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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L. 론 허버드] BE 2

by Casey,Riley 2023.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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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 권
  하늘과 녹색사이

  제 8 부
  저 악마는 지금 미쳐가고 있어

  (1)
  "그곳의 금을 파내려면  고도로 숙련된 기술과 어떠한 악조건 속
에서도 대처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채굴전문가가 아니고서는 불
가능하다."
  조니가 말했다.
  조니는 지난번 정기 텔레포테이션 이후 무언가에 골똘히 빠져 있
는 듯한 타르 보안부장의 긴장된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오늘의 만
남도 예정된 날짜보다 이틀이나 늦어졌다. 두 사람은 방위기지에서
남쪽으로 일 마일 가량 떨어져 있는 폐광의 지하 오십 피트의 갱도
에 있었다.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고,  받침목들이 대부분 썩어
있어서 낙반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장소였다.
  그날 밤, 타르는 남의 눈을 의식한 탓인지 기지에서 조금 떨어진
골짜기의 으슥한 덤불 속에 시상차를 세우고, 내열복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걸어서 찾아왔다. 보초는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갑자
기 나타난 타르를 보고 놀라서 하마터면 발푸할 뻔했다. 그는 한마
디도 하지  않고 보초에게 조니를  불러오도록 몸짓으로 지시했다.
조니가 나오자 타르는 앞장서서 이 폐광까지 걸어왔고, 도착하자마
자 주위를 탐지기로  철저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타르는 현재 진행
중인 금광채굴 작업을 의한 준비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
다. 조니가 준비해온  금광에 대한 녹화필름을 슬라이드를 통해 보
여주었을 때도, 과열된 모터와 난기류에 대해 얘기를 해도, 알아들
을 수 없는 입속말만  두세 마디 웅얼웅얼거렸을 뿐, 그 이상의 반
응은 보이지 않았다.

  타르는 그  사나이를 보는 순간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당혹감을
느꼈다. 이제 막 전송되어온 사이클로인 노동자들의 검문검색을 거
의 3분의 2가량  처리해나가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전송용 헬멧을  쓰고 있었으므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틀림없이 그놈이었다. 분명히 제이드 녀석이었다.
  타르는 전에 그를 본  적이 있었다. 학교에 다니던 때였다. 내용
조차 알  수 없는 범죄에 휘말려든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제이드가
수사를 하러 왔었다.
  제이드가 회사직원이 아닌  것만은 확실했다. 사이클로인들이 가
장두려워하는 IBI, 즉 제국 수사국의 수사요원이었다. 아무리 생각
해도 절대로 그를 잘못 봤을 리가 없었다. 둥근 턱, 빠져나간 왼쪽
앞이빨, 핏기 없는 입술과 양미간, 두드러기가 난 팔. 그것은 틀림
없는 제이드였다.
  그 순간의 충격에 당황한  타르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가 그
만 검문검색을 계속해야  하는 것조차 잊어버려 나머지 사이클로인
들에 대해서는 검문  없이 전원 통과시켜버린 것이었다. 그때 제이
드는 의심  없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짓고 태연한 척했지만
IBI의 수사요원이 그것을 모르고 있을 리가 없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놈이 이곳에 온 것일까.
  입국서류에는 스니트라는 가명을 쓰고 있었으며 직업도 일반노동
자라고 위장되어 있었다. 그가 가명을 쓰고 있다는 것은 곧 스파이
활동을 의미했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넘프 혹성장관의 횡령건일
까? 아니면....  아니면 동물건이나  금광건인지도 모른다. 타르는
생각만해도 온몸이 떨렸다.
  지금 당장  레이저 광선총으로  동물들을 기화시켜버리고 차량과
수송기들을 모두  원래대로 해놓자. 모든  인원과 책임을 넘프에게
돌려놓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우겨
대자. 그러나 궁여지책의  하나일 뿐이었다 타르는 이틀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 제이드가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분명
히 접근해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타르는 가능한 한
그가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기로 마음먹었다.
  타르의 초조함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듯 제이드는 배속된 광산에
서 일반노동자들과 섞여  매일같이 똑같은 일상을 반복할 뿐, 타르
주위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의 주변에 감시용 소형 카
메라를 설치할 수도 없었다. 제이드라면 금세 찾아낼 것이었다. 그
와 함께일하는 광산노동자들에게  제이드가 어떤 것들에 관심을 기
울이고 있는지를 알아볼 수도 있었지만, 그것 역시 위험했다. 그런
짓을 했다가는 즉각 제이드의 정보망에 걸려들고 말 것이다.
  그의 주변에서 아무런 단서도  찾아낼 수 없는 만큼 타르 자신의
행동 범위 네에서도 아무런 변화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 감시용 카
메라가 설치되어 있지도 않았고, 탐지기로 조사해봤지만 리모트 컨
트롤의 전파가 그의  주변을 향해서 발사된 흔적도 없었다. 타르는
한시라도 빨라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지
만 도리가 없었다. 우선 본국으로 긴급전송되는 문서상자를 유의하
여 관찰할 수밖에  없었다. 제이드가 보고서를 보낼 것이라는 추측
에서였다.

  폐광 지하의 깊숙한 곳에  앉아서 스크린을 보고 있던 타르의 시
선은 조금씩 광맥의 영상으로 옮겨져갔다. 역시 작업하기엔 난관이
산적해 있었다. 분명히 어려울 것 같았다.
  "바람이 어쨌다고?"
  스크린에서 눈을 뗀 타르는 조니를 향하여 몸을 돌렸다.
  "바람이 워낙  강해서 모터가 과열돼버린다. 비행작업대만으로는
채굴작업을 하는 데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보안부장이 되기 전에  오랫동안 광산기술자로 일했던 타르는 이
미 그러한 난관들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들을 마련해놓고 있었다.
  "건너편 벽에 긴 버팀기둥을  박는 거야. 그 위에 작업대를 설치
하면 된다. 약간 위험히지만 잘될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발판이 될 만한 장소가 필요하다."
  "폭파해서 평평한 장소를 만들면 되잖아."
  조니는 슬라이드를  다시 작동시켜  눈여겨보았던 광맥의 갈라진
틈을 스크린에 확대시켰다. 자칫 광맥 전체가 떨어져나가 까마득한
골짜기 밑으로 처막혀버릴  위험성이 있다는 사실을 스크린은 명백
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폭파는 무리다."
  "드릴이 있잖아. 드릴로  깎아내면 평평한 장소를 만들 수 있다.
힘들겠지만 전체가 무너져내릴 위험은 없을 것이다. 절벽의 뒤쪽으
로 돌아들어가서 갈라져나간 틈 쪽으로 드릴을 박아넣는 것이다."
  그렇게 말은 하고 있었지만  타르의 마음은 다시 이 문제에서 서
서히 멀어져가고  있었다. 타르의 심드렁한  반응에서 조니는 그가
무엇인가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조니는 아찔
해졌다. 만일  계획이 중단된다면.... 그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타르는  자신의 음모가 발각될까봐  남아 있는 인간들을
모두 기화시킬 것이었다.
  조니는 타르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야만 했다. 금광
의 매력을 부추겨 다른  곳에 집중된 그의 관심을 다시 끌어내야만
했던 것이다.
  "그 방법이라면 잘될지도 모르지."
  "뭐라고?"
  타르는 무관심했다.
  "갈라진 틈새 뒤쪽으로 돌아가서 드릴로 박는 방법 말이야. 그렇
게 하면 기계에 강풍이 직접 불어닥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뭐라고? 아아, 그 일 말이군. 그래, 그 말이 맞다."
  타르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의  눈에 비치고 있던 것은
스크린의 영상이 아니라 제이드의 얼굴, 그것밖에 없었다.
  "아직 원석을 보지 못했지?"
  조니는 손전등을 기울이고 주머니에서 돌조각을 꺼냈다. 직경 일
인치, 길이 삼 인치, 순백의 수정과 금이 섞인 황금원석이었다. 조
니가 서서히 좌우로 둘려보아지 그것은 번쩍번쩍 빛을 발했다.
  그 찬란한 빛에  타르의 눈빛이 달라졌다. 얼마나 아름다운 광채
인가! 원석덩어리를 받아든 그의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자꾸만 벅
차오르는 흥분을 억누르며 손톱으로 살그머니 눌렀다. 금에 손톱자
국이 찍혔다. 분명히 순금이었다. 타르는 어린애를 달래듯 그 원석
덩어리를 천천히 어루만졌다. 타르의 마음은 그 황금덩어리와 함께
사이클로성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부와 권력을 장악하고 호화주택
에 살면서  즐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언제 어느 곳에
가더라도 모두 존경스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들이 그려지고 있
었다.
  "아름답군!"
  타르는 원석의 황금빛에 도취된 듯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참으로 아름답다.... 그렇지?"
  타르가 황금덩이에 넋을  앓고 있는 동안, 조니는 잠자코 기다렸
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이제 곧 그 황금덩어리들이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될 거야."
  타르가 몸을 일으켰다.  그의 움직임을 따라 좁은 갱도에 피어오
른 먼지가 전등빛 속에서 어지럽게 소용돌이쳤다. 황금원석은 여전
히 그의 손안에 소중하게 쥐어져 있었다.
  "그건 가지고 가도 좋다."
  조니가 자신있는 말투로 말했다.
  "아니다, 지금은 필요없다. 네가 잘 보관해둬라.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말이야."
  "알겠다. 어쨌든 금광채굴 작업에 착수하기로 하겠다."
  "음, 좋다."
  갱도 입구까지 걸어나와 헤어질 때 타르는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앞으로 무선연락은 절대로 하지 말아라. 본부 상공의 비행도 중
지하고, 산맥지대의 비행도 동쪽 측면만으로 제한하여 경사면을 따
라 낮게  비행해라. 기지에서 나오거나  들어갈 때도 저공비행으로
해야 한다.  캠프를 산 근처로 옮기고,  인원교대도 그곳에서 내가
주겠다."
  "하지만 그 전에 한 번 만이라도 만나서 당분간 만나러 갈 수 없
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왜?"
  "그렇지 않으면 걱정할 것이다."
  말을 마친  순간 조니는 타르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떠들어대면서 소동을 부릴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알겠다. 이번 한 번만  허가해주겠다. 단 밤에 가야 하고, 지금
내가 주는 내열복을 입고  가라. 내 숙소가 어딘지는 알고 있겠지?
올때는 약한 불빛으로 세 번 신호해라."
  "기지까지 데려올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안된다. 그것은 절대로 안된다."
  타르는 주머니 안에서 리모트 컨트롤을 꺼내 위협하듯 가볍게 두
드렸다.
  "너는 아직도 내게 필요하니까."
  타르는 발소리만을  남기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타르는 분명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런 상태라면 타르가 언제 마음을 바꿀
는지 모른다. 조니는 불안한 마음으로 기지 쪽을 향하였다.

  (2)
  폭스 로버트,  적을 속이기 위해 자신의  역할을 대신할 세 명의
젊은이, 그리고 작업반의  리더들을 데리고 조니는 광맥이 있는 협
곡 상공을 높이 비행하고 있었다. 공기는 수정처럼 맑았고, 웅장한
산들이 장엄하게  펼쳐져 있었다. 비행목적은  문제의 갈라진 틈새
부근에서 착륙가능한 장소를 찾는 일이었다.
  "정말 골치아픈 일이군."
  출발할 때부터 뭔가에 골똘해 있던 폭스 로버트가 중얼거렸다.
  "정말 지독한 지형이지요?"
  발판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고 있던 조니가 아득하게 내
려다보이는 계곡들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라 타르의  일이라구. 우리들은 반드시
성공해야 하고,  한편으로는 채굴작업을 해야만  하는 처지가 아닌
가. 그렇다고  놈의 계획이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 가망이 전혀
없다면 타르는 우리들을 몰살시켜버리고 보장도 없고, 가망이 전혀
없다면 타르는  우리들을 몰살시켜버리고 말  것이다. 놈의 계획을
성공시켜주고 죽을  바에는 차라리 떳떳하게 싸우다  죽는 편이 낫
다. 안 그런가?"
  "아직은 시간은 있습니다."
  조니는 비행기의 방향을 바꿔 절벽으로 기수를 돌렸다.
  "시간이라고? 시간 따위는  백파이프에 불어넣은 바람처럼 눈 깜
짝할 사이에 사라져버리는  것이라구. 어쨌든 제구십일일까지 끝내
지 못하면 우리는 끝장이니까."
  이 부근에 평평한  장소가 있을 턱이 없었다. 절벽 가장자리에서
부터 계곡이 이어지는  곳은 온통 깎아지른 듯한 바위뿐이었다. 알
프스산맥을 축소해놓은 듯했다. 그들이 타고 있는 수송기를 착륙시
킬 만한 장소조차 찾을 수 없었다. 조니는 결심했다.
  "좋아.... 나하고 교대해주게, 더넬딘."
  조니가 더넬딘을 조종석으로 옮겨 앉게 했다. 더넬딘이 조종석에
앉은 것을 확인한 조니는 뒷좌석으로 옮겨가 로프 모양의 폭약코일
을 집어들고 강하용 밴드와 로프를 몸에 단단히 매었다.
  "저 지점의 십 피트  가량 위에서 정지해줘. 내려가서 폭약을 장
치하고 오겠다."
  "안돼!"
  폭스 로버트가  소리치며 조니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반장인
데이비드 맥킨에게 명령했다.
  "데이비드, 그것을  빼앗게, 빨리! 당신은 무모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맥타일러."
  이미 결심을 굳힌 조니를 막을 수는 없었다.
  "이 부근의  산들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습니
다."
  폭스 로버트는 조니의 눈빛  속에 담긴 확고한 결심에 더이상 만
류하지 못했다.
  "당신은 하는 짓이 좀 거칠기는 하지만 괜찮아. 좋은 친구야, 맥
타일러."
  더낼딘이 비행기를 목표지점 위에 착륙시키자, 조니는 밖으로 향
하는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강하할 준비를 했다. 절벽을 휘돌아온
세찬 바람이 비행기를  조금씩 위아래로 흔들리게 하고 있었다. 깎
아지른 암벽이 비행기가  흔들릴 때마다 눈앞까지 다가왔다가 멀어
지고, 멀어졌다가 다가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조니는 다시 한  번 강하로프를 확인한 수  세찬 바람 속에 몸을
날렸다. 온몸을 갈기갈기 찢을 듯이 거센 바람이 휘몰아쳐왔다. 조
니는 침착하려고 애쓰며 발판을 구축할 곳을 찾았다. 발 하나 정도
디딜만한 바위를  가까스로 찾아낸 조니는 그  바위 위에 내려서자
로프를 늦췄다. 폭약의 성능이 지나치면 벼랑이 쪼개져내리거나 벼
랑 한  부분이 한꺼번에 무너져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조니는
마땅한 곳을 찾다가 끝이 뾰족한 바위를 발견했다. 로프 모양의 폭
약을 바위 맨밑에  수평으로 돌려매고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손을
흔들어 신호를 보내자 갑자기 로프가 팽팽히 당겨지면서 조니의 몸
은 공중으로 솟구치듯  들어올려졌다. 그와 함께 바람이 공중에 매
달린 조니의 몸을 휘감아버렸다. 조니의 몸은 그 바람과 함께 허공
에서 빙글빙글 맴돌았다.
  도화선은 맹렬하게 타들어갔고 강렬한 섬광과 함께 온 산맥을 뒤
흔들 듯한 폭발음이  계곡 사이로 메아리쳤다. 튀어오르는 돌의 파
편과 흙먼지 사이를  헤치며 조니는 다시 강하하였다. 폭발의 충격
으로 흔들리는  바위에 스파이크 건으로  구멍을 뚫고, 수상기에서
내려보낸 다른  로프를 구멍에 묶었다.  조니의 판단이 정확하다면
바위는 이것으로 떨어져나갈 것이었다. 그의 몸이 다시 끌어올려졌
다. 수송기의 모터가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드디어 바위가 움직였다. 조니는 자신을 들어올리고 있는 로프를
내리게 하여 클리퍼로  바위를 매달고 있던 로프를 끊어냈다. 그러
자 절단된 커다란 바위는  협곡의 암벽에 여거 차례 부딪치면서 골
짜기롤 떨어져내렸다. 비로소 벼랑 위에는 평평한 장소가 만들어졌
다. 조니는 쉬지 않았다. 수송기의 로프에 다시 매달린 채 절벽 단
면에 발판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한 시간 정도 흐르자
벼랑 가장자리에서 이백 피트쯤  내려간 곳에 직경 오십 피트 정도
의 넓고 평평한 장소가 만들어졌다.
  더넬딘이 조심스럽게  그곳에 수송기를  착륙시켰다. 작업반장인
데이버드가 서 있을 수도  없이 휘몰아치는 광풍 때문에 기어서 벼
랑끝에서 안쪽으로 심십 피트  들어간 곳에 있는 암벽의 갈라진 틈
새를 살펴보러 갔다. 이방인들의 침입을 거부하기라고 하듯 바람을
더욱 매섭게  불어왔다. 데이비드는 재촉기를  갈라진 틈새 안으로
내려보냈다. 만일  균열이 넓어지거나 이상이  발생할 경우 체크될
것이었다.
  조니는 벼랑의 가장자리에 엎드렸다. 토르에게 발꿈치를 잡게 하
여 광맥을 살펴보려고  했으나 보이지 않았다. 벼랑의 벽면은 수직
이 아니었던 것이다. 조니는 수송기로 돌아왔다.
  "역시 맥타일러답군."
  폭스 로버트는 이번 성과에 매우 흡족해 했다.
  그때 하루에 한  번씩 순회하는 무인정찰기 소리가 들려왔다. 그
들은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상황에 따라 조
니의 열학을 대신할 세 명의 젊은이들은 서둘러 비행기로 뛰어들어
가 모습을 감추었고, 조니만이 남아 있었다. 무인정찰기가 머리 위
를 지나며 내지르는 날카로운 굉음으로 온몸이 흔들렸다. 정찰기가
멀어져갔다. 조니는 다시 모두 집합시겼다.
  "이곳에 보급캠프를 만들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추락방지용
보호철책을 세우고, 작업캠프를 만드는 일이다."
  모두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은 비행기  두 대를 이용, 한  대에는 자재와 기재를 싣고,
또 한 대에는 비행기둥을 박는 기계들을 싣는다. 광맥 밑에 기둥을
박고, 그 위에 채굴용 작업대를 설치하기로 한다. 지금 이자리에서
필요한 기재들을 검토해주기  바란다. 구명밧줄과 광석통, 그 밖에
도 여러 가지 기재들이 필요할 테니까."
  그들이 원하는 일은  결코 아니었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지
않으면 안되는 황금채굴은 이렇게 해서 시작되었다.
  덫에는 미끼가 필요한 법이었다.

  (3)
  조니는 언덕 위에  덤불 속에 몸을 숨기고, 사이클로인들이 만든
적외선 야간망원경으로 본부 구내의 상황을 엿보고 있었다. 크리시
가 걱정되었다.
  벌써 두  달이 지났다. 상황은 시간이  흐를수록 조니를 점점 더
곤궁에 몰아넣고 있었다.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가 계속되었고, 밤
에는 매서운 강풍이 휘몰아쳤다. 아직 눈이 내리지 않고 있는 것이
불행중 다행이었다. 사이클로인들이 사용하는 커다란 야간쌍안경은
양손이 얼어붙을  듯이 차갑게 느껴졌다.  접안렌즈 사이의 거리가
떨어져 있어서 인간이 사용하기에는 매우 불편했다. 그것은 동시에
양쪽을 들여다볼 수 없을 정도의 크기였다.
  기울어가는 희미한  달빛이 조니의 마음을  더욱 서글프게 했다.
흰눈으로 뒤덮인 산봉우리에  반사된 달빛으로 드넓은 평원은 더욱
쓸쓸해 보였다. 조니는 크리시의 모닥불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이
곳에서라면 보일 만한데  어디에도 크리시의 모닥불은 보이지 않았
다.
  두 달 전, 마지막으로 크리시를 만났을 때 조니는 장작을 산더미
처럼 쌓아주고, 밀과  무, 상치 등을 충분히 마련해주었다. 사람들
이 직접  재배한 것들이었따. 훈제고기도  충분해 보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도 부족해질 것이었다.
  크리시를 안심시키기  위해, 아무 걱정  말라고 말은 해두었지만
자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크리시도 모를 리가 없었다. 정찰을
나갔던 젊은이가  구해온 스테인리스  나이프를 크리시에게 건네주
자, 그 예리한 칼날에 놀라다가 과일들의 껍질을 벗겨보고, 고기를
잘게 썰어보며 기뻐 어쩔 줄 몰라했었다. 그랬었는데....
  지난 두 달 동안 타르에게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본부 구내에
출입하는 것은 물론 무선  연락조차 할 수 없는 지금, 타르가 기지
로 찾아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인간들이 이동했다
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채굴장 부근의 골짜기에  임시캠프를 비밀리에 설치하고 있었다.
예비 기계류, 자재, 그리고  교대할 수 있도록 채굴반을 세 팀으로
구성하여 그곳에 보냈다.  그곳은 유령의 거리로 변한 광산촌으로,
광맥이 있는  것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비행거리에 위치하고 있었
다.
  채굴작업을 하기엔  너무 많은 난관이  가로막혀 있었다. 강철로
만든 기둥을 절벽에 박아 작업대를 설치하려고 했으나 박아넣은 기
둥들은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에 심하게 흔들렸고, 암벽과의 마찰로
빨갛게 달궈져버리곤 했기 때문에 매우 위험했다. 이미 강철파이프
가 두 개나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명밧줄을 매지 않았더라
면 작업중인 사람들은 모두  천 피트도 넘는 골짜기 밑으로 떨어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맹렬한 기세로 불어오는 바람
과 악전고투하며 얻은 수확은 고작 금 몇 파운드에 불과했다. 작업
대가 떨어지기 직전에 겨우 채굴한 금이었다.
  조니는 벌써 닷새째  크리시의 모닥불을 찾고 있었다. 높이 자란
마른풀 속에 몸을  숨기고, 불안한 마음으로 커다란 쌍안경을 들여
다보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감은 더해갔고, 출발 전에 목
사가 했던 말을 생각해내자 더욱 착잡해졌다.
  "맥타일러, 누가  뭐래도 우리들을 구할 수  있는 것은 당신뿐이
야."
  인류는 이미 멸종 직전에 처한 무기력하고 나약한 종족에 불과했
다. 우주 한구석의 조그만 혹성에서 고도의 문명을 지닌 우주 최강
의 종족에게 갇혀 있는 것이었다. 사이클로인은 혹성연합뿐만 아니
라 전은하의 연합 중에서도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
은 자기들에게 저항하는  종족들을 차례차례로 멸망시켜왔다. 그뿐
만 아니라 스스로 복종하려고 했던 종족까지도 말살시켜버렸다. 고
도로 진보된 기술문명과  냉혹한 성격의 사이클로인들은 극에 달하
는 포악을 부리면서도 지금껏 단 한 번도 반란세력들을 골칫거리로
삼은 적이 없었다.
  조니는 그  참호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애처롭고 초라한 무기로
사이클로인들의 탱크에  맞서다가 처참하게  쓰러져간 그 예순일곱
명의 젊은 용사들.  그들과 함께 인류의 마지막 희망도 사라져버렸
던 것이다. 그로부터 천 년,  아니 그 이상의 세월이 흐른 지금 조
니는 동지들과  함께 인류부흥을 꿈꾸고  있었다. 얼마나 부질없는
희망인가! 저들의 본부에서  구형 사이클로제 탱크가 한 대만 출격
한다 해도 쉽게 사라져버릴 헛된 희망이 아닌가. 물론 조니 쪽에서
먼저 저들의 본부를  공격하여 점령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광산을
몇개쯤 점령하고 지구를 되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주 짧은 순간
일지라도, 그러나 광산회사가 반격을 개시한다면 그때는 정말 인류
의 최후가 도래하게 될  것이다. 장차 무기를 손에 넣을 수도 있겠
지만, 현재는 사이클로인을 쓰러뜨릴 수 있는 단 하나의 무기인 유
라늄이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지구를 되찾겠다
는 희망은 이미 슬른 운명 속에 결정되어버린 지구의, 인류의 마지
막 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조니는 쌍안경을 최대 배율로 놓였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찾
아보기로 했다. 본부구역은 쥐죽은 듯이 고요했다. 각 돔마다 밑에
달린 녹색 비상등만이 조그맣게 빛나고 있었다. 크리시가 피워놓았
을 빨갛게 타오르는  모닥불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조니의 쌍
안경이 연료야적장에 멈췄다.  기계들을 작동시킬 수 있는 연료 카
트리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화
약고가 있었다. 만일  화재에 대비해서 다른 건물들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전투기도 보였다. 잘 정비된 스무 대의 전투기는 언제라도
출결할 수  있도록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전투기들이 대기하고
있는 곳에서 출하장을 지나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구역에서 떨어진
곳, 즉 우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호흡가스 야적장이 있었다. 재
고파악이 안될 정도는 충분할 정도였다. 무척이나 어지럽게 널려져
있었다. 오랫동안 체크한 일이 없었다. 누구든지 아무 때나 호흡마
스크나 조종석에 필요한 호흡가스통을 들고 가면 되었다.
  그 산더미처럼 쌓인  호흡가스통들을 천천히 살펴가던 조니의 머
릿속에 갑자기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호흡가스다!
  그렇다. 가이거 계수관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호흡가스통은 제
어장치에 의해서 필요한  만큼 조금씩 주입하도록 되어 있었다. 만
일 방사능이 있는  곳에서 호흡가스가 조금이라도 새나간다면 폭발
이 일어날 것이다.  가이거 계수관이 장치되어 있다면 가스가 방사
능에 반응하는 정도에  따라 바늘이 움직일 것이다. 분명히 책에는
그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호흡가스통에도 적용될 것은 기
정사실이었다. 호흡가스는 단순히  반응하는 정도가 아니라 폭발한
다는 사실이 기록에는  나와 있지 않은 것뿐이었다. 다소 위험하겠
지만 주의해서 다루면 될 것이다.
  이십 분쯤 지나서 기지로 돌아온 조니는 원로들을 소집했다.
  "가이거 계수관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될 것 같습니다."
  조니는 새로운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내일밤에 출격하겠습니다."

  (4)
  조니는 우리 가까이에 있는 언덕을 향해 재빠르게 나아가고 있었
다. 몸을 숨기고 행동하기에는 알맞은 시각이었다. 밤의 어둠이 주
위를 뒤덮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에 살이  에이는 듯했고, 늑대의
울음소리가 바람소리와 함께 들려오고 있었다. 귀를 기울이자 보초
의 걸음을 따라  철커덕거리며 전투장비들이 부딪치는 수리가 들려
왔다.
  그날 밤의  모든 상황들이 처음 계획대로  잘 맞아떨어지지 않았
다. 처음에 세웠던  계획을 변경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오후까지만
해도 들소들이 다른  야생동물에 섞여서 평원에 진을 치고 있었다.
계획대로라면 그 무리들을  본부 쪽으로 몰아 사이클로인들의 주의
를 그쪽으로  쏠리게 한 후 루트를  통하여 잠입해야 했다. 그런데
밤이 되자 되소떼들이 자취를 감추어버리고 말았다. 들소떼들은 저
녁 무렵에 이미  동쪽으로 떠나가버렸다. 계획을 급히 변경하지 않
을 수  없었다.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던 방법은 취소되었고,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강구할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정면으로 잠입해 들어가야만 했다.
  더넬딘을 포함한 스무  명의 선발대원들은 평원에 뿔뿔이 흩어져
몸을 숨긴 채  대기하고 있었다. 모두 조니처럼 착암작업용 내열복
으로 만든 외투와 모자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외투와 모자에는 분
말로 만든 잡초와  말발굽에 밟힌 풀을 이용하여 위장하고 있었다.
철저하게 위장하고 있었으므로  적외선 망원경으로 본다 해도 주위
에 있는 풀숲으로 보일  것이고, 눈으로 봐도 분간할 수 없을 것이
었다.
  그들은 호흡가스 야적장에  개별적으로 도착해서 각자 소형 압력
호흡가스통 상자를 훔쳐가지고 기지로 돌아오도록 되어 있었다. 이
작전의 가장 중요한  점은 사이클로인에 대한 적대행동이었다는 흔
적을 남기지 않아야  하고, 신속하고 은밀하게 습격을 완수하는 데
있었다. 증거를 남기지 않고  습격하는 것, 따라서 무기를 갖지 말
아야 했고, 보초와  응전하는 것은 물론 조그만 흔적이라도 남기는
것은 절대로 허용되지 않았다.
  이번 작전에도 조니가 참가하는 것에 대해 원로들이 반대하고 나
섰다. 무모하다 싶을 만큼 위험한 작전이었다. 조니는 잠시 망설였
으나 원로들의 반대를 극복해내야 한다고 결심하였다.
  "만약 보초가 이상한 기미를 눈치채고 호흡가스 야적장으로 다가
온다 해도 크리시와 패티가  잡혀 있는 우리 쪽으로 돌아가 있으면
나에 대해서는 그다지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원로들의 만류를 벗어나기  위해서 답변은 했지만 앞으로의 사태
를 예측할 수는 없었다. 그러한 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어떻게 되리
라고는 전혀 자신할 수 없었다.
  조니는 격투용 돌방망이를  움켜쥐고, 언덕을 향해 한발 한발 다
가갔다. 언덕 꼭대기에  올라섰을 때 예기치 않은 사태에 그자리에
우뚝멈춰 서고 말았다. 그곳에 있어야 할 말들이 보이지 않았던 것
이다. 늑대들이  울부짖는 소리에 겁을 먹고  달아난 것일까, 아니
면... 말의 모습은 사방을 둘러보아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큰일이
었다. 조니는 호흡가스  야적장을 습격할 때 말을 이용할 계획이었
다. 말의 엉덩이쪽에  매달려 달려들어갈 작정이었다. 말들은 훈련
이 잘돼 있어서 명령만  내리면 어떤 상대라도 발굽으로 일격에 쓰
러뜨릴 것이고, 보초는 말에 의해 쓰러진 것처럼 위장할 수도 있었
다. 조니는 다시 계획을  바꿔야 했다. 난감해진 그는 한동안 꼼짝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때였다. 앞쪽에서 뭔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조니는 바짝 긴
장하여 자세를 낮추었다.  주위의 어둠보다 더 검은 움직임이 그를
향하여 다가오고 있었다.  조니는 돌방망이를 힘껏 움켜쥐었다. 검
은 움직임은 점점  가까워오고 있었다. 온몸의 신경이 움켜쥔 돌방
망이에 모아질 즈음 매우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귀를 바짝 세우고
그 소리를  찾다가 조니는 그만 움켜쥔  돌방망이를 풀썩 내련놓고
말았다. 자신도  모르게 휴 하고 안도의  숨이 나왔다. 아, 그것은
말이 마른풀을 씹는 소리였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앞에 다가
선 검은  움직임은 프로지트였다. 프로지트는  어깨를 다쳐서 어직
걸음이 불편한 상태였지만 이순간 나타나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조니는 프로지트의 목을  쓰다듬으며 절대 소리내지 말라고 지시
했다. 조니는 말의 턱에 손을 대고, 바짝 붙어서 나란히 걸으며 몇
피트마다 멈춰  서게 하였다. 보초의  탐지기로부터 몸을 숨기면서
천천히 우리 쪽으로  다가갔다. 만일 보초가 가가이 다가오면 프로
지트의 발굽이  일격에 쓰러뜨릴 수 있도록  이미 지시해놓고 있었
다.
  돔에서 새나오는 약한  녹색 불빛을 받으며, 보초가 모습을 드러
냈다. 우리 안은  칠흑 같은 어둠뿐, 불빛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
다. 이십 피트, 십오 피트, 십 피트....
  그때 갑자기 보초가  뒤를 돌아보았다. 조니는 말을 세우고 공격
태세를 취하였다.  거리는 아직 십 피트나  떨어져 있었다. 이렇게
떨어진 거리에서는 일격에 쓰러뜨릴 수가 없었다.
  순간적으로 판단을 내린  조니는 돌방망이를 들어올렸다. 그것을
던져서라도 쓰러뜨려야 했다.  치켜든 돌방망이가 손에서 떨어져나
가려는 순간 조니는  동작을 멈추었다. 보초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있지 않았다. 그가 돌아선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조그맣지만 카
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초가 뒤에 달고 있는 무선 통신기
에 다른 보초가 송신하는 목소리였다. 보초는 육 피트나 되는 레이
저 광선총을 성가신  듯이 치켜들고, 헬멧 속에서 뭔가 중얼거리며
대답했다. 지금 그가  통화하고 있는 상대는 호흡가스 야적장을 지
키고 있는 보초임에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발각되었을지
도 모르는 일이었다.  통화를 끝낸 보초는 본부구역의 반대쪽인 호
흡가스 야적장으로 발소리를  울리면서 멀어져갔다. 작전은 실패하
고 만 것일까.
  그곳에서 어떤 사태가 발생했다  해도 조니는 해야 할 일이 있었
다. 그는 재빨리 우리 쪽으로 다가갔다.
  "크리시!"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녀를 찾았다. 그러나 우리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크리시!"
  좀더 크게 불러보았다.
  "조니?"
  연약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패티였다.
  "그래, 나야. 크리시는 어디 있지?"
  "여기 함께 있어요...."
  패티의 목소리가 울먹임으로 얼룩져 있었다.
  "조니, 물이 없어요. 파이프가 얼어붙었어요."
  패티의 목소리는 꺼져가는  불빛처럼 애처롭게 들려왔다. 주위에
서 심한 악취가 풍기고 있었다. 기지 쪽에서 새나오는 희미한 녹색
불빛을 이용해 주위를  살펴보았다. 우리문 앞에 죽은 쥐들이 산더
미처럼 쌓여 있었다. 우리 안으로 옮겨지지도 않은 채 그대로 썩어
버린 것이었다.
  "먹을 것은?"
  "남아 있지 않아요. 장작은 일주일 전에 모두 떨어져버렸구요."
  조니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지만 지금 상황에선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작전중이었다.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크리시는?"
  "머리가 불처럼  뜨거워요.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어요. 불러도
대답이 없고.... 조니, 우리를 구해줘요."
  "정신차려, 크리시!"
  조니의 목소리는 분노와 슬픔으로 잠겨들었다.
  "하루나 이틀 안에  구하러 올께. 약속하마, 패티. 크리시에게도
그렇게 말하라구. 잘 보살펴야 돼."
  이순간 그들을 위해 조니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연못에 얼음이 있지?"
  "조금은.... 아주 더러워요."
  "다행이다. 그렇다면 체온으로  얼음을 녹여서 쓰는 거야. 패티.
하루 이틀만 어떻게든 참고 견뎌봐."
  "해볼께요."
  "크리시에게 내가 이곳에 왔다는 말을 전해줘. 그리고...."
  이럴 때 어떠한  위로도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할 것이었다.
그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쑥 던져지는 말이 있었다.
  "패티, 사랑하고 있다고 크리시에게 전해줘."
  호흡가스 야적장 부근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히제 돌아
가지 않으면 안된다.  누군가가 발각되었는지도 모른다. 조니는 최
대한 소리를 죽이며  프로지트의 갈기를 잡고 본부구역의 반대쪽을
향해 달려갔다.
  호흡가스 야적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라선 조니는 야적장
쪽을 살펴보았다. 감시용 서치라이트 불빛이 가스야적장 위로 미끄
러지며 구석구석까지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두 명의 보초가 그 불
빛을 따라 감시의  눈빛을 번득이고 있었다. 언뜻언뜻 불빛에 드러
나는 두개의 그림자가  야적장을 따라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림자
는 백  피트는 될 것 같았다.  조명등이 조니의 근처를 스쳐지나갔
다. 한순간 눈이 부셨다.
  "이곳에는 언제나 말뿐이야."
  보초들이 나누는 말소리가 앞쪽에서 들려왔다.
  "가스야적장 오른쪽이야. 뭔가 있다구."
  "그러면 그쪽으로 조명등을 비춰보라구."
  그때 떨어져내리는 쿵  소리와 함께 가스통들이 와르르 무너져내
리는 소리가 가스야적장 쪽에서 들려왔다.
  "저쪽이다."
  보초들은 뛰기  시작했고, 조명등이 그  앞에서 어지럽게 흔들렸
다. 조니는 천천히 말을  끌고 그쪽으로 향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
는지 위에 있던 상자가 떨어져내리며 그 안에 들어 있던 것들이 엉
망진창으로 쏟아져내린 것이었다. 서치라이트 불빛을 보고 있던 보
초들의 눈에는  안 보였지만 어둠에 익숙해져  있는 조니에게는 한
젊은이가 무너져  내린 상자들 뒤쪽으로 도망치고  있는 것이 보였
다. 그 젊은이가 모습을 감추기도 전에 서치라이트 불빛이 그르 찾
아내고 말았다. 보초가 재빨리 레이저 광선총을 겨누었다.
  지독히 참혹한  밤이었다. 작전은 무참히  실패로 돌아갈 것이었
다. 한 젊은 동지가 심하게 부상당했거나 죽었을 것이고, 내열복을
걸친 인간이  사이클로인에게 발각되었다면  앞으로의 모든 계획은
끝장이었다. 참혹한 보복이 시작될 것이고, 기지는 흔적도 없이 사
라질 것이었다.
  보초가 안전장치를 풀어냈다.  조니의 이십 피트 앞쪽이었다. 보
초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조니의 돌방망이가 번개처
럼 날아가 보초의 등을 강타했다. 조니는 잽싸게 앞쪽으로 몸을 날
렸다. 이미 무기는 없었다. 다른 보초가 조니 쪽을 향하였다. 서치
라이트 불빛이 조니를 비추었고 보초가 레이저 광선총을 겨누었다.
조니는 보초의 옆구리를 강타하며 그 거대한 레이저 광선총의 총구
를 움켜잡아 비틀었다.  총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총을
거꾸로 빼았아 들었다.  그리고는 재빨리 공격자세를 취하였다. 총
을 빼앗긴 보초가 몸을  돌려 조니를 붙잡으려 했으나 그보다 빨리
조니가 휘두른 개머리판이 그의 복부를 강타했다. 거대한 몸뚱이가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곧이어 지면을  흔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위에서 보초를 서던
사이클로인이었다. 땅  위에 떨어진 조명들이  그의 거대한 다리를
비추고 있었다. 그놈은 재빨리 벨트에서 총을 뽑아들었다. 불과 오
피트 밖에 안되는 거리였다. 조니는 비호처럼 몸을 날려 녀석의 레
이저 광선총의  총구를 잡아 낚아채 그놈의  헬멧을 향해 휘둘러댔
다. 헬멧의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그 순간 공기가 한꺼번에
헬멧 안으로 들어갔고, 사이클로인의 거대한 몸은 앞으로 고꾸라졌
다. 그때 처음에  쓰러졌던 보초가 비틀거리며 일어나 총을 잡으려
고 했다. 조니가 먼저 그의 가슴을 향해 총을 내리쳤다. 헬멧이 비
뚤어지면서 밀려들어온 공기에 질식되어 사이클로인은 완전히 늘어
져버렸다. 일이 난처하게  되었다. 셋이나 죽여놓았으니 이것을 어
떻게 수습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그 젊은
이가 붙잡히든가 사살되었을 것이고, 모든 계획은 거기서 끝장났을
것이다. 조니는 격양된  감정을 진정시켰다. 멀리 사라져가는 포로
지트의 발굽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본부건물 쪽에서 문을 여닫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당장이
라도 사이클로 병사들이  달려올 것만 같았다. 조니는 조명들을 발
로 밟아서 꺼버렸다. 갑자기 어둠이 주위를 둘러쌌다. 조니는 서둘
러 주머니를 뒤져 로프를  찾았다. 있었다. 두 가닥의 로프가 있었
다. 조니는 로프를 하나로  이었다. 맨 처음 쓰러졌던 보초의 레이
저 광선총의 방아쇠에  끈을 묶었다. 그리고는 온힘을 모아 총구를
땅바닥에 꽂았다. 본부 쪽에서 달려오는 발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
다. 시끄럽게 문을 여닫는 소리와 함께. 놈들은 곧 이리고 올 것이
다. 조니는  본부 쪽에서도 보이지 않고  폭발의 충격도 받지 않은
위치까지 도망쳐와서 방아쇠에 묶어둔 끈을 힘껏 잡아당겼다. 총구
가 막힌 레이저  광선총이 폭발했다. 폭탄보다 더 강력한 폭발음과
함께 불꽃이 치솟았다. 사이클로인 시체 뒤로 바짝 몸을 숨기고 있
던 조니는 시체와  함께 뒤흔들렸다. 솟구쳐올랐던 흙과 돌이 떨어
져내렸다. 조니의 모습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로부터 두 시간 후에야  기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 번도 쉬
지 않고 전력을 다해 뛰었으므로 숨은 턱까지 차올랐고, 심장은 터
질 듯이 고막을 가득 메우며 쿵쾅거렸다. 폭스 로버트가 추격에 대
비해서 서둘러 기지를  점검하고, 수상해 보이는 불빛은 모두 꺼놓
은 채 대기하고 있었다.
  습격에 나갔던 젊은이들이 한사람 한사람 기지로 돌아왔고, 입수
해온 호흡가스통들은 폭스  로버트의 지시에 따라 지하실에 숨겨졌
다. 그들은 구석방에 모여서 희미한 불빛 아래 조용히 대기하고 있
었다. 폭스 로버트는 열다섯 명의 젊은이들을 선발하여 기관단총으
올 무장시킨 다음  기지의 요소요소에 배치했다. 만일의 철수에 대
비해서 인원수송기도 준비시켰다.  이미 명령만 떨어지면 이곳에서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전투를 겪어온 백전노
장인 폭스 로버트의 대처방안은 완벽했다.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조니는 첫질문을 던졌다.
  "열아홉 명이 돌아와 있다."
  불안해 하는 목소리로 로버트가 대답했다.
  "더넬딘이 아직 안 돌아왔다."
  난처하게 됐군.  조니는 무사히 귀환하여  대기하고 있는 열아홉
명의 젊은이들을 둘어보았다. 몸에 달라붙은 풀들을 떼어내거나 가
쁜 숨을 고르며 위장했던  흔적을 없애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
다. 그때 야간 쌍안경을  목에 건 젊은이가 뛰어들어왔다. 그는 옥
상에서 주위를 경계하고  있던 감시병으로 경계상황을 보고하기 시
작했다.
  "추겨해온 조짐은 아직  없었습니다. 한 대의 비행기도 이륙하지
않았습니다."
  "굉장한 폭발이던데."
  폭스 로버트가 조니를 향해 말했다.
  "폭발한 것은 레이저 광선총입니다."
  "레이저 광선총은 총구가 막혀 있을 경우 총을 발사하면 총 자체
가 폭발하게  되고, 총에 장전되어 있는  레이저 광선 오백 발분을
한꺼번에 폭파시켰습니다."
  "폭발음이 굉장하던데. 수마일이나 떨어진 이곳에서도 들었을 정
도니 말이야."
  "레이저 광선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조니는 아직도 숨을 헐떡이면서 위자에 주저앉아버렸다.
  "어떻게 해서든 타르에게 연락할 방법을 생각해내야겠습니다. 크
리시가 병들어 있습니다. 물도 없고, 땔감도 없습니다."
  절망감으로 조니가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 더넬딘은 어떻게 된 거야?"
  문 앞에 서 있던 감시병이 즉시 옥상의 감시대로 달려갔다. 분위
기는 침통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온갖  불안감이 그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삼십 분이  경과되었을 때 폭발해버릴 것만 같은 침묵을
뚫고 폭스 로버트가 단호히 결단을 내랴야 할 시기임을 알렸다.
  "유감스럽지만 포기한다. 아무래도...."
  그때 맹렬히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모두들 바짝 긴장하였
다. 잠시 후 더넬딘이 문을 박차고 뛰어들어왔다. 숨을 헐떡이면서
털썩 주저앉는 그를 보자 좀전까지의 절망감은 사라지고 모두 활짝
웃었다.
  "추적해오는 기미는 전혀 없습니다."
  전령이 큰소리로 외치는 불안에 떨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희망
의 빛이 떠올랐다.  목사가 더넬딘이 들고 온 호흡가스통을 낚아채
듯 받아들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이륙하는 비행기도 없습니다."
  전령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자아, 여러분!"
  폭스 로버트가 어수선해지는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놈들이 날이 밝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어야 할 텐데...."
  "놈들은 오지 않습니다."
  더넬딘이 폭스 로버트의  말을 단호하게 부정했다. 그는 이제 가
쁜 숨을 어느 정도 진정시키고 있었다. 목사가 그에게 위스키를 한
잔 마시게 했다.
  "놈들이 어떻게 하는지 숨어서 보고 있었지요."
  더넬딘이 들뜬 목소리로 얘기를 시작했다.
  "정말 조니의 활약을 한번 보여주고 싶다구. 내가 마지막으로 호
흡가스 야적장을 습격했지. 호흡가스통들이 가득 쌓인 곳까지 다가
가 그 중  하나를 빼내려다 그만 상자  더미를 잘못 건드려서 위헤
쌓여있던 상자들을 무너뜨려버렸어.  난 뒤도 안 돌아보고 냅다 도
망쳤지. 지그재그로 말이야. 그러나 곧 다시 그곳으로 되돌아갔어.
조니를 흔자 남겨뒤서는  안된다구 생각한 거야. 하지만 안 아무것
도 할 수 가  없었어. 아미 조니가 휘두른 레이저 광선총의 개머리
판에 사이클로인 보초들이 세 놈이나 쓰러져서 꼼짝도 못하고 있었
으니까. 너무 뜻밖의 상황에 얼이 빠져 있는데 엄청난 폭발이 일어
나더군. 물론  추적은 없었다구.  사이클로인들이 시체를 둘러싸고
있는 곳까지 몸을 숨긴  채 이백 피트 가량 다가가보았지. 말은 다
행히 파편을  맞지 않았는데 들소가 파편에  맞아 만신창이가 되어
널브러져 있었어."
  더넬딘의 보고는 계속되었다.
  "잠시 후 덩치가  엄청나게 큰 사이클롱니 녀석이.... 아, 맞아,
타르라는 보안부장  녀석 같았어. 그녀석이  가까이 다가와 주위를
조명등으로 조사하더군. 결국  상자를 뒤집어엎은 들소를 경비중ㅇ
니 세 녀석의 보초가 붙잡으려가다 무언가에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레이저 광선총이  땅에 꽂히는 바람에  폭발했다는 결론을 내렸어.
놈은 보초들이 한 짓에 대해서 투덜투덜 욕을 해대고 있더라구."
  조니는 안도의 함숨을  내쉬었다. 들소에 대해서는 뜻밖이었지만
자신이 의도한 대로  정확히 들어맞아 있었다. 조니는 폭발에 사용
했던 포르쪼가리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회수했으므로 흔적은 전혀
없었다. 그 폭발로 보초에게  입힌 상처 또한 알아볼 수 없을 것이
었다.
  "습격은 대성공이다."
  더넬딘이 보고를 마치자 신이 나서 만세를 불렀다.
  "우리의 대장 조니에 대해 다시 한 번 놀랐어. 역시 대단한 인물
이야."
  조니는 목사가 따라준  위스키를 마시며 더낼딘의 말들을 일부러
못 들은 척해버렸다.
  "자네는 사고뭉치였네."
  폭스 로버트가 더넬딘을 꾸짖었다.
  "하마터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뻔했잖아."
  "네? 전 단지 상황을 정확히 알고 싶었을 뿐이라구요."
  더넬딘은 그렇게 말해놓고 큰소리로 웃어댔다.
  잠시 후 그들은 각자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자아, 이제  이것으로 우라늄을 검출할 수  있게 되었다. 조니는
체크 무늬 담요로 몸을  감싸며 마음속으로 이번 작전의 성공을 흐
뭇해하였다. 하지만 그는 곧 우울해지고 말았다. 크리시에 대한 염
려가 가슴속 깊이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다가왔다. 무선연락을 취
할 수도 없었다. 만나러 갈 수는 더더욱 없는 노릇이었다. 오직 타
르를 이곳으로 오게 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과녕 어떤 방법이 있
을까.

  (5)
  약속장소로 향하는 타르의  얼굴은 몹시 수척해 보였다. 늘 당당
했던 그의 태도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쫓기는 듯 허둥거렸다. 한손
으로 지상차를 운전하고,  다른 한손은 탄약을 가득 장착한 중화기
포의 방아쇠를 잡고 있었다.

  제국 수사요원 제이드가 어떤 임무를 띠고 지구에 잠입해 들어왔
는지, 타르는 아무런 단서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제이드는 광
석선별부의 일반노동자들 속에  섞여 그들과 똑같은 일만을 반복하
고 있었다. 광석선별부  노동자들은 다른 부서와는 달리 출하될 때
만 일하기 때문에 나머지 시간은 자유로운 편이었다.
  제이드 주변에  탐지기를 설치해둘  생각도 해보았으나 자칫하면
골칫거리만 늘어날 것  같았다. IBI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제이드라
면 도청장치나 탐지기  따위는 쉽게 알아차릴 것이었다. 타르는 차
크를 제이드에게 접근시켜보기도 했다. 차크에게는 어떤 수단과 방
법을 동원하든지 제이드를 침대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어떠한 소
원이라도 들어주겠다고  했다. 물론 그 전에   차크의 사마귀 속에
초소형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차크의
적극적인 유혹에도 제이드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항상 힘없이
머리를 숙이고 걸어다니는 그의 모습은, 특별히 무엇을 해야겠다는
의지가 전혀  없어보였고, 그저 평범한 노동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바로 그  숙련된 위장전술이  무시무시한 수사요원임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타르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본국으로 전송하는 문서들을 철
저히 조사했다.  그러나 제이드가 보내는 문서는  없었다. 그 밖에
특별한 보고서도 없었고,  통상적인 서류들뿐이었다. 뭔가 있을 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힌 타르는 미칠 것만 같았다. 매번 전송되는 모
든 문서들을 밤을 새워가며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철저히 조사했지
만 제이드와 관련된 것은 티끌만한 것도 찾아낼 수 없었다.
  아무런 단서도 찾아내지 못한 타르는 제이드와 IBI사이에 전송문
서가 아닌 새로운 통신수단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반년 동안 직접  교신할 수 있는 통신처리
기능은 개발된 것이  없었고, 보안부장인 타르가 모르고 있을 리도
없었다. 그렇다면  미처 관심을 돌리지  못한 통신수단을 이용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예를 들면 광석샘플 위에 암호를 써서
보낸다든가.... 하지만 거기에도  문제점은 있었다. 그러한 통신수
단을 쓰러면 매번  특별한 광석이 필요한데, 출하되는 광석들은 언
제나 동일한  것들이었다. 또한 제국정부는  지금까지 오직 회사의
광석출산량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출하량에 따른 해당 퍼
센트를 세금으로 징수받으면  되기 때문이었다. 중대한 범죄행위가
발생했을 경우나 음모가 노출되었을 경우에만 정부가 개입하였다.
  제이드가 잠입해온 목적이  무엇인가, 타르는 끝내 알아낼 수 없
었다. 위장서류로 신원을  숨기고 파견되어온 비밀수사관 제이드로
인해 타르는 무려 두  달 동안이나 마음 한구석 편한 곳이 없었다.
또한 혹시 노출될지도 모르는 자신의 약점을 완벽하게 숨기고 위해
더욱 업무에  충실했다. 모든 시시를  신속하게 처리했고 통신연락
업무도 즉각 회답을 보냈다. 자신의 서류들 속에서 문제가 될 만한
소지가 있는 것은  모두 소각해버렸다. 스무 대의 전투기들을 분해
하여 수리했고, 연료와 물자의 보급까지 직접 나서서 처리함으로써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을  제이드의 눈에 자신의 성실성을 드러내
보이려 했다.
  인간들에 대해서는 극히  평범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서류철에 끼
워 놓았다.

  채굴작업을 하기에 매우 위험한 장소, 가령 사이클로인 접근하기
에 사망률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위험한 장소에는 인간을 배치한
다. 넘프의 명령에 의해서 실험적으로 실시된 이 작업은 우선 인간
을 몇 마리 잡아다  단순한 기계조종부터 가르쳐 활용하기롤 한 것
이다. 회사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전혀 없다. 인간들은 지능이 낮
아서 학습능력도 매우  둔하기 때문에 전혀 위험하지 않다. 현재까
지는 그다지 뚜렷한  실적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실험이 성공할
경우 회사의 수익이 늘어날 것은 확실하다. 인간들에게는 연금술에
관한 것이나 전투기술은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 그것은 회사의 방
침에 따르기 위해서지만  능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그들에겐 음식물을 전혀 주지 않아도 된다. 이 혹성에는 쥐라고 하
는 해로운 작은 짐승이 있는데, 그들이 그것을 잡아먹기 때문에 오
히려 일거양득이다.

  타르는 그런 내용의  보고서를 특별취급이 아니라 통상적인 보고
서로서 본국에 보냈다. 자신이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확인해보아도
의심받을 만한 내용은  전혀 없었다. 차라리 인간들을 모두 처치해
버리고 그곳의 기계들까지 모두 창고로 되돌려놓는 것이 더욱 안전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차례씩 머릿속에 떠올렸다. 하지
만 그때마다 황금광맥의  그 찬란한 빛이 떠올랐고, 조금만 버텨보
자고 스스로를 위로해야만 했다.
  보초의 사망사고는 타르의 마음을 약간 혼란스럽게 했다. 단순히
사이클로인이 죽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타르는 자신의 계획
을 실행하기 위해서 많은 시체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사실은 내년
출하에 대비해서 시체를 관에  넣고 있을 때, 그 중 하나에서 가슴
에 범죄자 소인이 찍혀  있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세 개의 선으
로 뒤어 있는 소인이 찍힌 자는 사법, 행정 관계의 일은 물론 어떠
한 고용관계로부터도 배제시키데 되어 있었다. 본국 인사부의 업무
처리가 얼마나 허술한가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타
르는 그 건에  대해서도 적당한 보고서를 제출해두었다. 타르는 한
순간 어쩌면  제이드가 그 건 때문에  파견된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와 유사한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신분을 위장하고 잠입해온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했었다. 그래서 노동자  한 명을 시켜 은밀히
그 일을 암시해보았지만,  제이드는 그러한 일에 대하여 전혀 관심
을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타르는 제이드 문제로 고심할 수밖에 없
었다. 제이드가 온 이후 타르는 끊임없는 불안과 긴장감 때문에 사
소한 일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다. 오늘 아침 일어난 일도 타르
의 팽팽한 신경들을 일시에 마비시켜버렸다. 타르는 평상시와 마찬
가지로 무인정찰기가  보내온 하루분의  사진을 수신기에서 꺼내고
있었다. 그때 그 사진들 속에 채굴현장이 찍힌 사진이 나온 것이었
다. 그 동물이 사방 십이 피트나 되는 문자판을 들고 있는 것이 똑
똑히 보였다. 그곳은  광맥에서 조금 떨어진 뒤쪽으로 동물들이 만
든 평평한 장소였다. 그곳에 누가 보아도 알수 있을 만큼 선명하게
사이클로 문자가 씌어 있었다.

  급히 연락 바람. 장소, 시간은 같음.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섬뜩한데 한 줄이 더 있었다. 그러나 그 문
자는 기계용 방수커버로 얼핏 덮여 있어서 첫글자밖에는 보이지 않
았다.

  겨....

  그 뒤의 나머지 글자들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돌대가리 같은 동물들은 방수커버가 덮여 있는 것도 모르고 있었
다. 타르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방수커버가 덮여 있지 않은 사
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진을 모두 뒤져보았다. 그런 사
신은 자신만이 받아볼 수  있게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극심
한 공포에 떨고 있었다. 깨닫는 순간 처음의 공포가 분노로 바뀌어
복받쳐올랐다.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당혹스럽기만
했다. 수신기의 표시장치가 사진전송 완료를 나타냈다.
  타르는 매일 전송되어오는  사진을 검토하고, 채굴작업의 진행상
황을 그날그날 체크하고 있었다. 자기가 잡아온 그 동물은 다른 작
업원들과 섞여서 언제나  그곳에 찍혀 있었다. 동물들은 모두 비슷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 동물의 금발 수염과 커다란 몸집
에는 낯이 익었다.  그녀석의 모습을 확인할 때마다 타르는 안심하
고 있었다. 그 녀석이 그곳에 있다는 것은 채굴작업에 전념하고 있
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쓸데없이 다른  장소를 쑤시고 다니며
엉뚱한 일을 저지를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채굴작업의 진행
상황은 별로 신통치  않았다. 시작할 때부터 곤란한 작업이라는 것
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진행해나갈 것이었다. 내년 제구십이
일까지는 아직도 넉 달이나 남아 있었다.
  공포가 가라앉자 타르는 사진을 흔적도 없이 분해시켜버렸다. 제
이드의 눈에 띌 염려가 있는 것은 무엇이든 없애버려야 했다. 보안
부장의 업무와 별개인 이 프로젝트에 대해서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고 시사해주는 것은  무엇이든 없애버려야만 했다. 혹시 빠진 것이
없나 확인하던 타르는  갑자기 방수커버에 가려진 첫글자가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려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냈다. 타르는 너무 성급하
게 분해시켜 버린 것을 후회했다. 철저히 확인했어야만 했다. 틀림
없이 내 이름을 첫머리에 집어넣었을 것이다. 타르라고.

  타르의 정신상태는 이미 정상적인 괘도를 벗어나 광기를 띠고 있
었지만, 그는 이미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자기 관찰력조차 상실하
고 있었다.
  칠흙 같은 어둠이  지상차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타르는 라이트
를 켜지 않은 채 자동조절을 계속하고 있었다. 위험한 지형이 이어
지고 있었다.  옛날에는 거대한 도시가  존재했던 곳이지만 지금은
폐광의 입구만이  여기저기에 검은 입을 벌리고  있어서 마치 벌집
같았다. 그것은 회사가  수세기 전에 오래된 광산을 파헤친 흔적들
이었다.
  전방에 물체가 출현할  것이 스크린에 나타났다. 생물이다! 한손
을 발사장치의 방아쇠에 올려놓아 언제라도 발사할 수 있도록 준비
했다. 타르는 지상차의 앞머리를 본부구역과는 반대 방향으로 하여
본부구역에서 자세히 볼 수  없는 언덕과 낡은 건물벽 가까이에 차
를 세웠다. 주변을 다시  한 번 확인한 타르는 탐사등 불빛을 약하
게 하여 몇 번  깜빡였다. 동물이 지정된 장소에서 말을 타고 기다
리고 있었다. 동물이 타고 있는 말은 그 전에 타고 다니던 말이 아
니었다. 말을 타고 있는  동물의 모습이 약한 녹색 불빛 속에 서서
히 다가왔다. 어, 한 놈이 더 있네. 분명히 한 놈이 더 있었다. 아
니다, 저것은 말이다.... 등에 커다란 자루를 싣고 있었다.
  타르는 탐지기에 나타난 스크린으로 주변을 다시 한 번 확인해보
았다. 아무도 없었다. 동물 쪽으로 시선을 보낸 타르는 발사장치에
서 손을 떼었다. 그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오히려 동물 쪽
은 그리  긴장하고 있지 않았다. 지상차  안은 호흡가스로 가득 차
있었으나 타르는 호흡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타르는 호흡마스크를
다시 한 번 점검한 후 통화기를 집어들어 지구대기를 견딜 수 있도
록 만들어진 총포용의  작은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내보냈다. 통화기
가 땅 위에 안전하게  내려선 것을 확인한 타르는 자신의 통화기를
집어들었다.
  "말에서 내려 그 통화기를 집어들어라."
  조니는 어깨에  상처를 입은 말에서 내려  지상차 쪽으로 다가가
땅위에 놓여 있는  통화기를 집어들었다. 지상차 안은 아무것도 보
이지 않았다.  더구나 지상차의 모든 창문은  내부를 볼 수 없도록
장치해놓았기 때문에 까만  어둠뿐이었다. 통화기에서 타르의 성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네가 그 보초들을 죽였는가?"
  조니는 통화기를 얼굴 가까이 갖다대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재
빨리 상황판단을 하였다. 오늘 타르의 태도는 웬지 심상치 않았다.
  "우리 쪽 보초는 아무도 죽지 않았다."
  그는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뭘 시치미를 떼고 있느냐. 어는 보초인지는 잘 알고 있을 텐데.
본부구역의 보초 말이다."
  "뭔가 좋지 않은 일이라고 있었는가?"
  좋지 않은 일이라는  말이 타르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다.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있었던가.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일이고, 어디서
나온 것인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곧 의식을 집중시켰다.
  "그 문자판의 마지막 부분은 왜 감췄는가?"
  타르는 짜증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뭐?"
  조니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반문했다. 사실은 타르를
끌어내기 위해서 일부러 한 일이었다.
  "겨울이 깊어가고 있다. 의논하고 싶다라고 썼는데."
  조니의 말을 듣고  타르는 잠시 그 첫글자를 떠올려보았다. 조니
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타르는 짜증을 가라앉혔다.
  "무슨 의논인가?"
  듣지 않아도 알 만하다고 타르는 판단했다. 금을 캐내는 일은 거
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어떻게든  캐낼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그는 광산기술자였고 수석졸업생이 아닌가. 문제점이 무엇인
지는 이미 알고  있는 그였다. 무인정찰기가 보내오는 사진으로 매
일 체크하고 있었으므로 타르가 모를 만한 일은 없었다. 강철 파이
프가 바람을 견뎌내지 못하고 자꾸 구부러져서 작업대를 설치할 수
없다고 말하려는 게지.
  "수직으로 파내려 갈 수 있는 이동형 사다리를 사용해라. 준비한
기재 속에 들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외벽에 고정시키고 작업을 하
는 것이다."
  "알았다. 그렇게 해보겠다."
  광맥채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타르는 스스로 안정을 되찾고 있
었다.
  흥분을 서서히 가라앉히고 있는 타르를 보며 조니는 준비된 질문
을 시작했다.
  "우라늄 보호장비가 필요한데."
  "무엇 때문에?"
  "이 근처 산에는 우라늄이 매장돼 있다."
  "금광맥 속에도 말인가?"
  "금광맥 속에는 없겠지만 골짜기와 그 주변에 말이다."
  조니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말한  것은 타르가 직접 이 산에 들어
올수 없다는 것을 경고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를 통해 알고 싶은
정보가 없으면 우라늄  실험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타르에게서 반드
시 얻어내야만 한다.
  "우라늄 때문에 피부병이 생긴 사람들도 있다."
  근거없는 말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 중에는 피부질환자들이 꽤
있었다. 지금 함께 있는 동료들에게 나타난 것은 아니었지만.
  타르는 조니의 말에 여유를 되찾았다.
  "거짓말은 아니겠지?"
  "어떤 장비를 쓰면 좋은가?"
  "이런 행성계의 별에서는 어디서나 끊임없이 방사능이 검출된다.
호흡가스의 안면 유리에 납이 부착돼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차량
이나 비행기 조종석의  유리도 같다. 너희들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말이다."
  "납으로 막을 수 있다는 말인지?"
  "하여간 너희들 힘으로 열심히 해보라구."
  유쾌한 기분을 되찾은 타르는 자못 즐거운 듯이 말했다.
  "여기서 라이트를 켜면 곤란한가?"
  조니가 물었다. 그리고  쿵 하는 소리와 함게 지장차의 방풍유리
앞에 자루를 올려 놓았다.
  "라이트를 켜고 싶지 않다."
  "미행당하고 있는가?"
  "아니다. 차 위에 빙글빙글 돌고 있는 원반이 보이지? 그것은 탐
지파 간섭장치다. 미행이나 탐지는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조니는 타르가 말한  곳을 바라보았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
지만 무엇인가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부채 모양의 물체가 쉴새없
이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를 비춰달라."
  조니가 요구하자 타르는 스크린을 보았다. 미행당하고 있는 기미
는 없었다.
  "저 나무 아래로 가자."
  타르가 가지들이 넓게 펼쳐진 나무 아래로 천천히 지상차를 이동
시켰다. 조니는 광석자루의 주둥이를 잡고 그 뒤를 따라갔다. 타르
가 지상차를 세우고 라이트를 켜자 방풍유리 앞이 불빛에 희미하게
비춰졌다. 조니는 한손으로 자루를 뒤집어 십 킬로 가량 되는 광석
을 지상차 보네트  위에 쏟아놓았다. 광석들이 불빛을 받아 찬란한
빛을 발했다. 백수정에 그물코 모양으로 금이 섞인 원석들은 그 자
체로도 훌륭한 보석이었다.  그것들은 눈부시게 반짝였다. 광석 속
에 들어 있는 순금의 양은 대략 팔 파운드는 넘어 보였다.
  타르는 여전히  지상차 속에서 방풍유리 너머로  뚫어질 듯이 그
광석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입 안에 가득 고인 군침이 목젖을 꿈틀
거리며 삼켜졌다.
  "그곳에는 이러한 것들이 일 톤 가량 매장돼 있다."
  조니가 약간 뜸을 들였다.
  "하기야 채굴할 수 있다면 말이지만. 바로 코앞에 보이기는 하는
데."
  타르는 여전히 꼼짝 않고 앉아서 유리를 통해 원석들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조니가 좀더 반짝반짝  빛나도록 광석을 펼쳐놓았
다.
  조니는 다시 통화기를 집어들었다.
  "우리들은 약속을 지킨다. 당신도 약속을 지켜야 한다."
  "무슨 얘기인가?"
  "여자들에게 먹을 것과 물, 그리고 장작을 주겠다고 약속했을 것
이다."
  "약속이라...."
  타르는 무관심하게 중얼거리며 어깨를 추스려 보였다.
  조니는 금광석을 끌어안듯이  팔을 벌려 광석자루에 그것들을 쓸
어 담기 시작했다.  자신의 눈앞에서 보석들이 사라지는 것을 타르
가 놓칠 리 없었다.
  "기다려라. 여자들에게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을 네가 어떻게 알았
는가?"
  조니는 동작을  멈췄다. 그리고 얼굴이  불빛에 비치도록 위치를
바꾸더니 머리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인간들에겐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게 있다."
  조니는 계속해서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설명을 덧붙였다.
  "초능력이란 것이다. 나는 여자들과 초능력으로 얘기하고 있다."
  모닥불이 보이지 않았고,  보초가 서 있었기 때문에 타르는 조니
를 의심하지  않았다. 폭스 로버트라면  이러한 상황에서 틀림없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무선통신기 없이 말인가?"
  타르는 초능력에 대해  책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인간들이 그러
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젠장.
  "그렇다. 여자들에게  식량이나 필요한  것들이 전해지지 않거나
몸에 이상이 생기면 나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알 수 있다."
  조니는 다시 한 번 머리를 두드렸다.
  "여기에 자루가 있다.  식량과 물과 부싯돌, 그리고 겨울용 외투
와 소형 펜트다. 지상차 위에 묶어둘 테니까 돌아가는 즉시 여자들
에게 갖다주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안과 밖도 청소하고 배수관도
고쳐주어라."
  "저수탱크가 잘못되었을 뿐이다."
  타르가 머뭇거리며 변명하였다.
  "물을 채워넣어야 하는 건데, 요즘 계속 바빠서 말이야."
  "그리고 보초를 철수시켜라. 보초 같은 것은 필요가 없을 텐데."
  "그리고 보초가 있는 것가지 알 수 있는가?"
  "당신이 조금 전에 말했잖은가."
  조니는 계속해서 타르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여자들이 그놈들에게 희롱당하고  있을 때는 초능력으로 그것도
일 수 있다."
  "내게 명령할 셈인가?"
  타르가 분을 참지 못하고 화를 벌컥 냈다.
  "타르, 만일 여자들의  시중을 들지 않겠다면.... 보초들에게 내
가 알고 있는 것을 모두 얘기해도 좋단 말이지."
  "뭐얏!"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얘기할 뿐이라구. 보안부장 자리를 빼앗기
진 않겠지만 약간 골치아프게 될걸."
  보초는 철수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타르는 생각했다.
  "네가 바라는  것을 들어주지 않아도 너는  아무 짓도 못할 것이
다."
  타르의 말에 조니는 라이트 불빛 속에 자신의 머리를 다시 한 번
두드려 보였다.  타르의 머리는 조니의  협박와 눈앞에서 번쩍이는
황금덩이들로 완전히  혼란스러워져 갑자기  엉뚱한 얘기를 시작했
다.
  "금을 건네주지 않고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우리들을 위해서 보관해두어야겠다."
  조니는 다시 광석을 자루에 담기 시작했다.
  타르의 입에서 위협하는 듯한 낮은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호박
색 눈이 지상차 안의 어둠 속에서 날카롭게 번득였다.
  "그런 짓을 어디 한번 해보라지."
  약점이다. 복종시키려면 약점을 꼬집어서 말해야 한다.
  "무인폭격기에 대해서 얘기  들은 적이 있나? 어때, 모르고 있을
테지.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두라고, 동물. 나는 언제라
도 무인폭격기를 출동시켜서  채굴장이든 캠프든 어느 곳이라도 보
낼 수가 있다. 어디에  숨어 있든 그 폭격기로 너희들을 단숨에 모
조리 끝장낼 수가  있지. 내가 리모트 컨트롤로 무인폭격기에게 명
령을 내리기만 하면  말이다. 너희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것만
큼 자유롭지 못하단 말이다. 알겠는가!"
  단숨에 밀려들어오는 밀물처럼 통화기에서 튀어나오는 타르의 말
을 들으면서 조니는 지상차의 방풍유리 속을 뚫어질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안은 끝닿지 않는 심연처럼 그 어두움 속에 그를 빨아들일
것만 같았다.
  "너희들이 그곳의 금들을  모두 캐내서 내게로 가져와야만 한다.
제 구십일일까지 말이다. 안 그러면 너희 동물들을 한 마리도 남기
지 않고 모두 지옥으로  보내주겠다. 이 별에 남아 있는 너희 종족
전부를 말이다. 알겠는가, 지옥행이란 말이다."
  금속을 긁어대는 듯한 날카로운 목소리로 악을 쓰고 나서 씩씩거
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만약 제 구십일일까지 우리들이 해낸다면?"
  조니의 말에 타르는  날카롭고 잔인한 웃음소리를 냈다. 한참 동
안을 그렇게 웃어대던 타르는 자신의 행동이 너무 지나치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다. 좀더  자신을 억제해야 한다.... 펑소와 다르다.
억제하라.
  "물론 보수는 충분히 지불하겠다."
  "약속은 지켜라. 금은 약속한 날짜까지 반드시 건제줄 테니까>"
  됐다. 타르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녀석은 확실히 겁을 집어
먹고 있다. 역시 겁을 준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럼 식량자루를 지상차  위에 실어라. 저수탱크에 물을 넣어줄
것이고, 청소는 물론  보초도 철수시켜주겠다. 그러나 내가 리모트
컨트롤들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항상 잊지 말라구. 알겠는가? 이상한
짓을 했다가는 암컷들을 모두 날려버릴 테니까."
  조니는 식량자루를 지상차  위에 묶으며 탐지와 간섭장치를 몰래
떼어내 나무 뒤에 숨겨놓았다. 타르는 나뭇가지에 부딪쳐서 떨어져
나간 줄 알 것이다. 지금 당장은 필요없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쓸모
가 있을 것이다. 타르가 보네트의 라이트를 껐다. 조니는 광석들을
모두 자루에 쓸어담았다.  지금은 타르가 광석을 가지고 갈 생각이
없다는 것을 조니는 알고 있었다. 조니가 광석들을 모두 자루에 담
은 것을 확인한   타르는 지상차를 기지  쪽으로 돌려 어둠 속으로
빠르게 사라져갔다.
  타르의 시장장갑차가 완전히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채굴터의 동
굴속에 숨어 있던  더넬딘이 기관단총을 들고 모습을 나타냈다. 총
을 들고 있는 손이 땀으로 흥건했다. 그 구식 총으로 지상장갑차와
맞서 싸운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엇다. 타르가 계속 지상장갑
차 안에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물론 타르를 쏠 생각은 아니었
지만, 여자들이 죽었다면 조니를 인질로 데려갈지도 모른다고 생각
했던 것이다. 더넬딘이 호루라기로 짧게 신호를 보내자 열 명 가량
의 젊은이들이 기관단총의 안전장치를 걸면서 각자 숨어 있던 동굴
로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폭스 로버트도 몸을 숨기고 있던 폐허의
담벼락에서 나와  언덕을 내려왔다. 그러나  조니는 하염없이 본부
쪽을 바라보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불꽃처럼 강한 눈빛은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저 악마는 지금 미쳐가고 있다구."
  폭스 로버트가 입을 열었다.
  "얘기에 전혀 두서가 없어.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구. 게다가 그
웃음소리는 마치 미친놈의  웃음소리 같지 않나. 놈은 무엇엔가 겁
을 잔뜩 집어먹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구."
  "무인폭격기는 처음 듣는 얘기더군요."
  더넬딘이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알고 있지 않은가"
  폭스 로버트가 말했다.
  "맥타일러, 당신은 그놈에  대해서 잘 알고 있겠지. 놈은 미치기
직전이라고 생각되는데 어떤가?"
  "놈이 당신을 죽이러 온 줄 알았네."
  더넬딘이 덧붙였다.
  "놈을 멋지게 다루더군요. 맥타일러."
  "아니, 그놈은 방심할 수가 없어."
  두 시간 뒤 조니는  멀리 떨어진 우리 속에 불이, 바늘끝만한 조
그만 불이 타오르는 것을 보았다. 얼마 있으면 정찰을 나간 젊은이
들이 보초가 철수한  것을 알려줄 것이었다. 조니는 그들의 보고를
받은 뒤에 나오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고, 크리시의 상태를 살펴봐
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정말 타르가 미치가고 있다면 놈과의 거래에
지금보다 훨씬 신중을 기해야만 할 것이다. 변덕이 심한 것은 그때
그때의 상황에 맞게  대처해나가면 되겠지만, 머리가 돌아버렸다면
그렇게 간단히 다룰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제 2 권
  하늘과 녹색사이

  제 9 부
  저것이다. 신들의 무덤이다!

  (1)
  예년에 비해 매우 늦게 첫눈이 내렸다. 눈은 한번 내리기 시작하
자 그칠 줄 몰랐다. 거센 눈보라를 동반한 폭설은 채굴작업을 거의
불가능한 상태로 빠뜨리고  있었다. 먼저 수갱용 터널이 엉망이 되
어 버렸다. 심한 눈보라가 거칠게 몰아치자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
아 무너져버렸던 것이다.
  조니는 과열되기 직전의 비행작업대를 조종해서 핀을 박고, 구명
밧줄로 몸을 묶은 후, 당장이라도 빨아들일 듯이 거대한 입을 벌리
고 있는 골짜기 위해 매달렸다.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해 바삐
돌아다니며 쉴새없이 움직였다.  눈보라와 악전고투를 벌이며 채취
했음에도 불구하고 금은  구십 파운드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것이 한계였다. 도저히 더이상은 작업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눈보
라가 멈추기를  기다렸다가 다른 방법을  구상해낼 수밖에 없었다.
상황에 관계없이 타르에게는  열심히 작업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야
만 한다고 폭스  로버트가 제안했다. 그의 걱정스런 목소리는 눈보
라에 지쳐  있는 젊은이들에게 자극이  되어주었다. 더이상 가망이
없다고 판단되면 타르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려 들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상황이라면 무인정찰기에서 촬영한 사진을 봐도
눈보라 때문에  가려져 아무것도 볼 수  없을뿐더러 조니가 이곳을
떠나 있다고 해도 더욱  알 리 없었다. 지금까지 해온 대로 조니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교대로 밖으로 나가서 무인정찰기에
서 보이도록 한다면, 조니의 존재확인은 완벽하게 위장되는 것이었
다. 일전에  문자판을 들고 있던 사람은  토르였다. 눈보라 속에서
두 시간 이상 서 있기는 어려운 일이었으므로, 세 사람이 교대해가
며 조니의 역할을 대신했던  것인데 무인정찰기가 지날 때 마침 토
르 차례였었다.
  조니는 캠프를  떠났다. 새차게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을 헤치도
두 사람의 동료와  함께 우라밴을 향해 출발했다. 그곳에 우라늄이
있기 때문이었다.
  수송기에는 조니와 조종사,  그리고 엥거스가 타고 있었다. 이번
작전의 성패는 운명에 맡겼다. 앵거스는 이번 출장을 뛸 듯이 기뻐
하고 있었다. 그는 기계공학에 정통하고 있었으므로 모든 기계들의
조작과 수리에 능통했다. 더구나 그는 여섯 명의 동료와 함께 조니
에게서 전자공학을 배워 완벽하게 숙지한 상태였다. 성격적으로 승
부욕이 강하고 낙천적이었으며 정열의 화신 같은 사나이였다. 그는
우라밴에 우라늄이 산적해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어서 당장이라
도 삽으로 퍼담을 기세였다.
  그와는 달리 조니는 그렇게 간단하게 우라늄광산을 찾아낼 수 있
으리라고는 장담하지  않았다. 매장되어 있다  해도 방사능에 대한
보호장비가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삽으로 퍼담는  것은 뒤로 미룰
수 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조니는 앵거스의 열정을 괜한 말로 막고
싶진 않았으나 이번  출장의 목적은 호흡가스를 테스트하는 장소로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카다란 수확이라고 여겼다.
  폭설로 인해 시야는 취저로 떨어졌다. 수송기는 치열한 기관총알
같이 몰려드는 눈보라 속을 뚫고 저돌적으로 돌진해나갔다. 자동조
절장치는 전혀 작동되지  않아서 계속 시계비행을 해야만 했다. 한
두 차례 산꼭대기에  부딪힐 뻔했던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모면했을
뿐 특별히 위험한  상황은 없었다. 눈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흰구름
들이 어지럽게 소용돌이치고  있어 비행 방향을 잃어버릴까봐 조바
심이 났다. 몇  번인가 곤두박질칠 위기를 벗어났을 때 다행스럽데
고 물려가고 있어 백  마일 가량 비행했을 때는 폭풍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갑자기 어지러운  구름 속에서 벗어나자  푸른 하늘이 펼쳐졌다.
한 낮의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로키 산맥의 장엄함
이 푸른 하늘 아래 웅장히게 펼쳐져 있었다.
  "스코틀랜드의 경관도 장엄한데 이곳은 정말 대단하군요."
  부조종사가 중얼거렸다.
  조니가 속도를 오백 마일로 올리자 광대한 은빛 세계가 화살처럼
뒤로 날아가버리고 이윽고 목적지인 고원이 나타났다. 조니는 지도
를 펼쳐들고 우라밴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했다. 눈은 계속해서 내
리고 있었지만  옛날 지구인들이  만들어놓은 구불구불한 도로들이
펼쳐져 있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고대 도시로 접어들자
거리의 나무들과 닿을 듯  말 듯한 높이로 낮게 비행하였다. 흰 눈
으로 뒤덮인  폐허의 거리와 지도를 비교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
다. 버려진 석탄더미들이  조그만 무덤을 이루어 군데군데 쌓여 있
는 곳. 우라밴이 분명했다.  기체는 두껍게 쌓인 눈덩이 속을 파고
들며 착륙했다.
  앵거스가 문을 박차고 뛰어내렸다. 사슴처럼 킬트 스커트 자락을
휘날리며 건물 사이를  마구 뛰어다니다가 안을 들여다보기도 하며
기뻐서 어쩔 줄 몰라했다.
  "우라밴이다!"
  투명한 대개가  흔들릴 정도로 크게 외치면서  앵거스는 손에 든
낡은 물체를 들어 보였다.
  조니는 뒤로 손을  뻗어서 호흡가스의 카트리지와 기구를 집어들
었다. 그  기구는 앵거스와 함께 밤을  새워 만든 무선제어 장치였
다. 카트리지의 송출조절 기구를 개폐 조작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
다. 이제 방사능  농도가 높은 장소를 찾아내 카트리지를 장치해놓
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무선 제어기의 스위치를 작동시켜 호흡가스
의 폭발여부를 확인하는 일만  남았다. 그 밖에도 몇 개의 삽과 등
산용 로프, 갱도용 램프를 휴대했다.
  앵거스는 주위를 사냥개처럼 뛰어다니며 우라늄이 매장되어 있을
만한 장소를 찾고 있었다. 군데군데 버려진 광석더미들을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들은 오랜 세월 동안 비바람에 방치되어 온통 녹투성이
였다. 쌓인 눈들을  해쳐 가까스로 옛날에 쌓아놓은 광석더미를 찾
아냈다. 그곳에 호흡가스의 카트리지를 장치해놓은 후 멀리 떨어진
곳에서 호흡가스를 분출시켜  폭발하는지 여부를 확인했다. 실패였
다. 하지만 몇 번이고  반복해서 시험을 했다. 역시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조니는 비행기로 돌아오자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이곳은
사이클로인의 공격을 받기 전에 모두 파내어졌고, 그들은 광석찌꺼
기에 방사능이 남지 않도록 철저히 조치를 취해놓았던 것이다.
  조니는 암담한  표정을 지었다. 얼마나  어렵게 찾아온 길이었던
가. 그때 앵거스가 뭔가를 손에 들고 달려오면서 환성을 질러댔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오래전에 상자로 쓰였던 물체였다. 이미 형체
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부식되어 있었다.
  "폭발했다, 성공했다!"
  조니는 달려나가  상자를 손에 들고  바라보았다. 남은 테두리의
한쪽 귀퉁이 부분이 타지 않고 남아 있었다. 거기에 광석조각이 남
아 있었던 것이다. 그 광석 밑엔 금속판이 부착되어 있었는데 문자
가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너무 부식되어서 조저히 읽을 수가 없었
다. 원래는  이 테두리를 따라 납으로  붙인 유리가 끼워져 있었을
것이다. 그곳에서 깨져나간  듯한 조각들이 주위에 흩어져 있었다.
조니는 가까이에 있는 바위에 앉아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고정되어
져 있는 광석은  암갈색이었는데, 아마 연판 위에 올려져 광물표본
으로 사용된 듯했다.  조니는 우선 그곳에 새겨진 문자들을 해독하
려고 노력했다. 문자들만  해독해내면 그것이 무엇에 사용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최고의....'로  시작되는 문자밖에 도저히
읽어낼 수가 없었다.  그 외에도 이름이라고 생각되는 문자들이 있
었지만 역시  판독은 불가능했다. 얼마  동안을 문자들과 실랑이를
벌인 끝에 그것을 뒤집어보고 나서야 비로소 뚜렷하게 판독해낼 수
있는 문자를 찾아냈다.
  '탄광 우라늄 원석.'
  "자, 한번 보개."
  앵거스는 조그만 원석이  부착되어 있는 틀을 건네받자 삼십피트
가량 떨어진 곳으로  달려가 땅 위에 내려놓았다. 호흡가스의 카트
리지를 광석을 향해 고정시켜놓고 되돌아왔다. 흥분에 들뜬 앵거스
가 무선스위치를 작동시켰다.  펑! 호흡가스가 분출하는 순간 폭발
이 일어났다.
  "다시 한 번 해보겠네."
  앵거스는 완전히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  있었다. 그는 스위치를
작동시켜 카트리지에서 호흡가스가  최대로 분출되도록 했다. 카트
리지에서 분출되는 호흡가스는 방사선과 혼합되어 기세좋게 불꽃을
뿜어내며 로켓엔진처럼 솟구쳐올라 십 피트 가량 날아갔다. 조종사
와 앵거스가 환성을 올렸다.
  "우라광, 우라늄 원석이라...."
  조니는 책에서 읽었던 것들을 기억해냈다.
  "우라늄 광석의 일종이다.  많은 방사성 동위원소를 포함하고 있
다. 어디서 발견했는가?"
  두 사람이 조니를 데려간 곳은 보기에는 무참하게 부서져내린 건
물들의 잔해와 벽돌조각들이 어지럽게 널려진 채 두꺼운 층을 이루
고 있었다. 조그만 박물관이 있었던 곳으로 여러 가지 표본들이 널
려 있었다. 자수정, 적철광, 그 밖에도 이 지역에서는 산출되지 않
는 광석까지 있었다. 따라서  우라광, 우라늄 원석도 반드시 이 지
역에서 케냈을 것이라는 확증은 가질 수 없었다.
  "호흡가스 실험은 대성공이다!"
  앵거스는 벌써 승리감에 도착되어 있었다.
  "성공해서 다행이다. 그러나  이 지역에 우라늄이 매장돼 있다고
해도 너무 깊은 곳에  묻혀 있어서 지금 당장 파내는 것은 무리다.
우선은 연판을 좀더 모아서 표본만이라도 가지고 돌아가자."
  조니가 침착성을 되찾고, 앵거스에게 설득하듯이 말했다.
  "힘들여 왔는데 좀더 돌아보고 가세."
  앵거스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조니로서는 더 이상
그를 만류할 수 없었다. 다시 기지로 돌아가려면 어차피 동쪽을 향
해 휘몰아치는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그럼 그렇게 해보도록 하자구."
  조니는 폭풍이 지나가기  전에 최대한 빨리 작업을 서둘러야겠다
고 생각했다.

  (2)
  소형 수송기에서 내려다보이는  골짜기 밑은 등골이 오싹할 정도
로 거칠고 위험했다. 조니는 그 계곡 밑에서 작업하는 모습들을 계
속 지켜보고 있었다.  비행작업대가 골짜기 밑을 흐르는 강의 바로
옆에 놓여져 있는  것이 보였다. 겨울로 접어들면서 작업은 난항을
거듭하고 있었다.
  우라밴에서 돌아온 다음날  부터 폭풍은 잠잠해졌다. 온통 흰 눈
으로 뒤덮인 산과  계곡들을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절벽 주변은 세찬  바람으로 여전히 살을 에일 듯한 추위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 바람은 협곡을 따라 잠시도 멈추지 않고 거세
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젊은이 둘이서 작업대에 올라가 구백 피트
나 되는 협곡 아래고  떨어져내려 얼어붙은 강에 거꾸로 처박힌 수
갱용 사다리를  끌어올리려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더넬딘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검은 머리칼의 앤드류였다. 기둥 모양의 강철로 만
들어진 길이가 육십 피트나  되는 사다리는 얼어붙은 강물 속에 처
박혀 한쪽 끝만을 겨우 강기슭에 내맡긴 채 얼어붙어 있었다.
  두 사람은 비행작업대에서 길게 내려뜨린 훅을 강기슭 쪽으로 나
와 있는 사다리  끝에 걸고, 비행작업대를 상승시켜 사다리를 빼내
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사다리는 얼어붙은 물 속에 잠
긴 채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깨진 얼음 사이로 튕겨진 물
이 작업대를 적시며 금세 얼어붙어 작업대의 중량만 늘어났다.
  두 사람이 그런 무모한 일을 하고 있는 까닭을 조니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제 곧  날아올 무인정찰기에게 바쁘게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다른  작업반원들은 협곡 가장자리에 한 줄로 늘
어서서 눈보라로 엉망이  되어버린 뒤엉킨 케이블과 윈치용 드럼뭉
치를 풀어내고 있었다.
  무선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채굴작용 기계들은 모두 근거리
무선장치를 갖추고 있었다.  근거리 무선기를 쓰고 있는 것은 송신
범위가 책굴작업용  통화기와 마찬가지로 일  마일을 넘지 않았고,
특히 동쪽에 가로놓여  있는 산맥 때문에 사이클로인들에게 도청당
할 염려가 없었다. 까마득한 절벽 아래 떠 있는 비행작업대의 무선
장치는 계속 작동되고 있었다.
  "원치 릴의 제동장치를 풀어내라. 모터가 과열되고 있다구, 앤드
류."
  더넬딘의 긴장된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벗겨지지 않는다. 물살이...."
  "앤드류! 사다리를 잡고 훅을 벗겨."
  "꼼짝도 하지 않는다. 얼어붙어버렸다."
  무리한 부하를 견뎌내지  못하고 질러대는 모터의 비명소리가 켜
놓은 마이크로부터 들려왔다.
  그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조니는 상상할 수가 있었다. 비
행작업대는 비명소리만  내지를 뿐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들을
가에 떨어져서 얼어죽게 할 수는 없었다. 아니, 그전에 비행작업대
는 당장이라도 불을 뿜을 것 같은 상태였다.
  "박사님."
  조니가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준비는 됐나요? 박사님은 영웅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맥더모트 박사가 말했다.
  "옆문을 열고 구명밧줄을 두 대 던져주십시요."
  조니가 외쳤다.
  "이쪽 끝이  단단히 묶여 있는지 확인해주세요."
  맥더모트는 황급히 난잡하게 감긴 케이블을 잡았다.
  "꽉 잡으세요."
  조니는 폭풍이 세차게  휘몰아치는 협곡으로 수송기의 기수를 돌
려 단숨에 천  피트 아래 골짜기 밑바닥까지 비행해갔다. 양옆으로
솟아있는 암벽이 쏜살같이 빠르게 스쳐갔다. 맥더모트 박사는 너무
빠르게 급강하하자 속도를  견뎌내기가 어려웠다. 휜색과 붉은색으
로 어지럽게 뒤엉키며   멀어지는 세로줄 무늬 암벽을 바라보며 죽
을 힘을 다해서 기체에 매달렸다.
  조니가 무선수위치를 넣고 마이크를 향해 소리쳤다.
  "더넬딘, 탈출해야 해!"
  그때 강력한 충격파가 일어났다. 무인정찰기가 통과하고 있었다.
  더넬딘은 모피두건으로 감싼  얼굴을 하늘로 치켜들었다. 조니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타르가 믿도록 무인정찰기의 감시카메라가 자
신의 얼굴을 촬영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과열된 비행작업대의 모터가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평상시
의 연소색깔과는 다른 푸른 연기였다. 조니는 수송기를 비행작업대
의 이십오 피트 상공에서 정지시켰다. 그의 손가락들이 광란하듯이
컨트롤 버튼들을 두드려대고  있었다. 작업대의 모터에서 솟아오른
연기가 소용돌이를 그리며  수송기 안으로 스며드는 바람에 한순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박사님, 구명밧줄을 내려주세요."
  맥더모트는 당황하여 허둥대는  손놀림으로 케이블을 향했다. 하
지만 케이블들은 너무 어지럽게  널려 있어서 어떤 것이 어떻게 이
어져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한동안을 헤매다가 가까스
로 케이블의 끝을  찾아내어 급히 문밖으로 내던졌다. 케이블이 오
십피트 가량 늘어뜨려졌을 때  즉시 다른 쪽을 기체의 쇠붙이에 힘
껏 묶었다.
  케이블의 끝이 작업대 위에까지 닿게 하기 위해 조니는 필사적으
로 비행기를 조종하며 서서히 강하했다.
  "또 하나의 케이블 끝이 보이지 않는다."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로 박사가 소리쳤다.
  조니가 마이크에 대고 외쳤다.
  "로프를 잡아라!"
  "앤드류, 먼저 올라가라."
  더넬딘이 외쳤다.
  남은 케이블이 코일 모양이 된 채 눈 깜짝할 사이에 물살을 맞아
작업대에 얼어붙었다. 앤드류가 팔에 케이블을 감았다.
  "팔에 감으면 안돼!"
  조니가 소리쳤다. 더넬딘이  밑에 매달린다면 그 무게로 팔이 떨
어져 나가게 될 것이었다.
  "그 큰 망치를 묶어라!"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비행작업대의 모터에서 치솟았다. 앤드류
는 간신히 얼어붙은 큰 망치를 떼어내며 로프를 두번 감았다.
  "그것을 꽉 붙잡고 있어라!"
  조니가 고함쳤다.
  앤드류가 장갑  낀 손으로 큰 망치의  미끈미끈한 자루를 붙잡았
다.
  조니는 비행기를 이십피트  가량 상승시켜 앤드류를 끌어올렸다.
그와 동시에 다른 케이블끝을 더넬딘의 머리 위로 가져갔다.
  "자, 그럼 선장도 배를 버려볼까."
  더넬딘은 한마디 외치더니 로프의 끝을 잡았다. 조니는 비행기를
서서히 상승시켰다. 갑자기  급상승하면 충격 때문에 두 사람은 강
으로 떨어져 목숨을 잃고  말 것이었다. 큰 망치에 매달려 있는 앤
드류는 비행기에서 이십  피트 밑에, 그리고 거기서 이십피트 밑에
더낼딘이 매달려 있었다.
  "케이블이 풀릴 것 같다."
  뒤에서 맥더모트 박사가  비명을 질러댔다. 매달려 있는 두 사람
의 장갑이  모두 얼어있었기 때문에 조금만  충격을 받아도 그대로
미끄러져 내릴 상황이었다.  이 상태에서 골짜기 위까지 그들을 끌
어올린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조니는 다급하게 강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 순간 파열된 모터를
견디지 못한 비행작업대가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폭발하여 오렌지
색 불길에 휩싸였다. 대기를 뒤흔들어놓은 폭발의 충격으로 수송기
가 한순간 방향을 잡지 못하고 위로 튕겨져 올라갔다. 조니는 매달
려 있는 두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더넬딘의 방한바지가 불타고 있
었다. 불꽃  파편이 날아와 붙은 것이었다.  조니는 즉각 비행기를
강히 시켰다. 재빨리  조종판의 버튼들을 두들겨 눈덮인 가의 결빙
면위쪽 사십오 피트로  고도를 낮추었다. 얼음의 두께가 견뎌낼 수
있을까? 조니는 비행기를 서서히 강하시켰다. 더넬딘의 몸이 눈 속
에 깊이 파묻혔다.  그대로 눈 속을 백피트  가량 끌고 갔다. 겨우
불이 꺼졌다.
  강 옆에서 선반 모양의 바위를 발견했다. 눈이 두껍게 쌓인 좁은
장소였다. 조니는 골짜기 암벽 가까이까지 접근해서 더넬딘을 바위
위에 내려노히고 계속 강하했다. 일 인치, 일 인치, 큰 망치자루에
서 미끄러져내리던 앤드류의 손은 끝내 망치자루를 놓치고 말았다.
  지상에서 십 피트를 남겨놓고 완전히 미끄러져 바위 아래로 굴러
떨어지려는 것을 더넬딘이 몸으 잡아서 끌어올렸다.
  "모처럼 영웅이 될 수 있었는데 실패했군."
  박사의 입에서 농담이 튀어나왔다.
  "아닙니다. 그 정도만으로도 훌륭했습니다."
  앤드류가 말했다.
  조니는 비뱅기에서 내려 협곡의 가장자리까지 걸어갔다. 다른 세
사람들도 그의 뒤를 따랐다. 작업반원들이 골짜기 아래쪽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모두 긴장으로 땀에 젖어 번쩍이고 있
었다. 조니는 천  피트나 되는 바닥을 내려다보며 강기슭에 파묻혀
한쪽부분만 드러내고 있는  사다리를 쳐다보았다. 비행작업대는 폭
발과 함께 산산조각이 나면서  밑으로 자취를 감춰 그 형체조차 찾
아볼 수  없었다. 비행작업대 근처의 눈들은  폭발로 검게 변했고,
흐트러진 파편들로 온통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조니는 참담해진  상황들을 모두 확인 한  후 더넬딘과 작업반원
모두를 향하여 말했다.
  "이제는 손을 쓸 수조차 없게 되었다."
  작업반장과 더넬딘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대로 중단할 수는 없다구."
  "하지만 생명을 건  곡예비행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젠 금
방이라도 터져버릴 것만 같은 불안한 심장을 부여안고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작업대엔 더이상 매달려 있을 수 없다. 자아 모두들
이쪽으로 와보게."
  전원이 조니를 따라서 착륙장으로 갔다. 조니는 똑바로 아래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광맥은 이 밑에서 벼랑까지 계속이어져 있다. 주머니 모양의 광
맥이다. 금덩어리는 이,  삼백 피트 간격으로 매장되어 있다. 여기
서부터 광맥까지  수갱을 파내려가서  그곳에서부터 광맥을 따라서
땅속으로 벼랑의 표면까지  파나간다, 뒤쪽에서부터 금으로 접근하
는 셈이다."
  모두들 침묵을 지킨 채 조니의 말을 듣고 있었다.
  "문제는 그 광맥에 커다란 균열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폭발
물을 절대 사용할 수 없다. 당장 벼랑이 무너져버릴 테니까."
  조니는 처음 균열을  발견했을 때부터 염려하며 혼자 구상해두었
던 계획들을 모두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드릴로 파나간다.  포인트 드릴을 몇  개씩 병행해서 박아넣고,
구멍을 뚫은 다음 진동착암기로 바위를 깎아나간다. 폭파나 깨뜨려
부수는 게 아니면  깎아나가는 것이다. 시간이 계획보다 훨씬 많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필사적으로 노력하다면 성공할 수 있
을 것이다."
  반대 방향에서 땅속을  파나간다.... 그렇다. 좋은 생각이다. 그
래, 그럼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모두들  침묵을 지키고 있었지만
무언으로써 조니의 계획에 찬성하고 있었다.

  (3)
  즈즈토는 타르가 기계공과  함께 낡은 무인폭격기를 수리하는 모
습을 불안스러운 듯이 지켜보고 있었다.
  거대한 지하격납고에 드릴과 해머의 소음이 요한하게 울러퍼지고
있었다. 반년에 한 번씩 있는 인원보충이 얼마 전에 있었던 덕택에
즈즈토는 새로운 기계공  몇 명을 할당받았다. 갑자기 작업원이 증
원되자 즈즈톤는 사흘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연료를 보급하기 위해
무인 정찰기를 교환하는 일 외에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지금까지
타르는 즈즈토가 담당하고  있는 수송부에 대해서만은 웬지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스무 대의 전투
기들 조차  관리와 보수를 모두 맡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타르가
갑자기 엉뚱한 작업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에게 별로 불만을
갖지 않았다.
  즈즈토로서는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
었다. 무인폭격기라니?  도대체 저걸로 뭘  어쩌겠다는 거야.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말문이 막힌 채 한동안 바라보기만 하던 즈즈토는
한마디라도 해두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타르는 제어실에서 컨
트롤 버튼들을 조작하여  사전 항로설정을 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그리스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손에 들고 있는 조그만 컨트롤
박스에 지정된 항로를 무인정찰기긔 주조종장치에 입력시키고 있었
다.
  "스코틀랜드.... 스웨덴."
  타르는 몇 개의 도표와 노트를 번갈아 찾아보며 무인폭격기의 항
로지정 버튼들을 누르고  있었다. 무인조종기였던만큼 조종석이 없
어 앉을 곳도 없는  폭격기의 밸런스 모터의 격납부분에 불편한 자
세로 웅크리고 있는 타르의 손은 바삐 움직였다.
  "....러시아, 알프스,  이탈리아, 중국....  아니, 틀렸다. 알프
스, 인도, 중국 이탈리아, 아프리카...."
  "타르."
  즈즈토가 조심스럽게 불렀다.
  "시끄러워."
  타르는 고개도 들지 않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마존, 안데스, 멕시코, 로키 산맥이라!"
  "타르"
  즈즈토는 다시 한 번 불렀다.
  "이 무인폭격기는 천 년  동안이나 방치된 채 한 번도 날아본 적
이 없는 고물이라구."
  "그래서 이것을 다시 쓸  수 있게 수리하고 있잖아. 보면 모르겠
어!"
  항로를 몇 번이나 수정한  끝에 타르는 겨우 사전 항로설정을 끝
냈다.
  "타르, 당신은 이것이  지구를 정복할 때 사용되었던 폭격기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거야? 우리들이 지구에 들어오기 훨씬 전에 가스
를 살포하기 위해 사용됐던 비행기라구."
  "그러니까 가스 캐니스터를 달려고 하잖아."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이 별은 이미 천 년 전에 정복되
었다구.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무슨 가스야. 가령 두세 군대만 살
포한다 해도 회사의 광산들 역시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될거야."
  "호흡가스가 있잖아."
  타르는 즈즈토를 어깨로 밀어내고, 다시 거대한 무인폭격기 앞으
로 다가갔다. 작업원이  지하 깊숙히에 있는 창고에 보관되었던 커
다란 가스통을 굴려가지고 와서 쌓인 먼지를 조심스럽게 털어냈다.
가스통을 무인폭격기에  장착하는 작업원에게 타르는 기세등등하게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열다섯 개라고 했잖아. 열네 개밖에 안 가져오면 어떻게 해. 당
장 한 개 더 가지고 와."
  작업원이 다시 지하창고로 황급하게 뛰어내려가는 것을 불만스런
눈빛으로 흘겨보며, 캐니스터의  분출밸브와 접속선의 색깔을 확인
하여 차례차례로 밸브에 연결시켜나갔다.
  "타르, 이 무인폭격기는  이제 역사적인 유물로 박물관에나 보관
해 두어야 한다고, 위험한 짓은 그만둬. 모터가 작은 무인정찰기를
조종하는 것과는 근복적으로  다르다구. 무인정찰기는 컨트롤 박스
하나로도 자유자래로 조종할  수 있지만, 무인폭격기는 모터용량만
해도 광석수송기의 열 배가 넘기 때문에 컨트롤 박스에서 발사되는
반신파 따위는 모터소리에 지워져버리게 된다구. 그렇게 되면 한번
이륙한 무인폭격기는 아무도 멈추게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
데나 그 살인가스들을 뿌려댈 것이 뻔하다구."
  "시끄러워."
  타르가 짜증스럽다는 듯 소리쳤다.
  "규칙으로는...."
  즈즈토는 집요하게 말을 이었다.
  "이런 비행기는  가장 긴급한 사태에만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
다. 지금은 긴급사태가 아니다, 타르."
  "시끄러워."
  타르는 분출밸브의 접속작업을 계속했다.
  "게다가 당신은 무인폭격기를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동
발사대 앞에 대기시키라고 작업원에게 명령한 것 같은데 그곳은 광
석화물기가 사용하는 장소다.  그리고 그것은 전쟁중에나 사용하는
무인기다. 새로운  별에 대한 단  한 번의 공격에  사용할 수 있을
뿐, 퇴각하는 경우 외에는 절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있다. 현재
이 별에서는 전쟁중인 곳도 전혀 없을뿐더러 우리가 퇴각하려 하는
것도 아니다. 도대체 무슨 일에 무인폭격기가 필요하단 말인가?"
  타르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노트를 내던지며 즈즈토 앞으
로 바짝 다가가 눈알을 부라리며 고함을 쳐댔다.
  "그런 것은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전투담당관이 없
는 별에서는 보안부장이 그 직무를 겸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나
의 명령이 최종명령이란  말이다. 이 무인기는 격납고의 발사대 앞
에 대기시켜놓는다.  누구도 절대로  움직여서는 안된다. 조종은..
.."
  타르는 즈즈토의 코앞에 사방 일 피트 정도 되는 작은 상자를 흔
들어 보였다.
  "날짜르 지정하여 발사버튼만  누르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도
록 해놓았다.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마라.  이륙하면 미리 설정된
항로로 만 비행하도록  철저히 입력시켜놓았기 때문에 항로를 이탈
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이것을  언제든지 이륙할 수 있도록
대기시켜둬야 한다."
  이미 천 년 저에  사용되었던 거대한 유물을 실은 이동대가 움직
이기 시작했다. 즈즈토는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기체는 격납
고의 발사대 앞에  놓여졌다. 이제 다른 수송기들은 그곳을 지나갈
수 없게 되었다.  무인 폭격기가 단 하나뿐인 입구를 가로막아버렸
던 것이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런 괴상한 장소에 항로설정을 해놓았지?"
  즈즈토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타르는 커다란 렌치를 든 채 즈
즈토에게 다가갔다.
  "그것들은 동물들이  붙인 이름이라구.  동물들이 살아남아 있는
장소지."
  "그 조금밖에 안 남은 동물들 말인가?"
  그 순간 타르의 손에  들려져 있던 렌치가 즈즈토를 향해 날아갔
다. 즈즈토가 잽싸게 몸을 피하자 렌치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
에 굴러떨어졌다. 겁에  질린 작업원은 황급히 격납고의 구석진 곳
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당신은 완전히 미쳤군, 타르."
  즈즈토가 소리쳤다.
  "내가 동물도 아닌데 미치긴 왜 미처!"
  타르가 마구 소리쳤다.
  뒷걸음치는 즈즈토에게 아랑곳하지 않고 이동대에 실린 무인폭격
기는 천천히 발사대 앞으로 이동했다.
  "그곳에 세워라."
  누구에겐지 모르게 타르가 고함쳤다.
  "넉 달 안에는 출격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 제구십삼일에는  반드시 출격한다.  타르는 히죽이 웃었
다.
  그 순간 즈즈토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그 자
신마저 깜짝 놀라게 하였다. 언젠가 기회가 오면 반드시 타르 녀석
을 제거해야만 한다. 녀석이 완전히 미쳐버리기 전에. 타르는 노동
자들에게 무기를 돌려주어,  작업정에 무기를 비치해 놓은 것은 물
론 벨트건을 휴대하는 것까지도 허가해주었다. 즈즈토는 타르의 그
러한 변화를 넘프에게 얘기해보았다. 즈즈토와 넘프는 사냥을 무척
좋아하여 서로 은밀히 통해오고 있었다. 무인폭격기가 가스를 뿌려
댄다면 모처럼 늘어난 사냥감들이 거의 전멸해버릴 것이었다. 그러
나 분개하는  즈즈토와는 달리 넘프는 꼼짝  않고 앉아서 무표정한
눈빛으로 즈즈토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 옛날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가스공격에 사용됐던 무인폭격기
는 다른  수송기들의 통행에 방해가 되는데도  그날 이후로 발사대
앞에 당당히 버티고  서 있었다. 폭격기는 뱃속을 살인가스로 가득
채우고, 타르가 컨트롤 스위치의 버튼을 눌러주기만을 기다리고 있
었다. 즈즈토는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어깨를 움추리면서 녀석이
완전히 미쳐버렸다고 생각했다.

  밤늦게 숫소로 돌아온  타르는 복잡하게 뒤엉킨 생각들을 정리하
기 위해 애쓰다가 오히려 더 깊은 혼란에 빠져버렸다. 제이드가 무
엇 때문에 지구에  잠입해 왔는지 아무런 단서도  잡지 못한 채 또
하루가 지났다. 도대체 놈은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일까?
  무인정찰기에서 전송되어오는 사진들을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매
일매일 철저히 검토하고  있었다. 현재 암벽 뒤쪽으로 땅을 파들어
가고 있었다. 꽤나 좋은 착상이었다. 일이 잘될 것 같았다. 잘안된
다고 해도 동물들이 알아서 어떻게든지 잘되게 할 것이었다.
  여자들에 대해서는 매일밤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으며 장작과 고
기도 던져주었다. 이따끔  우리 입구에 꾸러미가 놓여져 있곤 했는
데 어떻게  해서 놓여져 있는지는 골치아프게  생각하지 않기로 하
고, 우리안으로 던져넣었다.  배수관도 고쳐주었다. 그러나 암컷들
을 볼 때마다 '초능력'이란  것이 마음에 걸렸다. 대체 어느 쪽 암
컷이 신호파를 보내고  있는 것일까? 음파탐지기로 알아낼 수는 없
을까? 하지만 관계없다. 산에 있는 놈들이 채굴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는 한 암컷들은 살려주자. 암컷들은 그 녀석의 약점이니까. 일단
내년 제구십삼일까지 기다려보자.  동물들이 계속 당하고만 있으리
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녀석들을 붙잡아두고 있는 한 회사나 정
부로 부터 언제  꼬리를 잡힐지 모른다. 어찌되었든 일만 마루리되
면 동물들은 모두  죽여버리면 된다. 이번에야말로 한 놈도 남기지
않고 전멸시켜버려야겠다.
  타르는 아직도 뚜렷한 결말이 보이지 않는 계획에 대해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잠에  곯아떨어졌다. 제이드 때문에 나는 그 찬란한
황금들을 수중에  보관할 수조차 없다. 바로  그 점이 놈이 목숨을
잃는 원인디 될 것이다.  하지만 IBI 최고의 수사관을 어떻게 하면
감쪽같이 살해할  수 있을까? 더구나  완전범죄로 처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어쨌든 그날이 올
때까지는 모범사원처럼 얌전히  있어야만 한다. 창사 이래 가장 친
절하고 정확한 보안부장으로 보여야 한다.
  내가 미쳤다고? 하하하.  농담은 그만. 단지 지나치게 영리한 것
뿐이지.

  (4)
  조니는 고향마을을 향해 비행하고 있었다.
  수송기를 마을의 목초지가 있는 위쪽 골짜기에 착륙시켰다. 조니
는 수송기에서 말  네 마리와 커다란 짐뭉치를 내려놓았다. 얼마전
에 새로 잡은 야생마가  비행 때문에 상당히 흥분하고 있어서 눈가
리개를 벅기자 콧김을  거칠게 뿜어내며 발을 굴렀다. 얼어붙은 듯
이 차가운 공기가 맑게 느껴졌다. 눈보라가 지나간 지 얼마 안되서
주위는 눈으로 뒤덮여 있었고, 사방은 쥐죽은 듯이 고요했다.
  앵거스와 목사인 맥길비가  조니를 따라 함께 가기로 했다. 혹시
그곳에서 밤을 새워야 할  경우에 대비하여 조종사 한 명을 수송기
에 남겨두기로 했다. 기지를 출발할 때 조니는 무인정찰기가 이 지
역을 통과하는 것을 확인해두었다. 무인정찰기는 내일 같은 기간에
다시 나타날 것이었다. 무인정찰기가 수송기를 발견하기 전에 이곳
을 떠나야만 했다.
  며칠 전  조니는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났
다. 우라늄이 매장돼 있는  곳을 알아낸 것이었다. 그가 태어난 바
로 그 마을이었다. 마을사람들이 걸려 있는 적반병이 그 증거였다.
매장량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라밴에서 가지고 온 표
본덩러리보다는 많을 것이다.
  조니는 마을에  들어가려는 자신의  계획을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 그는 우선  마을 사람들을 이주시키기로 결심했다. 방사능
의 오염으로부터 보호하려는 것은 물론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폭격
기의 공격으로부터 마을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조니는 몇 사
람을 데리고 산맥  일대를 둘러보며 마을사람들이 이주하기에 적합
한 장소를 물색하였다.  며칠 동안 산맥 구석구석을 찾아 해매다가
어제서야 비로소  적당한 장소를 찾아냈던  것이다. 그곳은 서쪽의
경사면에 위치해  있었다. 오래전에 광산촌이  있던 곳으로 표고도
마을보다 낮았고, 좁기는  했지만 서쪽의 평원으로 통하는 길도 있
었다. 그  거리를 따라 한가운데로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근처엔
아직 유리창도 깨지지 않은 건물들이 여러 채 남아 있었고, 사냥할
수 있는 야생동물들도  매우 많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조니가 그
곳을 선택한 것은 유사시에 대피호로 쓸수 있는, 길이가 반마일 가
량이나 되는 터널이  마을 뒤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가까운 언덕에
는 석탄적치장이 있었다. 마을 주변의 경치는 매우 아름다웠고, 우
라늄의 존재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마을 사람들이
그곳으로의 이주를 쉽게 승낙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조니의 설
득은 매번 실패했었다. 어버지마저 그의 제안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았을 만큼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의  이주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이주하지 않으면 안될 명백한 이유가 있지 않은가. 어
떻게든 그들을 이주시켜야만 했다.
  앵거스와 목사, 두 사람에게는 방사능이 인체에 끼치는 위험성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하고,  방사선에 오염될 염려가 있으니 절대 따
라와서는 안된다고 몇 번이고 만류했지만, 그들은 한사코 자신들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마을의 목초지에 직접 착륙할 수는 없었다. 무인정찰기라면 마을
사람들도 몇번 본 적이  있었지만 거대한 수송기를 직접 본다면 모
두 두려워할 것이  분명했다. 조니는 어제 밤늦게까지 자신의 계획
을 검토한 후  앵거스와 목사에게 주의사항을 간략히 설명했다. 마
을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한  행동은 절대로 하지 말 것, 괴물에 대
해서도, 크리시가 지금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절대 말하지 말
것.
  목초지의 남쪽과 그 주변의 산길들은 모두 눈사태로 통행이 불가
능했다. 남쪽으로 난  길들이 마을 사람들이 이용하는 유일한 통행
로였기 때문에 조니의 일행이 북쪽 골짜기를 따라 마을로 내려간다
면 모두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었다. 하지만 수송기를 직접 목초지
에 착륙시키지 않게  않고 마을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은 오직 그 길
뿐이었다. 말을  탄 세 사람은 짐 실은 말을 내세워 천천히 목초지
를 향해 내려갔다. 부드러운 눈이 땅을 덮고 있어서 말발굽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다. 마을 변두리에 접어들어 황폐하게 버려진 몇 채
의 오두막을 지나자 장작 때는 냄새가 희미하게 코를 찔러왔다. 앵
거스가 말에서 내려 출발  전의 계획에 따라 방사능 검사를 시작했
다. 방사능은 검출되지 않았다. 조니는 아래쪽에 보이는 마을 회의
장소로 쓰이던 건물을  향해 말을 몰았다. 앵거스가 다시 조니보다
앞장서서 방사능검사를 했다. 역시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늙은 사냥개 한 마리가 폐허가 된 건물 앞에서 반쯤 감긴 눈으로
마을로 다가오는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동안을 그렇게 바라보
기만 하던 사냥개가  갑자기 조니 일행을 향하여 달려오고 있었다.
사냥개는 자신의 거의 파묻힐 만큼 쌓인 눈 위로 마치 헤엄치듯 달
려오며 꼬리를  흔들어대고 있었다. 그  동작은 가까워올수록 점점
커져만 갔다. 조니가  허리를 구부려 맞이하자 사냥개는 기뻐 어쩔
줄 몰라 껑충껑충  뛰어오르며 반갑다는 듯이 짖어댔다. 그 소리에
대답하기라도 하듯 마을 쪽에서 몇 마리의 개들이 짖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니는 말에서  내려 개를 쓰다듬어주었다. 자세히 보니
전에 기르던 팬서라는  사냥개였다. 조니가 말으 끌고 걷기 시작하
자 팬서는 조니  주위를 맴돌며 뛰어다녔다. 기쁘게 반기는 팬서의
몸짓 속에서 조니는 자신의  계획이 잘될 것만 같은 희망감에 젖어
들었다. 마을로 들어서자 이윽고 움푹 들어간 눈을 커다랗게 뜬 작
은 아이가 건물 한쪽구석에서  조니를 바라보고 갑자기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마을 쪽으로 달려갔다.
  조니는 다 쓰러져가는  건물 앞에 멈춰 서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문은 이음쇠가 떨어져나갔고,  내부는 썰렁한 냉기만 가득할 뿐 텅
비어 있었다. 바람에  흩날린 눈발이 건물 안에까지 흩뿌려져 있었
다. 조니는  그 황량함에 참담한 인류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무거운 발길을 돌려  마을로 향하여 다시 한 번 자신의 이
주계획을 굳게 결심했다.  쥐죽은 듯 고요하게 황폐된 마을의 언덕
위에 조니의 집이 있었다.
  조니는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고 쏜살같이 말을 몰아 문
을 두드렸다.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고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얼렌
큰 어머니였다.
  "조니!"
  큰어머니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너는 죽었을 텐데.... 조니!"
  큰 어머니는 자신의 눈을 못 믿겠다는 듯 뚫어지게 서 있다가 조
니가 손을 내밀자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한참 동안 조니를 끌어
안고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던 큰어머니는 앞치마로 눈물을 훔쳐냈
다.
  "자아, 들어오너라, 조니.  네 방은 옛날 그대로 남겨두었다. 네
물건들은 마을  젊은이들에게 나눠줘버렸지만.... 아,  내 정신 좀
봐. 빨리  들어오너라. 저런,  먼길을 오느라 온몸이  꽁꽁 얼었구
나."
  "마을에 무슨 병이라도 돌고 있나요?"
  조니는 안으로 들어서며 두 사람을 어떻게 소개해야 그녀가 이해
할 수 있을까 잠시 망설였다.
  "아니다, 조금도 달라진  것은 없단다. 언덕 위에 사슴이 나타났
기 때문에 젊은디들은 모두 사냥을 나갔다. 먹을 것이 거의 바닥나
있으니까. 네가 떠나고 난 후로 줄곧 그래왔단다."
  큰어머니는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조니  역시 가슴이 미어지는
듯 했다. 자신이 떠나 있는 사이 큰어머니는 무척이나 여위고 수척
해져 있었다. 눈은 깊게 패여 있었고, 불거져나온 뼈들은 앙상히기
만 했다.
  한동안 복받쳐오르는 울분과 큰어머니에 대한 연민으로 괴로워하
던 조니는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는 비로소 문밖에 서 있
는 앵거스와 목사를 집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큰어머니에게 소개했
다. 지금까지 한 번도  외부 사람들을 본 적이 없는 큰어머니는 그
들의 갑작스런  출현에 당황해 하였다. 잠시  후 두 사람과 인사를
나눈 큰오머니는  그들을 난로 가까이에 오게  하고 서둘러 수프를
끓여 왔다.  두 사람이 무척 맛있다고  인사할 때쯤엔 그녀도 다소
긴장을 풀고 기쁜 듯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크리시는 만나지 못했니?"
  엘렌은 조니를 만난 순간부터  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있던 말을
더이상 참아내지 못하고 말았다.
  "크리시는 살아 있어요, 패티도 함께."
  조니는 태연한 척  대답했다. 큰어머니를 놀라게 할 필요는 없다
고 생각했다.
  "정말? 그것 참 잘됐구나. 얼마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크리시
는 아무 말도 없이 떠나버려. 네 말들만 돌아오자...."
  큰어머니는 조니를 힘껏  끌어안고 지난 세월의 고통을 서러워하
며 울음을 터뜨렸다. 조니 역시 더이상은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
다. 연민에 빠져 있을 만큼 여유가 없었다. 밖으로 나온 조니가 건
물 한쪽에서 자신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한 아이를
불러 사슴사냥에서 돌아온 마을사람들을 한곳으로 불러달라고 말했
다.
  마을회의가 소집된 시간은 오후 네시였다. 그들 중 살아 있는 사
람은 짐슨 노인과 브라운 린퍼 스패터 두 사람뿐이었다. 조니가 상
상했던 것보다 사태가 훨씬  빠르고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게 분
병했다. 최근에 죽은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이미 오래전에
우라늄의 독성으로 숨졌던  것이다. 조니는 난로에 불을 피우고 문
에 빗장을 질러  안으로 잠갔다. 노니가 앵거스와 목사를 소개하자
마을 사람들은 당황해 하며 인사를 나눴다. 그들 역시 외부 사람들
을 한번도 본적이 없었던 것이다.
  조니는 그가 돌아온 이유를 마을 사람들이 놀라지 않도록 조심하
면서 설명해나갔다. 자신이  마을을 떠난 것은 이 골짜기가 사람들
에게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출산율은 자꾸만 줄어
드는 반면 사망자는  계속해서 늘어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
래서 좀더 살기 좋은 고장을 찾으러 더났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곳
을 발견해냈다. 그곳은 매우 살기 좋은 마을이었다. 마을의 한가운
데로 강이 흐르고  있었다. 맑은 물은 넘쳐흐르고 눈사태의 위험도
없었다. 사냥감도 무궁무진했다. 튼튼하게 지은 집은 온돌이 잘 잘
놓여져 있어서 땔감만 있으면 추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참
으로 살기 좋은 곳이었다. 조니는 그들이 알아듣기 쉽게 열심히 설
명했다. 짐슨은 조니의 말에  매우 흥미를 느끼고 있는 듯했다. 하
지만 브라운 린퍼는  조니를 원망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일을 생
각해봐라. 네가 떠났기 때문에 크리시와 패티가 떠나지 않았냐....
아마 그녀들은 모두 죽어버렸을 것이다. 그래 놓고 일년 반이 지난
지금에야 돌아와서 이주를 해야 한다고.... 더구나 이주를 하는 것
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길이라고.... 이곳은 선조 때부터 살아
온 우릳르의 고향이다.  비록 반창하지 못했지만 우리들은 줄곧 언
전하게 살아오지 않았는가. 굳이 위험을 자초할 이유가 무엇인가.
  표결이 행해졌고 찬반은 양분되었다. 앵거스와 목사는 이러한 상
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난처한 표정만 지을 뿐 침묵을 지
키고 있었다.
  "옛날에는 마을  전체회의가 있었다고 생각하는데요. 마을사람들
모두가 참석하는 회의 말입니다."
  조니가 새로운 방법을 제안했다.
  "내가 태어나서 한 번도 그런 일은 없었다."
  린퍼가 반박하고 나섰다.
  "아니다, 나는 몇 차례인가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짐슨은 조니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분명히 삼십 년  전에 마을의 가축들을 넣어둘 장소문제로 전체
회의가 열린 적이 있었다."
  "마을대표들의 표결이 동수인  경우에는 마을 전체회의를 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브라운 린퍼는 조니의 제안이 달갑지 않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
다. 이미 대여섯  명은 조니의 이주계획에 호기심을 드러내며 모여
들고 있었던 것이다. 조니는 그들에게 마을사람들을 모두 이곳으로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였을  때는 이미 다섯시가 지나 있었다. 서
서히 어둠이  밀려들었다. 조니는 장작을  가져다가 모닥불을 피웠
다. 모닥불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은  사람들의 얼굴이 피어오르는
연기 사이로 흔들렸다. 조니는 암담한 기분에 젖어 있었다. 모두들
지칠 대로 지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절망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
워져 있었고, 불치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나마도 스
물여덟 명밖에 되지 않았다.
  사이클로인에 대해  분노가 불꽃처럼  조니의 가슴속에서 타올랐
다. 견딜  수 없는 분노로 당장이라도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
다. 지금 자신이 흔들린다면  아무 일도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조
니는 한사람 한사람에게 내면의 아픔을 삭이며 웃음을 보여주었다.
용기를 갖게 하고 싶었다.
  마을회의의 대표자들에게  허락을 받은  조니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이 가지고 온 보따리를 풀어헤쳤다. 마을사람들에게 줄
선물이었다. 말린  고기, 키니키닉, 불이 잘  켜지는 부싯돌. 마을
사람들을 뛸 듯이 기뻐하며 조니에게 고마워했다. 조니는 스테인리
스 도끼를 꺼내 높이 치켜들고 커다란 장작을 단번에 쪼개 보였다.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도끼도 마을사람들에게 건네주었다.
스테인리스로 만든 칼들도 내놓았다. 손을 베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한 다음 고기를 썰어 보이자 여자들은 일제히 환성을 울렸다. 그
는 스테인리스  칼들도 나눠주었다. 신기함에  들떠 있던 분위기가
가라앉을 즈음 조니는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먼저 이
주해 갈 마을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이주가 얼마나 간단한
일인가를 얘기했다. 물론  수송기에 태우고 간다는 말은 하지 않았
다. 비행기 운운했다가는 아무도 조니의 말을 믿지 않으려 할 것만
같았다.
  설명을 마친  조니가 질문하세요라고 말했을 때  누구 하나 손을
드는 사람이 없었다.  거의 결과를 확신한 조니는 자루에서 삼각형
모양의 유리조각을 꺼냈다. 조니는 유리조각을 모두에게 돌려 보이
며 그것을 통해 물건이 보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주해 갈 마을
의 모든 창문에는 이런 것이 끼워져 있어서, 추위를 막아주고 따뜻
한 빛만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골짜기 때문에 병이  걸리는 것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골
짜기에는 독한 물질이 묻혀 있어서 아이가 태어나지 못하는 것이라
고도 덧붙였다.  모든 설명은 끝났다. 이제  그들의 판단만이 남아
있었다.
  조니는 초조한 표정으로 짐슨이 표결에 붙이는 것을 지켜보고 있
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미 결정을 내리고 있었던 듯이 빠르게 진행
되었다. 짐슨이 표를 모아  찬반을 가렸다. 찬성 셋, 반대 열다섯.
조니로선 상상도  못했던 결과였다. 조니는  도저히 그대로 물러설
수가 없었다. 조니는 벌떡 일어섰다.
  "말해줘요. 왜 반대하는지 그 이유를."
  나이가 지긋한 오헤무스 마샬이 일어났다. 그는 사람들을 둘러보
며 발언해도 좋은지를 확인하고 나서야 얘기를 시작했다.
  "이곳은 우리들의 삶터다.  지금까지 여기서 안전하게 살아왔다.
물론 자네의 선물에는 모두 감사하고 있다. 자네가 살아 돌아온 것
은 정말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말에 브라운 린퍼는 고소해 하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마
을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모닥불을 등지고 어둠 속으
로 사라져 갔다.
  조니만이 머리를  양손으로 끌어안은 채  남아 있었다. 부드러운
목사의 손길이 조니의 어깨를 두드렸다.
  "영웅은 고향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법일세."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것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조니는 목이 메어  말끝을 맺지 못했다. 조니의 머릿속에선 몇번
이고 같은 말만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우리 마을  사람들.... 그들은 대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은
어떻게...."
  그날 밤 조니는  공동묘지가 있던 언덕으로 올라가, 눈을 헤치고
아버지 무덤의 십자가를 찾았다. 십자가는 눈 속에 쓰러져 있었다.
조니는 십자가를 일으켜  세워 쌓인 눈을 털어내고, 어버지의 이름
을 새겨녛었다. 밤이  깊어가며 추위가 점점 심해졌지만 조니는 그
자리에 선 채  어버지가 잠들어 있는 무덤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결국 어버지도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전
혀 이해하지  못했었다. 아아, 우리 마을  사람들은 여기서 아무런
대책도 없이 모두 죽어가야만 하는 것일까? 하이피크로부터 불어오
는 살을 애이는 듯한 차가운 바람이 조니의 몸을 감싸고 휘돌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신음하듯 낮게 울어대고 있었다.

  (5)
  "일어나, 조니! 일어나라구, 폭발해단 말야."
  조니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직  새벽의 어스름이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탁자 위의 램프빛을 등지고 서 있는 앵거스의 그림
자가 길게 벽까지 뻗어 있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조니와 앵거
스는 밖으로 뛰쳐나왔다.
  밤을 새워가며 마을  주변을 탐색하던 앵거스가 드디어 방사선이
검출되는 지역을 찾아냈던 것이다. 그곳은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셈이었다. 조니가 셈에 도착한 것과 앵거스가 무선스위치
의 버튼을 누른 것은 거의 동시였다.
  "쾅!"
  앵거스가 미리 준비해놓은  호흡가스가 강렬한 섬광과 함께 폭발
했다. 폭음소리에 놀라 잠을 깬 목사가 황급히 달려왔다. 앵거스는
다시 한 번  호흡가스를 폭발시켰다. 조니는 등줄기에 오싹 소름이
끼쳤다. 방사능이 분출되고 있는 장소는 마을사람들이 하루에도 수
세번씩 물을 길러 다니는 셈의 바로 옆이었다. 어릴 때부터 조니는
그셈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는 청소나 물 긷는 일은 전혀
하지 않았고,  오로지 어른들을  따라다니며 사냥에만 열중했었다.
말에 물을 먹여야 할  때도 언덕 위의 셈을 이용했었다. 자신이 방
사능에 면역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완전히 착각이었다. 다만
그 셈 근처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방사능을 덜 쏘
였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매일같이 물을  길어야 했던 여자들이나
사냥할 수 없어 집안일을  돌보는 노인들은 늘 방사능을 쏘이고 있
었던 것이다. 생각할수록 소름끼치는 일이었다.
  앵거스는 당장이라도 그곳에  묻혀 있는 우라늄을 캐내자고 했지
만 조니와 목사가 그를 만류했다.
  "보호기구가 없어서 지금은 안돼. 방사능을 막아낼 수 있는 납이
나 납을 씌운  유리가 없으면 위험하다구. 일단은 방사능 검출지역
에 경고표시를  하고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시킨  다음 좀더 절저히
조사해 보자."
  방사능은 처음 폭발을 일으킨  곳을 중심으로 반경 삼십 피트 범
위에 퍼져 있었다.  앵거스가 찾아낸 곳은 우연하게도 방사능 분출
구역의 한가운데였다. 근처의  쓰러져가는 오두막에서 난로의 재를
가져온 목사가 방사능  분출지역을 표시했고, 그 선을 따라 조니가
말뚝을 박고 로프를  둘러쳤다. 폭발소리에 놀라 달려온 짐슨과 마
을 사람들은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하며 지켜보고 있
었다.
  목사가 앞으로  나아가 우라늄이 매장되어 있다는  것을 숨긴 채
영혼을 들먹이며 상황을 나아가 우라늄이 매장되어 있다는 것을 숨
긴 채 영혼을  들먹이며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목사의 설명에 감명
을 받은 듯 짐슨이 마을 사람들을 향하여 앞으로 그 장소를 지나야
할 때는 반드시  우회하여 지나가라고 지시했다. 목사의 설명은 그
곳이 마치 신성불가침 지역이라는 듯이 받아들여졌다.
  동녘 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정오 전에 이
곳을 떠나야만 했다. 서둘러야  했다. 이 장소 외에도 방사능 분출
지역이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정오엔 무인정찰기가
마을의 상공을 통과할  것이었다.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것이 타르
한테 발각되면 큰일이었다. 엘렌 큰어머니가 가져온 아침식사를 마
친 조니는 넓은  목초지를 둘러보았다. 광활한 목초지을 전부 조사
해야만 했다. 위험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광산독물학'에
따르면 아주 짧은 동안은 방사능에 노출되어도 무방하다고 적혀 있
었다. 조니는 공기마스크,  호흡가스병과 함께 한통의 재를 담아들
과 말에 올라탔다.
  "목초지는 내가 말로 달리며 조사하겠다."
  조니는 앵거스와 목사에게 말했다.
  "나는 목초지를 삼십피트  간격으로 교차해서 달려갈 것이다. 호
흡가스병을 조금 열어놓아 가스가 폭발할 때마다 그곳에 재를 뿌리
고 손을 쳐들 것이다.  목사님은 저 언덕 위에서 재가 뿌려진 위치
들을 도면에 표시해주십시요.  앵거스, 당신은 목사님 옆에 있다가
내가 손을 쳐들 때마다 목사님께 알려줘야 한다, 알겠지?"
  두 사람은 종이와  펜을 들고 언덕으로 향했다. 목사와 앵거스가
떠난 뒤 조니의 이주계획에  찬성했던 세 명의 젊은이가 찾아와 뭔
가 도울 일이 없느냐고  물었다. 조니는 그들에게 힘센 말 몇 마리
만 준비해달라고 부탁했다.  조니는 목초지를 바라보았다. 모든 준
비는 끝났다. 하얀  눈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햇살이 동공을 찔러왔
다. 공기마스크를 다시 한 번 확인한 조니는 호흡가스병을 조금 열
고 목초지를 향해 힘차게 말을 달렸다.
  목초지로 들어선 지  채 일 분도 안되어  손에 든 병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조니는 그곳에 재를 뿌리고 손을 치켜들어 보인 후 계속
앞으로 달려나갔다. 앵거스가 목사에게 그곳의 목초지 위에 바둑판
을 그리듯이 상하좌우로  달리고 있었다. 섬광, 재를 던진다. 손을
쳐든다. 앵거스와 외침소리, 땅을 차는 말발굽 소리. 지친 말을 버
리고 새말로  갈아탄 조니는 새로운 호흡가스병  마개를 열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마을사람들은 조니 일행이  일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
다. 두 시간 뒤  목초지에는 땀을 뻘뻘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네 마리의  말과 열여섯 개의 호흡가스병,  그리고 지칠 대로 지친
조니만이 남겨졌다.  작업은 끝났으나 이미  정오가 가까워져 있었
다. 작성되 지도를 검토할  틈조차 없었다. 조니는 타고 온 말들을
모두 마을 사람들에게  건네주었다. 수송기까지는 걸어갈 생각이었
다. 목사는 짐슨에게  지도를 건네주며 표시가 되어 있는 장소에는
누구도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하라고 말했다. 짐슨은 설사 브라운
린퍼가 항의를 하더라도 마을사람들이 지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대
답했다.
  엘렌 큰어머니는 몹시 놀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또 떠나겠다는 거냐, 조니?"
  넌 네게  있어서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혈육이라고 말하려고
했으나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함께 가겠어요?"
  엘렌은 그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곳은 조상들이 살아온 곳이
었고, 그들의 숨결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조니, 넌 반드시 이곳으
로 다시  돌아와야만 한다. 하지만 엘렌은  조니를 붙잡지 않았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불타는  정열이 그를 한곳에 머물러 있지 못하
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니는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따로 준비해두었던 물
건들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엘렌은 선물보다 조니가 마을에 함께 있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
었다. 조니가 언덕 위에서 손을 흔들어 보이고 그 뒤로 사라져가자
그녀는 그때까지 참고 있던 울음을 터뜨렸다. 두번 다시 조니를 만
날 수 없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그녀의 가슴 깊은 곳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6)
  광맥 가까이에 마련된  사무실은 일에 열중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곳은 옛날 엠파이어  돈트레스 광업회사의 사무실로 쓰이던 곳
이었는데 모두들 마음에  들어하고 있었다. 다행히 건물은 크게 손
상된 곳이 없어 사무실로 쓰기에 적합했다.
  광산촌은 누군가 주광맥을 모두 파낸 후에 재개발한 것처럼 보였
다. 다른 마을들과는 매우 다른 구도로 조성되어 있었다. 사무실과
이웃한 건물에는  '피범벅 살롱'이란 간판이  붙은 술집이 있었다.
그 술집 문 앞엔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 있었는데 그것은 목사가
한 짓이었다.
  술집 안에는 아직 깨지지  않은 유리와 거울들이 그대로 남아 있
었고, 거의 나에게 가까운 무용수나 큐피드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술집 맞은편에는 '웰스 파고' '대륙횡단열차'라는 간판과 '유치장'
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사무실이 있었다.
  조니와 그의 동료들은  그 사무실들을 지나 '런던 팰리스 앨리트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광산업계에서 이름을 떨쳤던 인물
들의 명단이 붙어 있었다. 늙은 과부 셋이서 석탄난로가 있는 주바
에 자리잡고 호텔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앵거스로부터 주방
설비에 대해 교육을 받아서 그곳 주방가구들의 사용법을 알고 있었
다.
  엠파이어 돈트레스 광업사무소에는 광산직업을 하는 실제 모습을
모형으로 만들어놓은 방이 있었다.  그 방에 남아 있는 '광산의 역
사'라는 팜플랫에는 호황을  누리던 시절, 광부들이 여유롭게 야영
을 즐기는 모습과 지명수배자 명단이 들어 있었다. 그 밖에도 흥미
로운 책들이  몇권 있었는데 '관광 스케줄'이라는  책이 눈에 띄었
다. 하단에는 '은행인출'에 대한 이용설명서가 적혀 있었는데 거기
에는 장소와 시간까지 상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광산시굴자나 투기
자, 지명수배자 명단은  먼지를 깨끗이 닦아 벽의 여기저기에 다시
걸어놓았다.
  폭스 로버트와 두 명의 조종사는 광석운송기를 탈취하기 위한 계
획에 몰두하고  있었다. 현대 사용하고  있는 수송기의 비행거리는
불과 이백 마일밖에  안되었다. 유럽대륙까지 비행할 수 있는 것은
광석 운송기밖에 없었다.  그날 밤 타르의 입에서 무인폭격기란 말
을 듣고 너서부터  그 계획을 논의해오고 있었다. 스코틀랜드 사람
들은 물론 비록 조금밖에 안 남아 있다 하더라도 각지에 흩어져 있
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야만 했다. 그들은 그 일이 일
류를 구원할 수 있는 마지막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그 일은 사이클로인들이 전혀 눈치챌 수 없도록 은밀히 진행되어
야만 했다. 알차적인  계획은 비행중인 화물수송기를 탈취한 후 사
이클로인들에겐 바다에 추락했다고 믿게 하는 것이었다. 다른 방법
들도 연구해보았지만 그 방법이 가장 안전할 것 같았다. 계획을 실
행하기엔 많은 난관들이 놓여 있었다. 사이클로인 조종사들이 가지
고 있는 무선통신기를  저지시켜야만 했다. 또한 상공을 날고 있는
수송기에서 비행중인 화물수송기기 어떻게 침투해 들어가느댜 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 밖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다른 그룹, 즉
제2작업반의 반장인  토르와 더넬딘,  그리고 몇명의 작업반원들은
채굴작업의 진행상황을 검토하고 있었다. 이미 그들은 광맥까지 파
들어가 벼랑을 향해서  조금씩 다가가고 있었다. 채굴된 주정은 순
수하고 아름아웠으나 금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조니는 책
을 인용하여 그 광맥은 주머니 모양으로 되어 있다고 채굴반원들에
게 설명해주었다. 수정원석에 그물눈 모양으로 박혀 있는 금은 이,
삼백 피트  간격으로 집중되어 있어 연속헤서  채굴해낼 수가 없었
다. 작업원들은 아무리 파내려가도 수정만 나올 뿐 금을 캐낼 수가
없자 채굴작업에 싫증을  내고 있었다. 벼랑의 갈라진 틈새에 어느
정도 접근했는지도 마음에  걸렸다. 갈라진 틈새는 얼마 얼마 안되
었지만 자치 잘못되면 붕괴될 위험이 있었다.
  조니, 앵거스, 목사, 그리고  교장, 이렇게 네 사람은 목사가 그
린 지도를 펼쳐놓고 있었다. 방사능 활성점은 직선모양으로 늘어서
있었다. 그것을 처음 본 순간 조니는 우라늄 광맥이 일정한 간격으
로 지표 가까이에 돌출되어  있는 까닭을 알 수 없었다. 점과 점의
간격은 대략 백 피트는 될 것 같았다.
  "그 점들이 일직선으로 늘어서 있었다."
  모두들 지도를 보면서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맥더모트 박사
가 뛰어들어왔다.
  "맥타일러, 아주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네."
  박사는 손에 든 책을 흔들어 보였다.
  "칭코인의 관광안내서에서 공군사관학교에  관해 잘못 기록된 부
분을 찾아냈네."
  조니는 어깨를 쳐들어 보였다.
  "사이클로인들이 좋아할 것 같은 것만 써놓았을 테니까요."
  "그렇지 않아. 그들은  사관학교를 최고 방위기지라고 부르고 있
었어."
  "알고 있습니다.  굉장한 곳이라고 믿게  하고 싶었겠지요. 지구
최후의 전투가 그곳에서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최고 방위기지는 정말로 있었다네."
  맥더모트는 그렇게 말하고 손에 든 책을 펼쳐 보였다. 조니는 펼
져진 부분을 바라보았다.
  '핵전쟁 발발시 어린  학생들의 피난에 관한 제규칙, 비전투요원
교육부'라는 표제가 붙어 있었다.
  "분명히,"
  박사가 말했다.
  "아이들은 시장이 마을을 탈출할 때까지 학교가 보호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이곳이 아니다.... 아아, 여기다."

  그리고 이후 모든 지시는 최고 방위기지로부터 하달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에  있었는지 우리들로서는 알 수 가 없습니
다."
  "그것을 알아냈단 말야!"
  박사는 주머니에서 군비예산의 지출초과에 관한 국회공청회에 대
해 씌어  있는 책을 꺼냈다. 박사는  미리 표시해둔 페이지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질문(알드리치 상원의원):  국방장관은 로키  산맥 가운데 있는
최고 방위기지 건설에 관한 십육억 달러에 달하는 지출초과가 의회
의 승인 없이 행해진 것임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인정하는 군요.
국방장관?"
  맥더모트는 조니에게 그 부분을 보이고 나서 책을 탁 덮었다.
  "그러니까 칭코인들은 틀리게  기록한 부분들도 있었지만 모두가
엉터리는 아니었다구. 최고 방위기지는 확실히 존재했다구. 장소는
로키 산맥의 산속이야."
  박사는 어떠냐는 듯이  빙그레 웃어 보이고 의자로 돌아갔다. 조
니는 박사가 입수해온 새로운 사실에 그자리에 얼어붙은 듯 한동안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구렇구나, 그것이다, 신들의 무덤이다!
  거대하고 육중한  강철문, 계단의 여기저기에  널려 있던 엄청난
시체들. 그 신들의 무덤이 바로....
  "박사님, 이리로 오세요."
  조니는 박사에게 목사가 그린 지도를 펼쳐 보였다.
  "언젠가 여왕 직속의 하이랜드 부대가 댄버톤과 팔커크 접경지역
에 핵지뢰를 직선 모양으로 매설했다는 얘기를 했었지요?"
  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펼져진 지도를 바라보았다.
  "사이클로인들의 탱크 잔해라도 찾아냈나?"
  "아닙니다. 여기를 잘  보세요. 이 선은 아래쪽 평원에서 올라오
는 길의 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점의 위
치도 규칙적입니다. 정확하게 일직선으로 늘어서 있습니다."
  "하지만 부서진 탱크의 잔해도 없지 않은가."
  "지뢰는 폭발한 것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붕
괴된 것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박사는 조니의 말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
었다.
  조니는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잠시 손가락으로 지도를 두드리
며 호흡을 조절하였다.
  "이 길은 서쪽 평원에서 목초지로 이어져 있습니다. 목초지 뒤쪽
으로는 산속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골짜기가 있습니다. 그 골짜기를
올라가면 고대의 정부가 건설해놓은 최고 방위기지가 있습니다."
  조니는 지도  위에 그곳의 위치를  그려넣었다. 조니는 한꺼번에
모든 것을 얻은 기분이었다.
  "파낸 우라늄을 어디로 옮겨놓았을까 하고 생각해보았습니다. 틀
림없이 어딘가...."
  목사가 조니의 팔에 손을 얹었다.
  "너무 서둘러서는 안된다. 아마 기지에는 없을 것이다."
  "기지에 있는 기록을 보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도
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통신장비도.... 자아, 이제 됐습니다."
  "침착하게, 조니."
  꼼짝 않고 앉아서 조니를 바라보고 있던 목사가 나직히 말했다.
  "날이 밝으면 확실히 알게 되갰지."

  제 2 권
  하늘과 녹색사이

  제 10 부
  천 년 전으로 돌아가 당신을 돕고 싶다!

  (1)
  출입문은 조금 열려 있었다.  몇 년 전에 조니가 처음 그곳에 찾
아왔을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문을 여는 데 사용했던 막대기도 눈
에 덮인  채 버려졌던 그대로 있었다.  지독했던 기억 속의 악취는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어  느낄 수 없었다. 골짜기 아래에서는 수송
기에서 장비들을 내리느라 분주해 하고 있었다. 무인정찰기가 오기
전에 장비들을 모두 내리고 수송기를 이륙시킨 후 발자국까지 깨끗
이 지워놓아야만 했다.
  폭스 로버트가 엄중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램프는 준비되었나? 산소통의  여분을 점검하였다. 다니엘은 어
디 갔지? 화약은 신중하게 다루구...."
  한 젊은이가 문을 활짝  열기 위해 커다란 쇠망치를 치켜들자 앵
거스가 달려가 그를 제지했다.
  "아니야, 그게 아니야. 기름만 조금 치면 될 텐데 그래."
  앵거스는 그 젊은이  앞에 기름통을 흔들어 보였다. 앵거스의 목
소리는 산소마스크 속에서  흘러나왔다. 모든 대원들은 산소마스크
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곳에 관련된 서적들을 뒤적이고 있던 맥더
모트 박사가 마스크 없이 묘지에 들어갔다가는 병에 걸릴지도 모른
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인골들에서 피어오르는 뼛가루가 호흡기
안으로 들어가면 폐에 이상이 생겨 발작적으로 기침을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먼저 들어가서 문을 열겠소."
  조니는 앵거스가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그의 어깨에서 짐
을 내려주었다. 갱내용 램프의 불빛이 문 안쪽에서 춤추고 있었다.
  "와, 죽음의 창고군. 뼈들도 가득 찬 기분이야."
  앵거스가 손에 든 기름통을 기울여 문틀에 부어넣었다.
  "열어보게, 조니."
  조니가 어깨로  문을 밀자 밝은 햇살이  안쪽 계단을 드러내보였
다.
  옆으로 비켜서 있던  앵거스가 흩어져 있는 뼈다귀들을 비켜가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뼈다귀들을 뼛가루
들이 뿌옇게 피어올랐다.  조니와 다른 사람들은 한동안 입구에 선
채 계단을 뒤덮었던 시체들의 참혹한 광경을 광경을 떠올리며 경악
했다. 끝도 보이지 않게 계단을 뒤덮고 있는 무수한 뼈다귀들이 당
시의 아수라장을 충분히 재현해주고 있었다. 외부로부터 거의 밀폐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의복이나 총기, 그 빡의 장비들은 그런대로 원
래의 형태를 제법  보존하고 있었다. 그래서 언뜻 보기에는 버려진
시체더미처럼 보였다.
  "모두 앞으로 쓰러져 있다."
  폭스 로버트가 해골과 의복을 살피며 말했다.
  "아마 연대로 행진하면서  들어왔을 것이다. 보라구, 계단 맨 위
쪽에 있는 두 사람이 문을 닫으려고 했던 것이 틀림없잖아?"
  "가스, 가스입니다."
  조니가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연대가 이곳으로  들어와 문을 닫으려는 순간 골짜기 아래에
서 올라온 가스가 그들의 목숨을 빼앗은 것이다. 틀림없이...."
  "이곳을 깨끗이 치워야 할 것이다."
  폭스 로버트가 명령을 내렸다.
  "모두 잘 들어라. 안쪽으로 들어갈 때는 반드시 산소마스크를 착
용해야 한다."
  "아니, 모두들 조그만 표식을 달고 있는데."
  목사가 표식 하나를 집어들고 읽었다.
  "놀린스 피터.  미합중국 해병대 이등병,  인식번호 - 35473524,
혈액형 B형."
  "해병대라."
  맥더모트 박사가 말했다.
  "이제 전투기지는 우리 차지가 된 셈이군."
  "로버트, 안으로 들어갑시다."
  "여러분, 우리들의 목적을 잊지 맙시다."
  로버트가 조사대의 젊은이들을 향해 말했다.
  "무엇이 있는지  철저히 조사해보아야  한다. 모든 기록서류들을
확인돌 때까지 절대 손대지 말 것. 통로파악이 안된 상태이니 길을
잃지 않도록 모두 조심하도록."
  "그리고.... 해골이나마 매장해줘야 한다."
  목사의 말에 폭스 로버트가 빠르게 답변했다.
  "알았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다."
  "사격대, 준비됐나? 출발! 맹수가 발견되면 즉각 사살하라."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다섯 명의  사격대원들은 동면중인 독사나
곰이 나타날 것을 대비하여 빠르게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환기반, 준비됐나?"
  폭스 로버트는 세사람의 대원을 향해 무거운 갱내용 환풍기를 운
반할 준비가 되었는지 확인했다. 그때 폭스 로버트의 손에 들려 있
던 소형 단거리 무선기에서 신호음이 들려왔다.
  "문이 있는데 도무지 열리지 않습니다."
  "알았다. 폭파반을 출동시키겠다."
  폭스 로버트가 폭파반을 부르려 할 때 앵거스가 뛰어들었다.
  "잠깐 기다려주십시오. 나중에 문이 필요해질지도 모릅니다."
  "알았다. 폭파반 출동중지! 그대로 대기하라."
  폭스 로버트는 분주하게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공작반이 그쪽으로 간다. 대기하라."
  무전기에서 다시 신호음이 들려왔다.
  "문이 열렸습니다. 내부는  외부공기와 차단되어 거의 밀폐된 상
태였던 것 같습니다. 이상."
  "환기반 출동."
  묘지와도 같은 기지 안으로 들어가는 환기반의 맨 마지막 젊은이
의 손에는  실험용 쥐를 담은 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묘지 안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던 공기가 순식간에  흘러나왔다. 무전기가 울렸
다.
  "쥐에 이상 없음. 이상."
  "자아, 들어가도 좋다. 맥타일러."
  조니는 마스크를 점검한  후, 피어오르는 뼛가루 속을 뚫고 계단
을 내려갔다.  나머지 반원들에게 차례로  지시를 내리는 로버트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다시 확인한다. 수송기가 이륙하거든 입구 밖을 정리하고, 발자
국은 물론 모든 자국을 눈으로 지워야 한다."
  폭스 로버트의 목소리가  까마득한 과거 속에서 멸망해버린 국가
의 최고 방위기지를 가득 메웠다. 그의 목소리는 환풍기 소리에 휩
쓸려 차츰 멀어져가고 있었다.

  (2)
  조니는 광부용 램프를 들고 끝없이 계속되는 복도를 따라 늘어선
방들을 하나하나 들러보았다.  기지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넓었
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방들, 그리고 숙소와 창고. 복도를 울리
는 분주한 발자국 소리가  쓰러져간 고인들을 몇 년의 잠에서 깨울
것만 같았다.
  처음으로 발견된 것은 엄청난 양의 기지배치도 사본이었다. 배치
도에 나타난 기지의 구조는 여러 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렇다면 미로와 같은 복도는  한 층만이 아니라 멀리 아래층까지 이
어져 있을  것이었다. 조니는 먼저 사령실을  찾았다. 그곳에 가면
수신전문이 있을  것이고, 뭔가 중대한 정보를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어디가 사령실인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 때 등 뒤에서 말다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복도 반대쪽 끝에
있는 앵거스와 로버트였다.
  "엘리베이터를 작동시키려면 전기가 필요할 것이고, 그러려면 발
전장치가 있어야 하는데, 그 장치들은 이미 녹이 슬어 작동시킬 수
가 없습니다. 만약 작동시킬  수 있는 것이 있다 해도 연료가 없습
니다. 저장탱크 바박에 남아 있는 것은 기껏해야 흙탕찌꺼기뿐입니
다. 게다가 만일 연료를 손에 넣었다고 해도 조명들은 끊어져 있을
것이고, 전동모터도 얼어붙어서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앵거스의 장황한 설명이 끝나자 알아들을 수 없는 로버트의 반론
이 있었고, 다시 앵거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배선은 괜찮을지도  모릅니다. 연료가 있으면  쓸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기껏해야 내부통화기  정도밖에는 사용하지 못합니
다. 그정도라면 우리들의 무전기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조명도 광산
용 램프로 충분합니다. 그러니까 로버트 경, 쓸데없는 데 참견하지
말고 저쪽으로 가서 시체가루의 명복이나 빌어주시죠."
  폭스 로버트의 어처구니없어  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조니는
앵거스의 생각과는 달랐다. 연료가 떨어졌을 경우에 대비하여 정상
가동시킬 긴급 예비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을지도 모르고, 또한 사용
가능한 연료를  겸비해둔 밀폐형  저장탱크가 보관되어져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전연 부정할 수만은 없었다.
  암담한 상태에 빠진 그들은 갱내용 케이블로 다른 층으로 이동할
준비를 시작했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밑으로 내려갈 수 있도록 만
들어진 계단을 찾아냈다. 그들은 그 계단을 통해 밑으로 내려갔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통신실이었다. 풍화된 통신병의 시체가
부스러질 듯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손이었을 먼지뭉치 밑에 통신
문이 있었다.

  긴급연락. 발사 중지하라. 소련이 아니다.

  "소련이라고?"
  "도대체 어디에 있는 부족이지?"
  모두가 의아해 하고 있는데 스웨덴인의 피를 물려받은 토르가 앞
으로 나섰다.
  "스웨덴 건너편에  살고 있던 부족이다. 기록에  의하면 먼 옛날
스웨덴 통치하에 있었던 적도 있다고 전해진다."
  "이봐, 통신문에는 손대지 마라."
  폭스 로버트가 누군가 통신문을 집어들려 하자 제지시켰다.
  안쪽으로 계속 들어가자 엄청나게 큰 방이 나타났다. 그 방의 한
가운데 놓여진 테이블에는 거대한 세계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누군
가지시봉을 들고 미니모형을 지도 위에 놓아가며 작전을 짜고 있던
중으로 추측되었다.  벽에는 몇 장의 지도가  걸려 있었고, 중앙에
세계지도를 조감하는 발코니도 마련되어 있었다. 광부용 램프 불빛
의 움직임을 따라 지도,  그 위의 미니모형들, 그리고 풍화된 해골
이 차례로  드러났다. 그 방에 보존되어  있는 모든 것들은 일시에
멈춰버린 듯 흐트러진 것이 전혀 없었다. 또한 벽에는 무수히 많은
시계들이 있었는데 모두 까마득한 과거의 시간 속에 멈춰 있었다.
  다급한 상황에서  급조된 원통형의 작은 모형이  지도 위의 로키
산맥 바로 동쪽 근처에  놓여 있었고, 긴 지시봉은 그 모형을 밀어
내려는 듯 그 근처에  길게 누워 있었다. 지시봉을 들고 있던 사람
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벽에 걸린 작전지도에도 역시 상황의 변화
들이 표시되어 있었는데,  마지막 기호는 기지 바로 위에 표시되어
있었다.
  데이커가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 지 알 수가 없었
다. 조니는  한참 동안 입을 다물고  가득 쌓인 데이터들을 보다가
일단 다른  방들을 둘러본 후에 다시  자료들을 정리하기로 결심했
다. 다른 방에는  무수한 통제장치 테이블들이 정연하게 늘어져 있
었고, 그 방의 맞은편 벽에는 '최고 기밀'이란 커다란 팻말이 붙어
있었다. '지역방위'라고 씌어 있는 통제장치 테이블 위에는 커다란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조니는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보았
다. 지도 하단에 '지뢰밭'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순간 조니 굿보
이는 그 표시들이 일직선으로  매설되어 있는 지뢰들임을 알 수 있
었다. 표시 아래엔  'TNW15'라는 기호도 붙어 있었다. 통제장치 테
이블에 부착된  폭파버튼에도 똑같이  'TNW15'라고 씌어져 있었고,
그 밖에도 기호로 표시된 폭파버튼이 무수히 많았다.
  TNW. 무슨 뜻일까. 조니 뒤에 서 있던 맥더모트 박사가 갈대피리
처럼 가늘고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TNW란 전략핵병기의 약자야. 그것은 핵지뢰를 말하는 거지."
  앵거스가 다가섰다.
  "허어,  폭파버튼이군. 누르면  당장 대폭발이  일어난다는 말이
군."
  "조심하게. 잘못하면 대폭발이 일어날지도 모르니까."
  조니가 앵거스에게 주의를 주었다.
  "사이클로인들이 이 산에 방사능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군."
  "그런데 사일로라는 것은 무엇일까?"
  다른 테이블들을 들여다보고 있던 목사가 말했다. 역사가가 항상
들고 다니는 사전을 서둘러 펼쳤다.
  "여기 있다. 사일로란  밀, 곡물 등의 식량을 저장하는 직립원통
형의 구조물,  또는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격납하고 발사하기 위한
거대한 지하구조물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니의 재빠른 손이  통제장치로 향하는 목사의 손목을 제지시켰
다.
  "통제장치 시스템에는  절대 손대지  마십시오. 잘못 건드렸다가
우리들이  전혀 모르는  비상시스템을  가동시켜버릴지도 모르니까
요."
  조니는 사람들을 통제시스템에서  떨어지게 한 수 폭스 로버트를
불렀다.
  "로버트 경, 통제시스템의  모든 구조와 발사버튼들의 배치를 비
디오 레코더에 녹화시켜주십시오, 이 통제시스켐과 연결된 모든 사
일로들의 정확한  위치를 조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미사일들
속에 우라늄이 적재돼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3)
  조니 일행은 저장구역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아직도 알아내지
못하 것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적이 어떤 전략을 구사할지 간파해
내지 못한  상태에서 싸움을 건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여러가지 정보들을  입수했지만 사이클로인의  전술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전혀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병기창'이라고 씌어 있는 육중한 문이 나타났다. 앵거스가 열쇠
구러미를 철렁거리며 맞는  열쇠를 찾고 있었다. 조니는 어쩌면 이
곳에 보관괴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드디어
앵거스가 맞는 열쇠를  찾아냈다. 육중한 문이 둔탁한 소리와 함께
활짝 열렸다. 가장 먼저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곳을 가득 메
우고 있는 상자들이었다.  그 상자들 사이를 지나자 인쇄된 서류뭉
치들이 가득쌓여 있었다.  하지만 그 서류에 작성되어 있는 내용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것들을 아무도 읽을 수 없도록 비밀암호로
기록되어 있었다.
  앵거스가 책 한 권을  가지고 급히 달려오더니 조니 앞에 책장을
넘겨 보였다. 보존상태는 매우 양호했다.
  "병기목록이다! 종별 분류번호는 물론 설명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사진까지 첨부되어 있다구."
  "녹화해하."
  로버트가 옆에 있는 젊은이에게 명령했다.
  "바주카포다!"
  한 페이지를 펼쳐 그곳의 사진과 상자들을 비교하던 앵거스는 그
중 하나를 가리켰다.
  "앗, 저거다! 저  긴 상자다. '대전차용 장갑 관통미사일을 발사
한다.'라고 씌어 있는데...."
  "핵병기인가?"
  조니가 그 상자 앞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비핵병기라고 씌어 있다."
  폭스 로버트는 앵거스가  찾아낸 바주카포에 대해서 시큰둥한 태
도를 보였다.
  "이곳은 이 기지를 바위할 수 있을 만큼의 병기들만 보관하는 병
기창이었던 것 같다.  이곳에서 전군에 물자를 공급할 수 있으리라
고는 믿겨지지 얺으니까."
  "이렇게 산더미처럼 샇여 있는데두요."
  앵거스가 폭스 로버트에게 항의하듯 상자들을 가리켰다.
  "이, 삼천 명분은 충분히 되겠지."
  백전조장답게 폭스 로버트는 그 엄청난 물량 앞에서도 쉽게 동요
하지 않았다.
  "상자를 열어봐도 되겠습니까?"
  앵거스가 로버트에게 물었다.
  "보존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선  한두 개 정도 열어보는 것도 좋겠
지."
  폭스 로버트는  뒤에 있던 젊은이들에게 신호를  보내 상자 여는
것을 도와주도록 지시했다.
  앵거스가 병기목록과 쌓여 있는 상자들에 광산용 램프 불빛을 비
추며 확인해나갔다.
  "있다. 이것이다! 톰슨 서브매신 건이라...."
  앵거스는 그곳에서  손을 멈추고 병기목록과 상자를  다시 한 번
확인해보고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과연 그렇구나."
  "과연이라니, 뭔데?"
  로버트가 물었다.
  무인정찰기는 이미 이 지역의 상공을 통과했다. 그들은 부지런히
점심식사를 마치고 새  산소통으로 교체한 수 산소마스크를 점검했
다.
  "우리들이 트럭에서 찾아낸 총은 밀폐포장이 되어 있어서 보존상
태가 양호했던 것입니다. 이  톰슨 기관총은 이미 일 세기 훨씬 전
에 제작된 총입니다. 아주 구식 총이라는 얘깁니다."
  앵거스의 말이 맞았다. 사이클로인을 기관단총 따위로 상대할 수
는 없는 노릇이었다.  조니는 상자들을 확인하며 천천히 앞으로 나
아갔다.
  병기목록을 대조하며 뒤따르는  앵거스의 램프 불빛이 금속제 경
량핸드라이플 앞에서 멈췄다. 라이플은 블록 모양으로 굳어진 그리
스 안에 붕입되어 있었다.
  "마크50 공격형 라이플이다!"
  앵거스가 병기목록을 보여 설명해주었다.
  "이 총이 인류가  마지막으로 개발한 총이군. 그리스를 제거해볼
까요?"
  조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외형이 매우 근사해 보이는 총이었다.
  병기창에서 필요한  병기들의 목록을  모두 작성한  조니 일행은
'탄약고'라고 씌어 있는  문 앞으로 다가갔다. 병기창의 문보다 두
배도 더 될 것 같은 문니 잠겨져 있었다. 탄약고라면.... 그래, 어
쩌면 핵병기도....  앵거스에게서 열쇠를  건네받은 젊은이가 문을
열었다.
  몇 단씩 쌓아올린  산더미 같은 탄약상자들. 그것은 마크50 공격
형 핸드라이플용 탄약상자들이었다.  조니는 쇠지렛대를 찾아내 탄
약상자의 위뚜껑을 뜯어냈다. 밀폐포장이 되어 있지 않아서 골판자
로 만들어진 칸막이들은  모두 푸슬푸슬 삭아 있었다. 탄피들은 깨
끗했지만 바닥의 뇌관부분들이  전부 심하게 녹슬어서 도저히 사용
할 수 없었다. 앵거스는 못 쓰게 된 탄약들을 내동댕이치며 무척이
나 애석해 하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핵병기들을 찾기 위해 몇  개의 창고를 더 조사한 일행은 수천개
나 되는 전투 보호장비들을 찾아냈다. 보호장비들을 다양한 사이즈
를 갖추고 있었고,  안면 보호판이 달린 헬멧과 전투화도 구비되어
있었다. 모두 플라스틱처럼 내구성이 강한 소재들로 밀봉되어 있어
서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그 장비들의 위쪽엔 '전시용 방사능 보
호장비'라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조니는 흥분되어 떨리는  손으로 밀봉포장을 하나하나 벗겨냈다.
납성분을  이용해 만든  방사능  보호복, 납이  씌워진  안면 보호
대.... 그 것들은 모두  회색, 황갈색, 녹색의 위장 무늬가 있어서
산악지대에서의 전투시 은폐에  적합되도록 되어 있었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비로  이것이었다. 이제 이것만 있으면 방사능도 문
제없다. 조니의 가슴속엔 새로운 용기가 용솟음치고 있었다.
  산소통을 새로운 것으로 교환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던 조니 일행
에게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무전기를  통해 들려오는 더넬딘의
목소리는 매우 흥분되어 있었다.
  "엄청나게 큰 금고를 여러  개 발견했다. 다이얼 키는 달려 있지
않다. 금고 윗부분에  '극비 핵관계' '특정관계자 외 개방을 금함'
'매뉴얼'이라고 적혀 있다. 폭파반의 출돌을 요청한다. 이상."
  로버트는 폭파반을 더넬딘이 있는 곳으로 급파했다. 출동한 폭파
반은 비발염성 폭약을 금고의 이음쇠에 연결하고 도화선을 끌었다.
그 동안 다른 사람들은  옆에 있는 복도로 대피하였다. 잠시 후 귀
청이 찢어질  듯한 강렬한 폭음과 함께  육중한 금고문이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피어오르는 화약연기  속에 꽂히는 램프 불빛이  금고 속을 훑자
수만 권의 서적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핵병기에 관
련되 조작, 수리, 유지,  관리에 대해 상세히 설명되어 있는 수백,
수천권의 설명서들을 바라보며  그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설명서에
는 핵병기의 설치방법과 발사방법은 물론 신관의 부착 및 제거, 취
급, 안전 관리에  대한 방법에 이르기까지 핵병기에 대한 취급요령
이 모두 기록되어 있었다.
  "이제 핵병기만 입수하면 완벽한 전투태세를 갖출 수 있겠군."
  폭스 로버트가 신이 나서 말했다. 조니 역시 새로운 용기로 충만
되어 있었다.
  "그렇군요."
  "서류만 가지고는 쥐새끼도 죽일 수 없을 테니까요."

  (4)
  바깥은 이미 어둠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이 고대의 방위기지 밑
바닥에 깔려 있는 어둠은 바깥의 어떤 어둠보다도 어두웠다. 그 칠
흑같은 암흑의 정적이 조니와 대원들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
었다. 램프 불빛이 마치 검은 잉크 속을 꿰뚫는 펜끝처럼 날카롭게
어둠을 가르고 있었다.
  일행은 경사로를  따라 내려갔다. 밀폐식  문을 빠져나가 거대한
동굴로 통하는  곳에 이르렀을 때,  '헬리포트'라는 표시가 나타났
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부식되어 떨어져나간 금속덩어리들이
벽을 따라 흩어져  있었다. 그 금속덩어리는 비행기였던 것으로 추
측되었다. 머리부분의 커다란 날개는 아직도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
다. 조니는 그것을  언젠가 책 속에서 본  일이 있었다. 그 책에는
분명히 '헬리콥터'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조니는 넓은 바닥 한가운
데에 홀로 남아 있는 그것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함께 온 동료들은 주변의 다른 것들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새
로운 흥미거리는 문이었다.  거대한 금속제 문은 폭이 상당히 넓었
고, 높이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게 치솟아 있었다. 그것은
기지의 또 다른 출입구로 헬리콥터 같은 종류의 비행기들이 이착륙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특수출입구였다. 앵거스는 문 옆에 있는 몇
대의 모터수위치를 시험해보았다.
  "이것 역시 전기로 작동하게 되어 있는데. 이곳에는 수동으로 작
동되는 것은  하나도 없어, 모두 전동식이야.  그럼 도대체 전원이
끊어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전원은 옛날에 끊어져 있네."
  폭스 로버트의 낮은 목소리는 넓은 격납고 안에 잔잔하게 울려퍼
졌다.
  "조명담당을 불러주게."
  앵거스의 요청에 즉시  두 사람의 젊은이가 램프와 축전지, 그리
고 충분한  양의 전깃줄과 램프용 퓨즈르  준비하여 경사로를 따라
재빨리 달려왔다.
  폭스 로버트가 조니 겉으로 바짝 다가왔다.
  "만약 이  문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이곳을 출입구로 이용하
자. 저쪽 감시창에서 내려다보니까 바깥쪽은 미차 동굴의 입구처럼
되어 있고, 위쪽은  커다란 바위가 돌출되어 있어서 정찰기의 감시
망에 걸리지 않겠더군."
  조니는 폭스 로버트의  제안에 머리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눈
길은 여전히  한가운데에 외롭게 서 있는  헬리콥터를 향하고 있었
다. 조니는  헬리콥터로 다가갔다. 역시  그 독수리였다. 발톱으로
화살을 음켜잡은  카다란 모습이 희미하기는  했지만, 그 비행기의
옆면에 그려져 있었다.  조그만 휘장을 달고 있는 다른 비행기와는
분병히 달랐다. 독수리  문장 아래엔 '미합중국 대통령....'이라고
씌어 있었다.
  "대통령이란 국가  원수, 군대의  최고 사령관을  지칭하는 말이
다."
  조니로선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천 년, 혹은 그 이전 인류 종말의
날에 대통령이 이곳으로 왔고....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
렇다면 대통령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단 말인가. '미합중국 대통령
실'이라고 표시된 방은 아무리 둘러봐도 없었다. 조니는 넓은 격낙
고를 돌아보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  소형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그 근처엔 조그만
문이 있었고, 안으로 들어가면 위로 향한 계단이 손짓하고 있었다.
조니는 계단을 따라  한걸음씩 내디디며 위로 올라갔다. 걸음을 내
디딜 때마다 사방벽에 부딪친  발자국 소리가 공간 전체에 크게 퍼
져나갔다. 계단을 따라  한동안 올라가니까 처음의 문과 같은 밀폐
식 문이 또 나타났다. 그것은 처음의 문보다도 훨씬 단단히 잠겨져
있었다.
  문 안으로 들어선 조니는  완전히 다른 공간에 빠져든 듯한 느낌
을 받았다. 그곳은 기지의  다른 곳과는 달랐다. 완전히 별개로 돌
립되어 있었다. 밀폐구조와 건조한 공기, 그리고 무슨 장치가 되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안에  있는 시체들은 풍화되지 않은 채 미이
라로  남아 있었다.  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 책상에  엎드린 사
람.... 그러나 그 숫자는 몇 명 되지 않았다.
  퉁신실과 문서보관실, 한두  개의 의자밖에 없는 지령전달실, 최
고급 가구와 카펫. 모든 것이 매우 잘 보존되어 있었다. 그리고 조
니가 서 있는 앞쪽에 그가  찾고 있던 문양이 달린 문이 버티고 서
있었다. 조니는 안으로 들어갔다.
  깨끗하게 잘 정돈된 책상 위에 '미합중국 대통령'이란 명패가 세
워져 있었다.  벽에는 거대한 독수리 문장이  걸려 있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낡아버린 깃발이 문을 여는 바람에 가늘게 흔
들렸다. 미이라가  된 시체가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의복도 아직
깨끗이 남아 있었다. 조니는  양피지 같은 손 아래 놓여 있는 종이
다발을 발견하고  미이라의 손에 닿지 않도록  조심하며 그 다발을
빼냈다. 맨 윗종이에  기록된 날짜와 시간은 사령실에서 발견한 최
우의 날짜보다  이틀 후로 적혀 있었다.  생각해낼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이곳의 환기시스템은  다른 구역과 연결되지 않은 독자적
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환기시스
템이 멈추는 바람에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산소부족으로 죽어갔던
것이다. 가스로 인한 죽음은 아니었다.
  책상과 서류함에 놓여  있던 서류를 집어들면서 조니는 이상하리
만큼 경건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지금 그가 들고 있는 서류는 지구
최후의 절망적인  모습들을 담고 있었다. 그  서류들 속에 '위성사
진'이라고 표시된, 하늘에서  전송되어진 사진과 여러 종류의 사진
이 첨부되어 있었다. 조니는 서류를 훑어보면서 이 서류 속에 모든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런던 상공에 이상한 비행물체 출현.
  어디서 비행해 왔는지 정체불명.

  조니는 '텔레포테이션'이라고 적어넣었다.

  고도는 삼만 피트.

  이것은 매우 중요한 정보였다.

  물체가 캐니스터를 낙하.
  몇 분 후 영국 남부 시민들 전원 사망.

  지구 전멸의 원흉인 바로 그 가스였다.

  물체는 시속 302.6마일로 동진.

  이것 역시 중요한 정보였다.

  노르웨이를 출격한 전투기 편대가 이것을 공격.
  물체는 반격하지 않음.
  전투기에 장착된 총화기탄을  모두 퍼부었으나 전혀 손상된 흔적
이 없음.

  특수장갑이다. 조니는 그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았다.

  '핫라인'을 통한  상호확인에 의해  미합중국과 소련의 핵미사일
상호공격은 회피한다.

  얼마전에 발견되었던 '발사 중지하라. 소련이 아니다.'라고 씌어
진 기록은 이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서독 상공에서 핵공격을 받았으나 역시 손상된 흔적은 없음.

  그렇다. 무인비행기다. 호흡가스가 장착되어 있었다면 그 물체는
반드시 폭발했을  것이다. 게다가 그  비행물체는 초중량급 모터를
달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 후 비행물체는  계속해서 세계각국의 대도시들을 비행하며 독
같은 캐니스터를 낙하.
  시민들은 한 명도 남김없이 사망.

  그리고 이 기지와  이 구역을 남겨놓고 전달했다는 얘기였다. 사
령실 지도에서 기지 동쪽에 표시되었던 모형은 바로 이 비행물체였
단 말인가.

  물체는 그 후 미국 동부를 섬멸시킴.
  이 보고는 북극해 및 캐나다 일부 지역에 설치된 '듀 라인'의 레
이더 스테이션에 의함.
  계쇽해서 비행물체는 차례차례로  남반구의 모든 대도시를 공격.
이때 계속해서 이상사태가 발생. 잔존시설 및 위성망이 세계각지에
서 기묘한 형태의  탱크 출현을 보고해옴. 탱크는 시민들을 순식간
에 전멸시킴.

  텔레포테이션 제2진이었다.
  전혀 정되되지 않은 군사보고서가 탱크에 관한 보고서류 속에 뒤
섞여 있었다. 모든 중요한 공군기지 시설에 그 전에 이미 가스공격
을 받았는지에 대한 분석도 없이 이상한 형태의 고속비행물체에 의
해 철저하게 파괴당하고 있다고만 기록되어 있었다.
  탱크와 동시에 텔레포트된 전투기였다.
  여러 대의 탱크와  전투폭격기 들이 갑자기 폭발당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음. 원인불명.

  사이클로인들이 탑승하고 있었던 유인폭격기다. 무인폭격기에 대
한 무차별  핵공격으로 생긴 고농도 방사능  지역으로 들어간 것이
다.

  무인폭격기가 콜로라도 주  콜로라도 시 교외에 착륙했다는 것을
위성이 확인함.
  착륙과 동시에 거의 모든 건물들이 파괴되었음.

  사전 항로설정이다.  중앙 사령본부까지  발견된 것이다. 비디오
레코더를 뿌려서 일대를 샅샅이 관찰, 조사한다. 그렇게 해서 얻은
테이터를 근거로 공격지역을  결정하고 사전항로를 설정한다. 그곳
에 무인기를 무선 제어장치도 없이 난폭하게 착륙시키는 방식이다.

  공군사관학교에서  비행용 산소마스크를  착용한 사관후보생들이
드들을 향해 발포하는 탱크를 위성이 확인. 사관후보생 대표로부터
보고가 들어옴. 그러나 이후 통신두절.

  마지막 전투다.

  통신실은 만에 하나의  희망을 가지고 생존자와의 접촉을 계속시
도. 그러나 이곳에서 삼백 마일 북쪽에 설치된 발신용 안테나가 적
의 전투기에 의해 폭격당함.

  무선과 탐지장치다.  그러나 이 장소는  끝까지 발견되지는 않았
다. 대통령과 측근들은 환기가 정지된 후에도 두 시간 동안 생종해
있다가 질식사했다.
  조니는 보고서류를 튼튼한  갱내작업용 사방 속에 소중하게 챙겨
넣었다.
  시체들을 향하여 말을 한다는 것이 시글펐으나 조니의 가슴속 울
림은 그를 견딜 수 없게 했다.
  "정말로 한스러웠겠지요.  아무런 지원도 없어.  할 수만 있다면
천년 전으로 돌아가 당신들을 돕고 싶습니다."
  조니는 무거운 마음을  이끌고 어둡고 추운 방을 나왔다. 기세좋
게 외치는  더넬딘의 무전기 소리만 아니었다면  한동안 그 어두운
마음을 떨쳐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조니는 걸음을 멈추고 확인신호
를 보냈다.
  "조니, 찾아냈어!"
  더넬딘의 목소리는 활기가 넘쳐흘렀다.
  "불과 삼십 마일 북쪽에 핵병기창이 있었어. 모든 종류의 핵폭탄
들이 전혀 손상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구. 지도를 발견했기 때문에
비행기를 보내서 확인했네.  이제부터는 우리 머리를 널려보내거나
이 지구를 통째로 폭발시켜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일만 남았다
구."

  (5)
  다음해 제삽십이일, 엄청난 재앙이 찾아왔다.
  조니는 방안이 흔들리는 것을 느껴 잠에서 께어났다.자정이 넘은
시각이었다. 책상 위의 비품들이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었다. 조니는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진동은 계속되고 있
었다. 방뿐만이 아니었다. 조니가  묵고 있는 건물 전체가 낮게 신
음하듯 흔들리고 있었다. 먼 곳으로부터 땅울림이 강하게 전해져왔
고, 삽십 초 뒤에 미진이 일었다. 미진을 끝으로 지진은 겨우 가라
앉은 것 같았다. 그  정도의 지진은 로키 산맥에서는 흔히 있는 일
이었다.
  일말의 불안감은 있었으나 그다지 대단한 일을 없을 거라고 생각
하면서도 조니는  급히 사슴가죽 바지에  모카신을 신었다. 그리고
퓨마 모피를 어께에 걸치고, 눈 속을 달려 엠파이어 돈트레스 광업
회사 건물로 향했다. 불이  켜져 있었다. 당직을 서고 있는 젊은이
가 채굴 현장과 통화하기 위해 통신기의 키를 두드리고 있었다. 현
장과의 통신은 단일지향성  레이저무선을 사용하고 있었다. 레이저
는 전파의 파장이 일정하여 산맥지대 밖으로는 퍼져나가지 않기 때
문에 외부로부터  탐지당할 우려가 없었다.  젊은이가 고개를 들었
다. 약간 창백해져 있었다.
  "응답이 없습니다."
  젊은이는 아까보다 더  빨리 키를 두드려댔다. 마치 그 손끝에서
직접 레이저파가 나오는 것 같았다.
  "수신주가 지진으로 부러져버린 모양입니다."
  조니는 즉시 젊은이들을 깨워 구조대를 편성했다. 예비로프와 윈
치를 긁어모으로, 담요와 약품을 준비해서 수송기에 싣게 했다. 모
두 채굴작업중인 작업반원들의 안부를 걱정하고 있었다. 긴장된 얼
굴들로 보일 리 없는 채굴현장 쪽을 자꾸만 돌아다보았다.
  별빛 하나 볼 수  없는 칠흑처럼 어두운 밤이었다. 이 어둠 속에
서 산맥 위를  비행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수송기는
수직으로 날아올랐고, 모든 계기들이 초록색으로 빛났다. 스크린에
전방의 지형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조니는 계기판들의 촛점을 정확
히 맞췄다. 앞쪽에 길게 늘어서 있는 산맥의 경사면들을 눈으로 확
인하며 비행해야만 했다. 빔 라이트를 켰다. 라이트가 눈덮인 산에
반사되는 것을 보고 조니는 비행기를 급상승시켰다.
  계획대로 일이 잘 풀려나가고 있었는데.... 준비가 완료됐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리고 있었다. 조니는 스크린
르로 다음 산을 찾았다.  젠장, 어둠 때문에 아무것도 식별해낼 수
가 없었다. 나침반을 확인했다. 뒤쪽 좌석에 앉아 있는 젊은이들은
긴장속에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조니는 그들의 생각을 잘 알고 있
었다. 비행기가 화살처럼  아슬아슬하게 산꼭대기를 스치고 지나갔
다. 위기일발이었다.
  소용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마크50 공격형 라이플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탄약개량에 성공했던 것이다. 우선
탄환에서 탄두를 빼내고  탄환 밑바닥에 있는 뇌관을 떼어냈다. 그
리고는 신중하게 실험을 반복한 끝에 유폭캡을 개발하여 떼어낸 뇌
관 대신 그곳에  붙였다. 처음에는 화약을 동시에 사용해야 한다고
잘못 생각하여  시험발사할 때 총  전체를 폭발시켜버렸다. 다행히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유폭캡만으로도 위력은 충분했다.

  갑자기 눈앞에 절벽이  나타났다. 조니는 급선회를 해서 겨우 그
것을 피했다.  고도를 비행하는 위치에서 조금  높였다. 너무 높이
올라가면 채굴현장의 위치를 잃어버릴 위험이 있었다. 현장의 조명
이 꺼져 있는 경우에는 더욱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타르가 있
는 본부에서 이쪽  불빛을 발견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야간 저공
비행은 매우 위험했지만 그것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먼저 탄환의  머리부분에 작은 구멍을  뚫었다. 방사능 보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TNW에서 가져온 방사능 물질을 소량씩 그 탄환에 집
어넣었다. 녹인 납을 엷은 막으로 만들어 탄환에 씌워 방사능의 위
험없이 가지고 다닐  수 있게 만들었다. 그것을 시험발사했을 때의
위력은 굉장했다. 유리병 속에 넣은 호흡가스가 보기좋게 대폭발을
일으켰던 것이다.

  고도가 지나치게 낮았다. 조니는 산등성이에 낮게 돋은 나무덤불
을 발견하고 비행기를  급상승시켰다. 지금까지의 항로는 예정대로
였다. 속도를  줄여라. 암흑 속에서 충돌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
다.

  개량한 탄환은 웬만한 특수강철판 정도는 그대로 관통시킬 수 있
었다. 위력도  이백 야드 떨어진  호흡가스병을 향해 시험발사했을
때, 폭발의 충격이 발사지점까지 전해올 정도로 강력했다.
  채굴작업원을 제외한  전원이 탄환개량  작업에 참가했기 때문에
지금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탄환이 사용가능하게 되었다.
깨끗이 닦여져서 사용되어질  날만을 기다리는 마크50 공격형 라이
플 백정과 오백  개의 탄창이 준비되었다. 탱크나 본부돔의 납으로
코팅된 두꺼운 방탄유리는  뚫을 수 없었지만, 살아 있는 사이클로
인이라면 충분히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었다. 사이클로인들의
핏속에 포함되어 있는 호흡가스와 우라늄은 즉각 반응을 일으킬 것
이고 예상대로 충분히 폭발시킬 수 있을 것이었다.

  저 강이다! 조니는 속도를 늦추고, 협곡에서 흘러나오는 강을 따
라 목표지점을 향하여  거슬러올라갔다. 수송기의 불빛이 울퉁불퉁
한 얼음과 눈 위를 비추고 있었다.

  마크50의 성공에 힘을  얻은 그들은 계속해서 바주카포 개량작업
에 착수했다. 핵화기의 포탄을 찾아내서 포신을 바주카포용으로 개
량했다. 특수장갑차도  관통시킬 수 있는  핵탄두 바주카포가 벌써
몇 대 정도는  완성되어 있었다. 그 밖에도 개량가능한 핵화기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확실히 모든 일이  너무 순조롭고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아
렇게 손쉬울 수만은 없었다.
  채굴장의 이착륙장에는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사람들의 모습
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조니가  수송기를 이착륙장에 착륙시키자
뒤에 타고 있던 젊은이들이 일제히 뛰어내렸다. 그들이 손에 든 불
빛이 어둠을 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협곡의 가장자리까지 달려
간 젊은이가 이쪽을 향해 소리쳤다. 그 목소리는 추위와 암흑 속에
서 떨리고 있었다.
  "조니, 벼랑이 없다. 벼랑이 통째로 없어져버렸다."

  (6)
  새롭게 생겨난 벼랑이  불빛을 받아 환하게 드러났다. 상황은 간
단했다. 벼랑  끝에서 삼십 피트 가량  안쪽에 있던 갈라진 틈새가
지진으로 벌어지면서 갈라진  틈새 바깥쪽이 골짜기 밑으로 떨어져
나가 있었다. 지금까지 골짜기 밑바닥을 뒤덮듯이 삐져나와 있었던
돌출부분이 떨어져나가 절벽은  아래쪽을 향해 거의 수직으로 뻗어
있었다. 새롭게  노출된 수정광맥의 넓은  단면이 불빛에 비춰지고
있었다. 그것은 그냥 새하얄  뿐 황금빛 광채는 전혀 찾아볼 수 없
었다. 무너져 내린 암석과 함께 광석덩어리들도 떨어져버렸던 것이
다.
  그러나 조니의 마음은  곧장 작업반 쪽으로 옮아갔다. 새롭게 생
긴 절벽면에 터널이 뚫려 있지 않았다. 그들은 아직 갈라진 틈새까
지 도달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아직 살아 있다면 바로
발밑에 파묻혀 있을  것이었다. 조니는 수갱의 입구로 서둘러 달려
갔다. 커다랗고 둥근 깊이는  입을 쩍 벌리고 있을 뿐 아무런 소리
도 들려오지 않았다. 수갱의  깊이는 백 피트 가량이나 되었다. 조
니는 불빛을 비추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승강기다! 승강기는 어디에 있나?"
  채굴된 광석을 반출할 때나 작업반이 교체될 때 사용되는 승강기
가 통째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산의  경사면에 사방으로 비춰지는
불빛들이 아둠을  가르며 바닥을 샅샅이  수색하고 있었다. 하지만
승강기는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조니는 수갱의 입구  가까이 다가갔다. 입구 위에서 승강기의 게
이지를 받치고  있던 가로대가 무엇엔가  미끄러진 흔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승강기는 수갱의 밑바닥에 있을 것이었다.
  "모두들 조용하게."
  조니는 주위의 소음을 가라앉히고 몸을 앞으로 숙인 다음 양손을
입에 대고 수갱의 밑바닥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어이, 거기 누구 있나?"
  모두들 귀를 기울이고 기다렸다.
  "무슨 소린지 들렸다."
  함께 따라온 목사가 말했다.
  조니는 다시 한 번  크게 소리쳐 불렀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귀
를 기울였으나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조니가 벨트에 차
고 있던 무전기의 스위치를 켜고 불러보았다. 역시 응답이 없었다.
  "앵거스, 통신기를 케이블 끝에 매달아서 수갱으로 내려보내라."
  앵거스가 준비하고 있는  동안에 조니는 구조용품 속에서 비디오
카메라를 꺼냈다. 그리고 나서 케이블 드럼을 또 하나 찾아내 케이
블 풀었다. 앵거스는  이미 통신기를 수갱 안으로 들여보내고 있었
다. 조니가 목사에게  신호를 보냈다. 구조대가 여기저기에 설치해
놓은 기둥에서 라이트가  일제히 빛나기 시작했고 주변은 대낮처럼
환하게 밝아졌다. 통신기 마이크를 잡은 목사의 손이 떨렀다.
  "밑에 누가 없나?"
  그 안에 누군가 생존자가 있다면 움직이는 소리나 말소리를 내려
진 마이크가 잡아낼  것이었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아무 소리도 들
려오지 않았다.
  "계속해주세요."
  초조해진 조니는 급히 케이블 끝에 매단 카메라를 수갱으로 내려
보냈다. 폭스 로버트가  앞으로 걸어나왔다. 휴대용 스크린을 통해
그 안을 살펴보겠다고 자원하고 나섰다.
  처음에는 수갱의  벽면만 계속될 뿐이었다.  더 밑으로 내려가자
부서진 갱목들이 나타났다. 잠시 후 서로 뒤엉킨 케이블이, 그리고
마침내 승강기의 모습이 나타났다. 조니는 케이블을 회전시키고 리
모트 컨트롤을 광각촬영으로 바꿨다.
  승강기는 비어 있었다.
  승강기 안에 사망자가  없다는 것이 발혀지자, 긴장하고 있던 구
조대원들이 내쉬는 안도의 함숨소리가 밤바람 속에 섞여들었다. 조
니는 컨트롤 스위치를 움직여서 승강기 주변을 살펴보았다. 단언할
수는 없었지만 승강기 밑에  깔린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구십 피
트나 되는 수갱바닥에서 광각카메라가 회전했다. 모든 대원들은 긴
장된 눈빛으로 스크린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애타는 심정으로 생존
자를 찾아보고 있었다.
  "갱도의 입구가 막혀버렸다!"
  조니는 다급하게 소리치며  입구가 있던 곳에 광각카메라를 고정
시켰다.
  "승강기가 갱도의 입구를 가로막고 있다."
  급히 비행작업대가 마련됐고  세 사람의 구조대원들을 태운 비행
작업대는 수갱 밑바닥으로 내려갔다. 함께 올라타려는 조니를 로버
트가 말렸다.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작업대에서 내려가 훅을
승강기의 지붕에 걸고,  몇 사람이 승강기를 구멍 위까지 끌어올렸
다. 크레인, 풀리, 윈치가 동원되었다. 삼십삼 분 동안의 숨막히는
긴장과 필사의 노력 끝에 승강기는 수갱 밖으로 올려졌다.
  조니는 다시  카메라를 수갱으로  내려보냈다. 예상한 대로였다.
떨어져내린 승강기가 가로막고 있었던 수평갱의 입구가 드러나보였
다. 조니를 포함한 네 명의 구조대원들은 크레인 케이블에 큰 통을
매달아 그것을 타고 수갱바닥으로 행했다. 이번에는 조니가 로버트
의 제지를 뿌리친 것이었다. 바닥에 내려선 네 명은 수평갱을 마고
있는 바위들을 파내 차례차례로 통 안에 가득 채워서 위로 끌어 올
리게 하고, 내려온 빈 통에 다시 바위를 퍼담아가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작업은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바위를 때리는 망치소리와 부서진
바위조각이 떨어져내리는 소리가,  먼지가 뽀얗게 피어오르는 수갱
바닥에 울려퍼졌다. 무너져내린 바위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았
다. 네 명은 쉬지 않고 계속해서 무너져내린 바위들을 파내며 앞으
로 나아갔지만 터널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모두들 초조해졌고
어쩌면 수평갱 전부가 무너져내린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휩싸
였다. 작업원들은  지쳐갔고 새로운  작업원으로 교체해야만 했다.
하지만 조니는 계속  그곳에 남아 작업을 진행했다. 수갱바닥에 내
려온 지 세  시간 십육 분이 지날  즈음에야 비로소 조니는 멀리서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조니는 모든 작업을 중지
시켰다.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지."
  조니와 구조대원들은 숨을  죽인 채 안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그
소리는 희미했으나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공기구멍을....."
  "뭐라고?"
  조니가 안쪽을 향하여 크게 소리쳤다.
  ".....공기구멍을.....만들어....."
  조니는 채굴용의 긴  드릴을 집어들었다. 눈앞의 흰 암벽 가운데
서 가장 약해 보이는 곳을 찾아내어 드릴의 끝을 박아넣었다. 드릴
용 모터를 담당하는 젊은이가 모터와 전원을 연결시켰다.
  "돌려라."
  조니와 구조반원들은 온힘을  다해 드릴의 손잡이를 밀면서 드릴
을 바위에 박아넣었다.  저쪽에 누눈가 있다면 드릴소리를 듣고 뒤
로 물러날 것이었다. 높고 날카로운 소리가 나더니 드릴이 바위 안
으로 가볍게 들어갔다. 조니는 드릴을 빼내고 소리쳤다.
  "공기호스!"
  그는 드릴로 뚫은  구멍에 공기호스를 집어넣고 공기압축기의 스
위치를 넣었다. 수평갱 안에서 빠져나오는 더운 공기가 공기호스의
틈새를 통해 조니와 구조대원들의 얼굴 위로 뿜어져나왔다.
  이십일 분  뒤 낙반의 윗부분만을  치우고, 안에갇힌 작업원들을
한 명씩  구해냈다. 더넬딘은 발목이 삐고  늑골이 부러져 있었다.
그러나 열일곱 명  전원을 구출했을 때 중상자는  단 한 명 뿐이었
다. 구조대원들은 그들을 운반통에 태워서 땅 위로 올려보냈다. 먼
지와 땀투성이가 되어 마지막으로 올라간 조니의 어깨에 목사가 담
요를 덮어주었다. 구출된  사람들은 한덩어리가 되어 눈 위에 주저
앉아 있었다.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 침묵을 깨고 입을 연
것은 토르였다.
  "광맥이 끊어져버렸다."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7)
  동쪽 하늘에 여명의 빛이 서서히 주위를 감싸며 펴져나가고 있었
다. 조니는 절벽 위에 우뚝 선 채 깊은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백수정 광맥에는 금광석은 물론  그 비슷한 것도 찾아볼 수가 없
었다. 무인정찰기가  지나가고 나면 타르가  이곳의 상황을 사진을
통해 알게 될 것이다. 아직까진 어둠에 휩싸여 보이지 않지만 까마
득한 저 아래쪽에  떨어져버린 바윗덩어리들이 모든 것을 얘기해줄
것이다. 조니는 타르가  어떻게 나올지 여러 각도로 생각해보았다.
정상과 광기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드는 타르의 반응을 정확히 파악
해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찰기가 지나갈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그다지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지 않은
데 바람은 전혀  없었다. 떠오르는 아침햇살이 장려한 산들의 정상
에서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조니는 비행작업대로 달려가서,  작업대에 올라타고 단숨에 계곡
밑바닥까지 내려갔다. 계곡바닥과  거의 닿을 높이에서 비행작업대
를 정지시킨 조니는  라이트를 켜고, 떨어져내린 산처럼 수북히 쌓
여 있는 암석들은  조사해보았다. 일부분은 강을 뒤덮고 있는 얼음
밑에 잠겨 있었고,  강의 가장자리에 떨어져 있는 암석들은 강물의
흐름을 바꿔놓고 있었다.  엄청난 양의 암석이었다. 조니는 하얗게
빛나는 광맥들을 찾아내 그 빛 속을 우심히 살펴보았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금광석은 눈에 띄지 않았다.
  떨어져내린 암석 중에는 금광석이  일 톤 정도는 섞여 있을 것이
었다. 그러나 지금 그 금광석들은 산더미처럼 쌓인 암석 밑에 파묻
혀버렸다. 아니,  어쩌면 얼음을 뚫고 강  밑바닥에 잠겨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산더미처럼 쌓여진 암석들을 불안정하여 무너지기
쉬웠고, 경사도 급해서 발을 올려놓을 수조차 없었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 금광석은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아침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조니는 비행작업대를 계곡의 정
상까지 급상승시켰다. 계곡을 휘도는 바람이 위로 떠오르는 비행작
업대를 나뭇잎처럼 흔들어댔다.
  "사람들을 마을로 옮겨주세요."
  조니는 폭스 로버트에게 그렇게 부탁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목
사가 근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폭스 로버트도 꼼짝
않고 조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구출된 작업반원들은 차례로 수송기
에 옮겨졌고, 조종석에서는  두 명의 조종사가 이륙하기 전에 항로
조정을 하고  있었다. 더넬딘이 조심스럽게  기내로 옮겨지고 있었
다.
  "그렇다. 이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갑자기 조니가 소리를  질렀다. 폭스 로버트와 목사가 그에게 다
가왔다.
  "타르는 우리가 파들어간  수평갱이 광맥에 어느 정도 접근해 있
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광맥에 도
달했다고 말해도 그는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저 백
수정광맥을 타르가 보게 된다면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우리가 광맥
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조니는 작업원들을 향해 외쳤다.
  "토르, 가라진 틈새까지는 얼마나 남아 있었나?"
  토르는 작업반장에게 질문했고, 둘이서 신속히 그 거리를 계산해
냈다.
  "약 오 피트 정도 남았을 겁니다."
  토르가 비행기에서 큰소리로 대답했다.
  "그것을 날려보낸다."
  조니가 말했다.
  "이제 폭약을 써도  상관없다. 수평갱의 나머지 부분을 폭파해서
관통한 것처럼 보이게 하라. 서둘러서 폭약과 드릴을 갖다주게."
  작업반원들은 필요한 폭약량을  재빨리 계산해냈다. 구출된 작업
반원들을 태운 수송기는 당장이라도 날아오를 수 있도록 모든 준비
를 끝내놓고 있었다.
  "교체할 작업반원도 빨리 데려오게."
  조니는 수갱쪽으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무인정찰기가 올 기간이 다 되었다 서둘러라."
  이미 정오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수송기는 굉음을 내면서 이륙했
다. 수송기의  이륙과 함께 조니는  작업도구들을 준비해 수갱으로
내려갔다. 거친 돌맹이  위를 지나자 수평갱이 나타났다. 작업도구
들이 아직도 그곳에 남아  있었다. 램프도 켜진 채고 있었다. 조니
는 드릴을 집어들고 백수정 벽에 육 인치 깊이의 구멍을 뚫기 시작
했다. 폭약을 집어넣기 위한 구멍이었다.
  수송기는 놀란 만큼  빨리 돌아왔다. 조니는 무선으로 지상과 교
신하고 필요한 기재를 내려보내도록 지시했다.
  즉시 폭약이 도착했다.  조니는 그 강력한 접착성 폭약을 구멍에
집어넣고 그 위에 커다란 캡 모양의 촉발신관을 얹었다. 그 윗부분
에 전체적으로  중성 충전재를 발랐다.  마지막으로 폭압이 벼랑의
바깥쪽을 향하도록 연결하였다.
  조니는 무전으로 지시를 내리고 케이블 끝에 신체보호 장비를 가
져오게 했다. 지상으로  올라가자 조니는 즉시 벼랑 끝으로 달려갔
다. 다른 사람에게  시키라는 로버트의 말을 무시하고 신체보호 장
비로 몸을 감쌌다. 어는 누구도 조니만큼 폭약에 익숙한 사람은 없
었다. 젊은이들은 케이블을 윈치로 천천히 풀어내 조니를 골짜기로
내려보냈다. 골짜기의  암벽은 산사태 때문에  약간 경사져 있어서
내려가기가 훨씬  쉬웠다. 광맥까지 도달하자  조니는 신호를 보냈
고, 그들은 윈치를 멈췄다.  조니는 벼랑의 표면을 발로 차서 몸을
솟구치게 하여 이동하며  작은 구멍을 찾았다. 수평갱 안에서 벼랑
바깥쪽까지 가느다란 드릴로 구멍을 뚫어놓았던 것이다.
  있었다! 그것은 이 주변의 안쪽에 뚫린 구멍이 있다는 얘기였다.
드릴이 흔들리면서 내려왔다. 이제부터가 위험한 작업이었다. 드릴
의 충격으로 안쪽에  장치해놓은 폭약이 폭발한다면 조니는 폭풍으
로 날아가버리게 될  것이었다. 그렇다고 보통 드릴로 안전하게 작
업할 시간은 없었다. 조니는 삭조폭약을 꼬아서 끈을 만들었다. 그
리고는 드릴을  최저출력으로 해서 광맥에 구멍을  그뚫고 핀을 그
구멍에 박아넣었다. 깊이  천 피트의 골짜기를 밑으로 하고 윈치로
케이블을 오르내리게 하면서 핀에 감아갔다. 광맥의 표면에 연결된
커다란 원이 그려졌다. 그리고는 전기발화식 도화선을 폭약에 연결
시키고 도화선을 풀면서  몸을 끌어올리게 했다. 시간이 임박했다.
무인정찰기가 올 때까지  삼십 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그때까진
폭연도 사라져야 했다.  도화선을 수송기까지 끌고 간 다음 만일의
경우 다시  산사태가 일어날 것을 감안해서  전원을 수송기에 태웠
다. 물론 조니도 올라탔다.
  "간다!"
  조니가 소리쳤다.
  발화버튼을 눌렀다.  벼랑의 암벽에  섬광과 연기가 피어올랐다.
백수정과 그것을  둘러싼 모암이 협곡의 건너편  벽을 향해 날아갔
다. 지면이 흔들렸으나 벼랑은 무너지지 않았다.
  조니는 수송기를  상승시켜서 무인정찰기의 비행고도만큼 올라갔
다. 그리고 암벽을 내려다보았다. 벼랑의 표면에 검은 구멍이 보였
다. 이 정도면 수평갱이 광맥에 도달한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다
시 땅 위로 내려온 전대원은 채굴장비를 준비해놓고 바쁘게 움직이
는 흉내를 냈다. 바람 덕분에 폭연도 날아가버렸다. 이윽고 무인정
찰기의 폭음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8)
  타르는 심한 숙취에  시달리면서 사무실에 설치되어 있는 수신장
치 앞에 앉아  있었다. 정찰기가 촬영한 광맥사진이 롤러에서 나오
고 있는 것을  시큰둥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어젯밤에
발생한 지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고주망태가 되어 밤
새도록 깊이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진을 느끼지 못한 것
도 있었지만, 본부지역은  산악지대만큼 진동이 심하지 않았다. 또
한 본부의 건물들은 모두 그 정도의 진동은 흡수할 수 있도록 설계
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체 내에서도 전혀 화제거리가 되지 않았다.
  요즘 타르한테는 영상스크린을  보고 있는 것만이 유일한 기쁨이
었다. 수갱 주위에  생기는 폐광은 매일 미미했고 동물들의 움직임
도 그다지 활발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것은 참을 수 있었다. 제이드
에 대한 수수께끼는 그가 도착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하나도 풀린
것이 없었다. IBI가 이 별에 흥미를 갖게 된 이유를 캐내려고 노력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미궁에 빠져들기만 했다.
  신경과민을 일으켜 몸이 여위고, 눈은 힘없이 움푹 패이고, 카방
고를 입으로 옮기는  손이 떨리게까지 되었다. 그는 카방고를 매일
매일 곤드레가  되도록 마셔댔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푸른 하늘과 흰 산들이 그의 증상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럴수록 지
구혹성에 대한 혐오감은 점점 더 심해졌다. 매일같이 모든 문을 안
으로 걸어잠그고, 도청탐지기로  방을 점검하고 나서 영상스크린을
보는 이 순간만이 타르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타르는 사진을 집어들고  불빛 아래로 가져갔다. 보통 때와 다르
다는 것을 때닫는 순간  그는 잠시 멍한 상태로 빠져들었다. 그 순
간 충격으로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산사태다! 광맥은 흔적도 없
이 사라져버렸다.
  전날의 사진과 비교해볼 수도 없었다. 언제나 즉시 폐기시켜버렸
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느 정도 무너져내렸는지 짐작해보았다. 절
벽의 경사면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러나 결국 갈라진 틈새가
어느 정도 절벽을  파들어갔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다. 구멍
이 뚫려 있었다.  수평갱이로구나. 광맥을 따라서 파들어가고 있었
으니까.
  그 문제에 대해 자세히 생각해보려고 했다. 그때 화면 옆에 나타
나고 있는  광물반응선에 시선이 갔다.  무인정찰기의 원래 목적은
감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광물탐사에 있었다. 그 결과가 반응선으
로 표시되어 나타나게  되어 있었다. 그 사진의 광물반응선은 평소
때와 달랐다.
  평소와는 다르다. 광맥반응선에 나타난 톱날 모양은 금의 스펙트
럼배열일 것이다. 타르는 서둘러 그 반웅선을 분석기에 걸었다. 유
황이라고? 그 광맥에는 유황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곳의 금광석은
유황금이 아니었다. 탄소,  불소, 도대체 뭐지.... 이 지역에는 이
런 광석이 없을 텐데.
  혹시 폭발성 화합물인  트리그다이트가 아닐까 하고 타르는 생각
했다. 폭약이나 연료는 사이클로별에서 이곳으로 보내주지 않았다.
전송하기에 위험이 따르고 이곳에서 만드는 것이 쉽기 때문이었다.
본부 남쪽의  십 마일 지점에 작은  공장이 하나 있었는데, 이따금
작업 반원들이  그곳으로 가서 원소를  화합하여, 연료통과 폭약을
만들곤 했다. 그렇다면 그런 것들은 이 별에 있는 원소를 이용해서
고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었다. 타르는 정확한 혼합비율을
알아내기 위해서 반응선을 다시 한번 분석기에 걸었다.
  분명히 트리그다이트였다.
  잠시 동안 혼란에 빠져  있던 타르는 어찌할 줄 몰라하다가 엉뚱
한 곳으로 자신의 감정을 한꺼번에 몰아붙였다. 트리그다이트는 사
이클로인이 작업하는 광산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광물반응이었다.
폭파작업이 있는 후에는 주변의 바위들이나 공중에서 그 반응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였다. 타르는 의자에서 벌떡 일
어나 사진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것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발
로 짓밟았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자  주먹으로 힘껏 벽을 쳤
다.
  못돼먹은 더러운 동물놈들. 그들이 폭약으로 절벽을 날려버린 것
이 분명했다. 단지 나의 희망을 짓밟아버리기 위해서, 나에게 복수
하기 위해서 나의 광맥을 날려보낸 것이다.
  타르는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문에서 노크소리가 들리고 차크
의 근심스러운 얼굴이 나타났다.
  "무슨 일이죠, 타르?"
  타르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그렇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
다.
  "기계가 망가져버렸어."
  타르가 소리쳤다. 그것은 그럴 듯한 설명이었다. 차크는 다시 돌
아갔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타르는 마음이 진정되면서 자신감을 되찾았
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는 분명해졌다. 약점이 될 만한 것들은
모조리 제거해버려야 한다.  증거를 남겨서는 절대 안된다. 완전범
죄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계획은 이미 오래전에 짜놓았다. 그 다
음에 무인폭격기를  이용해서 동물들을  모조리 말살시켜버리면 된
다.
  기다란 손톱이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뛰어나가
암컷들을 날려버리면 기분이  한결 좋아질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
은 제 구십사일에 실행할 예정이었다.
  폭약이 장치된 목고리를 말 목에 묶어서 우리에 있는 암컷들에게
끌고 간다.  목고리에 장치된 빨간 버튼이  그들의 목에 달려 있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나서 스위치를 눌러 말의 머리
를 날려보낸다.  암컷들은 두려움과 공포로 미친  듯이 떨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 마리를 끌고 와서 한 번 더 똑 같은 장면을 보여준
다. 그리고는 돌아가는  척 안심시키면서 뒤로 물러나 작은 암컷의
머리를 날려보낸다. 그렇데 되면 암컷들의 얼굴에 떠오르는 공포에
질린 표정을 담뿍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그 정도는  해야 한다. 그러나 타르는 동물들의 초능력
을 생각해냈다. 그녀석이 산에서 암컷들이 당한 것을 알고, 자기방
어을 위해  뭔가 손을 쓸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런 생각은 그만두
자. 한번 본때를  보여줄 필요는 있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하고 싶지만 참아야  한다. 냉정하고 침착하게 차분한 마음으로 해
야 한다. 지금 해야  할 일은 계획대로 우선 완전범죄를 실행에 옮
기는 것이다. 신중하고  냉정하게 결심을 다진 타르는 계획에 착수
했다.

  (9)
  완전범죄에 착수한 타르는  가장 먼저 카를 혹성차관에 임명하도
록 했다. 공보의 배포와  게시를 포함해서 모든 수속은 한 시간 내
에 완료됐다. 현재  공석중인 차관을 임명하는 것은 회사규칙에 합
치되는 것이었다.   임명서는 넘프가 이미 서명해 놓은 백지명령서
를 사용했다.
  그날 저녁때 타르는 넘프를 조용한 곳으로 불러내 비밀을 지켜줄
것을 맹세하게 하였다.  급료와 보너스를 착복하고 있는 넘프의 안
전에 관계되는  일이라고 암시하면서  스니트라는 새로운 노동자를
호출하라고 말했다. 스니트가  제국 수사국원 제이드의 가명이라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 관리돔에서 정오에  만나도록 준비를 시키고
그 사실에 대해서는 비밀로 할 것을 다짐받았다. 그 시간에 관리돔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제이드가 오기  전에 타르는 사무실의
커튼 뒤에 숨어  있었다. 넘프에게는 그의 안전을 위해서라고 납득
시켰다.
  타르는 익숙한 솜씨로 암살용 소음총에 기름을 치고 탄창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무선으로 조작할  수 있는 캡 모양의 폭약을 두 개
준비했다.
  약속시간이 되기 직전에 권총을 언제든지 발사할 수 있도록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으라고 말했다. 넘프는 조금 놀라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이 커튼 뒤에서 제가 각하를
지켜드릴 테니가요."
  넘프는 책상을 향해 앉아 있었고, 그의 무릎 위에는 권총이 놓여
져 있었다. 타르는 계획대로  커튼 뒤에 몸을 숨겼다. 제이드가 찾
아올 시간이 되었다.  그때까지 냉정했던 타르도 신경이 곤두서고,
온몸이 떨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제이드가 오지 않으면 어떻
게 할까.
  긴장된 일 분이 지났다. 그리고 또 일 분. 제이드는 나타나지 않
았다.
  그때 복도를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타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틀림없이 놈은 감시장치가 있는지 탐지기로 조사
하면서 걸어오고 있을 것이다. 멍청한 녀석. 이미 철저하게 조사해
놓았으므로 감시장치 따위는 있을 턱이 없었다.
  문이 조용히 열리고  제이드가 들어왔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있
었다. 광석선별 작업장의 누더기 작업복을을 그대로 입은 채였다.
  "용무가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 혹성장관 각하."
  제이드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자네가 이곳에 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는 없겠지?"
  "네, 장관각하."
  제이드는 혼자 중얼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과연 명수사
관의 위장술답다고 타르는 생각했다.
  타르는 커튼 뒤에서 걸어나왔다.
  "야아, 제이드."
  제이드는 타르의  갑작스런 출현에 깜짝 놀라  몸을 떨면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타르! 당신은..... 타르구면!"
  제이드가 그를 본  것은 아주 오래전의 일이었다. 그가 광산학교
보안과 학생이었을 때  녀석이 범죄수사를 하러 왔었다. 그것도 단
한번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만났었다. 녀석의 기억력 하나는 대단
했다. IBI의  수사관은 그런 훈련을 받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렇다
해도 이건 너무했다.  녀석은 틀림없이 사전에 이곳 간부들의 사진
과 기록들을 전부  조사했을 것이다. 특히 이 보안부장에 대해서는
말이다. 그동안  시치미를 뗄 수 있었던  제이드에 대해 버럭 화가
났다. 타르는 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띄었다.
  제이드의 눈은 타르의 허리에 꽂혀 있는 암살용 소음총에서 우뚝
멈추었다. 그는 뒷걸음을 치면서 지저부한 양손을 들었다.
  "기다려, 타르. 당신은 오해하고 있다구....."
  타르는 재빨리 총을 빼들었다. 총은 넘프에게서 제이드로 향하는
일직선상에 놓여졌다.  방아쇠를 당겼다.  탄환이 제이드의 심장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제이드는 뭔가 말을 하려고 했다. 오해하고 있다면서. 어쨌든 제
이드는 지금 녹색 피에  젖은 카펫에 지저분한 시체가 되어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었다. 죽였다!  순간 타르의 몸에 짜릿한 쾌감이 스
쳤다. 불안에 떨고 있던  제이드의 그 얼굴! 그러나 지금은 쾌감에
취해 있을  여유가 없었다. 계획을 계속  진행시켜야 했다. 냉정을
되찾은 타르는 넘프  쪽으로 돌아섰다. 넘프는 공포에 떨면서 꼼짝
도 않고 앉아 있었다.  그 공포에 질린 듯한 표정에 타르는 마음속
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걱정할 것은  없다. 넘프. 이 죽은  녀석은 당신의 꼬리를 잡기
위해 파견된 IBI의  수사관이야. 이제 당신은 안전하게 됐어. 모두
내덕이라고."
  넘프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무릎에 올려놓았던  총을 책상 위에
꺼내놓았다. 아직도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지만 그래도 상당히 안
심하고 있는  눈치였다. 타르는 총을 쥐고  앉아 있는 넘프 곁으로
걸어갔다. 그리곤 재빨리 소음총을 겨누었다. 넘프가 눈을 크게 뜨
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입을 딱 벌렸다.
  타르는 소음총의 총구를 머리에 갖다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넘프
는 옆으로 쓰러졌다.  머리를 관통한 상처에서 녹색 피가 흘러나오
기 시작했다. 그러나 타르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냉정하게 시
체를 의자에 되돌려놓고,  책상에 엎드린 자세로 만들었다. 그리고
아직도 실룩거리는 팡을 구부려서 총을 쏜 것처럼 보이게 했다. 곧
팔의 경련이  멎고, 넘프는 죽었다. 타르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넘프의 총에 캡 모양의  폭약을 끼웠다. 그리고 장화에서 또 한 자
루의 권총을 꺼내 제이드의 경직되기 시작한 손에 쥐어주고, 그 총
구에도 캡 모양의  폭약을 끼웠다. 그는 방안을 둘러보았다. 좋아,
이제 됐다.
  타르는 천천히  방을 나섰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러나
발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레크레이션 홀로 향했다. 조용한
홀안에 들어간 타르는  호흡마스크를 벗고, 마치 방금 밖에서 돌아
온 것 같은 몸짓을 보이며 자리에 앉았다. 우선 웨이터에게 카방고
한 잔을 주문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라는 듯
한모금 마시고 좀전의 기분이 가라앉자 비로소 자신이 긴장하고 있
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삼 분 뒤 웨이터가  문을 닫고 싶은 듯이 하품을 해댔다. 빨
리 마시고 나가라는  듯이 부라인드를 내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타르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어 첫번째 폭약스위치를 작동시켰다.
멀리서 둔탁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웨이터가 얼굴을 들고 두리번거
리면서 본부구역 반대쪽을 바라보았다. 타르는 이어서 두번째 스위
치를 작동시켰다. 다시 폭발음이 들렸다. 웨이터가 깜짝 놀라 소치
쳤다.
  "총을 쏘는 소리 같은데요."
  가까이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급히 달려가는
발자국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왔다.
  "그렇군, 틀림없다."
  타르는 그렇게 말하며 재빨리 일어섰다.
  "본부 동쪽인 것 같군 조사해봐야겠군."
  타르는 웨이터와 함께 달려나갔다. 처음에 들어간 곳은 숙소구역
이었다. 방문을 차례로 열면서 타르가 소리쳤다.
  "총소리가 난 곳이 여기냐?"
  놀라서 일어난  사이클로인 노동자들에게  물어보며 서둘러 다른
방문을 열었다. 총소리를  들은 몇 명이 벌써부터 우왕좌왕하고 있
었다.
  "어느 쪽에서 들려왔지?"
  타르는 복도로 뛰어나온 노동자들에게 물었다.
  서너 명이 관리돔 쪽을 가리켰다. 타르는 그 방향을 향해서 사이
클로인들을 헤치며  뛰어갔다. 많은 사이클로인들이  그 뒤를 따랐
다.
  타르는 거칠게 사무실문들을 열어젖히고 불을 켠 다음 내부를 샅
샅이 조사해나갔다.  물려온 사이클로인들도  제각기 사무실문들을
열어젖혔다.
  넘프의 직무실 쪽 통로에서 외마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다. 이 방이다."
  모두들 와르르 몰려갔다. 타르는 사람들이 몰려가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잠시 후 그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갔다.
  "모두들 조용해라. 누가 어떻게 된 거냐? 어디야, 장소는?"
  노동자들은 각기 타르를 향해 아우성이었다. 놀란 나머지 그들의
눈두덩이 크게 벌어져  있었다. 그들이 가리키는 열려진 문 앞쪽에
서 두 구의 시체가 눈에 들어왔다. 챠가 문 바로 옆에서 표정이 일
그러진 채 시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가 안으로 들어오려 하자
타르가 저지했다.
  "아무것도 만져서는 안된다.  보안부장인 내가 이곳의 지휘를 맡
겠다. 모두들 뒤로 물러나라."
  타르는 두 구의 시체  위에 몸을 구부리고 심각하게 조사하는 체
했다.
  "이녀석이 누군지 알고 있는 자 없나?"
  제이드의 시체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몇 명이 목을 길게 빼고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인사과 직원이 말했다.
  "스니트라는 놈이 아닐까?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이미 죽었는데.... 들것을  가져오라고 연락하게. 나는 이
곳 상황을 기록해두겠다."
  넘프의 책상 위에는 늘 비디오 레코더가 놓여 있었다. 타르는 지
시를 내린 후 실내와 시체들을 숙달된 몸짓으로 카메라에 담았다.
  "모두 이 현장의 증인이 된다."
  누가 불렀는지 의료반원들이  금세 달려와서 시체를 들것에 실었
다.
  "조사할 필요가 없다면 시체수용실로 옮겨주게."
  타르가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죽었습니다."
  의료반원이 대답했다.
  "총에 맞았습니다."
  "그런 것 같군. 자아 옮겨주게. 모두들 자기 숙소로 돌아가고."
  타르가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노동자들을 재촉했다.
  그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것으로 끝났다. 이제 걱정거리는 없다.'
  내일 아침 목격자의 증언을 모아서 보고서를 쓰자. 이런 식은 어
떨까. 나,  타르가 이미 IBI 수사관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피해자
는, 이 혹성의 보안부장인 나에게 신분을 밝히지 않는 것이 좋겠다
고 판단하여 단독으로 수사를 진행하던 중, 사건 당일 밤늦게 넘프
의 방을 찾아가  무모하게도 넘프를 체포하려 한 것으로 추정된다.
넘프는 숨기고 있던 총으로 피해자를 사살하고 이어서 자살을 감행
했다.
  넘프의 범죄행위에 의혹을 갖고, 오랫동안 조사를 계속하고 있던
나는 이번 조사에 의해서 넘프의 종업원 급여 사취행위를 발견하고
증거서류를 압수했다. 한편  현재의 사태는 수습되었고, 당 혹성의
모든 활동은 완전히 장악되었음을 여기에 덧붙인다. 즉 이 사건 이
전에 넘프에  의해 임명된 유능하고 경험이  풍부한 차관이 넘프의
직무를 대행하여.... 그리고 시체는 제구십이일에 저속전송에 의해
송환될 예정이라고 마무리하면 완벽한 보고서가 되지 않을까.
  오후에는 인간들이 아직도 그곳에 있는지 확인하고, 무인기를 이
용해서 '넘프가 관련된 어리석은 실험'을 말살한다. 증거는 하나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없애버려야 한다. 제이드가 무엇을 찾고 있었
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해버리면 더이상 걱정할 것이 없다.
  타르는 냉정함과 침착함, 그리고 확신감에 넘치는 자신을 느끼고
더할 수 없는  만족감에 빠져들었다. 그는 완전범죄를 저지른 셈이
었ㄷ. 그러나 웬지 모를 불안감에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
다.
  제 2 권
  하늘과 녹색사이

  제 11 부
  모든 은하의 운명이 그것에 달려 있다.

  (1)
  오늘은 무인정찰기가 날아오기  전에 전원이 밖으로 나가서 바쁘
게 일하는 척하는는 작전을 세웠다.
  조니는 타르의 반응이  마음에 걸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채굴계
획에 차질이 생겨서는 안되었다. 모든 계획은 그것에 달려 있었다.
여러 가지  전략이 검토되었지만 어느 것  하나 승패를 판가름해줄
것같지 않았다.
  지금 당장 수송기를 타고 최고 방위기지로 이동하자는 의견이 나
왔다. 지금은 비록 여러 가지 무기들을 구비하고 있다 해도 전투기
지로서의 능력을 전혀  갖추고 있지 못했다. 아직 계획이 좌절되었
다고 볼 수도 없었기 때문에 지금 당장 그곳으로 이동할 이유가 없
었다.
  타르가 자신의 계획을 계속하게 만드는 것만이 조니와 그의 동료
들에게 남은  유일한 작전이었다. 결정은  그렇게 내렸지만 조니는
불안해 하고 있었다.  타르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대 반미치광이 같
은 행동을 보였으므로,  그것이 마음 한구석에 무겁게 자리잡고 있
었다. 그런 타르에게 던질 유일한 미끼는 금이었다. 조니는 황금만
이 그들의 작전을 유리하게 이끌고 갈 방편이라고 여겼다.
  어제 정찰기가 통과한  직후부터 오늘의 통과에 대비해서 작업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갔다. 조니가 날려보낸 광맥의 암석은 협곡의
맞은편 벽에 부딪쳐 산산이 부서진 채 골짜기 밑바닥으로 떨어져내
려 지진으로 무너져내린 암석 위를 덮고 있었다.
  조니는 폐차 직전에 있는  날이 달린 차량을 준비시키고 그 안에
리모트 컨트롤을  장치하였다. 폭스 로버트가  인간과 똑같이 생긴
인형을 만들어  차량의 좌석에 고정시켰다.  인형의 손에는 장갑을
끼우고, 차량의 움직임에 따라서 앞뒤로 움직이도록 장치해두었다.
죽음의 냄새를 끔찍히 좋아하는  타르를 위해 낡은 옷에 소의 피를
발라서 좌석에 던져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는 크레인의 케
이블 끝에 광석채취용 그물을  묶고 그 안에 채굴갱에서 캐온 백수
정 광석을 잔뜩  집어넣었다. 마지막으로 아미 가지고 있던 금광석
을 그 위에 덮었다.
  바람이 잠잠한 새벽녘의 짦은 시간을 이용해서 떨어져 있는 바위
덩어리 위에 날이  달린 차량을 내려놓았다. 아직도 주위는 어두컴
컴했다. 골짜기 밑바닥에  내려놓은 차량은 잘 보이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  건너편 절벽의 바위그늘에 숨은 차량조작원이 그
차량을 조종해서 무너진 바윗덩어리를 정리했다. 골짜기 바닥을 평
평하게 하고, 주의깊게  꾸며낸 광석채취용 그물을 차량 옆에 내려
놓았다. 정찰기가 나타나게 전에 모든 준비는 완료되었다.
  조니는 수갱 입구에 전원을 모아놓고 말했다.
  "고대 인류의  채굴작업 안내서에 의하면  그물 모양의 금광맥은
덩어리를 이루어 군데군데 모여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이 광맥 외
에도 광석덩어리가 모여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절벽에서
이, 삼백 피트 가량 안쪽이 될는지도 모른다. 물론 금이 어느 정도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지금까지와는 반대 방향인 절
벽의 반대쪽을  향해서 광맥을 캐나갈 수밖에  없다. 폭약을 쓸 수
있으니까 파는 속도는  이전보다 훨씬 빨라질 것이다. 즉시 승강기
를 수리해서 일에 착수하도록 하자. 광맥을 캐내는 것이다. 제구십
이일까지 앞으로 육십  일. 늦어도 제 팔십육일까지는 금괴를 타르
에게 가지고 가야만 한다. 자아, 시작합시다. 희망을 가집시다."

  (2)
  아침햇살이 다사롭게 비추고  있는 사무실에 의연하게 앉아 있는
타르는 손이 떨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펜을 들었다. 보고서를 써
서 완전범죄를 마무리지으려 하고 있었다. 계획은 완벽했다.
  보고서를 쓰고 안 뒤, 정찰기가 촬영한 사진을 보고 인단들을 확
인한 다음 무인폭격기를  출격시킨다. 즈즈토는 무인폭격기가 격납
고의 발사대를 가로막고 있어서 광석수송기가 지나갈 수 없다고 만
나는 사람마다 불평을  늘어놓고 있다. 그렇다면 녀석이 장소를 비
우기 위해서  무인기를 출격시켰다고 둘러대면  된다. 그리고 카를
새 혹성장관에 임명한  다음 협박해서 나에게 협력하도록 맹세시킨
다.
  그러나 웬지 타르의  기분은 밝아지지 않았다. 돔의 착색된 압유
리을 통해  들어오는 아침햇살이 침대시트  위에서 춤추고 있었다.
그런 모습은 자신이 아직도  이 저주받은 혹성에 있다는 것을 상기
시켜주었다. 큰돈을 벌어서  사이클로별로 돌아가 부유하게 살아보
겠다던 꿈은 사라졌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을 신속하게 처리해야 했
다. 펜을 잡은 뒤로,  벌써 십여 차례나 되풀이해서 내용을 구상해
보았다. 그러나 아직 서두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뭔가 중요한
것이 빠져 있는 느낌이었다.
  그렇다. 그것이었다. 제이드의 배지, 녀석의 배지번호였다. 사살
직전 녀석은 셔츠 안에  손을 집어넣으려고 했다. IBI 제국 수사국
수사관 ID배지를  보여주려고 했을 것이다.  의무반 놈들은 시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방치해두었을 것이다. 타르는 시체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려면  열 구의 시체가 필요했다. 총의 폭
발로 죽은 보초의 시체 세 구를 포함해서 벌써 다섯 구는 준비되어
있었다. 훌륭한  계획이었는데 참으로  유감이었다. 타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금을 관에  넣어서 본국으로 우송한 뒤 사이클로별로 돌
아가 몰래 무덤에서  파낼 계획이었다. 그것을 다시 주조하면 큰부
자로 제왕처럼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제이드의 출현과 인간들
의 반란 때문에 모든 것이 일시에 끝나버렸다.
  어쨌든 녀석의  배지에 기록되어  있는 인식번호를 확인해두어야
했다. 그리고 비록 시체라 할지라도 한두 차례 실컷 두들겨패면 기
분이 나아질 것  같았다. 타르는 호흡마스크를 집어들고 본부를 나
왔다.
  암컷들을 가둬둔 우리  앞에 식량과 장작다발이 놓여 있었다. 타
르는 그것을 발길로  차버렸다. 그대로 지나치려던 타르는 문득 그
초능력이 생각났다. 그렇다,  지금은 암컷들을 자극하지 않는 편이
낫다. 초능력으로 산에  있는 동물들이 뭔가 알아차리게 될지도 모
른다. 타르는 우리의 전류를  끊고, 안으로 들어가 먹을 것과 장작
을 난폭하게 던져주었다. 공교롭게도 그것은 모닥불 위에 떨어져버
렸다. 작은 암컷이 황급히 그것을 불에서 끄집어냈다.
  그러자 또 한 마리의  암컷이 인간들의 폐허에서 가져온 것 같은
강철나이프를 꺼내들었다.  타르는 그  나이프를 빼앗았다. 그러나
다시 초능력이 마음에 걸렸다. 하는 수 없이 머리를 쓰다듬어 달래
주려고 했지만 암컷은 그것을 싫어했다.
  타르는 빼앗은 나이프를 벨트에 꽂고는 우리 밖으로 나가서 전류
스위치를 다시 가동시키고,  리모트 스위치를 안주머니에 집어넣었
다. 작은 암컷이 시끄럽게 부르짖었다. 분명 욕을 퍼부어대고 있을
것이다. 은혜를 모르는  동물들. 어차피 곧 끝장날 것이다. 무인폭
격기가 모든 일을 무사히 끝내면 저 두 마리도 처치해버리자. 생각
만 해도 속이 시원해졌다.
  타르는 시체안치실로 향했다.  생각했던 대로 시체는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었다.  타르가 스위치를  올리자 시체안치실이 훤해졌다.
문을 잠그고, 우선 천  파운드가 되는 넘프의 시체를 선반 위에 올
려놓았다. 시체가 되어서도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죽기 직전
의 경악해  하던 표정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아직도 마르지 않은
피가 손에 묻어났다. 타르는 코트자락으로 신경질적으로 닦아냈다.
  그것에 비해서 제이드의  시체는 놀랄 만큼 가벼웠다. 칠백 파운
드도 안될 것 같았다. 타르는 시체를 테이블 위에 던져올리고 손바
닥으로 그 얼굴을 한차례 후려갈겼다.
  "이 병신아,  너만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내  장래는 멋진 꿈으로
가득 찰 수 있는 인생이었다구."
  타르는 다시 한 번  제이드의 뺨을 때렸다. 앗, 옴이다. 그는 옴
이 올라 있었다. 타르는 불쾌한 표정으로 시체를 노려보았다. 이빨
을 앙물고 시체의 목을  양손으로 힘껏 잡아 위로 올렸다. 손을 떼
자 제이드의 시체는 탁자  위에 털썩 떨어졌다. 타르는 다시 한 번
뺨을 후려갈겼다.
  이제야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시체의 웃옷으 더듬으면서 단서
가 될 만한 것을 찾아보았지만 신분증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장화바닥에 숨겼겠지. 그것은 IBI가 흔히 쓰는 수법이었다. 그러나
장화를 벗기고 조사해봐도 구두바닥에는 아무런 장치도 없었다.
  틀림없이 어딘가에   숨겨놓았을 텐데. 누더기가 된 바지를 조사
해보았으나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타르는  몸을 일으켜서 초라한
제이드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옷은 구멍투성이였으며 옴에 걸린
탓인지 군데 군데 털이  빠져 있었다. 도대체 어디에 숨겼을까? 맞
아. 순간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제이드는 뭔가를 꺼내려고 손을
집어넣었다. 핏자국이 묻은  셔츠를 찢자 가슴이 드러났다. 찢어진
천을 조사해보았으나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제이드의 가슴이
눈에 들어왔다. 타르는 뚫어질 듯이 그 가슴을 쳐다보았다. 범죄자
의 각인이다!
  타르는 각인을 문질러보았다. 확실히 범죄자의 소인이었다. 가짜
가 아니었다. 체포된 것은 대충 일 년 전, 전문가인 타르는 소인의
상태로 추정할 수 있었다. 그는 서둘러서 몸을 뒤집어 시체의 발목
을 살펴보았다. 분명히 족쇄자국이 있었다. 제국 형무소의 가시 무
늬까지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타르는 좀더 상세하게 조사했다. 그
것도 일년  정도 된 것이었다. 타르는  벽 쪽까지 물러나서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관리나 수사관이 직무수행
중에 죄를  범한다든가, 귀족들의 범죄에  연루되어 제국 형무소로
보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렇다. 타르의 머릿속에 사태의 진
상이 떠올랐다.  제이드는 IBI수사관의  실력을 발취해서 형무소를
탈출했고, 스니트라는 가명으로  서류를 위조하여 인터개랙틱 광산
회사의 직원으로 잠입했다.  그리곤 회사가 조업하고 있는 가장 미
개한 혹성으로 도망친 것이었다.
  제이드는 수배중인  범죄자였다. 타르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녀
석은 수사관이 아니었다. 단지 쫒기는 몸이었고, 가슴에 손을 넣으
려고 했던 것은 소인을  보여줌으로써 오해를 푼 다음 시키는 대로
할 테니까 도와달라고 애원할 작정이었다. 그랬다면 죽이지는 않았
을 텐데.  녀석이라면 얼마든지 이용가치가 있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얼마나  가슴을 조였던가 그것은  완전한 착각이었다. 타르는
테이블 위에  널브러져 있는 온투성이의  초라한 법죄자, 제이드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어이없는 희극이었다.

  (3)
  완전히 긴장이  풀어진 타르는 느긋한 기분으로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옆에는 카방고가 가득 듣 잔이 놓여 있었지만 그것에도 손
도 대지 않았다. 펜은  경쾌하게 종이 위를 달렸다. 상황은 급변했
고, 이제 남은 문제는 아무것도 없었다.

  본관은 노동자 중에 상당수의 범죄자가 섞여 있다고 혹성장관 넘
프에게 경고를 상신한  바 있었음(경고품의서 동봉). 신분증명서류
에 의하면 '스니트'라는  범죄자가 금품강탈을 목적으로 넘프의 사
무실에 침입한  것으로 추정됨. 넘프가  그를 발견하여 사살하려고
총을 쏘았으나 이  범죄자는 죽기 전에 넘프를 사살하였음. 진술된
증언은 동봉한 대로임.
  최근 파견된 노동자 중에  범죄자가 섞여 온 것은 본혹성에 이번
이 두번째였음. 이  사실을 감안하여 본사 인사부에 철저한 신분검
사 시스템의 확립을  오햠하는 바임. 화가사 이윤추구를 첫째로 하
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당혹성 또한 보잘것없는 일개 소혹성에 자
나지 않는다는 것도  납득하나, 본 혹성에 배치된 보안직원이 한사
람뿐이라는 것도 충분히 고려해줄 것을 요망하는 바임.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인한 실질적인 큰 영항은 전혀 없고, 본관
이 현명한 본부당국의  수속절차에 비판을 가하는 것은 아님. 사태
는 원만하게 수습되었고,  현재 본혹성의 상황에 특별한 문제는 없
음. 혹성장관은  최근 새로 임명된 차관이  업무를 대행하고 있음.
유해는 다음 모성전송시 보낼 예정임.

  이것으로 완벽했다. 타르는 유쾌한 기분으로 증거품과 비디오 디
스크를 포장하였다. 이번 사건에 대해 의혹을 느끼는 자는 없었다.
타르는 차크를 옆에  세우고 그녀의 엉덩이를 장난스럽게 쓰다듬으
며 소포를 건네주었다. 문서철에 기입하고 나서 발송하도록 명령했
다. 차크가 나가자 타르는 시체를 쳐다보았다. 이미 수신시간은 지
나 있었다. 서둘러 수신기가 있는 곳으로 가서 확인하고 싶은 지점
의 좌표를 입력시켰다. 붕 하는 기계음과 함께 스크린에 영상이 나
타났다. 타르는 무표정하게  사진을 바라보았다. 그는 단지 무인폭
격기를 출격시키기 전에 위치를 확인해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생각
한 대로 인간들은  채굴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승강기
까지 움직이고 있니 않은가.....
  타르는 앞으로 바싹  다가 앉아서 책상 가득히 펼쳐놓았다. 그들
은 골짜기 밑바닥에 쌓인 암석들을 파헤치고 있었다. 또한 그 옆에
서는 광석채취용  그물을 크레인으로 매달아  올리고 있었다.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무엇일까. 타르는 서둘러 키보드를 두드렸다. 확대
사진이 수신기에서 나오는 것과 동시에 그는 화면 평의 광물반응선
에 시선을 보냈다. 보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다. 금이다! 놈들은
무너진 암석 속에서 금광석을 회수하고 있었다.
  타르는 일어나서 그 사진을 상세하게 체크하기 시작했다. 무너진
암석 옆에서 묘한  것을 발견해냈다. 갈기갈기 찢어진 시체의 살조
각들이었다. 갱도 속에서 죽은  동료를 파내고 있는 것 같았다. 쓸
데없는 감상놀음이다.  본국에 전송할 필요가  없는데 무엇 때문에
그런 짓까지 하는 걸까.  죽은 동물은 누가 신경쓴단 말인가. 그런
데 이상하군. 녀석들은 뒤쪽에서 광맥에 도달했다는 말인가.
  승강기로 무엇을 하려는  속셈일까. 다시 금을 캐내려는 것일까?
흐흠, 과연. 노다지다. 산 쪽으로 올라간 곳 부근의 다른 광맥에서
노다지를 찾아낸 것이 틀림없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광산기사로 일해온 타르의 직감이었다.
  타르는 광석채취용  그물 속에  들어 있는 금에  시선을 보냈다.
이, 삼백 파운드는 충분히  돼 보였다. 위자에 털썩 주저앉는 타르
는 가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는 킬킬거리며 웃기 시작
했다. 무인폭격기  계획은 일단  연기했다. 제구십삼일에는 어차피
죽을 목숨들이 아닌가. 중자, 중지다.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다. 최
고의 날, 최고의 기분이었다. 최근 짓누르는 듯한 두통에 시달려왔
는데 지금은 깨끗이  사라져버렸다. 타르는 손을 들어보았다. 손끝
이 떨리는 증세도 나타나지 않았다.

  (4)
  타르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가구들과 꾸러미를 집어들었다. 온
몸에 새로운 활력과 희망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타르에게는 미리  해둘 일이 있었다.  그는 본부구역의 혹성장관
사무실문을 당당하게 열었다.  관리인이 이미 바닥에 묻은 피를 깨
끗이 닦어냈으나 아직도  군데군데 얼룩이 남아 있었다. 세척제 냄
새가 희미하게 느껴졌다.
  카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지나치게  큰 책상과 의자에 끼어
있는 듯한 난쟁이 사이클로인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기만 했다. 하지
만 카 자신은 무척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야아, 안녕하시오, 혹성장관 각하."
  "문을 닫아주지 않겠나...."
  타르는 옆구리에 끼고 온 기구들 가운데서 탐지기를 꺼내 어젯밤
처럼 방안에 도청장치가 설치되어 있는지를 체크했다. 그러나 진지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 이제는 걱정할 것이 전혀 없었다.
  "아무래도 나는 인기가 없는 것 같아."
  카는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커다란 등받이에 깊숙히 파묻혔다.
  "아무도 나를  인정하려 들질 않아. 모두들  넘프가 나를 차관에
임명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어. 나  역시 깜짝 놀랐으니까.
기껏해야 기계조작원에 불과하고 관리직과는 인연이 없는데 갑자기
혹성장관이 되었으니...."
  타르는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띄고 카에게 다가갔다.
  "카,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은 우리 둘만의 비밀이라구. 마음속 깊
이 새겨 절대로 발설해서는 안되네. 지금 하려는 얘기는 증거도 남
지 않을 것이고 나중에 누가 물으면 나는 물론 모르는 일이라고 부
정할거야. 알겠지?"
  카는 긴장해서 귀를 기울였다. 상습범죄자인 그는 보안부장의 말
은 절대 신용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카는 의자에 묻힌
채 꿈틀꿈틀 몸을 움직였다.
  "자네를 임명한 것은 넘프가 아니야."
  카는 기겁하며 타르를 쳐다보았다.
  "사실은 바로 나야."
  타르는 그의 표정을 지켜보면서 말을 이었다.
  "자네는 내 명령대로 움직여야  해. 자네가 하는 일이 내 명령에
따르는 것이라고 떠벌리지만 않는다면 자네는 무사할 거야. 그것만
이 아니지. 꿈 같은 생활을 할 수도 있다구."
  "제이십구일에는 새로운 혹성장관이  도착한다는 것을 당신은 알
고 있을 텐데."
  카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까진 불과 두 달밖에 안 남았어. 만일 내가 어떤 잘못을 저
지른다면 그녀석에게 적발당할 거야.... 게다가.... 내가 수배자라
는 것도 탄로날 게 틀림없다구."
  "아니야, 자네는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어. 자네는 절대 경질되
지 않아. 자네는 계속 이자리에 눌러앉아 있게 될 거야. 적어도 내
가 곁에 있는 한 누구도 자네를 간섭하지 못한다구."
  카는 의심스럽다는 듯이 타르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타르가 너무
자신만만해 했기 때문에  묵묵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타르는
넘프에 관해 수집한  증거서류를 책상 위에 펼쳐놓았다. 카는 서류
를 들여다보았다.
  "연간 일억 크레디트에  달하는 사기다. 넘프한테 돌아가는 것은
그 절반이지. 그러니까  자네한데 몇 년씩 이자리에 앉아 있으라는
얘기가 아니야. 본국에 돌아갔을 때 전과가 없는 아주 깨끗한 개인
기록을 사서 호화스럽게 살아갈 만한 돈이 손에 들어올 때까지만이
야."
  난쟁이 사이클로인은 서류를  꼼꼼히 검토해보았다. 처음엔 뭐가
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넘프의 조카인 나이프는 이 혹성 노
동자들의 정기적인  급여지불을 장부에  기재하지만 실질적으로 그
절반과 보너스 전액을  넘프의 개인구좌에 예금한다.... 카는 차츰
이해가 되었다. 자신감이  생겼다. 그도 똑같은 방법으로 착복하면
되는 것이었다.
  "왜 이것을 내게 보여주는  거지? 당신도 한몫 끼고 싶어서 그러
나?"
  "아니다, 나는 이 일로  한 푼도 받을 생각은 없다. 이것은 어디
까지나 모두 자네 몫이네.  웬지 알겠나? 그것은 자네가 내 친구이
기 때문이야. 지금까지는 항상 자네를 지켜주지 않았나?"
  "당신은 이미 나를 기화형에 처할 만한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
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또...."
  "이보게, 카."
  타르는 비난하는  듯한 어투로 말을  꺼냈으나, 여기서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사실은 말이야. 내가  시키는 대로 명령서에 서명해주기를 바라
고 있다네. 그리고 여섯 달 후에는 나를 본국으로 전송시켜주고."
  "그것뿐인가, 정말로? 그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당신이 원하는
거라면 철회할 수  없는 명령이라고 표시해주겠네. 그러나 내가 두
달 후에 해임되지 않는다는 보증은 어디에 있나?"
  타르는 종이를 꺼내서 책상 위에 놓았다.
  "이것이 넘프가  사용했던 암호다.  차량번호를 이용했던 리스트
다. 나이프가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네는 해임될 수
가 없네. 이 문장을 암호로 작성해서 나이프에게 보내게."
  카가 이것을  암호화하면 원문은  즉시 없애버려야겠다고 타르는
생각했다.
  문안은 이런 것이었다.

  넘프는 탈옥수에 의해 살해당했다. 삼가 애도의 뜻을 표한다. 넘
프는 후계자로서 나를  지명했다. 조건은 지금과 마찬가지다, 넘프
의 몫은 객랙시  트러스트사의 내 구좌로 입금시켜주기 바란다. 우
리들의 협력관계가 원만하게 유지되길 바란다. ---카.

  "나는 구좌 같은 것은 가지고 있지 않다구."
  "만들면 되잖아.  필요한 서류는 이미  준비해두었어. 다음 전송
때 보내면 된다. 간단하다구."
  카는 타르가 써준  문장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살인을 저지
른 이후 처음으로 카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떠올랐다. 자세를 고쳐
앉아서 그런지 조금 커진 것처럼 보였다. 카는 타르의 얼굴을 쳐다
보며 손을 앞으로  내밀어 그의 손바닥과 힘껏 맞부딪쳤다. 그것은
이 거래가  만족스럽다는 것을 표시하는  몸짓이었다. 타르가 방을
나가자 카는 당연한 모습으로 의자에 몸을 깊숙히 파묻었다.
  타르는 다음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서둘러 걸어갔다. 단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 난쟁이가 너무  자신감에 넘쳐서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놈의 행동을 철저히 감시
하지 않으면 위험한 짓을  저지를 것만 같았다. 내가 이 혹성을 떠
난 다음이라면 놈이 무슨 짓을 하든 내 알 바 아니지만 말이다.
  조니와 카 사이에 남아  있던 얼마간의 연대감도 이제 완전히 사
라져버렸다.

  타르의 모든 행동은  언덕에 숨어서 감시하고 있는 스코틀랜드인
들에 의해 빠짐없이 체크되고 있었다.
  어제 오후 늦게, 타르는 간부용 지상차를 타고 맹렬한 속도로 북
쪽의 고대 도시로  향했다. 페허된 시가지가 나오자 잡초가 무성한
옛날의 고속도로를 달려 곧바로 사관학교로 갔다. 지상차에서 내려
보초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사관학교에는 불과 몇 사람밖에 남
아 있지  않았다. 대부분 사고가 발생했을  때 부상을 당해 가벼운
작업으로 돌려진  사람들이었다. 보초도 부목을  댄 한팔을 끈으로
매달고 있었다.
  "용무가 뭡니까?"
  보초는 서툰  사이클로어로 물었다.  타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차량은 한 대도 없었다. 조그만 인원수송기 한 대의 뒷날개가 보일
뿐 텅 빈 상태였다.  전부 산으로 가지고 간 모양이었다. 소모해버
렸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타르는 보초를 바라보았다. 인원이 많이
소모된 것  같았다. 광산전문가인 타르는  채굴작업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별로 대수로운 일은 아니었다. 동물들은 어차피 소모
품이었고, 아직도 몇 놈은 남아 있었다.
  이 동물과 어떻게 말을 나눠야 할지 타르는 암담해 하고 있었다.
타르는 보초가  사이클로어로 말한 것을 전혀  깨닫지 못했던 것이
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믿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타르는 모든 동물들은 지능이 형편없이 낮다고 생각하고 있었
다. 타르는 큰 키에 턱수염이 있는 조니의 모습을 표현해내려고 손
짓발짓을 해가며  몸부림쳤다. 그리고는 그를  찾고 있다는 동작을
보여주면서 데리고 오라는 몸짓으로 자기 옆구리를 가리켰다. 동물
에게 자기의 뜻을 이해시킨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조니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냐?"
  보초가 사이클로어로  물었다. 타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초가
사이클로어로 말한다는 것은 아직도 깨닫지 못한 채 천천히 주변을
걷기 시작했다. 이 동물이 산으로 달려가서 그녀석을 데리고 올 때
까지 기다리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것도 괜찮다. 시간은 충분
하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더군다나 이젠 완
전히 자유로워지지 않았는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하고 싶은 일
을 할 수 있었다. 타르는 팔짱을 끼고 천천히 주위를 산책했다. 분
명히 가장 형편없는 혹성이지만 적어도 그를 구속하는 것은 아무것
도 없었다. 그때까지 그를 가둬놓았던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이 어는
한 순간 완전히 무너져버린 느낌이었다.
  가까운 공원에서 몇 마리 말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타르는 심심
풀이로 사격연습이나 하려고 허리에서 총을 뽑아들었다. 표적은 말
이었다. 다리를  하나씩 명중시켜나갔다.  고통을 토해내는 말들의
비명소리가 상쾌하게 들려왔다. 표적까지의 거리는 이백 야드나 되
었지만 날렵하게 총을 뽑는 솜씨도, 정확함도 옛날 그대로였다. 좋
아, 이번엔 저  검은 말이다. 타르는 재빨리  네 발을 차례로 쏘았
다. 말은 눈을 발로 차며 허리부터 쓰러졌다. 신음소리가 일품이었
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때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
다. 말의  비명소리 때문에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 동물의
목소리였다. 타르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입가에 미소까지 뛰
고 있었다.
  "너도 해봐라."
  타르는 총을  건네주는 흉내를 냈다.  조니가 총을 건네받겠다는
듯이 손을 내밀었다. 타르는 큰소리로 웃으면서 벨트에 꽂았다.
  조니는 오래전부터 타르를 기다리고 있었다. 타르가 고대 도시를
행해 출발할 때부터 그가 이곳으로 오리라는 것을 꿰둟어보고 채굴
장에서 내려와 있었다.  타르를 감시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
려고 좀더 숨어 있을 생각이었으나 고통으로 신음하는 말들의 비명
을 듣고 더이상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타르는 또다시 많이 변해 있었다. 옛날의 타르로 돌아간 것 같았
다.
  "함께 걷자."
  타르는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듯 즐거워하고 있었다.
  조니는 타르가 눈치채지  못하게 한손으로 손짓하여 그들을 뒤따
르고 있는 젊은이에게 말들을 편하게 죽여주라고 신호했다. 그리고
타르가 그것을 보지 못하게 건물 뒤쪽으로 끌고 갔다.
  "꽤나 잘하고 있더군. 다음 광맥을 목표로 하고 있겠지?"
  타르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 아직 충분한 금광석을 캐내지 못했으니까."
  충분하기는 커녕 조니가 지금  가져온 자루 속에 들어 있는 것이
이제까지 채취한 금의 전부였다.
  "참으로 잘하고 있더군. 그 밖에 필요한 기계라던가, 보급해줘야
할 물자 같은 것은 없나? 필요한 용품의 목록은 가지고 있나?"
  조니는 그런 것 따위는 생각하고 있지도 않았다.
  "안 가지고 왔나? 만일  리스트가 작성되거든 네가 우리 밖에 자
주 놓아두는 것과 함께 갖다놓아라. 즉시 준비해주겠다. 훈련용 비
품이라고 표시해서 말이야."
  "고맙다."
  "만일 네게 특별히 할  얘기가 있으면 내 방 창으로 신호를 보내
라. 플래시 세 번이다. 그러면 내가 이곳으로 찾아오겠다."
  "그건 정말 고맙군. 채굴작업은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한다."
  "그럴 때는 전문가인 나에게 물어야지."
  타르는 큰소리로 웃어댔다. 그가 변했다고 조니는 또다시 생각했
다. 지금까지의 근심걱정은 모두 사라진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초원 가운데 서 있었다. 언덕이 가로막고 있어서 건물
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예긴데."
  타르는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이면서 말했다.
  "내 말 잘 들으라구. 제 팔십구일에는 내 금광석을 모두 이 건물
로 가져오는 거야."
  타르는 사진에 나타나 있는 건물을 손톱으로 가리켰다. 건물에는
'미합중국 조폐국'이라는 문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조니가 사진을
잡으려고 하자 타르는 그것을  집어넣고 다른 사진을 석 장을 꺼냈
다. 인접한 거리와 두 방향에서 본 그 건물의 사진이었다.
  "제팔십구일 해가 지고 나서  두 시간 후다. 장소는 나중에 정해
주겠지만 그곳에 전부 쌓아놓아야 한다.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된
다."
  조니는 사진을 기억해두었다. 어차피 타르는 사진을 건제줄 리가
없었다. 자동차였던 것 같은  덩어리가 몇 개 있었고, 건물 뒤쪽에
는 그것보다 큰 덩어리가  한 개 더 있었다. 아마 트럭이었을 것이
다. 건물의 문들은 모두  묵직해 보였고, 꽉 닫혀 있었지만 자물쇠
는 채워져 있지 않을  것이었다. 설사 잠겨 있다 해도 타르가 틀림
없이 열어놓을 것이었다.
  "짐칸이 평평한 트럭이 있나? 없으면 내가 한 대 구해주겠다."
  그리고는 아주 거만스럽게 명령하듯이 말을 이었다.
  "내 말을 잘 기억해둬라. 너는 아까 말한 그 시간에 그곳으로 와
야 한다. 네  동료들 가운데 두 명  정도는 데려와도 좋다. 어쨌든
너는 반드시  와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제구십삼일에 작업한
보수를 받아오겠다고 말해둬라. 제팔십구일부터 구십삼일까지 네가
꼭 해줘야 할  일이 있다. 알겠지? 너는 꼭  와야 한다. 동료는 두
명까지다. 나머지 동물들은 채굴장에 남아 있어야 한다. 알겠지?"
  조니는 알았다고 대답했다. 주위에는 잡목들이 우거져 있어서 두
사람의 모습을 가려주고 있었다.
  "우리가 캐낸 금광석을 한번 보겠는가?"
  조니가 가져온 자루를 가르켰다.
  "그래, 보고 싶다."
  조니는 두꺼운 천을  땅바닥에 깔고, 그 위에 금광석을 쏟아놓았
다. 금광석은 햇빛을 받아서 부드럽게 반짝였다. 타르는 재빨리 주
위를 들러보았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금광석 위에 몸을
구부리고 아직 광석그물 속에 들어 있는 금광석을 자못 사랑스러운
듯이 어루만졌다. 수정이 붙어 있는 광석도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
야 천천히 몸을 일으키면서 금광석을 집어넣으라고 손짓했다. 조니
는 조심스럽게 광석들을 다시 집어넣었다. 그것이 채굴한 금광석의
전부였다.
  금광석 자루를 보면서 타르는 한숨을 쉬었다.
  "아름답군.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그는 기대에 부푼 듯이 말했다.
  "자아, 그럼. 제팔십구일까지  금괴 일 톤이라구. 기대하고 있겠
다."
  그는 리모트 스위치가 든 주머니를 툭툭 쳤다.
  "제구십삼일에는 보수를 지불해주겠다."
  "왜 그날 주지 않고 사흘이나 지난 후에 지불하겠다는 건가?"
  "아까도 말했지. 네가 꼭  해줘야 할 일이 있다구. 걱정하지 마.
제구십삼일이 되면 반드시 충분한 대가를 지불해줄 테니까. 이자까
지 붙여서 말이야. 그것도 복리고. 걱정하지 말라구. 약속할게."
  타르는 마스크 안에서  큰소리로 웃었다. 놈은 이상하리 만큼 들
떠 있었다. 어딘가 이상했다.
  "그날을 기대하고 있으라구. 자아, 슬슬 차로 돌아가볼까."
  태어나서 오늘처럼 상쾌한 적이 없었다. 타르는 조니가 스코틀랜
드를 출발할 때부터  보수, 보수 하고 떠들어대던 일을 생각해보았
다.
  그래, 이녀석에게는 제팔십구일에 지불해주자. 그 암컷들도 함께
말이다. 그날만 지나면 초능력 따위도 겁낼 필요가 없다.
  "잘 있게, 동물."
  타르는 신바람이 나서 의기양양하게 돌아갔다.

  (5)
  그로부터 몇 주 동안 채굴장은 활기에 차 있었다. 새로운 금광맥
을 찾기  위한 채굴작업이 분주하게  진해되었다. 그러나 나타나는
것은 백수정뿐, 금광석은  전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금광석이
없으면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었다.
  타르가 말들을 참사시킨 사건으로 동료들은 모두 미칠 듯이 화가
나 있었다.  그들이 훈련시키고  귀여워했던 말들이었다. 당분간은
옆에서 돌봐줄 수 없어서  식량이 모자라지 않도록 사관학교 옆 풀
밭에 풀어놓았었다. 그들이  화가 난 것은 말이 살해당했기 때문만
은 아니었다. 말의  다리를 끊어버리는 잔인한 행동에 더욱 분개했
다. 그  사건 이후 모든 대원들은  자신들의 적이 어떤 놈들인가를
뼈저리게 느겼다. 사이클로인이라면  언제든지 태연하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찰을 나갔던 사람들로부터 사이클로인들의 본부 주변에서 다리
에 상처를  입은 동물들을 발견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그렇다면
여자들도 대단히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
나 어떠한 역경이 닥친다  해도 계획은 처음에 의도한 대로 차질없
이 진행해야만 했다. 절대로 실수는 허용되지 않았다. 목숨을 걸고
반드시 성공시켜야만 했다.
  금채굴작업 외의 모든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앵거스가 거
의 모든 장소의 열쇠를 만들었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작업이었다.
방한복으로 몸을 감싸고 눈이 내리는 밤에 잠입해 들어가 밀랍으로
틀을 뜨고, 다시 발자국을 지우면서 돌아와야 했다. 만일 발각되는
날이면 그의 목숨은 물론 모든 계획이 사이클로인에게 노출되는 것
이었다.
  그들은 천 년 전의 사이클로인과 지구인들 사이에 벌어졌던 전투
에 대해 조사했다. 위성사진을 비롯해서 모든 기록서류와 사진들이
알아보기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골라냈다. 그 전투는 처음부터 끝
까지 일방적인 싸움이었다. 사이클로 전투기의 비행기록 중 중요한
자료가 남아 있었다.
  그 가운데 이해할 수 없는 사진이 있었다. 사이클로 전투기가 중
심가에서 탱크를 폭격했다는 기록이 있었다. 그러나 미합중국 육군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에  덴버로 출동했던 탱크는 없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조니는 자료들을 뒤져서 그 전투기에 관
한 다른  보고서를 찾아냈다. 육군보고서로는  그곳에 존재할 수가
없는 그 탱크를  폭격했던 전투기들은 맹렬하게 북서쪽으로 날아가
다가 눈덮인  산허리에 충돌하여  추락해버렸다는 목격자의 증언이
기록되어 있었다. 시도로 확인해보니까 이곳에서 북쪽으로 불과 삼
마일 가량 떨어진 곳이었다.
  더넬딘이 금속탐지기를 싣고  그 상공을 날아가 추락지점을 확인
했다. 전투기는 아직도  그곳에 남아 있었으나 보이는 것은 뒷날개
끝부분뿐이었다. 나머지는 만년설 밑에 파묻혀 있었다. 공중작업대
두대를 사용해서 전투기를  파내 탐지당하지 않도록 밤을 공중작업
대 두대를 사용해서 전투기를 파내 탐지당하지 않도록 밤을 이용하
여 방위기지로 운반했다. 방위기지의 헬리포트에 도착하자 즉각 전
투기를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전투기 자체는 이미 쓸모가 없었지만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수 많은 정보들은 본부구역을
정찰한다 해도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두 명의 사이클로
인 조종사가 갖추고  있던 장비들은 상당히 부식되어 있었지만, 그
런대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우선 호흡마스크를 면밀하게 분석
하고, 등에 장착하도록  되어 있는 비상탈출용 제트추진 장치도 분
석해보았다. 안전벨트는 채굴장에서  사용되는 차량과 동일한 것이
었다. 그 밖에 조종사는 벨트에 총을 휴대하고 있었다.
  전투기 조종법은 광산용  인원수송기와 동일했다. 다만 수송기에
는 총화기의 발사버튼과 자력착륙용 스위치가 없었다. 상세히 분석
해본 결과 접지각은  전자석의 원리를 이용하고 있었다. 그것은 자
력에 의해서 금속표면에 고정되기 때문에 로프로 묶어둘 필요가 없
었다. 엔진키의 위치와 형태도 판명해냈다. 그 전투기는 깨끗이 손
질되어 대원들의 조종훈련에 쓰여졌다. 미이라가 된 사이클로인 조
종사들의 시체는 그들 신체의 치명적인 부위를 찾아내기 위해 목사
가 직접 해부하였다. 심장은  벨트 버클 뒤에 있었고, 폐는 어깨에
가까운 윗부분에 있었다. 뇌는 후두부의 낮은 위치에 있었고, 뇌를
제외한 머리부분은 모두 뼈로 이루어져 있었다.

  전대원들은 본격적인 공격훈련에 돌입하였다. 엠파이어 돈트레스
빌딩의 광대한 작업실 안에는 공격목표인 사이클로 본부의 대형 모
형이 만들어졌고,  공격작전의 맹훈련이 시작되었다. 무인정찰기의
감시망을 피할  수 있는 은폐물들의 위치와  거리가 측정됐고 이동
소요시간이 계산되었다. 공격지점간의  이동 소요시간에 따른 합류
점과 각대원들의 정확한 위치설정이 이루어졌다. 상황이 돌변할 소
지들이 산재해 있었기  때문에 작전계획에는 상당히 유연성을 두어
야 했다. 전대원들은  폭스 로버트의 강훈련에 공격형 라이프과 바
주카포를 능숙하게 다루는  정예부대로서의 면모를 갖춰나갔다. 폭
스 로버트는 그들에게 되풀이해서 말했다.
  "우리들에게 실패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번 계획이 조금이라도
빗나가게 된다면 모든 평원은 사이클로 탱크로 가득 찰 것이고, 하
늘에는 놈들의 전투기가 날아다니게 될 것이다. 사이클로별의 보복
은 잔혹하게 행해질  것이다. 그렇데 된다면 저 고대의 방위기지로
퇴각할 수밖에 없겠지만, 결국은 놈들의 가스공격을 받아서 질식할
것이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기회에 추호의  어긋남도 있어선 안된
다. 아무리  사소한 실수라도 용납되지 않는다.  자아, 다시 한 번
처음부터 시작해 보자."
  말 그대로였다. 사이클로 제국을 상대로 한 단 예순 명의 대원들
이 도전하고 있었다. 그들은 필승의 각오로 훈련을 다시 시작했다.
여하할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폭스 로버트의  맹훈련은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무슨 일이 있어도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 아
직도 그들의 손에 들어와 있지 않았다. 모든 계획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금광석이.

  (6)
  채굴작업은 삼교대로 하루 스물네 시간 동안 쉬지 않고 계속되었
더, 그러나  아무리 파들어가도 금광석은 나오지  않았다. 육십 마
일, 광맥이 끊겨버렸다.  지각변동으로 생겨난 단층의 어느 방향으
로 광맥이 빗겨나갔는지  전혀 짐작되지 않았다. 눈앞에 보이는 것
은 다만 절벽뿐이었다.  조니는 금이 발견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벌써 수주일 전부터 곳곳에 수색대를 파견해두었다. 그들은 금괴가
저장되어 있을 만한 곳은 모조리 수색하고 있었다.
  이전에 덴버 은행의  금고실에서 금화를 발견했던 조니의 기억이
그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남아 있는 대부분의 화폐는 도금
된 동화였으므로 전혀  소용이 없었다. 조니가 전에 금화를 발견했
던 금고에서는 다섯  개의 금화를 더 찾아내는 것으로 끝나버렸다.
그것도 몇 온스밖에 안되었다.  일 톤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옛
날 보석상에서 이 온스를  더 찾아냈지만 그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
가지였다.
  이 산악지대에 있는  광산회사의 금고에서는 금괴 대신 쓸데없는
영수증들만 산더미처럼 나왔다.
  더넬딘과 부조종사, 그리고  세 명의 사격수들이 엄청난 양의 보
급 연료를 적재하고,  무인정찰기를 피하기 위해 한 밤중에 동해안
으로 출발했다. 그곳은  과거 뉴욕이라고 불리던 장소였다. 대부분
의 빌딩들은 무너져버렸지만  몇 개의 금고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어렵게 파낸 금고실 내부는 모두 텅 비어 있었다. 역사가인 맥더모
트 박사가 가르쳐준 포트 녹스라는 곳에도 가보았으나 역시 아무것
도 찾을 수 없었다. 더넬딘은 방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수많은 장면
들을 촬영했다.  끊겨진 다리, 무너진 벽돌과  산더미 같은 돌멩이
들, 가는  곳마다 야생 동물뿐 인간이  생존해 있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들은 몇 차례나 목숨을 잃을 뻔하는 위험을 감수하며
계속해서 수색작업을 펼쳤지만 금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천 년 전에 이미 사이클로인들은 지구상의 금괴라는 금괴는 모조
리 약탈해 가버렸다. 사이클로인들은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시체에
서도 반지나 금이빨까지  뽑아갔던 것이다. 인류가 거의 멸종된 것
은 사이클로인들이 휴일에 즐기는 인간사냥만이 아니라 금괴약탈이
큰 요인이기도  했다. 사이클로인들이 지구를  정복하고 나서 단지
반지나 금이빨을 손에 넣기 위한 목적으로 인간을 대량 학살했다는
증거는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었다.
  타르가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그토록 금에 집착했던 이유를 비
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인간에게는 이제 거의 가치가 없는 금속이
었다. 금을 이용해서 물건을  매매한 경험을 잊은 지 오래였다. 금
은 아름답고 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양을 만드는 데도 용이했
지만 스테인레스 쪽이 훨씬 사용가치가 있었다. 실용주의를 바탕으
로 생활하는 데 필요한  것만이 진정한 가치를 지니게 되었던 것이
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금괴 일 톤이라는 목표에는 한 발자국
도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잃어버린 광맥을 찾는 작업은 계속 강
행되었다. 시굴드릴은 쉬지  않고 바위를 뚫고 있었다. 제칠십일째
에 광맥이 다시 발견되었다. 지각변동 때문에 북쪽으로 이백삼십일
피트, 지표에서 불과 삼십 피트 되는 곳으로 이동해 있었다.
  조니와 그의 동료들은  다시 암벽에 평탄한 장소를 만들고, 기계
를 설치한 다음  수갱을 파고, 백수정을 따라서 채굴작업을 시작하
였다. 높은 산지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 때문에 금세 얼어붙을
것 같은 땀을  얼굴에서 닦아내면서 작업을 계속했다. 광맥의 폭은
대략 삼 피트로 좁혀져 있었다. 갱도 안은 폭파 때마다 피오오르는
폭연과 부서진 수정조각드로 가득 찼다.
  조니는 다시 한 번 전투보고서를 분석해보았다. 사이클로인의 전
술을 철저하게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탱크가 있을 리 없는 덴버에
서 전투기가 탱크를 공격했다고 하는 기록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
할 수 없었다. 대통령이 죽은 뒤에도 기계는 전투상황을 계속 수신
하여 사진으로  남겨놓았으므로 그때의 정황을  검토할 수 있었다.
조니는 빛바랜 여러 장의  사진 속에서 공격이 있었던 위치를 포착
한 사진을 찾아냈다.  분명히 그 비슷한 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조니와 그의 동료들은  이미 덴버 시내를 샅샅이 조사했다. 타르
는 금을 인수하는 장소로 미합중국 조폐국을 지정했는데, 광석제련
은 그곳에서 할 생각이  없었다. 조니는 그곳에서 지상차로 이, 삼
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제련소 자리의 지하실에 설비를 마련해놓고
있었다.
  그러나 금광이 있는 산에서 발견한 발송장의 부본은 모두 미합중
국 조폐국으로 되어 있었다. 그 정도로 많은 양의 금광석이 조폐국
으로 보내졌다면 분명  그곳 어딘가에 금이 있을 것이었다. 금채굴
이 여의치 않을 때는 그것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미
합중국군대에 소속되어 있지  않았던 그 탱크는 조폐국 방위용이었
을지도 모른다. 사고후유증으로 몸이 불편한 더넬딘과 조니는 당장
미합중국 조폐국으로 날아갔다.  오후 늦게 사이클로인의 지상차나
비행기가 있는지 미리 확인한  후 공원의 거대한 나무 아래에 비행
기를 착륙시켰다. 두  사람은 조폐국을 향해 소리나지 않도록 조심
하면서 뛰었다.
  조폐국은 오랜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그 안은 이미 조사를 끝
냈지만 사이클로인이 찾지  못한 금고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감에 다시 한 번 조사해보기로 했다. 그러나 역시 없었다.
  두 사람은 황혼이 내리깔리는 거리로 나왔다. 더넬딘은 흥미있다
는 듯이 부식된 자동차의 잔해를 차례로 들여다보면서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그  차의 원형을 상상해보는 것 같았다. 조니는
타르가 보여준 이 근처의 찍은 사진을 떠올렸다. 조니는 건물 뒤쪽
으로 돌아가서 갱내용 램프을 여기저기 비춰보았다. 주위의 모습들
이 하나하나 드러났다.
  거대한 금속덩어리가 보였다. 그것은 전투기에 의해 파괴된 탱크
였다.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 탱크라고 조니는 직감했
다.
  표면은 모래로 덮여 있었고, 온통 풀이 돋아나 있었다. 나중에라
도 흔적이  남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조니는  모래와 풀을 헤쳐나갔
다. 보통 탱크가 아니었다. 두껍고 튼튼한 차체는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는데도 녹이 묻어나지 않았다. 단지 금속의 겉부분에 군데군데
불에 그을린 자국과  부분적으로 패인 흔적들만이 남아 있었다. 조
니는 그런 차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총을 발사할 수 있게 만
들어진 가늘고 긴 창문  같은 것이 열려져 있었는데 탱크와 비슷한
구조는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창문마다 가로막대가 몇 개씩 둘러쳐
져 있어서 거대한 새장을 연상케 하였다.
  조니는 채굴작업에 쓰이는  쇠지렛대로 차체의 갈라져 있는 틈새
를 뜯어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장치는 대부분 검게 그을려 있
었고, 바닥판도 열에  일그러져 있었다. 조니는 바닥판을 뜯어보았
다.
  금이다! 제기랄, 이런 곳에....
  갑자기 조니의 얼굴이 허탈한 웃음으로 일그러졌다. 그는 재빨리
새소리를 흉내내서 더낼딘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가 오자 즉시 안
으로 끌어들였다. 상황으로  판단하건대 사이클로인의 공격을 받았
을 때 미합중국 조폐국에서는  금고 안에 들어 있던 것을 어딘가로
옮기려 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묵직하게 보이는 장방형의 누런 금
괴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상당한 양이었다. 천 년 동안 발견되
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던 것이다. 모두들 그냥 탱크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두  사람은 설레이는 마음을  억누르면서 금괴의 무게를
가늠해보았다.
  "목표인 일 톤의  10분의 1도 못 미치는데요. 타르는 이것으로는
만족하지 않을 겁니다."
  더넬딘의 목소리는 처음의 흥분이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조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놈이 이  정도로 만족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계
획에 필요한 양보다 휠씬 부족했다.
  "10분의 1이라도 없는 것보다야 낫지만요."
  더넬딘이 말했다.
  금괴의 무게는 이백  파운드였다. 두 사람은 금괴를 비행기로 옮
겼다. 탱크를 본래대로  만들어놓고, 표면과 자신들의 발자국을 감
추기 위해 눈을 뿌렸다.
  이것으로 금괴는 이제  이백 파운드가 되었다. 그러나 필요한 양
은 일 톤이었다.
  "연금술에 손대고 싶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군."
  맥더모트 박사는  두 사람이 가져온  금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박사는 실제로 그날 밤  오랜 시간 동안 연금술에 관해 조사했으나
헛수고였다.
  목사는 조니가 살던 마을을 찾아가서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고
대의 방위기지로 피난할  수 있도록 준비시켰다. 돌아온 목사는 부
디 몸조심하라는 엘렌 큰어머니의 전갈을 조니에게 전했다. 조니는
그가 큰어머니에게 마음을 두고 있는 것을 느끼고는 마음속으로 그
들에게 행운이 있기를 빌었다.
  조니는 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지금 처해 있는 위기상황을
알릴 수 없다는 것이 가슴아팠다. 만약 조니 일행이 이번 계획에서
실패한다면 인류는 이번에야말로 완벽하게 멸종되고 말 것이었다.

  (7)
  제팔십육일의 작업도 평상시와  다름없이 진행되었다. 요즘 들어
광맥은 차츰 가늘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곧 바닥나버릴 것 같았
다. 너무 기대하지  말라고 지시했으나 교대시간이 되면 아직도 금
광석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모두 낙담하여 철수했다.
  그날의 작업도 거의  끝나갈 무렵, 낙반사고로 상처를 입었던 더
넬딘이 완쾌된 몸으로 귀청을  찢을 듯한 소음 속에서 착암기를 조
작하고 있었다.  갱도 안은 뜨거운 지열과  통풍이 되지 않아 땀이
비오듯이 쏟아지고 있었다. 한순간 눈에 땀이 들어갔을 때 그 땀방
울의 색깔이 달라진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더넬딘은 착암기의
스위치를 끄고 눈가의 땀방울을 닦아냈다. 눈앞에선 흰 먼지가루가
뭉개뭉개 피어오르고 잇었다. 그래도 달라진 색깔은 사라지지 않았
다. 착각이 아니었다.
  금빛으로 빛나는 둥근 점 한개가 반짝거리는 백수정 광맥 속에서
똑똑히 보였다. 더넬딘은 착암기을 광맥에 갖다대고 스위치를 넣었
다. 드릴리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파들어갔다. 더넬딘은 광맥에
가까이 다가가 한참 동아 금빛으로 반짝이는 점을 확인해보고는 힘
껏 호루가기를 불었다. 작업원들이 모여들었다. 더넬딘은 반짝이는
곳을 가리켰다.
  "와아!"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금이다! 드디어 새로운  노다지와 만났다. 그들은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얼싸안았다. 모든 드릴과 착암기를 동원하여 광맥을 파들
어 갔다. 금빛 줄기가  백수정 속에서 차츰 모습을 드러냈다. 흥분
된 목소리로 무전기를 통해 당직대원에게 발견소식을 전했다. 얼마
뒤에 제3반이 지원하러 달려왔다. 작업장은 대소동이었다.
  한 사람동 빠짐없이  모두 발굴작업에 참여했다. 멀리 떨어진 채
굴장에서도 계속 모여들었다. 금덩어리와 수정이 썪인 원석의 무게
를 달고 있는 사람, 자루에 원석을 집어넣는 사람, 그 부대를 차례
차례로 옮겨쌓는 사람,  수정과 돌덩이가 얼마간 섞여 있었지만 누
구도 그것에는 신경쓰지  않았다. 금광석은 스프링이 돌돌 말린 것
처럼 작은  바구니 모양으로 모암에 묻힌  채 황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제팔십팔일, 해가 지기 전까지 금덩어리들를 모두 캐냈다.
모암과 수정을 제외하고 천육백사십칠 파운드. 그것에 지금까지 모
아둔 삼백육 파운드르 합치자 저부 천구백오십삼 파운드가 되었다.
일 톤에는 조금 모자랐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드디어 계획에 착수할  수 있었다. 그들은 공격형 라이플을 손질
하기 시작했다. 성공가능성은 매우 희박했지만 멸종 직전의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도전해야만 했다.

  (8)
  타르는 미합중국 조폐국 앞에서 조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지만 흥분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정확히 제팔
십구일. 해가 지고 나서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주위은 몹시 어두
웠다. 타르한테는 잘된  일이었다 그날부터 사흘 동안은 달이 뜨지
않는 때였다.  이 저주받은 혹성에도 봄이  찾아오고 있었다. 벌써
햇살속엔 따스함이 스며 있었고 겨우내 쌓였던 눈들은 녹아내려 실
개천을 이루며 낮은  곳으로 흐르고 있었다. 밤이었지만 그다지 춥
지 않아서 조금 기다리는 것은 참을 수 있었다. 동물들에게는 시간
관념이 전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타르는 지지에서부터  타고 온 화물트럭에 몸을  기대고 서 있었
다. 그 트럭은 비품목록에도  들어 있지 않은 만큼 고물이었다. 이
런 고물차에  금괴가 실렸으리라고는 누구도  상상 못할 것이었다.
동물들은 약속시간에 맞춰서  왔다. 그들의 차는 가늘게 꽂히는 라
이트로 길을 밝히며 다가와  타르의 앞쪽 이, 삼 피트 되는 곳에서
멈추었다. 짐은 자못  무거워 보였다. 흐음, 그러니까 녀석들은 결
국 거래조건을  지켰다는 얘기군. 병신 같은  놈들. 운전석에는 세
사람이 타고 있었다.  타르는 그들이 내려오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
고 짐칸으로  돌아가서 자루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을 확인했다.
아, 모두 금광석이었다.  백수정조각이 달라붙어 있기는 했지만 확
실한 금광석.... 아니다, 연금된  것도 언뜻 보였다. 그는 퍼뜩 정
신을 차리고 짐칸에서 뛰어내렸다. 방사능 탐지기를 자루에 갖다댔
다. 어떠한 반응도 탐지되지 않았다.
  타르는 차체를 받치고 있는  쿠션 피스톤에 힐끗 눈을 보내 익숙
한 솜씨로 짐무게를  계산해보았다. 인간 세명의 무게는 대단치 않
았다. 사백 파운트  정도로 느껴졌다. 그렇다면 암석찌꺼기를 제외
한다 해도 천구백 파운드  가량은 족히 될 것 같았다. 금이 고갈되
어 있는 본국의 최근 시세자료에 따르면 일 온스당 팔천삼백이십일
은하 크레디트로 급등했으므로 이것만 가지면 대략....타르는 머릿
속으로 재빨리 총액을  계산해냈다. 일억 팔천구백칠십일만 팔천팔
백 크레디트가 될 것이었다. 이제 그는 억만장자가 된 거나 다름없
었다. 부와 권력이 그의  손안에 들어온 것이었다. 타르는 다시 흥
분하기 시작했다.
  동물들은 얌전히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타르는 운전석 옆으로
다가가 불빛을  조금 약하게 하여 안을  비추었다. 차에 타고 있는
세 사람은 모두 검은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그것은 더넬딘과 드와
이트, 그리고 또 한 사람의 젊은이였다. 타르가 손짓 몸짓을 다 동
원하여 조니는 어디 갔느냐고 물었다. 드와이트는 사이클로어를 잘
했기 때문에 몸짓을 하지 않아도 타르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일부러 외마디 사이클로어로 대답했다.
  "조니 여기 없다.  조니, 사고당했다. 다리 다쳐서 아파한다. 우
리들이 대신 왔다. 미안하다."
  그 말에 타르는 약간 초조해졌다.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이 뻔했
다. 그러나 그 말을  듣고 보니 오늘 오후에 정찰기가 보내온 사진
에는 조니가 없었다. 채굴장에는 전복된 날이 달린 차량이 찍혀 있
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언제 어디서나 금발 수염을 한 조니의 모
습은 항상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리 중
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암컷들은 없애는 시간이 조금 늦어질 뿐이
었다. 다리를 다쳤다고 해도 초능력은 여전히 발휘될 것이고, 암컷
들은 먼저 없애버리면 놈들은 소동을 일으킬 우려가 있었다.
  "우리들이 자루 옮기는 것을 도와주겠다."
  드와이트가 말했다.
  타르는 자루를 운발할 생각이 없었다.
  "아니다, 필요없다."
  그렇게 말하면서 어둠 속에서 손을 흔들었다.
  "트럭을 교환하면 된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내가 너희 트럭을
타고 간다. 너희들은 이 트럭에 타라. 알겠지?"
  세 명의 젊은이들이  사이클로이용 트럭의 거대한 운전석에서 차
례로 뛰어내려 타르가  타고 온 트럭으로 옮겨탔다. 더넬딘이 운전
석에 앉았다.  그는 모터에 시동을 걸고  왔던 길로 되돌려 운전했
다. 타르는  기대감에 부푼 표정으로 입가에  웃음을 띄고 서 있었
다. 트럭은 길모퉁이을 돌자마자 옆골목으로 들어가서 모습을 감췄
다. 더넬딘은 트럭이 언덕길을 혼자 내려갈 수 있도록 서둘러 입력
시키고는 드와이트에게 문이 열렸는지 확인하도록 했다.
  "뛰어내려!"
  더넬딘이 소치쳤다.
  두 사람이 문에서 몸을 날렸다. 더넬딘은 가까이 있는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몸을 웅크린  다음, 길가의 부드러운 풀숲으로 굴렀다.
뒤돌아본 더넬딘은 먼저 뛰어내린  두 사람이 몸을 숨기기로 한 장
소쪽으로 달려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은 어둠 속
에서 두 개의  얼룩처럼 보였다. 더넬딘은 허리춤에서 내열복을 꺼
내 뒤집어쓰고 골목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트럭은 그곳에서 백 야
드 가량  달려가다가 폭발해버렸다. 도로  양쪽에 늘어선 빌딩들이
충격으로 심하게 흔들렸다.
  금괴를 실은 트럭 옆에 서서 타르는 낄낄거리고 있었다. 몇 블록
에 걸쳐서 무너져내리는 흙이나 돌조각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
었다. 주변의 빌딩까지  무너져내린 모양이었다. 폭음에 이어서 그
르릉 하는 굉음이 계속 들려왔다. 유쾌했다. 그녀석이 타고 있었다
면 더욱 기분이 좋았을  텐데. 확인해볼 필요도 없었다. 흔적도 없
이 사라졌을 것이  분명했다. 그는 트럭의 운전석 밑에 이동거리에
의해서 폭발하는 자동 폭발장치를 숨겨두었던 것이다. 타르는 금괴
를 실은 트럭에 올라타고 이미 준비를 끝내놓은 연금소로 향했다.
  내열복으로 몸을 감싼 여러 팀의 젊은이들이 주위의 빌딩에서 차
례로 철수했다. 그들은  도중에서 더넬딘과 다른 두 사람을 태우고
제2단계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출발했다. 다음 계획은 이처럼
순조롭게 진행될 것인가.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사이클로인의 행
동을 예측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9)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연금소  작업실은 타르에 의해 완전히 개조
되어졌다. 창에는 모두 셔터가 달렸고, 문도 여닫기 편리하도록 되
어 있었다. 연금설비  중 이용가능한 것은 한가운데에 놓여진 거대
한 금속가마솥뿐이었는데  타르는 그것마저 사이클로제 고속가열기
를 이용해서 개조해버렸다.  주형, 분자 스프레이, 그 밖의 필요한
공구들은 모두 준비되어  있었다. 각인을 새켜넣기 위한 장치도 본
부의 시체수용실에서 갖다놓았다.
  타르는 불이 켜져 있지  않은 문 앞에 트럭을 세우고는 한꺼번에
일고여덟 개의  광석이 들어 있는 자루를  가볍게 들어가다 용광로
앞에 풀어놓았다. 그리고  트럭을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 옮겨놓은
다음 작업실로 들어가 문에 빗장을 지르고, 셔터가 전부 내려져 있
는가를 확인하였다. 셔터  하나에 최근에 드릴로 구멍을 뚫은 자국
이 있다는 것을 타르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손전등
을 켰다. 타르는 재빨리 작업장 여기저기에 탐지기를 대보았다. 도
청기와 소형도청카메라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타르는 만족스
러운 미소를 지으며 탐지기를 내려놓았다. 탐지기가 의자에 놓여지
느 것과  동시에 어둠 속에서 환기통의  덮개가 벗겨지면서 재빠른
손놀림으로 누군가  두 대의 소형  카메라를 부착시켰다. 환기통의
덮개는 소리도 없이  다시 닫혀졌다. 먼지가 조금 피어오르면서 전
등 불빛 속을 떠돌았다. 타르는 고개를 들었다. 쥐새끼? 이 거리의
어느 빌딩에나 쥐들은 쉴새없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용광로에 설치된 고속가열로에  스위치를 넣자 원석에 섞여 있던
금들이 차츰 녹아내려  가마솥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시간이 지나면
서 끓어오르는 쇳물이 거품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가열하
면 증발에 의해서 많은 양의 금을 잃게 되기 때문에 온도조절에 심
혈을 기울여야 했다.  이 연금소의 천장 서까래에는 재응축된 금이
잔뜩 달라붙어 있을 것이다. 타르는 온도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
마 속의 오렌지빛을 띤 황금덩어리들이 천천히 액화되어갔다. 그는
가열기를 보온으로 조절했다. 바닥에 관뚜겅을 만들기 위한 주청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관은 각 혹성에서 만들기 때문에 이곳 본부구
역에도 주조시설이 되어  있었다. 타르는 내열장갑을 낀 손으로 거
대한 주걱을 집어들고 질척잘척하게 녹은 금물을 주형의 앞쪽 입구
에 흘려넣었다.  주형 하나에는 이백 파운드  금이 들어갈 수 있었
다. 지금 가지고 있는 금으로는  주형 열 개를 만들 수 있었다. 그
는 한 방울도 흘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익숙한 솜씨로 작업을 진
행해나갔다. 녹은 금이 주형의  벽에 닿을 때 나는 쉭 하는 소리가
타르의 귀에는 매우 기분좋게 들렸다.
  그에게는 손쉬운 적업이었다.  회사는 납을 이용해서 만든 관 외
에는 사용을 금하고 있었다. 이 엄중한 회사 규칙은 방사능에 의한
사고를 막기 위해서  오륙만 년 전부터 정해져온 것이었다. 방사능
에 의한 사고는  채굴혹성에서 가끔씩 일어났었다. 우송할 때 관이
깨진 일이 있었고, 그  외에도 방사능에 관련된 사고가 여러 번 있
었다.
  사이클로별의 금속시장에서는 납은 거의 가치가 없었다. 납은 쓰
고 남을 정도로 많은  량이 생산되었다. 철이나 동, 크롬도 마찬가
지였다. 산출량이 부족한 것은 금, 보크사이트, 몰리브덴, 그 밖에
몇몇 금속들뿐이었다. 전혀  산출되지 않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우라늄과 그와 같은  류의 금속들이었다. 따라서 관을 넣는 통들은
모두 납으로 제조되고 있었다.
  주조하는 것은 관뚜껑뿐이었다.  관은 시체수용실에 얼마든지 있
었다. 타르가 남들의 눈을  피하는 이유 중 하나도 거기에 있었다.
자신이 관을 만들어서 가져가는 것을 보면 누구나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었다. 아홉 개의 주형이  모두 채워졌다. 나머지 한 개 그러나
지금부터 전문가의 솜씨가  나타난다. 금의 양이 줄어서 용광로 밑
바닥에서 다른 금속찌거기들과 썪여 있기 때문이었다. 솜씨좋게 처
리하지 않으면 망쳐버리고 만다. 타르는 찌꺼기를 급속히 냉각시키
고 큰 병 가득히 들어  있는 산을 그 속에 붓고, 광석과 침전된 덩
어리를 녹여버렸다. 그리고  나서 그것을 급속가열시켰다. 산이 끓
어오르면서 연기가 기분좋게 피어올랐다. 물론 타르는 마스크를 쓰
고 있어서 연기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타르는 용해된 찌거기를 거
둬내고, 다시 금을 가득  채웠다. 모자라는 양은 납을 조금씩 녹여
서 조절했다. 그리고 주형이 식는 사이에 가마와 주걱을 깨끗이 씻
어내고 바닥에 금이  녹으면서 튄 방울들을 없애버렸다. 좀처럼 식
지 않자 환풍기를 가져다가 바람을 보냈다. 한참 있다가 살며시 만
져보았다. 됐다. 이 정도면 됐다!
  타르는 조심르럽게 주형에서  관뚜껑을 들어내 작업대에 얹었다.
분자 스프레이를 꺼내 그것에 납과 바스무트의 합금봉재를 넣고 금
뚜껑에 스프레이를  뿌리기 시작했다. 합금봉재를  일곱 개나 써서
겨우 스프레이 작업을 끝냈다. 관뚜껑은 누가 봐도 납으로 만든 것
으로 보였다.
  타르는 장갑을 벗고, 각인 찍을 준비를 했다. 그것은 시체수용실
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타르는 주머니에서 사망자 명단을 꺼냈다.
타르는 관뚜껑에 열 명의 이름, 사원번호, 사망날짜 들을 뚜렷하게
새겨넣었다. 시체 열 구를  모으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총기 폭발
로 죽은 세명의 보초,  넘프, 제이드 시체는 모두 다섯 구였다. 최
근 의무부가 실시하고 있는 채굴사고 제로운동 덕분에 사상자는 작
년보다 감소하여 지난번  전송 이후 죽은 자는 세명뿐이었다. 그에
게는 너머지 두 구가  더 필요했다. 그래서 며칠 전 작업원이 폭약
을 설치하기 전에 남몰래 발파구멍에 다가가 폭약을 장치해두었다.
그것으로 두세 명은 문제없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날아간 것은 폭파
전문작업원 한 명뿐이었다. 마지막 한 명도 간단치가 않았다. 타르
는 삼륜이동차의 조종간을  헐겁게 만들어놓았다. 삼륜이동차는 상
당한 속력으로 장애물 사이를  누비듯이 달릴 수 있기 때문에 손쉽
게 해결되리라고 믿었는데 관리직원 한 명이 차에서 떨어지는 사망
사고가 일어나기까지 사흘이나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해서 열 구
의 시체를 준비할 수 있었다.
  타르는 각인된 뚜껑 표면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금바탕이 드
러나 있는 곳이 두  군데나 있었다. 타르는 그 위에 스프레이를 다
시 한 번 뿌렸다. 좋아, 이젠 완벽하다. 시험삼아 손톱으로 긁어보
았다. 벗겨지지 않았다. 이 정도라면 포크 리프트에 쓸려도 문제없
다. 그는 다시 한 번 각인기를 집어들고 모든 관의 왼쪽 밑바닥 구
석에 조그맣게 X표시를  새겨놓았다. 신경을 곤두세워 찾지 않으면
쉽게 눈에 띄지 않을 것이었다.
  시간이 촉박했다. 타르는 서둘러 기구들을 모으고 가마에 부착된
고속가열기을 떼어낸  후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빠뜨린 것은
없었다. 그는 조명등  스위치를 내리고 트럭을 문 앞에 대기시켜놓
았다. 관뚜겅을  한 번에 두세 개씩  들어다 옮겨싣고, 마지막으로
기구들을 짐칸에 던져넣었다.  그리고는 연금작업장으로 다시 돌아
가서 먼지를  기득 담은 자루를 들고  다니며 구석구석까지 자기의
손길이 닿았던 모든  곳에 골고루 뿌려놓았다. 램프 불빛에 비춰지
는 작업장은 감쪽같이 처음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유쾌한 기분으
로 문으 닫고 곧바로 트럭에 올라탔다.
  그런데 타르가 멀어져가는  소리와 함께 기다렸다는 듯이 연금소
안의 환기통이 다시  열리면서 재빠른 손놀림으로 소형 카메라만을
회수하는 자가 있었다. 셔터의 구멍은 원래대로 놓여졌다.
  타르는 본부를 향하여 빠르게 달려나갔다. 새벽의 어스름이 서서
히 어둠 속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타르는 지난 몇 주일 동안 야간
순찰을 도는 체하면서  본부 주위를 맴돌았다. 이젠 밤늦은 시간에
요란한 엔진소리가 들려도 아무도 수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만큼 익
숙해져 있었다.  주위는 고요한 정적 속에  잠들어 있었다. 타르는
수체수용실앞의 으슥한 곳에  트럭을 세우고, 어둠을 틈타 열 개의
관뚜껑을 시체실로 옮겨놓았다. 텅 빈 짐칸에 쓸데없는 작업도구들
만 뒹구는 트럭은 근처에 있는 고철야적장으로 끌고 가서 묻어버렸
다. 타르는 다시  시체수용실로 돌아와서 문을 잠그고 조명등을 켰
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도청기가 장치되어 있는지 꼼꼼히
점검해보았다. 이번에도 그가  점검을 끝낸 직후에 두꺼운 벽에 조
그만 구멍이 뚫리고 소형 카메라가 장착되었으나 그는 전혀 눈치재
지 못했다.
  타르는 산더미 처럼 쌓여 있는  빈 관들 중에서 열 개의 관을 꺼
내고, 뚜껑만 본래의  장소로 옮겨놓았다. 그리고 제구십이일에 포
크 리프트로 들어올리기  쉽게 관을 늘어놓았다. 그는 선반에서 시
체를 끌어내려 차례로  관 속에 던져넣었다. 마지막 시체는 제이드
였다.
  "제이드, 너는 치사하고 더러운 제국 수사국원이었지. 이곳에 와
서 너보다 머리 좋은  녀석을 상대로 했다는 자체가 영리하지 못한
짓이었어. 자업자득이라는 거다."
  타르는 자기가 만든 뚜껑을 덮고는 이름을 확인했다.
  "스니트라는 가명으로 얌전히 무덤에 파묻히라구."
  뿌옇게 흐려진 제이드의 눈이 자못 원망스러운 듯이 타르를 노려
보고 있었다.
  "제이드,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해보았자 모두 헛일이야. 네가 살
해된 것도, 넘프가 당한  것도, 아무리 수사해봤자 내 혐의는 떠오
르지 않을 거야. 잘 가게, 제이드."
  타르는 제이드의 시체 위에 쾅하고 뚜껑을 쒸웠다. 그는 다른 관
에도 뚜껑을 덮고,  조그만 X표시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금속을 상
온에서 접착시키는 기구로 뚜껑과 관을 밀폐시켰다.
  작업을 모두 끝낸 타르는  다시 한 번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펴본
후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좋아, 여기까지는 순조롭게 진행
되었다. 반년에 한 번인 저속전송 하루 전날 모든 준비는 완료되었
다. 타르는  구멍으로 소형 카메라가  회수되어지면서 벽에 가볍게
스치는 희미한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는 시체수용실을  나왔다. 하늘이  어렴풋이 밝아오고 있었다.
타르는 건물 사이을 빠져나가 전송용 플랫폼을 지나서 숙소를 향해
언덕을 올라갔다. 타르의  뒤에서는 외투를 뒤집어쓴 두 개의 그림
자가 시체수용실을 나와 소리도 없이 골짜기로 사라져갔다.
  타르가 시체수용실을  떠난 지 네 시간  후, 조니, 폭스 로버트,
그리고 작전에 참가하는 그룹의 대표자들은 소형 비디오가 잡은 영
상을 되풀이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조그만 가능성도 놓힐 수
가 없었다. 작전의  성공을 위한 모든 가능성을 철저하게 이용해야
했다. 실패는 허용되지 않았다. 그들의 운명뿐 아니라 모든 은하의
운명이 그것에 달려 있었다.


  제 2 권
  하늘과 녹색사이

  제 12 부
  그래, 이쪽 리모트 컨트롤을 훔쳤어야 했지

  (1)
  본부의 레크레이션 홀은  휘황찬란한 불빛 아래 왁자지껄하게 떠
드는 소리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홀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사
이클로인들은 대부분  술에 흠뻑 취해 있었다.  반년에 한 번 있는
모성전송 전야의 대파티였다.  챠와 두 명의 관리 요원이 본국으로
돌아가기로 되어 있었다.
  누구라도 이  별을 떠나는 것은 축하할  일이었다. 그것은 곧 이
저주받은 혹성에서  임기가 끝난 것을  의미했다. 양손에 일고여덟
개씩 카방고 잔을  든 웨이터가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평소
에는 예의바르고 온순하게 행동하는 사이클로인 사이클로인 여사무
원들도 오늘밤만은 남자 사이클로인들과 꺼리김없이 활달하게 농담
을 주고받으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까닭을 알 수 없는 난투극이 벌
써 두  차례나 벌어지기도 했다. 도박하는  자, 사격솜씨를 겨루는
자 등으로 홀 안은 아수라장을 이루고 있었다.
  음탕한 농담들이 떠나는 관리직원들을 향해 퍼부어지고 있었다.
  "본국에 가면  사창가에 가서  나 대신 한바탕  질펀하게 놀아주
게."
  "하룻밤에 확실히  끝내주지 못할 거라면  아예 여자들을 사지도
말라구."
  "본사 녀석들에게 이곳이 어떤 곳인지 말해주라구. 그 비겁한 머
저리들에게 말이야."
  밤이 깊어갈수록  파티는 열기를 더해만  갔다. 난쟁이 카까지도
그 분위기에 들떠서 일 분 동안 얼마만큼 카방고를 마실 수 있는가
를 겨루는 시합의 심판을 보고 있었다.
  관리직 다섯 명이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러댔다. 노래라고 해봐
야 가락도 없고 가사내용도 없었다.

  사이클로, 사이클로. 해치워버려라, 해치워버려라.

  노래는 되풀이되는 외침과도 같은 것이었다.
  사이클로인들이 흐느적거리고 있을  때 본부 뒤쪽의 어둠 속에선
발굽에 모피를 씌운 짐 싣는 말들의 대열이 이어지고 있었다. 소리
도 없이 골짜기에서 나타나 전송용 플랫폼 뒤쪽을 돌아서 시체수용
실로 다가가고 있었다. 앵거스가 찰칵 하는 작은 금속성 소리와 함
께 시체실문을 열었다.

  챠는 인사불성이 될 만큼 술에 잔뜩 취해 있었다. 그는 비틀거리
며 타르에게 다가갔다. 타르는  취한 척하고 있을 뿐, 사실은 전혀
취해 있지 않았다.
  "정말로 멋진 솜씨였다구."
  챠는 술버릇이 고약하기로 유명했다.
  "뭐가 말이야?"
  타르는 챠의 술주정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냉정하게 쏘아붙였다.
  "본부혹성 직원들에게 한 가지 보고할 게 있지."
  딸꾹질을 해대면서도 챠는  여전히 혀 꼬부라진 소리를 계속해댔
다. 타르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의 눈은 챠를 뚫어지게 노려보
며 서서히 가늘게 찢어졌다. 한순간 타는 듯 충혈된 눈동자가 불꽃
을 반짝 튕겨냈다. 하지만 챠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타르는 혀 꼬
부라진 소리로 말했다.
  "자네에게 선물할 게 있네, 챠. 잠깐 밖으로 나가지."
  "마스크가 없는데."
  "출구에 있다구."
  아무도 그들에게 신경쓰고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타르는 챠
를 출구까지 데리고  나와 건들거리는 손으로 마스크를 썼다. 타르
는 챠의 손을 잡고  공기차단돔을 빠져나가 우리가 있는 곳까지 다
가갔다. 벌써  자정이 지나 있었다. 우리  안의 불은 꺼져 있었고,
문 앞에는 아무런 꾸러미도 놓여 있지 않았다.
  기온차가 심한 이른봄의  밤바람이 싸늘하게 불어오자 챠는 정신
이 들었으나, 다시 타르에게 주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동물이라, 흥. 당신은  동물애호가로군. 나는 당신의 속셈을 모
르겠어."
  타르는 그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시체수용실 근처에서 뭔가
움직이는 것이 있었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았다. 동물들이
다!
  "정말 당신은 영리하더군,  타르. 그렇지만 나를 속일 정도로 영
리하지는 못하다구."
  타르는 어둠  속에서 무엇이  움직이는지 확인하려고 시체수용실
쪽으로 두세 걸음  내디뎌보았다. 아무런 움직임도 찾아낼 수 없었
다. 그는 주머니에서 손전등을 꺼내 앞쪽을 똑바로 비춰보았다. 갈
색 생가죽 같은데.... 잘 모르겠다. 차츰 똑똑히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들소떼들이었다. 벌써  며칠째 이 근처를 배회하고 있는 들
소들. 그곳에는 말도 몇  마리 섞여 있었다. 들소떼는 풀을 뜯으면
서 느릿느릿 이동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새싹을 씹는 소리가 울음소
리와 뒤섞여 들려왔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희미하게 말발굽 소리
도 들려왔다. 어디선가 부엉부엉 올빼미가 울고 있었다. 이 지저분
한 혹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경이었다. 타르는 전등을 끄고 챠
를 향해 돌아섰다.
  타르는 챠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여러 개의 돔 그림자가 겹쳐져
대낮에도 발길이 뜸한 으슥한 곳으로 데리고 갔다. 칠흑 같은 어둠
에 갇혀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장소였다.
  "자아, 도대체 내가 어쨌다는 거야, 챠?"
  올빼미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타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
도 없었다. 챠가 히죽이 웃었다.
  "캡형 폭약의 연기 때문인데 말야."
  그는 그렇게 말하고 타르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타르 쪽으로 몸
을 기울였다. 순간 두  사람의 마스크가 부딪칠 뻔했다. 그대로 넘
어지려는 챠를  가까스로 일으켜 세운 타르는  신경이 곤두서 있었
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시치미를 떼지 말라구.  넘프의 사무실에서 들렸던 폭음은 총성
이 아니야. 그것은 캡형 폭약의 폭발음이었어. 나 같은 채굴전문가
는 총냄새와 캡 모양의 폭약냄새쯤은 쉽게 구별할 수 있다는 걸 모
르나?"
  타르의 손이 웃옷 아래쪽의 뒷주머니로 옮겨갔다. 그는 가스공격
기를 뛰우기 위한 구실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으로 해
결되었다. 이제 초능력 따위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바로 얼마전에 저능아 카를 장관에 임명해놓았더군."
  챠는 적의를 드러냈다.
  "속는 녀석도 있겠지만 나는 자네 속을 환히 꿰둟어보고 있다네,
타르. 나는 모든 것을 꿰뚫고 있단 말야."
  "글쎄,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보지 않았다구. 돌아가거든
본부직원과 상의해보는  것도 좋겠지. 하지만  자네도 참 어리석었
어, 타르. 내가 냄시도 구별 못할 줄 알았나 본부 사람들도 좋아하
겠지."
  그 순간이었다. 타르는  칼날의 길이가 십 센티나 되는 스테인리
스 나이프를 챠의  심장에 깊숙히 찔러넣었다. 그것은 조니가 크리
시에게 준  나이프였다. 챠의 호흡은 이내  멎어버렸다. 타르는 축
늘어진 시체를 땅 위에 내려놓고, 근처에 있던 낡은 방수외투를 집
어서 그 위에 덮어놓았다. 타르는 우리 쪽으로 걸어가서 혹시 인기
척이 있는가 안을 들여다보았다. 암컷들은 잠들어 있었다.
  타르는 혼자 돌아와서 큰소리로 노래하고 있는 몇 명의 사이클로
인들 속에 섞여들었다. 오늘밤 안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
었으나 외출했던 사실을  동료들이 모르게 하는 게 급선무였다. 다
행스럽게도 모두 곤드레가  되어 있었다. 파티의 주인공 챠가 없어
진 사실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시체수용실 주위에는  들소떼를 놀라게  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움직이는 사나이들의  모습이 있었다. 챠의  살인을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용히 작전을 개시하고 있는 스코틀랜드인들은 그
들의 계획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2)
  조니는 시체수용실 출구  가까이에 놓여진 관 속에 누워 있었다.
호흡을 할 수 잇도록  관뚜껑을 조금 열어놓았기 때문에 그 틈새로
시체수용실의 내부를 볼  수 있었다. 지붕에도 소형 카메라가 부착
되어 있어서 옆에 있는 소형  모니터를 통해 바깥 상황을 알 수 있
었다.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몇 번씩이나  연습한 작전을 한치의
착오도 없이 실행에 옮겨야 했다. 시간은 단 이 분. 조금이라도 실
수를 하면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조니의 목숨은 사라질 것
이었다. 그리고 크리시와  패티, 동료들. 그뿐 아니라 지구에 살아
남은 모든 인간들이 전멸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전송사령탑에서 울리는 경고부저 소리가 들려왔다.
  "모터정지! 퇴각하라!"
  부웅 하는 굉음이  들려왔다. 지면이 가볍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관뚜껑이 흔들렸다. 굉음이  커지며 다가들었다. 한순간 손에 짐을
든 이백  명의 사이클로인들이 갑자기 전송용  플랫폼 위에 나타났
다. 서서히 굉음은 사라지고 희미한 진동만이 남았다.
  "좌표유지, 전송 제2진 준비."
  전송구역 일대가  시끄러워졌다. 사이클로별로  보내는 역전송을
한시간 십삼 분 후였다.
  인사부 직원이 도착한  노동자들을 한 줄로 세우고 있었다. 타르
는 한 줄로 서 있는 그들에게 시선을 집중시켰다. 지난번에는 너무
나 갑작스러워서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그도 충분히 준비하고 있었
다. 카를 대신할 새로운 혹성장관이 이들 중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
었다. 그렇다면 시급히 대책을 세워야 했다. 타르는 노동자의 대열
을 따라서 걸었다. 오늘은 밀수품 검사는 생략하고 둥근 전송용 헬
멧 밑의 얼굴과 이름만을  확인했다. 이백 명. 늙은 넘프가 욕심을
부려 최대한으로 많이 긁어모은 것이었다. 마지막까지 점검하고 나
자 타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넘프의 후임은 없었다. 사이클
로별의 빈민가에서 긁어모은 룸펜들, 호기심 많은 초급 관리직, 그
리고 광산학교 졸업생이 두 명. 보통 때와 마찬가지였다. 혹성장관
같은 인물은  하나도 없었다. 물론 제국  수사국 수사관도 없었다.
타르가 손을 쳐들자 인사부 직원은 노동자를 근무지역에 따라서 분
류하고, 다른 채굴장으로 가는 자들은 수송기의 이륙장으로 이곳에
서 일하는 자들은 숙박시설로 가각 안내 지시했다.
  인원점검을 겨우 끝마친 타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시체수용
실로 걸어갔다. 그 동물들이 기르는 말들이 건물 뒤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저놈들은 본부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것일까.
  "저리로 가지 못해!"
  그는 손으로 쫓는 시늉을 하면서 말에게 소리쳤다. 말은 전혀 반
응은 나타내지 않았다.  오히려 문을 열려고 하자 그에게로 다가왔
다. 타르는  자물쇠로 문을 활짝 열었다.  운반되기를 기다리는 열
개의 관이  고스란히 늘어서 있었다. 타르는  관에 표시한 X표들을
확인해보았다. 확인은 여러 번  할수록 좋았다. 열 개 모두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타르는 사랑스러운 듯이 관을 하나씩 두드렸다. 지
금부터 팔개월이나 십  개월 후에는 사이클로별로 돌아가서 이것들
을 파낼 것이었다. 별빛조차 찾아볼 수 없는 어두운 밤, 황량한 공
동묘지로 가서.... 엄청난 부와 권력. 그렇다, 이것은 그동안의 노
력과 고생의 결정체였다. 손에 넣기까지는 힘들었지만 멋지게 누릴
것이다.
  포크 리프트가 와서  첫번째 관 밑에 포크날을 찔러넣었다. 타르
는 밖으로  나가서 관에 기록된 이름과  손에 든 명부를 대조했다.
두번째 관, 세번째 관.... 타르는 네번째 관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
했다. 제이드의 가명인 스니트 철자가 틀려 있었다. Snit가 Snti로
되어 있었다. 그는 X표시를 확인했다. 제대로 새겨져 있었다. 무슨
상관이 있는가. 타르는 명부를 고쳐버렸다. 어차피 가명이 아닌가.
골치아픈제국 수사국원은 죽었다.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었다. 포
크 리프트는 전송용 플랫폼에 관을 아무렇게나 내려놓았다. 그것을
보자 타르는 내심  걱정되었다. 그러나 관이 굴러가서 뚜껑이 밑으
로 깔리는 일은 없었다.
  아홉 개의 관이  이미 플랫폼에 늘어서 있었다. 포크 리프트계의
주임이 리프트 카를 타르 옆에 세우고 지금 싣고 있는 것이 마지막
이라는 것을 타르에게 말했다.
  "이번 관들은 전에 것들보다 모두 굉장히 무거운 것 같아요."
  타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별일 아니라는 듯 주임을 쳐다
보았다. 중량이 늘었다고 해도 기껏해야 백 파운드 정도였다. 리프
틑카로는 거의 느낄 수조차 없는 무게였다. 뚜껑을 합쳐도 한 개당
천칠백 파운드밖에 안되었다.
  "파워 카트리지가 약해진 것이 아닐까."
  "그런지도 모르겠군요."
  주임은 리프트 카를 운전하여 마지막 관을 플랫폼에 내려놓았다.
본국으로 돌아갈  사람들을 태운 인사부의  트럭이 왔다. 트럭에는
사이클로인 다섯 명과 그들이 가지고 갈 물건들이 실려 있었다. 운
전수가 타르에게 리스트를 건네주면서 말했다.
  "리스트에 착오가 있는 것  같아요. 챠도 명단에 들어 있어서 찾
아 보았는데 없어요. 짐은 있는데 당사자인 챠는 없더군요."
  "녀석의 짐은 어느 건가?"
  그는 운전수가 가리키는 짐을 트럭에서 끌어내렸다.
  "있을 만한 곳은 모두 찾암보았어요. 전송을 연기시킬 수는 없잖
아요?"
  "관리돔의 여자들 방도 모두 찾아보았는가?"
  타르의 말에 운전수가 음탕하게 웃었다.
  "그렇군요, 깜빡 잊고 있었어요. 어젯밤은 대단했으니까요."
  "할수없군. 다음 전송 때 보내도록 해야겠군."
  타르는 할수없다는 듯이  챠의 기록서류에 '다음 전송으로 변경'
이라고 쓰고, 서명했다.
  트럭이 플랫폼 위에 귀환하는 자들을 내려놓았다. 그들은 한곳에
뭉쳐 서서 전송용  헬멧의 자물쇠를 확인했다. 모두들 관에서 오륙
피트 떨어져 있었다.  준비가 완료된 것을 확인하자 타르는 시계를
보았다. 한시 십일분. 앞으로 이 분이 남아 있었다.
  "현 좌표유지! 전송 제2진 준비."
  사령탑의 확성기가 울리고 흰색 불빛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타르는 시체수용실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근처에는 아직도 말
들이 배회하고 있었다. 손으로 쫓는 시늉을 했으나 말들은 두세 걸
음 물러났을  뿐 다시 그자리로 돌아와  풀을 뜯었다. 플랫폼 위의
관을 보고 타르는  안심했다. 자꾸만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참았
다. 앞으로 이 분이다.
  바로 그때였다. 타르의 온몸을  덮고 있는 털이 곤두선 것은. 아
무도 없을 시체수용실에서 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3)
  마지막 관이 나가자 조니는 지금까지 숨어 있던 관에서 빠져나왔
다. 허리춤에 차고 있던  세 개의 돌방망이 중에서 가장 무거운 것
을 손에 들었다. 비디오 재생기를 시체수용실의 한가운데에 설치하
고 재빨리 문 뒤에  몸을 붙였다. 밖에 있는 타르의 그림자가 시체
수용실의 바닥에까지 뻗어 있었다.
  재생기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타르의 목소리를 재생한 것
이었다.
  "제이드, 너는 치사하고 더러운 제국 수사국원이었지."
  밖에서도 들을 수 있는 음량이었다. 타르의 그림자가 움찔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이곳에 와서 너보다 머리 좋은 녀석을 상대로 했다는 자체가 영
리하지 못한 것이었어. 자업자득이라는 거다."
  타르는 즉시 안으로  뛰어 들어가 재생기를 발로 짓밟아버리려고
한쪽 발을  치켜들었다. 그 순간 조니가  무섭게 달려들었다. 그는
타르와 비슷한 모형을 만들어 여러 번 연습해두었기 때문에 돌방망
이로 날렵하게 타르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것과 동시에 앞으로 고
꾸라지는 타르의 주머니에서  리모트 컨트롤를 끄집어냈다. 밖에서
확성기가 외쳐대고 있었다.
  "현 좌표유지! 전송 제1진 모터정지!"
  조니가 다시 한 번  일격을 가하자 타르는 바닥에 털썩 쓰러져버
렸다. 조니는 마스크를 얼굴에서 벗겨내고 시체수용실 안쪽으로 끌
고 갔다. 양다리를 심하게 경련하고 있었다. 타르는 서서히 움직임
을 멈추었다. 조니는  타르의 벨트에서 권총을 뽑았다. 당장이라도
놈에게 한방  먹이고 싶었지만 아직 그럴  수는 없었다. 밖에 있는
전선이 울기  시작할 때까지는 전송중지가  가능했다. 그러나 안에
있는 전선만 울기 시작하면 그때는 멈출 수가 없었다.
  확성기가 소리쳤다.
  "전원 퇴거하라!"
  안에 있는 전선이 부웅  하고 울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이 분 동
안 이 승부를  결정할 것이었다. 조니에게는 인생의 마지막이 될지
도 모르는 이분 간이었다. 그는 팔목에 찬 스톱워치의 단추를 누르
고는 표범처럼  뛰쳐나가며 시체수용실 문을  잠가버렸다. 이제 이
분 동안은 아무도 발포할  수 없었다. 만일 총의 섬광이 전선에 닿
으면 좌표계를  혼란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조니는 주위를
둘러본 뒤 윈드스프리터에 올라타고 힘차게 박차를 가하였다. 윈드
스프리터는 전속력으로 질주하여  눈 깜짝할 사이에 전송용 플랫폼
으로 뛰어들었다. 굉음이  차츰 커져갔다. 플랫폼 위에서 우물쭈물
하고 있다가는 사이클로별까지 날아가버릴 것이었다. 윈드스프리터
의 발굽이 플랫폼의 금속바닥을 차면서 크레 앞발을 일으켜 세우는
순가, 조니가 맨 앞의 관으로 날아갔다. 조니의 손 가락은 관의 앞
쪽, 뚜껑 바로 밑에  붙여둔 조그만 고리를 찾아냈다. 조니는 힘껏
잡아당겼다. 끈이  빠져나왔다. 우선 이것으로  하나. 조니는 옆의
관으로 옮겨가서 다시  고리를 찾아 끈을 뽑아냈다. 그리고는 다음
관으로.
  확성기가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로 외쳤다.
  "폼에서 떨어져라. 떨어져라!"
  플랫폼에 있는 사이클로인들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도 모른 채 멍청하니  서 있었다. 조니는 차례차례로 관 속에서 끈
을 뽑아냈다. 열  개의 관에는 혹성파괴 폭탄이라고 명칭된 핵탄두
가 장착되어 있었다. 하나의 혹성 전체가 지각변동과 함께 재로 뒤
덮일 위험이 있기  때문에 조약으로도 금지된 무기였다. 그것의 탄
두 주변에는  초기의 원자폭탄이 장착되어  있었다. 그것은 오염이
심한 핵병기로,  방사능 후유증이 극심하기  때문에 제조가 중지된
것이었다.
  일곱 개째의 고리는 구부러져 있어서 좀처럼 손가락에 걸리지 않
았다. 그때였다.
  "저놈을 잡아라!"
  플랫폼에 있건 관리직원이 소리쳤다. 다섯 명의 사이클로인이 조
니를 향해 달려왔다. 조니는 그를 향해서 돌방망이를 던졌다. 돌방
망이는 그의 이마를  강타했고, 그의 거대한 체구가 쿵하고 쓰러졌
다.
  그는 두 개의 돌방망이를  더 던져서 두 명의 사이클로인을 쓰러
뜨렸다. 다시 일곱 개째  고리를 빼기 위해 뚜껑 밑에 손을 집어넣
었다. 뒤틀린 곳을 고치고 잡아뽑았다. 여덟 개재는 간단했다.
  가까운 풀숲에는 조니가 실패할 경우 뒤를 이어서 작업할 젊은이
즐이 대기하고 있었다.  조니가 행동 전에 시간계산을 신중하게 한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었다. 젊은이들을  한 명도 죽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홉 개째도 처리했다. 나머지 한 개!
  남은 사이클로인 두 명이 이미 조니의 바로 옆가지 와 있었다.
  "휙!"
  조니가 손가락을 튕겼다.
  말은 앞발을 내디디면서 뒷발로 차서 한 명을 쓰러뜨렸다.
  열 개째! 해냈다.  남은 한 명이 조니에게  손을 뻗는 순간 그는
몸을 피하면서 사이클로인의  헬멧에 돌방방이를 날렸다. 사이클로
인의 손톱이 필사적으로  조니의 몸을 붙잡아 웃소매를 찢었다. 조
니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한 번 머리를 돌방망이로 강타한 다
음 윈드스프리터의 등에 올라탔다.
  "자아, 가자!"
  사령탑에 있던 사이클로인 한 명이 분사라이플을 들고 밖으로 뛰
어나왔으나 발포할  수는 없었다. 전선의  굉음이 최강점에 도달해
있었다. 조니는 플랫폼에서  뛰어내려 우리 쪽을 향해 언덕으로 뛰
어올라갔다. 전송까지는 앞으로  사십이 초가 남아 있었다. 시간이
흐르는 것이  그처럼 빠르고, 또 이처럼  느리게 느껴진 적은 없었
다. 사이클로인의 분사라이플이 조니를 벌집으로 만드릭 위해 전송
완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니는 리모트 컨트롤롤 울타리에 흐르는
전류를 끊고,  금속절단기를 꺼냈다.  윈드스프리터가 우리 앞에서
급정지하자 조니는  말에서 뛰어내려 우리  안으로 달려갔다. 우리
안을 들여다 본 순간 망연자실해져서 우두커니 멈춰 섰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나무울타리는 전부 파괴되어 있었다.
  크리시와 패티는  어디로 갔을까? 그녀들의  소지품은 우리 안에
그대로 있었다.
  아직도 자고 있는  것일까? 우리 한구석에 외투를 씌운 덩어리가
있었다. 저것이다! 조니는 금속절단기를 들고 두 사람의 이름을 부
르며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외투는 움직이지  않았다. 외투를 벗겨냈다. 그곳에 있는
것은 챠의  시체였다. 챠는 가슴에 나이프가  꽂힌 채 똑바로 누워
있었다. 그것은 조니가 크리시에게 준 것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
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지금은 그것을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조니
느 우리밖으로 나거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올드보크도 댄서도 없었
다. 시간은 초를 다투었고 분사총은 조니를 겨냥하고 있었다. 조니
는 윈드스프리터에 뛰어오른 다음  언덕 끝의 벼랑 쪽을 향해 달렸
다. 벼랑을  잘반쯤 내려가서 말을 멈췄다.  그는 말에서 뛰어내려
몸을 숨겼다.
  굉음은 최고조에  달했고, 대기 중에  이상한 떨림이 스쳐지나갔
다. 드디어 전송이다. 플랫폼 위의 사이클로인과 물체가 한순간 흔
들거리다가 사라져버렸다.

  (4)
  지면이 크레 흔들렸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환하게 밝아졌다.
  반동 같지는 않았지만  마치 대폭발이 일어난 것 같았다. 분명히
예사 반동이 아니었다. 그러나 핵탄두가 폭발했을 리는 없었다. 점
화 퓨즈는  십초 후로 조정해놓았고,  폭탄은 사이클로별에 있어야
했다.
  조니는 벼랑 위로  뛰어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사령탑은
아직 위태롭게  서 있었지만 도처에서  화염이 뿜어오르고 있었다.
플랫폼 주위의 전선이 여기저기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기계와 차
량이 옆으로 굴러  미끄러지고 사이클로인 조종사가 하나둘 밖으로
떨어져 나왔다. 전송구역 전체가 강렬한 빛에 싸여 있었다. 본부구
역의 돔들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지만 다른 피해는 없는 것 같았
다.
  충격이 대지를 강하게 흔들어대고 있었다. 핵폭탄이 아니라면 도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전송조작의 실수로 폭탄이 이 근처에
있는 다른 별로  보내진 것이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사이클로별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을 것이고, 그땐 군대를 파견해서 우리를 전
멸시킬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 때문에 다음 공격계획에 차
질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조니는 걱정스러운 듯이 전투기
대열을 바라보았다. 전송의  반동 직후에 발진할 예정이었다. 그는
가까운 골짜기로  시선을 돌렸다. 위장한  방사능 방호복으로 몸을
감싼 스코틀랜드이들이 여러 팀으로 나누어 숨어 있던 장소에서 뛰
어나와 각자 맡은 전투기를 발진시키기로 되어 있었다. 준비 완료.
전투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전에 참가하기로  한 열여섯 대의
전투기에는 각각 조종사와 부조종사가 몰래 숨어타고 있었다. 드디
어 이륙. 거대한 모터에 일제히 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열다섯 대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서 초음속으로 사라져갔다. 지
구 상에 흩어져 있는  열다섯 군데의 채굴장을 공격하기로 되어 있
었다. 채굴장을  철저하게 파괴하여 이  본부구역에 반격을 가하지
못하게 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나머지 한 대는 본부구역을 전투 엄
호하는 임무를  부여받고 있었다. 기습공격을  위해서 무선은 일체
사용하지 않기로 되어  있었다. 조니는 남아 있는 전투기에 시선을
보냈다. 좀전의 대폭발로  기체가 파손되지는 않았을까.... 별이상
은 없었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남아 있는 전투기
가 네 대일 텐데. 전투기 팀은 서른두 명이니까. 그런데 세 대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조니는  다시 한번 벼랑 끝에서 주위에 있는 평
원을 둘러보았다. 시체수용실의 외벽 한군데가 완전히 파괴되어 있
었고, 그 무너진 벽돌속에 관이 파묻혀 있었다. 앗차! 자신의 실수
를 깨닫는 순간 조니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타르가 의식을 되
찾아 관으로 벽을  무너뜨리고 도망친 것이었다. 한 대밖에 없어야
할 하늘엔 두 대의 전투기가 날고 있었다. 조니는 말고삐를 움켜잡
고 단숨에 언덕을 달려 내려갔다. 전투기까지는 삼백 야드 가량 떨
어져 있었다.
  본부구역 쪽에서 분사라이플들이 조니를 향해 불을 뿜었다. 그는
피어오르는 흙먼지 사이를 뚫고 달려나갔다. 공격대는 어떻게 되었
을까 전송 직후에 몰살당한 것이 아닐까. 조니는 가장 가까운 전투
기로 달려갔다. 라이플 분사가 몸을 스쳐지나갔다. 병사의 수가 늘
어나고 있었다.
  말에서 내리자 조니는  전투기 밑을 가로질러 반대쪽의 탑승구에
서 조종석안으로 미끄러지듯이  들어갔다. 그러나 조종키가 보이지
않았다. 앵거스는 어디에  조종키를 놓아둔 거지? 조니는 조종석의
시트 근처를 손으로  더듬어가며 찾아보았다. 빌어먹을, 열쇠는 어
디다 둔거야. 총탄이 방풍유리에 맞아서 튕겨나갔다. 키를 찾았다.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시동버튼을 누르기  직전에 바주카포의  둔중한 소리가 들려음과
동시에 공격용  기관총 소리가 일제히  울려퍼졌다. 전투기 엔진이
굉음을 울리며 회전을  높여갔고, 조니의 양손은 조작판 위를 숨가
쁘게 두드려댔다. 전투기는 단숨에 고도 이천 피트로 상승했다. 공
격대의 모습이 보였다.  바주카포 두대, 사격대 네대. 그들은 내열
복을 입고 골짜기 여기저기에  몸으 숨긴 채 밤새도록 대기하고 있
었던 것이다.
  조니는 스크린의 스위치를 켰다. 타르를 찾나내야만 했다.

  (5)
  본부구역에서 북쪽으로 몇  마일 떨어진 곳에서는 본부작전의 암
호기와 타르가 치열한 공중전을 벌이고 잇었다.
  조니는 서둘러 그곳으로  향했다. 갑자기 두 대의 비행기가 북쪽
으로 날아갔다. 수세에  몰린 어느 한쪽이 북쪽으로 도망치려는 것
이었다. 다른 한쪽이 그것을 뒤쫓고 있었다. 조니는 재빨리 상황을
간파해냈다. 아아, 역시  그렇구나. 이것은 속임수다. 타르는 도망
치는 척하면서 젊은 조종사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것이 분명했다.
  무선을 쓸 수도 없었다. 젠장!
  조니가 따라잡기 전에 급선회한 타르의 전투기에서 섬광 몇 줄기
가 뻗어나가 엄호기를 명중시켰다. 엄호기는 불길에 휩싸여 급강하
했다. 불이 붙은  전투기에서 두명의 조종사가 긴급 탈출장치로 오
른쪽과 왼쪽으로 튀어나왔다.  등의 제트분사기가 작동하면서 몸이
공중에 떠 있었다. 두  사람의 간격이 조금 떨어진 채로 공중을 떠
돌고 있었다.
  타르가 엄호기와 탈출한 조종사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에 뒤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됐다! 예상한 대로 놈은 한쪽 조종사를 노
리고 있었다.  타르는 솟구치는 잔인한 욕구에  빠져 있었다. 한쪽
조종사가 피격당해 뒤쪽으로 돌면서 튕겨나갔다. 조니는 타르의 바
로 뒤쪽으로  들아가 발사버튼을 눌렀다.  분사가 타르의 전투기를
명중시켰다고 생각한 순간, 갑자기 타르의 비행기가 시계에서 사라
졌다. 조니는 스크린을  보았다. 타르는 그의 바로 위쪽에 있었다.
타르는 공격하려 들지  않았다. 그렇구나, 나는 내버려두고 본부로
돌아가 지상부대를 공격할 속셈이구나.
  사이클로 전투기 간의 공중전의 승패는 상대의 다음 동작을 누가
먼저 간파해내느냐 하는  데 있었다. 전투기는 빠르게 움직였고 속
도도 자유롭게  전환시킬 수 있기 때문에  상대편의 작전을 재빨리
포착하여 쳐야 했다.  조니는 타르의 정면으로 뛰어올랐다. 한순간
마이크를 쓴 사이클로인의 얼굴이 방탄유리 너머로 보였다. 틀림없
이 타르였다.  제정신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한때 조종과 사격으로
명성을 떨쳤던 타르였다. 타르의 전투기가 오른쪽으로 기수를 돌렸
다. 조니는 재빨리 그의  전진 방향 앞으로 이동해갔다. 타르가 더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조니는  그 움직임을 미리 읽고 타르의 정면
에 서서 발사버튼에 손을  얹었다. 그 순간 타르가 기수를 바꿔 급
상승했다. 조니는  움직임을 읽지 못한 채  한순간 타르를 놓쳤다.
놈을 놓치면 본부지역으로  날아가서 공격부대를 섬멸시킬 것이다.
스크린으로 타르의 위치를  정확하게 확인하고 서둘러 전투기의 방
향을 바꿔 타르의 전투기 바로 밑에서 위로 솟구쳐올랐다.
  시체수용실에서 놈의 머리를 쪼개놓았어야만 했다.
  타르는 좌우로 기체를 뒤틀며 부드럽게 방향을 수정해나갔다. 조
니는 그때마다 타르의 눈앞에 비행기를 밀어붙였다.
  그러나 그것이 함정이었다.  네번째로 타르의 앞을 가로막으려는
순간, 조니의 위치를 예측한  타르의 총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위
기일발이었다. 그러나  타르는 갑자기 방향을  바꿔 조니의 옆으로
달려들지 않고 기수를  북쪽으로 돌렸다. 전속회전하는 모터소리를
들으면서 조니는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타르는 어디로 갈 생각일까
무엇 때문에. 함정일까.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든 조니는 열탐지 스
키린 스위치를 넣었다. 크리시와 패티였다. 두 사람은 북쪽으로 말
을 달리고 있었다. 타르는 두 사람을 인질로 붙잡아 자신의 약점을
쥐고, 압력을 가할 속셈이었다.
  조니는 수신용  단거리 무선스위치를 켰다.  생각한 대로 타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동물. 네기 지곳에 착륙하지 않으면 암컷들을 죽여버리겠
다."
  타르는 조니의 바로  앞에서 사천 피트까지 단숨에 강하했다. 그
것을 보고 조니는 타르의 위치를 정확히 예측하여 버튼을 눌렀다.
  조니의 비행기가  타르의 비행기 뒤쪽에  기체 전체로 부딪쳤다.
그 순간 조니는  손잡이에 달린 착륙스위치를 넣고, 전투기의 접지
각을 타르 비행기 위에 고정시켰다. 그런 다음 비행기의 속도를 초
음속으로 했다. 모터가 더욱 빠르게 회전했다. 그는 죄표지시를 현
좌표위치의 지하 육  피트로 조정했다. 비행기 밑을 내려다보고 여
자들이 없는 것도 확인했다. 됐다. 문제없다. 두 대의 비행기 모터
가 서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듯 비명을 울리고 있었다. 심하게 흔들
리면서 거의 현 위치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모터가 가열되기 시
작했다. 이제 곧 불길을 내뿜으면서 폭발할 것이었다.
  조니는 뒤에서 등에 장착하게 되어 있는 제트분사 탈출장비를 꺼
냈다. 그리고 타르에게 빼앗은 권총을 들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좢
작판을 확인했다. 사전 항로설정 프로그램 조작판은 자물쇠에 잠겨
져 있었다. 지하 육  피트, 초음속 직하. 조니는 문을 열고 비상탈
출래버를 힘껏 잡아당겼다. 몸이 기체 밖으로 튕겨나갔고 급속하게
낙하하는 그의 얼굴에 부딪쳐오는 공기가 따갑게 느껴졌다. 탈출장
비인 제트가 분사를  시작했고 낙하속도가 떨어지자, 그는 발을 흔
들며 상승했다.  조니는 서로 뒤엉킨 채  싸우고 있는 전투기 쪽을
바라보았다. 폭발은 시간문제였다.  결국 타르는 탈출할 것이었다.
게다가 타르는 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틀림없이 공중이나 지상
에서 놈을 죽일 수 있을 것이었다. 타르는 기내에서 무서운 기세로
조작버튼들을 양손으로 두드려대고 있었다. 빌어먹을, 조니는 후회
했다. 역시 타르는  공중전의 명수였다. 타르는 치열하게 뒤엉키고
있는 전투기 안에서 조니 전투기의 비행지시를 산출해내려 하고 있
었던 것이다.  만일 그것을 알아낸다면 붙어  있는 두 대의 모터을
일치시켜 재빨리 한 바퀴 회전한 다음 반대지시를 입력하여 조니의
비행기를 떼어놓을 수가 있었다.
  조니가 탈출한 비행기의  모터에서는 이미 흰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드디어 타르는  조니의 사전 항로설정 지시를 계산해냈다.
갑자기 두 대의 모터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하나가 되었다. 그
러나 조니의 지시는 '지하 육 피트, 초음속 직하'였다. 두 대의 전
투기는 시속 이천  마일의 맹스피드로 지상을 향해 돌진했다. 그대
로 가다가는  땅 위에 처박힌다는 것을  때달은 타르는 조종석에서
황급히 조종판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오백  피트도 내려가지 전에
타르의 두손은 미친 듯이 조종판을 두드려서 이전의 지시를 입력했
다. 모터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소리를 내며 강하가 멎었을
때 모터는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두 대의 비행기가 오렌지빛
불덩어리가 되어 타올랐다.  타르는 밖으로 뛰쳐나왔다. 옷에 붙은
불을 끄려고 땅위를 뒹굴었다. 화염에 휩싸인 두 대의 전투기는 지
면에 부딪쳐 폭발해버렸다.
  조니는 머리를  처박고 양발을 흔들면서  몸의 균형을 유지하여,
불길을 내뿜고 있는 전투기의 잔해로부터 백피트 가량 떨어진 곳에
착륙했다. 타르는 아직도 풀 위를 뒹굴고 있었다.

  (6)
  조니가 등에  짊어진 제트분사 장치를 벗었을  때는 이미 연료가
거의 떨어져가고 있었다. 그는 타르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총을
빼들고 안전장치를 풀었다. 타르는 젖은 풀밭 위를 뒹굴며 몸에 붙
은 불을 끄고 발버둥치도  있었다. 거리는 오십 피트. 타르는 꼼짝
도 않고 누워 있었다.  불은 꺼져 있었다. 호흡마스크도 그대로 씌
워져 있었다.  타르는 교활한 놈이다라는  말을 입속으로 되새기며
조니는 조심르럽게 접근했다.  사십 피트. 삼십 피트. 움직이지 않
았다. 멀리서 총격전을  벌이는 요란한 총성이 들려왔다. 가까이에
서는 추락한  전투기가 불타고 있었다.  조니는 잠시도 타르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천천히 다가갔다. 이십오 피트 정도의 거리에서 일
단 멈춰 섰다. 타르의 상태를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는 거리였다.
마스크 때문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몸은 군데군데 불에 그
을려 있었고, 웃옷에는 녹색  피가 달라붙어 있었다. 죽은 것이 아
닐까 하고 생각하는 순간 타르의 몸이 재빨리 움직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손에  권총이 들려졌다. 조니는 반사적으로 몸을 엎드
리면서 권총을 발사했다. 그  순간 타르의 손에 들려 있던 소형 권
총이 튕겨져 날아갔다.  타르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도망치기 시작
했다. 총알이 놈의 권총에 명중한 것은 행운이었다. 조니는 타르에
게서 알아낼 것이 남아 있었다.
  조니는 도망치는  타르의 오른쪽 발을  신중히 겨냥했다. 이것은
말들의 복수다라고 마음속으로  소리치며 방아쇠를 당겼다. 타르의
오른쪽 다리가 꺾이면서 거대한 몸체가 쿵 하고 쓰러졌다. 한쪽 다
리가 뒤틀려  있었다. 조니는 땅에 떨어진  총을 집어들었다. 작고
가벼웠지만 위력이 대단해 보였다.
  타르는 땅 위에 쓰러진 채 꼼짝도 않고 있었다.
  "서툰 연극은 집어치워라, 타르."
  조니의 말에 요란한 웃음소리를 내면서 윗몸을 일으켰다.
  "시체수용실에서 죽지 않았군."
  "이봐, 동물."
  타르는 뒤틀린 다리를  바로잡으며 말했다. 이십 피트 앞에서 총
구가 자신을 겨누고 있었기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조용히 앉아 있
었다.
  "나는 사 분 동안 숨을 멈추고 있을 수 있지."
  바지엔 피가 스며나와 있었고, 군데군데에 화상을 입고 있었지만
타르는 웬지 유쾌해 보였다. 뭔가 있구나. 곁눈으로 타르를 보면서
조니는 평원 쪽을  바라보았다. 본부는 두 사람으로부터 이십 마일
정도 떨어진 뒤쪽에 있었다. 총격전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빨
리 가서  도와줘야 한다. 그런데 크리시와  패티는 어디로 갔을까.
아직도 도망치고 있는 중일까. 아니다, 저기 있다! 돌아온 것이다.
조니의 가슴에 뜨거운  것이 치밀어올랐다. 우리 속에 아무도 보이
지 않았을  때의 충격, 전투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지금까지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안
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일 마일 밖에  있었다. 그는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어 이쪽으로 오라고 신호했다.
  조니는 타르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았
다. 탈출한 조종사 한 명이 다가오고 있었다. 눈을 크게 뜨고 그쪽
을 쳐다보았다.  틀림없다! 사 마일 가량  남쪽에 움직이는 물체가
보였다. 조니의 훈련된  눈은 주위의 색깔과 대비되어 풀이나 물체
의 미묘한 움직임만으로 위장복도 구별해 낼 수가 있었다.
  타르가 다시 웃어대기 시작했다.
  "이제는 도망칠  수 없다,  동물. 곧 사이클로군이  몰려들 테니
까."
  조니는 그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여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
다. 크리시는  올드보크를, 패티는 댄서를  타고 있었다. 크리시와
패티는 떨어진 곳에 멈춰  서서, 말에서 내리는 것도 잊은 채 조니
를 뚫어지게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다. 목고리를 차고 있던 자리도 빨갛게 상처가 나 있었다.
  "조니예요, 정말로!"
  푸른 옷을 입은  그는 완전히 딴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패티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는 댄서의 등에서 뛰어내리자마자 달려
와서 조니에게 매달렸다.
  "내가 말한 대로지."
  그녀는 크리시를 보고 외쳤다.
  "조니는 역시 돌아왔어, 돌아왔다구."
  크리시는 말에 탄 채 울음을 터뜨렸다.
  "괴물을 불잡았군요!"
  패티는 완전히 흥분해서 타르를 가라켰다.
  "조심해야 한다. 알겟지?"
  조니는 패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이곳에서 지체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조니는 빨리 본부구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크리시, 남쪽을 살펴봐줘. 사 마일 가량 떨어진 곳이야."
  크리시는 격정을 가라앉히며 눈물을 닦았다. 그녀는 조니가 말한
쪽을 쳐다보았다. 무슨 말인가 하려 했으나 목이 매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한두 번 헛기침을 하고서야 겨우 말문을 열었다.
  "알았어요, 조니. 뭔가 움직이고 있어요."
  "우리 동료야. 올드보크를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달려서 그를 데
려와."
  크리시는 타르의  주위를 조심스럽게  우회해서 남쪽으로 달려갔
다. 말을 달리는 그녀의 긴 머리칼이 반짝이고 있었다. 남쪽에서는
총격전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왔다. 타르에게  총을 겨눈 채 눈을
떼지 않은 조니는 패티의  어깨를 감싸고 본부가 보이는 곳으로 갔
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본부보다 조금 높은 위치에 있었다. 오후
의 투명한 대기 속에서 본부가 작은 모형처럼 보였다. 마치 폭포를
꺼꾸로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얼마 뒤에야 그것이 무엇인
지 알아낼 수  있었다. 스프림클러가 일제히 물을 뿜어올리고 있는
것이었다. 동지들은 지금  저 홍수같이 뿜어대는 물 속에서 싸우고
있었다. 조니는 사이클로의 탱크나 전투기가 공격해올 것을 두려워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투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섬광이 번쩍
이고, 조금 뒤에 멀리서 꽝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주카포 소리였
다. 그러나 저 바주카포의 화력으로 사이클로 탱크를 파괴할 수 있
을지 조니에게는 확신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로부터의 엄호
가 필요했던 것이다.  조니가 있는 곳에서 본부까지는 이십 마일이
나 떨어져 있었고 게다가  공격대에는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는 사
람이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미 출격한 서른두 명이 전부였
다. 조니는  초조한 표정을 감추려 애쓰며  총을 움직였다. 그것을
보고 타르가 큰소리로 웃어댔다. 지금 당장이라도 놈을 죽여버리고
싶었다. 당연한 댓가였다. 그러나 놈에겐 아직도 계획하고 있는 게
있었다. 분명 뭔가를 꾸미고 있었다.
  "왜 여자들을 풀어주었지?"
  조니가 물었다.
  "이봐, 동물. 왜 나를 믿지 않는 거야? 네가 금괴를 가져오면 즉
각 암컷들을  해방시켜주겠다고 약속했잖아. 그래서  오늘 아침 그
약속을 지킨 거라구. 네가 이렇게 믿을 수 없는 녀석인지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
  "웃기는 소리는 집어치워라, 타르. 왜 여자들을 도망치게 했지?"
  타르는 더욱 크게 웃어댔다.
  패티가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던 댄서를 끌고 옆으로 바짝 다가
왔다.
  "날이 밝기 조금 전이었는데요, 이유는 모르지만 이 흉칙한 괴물
이 우리의 목고리를  떼내고는 말을 타고 도망치게 했어요. 그래서
심 마일 정도 달리다 숨어 있었어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도 없
었고, 또 오빠가 우리를 데리러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였죠. 그
런데 오후쯤 되어서 뭔가  꽝, 꽝 폭발하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그
래서 우리는 산 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어요."
  그렇구나, 이제야 알겠다. 조니는 타르에게 말했다.
  "네가 챠를  죽였구나. 시체도 우리  속으로 옮겨놓았고. 인간의
칼을 꽂아둔 것도 우리들이  죽인 것처럼 해서 몰살할 구실로 만들
려고 했던 거지, 그렇지? 어떤 방법으로 우리를 죽일 생각이었지?"
  타르는 조금 전부터  힐끔힐끔 손목시계를 보고 있었다. 그가 주
머니에 손을 넣으려 했다. 조니가 즉시 그것을 제지시켰다.
  "네게 보여줄 게 있다. 손가락 두 개만 주머니에 넣겠다."
  타르는 손가락 두 개로 주머니에서 사방 일 피트 가량 되어 보이
는 것을 꺼냈다. 컴퓨터용의 얇은 리모트 컨트롤이었다. 흔히 보는
기계조작용과 비슷했으나 약간  크고, 상당히 더럽혀져 있었다. 타
르는 웃으면서  그것을 조니 쪽으로  던졌다. 한순간 폭발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니는 뒷걸음을 쳤다.
  "너는 그 리모트 컨트롤를 빼앗았어야 했다구, 이 돌대가리야!"
  조니는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기묘한 리모트 컨트롤이었다. 날짜
와 시간,  그리고 발사용  버튼뿐이었다. 정지버튼이나 수정버튼은
있지도 않았다.
  "수정불능 장치야. 일단 버튼을 눌러 가동명령을 내리면 이 리모
트 컨트롤은 더이상 쓸모가 없다. 오늘 아침 전송이 시작되기 직전
에 이미 발사버튼을 눌러놓았다."
  타르는 힐끔 식계를 보았다.
  "앞으로 십 분 후면 너희들은 댓가를 받게 될 거야. 모처럼 사이
클로별을 대혼란에 빠뜨렸는데 유감이군."
  타르는 미친 듯이 웃어댔다.
  "그렇지, 무엇보다도 이 리모트 컨트롤을 빼앗았어야지."
  웃을 때마다 마스크 안쪽에서 잔인함이 번득였다.
  "게다가 여기서  이십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있다.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구. 어쨌든 이젠 너무 늦었어."
  타르는 양손으로 땅을 치면서 계속 웃어대고 있었다.

  (7)
  바로 그  시간에 즈즈토는 지하격납고  안에서 허둥대고 있었다.
전송이 완료되었을 때 일어난 맹렬한 반동으로 완전히 혼란에 빠져
있었다. 즈즈토는 타르에  대한 분노로 갈피를 잡지 못한 상태에서
자기나름대로 상황을  추측하고 있었다.  토르네프인들이 반격하기
위해서 텔레포테이션용 주파수대에 혼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 별
의 광물자원을 약탈하기 위해 습격해오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토르네프인과는 분쟁이 잦았다.  지난번 전쟁에서도 놈들을 완전히
섬멸시키지 못했다. 토르네프인들의 신장은 사이클로인의 절반밖에
안되었지만, 거의 모든 대기에 견뎌낼 수 있었다. 더구나 사이클로
인 가스병기는  놈들에게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즈즈토는
그들을 섬멸시키기 위해  마크32 저공비행 공격기의 이륙준비를 서
두르고 있었다. 그것은 지하격납고에 있는 수백대의 전투기 가운데
서 가장 많은 무기를 장착할 수 있었다.
  타르 녀석, 도대체 어디에 처박혀 있느냔 말야. 본부방위의 책임
자 주제에! 언제나 발진준비를 완료하고 대기시켜놓아야 할 전투기
는 밖에 내팽겨쳐두고 탱크들은 지하주차장에서 녹슬고 있었다. 더
군다나 다른 채둘장의  탱트들까지 모두 이곳으로 가져다놓지 않았
는가.
  타르는 정말  구제불능이었다. 연료 카트리지도  탄약도 이 본부
안에는 하나도 없지 않는가. 그러나 타르의 탓만은 아니었다. 연료
카트리지나 탄약을 본부구역  내에 저장해두는 것은 회사규칙상 금
지되어 있었다. 연료와  탄약의 격납고는 본부에서 반마일 이상 떨
어진 곳에 설치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곳으로 가려다가 벌써 두 개
부대가 전멸했다. 그것 또한 습격한 놈들이 토르네프인이라는 증거
라고 즈즈토는 생각했다.  피격당한 사이클로인들은 모두 순식간에
연녹색의 섬광을 내면서 날아가버렸던 것이다. 그런 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것은 토르네프인밖에 없었다.  즈즈토는 비행기와 지상차
안을 모두  뒤져서 쓰다 남은 연료  카트리지와 탄약을 긁어모아야
했다. 찾으면 꽤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것에 의존할
수는 없었다.
  얼마 전에 즈즈토는 참코  형제와 주먹질을 하며 싸운 적이 있었
다. 그대 참코 형제는 밖에 나가 있던 탱크 두 대가 폭발해서 산산
조각이 나버렸기 때문에, 한때는 일선에서 날리던 중장갑 중고탱크
를 정비하고 있었다. 탱크의 명칭은 '영광으로의 돌격'으로 어떠한
포탄에도 견디어낼  수 있도록 특수처리가  되어 있었고, 총화기는
몇 마일이나 떨어진 표적도 정확하게 명중시켜 파괴할 수 있었다.
  참코 형제는  그 탱크를 가동시키기 위해  연료와 탄약을 모으고
있었다. 참코 형제는 공격해온 것이 듀라레브 별자리의 포크너인이
라고 우겨댔다. 즈즈토에 의하면 그것은 완전한 착각이었다. 그 별
자리는 이백 년 전에 이미 사이클로인에 의해서 완벽하게 섬멸당했
던 것이다. 싸움의  원인은 연료 카트리지를 어느 쪽이 가지느냐는
것이었다. 그때 은근히 목에 힘을 주고 다니는 난쟁이 카가 끼여들
어 절반씩  나누라고 명령했다. 정말 모든  것이 타르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카트리지는 마크32에는 사용할  수가 없었다. 즈즈토는
귀중한 시간을 낭비해가면서 장착용 보조케이스를 카트리지에 붙여
야만 했다. 빌어먹을 타르 자식!
  격납고의 입구를 막고  있는 무인폭격기는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
라고 두 시간 전에  명령해 놓았다. 타르 덕분에 쓸데없는 짓만 하
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드디어 준비가 완료되었다. 부조종사
도 있었다. 조금 전에 도착한 관리직원으로 이름은 너프였다. 마크
32의 조종자격증은 갖고  있었지만 머리는 텅 빈 녀석이었다. 하긴
이런 변두리 별에 올 정도면 알 만했다. 그는 임페리얼시티에 있는
카방고 술집에서  볼보드인이 곧 침략해올 것  같다는 풍문만 듣고
적은 볼보드인이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즈즈토는 전투용 호흡마스
크를 들고,  예비호흡통을 배낭에 넣었다. 권총을  허리에 찬 다음
예비식량을 주머니에 쑤셔넣은 즈즈토는 늘 사용하던 한 개를 장화
에 집어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격투 때는 한몫 단단히 하는 조중
한 물건이었다.
  마크32의 시동은  쉽게 걸렸다.  가벼운 모터소리가 계속되었다.
이제 곧 출격해서  이 전투를 끝장낼 심산이었다. 즈즈토는 접지각
을 접어넣고 옆구리에  '때려부숴라, 때려부숴라'라고 씌어진 마크
32를 발사대  쪽으로 이동시켰다. 수리공들이  황급히 옆으로 피했
다. 격납고안은 연료도 없는 비행기를 출격시키기 위해 준비하느라
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출구헤는 무인폭격기가  여전히 버티고 서
있었다.
  보통 한 개의 발사대는 한 번에 세 대를 이륙시킬 수 있었다. 발
사대의 높이를 감안한다면  네 대까지도 가능했다. 그러나 무인 가
스폭격기는 한대만으로로도 발사대를  완전히 가로막고 있었다. 타
르 이놈아. 내가 말한  대로잖아. 이 중요한 대에 마크32를 출격시
킬 수 없지 않은가.
  즈즈토는 문으로 얼굴을 내밀고 작업반장을 소리쳐 불렀다. 작업
반장이 황급히 달려왔다.
  즈즈토는 고함을 질렀다.
  "저 무인기를 어서 치우지 못해. 두 시간이나 전에 말했잖아."
  꼼짝하지 않습니다."
  숨을 헐떡이면서 작업반장이 말했다. 그가 손짓하는 쪽을 보니가
네 대의 견인트럭이 필사적으로 무인기를 끌어내려 하고 있었다.
  "아무리 해도 꼼짝하지 않습니다."
  즈즈토는 자신의 공구가방을 어깨에 둘러매고, 휙 하니 뛰어내렸
다.
  "이 병신들아, 접시각은  내부에서 조종하게 되어 있는 거야. 왜
그것을 풀지  않았어. 저 한심한 커다란  다리가 바닥에 턱 버티고
있으니 움직일 턱이 없지. 그런 것도 배우지 못했나."
  "하지만 이녀석은 워낙 구형이라서...."
  작업반장은 투덜거리다가  즈즈토가 한번  노려보자 입을 다물고
말았다.
  즈즈토는 무인폭격기의 문으로  달려갔다. 가스 캐니스터를 단번
에 열 개는 실을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한 문이었다.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다리가 걸쳐져 있었다. 즈즈토는 공구를 덜거덕거리면
서 올라가 문을 잡아당겼다. 문은 잠겨 있었다. 그 문은 전투기 한
대 정도는 충분히 지나갈 수 있을 만큼 거대했다.
  "열쇠는 어딨어?"
  즈즈토가 소리쳤다.
  "타르가 가지고 있습니다."
  작업반장이 소리쳐 대답했다.
  "모든 반원을 풀어서 찾아보았는데 아무 데도 없습니다."
  또다시 타르란 말인가!
  "놈의 방에도 가보았는가?"
  "물론입니다."
  격납고의 소음을 꿰뚫고 날카로운 여자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야호!"
  차크였다. 저 화냥년은 무엇이 좋아서 저렇게 들떠 있지. 즈즈토
는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손에는 커다란 열쇠가 쥐어져 있었다.
  "타르의 책상 속에 있었어요."
  그녀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다른 열쇠는 어디에 있지? 프리세트 박스용 열쇠는 어디 있느냐
고?"
  "책상엔 이것밖에 없었어요."
  즈즈토는 한순간 망설였다.  이런 고대 유물 속에 들어갔다가 자
동발진이라도 되는  날이면 큰일이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치워야만 했다.  이 열쇠만 있으면 들어갈  수는 있었다. 즈즈토는
열쇠를 살펴보았다. 보강재가 세 개나 들어 있었다. 여기저기가 찌
그러지고, 축부분은 당장이라도 두 개로 쪼개질 것만 같았다. 타르
녀석, 열쇠을 새로 만들면 큰일이라도 벌어지나? 그러나 그게 아니
었다. 조심하지 않으면 쉽게 부러져버릴 것 같았다. 즈즈토는 이십
파운트나 되는 그 열쇠를  자물쇠 구멍에 집어넣고 욕을 하면서 힘
껏 비틀었다. 녹슨 자기자물쇠는 열렸으나 열쇠는 밑동이 부러져버
렸다. 즈즈토는 열쇠파편을  바닥에 힘껏 내던졌다. 자칫했으면 차
크에게 맞을 뻔했다. 어쨌든 문이 열렷다. 이음새가 녹슬어서 쉽진
않았지만 즈즈토는 기어이  문을 열고 말았다. 눈앞에 커다란 공간
이 펼쳐져 있었다.
  무인기라서 안에는 조명장치가 전혀 없었다. 라이트를 손에 들었
다. 안에는 몇 톤이나 되는 가스 캐니스터, 모터, 두꺼운 장갑만이
있었다. 여기서  연료를 빼내는 것인데  그랬구나 하고 생각했으나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즈즈토는 조종실로 가려고 서둘렀으나 캐니
스터가 방해를 했다.  아예 이것들을 모두 내려버리면 속이 시원하
겠지만 모두 중장갑  자물쇠로 조정되어 있었다. 결국 열쇠가 없으
면 떼어낼 수가 없었다. 부술 수도 없게 되어 있었다. 즈즈토는 또
다시 타르를 저주했다.
  즈즈토는 라이트로 주위를 비춰보고 접지각을 원위치시키는 레버
를 찾아냈다. 수리나  발진을 위해서 이동시킬 때 다리를 고정시키
거나 원위치시킬  수 있도록 이것만은 수동  제어장치가 붙어 있었
다. 그때 갑자기 레버가 아래고 내려갔다. 놀라서 레버를 바라보는
즈즈토의 전신에 공포가  엄습했다. 톨림없다. 프리세트 박스 쪽에
서도 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비행기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고, 즈즈토는 몸의 중심을 잃었다. 출구 쪽
으로 기어갔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격납고의 문이 멀어져가고  있었다. 순식간에 고도가 상승하고, 뛰
어내릴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녹슨 문이 벼랑에 덩컹거렸지만 무
인폭격기는 이미 출격해버렸다.  즈즈토는 이빨을 갈면서 신음하듯
이 낮게 말했다.
  "타르, 이 병신 같은 놈!"
  그러나 이것으로 전투기를 발진시켜서 토르네프인들의 공격에 종
짓부를 찍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고생하고도 급료는 반밖에 못
받고 보너스는 아예 없다니. 어차피 그것도 타르 녀석의 조작일 것
이 틀림없다. 이런 죽일 놈 같으니라고!

  (8)
  이십 마일 떨어진 곳에 있던 조니도 발진하는 무인폭격기를 발견
했다. 그것은 엄청나게  거대한 비행기였다. 무인 가스폭격기일까.
오싹한 한기가 조니의 등줄기를 훑어내렸다.
  비행기의 옆구리에서 무엇인가  폭발하면서 섬광이 번뜩였다. 바
투카포였다. 전투기의 발진을 저지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소대였
다. 최초의 폭발음이 희미하게 들려오는 것과 거의 동시에 다시 섬
광이 번뜩였다. 그러나 무인폭격기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 거대
한 기체를  고도 이천 피트로 유지하기  위해 유유히 상승시키면서
천천히 선회하여   기수를 북서쪽으로  바꾸었다. 무인기는 조니가
있는 곳을 지나서 동쪽으로  향했다. 하늘에 떠 있는 그 모습이 이
마일이나 떨어져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색이
바랜 기체의 여기저기에  덧붙인 금속판과 쭈그러지고 패인 상처들
은 수많은 전투경험을 말해주고 있었다. 조니는 그것의 비행속도를
재보았다. 시속 삼백 마일  정도였다. 전투기 한 대가 무인기를 뒤
쫓듯이 발진했다. 바주카포의  미사일 두 발이 그것에 명중해서 섬
광이 번뜩였을 뿐  전투기는 동요하지 않았다. 전투기는 똑바로 무
인기를 뒤쫓아갔다. 상공을  통과할 때 조니는 그것이 일반적인 전
투기와는 다른 모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이클로어로 32라는 숫
자와 작은  문자가 씌어 있었다.  가스폭격기의 호위기일까 굉음이
주위를 온통 흔들어댔다.
  두 대의 비행기가 사라지자 타르가 입을 열었다.
  "이봐, 동물. 이젠  그만 패배를 인정하는게 어떤가. 사이클로별
에서 반격을 시작하기 전에  너희들은 몰살되고 말 거야. 어때, 그
총을 버리고 나하고 거래하지 않겠나?"
  조니는 타르의  말을 무시한 채 빛나는  오후의 태양을 중심으로
처천히 원을  그리는 무인폭격기의 항로를  측정했다. 그것은 동북
방향으로 진로를 정했고,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침착해라. 조니는 자신에게 타일렀다. 당황하지 말자.
  "최소의 목적지는 어디인가?"
  조니는 타르에게  물었다. 전투기라면 시속  이천 마일로 날아갈
수 있었다. 반드시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었다.
  "동물, 먼저 총을 버려라. 그러면 모든 것을 얘기해주겠다."
  타르의 행동에 위험을 느낀 패티가 입을 열었다.
  "저놈이 말하는 것을 믿지 말아요. 조니. 저놈은 먹을 것을 준다
고 약속해놓고 한 번도 주지 않았고, 오빠가 이미 죽었다면서 윽박
지르곤 했다구요."
  "빨리 말해. 그렇지 않으면 다리를 쏘겠다."
  조니는 총으로 타르의 다리를 겨냥했다.
  "쏴요!"
  패티가 소리쳤다.
  "저놈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못된놈이에요. 악마예요."
  조니느 크리시가 달려간 방향을 보았다. 돌아올 시간이 예상보다
너무 늦어지고 있었다.  여자들만 타르와 함께 이곳에 남겨두고 갈
수는 없었다. 지금은 침착해야 한다. 기체는 얼마든지 따라잡을 수
있다. 조니는 자꾸만 조초해지는 자신에게 스스로 다짐하듯 타일렀
다.
  "알았다."
  체념한 듯이 타르가 말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가르쳐주겠다."
  "날아가는 순서대로 말해라."
  이번엔 진심인  것 같아서 조니는 총구를  위쪽으로 조금 쳐들었
다.
  "나를 표적으로 삼아서 즐기겠다는 것인가?"
  "나는 인간이나 동물을 못 살게 굴고 즐거워하는 사람은 아니다.
너희들과는 다르다."
  "그것은 네가 돌대가리기 때문이라구."
  타르가 웃으면서 빈정댔다.
  자기가 모르는 사이클로어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패티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이 소리쳤다.
  "저놈이 말하는 것을 듣지 말아요, 조니. 빨리 쏴버려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총을 들고 있는 조니의 팔을 잡았다.
  "좋다. 가르쳐주겠다. 최초의 목적지는 남아프리카다. 다음이 중
국, 러시아, 그리고 이탈리아로 날아가고, 그 다음이 여기다."
  그러나 타르는 스코틀랜드 코스는 말하지 않았다. 이미 무인기의
코스는 북극을  향하고 있었다.  역시.... 스코들랜드였다. 그곳이
최초의 목적지다. 사이클로인들은 접근할 수 없는 곳이 아닌가. 적
어도 놈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알려줘서 고맙다, 타르.
  "좋다, 정보를 준 대가로 조금 더 살려두겠다."
  그것이 스코틀랜드에 도착하려면  열일곱 시간이 걸린다. 당황해
하는 모습을 타르에게 보여서는 안되었다.
  크리시가 돌아왔다. 말은 천천히 걷고 있었다. 토르였다. 크리시
는 토르를  자기 앞에 앉히고 그의  몸을 부축하고 있었다. 그녀가
입고 있던 벅스킨 웃도리는 붕대 대신 토르의 왼쪽 팔에 감겨져 있
었다. 토르의 방사능 방호복의 왼쪽 어께 전체가 피로 물들어 있었
다. 크리시가 옷을 찢어서 피를 멎게 하는 풀을 바르고, 자기 옷으
로 묶은 것이었다. 토르의 왼쪽 팔은 부러져서 막대기로 부목이 대
어져 있었다. 탈출중에 공중에서 피격을 당했던 것이다.
  토르는 크리시의 부축을  받으며 말에서 내렸다. 출혈 때문에 얼
굴은 창백하기  이를 데 없었고, 걸음조차  제대로 옮기지 못했다.
그는 조니를 바라보았다.
  "미안해요, 조니."
  "아니, 모든 것이 내  책임이다. 자네가 잘못한 것은 아냐. 크리
시, 토르를 저 바위에 기대도록 해줘."
  토르의 시선이 타르를 향했다. 토르가 괴물을 본 것은 이번이 세
번쩨였다. 한순간 누군지  몰랐으나 곧 타르라는 것을 깨닫자 허리
에 차고 있는 권총을  잡았다. 총은 45구경 스미스 앤 웨슨형 리볼
버. 고대인의 기지에  있던 무기를 개조하여 방사성 총탄을 장전한
것이었다.
  "지금 죽여서는 안돼.  그냥 겨냥만 하고 있으라고. 몸을 일으킬
수 있겠나?"
  토르와 타르의 거리는 오십 피트. 토르는 바위에 몸을 기대로 있
었지만 총구는 타르를 겨냥하고 있었다.
  "타르, 너를 겨누고 있는 저 총에는 특수탄이 장전되어 있다. 너
희들의 분사총보다 훨씬  강력하다. 한 방으로 너를 산산조작 내어
날려보낼 수도 있다. 알겠지?"
  그렇게 말하면서  조니는 패티에게  사이클로인용 대형 분사총을
쥐어주었다. 방아쇠의 위치를 확인한 패티는 결연한 표정으로 가까
운 바위 뒤로 돌아갔다. 바위를 받침대로 해서 제대로 총을 세우고
타르를 겨냥했다.
  "이렇게 하면 되죠?"
  "그래, 놈을 똑바로 겨누고 있어야 한다."
  아직도 시간은 남아  있었다. 우선 이곳부터 처리하는 것이 급선
무였다.
  "왜 놈을 죽여버리지 않는 겁니까?"
  토르가 물었다.
  "놈에게는 아직도 이용가치가 많다."
  타르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대강 짐작했다.
조니는 나이프를  꺼내 타르를 총구의 반대  방향으로 돌아앉게 했
다. 타르릐 옷깃에 나이프를 집어넣어 옷을 위에서 아래로 찢었다.
그리고는 앞으로 돌아가서  움직이려는 기척이 있는지 주의하며 외
투의 소매를 잡아뺐다. 다음은 바지 새로로 찢었다. 타르는 일어날
려고 했지만 조니가 나이프로 가볍게 찌르자 다시 주저앉았다.
  조니는 타르의 장화와 바지를 벗기고, 손목시계와 모자도 빼앗았
다. 타르는  이제 호흡마스크밖에는 몸에 걸친  게 없었다. 조니는
예비호흡통까지 벗겨냈다. 타르의 눈은 분노로 이글거렸다. 그러나
타르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피부는 땀에 젖었고 손톱
만이 실룩이고 있었다.  조니는 자신의 벨트를 풀어서 타르의 양손
을 등 뒤에서 힘껏 묶었다. 올드보크의 고삐를 풀어서 손목과 함께
벨트로 묶고, 고삐를  호흡마스크의 튜브 밑으로 끼운 다음 고리를
만들어 다시 한 번  힘껏 묶었다. 만약에 타르가 손목을 풀려고 몸
을 움직인다면 호흡가스통이  막혀 질식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때
일수록 침착해야 한다고 스스로 몇 번씩 타일렀다.
  타르를 재빨리 묶은  조니는 벗겨낸 옷을 조사해보았다. 역시 무
기등 두  가지나 숨기고 있었다. 나이프와  소형 총이었다. 조니는
소형종을 쏘아보았다. 조리가  나지 않는 레이저 총이었다. 겨냥한
덩붕에서 불이 타올랐다.  그는 패티에게 주었던 분사총과 그 소형
총을 바꿔주었다.
  "이제 됐지요. 내가 저놈을 쏘게 해주세요."
  패티가 말했다.
  토르는 사이클로어로 타르에게 번역해주었다.
  "저 소녀가 너를 쏘고 싶어하고 있다."
  "마음대로 해라."
  타르는 대답했다.
  "크리시, 놈에게는 가까이 가지 말라구. 그리고 저곳에서 불타고
있는 전투기의 잔해에서  불을 당겨 모닥불을 피우는게 좋겠어. 토
르의 몸을 따뜻하게 해줘야 해. 이제 조금 있으면 어두어질 테니."
  조니는 토르를 바라보며 물었다.
  "누구와 함께 타고 있었지?"
  "그랜캐논과요. 저 언덕의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어쩌면 기지로
돌아가고 있을 겁니다. 광산용 무전기로 두 번 가량 연락을 취하려
고 했지만 응답이 없었어요. 그 친구도 무전기를 가지고 있을 테지
만 유효범위가 오  마일밖에 안되니까요. 그런데 어디로 갈 생각입
니까?"
  그 순간 본부  쪽에서 폭발의 섬광이 작렬했다. 격납고에서 나온
전투기 한  대가 바주카포에게 당한  것이었다. 그것은 불덩어리가
되어 치솟아오르더니 바주카포  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추락했
다. 그 조금 뒤에  비행기 폭발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발진한 한
대도 같은 운명이 되었다.
  "보았겠지?"
  조니가 말했다.
  "광산용 차량을 보내야겠다."
  침착해라. 시속 이천 마일로 가면 무인기는 따라 잡을 수 있다.
  크리시와 패티는 몹시  긴장된 너머지 굳어버린 표정으로 조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앞으로의 일이 걱정되었다. 해낼 수 있어야
하는데....
  조니는 여자들과 토르를  사관학교 자리에 있는 기지로 옮기려고
했지만, 토르의 상태는  옮기기도 어려울 정도로 위독했다. 타르를
지금 죽여야 할까?  아니다. 그래서 사태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조
니는 조조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크리시와 패티, 그리고 토르에게
그런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천 년 전에 죽은 대통령이 가지고
있던 보고서류에도 무인기의  속도는 시속 삼백이 마일이라고 씌어
있었다. 전투기는 시속 이천 마일의 초음속으로 비행할 수 있었다.
무인기가 절반 정도의 지점에 가 있다 하더라고 스코틀랜드에 도착
하기 몇 시간 전에는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는 댄서의 등에 훌쩍  올라탔다. 기지까지 약 이십 마일. 필시
작으로 달리면 한 시간 거리였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동물. 만일 사이클로별로 우라늄 폭탄
을 보냈다면 골치아픈 일이 일아날 것이다. 전에도 또같은 짓을 한
놈이 있었지만 실패했다. 웬지 아나? 모성의 전송용 플랫폼에는 반
송시트가 설치되어 있어서  우라늄 폭탄이 폭발하려고 하면 그것이
전송용 플랫폼 전체를 뒤덮어버린다. 따라서 폭발의 충격은 발송점
쪽으로 되돌아온다. 오늘 네가 본 것은 바로 그것이다. 이제 곧 모
성의 지원군들이 이곳으로 올  것이다. 이봐, 너는 나의 중재가 반
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곧 알게 될 거야."
  조니는 타르를 보았다. 그리고는 한손을 들어서 모두에게 작별인
사를 했다. 댄서의 옆구리를 힘껏 걷어찬 조니는 본부를 향해 저물
어가는 석양의  황금빛 속을 질주했다.  앞쪽에는 전투의 치열함을
말해주듯이 섬광이 계속해서  번뜩였다. 사리지곤 했다. 시간을 너
무 소모했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너무 서둘르지 말것 전투기라
면 충분히 무인폭격기를 따라 잡을 수 있다. 그러나 평원을 달려가
는 동안  조니는 자꾸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전성기 때의
미합중국 군대도 총력을 다했지만 그 무인폭격기를 막아내는 데 실
패했다. 전투기도 미사일도 원자폭탄도 육탄돌격까지도....

               ---------------------------------

                          입력봉사자: 이 성장
                           편집자: 문 성준
                   대전 대명학교 컴퓨터실
  제 2 권
  하늘과 녹색사이

  제 13 부
  지금 조니가 보고 있는 것이 바로 괴물이었다.

  (1)
  두 마리의 토끼를 쫓는 자는 한 마리도 잡을 수 없다. 문제는 하
나씩 순서대로 처리해나가야  한다. 누구나 한꺼번에 많은 일이 밀
어닥치면 혼란스러워진다. 그렇다. 무인 가스폭격기, 사이클로별의
보복 가능성, 상황을 알 수 없는 본부구역 내의 전투, 그리고 다른
채굴장에 대한 공격.  이런 상황에서는 자칫 심리적 착란상태에 빠
지기 쉽다. 낭패를  당하고 실수를 저지르고, 당황하게 된다. 그렇
게 된다면 모든  것이 끝장이다. 침착하게 하나씩 처리해나가야 한
다.
  댄서는 전속력으로  남쪽을 향해 달렸다.  더이상 속력을 내기는
곤란했다. 속력을 계속  높인다면 말이 지쳐서 쓰러져버릴 것이다.
조니는 속보와 구보를  교대로 사용했다. 댄서의 숨결이 조금 가벼
워졌다. 어두워지기 시작했으므로  발을 헛디디거나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면 그것으로 끝장이었다.  속보, 구보, 속보, 구보.... 이천
마일의 거리였다.
  조니는 주머니에서 광산용 소형 무전기를 지니고 있었다. 무전기
는 사이클로용이어서 제법 컸다. 십 마일을 넘어서면서부터 전투기
에서 토르와  동승하고 있을 그랜캐논을  호출하기 시작했다. 그는
말을 달리면서 송화기에 대고 계속 호출부호를 불렀다.
  십일 마일이 지나는 곳에서 그랜캐논의 응답이 들려왔다.
  "맥타일러, 조니인가?"
  작고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네가 있는 곳에서 말이 달리는 것이 보이는가?"
  오랜 침묵이  흘렀다. 조니는 사방을  둘러보며 계속해서 남쪽을
향해 달렸다.
  "아아, 내가 있는 곳에서 삼 마일 가량 북동쪽이다. 타르를 잡았
나?"
  "그렇다. 묶어놓았다."
  한순간 침묵이 흐르다가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랜캐논
의 목소리에서 어는 정도 긴장이 풀린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곳에서 대체 놈은 뭘 하고 있었지?"
  얘기를 하자면 길어진다. 지금은 시간이 없다. 침착을 되찾고 서
두르는 것, 그것밖에 없었다.
  "여자들은 무사하다. 토르도 부상을 입었지만 살아 있다."
  안도의 한숨이 무전기에서 들려왔다.
  "전투기를 조종할 수 있겠는가?"
  그랜캐논은 잠시 간격을 두었다가 응답했다.
  "할 수 있다.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고 한쪽 발목이 삐었다. 그
래서 본부구역으로 돌아가는데 이처럼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그러
나 조종은 할 수 있다. 맥타일러."
  "그대로 본부 쪽으로 가주길  바란다. 언제나 라이트를 켤 수 있
게하고 말이다.  자네를 맞이하러 광산용 차량을  한 대 보낼 테니
까. 상공에서 지원해주지 않으면 안된다. 부탁한다."
  "라이트는 걱정 마라. 상공엄호 임무는 미안하게 되었다."
  "그것은 내 책임이다. 그럼 부탁한다."
  댄서는 교대로 속보와  구보를 반복했다.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승리의 희망은 아직 남아 있었다. 실제로 불리한 전황은
아닌 모양이었다. 단지  역사가가 도서관은 남기고 싶어했고, 앵거
스도 공장이 필요하다고 해서  본부 전체를 날려보내는 것은 될 수
있는 대로 피하려  하고 있었다. 현재로서는 돔에 방사능탄을 쏘아
넣을 정도의 상황도 아니었다. 무인기와 호위기를 빼놓으면 제공권
은 이쪽이 장악하고 있었다.
  앞으로 오 마일 남은  곳에서 조니는 본부에 있는 폭스 로버트를
호출했다. 그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무전기을 듣고 있을 것이었다.
교장이 대답했다. 비전투원 몇 사람이 합류해 있는 것에 조니는 깜
짝 놀랐다. 목사, 교장들, 역사가 그리고 과부들이었다. 곧 안도하
는 소리와 함께 폭스 로버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들은 무사합니다."
  본부 쪽 무전기에서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아마 그 소식
을 주위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 같았다. 폭스 로버트가 얘기해
주자 주위에서 환성을 올리는 것이 들렸다.
  "이쪽은 어떻게든 견뎌낼 것이다."
  폭스 로버트가 상황을 보고해왔다.
  "조니, 당신에게 전달사항이  있는데 무전으로는 곤란하다. 당신
이 돌아오면 얘기하겠다."
  댄서는 숲을 우회해서 달려나갔다.
  어둠이 주위를 잠식해가기 시작했다.
  "저 고릴라들은 영어를 모릅니다. 지금 얘기해주십시요."
  "아니, 안된다. 얘기할 수가  없다. 앞으로 얼마 정도 정도면 이
곳에 도착할 수 있나?"
  "십오 분 정도 후입니다."
  "북쪽 계곡을 이용해서  들어오라. 본부 부근에서는 치열한 총격
전이 벌어지고 있다."
  "알았습니다. 그런데 전투기는 괜찮습니까?"
  "파괴당하지 않도록  계곡으로 옮겨놓았다.  그러나 조종사가 없
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말하는 물건들을 전투기에 실어주십시
오. 제가  입을 만한 두꺼운 방한복,  외투, 그리고 장갑, 식료품,
비방사능성 수뢰, 공격형  라이플, 공기마스크와 충분한 양의 산소
통.... 십오만 피트의 고도를 날게 됩니다."
  본부 쪽 무전기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고, 조니는 말을 계속했다.
  "알았습니까?"
  "알았다. 실어두겠다."
  폭스 로버트는 그다지 마음이 내키지 않는 듯한 말투였다.
  "광산용 차량 두 대도 부탁합니다."
  조니는 그렇게 말하고 목적지를 가르쳐주었다.
  "타르를 데려오라고 하는데  한두 사람 딸려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타르라고?"
  "네, 놈을 생포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전투기입니다. 준비해주십
시오. 도착하는 즉시 발진해야 하니까요."
  침묵이 흘렀다.
  "알았다."
  폭스 로버트는 잠시 후 무전을 끊었다.
  오 분 후 어둠을 뚫고  한 대의 광산용 차량이 북쪽을 향해서 조
니 옆을  지나갔다. 목사와 과부, 그리고  팔을 부상당한 젊은이가
타고 있었다. 지나갈 때 목사가 경례를 하듯 손을 들어 보였다. 지
금까지의 선전을 촉하하는  의미였다. 그들은 토르와 여자들, 그리
고 타르를 데리러  가는 길이었다. 차의 뒷부분에는 윈치의 기다란
쇠사슬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돌아보니까 라이플을 들
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과부였다.
  총격전의 소음이 차츰 커져가고 있었다. 스프링클러가 물을 이백
피트 높이까지 뿜어올리고  있었다. 그 아래서 분사총의 청록색 불
빛이 춤을 추었다. 공격형 라이플에서 퍼져나가는 오렌지빛 섬광은
본부 전체를 뒤덮은 투광기 때문에 색이 흐려 보였다. 조니는 계곡
입구를 향해서  담숨에 댄서를 몰았고, 남아  있는 두 대의 전투기
앞에서 멈춰 섰다. 분사총탄이 조니와 댄서의 머리 위로 날아갔다.
댄서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지만
지쳐 쓰러질 정도는 아니었다.

  (2)
  폭스 로버트는 방사능 방호전투복 위에 트레이드 마크인 낡은 케
이프를 걸치고 있었다. 잿빛 머리카락 한쪽이 그을려 있었다. 표정
은 차분했지만 뭔가  근심에 싸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로버트는
조니의 손을 힘껏 움켜쥐었다.
  조니가 불에 그을린 머리카락을 보고 말했다.
  "사상자는?"
  "얼마 안된다. 놀란  만큼 적었네. 놈들은 이쪽으로 얼씬도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사격실력이 부족했다.  게다가 소나기 속에서
싸우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런데 왜 방호복을 안 입었
지?"
  "방사능탄을 써봤자  저 물 때문에  방사능이 금세 씻겨버린다구
요. 그리고 나는  무인폭격기를 쫓아가야 합니다. 어차피 무인폭격
기 안에는 호흡가스가 들어 있지 않으니까 방사능 방호복은 필요없
습니다."
  "조니, 다른 채굴장을  제압할 때까지 기다려도 늦지 않을 걸세.
그 무인폭격기는 바다  건너쪽으로 날아가는 모양인데 어디를 가든
열여덟 시간은 걸릴  걸세. 우리들은 이 전투기 추적장치로 무인폭
격기를,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호위기를 쫓고 있었네. 아무래도 무
인기에는 탐지파 방해장치가 붙어 있는 것 같네."
  조니는 전투기의 문을 열었다. 준비는 모두 끝나 있었고, 좌석에
는 뺭과 고기가 놓여  있었다. 올라타려 할 때 과부가 옆으로 다가
와 따뜻한 찾잔을 내밀었다.  위스키 냄새가 조금 났다. 이곳에 있
는 까닭을 묻자, 그녀는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모두 총알을 먹고 살 수는 없잖아요?"
  폭스 로버트가 조니의 팔을 잡으며 만류했다.
  "우리들은 무전통신을 규제하고 있는데."
  기습공격을 완벽하게 수행하기  위해서 채굴장 공격을 맡은 조종
사들에게는 열두 시간의 무전사용 금지명령이 시달되어 있었다.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네. 규제시간을 단축하고, 문제의 무인
폭격기를 공격하도록 지시할 수도 있네."
  "그 비행기는 스코틀랜드로 향하고 있다구요. 그곳이 제1 공격목
표 입니다."
  "알고 있다."
  찻잔을 비운 조니는 전투기에 올라타려고 했다.
  폭스 로버트의 손이 다시 조니를 붙잡았다.
  "또 한 가지 말할 것이 있네."
  조니는 비행기를 타려다 말고 로버트의 말을 기다렸다.
  "우리들의 공격이 사이클로별까지 마치지 못했을 경우도 있네."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곳에 있는 비행기나 차량들이 모두 필요할지도 모른
다. 격납고는 바로 이 밑에 있지만 공격해서 격납고를 함락할 만한
인원이 없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안에 있는 차량들을 파괴시
키면 안된다는 사실이네."
  "그 문제는 그랜캐논이 오면  해결될 겁니다. 삼십 분 후에 그가
돌아옵니다. 그는 조종사입니다.  하늘에서 공격하여 제압할 수 있
습니다."
  폭스 로버트는 조니의 소매를 놓지 않고 얘기를 계속했다.
  "잠깐 기다리게. 해지기  직전에 이상한 일이 있었네. 탱크 한대
가 항복해왔다구."
  조니는 전투기의 트랩에서  발을 내려놓고 두꺼운 비행용 방한복
을 입으면서 로버트의 얘기를 들었다.
  "그건 무슨 말입니까?"
  로버트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얘기를  계속하려고 했다. 그때
한 젊은이가 달려왔다. 역사가가 사관학교에서 새로운 탄약을 싣고
았다고 보고했다. 로버트는  젊은이에게 그것을 배급하도록 명령했
다. 분사총의 섬광이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바늘처럼 날아다니고 있
었다.
  "그 탱크는 영광으로의  돌격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네. 지금은
골짜기 밖에 서 있지.  물론 우리가 잡아놓고 있네. 그놈은 격납고
를 나오자마자 곧장 우리 쪽으로 달려왔네. 바주카포로 공격했지만
끄떡도 하지 않았네. 그런데  적은 공격을 하지 않았어. 그대로 골
짜기 앞까지  직진해서 밀폐돔에서  통화기를 내보내고는 포크너인
지휘관과 이야길  나누고 싶다고 하더군.  협력하는 대신에 안전을
보장하라고 말이지."
  조니는 방한화를 신으면서 말했다.
  "그래서요?"
  "정말 이상하게 굴더군.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했더니 그들은 탱
크에서 내려와 참코 형제라고 말했네. 나는 심문을 시작했지. 그랬
더니 형제는 타르가 투항한 것도 알고 있다고 말하더군. 그들의 친
구인 광산 관리직원  챠가 얘기했다고 하더군. 타르가 카를 혹성장
관에 임명하기 위해서  전직 장관을 죽였다고 말이야. 그래서 카는
오늘 오후 그들이 탱크용 탄약을 요구하자 그것을 거부했다고 하더
군. 타르와 카는  듀라레브별에 있는 포크너인에게 투항하고, 다른
채굴장을 공격하기 위해서 무인 가스폭격기를 보냈다고 말하더군."
  "그들의 말이 맞을  겁니다. 포크너인과 무인기에 대해서는 오해
하고 있지만요.  사이클로인에게는 많은  적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역사책에 따르면 포크너인은  이백 년 전에 사이클로인들에게 패배
했습니다. 로버트 경. 제발 부탁입니다. 이제 떠나게 해주십시요."
  "또 있네. 본부구역에는  탱크와 비행기 연료가 없다고 하네. 연
료와 탄약을 쌓아둔  야적장이 밖에 있어서, 그것을 가지러 지금까
지 네개  부대가 출동했지만 우리가 모두  격퇴시켰지 다만 탄약은
충분히 있는 것 같아.  우리 쪽에는 한번 공격을 시도하는 데 필요
한 사람수도...."
  "그 밖에 뭐가 있습니까. 현재로서는 우리 쪽이 유리하지 않습니
까. 적어도 불리하지는 않습니다. 반가운 얘기가 아닙니까."
  "그렇게 낙관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네. 본부구역은 지하 십육층
이나 되는 모양이야. 그것도  각 층마다 몇 에이커씩 되고, 숙소에
점포, 차고, 격납고, 사무실, 공작실에 도서관, 창고...."
  "그렇게 넓은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나쁘지는 않
습니다."
  "아니네, 그렇지가 않아.  만약 이 본부구역이 방사능 공격을 받
게 된다면 호흡가스와  반응해서 한번에 날아가버리게 되네 탄약고
위에서 싸우고 있는  거나 같은 형세네. 만일 사이클로별에서 보복
굥격을 해온다면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도  이곳의 비행기와 차량.
그 밖의  설비가 절대로 필요하네. 만일  조금 전의 공격으로 정말
사이클로별이 날아가버렸다 해도 그때는 그때대로 지구재건을 위해
서 이 기재들은 절대로 필요할 것이네."
  "곧 공중지원을 받게 될 겁니다. 동지들을 대피시켜서...."
  "아니, 기다리게, 아직 끝나지 않았네. 참코 형제는 본부구역 내
에 지구의 공기를 집어넣으려는 우리의 계획을 알고 있다고 말하더
군. 포크너인은  듀라레브별을 되찾은  것과 다름없다고 덧붙였지.
내부에 있는 호흡마스크와  예비호흡통의 양은 한정되어 있다고 하
네. 순환재생시스템에는 아직도  충분한 여력이 있지만. 그들은 시
설물 설계와 안전담당 기사였으므로  그 점을 잘 알고 있다고 하더
군. 보수를 준다면  협력하겠다고 말하고 있네. 지구에서는 어디를
가도 급료는 절반, 보너스는 받지도 못했다고 하더군. 우리들의 가
스작전, 아. 그들은  그렇게 부르고 있었네. 결국 가스작전으로 목
숨을 잃고 싶지 않다는 얘기였지."
  조니는 이미 방한복을  모두 입고, 오트밀빵과 말린 사슴고기 샌
드위치 한 개를 다 먹어치웠다.
  "로버트 경, 하늘만 해결된다면 생각대로 하셔도 됩니다."
  "참코 형제의 얘기로는  호흡가스의 순환 재생시스템은 공냉식이
기 때문에 건물 밖으로 노출되어 있다고 하네. 우리들이 적당히 부
추켜 주었더니 냉각장치의  재환류파이프에 구멍만 내도 펌프가 자
동으로 기지 안을 공기로 가득 채울 수 있다고 얘기하더군."
  "그렇다면 문제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러나 건물은 지상에서는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재환
류 파이프는 전투기를  이용해서 공중에서 폭파하는 방법밖에는 없
네."
  "그렇다면 곧 처리될 겁니다. 그랜캐논이 돌아오는 즉시...."
  "그러나. 이것은 당신이  해결해주었으면 하네. 그다지 위험하지
도 않고, 반마일 정도의 사정거리니까 조니 당신이라면...."
  "그렇다면 지금 이륙하면서 처리하겠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파괴됐는지 꼭 돌아와서 확인해야 되네."
  그때서야 조니는 폭스  로버트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채굴
장으로 출격한  전투기들이 무인폭격기를  공격하도록 시간을 끌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채굴장 공격이라는 최초
의 임무가 간단히 끝난다는 보장이 없었다.
  "로버트 경, 당신은  나 혼자서 무인폭격기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거로군요."
  역전의 용사 폭스 로버트가 양팔을 벌렸다.
  "조니, 당신은  이미 많은 일을 했어.  이제 와서 일부러 죽으려
갈 필요는 없네. 그렇지 않나?"
  조니는 몸을 돌려 전투기에 올라탔다.
  "꼭 가겠다면 나도 가겠네."
  "아닙니다. 당신은 이곳에 남아서 공격지휘를 맡아주십시요>"
  광산용 차량이 빠른 속도로 달려와서 급정지했다. 운전수는 공격
총을 들고 전투에 가담하기 위해 뛰어나갔다. 그 뒤를 이어서 내린
그랜캐논이 다리를 질질 끌면서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빌어먹을."
  폭스 로버트가 소리르 질렀다.
  마중나온 로버트의 말에 놀라면서 그랜캐논이 말했다.
  "난 괜찮습니다. 갈비뼈를 붕대로 붙들어매고, 왼쪽 발목만 고정
시켜주면 당장이라도 조종할 수 있습니다."
  로버트는 그랜캐논의 어깨를 끌어안고 말했다.
  "알고 있네. 다른  일은 생갈하고 있었던 거야. 살아 돌아와줘서
기쁘네. 자네에게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네. 그것도 잔뜩 말일세.
과거 칭코인의 숙소 위에 숨어 있는 저격병들에게...."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로버트 경."
  조니는 인사를 하고 문을 닫았다.
  "행운을 비네."
  폭스 로버트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모든 방법을 다 동원
해도 무인폭격기를  저지할 수 없다면 조니는  그것과 충돌하고 말
것이다. 두번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조니의 전투기에서
몸을 돌리자 폭스  로버트는 두 사람의 전령에게 명령했다. 눈물로
흐려져 전령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조니는 적이 공격할 새도 없이 급상승해서 골짜기를 빠져나갔다.
진로는 곧장 북서쪽으로 잡아 비행했다. 일찍이 지구연합군이 시도
했으나 실패한 일을 조니 혼자서 하려 하고 있었다. 무선사용 금지
의 해제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무인폭격기는 스코틀랜드에서 다섯
시간 정도의 지점에 도착할 것이다. 그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공격
이 성공한다 해도 가스 캐니스터가 파괴되면 풍향을 따라 스코틀랜
드와 스웨덴은 전멸해버린다. 확실히 여러 대의 비행기가 공격하면
유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절대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오
히려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한 적이 없는 모든 총포를 총동원해서
사이클로 전투기로  들이받는 방법이 더  가능성이 있었다. 최후의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 조니는 로버트
경에게 그 계획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았지만 이미 눈치채고 있을지
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3)
  더넬딘은 즐거운 기분으로  들떠 있었다. 눈앞에 펼져진 영국 콘
월채굴장의 야경을 상상하고 있었다.
  콘월에 누가 가느냐를 놓고 재비뽑기를 했었다. 그곳은 사이클로
인들이 인간사냥을 즐겼다는  채굴장이었다. 수세기에 걸쳐 식량을
구하기 위해 남쪽으로  갔던 많은 스코틀랜드인들이 그곳에서 살해
당하곤 했었다. 그들 중 한 그룹이 모두 붙잡혀서 십팔 일 동안 동
안 한 사람씩 차례대로  조금씩 조금씩 살점을 떼어내는 처절한 고
통 속에 살해당했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었다. 비슷한 얘기는 그
밖에도 얼마든지 있었다.  결국 더넬딘과 드와이트가 가장 긴 제비
를 뽑았다. 모두들 두 사람을 부러워했다.
  두 사람은 항로를 머릿속에  깊이 새겼다. 지난 천 년 동안 콘월
채굴장에서 백  마일 이내에  접근했다가 살아남은 스코틀랜드인은
한명도 없었으므로, 채굴장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지만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수집해놓았다.  조종석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은 느긋한
기분이었고, 비행복을 입어서 따뜻했다. 저속전송의 두번째 개시를
알리는 방송이 들리자  조작판에 손을 얹고 대기했다. 그때 그들은
조니의 놀란 만한  활약을 동그랗게 뜨고 지켜보게 되었다. 조니가
우리 쪽으로 달려갔을 때 뭔가 잘못된 것 같아서 두 사람은 안절부
절 못했다. 도와주러 갈 수도 없었다. 그러나 분사총의 일제사격이
시작되기 전에 조니는  벼랑 밑으로 굴러들어갔다. 그제서야 두 사
람은 안심했다. 전송의  반동으로 기체가 심하게 흔들렸을 때는 매
우 당황했지만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그들은 예정대로 발진했다.
지구 전역으로, 전선들이 실밥처럼 뒤엉키면서 쓰러지는 것이 보였
다.
  열두 시간 무선사용  금지작전은 주효했다. 그 정도의 시간만 있
으면 가장 먼 채굴장도 충분히 기습공격할 수 있었다.
  시속 이천 마일,  고도 십만 피트로 그들은 순식간에 목표지점에
도달했다. 시계를 맞추고,  사이클로 채굴장에서 흔히 이용되는 야
간 진입고와 속도로  바꾸었다. 채굴장이 눈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더넬딘은 레이더와 전망스크린을 켰다. 경계하는 기척은 전혀 없었
다. 호위기도 날고 있지 않았다. 채굴지역 곳곳에 동굴들이 띄엄띄
엄 보였다. 지하 오 마일은 될 것 같았다. 입구에서 피어오르는 증
기가 빛을 받아서  흔들리고 있었다. 연금소의 굴뚝이 초록색 연기
를 토해내고 있었고, 그 옆에 늘어선 창고들이 거뭇거뭇 모습을 드
러냈다.
  저기다! 조명으로 빛나는 본부구역의 돔들. 제1목표였다. 그러나
더넬딘은 설사 계획에 없다 해도 눈앞에 있는 좋은 기회를 그냥 지
나칠 수가 없었다.  멍청한 고릴라, 사이클로인들은 어리석게도 전
투기를 맞이하려고  이착륙구역을 조명으로  밝혀주고 있었던 것이
다. 그것은 을씨년스러운 무대처럼 불빛 속에 떠올라 있었다. 그저
임시비행기가 도착하는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무선사용 금
지 덕분이었다.
  그때 또 다른 것이 더넬딘의 시야에 들어왔다. 북쪽의 거대한 전
력탑이 줄지어 본부구역과 연결되어 있는 송전선이었다. 그리고 그
바로 옆에는 주전력탑이  이착륙구역의 휘황한 불빛에 거대한 모습
을 드러낸 채  우뚝 서 있었다. 사이클로인들은 공중으로부터의 공
격은 예상조차 못하는  것 같았다. 분명히 그것은 주전력탑이었다.
북쪽에서 온 송전선이 그곳으로 들어가고, 그곳에서 시선이 빠져나
와 채굴장의 여러 건물들로 뻗어 있었다. 그 거미줄 같은 지선망의
중심부에 거대한 이착륙구역이 펼쳐져 있었다. 이착륙구역 바로 옆
에는 커다란 수레바퀴 같은 것이 서 있었다. 더넬딘은 그것이 무엇
인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을 회전시키면 변전회로에서 모선이 빠지
도록 되어 있는 장치였다.
  더넬딘이 이 호기를  놓칠 리가 없었다. 놈들이 응전하려고 전투
기에 타려 할 때 공연히 조명등을 켜놓을 이유는 없었다. 캄캄하게
만들어서 놈들을 혼란시키고, 상공에서 적외선 스크린을 사용해 목
표를 파괴하면 된다. 탐지파 방해장치가 있어서 고릴라들은 어디에
다 쏘아야 할지도  모를 것이다. 게다가 일단 내려갔다가 이륙하면
채굴장의 호위기로 착륙하게  될 것이다. 더넬딘이 빠른 말로 설명
하자 드와이트는 놀라는 듯했으나 즉각 동의했다. 의견이 일치되자
두 사람은 볼일이 있는 비행기처럼 태연하게 수레바퀴 옆에서 전투
기를 착륙시켰다. 더넬딘은 공격형 라이플의 끈을 어깨에 걸치고는
수레바퀴 아래로 걸어가서 힘껏 돌리기 시작했다.
  그대까지도 순조로웠다.  그러나 더넬딘도 드와이트도, 그곳에서
십피트도 안 떨어진  곳에 경비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곳에 있던 경비병이 더넬딘의 모습을 보고 뛰어나왔다.
  "토르네프인이다."
  경비병이 소리쳤다. 더넬딘이  라이플을 겨냥하기도 전에 경비병
은 문을 닫고 사이렌을 울려댔다. 확성기에서 고막을 찢을 듯한 고
함소리가 들려왔다.
  "토르네프인 잠입.  전원 전투배치로. 토르네프인이다. 방위태세
로 들어가라."
  토르네프인이 무엇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으나 더넬딘은 모선삽
입용 바퀴를 힘껏 돌렸다. 수레바퀴가 끽끽거리는 소리를 냈다. 이
착륙구역 바로 옆에  그런 것을 세워둔 까닭을  비로소 알 수 있었
다. 놈들은 경비실을 바로  그 옆에 배치하고, 적의 공격에 대비해
서 일부러 그곳을  어둡게 해두었던 것이다. 더넬딘은 서둘러 전투
기의 탑승구로 뛰어들어갔다. 계단 입구로 뛰어나오는 경비병을 향
해 드와이트의 총이  불을 뿜었다. 그들은 녹색의 섬광을 번쩍이며
날아가버렸다.
  전투기는 급상승했다. 더넬딘은  탐지파 방해장치와 적외선 스크
린의 스위치를 켰고, 두  사람은 작전을 개시했다. 그들은 화염 제
로, 충격력 최대로 조정한 화포로, 먼저 본부구역 위를 상하좌우로
휘둘러 발사했다. 돔은 바늘로 찌른 풍선처럼 차례차례로 무너져내
린다. 뒤이어 창고 위를 비행하며 지붕을 날려보냈다. 다시 확인하
듯이 무방사능성 대인살상탄을  뿌렸다. 한 대의 대공포가 불을 뿜
고, 비행기가 기우뚱  쓰러졌다. 전투기는 즉각 급상승하여 일격으
로 그 대공포를 파괴했다.
  사이클로 기지는  그것으로 괴멸이었다.  인터개랙틱 광산회사는
안전설비에 전혀 투자하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게다가 타르가 각지
에 있는 채굴장에서 무기나 병기를 회수했다는 조니의 말을 생각해
냈다. 상공에서 내려다보이는  기지의 사이클로인들은 돔이 파괴도
기 전에 마스크를 쓸  수도 없었던 모양이었다. 한 놈도 보이지 않
았다. 두  사람은 한동안 기지상공을  선회하면서 가끔씩 강화하여
혼자 떨어져 있는  지상차나 우왕좌왕하고 있는 경비병들을 공격했
다. 한차례의 공격에 광산 전체가 쥐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그대 레이더 스크린이 뭔가를 포착해냈다. 인원수송기였다. 더넬
딘은 즉시 두번째의 전송 뒤에 노동자들을 태우고 떠난 인원수송기
를 생각해냈다.  그것은 매우 저속으로  비행하기 때문에 어딘가를
경유하여 온 것이 틀림없었다. 좋다, 두고보라구. 놀라는 드와이트
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넬딘음 모선삽입용 바퀴 옆에 전투기를 착
륙시키고, 그것을 움직였다.
  두 사람은 조용히  기다렸다. 착륙유도등이 깜박이고 있었다. 살
아남은 사이클로인은 누구  하나 나오려 하지 않았다. 이윽고 수송
기가 착륙했다. 사이클로인 노동자들은 소지품을 안고, 시시덕거리
면서 내려왔다.  마지막으로 조종사가  내렸다. 그들은 한덩어리가
되어서 본부구역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듯
전원이 멈춰섰다.조종사가 허리춤에 총을 뽑으려 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더넬딘과 드와이트의  공격형 라이플이  섬광을 번득이기 시작했
고, 그들은 차례차례 쓰러져갔다.
  더넬딘은 전투기를  발진시켜 드와이트를 연료적재장에 내려주었
다. 그는 인원수송기용  카트리지를 집어들고, 더넬딘과 함께 전투
기로 수송기가 있는 곳까지 날아갔다. 드와이트는 소모된 카트리지
를 떼어내고, 새로운 것으로  갈아끼웠다. 남아 있던 지상차 한 대
가 달려왔으나  더넬딘의 발포로 일격에  폭발해버렸다. 그는 즉각
이륙했고, 뒤이어 드와이트도 수송기를 이륙시켰다. 더넬딘이 주전
력탑을 공격하자 불꽃과  섬광을 일으키면서 날아가버렸다. 더넬딘
은 다음 공격을 하기전에 드와이트가 충분한 고도까지 대피한 것을
확인한 후, 호흡가스적재장 위로 십 피트 높이까지 날아가 납을 입
힌 소형 시한방사능탄을  투하했다. 그가 급상승을 끝냈을 때 가스
적재장은 녹청색의 섬광으로  휩싸였다. 다시 한 번 드와이트가 탄
수송기의 위치를 확인하고  일만 피트로 상승했다가 비행기를 반전
시켜 급강하하며 폭약적재장에 총탄을 쏘아댔다. 그것은 마치 조그
만 화산처럼 폭발했다. 그것은 장관이었다. 그는 다시 내려가서 확
인해보았다. 채굴장 근처가  폭발되지 않은 것이 확인되었다. 기계
나 비행기를 파과하지 말라는 것도 명령의 일부였으므로 신중을 기
했다.
  호흡가스도, 비행기용 연료도  없었으므로 인원의 구십 퍼센트는
이미 사망했을 것이다. 콘월채굴장은 이것으로 끝장이었다. 수없이
쌓아온 악업에 대한 응당한 처벌이었다.
  더넬딘이 수송기 옆에 바싹 붙었다.
  "토르네프가 뭐지?"
  드와이트 역시 모르고  있었다. 칭코인의 공기마스크를 쓰고, 미
공군의 성층권용 비행복을 입은 모습이 이상하게 보여서였을까.
  더넬딘은 즐거운 계획을 생각해내고 있었다. 무선통신 금지는 아
직 여섯  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주어진  임무는 완료했고, 그리고
그곳에는 벌써  일 년 가까이 만나지  못한 여자가 있었다. 여기서
곧바로 기지로 돌아갈  필요는 없었다. 다른 채굴장으로 간 14기도
잘하고 있을 것이었다. 더넬딘과 드와이트는 곧장 스코틀랜드로 향
햤다.

  (4)
  즈즈토는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고 있었다. 무인 가스폭격기는
귀청을 찢을 듯한 소리를 내면서 계속 날아가고 있었다. 기내는 어
둡고 추웠다. 함심한 너프 녀석! 비행기 엔진소리가 들려오기 시작
했을 때, 영락없이  이 무인기의 어딘가에서 나는 진동소리라고 착
각했었다. 하지만  즈즈토의 훈련된 귀는, 곧  그 소리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이 음침한 무인기의 소리를 확인하며 덜컹거
리는 문이 있는  곳까지 왔다. 놀랍게도 그것은 마크32였다. '때려
부숴라. 때려죽여라'라고 글자가  새겨진 마크32, 중장갑인 공대지
폭격기였다. 너프가 왜 이  무인기의 호위를 맡고 있는 것일까. 즈
즈토는 너프가 따라 온 이유를 생각해보았으나 좀처럼 떠오르지 않
았다. 처음엔 자신을 구해주러  온 줄 알았다. 열림 문으로 사다리
를 내려서 자기를  끌어올려 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너프는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모르는지 계속 문과는 반대 방향에서 비행하
고 있었다.
  분명히 놈에게는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않았었다. 저 등신은 볼
보드인이 어쩌구하면서 너스레만 늘어놓았었다. 볼보드인이 사이클
로를 공격한다고?  정말 저 놈은 멍청한  녀석이다. 즈즈토는 다시
한 번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그렇다, 역시 놈에게는 아무런 지시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이 공대지 공격지로 토르네프인을 격퇴하
려고 마크32를 타본  경험이 있는 자를 찾았었다. 너프를 찾아내서
부조석에 앉힌 다음,  무인기를 이동시키러 갔었다. 그는 너프에게
했던 마지막 말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것은 '따라오라!'였다. 아
아, 그렇구나, 놈이  무인기 쪽으로 오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
다. 너프는 무인기가 갑자기 이륙하자 따라오라고 한 말을 다만 공
대지 공격기로 무인기를 따라오라는 것으로 알아들은 것이었다. 그
리고 이륙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오로지 따라만 오고 있었던 것이다.
  마크32라면 어떤 도시라도 단번에 전멸시킬 수 있었다. 마크32의
특수강판을 관통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떤 지대공포
라도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지상군 지원에는 최적격이었다. 그런
데 저  등신은 지금 마크32를 가지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 호위기
같은 것은  전혀 불필요한 무인폭격기를  호위하고 있다니. 빌어먹
을, 타르에다가 이번엔 너프 녀석까지!
  지독한 악마  타르만이 아는 목적지를 향해  쥐지 않고 날아가는
무인기의 거대한  기체 속에서 귀청을 찢는  듯한 엔진소리를 듣고
있는 즈즈토는  겨우 사태를 파악했다. 그렇다,  너프는 그가 타고
있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시계를 본 즈즈토는 마크32의 연료가 얼마 후면 떨어진다는 사실
을 때달았다. 이 깜깜한 어둠 속에서 어디를 떠다니는지조차 알 수
없었지만 마크322는 연료부족으로  추락할 것이 분명했다. 연료 카
트리지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마크32에는 이처럼 장시간 비행
할 만한 연료를 넣어두지 않았었다. 애당초 마크32는 국제전용으로
항속거리가 짧았다. 그에게는  프리세트 박스를 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박스의 두꺼운 특수강판을 상대로 실랑이를 벌였다. 열쇠
는 물론, 그것을 만들도구조차 없이는 역부족이었다. 열쇠는 물론,
그것을 만들 도구조차 없이는 역부족이었다. 분사포라도 그것을 열
수는 없었다.  '강판 붙이기'란, 바로 이  저주받은 무인기를 위해
있는 말이었다. 마침내 즈즈토는 지칠 대로 지쳐 비행기 앞쪽의 차
가운 금속관에 주저앉았다. 절망조차  느낄 수 없게 되 지금, 최후
까지 이 무인기와 함게 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나 이틀, 아니면 사
흘, 아무튼  그 정도면 이놈도 어딘가에  착륙하겠지. 난폭한 착륙
충격으로부터 멍청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  지금은 그것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타르 놈, 어디 두고보자,  그리고 등신 같은 너프
놈. 이 더러운 회사도,  이런 일까지 당하게 만들먼서 급료는 절반
밖에 안 주고 보너스도 없다니.

  (5)
  조니는 무인 가스폭격기를 찾아서 비행하고 있었다. 모든 전망스
크린의 스위치를  켜놓은 상태였다. 그는  북극해 상공을 비행하고
있었다.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전망스크린에 그 영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조니는 전에 이곳을 통과하던 때의 일을 기억했다. 범접하
지 못할  삭막한 풍경, 추락하면 당연히  살아남기 어려웠다. 설원
위에서 얼어죽든가, 물 속에  빠져 얼어죽든가 둘 중 하나였다. 가
스폭격기는 전방 이, 삼  분내의 거리를 비행하고 있을 것이다. 이
제 곧 스크린에 나타날 것이다.
  크리시와 패티,  토르가 걱정되었다.  상공을 지나면서 스크린을
살펴보았지만 확인되지 않았다.  상당한 고도를 비행하고 있었으므
로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점처럼 불빛이 반
짝였는데 모닥불인지 아니면  추락한 비행기가 아직도 불타고 있는
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렇더라도 이미 상당한 시간이 경과되었
고, 그들에게도 구조대가  떠났을 것이므로 그리 걱정되진 않았다.
순간 조니 혼자서 간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크리시의 굳은 표정
이 떠올랐다. 그러나 모든  것이 잘 처리되었을 것이다. 목사가 지
상차를 몰고 전속력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사관학교에 있는 지상차
들은 황무지에서도 육십 마일 이상의 속도를 달릴 수 있으니까
  전투기들도 각자 맡은 임무를 무사히 끝냈을까. 무전사용 금지는
앞으로 다섯 기간이나 남아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
도 전하고 싶었다. 자신이 맡은 채굴장을 모두 파괴한 대원은 즉시
좌표 어디어디 지점으로 출격하여 이 강력한 무인기를 파괴하는 작
전을 도와달라고,  그러나 만일 그랬다가는  적에게 들켜서 누군가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만일 어떤 사정으로 늦어지고 있거나 공격
받고 있는 동료가  있다면, 무전사용을 재개하는 것은 그야말로 그
들의 생명을 적에게 내놓는 것과 같았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다
른 사람들의 목숨을  희생시킬 수는 없었다. 무전사용 금지가 해제
되었는데도 그에게서 연락이  없으면 로버트는 모든 비행기로 집합
을 명령할 것이고  무인폭격기를 공격하게 할 것이다. 그때는 이미
첫번째 공격목표는 쑥대밭이  된 후겠지만, 최소한 다음 목표에 대
한 폭격은 저지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조니는 그 전에 무인
폭격기를 파괴하고  싶었다. 젊은 동료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았다.
  무인폭격기는 탐지방해 장치를  장착하고 있었다. 호위기만이 희
망이었는데 어디로 가버렸단 말인가. 이미 비행기가 영상에 잡히기
에 충분한  시점인데, 그때 스크린에 조그만  녹색 빛이 나타났다.
또 빙산인가,  그럴 리가 없었다.  고도계는 사천이백이십삼 피트,
시속 삼백이 마일, 호위기가 스크린에 나타났다.
  조니의 장갑 낀  손이 조종판 위를 오르락내리락하며 프로그램하
기 시작했다. 초음속에서  속도를 줄이며 오천 피트까지 단숨에 강
하했다. 엉덩이가 깊숙히  가라앉으며 한순간 짓눌리는 것 같은 느
낌을 희미하게  받았다. 침착해라, 문제없다.  호위기를 찾아야 한
다. 됐다. 적외선이 그것을 정확히 포착했다. 그 옆에 거대한 무인
기가 나타났다. 그러나 두  마리의 토끼를 쫓으면 한 마리도 못 잡
는다. 우선 호위기부터  처치하자. 기종이 뭘까. 그것은 조니가 처
음 보는 전투기였다. 기체가 낮았고, 접지각도 최대한 짧게 만들어
져 있었다.  마치 갑욧같은 느낌이었다. 그때  조니는 자신이 타고
있는 전투기의 총화기로는 그 전투기에 흠집 하나 낼 수 없다는 것
을 깨달았다. 대전차용 바주카포탄을 맞고도 끄떡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낸 것이었다.  전의를 상실할  뻔했다. 난공불락으로 알려진
무인기뿐만 아니라 호위기까지....
  조니는 서둘러서 머리를  짜냈다. 폭스 로버트가 들려준 말이 떠
올랐다.
  '날의 길이가 이 인치인 칼밖에 없다면 십 피트의 교활함을 지녀
야 한다.'
  저 호위기에 타고 있는 놈은 이 전투기에 누가 타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조니는  유효범위가 이십 마일밖에  안되는 지령용 단거리
무전스위치를 켰다.  그 순간 사이클로인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
다.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셈이었나?  벌써 오래전에 교대해줬어야
했다구. 왜 이렇게 늦은 거냐?"
  상대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다.  조니는 송신스위치를 넣고
가능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상황은 어떤가?"
  "무인기는 무사하다.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나는 지금까지 계
속 호위해왔다구. 너희들의 혹성 운영은 엉망이다. 사이클로별에서
는 이런 일이 없었다. 어쨌든 너무 늦었다. 네 이름을 말해라."
  조니는 서둘러서 쓸 만한 이름을 찾은 끝에 사이클로인이 흔하게
가지고 있는 이름을 사용하기로 했다.
  "스니트다. 그쪽은?"
  "너프다, 관리직원  너프다. 이제부터는  너프 각하라고 불러라.
이곳은 정말 한심한 곳이구먼."
  "최근에 이 별로 오셨습니까, 너프 각하?"
  "아아, 최근은커녕 바로  몇 시간 전이다. 그런데 그 환영이라는
것이 어린애들도 격퇴할 수 있는 형편없는 볼보드인의 습격이라니.
이봐, 잠깐 기다려라."
  너프가 의심스러운 듯이 말했다.
  "너의 말투가 이상하다.  마치.... 아아, 그렇다. 마치 칭코인의
학습용 디스크와 똑같다. 이놈, 너는 볼드인이지?"
  발사버튼의 안전장치를 푸는 소리가 났다.
  "저는 이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조니는 솔직하게 말했다. 비웃는 듯한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어쩐지.... 식민지 출신이구먼."
  한참 사이를 두었다가 너프가 말했다.
  "이번 비행에 관해서 지시를 받고 있는가?"
  "네, 각하. 명령이 하달되었습니다. 제가 파견된 것도 그것을 전
하기 위해서입니다."
  "나와 교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란 말이냐?"
  너프는 노골적인 분노를 나타냈다.
  "목적지가 변경되었습니다.  무선사용 금지명령이 내려와 있어서
그것을 전달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무선사용 금지명령이라고?"
  "네, 이 별 전역에서입니다. 너프 각하."
  "역시 원인은  볼보드인이군. 놈들은  병기를 무선으로 조작하니
까. 그래, 맞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너프 각하."
  "그래, 나하고 교대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나더러
뭘 하라는 것인가? 마크32는 거의 연료가 떨어져가고 있단 말이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채굴장은 어디인가?"
  조니는 재빨리 상황을 판단해보았다.
  "너프 각하, 만일 연료가 떨어질 경우에는...."
  젠장, 도대체 어디로 가라고  말하면 좋단 말인가? 이 마크32 이
외에 자동 추적장치가 반응할 수 있는 물체가 없다.
  "....저.... 무인폭격기 위에.... 무인기의 기체 앞부분 위에 자
력접지각으로 접속하도록 권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뭐라고?"
  "그리고 다음 채굴장에  가까워지면 전투기를 떼어내라고 했습니
다. 지도는 가지고 계십니까?"
  "가지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정말 이 별에서는 모든 것이 엉
망진창이로군. 본국에 보고해야겠다. 사이클로별과는 하늘과 땅 차
이다."
  "한창 공격을 받고 있는 중이라서요."
  "그러니까 말이다, 왜 내가 호위기로서 이곳에 머물러 있어야 하
는가. 안  그런가? 이 전투기라면 공격을  받아도 끄떡없는데 말이
다. 이 것은 공대지 공격기가 아닌가?"
  "앞으로 연료가 얼마나 남아 있습니까, 너프 각하?"
  조금 간격이 있었다.
  "젠장, 앞으로 십 분이 채 못 남았다. 네가 늦게 온 덕분에 하마
터면 죽을 뻔했다구."
  "죄송합니다. 그러면 무인기의 전단부에 접속해주십시요."
  "어째서 전단부지? 한가운데가  더 좋을 텐데. 만일 전단부에 접
속하면 저쪽 비행기의 중량밸런스를 흐트러뜨리게 된다."
  "무인기에는 그것을 감안하여  캐니스터가 적재되어 있어서 접속
해도 밸런스를 잡을 수 있습니다. 틀림없이 전단부라고 지시받았습
니다."
  "이 비행기는 보통 무거운 것이 아니란 말이다."
  "무인기라면 문제없습니다. 일  분이라도 지체하지 말고 빨리 접
속하는 편이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너프 각하. 이 부근에 바닷
물은 온통 두껍게  얼어붙어 있습니다. 게다가 전투기를 분리할 때
도 연료가 필요합니다.  다음 채굴장까지는 불과 두세 시간의 거리
니까요."
  조니는 스크린을  보고 있었다. 직접 호위기를  볼 수는 없었다.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면서  거대한 무인기가 스크린에 담기도록 전
망스크린을 조종했다.
  마크32는 기수를  비스듬히 밑으로  숙이고 무인기의 머릿부분에
위치를 맞추어 접지각을 내렸다. 드디어 무인기와의 접속의 완료되
었다. 조니의 긴장은 단숨에 풀어지고, 머리가 텅 빈 것 같은 느낌
을 받았다. 전망스키린의 열량표시가 마크32의 모터가 멈췄다는 표
시를 나타냈다. 조니는  스크린을 주시했다. 무인기의 기수는 밑으
로 수그러질  것이다. 잘하면 추락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약간
앞으로 기울어졌으나 곧 엔진밸런스를 회복하고, 천둥 같은 굉음을
내면서 죽음을 향해  돌진해갔다. 너프가 중심을 잘못 잡아서 접속
했기 때문에 기체는  좌우로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기체가 오
른쪽으로 기울어지면 밸런스  모터가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왼쪽으
로 지나치게  치우쳤다. 이번에는  반대현상이 일어났다. 경사각은
좌우 십 도. 그런 동요에도 불구하고 무인기는 오로지 목적지를 향
해서 계속 날아갔다. 기체를 천천히 좌우로 흔들면서.

  (6)
  일단 너프의 마크 32에 대한 문제는 처리되었으므로 조니는 무인
폭격기를 저지할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전투기를 무인기 밑에 붙이자 착륙과 급유를 위한 커다란 접지각
만 보일 뿐 아무것도  없었다. 조니는 전투기를 다시 한 번 무인기
와 나란히 세웠다.  무인폭격기 옆의 조니의 전투기는 마치 콘도르
옆에서 날개를 붕붕거리는 벌새 같았다. 그만큼 무인폭격기는 거대
했다.
  무인폭격기가 맹위를 떨치던  시절, 마지막 임무를 마쳤을 때 콜
로라도 스프링스라는  도시에 착륙했었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 이
도시는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회사는 한동안 기체를 방치해두었다
가 저수탱크를 공수하여 방사능을 씻어낸 후 격납고에 집어넣었다.
왜 그런  수고를 들였는가를 생각하자 조니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
다. 사이클로인은 감상이나 예술적 관심과는 전혀 무관한 종족이었
다. 그들은 단순히 지구에서는 해체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이 비
행기를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해체할 수 있는 공장은 사이클로
별 외에는 없었다. 물론 이것은 사용가치가 없어졌으므로 사이클로
별에 다시 가져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방치해두었다가
적의 스파이에게 정보가 누설되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조니는 무인폭격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 이제
최소한 너프의  마크32 전투기는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조니는 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우선 자신에게 낙관적인 가능성을 불
어넣으려 애썼다. 자력접지각은  금속의 분자구조를 완전히 바꿔놓
을 정도로 강력한 자장을 발생시켰다. 그 자장 아래서 한쪽 금속표
면에 있는 분자와, 다른쪽의 금속분자는 일시적으로 화확변화를 일
으켜서 또 다른 하나의 물질처럼 바뀔 수 있었다. 저 무인푝격기는
지구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특수한 금속들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
다. 그 금속의 결합이 분자레벨에서 행해지는 물질상태를 변화시켰
다가 원래상태로  북귀시키는 가역적인  방법이 아닌 비가역적이기
때문에 그것은 단순히 분해한다거나 용접버너로 녹일 수 없을 것이
다. 사이클로인들은  한번혼합시키면 화염으로도, 전기스파크로도,
방사총으로도 분리시킬  수 없는 원소배합  방법을 알아낸 것이다.
어쩌면 강도를 높이기 위해 그러한 금속을 더욱 다층구조로 결합하
여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순간 조니는  등줄기에 서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연금술 분야
에 대해서는 기초지식밖에 없었다. 다른 종족에게는 연금술을 가르
쳐선 안된다는  사이클로의 법률이 생각났다.  하지만 조니는 지금
그 연금술의 비밀을  풀어야만 했다. 하지만 어두운 밤하늘을 날고
있었고, 전문서적이나 계산기도  없었다. 설사 계산기가 있다 해도
그것을 사용하기 위한  수학적인 지식이 부족했다. 어떻게 하면 저
무인기를 파괴할  수 있을까. 그것도  스코틀랜드 연안에 도착하기
전에.
  사이클로인을 처음 보았을 때 그것이 괴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러나 지금 조니가 보고 있는 것이 진짜 괴물이었다. 모든 방어능력
을 갖춘 철벽의 괴물.
  전망스크린에 뭔가 보이는  듯했다. 조니는 시선을 집중했다. 무
인기의 중간부분에 주기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정확
히 이십 초마다  움직이고 있었다. 그제서야 조니는 자신이 무인기
와 한쪽만을 조사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흥분한 너머
지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전체를 조사해보면 치명적인
약점을 찾아낼지도 모를  일이었다. 재빨리 조종판을 프로그램에서
무인기의 반대쪽으로 날아갔다. 무인기가 발진하는 것을 처음 보았
을 때도 이쪽은 보지 못했었다. 게다가 너프도 반대쪽을 날고 있었
다. 조니가 전망스크린을  조종하자 화물칸의 문이 열려 있는 것이
드러났다. 그 문은  너프의 전투기가 앞부분에 내려앉은 탓으로 생
긴 기체의 규칙적인 롤링과  좌우로 흔들리는 것 때문에 문이 열렸
다 닫혔다 했다.
  화물칸의 문이  열려 있다? 조니는  떨리는 손으로 전망스크린을
확대했다. 자물쇠구멍에  부서진 열쇠조각이  꽂혀 있었다. 열려진
문은 기체가 문  쪽으로 기울면 열리고, 반대쪽으로 기울면 중력과
풍압에 의해서 닫혀지고 있었다. 정확히 이십 초에 한 번씩 움직였
다. 조니는 폭스 로버트의 충고를 듣지 않고 아무도 데려오지 않은
자신의 경솔함을  후회했다. 분명히 위협하겠지만  만일 한 사람만
더 있었다면 줄사다리를 타고 저 문 안으로 침투해 들어갈 수 있었
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방법도 지금  상황에서는 무리였다. 한
사람이 이 전투기를 조종하고, 또 한 사람이 저쪽으로 옮겨타면 비
행은 저지시킬 수  있겠지만, 조니 자신을 대신해서 상황을 마무리
지어줄 사람이 없었다.  더구나 그랜캐논을 데려올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그 외에는 조종할 수 있는 사람조차 없었다.
  문은 여전히  주기적으로 여닫히고 있었다.  크기는 어는 정도나
도될까. 조니는  무인폭격기 문의 넓이와  전투기의 크기를 비교했
다. 조종만 잘하면 전투기를 타고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
았다. 상하의 폭은 아슬아슬했지만 좌우의 폭은 넉넉했다. 우선 전
투기를 삼백이 마일로  놓고 무인기와 나란히 날아가면서.... 그리
고 안으로 들어간다? 분명히 이론적으로는 병행비행을 하면서 안으
로 들어가는 것이 가능했다. 게다가 텔레포테이션 모터탑재기로 병
행비행하는 것은 극히 기본적인 전법이었다. 새처럼 날개운동을 하
기 위한 공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모터를 끊어버리면 비행기
는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고 돌맹이처럼 떨어져버릴 것이었다. 비행
기의 수평은 수직 수평 조종판에 의해서가 아니라 조그만 텔레포테
이션 밸런스 모터에  의해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문제였
다. 무인폭격기는 한  번 흔들릴 때마다 상하로 삼십피트나 움직이
고 있었다. 어쨌든  조니는 시도해보기로 결심했다. 털컹거리는 문
을 떼어내는 것이 선결문제였다.
  문이 달려 있는 상태에서는 문이 열려 있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
었다.
  조니의 문의 이음쇠를  정확히 겨냥했다. 전투기를 반전강하해서
발사제어의 구경은 바늘크기,  화염은 단발로 조정했다. 기체를 무
인폭격기 옆에 바싹  붙이고 조준을 끝냈다. 조종판을 계속 누르면
서 바닥에 있는 발사버튼에  한쪽 말을 뻗었다. 구 피트나 십 피트
의 신장을 가진  사이클로인용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바닥의 버튼
을 다루기가 무척  힘들었다. 카조차도 바닥의 버튼 때문에 고생하
고 있었다. 수평배행. 문이 열렸다. 이음새가 보였다. 조니는 발사
버튼을 밟았다. 바늘  끝처럼 가느다란 화염이 이음새에 명중했다.
하지만 이음새는 절단되지 않고 다시 닫혀버렸다.
  던거리 무전으로 너프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냐?"
  "이쪽에는 부조종사가 없습니다, 너프 각사. 안으로 들어가서 진
로를 변경하려면 문을 떼어내야 합니다."
  "그런가, 그러나 회사의 소유뮬이니까 조심하라구, 스니트. 고의
적인 파괴행위는 기화형이야. 알고 있겠지."
  "네. 너프 각하."
  조니는 다시 한 번  문을 겨냥하기 위해서 옆으로 나란히 비행해
갔다. 문을 쏘았다. 이음새가  한 순간 백열했으나 곧 문이 닫혀버
려 보이지 않게 되었다.  문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아직도 이
음새는 달려 있었다. 이번에는 이래쪽 이음새에 겨냥했다. 문이 열
리고 이음새가  조준기의 중심권에  들어왔다. 발사버튼을 밟았다.
섬광이 날아갔다. 그러나 문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 위아래에
붙어 있는 이음새를 교대로 쏘아보면 될지도 모른다.
  몸을 조금  뒤로 누이고 손가락을 굽혔다.  폈다. 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새 한 마리  날고 있지 않았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
세를 가다듬었다. 먼저 위쪽을 겨누었다. 발사와 섬광이 계속 반복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빨리  해도 사십 초에 한 번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 시간이 걸린담. 침착해라. 그 정도로 시간이 없
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발사! 섬광! 조금 기다렸다.
다시 발사!  섬광! 그리고 기다렸다. 이음새는  두 개 모두 빨갛게
달아올라있었지만 잘라지지는 않았다.
  어쩔 수가 없었다. 조니는  좌석에 등을 기댔다. 그때 갑자기 생
각이 떠올랐다. 무인기  바로 위에서 약간 반대쪽으로 전투기를 이
동시켜, 문이 열였을 때 기체와 문 사이로 쏠 수 있도록 겨냥했다.
발사입력은 대구경, 화염 없음, 연속발사로 조정했다. 겨냥한 상태
고 꼼짝 않고 기다렸다. 문이 열리는 순간 조니의 발이 발사버튼을
밟자 섬광이 뻗어나갔다. 문이  활짝 열려졌다. 총을 발사한 채 조
니는 천천히 기체를 문쪽으로 이동시켰다. 무인기는 기체의 롤링에
도 불구하고 문이 열린 채고 있었다. 불어닥친 광풍이 열려진 문을
쾅 하고 뒤쪽으로 몰아붙여 마치 접착제로 붙인 듯 기체에 찰싹 달
라붙었다. 문이  완전히 활짝 열려졌다.  조니는 사격을 중지하고,
이음새를 스크린에 확대해서 살펴보았다. 조금 비틀려져 있을 뿐이
었다. 총격 탓이리라. 그 덕택에 문은 열려 있었으나 닫힐지 알 수
없었다. 바람 때문에 가늘게 진동하고 있었다.
  조니는 스트린을 주사하며 기체의 위치를 수정했다. 그리고 화물
칸 입구의 바로  앞까지 조금씩 기체를 접근시켜갔다. 입구가 위아
래로 흔들려서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조니는 들어
가기 전에 내부의 상황을 살펴보려고 라이트를 켰다. 계기비행만으
로는 만전을 기할 수 없었다. 어두웠던 내부가 불빛으로 환하게 비
춰졌다. 문바로 앞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평평한 바닥이었다. 가
스 캐니스터를 싣기 위해 비워놓은 공간일 것이다. 아아, 캐니스터
가 그 앞에 빽빽히 쌓여 있었다. 전투기가 들어갔을 때의 충격으로
폭발하지 않을까.  조니는 조종판을 통해서  거리와 좌표를 계산했
다. 그렇다, 자기접지각  세트 레버에 올리고 다리를 한껏 뻗는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충격이나  진동이 있으면 즉시 접지각으로 기체
를 고정시킬 수 있었다.
  호흡을 깊게 내쉬었다.  주위를 살펴보고 모든 것이 고정되어 있
는지 확인했다.  몸을 앞으로 구부려도  권총집이 가슴을 압박하지
않도록 했고,  목에 감아놓은 끈은 조금  옆으로 옮겨 갑자기 몸을
숙여도 조종판에 걸려서  목이 죄지 않도록 했다. 갑자기 정지했을
때 머리를 부딪치지 않도록 조종판 위쪽에 부드러운 지도용 케이스
를 올려놓았다.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하고 산소마스크를 고쳐 쓴
다음 문 쪽을  바라보았다. 조종판으로 정확한 위치를 계산해서 화
물칸 입구에 기준을  맞췄다. 계산은 치밀하게 반복되었다. 전진하
는 사이에  입구의 위치는 어느 정도  달라질 것인가. 그는 오른쪽
손가락 네 개를 각각 조종판의 발진이동용 버튼 네 개 위에 올려놓
고 언제든지 누를 수  있도록 준비했다. 동시에 외쪽 손가락 네 개
는 네 개의  정지용 버튼위에 올려놓았다. 무인기의 입구가 조금씩
위로 움직여갔다. 지금이다!
  전투기는 화물칸 입구로 돌진해 들어갔다. 순간 뭔가에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조니는  즉시 왼쪽 손가락을 눌러 전투기를 정지시켰
다. 꽝! 충격음.  기체가 입구의 상단을 스치자 기체의 금속외관이
넓게 벗겨지면서 떨어져갔다.  발밑이 덜컹덜컹 흔들렸다. 즉시 접
지각 레버를 눌렀다. 접지각이 작동되었다. 그 순간 조니의 머리가
지도케이스를 들이받았다. 눈앞에  불꽃이 튀는 듯했고, 곧 의식을
잃었다.

  (7)
  즈즈토는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무인기의 낯설은
기계류들은 그를  당확하게 만들었다. 그에게는  구해주러 올 만한
친구가 없었다. 공장동료인  챠는 행방을 감춰버렸다. 틀림없이 죽
었을 것이다. 살아  있다면 사이클로별로 돌아갈 기회를 그렇게 쉽
게 놓칠 리가 없었다.
  녀석은 전송시각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타르가 그녀석을 살
해 했을 것이다. 나를 구출해줄 녀석은 이제 아무도 없다. 정말 어
쩔 수 없는 상황이다.
  등신 같은 너프는  얼음바다에 빠져죽고 싶지 않으니까 무인폭격
기 앞쪽에 전투기를  접속시켜놓고 있다. 분명히 밑은 얼음바다다.
이 견딜 수 없는 추위로 미뤄보건대 북극해를 날고 있는 것이 틀림
없다. 공기가 얼음보다 차갑게 느껴졌다. 정말 구제불능의 별이다.
너프를 비난할  수도 없었다. 격추당하거나  연료가 떨어져갈 때는
다른 비행기에 연결해서 얹혀가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러니까 너프
의 행위 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었다. 다만 중심을 빗나가서 접속했
으므로 무인기는 옆으로  기운데다가 좌우로 흔들리기까지 하고 있
었다. 그 덕에  속이 뒤틀리고 토할 것만 같았다. 엉망진창이었다.
즈즈토는 분자 금속절단기를 찾으려고 가방 안을 뒤져보았다. 없었
다. 즈즈토는 몹시 낙담했다. 이 특수금속 다층구조의 기체를 어떻
게 해보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절단기가 있으면 최소한 시도는 해볼
수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문을  건드리는 것을 알았다. 문에 어설픈 사격을
가하는 자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죽음을 떠올렸다. 그렇다. 그에
게는 이미 친구 따위는 없었다. 즈즈토는 기체 안쪽으로 크게 뻗어
나와 있는  칸막이 뒤로 서둘러 몸을  숨기고, 벽에 찰싹 달라붙었
다. 살그머니  머리만 내밀고 내다보았다.  일단은 안심이 되었다.
상대가 조준하고 있는 것은 문의 이음새였다. 누군가 문을 쏘아 떨
어뜨리려 하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문을 떼어내려고 하는 것일까.
저 이음새가 떨어져나갈 리는 없지 않은가. 누구일까.
  광산회사의 비행기는  설령 본래 목적 외에  사용되고 있다 해도
어디까지나 광산회사의 비행기였다. 회사의 노동자들은 기본적으로
는 모두 광부였다.  그렇기 때문에 광부는 채굴용 삽이나 조금이라
도 비슷한 주걱만 있으면 그것이 설령 종이조각이라도 파내려고 하
는 법이었다. 그리고  항상 마시는 카방고가 핏속에 있듯이 채굴기
술과 설비는  따라다니기 마련이었다. 윈치,  리프트, 케이블 사다
리, 안전삽, 갈쿠리에  그물.... 그렇다, 저 비행기에는 케이블 사
다리도 안전삽도 클림없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것을 나한테
내려주려고 하지 않는가 그러면 문이 여닫히는 틈에 사다리를 타고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 텐데. 제트식 공중이동기를 내려주기만 해
도 되었다. 그를  구출할 요량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었
다. 그런데 문을 떼어내 입구을 만들려는 이유는 뭘까.
  캐니스터 도둑? 도둑질은 불가능했다 전부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
다. 이 버려진 비행기에 있는 것은 안이나 밖이나 전투 특수강판이
씌워져 있었다. 그러므로  수리하는 데도 엄청난 시간과 경비가 소
모되었다. 타르의 명령으로  이것을 수리하는 데 들어간 시간과 노
력을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치밀어올랐다.  이 비행기에 쓸모있는
것은 아무것도 실려 있지  않았다. 어쨌든 훔쳐갈 수 있는 것은 아
무것도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진로를 바꿔보겠다는 속셈인가. 진
로변경은 열쇠가 없으면 불가능했고, 그한테는 열쇠가 없었다.
  강력한 총격으로 문이 찌그러지면서 더이상은 닫히지 않았다. 입
구가 열리자 케이블 사다리를 내릴 수 있는 공간은 생겼다. 아, 이
렇게 하려고 그랬구나. 즈즈토의 표정이 밝아졌다. 자아, 안전사다
리와 안전로프를 내려보내다오. 그러나 아무것도 내려오지 않았다.
즈즈토가 잠깐 얼굴을  내밀었을 때였다. 눈부신 섬광이 번쩍였다.
잠시 후 비행기 안에는 뭉개뭉개 피어오르는 흙먼지와 총격의 여파
로 떨어진 녹먼지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즈즈토는 갑자기 비행기
모터소리에 휩쓸렸다. 칸막이  뒤쪽으로 숨을 여유도 없었다. 그의
놀라 치켜뜬 눈동자를 가득 메우며 입구에서 비행기가 날아들었다.
바닥이 흔들리고, 금속판이 삐걱거리면서 비명을 질러댔다. 뛰어든
비행가는 입구바로  안쪽의 화물적재용  공간에 무시무시한 충격과
함께 접지했다.
  즈즈토는 폭발을 우려해서  황급히 뒤쪽으로 대피했다. 비행기의
모터는 돌연  정지했고, 분자융합에 의해  생기는 날카롭고 기묘한
소리가 기내에 울려퍼졌다. 그 비행기는 즈즈토가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의 놀라운 타이밍과 정확함으로 접지각을 작동시켰다. 그
렇지 않아도 기체의 흔들림으로 속이 거북해져 있던 즈즈토는 충격
으로 토할 뻔했으나 간신히 참았다. 기내로 들어온 그 전투기는 아
직 라이트를 켜고 있었다. 그 눈부신 빛 속에서 즈즈토는 조종사의
모습을 보려고 눈을 크게  떴으나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벨트에
서 총을 빼들고 비틀거리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방탄유리가 끼워진
문. 조종사가  천천히 일어났다. 키가  작았다. 게다가 마스크까지
쓰로 있었다. 낯설은 깃을 단 모피코트....
  "앗, 토르네프인이다!"
  즈즈토는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즈즈토는  총을 들어 정신없이
쏘아댔다. 방탄유리를  꿰뚫을 수는 없었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쏘면서 뒤로 물러나려고
하자 무인폭격기가 기우뚱했다.  즈즈토는 가스 캐니스터에 부딪치
면서 케이블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그때 뭔가를 붙잡으려고 양손
을 앞으로  내미는 순간 총이  바닥에 떨어져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총은 열려 있는  입구로 미끄러져 나가버렸다. 공중으로 떨어진 것
이었다. 즈즈토는 비틀거리면서  조금 떨어진 칸막이 뒤로 몸을 숨
겼다. 그의 인생은 이렇게 끝장나려 하고 있었다.

  (8)
  조니는 비행기 밖으로  나왔다. 충돌 때의 충격으로 한순간 정신
을 잃었으나  극도의 긴장으로 인한 피로와  추위 탓이라고 생각했
다. 그정도의  충격으로 의식을 잃을 리가  없었다. 의식을 되찾은
조니의 왼쪽 무릎에는  조종판에 부딪친 듯한 타박상이 있었고, 외
손의 손톱에서도 조종버튼에 부딛쳐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머리
도 깨질 듯 아팠다.  예상했던 것보다 충돌에 의한 충격이 심했다.
조종판의 자기접지각은 조작중으로 되어 있었다. 눈을 똑바로 떴으
나 잘 보이지 않았다. 그는 공기마스크를 벗었다. 안면 플레이트의
모서리에 찢긴  이마에서 난 피가 양눈을  덮으며 흘러내리고 있었
다. 뒤로  손을 뻗어서 방수외투의 소매를  집어 피를 멈추게 하고
안면 플레이트를 닦아냈다.
  기체는 기울어진 채  멎어 있었다. 앞쪽은 무인폭격기 안으로 들
어와서 풍압을  받지 않았지만, 꼬리부분이  밖으로 뻗쳐나가 있어
풍압을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기체가 입구에 걸쳐져 있는 형국이
었다. 기내를  둘러보았다. 주모터와 좌우의 밸런스  모터 두 개는
이상이 없었다. 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을 때 무슨 일인가 있었는데
확실치 않았다. 충돌했을 때의 일이었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렇다. 분명히 폭발하는 소리였다. 조종석 창문에 서려 있는 수증기
를 닦아내려고 유리를  만졌을 때, 조니는 뜨겁게 달아오른 창문에
서 얼른 손을 뗐다.  역시 그렇다. 무인폭격기 안에서 뭔가가 폭발
했던 것이다. 이 괴물 역시 내부에 부서지고 폭발하는 것이 있다는
증거였다.
  전투기의 라이트 불빛  속에 가스 캐니스터가 똑똑히 보였다. 이
상은 없는 것 같았다. 캐니스터에도 장갑을 씌워 놓았을까. 캐니스
터를 고정하는 케이블도  모두 이상이 없었다. 조종석 창을 통해서
본 무인 폭격기의 내부 모습은 그를 아연하게 만들었다. 와부와 마
찬가지로 내부도 금속으로  씌워져 있었다. 보기만 해도 매우 어려
운 작업이 될 것  같았다. 거대한 철골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었다.
바닥은 적재화물전용으로 보행통로의  양쪽은 홈이 패였고, 열십자
로 기둥이 받쳐져  있었다. 꼬리부분에는 벌집처럼 뚫어진 구멍 안
에 물체가 채워져  있었다. 가스 캐니스터 수납용 예비공간으로 캐
니스터는 수용한도의 3분의  1 정도밖에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러
나 이 정도만으로도 어디를 표적으로 삼든 전멸시키기에 충분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조니는 손목시계를 바라보았으나 부
서진 있었다. 전투기 내에는 기계가 없었다. 기계는 전부 조종판에
끼워져 있어서 제대로  시계구실를 하는 것은 없었다. 계기판에 있
는 것은 경과시간 표시용뿐이었다. 이제 무선사용 금지가 해제되는
시간조차 알 수  없어져버렸다. 태양의 위치로 계산한다 해도 스코
틀랜드 영역으로 들어와서 두 세 시간 이내에 있다는 것 외에는 정
확한 위치를  알 수 없을 것이었다.  조니는 자신이 지금 부질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 제정신이 돌아온 것이 아
닌지도 모른다. 조니는 산소마스크를 쓰고 제대로 작동되는지 확인
했다. 충격으로 가스  캐니스터가 파열됐을 가능성이 있었다. 다행
히 이상은 없었다.  타르에게서 빼앗은 분사총을 허리에 꽂은 조니
는 비행기 밖으로 나왔다. 천둥 같은 모터의 괴음이 귀를 멍멍하게
만들었다. 북극해의 거센  바람이 소용돌이쳐 들어왔다. 밖은 아직
도 콜타르를 쏟아놓은 것같이 새카만 어둠이 깔려 있었다.
  조니는 먼저 가스  캐니스터를 조사했다. 부서지지는 않았다. 외
관으로만 봐도 웬만해서는 부서질 것 같지 않았다. 그 표면에는 오
랜 세월을 말해주듯이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다. 제조일자가 거
의 지워져 있었다.  사이클로인의 날짜였다. 여기 있는 캐니스터는
처음 지구를 공격할 때  사용된 것들이었다. 아니, 다른 날짜의 것
들도 있었다. 다시 이십오 년 후에 재충전된 것이었다. 캐니스터가
비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은 사라졌다. 모두 가득 차 있었다.
  다음으로 조니는 조종장치를 찾았다. 그것은 무인기 앞쪽에 있었
다. 좋아, 어디 한번   해보자. 진로지령을 변경할 수 있을지도 모
른다. 그것이  안된다면 단순하게 코드를  뽑아버리는 방법도 있었
다. 그는 금속바닥을 걸어서  앞쪽으로 갔다. 타고 온 전투기의 라
이트 불빛으로 무인기의 맨 앞부분도 상당히 밝았다.
  그곳에는 항로설정 장치가  있었고, '사전 항로설정'이라고 씌어
져 있었다. 사전에  항로를 설정한 프로그램 디스크를 넣는 것이었
다. 그것은 암벽을 부수는  장치처럼 묵직하고 컸다. 그는 다시 한
번 전체적으로 살펴보았다.  옆으로 디스크를 넣게 되어 있는 평법
한 기종이었다. 그러나 모든 장치들은 특수강판으로 만들어져 있었
다. 열쇠구멍은 있었으나 열쇠는 없었다. 케이블은? 역시 케이블도
특수강판으로 씌워져 있었다.  항로설정 장치와의 접속부분도 마찬
가지였다. 모두 먼지로 덮여 있었다. 이것은 엄청나게 오래된 것들
이다. 그러나 항로설정  장치의 주위만은 깨끗했다. 항로설정을 입
력시킬 때 청소한 흔적이었다.
  조니는 좀처럼  안정되지 않았다. 무인기를  멈추는 일에 정신이
쏠려 있었지만 등 뒤에서 무언가 좋지 않은 느낌이 전해졌다. 그는
전투기 쪽을  돌아다보았다. 비행기 안에  뻗쳐나와 있는 늑골재와
늑골재 사이는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육 피트도 안되는 그  어둠 속에서 즈즈토는 암담한 절망에 빠져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았다. 토르네프인에
관한 기억이 하나둘씩  머리에 떠올랐다. 사이클로별의 공과대학을
졸업한 뒤 즈즈토는 광산회사가 있는 아르키니아브스별에 파견되었
었다. 이 우주에 있는 별자리였다. 그곳의 항성은 쌍둥이별로 겨울
에는 이별에서도 볼 수  있었다. 그 쌍둥이별 중 작은 별은 대단히
무거운 별로, 반입방 인치가  이 별의 일 톤에 해당되었다. 그곳의
광산 하나가  토르네프인의 습격으로 궤멸한  적이 있었다. 놈들은
시간여행을 할 수 있어서 그것을 이용하여 어디든지 쳐들어가 해적
노릇을 자행했다. 맞아, 그때  회사는 놈들의 시체 몇 구를 분석한
적이 있었다.  그때 결과가 어떻게 나왔더라.  어디에 약점이 있었
지. 무섭다는 것밖에는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분명히 이빨에는 맹
독이 있었다. 몸의 조직은 강철 같았다. 사이클로인의 공격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분사총은 장난감이나 다름없었다. 아니다, 지금 생
각해내야 하는 것은  놈들의 약점이다. 약점이 뭐였더라? 아, 그것
을 생각해내지 못하면  이것으로 나는 끝장이다. 이것으로.... 엇,
놈이 눈앞을 지나간다.  이 정도의 어둠이라면 쉽게 발견되지는 않
을 것이다.
  즈즈토는 기억을  되살렸다. 약점은  시력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안면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적외선밖에는 보이지 않았으므로 필터
가 들어간 마스크를  쓰로 있었다. 그것보다 짧은 파장빛이라면 놈
들은 전혀 볼 수가 없었다. 놈들을 죽일 수 있는 것은 자외선 병기
였다. 또한 추위에는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나타냈었다. 체온은 이
백 도였던가 삼백  도였던가. 체온이 얼마인가는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약점은 시력이었다. 마스크가 없으면 그들은 장님이나 마찬
가지였다.
  즈즈토는 세밀하게 전술을  세웠다. 놈이 틈을 보이는 순간 잽싸
게 달려들어  마스크를 벗겨내고 양쪽  눈을 손톱으로 후벼버린다.
즈즈토는 부츠에서 손에 익숙한 커다란 렌치를 끄집어냈다. 그것을
재빨리 정확하게 던지는  것은 그의 특기였다. 몸을 노리지 마스트
옆을 겨냥하면  된다. 그리고는 안주머니에서  기다란 자루가 붙은
조그만 둥근 거울을 꺼내 늑골재의 가장자리를 따라서 천천히 앞으
로 내밀었다.  제발 놈이 눈치채지  못했으면.... 즈즈토는 거울로
그 모습을 따라갔다.
  조니는 좌우로 흔들리는  무인기 안에서 균형을 잡으며 조심스럽
게 걸어들어갔다. 바닥판은  보행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설계되
어 있었고, 더구나  양쪽에는 홈이 이어져 있었으므로 무인기의 맨
뒤까지 간신히 도달했다. 상당한 거리였다. 그는 벌집 같은 캐니스
터 수납수를 바라보았다.  여분으로 실어놓은 것들이었다. 그는 짐
칸으로 기어들어갔다. 게이블이든 뭐든 빠뜨린 것이 있을지도 모른
다. 짐칸은 조니가 가까이로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사이클
로인은 드나들기 어려웠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캐니
스터만을 집어넣기 위한 곳임을 깨달았다. 단순한 수납선반이었다.
짐칸은 기체 중앙쪽으로 넓게 펼쳐져 있었다. 그 안쪽에는 단지 칸
막이벽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을 뿐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결
국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고, 기체의 앞부분으로 걷다가 전투기를
지나치면서 멈춰 섰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조니는 끊임없이 방법을 찾고 있었다. 잡아
빼서 어떻게  해볼 만한 것도, 분사총으로  파괴할 만한 것도 없었
다. 타고온 전투기를 폭발시킨다 해도 변화가 일어날 것 같지 않았
다.
  게다가 진로변경도 할 수 없었다. 이 무인기는 조종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게 아니라 다만 사전 항로설정에 따라서만 날도록 설계되
어 있었다. 타르가  보여준 원격 조정장치조차도 발진한 뒤에는 아
무런 효력이  없었다. 마치 술에 곤드레가  된 덩치 큰 사나이처럼
좌우로 기체를 흔들어대면서 죽음의 선물을 압에 물고 날아갈 뿐이
었다.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유유히 비행하고 있었다.
  다시 눈이 흐려왔다.  짐칸으로 들어가려고 몸을 구부렸을 때 산
소마스크를 부딪쳐서 다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조니는 마스크를
양손으로 누르고, 문에서  들어오는 바람을 피하기 위해 몸을 옆으
로 돌렸다. 그리고 피를  닦으려고 웃옷자락에 손을 뻗었다. 그 순
간 마스크에 강한  충격이 오면서 마스크가 손에서 날아갔다. 조니
는 삼십 피트  앞쪽에서 뭔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맹수사냥으로
단련된 반사신경인 재빨리 그 움직임을 포착해냈던 것이다. 조니는
한쪽 무릎을 끊어 몸을 낮추는 동시에 분사총을 쏘았다. 눈 깜짝할
동안의 재빠른 솜씨였다.  조니는 자기 쪽으로 다가오는 커다란 덩
어리를 향해 분사총을  계속 쏘아댔다. 총격으로 그것이 뒤로 밀려
났다. 그래도  조니는 계속 쏘았다. 정체불명의  그 덩어리는 뒤로
물러나서 항로설정 장치  근처에 있는 늑골재 그늘에 몸을 숨겼다.
이 무인폭격기 안에는 누군가가 혹은 무엇인가가 있었다. 항로설정
장치로 갔다가 다시 돌아왔으므로 두 차례나 그놈을 지나친 셈이었
다.

  (9)
  좀더 일찍 자신의 직감을 믿었어야 했다. 계속해서 등 뒤로 느껴
지던 불길한 예감에  경계를 했어야만 했다.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
으면 후각을 전혀 사용할 수 없었다. 산소마스크를 벗은 후에야 비
로소 알  수가 있었다. 얼어붙을 것  같은 한기와 녹먼지 속에서도
조니는 사이클로인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는 총을 움켜쥔 채
시선을 고정시키고, 몸을 일으켜 전투기 뒤로 몸을 숨겼다. 거리를
두기 위해서였다. 사이클로인과 맞서서 격투하게 된다면 승산이 없
었다. 토르가 올 때까지 타르의 팔이 미치는 범위 안으로는 접근하
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놈들의 우악스러운 완력에 걸리면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놈은 대
체 누굴까. 내가 알고 있는 녀석일까.
  즈즈토는 벽에 몸을 바싹 붙이고 구역질이 나오는 것을 필사적으
로 참아내고  있었다. 토하면 호흡마스크가  엉망이 되어버릴 것이
다. 그는 조금 전에 조니의 분사총에 맞아 뒤쪽으로 날아와서 상처
를 입고 있었다. 이, 삼 피트만 더 접근했다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구토를 느낀  것은 혐오감과 경멸감 때문이었다. 그것은 본
능적인 반응이었다. 자신이  싫어질 정도로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상대가 고작 동물이었다니.... 타르가 기르고 있던 그 동물이었다.
화가 치밀어 올라 또다시 구토가 느껴졌다. 자신도 모르게 숨어 있
는 곳에서 뛰쳐나갈 뻔했다.  그 순간 분사총이 불을 토했다. 동물
은 아직도 관통이 아니라 분사로 조절한 상태로 쏘고 있었다. 동물
은 역시 동물이군. 저런 멍청한 동물이 자신에게 공포를 겨누고 있
다고 생각하자 즈즈토는  견딜 수가 없었다. 트랙터에 장치한 리모
트 컨트롤로 저녀석을 죽일 뻔한 적이 있었다. 그때 분사총으로 끝
장냈어야만 했다. 그 불속에서라면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기껏해
야 동물 한  마리 아닌가! 짤뚝하고, 푸숙푸숙하고, 괄태충처럼 허
여멀건한 멍청이 동물이  나를 공포로 떨게 만들다니. 즈즈토는 분
노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구역질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분노가 가라앉으며 하나의 의문이 떠올랐다. 즈즈토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을 알고 싶었다. 그것을 알기까지는 동물을 살려두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내가 현재 이런 상황에 빠진 것은 타르의 흉계일
지도 모른다. 그놈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테니까.
  즈즈토는 화를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너를 이곳에 보낸 놈이 타르냐?"
  조니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찾았다.  마스크를 쓰로 있어서
누군지 확실히 알  수가 없었다. 마스크 양쪽에는 소형 음성증폭기
가 달려 있어서 낮고  코막힌 목소리로 들렸다. 잠시 후 조니는 다
시 물어보기로 작정했다. 그들은 오만불손한 인종이 아닌가.
  "너는 누구냐?"
  "트랙터를 그렇게  친절하게 기르쳐주었는데도 나를 모르겠느냐?
바보 같은 녀석이군. 자아, 대답해봐라. 너를 보내 것이 타르냐?"
  즈즈토였다. 타르가 틈만 나면 욕을 하던 그놈이었다. 조니는 죽
음 직전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때의 울화가 더이상 참지 못하고
말이되어 튀어나왔다.
  "나는 이 기계를 날려보내려고 왔다."
  다른 사이클로인이라면 배를 잡고 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즈즈토
는 달랐다.
  "그건 처음부터 날고 있었다.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내 질문
에 대답해라.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나와서 죽여버리겠다고?
분사총은 이미 관통으로 해놓았다. 언제든지 끝장을 내주겠다."
  조니는 슬금슬금 전투기  뒤쪽으로 돌아갔다. 전투기로 올라가서
문을 열고, 방사능 총탄을 넣은 공격형 라이플을 집어들었다. 안전
장치을 풀어 언제든지  발사할 수 있게 준비하였다. 분사총을 벨트
에 꽂고, 다시 처음의 위치로 되돌아왔다. 즈즈토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조니는 즈즈토가 다시 한 번 입을 열면 그 근처에 대고 라
이플를 쏠  생각으로 충분한 각도를 잡기  위해 조심스럽게 움직였
다. 그러나  곧 생각을 바꾸었다. 즈즈토는  본부에서 가장 우수한
기술자고 수송부의 주임이었다. 이 무인기에 대해서는 대른 누구보
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어쩌다가 이런 곳에서 우물거리게 되었지?"
  "타르 때문이다. 그놈이...."
  거의 비명에 가까운 욕설이 사이클로어로 몇 분 동안이나 계속되
었다. 조니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즈즈토의 얘기가 마지막에 투덜
거리는 불평으로 변했을 때 말했다.
  "그러니까 이  무인폭격기에서 내리고  싶다는 얘긴가? 착륙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내가 조종해서 당신을 내려주겠다."
  또다시 외설스러운 욕설이 퍼부어졌다. 그 기세에 조니는 압도당
할 뻔했다.
  "이 비행기를 착륙시키기는 커녕 진로를 바꿀 방법도 없다구."
  마지막으로 그렇게 말하고는  즈즈토는 한참 동안 사이를 두었다
가. 마지막 희망인 듯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혹시 타르에게서 항로설정 장치의 열쇠를 받아오지 않았나?"
  "아니, 폭파해서 열 수는 없는가?"
  "안돼, 도저히 할 수 없어."
  즈즈토는 그것만을 말했다. 무척 낙담한 것 같았다.
  "케이블을 끊으면?"
  "이녀석이 추락할  뿐이지. 어쨌든  불가능하다구. 뭐니뭐니해도
다중분자층 강판으로 싸여 있으니까 정말로 열쇠가 없는 거야?"
  그것은 거의  신음소리에 가까웠다. 그는  갑자기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 등신아, 왜 여기  오기 전에 그놈한테서 열쇠를 받아오지 못
했어."
  "그 녀석도 바쁘다구. 그보다는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뭐든
말해주게. 이 무인폭격기의 모터만 끊어버리면 모두 끝장이니가 말
이야."
  "그런 방법이 있다면 벌서 해치웠지."
  즈즈토는 기체의 흔들림으로  다시 거북해지기 시작했다. 조니는
기체의 벽면까지 뒤로 물러섰다. 즈즈토가 있는 어둠 속을 향해 쏘
려면 반대면이나  경사진 면을 맞춰 튕겨져나온  총알에 맞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늑골재가  너무 크게 튀어나와서 한껏 뒤로 물러나
도 충분한 각도를  잡을 수가 없었다. 늑골재들은 구조상의 필요에
서 가장자리가 뾰족했는데 바깥쪽을 향하고 있었다.
  결국 즈즈토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조니는 전투기 쪽으
로 돌아갔다. 부조종사용 산소마스크를 가져오기 위해서였다. 북극
해의 매서운 바람이 얼굴을 계속 강타하고 있었다. 조금 전에 손에
서 떨어져나간  마스크를 바라보았다. 즈즈토가  렌치를 던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렌치는 아직도  부서진 마스크의 측면에
박혀 있었다.
  만일 저것이 머리에  명중했더라면.... 잠깐, 렌치라.... 렌치로
뭔가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조니는 렌치를 집어들었다. 사이클로
인이 많이 가지고 다니는 것으로 납처럼 무거웠다. 직경 십이 인치
싸리인 너트 정도만  맞았지만 충분히 무기가 되었다. 그가 렌치를
집어들고 일어나려는 순간,  즈즈토가 덤벼들려고 했다. 조니는 재
빨리 발포했다.  몇 발을 계속 쏘아댔다.  통로에 연기가 피어올랐
다. 즈즈토는  휙하니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탄환은 맞지 않았
다. 만일  맞았다면 탄환의 방사능으로  폭발하면서 한순간 연녹색
섬광이 번쩍였을 것이다. 조니는 그사이에 전투기로 돌아가서 산소
마스크를 집어들고, 밸브를 확인한 수 얼굴에 착용했다.
  즈즈토는 바닥을 기어다니면서 거울을 찾았다. 거울은 바닥 틈새
에 들어가 있었다.  잠깐, 바닥판이 헐거워져 있잖아? 즈즈토는 우
선 거울로 동물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는 자신의 손톱과 항상 가지
고 다니는  작은 금속자를 이용해서 오십  파운드나 되는 바닥판을
벗겨내고 있었다. 좀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그것은 매우 유용한 무
기가 될 것이었다. 조니와 즈즈토의 팽팽한 긴장 속을 뚫고 죽음의
무인폭격기는 굉음을 울리면서 스코틀랜드를 향해 날고 있었다.

  (10)
  조니는 손으로  랜치의 무게를  가늠해보았다. 그렇다. 무인기를
발진시키기 위해 조종작업을 할 때는 반드시 정비사가 어딘가로 들
어가야 한다  다시 발진시키려면 보급해야 되는  것이 반드시 있을
테니까. 항로지정 장치에는 열쇠와 특수강판이 설치되어 있을 것이
다. 그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것은 지령부분에 지나지 않을 것이
다. 그곳에  열쇠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곳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차츰 생각하는 것조차 귀찮아졌다. 지독한 추위가 더
더욱 맹위를 떨쳤다. 입고 있는 먼 옛날의 공군비행복은 전기로 가
온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건전기가 없었으며 천 년 동안 방치되어져
형편없이 낡아 있었다.  이마의 상처에서도 계속 피가 흘러내렸고,
자꾸만 흐려지는 아면  플레이트가 시계를 더욱 나쁘게 했다. 지금
기온은 도대체 몇도이며 또 지금 날고 있는 곳은 어디쯤일까? 주동
력 상승장치가 얼기 시작하고 있다니. 대체 이 렌치로.... 그 순간
비행기 앞쪽으로 움직이는 그림자가 얼핏 눈에 보였다. 위협사격을
했다.
  문제는 두  가지, 아니 세 가지였다.  즈즈토, 너프가 타고 있는
마크32, 그리고 무인폭격기를 정지시키는 것이었다. 우선 즈즈토를
어떻게든 처리해야만 했다. 그러나 특수강판으로 씌워져 있는 기내
에서 총탄을  발사하는 것은 자신에게도  위험한 일이었다. 벽면에
부딛쳐 튕겨나온 유탄이 가릴 곳 없이 함부로 날아다니기 때문이었
다. 지금까지도 두 차례나  그런 일이 있었다. 한번은 탄환이 조니
의 귓가를 스쳐갔고, 또  한 번은 전투기에 맞고 튕겨나왔다. 조니
는 가지고 온 수뢰에  시한 장치를 붙여서 던지고, 그 사이에 전투
기 안에 들어가서  폭풍을 피하는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자
기접지각에도 한계가 있었다. 자칫 잘못되는 날에는 전투기 자체가
피폭을 당해서 날 수 없는 산태에 빠져버릴 수도 있었다. 수류탄도
괜찮겠지만 찾아낸  수류탄은 모두 불발탄으로  쓸 수조차 없었다.
연료나 탄약의 카트리지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었다. 그것이라면 많
이 가지고 있었다.  카트리지를 던져놓고 그것을 총으로 쏴서 폭발
시키는 방법이었다. 조니는  반드시 폭발한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
러나 카트리지 한 개로는 즈즈토가 죽지 않을 수도 있었다. 사이클
로인은 상당히  억센 종족이었다. 언젠가  즈즈토가 타르를 죽도록
두들겨팼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분명히 즈즈토는 타르를
증오하고 있었다. 그때  타르는 조금만 더 맞았으면 죽었을지도 모
른다. 즈즈토가 숨어  있는 근처에 경솔하게 접근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설사  공격형 라이플로  위협한다해도 위험했다. 늑골재
사이의 저 어둠이 어느 정도나 이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가장 중요
한 것은 어떤  늑골재 사이에 숨어 있는지도 모론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즈즈토가 무기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너프의 문제는 일단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젠
장, 그건 그렇고, 왜 이렇게 춥지. 어쨌든 한 번에 한 가지씩 해결
해야 했다. 즈즈토도 너프도  그 다음 문제였다. 이 무인기를 멈추
게 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 마스크 유리에 묻은 피와 수
증기 때문에 조니는 수리공용의 조그만 거울이 감시하고 있다는 것
을 때닫지 못했다. 그는 단지 무인기를 멈추게 하는 방법에만 온신
경을 기울이고 있었다. 분자레벨올 절단,  재융합하는 기루를 사용
할 수 없을 때는  금속나이프라고 부르는 공구로 이 특수강판을 절
단할 수 없다는 것은 확실했다. 즈즈토도 전에 이 특수강판들은 서
로 다른 분자구조로  이루어진 금속층이 결합한 다중 분자강판으로
만들어져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딘가에 너트를 사용한 부분이
있을 것이었다.
  또다시 힐끗 움직이는  그림자를 보고 총을 발새했다. 탄환은 세
차례나 벽을  튕기며 요란한 소리를  내더니 반입구로 빠져나갔다.
어쩌면 이 바닥판의  어딘가에.... 조니는 엉겁결에 웃음을 터뜨리
고 말았다. 전투기 바로  앞쪽, 전조등 불빛이 가려진 접지각 사이
의 그림자 속에 너트를 박은 바닥판이 있었던 것이다. 조니는 렌치
의 간격을 좁게 하고,  접지각 사이로 몸을 구부렸다. 간격을 정밀
조종해서 정확하게 맞추었다. 너트는 전부 여덟 개였다. 어느 것이
나 간단히 빠졌다. 최근에  빼낸 것이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빼면
너트들을 접지각의 위쪽에  패여 있는 홈에 넣어두었다. 너트는 무
거워서 기체가 롤링해도 움직이지 않았다. 바닥판을 접지각 앞에서
그 반대 방향으로  뻗어 있었다. 조니는 바닥판을 랜치의 모서리로
두들겨서 헐겁게 한  다음 렌치 끝으로 들어올렸다. 바닥판이 떨어
졌을 때 마침 무인폭격기가 기울어졌기 때문에 바닥판은 조니의 손
에서 미끄러져 입구 밖으로  나가 바람과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조니는 신경쓰지 않았다.
  라이트를 꺼내 떼어낸 바닥판 자리를 비추었다. 주구동모터의 바
로 뒤였다. 모터의 크리는  실로 엄청났다. 바닥 밑에는 각종 모터
를 수용하는 부분과, 가스 캐니스터가 있었다. 이 무인폭격기는 도
대체 얼마나  많은 살인가스를 적재하고  있는 것인가. 캐니스터는
어둠 속에서 고기비늘처럼  차가운 빛을 내고 있었다. 그러나 모터
문제를 매듭지어야 했다.  조니는 이런 기종의 모터에 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이처럼  거대한 것은 처음이었지만 기본 원리는 모두
같았다. 공간전환용 조작실이 몇  개 있었다. 그 각각의 돌출된 점
마다 하나의 좌표를 맡고 있었다. 그 점을 전부 원점으로 되돌려놓
으면 되었다.
  외장부분 어딘가에 조정수리용으로  떼어낼 수 있는 금속판이 있
을 것이엇다. 조니는  기체 앞쪽으로 시선을 보내 즈즈토의 동전을
확인했다. 몸을 밀어넣고, 모터의 외강판에 발을 짚은 채 라이트로
주위를 비췄다. 그  위치에서는 위층의 안쪽까지 들여다볼 수 없었
으므로, 조니는 모터를 겉부분과 바닥 위에 시선을 보냈다. 더이상
계속하기 전에 즈즈토를  처치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는 그렇게
도 생각했다. 외장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몸을 완전히 밑으로 집어
넣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즈즈토를 헤추우려다 역습을 당해
오히려 자신이  당할 수도 있었다. 조니는  지금 자신이 하는 일에
지구에 남아 있는 전인류의 생명이 걸려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용
기 따위는 상관없이,  즈즈토와 자신의 생명을 바꿔야 하는 모험을
할 필요가 없었다. 상대는 굴 속에 숨어 있는 곰이었다. 섣불리 건
드릴 필요가 없었다. 결심을 굳힌 조니는 몸을 밀어넣었다.
  있다!
  거대한 조정용 금속판이 십이  인치의 너트 네 개로 고정되어 있
었다. 그러나 손이 닿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 사이클로인이라면 몸
도 크고, 팔도 기니까  오히려 이런 것이 작업하기 쉽겠지만. 조니
는 발사했다. 그리고 재빨리  몸을 숙여 렌치를 너트에 걸었다. 젠
장, 굉장히 뻑뻑하군.  이 정도의 랜치도 한손으로는 무리로군. 사
이클로 놈들, 힘 하나는 무척 세구나. 다시 한번 바닥 위를 살펴보
았다. 너트를 풀기 위해서는 라이플을 어딘가에 놓아야 했다. 미끄
러져서 입구밖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적다한 장애물이 있는 곳에 놓
았다. 권총은  가지고 있었다. 신중하게  몸을 구부리고, 양손으로
렌치를 움켜쥔  채로 발을 힘껏 딛고,  너트를 돌리기 위해 온힘을
다했다.
  드디어 조금씩 돌아가기 시작했다.
  네 개의 너트를 한 개씩 뽑아서는 안된다. 그렇게 하면 마지막에
빼내는 너트가 뻑뻑해져서 오리혀 힘이 든다. 드래서 우선 네 개의
모두를 절반씩만 돌려놓기로 했다. 두 개째 풀어냈을 때였다.
  "너, 너,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
  조니가 세 개째에 손대려고 할 때 즈즈토가 악을 쓰듯이 말했다.
조니는 얼굴을 내밀었다. 즈즈토는 아직 늑골재 뒤에 숨어 있었다.
  "이 쥐뿔도 모르는 놈아. 이 상황에서 모터를 건드려서 어쩌겠다
는 거냐? 이것을 추락시키고 싶은 거냐."
  고맙다, 즈즈토. 조니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무인기는 이, 삼 일쯤 내버려두면 제스스로 알아서 어딘가에
착륙할 거야. 그것을 기다리는 거야."
  즈즈토가 악을 썼다.
  즈즈토는 두려움에 빠져  있었다. 동물이 쓴 탄환이 보통 것과는
달랐다. 조금  전에 호흡가스 밸브 근처에서  작은 불꽃이 튀었다.
그 전의 총격이 있었을  때도 즈즈토의 주위에 조그만 불꽃들이 번
쩍였었다. 처음엔  먼지라고 생각했으나 그  다음에는 자신의 눈에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호흡가스통 밸브
에서 번쩍인 불꽃은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이 근처에 방사능이 있
는 게 아닐까? 아니면  저 동물이 방사능 먼지를 뿌리고 있는 것일
까? 설마  저 총이나 탄환에 방사능을  내뿜는 장치를 해놓은 것은
아니겠지. 그렇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쪽에서 먼저 움직이
는 것이 좋겠다. 즈즈토는  그렇게 판단했다. 자아, 또 그렇다. 다
시 내뱉는 숨에 조그만 불꽃이 튀었다.
  "마스크 같은 것은 왜 하는 거야. 살인가스는 무인기까지는 올라
오지 못한다구. 얌전하게 앉아서 착륙 때를 기다리라구."
  지저분한 저능동물 같으니라구. 모두 타르 녀석의 잘못이다.
  "지상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고?"
  그 말에 즈즈토는  한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저  등신은 자신을 위해서 뭔가  하는 것과 남한테 일어나는
일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지.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그 모터에는 손대지 말아라."
  즈즈토는 소리쳤다.
  사이클로인은 신경이  곤두설 대로 곤두서  있었다. 그 기세라면
당장이라도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조니는 라이플을 겨누었으나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우선은
너머지 너트들을 모두  풀어내는 것이 급선무일 것 같았다. 조니는
공격형 라이플을  옆에 내려놓고 몸을  구부렸다. 이번에는 첫번째
너트를 모두  풀었다. 풀어낸 너트를  집어들고 즈즈토의 움직임을
살피려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갑자기 어둠을 가르며 거대한 바닥
판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회전하면서 날아와 접지각의 기둥에 부딪
쳤다. 튕겨져 나오며  그대로 조니의 뒷머리를 강타하였다. 조니의
손에서 떨구어진 공격형 라이플은 입구 밖으로 미끄러져 어둠 속으
로 사라져버렸다. 흐려져가는 의식 속에서 조니는 필사적으로 권총
을 뽑으려고 했으나 다음 순간 모든 것은 까마득한 어둠 속으로 잠
겨들고 말았다.

  제 2 권
  하늘과 녹색사이

  제 14 부
  당분간이다, 조니는 낮게 중얼거렸다.

  (1)
  드디어 본부구역이 함락되었다.
  대공포공격을 받으면서도  과감하게 지상공격을 감행한 그랜캐논
이 마침내 공기냉각 장치를 폭발해서 호흡가스 펌프에 구멍을 뚫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지하구역 구석구석까지 지구의 공기가 흘러들
어갔다. 공격을 마친 그랜캐논은 무사히 귀환했다. 건물 뒤쪽에 숨
어 있던 사이클로인 대공포들이 일제히 사격을 가해서 계기판과 무
전장치가 파괴되었지만 다행히 주동력장치에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아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스코틀랜드인들은 모두 환성을 올
리면서 그랜캐논을 맞이했다.  그가 비행기에서 내리자 얼싸안으며
등을 두들겨주었다. 늑골이 부러진 그랜캐논은 호탕하게 웃어 답례
를 하면서도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목사가  나서서 억지로 말려야
할 지경이었다.
  남아 있던 패잔병들도  공격형 라이플에 의해서 완전히 소탕되었
다. 살아남은 사이클로인들은 양손을 높이 들고 지하구역에서 올라
왔다. 호흡마스크를 쓴 채 비틀거리면서 걸어나왔다. 안에 있던 사
이클로인들은 대부분  회사의 교육기관을  졸업한 관리들로서 여성
조수들과 함께  근무중이었다. 호흡마스크의  공급부족으로 전투에
직접 참전하는  전투부대원들이 우선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다른
사이클로인들은 거의 질식사해버렸다.  삼십 명 가량의 고위관리들
만은 전용  마스크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
다.
  사이클로인 사망자 수는  총격전으로 수백명, 그리고 공기유입으
로 질식사한 자가  그것을 상회하였다. 결국 본부구역 전체에 사이
클로인수는 칠백칠십육  명이었다는 것이  판명됐다. 공기배출구를
통해 탈출을 기도한  카는 생포되었다. 분수처럼 솟았던 물은 수압
조절 밸브가 발견되어서  잠겨졌다. 몇 사라은 뚜껑을 조금 열어놓
은 호흡가스 용기를  들고 방사능 체크하기 위해 뛰어다녔다. 실험
결과 방사능은 물에  전부 씻겨내려간 것으로 판명되었다. 모두 지
하배수관으로 흘러들어간 것이었다. 주변은 방사능 오염에 대해 우
려할 정도는 아니었다. 비교적 안전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크리시는 스코틀랜드인들의 주목대상이었다. 트럭에 실려오는 부
상자를 치료하는 목사를  도와 동분서주하느라 정신이 없는 크리시
를 본 스코틀랜드인들은 한결같이 그녀를 칭찬했다. 때때로 영웅적
찬사를 늘어놓곤 했다.
  그러나 크리시는  부상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동지들을 간호하면서
도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불길한 예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
다. 조니의 안부가 못내 걱정스러웠다.
  한편 최후의 수단을  결행하기로 작정한 타르는 로버트와 상의할
일이 있으니 급히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교신을 통해 협의한
젊은이들은 윈치의 쇠사슬로  타르의 몸을 꽁꽁 묶고, 그의 자지를
네 사람이 붙들어 잡았다. 두 명이 공격형 라이플로 타르를 겨냥하
며 엄중한 감시하에 로버트가 있는 곳으로 지상차를 몰았다.
  타르는 로버트에게 제안했다.
  "무인폭격기의 항로를 바꿀  수 있는 열쇠가 있다. 사이클로별로
보내준다고 약속하면 열쇠를 건네주겠다."
  로버트는 타르의 제안에  승락했다. 먼저 열쇠를 보여줄 것을 요
구했다. 그러자 타르는 자신의 장화를 찾아달라고 말했다. 그는 타
르의 방 침대 밑에서 호흡마스크를 쓴 차크라는 사이클로인 여성을
찾아냈다. 부서진 채굴용  차량 불빛을 받으면서 웅크리고 있는 그
여자에게 다가간 로버트는 타르의 비서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
한 차크에게 타르가 맡겨놓은 항로설정 장치의 열쇠를 가지러 왔다
고 말했다.
  "나는 바보가 아니라고 전해주세요."
  차크는 버럭 화를 냈다.
  "내게 열쇠꾸러미를 소각쓰레기 속에 버리도록 말한 것이 언제인
지 아세요? 벌써 몇 시간이 지났다구요. 열쇠는 이미 사라진 지 오
래예요. 그런데도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고 나의 업무기록에 기록한
다면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예요. 사이클로별로 돌아가면 나
에게 커다란 집을  사주겠다고 약속한 것을 폭로해버리겠다고 전해
주세요."
  로버트는 타르의 장화를 찾아내는 것이 더 빠르겠다고 판단하고,
장화를 찾도록 지시했다. 장화는 즉시 발견되었다. 장화를 찾아 조
사해본 결과 이중바닥으로 되어 있었고, 그 밑바닥에 얇은 소형 분
사총이 숨겨져 있었다. 타르는 네 개의 쇠사슬에 묶이고 라이플 총
구의 감시를  받으면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고, 휘황한 조명아래
떨고 있는 여직원들을 향해 쉴새없이 너스래를 떨었다. 본부구역은
폭발에 의한 파편으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수백 구의 거대한
사이클로인 시체가  어디를 가나 길을  가로막고 있었고, 시체들은
물에 흠뻑 젖어 불품엇이 널브러져 있었다.
  참코 형제는  연봉 만 오천 크레디트,  큰 성과를 보였을 때마다
보너스로 오백  크레디트를 지급받는 조건에  흔쾌히 동의했다. 두
사람 모두 사이클로별로부터의  반격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때 가서
해결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누구에게서 받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
다. 일에 대한 당연한 보수를 받는 것이 크게 문제되리라고는 판단
되지 않았다. 참코형제는 인간들과 무선재개를 위한 작업에 착수했
다. 그 일을 해주고  오백 크레디트의 보너스를 받기로 했지만, 그
리 간단한 작업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기계들은 물에 젖어 있었고,
전송구역에는 쓸 만한 것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또한 비행기
의 무전기도 거의 쓸모가 없게 되어 있었다. 특히 그랜캐논이 탔던
전투기의 무전장치는 녹아버린 금속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폭스 로버트는 늘 입고  다니는 낡은 외투를 걸치고 그들 가까이
에서 천천히 거닐면서, 그들이 물어오는 질문에 차례차례 답변해주
고 필요한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마음은 딴곳에 가 있었다. 열두
시간의 무선통신 규제는 해제되었지만 무선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
였으므로 어떤 전투기와도  연락을 취할 수 없었다. 무선통신이 재
개되면 채굴장을 공격한  전투기를 서둘러 무인기 추적에 합류하도
록 명령을  내려야 했다. 현재 그곳에  보유하고 있는 전투기는 한
대도 없었다.
  로버트는 스무  명 가량의 부상자를 치료하고  있는 곳을 찾아갔
다. 그곳에는 크리시가 있었다. 그의 시선이 크리시의 시선과 마주
쳤다. 로버트는 크리시에게 커다란 아픔을 준 것 같아 갑자기 가슴
이 답답해졌다. 그러나 조니의 말이 옳았다. 채굴장을 공격한 전투
기들에게 무인기를 공격하게 해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더구
나 지금은 그런 명령조차 내릴 수가 없지 않은가. 로버트는 조니에
게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을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크리시의 눈빛은 애원하듯 로버트에게 고
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돌렸다. 결국 아무 말도 건네
지 못한 그녀는 하던 일을 계속했다.

  (2)
  드디어 해냈다.  즈즈토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동물에게
입힌 상처는 매우 치명적이었다. 한 번에 끝낼 수 있었는데 기체가
흔들리는 바람에 각도가  빗나가버린 것이었다. 정통으로 맞았다면
머리는 쉽게 두 동강을 낼 수 있었는데 전투기의 접지각 기둥에 맞
고 튕겨져나오는 반동으로 겨우 쓰러뜨렸으므로 그 정도로 그친 것
이었다. 그래도 결과는  기대했던 대로였다. 바닥이 온통 피바다가
아닌가. 동물은 전에 보지도 못한 소형 총을 발사하고는 바로 의식
을 잃어버렸다. 전에 보지도 못한 소형 총을 발사하고는 바로 의식
을 잃어버렸다. 거울에 반사된 동물은 쓰러진 채 여러 차례 의식이
나갔다. 돌아왔다. 하는  듯했다. 즈즈토는 놈이 의식을 완전히 잃
어버리면 숨통을 끊어버릴 작정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즈즈토가  예상한 대로 되지 않았다. 동물은 기체
가 후미  쪽으로 기어가서 몸을 숨기며  돌아서서 총을 쏘고, 다시
기어가다가는 총을 쏘아댔다.  동물은 후미 쪽에 있는 캐니스터 짐
칸 안으로 완전히 몸을 숨긴 후에야 총쏘기를 멈췄다. 궁금해진 즈
즈토는 어둠속에서 뛰쳐나와  거울로 상황을 살피면서 뒤쪽 화물칸
의 칸막이벽까지 나아갔다. 동물의 상태를 살펴보려고 거울을 비추
어보았으나 너무나 어두운 나머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라이트
를 켜서 안쪽을 비춰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동물 녀석, 옆쪽으로
기어서 도망쳤군.
  즈즈토는 거울에 라이트를 고정시켜 우측 상황을 살펴보았다. 동
물의 모습이 힐끗 보인  순간 총성과 함께 거울과 라이트가 즈즈토
의 손에서 날아가버렸다. 어이구, 손을 내밀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즈즈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할수없이 칸막이벽에 몸을 더욱
깊숙히 숨기고 계속해서  동정을 살펴보았다. 무인기의 엔진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즈즈토는 동물이 구멍
으로 얼굴을 내밀고 총을 쏠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상당히 오
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죽어버린 것이 틀림
없었다. 그처럼 많은 피를  흘렸으니 죽지 않을 리가 없었다. 즈즈
토는 얼굴 가득 잔인한  미소를 띄었다. 이제 나가도 된다. 행동개
시다.
  즈즈토는 전투기 문을 열고, 단거리 무선기의 스위치를 켰다. 너
프를 호출했다.  그 등신은 틀림없이 졸고  있을 것이다. 즈즈토는
다짜고짜 모든 주파수  채널을 작동하며 너프를 불렀다. 그 얼간이
는 깜짝놀라 잠에서 깨어날 것이다. 이, 삼 피트의 거리에서 범 지
구통신용 주파수를 쏘면 귀청이 찢어져나갈 정도의 음량이 되었다.
  "너프, 이 병신아, 잠 깨라."
  "와악, 누, 누구냐. 너는?"
  "잘 들어라, 너프."
  즈즈토는 급한 마음을 억누르면서 말했다.
  "네가 수면부족일 거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이럴 때 어떻게 해
야 하는지를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다는 것도. 그러나 내가 하는 말
을 들을 수는 있겠지?"
  "당신, 즈즈토요?"
  저런 병신을 보았나. 구제불능의 저능아로군!
  "그야, 물론이지. 나 말고 누가 있겠어!"
  "당신은 어디에.... 무인폭격기에 있는 거요? 맞아, 역시 당신이
군. 스니트가 전투기로 끌어내준 모양이군요? 만일 당신이...."
  "알았으니까 잠자코 듣기나  해. 부탁할 게 있다. 그곳에서 일단
날아서 이 화물칸 입구 바로 위에 마크32를 부착시켜라. 바람이 들
어오지 않도록 입구 쪽으로 바짝 붙여서 세워야 한다구."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합니까?"
  너프가 그 이유를 물었다. 즈즈토는 마지못해서 대답해주었다.
  "연료가 앞으로 십 분  분량밖에 안 남았다. 보충하지 않으면 네
놈도 죽는다. 알겠나?"
  너프는 서둘러서 즈즈토의 지시에 따랐다. 즈즈토는 조니가 타고
온 전투기에서 연료 카트리지를 뽑아낼 생각이었다. 입구에서 전투
기를 발진시키려면 고도의 조종기술이 필요했지만 그녀석이 가지고
온 예비연료 카트리지를  사용하면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즈
즈토는 조종석에서 일어나 뒤쪽을 샅샅이 뒤졌다. 있었다. 연료 카
트리지를 넣은 상자였다. 상자 안에는 수십 개쯤 되는 연료 카트리
지가 가득 적재되어 있었다.
  그때 즈즈토의 호흡마스크에 섬광이 번쩍였다. 방사능이었다. 조
니의 자루가 방사능탄을 발사하는 근처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입자
를 뒤집어쓰고 있었던 것이다. 방사능이의 양은 대수롭지 않았지만
즈즈토를 놀라게  하는 데는 충분했다.  즈즈토는 자루를 집어던졌
다. 자루에서 튀어나온 몇 개의 카트리지가 문밖으로 굴러떨어지려
는 것을  몸을 날려 재빨리 붙잡았다.  팔을 앞으로 최대한 뻗고는
카트리지를 안은 채  상자를 흔들어댔다. 조심하면서 그 위에 숨을
내뿜어보았다. 더이상 섬광은  튀지 않았다. 다음으로 즈즈토는 전
투기의 문을 모두 열었다.  후미 쪽으로는 가까이 가지 않았다. 이
제 팔만 뻗으면 필요한 작업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는 중앙 동력모터와 밸런스 모터에 라이트를 비추었다. 즈즈토
의 풍부한 경험이 우측 밸런스 모터를 싸고 있는 겉부분에 생긴 머
리칼 정도의 균열을 놓치지 않았다. 움직일지, 움직이지 않을지 알
수 없었다. 충돌 때  생긴 균열이었다. 즈즈토는 모터 밑으로 손을
뻗어 잡을 수 있는 만큼의 도선을 끊어내고, 그것을 뭉쳐서 안쪽으
로 다시 집어넣었다. 이제 이 전투기는 더 이상 날지 못할 것이다.
전투기에서 내려온 즈즈토는 무인폭격이의 중앙 동력모터를 살펴보
았다. 렌치다. 렌치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렇다면 아직 바닥
판을 떼어내지  못했구나. 즈즈토는 렌치를  장화에 다시 집어넣었
다.
  무인폭격기의 흔들림이 갑자기  바뀌었다. 너프가 무인기에서 분
리된 것이었다. 위아래로  흔들리던 무인폭격기가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비행기가 옆으로 기우는 바람에 입구로 불
어오던 바람이  멎었다.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서 천천히 전투기의
마이크로폰을 붙잡자 즈즈토는 즉시 그곳에서 떠났다.
  "잘되었는가?"
  "그렇습니다. 시간은 조금 걸렸지만."
  "좋아, 케이블 사다리는 알고 있는가?"
  너프는 광산관리 전문가이자 뛰어난 조종사임을 자처하고 싶었으
나 그럴 틈도 주지 않고 즈즈토가 계속해서 외쳐댔다.
  "조종석 맞은편에 있는 고리걸이에 케이블 사다리의 끝을 고정시
켜라. 그리고 추가  달린 쪽을 이쪽으로 내려보내라 끝나면 이번에
는 그물을 끈에 매달아서 내려보내라. 안전로프도 함께. 전부 입구
안으로 내려보내라. 알겠는가?"
  "알았어요, 그런데 무인기 안에 광석이라도 들어 있던가요?"
  "농담하지 말구. 지금 광석 같은 것을 운반할 때냐! 연료 카트리
지를 올려보내려고 하는 것이다. 알겠는가?"
  "뭐요! 정말입니까? 이제 살았다. 하지만 여기에 맞을까요?"
  즈즈토는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비행기용 연료 카트리지는 어떤
비행기에나 쓸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하기야 탱크용을 비행기에
쓴다면 맞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네놈의 머리는 썩었냐.
  추가 달린 사다리의  아랫부분이 기세좋게 튕겨내려와 입구 밖으
로 뻗쳐나와 있는 전투기 꼬리 근처에 늘어졌다. 꼬리가 입구의 가
장자리에 맞닿아 있어서  사다리를 잡을 수가 없었다. 즈즈토는 할
수없이 전투기 안에 손을 넣고, 무인폭격기가 흔들리기를 기다렸다
가 자력접지각의  스위치를 끄고, 엄청난  힘으로 전투기를 옆으로
옮겨놓았다. 꼬리부분과 입구  가장자리에 틈새를 만들고, 다시 접
지각의 스위치를 넣었다. 자아, 됐다. 즈즈토는 사다리를 붙잡아서
바닥의 가로대에 묶었다. 다음에 안전로프를 잡으려 했으나 바람에
흔들려서 좀처럼 잡을  수 없었다. 즈즈토는 단념하고 너프에게 그
것을 끌어올리라고 명령했다. 빌어먹을, 저런 것은 필요없다. 즈즈
토는 전투기 안에 손을 집어넣고 전투기에 비치되어 있는 안전로프
를 꺼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댜  할지 몰라 망설였다.
안전로프의 끝에 달린 고리를 전투기에 연결해보았으나, 자기의 몸
을 전투기에 연결한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저것이
움직이기 지작하면 어떻게  되지.... 결국 즈즈토는 안전로프를 바
닥에 던져버렸다.
  "광석통을 내려보내라."
  그는 너프에게 명령했다.  광석통이 내려왔다. 통은 대단한 무게
를 가지고 있어서 시속  삼백이 마일의 기류에도 거의 흔들리지 않
았다. 즈즈토는 커트리지  상자를 그 안에 넣었으나 문득 카트리지
가 연료용인지  확인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탄약용도 함께
들어 있을지 모른다. 뭐  어때. 탄약 카트리지도 필요하게 될지 모
르니까 말이야. 너프의  전투기로 옮겨타기만 하면 당장 기총을 퍼
부어 이 전투기는  폭파시켜버릴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을 신중하
게 처리해야만 한다. 꼴  좋게 됐구나, 동물 녀석. 타르 네놈도 마
찬가지다. 그때 즈즈토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그렇다.
제트분사 장치를 가지고  가야 한다. 즈즈토는 신중하게 전투기 뒤
쪽으로 손을 넣어서 제트분사  장치를 꺼냈다. 장치는 또 한 대 있
었다. 두 대 모두 꺼내서  한 대는 밖에 버리고 한 대는 등에 부착
시켰다. 이것으로  동물은 이 무인폭격기에  꼼짝없이 갇힌 신세가
되었다. 이미 오래전에  죽어버렸을테지만 이것으로 일단락된 셈이
다. 그건 그렇다. 치고 타르 녀석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람!
  "준비는 됐나?"
  "네, 그런데 연료는 어디 있습니까?"
  즈즈토는 연료  카트리지를 넣은  광석통을 끌어올리라고 명령했
다.
  "어때? 제대로 끌어올렸지?"
  "너무 재촉하지 마세요.  지금 확인하고 있으니까요.... 빈 카트
리지와 바꿔끼우고 크기를 체크할 테니까요."
  "야 병신아,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빨리 사다리를
고정시키라구. 동물냄새가 진동하는 이런 잡동사니 속에 갇혀 있는
것은 딱 질색이라구.  연료 카트리지는 그곳에 올라가서 내가 직접
교체할 것이다. 실수해서  탄약 카트리지를 꽂는 짓만은 제발 하지
말라구. 지금 곧 올라갈 테니까."
  그러나 곧바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무전기가 눈에 띄었기 때문
이었다. 혹시 모르니까  그것을 부숴버려야만 했다. 장화에서 렌치
를 꺼내 산산조각으로 만들어버렸다. 어차피 올라가면 모조리 파괴
시켜버리겠지만 께름칙한 것을 남겨둘 수는 없었다. 즈즈토는 케이
블 사다리를 붙들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위를 올려다보니까 까마득
한 거리에 있었다.  마크32의 기체가 기류를 가로막기는 했지만 바
람이 거세게 불어닥치고  있었다. 그는 잠시 멈추어 마스크가 제대
로 부착되어 있는지 확인한 다음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3)
  무인폭격기의 캐니스터 적재칸에 쓰러진 조니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다시 우리 속에  갇혀 목고리가 채워진 채, 조니의 머리통
을 박살내려고 악마가  다가서고 있었다. 그만두지 않으면 쏘겠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꺼져가
는 위식을 끌어모아 그 악몽에서 벗어나자 거대한 무인폭격기의 엔
지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이 압박해왔다.  엔진소리에 비로소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깨달았다.  꿈에서 목고리라고 생각한
것은 리볼버 권총 벨트가 목에 감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권총을 벨
트에서 빼냈다. 겨우  보일 정도인 희미한 불빛을 이용해서 실린더
를 살펴보았다. 한발뿐이었다. 그는 총알 남아 있는지 탄알집을 만
져보았으나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즈즈토의 손에서 쏘아 떨어
뜨린 라이트만이 가로받침대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아니다, 저것
은 라이트가  아니다. 사피트 정도 떨어져  있는데 어찌 보면 사십
피트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대체  저것은 무엇인가. 거울일
까. 아, 수리공용 거울이었다. 즈즈토 놈, 저것으로 나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었구나. 의식을  잃고 있는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까. 얼마나 정신을 잃고 있었을까. 몇 초? 아니, 몇 분일까.
뒤통수를 심하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만져보았다. 이상스레 말랑
말랑했다. 두개골이 부서진  것일까. 아니면 피부가 부풀어오른 것
일까. 그때 어디선가 탕탕 하고 금속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체 바깥에서 나는 소음 덕분에 의식을 되찾은 것이었다. 탕, 탕,
탕. 조니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는 힘겹게  몸을 움직여 거울을
집어들었다. 가로받침대를 따라  움직여 자신이 숨어 있는 구멍 밖
으로 거울을  밀어냈다. 즈즈토였다.  조니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마지막 한 방을 쏘아버리고 있었다. 그렇다, 마크32에 연료를 보급
하려 하고  있구나. 저 마크32가  본부구역으로 돌아간다면.... 그
순간 조니의  정신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자신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순간적으로 생각해냈다. 우선 지금은....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만히 앉아 있으니까 자
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이 어두운 물결이 밀물처럼 몰려들어 끝
도 없는  암흑 속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었다. 잠시 동안은 견딜
수 있겠지만 잘못하면 잠이 들어버릴 것 같았다.
  즈즈토가 렌치로 무선장치를  때려부수고 있다. 조니는 온정신을
집중시켜서, 언제든지 구멍  밖으로 뛰쳐나갈 수 있도록 자세를 갖
추고, 조심스럽게 거울로  상황을 살폈다. 즈즈토가 사다리 쪽으로
갔다. 올라가기 시작했다. 멈췄다. 다리만이 입구에서 보였다.
  몇 차례의 고통을 견디고 나서야 조니는 캐니스터 적재칸에서 빠
져나왔다. 바닥에 안전로프가  떨어져 있었다. 그것을 힘껏 잡아당
겼다. 안전로프는 전투기에  연결되어져 있었다. 현재 상태로는 언
제 의식을  잃고 입구 밖으로 떨어져나갈지  알 수 없었다. 조니는
서둘러 안전로프를 허리에  묶었다. 즈즈토의 발은 이미 보이지 않
았다. 조니는 권총을 꺼내서 마지막 한 발을 확인하고 사다리 쪽으
로 달려갔다. 사다리의  맨 아래쪽은 입구의 안쪽에 고정되어 있었
다. 조니는 사다리를 올라갔다. 조니의 눈에 마크32의 모습이 똑똑
히 보였다. 조종석에는 라이트가 켜져 있었고, 너프가 열려진 문을
발로 고정시키고 있었다.  즈즈토는 벌써 사다리를 3분의 1가량 올
라가고 있었다.
  한순간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너프가 이미 연료
카트리지를 전부 안으로 옮겨실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던 것이
다. 그렇지는 않았다. 너프는 카트리지 소켓의 캡을 벗기고 살펴보
고 있었다. 그는 번호를  확인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연료 카트
리지가든 그물은 너프의  무릎 위에 그대로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즈즈토는 너프에게 문을  좀더 활짝 열고, 사다리 케이블을 제대로
잡으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즈즈토는 계속해서 올라갔다. 사다리는
마크32기에 가려져 있었지만  그래도 바람은 세차게 즈즈토의 웃옷
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즈즈토가  다시 한 번 문을 좀더 활짝 열라
고 외쳤으나  무인폭격기의 엔진소리와  바람소리에 삼켜져버렸다.
조니는 권총이 안전장치를 풀었다. 마스크는 바람으로부터 눈을 보
호해주고 있었다.  즈즈토든 너프든 아무나 쏠  수 있는 위치가 된
조니는 신중하게  바람과 사다리릎 흔들림을  계산했다. 스미스 앤
웨슨 457 매그넘 권총은 회전속도가 매우 빠른 권총이었다. 그러나
조니의 매그넘은  탄약 카트리지에  폭파캡을 부착하여 회전속도가
더욱 빨랐다. 신중하게  쏘지 않으면 안된다. 신중하게. 한 발밖에
없다. 너프가 발로 차서 문을 활짝 열자 그의 무릎 위에 얹혀진 그
물이 똑똑히 보였다. 그러나 그때 조니의 모습을 발견한 너프가 큰
소리로 외치면서 조니  쪽을 가리켰다. 즈즈토가 황급히 조니 쪽을
돌아보았다.
  즈즈토가 돌아다 본 것과  조니가 리볼버를 발사한 것은 거의 동
시였다. 조니는 총을 쏘고 나면 재빨리 무인기 안으로 뛰어들 생각
이었지만 생각대로 쉽지는  않았다. 이십 회분의 전투를 충분히 수
행할 정도로  많은 량의 연료와 탄약이  한순간에 대폭발을 일으켰
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캡을 벗겨낸 연료 카트리지용 소켓까지 인
화되어버렸다. 커다란  폭발음과 동시에 망치로  내려치는 것 같은
충격이 조니를 강타했다.  조니는 시커먼 어둠 속으로 떨어져 내려
갔다. 그러나 안전로프가 그  움직임을 멎게 했고, 거의 몸을 무인
폭격기 속으로 끌어들였다.  기내로 끌려들어가기 직전, 불이 붙은
즈즈토의 몸이 사다리로  부터 떨어져나가는 것이 마치 정지화면처
럼 또렷하게 보였다. 마크32기체도 대폭발을 일으키면서 공중 높이
치솟았다. 조니의 몸은  입구 바로 안쪽의 바닥판에 떨어져내렸다.
그곳이라면 미끄러져  떨어질 염려는 없었다.  그런 것을 희미하게
생각하면서 머리에 부상을 입은 조니는 폭발의 충격으로 또다시 의
식을 잃었다. 깊은  어둠이 조니의 의식을 완전히 뒤덮어버리고 있
을 때,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스태퍼 노인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그 정도로 영리하지
는 못했다.  레이더파로 찾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단서를 잃어버렷
다.'
  그때까지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부하가 걸려 있던 무인 가스폭격
기는 대폭발과 함께 좌우로 흔들리는 것이 멎었다. 조니는 입구 근
처의 얼음처럼 차가운 바닥에  쓰러진 채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었
다. 죽음의 선물을  실은 무인기는 스코틀랜드를 향해서 하늘 높이
날고 있었다.
  임무는 스코틀랜드를 시작으로  지구상에 남아 있는 인류를 몰살
시키는 것, 그것이 천 년에 걸친 그들의 최종 목적이었다.

  (4)
  소년은 성의  지하통로를 날쌔게 빠져나갔다.  옷은 빗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머리에는  차양이 없는 모자를 비뚤게 쓰고 있었지만
양족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그는 긴급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새벽
의 어스름을 뚫고 이 마일이나 되는 거리를 단숨에 달려왔다. 소식
을 전해야 할 사람의  방을 찾아낸 소년은 안으로 뛰어들면서 큰소
리로 외쳤다.
  "더넬딘 전하, 더넬딘 전하, 일어나세요."
  더넬딘은 지금 막 자기 방으로 돌아와 쉬려 하던 중이었다. 오랫
만에 따뜻한 담요 안으로 기어들어 마음놓고 한잠 푹 자려 하고 있
었다. 소년은 부싯돌로  양초에 불을 붙이려고 했으나 흥분으로 손
이 떨려서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더넬딘은 소년이 부르는 '전하'라는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사람
들이 그를 그렇게 부를 때는 축제 때나, 뭔가 부탁할 게 있을 때뿐
이었다. 그는 왕가의  혈통을 이어받고 있었지만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양초에 불이  붙고, 가구가 전혀 없는 돌벽이 환히
비춰졌다. 그 불빛을 받으며  비에 흠뻑 젖은 채 검은 눈동자를 반
짝이는 소년, 비티 맥크라우드가 서 있었다.
  "시종인 드와이트 나리로부터  전언을 가지고 왔습니다. 급히 와
주십사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더넬딘은 얼른 일어나서 옷을 입었다. 시종 드와이트 나리라....
부조종사라고 말해봤자 이 아이는 무슨 뜻인지 모를 거라고 생각해
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하인에게 말을  준비시켜두었습니다. 드와이트 나리는 비상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더넬딘은 시계를 보았다.  열두 시간의 무선사용 금지 시간이 지
나 있었다. 아마  자질구레한 뉴스가 들어왔겠지. 다른 채굴장이나
중앙 채굴장의  공격이 실패했을 리는  없다. 더넬딘은 드와이트와
함께 자신이 맡은  콘월채굴장의 공격을 성공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스코틀랜드의 큰어버지집에 머물고  있었다. 더넬딘은 서두르지 않
고 천천히 비행복을 입었다.  비티는 또 뭔가 말을 잊고 있는지 고
개를 갸우뚱거리며 생각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발을 바꿔
보거나 천장을  노려보면서 손으로 코를  비벼대고 있었다. 그러나
단념한 것 같았다. 더넬딘은 준비는 이미 거의 끝나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소지품을 점검하고 방을  나왔다. 성의 통로와
광장마다 마을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아무도  무슨 연락을 받은
것 같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더넬딘이 돌아오자 집회개최  명령이 내려졌다. 사이클로인의 채굴
장이 괴멸됐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비가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폭풍이
몰아칠 듯한 날씨였다. 두 사람이 착륙했을 때는 맑게 개어 있었으
나 지금 새벽녘의 하늘은 어두컴컴한 비구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비로소 비티 맥크라우드가 겨우 나머지 전갈을 생각해냈다. 그는
더넬딘의 등에 대고 말했다.
  "드와이트 나리는 긴급발신이라고도 말했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더넬딘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실은  무슨 말인지  잘못 알아들었디만  긴급발신이라고 했어
요."
  "긴급발진을 말하는 거니?"
  더넬딘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는 말을 올라타자마자 전력으로 질주해나갔다. 도중에 그는 평
탄한 언덕 꼭대기에서  말을 급히 정지시켰다. 재빨리 주위를 둘러
보았다. 인원수송기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말에서 뛰어
내렸다. 고삐를 소년에게 맡기고 수송기 안으로 뛰어들어간 더넬딘
은 무선기의 스위치를  켰다. 그때 전투기의 타고 나갔던 드와이트
가 수송기 바로  옆에 착륙했다. 더넬딘은 서둘러서 드와이트가 있
는 곳으로 달려갔다.
  "벌써 끝났어."
  드와이트가 말했다.
  본부에서 온 무선연락이  아니었다. 드와이트는 계속해서 무선을
켜놓고 있었다. 무선사용 금지명령을 무시하고 무슨 긴급연락이 들
어올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또 무선사용 금지시간이 지난 후에
는 어떤 수신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
나도 본부의 폭스  로버트에게선 연락이 없었다. 또한 각지에 파견
돼 있는 조종사들로부터도 연락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그 대신 이
상한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범 지구통신용 전파대에서 사이클로어
로 나누는  대화를, 그것도 아주 똑똑하고  커다란 소리로 들을 수
있었다. 감도로 보아 천  마일도 안 떨어진 곳에서 나누는 대화 같
았다.
  "뭐라고 했는데?"
  "전부 디스크에 입력시켰어."
  드와이트는 디스크를 돌렸다.
  "너프, 이 병신아, 잠깨라!"
  사이클로어가 들렸다.
  드와이트는 설명을 계속했다. 그는 그 목소리를 듣고, 즉시 비티
를 불러서  더넬딘에게 연락하라고 한 다음  자신은 곧장 전투기를
상승시켰다. 그의 말대로 드와이트가 탄 전투기의 엔지소리가 디스
크에서 울려나왔다. 디스크는 재생을 계속했다.
  "무인폭격기라고?"
  더넬딘이 말했다.
  "즈즈토의 목소리 같군. 수송부 주임인 즈즈토라는 못된 놈이 있
었어."
  "그놈이 어떻게 또 무인폭격기에?"
  드와이트는 전투기의 성능을 최대한 상승시켰다. 고도 이십만 피
트, 그것도 최대 속력으로.
  "덕택에 심장과 폐가 한꺼번에 터져나가는 줄 알았네."
  상승을 일단  끝내자 사이클로어로  재연결을 지시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 다른 전투기를 무인기의 화물칸 입구 바로 앞에 접속
하고, 즈즈토가 그것으로 옮겨타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큰 무인기는 없었는데."
  더넬딘이 말했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한은."
  드와이트는 즉시 추적장치를 켰다. 추적전파는 북서 방향에서 발
사되고 있었다. 곧장 그 방향으로 날아갔다. 레이더 스코프가 비행
기를 포착했다. 시속은 삼백 마일, 영상은 선명했다. 아직 그 부근
은 맑은 날씨였다.
  디스크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스니트라는  놈은 아직 무인기
속에 있는 것 같았는데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
다. 무인폭격기에 조종사가 필요할 리는 없었다.
  "아무튼 놈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아나?  무인기 안에 있던
놈이 연료  카트리지를 상자에  담아서 전투기로  옮겨타려고 했다
구."
  "그런데 자네는 왜 돌아왔지? 왜 공격하지 않았나?"
  더넬딘은 그렇게 말하고는 수송기에 타려고 했다.
  "폭발해버렸다구."
  드와이트가 말했다.
  "이 눈으로 똑똑히 봤어. 마치 백 개의 천둥이 한꺼번에 치는 것
같았다구. 그대로  추락해버렷지. 지금쯤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을 거야.  주위를 레이더로 수색해보았더니  조그만 영상이 남아
있더군. 아마 잔해가 바다 위에  더 있는 걸 거야. 그것도 곧 가라
앉아버렸을 테지만 추적장치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돌아온 걸세."
  더넬딘은 디스크를 처음부터 다시 들어보았다. 그리고 각종 계기
의 기록을 조사해보았다.  기록은 어느 것이나 같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열원의  발생과 조실을 더넬딘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
다.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서 부근을 수랙해보는 것이 좋겠어."
  "최소한 레이더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구. 게다가 이 비
구름은 상당히 높아. 아마  적어도 일만 피트는 될 테니까. 무인기
의 고도는 오천 피트  정도였는데 그 높이라면 지금쯤 시계가 아주
나쁠거야. 게다가 지금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고."
  더넬딘은 고개를 돌려 이  마일 저쪽에 있는 고대의 성터를 바라
보았다. 성은  아침의 비안개에 희미하게  가려져 망령처럼 보였다
안 보였다 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본부구역의 전
투는 우리 쪽의  패배로 끝난 것일까? 무인폭격기는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왜  폭발해버렸지? 이제 곧  족장회의가 열린다. 그에게는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5)
  조니는 어둠과 고통의  세계로부터 서서히 빠져나와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생각하고 있었다. 무인기의 모터소리가 귓속에서 큰
소리로 고함치는 것처럼 들렸다. 양팔은 바닥의 틈새로부터 밑으로
축 늘어졌고, 소매를 따라 흘러내린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즈즈토
의 일이  갑자기 떠올라 깜짝 놀라서  권총을 뽑으려 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권총이 없었다. 폭발로 벨트와 함께 어디론가 날아가버렸
건 것이다. 그렇다. 폭발이 있었다. 즈즈토도, 마크32기도 그 폭발
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이제 이 괴물의 위치를 레이더에게 알려줄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몸을 일으키는  것은 무척 고통스러웠다.  안전로프가 몸을 묶고
있었지만 아직도 머릿속이 몽롱해서 안전로프가 몸을 묶고 있는 이
류를 한동안은 알 수가  없었다. 등에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마
폭발했을 때의 안전포르가  끌려 기내로 굴러떨어지며 타박상을 입
은 모양이었다.  생각하는 일이 아주 귀찮게  느겨졌다. 몸은 점점
더 나빠지는 것 같았다. 구역질이 났다. 공복감.... 틀림없이 구역질은 공복감  때
문일 것이다. 조니는 무릎을  꿇고 몸을 세웠다.
무인폭격기는 이제 흔들림을 멈추었다. 그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그
러나 그는 뒤를 보고 흠칫 놀랐다. 입구로부터 새하얀 안개가 덩굴
풀처럼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폭풍이었다. 폭풍 속을 비행하고 있
었다. 밖은  훤했다. 벌서 날이 밝은  것일까. 시간이 상당히 흐른
듯했다. 어느 정도나 의식을  잃고 있었을까. 최소한 몇 시간은 지
난 것 같았다. 가스 캐니스터가 이미 투하되었을 것이라고 거의 무
의식적으로 생각해냈다. 무릎을  꿇은 채로 몸을 틀어서 방향을 바
꿨다. 물론 정말로  투하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스코틀랜드를
지나쳐버린 것일까. 벌써 제1목표를 공격해 버린 것일까.
  조니는 입구까지 기어가서  폭풍구름 속에서 가늘게 비치는 빛이
라도 찾아보려고 했다. 태양의 위치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
다. 그러나  그것은 무리였다. 젠장 아직도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
군. 전투기 안에는 나침반이  있을 거야. 조니는 전투기의 문을 열
었다. 즈즈토가  부숴놓은 계기들의 잔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
다. 즈즈토가 부숴놓은  계기들의 잔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아연해 하며 잠시 서  있었다. 자신이 전투기 문을 연 것이 나침반
을 찾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겨우 생각해냈다. 컴퍼스를 집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순간 해머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통증이 느껴
졌다. 뒷머리에 대놓은 찜질수건을 만져보았다. 아직 붙어 있었다.
엇, 아직은 아니다. 그는 나침반을 들여다보았다. 무인기는 남동쪽
을 향해 날고 있었다. 스코틀랜드고 가는 항로였다. 확실하지는 않
았지만.... 그는 반입구로 돌아와서 밑을 내려다보았다. 역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비와 안개뿐이었다. 기체바닥에 캐니스
터용 짐칸이 있었던  것을 생각해냈다. 바닥판을 떼어낸 곳까지 통
증을 참아내며 기어가서 모터의 안쪽을 보았다. 안은 컴컴했다.
  산소마스크의 상태가 안 좋은지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일어날 때
마스크가 비뚤어졌던 것을  생각해냈다. 그렇다. 왜 이렇게 바보스
러울까. 무인기는  아직 가스탄을  투하하지 않았다. 떨어뜨렸다면
나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 머리에 이런 상처를 입었으니까 곧 죽을
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아직까지는 살아 있다.  머리가 맑지 않은
것도 산소통이 비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새것으로 갈아끼우자 머
리가 얼마간 맑아지는 것 같았다.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생각해보았다. 머리를 얻어맞기 전에 나는 무엇을 하려 했던가? 아
아, 맞아, 그렇다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렌치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조니는 낙담했다. 그렇다고 여기
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우선 모터의 외장판으로 내려가서 점검용
플레이트의 너트를 조사해보았다. 풀려 있기는 했지만 너트의 홈이
너무 많아서 맨손으로 그것을 풀 수가 없었다. 그는 전투기 안에서
닥치는 대로 폭약이 들어 있는 상자를 찾아냈다. 그 안에는 접착형
폭뢰가 여섯 개, 실 모양 폭약의 긴 코일이 한다발, 그리고 캡폭약
이든 상자가  몇 개 있었다. 시한장치도  필요했다. 접착형 폭뢰를
살펴보았으나 시한장치는 붙어 있지 않았다. 충격으로 폭발하는 착
발신관이 붙어  있었을 뿐 도화선도 없었다.  한 가지 일에 정신을
집중시키는 데 굉장히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이것밖에 없으니 도
대체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직접 폭뢰에 충격을 가해볼까. 그
것은 완전히 자살행위였다.  그는 벨트에 차고 있던 자루를 생각해
냈다. 부싯돌에 유리조각,  그리고.... 아아, 사슴가죽 끈이 한 묶
음 있었다.  상당히 길었다. 됐다, 적어도  이것으로 너트는 풀 수
있을 것이다.
  조니는 다시 점검용  플레이트 위에 몸을 구부렸다. 처음 한묶음
의 끈으로 너트를  고정시켰다. 그리고 나서 계속해서 너트를 끈으
로 묶은 다음 손에  고리를 만들어 묶었다. 발은 단순히 딛고 힘껏
잡아당기자 너트는 빙빙  돌다가 튀어올라서 밑바닥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끈을 잡아당길  때마다 머리에 통증이 심하게 느껴졌다.
힘겹게 너머지 세 개의 너트를 모두 풀어냈다. 그리고 무거운 플레
이트를 온힘을 다해  들어올렸다. 바로 옆에 내려놓으려 했으나 장
갑 낀 손이 미끄러워서  플레이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무인기의 시
커먼 뱃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상관없었다. 플레이트를 떼어낸 안쪽
으로 모터의  어두운 내부가 보였다.  전류스파트가 조그맣게 원을
그리며 빛나고  있었다. 작동중에 모터  속에 들어가서는 안된다고
배웠다. 손을 집어넣어서도  안되었다. 손을 집어넣으면 손이 없어
졌다가 다시 전처럼 붙어있다가 다시 없어지는 식의 이상한 느낌이
들고, 그러는 사이에 정말 없어진다고 카가 말했었다. 조니는 통증
을 견디며 위로 올라가 예비전등을 찾아 모터의 내부를 비추었다.
  수천 개의 좌표점이 모터의 안쪽에 돌출되어 있었다. 각 점이 나
타내는 좌표가 해독될 때마다  그 점에서 부드러운 활 모양의 방전
이 일어났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것이 방전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 본질은 에너지 그  자체로는 그것이 방출되어서 활 모양의 섬광
이 되고, 그 활  모양의 섬광에 의해서 공간에 있는 좌표로의 전환
이 가능했다. 전기나 전류가 흐르는 곳은 좌표를 나타내는 각 점들
위쪽에 가동되고  있는 조그만 모터들  뿐이었다. 그런 서브모터가
이 안에는  수천 개나 있었다. 그것만이  유일하게 파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곳만은 특수강판이  씌워져 있지 않을 테니까. 모터
의 내부에 비춰진 전등불빛이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고 있었
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잘하면 폭발로 좌표점과 전환모터를 파괴
시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들었다.  그렇다. 서버머터였다. 한방
터뜨리면 무인기는 추진력을 상실하여 추락하게 된다. 밸런스 모터
만으로 이 맘모스 같은 기체를 지탱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서브모터
가 파괴되면 틀림없이 추락할 것이다. 조니는 몸을 뒤로 젖혔다.
  몸을 앞으로  숙이고 있으니가 다시  눈앞이 캄캄해졌다. 의식을
잃어서는 안된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다. 절대로 의식을 잃어버려
서는 안된다.
  전투기 안으로 돌아온 조니는 어금니를 앙물고 의식을 잃지 않으
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 어떻게  해서든 기폭장치를 만들어야만
했다. 착발신관밖에  없는 상태에서 폭발을  일으키려면 어떤 것을
써야 할까. 그렇다. 이 방법밖에는 없다. 전투기의 기총이다. 기총
으로 폭발을  일으켜 그 기세를 이용하여  전투기를 입구에서 빼낼
수 있도록 연구해야겠다.  전투기의 기총조작판을 보니까 기총에는
이상이 없었다. 조종장치에도  이상은 없었다. 주모터와 밸런스 모
터의 상태도 살펴보았다.  시간이 없었다. 빨리 해야만 했다. 아니
벌써 너무 늦었는지도 모른다. 설사 무인폭격기를 추락시킨다 해도
산악지데에 충돌해서 가스가 누출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위장이 매
슥매슥해졌다. 이 구역질은  단지 배가 고프기 때문이다. 그것뿐이
다. 조니는  말린 사슴고기를 꺼내서  마스크를 들어올리고 입안에
넣었다. 그러나 그것을 씹는 것이 큰일이었다. 기분은 더욱 나빠졌
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정신을 집중시켜라. 미리
뿐만 아니라 행동까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조니는 예비로  가지고 있는 안전로프를 꺼내서  폭뢰를 한 줄로
매달았다. 폭뢰에는 금속에 밀착시키기 위한 자력장치가 붙어 있었
다. 그것은 원래 그것에 끈을 묶고 무인기 위에 떨어뜨려서 폭발시
켜 입구를 만들 생각으로 가져왔다. 결국 다른 용도가 생긴 셈이었
다. 그는 그 한 번 정신을 집중시키기 위해 이를 앙물었다. 취급시
주의사항이 씌어 있었다.

  이 착발신관이 붙은 폭뢰를  배합해서 사용할 때는 위에 있는 폭
뢰의 무게가 아래쪽에 있는 신관을 압박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눈앞에 타르가 차고  있던 사이클로인의 밸트버클이 몇 번씩이나
떠올랐다. 하늘로 치솟고  있는 가스구름산....조니는 머리를 흔들
어 의식을 되찾고는 나머지 폭뢰를 연결했다. 그리고는 실 모양 폭
약을 금속에 밀착시킬 폭뢰 밑바닥에 구멍에 끼웠다.
  실 모양 폭약을 몇 야드나 이용해서 각 폭뢰의 착발신관에 감고,
안전로프와 함께  길게 늘어뜨렸다. 한꺼번에  들려고 했으나 꽤나
무거웠다. 또다시 눈앞이 캄캄해지려고 했다. 얼른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안전로프의  긴 쪽을 위쪽의 1차  기체 버팀 철골에 걸었
다. 그 부분의 마찰을 브레이크 대신 이용하여 폭뢰점검용 구멍 위
에 매달아올려서 모터 내부로 신중하게 내려갔다. 천천히, 조금씩,
깊게 깊게, 무인폭격기가  좌우로 흔들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
렇지 않으면 흔들려서  모터외장의 내면에 있는 자력에 달라붙어버
렸을 것이다. 신중하게 해야 한다. 신중하게, 조금씩, 갑자기 안전
로프가 휙 하니  끌어당겨졌다. 밑에 있는 폭뢰가 모터 외장바닥에
닿은 모양이었다. 조니는 안전로프를 버팀강 파이프에 단단히 붙들
어맸다. 다음으로 실  모양 폭약의 끝을 던져올려서 천장의 버팀강
파이프에 걸었다. 폭약의  끝이 내려왔다. 젠장, 또 머리가 쑤셔왔
다. 전투기의 기총 바로  앞에 제 위치를 잡고 있는가? 됐다. 이만
하면 됐다. 그리고는  캡형 폭약을 꺼냈다. 상자에는 '충격기폭식'
이라고 씌어 있었다. 기총 앞의 실 모양 폭약에 우선 한 개를 매달
고 계속해서 나머지도 묶었다.
  조니는 전체를 점검해보았다.  몽롱해진 머리로 생각을 정리해보
았다.

  기총을 발사하면 캡이  폭발한다. 그것으로 실 모양 폭약이 폭발
하고, 그것이 폭뢰를 폭발시킨다.....

  그 순간 모터외장의 구멍을 막아야 파괴력이 커질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플레이트를 원래대로  고정시킬 수는 없을까? 그는 전등
을 바닥에 비춰보았다.  그러나 조니의 눈은 구멍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마침 전등이 연료장치의 뚜껑을 비췄다. 뚜껑이 두 개, 아
니 다 섯 개가 있었다. 그러니까 튜브가 다섯 개고 그 튜브 안에는
수백개의 연료 카트리지가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거대한
무인기라면 방대한 연료가 필요할 것이 틀림없었다. 당연한 일이었
다. 또다시 구역질과 현기증으로 몸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밑을
보아서는 안된다고 자신에게 주지시켰다. 저 커다란 연료듀브 커버
를 벗겨낼 수만 있다면....나사만 채워놓았을 뿐일 텐데.
  몸을 웅크리고 앉아서 죽을 힘을 다해 두손으로 나사를 돌리니까
간단하게 돌아갔다.  일 분도 안되는 사이에  다섯 개의 연료 튜브
커버를 벗겨냈다. 벗겨내자 커버는 어두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땡
그렁 소리를 냈다. 이들 튜브의 열려진 입구로 폭발하는 불꽃이 튀
어들어간다면.... 조니는 다시 한번 전체를 확인해보았다.
  무인기는 유유히  비행을 게속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얼마
안남았다고 조니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6)
  그때까지 조니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
았다.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느꼈다. 두개골의 일
부가 움푹 들어가 있었고,  상당히 많은 출혈이 있었다. 어떤 방법
이라도 좋았다.  어떻게 해서든 지금 상태를  알려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어떻게, 무선기도  망가졌고, 더구나 무인기는 탐지파 방해
장치가 장착되어  있어서 어떤 스크린에도  접히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폭풍  속에서는 육안으로 무인기가 발견되길  바랄 수도 없었
다. 폭발로 이 전투기가 파괴되면 밑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거친
바다가 아니면 스코틀랜드의 산맥일 것이다. 물론 전투기에는 금속
이 씌워져 있지만,  폐쇄된 공간에서 폭뢰가 터지고 거기에 무인폭
격기의 연료가 폭발을 더하면 엄청난 대폭발이 될 것이다.
  제트분사식 탈출장치는  없어져버렸지만 조니는 전투기의 뒤쪽을
뒤져서 구명보트를  찾아냈다. 그것이 도움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
다. 그는 구멍보트를 끌어냈다. 그 자동팽창 카트리지는 이미 오래
전에 비어 있었으나  작은 수동펌프가 있었다. 그는 공기를 집어넣
기 시작했다.  오렌지빛의 금속실이  들어간 보트가 부풀어올랐다.
그러나 조니는 전혀 무의미한 짓임을 깨달았다. 지금 부풀려놓으면
전투기에 실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만일 전투기가 폭발로 부서진
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속으로  가라앉아버릴 것이다. 공기를
집어넣을 틈도 없이.... 절반 정도 부풀어오른 보트는 강한 바람에
펄럭펄럭 휘날리고  있었다. 캄캄한 어둠이  조니를 휘청거리게 했
고, 때마침 몰아닥친 바람에 보트는 조니의 손을 떠나 폭풍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쓸데없는 일로 시간만 낭비해버린 것이었다.
  조니는 다시 전투기에  올라탔다. 담요를 찾아서 양쪽 무릎과 방
풍유리에 갖다댔다. 다시  한 번 굴러다니는 물건이 없는지 살펴보
았다. 그 잡동사니들이  날아와서 자칫 잘못하면 치명상을 입을 수
도 있었다. 피로한  몸을 힘겹게 일으켜 쓰레기들을 문밖으로 버렸
다. 케이블 사다리와  광석그물은 단정하게 접어서 고정시키고, 식
량자루와 자질구레한 물건을 넣은 상자들은 좌석밑에 놓았다. 조니
는 한층 더  심해지는 구역질을 참으며 좌석으로  돌아와 한 번 더
담요를 갖다댔다.  그리고는 급격한 후진으로  앞으로 밀리는 힘에
의해서 머리가 뛰쳐나가지 않도록 사이클로인용의 기다란 안전벨트
를 이중으로  감아서 몸을 고정시켰다.  이것으로 준비는 완료되었
다.
  조니는 기총조작판을 일제포화, 반입구 쪽이 서서히 밑으로 내려
가고 있었다. 좌표변환 장치가 고장을 일으킨 것이었다. 장치형 폭
뢰의 자장 때문일까. 하지만 반드시 수동동작이 있을 것이었다. ㄱ
러나 무인기의 회전은 멈추지 않았다. 우물쭈물하고 있다가는 반입
구가 바로 밑에 와버릴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폭발의 충격으로 바
다나 산으로 거꾸로  내던져지게 될 것이었다. 더이상 기다리고 있
을 수가 없었다. 조니는 자기접지각을 해제했다.
  전투기는 반입구 쪽으로 천천히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스
타트 버튼을  눌렀다. 전투기의 미끄러지는  속도가 서서히 빨라졌
다.
  조니는 주먹으로 기총발사 버튼을 힘껏 눌렀다. 전투기의 기총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무인폭격기의 내부가 한순간에 오렌지색과 초
록색 불꽃으로 가득 찼다. 충격은 기총발사의 반동을 능가했다. 전
투기는 화살처럼 뒤쪽으로  튕겨져나갔다. 급격한 발진의 충격으로
조니는 머리가 빠개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러나 조니는 다시
바깥세계를 보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옛날의 미사일은 이런
식으로 날았는지도 모른다. 그는 즉시 조작판을 작동시키기 시작했
다. 우측 밸런스 모터의  반응이 전혀 없었다. 전투기는 천천히 선
회하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좌측의 밸런스 모터만
으로는 선회를  멈툴 수가 없었다 조니는  사력을 다하여 조작판의
키를 두드렸다. 그러나 전투기는 폭동이 휘몰아치는 공중을 수레바
퀴처럼 빙빙 돌고 있었다.

  (7)
  조니는 심한 경련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어떻게든지 전투기를 조
종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폭풍 속에 조그만 틈새가 보였다. 몽롱한
의식 속에서도 조니는  필사적으로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노력했다.
그렇다, 왼쪽의 밸런스 모터를 끄면 기체의 선회는 멈출지도  모른
다. 주위의 물체들이 조니의 눈앞에서 어지럽게 춤추는 듯했다. 스
위치를 껐다. 기총은 아직 발사상태에 놓여져 있었다. 얼굴을 덮고
있던 담요를 치우고  발사버튼을 해제했다. 그 순간 눈앞에 이상한
물체가 나타났다. 무인기였다!  무인기는 똑바로 조니 쪽으로 떨어
지고 있었다. 반입구에서  솟구친 화염이 기체를 핥듯이 휩싸며 뒤
쪽으로 굵은 연기기둥을  토해내고 있었다. 가만 있다간 그대로 충
돌해 버릴 것 같았다.  조니는 바쁘게 조종판을 두들겼다. 겨우 무
인폭격기와의 충돌을 피했으나, 그 충격으로 전투기는 다시 급강하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폭풍이 몰아치는 허공에서 거대한 물기둥이
솟구쳐올랐다. 이백 피트쯤  되었다. 전투기가 그 충격으로 이번에
는 회전하기 시작했다.  물기둥? 바다다! 조니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다행이었다. 아직 스코틀랜드가 아니었다. 아직도 바다 위
였던 것이다. 그것은  물속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참, 이
대로 가만히 있으면 수압 때문에 문을 열 수 없게 된다. 이 전투기
는 바닷물에 뜨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조니는 서둘러 양쪽 창문
의 개방스위치를 눌렀다.  조작판을 보았다. 급강하를 멈추기 위해
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전투기
는 바다 위에 떨어졌다.
  그 충격과  함께 조니는 다시 의식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북해의 차가운 물이 밀려들어와서 의식을 되찾았다. 엄청나게
차가웠다. 그렇다. 얼음보다  차가운 바닷물이었다. 쏟아져 들어오
는 물살이 노도처럼 양쪽 창문으로 밀려들며 조니의 몸을 강타하고
있었다. 조니는 십 파운트나 되는 것을 슬로모션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겨우  안전벨트는 벗겨졌다. 앗,  물빛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비행기가  급속히 침몰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또 의식을
잃으려 하고  있는가? 밀려들어오는  물살이 약해졌다.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최소한  기체의 흔들림은 멎었다. 조니는 흐려져
가는 의식 속에서  어렴풋이 그렇게 생각했다. 이상했다. 어려움에
빠지게 되면 갑자기 몸  안에 그것을 이겨내려는 강한 힘이 꿈틀거
리게 되는 것 같았다. 조니는 조종석에서 몸을 일으켜 눈앞에 떠다
니는 담요를  밀어냈다. 이런 짓을  해보았자. 헛일일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구조하러 올 사람도 없었고 이런 차가운 물 속에서
는 목숨을 잃기가  쉬웠다. 조니는 의지라기보다는 거의 무의식 속
에서 창문을  빠져나가 물살을 가르며  수면 위로 솟구쳐올라갔다.
공기탱크가 조니의 헤엄을 도와주고 있었다. 산소마스크 속으로 물
이 들어와 안면 유리의  안쪽에 말라 붙어 있던 피를 씻어냈다. 바
닷물의 색깔이  차츰 붉은 초록색으로  변해갔다. 갑자기 빗방울이
조니의 머리를 때렸다. 비로구나! 비가 상쾌하게 느껴졌다. 얼굴을
바다 위로 내밀었다. 커다란  파도가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는 바
다 위로  빗방울이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바닷물의 상쾌함이 차츰
조니의 뼛속가지 스며들었다.  서서히 흐려져가는 의식이 웅성거리
는 소리로 들려왔다. 인간은 죽기 직전에 천사가 자기를 부르는 소
리를 듣게 된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조니는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
고 있음을 감지했다.
  또 환각일지 모른다.  그러나 조금 앞쪽에 무엇인가 그림자가 보
였다. 살고 싶다는 욕망이 환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저것이 진짜
라면 얼마나 기쁠까. 그러나  지금 나는 환각상태에 빠져 있다. 그
러나 이번에는 파도의 물보라 속에 희미하게 나타나는 환영은 사라
지지  않았다.  엇, 무엇인가가  마스크에  부딪쳤다.  아아, 더넬
딘.... 더넬딘? 사 피트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케이블 사다리에
매달린 더넬딘의  모습이 파도에 휩쓸려  자맥질을 해대고 있었다.
더넬딘이었다. 조니는 양팔이 당겨지고, 안전로프의 고리에 끼워지
는 것을 느꼈다. 안전로프가 팽팽히 당겨지고, 몸이 끌어올려졌다.
몸이 바다에서 들려지자  조니의 귀에 소리가 들려왔다. 파도가 케
이블 사다리를 흔들 때마다  물에 흠뻑 젖으면서 더넬딘은 웃고 있
었다.
  "자아, 꽉 잡아요, 조니."
  더넬딘이 말했다.
  "끌어올리겠습니다. 헤엄치고 놀기에는 바닷물이 너무 차가운 것
같군요."


  제 2 권
  하늘과 녹색사이

  제 15 부
  나는 그다지 영리하지 못했습니다.

  (1)
  고통과 어둠의 장막  너머에서 순간순간의 장면이 어렴풋하게 떠
올랐다가는 사라지곤 했다. 비행기 안이었다. 누눈가가 고기수프를
담은 스푼을 입에 가져왔다.  들것에 실려 있었다. 몸을 덮어준 담
요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돌벽으로 된 방, 많은 얼굴들, 속삭이는
소리. 다시 들것에 실렸다. 또 다른 비행기, 팔의 통증, 그리고 다
시 어둠속으로 빠져들었다. 무인폭격기의 바닥인지도 모른다. 눈을
떴다. 더넬딘의 얼굴이 있었다. 그렇다면 아직도 바닷속에 있는 것
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무척 따뜻하다.
  "정신이 든 것 같다."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이제 수술할 수 있다."
  장화와 킬트 스커트가 보였다. 누워 있는 조니의 옆에 장화와 킬
트 스커트  차림의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비행기의 모터소리?
비행기 속일까? 고개를  돌려보았다. 고개를 조금 돌렸는데도 통증
이 느껴졌다.  더넬딘의 얼굴이 보였다. 테이블  위에 눕혀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행기, 아마 인원소송기 속인 것 같았다. 조
니의 왼쪽에는  긴 흰옷으로 몸을 감싼,  키가 크고 백발이 성성한
사나이가 서 있었다. 오른쪽에는 나이든 동료들이 많이 있었다. 그
리고 젊은이 몇 명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의사 뒤쪽에 있는 탁자
위에는 뭔가  번쩍이는 것이 몇개 놓여져  있었다. 조니 옆에 앉아
있는 더넬딘의 팔과 조니의  팔이 튜브로 연결되어 있었고 그 사이
에 펌프 같은 것이 놓여져 있었다.
  "저건 뭐지?"
  조니는 튜브를 가리키며 가냘픈 목소리로 물었다.
  "수혈하는 겁니다."
  말을 조심해야지 하고 더넬딘은 생각했다.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무척 걱정스러워하고 있었다.
  "조니, 당신은 대단히 운좋은 사람입니다. 지금 당신은 스튜어트
왕가의 고귀한 피를  받고 있으니까요. 이제 당신은 스코틀랜드 왕
가의 계승권을 갖게 되었다구요."
  의사는 더넬딘에게 조용히 하라고 말했다. 두개골에 심한 골절상
을 입었고 그 밖ㅇ에도 피부가 찢어지는 열상과 쇼크상태가 계속되
어 생존가능성은 삼십  퍼센트로 희박했다. 게다가 호흡도 매우 약
해져 있었다. 이곳에서는 두개골 손상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지하
병원에서는 수세기에 걸쳐 수술이 행해져왔다. 그러나 조니의 상처
보다 가벼운 상처로도  많은 사람이 죽어간 것을 의사는 경험했다.
의사는 앞에 누워 있는  덩치가 크고 당정한 용모의 사나이를 안타
까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닥터 맥켄드릭이오."
  더낼딘이 조니에게 소개했다.
  "그가 치료해줄  거예요. 당신은 언제나  너무 지나치다구요, 조
니. 두개골절 같은 것은  한 군데만 상처를 입어도 충분한데 두 군
데씩이나 만들고 다닙니까.  하지만 문제없어요. 소낙비로 씻은 듯
이 깨끗이 나을 테니까요."
  더넬딘은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말을 믿고 싶었다. 조니의 얼굴
은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운 채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자네가 그렇게 가깝게 있었다면 좀더 무인폭격기 안에서 기다리
는 것이 좋을 뻔했군."
  조니가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나를 찾아냈나?"
  "조니, 당신은 처음에 우리를 모을 때도 봉화를 올려 요란스럽게
만들더니 이번에는 무인기를 쏘아올렸으니 당신을 못 찾을 리가 있
겠어요? 만 피트나 솟구친 불길에 스코틀랜드 전체가 환해지더라구
요. 그래서 당신을 쉽게 찾은 거라구요."
  "오늘이 며칠인가?"
  "제구십오일입니다."
  조니는 잘  알 수가 없었다. 의식을  잃고 있었던 것은 하루였던
가, 아니면  이틀이었던가. 그동안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
지. 지금 이곳은 어디지. 왜 내가 이러고 있는가.
  의사는 조니가 지금  당혹해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두부외상
환자에게서 흔히 일어나는 증세였다. 이 젊은이는 지금 시간개념이
없었다.
  "부상자는 많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나보다 의사를 그쪽으로 보
내십시오."
  "아니, 괜찮네."
  카메론 족장이 대답했다.
  "화상전문가인 알렌 의사를 이틀 전에 파견해두었네."
  "부상자는 스물한 명입니다."
  더넬딘이 말했다.
  "당신도 포함해서요. 사망자는 두 명뿐입니다. 이쪽 사상자는 극
소수입니다. 부상자들 모두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겁니다."
  "저들은?"
  조니느 손을 간신히 들어서  의자에 앉아 있는 네 명의 젊은이를
가리켰다.
  "아, 네, 저들은  인류통일을 위한 세게연합의 멤버들입니다. 저
쪽이 맥도널드족으로 러시아어를  사용합니다. 그 다음이 아자일족
의 젊은이로 독일어를 사용합니다."
  젊은이들이 이곳에 와 있는 것은 사실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모
두 조니와 같은 혈액형을 가지고 있어서 수혈을 하기 위해 온 것이
었다.
  "그런데 왜 나는 비행기에 타고 있는 거지?"
  조니가 가냘픈 목소리로 물었다.
  대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이었다. 의사는 환자를 일단 진정시켜야
한다고 지시를 내렸었다. 조니를 비행기에 태운 것은 산맥 속에 있
는 거대한 지하 방위기지로 옮기기 위해서였다.
  사이클로인의 반격에 대비해서였다. 사이클로별로 보낸 핵포탄이
그 목적을 달성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었다. 참코 형제의 말에 의
하면 전송 직후에 발생한 그 반동은 사이클로별의 전송구역에 설치
되어 있는 전송스크린이  폐쇄되면서 전송을 거부하며 다른 곳으로
튕겨져나간 증거라고 했다. 그 외에도 참코 형제는 아주 소량의 일
반소금으로도 가스를 완전히  중화시킬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 그
래서 그의 말을  응용해서 환기필터용 소금을 준비하였다. 몇 대의
갱도용 환풍기가 앵거스의 지시에 의해 방위기지로 운반되었다. 지
금쯤은 하고 있을 것이었다. 러시아인들이 고대의 방위기지를 말끔
히 청소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목사는 사망자를 파묻고 있을 것이
었다. 조니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은 방위기지밖에 없었다.
  더넬딘이 대답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승전축하식에 참석하러 가는 겁니다.
당신은 꼭 참석해야 되니까요."
  조종석에 드와이트를  보좌하고 있던  젊은이가 다가와 더넬딘의
귀에 조그만 소리로 속삭였다. 그는 끝에 마이크가 달린 긴 코드를
들고 있었다. 그 끝은 범 지구통신용 회로에 접속되어 있었다.
  더넬딘은 조니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심할 수
없다는데요."
  "누가?"
  "본부구역 사람들입니다. 뭔가 한마디 해주세요."
  더넬딘이 마이크를 조니의 입 안에 갖다댔다.
  "나는 건강하다."
  거의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였다. 좀더 힘차게 말해야겠다고 생각
하여 다시 한 번 좀더 큰소리로 말했다.
  "나는 매우 건강하다."
  더넬딘이 마이크를 젊은이에게 되돌려주었다.
  "다른 비행기 소리가 들리는군."
  조니가 목이 잠긴 소리가 말했다.
  더넬딘은 의사를 힐끗  쳐다보았다.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넬딘은 조니의 고갤르 창 쪽으로 돌려주었다.
  다섯 대의 비행기가  편대로 비행하고 있었다. 이번엔 다시 반대
쪽 창을 보여주었다. 그곳에도 똑같이 편대를 이루고 있는 다섯 대
의 비행기가 보였다.
  "당신을 호위하는 겁니다."
  더넬딘은 설명했다.
  "호위? 왜들 그러죠? 모두들 꽤나 친절하군."
  "맥타일러."
  피어거스 족장이 말했다.
  "당신은 우리들의 영웅이요. 모두들 당신을 존경하고 있소."
  의사가 튜브를 떼어내고 조니의 맥박을 재보았다. 고개를 끄덕이
며, 몸짓으로 모두에게 조용히 하라고 명령했다. 조니가 너무 오랫
동안 얘기했던 것이다.  그러나 비행기의 진동도 없었고 비행도 순
조로웠다. 환자도 쇼크에서 벗어났다.
  "이것을 조금 마셔보게. 좀더 편해질 테니까."
  의사는 조니의 입에 컵을 갖다대었다. 약초가 담뿍 들어 있는 위
스키였다. 억지로 그것을  모두 마시고 나자 통증이 금세 사라지며
몸이 공중에  둥둥 뜨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의사가 모두에게
조용히 하라고  신호했다. 의사는 두개골을  수술하기 위해 매스를
집어들었다. 환자의 뇌는 세  군데서 압박을 받고 있었다. 그 압박
을 제거해야만 했다.
  더넬딘은 드와이트를 도와주기 위해 조종석에 앉았다. 호위기 쪽
을 보니까 대부분의 비행기는 조종사 한 사람만으로 비행하고 있었
다. 모두들 각자가  맡은 채굴장 공격을 끝내고 스코틀랜드 북부를
철저히 수색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달려와준 젊은이들이었다. 귀환
명령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조니의 용태에 관한 새로운 소식을 기
다리면서 줄곧  남아 있다가 지금 조니가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호위하고 있었다.
  "모두에게 조니는 괜찮다고 말해주게나."
  드와이트가 말했다.
  "이, 삼 분마다  새로운 소식이 없느냐고 물어오는 거야. 로버트
까지 말이야. 무전을 받을 사람이 필요하다구."
  "사실 조니의 상태가 좋다고만 볼 수는 없네."
  더넬딘은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돌려 수술중인 긴 통로 쪽을 바
라보았다. 그 젊은 왕자는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똫나 울고
싶었다.

  (2)
  조니가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 사흘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
가 누워 있는 로키  산맥에 위치한 고대의 지하 방위기지는 사이클
로별에서 보복군을 보낼 것에  대비해 즉각 소금이 들어 있는 함염
필터를 작동시킬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놓았다. 의료구역도
넓었고, 벽도 바닥도 틈새  하나 벌어지지 않은 흰 타일로 덮여 있
었다. 러시아인들은 깨끗이 청소를 끝내놓았다. 여기저기에 굴러다
니던 시체들은 목사가 모두 정사를 지내주었다. 이곳 의무구역에서
는 토르와 그랜캐논을  비롯해서 열다섯 명의 부상당한 스코틀랜드
인들이 치료받고 있었다.  그들은 조니의 방에서 조금 떨어진 병실
에 있었다. 가끔씩  병실에서 나누는 얘기소리와 소음이 들려왔다.
백파이프 주자가 환자들을 위해서 오후의 음악회를 열고 있었다.
  알렌과 맥켄드릭이 치료를 맡고 있었는데 이미 다섯 명의 환자는
퇴원을 하였다. 닥터  맥켄드릭과 앵거스가 방에 들어가자 조니 옆
에서 계속  간호하고 있던 크리시가  일어났다. 맥켄드릭은 조니의
이마에 손을  얹고, 핏기 없는 얼굴을  한동안 꼼짝 않고 바라보았
다. 그리고는 앵거스 쪽으 돌아보았다.
  마치 알겠는가? 하고 말하듯이 손을 움직였다. 조니의 호흡은 매
우 약해져 있었다. 사흘 전, 조니는 의식을 회복하면서 크리시에게
누군가를 불러오라고 말했다. 하루에도 수십 명식 몰려오는 문병객
들을 들여보내지 않기 위해서 공격형 라이플을 든 스코틀랜드인 호
위병 한 명이 언제나  문 앞에 서 있었다. 크리시가 호위병을 안으
로 들어오게 했다. 조니는 폭스 로버트에게 작전지시를 속삭이듯이
작은 목소리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호위병은 그것을 비디오 레코더
에 마이크로  녹음을 했다. 조니의 설명은  상당히 길었다. 그동안
크리시는 조니 옆에 서서  마이크에 대고 조그만 소리로 작전을 지
시하는 모습을 걱정스럽다는 듯이 지켜보고 있었다. 무인 가스폭격
기가 다시 나타났을  때를 대비한 방위방법을 설명하고 있었다. 무
인폭격기가 나타나면 무인정찰기  서른 대를 출동시켜서 그것 위에
자력접지각으로 접속시키고, 무인폭격기의 좌표지시와 반대되는 지
시를 내리게  한다. 그렇데 되면  무인폭격기의 모터는 불타버리게
될 것이다.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크리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얘기를  나눈 탓으로 조니는 완전히 지쳐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니가 다시 혼수상태로 빠지자 크리시는 호위
병에게 몹시 화를  냈다. 탁터 맥켄드릭과 앵거스를 방에 들여보낸
것은 그 호위병의  잘못이었다. 크리시는 이번에야말로 호위병에게
냉정하게 한마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맥켄드릭은 괜찮지만 앵거
스는 절대로 안된다.
  맥켄드릭과 앵거스가 방을 나가고, 호위병이 문을 닫았다.
  "자, 이것들을 보게."
  부속실를 차례차례로 앵거스에게 보여주면서 의사가 말했다.
  "기계, 기계, 기계천지일세.  이곳은 설비가 잘 갖춰진 병원이었
던 것 같네. 저곳에 있는 커다란 기계는 옛날 것으로 X선 촬영장치
라는 것이네. 방사선에 관한 책에서 보았네."
  "방사선? 농단하지 마세요. 조니에게는 절대고 사용하지 마세요.
방사선은 사이클로인용입니다. 머리가 어떻게 된 것 아닙니까?"
  "저 기계를 사용할  수 있다면 몸속을 조사해서 어디가 나쁜지를
찾아낼 수 있다네. 굉장한 가치가 있는 기계일세."
  "몇 번 말해야 알아듣겠습니까?"
  앵거스가 화를 내면서 말했다.
  "저 기계를 움직이려면 전기를 사용해야 됩니다. 왜 우리가 지금
광산램프를 조명으로 쓰고 있는지 아십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저 기계를 움직이게 해야 되네."
  맥켄드릭도 만만치 않았다.
  "설사 전기를 어떻게 해본다  해도 옆에 있는 저 통은 어떻게 하
시겠습니까? 안에 들어 있는  가스는 천 년 이상이나 된 것입니다.
가스는 이미 어디에도 없습니다. 있다 해도 통 속에 집어넣을 방법
이 없습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는 그만두십시오, 선생님."
  의사가 앵거스를 노려보았다.
  "조니의 머릿속에는 뇌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 있다네. 적당히 어
림 짐작으로  잘라낼 수는 없네. 특히  조니가 환자인 이상은 말일
세. 만일 실패하면 나는  아마 맞아죽을 거야. 그러니까 그 정확한
위치를 꼭 알아내야만 하네."
  "흠, 선생님은 조니의  머릿속을 보고 싶은 것뿐이군요. 왜 진작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앵거스는 이리저리 생각해보았다. 그리고는 전기가 뭐 어쩌구 하
면서 어디론가로 가버렸다.
  앵거스가 헬리포트에  도착하자마자 대기중인 조종사인 조종사에
게 본부구역으로  서둘러 가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조종사 수가
너무 부족해서 모두들 엄청나게 바빴다. 그들은 세계각지를 날아다
니고 있었다. 지구에  남아 있는 인류의 거주지마다 최소한 일주일
에 한  번씩 비행하는 국제항공망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승객은
세계연합의 준비위원인 각  부족의 족장이나 지도자들이었다. 조종
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이 실시되고 있었지만 아직은 서른두 명뿐
이었다. 그 중에 의료구역  소속은 두 명뿐이었다. 그래서 미리 연
락을 해놓지 않으면 설사 본부직원이든 처음부터 조니와 함께 싸운
부대원이든 그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게다가 지하 방위기지
와 본부구역의  교통은 일반 지상차를  이용하기로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앵거스가 조니를  위해서라고 말하고 조종사는 앵거스를 본
부구역까지 실어다 주고, 그곳에서 돌아올 때까지 대기하고 있겠다
고 말했다.
  앵거스는 본부구역에 있는  사이클로인 포로수용소로 향했다. 항
복전에는 숙박시설로 사용되던  층을 일부 개조하여 호흡가스를 보
내고, 엄중한 경계하에  갱생의지가 없는 사이클로인들을 수용하고
있었다. 현재 그 숫자는  예순 명을 헤아리고 있었다. 각지에 있는
채굴장에서 항복할 때마다  몇 명씩 보내져오고 있었다. 그러나 타
르만은 다른 장소에 감금되어 있었다. 경비병이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는 앵거스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 안은 어두웠고, 절망에 가득
찬 모습의 사이클로인들이 여기저기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경비
병이 동행하지 않는 한  어는 누구도 혼자서는 들어가지 못하게 되
어 있었다.  사이클로별이 반격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에 포로들은
타협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앵거스는 사이클로인들 가운데서
카를 찾아냈다. 그는  완전히 의기소침해 있었다. 채굴기계 가운데
고체를 투시할 수 있는  기계가 있느냐고 묻자 카는 건성으로 모르
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조니를 위해 필요하다고 설득을 시켰다. 카
는 호박색  눈을 깜벅이면서 의심스러운 듯이  한참 동안 침묵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정말로 조니를 위해서냐고 물었다. 앵거
스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이번에는 양손으로 작은 금반지를 만지작
거리다가 결심한 듯이 일어나 안내할 테니 호흡마스크를 달라고 했
다.
  카는 앵거스를 공장으로 데리고 가서 창고 안에서 이상하게 생긴
기계 하나를 끌어냈다.  광산샘플의 내부구조를 분석하고, 금속 안
에 다른 물질의 결정이  섞여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
했다. 카는  앵거스에게 사용법을  가르쳐주었다. 조사하려는 물체
밑에 방사관을 놓으면 위에 있는 스크린에 투시된 모습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금속의  종류가 종이에 표시되어 나왔다. 소입자장
방사권의 파장을 밑에 있는 관에서 증폭시켜 방사가 샘플을 통과하
면 위에 있는 스크린에 나타내도록 되어 있었다. 사이클로인용으로
만들어진 기계는 상당히  컸으므로 카가 비행기까지 옮겨다주었다.
카는 다시  경비병의 감시를 받으며  수용소로 돌아갔고, 앵거스는
방위기지로 향햤다. 앵거스는 쥐토치용으로 기르고 있던 고양이 몇
마리에게 그것을 시험해보았으나,  고양이의 건강상태는 매우 양호
했다. 기계는 고양이의  두개골을 깨끗이 보여주고 있었다. 부상당
한 스코틀랜드인 한 명이 실험대상으로 자원했다. 채굴사고로 손에
박힌 돌조각이 똑똑히 보였다. 그리고 이 기계에 의한 후유증은 전
혀 없었다.
  오후 네시. 조니에게  그 기계가 사용되었다. 네시 반까지에는 3
차원 두개골과 금속분석 결과가 갖춰졌다. 맥켄드릭 박사가 안심한
표정으로 앵거스에게 보여주면서 말했다.
  "금속조각일세. 알겠나, 지난번의  수술부위 바로 밑에 장방형의
단편이 보이지? 됐어,  수술준비를 하세. 그것쯤은 메스로 금세 끄
집어 낼 수 있네."
  "금속조각이라구요?"
  앵거스가 깜짝 놀랐다.
  "메스로요, 조니에게요, 안됩니다.  그의 머리에 매스를 댈 겁니
까? 금방 돌아올 테니 기다려주세요."
  금속분석을 기록한 종이를 들고 나간 앵거스는 십오 분 후, 참코
형제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형제를 위해 본부구역의 한쪽에 호
흡가스를 집어넣은 돔을  만들어주었다. 그들은 로버트와 협력하여
복구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앵거스는 손에 든 종이를 두 사람의
코앞에 내밀며 말했다.
  "이것이 무슨 금속이냐?"
  형제는 종이 위의 구불구불한 선을 분석했다.
  "다민 제1철이 틀림없다."
  두 사람이 똑같이 대답했다.
  "강성도가 높은 버팀용 합금이다."
  "자성을 지니고 있는 금속인가?"
  앵거스의 질문에 두 사람은 몰론이라고 대답했다.
  여섯시에 앵거스는 다시 의무구역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방금
만든 전자식 코일을 손에 들고 있었다. 코일에는 손잡이가 달려 있
었다. 앵거스가 그  사용법을 설명했고, 맥켄드릭은 뇌조직에 대한
손상을 최소한으로  억제하며 금속조각을  꺼내는 수술을 지켜보았
다. 몇 분 뒤  그의 손에는 자석에 끌려나온 카다란 금속파편이 얹
혀 있었다.
  나중에 참코 형제가  상세하게 분석한 결과, 전투기의 접지각 기
둥에서 떨어져나온 조각이라고 말해주었다.
  "접지각용 금속은 강성이 높고, 동시에 가벼워야 하니까."
  그때까지 조니는 무인기 안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는 아무 말
도 하지 않았다. 또 그것을 설명한 정신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접
지각의 조각이 어떻게  해서 조니의 머리에 박혔는지는 수수께끼였
다.
  다음날 아침에 조니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났고, 크리시와 맥켄드
릭을 바라보며 엷은 미소를 보냈다. 그리고 이제는 편안한 잠에 빠
져 들었다.
  "우리들의 조니, 위기를 벗어나다."
  조니의 소식은 범 지구통신으로 전세계에 알려졌다.
  작업중인 모든 사람들에게 그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본부구역의
무전실에서는 조니의 회복에 대한 문의가 쇄도하여 이 일을 처리하
기 위해서 인원수를  늘려야 했다. 폭스 로버트는 수선스럽게 여기
저기 할일없이 돌아다니면서 아무나 보면 괜히 싱겁게 웃어 보이고
있었다.

  (3)
  현재 평의회의  멤버로는 처음부터 구성된  목사, 교장, 역사가,
폭스 로버트와 추가로 선발된 대여섯 명의 족장들이 족장일은 대리
인에게 맡기고 참가했다.  그들은 날이 갈수록 조니가 열심히 몰두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병문안차 찾아가면  조니는 침대에서 반갑게 맞이하며 즐
겁게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의 눈 속에는 무겁고 어두운 그림자
가 떠나지 않고 있었다.  크리시는 될 수 있는 대로 그들을 병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가끔씩 병실에 들어오도록 허락했지만 오
랫동안 있으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긴박한 조종사 양성교육을 위해 사관학교의 교실ㄷ르이 러시아인
과 스웨덴인 그룹에 의해 부분적으로 보수작업이 진행되었다. 평의
회는 덴버에 있는 고대의  주정부 청사의 개축이 끝날 때까지 사관
학교에서 업무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곳이라면 본부구역도 지하기지
도 쉽게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평의회 멤버를 위한 숙박시설도
그곳에 마련되어 있었다.  폭스 로버트는 평의회 멤버들이 앉아 있
는 의자 사이를  부지런히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몸의 방향을 바꿀
때마다 킬트 스커트 자락이 펄럭였다.
  "그는 뭔가에 몰두하고 있다. 예전의 모습과는 다르다."
  "우리들이 뭔가 불쾌하게 한 것이 아닐까?"
  피어거스 족장이 말했다.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폭스 로버트가 대답했다.
  "그는 남의 비난하거나 화낼 인물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뭔가를 걱정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목사가 입을 열었다.
  "자신의 건강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오른쪽 팔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아직  걸을 수도 없으니 말야. 아무튼 지
금까지는 항상 몸을  아끼지 않고 위험한 역할을 했으니까. 틀림없
이 끔찍한 체험을 했을  거야. 누구 하나 도와주러 오는 사람도 없
고, 상처를 입었으나.... 혼자서 너무나 힘든 일을 해냈어. 게다가
우리 속에 갇혀 있었을  때... 그에게 모두들 너무나 많은 것을 요
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도 성급하게 말야. 그가 용감한 영
혼의 소유자라는 것은 분명하니까. 나는 그를 믿고...."
  "아, 사이클로별의 반격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아."
  아자일 족장이 말했다.
  "모두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니까 어떻게 해서든 그가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줍시다."
  분명히 그들은 괄목한  만한 활약을 보이고 있었다. '인류통일을
위한 세계연합'은 조니와  함께 미국으로 갈 수 없었던 스코틀랜드
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조작이었다. 그 수는 젊은이 이백 명에 원로
가 쉰명으로서  원대한 목표를 향해 순조로운  첫발을 내딛고 있었
다. 그들은 자신들을 준비위원이라 부르며, 세계각지에서 발견되는
인간군락들의 발전과 통합을  위한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
다. 그들이  조사한 것에 따르면 현재  지구상에 남아 있는 인류의
숫자는 삼만 오천 명  정도로, 그것은 정말로 놀라운 숫자였다. 그
들의 대부분은  산악지대나 로키 산맥의,  그들의 선조들이 천연의
지형을 이용하여 만든, 지하요새에 숨어서 살아남은 인간들이었다.
물론 그 가운데는 사이클로인이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북극으로 피
난간 사람들이나 운좋게  발견되지 않아서 살아남은 사람들도 있었
다.
  평의회의 규정에 따르면 그 임무는 각 지역마다의 부족적 지방적
풍속과 자치조직을  보존하면서 거기에 스코틀랜드식 부족통합제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그 고장의 족장을 새로운 지도
자로 임명했다. 준비위원이  그러한 방침을 각 지역에 전하자 사람
들든 모두 기꺼이 받아들였다. 통일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어갔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조직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은 전혀 하지 않은 것
같았다. 각  지역의 부족을 계도하는 계획은  종종 차질이 생겼다.
문자문화를 가지고 있는 곳과 가지고 있지 못한 곳은 각각 그 나름
대로 대처해야 했기 때문에 계획을 수정해야 되는 커다란 장애거리
로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그리고 부족들 대부분은 가난했고, 거의
기아상태에 빠져 있었으며 입을 것조차 충분히 못했다. 천 년의 암
흑 끝에 비록  일시적이라 할지라도 사이클로인의 학대로부터 해방
되었다고 하는 그 사실만이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했으며 희망을
주고 있었다.  옛날에는 산 위에서  폐허된 도시를 내려다보면서도
그곳에는 절대로  갈수가 없었다. 비옥한  평원과 풍부한 사냥감을
보면서도 그것을 경작하고,  사냥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스스
로 멸망해가는 것을  지켜보는 도리밖에 없었고, 시키는 대로 복종
하면서 살아야 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인간이 내려와 그들
이 쓰는 언어로  그들에게 자유가 주어졌다는 얘기를 전했다. 그들
에게 희망과 자신감이  용솟음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평
의회를 받아들였다. 그들은 언제나 조니 맥타일러가 평의회의 회원
이냐고부터 물어왔다. 그렇다고 대답을 해야 그들도 평의회에 가입
하겠다는 식이었다.  평의회의 현재 입장에서는  조니가 활동할 수
있는 멤버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평의회의 정치적 상징
인 조니의 존재에  대해서는 추호의 의심도 없었으나, 그의 건강에
대해서는 모두들 개인적인 우려를 나타냈다.
  세계도처에서는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별의별 일이 매일처
럼 일어나고 있었다.  더구나 그 대부분이 평의회에는 아무런 연락
도 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압박감을 떨쳐버리려는 듯이
각자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본부구역에는 그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자청하여 일하
고 있었다.
  "단 한 명도 사태를  관리하고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얘
기일세."
  어느 날 병실로 찾아온  폭스 로버트가 그렇게 말하자 조니는 얼
굴에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어째서 관리가 필요합니까."
   처음에는 언어의 차이가 심감한 장해요인이 될 것으로 걱정했지
만, 시간이 지나면 앞으로  세 가지 언어를 사용하게 될 것이 분명
해졌다. 즉 기술방면에서는 사이클로어, 타민족간의 대화나 정치방
면에서는 영어, 그리고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지 않은 부족
들은 각 부족의 고유언어를. 조종사들 상호간의 연락은 사이클로어
를 이용하고 있었다.  모든 계기표시와 조작설명서, 비행에 관련된
기술용어는 사이클로어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사이클로어는
우주위 다른  여러종족들이 이륙해놓은  기술발전의 성과를 훔쳐온
사이클로인의 역사에서 비롯된 일종의 합성언어였다. 사이클로어라
고 불릴 수 있는  고유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
다. 그런 사실이  밝혀지자 사람들은 더욱 열심히 사이클로어를 공
부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사이클로어라고 부르기보다는 테크노어
라고 부르기를 좋아했다.
  목사도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각기 다른 사십여 가지의 종
교가 모두 그의  영향력 아래로 몰려들었다. 신앙의 차이가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을 목사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에
게 복음서를 강요하지 않았다. 지금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평
화였다. 그래서 목사는  다른 종교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인간은 지금까지 분열되어 서로 싸워왔다. 그래서 통일적인 문화발
전이 극단적으로 늦어지고 있으며, 인류는 지금 다른 종족으로부터
침략을 당하면 잠시도 지탱할 수 없는 입장에 처해 있다. 인류끼리
의 전쟁만은 피해야 된다.
  조니는 여전히 허약한  모습의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었다. 크리
시와 맥켄드릭 의사의 설득에  따라서 매일 조금씩 걷거나 팔을 움
직이는 훈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생명력이나  사물에 대해 흥미를
나타내던 눈의  광채는 희미하게 흐려져  있었다. 평의회도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4)
  조니는 거의 방심한  상태로 일을 해보려는 의욕도 잃고 있었다.
폭탄은 사이클로별에  도착하지 않은 것이  틀림없었다. 결국 지금
인류가 누리고 있는  것은 조촐한 평화의 간주곡에 불과했다. 어쩌
면 인간은  곧 이 별의 아름다운  평원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었다.
게다가 설사 핵폭탄이  성공해서 사이클로인들이 몰살됐다 해도 장
차 다른 잔혹한 외계인들로부터 지구를 계속 시켜나간다는 것은 거
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조니의 마음은 납덩
어리처럼 무거워졌다. 모두들  행복한 듯이 일하고 있었다. 정말로
생기발랄했다. 그러나  지금의 평화가 다음  비극을 위한 간주곡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 아닌가. 만일 그런 때가
온다면 이번에야말로 전인류는 산산조각으로 파괴되고 말 것이다.
  오늘도 똑같은 하루가 시작되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앉자 러시아
인 자원봉사가 아침식사를 가지고 와서 크리시를 도와 방을 정돈했
다. 다음으로  맥캔드릭 의사가 찾아왔다. 세  사람은 조니의 팔을
운동시키고 보행훈련을 시켰다.  물론 그것에 불만은 없었다. 필요
한 일이니까. 그리고  폭스 로버트와 목사가 찾아와서 불안한 모습
으로 한참  동안 옆에 앉아 있었고,  크리시가 그들을 돌아가게 했
다. 그리고 또 몇가지 일과를 해내면 하루가 끝났다. 실패했다. 사
람들의 기쁨에 넘치는 표정들을 볼 때마다 조니는 언젠가는 절망의
표정으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조니는 크리시에게  얼굴을 씻어달라고 한 뒤  작은 바퀴가 달린
이동탁자 앞에 앉았다.  조니의 상태를 보러 온 준비위원과 러시아
인 봉사자가 방안에  있었다. 러시아인 봉사자를 쳐다보았다. 다른
날의 봉사자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  봉사자를 보는 것은 두
주일 만이었다. 전에 왔을  때는 크고 검은 눈에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키는 조니와 비슷했으며 눈은 조금 치켜져 올라가 있었다.
헐렁한 바지와 흰 튜닉을  입은 그 모습은 너무나 당당하여 누구에
게나 인상적으로 보였다.  커다란 코밑에는 짙고 검은 수염이 양쪽
으로 뾰적하게 뻗어  있었다. 이름은 이반이었다. 그는 아침식사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 뒤로 물러서서 정중한 자세로 서 있었다. 조니
는 궁금하다는 듯이 러시아인 봉사자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러시아
인은 구십 도로 허리를  굽혀 경례한 뒤 차렷자세를 취하고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조니 맥타일러 씨."
  지독한 사투리였다.
  꼼짝 않고 선  채 그는 뭔가 말하고  싶은 듯이 준비위원 쪽으로
눈길을 움직였다.
  "조니, 그가 알고 있는 영어는 이 두 마디밖에 없습니다. 당신에
게 하고 싶은 말과 선물할 것이 있다고 합니다."
  조니는 그 러시아인에게  뭔가 마음이 끌리는 구석이 있었다. 매
우 인상적인 사나이였다. 자못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한 표정이었
다. 조니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반은 기다렸다는 듯
이 러시아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준비위원이 가까스로 통역을 하였
다.
  "히말라야 산맥의 힌두크 시로부터 도착한 이반 스콜렌스크 대령
이라고 합니다.  옛날에 그 지역에서 본국  군대와 연락이 끊겨 그
고장의 여자와 결혼한, 붉은군대로부터 독립한 자손이라고 합니다.
그런 분견대의 자손이 히말라야에 열 개 그룹이 있다고 합니다. 러
시아로 말하는 사람 외에는 아프가니스탄 방언을 쓰는 집단도 있다
고 합니다. 물론 지금은 군대조직은 없습니다. 대령이라는 것은 그
들에게 있어서는 아버지라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순수한 카자흐인
입니다."
  러시아인은 준비위원이 하는  말이 너무 길다고 생각한 모양이었
다. 그래서  다시 얘기를 시작했다. 준비위원이  그 얘기의 개요를
파악해서 조니에게 전해주었다.
  "그들은 해방이 되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되자 일 개 분대.
즉 가족을 이끌고 광활한 대추원지대를 지나 우랄 산맥으로 이동했
다고 합니다. 분대를 파견한 것은 준비위원에게서 이곳 방위기지에
관한 얘기를 듣고 러시아에도  그런 기지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기
억이 나서 찾아나섰답니다.  분대는 돌아오자 이반에게 무선연락을
보냈고 연락을 받은  이반은 러시아로 날아가서, 그의 표현을 빌리
면 질풍처럼 단숨에 달려가서 자기 눈으로 그것을 직접 확인했다고
합니다. 당신에게 그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합니다."
  러시아인은 다시 얘기를 시작했다.
  "기지는 있다고 합니다. 이곳과 거의 같은 규모로서 원자폭탄 외
에도 기계와 차량들, 그리고 시체가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조니는 얼마간  흥미를 느꼈다. 반격이 있을  때 피난처로 쓸 수
있을 것이다.
  "알았습니다. 정말 잘했습니다.  그곳을 청소해서 사용하도록 전
해 주십시오."
  준비위원과 러시아인 사이에 짧은 언쟁이 있었다. 갑자기 러시아
인은 화를 내면서 침이  사방에 튀도록 큰소리로 다시 말하기 시작
했다. 그때 숨을  헐떡거리면서 로버트가 들어왔다. 아직도 완쾌되
지 못한  조니를 귀찮게 하는 불법침입자에  대해서 불쾌한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러나  조니의 모습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조니는 그의  말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조니는 한동안 볼
수 없었던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백전노장인 폭스 로버트는 벽에 몸
을 기대고 준비위원에게 계속하라고 손짓했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인류가 멸망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
들은 겉으로는 평화를  이야기하면서도 속으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
해서로 다투었기 때문에 다른 별에서 침략자가 쳐들어왔을 때 협력
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부족간의 싸움
은 결국 인류의  행복을 저해하는 요인이 됩니다. 과거의 인간들은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이익을 위한 싸움만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그런  일은 두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말
하고 있습니다. 다른  모든 러시아인 부족들의 생각도 같다고 단언
하고 있습니다."
  조니가 식사쟁반을 옆으로  밀어놓자 자신의 업무를 생각해낸 듯
이 러시아인은  그것을 집어들었다. 그런  후에도 그는 러시아어로
계속해서 말했다.
  준비위원이 몇장의 종이쪽지를 꺼내들고 말했다.
  "그들은 문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와 그  밖의 몇몇 족장들이
이것을 썼다고 합니다. 종이가 귀해서 좋은 종이가 아닌 점을 이해
해주십시오. 아마  그 기지 안에서 찾아낸  것을 사용한 것 같습니
다. 여기에 당신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폭스 로버트는 조니가 지쳐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것은 평의회가 검토해야  할 문제다. 히말라야 지방의 족장도
평의회에 참가하고 있을 텐데."
  러시아인은 로버트의 말을 짐작으로 알아들은 듯 다시 맹렬한 기
세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이것만은 시키는 대로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준비위원이 말했다.
  "평의회와 그 기지는  별개의 대륙에 위치하고 있으며, 기지에는
천년 전부터 이쪽 대륙을 겨냥하고 있는 핵병기 지하격납고가 있답
니다. 그래서  당신의 권한으로 러시아  기지에 사람들을 파견해서
그곳의 관리를 맡아달라고 합니다. 러시아인은 지금 이쪽 기지에서
청소작업을 하고 있고,  관리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쪽
에 있는 사람들도 함께 와서 일한다면 우리는 이제 서로 돕는 사람
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서류를  작성해 왔다고 합니다.
이것이 그 서류입니다. 좋다고 생각되면 서명을 해주시면...."
  로버트는 조니를 지켜보고 있었다. 조니가 흥미로운 표정을 나타
낸 것은  요즘 들어 처음이었다. 평의회  쪽도 아마 승락할 것이었
다. 조니는  폭스 로버트를 바라보았다. 그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
다. 조니는 펜을 받아들었다. 조니느 머릿글자로 서류에 서명했다.
  러시아인은 안도의 함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가 다시 준비위원을
향해서 얘기를 시작했고, 준비위원은 그것을 통역했다.
  "당신에게 선물할 것이 있다고 합니다."
  이반은 쟁반을 내려놓고는 코트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끄집
어 낸 것은 한가운데에  커다란 붉은 별을 그려넣은 황금원반과 가
느다란 끈을  꼬아 만든 두 개의  낡은 견장이었다. 이반이 그것을
내밀고 조니가 받아들기를 기다렸다.
  준비위원이 말했다.
  "그 기지의 사려관이었던  러시아 원수가 쓰던 모자의 기장과 견
장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당신의 것이며, 당신이 양쪽 기지의 총사
령관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조니가 엷은 미소를 짓자  러시아인은 그의 양쪽 뺨에 입을 맞추
고 곧 방을 나갔다.
  로버트가 서류를 챙기고  있는 사이에 크리시가 러시아인의 선물
을 조니의 사슴가죽 자루에 넣었다.
  "천 년 전에 우리가 협력할 수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
르는데."
  로버트의 말이  끝났는지, 아니면 이제  막 시작하려는 것인지는
몰랐지만 크리시는 로버트를  내보냈다. 조니는 몹시 피곤했다. 문
앞에서 로버트가 말했다.
  "나머지 일은 평의회가 알아서 하겠네. 어쩌면 그쪽 기지에 무언
가 있을지도 모르겠는걸."
  "잘 정리해주십시오. 그리고  함염필터를 설치하는 것을 잊지 마
세요. 모인폭격기가 다시 공격해왔을 때 도움이 될 테니가요."
  조니가 말했다.
  조니를 훈련시키러 찾아온 맥켄드릭은 그를 보고 상태가 많이 좋
아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니의 대답은 변하없이 어두웠다.
  "아직도 멀었습니다."
  조니는 자조하듯이 말했다.
  "나는 그다지 영리하지는 못했습니다."


  제 2 권
  하늘과 녹색사이

  제 16 부
  이 편지는 하나의 중대한 변화를 의미했다.

  (1)
  타르는 자신에게 할당된 움막  같은 방에 갇혀 수심에 잠겨 있었
다. 그는 다른 사이클로인과는 격리되어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
면 동료들에게 맞아죽을 게 뻔했다. 지금 감금되어 있는 방은 숙박
동의 세탁실로 사용되던  곳이어서 호흡가스 순환장치가 되어 있었
고, 폭이 좁은 십이  피트짜리 침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출입문에
는 음식을 넣어줄 수 있는 조그만 창이 달려 있었고, 그 창의 덮개
를 제치면 바같 통로를  볼 수 있었다. 문 아래에는 인터폰이 설치
되어 있었다. 문은  견고했으므로 열어보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시
도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쇠사슬로 묶어놓지는 않았어도 밤낮
으로 공격형 라이플을 든 보초가 문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암컷들 때문이었다. 암컷 두 마리와 챠크 탓이었다. 타르는 잘못
된 생각을  고집하고 있었다. 쉽게  자기합리화에 빠져드는 타르의
머리는 요즘 그  증세가 더욱더 심해지고 있었다. 사이클로별로 돌
아가 돈과  권력을 한손에 거머쥐고 대단한  숭배와 왕족의 존경을
받겠다는 꿈을  엄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린  동물들을 생각할 때마다
분노로 치가 떨렸다.  거의 손안에 들어왔었는데 그놈의 동물들 때
문에....
  지금쯤 그  황금관은 공동묘지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 캄캄한 밤을 택해서 묘지에서 관을 파내면 돈과 권력을 거
머쥘 수가 있었는데.... 동물놈들. 그렇게 많이 도와주었는데 은혜
를 원수로 갚다니. 쓰레기통 속에 머리나 처박고 뒈져라! 그렇지만
나의 장점은 머리가  뛰어나다는 것이다. 타르는 생각을 고쳐서 머
리를 짜내기 시작했다.  지금은 침착하고 냉정한 타르 나리로 돌아
가야만 한다. 나는 반드시 사이클로별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저
동물들과 이 별을 풀 한포기 남기지 않고 산산조각으로 파괴해버리
고 말겠다. 방해하는 놈은 절대로 살려두지 않겠다.
  타르는 우선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일이 굽선무였다. 어떠한 수단
을 동원해서라도 빠져나가야  했다. 가장 중요한 관건은 물론 두뇌
플레이였다. 둘째는 처음 동물을 가둬놓았던 우리 속에 파묻어놓은
대량의 폭약이었다.  그녀석은 이미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셋째로 세개의 리모트 컨트롤이다 한 개는 놈들에게 빼앗겼지만 한
개는 아직도 내 사무실에 있다. 그리고 또 한 개는 그 우리의 철책
바로 안쪽에  놓아두었다. 놈들의 손에  붙잡히게 되어 감금당했을
경우에 대비하여 그렇게 해둔 것이었다. 그것으로 암컷들을 날려보
내든가 철책의 전류를 끊어버리든가 하려던 것이다.
  아두운 방에 꼼짝 않고 앉은  채 타르는 일주일 동안 계속 이 궁
리, 저 궁리를 하고 있었다. 드디어 돌파구를 찾아냈다. 잔인한 계
획은 이미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프로그램되었고, 실행에 옮기는 일
만이 남았다. 언제든지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 첫번째 계획은 어떻
게든 우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좋아, 해보자! 타르는 침착
해졌고, 여유를 되찾았다. 그는  어느 날 문득 보초가 킬트 스커트
을 입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음식을 넣어주는 창문의 덮
개를 제치고 바라보던 타르는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보
초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긴 바지와 끈으로 묶은 장화. 왼쪽
가슴에 날개가  하나인 기장을 달고 있었다.  어떻게 말을 꺼낼까.
광산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타르도 어학에는 소질이 없었다. 분명
히 그것도 실력에 들어가겠지만 긍지가 높은 사이클로인이 그런 것
을 배워서 무엇 하겠는가.  그 긍지 덕택에 결국 이런 꼴이 되어버
렸지만.
  타르는 문에  달려 있는 인터폰에 대고  사이클로어로 말을 걸었
다.
  "그 날개 하나는 무슨 의미인가?"
  보초는 놀라는 것 같았다.
  "분명히 날개는 두 개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1급 조종사라는  뜻이다. 나는 아직 훈련중이다. 그러나
언젠가 날개 두 개를 달개 되겠지."
  도대체 동물들은 무엇을  생각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하여간 좋
다. 내가 알 바  아니다. 녀석들의 기분 따위는 아랑곳없지만 그것
은 알아야 했다. 어쨌든  이녀석은 사이클로어를 할 줄 안다. 칭코
인의 사투리가 섞여 있기는 하지만 사이클로어는 사이클로어다.
  "틀림없이 너는 날개 두  개를 달게 될 거다. 너의 사이클로어는
수준급이니가 말이다. 그러나 조금 더 연습하는 것이 좋겠다. 진짜
사이클로인과 얘기를 나누면 훨씬 능숙해지지 않을까?"
  보초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더구
나 지금 눈앞에  진짜 사이클로인이 있고, 지금까지 그들과 얘기를
나눠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절호의 기회였다. 보초는 우선 자기
소개부터 시작했다. 랄스  소렌슨이며 몇 달 전에 스웨덴인 부대에
서 비행훈련을 받기  위해 왔다고. 스웨덴은 북극해 가까이에 있었
고, 사이클로인들과 접촉할 기회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소렌슨은  스코틀랜드인들처럼 사이클로인에 대한 강
렬한 증오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당신은 비행기 조종을 할 줄 아는가?"
  "물론이다. 나는 모든  비행기의 공중전술을 마스터했다. 깊이가
육마일이나 되는 수갱  속으로 강하하여 사고현장에서 기계를 끄집
어내는 일도 간단히 해낼 수 있다."
  보초는 창문 쪽으로  고개를 바싹 기울였다. 비행은 지금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비행의 베테랑이 지금 여기
에 있었다. 그들 가운데서 조종을 가장 잘하는 것은 조니였다.
  "당신은 조니를 알고 있는가."
  "아아, 알고 말고."
  그것도 그냥 알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고 했다. 두 사람이 사이좋
게 지냈을 때는 그가 조니에게 비행기술을 가르쳐주었다고 했다.
  "녀석이 조종을 잘하는 것으 그 때문이지. 하여간 상당히 요령이
좋은 녀석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타르는 자신의 거짓말에 감탄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보초를 바
라보며 생각했다. 보초는  모두 훈련생이다. 아마 정규군의 숫자가
모자라기 때문에 훈련생이 보초를  서게 된 것 같다. 그래, 이녀석
을 이용하자.
  매일 아침마다 소렌슨은  사이클로어와 공중전 전술에 관한 여러
가지 학습을 받았다. 비행의 명수이고, 과거에 조니의 친구였던 사
이클로이에게서였다. 그 전술을  실행해 옮긴다면 공중전에서는 눈
깜짝할 사이에 패배할  것이 뻔한데도 랄스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이런 엉터리 같은 기술을 가르친다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타르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하고 싶은 유혹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보초병의 사이클로어가 상당히  향상된 어느 날 아침. 타르는 몇
가지 의미가 분명치 않은 단어가 있으니 사전을 빌려달라고 수작을
붙여보았다. 그것을 타르에게  주겠다고 말했다. 일이 순조롭게 풀
려나가고 있었다.  타르는 보초가 교대를  마치고 물러가자 재빨리
그 사전을 펼쳐보았다.  합성어인 사이클로어에는 사이클로인 자신
은 절대로 쓰지 않는 단어가 몇 가지 있었다. 칭코어와 그 밖의 언
어에서 따온 단어였다.  사이클로이이 그런 단어를 쓰지 않는 것은
애당초 그 단어가 나타내는 개념 자체를 전혀 이해할 수 없기 때문
이었다. 예를 들면 '대가를 치루다'라든가 죄, 과오, 애처로움, 잔
혹, 공정 등이 그것이었다. 그러한 말이 있다는 것, 다른 종족들이
그것을 사용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사전에
서 그 의미를 찾고,  이해라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
부터 하려는  계획중 가장 어려운  작업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서서히 대충 느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다음 단계
로 들어가기로 했다.
  보초가 왔을 때, 타르는 말을 걸었다.
  "사실은 요즘 옛날에 조니를 우리 속에 가뒀던 일을 후회하고 있
다. 왜 그렇게 잔혹한  짓을 했었는지 그때의 내 마음을 이해할 수
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든 그 대가를 치루고 싶다. 아
아, 나는 참으로 비정한  일을 했다. 만일 그것이 허용된다면 그가
당했던 것처럼 나도 우리 속에 들어가서 그 대가를 치루고 싶다."
  마지막까지 말을 끝마쳤을 때는 온몸에 땀이 비오듯이 흐르고 있
었다. 그것이 보초에게는 오히려 죄를 뉘우치고 있는 것 같은 인상
을 주는 듯했다. 보초는  언제나 둘 사이의 대화를 녹음하고, 그것
을 다시 들으며 자신의 발음을 고치곤 했는데. 그날은 지금까지 들
어본 일이 없는 단어가 많이 나왔으므로 녹음하기를 잘했다고 기뻐
하고 있었다. 타르는 타르대로 두번 다시 그런 단어를 사용히지 않
을 생각이었다. 한 번이면 족했다.
  저녁 무렵 근무를 끝낸 보초는 아침에 녹음해둔 타르와의 대화를
복습했다. 의미를 전부 이해하자 그 내용을 본부구역의 사령관에게
보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본부에는 새로운 사령관이  임명되어 있었다. 아자일족의 사나이
로 스코틀랜드에서  수많은 전투를 경험한,  평판이 높은 인물이었
다. 방사능탄 한 방으로 사이클로인을 죽일 수 있게 된 지금. 그는
사이클로인을 경멸하는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한 그도 하
나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최근에 전세계의 사람들이 문자 그대로
때를 지어 찾아와  본부구역을 견학하곤 했는데 준비위원이 그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갖가지 피부색에 다향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이 수시로 방문할 때마다 그들을 상대하느라고 기지는 많은 피해를
입고 있었다.  더구나 그 관광객들을  예의없이 사이클로인을 보고
싶어했다. 몇 세대에  걸쳐 사이클로인의 억압 속에서 살아온 역사
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사이클로인을 분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사이클로인 수
용소에 들어가보고 싶어했다. 그러나 아직도 저항하고 있는 사이클
로인들이 있어서 그것은  항상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따라서 어
떻게 해서든 특별경비병을 보충할 필요가 있었다.
  사령관은 보초가 전달해온 제의을 받고 우리를 보러 갔다. 그 우
리의 철책에는 고압전류가 흐르게 되어 있었다. 그곳에 사이클로인
을 집어넣고 철책 앞에 방호벽을 만들어 구경꾼들이 철책에 손대지
못하게 한다면 사이클로인을 자유롭게 구경시킬 수 있을 것이었다.
그 렇게만 하면 수용소로  밀려드는 관광객들에 대해 이제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질 것이었다.
  사령관은 자신의 계획을 평의회의 회의석상에서 밝혔다. 그는 아
주 간단한 설명을 했을  뿐, 우리에 넣는 것이 타르라는 말은 한마
디도 하지 않았다.  기사들이 우리의 철책을 조사해보고 배선에 이
상이 없다는 것을 보고했다. 견학자가 접촉해서 감전사하지 않도록
방호벽도 만들어졌다.
  경비병들에게 엄중하게 둘러싸여 과거 조니와 암컷들을 가두었던
우리로 향하는 타르의 마음은 잔뜩 부풀어 있었다. 그는 얼굴에 회
개하는 표정을 짓고 있어야 함을 잊지 않았다.
  "아아, 다시 하늘을 볼수 있게 되었다."
  타르는 읊조리듯 말했지만  지구의 푸른 하늘을 독가스처럼 싫어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조금이라도 기뻐해서는  안된다. 여기서 사람들의
눈에 노출이 되고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조소당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괄시를 받아 마땅한 놈이다."
  타르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군중 앞에서 험상
궂은 얼굴로  뛰어다니고 호흡마스크  너머로 노려보면 어린애들은
철책 밖에서 비명을  지르고 겁을 집어먹었다. 고릴라가 가슴을 두
들긴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그대로 훙내내서 가슴을 두드려 보
이기도 했다. 실제로 굉장한  인기가 있었다. 우리 앞에는 항상 사
람들이 몰려 있었고,  진짜 사이클로인을 보고 만족해서 돌아갔다.
구경꾼들 중에는  타르를 향해서 물건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타르가 조니에게 목고리를 씌운 사실을 안 사람들은 타르에
게도 목고리를  채우라고 아우성이었다. 그것을  전달하러 온 것은
젊은 훈련병  랄스였다. 타르가 참으로  좋은 생각이라고 대답하자
이틀 뒤에 다섯 명의 경비병이 찾아와서 무거운 목고리를 타르에게
씌우고, 쇠사슬을 낡은  말뚝에 고정시켰다. 본부구역 사령관은 그
조치에 크게 만족하고 있었다. 물론 타르가 조금이라도 도망치려는
기미를 보이면 그를 사살하도록 경비병에게 명령하는 것도 잊지 않
았다.
  우리 안을 서성거리거나  반항하듯이 위협적인 자세를 취하거나,
짖어대듯이 으르렁거리면서도, 입가에  은밀한 미소를 떠올리는 타
르의 흑심을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은 타르가 계획한
대로 완벽하게 전행되고 있었다.

  (2)
  조니는 읽고 있던 책을  포기해버리고 손도 대지 않은 채 점심쟁
반을 밀어냈다.
  문밖의 보초가  유리 너머로 그것을 보고  있다가 즉각 대령에게
연락했다. 대령은 거의  반사적으로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마치 전쟁터에서 활약하듯  재빠른 동작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문소
리가 수류탄의 작렬음으로 들릴 정도였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조니는 중얼거렸다.
  "아무 일도 아니다."
  비상사태가 발생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자 보초도 대령도
휴 하고 긴장을 풀었다. 보초는 언제나처럼 제위치로 돌아갔고, 대
령은 다시 흰 타일을 닦기 시작했다. 그러나 크리시의 마음은 불안
하기만 했다. 조니가 이처럼 짜증을 부리는 일은 지금까지 없었다.
그런데 벌써 며칠씩이나  그런 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오직 책만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그것은 점점 심해져갔
다. 사이클로어로 씌어진 책들이었다.
  조니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만  있다면 이 책을 보이지 않는 곳으
로 내동댕이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평소 책을 조중히 다루던 조니
였지만 이 책만은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다른 몇 권의 책과 마찬
가지로 '텔레포테이션 수학이론'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읽어봐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이클로인의 산수만으로도
골치가 아팠다. 사이클로인은  손가락이 오른손에 여섯 개, 왼손에
다섯 개가 있어서인지  그들의 수는 11진법이었다. 당연히 그 수학
이론도 모두  11진법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옛날에 인간의
수학은 10을 기수로  하는 10진법을 쓰고 있었다고 조니는 배웠다.
지금 인간의 수학을 배울 생각은 없었다. 조니가 알고 있는 수학은
사이클로인의 수학뿐이었다. 그러나 텔레포테이션에 관한 수학이론
은 일반적인  사이클로의 산수나 수학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 책을 읽고 있다가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은 느낌을 받았
다. 아하하하! 이것이 기초란 말인가. 정말 웃기는군. 이제 더이상
아무리 어려워보았자 마찬가지다.  조니는 이동식 식탁을 밀어내고
침대에 외손을  짚고 비틀거리면서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 외출을 해야겠어. 그냥 멍청히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기다
리고 있을 수만은 없어. 내 셔츠를 꺼내줘."
  대령도 크리시도 깜짝  놀라서 조니를 보았다. 대령은 조니의 부
축하려고 다가왔다. 조니는 손을 흔들어 그를 저지시켰다. 혼자 일
어서야 했다.
  크리시는 서둘러서 서랍을 열었다. 대령은 방구석에 세워놓은 지
팡이를 가지고 왔다.  오른손과 오른발이 모두 불편했기 때문에 왼
손에 지팡이를 들고, 왼발로  뛰듯이 걸을 수 밖에 없었다. 불편하
기 짝이 없었다. 조니는  발을 질질 끌면서 옷장이 있는 곳까지 가
서 그곳에 걸터앉아  환자용 가운을 벗었다. 크리시가 꺼낸 사슴가
죽 쳐츠 세벌 가운데서  일부러 낡고 기름이 밴 것을 골라 입었다.
크리시가 셔츠소매를 가죽끈으로  묶어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도움
을 받아서 사슴가죽 바지를 입고, 모카신을 신었다. 조니는 서랍을
힘겹게 열어 구두직공이  만들어준 왼손잡이용 권총집을 꺼내 셔츠
위에 걸쳤다. 권총집에는  방사능탄이 장전된 스미스 앤 웨슨 매그
넘 45구경이  들어 있었다. 조니는 그것을  꺼내 서랍 속에 넣어두
고, 그 대신 작은  분사총을 접어서 총탄이 장전되어 있는 것을 확
인하고 권총집에  끼워넣었다. 의아스러워하는  대령을 바라보면서
조니는 말했다.
  "오늘은 사이클로인을 죽일 생각은 없다."
  건들거리기 때문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오른손을 벨트 속에 집어
넣으려고 했다. 그때 통로 쪽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방을
나가려는 조니는 그것에 신경쓰지 않았다. 틀림없이 로버트나 목사
가 평의회 일로 뭔가 얘기하려 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
다. 문을 열고 방으로 뛰어들어온 것은 거대한 몸에 킬트 스터트를
입고 있는 당직장교인 맥더프 대위였다.
  "조니!"
  조니는 자신이  밖에 나가려고 하니까  모두들 제지했기 때문에,
대위도 자신을 제지하기 위해  달려온 줄 알고 그것에 대비하고 있
었다. 그러나 대위의 말은 엉뚱한 것이었다.
  "조니, 사이클로인을 데려오라고 한 것이 당신입니까?"
  조니는 그의 말을 무시한 채 모피모자를 찾았다. 두개골 수술 때
문에 머리칼을 모두  잘라냈으므로 모자를 써야만 했다. 그러나 곧
그가 질문하는 의미를  알아차렸다. 지팡이를 짚은 그는 다리를 끌
면서 뒤뚱거니는  걸음으로 입구까지 가서  밖을 내다보았다. 카였
다!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지저분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온몸에
난 털에는 먼지가 잔뜩 달라붙어 있었고, 마스크 너머로 보이는 양
쪽 이빨은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입고 있는 웃옷은 한쪽 옆구리
가 위에서 밑까지 두 동강이로 찢겨져 있었고, 장화는 한쪽만 신고
있었다. 모자는 아예 쓰고  있지도 않았다. 귀는 마치 꾸깃꾸깃 구
겨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카를 묶고 있는 네 개의 쇠사슬을 네 명의 병사가 각각 움켜쥐고
있었다. 사이클로인이라고는 해도  난쟁이인 카에게는 너무 지나친
것처럼 보였다.
  "카!"
  조니의 목소리에는 동정의 울림이 있었다.
  "그 친구를 들어오게 하게."
  조니는 그렇게 말하고  의자 위에 걸터앉았다. 카를 불쌍하게 생
각해기도 했지만, 무슨 일인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괜찮겠습니까?"
  맥더프가 불안하다는 듯이 카를 쳐다보고는 다시 물었다. 조니는
그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병사들을 손짓해 불렀다.
  그리고는 쇠사슬을 풀고,  부서로 돌아가 있으라고 지시했다. 호
흡마스크 뒤쪽으로 카의  애원하는 듯한 눈빛이 보였다. 조니가 다
시 한번  손을 흔들어 방에서 나가도록  명령하자 그들은 마지못해
문을 닫았다.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어, 조니. 너를 꼭 만나야만 했다구."
  "대체 그 모습은 뭐야? 몸을 전혀 돌보지 않은 것 같은데."
  "지옥의 기름가마솥 같은  곳에 감금되어 있었으니까. 이미 절반
은 미쳐가고 있는  중이지. 하룻밤 사이에 혹성장관이 되었다가 기
름때로 찌든 쓰레기로  전락했으니까 말이야. 역시 나의 진정한 친
구는 너밖에 없어, 조니."
  "당신이 무엇 때문에 여기 왔는지는 모르지만...."
  "바로 이것 때문이다."
  그렇게 말하며 카는  더러운 손을 누더기 쳐츠 안에 집어넣었다.
카의 표정은 진지했다. 조니가 오해하여 분사총으로 쏠지도 모른다
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조니도 카가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할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카가 손에 꺼내든 것은 한
장의 지폐였다. 조니는 그것을 받아들었다. 도박을 할 때 사이클로
인들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직접 만져본 적은 없
었지만 그것에는 전부터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무엇이가와 교환할
때 언제나 사용되는  종이쪽지였고, 누구나 그것을 갖고 싶어했다.
그것은 폭이 육 인치,  길이는 일 피트였다. 약간 거칠었지만 광택
이 나는 지폐였다. 한쪽은 청색, 반대쪽은 오렌지색 잉크로 인쇄되
어 있었다. 성운과 별의 폭발을 나타낸 마크. 그러나 가장 눈에 띄
는 것은 서른게  가까이 되는 언어와 숫자표기법, 문자포기 방식으
로 인쇄되어 있는 부분이었다. 그것을 한번 훑어보았다. 인쇄된 사
이클로 문자가 보였다. 조니는 그것을 읽어보았다.

  은하은행
  백 은하 크레디트
  법정통화 - 모든 거래에 유효
  위조하는 자는 법률에 의해 기화형에 처해진다.
  은하은행에서 교환가능함을 증명함

  그리고 청색 잉크로 인쇄된 문자 옆에는 한 인물의, 혹은 생물의
초상이 인쇄되어 있었다. 인간의 모습을 한 생물이었다. 어쩌면 어
떤 사이클로인이  더넬딘을 보고  착각했던 토르네프인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얼굴은 위엄으로 가득 차 있었고 고결한 인상을 주었다.
반대쪽에도 같은 크기의 그림이 있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
은 아치모양의 당당한 건물그림이 인쇄되어 있었다.
  이것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유감이지만  오늘 일정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조니는  지폐를 카에게 돌려주고, 모자를 찾으려고
다시 서랍을 뒤졌다. 매끈매끈하게 밀어버린 머리상태로 그냥 있는
것은 아무래도 묘한 느낌이었다. 카는 약간 낙담한 듯이 보였다.
  "백 크레디트 지폐한  말이야, 그것도 사이클로별에 있는 은행에
서 발행한 것이  아니야. 이 지폐는 사이클로인은 물론이고 우주의
모든 종족이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위조지폐가 아니다. 광택을 보
았겠지. 서명 주위에 있는 가느다란 선...."
  "나를 매수할 생각인가?"
  조니는 그렇게 말하면서  찾아낸 모자를 집어던지고 무늬가 있는
큰 수건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 게 아니야."
  "이것 보게. 내 말을 들어보라구. 이런 것들은 나에게는 아무 소
용도 없네."
  조니는 낮은 의자 위에  걸터앉아 몸을 편하게 하면서 카를 쳐다
보았다. 카는 문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리고 문을 등지고 가슴
이 조니에게만 보이게  하고는 누더기 웃옷을 벗어 보였다. 가슴에
찍힌 낙인이 똑똑하게 보였다.
  "세 줄의 낙인이야."
  카가 입을 열었다.
  "범죄자의 낙인이라구. 내가 전과자라는 것은 알고 있었겠지. 타
르가 잡고 있던 나의 약점 가운데 결정적인 것은 이것이었어. 그렇
기 때문에 내가 어디를  가든, 너에게 무엇을 가르치든, 놈은 안심
하고 있었던 거야.  만약 내가 사이클로별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공
문서를 위조해서 직업을  얻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나는 기화형
이다. 반대로 사이클로인이 이곳을 탈환한다 해도 살아남은 사이클
로인들을 조사할 거라구. 지구인에게 전향했거나 협조한 사실이 발
각되는 것은 시간문제지. 내  서류는 몽땅 위조야. 내 진짜 이름은
밝히지 않겠어.  너를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진짜 이름을
모르면 공범이 되는 일은 없으니까. 알겠지?"
  조니는 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첫째 사이클로인이 자기를 찾아낸다면 그자리에서 죽여버릴 테니까
공법이고 뭐고 따질 겨를도 없을 것이었다. 조니는 일단 고개를 끄
덕여 보였다. 이런 얘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대체 크
리시는 수건을 어디에 챙겨두었지.
  "그것뿐만이 아니야. 그들이  내게서 이십억 은하 크레디트를 찾
아 낸다면 나를 완속기화형으로 조금씩 조금씩 피를 말려가면서 죽
이려 들 거야."
  "이십억?"
  "그래, 넘프 녀석은 이곳에서  근무하는 삽십 년 동안 잠시도 쉬
지 않고 회사돈을 횡령했어. 타르도 그 돈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여성 관리직원들한테 수수료를 뜯어내거나 카방고에 이중
가격을 매겨서 판매하거나  광석을 몰래 팔아먹거나 해서.... 혹성
밖으로 나가면 거래는  간단하니까. 내가 그것을 찾아낸 것은 놈의
침대에 있는 매트리스에서였어. 넘프는 매트리스를 넉 장이나 사용
하고 있었다고.  이상한 주름이 잡혀 있었다.  나는 매트리스를 한
장만 까는 게 편해서 빼버리려고 했지."
  "그 돈은 어디에 있나?"
  "바깥 홀에 두고 왔어."
  카는 그렇게 말하고는 웃옷의 단추를 채웠다. 조니가 문 앞에 있
는 보초에게 신호를  보냈다. 카는 치렁치렁히게 늘어진 쇠사슬 소
리를 내면서 문밖으로 나가 큰 상자를 안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것
을 조니  앞에 쿵하고 내려놓았다. 그는  다시 나가서 다른 상자를
옮겨왔다. 조니보다는 약간  크다고 느껴질 정도로 사이클로인치고
는 작은  키의 카였지만 완력은 상당하였다.  누구 하나 말릴 틈도
없이, 튕겨오르는  쇠사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카는 순식간에 빈
카방고 상자를 방안  가득 채웠다. 상자마다 넘쳐흐를 정도의 크레
디트 지폐가 가득 들어 있었다.
  "이것 외에도 사이클로별에 있는 그놈의 구좌에는 상당한 금액이
예금되어 있지만, 그것을 손에 넣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카는 숨을 헐떡이면서 의기양양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이것으로 너는  참코 형제 같은  전향자들에게 현금으로 금료를
지불할 수 있다구."
  "그러면 너는 무엇을 원하는가?"
  조니가 카에게 물었다.
  "수용소에서 나를 꺼내줘."
  카가 애원했다.
  "내가 놈들의 상관이었기 때문에 놈들은 나를 증오하고 있어. 어
차피 처음부터 나를  싫어하고는 있었지만. 알겠지, 조니. 나는 기
계에 관해서는 모르는 게 없다구. 모든 기계의 조종법을 너에게 가
르쳐준 것도 바로  나였다. 그렇지? 너희들이 사관학교라고 부르는
곳에 기계학교를 개설했다면서?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기계에 대해
서 아는 게 별로 없다. 너와 나보다는 말이야. 너에게 가르쳤던 것
처럼 그곳에서 기계를 가르치게 해다오."
  카는 비통한 표정을 지으며 애원하듯이 조니를 쳐다보고 있었다.
카는 자신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고 믿었지만 너무나 과장되
었기 때문에 조니에게는 우스꽝스럽게 들렸다. 마침내 조니는 웃음
을 터뜨렸다.  웃음이 멎지를 않았다. 카는  그것을 보고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그것은 멋진 생각이군. 카."
  바로 그때 폭스 로버트의 근엄한 얼굴이 나타났다. 곧 영어로 바
꿔서 말했다.
  "로버트 경, 교장에게 새로운 교사를 찾아냈다고 전해주세요. 그
가 기계조종에 관해서는 우수한 인물이라는 것을 보증합니다. 그는
기계 전문가입니다."
  조니가 카 쪽을 보며 싱긋이 웃어 보이고 사이클로어로 말했다.
  "고용조건은 하루에 일 쿼터의 카방고 지금, 급료와 보너스 전액
은 월말지급. 그  밖에 '사망시 사이클로별에 매장시켜준다.'는 항
목만 제외하고 회사의 표준계약서에 따른다. 이상이면 어떤가?"
  카란 놈은 틀림없이 자기자신을 위해서 그 삼십만 크레디트 정도
는 어딘가에 몰래 숨겨두고 있을 것이었다. 카는 신이 나서 고개를
뜨덕였다. 만약에 대비해서  삼십만 크레디트 가량은 확보해두었으
니까. 한손을 내밀고 조니와 악수를 나누었다. 계약은 완료되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면서 밖으로 나가려면 카는 잠시 걸음을 맘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조니에게 거의 속삭이듯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
다.
  "너에게 또 한  가지 할 얘기가 있어.  네 동료들이 타르를 우리
속에 집어넣었어.  놈을 철저히 감시하는 것이  좋을 거야. 그놈은
틀림없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을 테니까 말이야."
  카가 방을 나가자 로버트는 방안에 가득 찬 지폐를 바라보았다.
  "취직을 위해 쓰는  뇌물도 요즈음은 상당히 바싸진 모양입니다.
이것은 평의회가 맡아주십시오."
  조니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웃었다.
  "이것은 은하은행 화폐가 아닌가?"
  폭스 로버트는 몹시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조니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옷까
지 갈이입고. 물론  건강해진 것은 좋지만 사이클로인을 이렇게 가
까이에 끌어들이다니.  위험스러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날카로운
손톱으로 얼굴을 핥켰다면 절반은 날아가버렸을 텐데. 그때 조니가
다리를 끌면서  방을 나가려는 것을 깨달은  폭스 로버트는 궁금한
표정으로 조니를 바라보았다.
  "내가 하늘을 떠받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요."
  조니는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그냥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본부구역에 다녀오겠습니다."
  조니는 참코 형제와 얘기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 전송용 플랫
폼의 복구는 전혀  진전이 없었다. 그것이 완성되지 않으면 언제까
지나 사이클로별의 상황을 알 수가 없었다.

  (3)
  한쪽 다리를 쓸 수 없어서 지팡이를 짚고 헬리포트까지 걸어가야
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엘리베이터는 작동되지 않았
으며 앞으로도 작동되지  않을 것이었다. 조니는 다리를 질질 끌면
서 걸었다. 이 넓은 장소를 정리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뒤쪽에서  사람들이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날카로운 러시아인의 명령이 들려오더니 두 명의
사나이가 조니의  양옆에 나타나서, 조니를  번쩍 들고 헬리포트로
향하는 계단을 달려내려갔다.  누군가가 연락을 해놓았는지 당직조
종사가 인원수송기의 승객용 문을 열어놓고 대기하고 있었다.
  "그곳이 아니다."
  조니는 소리치면서 움직이는 팔로 조종석을 가리켰다. 나를 병자
취급할 셈인가. 실제로 조니는 한쪽 팔과 다리를 거의 사용하지 못
하는 상태였다.  이반 대령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즉각 조종사용
탑승구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
면서 승객용 문을 닫으려던 조종사는 숨을 헐떡이면서 계단을 뛰어
내려온 세 사람의 러시아이에게 밀려났다. 러시아인들은 공격형 라
이플을 철컥거리면서  로버트와 킬트  스커트 차림의 스코틀랜드인
두명을 탑승시키고  자기도 올라탔다.  조니는 안전벨트를 묶었다.
승객석을 돌아보니 자락이 넓은  빨간 바지에 회색 상의를 입은 러
시아인들도 각자의  자리에 몸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이반 대령이
조니가 쓰고 있던 수건을 벗기고 대신 둥굴둥글한 모피모자를 씌워
주었다. 그것을 똑바로 쓰려고 벗어보니 모자 앞에 금색 원반에 새
겨진 붉은 별 기장이 빛나고 있었다.
  "우리들도 출격합니다."
  이반 대령도 영어로 말했다. 그는 영어를 열심히 공부한 것 같았
다. 조니는  빙긋이 웃었다. 비행기 안은  마치 국제 협력군 같군.
소부대이기는 하지만.
  넓은 탑승구는 모두 활짝 열려 있어서 햇살이 비쳐들어오고 있었
다. 조니는 활짝  개인 여름하늘을 향해 수송기를 힘차게 이륙시켰
다. 아아,  산맥이다! 청명한 하늘을  배경으로 조용하고 장엄하게
솟아 있는  산들. 계곡들은 그 짙은  그림자를 산자락에 드리웠고,
나무들은  부드럽고 짙은  초록색으로 무성하게  둘러싸여 있었다.
앗, 곰이다. 곰은  언덕을 구르듯이 달려내려가고 있었다. 언덕 위
에 있던 염소떼들이 올려다보고 있었다. 조니는 조작판을 왼손으로
가볍게 조작하여 동쪽 산언저리의 마지막 봉우리들 너머에 있는 평
원을 향해 내려갔다. 여름이었다. 비가 내린 뒤인 것 같았다. 꽃들
이 펼쳐져 있었다. 완만한 기복의 지형이 동쪽을 향해서 지평선 끝
까지 펼쳐져 있었고, 여기저기에 풀을 뜯는 동물의 무리가 보였다.
유구한 세월 동안 함께 살아온 풍요한 땅이여, 얼마나 아름다운 혹
성인가. 이 별을 지켜야 한다.
  당직조종사는 조니의 조종솜씨에 넋을 잃고 있었다. 왼손과 왼발
만을 사용해도  다섯손가락을 모두  사용하는 자신의 조종솜씨보다
월등해 보였다.
  다시 활동한 첫날이  이렇게 아름다운 날일 줄이야. 조니는 본부
구역으로 들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삼사십  명쯤은 될 것
같았다. 모두 수송기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조니는 표면에 미끄러
지듯이 사뿐히 비행기를 착륙시켰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아직 출입
금지 구역에 들어와  있지 않았다. 그러나 비행기가 착륙하자 밑물
같은 기세로 수송기를  향해서 달려왔다. 조니는 문을 열고 왼손의
손가락을 입에 대고  날카롭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잘 훈련되
어진 조니의  귀에 군중들이 소음 속에서  달려오는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윈드스프리터의 발굽소리였다.  윈드스프리터는 즐거운
듯이 히힝거리면서 조니에게 코를 비벼댔다.
  "너는 항상 윈기왕성하구나."
  조니는 말에  올라탈 방법을 생각했다.  오른쪽으로 올라가서 말
등에 납작  엎드리고 왼쪽 발을 끌어올리면  되었다. 그는 한 번에
성공했다. 누구의  도움도 필요없었다. 자아,  참코 형제에게 가서
전송장치의 수리가 지연되는 이유를 알아봐야겠다.
  그러나 이미 사람들이 말 주변에 몰려 있어서 꼼짝도 할 수 없었
다. 몇  사람의 손이 조니의 모카신을  만져보고 싶어했다. 조니는
갑자기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조니를 맞이할 수많은 사람들의 표정
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조니는 이 아름다운 날에 드리워질
어두운 그림자를 예감하며 가슴이 무거워졌다. 이 사람들은 아무것
도 모르고 있다. 나는 실패했는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죽음의
그림자가 이 아름다운  푸른 하늘을 뒤덮을 것이다. 조니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빨리 일에 착수해야 한다. 사람들의 찬사는 현재의
조니에게는 무거운 짐이었다.
  킬트 스커트 차림의 스코틀랜드인 두 사람이 사람들 사이를 비집
고 들어와서 윈드스프리터의 양쪽에 섰다. 그리고는 조니가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올 수 있게 길을 열어주었다. 말을 달리려는 순간 킬
트 스커트를 입은 맨발의 소년이 팔꿈치로 사람들을 밀어내며 다가
왔다. 소년은  윈드스프리터의 고삐를  잡았다. 사람들의 술렁거림
속에서 소년의 당당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저는 비티 맥크라우드라고  합니다. 조니 경, 저는 더넬딘 나리
의 허락을 받고 당신을 모시기로 했습니다."
  그의 말투에는 강한  사투리가 있었으나, 그 태도는 결의와 자신
감으로 넘치고 있었다.  소년은 고삐를 끌고 본부구역으로 걷기 시
작했다. 비티 맥크라우드에게  이끌린 윈드스프리터는 천천히 걸어
갔다. 조니는  환호해주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모두들 한결같이
소리치고 있었다.
  "조니, 조니, 조니!"
  조니는 환호 속에서 근심스러운  듯이 맑게 개인 푸른 하늘을 올
려다보았다. 상공에 무엇인가가 보였다. 가슴이 철렁했으나 그것은
정찰기에 지나지 않았다. 외계로부터의 침입에 대비해서 현재 많은
무인정찰기들이 하늘을 날며 경계하고 있었다. 지금 지구상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희망에  불타고 있었다. 인류는 활기를 되찾았고,
살아가는 일을 다시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조니의 죄책
감을 더 한층  크게 말들어주었다. 모두들 내가 성공했다고 생각하
고 있다. 환호를 받으며 즐거워할 수는 없다.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는 불안감이 계속 그를 괴롭혔다.
  조니 일행은 옛날 칭코인의  숫소가 있던 곳을 향해 언덕을 오르
고 있었다. 타르가 쓰던  돔의 건너편에 있는 숙소였다. 타르는 종
종 그곳에서 철야작업을 했었다.... 갑자기 조니는 말을 멈추었다.
그는 눈을 커다랗게  치켜뜨고 한곳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타르다.
왜 저놈이 저곳에 있는 걸까. 타르는 우리 속에서 목고리가 채워진
채 장난스럽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조니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틀림없이 무엇인가가 있다.  그는 비티에게 우리 쪽으로 가자고 말
했다.

  (4)
  사간은 충분했다. 참코  형제 문제도 중요했지만 그전에 먼저 타
르가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 알아내야만 했다. 타르는 조니가
우리로 오는 것을 보고는 지금까지 했던 것보다 한층 더 익살 떨면
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우리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채굴용 나무울타리가 만들어
진 것 외에는 우리  근처는 그다지 달라진 게 없었다. 전투에 의한
파손도 거의 없었다. 다만 우리의 철책에 몇 개의 총알자국이 박혀
있을 뿐이었다. 스프링클러의  물 때문에 땅바닥에 몇 줄기의 홈이
패여져 있었다. 그 물 때문에 우리 안의 쓰레기가 깨끗이 씻겨내려
간 듯했다. 그렇다, 옛날과 거의 마찬가지였다. 다만 키가 작은 초
록색 풀들이 한쪽에서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것만이 달라 보였다.
조니는 옛날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몇 개월 동안 그 안에서 밖을
내다보면서도 살았었다. 그리고 어두운 밤을 이용해서 이곳으로 달
려와 애타게 들여다본 적이 몇 번이었던가. 헤이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악몽이 이 우리에 깃들여 있었다.
  조니는 타르를 심문하고 싶었지만 나무울타리 너머로 이야기한다
는 것이 웬지  망설여졌다. 이렇게 웅성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웬만
한 목소리로는  들릴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 앉아서
큰소리로 얘기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보초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그러나 보초가 오기 전에 본부구역 사령관이 인파를 헤치고 달려왔
다. 입고 있는 킬트 스커트로, 조니는 사령관 아자일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니는 사령관에게 들리도록 몸을 앞으로 내밀고 말
했다.
  "전류를 끊고, 우리문을 열어달라고 보초에게 말해주게."
  "뭐라구요?"
  사령관이 놀라면 큰소리로 외쳤다.
  조니는 사령관이 자신의  말을 못 알아들은 줄  알고 다시 한 번
되풀이했다. 그러나 곧  사령관이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니는 다리를 끌면서  배전스위치가 있는 기둥까지 걸어가서 그곳
에 몸을 기대고 스위치를  내렸다. 불꽃과 함께 전류가 끊겼다. 사
람들은 조니를 위해  길을 열어주었다. 정적이 물결처럼 주위로 퍼
져나가고 있었다. 그동안에도  보초는 열쇠를 허리에 찬 채 움직이
지 않고 서 있었다. 조니는 그 열쇠를 빼앗었다. 그것을 보고 놀라
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잔물결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났다가는
또다시 물을 뿌린  듯이 조용해졌다. 타르가 다시 흉폭한 고함소리
를 질렀다.  본부구역 사령관이 황급히  조니를 제지하려고 했으나
이반 대령의 굵은  팔이 즉각 저지했다. 쓸데없이 사람들이 몰려들
어가면 정작 위급하게  되었을 때는 사격에 방해가 되었다. 카자흐
병사들이 일제시 부채꼴 모양으로 서서, 공격형 라이플의 안전장치
를 풀어내는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렸다. 네 자루의 라이플이 우리
안에 있는 타르를 조준했다. 몇 명의 스코틀랜드 병사는 옛날 칭코
인 숙소의 지붕으로  뛰어올라갔다. 지붕 위를 달리는 발소리가 멎
자 라이플의 안전장치를 풀어내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는 다시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차츰 나무울타리에서 뒤로 물러섰다.
  조니는 병사들이 안전장치를  풀어내는 소리를 듣고 뒬르 돌아보
며 병사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지시했다. 이제 소리를 내고 있는 것
은 타르뿐이었다.
  "총알이 철책에 맞아서  사라들에게 튕겨나갈지 모른다. 모두 총
을 내려라."
  조니는 권총집에서 분사총을  뽑아 안전장치를 풀고 그것이 기절
과 무화염으로 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위험이 있을 리가
없었다. 타르는 목에 고리를 달고 쇠사슬에 묶여 있으니까 그 범위
안으로만 들어가지  않으면 안전했다. 지금 놈이  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어릿광대 노릇을 계속하는 정도일 것이다. 문의 자물쇠는
전보다도 가벼워져 있었다. 조니는 물을 열었다. 사람들은 움찔 놀
라며 숨을 죽였다. 조니는 타르를 똑바로 주시했다. 타르가 짐승처
럼 짖어댔다.
  "이제 어릿광대 노릇은 그만하는 것이 어떤가, 타르."
  타르는 짓는 것을  그만두고 뒷벽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호박색
눈이 비웃듯이 빛났다.
  "야아, 동물, 꽤나 혼줄이 났던 모양이군. 하긴 멍청한 녀석들이
흔히 겪는 일이지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돌대가리?"
  "말투를 조심하는 게 좋으  텐데, 타르. 그런데 지금 이 우리 안
에 들어와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할 속셈이지?"
  "허허, 여전히 칭코사투리로군.  내가 그처럼 느력했는데도 너를
세련된 교양인으로는 만들 수 없었던 모양이군. 하여간 좋다. 그래
서 내게 예의바르게 행동하라는 말이군. 이제 알았다. 너는 칭코어
를 말하고 있지. 그래서 너의 고귀한 귀에는 정통 사이클로어는 촌
스럽게 들린다는 말씀이군. 무례를 용서해주시지."
  타르는 그렇게 말하고  계속해서 칭코어로 실컷 욕설을 늘어놓으
며, 악의에 찬 소리로 웃어댔다.
  "질문에 대답해라, 타르."
  타르는 조니가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단어들을 사
용하고 있었다.
  조니가 우리 안에 들어간 것은 다른 목적이 있었다. 타르가 뭔가
음모를 꾸미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
기 때문이었다. 조니는  타르에게서 충분한 거리를 두고, 곁눈으로
타르의 모습을 감시하면서  우리 안을 살펴보았다. 그는 철책 밑의
벽을 살펴보고, 풀바닥도 들여다보았다. 타르가 서 있는 근처에 방
수보자기로 싸놓은 보따리가 하나 놓여져 있었다. 왼손으로 조니는
타르에게 물러나라고 명령하고  보따리로 다가가서 무릎을 굻고 방
수보자기를 풀었다. 옷이 한  벌 있었다. 몸에 휘감기만 하는 엉성
한 옷이었다. 지금 타르가 걸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 밖
에는 구멍이  나고 찌그러진 카방고잔 한  개가 들어 있었다. 물로
카방고는 들어있지 않았다.  그리고 사이클로어 사전이 있었다. 이
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최소한 사이클로인으로서는 충분한 교육을
받은 타르가 어째서 사전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걸까? 조니는 쇠
사슬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물러나 조금 전에 타르가 말한 단어를
찾아보았다. 아아, 여기 있다.
  후회: 자신의 행위나 실패에 대해서 슬퍼하고 반성하는 것. 포크
너어 기원. 이들 종족 가운데는 실제로 이런 감정을 갖고 있는자들
이 있다고 한다.

  "후회라고, 당신이 후회하고 있다고?"
  이번에는 조니가 웃을 차례였다.
  "너를 우리 안에 집어넣은 것으 바로 나다. 000을 느껴도 당연하
지 않은가."
  조니는 다시 사전을 들쳤다.

  죄책감: 자신의 행위가  잘못되어 있거나 비도덕적이었다고 하는
확신에서 생기는 통절한 자기  질책 감정. 칭코어 기원. 정치에 관
혀하는 자가 종족된 자를 좌천시켰을 경우 가지게 된다. 하르츠 교
수에 의하면 이들 종족 가운데 이런 감정을 지닌 자들이 실제로 존
재한다고 한다.

  조니는 사전을 탁 하고 덮었다.
  "이봐, 동물, 너도 조금은  죄책감을 가지고 있을 거다. 나는 너
한테는 일종의 아버지 같은 존재니까. 그런데 너느 오히려 나의 미
래를 철저히  파괴해버렸으니까 말이다. 사실  너는 처음부터 나를
배신할 생각으로 나를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00."
  "그 폭발한 트럭처럼 말인가?"
  "어떤 트럭 말인가?"
  "금광석 수송트럭 말이다."
  조니는 감정을 억누르고 설명했다.
  "아아, 그것 말인가.  나는 또 절벽에서 폭발한 브레이드가 달린
차량을 말하는 줄 알았지. 그때 너는 위기일발에서 탈출했다. 정말
너희 동물들은  아무리 가르쳐도  기계조종이 변변치  못해서 탈이
야."
  타르는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나는 너의 00가 된 것이다."
  이미 조니는 모르는 단어들을 찾아볼 생각이 없어져버렸다. 어차
피 그것도 타르가 음모를 꾸미기 위해 준비한, 놈들이 절대로 사용
하지 않는 단어일 것이 틀림없었다.
  "당신을 우리 속에 가둔 것도, 당신 목에 고리를 씌운 것도 내가
명령한 것이 아니다. 당신 스스로가 자청한 일이다. 엄밀하게 말한
다면 나는 당신을 수용소로 돌려보내라고 명령할 수밖에 없다."
  "네가 그런 짓을 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타르가 말했다.
  "왜 이곳에 온 거지?"
  타르에게 많은 것을  얘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말을 걸지 않으면 놈이 실수로 본심을 털어놓을 수 있는 기
회마저 놓치게 될 것이었다.
  "전송설비의 수리가 늦어지고  있어서 참코 형제에게 물어보려고
왔다."
  "그렇겠지, 그런 일일 거라고 짐작했다."
  타르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  일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
았다. 그는 호흡마스크  안에서 무거운 한숨을 쉬더니 벌떡 일어났
다. 구경꾼들은 귓걸은을 쳤다. 공포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타르
의 키는 조니보다도 사 피트 가량이나 컸다. 예리한 손톱을 가지고
있었으며 마스크 너머로 보이는 이빨은 날카로웠다.
  "동물이여."
  타르가 말했다.
  "과거엔 서로  오해가 있었지만 지금 네게  한 가지 말해둘 것이
있다. 너는 이제 곧 도움을 청하기 위해 나를 찾아올 것이다. 나는
0이며 또 00니가 말이다."
  타르는 다시 조니가 모르는 단어를 두 개나 사용했다.
  "그땐 매우 친절하게  도와줄 생각이다. 그래, 네 힘으로도 도저
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기거든 언제든지 나를 찾아오라구. 누가
뭐래도 우리는 절친한 동지였으니까 말이다."
  조니는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헛소리는 그만 집어치워라! 조
니는 방수보자기에 사전을 내던지고, 지팡이레 몸을 의지하며 출구
를 향해서  걷기 시작했다. 조니가 문을  닫고 자물쇠를 채우는 순
간, 타르는 다시  소름끼치는 으르렁 소리를 내지르고 가슴을 두드
리며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조니는 열쇠를 보초에게 던져주고, 기
둥으로 다가가 전류스위치를 넣었다. 한쪽 다리를 끌면서 윈드스프
리터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는 동안에도  조니는 계속 웃음이
나왔다.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조니를 위해서 길을 비켜
주었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는 자가 있었다. 브라운 린퍼 스패퍼였
다. 그는 조니와 윈드스프리터  사이에 서 있었다. 조니는 그를 알
아보고 말을  걸려고 했지만 그 순간  말이 나오지 않았다. 브라운
린퍼의 얼굴에는 조니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을 정도의 노골적인
적의와 증오가 가득 차 있었다.
  "이젠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인간이 둘이나 되었군."
  브라운 린퍼 스태퍼는 그 말만을 남기고 안짱다리를 끌면서 인파
속으로 사라져갔다.

  (5)
  조니는 윈드스프리터를 타고 참코 형제가 사는 작은 돔으로 향했
다.
  "그다지 좋은 방법이었다고 생각지 않네."
  폭스 로버트가 조니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런 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해서는 안돼."
  로버트는 걱정 때문에 몸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닙니다. 참코 형제
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그곳으로 가는 길입니다."
  "하지만 조니,  자네는 공인이라는 것을  고려해야 하네. 모두들
간이 콩알만해지지 않았나."
  조니의 첫번째 외출이었던  만큼 로버트는 즐거운 하루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런데  조니가 타르의 우리 안으로 들어가는 위태로
운 짓을 했던 것이다.
  "자네는 이제 상징적인 존재일세."
  조니는 폭스 로버트를 돌아다보았다. 조니는 로버트 경을 좋아했
지만 그 말은 인정할 수가 없었다.
  "제발 그만두세요. 나는 평범한 조니 굿보이 타일러입니다.
  그리고는 유쾌한 듯이 고개를 흔들면서 정정했다.
  "아니, 맥타일러입니다."
  그 말은 로버트 경의 근심을 단숨에 날려보냈다. 이 젊은이느 ㄴ
당 할 수가 없다.  일단은 조니가 오늘의 외출을 즐기고 있는 것처
럼 보여서 로버트는 기뻤다.
  조니는 외롭게 서 있는 돔을 바라보았다. 참코 형제의 지도로 모
두들 열심히 작업하고  있었다. 채굴이 중지된 갱도에서 돔을 운반
해다가 콘크리트 기반 위에 튼튼하게 설치한 것이었다. 밀폐장치들
은 성능이 뛰어난  것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투명한 회전문이 호흡
가스와 지구의 대기를 분리시키고 있었다. 호흡가스 탱크와 펌프도
전용으로 장착되어 있었다.  투명돔에는 브라인드도 설치되어 있었
다. 이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브라인드는 열려져 있었다. 사이클로
인은 냉방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참코 형제는 급료를
받는 대신에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고 인간에게 조언을 해주고 있
었다. 급료도 카가  은하 크레디트 뭉치를 찾아내준 덕택에 지금은
현금으로 지불되었다. 조니는 채굴장에서 훈련받을 때부터 참코 형
제의 뛰어난  기술을 알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디자인과 기획에
뛰어난 엔지니어였다. 보고에 따르면 그들은 매우 협조적이고 정중
했다. 사이클로인이 생각하는  정중함이란 일방적이고 맹목적인 것
이었다.
  두 사람은 지금 책상에 앉아서 일하고 있었다. 책상 옆에는 제도
판이 놓여  있었다. 인터폰이 외부와  연결되어 있어서 밀폐포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지 않더라고 밖에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
러나 조니는 기술적인 문제를 인터폰을 통해 의논한다는 것은 생각
조차 할 수 없었다.  이반 대령이 조니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사람
들을 헤치고 나와서 더듬거리는 영어로 말했다.
  "당신, 안으로 들어가겠는가?"
  그는 서둘러 주위를  둘러보고 러시아어를 아는 준비위원을 찾았
다. 준비위원이 이반 대령의 말을 통역했다.
  "돔은 방탄유리로 되어  있어서 라이플로 당신을 엄호할 수가 없
다고 말합니다."
  로버트는 체념한 말투로 참견했다.
  "오늘은 처음 외출이니까 이만하고 슬슬 돌아가는 것이...."
  "나는 이 일 때문에 온 것입니다."
  조니는 말에서 내렸다.  이반 대령은 로버트의 말을 알아듣지 못
하고 지팡이를 조니에게 건제주며 통역관에게 얘기했다.
  "밀폐로크 앞에는 서지 말라고 합니다."
  준비위원이 통역했다.
  "안으로 들어가면 우측으로 이동해달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들이 출입할 수 없답니다."
  다리를 끌면서 밀폐로크로  들어가는 조니의 등 뒤에서 사람들의
술렁거림이 들려왔다.
  "조니가 또 안으로 들어가는데. 믿을 수가 없군. 하지만 저 사이
클로인은...."
  "저것 봐, 저 무시무시한 짐승을."
  조니에게는 그 말이  번거로웠다. 상징적 존재가 된다는 것도 꽤
나 귀찮은  일이었다. 마음대로 행동할 수도  없었고, 어디를 가나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안에는
조명이 밝혀져 있어서 참코 형제가 평소에는 브라인드를 내리고 있
는 모양이라고 조니는 추측했다. 그는 조종사가 건네준 공기마스크
를 썼다. 밀폐로크를 빠져나가는 것은 약간 힘이 들었다. 사이클로
인용 로크는 대단히 무거웠기 때문에 그는 언제나 애를 먹었다. 참
코 형제는 일손을 멈춘 채 꼼짝 않고 앉아서 조니를 바라보고 있었
다. 적대적인 감정을 나타내지는 않았으나 반기는 것도 아니었다.
  "전송설비의  복구가 어느  정도나 진척되었는지  알아보려고 왔
다."
  조니는 부드러운 말투로  말하려고 애썼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형보다는 동생이 조금 긴장한 표정이었다.
  "만일 필요한 것이 있다면 즉시 가져오도록 하겠다."
  형 참코가 말했다.
  "모든 것이 불타버렸다. 제어장치와 그 밖의 모든 것이."
  "알고 있다."
  지팡이에 기댄 채 밀폐로크 앞에 서서 조니는 대답했다.
  "그러나 특수장치는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형 장치라면 수
송기에 있다. 구조가 아주 다르지는 않을 텐데."
  "어렵다."
  동생이 말했다. 놈의 손은  웬지 이상해 보였다. 어쩌면 극히 평
범한 사이클로인의 표정일지도 모르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시급하게 복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는 사이클로별의 상황을 알 수가 없다."
  "시간이 걸린다."
  형이 말했다. 이놈의  눈도 조금 이상하군. 그러나 사이클로인의
눈에 조그만  불꽃이 타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것으 그다지 희귀한
일이 아니었다.
  "나도 여러 가지로 검토해보았는데...."
  조니는 옆에 놓아둔 몇 권의 책들을 들여다보았다. 오늘 아침 조
니가 바닥에 집어던진 것과 같은 책이었다.
  "내게 조금만 설명...."
  동생 참코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형은 의자에서 일어남과 동
시에 조니에게 덤벼들었다.  둘은 광폭하게 고함을 질러댔다. 조니
는 뒷걸음을  치다가 비틀거렸다. 총을  뽑으려고 했지만 지팡이가
방해되었다. 지팡이를 가까운  쪽에 서 있는 참코에게 던졌으나 왼
손이라서 힘이 부족했다.  거대한 손이 공기를 짓찢고 그를 내리쳤
다. 조니는 무릎을 꿇고 그것을 피했다. 손톱이 뺨을 찢었다. 조니
는 분사총을 움켜쥐고 방아쇠를 당겼다. 발사의 진동으로 밀폐로크
가지 몸이 날아갔다. 그대로 문을 열려고 했으나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뒤로 넘어져 있는 조니의 늑골을 향해 장화발이 맹렬한 기
세로 내려쳐 왔다. 그 순간 조니는 두 발째를 쏘았다. 장화가 무시
무시한 기세로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흉폭한 절규를 질러대며
펄복숭이 손이  목을 조르려고 덤벼들었다.  조니는 두손과 거대한
가슴을 겨냥해서 총을  연사했다. 한발 한발 쏘아대는 총탄에 참코
형제의 몸은 뒤로 젖혀졌다. 조니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그때
두 사람의  거대한 몸뚱이가 천천히 뒤로  쓰러졌다. 그는 다시 한
방씩 쏘았다.
  동생 참코는 완전히 마비된 듯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 너머에
있는 형이 책상서랍을  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서랍이 열리
고, 뭔가를 끄집어냈다.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책상에 가려서
무엇을 꺼냈는지 조니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는 그것을 보려고
몸을 옆으로  움직였다. 형 참코가 꺼낸  것은 소형 분사총이었다.
그는 조니를 쏘지  않고 자신의 머리에 갖다대고 있었다. 자살하려
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결판은 나 있었다. 조니는 침착하게 겨냥
하여 형  참코의 손에서 총을 날려보냈다.  분사의 일부를 몸에 맞
고, 참코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제기랄, 오른손만 사용할 수 있
다면! 지팡이는 어디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왼발로 껑충거리며 둥
근 지붕으로 이어지는 벽까지 다가가 몸을 기댔다.
  방안을 가득 매운  연기가 호흡가스 배기구 앞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폐쇄된 공간에서의  찢어지는 듯한 절규와 신음소리, 그리
고 총성에 조니의 귀는 거의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조니는 한숨
을 내 쉬었다. 그런데 저녀석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 왜 내게 덤벼
들었을까. 밀폐로크의 문이 열리며 이반 대령과 보초가 뛰어들어왔
다.
  "라이플을 쏘지 마라."
  조니가 외쳤다.
  "안에는 호흡가스다. 방사능탄을 쏘면 우리들도 함께 날아가버린
다. 족쇄를 가지고 와라."
  "산소마스크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보초는 날카로운 소리로  외치고는 서둘러 족쇄를 가리저 뛰어나
갓다. 이반 대령은  산소마스크의 위치를 조절하고는, 바닥에 쓰러
져 있는 사이클로인들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완전히 기
절해 있었지만 조니는 아직도 분사총을 겨눈 채 서 있었다. 조니가
옷걸이에 걸려 있는 사이클로인용 호흡마스크를 가리켰다. 이반 대
령은 마스크를 벗겨서  의식을 잃은 참코 형제에게 씌워주었다. 조
니의 지시대로 호흡가스 순환장치를 끄고 밀폐로크를 활짝 열었다.
공기가 흘러들어왔다.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몇 명의 보초가 뛰
러들어 참코 형제에게 족쇄를 채웠다. 조니는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밖으로 나왔다. 그때서야 바깥에 아직도 사람들이 몰려 있었고, 돔
의 유리 너머로 이 소동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
가 조니의 얼굴을 가리켰기  때무네 뺨에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니는 천천히 윈드스프리터에 올라탔다.
  사람들은 조금 전까지 떠들어대고 있었다.
  "왜 조니는 사이클로인을 공격했지?"
  "놈들이 먼저 공격했기 때문이지."
  "왜?"
  "애당초 조니 혼자 그 안에 들어가게 한 이유가 뭐지?"
  "하지만 나는 똑똑히 보았어. 조니가 아주 공손한 태도로 얘기하
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두 놈이 조니에게 덩벼들었다구. 왜 그런
짓을 했을까?"
  "온순한 사이클로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조니를 공격했을까?"
  그렇다. 그것을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무슨 말을 했단 말인가.
조니는 문득 생각이 나서 큰소리로 물었다.
  "혹시 조금 전에 나눈 얘기를 녹음한 사람은 없는가? 인터폰으로
들었을 텐데."
  물론 있었다. 조니가  비행기를 내렸을 때부터 열다섯 대의 소형
비디오가 쉴새없이 회전하면서  그의 행동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
었다.
  아지일족의 젊은이가 비디오를 높이 쳐들고 다가왔다.
  "누가 그것을 복사해주지 않겠는가?"
  조니가 말했다.
  "왜 놈들이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고 싶다. 틀림없이 내가 말한
단어 가운데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그 젊은이는 말했다. 조니가 윈드스프리터에서 내려 비행기에 탑
승하기 전에 복사테이프가 전해졌다. 돌아가면 그것을 조사해보자.
  "손을 흔들게."
  폭스 로버트가 말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조니를 보고 있었다.
조금 전의 충격에서 채 벗어자지 않은 사라도 있었다.
  "물러서요."
  보초가 소리쳤다.
  "방해가 되니까 물러서세요."
  방위기지로 돌아온 그날  밤, 저녁식사를 끝날 때쯤 이반 대령이
준비위원들과 함께 조니를 방문했다. 준비위원이 잆을 열었다.
  "당신의 행동은 너무 위험하니까 좀더 신중해달라고 대령이 와서
부탁했습니다."
  잔소리가 계속될 것 같자 조니는 그것을 가로막았다.
  "알았네, 아마 나에게도 카자흐족의 피가 섞여 있는 모양이군."
  그 말을 듣고 대령은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이 최초의 외출은 뜻하지 않은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사흘 후 조
니는 평의회로부터 기밀서류를 받았다. 그때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
지만 그 편지는 중대한 변화를 의미하고 있었다. 훗날 조니는 그것
이 암시하는 것을  깨닫지 못한 자신의 경솔함을 책망하게 되었다.
그 내용은 정확하고  정중했다. 그것은 과반수를 가까스로 넘어 평
의회의 승인을 얻었다. 문장 자체는 매우 간단했다.

  평의회는 결의에  따라서 귀하의 개인적  안전, 집단적 혼란방지
및 귀하의 국가에 대한  중요성을 감안하여 이 조치가 당국의 정식
수속에 의해서 폐지되지 않는  한 조니 굿보이 타일러의 당 본부구
역 내의 출입을 금지한다.

  이상은 구두투표에 의해 가결, 법적으로 유효화된 것을 증명함
  평의회서기장
  브리티시컬럼비아 족장, 오스카 카멜만

  조니는 그것을 대충 훑어보고, 모르겠다는 듯이 갸웃거리며 휴지
통에 던져버렸다.
  제 2 권
  하늘과 녹색사이

  제 17 부
  참코 형제는 왜 자살했는가

  (1)
  본부구역에서 나오는  브라운 린퍼  스태퍼는 질투심으로 기분이
몹시 상해 있었다. 그의 말을 빌리며 그것은 질투가 아니라 정의였
지만.
  저런 머저리 같은 녀석들 보았나! 한심하군. 많은 사람들이 조니
를 둘러싸고 환호를  지르며, 모카신을 만져보고 입이 마르도록 칭
찬을 해대고 있었다. 나처럼 제정신을 가진 정상인으로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광경이군. 그는 최근  자신의 세력에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모두들 타일러에 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 이 어처구니없
는 오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바로잡아야 했다. 브라운 린퍼는 어떻
게 해야 좋을지  골똘히 생각했다. 무슨 방법이라도 써야겠다고 결
심했다. 조니 굿보이 타일러는 작년에 마을로 돌아왔는데 우쭐대고
다니며 마을사람들을 선물로 매수하기 시작했다. 녀석의 속셈은 보
나마나 뻔했다. 마을  사람들을 유혹해서 지금까지 살아온 집과 토
지를 버리고 마을을  떠나게 하려는 것이었다. 타일러는 죽기는 커
녕 아무리 봐도 보다 넓은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었고, 크게 성공한
것 같았다.
  게다가 어린 시절부터 타일러에게 구박과 경멸, 웃음거리가 되어
온 것을 생각하면 속이  뒤틀렸다. 그런 일들을 생각하며 잠 못 이
루는 밤이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브라운 린퍼는 구체적으로 떠오르
는 일은 없었지만 분명히  그에게 지독한 일을 당했을 거라고 믿었
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조니를 그토록 증오할 수는 없는 일이라
고 생각했다. 타일러가 반신불수가 되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브라운 린퍼는 내심 흡족해 하고 있었다. 그런데 녀석은
오늘 이곳에 나타났다.  불편해 보이는 몸짓에 다리를 절고 있었지
만 건강은 회복되어  있었다. 그는 사이클로인 우리로 들어가 구역
질 나는 광경을 연출하고 돌아갔다.
  세계연합에서 인류통일을  위한 준비위원이  찾아왔을 때 브라운
린퍼는 쓸데없는 남의 일을 간섭하러 온 주제넘은 녀석들이라고 생
각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준비위원들은 그에게 몇 권의 책
을 보여주었다.
  브라운 린퍼의 아버지인 스패퍼 목사는 그를 교회로 인도하기 위
해 비밀장소에서 '성서'라는 책을 보여주었었다. 아무도 모르는 비
밀스러운 책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브라운 린퍼에게 책읽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브라운 린퍼는 목사라는 직업에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촌장이 되고 싶었다. 목사는 단순히
설교를 할 뿐이지만 촌장이 되면 명령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오히려 타일러는 말을 타고 거들먹거리며
처녀들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었고, 젊은이들을 선동하여 골치아픈
일에 끌어들이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평의회는 어리석게도 그의
범죄적인 음모를 깨닫지 못하고 매수된 반면, 현명하고, 명석한 자
신은 무시화 경멸, 그리고 의붓자식 취급까지 하고 있었다. 더구나
내가 안짱다리로 태어났는데도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을 때 타일러
의 아버지가 그것을 항의했을 것이다. 그래, 그 타일러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어머니는 내가 살아남은 것에 대해 항의한 자가 있었다고
했다. 어머니가 겨우 설득해서 내 목숨을 구해내긴 했지만, 브라운
린퍼는 일주일에도 몇 번씩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자라난 탓인지, 타
일러 집안 사람들에게  살해당할 뻔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타일
러가 돌아와 수상한 짓을 했을 때 브라운 린퍼가 깜짝 놀라서 자신
과 마을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당연했고,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준비위원들은 그가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무척 기뻐
했다. 그에게 '정부'에  대한 몇 가지 문서와 '로버트의 의사규칙'
이라는 제목의 의회절차에 대한 문서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당신은
유일한 현역 촌장일 뿐 아니라 미국에 있는 부족들의 우두머리라고
말해서 그를 놀라게 했다. 유감스럽게도 미국에 있는 거의 모든 사
람들응 살해되거나 멸종되어서 그들이 가장 큰 부족이었다. 더구나
채굴장이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도 중심적인 위치에 있
다고 말했다. 브라운 린퍼는 평의회에 대해서 물었다. 그것은 전세
계의 부족들을 대표하는 수장들의 모임이며, 수장들을 직접 참석하
든가 대리인을 파견하여  이곳에서 의회를 여는 것이라고 준비위원
은 설명했다. 준비위원들은  덧붙여 말했다. 당신도 틀림없이 흥미
를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들의 영웅  조니는 당신 마을 출신이니
까. 브라운 린퍼에게는 그것은 흥미 정도의 예삿일이 아니었다. 조
니는 꼭 타도해야 할 대상이었다.
  브라운 린퍼는 착실하게 계획을 실천해가고 있었다. 모든 평의원
은 한 표씩 권리를 행사히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는 브리티시컬
럼비아에 있는 두 개  부족과 연합해서 시에라 네바다에 있는 네게
부족을 구원하기 위한 조직을 만들었다. 또 인도적이라는 명목으로
연합한 두 개 부족을 자신의 마을에 옮겨와 살게 하여 현재 평의회
에서 세 표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는 다른  면에서도 간교한 술수를  부리고 있었다. 평의회에서
지나가는 말처럼, 그러나  자못 성실하게 타일러에 대한 견해를 피
력하였다.
  "마을사람들은 옛날부터 그를 야만스럽고, 무분별하고, 무책임하
다고 보고 있었다.  나 자신은 그런 견해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했지
만 말이다."
  "어릴 때 타일러는 마을에서  장난만 치고, 자기 가족을 위해 물
을 긷는  법이 없었다. 물 긷는  일은 사려깊은 어린이라면 당연한
의무였는데."
  "타일러는 아주 오래전부터 무덤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경
건햐야 할 사자의 물건을  훔칠 생각으로 그 장소를 누구에게도 가
르쳐 주지 않았다는 소문도 있지만 나는 그런 소문은 믿지 않는다.
하긴 그는 이따금 그곳에 갔던 모양이다. 목사는 옛날에 그를 올바
른 길로 인도하려고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언젠가는 조니가 훔
쳐온 것을 벌로 빼앗은 적도 있었다. 결국 타일러는 마을을 뛰쳐나
갔고 가족도  마을 사람들도 두  해 겨울을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
다."
  "타일러와 크리시가 아직 결혼을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글
쎄, 사실 이것은 마을 비밀인데, 두 사람이 어렸을 때 목사가 어떤
사실을 발견하고,  결혼을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타일러는 권위를
존중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젊은이라는 것은...."
  조니를 두고 갖가지 구설수가 생기기 시작했다.
  먼 고장에서  온 나이먹은 수장들은 현재의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 주변에 타일러의 어릴 적 친구는 그 하나밖에
없으니까 수장들은 당연히 자신의 말을 믿을 것이라고 브라운 린퍼
는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이, 삼 일 전, 한 무지한 시골놈 하나가
브라운 린퍼에게  대들었다. 시베리아  부족의 수장이었다. 브라운
린퍼는 그들 모두가 자신의  말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우울해져 있었다. 내가 타일러를 모른다고? 오늘 네놈들이 본 유치
한 자기과시욕을 봐라. 우쭐대가만 좋아하는 단순한 저능아가 아닌
가. 구역질이 난다. 아직도  그녀석은 마치 자신도 잘 걷지 못한다
는 듯이 마을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나를 놀려댈 심산인 것이다.
  브라운 린퍼느 우리 속의 사이클로인이 타일러와 친근한 듯이 대
화하는 것으  보앗다. 대화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서로를 잘 알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냉랭한 부분이 있
었다. 어떻게든 조니의  허물을 찾고 있는 브라운 린퍼는 되돌아가
멀리서 거대한 사이클로인을  바라보고 잇었다. 그곳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스웨덴인  조종사 훈련생이 한참 동안 철책 밖에
서서 그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브라운 린퍼는 보초에게
물어보았다.
  "네, 그렇습니다. 저  훈련생은 수업이 끝나면 거의 매일 찾아옵
니다. 사이클로어를 실습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종사들은 모두 사
이클로어에 능숙해야  됩니다. 저  괴물은 진자 사이클로인입니다.
이 근처에는 회화상대가  거의 없으니까요. 아닙니다.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는 모릅니다. 나는 사이클로어를 모르니까요. 저 연습생의
이름 말입니까?  이 업무일지에는 랄스  소렌슨이라고 되어 있습니
다."
  브라운 린퍼는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해서 사관학교의 기
록을 보았고, 랄스 소렌슨에 대해서 조사했다. 랄스는 아주 오래전
에 스코틀랜드로 이주한  스웨덴인이었다. 그는 영어와 스웨덴어를
할 줄 알았고, 어학에 재능이 있어서 준비위원의 훈련생이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파시스트교의  장관으로, 파시즘이란 종교를 전세계
에 퍼뜨리기  위해서 연합을 이용하도록  아들에게 압력을 넣었다.
그는 지금과  같은 세계에서는 바로 그런  종교가 필요하다고 믿고
있었다. 당시 그들에게는  히틀러의 파시즘이 신앙으로 받들어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연합은 일단 이 소년을 퇴교시켰지만 인재가 부
족한 탓으로 랄스를 조종사 훈련생으로서 다시 입학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스턴트비행에서  형편없는 실수로 착륙에 실패하여 부
상을 입었다. 현재는 요양중으로 신분은 유보되어 있었지만 틀림없
이 스코틀랜드의 농장으로 송환도리 것이었다. 그는 어학에 재능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지능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었다.
  흠, 상급 평의원이라면 이런 퇴교 결정쯤은 간단히 철회할 수 있
을 것이다. 브라운 린퍼는 랄스 소렌슨에게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
했다. 우리 안의 괴물  에게도 희망이 생겼다. 번죄는, 설사 그 번
죄자가 옛날의 친구였다고 해도 심판을 내리지 않으면 안된다고 브
라운 린퍼는 굳게 믿고 있었다.

  (2)
  그날 밤 타르는 매우 흐뭇한 기분에 젖어 있었다.
  모든 일이 그가  생각한 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언젠가는 누군가
에의해 이 혹성에  텔레포테이션 조업이 재개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 동물이  관심을 가져줄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타르는
고도의 훈련을 받은 실력 있는 보안부장이었다. 더구나 텔레포테이
션에 관해서라면 구석구석까지 모르는 게 없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 동물이 참코 형제에게  갔을 때 타르는 들뜬 기분으로 사격소리
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격소리가 났다!
  결과에 대해서 타르는  착잡한 심정이었다. 그가 예상한 대로 참
코형제가 조니에게 덤벼들었을 때는 해냈다! 하고 생각했으나 동물
은 얼굴에 긁힌 상처만 남기고 살아 있었다. 여전히 살아서 다리를
질질 끌면서 돌아다니는 것은  보기만 해도 화가 났다. 좋다, 이번
에는 실패했다. 한  번에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는 없는 법이다.
이틀 뒤 기대했던  대로 참코 형제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저녁때 찾아오는 그 얼간이 훈련생이 가르쳐줬던 것이다. 회화연습
을 하려면 뭔가 화제가  있어야 했다. 그를 통해서 타르는 많은 정
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저기, 저  돔에서 일하던 두  명의 사이클로인을  알고 있을 테
지."
  철책 너머로 랄스가 말했다.
  "그들은 지하실로  끌려갔는데, 엄중한  감시에도 불고하고 오늘
오후에 자살했다. 쇠사슬을  끊고, 그것으로 고리를 만들어 가로막
대에 목을 매달았지. 도망칠 수도 있었을 텐데 목을 매달고 죽어버
렸어."
  "설마!"
  마치 그런 일은 예상도 못했다는 듯이 타르가 말했다.
  "불쌍한 놈들. 나는 그때 상황을 여기서 보고 있었다. 동물 녀석
은 연속해서  총을 쏘아대고 있었다.  사이클로인은 심한 부상으로
회복될 가망이 없으면 대부분은 자살을 한다."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면서 거짓말을 해댔다.
  "보초와 경비대의 하사관은 전투지 임시 군법회의에 회부되었다.
아마 스코틀랜드로 송환될 것 같다. 그들은 아마일족의 젊은이들이
다."
  랄스가 말했다.
  타르는 이빨로 딱딱 소리를 내면서 그 야만스럽고 부정한 조치에
대해 동정을 나타냈다.  당국의 매정함에 대해서는 랄스도 같은 의
견이었다. 그러나 경솔한 말을 입데 담을 수는 없었다.
  "당신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이 와 있다. 매우 중요한 인물이
다. 상급 평의원이다. 이름은 말할 수 없지만 그는 저쪽 기둥 뒤에
서 있다. 보이는가?"
  타르는 처음부터 그 사나이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체하
고 물었다.
  "어디라고? 응, 상급 평의원이 뭐지?"
  랄스는 어학연습도 할겸 현재 가동되고 있는 정치조직 전체에 대
해서 설명했다.
  "그런 일이라면 나의 친구인 당신을 통해서 그 중요한 관리와 얘
기를 나눠보고 싶다. 그것은 당신에게도 사이클로어를 연습하는 좋
은 기회가 될 것이다."
  브라운 린퍼는  우리 앞에 설치된 철책에서  빛이 번쩍이는 것은
눈을 상하게 할 뿐 아니라 최근에는 열까지 난다고 말했다. 그래서
랄스를 중계로 해서 두  대의 광산무선기를 사용하여 오랜 시간 대
화를 나누었다. 타르는 정치가에게 필요한 자료를 잔뜩 제공해주었
다. 그것은 이런 것이었다.
  사이클로인은 실제로는 평화적인  종족입니다. 사업에 관심이 있
어 이곳에서는 광산채굴에만 열중하고 있습니다. 천 년 전에 큰 재
해가 있어서 그것 때문에  사이클로 회사가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
습니다. 아닙니다. 나는 무엇이 재해를 일으켰는지는 모릅니다. 아
마 자연재해였겠지요. 회사는 가능한 한 인간들을 구하려고 했습니
다. 인간들은  우리의 의도를  오해하고, 평화사절과 구조대로부터
몸을 숨겼습니다. 회사는 영리사업체일 뿐 정치조직이 아니며 자금
력도 부족한  탓으로 재정적 부담 때문에  구조활동을 계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회사의 이윤이  저하됐기 때문에 구조활동을 계속하지
못한 채 현재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지금의 위기를 만들어낸 것은
타일러라는 동물녀석입니다. 무분별? 그렇습니다. 확실히 그녀석은
무분별합니다. 야만스럽기도  합니다. 나는  녀석과 친구가 되려고
했지만 결국 이런 우리 속에 갇힌 신세가 되었습니다. 재판도 없이
말입니다. 그 동물은  굉장한 비밀주의자입니다. 게다가 심술이 사
납습니다. 녀석이 이, 삼일 전에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 한 짓
을 보십시오. 그들은 너무나 지독하게 당한 나머지 자살해버렸습니
다.
  네, 사이클로인은 정말로 평화를 사랑하는 종족입니다. 정직하고
친절하며 친구에게는 성의를  다합니다. 신뢰할 수 있습니다. 나는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  것을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
동물 녀석이 사이클로인의 도덕과 예의를 모르고 있는 것은 참으로
유감입니다. 그렇습니다. 녀석이  어렸을 때 정직하고 얌전한 인간
이 되도록 누군가가 교육을 시켰어야 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사이클로인은 절대로 보복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이클로인은  호전적인 종족이 아니며,
인터개랙틱 광상회사에  불과합니다. 어떻게든 사업을 존속시키고,
우주와 평화적으로 공존해가는  것밖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실제로
지독한 오해를 받고 있는 종족입니다. 사이클로인이라는 것은.
  그들이 떠났다. 랄스는 자신의 사이클로어 통역에 대단히 만족하
고 있는 것 같았다. 기둥 뒤에 있던 인간은 대화를 좀더 나누고 싶
어하는 눈치였다. 타르는 웃고 싶은 것을 참느라고 무척 애를 먹었
다. 자아, 이제 지구에서  탈출할 수 있다. 확실하다. 마침내 나의
계획이 들어맞기 시작했다. 얼마나 운이 좋은가. 물론 나라면 운이
없어도 해낼 수 있지만 이녀석 덕분에 훨씬 쉽게 풀려나갈 것이다.
나는 황금이 기다리는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이 혹성  전체를 산산조각으로 날려버릴 테다. 그렇다. 포
로도 몇 놈데리고 가자. 사이클롭려에는 공기실이 있어서, 어느 별
에서 잡아온 포로라도 장시간 동안 심문할 수 있다. 심문은 엄청나
게 고통스러울 것이다. 포로는 저 바보스러운 훈련생이 아니다. 녀
석은 아무것도  모른다. 저 이기주의적인  정보와 쓰레기를 구별할
수조차 없다. 타일러라는  동물도 아니다. 녀석은 끔찍스럽게 위험
하다.... 그래,  달리 없다면 녀석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놈으로 하는 편이  무난할 것이다. 그들의 계획이나 군사력에 대해
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누군가.... 누가 있었더라? 타르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웃으밍 터져나오지 않도록 자신의 허리를 힘껏 조였으
나 참을 수가 없었다.  새로 온 보초는 다만 그가 여느때보다도 더
미쳐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일지에는  특별한 것은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다만 평상시처럼 훈련생이 찾아와서 사이클로어
를 연습한 것으로  기록되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보초는 묘한 예감
같은 것을  느꼈다. 여름밤이 갑자기 추워진  것일까. 아니면 우리
안에서 들려오는 미친 듯한 웃음소리 때문일까.

  (3)
  "선생님, 아프리카에 가십시다."
  토르의 팔에서  깁스를 떼어내던 닥터  맥켄드릭은 손을 멈추고,
약간 놀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깁스를 마저 떼어내고 나서
의사가 말했다.
  "나도 말인가?"
  "그렇습니다. 선생님은 접골뿐 아니라 뇌신경외과 의사가 아닙니
까?"
  조니는 맥캔드릭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하고 자신이 사무실로 쓰고
있는 병실까지 발을  끌면서 걸어갔다. 맥켄드릭이 그 뒤를 따라갔
다. 커다란 수술대는 서류, 책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내게는 사이클로인 시체 몇 구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자도 몇 명 필요합니다."
  조니의 말에 문 앞에 있던 토르가 웃었다.
  "사이클로인 시체라면 얼마든지  있어요. 본부구역 주위에 천 명
도 넘게 굴러다니고 있다구요."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일 마일이나 되는 깊은 광산 속에 이미 파
묻혀버렸네. 그리고 그 수갱은 상당히 불안정해서 비행기로 내려가
는 것도 위험천만일세."
  "참코 형제가 있지 않은가."
  조니의 말에 맥켄드릭 의사가 말했다.
  "어찌된 일인지 이미 평의회가 시체를 불태워버렸습니다."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맥켄드릭 의사가 물었다.
  "인터개랙틱 광산회사가 반드시  시체를 본국으로 송환해가는 것
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들은 사이클로인의 시
체를 절대 이곳에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목사는 비행기 안에서  발견한 두 명의 사이클로인 조종사를 해
부했었어요."
  토르가 말했다.
  "그가 찾고 있었던 것은 내가 찾던 것과는 달랐습니다."
  조니의 말에 의사는 미소를 지었다.
  "사이클로인의 시체를  검시한단 말인가?  자네는 나를 놀래키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구먼."
  그는 일주일 전의 사건을 생각했다. 그가 조니의 턱을 꿰매고 있
을 대  바늘 끝이 조금 뭉특해져  있었다. 조니는 아픔을 참으려고
반사적으로 오른팔을 뻗어 맥캔드릭의 손목을 힘껏 잡아당겼다. 맥
캔드릭은 조니의 팔과 다리를  수술했을 때 뭔가를 잘못 건드린 게
아닌가 하고 얼마간  신경을 썼었다. 그러나 팔과 손이 갑작스럽게
움직인 것은 신체적인 손상이 아닌 신경회로의 회복에 문제가 있다
는 것을 알았다. 조니는 같은 동작을 자기 뜻대로 해보려고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귀를 움직이는 방법을 배우는 것과 같군요. 어떤 근육을 당기면
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잡아당기면 되는지를 알아내기만 하면 되겠
는데요."
  맥켄드릭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곳에 남아서 조니의 회복을 도와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글쎄."
  의사는 말했다. 그의 관심은 사이클로인이 검시보다는 조니의 팔
과 손이 낫도록 도와주는 것에 있었다.
  "나는 함께 갈 수  있다고 생각하네. 하지만 왜 하필이면 아프리
카인가."
  "그곳은 폭격을 받지 않아서 지금도 작업중인 사이클로의 광산이
있습니다."
  토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우리들이 모르고 빠뜨린 것인가요?"
  "아직 본격적인 채굴장은  아니야. 옛날에 빅토리아 호수라고 불
리던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중앙 채굴장의 지부였지. 바로 이
곳이야."
  조니는 지도를 펼쳐 그곳을 가리켰다.
  "여기서부터 서쪽으로 정글  깊숙히 들어가면 텅스텐광산이 있습
니다. 사이클로인은 텅스텐이라면 맥을 못 추니까요."
  그는 그 지역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여기는 모두 정글입니다. 사진으로는 상당히 높은 수림 같은데,
전체가 마치 우산처럼  생겼습니다. 수령이 수천 년이 넘는 걱들입
니다. 무인정찰기도 이  광대한 늪지대까지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지난번 전투의 공격목적은  무인정찰기가 촬영한 지도를 보고 선택
했습니다. 그래서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입니다. 놈들은 지금까
지도 그곳에서 범 지구주파수 통신의 기묘한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조용히 탈출의 기회를 엿보고 있을 것입니다."
  토르는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지나치게  과격한 생각 같은데요,  조니. 우리들은 다만
시체 몇 구를 손에 넣기 위해 놈들을 공격하면 되는 건데요."
  "내가 원하는 것은 죽은 사이클로인뿐만이 아닐세. 살아 있는 자
도 필요하다니까. 모든  채굴장에는 사이클로별의 수준높은 문명을
교육 받은 기술자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검시에서 무엇을 알아내겠다는 것인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외과용 매스를 가지고 함께 가주
셔야 하는 겁니다."
  "아직도 뭔가 숨기고 있군."
  "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전부를 얘기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극비입니다. 몇 개의 부족을 순방한다고만 발표하십시오. 토르, 자
네는 나처럼  꾸미고, 실제고 몇 개의  부족을 방문해주지 않겠나.
금광맥에서 작업했을 때처럼."
  "그것 똫나 굉장한 비밀작전이로군."
  맥켄드릭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매우 긴급한 일입니다."
  조니는 평의회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은 많은 법률
을 통과시키고 있었지만 그를 한 번도 초청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네가 해결하려는 문제는 뭔가?"
  "왜 참코 형제가 자살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조니는 그렇게만  말했지만 마음속으로 한  가지를 더 덧붙였다.
그가 이해할 수 없는 텔레포테이션의 숫자에 대해서도 알아내고 싶
었다. 일주일 동안 조니는 이것저것 조사해보았으나 아무것도 알아
낼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그곳에 틀림없이 있을 것 같았
다.
  "그럼, 아프리카에 함께 가는 거죠?"
  "물론이지."
  닥터 맥캔드릭은 흔쾌하게 말했다.

  (4)
  거대한 전투기는 대서양  상공을 날고 있었다. 그것은 회사 소속
의 해병대용 전투기였다. 전투기는 쉰 명의 사이클로인과 몇 톤 가
량의 무기와 장비를 적재할 수 있을 만큼 거대했다. 조종석에 앉은
조니는 왼손으로 능숙하게  조종하며 목적지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
다. 이 작전은 철저한 비밀 속에 이루어졌는데, 어떻게 알아냈는지
더넬딘, 이반 대령,  드와이트가 각자 부하를 데리고 올라탔다. 더
구나 비티  맥크라우드까지 몰래 숨어들어와  있었다. 조니 일행이
출발하려고 비행기문을 닫으려는  순간, 전투복과 대검으로 완전무
장한 로버트까지 와서 동행할 것을 요청했다.
  그들이 미합중국의 동해안을  통과하고 있었을 대, 두 대의 전투
기가 나타났다. 그것은 그랜캐논과 세명의 조종사였다.
  "우리들은 마침 정기  공수비행을 끝내려는 중이다. 그런데 어디
로 가는가? 우리들에게는 탄약과 연료가 충분히 있다."
  그랜캐논이 지시용 단거리 무선으로 연락을 해왔다. 결국 그들까
지 동행하게 되었는데 그들  중에는 아프리카에 대하여 매우 잘 알
며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젊은이가 있었다.
  "나는 이렇게 무계획적인 습격작전에 참가한 적은 없네."
  폭스 로버트가 맨 뒷좌석에서 다가와 비난하듯이 조니의 귀에 속
삭였다.
  "그런데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려는 건가, 조니?"
  동행한 준비위원은 데이비드 폭스라는 젊은이였다. 그는 조니 옆
의 부조종석에 앉아 끊임없이 지껄여대고 있었다.
  "우리들은 아프리카에서 어떤 작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명확하
게 말해서 레인  포레스트라고 불리는 곳입니다만. 그러니까 이 작
전이 극비라면 그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합부대는 피하는 것이 좋
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 북쪽에 채굴장이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모
르고 있었으니까요."
  데이비드가 조니를 대신해 신이 나서 지껄여댔다.
  "목이 날아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인 줄 알게."
  폭스 로버트가 부조종석에 등을 기대면서 말했다.
  "우리들은 정식  전투부대가 아니잖아요.  우리들은 그런 식으로
활동하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무기의 필요성을  느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렇다면 사이클로인과 싸우러 가는 길인가?"
  "아닙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그는 마치 당황해 하는 듯이 급하게 대답했다.
  "브리간트라는 사람들입니다.  보통 우리들이 찾아가면 부족사람
들은 굉장히 좋아합니다. 모두 따뜻하게 대해주고...."
  "브리간트란 뭔가?"
  로버트가 물었다. 그는  이 갑작스러운 작전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상대가 누구며 목적이 무엇인지조차.
  폭스의 이야기에 의하면  그 브리칸트라는 부족은 상당히 기묘한
사람들이었다. 한 준비위원이 생존자가 있는지 조사하기 위해서 그
지역의 폐허된 도시로 파견되었는데 하마터면 수류탄에 산산조각이
날 뻔했다고 했다.
  "수류탄? 사이클로인은 수류탄을 쓰지 않는데?"
  "네, 그들도  그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폭약분말을 사용할
수류탄이었습니다. 연기가 나는 가루로서 연한 오렌지빛 섬광이 번
쩍입니다. 그 준비위원이 무전으로 도움을 청하면서 돌방망이로 대
적하려고 했더니 무너진  지하실에서 나이먹은 남자가 나와 프랑스
어로 사과하더랍니다. 누더기 옷을 입은 노인은 죽어가고 있었습니
다. 나이를 먹어서 따라갈 수 없게 되자 자기 부대에서 떨어져나온
겁니다. 그는 브리칸트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혔습니다. 그는 준비
위원을 처음 보았을  때 사이클로인인 줄 알았다고 합니다. 인간이
라는 것을 알고,  이번에는 은행에서 파견된 구조팀인 줄 알았답니
다.
  "뭐라고?"
  토르와 로버트 경이 동시에 물었다.
  "그러니가 그들은 누군가에 의해서 구제될 거라는 전설을 가지고
있어서 수천 년  동안 그것을 지켜왔답니다. 전설이 그처럼 오랫동
안 유지될 수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지만...."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브리간트라는 것은 무엇인가?"
  정보는 간결한 것이 생명이라고 믿는 로버트가 물었다.
  "네, 그런  전설 때문에 그들과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현재 세  명의 준비위원이 그런 목적으로 그들에게 파
견되어 있습니다. 네?  브리간트가 뭐냐고 물었습니까? 글쎄요. 물
론 지금 말하려는 것은 모두 그 노인의 얘기에 기초한 것으로 미확
인된 것이지만,  재해가 일어나기 직전에  어떤 커다란 국제은행이
아프리카에 있는 한  국가를 전복하려고 했답니다. 제국주의자들로
부터 자유를 획득한  아프리카 국가들 중 하나였는데, 그 은행에서
거액의 돈을 빌려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그 돈을 갚지 않
으려 했다고 합니다.... 브리간트가 뭐냐고 물으신 거지요? 네, 지
금 얘기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그 국제은행은 흔히 외인부대
라고 불리는 용병.  그러나까 돈으로 고용된 군인을 대량으로 모집
했습니다. 전부 천 명 가량되는 군대로서 신경가스를 사용해 그 국
가를 괴멸시킬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용병들은 모두 가스마스
크를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지금 사용하는 산소마스크와
비슷하지만 그것은 단지  가스를 여과시키는 겁니다..... 네, 지금
요점으로 들어갑니다. 그  옛날에는 행운의 병사들이라고도 불리웠
답니다. 그들은 바야흐로  이 신흥국가의 정부를 공격하려고 몇 마
일 떨어진 사막의  광산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때 사이클로인이 지
구를 숩격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가스마스크를 쓰고 있
었습니다...."
  "소금은 사이클로인의 가스를 중화시킵니다."
  조니가 말했다.
  "아아, 과연 그렇군요.  어쨌든 그들은 아프리카에서 완전무장으
로 돌격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표적이 완전히 없어져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다국적 부대였습니다. 벨기에인, 프랑스인, 세네갈인, 영국
인, 미국인, 그 밖에 은행이 모집할 수 있었던 모든 국적의 인간들
이 다 있었습니다.  그들은 완벽한 훈련을 받은 군대였지만 자신들
을 단지 브리간트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 지
역의 원주민들이 가스로 죽었기 때문에 그 부대는 남쪽으로 내려갔
습니다. 무성한 나무와 정글 때문에 정찰기의 감시를 피할 수 있었
습니다. 또  있습니다. 그들과 접촉하는  것은 상당히 곤란합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이백 년 뒤에 그들은 사이클로인들과 업무
계약을 맺었습니다.  넷,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다구요? 그렇겠지
요, 우리들도 금시초문이었으니까.  그래서 외부인에 대해 항상 신
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그들의 임무는 사람들을 붙잡아서 사이클로인에게 넘겨
주는 일인 것 같습니다. 사격용으로나 고문용으로 쓰기 위해서입니
다. 그들도  사이클로인과 직접 접촉하는 것은  피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사이클로인은 이 늪지대에서는 활동할 수가 없습니다. 걷기
에는 몸이 지나치게 무겁고, 땅이 너무 물러서 탱크고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나무가 워낙 높이 자라 있어서 비행기도 들어갈 수가 없
습니다. 그래서 이들  브리간트들과 업무계약을 맺은 것입니다. 그
들이 인간들을 묶어서  본부구역 부근에 놓아두면 사이클로인이 와
서 그 목적이 무엇이든간에...."
  "고문을 위해서지. 사이클로인들은 고문이 하나의 놀이니까."
  "....그리고 사이클로인은 옷감이나  필수품들을 통나무 위에 놓
고 갑니다. 일종의 상거래지요. 그것은 몇 세기 전의 일입니다. 세
월이 흘러 붙잦을  인간이 없어져버렸습니다. 그러나 사이클로인이
브간트 사냥을 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늪
지대에다 커다란 나무들이 우거져 있었으니까요."
  "형편없는 인간들이구먼. 비무장인 준비위원이 그런 것들과 교섭
하는 것은 위험할 텐데."
  로버트가 준비위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우리들은 외교방면에는 상당히 능
숙하니까요. 어쨌든 우리들은  그들과 접촉해서 연합에 가맹시키라
는 명령을  평의회로부터 받았습니다. 현재  그 임무를 수행중입니
다.
  솔직히 말하면 브리간트라는 부족은 조금 이상한 면이 있습니다.
그들의 수가 천 명 이상으로 늘어난 적이 없답니다. 노인들은 버려
버리고 여성들은 이용만  할 뿐 결혼은 하지 않습니다. 소아사망률
도 상당히 높은 것 같습니다. 수류탄으로 코끼리 사냥을 하는 탓도
있을 것입니다....
  네, 그래요. 수류탄입니다.  그들은 조잡하지만 폭약제조법을 알
고 있습니다. 석탄과 초석, 그리고 광산에서 가져온 유황으로 만듭
니다. 그것들을 돌이  섞인 항아리에 집어넣고 도화선에 불을 붙입
니다. 어느 땐 시거로 불을 붙입니다. 이것을 사용하려면 코끼리와
정면으로 마주서야 합니다.  나는 이것도 그들의 사망률이 높은 원
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조대에 대해서 말입니까?  네, 그러니까 그들의 조상은 옛
날에 국제은행으로부터  탈출을 보장하겠다는  굳은 약속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깥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는 전혀 아는 것이 없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준비위원은 그 전설
을 이용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탈출시켜주는 셈입니
다."
  "그곳은 이 채굴장 근처에 있는가?"
  로버트가 물었다.
  "훨씬 남쪽입니다.  다만 미리 알아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해서
말한 것입니다. 얼핏  들은 바에 의하면 당신들의 표적은 지부채굴
장으로서 보통 사이클로인들만 있는 것 같군요."
  "보통 사이클로인이라."
  토르가 불만스러운 듯이 폭스에게 말했다.
  "당신은 권총을 가지고 있나요? 없어요? 필요하게 될 거요. 나의
예비권총을 주겠습니다. 쏘기  전에 사이클로인의 역사를 조사하겠
다는 생각은 그만두십시요. 알겠소?"
  데이비드 폭스는 마치 권총이 자신을 잡아먹기나 할 것처럼 잔뜩
겁을 집어먹고는 조심르럽게 권총을 받아들었다.
  그들은 아프리카를 향해서 계속 날아갔다.

  (5)
  조니는 굵은 나무 뒤에 엎드려 있었다. 비로 몸이 흠뻑 젖었는데
도 무더위 때문에  땀은 계속 배어나왔다. 그는 적외선 망원경으로
전방에 있는 건물을  살펴보고 있었다. 망원경도 두움이 되지 않았
다. 사흘 동안 그들은 땀에 흠뻑 젖은 채 유일한 문명의 상징인 전
력선을 따라 이동해왔다.  다행스럽게도 발전댐 위에 착륙할 수 있
었다. 그것은 전자동  자기유지 시스템으로 옛날 인간이 만든 기계
위에 사이클로인의 기계가  부착되어 있었다. 채굴장이 존재한다는
것 외에는  그곳에 대해서 실제로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조니는 전력선과 금속제 전력철탑에 걸려 있는 거대한 케이블을 추
적해서 결국 이곳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 결
국이라는 것이 언제가 될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전력선 주위는  나무나 덤불을 제거해버리는 게 원칙
인데 여기는 달랐다.  이곳은 오랜 세월 동안 방치해두어서 전력선
은 이 광대한 숲속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나무들로 뒤덮어져 하
늘이 보이지 않았다.  지도에 따르면 이곳은 자일 고원이라는 지방
이었다. 그리고 사라진 이 부분은 이츠리 숲이었다. 여기서는 적도
바로 아래에 있는  태양도 지면에까지 도달할 수가 없었다. 햇빛은
우선 구름층에, 그리고  거대한 나무들에 차단되고 있었다. 나뭇잎
들은 빽빽하게 밀집되어 있어서 돔처럼 주위를 폐쇄히켰고, 커다란
덩쿨풀이 뱀처럼 나무줄기에  엉켜 있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두
껍게 쌓인  부식토가 발을 움푹 빠지게  하였다. 게다가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빗방울은  나무나 풀을 타고 머리 위로 떨어져내렸
다. 시간이  지날수록 억수로 퍼붓는  빗줄기에 뜨뜻미지근한 폭포
속을 걷고 있는 느낌이었다.
  사방은 온통 으스름한  어둠이었다. 그 어둠 속에는 맹수들이 도
사리고 있었다.  모습은 똑똑히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은 코끼리나
들소, 고릴라처럼 위험한 것들이엇따. 기린, 영양, 살쾡이 같은 동
물이 이따끔 그들의  발소리에 놀라서 도망쳤다. 빗소리 때문에 희
미하게 들리는 표범의  포효소리, 악어가 울부짖는 소리, 원숭이들
의 수다, 그리고  공작의 날카로운 소리를 들으면서 조니는 적들에
게 빽빽히 포위당한 느낌을 받았다.
  옛날 인간들이 만든 지도는  이 숲의 넓이가 대략 이만 평방마일
이나 된다는  것, 그리고 인간의 문명이  전성기였을 때도 이 숲을
완전히 탐험하지 못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따라서 이곳 채
굴장을 놓쳐버린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츠리 숲은 벅스킨과 모
카신을 신고, 다리를 질질  끌면서 걸을 만한 곳은 못되었다. 상공
을 날  수도 없었고, 매우 은밀하게  행동해야 했기 때문에 빠르게
전진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비행기에서 늘어진 선이 전력선에
닿으면 비행기가 손상될지도 모르고, 악어가 우글러니느 강을 거넌
는 거도 위험했다.
  지금 이곳에 와 있는 숫자는 그들 가운데 소수에 불과했다. 전대
원 가운데 불과 스무 명만이 나무들 사이에 산재해 있었다. 필요하
다면 비행기에서 대기중인  대원들에기 지원을 요청하기고 되어 있
었다. 전방의 건물에는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요즘 같은 상황이라
면 사이클로인들도 밖으로 나다니는 일은 거의 없을 테니까 그것만
으로는 알 수가 없었다. 그 건물은 상당히 오래전에 세워진 것으로
우거진 잎으로  완전히 뒤덮여 있었다.  이 음울하고 을씨년스러운
풀로 가득차 있는 전초기지에 파견된 자들은 어떤 인물들일까 하고
조니는 생각했다. 그는  건물 왼쪽을 살피면서 트럭이 지나간 흔적
을 찾았다. 차량이 통행할 수 있는 길은 없겠지만 광석트럭이 지나
갔다면 짓눌린 식물들이  말라죽어 있을 게 틀림없었다. 아니나 다
를까 그는 한줄기의 선을 발견했다. 그것은 밀림의 어둠 속을 뚫고
동쪽으로 향해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앞쪽에 약간 밝은 곳
이 있었다. 나무들 사이에 열린 장소가 있었다. 화물비행기를 착륙
시키기 위한  것이리라. 이 도로는 그곳으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저런, 다른 길이 또 하나 있었다. 하나는 숲 밖으로 나가는 길이었
고, 또 하나는 비행장으로 이어져 있는 길이었다.
  "이처럼 무계획적인 습격작전은 없다구."
  로버트가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습격작전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정보를 위한  정찰이 필수적인데. 조니에게는 지구상에
이런 곳이 존재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들은 지금 무엇을 하자고  이곳에 온 것일까 하고 조니는 생
각했다. 사이클로인들이 무저항으로  항복할 리는 없으니까 사상자
가 나올 것은  틀림없었다. 그러나 조니는 죽은 사이클로인보다 살
아 있는 사이클로인이 필요했다. 그가 벨트에서 광산무전기를 빼내
려고 했을  대 적외선 망원경이  오른쪽으로 미끄러졌다. 처음에는
건물 안에서도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에서 가져온 것이
었다. 뚜렸한 길이 나  있었고, 그 너머에는 오랫동안 잡초로 덮여
있던 트럭의 잔해가  보였다. 오후의 희미한 햇살로는 식별이 거의
불가능했다. 비  때문에 세부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더욱 곤란했
다.
  조니는 쌍한경을 로버트에게 건네주었다.
  "저 낡은 트럭의 짐칸 위에 뭔가 보이지요?"
  로버트의 외투는 빗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방수포 밑에  뭔가 있군.  새로운 방수포구먼.... 통?  두 개의
통? 무슨 자루 같기도 한데?"
  조니는 데이비드 폭스가  늘어놓은 장황한 설명ㅇ르 생각해냈다.
그 준비위원은 그들의 뒤쪽에서  역시 물에 젖은 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조니는 조금 뒤로 물러났다.
  "사이클로인과의  거래에서 통나무  위에 놓아두는  것은 무엇인
가?"
  "네? 그들은 사이클로인이 볼  수 있는 곳에 인간을 놓아두고 철
수 합니다. 그러면 사이클로인들이 나와서 물건을 놓고 갑니다. 당
신이 지금 말하는 것은 브리칸트의 경우입니까?"
  "아무래도 저걸 보면 지금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조니는 그렇게 말하고는 한 젊은이를 불러 조그맣게 속삭였다.
  "이반 대령에게 전해라. 저 우측 지역을 정찰하라고."
  조니는 왼손으로 원을 그리며 그 말을 보충설명하듯이 속삭였다.
  "주의해서 살펴보라고 하게."
  "이 무계획적인 습격의 다음 행동은 뭔가?"
  물에 흠뻑 젖은 로버트는 여전히 투덜대듯이 말했다.
  "나는 대원들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저 건물을 공격할 건가?  이 나무들 사이를 뚫고 비행기의 지원
을 받는다는 것은 기대하지도  말게. 저곳을 잘 보게. 틀림없이 호
흡가스 순환기용 냉각장치인  것 같은데. 여기서 저것으 공격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흠, 비방사능탄이 있습니까?"
  "있다마다. 그러나  몇 번씩 강조하는 것인데  이번 작전은 너무
계획성이 없다구."
  그들은 음침한  빗방울과 폭포처럼  쏟아지는 빗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왼쪽 어디선가 표범의 포효와 파도 같은 새소리 속에 원숭
이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그들의 바로 뒤쪽 이십 피트 지점
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엎드린 채로 기어서 뒤쪽으
로 돌아왔다. 이반이 나무  뒤에 서 있었다. 그의 발밑에는 이상하
게 생긴 인간이 쓰러져 있었다.
  그 사나이의 국적은  어딘지, 혹은 무슨 피부색인지도 전혀 짐작
할 수가  없었다. 원숭이가죽을 벗겨 만든  이상한 옷을 입고 있었
다. 옆에는 주둥이가 열려진  자루가 있었고, 그 속에서 점토로 만
든 수류탄이 굴어나와  있었다. 이반은 자신의 수통을 꿰둟은 화살
을 가리켰다.그는 화살을  뽑아서 조니에게 보여주었다. 조니 뒤에
서 있던 준비위원이 속삭이듯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건 독화살입니다. 끝에 붙은 구슬을 보십시요."
  조니는 이반이 들고 있던 수통을 빼앗았다. 물은 더이상 마실 수
없다는 몸짓을 하고는 버렸다. 그리고 그 사나이의 옆에 떨어져 있
는 수류탄을 집어들었다.  수류탄에는 도화선이 나와 있었다. 사이
클로인의 것이었다.  이반은 조니에게  사이클로인의 광산무전기를
건네주면서 사나이를 가리켰다.
  "이놈, 우리들 감시하고 있었다. 이놈 말했다."
  이반은 무전기를 가리키면서 더듬더듬 영어로 말했다.
  조니는 깜짝  놀랐다. 적은 지금 앞쪽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적은 등 뒤의 밀림 속에서 그들을 노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로버트는 그의 부대원들에게 서둘러서 후방공격에 대비하라고 명령
했다.
  발밑에 쓰러져 있는 사나이는 브리칸트였다. 넓은 생가죽 벨트를
찼으며 여분의 화살이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그는 묘하게 생긴 평
평한 장화를 신고 있었고,  짧은 머리칼은 모두 곤두서 있었다. 얼
굴은 상처투성이였고 흉폭해 보였다. 그 사나이는 의식을 되찾아가
고 있었다. 이반 대령은  재빨리 그의 목을 발로 눌러. 일어나려는
것을 제지했다. 로버트가  뒤쪽에서 들어와, 고개를 끄덕이며 배치
가 완료되었다는 것을 알렸다.
  "놈들은 지난 며칠 동안 우리들을 감시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
것을 보게. 이건 사이클로인 무전기일세."
  "그렇군요. 그리고 폭탄의  도화선도. 이 근처엔 뭔가 더 있으리
라고 생각되는데요...."
  그때 오십 피트 가량  떨어진 곳에서 폭탄이 터지면서 밝은 오렌
지빛 섬광이 번쩍였다.  뒤를 이어 공격형 라이플이 연속적으로 발
사되었다. 총소리에 놀라  날아오르는 새들과 원숭읻르의 비명소리
가 숲을 가득 메웠다.  조니는 통나무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로
버트는 복병들의 습격에 대비해서 두 명의 저격방을 배치했다.
  "우리들은 포위당했다. 정말 기가 막히게 계획된 작전이군."
  "우선 우리의 배후부터다. 후방에 있는 적들을 처치해버리자."
  "조준!"
  이반 대령이 소리치고, 러시아어로 뭔가 말했다. 그 순간 공격형
라이플이 일제히  불을 뿜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류탄이 터지면서
빗속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사나이들이 서로를 엄호하면서 달려
나가며 파상공격을 계속하였다. 비명소리가 났고, 뒤이어 러시아인
과 스코틀랜드인의 함성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리고 나서 잠시 침묵
이 있었다, 또다시 미친 듯이 발사되는 공격형 라이플의 총성이 퍼
져나갔다.
  다시 침묵. 그리고 목이 쉰 듯한 소리가 새소리와 빗로리를 꿰뚫
고 들려왔다.
  "우리들은 항복한다.!"
  그것은 어떻게 들으면  영어 같기고 하고, 프랑스어 같기도 하게
들렸다. 준비위원은 혼란스러웠다. 로버트는 적들의 함정을 경계하
면서 부하들을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보냈다. 그때 조금 떨어
진 곳에서 달아나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듣자 조니는 젊
은이에게서 분사라이플을 빼앗아들고  몸을 엎드렸다. 그는 바늘끝
크기와 무염으로 총을 조절하고, 호흡가스 냉각장치가 있는 건물에
맹렬한 사격을 가했다. 낡은 건물의 바깥에 붙어 있는 금속은 연속
적인 타격을 받아서 날가죽처럼 벗겨져나갔다. 쨍그렁 소리와 쉭쉭
소리가 났다. 조니는 다시  한 발을 발사했다. 그는 한참을 기다리
고 있었으나 한  명의 사이클로인도 뛰어나오지 않았다. 건물 안은
공기로 가득 차 있을 텐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다만 빗소리만
이 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폭발한  수류탄으로부터 피어오른 검은
가루연기가 서서히 퍼져나가고 있었다.

  (6)
  조니는 짧은 도로 끝에  있는 광산화물 전용의 비행장 주위를 계
속해서 살펴보고 있었다.  황량한 바람만 스쳐갈 뿐 인기척은 전혀
없었다. 무선장치를 짊어지고  조니를 따르던 스코틀랜드이이 그의
수신호에 따라 달려오자 조니는 장치들을 체크했다. 범 지구주파수
에 맞추고 마이크를 들었다.
  "나이로비행 비행, 스탠바이."
  그것은 통상적인 조종사들의  교신처럼 들렸지만 전력댐 옆에 남
겨두고 온 두 대의 비행기와 교환되는 암호였다. 나이로비란 '우리
들이 있는 방향으로 비행하라' 스탠바이란 '지시가 있을 때까지 발
포하지 마라. 그러나 경계는 하라'라는 의미였다.
  더넬딘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승객은 전원 탑승했다."
  그들은 출발했다. 조니는  광산무전기를 벨트에서 꺼내 컨스탄트
브리프에 주파수를 맞췄다.  이것은 광부들이 낙반 속에 갇혔을 때
사용하는 것으로, 비행기를  위한 무선표지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조니는 부하 세 명에게  신호해서 그 한 사람에게 광산무선기를 건
네주고, 비행장의 나뭇가지에  걸어두도록 명령했다. 세 사람은 공
격형 라이플을 낮게 겨누고, 건물로부터의 공격에 대비하면서 비행
장으로 전진했다. 그들의  모습은 비의 장막을 통해서 희미한 그림
자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나  비행장 구석에 다다르자 얼마간 명료해
졌다.
  이윽고 한  사람이 준비완료를 나타내는  신호로 손을 쳐들었다.
그들의 임무는 착륙하는 비행기를 경호하는 것이었다. 조니는 분사
라이플을 어깨에  다리를 끌면서 건물로  다가갔다. 왕래가 많았던
듯 지면이 굳어져 있어서 지팡이가 거의 빠지지 않았다. 남쪽 방향
에서는 펌프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조니 일행이 추적해온 전력선
의 지선은 도로 위에서 방향을 바꿔 비행장 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조니는 그것을 따라 걸어갔다.
  나무들 사이로 키가 낮은, 돌로 만든 오두막집이 나타났다. 오두
막 집 주위에는 애자에 연결된 전선들이 감겨져 있었다. 조니는 그
곳이 연료와 폭약을 제조하는 공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공장들은 수력발전소에서 얻어지는 잉여전력을 이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주변에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한 발자국과 트럭이 지
나간 흔적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공장문은 절반쯤 열려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조니는  문을 지팡이로 밀어젖혔다. 내부는 엉망
진창이 되어 있었다.
  대개의 경우 연료와 폭약깡통은 선반에 가지런히 쌓아 올려져 있
고, 벽면의  저장소에는 폭약과 혼합해서  사용하는 갖가지 광물이
놓여 있곤 했었다. 그런데 이곳은 광물이 온통 바닥에 쏟아져 있었
으며, 부서진 깡통들이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최근까지도 사
이클로인들이 이곳에서  긴박하게 작업했음이  틀림없었다. 연료와
탄약의 원료를 배합하여 깡통에 밀봉하는 작업은 상당한 시간을 요
하는데 서둘러 며칠 만에 끝내버린 흔적이 역력했다.
  조니는 교차로에서 중앙 채굴장으로 이어졌음직한 방향의 도로로
걸어갔다. 도로 양쪽의 관목수풀을 살피면서 흔적을 찾았으나 세차
게 내리는 비 때문에 고도로 훈련된 그이 눈으로도 찾아낼 수가 없
었다. 조니는 몸을  구부려 길가의 덤불에서 부러진 잔가지를 조사
했다. 지부  채굴장 건물 방향으로 꺾어진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며칠 전에  꺾어진 것이 분명했다. 꺾인  부분이 아직 마르지 않았
고, 수맥을 살펴보니 과거 인간이 만든 지도에 표기된 빅토리아 호
근처에 있는 중아 채굴장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며칠 전,  혹은 몇 주일 전에  차량부대가 왔다가 떠나간 시간은
한나절도 채 지나지 않았고, 대규모의 차량부대임을 알 수 있었다.
조니는 그 길이 이어지는  곳까지 시선을 보내 혹시 돌아오는 트럭
이나 탱트가 보이지  않을까 살펴보았다. 지금 그들의 뒤쪽에 있는
밀림 속에는 브리칸트  소대가 잠복해 있을 것이었다. 거리에 관계
없이 천 명의 브리칸트로  이루어진 본대도 있었고 이 도로 앞에는
다수의 사이클로 차량부대가 있었다. 조니는 지상차의 흔적을 바라
보았다. 광석운반용 트럭과 탱크일까.
  그대 비행기  소리가 들려왔다. 아군 전투기였다.  이 도로 앞에
있을 차량부대에게는  자신들의 모터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테니까 이 정도의  소리가 문제될 것은 없었다. 나무마다 빈틈
없이 빽빽하게 돋아나 있는 잎사귀 때문에 위에서는 밑을 내려다볼
수 없을 뿐  아니라, 밑에서도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 불가능했으
므로 상공의 비행기가 발견될 염려는 없었다. 그러나 전술적으로는
불리한 상황이었다. 질척거리는 땅, 시야를 가리는 밀림 속에서 차
량부대와 맞서  싸운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었다. 차량부대는
탱크의 호위를  받고 있을 텐데, 아군  비행기는 탱크를 저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조니는 비행장으로 걸어갔다.  비로소 하늘이 보였다. 그다지 넓
지는 않았지만 대형 전투기라도 충분히 이착륙할 수 있는 공간이었
다. 병사들은 비행장을  둘러싼 나무들 사이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브리프를 발하는 광산무전기는  거대한 뱀처럼 나무를 휘감은 직경
십오 인치의 덩굴에  설치되어 있었다. 전에는 이 비행장의 규모가
훨씬 컸었겠는데, 둘러싼 정글에 잠식되어 좁아져 있었다. 대형 해
병대 전투기가 소형  전투기의 호위하에 상공을 선회하면서 강하하
여 절퍽거리는 땅을 버섯 모양으로 소용돌이치게 하며 착륙했다.
  소형 전투기의 문이 열리고, 더넬딘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는 조
니를 보자 매우 반가웠다. 우선 폭스 로버트가 비행기로 달려갔다.
대형 전투기의 옆문이 열리고, 잔류부대의 사관이 궁금한 표정으로
로버트를 바라보았다. 보버트는 그 사관에게 손을 흔들어 긴급사태
가 아니니까 그대로  앉아 있으라고 지시하고는, 조니을 따라 소형
전투기에 올라탔다. 조니는 재빨리 더넬딘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중앙 채굴장으로 향하는  저 도로로 차량부대가 전진하고 있다.
놈들은 연료와 탄약을  만들기 위해 이곳에 왔다가. 지금은 채굴장
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과연, 이제 납득이 가는군요."
  더넬딘이 조니의 말에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더넬딘답게 그는 조니에게서 통신이 오기를 맹목적으로 기다리고
만 있지는  않았다. 그 소형 전투기로  댐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정찰을 해본 것이었다.  더덴딘이 조니와 로버트 경에게 정찰을 통
해 알아낸 것들을 설명해주었다.
  "나는 대형 전투기를 댐 근처에 남겨두고, 앨버트 호라고 불리던
곳까지 비행해 갔습니다. 그리고 일반 수송로인 상공을 순회하면서
중앙 채굴장을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이 전투기의
장비와 전망스크린은  비구름 속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당신들은
나무들에 가려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겠지만 말입니다.... 그대 나
는 제구십이일에 이 채굴장을 공격했던 조종사가 한 말을 생각했어
요.... 이름은 분명히 맥커들이었습니다. 녀석도 이 채굴장에는 상
당히 애먹은 것  같았습니다. 사이클로인은 격납고에서 두 대의 전
투기를 꺼내려고  했지만 맥커들은 두 대  모두 격납고의 진입문을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저지시켰습니다.
  그는 사이클로인의 권력선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대량의 호흡가
스, 연료와 탄약을  폭파했습니다. 그러자 사이클로인들은 두 대의
대공포화로 맹렬한  반격해왔는데 그것마저  철저히 파괴했습니다.
아무튼 굉장히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채굴장이었습니다.... 지나
사흘 동안 고도 만 피트 상공에서 정찰했는데, 그 주변에선 아무런
움직임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격납고의 문이 열려 있
었습니다.... 자아, 여기입니다. 잘 봐주세요. 보입니까? 비행장의
옆의 나무그늘입니다....  그래요, 그곳입니다. 발진준비를 완료한
열 대의 전투기입니다."
  더넬딘은 전투기의  스크린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며 덧붙여
말했다.
  "맥커들의 공격에도 채굴장은 완전히 소탕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공격이 끝난 후에도 저 고릴라들은 이곳에서 바쁘게 일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조니는 여러 장의 사진에 시선을 보냈다. 그 중 하나에서 나무들
로 교묘하게  은폐시켜놓은 전투기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찬찬히
살펴보고는 더넬딘을 쳐다보았다. 그대 더넬딘이 말했다.
  "그래, 맞아요. 당신이  무인폭격기 위에 태웠던 것과 같은 기종
입니다. 마크32 저공비행  지상폭격기, 굉장한 중장갑입니다. 항속
거리는 그다지  길지 않지만 여분의 연료  카트리지를 적재할 수도
있으니까요."
  "더넬딘, 사이클로인들은 이 채굴장의 방위태세를 정비할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놈들은  오로지 호흡가스를 손에 넣으려고 했을 것
이다. 연료도  전부 폭파괴어서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자아,
마크32기를 가리고 있는 풀숲 속의 트럭을 봐라. 이곳에 있는 전투
기들은 날아온 것이 아니라 트럭으로 운반된 것이다."
  조니는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오두막집을 가리켰다.
  "놈들은 얼마 전까지 이곳에 있었다. 틀림없이 저 오두막에서 연
료와 탄약을 필사적으로  제조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손에 넣
을 수 잇는 모든  연료를 긁어모아서 차량부대를 이곳까지 끌고 왔
다. 그리고  이 지부의 모든 호흡가스를  적재했을 것이다. 지금은
마크32기가 기다리는 중앙 채굴장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그 밖에 대량의 호흡가스가 비축되어 있는 곳이라면...."
  로버트가 말했다.
  "아메리카 중앙 채굴장 본부밖에 없다. 놈들은 그곳을 공격할 계
획임에 틀림없다."
  "저 열 대의  마크32기의 위력이라면 현재 상황을 정반대로 바꾸
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있게 말한 조니는 지도를 펼쳐들었다. 그의 옷자락에서 물방
울이 지도 위로 뚝뚝 떨어졌다. 조니는 중앙 채굴장으로 가는 길이
밀림을 빠져나가 평원을  가로질러 기다란 협곡으로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길은 엘버트 호 쪽으로도 이어져 있었는데, 협곡을
나온 곳에 평평한 장소가 있었다. 조니는 더넬딘이 촬영한 여러 장
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전투를 햐야 할 것 같군."
  지도에 표기된 거리고 실제거리를 측정해낸 조니는, 로버트 경을
돌아보았다.
  "놈들이 이 지점에 도달하기까지 하루 반은 걸립니다. 길이 굉장
히 험하니까요.  아마 중앙 채굴장까지는 이틀이  걸릴 겁니다. 그
동안에 우리들은  브리칸트 주력부대를  어떻게든 저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반 대령,  네 명의 특공대원, 그리고 박격포를 이곳에
배치합니다. 그에게  지원부대가 올 때까지  이 통로를 확보하라고
말해주십시오. 자네, 더넬딘은 여기에 자라잡고 차량부대의 통과를
저지하게 잊지말게.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살아 있는 사이클로인
일세."
  "우리들은 덴버를 반격하려는 놈들을 저지하려고 하네>"
  로버트 경이 말햇다.
  그대 토르는 조니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월광 산맥에 있었다. 승
마가 특기였던 그는 말 다루는 솜씨가 뛰어났으므로 말을 이용하여
의도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었다. 조니가 그곳에 있다고
믿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이 전투를 위해서 토르를 소환할
수는 없었다.
  "유감스럽지만 자네한테는 전투기를 맡아달라 수밖에 없네."
  조니가 말했다. 그러자 더넬딘은 여유 있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당연하죠, 내가 안 가면 도대체 누가 갈 거라고 생각하는 거요,
조니?"
  로버트는 차례차례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즉각 이반 대령과 네
명의 병사가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바투카포와 분사박격포를 등
을 준비했다. 로버트 경이 이반 대령에게 임무를 설명하자 그는 즐
거운 듯이 웃었다.
  "힌두크 시 계곡에서의  매복은 훨씬 더 복잡했다구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조니 원수에 로버트 사령관. 그 계곡은 꼭 확보하겠습니
다. 넷? 살아 있는 사이클로인이라구요? 흠, 그다지 기분좋은 일은
아니군요. 하지만 맡겨주십시요. 우리 붉은군대는 해낼 것입니다."
  그 뒤 전투기는 날아올라갔다. 일곱 명의 인간과 한 대의 전투기
로 수십 명의  사이클로인과 전투탱크가 호위하는 차량부대를 저지
해야 하는 것이었다.  더넬딘은 드릉게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폭우
속을 헤치며 사라져갔다.

  (7)
  예상한 대로 일  에이커 정도의 호흡가스 적재장은 물론, 반에이
커의 연료와  탄약 적재장도 모두 텅  비어 있었다. 앵거스가 대형
전투기에서 내린 예비부대의 엄호 아래 지부 채굴장 건물의 출입문
을 박차고 기습했을 때는 이미 비어 있었다. 그곳은 사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사무실,  작업장, 격납고 등이  갖추어져 있었고, 환하게
밝혀진 조명 아래 펌프가 작동하고 있었다. 꽤나 서둘러 출발한 몽
양으로, 모든 것이 난잡하게 흐트러져 있었다.
  조니는 레크레이션 홀 밖의 복도에 서 있었다. 그곳은 음침하고,
도처에 곰팡이가  피어 있는 벽을 따라  새어들어온 물방울이 뚝둑
떨어지고 있었다. 도저히 사람이 살 만한 곳이 아니었다. 사이클로
인에게도 지독한  곳이었을 것이다. 조니는  프린터가 토해내는 몇
다발의 연락서신을 되풀이해서  읽었다. 사이클로인들은 모든 주파
수, 특히 조종사가 사용하는 범 지구주파수를 수신하고 있었다.
  '앤디, 캘커타에 있는 순례자를 태울 수 있겠는가?'
  '비행복 한 벌과 연료를 더 갖다주지 않겠나, 맥커리스티?'
  이러한 기록을 읽어나가던 그는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스코틀랜드인 조종사들은 영어가 섞인 사이클로어로 교신하고 있
었다. 정글 속에 숨어서,  바깥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
혀 모르는 채 이러한 교신들을 모니터하고 있던 사이클로인 직원들
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러시아인이 호흡마스크를 들고  달려왔다. 그것에는 아직 작동중
인 보틀이 달려 있었다.  조니가 냄새를 맡아보았다. 타는 듯한 취
기가 코를 찔렀다.  흠, 이 보틀 하나가  바닥나는 데는 대충 열두
시간이 걸린다. 이것에는 아직  3분의 1 정도가 남아 있다. 사이클
로인이 이곳을 출발한 것은 여덟 시간이나 아홉 시간 이내다.
  조니는 복도를 따라  절면서 걸었다. 펌프는 내부에 끊임없이 공
기를 주입하고 있었지만,  온몸에선 진땀이 흘러내렸다. 게다가 사
이클로인의 체취와  곰팡이 냄새가 섞여  있어서 상당히 역겨웠다.
그러나 이 채굴장은 다른 곳보다는 새로웠다. 새로운 텅스텐광맥이
발견되자 이곳 밀림으로 이동해 온 것이리라. 사이클로인들은 이곳
에서 텅스텐을 모으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채굴장 관리사무실
에 있는 전망스크린은 광산의 거대한 전자용광로를 비추고 있었고,
코일에선 아직도 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조금 전
까지 이곳으로 광석을  운반하여 제련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혹성
에서 일어난 그 사건은 일시적인 것으로 치부해버리고 채굴을 중단
하기는 커녕 속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니는 격납고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갔다. 사이클로인용으로
만들어진 계단은 지나치게 높고 넓어서 불편한 다리로 내려가는 것
이여간 힘들지 않았다.
  격납고 역시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난잡하게 흩어져 있었고,
아직도 차량들이  늘어서 있었다. 격납고  안에서 앵거스가 눈부신
조명아래 텅 빈 내부를 조사하고 있었다. 앵거스는 크레용을 들고,
당장은 사용불가능한 차량들에 X표시를 하고 있었는데. 두 대의 작
은 탱크에 X표시를 했다. 채굴용 비행작업대도 있었는데, 그것들은
X표시가 되어 있지 않았다. 몇 대의 트럭도 있었으나 사용할 수 있
는 것은 절반뿐이었다.  그 근처에서 사이클로어로 '군수품'이라고
씌어진 출입문을 찾아냈다.
  조니는 안으로 들어갔다. 분사박격포가 보였다. 포탄까지 적재되
어 있었다. 이것은 탄약저장 규칙에 위반되는 것이었다. 물론 상관
은 없었다.
  조니는 밖으로 나가서 앵거스의 어깨를 잡았다.
  "저 커다란  트럭 두 대를 꺼내주게,  트럭에 비행작업대를 싣고
박격포와 탄약을 비행작업대에 설치하도록 하게. 그리고 이 방수포
를 말아서 트럭 전면에  붙이게, 철갑 대신이지. 그것이 끝나면 한
대는 격납고 밖에 다른 한대는 바로 안쪽에 놓아두게."
  조니는 로버트 경에게도 지시를 내렸다.
  "박격포가 설치된 작업대를 병사 네 명과 조종사 한 명을 배치하
여 즉시 사이클로 차량부대를 추적하도록 해주십시요."
  "저 작업대로 말인가?"
  "채굴장의 작업대는 트럭에서  날게 하여 박격포의 탄약을 칠 수
도 있고, 나무를  넘어뜰려서 도로를 봉쇄할 수도 있습니다.... 차
량부대의 추적하게 해주십시요. 너무 접근하면 곤란하겠지만. 만일
놈들이 방향을 전황해서 돌아온다면 저지하는 것입니다."
  "만일 실패해서 놈들이 이곳으로 돌아온다면?"
  "이곳을 방위하는 데는 격납고  안에 있는 작업대를 한 대 더 슬
수 있습니다.  병사 네 명과 조종사  한 명을 그곳에 배치해주십시
요. 브리칸트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오면 나도 조종을 맡겠습니다."
  "자네가 차량부대의 추적에도 나서겠다는 건가?"
  로버트 경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비꼬듯이 덧붙였
다.
  "역사상, 이놈의 작전처럼  치밀하고 주의깊게 계획된 작전은 없
을거야. 안 그래? 정말이지 최고야."
  그렇게 말하고 로버트 경은  그 일을 준비하기 위해 자리를 떠났
다. 트럭으로 탱크와 싸우겠다니.... 하고 투덜거리며 사라져갔다.
  그때 스코틀랜드인이 달려왔다.
  "조니, 삼층으로 와주십시오."
  그의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다. 조니는 다리를 끌면서 고통스럽게
계단을 올라갔다.
  그곳은 분명 사이클로인이 사격연습장으로 쓰던 넓은 실내사격장
이었다. 러시아인 몇몇이 마루  위에 놓여 있는 것을 둘러싼 채 믿
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것을 보고 있었다.
  조니를 이끌고 온 스코틀랜드인이 멈춰 서서 잠자코 아래를 가리
켰다. 응고된 핏덩어리  한가운데에 여러 개의 조각들이 흩어져 있
었다. 회색  머리털 뭉치, 갈색 피부,  그리고 찢어진 옷과 흩어진
뼛조각들로 두  노파의 잔해 같았다. 그  잔해 옆에 나뒹굴고 있는
빈 분사총 케이스들이  두 노파의 운명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아마
이런 일이엇을 것이다.  몇몇의 사이클로인들이 여기서 서서 일 인
치씩 피부에 파고 들어가도록 수백 발을 쏘아댔을 것이다. 두 노파
는 고통  속에 서서히 죽어갔고, 그들은  시체를 토막냈던 것이다.
바로 몇 시간 전에 사격소리와 비명소리, 잔인한 웃음이 함께 어우
러진 지옥 같은 광란의 파티가 펼쳐지고 있었을 게 틀리없었다.
  닥터 맥켄드릭이  달려왔다. 그는 흥건히  고여 있는 핏덩어리를
피해서 멈춰 섰다.
  "윽, 이건 너무 지독하군. 이 무더위 속에서는 정확하게 말할 수
없겠지만 그보다도 이것을 조사할  만한 것이 충분히 남아 있지 않
잖은가? 그들은 한 방씩 쏘아서 일 인치씩 잘라낸 것 같군."
  그는 일어나서 조니를 보았다.
  "어째서 사이클로인들은 이런 짓을 했을까?"
  "놈들에게는 이것이 취미입니다. 최고의 스포츠라고 생각하는 거
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희열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즐거움을 느끼는 유일한 행위입니다."
  의사는 얼굴을 찌푸렸다.
  "이래서야 검시 쪽이 훨씬 낫겠는걸."
  러시아인이 막대기 같은 것을 들고 왔다.
  "이것을 보여주게."
  조니가 말했다.
  그는 핏덩어리를 피해서 껑충 뛰어가더니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
때 로버트가 들어오다가 움찔하고 발을 멈췄다. 스코틀랜드인의 차
양 없는  모자를 본 것이었다.  스코틀랜드인의 시체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모자만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8)
  조니는 세차게 쏟아지는 빗속에 서서 트럭의 잔해를 바라보고 있
었다. 이삼 일 전, 어쩌면 몇 시간 전일지도 모른다. 세 사람이 포
박당한 채 여기에 서 있었다. 두 명의 브리칸트 노파와 한 명의 젊
은 스코틀랜드인이었다. 일할 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는 그드은
사이클로인이 붙잡아가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뒤쪽에서는
독화살과 수류탄을 든 병사가 감시하고 있고.... 도대체 얼마나 많
은 반투족이나 피그마족이 브리칸트에게 붙잡혀 사이클로인들의 놀
잇감이 되었을까. 사이클로인들은  세 사람을 데리고 갔을 것이다.
두 노파는 고통 속에 죽어갔고, 스코틀랜드인의 운명은 아직 알 수
없었다.
  러시아인 폭발물 처리  요원이 신중하게 트럭과 교환물자에 부비
트랩이 장치되어 있는지 여부를 조사했다. 사이클로인에 대한 조니
의 지식이 옳아서, 사이클로이들이 이 거래를 끝장낼 생각이었다면
어딘가에 폭탄장치가 되어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폭탄은 없었다.
사이클로인들은 지구를  탈환하면 다시 거래할  속셈인 것 같았다.
조니는 그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밀폐된 금속용기 속에는 백 파운
드의 유황과 백  파운드의 질산소다가 들어 있었다. 방수포 밑에는
광산용 도화선의 커다란  코일이 있었다. 그 재료들에 숯만 있으면
수류탄을 만들수  있었다. 작은 쪽  꾸러미에는 광산무전기용 파워
카트리지가 들어 있었다. 고작 그것이 세 생명의 대가였던 것이다.
  조니는 러시아인 사관과 그 부하가 브리칸트 포로를 감시하고 있
는 곳으로 걸어갔다. 살아남은 자는 열일곱 명이었다. 그들은 양손
을 머리 뒤로 포박당한  채 얼굴을 땅에 묻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공격형 라이플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근처에는 일곱 명의 부
상당한 브리칸트들이 신음소리를  내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옆
에는 브리간트 시체 열두  구가 쌓여 있었다. 그들 가운데 한 놈이
얼굴을 쳐들었다.  가슴패기가 나무통 같은  흉폭하게 생긴 사나이
로, 이빨은 부러졌으며, 턱은 각이 졌고 얼굴은 상처와 곰보투성이
였다. 짧게 깎아  올린 머리칼에 원숭이가죽으로 만든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독화살용 탄약대 두대를 가슴에 교차하여 착용하고 있었
다.
  "왜 우리들에게 발포했는가?"
  그가 조니를 날카롭게 쏘아보며 말했다.
  "먼저 공격한 것은 당신들 쪽이라고 생각하는데."
  조니 역시 쏘아보며 대답했다.
  "여기서 뭘 하고 있었나?"
  "전쟁규정상 당신은 성명, 계급, 인식번호밖에 물을 수 없다."
  헛소리였지만 이해 못할 것도 없었다.
  "알았다."
  조니는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었다.
  "말해봐라."
  "아이프 모이피, 대위, 고지 자이르군 제5코만도다. 당신들은 구
조대인가 유엔군인가?"
  조니는 눈썹을 치켜올리고 준비위원인 데이비드 폭스를 바라보았
다.
  "그들은 언제부턴가 국제은행이  구조대를 파견할 거라는 전설을
믿고 있습니다. 유엔이란 국제적 정치조직으로 약소국이 부당한 피
해를 당할 경우,  중재에 나서 국제평화를 도모하는 조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이처럼 오랫동안 신화를 유지해왔다는 것은 참으
로 놀라운 일입니다....."
  "당신의 본대는 어디에 있는가?"
  "성명, 계급, 인식번호 외에는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그 말도 맞다. 하지만  우리들이 그 구조대하면 알 필요가 있을
거다. 안 그런가?"
  "만일 당신들이 구조대라면 본대의 소재지를 알고 있을 것이다."
  브리칸트는 도전적으로 말했다.
  "구조대는 이미 와 있다. 아니, 곧 올 것이다."
  "우리는 당신들의 사령관과 얘기하고 싶다."
  "스니스 장군 말인가?  그분은 메인 베이스 캠프에 있다. 여기서
너무 멀다."
  조니는 러시아인 사관에게  시작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러시아인
들은 공격형 라이플의 총구를 들어올렸다.
  "그곳까지 가는 데 이틀이나 걸린다."
  브리간트 대위가 말했다. 포박당한 손으로 그 방향을 가리키려고
했으나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자. 이번에는 턱으로 가리키려고 필
사적으로 애썼다.
  "저 트럭 위에 포로를 놓아둔 것은 언제인가?"
  "트럭 위에?"
  브리칸트는 시치미를 뚝 뗐다.
  조니는 다시금 러시아 사관에게 신호했다.
  "어제 오후다."
  브리칸트는 얼른 대답했다.
  붙잡혀 있을 동료의 운명은 매우 중요했다. 물론 그가 살아 있을
경우의 얘기였다. 조니는 주위를 둘러보고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
는가를 생각했다. 급조한 박격포로 무장한 작업대가 사이클로 차량
부대를 추적하고 있었으며 그 전방에는 잠복부대가 있었다. 그리고
이 밀림  속에서 트럭을 측면에서 엄호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빗속을 뚫고 나무들 사이를 우회하려다간 자칫 아군끼리
충돌 해버릴지도 모른다.  조니는 전투가 시작될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도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들이 브리칸트를 포박하고  있을 때, 아이프 오이피 대위가 간
청했다.
  "부상당한 부하들이 있는 곳으로 가게 해주지 않겠소.?"
  조니가 그것을 허락하자 모이피 대위는 곤봉을 집어들고 말릴 새
도 없이 부상병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철저한 훈련에 의해 숙
달된 솜씨로  그들의 머리에 곤봉을  명중시켰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미소를 띄며  곤봉을 내던진 그는 러시아인에게 손을 내
밀고 다시 포박하게 했다. 그리고는 너무 뜻밖의 일에 당황에 하는
모두에게 웃어 보이며 짧게 말했다.
  "고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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