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영화,리뷰,

[리처드 칼슨]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by Casey,Riley 2023. 2. 26.
반응형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리처드 칼슨

지은이의 말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인간이 자신의 태도를 변화시킴으로써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윌리엄 제임스
대부분의 사람은 나쁜 소식, 상대하기  힘든 사람, 혹은 실망스러운 일과  마주할 때(특히 역경에 부딪히게 되었을 때)마다 삶에 대한 일종의  대응 방식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별로 효과적이지 못한 습관에 빠지게 된다. 즉, 과만 반응을  보이거나 평정을 잃고, 지나치게 긴장하며, 삶의 부정적 측면에 압도당한다. 
그러나 사소한 것들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빠졌을 때, 짜증을 부리거나 화를 내고, 고민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등 과민 반응을 일으키면, 더 깊은  좌절감을 느낄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된다. 좀더 거시적으로 사태를  보지 못하고 부정적인 면에 집착함으로써,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는 사람들을 짜증나게 만든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사소한 일에도 마치 위급하고 대단한  문제가 일어난 것처럼 행동한다. 이 때문에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왕좌왕하지만, 오히려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 버리곤 한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대단히 중요한  것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삶이란 결국 하나의 극적인 일을 해결하고 또다시 다른 극적인 일에 부딛히면서 살아가는 것이라 느끼기조차 한다. 그러나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면 그것을 더욱 빨리,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인식하지 못한다.
곧 알게 되겠지만, 삶 속에서  마주치게 되는 난관에 좀더 쉽게  접근하는 습관을 터득할 경우에는, '극복할 수 없는'것처럼 보였던 문제들이 전보다  관리하기가 훨씬 수월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안겨 주었던 '거창한  일들'조차도 이전만큼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들지 않는다. 
다행히도 삶을 대하는 다른 방식, 다시  말해 삶을 보다 편안하고 쉽게 만들며,  어려움에 더 잘 대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우 부드럽고 우아한 길이 있다. 
삶의 '다른 방식'에는 '대응'이라는 낡은 습관을 버리고 자신의 눈앞에 벌어진 사태를 새롭게 바라보는 습관을 키우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새로운 습관은 우리가 더욱 풍요롭고 만족스런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준다. 
나에게 깊은 감동과 중요한 교훈을 남겨 주었던, 개인적인 경험 하나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다. 이 이야기에는 이 책의 기본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 
1년 전쯤 한 외국 출판사가 내게 연락을 해서는, 내가  쓴 [당신은 다시 행복해 질 수 있다]라는 책의 번역판에 베스트셀러 작가인 웨인 다이어 박사의 서명을 실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나는 이전에 다이어 박사가 내 책에 서명을 해준 적이 있긴  하지만, 또다시 그렇게 해줄지는 모르겠다는 말을  출판사 측에 전했다. 그러나  시도는 해보겠다고 약속했다. 
때로 출판계의 일이라는 게 그렇듯, 그에게 서명을 요청하고 시간이 꽤 흐른 뒤에도 나는 아무 답변을 듣지 못했다. 얼마 후 나는 다이어 박사가  아주 바쁘거나 본인의 서명을 넣는 것을 꺼린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나는 그의 결정을 존중하며, 책의 판매 촉진을 위해  그의 이름을 이용할 수는 없을 거라고 그 출판사에게 알렸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그 건은 끝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6개월 후 나는 그 책의 번역서 한  권을 받았는데, 놀랍게도 책표지의 오른쪽에 다이어 박사가 다른 책에 써주었던 서명이 실려 있었다. 분명히 내가 다이어 박사의 서명을 넣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얘기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출판사는 이전의  서명을 허락 없이 가져다가 새 책에 넣었던 것이다. 
나는 무척 화가 났고, 이 일로 인해  빚어질 결과와 그 영향에 대해 걱정이 되었다.  나는 출판 대리인에게 연락하여 이 사실을 알렸고, 그는 그  출판사에게 즉시 책들을 회수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는 가운데 다이어 박사에게 사과 편지를 보내 상황을  설명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의논하기로 결심했다. 편지를 보내고  다이어 박사로부터 어떤 회신이 올지 노심초사하며 몇 주를 보낸 후, 나는 다음과 같음 말로 시작되는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리처드, 조화롭게 사는 데는 두 가지 규칙이 있소. 첫째, 사소한 것이 연연하지  말라. 둘째, 모든 것은 다 사소하다. 서명은 그냥 쓰게 놔두시오. 친애하는 웨인."
바로 이것이었다! 그의 편지에는 어떤 훈계도, 어떤 위협도 없었다. 물론 그 어떤 나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이름을  비윤리적으로 사용한 것이 분명한데도  그는 우아하고 겸손하게 대응했으며, 결코 평정을 잃지 않았다.  그의 태도는 '물  흐르듯이 살아가는  삶'과 인생에 대해 우아하고 느긋하게 대응하는 요령에 관한 중요한 개념을 보여 주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상담을 해오면서, 나는 고객들이 보다 순응적인 방식으로 삶에 접근하도록 돕거나, 그들이 부딪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왔다. 우리는 스트레스, 대인관계, 업무, 중독, 일반적인 좌절감 등을 포함한 모든  유형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했다. 
  나는 이 책에서, 당신이 삶에 좀더 평온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오늘이라도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제부터 읽게 될 내용들은 지난 수년간 나의 고객과 독자들의 체험을 통해 가장 성공적인 방법으로 입증된 것들이다. 이 방법들은 나 자신이 삶에 접근하는 방식, 즉 최대한  저항하지 않고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각각의 방법은 단순하지만 강력하며, 폭넓은 전망을 갖고 느긋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다. 또한 여기에 제시된  방법들 중 대부분은 개개의 사건뿐만 아니라 인생에서 만나게 되는 가장 어려운 도전들에도 적용할 수 있다. 
'사소한 것에 연연하며 끙끙대지 않는다'면, 완벽한 인생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비저항적인 자세로 삶이 제공하는 것들을 수용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선의 철학을 통해 깨달을 수 있듯이, 모든 힘을 쥐어 짜내 인생에 대항하는 대신 문제들을 '그냥 지나가도록' 하는 법을 터득하기만 하면, 삶은 순조로워진다. 
명상가들이 권유하듯이, '변화될 수 있는 것들을 변화시키고, 그럴 수 없는 것들은 수용하고, 그것들의 차이를 아는 지혜를 얻게 된다.'
만약 내가 권유하는 방법들을 행동으로 옮기고자 시도한다면, 나는 당신이 조화로운 삶의 두 가지 규칙을 배울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첫째, 사소한 것에 연연하지 말라. 
둘째, 모든 것은 다 사소하다.
이러한 사실을 자신의 삶에 적용시킬 때, 당신은 평화와 사랑이 충만한 모습으로 새로 태어날 것이다. 

1 사소한 것에 연연하지 말라
조금만 더 차분히 들여다보다면 실제로는 대단치 않은 일인데도 우리는 곧잘 흥분하곤 한다. 예를 들어 낯선 사람이 자신의 차 앞에 끼여들려고 할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흘려 보내며 남은 하루를 잘 지내는 것이 아니라, 욕부터 하며 분개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당신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지 마음속으로 한번 그려보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대신, 나중에 다른 누군가에게 그 사건에 대해서 핏대를 올리며 얘기하지는 않는가?
왜 그 운전자가 다른 곳에서 사고라도 나도록 그냥 내버려두지는 못할까? 만약 그게 도저히 안된다면 그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고, 그렇게 마구  서두르는 행동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보는 것은 어떠한가?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의 행복을 지키고, 다른 사람의  문제에 휩쓸리는 실수를 피할 수 있다. 
  일상에는 이와 비슷한, 사소하면서도 짜증스러운 일들이 얼마든지 있다. 줄을 서서 기다리거나, 얼토당토 않은 비난을 듣거나, 꺼림칙한 일을 하게  되더라도, 사소한 것들을 신경 쓰지 않는 방법을 깨닫는다면 그에 따르는 보상은 엄청나다. 그러나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사소한 일에 끙끙대느라 정력을 낭비하고, 인생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완전히 잃어버린 채 살아간다. 
만약 지금부터라도 사소한 일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노력한다면, 놀랍게도 좀더 강해지고 더욱 친절하고 유연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 불완전한 상태에 만족하라
나는 지금까지 완벽주의자이면서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다. 완벽에 대한 욕구와 내적 평화에 대한 욕망은 서로 대립된다. 뭔가를  어떤 특정한 방식을 통해 얻으려고 집착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때부터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벌여야 한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만족하고 감사하기보다 잘못된 점과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한다. 항상 무언가 잘못되고 부족하다는  생각에 시달린다는 것은 현재의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자기 자신(어수선한 옷장 안, 차의 긁힌 자국, 완벽하게 끝내지 못한 일, 몇 푼 안되는 수입)과 관계가 있건,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완벽하지 못한 점(외모, 행동 양식,  삶의 태도)과 관계가 있건간에, 불완전한 점에 초점을 맞추는 것 자체가 친절하고 유연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목표에 다가가는 것을 가로막는다. 
  불완전한 상태에 만족하라는 것은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그만두라는 말이  아니다. 단지 삶의 잘못된 점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그것에만 초점을 맞추는  데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항상 더 좋은 방법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기존의 어떤 상태를 즐기거나 감사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반드시 어떤 식으로 되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빠지려 할 때마다 제동을 걸어라. 그리고 자신의 삶은 지금 있는 그대로도 괜찮다고 끊임없이 상기시켜라.  삶의 모든 부분에서 완벽해지고자 하는 욕심을 없애는 그 순간, 현재의 삼 자체에서 완벽함을 발견하게 될테니까.
  
3 생각의 '눈덩이 효과'를 인식하라
보다 효과적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방법 중  한 가지는, 부정적이고 불안한 사고가 얼마나 빨리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제멋대로 부풀어오르곤 하는지를 깨닫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 안에 갇혀 있을 때 얼마나 초조했는지 기억을 떠올려 보라. 문제의 세부적인 사항에 집착할수록 불안감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언제나 한 가지 생각은 또 다른 생각으로 이어지며, 결국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흥분하게 된다. 
가령,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나 다음날 걸어야 하는 전화를 떠올릴 수도 있다. 이때 문제는 중요한 전화를 떠올린 것에 대해 안도하기보다는 다음날 해야 하는 다른 모든 일들을 하나하나 생각해 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상사와 나누게 될지도 모르는 대화를 마음속으로 연습하며 스스로를 더욱  초조하게 만든다. 그러고는 '도대체 나라는 인간은 왜 이렇게  바쁜 거지? 나는 하루에 전화를 50여 군데나 해야 돼. 도대체 사는 게 왜 이 모양이지?'라는  생각을 하며, 끝내는 자신을 측은하게 여긴다.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이러한 '생각의 공격이 한없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실제로 나는 상담자들로부터 그들이 많은 낮과 밤을 머릿속으로 불필요한 연습을 하는 데 낭비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머릿속이 걱정과 짜증으로 가득 찬  상태에서는 평화를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생각이 제멋대로 부풀기 전에 자신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재빨리 알아채는 것이다. 생각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을 빨리 깨달을수록 생각을 중단하는 일이 그만큼 더 수월해진다.
위에서 든 예처럼, 이튿날 할 일들을 미리 머릿속으로 그려 봄으로 인해서 사고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때, 이튿날 할 일에 대해서 강박적이 되는  대신, "휴, 또 시작이군"하고 말하며 의식적으로 생각의  싹을 자를 수도 있다.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전에 그것을 중단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자신이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얼마나 압도당해 있는가 하는 사실이  아니라, 내일 걸어야 할 전화를 떠올렸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지에 초점을 맞추면 된다. 
만약 한밤중에 깨어났다면 그것을 종이쪽지에 적은 후 다시 잠을 청하라. 이런 순간을 대비해서 펜과 종이를 머리맡에 준비해 두면 좋을 것이다. 
실제로 당신은 무척 바쁜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일에 짓눌려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스트레스만 늘리고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이제부터 빈틈없는 스케줄로 인해 머리가 지끈거리고 마음이 무거워질 때마다, 이처럼 간단하고 쉬운 방법을 사용해 보라. 그 효과에 놀라게 될 것이다. 
  
4 지금 서 있는 그 자리에서 행복을 찾아라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을 끝없이 뒤로 미루면서 살아간다. 물론 이는 의식적인 행동은 아니다. 하지만 어쨌든 사람들은 매순간, '언젠가는'  행복해지리라  믿으며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낸다. 
사람들은 지불해야 할 청구서가 다 해결되고, 지겹기만 한 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하거나 열심히 일해서 일찍 승진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또 다른 일들이 해결되면 삶이  즐거워질 것이라고 자신에게 타이른다. 그러고는 어린 자녀에 대해 걱정하면서 아이들이 좀더 크면 마음에 여유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좀더 자란 후에는, 상전같이 다루기 힘든 10대가 된 자식 걱정으로 편안할 날이 없다. 
이렇게, 우리는 인생의 각 단계에서 지금 이 시기를 벗어나게 되면 틀림없이 행복해질 것이라 믿는다. 최선을 다한 후, 좋은 차를  사고, 멋진 휴가를 떠나고, 결국에는 은퇴를  했을 때 비로소 완전해지리라 기대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행복에의 기대만 끝없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러는 가운데 인생은 계속해서 흘러간다. 하지만 실제로는, 행복을 움켜잡기에 '지금'보다 더 나은 때는  없다. 지금이 아니라면 도대체 그때가 언제란 말인가?
어찌 됐든 인생에는 항상 어려운 도전들이 넘쳐나기 마련이다.  이 점을 받아들이고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해지기로 '결심'하는 것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나는 알프레드 디 수자가 한 다음의 말을 아주 좋아한다. 
"오랫동안 내게는 언제나 진정한 인생이 막 시작되려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항상 먼저 해결해야 하는 장애나 끝내지 못한 일, 노력해야  할 시간, 갚아야 할 빚이 그 앞에  버티고 있었다. 그렇게 인생은 시작되었고, 마침내 나는 이러한 장애가 바로 인생이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그의 인식은 행복에 이르는 길이 따로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결국, 행복은 우리가 지금 현재 가고 있는 길 자체인 것이다. 
  
5 미래는 현재의 습관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가 매일 되풀이해 행하는 '습관'은 개개인의 인생  행로를 결정하는, 가장 정신적이면서도 구체적인 기본 원리 중 하나이다.  다시 말해. 그것이 무엇이든 현재 가장  습관적으로 하는 일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는다.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마다 초조해하고, 다른 사람의  비판에 대해 공격적이거나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며, 항상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거나, 불운한 상황을 실제보다 훨씬  더 비관적인 눈길로 바라고, 인생이 위급 상황인  양 행동하는 습관에 젖어 있다면, 우리의  삶 역시 이러한 습관의 반영물이 되고 만다. 
이 말을 다시 하자면, 실패하고 좌절하는 연습을 하기 때문에 결국 좌절하고 마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연습을 통해서 자신에게 숨겨져  있는 연민과 인내력, 친절, 겸손,  그리고 평화라는 더없이 긍정적인 자질을 끌어낼 수도 있다. 
나는 인간은 연습을 통해 완벽해질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매일 매일의 습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인생 전체를 원대한 계획으로 가득 채우고, 목표 달성을 향해 항상 자신을 질책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의 내적, 외적 습관을 의식하는 것이 삶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 어디에 관심을 쏟고 있는가?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자신이 정한 목표에 도움이 되는 습관을 개발하고 있는가? 자신이 기대해 온 인생이 실제 자신의 인생과 일치하는가?
스스로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져 보고, 정직하게 대답하는 것만으로도 어떤 방법이 자신에게 가장 유용한지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혹시 "나는 좀더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고 싶어" 혹은 "나는  항상 명상법을 배우고 싶었어"하고 말하면서도 어찌 된 일인지 시간이 없어 그렇게 하지 못하지는 않았는가?
유감스럽게도,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살찌우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기보다는 세차를 하거나, 재미도 없는 시시껄렁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재방송을 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는다. 
하지만 만일 매일같이 시간을 내서 하는 일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짓는다는 점을 명심한다면, 분명 이전과는 다른 일들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6 연민을 길러라
타인에 대한 연민을 기르는 것만큼 정신적인  균형을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연민이란 자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타인의 입장이 되어, 자신이 그와 같은  곤경에 처하게 되면 어떨지 상상해 보는 동시에 그 사람에 대해서 사랑을 느끼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의 문제와 고통, 그리고 좌절 역시  우리 자신의 것만큼이나 실제적이며, 때로는 더 심각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이런 사실을 인식하고 타인에게  어떤 도움을 제공함으로써, 우리는 마음을 열고 감사하는 마음을 키울 수 있다.
연민은 연습을 통해 얼마든지 기를 수 있으며, 의도와 행위라는 두 가지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의도는 단지 타인을 향해 자신의 마음을 열어야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의도를 통해 자신의 문제로부터 타인의 문제로 관심을 확장하는 것이다. 
행위는 '그것과 관련해 당신이 행하는 구체적인 거'이다. 우리는  마음에서  우러나, 정기적으로 약간의 돈을 기부하거나 시간을 내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아니면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미소를 보내거나 인사를 건넬  수도 있다. '무엇'을 하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뭔가를 '한다'는 사실이다. 
테레사 수녀가 말했듯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위대한 일을 할 수는 없다. 단지 위대한 사랑을 갖고 작은 일들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연민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일에 지나친 관심을 두지  않음으로^써, 감사하는 마음이 자라게 해준다. 
잠시 시각이라는 선물(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기적부터 시작해), 사랑이라는 선물, 그 밖의 많은 삶의 기적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라. 자신이 '대단한  일'로 생각하는 것들이 실은 지나치게 과장된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7 당신의 '일감 바구니'는 절대로 텅 비는 법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라도 모든 일을 잘 해내는 것이 삶의 유일한 목적인 양 여기며 살아간다. 
우리는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며, 삶을 충분히 즐기지도 못한 채, 사랑하는 사람들마저 지치게 만든다. 슬프게도,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너무나 오래도록  방치해 주는 바람에 그들과 관계를 유지하는 데 흥미를 잃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나 역시 그랬다. 
우리는 '해야 할 일들'에 대한 강박 관념은 일시적일  뿐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일을 마친 후에는 차분해지고 여유로워지며 행복해질 거라고 스스로에게  타이른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드물다. 어떤 일이 해결된 후에는 또다시 새로운  일이 우리를 짓누르게 되기 때문이다. 
'일감 바구니'라는 것의 본질은, 텅  비어서는 안 되며, 당신이 성취해야  할 것들로 가득 차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에게는 항상 해야 할 전화가,  완성해야 할 프로젝트가, 끝마쳐야 할 일이 있다. 현실적으로 속이 가득  찬 '바구니'야말로 성공에 필수적이라는  주장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을 이룩하려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당신이 누구이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당신 자신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 마음의 평화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모든 것을 해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면, 결코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거의 모든  일이 우리가 기다릴 수  있는 것들이며, 극히 적은 부분만이 '위급한 일'에 속한다. 자신이 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기만 하면 그것은 조만간 이루어진다. 
나는 인생의 목적은 모든 것을 해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단계를 즐기며, 사랑으로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목표를 달성하는 데 따르는 강박 관념을 통제하기가 훨씬 쉽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신이 죽는 그 순간에도 여전히 처리해야 하는, 미처 다  끝내지 못한 일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그리고 이 점을  생각해보라. 다른 누군가가 당신을 대신해서 그  일을 할 것이다!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을 놓고 애석해하면서 삶의 소중한 순간을 낭비하지 말자.
  
8 상대방의 말을 가로막거나 끝내라고 재촉하지 말라
내가 얼마나 자주 사람들의 말을 가로막고 있는지, 또 빨리 말을 끝내도록 강요하는지 깨닫게 된 것은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그후 나는 이 습관이 나에 대한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손상시킬 뿐 아니라, 한꺼번에 두 사람 몫의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에너지를 소모시킨다는 점에서 얼마나 파괴적인 것인지 깨달았다. 
잠시 생각해 보라. 누군가의 말을 재촉하고, 중간에 끼여들고, 그가 문장을 끝내도록 하려면, 자신의 생각뿐 아니라 가로막고자 하는 상대방의 생각 또한 한꺼번에 좇아가야 한다. 
이러한 경향은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흔한 것으로, 양쪽  모두 말과 생각을 빨리 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서로를 초조하고 안달나게 만들며 짜증나게 한다.  그것은 정말이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또한 이것은 잦은 논쟁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얘기를 듣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 분개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향해 말하면서 어떻게 그가 말하는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겠는가?
일단 자신이 다른 사람의 말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 이러한 무의식적인 경향이 눈에 보이지 않게 생긴, 악의 없는 습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은 더없이 좋은 소식이다. 이런 경우에는 단지 말하는 것을 그만두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대화가 시작되기 전에, 스스로에게 인내력을 갖고 기다리라고 타일러라.  자신의 차례가 될 때까지 상대가 얘기를 끝마치는 것을 기다리겠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어라. 그러면 이 간단한 행동만으로도 만나는 사람들과의 상호 작용이 크게 향상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훨씬  편안하게 느낀다. 
굳이 상대의 얘기를 가로막으려고 애쓰지 않을 때, 자신 또한 편안해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심장 박동은 느려지고, 대화를 성급하게 끌고 나가기보다는 즐기게 된다. 이것은 좀더  여유 있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변화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9 남을 탓하지 말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이 자신의 기대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마다, "일이  잘못된 건 다른 누군가의 잘못 탓이다"라는 억지스런 변명을 한다. 
"서류가 없어졌어. 누가 치운 게 분명해."
"차가 이상해. 정비공이 제대로 수리하지 않는 게 틀림없어."
"지출이 수입을 초과했어. 아내(혹은 남편)가 돈을 너무 많이 쓰기 때문일 거야."
"집이 엉망이야. 나만 일을 하고 있어."
"프로젝트가 늦어지고 있어. 이게 다 다른 사람들이 일을 게을리 하기 때문이야." 등등.
아주 작고 사소한 일에서부터 끔찍한 범죄 행위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잘못을 흔히 남이나 환경 탓으로 돌려버리곤 한다. 
이처럼 '남의 탓'을 하는 태도는 우리 문화 전체에  만연되어 있다. 개인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런 생각은 자신의 행동이나 문제,  혹은 행복을 전적으로 자기 스스로의 책임이  아닌 것처럼, 책임질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든다.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사소한 법정 소송의 원인이 되며, 때로는  범죄자를 풀어 주는 우스꽝스런 핑계로 악용되기도 한다. 
남을 탓하는 습관은 분노, 좌절, 의기소침, 스트레스뿐 아니라, 불행한 삶까지 남의 책임으로 돌리게 만든다. 그러나 남을 원망하고 그의 잘못을 탓하기만 하는 사람은 결코 평화로운 삶에 가까워질 수 없다. 
다른 사람이 일으킨 문제로 좌절하게 되는 일도 분명히 있지만, 그러한 상황에  대처하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행복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바로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다. 상황은 사람을 구속하지 않는다. 단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드러낼 줄뿐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타인을 탓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을 지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단순히 일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지 않는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행복과 타인, 주변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의미이다. 
집안이 엉망일 경우, 자기 혼자만 일을 다 한다고  투덜대기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것을 치우도록 하라. 수입에 비해 지출이 클 경우, 어떻게 하면 돈을 더 아낄 수  있는지 고심하라. 
현재 극도로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오로지 자신만이 삶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타인을 원망하는 데는 엄청난 양의 정신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것은 스트레스와 불편함을 낳는, '나를 끌어내리는' 사고 방식에 불과할 뿐이다. 
나을 탓하기에 바쁜 사람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결국 자신의 행복을, 타인의 행동에 좌우되는 통제 불가능한  부수적인 것으로 전락시키기 때문이다. 
행, 불행의 선택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임을 깨닫고,  다른 사람을 탓하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그럴 경우,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감각을 되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화가 났을 때에도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조종할  수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딸라 좀 더 새롭고 바람직한 감정이 솟아오르도록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더 이상 타인을 책망하지 않을 때,  인생은 즐겁고 편안하게 흘러간다. 자기 주변에  대한 불평을 멈추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라.
  
10 일찍 일어나라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방법이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간단하고 실용적인 방법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더욱 평화롭고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어 간다. 
하지만 여전히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아침에 잠에서 깨자마자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고, 커피 한 잔을 대충 마시고는 직장을 향해 달려나간다. 그리고 하루 종일 일에 시달린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온다. 집에 남아서 자녀와  시간을 보내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여서, 대개 자녀를 돌봐야 할 시간에 맞춰 일어나기 마련이다. 
아침을 쫓기듯이 허겁지겁 시작하는 사람에게 다른 일을 할 시간이 거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직장을 나가든, 아이들을 키우든, 혹은 두  가지 일을 모두 하든 간에, 대부분의  경우 몹시도 지쳐서 자신을 위한 시간은커녕 한숨 돌릴 여유조차 갖지 못할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피로에 대한 해결책으로  "차라리 실컷 잠이나 자야겠어"하고 결심하고는, 소중한 여가 시간을 잠을 자는 데 다 써버리고 만다. 
이러한 상황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은 절망감을 심어 준다.  분명 인생에는 직장과 자녀를 돌보는 일, 그리고 잠 이상의 것이 있어야 한다.  
피로감을 극복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충족감의  결여와 뭔가에 의해 압도당하고 있다는 느낌, 이 두 가지 모두가 피로를 가중시킨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바대로, 잠을  조금 덜 자고 자신을 위해  좀더 많은 시간을 갖는 것이야말로 삶의 고단함과 싸워 나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다. 
예를 들어, 하루 일과가 시작되기  전 한두 시간을 오직 자신만을  위해 할애하는 습관을 가져 보는 것은 어떨까?
나는 항상 새벽 3시에서 4시 사이에 일어난다. 조용히 커피 한잔을 마신 후, 요가와  명상을 한다. 그런 다음 위층에 올라가 잠시 글을 쓴다. 그리고 좋아하는 책을 한두 장 정도 읽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그러고는 하던 일을 멈추고, 산 위로 솟아오르는 아침 해를 감상한다. 그 시간에는 전화벨도 울리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부탁을 해오지 않는다. 반드시 해야만 할 일도 없다. 이때가 나의 하루 중 가장 조용한 시간이다. 
  아내와 아이들이 깰 무렵이면, 나는 하루 종일 기분이  좋으리라는 행복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그날 얼마나 바쁘건, 해야 할 일이 얼마가  되건 간에, 나는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는 것을 잘 안다. 나는 결코 기만당하거나 이용당했다는 느낌을 받지 않으며(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낀다), 내 인생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끼지도 않는다. 
이러한 시간을 통하여, 나는 고객, 내가 믿고 따르는 사람들뿐 아니라 아내와  아이들에게 좀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은 변화가  그들 삶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였다고  내게 말하곤 한다. 난생 처음으로 전에는 결코 누릴 수 없었던 조용한 시간을 자신을 위해 쓸 수 있게  되었다고. 독서를 하고, 명상을 즐기고, 일출을 감상하면서 완전한 고용함이 자기 안에서 퍼져나가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고. 이른 아침에 경험하는 충족감은 바쁜 일과 때문에 빼앗긴 잠을 보충하는 것 그 이상이다. 
아니 비교조차 할 수 없다. 물론 필요한 경우에는 밤에 텔레비전을 끄고, 한두 시간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 
  
11 다른 사람들에게 영광을 돌려라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기꺼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광을 돌리면, 자신의 마음에 고요함이 찾아드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의 영혼에는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지나치게 주목을 받으려고 하는 욕구는, "나를 봐요.  나는 특별해요. 내 이야기는 당신의 이야기보다 흥미로워요"라고 말하는 자기 중심적인 부분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비록 겉으로는 그렇게 말하지 많지만, "내가 이룬 것은 당신이  이룬 것보다 더 중요해요"라고 믿고 싶어하는 우리 내부의 목소리다. 
그 목소리는 때로는 누군가가 희생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사람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이름이 회자되고, 존경받고, 특별하게 대우받기를 원하는  우리 자신의 일부이다. 또한 이것은 대화의 중심을  자신에게로 돌리기 위해 상대방의  이야기를 가로막거나, 자신이 말할 차례가 빨리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참을성 없는 우리의 일부이기도 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들 대다수는 이러한 습관에 젖어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습관은 우리에게 커다란 손실을 가져온다. 상대의 말을  가로막고 대화의 중심을 곧바로 자신에게로 끌어온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와 함께 나눌 수 있는 즐거움을 최소화시키고 타인과의 사이에 거리를 만든다. 이때 양쪽 모두가 소중한 것을 잃게 된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말을 걸어오거나 자신이 이룩한 업적을 당신과 나누려 할 때는 자신에 대해 말하고 싶어 입술을 씰룩대는 자신의 버릇을 주의하라.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습관이긴 하지만, 주목을 끌고자 하는 욕구를 포기하고, 대신  다른 사람과 영광의 기쁨을 진심으로 함께 나누겠다고 마음속 깊이 결심하는 일은 즐거울 뿐 아니라 마음을 평화롭게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다. 
상대가 말하는 도중에 끼여들어, "나도 전에 그런  적이 있죠"라거나 "오늘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아요?" 하고 말하지 말고, 입을 가만히  다문 채 무슨 일이 있어나는지 지켜보도록 하라. 그리고 그냥, "정말 멋진 일이군요." 혹은  "좀더 얘기를 해주세요" 하고 말하며, 상대가 자유롭게 얘기를 이어 가도록 놓아 두라.
큰 관심을 보이면 보일수록 얘기하는  사람은 더욱 신이 날 것이다.  당신이 자신의 말을 주의깊게 경청한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경쟁하려는 마음도 수그러든다. 
그 결과 그는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을 편안하게 느끼고  흐뭇해할 뿐 아니라, 자신감에 넘치게 된다. 당신 역시 자신이 말할  차례를 참을성 있게 기다릴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이 더 편안해진다. 
지금 나는 타인으로부터 영광을 빼앗으려고 하는 충동적인 욕구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살다 보면 서로의 경험을 교환하고 영광과 주목을 나눠 가지는 일이 필요한 때가 많이 있다. 
역설적이지만, 영광을 자기만의 몫으로 차지하려는 욕구를  포기하고 타인에게 그 기회를 양보할 경우, 당신 안에서 조용한 내적 확신이 일어난다. 
  
12 지금 이 순간에 만족하는 습관을 길러라
마음의 평화는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 만족하며 살 수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어제 혹은 작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을지와는 상관없이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존재하는 시간이다. 
의심의 여지 없이,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일들을(그것도 한꺼번에) 걱정하는 신경 과민적인 생활로 많은 시간을 낭비해 왔다. 그리고 과거의 문제와 미래에 대한 걱정들이 현재를 지배하도록 방치해 왔다. 그 정도가 지나치게 되면, 결국 우리는 초조해지고  좌절하게 되며, 너무나 우울해진 나머지 절망에 빠지게 된다. 
반면 '미래의 어느 날'은 오늘보다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며 현재의  만족과 행복, 그리고 권리 주장을 뒤로 미룬다. 우리는 계속해서 그런 식으로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지만, 불행히도 그러한 '미래'는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 
언젠가 존 레논은 "인생이란 우리가 어떤 계획을 세우는 사이에 그것과 다른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가 어떤 계획들을  세우느라 바쁜 사이에 아이들은 성장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떠나거나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의 몸은 늙고 병들고, 미래에 대한 꿈은 덧없이 사라진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인생을 그저 흘려 보내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일어날 어떤 순간을 준비하며 리허설을 하듯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인생은 그런 것이 아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내일 살아 있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바로 지금 이 순간만이 우리가 가진 유일한 시간이며,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하다. 현재라는 순간에 주목할  때야 비로소 우리의 마음에서  두려움을 몰아낼 수 있다. 
두려움이란, 돈이 없어 궁핍하게 되거나,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언젠가는 늙고 죽게 될 것이라는 등의,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사건들에 대한 걱정이다. 두려움과 싸우기  위한 가장 좋은 길은 관심의 초점을 현재로 돌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은, "나는 내 인생에서 몇 가지 끔찍한 일들을 지나왔는데, 그 중 일부만이 실제로 일어났다"라고 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이 이상 더 잘 표현하지  못하겠다. 자신의 관심을 자신이 처한 지금 이 순간에 쏟는 연습을 하라.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13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사리에 밝다고 상상하라
이 방법은, 어쩌면 당신이 절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시도해 보고 나면, 이것이 자기 향상에 큰 도움이 되는 방법들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제목이 암시하듯이, 이 방법의 핵심적인 내용은 자신이 알고  지내는 사람들 모두가 완벽하게 사리에 밝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자신을 제외한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러하다고 상상해 보라!
우리가 현재 만나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뭔가를 일깨워 주기 위해 우리 앞에 다가온 것이다. 어쩌면 길거리에서 부딪히게 되는 역겨운 운전자나 불량한  10대 소년 조차도 인내를 가르쳐 주며, 펑크록 가수는 모든 것에 대해 가치  판단적일 필요는 없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 우리 앞에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우리 삶에 뛰어든 사람들이 무엇을 가르쳐 주려고 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 같은 노력을 계속할 경우,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나 불완전함에 대해 훨씬 덜 짜증 내고, 덜 성가시게 생각하고, 덜 실망하게 된다. 
일단 누군가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려고 하는지 알게 된 다음에는, 그에 대한 실망감을 없애는 일이 훨씬 쉬워진다.   가령, 어느 날 우체국에 갔는데 직원이 일부러 일을 천천히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가정하자. 이때 실망감을 느끼기보다는 자신에게 "저 사람이 내게 무엇을 가르쳐 주려고 하는 거지? 하고 질문을 던져 보라.
아마도 이 상황에서는 연민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를 보면,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에  대해 연민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아니면,  인내력을 좀더 기를 수도 잇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은 참을성  없이 분통을 터트리는 습관을 깨트릴 6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이것이 얼마나 신나고 쉬운 방법인지  곧 깨닫고 놀라게 될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라곤 "왜 사람들은 내게 이런 짓을 하는 거지?"  하는 생각으로부터 "그들이 내게 뭘 가르치려고 하는 거지?" 하는 식으로 인식을 전화하는 게 전부일 뿐이니까.
지금 당장, 주위에 있는 사리에 밝은 사람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도록 하라. 이러한 태도로 삶에 접근하는 습관을 기르다 보면, 얼마 후에는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보며 기뻐할 것이다. 
  
14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는 습관을 버려라
우리가 자신에게 던지는 중요한 질문들 중 하나는 "나 자신이 항상 '옳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행복하기를 원하는가?"하는 것이다. 대개 이 두 가지는 서로 배타적이다.
자신의 입장을 방어하고 정당성을 입증하는 일은 정신을 피로하게 만들며, 때로는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소외시킨다. 자신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거나, 혹은 상대방이 틀리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상대방이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만들며, 우리  또한 자신을 방어하는데 큰 중압감을 느낀다.
나 역시 마찬가지지만, 우리들 중 대부분은 자신이 옳고  상대방이 틀리다는 것을 증명하거나 지적하는 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한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많은 사람들이 타인에게 그들의 입장이나 진술 혹은 관점이 틀리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 자신의 의무이며, 자신이 충고했던 사람이 그것에 대하여 어떤 식으로든 감사하게 생각하거나, 최소한 뭔가를 배울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틀린 생각이다!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라. 누군가의 지적은 받은 후, 자신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상대방에게 "내가 틀리고, 당신이 옳다는 것을 알려 줘서 정말 고마워요. 이제야 나는 제대로 알게 되었어요. 정말이지 당신은 최고예요!"하고 말한 적이 있는가? 아니면, 잘 아는 누군가에게 그의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거나, 그가 틀리고 자신이 옳다는 것을 입증했을 때,  그들이 감사하다고 말하거나 최소한 당신 생각에 동의한 적이 있는가?
물론 없었을 것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지적에[ 따라  자신의 잘못을 고치는 것을 싫어한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이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중받고, 이해받기를 원한다. 누군가가 자신의 말에 귀기울이기를 바라는 것은 인간이 지닌 가장 큰 욕망중의 하나이다. 
남의 얘기를 경청하는 법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타인으로부터 가장 사랑받고 존중받는  사람이다. 반면에 타인의 잘못을 지적하는 습관에 빠진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흔히 화를 내거나 그를 피해 버린다. 
자신이 옳다는 주장을 전혀 하지 말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때로는 진정으로 자신이 옳기를 바라거나 옳아야 할 때가 있다.  인종차별주의적인 발언을 들을 때처럼,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어떤 철학적인 입장이 있을 것이다.  자, 이럴 때는 당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항상 자신만이 옳기를 바라는 습관에 빠져 있는 경우에는,  마음속의 자아가 어느덧 슬며시 고개를 들어 평화로울 수도 있는 만남을 망치고 만다. 
평화롭고 사랑스런 사람이 되기 위한 놀랍고도 진정한 방법은,  자신이 옳다는 기쁨을 타인이 느낄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습관을 익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타인의 잘못을 지적하는 습관을 버려라. 이러한 습관을 고치는 것이 힘들 수도 있지만, 시도하고 실천할 만한 가치가 있다. 누군가가 "...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할 때, 곧바로 "아뇨, ...하는 것이 더 중요해요"라며 끼여들거나, 그의 생각이 틀리다는 것을 지적하지 말고, 그냥 그대로 그들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을 갖도록 내버려두자.
이렇게 하면, 인생을 살아가면서 마주치게 되는 사람들이 우호적이고 정다운 모습으로 변화한다. 비록 자신들조차 그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없을지라도, 그들은 당신이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당신을 높이 평가하게 된다. 
더불어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목격하고, 함께 나누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뿐인가? 
자존심을 내세우는 싸움보다 훨씬 큰  이익을 얻게 된다. 그렇다고 자신이  가장 깊이 믿고 따르는 철학적 진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견해를  희생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오늘부터라도, 가능하다면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이 자신들이  '옳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어라.
  
15 명랑해져라
요즘 들어 많은 사람들이 너무 심각하게 사는 것 같다. 
내 딸은 가끔 내게, "아빠, 아빠 표정이 또 심각해 보여요"하고 말하곤 한다. 비교적 심각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조차 어쩌면 지나치게 심각한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거의 모든 일에 대해서, 약속 장소에 5분 늦게  도착하거나 상대가 5분 늦게 나타날 때, 교통 체증이 심할 때, 누군가가 자신을 잘못 이해하거나 평가할 때, 계산서를 지불해야 할 때, 줄을 서야 할 때, 음식을 태웠을 때, 고의  없는 실수로 난처하게 될 때마다 좌절의 늪에 빠져 허덕이고, 당황한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든지 너무나 심각하게  대함으로써 삶의 여유를 잃는다.  이렇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인생의 어떤 부분은 기대와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수긍하지 않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은 너무나 단순하게도, 삶의 모든 부분이 자신이 원하는  어떤 특정한 방식대로 흘
러가기를 바라지만, 누구나 알다시피, 세상사는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이러한 삶의 본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어쩌면 이 말이 가장 적절한 표현인지도 모른다. 
"미래에 대한 제한된 전망과 희망, 혹은 두려움이 우리 삶의 척도가 된다. 그리고 어떤 상황이 우리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을 경우, 그것은 어려움으로 뒤바뀐다."
우리는 어떤일이, 사람이, 혹은 사건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렇게 되지 않을 때면 싸움을 벌리고 고통받는다. 
심각한 긴장 상태에서 풀려나는 첫 번째  단계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끗이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삶에 대해 좀더 태연해질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의 긴장 상태가 주로 자기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한다.   
다음 단계는 기대와 좌절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 지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자신이 원하는 특정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기를 고집하는 사람은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 자신을 괴롭히고 화를 낸다. 
그러나 셀 수 없이 많은 기대를 떨쳐 버리고,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뭔가에 집착하는 행동은 심각함과 초조감이라는 가시밭으로 통하는 길이다. 그러니,  그냥 삶을 그 모습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야말로 명랑해지는 지름길이다. 
하루쯤 전혀 아무런 기대도 갖지 않고 그냥 흘려 보내는 것은 어떨까? 사람들이 친근하게 대해 주기를 기대하지 않으면, 그들이 친절하지 않더라도 더 이상 상심하거나 신경 쓰지 않게 된다. 그리고 만약 사람들이 친절한 미소를 보내고 다정하게 말을 걸기라도 하면, 기대하지 않은 만큼 기분이 더욱 좋아질 것이다. 
아무런 문제없이 하루가 무사하게 지나가기를 바라지 말라. 실제로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는 자신에게 "아, 극복해야 할 또 다른 장애로군"라고 말하라.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하루하루가 쌓여 나가면서, 결국에는 우리의 인생 전체가 얼마나 멋진지 깨닫게 될 것이다. 
인생에 맞서 싸우는 대신 그것과 함께 춤을 추게 될  것이다. 결국 자신의 얼굴이 밝아지게 되면, 인생 또한 훨씬 즐거워질 것이다. 
  
16 식물을 길러 보라
언뜻 보면, 황당하거나 이상한 제안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식물을 기르는 것이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된다는 것인가?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과 내적 평화에 다다르는 한 가지 방법은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상관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기란 정말이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인생에 뛰어든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들이 어떤 식으로든 우리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럴 때면 우리는 화를 내면서, "물론 나는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하지만  당신이 변해야만 해요. 내가 바라는 식으로 행동해야 해요"라는 단서를 붙인다. 
어떤 사람들은 삶의 일부분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애원 동물에게 더 애정을 쏟기도 한다. 하지만 애완 동물 역시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기란 쉽지가 않다. 
사랑스런 당신의 개가 한밤중에  쓸데없이 짖어 대서 단잠을  방해한다거나, 어렵게 구한 카페트를 망가뜨린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말썽꾸러기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우리집 아이들은 다람쥐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그런데 그 다람쥐가  내가 아끼는 멋진 수공 목재 문에 구멍을 냈을 때, 나는 도저히 그 녀석을 사랑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식물은 이런 걱정과는 거리가 멀다. 그 자체를 사랑하기가 아주 쉽다. 따라서 식물을 기르는 습관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를 제공해 준다. 
거의 모든 종교가 전통적으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부르짖는 건 왜일까? 아마도 사랑이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대단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그것을 주고 받는 사람 모두에게 아름다운 평화를 선사한다. 
집 안이건, 집 밖이건 어디라도 좋다. 지금 당장이라도 화원에 가서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기르도록 하라. 마치 자신의 아기를 보살피듯 돌보고 사랑하라. 어쩌면 아기보다 식물을 기르는 것이 더 쉬울지도 모른다. 식물은 밤에 깨지도 않고, 기저귀를 갈아 줄  필요도 없으며, 울지도 않으니까.
물을 주고 이을 닦아 주면서 말을 걸고, 자신이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고백해 보라.  꽃을 비우건 그렇지 않건, 살았건 죽었건 상관없이 식물을  사랑해 보라. 무조건 사랑해 보라. 
식물에게 쏟는 무조건적인 사랑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 느껴 보라,
식물에게 사랑을 쏟고 그것을 돌보는 동안만큼은, 화가  나지도, 짜증이 나지도, 서둘지도 않게 될 것이다. 순전히 사랑으로 가득한 공간 속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최소한 하루 한 번만이라도, 식물을 돌보고 이런 식의 사랑을 베풀어라. 조만간 식물이 아닌 것들에도 사랑과 친절이 듬뿍 담긴 눈길을 보내게 될 것이다. 
무언가를,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느끼는 동시에,  주위 사람들에게 이와 비슷한 사랑을 나눠 주려고 노력하라. 
그들이 여전히 자신을 화나게 하고, 심술을 부리고, 달라지지 않아도 사랑을 베풀려고  노력 해 보라. 그들을 그냥,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
식물은, 사랑의 힘이 무엇인지 알려 주는 훌륭한 스승이 될 수 있다. 
  
17 인내력을 길러라
인내력을 기르면 평화롭고 사랑스런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목표에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인내력을 발휘하면 할수록, 인생이 뜻대로 되기를 바라며 그것에 집착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포용할 수 있게 된다. 
인내력이 없다면, 인생은 당신을 극도로  좌절시킨다. 인내력이 부족한 사람은 쉽게  화를 내고, 모든 일을 귀찮아하고, 아무 때나 짜증을 낸다.  하지만 인내력은 우리의 인생에 느긋함과 너그러움을 선물한다. 느긋함과 너그러움, 이것은 마음의 평화를 이룩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인내력을 갖는다는 것은, 설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현재의 순간에 마음의 문을 활짝 여는 것을 의미한다. 
교통 체증에 시달리거나 약속에 늦었을 때라도, 그 순간 마음을 열어 보자. 정신적 스트레스가 눈덩이처럼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기 전에,  자신을 추스르고 느긋해지도록 부드럽게 타이르는 방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이런 순간들은 긴장을 풀고 숨을 고르기에 알맞은 시간이며, 인생의 큰 사건들에  비추어 볼 때 약속 시간에  늦는 것쯤은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진정한 인내력이란 상대방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게는 아내 크리스와 네 살과 일곱 살 된 두 딸이 있다. 이 책을 쓰는 동안 네 살 된 내 딸아이가 서재에 들어와 글쓰는 일을  방해했는데,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었다. 나는 '아이 때문에 생각의 흐름을 놓쳐 버리고 결국에는 일을 마치지 못하게  되고 말 거야. 지금이 글쓰는 데 절호의 기회인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흥분하는 대신,  아이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단정짓듯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딸아이가 왜 나를 보러 왔을까 하고 생가고해 보았다. 사실 딸아이는 내 일을 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온 것이었다. 
딸아이에게 전혀 잘못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후부터, 난 인내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산만해졌던 나의 주의력은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왔으며, 내 안에서  부글대던 짜증이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예쁜 딸들은 둔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조금만 더 깊게 들여다본다면, 어떠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이나  그 상황 자체에는 전혀 잘못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위기의 순간을 지혜롭게 넘길 때, 당신은 진정  평화로운 사람이 될 수 있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절망적인 순간들조차도 즐기는 법을 알게 된다. 
  
18 '인내력 실천 기간'을 정하라
세심한 훈련을 거칠 경우, 인내력은 몰라보게 향상될 수 있다. 
나는 인내력을 기르는 데 효과적인 방법 하나를 발견했는데,  바로 구체적인 실천 기간을 정하는 것이다. 마음속으로 어떤 기간을 정해 놓고 자신의 인내력을 시험해 보는 것이다. 
인생은 그 자체가 배움의  교실이며, 인생이라는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과정이 바로 인내력이다. 
  처음에는 5분 정도에서 시작해서, 차츰 인내력을 키워 나가는 것이 좋다. 자신에게 "좋아, 5분 동안 그 어떤 것에도 짜증 내지 않을 거야. 무슨 일이 일어나도 참아 내겠어."하고 말하는 것으로 인내력 훈련을 시작해 보라. 머지않아 당신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특히 잠시 동안만 참으면 될 경우에는, 인내하고자 하는  의지만으로도 인내력은 크게 향상된다. 인내력은 모든 것을 수월하게 만드는 특성이 있다.  일단 작지만 획기적인 사건, 즉 5분 동안의 인내를 성공적으로 이루어 내고 난 뒤에는, 좀더 긴 시간 동안에도 인내력을 발
휘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식으로 시간이 쌓이면 쌓일수록  당신은 참을성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어 간다. 
  어린 딸아이들 덕분에, 나는 인내력에 관한 세세한 기술을 연습할 기회가 많이 있었다. 가령, 내가 중요한 전화를  걸려고 하는데 아이들이 질문들을  해오거나 하면, 나는  자신에게 "바로 지금이 인내력을 기르기에  좋은 순간이야. 30분  동안 최대한 인내력을  발휘하겠어. 봐, 나는 열심히 노력했고, 이제는 30분 동안 참아 낼 수 있게 되었어!"하고 말했다. 
놀랍게도 그것은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냉정을 잃지 않고,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지 않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되자, 나는 아이들을 훨씬 효과적이고 차분하게 지도할 수 있었다. 
이전에 일어났던 비슷한 순간들을 모두 떠올리고  자신은 불쌍한 희생양이라고 느끼면서, 나치 모든 것이 엉망이 돼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행동하는 것보다 인내라는 단순한  행동을 했을 때, 나는 훨씬 더 현재의 순간에 충실할 수 있었다.
때로는 인내력을 통해 느긋해진 나의 감정이 아이들에게도 전염되어서, 아빠를 귀찮게 하는 것이 재미없다고 생각하고는 아이들 스스로가 물러가게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인내력을 통해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현대 내 앞에 놓인 도전이  '삶이냐 죽음이냐'가 아니라,  사소한 장애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떠올릴 수가 있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인내력이 없으면 위급한 순간처럼 느껴진다. 따라서 자연히 비명을 지르고 좌절하게 되며, 마음이 상하고 혈압이 높아진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이지 그럴 만한 가치가 없다. 
  자녀나 상사, 또는 다루기 힘든  사람이나 상황 중 어느 하나를  상대하게 될 때, '사소한 것에 끙끙대지 않기'를 바란다면 먼저 인내력을 기르도록  하라. 인내력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19 친절하고 느긋해서는 모든 것을 잘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라
많은 사람들이 조급해하고, 기장하고, 경쟁적이며, 마치 삶이 위급 상황에 놓인 것처럼 사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이 전에 비해 갑작스레 온순해지고  너그러운 사람이 되면 목표 달성에 실패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렇게 될 경우, 우리는 자신이 게을러지고 만사에 무관심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상 인생은 그것과 반대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이러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두려움에 마비된 성급한 사고는 엄청난 에너지를 빼앗으며, 창조성과 삶의 동기를  고갈시킨다. 두려움에 빠져 있거나 허둥댈 때, 사람들은 인생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자신의  엄청난 잠재력까지 완전히 마비시키게 된다. 
현재 당신이 이룬 성공은 두려움 덕분이 아니다. 그것을  당당히 극복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운좋게도 내 주위에는 아주 느긋하고  평화로우며,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 중 몇몇은 베스트셀러 작가, 사랑이 넘치는 부모, 카운슬러, 컴퓨터 전문가, 그리고  고위 공직자들이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있으며, 각자의 분야에서 프로로  인정받는다. 
아는 이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내적인 평화)을 얻으면 요구, 필요, 욕망, 걱정 등으로 인해 마음이 혼란스러워지는 경우가 줄어든다. 그리고 마음이 평화로울 때, 비리소 목표에 집중하여 온  힘을 The음으로써 그것을 이뤄 낼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그 결과를 되돌려 주는 일도 훨씬 더 쉬워진다. 
  
20 먼저 용서하고,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라
많은 사람들이 말다툼과 오해, 화가 미치는 상황이나 그 밖의 여러 가지 고통스런 경험들로 생긴 분노를 가슴속에 품고 살아간다. 
게다가 완고한 자세로 버티고 서서 다른  누군가가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상대방을 용서하고 우정과 가족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나는 건강이 별로 좋지 않은 한 여성을 알고 지냈는데,  최근 그녀가 나를 찾아와서 자신이 3년 동안이나 아들과 대화를 나누지 않고 지내고 있다는 얘기를 털어놓았다. 
"왜죠?" 하고 내가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며느리 때문에 아들과 의견  충돌이 있었으며, 아들이 먼저 사과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다시는 만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내가 그녀에게 화해를 하기 위해 먼저 노력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유하자, 처음에는 "그럴 수 없어요. 사과해야  할 사람은 바로 아들이에요"하고  거세게 고개를 저으며 내 말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말 그대로,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아들에게 먼저 화해를 청하지 않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내가 정중한 말투로 계속해서 설득하자, 마침내 그녀는 먼저 화해하겠다고 결심했다. 
몇 번의 망설임 끝에 그녀가 아들에게 전화를 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녀의 아들이 그녀가 전화해 준 것을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자신이 잘못했다면서  먼저 사과를 했다고 한다. 늘 그렇듯 누군가가 먼저 적당한 기회를 찾아 화해의 손을 내밀 경우에는, 양쪽  모두가 이기게 된다. 
억누를 수 없는 분노에 마음이 지배당하게 되면, 우리는 '사소한 일'도 대단히 '거창한 일'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자신의 체면이 행복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만약 마음의 평화를 원한다면, 자신이  '옳다'고 고집하는 것이 결코  행복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상대가 옳다고 인정해 주자, 그렇다고 자신이 틀리다는 뜻이 절대 아닐뿐더러, 오히려  이로 인해 모든 것이 더 나아진다. 더불어 우리의 마음속에는  분노 대신 평화가 깃들이게 되고, 양보하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
먼저 사과하고 상대방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기만 하면,  그들은 방어적인 태도를 버리고 우리를 향해 마음의 문을 활짝 열 것이다. 그리고 그들 역시 화해의 손길을 내밀 것이다.
설사 그들이 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괜찮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해지는, 만족감이라는 선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틀림없이, 놀랄만큼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다.

21 "이 문제가 앞으로 1년 후에도 계속될 것인가?"질문을 던져 보라
나는 거의 매일 혼자서 일명  '시간 바꾸기'라고 하는 게임을 한다.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잘못된 생각을 깨뜨리기 위해서 이 게임을 만들어 냈다. 
지금부터 나와 함께 이 게임을 해보도록 하자. 우선 당신 눈앞에 닥친 상황이, 지금이  아닌 1년 후에 일어난다고 상상해  보라. 그런 다음 "이 문제가  내가 해결하려고 발버둥쳐야 할 만큼 정말로 중요한가?"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어쩌다 한 번쯤은 "예"라고 답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아니오"라고 답하게 될 것이다. 
아내나 남편, 자녀, 직장 상사와의 의견 대립, 실수, 놓쳐 버린 기회, 잃어버린  지갑, 일과 관련해 거절당한 경험, 발목 골절과 같은 일들은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1년 후가 되면 이런 일들은 기억에서 지워져 버리고, 더 이상 마음 쓰지 않게  된다. 
이런 일들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사소한 것들에 지나지 않는다. 
내 경험에 의하면 이 단순한 게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 준다.   한때는 심각하게 여겨졌던 일들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별 것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심각했던 자신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게 되는 경우를 나는 종종 경험하곤 한다. 
이제 나는 화를 내거나, 쓸데없는 부분에  마음을 쓰고 정력을 낭비하는 대신, 그  시간을 아내와 아이들과 보내거나 창조적인 사고를 하는 데 쓸 수 있게 되었다. 
  
22 '인생은 공정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여라
친구와 함께 인생의 불공정함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다. 문득 친구가 내게 "인생은 공정하다고, 아니면 공정해야 한다고 누가 말했지? 하고  물었다. 정말 좋은 질문이었다. 
친구의 말을 듣고 나서, 나는 어린 시절에 깨달은  '인생은 공정하지 않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되었다. 
이 명제는 우리를 간혹 절망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이 냉정한 현실을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의 통찰력은 자유로워진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잘못 중 하나는, 인생은  공정한 것이라거나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으면서 자신이나 타인을 그저 애처롭게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지나 인생은 불공평하며, 앞으로도 결코 공정해지지 않는다. 
실수를 저지를 때마다, 우리는 도대체 자신의 인생에서 잘못된  점이 뭔지 골똘히 생각하거나 불평하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동시에 인생의  불공정함에 대해 얘기하면서 인간이라는 존재를 딱하고 불쌍하게 여긴다. 마음 저 깊은 곳에서는  인생이 결코 공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건 공정하지 않아"하며 불평을 한다. 
인생의 불공평함을 인정하는 태도가 지닌 한 가지 장점은,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게 만들고 더 이상 자신을 괴롭히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 '인생의 과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일단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모든 사람이 지닌 능력은 제각기 다르며, 저마다  독특한 힘과 도전 정신을 갖고 있다는 것 또한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다른 사람들을 이유 없이 가엾어하는 마음을 떨쳐 버릴 수 있다. 
나의 경우를 말하자면, 이러한 통찰력은 두 딸을 기르는 문제나 누구는 도와야 하며, 누구는 도울 수 없는지 결정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혹은 내가 희생물이 되었거나 부당하게 대우받고 있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 진리는 항상 나를 일깨워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어 주고, 옳은 행로를 따라가도록 채찍질해 준다.
내가 인생이 공정치 않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은, 좀더 나은 인생과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을 낙담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이러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거나 수용하지 않는  사람은 타인과 자기 자신을 딱하게  느낀다. 그러나 괜한 동정심은 이미  자신을 비참하게 여기고 있는 사람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자기 파괴적인 감정이다. 
하지만 삶이 결코 공정하지만은 않다는 진리를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는 타인과  자신에 대해 진정한 의미의 연민을 품게 된다. 진정한 연민이란 불행에  빠진 사람을 보고 그저 혀를 끌끌 차며 위로의 말 몇 마디를 건네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좀더 적극적인 태도에서 그를 향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모든 사람에게 사랑과  친절을 베푸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이다. 
세상이 불공정하다고 느껴지는가? 그렇다! 세상은 정말로 불공평하다. 이제 그 사실을 당당하게 받아들이자. '불쌍한' 자신에 대한  쓸데없는 동정심과 불평을 던져  버리자. 그리고 지금 당장 자신에게 진정 도움이 되는 행동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실천하자. 그 길만이  이 불공평한 세상에서 성공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다. 

23 지루함을 즐겨라
우리의 인생은 너무도 많은 책임과 자극으로 채워져 있다. 휴식은 고사하고, 단 몇 분간만이라도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한 친구는 내게 "사람들은 더 이상 '존재하는 인간(human being)'이 아냐. 대신 '일하는 인간(human doing)'이라고 불러야 될  거야"하고 말한 적이 있다. 
한때 나는 워싱턴 주에 있는, 한가롭고 자은 마을 라콘너에서  의사 한 명과 함께 연구를 하며 지낸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지루한 생활이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첫날 업무를 마친 후 나는 그에게 "이곳에서는 밤에 무슨 일들을 하죠?"하고 물었다. 
그는 "따분함에 빠져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때요? 아무것도 하지 말구요. 이것 역시 훈련의 일부예요"라고 말했다. 
처음에 나는 그가 농담을 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어떻게 지루한 시간을 그냥 참고 견디란 말이에요?" 하고 다시 물었다. 그는 계속해서 한 시간 동안만이라도, 아니 그 이하라도 좋으니 그냥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두고 있다 보면, 권태의 감정은 평화의 감정으로 바뀔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약간만 연습하면 느긋해지는  법을 터득하게 될 거라고 말하며 웃음지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신기하게도 그의 말이  전부 옳았다. 처음에는 간신히 지루함을  견딜 수 있었다. 나는 쉬지 않고 일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느긋해지기 위해 일부러 애를 써야만 했다. 그러나 얼마 후 나는 곧 그것에 익숙해졌으며, 그후로는  지루한 시간을 즐기는 법을 알게 되었다. 
여러분에게도 매일같이 뭔가를 '하기'보다는 '그냥 있음'으로 해서 느긋해지는 기술을 터득하라고 권하고 싶다. 
사실, 의식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외에 지루함을 즐기는 다른 특별한 기술이란 없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있거나 혹은 창밖을 내다보며 자신의 사고와 감정이 어떻게 변하는지 살펴보자. 처음에는 약간 초조해지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익숙해지고 쉬워질 것이다. 
그로 인한 결과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굉장하다. 
근심과 걱정은 항상 즐거워야 하고  뭔가에 집중해야 할 것 같은  생각, "다음에는 뭘 하지?"하고 고민하는 마음, 그리고 지나치게 분주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우리는 디저트로는 뭐가 나올지 궁금해한다.  디저트를 먹는 동안에는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고심한다. 그리고 저녁  식사를 끝낸 후에는 "이번 주말에는 뭘 하지?하는 고민에 빠진다. 식당에서  집으로 돌아와서는 그 즉시 텔레비전을 켜고, 전화기를 들고, 책을 펴들고, 청소를 한다. 
우리는 마치 잠시라도 뭔가 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바쁘게 행동한다. 무위의 미학은, 마음을 비루고 느긋해지는 법을 터득하는 데 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잠시 동안 '몰라도 되는'자유를 허락한다.   
몸과 마찬가지로 마음 또한 소란스런 일상을 벗어나 때로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 휴식을 취하고 나면, 마음은 좀더  튼튼해지고, 집중력이 놀랄 만큼  향상되며, 창조적인 상태가 된다. 
지루함을 즐겨라. 그리고 매순간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떨쳐 버려라. 
나는 이제 딸아이가 "아빠, 심심해요"하고 말할 때면, "그래?  그렇더라도 잠시 그렇게 따분한 채로 있어 보는 게 어떻겠니. 그건 네게 좋은 거란다"하고 말해 준다. 내가  이런 식으로 말하면, 딸들은 내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생각을 포기하게 된다.
당신은 지금까지 지루한 상태로 시간을 지내 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런 말을 하리라곤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방법은 모든 것에 최우선한다고 생각한다!

24 스트레스를 없애려고 애쓰지 말라
우리는 본말이 전도된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은연중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거나, 심한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과도한 압박감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을  존경하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가 "나는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혹은 "나는 정말이지  너무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요"라고 말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을 칭찬하고, 심지어는  그들을 본받으려고 한다. 
나는 거의 매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상담하는데, 환자들이 "저는 강한 스트레스에도 잘 견뎌요"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소리를 가끔 듣곤  한다. 어떤 경우에는 더 심한 스트레스를 이겨 낼 수 있도록 정신력을 강하게 만들어 달라고 하는 환자를 만나기도 하는데, 사실 이것은 그다지 놀랄 만한 일도 아니다. 
현재 그 사람이 느끼고 있는 스트레스 정도는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말해 준다. "나는 어떤 스트레스도 모두 다 극복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알고 보면 대개 실제로도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역설적이지만 만약 사람들에게 스트레스 처리 방법을 가르쳐 준다면,  그들은 분명 더 심한 고통을 끌어안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더욱 심한 혼란과 책임을 참아 내고, 끝내는  어떤 외부적인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결국 그들은 배우자가 떠나거나,  건강이 나빠지거나, 심각한 약물 중독에 빠지는 등, 어찌할 수 없는 위기에 직면해서야 비로소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아 왔는지 깨닫는다. 
이상해 보일 수도 있지만, 스트레스 관리 강습에 등록하고 처음 배우게 되는 것은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을 기르는 법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스트레스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 역시 스트레스 때문에 완전히 지친 것처럼 보인다!
스트레스가 이생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기 전에 해야 할 일은 스트레스가 통제 가능선을 넘기 전에 그것을 빨리 파악하는 것이다. 
마음이 조급해진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야말로 한발  물러서서 자신을 점검해봐야 할  때이다. 빡빡한 스케줄 때문에 혼란스럽다면, 잡혀 있는 스케줄에 억지로 맞춰 가기보다는 한 박자 늦추고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평가해 보자. 감정을 자제하기가  힘들고 모든 일에 화가 날 경우, 소매를 걷어붙이고  달려들기보다는 잠시 숨을 돌리면서 왜  화가 나는지 그 상황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마음을 느긋하게 갖고, 잠시 크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난 뒤 산책을 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스트레스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것 같은 느낌이 들 대, 이것이 자신을 삼켜 버릴 정도로 커지지 않도록 노력해 보자.  작은 스트레스는 관리하는 것이 가능하며,  통제하기도 쉽다. 하지만 지나치게 커지게 될 경우,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통제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모든 것을 다할 수 없다고 고민할 필요는 없다. 고민이 일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스트레스를 떨쳐 버리고 나면 생각이 명료해지며,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즐거워져서 일의 능률이 더 높아진다. 
스트레스를 차고 견뎌 내는 기준을  낮추면,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될  뿐 아니라 신선하고 창조적인 생각을 떠올릴 수 있게 된다. 

25 1주일에 한 번, 진심이 담긴 편지를 써보자
편지를 쓰는 습관은 평화와 사랑의 마음을 길러 주고, 인생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매주 몇 분씩 시간을 내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편지를 써보자. 분명히 편지를 쓰기 위해 들인 시간보다 몇만 배 값진 결과를 얻게 된다. 펜을  들거나 타이핑을 하는 동안 머릿속에서 생각은 천천히 흘러가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편지를 쓰기 위해  자리에 앉는 행동 하나만으로도 삶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채워질 것이다. 
일단 편지를 쓰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면, 무척이나 많은  사람들이 명단에 등장하는 것에 놀라게 될 것이다. 어떤 고객이 내게 "제게는 1주일에  한 번씩 사람들에게 편지를 쓸 만한 시간이 없어요? 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신 역시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의 인생에는, 현재 알고 지내는 사람뿐만 아니라  과거에 알았던 사람까지 포함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친밀한 편지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편지를 보낼 만한 사람이 없을 경우에는,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흠모하는 작가에게 편지를 써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위대한 발명가나 사상가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도 괜찮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성들여 써내려 간 편지는 빛을 발한다. 설사 실제로 우표를 붙여 누군가에게 보내지는 않더라도 편지 쓰기는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일이다. 
내가 권하는 편지 쓰기의 목적은 무척 단순하다.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편지 쓰기에 서툴더라도 조금도 걱정하지 말자. 이것은 머리를  짜내야 하는 말다툼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의 선물이다. 할말이 별로 없을 때에는 다음과 같은 짧은 글로 시작해보자.
"친애하는 자스민. 저는 오늘 아침  잠에서 깨어 당신과 같은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 생각했어요. 제 친구가 되어 줘서 정말 고마워요. 당신의 삶에 행복과 기쁨이 함께하길... 당신을 사랑하는 리처드가"
이 짤막한 글을 써보내는 일은 인생에서 가장 옳고 소중한 것에 시선을 돌리게 해줄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큰 감동과 고마움을 선사한다. 이 간단한 행위가 대단한  전파력을 발휘한다. 당신의 편지를 받는 사람도 똑같이 다른 누군가에게 글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하게 됨으로써, 마치  작은 돌 하나로 시작된 물결 무늬가 넓게 퍼져 나가듯 사람들 사이에 사랑이 일어난다. 
오늘이라도 편지를 써보자. 장담하건대 기쁘고 흥겨운 마음으로  1주일을 보내게 될 것이다. 

26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상상해 보라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약간 겁나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보면서, 항상 초조해하고 마음 졸이며 삶을  살아온 것을 깨닫고 기뻐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사람들은 대개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자신이 가치 있게 여겼던 것들이 독특한 것이었기를 바란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살면서 사소한 일에 지나치게 연연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대신에 사랑하는 사람과 좀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사소한 일들에 낭비하지 않았다고 회상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죽음이 찾아오는 순간에 대한 상상! 이것은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는 동안 삶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법이다. 
자신의 임종이나 장례식을 떠올려 보는 일이 겁나고 고통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잠시의 두려움과 슬픔 뒤에,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고 나면 그만큼이나 멋진 변화의 계기를 맞게 될 것이다. 

27 "인생은 위급 상황이 아니다"라고 외쳐 보라
이 방법은 이 책의 기본적인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대다수 사람들이 이와는 정반대로 생각하고 이지만, 사실 인생이란 그다지 위급한 상황이 아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인생을 위기 상황으로 생각하고  이에 집착한 나머지 자신의 꿈은 물론 가족까지 방치하는 실수를 저지르는 고객들을 수없이 만나 보았다. 그들은 1주일에 80시간씩 일하지 않으면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낼 수 없다는 말로 자신의 신경증적인 행동을 정당화한다. 그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당신이 죽는 순간까지 '이감  바구니'는 결코 비어 있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가정 주부이자 세 아이의 어머니인  한 여성이 나를 찾아와서는,  "저는 아침에 식구들이 모두 집을 나가기 전까지는 집을 청소할 수가 없어요"라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자신이 완벽하지 못하다는  사실에 너무도 화가 나며,  그럴 때마다 신경안정제를 복용한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마치 누가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있는 것 같고,  자격수가 모든 식기와 수건들을 치우라고 명령이라도 한 것처럼 행동한다고 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이것은 위급 상황이다'고  생각하고, 일에 쫓기곤 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것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아무도 그녀에게 위협을 느낄  정도로 일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녀 스스로 압박감에 시달린 것이었다. 
다소 심하게 말하자면, 나는 사소한일을 위급 상황으로 확대시키지  않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 나 역시 그런 잘못을  범했다. 우리는 이생의 목표를 너무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인생의 진정한 기쁨을 즐기거나 느긋해질  줄을 모른다. 단순히 조금 더 좋아하는  것을 택한 후 그것을 행복의 조건으로 삼는다. 그리고 스스로 만든  기준에 맞추지 못할 경우 자신을 마구 괴롭힌다. 
평화로운 마음을 갖기 위한 첫 단계는 자신 스스로가 위급 상황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일이 계획에  맞추어 진행되지 않더라도 인생은  항상 계속되기 마련이다. '인생은 위급 상황이 아니다'라는 말을 항상 기억하고 자신에게 되풀이하자.

28 마음속 심지에 불을 당겨라
마음속의 심지는 어떤 사실을 기억하거나 통찰력을 갖게 해주는 데 탁월한 도구이다. 
이 방법은 스트레스를 효과적이고 손쉽게 처리하게 도와준다. 마음속 심지에 불을 당기면, 바쁜 와중에도 문제들이 하나둘 해결된다. 
이것은 스토브의 버너가 작동하는 원리와 똑같다. 여러 재료들이 약한 불에서 혼합되면서, 서서히 끓어올라 맛있는 음식이 되는 것과 같다. 이때 해야  할 일은 다양한 재료를 냄비에 넣고 섞은 다음, 잠시 내버려주는 일이다. 요리 과정에 신경을 덜 쓸수록 더욱 맛있고  훌륭한 음식이 된다. 
여러 가지 문제와 사실과 변수,  그리고 가능한 해결책 등을 마음의  심지 위에 올려놓고 요리를 하듯 다루기만 하면, 삶을 가로막는 많은 문제들을 자연스레 해결할 수 있다. 
수프나 소스를 만들 때처럼 마음의 심지 위에서 생각과 관념이 저절로 끓어오르도록 나둬 보자. 어떤 문제를 앞에 놓고 씨름하고 있든, 어떤 사람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든 간에  마음속 심지는 항상 도움을 준다. 
이 방법은 눈앞에 급박한 문제가 닥쳐와도 조용하고 부드럽게 지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해준다. 
문제를 부인하거나 해결을 미루라는 것이 아니다. 일단 문제를  마음의 심지 위에 올려놓고 나면, 버너를 끄고 싶지 않게 될 것이다. 조급한 마음으로 문제를 분석하기보다는 마음속에 부드럽게 간직하고 싶어진다는 얘기다.  
이 단순한 방법은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스트레스도 상당히 줄여 준다. 

29 매일 고마운 사람을 떠올려 보라
행동으로 옮기는 데 고작 몇 초밖에 걸리지 않는 이 방법은, 내가 오래 전부터 실천해 온 습관 중 하나이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감사해야 할 사람을 생각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나에게 있어 감사와 마음의 평화는 서로 떼어낼 수 없는 존재이다. 
삶이라는 선물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가질수록 마음은 평화로워진다. 한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데는 약간의 연습이 필요하다. 
나와 마찬가지로 당신에게도 인생에서 만나 고마운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친구, 가족, 잠시 만났던 사람, 학창 시절 선생님, 정신적인 스승, 직장 동료, 행운을 가져다준 사람 등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정다운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아니면 인생이라는 선물 자체, 혹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감사하고 싶을 수도 있다. 차가 끼여들 수 있도록 양보해 준 사람, 들어가기 좋게 문을 잡아 준 사람, 목숨을 구해 준 의사 등, 그 누구라도 감사해야 될 사람들의 명단에 들어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을 열고 작은 것에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침 일찍 이 일을 하는 것이 좋다. 
내가 오래전에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마음이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도록 놔두는 일이 아주 쉽다는 것이다. 붙잡을 틈도 없이 생각이 부정적인 방향을 향해 마구 내달려 갈 때,  내게서 가장 먼저 떠나는 것은 감사하는 마음이다. 주위에 있는 좋은 친구들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 시작하고, 사랑의 감정은 분개와 좌절로 바뀐다. 
나는 이 연습을 통해 인생의 좋은 면에 초점을 맞추는 법을 배웠다. 조용히, 평화로운  마음으로 고마운 사람을 한 사람 떠올리고  나면, 항상 그 사람의 영상 뒤에  또 다른 사람의 얼굴이 계속해서 떠오르곤 한다.  그리고 감사해야 하는 다른  것들, 즉 나의 건강,  아이들, 집, 직업, 독자들, 자유 등을 생각하게 된다. 
이 제안이 무척이나 단순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것은 정말로 효과가 있다! 아침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사람이 평화가 아닌  다른 감정을 갖게 되기란 무척 어렵다.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 

30 낯선 사람의 눈을 들여다보며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낯선 사람과 거의 눈을 마주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혹은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 이유는 무엇일까? 두려움 때문에? 도대체  무엇이 낯선 사람들에게 마음을 여는 것을 가로막는 것일까?
사실 나는 이 질문들에 명확하게 대답할 자신이 없다. 하지만 낯선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행복을 느끼는 수준이 달라지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달리 말해 머리를 숙이고 얼굴을 찌푸린 채,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걷는 사람의 마음속이 평화와 기쁨으로 가득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나는 외향적인 성격이 내성적인  성격보다 훨씬 훌륭하며, 다른  사람들의 하루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온 힘을 기울이거나 괜히 친한 척하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만약 낯선 사람을 자신과 그렇게 크게 다를 바 없는 비슷한 마음으로 생각하고, 그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과 친절이 담긴 태도로 부드러운 미소와 따뜻한 눈길을 보낼 경우, 우리의 내부에서 어떤 멋진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가는 모습이 비슷하다. 가족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며, 여러 가지 문제로 골치를 앓거나 걱정거리를 안고 살아간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분명하고, 때때로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먼저 손을 내밀고 다가서라. 그러면 그들이 정말로 좋은 사람들이며, 인생에 대해  감사하며 살아가는 선량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서로 별다를 것 없이 똑같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비로소 다른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착한 심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간혹 일을 엉망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대체로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어찌 됐든 사람들에게서 선한 마음을 발견하는 것은 커다란  행복을 맛볼 수 있는 일이다. 

31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어라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하루 24시간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인 새벽 4시 30분을 오직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정하고 있다. 
나는 지금도 아내와 아이들이 잠에서 깨어나고, 전화벨이 울리기 전에, 1시간 30분 정도를 혼자만의 시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시간은  누군가가 내게 일을 부탁하기 1시간  전이다. 
바깥은 매우 고요하고, 나는 완벽한 고독 속에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혼자있는 동안 반성의 시간을 갖거나 고요 그 자체를 즐길  때면, 뭔가 새로운 기운이 솟고 평화로운 기분이 든다. 
나는 10년 전부터 스트레스 관리 분야에서 일해 오고 있는데, 그동안 놀라운 사람을 여러 명 만났다. 내 경험에 의하면,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치고 매일 짧게나마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갖지 않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것이 10분 동안의 명상이나 요가이든, 자연속에서  잠시 취하는 휴식이든, 욕실 문을 걸어 잠그고 목욕을 하는 것이든  간에 홀로 보내는 조용한 시간은 인생에서 절대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다.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상의 평화를 깨는 소음과 혼란을 균형 있게 조정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잠깐 동안만이라도 아침에 자신만의 조용한 시간을 가진 사람에게는 나머지 하루도  수월하게 지나가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이런 시간을 갖지 못했을 때는  그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가 있다. 
내가 친구들에게도 적극적으로 권하는 일이  하나 있다. 보통 사람들처럼  나도 사무실로 출퇴근을 한다.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나는 집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에  다다르면 차를 세운다. 그곳에서 1-2분 정도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거나,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그러면 생각에 여유를 가지고 뭔가에  집중할 수 있게 되며, 감사하는 마음  또한 솟아오른다. 
나는 이 방법을 "조용히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다. 그들은 귀가 멍할 정도로 라디오 소리를 크게 튼 채 빠른 속도로 차를 몰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내 말을 귀담아  듣고 자신의 행동에 간단한 변화를  줌으로써, 훨씬 느긋해진 마음으로 집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32 주위 사람들이 어린 아기나 백 살 된 노인이라고 상상해 보라
나는 이 방법을 20년 전에 익혔는데, 타인을 향해 이유없이  치솟는 짜증을 없애는 데 굉장히 큰 도움이 되었다.
우선 자신을 몹시 짜증나게 하고 화나게 만드는 누군가를 떠올려 보라.
자, 생각났는가? 그럼 이제 눈을 감고, 그 사람이 어린  아기라고 상상해 보자. 그들의 작고 가냘픈 모습과 순수하고 귀여운 눈을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아기들이 아무런 악의 없이 실수를 저지르며, 우리 모두가 한때는 귀여운 아기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제, 마음의 시간을 100년 후로 맞춰 보라.
그리고 이번에는 그 얄미운 사람이 머지않아 곧 죽게  될 가엾은 노인이라고 상상해보라. 삶의 지혜가 충만하고, 과거의 실수들을 수용하는 듯한, 그들의 초췌한 눈과 부드러운  미소를 가만히 들여다보라. 오래지 않아 우리 모두는, 살이 있든 아니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든 간에 언젠가는 백 살이 된다. 
이 방법은 여러 방식으로 다양하게 변화시켜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삶의 비전과 연민을 가져다준다. 
만약 평화와 사랑으로 가득한 마음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타인에 대해서 부정적인 감정을 품는 일 따위는 원하지 않을 것이다. 

33 먼저 이해하려고 노력하라
이 방법은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중 하나를 채택한  것이다. 이 습관은 만족스럽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지름길이다. 
본질적으로 '먼저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타인에게는 좀더  관심을 갖고, 반대로 다른 사람이 자신을 이해하는지에 대해서는 신경을 덜 쓰는 것을 뜻한다. 
자신과 상대방에게 이익이 되는 원활한  의사 소통을 원한다면, 우선 먼저  그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해야 한다. 사람들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그들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등을 진정으로 이해할 때, 그들 역시 자연스럽게 우리를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거꾸로 이루어질 때(우리들은 대개의 경우 그렇게 한다)에는, 상황은 심각한 지경에 이른다. 상대를 이해하기에 앞서 자신의 생각만을 주장할 경우, 자신과 상대방의 사이는 더욱 멀어지게 된다. 의사 소통은 벽에 부딪히고, 결국 두 자존심 사이에  싸움이 일어난다. 
나는 제정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면서, 절망적인 결혼 생활을 10년 동안이나 해온 어떤 부부의 문제를 해결한 적이 있다. 
남편은 아내가 푼돈까지 아껴서 저축하고 싶어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으며, 아내는 남편이 돈을 헤프게 쓰는 것이 못마땅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방에 대한 좌절감 속에서 허우적대기만 할 뿐, 지혜롭게 행동하지 못했다. 내가 접한 문제들 중 대부분이 이 부부의 문제보다 더 복잡한 반면, 해결책은 상대적으로 간단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그 부부가 각자 자신이 상대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점이었다. 
그 부부는 서로의 말을 가로막지 않고 상대방의 얘기에 귀기울이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들은 자신의 입장을 방어하기보다 먼저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그들에게 제안한 방법도 바로 이것이었다. 
마침내 남편은 아내가 자신의 친부모가 겪었던 경제적인 어려움을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저축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파산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내는 남편이 시아버지가 시어머니에게 해준 것만큼 그녀를 잘 돌보지 못했던 것에 대해  죄스러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마음속  깊이, 아내가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 두 사람이 상대를 이해하는 법을 배우게 되면서, 서로에 대한 절망감은 연민으로 바뀌었다. 현재 그들은 지출과 저축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먼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누가 옳고 그르냐는 식의  문제와는 무관하다. 이것은 효과적인 의사 소통을 위한 삶의 철학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원망하지만 말고 이제부터라도 이 방법을  실천해 보라. 처음부터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당신이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이해하기 위해 애쓴다는 사실을 그들 역시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것은 보다 사랑이 넘치는 관계를 맺기 위한 첫걸음이다. 

34 사람들의 말에 귀기울여라
나는 지금껏 내가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듣는 사람이라고 믿어왔다. 그리고 사실 10년 전보다는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 주는 상담자가 되어 있지만,  여전히 겨우 합격점을 받을 만한 대화 상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할 것 같다. 
남의 말에 귀기울인다는 것은 단순히 다른 사람이 얘기하는 도중에 끼여들거나 말을 끝맺도록 강요하지 않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상대방의 말에 대해 성급하게 자기 의견을 표시할 기회를 엿보기보다는, 그 사람의 생각을 모두 듣고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귀기울이기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이 서로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네 삶의 방식이 어떠한지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무슨 경주라도 하는 것처럼 경쟁적으로 말을 주고받는다. 마치 상대방의 말과 자신의  대응 사이에 어떤 시간상의 지체도  용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언젠가 아내와 카페에서 점심 식사를 하면서 주위 사람들의  대화를 엿들은 적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 열심히 떠들고 있었지만 상대의 얘기는 전혀 귀담아 듣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자면 번갈아 가며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나는 아내에게 나도 이와  비슷한 잘못을 범하고  있는지 물었다. 아내는  미소를 지으며 "아주 가끔 그럴 뿐이에요"하고 말했다. 
대답을 천천히 하고,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습관을 들여 보라. 이는 분명 평화로운 사람으로 변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습관은 정신적 압박감을  덜어 준다. 상대의 말이  끝나자마자 대답하려는 욕심에 맞은편에 앉아 있는, 혹은 전화를 하고 있는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초조해하고 안간힘을 쓰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행동일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 
하지만 상대방의 말일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그가 하는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지금까지 자신을 내리누르고 있던 압박감이 사라지는 듯한 홀가분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자신의 마음이 편안해지면, 상대방 역시 그렇게 된다. 그들은 '방송  시간'을 놓고  당신과 경쟁하듯이 서두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마음의 여유를 찾게 된다. 
이 습관은 인내력 있는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이며, 인간 관계의 질을 높여 주는 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얘기를 진지하게 경청해 주는 사람과 얘기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35 싸움을 현명하게 선택하라
'싸워야 할 때를 현명하게 선택하라'라는 말은 부모들이 아이에게 곧잘 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철없는 아이들의 싸움뿐만이 아니라 만족스런 삶을 살아가는 데도 중요한 요소이다. 이 말은 인생이 대단한 일과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보이는 일  중에 하나를 끊임없이 선택해야 하는 상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반드시 살아가다 보면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과 논쟁하고, 대립하고,  심지어는 싸워야 할 때가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삶들이 문제가 닥칠 때마다 논쟁하고, 대립하고, 다투면서 자신의 삶을 '사소한 것들'을 놓고 싸우는 전쟁터로 만들고 있다. 
결국 이러저러한 싸움에 지치고, 이런 식으로 사는 것에 너무도 절망한 나머지,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조차 잊게 되기도 한다. 
의식적인 것이든 무의식적인 것이든 간에 당신의 목표가 오직 인생에서 승리하는  것이라면, 살면서 겪게 되는 작은 불일치나 착오도 심각한 상황으로 발전될 수가 있다. 
인생이 정확하게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경우는 드물다.  사람들이 매번 우리가 바라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인생을 사는 동안  우리는 좋아하는 일들 뿐 아니라 썩 내키지 않는 일들에도 간혹 맞닥뜨리게 된다.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 어떤 일을 자신과는 아주 다르게 처리하는 사람, 그리고 쓸데없는 일들이 항상 있기 마련이다. 만약 인생의 이러한 원칙을 무시한다면, 아마도 인생의 대부분을 전쟁을 치르면서 보내게 될 것이다. 
평화롭게 인생을 사는 방법은 어떤 일이 싸울 가치가 있고,  어떤 일은 그냥 지나쳐야 하는지를 지혜롭게 판단하는 것이다. 당신의 인생 목표가 모든  것에서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 없는 삶을  사는 것이라면, 싸움이야말로 마음의  평화를 빼앗아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옳고 그가 틀리다거나,  단순히 사소한 실수를 저질렀다고  해서 사랑하는 가족과 싸워야 할 필요가 있을까?
어떤 레스토랑, 어떤 극장에 가는 것이 더 좋은가 하는  문제가 말다툼을 벌일 만큼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차가 살짝 긁힌 것을 가지고 그 사람을 고소해야만 하겠는가? 이웃이 당신의 주차 공간에 차를 세우곤 해서 분통이 터진다는 얘기를 꼭 가족끼리 식사하는 중에 해야만 하는가?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수천  가지의 사소한 문제들을 놓고  싸움을 벌이면서 인생을 헛되이 흘려 보내고 있다. 
당신 자신은 어떤지 스스로의 경험들을 떠올려 보라. 지금껏  중요하게 여겨 왔던 것들을 재평가해야 되지는 않는가?
사소한 것들에 골치를 앓고 싶지 않다면, 정말로 싸워야 할 때를 현명하게 선택하는 지혜를 길러라. 다툴 필요를 느낄 만한 일이 없는 날이 곧 찾아올 것이다. 

36 기분이 저조할 때 떠오른 생각에 속지 말라
사람의 '기분'은 간혹 극도로 기만적이어서, 때로 삶이 실제보다 훨씬 엉망인 것처럼 느끼도록 주인을 속이곤 한다. 어쩌면 지금 당신도 그래서 세상을 언짢게 보고 있는지 모른다. 
기분이 좋을 때, 인생은 위대해 보인다. 그리고 인생에  대한 비전과 상식, 지혜를 지니게 된다. 
이때는 일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으며, 문젯거리들 역시 그다지 골치 썩이지 않고 쉽게 해결될 것처럼 보인다. 인간 관계 또한 순조로워지며, 의사 소통도 수월하게 이루어진다. 이런 경우에는 설사 비판을 받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다. 
반대로 기분이 나쁠 때는 인생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고 고달프게 여겨진다. 그래서 미래에 매한 비전을 가질 여력조차 없다. 상황을 주관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때로는 주위 사람들을 오해하거나 그들의 행동에 악의가 숨어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기분이 수시로 바뀐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대신 자신의 인생이 지난 며칠 사이에, 심지어는 몇 시간 사이에 갑자기 나빠졌다고 생각한다. 
아침을 기분 좋게 시작하면 자신의 아내와 일, 그리고 자신의 차를 사람이 담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게 되고, 과거에 대해서도 고마움을 느낀다. 
하지만 그러더라도 오후 늦게 기분이 언짢아지면 일하기가 싫어지거나 아내가 귀찮게  느껴지고, 자동차는 고물이며, 자신은 직장에서 성공할 가망이 없다는 절망적인 확신이 든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누군가가 어린 시절에 대해 묻는다면, 틀림없이 자신의 어린 시절은 너무나 힘들었다고, 지금의 곤란한 상황은 모두 부모 탓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빠르고, 극적일 정도로 대조적인 행동은 터무니없고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사람들은 흔히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기분이 저조할 때면 비전을 잃게 되며, 모든 일이 당장  급하게 처리해야 할 것처럼 보인다. 기분 좋을 때 느꼈던 인간과 사물, 그리고 상황에 대한 만족스런 감정이 기분이  나빠지면 깨끗이 사라진다. 심지어  동일한 상황(배우자, 직장, 자동차,  자신의 잠재적 능력, 어린 시절)을 기분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끼기조차 한다. 
기분이 저조할 경우, 사람들은 좋지 않은 기분 탓에  부정적인 느낌이 들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의 삶이 전부 다 잘못되어 있다고 속단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지난 몇 시간 사이에 인생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기분이 저조한 상태에서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 
기분이 나쁜 상태에서는 삶을 현실 그대로만 받아들이거나 믿지 못하고 자신의 판단을 자꾸만 의심한다. 이럴 때 스스로에게, "나는 지금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아(혹은 화가 나고, 절망스럽고,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고, 우울해). 기분이 좋지 않은 게 분명해. 나는 기분이 저조할 때면 항상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돼"하고 말해 봐.
가벼운 질병은 그냥 내버려두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히  치유되는 것처럼,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기분이 저절로 나아지도록 내버려두는 법을 배워라. 
기분이 저조한 상태에서 인생을 분석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정서적인 자실 행위이다.  만약에 그 문제가 근거 있는 것이라면 마음의 상태가 나아져도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이때의 요령은, 기분이 좋을 때는 기꺼이 감사하고, 기분이 침울할 때는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그 상황에 합당한 판단을 하는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기분이 저조해질 때면, 스스로에게 "이것도 역시 그냥 지나갈 거야"하고 타일러라. 그러면 그렇게 될 것이다. 

37 인생은 단지 시험에 불과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 중 하나는, '인생은 시험이다.  단지 시험에 불과하다. 실제  인생이었다면 당신은 어디로 가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미리 교육받았을 것이다'라는 말이다. 
재치있는 문구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인생을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새롭게 다짐한다. 
인생과, 인생에서 부딪히는 많은 도전들을  하나의 시험, 혹은 일련의 시험이라고  생각하면, 지금 직면하고 있는 각각의 문제들이 성장을 위한 기회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처럼 숱한 문제와 책임, 극복하기 힘든  장애 등에 둘러싸여 있을 때, 그것들을  하나의 시험이라 생각하고 달려든다면 항상 어려움을 딛고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각각의 새로운 문제들을,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싸움으로 간주할 경우에는 인생이 몹시 고달픈 존재가 된다. 
이때는 모든 것이 제대로 됐을  때에만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제대로 된다는 것'은 얼마나 일어나기 힘든 일인가?
실험 삼아, 어떤 문제에 이 생각을 적용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찾아보도록 하라.  예를 들어 다루기 힘든 10대 소년이나 까다로운 상사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직면한 문제를 '문제'가 아닌 '시험'으로 재 정의할  수 있는지 시도해 보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대신, 그 문제로부터 배울 점이 있는지 살펴보자. 
자신에게 "왜 내 인생에 이런 문제가 생긴 거지?  이 문제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고, 극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하지? 이 문제를 다른 각도로  볼 수는 없을까? 단지 시험으로 볼 수는 없을까?"하고 물어 보라. 
나는 예전에는 시간이 촉박하다고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안절부절못하며 종종걸음 치곤 했다. 모든 것을 잘 해내기 위해 어디든 서둘러 다녔고, 나의 스케줄,  가족, 내가 처한 상황을 그리고 그 곤란한 상황의 원인이 될 만한  모든 것을 탓했다. 그러다가 다음과 같은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을 얻기 위해  인생을 완벽하게 조직화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의무적으로 했던 일들을 그만두어도 좋을 때를 정확히 판단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나의 진짜 도전은 나의 힘겨운 노력을 시험으로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문제를 하나의 시험으로 간주하게 된 후부터 좌절감을 극복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나는 지금도 이따금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더 많은 시간을 자내려고 애쓴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예전보다 훨씬 줄어들었고, 문제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졌다. 

38 찬사와 비난은 같은 것이다
피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삶의 교훈 중 하나는,  타인의 반대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찬사와 비난은 같다'라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도록 하라.  이는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할 수는 없다는, 진부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진리를 상기시켜 주는 방법이다. 
어떤 후보가 선거에서 55퍼센트의 득표율을 얻어  압도적으로 승리했을지라도, 그는 다른 후보자에게 표를 준 나머지 45퍼센트의  선거권자들의 지지는 얻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당선자는 이 사실 또한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가족이나 친구, 함께 일하는 동료들로부터 동의를 얻어내는 비율도 그다지 높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삶이 인생을 평가하는 자신만의 가치 기준을 갖고 있으며, 우리의 기준이 항상 다른 사람들과 일치하지는 않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대다수의 사람은 이 불유쾌한 사실을  무시하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거부하고, "아니오"라고 말하거나 다른 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반대할 때마다 화를 내고 상처받고 좌절한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자신의 의견에 대한  동의를 얻어낼 수 없다는 불가피한  진리를 빨리 수용할수록 삶은 그만큼 더 여유로워진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때에 따라서는  사람들의 반대를 인정할 수도 있다고 생각할 때에야 비로소, 길지  않은 삶의 여정에 도움이 되는 비전을 지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반대에 부딪혔을 때 거부당했다고 생각하며 씩씩대기보다는, 스스로에게 "이런, 또 반대에 부딪혔군 하지만 뭐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하고 타일러라. 그러면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동의를 마침내 얻게 되었을 때 기분 좋게 놀라고, 심지어는  감사하는 법까지 배우게 될 것이다. 
나는 찬사와 비난을 함께 경험하는  날이 많다. 어떤 사람은 내  의견을 듣고 싶어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 어떤 전화는 좋은 소식을 전하지만  또 다른 전화는 해결해야 하는 새로운 문제를 안겨 주기도 한다. 한 아이는 내가  하는 행동에 즐거워하지만 다른 아이는 심술을 부린다. 나를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하기도 하지만 내가 전화를 다시 해주지 않는 걸 보고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좋은 것과 나쁜 것, 자신에 대한 타인의 동의와 반대야말로 모든 사람의 인생을 이루는 한 부분이다. 물론 언제나, 반대에 부딪히기보다는 동의를 얻어낼 때 훨씬 기분이 좋고 행복하다. 그것이 더 유쾌하고, 마주 대하기 쉬운 것임에는 틀림없으니까.  하지만 현실에 만족하는 사람이 되어갈수록 이러한 사실을 덜 의식하게 되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39 때로는 엉뚱한 친절을 베풀어라
이미 오래전에 등장한, 자동차 범퍼용 스티커가 하나 있다. 누구든지 전국 어디에서나  이 스티커가 차에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사실, 나 역시 이 스티커를  붙이고 다닌다). 그 스티커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씌어져 있다. 
'때로 당신의 인생에서 엉뚱한 친절과 정신 나간 선행을 베풀어라.'
이 문구를 누가 생각해 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 앞에 서 있는 차에서 그 문구를 발견하고는 그 이상 중요한 메시지는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엉뚱한 친절을 베푸는 것은, 무엇인가를 주면서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런 행동은 남몰래 선행을 베풀고 싶을 때 매우 도움이 된다. 
센프란시스코 만에는 다섯 개의 유료 다리가 있다. 한데  얼마 전부터 사람들은 자신의 뒤를 따르는 자동차의 통행료를 내기 시작했다. 운전석에 앉은  사람들이 통행료 징수 창구에 이르러 돈을 내려는 순간, "당신의 통행료는 앞차 운전자가 이미 지불했습니다"라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이것은 보답을 바라지 않는, 사심 없는 친절의 한 예이다. 부담없이 선사한 그 작은  선물이 뒤따르던 운전자에게 줄 충격을 상상해 보라! 어쩌면 그 일로  인해 친절한 행동은 다른 친절을 연쇄적으로 불러일으킬기도 하니까.
선의의 친절을 베푸는 데 한 가지 정답만이 있을 수는 없다. 그것은 개개인의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니 말이다. 
이것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아주 다양하다. 
즉, 동네의 쓰레기를 줍는 것부터 익명으로 자선금을 기부하는 것, 제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 한숨 돌릴 수 있도록 봉투에 얼마간의 돈을 넣어 보내는 것, 도움이 필요한 동물을 동물구조협회에 데려가는 것, 자원 봉사자가 되어 교회나 보호소에서 배고픈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 주는 것 등이 모두 선행이  될 수 있다. 당신은 이 모든 일을, 그리고  그 이상의 일을 할 수 있다. 
여기서의 핵심은, '준다'는 행위는 즐거운 것이며, 이때 베푸는  것이 반드시 값나가는 것일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친절을 베푸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커다란 정신적 만족감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친절한 행동은 그것을 베푼 사람에게 '자기 만족'이라는 긍정적인 느낌으로 보상해 주며, 봉사와 친절, 사랑이라는 대단히 소중한 인생의 측면을 상기시켜 준다. 
사람들 모두가 조금씩 서로에게 양보할 때, 우리는 좀더 '살 만한'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다. 

40 행위의 이면을 들여다보라
"신경 쓰지 마. 그 사람, 모르고 그런 거야."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행위의  이면을 보는 지혜'와  접속해 본 사람이다. 
자녀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단순한 '용서'가  지니는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만약 자녀에 대한 사랑이  아이들의 행동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라면, 변덕스럽고 때때로 터무니없는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항상 사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사랑이 그 대상의 행동에 기초해서  형성되는 감정이라면, 반항적이고, 항상 불만에  가득 찬 채 뚱한 얼굴로 삐딱한 행동만 해대서 주위 사람들을 속터지게 하는 10대 때에는 그  누구도 사랑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자녀에게 베푸는 것과  같은 무조건적인 사랑과 친절을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로 확대하여 적용시켜 보면 어떨까?
누군가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 그들을 엉뚱하고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하는 10대 자녀를 대할 때처럼 너그럽게 바라볼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은 좀더 사랑으로 가득해지지 않을까?
이것은 타조처럼 머리를 모래 속에 처박은 채, 모든 일이 아무래도 좋다는 듯 행동하거나, 타인이 자신의 생활을 침해하는 것을 참고 내버려둔다거나, 부정적인  행동을 못 본 체하고 그냥 지나치거나 받아들이라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저 단순히, 다른 사람의 못마땅한  행동을 선의의 눈길로 바라보라는 것이다. 
우체국 직원이 사무를 느릿느릿 처리하여 속이 답답하다 못해  터질 지경이라면, 그가 오늘 기분이 좋지 않거나, 아니면 자신의 일에 대해  불만스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에 대해 연민을 가지려 노력해 보자. 
또, 배우자나 가까운 친구가 날카로운 말로 쏘아붙이며 곤혹스럽게 만들 때는, 그  냉랭한 행동의 이면에 당신을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려 노력하자. 당신의 사랑을 받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런 식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들을 이해하자는 것이다. 
행위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오늘 당장 시도해 보라. 미처 생각지 못했던 좋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41 동기의 순수함을 찾아보라
타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벽에 부딛히는 듯한 절망감을 느끼곤 한다. 
타인이 자신에게 참을 수 없는 행동을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무고하다'기보다는 '죄가 있다'고 본다. 겉보기에  비이성적으로 보이는  그들의 행동(해괴한  소문, 과격하고 치사하며 이기적인 행동들)만을 보고는 그들과 자신 사이에  있는, 부술 수 없어 보이는 두
꺼운 벽에 대해 너무도 쉽게 '극도의 절망감'을 느끼곤 하는 것이다. 
무례하고 짜증스런 행동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열에 아홉은 상대방이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조재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웨인 다이어 박사가 어떤 강연에서 비꼬듯 말했듯이, 이런 생각은  분명히, 너무도 터무니없는 것이다. 
"당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모두 내 앞에 데려  오라. 내가 그들을 카운슬러로 대하게 되면 당신은 훨씬 나아질 것이다!"
상대방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때때로 그러치  않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지만, 화를 내는 것은 바로 '나'이기 때문에  변화해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 역시 바로 '나 자신'이다. 
나는 지금 폭력적이거나 비정상적인 행동을 무조건 받아들이거나, 무시하거나, 혹은  옹호하라고 말하고 잇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예민해지기 쉬운 촉각을 누그러뜨리는 방법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상대방의 행동에서 그 동기의 순수함을  찾아보려고 노력하라. 자신이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짜증스런 행동을 하는 사람을 상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것은 상대의 행동과 거리를 유지하는 것, 즉 어떤 사람이  그러한 행동을 한 동기가 순수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 행동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것을 말한다. 
이 방법은 우리의 시각과 생각을 완전히  바꿔 놓는다. 이 사소한, 그러나 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생각의 변화는 자신을 짜증스럽게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간혹 나는 서둘러서 일을 처리하라고 몰아치는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한다. 그때마다 나는 정신없이 재촉하는 그들의 행동이 역겹고, 심지어는 모욕스럽기까지 하다. 
만약 내가 그들의 말투나 목소리의 음색, 급박하게 전하는  메시지 등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짜증이 나거나 화가 치밀어서 일을 진행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를 수도 있다. 이때 나는 그들에게 '죄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럴 때, 나는 내가  다급하게 일했던 때를 떠올린다. 그러면  나를 '못살게 구는' 그들의 행동이 나를 정말 못살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들의 행동에서 동기의 수수함을 찾아내게 되는 것이다. 
정말로 참을 수 없이 짜증스럽게 행동하는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다. 겉으로 나타난 그의 행동 아래, 저 깊은 곳에서는 타인의 연민을 갈구하는 절망에 빠진 한 사람이 있다. 
자, 그러니 이제부터는 누군가가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을  할 경우, 그의 행동에서 '동기의 순수함'을 발견하도록 노력해 보라. 
그 동기가 악의와는 거리가 먼, 순수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면, 이전에는 절망감을  주었던 똑같은 상황이나 행동이 더 이상 그렇게 절망스럽거나 짜증스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타인의 행동에 실망하거나 낙담하지 않게 되면, 훨씬 쉽게  인생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 

42. 옳고 그름보다는 친절을 택하라
앞에서 소개한  14번째 방법을 읽은 사람들은 '사려 깊은 친절'과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스런 상황들을 접하고 고심했을 것이다.
살다 보면 다른 누군가의 실수나 고쳐야 할 행동을 지적하고 개선 방향 등을 이야기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공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사적인 자리에서 개인적으로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충고해야만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이런 행동은 지적받은 상대를 기분 나쁘게 만들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과정에서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 역시 언짢은 기분이 들기 쉽다.
정신분석학적으로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타인을  내리누르고 그들의 잘못을 수정하거나, 자신이 얼마나 옳은지,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틀린지 보여 주고 싶어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이다.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해 내면  자신은 상대와 비교해 '옳은  사람'이 되며, 그로 인해 자존심을 만족시켜 기분이 나아질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게 언제였든지 자신이 누군가를 깍아 내린 후 느꼈던 감정을 잠시 되살려 보자. 어떤가? 이전보다 기분이 훨씬 더 나빠지지 않았는가?
인간이 지닌 따스한 마음과 연민의 감정은 누군가를 희생시켰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일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다행스럽게도 진실은 남의 희생을 즐기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다른 사람들의 가시를 높이고, 그들을 유쾌하게 만들며, 서로 기쁨을 나누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들로부터 '긍정적인 감정'이라는 선물을 얻을 수 있다. 
지금부터는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  설사 그들의 생각이나 행동이 상식에서 약간 벗어난 것일지라도, 그들을 비난하고픈 유혹에 저항하도록 하라. 그리고 스스로에게, " 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뭐지?"하고 자문해 보라. 
진정 원하는 것, 그것은 아마도 두 사람 모두를 기분 좋게 만드는, 평화로운 감정의  교류일 것이다. 
이럴 대 자신이 옳아야 한다는 유혹을 물리치고, 대신 상대를 배려하는 친절한 태도를 택하면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평화로운 감정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얼마 전 아주 유망하다고 하는 어떤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아내와 함께 의논했었다. 그때 나는 괜찮은 아이디어 하나를 제시했고, 내 아이디어의  장점을 자랑스레 늘어놓으며 으스댔다. 항상 배려 깊은 사람인 아내는 내가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내 의견에 동조해 주었다. 
그러나 그날 밤 늦게 갑자기, 나는 그 아이디어가 실은  아내가 전에 내게 이야기했던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맙소사!
나는 전화를 걸어 아내에게 사과했다. 이 일로 나는  아내가 자신의 5공로를 자랑하는 것보다 내가 기뻐하는 것을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내는 내가 행복해하는 모습에 자신도 즐거웠으며,  누구의 아이디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얘기했다. 그녀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여자인지 알 수 있지 않은가?  이 방법이 소극적이 되거나,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고수하지 않고 쉽게 포기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길 바란다. 
나는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자신이 옳다고 고집할 경우에는 지불해야 할 대가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 즉 내적인 평화를 희생해야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사려 깊은 친절을  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리고 이것을 실행하기에 가장 좋은 상대는  당신이 이제 막 말을 걸려고 하는 바로 그 사람이다. 

43 매일 세 명의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라.
작가 스테판 레빈은 이렇게 말했다. 
"만약 당신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1시간밖에 없고, 단 한 번의 전화 통화만을 할 수 있다면 누구에게 전화를 하며,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리고 어째서 망설이고 있는가?"  이 얼마나 우리의 어리석음을 일깨우는 메시지인가!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사람들은 아마도 자신이 영원히 살거나, '언젠가는'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얘기할 수 있으리라고 믿고 싶을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도 오래동안 단순히 '그때'가 되기를 기다리기만 한다. 
얄궂게도 돌아가신 할머니의 생신날에 이  방법에 대해 얘기하게 되었다.  오후 늦게라도 아버지와 함께 차를 타고 할머니 무덤을 찾아갈 생각이다.
할머니는 2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전 당신이  가족들 모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몹시 알리고 싶어하셨다. 그때의 할머니에게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는 것 같았다.  
우리 할머니의 이야기는, 자신이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기다리거나 미뤄 두었다가 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보여 주고 있다. '바로 지금'이야말로 당신이 그들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이 일을 어렵거나 번잡스럽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를 직접 만나 얘기할 수도 있고, 그저 간단히 전화로 얘기해도 괜찮다.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냥,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 주려고 전화했어요"라는 내용의 전화를 받아 보았는지 궁금하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가 그 말을 들은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는가?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그 말을 들은 사람에게 그보다 커다란 의미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면 놀랄 것이다. 
당신이라면 그런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듣고 싶은가? 한번  생각해 보라. 편지는 어떨까? 만약 너무 수줍어 그러한 전화를 할  수 없다면, 마음을 담은 편지를 쓰는  것도 썩 훌륭한 방법이다. 
어떤 식이든 그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알리는 일에 익숙해지고 나면, 그 일은 분명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삶의 한  부분이 된다. 그리고 그 결과, 어느새  사람들로부터 더 많은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44 자신의 가치를 내보이려고 애쓰지 말라.
겸손과 내적 평화는 나란히 존재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자신의 유능함을 증명하려는 욕망이 적은 사람일수록 얼굴에 평온함이 가득하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자 하는 욕심은 위험한 함정과 같다.  또한 계속해서 자신의 성취를 내보이며 자랑하고,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타인에게 확신시키려고 애쓰는 것은 마음을 피로하게 만든다. 
그리고 실제로는, 자기 자랑은 자신이 어떤 일을 성취하여 얻게 된 긍정적인 감정이나 자부심을 희석시킨다. 게다가,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상대방은  더욱더 그 사람을 피하고, 자랑을 늘어놓는 사람에 대해 등뒤에서 흉을 보고, 심지어는  분개하기조차 한다. 
현실은 역설적이다.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얻기 위해 애쓰지  않을수록 그들로부터 더 큰 동의를 얻을 수 있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필요가 없는 사람,  타인의 가치를 깍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 필요가 없는 사람, 다시 말해 조용한  내적 확신을 가진 사람에게 끌리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굳이 자신을 내세워 자랑할 필요가 없는 사람, 그리고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따뜻한 무엇인가를 타인과 공유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진정한 겸손을 기르는 방법은  이를 직접  실천해  보는 것이다. 이는  '조용하고 편안한  감정'이라는 결과물을 곧바로  얻을 수 있으므로  참으로 좋은  방법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자신을 자랑할 기회가 생기더라도 그 유혹에서 벗어나 보라. 
나는 이 방법에 대해 고객과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있다. 그때 그는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직장에서 승진을 하였고, 그 며칠 후 친구들과 만나게 되었다. 친구들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지만 그는 어떤 친구 대신에 승진이 된 것이었다. 
평소 그는 그 친구에게 약간의 경쟁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발탁되자 다른 친구들에게 그 친구가 승진에서 누락되었다는 사실을 몹시 밝히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에 대해 뭔가 말하려는 순간, 자신의 내부에서 어떤 작은 목소리가 "그만둬, 그렇게 하지마!"하고 속삭이는 것을 들었다. 
그는 이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계속해서 친구들과  다른 얘기들을 나누면서 선을 넘지 않았으며, 자신을 자랑하지 않았다. 다른 친구가 왜 승진을 못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입밖에 내지 않았다. 
그는 그때처럼 마음이 차분해지고, 자신이 자랑스럽게 여겨진 적이  없다는 말을 내게 했다. 그는 자랑을 하지 않고도 자신의 성공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후, 그의 친구들은 결국 그의 승진과 승진을 둘러싼 일들을 알게 되었고, 그의  현명한 판단과 겸손에 무척 감동했다고 한다. 그는 겸손을 실천함으로써  더욱 긍정적인 효과를 얻었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45 누구 차례인지 눈치 보지 말고 먼저 쓰레기를 치워라.
주변 정리가 제대로 되지 못한 상태에서 긴장을 푼 채, 문득  일상 생활에서 매일 해야 하는 많고  많은 자잘한 일들과 책임들을 생각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짜증이 나기 쉽다. 
나는 언젠가(기분이 몹시 나쁜 상태였다), 내가 하루에 평균 1천 가지가 넘는 일들을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만약 그때 내가 기분이  좋았다면, 그 숫자는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책임지고 돌봐야 하는 일들 뿐 아니라, 무엇이든 자신이 해야만 하는 까다롭고 귀찮은 모든 일들을 너무나 쉽게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배우자나 자기 주변 사람들이 매일 해야만 하는 힘들고  끝이 없는 일들에 대해서는 너무도 쉽게 잊어버린다. 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편리한가!  자신이 하는 일이 몇 가지나 되는지 매일 일일이 세고 있는 사람은 누구든 결코 만족스럽게 살 수  없다. 일 하나 하나를 세는 습관은 누가 더 쉬운 일을  하고 누가 더 많은 일을 하는지를  따지는 것으로 이뤄지며, 결국 스스로를 괴롭히고 끝내는  인간 관계에 절망감을 느끼게까지 만든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야말로 '사소한 것'의 전형이다. 
누가 쓰레기를 치울 차례인지를 놓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초조해  하지 말고, 그냥 당신이 치워 버려라. 그러고는 나는 나의 몫을 다했으며, 나로 인해 식구들 중 누군가가 조금  편해졌을 것이라고 너그럽게 생각하라. 이런  작은 여유는 인생에 커다란  기쁨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자신의 호의가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걱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사소한 친절'보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것과 비슷하다. 
대부분의 경우,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배우자나 다른  식구들보다 몇 번 더 쓰레기를 치웠다는 사실 또한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다. 쓰레기를 치우는 일과 같은 사소한 것들에 대해 초연해질수록, 좀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정말 중요한 다른 것들에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46 항상 바람막이를 치는 습관을 버려라.
사람들은 자신의 '평화로운 삶'을  위해, 항상 방어벽(바람막이)을   만들려고 한다. 나와 절친한 사이인 조지 프랜스키 박사는 이것이 신경증적이면서 결코 달갑지 않은 인간의 한 성향을 상징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겨울을 대비해 집의 갈라진 틈,  새는 부분, 불안한 곳을  조사해 바람막이를 설치하듯이, 사람들은 자신의 인간 관계와 인생에까지 바람막이를 설치한다. 
기본적으로, 바람막이를 하기 위해서는 고치고 수리해야  할 부분이 어디인지 조심스럽게 조사해야 한다. 이것을 인생에 적용시키면,  '바람막이적 태도'란 일상 생활의  큼과 결함을 찾아내서 고치거나, 최소한 타인의 잘못을 지적하는 행동을 의미하게 된다. 
이러한 특성은 사람들을 타인으로부터 소외시킬 뿐 아니라 바람막이를 하려고 시도한  사람 역시 언짢은 기분이 들게 만든다. 게다가 이것은 모든 인간 관계와 일들의 잘못된  점과, 자신이 하기 꺼려하는 일이 무엇인지만을 곰곰이 생각하도록 부추긴다. 
따라서 바람막이는 인간 관계와 삶에 대해서 감사하기보다는 조금의 결함도 없는  완벽한 인생에만 집착하고 이를 위해 애쓰도록 만들 뿐이다. 인생은  그대로도 충분히 훌륭한데 말이다. 
바람막이 자체는 매우 유용한 것이지만 인간 관계의 바람막이는 사람들을 다음과 같이 행동하게 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어떤 사람을 만났다고 하자. 당신은 그의 모든 점이 좋게 느껴진다.  외모, 성격, 지적 능력, 유머 감각, 혹은 몇 가지 특징들이 혼합된 그의 모습에  더없이 이끌린다. 
처음에는 그 사람과의 차이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것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어떤 면에서는 그가 자신과 무척 다르기  때문에 그에게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그는  가치관, 선호도, 취향, 삶의 기준 등에서 당신과 매우 다르다. 
하지만 얼마 후 당신은 새로운 파트너(혹은 친구, 선생 등)에게 조금만 노력하면 고칠 수도 있을 것 같은 좋지 않은 버릇이 있다는 것을 조금씩 눈치  채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얘기를 상대에게 꺼낸다. 
"당신은 종종 약속 시간을 어기는군요."
"당신은 책을 그다지 읽지 않는군요." 등등.
중요한 점은, 어김없이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이 싫어하는 것이나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점을 하나둘씩 찾아낸다는 것이다. 
간혹 상대에 대해 내리는 평가나 건설적인 비판, 또는 도움이  되는 충고 등이 그리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수년 동안 수백 쌍의 커플들을 상대하면서, 배우자로부터 '바람막이적 태도'를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다. 
아무런 악의가 없는 것이라 해도 남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태도 역시, 때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생을 보는 하나의 관점으로 굳어질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바람막이적 태도를 취할 경우, 우리의 말은  그들에게 어떤 건설적인 충고도 될 수 없다. 그런 태도는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가 비판만을 일삼는 사람이라고 여기도록 만들어 버린다. 
결국 바람막이를 하려는 성향이 있든 없든 간에 중요한 것은, 그것을 나쁜 생각으로 치부하고 없애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이를 습관화하려고 노력하고, 이것이 머릿속에 자리잡히고 나면, 스스로를 억제하고 '입을 다물 수'있게 된다.  배우자나 친구에게 바람막이를  치려는 욕구를  떨쳐 버릴수록 인생이 훨씬 더 멋지게 보일 것이다. 

47 매일 잠시 동안 사랑하는 누군가를 생각하라.
이 책 초반부에서, 나는 매일 몇 분 동안을 고마운 사람을 생각하며 보내라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감사의 마음과 내적인 평화를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훌륭한 방법은, 매일 잠깐만이라도 사랑하는 누군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하루에 사과를 하나씩 먹으면 의사를 찾아갈 일이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 사랑의 경우에는, "매일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분노를 없앨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미워하는 사람들을 떠올릴 때마다 기분이 나빠지고 우울해지는 것을 깨달은 후부터, 의식적으로 사랑을 보낼 사람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짜증스럽거나 언짢은 기억에 생각이 미치면, 내 머릿속은 금방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생각들로 가득 차게 된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 오늘 하루를 사랑하는 누군가를 생각하며 보내야겠다고 의식적으로라도 마음먹으면, 나의 관심과 주의는 다시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하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친절하게 대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에는 하루 종일 즐거운 마음으로 기분 좋게 지낼 수 있다. 
그렇다고 내가 이제 더 이상 화를 내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연습을 시작한 이래로, 그전에 비해 화내는 일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나는 이 연습을 통해 분노의 감정에 휘말리지 않도록 자신을 조절하는 기술이 많이 향상되었다고 확신한다. 
나는 매일 아침 잠에서 개자마자 눈을 감고 몇 차례  심호흡을 한다. 그런 다음 스스로에게, "오늘은 누구에게 사랑을 보낼까"하고 묻는다. 그러면  그 즉시 누군가(가족, 친구, 직장동료, 이웃, 과거에 알고 지내던 사람, 심지어는 길거리에서 본 낯선 사람)의 영상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을 '사랑'쪽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사랑을 보낼 사람이 정해지면, 나는 그들이 사랑으로  가득찬 하루를 보내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당신이 사랑과 친절로 충만한 멋진 하루를 보내기를 바래요"와 같은 말을 자그마하게 중얼거린다. 
몇 초밖에 걸리지 않는 이 일을 끝내면, 나는 하루를  시작할 마음의 준비가 완벽하게 다 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신비하게도 이 아침의 몇 초 동안  느꼈던 평화로움이 여러 시간 동안 나와 함께 한다. 
만약 이 쉽고 간단한 일을 하고 나면, 그 사람의  하루가 좀더 평화로워질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48 인류학자가 되라
인류학은 인간과 인간의 기원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나는 인류학을 편의상 '판단을  유보한 채,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관심을 갖는 것'으로 새롭게 정의하고자 한다. 
이 방법은 인내력을 기르고 타인에 대한 연민을 키우기 위한 것이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이 행동하는 방식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들의 행동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을 그만두고 대신 사랑과 친절을 베푸는 것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반응 방식이나 사고 방식에 대하여 진정으로 호기심을  갖고 이해하게 되면, 그의 행동에 대해 쉽게 화를 내거나 분노를 느끼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인류학자가 되는 것'은 상대방의 행동 때문에 기분이  상하는 것을 막는 하나의 방법이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이상한 행동을 할  때, "그 사람이 그런 짓을  하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어"하고 평소처럼 반응하지 말고, "그래, 저건 그 사람이 사물을  대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임에 틀림없어. 무척 흥미롭군."하고 말해 보라.
이 방법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진실해야 한다. "흥미를 갖는 것'과 마음속으로 자신의 방식이 더 낫다고 믿는 오만함 사이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최근에 나는 여섯 살짜리 딸아이와 함께 집 근처의 쇼핑센터에  간 적이 있다. 그때 오렌지색으로 염색한 머리를 뾰족하게 세우고 온몸에 문신을 한 한 무리의 펑크족이 우리 옆을 지나갔다.  
그 모습을 본 딸아이는 내게, "아빠, 왜 저 사람들은 저렇게 옷을 입었죠? 무대 의상을 입은 건가요?"하고 물었다. 
몇 년 전이었다면 나는 그들의 방식은 잘못됐고 나의 보수적인 방식이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 젊은이들의 옷차림에 기분이 상했을 것이다. 그리고 도덕적 관점에서 비난  어린 어조로 딸아이에게 몇 마디 설명하면서 나의 관점을 전달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학자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 이후로, 나의 관점은 많이 변했다. 그로 인해 나는 훨씬 유연한 생각을 지닌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나는 딸에게, "확실히 모르겠는데. 하지만 사람들이 모두가 무척 다르다는  사실이 흥미롭지 않니?"하고 말했다. 그러자 딸아이는 "그래요. 하지만 저는 제 머리 스타일이 훨씬 더 좋아요"하고 대답했다. 
누군가의 행동에 관심의 초점을 맞추느라 힘을 낭비하는 대신,  우리는 편견을 버리고 계속해서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관점에 흥미를 갖는다는 것은 무조건 그것을  지지한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앞으로도 펑크족 스타일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드런 스타일을 권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에 대해 이러저러하다고 판단을 내리는 것 또한 옳지 않으므로 그것도 삼갈 것이다. 
멋있는 인생을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타인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데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소모되며, 이것은 거의 예외 없이 자신이 되고 싶어하는 모습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49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지금까지 우리는 타인의 행동 방식에 관심을 갖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잠시 몇 가지 삶의 원칙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외국을 여행했거나 영화를 통해서라도 외국의 풍물을 접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라마다 다른 커다란 문화적 차이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각각의 현실 원칙, 즉 환경에 따라 변화되는 생활 방식을 들여다보면, 문화의 이질성만큼이나 각 개인간의 차이도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서 우리와 똑같은 생각이나 행동을 기대할 수 없는 것처럼(만약 그들이 그렇게 행동한다면 우리는 실망할 것이다),  현실 원칙은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개인간의 차이를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단순히 나와의 차이점을 관대하게 보아 넘기는 것이  아니라, 그가 그런 방식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 원칙을 수용한 한 사람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는 것을 보았다. 
어쨌든, 이 방법은 인간 관계의 갈등을  없애는 데 놀라울 정도로 효과적이다. 어떤  것을 색다른 관점에서 보고자 할 때, 그리고 타인이 자신과는 다르게 행동하고 동일한 상황에 대해서 자신과 다르게 행동하고 동일한 상황에 대해서 자신과 다르게 반응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때, 자신과 타인에 대한 연민은 극적일 만큼 커진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이와 다른 방식을 기대하는 순간부터 갈등의 요소가 잉태되는 것이다. 
나는 우리들 모두가 서로 무척 다르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존중하기를 바란다. 그럴 때야 비로소 타인에 대한 사랑과 자신의  개성을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이 가슴 가득  퍼지기 때문이다. 

50 남을 돕는, 당신만의 독특한 방법을 개발하라.
인생이 진정 평화롭고 따뜻한  호의로 가득 차기를 바란다면, 누구에게든 친절을 베풀고 어디서든 의로운 일을 하는 것이 좋다. 또한 이런 행동은  남을 돕는다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나는 나만의 독특한 방법을 개발하여 남을 돕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우리 가족은 샌프란시스코 만 근처의 시골에 살고 있는데,  눈길이 닿는 곳마다 아름다운 풍경과 자연의 모습이 펼쳐진다. 한데 이  아름다운 풍경에 어울리지 않는 한 가지  예외는, 시골길을 지나가는 차에서 사람들이 차창 밖으로 내던지는 쓰레기들이다. 
시골에 살면서 불편한 것 중 하나는 쓰레기 수거 같은 공공 서비스가 도시보다 편리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집 주변의 쓰레기들을 줍는 일은 내가  두 딸과 함께 규칙적으로 행하는 일과 중에 하나가 되어 버렸다. 우리는 이 일에 너무나 습관이 되어 있다. 
심지어 내 두 딸은 가끔 신바람을 내며, "저기 쓰레기가 있어요. 아빠,  차를 세워요!"하고 말하곤 한다. 나도 시간이 있을 때면 차를 세우고 쓰레기를 줍는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우리는 정말로 이 일을 즐긴다. 우리는 공원에서, 보도에서, 사실상 모든 곳에서  쓰레기를 줍는다. 
한 번은 낯선 사람이 우리가 사는  곳 근처에서 쓰레기를 줍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는 내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이 쓰레기를 줍는 것을 봤어요. 참 좋은 생각 같더군요."  쓰레기  줍기는 다른 사람들을 돕는 수많은 방법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 줄 수도, 요양원의 외로운 노인들을 방문할 수도, 이웃집 진입로의  눈을 치워 주는 일을 할 수도 있다. 
별로 힘들지 않으면서도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보라. 이것은 정말 신나는 일이다. 또한 개인적으로도 만족감을 얻을 수 있으며, 자녀들에게도 훌륭한 모범이 될 수 있다. 이는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행동이다. 

51  매일 한 번 이상 남을 칭찬하라
누군가에게 자신이 얼마나 그를 좋아하고, 존경하고, 고마워하는지 말해 본 적이  있는가? 
혹은 그런 생각을 하며 보낸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 아마도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언제 칭찬을 들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아요."  "칭찬이오? 들은 적이 거의 없어요."
내가 사람들에게 타인으로부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칭찬을 들은 적이 있냐고 물을  때마다, 사람들이 들려주는 대답이 대개 이렇다. 때로는 슬프게도, "들은 적이 전혀 없어요"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이 자신들이 느끼는 긍정적인 감정을 상대방에게 얘기하지 않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변명한다. 
"굳이 그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어요. 그들은 이미 내 마음을 다 알고 있는걸요."
"나는 그 사람의 능력을 높이 사요. 그렇지만 칭찬의 말을 직접  하기가 쑥스러워요."  하지만 이런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의 진정한  찬사나 칭찬을 듣는 것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는, 십중팔구 "그럼요. 좋죠"하고 대답한다. 
상대방에게 자주 칭찬의 말을 건네지 않는 이유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쑥스러워서, 상대가 이미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어서, 아니면 칭찬하는 습관이 몸에 배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아무튼 그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바로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자신의 미온적인 태도를 수정할 때이다.   누군가를 향해 '당신을 좋아하고,  존경하고, 고마워한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친절을 베푸는 행위'이다. 그것은  대단히 쉬운 일이다. 그리고 일단 이에 익숙해지면, 좋은 결과가 뒤따른다. 
사람들은 남들이 자신을 인정해 주기를 바란다.  특히 자신의 부모, 배우자, 자녀,  그리고 친구와의 관계에서 인정받기를 간절히 원한다.  하지만 낯선 사람으로부터 받는 칭찬  역시, 그것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면 기분 좋은 일이다. 
상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려주고, 칭찬하는 사람의 마음 또한 기쁨이 넘치게 된다.  그것은 사랑과 친절의 제스처이다. 그것은  칭찬하는 사람의 생각이 누군가를  향해 올바르게 열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렇게 긍정적인 생각을  계속하게 되면 마음이 한없이 평화로워진다. 
일전에 나는 어느 야채 가게의 점원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인내력을 발휘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뚜렷한 이유도 없이 화가 난 한 고객으로부터 야단을 맞고 있었다. 그는  부당한 처사에 맞서거나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고 침착하게 행동하였다. 그러자 상대는 차츰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안정을 되찾아 갔다. 
마침내 내가 야채 값을 지불할 차례가 되었고, 나는 그 점원에게 "당신이 그 고객을 다루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하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그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감사합니다, 선생님. 제게 칭찬을 해준 분은 선생님이 처음이세요"하고 말했다. 그에게 그런 얘기를 해주는 데는 채 2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뿐 아니라 내게 있어서도 그날 중 최고로 멋진 순간이었다. 

52 자신의 한계를 먼저 그어 놓으면, 결국 그렇게 되고 만다.
"안 돼 나는 할 수 없어."  "나는 정말 어쩔 수가 없다니까. 뭐든지 항상 되는 일이 없었어."  "나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거야."
많은 사람들이 이같이 부정적이고 자기 비하적인 말을 너무도  쉽게, 마치 습관처럼 내뱉는다. 어처구니없게도 자신의 한계가 어쩔 수 없는 일임을  이야기하는 데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사람의 마음은 강력한 도구이다. 어떤 일이 사실이거나 자신의  능력 밖의 것이라고 일단 확신하게 되면, 그 후에는 자신 스스로가 만든 장애물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다. 아니, 거의 불가능해진다. 
가령, 누군가 항상 스스로에게 "나는 글을 정말 못 써"라는 말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자신의 생각을 증명할 수 있는 사례들을 모으기 시작할  것이다. 고등학교 때 썼던 형편없는 에세이를 기억해 내거나, 마지막으로 편지를 썼을 때 느꼈던 어색한 감정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고는 글쓰기를 시도하는 것조차 두렵게 만드는 자신의 한계에 대해서만 생각할  것이다. 자기가 다른 뭔가가 되기 위한 첫걸음은, 자신에 대해 가장 혹독한 비평가인 자기  자신을 침묵시키는 것이다. 
언젠가 한 고객이 내게 "저는 결코 좋은 인간 관계를  가질 수가 없을 거예요. 저는 항상 관계를 망쳐 버리거든요."하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그녀의 말이 옳았다. 그녀는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파트너가 자신을 떠나야만 할 이유를 찾곤 했다. 
예를 들어 데이트 시간에 늦을 때 그녀는 상대방에게, "저는 약속 시간에 매번 늦어요"하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에는, "저는 논쟁을 자주 벌이는 편이에요"하고 말했다.   
오래지 않아, 그녀는 자신이 그의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상대에게 심어 주었다. 그런 다음 그녀는 "이것봐, 항상  이런 식이야. 나는 누구와도 결코 좋은 관계가 될 수 없어"하고 결론지었다. 
그녀는 일이 '잘못되기를 기대하는'나쁜  습관을 버려야 했다.  자신의 한계를 되풀이해서 얘기하는 자신을 '통제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항상  이런  식이야"라고 말하려는 순간, 
"이건 터무니 없는 일이야. 나는 항상 이렇지는 않아"하고 말해야 했다.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이 단지 버려야 할, 부정적인 습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이제 그녀는 잘해 내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넑은 습관을 되풀이하려고 할 때마다 스스로를 비웃으며 무시해 버린다.
나 역시 나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일 때조차도 자신을 지나치게 비하하거나 실망시키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당신 역시 나처럼 될 수 있다.

53 모든 것에는 신의 지문이 찍혀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유태교 랍비인 해롤드 쿠쉬너는 하나남이 창조한 사물은 모두 신성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다. 
인간으로서 우리의 관제는 부정하게 보이는 것들 속에서 신성함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이런 과정을 거친 후, 영혼을 풍요롭게 만드는 법을 배우게 된다고 주장한다. 
아름다운 해돋이, 눈 덮인 산, 아이의 건강한 미소, 눈부신 모래 사장에 부딪히는 흰 파도 등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의 아름다움을 찾기란 아주 쉽다. 
하지만 인생의 뼈아픈 교훈, 가족의 비극, 삶을 향한  치열한 투쟁과 같이, 보기에 따라서 추할 수도 있는 상황 속에서 이생의 신성함과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은 어떠한가? 이런 것들 속에서도 삶의 신성함과 아름다움을 발견해 낼 수는 없을까?  우리의 삶이 일상적인 것들 속에서 신성함을 찾고자 하는 욕망으로 채워질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먼저 평화로운 감정이 자라난다. 그리고 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삶의  긍정적인 측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모든 것에 신의 지문이 찍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특별한 경험이 된다. 다루기 힘든 사람을 상대하거나 돈을 지불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할 때, 이 영적인 사실을 떠올려 보라. 세상을 보는 눈이 한층 깊고 넓어질 것이다. 
당신이 상대하는 사람 역시 하나님이 창조하셨으며, 힘들게 살아가는 당신 또한 축복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세상 모든 것에 하나님의 지문이  찍혀 있다는 사실을 마음속 깊이  기억해 두도록 하라. 
우리가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수 없다고 해서 실제로 아름다움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섬세하고 폭넓은  시각을 갖지 못했다는 뜻이다. 

54 비판하고 싶은 충동을 떨쳐 버려라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거나 비판하는 행동, 그것은 정작 그 사람에게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단지 그것은 비판을 하고  싶어 입이 간질거리는 우리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 지나지 않는다. 
어느 날 어떤 모임에 갔는데 그곳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또는 다른 사람들을 비방하는 소리를 쏟아 냈다고 하자. 그리고 모임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각자 집에 돌아온 후 그 모든 말들이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얼마나 소용이 있는지에 생각한다면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될까? 아마도 내 생각과 마찬가지로 아무 이득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비판의 말은 어느 누구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비판의 결과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비판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할뿐더러 사람들 사이에 놓인 분노와 불신의 벽을 더욱 높아지게 만든다. 
비판받기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가 방어적으로 되거나 위축되는 것이다. 자신이 공격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두려움이나 수치심으로 물러서고 말거나, 분노에 휩싸여 격렬하게 반격하거나 폭언을 하게 된다. 
누군가를 비판하고서 그들로부터 "제 결함을 지적해 줘서 정말  고마워요"라는 대답을 들은 적이 과연 몇 번이나 있는가?
비판은 욕설만큼이나 좋지 않은 습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비판에 익숙해지면, 우리의 일상은 온통 비판과 혹평으로 가득 하게 된다. 비판은 우리를 바쁘게 만들며, 얘깃거리를 제공한다. 
누군가에게 혹평을 가한 후 실제로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기억을 자세히 떠올려 본다면, 마치 자신이 공격받은 사람인 양 의기소침해지고  부끄러워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누구를 비판하는 것은 결국 세상과 자신을 향해 "나는  비판받아야 마땅해요"하고 얘기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결코 자랑스럽게 인정할 만한 성질의 일이 아니다. 
그 해결책은 누군가를 비판하려는 마음이  드는 순간, 자신을 조절하는 것뿐이다.  자신이 얼마나 자주 남에게 비난 섞인 말을 퍼붓고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지 헤아려 보라.
나는 일종의 게임을 하듯 이 문제를 해결한다. 지금도 비판적이 되거나 비판하고 싶은 충동이 생길 때마다 나 자신에게 "또다시 시작이군"이라는 말을 하려고  애쓴다. 다행히도, 나는 대체적으로 비판을 관용과 존중으로 변화시키려는 게임을 잘하는 편이다. 

55 가장 고집스러운 면 다섯 가지를 적어 보라
이 방법을 처음 시도했을 즈음, 나는 너무도 완고해서 내가 완고하지 않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좀더 유연한 사람이 되면서,  내가 어떤 상황에서 고집불통이 되는지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에요."
"제 방식이야말로 유일한 해결책이에요."
"남자들은 다른 사람의 얘기에 귀를 잘 기울이지 않아요."
"여자들은 돈을 너무 헤프게 써요."
"아이를 돌보는 일은 몹시 힘든 일이에요."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돈 외에는 어떤 것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이러한 고집스런 주장들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문제는 이것이  어떤 구체적인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어느 한 가지 면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집착한 너머지 생긴 고정 관념일  수 있다는 것이다. 
유연한 사람이 되고, 고집을 좀 덜 부린다고 해서 나약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자신을 보다 강하게 만들어 준다. 
내가 상담했던 한 남성은 너무도 완고한 나머지 아내가 돈을 너무 헤프게 쓴다고 역겨워할 정도였다. 하지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나서, 자신이 잘못된 생각에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것을 창피스러워했으며, 끝내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아내가 쓰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자신이 마구 써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융통성 없는 성격 때문에 객관성이 흐려졌던 것이다. 
그가 좀더 현명하고 유연한 남편으로 변화되자, 결혼 생활은 놀랄 만큼 좋아졌다.  아내가 저지르지도 않은 일을 놓고 의심하며 분개하기보다는 오히려 아내의 절약하는 태도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내 역시 새로워진 남편의 모습에 고마움을 느끼며 전보다 그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56 재미 삼아 자신에 대한 비판에 동의해 보라.
사람들은 전혀 대수롭지 않은 남의  말 한마디에도 쉽게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곤 한다. 
마치 대단히 엄청난 상황이 자신에게 닥쳐오기라도 한 것처럼  굴면서, 전투라도 벌이고 있는 양 자신을 방어하려 든다. 
하지만 비판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행동과 사고 방식을  관찰한 결과에 지나지 않으며, 이것이 우리가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 
다른 사람의 비판에 대해 과민 반응을 보이며, 방어적으로 대응할 때 오히려 그것은 우리에게 상처를 남긴다. 우리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격적으로나 다른 면에서 공격받았다는 생각이 들면, 자시를 변호하거나 상대를 비판해야만 한다고 느낀다. 마음속을 비판적인 사람에 대한 분노와 그들이 자신에게 가한 상처와 똑같은 아픔으로 되돌려 주겠다는 생각들로만 가득 채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반응들은 정신적인 피로감을 몰고 올뿐인데도 말이다. 
그냥 담담하게 자신을 향한 비난에 동의하는 것은 어떨까? 모욕을 당하고도 잠자코 있거나,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모두 받아들이고 자존심을 굽히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웃음 띤 얼굴로 비난에 맞장구치면서 그 상황의 긴장감을 완화시키는 동시에 상대의 표현 욕구를 만족시키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져 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특히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게 해준다. 
내가 나를 향한 비난에 의식적으로 동의한 최초의 순간은,  오래 전 아내가 내게 "당신은 가끔 말이 너무 많아요" 라고 말했을 때였다. 순간적으로  나는 아내의 말에 상처를 받았지만, "당신 말이 맞아. 어떤 때는 내가 너무 말이 많지?" 하고 대답했다. 
그 순간 나는 내 인생을 바꿔 놓은 뭔가를 발견했다. 아내의 말에 동의하고 나자,  비로소 나는 그녀가 좋은 지적을 해줬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떤 때는 내가 잔소리를 너무 많이 했던 것이다. 게다가 나의 부드러운 대응은 아내가 편안한 기분이 들도록 만들었다. 몇 분 후 아내는 "당신은 정말 얘기하기 편한 사람이에요"하고 말했다. 만약 내가 아내의 지적에 즉시 화를 내고 말았다면 그런 말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 이후로, 나는 비판에 대해 적대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결코 그것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실제로 비판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경우, 오히려 상대는 자신이 내린 평가가 정확하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때로 비판에 동의하는 것이, 그것이 지불해야 하는 대가보다 훨씬 큰 가치가 있다. 

57 타인의 생각에서 티끌만한 진실이라도 찾아보려고 노력하라.
타인을 행복하게 해주기를 좋아하거나, 무엇이든 배우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제안이 반갑게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사랑이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우기는 반면에, 다름 사람과 의견을 나누거나 그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데 인색하다. 
많은 사람들이 저지르는 크나큰 잘못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의 견해를 자신의 견해와 비교하는 것이다. 게다가 다른 사람의 의견이 자신의 믿음과 일치하지  않을 때는 말도 안 된다고 일축해 버리거나 비난을 가한다. 
그러나 독선적으로 행동하면 할수록 상대는 점점 위축되어 버리고, 결국 우리는 그에게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 
모든 사람의 생각에는 그 나름의 장점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잘못된 점보다는 장점을 발견하려고 했을 때, 이것이 더욱 잘 보인다. 다음 번에라도 누가 자기 생각을 얘기한다면, 그의 의견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거나 비판하기보다는 그의 말속에 담겨진 진실을 찾아내려고 노력해 보라. 
어떤 사람 혹은 그의 견해에 대해 성급히 판단을 내리는 것은, 그에 대하여 알 기회를 놓쳐 버리게 만들뿐만 아니라, '판결'내리기에 급급한 자신의  욕구만을 드러내는 행동일 뿐이다. 
나 역시 간혹 타인의 관점을 비판하려고 나서는 나 자신을  억제해야 할 때가 있지만, 이전에 비해서는 그 횟수가 훨씬 줄었다. 내가 변한 것이라곤  나와 다른 의견 속에서 티끌만한 작은 진실이라도 찾아내고자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것뿐이다. 
이 간단한 방법을 당장 시도해 보라. 멋진 일이 벌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우선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진심으로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상대는  당신의 포용력과 배려하는 힘에 끌리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인데, 당신 자신에 대해 기분이 한결 좋아질  것이다. 

58 유리잔을 이미 깨진 것이라고 상상해 보라.
이것은 내가 20여 년 전에 깨달은 부처의 가르침 중하나이다. 이 가르침은 내가 포용적인 인간이라는 목표를 향해 계속해서 수양을 쌓아 가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으며,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해주었다. 
이 가르침의 핵심은 모든 생명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모든 것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나무는 씨앗으로 시작해 결국에는 흙으로 돌아간다. 어떤 바위든지 간에 처음에는 일정한 형태를 갖추었다가 결국에는 먼지로 사라지게 된다. 세상살이도 이와 마찬가지다. 자동차, 기계, 옷 등 모든 문명의 이기들이 새롭게 만들어졌다가 끝내는 닳고 해진다. 
이것은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우리의 육체 또한 태어나서 언젠가는 죽게 된다. 아무리 끼도 애지중지하던 유리잔도 언젠가는 결국 깨지고 말 것이다. 
이 가르침에는 평화롭게 살아가는 지혜가 숨어 있다. 무엇이 깨지게 될 것을 예상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실제로 일이 벌어져도  지나치게 놀라거나 실망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에서 무언가가 파괴되거나 사라져 버렸을 때, 온몸이 굳어져 버리거나 슬픔에 빠져 허우적대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금 바로 자신 앞에 놓인 시간에 대해 감사한다. 가령, 물잔과 같은 단순한 사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물잔을 꺼내라. 그리고 잠시 그것을 바라보며 물잔의 아름다움과 그  물잔이 자신에게 특별히 의미하는 바를  생각하라. 
그런 다음 그 물잔이 이미  깨져서 바닥에 조각조각 흩어져 있다고  상상해 보라. 그리고 머지않아 이 세상 모든 것이 해체되어 본래의 형태로 돌아가게 된다는 진리를 가슴속에 새겨 두도록 하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물잔이나 그 밖의 어떤 물건이 깨지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이 철학이 단지  삶에 대해 수동적 내지는 무감각하게  되라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평화를 느끼라는 것이다. 
실제로 물잔이 깨지더라도, 이 철학은 이성을 잃지  않도록 도와준다. "이런 맙소사!"하고 비명을 내지르는 대신 "저런, 깨져 버렸군"하고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인생을 새롭게 변화시켜  준다. 마음의 안정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줄 뿐 아니라,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삶의 가치가 소중하게 느껴질 것이다. 

59 어디에 가건 지금 있는 그곳이 바로 자신의 자리이다.
이것은 욘 카밧진이 쓴 책의 제목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우리가 어디에 가건 그곳에 자신을 데리고 가게 된다!
이 말에는 현재의 위치가 아닌,  지금과는 다른 상황에 처해 있기를  바라고 꿈꾸는 것을 그만두라는 가르침이 담겨 있다. 
사람들에게는 지금과 다른 상황, 예를 들어 휴가중이거나, 다른 파트너와 함께 있거나, 다른 직장, 다른 집에 있다면 지금보다 만족스러울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걸핏하면 짜증을 내고 귀찮아하거나, 오랫동안 화를 내고 작은 일에도 쉽게 좌절을  하는, 자기 파괴적인 습관을 가진 사람 혹은 항상 뭔가 다른 것을 바라는 사람은, 어디에 가건 상황이 변하든간에 자신을 괴롭히는 일들이 여전히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반대로, 짜증을 내거나 무엇이든 귀찮아하는 일이 드문 행복한 사람은,  장소가 바뀌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더라도 외부의 부정적인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한번은 누군가 내게, "캘리포니아에 사는 사람들은 어때요?"하고 물어 온 적이 잇다. 나는 "당신이 사는 곳의 사람들은 어때요?"하고 그에게 되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기적이고 탐욕스럽죠"하고 대답했다. 나는 그에게, 만약에 그가 캘리포니아에 온다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 역시 이기적이고 탐욕스럽다고 생각할 거라고 말해 주었다. 
자신이 가고 싶은 곳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현재 자신이 있는 곳,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좀 더 평화로워지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데 관심을  집중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것만으로도 당장 평화를 느끼기 시작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이 방법을 터득하고 나면 이사를 하거나, 새로운 일을 시도하거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자기 자신과 내적 평화를 함께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어디에 가건   지금 있는 그곳이 바로 자신의 자리이다'라는  말은 인생을 살면서 점점 더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진리이다. 

60 말하기 전에 숨을 들이마셔라
이 단순한 방법은, 이것을 시도한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놀라운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즉시 나타난 결과를 말하자면 인내력의 증가와 넓어진 시야이며, 부수적인 효과는 타인으로부터 감사와 존경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방법 자체는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다. 대화 중에 상대방이  말을 마칠 때 잠시 가만히 있든가 숨을 들이쉬는 것, 그뿐이다. 더 이상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과의 대화 간격이 영원처럼 길게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몇 초, 몇 분의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곧 호흡의 힘과 아름다움에 익숙해지고, 이것의 진가를 인정하게 될 것이다. 
잠깐 동안의 호흡은 만나는 모든 사람과의 사이를 더욱 가깝게  해줄 뿐 아니라, 그들 마음속에 당신에 대한 존경과 신뢰의 감정이 싹트게 만들어 준다. 
누군가의 얘기를 경청해 주는 일은 그  사람에게는 아주 드물고, 값진 선물 중  하나이다. 
이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필요한 건 의지와 연습뿐이다. 
주위에서 벌어지는 대화를 유심히 관찰해 보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곤 단순히 말할 차례를 기다리는 게 전부이다. 사람들은 대개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점을 표현할 기회를 기다린다. 그래서 때로는 은근히  상대방이 말을 마치도록 강요하거나, "예, 예" 혹은  "알아요" 하고 재빨리 대꾸함으로써  대화의 주도권을 움켜쥐려고 한다. 
내 눈에는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는 광경이 대화 자체를 즐기거나 그것으로부터 뭔가를 배우려고 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마치 서로 치고 받는 권투나 탁구 시합처럼 보인다. 
서로를 몰아붙이는 이런 식의 대화는 상대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상대의 관점을 비판하거나 '오버'하게 만들고, 오해의 불씨를 키운다. 그리고 서로가  불손한 동기를 갖고 있다고 의심하거나, 편견을 갖게 만든다. 
이렇게 되고 나면 서로를 향해 자주  짜증을 내고, 귀찮아하며, 안달하게 되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상대의  얘기를 경청하는 기술이라고는 거의  없는 사람들에게 친구가 있다는 것이 기적처럼 보일 때도 있다.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얘기할 차례를 기다리며 살아왔다. 이런  면에서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면, 대화하는 상대의 반응이 훨씬 부드러워지면서 놀란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보거나,  자신 역시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어쩌면 상대방은 난생 처음으로 당신에게서 자신의 얘기에 귀기울여 주는 사람도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대화를 하는 두 사람이 훨씬 더 차분하게, 덜 서두르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리라는 점만은 확실한 사실이다. 
얘기할 차례를 갖지 못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할 필요는 전혀  없다. 오히려 차례를 차분하게 기다렸다가 얘기하는 것이 훨씬 효과가 크다. 왜냐하면 당신이 보여 줬던 존중과 인내력에 감동받은 상대방이 똑같은 방법으로 보답을 할 테니까.

61 기분이 좋을 때는 감사하고, 나쁠 때는 품위를 지켜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조차도 언제나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니다. 누가 보기에도 행복해  조이는 사람들 역시 나름대로 문제를 안고 있으며, 자신의 인생에 대해 실망하기도 하고, 비탄에 빠지기도 한다.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 사이의 차이는 기분이 나빠지는 횟수와 정도에  있다기보다는 기분이 나쁠 때 어떻게 하느냐에 딸려 있다. 다시 말해, 그 차이는 변화하는 감정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기분과는 반대로 행동한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보통  소매를 걷어붙이고 일을 한다. 그리고  기분이 나쁜 상태를 무척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무엇이 잘못인지 밝혀 내고 분석하려 든다. 사람들은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지만,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더욱 복잡한 것으로 만들기 일쑤다. 
반면에 평화롭고 느긋한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기분이 좋을  때는 늘 감사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이 항상 마음속을  차례로 오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언젠가는 기분 나쁜 순간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다. 행복한  사람들은 이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이들은 감정 변화의 불가피성을 인정한다. 그래서 기분이  저조하거나,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에도 열린 태도와 지혜로 자신의 감정을 다스린다.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자기 감정에 맞서 싸우거나 비틀거리는  대신, 이 감정 역시 사라지게 될 거라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초연하게 기다린다. 부정적인 감정에 대항하거나, 그것으로 인해 당황해하기보다는 차분히 수용함으로써 품위를  지키는 것이다. 이것은 부정적인 감정 상태에서 부드럽고 우아하게 빠져 나와  좀 더 긍정적인 마음의 상태로 들어갈 수 있게 해준다.
내가 아는 어떤 행복한 사람도  때로는 기분이 나빠지곤 한다. 그러나  그가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뚜렷한 차이점은 그런 우울한 기분에서도 편안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조만간 다시 행복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침울한 기분에 별로 상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기분이 나쁜 상태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리는 것이다.
이제 기분이 울적해질 때마다 그것에 맞서려 하기보다는 느긋해지려고 노력해 보자. 그리고 자신이 전전긍긍하지 않고, 우아함을 유지한 채 침착해질 수 있는지 지켜보도록 하라. 부정적인 감정과 싸우려 들지 않고 품위를 지킨다면, 그 기분  나쁜 감정들은 저녁 해가 지듯 틀림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62 여유 있는 운전자가 되라
일상 생활 속에서 가장 화가  나고 초조해지는 순간은 언제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아마도 교통 체증 속에서 운전하는 것이라는 대답이 높은 순위를 차지할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요즈음의 고속도로는 일반 도로가 아니라, 마치 먼저 앞서 가려고 경쟁을 벌이는 자동차 경주로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상황이 이렇다 하더라도 조금 더 여유로운 운전자가 되어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세 가지 있다. 
첫째, 운전을 공격적으로 하는 사람은 자신뿐만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도 극도의 위험 속으로 몰아넣는다. 
둘째, 공격적인 운전 방법은 과도한 스트레스를 안겨 준다. 혈압이 상승하고, 운전대를 잡은 손에는 힘이 들어간다. 핏발 선  눈은 긴장되고, 머릿속의 생각들은 통제를 벗어나  마구 소용돌이친다. 
끝으로, 결국에는 목적지에 도착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보면  그다지 시간을 절약하지도 못한다. 
최근에 나는 오클랜드에서 산호세로 차를 몰고 간 적이 있다.  길을 꽉 메운 차들로 교통체증이 심하긴 했지만 그래도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한데  나는 극도로 공격적이고 난폭한 한 운전자가 차선을 계속해서 바꾸며 속도를 올렸다가 줄였다가 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확실히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고 서두르고 있었다. 
나는 40마일을 가는 동안 대부분 한 차선을 유지했다. 그리고 줄곧 오디오에서 울려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공상에 잠겼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이 드라이브 여행이 나에겐 무척이나 즐거웠다.
내가 고속도로를 빠져 나오는 순간, 그 거친 운전자가 내  뒤로 따라붙더니 휙 하고 지나갔다. 내가 그보다 앞서 산호세에 도착했던 것이다. 곡예  운전에 급가속을 하고, 가족을 위험에 빠뜨려 가면서 그가 얻은 것이라곤 약간의 고혈압과 차에 무리를 가한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결국 따져 보면, 그와 나는 같은 속도로 운전을 한 것이다. 
고작 다음 정지 신호등에 먼저 도착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앞질러 가는 운전자도 이와 다를 바 없다. 
무리하게 속도를 내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특히 교통 위반  딱지를 떼이고 몇 시간씩 교통 안전 교육을 받아야 할 정도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 운전자가 그 시간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수년 간 최고 속도로 차를 몰아야 할 것이다. 
일단 여유 있는 운전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이를 의식적으로 실천하려고 노력한다면, 차 안에서의 시간을 휴식을 취하는 데 쓸 수 있다. 운전을 편리한 이동 수단일 뿐만 아니라 숨을 고르고 생각을 정리하는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다.
근육을 긴장시키지 말고 여유를 가지려고 애써 보라. 내 경우에는 긴장을 풀어 주는 음악 테이프를 항상 차에 비치해 놓는다. 그리고 가끔씩 꺼내 듣곤 한다. 음악을 즐기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다 보면,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고, 그때쯤이면 차에 타기 전보다도 훨씬 느긋해져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우리는 일생 중 많은 시간을 운전을 하면서 보낸다. 그 시간을 안달하면서 보낼 수도,  현명하게 사용할 수도 있다. 좀 더 느긋한 삶을 살고 싶다면, 후자를 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63 느긋해져라
느긋해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생 동안 이 말을  수천 번은 듣게 되지만, 그것이 정말 어떤 뜻인지 깊이 생각해 보는 사람은 드물다. 
나는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많이 던져 보았다. 그럴  때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느긋해진다는 것은 나중, 즉 휴가를 가거나, 그늘에  누워 있거나, 은퇴를 하거나, 일을 모두  바쳤을 때에나 비로소 계획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뜻이 포함된 대답을 했다. 
물론 이 대답에는 대부분의 시간(인생의 95퍼센트)을 초조함에 휩싸여 안절부절못하며 급히 서두르거나, 이리저리 우왕좌왕하며 보낸다는 뜻 또한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분명히 이러한 암시가 담겨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왜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이  어떤 커다란 위급 상황인 양  행동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일감 바구니'가 텅 빌 때까지  느긋해지는 것을 미룬다. 물론 그것은 결코 텅 빌 리가 없다. 
느긋함을 이후의 어느 순간을 위해 예약된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삶 속에서 규칙적으로 취할 수 있는 마음  상태로 생각하라.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느긋해질 수 있다. 
느긋한 성격의 소유자가 뭐든 잘 해내며, 느긋한 태도와  창조성은 비례한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라. 가령, 나는 초조한 상태에서는 전혀 글을 쓸 수가 없다. 하지만 느긋한 기분일 때는 글이 빨리, 그리고 쉽게 써진다. 
그뿐인가. 마음이 느긋해지면 삶이라는 드라마를 다른 각도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멜로드라마(melodrama)를 멜로우드라마(mwllowdrama:부드럽고  원숙한 드라마-옮긴이)로 새롭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삶에 대응하는 방식을 선택할 기회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에게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하는 데서 시작된다. 
자신의 상황뿐 아니라 사고 방식에 대해서도 새로운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다. 인내력을 갖고 느긋하게 행동하라. 분명 편안한 느낌을 갖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64 우편을 통해 아이를 입양하라
물론, 실제로 아이를 입양할 필요는 없다.  편지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그들을 도울 수  있고, 그 아이들에 대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특별한 경험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큰 기쁨과 만족을 선사해 주었다. 여섯 살 된 딸아이는 입양아 친구를 한 병 얻게 되었고,  그 경험을 통해 지금까지 많은 것을 배웠다.  딸과 그 친구는 각자의 가족 사진을 주고받기도 했으며, 정기적으로 서로에게 편지를 쓴다. 두 아이는 서로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이 일은 매달 아주 적은 돈이라도 아이들을 돕는  기관에 기부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 
그 지원금은 아이들의 학비나 생활 필수품 구입과 같은,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가 기본적인 생활을 해나갈 수 있도록 돕는 데 쓰여진다. 
나는 사람들이 우편을 통해  아이를 입양하고 그들을 후원하는  방법을 좋아하는 이유가, 자기가 돕는 사람들을 좀 더 가깝게 느끼고 상호 교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자선 기금을 내놓더라도 자신이 누구를 돕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이용하면 자신이 누구를 돕는지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과 직접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기쁨도 누릴 수 있다. 
그들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통해, 자신이 조금이나마 남을 도울 수 있는 입장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를 깨닫게 된다는 점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이러한 경험은 나와 내 가족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이 싹트도록  해주었다. 슬픈 일이지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입양 기관은 너무도 많이 있다. 

65 멜로드라마를 멜로우드라마(Mellow-Drama)로 바꿔라.
어떤 점에서 보면, 이 방법은 '사소한 것에 골치를 썩이지 말라'는 말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멜로드라마, 즉 "액션과 줄거리  위주의, 터무니없이 극적이고 과장된 연극"의 주인공인  양 살고 있다. 
우리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며,  사소한 일들을 마치 대단한 일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부풀리곤 한다. 
사람들은 인생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잊고 산다. 또한 뭔가에 지나친 반응을 보이는, 그 행동의 주인공 역시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망각한다. 
스스로에게 인생은 감상적이고 통속적인 연속극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것은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아주 강력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나 또한 인정하기 싫을 정도로 지나치게 흥분하거나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곤 할 때가 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또다시 시작이군 연속극이 시작되어 있어"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은 나의 긴장감을 덜어 주고, 엉뚱한 자신에 대해서 웃음지을 수 잇게 도와준다.  때로 이 단순한 생각은 나로 하여금 좀 더 평화로운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게 해준다. 즉 멜로드라마가 '멜로우드라마'로 바뀌는 것이다. 
만약 연속극을 본 적이 있다면, 등장 인물들이 사소한  것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상대의 마음에 상처가 되는 말을 하고, 서로를 터무니없이 오해하며,  외도를 하는 등, 어떻게 자신의 삶을 망치는지 잘 알 것이다. 
그들의 반응은 항상 똑같다. 별 것 아닌 일에도 "오, 맙소사.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하고 한탄한다. 그러고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 일이 얼마나 끔찍한지 과장되게 얘기함으로써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 그들은 인생을 복잡한 사건이 뒤얽히고, 사소한 사건
으로 소정을 피우는 위급 상황, 다시 말해 멜로드라마로 만들고야 만다. 
이후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인생은 그다지 극적이거나 위급한 상황의  연속이 아님을 상기시키고, 자신의  멜로드라마를 멜로우드라마로 새롭게  각색하려고 노력해 보라.

66 신문 기사, 책 등을 전혀 다른 관점
자신이 현재 읽고 있는 모든 것들이 인생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와 관점을 좌우한다는 점을 알고 있는가? 이것은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포함한 영상물의 선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미국의 가장 인기 잇는  라디오 토크쇼에 전화를 거는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은 '열성 팬'을 자처하며 '100퍼센트 동감'을 표시하는데, 이것은  "무슨 말이든 당신의 말은 모두 옳아요. 좀 더 얘기를 해줘요"라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자유주의자건 보수주의자건 우리는 모두 똑같다. 한 가지 주장을 내세우고,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믿음들이 진실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데 일생을 보낸다. 
이러한 경직성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자신의 관점과 다른 관점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과는 다른  관점에 대해 마음을 닫아 버리려고 애쓰는 완고함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킨다. 
닫힌 마음은 항상 외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너나할것없이 세상을 보는 자신의 관점만이 유일하게 올바른 방식이라 믿고 있다. 
우리는 서로 생각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동일한 사례를 가지고 자신의 관점이 맞다고 주장하는 데 활용하기도 하며, 양측 모두 나름대로 조리가 있거나  납득할 만한 주장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점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더욱  단호해지거나 완고해질 수도 있다. 
아니면, 좀 더 지혜로워져서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려 노력할 수도 있다!
자신의 가치관에 구애받지 말고 하루에 단  몇 분만이라도 기사나 책을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관점에서 읽으려고 노력해 보라. 그렇다고 자신의 확고한  믿음이나 뿌리 깊은 믿음을 완전히 뒤엎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지금 내가 권하는 모든 노력이 당신에게 사고력을 넓혀 주고, 새로운 생각을 향해 마음을 열어 주는 계기가 되리라는 점 역시 기억해주기 바란다. 
이러한 열린 태도는 다른 관점을 의도적으로 멀리하고 비판하는데 필요한 스트레스를  줄여 준다. 또한 이 연습은 무척 흥미로울 뿐 아니라, 자신을 좀 더 인내력 있는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며, 타인의 순수한 동기를 발견하도록 해준다.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논리를 감지하는 사람은 보다 느긋하고  철학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아내와 나는 미국 내에서 가장 자유주의적인 잡지뿐 아니라 가장 보수적인 간행물도 정기 구독하고 있다. 

67 한 번에 한 가지씩 하라
일전에 나는 고속 도로를 달리다가, 한  남자가 마구 추월을 하면서 동시에 면도를  하고,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는 것을 보았다. 때마침 갈수록 심해지는 우리 사회의 광기를 지적해 낼 만한 모습을 찾고 있던 나는 그 광경이야말로 완벽한 예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단지 그 남자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자주, 한  번에 한 가지 이상의 일을 해치우려고 하는가?  예를 들어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물건인  무선 전화기는, 어떤 점에서는 삶을 더욱 복잡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아내와 나는 얼마 전 친구로부터 저녁 초대를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그 친구가 전화를 받는 동시에 누군가의 노크에 대답하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저녁 식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살펴보고, 손을 씻은 후 딸의 기저귀까지 갈아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와 얘기를 하면서 마음은 딴 데 가  있거나, 서너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는 경향이 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이 그 일  하나하나에 집중하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즐거움 중 많은 부분을 잃어버리게 될 뿐  아니라, 집중력이 떨어져서 효율성이 낮아지게 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각각의 시간들을 나누어 계획을 세우고 한 번에 한 가지 일을 하는 것이다. 그릇을 씻건, 전화를 하건, 운전을 하건, 아이와 놀건, 배우자와 얘기를 하건, 잡지를 읽건, 오로지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하려고 노력해 보라. 
더불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하라.  그리고 집중하라. 그러면 두 가지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우선, 설거지나 옷장 청소 같은 일상적이고 사소한 일이라도 이것을 즐기게 된다. 
무슨 일을 하든 산만해지지 않고 집중하기만 하면, 현재 벌이고 있는 일들에 몰두하고 흥미를 갖는데 도움이 된다. 
두 번째로, 무슨 일이든 신속하고도 효율적으로 해내는 자신의 모습에 놀라게 된다.  나는 현재의 순간 순간에 더욱 충실하게 되면서부터, 글쓰기나 독서,  집안 청소, 전화 통화와 같은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을 처리해 내는 능력이 향상되었다. 
물론 당신 역시 그렇게 할 수 있다. 그것은 한 번에 한  가지만 하겠다는 굳은 결심과 함께 시작된다. 

68 열까지 세라.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나와 다른 형제들 때문에 화가 날 때면 큰 소리로 열까지 세곤 하셨다. 이것은 나의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많은 부모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냉정을 되찾기 위해 이용하는 방법이다. 
나는 여기에 호흡법을 결합시켜서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내가 개발해  낸 방법은 화가 날 듯한 기분이 들면 길고 깁게 숨을 들이 쉰 다음 하나를 세는 것이 전부이다. 그 다음 숨을 내뱉으면 몸의 긴장이 조금 풀어진다. 
그리고 둘을 세면서 동일한 과정을 되풀이하고, 최소한 열까지 세도록 하라. 정말 화가 난 경우라면 스물다섯까지 세는 게 좋다. 이것은 간단한 명상법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마음을 비우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숫자 세기와 호흡의 결합은 마음을 느긋하고 편안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이것을 끝마치고 난 뒤에도 마음속에 분노가 남아 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폐 속 깊숙이 들이마신 신선한 산소와, 화가 난 순간부터  열까지 세는 동안의 시간 간격이 사태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역할을 제공해준다. 그리고 이것은 '커다란  일'을 '사소한 일'로 여기고 가볍게 넘기는 데 도움을 준다. 
반드시 화가 난 상태가 아니더라도, 이 연습은 스트레스나  절망감을 처리하는 데 효과적이다. 약간 기분이 좋지 않을 때도 이 방법을 시도해 보라. 
나는 마음을 느긋하게 해주는 이 방법을 좋아한다. 그래서 평소에도 매일 일상 생활에 활용하고 있다. 

69 '폭풍의 눈'상태를 유지하라
폭풍의 눈은 회오리바람, 허리케인, 토네이도(미시시피 강 유역에 부는  맹렬한 바람-옮긴이)의 중심 부분으로, 주변의 폭발적인 활동으로부터 고립된, 조용한 지점이다. 
이 폭풍의 눈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세력은 난폭하고 사납지만 중심은 평화로운  상태이다. 우리네 삶 또한 혼란의 와중에서 폭풍의 눈 속에 있는 것처럼 침착하고 고요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놀랍게도, '인간 폭풍'의 눈 속에 잇는 것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뚜렷한 목표와 연습이 필요하다. 
가령 결국에는 엉망이 될 가족 모임에 가고 있는 중이라고 가정 해 보자. 이런 경우, 우리는 그 모임을 고요함을 유지하는 연습을 하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시끌벅적한 방안에서 평화의 본보기를 보여 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으며, 심호흡을 하거나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는 법을 연습할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을 만족스럽게 하고, 그들이 실컷 영광을 누리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가 마음을 '폭풍의 눈' 상태로 만들 경우에는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가족 모임, 칵테일 파티, 아이들의 생일 파티처럼 별로 부담이 없는 시나리오로 연습을 시작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쉽게 실적(?)을 쌓을 수 있고 얼마간의 성공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폭풍의 눈 속과 같은 상태를 유지하면 현재 순간에 좀 더 충실해  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에 대해 만족하게 된다. 
일단 그다지 힘들지 않은 상황에서 침착을 유지하는 법을 배우고 나면, 좀더 어려운 분야인 갈등, 고난, 슬픔이 자신을 둘러싸고 휘몰아쳐도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천천히 시작해서 약간의 성공을 거둔 후, 계속해서 연습하면 어떻게 해야 폭풍의 눈 한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는지 곧 깨닫게 될 것이다. 

70 계획 수정에 유연해져라
일단 마음속에 어떤 계획이 떠오르고 나면, 그것을 실행에  옮기지 않고 그냥 묵과하거나 흘러가게 놔두는 일이 힘들 수도 있다. 
나 역시 성공을 이룩하거나 어떤 계획을 성공적으로 끝마치기 위해서는 집요함이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것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는 점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경직된 태도는 엄청난 정신적 스트레스를 야기하며,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짜증을 내거나 무관심하게 만들 수도 있다. 
나는 대개 이른 아침 시간에  글쓰는 것을 좋아한다. 글쓰기가 아니라도  가령 이 책에서 얘를 든 것처럼, 집안 식구 중  누구도 깨어나기 전에 한두 가지 일을  마치는 목표를 세울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어린 딸이 일찍 일어나 나를  보려고 위층으로 올라온다면 어떻게 될까? 이 계획에는 분명 차질이 빚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아니면 이른 아침 달리기를 목표로  세울 수도 있다. 그런데 회사에서  급한 전화가 와서 달리기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갑자기 계획이 수정되고, 생각했던 일이 제대로 되지 않고, 누군가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예상한 것보다 수입이 적고, 다른 사람이 아무 동의 없이 계획을 수정하고, 이전에 계획했던 것보다 시간이 촉박하고, 예기치 않은 일들이 일어나는 등,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도 없이 많은 걸림돌에 직면하게 된다. 만약 이 같은 상황이 닥치면 스스로에게 "내게 정말 중요한 일은 무엇이지? 하고 물어 보아야만 한다. 
사람들은 계획이 변경될 때 절망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얘기하곤  한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달려 있다. 
융통성 없이 글쓰기 스케줄에 집착하는 것이 어린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더 중요할까? 30분 동안 달리기를 못한 것이 과연 화를 낼 만한 일인가?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바라는 것을 이루고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는  것과 흐르는 대로 따라가는 법을 배우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지?"하고 질문을 던진다. 
분명한 것은, 평화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경직성을 극복하고, 유연해지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도 예외적인 상황이 있다. 
나는 항상 계획의 몇 퍼센트쯤은 수정될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생활한다. 어쩌면 일어날지도 모를 상황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면,  막상 그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것은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 중에 하나야"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만약 느긋해지면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을까 염려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화를 내고 걱정하는 데 쏟는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좀더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잇게 되니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계획을 약간, 혹은 완전히 변경해야  하는 경우를 항상 염두에 두면서도 마감일을 지키고, 목표의 대부분을 이루며, 책임을 소중히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주변 사람들 역시 좀더 여유롭고 느긋해져서, 나의 계획이  갑자기 수정되더라도 전혀 초조해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게 되었다. 

71 '갖고 싶은'것이 아니라 '갖고 있는'것을 생각하라
10여 년 넘게 스트레스 치유 상담가로 일해 오는 동안,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재 자신이 가진 것보다는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습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은 현재 갖고 있는 것이 언제나 이전과 별로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매일 자신의 '욕망'의 명단에 새로운 목록을  채워 넣는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만족스럽지 못한 채로 살게 만드는 주범이다. 
"이것만 바라는 대로되면 나는 행복해질 거야"라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일단 욕구가 충족되더라도 또 다른 것을 찾아 계속 이런 말을 반복하기 마련이다. 
한 친구가 어느 일요일에 새 집에 대한 계약을 맺기로 했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그를 다시 봤을 때 그는 더 큰 새 집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런 일을 주위에서 흔히 접한다. 
그러나 이것이 비단 그만의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우리들 대다수는 그와 똑같은 일을 한다.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좇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경우에는 줄곧  그것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그러나 원하는 것을 얻게 되는 경우에도 결코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른 상황 속에서 동일한 생각을 반복하게 될 뿐이다. 결국 우리는 언제나  불행한 상태에 놓여 있게 된다. 
행복은, 항상 새로운 것을 바라고 갈망하는 사람에게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다행히도,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있다. 
그것은 관심의 초점을 원하는 것으로부터 현재 가지고 있는 것으로 돌리는 것이다.   아내 혹은 남편의 다른 모습을 기대하기보다는 그들이 가진 놀라운 자질에 대해서 생각하려고 노력해 보라. 봉급이 적다고 불평하기보다는 일자리를 갖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하라. 하와이에서의 휴가를 꿈꾸기보다는 집 근처로 떠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즐거울지 상상해 보라. 우리 가까운 곳에서도 실현 가능한 것들의 목록은 끝이 없다. "내가 원하던 인생은 이게 아니야. 나는 인생이 지금과 달라지기를 바래"하고 자신을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생각이 들 때마다 한 발 물러서는 것이 중요하다. 
잠시 심호흡을 하고, 지금 자신에게 없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 무엇인지, 감사하는 마음으로 떠올려 보라.
아내의 쾌활한 미소와 같은 좋은 면에 초점을 맞출 경우,  그녀는 더 큰 사랑으로 당신의 마음을 기쁘게 해줄 것이다. 일도 마찬가지다. 어려움에 대해 불평하기보다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할 때 좀더 나은 직위를 얻게 되고, 더 생산적으로 일하게 되며, 결국에는 봉급 또한 인상될 것이다. 
이루지도 못할 하와이에서의 즐거운  시간을 기대하는 대신, 집  근처에서 즐기는 휴가에 초점을 맞추고 알차게 준비하면 오히려 더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어쩌면 하와이에 가는 꿈은, 눈앞에 펼쳐진 인생 자체를 즐기는 습관에 익숙해져 있을 때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도 있다. 설사  그곳에 가지 못하게 된다 하더라도  어찌 됐든 멋진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자신이 가진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메모를 직접 작성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목록을 하나하나 적어 나가다 보면, 자신의 삶이 이전보다 훨씬 나아 보이기 시작한다. 어쩌면 난생 처음으로 만족이 무엇인지 알게 될 지도 모른다. 

72 부정적인 생각을 무시하라
사람은 하루 평균 5만 가지 정도의 생각을 한다는 연구 보고서가 있다. 대단히 엄청난 숫자이다. 물론 그 중 일부는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생각들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대다수는 화가 나고, 두렵고, 비관적이며,  걱정스런 생각 같은 부정적인 것들이다. 
사실 마음의 평온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만드는 상황이 아니라, 그것을 처리하기 위해 무엇을 택하는가에 달려 있다. 
부정적인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고 어떻게든 처리해야 하는 순간에  이르면, 두 가지의 선택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첫째, 그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며 연구하고, 머리를 쥐어짜며 분석하는 것이다. 
둘째는 무시, 즉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지나치거나,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인 처리 방법인지는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든 그것은 단지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이 허락하지 않는 한 어떠한 부정적인 생각도 마음에 상처를 남기지 않는다. 
가령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부모님이 내게 무심했던 E대를 생각하면 너무도 화가 나"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고는 계속 그러한 말을 반복하면서 부정적인 생각에 점점 빠져들고, 이것은 그들의 마음속에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자신은 정말 불행했다고 확신하게 된 나머지, 결국 극복하기 어려운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생각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을 깨닫고, 신속하게 그것을 떨쳐 버릴 수도  있다. 물론 진정으로 어린 시절이 어렵고 고통스러웠던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어떤 생각을 선택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와 똑같은 원리가 오늘 아침, 또는 바로 5분전에  우리 마음속에 떠올랐던 생각에도 적용될 수가 있다. 직장에 가려고 문을 나서는 동안 머릿속에  일어났던 갈등은 더 이상 실제적인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의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에 불과하다. 
이것은 오늘 저녁이나 다음주, 혹은 앞으로 10년 후에 다가올 미래에 대한 생각에도 적용될 수 있다. 
마음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무시하거나 떨쳐버리면 그 자리에는 곧 평화로운 감정들이 밀려든다. 
그리고 평온한 마음 상태에서 자라난 지혜와 상식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 줄 것이다. 이 방법은 다소 연습이 필요하긴 하지만 노력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73 친구와 가족을 스승으로 삼아라
내가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부모나 배우자, 자녀 그리고 친구들과 같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는 것을 꺼린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대개 수치심, 두려움, 완고함, 혹은 자만심 때문에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한다.  이것은 "나는 이 사람으로부터 이미  모든 것을 배웠어. 이제는 더  이상 내가 배울 만하거나 그럴 필요가 있는 것은 없어"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애석함을 느낀다. 왜냐하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그 사람을 가장 잘 아는 법이기 때문이다. 때로 그들은 우리가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할 때 그것을 재빨리 알아채고 무척 간단한 해결책을 알려 주기도 한다. 
그러나 자만심이 너무 강하거나 완고해서 그들로부터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을  경우에는 삶을 향상시켜 주는 멋지고 단순한 방법을 놓치게 된다. 
나는 친구들과 가족의 말에 마음을 열려고 노력해 왔다.  그래서 그들에게 "내 단점이 뭐지?"하고 묻기까지 한다. 
이렇게 하면 그들로 하여금 자신이 누군가에게 정말 필요한 사람 내지 특별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줄 뿐만 아니라, 결국 그들로부터 멋진 충고를 얻게 된다. 
그러나 이처럼 성장을 향한  지름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거의  아무도 이것을 활용하지 않는다. 약간의 용기와 겸손, 그리고 자존심을 버리는 능력만 있으면 되는데도 말이다. 
가족 중 누군가의 제안을 쓸데없는 참견이나 비난으로 여기고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습관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그들이 진지하게 충고를 구하는  당신의 모습에 얼마나 충격받을지 상상해 보라. 
주위를 둘러보고 당신의 질문에 답해 줄  만한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부터 뭔가를  얻어내라. 
나는 때로 아버지에게 사업에 관한 충고를 구하곤 한다.  그리고 길고 지루하게 이어지는 아버지의 훈계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충고는  항상 내가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길을 헤매는 일을 사전에 막아 준다. 

74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라
파스칼은 "인류의 모든 문제는 사람들이 방 안에 혼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다는 데서 비롯된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정도로 극단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차분한 마음이  내적 평화의 근원이 된다는 점만은 굳게 믿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내적 평화는 곧 외적 평화로 연결된다. 
반성, 심호흡, 관조, 상상 등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방법들은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보편적이며 꾸준히 활용되는 방법은 명상이다. 대개 하루에  단 5분이나 10분 동안의 명상만으로도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명상은 완전한 휴식을 경험하게 해주고 이를 통해 마음의 평온함을 유지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명상을 통해 얻은 마음의 평화는 일상 생활에 영향을 주어 우리를 덜 예민하고, 덜 짜증스러운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그리고 자신에게 다가온 일들을 곧 해결해야 할 골치 아픈 중대사가 아닌, 무시하거나 그저 흘러가게 내버려두어도 좋을 사소한 일로 바라보게 해주는 여유를 선사한다. 
명상을 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마음을 비우는 것이 모든  명상법의 기본이다. 명상은 조용한 환경 속에서 혼자 하기 마련인데, 일단 눈을 감고, 호흡(들숨과 날숨)에 주의를 집중시켜야 한다. 잡념이 조금이라도 머릿속에 들어오면 그것들을 부드럽게 밖으로 밀어 내고,  주의를 다시 호흡에 집중시킨다. 
이것을 반복해서 해보라. 머릿속의 산만한 생각들을 부드럽게 떨쳐 버리고, 호흡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훈련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곧 알게 될 것이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려고 하는 순간, 어느덧 머릿속이 잡념들로  가득 차 버리기 일쑤다. 명상을 시작한 첫 단계에서는 단 몇 초만이라도 주의를 집중하기가 극히 힘들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망하긴 아직 이르다. 
마음을 도사릴 수 있는 명상가가 되기 위해서는 부드럽고 끈기 있게, 매일 연습해야만 한다. 실망하거나 쉽게 단념하지 않고 매일 몇 분씩 명상 훈련을 한다면, 얼마 후 대단히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가까운 명상 센터를 찾아가는 것도 좋고, 기호에 따라 책이나 테이프를 통해서 배울 수도 있다. 
내가 아는 한, 평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하루에  몇 분이라도 자신만의 명상 시간을 갖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75 요가를 하라
명상과 마찬가지로, 요가 역시 느긋하고 평화로운 사람으로 변화하는  데 있어 무척 대중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수세기 동안 요가는 마음을 비우고 자유롭게 하며, 편안함과 평정을 얻는 데 활용되어 왔다. 
요가를 위해 하루에 단 몇 분간 짬을 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요가는 나이나 건강 상태와 상관없이 누구든지 할 수 있다. 예전에 나는 헬스 클럽에서 요가 수업을 들었는데, 그 모임에는 열 살 된 소년에서부터 여든일곱 살이나 된 노인도 있었다. 
요가는 다른 사람과 경쟁을 벌이고 실력을 비교하는 운동  시합이 아니다. 각자 자신에게 알맞은 과정을 선택하여 자신의 페이스에 따라 심신을 단련하고, 계속 정진하면 된다. 
본래 요가는 육체적인 훈련이지만, 몸과 마음 모두에 효과가 있다. 육체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요가는 유연성와 활동성을 높여 줌으로써 근육과 척추를 강화시킨다. 
정서적인 측면에서는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또한 육체와 마음 그리고 정신을 하나로 연결해 주며, 안정과 평화를 느끼게 해준다. 
요가는 유연하면서도 강도 높은 동작들로 이루어지는데, 대개 몸을 뻗는 동작들로 이루어져 있다. 몸을 뻗는 동작은 몸을  펴고, 척추를 늘이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이러한 동작은 목, 등, 엉덩이, 다리, 척추처럼 경직되고 수축되기 쉬운 부위에 집중된다. 몸을 뻗는 동작을 하는 동안은 그 일에 초점을 맞추고 집중하게 된다. 
요가의 효과는 정말 대단하다. 
요가를 시작한 지 몇 분 후면 보다 생기 넘치고  마음이 열리며, 평화롭고 느긋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머리가 맑아지면서 남은 하루 동안 모든 일에 좀더 쉽게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 또한 요가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한때 나는 너무 바빠서 요가를 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반대가 옳다고 믿는다.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하루도 거를 수가 없는 것이다. 
요가는 내게 젊음과 활기를 가져다주었다. 요가를 통해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텔레비전을 보는 대신, 두 딸과 함께 요가  비디오 테이프를 틀어 놓고 요가를 하곤 한다. 
지역의 문화 단체나 YMCA, 헬스 클럽 등에서 실시하고 잇는 요가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요가를 쉽게 익히게 도와주는  훌륭한 비디오 테이프도 많이 나와 있다. 

76 봉사를 생활의 일부분으로 만들어라
친절과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에 걸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당황스럽게도, 이를 위해 우리가 반드시 따라야 하는 어떤 특별한 방법이나 처방은 전혀 없다. 
진정으로 친절하고 너그러운 행동은 대부분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마음속에 녹아 들어가 있던 봉사와 친절의 정신이 자연스럽게 실천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내게 가르침을 주었던 스승과 철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봉사할 수 있을까?"하는 질문으로 하루를 시작하라고 충고해 주었다. 
이 습관은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들을 찾으려고 할 때 꽤  유용하다. 아침마다 잠시 이런 질문을 던지고 나면, 하루 종일 그 대답들이 줄지어 머릿속에 떠오른다.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이 방법을 활용해 보라고 권해 주고 싶다. 
봉사할 수 있는 기회는 주위에 산재해 있다. 내 경우, 봉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사정이 딱한 친구, 혹은 전혀 낯선 사람에게 내 집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 외에는 열차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길을 건너는  유치원 아이들을 돌보아 주고, 모임에 나가서 강연을 하고, 책을 쓰고,  딸이 다니는 학교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자선 단체에 기부금을 내고, 도로의 쓰레기를  줍는 것 등 나로서는 그다지  큰 수고가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다. 
진정한 봉사를 행하기 위해 가장  유념해야 할 점은, 이것이 결코  단 한번의 수고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인식하고 봉사를 계속 실행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봉사하는 삶은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생 동안 계속되는  과정으로, 인생에 대한 일종의 가치관이 반영된 것이다. 
또한, 누군가를 위해 뭔가 좋은 일을  한 다음 그것을 떠벌리거나, 다른 사람들은  자신과 같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들을 자신보다 '덜 선량한' 사람으로 생각하거나, 그들이 자신에게 봉사해 주지 않는 것에 대해 울화통이 터지려 한다면 그것은 참다운 봉사가 아니다. 
지금 누군가 쓰레기를 치워야 하는가?  그렇다면 자신의 차례가 아니더라도 치우도록  하라. 
친하지는 않지만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어떤 사람이 어려운 처지에 놓였는가? 아마도 그는 누군가의 조언을, 아니면 자신의 말을 그저 들어 줄 사람(아마도 당신)을 필요로 할 것이다. 
곤란을 겪고 있는 자선 단체를 알고 있다면 약간의 돈을 기부할 수도 있지 않을까?나는 최고로 효과적이고 좋은 봉사 방법이 의외로 무척 간단하다는 것을 알고 놀랄 때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아내의 소소한 집안 일을 도와주거나, 시덥지 않은 남의 말을 들어주는 데 약간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 방법은 매일의 일상 속에서 작고 조용하고 아무도 모르게 베풀 수 있는 친절이다. 
나는 내가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목표에 도달하기에는 아직도  멀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꾸준히 봉사를 실천하려고 노력하였고,  그 결과 내가 선택한 삶에 대하여 좀더 긍정적이 되었다. 
"베푸는 것 그 자체가 보상이다"라는 옛말이 있다. 이 말은 진실이다. 우리는 뭔가를 주는 동시에 받기도 한다. 정말로, 우리가 받는 것은 주는 것과 직접적으로 비례한다.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좀더 자유롭게 누군가를 위해 봉사한다면,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마음의 평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주변 사람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행동일 뿐만 아니라,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커다란 기쁨을 가져다준다. 

77 호의를 베풀되, 대가를 기대하지 말라
이것은 봉사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바람을 가진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이다. 봉사의 대가를 기대하지 않은 채 누군가를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쉽고 기분 좋은  일인지 이 방법을 실천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람들은 누구나 타인에게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대가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 특히 남을 위해 자신이 무엇인가를 베풀었다고 생각할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우리는 "내가 욕실을 청소했으니까 너는 부엌을 청소해야  해"하고 말한다. 혹은, "지난주에는 내가 아이를 돌봤어. 그러니 이번 주에는 아내가 해야 해" 하고 생각한다. 
이러한 태도는 자신이 베푼 일들에 대해 계속 성적을 매기는 것과 다름없다. 매순간 이렇게 산다면 얼마나 피곤할 것인가?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저 그 자체가 좋아서 누군가를  위해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편안함과 평화라는 멋진 느낌을 그 보상으로 얻게 된다. 그뿐인가?  정력적인 운동이 뇌 속의 엔돌핀을 증가시켜 육체적으로 기분 좋게 만드는 것처럼, 사랑과 친절이 담긴 행동은 정서적 엔돌핀을 증가시켜 정신 건강을 유지하는 데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이렇듯,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친절을 베풀었을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자신이 친절한 행동을 실천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서 얻게 되는  감정 그 자체이다. 호의의 대가로 뭔가를 원하거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바랄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호의를 받는 사람이 그 사실을 알게 할 필요조차 없다. 
나눔을 통한 평화로운 감정을 해치는 것은, 가는 정이 있으면 오는 정이 있다는 식의,  서로 주고받는 이익에 대한 기대이다. 우리가 자신이 바라거나 필요로 하는 것에 집착할 경우, 이러한 생각은 마음을 어지럽히면서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뿌듯함마저 빼앗아 간다. 
이럴 때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은, '친절의 대가로 무엇인가를 바라는'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부드럽게 떨쳐 버리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긍정적인 감정이 마음 가득히 자리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서 누군가를 위해 행하는 사려 깊은 행동들, 이를테면 차고  청소, 책상 정리, 옆집 정원의 잔디 깍아 주기,  직장에서 일찍 돌아와 아이를 돌봐 주는 일  등을 떠올려 보라. 그리고 선의를 베푼 후,  도움을 준 사람에게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정말 좋은 일을 했다는 뿌듯한 기분이 드는지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도록 하라. 
이것을 계속 연습하다 보면, 그 따뜻한 감정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믿는다. 

78 문제를 딛고 올라서라
사람들은 자신을 짓누르는 스트레스의 큰 원인이 일상 생활에서 부딪히게 되는 크고 작은 각종 문제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하지만 좀더 정확하게 평가한다면, 스트레스는 문제 그 자체보다는 문제에 직면한 사람이 그것을 다루는 태도와 더 관계가 있다. 
다시 말해, 스트레스는 문제를 어느 정도로 심각하게 취급하는가에 달려 있다. 즉, 그것을 절대절명의 위급 상황으로 여기는가, 아니면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교훈으로 생각하는가에 따라 잘라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겪게 되는 문제들은 무척 다양해, 내용이나  크기, 심각성이 각기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인생에서의 '문제'는 우리가 무언가 '달라지기'를 바라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문제를 붙잡아 안고 씨름하거나 문제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할수록 그것은 더욱 심각하게 느껴지며, 우리는 이로 인해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나 다행히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자신에게 다가온  문제를 인생을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불가피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더 나은 삶을 위한 교훈으로 받아들인다면, 어깨의 짐이 다소 가벼워진다. 
자신이 한동안 씨름했던 문제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자. 지금까지 그 문제에 부딪히게 될 때마다 어떻게 다뤄 왔는가?
사람들은 대개 머리를 싸맨 채 그 문제와 씨름하고,  머릿속으로 하나하나 열거해 가면서 반복해서 그것을 분석하려고 한다. 하지만 누구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한다. 
당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힘든 과정을 모두 거쳐 이르게 된 곳은 어디인가? 더한 혼란과 스트레스는 아닌가? 
여기 이러한 문제를 극복할 새로운 방법이 하나 있다. 들어보겠는가?
우선 그 문제[를 머릿속에서  밀쳐내 버리고, 그것에  저항하기보다는 수용하려고 노력해 보라. 가슴속 깊이 포용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에게 그 문제가 어떤 귀중한 교훈을 담고 있지는 않은지 물어 보라. 
혹시 조심성과, 인내력을 좀더 길러야 한다는 속삭임이  들려오지 않은가? 탐욕, 질투, 부주의, 용서에 대해서는? 지금 상대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이든, 그것으로부터 뭔가를  배우려고 하는 적극적인 자세로 좀더 유연하게 생각해 볼 수도 있지는 않을까? 
눈앞에 펼쳐진 문제들은 이러한 관점에서 파악하는 사람에게는 그 문제가 단단히  움켜쥐었던 주먹을 펼 때처럼 부드럽게 다가설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문제가 그때까지의 생각과는 달리 자신의 생활에 그다지 위험을 불러일으킬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이, 일단 배워야 할 것을 깨닫고 나면  그 문제는 그 사람의 인생에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다.   

79 모든 것은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옛날 어느 마을에 무척 현명한  노인이 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노인이 자신들의 질문과 걱정거리에 대해 지혜로운 답을 알려 줄 것이라 믿었다. 
어느 날 마을의 한 농부가 그 현명한 노인을 찾아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르신은 현명한 분이시니, 제발 좀 저를 도와주십시오. 무서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르던 황소가 갑자기 죽어 버렸습니다. 이제 제게는 땅을 갈 가축이 하나도 없습니다. 제게  이보다 더 나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현명한 그 노인은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하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농부는 서둘러 마을로 돌아가, 이웃 사람들에게 그 노인이 미쳤다고 말했다. 
분명 그 일은 농부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불행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노인은 왜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한데 바로 그 다음날, 튼튼하고 젊은 말 한 마리가 농부의 밭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그는 그 말을 잡아다가 죽은 황소 대신 일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말을 얻은 농부는 무척 기뻤다. 황소를 부릴 때보다 밭을  가는 일이 너무도 쉬워졌던 것이다. 그는 현명한 노인을 찾아가 사과했다. 
"당신의 말씀이 옳았습니다. 현명한 분이시여. 황소를 잃은 것이 제게 가장 나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사실 축복이었습니다!  제가 황소를 잃어버리지  않았더라면 말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제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 아닌가요?"
그러나 현명한 노인은 다시 한번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하고 말했다. 
농부는 다시, 그 노인의 말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노인은 제정신이 아닌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농부는 앞으로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지 모르고 있었다. 
며칠 후 농부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낙마를 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그는 다리를 다쳐 수확을 도울 수가 없게 되었다. 
농부는, "이럴 수는 없어. 이제 우리는 굶어 죽게 되고 말 거야"하고 땅이 꺼질 듯 한숨을 지었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현명한 노인을 찾아갔다. 
이번에 그는, "말을 얻은 것이  좋은 일이 아니란걸 어떻게 아셨나요?  당신의 말씀이 또 옳았습니다. 제 아들이 다리를 다쳐 추수를 도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번 일이야말로 제게 
가장 나쁜 일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번에는 제 말에 동의하셔야 할 겁니다"하고 말했다. 
하지만 전과 마찬가지로, 현명한 노인은 조용히 농부를 바라보며  연민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하고 말했다. 
노인이 그토록 무식한 것에 화가 난 농부는 투덜대며 마을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 일이 있은 바로 다음 날, 마을에 군대가 들어와 몸이 성한 사람들은 모두 얼마 전 시작된 전쟁터로 끌고 갔다. 그 농부의 아들은 마을에서 전쟁터로 징용되지 않은 유일한 젊은이였다. 그는 다른 많은 젊은이들은 싸우다 죽을 것이 뻔한 잔인한 전쟁을 피하여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특별한 교훈을 들려준다. 
실제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안다고 생각할 뿐이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 하고, 이것으로부터 거창한 사실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머릿속으로는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끔찍한 일들에 대한 시나리오를 만들고, 그것을 과장되게 부풀려 생각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사람들의 지나친  근심은 빗나가기 마련이다. 냉정을  유지하고 여러 
가능성을 향해 마음을 열어 놓을  때에야 비로소, 결국에는 모든 것이  잘 되리라는 확신이 서게 된다. 
다음을 반드시 명심하자. 모든 것은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80 자신의 모습 그대로 인정하라
그리스인 조르바는 자신을 '완전한 실패자'라고 자조했었다. 하지만 사실, 누구에게든 삶은 언제나 완전한 실패로 끝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렇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원하고 또 원할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완벽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오히려 스스로에게든 다른 사람에게든 인정받을 수 없다고 생각되는 자신의 일부를  부인하려고만 한다.   그러나 자신의 모든 부분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자신에 대해서도 좀더 너그러워지고, 스스로를 연민의 눈길로 바라볼 수 있다. 불안감에 떨면서도 '완전한' 척하기보다는 "조금 두렵긴 하지만, 곧 괜찮아질 거야"하며 자신의 불완전함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여야 비로소 세상 속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질투심이나 탐욕, 분노와 같은 '바람직하지 않은'감정을 부인하거나 마음속에 묻으려 하지 말고 솔직하게 드러내 놓고  인정하자. 그것만이 자신을 얽매는 나쁜 감정들로부터 벗어나 성장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길이다.   즉, 부정적인 감정을 자신을 망칠 수도 있는 대단하거나 두려운 존재로 생각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그것들을 겁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잘난 부분, 못난 부분, 아름다운 마음씨, 추악한 욕심,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자신을 이루고 있는 모든 부분에 대해 열린 태도를 취하자. 그러면 더 이상  흠 잡을 데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거나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자신을 현재의 모습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부정적인 면들과 함께, 그동안 신뢰하지 않았거나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긍정적이고 놀라운 면을 알아차릴 수 있는 것도 이 방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이다.
사람들은 대개 마음속에 사리사욕을 품고 행동하지만, 때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이타적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간혹 불안해하고  두려움에 떨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용감하게 행동한다. 초조함에 쫓기지만 동시에 무척 느긋해질 수도 있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열린 마음으로  대하는 것은 "난 그다지  완벽한 인간이 아니지만, 나는 지금 이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해"하고 말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다 보면 마음 한구석에서 부정적인 성향이 삐죽 고개를 내밀더라도, 그것은 단지  자신을 이루고 있는 커다란 그림의 한 조각일 뿐임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러니, 자신의 부정적인 면을  부끄러워하고 매일같이 그 결함을  숨기기 위해 절망적인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사랑과 호의, 넓은 아량으로 스스로를 대하자.
어쩌면 실제로 '완전한 실패작'인 사람도,  그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면 삶에 대해 느긋해질 수 있을 것이다. 

81 느긋하게 기다려라
내가 지금까지 권한 삶의 방식들은 좀더 느긋하고, 평화롭고,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이번 장의 핵심은, 느긋한 마음으로 세상과 자신의 삶을 대할 경우, 살다 보면  늘상 부딪히게 마련인 여러 가지 일들과  맞닥뜨렸을 때 지나치게 긴장하거나 걱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이 말을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자주 연습해 보자. 그리고 완벽해지려고 애쓰지 말자. 무엇보다 자신에게 얼마간의 여유를 주자!
요즘 사람들은 마음의 여유가 없고 항상 초조해하며, 쉽게 절망하고 스트레스에 시달리거나,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런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괜찮다.
인생은 한 가지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곧 또 다른 일이  찾아오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 실패한다 해도 그 즉시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다. 
평화로운 마음의 소유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동안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저지르는 실수는, 약간의 퇴보나 사소한 실패에도 금방 낙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실수를 학습의 기회, 즉 성장과 비전을 이끌어 내는 수단으로 생각하라고 말하고 싶다. 
"맙소사, 이번에도 또 실패하고  말았어. 좋아, 그렇다면 다음번엔  다른 방법으로 해보겠어"하고 말해 보라. 시간이 지나면서,  인생에 대한 대응이 극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지는 않는다. 
어느 책에선가 "나는 마음이 편치가  않아, 당신도 마찬가지구. 하지만  괜찮아"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나 또한 그렇게 말하고 싶다. 
여유를 가져라.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 완벽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도 쉽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나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더라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슴에 품고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울 때, 우리는 행복한 삶에 조금씩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     

82 작은 일부터 도와라
테레사 수녀는, "우리는 이 세상에서 위대한 일을 할 수는 없다. 단지 위대한 사랑을 갖고 작은 일들을 할 수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었다. 
사람들은 위대한 일을 하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세우곤 하지만, 대부분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사소한 일들이 계획의 실행을 방해하기 마련이다. 
한 친구가 내게, "나는 내 삶을 봉사하는 데 바치고 싶어.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못 하고 있어. 언젠가 크게 성공하면 어려운 이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할 작정이야"하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가 성공의 길로 달려가고 있는 와중에도 길가에는 배고픈 사람들과 친구가 절실히 필요한 노인들, 자녀를 돌봐 줄  보모가 필요한 어머니들이 있으며, 주위에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과 페인트 칠을 도와줄 사람을 찾는 이웃도 있다. 그리고 거리에는 쓰레기가 널려 있고, 관심을 쏟아야만 하는 사람들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수천 가지 일들이 있다. 
테레사 수녀의 말이 옳다. 우리에게는 세상을  바꿀 만한 힘도 없지만, 세상을 좀더  밝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맨 앞에 직접 나설 필요 또한 없다. 실제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친절들뿐이다. 그러나 이처럼 사소한 봉사조차 행동으로 옮기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기업들처럼 수백만 달러의 기부금을 내는 것만이 위대한  행동은 아니다. 양로원에서 1시간 동안 자원 봉사를 하거나 스스로를 전혀 부양할 수 없는 누군가를 위해 5달러짜리  선물을 하는 것 또한 위대한 행동이다. 
어리석게도 자신의 작은 친절이 거의 아무런 변화도 일구어 내지 못한다는 사실에만 초점을 맞추는 사람은 금세 좌절하고야 만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아무리 애를 써도 조금도 변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절망감 때문이라고 변명하곤 한다.
하지만 어떤 일이 되었든 간에, 크든 작든, 아주 사소한 일이든 그것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쏟고 행동으로 옮기면 나눔의 기쁨을 느낄 수 있고, 이 세상을 좀더 밝은 곳으로 만드는 데 한 몫 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세상은 그 작은 봉사들로 인해 조금씩 살 만한 곳으로 되어가고 있다. 

83 지금부터 100년 후를 상상해 보라.
최근에 나의 절친한 친구인 패티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부터 놀랄 만한 삶의 지혜를 얻게 되었다. 그녀는 이 지혜를 나에게도 나누어주었고, 이것은 나로 하여금 인생을 새롭게 바라보게 해주었다. 
사실 100년은 그다지 긴  시간이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지금부터 100년 후,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 모두는  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위기의 순간이 닥쳐오거나 과중한 스트레스로 삶에 염증을 느낄 대 큰 도움이 된다. 
가령 자동차 타이어가 갑자기 펑크 나거나 열쇠를 집안에 둔  채 문을 잠궜다 해도, 그것이 지금부터 100년 후에는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누군가가 불친절하게 대하거나 거의 매일 밤 늦게까지 일을 해야 하는 경우는 어떤가? 집안이 엉망진창이거나 컴퓨터가 고장난 경우는? 몹시 기다렸던 휴가를  갈 수 없고, 새 차를 살 수 없거나, 더 큰 아파트로 이사갈 수 없는 경우는 또 어떠한가?
이러한 상황들을 비롯한 삶의 대부분은, 100년 후라는 관점에  비춰 보면 좀더 깊이 있고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문제들이다. 
어느 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나는 사소한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다. 이중으로 예약이  되는 바람에 두 사람이 동시에 같은 장소에 나타난 것이다. 
한데 내가 그 순간을 별다른 스트레스 없이 긴장하지 않고  넘길 수 있었던 것은, 지금부터 100년 후에는 아무도 이 순간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며, 상관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떠올린 덕분이었다. 
나는 솔직하게 실수에 대해 인정했고, 그 중 한 명은 기꺼이 약속을 다시 정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하마터면 너무나 쉽게 '엄청난 일'로 바뀔 수도  있는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았다. 

84 문제를 대하는 태도를 바꿔라
기쁨과 보람이 인생의 한 부분을 장식하는 것처럼, 장애와  문제도 우리 인생의 일부분이다. 
자신의 모든 문제들을 제거한다고 해서 반드시 진정한 행복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문제를 대하는 태도를  변화시키고, 이것이 자신을 깨어나게  하는 잠재적인 원동력이라 생각하며, 인내력의 실천임과 동시에 뭔가를 배우는 기회라 여길  때 비로소 행복은 찾아온다. 
숭고한 삶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는, 인생의 문제들이야말로 바로  마음의 문을 열어 놓는 훈련을 최적의 기회로 활용한다는 생각에 토대를 두고 있다. 
살다 보면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골칫거리들과 부딪히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문제들은, 우리가 인생을 실제 모습과는 다른 어떤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생겨난 것이라는 점을 먼저 알아야 한다. 
내적인 평화는 인생의 불가피한 모순들, 고통과  쾌감,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  탄생과 죽음 등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서 우러나온다. 일생 동안 겪게 되는 문제들은 우리를 우아하고, 겸손하고, 인내력을 지닌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준다. 
불교에서는 고난을, 성장을 일구어 내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무척 중요한 밑거름으로 간주한다. 인생이 너무 탄탄대로일  경우에는 진정한 성장을 위한  기회가 그만큼 줄어든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티베트의 어떤 기도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저의 마음이 진정으로 깨어나고 자유와 우주적인 연민을 진실로 실천할 수 있도록, 제가 여행하는 동안 적절한 난관과 고통을 내려 주십시오."
그렇다고 문제를 찾아 나서라고까지 얘기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문제를 회피하거나 없애려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오히려 자연스럽고 중요한 삶의 일부로  수용하는 데 좀더 시간을 투자하면, 인생이 전투보다는 춤과 흡사하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러한 수용의 철학은 인생이라는 강물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따라가는 마음과  자세에 뿌리를 두고 있다. 

85 '입장 바꿔' 생각해 보라.
누군가와 언쟁을 벌이면서 도저히 그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한 번쯤은 자신이 확고한 만큼이나 상대방 또한 자기 입장에 대해 확고 부동하다는 점을 상기해 보라. 무척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우리는 대개 항상 한쪽 편만을, 즉 자신의 입장만을 생각한다. 이것은 새로운 것을 배우기 꺼려하는 고집스런 자아의 잘못된 습성이다. 또한 이것은 불필요하게 많은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습관이기도 하다. 
내가 처음으로 남의 입장이 되어 문제를 살펴보려는 노력을  시도했을 때, 놀랍게도 그것은 나에게 아무런 상처를 주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과 더 가까워지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가령 한 친구가 "자유주의자들은(혹은 보수주의자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들이야"라고 말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반사적으로 자신의 입장(그것이 무엇이든)을 방어하려 들지 말고, 반대 의견으로부터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지 곰곰이 따져 보도록 하라.  그리고 친구에게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어 보라. 
마음속에 나쁜 동기를 숨긴 채, 혹은 자신의 입장을 방어  내지 증명하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써가 아니라 다른 관점으로부터 뭔가를 배우려는 생각으로 그렇게 해보라.  
친구의 생각이 틀리다는 것을 증명하거나, 그의 시각을 수정하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 친구가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여기고 만족을 느끼도록 그냥 내버려두면 어떤가. 
이렇게 한다고 해서 주관도 없는 소심한 사람으로 평가받지는  않는다. 자신의 믿음에 대해 열정이 없다거나, 자신이 옳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뜻도 아니다. 단지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살펴보라는 것뿐이다. 그리고 먼저 이해하려고 노력하라는 것이다. 
계속해서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고 변명하는 데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반면 다른 누군가가 옳다고 생각하게 내버려두는 일에는 전혀 힘이 들지  않는다. 그것은 서로의 기운을 북돋워 준다. 
게다가 다른 입장과 관점을 이해하려는 노력에는 몇 가지 썩 괜찮은 결과들이 뒤따른다. 
첫째,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사고를 넓힐 수 있음은  물론이다. 
둘째, 침을 튀겨 가며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고, 걸핏하면 말을 가로막을 때보다, 상대방의 말에 귀기울일 때 그 사람은 당신을 훨씬 높이 평가하고 존중하게 된다. 
상대의 말을 가로막는 것은 상대를  더욱 완고하고 방어적으로 만들뿐이다.  보다 유연한 태도로 다가서면, 상대 역시 그렇게 된다. 물로 당장 변화되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된다.
먼저 이해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자신만이 옳아야 한다는 욕심을 초월해, 자신과 논쟁중인 사람마저도 진심으로 존중하게 된다. 일종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기'의 또 다른 이점은, 상대방  역시 당신의 말을 경청하려고 노력할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그가 당신의 말에  귀기울일 거라는 확실한 보장은 없지만, 이것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당신이 상대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을 경우, 상대 또한 당신의 말에 주목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당신이 먼저 손을 내밀고 상대의 얘기에 귀기울이면? 양측 모두가 완고한 태도를 취하고 서로에게 등 돌리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86 '성공'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라
사람들은 대개 이른바 성공이라는 것에 도취되기 쉽다. 성공을 하고, 찬사와 인정을 받고, 동의를 구하는 데 급급하며 인생을 보낸다. 하지만 그것에 너무도 집착한 나머지,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지나치기도 한다.   보통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성취란 무엇일까요"하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장기적인 목표를 이루는 거죠", "큰돈을  버는 게 아닐까요?", "물론 경쟁에서 이기는 거죠", "승진하는 겁니다", "최고가 되는 거죠", "인정을 받는 거죠"라는 대답이 대부분일 것이다.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인생의 외적인 측면에 중심을 둔다. 성장에 집중하는 것이 분명 잘못은 아니다. 성취란 어떤 일에 점수를 메기고, 우리의 생활을 향상시키는 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의 주된 목표가 행복과 내적 평화인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것들이 그다지 중요한 성취 목록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지역 신문에 자신의 사진이 실리는 일 등은 실로 엄청난 성공일 수 있다. 하지만 역경에 직면했을 때 중심을 잃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만큼 의미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진이 신문에  실리는 것은 대단한 성공으로 여기는 반면, '중심을 잃지 않는 것'은 그리 중요한 성취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평화와  사랑으로 충만한 삶을 살고 싶다고 얘기하면서도, 삶의 질을 향상시켜 주며, 삶의 척도가 되는 친절과 관용 같은 것을 사장 의미 있는 성취로 정의 내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가장 의미 있는 성취는 자신의 내부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한다. 자신과 타인에게 친절했는가? 어떤 도전에 대해 과민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는가? 침착하게 행동했는가? 나는 행복한가? 너무 완고하지는 않은가? 관대하게 처신했는가?
이런 질문들 내지 이와 비슷한  질문들은, 성공의 진정한 척도는 어떤  일의 평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 혹은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지 하는 것들에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다. 
이런 질문들 내지 이와 비슷한  질문들은, 성공의 진정한 척도는 어떤  일의 평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 혹은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지 하는 것들에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다. 
오로지 외형과 물질적인 성취에만 탐닉하지 말고,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고민하도록 하자. '의미 있는 성취'가 무엇을 뜻하는지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고, 새롭게 정의하는 사람 앞에서는 보다 빛나는 열매가 기다리고 있다. 

87 자신의 감정에 귀기울여라
사람들은 대개 인생이라는 긴 터널을 통과하기 위한 자신만의  확실한 지침을 갖고 있다. 
자신의 감정만으로 이루어진 이 지침은 자신이 옳은 행로를 벗어나 불행과 갈등을 향해 가고 있는지, 행로를 따라 마음의 평화를 행해 나아가고 있는지를 알려 준다. 
예민하고 미묘한 감정의 바늘은  하나의 기압계처럼 작용하여, 우리  내부의 날씨가 어떤 상태인지를 그대로 보여 준다. 
모든 일들을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자신의 생각에 끌려 다니거나 말려들지  않는 사람의 감정 상태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할 줄 아는 지혜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인위적인 심리 조절이 불필요하다. 
하지만 화가 나고, 분개하고, 침체되고, 스트레스를  받고, 좌절할 때라면 상황이 좀  다르다. 감정의 경보 장치는 붉은 깃발을 들어올림으로써,  자신이 정도에서 벗어났으며, 평온을 
상실했기에 유연하게 사고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경고한다. 
이 경우에는 감정 조절이 반드시 필요하다. 마음속에 떠오른  부정적인 감정은 차의 경고등에 비유할 수 있다. 빨간 불은 마음을 느긋하게 가져야 함을 알려 주는 신호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부정적인 감정을 꼼꼼히 살펴  보고 분석할 필요는 없다. 
부정적인 감정을 분석하려 들면, 처리해야 하는 부정적인 감정만 더 많이 쌓일 뿐이다. 
기분 나쁜 일이 생기더라도, '분석으로  인한 마비 상태'속에서 왜  그러한 감정이 드는지 난감해하지 말고, 그것을 평온함으로 되돌아가는 하나의 지침으로 삼아라. 
부정적인 감정이 가슴속에 존재하지 않는 척하는 것도 다 부질없는 행동이다.
슬픔과 분노, 스트레스는 모두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데서 비롯된다. 사람들은 사소한 것들에 전전긍긍하면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인생에 맞서 싸우려 들기만 할 뿐,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느긋해질 줄은 모른다. 인생은, 스스로가 그것을 위급 상황으로 내몰지 않는 한 절대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라.


88 누군가가 던진 공을 반드시 잡을 필요는 없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이 소중한 교훈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인생이라는 항해에서 겪게 되는 갈등의 파도는, 때로 다른 사람들의 문제에 달려드는 경향 때문에 일어난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걱정거리를 던져 오면 자신이 그것을 잡아 해결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친구가 전화를 해서는 다급한 목소리로, "어머니가 나를 미치게 만들고 있어. 어떻게 해야 하지?"하고 말한다고 해보자. 
이럴 때 "정말 미안해.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군"하고 대꾸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빨리 친구로부터  날아온 공을 잡는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갖은 애를 다 쓴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숙제의 해답을 찾아내려고 끙끙댄 지  얼마 후에는, 일정이 엉망이 된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화를 내면서,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뭔가를 강요하고 있다고 불평한다. 삶이라는 드라마에서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건이 벌어지고,  남의 손에 등을 떠밀려 무대에 등장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가 던진 공을 반드시 잡을 필요는 없다. 친구가 다급한 전화를 해오더라도 그 공을 즉시 떨어뜨릴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상대가 자신을 사건의 등장 인물로 끌어들이려 할  때마다 반드시 그것에 참가할 의무는 없는 것이다. 
당신이 그 미끼에 걸려들지 않을 경우, 그 친구는 다른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그 일에 참가할 수 있는지 물어 볼 것이 분명하다. 
이 충고가 당신이 절대 공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공을 잡든 안 잡든 그것은 바로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또한 공을 잡지 않는다고 해서 친구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거나 무례하며, 도움이 안 된다는 뜻도 아니다.
인생에 대한 전망을 좀 더 차분히 발전시키는 데에는 자신  스스로의 한계를 알고, 그 안에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일 수도 없이 날아드는  공을 움켜잡는다. 직장 동료, 아이들,  친구, 이웃, 세일즈맨, 심지어 낯선 사람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날아오는 공을 모두 잡는다면  틀림없이 삶은 엉망이 되고 말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희생물이 되었다고 느끼고, 분개하고, 이에 압도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언제 어떤 공을 잡아야 할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바쁜 시간에는 전화를 받는 일 같은  무척 단순한 일조차 일종의 공을 잡는 행위가 
된다. 전화를 받는 순간, 너무도 바빠서 시간과 정력과 마음을 낼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
떤 일에 연루돼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전화를  사양하면 적어도 자기 자신의 마음
의 평화만큼은 책임 질 수 있다. 
모욕을 당하거나 비판을 받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반대 의견이나 비평을 던질 경우, 그것을 잽싸게 낚아채서 상처를 받을 수도 잇지만, 그것을 떨어뜨리고 하루를  평온하게 보낼 수도 있다. 
누군가가 문제를 던졌을 때 그것을 '반드시 잡지 않아도 된다'는 깨달음은 평화를 지켜 내는 강력한 방패이다. 지금까지 당신은 얼마나 많은 공을 받아 내며 살아왔는가?

89 스쳐 가는 일들에 대해 마음 쓰지 말라
이것은 내가 최근 들어 채택한 최신(?) 방법이다.   '스쳐 간다'는 말 그대로, 좋은 것과 나쁜 것, 쾌감과  고통, 동의와 거절, 성취와 실수, 명성과 치욕과 같은 모든 일들은 우리의 인생에 잠시  다가왔다가는 사라진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으며, 그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과거에 경험했던 모든 일들도 지금은 끝난 상태이다. 이전부터  가져 왔던 생각들에도 모두 시작과 끝이 있었으며, 희로애락의 모든 감정과 기분 역시 살아오면서 계속, 끊임없이 변화돼 왔다. 한가지 감정만이 우리의 마음을 꿰차고 들어앉는 일은 없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행복, 슬픔, 질투, 우울, 분노,  사랑, 수치심, 명예와 같은 모든 감정들을 경험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것들은 지금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가? 그 정답은 사실  아무도 모른다. 단지 우리가 아는 거라곤, 결국 모든  것이 무로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  진실을 삶에 받아들일 때, 비로소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는 모험이 시작된다.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 사실에 대해 실망하곤 한다. 
기쁨을 경험하는 순간, 사람들은 그것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는 법은 없다. 고통을 겪게 될 때, 당장  그것이 사라져 주기를 바라는 것 또한 보통  사람들의 마음이다. 하지만 인생은 늘 희망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불행은 자연스런 흐름에 저항할 때 생기는 침전물이다. 인생이  여러 가지 일들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잔뜩  흐려진 마음을 맑게 정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현재의 한 순간은 시간과 함께 흘러가 버리고 그 자리는 계속되는 또 다른 순간들로 메워진다. 
흥겹고 즐거운 시간이 가져다주는 행복감일랑 맘껏 누려라. 하지만  결국 그 순간에도 다른 일이 다가오고 있으며, 다른 모습의 순간들로 대체될 것이라는 사실 또한 명심할 일이다. 
스쳐 가는 모든 일들에 대해 마음을 비우고 개의치 않게  되면, 변화 무쌍한 삶의 순간순간 속에서도 평화를 느낄 수 있다. 어떠한 고통이나 불쾌한  상황 역시 자신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이러한 인식을 마음에 새겨 두면, 역경에 직면한 순간에도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다. 항상 이렇게 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90 삶의 우물에서 사랑을 가득 퍼올려라
나는 자신의 삶이 사랑으로 채워지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사랑이 싹트게 하기 위해서 자신의  내면부터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 또한  별로 보지 못했다. 
다른 사람이 먼저 자신을 사랑해 주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은 늘 목가를 수밖에 없다. '의지란 두 지점간의 최단 거리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사랑으로 충만한 삶과 연관지어 생각해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다정한 태도, 확고한 선택, 친절한 행동, 그리고 먼저  다가서려는 의지가 우리를 그 목표로 데려다 줄 것이다. 자신의 삶에 사랑이 필요하다거나, 세상에 사랑이 부족하다고  생각될 때는 먼저 이렇게 해보라. 잠시 이 세상이나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잊어버리고 자신의 가슴속을 들여다보라. 가슴속에 끊임없이 길어올릴 수 있는 사람의 샘물이 출렁거리고 있는가? 가슴속의 샘물을 퍼올려 바깥 세상 사람들, 심지어는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메마른 가슴까지도 시원하게 적셔 줄 수 있는가?
곧 다가올지 모를 큰사랑을 향해 가슴을 열어 두고,  사랑을 기다리기보다는 자신을 사랑의 원천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그토록 희구하는 사랑을 향해 내딛는 첫걸음인 것이다. 
사랑의 샘물은 많이 길어 올릴수록 더욱 달고 시원해진다.  사랑을 베풀면 베풀수록 오히려 더 큰 사랑이 찾아온다.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는 것(통제 가능한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사랑을  받는 것(통제 불가능한 일)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때, 자신의 삶이 더 많은 사랑으로 풍요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랑  그 자체가 보상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진리 하나를 가슴속에서 건져 올리게 될 것이다. 

91 자신의 선행을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라
많은 삶들이 타인을 위해 선행을 베푼다. 그러고서 어떤  사람들은 은근히 다른 사람들의 칭찬을 기대하며 남들에게 자신의 친절한 행동을 과시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관용과 아량을 베풀면서, 자신은 꽤  사려 깊고 좋은 사람이며, 다른 사람의 친절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친절한 행동은 모두 훌륭한 것이지만, 선행을 하고도 절대 그 사실을 얘기하지 않는 것은 더울 놀라운 행동이다. 
타인에게 뭔가를 나눠 줄 때는 기분이 좋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신이 베푼 친절을 남에게 마구 떠벌리면서 그 긍정적인 느낌을 희석시키기보다는 혼자만의  비밀로 남겨 둘 때, 그 좋은 기분과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가 있다. 
올바른 사람이라면, 선행에 대한 대가를 기대하지 않으며, 선(착할 선)자체를 위해서 베푼다. 남을 돕는 좋은 일을 하고도 전혀 내색하지 않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이때 그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답은 선행 그 자체로부터  우러나오는 따스한 느낌이다. 언젠가 누군가를 위하여 아주 좋은 일을 하게 될 때는 그것을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한 채, 나눔의 기쁨을 누려 보자

92 생각의 힘을 깨달아라.
평화의 숲으로 걸어 들어가기 위해서 필히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면, 자신이 생가하고 느끼는 방식에 대한 것이다. 자신이 끊임없이 사고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한다. 공기가 사라지고 숨이 가빠 오기 전까지는 자신이 늘  숨쉬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산다. 
사고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무언가를 항상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생각한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기가 쉽다. 모두가 알고 잇듯이, 생각이라는 것은 눈에 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흡과는 달리, 자신이 쉴 새 없이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는 것은 불행과 분노, 내적 갈등과 스트레스 같은 심각한 문제들을 야기할 수도 있다. 생각이 항상 어떤  감정이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생각과  감정은 1대 1 대응 관계에 있다. 
자, 이제 화나게 하는 생각들을 하지 않고서  화를 내려고 해보라! 그리고 스트레스를 일으킬 만한 생각을 하지 않고서 스트레스를 느껴 보려고 애써 보라. 슬픈 생각 없이  슬픔을, 질투하는 생각을 하지 않고서 질투를 느끼려고 해보라.
인간이라면 절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실제로 어떤 감정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런 감정이 생기게 만드는 어떤 생각을 해야만 한다. 
불행은 그 자체만으로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다. 불행은 인생에 대해 1부정적인 생각을 품는 순간에 싹트는 감정이다.  생각이 부재한 상태에서는 불행,  스트레스, 혹은 질투가 존재할 수 없다. 
언젠가 다시 화가 날 때면 자신의 머릿속에서 꿈틀대는  생각을 가만히 살펴보라. 그것은 분명 험악하고 심술궂은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부정적인 것은 삶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생각이라는 점을  상기하라. 이 단순한 인식이야말로 행복으로 향한 길로 다시 들어서기 위해 취해야 할 가장 첫 번째 행동이다. 
다소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부정적인 행각들을, 소풍을 즐기는 동안 성가시게 날아드는 파리를 쫓을 때처럼 떨쳐 버릴 수 있을 것이다.

93 '많을수록 좋다'라는 생각을 버려라
현대인들은 매우 풍요로운 물질 문명 속에 살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인구는 전세계 인구의 6퍼센트밖에 되지 않지만, 세계 천연 자원의 거의 절반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보다 좀 더 나은 생활을 하게  된다면, 인류는 역사상 가장 행복하고 만족스런 문화 속에 살게 될 것처럼 보이기조차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그 가까이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역사상 가장 불만족스러운 문화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 자체는 별로 나쁘거나 해로운 일이  아니다. 다만 좀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은 끝이 없는 것이고, 그 욕심은 절대 충족될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많을수록 좋다'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결코 현재에 만족하는 법이 없다. 
사람들은 뭔가를 갖게 되고 소망을 이루게 되는 즉시 다음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인생과 삶이 내려준 축복을 향유하고 음미할 틈조차 없다. 
한 예로, 좋은 동네에 멋진 집을 새로 구입한 어떤 남자 얘기를 할까 한다. 그는  새로 이사한 다음날까지는 행복했다. 그런데 그 기쁨은  얼마 가지 않아 곧 사라지고 말았다.  불과 며칠 후 좀더 크고 좋은 집을 사고 싶다는 욕심이 그의 마음속에서 자라나기 시작하더니 결국 온통 그 생각에만 매달리게 되었다. '많을수록 좋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그는,  그 집에서는 더 이상 단 하루도 즐겁게 지낼 수가 없게 되고 말았다. 
그가 조금 더 유별나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우리들 대부분이 그와 비슷하다. 달라이 라마가 1989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을 때 한 기자가  "다음은 뭐죠?"하고 질문을 던졌다는 이야기는 이러한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내 준다. 
집과 자동차를 구입하고, 식사를 하고, 배우자를 찾고, 옷을 사고,  명예롭게 승리할지라도 결코 그 자리에서, 평범함 속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너무나 많다. 
이러한 그릇된 경향을 극복하는 묘책은  많고 크다고 해서 더 좋은  것은 아니며, 문제는 현재 갖지 못한 것에 있다기보다는 더 큰  것을 갈망하는 습관에 잇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만족'이란 자신이 가진 것 이상을 원해서는 안 되며, 원할 수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다만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이 '많거나  거창한 것'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바라는 것에 지나치게 매달리지 않고, 현재의 순간에 좀더 충실할 때 우리는 비로소 행복해진다. 무엇이 보다 나은 삶인가를 생각하면서, 지금 간절히 원하는 것을 얻게 되더라도 계속해서 더 좋은 것, 나은 것에 눈길을 돌리는 한 결코  만족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차분히 떠올려라. 
그리고 이미 누리고 있는 축복에 대해  감사하라. 마치 자신의 삶을 처음 대하듯,  새롭고 신선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이러한 인식을 발전시켜 나감에 따라, 무엇을 새롭게 얻거나  성취하는 경우에 감사하는 마음이 더욱 커질 것이다. 
행복은 자신이 가진 것과 원하는 것 사이에 얼마만큼의 차이가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일생 동안 '좀더!'를 외치면서 살아갈 수도 잇고,  의식적으로 작은 것에 만족하며 살겠다고 결심할 수도 있다. 선택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 

94 스스로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어 보라.
사람들은 혼란과 책임, 그리고 삶의 목표 앞에서 쉽게 길을 잃고 그 무게에 짓눌린다.  일단 인생의 고단함에 압도당하게 되면, 자신에게 가장 친근하고 소중한 것을 잊어버리거나 뒤로 미루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계속에서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이지?"' 하고 묻는 것이 도움이 된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매일같이 몇 초간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져 본다. 나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상기시키고 나면,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기가 한결 쉬워지기 때문이다. 
내게 주어진 수많은 채9r임 속에서 나는 이러한 질문을 통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에너지를 어디에 쏟아야 하는지 그 선택은 나 자신에게 달려 잇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내고, 글을 쓰고, 내면을 갈고 닦는데 힘쓰는 등의 일에 소홀하지 않게 된다. 
아주 단순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 방법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점만큼은 분명하게 얘기할 수 있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에 대해 생각하고 나면, 나는 그 순간에 좀더 충실하게 되고, 덜 서두른다. 내 의견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에도 별 매력을 못 느낀다. 
그러나 반대로, 그 질문을 던지는 것을  깜빡 잊는 경우에는,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잊어버리고, 또다시 분주함의 포로가  된다. 아침마다 허겁지겁 문을 박차고  나가며, 인내력을 잃거나 운동을 게을리 하고, 직장에도 늦는  등, 인생의 목표와는 동떨어진 행동을 하게 된다. 
규칙적으로 잠시 시간을 내서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이지?"라는  질문을 던져 보라. 자신이 내린 어떤 결정이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와 상충되지는 않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될 뿐 아니라, 좀더 의미 있고 사랑으로 충만한 선택을 하도록 이끌어 준다. 

95 자신의 직관을 믿어라
어떤 일을 결정하고 나서 시간이 좀 지난 후에, "에이, 그 일을 했어야 했는데" 하고 말한 적이 몇 번이나 있는가? 직감적으로 해야 한다고 느끼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는 경우가 자주 있는가?
직관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며, 지금 자신의  인생에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우리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주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대개 어떤 일에 대해서 이것저것 완전히  따져 보지 않고서는 그것을 잘 알 수 없으리라는 두려움 때문에, 혹은 해답이 너무도 명백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직관적인 마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 생각이 맞을 리가 없어" 혹은 "그것을 제대로  해낼 리가 없어"라고 말하곤 한다. 그리고 생각의 가지가 이런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대로 따라가다가 서둘러 결론짓고 나서, 자신이 그 상황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그러고서는  자신의 한계를 따지게 되는데, 그럴 경우, 실제로 그것이 자신의 한계가 되고 만다. 
자신의 직관이 틀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그것을 신뢰하는 법을 배울 수만 있다면 당신의 인생에 마술과 같은 모험이 시작된다.
자신의 직관을 믿음으로써, 기쁨과 지혜에 이르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장벽을 없앨 수 있다. 또한 이것은 지혜와 축복이  넘치는 세상을 향해 자신의 마음과  눈을 여는 방법이기도 하다. 
자신의 직관을 신뢰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잠시 짬을 내서 마음을 비운 후 
내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부터 시작하라. 
습관적으로 떠오르는 자기 파괴적인 생각은 모두 무시하고, 서서히 떠오르는 조용한 생각들에 집중해 보라. 마음속에서 사랑으로 충만한 놀라운 생각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하면, 그것을 적은 후 행동에 옮겨라. 
가령,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거나 전화하라는 메시지를 받을 경우 그렇게 해보라. 그리고 자신의 직관적인 마음이, 좀 더 속도를 줄이고 느긋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면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라. 조심해야 할 습관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는가?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그것에 주의를 기울여라. 
직관이 들려주는 메시지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의 삶은 낙관과 사랑으로 충만해진다. 오늘부터라도 자신의 직관을 신뢰하기 시작하라. 그러면 자신의 삶에서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96 '있는 그대로' 마음을 열라.
수많은 철학 사상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원칙 중 하나는 인생이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고집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자신의 마음을 여는 것이다. 
마음을 혼란시키는 내적 갈등의 대부분은, 인생을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과 지금과는 다른 식으로 변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인생이 항상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그러한 경우는 무척 드문 게 현실이다. 
인생이 어떠해야 한다고 미리 결정하는  그 순간부터, 새로운 것을 즐기고  배울 수 있는 기회와는 점점 멀어진다. 게다가 위대한 깨달음의 기회가 될지도  모르는 현재의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조차 가로막는다. 
아이들의 불평이나 배우자의 반대 의견에 부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마음을 열고 그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그들이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화내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자신이 맡고 있는 프로젝트가 거부당했을 때, 좌절감을 느끼는 대신 "이럴 수가, 거부당하고 말았어. 하지만 다음에는 꼭 승인을 받아 내고 말 거야"라고 말해 보자. 자신이 대범한 인간임을 과시하기 위해 불평과 반대, 혹은  실패를 즐기는 척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을 초월하여, 삶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에 절망하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일상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 마음을 여는 법을 터득한 사람에게는 자신을 괴롭혔던 많은 문제들이 더 이상 골치 아픈 존재가 아닌 것이다. 마음의 눈이 더욱 깊고 투명해진다. 
인생은 전투가 될 수도, 혹은 자신이 공  노릇을 하는 탁구 시합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순간에 충실하고,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고 만족한다면  따뜻하고 평화로운 감정이 찾아들기 시작할 것이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사소한 문제들에 이 방법을 적용해 보라. 그리고 이러한 인식을 좀더 중요한 일들에까지 점점 넓혀 나가라. 이것은 삶이라는 높고  험난한 산을 오르는 데 실로 강력한 힘이 되어 준다.

97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라
자신의 정신적인 편향, 실생활에서 부딪히는 문제, 습관,  그리고 인생의 모순과 복잡함은 때때로 우리의 평온한 삶을 방해한다. 
더군다나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픈 충동에 따라  행동한다면, 평화로운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를 이루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자신이 얼마나 자주 "나라면 그렇게  하지는 않을 거야", "그가  한 일을 도저히 믿을 수 없어", "그녀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와 같은 말을 반복하는지 생각해 보라. 
사람들은 자신이 통제할 수도,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자신과는 전혀 상관도 없는 일을 놓고 절망감을 느끼며 신경을 쓰고, 짜증을 내며 걱정하곤 한다.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라는 것은 구원 요청을 외면하고, 곤란한 처지를 모면하기 위한 처방이 아니다. 언제 도움의 손길을 뻗고, 언제 그냥 넘어가야 하는 것인지에 관한 것이다. 
나도 예전에는 누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대뜸 끼여들어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하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나의 노력은 대개  부질없는 것이었다. 상대는 거의 예외 없이  나의 호의에 대해 전혀 고마워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분개하기까지 했다. 
지나치리만큼 타인의 삶에 개입하려는  욕구를 극복한 후부터, 나의  인생은 좀더 단순한 것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괜스레 저기 남의 일에 끼여들지 않음으로써, 도움을  요청하거나 진정으로 손길이 필요한 곳에 훨씬 큰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었다. 
남의 일에 상관하지 않는 것은 타인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픈 유혹을 피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엿듣거나, 근거도 없는  소문을 퍼뜨리거나, 상대가 없는 데서 험담을 하거나, 누군가에 대해 분석하고 알아내려고 하지 않는 것도 여기에 포함된다. 
타인의 결점과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주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정면으로 마주 대하기를 회피하는 데에서 기인한다. 
자신과 무관한 일에 무분별하게 얽혀 드는 것을 통제할 수 있는 겸손과 지혜를 되찾는 것이 중요하다. '끼여들기'가 아니라 '함께하기'를  통해, 자신의 힘을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한 일에 쏟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98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발견하라
한번은 텔레비전에서 어떤 기자가 두 노동자와 인터뷰하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기자는 첫 번째 노동자에게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자신이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는 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으며, 하는 일에 비해 임금도 훨씬 적고, 자신은 사실상  노예나 다를 바 없는 벽돌공이라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 기자는 다른 노동자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그의 대답은 앞의 남자와는 전혀 달랐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마치 내가 중요하고도 아름다운 건축물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단순한 벽돌들을 멋진 걸작품으로 바꾸는 일을 돕고 있죠."
사실, 두 사람의 대답은 모두 옳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보고자 하는 면만을 보기  마련이다. 추한 것만을 찾는 사람의 눈에 실제로 추한 모습들이 많이 발견되는 것은 당연하다. 
타인, 직장, 세상 전체에 대해  잘못된 점을 찾으려 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 반대로도 할 수 있다. 평범한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노력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좀더 밝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두 번째 벽돌공은 돌 조각에서 성당을 보았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당신은 세상에 존재하는 놀라운 일들을, 우주의 완벽함을,  자연의 위대한 아름다움을, 인간의 삶이라는 믿을 수 없는 기적을 느낄 수 있는가?
내게 있어, 그것은 어떤 것에 주의를 기울이느냐 하는 문제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세상에는 감사하고 경외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이 있다. 
인생은 값지고 놀라운 것이다. 눈높이를 이러한 사실에 맞추면  작고 평범한 것들이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99 내면을 가꾸기 위한 시간을 만들어라
금전적인 계획을 세울 경우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원칙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다른 청구서의 돈을 지불하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을 제1순위 채권자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혜의 원리는 다른 사람들의 돈을 다 갚을 때까지  저축을 미루게 되면, 결국 자신을 위한 것은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거라는 데 있다. 계속해서 저축 계획을 훗날로 연기하다 보면, 결국에는 때가 늦어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신에게 먼저 돈을 지불하고 나면 다른  사람들에게 줄 돈도 충분히 남아 있게 된다. 
인생의 또 다른 면들도 이와 같다. 지겨운 일과 책임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 모두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뭔가를 시작하려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생각은 없다. 
매일 일정한 시간을 정해 놓고 마치 아주 중요한 약속이나 되듯이 지켜 나가는 것이야말로 얼마간의 시간이나마 오직 자신만을 위해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가령 독서, 기도, 반성, 명상, 요가, 운동 등 자신이  하고픈 일에 이른 아침 1시간 정도를 둘 수도 예약해 둘 수도 있다.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자신에게 달려 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시간을 계획하고, 그 시간을 충실하게 보내는 것이다. 
내 고객 중에는 자기 계발을 위한 시간을 갖기 위해 아이를 돌보는 사람을 고용한 사람도 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그녀의 노력은 그만한 대가를 거둬들였다. 그녀는 내게, 현재 자신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 
사실, 그녀도 한때는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만들기 위해 보모를 고용한다는 것은 아예 생각지도 못했었다. 그러나 자신이 바라던 일을 할 수 있게 된 지금에 와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한다. 
노력하기만 하면, 자신에게 필요한 시간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100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라.
우리는 언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인가? 50년 후,  20년 후, 10년 후, 5년 후, 아니면  오늘? 내가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던졌을 때 그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퇴근하고 집으로 가던 중 교통 사고를 당해 죽은 사람에 대한 보도를 듣게 될 때마다, 나는 가끔 그 사람이 살아 생전에  가족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얼마나 표현했을까  궁금해지곤 한다.
그는 진실한 삶을 살았을까? 그는 아름다운  사랑을 해보았을까? 어쩌면 가장 확실한 한 가지는 그가 미처 마치지 못한, 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자신이 얼마나 더 오래 살 수 있을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서글프게도,  사람들은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한다. 우리는 마음속 깊이 원하고 있는 일들, 가령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들은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얘기하고,  혼자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친구 집을 방문하고, 멋진 도보 여행을 하고, 마라톤을 하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편지를 쓰고, 딸과 함께 낚시를 가고, 명상법을 익히고,  사람들의 말에 귀기울이는 일을 미룬다.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정교하고 세련된 근거를 대며,  대부분의 시간과 정력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낭비한다. 스스로의 한계를 정당화하기 시작하면, 결국 그것은 자신의 한계가 되어 버리고 만다는 충고도 무시한다. 
나는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라'는 제안으로 이 책을 끝내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분별없는 행동을 하거나 책임을 포기하는  데 대한 구실로서가 아니라, 인생이 실제로 얼마나 소중한가를 상기시켜 주고 싶기 때문이다. 
한 친구가 "인생은 너무도 중요하고, 너무도 짧기 때문에 심각하게 받아들여서는 안돼"하고 말한 적이 있다.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가 옳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책이 당신에게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인 '사소한 것에 골치 썩이지 말자'를  잊지 말라. 나는 진정으로 당신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부디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