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밥을 담는 작은 그릇, 그리고 그 안에 넣는 밥과 반찬’을 뜻하는 도시락은 우리에게는 빠
르고 간편한 식사를 상징해왔다. 1960년대까지 ‘벤또’1)라는 일본어를 쓰면서 우리가 품었던
생각은 ‘싸다’ 와 통하는 ‘검소함’이었다. 지금은 도시락이라는 우리말이 완전히 정착했고 세
대마다 얽힌 기억에 따라 ‘검소함’ 만이 아니라 ‘우정’이나 ‘정성’을 떠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도시락이 유래된 ‘단사표음(簞食瓢飮)’2) 고사에서 보듯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도시락
은 ‘소박한 한 끼 식사’라는 이미지를 넘어서기 어렵다. 하지만 일본에서 도시락은 식사를 지
참한다는 범위를 넘어 하나의 새로운 식문화를 형성해 왔다. 일본에서 도시락은 우리나라의
도시락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위상을 자랑한다. 오늘날 일본의 도시락은 단순히
음식을 담는 용기 또는 그 음식을 의미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인용 공예품, 감사와 사
랑을 전하는 선물, 답례품의 의미로까지 여겨지고 있다. 도시락 하나만으로도 일본사회의 변
화와 흐름을 읽어낼 수 있을 정도이다. 이제 벤토는 단순한 음식을 떠나 일본 음식 문화의
*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 도시락은 서양문물 유입 시 생긴 ‘근대의 산물’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새참, 나무찬합 등 우리나라의
도시락의 역사는 깊다. 다만 ‘도시락’이라는 말이 최근에 생겨났을 뿐이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도시락’의 개념 자체는 일제강점기에 벤토(弁当)에서 비롯되었고, 실제로 오랜 기간 ‘벤또’라는 말이
통용되었다. 도시락은 한글학자 최현배선생이 고전을 근거로 1960년대에 새로 만들어 낸 말로, 언어
순화 과정에서 보급에 성공한 용어다. (남기심, 「최현배, 새로운 어문생활의 표석을 세우다」, 한국사
시민강좌 43권(2008), 일조각, p.276
2) 도시락에 담은 밥과 표주박의 국, 즉 변변치 못한 음식을 가리키는 뜻으로 매우 가난한 살림을 비유
하여 이르는 말이다. ‘거친 밥에 물 말아 먹고 사는 궁핍함 속에서도 즐거움을 찾는다.’는 이 고사는
공자가 그의 제자들 중에서 누구보다 아꼈던 수제자 안회에 대한 공자의 평가에서 유래된 이야기다.
논어(論語) 「옹야편(雍也篇)」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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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적 상징이 되었다.
그러므로 한국과 일본의 도시락의 역사를 살핀다는 것은 두 나라의 음식문화의 차이, 나아
가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문화적 특질의 차이를 살피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이런 중요
성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일본의 도시락을 주제로 한 연구는 식품유통업이나 음식점 창업, 요
리법, 영양소 구성 등에 관한 연구만 몇몇 있을 뿐 도시락에 대한 문화적인 탐구를 한 경우
는 아주 드물다.
다만 일본인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도시락을 논의한 논문들이 몇 있을 뿐이다.
외국인이 쓴 책으로서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1944) 못지않게 일본인과 일본의 특성을
잘 파악한 책으로 알려져 있는 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서 저자 이어령은 일본에서 도시락이
번창하게 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일본인의 축소지향적 심성에서 찾는다. 이 책에는 일본
도시락의 유래 및 발달 과정뿐 아니라 도시락에 대한 문화적 고찰을 보여주고 있다.3) 한국
과학 기술원 교수 조현정은 일본 전통 도시락을 매개로 일본 문화의 정체성을 탐구한 에쿠안
겐지의 일본 도시락의 미학을 분석하면서 일본인이 도시락에 들이는 정성이 그들의 전통
다도 미학과 모던 디자인에 근거하고 있다고 파악한다.4)
우리나라 도시락의 역사적 문화적 의미를 살핀 연구로는 강준만의 「한국 도시락의 역사」가
있다. 이 논문에서 강준만은 일제시대부터 2000년대까지 도시락에 새겨진 이야기를 풀어내며
도시락의 역사는 가정, 가사노동, 라이프스타일, 교육 등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가 하는 역
사와 만난다며 우리 도시락의 역사 문화적 의미를 짚어 나갔다.5)
본 연구는 한국과 일본에서의 도시락의 문화적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 한국과 일본문화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또 다른 시도가 될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출발한다. 이를 바탕으로
오늘날 한국인과 일본인에게 도시락이 어떤 문화적 의미를 창출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
다.
II. 싸다와 만들다
한국과 일본의 도시락 문화를 구별 짓는 가장 큰 특징은 도시락을 목적어로 하는 동사의
차이에서 엿볼 수 있다. 한국은 ‘도시락을 싸다’라고 하지만, 일본은 ‘벤토오 코시라에루(弁当
をこしらえる)’라고 하는데, ‘こしらえる’는 ‘만들다, 제조하다’라는 뜻이다. 한국인에게 ‘싸다’
라는 말은 융통성과 여유를 의미하며 보자기나 한복 등의 의(衣)문화에서, 그리고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중시하는 정신문화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6)
‘도시락을 싸다’는 음식을 담는 용기, 음식의 양의 다양성과 융통성, 유연성을 표현할 수 있
3) 이어령(2008) 축소지향의 일본인, 문학사상사
4) 조현정(2012), 「에쿠안 겐지의 일본도시락의 미학 : 1980년대 일본 디자인의 쟁점」(한국미술사교육학
회
5) 강준만(2008.9), 「한국 도시락의 역사」, 인물과 사상 125,인물과 사상사
6) 이어령(2015), 이어령의 보자기인문학, 마로니에북스
한국과 일본의 도시락문화 비교연구 389
다. ‘도시락’이라는 말이 최근에 생겨나서 서양문물 유입 시 생긴 ‘근대의 산물’ 이라 생각하
기 쉽지만, 새참, 나무찬합 등 우리나라의 도시락 역사는 깊다.7) 목합인 찬합에 다양한 반찬
을 섞이지 않게 담아 사각형 상자를 차곡차곡 쌓은 후 이 상자들을 다시 커다란 나무 궤에
넣어서 보자기로 싸들고 다녔다. 가난한 서민들은 음식을 종이나 가랑잎에 싸서 조그만 그릇
이나 대나무를 쪼개어 마치 끈처럼 만든 대오리로 엮은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녔다.
그러나 이런 도시락 용기들보다 우리 조상들이 애용했던 것은 ‘광주리’였다. 옛날 우리 조
상들은 어쩌다 밖에서 음식 먹을 일이 있을 경우에도 밥상이나 함지박 또는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나갔다.
일본의 농민들이 도시락을 들고 일을 하러 갈 때도 우리의 농촌에서는 점심을 머리에 이어
날랐다. 따끈따끈한 밥과 보글보글 끓는 찌개를 인 어머니의 뒤를 물주전자와 막걸리를 든 누이
가 뒤따르며 논둑길을 걸어서 점심을 나른다. 일터로 도시락을 싸가는 것이 아니라 점심을 머리
에 이고 날랐다.8)
‘들밥’ 또는 ‘두레밥’이라 하여 모심기나 벼베기 등의 농번기에는 집에서 만든 음식을 함지
박이나 바구니에 담아 아낙네들이 하루에 네 다섯 번씩 이고 들로 날랐다.
또한 일본의 벤토가 한 사람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담고 있는 것과는 달리 우리 선조들
의 광주리에 담긴 음식이나 현장에 가서 직접 해먹는 음식은 1인이 아닌 그 일 터, 그 마당
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나누었다. 비록 보리밥에 제철 푸성귀뿐일지라도 인심은 풍성하여 일
하는 남정네는 물론이고 부엌일을 거드는 아낙네나 집에서 놀던 어린이들까지 나와서 함께
먹었다. 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나그네도 불러서 함께 먹었다. 이렇게 우리 조상들의 들밥에는
공동체 중심의 나눔 의식이 있었다. 정혜경은 「한국 음식문화의 의미와 표상」에서 한국음식
의 특징을 섞음의 철학을 가진 음식, 기다림과 삭힘의 발효음식, 배려의 음식, 색감을 중시한
음식, 시절식과 풍류의 음식으로 설명하고 있는데9), 우리 조상들의 광주리에는 이러한 한국
음식의 특징들이 모두 담겨있다.
봄날 꽃구경을 위해 야외로 나가서 갖가지 음식을 먹으며 봄을 즐기는 문화는 우리나와 일
본이 공통이다. 그것을 한국에서는 ‘화전(花煎)놀이’10)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하나미(花見)라고
한다. 봄을 매개로 한 상춘(賞春)의 민속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지만 세부적인 면에서는
7) 옛날에는 여행이나 소풍을 갈 때, 집에서 마련하여 가지고 가는 음식을 행찬(行饌)이라 하였다. 길
손들은 생선이나 된장을 볶은 된장떡 따위의 조촐한 행찬이나 말린 밥을 갖고 다니기도 하였다고
한다. 조선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2005), 한국역사연구회 청년사, p.265. 또한 1849년에 씌여
진 동국세시기에는 유반(遊飯)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말 그대로 놀러나가서 먹는 밥이라는 뜻이
다.
8) 한수산(1995), 벚꽃도 사꾸라도 봄이면 핀다, 고려원, pp.50-51
9) 정혜경(2015.8), 「한국 음식문화의 의미와 표상」, 아시아리뷰 제5권 제1호 (서울대학교 아시아연
구소, pp.101-106
10) 화전놀이는 진달래꽃이 필 때 좋은 날을 정하여 남녀노소가 무리를 지어 꽃을 구경하며 즐기는 민
속놀이다. 예로부터 음력 삼월이 되면 청장년 또는 부녀자, 유생(儒生)들이 찹쌀가루와 기름을 준비
하여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진달래꽃으로 화전을 부쳐 먹으며 가무를 즐기는 놀이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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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가 있다. 그 가장 큰 차이는 음식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집에서 장만한 음식을
가지고 가서 먹지만, 한국의 경우는 재료를 가지고 가서 그곳에 가서 해먹는다. 이것은 도시
락문화가 발달한 일본과 천렵(川獵)문화를 가지고 있는 한국 사회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된다.”11) 천렵은 주로 농부들이 삼복중에 일의 고달픔을 잊고 마음껏 하루를 즐기는 놀
이다. 농부들이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강 또는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 주식
(酒食)을 함께하면서 지난 회포를 풀고 장고, 북, 장단에 맞추어 노래하고 춤추며(선비들은
시를 읊으며) 여흥을 즐기는 여름철 피서놀이다. 천렵은 고대 어렵생활을 할 때부터(봄부터
가을까지) 내려오는 풍습이 오늘까지도 남아있는 것이다.12)
우리나라와 일본은 도시락에 담는 음식 뿐 아니라 도시락을 ‘까먹는’13) 방식 또한 많이 다
르다. 1970-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한국인들은 도시락을 친한 아이들끼리 책상을 합치고
의자를 돌려 앉아서 각자 싸온 도시락반찬을 공유하며 먹는 즐거움으로 기억하고 있다. 또
한 도시락에는 집안형편 때문에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 친구가 점심시간에 슬며시 의자에서
일어나려 하면, 도시락 뚜껑에다 밥 절반을 뚝 잘라내 말없이 내미는,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
도 들어 있었다. 친구들이 도시락 뚜껑에 밥 한술, 반찬 한 젓가락씩 덜어 주어, 오히려 얻어
먹는 사람이 밥도 더 먹고 반찬도 다양하게 골고루 먹는 일도 많았다. ‘십시일반(十匙一飯)’의
고사를 도시락만큼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 가난해서 도시락을 못 가져 온 친구나 깜박 잊고
도시락을 안 가져온 친구들과 도시락을 나눠 먹었다. 그래서 한국들에게 도시락은 때로 ‘우
정’을 상징하는 매개물이 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과 도시락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각자의 도시락을 펼쳐놓고 아무 동의도 없이
당연하게 서로의 도시락 반찬을 공유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우리 문화라면, 일본에서는
도시락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먹는다는 것일 뿐 내가 싸온 음식은 내가
먹는 문화이다. 각자의 음식을 따로 먹는 것이 일본의 식습관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온 식구
가 모여 식사를 할 때도 가족 수만큼 독상을 차린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철저하게 따로
먹는 문화이다. “우리는 한상에 가득 차려서 모두 함께 먹지만 일본은 한 사람씩 상이 따로
차려져 나온다. 함께 먹는 음식이 있을 경우 개인용 접시에 덜어 먹으며 그를 위한 젓가락도
따로 있다. 젓가락이 없을 경우에는 상대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기 젓가락을 거꾸로 잡아 사
용한다”14)
이처럼 일본에서 도시락 문화가 발달한 주된 이유는 일본인들은 우리처럼 음식을 한 그릇
에 담아 함께 먹지 않고 따로 먹기 때문에 혼자 먹는 벤토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남
들과의 접촉을 최대한 피하는 것이 식사 예의의 중심이다. “ ‘다른 사람의 젓가락이 간 요리
에 손이 가는 것은 금기이다’ 라고 표현할 정도이다. 이 같은 말은 좀 과장된 표현이긴 해도
일본인의 식생활이 얼마나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꺼려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15)
11) 노성환(2008), 「일본의 하나미와 한국의 화전놀이」, 비교민속학37, 비교민속학회, p.152
12) 김영태(2009), 잊혀져가는 옛마을 풍속백화, 이담, p.59
13) ‘까먹다’는 껍질을 벗기고 알맹이 살을 발라 먹을 때 쓰는 표현인데, 도시락도 보자기를 벗기고 뚜
껑을 열고 먹는 게 비슷해 비롯된 말이다.
14) 김영(2006), 일본문화의 이해, 제이엔씨, p.354
15) 노성환(1997), 젓가락 사이로 본 일본, 교보문고, p.81
한국과 일본의 도시락문화 비교연구 391
일본어에 ‘이치닌마에’(一人前)라는 것이 있다. ‘한 사람 앞에’라는 뜻으로 일본인들의 개인
주의를 설명하는데 종종 쓰인다.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경우가 바로 식탁을 차리는 방식
이다. 일본 식당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음식에서 식기에 이르기까지 남과 나누는 것이
없다는 점이다. ‘이치닌마에’는 단순한 식사습관에 그치지 않는다. ‘이치닌마에’는 음식 일인분
이라는 뜻 뿐 만 아니라,한 사람 몫이라는 뜻과 제 구실을 하게 되었다는 뜻도 있다. “한
개인의 영역이 분명히 정해진 사회인만큼 식사 때도 한 가지 음식을 여러 사람이 같이 먹지
않고 한 사람 앞에 한 사람 몫을 따로 차려 내온다. 남의 몫에 손대지 말고 자기에게 주어진
한계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라는 의미이다. 양이 모자란다고 남의 음식을 넘보는 것은 있
을 수 없을 뿐더러 남기지 않고 깨끗이 비우도록 적은 양의 음식이 나오는 것이다. 즉 사회
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몫을 다하는 것이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는 도
리라는 것이다”16)
이와 달리 우리나라 식탁에서는 밥과 국을 제외하면 네 음식 내 음식의 구분이 없다. 모든
반찬이나 별식들이 다 공용이다. 가장 대표적인 메뉴가 찌개이다. 찌개는 여러 명이 함께 식
사를 하더라도 한 그릇만 나오는 경우가 많다. 모두 같은 그릇에 숟가락을 넣는다. 비위생적
이긴 하지만, 그렇게 해야 비로소 같이 밥을 먹었다고 여긴다. 우리에게 밥을 먹는다는 것은
정(情)을 나누는 자리였던 것이다.
벤토의 기원이나 그 어원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유력한 것은 오다 노
부나가가 전쟁터에서 병사들에게 식량을 균일하게 나누어주기 위해 고안했다는 것과, 에도
중기 때 시바이(연극)의 막간에 먹은 것이 시초라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그 기원의 공통점은
음식물을 보다 좁은 공간에 담아 간단하게 운반하려는 필요성에서 생겨난 것이라는 점이
다.17)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서는 일본의 벤토라는 말은 ‘준비하여(辨) 쓰기에 편하도록
맞춘다(當)는 뜻에서 생겨난 것’이라는 에도시대의 ‘류테이키(柳亭記)’에 실린 어원설을 소개
하며, 사무라이가 혼도(本刀)와 그것을 축소한 호신용의 작은 칼인 ‘와키자시’를 차고 다니듯
도시락이란 밥상을 아주 작은 상자모양으로 축소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음식물을 보다 좁은
공간에 담아 간단하게 운반하려는 필요성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거기에 담긴 음식의 맛보다
편의성이 중요하다고 했다.
우리가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할 것은 거기에 담긴 음식 맛보다도 밥상을 아주 작은 상자로 축
소하여 가동적可動的인 음식으로 만든 일본인의 발상법이며, 그 기능적인 구조일 것이다. 신사
神社도 오미코시御神輿로 축소해 어깨에 메고 다니는 일본인들이 밥상쯤 축소하는 것은 다반사
이다. 무엇인가를 쥘부채와 같이 이레코와 같이 손으로 들고 다니는 것은 원숭이가 나무에 오르
고 두더지가 땅을 파는 것 같이 일본인에게 당연한 성품인 것이다(생략) 도시락통을 고추行廚
라고 부른 것을 보면, 번거롭게 어원을 찾을 필요도 없이 일본인은 주방廚房자체를 축소해 가지
고 다니려 한 편의주의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18)
16) 이원복 글 그림(2003) 먼나라 이웃나라 7(일본1-일본인편), 김영사, pp.51-52
17) 이어령(2008), 앞의 책, p.99
18) 같은 책, pp.99-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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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또한 “중요한 것은 도시락 용기의 내용물 자체가 아니고, 음식물을 자연친화적인
용기에 콤팩트하게 담고 배열하는 방식 자체인데, 이것이 일본적 발상의 정수이기 때문이다”
라고19) 했다.
Ⅲ. 김치와 우메보시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나라에 비해 도시락이 발달하기 어려운 조건을 지니고 있다. 우리의
음식은 밑반찬 종류를 빼고 나면 거의 모든 음식에 국물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물이 있는 음식을 즐긴다. 김칫국물, 깍두기국물, 게장국물 등 국물이 없는 한국음식을 찾
아보기 어렵다. 맛이 있느냐 없느냐의 잣대로서 국물은 모든 음식의 기본이 되는 첫걸음이자
음식의 본질을 좌우하는 핵심이 되어 왔다. 국물은 찌개나 국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냉
면 같은 국수류에 이르면 국물은 객체가 아니라 주체가 된다. 한국인들은 국수를 먹을 때도
면보다는 면을 말아 먹는 국물을 중시한다. 예전에 방영되었던 인스턴트 우동광고에서도 우
동이 아니라 우동국물을 맛보며 ‘국물이 끝내줘요~’ 라고 했었고 이는 지금까지도 유행어로
남아있다.
국물 음식의 특징은 혼자 먹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나눠 먹는다는 데 있다. 곧 개인의 선
택보다는 집단의 동질성을 더 중요시한다. 자신의 기호에 맞게 자기가 먹고 싶은 대로 골라
먹는 개인주의에서는 국물 음식이 존재하기 어렵다. 한 집단의 논리에 순종하고 따르는 그런
의식구조에서만 국물 음식은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국물도 없다’20)는 말은 집단의 논리에
배치되는 행동을 한 사람에게 주는 징벌인 셈이다. 상대방이 비협조적으로 나올 때 은근한
협박을 담아 설득하거나 경고하는 표현인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인이 선호하는 음식은 도시락으로 싸기에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싸기에
도 불편하고 빡빡하게 국물도 없는 음식을 먹어야 하니 한국인이 도시락을 싫어하는 것은 당
연한 일이다. 국물이 있어야 하고 따끈따끈한 것을 음식의 기본으로 여겨온 우리에게 국물도
없는 찬밥인 도시락이 사랑 받을 까닭이 없었던 것이다. 양은도시락 통에 밥을 꾹꾹 눌러 담
고 멸치볶음, 노란 무짠지, 콩자반 등을 담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빈병에 김치를 담아
서 싸가지고 다녔다. 반찬에 국물이 있다 보니 도시락 뚜껑을 열면 밥과 반찬이 다 섞여 있
기 일쑤였다. 그래서 아예 흔들어 섞어 비빔밥을 만들어 먹기도 하였다. 김칫국물이 흘러 책
과 공책을 붉게 물들여 당혹스러웠던 기억을 도시락세대들은 공유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국(탕)은 식사의 주된 메뉴이지만, 일본에서는 부수적인 음식이다. 일
19) 조현정, 앞의 책, p.474
20) 누구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 주고자 마음먹었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물도 없다’고 윽박지른다.
여기서 국물이란 약간의 이익 혹은 인정을 의미한다. 우리말 사전에서는 국물을 ‘국이나 찌개 따위
의 음식에서 건더기를 제외한 물’이라고 정의하므로 ‘국물도 없다’는 건더기는커녕 국물조차 얻을
수 없다는 말로, 자기에게 돌아오는 몫이나 이익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이 말은 ‘함께 일을 도
모할 수 없다’거나 ‘용서하지 않겠다’, ‘배려할 수 없다’, ‘인정사정 봐주지 않겠다’는 뜻으로 확장되
어 사용되어 왔다. 민충환 편저 박완서 소설어 사전(2003), 백산출판사, p.267
한국과 일본의 도시락문화 비교연구 393
본에서도 식사 때 밥에 국물이 따라 나오기는 하지만 국은 엄연히 보조적 역할에 그칠 뿐이
다. 건더기 위주의 마른 음식이 대부분인 일본음식은 도시락이라는 네모 상자 안에 채우기
편리한 조건이 되었다. 일본 도시락은 요리 과정도 음식 원재료 제각각 맛을 내도록 위치를
지워 놓는다. 일본의 식문화는 나열하는 도시락 문화이기 때문에 고체와 액체를 구별하고 가
능한 한 양념도 적게, 있는 그대로의 형태를 나열하는 것이다. 따라서 날것, 회 등이 많다.
이러한 음식의 기본적 차이는 양국의 식탁위의 습관 차이를 가져왔다. 일본의 경우 나열된
개체 음식을 먹으려면 숟가락보다 젓가락이 편리하다. 따라서 일본인은 숟가락을 사용하지
않는다. 젓가락 하나만 사용하기에 음식을 집어오는 데 떨어뜨리지 않게 하기 위해 밥공기에
받친다. 그리고 국물도 국그릇을 들고 마시는 것이 편리하다. 이에 따라 일본 식탁은 다리가
낮고 독상을 하는 것이 편리하다.
이에 반해 한식은 섞여 있는 탕을 먹어야 하기에 수저가 꼭 있어야 한다. 따라서 한식상에
는 수저가 있고 그릇을 들고 먹을 수 없다. 따라서 식사를 할 때 그릇에 손을 대는 것이 아
니다. 이에 따라 한식은 상이 높다.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우리 조상들의 밥상에는 숟가락이
꼭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국과 찌개류, 즉 국물 음식이 발달했다는 데 있다. 뿐만 아니
라 “찰기 없는 음식을 빨리, 많이, 따뜻이 먹는”21) 식습관도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식 도시락의 가장 큰 특징은 일본 문화의 철학을 가지고 미학, 영양 그리고 맛의 균형
을 도모했으며 5가지 맛(단맛, 짠맛, 신맛, 쓴맛, 매운맛), 5가지 색깔( 흰색, 검은색, 노란색,
빨간색, 청색)그리고 5가지의 요리 방법(생것, 조림, 구이, 찜, 튀김)을 사용한다. 흰색의 밥과
검정색의 김, 노란색 달걀, 빨간색 우메보시(매실 절임), 녹색의 야채를 기본으로 사용한다.
일본의 기후는 덥고 습하기 때문에 도시락을 만들 때는 밥이 쉬지 않도록 식초를 섞거나 우
메보시(梅干し)를 밥 한가운데에 박는다.22)
하얀 밥 위에 빨간 매실 장아찌 하나는 박아 넣어 싸주는 도시락은 꼭 일장기 ‘히노마루
(日の丸)’같다고 해서 히노마루 도시락이라고 불린다. 일본인들에게 ‘벤토 하면 무엇이 떠오는
가?’고 묻는다면 열에 아홉은 ‘하나미’(꽃놀이)와 ‘히노마루벤토’라고 대답한다고 한다.23)
일본인들은 매실을 가지고 우메보시라고 부르는데 우리나라의 오이지나 짠지처럼 매실 열매
로 매실지를 담가서 반찬으로 먹는다. (중략) 일본사람들만큼 우메보시를 좋아하는 경우도 보기
드물다고 하겠다. 그러기에 이 매실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에키벤 중에서도 히노마루벤토를
즐겨 사먹는 것, 일본이 몹시 궁핍했던 일제시대에 가난한 사람들은 매실지 단 한 개만을 반찬
삼아 한 끼니는 떼웠다고 한다. 그러기에 지금도 이른바 히노마루벤토는 가난한 시대의 추억거
리로 일부로 사먹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마치 우리나라에서도 빈곤시대에 먹었던 이른바 꽁
보리밥을 일부러 찾아가 사먹는 것이나 진배없는 노릇이라 본다.24)
이처럼 일본에서 다른 나라보다 유독 도시락이 발달한 이유는 국물이 없는 건조한 반찬을
21) 배영동(1999), 「한국 수저의 음식 문화적 특성과 의의」, 문화재제29호, p.564
22) 안효주(2001), 이것이 일본요리다,여백미디어, pp.18-25
23) 김영, 앞의 책, p.352
24) 홍윤기(2000), 일본문화백과, 서문당,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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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 먹는 데서 찾을 수 있지만 또 다른 이유를 한국일어일문학회가 발간한 책 스모남편과
벤또부인에서는 일본의 더운 기후를 꼽는다.25) 날씨가 후텁지근한 탓에 일본인들은 다른 나
라에 비해 찬 음식을 먹는 문화가 발달했다. 뜨끈한 국물이 필요한 한국과 중국 등에 비해
도시락을 싸기에 편한 식습관인 셈이다. 우리는 밥, 국, 찌개 모두 뜨거워야 제 맛으로 안다.
일본 도시락 중에서도 각 기차역에서 판매하는 ‘에키벤(驛弁)’은 그 인기가 특히 높다. 일본
에 가면 역마다 에키벤을 사기 위해 줄 서 있는 사람들을 항상 볼 수 있다. 에키벤은 종류도
다양할 뿐더러 구성과 가격, 디자인도 다양하다. 일본에는 이것을 먹기 위해 기차 여행을 떠
나는 사람이 있을 정도이며 관광 안내서에 전국의 도시락 지도까지 있다. 심지어 만화책으로
나왔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만화 <에키벤>26)이 번역되어 판매되고 있다.
일본에는 좁은 국토에 수많은 철도가 놓여 있어 일찍이 철도 여행이 발전했는데 “에키벤은
기차(에키えき)와 벤토의 합성어로서 기차 안에서 파는 각 지역의 도시락을 의미한다.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1885년 무렵 도호쿠 본선 우쓰노미야역에서 주먹밥 2개와 단무지
를 대나무 껍질로 싸서 판매한 것이 최초였다고 한다. 여기서 점차 도시락 형태로 발전한 것
이 현재의 에키벤이다”.27)
근대이후 일본의 음식문화를 깊이 있게 다룬 책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의 저자 박상현
은 에키벤의 발달 이유가 지역의 맛과 멋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단순한 도시락
에 불과한 에키벤이 일본식문화에 있어 하나의 상징인 까닭은 다양성과 지역성에 기인한다고
보았다.
현재 일본에서 판매되고 있는 에키벤은 2500종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대도시는 물론이고 시
골의 아주 작은 간이역까지 판매되고 있어 정확한 현황을 파악하는 것조차 힘든 실정이다. 때문
에 각각의 에키벤은 철저히 지역 밀착형이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식재료를 사용해 전통적인 방
식으로 조리하고, 지역의 자연환경과 역사적 배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음식을 담는 용기와
포장지의 소재나 디자인에도 지역성을 담는다. 단순히 음식을 판다기 보다는 지역의 다양한 특
산물과 스토리를 패키지로 엮어 하나의 스토리텔링을 구축하는 전략이다. 때문에 에키벤은 철
도여행과 지역관광 활성화는 물론이고 지역경제 살리기에도 상당한 기여를 한다28)
이와같이 일본사람들의 벤토 사랑이 극진하다보니 ‘벤토’에 존경․공손․친숙 등의 어감을
가진 접두사 ‘오’29)를 붙여 ‘오벤토’ 라고 부른다. 문화심리학적으로 일본을 분석한 책 <일본
열광>에서 저자 김정운은 일본의 벤토 문화는 어머니의 정성 어린 배려 문화를 상품화한 것
25) 한국일어일문학회(2003), 스모남편과 벤토부인, 글로세움, p.262
26) 만화 <에키벤>은 도시락집 주인이자 철도 마니아인 주인공 다이스케가 아내에게 선물 받은 기차
표로 일본 일주 기차 여행을 떠나면서 일본의 각 지역별, 기차역마다의 명품 에키벤들과 일본 기차
여행법을 소개한 철도 도시락 여행기이다. 지금까지 규슈에서 간토 편까지 15권, 대만과 오키나와
1편까지 합쳐서 총 16권이 출간됐다.
27) 류희승(2012), 일본인과 일본문화, 재팬리서치, p.117
28) 박상현(2013),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 따비, p.272
29) 일본인들은 그들의 언어 가운데 존경의 뜻을 담아 ‘오(お)’를 덧붙인다(한자어인 경우 ‘고(ご)’를 덧
붙인다 (한호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일본어(2010), 디자인 하우스, p.371)
한국과 일본의 도시락문화 비교연구 395
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이부자리까지 깔아주는 여관, 눈으로도 감탄할 만한 ‘오벤토’를 싸주는
모성에서 느껴지는 배려의 문화는 뛰어난 상품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일본사람들이 오벤토를 먹는 것은 경제적 이유만이 아니다. 오벤토는 일본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힘이라 할 수 있는 ‘배려’의 문화적 기호(記號)이기 때문이다. 자녀가 성장함
에 따라 보육원이나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하면, 일본의 어머니는 기를 쓰고 오벤토에 관심과 애
정을 담아 주려 한다. 자녀는 오벤토의 내용물로 어머니의 따뜻한 배려를 느낀다. 낯선 곳에 가
면 쓸쓸하기 마련이고 쓸쓸함의 내용은 아주 단순하다. 아무도 나를 배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벤토를 손에 들고 떠난 일본의 나그네는 낯선 곳에서도 배려의 네트워크를 벗어나지
않는다30)
이처럼 도시락은 일본에서 음식 이상의 ‘무엇’을 의미한다. “일본인들에게 도시락은 즐거움
과 기쁨의 상징이다. 그래서 속어로 집행유예를 ‘벤토모치(弁當持ち도시락을 얻음)’, ‘벤토오모
랏타’(弁當をも らった도시락을 받았다)라고 하기도 한다. 이는 도시락처럼 좋은 것을 받아서
기쁘다는 의미에서 생긴 말이라고 한다.31) 일본인이 가장 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스모 경기
나 전통극인 가부키를 VIP 석에 앉아 보면서 도시락을 먹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일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최초의 도시락은 오래 보존할 수 있는 주먹밥 등을 대나무 잎
등으로 싸서 만든 단순한 형태였다. 하지만, 다양한 식재료의 개발 및 조리법의 발전에 따라
도시락의 구성은 날로 다양해져 왔다. 현재 일본 벤토 전문점의 도시락은 전채요리, 조림 요
리, 구이 요리, 튀김 요리, 절임 요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본 요리의 정수를 담았다고 할 정
도의 수준에 이르렀다. “일본음식은 ‘음식을 눈으로 먹는다’ ‘눈과 입이 즐거운 요리’라는 말
을 실감할 수 있다. 조화와 화합이라는 철학을 담기 위해 맛, 색, 향, 재료의 질감, 그릇에 이
르기까지 음식에 많은 공을 들인다.”32) 일본에서 도시락 문화는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운동회, 야유회, 각종 모임에도 도시락을 주문해 사용하기도 하지만 장례식, 결혼식 등 관혼
상제에도 거의 도시락을 이용한다. 도시락의 종류가 굉장히 다양하기 때문에 각 상황에 맞게
준비한다.
조리가 된 식품을 휴대하는 것은 세계 어디서나 있는 일이지만, 일본은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널리 보급되어 있다. 일본에서 도시락은 식사를 지참한다는 범위를 넘어
하나의 새로운 식문화를 형성하는 데까지 발전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 가정에서의 수제 벤토
에 대한 정성은 벤토의 내용물인 반찬 뿐만이 아니라 벤토 상자, 반찬을 넣는 종이 받침, 벤토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는 책이나 텔레비전 프로그램, 벤토 상자를 포장하는 물건 등 여러 갈래
에 걸쳐 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도시락은 간소함의 상징이지만 일본
만은 예외이다. 일본 도시락 벤토(弁当)는 온갖 맛과 멋을 낸 비싸고 화려한 음식으로 변신이
가능하다. 예컨대 마쿠노우치벤토(幕の内弁当)33)는 다른 메뉴 못지않게 값이 고가(高價)이다.
30) 김정운(2007), 일본열광, 프로네시스, pp.252-256
31) 김영, 앞의 책, p352
32) 김경은(2012), 한중일 밥상문화, 이가서, pp.82-84
33) 사각형의 용기를 사등분으로 구획하여 음식물을 담아내는 일본 전통의 도시락이다. 마쿠노 우치란
연극무대에서 막이 내려진 사이라는 뜻으로 그때 먹는 도시락이 마쿠노우치 벤토다. 가부키같은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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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음식을 상대적으로 덜 선호하며 마른 반찬을 즐기는 일본인들에게 도시락은 그것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요리이다. 일본에서 도시락이란 직장․사교 모임, 나들이에서 품위를
갖춘 한 끼 식사이며 동시에 즐거움이자 기쁨이다. 하지만 국물이 흐르는 김치와 소금에 절
여 만든 물기를 말린 우메보시의 차이만큼 우리나라와 일본의 도시락문화는 거리가 있다. 따
뜻한 밥과 국, 반찬 등 한상 차림으로 즐겨 먹고 국물음식을 뜨겁게 먹는 요리가 많은 한식
에서 도시락은 필요할 때나 먹는 간이식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에 비해 발
달하기 어려웠다. 도시락은 애당초 우리 음식에 맞게 설계된 장치가 아니었던 것이다. 도시락
은 일본성을 대표하는 일본인에 의한 일본인을 위한 식사양식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인들의 극진한 도시락 사랑은 식생활 깊숙이 침투해 음식점에서마저 도시락 형태로 음
식을 내온다. 쟁반에 얹어 내오는 라면과 우동, 덮밥과 카레도 결국 쟁반으로 구획 지워진다
는 점에서 도시락의 유사 형태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도시락은 일본의 문화적 특성을
가장 잘 반영한 음식이라 부를 수 있겠다. 이렇게 도시락 하나에는 일본음식의 특성 뿐 아니
라 일본 음식에 녹아있는 일본 문화와 일본인의 의식구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Ⅳ. 맺음말
지금까지 한국과 일본의 도시락문화를 비교해 보는 것이 한국과 일본문화를 해석하고 이해
하는 중요한 시도가 될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한일 양국의 도시락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한국의 도시락은 음식이외에 사람사이의 정(情)과 나눔의 전통을 함께 싸는 반면에 일
본의 벤토는 정해진 공간에 효율적 배열을 통해 편의성을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현정은 1980년대 유행한 일본문화론인 ‘니혼진론(日本人論)’의 맥락에서 마쿠노우치 도시
락을 매개로 일본 문화의 정체성을 탐구하려는 에쿠안 겐지(栄久庵憲司)의 저서 일본 도시
락의 미학: 일본적 발상의 원점을 분석했다. 에쿠안은 마쿠노우치 도시락을 일본의 미적 감
수성과 세계관의 축소판으로 설정하고, 서문에서 “도시락을 내려다 볼 때마다 언제나 일본
열도의 이미지가 떠오른다”라고 적고 있다. 조현정은 그의 논문에서 에쿠안이 전개해 온 디
자인론 속에서 마쿠노우치 도시락을 통해 강조한 콤팩트성, 유연성, 다양성, 자연 친화성 등
의 가치들을 논의하며, 에쿠안이 일본성이라는 이름으로 소환한 이 가치들이 정보산업이 중
심이 된 후기 산업화 시대에 적합한 디자인에 필요한 개념이자, 서구 모더니즘 디자인의 한
계를 극복할 대안으로 제시되었음을 보여주었다.
한국의 ‘도시락’은 한국 전통음식문화의 특성상 일본만큼 발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도시락
이 식사장소를 기준으로 집 밖에서 먹는 음식, 즉 외식(外食)이라고 한다면 식생활 방식의 변
화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이덕우는 「근대화 이후 외식에 관한 시대적 담론과 인식의 변
화」에서 어머니의 손맛으로 대변되는 가정식을 ‘미각의 보수성’, 외식을 ‘미각의 개방성’이라
통연극을 관람하면서 먹는 식사이기 때문에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디너쇼의 디너에 해당하는 음식
이다. (구로다 가쓰히로 맛있는 수다 보글보글 한일음식이야기(2009), 지식여행, p.182
한국과 일본의 도시락문화 비교연구 397
정의하고, “가족을 단위로 한 기본적인 생활조직체인 가정에서 식구(食口)라고 말할 정도로
가족을 식(食)의 기본단위로 인식하였던 것이 근대화 이후 가정식 중심의 식사가 이제는 외
식을 병행하고, 때로는 외식중심으로 식사를 하는 복합적인 소비 생산체제를 갖추고 있는 집
단이 되었다”34)고 하였다. 이러한 외식에 대한 관념체계의 영향으로 한국전통음식문화가 변
화된다면 ‘도시락을 싸다’라는 말에 담긴 한국인의 공동체적 나눔 의식이 담긴 다양한 도시락
의 발달도 기대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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