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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L. 론 허버드] BE 1

by Casey,Riley 2023.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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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 1
 L. 론 허버드



   제 1 권
       지구전선

  제1부
    인간, 멸종 직전의 동물이다.

     (1)
  "인간.... 멸종 직전의 동물이다."
  인터개랙터 광산회사의 보안부장 테라 타르가 중얼거렸다.
  바로 옆에서 레이저 슈팅  게임을 즐기고 있던 같은 회사 직원인
참코 형제는 타르의 중얼거림을 듣자 털복숭이 손을 커다란 키보드
위에 멈추었고, 챠는 노란색  눈을 덮고 있는 뼈로 된 눈두덩을 내
밀며 이상하다는 듯이 얼굴을 들었다. 그 셋뿐이 아니었다.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니며 빈 잔을 치우던 웨이트리스도 갑자기 멈춰 서서
타르를 쳐다보았다.
  주말의 여가시간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도록 마련된 직원용 레크
레이션 홀은 가벼운 흥분으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웃음소리나 식기
가 달그락거리며 부딪치는  소리들이 잔잔한 배경음악과 함께 어우
러져 있다가 한 순간 멈춰버린 것이었다.
  타르 부장은 생각했다. 이 정적은 내가 직원들에게 준 충격의 크
기를 말해주고 있다.  만약 젊은 여자를 발가벗겨서 방 한가운데에
내던졌다고 해도 이 말만큼 충격을 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좋았어, 이래야 해.  계산대로가 아닌가. 나는 이 직장에서 가장
막강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비록 중얼거리는 말이지만, 실력자의
그 한 마디에 온신경을  집중하는 것은 부하된 자들의 최소한의 의
무가 아닌가? 다시 한 번 얘기를 들려주자.
  "인간.... 멸종 직전의 동물이다."
  보안 부장 테라  타르는 마치 대학교수처럼 위엄 있게, 심각하게
들리는 저음으로 묵직하게  울리도록 말해 보였다. 그렇게 하면 주
위사람들은 기침 하나 하는  법 없이 조용해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
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가 기대했던 반은이 아니었다.
  "아니, 도대체 뭘 읽고 있기에 그런 헛소리를 하는 거야?"
  챠의 무례한 말이었다.  주위는 다시 시끄러운 소음 속으로 휩싸
여 버리고 말았다. 타르는  챠의 말투가 몹시 거슬렸다. 그는 흔해
빠진 광산관리자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것에  비한다면 나는 누가
뭐래도 보안부장이라는 격이 다른 지위에 있다.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한 걸세."
  "뭐라고? 자네가 생각해낸  것이라고? 설마, 보나마나 어디서 주
워들은 것이겠지. 솔직히 말해보게. 무슨 책이지?"
  타르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한 권의 두꺼운 책을 쳐들어 보
였다. 챠에게 잘  보이도록 뒤표지를 돌려 보이고 있었다. '지질학
적 광물자원 보고 - 250369권'이라고 씌어 있었다. 이런 류의 보고
서는 언제나 그랬지만 엄청나게  큰 부피에 비해 무게는 터무니 없
이 가볍기맘 했다.  하물며 지구와 같은 저중력의 혹성에서는 거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뭐야, 이건!"
  챠는 경멸스러운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타르에게 따지듯
물어왔다.
  "이것은 이,  삼백 년 전 지구의  기록이라구. 말일 읽고 싶다면
최신판 보고서를 보여줄께. 내가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야. 단지 그
보고서에 씌어 있는 중요한 내용은 이 광산에서 출하되는 보크사이
트(알루미늄 원광)의 양이  수송선 서른다섯 척 분량이나 지연되고
있다고 하는 위험한 내용일세.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듣고 있던 참코 형제는  얼굴을 마주보고 나서 다시 레이저 게임
을 시작하려고 했다. 그러나 타르의 다음말이 두 사람의 게임에 대
한 집중력을 흐트려뜨렸다.
  "그래, 저 산꼭대기를 보라구. 저 너머 골짜기에는 이제 불과 서
른 다섯 마리의 인간밖에는 살고 있지 않다구."
  타르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바위산의 산봉
우리들이 창백한 달빛 아래 유리처럼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게 어쨌다는 거야?"
  챠가 말했다.
  "내 말 잘 들어. 나는  구석구석을 다 뒤져서 이 책을 찾아낸 것
이라구. 분명히 저 골짜기에는  수백 명의 인간이 살고 있었어. 아
니, 그 뿐만 아니라 먼 먼 옛날 이 지구에는 수천, 수만 마리의 인
간들이 살고 있었다구."
  타르는 대학교수 같은  태도로 말을 계속했다. 그의 단정적인 말
투에서 반론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역력히 나타나 있었다.
  "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전부 사실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
  챠가 불쾌한 듯이 말했다.
  "바로 전의 부임지에서, 그곳은 액터러스 제4별이었는데...."
  "이  책은 인터캐릭틱  광산회사의 민족문화연구부가  편집한 거
야."
  타르는 강조하듯이 책을 흔들어 보이면서 말했다.
  형 참코가 뼈로 된  눈두덩 속에 가려진 노란 눈동자를 깜박거렸
다.
  "뭐야, 그건? 들어본 적도 없는걸."
  챠는 콧방귀를 뀌었다.
  "별써 일세기 훨씬 전에 폐지된 부문이라구, 돈낭비지. 생태계에
대한 영향이 이러저러니하는 헛소리만 늘어놓았다더군."
  그는 거대한 몸을 빙그르 돌려서 타르 쪽을 행했다.
  "자네, 특별휴가를 얻어서  뭘 하려는 거지? 휴가를 얻으려고 하
는 것은 애당초 무리한  얘기야. 나는 알고 있다구. 자네네 부서에
는 호흡가스 수송관에  대한 정찰업무 청구서류가 산더미처럼 밀려
들어와 있지. 그러나 우리  부서에서는 단 한 명도 당신 부서에 지
원해주지 않을 것이네."
  "진정하게."
  타르가 말했다.
  "내가 말한 것은 다만 인간이...."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일고 있어. 하지만 당신이 현재의 위치
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다지 영리하기 때문이야. 그래, 영리하지.
지적이라는 것과는  달라. 다만 영리할 뿐이지.  나는 당신이 말한
것도, 그리고 당신의 속셈도 다 알고 있어. 인간이 이러쿵저러쿵하
는 것은 수렵여행을  가기 위한 구실이겠지. 제정신을 지닌 사이클
로인이라면 그런 것에는 절대 흥미를 갖지 않을 테니까!"
  동생 참코가 히죽이 웃었다.
  "나는 마흔여섯 시간 내내 캐내서 출하하고, 또 캐내서 출하하고
하는 일상의 반복에 이미 지쳤어. 수렵여행은 꽤나 재미있을 것 같
은데. 그런 것은 미처 몰랐는걸...."
  챠는 목표를  향해 조준하는 탱크처럼 천천히  참코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런 사냥이 재미있다는  거야? 진짜 인간을 사냥해본 적이라도
있나?"
  챠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마루가 삐걱거렸다. 그는 손을 뻗쳐
벨트 바로 위를 가리켰다.
  "녀석들의 키는  이 정도밖에 안된다구. 머리  외에는 거의 털이
나있지 않고, 피부는  괄태충처럼 지저분한 흰색이야. 게다가 무척
허약하다구. 녀석들을 사냥자루에  넣어가지고 돌아오려면 힘 꽤나
들걸?"
  챠는 노골적으로 인간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며 카방고 컵을 집
어들었다.
  "기운도 전혀  없어. 이 컵 하나만  들어올리려고 해도 안간힘을
써야 할 정도지. 게다가 녀석들을 잡는다. 해도 먹을 수가 없어."
  그는 카방고를 단숨에  들이마시고 몸을 흔들었다. 그가 몸을 흔
들때마다 바닥이 함께 근들거렸다.
  "당신은 본 적이 있어?"
  형 참코가 물었다.
  챠가 털썩 주저앉아  천장이 소리를 냈다. 그는 컵을 웨이터에게
건네주었다.
  "아니, 살아  있는 놈은 본적이 없어,  하지만 동굴에서 그 뼈를
보았고, 그리고 얘기를 들었지."
  "한때 그들은 수천 명에 달하기도 했지."
  타르가 챠를 무시하고 말했다.
  "수천 명의 인간들이 이 혹성 전역에 살고 있었다고?"
  챠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녀석들이 멸종되지 않았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지. 그녀석들
은 이곳의 공기를 마시며 살았을 테니까 말이야. 이 혹성의 형편없
는 공기를 말이야."
  "어제 내 페이스 마스크에 금이 갔었는데 말야."
  동생 참코가 끼여들었다.
  "불과 삼십 초 동안이었는데도 꼭 죽는 줄 았았다니까. 머릿속이
아찔아찔하고 아주  지독하더군. 페이스 마스크  없이도 숨쉬고 살
수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묵직한 중력이 있고, 이런 꼴보
기 싫은 초목들이 전혀 없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우리 아버지는
언제나 말하곤 했었지. 얌전하게 행동하고 윗사람을 공경하지 않으
면 세계의 끝에서 제명을  못 채우고 죽게 될 것이라고. 아버지 말
이 옳았어. 나도 그 꼴이 되어버렸으니까.... 형이 쏠 차례야."
  챠는 의자의 등에 몸을 기대며 힐끗 타르를 바라보았다.
  "사실은 인간사냥을 하러 가는 게 아니지, 응?"
  타르는 읽고 있던 책의 한 페이지에 손가락을 끼운 채 책을 덮고
는, 그 책으로 무릎을 툭툭 두드렸다.
  "자네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군."
  타르는 느릿느릿 말했다.
  "인간이라는 생물에게는  우리들이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다
구. 이 책에 의하면, 우리들이 이곳에 오기 전에 인간들은 모든 대
륙에 도시를 건설하고 있었어. 하늘을 나는 기계나 배도 가지고 있
었고, 우주공간에 물체를 쏘아올린 적오 있었던 모양이야."
  "그것이 다른 종족의 소행일지도 모르지 않나?"
  챠가 계속해서 말했다.
  "사이클로인이 잃어버린 식민지 중 하나였는지도 모르지."
  "아니, 그건 아니야."
  "사이클로인은 이 공기를 마실 수가 없어. 틀림없이 인간들이 한
짓이야. 문화부 직원들이  조사한 대로 인간어라니까. 그리고 우리
들이 애당초 지구에  오게 된 것이 어떤  연유인지 자네는 알고 있
나?"
  "그럼 당신은 알고 있단 말야, 왜 왔는지?"
  챠는 경멸하듯이 말했다.
  "인간들은 탐사장치를 쏘아올렸던 모양이야. 그 장치에는 지구의
위치를 가르쳐주는 정보라든가, 인간의 사진이라든가, 여러 가지들
이 실려  있었지. 한 사이클로 정찰기가  그것을 주워올렸던 거야.
그리고 어떻게 되었는지 아나?"
  "흥."
  챠는 코웃음을 쳤다.
  "그 탐사장치와  사진을 탑재하고 있던  탐사선은 대단히 값비싼
희귀한 금속으로 되어 있었지. 그것만으로도 큰 부자가 될 수 있는
물건이었어. 그래서  인터개랙틱 광산회사는  사이클로 정부에 3조
은하 크레디트를 지불하고,  지구관리 및 채굴권을 손에 넣었던 거
야. 우선 가스막으로 인간들을 궤멸시키고, 그리고 나서 토벌을 시
작했던 거야."
  "옛날 이야기야, 옛날 이야기."
  챠가 말했다.
  "내가 작업을 하고 있던 혹성에서도 그런 따위의 터무니 없는 이
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더군, 어디에서나 말이야."
  그는 얼굴 전체를 입으로 가릴 만큼 커다랗게 하품을 했다.
  "그 모두가 수백, 수천 년 전의 이야기라고 하더군. 홍보부가 지
어낸 이야기라구? 녀석들은 아무도 그 진상을 확인할 수 없도록 먼
옛날의 일로 해놓은 거야. 그런 것도 깨닫지 못했나?"
  "나는 인간을 잡으려고 하네."
  타르가 말했다.
  "내 부하나 기재를 당신의 허황된 일에 사용하게 할 생각은 추호
도 없네."
  챠의 말투는 단호했다.
  타르는 의자에 걸터앉아  있던 거대한 몸체를 일으키더니 삐걱거
리는 마루를 가로질러서 숙소로 통하는 해치로 향했다.
  "자넨 장말로 미쳤군 그래."
  챠는 빈정거렸다.
  참코 형제는  다시 자신들의 레이저  게임을 시작했고, 공기상자
속에 갇혀 있는 하루살이들을 한마리 한마리 체이저 총으로 없애버
리고 있었다. 레이저  빔에 맞은 하루살이들은 퍽퍽 현기로 변하여
형체도 없이 사라져갔다.
  챠는 타르가 사라진  문으로 시선을 보냈다. 보안부장인 타르 정
도면 사이클로인은 절대로 그 산에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
어야 하지 않은가. 녀석은 제정신이 아니다. 그곳에는 치명적인 우
라늄이 있지 않은가.
  숙소를 향해서 복도를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는 타르는 자신이 제
정신이 아니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그는 그럴 듯한 행동이었다고 스스로 자부했다.
  우선 뜬소문을  널리 퍼뜨려놓는다. 그리고  나서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면 크게 의혹을 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것은 부와 권력을
약속하는 프로젝트다. 게다가  이 프로젝트는 나를 이 저주받은 혹
성에서 떠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인간, 그것이 모든 문제의  열쇠다. 어쨌든 한 마리를 손에 넣어
야 한다. 한 마리만 잡으면 다른 녀석들도 쉽게 잡을 것이다. 나의
작전은 이미 확고하게 굳어져 있다. 이제 시작하는 일만 남았다.
  타르는 인간사냥에 대한 즐거운 환상에 흐뭇해 하며 잠자리에 들
었다.

  (2)
  장례식을 치루기에는 알맞은  날씨였다. 하지만 장례식이 온전히
치뤄질지 실로 불안하기만 했다.
  당장이라도 폭풍우로 돌변할  것 같은 어두운 구름이 서쪽으로부
터 슬그머니 다가와 눈이 드문드문 덮여 있는 산봉우리들을 뒤덮어
가고 있었다. 그 잿빛  그름 사이로 푸른 하늘이 언뜻언뜻 밝은 빛
을 드러내곤 했다.  조니 굿보이 타일러는 산등성이에 펼펴진 광활
한 초원의 가장자리에서 말을  옆에 세워둔 채 점점 쇠퇴해가는 마
을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죽었다. 어버지를  제대로 묻고 싶다. 어버지는 적반병
으로 죽은 것이 아니어서 아무도 병에 전염될 염려는 없었다. 다만
뼈가 부스러져버려 가누기  어려울 뿐이었다. 제대로 매장한다해도
문제될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마을사람들 중 누구도 장례준
비에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조니는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슬픔에 빠져
있을 수가 없었다. 해야  할 일들을 차근차근 준비해야 했다.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말가운데 가장 빠른 윈드스프리터를 타고 가파
른 샛길을 통해 평원으로 내려왔다. 다섯 마리의 들소를 산속의 초
원에까지 힘겹게 몰아올린 후, 그 가운데 가장 큰 소를 장례용으로
잡았다. 바베큐용 불을 피워 놓은 다음 고기요리는 큰 어머니 엘렌
에게 부탁했다.
  큰어머니는 조니가 부탁하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내 돌칼 중에서 가장 잘 드는 칼이 부러져버렸어. 이젠 소 껍질
을 벗긴다거나 고기를 잘라  다듬는 일은 할 수가 없게 됐다. 게다
가 요즘 사내들은 전혀 장작을 마련해주지도 않잖니?"
  조니 굿보이는 벌떡 일어나서 큰어머니를 내려다보았따. 육 피트
나 되는 그이 큰 키는,  건장한 성인들보다 머리 하는 더 켰고, 근
육질인 몸은  스무 살의 터질 듯한  젊음과 정열로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푸른 눈동자는 깊고 투명했다. 조니는 말없이 우뚝 선
채로 엘렌 큰어머니를 내려다보았다.
  한순간 바람이 불어와 그의 황금빛 머리칼과 수염을 휘날리게 했
다. 엘렌 큰어머니는  그의 당당한 모습에 압도되어 나무들을 주섬
주섬 모으고 새 돌칼을 마련하여 장례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조니는 엘렌 큰어머니가  까마득히 아래쪽에서 연기에 휩싸인 채
부지런히 고기 굽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마을은  이제 죽어가고 있었다. 삶의  활기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였다. 조니가 본  최후의 장례식은 스미스 촌장이 죽었을 때였
다.
  그의 나이는 다섯 살이었다. 노래와 설교와 연회, 그리고 마지막
순서는 달빛 아래서  춤을 추는 것이었다. 스미스 촌장은 흙구덩이
속에 눕혀지고, 그 위에   흙이 덮어졌다. 십자가의 묘비는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그나마 격식을 갖춘 엄숙한 장례식은 그것이 마지
막이었다.
  요즘에는 사람이 죽으면  연못 아래쪽에 있는 바위투성이의 골짜
기에 던져버릴 뿐,  뒷일은 코요테에게 맡겨버리고 있었다. 그러나
조니는 절대 그렇게 잔인한 짓은 할 수 없다고 스스소 결심을 굳혔
다. 아버지의 시신을 그렇게 만들 수는 없다!
  조니는 날렵하게 몸을 돌려 윈드스프리터에 훌쩍 올라탔다. 조니
의 굳은 맨발에 채이자 말은 법원을 향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조니
는 거리의 변두리에 있는 폐허가 된 옛날 주택지역을 지나갔다. 그
곳은 날이 갈수록 황폐해져가고 있었다. 긴 세월 동안 마을 사람들
은 집을 짓기  위한 재목들을 이곳에서 뜯어내왔던 것이다. 나무를
베어와 집을 짓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은 그곳의 기둥들마
저 벌레가 먹고, 썩어버려서 땔감으로조차 쓸 수 없었다.
  원드스프리터는 풀이 무성한  길에 접어들자 주위에 흩어져 있는
먹다버린 뼈다귀들을 밟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달려갔다. 산봉우리
가까이의 골짜기에서 늑대 울음소리가 들리자 윈드스프리터는 귀를
쫑긋 세웠다. 조니는 신선한 피 냄새와 고기를 굽는 연기가 늑대들
을 끌어들이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허리춤에 차고
있는 돌방망이를 움켜잡았다.
  최근에 조니는 주택지역  바로 아래쪽에서 사냥감을 찾아나선 늑
대를 보았었따. 굶주린 늑대들은 강아지는 물론 어린애들까지도 노
렸다. 십 년 전만 해도  이런 일은 없었다. 그러나 인간의 수가 해
마다 줄어들면서 이런 일이, 아니 이보다 더한 일이 발생하지 않으
리라 누구도 장담 못할 상황에까지 이른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에는  이 골짜기에도 천여 명의 인간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정도 과장된 얘기일 것이라고
조니는 생각하고 있었다. 먹을 것은 풍부했다. 산기슭의 광활한 초
원에는 야생의 소나 돼지, 말 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었고, 마을 위
쪽 산악지대에는 사슴과 산양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서투른 사냥꾼
이라도 사냥감이 없어서 걱정할 일은 없었다. 게다가. 해빙된 물이
강을 이루며 흐르고  있어서 식수 또한 풍부했다. 야채도 재배하면
풍부하게 거둘 수 있었다.
  그렇다. 원인은 먹을  것이 아니었다. 뭔가 다른 것이었다. 동물
들은 날로 번식하고 있는데,  인간은 날로 죽어만 가고 있었다. 출
생률에 비해 사망률이 너무 높은 것이었다. 눈이나 폐나 팔이 하나
밖에 엾는 기형아의 출생빈도수가 늘어났고, 그 아이들은 얼어붙을
것같이  추운 밤에 소리도 없이 버려졌다. 기형아는 누구도 원하지
않았다. 모든 생명들이 더  한층 괴물에 대한 공포에 떨고 있었다.
어쩌면 원인은 골짜기에 있을 것이다.
  일곱 살 때, 조니는 아버지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인간은 이제 더이상  이 고장에서는 살아나갈 수 없을지도 모른
단다."
  어버지는 조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전설에 의하면, 다른  골짜기에서도 인간들이 살고 있었던 모양
인데, 이미 다른 마을은 모두 멸망해벼렸단다. 오로지 이 골짜기의
우리들만이 유일하게 살아가고 있는 거란다."
  조니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래쪽에는 넓은 평원이  있고, 많은 동물들이 있어요. 왜 우리
들은 그곳에 가지 않는 거죠?"
  마을 사람들은 때때로 조니 때문에 곤경에 처하곤 했다.
  저 아이는 언제나  모든 일을 혼란시킨다. 쉴새없이 질문만 하는
데, 가르쳐준 것을 저  아이가 믿는 것일까? 어른들의 말을 받아들
이는 것일까? 늘 불안감을 주는 저 아이!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조니를 꾸짖지 않고 타이르듯이 이렇게 말
했다.
  "그곳에는 집을 지을 만한 재목이 없단다."
  하지만 아버지의  답변마저도 조니의  궁금증을 풀어주니는 못했
다. 아버지는 무릎을  꿇고 인내심 있게 진실된 이야기를 들려주려
고 했다.
  "얘야, 조니야, 너는 착한  아이다. 엄마도 아빠도 너를 무척 사
랑하고 있단다. 그러나 괴물로부터 인간을 지켜줄 수 있는 집은 아
무도 지을 수 없는 거란다."
  괴물, 괴물, 언제나 괴물이었다!
  조니는 태어나서부터 계속 괴물에 대한 얘기를 들어왔지만,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괴물에 대해선 아무런 질문도 하
지 않았다.
  아버지의 일을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조니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
이 맺혀 있었다. 그때 말이 갑자기 앞발을 허공으로 치켜드는 바람
에 조니는 하마터면 말에서 떨어질 뻔했다. 일 피트나 늘어선 들쥐
떼가 오두막집에서  쏟아져나오다 윈드스프리터의 다리에 부딪쳤던
것이다.
  순간 회상의 늪에서 빠져나온 조니는 자신을 꾸짖었다. 침착하게
윈드스프리터를 진정시킨 다음 박차를 가하여 법원을 향해 말을 달
렸다.

  (3)
  법원 앞에서 조니는 뜻밖에 크리시를 만났다. 그녀는 언제나  그
랬듯이 그녀의 여동생과  함께 있었다. 그애는 크리시와 조금도 떨
어져 있고 싶지 않다는 듯 다리를 붙안고 있었다.
  조니는 무관심한 듯  크리시를 지나쳐서 법원건물을 바라보았다.
법원은 상당히 오래된  것물로, 거대한 반석 위에 깎아세운 기둥들
과 바닥 전체는 돌로 장식되어 있었다. 형태가 보존되고 있는 유일
한 건물이었다. 그것은 천 년 전쯤 건축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었
지만 조니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단지 위압적인 건물의 고풍스러
움 속에는 충분히 그만큼의 시간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건물은 힘에  겨울 만큼 많은 짐을 실은 말허리처럼 부드
러운 곡선을 이루고 있었다. 벽면들에는 도처에 벌레먹은 구멍들이
뚫려 있었고, 대부분의  창들은 썩은 두개골의 눈처럼 음험한 동굴
모양을 하고 있었다.
  건물 주위는 온통 석조 보도불록들이 깔려 있는데 그것들은 반피
트 가량 닳아 있었다. 까마득한 옛날, 수세기에 걸쳐서 마을사람들
이 재판을 받거나 벌을  받거나 하기 위해서 굳어진 맨발로 이곳을
드나들며 보도블록의 견고함마저  마쇄시켜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
장면들은 상상의 세계에  불과했다. 조니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재판이나 재판을 위한 마을회의를 본 적이 없었다.
  "스태퍼 목사님은 안에 계세요."
  크리시가 말했다. 날씬한  몸매의 매우 아름다운 그녀였다. 나이
는 열여덟 살. 큰 눈에 검은 눈동자, 윤기가 도는 금발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며 매혹적인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는 몸에 착
달라붙는 사슴가죽 옷을 입고 있었는데 몸의 일부에만 걸쳐 있었으
므로 한 쪽 가슴과 다리는 대부분 드러나 있었다.
  크리시의 여동생은 패티였다.  패티는 언니와 매우 닮았고, 이제
겨우 일곱 살이었다.  패티는 조니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반가운
마음에 눈을 반짝였다.
  "제대로 장례식을 치르려구요, 조니?"
  대답도 하지 않은  조니는 근엄한 몸짓으로 윈드스프리터에서 내
려 패티에게 고삐를  내밀었다. 그녀는 크리시의 다리를 휘감고 있
던 팔을 풀고, 매료당한 듯시 고삐를 받아들었다. 어린 패티에게는
부모도 없었고, 가정이라고 부를 만한 울타리도 없었다. 오직 조니
를 숭배하고 있었으므로  하루하루가 조니와의 만남을 통해서 시작
되고 끝나곤 했다.
  "고기를 굽고 흙구덩이를 파는 장례의식을 모두 거행할 거예요?"
  패티가 물었다.
  조니는 법원의  출입문을 향하여 나아갔다.  크리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그의 팔ㅇ르  붙잡으려고 손을 내밀었으나 조니는 묵묵히
걸어갈 뿐이었다.
  스패퍼 목사는 입을 헤벌리고, 코를 골면서 더러운 풀 위에 느른
하게 누워 있었다.  파리가 그 주위를 윙윙거리며 날아다니고 있었
다. 조니는 발로 그를 흔들어 깨웠다.
  스태퍼 목사의 전성기는  이미 오래전에 끝나 있었다. 한창 때의
그는 근사한 체격에  위엄을 갖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그가
로코풀을 씹기 전의  느낌이었다. 치통을 멈추기 위해서 씹는 것뿐
이라고 스태퍼 목사는  말하고 있었지만, 로코풀은 그에게 결코 이
로운 것이 아니었다.
  목사는 여위고  수척해졌으며 볼품이 없었고,  이빨은 빠져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조니에게 다시  한 번 채이고 너서야  스태퍼 목사는 눈을 떴다.
깜짝 놀라 눈을  비벼대자 눈에서 더러운 눈꼽이 떨어졌다. 목사는
자신을 깨운 사람이 조니 굿보이 타일러라는 것을 알자 별볼일없다
는 듯이 다시 눈을 감았다.
  "일어나요."
  조니가 외쳤다.
  "요즘의 젊은 녀석들은...."
  스태퍼 목사는 투덜거렸다.
  "일어나라니까요."
  조니는 힘주어 다시 말했다.
  "장례식을 치뤄줘요."
  "장례식이라고?"
  "고기와 설교와 춤 말입니다."
  "누가 죽었는데?"
  "누가 죽었는지는 알고  있잖아요? 임종 때는 목사님도 있었으니
까요."
  "아아, 그렇군. 자네 부친  말이군. 좋은 친구였지. 응, 좋은 녀
석이었어. 그러니까 그가.... 그 친구가 자네의 아버지였구먼."
  목사의 넋두리에 조니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스태퍼 목사는 겁을
집어먹고 몸을 일으켰다.
  "글쎄, 그렇게 받아들이지  말게나, 조니. 요즘은 마을의 혈연관
계도 복잡해져서 말일세. 자네 모친은 한때 세 남자와 사귀고 있었
고, 게다가 요즘엔 제대로 식을 올리는 일도 없으니까...."
  "일어나는 게 좋을 거예요, 목사님."
  조니의 말에 스태퍼 목사는 낡아빠진 흠집투성이 의자에 손을 집
고 몸을 일으켰다. 걸레 같은 사슴가죽 옷을 몸에 걸치고, 낡은 풀
끈으로 허리를 묶고 있었다.
  "요즘은 나도 기력이 약해줘서 말일세, 조니. 옛날에는 무엇이든
다 기억할 수 있었는데 말이야. 전설, 결혼식, 사냥하러 가기 전에
올리는 기도, 각 가정에서 일어나는 불화까지도 훤히 다 알고 있었
지."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신선한 로코풀을 찾았다.
  "태양이 머리 위에 올라오면 목사님께서 마을사람들을 전부 옛날
묘지로 모아주세요. 그리고 나서...."
  "누가 흙구덩이를 팔 거야?  자네도 알고 있을 테지만 정식 장례
식에는 흙구덩이가 필요하다네."
  "내가 파겠어요."
  조니가 재빨리 말하자, 스태퍼 목사는 안심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좋아.... 마을사람들이  구덩이를 파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니까.... 아니, 이 로코풀은 초록색이 아닌가? 그
런데 자네는 방금 고기라고 말했나? 누가 소를 잡아서 요리를 한다
는 건가?"
  "그 준비는 이미 끝났어요."
  스태퍼 목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서 갑자기 생각난 듯
이 말했다.
  "누가 마을 사람들을 부르지?"
  스태퍼 목사는 조니를 나무라듯이 바라보았다.
  "패티에게 부탁해서 알리도록 할 거예요."
  "그렇다면 점심때까지 내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겠군. 그런데 왜
나를 깨운 거지?"
  그렇게 말하고 목사는 더러운 풀 위에 쓰러지듯이 누워서 조니가
법원 밖으로 나가는 것을 불쾌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4)
  조니 굿보이는 무릎을  두 팔로 끌어안고 앉아서, 모닥불의 꺼져
가는 불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크리시는 그이 옆에  엎드려서 커다란 해바라기씨를 새하얀 이로
씹고 있었다. 그녀는  이따금 조심스럽게 조니를 올려다보았다. 지
금까지 크리시는 조니가 우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므로 조
금아나마 그의 슬픔이 어느 정도인지 감지할 수 있었다.
  조니는 어렸을  때도 좀처럼 눈물을 보이는 일이 없었다. 조니가
아버지를 너무나 사랑했다는 것은 크리시도 잘 알고 있었으나 내심
놀라웠다. 평소의  조니는 매우 남자답고  당당해서 좀처럼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그이 과묵함 속에 담겨 있을 사랑
의 감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물론 조니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불
꽃과 같은 것이었다. 만일 조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자신은
벼랑에서 몸을 던져 죽을 거라고 다짐하곤 했다. 그 벼랑은 마을사
람들이 평원에서 잡은 야생소들을 죽일 때 끌고 가는 곳으로, 편리
한 도살장소로  이용되고 있었다. 크리시에게  조시 굿보이가 없는
인생은 살아나갈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아니, 그런 인생은 상상조
차 할 수 없었다. 아마 조니도 나를 좋아하고 있을 것이다. 그에게
도 감정은 있다.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고 있지 않은가.

  조니는 자신을 책망했다. 일곱 살 때에도 그 뒤에도 몇 번씩이나
아버지에게 말했었다.
  "이 마을은 죽음의 마을이예요.  다른 곳으로 가면 또 달라질 거
예요."
  조니는 지금까지도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평원의 돼지나 말,
소는 맒은  새끼를, 그것도 계속해서 낳는데,  또 산꼭대기 숲속에
사는 늑대나  코요테나 퓨마, 그리고  새들까지도 자꾸만 번식하는
데, 왜 유독 인간만은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일까?
  마을 사람들은 장례식에  완전히 만족해 하고 있었다. 조니와 나
머지 몇 사람만이  모든 일을 전담했으니까 그랬을 테지만. 그러나
조니에게는 조금의 위안도  주지 못했다. 흡족할 만한 장례식이 아
니었다. 그러나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고 있는 것을 입 밖에 낼 수
는 없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밝히면 또 한 번 엄청난 소동이 벌
어질 테니까.
  조니는 조상신들의 동굴에 아버지의 시신을 안치하고 싶었다. 그
곳은 어두운 골짜기 깊숙한  곳의 제일 놓은 봉우리에 위치하고 있
었다. 큰 바위가 가라진 틈 속에 있는 그곳에 조니는 길을 잃고 헤
매다가 들어가본 적이 있었다. 열두살이 되던 해였다. 망아지를 몰
고 마을로 돌아가려고  골짜기로 들어갔다가 그 봉우리로 올라가는
길이 완만한 것을 보고, 순간 탐험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조니는 몇 마일이나 계속해서 걸어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거대
한 수직의 문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것은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몹시  부식되어 보였다. 위에서도  보이지 않고, 골짜기
가장자리에서도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그 문은 엄청나게 컸고, 위
로 똑바로 치솟아 있었다.
  조니는 망아지에서 내려와 문 앞에 놓인 바위 위에 올라갔다. 주
위를 살펴본 후, 문 앞으로 다가가서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조니는 문으로 바짝 다가가서 두 손으로 밀어모았으나 꼼짝도 하
지 않았다. 조니는 빗장으로 쓸 만한 막대기를 찾아내어 힘껏 들오
올렸다. 막대기는 힘없이 그이  발 바로 옆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
문은 비록 녹이 슬어 있었지만 대단히 무거웠다. 열두 살짜리의 힘
으로는 조금이라도 움직여볼 도리가 없었다.
  조니는 떨어져 있는 막대기를 다시 집어들고 조금만 틈새에 밀어
넣었다. 안간힘을  썼다. 막대기는 겨우  문틈을 파고들었다. 그와
동시에 머리칼이  곤두설 정도의 엄청남  굉음이 울려퍼졌다. 깜짝
놀란 조니는 막대기를  내던지고 망아지에게로 달려갔다. 망아지에
올라타자 조니는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등줄기에
서 식은땀이 흘렀다.  어쩌면 녹슨 문이 이음쇠가 삐걱거렸을 뿐인
지도 모르잖은가. 결코 괴물의 목소리는 아닐 것이다.
  조니는 다시 문으로 다사갔다. 심호흡을 크게 한 후 한 번 더 문
틈에 막대기를 끼워넣었다.  예상한 대로였다. 그것은 문을 떠받치
고 있던 빚장이 삐걱거리는 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조금 벌어진 문틈으로  지독한 냄새가 풍겨왔다. 그 냄새는 죽음
의 냄새였다. 조니는 으스스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문이 열리자 희
미한 빛이 동굴 속을  비췄다. 그 빛은 조니를 동굴 속으로 안내하
려는 듯 손짓하고  있었다. 기다란 계단이 아래쪽까지 이어져 있었
는데 놀랄만큼 경사가 완만했다. 누군가 질서정연하게 손질해 놓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계단의 여기저기 에는 해골이 굴러다니고 있지
않은가. 누더기가 된 옷을 걸친 뼈다귀들이 말이다. 그 누더기들으
조니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옷들이었다.
  뼈들 사이에 여러개의  금속조각이 떨어져 있었다. 그 가운데 아
직도 광택을 잃지 않은 채 빛나고 있는 것도 있었다.
  조니는 해골들을 보고  도망치다가 도중에서 다시 멈춰 섰다. 뭔
가 증거가 될 만한 것을 가지고 돌아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갑
자기 깨달은 것이었다.  조니는 있는 용기를 모두 발휘하여 조심스
럽게 문안으로  걸어들어가 금속조각 한  개를 집어들었다. 신기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날개를 활짝 펼친 새가 발톱으로 활
살을 움켜쥐고 있는  문양으로,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금속조각
을 집어들자 그것이 얹혀 있던 두개골이 구러가더니 조니의 눈앞에
서 산산조각이 나면서 부서졌다. 조니는 심장이 멎을 거만 같았다.
마치 두개골이  그 공허한 눈으로 그의  도둑질을 비난하며 마지막
숨을 거둔 듯했다.
  이틀 동안  조니는 그 동굴에 대한  생각에 빠져 있었다. 아무런
애기도 하지 않고, 어떤 식으로 질문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를 곰곰
히 생각하였다. 지금까지 어른들에게 이것저것 질문했다가 매번 꾸
중만 들어왔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였던 것이다.
  그 무렵에는 던컨 촌장이 살아 있었다. 조니는 촌장 옆에 얌전하
게 앉아서 그가  사슴고기를 마저 먹기를 기다렸다. 식사가 끝나고
촌장의 트림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자, 조니는
느닷 없이 말을 꺼냈다.
  "저 커다람 무덤에 대해서 말인데요."
  "커다란 뭐라고?"
  던컨 촌장은 귀찮아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두운 골짜기에  있는 동굴....  죽은 사람을 넣어둔  곳 말예
요."
  "어디를 말하는 거냐?"
  조니는 새의 문양이  새겨진 금속조각을 끄집어내서 던컨 촌장에
게 보였다.
  던컨 촌장은 그것을  받아들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자세히 살펴
보았다.
  그 때 스태퍼 목사가  모닥불 너머로 재빠르게 손을 뻗어서 금속
조각을 빼앗아갔다. 당시 목사는 그런대로 품위를 지키고 있었다.
  잠깐 동안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목사의 불쾌한 심문과 설교가
시작되었다. 전설을  배우는 집회에는 나오지  않는 주제에 금지된
장소에 발을 들여놓아  가지고 모든 사람들을 골칫거리에 휘말려들
게 만든다고, 조니는 꽤 오랜 시간 그렇게 앉아 있어야 했다.
  설교가 끝나자 던컨 촌장은 스태퍼 목사를 부추겨서 동굴에 관한
전설에 대해 듣기를 원했다.
  "그곳은 고대 신들의 무덤이란다."
  목사는 마지못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현재 살아 있는 사람들  중에 그곳에 다녀온 사람은 없단다. 나
도 우리 증조부가 살아  계셨을 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지. 증
조부 얘기에 의하면, 신들이 이 산으로 와서 위대한 사람들을 거대
한 동굴속에 매장했다고 한다. 하이피크에 번갯불이 번쩍이는 것은
위대한 사람들을 장사지내기  위해서 신들이 호수 건너편에서 찾아
오기 때문이란다. 옛날에는 이  마을보다 몇 백 배나 큰 마을이 여
러 개 있어서, 수천, 수만명의 사람들이 살았다고 들었다. 그 마을
은 우리마을의 동쪽에 있었지만, 이제는 폐허가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지. 그곳은 두세 개의  언덕만 있을 뿐, 나머지는 끝없는 평원이
펼쳐져 있어서  무척 아름답다고 했다.  그곳에서 위대한 사람들이
죽으면 신들은 그들을 자신들의 무덤으로 옮겨왔던 거야."
  스패퍼 목사는 배지를 흔들었다.
  "이것은 신들의 무덤에 위대한 사람을 눕힐 때 이마 위에 올려놓
았던 거다. 고대의 율법에 의하면, 아무도 그곳에 들어가서는 안된
다고 되어 있어. 절대로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 좋아. 특히 너같은
어린애는 말이다."
  얘기를 마침 목사는  배지를 자신의 자루 속에 집어넣었다. 그것
이 조니가 그 배지를 본 마지막이었다. 누가 뭐래도 스태퍼 목사는
성스러운 사람이었고 성스러운 것은 모두 그가 소유했다.
  그 무렵에 들었던 목사의 얘기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지
만, 아버지를 신들의  무덤에 매장해야 한다는 생각만은 변함이 없
었다. 조니는 그 후로  그곳엔 가본 일은 없었지만, 하이피크에 번
개가 번쩍일 때마다 신들의 무덤을 떠올리곤 했다.
  조지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아버지를 그곳에서  쉬게 하고 싶었
다.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나요, 조니?"
  크리시가 물었다. 조니는 깊은 생각에서 깨어나 그녀를 내려다보
았다. 모닥불이  크리시의 머리칼을 발갛게  물들이며 그녀의 검은
눈동자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모든 게 내 탓이야."
  조니의 말에 크리시가  미소를 띄고 고개를 흔들었다. 어떤 경우
든 조니가 잘못하는 것을 크리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니야.... 아참! 그래 맞아.  이 고장은 웬지 좀 이상해. 아버
지의 뼈는.... 돌아가시기 일 년 전부터 푸슬푸슬 부스러지고 있었
어. 그 무덤의 해골들처럼 말야."
  "무덤이라구요?"
  크리시는 아무 생각 없이  물었다.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조
니의 말 한마디에도  그녀는 기뻤다. 적어도 조니는 그녀에게 얘기
를 걸고 있었으니까.
  "나는 아버지를 그곳에  모셔야만 했어. 아버지는 위대한 분이셨
어.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지. 풀끈  엮는 법,  퓨마 사냥
법.... 퓨마가 자세를  가다듬고 도약하는 순간을 노려서 공격하는
거라고 하셨지. 퓨마는  공중에서는 방향을 전환할 수가 없기 때문
이지.  그리고 무두질한  가죽을 잘라서  끈을  만드는 방법이라든
가...."
  "조니, 당신은 하나도 잘못한 게 없어요."
  "아냐, 훌륭한 장례식이 아니었어."
  "왜요? 조니, 난 다른 장례식은 본 적도 없는 걸요."
  "하지만 난  격식을 갖춘 장례식을 치루고  싶었단 말야. 스태퍼
목사는 아버지의 혼백을 위한 설교를 하지 않았어."
  "목사님은 얘기를 했잖아요?  나는 딸기 따는 일을 도와주느라고
듣지는 못했지만, 목사님이 뭔가 얘기한 것은 알고 있어요, 목사님
이 무슨 나쁜 소리라도 했아요?"
  "얘기를 하긴  했지. 하지만  장례식에 어울리는  얘기가 아니었
어."
  "어떤 말을 했는데요, 조니?"
  "신의 분노니 뭐니 그런  얘기였어. 누구든지 그 전설은 다 알고
있단 말야. 나도 몽땅 외우고 있는 얘기라니까."
  "나한테도 좀 들려줘요."
  조니는 목사의 태도가 아직도 못마땅하다는 듯 짜증을 부리며 투
덜거렸다. 그는 크리시가  궁금해 하면서 듣고 싶어 안달하는 모습
에 은근히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신의 분노의  날은 찾아왔도다. 신은 인간이 음행
과 환락을 제멋대로  남발하는 것을 증오하여, 기적의 구름을 일으
켜 전세계를 내리치셨도다. 그 노여움은 백 명 가운데 아흔아홉 명
의 목숨을 빼앗았도다. 그리하여 재앙은 땅을 뒤덮고, 질병은 퍼져
나가 부정한 것들을  모조리 쓸어버렸도다. 신의 분노가 끝났을 때
더 이상  부정한 자는 없고, 깨끗하고  올바른 사람만이 남았도다.
신은 남은 사람들을  언덕의 비밀스러운 장소로 인도해가기 위해서
괴물을 보내셨도다. 괴물은  인간을 사냥하여 그 숫자를 줄였노라.
그것은 성스러운 자, 축복받은  자, 죄를 짓지 않은 자들만을 땅에
남기기 위함이라, 아멘."
  "그 이야기군요. 당신도 목사님 못지않군요"
  "내가 잘못했어. 어버지를 설득했어야만 했다구. 이 마을에는 뭔
가 불길한 예감이 풍기고 있어, 옛날에는 마을 동쪽에 커다란 마을
이 있었고, 많은 인간들이 살았다고 했거든."
  조니가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돼요, 조니. 그곳에는 괴물들이 있어요."
  "나는 괴물 같은 것은 본 적이 없어."
  "그렇지만 이, 삼  일 간격으로 머리 위로 날아가잖아요. 번쩍번
쩍 빛나는 걸 당신도 보았잖아요?"
  "그것 말이야? 태양과 달도 머리 위를 지나가는데 뭘. 별도 그렇
고, 유성도 그렇잖아?"
  크리시는 순간 가슴으로 전해오는 것이 있었다.
  "조니, 혹시 무슨 일을 저지르려는 것은 아니겠죠?"
  "응, 그래. 날이 밝으면  즉시 말을 타고 이 마을을 떠날 생각이
야. 평원에 커다란  마을이 있었다고 하는데, 사실인지 헛소문인지
알아봐야겠어."
  크리시는 가슴이  꽉 죄어드는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며 조니의
결연한 옆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몸 전체가 땅속으로 꺼져들
어가는 느낌에 싸여 다가오는 이별을 예감하고 있었다. 오늘 본 흙
구덩이 속에 자신이 누워 있는 것만 같았다.
  "제발 그만둬요, 조니."
  "아냐, 갈 거야. 가야 된다구."
  "그럼, 나도 함께 가겠어요."
  "아니야, 크리시는 여기 남아 있어야 해."
  조니는 재빨리 그녀를 단념시킬 만한 방법을 떠올렸다.
  "일 년 정도 마을을 떠나 있게 될지도 몰라."
  크리시의 눈빛은 슬픔으로  가득 찼고, 눈물이 가득 고여 쏟아질
듯 넘쳐흐르고 있었다.
  "조니, 만약  당신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요?"
  확신은 없었지만 지금은 그녀를 달래지 않으면 안되었다.
  "약속하겠어, 반드시 일 년 안에 돌아올게."
  "조니, 만일 일 년  안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나는 당신을 찾아나
설 거예요."
  조니는 눈살을 찌푸렸다. 크리시가 자신에게 강요하는 기분이 들
었던 것이다.
  "죠니, 그래도 떠나겠다면  가세요. 그러나 저 하늘의 별을 보세
요. 저 별이 내년 이맘때 다시 지금의 저자리로 되돌아왔는데도 당
신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나는 기필코 당신을 찾아나설 거예요."
  "평원으로 나가면 돼지나 들소에게 습격당해서 죽게 될지도 모른
다구."
  "조니, 난 그렇게 할 거예요."
  "내가 이대로 떠나고  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
고 있는 거야?"
  "아니에요. 하지만 지금의내  결심은 변하지 않아요, 조니. 떠나
고 싶으면 떠나세요. 내 결심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구요."

  (5)
  이른 새벽, 동터오르는 눈부신 햇살이 하이피크 언덕을 장미빛으
로 물들이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해 맑은 날씨였다.
  조니 굿보이가 짐 싣는  말에 짐을 싣고 있는 동안 윈드스프리터
는 주위를 천천히  걸어다니며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조니는 사소
한 일이나마 몰두함으로써,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선 채 자신의 일
거수 일투족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크리시와 패티를 마음속에
서 떨쳐버리려고 허둥대고 있었다.
  브라운 린퍼 스태퍼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그
는 율법대로 따른다면 태어나자마자 버려졌어야 할 운명이었다. 다
리가 불구인 채로  태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스태퍼가에 태어
난 유일한 혈육이었으며,  그의 아버지는 목사였다. 게다가 촌장도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버려야 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사람
은 아무도 없었다.
  조니와 브라운 린퍼 사이에 우정 같은 것은 조금도 없었다. 장례
식날 춤을 출 때도 브라운은  춤추고 있는 원 밖에 앉아서 춤과 장
례식과 고기, 딸기 등에  대해서 야유와 비난을 퍼붓고 있었다. 게
다가 조니의 아버지에 대해 험담까지 늘어놓고 있었다.
  "그 노인의  뼈는 어는 것  하나 제대로 붙어  있는 것이 없었다
구."
  조니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주먹으로 그의 얼굴을 냅다 후려쳤다.
그러나 조니는 금세 후회했다. 그는 불구자이지 않은가.
  브라운 핀퍼는 몸을  구부린 자세로 서 있었다. 얼굴에는 어느새
어렴풋이 푸른 멍이 들어 있었다. 짐을 챙기는 조니의 모습을 바라
보고 있는  그의 표정은 조니에게 불운이  닥치기를 은근히 바라는
눈치였다.
  조니는 떠날 준비에  만전을 기하였다. 짐이 조금 많을지도 모르
지만, 앞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는  일이었다. 짐 싣는
말 양쪽에 하나씩  늘어뜨린 자루들에는 부싯돌과 부싯깃 대신으로
쓸 쥐둥우리, 끈 한 다발,  끝을 날카롭게 세운 돌칼 몇 개가 들어
있었다. 그 돌칼은 쉽게 구할 수 없는 것들로 무엇이든 잘 자를 수
있었다. 그리고 세개의 돌방망이, 그 하나는 곰의 두개골이라도 깨
뜨릴 정도의 무게가 있었다. 비교적 냄새가 적게 나는 겉옷 몇 벌,
여벌옷인 벅스킨(사슴이나 양의 가죽으로 만든 옷)....
  조니는 흠칫 놀랐다. 어는 틈엔가 크리시가 바로 옆에 와 있었던
것이다. 틀림없이 크리시는 나를 떠나지 못하게 할 생각이리라. 크
리시가 말을 건네지 않기를 조나는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만일 크리시가  당신이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죽을 거예요 하고
말했다면, 대단치 않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 년 이내
에 돌아오지 않으면 자신을 찾아 뒤를 쫑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조
나도 불안해질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절대로 죽지 말고 다시 돌아
와야 하는 것이다.
  조니는 그다지 죽음이  겁나지 않았고, 위험이 앞에 놓인다 해도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돌아오지 못한다면, 크리시가 평원으로 자
신을 찾아나설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가슴이 북받치듯 팽팽하게
조여들었다. 크리시는 짐승들에게  습격을 당해서 짓찢기고 잡아먹
혀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나 자신의 책임인 것이
다. 반드시 돌아오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그녀가 진정으로 바라
는 일일 것이다.
  크리시는 조니에게 두가지 선물을 주었다. 하나는 풀끈을 끼울수
있도록 구멍이 나 있는 커다란 바느질용 바늘이었고, 또 하나는 가
죽에 구멍을 뚫을 때  쓰는 송곳이었다. 어느 것이나 모두 오래 사
용한 물건으로, 잘 길들여져 있어서 대단히 가치가 있는 것처럼 보
인다.
  "우리 엄마가 쓰던 거예요."
  "나는 아무것도 필요없어."
  "안돼요. 꼭 가지고 가세요."
  "필요없다니까."
  "만일 옷이 찢어지거나 하면 어떻게 꿰매려고 그래요?"
  크리시는 울먹이다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차츰 마을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조니는 울고불고하는 것
은 딱 질색이었다. 그는 크리시의 손에서 바늘과 송곳을 받아들고,
한쪽자루의 끈을 풀어서  그 속에 던져 넣었다. 그것들이 자루에서
빠져나올 염려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자루의 끈을 묶었다.
  그러자 크리시는  겨우 울음을 진정시켰다.  무심히 고개를 돌려
크리시의 얼굴을 본  조니는 가슴속에서 뭔가 쿵하고 떨어져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창백한 크리시의 얼굴은 마치 한잠도 이루지 못한 사람처럼 보였
다. 마치 열에 들뜬 환자 같았다. 조니의 결심은 짧은 순간 흔들렸
다. 그때  크리시의 뒤쪽에 있던 브라운  린퍼가 시야에 들어왔다.
브라운은 입을 가리고  피트 톰소에게 킬킬거리면서 지껄여대고 있
었다. 조니의 표정은  경직되었다. 그는 크리시를 와락 끌어당기고
는 강렬하게 키스를  했다. 그러자 봇물이 터지듯 크리시의 눈물이
강물처럼 넘쳐흘렸다.
  "알았지? 내 뒤를 쫑아오면 안돼."
  조니가 말했다.
  크리시는 침칙한 목소리로 얘기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만일 일 년 이내에 돌아오지 않으면 반드시 당신의 뒤를 쫑아가
겠어요. 하이피크의 모든 신들을 걸고 맹세하겠어요, 조니."
  조니는 가슴아픈 표정으로 그녀의 눈빛을 바라보았다. 짧은 시간
이 흘렀다. 새삼 마음을  다잡은 조니는 짐 싣는 말의 고삐를 잡고
서 윈드스프리터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훌쩍 그 등에 올
라탔다.
  "내가 가진 네 마리 말들은 모두 크리시에게 줄게. 훈련을 잘 시
켜놓았으니까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잘 돌봐줘, 크리시."
  그는 잠시 후 말을 이었다.
  "물론 겨울이 되어서 먹을 것이 하나도 없게 된다면 잡아먹을 수
밖에 없겠지만."
  크리시는 힘껏 조니의  다리에 매달렸으나 끝내 떨어지고야 말았
다. 점점 멀어져가는  조니를 바라보는 크리시의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다. 가슴속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온몸에 상처를 내며 더할 수
없는 외로움에 빠져들게 하고 있었다.
  조니는 발꿈치로 말의  옆구리를 힘차게 걷어찼다. 출발이다! 앞
으로의 여행은 지금까지와는 다를 것이다.
  말을 타고 가는 것도, 사냥을 할 때도, 온전히 내 의지만을 내세
울 수는 없을 것이다.  크리시와의 약속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며,
또 그것을  반드시 지키기 위해서는 신중을  기해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 돌아와야 한다.
  평원으로 연결되는 오솔길  어귀에서 조니는 뒤를 돌아다보았다.
마을사람 몇몇이 남아  그를 전송하고 있었다. 서운해 하는 그들의
모습은 웬지 허황해  보였다. 조니가 말머리를 돌리며 손을 흔들자
마을사람들도 손을  마주 흔들어 보였다.  조니는 천천히 말머리를
돌렸다. 벌써  어두운 골짜기로 향한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아직
한 번도 본적이 없는 평원을 향해서 산을 내려가고 있는 것이었다.
  "크리시 언니, 조니 오빠는 돌아올 수 있을까?"
  패티가 슬픔에 젖은  크리시에게 물었다. 크리시의 눈은 마치 꺼
져가는 모닥불처럼  함없이 풀어져내렸다. 거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의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기만 할 뿐.
  "잘 가요."

  (6)
  보안 부장 타르는 트림을 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끌
기위한 시도였지만,  수송부 정비실에 있는  기계들의 맹렬한 소음
속에서는 한낱 잡음에 불과했다.
  그러자 즈즈토만은 타르의 트림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저 작업
에 열중한 너머지 듣지 못한 척하고 있었다. 제 16채굴장의 수송주
임인 즈즈토에게  있어서 보안부장은 귀찮기  짝이 없는 존재였다.
공구나 자동차나 연료가  분실되거나, 혹은 어떤 고장이 있을 때마
다 보안부가 사사건건 간섭을 해오기 때문이었다.
  부서진 차들을 해체하고 있는 중이라서 부품이 주위에 온통 흩어
져 있었다. 어떤 차는 특히 엉망으로 부서져서 좌석 커버에는 사이
클로인의 핏자국으로 인해 여기저기 녹색으로 얼룩져 있었다. 천장
의 레일로부터 늘어져 있는  여러 개의 거대한 드릴이 뾰족한 주둥
이를 곳곳에 꽂아넣고  있었고, 턱에 아무것도 물지 않은 선반기가
무엇이라도 깎아내러리겠다는 듯이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벨트
는 굉음을  내지르며 양쪽 끝에서 끊어질  듯이 팽팽하게 고속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즈즈토의 손동작은 놀라울 정도로 민첩했다. 그가 고속 제트엔진
의 동심원 겉부분을 재빠르게 분해하는 것을 응시하고 있는 타르의
눈빛이 음침하게 움직였다. 저녀석의 약점만 찾아내면 일하기가 훨
씬 수월해질 텐데.
  즈즈토는 해체를 끝내고, 마지막 링을 벤치 위에 올려놓았다. 타
르를 보자 그이 노란색 눈알이 수축했다.
  "그래, 이번에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다는 거요?"
  타르는 쿵쿵거리고 걸어가서 주위를 훑어보았따.
  "정비공은 어디에 있지?"
  "기계공은 정원보다 열다섯  명이나 부족한 형편이오. 지난달 녀
석들이 조업으로 교체 배치된  것을 당신도 잘 알고 있지 않소? 그
보다 여기는 뭐라러 온 거요?"
  보안부장의 오랜 경험으로, 타르는 전후사정을 너무 솔직하게 털
어 놓을  필요가 없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고지식하게
무인정찰기가 필요하다고 즈즈토에게 말한다면, 그는 긴급증명서를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없다면 당연히 제공할 수 없다고 대
답할 것이다.
  이 혹성에서 정말로  긴급한 사태는 전혀 없었다. 인터개랙틱 광
산회사가 이곳에서 조업을 개시한  이래 몇 백 년이나 흘렀지만 단
한 번도  긴급사태는 없었다. 보안부에게  있어서는 따분하기 짝이
없는 근무지일 수 밖에 없었고, 보안부 부장이라 해도 중요한 지위
로 간주 되지 않았다 보안부장으로서는 머리를 짜내서 엉터리 보안
업무르 날조해낼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수송방해를 꾀하는 음모가 있는  것 같네. 그래서 삼 주일 전부
터 계속 그 일에만 매달려 있지."
  타르는 부서진 차에 거대한 몸집을 기대면서 말했다.
  "그 정찰기에는 기대지 말아요. 날개가 쭈그러지니까요."
  타르는 일단 원만하게  얘기를 진행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
여, 즈즈토가 일하고 있는 작업대 옆에 의자에 걸터앉았다.
  "우리들끼리 얘기인데 말일세, 즈즈토. 나에게는 회사 밖에서 작
업원을 조달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네. 현재 그 일에 손을 대고
있지. 그래서 무인정찰기기 필요한 것일세."
  수송주임 즈즈토는 뼈로 덮인 눈두덩 속의 노란색 눈을 깜박거리
며 맞은편 의자에 않았다. 의자는 천 파운드의 몸무게에 눌려 비명
을 질러대듯 삐걱거렸다.
  "이 혹성에는 지성을 가진 생물이 살고 있지."
  타르는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어떤 생물입니까?"
  즈즈토가 위심스러운 듯이 물었다.
  "인간일세."
  즈즈토는 탐색하듯이 타르 보안부장을 빠르게 살펴보며 인간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보안부 직원은 너나 할  것 없이 유모어 감각이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족속들이엇다.  그 중에는 미끼나 함정을 이용해서 무고한
사람들을 죄에 옭아넣고,  그리고 나서 고발하여 실적을 올리는 야
비한 자들도 있었다.
  인간이라는 말에 즈즈토는  터져나오려는 웃음으로 그의 입 가장
자리락 일그러지고 있었다.  애써 웃음을 참았지만 결국 입 밖으로
터져나오고 말았다. 침의  파편이 타르의 얼굴에 흩어졌다. 즈즈토
는 황급히 웃음을 그치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달리 생각하고 있는 일이 있는 것 같은데요?"
  문득 생각난 듯 즈즈토가 물었다.
  역시 만만한 놈이 아니군. 그것 보라니까, 지나치게 솔직하면 이
렇게 되는  거라구. 진실과 보안부 업무화는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없는 법이지.
  "수송방해 음모의 혐의 말이네...."
  타르는 눈을 치켜뜨고 부서진 차량들을 둘어보았다.
  "상당한 고위층도 한 몫 끼여 있는 것 같은데...."
  즈즈토는 커다란 소리가 나도록 공구들을 땅바닥에 내던졌다. 낮
은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는 정지된 채 자기 앞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부장님, 원하는 것이 뭡니까?"
  "정찰기 한 대, 대엿새 동안만."
  즈즈토는 몸을  일으켜 수송예정표를  벽에서 떼어내어 살펴보았
다. 타르는 숨이 가쁜지 좀더 그르렁거렸다.
  "이 예정표를 자세히 좀 보십시요."
  즈즈토가 타르의 눈앞에 서류를 내밀면서 말했다.
  "그래서...."
  "보안부에 여섯 대의  무인정찰기가 할당되어 있다는 건 알고 있
지요?"
  "물론이지."
  "언제부터 이렇게 되어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즈즈토는 차례차례로 서류를 넘겼다.
  "아마 몇 세기 전부터 계속되어 있을 겁니다."
  "채굴혹성을 감시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타르가 당영하다는 듯이 말했다.
  "무엇을 감시한다구요? 우리들이  태어나기 훨씬 전에 이곳의 광
석탐사와 채굴에 대한 가치평가는 모두 완료되어 있습니다. 이곳에
는 표유류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구요. 공기를 마시는 유기체 생물이
있을 뿐이지요."
  "적이 상륙할지도 모르네."
  "이곳에요?"
  즈즈토가 엷은 냉소를 머금었다.
  "그건 걱정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적이 상륙한다면 우주탐사
선이 먼저 발견할 걸요, 타르 부장님, 수송부는 일 년에 몇 차례씩
이들 무인정찰기의 급유와  정비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회사의 방
침은 경비절감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장님이 한 대를
원한다면.... 자아, 솔직하게 이유를 설명해주십시요."
  타르는 입을 다문 채 씁쓸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무인정찰기를 단념한다면 지상장갑차를 제공하겠습니다. 단
일정기간만 말예요."
  "뭣!"
  타르는 조그맣지만 날카로운  소리를 위압적으로 질렀다. 즈즈토
는 제의를 수정했다.
  "그렇다면 부장님이 필요할  때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협조하겠습
니다."
  타르는 충돌사고로 부서진  차 쪽으로 걸어갔다. 그 차의 좌석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이 차가 사고를 당한 것은 정비불량이 원인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러자 즈즈토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사고는 즈즈토가 근무중에
카방고를 너무 많이 마셨기 때문에 일어났던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혹성 전체를  관측할 수 있는  무인정찰기 한
대."
  타르가 느긋한 어조로 다시 한 번 요구했다.
  "그리고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지상차 한 대. 이 정도면 되겠
는가?"
  타르는 주위의 고장난  차들을 둘러보았으나, 그 밖에 다른 결격
사유를 찾아낼  수 없었다. 모두 검사필증을  받은 것으로, 문제의
소지가 없었다. 타르는 자신이 이미 철저하게 조사했던 터였다.
  타르 보안부장은 즈즈토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한 달에 한 번 이  혹성 전역을 관측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춘 무
인 정찰기 한대, 마크 II 지상장갑차 한 대, 거기에다가 탄약과 호
흡가스 및 연료의 청구에 대해 이유를 묻지 말고 응하도록 하게."
  즈즈토는 책상서랍에서 서류를  꺼내어 필요한 항목을 기입한 다
음 타르에게 내밀었다.
  타르 보안부장은 서명을  하면서 이 수송주임은 철저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굳혔다. 어쩌면  광석을 횡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즈즈토는 서류를 받아들었다. 그는 스크린 상에서 볼 때 가장 낡
고 초라해 보이는 지상장갑차의 키카드를 꺼내고, 거것을 탄약, 호
흡가스, 연료의 쿠폰과 함께 챙겼다.
  이 거래는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았고,  서류로도 보관되지 않았
다. 탄로나지  않도록 모든 명령날짜가  주의깊게 변경되어 수정될
뿐이었다. 타르도 즈즈토도 이 은밀한 거래가 이 혹성의 운명을 바
뀌게 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더구나 인터개랙틱 광산회사
에 타격을 주게 될 줄은 물론 깨닫지 못했다.
  타르가 마크 II 지상장갑차를 인수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가자 즈
즈토는 버럭 성질이 났으나 눌러 참았다. 보안부 놈들은 단지 사냥
을 떠나기 위해 저런 거창한 거짓말을 하는구나. 녀석들은 모두 피
에 굶주린  살인자들이거든. 수리해야 될  차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것을 보면  알 만하지. 놈들은 모두  기계를 파괴하는 데 명수라니
까. 정말 말도 안되는 얘기야. 인간이 지적 생물이라니! 그는 코웃
음을 치며 다시 작업장으로 돌아갔다.

  (7)
  조니 굿보이 타일러는 망망한 바다처럼 펼쳐진 초원을 아무런 방
해도 받지  않고 경쾌하게 달리고  있었다. 윈드스프리터는 다리를
한껏 뻗어가며 달렸고, 짐을 실은 말은 신이 나서 그 뒤를 달렸다.
  정말로 기가 막히게 좋은 날씨였다.
  푸른 하늘, 상쾌하게 불어오는 바람.
  떠나온 지  이틀째였다. 조니는 산기슭의  언덕 사이를 빠져내려
가, 상상 속에서만  그리던 광대한 평원으로 나아갔다. 하이피크의
높다란 정상은 여전히  뒤쪽으로 보이고 있었다. 그는 나아갈 진로
의 좌표를 하이피크  언덕과 태양으로 삼았다. 그래야만 돌아갈 때
길을 잃어버릴 염려가 없었다. 돌아가야 할 때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어야 했다.
  주위는 온통 초록의 평원으로 펼쳐져 있었고 평화스럽기만 했다.
수많은 들소떼가 있었으나 조니는 줄곧 들소와 함께 어울려 지냈으
므로 두려움의 대상은  아니었다. 늑대가 몇 번 나타났지만 별다른
일이 일어나진 않았다.  다행히 아직 곰과 퓨마와는 마주치지 않았
다.
  어째서 마을사람들은 산속에 틀어박힌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괴물이라니, 도대체 어디에  괴물이 있단 말인가? 어리석은 헛소문
일 뿐이다. 하릴없는 사람들이 지어낸 전설에 불과하다.
  철들 무렵부터 유심히 쳐다보았던 불빛도 이곳에서는 볼 수 없었
다. 마을에서는 며칠에 한 번씩 번쩍번쩍 빛나는 원통 불빛이 하늘
을 가로질러 언덕 저편으로  사라지곤 했었다. 그것은 해와 달, 별
과 마찬가지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그것조차도 볼 수  없었다. 조니의 위치를 감안한다면 분명히 보였
어야 할텐데도....
  재난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찾아왔다.  멧돼지떼를 만난 것이었
다.
  멧돼지 사냥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사냥 경험이 있는 만큼 숫돼
지의 자돌적인 공격만 경계하면 되는 것이었다. 더구나 새끼돼지는
저녁식사감으로 제격이었다.
  돼지떼는 조니의 오른편에서 나타났다. 늦은 오후의 햇살 속에서
그 모습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크고 작은 돼지들은 모두 통통하게
살이 쪄 있었다. 조니는 윈드스프리터를 멈추게 한 후 그의 등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바람의 방향이 사냥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바람은 조니 쪽에서 돼지들이 무리져 있는 쪽으로 불고 있었다. 그
대로 접근하면 냄새 때문에 들키게 될 게 뻔했다.
  조니는 낮은 포복으로 소리를 내지 않도록 주의하며 돼지떼의 뒤
쪽으로 우회하여 다가갔다.  돼지들은 평원의 낮은 분지에 모여 있
었다. 그들은 코로 땅을  파면서 먹이를 찾고 있었다. 분지는 장마
철에 내린 빗물이  고여 있어서 늪지처럼 질퍽거렸다. 돼지들은 그
흙탕 속에 풀뿌리라도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수십 마리 모
두 한결같이 코를 땅에 처박고 있었다.
  조니는 풀숲 위에 머리가  보이지 않도록 잔뜩 웅크린 자세로 전
진해갔다. 돼지들과의 거리가 한발 한발 좁혀져 드디어 돼지떼로부
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까지 접근했을 때, 조니는 고개를 들
어 돼지들의 동정을 다시  한 번 살폈다. 마침 새기돼지 한 마리가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조니에게 있어서 새끼돼지를 잡는 것
은 간단한 일이었다.
  "저녁식사감으로 알맞은 놈이군."
  조니는 호흡을  조절하며 자세를  가다듬고 돌방망이를 들어올렸
다. 똑바로  그 돼지의 머리를 향해  던졌다. 돌방망이는 보기좋게
명중되었고, 돼지는 귀청이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러나 그것으로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갑자기 주위가 일제
히 소란스러워졌던 것이다. 우거진 풀숲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았지
만, 조니의  바로 뒤쪽에 오백 파운드도  더 나가는 숫돼지가 포식
후의 낮잠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쓰러진 새끼돼지의 비명소리에
흥분된 돼지떼가 갑자기  날뛰기 시작했다. 돼지들은 떼를 지어 조
니의 말들이 있는  쪽을 향해서 돌진해갔고, 성난 숫돼지는 조니를
보자마자 돌격해왔다.
  조니는 마치 산사태라도 만난 것처럼 당황했다. 조니는 땅바닥에
떠밀려 쓰러졌다. 그  순간 숫돼지가 덮치는 바람에 조니와 숫돼지
는 마치 한덩어리처럼 뒤엉키고 말았다.
  조니는 눈앞이 캄캄했다. 숫돼지의 배에 가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숫돼지의 날카로운  이빨이 자신을 찾아내기 위해 허우적
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조니는 한 바퀴 더 굴렸다. 그의 귓속에
숫돼지의 거친 울음소리와  자신의 심장이 숨가쁘게 맥박치는 소리
가 뒤섞였다. 다시 한 바퀴 더 굴렀을 때 조니는 햇빛과 돼지의 등
을 볼 수 있었다.
  그 순간 조니는  숫돼지의 등에 올라타 목을 손으로 휘어감았다.
돼지는 미친 말처럼 날뛰었다. 조니는 혼신의 힘을 다 발휘하여 돼
지의 목을 졸라댔다.  조니의 불거진 팔근육은 우두둑 소리를 내며
더욱 힘껏 조여들었다.  숫돼지는 이내 몸이 축 늘어지더니 실룩실
룩 경련을 일으키며 벌렁 나자빠져버렸다.
  조니는 재빨리  돼지의 등에서 내려와  뒤로 물려났다. 숫돼지는
숨을 헐떡이면서 정신을 차리고, 비틀비틀 일어서더니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러나 적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뒤뚱거리면서 떠나갔다.
조니는 멀어져가는 숫돼지를  계속 경계하며 쓰러져 있는 새끼돼지
쪽으로 다가가 그것을 주워올렸다. 숫돼지는 아직도 적을 찾느라고
아따금 발작적으로 돌진을 되풀이하다가 제풀에 지쳐 풀 위의 발자
국을 따라서 동료들의  뒤를 쫓아갔다. 주위에는 이미 돼지떼의 모
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남 말이 없어져버렸다! 나의 윈드스프리터, 말이 없다! 조니
는 죽은 새끼돼지 옆에  서 있었다. 돼지의 몸을 가르기 위한 돌칼
도 없었다.  돼지를 굽기 위해서 불을  피우려 해도 부싯돌이 없었
다. 가장 큰 문제는 말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조니는 자신을 책망하면서 돼지떼에게 납작하게 짓밟힌 풀자국을
따라 걸어갔다. 무서웠다기보다는 부끄러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참 지나자  그의 우울함은 조금씩  사라지고 유쾌해지기 시작했다.
조니는 말을 부르는 휘파람을 불었다. 말도 바보가 아니니까, 그냥
돼지에 쫓겨서 계속  도망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틀림없이 어디선가 방향을 바꿨을 것이다.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조니는 조용히 풀을 뜯고 있는 윈드스프
리터를 발견했다. 윈드스프리터는 마치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던 거
야라고 꾸짖기나 하듯이  조니를 발견하자 싱긋 웃으며, 그의 곁으
로 다가와 콧등을 조니의 몸에 비벼댔다.
  조니는 이윽고 짐  싣는 말과 짐을 되찾게  되어 조금 전에 그냥
지나쳐온 조그만 샘가로 되돌아갔다. 그곳에서 야영을 하기로 결정
한 것이었다.
  그날 밤, 조니는 끔찍한  악몽에 시달렸다. 돼지에게 목 졸려 죽
는 크리시, 곰들에게  잡아먹히는 크리시, 들소에게 짓밟혀 처참하
게 죽어가는 크리시의 모습이었는데, 자신은 그녀를 불행에서 구원
해내기는 커녕 절망적인  표정으로 악령들이 설치고 다니는 하늘만
을 멍청히 올려다보고 있는 꿈이었다.

  (8)
  수천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커다란 마을'은 괴물들의 이
야기와 마찬기지로 전설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지만, 조니는
일단 그곳을 찾아가볼 생각이었다.
  새벽녘의 밝아오는 황금빛 햇살을 가르며 조니는 다시 동쪽을 향
해 말을 물았다.
  평원의 풍경은 마을과 멀어질수록 조금씩 달라져 갔다. 지금까지
그가 볼 수 없었던 것들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다. 그 중 가장 조
니의 눈길을 끈  것은 가까운 곳에 보이는 흙무덤들이었다. 조니는
그것들을 좀더 자세히 조사해보기 위해 말머리를 돌려 그곳으로 가
까이 다가갔다.
  조니는 윈드스프리터를  무덤 가까이에 세운  다음, 무덤들 중의
하나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조그만 언덕 같은 형태였다. 측면에는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것 외에는 흙무덤 전체가 흙과 풀로
뒤덮여 있었다. 자연의 조화일까. 아니면 단순히 창문인가.
  조니는 말에서 내려  흙무덤으로 다가갔다. 우선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그리고  나서 보폭으로  크기를 측량해보았다. 가로가
서른다섯 보 세로가 열  보, 흙무덤 형태 역시 사각형이었다. 한쪽
에 오래되고 갈라진  그루터기가 있었다. 조니는 그 나무조각 하나
를 꺾어들고 창문으로 다가가서 풀섶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가 파고 있는 것이 흙이 아니라 다른 물질이라는 사
실이었다. 그것은 마치 모래와 같았다. 호기심을 느낀 조니는 사각
형 아랫부분의 모래를  치우고는 그곳으로 안을 들여다 보았다. 흙
무덤 속은 텅 빈 동굴이었다.
  조니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것 같은 기미
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일단은 안심이 되어 몸을 구부리고 흙무
덤 안으로 기어들어가기 위해 입구에 손을 짚는 순가, 따끔한 느낌
에 얼른 뒤로 물러섰다.
  몸을 일으키고 손목을  보니까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다지 심한
상처는 아니었다. 다만 상처를  입은 것에 깜짝 놀랐던 것이다. 조
니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창문을 보았다. 창틀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붙어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이빨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
은 희미한 빛을 발하며, 갖가지 색깔로 창문 가장자리 전체에 박혀
있었다 조니가 그 하나를 잡아 당기자 쉽게 빠져나왔다. 그것은 매
우 헐겁게 끼워져 있었던 것이다.
  조니느 허리춤에  묶어놓은 끈을  끄집어내어 그것을 시험해보았
다. 그러자  그 이빨은 간단하게 끈을  절단했다. 아무리 날카로운
돌이라도 이처럼  쉽게 잘라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이건 굉장한
것이구나 하고 조니는  생각했다. 좋은 것을 손에 넣었지만 잘못하
면 다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번에는 신중을  기하여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모양의  이빨들을 하나씩 틀에서 빼냈다. 그리고 그것들
을 전부 차곡차곡 포개서 벅스킨으로 싼 후에 끈으로 묶었다.
  이건 정말 쓸모가  많은 물건이다. 이것만 있으면 껍질을 벗기거
나 뭔가를 깎는  것도 훨씬 편해진다. 틀림없이 신비한 돌의일종일
것이다. 아니면  이 흙무덤은 거대한 짐승의  두개골 같은 것으로,
이것들은 그 짐승의 이빨들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굉장하다. 그 이
빨들을 모두 주의깊게 짐  속에 챙겨넣은 조니는 흙무덤 안으로 들
어갔다.
  이번에는 살갗을  베이지 않았다. 조니는  네모난 구멍을 통해서
점점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이 아니었다. 흙무덤 안은 바깥 지면보
다 약간 높게 느껴졌다.
  갑자기 질풍이  불어와서 조니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그것은
이곳에 둥지를 틀고 사는 새였다. 새는 요란한 날갯짓을 하며 창문
밖으로 날아갔다가 다시  돌아와 흙무덤 근처에 앉았다. 새는 조니
에게 항의라도 하듯 시끄럽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조니는 어둠 속을 더듬거리며 나아갔다. 안에는 녹슨 잡동사니들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없었지만 옛날에는 여러 가지 것들이 있었으
리라 짐작되었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녹슨 잡동사니들과 벽에
그려져 있는 마크를 보고 그렇게 추측했다.
  벽? 그렇다. 이것은  벽이다. 모든 벽은 이음부분이 깨끗이 다듬
어진 거친 돌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렇다. 벽임에 틀림없다. 어떤
동굴도 이런 것을 만들지는 않는다. 동물이 이런 칸막이 상자를 만
든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이 상자는 어떤 것의 일부였
을 것이다.
  엄지손톱 세개 크기 정도의  원반 몇 개가 붉으스름한 가루로 변
한 채  밑바닥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쌓여 있는 원반 밑바닥에는
아직 광채를 잃지 않고  있는 원반이 또 하나 놓여 있었다. 조니는
그것을 뒤집어보았다.  순간 그는 숨을 죽였다.  그리고 좀더 빛이
밝게 드는 창문 옆으로 옮겨가서 다시 살펴보았다. 틀림없었다. 그
것은 양쪽 날개를  펼치고 발톱으로 화살을 움켜쥔 커다란 새였다.
옛날 신들의 무덤 속에서 발견한 것과 똑 같은 문양이었다.
  조니는 한참 동안 우뚝  선 채로 흥분에 떨고 있었다. 그랬구나!
조니는 흙무덤 밖으로  나가 원반을 윈드스프리터에게 보이며 외쳤
다.
  "신의 집이었어. 신들은  위대한 사람들을 무덤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서 대기하고 있는 동안 이곳에 머물러 있었을 거야. 얼마나 멋
지냐, 윈드스프리터!"
  윈드스프리터는 입  가득히 씹고 있던 풀을  삼킨 후 콧잔등으로
조니의 가슴을 가볍게  비벼댔다. 이제 슬슬 출발해야 할 시간이었
다. 조니는 원반을 사슴가죽 자루에 집어넣었다. 이곳이 커다란 마
을은 아니었지만 이 평원에 뭔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 것이다. 이
벽 하나만 보더라도 신들은  벽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증거가 아
닌가.
  지금은 흙무덤의  주인이 된 새들이 조니가  말을 타고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새들은 그가 떠나려 하자 마치 자신들의
둥지를 되찾기나 한 듯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 얼마 동안 그의 뒷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고대 신들의 흙무덤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9)
  타르 보안부장은 카방고를 마신 소년처럼 기분이 좋았다. 한잦의
태양도 어느덧 뉘엿뉘엿해질  무렵, 그는 드라이브를 하기 위해 길
을 나섰다.
  타르는 마크 II  지상장갑차를 조종해서 조심스럽게 비탈길을 내
려갔다. 이곳을 벗어나면 공기가 다른 바깥 세계였다.
  조종석 앞의 선반에는 다음과 같은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o 본 차량은 항상 전투태세를 갖춰둘 것.
  o 본 차량은 고압가스통,  개인용 페이스 마스크 및 독립된 호흡
시스템을 장착해 둘 것.
  o 사적인, 혹은 정식  명령에 의거하지 않은 전투에는 사용을 금
할 것.

    인터개랙틱 광산회사
    정치부 차장 스조토

  타르는 경고문의 서명을  보며 히쭉이 웃었다. 이 혹성의 정치부
에는 간부급 직원이  없었다. 원주민에 대한 정책이 필요없기 때문
이었다. 싸울 상대가 없었으므로 군사부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따
라서 보안부장은 정치, 군사 양 부서의 업무를 모두 관장하도록 되
어 있었다.
  마크 II 지상장갑차가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구태의연
한 정책의 소산이었다.  그것은 회사의 경직된 비품할당 정책의 결
과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제1은하계와 제1혹성의 사무원들은
모든 사항에  대해서 완전한 정보체계를 갖추고  있지 못하면서 이
거대한 혹성, 상업제국의 전초기지에 끊임없이 지시와 명령을 내리
고 있었다.
  타르는 페이스 마스크와 호흡가스 탱크를 옆의 사격수 자리에 놓
고는 가벼운 마음으로 꺼칠꺼칠한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얼마
나 유쾌한가! 이  낡은 자동차는 윤활유를 잔뜩 넣어준 굴착기처럼
신나게 달리고 있다. 길이 삼십 피트, 높이 십 피트 정도의 소형차
지만 지상을 저공으로  날아다니는 날개 없는 새처럼 활주한다. 차
의 외장은 치밀한  계산에 의해 설계되어 있어서, 적의 미사일이나
어떤한 공격도 일정한 각도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미사일도 관
통할 수 없는 유리창은 지상을 잘 살펴볼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뿐
인가! 무서운 힘을 토해낼  수 있는 총구는 교묘하게 숨겨져 있다.
비록 내부 장식들은 낡고 군데군데 찢겨져 있지만 고향의 모습, 고
향의 색깔인 아름다운 자줏빛으로 꾸며져 있다.
  타르는 기분이  무척이나 좋았다. 닷새  분의 제트연료와 호흡가
스, 그리고 십 파운드나  되는 배낭에는 닷새 분의 식량이 들어 있
었다. 그는 자신의 서류함에서 불필요한 서류들을 모조리 처분해버
리고 그의 새로운 임무인 '긴급사태'에는 손도 안 대고 있는 대신,
동굴분석용 비디오 페코더를  차용하여 새로운 작업에 몰두하고 있
었다. 이것의 기능을  조작하여 다른 목적에 사용한다면 굉장한 성
과를 얻게 될 것이다.
  그는 드디어 자신의 수렵여행을 위해 첫발을 내디뎠다. 무료하고
따분한 이  혹성에서의 보안부장 생활도 이제  잠시 떠나는 것이었
다. 지구는 아무리  보다 야심적인 보안부장에게 송진과 출세의 기
회를 제대로 제공해줄  것 같지 않았다. 근무지가 지구로 결정되었
을 때, 타르는 뒤통수를  한방 얻어맞은 듯했다. 그는 자신이 도대
체 어떤  실수를 저질렸는가를 생각해보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를 모욕했던 것일까? 아니면 스캔들에 휘말려든 것일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보고 둘러보아도 그런 일은 절대 없었기 때
문에 스스로 안심했다.  그는 아직도 젊었다. 사이클로인의 평균수
명은 백아흔 살인데,  타르가 지구로 발령받았을 때는 불고 서른아
홉 살이었다.  그 나이에 보안부장으로 임용,  파견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그것은 전례없는  일이라고 모두들 입을 모았었다. 젊은
나이에 부장이 되었다는 것은 기록에 남을 일이고, 이번 근무를 마
치고 돌아가게  되면 회사도 그의 공로를  참작해줄 것이라고들 했
다. 페이스 마스크 없이도 자유롭게 호흡할 수 있는 혹성에는 좀더
나이먹은 사이클로인이 가는 법이라고 인사담당자가 덧붙여 말해주
었다.
  그러나 타르는 그런  따위의 말은 곧이듣지 않았다. 그는 그만큼
바보가 아니었다. 제1은하계, 제1혹성의 보안직 후보생이라면 누구
라도 지구행성에서의  근무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타르는 앞으로
치루게 될 면접장면을  떠올렸다. 근무지 배치를 위한 면접이었다.
담당관이 묻는다.
  "마지막 근무지는 어디였나?"
  "지구입니다."
  "어디라고?"
  "지구요. 제16은하계, 제3혹성 주변에 있는 별입니다."
  "그래, 그 혹성에서 자네는 어떤 실적을 올렸나?"
  "모두 기록에 있습니다."
  "흠, 기록에는 아무것도 씌어 있지 않은데."
  "뭔가 있을 것입니다. 제게 보여주십시요."
  "그건 안되네. 개인의 실적기록은 회사의 극비서류니까."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끔찍한 순간이 엄습한다.
  "타르 씨, 우리들은 마침  다른 변경에 있는 새로운 별에서 조업
을 개시할  걸세, 제32은하계인데, 조용한  곳이지, 원주민도 없고
호흡가스도 없고...."
  그게 아니라면 더욱 끔찍한 얘기를 듣게 된다.
  "타르 씨, 인터개랙틱의 실적이 최근 계속 저하되는 경향이 있어
서 말인데, 경비를  절감하라는 지시가 내려와 있네. 유감스럽지만
자네의 기록을 보건데, 자네는 계속해서 고용할 수가 없네. 필요한
일이 있으면 우리 쪽에서 자네에게 연락하겠네."
  상황은 이미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한 달 전, 타르
보안부장은 자신의 임기가  연장되었다는 통지를 받았다. 거기에는
근무지 교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백아흔 살이 되어서도 여전히 지구 위를 비틀거리며 걸어가고 있
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끈찍했다. 그렇게  되기 훨씬 전에 친구나
가족으로부터도 잊혀질 것은 물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초라한 미
치광이가 되어 파묻힐 것이다. 사무직원이 시체와 근무명부를 비교
해보고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기록은 정확하게 작성될 것
이다. 사망자 명부에 기재되는 사망자의 얼굴조차 생소한 사무원에
의해서 말이다.
  그런 비참한 운명을 맞지 않기 위해서는 뭔가 모험을, 그것도 획
기적인 모험을 시도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광산측량도에는 이곳에서부터  동쪽으로 가면 오래된 고속도로가
있는 걸로 표시되어 있었다. 타르는 지상장갑차의 스위치를 자동조
종으로 넣고, 커다란 지도를  펼쳤다. 그 길은 동서로 펼쳐져 있었
는데, 타르는 서쪽으로 가고 싶었다.
  고곳도로는 파손된 채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을 것이고, 어쩌
면 찾아내기조차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속도로가 틀림없다
면 급경사나 장애물이 없고, 똑바로 산으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타르는 지도에  나타난 목적지에  커다랗게 동그라미를 그려놓았
다.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도중 고속도로가 보이기 시작했다. 타르
는 조종간을 수동으로 바꾸고, 시험삼아서 조작판을 이것저것 움직
여보았다. 이런 구식  차는 오래전인 보안학교 시절에 운전해본 것
이 고작이었다. 타르의 불안정한 운전 탓으로 차가 흔들렸다. 타르
는 차를 도로변의  둑 앞에서 급상승시킨 다음, 액셀러레이터를 단
숨에 떼면서 동시에  브레이크르 거칠게 밟았다. 그저자 차는 요란
하게 흙먼지를 말아올리며 착지했다. 고속도로 한가운데였다. 미숙
하고 급격한 정지였지만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다. 이제 이 차를 운
전하는 일도 곧 익숙해질 것이다.
  타르 보안부장은 페이스  마스크를 쓰고 호흡가스 탱크를 집어들
어 어깨에  메었다. 그는 호흡가스의 낭비를  줄이기 위해 차 안의
호흡가스를 탱크 안으로 되돌리려고 감압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차
내가 순간적으로 진공상태가 됨과 동시에, 청각골에 가벼운 불쾌감
이 찾아왔다. 그리고  한모금의 바깥 공기가 조종석 안으로 흘러들
어왔다.
  타르가 지붕의 해치를 열고 좌석 위로 올라서자 지상장갑차가 그
의 육중한  몸무게에 삐걱거렸다. 페이스  마스크에 가려지지 않은
얼굴부분에 와닿는 바람이 서늘하게 느껴졌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
았다.
  이내 혐오감이 느껴졌다. 휑뎅그렁하니 넓기만 할 뿐 텅 빈 폐허
였다. 들여오는 소리라곤  풀잎 사이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의 속
삭임뿐이었다. 정적,  끝없는 정적,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도 그
고요함을 한층 더 강조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대지는 회갈색 풀과
초록덤불로 뒤덮여 있었다. 푸른 하늘에는 흰구름이 떠다니고 있었
으며 서늘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참으로  묘한 별이었다. 교향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얘기해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어디에도 자
줏빛은 없었다.
  서쪽을 바라보고 있던 타르의 시야에 갑자기 희미한 물체들이 뛰
어들었다. 그들은 까마득히  먼 곳에 있었지만, 저물어가는 석양을
등지고 지평선을 따라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있었다. 타르는 페
이스마스크의 렌즈 레버를 확대기능으로 전환시켰다.
  그가 짐작한 대로였다. 그곳은 폐허가 된 고대의 도시였다. 형편
없이 부서져 있었지만  고층빌딩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게다가 상
당히 넓었다. 타르는  광산지도를 펼쳐들었다. 바람이 지도를 펄럭
이며 지나갔다. 황폐한  고속도로는 똑바로 그 도시로 통하고 있었
다.
  타르는 차 안으로 집어넣어 뒷좌석에 쌓아놓은 책더미에서 한 권
을 꺼내  미리 표시해둔 곳을 펼쳤다.  그 페이지에는 삽화가 있었
다. 그것은 수세기 전에  화가가 그린 것이었다. 회사는 이전에 공
기가 있는 혹성의 문화에 대하여 조사하면서 칭코인들의 생활과 습
성에 대하여 기록해놓았었다.
  칭코인들은 공기를 호흡하며 살아가는 종족이었다. 그들은 제2은
하계 출신으로, 사이클로인과  마찬가지로 키가 컸지만, 실처럼 가
늘고 섬세한  체격이었다. 그들은  오래된 종족으로, 사이클로인은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았으나, 그들의 문화는 칭코인으로 부터 계승
된 것이었다. 칭코인은  페이스 마스크 없이도 공기기로 호흡할 수
있었고, 몸은 날개 처럼  가벼워서 간단하게 수송할 수 있었다. 게
다가 칭코인은 싼값에 부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의 고향
인 제2은하계어서조차 존재를  찾아볼 수 없었다. 칭코인들이 총파
없을 일으켰을 때  인터개랙틱 광산회사는 그들을 일시에 전멸시켜
버렸다. 그것은 지구에 있던 민족문화부가 소멸된 뒤의 일이었다.
  이런 그림을 그리다니 괴상한 친구들이군 하고 타르는 생각했다.
그림들은 여러 가지 색깔로 칠해져 있었다. 그림 따위를 그리고 싶
어하는 녀석들의 마음은 도대체 알 수가 없군. 타르는 멀리 보이는
능선과 그림을 비교해보았다. 세월이 약간의 변화를 가져오기는 했
지만 전체적인 윤곽은 거의 일치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다.

  많은 산들이 있는 동쪽에는 인간의 도시유적이 있다. 보존상태는
대단히 좋다.  인간들은 이 도시를 '덴버'라고  부른다. 이곳은 이
대륙의 중앙이나 동부의  여러 도시들처럼 예술적으로 발달되어 있
지는 않다. 대부분의 작은  문에는 장식이 전혀 없다. 전체적인 건
축양식은 예술성보다는 실용성을 강조하고 있다. 도시에는 세 채의
대성당이 있는데, 각기 다른 신을 숭배하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그
것은 인간들의  문화가 획일되지 않았으며,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곳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은
사제들이었다. '은행'이라고 불리는 신이 가장 막강한 권력을 행사
하고 있었다.  또한 방대한 장서를 보유하고  있는 도서관이 있다.
민족문화부는 중요한 것,  즉 광산에 관한 것만을 문서창고에 옮긴
뒤, 도서관의 모든  창구를 밀폐시켜버렸다. 건축물 자체에서 특별
한 광물을 찾아내지  못했던 것으로 보아, 인간들은 건축물을 지을
때 가치 있은 광물재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 이
인간도시는 매우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다. 건조한 기후도 그 한 가
지 이유일 것이다. 현재 복원을 위한 예산이 청구되어 있다.

  타르는 혼자 웃었다. 지구에서 민족문화부가 폐쇄된 것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인간도시의  복원비용을 청구하다니! 중역들이
강경하게 반대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회사가 이런 엉터
리 예술가 녀석들의 머리에 바람구멍을 뚫어준 것은 당연한 일이었
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녀석들이 조사한 지구에 관한 자료
들은 자신의 계획에 상당히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상황
이 어떻게 급변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타르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생각
을 집중시겼다.  이곳에는 고속도로가 있고, 나는  그 한가운데 서
있다. 도로의 길이는 수백  피트나 되었지만, 그 넓이는 쉽게 알아
볼 수 있었다. 아마 그 위에 이, 삼 피트 정도의 모래성이 쌓여 있
겠지만, 그곳에  돋아나  있는 풀의 크기는 한결같았으며, 도로 양
쪽에는 관목이 우거져 숲을 이루고 있었다. 도로에 뿌리를 내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 무성한 관목숲  사이로 똑바로 이어지는 길이 있었다. 타르는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에 몇 마리
의 들소와 조량말  무리가 있었다. 사냥이라도 해볼까? 아니다. 사
냥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냥감이 아니었다. 그는 좀더 큰 사냥감을
노리고 있었다.  더군다나 사이클로인은 고기를  먹을 필요가 없는
체질이었다.
  타르는 조종석에 앉아서  해치를 닫는 버튼을 눌렀다. 지구의 공
기는 지상장갑차로 부터  배출되고 사이클로인들이 호흡할 수 있는
가스가 분출되었다.  그는 규정을 무시하고  페이스 마스크를 벗어
사겻수 자리에 던져놓았다. 온통 자줏빛 유리창을 통해서 보여지는
지구의 풍경은 살벌해 보이기만 했다.
  타르는 다시 한 번  지도를 보았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우
연한 행운이었다.  타르 자신이 직접 산으로  올라갈 수는 없었다.
그곳에 굉장한 양의  우라늄이 매장되어 있다는 무인정찰기의 조사
에 따라 사이클로인에게는 출입금지 구역이 되었다.
  무인정찰기의 정찰보고서에는 산 아래로 내려오는 인간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이 도시는 우라늄의 공포를 완전히 벗어날 수 있
을 만큼 안전했다. 타르는 앞으로의 계획을 다시 한 번 검토해보았
다. 훌륭한 계획이었다.  그것은 타르에게 부와 권력을 약속해주고
있었다. 무인정찰기는 그가 알 수 없는 것들을 보고하고 있었다.
  무인정찰기의 탐사장치는 이 산에서 완벽한 순금광맥을 발견했다
고 보고했다. 그것은 인터캐랙틱의 문화부 조사요원들이 조사를 끝
낸 뒤에 일어난  산사태로 인해서 지표에 노출되었던 것이다. 군침
이 도는, 꿈과 같은  황금광맥이 바로 눈앞에 쌓여 있었던 것이다.
최근의 산사태로 드러난  황금광맥에 대해, 타르가 그 기록을 보고
하지 않고  폐기했으므로 회사에서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회사에서 이  지역을 무인정찰기로 정찰하는 일은  이제 없을 것이
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즈즈토  수송주임의 어리석음 때문에 그렇게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 지역은  가이거 계수관에 나타난 수치로  보아 위험선을 넘고
있었으므로 사이클로인은 절대로  그 금을 채굴할 수가 없었다. 극
소량의 우라늄  입자도 사이클로인의 호흡가스통을 폭발시켜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이 필요했다. 일단  한 놈만 잡으면
몇 놈이라도  더 잡기는 수월한 것이다.  우라늄 속에 있는 황금을
파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인간이었다. 그는 무슨 수를 써더라도
금을 손에 넣어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도 싶었다. 물론 금을 고향
으로 옮기는 방법은  신중하게 처리할 문제였다. 아아, 부와 권력!
지구와는 영원히 작별이다.  타르는 자신의 생각에 흐뭇해 하며 회
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 계획은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
다. 뭔가 그럴 듯한 핑계를 들러대서 이 계획이 황금채굴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로  관심의 방향응 유도해야 했다. 오랫동안 보안부
장을 지낸 타르로서는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타르는 이 초원에서 인간을 붙잡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더
이상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지금도 타르
는 자신의 행운을  믿고 있었다. 어느덧 초원에는 어둠이 찾아들고
있었다. 해가 저물 무렵 출발한 타르는 이미 이곳에서 지새울 것을
작정하고 있었으므로 오늘밤은 저 도시로 들어가서 차 안에서 자야
겠다고 생각했다.
  타르 보안부장은 고속도로를  따라 고대의 도시를 향하여 전속력
으로 달려갔다.

  (10)
  "아니?"
  지평선을 바라보며 말을 달리던 조니는 깜짝 놀라며 갑자기 말고
삐를 힘껏 잡아당겼다. 윈드스프리터는 앞발을 높이 치켜들며 그자
리에 멈추어 섰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물체가 웅크린 듯한 자세
로 멈춰  있었다. 그것은 마주보이는  오른쪽에 있었는데 언덕이나
산이 아니었다. 착시현상은  더욱 아니었다. 그것은 날카로운 느낌
을 주고 있었는데,  직사각형의 기둥들이 빽빽히 들어차 있는 것처
럼 보였다. 조니는  그것이 존재하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
다.
  고대의 무덤들을  지나쳐 오던 조니는 걷기에  매우 편리한 길을
발견했다. 그 길은 옛날에는 창문이 있던 무덤과 연결되어 있던 것
으로 보였다. 넓은 도로의 양쪽에는 관목숲이 우거져 있었고, 이백
피트 정도의 간격으로 늘어선  기둥들이 동쪽 저 멀리 아득한 지평
선까지 펼쳐져 있었다.  발치에는 일정한 크기로 자란 풀들이 무성
했다. 도로의  군데군데에 작은 웅덩이들이  패여 있어서 조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작은 웅덩이들은 바닥이 회색으로 되어 있었
다. 말에서 내린 조니는  그 가장자리를 파서 조사해보았다. 그 회
색 바닥은 평평하고 끊어지는 곳 없이 이어져 있었다. 마치 창문이
있던 폐허의  사각형 동굴벽처럼. 이것은  고대인의 벽이었을 것이
다. 본래는 서  있었던 것이 쓰러져버렸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
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넘어졌을 때 깨졌을 것이다.
  조니가 사는 마을의 법원  밖에도 평평한 돌을 깔아 만든 도로가
있었다. 그러나 너비만 해도 이백 피트나 되고, 며칠 동안 말을 달
려도 끝이 닿을 것 같지  않은 이 도로를 누가 만든 것일까? 왜 만
들었을까? 이것이 길이라면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을 것이다. 도
로는 작은 언덕의 측면을 깎아낸 듯이 펼쳐져 있었는데, 여러 개울
들을 가로 지르고 있었다. 조니는 한동안 흥분해 있었으나 그 도로
에 쉽게 적용이 되었으므로 말이 웅덩이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가 어렸을 때  짐수레를 가지고 있는 집안이 있었는데, 그들은
그것으로 땔감을  운반하곤 했다. 조니는  옛날에는 많은 짐수레가
있었고, 말이 끄는 짐마차까지 있었다는 것을 들었었다. 이처럼 넓
고 평평한 길이라면 바퀴 달린 짐수레를 굴리고 갈 수도 있었을 것
이다. 그것도 빠르게 멀리까지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신들의 집'을 지나온 이후 조니는 '커다란 마을'에 대한 전설이
거짓이라고 생각했었다.  자신이 본 신들의  집을 누군가 과장되게
떠벌렸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드디어 커다란
마을의 모습이 나타난  것이었다. 저것이 전설로만 여기던 바로 커
다란 마을이란 말인가.
  조니는 도로에 패인 웅덩이를 무시하고 박차를 가해 도시를 향하
여 전속력으로 달렸다. 날씨가 맑고 투명해서 그 모습은 더욱 선명
하게 보였지만 아무리 달려가도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거꾸로 달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조니는 멈
춰 섰다. 혹시 그것은 잘못 본 것이 아니었을까? 아니다. 그것들의
높이는 들쑥날쑥했지만 꼭대기는 전부 평평하게 되어 있었다. 그것
은 또 엄청나게 많이 있었다.
  조니는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리자 목표에 가까워지고 있다
는 느낌이 들었다. 태양은  이미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커
다란 마을은 여전히 멀리서 손짓만 할 뿐 다가오지 않았다. 어두워
지지 시작한 지금 그곳에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그곳에 무엇이 있
는지도 모르지 않은가. 유령? 신? 아니면 인간?
  설마 괴물? 아니다. 괴물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조니는 도로와 개울이 교차하고 있는 곳에서 도로 바깥으로 나와
야영준비를 했다. 모닥불을  피우고 돼지고기를 알맞게 익혔다. 돼
지고기를 먹을 만한 크기로 자르기 위해 창틀에서 떼어내온 날카롭
고 반짝이는  것을 자루에서 꺼냈다. 기가  막힐 정도로 잘 잘라졌
다. 조니는 감탄했다. 이처럼 쉽게 잘라지는 것이 또 있을까? 이것
만 있으면 생활하기가 훨씬 편해질 것이다. 하지만 조니는 벌써 두
번 씩이나 손가락을 베었으므로 또다시 베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했
다. 그 한쪽 끝에  나무나 다른 것으로 자루를 대면 안전하고 편리
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돌칼보다 훌륭한 칼이 될
것이었다.
  저녁식사를 마친  조니는 늑대를 쫓기 위한  모닥불을 여러 곳에
피워 놓았다.
  드디어 내일이야말로 그날이 될 것이다.

  (11)
  조니는 조심스럽게 커다란 마을로 다가갔다.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일어난 그는 황금빛이 하늘을 물들이고
있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커다란 마을 가까이에 도착했다. 그는 자
신의 행동을 낱낱이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에 싸인 채 그
앞에 나타난  기묘한 광경을 세밀히 살펴보면서  한발 한발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주위는 온통 모래에  뒤덮여 있었고, 건물 사이사이의 넓은 거리
에는 풀이나 잡목  따위가 무성하게 돋아나 있었다. 말발굽 소리에
놀란 쥐나 토끼가 고대의 건물에서 뛰쳐나올 때마다 조니는 깜짝깜
짝 놀라곤 했다. 다행히  말발굽 소리는 풀과 모래 때문에 크게 울
리지는 않았지만 정적에  휩싸인 그곳에서는 조그만 소리라도 너무
나 크게 느껴졌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쪽 저쪽 할 것 없이 고층건물의 페허로 가
득 차  있었고, 그것들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이 솟아 있었
다. 비바람으로 인해서 군데군데 구멍이 뚫어지고, 수세기 동안 세
파에 시달려 색이  바래 있었다. 그러나 뚜렷한 직사각형의 형태를
지니고 있어서 무척  위압적인 느낌이 들었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경이로운 건물들을 세웠을까? 신들일까, 그렇지 않다면 누가 이 엄
청난 것들을 지을 수 있었단 말인가. 조니는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
데 건물에 사용된 거대한 돌을 어루만졌다. 인간의 힘으로 저런 돌
을 집어올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조니가 말을 세운  곳은 커다란 마을의 중심지였다. 그는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이것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여러 사람의 힘이 합
쳐진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저 높이까지 올
려 놓을  수 있었을까? 조니는 골똘히  생각했다. 차츰 머릿속에서
이미지가 떠올랐다. 먼저 통나무를 조립해서 계단모양의 발판을 만
든다. 돌에 로프를 걸고,  수많은 인간들이 힘을 합쳐서 발판 위로
끌어올린 다음 돌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올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발판을 떼어낸다.  그렇게 하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작업은
머릿속이 아찔해질  정도의 놀라운 일이고,  대단히 위험한 작업일
것이다. 하지만 절대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신이나 괴물들만이 높은 건물을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조니는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
다. 탐색이 계속되었다.
  도로를 따라서 규칙적으로 늘어선 나무들이 있었다. 조니는 말에
서 내려  그 나무들을 조사해보았다.  딱딱하고 거칠거칠하며 속은
텅 비어 있었다. 그것들은 돌보다 딱딱한 회색 바위돌을 뚫고 자라
있었다. 아니다. 그것은 나무가 아니었다. 붉으스름한 금속으로 빨
간 녹을 긁어내자 그 밑은 검은빛을 띠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건물과 마찬가지로 인위적으로 설치된 것만은 분
명했다.
  무수한 창들이 조니를 둘러싼 채, 그를 노려보듯 반짝거렸다. 떠
오르는 아침  햇살이 창에 끼워진 투명한  물체에 반사되어 조니를
향해 쏟아져 들어왔다.  조니가 평원의 흙무덤에서 가지고 와 칼로
사용하고 있는 것과  같은 물질로 보였다. 단지 그것은 조각이었고
여기에 있는 것은 커다란 면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달랐다. 그것은
마치 촛점을 잃은  노인의 눈빛처럼 창백하게 흐려 보였다. 조니는
그것이 무엇인가를 차단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었
다. 어쩌면 추위와 열은 차단하지만 햇빛은 비치게 하여 어둡지 않
도록 해주는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조니의 마을사람들도 동물의
위장막을 얇게 뜯어내어  이것과 비슷한 가리개를 만들어서 사용하
고 있었다. 그러나  커다란 마을을 건설한 사람들은 동물의 위장응
뜯어내지 않고도  바위, 혹은 그 보다  딱딱한 물질을 얇은 판으로
만들어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들
은 분명히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조니의 앞에 커다란  입을 벌리고 있는 건물이 나타났다. 문짝은
떨어져나가 모래 속에  절반쯤 파묻혀 있었다. 건물 내부는 어두웠
다. 조니는 말을 타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어두컴컴한 내부를 둘러
보았다. 온통  녹이 슬고 썩어서 본래의  모습은 알아볼 수도 없는
잡동사니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조니는 몸을 돌려 뒤쪽을 바라보
았다. 그곳에는 여러 개의  육중한 문이 달려 있었다. 문의 중앙에
는 녹이  슬지 않은 거대한 금속제  문고리가 붙어 있었다. 조니는
조심스럽게 열려 있는 문으로 다가갔다.
  내부에는 여러 개의 선반이 있었다. 선반의 낡고 찢겨진 자루 주
위엔 동그란  금속조각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대부분은 표면이
완전히 둔탁한 회색으로  두껍게 녹슬어 있었는데, 어떤 것들은 밝
은 황색을 띠고 있는  것도 있었다. 조니는 그것들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직경이 손톱 두  개 정도밖에 안되는 크기였지만, 꽤나 무
거웠다. 금속조각을 살펴보던 조니의 눈은 한순간 그곳에 붙박혀버
렸다. 새였다. 신의  무덤에서 보았던 새와 똑같은 새였다. 날개는
활짝 펼쳐져  있었고 발톱은 화살다발을  움켜쥐고 있었다. 조니는
서둘러서 산더미 처럼 쌓여 있는 원형 금속조각들을 한움큼씩 집어
내서 한개 한개 조사해나갔다. 대개는 한쪽에는 새, 다른 한쪽에는
인간의 얼굴이, 그것도 갖가지 모습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인간의 얼굴?
  이것은 신이  아니다. 인간의 모습이다. 화살을  움켜쥔 새 역시
인간의 것이었다.
  인간, 인간이.... 조니는  한순간 심한 혼란에 빠져들었다. 그는
한참 동안을  그 조그만 방의 벽에  기대어 있었다. 자신의 생각을
처음부터 다시 정리해야만 했다. 신, 괴물, 무덤, 새, 인간....
  이 작은 방도, 그곳으로  통하는 문도 인간이 만든 것이리라. 커
다란 마을을 만든 것은 바로 인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산속에 있던
무덤의 문도  이것보다 훨씬 컸지만 역시  비슷한 재료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 무덤은 신들의  무덤이 아니었다. 커다란 마을과 함께 평원의
흙무덤도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커다란 마을을 만들려면
많은 인간을 필요로 했을  것이므로 그때에는 당연히 수 많은 인간
들이 살았음이 분명하다.
  조니는 혼란스러움을  안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방식이  갑자기 초라하게 느껴졌다. 모든 사고와 가
치관이 일시에 무너져내렸다. 반드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떠야한다고 생각했다. 사고를  재정립시키기 위해서는 어는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어떤 전설이
진실이고, 어떤 전설이 거짓이란 말인가?
  분명히 커다란 마을의  얘기가 전설만은 아니었다. 그 전설은 지
금 엄연히 현실로서 존재하고 있었다. 먼 옛날에 인간들이 이 마을
을 만들었고, 그들은 전설과 함께 사라졌다. 그렇다면 신이 인간에
게 분노하여 멸망시켰다고 하는 스태퍼 목사의 설교가 옳은지도 모
른다. 그것이 아니라면  상상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 일어났다고 볼
수도 있다. 조니는 도로와 건물을 둘러보았다. 폭풍우가 몰아친 흔
적은 어는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건물들은 여전히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창에  끼워진 투명한 판들도 전혀 손상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인간의 시체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긴 오랜 옛날이라면 시체는 물론 뼈조차 남
아 있지 않겠지만.
  조니는 모든 문들이 꽉  닫혀져 있고, 창이 있어야 할 곳들은 금
속판으로 밀폐시켜놓은 건물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가까이 다가
섰을 때 문에는  거대한 금속자물쇠가 채워져 있음을 알았다. 자물
쇠를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조니는 말에서 내렸다. 그것은 전혀 녹
이 슬어 있지 않았으나 오래된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커다란 마
을의 시간처럼 오래된 것 같지는 않았다. 누군가가 문 앞의 모래를
치운 흔적도 남아 있었다. 풀이 자라던 곳이었는데 그곳만 풀이 베
여져 있었다.
  조니는 양미간을 찌푸렸다.  이 건물은 다른 건물들과는 달랐다.
보존상태가 매우 뛰어났다. 누군가 창마다 붙여놓았을 금속판은 이
도시의 금속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녹슨  흔적도 전혀 없었다.
누군가가 건물에 특별한  처리를 해놓은 것이리라. 조니는 건물 전
체를 볼수  있도록 뒤로 물러났다. 다른  건물에 비해서 창이 적고
벽면에는 울퉁불퉁한  곳이 없었다. 조니는  건물을 자세히 관찰해
나갔다. 그는 시간의 차이을 염두에 두고 조사했다.
  마을이 폐허가 되고  난 지 훨씬 뒤에  누군가 이곳에 왔던 것이
다. 그는 도로를 만들고 문 앞의 모래를 치운 다음 문 전체를 밀폐
시켰던 것이다. 그 역시 까마득한 과거의 흔적들이었다.
  내부로 통하는 문을 찾기  위해 조니는 건물 전체를 샅샅이 둘러
보았다. 건물  정면의 금속제 창덮게 하나가  일그러져 있었다. 그
창은 조니의 머리 훨씬  위쪽에 있었으므로 조니는 말 위에 올라서
서 그 창의 모서리 부분을 잡아당겨보았다. 조금씩 움직였다. 조니
는 돌방망이 자루를  틈새에 쑤셔넣고 힘껏 비틀었다. 덮개는 날카
로운 소리를 내면서 삐걱거리더니 갑자기 떨어져나갔다. 덮개 밑에
는 투명한 판이 있었다. 돌방방이로 그것을 두들겨 깨자,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이  났다. 그 소리는 요란하게 주위의 정적을
깨뜨리며 울려 퍼졌다.
  조니는 한쪽 손으로 선반에 매달린 채 삐죽삐죽한 파편들을 창틀
에서 떼어냈다. 켜켜로  쌓인 먼지를 털어낸 조니는 창으로 기어올
라갔다. 그곳은 매우 어두워서 한참 동안은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
다. 차츰 어둠에 익숙해지자 조니는 건물 안으로 뛰어내렸다. 그러
자 몸으로 가려졌던 창에서  빛이 들어와 얼마간 주위를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방안의 물건들은 먼지와  모래로 뒤덮여 있었는데 그다지 두껍게
쌓여 있지는  않았다. 많은 책상과  의자들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었다. 아주 삭막한 풍경이었다. 대부분의 벽은 층을 이루고 있는
여러 선반으로 가려졌고, 산반들은 벽면뿐만 아니라 방안에까지 놓
여 있었다. 모든 선반은  얇고 투명한 피막으로 덮여 있었고, 그것
이 안에 있는 물건들을 가려주고 있었다. 조니는 천천히 다사갔다.
주의깊게 그 덮개의 물림쇠를 벗기고 들여다보았다. 두꺼운 사각형
의 물건들이 몇줄에 걸쳐  늘어서 있었다. 조니는 그 모든 것이 한
덩어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후 사각형의 물건들이 하나씩 하
나씩 떨어진다는 것을  알고는 그 하나를 선반에서 꺼냈다. 사각형
물건을 펼치자, 조그만  검은 표시들이 수없이 많이 가지런히 늘어
서 있었다.  무척 신비하고 복잡했다. 조니는  그것을 선반에 다시
돌려놓고, 그 보다 작은 것을 꺼냈다.
  그곳에는 한  장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처음에는 입체적으로
보였으나 손가락으로 만져보니까  평면이었다. 그것은 커다란 원이
었다.
  딸기보다 훨씬 크고  훨씬 매끄러운 원이었다. 위쪽에는 작은 꼭
지가 달려 있었고, 그 옆에는 중앙에 가로줄이 들어간 검은 텐트(A
문자)가 있었다.
  조니는 한 장을 넘겼다. 꿀벌(BEE) 그림이 있었다. 그렇게 큰 꿀
벌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꿀벌인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그 옆
에는 두 개의 융기가 달린 검은 것(B문자)가 있었다. 조니는 또 한
장을 넘겼다. 고양이(CAT)가 있었다. 작은 고양이지만 틀림없는 고
양이였다. 그 옆에는 마치 초승달처럼 활 모양으로 굽은 검은 것이
있었다(C문자). 몇 페이지 뒤에는 여우(FOX) 그림이 있었다. 그 옆
에는 검은  기둥이 있었고, 그 기둥에는  두개의 깃발이 붙어 있었
다.(F문자).
  순간 조니의 머리속에 번뜩 스쳐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흥분으로
인해 떨리는 손으로 맨 처음에 본 사각형의 것을 얼른 꺼내서 다시
한 번 그것을 펼쳐보았다.  텐트가 있었다. 꿀벌의 검은 표시도 있
었다. 그리고 두 개의 깃발이 달린 기둥도 있었다. 조니는 두 개의
사각형 물건을 비교해보았다.  머릿속이 다시 혼란스러워졌지만 분
명히 연계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니는 다시 비교
해보고나서 생각을 가다듬었다. 이것들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
다. 여우? 굴벌? 고양이?  텐트? 구 개의 깃발? 초승달? 확실히 의
미가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런데 무엇에 대한 의미일까? 동물에
대해서인가, 날씨에 대해서인가.
  조니는 다시 고민하기로 마음먹고 사각형 물건 두 개를 사슴가죽
자루에 집어넣었다. 날씨나 동물에 관계되는 것은 무엇이든 가치가
있었다. 의미가 들어 있는  사각형의 물건,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
래였다.
  조니는 창으로 올라가서 될 수 있는 한 금속판을 원래대로 해 놓
고 나서 휘파람으로 윈드스프리터를 불렀다. 그리고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커다란  마을. 이곳에는 매우 가치  있는 것들이 무수하게
잠들어 있을 것이다. 조니는 자신이 갑자기 대단한 부자가 된 것처
럼 마음이 뿌듯했ㄷ. 흥분으로 가슴이 마구 두근거렸다.
  마을사람들이 산속에 갇혀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고 조니는 생각
을 굳혔다. 그곳에는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집이 남아돌 만큼 많
이 있었고, 방 또한 부지기수였다. 땔나무도 길가에 무성히 자라나
있었다. 마을을 떠나온 이후 처음으로 머리가 맑아지고 있었다. 어
디라도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조니는 짐을 실은 말고삐를 붙잡
고, 커다란 마을의 동쪽을 향해서 힘차게 달려갔다.
  그는 거리의 구석구석까지  샅샅이 살피기 시작했다. 마을사람들
이 이곳으로 이주해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계획에 골몰했다.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이해시키려면  무엇을 가지고 돌아가는 것이 좋을
까? 스태퍼 목사에게는 뭐라고 말할까? 마을사람들의 가재도구들은
또 어떻게  운반하지? 이곳에 짐수레가 있을지  모른다. 말 대여섯
마리 정도는 나 혼자 힘으로도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넓은 도
로의 양쪽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벌겋게 녹이 슨 금속덩어리들은 이
곳 사람들이 사용했던 짐수레일지도 모른다.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
로 부스러져 있었지만, 바퀴로  보이는 것도 눈에 띄고, 투명한 방
위판도 붙어 있었다.  어쩌면 짐수레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면 마차였을까?  조니는 그 금속덩어리를  자세히 조사해보기로 했
다.
  그때 조니는 거대한 곤충을 발견했다.

  (12)
  밝은 햇살 아래 거대한 곤충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절대 잘못 보았을 리가 없었다. 해괴한 생물은 곤충이 분명했다.
모양새는 바퀴벌레와 매우 흡사했다. 아니면 딱정벌레? 아니다. 바
퀴벌레였다. 그러나 저렇게 거대한 바퀴벌레는 본 적이 없었다. 길
이 삼십 피트, 높이 십  피트, 그리고 너비는 대강 이십 피트는 되
었다. 다갈색을  띤 단단하고 매끈한  껍질은 공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조니는 말들을 자기의 등  뒤로 몰았다. 곤충은 넓은 길 한 가운
데에 버티고 있었다. 곤충의 껍질은 흙먼지 한톨 없이 번들번들 빛
나고 있었다. 조니는 그것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 살
아 있었다. 생명이  없는 금속덩어리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였
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것이 매우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
았다. 그리고 길게 갈라진  두 눈빛 속엔 뭔가 은밀한 음모가 꿈틀
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조니는 천천히 윈드스프리터의 방향을 바꾸어 짐 실은 말고 함께
오던 길을 되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조니는 이미 마을의 거리에 익
숙해져 있었다. 같은 방향으로 몇 개의 교차로를 돌면 지금의 장소
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그다지 멀지 않았다. 옆길을 지나 건물들
이 운집해  있는 곳을 돌아서 평원으로  나가자. 그러면 도망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만약 저것이 움직인다면..., 그때 갑자기
귀청이 찢어지는 듯한 폭음이 울려퍼졌다.
  조니는 공포에 사로잡혀  재빨리 등 뒤를 돌아보았다. 그것은 세
개의 다리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그것은
조금씩 조니를 향하여  다가오기 시작했다. 역시 살아 있는 것이었
다. 조니는 재빨리 방향을  바꿔서 빠른 속도로 도망쳤다. 한 모퉁
이를 돌아 다른  모퉁이로 접어들었다. 곤충과의 거리가 멀어져 있
었다. 그것은 두 블록 정도 뒤쪽에 있었다. 조니는 말을 옆길로 돌
아세운 후 재 빨리  짐 실은 말들도 함께 끌여들였다. 그리고는 다
음 모퉁이에서 또다시  구부러졌다. 앞쪽에는 커다란 건물 두 채가
우뚝 솟아있었다.
  계속 달려서 평원으로 달아나자. 빨리 빠져나가야 한다.
  그때 갑자기  강렬한 불꽃과 함께 오른쪽에  있던 건물이 폭발했
다. 건물의  윗부분이 무너져내리면서  조니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조니는 재빨리 말을 세웠다. 그는 온통 흙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무너진 돌더미 너머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니는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렸다. 소리의 위치가 이동하고 있었다. 오른
쪽으로 도는 것  같았다. 조니는 그것의 움직임을 감지하려고 귀를
쫑긋세웠다. 그것은 다른  거리를 우회하여 쫑아오고 있었다. 건물
을 무너뜨려서 조니의 진로를 가로막고, 이제 그의 등 뒤로 쫓아올
생각인 모양이었다. 함정에 빠진 것이었다.
  조니는 길을 가로막은 채 흙먼지를 뿜어올리고 있는 무너진 돌더
미들을 보았다. 삼십 피트 높이는 되었다. 더구나 급경사였다.
  조니는 숨가쁘게 맥박치는  심자의 고동을 가라앉히고, 침착성을
되 찾았다. 당장 해야 할 일은 괴물이 등 뒤에서 덮쳐오기 전에 저
바리케이트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런데 장애물이  너무 가까이에 있었다.  조니는 약간 뒤쪽으로
물러섰다. 달리는 가속을 최대한 이용하여 장애물을 뛰어넘기 위해
서였다.
  순간 윙  소리를 내면서 조니의 등  뒤에 괴물이 나타났다. 빠른
속도로 달려온  괴물은 조니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정지했
다. 콧구멍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조니는 발뒤꿈치를
말의 옆구리에 붙이고 고삐를 힘껏 잡아당겼다.
  "이럇!"
  조니는 말의 옆구리를 힘차게 걷어찼다.
  그러자 말들은  바리케이드를 향해서  일제히 달려나가기 시작했
다. 무너져  버린 건물의 잡동사니들은  매우 울퉁불퉁했고 단단한
것들이 아니어서 자칫 무너져내린다면 생명을 잃을 만큼 위험한 시
도였다. 하지만 조니는 박차를 가하여 맹렬한 속도로 바리케이드의
정상을 향해  달려나갔다. 그러자  파편들이 미끄러져내렸다. 그는
말의 다리가 부러지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다. 있는 힘을 다해 정상
에 올라선 조니가 뒤를 돌아다봤을 때, 곤충은 이미 바리케이드 바
로 아래까지 쫓아와  있었다. 조니는 잡동사니더미를 내려갔다. 발
밑에서 무너저버린 파편들이 말보다 빨리 굴러떨어지고 있었다. 파
편들의 무너져내리는 소리가  주위의 건물벽에 부짖쳐서 고막을 찢
을 듯이 울려댔다.  무너진 파편더미에서 벗어난 조니는 평원을 향
해 곧게 뻗은 도로를 달렸다.
  그것의 으르렁거리는 포효소리는  말발굽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
았다. 멀리, 더욱 빨리 조니는 말을 달렸다.
  밀집된 건물숲을 벗어나자  건물들의 수가 차츰 줄어들며 오른편
으로 평원이 나타났다.  그는 도로를 벗어나 둑을 가로질러 미끄러
지듯이 달려갔다. 조니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말고삐를 계속 잡아당
겼다.
  앞길을 가로막는 것이  없다고 느낀 조니는 말의 속력을 늦쳤다.
윈드스프리터와 짐 실은  말은 거친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조니는
말들을 천천히 걷게 하면서 이따금 불안한 표정으로 뒤쪽을 살피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뿐이었다.  또다시 괴물의 으르렁거리는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곤
충이 쫓아오고 있었다. 건물들 사이를 미끄러지듯이 빠져나와 곧장
조니를 향하여 돌진해오고 있었다.
  조니는 다시 도망쳤다. 곤충은 빠르게 거리를 좁혀왔다. 말을 최
대한 빨리 달리게 했지만, 그것은 조니를 따라잡을 뿐만 아나라 옆
을 스쳐지나갔다.
  조니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곤충은 몸을 기울이며 방향을
바꿔 다시 조니 앞으로 달려와 앞을 가로막고 섰다.
  조니는 말을 세웠다.  그것은 조니의 정면에 버티고 서서 소름이
끼칠 만큼 징그러운 모습으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조니는 방향을 바꿔 도망치려고 했다. 그러자 무시무시한 굉음을
내며 조니 옆을 돌아 다시 그 앞길을 가로막았다.
  조니는 마음을 정했다.  그는 허리춤에서 가장 큰 돌방망이를 꺼
내 힘껏 움켜들었다. 그리고는 곧장 윈드스프리터를 몰아 돌진해갔
다. 그것은 꼼짝도 하지  않고 조니를 노려보고 있었다. 조니는 길
게 갈라진 괴물의  눈을 목표로 돌방망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돌
방망이는 공중에서 휙휙  소리를 냈다. 조니는 좀더 괴물이 가까이
까지 돌진해갔다. 돌방망이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괴물의 갈라진 눈
을 향해서 날아갔다. 귀청이 찢어질 듯한 타격소리가 들려왔다. 그
러자 그것은  움쩍도 하지 않았다. 조니는  천천히 말을 제 위치로
돌려놓은 다음,  방향을 바꿔 다시 공격할  준비를 했다. 그리고는
뒤꿈치로 말의 옆구리를  세차게 걷어찼다. 말은 맹렬한 속도로 다
시 괴물을 향해 달려갔다.
  순간 그것의 두 눈에서  거대한 오렌지색 불빛이 반짝 하며 뿜어
져 나왔다.  조니는 모든 폭풍이 한꺼번에  자신의 몸을 강타한 듯
심한 충격을 느꼈다. 윈드스프리터와 조니는 한꺼번에 공중으로 솟
구쳤다가 힘없이 떨어져내렸다.

  (13)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타르 보안부장으로서는 짐작
할 수 없었다. 말은 본  적이 있었다. 말은 자주 광산의 동굴에 떨
어지곤 했었다. 그러나 머리가 두 개 달린 말은 처음 보았다. 그렇
다. 머리가 두 개였다. 하나는 앞에, 또 하나는 중앙에 있었다. 그
뒤에도 비슷한  동물이 또 있었다. 그것은  중앙에 또 하나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두 개의  머리 중 하나가 구부러져서 등에 누워 있
는 모양새였다.
  타르 보안부장은 뼈로 덮인 눈두덩 속의 노란색 눈알을 깜빡거렸
다. 서둘러 조종석으로  옮겨간 그는 방탄유리창을 통해 그것에 시
선을 집중했다.
  그 순간 두 마리의 짐승은 방향을 바꿔서 도망치고 있었다. 타르
는 속력을 내서 추적했다. 짐승들이 쫓기고 있는 것을 알고 도망치
려한다는 것을  금새 알 수 있었다.  재빨리 문화부가 만든 지도를
살펴 본 타르는 서둘러 두세 블록을 우회해가면 짐승들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짐승들이 방향을 바꾸었다. 그 방향으
로는 똑바로 이어지는 길이 없었다. 말들은 건물들을 한 바퀴 빙그
르 돌아서  도망칠 셈이었다. 타르 보안부장은  그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이에 대처하는 것은  초보적인 전술이었다. 그는 한 번 지
도를 살펴보고, 바리케이드를 만들기에 적당한 건물을 물색했다.
  낡은 마크 II 지상장갑차의 위력은 그다지 대단한 것은 아니었지
만, 이 정도의 일을 하는 데는 충분했다. 타르 보안부장은 서툰 솜
씨로 차를 적당한 위치까지 끌고 가서 발사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건물 전체가 옆으로  쓰러지면서 바리케이드가 되어주었다. 타르는
방향을 바꾸어서 머리가  두 개 달린 짐승들을 추적했다. 모퉁이를
돌자 예상한 대로  짐승들은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짐승들은 흙먼
지가 피어오르는 파편더미들을  넘어서 순간적으로 사라져 버렸다.
타르는 어안이 벙벙해진 채 바라보고 있었다.
  타르는 잠시 동안 꼼짝  않고 앉아서 지금까지 일어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처음부터  다시 떠올려보며 정리하려고 했다. 지금 당
면해 있는 과제는 인간사냥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나타난 동물들
로 인해 시간만  허비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관계
없었다. 시간은 넉넉하니까 사냥을 해볼 만도 했다.
  타르 보안부장은  버튼을 눌러 정찰안테나  캡슐을 쏘아 올렸다.
이 장치는 삼천 피트 상공에서 지상을 정찰하는 것이었다. 그는 영
상스크린의 스위치를 켰다. 스크린에 동물들이 나타났다. 짐승들은
건물사이를 교묘한 방법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타르는 말들이  달리는 것을 바라보며  간단히 아침식사를 했다.
카방고를 가볍게 한  잔 하고 나서 주행조종간을 '전진'에 넣었다.
마크 II  지상장갑차는 정찰안테나에서  전송되는 자료와 스크린에
나타난 짐승들의 위치를 따라 곧장 평원으로 달려갔다.
  평원으로 나서자 사야를 차단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사냥감
은 육안으로 아주  잘 보였다. 타르는 커다랗게 우회하여 짐승들의
진로를 막았다. 짐승들은  방향을 바꿨으나 타르는 또다시 같은 방
법으로 그것들의 앞쪽으로 달려갔다.
  도대체 뭘까? 도망치고 있는 두 마리는 틀림없이 머리가 두 개였
다. 돌아가서도 짐승들의  얘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타르는
생각했다. 그  자신도 믿을 수 없는  희귀한 동물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았자 영낙없이 웃음거리가 될 것이 뻔했다.
  타르는 지상장갑차에서 몸을  내밀어 진로를 차단당한 짐승을 지
켜보고 있었다. 그것은  도망치기를 멈추고 허리춤에서 돌방망이를
꺼냈다. 그러더니  갑자기 지상장갑차를  향해 돌진해왔다. 타르는
깜짝 놀라 짧은 순간 몸을 움츠렸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
어지고 있었다. 저 짐승은 나를 공격할 작정이군.
  돌방망이가 앞유리창에 부딪치는  충격음은 엄청난 것이었다. 타
르의 청각골이 세차게  흔들렸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었다. 즉각
호흡가스가 식식 소리를  내며 새기 시작한 것이었다. 타르는 파도
를 탄듯한 현기증이 일었다. 정신이 아찔했다. 눈알이 튀어나올 것
만 같은  공포감이 전신을 휘감았다. 공기였다.  공기가 차 안으로
새어들어오고 있었다. 낡은  마크 II는 폐차 직전의 상태여서 방탄
유리가 부실했던 것이다. 타르는 당혹스럽고 정신없는 가운데 유리
창 주위를  살펴보았다. 방탄유리를 고정시키고  있는 고무 패킹이
찢어져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타르는 어찌할 바를 몰라 황망
히 앉아 있었다. 이내 페이스 마스크에 관한 지시사항을 떠올린 타
르는 황급히 사격수자리에 방치해두었던 페이스 마스크와 호흡가스
통을 집어들었다. 마스크를  얼굴에 대고 가스통의 밸브를 열었다.
호흡가스를 깊이 들이마시자 현기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죽음의
냄새가 배어 있는 지구의 공기를 폐로부터 몰아내기 위해서 타르는
수세 차례 깊은 심호흡을 했다.
  침착성을 되찾은 타르 보안부장은  다시 머리가 두 개 달린 짐승
을 주시하였다.  짐승은 재차 공격해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의
손이 레이저 포의 발사관 방아쇠로 향했다. 레이저 포의 위력은 한
낱 짐승들에게  사용하기엔 너무나 엄청난  것이었다. 또한 발포의
반동으로 망가진 고무패킹 사이로 후폭풍이 불어들어온다면 큰일이
었다. 타르는 레이저 포의 조종간을 '기절'의 위치에 맞추었다. 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짐승들은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타르는 발사버튼을 눌렀다. 레이
저 포의 발사와 함께 잠시 이온광이 작열했다. 짐승들은 공중 놓이
날아 올라갔다가 추락했다.  타르는 땅 위에 쓰러져 있는 짐승들의
생사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꼼짝 않고 그 동태를 지켜보았다. 모
두 죽어버린 듯했다. 틀림없었다. 몸 한번 까딱하지 못하고 처참한
몰골로 쓰러져 있었다.
  한꺼번에 긴장이 풀리자 타르는 마스크 속에서 크게 한숨을 내쉬
었다. 그러나 타르 보안부장은  이내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짐승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타르는 두 마리의 네 발 달린 짐승을
상대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땅 위에 쓰러져 있는 짐승들은 두 마리
가 아니었다. 그것들은 분리되어져 있었다. 세 마리의 짐승, 네 마
리 같기도 했다.  네 발 달린 짐승이 두  마리, 그 짐승 주위엔 그
보다 작은 뭉치들이  따로 떨어져서 나뒹굴고 있었다. 그것도 살아
움직이는 것일까. 그러나 서로 가까운 위치에 쓰러져 있는 것은 분
명히 두 마리의 짐승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타르는  혼란스러움을 떨치려고 머리를
흔들어댔다. 지구공기의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계속 작은
빛이 눈앞에서 아른거리고 있었다. 타르는 차 밖으로 나와 쿵쿵 땅
을 울려대면서 풀숲을  헤치고 짐승들이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그
것은 말이었다. 그런데 말의  등에 뭔가가 묶어 있었다. 단순한 모
피, 짐승가죽 자루, 그리고 하잘것 없는 잡동사니들이었다. 타르는
잠시나마 긴장했던 자신을 떠올리며 그것을 발로 걷어차버렸다.
  다른 한 마리 역시 말이었다. 그리고 오른쪽에 거꾸로 쓰러져 있
는 짐승은....  타르는 풀숲을 헤쳤다. 오오,  이럴 수가.... 이런
행운이! 바로 인간이었다.
  타르는 인간을 뒤집어보았다.  형편없이 작고 빈약한 몸뚱아리였
다. 얼굴 주위와  머리 외에는 털이 나  있지 않았다. 팔과 다리는
각각 두 개씩이었다. 연한 갈색 표피. 인간의 모습에 관해 챠가 말
했던 게 떠올랐다. 그때 타르는 챠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타
르 앞에 스러져 있는 동물은 그가 묘사한 그대로였다. 그토록 찾던
인간이 바로 눈앞에  나타났는데 그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죽여버린
자신의 경솔함에 스스로 화가 치밀어올랐다. 아니, 죽지 않았잖아!
가슴이 벌떡거리고 있었다. 아주 약해서 움직일 뿐이었지만 인간은
아직 살아 있었다.  아아, 행운이.... 그는 행운아였다. 굳이 산을
기어오르지 않고서도 인간을 생포한 셈이었다.
  타르는 한손으로 인간을  들어올려 지상장갑차로 돌아왔다. 사격
수 자리에 던져놓으니까  더욱 작고 초라해 보였다. 타르는 영구접
착제로 고장난 앞유리의  찢어진 곳을 수리했다. 한쪽 측면이 전부
찢어져 있었지만 유리에는 이상이 없었다. 매우 강한 일격이었음이
분명했다. 타르는 사격수  자리에 파묻히듯이 놓여 있는 조그만 몸
뚱아리를 내려다보았다. 아냐, 우연의 일치였을 거야. 타르는 애써
작은 동물에게 한방 맞았다는 것을 부인하려 했다.
  정말로 형편없는 지상차다. 어딘가 결정적인 결점을 찾아내서 수
송주임 즈즈토에 관한  문제자료로 적어놓아야겠다. 부품의 부착실
수나 정비소홀이라고. 타르는 다른 문들의 고정부분도 세밀히 조사
해보았다. 낡기는 했지만 특별히  문제될 건 없었다. 물 속으로 잠
수할 것도 아니고  더이상 짐승들에게 습격받을 일도 없을 것이다.
타르는 조종석에 서서  지평선 너머까지 대충 눈여겨 보았다. 아무
것도 없었다. 이런 동물은 더이상 없었다.
  타르 보안부장은 해치를 닫고 의자에 앉았다. 기압장치의 버튼을
누르자 차 안으로부터  공기가 나가는 소리와 호흡가스가 들어오는
기분 좋은  소리가 뒤섞였다. 슛슛  꿀렁꿀렁.... 페이스 마스크는
한잦의 더위로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타르는 마스크라면 딱 질색
이었다. 마스크만 보면  더욱더 묵직한 중력과 자줏빛 수목이 있는
혹성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인간이 심한 경련을 일으켰다. 타르는  움찔하며 물러앉았다. 인
간의 얼굴은 시체처럼  창백해졌고 몸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죽
어가는 짐승을 차안에  둘 필요는 없었다. 타르는 황급히 마스크를
쓰고, 기압장치를 반대로 돌린  후 발로 옆문을 열였다. 인간을 재
빨리 풀숲으로 밀어낸  타르는 그의 동태를 살펴보았다. 동물은 생
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타르는 위쪽의 해치를  열고 쓰러져 있는 말을 살펴보았다. 말의
옆구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말은 호흡도 하고 있었으며 경련도 일
으키지 않고 있었다. 조금씩 회복되어가는 조짐이 보였다. 그렇지,
말은 역시 말이다. 어쩌면 인간은...
  그 순간 타르는 깨달았다.  인간은 호흡가스를 숨쉴 수 없다. 인
간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아왔고 경련이 멎어 있었다. 인간은 가쁜
숨을 몰아쉬느라 가슴이 크게 물결치고 있었다. 타르로서는 난처한
일이었다. 채굴가기까지 페이스 마스크를 쓰고 운전해야 한다는 것
은 정말 싫었다.
  타르 보안부장은 차 밖으로  나가서 멀리 떨어져 있는 말에게 다
가갔다. 회복되어가고  있었다. 말 옆에는  자루가 떨어져 있었다.
자루안에는 알 수 없는 잡동사니가 들어 있었고, 길이가 얼마 안되
는 로프도 있었다. 타르는 차로 돌아와서 인간을 지상차의 지붕 위
에 올려  놓고 양팔로 좌우로 벌렸다.  로프로 인간의 한쪽 손목을
묶은 다음 차 밑으로  돌려서 다른 한쪽 손목도 묶었다. 로프가 느
슨해지지 않도록 힘껏 잡아묶고, 미끄러져 떨어질 것이 걱정스러워
인간을 밀어보았다. 꼼짝도 하지 않았다. 타르는 자루를 사격수 자
리에 던져놓고, 차 안으로 들어가 가스전환 장치를 작동시켰다.
  가까이 있는 말이  일어서려고 목을 들어올렸다. 페이저 포를 기
절탄으로 인한 피부상처  외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말의 상태로
보아, 인간도 본래대로 기운을 차릴 것이다. 타르는 턱뼈를 늘어뜨
리고 히죽이 웃었다.  모든 계획이 순조롭고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
다. 타르는 인간을 지상차의 지붕 위에 매달고 채굴장을 향하여 달
리기 시작했다.
  제 1 권
  지구 전선

  제 2 부
  조니의 마음속에는 오직 한 가지 목적밖에 없었다. 복수!

  (1)
  타르는 몹시 분주했다. 갑자기 중요한 계획들이 떠올라 머릿속에
서 뒤엉키고 있었다.
  칭코인들은 기지 밖에  동물원을 만들어놓았었다. 지구에서 모습
을 감춘 지 이미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동물들을 가둬두었던 우리
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우리 가운데 인간을 가둬두기에 알맞은
것이 하나 있었다. 진흙바닥에 시멘트로 만든 우리였는데, 우리 밖
은 튼튼한 철책이  둘러쳐져 있었다. 그곳은 칭코인들이 곰을 사육
하던 우리였다. 곰을 연구하기 위해서 그곳에 사육했던 것이다. 타
르는 잡아온 인간을  우리 안에 던져넣었다. 인간은 여전히 정신을
잃고 있었다. 호흡가스의 충격에서 완전히 회복하기 못한 모양이었
따. 타르는 우리주위를 점검해보았다. 이 정도라면 문제가 없을 것
같았지만 인간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우리 입구에는 자물쇠가  달려 있었다. 짐승이 문을 열고 도망칠
가능성도 있었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더구나 자물쇠
는 낡고 엉성하게  매달려 있었다. 타르 보안부장은 인간의 자루를
펼쳐들었다. 인간을 운반하는 데 사용했던 로프가 그 속에 들어 있
었다. 타르는 인간의 목에  로프를 두르고, 간단한 매듭을 지어 한
쪽 끝을 우리의  철책에 단단히 묶어놓았다. 타르는 뒤로 물러나서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만하면 도망가지 못하겠지. 타르는 밖으로
나와서 우리의 문을  닫았다. 좀더 튼튼한 자물쇠로 잠가둬야 하겠
지만, 당장은  낡은 것이라고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타르는 매우
흡족해 하며 차를 차고에 넣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특별히 중요한 일은  없었다. 발송할 문서들이 있었지만, 형식적
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급박하게 처리해야 할 업무는 하나도 없었
다. 타르는  서류들을 정리한 후 의자에  깊숙히 파묻혔다. 지구란
참으로 따분한 행성이었다. 타르는 지구와 작별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에 착수하려는 순간  갑자기 우리 안이 궁금해졌다. 그는 자리
를 박차고 일어났다.
  페이스 마스크의  호흡가스통을 새것으로  갈아끼운 타르는 건물
밖으로 나갔다. 우리의 문 앞에서 타르는 우뚝 멈춰 섰다. 그의 뼈
로 덮인 눈두덩이이  놀라움을 감당하지 못하여 딸깍딸깍 맞부딪치
는 소리를 냈다. 인간이 결박을 풀고 우리를 넘어와 있었다.
  타르는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달려가 인간을 들어올려 다
시 우리에 가두었다. 타르는 인간의 눈빛을 보았다. 인간은 분명히
그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인간의 키는 그의 벨트
버클밖에 닿지 않을뿐더러  체중은 그의 10분의 1 정도밖에 안되었
던 것이다.
  타르는 인간의 목에 다시 한 번 로프를 감았다. 광산회사의 직원
이라면 누구나 로프를  묶는 일에는 남다른 구석이 있었다. 이번에
는 풀 수  없도록 이중매듭을 지어 결박했다. 이중매듭만큼은 쉽게
풀 수 없을 것이다.
  한 번 더 매듭을  조여맨 타르는 차고로 가서 지상장갑차의 정비
상태를 확인했다. 타르는  정비점검을 하면서도 계획을 성공시키려
면 인간을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좋을까 골똘히 궁리해보았다. 그
모든 계획의 성공여부는 우리에 갇혀 있는 인간에게 달려 있었다.
  돌연 불길한  예감이 든 타르 보안부장은  밖으로 뛰쳐나와 우리
속을 살펴보았다. 인간은  이중매듭을 풀고 우리를 넘어와 있었다.
타르는 화가 치밀어 다시  인간을 우리 안에 가둬놓고 결박했던 로
프를 살펴보았다. 이중매듭은  간단하게 풀려 있었다. 이번에는 더
욱 복잡한 이중매듭으로 재빨리 묶어버렸다. 인간은 이상한 소리를
냈다. 마치 말을 하고 잇는 것 같았다.
  타르는 밖으로 나가서 문을 잠그고 인간이 볼 수 없는 곳에 몸을
숨겼다. 그는 보안부장이었다.  비록 실력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
지만, 타르는  건물 뒤에 숨어서 페이스  마스크의 렌즈기능을 '망
원'으로 맞추어 놓고 인간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녀석이 어떻게 이
중매듭 결박을 풀어냈을까?
  인간은 허리춤에 매단 자루 안에서 유리조각을 꺼내 로프를 잘라
내고 있었다.
  타르는 차고를 향해서 뛰어갔다. 수백 년 동안 그곳에 버려져 있
던 잡동사니들을 뒤졌다.  플렉시 로프 한 가닥, 용접기와 용접봉,
그리고 가늘고  긴 금속조각을 찾아냈다.  타르가 그것들을 가지고
우리로 돌아왔을 때 인간은 문 밖으로 나와 있었다.
  철저하게 묶어두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판단한 타르는 금속조각을
둥글게 구부려서 인간의  목에 두르고 용접했다. 플렉시 로프의 한
쪽 끝은 목고리에 용접하고, 로프를 바닥에서 삼십 피트나 되는 철
책에 걸어 묶었다. 일을  마친 타르는 우리를 나왔다. 인간은 몹시
괴로워하며 목고리를 들고, 목에 닿지 않도록 애쓰고 있었다. 목고
리가 무척 뜨거웠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라면 안심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내지는  않았다. 적어도 타르는 보안부장이었
다. 그는  자신의 사무실 창고에서 감시용  카메라 두 대를 꺼내서
점검한 후, 사무실의  모니터와 주파수를 맞추었다. 그리고는 우리
로 돌아가서, 한 대는 철책의 훨씬 위쪽에서 아래를 향하도록 설치
하고, 다른 한 대는 바깥쪽에서 전체를 볼 수 있도록, 우리에서 조
금 떨어진 곳에 설치해두었다.
  인간은 입을  가리키면서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그날 밤 타르는 별일없었다는 듯이 시치미를 뚝 떼고 레크레이션
홀에 점잖게 앉아 있었다. 누가 말을 걸어와도 묵묵부답인 채 단지
매우 흐뭇한 표정으로 카방고를 마시고 있었다.

  (2)
  조니 굿보이 타일러는  절망감에 빠져 있었다. 그는 저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신의  자루를 바라보고 있었다. 작열하는 태양이 내
리쬐고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금속목고리가 건드려져서 화상부위
가 몹시 쓰라렸다. 목구멍은 심한 갈증으로 따금따금 쑤셔왔고, 너
무 배가 고파 무기력할 정도였다. 저 자루 속에는 돼지방광으로 만
든 물통과 불에  구운 돼지고기가 있었다. 이미 썩어버렸는지도 모
르지만, 또한 타는 듯한 태양빛을 가려줄 가죽도 들어 있었다.
  조니는 오로지 탈출만을  생각했다. 우리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울화통이 치미는 일이었다. 물과 먹을 것이 없다는 것
보다도 훨씬 화가 났다. 조니는 사건의 전말을 알 수가 없었다. 마
지막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은  곤충을 다시 한 번 공격하려고 돌진
했을 때 갑자기 작열한 노란빛의 섬광과 함께 공중으로 날려올라간
일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우리 안에 갇힌 몰골. 아니다,
그전에도 뭔가가 있었다. 조니는 기억을 더듬어나갔다. 순간순간의
장면이 떠올려졌다.  뭔가 부드럽고 매끈한 것  위에 누워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곤충의 내부였는지도 모른다.  바로 옆에는 거대한
것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폐 속으로 불덩이가 파고드는
것만 같은  통증이 왔었다. 전신에 경련이  일어났고, 의식을 잃고
말았다.
  또 한 가지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끌려오던 도중에 잠깐 의식
을 회복했던 기억이 났다. 평원을 질주하는 곤충의 등에 양팔이 묶
여있었다. 그 후 후두부에  강한 충격을 느꼈고 정신을 잃었다. 다
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이곳에 갇혀 있었다.
  조니는 단편적인 기억들을  연결시켜보았다. 나는 곤충에게 상처
를 입혔다. 그러나 죽이지는 못했다. 곤충은 나를 들이마셨으나 곧
토해내어 자신의  등에 얹었다.  그대로 자기 둥지까지  데리고 왔
다....
  가장 큰 충격은 괴물이었다.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다. 조
니는 마을어른들의 말을  믿지 않았고, 커다란 마을의 존재를 의심
했었다. 그러나 지금 그를 가두고 있는 것이 괴물이 아니면 무엇이
란 말인가.
  의식을 되찾았을 때, 조니의 시야를 가득 메운 것은 거대한 괴물
이었다. 공포감이 엄습해왔다.  조니는 도망치려고 하다가 등 뒤의
철책이 휘어질 정도로  몸이 떠밀려졌다. 괴물이었다. 키가 팔, 구
피트,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몸둘레는  삼 피트 반 정도,
발과 손은 각각  두 개씩. 얼굴 대신  뭔가 빛나는 것이 있었으며,
기다란 관이 턱에서  가슴까지 늘어져 있었다. 번득이는 얼굴 위쪽
으로는 번쩍이는 호박색  눈빛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괴물이 걸
을 때마다 땅이 흔들렸다.  중량은 천 파운드나 그 이상이 될 것만
같았다. 거대한 장화를 신고 있었는데, 발이 옮겨질 때마다 움푹움
푹 패였다. 그리고 털투성이의 팔과 긴 손톱.
  당장이라도 그 괴물에게 잡아먹힐 것 같은 절망감이 엄습해왔다.
그러나 괴물은 잡아먹을 생각은 없는 듯했다. 까닭은 알 수 없었지
만 괴물은 조니의  목을 개처럼 로프로 묶어놓았다. 이 괴물에게는
특별한 감각이 있었다. 조니가 끈을 풀고 우리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나곤 했다. 마치 모든 곳에서 그의 일거수 일
투족을 보고 있는 것처럼.
  조니는 떨어져나온 눈알처럼  생긴 물체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
다. 그 하나는 우리의 구석 위쪽에서 빛나고 있었고, 또 하나는 옆
건물 벽면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러나 괴물은 그것들을 매달기 전
에도 도망치려는 조니를 붙잡았던 것이다.
  여기는 도대체 어디일까? 쉴새없이 땅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오
곤 했다. 숨통을 조여댈 것만 같은 둔탁한 울림. 그 곤충이 토해내
던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비슷했다. 저런 곤충이 무수히 많을 거라
는 상상을 하자 조니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괴물은 실제로 존재했다. 그 괴물 앞에 서자 조니의 머리는 괴물
의 벨트 버클 높이밖에 안되었다. 벨트 버클? 그렇다. 벨트를 잠그
는 쇠장식이었다. 그렇구나, 괴물은 피부가 아닌 뭔가 다른 것으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매끈매끈하고 반짝거리는 자주색, 피부는 분
명 아니었다. 가죽옷과  비슷했다. 바지, 웃옷, 옷깃. 그녀석은 옷
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옷깃에는 장식이 붙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상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 문양은 조니의 눈에 깊이 새겨졌
다. 땅 위에 조그만  사각형이 서 있는 듯한 그림이었다. 수직으로
세워진 작은 기둥이 사각형의  몸체 위로 솟아 있었고, 그 작은 기
둥의 꼭대기에선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소용돌이치며
솟아오르는 연기와  구름이 그림의 위쪽을  뒤덮고 있었다. 연기와
구름, 조니는  기억 속에 있는 어떤  상황과 일치하는 듯한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허기와 갈증, 타는  듯한 무더위는 조니를
과거의 회상 속에 머물러있게 하지 않았다.
  바닥이 규칙적으로 진동했다.  조니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괴물의 발자국 소리였다.  괴물이 문까지 다가왔다.
그는 뭔가를 들고 있었다. 괴물은 안으로 들어와서 조니의 앞을 가
로막고 섰다.  그리고 바닥 위에  말랑말랑하고 끈적끈적한 막대기
몇 개를 던져주고는  말없이 서 있었다. 조니는 막대기들을 바라보
았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들이었다. 괴물은 막대기로 얼굴을
번갈아가며 가리켜댔다. 의사전달을 포기한 듯 괴물은 막대기를 조
니의 입에 밀어넣었다.  그리고 짖어대듯이 말을 퍼부었다. 괴물은
명령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음식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조니는 가장자리를 조금 씹어
서 삼켜보았다. 순간 입  안에 불쾌감이 느껴지며 참을 수 없는 구
역이 치밀어올라왔다.  위장 전체가 역류하는  듯 뒤틀리며 온몸에
경련이 일었다. 조니는  고통스럽게 토하기 시작했다. 허기와 갈증
탓으로 구토물은 적었으나 먹은 것을 전부 토해내려고 하니까 무척
고통스러웠다. 그  지독한 신맛을 조금도  남김없이 쏟아내려고 했
다. 괴물은 뒤로 물러선 채 조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을 좀 다오"
  조니는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면서 애원했다.
  "제발 소원이니까 물을 좀 다오."
  이 끈찍한  음식들을 씻어내기 위해서라면  어떤 것이든 좋았다.
조니는 입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물...."
  괴물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마스크 속의 눈이 가늘어지
며 을씨년스러운 빛을 띠기 시작했다.
  조니는 정신을 가다듬고 흥분을 가라앉혔다. 처량한 얼굴로 동정
을 구걸해서는  안된다. 여기서 생을  마감한다 할지라도 자존심을
내동댕이 칠 순 없다. 조니는 평온을 되찾고 있었다.
  괴물은 몸을 구부리고 목고리와 플렉시 로프를 조사한 뒤에 몸을
돌려 우리를 나갔다.
  황혼이 깊어가고 있었다.
  조니는 문 옆에 놓인 자루를 보았다. 그것은 하이피크 정상의 구
름처럼 너무 먼 곳에  있었다. 더할 수 없는 비참함이 그를 초라하
게 했다. 윈드스프리터는  깊은 상처를 입었거나 죽었을지 모른다.
나 역시 곧 갈증 때문에 죽데 될 것이다.
  사방에서 까만 고양이털 같은 어둠이 찾아오고 있었다.
  조니는 크리시가 그립기만 했다. 일 년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직
접 찾아나서겠다고 울면서  말했던 그녀. 만약 크리시가 그 약속을
실행에 옮긴다면 틀림없이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조니는 털썩 주
저 앉고 말았다.
  우리 위에 설치된  카메라만이 조니의 절망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3)
  그 이튿날부터  타르는 오랬동안  방치되어온 칭코인들의 구역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칭코인들의 구역은 사이클로
인들의 호흡가스 허용권 밖에 있었으므로 항상 페이스 마스크를 착
용해야 했다. 칭코인들은 공기를 마시는 종족이었다. 더구나 그 지
역은 폐쇄된 이후로 수백  년이나 방치되어 있어서 온통 먼지로 뒤
덮여 있었다.
  책장과 서류캐비닛들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 속에서
타르 보안부장은  인간의 음식습관에  대한 참고자료를 찾아내려고
하였다. 칭코인들은 부지런하고  치밀했으므로 틀림없이 그것에 대
해서도 연구해놓았을 것이다.
  타르는 부지런히 자료조사를 계속했다. 수백 개의 색인을 들치고
관련된 페이지를 읽어나갔다.  사무실은 물론 창고 안도 철저히 조
사했다. 덕분에 사무실과  창고 안에 어떤 것들이 보관되어 있는지
는 잘 알 수 있었으나 인간의 음식에 대해서는 아무런 자료도 찾아
낼 수 없었다. 산양의  먹이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었다. '고래'라
는 짐승의 먹이에 대해서는 논문으로 정리, 인쇄까지 되어 있었다.
완전한 돈낭비였다. 더군다나 그 논문은 고래가 완전히 멸종되었다
는 것으로 결론을 맺고 있었다. 한심한 논문이었다.
  타르는 사무실 한가운데에  서서 분노로 몸을 떨고 있었다. 칭코
인의 자료를 참고하려고 이곳을  찾은 자신에 대해서 화가 난 것이
었다. 정작 필요한 자료도 구배해놓지 못한 칭코인들의 민족문화부
를 폐쇄시킨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완전히 헛수고
는 아니었다. 타르는 낡아서  누렇게 변색된 지도 한 장을 들고 있
었다. 지도에 표시된  바에 의하면 이 혹성에는 몇몇의 인간집단들
이 남아 있었다. 적어도  수백 년 전 까지는 그랬다고 표시되어 있
었다.
  인간이 다른  곳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좋았지만
이것만으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웠다. 가장 믿을 수 있
는 것을 찾아내야만 했다. 그것은 바로 보안부, 보안부의 능력이었
다.
  보안부장은 밖으로 나가서 사이클로 밖의 세계를 둘러보았다. 칭
코인의 사무소와 숙소, 그리고 동물원. 그것들은 채굴장 뒤쪽의 작
은 언덕 위에 있었다.  바로 옆이긴 해도 채굴장보다 놓은 곳에 있
었다. 오만불손한 놈들이었다.  바로 옆이긴 해도 그것들은 채굴장
뒤쪽의 작은 언덕  위에 있었다. 이곳에서는 채굴장 전체가 내려다
보이지 않는가! 출하용  플랫폼도, 화물비행기의 조립장도 보였다.
순간 타르는 걱정거리가 떠올랐다. 만약 할당된 출하량을 달성하지
못하면 본사는  통신회선을 통해서 재촉을  해올 것이다. 본부에서
조사를 명령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으련만.
  푸른 하늘,  황금빛 태양, 초록빛 수목,  맑은 공기를 담뿍 안고
불어오는 바람.  이 혹성은 정말로 증오스럽다.  타르는 치를 떨었
다. 도대체 이런 곳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분실된 트랙터의  조사부터 끝내야 했다.  그리고 나서 인간에게
보안기술을 활용하여 테스트를  해보자고 타르는 마음먹었다. 효과
는 이미 충분한 경험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이 지옥
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었다.

  (4)
  조니는 괴물을 쳐다보았다. 갈증과 허기와 절망이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괴물은 땅을 울리면서 걸어들어오더니 우뚝 멈춰
서서 한참 동안 조니를 바라보았다. 호박색 눈이 반짝였다. 괴물은
조니의 주위를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괴물은 철책을 점검히고 있었다. 그것을 흔들어보고 충분히 튼튼
하다는 것을 확인하자 만족해 하는 표정으로 땅을 살펴보면서 우리
주변을 걸어다니고 있었다.  괴물은 잠깐 멈춰 서서 조니에게 먹이
려던 막대기들을 바라보았다. 조니는 그것들을 될 수 있는 한 멀리
밀쳐놓았다. 괴물은 그  수를 헤아렸다. 흥, 저녀석은 수를 헤아릴
줄도 아는군 그래.
  괴물은 목에 걸린 금속조각과 로프를 살펴보고는 철책에 걸려 있
던 로프의 한쪽 끝을 벗겼다. 조니는 숨을 죽였다. 자루가 있는 곳
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괴물은 그 로프를 가까운 철
책에 아무렇게나 걸어놓고는  문 쪽으로 걸어갔다. 괴물은 문을 잠
그기 위해 철사를 다시  감았다. 철사 한 줄이 벗겨져 있었으나 괴
물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땅을 울려대면서 멀어져갔다.
  갈증과 굶주림으로 머릿속이  몽롱해져 있던 조니는 자기가 헛것
을 본 게 아닐까  의심해보았다. 절호의 기회였다. 로프는 벗길 수
있었고, 문에 감아놓은 철사는  느슨했다. 문을 열 수 있을지도 모
른다.
  조니는 괴물이 사라진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행동을 개시했
다. 우선 로프를  흔들어올렷서 고리를 철책에서 벗겨냈다. 도망갈
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재빨리 로프를 몸에 감고, 그 끝을 허리춤
에 쑤셔넣은 다음 자루 쪽으로 달려갔다. 떨리는 손으로 자루를 풀
어헤쳤다. 아!  자루 속의 물건들은  거의 절망적이었다. 돼지방광
물통은 찢어진 채 약간의 습기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괴물에게 당
했을 때의 충격 때문이었다. 태양열을 차단하기 위해서 생가죽으로
싸 두었던 돼지고기 역시 몹시 상해서 차라리 먹지 않는 편이 나았
다.
  조니는 문을 쳐다보았다.  좋아, 어디 한번 해보자! 그는 자루에
서 꺼낸 돌방망이와 로프를 들었다. 허리춤에 찬 자루 속에 부싯돌
이 들어 있는 것을 확인한 다음, 문을 향해 살금살금 다가갔다. 괴
물의 기척은 전혀  없었다. 엄청나게 굵었지만 낡은 것이라서 상당
히 헐겁게 묶여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풀기까지 조니의 손은 상처
투성이가 되었다.
  드디어 문이 열렸다.
  재빨리 덤불과 개천 사이를 빠져나온 조니는 북서쪽을 향해 쏜살
같이 달려갔다.  괴물의 눈에 들키지 않도록  몸을 최대한 낮추고,
숨을 수 있는 그늘들을 이용하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렸다. 가장
급한 것은  물이었다. 혓바닥은 부풀어오르고  입술은 갈라져 있었
다. 먹는 것은 그 후의 문제였다. 조니는 아사 직전에 찾아오는 몽
롱한 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산으로 돌아가야만 했
다. 빨리 돌아가서 크리시를 말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일 마일 가량 도망쳤을 때 뒤를 돌아다보았다. 추적의 기미는 전
혀 없었다. 귀를  기울였다. 괴물의 으르렁 소리도, 땅을 뒤흔드는
감각도 없었다. 다시 이 마일을 더 달리고 귀를 기울렸다. 역시 아
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희망이 솟구쳐올랐다.
  앞쪽에 녹색 초원이 보였다.  개울이 흐르는 작은 숲. 숨이 턱에
닿은 만큼 호흡이 거칠어졌고, 목구멍에선 저절로 신음소리가 나왔
다. 조니는 개울가에 닿았다.  그것보다 더 가슴 설레게 하는 풍경
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만 같았다. 사늘한 소리를 내면서 나
무들 사이를 흐르는 투명한 시냇물.
  조니는 전속력으로 달려가서 단숨에 머리를 담갔다. 오랜 탈수증
후에 한꺼번에 많은 수분을  섭취하면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입을 적시는 데 그쳤다. 그리곤 머
리와 가슴을 적셔가며 메마른 피부에 물이 스며들게 했다. 그 끔찍
했던 막대기맛이 겨우 사라졌다. 개울물의 상쾌함과 청정함이 고맙
게 느껴졌다. 조심스럽게 물을 두세 모금 정도 마셨다. 마지막으로
숨을 멈추고 개울물에 온몸을 담갔다.
  여전히 추적당하는 기미는 없었다. 괴물이 도망친 것을 발견하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산은 북서쪽의 완만한 평원
헤서 조금 올라간 곳에 있었다. 반드시 저곳에 가야만 한다.
  조니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개울 건너쪽에 허물어져가는 낡은 오
두막집이 보였다. 지붕은 오래전에 주저앉은 듯했다.
  이젠 허기를  면할 수 있는 먹을  것이 필요했다. 조니는 한모금
더 물을 마시고  일어섰다. 돌방망이를 손에 들고 개울을 가로질러
서 오두막이 있는 곳까지  달려갔다. 달리는 동안, 먹을 만한 동물
을 전혀 만나지 못했다. 그 주변의 동물들은 모두 쫓겨나버린 모양
이었다. 당장 큰 사냥감은  필요치 않았다. 토끼 한 마리면 충분했
다.
  오두막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있었다.  조니는 소리나지 않도록
기어서 다가갔다.  갑자기 커다란  쥐들이 오두막에서 뛰쳐나왔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만큼 굶주렸을 때나, 사냥을 할 수 없는 겨울
철이 아니고서는 쥐 같은 것은 잡아먹지 않았었다. 그러나 당장 시
간이 없었으며, 토끼는 어디에도 없었다. 헛간을 향해서 돌을 던지
자 쥐 두마리가  뛰쳐나왔다. 그와 동시에 정확히 겨냥해서 돌방방
이를 힘껏 던졌다.
  조니는 죽은 쥐를  손에 들고 있었다. 과감하게 불을 피워볼까도
생각했으나 그럴 시간이 없었다. 매우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날쥐
고기? 하지만 할  수 없었다. 조니는 개울가로 돌아서서, 자루에서
그 날카롭고 투명한 것을 꺼냈다. 쥐를 들어 껍질을 벗기고 고기를
깨끗이 씻었다. 배가  고파 죽을 지경에 처했지만 날쥐고기를 씹어
먹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다.  조니는 구역이 날 것 같은 것을 억누
르고 조금씩 씹어서 삼켰다. 의외로 맛이 괜찮았다. 조니는 날쥐고
기를 천천히 씹어먹었다. 이제 더이상 약해져선 안된다. 빨리 기운
을 회복해야만 한다.  조니는 쥐고기를 먹으면서 조금씩 물을 마셨
다. 그리고는 마지막 한 조각을 날가죽으로 싸서 자루 속에 넣어두
었다. 남겨진 뼈 위에는  모래를 덮었다. 조니는 힘차게 몸을 일으
켜 먼산을 바라보았다.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나서 달려가려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 순간 공중에서 낮은  휘파람 소리가 나면서 갑자기 조니 위를
덮쳐오는 것이 있었다. 조니는 넘어졌다. 그것은 그물이었다. 도망
칠 수가 없었다. 밖으로 나가려고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그물은 더
욱 심하게 조여들었다.  조니는 핏발이 선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
다. 그물사이로 괴물의  모습이 보였다. 괴물은 숲속에서 걸어나와
그물을 조이는 로프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괴물은 무표정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전세계의 시간을 혼자
차지하고 있는 듯이  유유히 조여댔다. 그리고 조니를 그물로 말아
서 옆구리에 끼더니 채굴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5)
  타르 보안부장은 더할 나위  없이 흐뭇한 기분으로 책상 위의 서
류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만사기 나무랄 데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보안부의 전
략을 당해낼 놈은 아무도  없다. 이제 알고 싶었던 것들은 모두 정
확히 알게 되었다. 인간은  물을 마셨다. 그것도 머리와 어깨를 개
울이나 연목에 담그고 마셨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인간이 날
쥐고기를 먹는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기지 주
변에서 조달할 수 있는 동물은 쥐 정도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제 칭코인들이 몰랐던 사실 한두 가지쯤은 그가 알아낸 셈이었
다. 인간에게 도망칠  기회를 은밀히 열어주고 하는 양응 지켜보는
것은 초보적인 것이었다.  그것을 비행감시 장치로 추적하는 것 역
시 초보적인 것이었다.  물론 페이스 마스크를 쓰고 밖으로 나가서
땅 위를 달리는 것은 고달픈 일이었다. 인간이 달리는 속도쯤은 아
무것도 아니었지만 페이스 마스크를 쓰고 몸을 움직이는 것은 무척
피곤했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그물 던지는 기술은 스스로 생각해도
역시 일품이었다. 그런 간단한 그물조차 빠져나오지 못해 발버둥치
는 꼴이란.... 인간은  역시 나약한 존재였다. 기절총을 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저녀석은 하루에  몇 마리나 먹는 것일까? 그런 것
은 금새 알게 되겠지.
  타르는 따분한  모습으로 전송되어온  사건보고서를 들춰보았다.
행방불명된 트랙터는 운전사와 함께 이 마일이나 패인 채굴용 동굴
밑바닥에서 발견되었다. 갑자기  직원들이 사망률이 높아지고 있었
다. 본사는 보충인원  청구서가 지나치게 많다고 엄중한 경고를 해
올 것이다. 그것을  이용해야 한다. 차츰 타르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러한 현상은 계획을 진척시키는 데 유리한 조건이 될 수 있을 것
이다.
  타르는 그 사건을 간단히 처리한 후 책상 위를 말끔히 정리했다.
그리고는 캐비닛으로  가서 작은 권총을  끄집어냈다. 총에 레이저
탄을 장전하고, 조종간을  최소로 낮추었다. 헝겊으로 페이스 마스
크를 닦고,  호흡가스통을 새것으로 갈아끼운  다음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기지를 나온 타르는 백 야드도 채 못 가서 쥐 한 마리를 만났다.
그의 사격솜씨는  학창시절 사격팀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자랑했었
다. 타르의 사격솜씨가 도망치던 쥐의 머리를 관통했다. 다시 오십
피트쯤 갔을  때, 배수구에서 두 마리,  처음에는 이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아직도 그의 사격솜씨는 쓸 만했다.
  타르는 불만이  가득 찬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황색, 청
색, 그리고 초록색. 좋다, 어차피 이곳과는 작별할 몸이다. 타르는
더할 수 없이 즐거운 기분으로 언덕을 올라 우리를 갔다.
  타르 보안부장은 입을  벌리고 히죽이 웃었다. 인간은 우리의 맨
안쪽에 웅크리고  앉아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타르는 인간에게
감정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인간이 무엇을 하고 있는
지 궁금해졌다.
  인간은 짐보따리르 가까이에 놓고 있었다. 타르는 그가 도망치기
전에 우선 그 짐부터 집으러 달려갔던 일을 생각해냈다. 인간은 짐
보따리 위에 앉아서 두 권의 책을 펼쳐보고 있었다. 책? 도대체 어
디서 책을 찾아낸  것일까. 인간이 칭코인의 구역에 다녀왔을 리는
없었다. 그는 절대 목고리와  묶어둔 로프들을 풀 수 없었다. 수상
한 일이었다.
  타르는 마스크 속에서 음울한 미소를 지으며 인간에게 다가갔다.
죽은 쥐 두  마리를 내밀었으나, 인간은 쥐고기에게 덤벼들지 않았
다. 오히려  질겁을 하여 뒷걸음을 치며  물러섰다. 타르는 자신의
예상과 다른 반응을 보이자 순간 당황했다. 그러나 곧 인간에게 감
사의 인사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
안했다.
  타르는 칭코인들이 곰을  사육했던 시멘트 풀장 쪽으로 갔다. 바
닥과 벽은 깨진 곳  한군데 없이 말끔했다. 배관 역시 양호해 보였
다. 타르는 풀숲을 헤치고  급수밸브를 찾아보았다. 잠시 후 한 개
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틀어보려고 했으나 너무  오래된 탓으로 잘
돌아가지 않았다. 타르는 자신의 거대한 힘 때문에 자칫 밸브가 부
서져버리지나 않을까 걱저이 되었다. 그래서 가까운 차고에서 윤활
유를 가져와 밸브에 발랐다. 밸브는 간단히 열렸지만, 물이 나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급수펌프를  작동시켜보았으나 역시  물은 나오지 않았
다. 자세히 살펴보니까  물을 빨아올리는 파이프가 수면에 닿아 있
지 않았다.  타르는 장화발로 한번 힘껏  밟았다. 그러자 파이프는
물속으로 들어가버렸고, 그  순간 위쪽의 급수저장 탱크에 물이 퍼
올려져서, 아래쪽에 있는 우리 속의 풀장으로 흘러들었다.
  물은 풍장을 가득 채우고 인간을 가둬둔 우리 바닥으로 넘쳐흐르
기 시작했다. 인간은 황급히 일어나서 짐들을 물에 젖지 않도록 철
책사이에 밀어 넣었다. 타르는 밖으로 나가서 밸브를 잠갔다. 언덕
위의 급수저장  탱크가 가득 찼을 때,  펌프를 정지시켰던 것이다.
우리 속으로 흘러든 물은 다시 철책 사이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인
간은 한쪽 손으로 두  권의 책을 쳐들고 있었다. 타르는 주위를 둘
러보았다. 그런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저 책들은 어떤 내용일까?
  타르는 책을 빼앗으려고  했다. 하지만 인간은 그것을 단단히 움
켜쥔 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썼다. 화가 난 타르는 인간의 손목을
내리쳐서 책을 낚아챘다.  인간의 책들이었다. 타르는 진귀한 물건
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책을 펼쳐들었다.  이녀석은 어디서 인간의
책을 손에 넣은 것일까? 타르는 뼈로 된 눈두덩이를 찌푸리며 생각
에 잠겼다. 잠시 후 그 도시에는 도서관이 있었다는 칭코인의 안내
서를 떠올렸다. 과연, 이 짐승은 그 도시에 살고 있었구나.
  일은 점점 더 유리해지고 있었다. 어쩌면 칭코인들이 기록해놓은
거처럼 이 동물은 문자를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타르는 인간
의 문자를 읽을 수는 없었지만, 깨알처럼 적힌 것들이 그들의 문자
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두 권 모두 어린이용으로 한 권은 초등
교과서였고, 또 하나는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동화책인 것 같았다.
  인간은 심각한 표정으로  다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얘기를 걸
어 보았자  헛일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타르는  몹시 불쾌했다. 그
순간 머릿속에 번뜩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타르는 동물이 냈던 소
리를 생각해냈다. 단순히 울음소리라고만 여겼는데, 자세히 생각해
보니까 언어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인간이 체계를 갖춘 언어를 사
용한다는 것은 내 계획을  훨씬 앞당길 수 있는 이점이 될 것이다.
더구나 여기에는 교분이 있다.
  타르는 인간의 머리를  낚아채어 억지로 그를 쳐다보게 했다. 그
리고 책을 가리키며  인간의 머리를 그쪽으로 돌렸다. 그러나 인간
은 타르의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타르는 책을
조니의 얼굴에 바짝 들어대고 그 안을 가리켰다. 역시 아무런 반응
도 보이지 않았다. 인간은  읽지 않으려고 하든가, 읽을 수 없든가
둘 중 하나였다. 타르는  테스트를 계속했다. 타르는 책을 펼쳐 보
였다. 마찬가지였다. 동물은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분명한 것은 책이 녀석의 소지품 속에 있었다는 것이다. 책
은 가지고 있지만  읽지는 못했다. 그러나 타르 보안부장이 꿀벌그
림을 보여주자 인간은 반응을 나타냈다. 여우그림을 보여주었을 떼
도 알아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책을 집어들고, 활자만 있는
페이지를 보였을 때는 아무런 반응도 나타내지 않았다.
  겨우 알아차린 타르는 두  권의 작은 소책자를 웃옷 주머니에 집
어 넣었다. 그는 앞으로의 계획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생각을 더듬어보니까 칭코인의 구역에는 분명히 인간의 언어학습
용 디스크가 보관되어  있었다. 그들은 인간의 음식문화에 관한 자
료는 남겨놓지 못한  주제에, 언어에 대해서는 엄청난 연구를 해놓
았다. 역시 칭코인다웠다.  본질적인 것은 찾아내지 못하고 허상만
을 쫒아 하늘  끝까지 날아올라갔던 것이다. 타르는 내일의 스케줄
을 정리했다.
  타르는 목고리와 로프를 다시 한 번 살펴본 후, 자물쇠를 단단하
게 채웠다.

  (6)
  음침한 습기와 추위로 가득 찬, 말할 수 없어 처첨한 밤이었다.
  조니는 몇 시간 동안이나 철책에 매달려 있었다. 바닥이 온통 진
흙투성이여서 도저히 발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물이 넘쳐들어올
때 풀장 밑바닥의 모래와 쓰레기까지 휩쓸고 왔다가 빠져나가며 가
득히 펼쳐놓았던 것이다.  복사뼈까지 진흙에 빠질 정도였다. 그러
나 지칠 대로 지쳐버린  조니는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진흙 속에서
잠들고 말았다.
  한낮이 가까워오면서 진흙이 마르기 시작했다. 죽은 쥐들이 한쪽
구석에 떠내려가 있었지만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타는 듯한 갈증
을 달래줄 물이  필요했다. 조니는 진흙탕이 되어버린 바닥을 내려
다보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그 물은 마시고 싶지 않았다.
  조니는 처첨한 기분으로 앉아 있었다.
  괴물은 문 앞에 멈춰  서서 우리 안을 들여다 보았다. 손에는 금
속제 물건을 든 채  진흙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니는 잠시 동안 진
흙속에 앉아 있는 자신을 보고, 이 속에서는 잠을 잘 수 없다는 것
을 어떤 방법으로  이해시킬까 고심했다. 그러나 이미 괴물은 돌아
가버렸다.
  놈이 돌아올 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괴물은 다시 나
타났다. 역시 금속제  물건을 들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흔들거리는
거대한 테이블과 의자도  함께 가지고 왔다. 괴물은 그것들을 들고
작은 문을 통과하는 데 애를 먹었지만, 마침내 우리 안으로 들여놓
았다. 그는 테이블 위에  금속제 무건을 올려놓았다. 그 거대한 의
자기 자기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완전한 오해였다. 괴물
은 의자를 테이블 옆에 놓고는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의자의 다
리가 진흙 속에 깊이 박혔다.
  괴물은 역시 묘하게 금속제  물건을 가리키면서 두 권의 책을 테
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조니는 재빨리 책에 손을 뻗쳤다. 두 번 다
시 그 책을 볼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괴물은 조니의 손
을 가로막고 금속제  물건을 가리켰다. 그 물건은 기계장치인 듯했
다. 그 뒤쪽의 자루에는 직경이  두 뼘 정도 되는 원반 몇 개가 들
어 있었다. 괴물은 원반 하나를 꺼내서 바라보았다. 중앙에는 구멍
이 뚫려있었고, 구멍  둘레에는 야릇한 선들이 무수히 그려져 있었
다. 괴물은 원반을 기계  위에 올려놓았다. 조니는 항상 그를 경계
하고 있었다. 괴물은 하는 짓마다 교활하고 수상했다. 그동안의 시
행착오를 통하여 알 수  있었다. 앞으로 그가 할 일은 차분한 자세
로 잘  살펴보고 배우는 것, 그리고  기회를 봐서 탈출하는 것이었
다.
  그 기계의  앞면에는 창 두 개와  레버가 있었다. 괴물은 창들을
가리킨 다음 레버를 밑으로 내렸다. 조니는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
게 뒷걸음을 쳤다.
  기계가 말을 했던 것이다. 새벽이슬처럼 맑은 목소리로,
  "실례합니다만...."
  괴물이 레버를 위로  올리자 기계는 말을 중단했다. 조니는 조금
더 뒤로 물러났다.
  괴물이 다시 레버를 내리자 말을 이었다.
  "실례입니다만, 나는...."
  레버를 중아으로 돌려놓자  다시 정지했다. 또 레버를 올리자 원
반은 반대 방향으로  돌아갔다. 그것은 절대로 생명체는 아니었다.
귀도 코도 입도 없었다.  아니, 입은 있었다. 앞면 맨 아래에 동그
랗게 뚫려 있었다.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소리는 그곳에서 흘러나오
고 있었다. 더구나 그것은 조니의 언어로 얘기를 했던 것이다.
  괴물은 다시 한 번 레버를 내렸다.
  "실례입니다만, 나는 당신의...."
  이번에는 이상야릇한 선들이 불규칙하게 위쪽 창에 나타났다. 그
리고 아래쪽에는 묘한 얼굴이 보였다.
  다시금 괴물이  레버를 올리자 원반은  반대 방향으로 돌아갔다.
레버가 중아에 맞추어졌다. 괴물은 손톱으로 조니의 머리와 물체를
번갈아가며 가리켜댔다. 조니는  레버의 위치가 중앙에서 왼쪽으로
옮겨진 것을 깨달았다. 이번에는 좌우의 중간까지 이동시켜서 밑으
로 내렸다. 그러자 먼저와  다른 무늬가 위쪽 창에, 좀전의 얼굴이
아래 쪽  창에 나타났다. 나오는 소리는  소리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괴물은 페이스 마스크  뒤에서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는 듯했다.
괴물은 한 번 더  같은 동작을 되풀이한 후에 자신을 가리켰다. 순
간 조니는 그 소리가 괴물들의 언어라는 것을 깨달았다.
  조니는 참을  수 없는 호기심에 괴물의  손을 뿌리치고 금속장치
앞으로 손을 뻗었다.  테이블이 너무 높고 거대했기 때문에 기계에
손을 갖다대는 것은 무리였으나, 곧장 기계를 향하여 나아갔다.
  조니는 레버를 올려  왼쪽으로 움직이게 한 다음 밑으로 내렸다.
그러자 기계가 말을 했다.
  "실례합니다만 나는 당신의 지도원입니다...."
  같은 방법으로 오른쪽  위치에서 조작하면, 그가 알아들을 수 없
는 말로 이야기했다. 다시 레버를 중앙으로 옮겨서 같은 조작을 반
복하자. 사이클로어가 흘러나왔다. 괴물은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다
가 갑자기 기계를 집어들고 나가려는 자세를 취했다. 조니는 그 큰
손을 주먹으로 떨쳐버리고  레버를 왼쪽으로 넣어서 원반을 회전시
켰다.
  "실레입니다만,"
  기계는 말했다.
  "나는 당신의 지도원입니다."
  아래쪽 창의 얼굴은 두 번 머리를 숙이고 인사를 했다.
  "내 이름은 조즈  스탱크, 민족문화부 지구지국 언어과의 언어조
수입니다."
  위쪽 창에서는 여전히 야릇한 줄 무늬가 흐르고 있었다.
  "이것은 인간의 언어인  영어와 스웨덴어의 독해와 회화코스입니
다."
  "디스크의 왼쪽 트랙에는  영어가 들어 있습니다. 중아의 트랙에
는 같은 텍스트의 사이클로어가 들어 있습니다."
  "그것을 문자로 표기한 것이 위쪽 화면에, 그리고 그것에 해당되
는 그림이 아래쪽 화면에 나옵니다."
  "모든 지식은 사이클로  정부와 그 주요기업 중 하나인 인터캐랙
틱 광산회사의 것입니다."
  조니는 레버를 중아으로 되돌렸다. 그의 숨소리가 흥분으로 떨리
고 있었다. 그 언어는 억양이 독특했으며, 발음에도 어색한 부분들
이 많았다.  게다가 처음 듣는 단어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조니는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
  조니는 그것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아무리 봐도 기계였다.
살아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구나, 저 곤충도 생명체는 아니다.
조니는 괴물을  바라보았다. 이녀석은 도대체  어떤 속셈으로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일까? 괴물의  호박색 눈에는 다정함이라곤
전혀 없었다. 모닥불에 비친 늑대의 눈 같았다.
  괴물은 기계를  가리켰다. 조니는 레버를  왼쪽 밑으로 끌어내렸
다.
  "우선 알파벳부터  시작하기로 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시작되는
문자는 A입니다. 위의 화면을 보아주십시요."
  조니는 목소리가 지시하는  대로 그 기호를 보았다. "A부터 시작
됩니다. 그것은 또 PAT처럼 '아', PAY처럼 '에이', CARE처럼 '에',
FATHER처럼 '아-'라는  발음이 됩니다.  이것들을 언제라도 알아볼
수 있도록 잘  익혀두십시요. 알파벳의 다음 문자는 B입니다. 화면
을 보아주십시요. 그것은 BAT의 '브'라는 발음을 갖습니다...."
  괴물은 초등독본의 첫페이지를 열고 손톱으로 A문자를 두드렸다.
조니는 이미 양쪽이 같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 언어는 읽거나
쓸 수 있는 것이다. 이 기계는 지금 그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괴물은 일어나서 사  피트 아래에 있는 조니를 내려다보았다. 그
는 죽은 쥐 두  마리를 주머니에서 끄집어내더니 조니 앞에 늘어뜨
렸다. 조니는 마치  조련당하고는 있는 개처럼 느껴져서 그것을 받
지 않았다. 괴물은  어깨를 들썩이고는 떠들어댔다. 처음에는 알아
들을 수 없었으나,  괴물이 기계를 집어들려고 테이블에 손을 뻗는
순간 그 의미가 와닿았다.
  오늘의 학습을 마치겠다는 의미였음이 분명했다.
  조니는 재빠르게 기계  위에 놓인 괴물의 손을 떨쳐냈다. 그리고
는 반향하듯이 기계와 괴물  사이에 가로막고 서서 그의 손을 손을
막았다. 만일 괴물이  손을 휘두른다면, 조니는 우리의 반대편까지
날아가버릴 상황이었다.  어쩌면 어쩌면 심한  상처를 입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조니는 계속 버텼다. 괴물도 우뚝 선 채 머
리를 갸우뚱거리며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질렀지만 조니는 물러서
지 않았다. 괴물은 계속 으르렁거렸다. 조니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
다. 괴물이 웃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때 괴물의
벨트 버클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하늘을 뒤덮은 구름과 연기 그림.
그것은 조니의 종족이 멸명한 때의 전설을 상기시켜주었다.
  괴물의 웃음소리가 조니의  귀에 울려퍼졌다. 비웃는 듯한 웃음,
천둥소리처럼 울리는  웃음이었다. 괴물은 몸을  돌려 우리 밖으로
나갔다. 문에 자물쇠를 잠그면서도 계속 웃고 있었다.
  조니는 결심했다.  좀더 많은 것을 알지  않으면 안된다. 행동은
그 다음부터다.  기계는 아직 테이블 위에  있었다. 조니는 레버를
잡았다.

  (7)
  한여름의 태양빛이 진흙을  말려놓았다. 하늘에는 군데군데 흰구
름이 떠 있었다. 그러나 조니에게는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이 없었
다. 그는 오로지 학습기계에 집중하고 있었다.
  조니는 의자를 움직여놓고  접어놓은 가죽으로 의자의 높이를 조
절한 후에야 테이블에  바짝 당겨앉을 수 있었다. 나이든 칭코인과
가깝게 마주보고 있었다.  화면 속의 칭코인은 매우 정중한 태도로
학습자에게 굽실거렸다.
  영어의 알파벳을 익히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사이클
로어를 익히는 일은 그 몇 배나 어려웠다. 문자의 기호나 표식들이
스크린 속에 무수히 나타나  있었지만, 그 의미는 도무지 알 수 없
을만큼 복잡했다.
  일주일이란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조니는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
하자 점점 더 의욕이  생겼다. 조니는 너무 간단한 것이 오히려 의
심스러울 정도였다. 화면을 보지 않고도 정확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화면을  곁눈질하면서 사이클로어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소리의 진동을 통하여 발음의 미묘한 차이점까지도 구별해낼 수 있
었다.
  언어를 완전히 익히게 되었을 무렵이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맑고
화창했다. 괴물이 문을 열고 요란스럽게 으르렁거리면서 들어왔다.
괴물은 쉬지 않고 고함을 쳐댔다. 요란한 고함 탓에 우리의 철책이
흔들렸다. 괴물은 기계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레버를 지금까지보
다 한 단 더  아래로 힘껏 내렸다. 조니는 레버가 이단으로 움직이
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그림과 소리들
이 뛰어나왔다. 늙은 칭코인인 영어로 말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지금부터  대상, 상징, 단어  사이의 상호관련에 대한
연습을 시작합니다."
  같은 계열의 그림이 나타났다. 그것에 이어서 H발음과 그림이 등
장했다. 그리고 H와  비슷한 발음의 사이클로어가 발음과 그림으로
여러 차례 제시되었다. 과정이 반복될수록 조금씩 속도가 빨라지더
니 마침내는  거의 식별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도니는 너무나
당황하여 괴물이 떠나간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조니는 이번에는 기준보다 한 단 더 올려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레버를  작동시킨 순간 너무 놀라 뒤로 넘어
질 뻔했다.  하지만 곧 침착성을 되찾은  조니는 기계에서 몇 발짝
물러서서 똑바로 쳐다보았다.  도대체 무엇이 나오는 걸까, 태양광
선인가. 조니는 조심스럽게  그곳에서 쏟아져나오는 빛을 손바닥으
로 받듯이 쐬어보았다. 따뜻하면서도 따끔따끔한 감각이 느껴졌다.
조니는 신중하게 그 빛을 바라보면서 화면에 나타난 그림을 주시했
다. 그러자  소리가 묘한 느낌으로 들려왔다.  귀가 아니라 머리에
직접 울리는 느낌이었다.
  "당신의 잠재의식 속으로 알파벳이 들어갑니다. A, B, C......"
  조니는 손을 통해 듣고 있는 듯했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이
었다. 들리는 것이라곤  종달새 울음소리뿐이었다. 소리가 아닌 무
엇인가가 기계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조니가 한 발짝 더 뒤로 물러서자 그 감각은 둔해졌다. 이번에는
좀더 가까이 다가가보았다.  그러자 머리가 불타는 듯한 느낌이 전
해져왔다.
  "이번에는 같은 음을 사이클로어로 말해봅니다......."
  조니는 목고리와 연결된 로프가 허용하는 한 기계에서 멀리 떨어
져서,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고민하기  시작했다. 상징과 발음을
통한 단어의 상호관련 연습은 학습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한 것이리
라. 머지 않아 그 언어들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최소
한 그것만은 조니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계에서 나오는 광
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막막했다.  조니는 상급단계로 보이는
원반을 찾아내어 기계에 앉고 레버를 맨 위까지 힘껏 올렸다.
  순간 조니의 머릿속이 밝게 빛나는 듯했다. 만일 삼각형의 세 변
의 길이가 같다면, 세  각의 크기도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니는
뒤로 물러나서 다시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문득 손가락으로 흙
위에 세 개의 각이  있는 도형을 그렸다. 조니는 각이 있는 부분의
안쪽을 쿡쿡 찔렀다. 그리고 깊은 생각에 잠긴 채 중얼거렸다.
  "그것들은 모두 같다."
  하지만 조니는 그것들이 모두 같다는 사실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혼란스러워졌다.
  조니는 기계를 바라보았다. 아주 평범한 방법으로 인간을 가르치
는 기계였다. 학습속도를 빠르게  할 수도 있었고, 광선을 통해 매
우 부드럽게 순간적으로 가르칠 수도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기발
한 생각을 떠올리며 조니의 얼굴은 기쁨으로 환하게 밝아졌다.
  알파벳? 그런 사소한  것들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사이클로인들
의 문명을 총체적으로 배워야 한다. 괴물은 이 기계의 원리를 짐작
도 못 할 것이다.
  그 후로 조니의 모든 시간은 원반더미에 둘러싸여졌다. 최소한의
수면시간을 빼놓고는 학습기계에만  매달려 있었다. 그림을 이용한
보통단계의 학습, 가속으로  실시되는 상호관련 연습, 그리고 태양
광선을 활용했다.
  항상 허기에  지쳐 있는 조니에게 평안한  잠은 없었다.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며  식은땀을 흘렸다. 죽은  사이클로인과 죽은 쥐가
뒤엉키고, 그  쥐들은 기계장치된 하늘을  날아다니는 말을 추적했
다. 꿈곳에서도 학습기계의  원반은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
러나 조니는  학습을 멈추지 않았다.  수년씩 걸리는 교육이었지만
하루라도 빨리 마릿속에  집어넣어야 했다. 학습해야 할 내용은 아
직도 많이 있었다. 조니는  그 모든 것을 완전히 익혀야 한다고 결
심했다.
  조니의 마음속에는 오직 단 하나의 목적밖에 없었다. 복수. 자신
의 종족을 멸망시킨 것에 대한 복수.... 복수!

  (8)
  지구행성의 총책임자인  혹성장관으로부터 호출명령을 받기 전까
지 타르 보안부장은 우리  안의 인간을 생각하며 흐뭇함 미소를 짓
고 있었다.
  인간을 가둬둔 지도 벌써 수주일이나 자나, 무더위가 수그러지고
소슬바람 부는 가을이 찾아왔다. 인간은 그런대로 잘해나가고 있었
다. 깨어 있는 동안은 오로지 학습기계 앞에 앉아 있었다.
  아직 말을 시켜보지는 않았지만 인간은 지능이 낮은 동물에 지나
지 않았다. 가르쳐주지 않았으면 점진적 상호관련의 원리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순간개념  지식장치 앞에 똑바로 서서 두개골에 출
력파를 받아야 한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바보 같은 녀석이다.
이런 식으로 나가다가는 주입식 교육만 시키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 뻔했다. 쥐를 날로 먹는 동물이 아닌가. 그다지 큰 기
대를 걸어서는 안될 것이다.
  인간은 그가 찾아갈 때마다  적의에 가득 찬 묘한 푸른색 눈동자
로 뚫어질 듯  노려보곤 했다. 하지만 타르에게는 신경쓸 가치조차
없는 일이었다. 만일  동물이 섣부른 짓을 벌이면 곧바로 기화시키
버리면 그만이었다.  레이저 총의 버튼을 한  번만 누르면 곧바로,
핑. 그것으로 인간은 형체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기화형은 마음먹
기에 달린 것이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넘프 장관이 무엇을  찾아냈는지,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알 수가
없었으므로 그가 호출하는  일은 좀처럼 드물었다. 그런데 그가 보
안부장을 호출한 것이었다.
  복잡한 명령계통 때문에  타르 보안부장은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을 넘프  장관의 직접적인 통솔권  안에서 통제받지는 않았었다.
타르는 다소  의혹을 가라앉혔다. 실제로  보안부장이 혹성의 장관
정도는 면직시킨 사례가  있었다. 물론 범죄에 깊이 연루된 사건이
었지만, 그러나 넘프 장관은 지구혹성을 총괄하는 행정부서의 장이
었고, 업무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은 그의 의무였다. 그가 지긋지긋
한 지구행성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판단자료는 보고서밖에 없었
으므로 타르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업무였다.
  어젯밤 늦게  호출명령이 내려왔다. 타르  보안부장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자리에 들었지만 넘프 장관과의 대화를 상상해가
면서 몸을 뒤척이다가  일어나곤 했다. 그 치명적인 보고서를 검토
해보기도 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넘프 장관에게 압력을 가
할 만한 꼬투리를  찾아두려고 했다. 그러나 서류상에 나타난 그의
경력에는 문제될 만한  것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타르는 우울해
졌다. 항상 그래왔듯이 그는  협박에 쓸 만한 약점을 잡고 있을 때
만 자신감이 들곤 했다.
  드디어 타르는  넘프와의 대화를 위해  방을 나섰다. 사이크로의
최고 권력자 사무실에 들어서자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혹성장관 넘프는 이미 노인이었다. 그는 회사의 중앙 중역회로부
터 제명되었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그것도 특별한 사건이 아
닌 오로지  구제할 길이 없는 그의  무능력 때문이었다.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먼  오지, 즉 지구행성으로 보내졌다는 소문이었다. 이
용가치가 없는 은하의 변방혹성, 그곳으로 무능한 자를 보내버리고
잊으면 그만이었다.
  넘프 혹성장관은 책상보가 깔린 커다란 책상을 등지고 멍하니 앉
은 채 결재서류의 한쪽 귀퉁이를 무료하게 씹었다 뱉으면서 기밀실
을 통해 보이는  출하센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타르 보안부장은 허
리를 낮추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넘프의 머리칼은 단정하게 빗겨
져 있었다. 별고 화가 나  있는 것 같지 않은 호박색 눈은 깊은 생
각에 잠긴 듯했다. 넘프는 여전히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앉게나."
  노인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명령에 따라서 출두했읍니다. 장관 각하."
  늙은 사이크로인은  책상 쪽으로 돌아앉았다.  그는 몹시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알고 있네."
  넘프 혹성장관은 타르를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싫어하지도
않았다. 지구혹성에 근무하는  관리직들은 모두 무능력자로 낙인이
찍혀 있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다른 혹성에서 직책을 맡고 있을 때는 모두가 이곳에서보다는 인재
들이었다.
  "매출이 자꾸만 떨어지고 있네."
  넘프 장관은  결재서류판을 책상 위에  내동댕이쳤다. 책상 위에
있던 두 개의 카방고  컵이 달그락 소리를 냈다. 넘프 장관은 타르
에게 그것을 권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 혹성의 광맥이 이제 바닥난 것입니까?"
  "그렇지는 않네. 아직도 수백 년이나 더 파낼 수 있는 광맥은 있
지. 다만 그것은  기술개발부의 문제지 보안부와는 관계가 없는 일
이네."
  타르는 기분이 몹시 상했다. 이런 식으로 대접받는 것음 매우 언
짢은 일이었다.
  "회사의 시장 곳곳에서 경기가 침체되어가고 있다는 말들을 듣고
있습니다. 가격이 내려가고 있는 것이라든가...."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것은 본사 경제부 소관이지 보안부
와는 관계가 없는 일일세."
  두 차례나 면박을  당하자 타르는 슬그머니 화가 치밀었다. 거대
한 몸을 싣고 있는  그의 의지가 불편한 심정을 대신하기라도 하듯
삐걱거렸다.
  넘프 장관은 다시  결재서류판을 만지작거리다가 역시 불쾌한 표
정을 지으며 타르에게 향해 말했다.
  "생산원가가 문제야."
  타르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대답했다.
  "원가는 회계부의 문제지 보안부와는 관계없다는 일입니다."
  넘프 혹성장관은 흘끗 타르를 쳐다보았다. 타르가 의식적으로 그
런 말을 했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그의 말을 무시해버렸다. 넘프
는 결제서류판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폭동은 다르네."
  넘프 장관은 은밀하게  말했다. 타르는 순간 온몸을 바짝 긴장시
켰다.
  "어디서 폭동이 일어났습니까?"
  폭동이 일어났다는 소문은  전혀 들은 일이 없었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넘프는 보안부장이 모르고  있는 정보만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아직은 일어나지  않았네. 그러나  직원들의 급료를 삭감시키고
보너스를 전부 지급하지 않는다면 발생할 가능성은 있지."
  넘프의 발언에  타르는 몸을 부르르 떨며  머리를 앞으로 내밀었
다. 폭동은 그에게도  큰일이었다. 넘프는 결재서류판을 타르 쪽으
로 밀어보냈다.
  "인건비일세. 현재 이  혹성에서 조업중인 채굴장은 다섯 곳, 탐
사시굴용 기지는 세  곳이 있는데, 모두 삼천칠백열아홉 명의 직원
이 일하고 있네.  이것은 착륙장의 직원, 화물기의 탑승원, 그리고
출하계 직원도 포함한 숫자일세. 일 인당 평균 삼만 은하 크레디트
의 급여가 지불되니까  급여 총액은 천이백오십칠만 크레디트일세.
게다가 식료품비,  숫소유지비, 호흡가스가 일 인당  평균 오만 천
크레디트, 총액 오천오백십팔만  오천 크레디트가 되네. 게다가 보
너서와 운송비를 더하지  않으면 안되네. 이것만으로도 광물출하에
따른 소득액을 초과해버리는  셈이지. 더구나 여기에는 감가상각비
와 규모확대를  위한 재투자비용은 전혀 계산에  들어가 있지 않단
말일세."
  타르도 이런 일이  발생하리하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다. 다만 그
것을 그가  세워놓은 프로젝트의 구실로  삼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재벌그룹 인터개랙틱사가 급여를 삭감하고 보너스를 지불하지 못할
형편에까지 처해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만약 이 사태를 수습
한다면 타르 자신에게  직접적인 효력이 나타나겠지만 현재의 그가
버리고 있는 부와 권력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서서히 계획의 다음  단계를 추진할 때가 찾아오고 있었다. 동물
은 무척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아마 훈련을 시키면 초보적인 굴
착업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좀더 많은 동물을 끌어모
으는 데도 활용될  것이다. 대단히 위험한 작업이긴 하지만 틀림없
이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폭우로 울퉁불퉁해진
깎아지른 듯한 벼랑을  타고 황금광맥을 밤드시 채굴해야 한다. 동
물 대여섯 마리는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
는다. 어차피 황금이  손에 들어오면 동물들은 비밀이 새지 않도록
모조리 기화될 것이다.
  "출하량을 늘리는 것은 가능합니다."
  "타르는 자신의 계획 쪽으로 넘프 장관의 관심을 끌고 가려고 서
두를 꺼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일세. 인원이 한정되어 있으니까 말이야."
  타르는 귀에는 넘프의  한숨 섞인 말이 달콤하게 울려왔다. 그는
벌써 타르에게 미끼를 넣고 있었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타르는 넘프를 더욱 함정으로 끌고 갔다.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폭동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넘프는 음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폭동이 일어나면.... 노동자들은 우선 관리직들을 기화시키려고
할 것입니다."
  넘프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 호박색 눈에는 공포의 빛이 감
돌고 있었다. 타르는 멈추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저는 현재 그 문제와 씨름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시기장조이기는 했다.  타프도 이 면담에서 그 얘기를 꺼
낼 생각은 없었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다.
  "만일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예를 들어 급여삭
감잉 당분간이라는 것을  믿게 하고, 새로운 인원을 보충하지 않고
도 일에 지장이 없다면, 폭동의 위험은 훨씬 줄어들 것입니다."
  "그 말에는 나도 전적으로 동감일세."
  갑자기 넘프의 목소리가 커졌다.
  "우리들은 인원보충이나 추가지원을 모두 중지시켜놓고 있네. 따
라서 우리들의 설비는  최고 속도로 끊임없이 가동되고 있지. 벌써
지나차게 혹사당하고 불평하는 자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타르는 얘기를 꺼냈다.
  "그러나 제가 이  년 이내에 작업인원을 절반으로 감축시키기 위
한 프로젝트를  이미 추진중에 있다고  말씀드리면, 각하는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그것은 기적이라고 밖에 할 수가 없지."
  타르는 기대하고 있던 말이었다. 그러나 그의 프로젝트가 성공했
을 때 공로를  독차지하고, 본사에 있는 중역들로부터 포상과 능력
을 인정받는 것은 넘프일 것이다.
  넘프는 갑자기 열의를 보였다.
  "이 혹성을 좋아하는  사이클로인은 한 명도 없습니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서는 바깥을 걸어다닐 수 없으니까요...."
  "그 점이 바로 호흡가스의 단가를 증대시키고 있는 원인이세."
  넘프가 성급하게 까여들었다.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간단한 기계조작을 할 수 있고, 공
기를 마시는 종족을 작업원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넘프는 의자에 기대면서 의심스러운 듯이 말했다.
  "만일 자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그, 뭐라고 했더라.... 칭
코인이라면 그것은 틀렸네.  놈들은 이미 오래전에 전멸되어버렸으
니까."
  "칭코인이 아닙니다. 각하가  우리 회사의 역사에 정통하고 계시
다는 데는 감탄하고  있습니다만, 칭코인은 아닙니다. 현지에서 징
용할 수 있는 잠재노동력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어디에?"
  "현재소서는 그 이상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단지 그 프로젝
트가 진행중이라는 것과, 그 전망이 매우 밝다는 것은 거의 확실합
니다."
  "그것은 어떤 자들인가?"
  "글쎄요, 사실은 어떤  자들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고등한 동물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혹성에는 지성을 지닌 생명체가 있습니다."
  "그놈들이 뭘 생각한단 말인가? 얘기를 할 수가 있는가?"
  "그것들은 매우 뛰어난 손재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넘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화를 할 수가 있느냔 말일세. 자네는 그놈들과 위사소통을 할
수 있느냐고?"
  "네."
  타르는 실제로 알고 있는 것보다 다소 과장해서 대답했다.
  "그놈은 얘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아주 먼  남쪽 대륙에는 얘기하는 새가  있네. 한 광산관리자가
나한테 한 마리 보내왔거든. 사이클로어로 말을 하더군. 정말일세.
나는 그것을 공기돔에서  기르고 있었는데, 담당직원이 공기저장통
을 새것으로  교환해주어야 할  시기를 잊어버려서  그만 죽어버렸
지.... 음."
  넘프는 양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새가 손재주가 있다니...."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결코 새가 아닙니다."
  타르는 넘프의 지레짐작을 가로막았다.
  "그것은 작은 동물로, 두 개의 팔과 두 개의 발을 갖고...."
  "원숭이로군! 타르, 설마 자네는 지금 제정신으로?"
  "아닙니다. 원숭이가 아닙니다. 원숭이에게 기계를 조작할 수 있
도록 가리친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있는 것은 바
로 인간입니다."
  넘프는 한참 동안 타프를 응시하고 나서 말했다.
  "그러나 인간은 거의 생존하고  있지 않는 걸로 알고 있네. 만일
자네가 말하는 것과 같은 일을 할 수 있다고 해도 그 수가 너무 적
어서...."
  "그렇습니다. 인간은 멸종 직전의 종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것이 무슨 말인가?"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몇 명  안되는 숫자로 우리들의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에는...."
  "각하,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아직 현존하는 인간의 숫
자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러나 몇  년 동안 어는 누구도  인간을 보았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네, 타르."
  "저의 무인정찰기가  인간의 존재를  탐색하고 있습니다. 저곳에
보이는 산에는 서른다섯 명이  살고 있으며, 그 밖의 다른 여러 대
륙에는 좀더 많이 있습니다.  만약 좀더 철저히 조사할 수 있는 장
비를 제공해주신다면, 수천  명은 모을 수 있으리라고 믿고 있습니
다."
  "뭐, 장비라고? 경비가 많이 들 텐데...."
  "아닙니다. 그렇게 많이 들지는 않습니다. 저는 솔선해서 경비삭
감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무인정찰기의 수를 줄였습니
다. 그런데 인간  말입니다만, 그들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급속하게
번식할 것입니다.
  "그것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페이스 마스크 없이는  일할 수 없는 곳에서도 기계를 조작하는
일입니다. 우리 작업인원의  칠십오 퍼센트가 현재 그 일에 종사하
고 있습니다. 트랙터라든가 적재용 크레인 등을 작동시키는 작업입
니다. 그것들은 숙련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 아닙니다."
  "흠, 나는 잘 모르겠네. 만약 인간을 본 자가 있다면?"
  "제가 한 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뭐라고?"
  "바로 이곳에서 키우고 있습니다. 기지 옆에 있는 동물우리에 가
두어 기르고 있습니다. 멀리 나가서 생포한 것입니다. 다소 곤란은
있었습니다만 학창시절  저의 사격성적이  매우 우수했기 때문에..
.."
  넘프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흠.... 그 동물우린가 뭔가 하는 곳에 묘한 동물이 있다는 소문
은 들은 것 같군.  광산관리자 중 하나인.... 에에.... 그렇지, 챠
였어. 챠가 그것을 비웃고 있더군."
  "만약 그것이 급여나 이윤에 영향을 주게 된다면 웃을 일이 아닙
니다."
  타르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지, 동감일세. 챠는 옛날부터 멍청이였으니까. 그래서 자네
는 작업원 대신 쓸  수 있는지 동물을 테스트하고 있는 거로군. 과
연, 잘하는 일일세. 아주 잘하는 짓이야."
  "그래서 말씀입니다만,"
  타르는 조급한 심정으로 서둘러 말을 재촉했다.
  "저에게 수송에 관한 총괄위임서를 부여해주신다면...."
  "물론 그래야겠지,  그런데 그 동물을  좀 보여주겠나? 그러니까
그것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보아야 하니까 말일세. 사고
가 발생해도 사망보상금을  지불할 필요가 없어진다면 적자에서 벗
어날 수  있을 걸세. 아니 그것을  최소한으로 억제할 수만 있어도
말일세. 그런데 동물을  사용할 경우 기계의 파손율이 높아질 가능
성도 감안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본사는 기계들이 파손되는 것
을 좋아하지 않을 테니까 말일세."
  "제가 인간을 생포한 것이  불과 몇 주일 전의 일이기 때문에 기
계조작 훈련을 시작하려면 좀더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각하,  머지 않아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좋아. 그 준비가 되거든 나에게 알려주게. 그리고 훈련중이라고
했는데, 열등종족에게 광산채취나  처리가공 및 전투기술을 가르치
는 것은  위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겠지?  설마 그런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닐 테지?"
  "물론입니다. 단순히 기계를  조작하는 방법뿐입니다. 버튼과 레
버를 누르거나 잡아당기거나 하는 것뿐입니다. 게다가 인간에게 작
업명령을 내리기 위해서는 언어도 가르쳐야만 합니다. 준비가 갖춰
지는 대로 시범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만약 소송
에 대한 총괄위임서를 하루라도 빨리 부여해주신다면...."
  "내가 테스트를 해보고 나서 써줘도 충분한 시간이 될 걸세."
  타르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준비해온 위임명령서 용지를 주머니
에서 써내려고 하다가  다시 집어넣었다. 이것에 대해서는 뭔가 다
른 획기적인 방법을 생각해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계략을 꾸
미는 것은 타르의 특기였다. 어쨌든 이 면담은 의외로 상당히 상곡
적이었다. 타르느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바로 이어진 넘프의 말은 타르의 유쾌해진 기분에 더러운
광산찌꺼기를 일시에 퍼붓는 꼴이 되어버렸다.
  "타르."
  넘프가 나직히 불렀다.
  "자네의 협조에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네. 얼마  전 자네가 이
지역에서 근무를  연장하게 됐다는  급송문서가 본부로부터 도착했
네. 알고 있다시피  본부에서는 무슨 일이든 이미 오래전에 결정해
두고 있다네. 이번의  인사이동에는 사이클로별에서 외지경험이 있
는 보안부장을 필요로  하고 있다더군. 그래서 자네가 적임자가 아
니겠느냐고 통고해왔지 뭔가. 나는 그것을 거절했네. 자네 말을 들
으니 내가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군.  나는 자네를 다시 십년
간의 지구근무에 추천해두었네."
  "저의 임기는 앞으로 이 년 뿐입니다만."
  타르 보안부장은 깜짝 놀라서 물었다.
  "나도 알고 있네,  알고 있다구. 그러나 우수한 보안부장은 어디
서나 소중한 것이라네.  자네가 지구혹성에서 필요한 인물이었다는
것은 자네의 기록에도 마이너스는 안될 걸세."
  타르는 가까스로 문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 복도로 나왔을 때는
온몸의 기운이  쭉 빠져 있었다. 내  스스로 직접 함정에 뛰어들다
니. 이 저주받은 혹성에서 내 스스로 함정에 빠져버리다니. 빛나는
황금광맥이 산속에 파묻혀  있다. 비밀보물을 캐내는 데는 이 년이
면 충분하다.  따라서 이곳의 임기가 끝나는  이 년 후에는 나에게
찬란한 부와 영광이 안겨질 것이다. 나의 계획은 다른 점에서는 모
두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인간까지도 자기가 맡은 역할을 충
분히 해나가고 있지 않은가. 모든 일이 계획대로 잘 되어가고 있는
데, 앞으로 십년을 더 근무하라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넘프의 치명적인 약점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된다. 놈의 약점을.

  (9)
  그것은 날카롭고 커다란  폭발음이었다. 닷새마다 규칙적으로 우
리와 기지 전체를 뒤흔드는 둔탁한 굉음과는 전혀 달랐다.
  조니는 약간의 요령과  날렵한 몸동작으로 우리의 철책을 기어올
라갈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의 모서리 부분을 이용하는 것
이었다. 그 위에서 양다리로 버티고, 몸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으면
까마득히 먼 산맥과 평원, 그리고 기지 전체까지 내려다볼 수 있었
다. 철봉이 교차한 곳에 발을 올려놓고 있으면 위태롭긴 했으나 의
외로 꽤 느긋하게 버틸 수 있었다.
  겨울이 깊어가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산봉우리들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하늘이 회색빛으로  가려져 있고 안개가 자욱해서 산은 보
이지 않았다.
  기지 동쪽에  기묘하고 거대한 플랫폼이  있었다. 그것은 일정한
간격으로 줄지어  있는 기둥들과 철사로  둘러싸여 있었고, 바닥은
빛나는 금속으로 되어 있었다. 남쪽의 돔식 건물에서는 사이클로인
들이 바삐 들락거리고  있었다. 북쪽에는 거대한 광장이 있어서 원
통형의 기묘한 비행기가 발착하곤 했다. 비행기는 언제나 흙먼지를
흩날리며 착륙했다. 비행기의 양쪽 문이 열리며 바윗덩어리들을 토
해내고는, 다시 떠올라 점점 작아지며 시평선 너머로 사라져갔다.
  토해낸 바윗덩어리들은 높은 탑과 탑 사이를 움직이는 벨트 위에
실려져서 플랫폼의 빛나는  바닥에 옮겨졌다. 바윗덩어리를 나르는
비행기들은 매일 그것들을  실어왔으므로 닷새쯤 지나면 광장 위에
거대한 바위산이 생겨났다.
  가장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그때부터였다. 닷새마다 정확하
게 같은 시각에 부응  하는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그 소리와 함께
광장위에 쌓인 물질들은 잠깐 동안 강렬한 빛을 냈고, 잠시후 천둥
소리같은 굉음이 일어나면서 광장 위의 물질들은 사라져버렸다.
  조니는 철책 꼭대기에서 여러  가지 알 수 없는 물건이나 일들을
보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그의  관심을 끄는 것은 짧은
순간 물건드링 사라져버리는  현상이었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버
리는 것일까.
  그때까지 조니는 그  광경을 여러 차례 보아왔다.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날부터 시간,  분에 어르기까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
다. 남쪽의 돔이 빛나기  시작하고, 플랫폼 주위의 철사가 부웅 하
는 소리를  내며 진동하고, 잠시 후  굉음과 함께 산더미처럼 쌓인
바윗덩어리들이 일시에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물질을 벨트까지  실어나르는 기계들 중
한대가 폭발했다. 많으 사이클로인들이 주위에 모여들었고, 몇몇은
운전사를 돌보고 있었다.  다른 자들은 화염에 휩싸인 기계의 불을
끄려고 했다. 그 기계는  앞쪽에 거대한 날이 달려 있었고, 운전석
은 반원모양의 투명한  유리뚜겅으로 덮여 있었는데 그 유리뚜껑은
이미 날아가버리고  없었다. 어디선가 땅딸막한  차가 급히 나타났
다. 사이클로인들이  땅바닥에 쓰러진 운전사의  몸을 들어올려 그
차 안으로 옮겨넣자 차는 어디론가 달려가 버렸다.
  앞쪽에 날이 달린 기계 한 대가 와서 부서진 차량을 옆으로 치우
고, 바윗덩어리들을 벨트가지 밀고 가는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모
여 있던 사이클로인들은 각자 자기 일터로 돌아갔다.
  조니는 사고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한참 동안 철책 위에서 상황
을 지켜보았지만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 철책이 심하게 흔들렸다. 사이클로인의 발소리였다. 조니는
바닥으로 내려왔다. 괴물은  안으로 들어왔다. 조니를 똑바로 노려
보았다. 요즘은  괴물은 무척 변덕이 심했다.  자상할 때가 있는가
하면, 짜증을 내거나 몹시  화를 내기도 했다. 괴물은 기분히 대단
히  나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난폭한 몸짓으로 조니와 언어학습기
를 번갈아가며  가리켰다. 조니는 숨을 들이  깊이 들이쉬었다. 몇
개월 동안  최소한의 수면시간 외에는 언제나  이 기계에 매달려서
계속 공부하고  있었지만, 정작 괴물한테는  아직 한마디도 얘기한
적이 없었다. 조니는  용기를 내어 처음으로 사이클로어로 말을 했
다.
  "고장났다."
  괴물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조니를 보았다. 그리고는 기계가 있
는 곳으로  가서 레버를 밑으로 내렸다.  기계는 작동하지 않았다.
괴물은 마치 조니가  그 기계를 고장냈다는 듯 쳐다보았다. 기계를
집어든 괴물은 기계의 뒤쪽을 들여다보았다. 조니에게 있어서 이것
은 엄청난 일이었다. 조니는 테이블 위에서 일인치도 움직일 수 없
었다.
  기계는 바로 오늘 아침, 폭발이 일어나기 조금 전에 작동을 멈췄
다. 조니는 가까이 다가가서 괴물이 하고 있는 일을 들여다보았다.
괴물이 바닥의 작은  관을 떼어내자 조그만 버튼이 떨어졌다. 괴물
은 버튼 위의  숫자를 읽은 다음 기계를  옆으로 뉘어놓은 채 우리
밖으로 나갔다. 한참 후 괴물은 다시 버튼을 가지고 돌아와서 그것
을 같은 장소에 집어넣고, 바닥판을 다시 전처럼 끼워넣었다. 기계
를 일으켜놓고 레버를 내리자 원반이 회전하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실례입니다만 덧셈과 뺄셈을...."
  괴물은 레버를 중립 위치에 놓은 후 조니를 재촉하듯이 손톱으로
기계를 가리켰다. 조니는 다시금 대담하게 사이클로어로 말했다.
  "그것은 이미 알고 있다. 새로운 디스켓이 필요하다."
  괴물은 그 전에 놓고 갔던 여러 장의 디스켓들을 바라보았다. 몇
백 시간 분량이었다. 괴물은 조니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서 괴물
은 기계  뒤쪽에서 디스켓 세트를 안고  돌아와서 기계에 하나하나
집어 넣었다. 그 전에 걸려 있던 원반들을 모두 빼내고, 새로운 디
스켓으로 갈아끼우고는 다시 조니와 기계를 번갈아가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분명히 조니에게 공부를 계속하라고 지시하고 있었다.
  조니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그리고 사이클로어로 말했다.
  "인간은 날쥐고기와 더러운 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괴물은 그곳에 우뚝  선 채로 조니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한동안 조니를 바라다보았다.

  (10)
  타르는 자신의 파워에  대해 깊이 신경쓰고 있었다. 그는 노련한
보안요원으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했다. 자신
을 유리한 입장에 두기  위해, 언제나 약점을 최대한 이용했다. 협
박은 그의 특기였다. 약점을 이용한 협박은 쉽게 굴복시킬 수 있는
절대적인 방법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것이 순간적으로 역전되어버
린 느낌을 받았다. 인간은 오히려 자신이 유리한 입장으로 이 기회
를 활용한다는 기색이었다.
  타르는 가만히  앉아서 인간을 관찰했다.  동물이 계획을 눈치챈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 어쩌면 계획을  앞당기기 위해 녀석에게
지나친 열성을 보였던  것이 잘못인지도 모른다. 그는 동물에게 지
나친 호의를 베푼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게 아닌가 점검해보았다.
  대접을 너무 잘해준 것이 분명했다. 녀석이 굶어죽을까봐 일부러
기지 밖에까지 나가서  쥐를 잡아다주었고 물도 주었다. 무엇을 먹
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얼마나 머리를 써가며 고생을 했는가. 그런
데도 녀석은 건방지게 으스대면서  그런 것은 먹을 수 없다고 투정
을 부리고 있다.
  타르는 인간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아니다, 건방지게 으
스대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상당히 고통스러워 보였다. 낡은 외
투를 몸에 감았지만 추위 때문에 얼굴은 파랗게 질러 있었다. 개울
물은 살얼음 밑으로 흐르고 벌써 연못들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타르는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리 안도 이전만큼 더럽
지는 않았다. 분명히 동물은 배설물을 어딘가에 치우고 있었다.
  "이봐, 동물,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 좋을 거야. 그 쪽이 너를 위
하는 길이니까."
  동물의 약점을 쥐지  못한다면 차라리 강경하게 밀어붙히는 방법
이 낫다고 타르는 판단했다.
  "겨울의 날씨는,"
  조니는 다시 말을 시작하려고 했다.
  "기계에는 좋지 않다. 밤이나  비가 내릴 때는 기계를 내 사슴가
죽으로 싸놓고 있다. 또한 습기에도 약하다. 기계는 녹슬기 직전에
있다."
  타르는 웃음이 터져나올 것만 같았다. 동물이 사이클로어로 말하
는 것이 매우 우스웠다.  발음에 많은 사투리가 섞여 있었다. 아마
칭코인들의 사투리일 것이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타르가 디스켓을 돌렸을 때 칭코인은 쉴새
없이  '용서해주십시요.'실례합니다만'과 같은  존댓말을 연발하고
있었는데, 인간의 말에는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
  칭코인들은 이미  멸종되어버렸으므로 타르는  그들을 만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다른  혹성에서 수많은 노예종족들을 만났었다. 그
들은 한결같이 극도로  겸손한 말투를 쓰고 있었으며, 당연히 그래
야만 했다.
  타르는 동물을 타이르기 시작했다.
  "이봐, 동물,  너는 말을 할 수  있는지는 몰라도 예의라는 것은
모르고 있군. 내가 가르펴줄까?"
  타르의 거대한 손으로 얻어맞으면 조니는 철책이 있는 곳까지 날
려가버릴 테지만, 그는 전혀 겁내기 않았다.
  "내 이름은 동물이 아니라 조니 굿보이 타일러다."
  타르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를 바라보았다. 분별도 체면도 없는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르의 손이 조니를  후려치는 순간 조니는 날아갔다. 기둥에 묶
인 로프가 날려가는 그의  몸을 휙 하니 끌어당기는 바람에 금속목
고리에 걸려 하마터면 목이 부러질 뻔했다. 타르는 우리 밖으로 나
가서 문을 거칠게  닫았다. 거친 발소리가 멀어져가며 대지를 뒤흔
들었다. 기지 밖의 현관  근처에서 타르는 멈춰 섰다. 그는 그곳에
서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눈으로 덮여가는 회백색의 세계를 둘러
보면서, 마스크의 차가운  유리가 자신의 시선을 가로막는 것을 느
꼈다. 그에게는 혐오스럽기만 한 혹성이었다.
  타르는 방향을 바꿔서  다시 우리로 돌아갔다. 문을 열고 인간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인간을 안아올려 눈덩이로 목의 피를 닦아
준 다음 테이블 앞에 데려다놓았다.
  "내 이름은 타르다.  그런데 우리들의 얘기는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었지?"
  그러나 타르는 조니르  계속 동물이라고 불렀다. 다른 말로 부른
적은 한번도 없었다.  사이클로인들은 자신이 지배종족이라는 것을
항상 내세우고 있었다.  우주 최강 최대의 종족인 것을 자랑거리고
삼곤 했다.
  인간 따위는.... 쓰레기에 불과했다.

  제 1 권
  지구선선

  제 3 부
  약점이다, 놈의 약점만 잡는다면....

  (1)
  즈즈토 수송주임은 공장 안을 시끄럽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도구를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부품들을 집어던지며, 주위에 온통  짜증스러운
소음을 내고 있었다.
  즈즈토는 타르가 옆에 서 있는 것을 보자 당장 싸움을 걸어왔다.
  "당신이 이번 급료삭감 조치의 배후인물이오?"
  타르는 온건하게 답변했다.
  "그것은 회계부 소관이겠지, 안 그런가?"
  "어째서 내 급료가 깎인 거죠?"
  "자네 급료뿐만이  아닐세. 내 급료도  다른 사람들의 급료도  모두
깎인거야."
  "나는 평소보다  세 배나  일하고 있는데 조수마저  빼앗겨버렸다구
요. 그런데 이번에는 급료가 절반이나 깎였다구요."
  "이 혹성의 경영상태는 적자란 말일세."
  "그렇다면 보너스도 없겠군요."
  즈즈토가 분에 복받친 목소리로 말하자 타르는  양미간을 찌푸렸다.
이래 가지고는 부탁하기  틀렸군. 녀석의 약점을 잡고 있으면  좋으련
만. 요즘 그는 어떠한 약점도 전혀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최근 들어 기계고장이 잦은 것 같구먼."
  즈즈토는 타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를  쏘아보았다. 보안부장
의 말에는 웬지 협박의 기미가 배여 있었다. 타르라는  녀석의 속셈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무엇을 원하는 거죠?"
  "나는 적자문제를 일시에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  손
을 대고 있네. 물론  이 계획이 잘되면 우리들의 급료와 보너스도  종
전대로 받을 수 있게 되지."
  즈즈토 수송주임은 그 말을 무시했다. 보안부장이  귀가 솔깃해지는
얘기를 끄집어낼 때는 일단 경계하는 쪽이 현명했다.
  "무엇을 원하는 거요?"
  "이 계획이 성공한다면  급료도 보너스도 종전보다 훨씬 많이  올라
같지 모른다니까."
  "이봐요, 나는 바쁜  사람이요. 여기 산더미처럼 쌓인 고장난  차들
이 보이지 않소?"
  "광산용 소형 견인차를 빌리고 싶네."
  즈즈토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타르의 주문에 야유하듯이 웃어댔다.
  "한 대 있어요. 어제 출하장에서 폭발한 것인데  그것을 가져가십시
요."
  브레이드가 달린 소형  견인차는 운전석의 지붕이 날아가고  없었으
며, 초록색  피가 여기저기 달라붙어  있었다. 내부의 배선들은  모두
검게 그을어 있었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소형 견인트럭일세. 기본적인  기능만 있어
도 되네."
  즈즈토는 작업장으로 되돌아가서 도구와 부품들을  신경질적으로 내
동댕이치기 시작했다. 하마터면 맞을 뻔하기도 했다.
  "어떻게 할 건가?"
  "위임명령서는 가지고 있소?"
  즈즈토가 물었을 때 타르는 우물쭈물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럴 줄 알았지."
  즈즈토는 멈춰 서서 타르를 노려보았다.
  "보안부장님, 정말로 이번  급여삭감 조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거요?"
  "왜 그런 말을 묻는 거지?"
  "부장님이  혹성장관과 얘기를  나누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더군
요."
  "통상적인 보안업무였네."
  "쳇!"
  즈즈토는 부서진 차의 공기밀폐 장치를 떼어내기 위해  차의 지붕유
리를 해머로 두들기기 시작했다. 타르는 돌아갈 수밖에 옶었다.
  약점! 녀석의 약점만  잡는다면.... 타르는 건물을 잇는 통로에  멈
춰 서서 곰곰이 대처방안을 생각한 끝에 한 가지  묘책을 발견해냈다.
그렇다. 폭동이 일어날  것 같은 불길한 조짐은 실제로 존재한다.  타
르는 결단을 내렸다. 가지 내의 인터폰을 들고서 넘프를 찾았다.
  "장관 각하,  저는 타르입니다. 한 시간  후에 만나뵐 수  없겠읍니
까?.... 보여드릴  것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각하. 그러면  한
시간 후에."
  타르는 수화기를 내려 놓자마자 벨트 버클에서 페이스  마스크를 꺼
내 얼굴에 착용한 후 밖으로 나갔다. 부드러운 눈발이  소리없이 휘날
리고 있었다.
  우리에 도착하자 타르는 곧장 기둥에 묶어둔 강철로프의  끝을 풀었
다. 조니는 그때까지 학습기계에 매달려 있었는데, 타르가  오자 꼼짝
않고 그의  움직임만을 지켜보았다.  타르는 로프를 감으면서  인간이
의자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인간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짐
승가죽들을 막대기에 묶어서 지붕을 만들어, 눈으로부터  잠자리를 보
호하고 있었다. 다른 가죽들은 기계와 학습기계 위에 씌워져 있었다.
  타르는 인간의 로프를 잡아당겼다.
  "따라와."
  "당신은 모닥불을 피워도  좋다고 약속했다. 지금 땔나무를  가지러
가는 건가?"
  조니의 물음에 타르는  대꾸도 없이 로프를 잡아끌었다. 곧장  칭코
인의 구역으로 데리고  가서 문을 장화발로 걷어찼다. 조니는  흥미깊
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곳은 돔식으로 둘러쳐진 내부가  아니었다.
방안 전체가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바닥에 깐 담요 위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는데, 두 사람이 방안으로 걸어들어가자  한꺼번에 피어올랐
다. 서류가 흩어져 있었고, 책도 곳곳에 내던져져 있었다.  벽에는 도
표가 있었다. 우리에  있던 책상과 의자들이 많이 놓여져 있었다.  그
것들은 이곳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것을 조니는 깨달았다.
  타르는 개인사물함 중  하나를 열고 페이스 마스크와  호흡가스통을
꺼냈다. 그리고  조니를 끌어당겨서  페이스 마스크를 얼굴에  억지로
씌워주었다. 조니는 마스크를 벗겨냈다. 그것은 너무  컸고, 먼지투성
이였다. 도구들을  꺼낸 금속상자  안에서 헝겊조각을 찾아낸  조니는
마스크를 깨끗이 닦아냈다.  그리고 나서 부착부분을 살펴보았다.  조
절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타르는 번잡스럽게 주위를  뒤지더니 작
은 덤프를 들고 돌아왔다. 그가 새로운 호흡가스 공급기를  펌프에 붙
이고 호흡가스통에 연결하자 호흡가스통 속에 공기가 차기 시작했다.
  "이것은 무엇인가?"
  "잠자코 있어라, 동물."
  "당신은 호흡가스통을  달고 있는데,  이것과 같은 작용을  하는가?
그런데 왜 모양이 서로 다른가?"
  타르는 호흡가스통에 공기 채우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조니는
마스크를 던져버리고,  금속상자 앞에  주저앉아 모르는 체하고  있었
다. 타르의 호박색 눈이 가늘어졌다. 동물까지 반란을  일으킬 생각인
가? 이녀석의 약점을  잡을 수만 있다면.... 그러나 지금은  아무것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알려주겠다."
  타르는 지겹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것은 칭코인의 공기마스크다. 칭코인들은 너와  마찬가지로 공기
를 마셨다.  네가 본부구역에 들어갈 때는  이것을 쓰지 않으면  안된
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이 호흡가스통에 들어가 있는 것은  칭코
인들의 호흡가스다. 본부구역의 돔 속은 공기가  아니라 사아클로인들
의 호흡가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제 만족했는가?"
  "당신은 공기를 마실 수 없는가?"
  조니가 물었다. 타르는 울화가 치미는 것을 억제하고 있었다.
  "너야말로 호흡가스를 마실  수 없다. 사이클로인은 최고로  우수한
혹성에서 왔다.  그곳에는 우리들의  편안한 호흡가스가 있다.  동물,
너는 그곳에서는 살 수가 없다. 이제 알았으면 빨리  칭코인의 마스크
를 써라."
  "칭코인들이 본부구역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마스크를 써야  했던
모양이지?"
  "방금 얘기했잖아."
  "그런데 칭코인들은 지금 어디에 있지?"
  "있었지, 있었단 말이다."
  타르는 계속 참아내고 있었다. 이 동물의 잘못된 문법을  고쳐줄 필
요가 있었다. 녀석은 언제난 반말투였다. 더구나 목소리가  높고 날카
로운 쇳소리여서 듣고 있기만 해도 짜증이 났다.
  "그들은 이미 이곳에는 없는가.?"
  타르는 입다물라고 말하려고 했으나 의젓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 칭코인들은  이미 이곳에는  없다. 칭코인들은  전멸됐다.
그 종족 전체가 말이다. 웬지 아는가? 놈들은 파업을  했기 때문이다.
노동을 거부하고,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단 말이다."
  "역시...."
  조니는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벨트의  버클그림보다 더 확실한  또
하나의 증거였다.
  칭코인들오 역시 같은 운명에 처해졌던 것이다.  칭코인들은 오랬동
안 사이클로인을 위해서 열심히 일했다. 그 보상이  말살이었다. 이것
은 사이클로인의 기질에 대한 조니의 주측을 더욱  확실히 뒷받침해주
고 있었다.
  조니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황량해 보였다.  칭코인들이
살해된 것은 아주 먼 옛날의 일이었다.
  "이 계기판이 보이는가?"
  타르는 공기로 가득 찬 호흡가스통을 가리켰다.
  "호흡가스가 가득 찼을  때 계기의 바늘은 백을 가리키게 된다.  공
기소비량을 따라서 바늘은  내려간다. 오의 눈금 이하로 내려가면  공
기부족으로 너는 호흡이 어려워진다. 호흡가스통에는 한  시간 분량의
공기가 들어 있다. 계기판의 눈금에 유의하라."
  "호흡가스통은 두  개가 필요하다. 그리고  덤프도 휴대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조니가 타르의 말에 덧붙였다.
  타르는 호흡가스통을 보았다. 분명히 또 하나의  가스통을 부착하기
위한 연결장치아 덤프를 넣어두는 보관통이 있었다.
  "시끄럽다, 동물."
  타르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말대로 두번째  통을
공기로 가득  채운 다음 첫번째 통에  연결해서 두 통 사이에  펌프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마스크를 난폭하게 조니의 얼굴에 장착했다.
  "이봐, 동물. 잘  들으라구. 우리들은 지금부터 본부구역으로  들어
간다. 나는 굉장히  지위가 높은 중역과 얘기를 나눌 것이다.  혹성장
관 각하님이다.  너는 절대로 말을  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정확하게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알겠는가, 동물?"
  조니는 칭코인의 페이스 마스크를 통해 타르를 보았다.  "만약 네가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나는  너의 마스크를 벗겨버리면  그만이다.
너는 경련을 일으키다가 죽고 말 것이다."
  타르는 인간의 푸른 눈에 언제나 떠 있는 얼음과도 같은  차가운 표
정이 늘 마음에 걸렸다. 그는 로프를 끌어당겼다.
  "자아, 가자, 동물."

  (2)
  넘프 혹성장관은 신경이 날카로워 있었다. 보안부장이  들어가자 불
안스러운 듯이 그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반란이 일어났는가?"
  "아닙니다."
  "거기 데리고 온 것은 무엇인가.?"
  타르는 로프를 잡아당겨 조니를 자기 뒤쪽에에서 끌어냈다.
  "인간을 보여드리려고요."
  넘프는 책상에서 몸을  앞으로 내밀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거의  벌
거벗은 모피가 없는 동물이었다.  두 개의 팔과 두 개의 발,  그렇다,
전혀 털이 나 있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머리위와 턱  부분에 털 비슷
한 것이 있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푸른 눈이 묘하게 느껴졌다.
  "바닥에 오줌을 누지 않게 해주게."
  넘프 장관이 말했다.
  "손을 보십시요. 매우 재주가 있고요...."
  "반란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자네는 확신하고 있나? 급여삭감에  대
한 통고는 오늘 아침 발표되었다. 나는 아직 두  곳의 대륙으로부터의
반응은 듣지 못했는데, 그곳의 채굴장에서는...."
  "물론 노동자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란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손을 보신다면...."
  "광석산출량에 박차를 가하지 않으면 안되네."
  넘프 장관은 엉뚱하게 말을 받았다.
  "노동자들이 산출량을 의도적으로 낮출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특별한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현재 우리들의  인원은 어차
피 부족합니다. 수송부에는 남아 있는 정비공이 없습니다.  모두들 산
출량을 올리기 위해서 작업반으로 옮겨졌으니까요."
  "본국에서는 실업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좀더 인원을  늘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타르는 한숨을 쉬었다. 구제할 길이 없는 노인네였다.
  "급여삭감에다 보너스도  없고, 더구나  혹성이기 때문에  노동자를
확보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여기 있는  동물
말씀입니다만...."
  "그래, 그 말이 맞다.  급료를 삭감하기 전에 좀더 많은 인원을  확
보해두었어야 했다.  그런데 반란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한
가?"
  타르는 얘기를 꺼냈다.
  "그렇기 때문에  반란을 저지하는  최선의 방법은 산출량의  증대를
약속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 년 이내에 옥외작업용  기계
류와 차량조작원을 이  동물들로 대체하는 것이 선결문제라고  생각합
니다."
  그런데 얘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녀석이 바닥에 오줌을 누지는 않았겠지?"
  넘프는 책상에서 몸을 쑥 내밀고 동물을 들여다보았다.
  "그녀석은 냄새가 지독하군 그래."
  "그것은 이  동물이 입고 있는  가공하지 않은 날가죽  때문입니다.
적절한 의복을 입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복이라고? 동물도 옷을 입는가?"
  "네 그렇습니다, 각하. 현재 이 동물은 날가죽밖에 갖고  있지 않습
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에 명령서를 지참하고 있습니다만...."
  타르는 서명을  받기 위해 서류를  책상에 위에 올려놓았다.  약점,
약점만 잡고 있다면 이  살쾡이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러나 나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못하다.
  "조금 전에 청소를  해놓았는데, 다시 환기를 시켜야  되겠군. 그런
데 이것은 무엇인가?"
  넘프는 명령서를 들여다보았다.
  "각하는 인간이 기계를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알고
싶어하셨습니다. 한 통은  일반물자의 지급명령서, 한 통은  차량사용
명령서입니다."
  "여기에는 지급이라고 찍혀 있는데....?"
  "반란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시급히 손을 쓰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건 그렇지."
  넘프는 명령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해서 읽었다.  지금까지 수천
통이나 읽어왔을 텐데도.
  조니는 꾹  참고 서 있었다. 이  내부의 모습을 구석구석  머릿속에
집어넣기에 온신경을 집중했다.  호흡가스 밀폐실, 돔의 재료와  그것
을 결합하고 있는 끈....
  사이클로인들은 돔 안에서는 페이스 마스크를 않았다.  조니는 차음
으로 그의 맨얼굴을   보았다. 인간의 얼굴과 비슷했다. 다만  눈썹과
눈꺼플과 입술이 뼈로 되어 있는 것만이 달랐다. 그들은  늑대처럼 동
그란 모양의 호박색 눈을 가지고 있었다. 조니는 그들의  얼굴에 떠오
르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타르와 조니는 본부구역의  복도를 지나
올 때,  몇몇 사이클로인들과 지나쳤다.  그들은 신기한 듯이  조니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들이  타르를 보는 눈에는 분명히 적의가  담겨
있었다. 타르는 그다지  인기가 없는 특별한 업무, 혹은 지위를  맡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사이클로인들은 서로  증오하고
있었다.
  넘프 혹성장관은 한참 후에야 겨우 얼굴을 들었다.
  "자네는 이 동물이 정말로 기계를 조작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가?"
  "각하께서는 시범을 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것을  훈련시
키기 위해서 차량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아아, 그래? 그렇다면  이것은 아직 훈련을 받지 않았군 그래.  그
런데 할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
  암코양이 같은 놈!  타르는 속이 터질 것 같았다. 넘프는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골칫거리였다. 하지만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넘프
는 다른 일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남에게 얘기할 수 없는  무엇인가
가 숨겨져 있었다. 타르는 보안부장의 직감으로 그런 것을  간파해 내
곤 했다. 넘프에게는  약점이 있다. 그것을 알아낼 수만 있다면  압력
을 가할 수 있을 거야. 주의깊게 관찰해둘 필요가 있었다.
  "이 동물은  학습기계 조작에 관해  매우 빠르게 습득했습니다.  각
하."
  "학습이라고?"
  "네. 이 동물은  지금은 인간의 언어로 읽고  쓰고 할 수 있고,  또
사이클로어로도 말하고 읽고 쓸 수 있습니다."
  "설마하니."
  타르는 조니를 향해 돌아섰다.
  "장관 각하께 인사드려라."
  조니는 꼼짝 않고 타르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
도 하지 않았다.
  "말해라."
  타르는 큰소리를 내더니 다시 목소리를 낮추고 윽박질렀다.
  "마스크를 벗겨버릴까?"
  그러자 조니는 하는 수 없이 인사를 했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타르는 당신이 명령서에  서명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내가  기계조
작을 배울 수 있도록 말이다. 당신이 그러기를 바란다면  서명을 해야
할 것이다."
  넘프 장관의 표정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조니는 했던  말들을
전혀 듣지 않은  것 같았다. 넘프는 뭔가  생각에 잠긴 채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코를 벌름거렸다.
  "그녀석은 확실히 냄새가 지독하군 그래."
  "곧 데리고  나가겠습니다.... 명령서에 서명만 해주신다면  말입니
다."
  "알았다. 알았어."
  넘프는 서류에 자신의 머릿글자를 휘갈겨썼다. 타르는  서류를 재빨
리 움켜쥐고 나가려 했다. 그때 넘프가 책상에서 몸을  내밀고 바닥을
보았다.
  "바닥에 오줌을 싸지는 않았겠지, 엉?"

  (3)
  타르는 어젯밤 한숨도 못 잤고, 게다가 아침부터 두  차례나 말다툼
을 벌였기 때문에 상당히 지쳐 있었다. 기분이 말이 아니었다.
  잿빛으로 잔뜩 흐린  날이었다. 춤을 추듯이 떨어져내리는 눈이  다
부서져가는 브레이드가  달린 소형차를  덮고 있었다. 동물원  너머로
펼쳐져 있는 공터에도 두껍게 쌓여 있었다.  시이클로인들이 사용하는
거대한 좌석에 몸을  파묻고 있는 인간이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타르
는 코를 킁킁거렸다.
  최초의 말다툼은  제복지급 명령서를 둘러싸고 일어났다.  의복공장
의 공장장인 드럭은  명령서가 위조된 것이라고 우겨댔다. 당신이  어
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으니까 틀림없이 위조라며 행정관이 있는  곳
까지 찾아가서 확인하려고 들었다.
  위조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자. 이번에는 동물이 입을 만한  제복
은 없으며, 동물에게 옷을 만들어줄 생각은 없다고  대들었다. 회사가
그런 일을 시킬 리가 없다며 시비를 걸었다.
  옷감은 있겠지 하고  타르가 말했다. 옷감은 있지만 모두  중역들의
제복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드럭 공장장은 대답했다.
  그러자 동물이 끼여들어서 자주색 옷은 절대로 입지  않겠다고 우겨
댔다. 타르는 인간을 때렸다. 소용이 없었다. 그는 일어나서  같은 말
을 되풀이했다.
  약점. 그는  인간의 약점을 잡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말을  듣게
만드는 데 언제나 고생이었다. 젠장! 이렇게 힘들어서야.
  그 순간 타르  보안부장은 갑자기 생각이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밖
으로 나갔다. 칭코인들의  구역으로 가서 그들이 입었던 청색  옷감이
든 의복상자를 찾아냈다. 사이클로인 양복장이는 칭코인의  옷감을 쓰
레기라며 비아냥거렸지만 더이상 반대할 구실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인간을 위해서 제복 두 벌을 재단하여 접착시키는 데 한  시간이 걸렸
다.
  인간은 또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회사규칙상 모두  착용하도록
정해진 버클을 거부했다.  타르는 미칠 지경이었다. 하는 수 없이  타
르는 칭코인들의 거주구역으로  가서 대용품을 찾아오지 않으면  안되
었다. 그것은  작은 황금빛 군용버클로,  독수리와 화살 그림이  붙어
있었다. 인간은 그것이 마음에 든 것 같았다. 그것을 보았을  때 눈을
크게 뜨고 놀라워했다.
  두번째 말다툼은 즈즈토와 붙었다.
  처음에 즈즈토 수송주임은 모르는 채 잠자코 있었다. 얼마  동안 그
러더니 마지못해  명령서를 바라보았다. 즈즈토는 서류의  등록번호란
이 비어  있다는 것을 빌미로 따지고  들었다. 겨우 설득을  시켰지만
제공할 차량만큼은 자신의 재량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우겨댔다.
  "그렇지, 저곳에 있는 부서진 브레이드가 달린  챠량을 사용하시오.
폐차처분을 했지만 아직은 달릴 수 있으니까요."
  그 말에 타르는 울화통이 터지고 말았다. 그는 다짜고짜  즈즈토 수
송주임에게 강력한 펀치를 멀였다. 두 사람은 그로부터 오  분 동안이
나 작업장 안에서  치고받고했다. 싸움은 타르가 도구를 보관하는  수
레에 발이 걸려  넘어짐과 동시에 즈즈토의 발길이 타르를  향해 날아
든 후 끝났다.
  어쩔 수 없이  타르 보안부장은 부서진 브레이드가 달린 차량을  인
수했다. 차고의 밀폐실을 통해서 그 차를 밖으로 내보낼 때,  그는 운
전하면서 옆좌석을 닦아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타르는 지금 동물을 그  위에 태우고 있었다. 다시 싸움이 붙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좌석과 바닥 위에 묻어 있는 이 초록색 얼룩들은 무엇인가?"
  조니가 물었다.
  그것은 조용히 내리는  눈에 덮여 있었지만, 눈이 녹으면서  초록색
얼룩이 나타났다.
  타르는 얼른 대답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은 피다."
  "빨갛지가 않은데?"
  "사이클로인의 피는 빨갛지 않다. 초록 피가 진짜 피고,  진짜 피의
색깔이다. 알겠느냐? 잠시 입다물고 있어라, 동물. 어떻게  하는지 가
르쳐줄 테니까...."
  "이 커다란 원 주변에 있는 불에 탄 이것은 무엇인가?"
  조니는 운전사용의 투명돔이 있었던 곳을 가리켰다.
  타르는 대뜸  그를 쥐어박았다. 조니는 그가  서 있던 거대한  높은
좌석에서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다. 그는 순간적으로 천장에 달린  철
봉을 붙잡아서 굴러떨어지는 것을 면했다.
  "알아둘 필요가 있다."
  조니는 숨을 돌리면서 말했다.
  "잘못된 버튼을 누르면  폭발할지도 모르잖은가? 알고 있지  않으면
나도 안심할 수가 없다.
  타르 보안부장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인간의 팔은 지나치게  짧기
때문에 앉은 채로는  조작판까지 손이 닿지 않았다. 인간이  조종하려
면 바닥의 발판 위에 올라서지 않으면 안되었다.
  "버튼조작을 잘못해서 폭발한 것이 아니다. 그냥 폭발한 것이다."
  그때 조니는 바로 이 차가 비행기의 이착륙장에서  사고를 일으켰던
차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이클로인 한명이 죽었었다. 조니는  그 폭발
음을 들었었다.
  타르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조니는 눈을 치우고 좌석에  앉
았다.
  "알려주겠다."
  타르가 코를 킁킁거리며 말을 게속했다.
  "이런 차를 사이클로인 운전사가 조종할 때는 위에 달려  있는 투명
한 뚜껑을  닫아야만 한다. 그것은  호흡가스를 채우기 위한  것이다.
너는 뚜껑도 호흡가스도 사용하지 않으니까 폭발할 염려는 없다."
  "그러나 실제로  폭발하지 않았는가?  왜 그런가? 이것을  운전해야
한다면, 나는 그 이유를 알지 않으면 안된다."
  타르는 소름끼치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억지로 분을  참느라고
이빨이 바드득 소리를 냈다. 동물은 먼 곳을 바라보면서  태연하게 앉
아 있었다.
  "운전석의 뚜껑 안에는 호흡가스가 가득 차 있었다.  그때는 금광석
을 하역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광석 속에 우라늄이  섞여
있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뚜껑에도 가스가 샐 만한 틈새가  있었을 것
이다. 호흡가스가 우라늄과 접촉해서 폭발한 것이다."
  "우라늄? 우라늄이라니? 영어로는 뭐라고 부르는 것인가?"
  타르는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었다.
  "내가 그런 것을 어떻게 알아?"
  조니는 웃음을  참았다. 우라늄,  우라늄이라고 조니는  마음속으로
반복해서 외웠다. 그것은  호흡가스를 폭발시키는 것이다. 게다가  타
르는 영어를 모른다는 것도 알았다.
  "이 조작판은 어떻게 조작하는 거냐?"
  타르의 신경질은 다소  가라앉아 있었다. 적어도 이 동물은  차량조
작법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이 버튼은  정지다. 이것을 잘 기억해둬라.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으면 이것을 눌러라. 이  버튼은 차를 왼쪽으로  향하게
한다. 그  버튼이 오른쪽이다. 이  레버는 앞의 브레이드를  들어올린
다. 이것은 브레이드를  내리고, 다음것은 기울게 한다. 빨간  버튼은
후진이다."
  조니는 바닥에 내려섰다. 우선 앞쪽의 브레이드를  올렸다가 내리고
기울여보았다. 그때마다 조니는 그 효과를 보기 위해서 창  너머로 내
다보았다. 그리고 나서 브레이드를 한껏 올렸다.
  "저곳에 나무들이 보이지? 차를 그 방향으로 몰아라.  천천히, 천천
히."
  타르는 조니를 향해 지시하며 차 옆을 걸었다.
  "세워라."
  조니는 차를 세웠다.
  "이번에는 후진이다."
  조니는 차를 후진시켰다.
  "전진해서 선회해라."
  조니는 그대로 따랐다.
  타르는 이것을 소형차라고 부르고 있었지만, 좌석은  지면에서 십오
피트나 되는 높이였고, 브레이드의 폭은 이십 피트나  되었다. 그것이
움직일 때는 차만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대지도 뒤흔들렸다.  그것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눈을  치워봐라.... 지면에서 약간 브레이드를  떼어놓아
야 한다."
  처음 얼마 동안 운전은 상당히 어려웠다. 땅이 고르지  않아서 차가
전진함에 따라 브레이드의 높이를 조절해야 했다.
  타르는 열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추웠다. 수면부족도 영향을  미치
고 있었다. 즈즈토한테 맞은 이빨이 욱신거렸다. 타르는  차량에 올라
타고는 조니의  로프를 차량 위의 철봉에  묶었다. 조니는 차를  세웠
다.
  "넘프 장관은 내가 하는 말을 듣지 않았을까?"
  "입닥쳐, 동물."
  "그러나 알아야만 한다. 내 사투리가 너무 심했는지도 모른다."
  "너의 사투리는 지독하다.  그러나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너는  마
스크를 쓰고 있었고, 넘프는 귀가 잘 안 들린다."
  그것은 보안부장이 할 수 있는 거짓말이었다.
  넘프 혹성장관의 청각은  극히 양호했다. 게다가 동물이 쓰고  있는
페이스 마스크가 목소리를  부정확하게 한 적도 없었다. 넘프는  뭔가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타르가 알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숨겨져  있다는 증거였다.  애당초 타르가 어젯밤에  잠을
자지 못한 것은  긴급전송된 문서들의 기록과 넘프에 관한 서류를  조
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약점, 넘프의 약점,  이것이야말로 타르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쓸 만한 것은 아무것도 찾아 낼  수
가 없었다.  틀림없이 완벽한 것이었다.
  타르는 갑자기 머릿속이  몽롱해져오는 것을 느겨 수면을  취해야겠
다고 생각했다.
  "나는 보고서를  쓰지 않으면 안된다.  너는 운전연습을 하고  있어
라. 잠시 후에 돌아올 테니."
  타르는 주머니에서 소형 감시용 카메라를 꺼내서 동물의  손이 닿지
않는 천장의 철봉 뒤에 부착시켜두었다.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라구. 이 차는 걷는  속도로밖에는 움직일
수 없으니까 말이야."
  그러나 피로에 지쳐 있는 타르는 가득 찬 카방고 두어  잔을 마시고
나서 잠이 들었으므로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타르가  황급히 일어
나 인간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주위가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타르는 깜짝 놀라  우뚝 멈춰 서서 바라보았다. 인간이  운전연습을
하고 있던  장소는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다.  타르가 놀란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동물은 실히 대여섯 그루가 넘는  나무를 잘라내서,
그것들을 멀리 떨어진 언덕의 우리 앞까지 밀어올린 다음,  그곳에 쌓
아올리고 있었다. 인간은 브레이드를 이용해서 나무들을  일정한 길이
로 절단하여 가늘고 길게 쪼개놓았다.
  동물은 좌석 위에 쪼그리고 앉아서 몸을 움크리고 있었다.  살에 에
이는 듯한 찬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타르가 로프를 풀자  조니는 몸
을 일으켰다.
  "도대체 이것들은 무엇인가?"
  타르는 잘개 쪼개진 목재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땔감이다. 로프를 풀어주었으니까 어는 정도만이라도  우리 안으로
옮겨넣어야겠다."
  "땔감이라고?"
  "그렇다. 나는 이제 날쥐고기에는 진저리가 났단 말이야, 친구."
  그날 밤,  조니는 이곳에 잡혀온 이후  처음으로 불에 구운  요리한
식사를 하고, 우리 바닥에서 타오르고 있는 따뜻하고 기분  좋은 불앞
에서 뼛속까지 스며들었던 추위를 몰아내고 있었다.  조니는 오랫만의
따뜻함에 마음까지 훈훈해졌다.
  새로운 옷은 철봉에 걸어서 말리고 있었다. 조니는 발을  포개고 앉
아서 자루 속을 뒤졌다. 반짝이는 금속원반을 끄집어낸  다음, 가지고
있던 금빛 벨트 버클을  손 위에 올려놓았다. 그 두개를 비교해  보았
다. 화살을 움켜쥔 새가 새겨 있었다. 이제 조니는 그곳에  새겨진 줄
모양의 무늬를  읽을 수  있었다. 원반에는 '아메리카  합중국'이라고
씌어 있었고, 버클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합중국 공군....  그렇
구나. 옛날 우리  종족은 국가를 이루고 있었구나. 그리고 하늘과  무
슨 관계가 있는  군대도 갖고 있었다. 사이클로인들마다 착용하고  있
는 버클은 그들이  인터개랙틱 광산회사의 직원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타르가 보면  섬뜩하게 느낄 만큼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조
니는 상상해보았다. 이 순간부터 나는 미합중국 공군의  멤버, 유일한
멤버다. 유일한 멤버....
  조니는 배개 대신  배고 있던 옷가지들 위에 조심스럽게 버클을  올
려놓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결의에 찬 눈빛으로 춤추는  불꽃을 바라
보고 있었다.

  (4)
  모든 은하계의 왕인  거대한 은하제국, 사이클로별은 세 개의  태양
으로부터 강렬한 빛을 받고 있었다.
  인터개랙틱사의 문서전송  요원들은 전송물자  수령지역 옆에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 위쪽에는 연보라빛 하늘이 펼쳐져  있었고, 지평
선은 멀리 자주색 구릉  위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들이 서 있는  주변
일대는 연기를 내뿜는 공장들과 어지럽게 뒤엉킨 전력선들이  가득 메
우고 있었다.  그것은 인터개랙틱  광산회사의 왕성한 활동과  거대한
권력을 상징하고 있었다.
  귀청을 찢을 듯한 경보사이렌이 울려퍼졌다. 전송물자  수령 플랫폼
에서 전원 대피하라는 경계신호였다. 플랫폼을 청소하고  있던 브레이
드가 달린 차량, 고속회전 브러쉬가 달린 바닥청소용  차량, 진공청소
차 등이 서둘러서 플랫폼으로 대피했다. 문서전송  요원은 반사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확인했다. 문제는 없었다.  그는 위험지역 밖에  있었
다. 플랫폼 주위에 둘러쳐져 있는 동력선들과  케이블들이 웅웅거리며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마침내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으로 변했다. 그 순간 몇 톤이나 되는  광석들이 눈 깜
짝할 사이에 몇개의 은하를 지나 플랫폼 위에 운반되어져 나타났다.
  전송완료를 알리는  신호가 울려펴지자, 문서전송 요원은  지상활주
기를 타고  새로 들어온 광석더미들이  도착해 있는 곳으로  미끄러져
갔다. 수령작업반의  반장도 그쪽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광석더미의
오른쪽 경사면을 기어올라가  그 속을 뒤졌다. 반장은 작은  지급발송
문서상자를 찾아냈다. 그는  광석 위에 서서 서류에 상자번호를  기입
한 다음, 상자를 문서전송 요원이 있는 곳까지 들고 왔다.
  브레이드가 달린 차량이  새로 들어온 광석더미들을 운반하기  시작
하고 있었다.  반장은 성급하게  문서전송 요원에게 서류를  건네주었
고, 전송요원은 수령증에  수령확인을 서명했다. 반장은 그에게  상자
를 던져주었고, 문서전송  요원은 그것을 확인하여 다시  던져주었다.
수령작업반의 반장은 거대한 가슴으로 그것을 받았다.
  문서전송 요원은 지상활주기에 올라타자마자 발진시켰다.  몰려드는
작업차량들 사이를 맹렬한  속도로 누비듯이 달려서 인터개랙틱사  중
안 행정 관리부의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상자를 든 사무원이 자핀의 사무실로 들어왔다.  자핀은 2
등 무주민 혹성국의  국장 대리인으로 하급 보좌관이었다. 그의  사무
실은 매우 조그마했다. 이 건물에는 삼십만 명이나 되는  행정관리 직
원이 근무하고 있었으므로 그것은 당연했다.
  자핀은 젊고 야심만만한 관리직원이었다.
  "이 상자는 왜 젖어 있는 거지?"
  그 상자를  서류 위에 올려놓으려던  사무원은 황급히 상자를  끌어
당겨 헝겊으로 습기를 닦았다.
  "이것은 지구에서  온 것입니다. 그곳에는  지금 비가 내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상징적이군."
  자핀이 말했다.
  "그 혹성은 어디에 있나?"
  사무원은 재치 있게  영상장치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벽면의  스
크린에 도면이 나타났다. 사무원은 촛점을 맞추고, 한참  동안 들여다
보더니 작은 반점 위에 화살표를 그려놓았다.
  사핀은 도면을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긴급전송된 문서상자를
열고, 문서들을 여러가지  부문으로 분류하며 필요에 따라서 자기  이
름의 머릿글자를 휘갈겨썼다. 분류가 거의 끝나갈  때쯤 서명만으로는
해결될 것 같지 않은 긴급문서가 나타났다. 자핀은 불쾌한  얼굴로 그
것을 보며 말했다.
  "아니, 초록색 번개마크가 붙어 있잖아. 긴급문서로군."
  사무원은 미안한 듯이 그것을 들고 읽었다.
  "단순한 정보 요구입니다."
  "우선순위가 너무 높군 그래."
  자핀이 그것을 다시 손에 들었다.
  "현재 세  개의 행성에서 전쟁이  진행중에 있다. 어디서....  누가
보낸 것이라고?"
  "지구입니다."
  "발송한 자는 누구지?"
  사무원은 긴급요건 처리문서를  받아서 발송한 사람의 이름을  읽었
다.
  "보안부장... 이름은.... 타르입니다."
  "그의 기록은?"
  사무원은 조작판의 버튼을 손톱으로 재빨리 두드렸다.  그러자 벽에
있는 가늘고 긴  구멍이 소리를 내면서 서류철를 토해냈다.  사무원은
그것을 자핀에게 건네주었다.
  "타르라...."
  자핀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자네도 그자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나?"
  사무원은 서류철을 받아들고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사이클로 시간으로 오 개월 전에 근무지 변경  요구서를 제출
했었습니다."
  자핀은 서류철을 받아들었다.
  "나는 한 번 들은 이름은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거든."
  자핀은 서류를 휙휙 넘겼다.
  "지구라는 곳은 여전히  따분한 혹성인 모양이군. 그리고  이번에는
우선순위를 잘못 표기한 긴급요건 처리...."
  사무원이 서류철을 받아들었다. 자핀은 양미간을 찌푸렸다.
  "그런데 그 긴급문서는 어디에 있지?"
  "책상 위에 있습니다, 보좌관님."
  자핀은 그것을 읽어보았다.
  "녀것이 알고 싶어하는 것은 어떤 배경이.... 넘프에게.... 넘프?"
  사무원은 조작판을 작동시켰다. 그러자 스크린에 문자가 나타났다.
  '인터개랙틱사, 지구혹성 장관.'
  "타르는 넘프가 본사에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고  싶어하
는군."
  사무원은 즉시 몇  개의 버튼을 두드렸다. 스크린이 바뀌자  사무원
이 말했다.
  "그는 2등 혹성 회계부의 국장보인 나이프의 큰아버지입니다."
  "흠, 긴급문서의 답변은 그렇게 써서 반송하게."
  "여기에는 극비표시가 되어 있습니다만."
  "반송문서에도 극비표시를 해서 보내게."
  그는 의자에 파묻히며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자핀은  의자를 회전
시켜서 건너편 도시를  바라보았다. 기분 좋은 산들바람이 그이  짜증
스러움을 얼마간 가라앉혀주었다. 자핀은 다시 책상  쪽으로 돌아앉았
다.
  "그녀석을 처벌하는 것은 그만두지.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타르입니다."
  "타르라.... 그이 기록에  말도 안되는 사소한 용건에 과도한  우선
순위를 부여했다고 기입해두게.  타르는 젊고 야심적일 뿐,  관리직이
얼마나 정확해야 하는가는 모르고 있단 말야. 우리 회사는  수준도 모
르고, 정확한 판단도 내리지 못하는 관리직 따위는 필요로  하지 않는
다. 알겠나?"
  "네, 잘 알겠습니다."
  사무원은 대답을 하고 나서 곧장 문서상자를 들고 방을  나섰다. 그
는 타르의 기록에 이렇게 써넣었다.

  사소한 일에 과도한 우선순위를 지정. 젊고  야심적이지만 관리직으
로는 미숙. 앞으로의 통신은 무시하라.

  그 사무원은 자신의  조그만 방에서 미소를 지었다. 심술궂은  생각
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 기록은 자핀에게도 완벽하게 적용된다는  사
실이었다. 그는  타르의 긴급문서 위에  그 대답을, 사무적인  격식을
갖추어 정확하게 적어넣었다. 그러나 복사본은 스크랩조차  해놓지 않
았다. 며칠 후, 그것은 지구로 전송되었다.
  사이클로의 세계는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언제나처럼 분주
한 소리를 내며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5)
  드디어 시범을 보여줄 날이 찾아왔다. 타르는 그 준비로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
  타르 보안부장은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동물에게 모든  작업을 시
켰다. 브레이드의 상하작동과 차 운전을 여러 차례  반복시켰다. 기계
의 연료가 다  떨어져버릴 지경에 놓였다. 타르는 즈즈토  수송주임을
찾아갔다.
  "명령서가 없지 않소?"
  즈즈토가 빈정거렸다.
  "하지만 기껏해야 연료 한 통이 아닌가?"
  "알고 있어요. 그거야  알고 있죠. 그러나 나는 그것의  사용내역에
대해서 해명해야만 한다구요."
  타르는 이빨을 부득부득 갈았다. 약점, 약점. 모든 것은  약점을 잡
느냐 못 잡느냐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즈즈토의 약점을
전혀 못 잡고 있었다.
  갑자기 즈즈토는 그때까지  하고 있던 작업을 중단했다. 그의  뼈로
된 입가에 힐끗 미소가 스쳐갔다. 그것은 타르에게 의혹을  품게 만들
었다.
  "좋아요, 이렇게 합시다.  어쨌던 당신이 무인정찰기 다섯 대를  포
기해주었으니까 나도 그 브레이드가 달린 차량을 점검해주겠소."
  이렇게 제안한 즈즈토는  페이스 마스크를 썼다. 타르도 그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동물은 기계 위에  앉아 있었다. 목에 고리가 채워져 있었고,  로프
는 천장의 철봉에 단단히 매여 있었다. 동물은 한겨울의  세찬 바람속
에서 새파랗게 질린 채 떨고 있었다. 타르는 개의치 않았다.
  즈즈토가 잠금장치를 풀자 보네트가 튕겨지듯이 열렸다.
  "차체에 문제가 있는지 어떤지 잠깐 확인해봐야겠군요."
  즈즈토 수송주임의 목소리는 마스크 때문에 약간  흐려져 있었는데,
엔진 룸 안에 머리를 쳐박고 있었서 더욱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어쨌든 낡은 기계니까 말예요."
  "폐차처분된 기계지."
  타르가 정정했다.
  "그래요, 맞습니다."
  바쁘게 연결부분을 밀고당기고하면서 즈즈토가 말했다.
  "어쨌든 당신은 이것을 원했잖습니까?"
  동물은 차체의  가장자리 벽에 기대어  눈을 밑으로 깔고  즈즈토의
작업을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었다.
  "와이어 한 줄이 느슨해진 채로 있군."
  동물이 말했다.
  "아아, 그렇군. 아니, 동물이 말을 할 줄 아나?"
  "내가 하는 말을 들었나?"
  동물이 되묻자 즈즈토는 한층 더 놀랐다.
  "응, 들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존댓말을 쓰는 거야, 알겠나?"
  타르는 코를 킁킁거리며 빈정댔다.
  "내버려두라구. 미개한  동물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런데  정비공에
대한 존댓말이 따로 있나?"
  "자아, 됐어요."
  즈즈토는 아예 타르의 말을 무시해버렸다.
  "이젠 완벽해졌어."
  그는 새로운  연료통으로 교체한 후  케이스를 끼우고 나사를  조였
다.
  "시동을 걸어보십시요."
  타르는 손을 뻗어서  버튼을 눌렀다. 기계는 경쾌하고 부드럽게  작
동되었다.
  즈즈토는 스위치를 껐다.
  "오늘 시범을 보인다면서요? 나는 아직까지 한 번도  동물이 기계를
조종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밖에 나가서 구경해도 괜찮겠죠?"
  타르는 아무런 약점도 잡히지 않은 즈즈토가 이렇듯  적극적으로 협
조해오는 태도를 보며  아무리 생각해도 그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러나 의심할 만한 그석은 아무 데도 없었다.
  "응, 좋고 말고, 한 시간 후에 여기서 할 거야."
  타르는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언젠가는 녀석에게 본때를 보여줘야지. 그러나 지금은  바빠서 즈즈
토 따위에게 신경쓰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너무 춥다. 몸을 좀 덥히고 와도 괜찮겠나?"
  "잠자코 있거라, 동물."
  타르는 그렇게 말하고 본부구역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넘프 장관의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타르의 심정은  복잡했다.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  있었다. 한 사무원에게 자신이 방문한  것을
알렸는데도, 그 후 감감무소식이었던 것이다. 마침내 사십여  분이 지
나자 타르는 다른 사무원을 붙잡고, 자신이 찾아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연락하게  했다. 그제서야  사무실로 들어오라는 전갈이  전해져왔
다.
  넘프 장관의 책상  위에는 카방고 잔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장관은
투명돔을 통해서 산맥을  바라보고 있었다. 타르는 벨트를 긁어서  조
그만 소리를 냈다. 그제서야 넘프 장관이 고개를 돌려서  타르를 멍하
니 바라보았다.
  "각하께서 명령하신  시범은 당장  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습니
다."
  "...."
  "모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프로젝트 번호는 붙어 있나?"
  넘프의 뜻밖의 질문에 타르는 즉각 번호를 날조해냈다.
  "프로젝트 39A입니다. 각하."
  "그것은 신규 광산개발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타르는 A를 덧붙임으로써 위기를 모면했다. 실제로 그런  기호가 붙
은 프로젝트는 없었지만.
  "그것은 아마 39일 것입니다. 이것은 39A입니다. 조속한  시일 내에
대체인원을...."
  "아아, 그렇군.  본국으로부터 보충인원을 보내도록 하는  계획이로
군."
  "아닙니다, 각하. 저어.... 문제의 동물에 대해서는  기억하고 계시
겠지요?"
  넘프 혹성장관은 안개가 낀 것 같은 머릿속에서  희미하게 생각해냈
다.
  "아아, 그렇지. 동물 말이군."
  약점, 약점. 그것만 있다면  하고 타르는 이를 갈았다. 그는 이  초
라한 노인에 대해서  아무런 영향력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사무실마
다 쑤시고 다녀보았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본국에서도  조회
를 했으나 넘프 장관이 2등 혹성 회계국장 보좌인  나이프의 큰아버지
라는 회답이 왔을 뿐이었다.  이 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은  넘프
가 현재 차지하고  있는 지위는 단지 인척관계에 의해서 얻어진  것이
며, 명명백백하게  무능한 인물이라는  사실뿐이었다. 적어도  그것이
타르가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결론의 전부였다.
  분명히 넘프 장관은  인간을 보고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타르는
자신의 계획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한꺼번에 무너져내리는  것을 바로
눈앞에서 보고 있는  심정이었다. 차라리 그 저주받은 짐승을  기화시
켜버리고 계획 자체를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모든
것은 넘프의 약점을 잡아내지 못한 그의 탓이었다.
  타르는 그의 무표정한  얼굴 뒤에 숨어 있는 약점을 찾아내기  위하
여 가능한 모든 것들을 뜰어들이느라고 머릿속에서 불똥이  튈 정도였
다.
  "유감스럽지만."
  넘프 장관이 말했다.
  "저어...."
  타르는 황급히 넘프  장관의 말을 가로막고 나섰다. 녀석의  입에서
관심없다는 답변이 나오게  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그때 타르는  반뜩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그것을 곧바로  입에 담았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기적처럼 그의 입을 뚫고나갔다.
  "그런데 최근에 조카님으로부터 무슨 연락이 있었습니까?"
  단순히 그의 입을  막기 위한 방편이었다. 타르의 머릿속에는  나이
프에 대해  이미 학창시절부터 잘  알고 있었다는 거짓말까지  덧붙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말은  의외로 놀라운 효과를  나타냈
다. 넘프 장관은 벌떡 일어나서 타르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기겁을 해서 벌떡 일어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타르에
게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타르는 시치미를 뚝 떼고  입을 다물었다.
넘프는 긴장하여 그에게 시선을 집중한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
었다.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표정이었다. 확실히 두려워하고  있었
다. 그렇다, 틀림없었다. 아니, 두려워하고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동물을 두려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타르는 신중하게 넘프 장관의 표정을 오해한 체하고  능청스럽게 말
했다.
  "물거나 발톱으로 할퀴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넘프는 꼼짝도 않고  앉아 있었다. 그의 흔들리는 눈동자에는  분명
히 뭔가가 숨겨져 있었다. 무엇일까.
  "각하는 시범을 명령하셨습니다. 시범준비는 완료되어 있습니다."
  "알았다. 시범 말이지."
  "마스크를 착용해주신다면 즉시...."
  "좋다, 몰론이지."
  넘프 혹성장관은 카방고를  단숨에 들이마시고는 걸려 있던  페이스
마스크를 꺼냈다. 그는  서둘러 앞장서며 몇 명의 참모들에게  페이스
마스크를 쓰고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타르와 함께 밖으로 나가는  동
안 넘프 장관은 몇 번씩이나 눈을 가늘게 뜨고 쏘아보는  듯한 시선으
로 그를  흘겨보았다. 타르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지만 내심  만족해
했다. 노인은 노골적으로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이유만  찾아내다면
두고두고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계획은 이미 성공한  것이나 진배없
었다.

  (6)
  조니는 브레이드가 달린 차량의 맨 윗좌석에 앉아 있었다.  살을 에
이는 듯한  차가운 바람이 눈송이와  함께 휘몰아쳐와서 아따금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조니는 자신을 향하여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 직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발소리는 대지를  뒤흔들었
다.
  시범을 위해  선택된 장소는 기지 밖에  있는 넓지 않은  공터였다.
넓이는 수천 피트나 되었지만, 그 끝은 절벽으로 이백  피트 이상이나
되는 협곡으로 이어져  있었다. 차량을 조작하는 일은 자신이  있었으
나 절벽이 가까이에 있었으므로 주의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타르가 수북하게 쌓인  눈을 밟으면서 다가왔다. 그는 차량  아래쪽
에 달려 있는 발판에 올라서서 그 거대한 얼굴을 조니  가까이에 대고
말했다.
  "저들이 보이는가?"
  조니는 군중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기지  옆에 모여 있었다.  왼쪽
뒷줄에 즈즈토 수송주임이 보였다.
  "이 스피커는 알고 있겠지?"
  타르는 뿔 모양의 크게 말하는 기계를 공중으로  던져올렸다가 붙잡
았다. 이전의 연습 때도 타르는 그것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 레이저 광선총이 보이겠지?"
  타르는 벨트에 찬 총을 두드렸다. 거대한 총이었다.
  "만일 내 명령에  따르지 않거나 무엇이든 실수를  저지른다면,  너
를 쏘아버릴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러한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면  너
의 몸은 갈갈이 찢겨져 허공 속에서 흔적도 없이  분해되고 말것이다.
기화형이다, 알겠나?"
  타르는 손을 뻗어서  로프가 튼튼히 묶여 있는가를 확인했다.  그것
을 천장의 철봉에 감고나서 윗범퍼의 끝에다 용접해버렸기  때문에 조
니는 기계들을 조작하는 일 외에는 움쭉도 할 수 없었다.
  잔뜩 으름장을  놓은 타르는 구경꾼들이  모여 있는 위치로  돌아가
조니를 향하여 다리를 넓게  벌리고 섰다. 그의 몸이 더욱 크게  보였
다. 타르는 소리쳤다.
  "시동을 걸어라."
  조니는 엔진을 가동시켰다.  웬지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신체의
모든 감각들이 바짝  긴장하여 경계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퓨마가  등
뒤로 살금살금 다가올  때의 느낌어었다. 타르에게 협박을 당했기  때
문만은 아니었다. 뭔가 다른 불길한 예감이었다. 조니는  건너편의 군
중 쪽을 바라보았다.
  "브레이드를 올려라."
  타르가 스피커를 통해서 으르렁거리듯 외쳐댔다.
  조니는 그가 명령하는 대로 움직였다.
  "브레이드를 내려라."
  "전진."
  "후진."
  "선회하라."
  "이번에는 주위에 쌓여 있는 눈을 한곳으로 모아라."
  조니는 그 작업을  개시했다. 조종판을 조작하여 수북히 쌓인  눈뭉
치를 들어올린 다음 그것을 중앙으로 밀고 갔다. 조니는  단순히 눈을
모으는 데 그치지 않았다.  모은 눈의 네 면을 평평하게 다져  사각형
으로 만든 뒤,  그 윗부분을 다시 평평하게 만들었다. 조니의  작업은
매우 신속했다. 눈을 모으고 후진해서 모아진 눈을  압축했다. 그러자
눈덩이들은 차츰 기하학적인 형태로 변해갔다. 이제  완성된 기하학적
형태의 눈덩이를 밀고  가기만 하면 완성이었다. 차량은 수백  피트나
되는 절벽 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조작판이  작동을 멈추었다. 조종상자 안에서 부웅  하
는 소리만 나고 있었다. 모든 버튼과 베러들도  마찬가지였다. 차체가
천천히 좌우로 흔들렸다. 조니는 반응을 멈추어버린  조작버튼을 힘껏
두드렸다. 어는 것  하나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없었다. 갑자기  브레
이드가 공중 높이  튀어올라갔다. 차는 덜컹덜컹 흔들리며 눈을  다져
만든 산의 정상을 향해서 기어올라갔다. 금방이라도  뒤집어져 나뒹굴
것만 같았다. 눈덩이 꼭대기에 도달하자 차는 덜컥 하고  평평한 면에
올라섰다. 그리고는 앞으로 곤두박질치듯이 반대편 경사면을  따라 미
끄러져 내려갔다. 그것은 똑바로 수백 피트가 넘는 절벽을  향해 달려
가고 있었다. 조니는 정지버튼을 힘껏 두드렸다. 하지만  굉음을 내면
서 숨가쁘게 돌아가는  엔진에는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조니는  필사
적으로 조작판을  두드렸다. 그러나  그것들은 전혀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다.
  핏발 선  눈으로 조니는  뒤쪽을 돌아다보았다. 군중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즈즈토 수송주임이 힐끗 보였다. 그는 손  안에
무엇인가를 들고 있었다.
  조니는 자신을 이 죽음의 차와 연결시키고 있는  목고리를 벗겨내려
고 발더둥쳤다.  플렉시 로프를  잡아당겨보았으나 도저히 끊어질  것
같지 않았다.  절벽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조니의 왼쪽에는  수동
브레이드 컨트롤이 쇠갈고리로 고정되어 있었다. 조니는  그것을 벗겨
내려고 했다. 브레이드를  지면에 떨어뜨릴 수만 있다면 속도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쇠갈고리는 벗겨지지 않았다.
  조니는 주머니를 뒤져서 부싯돌을 꺼내 쇠갈고리를 향하여  힘껏 던
졌다. 그러자  쇠갈고리가 벗겨짐과  동시에 브레이드가 자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떨어지더니 바위투성이인  땅
바닥을 파고  들었다. 차가 크게  흔들리면서 속도가 줄어들었다.  그
순간 보네트  아래쪽에서 조그만  폭발이 일어났다. 연기가  공중으로
뿜어오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차량 전체가 불길에 휩싸여  활활 타올
랐다.
  절벽은 불과 몇 피트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조니는  타오르는 불길
너머로 수백 피트가 넘는 절벽을 공포에 질러 바라보았다.  차는 브레
이드를 바닥에 끌며 자꾸만 나아가고 있었다. 조니는 재빨리  뒤를 돌
아 목을  감고 있는 롤바를 보았다.  로프가 철봉에 몇겁으로  감겨져
있었다. 조니는 로프를  차의 금속부분에 갖다대고 부싯돌로 있는  힘
껏 두들겼다. 전에도 그것을 시도한 적이 있었으나  헛일이었다. 그러
나 불길에 싸여서 수백 피트 절벽으로 끌려들어가려고 하는  지금, 조
니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등이 불에  그을리
기 시작했다.
  불길은 차 전체를  휩싸고 있었다. 배전판들이 빨갛게 달아서  금방
이라고 폭발해버릴 것만  같았다. 차는 절벽을 향해 나아갔다. 차  안
쪽에서 몇 번인가 더 폭발이 일어났다. 배전판의 위쪽에  있는 고리가
열 때문에 흰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조니는 양손으로 플렉시  로프
를 잡고, 그  한가운데를 빨갛게 달아오른 금속의 가장자리에  갖다댔
다. 로프가 녹기  시작했다. 양손을 그곳에 밀착시킨 채 불길을  견디
며 모든 정신력을  로프에 집중시켰다. 플렉시 로프가 녹으면서  불꽃
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차체가 몹시 흔들렸다. 브레이드는  견뎌내지
못하고 결국 떨어져나갈 것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그 즉시  차는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질 게 뻔했다.
  드디어 로프가 끊겼다.  조니는 차에서 몸을 솟구쳐 땅바닥으로  굴
러떨어졌다. 극적인 탈출이었다.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면서 브레이드
를 받치고 있던 쇠기둥이 부러졌다. 그 순간 불꽃을  뿜어올리면서 차
량은 공중으로  솟구쳐올라갔다. 그리고  다시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떨어져내렸다.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차량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조
니는 화상을 입은 두 손을 눈 속에 집어넣었다.


  (7)
  타르 보안부장은 즈즈토 소송주임을 찾고 있었다.
  브레이드가 달린 차량이  끝내 절벽 밑으로 굴러떨어졌을 때,  타르
는 돌연 의혹에  사로잡혀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있었
던 즈즈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군중은 모두 웃고 있었다.  특히
마지막에 차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내릴 때의 그들의  웃음소리는 타르
의 귀에 날카롭게 박혀들었다. 넘프 장관은 멍하니 서서  머리를 흔들
고 있었다. 장관은 아주 유쾌한 듯이 타르에게 말했다.
  "그렇지, 이제야 동물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군 그래."
  구경꾼들은 각자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타르는 수송부 건물 안을 뒤지고 있었다. 지하실로 내려가  현재 사
용하지 않는  차량, 전투기, 트럭, 브레이드  차량이 줄지어 서  있는
곳을 걸었다. 물론  지상차도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최신형 차도  몇
대 있었다. 그런데도 그따위 구식 마크 II를 나에게  주다니.... 정말
로 괘씸하기 짝이 없는 녀석이군.
  반시간 가량 지하창고를 돌아다녔으나 즈즈토를 찾을  수가 없었다.
약이 바짝 오른 타르는 다시 수리작업실로 돌아와서  주위를 둘러보았
다. 그때 금속끼리  부딪치는 희미한 소리를 포착할 수 있었다.  타르
는 그 소리를 알고 있었다. 레이저 광선총의 안전장치를  푸는 소리였
다.
  "꼼짝 마라!"
  즈즈토 수송주임이 말했다.
  "벨트의 권총에서 손을 떼."
  타르는 천천히 돌아섰다. 즈즈토는 어두운 구석에  있는 공구보관함
안쪽에 서 있었다.
  타르는 몹시 화를 내고 있었다.
  "저 모터를 점검할 때, 리모트 컨트롤을 장치했지."
  "그래, 내친 김에 폭탄도 장치해두었다."
  즈즈토의 말에 타르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스스로 인정하는군."
  "여기에는 증인이 없다.  그러니까 당신의 말도 내 말도 아무런  의
미가 없단 말이지."
  "하지만 그것은 자네의 차량이 아닌가?"
  "이미 폐차처분한 거다. 차량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도대체 외 그런 짓을 한 거지?"
  "어때, 최고의 불꽃축제였다고 생각지 않나?"
  즈즈토는 총신이 긴 레이저 광선총을 겨눈 채 비웃고 있었다.
  "하지만 왜 그랬느냐니까?"
  "당신은 우리들의 급료와 보너스를 삭감시켰다. 당신이 한  짓이 아
니더라도 당신은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그것을 묵인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라구. 만일  당신이 동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
그리고 그 수를  늘린다면 기업의 이윤은 물론 당신의 수입도  놀아지
게 될 거야."
  "그것은 당신의 생각이지."
  "그러나 가장 좋은 방법이라구."
  타르는 강한 어조로 말했다.
  "흥! 솔직히 말해줄까?  당신은 정비공 없이도 기계를 가동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나? 당신의  동물들은 회사의 모든 기계들을 전부  엉망
진창으로 만들어놓을 거야. 바로 조금 전에도 한 대 부숴놓았잖아?"
  "엉만지창으로 만든  것은 자네야. 만일  자네의 기록에 이  사실이
기입된다면 자네는 끝장이라구. 알고 있겠지?"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증인이 없으니까.  넘프 장
관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떠나는 것을 보았어.  게다가 모두들
즐기고 있었구."
  "그것도 경우에 따라서지."
  즈즈토는 레이저 광선총의 총신을 움직였다.
  "여기서 나가."
  약점, 약점이다 하고  타르는 생각했다. 나는 이제 가지고 있는  약
점을 모두 써먹어버렸다.
  타르는 축 늘어진 어깨를 추스르며 차고를 떠나야 했다.

  (8)
  다시 우리 속에 갇힌 조니는 조용히 누워 있었다.  지독하게 비참했
다. 엄청나게 추웠지만, 불은 피우려고 해도 손가락이  화상으로 부풀
어올라서 부싯돌을 잡을 수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불만  보아도 끔찍
했다. 저절로  몸소리가 쳐졌다.  조니의 얼굴은 그을려졌고,  눈썹과
수염은 타서 없어져버렸다. 머리칼도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일은  칭코인의 제복은 내화성이었던 모양이었다.  그것은
불에 타지도 않았고,  녹지도 않았다. 덕분에 몸은 화상을 입지  않았
다.
  칭코인들에게 축복을! 불쌍한  친구들이여! 그 겸손한 말투와  높은
지성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멸종되고 말았다. 그것은 하나의  교훈이
었다. 사이클로인과 교류하거나 그들에게 협력하는 자의  운명은 처음
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었다.
  타르는 차가  불길에 휩싸였을 때도  조니를 구하고자 하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았다. 조니가 차에 묶여 있었는데도  말이다. 사이클로
인에게는 동정이나 배려하는 마음씨가 털끝만큼도 없었다.  타르는 레
이저 광선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플렉시 로프 정도는  간단하게
절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니는 땅이 흔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괴물이 우리 속으로  들오왔
다. 괴물은 장화 끝으로 조니의 몸을 뒤집었다. 가늘게 뜬  괴물의 호
박색 눈이 조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괜찮아. 죽지는 않을 테니까."
  타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무관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회복되려면 얼마나 걸릴까?"
  조니는 말없이 타르를 쳐다보았다.
  "너는  바보다. 리모트  컨트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
나?"
  "알고 있었다구 해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나? 플렉시  로프에
꼼짝도 할 수 없게 묶여 있었는데."
  "그 즈즈토 녀석이  보네트 밑에 리모트 컨트롤을 장치한 거야.  게
다가 폭탄까지도."
  "그것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었겠나?"
  "점검해보았으면 좋았을걸."
  조니는 힘없이 웃었다.
  "운전석에 몸이 묶인 채 말인가?"
  "어쨌든 이젠 알았겠지? 이 다음에 우리들이 할 때는...."
  "이 다음 같은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타르는 조니의 몸 위에 우뚝 서서 그를 내려다보았다.
  "이런 상태로는 말이야."
  조니가 덧붙여 말했다.
  "입닥치지 못해, 동물."
  "이 목의 올가미를 풀어다오. 목에도 화상을 입었단 말이야."
  타르는 잘려나간 플렉시  포르를 보았다. 그리고 우리 밖으로  나가
서 작은 용접세트와  새로운 로프 한묶음을 가져왔다. 그것은  금속제
로 먼저 것보다 가늘었다. 타르는 낡은 로프를 잘라내고  새로운 것을
용접했다. 그 불꽃을 피하려고 괴롭게 몸을 비틀어도 타르는  전혀 신
경쓰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긴 로프 끝을 고리로 만들어서,  조니의
손이 닿지 않는 높은 철책 위에 묶어놓았다.
  타르는 분노로 이글거리는  조니의 시선을 뒤로 한 채 우리를  나가
자물쇠로 잠가버렸다.
  조니는 더럽혀진 모피로 몸을  감싼 채, 더할 수 없이 비참한  심정
으로 다시  내리기 시작한 눈송이를 맞았다.  아무런 힘도 남아  있지
않은 그는 쓰러지듯 비스듬히 누웠다.

제 1 권
지구선선

제 4 부
우리 종족, 인간들! 그들은 용감히 싸웠다.

(1)
산속의 겨울은 혹독했다. 눈사태가 예년보다 훨씬 빨리 산속 묘지로 향하는 길을 가로막아버렸다.
올해로 열여덟 살이 된 크리시는 법원에서 열리는 마을회의에 참석하여 어두운 표정으로 말없이 앉아 있었다. 갈라진 벽틈 사이로 불어들어오는 차가운 겨울바람이 작은 신음소리를 냈다. 한가운데 지펴 놓은 모닥불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들이 바람에 휘돌리며 참석한 사람들의 얼굴을 핥아댔다.
스태퍼 목사는  참석하지 못했다. 그는 건강이 몹시 악화되어 근처에 있는 작은 오두막에 누워 그에게 남은 인생의 마지막 겨울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의 지위는 이미 짐슨가의 사람에게 인계되어 있었다. 그래도 마을사람들은 그를 목사라고 불러주었다.
클레이 장로와 브라운 린퍼 스패퍼가 짐슨 목사를 보좌하고 있었다. 브라운 린퍼는 아직 마을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자격은 없었지만, 그는 스태퍼 목사가 병으로 쓰러졌을 때 아버지 대신 참석하게 되었고, 그 후 대리참석이 묵인되어왔다. 그 세 사람은 낡은 벤치에 앉아 있었다.
크리시는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그들과 마주앉았다. 그녀에게는 마을회의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이틀 전 잠자리에서의 고통이 지금도 생생했기 때문이다. 땀에 흠뻑 젖은 채 잠에서 깨어난 뒤에도 계속해서 몸을 떨어야 했던 그녀, 조니가 불길에 휩싸여 있는 꿈이었다. 조니는 크리시의 이름을 악을 쓰듯 외쳐불렀다.
"그것은 너무 어리석은 짓이야."
짐슨 목사가 크리시를 설득하고 있었다.
"너와 결혼하고 싶어하는 젊은이가 셋이나 있다. 너는 그들을 거절할 권리가 없어. 마을의 인구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겨울을 넘길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서른 명밖에 없어. 지금은 자기 입장만 고집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크리시는 짐슨 목사가 지금 자신ㅇ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겨우 깨달았다. 조니의 상념에서 벗어나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했다. 목사는 얼마 남지 않은 인구에 대한 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금년 겨울에 두 명의 갓난애가 태어났고, 두 명의 갓난애가 죽었다. 게다가 눈이 예년보다 휠씬 일찍 길을 막아버렸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겨울식량에 필요한 소들을 넉넉하게 끌어올리지 못하였다. 결국 마을의 식량은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조니만 남아 있었더라도....
"봄이 오면.... 저는 조니를 따라 이 산을 내려갈 거예요."
그녀는 마을회의 때마다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다지 새로운 얘깃거리가 아니었다. 조니가 떠난 이후 언제난 그렇게 말해왔다.
브라운 린퍼는 피어오르는 연기 사이로 얼핏 보이는 크리시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술에 희미한 냉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가 자격이 없는 어린 나이에도 마을회의 참석이 묵인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그에게는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았고, 회의가 길어질 때마다 물과 먹을 것을 날라다주는 일을 맡았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 회의에서만큼은 도저히 침묵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조니는 이미 죽었을 거야. 틀림없이 괴물에게 살해당했을 거야."
짐슨 목사와 클레이 장로는 그를 쳐다보며 양미간을 찌푸렸다. 크리시가 누구하고도 결혼하지 않으려는 것에 그들이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은 브라운 린퍼 때문이었다. 브라운 린퍼가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클레이 장로는 알고 있었다.
크리시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아직 조니의 말이 돌아오지 않았어요."
"말도 괴물에게 물려 죽었겠지."
브라운 린퍼가 말했다.
"조니는 처음부터 괴물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어요. 그는 전설 속의 커다란 마을을 찾아 떠난 거라구요."
"하지만 괴물은 있단다. 전설을 의심하는 것은 모독이다."
짐슨 목사가 말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괴물이 이곳에 오지 않는 거죠, 목사님?"
"크리시, 산은 신성하니까."
"말들은 눈사태로 길이 막혀서 돌아올 수 없게 된 거야. 그러니까 결국 괴물에게 살해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말이지."
브라운 린퍼의 말에 노인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에게 입을 다물라고 했다.
"크리시, 그런 어리석은 얘기는 그만해라. 그들의 청혼을 받아들여야 한다. 조니 굿보이 타일러는 이미 떠나버렸어. 그것만은 숨길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짐슨 목사는 말했다.
"일 년이 지나면 저는 평원으로 내려갈 거예요."
"크리시, 그건 거의 자살행위와 같다."
클레이 장로가 말했다.
그러나 크리시는 모닥불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악몽 속에서 부르짓는 조니의 비명소리가 귓전에 메아리쳤다. 이 사람들의 말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만약 조니가 죽었다면 더이상 살고 싶지 않다. 힘없이 떨어져가는 조니의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이름을 부르짖는 그의 목소리.... 크리시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얼굴을 쳐들었다.
"조니는 절대 죽지 않았다구요."
마을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볼 뿐이었다. 도저히 그녀를 설득할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은 다음 기회에 얘기를 해보기로 했다.
세 사람은 크리시를 무시하고 다음 의제로 넘어갔다. 스태퍼 목사는 자기가 죽으면 장례식을 치뤄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식량도 충분하지 않았고, 얼어붙은 땅을 판다는 것도 무척 힘드는 일이었다. 물론 스패퍼 목사는 장례식을 요구할 만한 자격이 있었다. 오랫동안 목사로 일해왔기 때문에 촌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크리시는 이미 자기에게는 볼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일어섰다. 눈자위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연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문쪽으로 다가가서 곰의 모피를 단단히 몸에 감고, 겨울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봄이 되어서 별자리가 저 위치로 돌아오면 반드시 출발할 거야. 매서운 겨울바람이 그녀의 피부를 파고들었다. 그녀는 곰의 모피를 끌어안듯 여몄다. 이 모피는 조니가 그녀에게 준 것이었다.
크리시는 손가락으로 그것을 어루만져보았다. 지금부터 조니를 위해 새 가죽옷을 만들어야겠다.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이다. 짐 꾸릴 준비도 해야지.
산꼭대기에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이 크리시를 휘감았다. 그래, 봄이 되면 떠나자. 크리시는 멀리 별빛을 바라보며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2)
타르는 맹렬한 기세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는 거의 잠을 자지도 않았고, 카방고에 입을 대지도 않았다. 언제까지 이 저주받은 혹성에 유배된 채로 살아야 하는가. 이것이 자신의 운명이라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자지 않고 괴롭히고 있었다. 위치가 격하될 때마다 그가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이런 생각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래서 그는 더욱 초라해졌고, 더욱 서둘렀으며 행동은 거칠어져만 갔다.
약점, 약점! 어떻게 해서든 상대방의 약점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그는 요즘 누구의 약점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타르는 여러 분야에 걸쳐 직원들의 약점을 쥐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 사소한 것들뿐이었다. 사이클로인 여사무원과의 자질구레한 실수, 음주운전 사고, 상사에 대한 험담을 녹음한 테이프, 광석의 원석들 속에 몰래 넣어둔 사적인 편지 등. 그러나 큰 약점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계획을 추진해나간다는 것은 도저히 무리였다.
이곳에는 수천 명의 사이클로인이 있었다. 그리고 보안부장인 타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협박할 만한 약점을 찾아낼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회사는 천사들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광부와 광산관리자를 고용하는 것이었다. 동원할 수 있는 인원은 개돼지만 아니면 전부 동원하였다. 특히 이곳처럼 모두가 근무를 기피하는 혹성에서는 전과자를 고용하는 것은 다반사였다. 그러나 그런 상황은 타르 자신에게 있어서도 비참한 얘기였다.
문제는 넘프 혹성장관이었다. 그에게는 분명히 뭔가 있었다. 타르는 넘프가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찾아낼 수가 없었다. 본사의 회계부에서 근무하는 조카 나이프와 관련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지만, 도대체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아낼 수가 없었다.
더이상 넘프 장관에게 강한 압력을 가할 빌미가 없었다.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가 잘못되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폭로되는 날에는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되어버릴 우려가 있었다. 그렇게 되면 현재 타르가 넘프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작은 힘마저도 연기처럼 사라져버릴 것이었다. 타르는 그것을 전적으로 내세우지 못하고 빙빙 돌며 조금씩 다각도로 관찰해보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결국 그러한 약점은 아무런 사용가치가 없었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타르는 점점 더 초조해졌다. 새로운 문제가 등장했던 것이다. 타르가 본국에 요구한 정보들에 대해서 전혀 회답이 오지 않았다. 나이프에 대한 아무 쓸모 없는 회신이 전송되어온 이후 전혀 반응이 없었다. 그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였다. 무회답. 펜이 다닳도록 '긴급문서'라고 아무리 강조해서 보내도, 본국에서는 받았다는 통지조차 없었다.
타르 보안부장은 어쩔 수 없이 비상수단을 강구하기로 했다. 그는 가공의 무기저장 창고를 발견했다는 보고서를 보냈다. 실제로는 다른 대륙의 어딘가에 있는 채굴장에서 작업원들이 구리로 만든 구식 대포 두 대를 파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타르는 신중하게 용어를 선택해가며 마치 중대사라도 되는 것처럼, 그러나 나중에라도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오지 않도록 보고했다. 중요한 일상 업무보고였다. 그러나 본국에서는 그것 역시 받았다는 통지조차 없었다.
타르는 미친 사람처럼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서 돌아다녔다. 다른 부서의 보고서들도 이런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넘프 장관이 중간에서 텔레포테이션 박스의 전송보고서를 빼내고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도 생각했으나, 넘프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본사에서 타르가 지구에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것은 확실했다. 본사는 타르에게 지구근무를 십 년 연장시킨다는 넘프 장관의 추천에 대해서 양해했다는 것을 통지했고, 그 위에 '회사측 선택에 의한 연장'이라는 조항까지 추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타르의 조사요청서들은 본사에 도착하기도 전에 누군가에 위해 빼돌려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본사로부터의 협력을 기대할 수 없게 된 타르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밖에는 없었다. 위기감이 느껴지자 그의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만이 선명하게 새겨졌다. 그것은 옛날부터 보안부에서 전해내려오는 격언이었다.

어떤 상황이 필요한데 그에 합당한 상황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에는 어떤 수단을 통해서든 직접 그것을 만들어내라.

타르의 주머니는 감시용 카메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들을 숨기는 기술에 있어서 타르는 천재적이었다. 감시용 카메라가 잡은 영상들은 그의 사무실 선반에 늘어서 있는 비디오에 녹화되어 있었다.
타르는 비디오 스크린 앞에 달라붙어서 차고 안을 감시하고 있었다. 즈즈토 수송주임이 점심을 먹기 위해 외출하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벨트에 차고 있는 열쇠꾸러미 가운데 복제한 차고열쇠를 만지작거리면서 온갖 궁리로 들떠 있었다.
타르 옆에는 직원의 행동에 관한 회사규칙 '보안부 989'권이 놓여 있었다. 그 조항 중 별칙조문 34a-IV 페이지가 펼쳐져 있었다. 회사 물건을 절도했을 경우에 대한 처벌규정이 다섯 페이지에 걸쳐 설명되어 있었다.

절도로 회사의 이익을 크게 손상시켰을 경우.... 및 회사직원이 자신이 소유한 돈, 보너스, 그 밖의 사유물에 대한 권리를 갖는 경....
직원의 숙소에서 개인의 돈을 절도했을 경우
-증거가 확실한 절도범은 기화형에 처한다.

바로 이 조항이 타르가 지금 실행하려는 작전의 핵심이었다. 거기에는 절도사실을 기록해놓아야 한다는 조항은 없었다. 처벌시기에 대해서도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핵심이 되는 조항은 단지 '증거가 확실한 경우'와 '기화형'이었다.
이 혹성에는 기화형을 집행하는 기회실이 따로 없었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레이저 광선총만 있으면 누구든지 확실하게 기화시킬 수 있었다. 더욱이 회사규칙 중 타르에게 매우 중요한 조항이 있었다.

회사의 관리직은 그 신분여하를 불문하고, 위의 규칙을 준수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범칙자에 대한 처벌집행권은 보안부의 간부직원, 그 보좌관, 대리, 및 일반직원에게 위임한다.'라고 덧붙여놓고 있었다.
신분여하를 불문하고 조항에는 넘프 장관까지도 포함되었다. 혹성장관이라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처벌권의 위임자는 타르 자신을 의미했다. 그는 이 혹성에서 유일한 보안부의 간부직원 겸 보좌관 겸 대리 겸 일반직원이었다.
타르는 며칠 전부터 즈즈토 수송주임을 감시하고 있었으므로 그의 더러워진 작업복과 모자를 넣아두는 장소까지도 알고 있었다. 드디어 즈즈토가 외출했다. 타르는 수송주임이 놓고 나간 물건을 가지려 되돌아올 확률까지 계산에 두었다.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녀석은 떠났다.
신속하게, 그러나 누군가와 마주쳤을 경우, 수상해 보이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타르는 차고로 향했다. 복제해 온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곧장 세면장으로 달려가 더러워진 작업복과 모자를 집어들었다. 재빨리 다시 밖으로 나온 타르는 문을 잠근 다음 사무실로 돌아왔다.
지난 며칠 동안 타르는 교묘하게 숨겨놓은 감시용 카메라로 참코형제의 방을 감시하여 필요한 사항들을 모두 알아내고 있었다. 일이 끝나면 언제난 동생 참코는 광산복 대신 멋진 롱코트로 갈아입고 외출했다. 그는 저녁식사 후 레크레이션 홀에서 도박을 하곤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동생 참코는 벽에 걸어둔 골동품 술잔에 현금을 숨겨두고 있었다.
동생 참코가 신이 나서 본부구역에서 나오는 장면이 포착됐다. 식사를 끝내고 텔레포테이션 출하지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였다. 좋다, 잘됐다.
타르는 재빨리 본부구역의 복도를 살펴보았다. 노동시간이라서 숙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타르는 비디오의 고정화면에 비춰진 즈즈토 수송주임의 얼굴과 앞에 걸려 있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비교하며 재빨리 분장을 시작했다. 뼈로 된 눈두덩이은 굵게, 손톱은 길게, 그리고 구레나룻은 덥수룩하게 했다. 그러자 즈즈토와 거의 흡사했다. 보안부에 근무하려면 모든 기술에 능통해 있지 않으면 안되었다. 분장이 끝나자 타르는 즈즈토의 작업복과 모자를 걸쳤다.
다음으로 타르는 자신의 지갑에서 오백 크레디트의 지폐다발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맨 위에 놓인 지폐에 '행운을!'이라고 큰 글씨로 표시했다. 또 다른 펜으로는 몇개의 다른 이름을 써넣었다.
타르는 참코의 방을 녹화하고 있는 비디오에 리모트 컨트롤을 접속시킨 후 모든 것을 철저히 점검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거울을 보며 분장을 살펴보고 차고에 장치한 카메라의 스크린을 철저히 확인해보았다. 즈즈토는 돌아와서 거대한 모터 주위를 바쁜 듯이 오가고 있었다. 이제는 녀석도 도저히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타르는 숙소의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갔다. 복제열쇠로 동생 참코의 방으로 들어갔다. 우선 벽에 걸여 있는 술잔을 들여다보았다. 음, 역시. 타르는 그곳에 오백 크레디트 지폐를 넣고, 문 옆으로 돌아갔다. 준비완료다.
타르는 비디오의 리모트 컨트롤의 스위치를 켠 다음 즈즈토의 걸음걸이를 흉내내어 술장이 있는 곳까지 갔다. 그리고 살그머니 오백 크레디트를 꺼낸 뒤, 남의 눈을 두려워하듯이 주위를 둘러보며 '행운을'이라고 씌어진 지폐가 비디오에 정면으로 보이도록 자세를 취하고 돈을 세었다. 일을 마친 타르는 조용히 방을 나와서 문을 잠갔다. 숙소관리인이 멀리서 그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타르는 몸을 수그렸다.
타르는 자기 방으로 돌아와서 재빨리 분장을 지우고, 오백 크레디트를 지갑 속에 다시 넣어두었다. 스크린으로 즈즈토가 저녁식사를 하러 나간 것을 확인한 타르는 모자와 작업복을 세면장의 분래 있었던 곳에 놓아두었다. 숫소로 돌아온 타르는 쾌재를 불렀다. 녀석을 옭아매기 위한 작전의 1단계는 끝났다. 다음 2단계가 볼만한 것이다. 두고보라구!

(3)
채굴장 직원들은 그날 밤 레크레이션 도박장에서 있었던 일을 오랫동안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술에 취한 타르가 별달라 보였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날 밤 타르의 행동이 평소와 달랐다. 웨이터가 계속해서 따라주는 카방고를 연거푸 들이켜댔던 것이다.
그날 밤 타르는 무척이나 울적해 보였다. 술에 취한 그는 비틀거리며 몇몇 광산관리자와 주먹잡기를 시작했다. 서로 상대방의 주먹을 잡고서, 상대방이 견딜 수 없게 될 때까지 조르는 게임이었다. 타르는 매게임마다 졌고, 화풀이라도 하듯 그때마다 카방고를 마셔댔다. 그러다가 갑자기 동생 참코에게 고리걸기 시합을 하자고 제의했다. 그것은 돈을 걸고 하는 도박이었다. 시합하는 사람은 고리를 자신의 손등에 얹고, 다른 손으로 그것을 튕겨서 판자에 박혀 있는 못에 거는 세임이었다. 각각의 못에는 숫자가 붙어 있는데, 가장자리로 갈수록 숫자가 커졌다. 둘이 승부를 해서 숫자가 높은 쪽이 이기게 되는 게임으로 시합이 거듭될수록 판돈은 점점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동생 참코는 타르와의 승부를 꺼려하고 있었다. 타르는 고리걸기 시합에는 명수로 알려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고주망태가 되어 있었다. 제실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리라는 판단을 내리고 타르의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들은 십 크레디트의 판돈부터 시작했다. 레크레이션 홀에서의 도박치고는 상당히 큰 액수였다. 첫판은 동생 참코가 90점, 타르는 18점으로 참코의 승리였다.
타르는 판돈을 올리자고 우겨댔다. 동생은 참코는 그것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시합이 계속되었다. 동생 참코가 튕긴 고리가 휘잉 소리를 내며 날아가 4점의 못에 걸렸다. 동생 참코는 신음소리를 냈다. 이래 가지고는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
이번에는 타르 차례였다. 타르는 몹시 비틀거렸다. 고리를 손등에 얹고 겨냥하여 다른 손으로 판자를 향해서 고리를 튕겨냈다. 그렇지만 3점으로 타르가 또 지고 말았다.
승리감에 도취한 동생 참코는 더욱 게임에 흥미를 느꼈다. 타르는 다시 카방고를 한 잔 들이키더니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는 구경꾼들을 매섭게 쏘아보고는 판돈을 더 올렸다. 그러나 타르는 너무나 술에 취해서, 제대로 판자를 향해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결국 구경꾼들이 위치를 잡아주지 않으면 안되었다.
동생 참코는 50점, 타르는 2점이었다.
"안돼, 안된다구, 지금 그만두는 것은 너무 비열한 짓이야. 남의 돈을 따고 도망갈수는 없어."
타르의 혀는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나는.... 나는.... 백 크레디트를 걸겠어."
급료는 반으로 삭감되어 있었고, 보너스는 아예 나오지도 않는 형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간단히 돈을 벌 수 있는데도 싫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동생 참코는 내기에 응했다.
그 뒤에도 타르는 계속 돈을 잃었다. 구경꾼들은 타르가 실수할 때마다 함성을 질러댔다. 순식간에 동생 참코는 사, 오백 크레디트를 땄다.
타르는 비틀거리면서 웨이터가 있는 곳까지 가서 카방고 잔을 받아들었다. 술을 마시면서도 주머니를 차례로 뒤지더니 마침내 지폐 한 장을 끄집어냈다. 그것은 꾸깃꾸깃 구겨져 있었는데 무엇인가가 씌어져 있었다.
"이건 행운의 돈이야."
타르가 훌쩍거리면서 말했다. 그리고는 판자 앞으로 걸어가 던지는 위치에서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
"이봐, 꼬마 참코, 꼭 한 번만 승부하자. 이돈이 보이지?"
동생 참코는 지폐를 보았다. 행운의 지폐였다. 먼 임지로 출발할 때 광산직원들은 종종 행운의 지폐를 교환하곤 했다. 친구들끼리 서로의 지폐에 서명을 해주는 것이었다. 그 돈에는 열 개 가량의 서명이 있었다.
"나는 행운의 지폐를 걸겠다."
타르가 말했다.
"하지만 이봐, 약속해주게, 이 돈은 절대로 안 쓰고 잘 가지고 있다가 급료일에 보통 돈과 다시 바꿔주겠다고 말이야. 그러니까.... 만약.... 내가 졌을 경우의 얘기지만, 알겠어?"
그때까지 동생 참코의 욕심이 날 대로 나 있었다. 그는 거의 이주일 분의 급료에 달하는 많은 돈을 따고 있었다. 삭감된 급료를 매꾸고도 남을 액수였다.
"좋다마다. 약속하겠네."
동생 참코는 타르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승자인 동생 참코가 먼저 시작했다. 그는 원래 고리걸기 시합을 잘하지는 못했다. 동생 참코가 쏘았다. 안타깝게도 1점이었다. 이래가지고는 도저히 승산이 없었다.
타르는 그것을 보고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가서 1점의 못에 걸린 고리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뒤로 물러나서 던지는 위치에 섰다. 하지만 이번에도 엉뚱한 곳을 향해 서 있었기 때문에 구경꾼들이 바로잡아주지 않으면 안되었다. 고리는 휙 소리를 내면서 날아갔지만 아무것도 없는 벽에 맞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타르는 쓰러졌다. 웨이터가 참코 형제와 챠의 도움을 받아서 타르를 요리운반용 수레에 실었다. 수레는 타르의 몸무게를 감당하지 못하여 연신 삐걱소리를 냈다. 그들은 그의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방안의 침대 위에 던져놓았다. 그들은 지나치게 서글픈 투로 사이클로인의 장송가를 부르며 돌아갔다.
그들이 돌아가자 타르는 문까지 기어가서 문을 걸어잠그고 자물쇠까지 채웠다. 그는 저녁식사 후에 술에 취하지 않는 약을 복용했기 때문에, 이제는 그 약으로 해독할 수 없는 나머지만을 처리하면 그만이었다. 그는 화장실로 가서 손톱을 목구멍에 집어넣고 토했다. 그리고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옷을 벗고 감미로운 잠을 청했다.

(4)
조니는 우리 속으로 들어온 괴물이 문을 걸어잠그는 소리를 들었다.
사고가 난 지 몇 주일 만에 얼굴과 손의 상처는 완전히 회복되었고, 머리칼, 눈썹, 수염도 다시 자라나 있었다. 조니는 눈이 녹아서 고인 물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고 그것을 알았다. 손의 화상은 아물었지만, 상처를 입었던 곳에는 여전히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조니는 웃옷으로 몸을 감싸고 문의 반대쪽을 향해 누워 있었다. 어젯밤 늦게까지 공부하는 바람에  무척 피곤했던 것이다.
"이봐, 동물, 이것을 좀 보라구. 좋은 것을 가지고 왔으니까."
괴물의 목소리는 여느 때와 좀 달랐다. 유쾌해 보였다. 하기는 저 괴물도 인간들처럼 유쾌하다는 감정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조니는 몸을 일으켜서 그쪽을 바라보았다.
타르는 네 마리의 쥐꼬리를 잡아서 늘어뜨리고 있었다. 요즘엔 부근에 쥐들이 줄어든 탓인지 타르는 토기를 잡아다 던져주었다. 그것이 좋았었는데, 오늘은 또다시 쥐였다. 더구나 괴물은 특별한 은혜라도 베푸는 듯 으스대고 있었다.
조니는 다시 누워버렸다. 타르는 쥐를 불 옆에 던졌다. 그 한 마리는 아직 완전히 죽지 않아서 비틀거리며 도망치려고 했다. 타르는 재빨리 벨트에서 권총을 뽑아들고 머리를 날려버렸다. 그 순간 조니는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동물, 너의 나쁜 점은 말이다, 감사할 줄 모른다는 거야. 아무튼 좋다. 그런데 기초 전자공학 디스크는 끝냈나?"
조니는 그것을 끝내고 있었다. 수주일 전에 타르는 그 디스크와 함께 고등수학 디스크도 여러 장 주었었다. 조니는 타르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리모트 컨트롤에 속을 정도면 첨단기계들은 조작할 수가 없다."
조니는 정작 속은 것은 자기라는 사실을 무시하려고 몇 번씩이나 이런 말을 되풀이하는 타르가 한심스러웠다.
"아무튼 좋다. 여기 다른 교과서도 가지고 왔다. 기계를 조작하려면 너의 돌대가리에 이것을 집어넣는 게 좋을 것이다. 채굴기계를 다루고 싶다면 말이야."
타르는 조니에게 책 세 권을 내던졌다. 엄청나게 크고 두꺼웠으나 무게는 깃털처럼 가벼웠다. 세 권 모두 칭코인에 의해 번역된 것이 아니라, 사이클로어로 씌어 있었다. 그 책의 제목은 '초급기술자를 위한 컨트롤 시스템' '전자화학' '힘과 그 전달'이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지금의 조니에게 있어서 책을 계속해서 갖다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지식이야말로 이 포로신분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였다. 조니는 책을 내려놓고 타르 보안부장을 쳐다보았다.
"이것들을 너의 돌대가리 속에 빠짐없이 기억해두도록 해라. 그러면 차량을 절벽에서 떨어뜨리는 일 따위는 없을 테니까."
타르는 가까이 다가와서 의자에 걸터앉더니 조니를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너는 전혀 협조적이지 않아. 언제쯤 고분고분해질 거냐?"
조니는 타르가 대단히 위험한 괴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녀석은 자신의 음모에 나를 이용하려고 한다. 그것이 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아무리 기다려봐도 그것은 무리겠지, 아마."
타르는 의자에 기댄 채 조니의 얼굴을 주시했다.
"흠, 마음대로 지껄여봐라. 그런데 이봐, 동물. 물베 덴 상처는 꽤나 좋아진 것 같구나, 털도 다시 자라기 시작한 것 같고...."
타르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뭔가 다른 말을 꺼내려는 행동이라는 것을 조니는 느낄 수 있었다.
"이봐, 동물,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너는 나를 보기좋게 속였었지."
타르는 별일 아니라는 투로 말하고 있었지만, 그의 눈은 조니를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엔 너를 머리가 두 개 달린 네 발 짐승으로 알았다."
타르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네가 두 마리의 동물로 갈라졌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아냐?"
타르는 웃고 있었으나 그의 눈빛은 교활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말은 어떻게 되었을까?"
윈드스프리터! 조니의 가슴에 그리움이 북받쳐올라왔다. 그러나 황급히 그 감정을 억눌렀다. 타르는 조니를 바라보고 있다가 문 쪽으로 걸어갔다.
말이다. 역시 생각한 대로였다. 이 동물은 말에 대해서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녀석의 약점은 그것이다. 약점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그것을 잡는다는 것은 힘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타르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너는 첫날 나를 속였다. 하여간 좋다. 이제 나는 가봐야 한다. 그 책을 열심히 연구해둬라, 돌대가리야."
타르는 밖으로 나갔다.
"그것은 모두 좋은 책들이니까 말야."
조니는 앉은 채로 타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경솔하게도 놈에게 감정을 노출시켜버리고 말았다. 놈이 노리고 있는 것이 뭘까? 윈드스프리터는 살아 있는 것일까?
불안감으로 착잡해진 조니는 모닥불을 피우고 책을 들었다. 한참동안 책을 읽어나가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책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전자화학'의 색인난에 우라늄이란 단어가 실려 있었다.

(5)
동생 참코가 근심스러운 얼굴로 사무실에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타르,"
참코는 망설이면서 말했다.
"사실은 그 행운의 지폐, 당신이 내기에서 나한테 잃은 그 지폐말인데, 다시 바꿔줄 수가 없게 되었네...."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타르가 외치듯 말했다.
"그 행운의 지폐 말이야. 당신이 그날 밤 고리걸기 시합에서 판돈으로 걸었던 그 지폐 말이야. 내가 그것을 따면 급료지급날 보통 지폐와 바꿔주기로 약속했잖은가. 그런데...."
"잠깐 가다려봐."
타르는 말을 막으며 지갑 속을 들여다보았다.
"어, 정말이군. 없어져버렸는데."
"기억을 잘 떠올려보라구."
"아아, 그래, 그리고 보니 희미하게 기억이 나는군. 그날은 정말 지독한 밤이었어. 내가 굉장히 취했던 것 같아.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되었다는 거야?"
동생 참코는 정말 말하기 힘들었지만, 오늘따라 타르가 자못 싹싹하고 시원스럽게 보였으므로 큰마음을 먹고 털어놓았다.
"그 돈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단 말일세. 도둑을 맞았어."
"도둑을 맞았다고?"
타르가 호들갑스럽게 소리쳤다.
"응, 사실은 내가 딴 오백 크레디트와 나머지 육십오 크레디트를 전부 도둑맞았네. 행운의 지폐도 그 속에 끼여 있었거든...."
"이봐, 차분히 좀 얘기해봐, 어디서 도둑을 맞았지?"
"내 방에서,"
타르는 그의 사건접수용 용지에 기입하기 시작했다.
"언제쯤인가?"
"아마 어제일 걸세. 어젯밤 술집에서 술값을 계산하려고 지갑을 펼쳤을 때 알게 되었지."
"어제라, 흠!"
타르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몸을 의자에 깊숙히 파묻고 펜끝을 씹었다.
"숙소에서 발생한 도난사건이 처음은 아닐세. 자네 말고도 두 건이 더 접수돼 있네. 그러나 당신은 운이 좋은 셈이야."
"어째서?"
"응, 당신은 알다시피 나는 보안을 담당하고 있거든."
타르 보안부장은 등 뒤쪽의 의자에 쌓여 있는 잡동사니더미를 뒤지는 척했다. 그리고는 동생 참코 쪽을 돌아다보았다.
"사실은 당신에게 이런 말을 해서는 안되지만...."
타르는 매우 난처해 하는 표정을 지으며 몹시 망설이는 듯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말을 이었다.
"이것은 반드시 비밀을 지켜줘야 하네. 당신을 믿어도 괜찮겠지?"
"물론이지."
참코가 말했다.
"넘프 장관은 전부터 반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네."
"급료를 삭감시킨 후라면 당연한 일이지."
"그래서.... 당신도 알겠지만, 나 개인으로서는 절대 그런 짓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러니까 말일세, 공교롭게도 당신의 방에 감시용 비밀 카메라 장치를 해놓았네. 바로 며칠 전 일일세. 물론 자네의 방 말고도 몇 개의 방들이 감시되고 있네."
그 말을 듣고도 동생 참코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회사가 작업현장이나 숙소에 비밀카메라를 장치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타르는 어지럽게 쌓여 있는 디스크들을 뒤지고 있었다.
"이것은 아직 검토해보지 않은 것들일세. 실제로 그럴 생각도 없었지. 아직은 그냥 중역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일 뿐이라구.... 아, 이 거로군. 어제 몇 시쯤인가?"
"모르겠어."
타르는 디스크를 플레이어에 올려놓고 스크린을 밝혔다.
"아무튼 당신은 재수가 좋았어."
"정말 그래."
"이 디스크를 조사해보자구. 이, 삼 일 정도 분이 들어가 있을 테니까.... 빨리 돌려보세."
한참 동안 스크린을 보고 있던 동생 참코가 말했다.
"잠깐 멈춰! 뭔가 보였어."
타르는 귀찮다는 듯이 그것을 빠르게 되돌렸다.
"아마 당신이 들락거리는 것이겠지. 나는 이런 것은 일일이 검토하지 않는다구. 시간도 많이 걸리지만 일이 산더미처럼 밀려 있으니까 말일세. 다만 회사의 규칙 때문에...."
"앗 저기야. 저기를 좀 보라구."
"여기라구?"
"그래, 맞아. 거기야, 거기."
타르는 스크린을 느리게 조절했다. 그때 참코가 소리쳤다.
"즈즈토다!"
"이봐, 저것 좀 보라구. 방안을 뒤지고 있잖아. 엇, 찾아냈다. 저런 나쁜 놈. 봤나, 저건 당신의 지폐 아닌가!"
"믿을 수가 없군. 반란방지용으로 카메라를 설치해놓았는데.... 참코 당신은 정말 운이 좋았어.... 이봐, 어디 가는 건가?"
동생 참코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라 벌써 문밖으로 뛰쳐나가고 있었다.
"저 도둑놈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만둬, 그만두라구. 그런 짓을 해봤자 돈은 돌아오지 않을 걸세."
그 말이 맞았다. 그 돈은 이미 여러 차례 접혀져서 타르의 벨트 밑에 보관되어 있었다. 타르는 참코가 술잔에  돈을 감추자마자 곧장 훔쳐냈던 것이다.
"이것은 확실히 사건일세. 업무감시에 포착되어 이미 업무용 디스크에 녹화되어버렸으니까."
타르는 '보안부 989'권의 조항 34a-IV 페이지를 펼쳤다. 타르는 그것을 동생 참코에게 보여주었다.
"기화형?"
동생 참코는 그것을 읽고 깜짝 놀랐다.
"이렇게 중죄인 줄은 전혀 몰랐는데."
타르는 선반에 놓여 있던 레이저 분사 장총을 참코에게 건네주었다.
"사용법은 알고 있겠지? 총알이 가득 장진되어 있네. 지금부터 당신은 보안직원 대리일세."
동생 참코는 레이저 광선총을 받아들자 갑자기 신바람이 났다. 그는 방아쇠를 조사해보고, 안전장치가 걸려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니까 내가 즈즈토를 죽여도 괜찮단 말인가?"
"잠깐 기다려. 이것은 어디까지나 공적인 업무일세."
타르는 그 디스크와 휴대용 소형 스크린, 플레이어, 그리고 회사규칙 '보안부 989'권을 집어들고는 잊어버린 것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아, 가세. 내 뒤를 따라오도록. 아무 말도 해서는 안되네."
두 사람은 숙소로 가서 가장 먼저 숙소관리인을 만났다.
"저어, 즈즈토가 참코의 방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달 십삼일인가 십사일이었는데, 정확한 날짜는 생각나지 않습니다.... 즈즈토였던 것만은 확실합니다.
타르 보안부장은 이 사실을 절대로 입 밖에 내지 말라고 명령했다.
"반란에 관한 수사를 하고 있는 중이니까 말일세."
숙소관리인은 비밀을 지키겠다는 서약을 하고, 순순히 증인보고서에 서명했다. 어쨌든 그는 사건에 연루되고 싶지 않았다.
관리인으로부터 한 번 더 즈즈토를 도둑으로 확인시킨 타르는 레이저 광선총을 잔뜩 움켜쥐고 있는 동생 참코를 데리고 즈즈토가 일하고 있는 정비 공장으로 들어갔다. 타르는 감시용 소형 카메라를 설치하고, 리모크 컨트롤의 스위치를 넣었다.
즈즈토 수송주임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의 손에는 무거운 렌치가 들려져 있었다. 레이저 광선총을 본 즈즌토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변해갔다.
"그 렌치를 바닥에 내려놓아라."
타르가 조용히 말했다.
"뒤로 돌아서 양손을 기중기 레일 위에 올려놓게."
즈즈토는 두 사람을 향해 갑자기 렌치를 내던졌으나 빗나가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타르의 주먹이 즈즈토를 강타했다. 참코는 사격할 기회를 잡으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타르는 쓰러져 있는 즈즈토의 목을 장화발로 짓누르고 손을 흔들어 참코를 물러서게 했다.
타르의 몸이 참코의 시야를 가로막고 있었다. 타르는 무릎을 꿇고 익숙한 솜씨로 재빨리 즈즈토의 뒷주머니에서 돈뭉치를 꺼내들었다.
타르는 그 돈을 참코에게 건네주며 물었다.
"이것이 자네 돈인가?"
기름때로 더러워진 바닥에서 즈즈토는 몸을 비틀며 두 사람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참코는 그것을 세어보았다.
"육백오십 크레디트. 그리고 여기에 행운의 지폐가 있군."
참코는 흥분하고 있었다.
"참코, 자네는 그 지폐가 즈즈토의 뒷주머니에 있었다는 것을 본 현장의 증인일세."
"물론이지."
"그 지폐를 감시용 카메라에 보이게 하게."
타르가 참코에게 부드럽게 지시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이러는 거야?"
즈즈토가 악을 쓰며 대들었다.
"뒤로 물러나서 레이저 광선총을 겨누게."
타르가 참코에게 말했다. 그리고는 즈즈토에게 향한 총구를 가로막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절도범에 대한 사규를 보여주었다. 즈즈토는 조항들을 소리내어 읽었다. 그는 몹시 화가 나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부분에 이르자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면서 애원하는 듯한 눈빛으로 타르 쪽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의 일로 기화형에 처해진단 말입니까? 나는 몰랐습니다."
"무지는 변명이 될 수 없지. 하긴 모든 규칙을 다 알고 있는 직원은 드물겠지. 당신도 모르니까 그랬을 테고."
"그러니까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는 거요?"
즈즈토가 분에 못 이겨 소리를 질러댔다.
타르가 스크린을 작동시키자 즈즈토는 그것을 주시했다. 스크린에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즈즈토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가 동생 참코의 방에서 돈을 훔치고 있지 않은가!
즈즈토가 충격과 혼란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타르는 관리인이 서명한 증인진술서를 보여주었다.
"지금 당장 녀석을 기화형에 처해버릴까?"
참코는 레이저 광선총의 안전장치를 풀어놓으려 했다.
타르는 진정시키듯이 손을 흔들었다.
"참코, 자네에게는 분명히 처형할 권리가 있네. 아니, 그럴 의무가 있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네."
타르는 망연자실해서 서 있는 즈즈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즈즈토, 두 번 다시 이런 짓을 하지는 않겠지?"
즈즈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타르의 질문에 대답했다기보다는 오히려 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경악으로 혼란스러워진 머리를 뒤흔들고 있었다.
타르는 참코 쪽을 돌아다보았다.
"보았지? 내 말을 들어보라구. 자네가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하네. 그러나 즈즈토가 잘못을 저지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네. 게다가 자네 는 잃어버린 돈을 고스란히 되찾았네. 아참, 이자리에서 지폐는 당장바꿔주게. 그것은 증거로도 필요하니까."
참코는 타르가 내민 지폐를 받아들고, 행운의 지폐를 건제주었다. 타르는 감시용 카메라 쪽으로 지폐를 들어올렸다가 증거자료철 속에 넣었다.
"이봐, 참코, 나는 이 서류를 보고하지 않고 그냥 덮어둘 생각이네. 물론 안전한 장소에 보관해서, 우리 두 사람 중 어느 쪽이든 이상이 생기면 즉각 발견되도록 해둘 걸세. 그리고 즈즈토가 또다시 법을 어겼을 경우에는 가차없이 모두 공개해버릴 생각이네."
타르는 부탁하는 듯한 어투로 덧붙여 말했다.
"즈즈토는 지금까지 회사를 위해서 열심히 일해왔네. 그러니까 나를 봐서라도 자네의 복수는 일단 보류해주지 않겠나?"
참코는 잠시 망설이며 골똘히 생각했다. 기화형에 대한 욕망은 이미 가라앉아 있었다. 타르는 즈즈토를 쳐다보았다. 공격을 해올 것 같은 기색은 전혀 없었다. 타르는 참코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 레이저 광선총을 이리 주게."
참코는 순순히 타르의 말에 따랐다.
"고맙네. 회사는 자네에게 고마워할 걸세. 이제 작업장으로 돌아가도 되네."
참코는 싱긋이 웃었다. 타르는 정말로 공정하고 유능한 사이클로인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돈을 되찾을 수 있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네."
참코는 인사치레를 끝내고 자리를 떠났다.
타르는 벽에 걸어두었던 감시용 카메라를 떼어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의자 위에 놓아두었던 물건들을 말끔히 정리했다. 즈즈토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오는 것을 억제하면서 멍하니 서 있었다. 아직도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가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는 격렬한 공포의 눈빛으로 타르를 보고 있었다. 즈즈토가 보고 있었던 것은 타르가 아니었다. 사이클로인들의 신화에 묘사된 악마들 가운데서도 가장 악랄한 악마였다.
"이제 알았겠지?"
타르는 조용히 말했다.
즈즈토는 천천히 의자 위에 걸터앉았다. 그는 한참 동안아나 꼼짝도 않고 있었다.
"그럼, 다시 일을 시작해볼까?"
"...."
"우리 부에 지급해줘야 할 것들이 몇 가지 있네. 마크II 지상차 한 대, 전투기 두 대, 기간제한 없이 말일세. 그리고 인원수송기, 연료와 탄약, 사용명세서 없이 말일세. 그 밖에도 두 세 가지 더 있네. 마침 자네의 서명이 필요한 명령서를 가지고 왔네. 아아, 그렇지 백지명령서도 들어 있네, 괜찮겠지?"
즈즈토의 손에 억지로 펜이 쥐어졌다. 즈즈토는 저항하지 않았다. 두꺼운 지급명세서 뭉치가 그의 무릎에 놓여졌다. 즈즈토는 공허한 표정으로 서명하기 시작했다.
그날 밤 타르 보안부장은 무척 기분이 좋았다. 조금 취하기는 했지만 운수가 좋은 날이었다. 동생 참코와 다시 고리걸기 시합을 벌였다. 대단한 신경전이었다. 결국 참코에게서 육백오십 크레디트를 되찾았다.
타르는 시합에서 딴 돈을 그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카방고를 사는 데 전부 써버렸다. 잠자리에 들기 위해 방으로 돌아갈 때, 그들은 타르에게 갈채를 보냈다.
타르는 아름다운 꿈을 꾸었다. 타인의 약점으로 부와 권력을 얻고, 이 저주받은 혹성으로부터 아주 먼 곳으로 떠나는 꿈을.

(6)
조니는 책을 내려놓고 일어나서 힘껏 기지개를 켰다. 따스한 바람결에 봄기운이 느껴왔다. 겨우내 두껍게 쌓여 있던 눈들은 서서히 녹아내려서, 그늘진 곳에만 조금씩 있을 뿐이었다. 투명한 대기, 아름다운 푸른 하늘, 조니는 온몽에 활력이 가득 넘치고 있었다. 긴시간 동안 추위에 떨며 잔뜩 웅크리고 있던 그의 심자은 힘찬 박동소리와 함께 새로운 희망을 안고 있었다.
우리 밖을 바라보았다. 타르가 광택이 나는 검은 지상장갑차를 타고 우리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 차는 낮고 조용한 엔진소리를 내면서 쏜살같이 다가왔다. 지상장갑차의 포신과 구멍처럼 생긴 포문뒤에는 무시무시한 위력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타르가 차 밖으로 뛰어내리자 땅울림이 전해졌다. 그는 무척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이봐, 동물, 옷을 입으라구. 지금부터 드라이브를 가는 거다."
조니는 벅스킨을 입었다.
"아니야, 틀렸어. 그게 아니야."
타르가 떠들어댔다.
"옷이다, 옷. 날가죽이 아니란 말야. 신형 지상차에 냄새가 밴단 말야. 어때, 차 근사하지?"
조니는 놀라워하면서 경계했다. 그에게 의견이나 칭찬을 구하다니, 아무리 봐도 타르답지 않다. 음모의 냄새가 풍겼다.
"옷을 입었다."
기다리고 있던 타르는 로프를 우리에서 벗겨냈다.
"좋아. 지난번의 고물차와는 비교가 안되지. 이 정도라면 불만은 없을 거다. 페이스 마스크를 써라 너도 차 안으로 들어갈 거니까. 네 돌방망이도 가지고 오너라."
조니는 점점 더 수상해지는 타르의 행동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는 부싯돌과 유리조각이 담긴 자루를 허리춤에 달았다.
"자아, 타거라, 동물. 이 지상차는 쓸 만하지, 안 그래?"
거대한 포수석에 파묻히듯이 앉았을 때, 조니는 정말로 굉장한 차라고 생각했다. 불타는 듯한 자주색 의자, 광택이 나는 계기판들과 조종버튼.
"리모컨이 장치되었는지 이미 점검을 해보았다."
타르는 차에 올라타면서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이 먼저 유쾌하게 큰소리로 웃어댔다.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겠어, 돌대가리? 오늘은 불길에 휩싸여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질 일은 없단 말이다."
"그때 너는 정말 얼간이였어!"
타르는 다시 작은 소리로 웃었다.
지상차는 폭음과 함께 발진하더니 지상 사 피트로 떠올라 활주하였다. 속도는 눈 깜짝할 사이에 시속 이백 마일로 뛰어올라 있었다. 그 갑작스러운 급가속으로 조니는 등뼈가 부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타르는 마스크를 벗어 옆에 놓았다.
"문은 그쪽에 있네. 그러나 내가 마스크를 벗고 있을 때, 문을 열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 게 좋아, 동물. 운전사가 없으면 이 차가 어떻게 될지 상상해보라구."
흠, 그건 참 좋은 정보인데. 조니는 문고리와 버튼, 그리고 그곳에 씌어 있는 조작순서들을 주의깊게 바라보았다.
"어디로 가는 건가?"
"잠깐 드라이브나 하려는 것뿐이야.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둘러보는게 어떤가?"
조니는 물론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는 타르가 하는 운전조작을 모두 주의깊게 관찰하고 있었다. 얼마 후에 조니는 레버와 버튼의 기능들에 대해서 어는 정도 어림잡을 수가 있었다.
그들은 북쪽을 향해서 달리다가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남서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맹렬한 속도감 때문에 바깥 풍경을 선명하게 볼 수는 없었지만, 풀이 무성한 고속도로를 따라서 달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차가 달려가고 있는 방향은 태양의 위치로 판단했다. 조니는 거대한 포수석에 앉아 직사각형의 뜨거운 유리를 통해 거대한 고대의 도시들과 평원을 바라보았다. 그 너머에는 높은 산들이 솟아 있었고, 거대한 산맥이 서쪽을 향해 펼쳐져 있었다. 지상차는 속도를 낮추더니 가장 큰 건물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멈추었다. 황량하고 삭막한 곳이었다.
타르는 차 안의 선반 위에 놓여 있던 카방고를 단숨에 들이키곤 시끄럽게 트림을 해댔다.
"자아, 밖으로 나가서 관광을 즐겨보실까?"
조니는 공기조절 밸브를 잠근 후 마스크를 벗어버렸다. 타르가 포르를 길게 풀어놓자 조니는 차에서 내려 사방을 둘러보았따. 가까운 평원의 여기저기엔 오래전에 사용되었던 기계의 잔해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가까이 보이는 건물들은 매우 당당한 느낌을 주었다. 그들이 서 있는 곳 바로 옆에 참호가 있었다. 그것은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었고,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들이 참호밖으로 솟아 있었다. 산맥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이곳은 무엇을 하던 곳일까?"
타르는 팔꿈치를 차창에 얹어놓은 채 펴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조니는 그러한 궁금증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타르가 말했다.
"이봐, 동물, 너는 인간이 이 혹성을 지배하던 시대의 제1방위기지를 보고 있다."
"그래서?"
조니는 다음 말을 재촉했다.
타르는 차 안에서 칭코인의 안내서를 꺼내 조니에게 던져 주었다. 그곳에 대한 기록이 있었다.

채굴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낡은 군사시설 유적이 있다. 사이클로인들이 공격을 개시한 지 십삼일 후, 소수의 인간들은 원시적인 무기를 가지고 세 시간 가량 사이클로인들의 탱크에 대항해서 싸웠다. 그것이 사이클로인들에 대한 최후의 저항이었다.

기록은 그것이 전부였다. 조니가 주위를 둘러보자 타르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는 참호를 가리켰다.
"이곳이 바로 군사시설 유적이다."
그는 팔을 수평으로 돌리며 가리켰다.
"잘 기억해두라구."
타르는 로프를 더욱 길게 풀어주었다.
조니는 참호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참호는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어디에서 끝나는지 구별하기조차 어려웠다. 참호 앞쪽에는 돌멩이들이 흩어져 있었고, 무성하게 자란 풀들이 흐느끼듯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자세히 봐두는 게 좋을 것이다, 동물."
조니는 참호로 들어갔다. 그리고 침착하게 둘러보았다.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당시의 무기들로 보이는 금속조각들이 남아 있었다. 제복의 흔적들도 눈에 띄었다. 대부분은 흙에 묻혀 있었다.
조니의 눈에 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모습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전혀 승산이 없는 처절한 싸웅이었다. 그 순간 사이클로인들의 탱크가 물밀듯이 밀려오고 있었다. 조니는 이 모든 것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탱크들은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면서 끝내는 인간들을 잔인하게 살육했을 것이 분명했다. 조니는 피가 끓어올라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박동소리는 망치질을 하듯이 귀를 울려댔다.
타르는 흐리멍덩한 얼굴로 몸을 기댄 채 조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충분히 살펴보았겠지?"
"무엇 때문에 어것을 보여주는 건가?"
타르는 마스크 뒤에서 짖어대는 듯한 웃음소리를 토해냈다.
"아직도 모르겠는가, 동물? 이곳은 혹성의 제1방위기지였단 말이다. 그러나 사이클로인들에게는 가장 구식 무기인 탱크로 눈 깜짝할 사이에 풍지박산을 내버렸다구. 탱크 한 대로 말이다.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조니가 이곳에서 알게 된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이 건물에는 합중국 공군사관학교'라고 씌인 문자가 아직도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영어를 모르는 타르는 그것을 알 수 없었지만 조니는 분명하게 읽을 수 있었다.
"자아, 마스크를 쓰고 차에 올라타라. 오늘은 다른 일이 있다."
조니는 차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타르가 말한 것처럼 제1방위기지가 아니었다. 이곳은 군사학교였으며, 전투에 참여한 인간들은 사관후보생들이었다. 그들은 사이클로인들의 탱크에 맞서서 용감하게 싸울 수 있는 정신력을 가지고 있었다. 압도적인 전력에 대항하여 비록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지만 세 시간 동안이나 버텨냈던 것이다.
차가 줄발할 때 조니는 다시 한 번 참호를 돌아보았다. 나의 종족, 인간들! 조니는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솟구쳐오르는 격정으로 목이 메었다. 그들은 무기력하게 죽음을 맞이한 것이 아니었다. 용감하게 맞서서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던 것이다.

(7)
타르는 풀이 무성한 고대 도시의 고속도로를 따라서 똑바로 북쪽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타르의 느긋해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알수 없었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치밀한 음모가 꾸며지고 있었다. 공포와 약점, 만일 약점을 잡을 수 없다면 공포를 갖게 만들면 된다.
타르는 방위기지를 보여준 일에 대한 혼자 흐뭇해 했다. 동물의 감정상태를 뒤흔들어놓은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했다. 공포를, 이 동물에게 공포심을 불어넣어야 한다. 동물이 공포를 느끼게 하여 그것을 약점으로 녀석을 길들여야만 계획대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새 차를 타본 기분이 어떤가?"
조니는 깜짝 놀라 자신의 상상 속에서 깨어나며 경계태세를 취하였다. 그러나 타르는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웃음이 헤퍼 보였고, 쓸데없는 농담까지 하려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상했다.
"어디로 가는 것인가?"
"그냥 드라이브하는 거라니까. 단지 새 지상차를 받았기 때문에 신나게 달려보려는 것뿐이다."
새 지상차가 달리는 모습은 확실히 근사했다. 계기판 위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중역용 마크III 다목적 지상장갑차
번호 ET 536472435-7
페로 파워 카트리지와 호흡가스만을 사용할 것.
페로(Faro)는 생명의 숨결이고 그 힘이다.
한터개랙틱 광산회사

"페로라는 것은 인터개랙틱의 일부인가?"
조니가 묻자, 타르는 잠시 동안 조종간에서 눈을 떼고 조니를 주시했다. 그리고는 어깨를 추스르며 말했다.
"너의 형편없는 돌대가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이라구. 인터개랙틱사는 모든 은하를 지배하고 있는 독점기업이다. 너 같은 돌대가리는 몇 천 개가 있어도 그 규모와 범위를 파악할 수 없다."
"그 모든 것을 본국의 회사가 운영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 그것이 어떻다는 것인가?"
"단지 한 회사에서 여러 혹성을 운영한다니, 엄청나게 큰 회사인 모양이군."
"사이클로인들이 경영하고 있는 회사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인터개랙틱과 비슷한 규모의 회사가 수십 개나 더 있다. 그 모두가 사이클로인들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있다."
"꽤나 거대한 혹성인 모양이군."
"거대하고 강력한 혹성이다."
타르는 이 정도에서 서서히 공포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이클로인은 반항하는 놈들을 전부 없애버릴 수가 있다. 아미 실제로 그렇게 해왔다. 하나의 명령에 하나의 확인도장. 그것으로 한종족 전체가 연기로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즉 기화형이지."
"칭코인들처럼 말인가?"
"그렇다."
타르는 따분해지기 시작했다.
"이곳의 인간종족들도?"
"그렇다. 너도 얌전하게 굴지 않으면 같은 꼴을 당하게 될 거야."
타르의 표정이 자못 엄숙했다.
"고맙다."
조니가 말했다.
"그래, 그러는 것이 좋다. 어제서야 올바른 예의범절을 갖추기 시작하는군."
타르는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만일 그 '고맙다'란 말이 타르가 누설시킨 중요한 정보에 대한 인사라는 것을 알았다면 표정이 달랐을 것이다.
차는 맹렬한 속도로 달려가고 있었다. 한참을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커다란 마을의 외곽지대가 눈앞에 나타났다.
"여기는 어디인가?"
"인간들은 이곳을 덴버라고 불렀지."
아, 그렇다. 커다란 마을의 이름은 덴버였다. 이곳에 이름이 있다면 또 다른 마을들도 있었음에 틀림없다. 조니는 칭코인의 안내서를 집어들고 그 지역에 대해 설명해놓은 페이지를 펼쳤다. 마침 도서관에 관한 설명을 읽고 있을 때가 차가 정지했다.
"이곳은 또 어디인가?"
조니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차는 도시의 동남쪽에 와 있었다.
"네가 돌대가리라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여기는 네가...."
타르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기 때문에 더이상 얘기를 계속하지 못했다.
"네가 그 거대한 바퀴벌레를 공격한 곳이 여기라구."
조니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렇다, 바로 이곳이었다. 조니는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을 살펴보며 그때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그런데 여기에 다시 데려온 이유가 뭔가?"
타르는 스스로가 생각해도 가장 친근감이 느껴질 거라고 생각되는 웃음을 얼굴에 가득 지었다.
"너의 잃어버린 말을 찾는 것이다. 어때, 기쁘지?"
조니는 재빨리 타르의 의도를 간파해냈다. 여기에는 분명히 어떤 음모가 숨겨져 있다. 모르는 체하고 상황을 관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데 말의 시체는커녕 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단정지을 수 없었다. 들짐승들이 말끔히 먹어치웠을지도 모른다.
조니는 타르를 바라보았다. 괴물은 말이 이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는 눈치였다. 윈드스프리터는 의식을 되찾은 후에 한동안 뒤쫓다가 다시 산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이 평원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동물들이 있다. 그 가운데에서 그 두 마리를 찾아낸다는 것은...."
조니가 설명하려 했으나 타르는 말을 막았다.
"역시 너는 돌대가리야. 너는 기계를 전혀 모른다. 기계가 모든 것을 알려주고 있다. 여기를 봐라."
타르는 계기판 위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의 스위치를 켰다. 주위의 모습이 스크린에 나타났다. 타르가 둥근 손잡이를 조작하자 스크린에 나타난 경치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타르가 다른 버튼을 눌렀다. 그와 동시에 차의 지붕에서 작고 둔탁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머리 위쪽의 창을 통해서 조니는 회전하는 물체가 지상 수백 피트 상공까지 솟구쳐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타르가 레버를 밀어올리자 그 것은 더욱 상승했다. 그러다가 다시 레버를 내리자 즉시 하강했다. 그 물체가 탐지해낸 경치들이 스크린에 나타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게서 도망치려고 아무리 애써보았자 헛일이라구. 자아, 잘 봐라."
타르가 스크린 위쪽에 있는 레버를 조작하자 영상이 확대되었다. 타르는 '열탐사(Heart Search)'라고 씌어진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스크린과 공중에 솟구쳐 있던 회전물체가 자동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니는 동물들이 스크린에 잡혔다가 다시 사라져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례차례로 동물의 무리를 확인하면서 세밀하게 검토수색하였다.
조니는 동물들이 스크린에 잡혔다가 다시 사라져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례차례로 동물의 무리를 확인하면서 세밀하게 검토 수색하였다.
"앉아서 지켜보고 있다가 너의 말을 발견하게 되면 내게 알려다오."
"...."
"지구담당 보안부장이 동물이 소유하고 있던 분실물 처리업무를 맡고 있는 꼴이군."
타르는 자신의 농담이 생각하면 할수록 재미있다는 듯 더욱 큰소리로 웃어댔다.
무수히 많은 소떼들이 있었다. 늑대들은 곳곳에서 날카로은 눈빛을 번득이고 있었다. 크고 작은 늑대들은 폭풍전야와도 같은 음침함으로 주변의 분위기를 압도했다. 코요테와 방울뱀도 보였다. 그러나 말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좋다. 오늘은 남쪽으로 가서 찾아보자. 어이, 동물, 눈을 크게 뜨고 찾아봐. 말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타르는 천천히 지상차를 몰았다. 조니는 한참 동안 스크린을 쳐다보았지만 여전히 말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말은 없다."
조니가 말했다. 만일 윈드스프리터를 발견한다 해도 타르에게는 절대로 가르쳐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타르는 짜증이 났다. 약점, 약점! 오늘은 운수 사나운 날이었다. 조급해진 타르는 조니와 함께 스크린을 들여다보았다. 앞쪽에는 언덕이 있었다. 정상은 바위투성이였고, 그 주위는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상당히 깊은 숲으로 나무들이 우거져 어두컴컴할 정도였다. 그 바로 앞의 평원에 소매가 있었다. 그 중 몇 마리는 커다란 뿔을 들어올리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약점, 그래 약점으로 안된다면 공포다. 하루를 이렇게 무의미하게 낭비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타르는 길을 벗어나 숲 쪽에서 차를 정지했다.
"내려라, 동물."
타르는 페이스 마스크를 쓰고 문을 여는 버튼을 눌렀다. 로프를 풀어내고 좌석 밑의 도구함에서 레이저 광선총과 수류탄을 꺼냈다. 조니는 평원에 서서 페이스 마스크의 호흡가스통을 새것으로 갈아끼운 후 좌석에 내려놓았다. 너무 오래 사용했기 때문에 산소가 바닥나 있었다.
타르는 바위를 뒤로 하고 평원을 바라보면서 숲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이리 와라, 동물."
조니는 로프를 질질 끌면서 타르 쪽으로 걸어갔다. 지금 이 상황에서 괴물에게 반항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너에게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보여주겠다."
타르가 말했다.
"나는 생도시절 전교에서 최고의 사격실력을 자랑했었다. 특등사수였지. 쥐 대가리가 얼마나 깨끗이 절단되었는지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오십 미터나 떨어진 위치에서도 정확하게 명중시킨 실력이라구. 이봐, 동물, 내 말을 믿지 않는 게로군."
그랬다. 조니는 듣고 있지 않았다. 그는 무엇인가 술렁거리는 듯한 희미한 소리를 감지하고는 자신의 등 뒤에 있는 바위를 살펴보았다. 그곳에는 동굴의 입구처럼 생긴 구멍이 꿇려 있었다. 동굴인가. 다시금 소리가 났다. 그때 타르가 손을 뻗어서 로프를 힘껏 잡아당겼다. 조니는 굴러넘어졌다. 그는 무릎을 짚고 일어나면서도 다시 한 번 등뒤쪽을 돌아보았다. 조니는 돌방망이를 힘껏 움켜쥐었다.
타르는 익숙한 솜씨로 레이저 사냥총의 총구에 수류탄을 꽂았다.
"잘 보라구!"
팔십보 가량 떨어진 평원에 소 여섯 마리가 있었다. 그 가운데 두 마리는 날카로운 뿔이 달린 포악하게 생긴 황소였고, 나머지 네 마리는 암소였다. 타르는 총신을 위로 향하여 방아쇠를 당겼다. 수류탄은 원을 그리며 날아가서 소들이 있는 곳 너머의 상당히 떨어진 곳에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밝은 녹색의 섬광과 함께 굉음을 내며 폭발하였다. 그 파편으로 암소 한 마리가 쓰러졌다. 다른 소들은 훌쩍 뛰어올라 비명을 지르며 타르 쪽으로 돌진해왔다. 타르는 사냥총을 수평으로 겨누었다.
"저놈들은 맹렬히 달려들고 있다. 그러니까 나의 사격솜씨가 결코 우연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소들은 똑바로 돌진해왔따. 땅이 흔들리는 소리가 나면서 거리는 급속하게 좁혀들었다. 타르는 한 발씩 쏘기 시작했다. 뒤쪽에서 달려오는 암소들의 다리를 맞추었다. 암소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그자리에 쓰러졌다. 다음에는 황소의 오른쪽 앞다리를 꺾었다. 그때 또 한 마리가 날카로운 뿔을 곧세우고 바로 앞까지 돌진해왔다.
타르는 마지막 한 발로 그 소의 오른쪽 앞다리를 명중시켰다. 소는 옆으로 미끄러지면서 쓰러졌다. 타르에게서 불과 일 피트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상처를 입은 소들이 쓰러진 채 고통으로 아우성치는 소리가 주위의 대지를 뒤흔들었다.
타르는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소들을 바라보며 히죽이 웃었다. 조니는 소름이 끼쳐서 타르 쪽을 돌아다보았다. 마스크 속에 감춰진 그의 미소는 잔인한 희열로 가득 차 있었다. 조니는 괴물의 잔인성에 끓어 오르는 적의를 느꼈다. 그때 조니는 비로소 깨닫는 것이 있었다. 사이클로어에는 잔혹을 표현하는 말이 없었다.
조니는 소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 돌방망이를 움켜쥐고 소들을 향하여 나아갔다. 바로 그때 등 뒤에서 다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조니는 뒤를 돌아보았다. 어마어마하게 큰 회색곰이 타르의 등을 덮치려 하고 있었다. 타르의 총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난 것이었다. 곰은 미친 듯이 화가 나 있었다.
"뒤를 봐라."
조니는 소리쳤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소들이 고통으로 울부짖는 소리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타르는 여전히 싱글거리며 자기도취에 빠진 채 서 있었다.
그 순간 성난 곰은 앞발을 높이 치켜들고 으르렁거리며 타르를 덮쳤다. 그제서야 타르는 뒤를 돌아다보았다. 재빨리 몸을 피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회색곰의 성난 앞발이 타르의 등에 일격을 가했다. 타르의 온몸에 거센 충격이 가해졌다. 그와 동시에 타르의 손에서 튕겨져 나온 레이저 광선총이 바람을 가르며 조니 쪽으로 날아왔다. 조니는 총을 얼른 집어들었다. 그러자 사냥총을 돌방망이 이상으로는 활용할 수가 없었다. 곰이 타르에게 두번째 공격을 가하려고 하는 순간, 조니는 돌방망이를 힘껏 휘둘렀다. 돌방망이는 회색곰의 정수리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곰은 앞발을 치켜들고 일어서서 날아오는 돌방망이를 내려쳐 떨어뜨렸다. 그 순간 로프가 끊어졌다. 회색곰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맹렬히 달려들었다. 조니는 사냥총의 총신을 잡고 곰의 이빨을 힘껏 내리쳤다. 그리고 나서 다시 한번 곰의 정수리를 강타했다. 곰은 고목이 쓰러지듯이 쓰러졌고, 울부짖음 소리도 차츰 작아져갔다. 단말마를 내지른 곰은 경련을 일으키며 서서히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져갔다.
조니는 죽어가는 곰을 버려둔 채 타르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처참한 몰골로 쓰러져 있었지만, 의식은 되찾고 있었다. 마스크도 벗겨지지 않았다. 마스크 속의 눈은 크게 벌어진 채 조니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조니는 한 발짝뒤로 물러났다. 곰하고 싸우는 동안 목을 감고 있던 로프가 아무것에도 걸리지 않았고, 다리에 휘감기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조니는 레이저 광선 사냥총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 조작부분에는 작은 취급설명서가 붙어 있어서, 사용법을 금세 익힐 수 있었다. 안전장치는 풀어져 있었고, 방아쇠 밑에 장탄장치가 부착되어 있었다. 군데군데 긁힌 자국은 있었지만 부서진 곳은 없었다. 조니는 타르를 보았다. 타르 역시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타르의 손은 두려움에 떨며 초조하게 쥐었다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동물은 틀림없이 나를 죽일 것이다. 타르는 그렇게 확신하고 벨트에 차고 있는 권총 쪽으로 슬금슬금 손을 뻗었다.
조니는 타르의 손이 권총을 향하여 슬그머니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못 본 체해버렸다. 그는 타르로부터 등을 돌리고 레이저 광선 사냥총을 조준하여 장확히 여섯 발만으로 여섯 마리의 소들을 고통에서 해방시켜주었다.
조니는 총의 안전장치를 걸었다. 그리고 자루 속에서 유리조각ㅇ을 꺼내어 곰의 가죽을 벗기기 시작했다. 타르는 누운 채 조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온모에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등과 목의 피부가 찢어져 있었고, 손에서는 초록색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등을 움직여 보았다. 대단한 상처는 아니었다. 타르는 몸을 일으켜서 차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문을 연 채로 의자에 걸터앉아 등을 구부리고 조니의 행동을 주시했다.
"그 생가죽을 차 안으로 끌고 들어올 생각은 아니겠지."
조니는 계속 곰의 가죽을 벗기며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지붕에 묶어둘 거다."
조니는 벗겨낸 곰가죽을 돌돌 말아들고, 널브러져 있는 어린 암소곁으로 다가갔다. 유리조각을 능숙하게 사용하여 부드러운 허리살과 혀를 잘라내서 곰가죽에 쌌다. 조니는 끈을 꺼내 곰가죽과 고기를 지상차의 지붕에 장착된 레이저 포의 총신에 단단히 매어놓았다. 그리고 나서 사냥총을 타르에게 돌려주었다.
"안전장치는 걸어놨다."
조니는 풀을 뜯어서 손을 닦았다.
타르는 조니의 행동을 지켜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공포? 이 동물은 나에게 조금도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그렇다면 약점이다. 타르는 약점을 잡을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자아, 타라."
타르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쓸데없이 너무 늦은 것 같다."

(8)
이튿날 타르는 매우 분주하게 디스켓더미를 뒤적이고 있었다. 그는 넘프와의 면담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타르는 반란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인터뷰 형식으로 조사해서, 녹음해놓았다. 필요에 따라 다시 편집할 생각이었다. 그것은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작업으로, 고도의 기술과 섬세한 기교를 필요로 했다. 인터뷰는 원활하고 빠르게 진행되었다.
타르가 묻는다.
"당신은 반란을 일으켰을 경우 회사의 어떤 규칙이 적용되는지 알고 있는가?"
질문을 받은 직원들은 대개 깜짝 놀라며 매우 불안한 얼굴로 반란에 대해 자기가 알고 있는 것, 혹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대답했다.
보안부장은 질문을 계속한다.
"반란에 대해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당신의 생각을 솔직히 말해주지 않겠는가?"
물론 직원들은 보안부장으로부터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이것저것 변명거리들을 늘어놓았다.
"반란은 물론 좋지 않은 일이지. 중역들은 가담자들을 모조리 기화형에 처해버릴 것이다. 나는 절대로 반란에는 가감하지 않겠다. 어떤 반란이라도."
인터뷰는 하루종일 계속되었다. 타르는 부서마다 찾아다니며 녹음을 했다. 인터뷰에 응한 직원들에게 고개를 흔들고 싱긋이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것은 일상적인 업무에 지나지 않는다. 중역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당신도 알고 있을 테지. 나는 전적으로 직원 편이라구."
그러나 타르와 인터뷰한 직원들은 그의 질문에 불안을 느꼈다. 급여가 삭감되었든 안되었든간에 절대로 반란에는 관계하지 않겠다고 맹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터뷰 도중 타르는 아따금 사무실에 들러서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스크린을 확인해보곤 하였다. 우리 밖에는 아직도 감시용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타르는 호기심과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한시도 동물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동물은 해가 뜨자마자 일어나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날렴한 손재주로 곰가죽에서 고기들을 떼어내고 그 안에 오래된 재를 비벼넣었다. 손질이 끝난 곰가죽은 막대기에 끼워서 놓은 곳에 매달아놓았다.
가죽손질을 마친 동물은 모닥불을 피우고, 나뭇가지를 기묘하게 짜맞추어 만든 선반 같은 것을 불 앞에 놓았다. 선반에는 네모나게 잘려진 쇠고기가 차곡차곡 놓여졌다. 나뭇잎이 쉴새없이 불속에 넣어지고 굉장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연기는 고기레 엉키듯이 위로 올라갔다. 동물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타르로서는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날이 저물어갈 무렵이 되어서야 조니가 하고 있는 일을 짐작할 수 있었다. 동물은 종교의식을 거행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봄에 거행하는 의식일 것이다.
타르는 칭코인의 안내서에 씌어 있던 기록들을 기억해냈던 것이다. 인간은 종교의식을 행할 때 춤을 추거나, 그와 비슷한 어리석은 짓을 한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연기는 죽은 동물의 영혼을 신들에게 인도해준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 상당히 많은 동물들을 죽었으니까 그럴 만했다. 어제의 일이 떠오르자 온몸에 소름이 끼쳐왔다. 지구의 동물이 사이클로인을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은 타르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회색곰은 자신감을 완전히 꺾어놓았다. 회색곰은 공포스러울 만큼 사납고 거대했다. 몸집이 타르와 거의 비슷한 정도였다.
해가 저물고 나면 동물은 불을 피우고 춤을 출 것이다. 더이상 위험한 상황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 타르는 인터뷰 작업을 계속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날 밤 타르는 레크레이션 홀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동물을 관찰하는 것도 잊고 있었다. 그는 녹화한 인터뷰 테이프들을 편집하는 데 온신경을 집중하여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었다.
보안부에서 숙달된 기술은 테이프를 편집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는 단어나 어구 하나까지도 자유자재로 변형시켜 편집할 수 있었다.
단어의 순서를 뒤바꾸어 재배치하거나 적당한 문자을 빼냄으로써 인터뷰 내용을 새로운 것으로 다시 만들어냈다. 그가 새로 편집한 녹화테이프 속의 직원들은 기화형에 처해질 말들만 하고 있었다.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나느 반란을 지지할 생각이다. 물론 가장 먼저 중역들을 제거해버리겠다."
테이프가 완성되기까지는 참으로 힘든 작업이었다. 타르는 그것들을 새로운 디스크에 연결시켜 복사했다. 그것은 편집한 흔적을 없애기 위한 것이었다. 동녘 하늘이 밝아올 무렵이 되어서야 작업을 끝낼 수 있었다. 그는 무척 피곤했지만 방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처음인터뷰한 녹화테이프에서 잘라낸 조각들은 흔적도 없이 분해시켜버렸다. 새로 편집한 테이프의 확인을 마친 타르는 그제서야 아침이 밝아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테이프 편집작업에서 놓여나자 시장끼와 졸음이 한꺼번에 물려들었다. 졸음은 더더욱 참을 수가 없었다. 타르는 젖은 솜처럼 피곤한 몸을 침대에 누이고 깊은 잠을 청했다.
넘프와의 면담스케줄은 점심식사 이후로 잡혀 있었다. 깊은 잠속에 빠진 타르는 겨우 면담시간에 맞춰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이 면담이 그에게 치명적인 것이 될 줄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넘프와의 면담은 매우 순조롭게 시작됐다. 넘프는 커다란 책상을 앞에 하고 멍청한 표정으로 앉아서 점심식사 후에 카방고를 조금씩 마시고 있었다.
"각하께서 명령하신 여론조사 결과를 가지고 왔습니다."
타르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뭐라고?"
"이 지역의 직원들과 인터뷰한 것입니다."
"무엇에 대한?"
"반란에 대해서입니다."
넘프는 깜짝 놀라 자세를 바로하며 타르를 쳐다보았다. 타르는 넘프의 책상 위에 디스크 플레이어를 올려놓고 인터뷰한 녹음테이프를 스크린과 연결시켰다.
"물론 이것은 모두 극비사항입니다. 어는 직원에게도 이 내용을 누설해서는 안된다고 말해두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인터뷰 내용이 녹화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현명하군,"
넘프는 카방고 잔을 옆에 내려놓고, 스크린에 온신경을 집중했다. 타르는 차례차례로 디스크를 작동시켰다. 기대했던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넘프의 얼굴은 차츰 잿빛으로 굳어져갔다. 디스크를 도무 보고 나자 넘프는 카방고를 가득 따라서 단숨에 마셔버렸다. 카방고르 연거푸 두 잔이나 마신 넘프는 겁에 잔뜩 질린 표정으로 공포에 떨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넘프의 눈빛은 쫓기는 자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 짓는 표정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타르는 낙시 나간 듯한 넘프의 목을 확실히 조여대기 위해서 말을 이었다.
"저는 이것을 극비사항으로 처리해줄 것을 원합니다. 직원들 각자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알려서는 안됩니다. 서로의 생각을 알게 된다면 그 힘이 한데로 뭉쳐질 것이고, 그것은 곧바로 진짜 반란으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
넘프가 말했다.
"동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사태를 미연에 수습하기 위한 약간의 서류와 명령서를 준배했습니다."
타르는 사류뭉치들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우선 반란을 막기 위한 조치들을 할 수 있도록 저에게 명령권을 위임하는 명령서가 필요합니다."
"좋다."
넘프는 즉각 명령권 위임서에 서명했다.
"다음은 다른 채굴장에 배치된 모든 전투기들을 철수시켜서 제가 필요로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곳에 대기시켜놓는 것입니다."
"좋다."
넘프는 그 의견에도 동의하고 서명했다.
타르는 서명이 끝난 서류들을 옆으로 치우고, 다른 서류를 펼쳐보였다.
"이번엔 또 뭔가?"
"인간들을 모아서 기계조작법을 훈련시키는 데 필요한 모든 권한을 저에게 위임한다는 사령장입니다. 직원이 사망하거나 작업을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해도 회사의 광석출하를 유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나는 그런 일이 가능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네...."
"그것은 만일의 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직원들을 작업에 복귀시키기 위한 위협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이 실행불가능하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저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넘프는 의심스러웠지만 마지못해서 사령장에 서명했다. 그 서류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긴급 대체작업 계획.
목적 - 직원들의 파업을 방지하기 위하여.

그때 타르는 크나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는 서명된 서류들을 집어들며 이렇게 덧붙였던 것이다.
"이것으로 필요인원의 삭감도 가능해질 것입니다."
"응, 뭐라고?"
"그리고 저는 확신합니다."
타르는 계속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다.
"각하의 조카분인 나이프도 진심으로 그것에 찬성하시리라고 믿습니다."
"무엇에 찬성한다고?"
"직원을 삭감하는 데 말입니다."
그때 타르는 보았다. 잿빛으로 굳어져 있던 넘프의 얼굴에 안도감이 떠오르는 것을. 하하, 그렇군 이놈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구나 하는 표정이었다. 넘프에게 커다란 안도감을 안겨줘버린 것이었다. 넘프는 마치 그자리의 분위기를 즐기고 있는 듯한 표정으로 느긋하게 타르를 쳐다보았다. 마치 안도감이 넘프의 온몸을 감싸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던 타르는 어느새 공포감으로 질린 자신의 모습을 알아차렸다.
타르는 비로소 자신이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넘프가 나이프와 관련된 어떤 약점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실언을 하는 바람에 들통나고 말았다. 그렇다. 타르는 사실 아무것도 몰랐다.
"흠."
넘프는 갑자기 자신만만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나가서 일하게. 만사가 잘될 거라고 믿고 있겠네."
타르는 문 밖에서 멈춰 섰다. 약점은 무엇인가. 넘프는 이제 나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넘프의 웃는 소리가 문 뒤에서 들리는 것만 같았다.
타르는 자신을 위협하며 다가오는 검은 구름을 떨쳐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최소한 인간을 가둬놓았다. 계획은 작전대로 진행해나락 것이다. 인간은 목적만 달성되면 그 즉시 기화시켜버리면 되었다. 넘프까지 기화시켜버릴 수 있다면 속이 후련할 것만 같았다. 약점, 약점. 그가 가지고 있던 넘프의 약점은 이제 사라져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동물의 약점도 못 잡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든 그들의 약점을 잡아야 한다. 타르는 약점잡기에 골몰하며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9)
따스한 봄햇살이 쏟아져내리는 출하작업장은 기계들의 소음과 진동으로 가득 차 있었다. 굉음과 함께 화물기가 도착하고, 그것이 토해내는 광석이 크게 진동하면서 광장에 떨어져내렸다. 브레이드가 달린 차량이 그것을 모아서,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으로 옮겨갔다. 원석을 가득 담은 거대한 원석운반용 통이 덜컹거리며 벨트를 따라 원석들을 쏟아놓았다. 고속으로 회전하는 커다란 바람개비가 윙윙거리며 분진들을 공중으로 날려보냈다. 컨베이어 벨트로 실어온 광석들은 출하용 플랫폼으로 미끄러져내렸다.
그 소음 한가운데에 조니는 앉아 있었다. 분진분석기에 쇠사슬로 묶인 그에게 수많은 분진들이 날아와 두껍게 쌓여갔다. 귀청을 찢을 듯한 소음은 끊인없이 조니를 괴롭혔다. 그곳에서 조니가 하는 일은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오는 광석들 중에서 우라늄광석을 검출해내는 일이었다.
계속해서 실려오는 광석들 위로 고속으로 회전하는 바람개비가 끊임없이 분진을 날려보내고 있어서 계기판조차 볼 수가 없었다. 조니는 가득 찬 분진들을 향해 레이저 빔을 통과시켜서 계기판들을 살펴야 했다. 계기판에는 자주색과 붉은색 불빛이 있었다. 둘 중 어는 색의 불빛이 들어오느냐에 따라 레버를 작동해야 했다. 자주색 불빛의 경우에는 광석을 출하시키는 레버를 넣고, 붉은색 불빛의 경우에는 폐기처분용 홈통에 떨어뜨리고 경보기를 울리는 레버를 넣어야 했다. 붉은 불빛이 들어왔을 경우에는 그 광석에 우라늄이 섞여 있다는 신호였으므로 즉각 그 광석을 옆의 홈통에 떨어뜨려야만 했다.
조니 혼자서 그 작업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채굴장의 조종부 간부직원 보좌인 카에게 엄중히 감시당하고 있었다. 카는 밀폐된 헬멧을 쓰고 있어서 분진들로부터 보호받았으나 조니는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있지 않은 탓에 끊임없이 몰아치는 분진들과 소음으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방진안경조차 쓰고 있지 않았다. 카가 조니의 어깨를 툭툭 쳤다. 지금 도착하는 광석은 그냥 보내도 좋다는 신호였다. 조니는 통과레버를 넣었다.
타르는 동물에게 채굴기기의 조작을 가르치는 데 가장 적합한 인물로 카를 선발했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카는 신장이 칠 피트밖에 안되는, 사이클로인 중에서는 상당히 작은 편이었다. 모든 사이클로인들은 그를 분출구라고 불렀다. 언제나 쉴새없이 지껄여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카는 얘기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는 사이클로인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친구를 사귀고 싶어했지만 단 한 명도 없었고, 기계에 관해서는 정통했지만 처세에 있어서는 어리석다는 소문이 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타르가 그를 택하게 된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더욱이 타르는 카의 약점까지 잡고 있었다. 카는 두 명의 사이클로인 여사무원과 함께 출입이 금지된 사무실에 있다가 타르에게 적발됐던 것이다. 세 명이 한창 즐기고 있는 장면이 타르의 비디오 레코더에 녹화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상부에 보고하지는 않았다. 카와 여사무원들은 타르에게 무척 감사해 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었다. 카는 상습범죄자로 지명수배되어 체포도기 직전에 지구에 직장을 얻어서 도망쳐왔다는 사실이었다. 또한 타르는 카의 본명까지 알고 있었다.
카는 계속해서 지껄여댔다.
"알겠지. 방사선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무리 작은 양이라도 분진까지 검출해내지 않으면 안된다. 방사선은 물론 방사선 동위원소에 해당되는 것은 한 티끌이라도 플랫폼으로 내보내서는 안된다."
"만일 내보내게 되면 어떻게 되는데?"
조니가 목청을 높여서 말했다.
"전에도 말했지 본국혹성에서 섬광이 된다. 그러면 텔레포테이션은 즉각 중지되고, 우리들은 모두 불타버리게 되는 것이다. 명심하라구. 분진이 한 톨이라도 섞여 있으면 그렇게 되는 거야, 분진 속에 그것이 섞여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라늄은 절대로 놓쳐서는 안된다."
"그런 일이 일어난 적은 있는가?"
"농담은 그만하라구. 그런 일이 절대로 있을 수 없어!"
카는 짖어대듯이 큰소리로 외쳤다.
"앞으로도 절대로 없을 것이고."
"먼지 한 톨도?"
조니는 의아해 하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렇다. 먼지 한 톨이라도."
"만약 우라늄이 덩어리가 섞여 있다면 어떻게 되는가?"
"너는 그런 것까지 검출하지 않아도 돼."
"어떻게 하면 검출할 수 있는가?"
"애당초 출하할 수 없는 거야."
카와 조니는 빠르게 친숙해져갔다. 처음에 카는 이 동물은 이상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씨가 좋은 것 같았고, 친구가 없는 카에게 좋은 상대가 되어주었다. 더구나 동물은 쉴새없이 질문을 퍼부었으므로 얘기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카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신나는 상대였다. 또한 동물과 함께 있는 일이 공식적으로 주어진 임무였으므로 타르에게 지적당할 염려도 없었다.
타르는 매일 아침 인간을 데리고 와서 그날 조작해야 할 기계에 둒어두었고, 작업시간이 끝나면 데리러 왔다. 동물이 도망치면 어떻게 되는지에 관해서는 타르에게 매일같이 다짐받곤 했다. 카에게는 동물을 다른 기계에 옮겨매는 일만이 허락되었다.
오늘 아침 규정 근무시간을 마친 기계조작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돌아갔다. 광석분리 작업장은 위험성이 내재돼 있어서 과거 십여 년 동안에 사이클로인들이 사망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보통 때 같으면 위험수당이 붙겠지만 현재는 경비절감 때문에 그것마저 삭감된 상태였다.
화물기에 실려온 짐들이 모두 처리되었다. 마지막 광석운반통이 남아 있던 광석을 모두 담아서 컨베이어 벨트에 싣고 작업장을 통과시키자 작업장 전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긴장을 풀었다. 그때 기계담당 조작원이 돌아와서 의심스럽다는 듯이 장비를 살펴보았다.
"이녀석이 기계를 부수지는 않았나?"
기계담당 조작원은 조니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서는 아직 아무것도 고장낸 것이 없다."
카가 감싸듯이 말했다.
"녀석은 브레이드 달린 차량을 폭발시켰다는 소문이 있더라구."
"아아, 그 소문 말인가. 그것은 전부터 고장나 있던 차였다고 하던데."
"몇 개월 전에 워라가 사고로 죽은 것을 기억하고 있겠지?"
"아, 지붕에 금이 가 있었던 그 차!"
"맞았어, 그 차였어."
"난 또 이 동물이 날려보낸 줄 알았지."
"즈즈토가 자신의 정비불량을 감출려고 핑계댔던 것뿐이라구."
그래도 안심이 안된다는 듯 기계담당 조작원은 자신의 우라늄 검출기를 꺼내들고 기계 주변을 철저히 점검했다.
"당신은 어째서 그렇게 신경질적으로 점검하는 거야?"
조니가 말했다.
"아니!"
기계담당 조작원이 놀라서 말했다.
"이녀석, 사이클로어로 말하는데."
"녀석의 헬멧에서 가스가 새고 있는 모양이지 뭐."
카가 조니에게 설명해주었다.
"네가 우라늄 검출판에 분진을 남겨놓았는지도 모르니까."
조니는 조작원을 쳐다보며 물었다.
"헬멧이 폭발된 적이 있는가?"
"바보 같은 소리. 폭발했으면 내가 이렇게 살아 있겠어? 내 주위에서 호흡가스를 폭발시킬 생각은 없다구. 내 기계에서 내려와. 곧 다음 화물기가 올 테니까."
카는 동물의 로프를 풀어서 전력철탑이 만들어놓은 그늘 아래로 데리고 왔다.
"이것으로 출하기계 조작법에 대해서는 거의 끝났다. 내일부터는 실제로 채굴작업을 한다."
조니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쪽의 작은 집은 무엇인가?"
카는 조니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조그만 돔 모양의 건물로, 뒷면에는 수많은 냉각코일이 설치되어 있었다.
"아아, 저것은 시체안치실이다. 사망한 사이클로인은 모두 본국으로 송환하게 되어 있다."
조니는 흥미를 느꼈다.
"일종의 감상인가, 아니면 가족을 위해서인가?"
"아냐, 그런 게 아니야. 회사의 중역들은 묘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만약 다른 종족이 사이클로인의 시체를 해부해서 연구한다면 그 신진대사를 계통을 알게 될 거 아냐. 그들은 그 결과를 이용해서 좋지 않은 계획을 꾸밀지도 모르지. 그것으 걱정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이것은 인원파악에도 필요하다구. 당사자가 죽은 다음에도 급료지불명부에 그 이름이 올라가 있는 경우가 있거든. 그런 경우 다른 자가 급료를 착볼할 수도 있으니까. 옛날에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어."
"그럼 시체는 어떻게 되나?"
"시체가 모이면 날짜를 정해서 텔레포테이션으로 본국에 송환한다. 다른 짐들처럼 본국에 도착한 시체는 사이클로성의 회사묘지에 매장된다."
"굉장한 혹성인 모양이군."
카의 얼굴이 갑자기 밝아졌다.
"그렇고 말고, 이런 헬멧이나 덮개 따위는 필요없다. 대기 자체가 호흡가스니까. 멋진 곳이다. 묵직한 중력이 있고, 모든 것이 눈부신 자주색으로 되어 있다. 여자들도 많이 있고 말이야. 나는 이곳에서 나가면.... 타르가 잘만 해준다면 이곳에서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내를 열 명쯤 얻을 거야. 하루종일 카방고를 마시면서 여자들과 신나게 즐기며 살 거야."
"호흡가스는 계속해서 수입해야만 하는가?"
"그래, 다른 혹성에서는 그것을 합성할 수가 없어. 사이클로별이 아니면 도저히 발견할 수 없는 독특한 합성원소가 필요한 모양이야."
"본국혹성의 대기가 바닥날 가능성은 없나?"
"아니, 절대 없어. 그 원소는 바위 깊숙한 곳에 들어 있는데 끊임없이 나오고 있으니까. 저기 드럼통들이 보이지?"
조니는 피라밋 모양으로 쌓아놓은 드럼통들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사이클로성에서 역텔레포테이션으로 전송되어온 것이었다. 기중기가 달린 트럭이 그것을 옮겨싣고 있었다. 트럭에서 드럼통들을 마지막 화물기에 옮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 드럼통들은 바다 너머로 보내지는 것이다."
"채굴장에는 전부 몇 개나 있지?"
카는 목을 긁으며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아마 열여섯 군데쯤 될 거야."
"어디에 있는데?"
조니는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카는 모르겠다는 표시로 어깨를 쳐들어 보이려다가 뭔가를 생각해 낸 것 같았다. 그는 뒷주머니에서 종이조각들을 한뭉치나 끄집어냈다. 언제나 지도의 뒤면을 이용하여 작업할당을 메모해두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펼쳤다. 그리스와 진흙으로 더럽혀 있었지만 잘 보였다. 조니가 지구전도를 본 것은 그것이 처음이었다. 손톱으로 지도를 가리키면서 카가 설명했다.
"그렇다. 열여덟 군데다. 발전소가 두개 있고.... 그것이 전부야."
"발전소란 뭘 말하는 거야?"
카는 머리 위에 있는 전력철탑을 가리켰다. 다른 철탑들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남동 방향으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너무도 멀리까지 이어져 있어서 끝에 있는 것들은 점으로 보였다.
"이 전력선은 여기서 수백 마일 떨어진 수력발전소로부터 오는 것이다. 원래는 고대의 댐이었는데, 회사에서 그 내부에 설치된 기계들을 다른 것들로 대체시켰지. 그것을 출하를 위한 동력원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그것이 발전소다."
"그곳에도 작업원이 있는가?"
"아니, 없어. 전자동이야. 바다 건너편 대륙에도 무인발전소가 있어."
조니는 지도를 보았다. 매우 흥분하고 있었지만 카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짐짓 태연한 척했다. 대륙은 다섯 개가 있었고, 지도에는 모든 채굴장이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조니는 손을 뻗어 카의 주머니에서 펜을 꺼냈다.
"앞으로 기계훈련을 얼마나 더 받아야만 하는가?"
카는 잠시 생각했다.
"드릴.... 윈치...."
조니는 카가 들고 있는 지도를 빼앗아서 뒷면의 백지가 위에 오도록 반으로 접었다. 그리고 카가 말해주는 기계들의 이름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기계이름들을 전부받아 적은 조니는 펜만 돌려주고 지도는 자신의 자루 속에 집어넣었다. 조니는 일어나서 기지개를 켜고는 다시 땅 위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사이클로성에 관해서 좀더 자세히 말해주지 않겠나? 굉장히 재미 있는 별 같은데."
오랫만에 말상대를 만난 카는 신이 나서 떠벌리기 시작했다. 조니는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그의 얘기들은 사이클로인들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는 정보원이었다. 자루 속의 지도가 부스럭대는 소리도 조니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
조니는 자신의 종족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사이클로 제국을 상대로 싸우려 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아무리 사소한 정보라도 중요한 가치가 있었다.
모든 은하계를 삼켜버릴 듯한 강대한 제국이 자신을 향하여 돌진해오고 있었다.

  제 1 권
  지구선선

  제 5 부
  조니, 당신이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기뻐요

  (1)
  조니는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해마다 한 바퀴씩 돌
아서 제자리로 돌아오는  별자리의 느릿느릿한 움직임에 눈을 고정
시켰다. 그는 어떻게  해서라도 빨리 도망쳐야 한다는 결심을 굳히
고 있었다. 앞으로  삼 주일만 지나면 산을 떠나온  지 일 년이 된
다. 만약 크리시가 평원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 이 채굴장까지 찾
아올 것이다. 조니는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도망을 치는 데는 많은 장애가 있었다. 사이클로인들의 탐지기를
떠올리면 탈출은  극히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조니는 좌절하지 않
고, 집요하게 탈출방법을  계획했다. 조니의 탈출은 스스로에게 부
여한 목적, 즉  사이클로성으로부터 지구를 해방하고, 인간을 다시
부흥시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조니는 드러누운  채 달빛에 환하게 비춰진  우리 안을 둘러보았
다. 우리 안은 무척 더러웠다. 그는 자신의 무능함을 비웃었다. 아
직도 이곳에 있는 그 자신.... 개처럼 목이 묶인 채 철책에 매여져
있는 자신의  꼴이 한심스러웠다. 감시용  카메라가 지키고 있어서
도망치려고 하면 재빠른  추적이 기다리고 있기는 하지만 살해당한
다 해도 최후까지 시도해야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탈출이었다.
  탈출의 기회를 열어줄 것 같은 계기가 이틀 후에 찾아왔다. 적어
도 목고리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타르는 전자장치들을 수리하는 방법을 배우라고
명령했다. 기계의 제어장치가 고장나거나, 리모트 컨트롤 시스템이
잘못되는 경우가 발생하므로 조종사도 취급법을 알아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타르의 설명은 타당성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조니는 훈
련받는 동안, 조작원이 전자장치를 수리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기계가 조그만 이상해도 전자과의 직원들이 재빨리 수리해
주었다. 그들은 사이렌을 울리면서 삼륜차를 타고 오곤 했다. 그런
데 조니에게 그것을 배우라고 우겨대는 것은 타르의 숨겨진 의도를
점점 더 이해할 수 없게 만들 뿐이었다. 타르가 조니에게 시키려고
하는 것은 전자과 직원들에게는  맡길 수 없는 작업인 것이 분명했
다.
  결국 조니는 거대한 벤치에 앉아서 회로와 배선도와 부품에 대해
서 배웠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전자회로의 위치이동과 변
화에 따른 작용으로 발휘되는  기능 등, 조그만 와이어와 부품, 결
합용 금속조각들에 관한 것이었다.
  잔자장치들의 수리법을 배우면서 조니가 경악했던 것은 수리공구
들이었다. 조니가 보기엔 큰 것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손잡이가 달린
칼 모양의 조그만 공구였다. 그것은 놀라운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손잡이에 부착된 스위치를 원하는 숫자에 맞추면 설령 그것이 강철
이라 해도 즉시 절단되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절단된 와이어의
양쪽 끝을  맞대놓고 스위치를 반대로 해서  날을 그곳에 갖다대면
절단되기 전의 형태로  돌아갔다. 다만 접합할 경우에는 양쪽 끝이
같은 금속이어야 했다.  다른 종류의 금속을 접합시킬 때는 특수접
착제를 이용하였다.
  카는 군것질을 하기  위해 종종 작업장을 나가곤 하였다. 로프에
묶여 전자공학 작업실에 혼자 남게 된 조니는 자신의 로프 끝을 그
공구로 시험해보았다. 그것은 깨끗이 절단되었다. 스위치를 반대로
하자 절단되었던 흔적도  남기기 않고 깨끗이 이어졌다. 조니는 굳
이 시험을 해보지 않아도 이것으로 자신의 금속목걸이를 똑같이 끊
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조니는 작업장 안에 아무도 없다
는 것을 확인한 뒤 내부를 둘러보았다. 안쪽 깊숙한 곳에 공구보관
함이 있었다.  그는 로프를 끊고  공구보관함으로 달려가서 똑같은
공구를 찾아냈다. 조니는  자신에게 배급된 공구를 훔칠 만큼 어리
석지는 않았다.
  멀리서 작업장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조니는 재빨리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서, 방금 찾아낸 공구로 로
프의 양쪽  끝을 이었다. 따분한 모습으로  카가 돌아왔다. 조니는
훔쳐낸 공구를 자신의  모카신(사슴가죽으로 만든 신발) 속에 감췄
다.
  "자네는 정말로 열심히 배우고 있군."
  카는 조니의 작업태도를 칭찬했다.
  "음, 열심히 하고 있다."

  (2)
  타르는 넘프의  약점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잡을 뻔했던  넘프의 약점을 놓쳐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약
점을 찾아낸 것이  우연이었던 만큼 잃어버린 것도 우연이었다. 타
르는 매일밤 잠을 설쳐가면서 대책을 세우느라고 고심했다.
  앞으로의 작전은 상당부분이 표면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넘프가
꼼짝 못할 약점을 한 가지만이라고 확보하지 못하면 안전을 보장할
수가 없다. 타르는  있지도 않은 반란대책을 세우느라고 많은 시간
을 낭비했다.  그것들은 이미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타르는 다른
채굴장에 배치된 전투기들을  모두 기지로 옮겨와서 한군데에 집결
시켜놓았다. 무기고들을 조사하고 문들을 모두 봉인해버렸다. 그런
다음 남아있는 유일한 무인정찰기를 장악해버렸다.
  타르는 이,  삼 일 전에  전송되어온 무인정찰기의 탐색스크린을
통해 황금이  있는 위치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무인정찰기가 산
위를 통과할 때 아름다운 황금광맥이 스크린에 나타났었다. 황금광
맥은 깊이가 이천 피트나  되는 절벽의 정상에서 백 피트 아래쪽에
그 찬란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번쩍이는 황금줄기와 수정덩어
리들이 어우러져 있는 순백의 결정체!
  지진으로 계곡의 어두운  골짜기 밑으로 떨어져나간 절벽을 따라
황금광맥이 드러나 있었다. 과거 화산이 폭발했을 때 산꼭대기에서
뿜어올린 순금의 액체들이 용암층에 의해 덮여 있었다. 그 후 산을
타고 흘러내린 물줄기가  강을 이루었고, 그 강물이 장구한 세월을
흐르며 서서히 계곡을 깎아내렸다. 이번에는 지진에 의한 산사태로
황금광맥이 다시 표면에 드러난 것이었다.
  그러나 사이클로인들에게는 황금광맥 근처에는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장애가 가로막고  있었다. 우라늄 지역을 통과하지 않고는 그
곳에 갈  수 없었던 것이다.  사이클로인들에게는 우라늄이 문제였
다.
  더구나 황금광맥이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표면에 있었으므로 그
곳까지 발판을 내려서  파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밑에는 이천 피트
나 되는 골짜기 커다란 입을 벌리고 있었다. 계곡 아래에서 불어오
는 세찬 바람이 채굴현장 주위를 맴돌며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또
한 절벽위에는 기계들을  설치할 만한 적당한 장소가 없었다. 있다
고 해도 도저히 설치할 수 없었다. 채굴인원 중 몇 명 정도의 목숨
은 절벽 아래고 빼앗길 각오를 해야만 했다.
  타르는 광맥의 가장  좋은 부분만을 캐낼 작정이었다. 광맥 전체
를 파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노출된 광맥만도 충분히 일 톤이 넘는
양이었다. 사이클로별에서는  황금이 값비싼  광석이었다. 이 산에
있는 황금은 사이클로별의  가격으로 일조 크레디트에 가까운 가치
를 지니고 있었다.  고위층을 매수하기 위한 뇌물로 사용하기에 충
분한 금액이었다.
  타르는 금괴를 처리하는 비결을 알고 있었다. 본국에 보낼 때 특
수처리를 해두면 나중에 모두  회수할 수 있도록 보내는 방법을 생
각해두었다. 스크린을 통해  황금의 찬란한 빛을 만끽한 타르는 그
촬영날짜와 장소를 교묘히 변조시켜서 다른 하찮은 서류철 속에 깊
숙히 숨겨놓았다. 그러나  완벽한 작전을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써
서라도 넘프의 약점을  잡아야 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만일의 경우
실수나 사고가 발생하다  하더라도, 타르 자신은 넘프의 약점 아래
안전하게 보호될 것이었다.  게다가 이 저주받은 혹성에서의 십 년
형을 앞으로  일 년으로 단축시킬 수도  있을 것이었다. 타르는 이
혹성에서의 생활자체를 유형이라도 생각했다.
  넘프가 하는 모든 일은 나이프가 회계부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연
관되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거기까지는 쉽게 생각해낼 수 있었다.
도대체 어떤 관계가  이루어지고 있을까.... 그는 책상에 비스듬히
기댄 채 생각에 잠겼다.
  그렇지, 그 동물의 약점도 손에 넣어야 한다. 움직일 수 없는 결
정적인 약점이 아니고서는....  감독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파
내고, 파낸 것을 순순히 넘겨주도록 강요하지 않아도 될 만한 결정
적인 약점이 필요했다. 하여간 두고볼 일이었다. 동물의 학습은 순
조롭게 진행되고 있고,  다른 동물들을 모으는 계획도 모두 준비되
어 있다. 약점만 잡으면  훨씬 순조로울 것이다. 타르는 자신의 운
을 믿고 있었다. 동물들은  반드시 황금을 캐내게 될 것이다. 황금
만 손에 들어오면  녀석들은 기화시켜버리고 본국으로 보내기만 하
면 된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넘프였다. 그는 단
한 번의  명령으로 동물을 해방시킬 수도  기화시켜버릴 수도 있었
다. 또한 기계류의 사용허가를 철회할 수도 있었다. 언젠가는 반란
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위임한
모든 명령권들은 취소되고,  작전은 물거품이 되어버릴 것이다. 실
제로 반란의 조짐은 거의 없었다.
  타르는 시계를 보았다. 앞으로 두 시간 이내에 출하가 시작될 것
이었다. 타르는 일어나서 벽에 걸어둔 페이스 마스크를 꺼냈다. 그
리고 몇 분 후 출하용 플랫폼에 도착했다.
  타르는 출하 전의 먼지와 소음의 소용돌이 속에 서 있었다. 긴급
발송 문서상자를 담당하는 전송직원이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문서
상자는 봉인된 채 전송준비가 완료되어 플랫폼의 한구석에 놓여 있
었다. 챠가 다가왔다. 일에 방해를 받아서 불쾌한 모양이었다.
  "긴급발송  문서상자에 대한  통상적인  업무점검이다. 보안업무
야."
  타르는 넘프가 위임한  비상사태 방지 총괄권한 명령서를 제시했
다.
  "빨리 끝내주지 않으면 곤란하네."
  챠가 다급하게 말했다.
  "기다리고 있을 시간이 없으니까 말이야."
  그는 힐끗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타르는 긴급발송 문서장자을 안
고 차 안으로 들어가  마스터 키로 상자를 열었다. 아무도 보고 있
지 않았다. 챠는  곧장 작업장으로 달려가서 브레이드가 달린 차량
의 운전사에게 광석을 정리하라고 고함쳤다.
  타르는 숨겨온 초소형 카메라를 꺼내서 상자 속의 모든 서류들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그 문서들은 정기적인 업무보고서로 그날 진행
한 작업데이터를 형식에 맞추어 기록해놓은 것들이었다. 타르는 전
에도 같은  방법으로 보고서들을  조사해보았으나 넘프가 떨어뜨린
행운의 열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혹성장관은 전송되는 모든
서류들에 서명을 해야 하고 때로는 데이터와 의견을 추가로 기입해
놓아야 했다. 소형  카메라는 순식간에 모든 서류들을 촬영하였다.
타르는 그것을 상자에 집어넣고 자물쇠를 채워서 플랫폼에 다시 갖
다놓았다.
  "아무 문제도 없겠지?"
  챠가 말했다. 쓸데없는 일로 업무방해를 받지 않게 된 것 같아서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었다.
  "사적인 편지는 없었다."
  타르가 말했다.
  "그런데 시체를 본국으로 전송하는 날은 언제인가?"
  그는 시체안치실을 손으로 가리켰다.
  "언제나 마찬가지지. 일 년에 두 차례 아냐."
  챠가 말했다.
  "하여간 이 지역에서 당신의 차나 빨리 치워주게. 지금부터 대대
적인 출하가 있어서 우리들은 바쁘다구."
  타르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기대는 안했지만 촬영해온 필름들을
한장 한장  스크린에 비춰보면서 철저히  조사했다. 타르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넘프가 추가해서 쓴 부분들이었다. 비밀통신, 나이
프만이 해독할 수 있는 통신이 있을 것이다. 타르에게는 확신이 있
었다. 본국혹성과 교신하는  수단은 이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
었다.
  틀림없이 그들 사이의 은밀한 끈을 찾아낼 것이고 그때야말로 황
금채굴 작전은  시작되는 것이다. 타르는  밤늦게까지 스크린 앞에
앉아서 촬영해온 긴급문서 필름들을 철저히 검토하였다. 타르는 확
신하고 있었다. 넘프의 약점은 분명히 이 서류들 속에 추가로 기록
된 내용에 숨겨져 있다고.

  (3)
  탈출을 준비하는 작업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우리의 철책 위에 설치된 감시용 카메라의 처리가 선결문제였다.
카메라는 두 대가 있었는데 그 하나는 안쪽을, 다른 하나는 바깥쪽
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것들을 없애버리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준비
할 수 없었다. 카메라의  감시만 속일 수 있어도 목고리를 끊고 자
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을 것이고,  탈출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조니는 비밀리에 시간을  할애하여 전자공학 작업장에서 소형 카
메라를 연구했다. 장치는  간단했다. 작은 렌즈가 물체를 포착하면
즉시 영상으로  처리되었다. 그 영상이  전자파가 되어서 수상기에
전해지면 수상기는  그 영상을 포착해서  디스크에 기록했다. 소형
카메라 자체에는 동력원이  없었고, 동력은 수상기로부터 폐쇄회로
를 통해서 카메라에 전해졌다.
  조니는 학습기계를 개조해서 그것과 같은 기능을 가진 기계를 만
들어보려고 시도했다. 우선  우리 속에 설치된 카메라 위치에서 미
리 녹화해둔  다음 탈출을 준비하는 동안  스위치 레버를 이용하여
감시용 카메라가 그  영상을 보내도록 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카메
라가 두대라는 데 있었다. 그것들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조니를 감
시하고 있었으나 영상기록 장치는 한 대밖에 없었다.
  한번은 조니가 학습기계를 분해하고 있을 때 갑자기 타르가 들어
왔다. 그는 직접 쏘아잡은 토끼를 손에 들고 있었다.
  타르는 한참  동안 조니가 하는 작업을  바라보고 있다가 이윽고
말했다.
  "동물들은 하나를 가르쳐주면  무엇이든 응용해보아야 직성이 풀
리는 모양이군. 이봐, 그 학습기계를 고장낸 거야?"
  조니는 분해한 학습기계를 다시 조립하고 있었다.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보라고. 그러면 이 토끼를 주겠
다."
  조니는 타르의 말을 무시해버렸다. 그러나 학습기를 원래대로 장
확히 고쳐놓자 타르는 토끼를 던져주었다.
  "수리할 필요도 없는 것을 쓸데없이 만지작거리는 짓은 그만두라
구."
  타르는 귀찮은 듯이  말했다. 그것은 마치 오오, 신이여. 동물에
게 무엇을 가르친다는 것은  왜  이렇게 힘이 드는 것일까요? 하고
말하는 것 같은 어투였다.
  그 후 조니는 도망칠 수 있는 돌파구를 찾아냈다. 그것은 열검출
탐지기였다. 만일 그것을  쓸모없게 만든다면 산까지 도망갈 수 있
을 것이다.  조니는 열검출 탐지기로 탐지되지  않았을 때, 타르가
자신을 평원에서 찾아낼 수 있을지 시험해보기로 작정했다.

  카는 조니에게 드릴사용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실제로 광산의 동
굴에서 드릴로 광막을 파들어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미 사용하지
않는  동굴이었는데, 직경이  오십 피트 가량이나 되었다. 카는 드
릴용 발판을 동굴 속으로 내려보냈다. 광맥은 바위표면에 노출되어
있었으며, 발판 아래에는 광석용 네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드릴은 조니에게  너무 크고 무거운  것이었다. 조니가 착용하고
있는 이어폰으로는 쉴새없이 카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무리하게 내리누르는 거야. 구멍을 다 파고 나면 두번째 방아쇠
를 당겨라. 그러면 드릴이 회전하면서 광석을 부수게 된다. 네트는
정확한 위치에 설치하고, 알겠나.  광석을 흘리지 않고 받을 수 있
게 해두어야 한다."
  카는 똑같은 지시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앗, 뜨러워!"
  조니는 카에게  소리쳤다. 너무나  뜨거웠다. 고속으로 회전하는
드릴이 벽면을 뜨겁게  달구었고, 드릴 역시 마찰로 뜨겁게 달아올
라 있었다.
  "아참, 너는 내열복을 입지 않았구나."
  카는 서류와  음식찌꺼기들이 가득 들어  있는 주머니를 뒤졌다.
잠시 후 작은 뭉치를  꺼내더니 조니와 연결된 광석운반통 속에 넣
어서 밑으로 내려보냈다.  조니는 보내온 작은 뭉치를 받아서 풀어
보았다. 매우 얇고 투명한 재질로 만든 피막으로 소매가 달려 있었
다.
  "그것을 입으라구!"
  카가 외쳤다.
  그것은 엄청나게 켰다. 그 큰 것을 조그만 뭉치로 만들었다는 것
에 조니는  감탄했다. 그 옷은 소매의  폭과 길이가 형편없이 길었
다. 소매를 여러 번이라 걷은 뒤 머리부터 뒤집어쓰고 길이를 조절
했다.
  채굴작업은 다시 시작되었다.  그 옷을 입자 벽과 드릴에서 방사
되는 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카는 조니가 드릴과 채굴된 광석들을 취급하는 방법을 완전히 습
득했다고 판단했다. 채굴작업을 마치고 지상으로 올라온 조니가 내
열복을 되돌려주려고 하자 카는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그냥 버리라구. 그서은 일회용 내열복이다. 더러워지고 쉽게 찢
어지는 거라서 한 번 사용하면 버리는 거야. 드릴작업원은 모두 대
여섯벌씩 여유분을 가지고  있다구. 내가 어째서 그것을 잊었을까?
하긴 지난 몇 년 동안 드릴을 다뤄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럼, 이건 내가 보관해두겠다."
  "그래, 너도 이제 훌륭한 드릴작업원이니까."
  조니는 그것을 조그맣게 접어서 자루 속에 집어넣었다. 아, 그렇
다. 이것을 입고 숨을 죽이고 있으면 외부로 체열이 발생되지 않는
다. 결국 열검출 탐지기도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이다.
  비상식량도 충분히 준비되어 있었다. 쇠고기 훈제는 부피가 크지
않아서 가지고 다니기에  간편하고, 만일 사냥을 하지 못한다고 해
도 그것만 있으면 굶주림에 허덕이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조니는 모카신을  조심스럽게 기워 신고,  여벌로 준비한 신발을
짐속에 챙겨넣었다. 타르가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것은 필요하지 않다구."
  늦은 밤 우리의 문을 확인하러 온 타르가 말했다.
  "칭코인들이 신던 장화를 고쳐서 신으면 될 것이다. 의복부 녀석
들이 옷을 지급하면서 장화는 지급해주지 않은 모양이군."
  그 이튿날 기지의  의복부 직원이 우리로 찾아왔다. 그는 페이스
마스크 뒤에서 불평을 늘어놓으며 조니의 발크기를 쟀다.
  "나는 장화 만드는 기술자가 아니란 말야."
  그는 항의했으나  타르가 총괄권한  위임명령서를 보여주자 입을
다물어버렸다.
  의복부 직원은 장화 외에도 무릎까지 내려오는 두꺼운 코트와 방
한 모자를 만들기 위해 머리둘레를 쟀다.
  "지금부터는 여름이 시작된다구. 겨울옷을 만들 시기가 아니야."
  그는 투덜거리면서 치수를  재갔다. 얼마 뒤에 장화와 의복이 우
리 안으로 배달되어왔다. 조니의 몸치수를 재면서 양복장이는 말했
다.
  "참, 어처구니없는 보안부장  녀석이군. 동물에게 옷을 입히려고
하다니."
  타르의 갑작스런 친절은 조니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는 탈출준
비를 모두 끝내놓고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었으므로 타르가 이미 눈
치채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타르는 요즘 조니에게는  신경쓸 겨를조차 없을 만큼 바빠 보였다.
우리쪽에도 거의 무관심한 것 같았다.
  가장 난해한 문제는  권총을 손에 넣는 일이었다. 대규모의 반란
예방조치가 취해지기 전까지는  작업원 중에도 소형 권총을 벨트에
차고 다니는 자들이 꽤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타르만이 파워가 센
권총을 가지고 있을  뿐, 다른 사람들은 무기소지가 철저리 금지된
상태였다.
  계획을 실행하기에 앞서 조니는 카를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땅딸보 카가 타르의 심복인 것만은 분명했지만 그는
분명 타고난 범죄자였다. 카는 도박을 할 때마다 속임수르 썼고 장
난삼아 광석상자를 훔쳐내곤 했다. 카는 그런 이야기들을 자랑하듯
이 자주  들려주곤 했다. 카와 조니가  작업이 끝난 기계를 빌려서
실습을 하기 위해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조니는
카를 시험해볼  절호의 기회하고 생각했다.  그는 커다란 마을에서
주워온 동전 두 닢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그 하나는 은화이고 다
른 하나는  금화라는 것을 알게된 조니는  주머니에서 은화를 꺼내
손가락으로 튕기기 시작했다.
  "그게 뭐냐?"
  카가 물었다. 조니가  은화를 건네주자 카는 손톱으로 그것을 긁
었다.
  "옛날에 나도 남쪽 대륙에서 이런 것들을 파낸 적이 있었지."
  카가 말했다.
  "그런데 너는 여기서 파낸 것이지?"
  "왜 그렇게 생각하지?"
  조니가 가슴이 철렁해서 말했다. 어쩌면 카는 영어를 읽을 수 있
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뜻 스쳐갔다.
  "이것은 가짜다."
  카가 말했다.
  "이것은 구리합금에 니켈과 은을 도금한 것이다. 진짜 은화는 나
도 본 적이 있는데 순은이라구."
  카는 흥미를 잃고 그것을 둘려주었다.
  조니는 다시 금화를 꺼내서 위로 튕겨보았다.
  카는 금화가 조니의 손으로 떨어지기도 전에 공중에서 낚아챘다.
대단한 관심이었다.
  "이봐, 이것을 어디서 구했지?"
  카는 손톱으로 금화를  긁어본 다음, 눈앞에 바짝 들이대고 주의
깊게 조사했다.
  "왜 그래? 그것은 값어치가 나가는 거야."
  조니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듯이 태연하게 물었다.
  카의 눈에는 범죄자들  특유의 교활함이 번득였다. 이 정도의 금
화는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사
이클로인에게 있어서  금화는 천 크레디트  상당으 가치가 있었다.
이것은 황금이었다. 강도가  낮은 황금이 마모되지 않고 오래 사용
할 수 있도록 강도를  높게 하는 약간의 금속을 혼합했을 뿐, 거의
순금이었다. 카는 손이  떨리는 것을 억느르며 일부러 태연하게 말
했다.
  "어디서 손에 넣었지?"
  "응, 대단히 위험한 곳이야."
  "더 있었나?"
  카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떨리고 있었다. 석 달 치 급료가 수중에
들오온 것이었다. 단지 금화 한 닢이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사이클로별에서라면 아내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 그는 직원으로서
금화를 합법적으로 소요할 수 있었다. 그것은 기념품으로 인정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만 있자. 이런 금화는  몇 개까지 기념품으로
인정되더라? 회사에 몰수당하지 않는 기준이 있었는데.... 열 개였
던가, 열세 개가지였던가?  대충 그 정도일 것이다. 광부의 위조가
아니라 진짜 고대의 화폐하면 그 정도는 가지고 돌아갈 수 있었다.
  "그곳은 굉장히 위험한 곳이야. 적어도 권총 정도의 무기를 가지
고 있지 않으면 안돼."
  카는 탐색하듯이 조니를 바라보았다.
  "너, 내게서 권총을 사겠다는 거냐?"
  "내가 왜 그런 짓을 해야지?"
  "그건 그렇다."
  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동물은  영리했다. 기계를 배우는
속도가 무척 빨랐다. 사이클로인 훈련생보다도 훨씬 빨랐을 정도였
다.
  카는 금화를 동경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
지 않았다. 금화를  조니에게 돌려주고 무척 안타까운 표정으로 의
자에 앉아 있었다. 그 호박색 눈이 페이스 마스크 뒤에서 어두워지
고 있었다.
  "나한테는 쓸모없는 물건이다. 나는 아무것도 살 수 없으니까 말
이다. 이 금화는 언제나 우리 입구의 오른쪽 구멍에 넣어둔다."
  카는 한참 동안 조용히 앉아 있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실습할 기계가 준비되었다."
  그날 밤 타르는  채굴장으로 순찰을 나가느라고 감시용 스크린에
서 눈을 떼고 있었다. 그동안 조니는 금화를 놓아둔 장소에 가보았
다. 금화를 사라지고 없었다. 이튿날 아침 몸으로 감시용 카메라를
가리면서 금화를 넣어두었던  곳을 파보았다. 구멍 속에는 작은 권
총과 여유분의 탄약이 들어 있었다.
  드디어 조니는 권총을 손에 넣었다.

  (4)
  마지막 장애물은 지식이었다.
  칭코인들은 매우 훌륭한 학습기계를 갖춰놓고 있었다. 그들은 학
습해야 할 지식들을 디스크에 농축시켜놓았다가 학습자의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옮겨넣었다. 그러나 사이클로인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
이나 흥미를 갖지 않는 것들은 대부분 입력되어 있지 않았다. 칭코
인들은 오직 사이클로인들을 위해서 일했고, 그들을 가리치기 위해
서 학습기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조니의 지식에도 헛점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조니는 서쪽 산맥에 우라늄이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사이클로인
들이 그곳에서  채굴작업을 했다는 기록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직접 목격했던 사고를  보거나 광석분리 작업장에서의 우라늄 분진
검출작업 등으로 미루어,  사이클로인에게 우라늄은 치명적인 것이
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원인의 상세한 내용이나 우
라늄에 관련된 기계장치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조니는
전자공학을 공부하면서  우라늄은 대단히  복잡한 원자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낙담했다.
  조니는 모닥불 옆에  앉아서 교과서와 학습기계를 자세히 살펴보
고 있었다. 그때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에 조니는 학습
을 중단했다. 그것은 괴물의 단순한 야간 정기순찰이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가?"
  타르가 조니 위로 몸을 구부리며 물었다.
  조니는 이 기회에  대담하게 직접 물어보자고 생각했다. 그는 자
신보다 몇 피트나 위에 있는 타르의 마스크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서쪽 산에 대해서다."
  타르는 한동안 조니를 위심스러운 듯이 쳐다보았다.
  "여기에는 저 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다."
  타르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동물이 무슨 눈치라도 챈
것일까?
  "나는 저 산에서 태어났고  자랐다. 이 혹성의 다른 곳에 대해서
는 상세한 데이터가 되어  있는데 유독 저 산맥에 대해서만은 거의
정보가 없다."
  조니는 희미한 달빛에도 하얗게 빛나고 있는 눈 덮인 산꼭대기를
가리켰다.
  "칭코인들은 도서관에서 인간의  책들을 가져왔다. 그 책들이 여
기에도 있는가?"
  "킁."
  타르는 안심한 듯 코를 킁킁거렸다.
  "인간이 만든 책이라, 저런저런."
  그것은 타르에게는 반가운 일이었다. 계획을 진행시키는 데도 편
리할 것 같았다.
  타르는 우리를  떠났다가 한참 뒤에 낡은  책상과 책들을 한아름
끝어안고 돌아왔다. 책상  위에다 책들을 한꺼번에 쏟아놓았다. 책
들은 모두  넝마나 다름없는 오래되고  낡은 것들뿐이었다. 타르가
거칠게 다루었기  때문에 대부분이  부스러지거나 어지럽게 찢어져
있었다.
  "나는 동물의 심부름꾼인  셈이군. 이 휴지더미를 뒤져서 행복해
질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해보라구."
  타르는 문 밖으로 나가서 자물쇠를 채우고 돌아서려다가 우뚝 멈
춰 섰다.
  "한 가지만은 명심해두라구,  동물. 이 책 속에는 모두 쓸데없는
내용들뿐이라구. 사이클로인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절대로 찾아
낼 수 없다는 말이야."
  타르는 한바탕 웃어대더니 말을 이었다.
  "하긴 맛있는 쥐고기 요리법이 다양하게 실려 있을지도 모르지."
  타르는 기지 쪽으로 쿵쿵거리며 걸어갔다. 웃음소리는 점점 작아
져 갔다.
  조니는 경이로운 마음으로  책을 어루만지고 나서 읽어나가기 시
작했다. 그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대부분의 책들은 광산업에 관
한 것들이었다. 처음으로  흥미를 끈 것은 화학교과서에 실려 있는
원소기호표였다. 인간이 발견한  모든 원소의 원자구조가 기록되어
있었다.
  조니는 사이클로인들의 전자공학  교과서를 다시 펴보았다. 그곳
에도 원소의 원자구조표가 기록되어 있었다. 조니는 깜빡거리는 모
닥불 빛으로 원자구조표를 비교해보았다. 그것들은 서로 달랐다.
  두 권에 실린 원자구조표는 모두 분명히 주기율에 의거하고 있었
고, 이 법칙에 따라서 원소의 화합적 성질이 주기적으로 나타났다.
거기까지는 같았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표 가운데 원자량의 순서
대로 나열된 원소에는 사이클로인이 만든 표에는 들어가 있지 않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이클로인이 만든  표에는 인간이 만든
표보다 훨씬  많은 원소가 기재되어  있었다. 그리고 사이클로인의
표에는 더 많은 기체가 기록되어 있었으나, 산소는 찾아볼 수 없었
다.
  조니는 두 권을 무척 힘겹게 읽어나갔다. 영어보다는 사이클로어
게 더 익숙한 조니는 물질을 나타내는 기호를 좀처럼 이해할 수 없
었다. 역시 사이클로인도  라듐을 기록하고 있었고, 원자번호 88을
부여하고 있었다. 다만  그것에는 희귀원소라는 주가 붙어 있었다.
그들은 88번 이상의 번호를  지닌 원소들을 수십 개나 더 기록하고
있었다. 이런 사실들은 조니가 상대하고 있는 것이 다른 우주의 다
른 종족아라는 것을 무엇보다도 명백하게 나타내주고 있었다. 양립
할 수 있는 금속도 몇 개 정도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인 분포는 완
전히 달랐으며, 원자구조조차  차이가 있었다. 결국 조니는 포기해
버렸다. 그  어느 쪽도 불완전한  것이었다.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이런 것에 언제까지나 매달려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행동하는 청
년어었으며 칭코인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조니는 다음 문제에  손을 댔다. 산맥에 우라늄광산은 실제로 존
재하는가?
  산더미처럼 쌓인 책들을 한참 뒤진 끝에 마침내 광산지도와 광산
목록들을 찾아냈다.  조니는 저 산맥에  인간의 우라늄광산이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옛날에는 광산이 있었지만, 이미 바닥났
다는 주석밖에는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조니는 확고한 믿음
이 있었다. 산에는 우라늄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이클로
인들이 유독 그 산만  피할 이유가 없다. 저 산맥에는 우라늄이 매
장돼 있는 것이 분명하다.
  조니는 탈출계획에 차질이  생기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우라늄
에 관한 것이라면 뭐든지  찾아내야만 한다는 집념으로 다시 한 번
책더미와 씨름했다. 마침내 조니는 찾아냈다. 그것은 '광산독물학'
이란 책이었다. '광부에게  해를 끼치는 광산의 독'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색인에는 '우라늄, 방사성으로부터의 유해'라고 씌어
있었다.
  조니는 그 부분을 독파하기 위해 철저히 읽어나갔다.

  라듐, 우라늄, 혹은 그  밖의 방사성 물질을 다룰 때에는 두꺼운
납으로 만든 보호복을 입어야  한다. 그것을 입지 않으면 발진, 탈
모, 화상, 혈액변질 등의 치명적인 해를 입는다.

  순간 조니는 그 산속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방사능을 쪼인 인간
은 유전자와 염색체가  변화된다. 결국 출산을 해도 기형아를 낳거
나 아예 불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방사능 물질이 바로 산속의 마
을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근복적인 문제였다. 그래서 아이들이 거
의 태어나지 않았고, 설사 태어난다고 해도 기형아가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마을사람들이  앓고 있는 무기력증의 원인이다. 적
반병의 원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버지의 뼈들이 부서져버린 것
도 그것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책은 마을사람들에게 나타나고 있는
증세를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었다. 마을의 인구가 줄어드는 이유도
분명해졌다.
  마을 골짜기에는 방사능이 존재하고 있었다. 조니는 황급히 광산
지도를 펼쳐보았다.  없다. 마을  주변에는 바닥난 우라늄광산조차
없었다. 수수께끼였다.
  조니는 사이클로인들이 산에 접근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았다. 광
산이 없다면 방사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태양인가? 아니다, 그
렇지는 않다. 마을보다 표고가 높은 산악지대에 있을 것이다. 산양
의 번식에는 문제가  없는지도 모른다. 기형인 산양은 지금까지 발
견된 적이 없었다.
  방사능은 있다. 그러나 광산은 없다.
  갑자기 조니는 깨닫는  것이 있었다. 인간은 방사능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고 방사능을 검출하는 기술도 개발되어 있었다. 바로 '가
이거 계수관(Geiger-Muller  Counter)'이라는 것이었다. 이미 흔적
도 없이  사라져버린 시대, 조니로서도 짐작도  할 수 없는 시대에
태어난 가이거라는 사람을  기리기 위해서 명명된 장치였다. 그 원
리는 이렇다. 방사능 또는 이온회된 입자가 기계에 장치된 가스 속
을 통과하면 방사선은  가스 속에서 전류를 일으키게 되고, 그것이
바늘을 움직이게 하는 원리였다. 방사능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기계
에 장치된 가스속에서  전류를 일으키게 되는 셈이었다. 그 기계장
치이 배선도가 설명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읽을 수 없었지만 그 이
유를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그 설명서는 대부분이 생략기호들로
되어 있었다. 조니는 생략기호표를 찾아내서 설명서를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그것을 사이클로어로  번역했다. 가이거 계수관을
만들 수 있을까? 사이클로인의 전자공학 작업장 안에서라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도망쳐버린다면 더이상 작업장을
활용할 수 없게 된다.
  조니는 그 책을 옆에  내려놓았다. 얼마 뒤 피로에 지쳐 잠이 들
었다. 그는 악몽을 꾸었다. 두들겨맞아 유혈이 낭자한 모습으로 쓰
러지는 크리시. 조니의  고향사람들은 모두 사이클로인들의 노예가
되어 있었다. 그들의 세계는 계속되었다. 사이클로인들은 징그럽게
웃어대고 있었다.

  (5)
  웃고 있었던 것은 모든 사이클로인들이 아니라 타르였다.
  조니는 잠에서  깨어났다. 한낮의 태양빛이  우리 안을 내리쬐고
있었다. 타르는  책상에 앉아서 인간의  책을 들쳐보면서 웃어대고
있었다. 조니는 외투로 몸을 감싸며 일어났다.
  "이것을 모두 읽었나, 동물?"
  조니는 인공연못까지 가서 세수를 했다. 한 달 전에 타르를 설득
해서 우리 안으로  소량의 물이 계속 흘러들어오도록 해놓았다. 물
이 들어오는 입구에는 언제나 신선한 물이 고여 있었다. 그것은 차
갑고 상쾌했다.
  갑자기 하늘에서 무시무시한  소리가 났다. 그것은 머리 위를 통
과 하는 무인정찰기였다.
  무인정찰기는 며칠 전부터 매일 정해진 시간마다 머리 위를 저공
으로 날아갔다. 카의  말을 빌리면 광석탐사와 조업감독을 위해 정
찰기가 전송사진을 찍고 있다고 했다. 무인정찰기는 리모트 컨트롤
에 의해 조종되고 있었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조니는  이런 비행기가 머리 위를 날아가
는 것을 보아왔다. 그는  책상이나 태양, 또는 달처럼 단순히 자연
현상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것은  이, 삼 일에 한번씩 지나가곤 했
는데 여기서는 매일같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옛날에 본 것은 지금
의 정찰기와는 달라서 머리 위로 날아올 때도, 산 너머로 사라져갈
때도 공기를  진동시키는 굉음이나 폭음을  울리지는 않았다. 카는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지만 조니는 속도
와 관계된 거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이런 종류의 정찰기는 고속으
로 비행하기 때문에 공중에서 회전하거나 멈출 수가 없다. 다만 방
향을 조종할 수 있을 뿐이라서 혹성을 한 바퀴 돌지 않으면 돌아올
수가 없는 것이다.
  조니는 폭발음 같은 날카로운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타르는 머리  위를 쳐다보고 일부러  무시하는 체했다. 채굴장의
직원들도 그 정찰기를 싫어하고 있었다.
  "왜 저것이 매일 날아다니게 되었지?"
  조니는 그것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것은 탈출계획에도 커다란
장애요소가 되고 있었다.  그 정찰기는 단순히 사진만 찍는다고 하
지만 자칫 발견될 우려가 있었다.
  "이 책들을 모두 읽었는지 묻고 있는 거라구."
  무인 정찰기는 산맥 쪽에서 나타났다가 동쪽 평원을 가로질러 사
라지고 있었다. 그 소리도 차츰 작아지고 있었다.
  조니는 식어버린 구운  고기와 물로 아침식사를 했다. 타르는 쌓
아 놓은 책들을 끌어안고  문 쪽으로 걸어가서 지나가는 말처럼 물
었다.
  "저 산맥에 관한 데이터가  그렇게 알고 싶은가? 북쪽에 있던 그
거리의 도서관에 그곳 전경을 알 수 있는 지도모형이 있던데, 그것
을 보고 싶은가?"
  조니는 한순간 긴장했으나  시치미를 떼고 계속 식사를 했다. 타
르가 친절을 베풀어올 때는 언제나 다른 속셈이 있었다. 하지만 이
번 제안은 더 바랄 나위가 없이 기쁜 소식이었다.
  조니는 타르가 자신을 데리고  기지 밖으로 나가게 할 방법을 찾
느라 고심하고 있었다.  그것이 탈출계획의 관건이었다. 차를 타고
기지 밖으로 나간다. 문의  걸쇠를 벗기고 차 안에 공기를 넣는다.
긴급정지 버튼을 누르고  권총을 들이댄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
니다. 하지만 대단히 위험한 도박일 수도 있다.
  "나는 오늘 특별히 할 일이 없다."
  타르가 말했다.
  "너의 기계훈련도  끝났으니까 거리까지  드라이브나 즐기고, 그
지도모형도 한번 보도록 하자구. 잠시 사냥이라도 해볼까. 네 말을
좀더 찾아봐도 좋고."
  조니가 알고 있는  한 타르가 아무 이유  없이 돌아다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 괴물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차피 너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도 있으니까."
  "소지품을 챙겨두라구. 한 시간쯤 지나서 돌아오겠다. 그 다음에
드라이브를 떠나기로  하지. 나는 점검해둘  일들이 남아 있으니까
그 것부터 처리하고 오겠다. 준비해두라구."
  조니는 망설였다. 지금  결행하기에는 시기상조라서 자칫 잘못하
면 계획 전체에 차질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하늘이 내
려준 좋은  기회다. 이 기회에 도망치지  않으면 안된다. 한시라도
빨리 고향마을로 돌아가야  한다. 만일 크리시가 약속을 실행에 옮
기려고 한다면 그녀를 말려야 한다. 그리고 마을을 좀더 안전한 장
소로 옮겨야 한다.  별자리가 본래의 위치로 돌아올 때까지 앞으로
이 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조니는 소형 권총과 훈제  쇠고기를 허리춤에 찬 자루에 넣고 금
속 절단기를 발꿈치 쪽에 숨겨넣은 후 벅스킨을 몸에 걸쳤다.
  한 시간 뒤 차가 와서 우리 앞에 정지했다. 그것음 마크III 지상
장갑차가 아니었다. 기계들을 운반하는 데 사용하는 평범한 트럭이
었다. 운전석에만 밀폐돔  장치가 되어 있었고 뒤쪽은 지붕조차 없
는 넓은 짐칸으로 좀더  많은 짐을 싣기 위해 세워놓은 나무기둥들
이 가장자리를 에워싸고 있었다. 지상차와는 전혀 달랐다. 단지 공
통점이 있다면  바퀴가 없고, 지면의 상태에  맞추어 지상 삼 피트
정도의 높이로 떠서 활주한다는 것뿐이었다.
  조니는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트럭에는 열탐사 장치도
무기도 장착되어 있지 않았다.
  타르가 차에서 내려 우리 문을 열었다.
  "너는 짐을 가지고 뒤쪽 짐칸에 타라."
  타르는 로프를 벗기고,  조니를 짐칸으로 밀어올렸다. 그리고 휴
대용 용접기로 로프를 운전석에 용접했다.
  "이렇게 해두면 그 날고기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야."
  타르는 운전석에  앉아서 마스크를 쓰고  엔진의 시동을 걸었다.
그는 계속  웃고 있었다. 이 상태로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문을 열고 타르가 있는 곳까지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트럭은 출발했다.  속도는 지상장갑차보다도  느렸고, 짐을 싣지
않았기 때문에 지면의  기복이 직접 전해져왔다. 조니는 머리가 운
전석과 같은 높이가  되도록 몸을 웅크리고 난간을 움켜잡았다. 시
속 팔십 마일의 바람이 나무기둥들에 부딪쳐왔다. 조니는 온신경을
집중하여 빠져나갈 방법들을  생각했다. 우선 어떻게 해서든 이 트
럭을 손에  넣어야 한다. 트럭의 조종장치는  다른 것들과 같았다.
그 점에 있어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조종장치는 모두 단순한 버튼
과 레버로 이루어져  있었다. 지금 이 목고리에서 해방된다면 얼마
나 좋을까. 조니의 마음은 기대로 잔뜩 부풀어올랐다.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자유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6)
  트럭이 거대한 마을의  도서관 앞에 멈췄을 때는 한낮이었다. 타
르는 무거운 체중으로  차체를 흔들어대면서 내렸다. 로프를 풀 때
도 여전히 호의를 베풀 듯 지껄여대고 있었다.
  "너의 말은 찾지 못했나?"
  "아니, 전혀."
  "그것 참 유감이로군, 동물. 이 트럭은 말을 운반하는 데는 안성
맞춤인데 말이야. 열 마리는 실을 수 있다구."
  타르는 도서관 문을  공구로 열었다. 그는 로프를 흔들어 조니를
앞장서게 했다. 그곳은 먼지만 가득한 조용한 묘지 같았다. 이전에
보았을 때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타르는 주위를 둘러보았
다.
  "아아, 그렇군. 너는 전에 들어왔었지."
  타르는 창 밑의 먼지가  흐트러진 것과 그대로 남아 있는 발자국
을 가리켰다.
  "보호창도 일부러 그전처럼 해두었군, 흠."
  타르는 주위를 살피면서 덧붙였다.
  "서쪽 산맥의 데이터를 찾으러 가자구."
  조니는 자신이 많이 달라져 있는 것을 느꼈다. 이전에 검은 얼룩
으로 보였던 것이 지금은 간단히 읽을 수 있는 문자들이었다. 그리
고 그때  들어갔던 곳은 아동실이었고,  처음에 다가갔던 선반에는
'유아교육'이라고 씌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잠깐 기다려, 어차피 너는 도서색인 사용법도 모르고 있을 테니
까. 이리로 와라, 동물."
  타르는 길게 늘어뜨린  로프를 흔들었다. 타르 옆에는 조그만 서
럽들이 늘어져 있었다. 그는 허리를 굽혀서 그 하나를 열었다.
  "칭코인들이 그러는데, 책마다  한 장씩 카드가 있고, 그 카드는
이 서랍  속에 정리되어 있다더군. 알파벳  순서대로 말이다. 알겠
나?"
  조니는 사랍들을 바라보았다.  타르는 Q의 카드가 빽빽히 들어차
있는 서랍을 빼냈다.  카드는 두껍고 지저분했지만 읽을 수는 있었
다.
  "이 속에 산에 관한 것들이 들어 있나?"
  조니는 긴장하고  있었지만, 하마터면  웃음이 터져나올 뻔했다.
이것 또한 타르가 영어를  읽을 줄 모른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였
다.
  "당신이 들고 있는 서랍은 차에 관한 것이다."
  "아아, 그런 것쯤은 알고 있다."
  "어쨌든 이것들을 뒤져서 산에 관한 것을 찾아내라구."
  타르는 색인서랍들을 떠나서  벽의 낡은 포스터를 보는 체했지만
로프를 움켜쥐고 있었다. 조니는 차례로 서랍을 열기 시작했다. 녹
이 슬어서 움직이지 않거나 손잡이가 떨어져 있는 것도 있었다. 조
니는 가까스로  M의 서랍을 찾아내서 그곳에  가득 찬 카드를 한장
한장 읽어나갔다.  그는 '현대 군사  과학'이라는 항목을 끄집어냈
다.
  "찾아냈다."
  조니가 말했다.
  "번호를 적어야 하니까 펜을 빌려달라."
  타르는 조니의 손에 맞지  않는 큰 펜과 접은 종이들을 건네주었
다. 그는 다시 주위를 서성거렸다. 그사이에 조니는 필요한 책들의
번호를 메모했다.
  "다음은 선반 위다."
  조니가 말하자 타르는 로프를 더욱 길게 풀어주었다.
  조니는 바닥에 달라붙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는 커다란 사다리
와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인 끝에 선반으로 올라갔다. 보호막을 올
리고 재빨리 '합중국 방위 시스템'이라고 씌어 있는 모퉁이에 시선
을 보냈다.
  "산에 관한 책이 있는가?"
  타르는 조니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며 말했다. 조니는 몸을 구
부리고 타르에게 "MX1  핵공격 방지용 격납고'라고 씌어 있는 페이
지를 가리켰다.
  "흠."
  조니는 타르에게 그 책을 건네주었다.
  "이것은 필요하겠군. 그 밖에도 얼마나 더 있나?"
  조니는 재빨리 여섯 권 가량의 책을 뽑아들었다. '핵물리학' '핵
억제 정책' '우라늄 -  희망인가 파괴인가' 그 밖에도 흥미를 끄는
책들이 있었다.  조니는 서둘러야만 했고, 이제  곧 도망쳐야 하는
입장에서는 일곱 권의 책무게도 무시할 수 없었다. 아니, 더이상은
방해가 될 뿐이었다.
  "사진이 전혀 없군."
  타르가 말했다.  조니는 즉각 사다리를 옮겨  다른 책을 꺼냈다.
'콜로라도 - 경이로운 경관'을 타르에게 펼쳐 보였다.
  "이 책은 볼만하구먼, 동물."
  타르는 아름다운 산풍경을  들여다보면서 기뻐했다. 특히 청색이
섞인 것처럼 변색되어  있었기 때문에 산이 자주색같이 보였다. 타
르는 책들을 상자에 담았다.
  "자, 그럼, 지도모형을 찾아보러 가자구."
  타르가 로프를  흔들었기 때문에  조니는 사다리에서 굴러떨어질
뻔했다. 그러나 타르는 곧장  다른 방으로 가려고 하지 않았다. 입
구 쪽으로 걸어가서, 무엇인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듯했다. 잠시
후에 다시 돌아와서 계단을 걸어올라갔다.
  지도모형은 진열대에  놓여 있었다. 타르는  무릎을 꿇고 그것을
뚫어질 듯이 들여다보았다. 조니는 긴장하고 있었다. 총천연색으로
제작된 지도모형은 그를 몹시 불안하게 만들었다. 지도모형에는 산
맥의 모습이 매우  정확하게 나타나 있었다. 산길, 하이피크, 그리
고 마을의 초지까지도  똑똑하게 보였다. 이 지도는 마을이 생기기
훨씬 전에 제작된  것인데도 이미 초지까지도 표시되어 있었다. 그
것은 지도모형이 칭코인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최근에 만들어졌다
는 증거였다. 그것이 조니를 무척 화나게 만들었다. 당연히 무인정
찰기는 전부터 그  위치를 확인했고, 타르는 그곳의 자신을 찍었음
이 분명했다.
  지도모형에는 긴 계곡도 있었다. 조니는 옛날의 무덤이라고 생각
되는 장소를 찾아내고 주의깊게 바라보았다. 없다. 그 계곡의 위쪽
에는 무덤이나  그 밖에 특별한 것이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타르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조니는 손가락으로 문자들
을 더듬었다. 로키산맥,  하이피크 언덕, 베일 산.... 그러나 조니
는 일부러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타르의 눈은 긴
계곡을 따라 목박혀 있었다. 그의 손톱이 절벽의 벽면과 그 아래쪽
의 강을 살며시 더듬고 있었다. 괴물은 조니가 쳐다보고 있다는 것
을 깨닫자 황급히 같은 방향에 있는 다른 계곡들도 더듬었다. 그러
나 확실히 타르의 관심은 그 계곡에 쏠려 있었다.
  타르는 갑자기 고개를 쳐들고,  한참 동안 몸이 굳어진 듯 서 있
었다. 그러더니 다시 표정을 바꾸어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보고 싶은 것은 모두 보았나, 동물?"
  타르는 계단을 내려가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그가 걸을 때마다
쌓여 있던 먼지가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그때 조니는 어떤 소리를
들었다. 발자국 소리  때문에 지금까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데 틀
림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 소리는 점점 가까와오고 있었다. 그것
은 말발굽이 지면을 울리며 달리는 소리였다.

  (7)
  타르는 도서관 바로 옆에  서서 풀이 무성한 거리를 바라보고 있
었다.
  조니는 타르가 무언가를  발견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재빨리 그쪽
으로 달려갔다.  그 순간 조니의 몸은  그자리에 굳어져버렸다. 백
야드 쯤 건너편에 윈드스프리터가 달려오고 있었다~ 누군가 윈드스
프리터를 타고  있었고, 세 마리의 말이  뒤따르고 있었다. 타르는
꼼짝 않고 서서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이 기회였다. 우연하게 일어난 일이었지만 조니는 이것이 마
지막 기회임을 직감했다. 그는 발뒤꿈치에서 금속절단용 공구를 빼
내어 로프를 끊었다.  그리고 재빨리 도서관 문을 박차고 빠져나가
타르를 지나쳐 거리고  달려나갔다. 그 순간 타르의 발톱이 조니의
벅스킨을 붙잡았다.  벅스킨은 찢어졌고 조니는  가장 가까운 나무
뒤쪽으로 달려갔다. 당장이라고 등 뒤에서 타르의 레이저 광선총이
불을 뿜을 것만 같았다.
  커다란 포를러나무 뒤까지 달려온 조니는 잠깐 멈춰 서서 앞쪽을
바라보았다. 아, 그것은 크리시였다! 크리시뿐만이 아니었다. 패티
도 있었다. 조니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돌아가!"
  조니는 소리쳤다.
  "크리시, 돌아가! 돌아가란 말야!"
  갑작스런 고함소리에  놀란 크리시는 말을  멈추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크리시는 떨리는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조니!"
  패티도 기쁜 듯이 소리쳤다.
  "조니, 조니군요!"
  크리시를 태운 윈드스프리터가 힘차게 달려왔다.
  "돌아가!"
  조니는 필사적으로 외쳐댔다.
  "달려, 달리라구! 아아, 이럴 수가 있나!"
  가까이 다가온  크리시와 패티는 당혹에 하는  표정으로 멈춰 섰
다. 조니의 뒤쪽에 서 있는 괴물을 본 것이었다. 기쁨에 젖어 있던
표정이 일시에  사라지며 표정이 굳어졌다.  크리시가 황급히 말의
방향을 바꾸려고 하였다.
  조니는 타르를 향해 몸을 돌렸다. 타르는 여전히 도서관 문 앞에
서 있었다. 조니는 재빨리 권총을 꺼내 안전장치를 풀었다. 그리고
권총을 겨누며 말했다.
  "만약 저 소녀에게 총을 쏜다면 너를 죽이고 말겠어."
  타르는 꼼짝도 않고 그곳에 서 있었다. 조니의 등 뒤에서 말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위험을 무릎쓰고 뒤를 돌아보았다. 윈
드스프리터가 앞다리를 번쩍  들고 일어섰다. 윈드스프리터는 조니
에게 달려오고 싶어서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돌아가, 크리시, 빨리 도망치라구."
  조니는 안타까움에 목이 메어 필사적으로 소리를 질러댔다.
  타르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매우 침착했다. 권총을
뽑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녀석들에게 이쪽으로 오라고 말해라."
  "꼼짝 마라!"
  "쏠 텐가!"
  타르는 한발 한발 조니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그러면 녀석들이 상처를 입게 된다구, 동물."
  조니는 나무 뒤에서 나와, 권총을 타르의 마스크에 겨누었다.
  "침착하라니까, 동물."
  타르는 걸음을 멈추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군. 네놈은 그녀들이 오늘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구나."
  조니가 말했다.
  "그래, 지난 며칠 동안 무인정찰기로 추적해오고 있었지. 녀석들
이 마을을 떠날 때부터 줄곧 감시하고 있었다. 총을 치워라 동물."
  등 뒤에서 말들이  발을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말들이 도망쳐주
기만 한다면.... 타르는  권총은 건드려볼 생각도 않고 안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꼼짝 말고 있어라. 안 그러면 쏘겠다!"
  "이봐, 동물, 쏘아보라구. 쏠 테면 쏘아보라니까. 사실은 말이야
그 권총의 전기연결 장치 중 하나는 가짜야."
  조니는 심호흡을 하고 방아쇠를 당겨보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타르는 천천히 안주머니에서 금화를 꺼내 공중으로 던져올
렸다가 손으로 받았다.
  "너에게 총을 판 것은 카가 아니다. 바로 나란 말이다. 동물."
  조니는 벨트에서 돌방망이를 뽑아서 공격태세를 취했다. 순간 타
르의 손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재빨리 짧게 움직였다. 권총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발사되었다.
  그와 함께 처절한  비명소리가 조니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뒤를
돌아다보니까 짐 실은 말 한 마리가 쓰러진 채 몸부림치고 있었다.
  "다음 네 친구들 차례다."
  타르가 말했다. 조니는 돌방망이를 내려놓았다.
  "그래,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거야."
  타르는 말했다.
  "저 동물들을 한곳으로 모아서 전부 트럭에 실어라."

  (8)
  트럭은 공포와 절망을 싣고 남쪽으로 달렸다.
  목고리가 다시 채워지고 난간에 묶인 조니는 비참한 기분으로 주
위를 바라보았다. 패티는  양팔이 옆구리에 붙여진 채 꽁꽁 묶여져
서 트럭  난간에 매였다. 그녀는 꼼짝도  못하고 공포에 질려 앉아
있었다. 충격으로 얼굴은 회백색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이제 겨우
여덟살이었다.
  타르의 총으로 오른쪽  어깨를 관통당한 말이 쓰러져 있었다. 상
처에서는 피가  솟구쳐흐르고 있었다. 말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가끔씩 심한 경련을 일으켰다. 등에 실린 짐도 그대로 매달려 있었
다. 타르는  말을 훌쩍 들어 트럭의  짐칸에 내던져버렸던 것이다.
조니는 상처를 입은 말이 프로지트의 다리를 차서 부러뜨릴까봐 걱
정되었다. 프로지트는 조니가  키웠던 말들 가운데 하나였다. 다른
세마리는 트럭의  난간에 매여진 채 공포로  코를 벌름거리고 있었
다.
  크리시는 조니의  맞은편 난간에 묶여져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크리시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도 많은 조니였지만 입을 꾹 다문 채 가슴
속에 묻어두고 있었다.  모든 계획은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다. 조
니는 우유부단하게 탈출을 미루어온 자신을 책망했다. 언젠가는 타
르에게 탈출계획이 탄로날  거라는 것을 왜 모르고 있었던가. 괴물
에 대한 증오심이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올랐다.
  마침내 크리시가  눈을 뜨고 조니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조니가
패티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패티를 남겨두고 올 수가 없었지요."
  크리시가 말했다.
  "악착같이 쫓아오는 거예요.  두 번이나 다시 데리고 돌아갔었지
요. 그런데 세번째에는  이미 평원까지 나와버린 뒤라서 마을로 돌
아갈 수가 없었어요."
  "괜찮아, 크리시."
  트럭이 울퉁불퉁한 지면 때문에 덜컹거리고 있었다. 차가 흔들릴
때마다 프로지토가 더욱 고통스러워하며 신음소리를 토해냈다.
  "너무 일찍 출발했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하지만 위드스프리터
혼자 돌아왔어요. 아이들이  소를 산으로 몰아올리느라고 평원으로
내려 갔다가 윈드스프리터와 댄서를 발견하고 데려왔어요."
  댄서는 조니가 데리고  갔던 짐 싣는 말의 이름이었다. 크리시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윈드스프리터는 퓨마에게 긁힌 것 같은 상처가 나 있었어요. 당
신을 팽개치고 도망쳐온 줄 알았어요."
  그랬구나. 나의  윈드스프리터.... 조니는 생각했다. 윈드스프리
터는 좀더 일찍 마을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도 돌아가지 않았다. 그
리고 막상 돌아가려고 했을  때는 눈사태로 길이 막혀 있었을 것이
다. 그는 겨울 내내  댄서와 함께 평원을 헤맸을 것이다. 윈드스프
리터의 엉덩이에는 깊은 상처자국이 있었다.
  "너무 걱정할 것은 없어."
  조니가 위로하듯이 말했다.
  "당신이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나까 도저히
그냥 앉아서 기다릴 수가 없었어요."
  한참 동안 트럭이 덜컹거렸다.
  "조니, 커다란 마을은 정말로 있어요?"
  "그래."
  "조니, 그것은 괴물이죠, 그렇죠?"
  크리시는 운전석 쪽을 가리켰다.
  "그래, 하지만 당신을 괴롭히지는 않을 거야."
  조니는 크리시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거짓말이라고 할
생각이었다.
  "당신이 괴물과  말하는 걸 들었어요, 당신은  괴물들의 말을 할
줄 아는군요?"
  "거의 일 년 동안 저놈에게 붙잡혀 있었으니까."
  "괴물은 우리들을 어쩔 셈이죠? 나하고 패티를...."
  "그런 것은 걱정하지 말라니까, 크리시."
  절대로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다. 잘못은 나에게 있었다.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계속 미루고 있었던 것은 나였다. 트럭이 다
리의 파손된 곳을 피하기  위해 갑자기 급선회하는 바람에 덜컹 하
고 흔들렸다. 조니는  크리시의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어떤 말
이든 건네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괴물은 나를 이용하려고  해. 그것은 분명해. 그게 뭔지는 모르
지만 나는 그가 원하는 것을 해줘야만 해. 그래서 크리시나 패티에
게는 맹세코 아무 것도 못할 거야. 다만 위험은 하겠지. 어쨌든 그
가 원하는 일만 끝내주면 우리들은 풀려나게 될 거야."
  거짓말을 하는  조니의 기분은 씁쓸하기만  했다. 타르의 의도를
알수는 없지만 놈은 목적만 달성하면 그 즉시 죽일 것이다. 조니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것을 알고 있었다.
  크리시는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지난 겨울은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크리시는 잠시 침묵했다. 서글픔이 얼굴 가득 젖어 있었다.
  "그래서 우린 배고픔에 지친 나머지 당신의 말들을 두 마리나 잡
아먹지 않으면 안되었어요."
  "괜찮아, 크리시."
  "참, 당신을  위해서 새 벅스킨을 만들었어요.  저 짐 속에 들어
있어요."
  "고마워, 크리시."
  패티가 눈을 크게 뜨고 갑자기 소리쳤다.
  "저 괴물이 우리들을 잡아먹을까요?"
  "아냐, 절대로 그럴 염려는 없단다, 패티."
  조니가 말했다.
  "저놈은 생물은 잡아먹지 않으니까 걱정할 것 없다. 패티."
  패티는 안심하는 듯했다.
  "조니."
  크리시는 두 눈에 가득 눈물이 맺힌 채 조니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요."
  그녀의 볼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정말이지 난 당신이 이미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다. 나는 살아 있다. 크리스도 패티도 살아 있다. 그러나 앞
으로 어는 정도나 더  살아 있을 수 있을까. 조니는 잔혹하게 소의
다리를 부러뜨러던 타르를  생각해냈다. 트럭은 숲속길을 덜컹거리
면서 활주하고 있었다.
  "조니,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죠?"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사랑하지 않다니? 아냐. 난 당신
을 내 목숨보다 더  사랑하고 있어. 하지만 조니는 그것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입 밖으로 터져나올 것만 같은 그 말을 가슴 깊은 곳
에 깊숙히 묻어두었다.  멀리 광산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 점점 가
까워오고 있었다.

  (9)
  그들은 트럭 속에 묶인  채 밤을 새웠다. 지독히 추운 밤이었다.
타르는 짐칸 양쪽 끝에 한 대씩 감시용 카메라를 설치한 다음 자신
의 숫소로 돌아가버렸다.
  이미 점심때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타르는 새벽녘에 돌아오더니  우리 주위에서 부지런히 작업을 하
고 있었다. 조니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려고 했으나 도저히 목을
돌릴수가 없었다. 목고리와  로프가 이처럼 바짝 조여진 적은 없었
다. 타르는 작업을 마치고  트럭 뒤로 돌아와서 문을 열었다. 먼저
말들을 끌어내어 고삐를 나무에 매어놓았다. 그리고는 상처입은 말
을 끌어냈다. 말이  땅바닥에 쓰러지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옆으로
밀어놓았다. 말이 일어서려고 하자 타르는 비틀거리는 말을 손바닥
으로 쳐서 다시 쓰러뜨려버렸다.
  타르는 다시 짐칸으로  다가와 먼저 태티의 로프를 풀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목고리를 패티의 목에 채웠다. 패티가 비명을 질렀
다. 타르는 아랑곳하지  않고 용접불로 목고리를 붙이고 나서 로프
를 목고리에 용접시켰다. 패티의 작은 몸은 흉측한 손에 훌쩍 들어
올려져 어디론가 사라졌다.
  타르는 다시 돌아왔다.  크리시는 몸을 움추리며 뒷걸음을 쳤다.
소용없는 짓이었다. 타르는  손에 들고 있던 목고리를 크리시의 목
에 씌워서 용접했다. 그 목고리의 한쪽에 빨간 것이 부착되어 있었
다. 조니는 패티의 목고리에도 같은 것이 붙어 있었던 것을 기억해
냈다. 타르는 조니의 눈을 보았다. 노려보는 조니의 눈빛은 적의로
가득 차 있었다.
  "곧 네  차례가 된다. 그렇게 미리  화낼 필요는 없다구. 새로운
생활이 너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타르는 크리시를 번쩍 들어올려서 데리고 가버렸다. 타르는 한참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의 문을 점검해보고 있는 듯 몇 번씩이
나 여닫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멈춘 후 타르가 돌아와서
조니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금속절단기는 없겠지?"
  타르는 빈정대듯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지껄여댔다.
  "네놈의 엉덩이 밑에 권총을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닐 테지?"
  타르는 자신의 농담이 재미있다는 듯이 큰소리로 웃어댔다.
  "카의 교육은  완전히 틀려먹은 거야. 카  녀석도 기합을 단단히
낳어야겠어."
  타르는 조니의 목고리의  로프와 결박하고 있는 로프를 흔들어대
며 장난치고 있었다.
  "돌대가리 같은 녀석."
  그때 멀리서 무인정찰기가  폭음을 울리며 날아오더니 요란한 굉
음과 함께 머리  위를 지나갔다. 조니는 지나가는 정찰기를 노려보
았다.
  "좋아."
  타르가 만족스러운 듯이 말했다.
  "내가 어떻게 해서 저 동물들을 찾아냈는지는 이미 알고 있겠지.
그러니까 네놈이  아무리 기억하고  반항해보았자 금세 탄로난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으라구. 자아, 이제 알았으면 트럭에서 내려라."
  조니는 우리까지 끌려갔다. 우리 안이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학
습기계와 책상은 우리  밖에 놓여져 있었다. 타르는 로프를 잡아당
겨서 조니를 앞장세웠다.
  크리시와 패티는 풀장 안쪽 벽에 설치된 철책에 묶여 있었다. 크
리시는 패티의 팔과  다리를 주무르면서 감각을 되돌아오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마침내 패티의 몸에  피가 돌기 시작했고,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고통으로 흐느끼지 시작했다.
  "자아, 동물, 지금부터 상황을 설명해주겠다. 주의해서 지켜봐둬
라."
  타르는 바로 옆에 있는  전기 연결 상자와 거기에 연결되어 있는
굵은 전깃줄을 가리켰다. 전깃줄은 우리 꼭대기까지 올려져서 철책
의 철봉  하나하나에 연결되었다. 그런 다음  우리 전체에 한 바퀴
돌려져서 다시 연결상자에 접속되어 있었다. 철책 밑은 절연피막으
로 덮여 있었다.
  타르는 조니를  관목숲까지 끌고 갔다.  코요테가 한가롭게 누워
있었다. 타르는 절연장갑을 끼고 코요테르 집어올렸다.
  "저기 있는 두 마리의 동물에게 이것을 잘 보아두라고 말해라."
  조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됐어. 네가 말하지 않아도 놈들은 이쪽을 보고 있으니까."
  절연장갑을 낀 손으로  버둥거리는 코요테를 집어든 타르는 곧장
철책에 갖다댔다. 눈을  찌르는 듯한 섬광이 번쩍이면서 연기가 피
어올랐다. 코요테가 비명을 질러대면서 발버둥쳤다. 하지만 그것은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새까맣게 타버린 코요테의 잔해는 잿덩어리
가 되어 철책에 달라붙어 있었다. 타르는 킬킬거리고 있었다.
  "동물, 만일 네놈들이 철책을 건드리면 이런 꼴이 된다고 말해줘
라."
  조니는 절대로 철봉에 손을 대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다음에는."
  타르는 장갑을 벨트에 꽂으면서 말했다.
  "너희들에게 줄 선물이 또 있다."
  타르는 주머니에서 조그만 스위치 박스를 꺼냈다.
  "이봐, 동물, 리모트 컨트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을 테지. 그
폭발사고를 기억해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거야. 이것은 리모트 컨트
롤이다."
  타르는 크리시와 패티를 가라켰다.
  "자아, 잘  보라구. 저 두 마리의  목고리는 특별하게 제조된 거
야. 이미 알고 있겠지만. 목고리에 빨간 돌출된 부분이 보이지?"
  그것은 눈 속으로 파고들 듯 선명하게 보였다. 조니는 그것이 무
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 순간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저것은 소형 폭탄이다. 녀석들의 머리를 산산조각내서 날려보내
기에 충분한 위력이 있다. 알겠지, 동물?"
  조니는 눈을 부릎떴다.
  "이 스위치는,"
  타르는 리모트 컨트롤 박스를 가리켰다.
  "저 작은 동물을 위한 스위치다."
  그리고 또 하나를 가리키더니 말을 이었다.
  "이것은 저쪽의 조금 큰 동물의 목고리를 폭파시키는 것이다."
  "그럼 여기에 있는 스위치는 무엇인가?"
  조니가 물었다.
  "물어줘서 고맙군. 너의 돌대가리가 이것을 절대로 이해할 수 있
을지 걱정하고 있었으니까.  이 세번째 스위치는 우리 전체를 폭파
시킬수 있는 폭약과  연결되어 있다. 폭약이 장치된 스위치는 절대
로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이 지역  전체를 날려보낼 테니
까."
  타르는 마스크 뒤에서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그 호박색 눈이 가
늘어지더니 빛을 내면서 조니를 비웃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타르는
그 반짝이는 눈빛 속에 잔혹함을 번득이며 계속해서 지껄여댔다.
  '이 컨트롤 박스는 내  몸에 지니고 다닌다. 네가 모르는 곳에도
두 개의 리모크 컨트롤이  숨겨져 있다. 자아, 내가 얘기하는 것을
모두 이해했겠지?"
  "잘 알았다."
  조니의 몸은  솟구쳐오르는 분노를  억제하느라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내 말들이 우연히 저곳에 다가갔다가 전기처형을 당할지도 모르
고, 또 실수로 그 리모트 컨트롤 스위치를 잘못 건드린다면...."
  "내 말 잘 들어라,  동물. 우리가 여기 서서 시시한 토론을 하고
있지만, 난 언제나 네놈 편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조니는 뒤로 물러섰다. 타르가 다가와서 금속절단기로 조니의 목
고리를 잘라냈다. 그는 절단된 목고리와 로프를 조니에게 놀려대듯
이 건네주면서 말했다.
  "자, 이제 마음껏 뛰어다녀도 좋다. 자유를 주겠다. 도망가고 싶
으면 언제든지 도망가라."
  타르는 웃으면서 등을  돌리곤 작업중에 흐트러놓은 공구들을 끌
어모았다. 우리 주위에는 전기처형다한 코요테의 악취가 떠돌고 있
었다.
  "도대체 나더러 어쩌라는 것인가?"
  타르는 치우던 공구들을 팽개쳐두고 조니에게 다가왔다.
  "아무리 돌대가리라도 벌써  눈치채고 있었던 모양이군. 내 일에
협조하는 것이 네가 할 수 있는 최상의 길이라는 것을."
  "어떤 식으로?"
  "그래, 처음부터 그렇게  나왔어야지, 동물. 나는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것을 무척 좋아하나까 말이다."
  "무엇을 하면 되는가?"
  조니가 되풀이해서 물었다.
  "현재 회사는 골치아픈 프로젝트에 부딪혀 있다. 물론 그것은 극
비사항이다. 너는 그 프로젝트에 전폭적인 협조만 하면 된다. 알겠
지?"
  조니는 타르를 보았다.
  "그 일이  끝나는 즉시 너에게 엄청난  보수를 줄 것이며 산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겠다."
  "여자들은 함께겠지?"
  조니는 크리시와 패티를 가리켰다.
  "물론이고 말고."
  타르는 계속해서 말했다.
  "이미 불가능하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겠지만 만일 도망치려고
한다거나 작업을 방해해서 프로젝트를 성공시키지 못한다면 그때는
조그만 쪽부터 머리를  날려버리겠다. 매우 간단한 일이다. 그리고
도 네가 또다시 실패한다면 그때는 큰 녀석이 머리를 잃게 될 것이
다. 마지막으로 네가  완전히 프로젝트를 망쳐버렸을 때는 이 지역
전체가 날아가버리게 된다. 어때, 무슨 일이 있어도 프로젝트를 성
공시키겠다고 약속해주겠나?"
  "그럼 지금부터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좋은가?"
  "물론이다, 동물. 이젠 쥐사냥을 다니는 것도 신물이 난다구. 게
다가 저 두 마리를 위해서 매일같이 쥐를 잡아야 한다는 것은 생각
만해도 끔찍하다구."
  "나도 우리 속으로 들어가도 되는가?"
  "내가 리모트 컨트롤  박스를 가지고 밖에서 감시하고 있을 때는
들어가도 좋다."
  "말을 타고 평원을 달려도 괜찮은가?"
  "네가 이것을 붙이고 있는 한은."
  타르는 주머니에서 밴드가 달린 감시용 소형 카메라를 꺼내 조니
의 목에 붙여주었다.
  "만일 그것이 정지하거나  오 마일 범위 밖으로 벗어나면 첫번째
단추를 누를 것이다."
  "당신은 괴물이 아니고 악마다."
  타르는 그  말에 자신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을 알았
다.
  "그래, 약속하겠지?"
  조니는 리모트 컨트롤로 가득 찬 타르의 주머니가 불룩하게 나와
있는 것을 뚫어질  듯이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오직 자신의 행동여
하에 따라 생명의 기로에 처해 있는 크리시와 패티르 바라보았다.
  "프로젝트에 협조할 것을 약속한다."
  조니는 다짐했다. 그것은 지금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대
답이었다. 그것만으로도 타르는 흡족해 했다. 그는 즐거운 듯이 공
구들을 트럭의 짐칸에  던져두고 떠나갔다. 조니는 우리 쪽으로 걸
어갔다. 철봉에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했
다. 그는 신중하게  던어를 골라가면서 얘기했다. 조니는 솔직하게
얘기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화가 났다. 크리시를 속이고 있는 것
처럼 느껴져 가슴이 아팠다.


  제 1 권
  지구선선

  제 6 부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고 느낀 것은 아버지가 주고 나서 처음이었
다.

  (1)
  약점, 약점이다. 놈이  반항하지 못할 약점을 찾아내야 한다. 회
사의 내부자료들을 들추면서 타르는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떻게 해
서라도 넘프의  약점을 찾아내야만 한다.  혹성장관 넘프의 약점만
잡으면 계획에만 열중할  수가 있었다. 계획만 성공하면 이런 저주
받은 혹성에서 십  년씩이나 더 있을 까닭이 있겠는가.증거를 모두
없애고.... 그렇다. 저  동물들도 모두 기화시켜버리면 된다. 그리
고 고용계약을 해제하고 본국으로 돌아간ㄷ. 그곳에는 호화로운 생
활이 기다리고 있었다.
  넘프의 태도는 요즘 약간 강경해져 있었다. 이틀 전 그의 사무실
에 갔을 때는 정기적으로 지나가는 정찰기 소리가 시끄럽다고 핀잔
을 늘어놓았다. 그뿐인가!  다른 부서들로부터 받는 보고서에는 반
란의 조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고 야유 섞인 말투로 빈정댈 정
도였다. 뭔가 있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타르는 '모든  은하계에 있어서의  광물시장'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사내  간행물을 보고 있었다. 이  간행물은 일 년에 수차례씩
간행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영업부에 배포되는 자료인데 이 혹성에
는 영업부가 없었다.  여기에서 파낸 광석들은 모성으로 직접 보내
질 뿐, 모성 이외의 다른 곳과는 거래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이
간행물은 은하계에 있는  채굴혹성에 정기적으로 보내졌다. 타르는
긴급발송 문서상자 속에서 이 최신판 시장보고서를 훔쳐냈다. 광물
A는 몇  크레디트, 광물B는 몇 크레디트,  몇 퍼센트의 제련물이면
몇 크레디트.... 그러한 수치들만이 한도 없이 계속되고 있는 따분
한 문서였다.  하지만 타르는 집요하게  하나하나 점검하며 단서를
찾고 있었다.
  타르는 일을 하면서도 가끔씩 고개를 들고 스크린을 통하여 동물
을 감시하고 있었다. 동물의 목에 붙여둔 소형 카메라는 이상이 없
었다. 카메라를 조작하는 컨트롤 박스는 언제라도 즉시 잡을 수 있
도록 그의 손 가까이에 놓여 있었다. 지금까지 인간의 행동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치밀하게 계산된 행동만을 보이고 있어서 사실 깜짝
놀랄 정도였다.
  인간은 부상당한 말의 등에서  짐을 풀어낸 후 옆으로 눕히고 상
처에 수액을 발라주고 있었다.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다리는 조
금씩 절었고, 감각기능오 둔해진 듯했지만 말은 일어서서 무성하게
자라난 풀들을  뜯어먹고 있었다. 다른 세  마리는 짐 속에서 꺼낸
로프로 말뚝에 매여져 있었다. 그런데 한 마리만은 계속 코를 비벼
대면서 인간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인간이  말에게 얘기하는 것이
타르에게는 무척 신기하게 느껴졌다. 자세히 보니까 인간은 부상당
한 말에게도 말을  걸고 있었다. 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타르는 인간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말이 대답을 하는
지 알아보기  위해 스피커에 귀를 기울였다.  대답을 하고 있었다.
초음파일까? 인간이 가끔씩  말에게 대답하고 있는 것을 보면 확실
했다. 우리 속에 있는 암컷들과 얘기할 때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것은 문제될  것이 아니었다. 그는 사이클로인이지 칭코
인이 아니었다. 멸종된 종족에 대한 경멸감을 드러내면서 마음속으
로 사이클로인임을 다시 한번 자부했다.
  말의 치료를 끝낸 인간이 말을 타고 작업장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스크린에 비춰지고 있었다.  타르는 그것을 자세히 지켜보았다. 소
형 카메라에  잡힌 사이클로인 노동자들은 인간을  힐끗 쳐다볼 뿐
거의 무시하고  있었다. 인간은 평상시처럼  굴착기 근처로 달려가
카에게 곧장 다가갔다. 타르는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아
볼륨을 올려놓았다.  카는 인간을  피하듯이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인간이 이상한 말을 했다.
  "너를 책망하려는 게 아니다."
  카는 뒷걸음치던 것을  멈추고, 무척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
었다.
  "당신을 탓하지는 않겠다."
  인간은 다시 한 번 말했다. 카는 꼼짝 않고 선 책로 바라보고 있
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림자가 카의 몸을 어둡게 덮어버
렸기 때문에 스크린에는 그의 표정이 잘 나타나지 않았지만 안심이
된다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었다.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타르를 놀라게 만든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
었다. 인간이 카에게서  날이 달린 차량을 빌려타자 챠가 달려와서
시비를 걸려고 하였다. 그러자 카가 나서서 챠를 쫓아버렸다. 인간
은 말을 차량 쪽에 묶고 운전석에 앉더니 높은 쪽으로 올라가기 시
작했다. 카가  챠를 대하는 태도는 매우  위협적이었다. 저 인간이
사이클로인들끼리 싸움을 시켰단 말인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무분별한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 스크린의
영상은 흔들리고  있었고, 말소리도 굴착기의  소음 때문에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타르는 다시 넘프의 일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다시 타르가 화면을 보았을 때, 동물은 날이 달린 차량을 이용해
서 예닙곱 그루나 되는  나무를 잘라낸 다음 우리 근처에 쌓아올리
고 있었다. 나무를  잘라내서 쌓으려면 차량에 부착되어 있는 날을
상당히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아야 했다. 동물이 그처럼 복잡한 기계
조작을 간단히 해내는 것을 보고 타르는 기뻐했다.
  타르는 다시  서류들을 뒤적이면서  은하계의 보크사이트 시세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그 일에 골몰했으므로 스크린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저녁때가 되어서  다시 스크린을 쳐다보았다.  이미 작업을 끝낸
인간은 차량을 카에게 되돌려준 뒤였고, 나무울타리를 만드는 작업
마저 거의 끝내가고 있었다. 인간은 우리주변을 돌아가며 나무울타
리를 만들고 있었다.  타르는 한순간 수상하게 여겼지만 말이 철책
을 건드릴지도 모른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났다. 타르는 고개를 끄
덕였다. 말이  실수로 철책을 건드려서  감전될 경우 섬광으로부터
암컷들을 보호하려는 것이었다.
  그 후 한 시간 가량 시장가격을 살펴보고 나서 타르는 우리가 있
는 곳으로 다가갔다.
  동물은 나뭇가지들을 이용하여  조그만 판자집을 만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학습기계와 책상,  짐이 놓여 있었고, 입구 쪽에는 모닥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가공된 판자와 석재  없이도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사실에 타르는  다소 놀라고 있었다. 동물은 나뭇가지에 불
을 붙여 한 손에  들고, 다른 한손에는 무언가를 들고서 우리 쪽으
로 다가갔다. 문은 지그재그 형태로 좁게 만들어져 있었다. 말들은
드나들 수 없었지만 인간은 지나갈 수 있었다.
  타르는 철책에  흐르는 전류스위치를 끄고,  인간이 우리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었다. 인간은 큰 암컷에게 불이 붙은 나무가지
를 건네주고 다른 손에 들었던 것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다시 밖으
로 나온 동물은  나무다발을 안고 안으로 들어갔다. 타르의 흥미를
끌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타르가 알아차린 것은  암컷들이 더러워진 가죽옷을 깨끗이 빨아
놓은 것과, 고기를  말리는 선반이 깨끗하게 비워져 있다는 사실이
었다. 타르는 암컷들의 목고리와 끈을 점검하고 자물쇠를 확인해보
았다. 암컷들은 타르가  다가설 때마다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뒷걸
음치며 피하려고 했다.  타르는 그것이 재미있었다. 인간을 밖으로
밀어내고 우리의 문을  잠그는데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스치가는 것
이 있었다. 타르는 서둘러 우리에 전류를 흐르게 하고 사무실로 달
려갔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마스크르 벗어던지고,  커다란 계산기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타르는 재빠르게 키보드를 두들켰다. 본사
에 보낸 광석출하 톤  수에 관한 보고자료를 스크린에 출력해서 즉
각 계산기에  입력시켰다. 시장가격에 대한  자료들을 모두 뒤져서
찾아낸 데이터를  맹렬한 기세로 게산기에  입력시킨 후, 지구에서
보낸 광석의 본사 출하가격의 계산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타르
는 초조하게  스크린을 주시하고 있었다.  타르는 스크린에 나타난
결과를 보고 아연해져서  의자에 주저앉아버렸다. 지구에서 지급하
는 조업가격과 광석의 현  시장가격과의 차이는 도저히 믿을 수 없
을 정도로 차이가 있었다. 지구에서의 조업은 적자를 내고 있지 않
았다. 광석의  현 시장판매 가격은 조업가격의  오백 배나 되었다.
이 혹성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불경기라고? 말도 안되는  수작이었다. 지금의 다섯 배나 열 배,
아니 열다섯  배라도 급료와 보너스를 더  줄 수 있었다. 그런데도
넘프는 급료와 보너스를 삭감해버렸다. 물론 회사에 막대한 이익을
주면 문제될 조지는 적었다. 그렇지 않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타르는 밤늦게까지 조사를 계속했다. 기금까지 넘프가 본사로 보
낸 보고서들을 전부 검토해보았다. 특별히 이상한 것은 없었고, 거
의 정확하게 작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급여지급란은 좀 의심스럽게
느껴졌다. 피고용자의 성명과  등급을 나열하고 '등급에 따른 통상
액을 지급'이라고 간단하게  써놓았을 뿐, 개인별 지급액이 기입되
어 있지 않았다. 보너스라도 '지정대로 지급'이라고만 기재되어 있
을 뿐이었다. 회계서류치고는  비합리적인 부분이 많았다. 물론 이
곳 채굴장에는 관리센터도  없고 인원도 부족하니까 나머지 세밀한
부분은 본사에서 기입할지도  모른다.... 본사 회계부는 충분한 인
원과 자동 사무처리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사무실에서 직접  크레디트 지폐로 급료를 지불했다.
그들의 대부분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기 때문에 서명한 영수증
도 없었다. 그래서  사망한 노동자의 시체를 모성으로 보내는 것이
었다.
  자정이 가까워올 무렵 타르는 차량보고서 가운데 이상한 점을 발
견했다. 사용차량들은 닷새  동안의 작업기간마다 등록번호가 적혀
서 보고되어 있었다.  타르가 가장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은 넘프가
직접 그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것은 혹성장관의
업무가 아니었다. 그러나  분명히 넘프의 필체로 기록되어 있었다.
타르는 넘프의 필체를  잘 알고 있었다. 계속해서 자세히 읽어보니
까 폐기차량들이 기재되어 있었다. 그것은 타르가 다른 채굴장에서
회수해온 전투기  스무 대 중 한  대였다. 격납고에 여유가 없어서
가까운 평지에 내버려둔  비행기였다. 그러나 서류에는 분명히 '전
투기 3-450-967G'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넘프는 그것이 사용되었다
고 보고한 것이었다.
  타르는 다른  보고서에 기재된  사용차량들의 목록도 조사해보았
다. 차량의 기재순서가 보고서마다 달랐다. 서류에 따라 전부 가지
각색이었다. 암호였다.
  새벽의 여명이 서서히 어둠을 잠식해올 무렵 그 암호의 해독작업
은 끝났다.
  이 혹성에서 사용된는  차량들의 등록번호를 이용하면 원하는 내
용의 메세지를  보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끝에서 세번째 숫자와
알파벳을 바꿔놓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타르는 온몸에 만족감을
느끼면서 방금 해독한 메시지를 읽었다.

  특별한 문제는 없음. 차액은 통상과 같음.

  타르는 다시 한  번 계산해보았다. 깡총깡총 뛰고 싶은 기분이었
다. 이 보고서는 본사 회계부의 나이프에게 전달되는 것이었다. 지
구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지급되는 급료와 보너스의 총액은 일억
육천칠백만 은하 크레디트 정도였다. 그러나 실제로 보너스 지급은
전혀 없었고, 급료도 절반만 지급되고 있었다. 나이프가 급료와 보
너스를 정상 금액대로 보고하고, 차액을 자신과 넘프의 개인구좌에
입금하는 것이었다. 이  사기행각으로 일 년에 일억 은하 크레디트
나 가로채고 있다는 얘기였다. 두 사람의 급료는 모두 합해봐야 칠
만오천 크레디트도 안되었다.  증거는 모두 갖춰졌다. 이 암호, 그
리고 엉성하게 기록해 놓은 회계보고서.
  타르는 팔짱을  끼고 한동안 방안을 서성이다가  갑자기 멈춰 섰
다. 놈들에게 한몫  끼여달라고 말해볼까? 놈들은 틀림없이 승낙할
것이다. 거절할 수 없겠지. 하지만 그런 짓은 아예 포기하는 게 좋
다. 물론 나는 보안부장으로서  우수하지만, 내가 이 음모를 풀 수
있었다면 누눈가 다른 녀석도  이 음모를 풀 수 있었을 것이다. 돈
벌이도 크지만 위혐도  크다. 나이프와 넘프는 매우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다. 발각되는 날에는 즉시 기화형에 처해질 것이다. 타르는
그런 어리석은 일에는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는 한 번
도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었다. 더구나 회계는 그의 권한 밖의 일
이었다. 책임질 일이  아니었다. 반란을 경계하라는 명령서는 넘프
에게서 받았지만 본사를  지키라는 명령서는 받은 일이 없었다. 구
미는 당겼지만 가담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이 섰다. 일억 정
도만 챙기고 이 혹성을 떠나면 그만이다. 이제 모든 일이 원활하게
진행될 것이다. 계획은 완벽하게 짜여 있다. 회사의 광석에 손대는
것도 아니고, 회사의 노동자를 이용하는 것도 아니다. 회사의 기록
에 남을 만한 것도 없다. 물건을 본국으로 보내는 마지막 단계에서
약간 위험하겠지만 핑계를 댈 수 있을 것이다.
  녀석들이 부지런히 사기행각을  벌이도록 내버려두자. 몰론 위험
도 함께. 이 서류는  넘프의 약점으로 삼고 그 일만 끝나면 폐기시
켜버리자. 넘프와 만나는 것이 기다려진다!

  (2)
  "동물들을 또 잡았다면서?"
  다음날 오후 넘프는 타르를 보자마자 불평부터 늘어놓았다.
  타르는 기분 좋게 면회신청을  했지만 승락을 얻는 데 많은 시간
을 기다려야 했다.  그는 넘프의 사무실 직원들에게 경원당하고 있
었다. 물론 넘프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혹성장관 넘프는  호화스러운 책상 너머에  앉아 있었다. 타르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창 밖의 산들을 자못 혐오스럽다는 듯이 바라보
고 있었다.
  "그것은 각하께 허가를 받은 일입니다."
  "흠, 그런데 자네가 말한 반란의 조짐은 어찌된 건가? 내게는 전
혀 보이지 않으니 말일세."
  타르는 조용히 하라는 표시로  뼈로 된 입술 위에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넘프는  그제서야 타르 쪽으로 돌아  앉았다. 타르는 많은
서류와 함께 조그만  기계를 가지고 있었다. 넘프에게 주위를 환기
시키듯이 손가락을 위로 쳐들고 나서 타르는 밑에 놓아두었던 기계
를 집어들었다. 그는  혹성장관 앞에서 원형 천장과 융단의 가장자
리는 물론 책상 위에서  의자의 팔걸이 아래까지 방 전체를 그것으
로 철저히 조사했다.  넘프가 물어보려고 할 때마다 손가락을 입술
에 갖다대면서 말을  가로막았다. 타르는 방안에 도청용 소형 카메
라나 영상기록 장치가  숨겨져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나서 창 밖을 주의깊게 살펴보았다. 엿듣는 자가 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자 안심했다는 듯이 웃어 보이고는 의자에 걸터앉았다.
  "아침마다 들려오는 정찰기  소음은 정말로 못 견디겠더군. 머리
가 수신다니까."
  타르가 그 말에 대닫했다.
  "즉시 코스를 변경시키겠습니다. 각하."
  "그리고 그 동물들  말인데, 동물원이라도 만들 셈인가? 여섯 마
리나 더 잡아왔다고 오늘 아침 챠가 말하던데...."
  "네, 실제로  계획을 실행하려면 쉰  마리가 필요합니다. 놈들을
훈련시킬 기계와 그 허가도...."
  "절대로 더이상 허가할 수는 없네."
  "회사 입장에서는 많은 비용이 삭감되는 일이고, 이익도...."
  "타르, 나는 그것들을  기화시켜버리라고 명령할 생각이네, 만일
본사에 알려진다면...."
  "은밀히 추진하는 일입니다."
  타르가 말했다.
  "놀라게 해줄 겁니다. 급여와 보너스 등의 경비가 격감되고 이윤
도 급상승하는 것을 본다면, 본사는 틀림없이 우리들에게 고마워할
것입니다."
  넘프는 얼굴을 찡그렸다.  타르의 자신만만한 태도가 못마땅했던
것이다.
  타르는 지난번 면담 때의 실수를 깨닫고 있었다. 넘프가 하는 대
로 내버려두었다면 지금쯤은  모성에서 보내온 노동자들로 지구 전
체가 북적거렸을 것이다. 노동자들이 늘어날 때마다 그만큼 넘프의
주머니도 넉넉해졌을 것이고.
  "광석출하량을 늘리는 방법은 자네가 생각하는 방법 말고도 많이
있네. 본국에서는  노동자를 고용해서 작업인원을  늘리려 하고 있
네. 그쪽에는 실업자가 많으니까."
  "그렇게 하면 이윤이 줄게 됩니다."
  타르는 솔직하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이윤을 향상시키는 것이 현재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만..."
  "산출량을 늘리면 이윤도 늘어난다."
  넘프는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냈다.
  "게다가 처음에 오는 노동자들은 급료를 반만 지급하면 된다. 결
정적인 것은 그 점이다."
  "그러나 이 총괄권한  임명장에 따르면 토착원주민을 노동력으로
서 훈련하는 것이...."
  "내 말뜻을 모르겠는가?"
  넘프는 화가 치밀어올라 목소리를 높였다.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타르는 조그만 소리로 웃었다.
  "다만 저의 관심은  오로지 회사와 회사의 이윤을 향상시키기 위
하여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자네는 내가 그런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그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타르는 조사한  자료를 넘프의 눈앞에
내밀었다. 혹성장관 넘프는  무시해버리려고 손을 들었다가 자료를
보는 순간 허공에서 굳어져버렸다. 눈은 허공에서 멈춰 있었고, 양
팔을 희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이익계산 방식, 실이익보고서가
빠져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동그라미 표시,  차량번호, 그리고 그
암호 메시지 '특별한 문제는 없음. 차액은 통상과 같음.'
  넘프는 고개를 들어  타르를 쳐다보았다. 눈 속에 긴장된 공포가
가득 차 있었다.
  "회사의 규정에 따르면  저에게는 각하를 해임시키고, 그 직무를
대행할 권리가 있습니다."
  넘프의 눈은 타르의 벨트에  꽂혀 있는 권총을 주시한 채 충격으
로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감독권을 장악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각하 정도의
지위에 있으면서 아무런 전망도 없다면 누구라도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입니다.  그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 이해
심은 넓은 편이니까요."
  넘프의 공포에 찬 눈이 겨우 타르의 가슴께까지 치켜져 올라왔을
때 타르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본국에 대한 범죄행위는 제 직무 밖의 일입니다."
  한순간 넘프의 눈 속에 희미한 빛이 보였다. 모르는 채 넘어가겠
단 말인가.
  "각하는 훌륭한 관리자였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타르는 계속 말했다.
  '직원 스스로 회사에  이익이 된다고 판단했을 때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니까요."
  타르는 증거서류를 치웠다.
  "각하께 경의를 표하는 뜻에서  이 서류는 아무도 볼 수 없는 곳
에 잘 보관해놓겠습니다. 단  제 신분에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일어
날 경우에는 즉각  공표될 것입니다. 본사에 보고할 생각은 없습니
다. 저는 이 사실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설사 각하께서
제가 알고 있다고 말씀하셔도 증거가 없기 때문에 아무도 곧이듣지
않을 것입니다. 이 일로 각하가 기화형을 당한다 해도 그것은 다른
곳에서 정보가 누설된 거라고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게서 누설
된는 일은 절대로 엇을 것입니다."
  넘프는 일어서는 타르를 망연자실한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
  요청서와 명령서 용지들이 넘프의 책상 위에 놓여졌다.
  "서명을 부탁드립니다."
  서류에는 아무것도 씌어 있지 않았다. 날짜도 없었다. 더구나 그
것들은 모두 혹성장관 전용 용지였다. 넘프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씌어 있지 않잖은가. 결국 자네 마음대로 하겠
다는 뜻 아닌가. 돈도, 기계도, 채굴장도 마음 내키는 대로 기재해
서 쓰겠다는 것이 아닌가.  작업에 관여하는 것도, 이 별에서 떠날
수 있는 이동명령서까지도 직접 작성하겠다는 말인가?"
  그러나 더이상은 말을  잇지 못했다. 넘프의 머릿속은 완전히 혼
란스러워져 있었다.
  손톱 사이에 펜이 끼워진 후부터 십오 분 동안 넘프는 오로지 자
기 이름만 쓰고 있었다.
  타르는 혹성장관의 서명이 된 백지명령서들을 집어들었다.
  "모든 것이 회사를 위해서입니다."
  타르는 싱긋이 웃으며 두꺼운 서류뭉치를 자물쇠가 달린 가방 속
에 챙겨넣었다. 증거서류도 커다란 봉투에 집어넣고 탐지기를 손에
들었다.
  "각하를 해임시킨다면 유능한 직원의 경력을 망치는 것이 되니까
요. 게다가 친구  나이프의 입장을 생각해서라도 회사에 대한 손해
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마무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 때문에 각하
께서 위험에 빠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보증합니다.
저는 회사에도 충실하지만 친구도 소중히 생각합니다.
  타르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방을 나갔다. 넘프는 모든 것이 일시
에 사라져버린 허탈감  속에 탈진한 모습으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한가지 생각만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저놈은 악마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부터 타르의 조종대로 움
직여야 하는 노예다.  기금부터 타르가 이 혹성의 실질적인 지배자
가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놈의 의지대로 움직여질 것이다.

  (3)
  조니는 귀로에 올랐다. 사냥결과는 만족할 만했다.
  그날 아침 허기에 지친  크리시와 패티의 모습을 보았을 때 조니
는 가슴이 아팠다.  그들은 속을 청소하는 것조차 힘겨워하고 있었
다. 이중울타리 너머로 조니가  말을 걸 때면 두 사람 모두 어떻게
든지 밝은 표정을  지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패티는 차츰
기운을 되찾고 있었다. 그러나 크리시는 언젠가는 산속의 왕자님과
결혼하게 될 거라는  조니의 위로에도 웃음조차 짓지 못했다. 그것
은 옛날에 흔히 하던 농담이었는데....
  패티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크리시가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이내 그녀까지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두 사람이 기력을 되찾
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조니는 자유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말들을 끌어내자마자 윈드스프피터를 타고 사이클로인 기지
에서 질풍처럼 달려나갔다. 댄서와 콧소리만 내고 있는 울드보크가
뒤따랐다. 사냥에는 프로지트가  적격이었으나 상처가 완전히 아물
지 않아서 달리지 못했다.
  조니는 사슴을 찾았다.  그녀들이 사슴고기를 훈제하거나 가죽을
벗겨 무두질하는 일에라고 열중하면 잠시나마 공포심과 좌절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었다. 평원으로 말을 달리고 있는 동안 조니의
마음은 드넓은 대지의 푸르름 속에 흠뻑 젖어들었다. 윈드스프리터
도 활기를 되찾은 듯 경쾌한 몸놀림으로 힘차게 달려갔다. 잠시 동
안의 자유가 그에게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었다. 아직은 희망이 있
다고 생각했다. 좁은 개울가까지 달려갔을 때 물을 마시고 있는 산
양을 발견했다. 간단하게  잡아서 올드보크의 등에 묶어놓았다. 산
양을 잡은 지 채  삼십분도 안되어 사슴까지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어린 숫사슴이었다. 사냥감들을 각기 말 들에 묶고, 조니는 키니키
닉을 찾아나섰다. 그것은 고기를 훈제할 때 태우면 좋은 냄새가 나
는 식물이었다. 열매를  맺기엔 아직 이른 시기였으나 잎사귀도 충
분했다.
  그때 뒤에서 붕하는 낮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흠칫 놀라서 말
을 새우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조그만 점이 쏜살같이 날아오고 있
었다 조니 쪽을 향해  오는 것 같기도 했고, 기지를 향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들려오는 낮은 폭음은 삼 마일 정도 떨어
진 기지에서 듣던 소음과 거의 같은 크기로 들려왔다. 도대체 어디
로 향하는  것일까? 거의 지면에 닿을  만큼 낮게 뜬 저공비행이었
다. 머리위까지 날아온 비행물체는 갑자기 속력을 떨어뜨렸다.
  '나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타르가 여기저기서 끌어모아 기지 옆 공터에 대기 시켜놓은 수무
대의 비행기들 가운데 한 대였다. 비행기는 백 피트 고도에서 멈춰
있었다. 비행기에서 들려오는  굉음에 말들이 놀라고 있었다. 조니
는 윈드스프리터의 배를  발로 차며 기지를 향해 달렸다. 비행기가
머리위를 스치듯 지나쳐  앞서가더니 갑자기 방향을 바꿨다고 생각
하는 순간 충격파가  조니를 강타했다. 달리는 말들의 바로 앞에서
흙먼지가 치솟았다. 윈드스프리터가  앞발을 치켜들며 멈춰 서더니
곧장 몸을 돌려 도망치려고 했다. 솟구친 흙덩이들이 쏟아져내리면
서 말들을  때렸다. 폭음으로 고막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조니는
방향을 바꿔서 오른쪽으로  말들을 달리게 했다. 바로 앞에서 다시
흙먼지가 일었다.  윈드스프리터는 두려움에  당황해 하고 있었다.
그때 짐 실은 말  한마리가 고삐를 풀고 도망쳤다. 조니는 크게 선
회하며 북쪽으로 달렸다. 앞에서 흙과 돌덩이들이 솟구쳐올라왔다.
조니는 떨어져내리는 흙먼지  속을 그냥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 순
간 윈드스프리터가  앞발을 치켜들고  일어서서 갈팡질팡하고 있었
다. 조니는 윈드스프리터를 겨우 진정시켰다.
  창이 열리고 타르의  웃는 얼굴이 나타났다. 몸을 앞뒤로 흔들면
서 큰소리로 웃어대더니  숨을 몰아쉬면서 당당하게 가슴을 두드렸
다. 조니는 말들을 끌고 와서 짐들을 다시 단단하게 묶었다.
  "지독한 얼굴이군."
  타르는 웃으면서 놀려대고는  마스크를 고쳐썼다. 말들은 아직도
두리번거리며 불안에 떨고 있었다. 그러나 조니는 한곳을 뚫어지게
노려볼 뿐이었다.  그 눈이 레이저  광선총이었다면 타르의 목숨은
이미 없어졌을 것이다.
  "만약 도망친다 해도  간단히 붙잡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려
고 한 거라구."
  타르가 말했다.
  "표적을 한  번이라도 너에게 겨냥했다면....  지금쯤 너는 붉은
피를 내뿜으며 갈갈이 찢겨진 채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조니는 짐 실은  말의 고삐를 윈드스프리터의 목에 묶었다. 그리
고는 윈드스프리터 옆으로 다가가서 다정하게 쓰다듬어주었다.
  "나는 지금 축제기분이라구."
  타르가 말했다.
  "그녀석에게 다른 말을  끌고 가지로 돌아가라고 말하라구. 너는
나와 함께 가는 거야."
  "산소마스크가 없다. 그 안은 호흡가스겠지."
  "준비해두었다."
  타르는 비행기 안을 뒤져서 산소마스크를 꺼냈다.
  "자아 타라."
  윈드스프리터는 이제 침착성을 되찾고 있었다. 조니는 그의 귀에
입을 갖다대고 말했다.
  "크리시가 있는 곳으로 가거라."
  윈드스프리터는 비행기 쪽을  힐끗 쳐다보고는 기지를 향해서 달
렸다. 짐을  실은 말들도 그 뒤를  따랐다. 과연, 인간은 동물들과
얘기를 나눌 줄 알았다. 조니는 산소마스크를 쓰고 비행기를 탔다.

  (4)
  첫비행은 형편없었다. 그것은 조니가 처음으로 하늘을 나는 것이
었으며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조니는 부조종석의 거대
한 좌석 속에  파묻혀버렸다. 안전벨트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서
손잡이를 꽉 붙잡고 몸의 균형을 유지해야 했다.
  발밑으로 내려다보이는 평원이 화살처럼 뒤로 미끄러져갈 때마다
당장이라도 떨어져내릴 것만 같은 공포감이 전신을 훑어내렸다.
  서쪽으로 넓게  펼쳐진 산들의 장대한  경관이 눈앞에 나타났다.
전에도 본 적이 있는 산들이었다. 잠시 후 조니는 하이피크보다 높
이 날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산은  맑고 깨끗한 햇살을 받아서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조니는 눈밑으로 펼쳐지는 경치에 온통 마
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고도는 약 사 마일.  세상이 넓고 큰 줄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게다가 하늘을 난다는 것이 이렇게 스릴
이 있을 줄이야....
  한동안 묵묵히 조종대만을 잡고 있던 타르가 말했다.
  "이제 너는 광산에 있는 기계를 모두 조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렇지, 동물? 이것도 그 기계들과 마찬가지다. 다만 2차원으로 이동
하는 것이 아니라 3차원으로  움직인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네 앞
에 있는 조종장치는 내 것과 똑같은 것이다. 한번 해보라구."
  타르는 조종장치에서  손을 떼었다. 비행기는  눈 깜짝할 사이에
궁중제비를 돌았다. 조니는  문에 심하게 부딪쳤다. 비행기는 한순
간 방향을  잃고 비틀거리다가 거꾸로  급강하했다. 조니는 타르가
조종하는 것을 전혀 보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조종석은 마치 레버
와 버튼으로  가득 찬 정글 같았다.  한손으로 안전벨트를 꼭 잡고
몸의 균형을 유지한  조니는 버튼을 닥치는 대로 눌러댔다. 그러자
비행기는 미친 듯이 날기 시작했다. 급상승, 급강하, 곤두박질치듯
지면이 눈앞까지  다가왔다가 순간적으로 치솟아오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타르의 웃음소리가 엔진의 폭음소리를 뒤덮어버릴 듯이 울려퍼졌
다. 카방고에 완전히  취한 타르는 축제를 벌이고 있다고 착각하는
모양이었다. 조니는 서서히 안정을 찾아갔고 사태수습을 위한 집중
력이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었다. 다른 기계들처럼 조종장치마다 표
시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조니가 알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광산
에서 사용하는 기계들과  똑같은 버튼들이 있었는데, 그 버튼들 옆
에는 예외없이 또 하나의  버튼이 달려 있었다. 그 버튼들은 3차원
축 방향으로 이동하기  위한 장치임이 분명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면과 가깝게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조니는 본능적으
로 그것을 깨달았다. 조니는 상승용 버튼을 찾아내서 눌렀다. 좌우
로 흔들리기는 했지만 비행기는 상승하기 시작했고, 지면이 속도만
큼 멀어져 갔다. 타르는 조니의 조종솜씨에 다소 만족해 했다.
  "좋아, 이젠 내가  맡겠다. 학교 다닐 때는 천재조종사라는 소리
를 들었지 저 구름 위에 착륙할 테니까 잘 보라구."
  뭉개구름들이 눈앞에 떠올라 있었다. 타르는 버튼들을 누르고 구
름 사이를 누비며 계속 비행해나가다가 구름을 벗어난 곳에서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서서히 하간하여 정확히 구름 위에 정지했다.
  "네가 서투른 것은 말이야, 아냐, 일단 그 쥐새끼처럼 작고 보잘
것 없는 머리지만 신경써서 잘 보아두라구. 네가 조종할 수 없었던
것은 내가 조종하는 것을 전혀 보지 않았다는 증거야. 바깥 경치에
넋을 잃고  있으면 어쩌겠다는 거야. 하긴  하늘을 나는 데 익숙한
쥐가 있다면  한번 보고 싶구먼. 쥐는  언제나 쥐일 뿐이지 절대로
새가 될 수는 없겠지만."
  타르는 자신의 마지막  말에 신이 나서 한바탕 웃어댔다. 그리고
뒷좌석에서 카방고 병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키고 다시 뒷좌석의 벨
트에 고정시켰다.
  "조종사가 조심해야 할 사항은 기내에 물건을 함부로 내버려둬서
는 안된다는 거야.  그것이 날아와서 너의 대가리를 깨뜨려버릴 테
니까."
  타르는 웃어면서 덧붙였다.
  "하긴 쥐에게는 깨질 만한 대가리도 없지만 말야."
  타르는 비행기를 다시 발진시켜 조니가 착륙과 정지 조작에 익숙
해질 때까지 반복하게 했다. 조니는 세 번이나 실수를 거듭한 끝에
기체가 구름에 절반도 잠기지 않게 하여 착륙시킬 수 있었다.
  조니는 비행기를  갑자기 발진시켜 기수를  산맥 쪽으로 돌렸다.
타르는 당황하여 재빨리  조니의 손을 조종장치에서 떨쳐내고 원래
의 방향으로 돌렸다.  조니는 이미 타르의 행동을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내가 함께 있을 때는 안된다."
  신바람이 나서 큰소리로  웃어대던 타르의 표정은 일시에 굳어버
렸다.
  "왜 산 위를 날면 안된다는 거냐?"
  조니는 불평하듯이 물었다. 타르는 얼굴을 찌푸렸다.
  "저 산 위를 넘어갈 때는 호흡가스가 새지 않도록 철저히 확인해
야만 한다. 알겠지?"
  순간 조니는 타르의 말 속에 숨겨진 불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왜 내게 조종법을 가르쳐주는 거냐?"
  조니는 의아해 하는 표정으로 묻고 있었지만 타르의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기 위해서였을 뿐, 진짜 이유를 듣기 위한 것은 아니
었다.
  "광부가 되려면 모든 조종법을 알아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니는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카도 비행기 조
종법을 알고 있었다. 카는 그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떠벌리곤 했다.
그리고 모든 광부들은 땅속으로 들어가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
을 뿐, 하늘을 나는 것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했었다.
  지상에 늘어서 있는 전투기들  옆에 착륙했을 때는 이미 늦은 오
후였다. 조니가 짐작한 대로 그것은 스무 대 가운데 한 대였다. 타
르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비행기를 제위치에 착륙시켰다. 다시 마
스크를 쓴 타르는 조니를 문 밖으로 밀어냈다.
  "혼자서 비행기를  조종해보겠다는 생각 따위는  아예 버리는 게
좋아. 전투기 컴퓨터를 작동시키려면 특수열쇠가 필요하니까."
  타르는 조니의 코 앞에서 열쇠를 흔들어 보였다.
  "이 비행기의  열쇠는 내가 가지고 있다.  폭발용 리모트 컨트롤
박스와 함께."
  타르는 리모트 컨트롤 박스를 꺼내서 바라보았다.
  "스위치가 모두 정상이군.  자아, 봐라. 장식으로 달아놓은 것은
하나도 없다구."
  타르는 큰소리로 웃어댔다.
  "어떤가! 못 믿겠다면 하나쯤 시범을 보여주고 싶은데."

  조니가 우리로 돌아왔을 때, 윈드스프리터는 크리시가 있는 곳에
서 있었고 다른 말들은 나무울타리 밖에 서 있었다.
  패티는 조니를 보자  말들만 돌아와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느냐
고 호들갑스럽게 떠들어댔다.
  "산양과 사슴을 잡았어."
  조니는 우리 속에 갇혀 있는 크리시와 패티를 향하여 말했다.
  "키니키닉을 찾다가 늦어졌어.  조금밖에 못 따왔어. 넉넉하지는
않지만 향을 내기에는 충분할 거야."
  크리시는 기쁜 듯이 이중울타리 너머로 말을 받았다.
  "가죽을 벗기는  일과 훈제고기를 만드는  일은 우리들이 하겠어
요. 재가 많이 있으니까 무두질도 할 수 있구요."
  크리시의 밝아진 목소리를  듣자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패티
가 큰소리로 말했다.
  "조니, 커다란 회색곰 가죽도 있네요. 이 곰 직접 잡은 건가요."
  그래, 내가 잡았다. 그러나  죽여야 했던 것은 곰이 아니라 다른
놈이었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저녁 늦게  타르가 찾아왔다. 그는 문을  점검한 수 조니를 우리
속에 들어가게  했다. 조니는 그녀들에게  고기와 가죽을 건네주었
다. 두  사람의 목이 목고리에 긁혀  빨갛게 부풀어올라 있는 것이
무척이나 해처롭게 느껴졌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다만 격려하듯이
다정하게 안아주었다. 조니가 밖으로 나오자 타르는 자물쇠를 채우
고, 전류스위치를 올렸다.
  "요즘은 동물사육사가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곤 하지. 명
심하라구, 이 리모트 컨트롤 박스에 달린 버튼들은 절대 장식이 아
니란 것을 말이야!"
  그리고는 조니 앞에 책들을 던쳐놓았다.
  "네 쥐대가리로 그 책들을 독파해낼 때까지 노력해보라구, 동물.
오늘밤 안으로 말이다. 아침이 되면 카가 다시 너를 훈련시키게 될
것이다. 사냥 따위는 생각하지 말아라, 알겠지?"
  타르는 지면을 쿵쿵  울리면서 가버렸다. 조니는 책을 펴보았다.
타르가 앞으로 어떤 일을  시키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
다.
  책은 '초보 비행기  조종술'과 '무인 및 유인 비행과 텔레포테이
션'이었다. '무인 및 유인 비행과 텔레포테이션'에는 뚜렷하게 '극
비. 다른 종족에게는 배포를 금지함'이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타르는 회사의 업무규칙을 위반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계획한 일이
성취되는 즉시  우리들을 살해할 것이다.  절대로 증거를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5)
  조니와 카는 채굴용  기계들을 방위기지로 공수하는 작업을 시작
하였다. 그날 아침  타르가 명령한 일이었다. 수송기는 전투기들이
줄지어 있는 곳에서 가까운 평지에 있었다. 문을 활짝 열고 경사진
유도트랩을 지면에까지 길게  내려놓은 채 서 있었다. 몰라보게 얌
전해진 즈즈토가 채굴기의 반출체크를 끝내자, 카는 그것을 운전해
서 화물수송기의  유도트랩을 따라 수송기  안으로 올라갔다. 모든
채굴용 기계들을 수송기에 실은 후 유도트랩을 끌어올리고 모든 문
을 닫았다. 조니가 부조종석에 앉아서 벨트를 매고 있는 사이에 카
는 조종석에 앉아  있었다. 수송기는 갑자기 빠른 속도로 상승하여
서쪽으로 비행해  갔다. 카는 고도를 낮게  잡고, 비행기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온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화물칸의 기계들은 로프로
고정시켜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조니는 이제 스쳐지나가는 지표
따위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미 대여섯 번이나 카와 왕복
한 항로였고, 게다가 조니는  피로에 지쳐 있었다. 지난 일주일 동
안 낮에는 비행훈련에  시달려야 했고, 밤에는 학습 때문에 수면시
간을 줄여나가야만 했다.  물론 그 성과는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었
다.
  '무인 및 유인 비행과 텔레포테이션'은 무척 이해하기 힘든 책이
었다. 그는 텔레포테이션에  관한 부분에 많은 흥미르 느끼고 있었
다. 만일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면 비극적 운명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책의  수학적 해설부분은 조니의 능력을  훨씬 초월하고 있었
다. 그가 배운 칭코인들의 수학적 능력은 비교도 안될 만큼 진보된
사이클로인들의 수학이 적용되어 있었다. 기호만 보아도 정신이 없
었다.
  도입부에 사이클로인의 수학에 대한 역사개설이 매우 피상적으로
설명되어 있었다.  십만 년 전에  엔이라는 사이클로인 물리학자가
수수께끼를 풀었다고만 기술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 이전에도 텔레
포테이션의 개념은 있었다. 그것은 에너지와 물질을 공간으로 전환
하여, 다른 장소에서 본래의 형태로 되돌아올 수 있게 하는 것이라
고 설명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론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실증은 전혀
없었다. 엔이  발견한 것은 공간이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물질과
완전히 독립해서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네 가지 요소들은 실제로도 완전히 별개의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우주는 이들 네 가지  요소들이 서로 배합될 때에만 비로소 성립
되며 공간은 세 개의 좌표에 의해서 종속된다. 좌표와 배합을 한번
지정해놓으면 공간이동이 가능해진다. 이때 그 공간에 포함되는 모
든 에너지와 물질은 그 공간이동과 함께 이동된다.

  이러한 이론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것이 이 수송기에 부착된 모터
였다. 수숭기에 부착된  모터는 그 속에서 좌표가 변화하는 상자에
불과 했다. 좌표가 변화하면 그 상자도 움직이지 않을 수 없고, 그
힘이 원동력이 되었다. 수송기가 공중추진 에너지를 전혀 이용하지
않고도 조종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공간이동 원리에 있었다. 날개
도 조종간도 필요없었다.  양 옆구리와 꼬리부분에 소형 상자가 달
려 있어서 공간이동  좌표만 시시하면 상승이나 방향전환이 가능하
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중앙모터에  연속적으로 좌표가 변화함에
따라 비행기는 좌표를 따라 전지, 혹은 후진을 하며 공간이동을 하
게 되어 있었다.

  수백 광년이나 떨어진 혹성과 혹성간의 텔레포테이션도 마찬가지
로 공간이동 원리에  의한 것이다. 물질이나 에너지는 공간의 한점
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 공간을 다른 공간으로 이동시키면 물
질과 에너지는 지정한 좌표를 따라 공간을 이동하게 된다. 이때 표
면상으로는 한쪽 장소에서 물질과 에너지가 사라지고, 다른 장소에
서 그것이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물질과 에너지는  변화하지 않는다. 단지  공간이 변화되는 것뿐이
다.

  조니가 비로소 지구가 이떻게 공격받았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사
이클로인의 우주스테이션이 지구를 발견하여 정보를 본국으로 보냈
고, 본사국에서서는  그 정보에 따라  텔레포테이션 장치에 좌표를
입력해서 병력을 보냈을 것이다. 먼저 정밀하게 기록할 수 있는 기
록기를 이용하여 정보에 입력된 좌표에 연결시켜놓는다. 그리고 그
기록기를 보내서 사진을  촬영하게 하거나 필요한 사항들을 기록하
게 한 다음 회수하여 검토한다. 기록기가 소멸될 경우에는, 자동적
으로 그 본국혹성으로 회수될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다시 좌
표를 정확하게  수정하여 다른 기록기를 지구  안에 델레포트한 후
사이클로의 군대와 무기를 텔레포트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인간
은 전부 소멸되고  지구는 정복되었을 것이다. 물론 지구의 정복과
정을 알았다고 해서 그것을 역전시키는 방법을 알았다는 얘기는 아
니다. 사이클로의  우주스테이션이라면 어디서든지  그들 마음대로
다시 가스나 병력을 지구로 델레포트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문
제의 핵심이었다.
  "오늘은 이상하게 조용하군."
  방위기지였던 곳에 착륙하기  위해 상공을 선회하면서 카가 말했
다. 기계들을 고정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굉장히 느린 속도로 날 수
밖에 없었다. 조니는 흠칫 놀라서 목에 장치된 감시용 소형 카메라
를 카리켰다.
  "그런 것은 잊어버리라구."
  카는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유효범위가 이 마일밖에 안되니까."
  그는 웃옷 주머니를  가리켰다. 회사마크가 새겨져 있는 소형 카
메라가 단추  대신 달려 있었다. 그것은  조니의 것보다 훨씬 작았
다.
  "오 마일이 아닌가?"
  "아냐, 아니라구. 여기에는 감시장치가 없다구. 조금 전에 다 체
크해두었지. 하여간 이  회사의 경비체계는 짜증난다구. 이런 기계
들을 낡아빠진 방위기지로 옮겨와서 무엇을 어쩌겠다는 건지, 원."
  카는 지면을 바라보았다.
  "저것도 방위기지라고 할 수 있을까...."
  그곳은 도저치  기지로는 보이지 않았다. 건물만  몇 채 있을 뿐
비행기 이착륙장조차도 없었다. 최소한 비행기 격납고 정도는 있어
야 할 텐데 그것조차  보이지 않았다. 한쪽에 뾰족한 것이 우뚝 솟
아 있을 뿐이었다.
  "타르의 명령이잖아."
  조니는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식으로 말했다.
  "아니야, 아니라구,  타르의 명령이  아니라구, 명령서를 보니까
혹성장관 넘프의 사인으로  되어 있던데. 오히려 타르는 불평을 하
던걸. 넘프의 컴퓨터가 고장난 것이 아니냐는 투였어."
  이것은 새로운 정보였다. 물론 카의 말을 그대로 믿지는 않았다.
타르는 지금 자신의 흔적을 없애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타르가 만
든 계획임에 틀림없었다.  함정이었다. 그것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
다.
  "이것은 훈련용이라고 하더군."
  머리를 젖히고 뒤쪽을  카리키면서 카가 말했다.
  "도대체 누구를 훈련시키겠다는  거지? 이것들은 모두 최고급 채
굴기계란 말이야. 좋아, 꽉 붙잡고 있어, 착륙할 테니까."
  카가 조종장치의 버튼을  누르자 수송기는 가라앉듯이 천천히 하
강하여 조용히 착륙했다. 카는 호흡마스크를 썼다.
  "그 밖에도  모를 일이 있어. 이  기계에는 호흡가스가 충전되어
있지 않다구. 탱크에  조금 남아 있을 뿐이야.  내가 알고 있는 한
호흡가스 없이 이 기계를 다룰 수 있는 것은 너뿐이야. 혹시 이 기
계들을 한꺼번에 조종할 수 있는 거 아냐?"
  카는 방금  한 말이 터무니없다는 듯이  허허롭게 큰소리로 웃었
다.
  "하여간 이럴 때는 가능한 한 머리가 돌아버리지 않도록 각자 주
의하는 수밖에 없다구. 자아, 내리지."
  가장 큰 건물 옆의 공터에 기계들을 내려놓는 데 한 시간이나 걸
렸다. 드릴 비행작업대,  전선케이블에 연결된 광석을 집어넣는 네
트, 스크레이퍼,  그리고 운반용 트럭  한대, 지난번에 운반해놓은
것과 합치면 벌써 서른 대 이상이나 되었다.
  "잠깐 이 주변을 둘러보자."
  카가 말했다.
  "시간은 아직 많으니까. 저 낡은 건물 속에는 대체 뭐가 들어 있
는 거지?"
  건물 속은 방들로  끝없이 어어져 있었다. 방마다 침대와 장롱이
있었고, 욕실 같은 것도  있었다. 카는 값나가는 것이 없을까 하고
부지런히 뒤져대고 있었다.  그러나 깨진 유리창들로부터 들어오는
을씨년스러운 바람과  눈보라만이 텅 빈 건물  안에 쌓인 먼지들을
흩날릴뿐, 쓸 만한 것은  전혀 없었다. 다만 먼지와 이상한 파편들
만이 두껍게 쌓여 있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먼저 온 손님이 있었던 모양이군."
  카의 판단이었다.
  "다른 곳을 찾아보자."
  카는 지면을  쿵쿵 울리면서 옆건물로  들어갔다. 조니는 그곳이
도서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서관은 칭코인들이 사라진 이
후 계속 버려져 있었다.
  조니는 반쯤 부서진 구조물을 발견했다. 마치 기념비 같았다. 카
는 문짝이 떨어져나간 지  오래된 듯한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갔
다. 벽에는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저건 도대체 뭐지?"
  카가 물었다. 조니는 교회의 십자가라는 것을 알아보고는 카에게
설명했다.
  "방위기지에는 어울리지  않는군. 하기야 도저히 방위기지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학교라면 또 모를까...."
  조니는 카를 보았다. 이 난쟁이 사이클로인은 동료들로부터 멸시
당하고 있었지만 모든 것을 빈틈없이 꿰뚫고 있었다. 조니는 이 방
위기지의 곳곳에 붙어 있는  팻말에 대해서는 카에게 아무 말도 하
지 않았다. 거기에는  '합중국 공군사관학교'라고 씌어 있었다. 두
사람은 어슬렁어슬렁 걸어서 수송기로 돌아갔다.
  "틀림없이 학교를 만들려는 거라구."
  카가 말했다.
  "그래, 내기를 해도 좋다. 그런데 학생은 누구라고 생각해? 호흡
가스가 없으니까 사이클로인은  아닐 거고.... 그것은 확실하다구.
유도트랩을 올리게. 자아, 돌아가자구."
  조니는 그가 시키는  대로 유도트랩을 올렸다. 그러나 조니는 곧
바로 조종석에  올라앉지 않았다. 물과 땔감이  있는지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펴보았다. 있었다.  눈 쌓인 가까운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줄기가 개울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숲에는 땔감도 충분한 것 같
았다. 조니는 비행기에서  내려와 사이클로인들과의 전투에 사용되
었던 참호를 들여다보았다. 무성하게 자라난 풀들만이 바람에 휩쓸
리며 쓰러져간 사람들의 원혼이라도 달래듯 낮게 흐느끼고 있었다.
조니는 무겁게 짓눌러오는 슬픔을 안고 조종석에 앉았다.

  (6)
  저녁때 우리 문을 열어주러 온 타르는 약간 흥분해 있었다.
  "너의 말과  암컷들에게 다녀올 데가  있다고 말해두어라, 동물.
내일 아침 함께 출발한다. 조금 긴 여행이 될 것이다."
  조니는 우뚝 멈추어 섰다. 그는 장작을 한아름 들고 있었다.
  "얼마나 걸리는가?"
  "닷새나 일주일 정도다. 지금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런데 왜
묻느냐?"
  "먹을 것을  남겨놓고 가야 한다. 그  외에도 준비해놓을 일들이
있다."
  "쳇."
  타르가 냉담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나더러 여기 서서 기다리란 말이냐?"
  그러나 곧  마음이 달라진 타르는 조니가  우리 안으로 들어가자
자물쇠를 채우고 전류스위치를 넣었다.
  "나중에 다시 오겠다."
  그는 지면을  쿵쿵 울리면서 바쁘게 돌아갔다.  자아,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조니는 중얼거렸다. 저 악마가  어번에는 어떤 음모를
꾸미는 것일까?

  그날 아침  살짠 황소를 잡아놓았기 때문에  조니는 즉각 준비를
시작했다. 고기를 잘라 두 덩이를 가죽에 싸서 문 밖에 내놓았다.
  "크리시, 훈제고기 일주일 분을 준비해줘. 당신에겍 필요한 것도
충분히 만들어두고."
  "어디 가는 거예요?"
  크리시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아주 잠깐 동안이야."
  크리시와 패티는  불안한 눈빛으로 조니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
속에 절망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어가고 있었다. 조니는 그들을 보
살필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낙담만 하고 있
을 수는 없었다.
  "걱정할 것 없어. 꼭 돌아올 테니까. 음식준비나 서둘러줘."
  조니는 부싯돌과 화구, 칼  대신 쓸 유리조각, 그 밖에 자질구레
한 것들을 준비하여  허리춤에 찬 작은 자루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는 벅스킨 한 벌을 접어서 돌방망이 두 개와 함께 쌌다.
  저녁 늦게 타르가 돌아왔다. 조니는 서둘러서 크리시에게 필요한
것들을 안으로 옮겨놓게 했다. 이제 그녀들에게는 쇠고기를 훈제하
고 가죽을 무두질하는 일이 생겼다. 한동안 바쁘게 지내다 보면 조
금은 외로움과 공포심을  잊을 수 있을 것이었다. 조니는 크리시가
준비한 물건을 받았다.
  "괜찮겠어요, 조니?"
  조니는 억지로라도 웃어 보이려고 안간힘을 썼다. 크리시와 패티
에겐 희망이 있어야 한다. 기대가 있어야 한다.
  "반드시 돌아오겠어. 걱정하지 말라구. 패티의 목에 기름을 발라
줘. 상처가 조금은 좋아질 거야."
  "빨리 해!"
  우리 밖에서 타르가 짜증스럽게 소리질렀다.
  "저 유리는 잘 들지, 크리시?"
  "아주 잘 들어요. 너무 잘 들어서 겁이 날 정도예요."
  "그래, 조심해서 다뤄."
  "아니, 뭐하는 거야?"
  타르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조니는 태티의 뺨을 쓰다듬으며 말
했다.
  "언니를 도와줘야 한다, 패티."
  조니는 양팔로 크리시를 힘껏 껴안았다.
  "꼭 돌아올 거야. 걱정 말라구."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빨리 나와."
  크리시는 조니의 팔을  어루만졌다. 그때 분을 참지 못한 타르가
뛰어들어와 조니의 몸을 잡아끌었다. 맞잡고 있던 조니와 크리시의
손은 서서히 멀어져갔다.  손끝끼리 마주했을 때 크리시의 손이 파
르르 떨리고 있었다.
  "몸조심하세요, 조니."
  두 눈  가득 고여 있던 눈물이  크리시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때 타르가  조니를 질질 끌다시피 밖으로  끌어내고는 문을 힘껏
닫아 버렸다. 조니가 나무울타리문을 닫는 동안에 타르는 전류스위
치를 넣었다.
  "출발준비를 하고 비행장으로  와라. 병력수송용 91호기다. 비행
기안에 냄새가 배지 않도록 지난번에 지급해준 옷과 신발을 착용하
도록 해라. 내가 사용할  공기펌프와 산소통도 될 수 있는 한 많이
준비하는 게 좋으 거야. 예비마스크도 잊지 말고, 알겠지, 동물."
  타르는 지면을 쿵쿵  울리며 어둠 속으로 바삐 사라져갔다. 요즘
타르는 무척 바쁜 것 같았다. 서서히 멀어져가는 그의 발소리와 웬
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무래도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 닥쳐올
것 같다.... 설마하니 죽는 일은 없겠지만.

  (7)
  수송기는 이륙하자마자 곧장  북동쪽을 향해서 급상승하였다. 고
도는 십 마일을 넘고 있었다. 타르는 위압적인 자세로 조종석에 앉
아 있었다. 조종판을 바라보고  있을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조
니는 안전벨트를 두번 몸에 감고, 부조종석에 앉아 있었다. 산소마
스크가 갑자기 흐려졌다. 조종석의 온도가 급속하게 내려가고 있었
던 것이다.
  출발은 예정보다 늦어졌다. 타르는 폭파장치가 되어 있을지도 모
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비행기의 각 부분과 장비들을 철저하게 점검
했다. 이 수송기의  정확한 기체번호는 18자리 수로 되어 있었는데
마지막 두 자리가 91이었다. 매우 오래된 것으로 이미 전투에 사용
되고 나서 버려진  것을 인수한 것이었다. 울퉁불퉁 찌그러진 자국
과 불에 탄 자국도 군데군데 있었다. 보통 수송기처럼 앞쪽에 조종
석이 마련돼 있었느데, 그 위에는 공대공, 공대지 레이저 광선포가
장착되어 있었다.
  거대한 기체는 광석운반용이 아니었다. 오십 명의 전투부대 요원
을 수송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거대한 의자들, 대형 비품상자,
총기보관용 무기고가 늘어서  잇었다. 동체에 달린 창들은 모두 방
탄장치가 되어 있었지만 최소한 지난 몇 십 년 동안은 병력을 수송
한 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뒤쪽 수송칸에는 호흡가스를 공급하
지 않았기 때문에 조니는 그쪽에 있고 싶어했다. 그러나 타르는 부
조종석에 앉으라고  명령했다. 잠시 후  조니는 그러기를 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높은 곳에서는 공기가 희박해질 뿐만 아
니라 온도도 급속하게 떨어지는 법이었다. 벌써 한기가 조종석에까
지 스며들고 있었다.
  눈 아래에는 산맥과  평원이 펼쳐져 보였다가 서서히 사라져가기
를 반복하고 있었다.  초음속으로 날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
로 느리게 비행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앞쪽에 북쪽의 지평선
을 뒤덮고 있는 듯한 자욱한 안개 속에 연녹색 바다와 하얗게 빛나
는 광대한  얼음벌판이 펼쳐져 있었다.  땅끝이라고 조니는 생각했
다. 비행기는 북극을  통과하는 코스를 향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
가까이까지 접근해 있었다.
  조종장치에 부착된 컴퓨터가 찰칵거리면서 비행기의 위치를 순서
대로 테이프에 기록하고 있었다. 비행기는 커브를 그리면서 동쪽으
로 방향을 바꿔가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거냐?"
  한참 동안 타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답답해진 조니가 묻
자 타르는 천천히  좌석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인터개랙틱
광산회사에서 만든 지도전도를 조니에게 던져주었다.
  "너는 지금 지구 전체를  한눈에 보고 있다, 동물. 이 혹성이 타
원형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겠지?"
  조니가 지도를 렬치면서 물었다.
  "둥글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어디로 가고 있느냐구?"
  "최소한 저곳으로는 가지 않는다."
  타르의 손은 북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고체로 보이지만 저것은  전부 물이다. 그냥 얼음일 뿐이다. 저
곳에는 가지 말아라. 얼어죽고 싶다면 또 모르지만."
  조니는 지도를 펼쳐보았다.  지도에는 타르가 빨강색으로 표시한
선이 커브를 그리고  있었다. 그것은 기지에서 출발하여 대륙을 지
나 커다란 섬에 이른 다음, 다시 다른 섬의 북쪽 끝에서 멈춰 있었
다. 그 지도는 일반적인 광업용 지도로서 지명은 전혀 기입되어 있
지 않았다. 다만 번호들이 지명을 대신하고 있었다. 조니는 재빨리
칭코인이 만든 지도를 떠올려 머릿속으로 두 지도를 비교해보았다.
칭코인의 지도에 기입된 명칭으로 타르의 지도에 표시된 붉은 선을
이어보았다. 비행코스는 캐나다를  지나 그린랜드의 북쪽을 통과하
여 아이슬란드를 건넌 다음 스코틀랜드 북쪽에 도착하는 것으로 되
어 있었다. 광업용  지도에서는 스코틀랜드가 89-72-13으로 표시되
어 있었다.
  좌표를 컴퓨터에  입각시켜 조종관을  지동 조종장치로 전환시킨
타르는 좌석 뒤에 놓인 카방고 병을 집어들고 들이키기 시작했다.
  "이봐, 동물."
  타르는 엔진소리 못지 않게 큰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인간 쉰 명을 잡으러 가는 거다."
  "인간은 멸종 직전에 있지 않은가?"
  "그렇지도 않아. 이 돌대가리야.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살
아 남은 안간들이 있다."
  "과연, 인간들을 잡아서 그 방위기지로 데려가려는 속셈이었군."
  타르는 조니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너는 그 일을 도와야 한다."
  "내가 도와주기를 바란다면 그 순서를 말해달라."
  타르는 어깨를 치켜올렸다.
  "간단하지. 그 빨간 동그라미로 표시된 산 위에 마을이 있다. 그
곳에 급강하해서 기절포를 쏘는 거야. 그런 다음 적당한 놈을 골라
서 비행기에 태우면 된다. 그것뿐이다."
  조니가 타르 쪽을 보며 말했다.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타르는 화를 벌컥 내면서 소리쳤다.
  "너는 나에게 이미 약속했다...."
  "약속한 것은 사실이다. 안된다고 한 것은 그런 계획으로는 성공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총기는 기절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도대체 인간들을 잡아다 무슨 일에 이용하려는지 가르쳐달라."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네가 그들에게 기계사용법을 가르
치는 것이다. 그  정도도 모르겠나, 이 돌대가리. 기계들을 운반하
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 계획이 어디가 잘못되었다는 거냐?"
  "그런 방법을 쓴다면 그들은 절대 협조하지 않을 것이다."
  타르는 얼굴을 찡그리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 또 약점이구
나. 중요한 것은 시키는  대로 맹종할 수 있는 약점을 잡는 일이었
다. 그러나 동물이 말하는 것처럼 지금은 그들에 대한 아무런 약점
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협조하지 않으면 놈들의  마을을 완전히 날려버리겠다고 협박하
겠다."
  "과연...."
  조니는 혐오스럽다는  표정으로 타르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
다. 타르는  화가 났다. 조니는 상관하지  않고 자세를 고쳐앉고는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영국 남서부에 있는 채굴장을 피해서 지나가
려고 한다는 것을 타르는 스코틀랜드로 들어가기 직전에 반드시 초
저공비행을 할 것이다. 채굴장 레이더에 걸리지 않도록.
  "왜 이 계획이 실패할 거라고 생각하지?"
  "내게 훈련을 맡길 거라면 내가 직접 그들의 마을에 가서 사람들
을 모으는 편이 훨씬 나을 거다."
  이번에는 타르가 큰소리로 웃었다.
  "이봐, 동물. 만약  네가 마을에 들어가면 녀석들은 너를 갈기갈
기 찢어죽일 거야.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칼을 꽂고 죽고 싶은 모양
이지. 그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야. 정말 형편없는 돌대가리군."
  "조금이라고 내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조니는 지도를 보이면서 말을 이었다.
  "이 산의 이쪽에 착륙해서  나머지 오 마일은 나 혼자 걸어갈 수
있게 해다오."
  "그리고 나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조니는 그것을 가르쳐주고 싶지 않았다.
  "쉰 명을 모아오겠다."
  타르는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너무 위험해. 난 모든  것을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려고 너를 일
년 동안이나 훈련시켜온 것이 아니야."
  말을 마침 타르는  후회하기 시작했다. 너무 솔직하게 심정을 드
러내 보였다. 타르는  조니의 표정을 주의깊게 살펴보며 자신의 실
수를 어떻게라도 얼버무려야  한다는 생각에 그 대처방안을 궁리했
다. 이녀석이 존재가치가  있다는 것을 절대로 눈치채게 해서는 안
된다.
  "좋다!"
  타르가 큰 결심을 했다는 듯이 말했다.
  "알았다. 동물.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 어차피 살아 돌아오기는
힘들겠지만. 죽어봤자 내겐 동물 한 마리다. 산 어느 쪽이라구?"
  타르는 조니가 예측한 대로 스코틀랜드 상공을 지나기 훨씬 전부
터 초저공비행으로  날고 있었다. 회녹색  수면이 스치는 듯하더니
굉음과 함께 절벽을  따라 올라갔다. 풀들과 나무들을 쓰러뜨리고,
산기슭을 따라  남쪽에 있는 채굴장의 레이더  망을 피해가며 붉게
표시된 지점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었다.

  (8)
  조니는 미지의  땅에 첫발을 내디뎠다.  낯선 풍경들이 다가서듯
눈앞에 펼쳐져왔다.
  황폐한 산들과 흩어져  있는 잡목덤불들은 피어오르는 안개 속에
쟘겨 있었다. 모든 것이 빛 속에 가려진 채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조니의 생각과는 달리  아름다운 곳이 아니었다. 협곡들은 좁고 어
두웠으며, 산의 정상은 접근할 수조차 없을 만큼 험준했다. 안개에
싸인 그 적막감 속에서 조니는 왠지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살던 마을과는  너무나 다른 마을이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이미  벅스킨으로 갈아입고  허리춤에는 돌방망이를 매달고
있었다.
  "저쪽으로 오 마일 정도만 가면 된다."
  남쪽을 가리키며 타르가 말했다.
  "길은 험하다. 도망칠  생각은 아예 버려라. 네가 돌아가고 싶어
하는 곳은  바다를 건너고 대륙을 횡단해야  갈 수 있다. 혼자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는 먼 곳이다."
  타르는 리모트 컨트롤  박스를 꺼내 보였다. 조니는 그것이 무엇
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녀석은 악마다. 녀석은 충분히 그
렇게 할 것이다.
  조니는 강경하게 말했다.
  "그래, 믿겠다. 하지만  내일 정오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내 방식
대로 쉰 명을 데려갈 것이다. 그때까지 살아 있다면 바위그늘에 숨
어서 위협사격을 피해라, 알겠지?"
  "내일 아침에 돌아오겠다."
  조니는 마을 쪽을 향하여 돌아섰다.
  "잘 다녀와라. 고집불통 동물."
  조니는 짐승들의 흔적을  찾아내어 조그만 오솔길을 따라 남쪽으
로 향했다. 때로는  달리고 때로는 걸어서 협곡들을 지나고 숲속과
황야를 건너야 했다.
  식량이 부족한 곳임에 틀림없었다. 발소리와 놀라 도망치는 사슴
은 커녕 토끼 한 마리도 볼 수가 없었다. 숲은 물론 초원조차 보이
지 않았다.  멀리 난등성이 너머로 잠깐  양떼를 본 듯했지만 하양
뭉개구름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짐승의 흔적을  찾아 앞으로 나갔
다.
  그때 갑자기 끝이 뾰족한 막대기 세 개가 눈을 찌를 듯이 막아섰
다. 조니는 발을 멈추었다.  그리고 천천히 두 팔을 들어올려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을 전했다. 그때  그르렁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
다. 그 목소리는 누군가에게 명령하고 있었다.
  "저녀석이 허리에 차고 있는 돌방망이를 뺏어라, 빨리."
  창을 겨누고  있던 검은 수염을 텁수룩하게  기른 우람한 체구의
젊은이가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잔뜩 경계하는 얼굴로 조니의 허
리에서 돌방망이를  빼들었다. 그리고 계속 창을  겨눈 채 등 뒤로
돌아가더니 등을 밀어댔다. 조니는 천천히 앞을 향해 걸었다.
  "배짱 한번 좋다."
  처음 명령을 내렸던 목소리가 비웃듯이 말했다.
  "이녀석을 절대 도망치지 못하게 하라구."
  조금 넓은  곳에 이르렀을 떼에야 조니는  그들을 볼 수 있었다.
전부 네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검은 머리칼에 검은 눈이었고, 큰
키에 금발의 푸른 눈을  가진 젊은 남자, 그리고 나이가 많아 보이
는 사람, 그가  지휘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의 옷은 헝겊과
가죽을 이어서 만든 것으로 무늬가 있었으며 무릎까지 내려오는 치
마였다. 머리에는 차양이 없는 모자를 쓰고 있었다.
  "이녀석은 오크니 마을에서 온 도둑놈이 틀림없다."
  한 사람이 말했다.
  "아니 틀렸어. 오크니 마을 놈이라면 내가 모두 알고 있어."
  다른 남자가 말했다.
  "스웨덴 사람인가?"
  금발이 말했다.
  "아냐, 그럴 리가 없어. 그녀석들은 저런 옷을 입고 다니지 않는
다구."
  "모두 입다물고 있어라."
  나이 많은 남자가 그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석은 자루 속을 뒤져봐라,  혹시 단서가 될 만한 것이 나올
지도 모르니까."
  조니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대답해주겠소."
  그들은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나서 공격자세를 취했다. 검은 수
염 혼자서 천천히 앞으로 다가오더니 조니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색슨인이다. 말투로 알 수 있어."
  나이 많은 남자가 귀찮다는 듯이 그를 옆으로 밀어냈다.
  "아니야, 색슨인들은  오래전에 이미  멸종되어버렸다. 살아남은
것은 우리들뿐이다."
  "마을로 갑시다. 나는 임무를 띠고 온 사람이오. 의논할 것이 있
어서 왔소."
  조니가 말했다.
  "임무를 띠고 왔다고? 그렇다면 어디서 온 것이냐?"
  나이 많은 사내가 말했다.
  "내 말은 들으면 당신들은 모두 놀라서 뒤로 넘어질 것이오."
  조니는 웃으면서 말했다.
  "하여간 나를 마을로  데려다주시오. 할말은 당신들의 목사나 촌
장에게 하겠소."
  "목사가 있긴  하지만 당신이 만나려는  사람은 피어거스 족장인
것 같군."
  나이 많은 사내는  조니에게 가졌던 경계심을 조금은 누그러뜨린
듯했다.

  (9)
  마을은 로크신이라는 호숫가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곳에 정착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언제라도 짐을 꾸려 산으로 도망갈 준비가 되
어 있는 불않나  거주지였다. 여기저기에 선반들이 매여 있었고 말
린 물고기들이 그 위에 놓여 있었다. 무너진 벽 뒤에서 어린아이들
이 겁먹은 표정으로  조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니를 구경하기 위
해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없었지만 모두들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부드러운 안개가 땅  위를 덮어왔다. 호수는 잔잔하게 숨을 죽이
고 있었다.  그들은 유일한 석조건물로 조니를  데리고 갔다. 나이
많은 사내가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 곧 두런두런 얘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찢어진 커튼
뒤에서 깡마른 어린애가 얼굴을 내밀고, 파란눈을 반짝거리면서 조
니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조니가 손을 내밀자 췩 하니 모습을 감
추어버렸다. 찢어진 커튼만이  흔들리고 있었다. 뒤쪽에도 문이 있
는 모양이었다. 문을 여닫는  소리가 여러 번 들려왔다. 뒷문을 통
하여 마을사람들의  얘기소리가 갑자기 크게  울려왔다. 나이 많은
남자가 다가왔다.
  "당신을 만나겠다고 하신다."
  그는 건물 안쪽에 있는 방을 가리켰다. 조니는 안으로 들어갔다.
여덟 명 가량의 남자들이 의자를 벽에 붙이고 모여앉아 있었다. 그
들은 창과 돌방망이를 손에  들고 있거나. 의자 옆에 놓고 있었다.
커다란 의자에  앉아 있는 검은 수염의  사나이가 우두무리인 듯했
다. 사나이의 짧은 스커트 아래로 굵고 튼튼한 정강이가 드러나 있
었다. X자형의 흰 벨트  한가운데엔 커다란 은빛 버튼이 달려 있었
다. 머리엔 차양 없는 모자를 쓰고 있었고, 무릎 위에는 커다란 칼
을 얹어놓고  있었다. 피어커스 족장이  틀림없다고 조니는 생각했
다.
  피어거스는 장로들이 자신의 말을 듣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는 것
을 확인하자 조니에게 눈을 돌렸다.
  "사자로 왔다고 했는데."
  피어거스가 입을 열었다.
  "당신은 누구의 사절인가?"
  "이곳에는 괴물들이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방안에 있던 사람들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악마들 말이구나."
  피어거스가 말했다.
  "악마들에게 당한 일들을 얘기해줄 수 있겠습니까?"
  조니가 말했다.
  모두들 술렁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피어거스가  손을 번쩍 들어
제지하는 듯한 신호를 보내자 술렁거림은 일시에 가라앉았다.
  "젊은이."
  피어거스가 말했다.
  "당신은 사자로 왔다고 말했을 뿐 이름도, 누구의 사자인지도 말
하지 않았는데.... 좋아, 그런 건 나중에 얘기해주겠지. 먼저 당신
의 질문에 대답해주겠네."
  피어거스는 쉰 목소리로 차분하게 얘기를 시작했다.
  "아주 먼 옛날부터 우리들은 악마들에게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해
왔다네. 신화는 '그들이 지상을 구름으로 뒤덮어 몇몇을 제외한 모
든 인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전하고 있네. 당신은 신앙이
깊고 예절을 중시하는 사람 같으니까 이 신화는 잘 알고 있을 거라
고 믿네.  우리 마을 남쪽에서는 아무도  살려고 하지를 않는다네.
남서쪽 오백 마일 지역에 악마의 성체가 있어서 약탈과 인간사냥을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지.  그들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아주 간단
하게 사람을 죽인다네.... 지금 우리들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여기
에 머물고 있네. 물고기들이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지. 그러나 항상
위험이 뒤따르고 있다네. 우리 피어거스족은 옛날부터 긍지가 강한
부족이었다네. 그런데 악마한테는  꼼짝도 할 수 없었지. 자아. 당
신의 질문에 대답했으니까 이제 당신이 대답할 차례야."
  조니는 말했다.
  "나는 용감한 젊은이를 쉰  명 가량 모으러 왔습니다. 그들은 여
러가지 기술을 배운 후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일은 매우 위험
한 일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들
의 용기와 노력, 그리고 신이 도움이 있다면 반드시 악마를 쓰러뜨
리고 이 지구상에서 놈들을 영원히 추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일시에 목청을 돋구어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악마과 싸우
자는 대담한 말에 놀란 나머지 의아해 했다. 조니는 더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족장이 칼자루로 의자
의 팔걸이를 두드려 혼란을 진정시킨 후 장로 한 사람을 지목했다.
  "앵거스, 얘기할 것이 있는가?"
  "아아, 이런 신화도  있다구. 스코틀랜트의 인구가 수천 명에 육
박했을 때 대군단을  조직하여 남쪽으로 향했으나 전멸됐다는 이야
기말이야."
  "그것은 악마가 오기 전의 일이다."
  다른 장로가 소리쳤다.
  "지금까지 악마와 대항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나이가 앞으로 나섰다.  족장은 그를 폭스
로버트라고 부르며 발언권을 주었다.
  "나는 이 사람의  제안이 허무맹랑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이
곳하이랜드에서 우리들은 기아에  허덕이고 잇으며 양들이 먹을 풀
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조상들이 자갈 투성이 협곡에서 했
던 것처럼 땅을 갈고 곡물을 심는 것도 이제는 불가능해졌지요. 신
화에 나와 있는 것처럼  악마가 하늘을 날아다니며 감시의 눈을 번
뜩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끔씩 머리 위를 지나가는 가늘고 긴 금
속조각을 악마의  동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 모인 우리 종족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는 말을 계속했다.
  "이 젊은이는  표정도 온화하고 예의도 바른  것 같습니다. 특히
아직껏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대답한 말을 했습니다. 또한 이
사람에게는 마음을  불타오르게 하는 매력이  느껴집니다. 나는 이
사람의 얘기를 좀더 자세하게 들어볼 것을 제안합니다."
  피어거스가 조심스럽게 단어를 골라가며 신중하게 얘기하기 시작
했다.
  "말이 쉰 명이지. 이  부족에 있는 젊은이들을 전부 내놓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캠벨족족과 그랜캐년족에서도  여러 명 뽑아오지
않으면 안되네. 물론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야. 그런데 당신은 아직 이름도, 누구의 사자인지도 말하지 않
았네."
  조니가 큰소리로 말했다.
  "나는 조니 굿보이 타일러입니다. 미국에서 왔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누구의 사자란 말인가?"
  조니는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나는 인류로부터 온  사자입니다. 우리 인간들을 멸망에서 구하
기 위해 온 것입니다."
  한순간 방안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엔 온갖 표정이 교차했다.
  족장이 다시 몸을 내밀고 말했다.
  "그런데 이곳에는 어떻게 왔는가?"
  "날아서 왔습니다."
  족장은 물론 모여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말을 어떻게 받다들
여야 할지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족장이 굳은 표정으로 단호하게 침묵을 깨뜨렸다.
  "지금 공중을 날 수 있는 것은 악마뿐이네."
  "나에게는 악마가 붙어 있습니다."
  조니가 말했다.

  (10)
  어떻게 해서든지 타르가 마을을 공격하기 전에 도착해야만 했다.
  그러나 하늘 높이 원을  그리면서 떠오른 태양은 이미 약속한 정
오의 위치에 가까와지고  있었다. 조니는 언덕을 향해 온힘을 다하
여 뛰어 올라갔다. 심장이  터질 듯이 박통치고 있었다. 숲속의 나
뭇가지들에 몸을 긁히기도  했다. 피곤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돌이
굴러내렸다.
  그날 밤은  떠들썩한 흥분과 긴장 속에  소집하기 위해서 전령을
하이랜드 들판으로 달려가게  했다. 까마득히 먼 협곡이나 산속 깊
은 동굴들로부터 족장들이  달려왔다. 모두 수염을 기르고 킬트 스
커트를 입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뜻밖의 사태에 대해 신중한 자세
를 취하여 섣불리 의견을 내세우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적
대시하며 지내오고 있었던  것이다. 맥더글러스, 그랜캐년, 캠벨의
족장을 비롯해서 아자일 족장까지 참석했다. 아래쪽 구릉지대의 마
을에서는 영국인  영주가 왔다. 동쪽  해안에 있는 노르웨이인들의
작은 촌락에서는 왕이 직접 달려왔다.
  족장들이 모두 모이고 조니가 얘기를 시작했을 때는 이미 새벽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조니는  그들에게 모든 사실을 말해주었다. 타
르가 회사가 아닌 자신을 위해서 계략을 꾸미고, 자신의 야망을 달
성하기 위해서 그 지위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 조니를 마음대로 이
용하고 있다고 믿으며,  자신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 조니를 내
세워 인간들을 이용하려고  한다는 것, 그리고 계획이 성공하면 틀
림없이 인간들을 몰살시켜버릴 거라는 것까지도.
  타오르는 모닥불빛을 따라  주변에 둘러앉은 족장들의 얼굴이 흔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들은 조니의 말이 모두 끝날 때까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조니는  말을 하면서도 그들의 표정 하나하나를 놓
치지 않고 유심히  관찰해나갔다. 스코틀랜드인들은 계략이나 음모
를 좋아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를 마루리지으며 비
록 성공률은 희박하지만 타르를 이쪽에서 이용해볼 수 있는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였다. 그  부분에 이르자 족장들은 비로소 빙긋이 미
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이고 호기심을 나타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조니가 인질로 잡
혀 있는 크리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을 때였다. 조니는 그녀
를 구출해야 하는 것도 자신의 목적 중 매우 소중한 부분이라고 솔
직히 털어놓았다. 패배와  굴욕으로 얼룩진 오랜 역사 속에서도 가
슴 깊숙히 간직해온  로맨티즘의 정열이 그들의 가슴속에서 꿇어올
랐던 것이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계획에 적극적으로 찬성한 것은 그들의 이
성이었지만 그 마음은  크리시를 구출해내야만 한다는 뜨거운 정열
고 불타올랐던 것이었다.
  봉화가 밤하늘을 밝히며 올려졌다. 족장들은 각 부족에게 소집명
령을 전달했다.  비상소집을 알리는  봉화는 새벽까지 계속되었다.
가까운 평원이 집합장소로  정해졌다. 동녘 하늘이 밝아올 무렵 전
부족이 그곳에 모였다.
  끝없이 쏟아지는 질문들과  계획에 대한 설명, 그리고 여러 가지
전통의식들이 거행되는 동안  조니는 오전 열한시까지 그곳에 남아
있어야만 했다.  모든 의식이 끝났을 때는  이미 해가 머리 위까지
떠올라 있었다. 시간이 촉박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수송기가 있는
곳까지 도착하여 타르를 제지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계속 달렸기 때문에 옆구리에 심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조니는 쉬
지 않고 구불구불한  길을 달려올라갔다. 태양의 위치를 확인할 여
유조차 없었다. 타르가 시계를 재고 있을지, 아니면 태양의 위치로
재고 있을지, 그것은 알  바가 아니었다. 어쨌든 그의 행동을 제지
시켜애만 했다. 마을을 향해서 이륙하는 수송기의 굉음이 당장이라
도 들려올 것만 같아서 등골이 오싹오싹해지고 다리가 허공에서 맴
돌았다.
  조니는 사력을  다해 오 마일 이상이나  되는 울퉁불퉁한 산길을
계속 달렸다.
  언덕 위에서  수송기의 엔진 시동음이  들려왔다.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 조니는 재빨리  덤불숲을 뛰쳐나와 약간 높은 평지에 올라
섰다.
  비행기는 당장이라도 솟구쳐올라 마을로 날아갈 것만 같았다. 조
니는 큰소리로 외치고  손을 흔들면서 뛰어갔다. 만일 비행기를 놓
친다면 만사가 물거품이 되어버릴 것이었다. 수송기가 이륙하였다.
기수가 마을  쪽으로 향해졌다. 앞으로 삼십  피트,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조니는 자기가 온 것을 알리기 위해서 수송기를 향해 돌방
망이를 힘껏 던졌다. 다행히 타르가 조니를 발견했다. 수송기는 강
화하기 시작했다. 숨통을  조여댈 것만 같았던 긴장이 일시에 무너
져내렸다. 조니는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이
윽고 엔진소리가 멎었다. 타르가 문을 열었다.
  "도망쳐 왔나?"
  타르가 마스크 너머로 물었다.
  "자아, 타라구, 동물. 진짜 계획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주겠다."
  "아냐, 그것이 아냐."
  조니는 좌석으로 기어오르면서 다급하게 말했다. 다시 숨이 차올
랐다. 발은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모든 것이 잘되었다."
  타르가 조소하듯이 말했다.
  "산꼭대기에서는 밤새도록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너를 통째로
구워서 잔치를 벌이고 있는 줄 알았다구."
  "그렇지 않다."
  조니가 말했다.
  "일할 사람을 고르기  위해 후보자를 모으려고 불을 피우고 있었
던 것이다."
  타르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신중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타르도 그말에도 동의했다.
  "이곳에서 삼 마일 떨어진 평원에 전부 모이기로 되어 있다."
  "한꺼번에  해치울 수  있도록 놈들을  집합시켜놓았다는 얘기로
군?"
  "아니다. 타르. 내 말 잘 들어라. 내가 그들과 약속한 대로 행동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너는 지금 무척  당황하고 있다. 숨소리도 거칠고, 사실대로 말
해라. 놈들에게 협박을 받았나? 아니, 놈들에게 쫓겨서 도망왔지?"
  조니는 한쪽 신발을  벗어서 타르 앞에 내동댕이쳤다. 그러자 기
내을 울리는 굉음이 났다.
  "그렇지 않다니까. 모든것이 잘됐다구 하지 않았나. 이제 약속한
대로만 이행하면  되는 거야. 평원에는 수백  명이 모여들 것이다.
그 위쪽에  착륙해달라. 당신은 수송기 입구에  앉아 있으면 된다.
내가 후보자 가운데서  인부로 쓸 만한 사람들을 선발하겠다. 내일
아침까지는 선발된 사람들을 수송기에 태우고 출발할 수 있도록 하
겠다.
  "나에게 명령할 셈인가?"
  타르가 소치쳤다.
  "그럴 계획이었지 않은가?"
  조니는 다시 신발을 신었다.
  "당신은 문 옆에  있어라. 그곳이라면 우리들의 움직임을 감시할
수 있을 테니까."
  "알았다."
  타르가 히죽이 웃으면서 말했다.
  "놈들을 위협해서  순종하게 하려면 내가  그곳에 있어야 한다는
말이군?"
  "그렇다."
  조니가 말했다.
  "자아, 가자."

  (11)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많은 인간들이 한곳에 모인 것은 처
음이라고 폭스 로버트가 말했다.
  천 명이 넘는 스코틀랜드인들이 넓은 평원들을 가득 메우고 있었
다. 영국인과 노르웨이인들도  섞여 있었다. 수송기가 평원이 내려
다 보이는 높은 언덕 위에 착륙하자, 한순간 사람들 사이에 동요가
일어났다. 하지만 각 부족 족장들이 조니가 말해준 것들을 이미 잘
설명해두었기 때문에 동요는 곧 가라앉았다.
  타르가 비행기의 문을  열고, 그 거대한 모습을 나타내도 그다지
큰 동요는 없었다. 그러나 수송기에 접근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모
두거리를 두고 있었다.  몇몇 인간들이 얼굴에서는 공포에 질린 표
정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어서 조니가 했던 말이 사실이었다고 타르
는 생각했다. 놈들에게  공포심을 불어넣기 위해 내가 필요했구나.
조니는 타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잔인한 타르가 언제 마음을
바꿔 소동을 일으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오백 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조니 앞에  모여 있었다. 각 부족의
족장들은 모두 자기 부족의 젊은이들 옆에 서 있었다. 조니는 설명
을 시작했다. 이미 그들은 간단한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원활하게 이루어졌다.
  "여러분들은 내가  왜 이곳에 서 있는지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
다. 나는 쉰  명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저곳에 서 있는 악마를
이 세상에서 영원히 추방하기  위해 나와 함께 싸워줄 지혜와 힘과
용기가 있는 사람들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저 악마는 우리들의
말을 할수도 들을  수도 없습니다. 내가 저녀석을 바라보며 공포에
질린 듯한  표정을 지어달라고  부탁하거든 모두  그렇게 해주십시
요.... 먼저 이  괴물의 성격을 말하겠습니다. 그러면 내가 의도하
는 바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녀석은 사악하고 , 광폭
하고, 잔인해서 조금도 신용할 수가 없습니다. 진실을 얘기하고 있
을 때도 기분에 따라서  거짓말을 하는 놈입니다. 자아, 이제 잔뜩
공포에 질린 모습을 놈에게 보여줍시다."
  조니가 신호를 하자 사람들은 일제히 타르를 올려다보고 몸을 떨
면서 뒷걸음을 치는 척해 보였다. 타르는 마스크 뒤에서 싱긋이 웃
었다. 최고의 성과다!
  "까마득한 옛날에  이 별을 정복한  광산회사는 인간보다 고도의
기술과 설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늘을 나는 배, 땅을 파는 기계,
그리고 마을이나 도시를 몰살시킬 수 있는 가스와 무기. 인간은 저
괴물들에게 이 지구를  빼앗겼습니다. 나와 함께 가는 사람은 그러
한 기계들의 사용법과 비행기 조종술, 무기사용법들을 배우게 됩니
다. 물론 확률은 높지 않습니다. 계획을 달성하기까지는 많은 사람
들이 목숨을 빼앗길지도  모릅니다. 우리 인류는 계속 줄어들고 있
습니다. 이러다가는 완전히 멸종될지도 모릅니다. 비록 성공가능성
은 미약하지만 이 미지막 기회에 모든 것을 걸고 싸워야 한다고 믿
습니다."
  사람들은 열광하면서 우뢰와 같은 함성을 질러댔다. 환호의 백파
이프가 울리고 드럼소리가 높이 울려퍼졌다.
  사람들의 환호 속에 조니의 힘찬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쉰 명의 지원자가 필요합니다."
  지원한 사람은 쉰 명의 젊은이 뿐만이 아니었다. 평원에 모인 천
명 가량의 사람들이  참가하기를 희망했다. 어쩔 수 없이 테스트를
통한 선발이  필요하게 되었다. 선발준비를  하는 동안에 사람들은
그를 맥타일러라고 불렀다.
  테스트를 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부득
이 많은 실격자를 낼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조니는 한사람 한사
람씩 앞으로 나오게 하여 테스트하였다. 우선 눈을 감고 똑바로 걷
게 하였다. 평형감각을 알아보기 위한 테스트였다. 또한 일정한 거
리를 달리게 하여 심폐기능을 테스트했다. 시력을 알아보기 위해서
는 조금 떨어진 곳에  글씨를 써놓고 그것을 읽게 했다. 드디어 지
원자들에 대한 마지막  선발작업이 모닥불 앞에서 이루어지게 되었
다. 테스트를 통해 쉰  명이 이미 선발되어 있었지만, 모닥불 앞에
서의 최종 확인과정에서  여든세 명으로 대폭 증원되었다. 쉰 명에
서 여든세 명으로 증원이 확정되기까지 조니는 많은 질곡을 거쳐야
만 했다.
  조니는 선발에 앞서 각  족장들에게 그들이 신뢰할 수 있는 대표
자를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그것은 먼저 분열되어 있는 종족들의
위화감을 떨쳐내기 위해서였다.
  폭스 로버트가 대표자로  뽑혔다. 그는 많은 전투에 직접 참전했
기 때문에 실전경험이  풍부했고 지식도 풍부했다. 한 명이 늘어서
쉰한명이 되었다.
  다음으로 백파이프 주자가  있어야만 전 인류를 대표하는 부대로
서의 위상이 선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두 사람을 더 뽑았고,
선발된 사람들이 큰북  주자가 있어야만 구색이 갖춰진다고 우겨대
는 바람에 큰북 주자 한 명을 추가햐였다. 그래서 쉰네 명.
  이때 나이든  여인들이 시중들 사람이 필요할  거라고 해서 결국
다섯 명의 여자들이 뽑혔다.
  선발된 사람들은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는 족장들의 말이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교장으로 있다는 중년남자가 매우 걱정스럽다는 표정
을 지으며 조니 앞으로 나섰다. 그는 그는 왜소하지만 의연해 보였
다. 그는 사냥과  여자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젊은이들을 교육시키
려면 오랜 교육경험으로  다져진 자신의 날카로운 채찍질이 필요하
다고 주장했다. 족장들도  그러한 일을 맡아줄 사람이 반드시 필요
하다고 동조했다. 이들만으로 벌써 예순 명이 되었다.
   다음으로 작업 도중 사망자가 생길 경우 어떻게 처리하겠는가라
는 의견이 세 명의 목사에게서 나왔다. 그 젊은이들의 영혼을 인도
해주고, 그들의 영혼이  경건성을 잃지 않도록 지도해야 한다는 것
이었다. 결국 세 명의 목사들 중 가장 긴 제비를 뽑은 목사가 함께
가기로 결정됐다. 이것으로 예순한 명.
  또한 조니에게도  필요한 사람이 있었다.  선발된 사람들은 모두
강건한 신체와 우수한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임
기웅변에 능통하고 자신과 비슷한 신장과 체격을 가진 젊은이가 세
사람정도 필요했다. 사이클로어를 빨리 배울 수 있어야 했고, 멀리
서 보면 자신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비슷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어야 했다. 조니는 열  명 가량의 후보자 중 족장들의 추천을 받아
세 명을 선발했다. 이것으로 예순네 명.
  이때 자못  학식이 풍부해 보이는 노인  한 명이 앞으로 나왔다.
그는 지하대학의 문학부장으로 미래에 영원히 전설로 남을 이 대사
건을 누군가 한  사람이 반드시 기록해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는 이제 나이로 보나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이니 도중에서 죽는다 해
도 여한이 없겠다고  간곡히 부탁했다. 폭스 로버트가 후세들을 휘
해 상당히 중요한  일인 만큼 그를 데리고  가야 한다고 해서 쉽게
결정되었다. 예순다섯 명.
  그 밖에 부족장들이 시작한 경기에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사람
이 열여덟 명이나 남아 있었다. 조니는 경기를 그만하고 그들 모두
를 데려가겠다고  결정했다. 그래서 여든세  명으로 죄총 결정되었
다.
  조니는 타르를 깨웠다.  타르는 해가 질 무렵부터 계속 카방고를
마서대더니, 지금은 그 커다란  몸을 좌석에 길게 묻은 채 자고 있
었다.
  "전부 여든세 명이다."
  "수송기 정원은 사이클로인  기준으로 쉰 명이다. 하지만 인간은
작으니까 여든세 명도 충분히 탈 수 있을 것이다. 중량을 초과하지
는 않을 것이다. 여든세 명도 되겠는가?"
  타르가 잠에 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런 계획에는  사상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작업하는
동안에도 훈련을  시켜야 한다. 인원이  충분하다는 것은 대환영이
다. 왜 그런 바보 같은 질문으로 나를 깨운 거야."
  그는 다시 잠들어버렸다.  조니는 타르의 계획을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타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자세한 내용은
전혀 몰랐는데, 카방고 덕분에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조니는 족장들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우리들은 실패할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할수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얼굴을 다시는 못 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저 젊은이들 역시 살아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족장들은 조니의 앞날을 위하여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용감한 사
나이는 언제난 목숨을 걸고 싸우는 법이다. 만일 불행한 사태가 일
어난다고 해도 당신을 절대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나쁜 것은
도전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좌악이다.
  "힘내라, 맥타일러. 우리들이 지켜보고 있다."
  조니는 창살  무늬를 넣어 짠 피어거스족의  담요로 피로에 지친
몸을 감싸며 수송기의 거대한 동체 밑에 누웠다.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고 느낀 것은 아버지가 죽고 나서 처음이었
다.


  제 1 권
  지구선선

  제 7 부
  이 원수는 반드시 갚고 말 테다, 타르

  (1)
  첫사고는 타르에 의해서 일어났다.
  그는 카방고를  너무 마셔댔기 때문에 날이  샐 때까지 깨어나지
못한 채 몽롱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런 만큼 사람들의 잦은 출
입과 늦어지는 탑승은 무척이나 짜증스러운 일이었다.
  떠오르는 아침 햇살이  동쪽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조니는 선
발된 사람들을 수송기에 태우기 시작했다. 그들은 혼자서, 혹은 무
리지어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가 차례차례 모여들었다. 조니는 탑승
자들에게 비품을 보관하는  곳에 소지품을 고정시키는 방법을 알려
주고, 한 좌석에 두 사람씩 앉도록 지시하였다. 안전벨트 착용법도
알려주었다. 조니가  여섯 사람정도 가르쳐주고  자리에 앉게 하자
그들 중 두 사람이  재빨리 일어나 새로 들어오는 동료들에게 소지
품 보관법과 안전벨트  착용법을 조니의 방식대로 친절하게 안내하
기 시작했다.
  늦게 도착한 사람들은  숨을 몰아쉬며 뛰어들었다. 그들 몇 사람
에 대해 역사학자는 재빨리 이름을 적어두었다.
  함께 떠나는 여자들은  주방도구들을 달그락거리며 들어왔고, 뒤
이어 선발된 목사가  조그만 통을 굴리면서 들어왔다. 환자가 발생
했을 때를 대비한 위스키였다. 조니는 그것을 단단히 붙들어매면서
찬찬히 살펴보았다. 위스키는 그에게 무척이나 생소했다.
  해가 중천에  떠올라 있었다. 갑자기  타르가 조종석에서 고함을
쳐댔다.
  "이 더러운 동물들을 빨리 태워라!"
  한순간 사람들은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그때 조니가 아
무것도 아니라는 표정으로 눈을 찡긋거리자 안심한 사람들은 짐 싣
는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마침내 여든세 명  전원의 탑승이 끝났다. 조니는 전원탑승을 확
인하자 모두들를 향하여 말했다.
  "목적지까지는 대여섯 시간 정도 걸리 것입니다. 상당히 높은 고
도를 비행하게  됩니다. 따라서 기온은  낮아지고 공기도 희박해질
것입니다. 조금 고통스럽더라고 참아주시기 바랍니다. 공기가 부족
하면 현기증이  납니다. 그럴 때는 호흡  회수를 늘리십시요. 언제
방향을 전환할지 모르니까 벨트는 항상 매고 있어야 합니다. 이 비
행기는 모든 방향으로  회전할 수 있습니다. 위아래로도 말입니다.
나는 지금부터 조종석으로 가서 비행기가 이륙하는 것을 도와야 합
니다. 여러분들도 곧 이런 종류의 기계를 다루어야 할 테니까 신경
써서 상세하게 관찰해주십시요. 그리고 이곳의 지휘는 폭스 로버트
에게 맡기겠습니다. 질문은 없습니까?"
  질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니의  노력에 힘입어 모두들
침착성을 되찾고 있었다. 새로운 의지로 불타올랐고 두려워하는 사
람은 한 명도 없었다.
  "자아, 출발합시다. 맥타일러!"
  폭스 로버트가 말했다.
  기체의 문을 통해 밖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자
사람들은 환호로 답했다. 조니는 문을 닫고 자물쇠를 잠갔다.
  조니는 부조종석에 몸을 파묻고 안전벨트를 이중으로 감았다. 그
런 다음 산소마스크를  쓰고 지도를 펼쳐들었다. 타르는 몹시 못마
땅하다는 얼굴로 인간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타르가 거칠게 스위치
를 넣자 조종석으로  호흡가스가 들어왔다. 그는 마스크를 벗었다.
호박색 눈이 초록색으로  충혈되어 있었다. 아직도 상당히 취해 있
는 것 같았다. 타르는 뼈로 된 입술에 사나운 미소를 띄운 채 이죽
거리고 있었다.
  "너무 늦었어."
  "이녀석들을 효과적으로 부려먹을 약점이 뭐 없나."
  "본때를 보여줘야겠어."
  계속되는 불만에 찬 말들이 타르의 입 안에서 웅얼거리며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조니는 긴장한 채 자세를 가다듬었다. 수송기가 갑자기 위쪽으로
날아올라갔다. 좌석에  부딪쳐서 찌그러질 것  같은 충격이 느껴졌
다. 비행기는 순식간에 삼천 피트 높이까지 급상승했다. 지도를 쥔
손이 조종장치에  부딪치자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타르의 손톱이
버튼들을 눌러대자 수송기가 옆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조니는 당황해 하며 소리쳤다.
  "녀석들에게 본때를 보여줘야 해."
  타르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반향하면 어떻게 되는지 본때를 보여줘야 해!"
  비행기가 아래쪽으로 방향을  바꾸자 평원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작은 점처럼 보였다.
  조니는 타르가 그들을  공격할 생각이라는 것을 재빨리 알아차렸
다.
  공기를 짓찢는 듯한 소리와 함께 지면을 향해 접근하자 사람들의
당황한 모습들이 빠르게 다가왔다.
  "그만둬!"
  조니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타르의 손톱이 발사버튼을 향하고 있었다. 조니는 필사적으로 지
도를 들어올렸다. 커다랗게 펼쳐진 지도는 타르의 얼굴에 달라붙어
서 눈을 가려버렸다. 지면이 맹렬한 기세로 다가오고 있었다. 조니
는 재빨리 자기 앞의 조종판을 두드렸다. 고도 백 피트의 상공에서
비행기는 급격하게  수평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러나 관성 때문에
수송기는 사람들의 머리 위를 스치듯이 아슬아슬하게 지나쳐갔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쏜살같이  날아가는 비행기의 앞쪽에
갑자기 높이 솟은  산허리가 가로막혀 있었다. 다급해진 조니의 손
가락이 조종판의 버튼들을 부수기라도 할 듯이 두드려댔다. 나뭇가
지가 기체 밑에 닿았다. 몇 피트만 그대로 날아간다면 산허리에 곤
두박질쳐질 상황이었다. 그 마지막 순간, 필사적인 노력 끝에 비행
기가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산 정상을 넘어서자 조니는 기체를 수
평비행으로 되돌려놓고 멀리 보이는 해안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는
올 때 사용했던 조종 프로그램 테이프를 역회전시켜서 자동 조종장
치에 입력시켰다.  비행기 아래로 길게  내리뻗은 해변이 펼쳐지고
있었다. 더이상 채굴장 감시레이다에 발각될 염려도 없었고 장애물
도 없었으므로 수송기는 곧장 기지를 향해 날아갔다.
  조니는 땀으로 흥건히  젖은 몸을 좌석에 털썩 파묻었다. 타르는
이미 지도를 얼굴에  떼어놓고 있었다. 초록색으로 충혈된 눈을 번
득이며 잔인한 표정을 가득 담고 있었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구."
  타르가 고함쳤다.
  "모든 일을 망쳐버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놈들의 약점을 가지고 있지 못해."
  타르는 반박하듯이 고개를 돌려 어깨 너머로 조종석 뒤편을 바라
보았다. 그는 비꼬는 듯한 말투로 덧붙였다.
  "도대체 어떻게  이녀석들을 명령에  복종하도록 가르칠 셈이지?
어린애처럼 장난감이라도 안겨줄 생각인가?"
  "지금까지 온순하게 복종하고 있지 않은가?"
  "네놈 때문에 이번 여행은 모두 망쳐버렸어."
  타르는 온통 짜증으로  일그러진 채 입을 굳게 다물어버렸다. 한
참 있다가  두통이 나는지 머리를 비벼대면서  뒤쪽에 있는 카방고
병을 찾아 손을 더듬었다. 하지만 손에 집어든 카방고 병은 말끔히
비워져 있었다.  그는 술병을 내팽개치려고  했으나 조니가 그것을
제지했다.
  타르는 좌석 밑에서  다른 병을 찾아내어 들이마시고는 불만스런
얼굴로 앉아 있었다.
  "왜 그러지?"
  겨우 타르가 입을 열었다.
  "놈들은 어제 뭐가 그렇게 좋아서들 난리였지?"
  "일이 끝나면 후한 보수를 주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타르는 한참 동안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보수를 바라고 그렇게 기쁘했단 말인가?"
  "글쎄, 그렇다니까."
  타르는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가득 남은 채 다시 물었다.
  "돈을 준다고 하지는 않았겠지?"
  "물론, 그들은 돈이  뭔지도 모르고 있지. 그들에게 돈이란 말이
나 식량, 뭐 그런 것들이야."
  "많은 보수를 준다고 했단 말이지?"
  타르는 다시 한 번  그 말을 되뇌이듯 말했다. 그의 얼굴은 갑자
기 밝아졌다. 아아,  카방고의 취기가 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타
르는 아주 유쾌한 기분 속으로 빠져들었다. 높은 보수라! 너희들이
받게될 보수가 무엇인지  지금 당장 가르쳐주고 싶다. 적절한 보수
는 바로 기화형. 타르는 큰소리로 웃어대기 시작했다.
  "너의 조종솜씨도 꽤나 쓸 만하군. 돌대가리. 바보 같은 짓을 해
서 이 사람들을 몰살시킬 생각 따윈 아예 버리라구."
  조니의 말이  너무 어이없다는 듯 타르는  기지로 돌아오는 동안
이따금씩 실없이 웃어댔다.  바보 같은 녀석들. 쥐대가리들은 별수
없군. 높은 보수라니.  그러나 별을 빼앗긴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자아, 이제 녀석들의 약점을  손에 넣었다. 보수에 목숨을 거는 일
을 사이클로인들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2)
  방위기지에 도착한  조니는 이틀 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로버트가 함께  와준 것이 무척이나  고마웠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을 질서있게 자리매김을 해주었다.
  그 옛날에 학교였던 건물은  교실로 정해졌고 함께 온 교장에 의
해서 교실답게 정리되어갔다.
  그들은 기계조작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책에서 읽
었는지 누구에게 들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기계구조에 대한 지식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을 앵거스 맥다뮈슈라고  소개하는 젊은이가 찾아왔다. 그는
고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금속물을 내보이며 사용법을 알아보겠노라
고 허락을 요청했다.
  "그것은 뭔가?"
  조니가 물었다.
  젊은이가 금속물에 새겨진 문자를 가리켰다. 그 금속물의 표면은
그리스로 두껍게 덮여  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그리스가 돌
처럼 딱딱해져 있었으나 안에 들어있는 물체는 그대로 보존되어 있
었다. 젊은이가 먼지를 닦아내자 '톰슨 반자동 기관단총'이라는 문
자를 똑똑하게 읽을 수 있었다. 제조회사명과 제품번호도 확인되었
다.
  "이런 기관단총이 들어 있는 상자가 매우 많이 있다."
  앵거스가 말했다.
  "트럭 가득히, 그리고 밀폐된  상자 안에 든 탄약도 그리스를 벗
겨내면 쓸 수 있을  것이다. 아마 트럭 운전 부주의로 제방을 들이
받고 파묻혀버린 모양이다.  정비해서 쓸 수 있는지 한번 시험해보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맥타일러?"
  조니는 그의 얘기를  귓전으로 흘렸다. 그는 고개만 끄덕이곤 계
속해서 소떼들을 몰아갔다. 스코틀랜드인들은 오랫동안 식량부족으
로 고생해왔다. 그들에게 어떻게 해서라도 충분한 식량을 제공하는
일이 가장 급했다. 그러면 자연히 그들의 사기가 높아질 것이고 앞
으로의 작업도 좀더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날 밤 저녁식사를 끝낸  후 몇 명의 젊은이들이 조니를 찾아왔
다. 앵거스가 문제의 무기를 조니에게 보여주었다.
  "사용할 수가  있어. 탄약을 넣는 방법도  또 어떻게 사용하는지
그 조작법도 알아냈다. 탄약도 충분히 있다."
  식당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조니는 느꼈다.
  "이런 무기와 탄약이 엄청나게 많이 있어."
  앵거스가 덧붙였다.
  "언덕에 올라가면 동쪽으로 사이클로인의 채굴현장이 보인다."
  그는 싱긋이 웃었다.
  "오늘밤 습격하여 풍지박산을 내주자구!"
  주위사람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러댔다.
  그러나 조니의  머릿속에는 참혹하게 학살당한 스코틀랜드인들의
시체와 무참하게 실패로 돌아간 프로젝트가 떠오르고 있었다.
  폭스 로버트의 눈이  조니의 눈과 마주쳤다. 그는 조니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니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일어났다.
  역전의 용사인 로버트는  이전에 사이클로인을 가까이에서 본 몇
안되는 스코틀랜드인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폐허 가까이에서 풀
을 뜯는 동물을 잡으려고 저지대까지 내려갔다가 콘월 광산에서 온
사이클로인을 만난 적이 있었다. 동료들은 모두 살해되었지만 폭스
로버트는 말의 배밑에 매달려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
다. 그 때의  경험으로 사이클로인들이 사용하는 무기의 위력과 그
들의 잔학성을 잘 알고 있었다.
  기관단총을 들고 있는  앵거스를 가리키면서 폭스 로버트가 말했
다.
  "앵거스, 훌륭하다! 우리 모두 본받을 일을 해냈다."
  앵거스의 표정이 금세 환해졌다.
  "하지만."
  로버트는 커다란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채굴장 하나를 파괴해보았자  사이클로인들은 끄덕도 하지 않는
다. 우리들의  목적은 사이클로 제국 전체를  상대로 한 싸움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들은  온갖 지혜와 심혈을 기울여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워야만 한다...."
  그는 순간 목소리를 낮추며 마치 비밀음모라도 꾸미는 것처럼 말
투를 바꾸었다.'
  "놈들의 기지 하나와  우리의 계획 전부를 맞바꾼다는 것은 당치
도 않은 일이다. 우리의  의도를 놈들에게 알린다는 것일 뿐, 승산
이 없는 싸움이 아닌가!"
  로버트의 말은  효과가 있었다. 젊은이들을  확실히 납득시킬 수
있었다. 어느덧  알맞게 익은 스테이크는  모두에게 포만감을 주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고마웠습니다. 덕분에 무사히 넘겼습니다."
  조니는 폭스 로버트에게 말했다. 경솔하게 싸움을 시도하려는 젊
은이들의 기분을 다소나마 진정시킬 수 있었다.
  잠시 후 조니는 폭스 로버트와 함께 참호를 둘러보러 갔다. 그곳
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조니는 마을의 회의를 떠올렸
다. 그 구성원은 폭스 로버트, 목사, 교장, 역가가 네 사람이었다.
자리를 정돈하는 사이에  조니는 풀섶을 더듬으며 금속파편들을 찾
아냈다. 반자동 기관단총과 비슷한 것으로 생각되는 부식된 총기들
을 발견했다. 거의 본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총인 것만은
확실했다. 조니는 사이클로인의  기록에 나타나 있는 이 참호의 유
래를 원로 멤버들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짤막하지만 분명하게 설명
했다.
  그러자 역사가 맥더모드  박사가 참호 주변을 주의깊게 바라보면
서 말했다.
  "그런데 적들의 탱크 잔해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적이 이긴 것입니다."
  조니가 말했다.
  "그렇지만 이상하군."
  역사가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인간이 이곳에서 패배한  것을 중요시하는 것이 이상하다는
것이 아니라  사이클로인의 전투차량이 한 대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 이상하다는 거야."
  "물론 사이클로인  측도 얼마간의  희생을 치뤘겠지요. 그렇다면
부서진 차량은 다른 곳으로 옮겨갔을 테지요."
  "아냐, 아냐. 그렇지가 않아."
  역사가는 모두를 쳐다보며  현재 대학도서관에 보관된 책들 가운
데 직접 손으로 기록한 책이 있는데 이곳에서 벌어졌음직한 전투와
비슷한 전투의 기록이  있다고 말했다. 그 전투는 하이랜드의 아래
쪽, 옛날 영국과  스코틀랜드 접경지역 바로 북쪽에 위치한 댄버튼
과 팔커크, 두 마을 사이에서 일어났었다.
  "그곳에는 지금까지도 사이클로인의 탱크 잔해가 남아 있다."
  "그것은 확실하다. 내 눈으로 직접 보았다."
  폭스 로버트가 끼여들었다. 역사가는 말을 계속했다.
  "그 이후 그 지역에는 사이클로인들의 침략은 한번도 없었다. 맥
타일러 당신이 저  괴물과 함께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하이랜드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이야기를 좀더 자세히 들려주지 않겠습니까?"
  조니가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여기의 기록은 작품치고 너무 엉성하다."
  역사가가 말했다.
  "하이랜드 부대의 병사가  그 전투에서 패배한 후 북쪽으로 도망
친 다음에 기록된  것이다. 공병이었던 모양이다. 랜드마인을 설치
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면의 광산이라고?"
  목사가 물었다.
  "아니, 그게 아니다."
  역사가가 대답했다.
  "내 생각으로는 랜드마인(Land Mine)의 마인은 광산이란 뜻이 아
니라 지면에 묻는 폭발물, 즉 지뢰라는 의미였다. 적이 그 위를 통
과하면 폭발하게 되어 있는 무기인데 그 병사는 전술핵무기라는 단
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전투기록에서 그는, 참호 속에서 숨어 있던 공병연대가 가스공격
을 받고, 그 중의  몇 명만이 북쪽으로 도망쳤다고 기록했다. 대장
은 살아남은 병사들을  지휘하여 댄버튼과 팔카크의 접경지역에 그
지뢰를 파묻게 했다. 그들을 추격해온 사이클로인의 탱크가 그곳에
접근하자 지뢰는 폭발했다. 그때 사이클로인들은 탱크와 병력이 충
분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쪽으로 서둘러 후퇴했고, 시체와 차량을 회
수하기 위해 다시 돌아오지도 않았다.
  "과연, 핵무기였구나."
  조니가 말했다.
  "도대체 어떤 것인가? 그 핵무기라는 것은?"
  목사가 끼여들었다.
  "우라늄입니다. 두  마을의 경계선에는  지금도 공기중에 우라늄
물질이 남아 있을 겁니다."
  조니는 그렇게 말한 후 네 사람에게 사이클로인들이 숨쉬기에 편
한 호흡가스의 성질에 대해 설명했다.
  "과연 그래서였군."
  폭스 로버트가 말했다. 역사가도 겨우 수수께끼가 풀렸다는 표정
을 지으며, 어깨를 치켜올려  보였다. 낡은 누더기 외투가 그의 어
깨짓에 따라 올려졌다. 풀썩 내려앉았다.
  "마치 마법의  불 같은 짓이군. 아니면  지옥의 괴물을 쫓아내는
비장의 카드라고나 할까."
  조니는 손에 들고 있는 푸슬푸슬 떨어져내리는 부식된 총을 한동
안 바라보다가 참호 속으로 시선을 옮겼다.
  "불행하게도 이곳  방위대는 우라늄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사이클로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지요.  다만 이 총만이
그들의 유일한 마지막  희망이었을 겁니다. 그들은 죽을 수밖에 없
었지요. 하지만 우리들은 반드시 살아남아 승리해야 합니다."
  조니가 말했다.
  "그 말이 옳다."
  폭스 로버트가 신념에 찬 목소리로 맞장구를 쳤다.
  조니는 부식된 총을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참혹하게 쓰러져갔을
병사들의 환영에  휩싸인 그들은 깊은  감회에 젖어들었다. 어떠한
말도 필요치 않았다.  그들은 천천히 일어나 취사용 불꽃이 타오르
는 숙소로  돌아갔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백파이프 소리가 조용한
밤바람에 실려 그들의 귓가를 스쳐가고 있었다.

  (3)
  타르는 골짜기  절벽부분의 확대지도를  펼쳐놓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정찰기가 최근에 촬영한  항공사진과 비교해가며 그
깊게 패인  골짜기의 절벽에 접근하는 길이나  짐승의 통로를 찾고
있었다. 아무리 고심해봐도  불가능한 것만 같았다. 경험이 풍부한
사이클로인 광부들도 실현불가능한 일을 과연 동물들이 해낼 수 있
을지 자꾸만  엄습해오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지상으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장소였다.
  새로 채용한 비서  차크가 들어왔다. 적당히 멍청한 덕분에 비밀
이 새나갈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미모만은 눈요깃감으로 안성맞춤
이었다. 술에 약해서  금세 취해버리기 때문에 그 또한 경제적이었
다. 그녀의  업무는 전화나 면회자를  사절하고 타르에게 내려오는
모든 명령서의  일들을 적당한 녀석들에게  전담하는 것이었다. 이
혹성을 한손에 움켜쥔 지금, 쓸데없는 일에 신경쓸 필요는 없었다.
  "일은 늙다리 넘프에게 시켜라."
  그것이 요즘 타르의 유일한 업무처리 방침이었다.
  "문제의 동물이 면회하러 왔습니다."
  차크가 높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타르가 서둘러서 지도를
접는 것과 차크가 문의 손잡이를 당기는 것은 거의 동시였다. 타르
는 지도를 챙겨서 맨 윗서랍에 던져넣었다.
  "들어오라고 해"
  공기마스크와 칭코인의 옷감으로  만든 옷을 입은 조니가 들어왔
다. 손에 기다란  목록을 들고 있었다. 타르는 조니를 바라보았다.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인간은 이제 감시용 소형 카메
라를 달고 있지 않았지만  얌전하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다. 두 사
람 사이에 약속이  이루어져 있었다. 조니가 이,  삼 일에 한 번씩
여자들에게 먹을  것을 전해주기 위해 올  때마다 의견을 나누기로
한 것이었다.  처음에 조니가 무선으로 상황을  설명하려 했을 때,
타르는 벌컥  화를 내면서 절대 무선연락망은  사용하지 못하게 했
다. 무선으로 안된다. 절대로 안된다. 뭔가 말할 것이 있으면 직접
이곳으로 와서 말해라.  타르는 겁내고 있었다. 광산의 여기저기에
설치되어 있어서 무선으로 얘기를 나누다간 자칫 비밀이 새나갈 위
험이 있었다.
  "리스트를 가지고 왔다."
  조니가 말했다.
  "그런 것은 보면 알 수 있겠고...."
  "배관용 연관과 칭코인의 옷감, 또한 그것을 재단하고 재봉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펌프와 삽도...."
  "차크에게 부탁해라. 그건  그렇고 방위기지를 새로 지을 작정인
가? 정말 동물답군. 기계조작법은 가르치고 있나?"
  "하고 있다."
  조니가 대답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이미 젊은이들을 상대로
교장과 함께 하루 열 시간씩 훈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카를 보내 도와주도록 하겠다."
  조니는 마음대로 하라는  듯싱 어깨를 쳐들어 보였다. 그리고 나
서 가져온 리스트를 보여주었다.
  "허가해줘야 할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칭코인이 만든 학습
기계다. 옛날 칭코인용 숙소에 여섯 대가 있다. 기계들의 조종장치
도, 조종법 설명서도  모두 사이클로어로 되어 있어서 먼저 언어교
육을 시켜야 한다. 그  여섯 대와 부속 디스크, 그리고 관련도서들
도 모두 가져가고 싶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타르는 조니의 요구사항에 아무 거리낌 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
다.
  "또 한 가지는 화물수송기다."
  "비행작업대가 있지 않은가?"
  "비행작업대가 아니라  인원수송기와 화물수송기가  필요한 것이
다. 즈즈토의 수송부 차고에 갔더니 그런 종류의 수송기가 무척 많
더군."
  타르의 머릿속에 갑자기  인간이 문제의 지도를 훔쳐보지 않았을
까하는 의혹과 불안이  스쳐갔다. 분명히 그곳은 지상으로는 갈 수
가 없었다. 운반해야 할 것은 모두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으면 안되
었다. 게다가 그곳을 비행하는  것 또한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녀석이 요구하는 화물수송기와 인원수송기는 전투기의 조종
장치와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무기가 장착되어 있지 않다는 것뿐
이다. 더구나  다른 종족에게 전투훈련을  시켜서는 절대 안된다고
하는 철칙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 광맥은 지상으로는 도저히 접
근할 수가 없는 장소였다. 그렇다. 광산용 수송기는 전투용 비행기
와는 분명히 달랐다. 타르는  생각을 고쳤다. 지금 이 혹성을 지배
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였다. 규칙을  만드는 것 또한 보안부장인
자신이 아닌가.
  "몇대가 필요한가?"
  그렇게 말하고 타르는 리스트를 보았다.
  "뭐? 이십 대! 게다가 삼륜 지상장갑차까지.... 세 대씩이나."
  "스코틀랜드인들에게 차량조정법을 가르치라고 명령했잖은가? 그
런데 가르칠 차량조차 없다면 무얼 가지고 가르치겠나?"
  "그렇다 해도 이십 대라면...."
  조니는 어깨를 흠칫해 보였다.
  "그들이 처음부터 아무런  사고도 일으키지 않으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으니까."
  타르가 갑자기  큰소리로 웃어댔다. 조니가  불타는 차량과 함께
수백 피트나  되는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질  뻔했던 장면이 눈앞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타르는 넘프의 서명만이 선명한 백지명령서를 꺼내 그 서명 위에
리스트를 붙여놓았다.
  "훈련기간은 어느 정도로 잡고 있는가?"
  조니가 물었다.
  타르가 계획하고 있는 시기는  반년에 한 번 있는 인원보충과 사
망한 사이클로인 광부들을 전송하는 시기와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타르는 자신의 계획을 조니에게 사실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는
재빨리 계산했다. 남아 있는 시간은 구 개월이었다. 다음 출하까지
의 삼 개월 동안은 훈련을  시키고 그 뒤 출하가 있는 육 개월까지
채굴작업에 들어가서 내년  봄의 출하시기까지 기한을 잡는다 해도
훈련기간은 삼 개월 이상의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조금 짧게 말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모든 훈련은 이 개월 안에 완벽하게 끝내야 한다."
  "너무 짧다."
  타르는 주머니에서 리모트  컨트롤 박스를 꺼내서 장난치듯 툭툭
두드려 보이곤 다시  집어넣었다. 그의 얼굴에 잔인한 웃음기가 담
겨져 있었다. 리모트  컨트롤 박스의 폭파버튼들을 보자 조니는 온
몸의 피가  한꺼번에 솟구쳐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눈빛은 타르의 징그러운 웃음 속에 뚫어질 듯 붙박혀 있
었다. 그의  눈빛이 분노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지만 마스크에
가려져 타르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조니는 자꾸만 솟구쳐오르
는 분노를 속으로 억눌렀다.
  "기계를 옮기는 데 카의 도움을 받고 싶은데...."
  "차크에게 말해."
  "그리고 또,"
  조니가 서둘러 덧붙였다.
  "저 산 주위를  비행하는 경험을 쌓아두어야 할  것 같다. 저 산
주위엔 하강기류가  상당히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겨울에는 좀더
심해질 것이다. 앞으로 저  산 부근을 비행하게 될 텐데 오해 없기
를 바란다."
  타르는 서랍 속에  든 지도를 가리기라도 하듯  얼른 책상  위에
양손을 펼쳐 가로막았다.  그러나 곧 부질없는 생각임을 깨닫고 떨
쳐버렸다. 인간이 서랍 속을 투시할 능력을 가지고 있을 리가 만무
했다. 어쨌든 계획은 숨기면 숨길수록 인간이 다른 사이클로인들에
게 누설시킬 위험부담은 그만큼 적어지는 셈이었다. 그는 동물들이
산악지대를 비행하는 데 걸맞는 구실을 찾아내기 위해 이리저리 골
똘히 생각해보았다.
  "너는 정말로 이것저것 많이 알고 있는 것 같구나."
  타르는 갑자기 말을 꺼냈다.
  "당신이 내게 가르쳐준 것뿐이다."
  "내가 언제?"
  "가끔씩. 그래, 스코틀랜드에 갔을 때."
  타르는 한순간 긴장했다. 그렇다. 그때는 무방비상태였다. 이 돌
대가리가 그런 것을 눈치챘다면....
  "만약 내  진짜 계획이 새나간 것을  직접 듣게 되는 날에는....
그것이 카에게서든 누구에게서든...."
  그는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리모트 컨트롤 박스를 손으로 툭툭
쳤다.
  "작은 암컷의 머리통이 날아갈 줄 알아라!"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 나가라. 이런  시시한 얘기나 나눌 만큼 여유가 없
다."
  조니는 명령서를 받아든 후, 자신의 일을 도와줄 것을 카에게 전
해달라고 차크에게 부탁했다.
  "자아, 모두 됐어요, 동물씨."
  완성된 명령서를 조니에게 건네주면서 차크가 말했다.
  "내 이름은 조니다."
  "나는 차크야."
  그녀는 뼈로 된 눈두덩 속의 마스카라로 화장한 눈을 깜짝거리면
서 말했다.
  "당신들은 조금 이상하게 생겼고, 게다가 작군요. 이곳 사이클로
인들 가운데는 인간사냥이 재미있다는 사람도 있지만 난 그렇게 생
각하지 않아요.  그다지 위험해 보이지도 않고,  잡아먹을 수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정말 따분한 별이에요.  타르가 끔찍히 싫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에요. 내년에 본국으로 돌아가면 우리들은 커다란
집을 살 계획이에요."
  "커다란 집이라니?"
  조니는 놀라서  머리가 조금 모자라는 듯이  보이는 이 사이클로
여자를 올려다보았다.
  "그럼요, 우리들은 곧 큰 부자가 될 거라구요. 타르가 그렇게 말
했어요. 조니, 당신도 좋은  것을 가져오면 작은 일 정도는 도와줄
께요."
  "고마워, 부탁할게."
  조니는 그렇게 말하며  빙그레 웃었다. 그는 명령서와 새로운 리
스트를 받아들고 타르의  방을 나왔다. 중대한 정보를 손에 넣었다
고 조니는 생각했다. 타르는 일년 이내에 이곳을 떠날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본국으로 돌아가 큰 부자가 된다는 것이다.

  (4)
  "유감스럽게도 실패했어요."
  조니는 원로들을 향해서 매우 착잡한 심정으로 말했다.
  네 사람은 조니의 숙소  겸 집무실의 삐걱이는 의자에 앉아 있었
다. 방은  넓었고 한쪽 벽면은 창으로  되어 있어서 이지역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이 방을 선택한 이유도 그 점에 있었다.
  조니는 선반에 가득 쌓인 책들을 가리켰다.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들은 전부 읽었습니다. 그러나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폭스 로버트, 맥더모트 박사, 목사와 교장은 조니를 바라보며 조
용히 앉아 있었다.
  맥더모트 박사가 입을 열었다.
  "괜찮다면 내가 한번 찾아볼까?"
  그리고는 책 쪽을 가리켰다.
  "무엇을 찾으면 되는 거지?"
  "우라늄입니다. 우리들이 그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
일한 열쇠는 우라늄에 있습니다."
  "과연, 인간에게는 해롭지 않지만 사이클로인에게는 매우 치명적
인 물질인 모양이군."
  "아닙니다. 인간에게도 매우 유해합니다."
  조니는 '독극물학' 책을 가리켰다.
  "과도하게 방사능을  쏘이면 끔찍한 증상이  나타날 뿐만 아니라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물론 사이클로인의 경우는 호흡가스에
인화되어 대폭발을 일으키게 되니까 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치
명적이지만."
  조니는 창 너머 저물어가는 석양빛으로 뚜렷한 윤곽을 드러낸 채
우뚝 솟아 있는 산맥을 가리켰다.
  "저 산에는 우라늄이  대량으로 매장되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적
어도 사이클로인들은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아마 목
에 쇠줄을 매어  끈다 해도 사이클로인을 저  산으로 끌고 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타르는  우리들을 저 산으로 보내서 채굴작업을 시
킬 심산입니다. 놈이 노리는 것은 황금입니다. 광맥의 위치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황극 따위야 아무래도 좋지만, 아마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시간을 벌기 위해서, 즉 우라
늄을 파낼 시간을 벌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아직 그 정확한 장소를 모르고 있다는...."
  맥더모트 박사의 말에 조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우라늄광산 리스트는 갖고 있지만 모두 '채굴완료'
나 '광산폐쇄'표시가 붙어 있습니다."
  "틀림없이 대단한 위력의 물질인 모양이군."
  로버트가 말했다.
  "용도에 대한 리스트도 있습니다."
  조니가 말했다.
  "주로 군사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목사는 뭔가 깊이 생각하면서 코를 문질러댔다.
  "당신네 마을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릅니까?"
  "모릅니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 그곳에 우
라늄이 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여러분을 그곳에 데려가고 싶었
지만 지금까지 참은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마을 사람
들에게서 나타나는 원인불명의 병들과 생식능력의 저하는 우라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당신에게는 그런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 것 같군요. 맥타
일러."
  목사가 미소를 지었다.
  "나는 마을의 외곽으로 나와  있을 때가 많았고, 마을에 있는 시
간이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또한 사람에 따라서 영향을 받는 정
도에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유전일 수도 있겠군."
  박사가 말했다.
  "오랫동안 그곳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우라늄에 대한 저항력이나
면역성을 지닌 인간이  태어날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나?"
  조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마을을  떠난 이후 한 번도  그곳을 다녀오지 않았습니다.
나로 인하여 그곳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금
도 매일같이  무인정찰기가 날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가까운 시일
내에 이동시키지 않으면 안됩니다. 마땅히 이동시킬 장소를 찾아내
야만 합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은 우라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
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알고 있었다면 벌써 옛날에 그 골짜
기를 빠져나왔겠지요."
  "우라늄 문제가 가장 시급합니다."
  조니는 말을 계속했다.
  "모든 계획의 핵심이 되는 것이니까요."
  맥더모트 박사가 손을 내밀었다.
  "관련된 기록들은 우리들이 맡아서 조사해보겠네. 잠자는 시간을
얼마간 줄이면 찾아낼 수 있을 거야."
  조니는 그들에게 책을 건네주었다.
  "정찰대를 파견하는 것은 어떨까."
  로버트가 말했다.
  "작전을 세우기 전에  먼저 정찰대를 보내서 상황을 살펴보는 것
이 정석이다. 그런데 우라늄은 어떻게 식별해낼 수 있지?"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은 광산관계 서적들을 읽어보면 나와 있습
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들은 장치에 대한 것이 없습니다. 그
것은 "가이거 계수관"이라는  것인데, 나는 그 장치에 대해서 연구
도 해봤고 그 구조도 대부분 알고 있지만 어디에서도 그 장치를 찾
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교장이 말했다.
  "저 오래된 마을 어딘가에  하나 정도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공
장주소록이 있을 만도 한데...."
  "몇 천  년 전의 장치가 그렇게  도움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
데."
  맥더모트 박사가 말했다.
  "이런 것은 어떨까.... 꽤나 헐었는데.... 전화? 아마 이것은 전
화번호부인 모양이군. 지역은 덴버이고."
  그는 전화에 대해서 설명했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전화가  있었다.  그런데  '기계'의 항목에
는....IBM연구소? 안되겠다. 주소를 읽을 수가 없어."
  "그곳에는 아직까지 이름이 남아 있는 건물이 많습니다."
  조니가 말했다.
  그때 폭스 로버트가 앞으로 나섰다.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역시 정찰을 나가보는 것이 좋겠어. 정찰
없는 작전은 있을 수 없다. 이것은 철칙이다. 우리들이 돌아다니고
잇는 것을 괴물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철저히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놈들에게는 열검출기가 있습니다."
  조니가 말했다.
  "당신은 말의  배 밑에 숨어 있었으니까  도망칠 수 있었던 겁니
다. 놈들은 말이  달려간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무인정찰기는 사진
을 찍는 기능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멀리서 비행기 소리가 들리
거든 즉각  몸을 숨겨야 합니다. 가장  위험한 것은 지상차입니다.
소형 레이더를 쏘아올려서  발열체를 탐지해내니까요. 열을 차단하
는 덮개가 있어서 급할  때는 그것으로 몸을 덮으면 됩니다만 어쨌
든 신중을  기해서 행동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안돼, 그건 절대 안돼."
  폭스 로버트가 말했다.
  "당신에게 그런 일을 시킬 수는 없다."
  다른 원로들도 그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목사가 말했다.
  "맥타일러, 당신은 자신의  몸이 혼자만의 것이라고 여기면 안됩
니다. 당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들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오.
그렇소, 당신을 돕기 위해서요."
  "그 조그만 놈이...."
  조니가 말했다.
  "수송기를 수리하러 온 놈 말인가?"
  "그렇습니다."
  조니는 계속했다.
  "그의 이름은  카라고 하는데, 카의 말에  의하면 이 주변에서는
혹성장관의 명령으로  사냥이 금지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 명령은
이곳 뿐 만이 아니라 모든 채굴장과 그 주변에는 다 적용되는 모양
입니다. 카가 기분전환을  위해 이곳에 온다고 하는 것조차 엄격한
허가를 받아야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놈들이 별일없이 돌아다니
는 일은 없을 겁니다. 커다란 마을까지 정찰을 나간다 해도 위험은
없을 겁니다. 무인정찰기한테 들키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폭스 로버트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사령관은 정찰 같은 것을 걱정하면 안된다. 공격이라면 또 모를
까 정찰 따위은  말도 안된다. 앵거스를 보냅시다. 여러분, 이의는
없겠지요?"
  논의한 결과 조니가  정찰을 나가겠다는 의견은 완전히 부결되었
다.
  그날 밤 앵거스가  어둠을 틈타서 덴버까지 정찰을 나갔다. 그는
기계조작에 매우 숙련되어 있었다.
  그는 이틀 후에  무사히 귀환하였고, 수많은 귀중한 정보를 무수
히 가져왔다. 그러나 IBM연구소는 이미 폐허가 되어 있어서 정보가
될만한 것은 남아 있지 않았고, 가이거 계수관 역시 발견해내지 못
했다.
  광산사무소를 발견했으나  누더기로 변화  기록서류밖에 없었고,
광맥탐사 기구를  파는 상점에서는  스테인리스로 만든 표본채취용
곡괭이와 여러 종류의  스테인리스 나이프를 찾아내 가지고 돌아왔
다. 그 곳에서도 가이거 계수관은 찾아내지 못했다.
  다시 원로회의가 열렸다.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일단 현재상태를
유지하며 점차적으로 노력을 계속한다는 것이 결의 되었다. 계속해
서 정찰을 보낸다는 것도 결정되었으나 큰 기대는 할 수 없었다.

  (5)
  조니는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 벌떡  일어섰다. 가이거 계수관이
있는 장소가 떠올랐던 것이다. 자정이 넘은 깊은 밤이었다.
  그렇다. 출하작업장의 우라늄 분진 검출기다!
  기계실습 기간중에 그것을 조작한 적이 있었는데 까맣게 잊고 있
었다니! 조니는 로버트가  뭐라고 하든 정찰을 나가기로 결심했다.
지금은 위험 따위는 문제되지 않았다.
  크리시에게는 이,  삼 일에 한 번씩  찾아가고 있었다. 그때마다
채굴현장 근처를  말을 타고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자신이 그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는  모습을 사이클로인들의 눈에 익혀둬서 대
수롭지 않게 생각하도록 하기 위한 속셈이었다. 조니는 윈드스프리
터를 타고 한가하게 거닐었다.
  오늘따라 유독  크리시와 패티가 외로워  보였다. 조니는 신선한
고기와 평소보다 많은 사슴가죽을 싣고 갔다. 두 사람이 가죽 무두
질이나 옷을  만드는 일에 집중하여 외로움을  잊게 하기 위해서였
다. 장작도 많이  쪼개두었다. 스코틀랜드인이 마을 폐광에서 파내
온 스테인리스 도끼를 사용하면  간단하고 빠르게 장작을 팰 수 있
었다. 조니는 고기와  가죽과 장작을 나무울타리 밖에 모아놓고 타
르가 시간을 내서  밖으로 나왔을 때 안으로  쉽게 옮길 수 있도록
해두었다.
  나무울타리와 우리의 철책 너머로 나누는 두 사람의 대화는 안타
깝기만 했다.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여자들의 질문에 조니는 일을
한다고만 대답했다. 건강해요?  하고 물어도 응, 건강해 하고 대답
할 뿐이었다.
  십 미터나  떨어져 있었고 두 개씩이나  되는 울타리가 가로막혀
있을 뿐만 아니라 최소한  두 개의 카메라가 감시하고 있는 곳에서
대화를 계속 나눈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 당장
이라도 우리를 날려보내고 두 사람을 구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
다. 하지만 그 마음을  억누르며, 두 사람을 안심시키기 위해 침착
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조
니는 소형 비디오 카메라를 끈으로 묶어서 목에 걸고 있었다. 사슴
가죽 끈 두 줄로 그것을 가슴에 고정시켜놓고 있었다. 굳이 눈높이
까지 올리지 않아도 은밀이  조작할 수 있도록 교묘하게 숨겨져 있
어서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조작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나 실험을
해두었기 때문에 목표물  탐지기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정확하게 목
표물을 찍을  수가 있었다. 조니는 이런  카메라 열두 대화 대량의
마이크로 디스크를 타르에게 요구했던 것이다. 조니는 이야기를 나
누면서 여자들과  우리를 여러 각도에서  촬영했다. 스위치 박스와
코드사진을 찍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위험은 이미 각오한 바였다.
  칭코인의 숙소  위까지 윈드스프리터와  함께 산책하러 가겠다고
두 사람에게 말했다. 그런  후 마치 진짜로 산책이나 하는 듯 어슬
렁거리며 광각렌즈와 망원렌즈를 사용하여 채굴현장을 모두 촬영했
다. 평원에 늘어선 스무 대의 전투기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산더미
처럼 쌓여 있는  연료탱크, 그 건너편의 호흡가스 출하작업장 안쪽
으로 구십 미터 지점에 설치되어 있는 시체수용실까지 빠짐없이 찍
어 나갔다. 수송기 이착륙장과, 수송기의 램프, 켄베이어 벨트, 물
론 사령탑도 빠뜨리지 않았다.
  바로 그때 운좋게도 화물기 한 대가 광석을 가득 싣고 들어왔다.
조니는 천천히 언덕을  내려갔다. 우리의 옆을 지나갈 때 조심하는
편이 낫겟다고  직감했다. 그는 말에서 내려  마치 꽃을 따고 있는
듯한 자세를 취하며 재빨리 촬영을 끝낸 디스크들을 크리시에게 건
네줄 자루 속에 집어넣었다.
  다시 말을 우라늄 분진 검출구역을 향해 내려갔다. 윈드스프리터
가 군데군데 돋아나 있는  풀들을 뜯어먹기 위해 멈출 때마다 그냥
내버려 두었다. 오히려  그것이 자연스럽게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분진으로 뒤덮인 구역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화물기로부터의 하역
작업은 아직 시작되기 전이었다. 기계조작원들은 밖으로 나와 각자
의 기계를 조종하기  위해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조니는 광석분
진기로 다가갔다. 조종사는 아직 도착해 있지 않았다. 크레인 끝에
훅이 늘어져 있었다.  조니는 그것을 피하는 척하면서 몸을 구부려
조종장치 뒤에서 코드  한개를 뽑았다. 회로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잘하면 결과는 금세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분진기 조작원은 조니가 실습할 때부터 안면이 있었지만 다른 사
이클로인들처럼 경멸하는 눈빛으로 노려보면서 말했다.
  "여기서 썩 꺼져라! 광석이 들어온단 말이야."
  조니는 윈드스프리터를 돌려 조금 뒤로 물러섰다. 화물기가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광석을  내리기 시작했다. 날이 달린 차량이 앞을
다투어서 산더미 처럼  쌓인 광석들을 처리했다. 이제 컨베이어 벨
트에 싣는 일만  남았다. 컨베이어 벨트에 첫번째 광석운반통이 다
가왔다. 그때 빨간 불이 켜지면서 경보음이 울려퍼졌다. 분진기 조
작원이 욕설을 퍼부면서 조종장치를 두드려댔다. 모든 기계가 일시
에 작동을 멈추어버렸다.  페이스 마스크 속에서 뿐만 아니라 조종
석 밀폐돔의 공기까지 조작원의 욕설로 떨고 있는 것 같았다. 챠가
맹렬한 기세로 출하관리  사무소에서 뛰쳐나와 고함을 치면서 다가
왔다. 그때 바다를 건너온 다른 화물기의 희미한 소리가 이미 가까
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날은 본국으로  출하하는 날은 아니었으므
로, 작업예정에 혼란이 온듯했다.
  챠가 수리를 하기 위해 전자과 직원을 부르라고 소리치자 확성기
가 전자과 직원을  호출하기 시작했다. 조니는 전자과 직원이 이곳
에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십오 분 전에 건물 쪽으로 걸어
가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챠가 분진기 조작원을 향하여 욕설을 퍼
붓고 있었다. 화가  치민 조작원은 앞발로 조종장치들을 쾅쾅 짓밟
아댔다.
  조니는 말에서 내려 두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내가 한번 고쳐보겠다."
  "시끄러워, 썩 나가."
  화가 치밀어오른 챠가 소리를 질러댔다.
  "아니, 내가 한번 해보겠다니까."
  "한번 시켜보라구, 이녀석은 내가 훈련시켰으니까."
  누군가가 다가오면서 말했다. 카였다.
  챠의 분노의  화살은 이 새로운 방해자를  향하여 맹렬히 쏟아졌
다. 그는 난쟁이 사이클로인을 향햐여 온갖 욕설을 늘어놓았다.
  조니는 카메라를 작동시켜놓고 분진기의 조종판 앞에 섰다, 덮개
를 벗겨내고 그 안을 조사하는 체하면서 내부를 모두 촬영했다. 그
다음에는 단자들을 체크하는 체했다. 물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좋아, 이 정도의 사진만 있으면 이것을 복제할 수 있다! 조니는 덮
개를 닫고, 조금 전에 뽑아놓은 코드를 재빨리 접속시켰다.
  카에게 실컷 화풀이  해댄 챠는 조니를 바라보았다. 그대 조니가
말했다.
  "이제 됐다. 코드의 접촉불량이었다."
  카가 조작원에게 소리쳤다.
  "작동시켜봐라."
  조작원이 수위치를 넣자 분진기는 작동하기 시작했다.
  "봤지?"
  카가 말했다.
  "내가 이녀석을 훈련시켰다니까."
  조니는 윈드스프리터에 올라탄 다음 카메라의 스위치를 껐다.
  "이제 됐다."
  챠가 무서운 얼굴로 조니를 노려보았다.
  "말을 끌고 이런  곳에 들어오면 안돼. 본국으로 전송중이었다면
벌써 사이클로별로 날아갔을 것이다."
  그는 그 뒤에도 한참  동안 인간과 지구의 동물들에 대해서 욕설
을 퍼붓고 그곳을  떠났다. 컨베이어 벨트와 거대한 광석운반용 통
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광석들을 처리하느라 숨가쁘게 작동하기 시
작했다. 다음 화물기가 도착하기 전까지 광석을 깨끗이 처리해야만
했다. 광석을 모두 쏟아놓은 화물기가 굉음과 함께 그곳을 떠났다.
  윈드스프리터는 시체안치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냉각코일 때
문에 첫눈에 알아볼 수  있는 그 건물은 텔레포테이션의 가장 안쪽
에 있었다. 뒤를  돌아다보니 그곳에서 본부건물이 보였다. 출하작
업장과 언덕에 있는 우리를 연결하는 선의 바로 건너편에 있었다.
  "이봐, 카메라를 가지고 여기서 대체 뭐하고 있는 거야?"
  타르였다. 시체실에서 나온  그의 손에는 리스트가 들려 있었다.
그는 반년에 한 번씩  본국으로 보내는 시체를 체크하고 있었던 것
이다. "연습하고 있다."
  조니가 대답했다.
  "무슨 연습?"
  "언젠가는 사진을 찍어오라고 하겠지, 그곳에서...."
  "여기서는  그런 말을 하면 안돼."
  타르는 손에 든  리스트를 내팽개치고 조니에게 달려들어 카메라
를 낚아챘다.  그 순간 가죽끈이 조니의  등을 파고들었다. 타르는
카메라를 뒤집고 디스크를  끄집어내어 내동댕이쳤다. 그것도 모자
라서 구두 뒤축으로  짓밟아 뭉개버렸다. 그리고 조니의 벨트를 뒤
져서 디스크 네장을 뾰족한 손톱으로 꺾어버렸다.
  "아무것도 안 찍은 새것인데."
  조니가 말했다. 타르는 꺾어진 디스크들을 커다란 뒤꿈치로 짓밟
아 산산조각을 내버렸다. 그리고는 카메라를 돌려주면서 말했다.
  "출하장을 촬영하는 것은 회사규칙상 금지되어 있다."
  "사진을 찍어오라고 했을 때 잘못 찍어도 난 모른다."
  "그때는 내가 직접 하겠다."
  그렇게 소리치고는 타르는 요란하게 발소리를 내면서 시체수용실
로 들어갔다.
  얼마 후 타르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해서 크리시에게 물건을 건네
줄 때, 그 자루 안에서 디스크를 꺼내 다시 가지고 나오는 자루 속
에 옮겨넣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우라늄 검출회로를 촬영한 디
스크가 카메라를 낚아채일 때의 중요한 충격으로 망가져 있었다.
  가까스로 촬영한 디스크를  망쳐놓은 타르에게 분노하며 그날 밤
동료들에게 촬영해온 디스크를 보여주었다. 출하장의 구석구석까지
찍혀 있었다.  나중에 정식으로 계획이 확정되었을  때 다시 한 번
이것을 보며 치밀한  작전을 세워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크리시와
패티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차례차례로 바뀌어가는 영상들이 그녀들을, 목고리를, 우리의 스
위치 박스를 비춰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두 사람의 얼굴
을, 나이 어린 철부지 소녀와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
다.
  젊은이들은 눈과 머릿속에 새겨넣듯이 출하장의 배치와 전투기들
의 위치, 호흡가스  적재장, 연료탱크 적재장, 그리고 시체수용실,
특히 플랫폼의 영상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더욱이 크리시와
패티의 얼굴이 비치자 모두들 동정어린 표정을 짓다가 나중에는 분
노로 변하여 폭발할  것 같은 기세가 되었다. 당장이라도 사이클로
인들을 향하여 뛰쳐나갈 것만 같았다.
  이번에도 폭스 로버트가  일어나서 그들을 설득시켰다. 당장이라
도 폭발할 것  같은 젊은이들은 진정을 되찾았다. 백파이프 연주자
가 비통한 애가를 연주했다.
  조니는 그날 밤 한숨도  못 자고 분노와 함께 하얀 밤을 지샜다.
조니는 가이거 계수관의  회로를 분명히 촬영했었다. 그러나 그 회
로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사진만 찍으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
이었다. 조니는 모든  것을 기계에만 의존하려 했던 자신의 행동을
아프게 후회했다. 기계는  확실이 우수하지만, 결코 인간을 대신할
수는 없다.
  반드시 복수하고 말테다, 타르.

  (6)
  맑게 개인 한낮인데도 벌써 바람결이 싸늘하게 느껴졌다. 조니와
폭스 로버트는 조니를 닮은 세 명의 젊은이와 채굴반의 반장 두 명
을 데리고, 처음으로 협곡을 돌아보기 위해서 출발했다. 작은 수송
기가 장대한 로키 산맥의 상공을 날고 있었다.
  그날 아침 일찍 타르가 조니를 책망하기 위해 찾아왔다.
  타르가 탄 지상차는  보초에 의해 발견되어, 그가 도착하기 전에
조니는 철저히 대비하고  있었다. 새벽녘의 냉기 때문에 조니는 표
범의 모피로 몸을 감싸고 지상장갑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사람
들에게는 아침식사 후 건물 안에서 대기하라고 지시해놓고 있었다.
건물 주변에는 누구 하나 얼씬거리지 않았으므로 타르의 시선을 끈
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타르는 차에서 내려서자  호흡마스크를 다시 조절하였다. 그리고
리모트 컨트롤 박스를 던져올렸다가 손으로 받으면서 말했다.
  "가이거 계수관에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왜지?"
  조니는 양미간을 찌푸리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
다. 적어도 자신은 그렇게 했다고 생각했다.
  "지난번에 너를 만나고 나서 네가 광석분진기를 수리했다는 말을
들었다. 목에 소형 비디오를 걸치고 말이다."
  조니는 즉시 반박하고 나섰다.
  "어디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나를 그 산으로
가게 할 생각인가? 나를 폐인으로 만들 셈인가?"
  "폐인이라고?"
  "그렇다, 우라늄 오염은 인간의 신체에 치명상을 입힌다."
  "이봐, 동물. 나한테는 그런 버릇없는 말투를 쓰는 게 아냐."
  "당신은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가르쳐주려 하지 않았
다. 그곳에 우라늄이 있다고  말한 것은 바로 당신이다. 네가 어떻
게 되든...."
  "잠깐만,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광산 독극물학이다!"
  조니가 쏘아붙이듯이 말했다.
  킬트 스커트 차림의 병사가 식당 문턱에 서서 날카로운 시선으로
타르를 노려보고 있었다. 타르의 지상장갑차를 보고하러 온 보초였
다.
  "이봐!"
  조니가 그 보초를 큰소리로 불렀다.
  "책을 갖다주게. 영어로 쓴 책이면 다 괜찮아. 빨리 갖다주게."
  조니는 다시 타르를  보았다. 건물 안으로 달려가는 보초의 발소
리가 들려왔다. 타르는 만일의  경우, 언제라도 총을 쏠 수 있도록
컨트롤 박스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잠시 후 보초가 낡은 책  한 권을 들고 달려왔다. '로비 번스 시
집'으로, 식사를 하면서 느긋하게 그것을 읽고 있던 목사에게서 빼
앗아온 것이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조니는 즉시  그 책을 아무
페이지나 펼치고, 한 문장을 가리켰다.

  ....작고 볼품이 없어서 언제나 말뿐인, 안절부절하고 소심한 그
대, 작은....

  "자아, 여기 있다. 우라늄에 접촉하면 인간은 머리카락과 이빨이
빠져버리고, 피부에는 붉은  반점이 생긴다. 뼈는 푸석푸석 부서지
게  된다. 더구나 불과 몇 주일 사이에 이런 변화가 일어난다고 씌
어 있다."
  "흐음, 폭발은 하지 않는가?"
  "폭발에 대해서는 여기에 아무것도 씌어 있지 않다. 그러나 우라
늄 분진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생명에 치명타를 입을 게 틀림없다.
당신이 직접 읽어보면 알 것 아닌가?"
  타르는 애매한 시구절을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과연, 그렇구나 나는 모르고 있었다."
  "이제 잘 알았겠지?"
  조니는 얼른 책을 덮고는 표지를 두드렸다.
  "우연히 이  책을 발견했다. 당신은 무엇  하나 가르쳐주지 않았
다. 자야, 검출기의 반출을 허가해주겠지?"
  타르는 생각에 잠겼다.
  "너희들의 뼈가 부스러지게 된다고 했지? 이, 삼 개월 이내에."
  "아니, 이, 삼 주일 이내에."
  조니가 재빨리 그의  말을 바꿔주자 타르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
는 총을 잡고 있던 손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글쎄, 그것은  너희들끼리 열심히  궁리해서 해결해보도록 하라
구. 알겠지, 동물."
  허가를 얻지는 못했지만 의혹은 씻을 수 있었다. 그는 완전히 안
심하는 것 같았다.
  "그건 그렇다 치고,  내가 이곳에 온 것은  그런 것 때문이 아니
다."
  타르가 말했다.
  "좀더 조용한 곳으로 가자."
  조니는 보초에게  책을 돌려주면서 걱정 말라는  듯이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물론 그 병사도 싱긋이 웃어 보일 정도의 얼간이는
아니었다.
  타르는 지상장갑차 주위를  살펴보았다. 타르는 조니에게 뛰어오
라고 손짓하고는  교회 뒤쪽으로 돌아갔다.  뒤쪽의 벽돌은 창문이
하나도 없어서, 누구에게도 들킬 염려가 없는 장소였다. 타르는 커
다란 지도와 사진을 땅바닥에  펼쳐놓고 주위를 다시 한 번 살펴본
후 조니에게도 몸을 숙이라고 몸짓으로 지시했다.
  "훈련은 모두 끝냈겠지?"
  "할 수 있는 것은 전부했다."
  "예정보다 이 주일이나 빠르군."
  "문제없다.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다."
  "알았다. 그러면 채굴작업을 착수하기로 한다."
  타르는 지도를 펼쳤다. 지도는 무인정찰기에서 촬영한 영상을 합
성하여 만든 것이었다.  덴버에서부터 서쪽 로키 산맥까지 이천 평
방마일의 광대한 지역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나타나 있었다.
  "어딘지 알겠는가?"
  "안다."
  조니가 대답했다. 타르는  손톱 끝으로 협곡이 시작되는 곳을 튕
기듯이 가리켰다.
  "여기다."
  벌써부터 군침을 삼켜대는 타르의 마음이 전해져오는 것 같았다.
타르가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이듯이 말했다.
  "이 백수정 광맥에는 순금층이  들어 있다. 그것은 상상할 수 없
을정도의 희소가치가 있다. 그 광맥은 몇 년 전에 발생한 산사태로
표면에 노출되어 있다."
  타르는 상자  안에서 커다란 사진 한  장을 꺼냈다. 과연 협곡의
붉은 산 표면을 찍어놓은  것처럼 비스듬하게 흰 선이 들어가 있었
다. 이번에는 그 부분만 확대한 사진을 꺼냈다. 순금층들이 수정광
맥 속에 있는 것이  보였다. 조니가 입을 열려고 하자 타르가 손을
들어 막았다.
  "비행기를 타고 가서 자세히 살펴보고 오는 거야. 어떻게 채굴해
야 좋은지 방법을 찾아오라구. 방법에 관한 질문이라면 대답해주겠
다."
  그리고는 모든 광맥이  표시된 지도에서 황금광맥이 있는 장소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면서 말했다.
  "이곳이다. 잘 기억해두라구."
  그때 조니는 지도에는 아무런  표시도 되어 있지 않은 것을 깨달
았다. 영리한 놈이다. 지도가  다른 자의 손에 넘어가도 증거가 되
지 않도록 신경쓴  것이었다. 타르는 주저앉아서 조니가 지형을 확
인하기를 기다렸다. 조니는  이미 잘 알고 있는 산들이었지만 공중
에서 내려다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타르는  그 지도만 남겨놓
고, 다른 서류들은 모두 챙겨넣었다.
  "그것을 잃어버리면 안된다."
  타르는 부드럽게 충고하면서 일어섰다.
  "시간은 어느 정도나 있는가?"
  조니가 물었다.
  "내년 제 구십일일까지다. 육 개월 반이 남아 있다."
  "겨울이 아닌가?"
  타르는 어깨를 들어 보였다.
  "그곳은 항상 겨울이다.  겨울이 십 개월, 가을이 이 개월이니까
말이다."
  그는 웃으면서 말을 계속했다.
  "어쨌든 직접 가서 살펴보고 오라고. 일, 이 주일 조사를 해보는
거야. 그 다음에 내게로  와서 다시 검토해보자구. 이것은 너와 나
만의 비밀이다. 다른 놈에게는 절대로 말해서는 안된다."
  타르는 컨트롤 박스를 다시 한 번 조니의 눈앞에 꺼내 보이곤 돌
아섰다. 그가 타고  온 지상장갑차는 폭음을 울리면서 쏜살같이 본
부쪽으로 사라져갔다.
  두 시간 후 조니는 젊은이들과 함께 로키 산맥 상공을 날고 있었
다.
  "나는 전혀 몰랐어."
  조니의 뒤쪽에 앉아 있는 젊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말했다.
  "로비 번스가 인체에 유해한 줄은 말이야, 하, 하, 하"
  조니는 돌아보았다. 조금 전 식당 문턱에 서 있던 보초였다.
  "자네는 사이클로어를 아는가?"
  "물론."
  그는 손등에 찍혀 있는 통지자 표식을 내밀었다. 적을 속이기 위
해 조니로 가장하게 될 사람 중 하나였다.
  "이층 창문에 귀를 대고  듣고 있었지. 놈은 영어를 전혀 모르는
모양이더군?"
  "응, 우리가 가진 몇 개 안된는 비장의 카드 중 하나지."
  조니가 말했다.
  "그러나 가이거 계수관은 손에 넣지 못했다."
  "너무 신견쓸 것 없다."
  폭스 로벜트가 말했다.
  "모든 싸움에서 승리를 얻겠다는 것은 과욕이다. 그런데 저 밑에
있는 마을은 뭔가?"
  비행기 아래로 산속 여기저기에 오래된 마을들이 흩어져 있었다.
  "폐촌입니다."
  조니가 설명해주었다.
  "가본 적이 있는데  쥐새끼밖에는 없었습니다. 광맥을 모두 파낸
다음에 남은 유령의 마을입니다."
  "안타까운 일이군."
  로버트가 말했다.
  "이렇게 넓은 땅에다, 더구나  이처럼 풍부한 식량을 얻을 수 있
는 비옥한.... 저 높은 산은 뭔가?"
  "모르겠습니다."
  조니는 고개를 흔들었다.
  "지도를 봐도 소용없어요. 번호만 붙어 있으니까요. 옛날에는 이
름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것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저쪽 산을
우리마을에서는 하이피크라고만 부르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잘 들어라."
  로버트가 말했다.
  "우리가 지금 노리고 있는 것음 엄청나게 큰 사냥감이다. 신중하
게 이 협곡을 관찰해두어라."
  한잦이 다가오고 있을 때쯤 조니는 그것을 발견했다.

  (7)
  눈이 번쩍 뜨일 정도의 광경이었다. 싸늘한 대기 속에 우뚝 다가
선 절벽의 장엄한 위용은  온통 빨아들일 듯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깎아지를 듯이  서 있는 절벽 아래로는  가느다란 은빛 물고기의
지느러미처럼 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 강을 사이에 두고 얼마 떨어
지지 않은 곳에 거대한  절벽이 또 있었다. 절벽 사이를 흐르는 강
은 장구한 세월 동안 흘러내리면서 절벽을 깎아내려, 마침내 이 딱
딱한 바위에 가늘고 긴 상처자국을 깊이 남겨놓고 있었다. 깊이 천
피트, 폭  백 야드에 이르는 날카로운  상처자국을. 협곡 주위에는
장엄한 산들이  우뚝 솟아 있었다. 마치  그 산들의 품안에 안듯이
이 꼴짜기를 숨겨 놓고 있었다.
  조니는 깎아지른 듯한 두 절벽 사이로 비행해 들어갔다. 눈이 시
릴 만큼 하얗게 반짝이는 수정광맥이 햇살을 튕겨내며 암벽을 따라
비스듬히 그 자태를 드러냈다. 실제로는 몇 피트나 되는 두께일 것
이다. 저 수정층 속에 섞여서 손짓하듯 반짝이는 또 다른 빛. 그것
이 바로 타르가  자신을 이곳으로까지 끌어들인 황금덩이들이었다.
실제로 본 황금덩어리들은 사진으로 보았을 때보다 훨씬 강렬한 빛
을 토해내고  있었다. 숨겨진 절벽  속에서 반짝이는 황금덩이들은
마치 마녀의 주름진 피부 위에 걸친 목걸이 같았다.
  계곡 가장 아래쪽에 절벽 일부가 움푹 패여나간 곳이 있었다. 파
편이 모래처럼 부서져서 아래쪽에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절벽 깊
숙이 흐르는  강줄기가 있는 곳에 지진이  일어나면서  무너져내린
것이리라. 올해는 강우량이  적고 눈이 아직 내리지 않았으므로 시
야를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조니는 절벽 사이를 비껴 위
쪽으로 비행해나갔다.  그때 갑자기  돌풍이 불어닥쳤다. 오랫동안
좁은 협곡에 갇혀 있던  기류가 빠져나갈 길을 찾아서 난기류를 이
루며 절벽을  따라 상승해오고 있었다.  조니는 조종판에 붙어있는
커다란 키에 재빨리 손을 움직였다. 그는 어떻게든 기류를 타고 흔
들리는 기체를 안정시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지금은 번쩍이는 광맥
이 문제가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부딪치게 되면 그 즉시 기체 전체
를 산산조각으로 만들것만  같은 죽음의 절벽이 양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조니는 자꾸만 좁혀져오는 듯한 절벽이 양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조니는 자꾸만  좁혀져오는 듯한 절벽 사이를 난기류에 흔
들리면서도 능숙하게 조종해나갔다. 빠른 속도로 비행기를 천 피트
상승시켜 난기류로부터 조종해나갔다. 빠른 속도로 비행기를 천 피
트 상승시켜 난기류로부터 빠져나온 조니는 기체를 안정시켰다. 위
험에서 벗어난 조니는 자신의 역할을 대신할 젊은이를 불러 부조종
석에 앉게 했다.
  "이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겠나?"
  더넬딘 맥스완슨이라는 이 젊은이는 전면을 똑바로 응시한 채 조
종간을 잡았다. 텔레포테이션  조종법은 끊임없는 수정작업을 거쳐
야만 했다. 그 가운데 몇몇 부분은 미리 입력된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많은 부분은 비행할 때마다 출발 전에
새로운 프로그램을 작성하여 입력해야만 했다. 따라서 조종사는 그
러한 조정작업이 정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항상 점검해야만 했
다.

  공간 자체는 절대적이고  정지된 존재로서 고유의 시간, 에너지,
질량을 갖지 않는다. 공간은 그것을 둘러싼 물질에 대해 일정한 위
치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려면 그 물질의 궤도에 대해서 시간
과 공간의 병행을 유지해야만 한다. 우선 지구의 자전에 따른 시속
을 천 마일  정도 수정할 필요가 생기게 되고,  또 공간에 따른 초
단위의 수정도 필요하다.  태양계의 세차운동에 대해서도, 또한 태
양계 전체가 초고속으로  일정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는 이동운동
에 대해서도  주정이 필요하게 된다. 물론  우주 자체가 다른 모든
우주에 대해서 항상 변형된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복잡한 요소들이 관련되어 있어서, 보통 때
조차도 비행물체를 제어한다는  것은 상당한 주의력을 요하는 작업
이었다. 그런 만큼 이런 협곡에서의 비행은 거의 악몽과도 같은 것
이엇다. 게다가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이 모터의 관성력을 혼란시
키기 때문에  쉴새없이 좌표를 변경해야만  했다. 더넬딘은 이러한
전반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이미  교육과 훈련을 통해 잘 알고 있었
으나, 지금은 다른  곳에서의 비행과 다르다는 것을 조종판 위에서
숨가쁘게 움직이는 조니의 손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우선 모든 버
튼들이 사이클로인의 커다란  손에 알맞도록 설계되어 있었기 때문
에 그것을 누르는 데는 상당한 힘이 필요했다. 더넬딘은 협곡의 정
상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래도 황혼녘을 산책하듯 쉽게  될 것 같진 않군. 하지만 어
디 한번 해볼까."
  그는 비행기를 강하시켰다.  조니는 좌석벨트를 풀고 스코틀랜드
인에게서 소형 총을 받아들었다. 코어건이라는 것으로 작은 드릴을
발사해서 직경 2,5인치의  바윗덩어리를 채취할 수 있게 되어 있었
다. 바윗덩어리의 크기는 드릴을 뽑아내기까지의 시간에 의해서 자
유롭게 조절할 수  있었다. 광맥이나 암석의 표본채취에는 가장 적
절한 도구였다.
  "좋다, 사진촬영 개시!"
  조니의 명령이 내려졌다. 비행기에는 비디오 레코더 세 대, 표면
심도 측정기 한 대, 밀도 자동측정기 한 대가 탑재되어 있었다. 모
두 사이클로인들이  사용하던 휴대용 광맥조사기였는데 사이클로인
들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조작하기에 힘이 벅찼다. 그들은
한 사람씩 집어들고  창문에 나란히 서서 작업을 시작하였다. 조니
도 몸을 구부리고 코어건을 겨누었다.
  "더넬딘, 위험이 없는 범위 내에서 광맥에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
주게."
  "알았네."
  더넬딘이 말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다. 모두  각오는 되었는가? 자아,
간."
  비행기는 계곡의  갈라진 틈을 따라  안쪽으로 단숨에 강하했다.
더넬딘의 손가락이 조종판 위를 바쁘게 오가며 키를 두드리는 소리
가 조니의 귀에 들려왔다. 마치 톰슨 기관단총을 쏘아대는 소리 같
았다. 그러나 그 소리도 포효하는 것 같은 협곡의 바람소리가 금세
삼켜버렸다.
  급선회. 암벽이 바짝 다가왔다가 다시 멀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
다. 기체가 춤추듯  상하로 흔들렸다. 숨가쁘게 계속되는 위치수정
뒤에 구동모터의 비명소리가  계곡 아래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소
리와 뒤엉켜지며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을 내고 있었다.
  정신을 한곳으로 집중시켜야 한다. 조니는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단 한 발로 채취를 마쳐야 한다. 만약 실패했을 경우, 드릴을 다시
감아올리려면 또 그 만큼  시간이 걸린다. 결국 그 만큼 위험은 더
커지는 것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광맥이 눈앞에서 춤을 추고 잇었
다. 방아쇠를  당겼다. 슉슉 소리를  내면서 채굴관이 풀려나갔다.
드릴이 광맥에 정확히 박혔다.
  해냈다!
  드릴의 회전스위치를 켰다. 채굴관이 세찬 바람을 견뎌내지 못하
고 심하게  아래위로 흔들렸다. 갑자기  기체가 옆으로 흔들리면서
뒤쪽암벽에 거의 부딪칠 뻔했다. 드릴이 빠져서 기체에서 떨어져나
갔다. 조니는 채굴관을 감으면서 소리쳤다.
  "상승해라."
  더넬딘은 비행기를 단숨에 이천 피트나 상승시켰다. 기체의 흔들
림이 멎었다.  더넬딘은 좌석에 앉은 채  몸을 축 늘어뜨리고 있었
다. 팔과 손목이 부어오르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휴우, 악마의 마누라와 춤이라도 추는 것 같군!"
  "측정과 촬영은 제대로 됐겠지?"
  조니가 어깨 너머로  물었다. 협곡의 심도와 암석의 밀도 측정은
거의 끝나 있었다.
  그러나 촬영담당의 요청으로 다시 한 번 급강하하여 좁은 협곡의
바닥을 누비듯이 비행해갔다.  소용돌이치는 물결이 거품을 일으키
며산사태로 떨어져내린 바윗덩이들을  할켜대고 있엇따. 그러나 바
윗덩이들은 대부분 수면  밑에 있었다. 비행기는 협곡을 따라 천천
히 상승하였고,  촬영담당은 협곡의 양쪽  벽을 계속해서 촬영하며
올라갔다. 더넬딘의 손이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조종판
위를 오가고 있었다. 갑자기 모터의 회전이 비정상적으로 빨라지면
서 비명소리를 질러댔다.
  "어딘가 과열되고 있다."
  폭스 로버트가 말했다.  표고가 높은 곳을 비행하고 있는데도 조
종석 안까지 뜨거워지고 있었다. 심하게 요동치는 기체의 관성력을
유지하려고 부하를 지나치게 가했던 것이 모터에 무리를 주어 이상
이 생긴 게 틀림없었다.
  비행기는 건너편 절벽 위를 비행하고 있었다. 촬영담당자는 여전
히 분주하게  촬영을 하고 있었다. 조니는  비행 방향을 따라 절벽
구석구석까지 철저하게 살펴보았다.  비행기를 착륙시킬 만한 평탄
한  장소도 없었고, 채굴작없에 필요한 발판을 설치할 만한 곳조차
없었다. 모든 면들이 수도원의 첩탑처럼 뾰족하게 솟아 있었다. 그
는 절벽면과 직각으로 위헤서 아래로 촬영해가도록 명령했다. 절벽
은 수직이 아니었다. 아래로 내려올수록 안쪽으로 깎여 있었다. 위
헤서 뭔가를 늘어뜨리면 절벽 아래쪽에서는 절벽면과 약 이십 피트
가량 떨어지게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광석을 받는 네트는 어떻게
설치해야 한단 말인가?
  그때 조니의 시선을 끄는 곳이 있었다.
  "저곳을 찍어주게!"
  조니가 말했다. 절벽 끝에서 삼십 피트 정도 아래쪽에 절벽과 평
행을 이루며 길게 갈라진 틈이 똑똑히 보였다. 광맥이 노출된 것도
그처럼 갈라진 틈이 생기면서 암벽이 무너녔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또다시 생긴 것이었다.  이번에 또 지진이 일어난다면 광맥 전체가
골짜기 바닥으로 떨어져버릴 것이다.
  비행기는 이천 피트 고도로 상승했다.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경치
가 장관이었다.
  "정말로 저곳에서 작업할 생각인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더넬딘이 물었다. 조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채굴관에서 꺼낸 바윗덩어리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
다.
  "백수정과 금이  뒤섞여 있다. 아름답다.  이것이 타르를 미치게
만들고 말았다.  이것이 정말 우리들에게  최후의 기회를 만들어줄
수 있을까?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도대체 몇 사람의 목숨을
희생시켜야 한단 말인가?"
  "오늘은 이만하고 돌아가자."
  모두들 침묵을 지킨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 비행기는 빠른 속도
로 기지를 향하고 있었다.

  (8)조니는 자꾸만 솟구쳐오르는  긴장을 억누르며 태연한 몸짓으
로 윈드스프리터를 타고 채굴현장 부근을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부
터 하려는 일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유유자적하게 말 위
에 앉아 있는 조니의 모습에서는 그런 기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
다. 그날은 반년에 한  번씩 있는, 사이클로 모성에 전송하는 날이
었다. 광산노동자들은 모두  투덜거리면서 쫓기듯이 작업장을 뛰어
다니고 있었다.
  조니는 광산이 내려다보이는 나무 위에 비디오 카메라를 몰래 설
치할 계획이었다. 카메라의  리모트 컨트롤 스위치는 허리에 찬 자
루 속에 들어 있었다. 카메라에는 장시간 사용할 수 있는 디스크를
넣어두었지만 스위치를 계속 켜둘 수는 없었다. 가능한 한 많은 자
료들을 수집해놓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었다.
  폭스 로버트에게 말했다면 반대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틀
림없는 정찰행동이었다. 물론  타르에게 카메라나 리모트 컨트롤이
발각된다면 무사히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었다. 조니는 타르의 '일,
이 주일에 한  번'이라는 애매한 표현을 역이용하여 그에게 보고서
를 제출하는 날짜를 지연시켜오고 있었다. 오늘이 사이클로별에 전
송하는 날이라는 것은 카가 떠벌리는 말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다.
  카가 찾아온 것은  조니가 수송기의 모터를 점검해달라고 요구했
기 때문이었다. 철저히 점검할 필요성이 있었다. 모터에 이상이 있
으면 수리를 하고, 수리할 수 없을 정도의 상태라면 나름대로 방법
을 찾아봐야  할 것이었다. 카는  방위기지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을
작업관리자지 수리공이  아니라고 투덜거렸다.  타르의 명령이었기
때문에 거역할 수가 없었을 뿐이었다. 그런 카의 불만도 조니가 금
반지를 건네주자 금세 가라앉았다. 금반지는 천 년 전에 죽은 시체
의 풍화된 뼈에서 빼온 것이었다.
  "왜 이것을 내게 주는 거지?"
  카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선물이다. 뭐 별거 아냐."
  조니가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값비싼 것이었다.  카의 한 달치
급료에 맞먹는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카는 이빨로 살며시 반지를
깨물어보았다. 순금이었다.
  "내게 뭔가 부탁할 게 있는 모양이지."
  "아니, 그렇지 않다."
  조니가 말했다.
  "두 개 가지고 있어서 한 개 준 것뿐이야. 우리는 수버니어 동지
니까."
  수버니어 동지란 같은  낙반이나 싸움에서 서로를 도와준 동료를
일컫는 말이었다. 사이클로인 광부들의 속어였다.
  "물론 그렇지."
  카가 대답했다.
  "하긴 뭐, 죽여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놈이 있긴 하지만...."
  조니의 말에 카는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멋진 농담이었다. 그
는 반지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모터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삼십여
분 후 일을 마친 그는 건물의 그늘에 앉아 있는 조니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모터는 별로 이상이  없다. 뜨거워졌었다면 지나치게 부하를 많
이 걸었기 때문이야.  그러나 조심하라구. 이번에도 그렇게 부하를
많이 주면 연기를 낼지도 모르니까."
  조니가 카에게 고맙다고 말하자 카는 허리를 굽혀 건물의 그늘로
들어왔다. 그리고 두 사람은 얘기를 나누었다. 아니, 대부분 카 혼
자서 계속 떠들어댔다. 일정에 쫓겨서 큰일이라고 그가 말했을 때,
조니는 재빨리 시치미를 떼고 그의 이야기에 끼여들었다.
  "내년 제 구십일일에 무슨 일이 있나?"
  "어떻게 그걸 알았지?"
  "채굴현장에 게시되어 있는 것을 보았지."
  카는 목덜미 근처의 기름때가 묻은 털을 긁으면서 말했다.
  "거기엔 정확하게 씌어 있을  텐데. 제 구십이일을 잘못 알고 있
는 걸 거야. 반년마다 한 번 씩 사이클로별에 전송하는 날이야. 이
십칠일 후에도 있다. 정말 골치아파 죽겠어."
  "아니 왜? 평소 때와 다른 일이라도 있나?"
  "네가 우리 안에 갇혀  있을 때 모성에 전송하는 모습을 두세 번
본 적이 있을 거야."
  아마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무렵에는 모성전송 따위를
알수가 없었다. 조니가 의아한 얼굴로 카를 쳐다보았다.
  "저속전송이라구."
  카가 말했다.
  "광석은 보내지 않고 인원수송만 하는 거야. 죽은 녀석들도 함께
보내는 거야."
  "시체를?"
  "그래, 죽은 사이클로인들을 본국으로 보내는 거야. 급료지불 관
계로 철저하게 확인해두는  것 같아. 그리고 다른 종족들에게 보이
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겠지. 회사의  규칙이니까 어쩔 수 없지만
정말 귀찮은 일이라구.  관 속에 시체를 넣어 시체수용실에 보관하
지.... 그렇군, 조니, 너도 시체실을 본 적이 있지? 내가 어쩌다가
이런 얘기를 너한테 하고 있는 거지?"
  "일하고 있는 것보다 재미있으니까."
  조니의 말에 카가 큰소리로 웃었다.
  "과연, 그것도  말이 된다. 그런데 저속전송이란  것은 삼 분 간
빌드 업하고 나서 보내는  것을 말하는 거야. 반년에 한 번씩 이런
방법으로 본국에서 인원을 보내온다구. 그런 후 두 시간 있다가 본
국과 연락을 취하여  귀환자와 시체를 이곳에서 보낸다. 너도 통상
적인 출하에 대해서는 알고  있을 거야. 몇 번이나 말을 타고 얼쩡
거렸으니까. 통상적인 출하방법은 급한 문서나 광석을 보내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생물을 그런 식으로 보냈다가는 갈기갈기 찢겨져 날
아가버린다구. 그래서 저속전송을 하는 거야. 시체를 보낼 때도 이
런 방법을 쓰고 있지.  만일  네가 사이클로별에 가고 싶다고 해도
광석과 함께라면 피하는 것이 좋을 거야!"
  카는 그 광경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혼자 신이 나서 웃음을 터뜨
렸다. 공기를  호흡하고, 가벼운 중력에 익숙해  있는 인간 따위는
사이클로별에 도착하는  즉시 눈 깜짝할  사이에 죽어버릴 것이다.
조니도 함께 웃었다. 사이클로별에 가다니, 내가 미쳤냐.
  "시체는 정말로 사이클로별에 묻히는 건가?"
  "물론이지. 이름과 계급,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돌에 새겨서 말
이다. 고용계약에 들어가  있다구. 하기야 공동묘지는 거리에서 멀
리 떨어진, 광석찌꺼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곳에 있어서 아무
도 찾아가지 않지만  말야. 어쨌든 고용계약에 있으니까 그렇게 하
는 거야. 바보 같은 짓이지."
  조니도 동의했다. 카는 기분이 좋은지 시종 실실 웃으며 몸을 일
으켰다.
  "누구를 죽이고 싶은지 가까운 시일 내에 말해달라구."
  카는 큰소리로  웃고는 고물트럭을 타고  돌아갔다. 조니가 머리
위쪽에 있는 창을 쳐다보고 소리쳤다.
  "꺼주세요."
  폭스 로버트가 그들이 대화하는 것을 녹음하고 있었다.
  "알았어."
  목소리가 들리고 로버트가 몸을 내밀어 조니를 내려다보았다.
  "타르가 어떤 방법으로 사이클로별에 금을 보낼지 알아냈습니다.
관 속에 넣어보낼 겁니다."
  폭스 로버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모든 계획을 알았다. 이쪽에서 관을 만들어 보낸 후
본국에 돌아가서 다시  파내려는 속셈이겠지. 아무도 없는 칠흙 같
은 밤에 사이클로별의 땅속에서 말이야. 정말 엉뚱한 흡혈귀로군!"
  조니는 윈드스프리터를 타고  출하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  저속전송에 대한  자료들을 수집해놓을 계획이었
다.
  지구에 오는 전송편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타르는 쿵쿵
발소리를 내면서 이것저것  지시하고 있었다. 모성에서 전송되어온
사이클로인들을 수속하기 위한 사무직원과 의료진들이 이미 준비를
끝내고 대기하고 있었다. 타르는 전송해온 인원수가 상당히 늘어난
것을 알고 있었다.  넘프가 증원요청을 했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노동자가 한  명씩 늘어날 때마다 그만큼  자기 주머니에 들어가는
몫도 늘어나는 것은 당연했다.
  기술자들이 플랫롬 전송장치의  접속을 점검하고 있었다. 한순간
하얀 빛이 플랫폼을  가득 메웠다. 조니는 윈드스프리터를 타고 경
사진 언덕을 올라가면서  나무에 숨겨놓은 비디오 레코더를 작동시
켰다.
  갑자기 관리돔에 매달린  적색 등이 빛나면서 경보음이 울려퍼졌
다. 고출력 스피커가 왕왕거리며 울려댔다.
  "물러나라! 물러나라!"
  장치들마다 굉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조니는 사이클로이용 손목
시계를 보면서 시간을  체크해두었다. 굉음이 차츰 커지고 지면 전
체가 진동을 일으키자 나무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공중에서는 방
전불꽃이 튀고 있었다.  전 직원이 플랫폼에서 물러나 대피하고 있
었다. 기계와  모터의 모든 스위치가 끊어졌다.  귀에 들리는 것은
계속 커져가는 굉음뿐이었다.  한순간 돔 위에서 거대한 자주색 빛
이 깜빡였다. 플랫폼 부근이  열을 받은 것처럼 흔들렸다. 그와 함
게 삼백 명  가량의 사이클로인들이 순식간에 출현했다. 각자 짐을
들고 머리에는 호흡가스 헬멧을 쓴 채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뿔뿔이
서 있었다. 그러자 하얀 불빛이 깜빡이기 시작하면서 '좌표유지'라
고 확성기가 외쳐댔다.  출하담당 직원들이 요란스럽게 플랫폼으로
모여들었다. 관리직원이  도착한 노동자들을  플랫폼에서 내려오게
하여 일렬로 정렬시켰다.
  타르는 입국관리 직원으로부터  리스트를 받아들고, 한사람 한사
람씩 제복을 더듬어  무기나 밀수품을 조사했ㄷ. 탐지기를 잡은 손
이 그들의  소지품들 위를 빠르게  움직였다. 이따금 반입금지품이
발견되면 옆으로 내던졌다. 그것들은 산더미처럼 쌓여갔다. 맹렬한
기세로 일을 처리하는 타르의 모습은 마치 거대한 탱크가 행렬들을
깔아뭉개고 물건들을 튕겨내면서 전진하는 것 같았다. 인사담당 직
원이 검사가 끝난  인원들에게 수송기나 기지의 숙박시설을 지정해
주고 있었다. 도착한  노동자들은 소홀한 취급에도 익숙해 있는 듯
무관심해 보였다.  그들은 타르가 소지품을  압수해도 불평 한마디
없었다. 또 인사담당  직원의 불공평한 배당에도 항의 한마디 하지
않았다.
  새로 온 인원 및  소지품 점검을 3분의 2정도 진행해나가던 타르
는 갑자기 묘한 표정을  지으며 하던 일을 멈추었다. 그는 한 사이
클로인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뒤쪽으로 내려가
더니 손을 흔들어  나머지 사람들을 그냥 통과하도록 손짓했다. 그
는 도중에서 검사를 중지하고 전원을 그냥 보내버렸다.
  다시 확성기 소리가  울려퍼졌다. '전송 제2진, 현 좌표유지' 돔
위의 하얀 불빛이  깜빡거리기 시작하자 수송기기가 차례차례 이륙
했다.
  좌표유지에  대한 간섭작용을 방지하는 것이라는 것을 조니는 깨
달을 수  있었다. 그가 얻은 텔레포테이션에  대한 지식 중 하나는
전송하는 동안에는 모터를 돌려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모터를 돌
리면 큰 사고가  일어나게 되어 있었다. 그것은 텔레포테이션 대신
수송기를 사용하고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작은 모터라면 상
관없었다. 그러나  광석을 운반하는 텔레포테이션  수송은 별과 별
사이, 또는 우주와 우주 사이로 한정되어 있었다. 전송장치가 작동
하는 중에는 그가까이에서 한 대의 모터만 돌아가도 부분적으로 공
간에 혼란이 생겨서 전송은 무효가 되었다.
  지금 조니의 눈앞에는 사이클로별과 지구 사이에 연결된 점이 보
이는 듯했다. 전송  제2진은 좌표를 기계장치에 계속 입력시킴으로
써 유지되었다. 다음의 전송에 대비하려면 지구와 사이클로별 사이
의 연결을 유지해야 했다. 그것을 위해 관제탑 안에서 컨트롤 패널
을 두드리고 있는 전원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조니의 관심
은 이번에 실시하는 반송작업에 있었다.
  한참을 기다린 뒤  조니는 시계를 보고 한  시간 십삼 분이 지난
것을 확인했다. 돔 위에 있는 하양 불빛이 지금보다 짧은 간격으로
강렬하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확성기가 고함을 질러댔다.
  "사이클로성에 대한 반송준비 개시!"
  저속전송은 통상적인 것보다는 훨씬 많은 전력을 사용하는 것 같
았다. 굵은 예비전선들이 높은 동력탑 끝에 들어와 있었다. 아직도
공기중에 웅웅거리는 희미한 신음소리가 남아 있었다.
  컨베이어 벨트에 딸린  검출기에는 담당자가 대기하고 있지 않았
으며 광석관계 기계들은  전부 정지되어 있었다. 조니는 주머니 속
에 광맥에서 채집한  샘플을 가지고 있었다. 광석분진기가 있는 곳
까지 숨겨가지고 가서 그  광석에 금과 함께 우라늄이 섞여 있는지
조사해보고 싶었지만 기계가 작동되지 않아서 어쩔 수가 없었다.
  타르는 발소리를 내면서 시체수용실 쪽으로 다가갔다. 플랫폼 주
위에서는 사이클로인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확성기가 소리
쳤다. '전송 제2진, 현 좌표유지', 다시 사이클롭려과 연결하고 있
었다.
  조니는 까마득히  먼 곳, 우주의 끝에  있는 그 별을 마음속에서
그려보았다. 이 우주에  달라붙어서 끊임없이 고통을 주고 있는 푸
르고 거대한 종기 같은  별. 조니의 눈앞에는 그 별의 일부가 지구
와 연결되어 나타나고  있었다. 사이클로별, 자신이 기생하는 생물
보다 더  커져버린 기생충, 탐욕과  비정으로 '잔혹'이라는 말조차
모르고 있는 삭막한 별....
  시체수용실의 문을 열고  있는 타르가 보였다. 소형 리프트가 달
린 지게차들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타르가 리스트를 손에 들고 그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첫번째 트럭이 나왔다. 타르가 관의 번호를
확인하고 리스트와 대조했다.  그것이 끝나자 트럭은 두 대의 리프
트 끝에 거대한 관을 실은 채 플랫폼으로 달려가서 쿵 하고 내려놓
았다. 관이 심하게 흔들렸다.  뒤이어 두 대째의 지게차가 관을 싣
고 시체수용실에서 나타났다. 타르가 번호를 체크하고 리프트를 확
인했다. 관은 또다시 플랫폼에 내던져졌다. 관은 모두 열여섯 개였
다. 관들은 플랫폼의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본국으로 귀환할 사이클로인 노동자들이 트럭의 짐칸에서 자신의
짐을 챙겨들고  내려와 시체수용실에서 나오는 타르  앞에 한 줄로
늘어섰다. 타르는 그들의  옷과 소지품을 점검했다. 귀환자는 열두
명이었다. 점검이 끝나자 그들은 든 채 트럭을 타고 플랫폼으로 이
동했다.
  흰색  불빛이 깜빡거리기를  중지하고 희미한  빛으로 변해갔다.
'전송 제1진, 좌표도착'이라는 확성기 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모터를 정지하라!'
  모성으로 귀환하는 열두 명의 사이클로인들은 서 있거나 짐 위에
앉아서 전송될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열여섯 개의 관들은 그들
의 짐 사이에  놓여 있었다. 누구 하나  손을 흔드는 자도 없었고,
작별의 인사를  나누는 자도 없다는 것을  조니는 그제서야 깨달았
다. 본국으로 돌아간다는 것 자체가 이곳에 있는 사이클로인들에게
는 전혀 관심이 없는  일인 것 같았다. 아니면 귀환자에 대해서 질
투심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돔 위의 적색  등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경보가 울리면서 확성기
가 소리쳤다.
  '물러나라! 물러나라!'
  기계장치들이 굉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조니는 손목시계를 보
았다. 나뭇잎이 떨리면서 지면이 진동했다. 기계장치에서 들려오는
굉음은 차츰  커져갔다. 이 분 경과.  자주색 불이 켜졌다. 플랫폼
위쪽이 안개 같은 흰 연기로 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순간적으로 귀
환자와 관들이 사라졌다. 전송장치의 배선이 붕붕 하고 신음소리를
내면서 가늘게 진동하다가  가라앉았다. 뒤이어 그때까지와는 다른
경보가 울렸다. 흰색 불빛이 번쩍이면서 확성기가 외쳐댔다.
  "전송완료, 모터사용 가능. 정상활동으로 복귀!"
  타르는 시체수용실을 자물쇠로  잠그고, 발소리를 내면서 언덕을
올라왔다. 조니는 비디오  레코더의 스위치를 끄고 걷기 시작했다.
타르는 무엇엔가 정신이 팔려 있는 것 같았지만, 조니를 보고는 그
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 근처를 얼쩡거리지 말랬잖아!"
  타르가 소리쳤다. 조니는 윈드스프리터의 몸을 타르 쪽으로 돌렸
다. 타르가 낮게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두 번 다시 이곳에 접근하지 말라구, 빨리 가."
  "여자들은 어떻게 하고?"
  "내가 뒷바라지를 해주겠다, 알겠지."
  "보고할 게 있어서 왔는데."
  "시끄러워."
  타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녀석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일
까. 일부러 말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몸을 숙인 채로 귓속말하듯이
말을 하다니,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내일 네가 있는  곳으로 가겠다. 그때 보고해라. 이곳에는 절대
로 오지 말아라!"
  "나는 다만...."
  "네 차를 타고 방위기지로 돌아가라. 지금 당장."
  타르는 조니가 사라질 때가지 그자리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타르의 태도가  갑자기 돌변했기 때문에 그날  밤 조니는 위험을
무릅쓰고 나무 위에 숨겨놓은 비디오 레코더를 회수하러 가지 않으
면 안되었다. 내열복을 입었으므로 발각될 염려는 없었다.
  도대체 타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조니는 불길한 예감
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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