에서 날아온
제비와 나일 강에서 날아온 제비는 서로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알바트로스는 이 세상 어디에서나 같은 언어로 말한다는 시실도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은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둔 채 모라비아, 슬로바키아 그리고 오스트리아 저지대를 돌
아다니면서 주위에 젊은이가 모여들도록 했는데, 젊은이들은 두 사람이 하는 말을 듣기보다
는 두 사람의 혀만 쳐다보고 있었다. 메토디우스는 자신과 동생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한 명에게 정교한 장식으로 멋을 부린 지팡이를 선물하기로 결정했다. 사람들은 누
구나 다 메토디우스가 그 지팡이를 가장 우수한 학생에게 선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
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서 가만히 기다렸다. 하지만 기다렸다. 하지만 메토디우스
는 그 지팡이를 가장 부진한 학생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가장 우수한 학생을 가르치
는 일에는 가장 적은 시간이 듭니다. 그리고 가장 부진한 학생을 위해서는 가장 오랜 시간
을 들여야 하지요. 왜냐하면 이해가 빠른 학생은 빨리 배우기 때문입니다."
메토디우스가 어떤 사람이 자신과 자신의 동생을 공격했다는 말을 처음 들었던 것은 바로
바닥이 썩어 들어가는 방 안에서였다. 다시 말하자면 맨발로는 감히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
는 그런 방이었다. 두 사람과 처음 충돌한 것은 '3개 언어 연구자'였다. 그는 독일 사람으로
예배를 드릴 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세 개의 언어(그리스어, 라틴어, 히브리어)뿐이
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메토디우스와 그의 동생은 한동안 벌러톤 호숫가의 판노니아
에서 지냈다. 그곳은 슬라브 왕자 코첼이 다스리던 영토의 수도였으며, 겨울이면 머리카락이
얼고 바람이 불면 두 눈이 숟가락처럼 커지는 곳이었다. 전투가 벌어지면 왕자의 병사들은
말이나 낙타에 뒤지지 않을 만큼 악착같이 덤벼들었다. 그곳 사람들은 막대기로 뱀을 때려
서 뱀이 허물을 벗도록 했다. 판노니아 여인들은 성스러운 나무에 매달려서 허공에다가 아
이를 낳았다. 그리고 판노니아 사람들은 물고기를 판노니아 늪지대의 진흙 속에서 물고기를
꺼낸 후 그 물고기가 매처럼 자기의 손에서 날아오르도록 내버려둠으로써 기도를 대신했다.
그 물고기들은 몸을 흔들어 진흙을 떨어내고 지느러미를 날개처럼 저으면서 공중으로 날아
올랐다.
서기 867년에 두 형제는 추종자들과 제자들을 데리고 여행을 떠났는데, 그 여행 역시 걸
음마다 글자였으며 길목마다 문장이었으며 머무는 곳마다 큰 책의 번호가 되었다. 서기 867
년 베네치아에서 그들은 또다시 '3개 언어 연구자들'과 논쟁을 벌였으며, 그런 다음에 로마
에 도착했다. 교황 하드리아누스 2세는 테살로니카 사람인 두 형제의 가르침이 정당하다는
사실을 인정했으며 성 베드로 성당에서 슬라브 계통의 제자들에게 성직을 주었다. 이 행사
를 벌일 때, 사람들은 아주 최근에 다듬어진 언어인 슬라브어로 된 기도문으로 노래를 불렀
다. 슬라브어 기도문은 우리에 갇힌 작은 짐승처럼 글라골루 문자에 갇힌 채, 책으로 묶어
져서 드넓은 카프카스로부터 세계의 수도로 옮겨졌다. 서기 869년의 어느 날 저녁 로마에서
자신의 슬라브계 제자들이 서로의 입 속에 침을 뱉고 있는 동안, 메토디우스의 동생 콘스탄
티누스는 성 퀴릴로스라는 이름을 받아들인 다음, 세상을 떠났다. 퀴릴로스의 죽음을 지켜본
메토디우스는 다시 판노니아로 돌아왔다.
메토디우스는 서기 870년에 두번째로 로마에 머물렀다. 그 당시에 교황은 메토디우스에게
'판노니아와 시르미움의 대주교'라는 직함을 내렸다. 그래서 잘츠부르크 대주교는 벌러톤 호
수 지방을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서기 870년 여름에 메토디우스가 모라비아로 돌아오자, 독
일인 주교는 그를 감옥에 가두어 버렸다. 메토디우스는 그로부터 2년 동안이나 감옥에 갇
혀 있으면서 다뉴브 강물 소리 이외에는 아무 것도 들을 수가 없었다. 메토디우스는 레겐스
부르크에서 열린 종교회의에 끌려 나가서 재판을 받은 후 고문을 당하고 알몸으로 서리를
맞아야만 했다. 채찍질을 당할 때, 메토디우스의 몸은 너무나도 심하게 구부러져서 턱수염이
바닥에 쌓인 눈에 닿을 정도였다.
고난을 겪으면서 메토디우스는 호메로스와 성스러운 예언자 엘리야가 어떻게 동시대인일
수 있었는지, 호메로스가 남긴 시의 영토가 어떻게 마케도니아 사람 알렉산드로스의 영토보
다 더욱 넓을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폰토스로부터 지브롤터너머까지 뻗어
나갔으니 말이다 그리고 메토디우스는 이런 생각도 해 보았다. 어째서 호메로스는 자기의
영토 안에 있는 바다와 도시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알지 못했을까? 이와 마찬가지
로 위대한 알렉산드로스는 어째서 자기 영토 안의 모든 것을 알지 못했을까? 또한 호메로스
는 어째서 작품 속에 시돈이라는 이름을 집어 넣었으며, 모르는 사이에 예언자 엘리야의 이
름까지 집어 넣었을까? 엘리야는 신의 뜻에 따라 새들이 먹여 살린 사람이었지. 호메호스는
광대한 시의 영토 속에 여러 개의 바다와 마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째서 그 중의 하나인
시돈에 예언자 엘리야가 앉아 있다는 시실을 몰랐을까? 엘리야는 호메로스의 영토만큼이나
광대하고 영원하고 강력한 또다른 시의 영토 안에서, 다시 말하자면 '성스러운 경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메토디우스는 마침내 동시대에 살았던 호메로스와 갈라아드 사람이었
던 선지자 엘리야가 서로 만난 일이 있는지 몹시 궁금하게 되었다. 두 사람 모두 영원히 살
아남았으며, 두 사람 모두 오직 말의 힘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눈이 먼 채 황홀한
듯이 과거를 쳐다보았으며, 다른 한 사람은 천리안으로 미래에 사로잡혀 있었다. 한 사람은
그리스 사람으로 다른 어떤 시인보다도 더 훌륭하게 물과 불에 대해 노래했으며, 다른 한
사람은 유대인으로 물로써 상을 내리고 불로써 벌을 내렸으며 자신의 외투를 다리로 사용했
다. 결국 메토디우스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땅 위에 좁다란 통로가 있다. 그 넓이
는 낙타 열 마리의 시체가 간신히 들어갈 정도이다. 두 사람은 바로 이곳에서 서로를 놓친
것이다. 성큼성큼 지나가 버린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세상의 어떤 골짜기보다 좁았다. 위
대한 두 존재가 서로에게 그렇듯 가까이 다가간 적은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가 실수
를 저지른 것일까? 시각이 벌 밑의 땅바닥보다 기억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교황의 중재로 메토디우스는 풀려나게 되었다. 서기 880년에 메토디우스는 세번째로 로마
에 들어가서 자기의 활동과 슬라브어 예배의 적합성을 옹호하기 위해 논쟁을 벌였다. 교황
은 다시 한 번, 슬라브어 미사의 정당성을 확인시켜 주는 공식 문서를 발표했다.
다우브마누스는 메토디우스의 패배담과 함께 그가 로마의 티베르 강에서 출생, 결혼, 사망
의식을 치를 때 하듯이 세 번 몸을 씻은 이야기와 로마에서 마술에 걸린 세 개의 빵으로 영
상체를 받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서기 882년에 메토디우스는 콘스탄티노플 궁정과 귀족
사회에서 최고의 영예를 안았는데, 그 귀족 사회의 우두머리는 바로 메토디우스의 어릴 적
친구였으며 그 당시에 주교로 있던 철학자 포티우스였다. 메토디우스는 서기 885년에 모라
비아에서 세상을 떠났다. 메토디우스가 남긴 것으로는 성서와 노모카논과 성부들의 설교 등
을 슬라브어로 번역해 놓은 것이 있다.
철학자 콘스탄티누스가 카자르에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당시에 그 사건의 목격자이자
콘스탄티누스의 동료였던 메토디우스는 카자르 논쟁을 두 번에 걸쳐 기록으로 남겼다. 메
토디우스는 퀴릴로스의 '카자르 연설'을 슬라브어로 번역했다. 또한 퀴릴로스의 전기에 사용
된 단어들로 판단해 보건대, 그 책도 역시 메토디우스가 편집한 것이다. 메토디우스는 퀴릴
로스의 전기를 여덟 권으로 나누어 놓았다. 퀴릴로스의 '카자르 연설'은 그리스어로 된 원
본과 메토디우스가 슬라브어로 번역해 놓은 것이 모두 다 소실되었으므로 카자르 논쟁과 관
련된 기독교 자료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슬라브어로 된 철학자 콘스탄티누스의 전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메토디우스의 감독을 받아 완성되었다. 이 책에는 카자르 논쟁의 연도
(서기 861년)가 기록으로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콘스탄티누스의 연설과 이름을 알 수 없는
논쟁 상대 및 논쟁 참가자(유대교와 이슬람교를 대표해서 카자르 궁정에 온 사람들)의 연설
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다우브마누스는 메토디우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세상에서 쟁기질을
하기에 가장 힘든 밭은 다른 사람의 밭과 자기 아내의 밭이다. 하지만 남자들은 누구나, 십
자가에 매달리듯이 아내에게 매달려 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십자가를 지는 것보다 자
기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 더욱 힘들게 마련이다. 메토디우스의 사정이 바로 그러했으
니, 그는 결코 동생의 십자가를 지지 않았다. 메토디우스에게 동생은 정신적인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세바스트, 니콘(17세기) - 사탄이 '세바스트'라는 이름으로 카프카스에 있느 모라바 강 유
역의 오브카르 골짜기에서 살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사탄은 유달리 점잖았으며 사람들
에게 말을 걸 때마다 상대방을 언제나 '세바스트'라는 자기의 이름으로 불렀다고 한다. 그는
성 니콜라스 수도원에서 수석 서기관으로 일했다. 하지만 세바스트가 앉아 있던 곳에는 언
제나 두 개의 얼굴이 찍혀 있었으며 꼬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코가 있었다. 세바스트는 자
신이 전생에 유대교 지옥의 악마였으며 벨리알과 제프라 밑에서 일했으며 골렘을 유대교 교
회당의 다락에 묻어 두었다고 했다. 그리고 어느 가을에 새들이 독이 든 똥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나뭇잎과 풀잎이 시들어 버리곤 할 때, 세바스트는 사람을 고용해서 자기를 죽이도
록 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세바스트는 유대교 지옥에서 기독교 지옥으로 옮겨 오게 되었
으며, 이제 새로운 사람을 얻어 루키페로스를 섬긴다고 했다.
다른 이야기에 의하면 세바스트는 결코 죽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개가 자기의 피
를 한두 방울 핥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어느 터키인의 무덤 속으로 들어가서
그 터키인의 두 귀를 움켜쥐고는 피부를 찢고 그것을 뒤집어썼다고 한다.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세바스트의 잘생긴 터키풍 눈 뒤쪽에는 항상 염소의 눈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세바스트는 부싯돌만 보면 달아났으며 다른 사람들이 모두 저녁을 먹고 나면 그제서야 저녁
을 먹었다. 그리고 해마다 소금을 한 무더기씩 훔쳤다. 밤이 되면 세바스트가 수도원과 주
민들의 말을 타고 다닌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실제로 해가 뜰무렵이면 말들은 온통 비지
땀과 먼지를 뒤집어쓴 채 갈기가 이리저리 꼬여 있곤 했다. 사람들은 세바스트가자기 심장
을 식히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말했다. 세바스트의 심장은 부글부글 끓는 포도주 속에서
요리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말갈기에 솔로몬의 봉인을 끼워 넣어싿. 세
바스트는 그것만 보면 도망갔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 두면 세바스트와 세바스트의 장화로부
터 말을 보호할 수 있었다. 세바스트의 장화에 차이면 그 자리에 개 이빨 자국이 남곤 했다.
세바스트는 옷차림이 몹시 화려했다. 그는 또한 프레스코 벽화를 잘 그렸는데 그것은 대
천사 가브리엘이 내려 준 재능이라고 한다. 세바스트는 오브카르 골짜기에 있는 여러 교회
에 프레스코 벽화를 그린 후 나름대로 문장을 적어 두고는 했는데, 여러 수도원의 그림들을
어떤 법칙에 따라 읽어 나가다 보면 그 문장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그 그림들이 존재하는
한, 세바스트가 남겨 놓은 문장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어제든지 알아낼 수 있다.
세바스트는 자기 자신을 위해 이 문장을 남겨 놓았다. 왜냐하면 니콘 세바스트는 300년
안에, 죽은 자들 사이에서 산 자들 사이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세바스트는 악마는 전생
에 대해 아무 것도 기억할 수 없으므로 자신은 이런 방식으로 표시를 남겨 두는 것이라고
했다. 세바스트가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특별히 훌륭한 예술가라고 할 수는 없
었다. 그는 왼손으로 작업을 했고 그림을 잘 그리는 편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작품은 없었다. 마치 사람들의 눈길이 완전히 떠나 버리고 나면 그림들이
벽면 뒤로 꺼져 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어느 날 아침에 세바스트는 풀이 죽어 그림 앞에 앉아 있었는데, 색다른 종류의 고요함이
자신의 침묵 속으로 천천히 날아 들어와 자신의 침묵을 산산조각으로 깨뜨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다른 어떤 사람이 이미 그곳에 들어와 있었다. 그 사람은 침묵을 지키고 있
었지만, 세바스트와는 다른 언어를 사용했다. 바로 그 순간 세바스트는 대천사 가브리엘에
게, 색채의 영광을 내려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 골자기에 흩어져 있던 성 요한 수도
원, 성 수태고지 수도원, 성 니콜라스 수도원 그리고 성 처녀 방문 수도원 등에는 언제나 젊
은 수도사들이 들끓고 있었다. 젊은 수도사들 중에는 성상이나 프레스코 벽화를 그리는 사
람들이 많아서 교회 벽 장신을 했는데, 그들은 한 곳에 모여서 말없이 기도를 드리고는 성
자의 모습을 누가 가장 잘 그릴 수 있는지 경쟁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니콘 세바스트의
기도에 응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세바스트의 바람은 그
대로 이루어졌다.
1670년 8월에 에페소스 일곱 순교자의 날을 앞두고 사람들이 사슴 고기를 먹기 시작할
때, 니콘 세바스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세상에는 그릇된 미래도 있지만) 올바른 미
래로 가는 확실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바로 당신의 두려움이 이끄는 곳으로 따라가는 것입
니다."
세바스트는 사냥을 나갔다. 그는 테옥티스트 니콜스키라는 수도사를 데리고 갔는데, 그 사
람은 수도원에서 세바스트가 책을 복사하는 것을 도와 주고 있었다. 이 사냥 이야기가 지금
까지 전해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 수도사가 남겨 놓은 기록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이야기에 다르면 세바스트는 사냥개를 안장 위로 끌어올려서 자기의 뒤에 앉히고 사슴
사냥을 떠났다고 한다. 길을 가던 도중에 사냥개가 갑자기 말 엉덩이에서 뛰어내렸다. 테옥
티스트는 사슴을 볼 수 없었는데, 그 개는 진짜 사냥감을 쫓을 때처럼 사납게 짖으며 덤벼
들었다. 바로 그 순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육중한 물체가 사냥꾼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
다. 잡목 가지가 뚝뚝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세바스트도 사냥개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
다. 그는 눈앞에 사슴이 있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아주 가까운 곳에서 사슴이 울부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테옥티스트는 이것을 보고 대천사 가브리엘이 마침내 사슴의 모습으
로 세바스트앞에 나타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 사슴은 바로 니콘 세바스트의 영혼이
었다. 다시 말하자면 대천사가 세바스트에게 영혼을 선물로 보낸 것이다. 그래서 세바스트는
그날 아침에 자기 자신의 영혼을 사로잡아서 그 영혼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넓게 퍼
진 당신의 목소리는 점점 더 깊어만 갑니다. 나에게 훌륭한 색채를 내려 주시어 내가 당신
을 찬미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세바스트는 대천사를 향해, 혹은 사슴을 향해, 혹은 자기 자신의 영혼을 향해, 아니 그것
이 무엇이건 간에 바로 그것을 향해 외쳤다. "나는 토요일과 일요일 사이의 밤에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내가 그린 당신의 성상이 너무나 훌륭해서 심지어 다른 곳에서도, 사람들
이 그 그림을 보지 않고서도, 당신에게 기도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마침내 대천사 가브리엘이 입을 열었다. "프레오비데브 포타스타 세 오즐로비티......"
테옥티스트 니콜스키는 대천사가 명사를 뺀 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명사는
신을 위한 것이며, 동사는 인간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가브리엘의 말을 듣고, 성상 화가
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는 왼손잡이인데, 어떻게 오른손으로 작업을 하겠습니까?" 하
지만 사슴은 벌써 사라져 버렸다. 수도사는 세바스트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 보았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세바스트는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특별한 것은 하나도 없어. 이런
것은 모두 순간적인 것일 뿐이야. 난 그저 이곳을 거쳐서 콘스탄티노플을 향해 가는 것이라
네." 그런 다음에 세바스트는 다음과 같은 말도 했다. "무덤에서 쉬고 있는 사람의 시체를
다른 곳으로 옮겨 보게. 그 자리에서는 벌레들이 꿈틀거릴 거야. 귀금속이나 곰팡이처럼 투
명한 곤충들도 있겠지." 세바스트는 환희에 사로잡혔다. 그는 흡사 병에 걸린 사람 같았다.
그는 왼손에 쥐고 있던 붓을 오른손으로 옮겨 쥐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세바스트의 손
에서 색채가 우유처럼 흘러내렸고, 그는 그 색들을 미처 모두 바를 시간이 없었다.
어느 한순간에 그는 모든 비밀을 알게 되었다. 먹에 사향을 섞어 넣는 방법을 배웠으며,
노란색이 가장 빠른 색이고 검은색이 가장 느린 색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검은색은 늦게
마르기 때문에 제 모습이 드러나기까지 시간이 가장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세바스트가 만
들어 낸 색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은 '성 요한의 하얀색'과 '용의 피'였다. 세바스트는 또한
자기의 그림에 옻을 입히는 대신 작은 붓으로 식초를 묻혀 주었는데 그렇게 하면 그림에 광
택이 났다. 그는 색을 가지고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문설주, 거울, 벌집, 호박, 금화, 농부의
신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는 말발굽에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등 네 사람의 복음
전파자를 그려 넣었고, 자기의 손톱에는 신의 십계명을 적어 두었다. 우물 주위에 놓아두는
물통에는 이집트로 간 마리아를 그려 넣었고, 덧문에는 첫번째 이브(릴리스)와 두번째 이브
(아담의 아내)를 둘 다 그려 두었다. 그는 고통에 시달리는 뼈, 자기 자신의 이빨, 다른 사람
들의 이빨, 주머니, 모자, 천장에 그림을 그렸다. 그는 살아 있는 거북의 등에 열두 제자의
그림을 그려 놓은 다음, 모두 숲 속으로 들어가도록 했다.
밤에 밖으로 나가 보면 방 안에 있는 것처럼 종요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세바스트는
종종 마음에 드는 방으로 들어가 등불을 선반 위에 올려놓은 채, 두 쪽으로 된 그림을 그리
곤 했다. 그 그림 안에서는 대천사 가브리엘과 미가엘이 죄지은 여자의 영혼을 밤 사이에
서로에게 넘겨 주고 있었다. 그래서 화요일에는 미가엘이, 수요일에는 가브리엘이 일어나 있
었다. 두 천사가 여러 날의 이름이 씌어진 길을 따라 걸아가면, 뾰족한 글자들이 피로 변해
서 대천사들의 발 밑에서 뿜어져 나왔다. 니콘 세바스트의 그림은 겨울에 더욱 아름다운
느낌을 주었다. 여름의 태양 아래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하얀 눈에 밝게 비추면서 보는 것이
더욱 좋았다. 겨울이 지나고 나면 그림들은 어쩐지 쓸쓸한 느낌을 주었다. 마치 일식 동안에
그려진 것만 같았다. 얼굴에 그려진 미소는 4월이면 사그라들어서 첫눈이 오기 전까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세바스트는 자리를 잡고 앉아 다시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아주 가끔씩
그는 팔꿈치로 자신의 거대한 성기를 다리 사이로 밀어 넣었다. 작업을 하는 동안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다.
사람들은 평생토록 세바스트의 새로운 그림들을 기억했다. 골짜기의 수도사들과 수도원의
성상 화가들이 세바스트의 색치를 보기 위새 성 니콜라스 수도원으로 몰려들었다. 마치 호
루라기 소리를 듣고 모여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세바스트를 데리고 가기 위해 여러 수도원
들 사이에 경쟁이 붙었다. 세바스트는 한 폭의 성상을 그려 주고 공동묘지를 통째로 살 만
큼의 돈을 받았으며 가장 빠른 말이 달리는 것보다 더욱 빠르게 그림을 그렸다. 성상 화가
세바스트가 어떻게 작업을 했는가에 대한 기록이 8부 합창 찬송가 모음집에 보존되어 있으
며 1674년 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이 기록을 남긴 사람은 알려지지 않은 어느
수도사이다.
지금부터 2년 전 주두고행자 성 안드레의 날에 사람들이 꿩고기를 먹으려고 할 때, 나는
성 니콜라스 수도원의 내 방에 앉아 있었다. 그 당시 나는 키예프에서 보내 온 예루살렘 시
집을 읽고 있었다. 옆방에서는 세 명의 수도사와 개 한 마리가 음식을 먹고 있었다. 동작이
독특한 두 수도사는 이미 저녁 식사를 마쳤고 화가인 세바스트는 언제나 그렇듯 나중에 먹
고 있었다. 내가 읽고 있던 시의 정적을 통해, 나는 세바스트가 소의 혓바닥을 씹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밖으로 가지고 나가서 오얏나무에 두들기던 바
로 그 소의 혓바닥이었다. 세바스트는 식사를 마치자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그림을 그리기
위한 준비에 열중했다. 나는 세바스트가 물감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물어 보았다. 세바스트는 이렇게 대답했다. "색을 섞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바로
당신의 눈입니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물감을 차례차례 벽에 발라 나갈 뿐입니다. 그러면 보
는 사람의 눈 속에서 이 색들은 죽처럼 뒤섞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쁜 메밀로는 좋
은 죽을 만들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고 듣고 읽는 것에 있어서의 믿음이, 그림을 그
리고 노래를 부르고 책을 쓰는 일에 있어서의 믿음보다 더욱 중요합니다."
세바스트는 파란샌과 붉은색을 찍어 천사의 눈동자에 나란히 칠했다. 나는 천사의 눈동자
가 보라색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 "내 작품은 색채 사전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세바
스트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문장과 책, 이미지를 만들어 냅니다. 책을
쓰는 것도 이와 같을 수 있지요. 누군가가 몇몇 단어에 대한 사전을 한 권씩 펴낸다면 돗자
들은 스스로 그 단어들을 끼워 맞추어 완전한 모습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요?" 니콘
세바스트는 창문을 돌아보더니 붓으로 들판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저기에 밭
고랑이 보입니까? 저것은 쟁기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개 짖는 소리가 저 밭고랑을 만들었
지요." 세바스트는 잠시 동안 생각을 정리한 다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왼손잡이인데 오
른손으로 이런 그림을 그렸다면, 왼손으로 그리는 그림은 어떨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세바스트는 오른손에 쥐고 있던 붓을 왼손으로 옮겨 쥐었다. 이 말은 얼마 있지 않아서 모
든 수도원으로 퍼져 나갔고, 모두들 겁에 질렸다. 니콘 세바스트가 사탄에게로 돌아간 것이
며 언젠가 벌을 받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세바스트의 귀는 다시 칼처럼 뾰
족하게 되었으며 사람들은 세바스트가 귀로 빵을 썰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세
바스트의 재능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는 왼손으로 그림을 그렸지만 오른손으로 그릴 때
만큼이나 잘 그렸고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대천사의 파문은 실행되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에 니콘 세바스트는 성 수태고지 수도원의 부원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부
원장은 세바스트가 제단 출입문에 그려 넣을 그림에 대해 의논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날
도 그 다음날도 성 수태고지 수도원으로부터 아무도 도착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자 세바스
트는 무엇인가 기억하게 되었는지 자신의 다섯번째 '우리 아버지'를 읽었는데, 그것은 자살
한 영혼을 달래기 위해 암송하는 노래였다. 그 다음에 세바스트는 직접 성 수태고지 수도원
으로 찾아갔다. 부원장이 교회 앞에 있는 모습을 보고, 세바스트는 다른 사람을 자기 이름으
로 부르는 버릇대로 다음과 같이 물어 보았다. "세바스트! 세바스트! 무슨 일입니까?" 부
원장은 아무런 말도 없이 세바스트를 수도원 안으로 데이고 들어가서 그곳에 있던 성상 화
가를 손짓으로 가리켰다. 젊은 화가는 이미 문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세바스트는 그림을
보면서 몹시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 젊은이는 눈썹을 마치 날개처럼 팔락거렸으며, 세바
스트만큼이나 그림을 잘 그렸다. 젊은이는 세바스트보다 낫지도 못하지도 않았다. 세바스트
는 그제서야 자신에게 내려진 형벌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프로냐보르의 어느 교
회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또 다른 젊은이 역시 세바스트 만큼이나 뛰어나다는 소문이 돌았
으며 그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곧 다른 벽화 화가와 성상 화가들이 하나 둘
그림 실력이 늘어가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는 그다지 젊지 않은 사람들도 끼여 있었다. 그들
은 모두 동일한 부두에서 풀려 나와 넓고 넓은 바다로 나아가는 것 같았다.
니콘 세바스트는 다른 화가들이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이상이었는데, 이제 그들은 순식
간에 세바스트를 따라잡기 시작했다. 그래서 골짜기에 있는 모든 수도원 벽이 화려한 그림
으로 뒤덮였다. 세바스트는 그 전으로 돌아갔다.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하
자만 세바스트는 그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내가 다른 성상 화가들과 똑같다면 그것
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제 누구나 다 나처럼 그림을 그릴 수 있는데......" 세바스
트는 붓을 내던져 버렸으며, 그 후로 단 한 장의 글미도 그리지 않았다. 달걀 위에도 그림을
기리지 않았다. 세바스트는 눈물을 흘려 자기 눈 속의 색채들을 모두 수도원 회박죽 속에
쏟아 낸 다음, 테옥티스트와 함께 성 니콜라스 수도원을 떠났다. 세바스트는 길을 떠나며 이
런 말을 했다. "콘스탄티노플에 훌륭한 영주가 한 사람 있는데, 그 사람의 돼지꼬리는 말꼬
리만큼이나 두텁지. 그 사람은 나를 서기로 고용해 줄 거야." 그리고 세바스트는 그 영주의
이름을 언급했다. 그 이름은 바로 아브람 브란코비치였다.
스킬라. 아베르카(17세기 후반~18세기 초) 콥트족의 후손. 17세기 후반 콘스탄티노플에서
가장 유명한 사브르 검 전문가 가운데 한 사람. 스킬라는 콘스탄티노플의 외교관 아브람 브
란코비치에게 하인으로 고용되었다. 스킬라는 자기 주인과 함께 짙은 어둠 속에서 사브르
검 기술을 연습했는데, 기다란 가죽끈으로 상대방과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스킬라는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으며, 언제나 중국제 은침 한 상자와 거울을
가지고 다녔다. 그 거울을 보면 스킬라의 얼굴 윤곽을 따라 붉은 점들이 박혀 있고 얼굴에
난 주름살을 따라 녹색 점이 박혀 있었다. 스킬라는 상처가 나거나 아픈 곳이 있을 때, 이
거울 앞에 서서 얼굴에 녹색점이 나타난 곳마다 중국제 은침을 놓곤 했다. 그렇게 하면 통
증은 사라지고 상처는 치료되었으며 피부에는 기묘한 한자만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스킬
라는 이 거울을 가지고 자기 자신 이외에 다른 사람은 한 명도 치료할 수 없었다. 스킬라는
언제나 재미있는 사람을 가까이 하려고 했으며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는 장소에서는 자
신을 웃게 만드는 사람에게 후한 대가를 치렀다. 하지만 스킬라는 모든 익살의 가격을 다
르게 결정했다. 그가 믿는 바에 따르자면, 어떤 사람이 단지 한 가지 일 때문에 웃는다면 그
것은 평범한 웃음이다. 그것은 가장 값싼 종류의 웃음이다. 두 가지나 세 가지 일로 한꺼번
에 웃는 것이 더욱 커다란 값어치가 있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웃음은 드물다. 이 세상의 모
든 귀중한 것들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아베르키에 스킬라는 수십 년 동안이나 소아시아의 전쟁터와 전초부대를 돌아다니면서 가
장 훌륭한 사브르 검 사용법을 모으는 일에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스킬라는 그렇게 모은
검 사용법을 모으는 일에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스킬라는 그렇게 모은 검 사용법을 연구하
고 살아 있는 살과 피로 실험을 한 후에, 마침내 책에 상세히 적어 넣었는데 그 책은 오래
된 사브르 검 사용법을 다양하게 보여 주는 도표와 그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스킬라는 물
속에서도 사브르 검으로 물고기를 죽일 수 있었다. 또한 밤에 손전등을 매단 칼을 땅에 꽂
아 두었다가 적이 빛을 바라보고 있을 때, 단도를 들고 어둠 속으로부터 달려 나와 공격하
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동작 하나하나에 서로 다른 황도 별자리를 표시해 두었는데 이 별
자리를 구성하는 별들은 각각 죽음을 당한 사람 한 명씩을 나타내었다.
1689년 무렵에 스킬라는 이미 물병자리, 사수자리, 황소자리를 완전히 익힌 후에 산양자리
를 연습하고 있었다. 실전에 임해서 마지막 순간에 사브르 검을 확실하게 내려치는 것만 할
줄 알게 되면, 이 별자리도 다 익힌 셈이었다. 마지막 일격은 살을 뱀 모양으로 후벼 파는
것으로 끔찍할 정도로 구불구불하고 쩍 벌어진 상처를 남겼다. 이렇게 일격을 당하고 나면
상처에서 사람 목소리가 났는데, 이것은 자유를 찾은 피가 질러 대는 고함 소리 같았다.
스킬라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1689년 왈라키아에서 벌어진 오스트리아와 터키 사이의 전
투에서 지신의 이 마지막 일격을 시험했으며, 그런 다음에 베네치아로 돌아갔다. 스킬라는
그곳에서 검투사이자 사브르 검 일인자로서의 경험을 살려 책으로 펴냈는데, 1702년에 나온
이 책의 제목은 '사브르 검이 남긴 가장 훌륭한 서명'이었다.
이 책에는 검술에 대한 그림들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아베르키에 스킬라는 별들 가운데 서
있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더욱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기가 이라저리 휘두르는 사브르 검이
만드는 우리나 그물 속에 자기 자신을 그려 놓았다. 사브르 검술을 배워 본 적이 없는 사
람에게는 허공을 가르는 사브르 검의 날카로운 칼날에서 휙휙 소리가 나고, 스킬라 자신은
그 아름답고 투명한 천막 안에 둘러싸여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이 천막은 너무나 호화
로운 모습으로, 떠다니는 둥근 천장과 다리, 아치 그리고 구석마다 서 있는 뾰족탑 등으로
가득 차 있어서, 마치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벌 한 마리가 아베르키에 스킬라를 그 안에 가
두어 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벌이 허공에 끊임없이 적어 대던 글자를, 사람들은 갑자
기 알아볼 수 있었다. 아베르키에 스킬라는 그처럼 완전한 움직임 혹은 감옥 쇠창살 뒤에
서, 평화로운 표정을 짓고 있지만 그의 입술은 이중으로 되어 있어서 언제나 스킬라 안에
있는 다른 누군가가 스킬라 대신 말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스킬라는 언제나 모든 상
처는 새로운 심장이 되어 혼자의 힘으로 고동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사브르 검을 가지
고 이러한 상처들 위에 십자가를 그렸다. 스킬라는 코에 털이 나 있었는데, 사람들은 이것으
로 스킬라를 알아보고 그를 피했다.
아베르키에 스킬라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기록이 남아 있는데 그것은 음악가이면서 꿈을
읽을 줄 알았던 유수프 마수디가 남긴 것이다. 유수프 마수디와 아베르키에 스킬라는 이미
말한 것처럼, 콘스탄티노플의 터키 정부에 파견된 외교관 밑에서 하인으로 일했는데 마수디
는 사람들의 꿈을 따라 여행하는 유령을 쫓아다녔다. 마수디가 알아낸 바에 따르면, 두 사
람이 서로에 대한 꿈을 꾸고 그 중 한 사람의 꿈이 다른 한 사람의 현실을 구성하는 경우,
꿈의 작은 부분이 언제나 남겨진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꿈의 아이들'이다. 꿈은 물론 꿈에
나오는 사람의 현실보다 더욱 짧다. 하지만 꿈은 언제나 아주 깊은 것이기 때문에, 어떤 현
실과도 비교할 수 없다. 그래서 어제나 약간의 찌꺼기가 남게 된다. 이러한 '잉여물질'은 꿈
에 나오는 사람의 현실 속으로 흘러 들어가 거기에 붙어 있게 된다. 결과적으로 제3의 인물
은 엄청난 어려움과 변화를 겪게 된다. 제3의 인물은 처음의 두 사람보다 더욱 복잡한 상황
에 놓이게 된다. 이 인물의 자유의지는 다른 두 사람에 비해 두 배는 더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다. 하나의 꿈에서 다른 꿈으로 흘러가던 물질과 힘의 잉여가 이제 제3자의 영혼속으
로 흘러 들었으므로, 결과적으로 그 사람은 일종의 양성체가 되어 '잉여물질'을 넘겨 준 두
사람에게 순간순간 번갈아 가면서 기울기 때문이다. 마수디는 아베르키에 스킬라가 이러한
종류의 의지 억제 상태에 있으며 두 사람에게서 물려받은, 죽은 열에 들떠 있다고 굳게 믿
고 있었다. 마수디는 두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기도 했는데 한 명은 아베르키에 스킬라의 영
주이자 주인이었던 아브람 브란코비치였으며, 다른 한 명은 코헨이라는 사람이었다. 아베르
키에 스킬라는 코헨을 알지도 못했다.
스킬라가 가장 깊은 소리와 가장 굵은 줄을 가진 악기와 같았다고 하더라도 그는 단지 노
랫가락의 뼈대만을, 미숙하고 투박한 자기 인생의 소리만을 만들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다
스킬라를 피해 갔으며 다른 사람들에 의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형태가 잡혀 갔다.
스킬라는 아무리 큰 소리로 외쳐도 아무리 훌륭한 일을 이루어 내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아
무런 고통 없이 존재하며 자기들이 할 만한 일만을 하면서도 얻어낼 수 있는 것 이상은 얻
어낼 수 없었다. 마수디가 기록해 놓은 사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베르키에 스킬라가 더
욱 훌륭한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사브르 검술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직업적인
이유나 군사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속해 있는 사악한 집단으로부터 무사
히 빠져 나오기 위해 어떤 검술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었으며 자신을 고문했던 사람들이 사
브르 검이 닿는 거리 안으로 들어오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스킬라는 말년에 이르러, 오로지 단 한 가지 사브르 검술에 힘입어 그 어려운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대단히 엉뚜한 희망을 품게 되었다. 스킬라는 그것이 산양자리 밑
에 있는 검술이라고 주장했다. 스킬라는 잠에서 깨어날 때, 종종 잠을 자는 동안 말라붙은
눈물이 두 눈에 묻어 있었다. 하지만 스킬라가 두 눈을 비비면, 말라붙어 있던 눈물은 손 끝
에서 유리 조각이나 모래알처럼 부서져 내렸다. 이 파편들을 보면서, 콥트 사람 스킬라는 그
것이 자신의 눈물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눈물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아베르키에 스킬라
가 쓴 책 '사브르 검이 가장 훌륭한 서명'베네치아 판에 마지막을 나오는 그림을 보면, 아베
르케에 스킬라는 뚝뚝 끊어진 칼자국이 그려 놓은 우리 속에 들어가 있다. 이것은 바로 산
양자리 밑에 있는 지그재그 사브르 검술에 대한 그림인데, 그 검술은 우리나 그물로부터 빠
져 나올 수 있는 통로로 묘사되어 있다. 책의 마지막 그림에 나오는 아베르키에 스킬라는
눈에 뜨일 정도로 구불거리는 칼자국이 만들어 놓은 구멍을 통해 전투 기술이라는 우리로부
터 빠져나가고 있다. 그는 통로를 지나가듯이 자유 속으로 걸아 들어간 것이다. 상처를 통과
하듯이 좁은 틈을 통과해 나온 것이다. 별이 가득한 감옥으로 부터 벗어나 새로운 생명으
로서 세상 속에 태어난 것이다. 굳게 다문 입술 안에 있던 스킬라의 다른 입술이 기쁜듯이
웃었다.
스튈리테스(그르구르 브란코비치), 1676~1701년) 그리스 정교회에서 '스튈리테스'는 기둥
꼭대기에 앉아서 기도로 한평행을 보내는 금욕적인 수도사를 의미한 하지만 그르구르 브란
코비치의 경우 '스튈리테스'라는 용어는 별명으로 쓰였으며, 그가 이러한 별명을 얻게 된 과
정은 매우 특이하다.
그르구르 브란코비치는 에르델리의 브란코비치 가문 출신으로 중대장의 위치에 있었으며
17세기에 외교관이자 군대 지도자였던 아브람 브란코비치의 장남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죽
은 후 불과 12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기록에 의하면 그르구르 브란코비치는 표범처럼 온몸에 얼룩덜룩한 점이 있었으며, 깊은
밤에 상대방을 공격하는 일에 매우 능숙했다. 그는 70개의 무쇠조각으로 만든 값비싼 사브
르 검을 지니고 다녔는데, 그 무쇠 조각들은 대장장이가 '우리 아버지' 기도문 아홉 개를 읽
어 가는 동안 내내 풀무에 넣어 두었던 것이다. 그르구르 브란코비치 자신은 '스튈리테스'라
는 별명을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그가 터키의 감옥에 갇혀 있다가 기묘하
게 죽음을 당한 이후부터 그러한 별명이 붙여졌기 때문이다.
대포 주조 기술자인 하산 아그리비르디 2세가 그르구르 브란코비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
를 남겼는데, 그 이야기는 후에 민요가 되어 전해졌다. 그리고 그르구르는 이 별명으로 인하
여 기독교 교회의 성스럽고도 금욕적인 수도사들과 거의 같은 대접을 받았다.
하산 아그리비르디 2세의 설명에 따르면 그르구르와 몇몇 기병들은 다뉴브 강변에서 우연
히 강력한 터키 군대와 만나게 되었다. 얼마 전에 그곳에 도착한 터키 군대는 말 위에 올라
앉은 채로, 강물을 향해 오줌을 누고 있었다.
그르구르 브란코비치는 터키 군대를 보자마자 잽싸게 달아났다. 터키 군대의 지휘관은 그
를 보고도 태연히 오줌 누는 일을 계속했다. 그리고 요도를 완전히 비우고 몸을 부르르 떨
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그르구르를 추격해 사로잡았다.
그르구르를 결박해서 그들 진영으로 데리고 간 터키 병사들은 창으로 북을 두드렸다. 포
로로 잡힌 그르구르는 그리스 식 기둥 위에 앉혀지고, 세명의 궁수가 그를 향해 활을 겨누
었다.
그들은 활을 쏘기 전에, 그르구르가 만약 다섯번째 화살을 맞고도 죽지 않는다면 목숨을
살려 줄 뿐만 아니라 활과 화살을 가지고 세 사람의 궁수를 쏠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말했
다.
그르구르 브란코비치는 두 개의 화살을 동시에 쏘지는 말아 달라고 애원했다. 그렇게 해
야만이 '몇 번을 맞았는지 헤아리지 않고 몇 번을 쏘았는지 헤아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
했다.
세 명의 궁수가 활을 쏘는 동안 그르구르는 날아오는 화살의 수를 세기 시작했다. 첫번
째 화살은 혁대 버클에 맞고는 창자까지 뚫고 들어갔다. 그르구르가 살아오면서 느꼈던 모
든 고통들이 한꺼번에[ 머리를 들고 일어났다. 두번째 화살은 그르구르가 손으로 잡아 낼
수 있었따. 하지만 세번째 화살은 그의 귀를 뚫고 귀고리처럼 매달렸다. 그르구르는 열심히
화살의 수를 헤아렸다. 여섯번째 화살은 또다시 빗나갔고 아홉번째는 그의 손을 허벅지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그르구르는 계속 숫자를 헤아렸다. 열한번째 화살은 팔꿈치를 박살냈으
며 열두번쨰 화살은 등 아래쪽을 찢어 놓았다. 하지만 그르구르는 여전히 숫자를 헤아렸다.
그는 열일곱까지 세고 난 후 숨이 끊어진 채 기둥에서 떨어졌다.
터키 병사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그르구르가 떨어진 자리에서 야생 포도가
돋아났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비티스 실베스트리스'라고 부르며 절대로 사고 팔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것은 죄악이기 때문이다.
수크, 이사일로 박사(1930년 3월 15일~1982년 10월 2일)-저명한 고고학자, 아랍학을 연구
하였다. 노비 사드의 대학 교수. 1982년 4월 어느 날 아침에 수크 박사가 눈을 떴을 때, 머
리카락이 베개 밑에 들어가 있고 입에 작은 상처가 나 있었다. 그리고 무엇인가 단단하고
뾰족한 것 때문에 입 안이 몹시 아팠다.
수크 박사는 손가락 두 개를 집어 넣어 마치 주머니에서 빗을 빼내듯이 입속에서 열쇠를
꺼냈다. 손잡이 부분이 금으로 만들어진 작은 열쇠였다. 인간의 생각과 꿈을 감싸고 있는 껍
질은 도저히 꿰뚫을 수 없을 정도로 딱딱해서 그 안에 있는 부드러운 알맹이가 상처받지 않
도록 보호한다. 마치 조개 껍질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수크 박사는 침대에 누운 채,
열쇠를 유심히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단어들과 접촉하자마자 순식간에 꺼져 버렸다. 단어들이 생각과 접
촉하는 즉시 사라져 버리는 것만큼이나 순식간의 일이었다. 이러한 두 차례의 재난을 간신
히 면하고 남은 단어와 생각만이 우리의 몫으로 남게 되는 법이다. 결국 수크 박사는 불알
처럼 털이 난 두 눈을 껌벅거리면서 어떤 것도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수크 박사가 그토록 놀랐던 것은 입 속의 열쇠 때문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단 하나뿐인 입 속에 채워 넣는 그 모든 것들을 한 번 생각해 보라! 반
약 입이 여러 개라면 그 중에서 선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언젠가 시끌벅적한 잔치가 끝난 후, 수크 박사는 입 속에서 돼지의 머리를 꺼낸 일이 있
었다. 그러므로 지금 수크 박사는 그 일로 놀란 것이 아니었다. 수크 박사가 보기에 그 열쇠
는 적어도 천 년은 된 것 같았다. 고고학에 관한 한 이사일로 수크 교수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고학계에서 수크 교수와 견줄 만한 명성을 갖춘 사람 역
시 아무도 없었다.
그는 열쇠를 바지 주머니에 넣고 콧수염을 잘근잘근 씹었다. 수크 박사는 아침에 콧수염
을 씹을 때마다 언제나 전날 밤 저녁 식사 때 먹은 음식을 기억해 보곤 했다.
그는 그 음식을 즉시 생각해 낼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아주바'와 생강에 절인 간을 먹
었다. 하지만 때때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곤 했다. 콧수염에서 굴이나 레몬 등
수크 박사가 입에 대 본 적이 없는 음식의 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수크 박사는 지난 밤에 침대에서 함께 저녁 식사에 대한 이야기를 한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곤 했다. 오늘 아침에는 젤소마나 모호로비치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
의 미소는 간을 잘 맞춘 음식과도 같았다. 그녀의 두눈은 약간 비스듬해서 눈을 깜빡일 때
마다 언제나 코에 주름살이 생겼다. 그녀의 작은 손은 몹시 따스했기 때문에 계란을 익혀서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수크 박사는 그녀의 윤기나는 머리카락으로 새해 선물을 묶고는 했
는데, 그것이 누구의 머리카락인지 알아보는 여자들도 있었따.
머리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수크 박사는 깨끗하게 면도를 하고 눈빛을 날카롭게 한
다음, 외출 준비를 했다. 그는 수도에서 살고 있었지만, 여전히 가족들은 만나기 위해 고향
을 방문했다. 수크 교수가 30년 전에 자신의 연구를 처음 시작한 것도 바로 이 고향집에서
였다. 그 때 이후로 수크 박사는 연구에 이끌려 점점 더 먼곳으로 옮겨 다녔으며 이러한 여
정이 결국 검은 빵조각 같은 언덕에 기괴한 전나무가 자라는 곳에서 끝나고 말 것이라는 느
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고고학 연구와 카자르 민족에 대한 연구는 모두 다 이 집과 연관되어 있었
다. 수크 박사가 연구하던 카자르 민족으 세계사의 무대에서 이미 오래 전에 사라져 버린
고대 민족으로, 그들은 연혼의 뼈대는 추억으로 만들어 진다는 말을 남겼다.
수크 박사가 살던 고향집의 주인은, 수크 박사의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왼발잡이였다. 수
크박사는 그 할머니의 피를 이어받아 왼손잡이가 되었다.
수크 박사의 글들은 수크 박사의 어머니 아나스타시아 수크 여사의 집이 된 그곳의 서재
책꽂이에 영예로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수크 박사의 글들은 모피 외투의 가죽으로 묶
어 두었는데, 그 가죽에서는 까치밥나무 냄새가 풍겼다. 수크 박사의 글을 읽으려면 특수한
돋보기가 필요했는데, 아나스타시아 여사는 공식적인 경우에만 그 돋보기를 사용했다.
아나스타시아 여사는 피부에 점이 많이서 흡사 송어 같았으며 자신의 이름이 귀찮은 동전
이라도 된다는 듯이 언제나 입 속에 넣고 다녔다. 어떤 사람이 아니스타시아라고 불렀을 때,
그녀는 결코 대답하지 않았으며 세상을 뜨는 날까지 자기 이름을 단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아나스타시아 여사의 두 눈은 거위의 눈처럼 파랗고 아름다웠다.
수크박사는 아나스타시아 여사가 무릎 위에 수크 박사의 책 중 하나를 펼쳐 놓은 채 앉아
있는 모습을 가끔씩 보았는데, 그럴 때마다 어떤 사람의 이름(수크 박사 아버지의 이름)이
파편이 되어 아나스타시아 여사의 입술에 매달려 있었으며, 그 이름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수크 박사의 마지막 십 년 동안은 죽처럼 뻑뻑해서 꿰뚫어 보기가 쉽지 않다. 그 기간 동
안 수크 박사는 고문서와 옛날 동전의 사진, 진실의 기둥을 세우기 위한 소금 주전자 파편
등을 모드고 있었는데,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그의 어머니가 먼 곳에서부터 그에게로
되돌아오고 있었다는 것, 즉 삶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는 사실이 점차 명백해졌다.
날로 많아지는 수크 박사의 나이를 통해, 수크 박사의 얼굴에 생긴 주름살을 통해, 아나스
타시아 여사는 돌아오고 있었따. 수크 박사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아나스타시아 여사는 수
크 박사의 얼굴과 몸 속에 점점 더 깊이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하면서 수크 박사로부터 돌
아가신 아버지의 성품과 외양을 하나씩 하나씩 지워 나갔다.
수크 박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눈에 뜨일 정도로 아버지로부터 벗어났으며 어머니에게
로 가까이 다가갔다. 이제 수크 박사는 혼자 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으므로 여자들의
일까지 처리하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았던 손재주는 조금씩 사라져
버렸으며, 수크 박사 자신의 굼뜨고 서투른 손놀림에는 어머니의 손놀림이 담겨 있다는 사
실을 깨닫게 되었다.
수크 박사는 고향집을 방문하는 일이 드물었으며, 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대부분의 경우
누군가의 생일 때문이었다(이번에도 역시 그러했다). 그러나 그렇게 고향을 방문하는 일에도
변화가 찾아오게 되었다.
수크 박사의 어머니는 문까지 나와서 수크 박사를 맞이했다. 어머니는 수크 박사의 코에
입을 맞추고 구석으로 이끌고 갔다. 오래 전 그곳에는 수크 박사가 타던 보행기가 놓여 있
었는데, 지금은 안락 의자가 돼지처럼 문 손잡이 묶여 있다.
"사셴카, 넌 항상 그런 식으로 나를 무시하는구나."
아나스타시아 여사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들을 바라본다.
"내 삶에 있어서 가장 훌륭하고도 행복한 시간들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노력들과 연결되어
있기에, 난 아직도 그 때를 기억하고 있단다. 그러니까 너를 기억하고 있다는 말도 되지. 행
복하다는 것이 어째서 그렇게 지쳐 쓰러질 만큼 힘들었던 것일까? 하지만 뭐 괜찮다. 그것
은 모두 이미 오래 전에, 버드나무 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처럼 지나가 버렸으니까. 난
이제 더 이상 행복하지 않을 정도로 안정이 되었지. 하지만 말이다. 아직까지도 날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단다. 아직까지도 날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단 말이다!"
아나스타시아 여사는 수크 박사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를 한 묶음 가지고 돌아왔다.
"자, 보렴! 사셴카. 모두 수크 박사님이 보낸 거란다!"
어머니는 그 편지들을 젤소미나 모호로비치치의 머리카락으로 묶어 두었다. 그녀는 편지
묶음에 입을 맞추고는 승리의 노래를 부르듯이 의기양양하게 아들에게 편지를읽어 주었다.
그러다가 아나스타시아 여사는 나중에 아들이 호텔로 돌아가서 잠을자려고 문을 나설 때,
아들을 배웅해 주는 것조차 잊을 뻔했다.
아나스타시아 여사가 아들을 배웅해 주었다고 하더라도 너무 성급하게 작별의 입맞춤을
하는 바람에 아들은 어머니의 가슴이 자기 몸에 와 닿는 것을 느꼈다.
수크 교수가 연구 활동을 시작한 지 30년째 접어들던 해가 되었다. 두 눈이 재빨라지고
입이 귀보다 느려질 때, 그가 쓴 책이 고고학자들과 아랍 학자들 사이에 받아들여졌을 때,
수크 박사가 수도로 옮겨 간 것은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어느 날 아침, 프레첼 모양으
로 생긴 건물에서 이사일로 수크 박사의 이름이 처음으로 공식적인 자리에 올랐다. 그 다음
이나 혹은 그 다음번에 수크 박사의 이름이 또다시 오르지는 않았지만, 수크 박사는 이제
그 건물에서 열리는 모임에 정기적으로 초대받게 되었다.
수크 박사는 입술 위에 거미줄처럼 가냘프게 걸려 있는 어제의 미소를 띠며 이 모임에 참
가했으며, 그 건물의 복도에서 길을 잃기도 했다. 그곳의 복도는 구불구불하기 때문에 자기
가 들어온 곳을 정확히 찾아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크 박사는 마치 이 건물이 자기가 배워 본 적도 없고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은 언어로
씌어진 채 ㄱ 같았으며 그곳의 복도는 낯선 언어로 된 문장들 같았고 그곳의 방들은 전에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외국어 단어와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날 아침 수크 박사는 일층에 있는 방에서 일상적인 시험을 치르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 방은 썩은 열쇠 구멍에서 풍기는 것과 같은 냄새가 나는 것
이었다.
그 건물의 이층에서는 수크 박사의 책들이 더 이상 재론의 여지가 없는 평가를 받고 있었
지만, 같은 건물 한 층 아래에서 수크 박사는 비록 바지는 점점 더 길어지고 있지만 다리가
짧아진 듣한 느낌이 들었다. 일층의 사람들은 이층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종하면서도 수크
박사의 책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수크 박사는 1년에 한 번씩 시험을 치르는 수밖에 없었으
며 일층의 사람들은 언제나 그에 앞서 수크 박사의 신분을 세밀히 검토하고는 했다.
처음 시험을 치르러 갔을 때, 수크 박사는 시험 위원장이 자기 학교의 강사라는 사실을
알고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강사는 최근에 박사 학위 구두 시험을 보았는데, 바로 그 때
수크 박사 자신이 여러 교수들과 함께 감독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수크 박사는 강
의실 유리창을 통해 가끔씩 그 강사를 보고는 했다. 시험을 치른 후에 수크 박사는 자기의
점수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시험 위원장은 수험생의 가능성을 칭찬했다. 그래서
수크 박사는 그날 시험을 마치고 어머니를 만나러 가면서 마음이 편안했다.
아나스타시아 여사는 여느 때처럼 수크 박사를 식당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두 ㅅ눈을 지그
시 감고서 이사일로 수크 바사의 최근 역작을 가슴에 끌어안았다. 그 책에는 저자 자신이
직접 손으로 쓴 헌정의 글이 있었으며, 아나스타시아 여사는 그것을 수크 박사에게 보여 주
었다.
수크 박사가 그 책과 자기 자신의 서명을 공손하게 보자, 아나스타시아 여사는 수크 박사
를 구석에 놓인 발판에 앉히면서 수크 박사가 어린 시절부터 항상 기억하고 있던 말을 늘어
놓았다.
"거기에 잠시 동안만 앉아 있거라!"
아나스타시아 여사는 그 책에 설명되어 있는 과학적 성과의 요점을 수크 박사에게 알려주
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어머니는 기쁨에 몸을 떨었는데, 그것은 광대의 슬픔이라기보다
는 비극에 등장하는 인물의 명랑함이었다.
수크 교수가 입증한 바에 따르면 야만인들은 크리미아 반도의 항아리에서 발견된 열쇠들
과 비슷한 모양으로 은이나 구리, 금으로 된 동전 손잡이를 만들었다고 한다.
아나스타시아 여사는 그것을 아들에게 아주 정확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 당시에 135개의
열쇠가 발견되었다. 수크 박사는 그 항아리 속에 1만 개의 열쇠가 들어 있었을 것이라고 믿
었다. 그리고 수크 박사는 열쇠 하나하나에서 작은 기호나 문자를 발견했다. 수크 박사는 처
음에 그것이 열쇠 제조공이 표시해 놓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있지 않아서 수크 박사는 동일한 동전들가운데 액면가가 좀 더 높은 샘ㅁ플
에는 두번째 글자가, 은화에는 세번째 글자가 찍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금화에는 네번
째 글자가 찍혀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금 손잡이가 달린 열쇠는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 수크 박사의
머리 속에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 결정적인 순간에 아나스타시아 여사는 아들
에게 자기의 말에 끼여들지도, 자기를 분안하게 만들지도 말라고 부탁했다.
수크 박사는 동전들을 액면가 순으로 늘어놓고 동전에 씌어진 글자들을 한곳으로 모아서
비밀스런 글씨를 읽어 보았다. 그럿은 바로 'Ate'였다. 그래도 여전히 한 글자가 부족했다.
그것은 그 당시까지도 발견되지 않았던 금 동전에 씌어진 글자였다.
수크 박사는 모자라는 글자가 유대 알파벳의 성스러운 문자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라고 빋
었다. 그리고 그것이 아마도 'he'라는 문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신의 이름 중에서
네번째 글자였다. 그 글자가 찍힌 열쇠는 죽음의 전조가 되었다. "그것이 얼마나 명석한 생
각인지 알겠니?"
아나스타시아 여사는 그렇게 외치더니 수크 박사의 잔이 빈 것을 보고 한 마디 덧붙였다.
"한 잔이면 충분하지. 두 잔으로는 충분하지 않지만!" 시간이 흐르고, 2년에 한 번씩 봄이
되면 썩은 열쇠 구멍 냄새가 나는 방문 뒤에 수크 박사의 이름이 놓이게 되었다. 수크 박사
는 통지서를 받는 일도 없었고 시험 결과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수크 박사는 가끔씩 기침을 할 때마다 힘줄 한 다발이 돋아 나오는 것을 느꼈는데, 그 힘
줄은 박사의 어깨와 목 깊숙이 막혀 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벗어 버릴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제 시험은 더욱 빈번하게 있었으며 서형 위원장은 매번 바뀌었다.
수크 박사에게는 어린 나이에 대머리가 되어 버린 여학생이 하나 있었는데, 밤에 개가 그
여학생의 머리 가죽을 햝아 주면 굵고 짙은 색 털이 여학생의 머리에서 자라났다. 그 여학
생은 포동포동하게 살이 쩠기 때문에 손가락에 낀 반지를 빼내지 못했다. 여학생은 눈썹이
자그마한 생선뼈 같았으며 양말을 모자처럼 쓰고 다났다. 또한 거울과 빗 위에서 잠을 자고
꿈 속에서 어린 아들에게 휘파람을 불어 주었다. 옆에 누워 있던 아들은 휘파람 소리 때문
에 줄곧 깨어 있었다. 이번에는 그 여학생이 수크 박사의 시험관으로 들어왔는데, 잠이 없는
대머리 아이가 그 여학생 옆에 앉아 있었다. 수크 박사는 시험을 가능한 한 빨리 끝내고
싶었으므로 소넌의 질문에 계속해서 대답했다.
마침내 시험이 모두 끝났고 수크 박사는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 식사를 하려고 식탁 의
자에 앉았다. 하지만 수크 박사는 무엇인가에 대하여 너무 깊이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어머
니는 적정이 되어 이런 말을 했다. "조심해라, 사셴카. 너의 미래가 네 과거를 파괴할 거야!
넌 요즘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아. 너의 등을 밟아 줄 수 있는 아이를 찾아보아야 하지 않
겠니."
최근에 수크 박사의 내부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굶주림이 자라나 꽃을 피우
고 있었다. 게다가 무엇인가 끈적끈적한 소망이 재빨리 열매를 맺었다가도 수크 박사가 한
입 베어 문 것을 삼키기만 하면 굶주림은 어느 사이에 누그러졌고 열매는 죽어 버릴 뿐이었
다. "유대인들에게는 입 구멍이 얼마나 많은지 아니?"
수크 박사가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물어 보았다. "너는 잘 모를 거야. 난 최근에
어디에선가 그것에 대한 글을 읽었단다. 아마 수크 박사의 책에서 본 것 같구나. 수크 박사
가 유라시아의 스텝 지대에 성서적 믿음이 퍼져 나간 것을 연구하고 있던 무렵이었다. 수크
박사는 1959년에 다뉴브 강변의 실라레보 발굴지에서 발견된 자료를 바탕으로 과거 그 지역
의 주민들은 현재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민족이라는 사실을 입증했지. 그들은 아바르족보다
더욱 미개하고 인류학적으로 오래된 민족이었지 수크 박사는 그것이 카자르 민족의 묘지라
고 믿었단다. 그 민족은 서기 8세기에 흑해에서 다뉴브 강으로 옮겨 왔단다. 시간이 너무 늦
었구나. 하지만 내일 젤소미나의 생일을 축하하러 와서 잊지 말고 나에게, 수크 박사가 그것
에 대해 훙미진진하게 묘사해 놓은 부분을 읽어 달라고 해 주겠니? 그것은 무척 재미있
어......."
이사일로 수크 박사가 잠에서 깨어나 입 속에 열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 약속
을 하고 난 다음이었다.
수크 박사가 거리로 나섰을 때, 오후의 해가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햇빛이 질병에 걸려
시들어 가고 있었다. 부스럼과 발진이 하늘 곳곳에 번져 나가면서 구름을 병들게 했다. 그렇
게 되자 구름은 조금씩 비틀거리더니 풀이 죽어서 결국 축 늘어져 버렸다. 한 달에 한 번씩
깨끗하게 씻어 내리고 청소를 하는 시기가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 주일이었다. 일요일에는
이미 공기 중에 악취가 가득해서 바람을 병들게 했는데, 그러는 동안 바람은 회복되지 위해
애쓰는 절름발이와 같았다. 그리고 먼 곳의 울퉁불퉁한 지평선에는 수크 박사가 흘려 보낸
날들이 건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날들은 행복하게 사라져 가는 우리들 틈에서 날짜 구분
도 없었으며 수크 박사나 그의 걱정거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먼지 자극을 남길 뿐이었다.
길거리를 뛰어다니면서 서로 바지를 바꾸어 입던 남자 아이 가운데 하나가, 수크 박사가 신
문을 사고 있던 가판대 앞에 멈추어 서더니 박사의 바지에 오줌을 누었다. 수크 박사는 저
녁이 되어서야 하루 종일 바지 앞단추를 풀고 돌아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듯한 표정을 지
으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에 처음 보는 사람이 있는 힘을 다해 수크 박
사의 얼굴을 때렸다. 그날 바깥 날씨는 매우 추웠고 수크 박사는 난데없이 자기를 때렸던
사람의 손이 아주 따스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통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기분이 좋은 무
엇인가가 느껴졌다.
수크 박사가 그 뻔뻔스러운 사람과 말다툼을 벌이려고 하는데 촉촉하게 젖은 바지가 다리
에 와서 찰싹 달라붙었다. 그러자 또 다른 사람이 수크 박사를 때렸다. 그 사람은 앞서 수크
박사를 때린 사람 뒤에 서 있다가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수크 박사는 서
둘러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겠다는 사실을 깨닫고 발걸음을 옮겼다. 두번째로 때린 사람의
손에서 양파 냄새가 풍겼다는 것말고는 아무 것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조금도 지제
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또 다른 행인들이 수크 박사에게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수크
박사를 향해 손바닥이 빗발치듯 날아왔는데, 그렇게 하는 행동 속에는 자연스러운 어떤 분
위기가 있었다.
수크 박사는 약간 뒤쪽에서 날아온 손들이 차갑다는 사실을 느끼기 시작했다. 또한 그 손
길이 온통 불쾌하기만 한 사건들 중에서 신기하게도 유쾌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크
박사의 몸이 조금씩 더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수크 박사는 운이 무척
좋았다. 사실 그 당시에 수크 박사는 생각할 여유가 거의 없었다. 한 대를 맞고 그 다음 한
대를 맞는 사이에는 생각할 틈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수크 박사가 알아차린
것은, 어떤 손에는 땀이 묻어 있다는 사실과 그 손들이 자신을 성 마가 교회로부터 광장을
향해 몰아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수크 박사는 애초에 바로 그 길을 따라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가다 보면 수크 박사가 머
리 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상점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수크 박사는 그대로 맞고만 있
었다. 그 손길들이 자신을 목적지 가까이 데려다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크 박사는 문득 어떤 담 앞에 이르렀는데, 이제껏 그 담 뒤에 무엇이 있는지 본 사람도
없었고 거기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들었던 사람도 없었다. 수크 박사는 사정없이
퍼붓는 손바닥 아래 몸을 숙인 채 달리는 수밖에 없었으므로, 담 사이의 틈이 눈앞에 들어
왔다. 수크 박사도 이전에 그곳을 지나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처음으로 담 뒤에 집
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떤 젊은이가 창가에 서 서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모습도 보았
다. 수크 박사는 악보대가 있는 곳으로 눈길을 돌렸으며, 그것이 브루호의 '바이올린과 오케
스트라를 위한 연주곡'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 젊은이가 창문을 열어 놓은 채, 열정적으로 연주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크 박사는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다. 수크 박사는 무척 놀랐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여러
개의 손바닥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수크 박사는 마침내 아침부터 가려고 마음먹고 있었던 상점으로 들어간 다음, 안도의 한
숨을 내쉬면서 문을 닫았다. 상점 내부는 이쩐지 썰렁하고 옥수수 냄새가 풍겼다. 구석 자리
에 암탉이 모자 위에 쪼그리고 앞아 있을 뿐, 상점은 텅 비어 있었다.
암탉은 한쪽 눈으로 수크 박사의 몸 중에서 먹을 수 있는 부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
을 바꾸어 다른 쪽 눈으로 소화시킬 수 없는 부분을 바라보았다. 암탉은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겼다. 마침내 수크 박사의 모습이 암탉의 머리 속에 그려졌다. 수크 박사는 소화시킬 수
있는 부분과 소화시킬 수 없는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암탉은 결국 자기가 상대
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그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수크 박사 자신
의 입을 통해 들어 보기로 하자.
계란과 바어올린 활 이야기
내가 서 있던 장소는 약폼 냄새가 풍기는 곳이었다. 바이올린들은 서로에게 대답하고 있
었다. 그 부드러운 한숨 소리를 듣고 있으면, 어느 누구라도 폴로네즈 한 곡 정도는 작곡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체스 게임을 해 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순서와 가락을 조금 바꾸기만
하면 완성된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드디어 악기점 주인이 나왔다. 그 사람은 헝가리인이었
으며 두 눈이 몹시 창백했다. 그는 이제 막 알을 낳으려는 것처럼 얼굴이 붉었으며, 그의 턱
은 배꼽이 있는 작은 배 같았다.
상점 주인은 휴대용 재떨이를 꺼내서 재를 떨었다. 그런 다음에 나를 쳐다보면서 실수를
한 것이 아닌가 하고 물어 보았다. "모피를 파는 상점은 바로 옆집입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실수로 여길 들어오죠."
지난 일주일 동안 그 상점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실수로 그곳에 들어왔었다. 사실 그
상점에는 문이 없었다. 문처럼 삐걱거리는 것이 있긴 했지만 진짜 문은 아니었다. 입구의 유
리에 손잡이가 달려 있어서 그것을 밀면 상점 안으로 들어을 수 있었던 것이다. 손님들은
그렇게 해서 갑갑한 실내로 들어오게 된다. 나는 주인에게 그렇게 비싸지 않으면서도 작고
어린 숙녀가 쓸 만한 작은 바이올린이나 첼로가 있는지 물어 보았다.
헝가리 사람은 뒤로 돌아서서 아까 나왔던 곳으로 돌아갔는데, 그곳에서는 파프리카 냄새
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바로 그 때 모자 위에 앉아 있던 암탉이 몸을 일으키더니 새로 낳
은 알을 보면서 울었다. 상점 주인은 그 알을 조심스럽게 쥐고 서 서랍장 위에 올려놓더니
그 위에 연필로 날짜를 적어 넣었다. 1982넌 10월 2일. 나는 그것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그
때까지는 아직 몇 달이나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바이올린이나 첼로를 가지고 무엇을 하려
는 겁니까?" 그는 자그마한 내실 입구까지 들어가더니 나를 돌아보았다. "당신의 집에는
음반이나 라디오, 텔레비전이 있지 않습니까? 바이올린이라...... 바이올린이 무엇인지 아십니
까? 선생님, 작은 바이올린은 말입니다, 해마다 쟁기질을 하고 씨를 뿌리고 수확을 해야 합
니다. 바로 이것을 가지고 말입니다!"
그 사람은 자기의 허리띠에 칼처럼 매달려 있던 바이올린 활을 가리켰다. 그는 바이올린
활을 집어 들더니 줄이 팽팽하도록 잡아당겼다. 나는 비로소 그 사람이 손톱에 반지를 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은 마치 손톱이 떨어져 나가지 않고 제자리에 있도록 고정시커
기 위한 것 같았다. 그 사람은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는 듯이 손을 흔들면서 자리를 뜨려고
했다. "바이올린이 필요한 사람이 누굽니까?" 그 사람은 안으로 들어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 여자에게 다른 물건을 사 주세요. 스쿠터나 개가 좋겠군요." 나는 그저 그 자리에 가만
히 서 있었다. 그처럼 엉거주춤하면서도 제멋대로 혼들리는 언어로 이렇듯 단호한 말을 할
수 있다니...... 나는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그것은 마지 배불리 먹을 수는 있지만 입맛이
당기지 않는 음식과도 같았다.
그 헝가리 사람은 우리 말을 그런 대로 잘 했지만, 문장이 끝날 때마다 후식으로 내가 이
해할 수 없는 헝가리어 단어를 하나씩 덧붙였다. 그 사람은 이제 마지막으로 나에게 충고
의 말을 하면서도 그런 식이었다. "선생님, 당신의 어린 소녀를 기쁘게 할 만한, 다른 물건
을 찾으십시오. 이런 종류의 행복은 그 소녀에겐 너무 어렵습니다. 그리고 시대에 뒤떨어진
행복이죠. 시대에 뒤떨어졌어요." 그 사람은 둥둥 떠다니는 파프리카 향기 사이로 한마디
덧붙였다. "그런데 그 소녀가 몇 살입니까?" 상점 주인은 짐짓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과 함께 상점 주인은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 사람이 옷을 차려 입고 나갈 준비를 한
다는 것을, 소리를 듣고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젤소미나 모호로비치치의 나이를
말해 주었다. "일곱 살입니다." 마법의 지팡이가 스치고 지나갔을 때처럼 그 사람은 가볍게
몸을 움찔했다. 그 사람은 나의 대답을 헝가리어로 번역했다. 상점 주인은 헝가리어로만 숫
자를 셀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냄새가 방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것은 체리 냄새
였다. 나는 상점 주인의 기분에 따라 냄새가 변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얼마 후에 그 사람은
유리 대롱을 물고 나타났다. 유리 대롱으로 체리 브랜디를 빨고 있었던 것이다. 상점 주인은
나에게 다가오더니, 모르는 척하면서 내 발을 밟았다. 그런 다음 작은 어린이용 첼로를 꺼내
나에게 주었다. 그러는 동안 상점 주인은 계속 발을 밟고 있었다. 자기 상점이 얼마나 갑갑
한 곳인지 보여 주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사람처럼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나에게 해를 입히고 있으며, 내가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
다. "이걸로 하십시오. 이 나무는 당신이나 나보다 더욱 오래된 것입니다. 소리도 아주 좋습
니다. 직접 들어 보십시오!"
상점 주인은 첼로를 서툴게 연주했다. 첼로는 가늘게 떨리는 소리로 4도 화음을 내고 있
었다. 그런 다음에야 상점 주인은 내 발을 풀어 주었다. 4도 화음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덜
어 줄 수 있는 것만 같았다. "들으셨습니까? 각각의 줄이 다른 줄의 소리를 모두 담고 있습
니다. 하지만 그것을 들으려면 서로 다른 네 가지 소리를 한꺼번에 들어야 합니다. 들으셨습
니까? 아니면 못 들으셨습니까? 45만 원입니다." 상점 주인의 말은 바위처럼 나에게 달려
와서 거세게 부딪쳤다. 그 사람은 내 주머니 속을 꿰뚫어 본 것 같았다. 그 사람은 내가 정
확하게 얼마를 가지고 있지 알고 있었다.
나는 젤소미나를 생각하면서 그 돈을 모았다. 그것이 그렇게 많은 돈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만큼의 돈을 모으는 일에 3년이 걸렸다. 나는 기꺼이 그
첼로를 사겠다고 말했다. "이 첼로를 사요?" 상점 주인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
었다. "선생님, 사람들은 모두 이런 식으로 악기를 삽니까? 시험삼아 한 번 연주해 보고 싶
지 않으세요?" 나는 몹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어디 앉을 만한 곳이 있는지 상점
의 내부를 둘러보았다. 마지 첼로를 시험해 보고 싶다는 듯이.......
"의자가 필요합니까? 오리는 물 위에 앉습니다. 그런데 손님은 이렇게 마른 땅 위에서도 어
찌할 바를 모르는군요. 정말 모르는 겁니까?" 그 사람은 다소 경멸스럽다는 듯이 내게서
작은 첼로를 가져가더니 바이올린처럼 어깨 위에 얹었다. "이렇게 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 사람은 나에게 악기를 돌려주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 들고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첼로
를 바이올린처럼 연주했다. 그 첼로는 낮은 5도에서도 소리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귀로
나무를 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음색을 더욱 깨끗하게 들을 수 있었다. 상점 주인이 갑자기
냄새를 바꾸었다. 이번에는 코를 찌를 듯한 남자의 땀 냄새였다. 그 사람은 외투를 벗고, 내
의 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서랍장을 당겨다가 그 모서리에 걸터앉더니 내게서 첼로를 돌
려받은 다음 연주하지 시작했다. 그 사람이 도저히 믿기 어려울 만큼이나 홀륭하게 즉훙적
인 연주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입이 벌어졌다. "연주를 아주 잘 하시는군요." "첼
로는 연주하지 않아요. 난 하프시코드 연주자입니다. 바이올린도 좋아하지요. 하지만 첼로는
연주할 줄 몰라요. 금방 들은 것은 음악이 아닙니다. 당신은 그런 것에 대해 전혀 모르겠지
만....... 그것은 그저 모든 소리를 한 곳에 배열해 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가장 높은 소리부터
가장 낮은 소리까지 말입니다. 그런 식으로 악기의 자질을 비롯한 여러 가지 요소를 가늠해
봅니다. 싸 드릴까요?" "좋습니다." 나는 지갑을 열었다. "모두 50만 원입니다."
상점 주인이 말했다. 순간 얼음처럼 차가운 기운이 내 등을 타고 내려갔다. "조금 전에는
45만 원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첼로 값입니다. 나머지는 활
값이죠. 혹시 활은 안 사고 싶은 겁니까? 활이 필요하지 않아요? 나는 현악기와 활이 붙어
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은 활의 포장을 풀고 다시 진열장에 갖다 두었다. 나는 할 말을 잊은채,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나는 질병이나 술이나 마비 상태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정신을 차렸다.
천천히 정신을 가다듬었다. 상점 주인은 이를 쑤시고 있었다. 나는 헝가리인과 함께 벌였던
코미디를 이제 그만두기로 했다. 실제로 난 활에 대해 완전히 잊고 있었다. 나는 활을 살 돈
이 없었고, 상점 주인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상점 주인은 외투를 걸쳐 입었다. 방충제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나는 선생님이 활을 살 수 있는 돈을 버는 동안, 여기에 죽치고 앉아 있을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이 나이 오십이 되도록 그만한 돈을 벌지 못했다면 더욱 그렇죠. 나보
다 당신이 기다리는 편이 낫겠습니다." 상점 주인은 뒤로 돌아섰다. 그 사람은 문간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되돌아왔다. "흥정을 할까요? 할부로 활을 사십시오." "농담이겠죠." 나는
더 이상 그 사람 손에 놀아나고 싶지 않았다.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었다. "아니오, 농담이
아닙니다. 제안을 하는 겁니다. 꼭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일단 들으십시오."
상점 주인이 너무나 자랑스럽게 파이프에 불을 붙였으므로, 그 사람이 줄곧 그 파이프 담
배 연기로 상점을 소독해 왔음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좋아요. 한 번 들어 봅시다." "활과
함께 계란도 사는 겁니다." "계란?" "조금 전에 암탉이 알 낳는 모습을 보았죠? 바로 그겁
니다." 상점 주인은 서랍장에서 계란을 꺼내다가 내 코앞에 내밀었다. 계란에는 연필로
1982년 10월 2일이라고 씌어져 있었다. "활값만큼 계란값을 주면 됩니다. 2년 안에 갚으면
되고요." "방금 무슨 말을 했습니까?" 내 귀가 잘못된 것 같았다. 헝가리인의 몸에서 다시
체리 냄새가 풍겼다. "당신의 암탉은 황금 알을 낳는다는 말입니까?" "아니오, 우리 암탉은
황금 알을 낳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닭에게는 선생님이나 내가 갖지 못한 어떤 것이 있지
요. 이 닭에게는 날과 주와 해가 있습니다. 아침마다 이 닭은 금요일이나 화요일을 하나씩
낳습니다. 예를 들면 오늘 낳은 계란에는 노른자 대신 목요일이 하나 들어 있습니다. 내일
것에는 수요일이 있지요. 그 계란에서는 병아리 대신 인생의 하루가 알을 깨고 나올 것입니
다. 실로 놀랍지 않습니까! 이것은 황금 계란이 아니라 시간의 계란입니다. 그리고 난 그것
을 당신에게 싼 값에 드리려는 겁니다. 선생님, 이 계란 속에는 당신 인생의 하루가 들어 있
습니다. 병아리처럼 그 안에 웅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알을 깨고 나오느냐 마
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려있습니다." "만약 내가 당신의 말을 믿는다고 하더
라도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하루를 도대체 무엇 때문에 당신에게 산다는 말입니까?" "머리
를 쓰십시오, 선생님. 생각을 하세요. 들은 걸 가지고 스스로 생각할 수는 없습니까? 세상의
모든 문제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다 그런 식으로 써 버리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입
니다. 가장 나쁜 시간을 그대로 건너뛸 수 없기 때문에 생겨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문제의 핵심입니다. 주머니 속에 이 계란을 가지고 다니면 불행한 일을 당할 염려가 없습니
다. 다가올 날이 너무 힘겹다고 생각되면, 이 계란을 깨뜨려서 불쾌한 일들을 완전히 피할
수 있습니다. 물론 마지막에 가면 하루를 덜 산 셈이 되겠지만, 그 대신 끔찍한 하루를 가지
고 먹음직스러운 계란 부침을 한 접시 해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계란이 정말 그렇게
까지 귀중한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당신이 갖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상점 주인의 눈을
들여다보았지만, 그 어떤 것도 읽어 낼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은 헝가리 식으로 나를 쳐다보
았다. "당신은 좀 더 진지할 수 없나요? 내가 이 닭으로부터 계란을 몇 개 정도 얻었을 것
같습니까? 한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날들을 깨뜨릴 수 있을 것 같습니까?
1천? 2천? 5천? 난 계란을 당신이 원하는 만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맒은 날을
깨뜨릴 수는 없습니다. 이 계단도 다른 계란과 마찬가지로 유효 기간이 그다지 길지 않습니
다. 시간이 지나면 상해 버려서 더 이상 사용할수가 없습니다. 선생님, 그렇기 때문에 저는
계란이 효력을 잃지 전에 파는 겁니다. 그리고 당신은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내
게 현금 차용증서 를 내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점 주인은 이렇게 한마디 덧붙이고
나서 종이에 무엇인가를 휘갈거 쓰더니 서명을 하라고 하면서 나에게 내밀었다. "그 계란이
있으면 하루를 빼먹거나 혹은 저장해 둘 수 있다고 했는데, 물건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예를 들면 책 같은 것 말입니다." "물론입니다. 계란을 뭉툭한 쪽으로 깨기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계란을 이용할 기회를 잃는 거죠." 나는 종이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서
명함으로써 대금을 치르고, 차용증을 건넸다. 상점 주인이 첼로와 활과 계란을 조심스럽게
싸고 있을 때, 옆방에 있던 암탉이 한 번 더 우는 소리를 들었다. 마침내 나는 악기를 파는
상점에서 밖으로 나왔다. 주인도 나의 뒤를 따라 나오더니, 손잡이를 힘껏 당기면서 문을 걸
었다. 나는 또다시 그 사람의 장단에 말려들었다. 그 사람은 아무런 말도 없이 가버렸다가
다시 돌아와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잊지 마십시오. 계란에 써 둔 것이 유효 기간입니다.
그 날짜가 지나고 나면 전혀 효력이 없습니다."
이사일로 수크 박사는 상점에서 돌아오는 길에 또다시 공격받지나 않을까 잠깐 동안 걱
정했지만 별다른 일은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때마침 수
크 박사는 아경에 소년이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던 담 앞에 와 있었다. 수크 박사는 황급
히 달리기 시작했는데, 담에 나 있는 구멍들이 또다시 눈에 들어왔고 담 건너편의 소년이
창문 옆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모습을 다시 한 번 보게 되었다. 창문은 활짝 열려
있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아무런 소리를 듣지 못했다. 수크 박사가 전혀 듣지 못하는 소리가
있었고, 또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있었던 것이다.
수크 박사는 잠시도 쉬지 않고 달려 어머니의 집 부근까지 왔다. 눈먼 사람이 길을 더듬
어 가듯이 수크 박사는 손으로 자기의 피부를 더듬어 보았다. 주머니 속에는 죽음을 예고하
는 열쇠와, 생사를 갈라놓을 그날로부터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계란이 들어 있었다. 계란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고 열쇠에는 작은 금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수크 박사의 어머니는 여전히 혼자 있었다. 어머니는 오후가 저물 무렵에 잠시 동안 낯잠
자는 것을 즐겼다. 어머니는 졸고 있었다. "얘야, 내 안경을 좀 집어다오. 내가 카자르 묘지
에 대한 부분을 읽어 주마. 수크 박사가 실라레보의 카자르 민족에 대해서 어떻게 쓰고 있
는지 잘 들어 보거라. 카자르 민족은 다뉴브 강변 여기저기에 제멋대로 흩어져 있는 가족
무덤 속에 누워 있는데, 모두들 머리는 예루살렘이 있는 방향을 향하고 있다. 그들은 말과
함께 이중 무덤 속에 누워 있는데, 주인과 동물은 서로 세상의 반대쪽을 곁눈질하고 있다.
아내들은 남편들의 배에 얼굴을 파묻고 있다. 이런 자세를 하고 있으니 아내는 남편의 얼굴
을 보지 못하고 허벅지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어떤 경우에는 똑바로 선 채 묻혀 있는 사
람들도 있는데 그들은 끔찍할 정도로 나이가 들었고 끊임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바람에 팔
다리가 거의 떨어져 나가 버렸다. 그들 곁에는 여호와나 샤호르라는 글자가 새겨진 벽돌이
있었다. 무덤 구석에는 불을 피워 놓았고 발치에는 먹을 것을 놓아두었으며 허리에는 칼을
차고 있었다. 무덤마다 사람들 곁에 데려다 놓는 동물이 달랐다. 어떤 무덤에는 양이나 소
또는 염소가 있었으며 어떤 무덤에는 닭, 돼지 혹은 사슴이 있었고 아이들 무덤에는 계란이
있었다. 때때로 그들이 사용하던 연장들-낫이나 대장간에서 쓰는 도구 혹은 금 세공을 할
때 쓰는 도구 등이 곁에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눈과 귀와 입을 타입 조각으로 덮어 두었는
데, 그 타일에는 가지가 일곱 개 달린 유대 식 촛대가 그려져 있었다. 그 타입 마련은 로마
에서 온것으로 3,4새기 무렵의 것이다. 그 위에 그려진 그림은 7세기나 8세기 혹은 9세기의
것이다. 그들은 뾰족한 도구를 가지고 타입 위에 촛대나 다른 유대 기보들을 새겨 넣었는데,
그 솜씨가 무척 서툴렀다. 아주 급하게 일을 하였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감히 너무
잘 만들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어찌면 그들이 새겨 넣고 있는 물건들을
희미하게밖에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촛대나 재를 푸는 삽, 레몬, 양뿔, 대추야
자나무 등을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보다는 누군가의 설명에 따라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듯하다. 눈과 입과 귀에 이런 타일을 덮어 두면 악마는 무덤 근처에
얼씬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타일은 묘지 전역에 흩뿌려져 있다. 무엇인가 무시무시한
힘이, 다시 말하자면 지구 중력의 흐름 같은 것이 타일을 바람부는 대로 흩어 놓아서 이제
는 제자리에서 무덤 주인을 지켜 주고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어떤 정의할 수 없는, 뜨
겁게 불타오르는 욕구가 눈과 입과 귀를 덮고 있던 타일을 무덤으로부터 꺼냄으로써 어떤
악마가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길을 열어 주고 다른 악마에게는 문을 닫아 버렸다."
바로 그 순간 모든 초인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많은 손님들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
중에는 제소미나 모호로비치치도 있었다. 그녀는 뾰족한 장화를 신고 있었으며 상대방을 물
끄러미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두 눈은 반지에서 빠져 나온 보석 같았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수크 교수의 어머니는 젤소미나에게 첼로를 선물하고, 젤소미나의 두 눈 사이에 입을 맞추
었다. 그래서 립스틱 자국이 마치 세번째 눈처럼 남아 있었다. "젤소미나, 이 선물을 마련한
분이 누구인지 알겠니? 바로 이사일로 수크 박사란다! 아름다운 편지지에, 수크 박사님에게
감사하다는 편지를 써 보내지 않겠니? 그분은 젊고 잘생긴 신사라고 할 수 있지. 그래서 나
는 언제나 그분을 위해 식탁의 상석을 남겨 둔단다!"
아나스타시아 수크 여사는 이사일로 수크 박사를 젤소미나와 어떤 젊은 사람 사이에 앉혔
다. 언제나 물을 충분히 주었던 고무나무가 그들 뒤에서 땀을 뚝뚝 흘리고 있었으므로, 바닥
에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그날 저넉 식사 시간에 젤소미나는 이사일로 수크
박사를 돌아보더니 불타오르는 손가락을 수크 박사의 손에 갖다 대었다. "한 사람이 살아가
면서 하는 행동은 식사 때 먹는 음식과 같은 것이고, 그 사람의 생각과 느낌은 조미료와 같
은 것이죠. 제리에 소금을 넣거나 과자에 식초를 붓는 사람은 누구나 다 비참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젤소미나가 이런 말을 할 때, 수크 박사는 빵을 자르고 있었다. 저녁 식사가 끝난 다음,
이사일로 수크 박사는 숙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주머니 속에 들어 있던 열쇠를 꺼내서 확
대경으로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사일로 수크 박사는 손잡이 역할을 하던 금 동전에 씌어진
유대 문자가 'he' 라는 사실을 판독할 수 있었다. 수크 박사는 소리내어 웃으면서 열쇠를 내
려놓고는 서류 가방에서 1691넌 다우브마누스 판 '카자르 사전'을 꺼내서 잠자리에 들기 전
에 '물에 젖은 유모' 라는 항목을 읽었다.
이사일로 수크 박사는 자기가 갖고 있는 책이 독 묻은 판본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있었
다. 독 묻은 판본을 읽을 때, 독자들이 아홉번째 페이지에서 죽곤 했으므로 수크 박사는 어
떤 일이 있어도 한 번에 네 페이지 이상은 읽지 않았다. 위험 속에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
았기 때문이다. 이사일로 수크 박사는 혼자서 이런 생각을 했다. "비를 몰고 올 길로 들어서
면 안 돼." 수크 박사가 이날 저녁에 고른 항목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다우브마누스 판 사
전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카자르인들은 물에 젖은 유모를 두고 있었는데, 그 유모들은 자기의 젖을 유독 물질로 바
꿀 수 있었다. 그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았다. 마호 메트는 메디나로부터 두
개의 아랍 부족을 쫓아낸 일이 있었는데, 물에 젖은 유모들이 바로 그 중 한 부족에 속할
것이라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그들은 마하트, 즉 네번째 베두인 신을 섬겼기 때문이다. 그들
은 아마 카자라이족이나 아우즈족 출신이었을 것이다.
이 유모들은 사람들이 그다지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던 어린 왕자나 혹은 공동 상속자들이
눈엣가시로 생각하던 돈 많은 어린 상속자를 돌보도록 고용되었다. 이 일은 단 한 번만으로
도 충분했다. 결과적으로 독 우유 감시가 라는 것이 생겨났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젊은
청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은 물에 젖은 유모와 함께 자다가 유모가 아이들에게 젖을
주러 가기 직전에 유모의 젖을 빨아 보곤 했다. 물에 젖은 유모의 연인에게 별 이상이 없는
것을 보고 서야 유모를 아이들 방으로 들여 보냈다.
이사일로 수크 박사는 날이 밝아 오기 직전에 잠이 들면서, 그날 저녁에 젤소미나가 했던
말을 어째서 결코 이해할 수 없었는지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다. 이사일로 수크 박사는 젤
소미나의 목소리를 전혀 들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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