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들
사만타 글렌, 메리 페사레시
삶의 가파른 길목마다에 늘 가족이 있었다.
내게는 우리 어머니 말대로 '눈만 벌어지면' 싸워댔던 한 살 터울 남동생이 있다. 그 밑으
로 남동생 둘에게는 꽤 자상한 누나 노릇을 했던 것도 같지만 녀석과는 늘 으르렁거린 기억
뿐이다. 우린 밥상에서 어쩌다 젓가락만 부딪쳐도 엄마 몰래 서로를 노려보았다. 어라, 죽을
래? 땅바닥에 금 그어 놓고 오징어 놀이를 하다가도 수 틀리면 치고 받기 일쑤였고, 4km
가 넘는 등하교길엔 그 길이 또 너무 멀고 지루해서 한바탕 싸웠다. 우리는 그렇게 으르렁
대며 함께 도시로 나와 자취 생활을 하며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녔다.
그러던 차에 동생이 군대를 가게 됐다. 녀석이 입대하던 날, 먼 고향에 계신 부모님 대신
둘째 남동생과 내가 부대가 있는 강원도까지 동행했다. 셋이서 허름한 식당에서 밥도 사 먹
고 사방 천지가 군인들인 도로를 좀 걷다가 훈련소 마당에서 꽤 담담하게 헤어졌다. 경춘
선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둘째 남동생과 나는 내내 창 밖만 보다가 삶은 달걀이
나 먹자고 했다. 삶은 지 오래되어 잘 까지지 않는 달걀 껍질을 벗기고서 한 입 깨무는 순
간이었다.
울컥, 눈물이 솟구쳤다. 그리고 창피하게도 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가며 한참 울었다.
허전해서였다. 생각해보면 '웬수'처럼 싸우면서도 우리는 참 징그럽게 붙어다닌 연년생 남
매였다. 서로 죽일 듯이 싸우다가도 금세 "뭐 먹을 거 없냐?"고 천연덕스럽게 말을 건네는,
그렇게 싱거운 우애를 쌓아온 남매 말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년 뒤, 나는 세 남동생들
사이에 있었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게 됐다.
첫째 동생이 대학생이고 둘째 동생이 재수생이던 어느 날이었단다. 운 좋으면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울 수 있었던 가난한 80년대 학번인 첫째가 노량진 학원가로 둘째를 찾아갔다.
언제나 든든하고 편안한 존재로만 보이는 제 형을 보자마자 둘째가 말했다. "만두가 먹고
싶네." 동생의 말을 들은 형은 난감한 마음을 숨기고 호기롭게 만두집으로 갔다. 그리고 주
머니 사정을 백번도 더 확인한 다음 만두1인분을 시켰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만두가 나
오자 동생보다 형 입에서 먼저 군침이 돌았다. 그러나 이미 입가까지 번진 침을 꿀꺽 삼키
고 태연하게 말했다. "난 배가 불러서.... 모자라면 더 먹어라." 다행히 동생은 1인분으로
만족했고, 형은 뿌듯한 마음과 고픈 배를 감싸안고 노량진에서 자취방이 있는 신림동까지
걸었단다. 그리고 둘째는 그날의 비싼 만두값을 막내에게 베풀었다.
요 근래 나는 터울이 많아져서 제대로 신경을 많이 못 써준 막내의 서랍에서 편지 뭉치들
을 발견했다.그것은 재수를 마치고 대학생이 된 둘째가 지방 도시에서 혼자 자취하며 입시
공부를 하던 막내에게 보낸 편지들이었다. 사흘이 멀다하게 격려와 위로의 말을 실어보낸
둘째의 편지 첫 구절은 늘 한결같았다. 사랑하는 막내야. 이제 나는 내가 혼자 나고 자라
서 저절로 오늘에 이르지 않았다는 걸 안다. 곰곰이 되짚어보면 삶의 가파른 길목마다에 늘
가족이 서 있었다. 때로는 말없이 손을 건네고, 때로는 짐짓 퉁명스런 불평을 뱉아가며 등을
밀어 주고, 또 때로는 뜻밖의 감동으로 힘을 준 가족이. 하지만 그게 어찌 나만의 경우랴.
함께 있으면 무덤덤하고 떨어져 있으면 애틋한 저마다의 가족. 그 가족사의 갈피갈피에 숨
어있는 감동적인 장면들은 수없이 많고도 다양할 게다.
가족 그리고 가족 같은 사람들이 없다면 삶은 얼마나 삭막하고 고달플까. 그런데 가족에
대한 진리만은 다른 나라 사람들도 별반 다를 게 없는 모양이다. 우리 글로 이 책을 옮기는
내내 나는 생각했다. 가족이라는 존재가 지닌 가치와 의미만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다고. 어
른으로 살아가는 삶이 벅차고 힘겨울 때, 아무에게나 선뜻 털어놓기 힘든 고민거리를 떠안
았을 때, 우울하고 절망스런 심정에 빠졌을 때, 막연한 그리움 떄문에 현실이 쓸쓸할 때, 유
쾌한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 그리고 될 수록 많은 사람들이 이 이
야기들 속에서 따뜻한 위로와 공감, 잔잔한 감동을 얻어 갔으면 좋겠다. 나처럼 말이다.
(박수현)
대신할 수 없는 것
어렸을 때 내 별명은 '산만이'였다. 한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설쳐댄다고 어머니가
붙여준 것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그리 얌전하거나 집중력이 뛰어난 편은 분명 아니었다. 텔
레비젼을 보면서도 동생의 머리 꼬랑지를 잡아당기며 장난을 쳐야 직성이 풀렸다. 참다 못
한 동생이 소리를 꽥 지르면 어머니는 단번에 알아차리고 나를 흘겨봤다. 책을 읽을 때에
도 한쪽 다리를 달달 떨면서 읽어야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면 어머니는 또 놓치지 않
고 한마디 했다. "그렇게 주의가 산만해서야 책을 읽은들 머리에 들어오겠니?" 그러나 그
런 말쯤은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렸다.
내 방은 늘 장난감으로 어지러웠다. 어머니는 정리정돈을 잘 하라고 했지만 나는 그럴 필
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조금 있다가 또 갖고 놀 텐데 무엇 때문에 헛고생을 하는가 말이다.
그러나 어머니 생각은 나와 전혀 달랐던 것 같다. 내 방 꼬락서니를 볼 때마다 야단을 쳤으
니까. "도대체 너는 왜 그렇게 엄마 말을 안 들어. 엄마가 어렸을 때에는 어땠는 줄 아니?
아버지께서 '뛰어!' 하시면 '아버지 얼마나 높이 뛸까요. 그리고 언제 내려올까요?'라고 물어
볼 정도였어." 나는 쿡 치미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그렇다고 어머니 속상하라고 일부러
말썽을 피운 건 절대 아니었다. 다만 속에서 근질근질 나를 들쑤셔대는 기운을 이기지 못했
을 뿐이다.
나도 누구 못지 않게 어머니한테 칭찬받는 아들이고 싶었다. 그리고 칭찬받기 위한 시도
를 안 해본 것도 아니었다. 우리 집에는 어머니가 애지중지하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그런데 그즈음 녀석이 통 기운이 없었다. 나이가 꽤 들기도 했지만 며칠째 소파 밑에 웅크
리고 엎드려 잠만 자는 게 내가 봐도 이상했다. 나는 어떻게 하면 고양이가 기운을 차려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까 궁리했다. 마침내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식구들이 아무도 없을 때 고양이를 안고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깨끗이 씻겼다. 아
무래도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번 해줘야 기운을 낼 것 같았다. 마른 수건으로 닦아준 다음
안방으로 건너가 헤어드라이어로 물기를 말려주었더니 한결 팔팔해 보였다. 나는 다음 계획
에 착수했다. "야옹아, 이쁘게 해줄게." 나는 어머니의 화장대 위에서 새빨간 립스틱을 집
어와 고양이 입술에 발라주었다. 녀석이 약간 반항했지만 예뻐지기 위해서 그만한 불편은
참아야 한다고 소리치며 끝까지 임무를 완수했다. 화장한 고양이를 눈앞으로 쳐들고 봤더니
한결 젊어 보였다. 그런데 딱 하나 눈에 거슬리는게 있었다. 바로 길게 뻗친 수염이었다.
"여자가 수염이 다 뭐니. 립스틱을 발라도 티가 안 나잖아." 나는 가위를 가져다 고양이 수
염을 말끔히 잘라냈다. 몹시 만족스러웠다. 고양이를 다시 소파 밑에 눕혀 두고 내 방으로
들어가 어머니의 칭찬을 기다리기로 했다. 어머니가 뭐라고 하실까? 생각만 해도 흐뭇했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외출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이제껏 한번도 본 적 없는 무
서운 얼굴로 내 방문을 두드렸다. "고양이 수염을 도대체 어떻게 한 거니? 고양이는 수염
이 없으면 동쪽인지 서쪽인지 분간을 못한단 말이야. 도대체 넌 누굴 닮아서 이렇게 사사건
건 말썽인지 모르겠구나. 오늘 저녁은 굶어!!"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나는 쓸쓸해졌다. 고양이 수염이 그렇게 중요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잠시 고양이한테 미안했지만 곧이어 내 진심을 몰라주는 어머니가 원
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밥까지 안 주겠다니. 야속한 마음이 점점
커지더니 엉뚱하게도 나는 우리 집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다 어머니의 결벽증에서 비롯
됐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친구들 역시 나 못지 않은 장난꾸러기들이었지만 이렇게까지 구
박을 받지는 않았으니까. 사실 어머니는 유난히 깔끔했다. 우리 집은 꽤 컸는데도 먼지 한
톨 쌓인 적이 없었다. 하루에 두 번씩 쓸고 닦는 게 어머니의 일이었다. 정리정돈도 완벽했
다. 현관과 거실 사이에 앞뒤로 뚫린 책장이 하나 있었는데 어머니는 당신이 가장 아끼는
귀한 장식품들을 그 위에 진열해놓고 날마다 마른 걸레로 닦았다. 그 근처에서 장난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고양이 사건도 잠잠해진 어느 날 나는 그만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혼자 집에 있던 나는 너무 심심해서 공놀이를 시작했다. 문제는 그 장소가 신성불가침 구역
인 거실이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공이 튀는 속도와 방향을 아주 조심스럽게 조절하고 있
었기 때문에 별일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한순간 공이 융단의 울퉁불퉁한 곳에
맞더니 위로 튀어 올라가는 것이었다. 공은 초능력이라도 가진 것처럼 아주 정확하게 책장
의 뚫린 곳을 통과했고, 어머니가 가장 아끼는 물건과 함께 떨어졌다. 영국제 골동품 꽃병이
었는데 어머니가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귀한 유산이었다. 꽃병은 다이빙 선수처럼 공중에
서 세 바퀴 돌더니 타일이 깔린 현관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숨을 멈추고 말았다. 꽃병이 날
아올랐다가 떨어져 박살나는 장면이 영화의 느린 화면처럼 내 머리 속에서 다시 한번 되풀
이됐다. 아주 천천히. 섬세한 도자기는 이미 천개도 넘는 파편으로 산산조각 나 있었다. 나
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침을 꿀꺽 삼켰다. 어쩐 일인지 사위는 쥐죽은 듯 조용했고 내 귀
에는 심장 뛰는 소리만 쿵쿵 울려댔다.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 소리가 벼락처럼 크게 들려
왔다. 째깍째깍....., 천년처럼 긴 시간이 흘러갔다. 팔다리를 힘없이 늘어뜨리고 있던 내 눈
에 도자기 파편만 가득 들어왔다. 아,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었다. 고양이 수염은 댈 것도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비로소 더럭 겁이 났다.
나는 얼떨결에 조각들을 주워담아 내 침실에 숨기고는 계단 밑에 앉아 사시나무 떨 듯 떨
어댔다. "거기서 뭐하니?" 한 시간이 지나자 문을 열고 들어온 어머니가 물었다. 나는 어
머니와 마주보기 위해서 벌떡 일어났지만 도저히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무슨 일 있니, 케
니?"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내가 연습해 둔 용기는 허망하게 무너져내렸다. 나는
어머니 앞에 서서 어린애처럼(사실 어린애였지만) 엉엉 울면서 설명하려고 애를 썼다. 내
모습을 본 어머니의 시선이 허공을 죽 훑어올라가 책장의 빈자리에 머물렀다. 그리고는 아
주 천천히 짝을 잃고 홀로 휘황찬란하게 서 있는 나머지 하나의 꽃병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구겨진 내 얼굴로 돌아와 꽂혔다.
어머니는 테이블 위에 지갑을 놓으셨다. 숨막히는 순간이었다. "아들아, 이리 온." 어머
니가 말했다. 나는 비틀거리며 어머니에게 다가섰다. 이미 정신은 저 멀리 달아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어머니가 나를 품에 안았다. 나를 꼭 안고 어머니의 가슴에 기댄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무나 의외의 반응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크고 서럽게 울어댔다.
"쉬,쉬.......," 어머니가 나를 달랬다. 그리고 나를 조심스럽게 마주 앉히고는 말했다. "지금
부터 아주 중요한 얘기를 할 테니 잘 듣고 기억해두거라. 집안에 있는 물건 중에서 그 어떤
것도, 이 집에 사는 사람보다 중요하지 않단다. 엄마의 꽃병도 마찬가지야. 집에 있는 물건
은 뭐든 다시 구해서 바꿔놓을 수 있단다. 하지만 가족은 그럴 수 없는 거야. 엄마한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너야, 케니. 너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으니까. 그래, 다치지 않았니?" 나
는 요즘 아내와 함께 1916년에 지은 우리 옛집을 복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거의 불가능
에 가까운 일이지만 반드시 우리 집이 가지고 있었던 아름다운 빅토리아 양식을 복원시키고
싶다. 그리고 나는 어린 시절 나만큼이나 장난이 심한 아들을 셋이나 키우고 있다. 새로 칠
한 벽에 까만 손자국을 내거나 방금 칠한 앵두 나무 기둥 모서리에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낙
서를 하는 녀석들이다. 그놈들에게 신경질을 버럭 내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마다 나는 어머
니를 떠올린다. 우리 집의 모든 것은 대치할 수 있다. 그러나 내 아이들과 그 아이들이 이
집에서 자라는 나날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케네스 스미스)
인생이라는 퍼즐의 마지막 조각
우리 가족이 캐나다 토론토에 뿌리를 내리고 살 때에는 모든 게 안정적이었다. 나는 늘
내 자신이 강하고 독립심 많은 여성이라고 자부했다. 게다가 미국으로 이민가기 전까지는
마음 속 깊이 파고드는 외로움이 어떤 것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이민은 나와 남편 그
리고 아이들에게 아주 큰 결단이었다. 하지만 남편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는 그곳의 일
자리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버지니아 북부에 있는 대기업에서 재정을 담당하는 임
원직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남편은 새해 첫날부터 업무를 시작해야 했으므로 미리 미국으
로 떠났고, 나는 아이들과 함께 곧 뒤따르기로 했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우리는 생각도 못했던 두 가지 큰 충격과 맞닥뜨렸다. 첫 번째
는 남편이 입사한 지 2주만에 회사가 경쟁사와 합병협상에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남
편이 사장과 함께 미국 대륙을 종횡무진하며 다녀야 한다는 의미였고, 남편은 우리와 멀리
떨어져 뉴욕이나 위스콘신에서 주말을 보내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나마 캐나다에 있을 때에는 친구나 친척들 덕분에 남편의 빈자리가 그렇게 힘겹게 느껴
지지는 않았다. 물론 남편이 없는 집에서 그의 미소와 농담 그리고 사랑스런 격려는 언제나
그리움으로 남았다. 그래도 이사 준비하랴 작별 인사하랴 여기저기 뛰어다닐 때에는 외로움
을 느낄 틈이 없었다. 그렇지만 막상 버지니아에 도착하는 순간 외로움은 폭주 기관차처럼
달려들었다. 그리고 때맞춰 두 번째 충격이 닥쳤다. 토론토의 혹독한 겨울에 비하면 버지니
아의 겨울은 너무나 부드럽다는 말을 도대체 누가 했던가. 우리가 미국 땅에 도착한 때는 3
월이었지만 버지니아에는 닷새째 휘몰아치고 있는 얼음폭풍이 한창이었다. 설상가상이라더
니 남편마저 뉴욕에 있어서 우리를 마중 나오지 못했다. 이사 온 첫날부터 나는 집에 발이
묶여 칭얼대는 아이들과 이사 상자더미와 아푼 개에 둘러싸여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이삿짐
정리는 손도 못 댈 형편이라 필요한 건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게다가 걸핏하면 정전이
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폭풍 속에서도 용감하게 배달을 감행한 피자집 주인 덕분에 아이들
을 굶기진 않을 수 있었다. 덕분에 그날은 강아지까지 피자를 먹는 호사를 누렸다.
5시쯤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구겨진 종이와 판자더미를 헤쳐서 빈 깡통 사이에 숨겨져
있던 전화기를 집었다. "여보세요?" "캐시?당신이야?" "네에. 나 아니면 뭐 샤론 스톤이
라도 받을 줄 알았어요?" "꿈도 못꾸나, 뭐?" "흐음..." "당신 기분이 별로인 것 같은데."
"아뇨. 날아갈 것 같아요." "잠깐 짬이 나길래 전화했어. 이사 잘 끝낸 거야? 당신은 어때?
아이들은?" "잘 있어요. 아이들은 미쳐가고, 개는 다 죽어가고, 앞마당은 아이스링크고, 난
방도 안 되지만 그 정도야 뭐. 일하는 사람이 아침에 나무를 해왔더군요." "그나마 불은 지
필 수 있어서 다행이네." "....," "여보, 나도 집에 있었으면 좋겠어. 당신이랑 떨어져 있는
게 너무 괴로워. 당신한테만 다 떠맡기고..., 정말 미안해." 잔뜩 얼어붙었던 가슴이 그제야
스르르 녹기 시작했다. 남편의 진심이 수화기를 타고 그대로 전해졌다. "우리도 당신이 보
고 싶어요. 미치도록. 하지만 당신이나 나나 해야 할 일이 있잖아요." "알지. 어? 잠깐, 누
가 왔어." 잠깐 기다리라는 소리에 이어 수화기 너머에서 누군가와 대화하는 목소리가 들
렸다. 남편이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 리무진이 왔어. 사장이 몬투라세에서 같이 저녁
식사를 하자는군. 돌아와서 다시 전화할게, 사랑해." 끊긴 수화기가 내 손에 힘없이 매달려
있었다. 부엌 싱크대 위로 난 창문을 쳐다보았다. 차가운 어둠을 머금은 유리창이 살풍경하
기 그지 없었다. 그 위로 내 모습이 비쳤다. 짧은 갈색 머리카락은 기름때가 덕지덕지 묻은
채 축 늘어져 있었다. 청바지와 트레이닝 윗도리는 벌써 이틀째 입고 있었다. 눈 밑은 검게
변했고, 볼과 입술은 끔찍할 만큼 창백했다. 남편이 첫눈에 반했다던 그 모습은 눈씻고 찾아
봐도 없었다. 나는 바닥에 나뒹구는 피자 상자를 걷어차며 외쳤다. "당연히 당신 보는 날
이 줄어들겠지. 나 따위가 몬트라세 같은 최고급 레스토랑이니 리무진이니 하는 것들과 도
대체 경쟁이나 돼?"
다시 전화벨이 울린 건 바로 그때였다. 도저히 예의를 갖출 기분이 아니었다. 전기공사에
서 변명이나 하려고 건 전화라면 그 자리에서 돌아버릴 것 같았다. "캐시? 나야. 나 지금
집으로 갈게." 남편이었다. 그의 목소리를 다시 듣자 속에서 와락 반가움이 일었다. 그렇지
만 마음껏 반길 수 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안돼요. 여기는 지금 금세기 최고로 악명 높은
폭풍이 몰아치고 있어요." "당신이랑 하루라도 더 떨어져서는 못 살 것 같아. 애들도 보고
싶고." "하지만 합병 협상에다가, 회의는 또 어떻하고....," 아직 자리를 잡지 않은 남편이
지금 그 곳을 떠나는 것은 사업상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당신 목소리 들었어. 내 기
분이랑 똑같애. 어쨌든 지금 집으로 갈게." 너무 기뻐요. 하지만 그 말은 복받쳐 오르는
감정에 섞여버렸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다시 입을 열었다. "불 지펴놓고 있을게요."
"응, 7시까지 들어갈게." 아이들과 나는 부랴부랴 씻고 예쁘게 차려입고서 6시 반부터 남편
을 기다렸다. 벽난로에는 장작불이 타오르고 있었고, 우리 집은 기대감이라는 빛의 페인트
덕분에 갑자기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다. 3시간 뒤 나는 커다란 실망감을 억누르며 침대에
누운 아이들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리고 벽난로 옆에 앉아 연신 불어대는 폭풍 소리를
들으며 자책하기 시작했다. 왜 그대로 있으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왜 이런 폭풍을 뚫고
오게 내버려 두었을까? 10시가 되자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필사적으로 뛰어가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 나 착륙했어. 30 분뒤에 보자." 나는 난로에 장작을 더 밀어넣었다. 남편의
전화를 받았지만 불안감은 시시각각 더해갔다. 내 상상일까. 아니면 더 사나워진 바람과 우
박이 창문을 박살내려고 달려드는 걸까. 나는 손톱이 뭉뚝해질 때까지 물어뜯다가 급기야는
쥐고 있던 연필까지 물어뜯기 시작했다. 밤 11시가 넘자 두려움에 휩싸인 마음과는 달리
지칠대로 지친 내 몸이 깜박깜박 녹기 시작했다. 졸다가 화들짝 놀라 깨어나고 또 졸다가
깨어나기를 얼마나 했을까. 나는 결국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문득 차가운 팔이 나를 감싸안는 느낌에 눈을 떴다. 페어 아일
스웨터의 중후하고 포근한 감촉이 볼에 느껴졌다. 달콤하고 친근한 드라카 노아 향기가 내
악몽 속으로 은은하게 끼여들었다. 나는 천국 같은 남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우리는 그대로 한참동안 꼼짝하지 않았다. "애들은 재울 수밖에 없었어요."
내가 겨우 속삭였다. "애들한테 가보자." 남편이 싱긋 미소 짓더니 나를 이끌고 2층으로
올라갔다. 아이들은 깊이 잠들어 있었다. 나는 번갈아가며 아이들을 들여다보는 남편의 모습
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남편이 아이들의 볼에 얼굴을 살며시 갖다대고 말했다. "아이들 냄
새가 너무 좋아. 하마터면 잊어버릴 뻔 했어." 우리는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계단 밑
에 전주인이 달아놓은 등불이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 불빛 아래서 남편의 얼굴을 비로소
찬찬히 살폈다. 이제 갓 40살인데, 새벽에 본 남편은 피로 때문에 볼이 움푹 패여 훨씬 나이
들어 보였다. 그러나 그 순간 남편은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남자였다.
남편이 집에 있는 동안 우리가 그리 대단한 일을 한 것은 아니다. 곰털 융단 위에서 황홀
한 사랑을 나눈 건 더더욱 아니다. 설사 그랬다고 해도 어차피 우리를 반기는 것은 화려한
융단이 아니라 피자상자였을 테지만. 남편과 나는 짐더미를 뒤져서 이불과 베개를 찾아내
벽난로 앞으로 갔다. 우리는 벽난로를 마주하고 서로의 품에 잠자코 기대앉았다. 그 순간 어
떤 말도 필요치 않았다. 다음날 남편은 새벽 5시 반에 다시 집을 나섰다. 그를 배웅한 뒤
내 머리 속은 우리가 몇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 그가 겪은 고생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
다. 누가 뭐래도 나는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족했다. 내게 남편은 모든 것
이 제 자리를 찾도록 해주는 마술사 같은 존재다. 그는 내 인생이라는 퍼즐의 마지막 조각
이다. 그와 나 그리고 아이들이 함께 있을 때 우리 가족의 퍼즐은 온전하게 들어맞는다.(캐
시 그랜트)
편지
오래 전, 나는 가족과 조국 영국을 떠나 미국으로 거너가기로 결심했다. 갑자기 먼곳으로
떠나겠다는 딸이 안타까와서 아버지는 몇 번이나 다그쳐 물었다. "도대체 왜 나와 네 어머
니를 두고 떠나려는 게냐?" "아버지 때문이 아니에요. 이 마을에선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
무 것도 없어요." 그러나 정작 하고 싶은 말은 가슴 속에 꾹 눌러 담고 있었다. 나는 어디
서든 내가 이 몸뚱이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요. 내 존엄성이, 내 머리
모양, 옷차림, 말투, 행동 모두 전혀 가치 없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받고 싶어요.
그리고 20여년이 흘렀다. 그사이 어머니는 세상을 뜨셨고 아버지는 많이 늙으셨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런던에 사는 오빠한테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아버지 때문에 정말 죽겠다.
걸핏하면 경찰서에서 전화가 와. 잠옷 하나만 달랑 입고 자정에 다른 집 문을 두드려대신다
는 거야. 그뿐인 줄 아니, 새벽 3시에 KFC앞에서 서성거리시기 일쑤고 말이야......," 시간이
지날수록 경찰서에서 걸려오는 전화가 점점 잦아진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또 2년이 흘러갔
다. 야속한 것은 아버지 댁에서 1시간 반 거리에 살고 있는 오빠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나한테 전화만 걸어댄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부탁해도 오빠는 무기력하기만 했다. 하
는 수 없이 내가 직접 아버지 상태를 살피기로 했다. "내일 그리고 갈게. 더 이상 이런 식
으로 방치할 수 없잖아."
오빠는 바쁘다며 공항에 마중 나오지도 않았다. 그래서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 의
사가 전하는 소식을 혼자서 들어야 했다. "치매 초기증세입니다. 한동안 괜찮겠지만 조만간
대책을 강구하는게 좋겠습니다." 나는 아버지를 붙들고 간청했다. "아버지, 미국에 가서
저랑 같이 살아요." 하지만 아버지는 요지부동이었다. 집 밖으로는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
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오빠와 나는 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모시기로 하고 작전을 짰다. "아
파트 새로 칠할 동안만 잠깐 휴가를 다녀와요, 아버지." 우리는 짐짓 신난다는 듯 들뜬 소
리로 말씀드리며 아버지를 모시고 나왔다. 그러나 우리의 속임수는 요양원 근처에서 들통나
고 말았다. 아버지는 행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거리 한가운데서 서서 양 옆에 있는 오빠
와 나를 향해 번갈아 지팡이를 휘두르며 외쳤다. "너희들이 정말 내 자식이냐?! 감히 나를
속여? 맛있는 거 먹으러 간다고 했잖아. 의사 필요없다! 나 아픈 데 하나도 없어, 나를 속이
다니. 네놈들이 자식이냐!" 가슴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설이며 직원들에 대해 미리
조사해둔 요양소의 1인실로 모신 뒤에도 아버지는 걸핏하면 그곳을 빠져나와 당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아버지를 다시 모셔왔고, 무력하게 자식들을 쳐다보기만
하는 아버지의 원망스런 눈길을 차마 볼 수가 없어 고개를 돌리곤 했다.
아버지를 요양소에 모시던 해 나는 영국에서 몇 달을 보냈다. 분노, 슬픔, 죄책감이 해변
의 태풍처럼 내 안으로 밀려왔다. 세월이 아버지의 몸과 마음에 부려놓은 부당함과 굴욕에
대해서 분노가 치미는 것까지는 이해가 갔다. 평생을 황소고집으로 사셨던 양반이 독립심을
완전히 상실한 데서 비롯된 슬픔도 이해할 수 는 있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아버지 곁을 떠
나있던 내 행동에 대한 죄책감은 끝내 씻어버릴 수가 없었다. 미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수
시로 오빠에게 전화해서 아버지의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시간이 허락하는 한 자주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날도 나는 아침 8시 비행기로 케네디 공항을 떠나 영국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워털루에서 기차와 택시를 갈아타고 요양소에 도착했다. "아버님은 일광
욕 로비에서 쉬고 계세요." 요양소 직원의 말을 듣고 찾아봤더니 아버지는 턱을 가슴에 묻
은 채 아코디언처럼 몸을 구부리고 앉아 계셨다. 얕게 코를 골 때마다 쪼그라든 입술이 파
를 떨렸다. 희미하게 얼굴을 비추는 겨울 햇빛이 아버지의 힘겨운 여든다섯 해, 그 인생의
풍경화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 옆에 쭈그리고 앉아 핏줄이 갸날프게 불
거진 손을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아버지, 저 왔어요." 아버지가 길게 한숨을 쉬고 온몸을
가볍게 떨더니 눈을 뜨셨다. 황달기가 도는 눈으로 아버지가 나를 건너다 보았다. 그리고 이
내 도전적인 말투로 물으셨다. "너 누구냐!" "저예요, 아버지 딸 샘이에요." "샘? 샘이 누
구야?" 나는 대답 대신 아버지의 주름진 손을 쓰다듬었다. 아버진 움찔했지만 내 손을 뿌리
치진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양지 바른 이곳은 언제 봐도 아버지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아버지가 거처하는 방을 처음 둘러보던 날 노란색과 파란색으로 환하게 꾸며져 있어서 기
분이 좋았던 생각이 났다. "얘야, 입술 좀 닦아라. 너무 빨갛구나. 술집여자 같잖니." 어느
새 정신이 들었는지 아버지가 내게 말했다. 립스틱은 분홍색이었고, 그나마 아침을 먹으면서
거의 다 지워진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얼른 화장지를 꺼내서 아버지가 못마땅해하는 색깔
을 문질러 없앴다. 나를 알아보시는게 어디야. "아버지 점심 사드리러 왔어요. 그리고 발
레공연 입장권도 있어요." 아버지가 얼굴을 찌푸렸다. 숱 많은 눈썹 사이로 주름살 두 개가
더 패였다. "여기서 먹는 게 어때서? 여긴 공짜잖아." "나가서 드세요. 식당 예약해놨어
요." 아버지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내 얼굴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이놈의 계집애
야, 돈이 썩었니? 수천번도 더 말했지? 이런 식으로 돈 쓰다간 별 볼일 없는 빈털터리가 될
거라고." "네, 아버지." 어쨌거나 아버지와 나는 내 계획대로 조용하고 다정한 오후를 보
냈다. 아버지는 네 코스로 나뉘어 나오는 음식을 부스러기 하나 안 남기고 다 드셨다. "음
식 낭비하면 안 되지." 한입 뜰 때마다 불평스럽게 중얼거리는 아버지를 보며 나는 미소만
짓고 있었다. 발레공연 도중에 아버지는 내 팔에 기대어 잠이 드셨다. 요양소로 돌아오자
오빠의 전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널 알아보시더냐?" "깜박깜박하셔." "용케 나는 잘 알
아보시는데 말이야. 네 올케를 돌아가신 어머니라고 우겨서 탈이지만." "오늘은 기분 좋으
신가봐. 좋아하는 여직원이 누구고 싫어하는 남자직원이 누구고........," "아파트에 가 봐야
지?" 오빠가 말머리를 끊으면서 말했다. "가봐야지.' "가거든 놀라지나 말어라. 집이 엉망
이니까. 도대체 그 서류뭉치들이 뭐가 뭔지 난 모르겠더라. 네가 가서 정리 좀 해라. 버릴
건 버리고. 너 그런거 잘하잖아." 오빠 말대로 아파트에 들어서자 마자 곰팡이 냄새, 먼지
냄새, 오래 방치된 냄새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바닥에는 온갖 청구서며 현찰로 바꾸지 않은
수표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서랍에는 답장하지 않은 편지가 가득 있었고, 옷장 안까지 종이
쪽지들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침실 바닥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바로 지혜와 열정 그리고
생활력을 모두 앗아간 병마와의 싸움으로 점철된 아버지의 흔적들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
쉬며 차를 끓였다. 오빠 말이 맞았다. 무엇을 보관하고 어떤 걸 버려야 할지, 누구한테 전화
해서 일 처리를 할지 오빠보다는 내가 더 잘 알았다. 하지만 이 모든 걸 말끔히 정리하려면
사흘은 걸릴 것 같았다. 암담했지만, 엉켜버린 아버지 인생의 실타래를 푸는 작업이라고 생
각하며 하나씩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꼭 시련 끝에, 아니면 새벽 3시에 온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날 밤 내겐 두 조건이 다 맞아떨어졌다. 우선 그 당당하던 분이 가스요금
청구서 한 장 제대로 다루지 못할 정도로 무능하게 전락해 버렸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 자
체가 엄청난 시련이었다. 그리고 새벽 3시에는 신발상자를 발견했다. 원래는 부츠를 넣어
두던 상자였다. 판지로 된 상자는 행여 손상될까봐 테이프로 옆구리를 단단히 보강해 놓은
상태로, 가운데는 얇고 노란 리본으로 두 번 동여매여 있었다. 닳고 색도 바랜 리본이었지만
꼼꼼하게 잘 묶여 있었다.
상자는 어머니 방에 있는 옷장 뒷구석에 있었다.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어차피 처리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상자를 꺼냈다. 너무 지쳐서 조심스럽게 풀어볼 마음도 나지 않아 리본
을 찢어버렸더니 내용물이 회색 카페트 위로 와르르 쏟아졌다. 욕설이 목구멍까지 치밀었다.
다시 주워담을 생각을 하니 꿈만 같았다. 하지만 바로 그때 겉봉에 쓰인 내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봉투를 열고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있잖아요, 아빠.
저 정말 근사한 남자를 만났어요. 아빠도 좋아하실 걸요. 체스도 좋아하고 아주 검소해요.
아빠처럼........, 있잖아요, 아빠. 내 사랑과 헤어지고 말았구요, 그래서............, 있잖아요, 아
빠. 나 방금 아주 좋은 일자리가 생겨서 캘리포니아로 이사갈 거예요.' 텅 빈 방 카펫 위에
흩뿌려진 내 인생 이야기,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몸을 웅크렸다. 그렇게 멍한 상태로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모르겠다. 한 장 한 장씩, 나는 사연을 읽어내려 갔고, 세월을 거슬러 올라갔
다.
내 인생의 모든 여정, 사랑, 희망, 야망, 그리고 좌절......, 그 모든 것들이 엽서에, 노란색
편지지에, 메모지에, 레이저 프린터로 뽑은 용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왜 아버지는 타
국 생활을 하는 딸이 보낸 편지, 메모, 엽서, 사진들을 25년이나 보관하셨을까? 하나마나
한 질문이었다. 아버지는 그토록 나를 사랑했던 것이다. 그 사랑을 알아차리지 못한 내 자신
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아버지와 나 사이에서 허망하게 흘러가버린 세월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날이 어떻게 밝았는지 모른다. 다만 내 편지와 카드와 사진들을 다시 모아
서 낡은 리본으로 묶으며 평생 간직하기로 결심한 순간만 기억날 뿐이다. 그리고 날이 밝자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지와 함께 아침을 먹다가 나는 기어이 아버지를 껴안았다. "사랑해
요, 아빠." "왜 이 야단이냐?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구만." 아버지가 나를 뿌리쳤다. "그냥,
사랑해요 아빠." 나는 다시 한번 말했다. 그리고 훈제연어와 계란 스크램블을 주문했다. 난
생 처음으로, 다이어트를 하면 10년은 더 살 수 있다는 말을 무시한 채 말이다. 아버지가 물
끄러미 나를 보더니 말했다. "훨씬 보기 좋구나. 너는 너무 말랐어. 알아? 남자들은 안으면
뭔가 잡히는 여자를 좋아한다구." "네, 아버지." "그래, 또 언제 올 생각이니?" "곧 올게
요, 아버지. 곧." (사만타 글렌)
중죄 한 접시
1960년대 초, 나는 카톨릭계 초등학교를 다녔다. 1학년 때였다. 우리 아이들에게 수녀님들
은 곧 두려움의 대사이었다. 록키 마르시아노라는 애칭으로 통하던 교장 수녀님은 아무 때
나 나타나 장난치는 아이의 엉덩이에 '하느님의 정의로움'을 내렸다. 우리는 물론 규칙만
잘 지키면 주님의 정의로운 분노를 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차갑고 노련하고
도덕적인 테렌스 수녀님의 눈길만은 피할 수 없었다. 테렌스 수녀님은 우리 1학년2반의 신
이자 전지전능한 선생님이며 8살짜리 영혼들을 경외와 공포의 하느님께 연결시켜주는 고리
였다.
그 시절 나를 고민하게 했던 문제의 발단을 나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때까지만 해
도 나는 공포의 테렌스 수녀님이 묘사한 중죄 가운데 하나라도 범한 적이 없는 착한 학생이
었다. 살인한 적도 없고, 무슨 뜻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이웃의 아내를 탐한 적
도 없다. 또, 매주 거르지 않고 성당에 나갔다. 한마디로 내가 지옥에 떨어질 가능성은 아주
희박했다. 그에 관한 한 나는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의 그날 수녀님
이 일용할 양식으로 내놓은 중죄 한 접시는 달랐다. "신체의 특정한 부분을 만지는 것은
불결의 중죄에 해당하는 나쁜 짓이에요." 수녀님이 그렇게 선언했다. 뭐? 나는 감전된
것처럼 꼿꼿이 등을 세우며 속으로 생각했다. 잠깐, 나는 이미 내 몸 구석구석을 만졌는
데..., 아예 몸 전체를 북북 문질렀는데, 그것도 매일 밤 목욕할 때마다! 그런데 천국에서
파견한 선악의 메신저가 내 행위를 중죄라고 선언한 것이다. 테렌스 수녀님의 창백한 얼굴
이 나를 향했다. "다음 달 고해성사 때 이를 기억하도록."
나는 거의 넋이 나가버렸다. 그리고 조급해졌다. 조금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했다. 도대
체 어떤 부분이지? 이건 중죄가 걸린 문제야. 가벼운 죄와 달리 죽은 다음에 이놈의 중죄
가 하느님의 책에 기록돼 있으면 어디로 떨어질지는 뻔했다. 나는 이미 그 방면에서는 둘도
없는 권위자가 돼버린 오빠한테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지옥은 칼리사 수녀님한테 피아노
레슨 받는 것보다 더 지독하다는 사실을. 나는 녹색 교복 때문에 다들 약간 병자처럼 보이
는 같은 반 친구들을 둘러보았다. 브라이언은 종이를 씹어서 만든 뭉치를 들로리스에게 던
지고 있었고, 조지는 코를 후비고 있었다. 허구헌 날 맨 뒷줄 마지막 책상 신세를 면치 못하
는 자바는 연필을 가지고 놀면서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모두 평소 모습 그대로였다. 그
들은 우리 앞에 떨어진 이 거대한 도덕적 이슈에 대해서 도대체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면!
아,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나만 빼고 다른 아이들은 그게 어떤 것인지 모두 알고 있
었던 것이다. 알고 있다면 죄를 저질렀을 리 만무했다. 이제 모든 게 명백해졌다. 모르고
범한 행위는 죄가 아니라는 위대한 카톨릭의 자비도 이제 더 이상 통할 수 없었다. 갑자기
육체의 깨끗함은 영혼의 불결함을 뜻하게 된 것이다. 나는 공포의 테렌스 수녀님이 허튼
말을 했을 리 없다고 믿었다. 수녀님은 콘크리트로 지은 우리 시온산의 모세였으니 그날로
나의 순결함은 종치고 말았다.
그날부터 나는 목욕하는 척만 하기 위해 욕실에 김이 가득 서릴 때까지 물을 틀어 놓았
다. 그러나 머리카락이 기름 낀 밧줄처럼 변하자 어머니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
다. 어머니는 나를 억지로 씻게 만들었다. 날마다 자기 전에 목욕물을 직접 준비하고 나를
감시했다. 나는 밤마다 기도하면서 목이 메였다. "깨어나기 전에 죽게 되면 나의 영혼을 데
려가옵소서." 하지만 꿈도 야무졌다. 계산해 본 결과, 나는 이미 중죄를 열번도 넘게 저지
른 불결한 몸이었다. 고해성사를 할 때 쯤이면 그 죄가 얼마나 더 커질까를 생각하니 구역
질이 다 났다. 고해소 안은 어두웠다. 그 안의 작은 구멍 속으로 철망으로 된 작은 창에 기
대고 있는 신부님의 모습이 보였다. "신부님, 제 죄를 하느님께 아뢰옵니다. 이번 달 첫 고
해성사입니다." "그래, 딸아, 어서 말해보거라." 가벼운 죄를 먼저 나열하는 게 일을 편하
게 풀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남동생을 일곱 번 때렸습니다. 저녁 먹을 때 간 요리를 오
빠 의자 밑에 던져서 오빠가 혼나게 만들었습니다." 이마에 진땀이 맺혔고, 숨결이 거칠어
지기 시작했다. "그게 다니, 꼬마야?" "아뇨." 말해, 말해야 돼, 말하란 말이야,
"또..., 스물다섯 번 불결의 중죄를 범했습니다." 빨리 말하면 죄책감이 덜어질지도 모른
다고 희망하며 나는 단숨에 내뱉었다. "스물다섯 번의 중죄를? 너 몇 살이니?" "여덟 살
이요." "도대체 어떤일을 했는데?" "내...," 아, 이 죄책감. 아, 이 괴로움. "내, 내 몸을
만졌어요." 신부님은 말이 없었다. 너무 충격을 받아서 말도 못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
다. 그런데 신부님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 "걱정마라. 분명히 경죄였을 거다. 보석으로 성모
송 네 번, 주기도문 세 번을 외거라. 그리고 다음 애 좀 들여보낼래?" 걱정하지 말라고? 말
이야 쉽지. 경죄? 아니야, 나는 이제 순진한 애가 아니란 말야. 그 뒤 몇 달 동안 나는 영
원한 고통을 조금씩 맛보며 살았다.
"뚱땡아, 뭔 문제 있냐?" 어느 날 오빠가 내 방을 지나가다 물었다. "참견마, 난쟁이 똥
자루야." "너 불량 식품 사왔지? 엄마한테 이른다." "그러기만 해봐라. 오빠 이상한 전화한
다는 거 다 일러버린다." "그러기만 해봐라. 주먹으로 얼굴을 한방에 날려버릴 테니." 오
빠와 나는 툭하면 그렇게 티격태격 했다. "도대체 널 괴롭히는 게 뭔데?" 오빠가 정색을
하고 물었다. 나를 억누르는 죄책감을 더 이상 견딜수가 없었다. 지옥에 가고 싶진 않앗다.
나는 결심했다. "오빠, 제발 말해 줘. 나, 어떤 부분을 만지면 안 되는 거야?" "너 미쳤
냐?" "테렌스 수녀님이 몸의 특정 부분을 만지면 불결의 중죄래. 근데 어떤 부분인지 모르
겠어." "너, 무섭니?" "목욕할 때마다." "세상에." 오빠는 내 방으로 들어와서 침대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싱긋 웃었다. "넌 공포의 테렌스가 하는 말을 다 믿을 필요
가 없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구나." "몰라." "믿을 필요 없어. 이 바보야, 대신 누굴 믿으면
되는 지 말해줄게." "누구?" "엄마, 아빠." 맹세컨대 그 말을 하는 순간 오빠의 머리 위에
후광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제 좀 괜찮지?" "응." "그래, 누가 괴롭히면 나한테
말해. 넌 계집애치곤 그렇게 나쁘지 않은 애니까."
오빠가 방을 나가자마자 나는 엄마를 찾았다. 그리고 엄마의 앞치마 위에 눈물과 함께 모
든 걸 털어놨다. 엄마는 한번도 웃지 않았고 나무라지도 않았다. 진지한 얼굴로 끝까지 내
얘기를 듣고 나서, 내 눈을 들여다보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나를 끌어안고 말했
다. "귀엽고 착한 우리 딸. 혼자서 그렇게 고민하는 줄도 모르고....., 엄마가 미안하구나. 하
지만 걱정할 필요 없단다. 머리 빗는 게 중죄가 아니듯이 목욕하는 것도 중죄가 아니란다.
오히려 몸의 더러움을 닦아내지 않는 게 더 문제가 되지. 넌 절대로 죄를 짓지 않은 거야.
엄마 말 믿고 안심하렴." 그날밤 나는 정말 진지하게 기도했다. 오빠를 위해 특별히 축보기
도를 했다. 진리에 눈뜨게 해 준 오빠에게 은총을 내려달라고, 또 지옥의 유황불에서 나를
구원해 준 어머니를 위해서도 기도했다. (메리 베스)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건
크리스마스는 내 어린 시절의 절정이었다. 크리스마스에 비하면 다른 연중 행사들은 초라
하기 짝이 없었다. 심지어 생일마저도 그 향기, 풍경, 소리, 기대감이 마술적으로 조화를 이
루는 크리스마스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그날만 되면 우리 집은 상록수와 칠면조 그리고 호
박파이 냄새로 가득 찼다. 포인세티아로 장식한 동네 교회 안은 성도들로 붐볐다. 고명딸인
데다 말 잘 듣는 가운데 아이였던 나는 어머니를 도와 고급 자기와 번쩍이는 은그릇 그리고
프랑스제 레이스 식탁보로 상을 차렸다. 크리스마스 아침이 밝으면 뜬 눈으로 밤을 보내다
시피 한 우리 남매들은 앞다퉈 1층으로 뛰어내려갔다. 거실에는 어김없이 높이며 숫자가 똑
같은 선물더미 네 개가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우....!
아....! 우리는 탄성을 질러대며 산타 할아버지의 신기한 능력에 감탄했고 그 모습을 보는
부모님은 잔잔히 미소만 지었다. 어린 시절 나는 크리스마스 풍경이 언제나 똑같을 것이라
고 확신했다. 오빠들도 남동생도 부모님도 늘 똑같은 모습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언제나'는 우리가 자라서 결혼하고 각자 여기저기 흩어지기 전까지만 지속했다. 우리 남매
들은 여전히 친했지만 처가며 시댁, 아내나 남편의 형제 자매들, 조카들이 있는 사람들이 한
꺼번에 모이기란 정말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석달 전에 아버지가 위독한 상태에 빠지셨다가 간신히 고비를 넘기는
일이 발생했다. 나는 갑자기 불길한 생각에 빠졌다. 지금쯤 가족이 모두 모여야지 안 그러면
영영 기회를 놓칠 것만 같았다. 돌아보니 한지붕 아래서 크리스마스를 보낸지도 10년이 넘
었다. 나는 마음먹고 전화를 걸었다. 내 말을 들은 오빠들이며 남동생 부부는 한결같은 반
응을 보였다. "와, 그거 멋진 생각이다" "크리스마스 때 전부 모이자구? 좋지!"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어?" 우리는 크리스마스 며칠 전에 부모님 댁으로 가서 미리미리 파티
준비를 하기로 했다. 집안 장식도 우리가, 요리도 우리가, 청소도 우리가. 부모님은 편안히
앉아서 손자손녀들과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10억 분의 1초마다 격변하는
199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이 장미빛 계획을 망치기 시작했다. 포문을 연 사람은 점
잖으신 의사 양반, 작은 오빠였다. "다들 여기 LA로 오는 게 어때?" "오빠네는 빠지고 싶
단 말이야?" "아니, 여기가 좋을 것 같아서. 여긴 따뜻하잖아. 여긴...," 작은오빠는 LA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에 어떤 매력이 있을까 한참 궁리했던 것 같다. "엄마, 아빤 아직 여행
못 하시잖아." "하지만 공연히 애들 겨울 옷까지 사줘야 하잖니. 고작해야 일주일밖에 안
입을건데." "왜 그렇게 궁상이야? 오빠는 의사야, 의사. 게다가 부자동네 성형외과의사! 그
런데 애들 새 옷 몇 벌 사줄 돈이 없다구?" "돈 문제가 아니야. 시간이 없어서 그래." "나
는 뭐 시간 많은 줄 알아?" 적어도 작은오빠는 이 대목에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을 정도
의 센스는 있었다. 이튿날 어머니가 전화를 했다.
"네 작은오빠네가 여기 와서 애들 데리고 '호두까기 인형'보러 가잰다. 너도 갈래?" "가
고야 싶죠. 하지만 엄마, 우린 금요일 밤 늦게야 도착하잖아. 집 장식하고 선물 포장하고, 마
무리 쇼핑하고, 요리할 시간이 토요일하고 일요일밖에 없잖아요. 크리스마스가 지나야 다들
발레 보러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어머니가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알았다. 아
무튼 아버지랑 나는 너희들이 온다니까 정말 행복하구나. 아버지도 그 기대 때문에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지셨다. 하루 빨리 보고 싶구나.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도 그래요, 엄
마."
그러나 그 흐뭇함은 하루가 가기도 전에 사라지고 말았다. 큰오빠의 전화 때문이었다. 수
화기를 들자마자 엄격한 변호사님인 큰오빠의 낮고 고른 억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왜 어머니한테 호두까기 인형 보러 안 간다 그랬니? 우린 애들 데리고 가서 보고 싶은데."
"누가 안 보러 간대?" "어머니가 그러시던데, 장봐야 한다고 했다면서? 집안 머슴처럼 취
급당하는 거 별로 기분 안 좋다." "그게 아니라, 오빠네가 우리보다 이틀 먼저 도착하잖아.
시간있는 사람이 오빠밖에 더 있수? 쇼핑 비용은 나눠서 부담하기로 했으니까.....," "비용
때문에 이러는 거 아냐.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을 갖고 싶었는데 다 망쳤잖니." 뭐? 다 망
쳐? 그래 알았어, 알았다구! 나는 수화기를 쾅, 거칠게 내려놓았다. 도대체 꿈 같은 크리
스마스는 어디로 갔지? 나는 호흡을 가다듬어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애써 위로했다.
그래, 괜찮아질거야. 크리스마스니까 공연히 들떠서 그러는 것 뿐이야, 안 그래? 다음 의
무는 보스턴에 전화를 해서 식구들이 제시한 요구 사항을 고려하여 크리스마스 저녁 식사를
예약하는 것이었다. 작은오빠. "우린 애들만 넷이야. 장거리 운전은 딱 질색이지. 그리고
참 뷔페는 안 돼." 큰오빠. "우리는 좋은 분위기랑 맛있는 음식이 중요해. 비용은 상관없
어. 뷔페는 절대 사절이다." 남동생. "칠면조 요리는 필수야. 뷔페 어때?" 나는 이 사람
저 사람, 이곳 저곳에서 자문을 구하느라 귀한 시간을 허비한 뒤 근사한 호텔에 예약을 했
다. 모두가 찬성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천만에, 며칠에 걸쳐서 통화를 하다 보니 급기
야 전쟁이 일어났다. 식사예약을 둘러싸고 말이다! 화가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그리고 나는
끝내 고함을 질러댔다. "우린 안 갈거야! 애초부터 황당무계한 계획이었다구." 그러자 곁
에 있던 딸아이가 나섰다. "엄마, 우린 꼭 가야 돼. 얼마나 기다린 날인데..,"
옆에 있던 둘째 딸도 울먹였다. 나도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아이들은 사촌들과 어울려 노는 시간을 너무나 좋아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약속했
다. "알았어, 알았어. 하지만 엄마는 하나도 즐겁지 않을꺼야." 일은 계속 꼬였다. 떠나기
하루 전날 우리 식구는 모두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제와서 취소할 수는 없는 노
릇이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우리 가족은 마침내 부모님 댁에 도착했다. 그러나 즐거운 행
사고 뭐고 심신이 천근만근이었다.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집안은 그야말로 혼
란 그 자체였다. 물론 최상의 혼란. 2미터가 넘는 트리에 아읻르이 몰려서 자기 식으로 장식
하느라 법석을 떨고 있었고, 부모님은 벽난로 옆에 있는 안락의자에 앉아 그 광경을 흐뭇하
게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보며 소리쳤다. "우와, 엄마!"
"그래, 들어가. 엄마는 짐 갖고 들어갈.......,"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이들은 이미 그
난장판 속으로 뛰어들고 없었다.
그때였다. 부엌 쪽에서 작은 오빠가 손이며 머리, 온몸에 온통 은장식을 한 채 나타났다.
오빠의 눈은 어린시절 크리스마스 때처럼 빛나고 있었다. "애들이 나부터 장식하더라구. 트
리 멋있지 않니? 내가 오늘 아침에 직접 베어왔어." 이어서 큰오빠 부부가 추위에 빨개진
얼굴로 음식 재료들을 안고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큰오빠가 나를 보더니 익살스런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이게 전부는 아니야. 차안에 더 맛있는 게 남아 있다구." 동시에 참
을성 없는 아이들이 넘어지고 밀치고 웃어대며 후닥닥 문 밖으로 뛰쳐 나갔다. 아이들의 웃
음소리처럼 아름다운 음악이 세상에 또 있을까. 크리스마스 전 이틀은 거창한 준비를 하느
라 후딱 지나갔다. 우리 식구는 모두 구경하지 못할 줄 알았던 발레공연도 더할 나위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다녀왔다. 집안 한가운데 해놓은 장식도 일품이었다. 큰올케가 난간에 드리
운 금색리본 그리고 작은 올케가 굴뚝에 매달아 놓은 20명 분 양말 주머니로 집안은 온통
반짝반짝 했다. 내가 가져온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새틴과 벨벳, 호일로 장식한 옷을 입고
벽난로 위에 앉아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우리는 추억 속에 간직하고 있던 소중한 전통들을 다시 만들어냈다. 드디어 크리스마스
이브, 올케들의 도움을 받으며 나는 고급 도자기를 꺼내고, 프랑스제 레이스 식탁보를 깔고,
번쩍이는 은그릇으로 상을 차렸다. 저녁에는 모두 교회에 갔다가 칠면조, 상록수, 사과, 호박
파이 냄새가 가득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열 명의 아이들이 앞다퉈 1층으로 달려
내려와 현관부터 거실까지 넘쳐흐르는 산타의 풍성한 선물들을 뜯기 시작했다. "내 선물
좀 봐!" "우와!" "최고다!" 아이들의 환호에 찬 감탄사가 집안 구석구석에 메아리쳤다. 아
이들은 이내 선물 자랑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른들은 그 야단법
석을 지켜보며 지난날의 크리스마스 아침을 회상했다. 우리 남매는 가끔씩 부모님을 힐끔힐
끔 쳐다보았다. 창백하던 아버지의 얼굴에 장미빛이 감돌았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기대어
허리에 팔을 두르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여보, 사랑하오." 어머니의 미소와 아버지의 흐
뭇함이 두 분은 물론 온 집안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었다. 난장판이 진정되자 어머니가
카드를 꺼내 우리들에게 하나하나 나눠주며 축복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내 카드에는 이
런 메시지가 쓰여 있었다. '이 모임에서 우리가 얼마나 큰 기쁨을 얻었는지 너는 모를거다.
가족은 가장 큰 행복의 근원이란다. 이 행복을 선물한 네게 은총이 있길 빈다.' 작은 오빠
가 자기 카드 너머로 나를 쳐다보았다. 수상하게 빨개진 눈으로 다른 형제들처럼 멋쩍게 웃
으면서. 부모님과 아이들에게 선사한 행복 앞에서 우리는 짜증과 불편함 그리고 '귀한 시
간'을 쪼개야 했던 수고를 다 잊었다. 이제 적어도 1년에 한 번씩은 함께 모이자고 , 약속을
꼭 지키자고 우리는 눈으로 얘기했다. (작가가 듣고 적은 이야기)
성냥갑 자동차
"얘들아, 설탕 좀 사오너라." "네!" 대답은 형들 아니면 누나들이 한다. 그러나 결국 심
부름 갈 사람은 나였다. 형과 누나들의 영원한 '쫄때기' 나, 막내. 1970년대 초반 캘리포니
아 남부에서의 생활은 그런대로 이상적이었다. 일곱 남매나 되는 집에서 제일 막내인 내 처
지만 아니었어도 말이다. 까짓 심부름이야 형들에게 당하는 다른 괴로움에 비하면 아무것
도 아니었다. 9살 많은 바이런 형, 7살 많은 더그 형. 그들에게 나는 동생이 아니라 살아 있
는 장난감이었고, 형들의 세계에서 나는 언제나 이방인이었다.
형들이 놀러 나갈 때, 내가 엉거주춤 따라나서면 형들은 동시에 고개를 홱, 돌리고 쏘아부
쳤다. "어딜? 집에 조용히 주저앉아 있어!" 형들의 따가운 시선은 자기들끼리 노는 데 싫
증이 났거나 엄마의 특별한 당부가 있을 때만 내게로 쏠렸다. 그러나 결과는 더 끔찍하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형들은 나를 힐끗 본 다음 꼭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는 소리쳤다.
"꼬맹이! 이리 와. 걷지 말고 뛰어! 빨리 빨리!" 나는 그저 형들이 나를 불러주는 게 고맙
고 감동스러워서 전력을 다해 뛰어간다. 그러나 아뿔싸. 둘 가운데 하나가 쏜살같이 다가와
서 내게 딴지를 걸고만다. 여지없이 나뒹구는 내 꼴을 보며 형들은 배를 잡고 웃어댄다.
아, 아무리 생각해도 형들은 나를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는 걸 자기들의 의무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6살이 되던 해 어느날. 그날따라 형들의 태도가 유난히 부드러웠다. 세상에, 낡았지만 널
찍한 유모차에 나를 태우고 형들이 산책을 나간 것이었다. 약간 오르막인 집 앞 도로에서는
재미있는 놀이도 했다. 형들이 유모차 손잡이에 묶은 끈을 오르락내리락 잡아끌어 주었는데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그날 나는 친절하고 부드러운 형들에게 둘러싸여 마냥 행복
했다. 드디어 형들이 나를 동생으로 아니, 사람으로 인정해주는구나!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갑자기 형들의 날카로운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으악! 차 온다! 차 와!" 동시에 형들은 잡
고 있던 유모차 끈을 놔버렸고, 유모차는 정신없이 아래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일
어난 일이었다. 그때 나는 단 하나의 감정만 느끼고 있었다. 공포! "으아악! 엄마야! 형아
야!...,!"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위로 밀어올렸다. 동시에 낡은 유모차의 얼마 남지 않았던
수명이 다하고 말았다. "드드드.....득......," 천이 갈라지는 섬뜩한 소리가 오후의 고요함을
깨면서 유모차 밑이 갈라졌고 유모차를 세우려고 인간 브레이크가 된 내 통통한 다리는 가
까스로 땅에 닿았다. 그렇게 얼마를 끌려 내려갔을까. 마침내 유모차가 멈췄다. 주위는 고
요했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나는 사태를 파악했다. 주위에는 자동차는커녕 개미새
끼 한 마리 없었던 것이다. 언덕 위에서는 두 형이 눈물까지 찔끔거려가며 웃고 있었다.
"푸하하하! 우리 꼬맹이 무서웠나보네! 무섭나봐! 우아, 대단한 꼬마 브레이크야!' 나는
당장이라도 달려나가 형들의 머리통을 들이받아주고 싶었지만 찢어진 유모차에 엉덩이가 끼
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큰형이 겨우 웃음을 참으며 다가와서는 슬쩍 나를 살펴보더니 한
마디 내뱉었다. "안 다쳤네, 뭘, 괜찮아 꼬맹아!" 그렇게 심술궂은 형들이었건만 나는 그들
의 세계가 여전히 경이로웠다. 여간해서는 내게 눈길도 주지 않는 형들 대신 내가 정을 붙
인 건 손가락만한 모형 차들이었다. 일명 성냥갑 자동차. 진짜처럼 집게를 오므렸다 펼 수도
있고, 위 아래로 작동시킬 수도 있는 초록색 크레인과 파란색 캐딜락, 또 사다리를 뺐다 끼
울 수 있는 번쩍이는 소방차도 있었다. 경찰차, 봉고차, 트럭도 있었다. 그 조그만 차들은 무
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나만의 보물이었다. 나는 성냥갑 차를 가지고 논 다음에는 조
심조심 내 보물상자에 넣어서 안전한 곳에 보관했다. 심술맞은 형들이 운동화 발로 밟아버
리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였다. 그날 엄마는 봄맞이 대청소를 한다고 온 집안을 발칵
뒤집어놨다. 한번도 집 밖으로 갖고나간 적이 없던 내 보물들도 잠시 피신시켜야 했다. 나는
내 소중한 보물상자를 안고 놀이터로 가서 엄마가 부를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놀이기구
가 놓여있는 중앙에는 장난꾸러기 사내아이들이 바글바글했기 때문에 단풍나무 아래 한갓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내 보물들을 어루만지면서 혼자 얼마나 놀았을까. "야! 그거 뭐
야?!" 이럴 수가, 올려다보지 않아도 햇빛을 가린 그림자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조나스 압누스. 그는 나보다 두 살이나 많고 게다가 나 같은 건 발바닥 껌같이 대하는 천하
의 악동 아닌가. 그때 나는 혼자였고, 보아하니 그는 오늘 일용할 핍박의 양식을 다 채우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 공포스런 괴물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순간 내 눈에는 배꼽이 다 보
이도록 올라간 그의 까만 줄무늬 윗도리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뭐냐고 물었잖아. 짜샤, 빨
리 안 꺼내?!"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덜컥 겁이 난 나는 하필이면 가장 아끼는
빨간색 소방차와 파란색 캐딜락을 꺼내 녀석 앞에 내밀었다. "에헤. 이거 좋은데. 내가 압
수한다!" "안 돼. 제발 돌려줘." "못 들었냐? 지금부터 이 차는 내 거야." 그 깡패 녀석은
내 보물을 번개같이 낚아챈 다음 공중에서 대롱대롱 흔들어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던지고는 건들건들 사라져버렸다. "또 보자, 땅꼬마." 나는 분하고 억울해서 눈물을 철철
흘리며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엄마. 내 차를..., 그 자식이 내 소방차를 가져갔어! 조나스가 내 차를.....," 울면서 부엌으
로 뛰어들어갔지만 엄마는 없었고, 두 형이 콜라병을 입에 댄 채 버티고 서 있었다. 울먹이
며 두서없이 징징대는 내 얘기를 들은 형들의 표정은 단번에 구겨졌다. "뭐? 어떤 자식이
뭘 가져갔다고? 그 자식이 어느 쪽으로 갔어!" 사냥용 토끼를 풀어놓은 순간 쇠문을 박차
고 달려나가는 경주견의 모습을 보았는가? 형들은 경주견의 속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형들은 집을 나간 지 15분도 채 못돼서 돌아왔다. 내 소중한 소
방차와 캐딜락을 손에 들고서. 형들은 손수 내 보물상자를 열고 자신들이 되찾아 온 차들을
아주 조심스럽게 집어넣은 다음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오후 3시만 되면 펼치던
냉장고 기습작전에 착수했다. 그날의 작전명은 삼단 샌드위치. 나도 내 영웅들을 따라 감격
에 겨워 부엌으로 들어갔다. "우와. 바이런 형, 더그 형, 고마워. 형들이 내 차를 찾아줬어.
형들은 정말......," 순간, 작은형이 나를 스윽 돌아보았다. 1등급 놀부 표정으로. "쳇, 꼬맹
아! 완전히 방방 떴구나." 큰형이 우유팩을 던질 듯이 머리 위로 치켜들며 맞장구쳤다.
"뭐야! 누가 너보고 부엌까지 따라오랬어? 한대 맞고 나갈래, 나가서 맞을래?!" "아, 아니
야....," 나는 재빨리 뒷걸음질치면서 형들이 궁시렁대는 소리를 들었다. "야, 달라진 거 있
냐?" "아니, 없어." "맞아, 하지만 다른 놈이 우리 꼬맹이를 괴롭히는 건 용서못하지." 나
는 형들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려 슬쩍 부엌을 엿보았다. 형들은 문쪽으로 등을 돌리고 앉아
열심히 삼단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었다. 형들의 말은 맞았다. 그뒤로도 형들과 나의 관계는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이미 나는 형들의 진심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젠체하고 짓궂
은 장난으로 나를 괴롭혀도 형들은 나를 사랑했던 것이다. (K. 닐 스미스)
"당신을 믿어요"
5년 전 나는 예전부터 내 안에서 타오르고 있던 열정을 본격적으로 좇기 시작했다. 나는
글을 써야만 했다. 둘째 딸이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자 비로소 유아원 치다꺼리나 식사준
비, 기저귀닦달 따위의 일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조금씩 내 시간을 갖게 되면서 글을
쓸 기회도 자연스럽게 맞게 되었다. 나는 틈만 나면 타자기 앞에 앉아서 잡힐 듯 말 듯 아
른거리는 인물들과 씨름하면서 열에 들떠 꼬인 줄거리를 풀어나갔다. 결혼 전에 희곡도 쓰
고 연극제작 활동도 했지만 출판에 관해서 나는 문외한이나 다름없었다. 작가 협회에 가입
하지도 않았고, 연줄도 없었으며 글쓰는 친구 하나 없었다. 심지어는 원고작성법도 제대로
몰랐다. 더구나 글을 쓴다는 작업이 쓰는 즐거움 못지 않게 거부당하는 상처 또한 큰 일이
라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나는 글에 대한 조급한 열정과 짝사랑만 갖고 안
간힘을 쓰는 풋내기에 불과했다.
"그래? 혹시 내 원고 읽었다니?" "응. 읽었대. 돌아오면 전화하라고 할게." 갑자기 온몸
이 뻣뻣하게 굳어왔다. 응. 읽었대.........., 동생의 그 무심한 말을 되뇌이다가 나는 원고뭉
치를 노려보았다. 성냥을 확 그어서 다 태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그 대신
솔이 납작해지도록 욕실 바닥만 빡빡 문질렀다. 그래, 재미 하나 없는 걸 읽느라 수고했다.
원망할 것도 없이 없어. 그게 어디 올케 잘못이야? 수준도 안 되는 걸 소설이랍시고 보여준
내 잘못이지. 됐어, 됐어. 한번 시도해봤으면 된 거야. 주제에 뭘 더.
이튿날 아침 나는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고 딸들을 학교에 데려다 준 뒤 하루일과를 점
검해 보았다. 이불도 개야 하고, 산더미같은 빨래도 해야 하고, 쇼핑도 다녀와야 하고, 저녁
식사 준비도 해야 했다. 하지만 모든 게 귀찮았다. 봉봉사탕이나 까먹으면서 몇 시간이고 소
파에 파묻혀 텔레비전이나 보고 싶어졌다. 허무하게 무너지는 야망에 비하면 뭐든 다 괜찮
아 보였다. 오전 내내 어디 가서 봉봉사탕을 살까 궁리하고 있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
렸다. 타이밍 한 번 더럽군! 나는 한가하게 외판원을 상대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런데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내 교양을 높여주기 위해 백과사전을 들고 달려오는 외판원이
아니었다. 큰 상자 위에 작은 상자를 얹어 들고 서 있는 사람들은 바로 남동생 부부였다.
"이거 어디에 놓을까?" 당황하고 있는 나에게 동생이 다짜고짜 물었다. "뭐라고?" "누나
컴퓨터, 어디에 놓을까?"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집사람이랑 생각해 봤는데 누나, 작
가가 되자면 컴퓨터가 필요할 것 같았어. 어제 이 사람이 쇼핑가서 사온 거야." 동생이 어
린시절에나 짓던 귀여운 미소를 지었다. "형님 소설이 너무 좋아서요." 올케가 말했다.
"이 사람이 누나 재능있대. 난 그걸로 족해. 하지만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면 컴퓨터가 있어야
지." 도대체 얘들이 어디서 돈을 구했을까. 얼마 전에 시작한 사업은 이제 막 쥐꼬리만한
이윤을 내기 시작한 걸로 아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선물은 무리였다. 그런데 가만, 올케
가 내 소설이 좋다고 했지! 맙소사 내 글이 좋대! "내가 이걸 어떻게 받니?" "당연히 받아
야지. 우린 누나 소설이 언젠가 꼭 발행될 거라고 믿어. 이번 게 아닐 수도 있지. 네 번째
쓴 글이 될 수도 있고...., 어쨌든 반드시 발행될 날이 올거야."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
다. "허하하, 네 번째? 네 권이나 쓸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버틸거예요. 형님이 넘치는 애정으로 쓰는 글인데 차마 포기하지 못할 걸요? 우리는 형
님을 믿어요." 그 기쁜 날을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컬러 모니터가 달린 엡손
컴퓨터와 요란한 도트 프린터는 인간이 창조한 가장 신비로운 물건이었다. 그리고 동생 부
부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인심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 뒤 몇 달이 지나서야 나는 작가협회
에 가입했다. 그리고 출판산업과 시장에 대해서 배우고 편집자와 에이전트들을 만나면서 내
'걸작'에는 전혀 시장성이 없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내가 깨달은 슬픈 사실이 또 하나 있다. 해마다 '책 발행'이라는 훈장을 달 수 있는 작가
는 아주 운이 좋고 재능이 뛰어난 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 또 거절당하는 일을 좋은 경험
으로 삼아야지 개인적인 모욕으로 치부하면 안 된다는 교훈도 얻었다. 지금 진행하는 작업
이 당장 서점의 책꽂이에 꽂힐 거라 자신하면서 일하는 작가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리
고 어떤 위치에 있든 거절당한다는 사실은 가슴 아프기 마련이다. 그러나 동생 부부가 선
물해준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에 손가락을 얹을 때마다 나는 누군가 나를 신뢰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그 믿음은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는 가장 좋은 약이고, 죄절을 딛고 전진하
게 해주는 가장 좋은 동기이며 최고의 영감이다. 내 책의 머리맡에 매번 동생 부부의 이름
이 실리지 않더라도 내가 하는 모든 이야기들의 심장과 영혼은 바로 그들이라는 사실을 말
해주고 싶다. 메리 페사레시
그 사랑은 변치 않아
누구나 살다보면 자신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순간을 만날 때가 있다. 내가 11살 때 겪었던
경험도 그런 것이었다. 우리 가족은 줄곧 인적이 드문 변두리의 작은 마을에서 살았다. 숨
막히게 경사진 오르막길과 울퉁불퉁 패인 숲을 지나고 나서도 뒷바퀴가 진창에 몇 번 빠져
야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나는 사방을 에워싼 숲과 고요한 적막 그리고 숲에서 솟
아난 것처럼 언덕을 장식하고 있는 우리 집을 사랑했다. 언덕 아래쪽엔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촌네 가족과 함께 살고 계셨다. 동생과 나는 할머니가 준비해 놓으신 맛있는 음식과 따뜻
한 포옹을 기대하며 매일 할머니 댁에 들르곤 했다. 무엇보다 그곳에서 슬슬 올라가면 늘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는 우리 집이 있다는 사실이 언제나 내게 평안과 안정감을 주었다.
어머니는 작가다. 집 근처를 감도는 고요함과 아름다운 풍경이 참 잘 어울리는. 그런데
내가 열한 살이 되면서 숨가쁜 변화들이 일어났다. 우선 부모님이 이혼했다. 할머니, 할아버
지도 우리 동네를 떠나 플로리다로 가셨다. 게다가 사촌네까지 다른 동네로 떠났다. 그렇게
먼 곳은 아니었지만 당시 내 눈에는 사촌이 지구 끝으로 가버린 것만 같았다. 순식간에 어
머니와 나 그리고 동생만 남게 됐고, 내 마음 속에서 극심한 혼란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모두가 우리를 버리고 가버렸다는 절망감이 엄습했다. 그러나 나는 그 심정을 아무한테도
드러내지 않았다. 어머니의 생활도 힘겨워졌다. 당시 어머니는 하루에 여덟 시간에서 열두
시간을 컴퓨터와 씨름하고 팬 레터를 관리해야 했는데 집안일을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동
생이랑 나는 그저 쓰레기 치우기 같은 자질구레한 일들만 맡아서 할 뿐이었다. 어머니의 강
요에 못 이겨 방 청소도 하긴 했지만 식사를 준비하고 우리를 돌보는 일은 모두 어머니 몫
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동생을 괴롭히는 데 취미를 붙이
고 있음을 깨달았다. 동생은 나보다 세 살 아래였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나는 장남이라는 우
월감을 과시하느라 꽤 점잔을 뺐었다. 그런데 이제 동생을 괴롭히는 걸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었다. 동생의 옆구리를 푹 찌르거나 세게 꼬집어서 울려 놓아야 직성이 풀렸다.
나날이 장난은 심해졌고, 어느 날인가는 헤어 스프레이를 동생의 눈에 뿌려대기까지 했다.
동생은 집이 떠나가라 비명을 질러댔다. 어머니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 호되게 나를 꾸짖었
다. 어느새 나는 폭군으로 변해갔다. 마루나 부엌을 지나가다가 어머니의 재떨이나 꽃병이
눈에 보이면 박살내버리고 싶은 충동을 자제할 수 없었다. 뭔가를 부숴버려야 알 수 없는
답답증이 잠시나마 풀리는 것 같았다. 하루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제비꽃이 창틀 꽃병에 꽂
혀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꽃을 보는 순간 갑자기 설명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
어올랐다. 나는 미친 듯이 달려가 꽃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도대체 유리잔만 보면 깨뜨리
고 싶은 충동에 휘말려 참을 수가 없었다. 얇아서 깨지기 쉬운 것일수록 더 내 속을 뒤집어
놓았다. 몇 개인가는 실제로 들고 나가 벽을 향해 힘껏 내던지기도 했다. 그것만으로는 시원
치 않아서 돌멩이를 들고와 몇 번이고 내리치고 짓이겼다. 바삭바삭 가루가 될 때까지.
방에 가만히 누워 있어도 불끈 짜증이 치솟았다. 주먹이 근질거리고 발목이 뒤틀렸다. 근
질거리는 주먹으로 머리를 몇 번이고 짓찧어대기도 했고, 벌떡 일어나 벽을 향해 발길질도
했다. 그래도 성이 안 풀리면 밖으로 뛰어나가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아아.....
악!! 그러나 나는 어머니께 도대체 내가 왜 그런 짓을 하는지조차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어머니를 슬프게 만드는 일이 정말 싫었으니까. "뭐가 문제니?" 어머니는
묻고 또 물었다. 그러나 나 스스로도 답답할 정도로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아무 문제 없어요, 엄마." 그때마다 근신 명령이 떨어졌다. 어머니는 내가 말썽을 피우
지 않도록 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어떻게든 내 마음의 문을 열어보려고 노력했다. 그
러나 이상하게도 나는 말썽을 못 부리게 하고 내 할 일을 다하게 만드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좋았다. 하지만 어머니가 그 사실을 눈치채게 할 수는 없었다. 성적도 나날이 떨어졌다. 선
생님은 나를 유급시키는 문제를 놓고 고민 중이었다. 계속 낙제 점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모든 일이 귀찮은 나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마침내 어머니가 선생님과 면담약속
을 했을 때 나는 이번엔 끝장이구나, 생각했다. 어머니는 심각한 표정으로 상담실에서 나왔
다. "지금 당장 교감 선생님을 만나러 가자꾸나." 벼락이 떨어질 것이라고 잔뜩 주눅이 들
어있는 내게 어머니가 의외의 말을 했다. 어머니는 정말 그 길로 교감실로 들어가더니 다짜
고짜 따지기 시작했다. "제 아들이 국어를 낙제했다는 건 말이 안 돼요. 아들애 시험지를
제가 봤어요." 이럴 수가, 어머니가 나를 변호하다니! 교감 선생님은 어머니가 유명한 작
가이기 떄문에 하필이면 국어를 낙제한 아들이 창피해서 호들갑을 떤다고 생각하는 듯 했
다. 아니 그런 생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막무가내였다. "뭔
가 착오가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시험지를 제가 다 보관하고 있다고 하잖습니까? 착오가
밝혀지기 전에는 여기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습니다." 결국 어머니의 말이 맞는 것으
로 판명됐다. 담임선생님이 성적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차질이 생겨 평균 학점을 낙제 점수
로 잘못 매긴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썩 유쾌한 기분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 머리에는 온통 어머니가 나를 위해서 싸웠다는 생
각과 나를 믿어주었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집에 돌아오니 조용했다. 집 안에는 어머니와 나
단 둘뿐이었다. 새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머니가 부드러운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 얼굴에는 분노도, 의심도, 불신도 없었다. 다만 나를 사랑하는 미소
만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내 곁에 있었다. 나를 떠나지 않고 남아 있었다.
"엄마, 내가 뭘 잘못했길래 아빠가 떠난거죠?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리를 두고 떠난 것도
내 잘못이란 거 알아......," 채 말을 끝맺지도 못한 나는 순간 놀라고 말았다. 생각지도 않았
던 말들이 내 입에서 쏟아져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알았다. 내 안 깊은 곳에서 부인
하고 외면했던 사실을. 나는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사촌이 모두 내가 잘못해서 떠났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내가 아주 어린아이였을
때 처럼 포근히 안아주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니. 절대로 아니야. 우선, 아빠는 엄마와 헤
어지기로 한거야, 네가 아니고 엄마하고 말이지. 아빠는 널 사랑한단다. 다만 엄마와 아빠사
이가 안 좋아져서 헤어지는 게 낫다고 결정한 것뿐이야. 할머니, 할아버지도 그래. 두 분이
관리하기에는 그 집이 너무 컸고 여기서는 겨울을 보내기가 힘들잖아. 너 때문에 떠나신 게
절대로 아니야. 왜 그런 생각을 했니?" 눈물이 끝없이 솟구쳤다. 다 큰 녀석이 우는 게 창
피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지난 몇 달 동안 속으로만 삭이던 아픔이 눈물로 흐르면서
이상하게도 마음은 점점 홀가분해졌다.
내가 실컷 우는 동안 어머니는 내내 나를 껴안고 있었다. 그리고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지난 시간에 얽매여 사는 건 좋지 않단다. 매일 매일 숨겨진 기쁨을 찾도록 노력해보렴. 엄
마, 아빠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예전처럼 너를 사랑하고 있어. 네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그사랑은 변치않을거야." 어머니의 도움으로 나는 모두에게 버림받았다는 자괴감과
분노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다. 몰래 숨기고 있던 죄책감을 조금씩 놓아버리자 내 파괴적인
행동도 차츰 사라졌다. 나는 그날 오후 어머니와 함께 한 순간들을 한번도 잊은 적이 없다.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머니는 표지에 사진이 크게 실리고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명단에 이
름이 오르는 화려한 작가, 노라 로버츠로 불린다. 하지만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
구, 언제나 날 지지해주고 포용해주는 사랑하는 어머니일 뿐이다. 앤 아우프댐. 브링크
가족 찾기
양어머니가 내 동생 토미의 기저귀를 양동이에 내던졌다. 하지만 너무 짧게 던져서 새로
산 베이지색 카펫 위로 기저귀가 떨어지고 말았다. 양어머니는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나서
나를 쏘아봤다. "이 바보 같은 계집애. 너 때문이잖아!" 내가 뭘 어쨌다는 거지? 나는 양
동이나 양어머니를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순간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손바닥을 피하려고 해
봤지만 한 발 늦었다. 귀가 따갑고 뺨이 후끈거렸다. 그때 나는 5살이었고, 토미는 나보다
한두 살 아래였다. 우리는 일 년쯤 같은 양부모 밑에서 지내고 있었다. 한동안 할머니 할아
버지와 살기도 했는데 양육 분쟁으로 우리를 빼앗겼다고 한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
다. 이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토미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밖에 몰랐다.
그날 오후 초인종이 울렸다. 밖을 내다보는 나에게 초인종을 누른 여자가 말을 건넸다.
"안녕? 도나 진. 나 기억하니? 네 복지담당이잖아." 또 나를 데리고 가려고 왔구나. 온몸
에서 진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나는 즉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을 취했다. 침대
밑으로 숨어 버리는 일.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여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살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조용했다. 살금살금 복도로 나갔더니 복지담당자는 차 옆에 서 있었다. 토미를
안고. "잠깐만요. 잠깐만요!" 나는 문을 박차고 나가며 악을 썼다. "내동생 어디로 데려가
는 거예요?" 그러나 내 외침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차는 집 앞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마지
막으로 본 토미는 차 뒷유리에 얼굴과 손을 바짝 대고 있었다. 소리없이 내 이름을 부르면
서. 도나 진. 도나 진...,
그 뒤 며칠 동안 나는 베란다 밑의 더러운 흙투성이 공간으로 기어들어가서 앉아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괴물 같아서 아무도 원하지 않는걸까. 나는 몸을 앞뒤로 흔들면서 구겨진
치맛자락 뭉치를 가슴에 품고 소근거렸다. 나의 토미 나는 동생의 이름을 가슴 깊숙이 간
직하며 절대 잊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토미가 내게 남기고 간 선물이 있었다. 작고
까만 강아지 인형. 그 인형은 동생과 꼭 닮은 반짝이는 담갈색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양어머니가 이번에는 또 내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복지담당자가 현관에 서 있었다. 내가 그녀의 손을 잡고 떠나려는 순간 양
어머니가 내게서 토미의 장난감을 빼앗으려고 했다. 새끼를 보호하려는 짐승처럼 나는 강
아지 인형의 앞발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양어머니는 뒷발을 잡아당겼다. "안 돼, 안 돼. 내
꺼야." 얼마의 실랑이 끝에 퐁, 하는 소리와 지지직, 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그리고 강
아지의 배에서 하얀 솜이 삐져나왔다. 그 모습을 본 복지담당자가 양어머니에게 말했다.
"내버려 두세요. 오늘만큼은 얘가 울고불고 난리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 돼요." 속이 터진
강아지 인형을 안고 차까지 가는 동안 계속 울던 나는 문득 깨달았다. 이 집으로 다시는 돌
아오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또 한 가지 기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토미 보러
가는 거예요?" "아니, 새 집으로 가는 거란다." "거기 토미 없어요?" "응, 없어." "그럼
안 가요!" "가야 돼. 몇 주 전에 본 좋은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너를 입양하기로 했거든. 기
억나지? 그 집에 언니도 있었잖아. 너 언니 있으면 좋겠다고 그랬잖니." "토미 어딨어요?
토미랑 같이 갈래요. 제발요." "토미는 아빠한테 돌아갔어." "왜 나는 안 데려갔어요?"
"너는 입양됐으니까. 굉장히 운이 좋은 거야." 운이 좋다. 내 운명을 묘사하기엔 참 이상한
말이었다. 눈물로 희미해진 길거리가 빠른 속도로 지나갔고, 부상당한 강아지를 끌어 안은
채 나는 복지담당자를 따라 계단을 올라가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나를 맞은 아주머니는
빨간 볼에 철사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산타클로스 같은 그녀의 손이 내 머리를 향해 다가
오자 나는 몸을 움츠렸다. 곧이어 아픔이 가해질 것이라 생각하면서. 그런데 그 아주머니는
뜻밖에도 부드러운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물었다.
"그게 뭐니?" 나는 망설이며 강아지를 내밀었다. "괜찮아, 아가야. 우리가 강아지 고쳐
주자." 아줌마는 그 자리에서 반짇고리를 꺼냈다. 나는 내 소중한 인형을 꽉 움켜쥐었다.
"괜찮아. 안 뺐을게. 그럼 강아지 고치는 동안 네가 다리를 잡고 있을래?" 그것이 내가 입
양된 볼튼 가족과의 첫 만남이었다. 엄마, 아빠 그리고 언니 사라. 그들은 마음을 열고 사랑
으로 나를 대해준 진정한 가족이었다. 하지만 거절과 학대에 익숙한 상처는 하루아침에 아
물지 않았다. 나는 오랫동안 토미의 기억에만 매달렸다. 밤마다 꿈에 금발의 동생이 나타났
다. 우리는 피터팬과 웬디였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늙지 않는 소년과 그를 보호하는 누
나. 나는 토미에게 쪽지편지를 쓰기도 했다. 그리고 그 쪽지를 뒤뜰에 있는 라일락 나무 아
래 묻었다. '토미야, 사랑해. 내가 크면 너를 꼭 찾을게. 사랑하는 누나가.' 하지만 십대의
소녀로 성장하면서 나는 새 가족 속에서 행복을 찾게 됐다. 나를 보면 늘 웃어주는 엄마와
아빠, 비밀과 친구를 함께 나눈 언니. 토미의 존재는 점차 희미해졌다. 그러나 마음 깊이 가
라앉아 있는 자의식만은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어디에서 태어나고 내 친부모가 누구며 그들이 왜 나를 키우지 않았는지 알게 되
면 나아질지도 몰라. 나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엄마가 슬퍼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하
며 말을 꺼냈다. "엄마, 부탁이에요. 친부모가 왜 나를 버렸는지 얘기해 주세요." 엄마가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잠시 머뭇거렸다. "친부모? 갑자기 그걸 왜 묻냐?" "모르겠어요."
"엄마도 잘 모른단다." 엄마는 고개를 숙이고 안경 너머로 나를 쳐다보았다. "네 선조들이
영국에서 건너왔다는 것 정도밖에는 모르겠어. 어디 보자. 이모 할머니가 빅토리아 여왕의
시중을 들던 시녀였을거야. 그 이상은 잘 기억이 안나." "시녀가 뭔데요?" "시녀가 되려면
왕족의 혈통이 있는 집안이던가 공작과 결혼한 여자여야 될걸? 잘은 모르겠다." "우와!"
정말 멋진 이야기였다. 빅토리아 여왕의 시녀? 그렇다면 왕족인 가족들이 내 행방을 모르
는 게 아닐까? 그래, 그럴거야. 나는 사랑받지 못한 못된 아이가 아니었어. 나는 납치됐던
거야! 현대판 왕자와 거지처럼 말이지. 아니 공주와 거지. 그날부터 나는 말 그대로 공주가
되었다. 머리는 그레이스 켈리처럼 땋고 제일 멋진 옷만 입었다. 그리고 콧대를 한껏 세우고
거들먹거리며 걸었다. 가족들은 그것이 예민한 십대를 건너가는 다리 쯤이라 여기고 눈감아
주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19살이 되던 해 엄마는 내가 진실을 받아들일 나이가 됐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내 입양을 담당한 변호사에게 연락했다. 변호사의 기록에 따르면 생모 도로시는
웨이트리스였다. 18살에 나를 낳았는데 지금은 행방을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녀는 고아였다.
앵글로색슨 혈통을 지니긴 했지만 영국인 5세였고 왕족의 피는 한방울도 섞이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로 기록되어 있는 빅토르와 그의 누나 나탈리는 아직 생존해 있었다. 빅토르의
직업은 창문닦이였는데 나는 그의 친자식이 아니었다. 그는 임신 6개월 째이던 도로시와 결
혼했는데 도로시가 친아버지의 이름을 밝힌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출생한 지
1년 반만에 둘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다. 바로 토마스, 나의 토미였다. 그 뒤 빅토르는 이혼
소송을 걸었고, 나와 토미에 대한 양육권을 청구했다. 사유는 도로시의 빈번한 부재였다. 그
리고 토미와 나는 긴 법정 싸움 동안 보육원에 있어야 했다. 그러니 나는 공주가 아니었다.
행방이 묘연한 웨이트리스와 이름도 모르는 남자의 딸에 불과했다. 그날 나는 어두운 과거
와 절망감을 묶어서 내 안에 두른 철갑 안에 묻어버렸다. 그리고 20년 동안 과거의 기억으
로부터 도망다녔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내 성격의 파편들로부터 멀리 달아나고 싶었다. 겉
으로 드러난 유순함, 안으로 삭인 공격성과 반발심 그리고 신뢰에 대한 갈망과 상처에 대한
두려움.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 그러다가 내 모순투성이 성격에 반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
다. 그리고 남편의 부드러운 손길 덕분에 비로소 내 자긍심이 꽃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내 두터운 철갑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틈새로 토미에 대한 기억들
이 다시 스며들었다. 과거의 거울 속에서 동생의 앳된 얼굴이 떠오르기 시작한 어느 저녁,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토미를 찾아볼까봐요.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기꺼
이 나를 돕겠다는 남편의 말에 힘입어 나는 입양수속을 담당했던 아동복지기관에 연락해서
면담을 신청했다. 동생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끄집어내야 할지 막막했지만 기필코 알아내겠
다는 각오를 다졌다. 정말로 웬디라면 피터팬이 누나 없이 떠돌게 내버려두지는 않았을 테
니까. 나는 입양수속 감독관과 손바닥만한 사무실에 마주 앉았다. "이게 그 파일이에요.
당신과 토미에 관한 정보가 들어 있죠."
"봐도 돼나요?" "아뇨. 특정 정보를 제공할 수 없게 돼 있어요." "그럼 어떻게 정보를
얻을 수 있죠?" "그쪽이 질문을 할 수는 있어요. 그리고 그쪽에서 답을 맞추면 우린 거짓
말을 할 수 없죠." "그럼 됐네요. 내가 알고 싶은게 다 나올 때까지 스무고개 아니 마흔고
개, 백고개라도 하죠. 생모의 생년월일부터 시작합시다. 1월에서 6월 사이에 태어났나요?"
"아뇨." "7월에서 12월 사이?" "맞아요." 우리는 내가 원하는 날짜와 주소를 알아낼 때까
지 수백 고개를 넘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피터팬의 고향인 네버랜드를 직접 찾아나서기로
결심했다. 조부모부터 출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토미와 의붓 아버지의 거처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나는 몇 년 전에 도아가셨다는 토미의 조
부모님 장례를 담당한 장례식장으로 연락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도나 히고라고 하는데요.
그 집에서 제 조부모님들의 장례를 주관하셨더군요. 제 남동생 토미 미로노르카를 찾고 있
는데요. 혹시 기록에 최근친의 주소가 있나 해서요." "기록에 적힌 최근친의 이름은 나탈리
인데요." "제 고모예요. 고모 성과 전화번호를 불러주시겠어요?" "죄송하지만 개인적인 정
보는 제공할 수 없습니다." "아, 제발. 저한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몰라요. 부탁이에요."
"이러면 안 되는데..., 대신 제가 고모님이랑 통화해서 그쪽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숨
막히는 오후와 저녁이 지났지만 전화는 없었다. 다음날 오후 나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 소식을 듣고 싶으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무슨 뜻이죠?" "당신 고모님 자동응답기에
댁이 준 전화번호를 남겼더니 오늘 전화를 하셨더라구요. 댁이 뭘 원하는지 묻더군요. 동생
을 찾고 있다고 했더니 댁이 정상으로 보였는지 또 물었어요. 알코올이나 마약중독자로 보
이지는 않았냐고." 순간 나는 폭행당한 기분이었다. 나를 알지도 못하는 여자가 어떻게..,
"그래서 뭐라고 하셨어요?" "정상이라고 했죠." "그랬더니요?" "당신이 남긴 전화번호를
버렸다고 했어요. 나도 보관하지 않았는데." "그럼 다시 불러드릴께요." "잠깐만요, 아직
얘기 안 끝났어요. 그 사람이 다시는 자기를 귀찮게 하지말라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 다음엔
댁 동생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당신 전화번호를 버렸다고 하니까 아주 흥분하더군요."
"네?! 그럼 동생 전화번호는 받아 적으셨어요?" "아뇨, 그 생각을 못했어요. 근데 댁 전화
번호를 적은 메모지 바로 뒷장에 눌린 자국이 남았길래 연필로 살짝 색칠해서 알려줬죠. 마
지막 숫자 두 개가 흐릿했는데, 제대로 불러줬는지 모르겠어요."
아, 가까스로 토미와 내가 서로를 향해 손을 뻗었는데 겨우 장의사가 연결해주는 전화를
통할 수밖에 없다니. 나는 미친 듯이 궁리하다가 말했다. "조부모님 파일에 제 전화번호를
적어놓으면 안 될까요? 동생이 전화하면 불러줄 수 있잖아요." "죄송합니다만 히고 부인,
저는 지금 엉뚱한 가족 문제에 끼여든 느낌이거든요." "제발. 동생과 제가 지금 서로를 찾
고 있다는 걸 아시잖아요."
"죄송합니다." 일이 쉽게 풀릴 것이라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지푸라기
더미에서 바늘을 찾다가 드디어 가까이 다가섰는데, 바늘에 찔릴 만큼 가까워졌는데.......,
그날 밤 언니네 집에서 머물고 있던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내내 전화기 옆을 지켰다.
언니가 친구들과 함께 외식하러 가자고 했지만 도저히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그럼 평생
전화기 옆에 붙어 살거니?" "그럴지도 몰라." "참, 답답해서. 도나, 현실을 직시해. 전화는
안 올거야, 그러고 있으면 울기밖에 더 하겠니?" 그 말에 나는 언니를 따라 가서 저녁 내
내 비참한 심정으로 앉아있었다. 그리고 자정이 넘어 집으로 돌아와서는 곧바로 방으로 향
했다. "도나, 이리 좀 와봐." 잠시 후 언니가 외치는 소리에 부랴부랴 건너갔더니 언니가
자동응답기의 메시지 버튼을 말없이 가리켰다. 버튼을 누르자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방을
가득 채웠다. "거기가 도나 진이 있는 곳이면 제발 저한테 전화해 달라고 전해 주세요. 저
는 토마스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 동생의 목소리. 굵은 톤의 그것은 분명 토미의 목소
리였다. 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그러자 언니가 내 손을 붙잡았다. "너 흥분한 건 이해하겠
는데, 지금 새벽 1시 다 됐어. 아침까지 기다렸다 해." 조급한 마음을 억누르며 나는 침대
에 누웠다. 그리고 금발머리 어린 소년과 방금 응답기에서 들은 목소리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래, 넌 이제 성인이지, 어른이구나. 세상에, 알아볼 수 있을까? 머리는 아직도 금발이니?
나랑 조금이라도 닮았니? 한숨도 못 잔 채 나는 그 밤을 꼬박 세웠다. 그리고 날이 밝자마
자 전화를 걸었다. "도나 진, 도나 진........, 그동안 어딨었어?" 나는 사랑하는 동생의 목소
리를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 지그시 눈을 감았다. "네버랜드에 있었어, 토미. 네버랜드에서
널 기다리고 있었어." 토미가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나는 그렇게 대답했
다. 네버랜드에서 꼬마 동생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D.J.히고
아일랜드 요정과 앵초꽃
20세기가 성년에 접어들고 제1차 세계대전이 막 끝날 무렵 우리 가족은 아일랜드로 건너
갔다. 나는 8살때부터 10살까지 3년을 그곳에서 지냈다. 당시 아일랜드의 정세는 어지러웠
다. 영국에 맞서 혁명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군인이니 혁
명이니 전쟁이니 하는 따위는 나 같은 어린아이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봄이
면 클로버와 노란 미나리아재비가 목초지에 푸르름을 수놓는 아일랜드를 사랑했다. 안개 자
욱한 날 잠깐씩 해가 비집고 나오면 하늘은 온통 금빛으로 물들곤 했다. 내가 다니던 수녀
원 부속학교의 암갈색 석조건물이 드리운 컴컴한 그림자 속에서도 달콤한 공기가 내 뺨을
어루만졌다.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것은 토탄불이 이글거리는 벽난로 옆 식탁에 둘러앉아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였다. 이야기속 아일랜드는 요정들이 가득한 나라였다. 폐허
와 안개와 초자연적인 장소들이 빚어내는 마술적인 여운이 신비롭게 감도는 땅이었다. 할
머니는 특히 예쁜 아이를 훔쳐간다는 요정 얘기를 자주 들려주었다. 한번 납치당한 아이들
은 지하왕국으로 끌려가서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가 단순한 전설이 아니길 빌고 또 빌었다. 왜냐하면 내 골치를 썩이는 관
심사는 아일랜드 혁명이 아니라 아직 아기인 여동생 베티와 아장아장 걷는 남동생 존이기
때문이다. 아직 어린 내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던 유럽의 전통 가운데 하나는 맏이라면
무조건 동생들을 돌봐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동생들 데리고 나가서 놀아라." 할머니를 도
와 집안 청소를 하며 어머니는 늘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동생들은 내게 저주스러운 짐덩
어리일 뿐이었다. 한가하게 몽상이라도 할라치면 끊임없이 칭얼대서 방해하고, 책 좀 읽자면
놀아달라고 보채기 일쑤였다. 그 녀석들만 없다면 내 인생은 정말 환상적일 것 같았다. 그래
서 나는 제발 작은 요정들이 나타나서 동생들을 데려가길 기도했다. 그것도 아주 멀리 말이
다.
아일랜드에 정착한 지 1년 쯤 지난 어느 날, 그날도 나는 동생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와야
했다. 나는 이제 아주 자세가 잡혀 있었다. 베티는 옆구리에 걸치고 존은 손목을 잡으면 되
는 것이다. 상쾌한 7월의 아침이었다. 오랜만에 활짝 갠 파란 하늘에는 구름이 둥둥 떠다녔
다. 나는 무릎까지 올라오는 앵초꽃 사이를 혼자서 거닐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동생들과 함께 있는 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내가 잠깐 한눈을 파
는 사이 남동생이 출입금지구역인 교회묘지 담장 쪽으로 아장아장 걸어갔다. "말!" 존은
늙은 느릅나무 아래서 풀을 뜯고 있는 라일리 아저씨의 암말에 빠져 있었다. "조 ~ 온!"
나는 소리를 버럭 지르며 동생을 붙잡았다. "말 볼거야, 말!" 동생이 발길질을 해대며 악
을 썼다. 바로 그 순간 저 멀리 철도 옆 비탈을 기어오르고 있는 베티가 눈에 들어왔다. 나
는 존을 놓고 베티에게로 달려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순간 존은 기다렸다는 듯이 묘지 안
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어딜 가." 나는 존을 질질 끌고 베티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놔,
놔!" 존이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철도에 도착해 보니 베티는 벌써 건너편으로 가고 없
었다. 나는 존을 끌고 철도를 건너 부랴부랴 베티를 따라잡았다. 베티의 몰골은 이미 엉망이
었다. 하얀 새 드레스는 진흙투성이었고 스타킹 한쪽은 찢어져버렸다. 어머니한테 벼락을 맞
을 게 뻔했다. 꼼지락대고 있는 베티를들어올려 옆구리에 끼려고 했더니 베티가 내 머리카
락을 움켜쥐고 안간힘을 잡아당겼다. "아야, 아야야!" 어쩔 수 없이 나는 그 골치덩어리를
떨어뜨려 버렸다. 어느 틈에 존도 내 손아귀를 빠져나가고 없었다. 결국 두손 두발 다 들고
말았다. "그래, 꺼져, 없어져 버리라구!" 그렇게 소리치며 나는 동생들과 반대방향으로 성
큼성큼 걸어갔다. 그런데 그 순간 뭔가 움직이는 물체가 언뜻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남자 네 명이 들판을 가로질러 이쪽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세
명은 쫓는 자들이었고 한 명은 쫓기는 자였다. 쫓는 사람들이 군인이었는지 경찰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쫓기는 사람의 정체도 알 수 없었다. 아무튼 바로 코앞에서 숨가쁜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서라! 서지 못 해!" 세 사람이 악을 쓰면서 달려왔다. 도망자는 어느새
내 곁을 바람같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였다. 한 명이 총을 들어올리는 모습이 보임과 동
시에 탕, 하고 요란한 총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옆의 두 사람도 모두 미친 듯이 총을 쏘아대
기 시작했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꼼짝할 수가 없었다. 총알이 귓전을 스치며 휙휙 날
아갔다.
"베티! 존!" 순간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진 베티가 데이지 덤불 밖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
밀었다. "총 가꼬 노꺼야." 존은 총 든 사람들을 향해 쫄랑쫄랑 걸어갔다. "안 돼!" 나는
필사적으로 외치며 잽싸게 동생들을 잡아 수풀 속으로 끌어내렸다. 머리 속에는 오로지 동
생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총알 하나가 또 쌩하며 날아갔다. 나는 베티의 보
드라운 머리카락에 얼굴을 파묻고 터져나오려는 비명을 참았다. 우리는 죽고 말 것이다. 도
대체 저 사람들은 우리가 보이지도 않는 걸까? 무사움에 휩싸여 정신이 없었지만 위험을 무
릎쓰고 살짝 올려다 보았다. 불과 20M 떨어진 곳에 도망자가 서 있었다. 타앙 - ! 또 한
번의 총소리. 그 도망자의 몸에서 후욱, 큰 숨이 빠져나갔다. 윗도리가 금세 새빨간 피로 물
들면서 그는 쓰러졌다. 그러자 저 쪽에서 추격자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죄도 없었지만
공포에 질려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어댔다. 그러나 무엇보다 동생들을 숨겨야 했다. 발견
하면 우리도 죽일 것이 분명했다. 나는 수풀 깊숙이 더 낮게 웅크렸다. 참으로 기나 긴 시간
이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문득 사방이 조용해 진 걸 느꼈다. "지금이야, 가자." 나
는 내 팔 아래 숨 죽이고 엎드려 있던 동생들을 끌어당기며 속삭였다. 그렇게도 말을 안 듣
던 동생들이 이번만큼은 순순히 내 말을 따랐다.
우리는 엉금엉금 기어 마침내 집과 가까운 돌담에 다다랐다. 나는 베티의 엉덩이를 밀어
올려 담 너머로 떨어뜨렸다. 그리고 초인적인 힘으로 존을 들어올려 함께 담을 넘었다. 그
끔찍한 현장에서 벗어나자마자 우리는 집으로 날아갔다. 무사히 집에 도착하자 나는 숨을
헉헉거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베티는 손가락 끝이 빨개지도록 내 손가락을 움켜쥐고 있었고,
존은 허리에 매달려서 내 팔 밑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그날 내가 늘 소원했던 대로 동생
들이 내 눈앞에서 사라질 뻔했다. 하지만 총알이 귀 밑으로 날아가던 그 순간, 나는 내가 동
생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아무리 말을 안 듣고 아무리 말썽을 부려도 베티
와 존은 내 소중한 일부였던 것이다. 그것은 한여름 앵초꽃 들판에서 얻은 사랑이었다. 메
리 세실리아 워프
사랑한다고 말했더라면
공습이 한창이던 1940년, 나는 런던의 구세군 병원에서 태어났다. 폭격 속에서 나를 낳은
어머니 곁에 아버지는 없었다. 공군 조종사로 근무중인 아버지는 1년에 한 번 얼굴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덕분에 나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야 했다. 우리는 런던 중심
가에 있는 주택가 아파트 1층에 살았다. 아주 가끔씩 아버지가 들렀다 가긴 했지만 내 인생
엔 어머니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그 좁고 추운 아파트에서 유일한 빛이었다. 공원에 오리 구
경하러 갈 때는 친구였고, 공습 사이렌이 울릴 때는 보호자였다. 밤이면 전기가 끊겨 밖으
로 나갈 수도 없었다. 침대에 누워서 보내는 것이 최고인 우울한 저녁이면 우리는 온기를
잃지 않으려고 기를 쓰며 어둠 속에 누워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등을 꼭 껴안았다. 그때마
다 어머니는 따뜻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넌 내 작은 난로란다." 그나마 요란한 비행기 소
리나 폭탄이 떨어지면서 나는 폭탄음 때문에 실컷 잠들 수도 없었다. 그래서 가끔은 밖으로
나가 서치라이트가 밝은 광선을 휙휙 돌리는 가운데 총격전이 벌어지는 광경을 구경하기도
했다. 한번은 불발탄이 뒤뜰에 떨어져 침실 창문과 정원 창고를 날려버린 적도 있었지만 내
곁에 어머니가 있는 한 나는 마냥 행복했다. 참전한 남편을 둔 아내들은 푸른 제복을 입고
오토바이를 탄 심부름꾼을 가장 두려워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실종이나 사망 소식을 전하는
침울한 일이 그 사람의 의무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나는 어머니가 노란색 전보를 쥐고 부엌에 앉아 어깨를 들먹이며 우는 모습을 목
격하고 말았다. 어머니의 사랑하는 남편이자 나의 아버지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갔다. 당
시 어머니의 뱃속에는 여동생이 아무것도 모른 채 세상으로 나올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
데....., 나는 죽은 전쟁영웅의 아들이었다. 어머니와 할아버지, 할머니는 크나큰 상처를 받고
끝없는 슬픔에 잠겼다. 그리고 내내 아버지에 관한 추억과 사진 그리고 눈물 속에서 여생을
살았다. 영원히 다시 볼 수 없는 그의 준수한 외모, 인격, 꿈 그리고 인행을 안타까워 하시
면서. 이제 할아버지, 할머니의 관심은 온전히 나에게로 옮겨졌다. "어쩜 이렇게 해리랑
똑같니." 내가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칭찬하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사랑 때문에
버릇이 없어질 정도였다.
그 무렵 여동생 앤이 유복자로 태어났다. 덕분에 나는 5살 나이에 어머니의 친구이자 조
수이며 동생을 보호해야 하는 꼬마 가장이 되었다. 나는 막연한 책임감을 느끼면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거 내가 할게요, 엄마. 그건 남자가 할 일이에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자라면서 더 크게 내 가슴 속에 자리하기 시작했다. 최고 조종사, 겁없는 사나이, 조국을 위
해 유니폼을 당당하게 입은 멋쟁이....,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게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아버지와 똑같이 되고 싶었다. 세월은 흘러갔다. 그런데 어머니에게 다른 남자 어니스트가
생겼다. 교외로 이사하던 날, 나는 한번도 본 적 없는 남자가 어머니의 친구라며 따라오는
걸 도저히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었다. 어머니와 어떤 사이인지 알 수 없지만 나와
동생에게 그는 단지 '아저씨'에 불과했다. 나는 아저씨가 무조건 싫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처럼 나타나서 어머니의 관심을 빼았아갔고, 나는 뒷전으로 밀려난 기분이었다. 내 눈에 어
니스트는 감히 아버지의 자리를 넘볼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는 전쟁영웅이 아니
었으니까. 아저씨가 건강이 몹시 안 좋아서 군 면제를 받았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어쨌든 나는 아저씨의 말을 듣지도 않았고 인정하지도 않았다. '작은해리'는 어니스
트라는 존재 자체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머니가 중간에서 평안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
지만 내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는 어니스트의 출현으로 분노와 불만 그리고 혼란으로 가득차
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우리 가족을 하나로 묶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휴가 때마다 우리
를 바닷가로 데리고 나갔다. 암벽이 많은 해변에서 낚시를 하고 근처 목장에서 가져온 신선
한 크림을 먹었다. 밤에는 침대에 누워 캄캄한 어둠 속에서 깜박깜박 불을 밝히는 등대를
지켜보았다. 하지만 아저씨와 함께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나는 아버지의 자리를
차지해버린 그를 용서할 마음이 도저히 생기지 않았다. 18살이 되자 나는 집을 떠나 미국
으로 건너갔다. 새로운 인생, 새로운 친구, 새로운 경험이 불러일으키는 흥미로움에 파묻혀
성장기의 시련도 잊혀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하여 내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그동안에도 아저씨는 자잘한 글씨로 집안 소식을 가득 적은 편지를 보내왔다. 우리 집 개가
늙어가는 이야기, 여동생의 고등학교 졸업식 이야기, 어머니와 함께 꾸민 정원 이야기, 작은
돌담을 지었다는 이야기, 파란 꽃과 온갖 색깔의 향기로운 장미를 가장자리에 심어서 꾸민
안뜰 이야기, 여름이면 모두 정원으로 나와 담소하고 담배 피우며 이탈리아 산 친치노 술을
마신 이야기...,
아저씨의 편지들은 하나같이 재치 있고 시적이었으며 어머니에 대한 숨길수 없는 사랑이
잔잔히 깔려 있었다. 어머니와 아저씨는 서로 의지하며 지내는 친한 친구였다. 둘은 진정한
부부였다. 나는 가정을 이루고 아내와 다섯 명의 자식을 부양하는 책임감에 질식해버릴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힐 때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아저씨가 나와 여동생 그리고 어머니에게
얼마나 관대하고 친절한 분이었는지 말이다. 아저씨는 나 때문에 힘들었다는 사실을 단 한
번도 내색하지 않으셨다. 사실 원망 같은 걸 할 수 있는 성품도 아니었다. 아저씨 마음에는
나를 비롯한 우리 가족의 안녕과 행복에 대한 기원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이들을 기르면서
나는 문득문득 내가 지난 날 아저씨가 내게 준 교훈들을 내 아이들에게 반복해서 들려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스로 아버지 노릇을 하면서 아저씨의 선한 인격을 그대로 따라
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뒤늦게 싹트기 시작한 애정을 차마 표현하지 못했다. 내가 마지
막으로 어니스트를 보았을 때 그는 몸져 누워 있었다. 몹시 야위고 창백한 모습이었다. 아
저씨는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고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마음 같
아서는 아저씨의 손목을 따뜻하게 잡고 위로하고 싶었지만 선뜻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무정하게도 나는 끝내 아저씨를 그 상태로 두고 그냥 나와 버렸다.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게
됐다는 마음을 한 조각도 표현하지 않은 채 침묵만 남기고 떠나온 것이다. 미국으로 돌아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어머니가 편지를 보내 왔다.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생전 이렇게 힘든 편지를 써본 적이 없구나.....,' 아저씨가 세상을 떠난 뒤 나는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장면을 떠올리며 혼자 슬픔에 잠겼다. 아저씨가 피아노 앞에 담배를 물고 앉
아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어머니를 바라보며 '트랄라의 장미'를 부르는 모습이었다. 그녀의
머리결은 아름다웠소 여름의 장미처럼 나를 사로잡은 것은 그녀의 아름다움만은 아니었소
사모하는 눈동자 속에 담긴 진실 그것이 나를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소 나의 메리, 나의
트랄라의 장미 불행히도 시간을 거꾸로 되돌릴 방법은 없다. 나는 아저씨가 떠난 다음에야
그가 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 깨달았다. 고집을 세우느라 표현하지는 않았지
만 내가 아저씨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꼭 한번만 직접 말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너
무 늦어버린 소망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야말로 진정 영웅이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평생
바르게, 도덕적으로, 희생하며 사는 삶을 사는 이제 또 어디서 만나게 될까. 만날 수나 있을
까. 어머니는 아저씨가 떠난 뒤로 27년을 더 사셨지만 그 어떤 남자와도 인생을 함께 하지
않았다. 어니스트 아저씨와의 추억만으로도 어머니의 삶은 행복했으니까. 피터 칼리
촌뜨기 울 엄마
흔히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한다. 자식은 다 똑같이 사랑스럽다
는 뜻이다. 그리고 부모 자식간에는 흉허물이 없다고도 한다. 그러나 내게는 그게 다 천만
의 말씀이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통하는 사람이 있고 어쩐지 안 맞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
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나는 다섯 남매 가운데 둘째이자 장녀였고, 우리 식구 가운데서 나
와 가장 주파수가 잘 들어맞는 사람은 아버지였다. 그건 아버지 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
리는 너무나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에 어머니와 나는 도통 안 맞았다. 끊임없는
의견 차이, 불화, 반항, 경멸...,
나는 어려서부터 운동을 잘 했고 스포츠를 좋아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어머
니는 누가 발로 공을 차는지 손으로 공을 차는지조차 몰랐다. 십대 시절, 나는 패션과 화장
품에 푹 빠진 전형적인 사춘기 소녀였다. 내가 잡지 <보그> 표지에서 방금 걸어나온 것처
럼 보이지 않는 날은 기분 잡친 날이라는 뜻이었다. 물론 아버지도 옷 사는 일이라면 돈
아까운 줄 몰랐고, 나무랄 데 없는 멋쟁이였다. 아버지는 가끔씩 엄마 몰래 음모를 꾸미듯
속삭였다. "가자, 이쁜아. 쇼핑몰에 가서 우리 이쁜이가 입을 만한 거 있나 찾아보자." 반
면 어머니는 지나치게 검소했다. 옷이란 그저 몸을 가리기 위해 존재하는 천조각쯤으로 치
부했다. 멋도 스타일도 없었다. 하긴 멋을 제대로 낼 수도 없었다. 옷장에는 기껏 정장 두
어 벌에 셔츠 댓장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그에 비하면 내 옷장은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드레스, 스커트, 블라우스, 스웨터가 색깔과 계절별로 걸려 있었
고 신발도 정장, 캐주얼, 스포츠 별로 분류되어 정리돼 있었다. 물론 모두 깨끗하게 세탁하
고 다림질할 것들이었다.
나는 또 청결광이기도 해서 시간만 나면 씻고 닦았다. 그런 반면 어머니는 정오가 다 되
도록 세수도 않고 잘만 견뎠다. 작은 시골 마을의 변변치 않은 가정에서 자랐다는 어머니는
한마디로 촌뜨기였던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내가 아버지를 더 좋아할 수밖에. 나는 아버지
와 공유한 공통점이 너무 좋았다. 스포츠와 오락 마니아에 세심한 성격, 유행에 민감한 세련
된 감각, 쓸 때 아낌없이 쓸 줄 아는 기분파...., 날이 갈수록 나와 아버지 사이에는 동지애처
럼 굳건한 유대감이 생겨났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와 나는 뭔가 좋고 유쾌한
일에서 차츰 어머니를 제외시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가족 전체가 어머니를 소외시키는
것도 같았다. 그런 현상은 하와이에서 보내는 휴가 때 가장 분명하게 드러났다. 여름만 되
면 하와이로 가서 실컷 즐기다 오는 게 우리 가족의 연례행사였다. 아버지나 우리들에게 바
닷가는 낙원 그 자체였다. 하루종일 수영하고 파도를 타고 일광욕을 즐겼다. 그러나 어머니
는 햇볕이나 바다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호놀룰루 바닷가에서 여름을 난다는 게 기껏 야
자나무 아래 숨어서 책이나 읽는 정도였다. 미스터리, 스릴러, 요리책, 교양서적..., 나무 아래
앉아 어머니가 온화하게 해치운 책들이다. 그러니 어머니를 무시할 수밖에. 나는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띌 때마다 속으로 빈정거렸다. 그럴 거면 도서관이나 가실 일이지 뭣하러 하
와이까지 따라오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단 말이야. 아빠처럼 멋진 양반이 어
떻게 저런 엄마랑 결혼했지? 어머니가 격려해 주는 건 별 감흥도 없었다. 이를테면 어머니
는 미술에 대한 관심이나 미적 감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내가 미술에 관심을
보이자 나를 갤러리에 데리고 다녔고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자 열광적으로 나를 격려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머니의 태도는 형식적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어머니가 나를
안아주고 다독거려 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것은 자연의 질서처럼 무감한 것이었다. 아버
지를 소리없이 내조하고 나직하게 조언하는 모습은 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나는 결혼을 해서 멀리 보스턴에서 살게 되었다. 이제 어머니와 나 사이에는 정신적인 거리
감에다 물리적인 거리까지 존재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일년에 기껏 한두 번밖에 만나지 않
았다.
첫 아이의 출산을 며칠 앞 둔 때였다. 이상하게도 아이를 기다리는 나보다 어머니가 기뻐
서 어쩔 줄을 몰랐다. 하루에 다섯 번도 넘게 전화하는 어머니 목소리에는 전에 없던 생기
까지 감돌았다. "좀 어떠냐? 발길질은 안 하니? 누워서 편하게 보내야 한다." 그리고는 생
각지도 않았던 통고를 해왔다. "아버지랑 상의했는데 내가 거기 가서 널 돌보기로 했다. 산
후조리할 동안 계속 있을 거야. 적어도 2주 정도는 말이다." 적어도 2주! 어머니랑 2주 동
안 뭘 하란 말이지? 남편은 낮에는 학교에 있고, 밤에는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는
원룸이나 다름없는 조그만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 비좁은 공간에서 어머니와 일대 일로
접촉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출산일이 되어 나는 제
왕절개 끝에 아이를 낳았다. 너무 힘들어서 그런 고통을 당하고도 살아남은 게 이상할 정도
였다. 하지만 아들을 보는 순간 그 고통에 대한 보상은 충분히 받고도 남았다는 걸 알았다.
빨갛고 쪼글쪼글한 얼굴에 짙은색 머리카락을 한 아기를 보며 사랑의 감정에 압도되고 말았
다. 그때 병실 문이 열리더니 약간 뚱뚱한 몸에 낯익은 초록색 정장 차림을 한 어머니가
들어왔다. 장신구 하나 없는 옷차림에 입술에는 엷은 색 립그로스를 바른 듯 만 듯 했다. 희
끗희끗한 머리는 짧게 잘라 파마하고 안경을 콧대에 걸친 모습이었다. 한번도 스타일이 바
뀐 적 없는 각진 네모 안경은 언제 봐도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어머니는 한아름 안고
온 선물들을 침대에 쏟아 놓더니 아기와 나를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포옹으로
감쌌다. 바로 그때였다. 뜻밖에도 나는 태초보다 오래 전부터 촌스럽기 그지 없는 어머니와
연결돼 있었다는 느낌에 휩싸였다. 대대손손 이어져 내려온 연속성의 끈으로. 어머니는 아
기와 나를 너무 세게 안았다 싶었는지 머뭇머뭇 물러섰다. "괜찮아요, 가지 마세요." 내가
속삭였다. 어머니가 침대에 앉아 아기를 안으면서 말했다. "아이고, 어쩌면 이렇게 예쁠까.
어쩜 이렇게 완벽할까." 어머니는 금세 아기와 사랑에 빠져 있었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완
전히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라고 당신이 은근히 소외당하고, 심지어 무시당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가족 사이
에 공통점이 있고 없고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문득 이제껏 내가
중요하게 여겼던 것들이 하찮게 변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동안 키워온 어리석은 우
월감에 수치심을 느꼈다. 그토록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어머니는 바로 사랑의 화신이었다. 바
보는 바로 나였다. "사랑해요, 엄마." 나를 돌아보는 어머니의 눈동자 속에는 지혜와 사랑
이 어려 있었다. 그리고 이제껏 있었던 일들에 대한 용서가 깃들여 있었다. 원망이나 분노나
불신의 감정은 찾을 수 없었다. 그저 아기와 내 위로 강물처럼 흐르는 열린 사랑밖에 없었
다. "나도 널 사랑한단다." 캐롤린 킴벌리 해들리
할머니의 눈동자
내가 아주 어릴 적 12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따라 어머니가 온종일 부산하게 움직였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깨끗하게 세탁한 식탁보를 다림질했다. 시
장에도 몇 차례씩이나 다녀왔다. 밀가루나 과일을 사오기도 했고 꽃을 한아름 안고 오기도
했다. 그리고 벽장 속에 있던 장식 촛대를 꺼내 마른 행주로 먼지를 닦아냈다. 부지런히 움
직이는 어머니의 얼굴에 온종일 즐거운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10살 안팎이던 우리 세 남매
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머니의 신바람이 궁금하기 그지없었다. "오늘이 누구 생일이에
요?" 어머니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손님 와요?" "아아니!" "파티해요?"
"글세.....,"
어머니는 좀처럼 속내를 털어놓지 않았다. 우리는 하루 내내 어머니의 꽁무니를 따라다니
며 고개만 갸웃갸웃했다. 그러는 동안 밤이 왔고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기다렸다
는 듯이 근사한 식탁을 꾸몄다. 은빛과 장미빛으로 치장한 식탁에서 꽃향기가 은은하게 피
어올랐고, 그 한 가운데에는 새양초를 꽂은 촛대가 놓였다. 그 둘레로 어머니가 준비한 케이
크며 쿠키가 접시마다 먹음직스럽게 쌓여 있었다. 그리고 우리 세 남매 앞에 있는 그릇 옆
에 리본이 달린 작은 꾸러미 하나씩이 놓였다.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우리들 마음을 들뜨
게 만드는 분위기임에는 틀림없었다. 마침내 어머니가 환하게 촛불을 밝히며 입을 열었다.
"자, 즐겁게 먹자꾸나. 그리고 막내야." 의자에 앉아 다리를 대롱거리고 있던 막내가 어머
니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네가 읽어 줄래?"
어머니가 내민 건 동화책이었다. 8일 동안이나 꺼지지 않고 타오른 기적의 기름에 관한
옛날 이야기가 실려 있는 동화책, 이제 막 글자를 배운 막내가 더듬더듬 이야기를 읽기 시
작했다. "옛날...... 어느 나라에..........8일...........동안이나.........," 우리는 점차 어머니가 이끌어
가는 분위기에 빨려들어갔다. 식탁에는 맛있는 음식이 그득했고, 책을 읽는 막내의 목소리는
나른한 행복감을 퍼뜨리고 있었다. 너무 밝지도 너무 어둡지도 않은 촛불이 주홍색으로 실
내를 물들였고, 창 밖에는 새하얀 눈이 소복소복 쌓이고 있었다. 책을 다 읽자 어머니는 우
리들에게 팽이의 회전에 따라 승부가 나는 드레이델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게임
에서 이긴 사람에게는 금색 호일로 싼 동전 모양의 초콜릿을 상품으로 주었다. 도대체 무슨
날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만 빼고는 모든 게 흡족했다. 아니, 마술의 세계에 들어선 것처럼
황홀했다.
행사의 마지막은 어머니가 준비한 선물 꾸러미를 개봉하는 것으로 장식했다. 크리스마스
도 아닌데 생각지도 않았던 선물을 받고 우리는 탄성을 질렀다. 어머니가 그런 우리를 흐
뭇하게 둘러보다가 말했다. "앞으로는 해마다 오늘이 되면 이렇게 우리끼리만 축제를 할
거란다. 엄마가 우리 가족 축제의 이름도 지었어. '파이팅 데이', 어때?" "좋아요!" 우리는
손바닥으로 식탁을 두드려가며 소리쳤다. "파이팅 데이는 엄마가 너희들에게 주는 영원한
선물이야. 지금은 우리가 날마다 함께 지낼 수 있지만 머지않아 이곳 저곳으로 흩어지게 된
단다. 너희들이 자라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또 아이를 낳으면 언제까지나 가까울 것만
같던 가족들의 사이도 점점 멀어지겠지. 하지만 이날만 기억한다면 우리가 서로를 잊는 일
은 결코 없을거야. 알겠니?" "네!"
우리는 무조건 소리를 질렀다. 마냥 신나고 행복하기만 했으니까. 어머니의 말씀은 맞았
다. 세월은 빠르게 흘러갔고 우리는 자랐다. 각자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었
다. 또 우리 자식들이 자라서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었다. 그렇게 몇 십년이 거짓말처럼 지
나갔다. 그 사이 많은 것이 변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준 선물, 파이팅 데이만은 변하지 않았
다. 해마다 12월이 오면 뿔뿔이 흩어진 우리 가족들은 어머니께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날처
럼 촛불을 밝히고 식탁을 꾸미고 똑같은 동화책을 읽었다. 드레이델 게임을 왁자하게 즐기
고 상품으로 금박 호일로 싼 초콜릿을 탔다. 새 양초 한 자루가 다 타도록 동심으로 돌아가
얘기하고 노래 불렀다.
작년 12월에도 파이팅 데이는 어김없이 다가왔다. 이제 92세가 된 어머니는 4대에 걸친
40여명의 자손들에 둘러싸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어머니는 노환으로 시력을 잃고 말았다. 간
신히 빛과 어둠만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인 어머니는 안타깝게도 자손들이 선물을 풀어보는
광경을 볼 수 없었다.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나 포장지가 바삭바삭 벗겨지는 소리
는 들을 수 있었지만 말이다. 나는 조그맣게 웅크린 어머니 주위를 감도는 쓸쓸함을 아픈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내 손녀딸 캐시가 소파에 앉은 할머니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할머니의 손을 잡고 할머니가 손가락으로 포장지와 리본을 만지면
서 선물을 풀 수 있도록 도왔다. 캐시는 선물을 할머니 눈 앞으로 들어올려 주며 말했다.
"할머니. 이건 조그만 토끼 인형이에요. 하얀 솜털이 보송보송해요. 만져 보시고 냄새도 맡
아보세요." 그러자 다른 손녀딸 로이스와 조카딸 수지도 그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머지
식구들도 모두 자기 선물들을 들고와 어머니를 에워싸며 그 사랑스런 의식에 동참했다.실내
엔 촛불보다 따사로운 기운이 가득 흘러넘쳤다. 작은 드라마가 진행되는 3시간 동안 아이들
은 할머니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오후 내내 긴 여운처럼 어머니를 둘러싸고 있던 슬픔은
사라져버렸다. 어머니는 예전처럼 곧은 자세로 고쳐 앉았다. 새처럼 경쾌한 손놀림과 환한
미소 속에서 어머니는 다시 가족 축제의 중심이 되었다. 내 아이들이 이 다음에 어떤 모습
으로 변해가든 나는 그들이 했던 빛나는 일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밤, 아이들은 우리에
게 아주 특별한 선물을 주었다. 어머니에게는 다시 볼수 있는 눈을 주었고 나에게는 가슴
가득한 사랑을 심어 주었다.
60년 전, 어머니의 말씀대로 파이팅 데이는 우리에게 영원한 선물이 되었다. 이날을 기억
하는 한, 우리 가족 사이에서 잔잔히 타오르는 사랑의 기름은 8일이 아니라 8천년, 8만년이
지나도 꺼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소풍 날짜를 꼽는 아이처럼 설레며 파이팅 데이를
기다리고 있다.
S. C. 채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을
1970년대 후반, 나는 필라델피아에서 컴퓨터 서비스 업체의 판매부장으로 일했다. 시내를
누비고 다니며 고객을 만나는 일이 피곤할 때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좋은 직업이었다. 그러
나 당시가 즐겁게 회상되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그 특별한 여행 때문이다. 일주일에 서너 번,
퇴근길 교통 혼잡이 풀릴 무렵이면 나는 흰색 혼다 자동차를 몰고 '샬롬의 집'으로 향하곤
했다. 엄마엄마를 보러. 엄마엄마는 내 친할머니의 애칭으로 할머니는 '샬롬의 집'에서 요양
을 하고 계신다. 평생을 가난하게 산 엄마엄마는 13살 때부터 봉제공장에서 미싱사로 일했
다고 한다. 그러다가 젊어서 결혼한 뒤로는 할아버지와 함께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문
을 열어두는 만물상을 경영했다. 그러나 그만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때부터 엄마엄마는 백화점 점원이 됐다. 키는 작달막했지만 단단하고 야무진 몸매에 가
슴 사이즈는 보통 사람보다 더 컸던 엄마엄마는 브래지어와 거들 코너에서 일했다. 그래서
농담삼아 스스로를 고기포장업 직원이라고 지칭하곤 했다. 식구들 먹여살리기도 빠듯했지만
엄마엄마는 평생 낙천적인 성격을 잃지 않고 살았다.
엄마엄마는 백화점에서만 꼬박 25년을 일했다. 한참 뒤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엄마엄마
는 퇴직을 미루기 위해서 출생신고서에 있는 출생일자까지 위조했다고 한다. 아무튼 20년이
넘도록 같은 직장을 다녔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엄마엄마를 존경했다. 엄마엄마가 만년을
의탁하고 있는 요양소, 샬롬의 집에 갈 때마다 나는 조수석에 동행을 태우고 갔다. 미카, 거
대한 사모이드 종 애완견. 엄마엄마는 개를 좋아했는데 특히 백곰 같은 내 애완견을 아꼈다.
샬롬의 집은 겉에서 보기엔 무미건조한 흰색 건물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넓고 환한 방에
푹신푹신한 소파와 의자들이 가득한 따뜻한 곳이었다. 그 방으로 들어서는 나를 발견할 때
마다 엄마엄마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날 밤도 예외는 아니었다. "앤디, 오늘도
미카를 데리고 왔구나. 이리 온, 강아지. 할미 여기 있다." 엄마엄마는 언제나처럼 당신이
즐겨 앉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여왕처럼 신하들을 내려다 볼 수 있게 양 옆으로 팔걸이가
달린 큼직한 의자에 온화함과 위엄을 고루 갖추고서.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연분홍색 투피
스를 입은 엄마엄마는 그 연세에 놀랍게도 주름살 하나 없는 얼굴에 은회색 머리를 뒤로 빗
어 넘긴 모습이었다. 인조 진주목걸이와 귀고리 세트도 완벽할 정도로 돋보였다. 어쨌든 엄
마엄마는 다른 노인들처럼 실내복을 입고 발을 질질 끌며 돌아다닐 분이 절대 아니었다.
엄마엄마가 옆에 있는 바둑 무늬의 긴 의자를 두드리며 말했다. "여기, 앤디. 앉아라. 너 앉
으라고 맡아뒀단다. 미카, 너는 이리 온."
엄마엄마와 내 강아지는 서로 친숙하게 뽀뽀를 하며 인사를 나눴다. "오늘 하루는 어땠
는지 할머니한테 다 말해주렴. 하나도 빼놓지 말고." 하얀 레이스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으
며 엄마엄마가 말했다. 나는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이야기를 할 준비를 했다. "오늘 아
침에는 새 고객을 보러 갔어요. 그는 아주 흥미로운 생각을 갖고 있더라구요. 금세기가 가기
전에 집집마다 컴퓨터를 한 대 씩 갖게 될거라나요. 나 원 참." 얘기를 하는 동안 사람들이
우리 주변을 지나다니면서 한마디씩 했다. 요양원 원장도 엄마엄마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갔
다. "내일 콘서트 때 노래 불러주기로 약속하셨죠? 잊지 마세요. 지붕위의 바이올린요, 꼭
지붕 위의 바이올린을 불러주셔야 돼요." 엄마엄마는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었다. 지붕 위
의 바이올린은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무지컬이었으니 당연히 노래란 노래는 다 외우고 있었
다. 요양원으로 오기 전 한 카페에서 엄마엄마가 마지막으로 공연하던 장면이 문득 뇌리를
스쳤다. 그때 엄마엄마는 그 짧고 굵은 목에 구식 코르셋을 걸치고 밴드 앞에 서서 팔을 휘
저으며 손님들에게 같이 노래를 부르자고 했다. 모두 엄마엄마와 함께 노래를 불렀고, 얼굴
에 미소를 짓지 않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가지 말고 있어봐요. 우리 손자 얘기 좀 들어보구려." 엄마엄마의 환한 미소가 나를 향
했고, 원장을 쳐다보며 나는 친절하게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다음 방문객은 청소부 네드
였다. "방에 있는 수도꼭지 고쳤어요, 틸리. 이젠 잘 될거예요. 또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만
하세요." 엄마엄마는 그의 손을 잡고 진심으로 고마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고는 물었
다. "네드, 부인은 어때요? 좀 나아지셨수?" 그러면 네드는 자기 부인이 앓고 있는 관절염
에 대해서 늘어놓았다. 그때 유쾌한 목소리 하나가 엄마엄마를 불렀다. "틸리, 시간 다 됐
어요. 노을이 질 시간이에요." 할머니와 같은 연배로 보이는 한 노인이 문가에 서 있었다.
"지금 가요, 로즈." 엄마엄마가 대답하며 일어섰고 미카를 비롯한 나머지 일행도 모두 따라
나섰다. 노을과 할머니를 어떻게 따로따로 생각할 수 있을까. 그날따라 하늘이 장관이었
다. 진주홍빛, 장미빛, 노란빛 줄무늬가 하늘을 찬란하게 물들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노을
본 적들 있어?" 엄마엄마가 모두에게 물었다. 그 '모두'는 이미 일곱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정말 황홀하네요." 일행 가운데 한 명이 말했다. 그러자 엄마엄마가 나를 향해 물었다.
"넌 뭘 보고 웃는 거니, 앤디?" "휴가 받아서 칸쿤에 갔던 때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거기
노을은 정말 대단했어요." "그래, 바다에 부서진 노을 말이지?" 휴가 때 친구가 나를 보트
에 태워 바다로 나가 수평선을 보라고 했던 일을 엄마엄마에게 말씀드린 적이 있다. 해가
떨어지면서 푸른 바다가 붉게 번득이고 있었다. 정말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놀라운 광경이었
다. 나는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하지만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아버지
가 말했다. "그래, 다 알고 있다. 방금 세상에서 가장 멋진 노을을 봤지?" 나는 그렇게 특
별히 멋있는 노을을 보면 항상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면서 엄마엄마를 인용해서 황혼을 묘사
했었다. 유난히 노을을 좋아한 엄마엄마 덕택에 나도 노을을 제대로 감상하게 됐으니까.
우리는 마지막 노을 한 줄기가 잉크처럼 파란 빛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샬롬의 집 밖에
서 있었다. 그리고 저녁식사 시간을 맞았다. 엄마엄마는 저녁 때 친구의 생일 기념으로 특
별히 카미쉬 빵이 나온다면서, 돌아가야 한다는 나를 한사코 붙들었다. "내가 요리법을 가
르쳐 줬거든." 나와 함께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면서 엄마엄마가 비밀처럼 털어놓았다. 그
말을 듣자 당신이 구워주던 달콤한 빵 맛이 기억속에 되살아났다. 우리 가족은 명절을 모두
할머니 댁에서 보냈다. 그때마다 엄마엄마는 맛이 일품인 빵을 군대를 먹이고도 남을 만큼
많이 만들었다. 나는 엄마엄마가 빵 한쪽을 뜯어서 입에 넣고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비싼
캐비어를 먹는 것처럼 눈을 감고 맛을 음미하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었다. 그렇게 수 년을
지켜본 끝에 나도 엄마엄마처럼 빵을 먹게 되었다. 똑같은 빵이어도 그렇게 먹으면 항상 더
맛있게 느껴지곤 했다.
원장과 네드가 퇴근을 했는데도 12인용 둥근 식탁은 빈자리가 없었다. 다른 식탁에는 꼭
한두 자리씩 비어 있었는데 말이다. 모두들 엄마엄마랑 식사하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이윽
고 카미쉬 빵이 나왔을 때, 첫입을 먹으며 일제히 눈을 감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웃고 말
았다. 그때 내 어머니를 닮은 여자가 다가와서 엄마엄마에게 물었다.
"어제 단체 외출할 때 안 보이시던데 어디 계셨어요?" 그저 인사치레로 묻는 것이 아니
었다. 팔걸이에 손을 얹고 몸을 구부리는 모습에서 진정으로 아끼는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
다는 느낌이 풍겨 나왔다. 그 광경을 보며 나는 어머니가 엄마엄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회상했다. 엄마엄마는 며느리를 꼭 딸이라고 불렀다. 당신 사전에는 아예 며느리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다. 누구든 가족 아닌 사람으로 취급하는 단어는 절대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순간 나는 내가 엄마엄마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엄마엄
마는 절대로 가난하지 않았다. 아니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부자였다. 청소부든 대통령이
든 엄마엄마는 모두에게 넘치는 사랑을 베풀면서 삶의 작은 기쁨들을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나눌 줄 알았다. 그분에게는 매일 주어지는 시간이 모두 선물이었다. 나는 또 기억해 보았
다. 엄마엄마가 좌절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던가? 있었지. 상심한 적은? 그럼. 하지만
엄마엄마는 항상 그런 일들에 마음을 두지말라고 말했다. "사람은 가장 좋은 면만 보고 믿
어야 한단다." 나는 저녁식사를 하던 바로 그 식탁에서 뒷날 내 자신도 엄마엄마처럼 추억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슨 일을 하든 인생을 살아가면서 엄마엄마처럼 사람들에게 감동
을 주고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었다. 엄마엄마야말로 내가 물려받아 이어가고 싶은 가장
귀한 유산이었다. 그날도 나는 오랜만의 행복감을 맛보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미카와 나는
그 주가 다 가기 전에 또 그분을 뵈러 갈 것이었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그 여행은 몇 년
동안 계속될 수 있을 거였다. 엄마엄마의 유산을 물려받기 위해서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
다. 안드레아 레비
어머니의 장바구니
내가 어릴 적 시애틀은 거대한 올림포스 산을 베어내며 벌목의 중심지로 급성장해 가는
도시였다. 그곳은 스칸디나비아 억양의 벌목공들, 런던 사투리를 쓰는 항만 인부들 그리고
대학에서 학술을 논하는 귀족적인 교수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생동감 넘치는 도시였다.
내 유년 시절에는 도무지 변치 않을 두 존재가 있었다. 그중 하나는 선장생활을 했던 아버
지였다. 타고난 이야기꾼인 아버지는 머나먼 이국의 풍토와 세계 각국의 항구 풍광으로 온
집안을 물들이곤 했다. 덕분에 우리들은 아버지가 아무리 오래 집을 비워도 늘 곁에서 이야
기를 들려주는 것만 같은 친근감을 느꼈다.
두 번째 불변의 존재는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편안함과 불편함이 동시에 샘솟는 우물과도
같은 존재였다. 특히나 우리가 나쁜 짓을 저지르면 귀신같이 알아내곤 했다. 그 사실을 어떻
게 알았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지만 우리에게는 그것마저도 비밀스런 자랑거리였
다. 그 시절만 해도 아이들은 축구며 체조, 발레 따위의 끝없는 숙제들에 묶여서 꼼짝못 할
지경에 처하지는 않았다. 우리 어린 남매들의 생활은 항상 어머니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
리고 어머니는 언제나 우리가 원하는 자리에 있었다. 우리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한결
같이 외쳤다. "엄마 ~ 아!" 어머니가 어디선가 대답을 하면 그 순간부터 마음이 턱, 놓이
면서 온갖 장난거리가 떠오르곤 했다. 그러나 며칠에 한 번씩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는
날이 있었는데, 바로 장날이었다. 어머니는 전차를 타고 꽤 먼 곳으로 장을 보러가시곤 했
다. 시장은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 있었는데, 그 항구에는 각지에서 온 배들이 묶여
있었다. 상인들이 풀어놓은 짐은 끝도 없이 펼쳐졌고 연어와 왕게, 바삭바삭한 빵 그리고 이
국의 과일과 채소들이 넘쳐 흘렀다. 그 모든 것들은 동네 야채장수는 꿈도 꾸지 못 할 최상
품이었다. 손님들과 시끌벅적하게 흥정을 벌이는 이탈리아와 일본 상인들의 억양이 그곳의
신비로운 매력을 한층 돋구었다.
우리는 어머니가 장에 가는 날 텅 비어버린 것 같은 집에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어
머니가 집에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들 마음에는 먹장구름처럼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졌
다. 쓸쓸함에 휩싸인 우리 남매들은 우울한 낯빛으로 가방을 내려놓고 장날마다 하던 대로
각자 맡은 역할을 수행했다. 우선 맏이인 언니는 부엌으로 들어가 타피오카 푸딩 만드는
일에 숙연한 자세로 임했다. 그것은 언니가 우일하게 할 줄 아는 요리였지만 나는 그런 언
니가 존경스러웠다. 오빠는 뒤도 안 돌아보고 곧바로 이층으로 올라가 책에 코를 파묻었다.
마지막으로 남는 사람은 나와 동생 조였다. 터울이 얼마 나지 않는 조와 나는 눈만 뜨면
티격태격하면서도 사이가 좋았다. 우리는 언제나 집에 처박혀 있지 않고 나갈 수 있는 기회
만 오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뛰쳐 나갔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이라도 상관없었다. 시
애틀에서는 어차피 햇살보다는 보슬비가 훨씬 익숙한 법이다. 어머니가 장에 간 날이면 조
와 나는 언제나 어머니를 마중나갔다. 피니와 노스 60번지 모퉁이에서 21번 전차를 기다리
는 게 우리의 임무였다. 그 마중 길에서 우리는 한번도 거르지 않고 똑같은 주제로 말싸움
을 했다. "난 우드랜드 공원까지 갈거야." "싫어! 60번지에서 그냥 기다릴래." 우드랜드
공원은 우리 집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곳에 있었다. 거기까지 가면 우리는 어머니를 도와
짐을 더 오랫동안 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곳은 동물원과 놀이터가 있는 아이들의 천국이었
다. 재미를 따르자니 짐이 귀찮고, 몸이 편하자니 놀이터가 그리웠다. 그 중대한 결정을 위
해 우리는 수없이 갈등하고 고민했다. 그러다 마침내 협상이 타결되면 우리는 마음을 단단
히 굳히고 하염없이 어머니만 기다렸다.
전차는 한 대 두 대 계속 지나갔다. 느릿느릿 왔다가 알을 까듯이 사람들을 내려놓고 가
는 전차를 우리는 눈이 빠져라 지켜봤다. 그러다가 우리는 흑갈색 머리를 한 여자만 보면
벌떡 일어섰다. "엄마다!" "엄마라고?" "에이, 아니네.......," "알지도 못하면서 왜 소린 지
르고 난리야?" 실망스럽게 주저앉아 우리는 또 한참을 투덜댔다. "우리 엄마가 저렇게 못
생겼냐? 그 아줌마처럼 그렇게 뚱뚱하냐?" "에이, 옷만 보고 잘못 알았잖아." 우리는 발바
닥으로 땅을 문질러대기도 하고 돌멩이를 주워서 철로 쪽으로 던지기도 하면서 무료한 시간
을 견뎠다. 그러다가도 전차 기적 소리만 들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눈을 크게 뜨고 집중했
다. 이번에는........, 그러나 이제도 저제도 어머니가 나타날 기색이 없다. 어둠이 몰려왔지
만 어머니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쯤이면 조와 나는 다시 논쟁을 시작한다. "다리
아파 죽겠다. 그만 들어가자." "조금만 더 있다가. 한 대만, 아니 세 대만 더 기다렸다가 들
어가." 얼마나 더 오래 기다릴지를 두고 우리는 또 그렇게 한참을 싸워야 했다. 그러나 단
한번도 어머니가 오기 전에 자리를 뜬 적은 없었다. 둘 가운데 하나가 먼저 돌아가버리는
일도 없었다. 뭐든지 함께 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우리였으니까.
그렇게 엄마를 기다린 끝에 마침내 영광과 보람의 순간이 왔다. 예쁘게 부풀어오른 솜옷
을 입고 전차에서 내려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사람은 틀림없이 우리 어머니였다. 어머
니가 전차에서 내리는 순간 비가 부슬부슬 내려 더 어둡고 음침하던 저녁 어스름은 갑자기
레이니어 산 설봉에서 반사된 햇살보다 더 환하게 변했다. 우리들 눈에도 번쩍 형광등이 켜
졌다.
드디어 엄마가 왔다! 조와 나는 어머니 손에서 쇼핑 가방을 빼앗아들고 집을 향해 신나
게 달음박질을 쳤다. 어머니가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이면 오후 내내 집안에 끼어 있던 먹
구름이 활짝 걷히고 촛불 같은 빛이 구석구석 환하게 스며들었다. 어머니는 언제나 온 집안
을 환하게 밝히는 존재였다. 어머니가 돌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무거운 침묵만 감돌던 부엌
은 일시에 웃음소리로 메아리 쳤다. 우리 집에서 가장 좋은 흰색 린넨 식탁보가 요술처럼
환하게 식탁을 장식하면 어머니의 장바구니에서는 알라딘의 보물보다 더 신기한 것들이 쏟
아져 나왔다. 싱싱하게 윤기 흐르는 훈제 연어와 누룩 향이 훅 끼치는 맛있는 빵! 어쩌다
후드 운하에서 나오는 조개나 올림포스 굴을 사온 날이면 우리는 따끈하고 맛있는 스프를
실컷 마셨다. 어머니는 또 매닝 커피를 끓여서 우리가 한 잔씩 맛보도록 했다. 매닝 커피는
특별한 날이 아니면 절대로 마실 수 없는 커피였다. 아, 입안 가득 군침이 돌게 만드는 풍부
한 그 향기가 부엌에서 넘쳐흘러 집 전체를 가득 채웠다. 버터, 산딸기, 잼, 밴더캠프의 계피
맛 빵과 메이플 과자, 언니가 만든 타피오카 푸딩, 집에서 만든 복숭아 통조림 그리고 지하
실에서 가지고 올라온 배..., 나는 아직도 그 향기와 맛을 고스란히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은 아이들 뜀박질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내가 20대였을 때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동생
조도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나는 지금도 그 시절과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다시 한번 조와 함께 21번 전차를, 아니 어머니를 기다릴 수만 있다면 나는 내
가 가진 전부를 다 내놓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엘리자베스 바우만
"중요한 게 뭔지만 기억하렴"
어릴 때는 누구나 비슷한 또래집단에 소속되어 함께 어울리는 걸 인생 최대의 기쁨으로
여긴다. 8살 때였다. 그 시절 내 세계에서 어딘가에 소속된다는 것은 동네 야구를 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내가 살던 동네는 뉴욕 로체스터의 리틀 이탈리아로 포폴리, 파챠
노, 로마노, 스텔라부토 같은 누가 들어도 이탈리아식 이름을 가진 이탈리아인들이 서로 똘
똘 뭉쳐 살아가는 곳이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동네 어른들은 집 앞 현관에 앉아 잡담도 하고 포도주도 나눠마시면서
야구하는 아이들을 구경했다. 어른이나 아이나 야구에 죽고 야구에 사는 동네였다. 그 시절
만 해도 마약이니 포주, 강도 같은 마피아 냄새가 풍기는 단어는 잘 알지 못했다. 그나마 그
동네 조직이라면 조직인 것이 마이크 아나치노의 동네 야구팀이었고, 내가 오매불망 바란
일도 아나치노가 나를 자기편에 붙여주는 것이었다. 그가 고개만 한번 끄덕여주면 그 순간
부터 리틀 이탈리아에 소속되는 것이다. 물론 꿈같은 이야기였다. 내게는 작은 문제 두 가
지가 있었다. 하나는 내가 주근깨 투성이 아일랜드 꼬마라는 사실이었다. 사실 동네 옆 블록
안에서 아일랜드계 미국 아이는 나와 형 그리고 내 여동생밖에 없었다. 두 번째 문제? 그
건 내가 야구를 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 엄마는 골치 아픈 내 문제를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 눈엔 별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루는 수업을 마치고 기운없이 발을 질질 끌
며 집으로 돌아오는 나와 여동생 로라 앞에 엄마가 떡 버티고 섰다.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
에다가 12살 소녀처럼 머리를 뒤로 질끈 동여맨 채 눈가의 주름이 다 보이도록 웃고 있었
다. "자, 봐라. 선물이다." 엄마가 등뒤에 숨기고 있다가 꺼낸 선물은 바로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환한 빨간색, 파란색, 하얀색이 어우러진 야구 글러브였다. 세상에, 이렇게 우스꽝스
러운 글러브가 있다니. 나는 로라를 쳐다보았고 로라도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동
시에 소리를 내질렀다. "엄마~아!" '왜? 야구 가르쳐주겠다는데. 너희들이 바라는 게 그거
아니야? 다른 애들이랑 야구하는 거." "다른 애들은 다 가죽 글러브로 하잖아요. 애들이 놀
릴거야." 순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엄마 특유의 표정이 얼굴에 번졌다. 입술을 꼭 다물
고 목을 닭처럼 죽 내민 싸움꾼 표정. 내 코를 피투성이로 만든 녀석들의 어머니 앞에서 늘
지어보이는 바로 그 표정이었다.
"아직도 내 말을 못 알아들었구나. 다시 한번 말해주마. 남들 눈에야 어떻게 보이든 말든
상관하지마. 그러다가는 재미있는 걸 다 놓쳐보린단 말이야." 엄마가 갈색 눈을 이글거리며
우리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래, 가죽 글러브 살 돈이 없는 건 사실이야. 하지만 그렇
다고 우리가 야구를 포기할 수는 없지. 최선을 다하는 거야. 남들이야 뭐라든 말든 말이야.
너희들 그것 때문에 하고 싶은 걸 안 하겠다는 건 아니지?" 엄마는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논리를 갖고 있었고, 결국 로라와 나는 엄마를 따라 뒷마당으로 가서 첫 야구수업을 받았다.
정말이지 엄마의 실력은 형편없었다. 공도 계집애처럼 손목만 써서 던졌다. 덕분에 로라와
나는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날아오는 공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미처 피하지 못해서
맞아버린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우리 동네에서 시퍼런 멍은
훈장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포수를 한다고 쭈그려 앉은 엄마를 떠올리면 지금도 절로 웃음
이 새어나온다. 엄마는 세상이 끝난 것처럼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서 미트를 주먹으로 치
며 소리를 질렀다.
"어이!한번 던져봐!" 뭐니뭐니해도 제일 힘든 건 엄마가 팔을 사방으로 내두르며 던진
공을 잡는 일이었지만 그 공을 잡느라 몸을 헌신짝처럼 던지는 훈련을 한 끝에 우리는 어느
새 어디에서 날아오는 공이든 다 잡아 낼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후에도 엄마의
훈련은 계속됐다.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세 번은 뒷마당에서 우리와 함께 야구를 했다. 우
리가 공을 던질 때마다 엄마는 힘차게 소리쳤다. "나이스 볼!" 그놈의 나이스볼이 엄마의
정강이를 때리거나 말거나 울타리 너머로 사라지거나 말거나 말이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마침내 로라와 나는 야구 천재가 되었다. 그해 여름이 가기도 전에 로라의 방망이에서는 김
이 펄펄 났다. 치는 족족 홈런이었다. 사내 녀석들 뺨치는 솜씨였다. 엄마는 다음 작전을
개시했다. 우리를 끌고 골목으로 가서 현관 앞에 줄줄이 앉은 야구 해설가들이 지켜보는 가
운데 야구를 하게 만든 것이다. 처음에 그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
록 그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이러쿵저러쿵 평을 하고 고
개를 끄덕이는 걸로 봐서는 호감을 갖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만 아나치노한테서는 아직도 감감무소식.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엄마가 아
니었다. 이듬해 봄이 되자 엄마는 다시 우리를 놀라게 했다. "재능이 있으면 써먹어야 해.
너희들을 위해서 이 엄마가 다른 걸 준비했지." 나는 그 '다른 것'이 좋은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번쩍이는 빨간 포장지와 리본에 싸여 있었으니까. 여동생이 내지른 탄성과 돼지
가죽 냄새를 나는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다. 그것은 바로 가죽 글러브였다. 놀란 입을 미처
다물기도 전에 엄마가 연타로 감동을 선사했다. "참, 그리고 너희들을 리틀리그 회원으로
가입시켰으니 그리 알아라." 우리는 이제 뒷마당을 떠나 고물차 우디에 올라타고 시내를
가로질러 러슬필드 야구장으로 나갔다. 야구장에 도착하면 근처에 자리를 잡고 오후 내내
우리를 응원하던 엄마는 우리가 절대로 연습을 거르지 못하게 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참 대단한 일이었다. 러슬필드는 쓰레기 매립장 꼭대기에 있었는데 습한 뉴욕 날씨가 30도
를 넘으면 썩는 냄새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땅은 물컹물컹하고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고
잡초는 무성한 그야말로 재난의 땅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개의치 않았다. 야구 천국에 있
었으니까. 야간 경기도 있었다. 엄마는 야맹증 때문에 날이 저물면 우디를 몰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식들 때문에 고래고래 악을 쓰며 싸우던 똑같은 처지의 아줌마들을 어떻게든 설
득하여 우리를 태워다주게 만들었다.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우리를 야구장으로 데리고
간 것이다. 여름 방학이 돌아왔고, 경기장과 골목마다 아이들이 바글바글 넘쳐났다. 나는
우리 블록에서 공을 던지며 마이크 아나치노가 라이벌과 함께 경쟁적으로 팀원을 뽑는 모습
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역사적인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야, 아일랜드, 야구
할래?" 바로 그 아나치노가 나를 야구 천국으로 초대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백 살까지 살
아도 그보다 더 기쁜 날은 다시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금세 시무룩해지는 여동
생의 얼굴을 보고 말았다. 로라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나를 보고 짐짓 씩씩하게 웃어주더니
돌아섰다. 하지만 로라의 어깨는 축 처져 있었다. '쟤 왜 저래? 남자들 야구하는데 여자애
는 절대로 낄 수 없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 말이야. 그리고 어쨌든 아나치노가 원한 건 나
잖아.'
아, 그러나 순간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남들이 뭐라 건 상관하지 말라던 엄마. 로라와
함께 한 지난 2년, 서로의 까진 무릎과 멍든 눈에 조의를 표하던 순간들, 러슬필드에서 땀범
벅 흙범벅이 되어 돌아오다가 이탈리아 사람들 옆을 지나칠 때면 같이 고개를 높이 치켜들
던 순간들, 잘 치면 으스대고 못 치면 고민했던 순간들도 휙휙 스쳐갔다. "할거야, 말거
야?" 아나치노의 다그침과 동시에 엄마 말씀도 다시 한번 귓전을 울렸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은 다 잊어버리고 중요한 게 뭔지만 기억하렴. "됐어." 아나치노에게 한마디 내뱉
은 나는 로라한테 공을 던졌고 로라는 한 손으로 공을 받았다. "로라야, 가자." 그러자 못
마땅한 얼굴의 아나치노가 이렇게 말했다. "좋아, 알았어 임마. 걔도 같이 붙여. 야구 좀 하
던데." 그건 기적 이상이었다. 천하의 아나치노가 방금 여자애를 동네 야구단으로 부른 것
이다. 로라와 나는 멍하니 선 채 서로를 쳐다보며 한쌍의 백치처럼 웃어댔다. "할거야, 말
거야?" 아나치노는 여전히 아나치노였고 우리는 여전히 '아일랜드'였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우리는 모두 한 팀에서 뛰게 된 것이다. 마이크 헤이즈
"사낭해오 마마"
나는 스스로를 1960년대에 어른이 된 내 동료세대와 조금 다르다고 믿었다. 당시만 해도
전통적인 결혼이 가져다주는 영원한 행복을 숭배했던 전 세대의 가치관이 만연해 있었다.
그에 맞서 여성해방을 요구하는 수많은 여성들은 브래지어를 태워가며 투쟁하고 있었다. 나
는 그 때 이미 젊은 여성으로서의 새로운 꿈을 실현했다. 그것은 바로 직업과 독립이었다.
내 직업은 9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하는 판에 박힌 사무직이 아니었다. 나는 부통령 휴버
트 험프리의 개인보좌관으로 활약했다. 내 생활은 흥미진진한 백악관과 워싱턴 정가를 중심
으로 펼쳐졌다. 아프리카와 이스라엘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대도시 출장을 일상으로 삼았던
나는 28살에 출세한 미주리 촌뜨기였다.
그때는 적어도 결혼 때문에 인생을 망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잘 생긴 파란
눈을 가진 매력덩어리의 남자를 만나자 나는 진실과 정욕을 분별할 지혜를 잃어버렸다. 우
리는 곧 결혼했다. 그리고 나는 고전적인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안정감과 영원한 사랑에 대
한 덧없는 약속을 지키느라 소중한 내 일을 반납한 것이다. 그리고 영원을 약속했던 남자와
함께 한 현실에 대한 실망과 방황 끝에 얻은 당연한 결과는 바로 이혼이었다. 나는 당시 숱
한 여성들처럼 '학대' 라는 용어로 정의되는 관계를 견디며 살았다. 단지 아이들을 위해서,
딸 레이첼과 아들 죠쉬를 위해서. 그런데 남편이 고맙게도 먼저 알아서 친절을 베풀었다.
죠쉬가 6개월 됐을 무렵 통장에 있던 돈을 싹 쓸어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나는 그제야 예
전의 스승과 동료를 비롯한 지인들을 찾아봤지만 모두 오래 전에 그곳을 떠난 뒤였다. 지난
날 내가 딛고 건너던 다리를 잘도 무너뜨려버렸던 것이다. 꿈 같은 작업을 포기한 나 자신
에 대해 뒤늦게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3년 반이라는 짧은 결혼생활이 준 유일
한 선물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그 선물이란 바로 내 아이들이었다. 내가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또 아이들이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방 한칸 짜리 비좁은 아파트에서 함께
부대끼며 살아도 쥐꼬리만한 월급을 바라고 이 직장 저 직장을 전전하느라 지쳐서 짜증을
내도 아이들은 언제나 내 편이었다. 지친 몸을 끌고 퇴근해서 돌아오면 아들 죠쉬는 내 무
릎 위로 기어올라 목에 팔을 감고 잠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떼어내지 않으면 밤새 그러고
잘 녀석이었다.
레이첼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어른스럽게도 내가 저녁식사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죠쉬를 내 품에서 끌어내리곤 했다. 저녁식사는 늘 마카로니와 치즈 그리고 사과소스였지만
레이첼은 불평 한마디 없이 웃는 얼굴로 내게 말했다. "괜찮아 엄마." 딸은 홀어머니들이
갖기 마련인 죄책감을 벌써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레이첼은 남동생을 끔찍이 아꼈다. 심
지어 엄마인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죠쉬의 옹알이도 척척 알아들었다. 그리고 마치 통역사
처럼 근엄하게 내게 말뜻을 전하곤 했다. "과자 달래, 엄마." 죠쉬의 청각에 문제가 있다
는 것도 다섯 살짜리 딸이 말해줘서 알게 됐다. 두 돌이 되도록 또박또박 발음하지 못한 데
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죠쉬 문제를 비롯해 많은 고민에 빠져 있는 나에게 아버지
는 고향으로 오라고 했다. 생활비도 덜 들 테고 살 만한 아파트 전세계약에 보증도 서주겠
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자존심이 나를 그곳에 묶어두었다. 그럴 줄 알았다며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들어가면서까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증권시장이 슬럼프에 빠지고 인플레이션이 심해지면서 중서부지역 전체가 우울하게 변해
갔다. 나는 외로웠다. 죠쉬는 걸핏하면 감기에 걸렸고 레이첼은 핼쑥했다. 잘 풀리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가 겨우겨우 지방방송국 영업사원으로 취직했다. 이제 한숨 돌리나 싶
었다. 나는 그 방송국이 처음으로 고용한 여성이었으니까. 하지만 나한테 돌아오는 일은 하
나같이 남자들이 처리하지 못해서 포기한 골치 아픈 거래들이었다. 그러나 그것까지는 상관
없었다. 내 기분을 더럽게 만드는 것은 남자들의 비열한 언행이었다. "그 거래 어떻게 땄는
지 우린 알고 있지." 그들은 조금이라도 덜 여성스러워 보이라고 일부러 바지만 입고 다니
는 여자들을 대상으로 매일같이 커피자판기 앞에서 떠들썩한 품평회를 벌였다. 나를 골탕
먹이기 위한 작전도 끊임없이 펼쳤다. 이상하게도 새 고객에게 발표할 프리젠테이션 자료가
하필이면 회의 직전에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그 모든 스트레스에 레이첼과 죠쉬에 대한 근
심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흐리고 스산한 어느 겨울 오후였다. 그렇지 않아도 바닥 없이
추락하고 있던 내 기분에 기름을 붓는 일이 일어났다. 몇 달에 걸친 노력 끝에 처음으로
굵직한 거리가 성사될 직전이었다. 아니, 그렇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마지막으
로 계약서의 사인을 받기로 한 날, 사무실에서 막 나서려는 부장이 나를 불렀다. 그의 책상
옆에는 남자 동료 피터스가 않아 있었다. "산드라, 고객이 오늘 아침에 전화를 했거든. 자
네 아이디어대로 추진하고 싶긴한데, 일은 피터스와 함께 하길 바라더라구." 나는 건너편에
앉아 우쭐대는 피터스의 주걱턱을 바라보았다. 우습게도 내 눈에는 점점 숱이 없어져가는
그의 머리카락 밑으로 삐져나온 이마의 하얀 여드름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내 프리젠테
이션 자료를 방패처럼 꼭 끌어안았다. "피터스는 그 고객과 이야기를 나눈 젓도 없잖아요.
기획안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요." 내 얘기를 제대로 듣지도 않은 부장은 어깨를 으쓱하
더니 나가보라는 투로 돌아앉았다. 한마디 해명할 예의도 갖추지 않은 채 말이다. 피터스는
무릎에 올린 굵은 손가락으로 깍지를 끼었다 풀었다 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사태의 본질
을 파악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이 거래를 따내면 방송국에서 5년을 일한 피터스와 봉급이
같아진다는 것이었다. 내가 방에서 나가려고 문을 열자 부장이 일어서며 손을 내밀었다.
"서류는?" "무슨 서류?" 나는 그대로 방에서 걸어나왔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길에 나는 평소보다 천천히 차를 몰았다. 턱이 또 쑤셔
댔다. 샌드위치 하나 베어먹지 못할 정도로 입을 벌리기 힘들어서 치과를 찾았더니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스트레스 때문입니다. 생활방식을 바꿔야 돼요." 아이들과 나는 하루가
다르게 썰렁하게 느껴지는 아파트로 돌아왔다. 코트를 벗어 거는데 레이첼이 내 손을 잡아
끌었다. "죠쉬가 엄마한테 할 말 있대." "엄마는 죠쉬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듣잖니." 레이
첼은 아무 대꾸 없이 나와 죠쉬를 마루로 끌고 갔다. 아들은 곰인형을 끌어안고 바닥에 앉
았다. 또 콧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 죠쉬의 코를 닦아주었다. 순간 어
린 아들이 초롱초롱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사낭해오 마마." 사랑
해요.
내 아들이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우리 진지한 레이첼이 죠쉬의 등을 살며시 찔
렀다. 죠쉬는 집중을 하느라 곱고 맨들맨들한 이마를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어......어마 애
뻐." 우리 세 식구는 망망대해 위에 떠 있는 구명보트 안에 있는 것처럼 서로를 부둥켜안
았다. "사낭해오 마마." 죠쉬는 졸려서 눈이 감길 때까지 쉬지 않고 말했다. 그리고는 내
무릎을 베고 잠들어버렸다. 이튿날 죠쉬는 탁아소에 맡길 수 없을 만큼 많이 아팠다. 돌봐
줄 사람도 없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죠쉬를 안고 출근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해고됐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차피 죠쉬를 돌보자면 며칠 집에 있어야 했으니까. 다행히도
그 뒤부터 상황이 조금씩 호전됐다. 나는 그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라디오 방송국 영업직을
얻었다. 까다로운 고객명단을 받아야 하기는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전처럼 힘들지는 않
았다.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오면 이제는 완벽한 발음으로 나를 맞는 죠쉬가 기다리고 있었
으니까. "사랑해요 마마. 엄마 너무 아름다워요." 참으로 간단한 몇 마디였지만 나는 몇
년간을 그 말에 기대어 버틸 수 있었다. 바로 그 말이 캔사스를 떠날 수 있는 용기도 주었
다. 우리는 공기도 깨끗하고 학교도 더 좋고 훨씬 안전한 콜로라도의 작은 도시로 이사했다.
그리고 나는 현지 라디오 방송국 영업국장으로 일하게 됐다. 먼 옛날 내게 힘을 주던 레이
첼과 죠쉬는 아기였다. 하지만 나는 그때도 죠쉬는 제가 하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
히 알고 있었다고 믿는다. 그후 아들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해 주었
다. 죠쉬는 지금도 어디에 있든 매일 전화를 한다. "사랑해요 마마. 엄마 너무 아름다워요."
전화를 끊기 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듣는 말이다. 그리고 아직도 그 말을 듣는 내 얼굴에는
미소가 떠오른다. 산드라 이스라엘
어머니의 단벌 코트
'편안한 삶을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강한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병원이 멀어
의사의 도움을 받기 힘든 곳에서도 건강한 자식을 일곱이나 낳은 어머니는 한번도 쉬운 삶
을 살지 못했다. 자식들도 혼자 힘으로 길러냈다. 아버지가 집에 있는 날은 거의 없었으니
까. 아버진 어쩌다 집에 들렀다가도 어머니가 한푼 두푼 모아둔 돈을 가져다 노름으로 탕진
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불평 한마디 없었다. 대공황이 강타했을 때도 어떻게 해서
든 우리를 먹여살린 어머니는 정말 든든한 존재였다. 땡볕 아래서 일하느라 빛이 바래버린
어머니의 머리카락과 야생자두며 버섯을 따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가축사료 자루를
염색해서 우리들 옷을 만들면서 미소 띤 얼굴로 얘기를 들려주던 모습도.
어머니의 손바닥은 힘겨운 노동 때문에 마디마디 못이 박혀 있었다. 어른이 된 뒤 어머니
가 처녀시절에 찍은 사진을 발견했던 기억이 난다. 사진 속에서 어머니는 예쁜 옷과 레이스
로 치장하고, 외할아버지의 어깨에 하얗고 보드라운 손은 얹고 있었다. 그 사진을 보며 나는
어머니가 어쩌면 다른 삶을 원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말하지
는 않았다. 어머니가 들었다면 바보 같은 소리라며 웃어넘겼을 게 틀림없을 테니까. 오빠는
어머니를 튼튼한 아일랜드 혈통을 이어받은 여장부라고 말한다. 나도 어머니를 '당당한' 여
인으로 보았다. 어머니의 그 당당함은 넘치도록 쏟아부은 사랑의 노고가 열매가 되어 되돌
아오는 데서 얻는 만족감이었다.
어머니는 힘든 시기일수록 더 환하게 빛나는 분이었다. 그 겨울에도 그랬다. 그해 어머니
는 어떻게든 먹을 것을 마련하기 위해 텃밭에 채소를 심었다. 그런데 여름에 홍수가 나서
채소밭이 몽땅 물에 잠기고 말았다. 그리고 우려했던 대로 겨울에 접어들면서 식량은 바닥
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어머니의 흐릿해진 초록색 눈동자에 담긴 두려움을 보
았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낯선 표정이었다. 나는 창가에 홀로 서서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어머니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렇게 내다보고 있으면 아버지가 식량을 한 아름 안고 돌아
오실 거라고 생각했을까. 어머니는 그 표정 그대로 하염없이 바깥만 보고 있었다. 한동안
그렇게 있다가 어머니는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이제 막 깨달은 사람처럼 방을 휘둘러보았
다. "코트를 입어야겠다." 어머니가 조용한 음성으로 입을 열더니 방으로 들어가 코트를
가지고 나왔다. 모르긴 몰라도 어머니의 코트를 봤다면 비웃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검정
색과 밤색이 섞인 트위드 코트의 천은 낡을 대로 낡았고, 옷깃에는 모피 찌꺼기가 보푸라기
가 되어 하늘거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들 눈에 어머니의 코트는 아주 멋져 보
였다. 키가 훤칠하게 크고 몸매가 호리호리한 어머니가 코트를 걸치면 사뭇 고상해 보이기
까지 했으니까. 어머니와 함께 길을 나선 우리들은 어머니의 모습을 곁눈질하며 꽁꽁 얼어
붙은 길을 걸었다.
어머니는 목적지가 어딘지 말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그곳을 알고 있었다. 그
래서 장난도 치지 않고 묵묵히 걸었다. 어머니 혼자만 짐짓 유쾌한 음성으로 이 얘기 저
얘기 건네고 있었다. 그러나 좀처럼 대꾸할 의욕이 안 생겼다. 아무리 유쾌한 척해도 어머니
심정이 우리보다 백배 천배 더 착잡할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했기 때문이다. 초라한 우리
가족의 행렬이 닿은 곳은 고모네 집이었다. 고모는 부유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고모는 어머
니를 비롯한 우리 식구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조카인 우리들에게조차 과일 한 조각이라도
대가없이 그냥 주는 법이 없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고모를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
했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치욕스런 모독을 잠자코 참지만은 않았을 테니까. 널찍한
고모네 현관밖에 우리 식구가 고개를 숙이고 서 있던 그날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
다. 그 와중에도 어머니는 얼음처럼 매서운 바람을 맞지 않도록 막내를 옆구리에 꼭 끼고
있었다. 고모는 따뜻한 문 안쪽에 서서 문을 채 열지도 않은 채 입술을 꽉 오므리고서 우리
를 내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어머니가 그 곱지 않은 시선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이들이
굶주리고 있어요. 먹을 것이 좀 있나해서 왔는데....." "있을 수도 있지. 그래서 내가 고기를
주면 그 값으로 뭘 줄 건데?" "집안 청소를 할게요. 밥도 하고." "그쯤이야 나도 할 수 있
어." 고모가 매정하게 잘라 말했다. 그리고는 비웃음이 감도는 표정으로 어머니를 머리끝부
터 발끝까지 훑어 내리더니 한마디 툭 던졌다. "코트가 나빠 보이지 않는구먼." 나는 짧은
순간 빳빳하게 경직되는 어머니의 등을 보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내 우리를 부드럽게 쳐
다보며 막내를 내려놓았다. "잘 보셨어요. 아직 쓸 만 해요." 어머니가 아주 잠깐 망설이
며 옷깃에 남아있는 빈약한 모피를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가진 것이라곤 이것밖에 없어
요." 말을 마치자마자 어머니가 코트를 벗어서 반듯하게 접은 뒤 고모에게 건넸다.
그때 내 가슴을 후비며 새겨진 상처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어머니가 한 벌뿐인 코트를
포기하는 모습이었을까. 아니면 명색이 혈육인 고모가 그렇게 쉽게 어머니의 코트를 받아
챙기는 모습이었을까. 하지만 20㎞가 넘는 그 먼 거리를 어머니와 함께 걸어 돌아가는 그
길이 어찌나 힘들던지, 그 생각은 잠시 잊혀졌다.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 속에서도 어머니
는 한 팔로 막내를 안고 다른 쪽 손으로는 소중한 고깃덩어리를 든 채 꼿꼿하고 당당하게
걸었다. 집으로 돌아와 훈훈한 온기에 몸을 녹인 뒤에야 나는 고모와 고모가 가져간 코트
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생각하면 할 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날 나는 고모
가 준 고기로 만든 음식에 손도 대지 않았다. 어머니가 물었다. "왜 그렇게 화가 났니?"
"고모가 우리를 망신시켰어요. 우리를 거지 보듯 하더니 엄마의 자랑과 기쁨까지 빼앗아 갔
잖아요." 나는 발끈해서 외쳤다. 그런데 느닷없이 어머니가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의아해
서 어머니를 쳐다보기만 했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도로시. 고모는 자랑과 기쁨을 엄마에
게 돌려 준거야. 내 자랑과 기쁨은 코트가 아니란다. 바로 너희들이지." 그날 저녁 음식 냄
새와 장작더미가 가득하던 부엌에서 우리를 보는 어머니의 눈에는 흐뭇함만 가득 담겨 있었
다. 도로시 밴스
꽃이 진 자리에 맺힌 열매
어머니가 병을 앓게 되었을 때 우리 남매는 어머니를 시내로 모셔왔다. 우리 남매가 자라
고 어머니가 평생을 살아오신 섬에서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
머니를 편히 쉬게 하고 처방에 따라 제때 약을 들게 수발하자면 하루종일 곁에 있어야 했기
때문에 우리 남매는 교대로 어머니를 간호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찾았을 때 병원은
언제나처럼 환자와 가족들로 붐볐다. 그 가운데는 갓난아이도 있었고 여기저기 정신없이 뛰
어다니는 어린아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처럼 나이든 환자도 많았다. 대기실에 앉아서
그저 무심한 눈길을 보내고 있는데 어머니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어린아이들은 어떻게 봐
도 예쁜데, 나이든 이들은 볼품이 없구나..... 그래서 시든 꽃은 빨리 져야지....."
당신이 가야 할 길을 아는 것만 같은 그 말에 처연해진 나는 손을 뻗어 어머니의 주름진
손을 잡았다. 그러자 어머니가 내 손을 마주잡으며 말했다. "괜찮아. 머지않아 내가 가는
대신 새 생명이 네 곁으로 오잖니. 삶이란 그런 거란다." 어머니는 내 볼록한 배 위에 손을
얹고 아기에게 속삭였다. "미 코라존치타. 네 앞에 멋진 삶이 기다리고 있단다." 그때 나
는 임신 8개월이었다. 어머니는 그 뒤로도 종종 내 뱃속의 아기와 대화를 나눴다. 어머니는
언제나 아기를 미 코라존치타, 즉 나의 사랑이라고 불렀다. 그럴 때 어머니의 표정은 지극히
평온하고 만족스러워 보였다. 아기와 얘기를 나누는 순간에는 통증도 훨씬 덜 느끼는 것 같
았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보는 남편은 걱정이 많았다. "임산부가 병든 사람을 가까이 하면
좋지 않다는데..... 혹시 좋지 않은 기운이 아이에게 전해지면 어떡하지?" "무슨 소리예요?
그저 근거 없는 미신에 불과해."
남편에겐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지만 가끔 몸이 좋지 않을 때면 나도 내심 불안해졌다.
그러다가 문득 자식들이 아플 때마다 밤을 지새우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어
머니가 한순간이라도 우리를 꺼린 적이 있었을까? 당신 건강이 상할까봐 걱정한 적이 있었
을까? 아니, 결단코 아니었다. 마지막까지 자식을 위해 희생한 어머니를 두고 그런 걱정을
한 내가 부끄러웠다. 그제야 어머니가 병원에서 했던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꽃이 떨어진
자리에 열매가 맺히듯 떠나는 생명의 아쉬움 뒤에는 새로운 생명이 오는 삶의 순환이 있다
는 것이다. 나는 태어날 아기가 할머니의 지혜와 선량한 심성을 닮기를 진심으로 기도했다.
어머니는 내가 태어나자마자 돌아가신 아버지 몫까지 혼자 힘으로 우리 육남매를 길렀다.
남의 빨래도 해주고 빵을 만들어 팔기도 하면서. 우리가 성장한 후에 오빠들은 고기를 잡고
언니들과 나는 빵을 구워 어머니를 도왔다. 어느 해 섬에 폭풍이 몰아친다는 예보가 있어
섬 주민들은 모두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야 했다. 모두들 바삐 짐을 꾸려 섬을 빠져나갔다.
그런데 어머니는 막 폭풍이 일기 시작한 해변으로 향했다. 오빠들이 고기를 잡으러 나가서
돌아오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만류해도 소용이 없었다. 어머니는 모래 섞인 바람이
사나움을 더해가는 해변가에서 머리카락을 날리며 꼼짝않고 서 있었다. 다행히도 오빠들은
광풍이 몰아치기 직전에 해변에 닿았고, 그제야 어머니는 오빠들의 팔을 붙들고 바삐 걸음
을 옮겼다. 어머니는 오빠들을 붙든 손에서 힘을 빼지 않았다. 오로지 당신만이 자식들의 든
든한 울타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어머니의 삶은 늘 그랬다. 가족은 당신 인생 자체였다. 그런 어머니가 이제는 중병에 걸
려 누운 것이다. 나는 문득 우리 삶을 환하게 비추던 햇빛이 사위어가고 있다고 느꼈다. 여
린 그 빛줄기를 사방에서 감싸안아 마지막까지 안온하게 타오르도록 돕는 일은 자식인 우리
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도리였다. 출산일이 되었다. 설레임과 두려움 속에 마침내 산통이
시작됐고, 영원할 것만 같던 고통의 시간 끝에 나는 아름다운 딸을 낳았다. 의사가 데려온
아기를 처음으로 내 젖가슴에 품은 순간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 벅찬 순간
나는 우리 육남매를 낳으면서 어머니가 느꼈을 감정을 생각했다. 그것은 바로 너무나도 커
서 몸이 터져버릴 것 같은 사랑이었다. 몸을 추스린 후 나는 제일 먼저 어머니를 뵈러갔다.
아기가 하루가 다르게 생기를 더해가는 것과 달리 어머니는 빠른 속도로 사그라지고 있었
다. 아직은 불씨를 간직하고 있지만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바스스 무너져내리는 재처럼 연
약해진 어머니가 나의 작은 천사를 보더니 감격에 겨워 말했다. "오, 미 코라존치타! 시나몬
빛이 너무나 아름답구나." 시나몬! 그러고 보니 이 애는 계피빛 피부를 갖고 태어났구나.
남편과 나는 그 자리에서 아기 이름을 계피라는 뜻을 가진 '카넬라'로 지었다. 어머니가 흐
뭇한 눈길로 나와 카넬라를 올려다보았다.
그로부터 며칠 뒤 우리 남매들은 모두 짐을 꾸려 고향인 섬으로 향했다. 물론 어머니도
함께였다. 의사들은 자동차와 배를 갈아타 가며 7시간이나 가야 하는 긴 여행길을 어머니가
견뎌내지 못할 거라고 만류했다. 하지만 우리는 어머니가 태어난 곳, 어머니가 너무나도 사
랑하는 그곳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마지막을 맞게 해드리고 싶었다. 섬에 도착한 지 한 시
간도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숨을 거두셨다.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어머니는 손녀를 안고 어
루만졌다. 그리고 영원히 쉴 수 있는 고향으로 돌아온 사실을 행복해 하며 눈을 감으셨다.
어머니는 그렇게 떠나고 대신 우리 곁에 카넬라가 왔다. 꽃 진자리에서 막 돋아난 열매처럼
싱그런 모습으로. 카넬라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만 할머니를 알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도 카넬라는 삶의 순환을 아름답고 자연스럽게 이어갈 것이다. 티타나 메나 가
르기니
사랑의 치유
"실례합니다." 누군가의 강하고 맑은 소리가 뒷마당까지 들려왔다. 동시에 셰퍼드 두 마
리가 미친 듯이 짖어댔다. 도대체 누구야? 철도 모르고 열기를 뿜어내는 12월의 햇빛 때문
에 마당에서 녹고 있던 개 배설물을 치우던 나는 별로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저, 베스?
베스 바클리?" 그 혐오스런 작업을 중단하고 허리를 폈더니 숱 없는 갈색머리카락을 말꼬
랑지 모양으로 묶은 덩치 좋은 여자가 존 레논 안경 너머 가늘게 뜬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게일 에링턴이에요. 화이트 셰퍼드 신문이요. 우리 인터뷰하기로 했죠?" 나는 짜
증을 감추지 않은 채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약속 시간보다 일찍 왔던 것이다. "문고리
열고 개들 안 나가게 조심하세요. 발 밑을 잘 보구요."
그녀는 내가 시키는 대로 조심스럽게 배설물을 피해가며 정원을 가로질러 다가왔다. 나는
부질없는 변명을 하지 시작했다. "어제 돌아왔더니 벌써 어두워졌더라구요. 집 봐주는 사람
이......" "개똥 청소기 하나만 더 있으면 일을 두 배로 빨리 끝낼 수 있지 않을까요?" 갑자
기 그녀가 내 말꼬리를 자르고 말했다. 그날 오후에 시작한 인터뷰는 동네 태국 음식점에
서 저녁식사를 할 때까지 이어졌다. 나는 내 셰퍼드 판다와 팀을 이뤄 지진의 참상에 빠져
있던 아르마니아로 건너갔던 미국 수색구조대의 일원이었고, 게일은 그 일을 인터뷰하러 온
것이었다. 바로 그날부터 우리는 우정보다 돈독한 유대감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게일과 나
는 서로를 '개 사돈'이라고 불렀다. 둘 다 아이도, 남편도, 생존해 계신 부모도 없는 처지였
는데, 개를 통해 가족의 사랑을 느끼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 뒤로 내가 구조대원으로
출동하고 나면 게일이 와서 내 개를 돌봐주었다. 몇 년이 더 흐르자 내 셰퍼드 두 마리는
너무 늙어서 구조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캐나다에 사는 세계적인 구조견 사육사에
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어울리는 암컷 강아지가 한 마리 있다는 말에 캐나다로 떠나기로
했다. 그 바로 전날 집을 봐주기 위해 게일이 왔다. 우리는 샤도네이주 한 병을 잠시 동안의
이별주로 나눠마셨다. 그동안 늙은 셰퍼드 두 마리는 게일이 앉은 의자 양옆에 비대한 몸집
을 부린채 게일의 발에 턱을 괴고 있었다. 새로 데리고 올 강아지 이름이라도 지으면서 수
다를 떨고 싶었는데 게일은 그날따라 유난히 조용했다.
"안 좋은 일 있어?" "좀 피곤하네. 과로해서 그런가? 종합검진을 한번 받아봐야겠어."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캐나다 구조견 사육사였다. "안 좋은 소식이에요. 당신한테 줄 강아
지의 건강진단을 했는데 심장에 이상이 있대요. 1년도 못살 거라는데 어떡하죠?" 무슨 일
이야? 게일이 소리없이 입만 움직여서 물었다. 나는 수화기를 가리고 대답했다. "강아지가
많이 아프대." 게일의 얼굴이 걱정으로 굳어졌다. 그때 수화기 너머에서 사육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출발하기 전에 통화하게 돼서 그나마 다행이네요." "글쎄 말이에요. 거기까지
갈 필요가 없어졌네요." "잠깐만!" 그 순간 갑자기 게일이 끼어들었다. "어차피 비행기표
는 환불이 안 되잖아. 그냥 갔다오지 그래?" 나는 망설였다. 무엇보다 실망이 커서 마음이
심란했다. 그런데 게일이 벌떡 일어서더니 수화기를 빼앗아들었다. "여보세요? 저는 베스
친군데요. 어쨌든 베스가 그쪽으로 갈 거예요."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나는 캐나다행 비행기
에 올랐다. 구조견 사육사의 집은 온통 개 천지였다. 여기저기 개 장난감에, 물 그릇, 개 잡
동사니들이 뒹굴고 있었다. 부엌으로 갔더니 강아지 한 마리가 빨간 체크무늬 쿠션 위에 몸
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나를 보자 강아지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일어나 손가락에 차가운
코를 비볐다. 가만히 강아지를 안았더니 불규칙적인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가냘픈 강아지의
황금빛 눈을 들여다보며 나는 마음을 굳혔다. 이미 '사이리 투' 라는 이름까지 지어버렸다.
"제가 데려가고 싶어요." 구조견 사육사는 동정심 때문이라면 굳이 데려갈 필요가 없다고
만류했다. 그러나 사이리 투에 대한 내 마음은 단순한 동정심이 아니었다. 그냥 꼭 내가 안
고가야 할 것 같았던 그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자 나와 사이리 투를 지켜
보던 그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나에게 다른 곳에 주기로 했던 숫놈 강아지까지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 강아지는 어찌나 체구가 좋고 성격이 괄괄한지 '황제'라고 불리는 녀석이었다.
늙은 개 두 마리를 곱게 단장시키고 양고기 스튜까지 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늘 그랬듯이
게일은 그동안에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빼놓지 말고 다 얘기해달라고 졸랐다.
나는 사이리를 무릎에 안고 개사돈과 마주 앉았다. "사이리를 안아봐도 돼?" 게일이 물
었다. 아마도 강아지한테 첫눈에 반한 모양이었다. "진짜 심장소리가 이상하구나." 게일이
뺨에 강아지 얼굴을 비비며 말했다. "수의사가 그러는데 1년도 못 살거래." 내가 말했다.
"나랑 똑같네." "......? 하나도 안 웃겨, 게일." 게일은 안고 있던 강아지를 무릎에 내려놓더
니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의사가 그러는데, 나 자궁암이래. 심각하대. 길어야 1
년....." 나는 갑자기 눈앞이 아득해지며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런 나를 보며 게일은 담담하
게 말했다. "베스, 이 녀석 내가 돌봐주고 싶어. 우리 둘이 함께 있으면 서로 위로 받을 수
도 있을 것 같구." 나는 게일이 어미닭처럼 굴지말라고 하기 전까지 매일 그녀에게 전화했
다. 그때마다 게일은 능숙하게 화제를 돌렸다. 주로 사이리 이야기였다. 사이리가 하도 장난
치고 싶어해서 밤새 놀다가 이제 자기 배 위에서 잠들었다는 예기를 하느라 30분을 소비하
기도 했다. 나는 게일이 아주 능숙하게 대화의 방향을 병으로부터 멀리 돌려놓고 있다는 사
실을 알 수 있었다. 몇 달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동안 게일은 직장을 그만두고 강아지와
함께 어린이병원이나 양로원을 방문하고 있었다. 게일은 나만 보면 사이리가 너무 인기가
좋아서 사람들이 먹을 것도 사주고 편지도 보낸다고 자랑하기에 바빴다.
"사이리랑 병들고 아픈 사람들을 찾을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어.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
살아있음과 산송장의 차이가 뭔지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 말이야." 게일의 말은 맞는 얘기
였다. 중병에 걸린 게일과 사이리는 오히려 다른 환자를 위로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고 있었
다. 다른 환자를 위로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던 것일까.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게일은 사
이리를, 사이라는 게일을 염려하고 위로했다. 그것은 같은 처지에서만 비롯될 수 있는 지극
한 사랑이었다. 서로 하도 끔찍이 위해서 내가 질투가 날 정도였으니. 그 사이 나는 1년이
다가왔다가 넘어가는 순간을 지켜보았다. 그러더니 어느새 18개월이 지났다. 그 동안에도 이
'죽어 가는 커플' 은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운명의 전화가 걸려왔다. "베
스....." 너무나 가라앉은 게일의 목소리를 듣고 나는 나쁜 소식일거라는 예감을 했다. "게
일....." 내가 떨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한 채 낮게 속삭이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수화기 너
머에서 울리는 비명이 귓전을 때렸다. "베스! 암이 꺼져버렸대. 암세포가 하나도 없다는 거
야. 난 벌써 죽었어야 하는데 말이야!"
나는 벅차 오르는 안도감과 사람을 동시에 느꼈다. 게일의 들뜬 목소리도 계속됐다. "사
이리도 날 두고 떠날 기색이 아닌걸. 걔가 온 지 벌써 얼마나 됐지?" "1년하고 6개월." 거
기다 더하기 3일 8시간이라고 덧붙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긴긴 시간도. 베스
바클리
사랑이 열어주는 또 다른 사랑의 문
나는 속도제한을 무시하고 가속 페달을 마구 밟아댔다. 이미 내 의식은 자동차보다 빨리
달려 병원에 계신 아버지께 닿아 있었다. 최근 몇 년 불행은 오로지 나만의 몫인 것 같았
다. 그 불행은 10년을 한결같이 사랑한 남자와 이혼한 지난해에 절정에 달했다. 그런데 이제
늘 웃는 낯에 건강하기만 하던 아버지가 병원으로 실려갔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강건하고
빈틈없는 스웨덴 양반이 심장마비로 쓰러졌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병원까지는
이제 열 블록밖에 남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힘껏 속력을 내는데 작은 고향 마을에 자리한
병원의 낯익은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병원에 들어서자 이번에는 심장병 중환자병동으
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더디게 내려왔다.
"진정하세요, 아주머니." 병동으로 올라가자 중앙접수처에 있던 간호사가 나처럼 초조하
고 당황한 사람들에게는 사뭇 익숙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앤더슨씨 찾아오셨어요? 중환
자실에는 가족만 잠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양해해주세요." "딸이에요. 들어가기 전에 아버
지 상태가 어떤지 알고 싶군요." "심장마비 같아요. 의사선생님들이 검사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에요. 지금은 편히 쉬고 계세요." 간호사는 한 손으로 차트를 집어들고 다른 손으
로는 내가 들어갈 문을 가리켰다. 그리고 경쾌하게 돌아서더니 미끄러지듯 걸어 가버렸다.
나는 그녀가 가리킨 방을 창 밖에서 들여다보았다. 마치 물 밑에 있는 방처럼 음산하고 푸
른빛이 감돌고 있었다. 문을 열자 산소호흡기에서 나는 '쉭쉭' 소리와 아버지의 고장난 심장
이 내는 '삡삡' 소리가 동시에 들려와 잠시 멈칫했다. 아버지가 비참하고 무력하게 누워 기
계장치에 연결돼 있는 모습을 혼자서 대면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를 비롯한 가
족들이 도착하지 않았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겨우 잠들어 있는 아
버지는 너무 작아 보였다. 나는 튜브와 반창고가 가냘픈 몸을 온통 뒤덮고 있는 아버지의
손을 가만히 잡고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그때 나는 어찌나 경황이 없었던지 방에 나 말고
도 다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한참만에야 알아차렸다. 한 남자가 등을 보이고 서서 희 가
운을 입은 의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중이었다.
맙소사. 제프, 제프잖아! 도대체 여기서 뭘하고 있는 거지? 순간 전 남편 제프가 내 마음
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나에게로 왔다. 그가 두 팔로 내 어깨와 허리를 감싸는 동안 나는
놀라서 뻣뻣하게 서 있었다. 그는 태연한 표정으로 나를 살짝 껴안더니 의사에게 인도했다.
"심장외과 전문의 제임스야. 검사결과로는 아버님 심장에 손상이 많다는데?" "심한 심장마
비가 왔던 것 같습니다. 방금 치료방법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습니다." 의사가 덧붙였다. 내
가 가장 두려워하던 결과였다. 불쌍한 아버지. 하느님, 제발 아버지를 도와주세요. 정신이
아득하게 멀어지려는 순간 다시 제프의 부드러운 손길이 닿았다. 덕분에 간신히 마음을 수
습할 수 있었지만 느닷없이 불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떻게 알았엉?" 질문이 아니라
비아냥이었다. "병원에서 옛날 우리 전화번호를 갖고 있었나봐. 그래서 당신 새 번호를 알
려주고 나도 달려왔어." 제프는 말을 마치자 마자 내가 익히 아는 사무적인 태도로 돌아가
의사를 향했다. 심장이 정확하게 얼마나 손상됐는지 아십니까? 혈관촬영은 언제 할 겁니
까? 혈관폐쇄 가능성이 있습니까? 수술이 필요하다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언제 수술
할 겁니까? 다른 곳에 진단을 다시 의뢰할 시간은 있습니까?
나는 제프의 조심스런 질문을 듣고 있었다. 10년전 내가 광고회사 영업부에서 일하고 있
을 때 그가 사무실로 걸어 들어왔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서로 첫눈에 반했다. 하지만 이제
제프와 나는 이혼한 지 어언 12개월이 지난 사이였다. 이혼 당시 제프는 열심히 사유를 설
명했지만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법정과정을 거쳐서 우
리는 헤어졌다. 지난1년 동안 나는 이혼의 당혹스러움과 상처에서 어느 정도 헤어난 줄 알
았다. 하지만 막상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그를 마주치자 아직도 극복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
을 깨달았다. 다시 분노가 치밀었다. 제프는 여기 있으면 안 돼. 그는 이제 가족이 아니야.
그 권리를 스스로 포기했잖아. "대학병원에 전화하고 올게. 유능한 심장병 전문의한테 치료
받게 해드려야겠어."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프는 말을 마치고 방을 나섰다. 나는 무
장해제 당한 기분으로 말문이 막힌 채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아버지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얼른 아버지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 혼
신을 다해 기도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다시 허리를 감싸는 제프의 친근한 감
촉이 느껴졌다. "제일 유능한 의사들에게 의뢰했어. 내가 곁에 있을게, 클로드. 아무리 오래
걸려도." 제프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내가 곁에 일을게, 클로드. 아무리 오래 걸려도. 언
젠가도 들어본 말이었다. 내 머리 속에서 아버지가 누워있는 병실의 회청색이 사라지고 대
신 몇 년 전 내가 누워 있던 분만실의 하얀색이 들어섰다. 그리고 거기 제프가 있었다. 제
프는 딸을 사산하고 나오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보니 남편이 핑크색 잠옷에
모자를 쓰고 핑크색 포대기에 싸인 아기를 안고 있었다. "보기 싫어요. 걔가 아니라도 건강
한 아이가 셋이나 있잖아." "우리 아이는 넷이야, 클로디아. 즉었든 살았든 우리 아기라구.
우리가 아기를 인정해줘야지." 제프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었지만 그의 얼굴이 슬픔에 잠겨 있었다. 이윽고 팔을 벌린 내게 제프가 우리 딸을 안겨
주었다. "내가 곁에 있을게, 클로드. 당신이 편안하게 작별인사를 할 수 있을 때까지 아무
리 아무리 오래 걸려도." 그리고 그는 정말로 내 곁을 지켜주었다. "괜찮아?"제프의 목소
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어머님이랑 식구들이 오
고 계셔." 그는 잠시 망설였다. "아버님 아무 일 없으실 거야. 알지? 강한 분이잖아." "고
마워요." 나는 말했다. 그것은 진심이었다.
몹시도 긴 하루였다. 오빠와 언니, 어머니 그리고 나는 밤새워 아버지 곁을 지키면서 짧은
면회시간을 오래도록 기다렸다. 그동안 제프는 내내 우리 곁을 지켰다. 배가 고파 보이면
음식을 가져다주었고, 의사에게 우리가 미처 생각 못한 질문들을 대신했다. 사실 그가 그 자
리에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아버지가 수술실로 실려갈 때 제프의 손가
락이 아버지의 야윈 손을 잠깐 스쳤다. 아버지가 잔잔히 웃었다. 다행히도 수술은 성공적이
었다. 다음날 늦은 오후에는 위기를 넘기고 회복기에 들어섰다. 그제야 나는 제프의 존재에
고마움을 느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쌓아왔던 벽은 이미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나는 1년
만에 제프가 여전히 좋은 사람, 좋은 아버지, 좋은 친구라는 사실을 다시 인정하게 되었다.
고요한 병실에서 나는 사랑이 여러 가지 얼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같은 공간에
서 얼굴 맞대고 살지 않아도 사랑은 존재할 수 있었다. 부부라는 이름이 아니어도 사랑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제프는 이제 내 남편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나의 친구다.
나는 소중한 친구의 얼굴을 보며 웃어주었다. 제프도 따뜻하게 미소지었다. 사랑의 끝이
반드시 쓰라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굳이 후회 속에서 번민하지 않아도 되디라. 그런 감정
들을 동원해 애써 영혼을 억누를 필요도 없다. 사랑이 열어주는 또 다른 사랑의 문이 있으
니까. 내 상처가 아버지의 상처와 함께 아물고 있었다. 클라우디아 케르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
내 최초의 기억은 따뜻한 어머니의 품이다. 나는 이유 없는 반항기라는 십대 때에도 어머
니가 짜증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우린 의견충돌을 빚은 적도 없었다. 내게는 어머니를 사
랑한 기억밖에 없다. 내 눈에 어머니는 여신이었다. 어머니는 6살 때 이탈리아에서 미국으
로 이민왔다. 당시 이탈리아 소녀라면 다 그랬듯이 당신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 바느질을 배
운 어머니는 10대에 이미 남자 양복 한벌쯤은 척척 만들어낼 정도로 솜씨가 좋았다. 조카들
을 위해 파티복을 만드는 내 솜씨도 모두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어머니의 외모는
이탈리아 전통적인 미인의 기준에 딱 들어맞았다. 키 155㎝에 몸무게 45㎏, 진한 올리브색
피부와 흑갈색 머리. 나는 특히 둥그런 귀고리와 이국적인 두건이 아버지를 처음 매혹시켰
다며 회상에 젖는 어머니의 모습이 좋았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분위기에 완전히 사로잡힌
정열적이고 끈질긴 구혼자였다. 마침내 어머니는 아버지와 결혼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낳았다. 임신중에 어머니가 하도 올리브를 많이 먹는 바람에 내 이름을 올리브로 지을 뻔했
다고 한다. 하지만 딸에게 절대 과일 이름을 붙일 수 없다며 올리비아로 유아세례를 받게
했다.
행복이 음식에서 솟아나는 것이라면 우리 집은 필라델피아 동쪽지역에서 가장 행복한 집
이었을 것이다. 일요일만 되면 우리 집은 정오부터 들이닥치는 친척과 친구들로 늘 북적댔
다. 어머니는 하루종일 커다란 그릇에 특별 요리를 가득 담아 날랐다. 쇠고기에다 멸치, 레
몬 껍질, 파슬리를 이용해 만든 별미였다. 거기에다 야채샐러드와 마늘빵이 안식일 잔치를
채웠고, 후식으로는 리코타와 피스타치오를 넣어 군침돌게 만드는 카놀리나 미아스카 빵과
과일푸딩이 기다렸다. 할아버지는 특별히 집에서 담근 적포도주를 내놓았다. 어머니는 내게
도 탄산음료를 섞은 적포도주를 건네며 말했다. "너도 삶의 기쁨 가운데 하나를 맛봐야 하
지 않겠니?"
어머니는 거침없는 명랑한 성격과 정곡을 찌르는 유머로 어디서나 분위기를 주도하는 파
티의 꽃이었다. 카펫쯤이야 돌돌 말아 거둬버리고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추는 광경은 그 시
절 일요일만 되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내가 가족을 위해 이탈리아 요리를 만드는
것이나 친구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아몬드 과자를 만드는 것도 다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전
통이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도 꽤 많은 것 같다. 내가 자라 결혼을 하고
필라델피아를 떠나 워싱턴으로 갔지만 어머니와의 친밀한 관계는 더욱 돈독하게 유지됐다.
휴가는 어머니와 늘 함께 지냈으며 하루도 안 빼놓고 날마다 전화로 대화를 나눴다. 누군가
는 모녀가 그렇게 가까운 것도 별로 좋은 일은 아니라고 시샘을 섞어 말했지만 나는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그날따라 어머니의 목소리가 몹시 침울했다. "가슴에 아
주 큰 혹이 났어. 의사가 그러는데 아주 안 좋은 징조라는구나." 이튿날 나는 몸을 질질 끌
고 억지로 출근했다. 그러나 어찌나 가슴이 떨리던지 진정시키느라 30분에 한 번씩 화장실
로 달려가야 했다. 일에도 집중할 수 없어 실수를 연발했다. 그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함께15
년을 지낸 상사가 당장 어머니께 가보라고 말했다. "가서 어머니 곁을 지켜. 그동안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수술은 장장8시간이나 계속됐다. 수술실 밖에서 초조하게 서성
이며 나는 쉬지 않고 기도했다. 제발 어머니를 살려주십시오. 제 곁에 오래 계시게 해주세
요. 나는 어머니를 잃게 될까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마침내 수술이 끝났다. 어머니의
흉한 몸을 보고 나는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오히려 어머니가 내 손을 꼭 잡으며 말
했다. "이번만큼은 내 마음대로 가슴크기를 선택할 수 있었잖니." 나는 하루가 다 갈 무렵
브래지어를 벗는 게 얼마나 시원한지 모른다고 말하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애써 웃으려고 노
력했다. "얘, 넌 가슴이 작은 것에 감사해야 한다. 이 브래지어 끈 때문에 여자 몸이 어떻
게 되는지 좀 봐라." 어머니는 꽉 조이는 끈을 어깨에서 내리고 분홍색 자국이 깊게 패인
자국들을 보여주곤 했다. 어머니는 예정보다 이틀 먼저 퇴원하며 말했다. "그냥 여태 해오
던 대로 인생을 유지하고 싶구나."
어머니는 기력을 회복하자마자 '삶을 위한 건배' 파티를 열었다. 파티가 열린 주말 어머니
집은 50명이 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어머니와 나는 언제나처럼 손님들을 위해 특별 요
리를 준비했다. 어머니가 옷안에 인공소변기를 달고 있다는 사실은 나와 아버지밖에 몰랐
다. 그리고 얼마 뒤 어머니는 다른 여성 암환자들이 꿋꿋하게 살아가는 데 보탬이 되고 싶
어서 자원봉사단에 가입했다고 말했다. "허구한 날 내가 불쌍해서 못 살겠다고 찔끔거리면
서 허송세월할 순 없잖니. 밖에는 위로가 필요한 여성들이 너무나 많은데 말이야." 어머니
는 평생동안 보여준 활기를 다 동원하여 암과 싸웠다. 좌절이나 절망을 모르는 어머니의 모
습이 하도 신기하게 보여서 어느 날인가는 이렇게 물은 적도 있었다. "대단해요, 엄마. 어
디서 그런 힘이 나는 거예요?"
그러자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앞에는 오늘밖에 없단다. 베개를 베고 눈을 감
는 순간, 그날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버리는 거야. 다시는 우리를 찾아오지 않지. 그러니까
사는 동안 매초마다 감사하면서 기쁨을 찾고 싶은 거란다. 인생이란 한순간 한순간이 가장
중요하니까." 하지만 병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상태였고, 어머니는 그해 추수감
사절에 돌아가시고 말았다. 하나님은 왜 어머니를 사랑하고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서 기
어이 어머니를 데려가셨을까? 나는 분노와 원망을 견디지 못해 괴로워했다. 슬픔을 받아들
이고 어머니의 죽음을 자연스러운 순리로 인식하기 위해 정신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나는
순간 어머니의 유언을 떠올리며 자신을 추스르려 애썼다. 얘야, 슬픔을 너무 오래 간직하는
것도 해롭단다. 내가 떠난 뒤에도 네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
말들이 차츰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소름 끼치게도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어느 날 내
가슴에서도 혹이 만져졌다. 나는 당황했지만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
다. 어머니가 숨을 거두기 전에 내게 하신 마지막 말씀이 새삼 떠올랐다. "내 딸만은 유방
암에 걸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단다." "절대 안 걸릴 거예요." 그때 나는 맹세하듯 말
했다. 그러나 진단결과는 어머니와 똑같았다. 의사는 빠른 시일 안에 절개수술을 하자고 했
다. 어머니처럼 말이다. 일주일만에 나는 어머니가 받았던 수술을 받았다. 어머니가 너무
빨리 돌아가셨기 때문에 내 두려움은 몹시 컸다. 그러나 어머니의 용기, 마지막까지 인생을
최대한 즐기던 모습을 떠올렸다. 내게 그 기억은 확실히 힘이 돼주었다. 어머니를 너무 좋
아했고, 어머니의 솜씨를 물려받았고, 심지어 어머니가 앓았던 병까지 물려받은 터였다. 그
렇다면 어머니가 마지막 순간까지 보여주었던 꿋꿋한 태도를 배우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
었다. 다행히 암을 조기에 발견한 덕분에 내 생존 가능성은 95%라고 한다. 어쨌거나 나는
어머니처럼 다른 여성들을 위로하고 인생에 대한 투혼을 함께 나누기 위해 자원봉사단에 가
입했다. 그리고 나를 아끼는 많은 사람들이 베풀어주는 엄청난 사랑과 지지와 이해에 둘러
싸여 살고 있다. 나는 반드시 극복해낼 것이다. 올리비아 월쉬
함께 라면
재혼한 남편을 따라 워싱턴 변두리로 이사했을 때 내 아들 토미는 11살이었다. 처음 새출
발을 하면서 희망과 기쁨에 들떠 있을 때만 해도 우리 앞에 커다란 시련이 버티고 있으리라
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아칸소 시골 마을인 고향에 있을 때는 함께 어울리는 교회 식구들
이 많아서 위안과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토미도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성격 덕분에 교회에
서나 학교에서 활발히 활동했고, 인기가 많아 따르는 친구도 수두룩했다. 그런데 워싱턴은
거대하고, 혼란스럽고, 흥미진진하고, 무서운 느낌을 한꺼번에 안겨주는 도시였다.
토미가 전학한 학교는 예전에 다니던 곳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아는 친구도 물
론 없었다. 게다가 토미에게는 극복해야 할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한 쪽 귀는 전혀 안 들
리는 데다가 다른 쪽 귀도 시원찮았던 것이다. 아칸소에서는 교실 맨 앞자리에 앉아서 잘
들리지 않는 부분은 선생님들의 입모양을 보면서 이해하는 것으로 장애를 극복할 수 있었
다. 선생님들은 잘 도와주었고 친구들은 토미의 장애를 개의치 않았다. 나는 아들의 새 선
생님들을 만나 토미의 상태를 설명했다. 한결같이 걱정스런 기색을 감추지 못했지만 기꺼이
토미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처음엔 약속이 잘 지켜졌다.
토미와 나는 가까스로 워싱턴에서의 새 생활에 적응해 갔다. 하지만 불행히도 밝은 미래
를 가져다줄 것 같았던 내 재혼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불과 몇 년만에 다시 우리
두 모자만 남게 된 것이다. 더구나 이번에는 일가친척마저 멀리 떨어져 있었다. 미국의 도
시에서 흑인 청소년으로 살아가기란 무척 힘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토미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아버지도 없다. 그래도 나는 아칸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조건이 괜찮
은 회사에서 일자리도 얻었고, 토미가 다니는 학교도 나무랄 데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힘겨운 나날이 이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살 수 있었기 때문에 행복했다.
토미가 고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할 때까지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려나가는 듯했다. 모자간
의 팀워크도 훌륭했다. 그렇지만 안심하는 사이에 시련의 순간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토미가 자기 안으로 움츠러들기 시작한 것이다.
언제부턴가 토미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즉시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무슨 일이든 시시콜콜
말해주던 아이였다. 그런데 하루를 어떻게 보냈느냐고 물으면 딱 두 마디밖에 하지 않았다.
별일 없었어요. 괜찮아요. 따뜻하고 활달하던 토미의 성격이 점점 냉소적으로 변해갔다. 나
는 도무지 그 변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엔 그저 사춘기려니 했다. 사춘기 때는 누구나
감정의 격동기를 거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제 스스로 문제
를 털어놓을 때까지 마냥 손놓고 기다릴 수는 없었다. 마침내 나는 토미의 교장선생님과 면
담약속을 하기 위해 학교로 전화를 했다. 그런데 바로 그날 그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말았
다. "병원입니다. 아드님이 트럭에 치여서 응급실에 있습니다."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
지는 소식이었다. 차를 몰고 병원으로 달리는 내 눈에 속도제한 표지판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상상 속에서 끔찍한 그림들이 연신 나타났다 사라졌다. 정신없이 응급실로 뛰어드는
데 간호사가 말했다. "몇 군데 찰과상을 입고 멍이 들었지만 크게 다친 데는 없어요." 처
음 몇 분간은 침대에 걸터앉아 토미를 마냥 껴안고만 있었다. 그러자 아들이 입을 열었다.
"괜찮아, 엄마. 울지 마세요. 별일 없었어." 괜찮다. 별일 없다. 이제 그 두 마디에 넌덜머리
가 났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니?" "아무 일도 없었어요." 나는 침대 옆으로 의자를 바
싹 끌어당겼다. 그리고 붕대를 감은 아들의 손을 잡았다. "말 해. 안 그러면 밤새도록 똑같
은 질문을 하고 또 할거야. 어떻게 된 거야?" "안 그래도 걱정거리가 산더미잖아요. 전 괜
찮아요." "어떻게 된 거야?" 아들은 입술을 꾹 다문 채 내 시선을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집요하게 아들의 눈을 쳐다봤다. "엄마한테 못할 말이 뭐가 있니. 어서 얘기해봐."
토미의 뺨에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만에 속삭이듯 털어놨다. "밀었어.
트럭 앞으로." 나는 뛰는 가슴을 진정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누가?" "애들이 . 걔들은
나를 증오해. 매일같이 때리고 부려먹어. 나보다 나이 많은 애들이야. 망보라고 시켰는데 싫
다고 그랬거든." 망을 보라고? 무슨 짓을 하느라 망 볼 사람이 필요했는지 상상도 하기 싫
었다. 상처와 멍 자국으로 얼룩진 토미를 바라보며 나는 지금 이 악몽이 현실이 아니기를
간절히 빌었다. "왜 진작 엄마한테 말 안 했니?" "엄마 가슴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엄마 요즘 너무 힘들잖아."
아들은 가슴속에 꾹 눌러 담고 있던 말들을 봇물 터뜨리듯 쏟아냈다. 나는 토미가 놀림
당한 이야기, 협박당한 이야기, 두려움에 떨던 이야기를 모두 들었다. 손발이 부들부들 떨
렸다. 아들이 따돌림에 협박까지 받았다는 소리를 듣고 태연할 어머니가 어디 있겠는가. 가
슴 밑바닥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감정을 앞세울 일이 아니
었다. 나는 몇 번이고 주먹을 그러쥐고 침을 삼켜가며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려 애썼다. 당
장 아들한테 도움이 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침착하고, 현명하게. 그렇지 않아도 잔뜩 주눅
이 든 아들을 자극하지 않도록. 한참만에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조용히 얘기를 시작했다.
"필요한 일이라면 뭐든 다 하마. 전학 가자. 안 그러면 걔들이 계속해서 널 괴롭힐거야."
아들은 말없이 벽만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여기는 학교마다 그런 애들이 다 있어요. 내가 직접 맞서야 될 문제예요."
"그래? 그럼 둘이서 함께 맞서자." 그것은 일종의 맹세였다. 아들이 미소를 지으며 한동안
나를 쳐다봤다. 아들의 눈 속에는 지금껏 내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표정이 담겨 있었다.
"엄마랑 함께라면 할 수 있을 거예요." 토미가 학교로 돌아간 첫 날부터 변화가 시작됐다.
토미는 모든 선생님들을 찾아가서 교실 맨 앞자리에 앉게 해달라고 요구했고, 결국은 앞자
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토미의 학교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만한 선생님
을 찾아갔다. ROTC담당 선생님인데 토미에게 관심을 보인 적이 있었다. 나는 그에게 자초
지종을 설명했고, 그 선생님은 토미를 돌봐주겠다고 약속했다.
우리의 전투는 오랫동안 계속됐다. 맞서 싸우기로 결심했다고 해서 시련이 갑자기 사라지
지는 않는 법이니까. 하지만 토미는 차츰 자신감을 회복했다. ROTC선생님의 관심과 보호
아래 학교생활도 안정을 찾아갔다. 이제 아들은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나에게 의논하고
우리 둘은 함께 해결점을 찾도록 노력한다. 3년 뒤 토미는 ROTC수위대의 대령이 되었다.
흑인 소년이 게다가 장애를 가진 학생이 시련을 딛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최고 영예를 차지
한 것이다. 내노라하는 명문가 학부모들이 내 아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운
동장에서 유니폼을 입고 행군을 지휘하는 토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 누구도 부럽지 않
았다. 졸업식 날 토미는 고난의 졸업장을 내게 주었다. "엄마 없이는 여기까지 오지도 못
했을 거예요." 앞으로 내 아들은 또 무엇을 성취하게 될까?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해본다.
우리가 서로 기댈 수만 있다면 설사 우주 전체가 한꺼번에 시련을 퍼붓는다 해도 우리는 맞
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 이겨낼 것이다. 앤 러더포드
침묵 저편
어느 날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꼬마야, 안녕." 20년 동안이나
헤어져 지낸 아버지였다. "사업차 여기 와 있는데 내일은 여유가 있구나. 우리 만날래?"
순간, 오래 전 5살 때의 일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화장지를 들고 차 옆에 서 있었고, 아버지
는 침통한 표정으로 차안에 앉아 있었다. "아빠 어디 가?" 나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
마랑 아빠, 이혼할거야." 그때 아버지가 묵묵히 시동을 걸고 차를 움직였다. 나는 아버지가
차도로 들어선 다음 언덕을 넘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아빠는 왜 한번도 나를 뒤
돌아보지 않지? 1년 뒤, 아버지는 젊은 여자를 만나 결혼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로 갔다.
그 뒤로는 결혼식이나 장례식 같은 가족 행사 때나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어때, 괜찮겠
니?" 수화기 너머에서 아버지가 물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아버지 없는
세월 동안 내가 겪은 분노와 슬픔이 한꺼번에 솟구쳐올랐다. 하지만 나는 감정을 억누르며
대답했다. "등산이나 가실래요?" "그래, 좋은 생각이구나."
이튿날 아버지가 묵고 있는 호텔로 운전해서 가는 동안 나는 거대하고 컴컴한 공허 속으
로 한 발자국씩 다가서는 듯한 느낌에 빠졌다. 괜찮을거야. 애써 스스로를 타일렀지만 나
는 당장이라도 차를 돌려 다른 곳으로 가버리고 싶은 마음을 힘겹게 다독여야 했다. 로비
에 도착해서 아버지가 묵고 있는 객실로 전화를 했다. "네." 전화 속 목소리가 몹시 차갑
게 들렸다. 순간 모두가 나쁜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마스입니다." "어, 그
래." 좀 전보다는 다소 따뜻해진 음성으로 아버지가 말했다. "간단하게 샤워를 해야 되거
든. 10분쯤 뒤에 내려가마." 문득 상실감이 엄습했다. 방으로 올라오라고 해도 되잖아. 아
버지가 나를 부르지 않은 이유를 생각해 봤다. 어쩌면 나는 아버지에게 그만큼도 친근하지
않은 존재인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도대체 내가 지금 왜 여기서 머뭇거리고 있는 거지? 수
없이 망설이면서도 나는 차마 가버리지 못하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정확히 12분 후,
문이 열리면서 아버지가 나타났다.
아버진 내가 기억하고 있던 모습보다 훨씬 나이들어 보였다. 하긴 20년의 세월도 흘렀고,
나도 더 이상 그 옛날의 꼬마가 아니었으니까. "여기서 기다렸구나." 아버지가 나를 찬찬
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온몸을 훑어보고 면도한 수염자국을 살피더니 마지막으로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나를 보는 아버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얼굴
에는 신기하고 대견하다는 표정이 겹쳐져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부자라고 할만큼 우리는
닮았다는 사실을 나는 실감했다. "어떻게 지내니?" 아버지가 말을 건네며 나를 꼭 껴안았
다.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오랫동안 냉담하게 지내던 아버지의 갑작스런 애정표현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배고프지 않니?" 내가 침묵하자 아버지가 물었다. "조금요." "여기
아침식사가 괜찮더라. 게다가 호텔에서 식권을 두 장 줬어. 준거니까 써먹어야지." "저 정
신과 치료받았어요." 식사 도중에 내가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말을 끊었다. "웨이트리
스 좀 불러다오. 커피를 새로 주문해야겠다. 이건 형편없구나." 나는 15분쯤 기다렸다가 다
시 입을 열었다. "그거 아세요? 아버지가 안 계셔서 굉장한 상실감에 시달렸다는 거." 아
버지가 고개를 들었고, 우리는 아주 짧은 순간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는 그 눈
빛 속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슬픔이 담겨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얼른 고개를 숙여버렸
다. 그리고 더 이상 그 주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잠시 후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아버지가 짐짓 유쾌한 어투로 물었다. "그래, 나를 어디
로 데리고 갈거냐?" "베어포트 산맥이요. 블루밍데일 근처에 있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
는 동안 우리는 둘 다 말이 없었다. 참으로 괴로운 침묵이었다. 낯선 사람과 좁은 차안에 앉
아 있는 것보다 더 어색했다. 국립공원이 가까워 올수록 견딜 수 없는 중압감이 나를 내리
눌렀다. 그 어색한 침묵에 눌려 죽을 것만 같았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는 뭔
가 할 말을 찾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원망의 감정이 아직도 가슴 바닥에 완강히 버티고 있었
다. 그때 날 치료했던 의사의 조언이 떠올랐다. 토마스, 이제와서 어린시절의 상처를 보상
받을 수는 없습니다. 아버님이 거리를 두고 계신 건 사실이지만 당신과의 인연을 완전히 끊
겠다는 마음은 아니지 않습니까. 생일날 카드도 보내고, 가끔 편지도 하신다면서요. 그게 바
로 당신을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지요. 나는 그 말을 실마리 삼아 분위기를 바꿔보기로 했
다. 사실 아버지를 만나면 할 말이 참 많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주요 관심사가 뭘까, 생각해보았다. 아버지가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는 건 일이 아닐까?
"요즘 일은 잘 되세요?" "일이야 다 그렇지 뭐." "그래도 대기업에서 일하시자면 어려운
점이 많을 텐데요." "무슨 뜻이냐?" "저는 손바닥만한 회사에서 일하는데도 관료주의 때문
에 힘들거든요. 회사가 크면 더 심하지 않을까 해서요. 한 직장에서 20년 이상 일하시고도
계속 진급하시는 걸 보면 대단하세요. 정말 능력 있는 분이세요, 아버진." 순간 깊이 안도
하는 듯한 아버지의 숨결이 나에게까지 전해왔다. 동시에 공허하기만 하던 내 가슴속에서도
작은 느낌이 일었다. 어쩌면 나보다 아버지가 더 고통스러웠을지도 몰라. 남겨진 나의 피
해의식보다 떠나버린 아버지의 죄책감이 훨씬 더 컸을지도 몰라. 마음으로는 내가 보고 싶
어도 차마 다가오지 못했을지도 몰라. 그래, 그렇게 20년이 흘러버렸을 것이다. 그것이 정
확히 어디서, 어떻게 비롯된 감정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를 이해하고 있었다. 이윽고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
했다. 눈앞에 푸른 언덕이 펼쳐져 있었다. 바람결에 야생화 향기가 실려오는 구불구불한 등
산로를 걷는 동안 나는 줄곧 아버지 처지가 되어 생각에 잠겼다. 한때 소중했던 가정을 버
리고 두 번째 가정을 택하는 심정도 편치는 않으셨죠? 가끔 후회도 하셨습니까? 생명을
나눠준 아들이 당신 없이 살아간다는 생각을 하며 많이 고통스러우셨습니까? 참 많은 세월
이 흘렀는데, 이제 와서 제 앞에 나타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그래도 저를 만나러
오셨군요. 돌아오셨군요.
나는 진정으로 아버지가 내 곁에 있어서 기뻤다. 그리고 다짐했다. 아버지의 실수를 되풀
이하진 않겠다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아이들과 내 사이가 한없이 멀어지도록 방치하지는
않겠다고.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것은 아버지가 가르쳐 준 교훈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미
소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나를 보며 말했다. "왜 웃니?" "그냥요." "계속 웃어라. 네 웃는
모습이 참 보기 좋구나!" 그날 이후 아버지와 나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 전자우편을
주고받고 가끔은 등산도 함께 다닌다. 아버지가 곁에 없었던 20년이 내게 아직도 영향을 미
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어른이 된 내 곁에 아버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작가가 듣고 적은 이야기
앨리슨의 노란 원피스
"자식을 낳기 전까지는 부모 마음을 모른다." 언젠가 어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저 내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자라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
고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그 의미가 아주 새로운 차원으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깊이로 다
가올 줄은 정말로 몰랐다. 나는 20살 되던 해에 고등학교 때부터 사귀던 남자친구와 결혼
했다. 우리는 서로를 끔찍이 사랑했고, 결혼생활도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그리고 결혼한 지
몇 달만에 놀라운 일이 생겼다. 첫 아이를 임신한 것이다. 단란한 가정을 꾸미는 게 꿈이었
던 나에게 첫 아기 소식은 아름다운 동화처럼 신비하고 기쁜 것이었다. 남편과 나는 기대감
에 부풀어 아기의 탄생을 준비했다. 마침내 그림처럼 멋진 겨울날, 아들 코리가 태어났다.
나뭇가지들은 새하얀 눈을 소복이 이고 있었고 나는 아름다운 기적을 품에 안고 있었다. 고
요하고 완벽한 날이었다.
그리고 코리가 태어난 지 8개월 뒤 나는 또 임신을 했다. 이번에는 우리가 아기를 가질
준비가 됐는지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우리는 곧 그 고민을 털어버리고 아기를 사랑하는 마
음과 자연스러운 설렘만 갖기로 했다. 그리고 코리를 기다릴 때처럼 둘째 아이가 태어날 날
을 손꼽아 기다렸다. 임신 사실을 안 순간부터 나는 뱃속의 아이가 딸일 거라고 확신했다.
그것은 일종의 모성본능이었다. 그래서 이름도 미리 앨리슨 핼리로 지었다. 나는 틈날 때마
다 태어날 딸의 얼굴을 상상했다. 아빠가 머리핀으로 딸아이의 머리를 묶어주려고 애를 쓰
다가 포기하고 헝클어진 곱슬머리를 그냥 내버려두는 장면도 그려보았다. 그 소중한 나만의
그림을 떠올리면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임신 3개월 째 되던 날, 나는 딸의 심장 박동소리를 들었다. 이 벅찬 감동을 남편에게도
안겨주고 싶어 다음 진찰 때는 남편과 함께 가서 듣기로 했다. 우리는 가진 돈이 별로 없었
기 때문에 아기의 생명 소리를 듣는 것으로 결혼기념 선물을 대신하기로 했다. 드디어 기
다리던 날이 왔다. 나는 진찰실 침대에 누워 남편의 손을 잡았다. 둘 다 바보같이 웃으면서
아기의 신호를 기다렸다. 의사가 납작한 마이크를 내 배에 댔다. 하지만 아무리 귀를 기울여
도 마이크의 지지직거리는 소리밖에는 들려오지 않았다. 의사가 얼굴을 찌푸리더니 마이크
를 다른 위치에 댔다. 역시 아무 소리도 없었다. "어쩔 수 없네요. 아기가 오늘은 협조할
기분이 아닌가 봐요." "왜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거죠?" 남편이 물었다. "아기가 옆으로
누워 있어요. 며칠 뒤에 다시 오시면 어떨까요. 아기가 자세를 뒤집을지도 모르니까." 의사
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틀 뒤 나는 혼자서 다시 병원을 찾았다. "아직도 아무 소리가
없네요." 의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까요?" "별 걱정 안 해도
될 겁니다. 아기가 어떤 자세로 누워 있는지 확인하게 초음파검사나 한번 합시다. 단순한 관
례예요." 의사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초음파 검사날은 친정 어머니와 함께 갔다. 어머니와 내가 아기의 성을 궁금해하며 유쾌
하게 웃고 있는데 검사담당자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이거 조금 차가울 거예요." 그녀
가 얼어붙은 석유 젤리 같은 것을 내 배에 찰싹 바르고 구석구석 문질렀다. "조금 정도가
아닌데요." 나는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 여자는 웃지 않았다. 나는 기분을 망치고 싶지는 않
았기에 일부러 농담을 해가며 결과를 기다렸다. 아기에 관한 수치를 적고 메모를 하는 시간
이 몇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결과 나오면 의사선생님께서 전화하실 거예요."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나가버렸다. 어머니가 내 손을 꼭 잡았다. "별 문제 없을 거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검사담당자가 나를
복도 끝으로 부르더니 자기 책상에 놓인 전화기를 가리켰다. "의사선생님 전화예요." 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아들인가요, 딸인가요?" "정말 유감입니다. 태아가 죽었어요." 내 속에
서 신음 같은 절규가 터져 나왔다. "아니에요, 선생님. 뭔가 착오가 있을 거예요. 아기가 이
상한 자세로 누워 있을 뿐이에요." "미안합니다."
"안 돼!" 나는 잔인한 농담을 외면하고 싶어 몸부림치면서 어머니의 팔에 쓰러졌다. 그리
고 생명을 잃은 채 조용히 뱃속에 있는 아기를 생각하며 울기 시작했다. 의사는 인위적으로
산통을 유도해서 태아를 빼내자고 했다. 내 아기가 영원한 침묵 속으로 빠져들어 첫 숨을
들이마실 수 없다는 끔찍한 악몽은 이미 현실이었다. 산통이 오는 데 이틀이 걸렸다. 나는
분만실 맨 끝 병실에 있었다. 옆방에서 산통 때문에 신음하는 다른 산모의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신생아의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그 소리를 듣자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으로 정신이
아득하게 멀어지는 듯 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양수가 터지고 아기가 빠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달려가 간호
사에게 와달라고 사정했다. 하지만 분만실에는 환자가 너무 많았다. 나는 사산아를 낳을 사
람이었기 때문에 우선 순위에서 밀리고 있었다. 몇 초 후 내 아기가 세상으로 나왔다. 오랜
산통 끝에 한 조각 기쁨도 없이 아기가 나왔다. 탯줄도 자르지 않은 아기가 분만실 테이블
위에 미동도 없이 누워 있는 동안 어머니와 남편은 나를 위로하려고 애를 썼다. 그제야 의
사가 도착했다. "여자아이군요." 먼 곳에서 통곡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것이 내가 지르
는 소리임을 한참만에 깨달았다. 작고 완벽하게 생긴 우리 딸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남편도
영혼 깊은 곳까지 슬픔에 잠겨 있었다. 나는 핑크색 포대기에 싸인 우리 딸을 안았다. 무게
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지만 나는 앨리슨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아가야 너한테서 장
미 향기가 난단다. 나는 그날로 퇴원했다. 담당의사가 내 어여쁜 딸을 기념하라며 노란색
원피스를 주었다. 나는 몇 주 동안이나 그 원피스를 껴안고 잤다. 친구들이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위로의 말들을 건넸다. 곧 다른 아이가 생길거야. 아기를 잘 안 것도 아니잖아.
아기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건지도 몰라. 그러나 좋은 뜻에서 건넨 그 말들은 모두 비수
가 되어 내 가슴을 찔렀다. 앨리슨은 다른 아이로 대신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엄연한 생명
체였다. 그리고 뱃속에 있을 때 수없이 대화를 나눈, 내가 아주 잘 아는 내 딸이었다. 누가
뭐래도 엄마인 나 혼자만이라도 그 아이를 영원히 기억해야만 했다. 나는 수시로 내 작은
가족으로 남아있는 소중한 딸에게 속삭인다. 앨리슨, 엄마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지금도
앨리슨의 생일이 되면 아이가 입어보지 못한 노란 드레스를 꺼낸다. 품에 안고 다독여주지
못한 내 딸을 기념하기 위해. 그리고 조그맣게 속삭여준다.
앨리슨 사랑한다. 섀논 일래인 데니
아기들이 주고 간 기쁨
미셀과 나는 어려서부터 한 동네에 나란히 사는 이웃사촌이다. 어느 날 앞마당 잔디를 돌
보고 있는데 미셀 부부가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뜰 너머로 내다보니 승용차에서 내린 미셀이 뒷자석에서 보송보송한 이불로 감싼 아기를
안고 나왔다. "서니, 이리 와봐." 내가 다가가자 미셀은 아기를 덮은 이불자락을 살며시
들췄다. 쪼글쪼글한 주름투이에 빨간색에 가까운 아기 얼굴이 드러났다. "남자아이야, 너무
예쁘지?" 아니, 별로 예쁘지 않았다. 그러나 솔직히 얘기하면 친구는 몹시 섭섭할 것이다.
"그래, 예쁘다. 너무 예뻐." 친구는 벌써 아기에게 홀딱 빠져 있었다. 곁에서 가슴이 찡하
도록 부드러운 눈빛으로 들여다보는 미셀의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내눈에는 아기보다
도 친구 부부가 훨씬 더 신기해보였다. "얘가 벌써 네 번째지? 이제 아기 데려오는 일에도
무덤덤해질만도 하지 않았니?" "아니, 절대 아니야." 미셀이 아기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날부터 친구네 집에는 24시간 내내 불이 켜져 있었다. 한범 중에 보채는 아기를 안고
어르는 친구의 그림자가 창 밖을 어른거릴 때도 많았고, 가끔은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
는 미셀의 애창곡이 자장가가 되어 홍얼흥얼 새어나올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졌다. 아직 미혼인 나로서는 미셀처럼 자신의 생활을 희생하면서까지 (적어
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아기를 돌볼 자신이 없다. 그렇다고 미셀 부부에게 자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아기는 그들의 친자식이 아니었다. 입양아도 아니다. 그저 양부모를 만
날 때까지만 친구 집에서 머물다 갈 아기일 뿐이다. 말하자면 미셀 부부는 아기의 임시 아
빠, 엄마인 셈이다. 미셀 부부는 수양부모로 자원봉사할 자격을 얻기 위해 몇 달에 걸친 교
육을 받고, 입양기관에서 까다로운 심사를 거쳤다. 그리고나서 그들은 세 명의 아기를 돌보
았고, 이제막 새로운 아기를 데려 온 것이다. 아기 돌보는 일은 옆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힘
들었다. 아기는 걸핏하면 자지러지게 울어대는가 하면 낮과 밤이 뒤바뀐 아이도 있었다. 그
런데도 미셀 부부는 불평 한마디 없었다. 진정 기꺼운 마음으로 기저귀를 갈아주고 우유를
먹이고 씻기고 안아서 달랬다.
어느 날은 미셀의 집엘 갔는데 부엌에서 요란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부엌으로 들
어가니 미셀은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발그레하던 미셀의 두 뺨은 핏기
없이 창백했고, 피곤에 지친 두 눈은 퀭했다. 그 사이 아기 때문에 잠을 통 못잔 모양이었
다. "그러다 네가 몸살나겠다." "엄마로서 당연히 할 일을 하는건데, 뭘, 내 몸이 힘든 건
괜찮은데 생모가 입양서류에 서명도 않고 사라져버린 게 속상해. 생모가 안 나타나면 얘는
시립아동보호소로 가야 하거든." "그렇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아기가 너무
가엾잖니. 아기는 우유만 먹고 자라는 게 아니야. 하루라도 빨리 좋은 양부모를 만나야 되는
데…….나한데 너무 익숙해지면 헤어질 따 둘다 힘들어지는데……." 그때 나는 미셀의 음성
을 듣고 안정을 되찾아 어느새 잠잠해진 아기의 얼굴을 보았다.아기는 맑고 순수한 눈을 둥
그랗게 뜨고 숭배하듯이 친구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동자 속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으로 충만한 미셀의 눈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렇게 아기와 미셀을 보고
있자니 예전에 어머니에게서 들은 말이 생각났다. '엄마 없는 아기들이 왜 풀이 죽는지 아
니? 엄마 몸에서 나오는 이슬을 받아먹지 못해서 란다. 엄마가 아기를 꼭 꺼안고 눈을 들여
다보면서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를 때,엄마 품에서 이슬이 솔솔 뿜어나온단다. 이 이슬을 못
먹은 아기는 우유를 아무리 많이 먹여도 주눅이 들지.' 내 눈앞에서 미셀과 아기느 자기 둘
말고느 세상에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랑스런 눈길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 그 눈길
을 타고 '사랑의 이슬'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얼마 뒤 다행이도 아기의 생모가 돌아와 입양
절차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한동안 미셀의 품에서 숨쉬던 아기는 좋은 가정에
입양됐다. 나는 아기를 보내고 허전해 할 미셀을 위로하러 갔다. "부모될 사람 앞에서는
절대로 안 울어. 그 사람들한테는 가장 기쁜 순간이잖니.아기한테도 그렇고. 그래서 안 울
어." 미셀의 집에는 이제 방을 가득 채우던 작고 따스한 존재가 없다. 손을 갖다대면 꼭 움
켜쥐는 작은 손가락도, 즐거움에 겨워 옹알대는 소리도, 놀라서 터뜨리느 울음소리도 없다.
그 허전함 때문이었을까. 미셀이 쿠션을 집어들었다. 그런데 그 밑에 언제 들어갔는지 모를
아기 젖꼭지가 숨어 있었다. 잠깐 침묵이 흐르고, 친구의 눈에는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
러내렸다. 내 눈앞에도 그 젖꼭지를 오물거리며 동그란 눈을 깜박이던 아기 모습이 떠올랐
다. 나는 소리없이 눈물을 훔친는 미셀을 지켜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헤어질 때마다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계속하니?" 친구는 손등으로 눈가를 힘주어 닦고는 짐짓 명랑하 목
소리로 대답했다. "대신 우리에게 멋진 추억을 남겨 주잖아. 저 사진들 보이지?" 벽에는
친구 곁에 잠시 머물다 떠난 아기들의 해맑은 웃음이 담긴 사진이 걸려 있었다. "우리 추
억 속에서 영원히 아기의 모습으로만 남아 있을귀여운 아들, 딸들이야. 양부모들이 보내주는
편지를 읽을 때면 얼마나 가슴 뿌듯하고 행복한지 몰라. 이가 하나 났다는 소식, 옹알이를
시작했다는 소식, 기어다닌다는 소식, 드디어 벽을 잡고 일어섰다는 소식……. 중요한 건 우
리가 베푸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기쁨을 아기들이 주고 떠난다는 거야, 정말 기쁨이 고통
보다 훨씬 더 커. 아기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한 나는 계속 이 일을 할거야." 그제야 나는
미셀을 이해할수 있을 것 같았다.
아기가 있을 때 미셀의 집에는 늘 달콤하고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아기들은 배가 고파
도 기저귀가 젖어도 기분이 좋아도 미셀을 찾았다. 오로지 그녀만 믿고 몸과 마음전부를 의
지해오는 조그만 존재들이었다. 기저귀를 갈아주면 생슥 웃고, 우유를 주면 옷깃을 만지작거
리며 눈을 맞추고, 두손으로 발목을 쥐어주면 앙증맞게 기지개를 켜는 아기들의 순수하고
정직한 모습에서 미셀은 온 마음이 정화되는 기쁨을 맛보나 보다. 이제 앞으로도 많은 아
기들이 그집에서 머물다 떠날 것이다. 그리고 친구는 또 남다른 고달픔과 동시에 그보다 더
큰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칫 세상의 불완전한 틈으로 떨어질 수도 있었던 아기
들은 사랑이 많은 사람으로 성장해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 믿는다. 이 아기들은 자신의
인생 첫 순간에 자애와 사랑이 가득한 시선으로 눈맞춤해준 툭별한 가족을가슴 깊은 속으로
부터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섦이 고통 스러울 때는 그 아련한 기억이 위로를 안겨주기도 할
것이라고. 시니 멜델슨
크리스마스 천사 리비
처음 부모품에 안겨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왔을 때 리비는 여느 4살짜리 여자아이가 아니
었다. 한줌도 안되는 몸집에 머리카락은 거의 남은 게 없었다. 의사들 사이에서 '베이비 킬
러'라고 불리는 희귀한 불치암을 앓고 있는 리비는 불치병 어린이 돕기 포스터에 나오는 전
형적인 모습이었다. "선생님, 우리 애기가 고통스럽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리비는 우리 부부
의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준 정말 소중한 자식입니다." 힘겹게 병마와 싸우는 조그만 아기
가 무슨 수로 부모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었을까마는 어쨌든 리비를 지켜보노라니 가슴이 져
며 왔다. 그러나 종양 전문의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하루하루 가늘게 이어지는 어
린 생명의 통증을 덜어주는 것 밖에는 없었다. 리비와 같은 환자를 다룰 때는 냉정한 프로
정신을 가져야 한다. 순간 순간 소진되는 생명을 목격하는 마음이야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지만 그럴수록 마음을 단단히 먹고 짐짓 냉담해져야 하는 것이다. 죽어가는 생명을 보며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다. 나는 종교인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믿는다. 그러나
순수하고 죄없는 아이가 고통받아야 하는 이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리비는 짧은 삶
을 사는 동안 심한 고통에 시달릴 수 밖에 없고, 부모는 그 고통을 고스란히 지켜봐야만 할
것이다. 다른 부모가 아이를 키우며 맛보는 보람이나 기쁨도 알지 못할 것이다. 입학 첫날,
딸의 가장 친한 짝궁, 첫사랑……. 차라리 태어나지 말지 그랬니. 리비의 첫 단계 치료는 2
주동안 이루어졌다. 입원해 있는 동안 리비는 축 늘어진 채 무표정하게 누워 있었고, 어떤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리비의 부모도 조용하고 표정이 없었다. 측량할 수 없는 비탄에
잠긴 부모에게는 어떤 말도 위로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의 침묵을 존중해 주었
다. 그 편이 의사로서의 냉정함을 유지하기도 쉬우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몇 주가 지나 통증
이 가라앉기 시작하면서 리비의 밋밋하고 흐릿하기만 하던 갈색 눈종자가 호기심으로 반짝
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랑스럽고 장난기 많은 리비의 성격이 나타났다. 웃을 때는 보조개
까지 패이는 리비의 첫 미소를 보았을 때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리비 부모도 한시름 놓는
것 같았고, 우리는 그때부터는 통원치료를 하기로 했다.
그러던 어는 날이었다. 사무실로 들어서는데 안에서는 부모와 함께 온 리비가 곤지곤지
잼잼 놀이를 한창 즐기고 있었다. 아이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도 생생한 그날의 기
쁨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점점 생기를 되찾으면서 리비는 간호사들과 내게 자기가 좋아하
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확실히 표현하기 시작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이 4살짜리 내
아들과 어쩌면 그리도 똑 같던지. "주사 시더." 주사를 보면 리비는 엄마 무릎에 매달려 몸
부림치곤 했다. 그리고는 간호사가 주사바늘을 찔러놓는 허벅지를 숨기려고 작은 몸을 비틀
었다. 그래서 우리는 주사맞기 게임을 만들었다. 간호사는 리비에게 주사를 찌르는 '나쁜 아
줌마'가 되고 나는 그 못된 아줌마한테서 리비를 구해주는 '우리편'이 된 것이다. 불쌍한 간
호사는 테레사 수녀 같은 인내심으로 불평없이 자기 역할을 해주었고, 나는 마음껏 리비의
구세주 노릇을 했다. 순간적인 구세주. 사무실에 있는 방사선 장비도 동원됐다. 장비는 꼭
'스타워즈'에 나오는 세트 같았는데 리비가 가장 좋아한 것은 이른바 '테이블타기'놀이를 즐
길 수 잇는 테이블은 방사선 검사 위치에 따라 상하 좌우로 움직일 수 있게 장치돼 있었다.
영원한 디즈니랜드에 가보지 못할 아기를 위해서 우리는 테이블을 기꺼이 스릴 넘치는 놀
이기구로 바꾸어 놓았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병원 사람들은 이제나 저제나 리비가 오기만
을 기다렸다. 치료를 받으러 올 때마다 모두 우르르 몰려들어 서로 리비의 마음을 빼앗기
위해 경쟁하기 시작했다. "리비, 아저씨가 풍선 불어왔단다!" "리비, 사탕 먹어볼래? 세상에
서 제일 달콤한 거야.""리비야, 이모는 인형 갖고 왔어, 어때, 인형이 최고로 좋제? 자, 이모
뺨에 뽀뽀!"한결같이 미소를 가득 띤 채 리비에게 매달렸다. 나는 리비가 자신들의 인생을
풍요롭게 했다던 부모의 말을 그제야 이해했다.
리비는 확실히 우리 인생도 풍요롭게 만들고 있었다. 치료를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냐T다.
제발 기적이라도 일어나길 모두가 바랐지만 리비는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갔다. 그렇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이제 마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푸게 했다. 리비가 마지막으로 병
원을 찾은 날 우리는 차례대로 작별 인사를 했다. 리비는 내 뺨에 입을 맞췄을 때 그렇게
참으려고 안간힘을 썼건만 솟구치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그 순간 나는 진심으로 절실한
마음을 담아 기도했다. 리비한테 가장 필요한 선물은 생명입니다. 하지만 저한테는 능력이
없습니다. 제발 리비를 데려가지 마세요. 그날부터 병원 분위기는 침울하게 변했다. 전화벨
이 울릴 때마다 흠칫흠칫 놀랐다. 그러나 두려운 수식을 전하는 전화는 야속하게도 너무 일
찍 걸려왔다. "목요일 새벽 3시 30분에 우리 리비는 천국으로 갔습니다." 이제 리비는 떠나
고 없었다. 그 소식을 들은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들은 일제히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나
활기차고 사랑스럽고 앙증맞던 아기를 떠올리면 흘리는 눈물이었다. 리비의 장례식은 슬푸
게도 크리스마스를 코앞에 두고 치러졌다. 장례식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나는
빨간 벨벨 옷을 입은 밀랍 천사 인형을 샀다. 이제 막 천국으로 들어간 어린 천사를 기억하
기 위해. 한때 리비가 왜 태어났는지 물었던 적이 있었던가? 신을 원망한 적이 있었던가?
그러나 리비는 그 물음이 어리석었다는 깨달음을 남겨두고 떠났다. 리비는 제가 만난 사람
들의 인생을 환하게 밝혀주고 떠난 것이다. 우리 모두의 인생을. 나는 그 뒤로도 너무나 많
은 리비를 만나야 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안타까운 환자들을 그저 치료의 대상이 아닌
소중한 인격체로 대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씩 둘씩 완치돼서 돌아가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의사로서의 진정한 자세를 가르쳐주고 떠난 그 작은 천사에게 감사한다.
리비가 우리곁을 떠난지 이제 13년이 되었다.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우리 가족은 고
이 싸서 보관하던 밀랍 천사인형을 조심스럽게 꺼낸다. 우리 곁에 왔던 사랑스런 아이의 이
름을 따서 리비라고 이름 붙인 천사인형. 우리 아이들 가운데 한 명이 그 천사를 크리스마
스 트리 맨 꼭대기에 올려놓는 영광을 누리게 되는데, 그 때마다 아이들은 진짜 리비 얘기
를 해달라고 조른다. 아이들은 그 이야기를 통해 비록 짧아도 생명은 고귀한 것임을 배운다.
리비의 이야기가 계속 전해지는 한 리비는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 곁에 머
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지닌 채 말이다. 작가가 듣고 적은 이야기
빵 반 쪽이 준 희망과 사랑과 용기
우리 집은 그리스의 살로니카에 있었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살로니카만 부근에서도 가장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수정처럼 푸른 물가 옆 집이었다. 유년시절 나는 꽃나무와 올리브
그리고 아몬드 향기 가득한 넓고 그늘진 길 위를 언니들과 자유롭게 뛰어다녔다. 정원에 피
어나는 주홓꽃, 사프란의 찬란한 아름다움은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그곳에서 늘 터져나오는
웃음소리는 내 소녀시절의 음악이었다. 그러나 1941년, 내 주위를 감싸던 웃음소리는 그치고
말았다. 내 나이 10살 때의 일이었다. 도시를 강타한 독일군의 폭격이 끝이 없을 것처럼 계
속되었다. 항구며 철도,공항이 모두 파괴되었다. 집들이 폭삭 주저앉아 잿더미로 변하면서
수천명이 죽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앉았다. 1941년 4월 2일은 내 기억속에
불도장처럼 뚜렷이 각인되어 있다. 아버지가 이미 지하 조직원으로 투쟁하던 무렵이라 우리
는 달리 의지할 곳도 없이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나는 언니들과 함께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봍들고 서서 나치행렬이 골목을 통과하는 모습
을 지켜보았다.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쥐고 계속 같은 말만 되풀이 하고 있었다. "저 사람들
이 네 어린시절을 빼앗아가는구나." 내 유년의 빛나던 색채들이 생존을 위한 전투 속으로
빨려들며 어둡게 바래가고 있었다. 우리는 결국 집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독일 군인들이 잔
인한 미소를 지어가며 우리 집에 불을 질었다. 탁, 탁 소리를 내며 화르르 불길에 휩싸인 집
을 보며 어머니는 연신 눈물을 훔쳐냈다. 대대손손 이어내려오던 둘도 없는 가보들이 집과
함께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텅 빈 아파트가 우리의 거처가 되었다. 그나마 지붕이라도
있는 것에 감사하면서 온 식구가 바닥에서 새우 잠을 잤다. 1943년 12월 7일, 나치가 유태인
을 잡기 위해 들이닥쳤다. 7만 5천명에 달하는 유태인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독일군의
군홧발에 내몰려 가축떼처럼 우왕좌왕 끌려갔다. "이 더러운 쓰레기들!빨리빨리 움직이지 못
해?" 우리는 길가에 늘어서서 그 광경을 강제로 목격해야 했다. 독일 군은 거동이 불편해서
빨리 걷지 못하는 노인들 머리 위로 개머리 판을 무참히 휘둘러댔다. "헉!" 노인들은 비명
한마디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퍽퍽 쓰러졌고, 어린이들은 축구공처럼 걷어차였다. 내 가장
친한 친구 리니도 공포에 질려 제대로 울지도 못한채 끌려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이
후 나는 리니를 영영 볼 수 없었다. 언니가 친구에게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뛰어가던 모습
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두 소년는 아무 말도 못하고 서로 껴안고 울고만 있었다. 그러자 곁
에 있던 독일군 한명이 충을 치켜 들더닌 두사람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아악!" 가냘
픈 소녀들이 지르는 날카로운 외침이 내 가슴을 도려냈다. 순간 내 삶은 다시 한 번 선명한
색채로 물들었다. 핏빛! 도시 곳곳에 도사린 피의 그림자와 함께 도처에 굶주린 생활이 시
작됐다. 우리는 주린 배를 움켜잡고 다음 끼니를 절망적인 심정으로 기다렸다. 새로 밝는 아
침을 무사히 맞는 것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 되는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우리
자매들은 상황이 따라 서로서로 협력하여 민첩하게 행동하는 요령을 배워갔다.
어느 정육점에 고기가 있다느니 어느 빵집에 밀가루가 생겼다느니 하는 소문들이 돌면 각
자 임무를 나눠 재빠르게 움직였다. 좀처럼 비가 내리지 않는 그리스였는데, 그날 따라 차가
운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친구 하나가 나를 보더니 다가와 속삭이듯 귀띔했다.
"큰 사거리 빵집 주인이 밀가루를 구했대." 마침 내가 심부름할 차례였다. 나는 망태기를 걸
머지고 열 블록이 넘는 거리를 바람처럼 달려갔다. 도착해보니 사람들이 끝이 안 보이게 줄
서 있었고, 그들은 한결같이 넋이 나간 것 같았다. 나도 그 꽁무니에 섰다. 그렇게 2시간이
지나갔지만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줄어들지 않을 것 같았다. 빵! 빵 냄새를 알아채자 허
기진 뱃속이 갑자기 요동을 치기 시작하더니 쑤시는 속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 와중에 길고
바삭바삭하게 생긴 빵에 놓인 가게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앞에는 한 소년이 나처럼
빵집 창문에 얼굴을 맞대고 서 있었다. 그의 움푹 패인 볼에는 그늘이 드이워져 있었다. 열
너댓 살 쯤 돼 보이는 꽤 키가 큰 소년의 옷소매는 너무 짧아서 야윈 손목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손목이 어찌나 가늘던지 두 손가락만으로도 다 감쌀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시선이
느껴지는지 소년이 뒤를 돌아보았고,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순간 나는 그 소년과 깊은 유대
감을 느꼈다. 야만의 시절 독일군은 그 소년의 어린시절도 앗아갔던 것이다. 우리는 천천히
발을 끌며앞으로 나아갔다. 무려 4시간을 기다린 끝에 우리는 마침내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빽빽하게 늘어선 사람들 때문에 빵은 안 보였지만 주인이 내 앞에 선 수척한 소년에게 빵을
건네주는 모습은 볼 수 있었다. 이윽고 빵을 받은 소년이 돌아섰다. 빵을 받아든 그의 퀭한
갈색눈이 생기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였다. 그러나 카운터로 바싹 다가서는 나에게 빵집 주인은 얼굴을 찌푸리
며 말했다. "빵 다 나갔다. 이제 없어." 오 하나님 맙소사. 설마 일부러 잔인하게 구는 건 아
니겠지. "아저씨, 제발……." "미안합니다. 정말로 다 떨어졌어요." 빵집 주인은 내가 아닌 내
뒤 긴 행렬을 향해 소리치듯 말했다. 등뒤에서 한꺼번에 여러 사람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낙담한 사람들은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소년만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는 가슴에 빵을 꼭 품은 채 한참을 절망스런 표정으로 서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가
표정을 부드럽게 바꾸더니 미소를 지었다. 평생 잊지 못할 자상한 미소였다. 나도 그를 향해
웃었던가? 그 웃음을 머금으며 그가 자신의 소중한 빵을 두 쪽으로 나눴다. "꼬마야, 이거
너 가져." 믿어지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잠시라도 배고픔의 고통을 달랠 수 있는 빵 한조각
은 금은보화보다도 더 귀중한 보물이었다. 빵 한 조각 때문에 죽을 수도 있고 살 수 도 있
는 시절이었다. "네가 받아주면 좋겠어." 그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내 손에 빵을 쥐어
주었다. 내 손가락이 그의 손가락을 스치며 잠시 머물렀다. 그는 야윈 어깨를 한 번 들썩이
며 나에게 미소를 지어주고는 빠른 걸음으로 가게를 빠져나가 금세 빗속으로 섞여들었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그가 가게를 나가고 난 뒤에야 나는 소리쳤다. 서둘어 빵을 망태기
에 집어놓은 나는 얼른 그를 따라 나섰다. 이름도 묻지 못했고 갖고 있던 동전도 주지 못했
다. 그러나 내 눈앞에 소년의 자취는 이미 없고 어깨를 잔뜩 움츠린 잿빛 사람들만 가득했
다. 어디로 갔지? 나는 정신 없이 두리번거리다가 모퉁이를 도는 소년을 발견했다. 급히 그
쪽으로 뛰어갔지만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다시는 그를 만나지 못했다. 그는 야만의
땅에서 내가 만난 몇 안되는 '인간'의 얼굴을 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뒤로도 한참동안 쓰디
쓴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실망과 미움이 차오르는 순간들도 많았다. 나
는 그때마다 그 소년과 그가 내게 준 빵을 생각했다. 그가 내게 준 것은 단지 빵 반 쪽이
아니라 희망과 사랑과 용기였다. 앤 케르
열여섯 살의 다른 면
이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 아들 토드가 다녔던 성삼위일체 수도원 부속 초
등학교의 수녀님들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이 학교의 수녀님들은 비판적 사회의식과 그에
걸맞는 이력을 갖춘 현대적인 수녀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로지 근엄하고 엄숙하기만 선
생님들이었다. 바로 그점 때문에 토드는 걸핏하면 수녀님들에게 반항했다. 예컨대 토드는 합
리적인 이유를 들어 토론하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수녀님들은 절대적인 기대치를 결정한 다
음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그에 따라 점수를 매기면 끝이었다. 토드는 그것을 불합리하다고
생각해서 학교에 다니는 동한 내내 수녀님들을 상대로 합리성을 요구했다. 그래봤자 제 수
준에서 생각하는 합리성이었지만 말이다. 토드의 노력은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언제
나처럼 억지로 규칙을 지키도록 강요받았다. "어디 도고 보라지." 토드는 제가 늘 감옥이라
고 부르는 벽돌건물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며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아들은 그렇게 못마땅해
하던 수녀님들 손아귀에서 쉽게 풀려나지 못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도 같은 재단에 속한
중학교에 다녀야 했으니까. 초등학교 때의 수녀님들과 직접 마주 칠 일은 별로 없었지만 교
정에서는 언제라도 만나게 되는 사이였다. 특히 레지나 수녀님은 여전히 토드만 보면 잔소
리를 하곤 했다. "너, 요즘은 그렇게 네 멋대로 굴진 않겠지? 내가 늘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
잊지 말아라." 토드가 레지나 수녀님에게 한소리 듣고온 날은 하루종일 볼이 통통 부어 있
었다. 그 사이 아들은 중학교 3학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수녀님들에 대한 감정을 말끔히 풀
어내지 못한 상태였다. 적어도 그해 여름 전까지는 말이다.
그해 7월 11일은 땡볕 더위가 기승을 부려 온도계가 터져버릴 것 같은 날이었다. 그날 오
후 나는 아들과 함께 쇼핑을 갔다가 차에 가득 짐을 싣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마침 수녀님
들이 기거하는 수녀원 앞을 지나고 있었다. 우리는 둘다 말이 없었다. 토드는 자기 세계에
빠져 창 밖만 내다 보고 있었다. 한마디 붙여볼까 했지만 아들은 보나마나 나를 쉰세대 취
급할 게 뻔했다. 엄마가 어떻게 저의 번득이는 재치에 걸맞는 말동무가 될 수 있겠어요?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운전에만 열중했다. 그때였다. "무슨 타는 냄새가 나는 것 같
은데." 갑자기 돈 토드가 말했다. 나는 철저히 무시했다. 흥 심심한가 본데 천만에 복수의
시간이 돌아왔다. "엄마, 뭔가 타는 냄새가 난다니까!" 그제야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정말로 탄내가 났다.
토드는 몸을 숙여 자동차 앞창 밖을 내다보았다. "엄마, 수녀원에 불이 났어요." 속도를
죽이고 창 밖을 내다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수녀원 지붕에서 새까만 연기가 오르고 있었
다. 나는 별 생각 없이 한마디 했다. "어쩌냐? 안됐네, 정말. 다친 사람이 없어야 할 텐데."
내 말을 듣자 토드가 발끈하며 외쳤다. "엄마 바보 아냐? 소방차는 도대체 뭘 하는 거야."
나는 차를 세웠다. 그리고 핸들을 부여잡은 채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몸이 굳어버렸다. 토
드가 카폰을 낚아채더니 911을 눌렀다. "불났어요.35번가에 있는 수녀원이예요. 신고 들어왔
어요? 없었다구요? 그러면 얼른 엉덩이를 들고 35번가로 가보는게 어때요? 지금 당장!" 토
드는 전화기를 제자리에 거칠게 꽂았다. 우리는 잠시 차 안에 앉아 수녀원 지붕 위로 타오
르는 불길을 지켜보았다. "수녀님들이 왜 한 사람도 안 보이지? 이거 점점 무서워지는데?
도대체 어디서 뭐 하는 거야?" 토드가 외쳤다. "글쎄다 소방차가 올 때가 됐는데 말야." 나
는 머뭇거리며 대꾸했다. 그러자 아들이 정신 좀 차리라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내뱉었다. "엄
마 바보야?" 울컥 화가 치밀었다. 부모한테 그게 할 소린가 말이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
지만 나는 그저 앉아만 있었다. 하지만 토드는 아니었다. 반 초 정도 망설이더니 차 밖으로
튀어나갔다. "레지나 수녀님." 나는 아들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순간 토드의 저의를
알 것 같았다. 환희에 찬 토드의 생각이 훤히 읽히면서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아챘다. 지긋지긋한 수녀님, 어디 불맛 좀 보라지. 차 문이 쾅 닫혔다. 그러나 내 짐작이 완
전히 빗나갔다는 사실을 오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엄마는 소방서로 가봐요. 나는 수녀님
을 구하러 갈 게." 뭐라고? 수녀님을 구한다고?
"토드 돌아와! 건물에 들어가기만 해봐라. 토오오오오드!" 나는 허둥허둥 차에서 내려 토
드를 쫓았다. 그러다가 아들의 고함 소리에 놀라 멈췄다. "엄마, 뒤로 가서 교통통제나 해요.
소방차 들어오게 말이야." 말이 되는 소리 같아서 그대로 따라 했다. 마침 멀리서 소방 사이
렌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어쨌거나 나는 졸지에 땀에 절고 햇볕에 그을리며 짜증이 머리끝
까지 치밀어 오른 전형적인 교통경찰이 돼버렸다. 이 녀석은 어디로 간 거야? 소방대원 한
명이 내 역할을 대신하기 시작하자 나는 아들을 찾아 나섰다. 잠시 후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음료수 자판기를 향해 유유히 걸어가는 아들을 발견했다. 녀석은 엄마는 안중에도 없
이 동전만 계속 집어넣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물었다. 토드는 아무일 없다는 듯
이 차가운 콜라를 한 아름 안고 물었다. "뭐가요?" "몰라서 묻니? 수녀님들 구하러 간다며!"
마지막 콜라 한 통이 굴러 떨어졌다. "별일 없어요."
아들은 얼음같이 차가운 캔들을 가슴에 부여안더니 나를 휙 지나쳐갔다. 도저히 못 참겠
다. 나를 계속 무시해대는 아들 녀석을 붙잡아 따지려고 뒤쫓다가 나는 멈칫 서버리고 말았
다. 토드는 마구 흐트러진 복장으로 불쌍하게 서 있는 수녀님들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콜라를 하나씩 나눠주는 것이었다. 수녀님들이 토드를 에워싸더니 키다리 제자를 고마워하
는 눈빛으로 올려다보았다. 그 곁으로 다가갔더니 토드의 최대 적수 레지나 수녀님이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중얼거렸다. "나는 항상 너한테 불만이 많
았는데, 지금은……. 오, 하나님의 은총을." "괜찮아요, 수녀님. 별거 아니었어요." 토드는 그
저 씨익 웃었다. 레지나 수녀님도 녀석을 향해 미소지었다. 아들은 자세한 얘기를 안 해주겠
다며 버텼지만 나는 기어이 사건의 전말을 알아내고야 말았다. 토드가 목이 터져라고 외쳐
대는 소리를 듣고 수녀님들은 모두 무사히 건물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수녀님들이 무사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다음 토드는 반대쪽 도로로 달려가서 차량통제를
하고 소방도로를 확보했다고 한다. 16살짜리 치고는 꽤 괜찮은 실적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자꾸 아들을 힐끔 힐끔 쳐다보았다. 언제나처럼 녀석의 얼굴은 창 밖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게 귀찮다는 듯 사춘기 특유의 꾸부정한 자세를 다시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속지 않았다. 방금 16살 짜리의 아들의 다른 면을 보았던 것이다. 너무 뿌
듯해서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토록 용감하고 사리가 분명한 내 아들을 어떻게 자
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파멜라 위스
친절로 갚는 친절
자동차를 몰고 도로에 나서는 순간부터 전투 개시다! 나의 교통법규 제 1조는 그것이다.
내 도요타 자동차에 앉는 순간부터 차창 밖의 세상은 모두 적이 되는 것이다. 적들의 전력
도 만만찮았다. 특히 건방지게 내 앞으로 끼여드는 녀석들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어떻게든
바싹 차를 들이댄 다음 가운데 손가락을 세워서 강력한 경고를 해줘야 한다. "엿 먹어라, 짜
샤!" 가끔은 자동차 경주를 하자고 도전해 오는 적들도 있었다. 그러면 나는 목숨 따위야
저만치 던져두고 한바탕 신나는 시합을 벌인다. 이른바 '스포츠 카' 라는 강력한 병기를 사
용하는 상대를 만났을 때는 울분을 삼켜야 했지만 말이다. 한심하게도 낙오하는 적병을 발
견하는 날도 있었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처량하게 비상등을 깜박이는 낙오병들. 넌 이미
진 거야. 그러게 미리미리 병기 점검을 해두었어야지. 피융! 엄지와 검지로 총탄을 한 방 날
려주고 으하하, 신나게 지나쳐간다. 총탄을 보급받으러 들어가는 주유소 직원도 아군은 아니
다. 현찰 아니며 상대도 안 하려드는 비열한 녀석들이 대다수니까. 말 한마디라도 친절하게
할 필요가 없다. "얼마나 넣을까요?" 나는 눈을 부릅뜨고 앞쪽만 노려보며 내뱉는다. "꽉꽉
채워봐!" 보급이 끝나는 즉시 적진을 향해 힘차게 발진한다. 도로 위의 철칙을 되뇌이며, 눈
에는 눈 이에는 이! 쿵! 지척에서 핵폭탄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내 핸들이 뱅글뱅
글 미친 듯이 돌아갔다.
내 차는 다른 차들이 꽁무니에 꽁무니를 맞대고 늘어서 있는 고속도로를 3차선이나 가로
질러 아슬아슬 하게 미끄러져 나갔다. 그리고 간신히 왼쪽 갓길에 멈췄다. 정말 눈 깜짝할
사리에 일어난 일이었다. 숨을 제대로 쉬는데 1분이 걸렸다. 살아 있었지만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순환도로에서의 타이어 평크, 그것도 퇴근길 러시 아워에, 얼어죽을 빗길에. 타
이어 교체는 무모한 것이었다. 그랬다가는 어뭄 속에서 차에 치여 산산조각날 게 뻔했다. 보
행자를 잡아 먹을 듯이 쌩쌩 달리는 차들이 가득한 4차선 도로를 건너갈 수도 없는 노릇이
었다. 말고기가 될 게 분명했으니까. 비상들을 켜면서 내 영혼은 멜로드라마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아, 최악의 패배였다. 나는 대단한 자기연민에 빠져서 앞으로 이틀뒤에 펼쳐질 장
면을 그려보았다. 상복을 입은 내 가족들은 이별의 고통을 못 이겨 내 관에 몸을 던질 것이
다. 채널이 수 억 잡히는 46인치 짜리 슈퍼 TV를 사려는 내 계획에 딴지를 걸었던 일을 두
고 아내는 죄책감에 몸부림칠 것이다. 오, 내 차디찬 주검이 그녀의 발 앞에 놓일 때 얼마나
후회가 막심할까? 참담한 상상을 키우며 나는 도움의 손길을 기다렸다. 제발 순찰 경찰이
던킨 도너츠 집의 아늑함을 두고 이 얼어죽게 추운 고속도로에 나와 있기를 바라면서. 한
시간이 지났다. 적들은 적십자 정신을 무시한 채 씽씽 잘도 내 달렸다.
날이 밝을 때까지 뒷자석에서 자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금색 폰티악 택시가 갓길로
들어와 내 앞에 멈췄다. 번쩍번쩍한 새 차였다. 택시의 창문이 내려가더니 친근해보이는 얼
굴이 나타나 씩 웃었다. "타세요. 주유소까지 모셔다 드릴께요." "저 현금이 없는데요." 내
지갑에는 정확히 2달러가 있었는데 택시 운전사들은 수표 안받기로 유명했다. "걱정 붙들어
매고 타쇼, 친구. 내 이름은 무스타파." 멋진 목소리였다. 그의 음악 같은 카리브해 억양을
들으니 금세 태양이 반짝이는 열대지방에 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조라고 합니다." "조, 도움을 청하러 갑시다." 우리는 워싱턴의 악명 높은 교통체증
속으로 묻혀들어 갔다. 그러나 무스타파는 전혀 짜증스런 표정이 아니었다. 혹시 진짜 천사?
심지어 무례하게 끼여드는 주제에 가운뎃손가락을 흔들어대는 적에게 손을 흔들어 주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보자니 울컥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있잖아요, 무스타파. 저건 인사가 아니
에요." "인사가 왜 아니예요. 여기 오면 자기를 기억해달라는 표시잖아요." 무스타파는 정말
마음씨가 좋은 사람이었다. 이윽고 우리는 주유소에 도착했다.
"영업 끝났습니다. 가스밖에 없어요." 수리공이 딱딱 거렸다. 가스로 독살 당해볼래? 나는
잔뜩 구겨진 얼굴로 수리공을 노려봤다. "비 맞아요, 조. 들어갑시다." 무스타파가 웃으면서
주유소의 작은 사무실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세상에, 그 자리에서 무스타파는 힘 하나도
안 들이고 수리공을 설득했다. 견인 트럭을 몰고 무시무시한 밤길을 헤치고 나가 내 차를
가지고 오도록 말이다. "70불이예요." 수리공이 말했다. 나는 지갑을 꺼내서 각종 신종 신용
카드를 보여주었다. "현금이요." "난 지금…." 순간 내 팔을 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무스타파
가 윙크를 하더니 지폐뭉치를 꺼내들었다. "이십, 사십, 육십 그리고 십을 더하면 칠십불이
네요. 자, 리크, 최대한 빨리 부탁해요, 조한테는 지금 집에서 걱정하고 있는 아내와 자식들
이 있어요."" 아, 그럼요." 리크는 새 친구를 기쁘게 하고 싶어 안달이 난 표정으로 얼른 동
의했다. 아니, 무스타파가 이 친구 이름을 어떻게 알았지? 수난 수리공의 주머니에 맹인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의 큼직한 글자로 새겨진 이름이 보였다. 나 같으면 이 사람의 이름을
부를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이쯤대면 나를 대하는 것과 무스타파를 대하는 수리공의 반응
이 얼마나 다른지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무스타파는 사람들의 좋은 면을 이끌어낼 줄 알았
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물론 친절함이 한 몫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무스타
파는 진정으로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고, 그 마음은 저절로 느껴져서 환한 빛이 나
올 정도였다. 그러나 그 친절한 남자에게 더 이상 신세를 질 수는 없었다.
나는 재빨리 수표를 썼다. 거기에다 무스타파가 할애한 시간에 대한 보상으로 50불을 추
가했다. "너무 고마웠어요. 무스타파. 더 이상 당신의 시간을 뺏지 않겠어요." "아뇨, 아닙니
다. 아내는 세인트 루시아에 살아요. 겨울에는 여기 얼씬도 안 하죠. 그래서 퇴근 후엔 내
시간이예요." 그는 내 수표에 눈길 한번 안 줬다. 하지만 나는 그의 손을 잡아 수표를 쥐어
주었다. "이거 현금으로 꼭 바꾸겠다고 약속해요." "걱정말아요, 바꿀게요." 무스타파와 나는
수리공이 내 차를 가지고 돌아올 때까지 세인트 루이스며 워싱턴의 택시 사업 그리고 내 가
족까지 별의 별 이야기를 다 나눴다.
나는 다시 한번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아직 아니예요, 조." 무스타파가
내 차 트렁크를 열더니 스페어 타이어를 꺼내며 말했다. 그러자 리크까지 나섰다. "저도 돕
겠습니다. 이 양반 빨리 식구들한테 돌아갈 수 있게 우리가 도와야죠." 무스타파와 리크는
나란히 서서 주유소에서 멀어지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내 카리브해 출신 친구가 수리
공에게 커피 한잔하자고 초대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고, 나는 소외감까지 느꼈다. 집에 도착
하니 아내는 상상했던 대로 몸져놉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러다가 무스타파의 이야기를 듣자
당장 그 자리에서 감사 편지를 썼다. 두 딸도 따라서 썼다. 그러나 복잡한 일상 속에서 그
사건은 충분히 빛이 바랠 수도 있었다. 기껏해야 친구들과 잡담을 하면서 꺼내는 심심풀이
로 전락할 수도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무스타파는 달랐다. 이틀 뒤 아내가 한 통의 편지를 말없이 건넸다. 봉투를 뜯자
50불이 떨어져 나왔다. 무스타파의 편지도 함께였다. '조, 당신의 돈은 받지 않을래요. 언젠
가 누가 나를 도와주면서 그 대가로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을 도와주라고 하더군요, 당신
에게 바라는 것도 그것뿐이에요. 다른 사람을 도우세요. 당신의 작은 도움을 한 사람씩 거칠
때마다 불어나는 친절의 눈덩이로 생각하세요. 그러다 보면 그 눈덩이가 결국 세상을 덮을
만큼 커질 수도 있을 거예요. 당신의 친구, 무스타파.' 내가 과연 내 친구의 이상에 값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적어도 나는 도로에서 전투복을 벗고 온화한 민간인으로 예
편했다. 차 수리 기술은 하나도 없지만 길가다 차가 고장나서 서 있는 사람이 있으면 적어
도 내려서 함께 걱정해준다. 직장이나 모임에서도 내 작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지를
살핀다. 그리고 평화로운 세계에 대한 무스타파의 기원이 이루어지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우
리 모두가 조그만 친절을 베풀어 세상을 바꿀 수 있기를 바라면서. 조 폴
레일라 이모
레일라 이모는 오페라 가수였다. 23살에 맨해튼 오페라 하우스에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
나의 산투짜역으로 데뷔한 메조 소프라노 가수. 이모는 우리 가족 모두가 자랑스러워 하는
매력적이고 자유분방한 보헤미안이었다. 이모는 늘 흑단처럼 까맣고 긴 머리카락을 느슨하
게 빗어넘겨 목덜미에 단아하게 묶었다. 언제나 여왕처럼 우아하게 걸었고 우리들이 우중충
한 겨울 코트로 몸을 칭칭 두르고 다닐 때에도 부드럽게 하늘거리는 망토를 걸치고 다녔다.
레일라 이모 주변에는 그녀의 초록색 눈과 흰 눈 같은 피부에 반한 화가들로 들끓었다. 그
들의 작품에는 한결같이 레일라 이모의 이미지들이 흘러넘쳤다. 자식이 없던 이모는 조카
인 우리들을 더욱 귀여워 했다. 언니, 오빠와 함께 이모 집으로 놀러가는 것은 아주 특별한
행사였다. 이모는 우리를 온갖 파티장으로 연극공연장 그리고 오페라하우스로 종횡무진 끌
고다녔다. 그것이 이모 방식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일이었다. 밤이고 낮이고 상관하지
않았다. 애들은 일정한 시간에 재워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생각도 이모 머리 속에는 아예 없
었다. 그런 날 저녁은 늘 브로드 웨이에서 막을 내렸다.
당시는 1940년대였다. 브로드웨이의 윗동네에는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는 거리가 펼쳐져
있었다. 거리 양옆으로는 그곳을 살아숨쉬게 하는 아름다운 카페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이모는 카페에까지 우리를 끌고 갔다. 내 어린 눈에 담배 연기 자욱한 어른들의 세계는 몹
시도 신기하게 비춰졌다. 잔뜩 우수에 잠겨 예술가 티가 줄줄 흐르는 어른들이 위스키로 만
든 맨해튼 칵테일이나 진한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며 즉석 토론을 벌여댔다. 이국적 향내가
나는 시가를 유럽 사람들처럼 손바닥을 동그랗게 오므려 잡고 피우면서 말이다. 이모는 그
토론장에서도 단연 분위기를 주도하는 사람이었다. 내일이라도 생을 마감할 것처럼 염세적
인 세계관에 사로잡힌 사람도 이모와 한 마디만 하고 나면 금세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독
자 하나없는 무명 작가들에게도 이모는 큰 힘이 돼 주었다. "당신의 글 속에는 사람을 따
뜻하게 만들어주는 보석같은 힘이 있어요." 성미 급한 어느 작가는 이모의 말이 끝나자마
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두말할 것도 없이 글을 쓰러 가기 위해서였다. 이모는 정말 사
람들이 저마다 하나씩 갖고 있기 마련인 장점과 긍정성을 정확하게 볼줄 아는 능력을 가지
고 있었다.
어쨌든 하나부터 열까지 그 거리는 내가 살던 뉴저지와는 딴판이었다. 낯설고도 신비로운
그 거리가 내게는 바로 별천지였다. 이모와 함께 밤늦게 외출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면
나는 늘 무언가에 홀린 눈으로 이모에게 말하곤 했다. "이모는 정말 멋있어요." "뭐가 말
이니?" "음......, 아무튼 멋있어요. 나도 이모 같이 됐으면 좋겠어." 이모의 아파트는 허드슨
강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있었는데, 그 동네에는 음악가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봄에 이모의
까만 스코티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고 있노라면 활짝 열린 창문 안에서 낮게, 높게, 웅
장하게, 가냘프게, 시시각각 달라지는 성악가들의 발성연습 소리가 퍼져 나왔다. 간간이 피
아노와 바이올린음도 그 소리에 섞여 나른한 오후의 햇살 속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것이
레일라 이모의 세상이었다. 음악과 예술이 살아 숨쉬는 세계, 유행이 아니라 개성으로 패션
의 기준을 삼는 세계, 자유로운 사고가 새처럼 날아 다니는 세계..., 그 세계는 이제 막 십대
에 접어든 나에게는 선망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아, 그러나 나는 이모와는 종류가 다른 사람이었다. 나는 14살짜리 못생긴 계집애에 불과
했다. 적어도 내가 평가하는 내 자신은 그랬다. 어깨만 구부리면 세상에서 흔적 없이 꺼져
버릴 수 있다고 여겼는지 늘 구부정하게 움츠리고 다녔다. 도대체 내 얼굴 숨구멍 하나 하
나까지 샅샅이 살펴봐도 제대로 된 구석을 찾을 수 없었다. 거울은 증오스런 나의 적이었
다. 나는 평생을 미운 오리 새끼로 살아갈 내 신세가 한없이 절망스러웠다. 나도 모르게 한
숨이 푹푹 새어나왔고, 도대체 어디에도 희망은 없어 보였다. 이모를 조금만 닮았다면, 털
끝만큼이라도 닮은 구석이 있다면 내 인생도 달라질 수 있을 텐데.... 시모나, 너처럼 매력
없는 인간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꺼야.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봐. 너라면 너같은 애를 사랑
할 수 있겠니?
그날도 나는 자기 혐오와 연민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며 오후 내내 침대위에 웅크리고 있
었다. 그때 아래층에서 소란한 기척이 들려왔다. 레일라 이모가 온 모양이었다. 나는 이모
를 반갑게 맞이하고 싶었지만 너무 우울해서 그냥 그대로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어머니
와 이모는 이층 거실로 올라와 차를 마셨다. 거실은 내 침실 바로 옆에 있었다. 그래서 전혀
의도한 바도 없었는데 나는 빼꼼히 열린 문틈으로 들려오는 어머니와 이모의 대화를 엳듣게
되었다. 어떤 대목이었을까. 갑자기 나팔 소리처럼 커진 이모의 목소리가 또렸하게 내 귀에
들려왔다. "언니, 시모나 말이야. 걘 어쩌면 그렇게 눈이 아름다운지 모르겠어. 뭔가에 집중
할 때 보면 밝고 영롱한 게 정말 매력적이야."
아름답다..., 아름답다고? 내몸에 매력적인 구석이 있다고? 설마, 그럴 리가..., 나는 용
수철처럼 튀어 일어나 거울 앞으로 달려갔다. 거울 안에는 매일 아침마다 봐 왔던 깊은 갈
색 눈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예전과는 다른 것도 같았다. 그러
고 보니 내 눈꼬리가 약간 올라간 것이 아몬드 모양에다가 금빛 가루를 살짝 입혀놓은 것도
같았다. 눈동자 속에도 뭔가 열정적인 불꽃이 이글거리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갑자기
아름답게 변한 내 눈을 다른 각도에서 보기 위해 고개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렸다. 놀라운
일이었다. 전에는 한번도 느끼지 못했는데 내 눈이 꽤, 예뻐 보였다. 레일라 이모의 그 말
한마디는 그 뒤, 내가 성장하여 체형이 잡힐 때까지 나의 버팀목이 되었다. 미운 오리 새끼
는 이윽고 백조가 된 것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이모는 내가 얼마나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부끄러워 했는지를 알았던 거 같다. 그렇다고 이모가 한 말 때문에 갑자기 내 몸
전체가 아름답다고 느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모의 그 말에 힘입어 적어도 몇 년은
당당히 버틸 수 있을만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사람에게 관심을 쏟는 가장 선한
목적 가운데 하나가 남에게 힘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레일라 이모는 민감한 사춘기
시절을 보내던 내게 아주 소중한 선물을 안겨 주었다. 그 선물은 바로 사랑의 눈을 통해 나
를 바라본 결과였다. 시모나 시비안
내 친구 아스타
가족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나는 늘 아스타 얘기를 한다. 아스타는 어머니 이름이 아니다.
아버지의 이름도, 형제 자매의 이름도 아니다. 아스타는 개다. 고백하건대 나는 동물을 거
리낌없이 가족 구성원으로 여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멀쩡한 가족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동
물 친척이 필요하겠는가? 나는 180cm의 건장한 경찰관이자 최고의 자랑거리인 아들 하나
를 둔 사람이다. 아들은 내 마음을 홀려버리는 자랑스런 자식이다. 하지만 아스타는 내 영혼
을 홀려버렸다.
15년 전, 나는 고향 마을을 함께 순찰할 개를 찾고 있었다. 어떤 종이 좋을지도 결정해 놓
고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훈련받은 벨기에산 말리노이. 네덜란드 경찰은 세상에서 가장 힘좋
고 노련하고 날쌔고 공격적인 경찰견들을 배출해 내는 것을로 유명한데, 그들이 선택하는
개가 바로 벨기에산 말리노이였다. 이놈은 죽을 때까지 충성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나는
부탁한 지 4년만에야 이 개가 내게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그날 밤, 나는 공항으
로 가서 화물을 찾았다. 그리고 45분 뒤에는 집에 도착해서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개와
상견례를 갖게 됐다. 정말 엄청난 녀석이었다. 거대하고 힘센 사자 같은 녀석은 검은 얼굴
에 암갈색 짧은 털을 갖고 있었다. "새 집에 온 것을 환영한다, 아스타." 운송 상자 안에
서 침착한 갈색 눈이 번득이며 그저 나를 내다보았다. 꼬리를 흔들거나 짖지도 않았다.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불쌍한 것, 착하지." 나는 상자를 열며 개를 달랬
다. 그런데 상자 안에서는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다. 놀랄 일이
었다. 그 녀석은 유럽에서 캐나다까지 장장 열네 시간을 비행기 안에 있으면서도 '응가'를
안 하고 견뎠던 것이다.
"이리 나오렴, 아스타. 오줌누고 싶어 죽겠지?" 개는 꿈쩍도 안했다. 훈련받을 때 듣던
언어가 아니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난 그쪽 말을 한 마디도 모르니 어쩐다? 그래
도 방법은 있었다. 나는 허벅지를 치면서 세계 공통어인 몸짓언어를 해보였다. 이리 와!
아스타는 땅으로 뛰어내려 나와 함께 제일 가까운 나무로 갔다. "시원하게 볼일 보거라."
그 말은 아주 제대로 알아들었다. 녀석은 맺힌 한을 풀 듯이 오줌을 지독히도 많이 눴다. 아
스타는 뜰에 있는 풀과 나무마다 제 오줌으로 영역 표시를 하면서도 내게서 눈을 떼지 않았
다. 드디어 볼일을 끝마쳤을 때, 나는 아스타를 쓰다듬어 주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녀석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개 훈련사로 30년 동안 일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이
녀석 도대체 왜 이래? 독스와는 영 딴판이었다. 덩치 좋은 로트와일러종인 독스는 순찰견
이자 쇼 챔피언 그리고 '마니아' 라는 캐나다 방송 연속극에 출연하는 TV 스타였다. 독스는
내 파트너이며 오래 된 친구였고 그 순간에도 집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개였다. 그 녀
석은 나만 보면 언제라도 몇 년만에 만난 것처럼 반기곤 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독스한
테 가 보리고 싶었다. 하지만 오자마자 개집에 가둔다는 게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
다. 여행하느라 온몸이 얼음처럼 굳어 있을 게 분명했다. 나는 다시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고
팔을 뻗었다. 그러나 아스타는 또 피했다. "뭐가 필요한지 알겠다. 놀고 싶은 거지?" 아스
타가 실성한 사람 보듯 나를 쳐다보았다.
"한번 해보자구. 손해볼 건 없잖아?" 나는 공을 집어서 던졌다. 아스타의 귀가 쫑긋 서
더니 몸 전체가 긴장으로 탄탄해졌다. 이내 무서운 속도로 내달리더니 순식간에 내 옆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개가 물고 있는 공을 빼내
려고 잡아당긴 것이다. 목청 깊은 곳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 경고를 무시해
버렸다. 순간 아스타가 입을 콱 다물었다. 그러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육중한 몸으로 나를
들이받았다. 나는 다리가 휘청 꺽이며 주저앉고 말았고, 마지막 순간에 겨우 팔뚝으로 얼굴
을 가릴 수 있었다. 가죽 재킷이 아스타의 어금니에 찢겨져 나갔다. 경찰생활15년 경험으
로 미루어 볼 때 녀석이 나를 크게 해치려 드는 게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스타의 어
금니가 두꺼운 청바지를 찢어 버리더니 무방비 상태에 있는 내 얼굴을 향해 달려들었다. 난
생 처음으로 개가 무서워졌다. 살아남을 수 있는 마지막 길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간신히
무릎을 가슴 쪽으로 구부렸다. 그래 지금이다! 퍽! 나는 무릎을 힘껏 펴서 개를 걷어찼다.
녀석이 잔디 위로 날아갔다. 땅에 나동그라지더니 옆구리가 오르락내리락할 정도로 헉헉대
면서 살의 가득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 나는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다행히도 다친 데는
없었다. 개가 입술을 치켜올려 어금니를 드러냈다. 죽을 때까지 충성한다고? 누구의 죽음이
라고 밝히지 않은게 다행이군.
그리고 2년이 흘렀다. 아스타와 함께 하는 일과는 평이했다. 저녁이 되면 개집에서 데리고
나와 순찰차에 태우고 내 구역을 돌았다. 그리고 아침이면 다시 개집에 집어넣었다. 나는 그
개를 좋아했고 또 존중했다. 하지만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아스타와 친
해질 필요는 없었다.나에게는 독스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당당하던 내 애견은 이제 할아버지
가 다 되어 세월이 정한 죽음의 시간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어느 해 봄 한결같이 순종하
고 내 친절에 사랑으로 보답했던 친구 독스가 내 팔에 안겨 마지막 숨을 거뒀다. 나는 온몸
의 수분이 바닥날 때까지 울었고, 아스타는 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며칠 뒤 나는 힘겨운 순찰을 끝내고 아스타를 집에 들여보내주며 무심히 귀 뒤를 긁어주었
다. 아스타는 평소처럼 얼어붙거나 뒷걸음치지 않았다. 대신 내 손가락에 기대면서 따뜻한
코를 조심스럽게 대는 것이 아닌가. 아스타의 갈색 눈은 대결을 하려는 게 아니라 슬프게
애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생각해보니 녀석이 내게 공격성을 드러내지 않은지도 꽤 오래된
것 같았다. 아스타를 두 손으로 거칠게 문질러주니 녀석은 꼬리를 양 옆으로 흔들어댔다.
그제야 아스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녀석이 훈련받은 네덜란드는 개를 기름 잘 친 기계 이
상으로 대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 터에 칭찬이나 애정은 낯선 감정일 수 밖에 없었다. 하
지만 아스타도 살아 숨쉬고 감정이 있는 동물이었다. 제딴에는 내게 잘한다고 했는데 내가
알아듣지 못하고 지내왔던 것이다. "미안하다, 이 놈아. 너도 기회를 달라 이거지?" 아스
타가 내 손을 핥았다.
그날부터 나는 아스타에게 마음을 열었다. 하지만 아직도 아스타에 대한 나의 이기심을
다 버리지는 못했다. 예를 들어 회오리바람이 불어와 서른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수천명의
부상자를 내며 이 지역을 휩쓸어버렸을 때도 그랬다. 사상 최악의 사태였다. 그러나 캐나다
안에는 우리를 도울 수색구조견이 한 팀도 없었다. 무너진 건물더미에 수많은 사람들이 깔
려있는데도 속수무책이었다. 방관만하고 있을 수 없어서 내가 나섰다. 자원봉사자와 훈련견
을 모집하여 수색대를 결성한 것이다. 나는 그 일에 아스타를 앞장세웠다. 아스타가 어떻게
느끼는지 한마디 물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긴 개 의견까지 묻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그러나 아스타는 아무 불평없이 수색을 시작했다. 마치 그일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열심히.
녀석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지역수색구조견 연합까지 창설하게 되었다. 그렇게 거리에서
잔뼈가 굵은 경찰견이 수색견으로 변신한 지 이제 11년이 되었다. 그동안 녀석과 나는 수없
이 많은 사람들을 찾아내어 슬픔에 잠긴 가족들의 고통을 덜어주었다. 어느새 아스타는 13
살이 되었다. 윤기나던 검정 얼굴은 회색이 되었고, 엉덩이와 등뼈에 관절염이 걸려 움직이
는 것도 힘들어한다. 하지만 망가진 것은 몸뚱이뿐 녀석의 영혼은 아직도 활기에 넘친다. 몇
년 전 캐나다의 로얄 승마경찰연합은 수색구조견에 대한 전국적인 기준을 설정했다. 그리고
캐나다 전역에 명성을 떨친 아스타에게 영광스런 첫 번째 응시 자격을 주었다.
아스타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시험에 임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내 눈에 그만 눈물이
고였다. 나는 아스타가 힘들게 뛰지말고 제발 포기하길 바랐다. 하지만 녀석은 그만두지 않
았다. 뛰다가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서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미끄러진 거
야, 아빠. 나 포기하게 만들지 마세요. 아스타는 높은 계단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
았다. 경사 심한 오르막길도 열의를 가지고 공격했다. 숨겨놓은 물건도 모두 정확하게 찾아
냈다. 주최측은 최초로 시험을 통과한 아스타를 치하하는 의미에서 '최고의 훈장'을 시상했
다. 내 늙은 아스타는 그 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고도 남았다. 나는 이제 남은 나날들을
녀석과 함께 하루하루 보내고 있다. 친구처럼 서로 약을 올려가며, 녀석은 이제 집에서 아이
스크림 콘 같이 생긴 장난감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하루를 보낸다. 내가 약이 올라 부글부
글 끓을 때까지 그놈의 장난감을 씹어댄다. 그러고는 꼬리를 흔들어댄다. 그게 더 둔탁하고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 그러다가 그 몹쓸 녀석은 이렇게 생각한다.
오잉? 아빠가 멋있는 소파에 앉아 있잖아. 곁에 누워서 아빠가 내 귀를 긁어주는 동안 나는
껌을 씹으면 어떨까? 그러면 아빠는 미쳐버리겠지?
아스타는 경찰견에서 수색견으로, 또 소파견에서 이제는 아빠를 구석으로 몰아붙이고 침
대를 온통 차지하는 상전이 되어 버렸다. 이제 아스타는 자신을 돌보지 못한다. 그러나 나
는 녀석을 통해 늙어도 마음은 젊다는 진리를 알았다. 1995년 10월 9일, 캐나다 정부는 아
스타와 나에게 캐나다 최고의 수색구조 업적 표창상을 주었다. 해외를 포함한 125개 방송국
에서 방영한 시상식에서는 국방부 장관이 직접 시상했다. 이제 아스타가 마지막 수색을 위
해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
다. 그러나 녀석을 잃는다는 상상은 나를 힘들게 한다. 어디선가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
다. '사람들은 개에게 Tm다 남은 시간, 먹다 남은 음식 그리고 쓰다남은 공간을 준다. 그
러나 개들은 제 모든 것을 다 바치는 걸로 보답한다.' 바로 아스타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
다. 나의 아스타. 내게 아스타만큼 가족의 의미를 진하게 가르쳐 준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케빈 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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