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영화,리뷰,

박종화-여인천하 (2)

by Casey,Riley 2023. 2. 23.
반응형

    요녀 등장
  윤원형은 새로 작첩한 작은집을 대궐 안으로 들여보내라는 윤비의 
말씀을 듣자,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대궐에서 물러 나왔다. 윤비의 아우 
윤원형은 소시 때 장가 든 아내 김씨가 있었다. 현감으로 몇 군데 원 
노릇을 지냈던 김안수의 딸을 아내로 삼았던 것이다. 남한테 과히 빠지지 
않는 축이요, 바느질과 음식에 간을 맞추는 솜씨도 보통 여인한테 
떨어지지 않는 축이었다. 원형의 내외는 아무 일 없이 평탄하게 지냈던 
것이다. 윤비가 간택에 뽑혀서 대궐로 들어간 뒤에 세상 사람들은 
윤원형을 대하기를 전보다 훨씬 달리 보았다. 벼슬은 아직 높지 못하여 
나리 칭호밖에 받지 못했으나 국모의 아우이고 장차 권세를 잡기만 하는 
날은 좌의정, 우의정에 영중추부사 대감이 될 것은 틀림없는 일이었다. 
윤원형과 한번 친해 보기를 원하는 사람은 많았다. 이 중에 정윤겸이란 
자가 있었다. 전부터 윤원형을 잘 아는 위인이었다. 정윤겸은 첩이 
있었는데 첩의 몸에서 딸을 하나 낳아 나이 이십 세나 되었다. 마음씨는 
볼 것 없으나 얼굴은 천하절색으로 예뻤다. 정윤겸은 여러 차례 궁리한 
끝에 딸을 윤원형의 첩으로 바쳐서 뒷길을 보리라 생각했다.
  정윤겸은 윤원형의 집을 찾아서 날마다 바둑을 두었다. 하루는 윤원형과 
바둑을 두다가 슬며시 바둑을 쓸면서 정색을 하고 말을 꺼낸다. "소인이 
과년한 딸 하나가 있는데, 침선방적은 말할 것 없고, 얼굴은 천하게 다시 
짝이 없는 줄 생각하오. 여러 해 동안 사윗감을 유념해 보았으나 마땅한 
자리가 없소. 나으리께서 의향이 계시다면 아내로 드릴 테니 
데려가시랴오?" "이 사람아, 나는 아내가 있는 사람인데 어떻게 장가를 또 
든단 말인가?" 윤원형은 얼굴이 천하게 짝이 없는 절색이란 바람에 마음이 
솔깃해서 이렇게 대답한다. "첩으로 데려가란 말씀이지, 누가 장가를 
드시라오? 소인이 소인의 딸을 칭찬하는 말은 우스운 일이오마는, 정말 
천하에 짝을 구하기 어려울 것이오." "그렇다면 자네 딸은 작은집 
소생인가?" "털어 놓고 말하리다. 과연 소인의 소실의 소생이오. 그러하니, 
이러나저러나 간에 재상의 별실로 들여보내야 할 참인데, 이왕이면 
나으리한테 맡기려 하오." "하오 잘 생겼다 하니, 어디 한번 선을 볼 수가 
있겠나?" 윤원형은 비위가 당기었다. "그것 어려울 것 없소. 나으리가 
보시겠다면, 보여 드리오리다. 언제쯤 보시겠소?" "오늘 밤이라도 좋지." 
"그렇게 바빠서야... 주안상도 좀 장만해 놓고 딸년 새 옷도 입혀 놓아야 
하지! 그리구 소인의 소실한테도 나으리가 선을 보러 오신다고 연통을 해 
두어야 할 것 아니오, 하하하. 소인이 내일 저녁때 댁으로 올 테니, 미리 
의관을 정제하고 계시다가 곧장 소인의 집으로 가기로 합시다."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세. 처가집 말뚝에 절도 한다는데 장인의 처분을 아니 
받을 수야 있겠나." 윤원형의 입은 벙글벙글 벌어졌다.
  이튿날 저녁때 정윤겸은 약속대로 윤원형의 집에 왔다. 윤원형은 안에 
들어가 다시 세수를 하고, 망건과 탕건을 반듯이 썼다. 살쩍밀이에 침을 
발라 살쩍을 미끈하게 밀어 체경에 얼굴을 비춰 본 뒤에, 아내 김씨한테는 
김판서 댁 잔치에 놀러 가서 어쩌면 저물는지도 모르니 과히 기다리지 
말라고 이른 뒤에 새로운 의복 일습을 내놓게 하였다. 아내는 영문도 
모르고 영감이 재상의 잔치에 간다 하니 남에게 떨어질세라 의장문을 열고 
홑벌 의복 일습을 내놓는다. 윤원형은 아내가 내주는 새로 지은 옥색 명주 
저고리에 상침을 뚝 뗀 상팔 흰 바지를 입고 회색 대자 허리띠에 옥색 
대자 대님을 진솔 버선목에 멋들어지게 매었다. 원형은 다시 다듬은 모시 
행전을 높직이 정자 고를 내어 무릎 아래 맨 뒤에 노란 염냥을 운치있게 
허리띠에 늘어뜨렸다. 환하게 잘생긴 삼십대의 얼굴이 더욱 화려했다.
  원형은 체경에 자세를 한 번 더 비춰 본 뒤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숙한 아내는 원형의 마음속도 모르고 물빛같이 푸르고 맑은, 곱게 
다듬은 한산 세모시 도포를 활짝 벌려 등 뒤에서 입혀 주고 도흥 붉은 
띠를 가슴 위에 높직하게 매어 주었다. 원형이 화대모 갓끈 달린 윤기 
도는 진사립 갓을 인모 탕건 위에 받쳐 쓰고 자줏빛 뒷발막을 마루 끝에서 
신으면서 댓돌로 내려섰을 때 착한 아내는 남편의 속도 모르면서, "약수 
많이 잡숫지 말고 일찍 들어오십쇼." 목소리를 나직이 하여 당부한다. 
"되도록 일찍 돌아오도록 하리다. 그렇지만 젊은 축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면 어디 그렇게 속히 끝이 나야지. 아무튼 빨리 돌아오도록 해보리다." 
원형은 도포 자락을 흩날리면서 사랑으로 나갔다. 사랑에서는 나리가 
출입을 하려는 거동을 보자 상노놈이 내닫는다. "어디로 가시옵니까? 
자비를 놓으랍시오?" "멀지 않은 곳이니 행기 겸 슬슬 걸어가겠다." 
"그러면 자비 없이 소인이 따르오리까?" 밖에서는 상노놈이 멋도 모르고 
귀찮게 군다. "너도 따라올 것 없다. 정첨지 영감이 동행을 하시니 훗훗 할 
것 없다." 원형은 이렇게 상노도 떼버리고 정윤겸에게 눈짓을 해서 사랑 
중문을 거쳐 대문 밖으로 나갔다.
  거리에는 집집마다 굴뚝에서 저녁밥을 짓는 연기가 가벼운 저녁 바람에 
어지러이 흩날린다. 정첨지는 대사동 큰길을 건너 관자골로 들어서 
꼬불꼬불 행랑 뒷길을 두어 번 돌다가 이내 조그마한 막다른 집으로 쑥 
들어섰다. "누추하지만 들어오십쇼. 소실의 집이옵니다." 윤원형은 첨지를 
따라 문안으로 들어섰다. 바로 안문이 이마에 닿을 듯한 조그마한 
집이었다. "건넌방을 다 치워 놓았느냐?" 정첨지의 음성을 듣자 
안방에서는, "네" 하는 여인의 목소리가 가볍게 새어 나왔다. 정첨지는, 
"올라오십시오, 나으리. 누추한 곳이옵니다마는." 인사조의 말을 하고 
윤원형을 건넌방으로 인도했다. 윤원형이 건넌방에 발을 들여놓으니, 집은 
조그마했지만 방안은 깨끗하게 도배를 해서 분통같이 꾸며 놓았다. 도배 
장판만 정결한 것이 아니라, 보전범절과 문방사우가 아담하게 벌여져 
있었다. 맞은 벽에는 모란수 병풍이 화려하게 둘러쳐 있고 수병풍 
아래에는 남선 두른 붉은 제병 보료를 깔고 안석, 장침에 사방침까지 
구비하게 놓였는데, 남창문 아래는 화류문갑이 놓이고 문갑 위에는 석류, 
유자, 모과가 접시 위에 받쳐져서 싱그러운 향내를 뿜었다. 문갑 옆에는 
조그마한 경대가 놓이고 보료 앞에는 안성유기, 번쩍번쩍 광을 뿜는 요강 
타구에 화선이 꽃처럼 촛대까지 놓여 있었다.
  정첨지는 방에 들어서자 청심박이 육초를 손수 초꽂이에 꽂고, "가피 
성냥에 불을 다려 오너라." 밖을 향하여 소리를 친다. 이윽고 동자치가 
개비 성냥에 불을 붙여 오니 방 안에는 촛불이 켜지면서 아늑한 운치를 
풍겼다. 색시가 들어오기 전에 벌써 신방 정취가 떠돌았다. 이윽고 문이 
열리자 주안상이 들어왔다. 음식은 정첨지 소실이 윤부원군 댁 작은 
나으리가 딸의 선을 보러 온다고 하니 전심력을 다 들여서 온종일 차린 
것이었다. 숭어찜, 닭찜, 가리찜에 노랗고 흰 계란 고명에 완자 고명과 
실백에 새까만 석이 고명까지 곁들여 떼어놓고, 아홉 가지 산해진미를 
채칼질쳐 간맞게 담아 논 구절판까지 올랐다. 탕평채, 겨자채에 잡채, 
어채가 놓이고 어회, 육회에 수란이 망글거렸다. 단것으로는 문동첩매, 
귤병 정과가 오르고 용안, 예지, 당대추에 잣박산까지 놓였다. 윤원형은 
먼저 술에 취하고, 처녀가 취하기 전에 음식에 취했다. 아무리 윤부원군 댁 
작은 나으리라 하나, 새로된 양반이라 이런 음식을 궁중 이외의 민간에서 
대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술이 서너 순배 돌자 주인 정첨지는, "아주 저녁으로 잡수십시오." 하고 
안에서 들어오는 국수와 만두까지 바쳤다. 원형은 절간에 간 색시 
모양으로 정첨지가 시키는 대로 배불리 술과 저녁을 마치었다. 동자치가 
들어와서 상을 물린 뒤에 정윤겸은 천천히 말을 꺼냈다. "인제, 제 딸의 
선을 보시렵니까?" 거나하게 취한 윤원형은 뱃심이 저절로 생겼다. "좋지." 
하고 빙긋 웃어 대답하니, 정윤겸은, "아가, 양칫물 들여오너라." 하고 
큰소리로 안방을 향하여 외친다. 미리 약속한 노릇이라, 안방에서는 
기다리고 있었는지 방문 열리는 소리가 조용히 들렸다. 이내 가벼운 
발자취의 인기척 소리가 걱넌방 문밖에 멈추었다. 미닫이문이 사르르 
열리면서 연엽 소반을 받들어 든 처녀가 나타났다. 분결같이 고운 흰 손에 
받들어진 연엽 소반 위에는 양칫물이 아니라 과실과 화채 대접에 은수저 
두 벌이 곁들여 놓였다. 처녀는 손님과 아버지 앞에 연엽 소반을 단정하게 
놓고 고개를 약간 숙이어 조용히 섰다. 윤원형은 들어오는 처녀의 얼굴을 
넋을 잃고 바라본다. 과연 난생 처음 보는 아름다운 미인이었다.
  보름달덩이 같은 처녀였다. 윤원형은 글에서 서시전을 읽어서 서시의 
아름다움을 글자로 보았고, 시로 백낙천의 장한가를 읽어서 양귀비의 
아름다움을 한숨 쉬어 한탄한 일이 있었으나, 미인의 아름다운 태깔이 
이같이 고운 줄은 몰랐다. 윤원형의 머리에는 역대에 나타나는 아름다운 
미인들의 이름이 순서 없이 떠올랐다. 중국으로는 왕소군, 조비연, 탁문군, 
고려 때는 노국공주, 동인홍, 양녕대군의 정향, 성종 때 소춘풍, 연산 때 
장녹수, 광한선, 상림춘, 당대만 해도 평양 기생 옥매향, 서울 기생 관홍장, 
장안 명기 성산월이 아무리 절염이라 하나 처녀의 아름다움을 따를 수 
없을 것 같았다. 원형은 황홀한 눈으로 취한 듯 처녀를 바라본다. 화채 
쟁반을 들고 다소곳 고개를 숙인 채 반쯤 드러난 흰 버선코로 불빛 같은 
진다홍 대화단 치마를 곱게 걷어차면서 날씬날씬 걸어드는 태깔은 사람이 
아니라 한 폭 미인도가 살아서 걸어 들어오는 것이었다.
  처녀는 사뿐 무릎을 꿇어 화채 쟁반을 윤원형의 앞에 소리없이 놓았다. 
상그럽고 환한 얼굴이 바로 윤원형의 코앞 지척에서 달덩이모양 떠 
있었다. 쟁반을 곱게 놓는 바람에 칠흑같이 땋아 내린 채 좋은 머리 
꼬리가 꿈틀 연두색 저고리 등판 위로 미끄러지면서 고혹적인 제비부리 
자주댕기가 노르께한 장판 위로 뚝 떨어졌다. 숙여진 머리 위에선 백합 
같은 분향이 원형의 코를 강하게 엄습했다. 원형은 넋을 잃어 취한 듯 
앉았을 때 처녀는 쟁반을 놓고 고요히 일어나서 전반 같은 머리채를 
치렁거리면서 사뿐 뒷걸음을 쳐서 문밖으로 나간다. 검다 못해 푸른빛을 
뿜는 고운 살쩍이 풍정 있게 드리워진 뺨에는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는 
홍훈이 붉은 놀을 끼얹은 듯 아련히 떠돌았다.
  처녀가 문을 닫고 나가자, 처녀의 아버지 정윤겸은 빙긋 웃으며 
윤원형을 바라다본다. "선을 자세히 보셨습니까? 어떻습니까? 미상불 내 
자식 칭찬이 아니라 참으로 인물은 얻다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겝니다. 
나으리의 소실이 될 만 합니까?" 윤원형의 입은 흡족한 듯 벌어졌다. 
"따님을 나한테 보낸다면 싫다 않고 맡으오리다." "이십 년을 곱게 길러서 
나으리한테 맡기게 되니 한편으론 든든하고 한편으로는 섭섭하외다. 
다리가 짧아서 청실홍실을 늘이지 못하고, 열두 하님을 거느려서 보아란 
듯이 시집은 못 보내오마는, 작수성례라도 시켜야겠소이다. 어느 날쯤 
혼인을 하시랴우?" 이 때 처녀는 양칫물을 쟁반에 받들어 가지고 
들어왔다. 화채에 과실까지 받치고 나서, 양칫물을 격식 있게 가져오는 
것이었다. 윤원형은 마음 속으로 백령백리하구나 하면서 더 한 번 기뻤다. 
처녀가 양칫물을 놓고 물러간 뒤에 윤원형은, "아주 오늘로 작수성례를 
하기로 합시다." 단번에 윤원형은 혼인할 것을 승낙해 버렸다. 
  이날 밤이 깊어서 윤원형과 정윤겸의 딸은 오지동이에 깨끗한 정화수를 
떠서 상에 받쳐 놓고 작수성례를 한 뒤에, 윤원형은 정윤겸의 딸의 머리에 
은비녀를 꽂아서 머리를 얹히고 관례를 시킨 후에, 건넌방에 신방을 
보진하여 원앙베개에 봉황금침을 펴고 자리에 들었다. 삼십이 넘은 원형과 
이십이 찬 처녀의 은정은 청산에 숲이 무성하고 바다에 조수가 창일하는 
듯했다. "이름이 무어지?" "부모님께서 지어 주시기를 난정이라 하시고, 
그렇게 부르셨습니다." "난정이, 무슨 글잖가?" "난초 난자에 곧을 
정자입니다." "난초 난자에 곧을 정자라, 그 이름 참 잘 지었다. 꼭 너처럼 
이쁘고 아름답고 향기롭게 지었구나. 난초만 해도 군자의 품격을 가진 
향초라 맑고 깨끗한 꽃향기가 십리까지 미쳐지는 것인데, 여기다가 곧을 
정자의 정절까지 지니고 있으니 난초와 대를 한꺼번에 열려 논 셈이라. 
참으로 네 용모와 좋이 어울리는구나."
  윤원형의 말이 채 떨어지기 전에 난정은 별안간 흐느껴 울었다. 
윤원형은 깜짝 놀라 흐느끼는 난정을 품안에 껴안았다. 난정의 수정 같은 
눈물 방울은 윤원형의 옥색 명주 저고리 소매를 아롱아롱 적신다. 
"웬일이냐? 어디가 아프냐?" "아니옵니다." "그렇다면 별안간 왜 우나?" 
"소녀의 신세를 생각하니 설움이 별안간 복받쳐 터져서 미운 꼴을 뵈드려 
미안합니다. 난초 같고 대 같아서 정절이 있으면 무엇합니까? 일평생 가도 
남의 눈의 가시인 첩년의 몸이옵니다." 원형은 비로소 난정이 흐느껴 우는 
까닭을 알았다. 가슴이 사뭇 뭉클하면서 미안한 생각이 구름 일듯 
떠오른다. 품안에 든 난정의 눈물을 머금은 아름다운 얼굴은 붉은 해당화 
한 가지가 축축이 빗물을 머금은 듯 처염하게 아름다웠다. 눈물 방울이 
푸른 눈에서 샘솟듯 솟아서, 기름한 속눈썹을 이슬처럼 적시었다.
  "난정아, 고만 울어라. 첫날밤이 아니냐? 사위스럽구나." "이십 년 동안을 
부모의 품안에서 고이고이 자라서 백옥같이 깨끗하고 티 없는 몸으로 
화류계 노는 계집처럼 남의 집 첩년으로 떨어지는 신세온데, 다시 더 
사위스러울 일이 또 무엇 있겠습니까. 저 같은 천첩에게는 사위가 있을 
까닭이 없사옵니다." 말을 마친 난정은 또다시 흐느낀다. 원형의 품에 안겨 
가늘게 흐느끼는 울음소리는 피나게 우는 불여귀 소쩍새 울음소리보다도 
더 처량하게 윤원형의 가슴을 흔들어 놓았다. 원형은 난정의 가는 허리를 
꼭 껴안았다. "너는 첩이라도 양첩이잖아. 화류계 노는 계집이 아니라 
양가집 딸이란 말이다. 아무 염려 말아라." "양첩은 첩년이 아니옵니까? 
아무래도 손가락질을 받는 첩년이옵니다." 원형은 난정의 측은하게 눈물이 
흐르는 뺨에 자기 뺨을 꼬옥 대어 본다. 난정의 치근치근한 눈물이 
윤원형의 입술로 흘렀다. 찝찔한 난정의 눈물은 윤원형의 입술엔 향기로운 
향지로 변했다. 사람이 고우니 눈물 맛도 향기로운 듯 했다.
  "이거 봐, 난정이, 울지 말아. 기회만 있으면 내가 난정을 정실 부인으로 
승차를 시켜 줄게." 원형은 난정의 도독하고 하이얀 아름다운 귀에 입술을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정실 부인으로 승차를 시켜 준다는 윤원형의 말에 
난정의 눈은 동그랗게 떠졌다. 난정은 원형의 품안에서 발딱 일어나 
앉는다. "진정의 말씀이십니까?" "진정 아니면, 내가 첫날밤에 자네한테 
허튼 수작을 할 리가 있나, 양가집 딸은 정실로 승차를 할 수 있는 거야." 
"첩의 자식이라두?" "첩의 소생이 아니라고 하면 되지 않나." 난정의 
아리따운 눈은 광명을 바라보는 듯 얼굴에는 환희의 물결이 출렁거렸다. 
"첩의 소생이 아니라구만 하면 정실로 승차를 할 수 있습니까?" 원형의 
눈에는 난정의 이 태도가 무척 사랑스럽게 보였다. 번쩍 난정을 가로 안아 
무릎 위에 놓는다.
  그러나 난정의 얼굴에는 또다시 검은 구름장이 빽빽이 떠 흘렀다. 밝게 
떠올랐던 웃음 빛은 스러지고 시름이 첩첩했다. "말이 그렇지, 첩으로 정실 
부인 되기가 그렇게 용이한 일은 아니옵니다." 난정은 꿈속에서 깨어난 듯 
다시 새침해지면서 가만히 한숨을 쉰다. 날씬한 어깨가 가늘게 흔들리고 
고혹적인 붉은 입술 사이로 가만히 한숨이 새어나는 가련한 모습을 
굽어보는 윤원형의 안은 쥐어짜지는 듯 비틀렸다. 일천 간장이 녹아 
내리는 듯 했다. 어떻게 하면 난정의 마음을 가라앉혀 주나하고 생각해 
본다. "왜 한숨을 자꾸 쉬고 안을 태우는 거냐. 난정이도 정실 부인이 될 
수 있대두." 원형은 난정의 까만 머리털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그러면 
지금 함께 사시는 아씨는 어쩌하실 텝니까?" 난정은 원형의 무릎에 안긴 
채 호수 같은 눈을 맥맥히 뜨고 살며시 원형의 성긴 수염을 비틀어 본다. 
"내보내지." "무슨 핑계로 내보내시렵니까?" 난정은 또 한 번 원형의 
수염을 보드라운 손으로 가볍게 비튼다. 원형은 대답에 궁했다. 잠깐 
망설이고 있을 때였다. "내보내실 수는 없지요?" 요염한 난정의 푸른 
눈결이 원형의 얼굴 위로 헤엄질 치면서 원형의 마음속을 꿰뚫어 본다.
  원형의 머리에는 한 가지 생각이 번갯불처럼 스쳤다. 다만 난정의 
환심을 사기에만 바빴다. "내 아내를 내보낼 핑계가 있지. 혼인한 지 십 
년이 넘었건만 아직껏 아들을 낳아 보지 못했다." "정말이십니까?" "너의 
아버지도 소문을 들어 짐작하실 거다. 지금이라도 안방에 건너가서 내 
아들이 있나 없나 아버지께 물어 보라구." 난정의 얼굴빛은 비로소 
명랑해졌다. "정말 소녀를 한평생 버리지 않고 정실로 삼으시렵니까?" 
"염려 말아라." 윤원형은 덥석 난정을 껴안고, 소맷자락을 후리쳐 신방의 
불을 껐다. 이렇게 하여 윤원형과 난정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인생의 연을 맺었다. 윤원형은 아내를 속인 채 사흘밤을 난정의 친정에서 
신방을 치렀다. 난정과 원형의 정은 교칠같이 끈덕졌다.
  사흘 신방을 치른 마지막 날, 난정은 자리에 들어 옷을 바꾸어 입을 때 
가만히 윤원형에게 보챘다. "이 밤만 지나면 삼일 신방이 끝나는 
날입니다." "왜, 서운한가?" "서운하다뇨? 한평생을 두고 모시올 텐데." 
난정은 해끄무레한 얼굴에 윤을 뿜으며 미소를 그렸다. 흰 이를 드러내 
상긋 웃는 붉은 입술은 해당화 화판이 벌어진 듯 고왔다. 여기다가 노랑 
회장 자릿 저고리에 달린 자줏빛 긴 고름의 풍정은 불빛 아래 더 한층 
난정의 얼굴을 요태 나도록 돋보이게 했다. 원형은 목침을 베고 취한 듯 
난정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난정은 도란도란 말을 
계속한다.
  "내일부터는 어떻게 하고 지냅니까?" "교동 안에 새살림을 차려 놨으니 
새집으로 가야지. 출가외인이 된 사람을 밤낮 친정에다 둘 수야 있나. 자네 
아버지한테 말해서 벌써 집을 구해 사 놓고 분통같이 도배를 해서 의장, 
찬장에 장독까지 배치하고 오붓하게 새살림을 차려 놓았다. 아버지가 왜 
말씀을 아니 하시더냐?" "그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마는 언제까지 그러고 
사옵니까?" "언제까지라니, 머리가 파뿌리 되어 허옇게 세도록 나하고 한 
백 년을 같이 사는 게지, 하하하." 난정의 얼굴빛은 홀연히 새침했다. 
"세상 사람들은 건망증이 많다고 하더니 나리께서는 사흘이 채 못 되어 
모두 다 잊어버리셨습니까? 소녀는 새집에서 새살림하기가 소원이 
아닙니다. 이왕지사 몸을 허락해서 윤씨 댁 사람이 된 바에야 본댁에 
들어가서 봉제사 접빈객을 하다가 윤씨 댁 안방에서 해골을 뉘기가 
소원이올시다." 윤원형은 비로소 난정이, '이 밤만 지나면 삼일 신방이 
끝나는 날입니다' 하고 말 허두를 꺼낸 의취를 짐작해 알았다.
  원형은 당황했다. "어, 그것 말이냐? 정실 부인 되는 일 말이지? 
그것은..." 윤원형은 말끝을 흐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아씨는 아들을 
못 낳으니 보낸다구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바루 첫날밤에 그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언제 내보내시렵니까?" 난정의 얼굴빛은 금방 딴 사람이 
된 듯 싸늘한 서리를 끼얹고 살기가 등등했다. "응, 그것을..." 윤원형은 
다급했다. 손을 들어 상투 틀어 올린 뒤통수를 긁적긁적 긁는다. "본댁으로 
들어가는 시기가 언젠지 말씀해 주십시오." 난정의 살기 띤 표정은 별안간 
독사처럼 변했다. "응, 그것은 말이야..." "밤낮, 응 그것은 무업니까. 똑똑히 
말씀해 줍시오." "자네가 아들을 낳으면 정실 부인을 만들어서 본집으로 
데려가지." "그럼 고름을 맺어 줍시오." 난정은 자릿 저고리의 자주 고름을 
원형의 앞에 내놓는다. 원형은 침 먹은 지네처럼 판관이 되어 고름을 맺어 
약속을 한다.
  난정과 윤원형은 교동 새집에서 깨가 쏟아지는 새살림을 했다. 혈분이 
좋은 난정은 반년이 못 가서 태기가 있었고, 만삭이 되자 옥동 같은 
아들을 낳았다. 삼십이 넘도록 아들이 없었던 윤원형의 기쁨을 말할 
나위조차 없었다. 난정의 기쁨도 절정에 올랐다. 어린애 백 날이 지나자 
난정은 원형을 졸라대기 시작했다. 윤원형이 하루는 큰집에서 저녁밥을 
마치고 친구의 집에 놀러 간다고 핑계한 뒤에 교동의 작은 집 난정을 
찾았을 때, 난정은 전처럼 반가이 원형을 맞았다. 어린 것의 재롱을 한동안 
서로 보다가 난정은 웃는 낯으로 홀연히 한 마디 말을 꺼냈다. "나으리는 
참으로 건망증이 많으셔." 밑도 끝도 없이 방글방글 웃는 낯으로 지껄이는 
말을 듣고도 윤원형은 정말 건망증에 걸렸는지 난정의 말하는 뜻을 
깨닫지를 못한다. "내가 무슨 건망증이 있어?" 윤원형은 태평스럽게 
대답하면서 도리어 물었다. 원형의 태도를 보자 난정의 얼굴을 
새초롬해지면서, 발딱 일어나 삼층 의장문을 열고 맨 위층에서 노랑 
회장저고리 한 벌을 사뿐 꺼내서 원형의 앞에 놓았다. 원형은 그래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을 때, 난정은 차곡차곡 개켜진 저고리 소매를 
좌우편으로 활짝 헤치고 깃 앞에 서려서 접어놓은 자주 고름을 들추었다.
  "이래도 모르시겠습니까? 진정 건망증이 드셨습니다그려." 목소리가 
쇠되게 나오기 시작했다. 윤원형은 자주 고름을 보자 비로소 난정의 
머리를 얹혀 주던 첫날밤에 자기 손으로 고름을 매어 약속했던 그 일이 
문득 머리에 솟았다. '아내를 쫓아 버리라는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얼른 대답할 엄두가 나지 아니했다. "아아, 그것 첫날밤에 고름 맺던 
일 말인가." 원형은 빙글빙글 웃으며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난정은 
빙글거려 웃는 원형의 태도에 이내 부아가 터졌다. 얼굴이 파르죽죽 
살기를 띠어 뽀로통해지면서 쇠된 목소리를 지른다. "아아 그것 첫날밤에 
고름 맺던 일 말인가가 무슨 말씀입니까. 남은 일구월심에 일편단심. 
가슴에 맺혀진 한이 이것 이온데, 당신의 손가락으로 맺어서 약속한 일을 
남의 일 말씀하듯 하시니 참으로 기막힙니다. 인제는 어린애까지 나서 
백날이 지났습니다. 어서 약속대로 이행을 해주십시오." "염려 말게. 사내 
대장부가 일구이언을 하겠나. 서서히 기회를 보아서 보내도록 함세."
  윤원형은 난처했다. 첫날밤에 난정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아들만 낳으면 
본댁을 쫓아 버리겠노라 약속을 해놓았으나, 막상 당하고 보니 십여 년 
동안이나 귓머리를 마주 풀고 혼서지에 청홍실을 늘여서 맞이해 온 조강의 
아내를 당장에 내쫓는다는 것은 체면으로 보아도 난처한 일이요, 청문으로 
보아도 상서롭지 않은 일이었다. 아무리 난정의 앞이라 하나 끊어서 말을 
할 수 없었다. "서서히가 다 무엇입니까? 내일로 곧 결정을 지어 줍시오." 
"내일이야 어떻게 결정을 질 수 있는가. 집안에서 의논도 해야 하고..." 
"아니 됩니다. 곧 내일로 처결해 주십시오. 그렇지 아니하면 오늘 저녁에 
이 자식과 함께 죽겠습니다." 난정은 말을 마치자 이내 통곡을 하면서 
푸념을 내지른다.
  "이년의 팔자를 어찌하나. 죽자 하니 청춘이요, 살자 하니 남의 첩년인 
눈엣가시로구나. 곱다랗게 윤씨한테 속아 넘어가서 옥 같은 내 몸을 
일평생 망쳤구나." 난정은 주먹으로 가슴을 치면서 통곡을 하고 통곡을 
하면서 푸념을 한다. 별안간 일어나는 통곡 소리에 부엌에서 동자치가 
눈이 둥그레해서 뛰어나오고, 문간방에선 바깥 하인가지 안으로 뛰어들어 
마당에서 서성거렸다. 윤원형은 별안간 통곡을 하는 난정을 바라보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이래, 난정이. 기회를 봐서 자네를 정실로 
만들어 준다구 말하지 않았는가. 조금만 참아." 원형은 난정의 등을 
투덕거려 어루만지면서 통곡을 그치도록 위로를 한다. 이 때 난정은 
돌연히 포대기 위에서 무심히 발버둥을 치고 있는 어린것을 포대기 째 
번쩍 들어서 내동댕이를 친다. "이 놈의 자식, 너도 자라면 네 아비처럼 
남의 신세를 속여서 망쳐놓을 놈이니, 아주 세상에서 일찍이 없어지는 
편이 낫겠다." 어린애는 불덩이처럼 울었다. 원형은 깜짝 놀라 방바닥에 
태질쳐진 어린것을 번쩍 안아 들었다. 어린것은 그치지 않고 불같이 
울었다.
  창 밖에서 동정을 살피던 동자치가 뛰어들었다. "아씨, 별안간 망령이슈, 
이거 웬일이슈?" 동자치는 나리의 손에서 어린것을 받아 들고 문 밖으로 
나가 피신을 시킨다. 난정은 미친 듯 눈이 뒤집혔다. 마루로 쏜살같이 
뛰어나가자, 다듬잇돌 뒤에 놓여 있는 방망이를 집어 들고 의장, 농장, 
체경, 찬장을 모조리 부셔 댄다. 와지끈 우지끈 뚝딱 소리가 일어나면서 
장문이 떨어지고 유리가 부서졌다. "아씨, 왜 이럽쇼, 망령입쇼?" 행랑 
아범은 마당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감히 올라오지는 못하고 만류하는 
소리만 보낸다. 원형은 난정의 방망이를 억지로 빼앗았다. 난정은 아니 
뺏기려고 몸부림을 쳤다. 머리는 흩어져 산발이 되고 옷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원형은 창피함을 이길 수 없었다. 난정을 방으로 끌고 들어가 
부복 사죄를 드린다. "그저, 제발 참아 주게. 내일이라도 본집을 내보내고 
자네를 본집으로 데려가서 정실 부인을 삼을 테니. 이거 정말 아랫것들 
있는데 창피하지 않은가."
  난정은 마이동풍이었다. 흩어진 머리와 찢어진 옷으로 목이 쉬도록 
통곡을 한다. 원형은 화가 가슴에서 치솟았다. 그러나 화풀이를 할 수도 
없었다. 손뼉이 마주치면 손뼉 소리만 더 커지는 것이었다. "자아, 울음을 
그쳐요. 동리가 부끄러우니 제발 그만 그치라구. 내일이라도 본집은 아이를 
못 낳는다구 핑계해서 내보낸다구 하지 않았나." 그러나 난정은 계교로 
우는 울음이었다. 원형의 말을 들을 리가 만무하다. 여전히 신세 타령을 해 
가면서 처량하게 통곡을 했다. 윤원형은 마침내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온다 
간다 소리 없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매만져 입고, 하인에게 문을 
잘 단속하라 이른 뒤에 본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본집으로 돌아오는 
원형은 홧김에 난정을 버리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본집으로 돌아와 
사랑에 혼자 누워 생각하니 차마 난정을 버릴 마음을 들지 않았다.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난정을 버리고는 자기 자신이 살아갈 수 없게끔 
생각이 들었다. 그 아름다운 살결과 영리한 모습을 떨어져서는 암만 해도 
살아갈 것 같지 아니했다. 원형은 밤에 한잠도 이루지 못하고 고스란히 
날을 밝혔다.
  이튿날 원형은 청지기한테 말을 하여 조그만 집 한 채를 구하게 한 뒤에 
아내 김씨를 새로 산 집으로 옮기게 하고 본집에는 도배 장판을 깨끗이 한 
뒤에 난정을 공공연하게 맞아들였다. 난정이 본집으로 들어간 뒤에 딴 
집으로 쫓겨난 본실 김씨한테는 점점 구박이 자심했다. 처음엔 양식거리를 
조금씩 대주던 것을, 난정이 내주장이 되어 살림을 맡은 뒤에는 쌀 한 톨, 
나무 한 단 보내지 아니했다. 원형의 아내 김씨는 성정이 착한 사람이었다. 
모두 다 이것이 자기가 생산을 못 해서 받는 대가려니 하고 모든 고생을 
달게 받았다. 그러나 자기 손으로 목숨은 차마 끊을 수 없었다. 식량이 
떨어져 배가 고프니 하는 수 없이 원형을 만나러 본집을 찾았다. 그러나 
원형을 만날 도리는 없었다. 밥만 얻어먹고 돌아갔다. 그야말로 배 주고 
뱃속 빌어먹는 격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럴 때마다 난정은 구박이 
심했다.
  본실 부인을 거지로 대접해서 부엌에서 누룽지와 찬밥을 먹여서 내쫓아 
버리곤 했다. 대대로 내려오는 하인들은 눈물을 머금어 김씨 부인의 
가련한 형편을 동정했으나, 원체 난정이, 표독하고 무서우니 감히 말을 
꺼내는 사람이 없었다. 이 때 사회 제도는 아무리 첩이 본실을 내쫓고 
본실 행세를 하려 해도 본댁이 살아있는 한 용이하게 본실이 되어질 수 
없었다. 난정은 기어이 김씨를 제쳐놓고 본실이 되리라 독한 마음을 
먹었다. 난정은 친정에서 데리고 들어온 교전비한테 독약을 맡기고 이것을 
김씨가 오거든 식혜에 타서 먹이라 했다. 목구멍은 참으로 더러운 
것이었다. 김씨는 난정의 구박이 자심한 것을 뻔히 알면서도 거지의 
신세가 되어 배만 고프면 난정의 집을 찾았다.
  난정의 종은 난정이 시키는 대로 식혜에 가만히 독약을 타서 김씨한테 
내주었다. 김씨는 오래간만에 식혜를 대하니 천하의 진미라고 생각했다. 
부엌에서 식혜 한 그릇을 배불리 얻어먹고 쫓겨나 집으로 돌아갔다. 이날 
밤에 김씨는 가엾게도 비명횡사를 하여 참혹하게 세상을 떠나 버렸다. 
며칠 뒤에야 김씨네 친정에서 김씨를 찾아보러 왔다가 김씨의 주검을 
발견했다. 급히 윤원형에게 기별하여 초상을 치르게 했다. 김씨네 부모들은 
딸의 죽은 원인이 하도 이상해서 수시를 할 때 자세히 몸을 보니, 저절로 
죽은 것이 아니라 독약을 먹여 죽인 것이 분명했다. 늙은 부모들은 
방성통곡을 하고 땅을 쳐 울었으나 윤원형의 세력은 서슬이 시퍼런 왕후의 
동생이었다. 확실히 윤원형의 집에서 독약을 먹여 죽인 줄은 알았으나 
감히 이것을 드러내어 고발할 용기는 없었다. 김씨의 부모는 깊이 한을 
안은 채 딸의 시체를 땅에 묻었다.
  난정은 이러한 독부였다. 이런 독부인 것을 모르는 왕후 윤씨는 
원형에게 심심소일을 할 테니 난정을 대궐로 들여보내 달라는 분부를 
내렸다. 본실인 김씨의 목숨까지 빼앗아 집안의 정권을 잡은 난정은 
아름다운 미모와 영리한 태도로 원형의 비위를 맞추었다. 이제는 포달도 
아니 부리고, 통곡도 아니했다. 집안 살림은 맺고 끊은 듯 비복을 거느려 
규모 있게 처리하고, 원형의 뒷배를 가려운 곳을 긁어 주듯 빈틈없이 
보아주니, 살림은 점점 불어 나가고 집안은 김씨의 풍파도 어느덧 
잊어버린 채 안락한 가정을 이루었다. 원형은 진작 난정을 못 만난 것이 
한이었다. "자네 덕에 요새는 집안이 화합하고 가세도 점점 불어나가네." 
"제 힘이 아닙니다. 부원군 댁 작은 아드님 댁이 되니까 집 안 형편이 
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서어서 권세를 잡으셔서 조선 안에 제일 
가는 살림을 하셔야 합니다." 난정은 솔직하게 말하면서 어서 남편이 
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권력을 잡을 생각은 굴뚝 같네마는 누가 
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않는가." "나으리도 참으로 벽창호십니다. 감꼭지가 
말랑말랑 익어서 저절로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가만히 누워 계셔도 저절로 
나으리 입안으로 연감이 굴러 들어올 줄 아십니까? 일을 하세요. 일을 
하셔야만 권세가 나으리 손안에 잡혀질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란 
말인가?" 권세를 잡을 일을 하시란 말씀입니다." 매서운 난정이었다. 본실 
아내를 죽여 집안의 권력을 잡은 난정은 원형을 충동질하여 나라의 권세를 
잡을 것을 주장한다. 원형은 마음속으로 난정을 더 한 번 달리 보았다.
  "어떻게 하면 권력을 잡을 일을 하겠나?" "밤낮 부원군 댁 작은 
나으리로 근심 걱정 없이 허송세월만 하실 것이 아니라, 이제는 
나으리께서도 삼십이 넘으셨으니 조정 형편을 자세히 살피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누님이신 왕비마마의 지위도 튼튼하시고 나으리의 출세도 속히 
빛나십니다. 지금 조광조 일파인 선비들의 세력은 여지없이 떨어지고 
이번엔 동궁마마의 외삼촌인 윤임 대감과 효혜공주의 시아버님 김안로 
대감의 세력이 욱일승천을 할 것입니다." "그렇지. 원자로 동궁마마를 
책봉해 놨으니 원자의 외삼촌인 윤임 대감은 말할 나위도 없고 김안로 
대감은 원자의 동복 누님의 시아버지가 되니, 앞으로 두 분의 세력은 
조광조 세력에 비할 것이 아니지. 자네 말대로 욱일승천이 될 것이야. 자넨 
용하게 조정일까지 짐작하네그려."
  윤원형은 더 한 번 난정의 총명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정에 
벼슬하는 공경대부의 아내로 이것도 모르고야 어떻게 내조를 할 수 
있습니까. 더구나 나으리께서는 일국의 국모이신 왕후전하의 동기간이 
아니십니까?" "그래서 나는 쉬이 한번 윤임 대감과 김안로 대감을 
찾아뵈려 하네. 원래 우리 누님은 윤임 대감이 김안로 대감과 의논하여 
간택에 뽑히도록 했으니 이번 세자께서 새로 책봉되신 이 기회에 두 분을 
한번 찾아뵈려 하네." 난정은 새까만 눈으로 원형을 한번 쳐다보다가 
고개를 살랑살랑 아래로 흔든다. 난정은 고개를 살랑살랑 가로 흔들자 
쌩긋 웃었다. "나으리께서는 참으로 호인군자십니다. 왕후마마를 윤임 
대감이 간택해 천거하신 것이 진심으로 왕후마마나 나으리 댁을 위해서 
천거하신 줄로 아십니까? 원자를 세자로 만들려는 디딤돌로 가난한 일가 
댁인 나으리 댁 아기씨를 천거한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날 
세자는 책봉이 되지 않고 왕비는 복성군의 어머니 경빈 박씨나 홍희빈이 
되었을 것입니다. 윤임 대감과 김안로 대감을 조심하십쇼. 두 분은 
세자편이지 절대로 왕후편은 아닙니다."
  총명한 난정의 판단에 윤원형은 고개를 숙여 묵묵히 생각 속에 빠진다. 
"앞으로 윤임 대감과 김안로 대감은 나으리의 적이 될는지도 모릅니다. 
왕비마마께서 지금을 딸만 낳으셨으니 별탈이 없을 것입니다마는, 만약에 
아드님을 낳으시는 날 왕후마마께서는 나으리와 윤임 대감이 적이 되듯이 
세자마마와 적이 될 경우가 있을는지도 모를 것입니다." 난정은 초롱초롱 
별빛 같은 눈을 반짝이면서 도란도란 지껄여댄다. 난정의 대담한 소리에 
원형은 깜짝 놀랐다. 얼른 손을 들어 난정의 아리따운 붉은 입술을 탁 
틀어막는다. 난정은 틀어막은 윤원형의 손을 가볍게 뿌리치면서 목소리를 
내어 요염스럽게 깔깔 웃었다. "무서우십니까? 나으리도, 겁도 많으셔. 
이곳엔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습니다. 소녀의 심복인 교전비밖에 없습니다. 
난정은 또다시 요염스럽게 발간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말은 
조심해야지" 그렇게 조심이 많으시다면 나으리께서는 어떻게 장치 조선 
천지를 물리칠 큰 권력을 잡으시렵니까? "누가 나한테 조선천지를 뒤흔들 
권력을 준대야 말이지. "호호호. 나으리도 참 딱하시군요. 누가 권력과 
세력을 보따리 전하듯 갖다 주는 사람이 세상 천하에 어디 있습니까? 
권력과 세력은 자기가 구해서 잡아야만 합니다. 정작 왕비마마의 오라비로 
나라의 권력을 잡지 못한다면 어떡합니까? 지금부터라도 늦지 아니하니 
세도 잡을 것을 차근히 궁리합시다."
  "어떻게 하면 세도를 잡겠는가?" 윤원형은 난정의 말이 비위에 당겼다. 
"중전마마께 자주 문후를 하시고, 다음엔 조정안에 벼슬하는 사람 중에서 
윤임의 편도 아니고 남곤, 심정의 편도 아닌 재주있고 똑똑한 사람들을 
미리미리 많이 사귀어 둡시오. 그렇게 한다면, 이 사람들은 모두 다 
나으리를 사귀려고 들 것입니다. 나으리는 왕비마마의 동생이시니 이 
사람들은 뒷길을 보아서 나으리께서 손만 내밀면 단박 덤벼들 것입니다. 
그러니 내일이라도 빨리 대궐로 들어가시어 왕비마마를 위로해 
드리십시오. 전비 아드님으로 세자를 봉하시는 날, 말씀을 차마 못 해서 
그렇지 딸만 삼사 형제를 두신 그 어른의 심정이 얼마나 상하셨겠습니까. 
말로는 도저히 표현 못 할 일이옵니다. 형제지간에 이 심경을 몰라 
드린다면 왕후마마는 얼마나 섭섭하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윤원형은 난정의 말을 듣자 꿈속에서 깨어난 듯 이튿날 부랴부랴 
중전으로 들어가 윤비께 승후를 드렸던 것이다. 윤원형은 난정의 가르침을 
받아 대궐 안의 누님을 찾아 승후를 하러 들어갔다가, 말끝에 난정의 
말씀이 나서 심심하고 고적한데 말벗을 삼겠으니 작은집 난정을 가끔가끔 
대궐 안으로 들여보내라는 융숭한 분부를 받았던 것이다. 원형은 대궐에서 
물러나자, 난정이 좋아하는 아리따운 모습을 어서 대하고 싶었다. 대문을 
들어서자 사랑 중문을 거치지 않고 바로 곧 안중문을 지나 대청을 향하고 
걸었다. "나으리마님 돌아오십니다." 뜰에서 연통하는 상노놈의 목소리를 
듣자, 안방 문이 사르르 열렸다. 난정은 벌써 원형의 퇴궐할 시각을 
앞질러서 머리를 공단결같이 곱게 빗고 분세수를 마친 뒤에 원형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판이었다. 상노의 연통을 듣자 남스란치마를 
풍정 있게 걷어 잡고 미소를 풍기면서 마루 끝으로 나타난다. 난정의 저녁 
화장은 한 웃음을 머금은 고운 얼굴과 색깔 고운 남치맛자락 화사한 
빛깔과 함께 어울려서, 대청 안이 환하도록 눈이 부시다.
  원형의 입은 벙글 벌어진다. "참, 잘 들어가 뵈었어." "그것 봅소. 무척 
반가워하시죠?" "반가워 하시구말구. 무한히 고적하셨던 모양이야." 
"당연하신 일이 아닙니까. 당신의 아드님이 계셨더라면 문제가 좀 
달라졌을지 모를 것을, 그만 전비마마의 소생으로 세자를 딱 책봉하시고 
말았으니 그 뒤의 심정은 당연히 쓸쓸하시고 고적하셨을 겝니다. 어서 
올라오셔서 조복을 벗으십시오." 난정은 두 손으로 원형을 껴안아 이끌어 
올렸다. 방으로 들어간 난정은 원형의 모대를 끄르고 벗겼다. 원형은 탕건 
바람으로 보료에 앉자, "마누라, 한턱 해야겠네." 원형은 또다시 벙글벙글 
웃는다. "좋은 일이 있다면 한턱 아니라 두 턱이라도 내겠습니다마는, 
소녀한테 좋은 일이 있을 까닭이 있습니까?" "이거 봐, 중전마마께서 
난정을 마난 보시겠다구 대궐 안으로 들여보내라는 융숭한 분부를 
내리셨네." 난정은 원형의 관대를 개키다가 자기 귀를 의심했다. "누구를 
대궐 안으로 들여보내라구 하셨어요?" "난정이 말이야, 마누라 말야."
  "저를요?" 난정은 접어 개키던 황금 각띠를 하마터면 떨어뜨릴 뻔했다. 
천만뜻밖인 처분이었다. 입이 금방 벙글하고 벌어진다. 자기는 아무리 
원형의 정실을 내쫓아 죽이고 이제는 정실 행세를 하고 있으나, 이것은 
집안 속의 일이었다. 세상에서 인정해 주지 않는 정실인 것은 지금 자신도 
잘 알고 있는 일이다. 이러기에 자기는 아무리 왕비의 아우의 아내 노릇을 
하고 있으나 외명부의 직첩을 아직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러므로 대궐 
안에 들어가 왕비를 한번 뵙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으나 감히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것이다. "정말이십니까?" "정말 아니면 누구의 
분부시라구 감히 내가 만들어 말씀을 한단 말인가." "아이구 좋아라!" 
난정은 손뼉을 치면서 소녀처럼 기뻐했다. "어느 때쯤 들어가 뵈올까요?" 
"내일이라도 좋지." "옷이 있어야지." "옷은 시집 올 때 많이 장만해 
가지고 오지 않았는가?" "그까짓 상스런 옷을 입고 어떻게 대내에 들어가 
왕후마마께 뵈입니까."
  원형은 이날 작은집 난정을 위해서 천금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백목전과 선전에서는 비단과 공단이 필필이 들어오고, 도자전에서는 금패, 
자마노, 불호박, 비취옥, 같은 패물과 지환이 들어오고, 동상전에서는 화관, 
족두리, 용잠, 낭자, 다리 등이 들어왔다. 침모는 밤을 새워 가며 예복을 
마르고 저고리, 치마를 지었다. 윤비의 말씀이 내린 지 사흘 만에 원형의 
집에서는 윤비께 거래를 여쭙고 궐문의 출입패를 얻어 가지고 나왔다. 
난정은 새로 지은 홑벌 예복을 맵시있게 차려 입은 뒤에 사인교에 몸을 
싣고 대궐 협문으로 대내에 들어갔다. 사인교는 문앞에 두고 상궁의 
인도로 중전에 올라 윤비께 문안을 드렸다. 백령백리한 난정이었다. 궁중 
풍속을 귀담아 들어 온 난정은 왕후마마 어전 지척에서 모든 행동이 막힐 
것이 없었다. 자색은 아름답고 태도는 단정했다.
  윤비는 단번에 난정이 마음이 들었다. "언문을 깨쳤느냐?" 윤비는 
다정하게 물었다. "깨쳐서 글월을 읽을 줄 아옵니다." 난정은 명랑하게 
대답했다. "글씨도 쓸 줄 아느냐?" "마마께 배워서 궁체를 써 보려 
하나이다. "진서는?" "진서도 조금 배워서, 사기를 읽었습니다." 윤비는 
깜짝 놀랐다. 사기는 역사요, 정치를 기록한 학문이었따. "사기는 나도 
읽기가 어려운 것을 네가 배웠느냐?" "소녀 비록 천한 계집이오나, 어려서 
부모 덕에 진서를 약간 배웠삽고, 윤시 댁으로 시집 온 뒤에는 바로 
왕후마마의 지친이 되옵시는 댁에 몸을 의탁하였는지라, 혹여나 일국의 
국모이신 왕후마마께 도움이 될까 하와 나라의 역사와 정치하는 학문을 
섭렵해 배웠나이다. 어린 천첩이 무엇을 아리오까마는 다만 일편단심 
소녀의 마음은 왕후마마의 옥체를 한평생 만수무강하도록 받들어 모시자는 
작은 충심에서 솟구쳐 진 일이옵나이다."
  윤비는 구슬을 굴리는 듯 단정히 아뢰는 난정의 말을 듣자 기특한 
생각이 불현듯 가슴 안에 벅찼다. 과연 난정은 천첩이라하나 자기와 배를 
같이하여 세상을 나온 오랍동생의 첩이었다. 세상에 다시 이만한 지친이 
또다시 있을 리 만무했다. 여기다가, 난정은 일편단심 자기의 만수무강을 
빌고 자기의 몸을 위하여 일부러 사기를 읽었다 하니, 진실로 자기한테는 
지친이요, 충비요, 마음 든든한 형제지간이 아닐 수 없다. 이 세상에 
자기를 생각해 주고 보호해 주고 도와 줄 사람이 난정보다 더 나은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더구나 사형제나 되는 딸만 낳고 아들이 없어 
고독을 느끼는 왕비였다. 함빡 마음이 난정한테 쏠려 버린다. "심심한테 
열녀전이나 한번 읽어보련?" 왕비 윤씨는 한편으로 답답하고 고적한 
마을을 흐트러뜨리고 한편으로는 난정의 재주도 시험해 볼 겸 얼굴에 
호젓한 웃음을 띠워 조용히 웃는다. "열녀젼도 좋습지요. 여자로서는 
반드시 읽어야만 할 글이라 생각합니다. 그러하오나 마음이 적적하고 
쓸쓸하실 때는 열녀전 보다도 사기를 한번 들으시면 울적하신 마음이 훨씬 
가라앉으십니다."
  영리한 난정의 대답에 윤비는 홀릴 듯 했다. '고것 맹랑하구나.' 
마음속으로 이렇게 탄식하면서 얼굴에는 또다시 조용한 미소가 흘렀다. 
"그러면 거기 사방탁자에 열녀전도 있고 사기도 있으니 마음대로 골라서 
읽어보아라. 그리고 갑갑할 테니 예복은 벗었다가 나중에 나갈 때나 입고 
가거라." 파격의 은전이었다. "관계치 않사옵나이다." 난정은 나직하게 
대답하고, 조용히 일어나 사방탁자로 가까이 가서 책이 차곡차곡 쌓인 
사이를 이리저리 뒤적거리다가 한 권을 골라 왕후마마의 어전 지척에 
단정히 무릎을 꿇고 앉아 책을 읽는다. "측천황후 무측천은 형주 도독 
무사 확의 딸이러라. 아직 나이 이팔이 채 못 되었건만 자색은 사람 위에 
뛰어나서 흰 이를 드러내어 방긋 웃는 태깔은 복사꽃 입술에 백옥을 
머금은 듯하고, 부끄러운 듯 홍훈이 도는 두 뺨과 별빛 모양 반짝이는 두 
눈은 밝은 구슬이 구르는 듯한데, 여기에 푸른 눈썹은 그림을 그린 듯, 
구름 살쩍은 반쯤 빗겨져 봄빛에 피곤한 듯하니, 당대의 세 좋은 
젊은이들은 모두 다 아내삼기를 원하더라."
  글소리를 낭랑히 청을 가다듬어 곱게 읽는 난정의 모습은 그대로 그려 
놓은 듯했다. 글 읽는 소리를 듣는 왕후의 마음은 별안간 시름 걱정을 
잊은 듯 가슴이 활짝 열려졌다. "얘, 그 계집애 참 잘생겼구나. 마치 
너처럼 잘생겼구나. 당나라 무측천황후의 이야기가 아니냐?" 
"그러하옵니다." 난정은 쌍긋 웃었다. "어서 다음을 읽어라." "태종황제는 
측천의 아름다운 소문을 듣고 친히 어전에 불러 본 뒤에 여관을 삼아 
재인의 칭호를 내리고, 구중 궁궐 깊은 곳에 감추어 두어 꽃 피는 아침, 달 
밝은 밤에 황제의 은총이 두텁고 비단 장막 원앙금침 속에 임금의 사랑은 
꽃불 모양 찬란했더라." "저런?" 윤비는 홀린 듯 취한 듯했다. 자기도 
사기책을 다소 읽어 보았으나 측천무후전은 처음 듣는 것이었다. "어서 
다음을 읽어라." "예로부터 좋은 일에는 마가 많은 법이었다. 태종과 
무재인의 은정이 바다같이 깊고 산같이 높았을 때, 때마침 여름이었다. 
황제는 돌연 이질에 걸려 병을 얻은 지 두어 달이 넘었다. 마침내 편작의 
술법도 효험이 없어 황제는 길이 세상을 떠나니 깊은 전각엔 주인 없는 
발만 드리워졌고 삼천궁녀의 즐겁던 환락은 봄풀 위에 옥이슬이 스러진 듯 
서러웠더라." "가엾어라. 무재인의 팔자가 기박하구나." 윤왕후는 눈물이 
글썽해서 이렇게 탄식할 때, "아니올시다. 뒤끝을 더 들으시옵소서." 
난정은 쌍긋 웃으면서 속삭였다. "그렇다면 어서 다음을 읽어라." 난정은 
쌍긋 웃어 침을 삼키며 다음을 읽는다.
  "무재인은 슬픔 속에 잠기어 인생의 덧없음을 탄식하면서 가만히 
대궐에서 몸을 벗어나 감업사 절에 들어 머리 깎고 비구니가 되었더라. 
무재인은 묘령의 몸으로 중이 되니 새벽녘에 흘리는 한많은 눈물은 
먹장삼을 적시어 황천길도 눅눅하고 야밤중 외로운 생각은 휘영청 
떠오르는 달빛 아래 잠과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 깊은 절간 암자문이 
잠겼으니 찾아오는 사람의 그림자가 끊어졌고, 소쩍새 우는 봄에 쥐어짜던 
간장은 어느덧 가을 바람 소슬한 낙엽 소리에 또 한 번 백팔번뇌만 느끼게 
했더라. 무재인은 차차 마음을 가다듬어 부처 앞에 향과 꽃을 공양하고, 
새벽 송경 소리에 정신을 맑혀 예불을 하여 세월을 흘러 보낼 때여라. 
이때 나라에서는 선제 태종이 붕어한 뒤에 아드님 고종 황제 
즉위하였더라. 때마침 선제의 돌아간 일주기가 되니 황제는 크게 불사를 
열어 감업사에 재를 올리려 문무백관을 거느려 감업사에 친히 거동을 
하였더라. 이때 무재인 비구니는 모든 승려의 틈에 끼어 고종황제의 
친림하는 행차를 마중하지 않을 수 없었더라. 무재인이 비록 몸에는 
흑장삼 승의 옷을 입었으나 하늘의 점지한 고운 바탕은 이내 숨길 수 
없었더라. 뭇 닭 속에 뛰어난 봉황의 자태는 번뜻 수천 대중 속에 구름을 
헤친 듯 뛰어나지 않을 수 없었더라. 황제가 우연히 눈을 들어 비구승들이 
나열해 선 곳을 바라보았을 때, 나이 아직 이십이 넘을 듯 말 듯 가련한 
아름다운 승려가 있었더라. 마치 꽃에 비한다면 해당화 한 가지가 바람에 
꺾여 애처롭게 나머지 향을 뿜는 듯하고, 달에 비한다면 십오야 둥근 달이 
검은 구름장에 휩싸여 반나마 밝은 빛을 잃은 듯, 애처롭고 고운 모습은 
깊이깊이 황제의 가슴에 백우전 사랑의 화살을 박았더라. 온종일 불사가 
거행되고 설법이 있는 동안 황제의 눈길은 자주자주 무재인을 향하여 
떠나지 아니했노라. 해가 저물어 재가 파하고 어가가 돌아가려 할 때 
황제는 넌지시 내관에게 분부를 내렸나니, 저기 저 앞줄 세 번째에 서 
있는 비구니를 대궐 후궁으로 들게 하라. 황제의 명을 감히 누가 막으리. 
날이 저문 뒤에 내시는 조용히 무재인을 대궐 안 후궁으로 인도했나니라. 
이것이 제이왕후 무측천이니라."
  "아니고머니나, 망측해라." 난정이 사기를 여기까지 읽었을 때, 손에 
땀을 쥐고 고요하게 듣고 있던 윤왕후는 이렇게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옛날 임금들은 그랬나 봅죠." 난정은 쌍긋 웃음을 풍겼다. "어디 
망측해서 듣겠느냐, 그만 읽어라." 윤비의 얼굴은 주홍을 끼얹은 듯 
붉어졌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기가 막히게 재미가 나옵니다." "중국 
역사는 우리 역사보다도 더 심하구나." "그래도 우리 나라처럼 여자를 
무시하지는 않습니다. 여자도 사람이라 필 대로 피어납니다. 짓밟히지는 
않습니다. 다음을 들어 봅시오." 난정은 소리 없이 요염하게 또 웃으며 
다음을 읽는다. "재인 비구니는 처음에 간절히 새 황제의 후궁 되기를 
사양하였으나, 고종황제의 타는 듯한 정염을 막을 길이 없었느니라. 검은 
머리를 기르고 버들 눈썹을 다스려 얼굴에 향긋한 분을 먹이니, 고운 
모습을 다시 옛날의 경국미인 무재인이 되었느니라. 이 꼴을 바라보는 
모든 궁녀들은 손가락질을 하여 무재인을 비웃지 않는 사람이 없었더라. 
무재인의 총애는 나날이 높아 가서, 소의의 칭호를 받고, 다음엔 황후로 
승격하여 무황후가 되었더라. 황제는 마침내 재인한테 고혹되어 옥체가 
쇠약하여 아까운 젊은 나이에 병을 얻어 돌아가니, 나라의 만기는 모두 다 
무황후가 재결을 하게 되었노라. 마침내 무황후는 당의 국호를 고쳐 주라 
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어 천하의 국권을 잡았더라." 읽기를 마치자 난정은 
책을 덮었다.
  "여자가 황제가 되다니 대단한 여자로구나." 난정이 읽기를 다하고 책을 
덮는 것을 보자, 윤왕후는 총명한 눈을 들어 난정을 바라보면서 가만히 
한숨을 짓는다. 난정은 새까만 눈을 깜박이면서 또 한 번 쌍긋 웃는다. 
"때만 오면 여자도 이렇게 제왕이 되어 천하를 호령하고 나라의 국권을 
잡을 수도 있사옵니다." "고것 깜찍하고나. 청상과부가 되어 수절을 
하려다가 어떻게 마음보가 커서, 여자로 황제까지 되었냐 말이다." "여자도 
사람입니다. 권력을 잡아서 천하를 호령하고 싶은 마음은 사람의 
상정이온데, 남자만 권력을 잡고 여자는 그 밑에 무릎을 꿇고 있으란 법이 
어디 있습니까. 타생에 막작부인신하라, 백년고락이 유타인이라고 했던 
백낙천의 비파행은 모두 다 케케묵은 수작입니다. 여자도 사람이 이상 
자기의 힘을 펴기 위하여 황제도 되고 왕도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난정의 영악하고 똑똑한 소리에 윤왕후는 평생 처음 커다랗게 눈이 
떠지고 귀가 터지는 듯했다. 윤왕후는 상궁에게 명을 내려서 난정에게 
사찬까지 내리곤 왕후 자신도 음식을 같이 했다. 첫번 만난 난정은 
윤왕후의 비위에 바싹 들었다. 구중궁궐 적적한 왕후전각엔 희한한 말벗이 
생겼다. 더욱이 난정은 친정 오랍동생의 소실이 되고 보니, 모든 비밀과 
모든 시름을 털어 놓고 하소연하고 이야기할 만한 처지였다. 윤비는 늙은 
상궁에게 분부를 내렸다. "이 사람은 내 친동기간이나 매한가지다. 내시와 
수문장한테 내 뜻을 전해서 어느 때든지 대궐 안에 무상출입을 하도록 
하게 일러라." 늙은 상궁은 궁중 안에 있는 내시와 궁녀와 수문장한테 
왕후마마의 뜻을 전했다. 날이 저문 뒤에 난정이 왕후마마에게 하직을 
고하고 어전을 물러날 때였다. "내일도 들어오고 모레도 들어와서 나의 
울적한 마음을 위로해다오."
  윤비는 이러한 분부를 내렸다. 난정에게 있어서는 생각도 않았던 광영의 
처분이었다. 이리하여 난정은 대궐 안을 무상출입하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온 난정은 이 기쁜 소식을 남편 윤원형에게 말한다. 윤원형과 난정의 
기쁨은 절정에 올랐다. 이튿날 난정은 또다시 가마를 타고 대궐로 들어가 
왕비전에 문후를 드렸다. 왕비는 난정을 삼추같이 기다렸다. "너를 만나기 
전에도 부지런했건만, 한 번 만난 뒤에는 네 생각만이 간절하구나." 윤비는 
난정의 손을 잡아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황송하옵나이다." 난정은 왕후께 
절을 올리면서 다정하게 대답했다. 이 뒤로부터 윤왕후와 난정의 의기는 
서로 통했다. 왕비는 난정을 시켜 사기를 읽게 하고, 싫증이 나면 쌍륙을 
던지기도 했다. 난정은 쌍륙을 던지다가 호로를 쓸고 나직이 말을 꺼낸다.
  "중전마마, 어서 왕자를 태생하셔야겠사옵니다." 난정은 돌연 왕후의 
급소를 찔렀다. 윤비는 아직 난정에게 말은 아니 했으나 일구월심에 
맺혔던 마음이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태연한 체했다. "세자가 있는데 내가 
아들이 없기로서니 걱정될 것이 있느냐?" 윤비는 담담한 듯 대답했다. 
"아무리 세자마마께서 계시옵지만 몸소 나신 왕자가 계셔야 합지요. 
그것이 다 인생의 행락이 아니옵니까. 따님도 두시고 아드님도 두시고." 
"아들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은 첫애 적부터 간절했다마는 어디 맘대로 
되더냐." 윤비는 비로소 속의 맘을 헤쳤다. "명산대찰에 기도를 올리시고, 
용신게 굿을 드리옵소서." "그것도 약간 해보았다마는, 선비들이 
떠들어대니 펴놓고는 해보지 못했다. 조광조가 삼청전에 기도드리는 
것까지 못하게 했거든." "인제는 조광조도 죽고 선비들의 세력도 
꺾여졌습니다. 명산대찰에 기도를 드려 보도록 하옵소서." "중이 제 머리 
깎지 못한다고, 그런 일을 누가 주선해 주어야 하지 않느냐?"
 "소녀가 밖에서 지극한 정성을 드릴 터이오니 중전마마께서는 명례궁에 
말씀만 내리시어 피륙만 대 주옵소서." 명례궁은 왕후의 내탕금을 맡은 
곳이었다. 왕비의 마음은 솔깃했다. 고개를 끄덕여 명산대찰에 치성드릴 
것을 허락했다. 허락을 맡은 난정은 앞에 놓인 호로를 가볍게 치면서 
목소리를 한층 낮추었다. "마마, 마마께서도 이제는 조정의 일을 
보살피소서." "정치하는 일을 여자가 아는 체해서 무얼 하나?" 총명한 
왕비였다. 빤히 알면서도 짐짓 이렇게 대답했다. "직접 마마한테 이해가 
부딪쳐지옵니다. 어제 읽은 사기의 무측천황후의 일을 벌써 잊으셨습니까? 
그리고 폐비 신씨의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가만히 있다가 영문도 모르고 
쫓겨난 신왕후의 일을." 난정은 또 한 번 왕후의 급소를 찔렀다. "아닌 게 
아니라 너무 등한할 수도 없지." 왕비는 가볍게 탄식한다. "이제는 
중전마마를 두둔하여 모시는 충성스런 심복을 조정헤 많이 두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까딱 잘못하시다가 폐비 신씨의 꼴이 되십니다." 윤비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신씨께서도 아드님도 없고 조정에 
심복이 없어서, 공신들 등살에 쫓기셨습니다." "어떻게 내가 조정에 내 
심복을 벼슬을 시키자고 한단 말이냐?" 왕비의 마음은 두근거렸다.
  "상감께 넌짓넌짓 말씀을 여쭈시어 중전마마 편을 조정에 
심으시옵소서." 왕비는 대답 없이 허공만 바라보며 무엇을 생각한다. "지금 
김안로와 윤임은 세자마마의 외삼촌이요 세자마마의 사돈이 되니, 절대로 
세자편이지 마마의 편이 아닌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야 그렇지." 윤비는 
가볍게 웃는다. 윤원형의 머리보다는 한걸음 영리하다고 난정은 생각했다. 
"지금 남곤과 심정은 조광조의 세력을 꺾어 놓으려고 들 것입니다. 세력과 
세력은 서로 상극이 되고야 마는 법입니다. 이것은 만고에 변하지 않는 
법칙이옵니다. 경빈 박씨를 등대고 있는 남곤, 심정은 세자와 공주를 
등대로 김안로의 세력을 꺾으려 들 것입니다." 윤왕후의 눈은 둥그렇게 
떠졌다. 이것은 아직 자기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마음속으로 난정을 
무한히 총명하다 생각했다. 왕비는 잠자코 난정의 말을 듣고만 있다.
  난정은 더한층 목소리를 낮추었다. "마마, 김안로의 세력이 꺾이는 것은 
윤임과 세자의 세력이 꺾여지는 것이옵니다. 자세히 들으십시오. 세자의 
세력이 일어나겠습니까? 경빈 박씨와 그 아드님 복성군의 세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경빈 박씨의 편인 남곤, 심정은 선비 조광조의 세력을 몰아낸 
다음에 지금 이것을 노리고 있습니다." 윤왕후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곤, 심정의 독무대가 되는 날은 마마께 아무 상관이 없는 듯하나 
실상인즉 마마께 큰 타격이 닥쳐옵니다. 경빈 박씨는 마마를 상대로 하여 
일어나고, 복성군은 세자를 상대로 하여 일어나게 됩니다. 이때 마마께서는 
까딱 잘못하시면 폐비 신씨의 앞수레바퀴를 또 밟으시게 됩니다." 
윤왕후는 덥석 난정의 손을 붙들었다. "어떡함 좋으냐...?" "그러기에 
조정에 빨리 우리 편을 심어 놓아야 합니다." "내일 오라비를 들어오라 
일러라." "말씀대로 봉행하겠습니다. 세자도 우리의 적이지만, 우선 급한 
것이 경빈 박씨올시다." 윤왕후는 황연히 꿈 속에서 깨어난 듯했다.

    옥매향
  서울 관자골에는 평양 명기 옥매향이란 기생이 있었다. 평양은 예로부터 
색향이라 해서 산천이 명미하고 여인들이 고왔다. 평양 하면 모란봉, 
대동강의 부벽루, 연광정과 청류벽, 능라도의 실실이 푸른 버들이 
떠오르고, 부벽루, 연광정 이야기가 나오면 남남북녀로 이름 높은 평양 
기생들의 요염한 태깔을 연상하고야 마는 것이다. 그러기에 당시의 문장 
풍류들은 과거를 하여 벼슬을 하면 평안감사로 한번 도임하기를 평생의 
소원으로 삼았다. 명미한 산천에 아름다운 절염인 평양 기생들을 수청 
들리면서 지방관의 최고 지위에 있는 감사가 되어 호강과 행락을 해보자는 
욕망을 채울 수 잇는 까닭이었다. 이러한 평양 기생을 평양엘 가지 않고도 
만나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서울 장안 안에 옥매향의 명성은 대단했다. 
옥매향은 연산 때 평양에서 채홍사한테 뽑혀 올린 자운아의 딸로서, 
나이는 이십 미만에 얼굴은 잔잔한 가을 물결에 떠 있는 부용의 모습이요, 
춤과 노래하는 태깔은 당대에 짝을 구하기 어려웠다. 여기다가 거문고를 
탈 줄 알고 난초도 칠 줄 아니, 문장 재사와 재상의 잔치에 옥매향은 없지 
못할 존재가 되어 버렸다.
  이때 경상도 선산 선비에 임백령이란 사람이 있었다. 나이 이십여 세에 
서울로 과거를 보러 왔는데, 문장과 시, 부는 자신이 있었으나 경학 공부는 
암만 해도 자신이 없었다. 내일이 과거날이라, 백령은 사관에서 밤을 도와 
경서 공부를 하다가 고단함을 못 이겨 깜박 잠이 들었다. 비몽사몽간에 
백령의 앞에는 호호백발 노인이 나타났다. "자네는 일세를 흔들 만한 
큰사람이 될 걸세. 기어코 이번 과거 보는 기회를 놓치지 말도록 하게." 
"저는 시는 잘 짓습니다마는 경학 공부에는 자신이 없습니다." 백령은 
실제대로 대답했다. 호호백발인 노인은 벙긋 웃었다. "이번 경서의 강독은 
서전 홍범에서 나올 테니, 자세히 읽어서 외도록 하고 공연히 딴 곳에 
정신을 낭비하지 않도록 하게. 그리고 자네 이름은 회마라고 고치도록 
하게." 노인은 말을 마치자 온데 간데가 없었다. 임백령이 감짝 놀라 깨어 
보니 등잔불은 희미하게 켜졌고 여태껏 읽던 책은 여전히 펼쳐 있었다. 
확실히 꿈이 분명했다. 그러나 꿈이 너무도 역력하고 분명했다. 재주 많고 
요행수를 바라는 마음이 강한 백령이었다. 불을 돋우고 밤새도록 서전 
홍범편만 외웠다.
  이튿날 임백령은 부랴부랴 과장에 들어가, 시와 부에 응시한 뒤에 다시 
강을 외는 글제가 걸렸는데, 꿈은 여합부절 맞았다. 시관은 서전 홍범편을 
강하라는 것이었다. 임백령은 자기 자신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신이 도와 주는 것이로구나." 하고 스스로 기뻐했다. 그러나 임백령은 과지 
끝에 이름을 쓸 때 차마 회마라고는 쓰지 못했다. 이름으로는 하도 괴상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백령은, '회마는 별호로 쓰리라.' 하고 마음속으로 
결정해 버렸다. 임백령이 홍범을 강의한 뜻은 일호의 차착이 없었다. 
시관들은 혀를 둘러 칭찬하고 임백령은 단박에 장원급제로 뽑혔다. 이때 
방이 결정이 된 뒤에 시관 한 사람이 임백령을 찾아 미소를 던지며 조용히 
물었다. "자네 이름이 회마인가?" 임백령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회마란 것은 꿈에 노인이 자기의 이름을 회마라고 고치라 한 것이었다. 
'어떻게 시관이 이 일을 아는가?' 마음속으로 괴상하게 생각했다. "예, 
회마는 저의 이름이 아니라 별호올시다." 백령은 서슴지 않고 응구첩대로 
대답했다. "아아, 그런가. 별호가 회마인가?" 시관은 임백령의 손을 반갑게 
잡고 치하를 했다. "세상에는 희한한 일도 많으이 지난밤에 위에서 
부르시는 명패를 받잡고 정원에 입직을 해서 자는데 꿈에 난데없이 한 
노인이 나타나서 하는 말이 이번 과거에는 회마란 사람이 장원급제를 할 
테니 시관은 짐작해 두라고 한단 말야. 꿈이 하도 역력해서 이상하다 
생각했더니, 자네가 과연 회마일세그려. 앞으로 자네는 나라의 큰사람이 될 
테니 부디 몸을 조심하도록 하게."
  신신당부를 한 뒤에 헤어졌다. 회마란 옛날부터 영의정 대신의 공청을 
가리킨 데서 뜻을 취한 것이었다. 주례에 면삼회 삼공위언이란 데서 나온 
문자다. 세 회화나무를 향해서 삼공이 자리잡고 앉아 있다는 것이니, 
회라는 글자는 대신의 지위를 은근히 상징한 것이었다. 당시의 문장 
재사들은 임백령의 과거 본 이 사실을 다투어 사기에 아름다운 이야기로 
기록해 썼다. 이리하여 임백령이 과거에 장원급제를 한 것은 마치 꿈에 
나타난 백발노인인 신이 과거를 시켜준 것처럼 야사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신이 나타나 임백령의 장원급제를 시킨 것이 
아니었다. 임백령이 과거를 보아 요행수로 장정이 된 뒤에 이렇게 꿈 
이야기를 허풍선이로 만들어서, 자기는 신이 도와 주는 사람이라고 
아름다운 애인과 붕배 간에 존숭을 받기 위하여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꾸며낸 것이었다. 다만 이 이야기 속에 진실이 있다면, 백령이 요행으로 
서전 홍범편을 밤을 도와 읽었던 그것과 과장에서 우연히 서전 홍범편에서 
글제가 나온 그것뿐이었다. 이쯤 허무맹랑한 거짓말을 영통하게 지어내는 
임백령이고 보니, 우리는 그의 사람됨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이렇듯 영리하고 똑똑한 임백령은 얼굴이 또한 미남자였다. 눈은 
호수같이 맑고 살결은 여자와 같아서 분을 따서 넣은 듯 희고 고왔다. 
여기다가 마음이 차근히 가라앉아 조밀하니 그의 겉모양은 걸음걸이 하나 
나무랄 데가 없었다. 임백령이 장원급제로 참방이 되어 어전에서 창방을 
부르는데, 시관을 위시하여 모든 재상들은 금관홍포로 단 아래 벌여 섰고 
장원급제 임백령 이하 참방한 유생들은 옥색 도포에 유건을 쓰고 제제히 
서서 참방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원급제에 임백령." 하는 참방 소리가 
떨어지자 아악 소리는 푸른 하늘로 자지러지고, 화관몽두리의 녹의남상을 
입은 장악원 기생들은, "지화자, 지화자." 아름다운 축복하는 노래를 박에 
맞추어 노래했다. 장원급제는 임백령의 일생 일대의 광영이었다. 임백령이 
옥골선풍으로 걸음을 안상히 걸어 어전에 엎드려 사은숙배를 드리고 
진퇴를 하여 신래의 의식을 마친 다음 어사화를 꽂고 장중을 걸어 나오니 
또다시 기생들을, "지화자." 소리를 높이 불러 구름 박으로 자지러지는 
듯했다. 남녀노소 만사람의 선망의 눈이 옥골선풍인 임백령의 온몸으로 
집중되었을 때 임백령은 잠깐 눈을 들어 지화자 소리가 자지러지는 곳을 
바라보았다. 경상도 산골 태생으로 난생 처음 보는 화려한 광경이었다.
  울긋불긋 천자만홍의 떨기떨기 꽃이 일제히 핀 듯한 장악원 기생들의 
아름다운 눈결은 함빡 '지화자' 노래를 높이 부르면서, 자기 한 몸으로 
헤엄질쳐 달리면서 자기의 앞길을 축복해 주는 것이었다. 임백령은 약간 
현기를 느꼈다. 다시 정신을 수습하여 걸음을 옮겼을 때 '지화자' 소리는 
또 한 번 자지러지게 일어났다. 백령이 제자리로 나가 앉아서 다음 
사람들의 참방하는 구경을 할 때서야 비로소 눈은 정확하게 장악원의 
기생들을 살펴볼 여유를 갖게 되었다. 그 중에 제일 아리따운 기생 한 
명이 백령의 눈에 띄었다. 백령은 정말 선녀 같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기생이란 저대도록 아름다운 물건인가 하고 생각해 보기도 했다. 경상도 
산골 속에 묻힌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산골 색시들과 비교해 보니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었다.
  참방이 끝나고 유가를 돌았다.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그 기생은 
유가를 도는 데도 말을 타고 삼현육각을 잡히는 전도의 뒤를 따랐다. 
당일로 임백령은 홍문관 부수찬을 제수하여 한림학사가 되었다. 이날 밤에 
고향의 선배들은 새로이 한림이 된 임백령을 위하여 용산 두모개 독서당에 
잔치를 베풀었다. 산해진미의 아름다운 서울 음식은 말할 나위도 없지마는, 
임백령의 넋이 스러지도록 취한 것은 잔치에 흥을 돕는 장악원 기생들의 
일군이었다. 이 기생의 일군 속에는 자기의 참방을 부를 때 '지화자' 
소리를 높게 불렀고 온종일 유가할 때도 앞을 서서 따랐던, 의중의 미인인 
아름다운 기생이 있었다. 임백령은 하루를 마주 보는 동안에 마음속에는 
벌써 정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도 파탈을 못한 시골 선비 
임백령이었다. 말을 한번 붙여 보고 싶었으나 입이 뻣벗해서 말이 나오지 
아니했다. 임백령이 마음속에 드는 장악원 기생을 향하여 말을 붙여보고 
싶은데 파겁이 못 된 탓으로 주저하고 앉았을 때, 의중의 한 사람인 
기생은 술을 두어 잔 임백령의 손위인 선배들한테 돌리다가 백옥 술병을 
들고 백령의 옆으로 살며시 앉았다.
  "장원 나으리, 한 잔 듭시오." 기생은 옥잔에 가득 감홍로를 부어 
백령에게 권하고 맑은 목소리로, "꽃 꺾어 수를 놓아 무궁무진 먹사이다!" 
권주가를 청 높이 부르는 것이었다. 옆에서 선배들은, "너, 새 학사님을 잘 
모셔라." "참으로 천생 배필이로구나." "백령이는 복도 많다. 우리 
옥매향이가 홀딱 반했고나. 장해 대제학이요, 영의정 감이다. 알심 있게 잘 
모셔라." "너 오늘 학사님을 모시고 두모개 독서당에서 수청을 들어서 
객회를 풀어드려야 한다." "여보게 백령이, 자네는 평양 감사를 하기 전에 
벌써 평양기생을 수청들이게 되니 벼슬 복도 많지만, 기생 복도 
많은사람일세." 제각기 이렇게 백령을 위하여 장안 명기를 붙여 주려 했다. 
옆에 앉아 노래를 부르는 옥매향의 몸에서 울연히 풍겨지는 훈향은 마치 
달 밝은 저녁 밤에 서향이 꽃망울을 터뜨려 코를 엄습하는 듯하고 
요요하게 가락에 맞추어 떨어지는 노래 곡조는 임백령의 마음과 혼을 멀리 
자연 밖 옥경 세계로 이끌어 놓는 듯했다. 임백령은 생전 처음으로 서울 
한림학사들이 마시는 감홍로를 마시어 보고 서울 한림학사들이 노는 
풍월에 취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벼슬은 참 좋은 것이로구나.' 하고 
생각해 보았다.
  기생은 웬일인지 백령의 곁을 떠나지 아니했다. 선배들은 옥매향을 
일부러 임백령의 옆에 앉히게 하고, 자기들은 다른 기생들을 상대로 하여 
이야기의 꽃을 피우며 술들을 마셨다. 임백령은 이룹러 얌전을 피는 
사람이었다. 옥매향이 주는 술을 석 잔 받아 마시면서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러나 마음은 함빡 옥매향한테로 쏠리기 시작했다. "한 잔만 더 듭시오, 
나으리." 옥매향은 또다시 말을 붙였다. 임백령은 석 잔 술로 기운이 
생기기 시작했다. "차차 마시기로 하지. 자네 이름이 무엇인가?" 아까 
친구들이 옥매향이란 소리를 해서 이름을 짐작했건만 임백령은 짐짓 
이렇게 물었다. "옥매향이라 하옵니다." "참으로 이름이 자네 얼굴마냥 
이쁘이그려. 고향이 어디랬나?" "평양이옵니다." "아하, 평양은 자고로 
금수강산이라더니 산수가 좋아서 자네같은 미인이 생겨났네그려."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나으리께서 참 미남자십니다. 인제 장원급제를 하셔서 
한림학사가 되셨으니, 서울 안 명기명창들은 함빡 나으리를 마나 보기 
소원일 것입니다. 아까 과장에서 참방할 때도 나으리가 참 잘생겼다고 
침들을 흘리는 동무애들이 많았습니다." 옥매향은 나긋나긋 미소를 풍기며 
소곤거렸다.
  임백령은 옥매향의 미남자라고 칭찬하는 말을 듣자 더욱 마음이 싫지 
않았다. "나 같은 얼굴은 세상에 거재두량일세. 자네야말로 오왕을 
놀려대던 서시가 아니면, 당명황을 울리던 양귀비가 분명하이." 임백령은 
차츰차츰 마음이 대담해진다. 슬몃 손을 늘여 옥매향의 남치마 위에 놓인 
손을 잡아 본다. 명주 고름보다도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시골 선비 
임백령으로서는 평생 처음 느껴지는 평양 기생의 촉감이었다. 임백령은 
삼흔칠백이 멀리 구름 사이로 흩어지는 듯했다. 평양 기생 옥매향도 
새로이 장원랑이 된 임백령에게로 마음이 점점 쏠렸다. 글을 잘해서 
장원급제가 되었을 뿐 아니라, 나이 젊고 풍채가 좋았다. 이만하면 
신언서판이 어디다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인물이었다. 나이 아직 삼십 
미만에 한림학사에 부수찬 벼슬을 했으니, 아픙로 부제학, 대제학에 
좌의정, 영의정은 떼어 논 당상이 분명했다. 영리한 옥매향이었다. 한평생 
몸을 임백령에게 의탁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옥매향은 임백령의 잡은 
손길을 상 아래서 꼬옥 잡아 주었다. 이편에서도 그대를 생각한다는 
반향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영서는 마침내 부딪치고 말았다. 임백령은 더 
한 번 현기를 느꼈다.
  "약주 한 잔을 드리오리까?" 석 잔 술을 이미 마신 임백령이었으나, 
진정으로 보내 오는 옥매향의 정을 막을 길이 없었다. "자네가 주는 
술이면 열 잔이라도 마시겠네." 옥매향은 진심으로 마음을 기울여 
옥술잔에 술을 가득 부었다. 임백령이 옥잔을 들었을 때 옥매향은 청을 
가다듬어 노래를 부른다.
 "어름 우희 댓닙자리 보와 님과 나와 어러 주글망뎡
어름 위희 댓닙자리 보와 님과 나와 어러 주글망뎡
정둔 오 밤 더듸 새오시라 더듸 새오시라,
경경 고침상에 어느 잠이 오리오.
서창을 여러하니 도화 발하두다.
도화는 시름없이 소춘풍하나다 소춘풍하나다.
넉시라도 님을 한대 녀닛경 너기다니
넉시라도 님을 한대 녀닛경 너기다니
벼기시더니 뉘러시니잇가 뉘러시니잇가.
올하 올하 아련 비올하 여흘란 어데 두고 소해 자라온다.
소곳 얼면 여흘도 묘하니 여흘도 묘하니
남산에 자리 보와 옷산을 벼여 누어
금수산 니블 안해 사향각시를 아나 누어
남산에 자리 보와 옷산을 벼여 누어
금수산 니블 안해 사향각시를 아나 누어
약든 가삼을 마초압사이다 마초압사이다.
아소 님하 원대 평생에 여힐살 모라압세."
  옥매향의 부르는 노랫소리는 옥반에 구슬을 굴리는 듯 아련히 독서당 
정자 위로 흩어진다. 시월 얼음 위에 대잎으로 자리를 해서 얼어 죽을망정 
한평생 떨어지지 않고 사랑해 살자는 만전춘의 노래였다. 자리에 가득한 
선비들은 손뼉을 쳐서 옥매향의 노랫소리를 칭찬하고 곡조를 알아 
지음하는 친구들은 옥매향이 임백령에게 마음 두는 것을 눈치 채 알았다. 
"평양 기생은 알심이 있다더니 옥매향이 네가 보통이 아니구나. 임백령, 새 
장원급제한테 홀딱 반해서 얼음 위에서 얼어 죽을망정, 꼭 껴안고 
떨어지지를 않겠다는 수작이로구나. 하하하하." "그래, 옥매향은 참 맹랑한 
기생이다. 괴애 김수온 선생도 이 노래를 한시로 번역한 일이 있겠다. 
시월층빙상, 한응죽엽서, 여군영동사, 차막오경계라구 참으로 기막힌 
노래지. 얼어죽을지언정 차마 떨어질 수가 없다는 노래지. 여보게 백령이, 
자네 복도 많으이. 과거를 보아서 장원급제가 되구, 한림학사가 되어서 
장안 명기를 얻게 되구." "모두 다 선배 어른들의 덕택이올시다."
  임백령도 인제는 제법 파탈이 되어 들어섰다. 술잔은 더 한 번 돌고, 
흥은 더욱 높았다. 이 자리에서 임백령은 꿈에 노인이 나타나서 과거 
글제를 가르쳐 주었다는 말과 회마라고 이름을 지으란 것을 별호로 짓기로 
결심했다는 말을 정말 거짓말 섞어서 좌중에 이야기했다. "어허, 자네는 
기어코 앞으로 삼공, 영의정이 되겠네." "여보게, 자네가 앞으로 
영상대감이 되거든 나를 잊어서는 아니 되네." 친구와 선배들은 임백령의 
꿈 얘기에 홀딱 반해서 더한층 백령을 돋우어 보게 되고 옥매향은 점점 더 
마음속으로 백령을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날 옥매향은 신명이 
저절로 나서 모든 재주를 임백령을 위하여 다 털어놓았다. 노래를 불러 
춤을 추고, 춤을 춘 뒤면 거문고를 뜯었다. 승무, 검무에 사고무, 박접무를 
추고, 노래도 청산별곡에, 가시리에, 서산별곡, 동동, 정읍사까지 있는 대로 
다 불렀다. 모든 기생들은 옥매향의 뛰어난 재주에 안색이 없게 되었다.
  배반은 낭자하고 해는 기울어 서산에 걸렸을 때 독서당에 임백령을 
환영하는 잔치는 끝이 났다. 선비들은 제각기 나귀와 말을 타고 기생들은 
판교를 타서 서울 장안으로 돌아오면서 흩어질 때였다. 옥매향은 판교에 
오리기 전에 가만히 임백령이 서산 나귀에 안장을 바로잡는 앞으로 
나타났다. "나으리, 사관으로 바로 가실라우?" "바로 가지, 어이하겠나. 
서울 안에 사고무친한 시골놈인 날 기다릴 사람이 누가 있겠나. 여관 
찬방에서 등불이나 돋우고 밤을 새우지." "아직 해도 있고 늦지 않았으니, 
소년의 판교를 따라 저희 집으로 오셔서 놀다가 가시라우." 옥매향은 
가만히 소곤거렸다. 임백령은 옥매향이 이렇게 자기를 청하기까지 할 줄은 
뜻밖이었다. "내가 자네 집으로 놀러가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일세마는 
폐가 되지 않겠나?" "폐는 무슨 폐갔소. 관계없으니 꼭 놀러 오시라우. 
집도 아실 겸." 옥매향은 이렇게 속삭이고 훌쩍 판교에 몸을 실었다. 
임백령은 기쁨을 이기지 못하면서 슬몃슬몃 나귀를 몰아 옥매향의 판교 
뒤를 쫓았다. 판교가 서울 장안으로 들어서 광통교를 끼고 돌아 관자골로 
들어서자 조그마한 대문 앞에 옥매향을 내려놓고 교군꾼들은 빈 판교를 
메고 돌아섰다. 임백령도 나귀에서 내려서 하인을 안동하여 나귀는 
사관으로 돌려보내고 옥매향의 뒤를 따라 문안으로 들어섰다.
  옥매향은 상긋 웃으며 임백령을 맞아들였다. 집을 지키고 있던 계집애가 
부엌에서 쫓아 나와서, "언니, 이제 오슈?" 하고 반갑게 맞아들인다. "낮에 
별일 없언?" 옥매향은 일변 임백령을 방으로 인도해 들이고 일변 
계집애한테 집안일을 물었다. "아까 낮에 윤판서 댁에서 언니 사랑 놀음을 
오라구 판교가 세 번씩이나 왔다 갔었수." "윤판서 댁에서?" 옥매향의 
얼굴빛은 약간 흐려졌다. 임백령의 귀에는 윤판서란 소리가 푹 배어져서 
잊혀지지를 않는다. 이날 밤에 옥매향과 임백령은 한평생을 같이할 굳은 
맹세를 지었다. 정 깊은 하룻밤을 지내고 두 사람이 떨어지지 않을 수 
없는 새벽이 되었다. "나하고 이렇게 산보다 더 높고 바다보다도 더 깊은 
정을 맺었으면서도 또다시 사랑 놀음이나 손을 만나야 하는 신셀세그려." 
임백령의 목소리는 떠는 듯했다. "나으리, 그럼 어찌하우? 그러기에 
어서어서 하루바삐 나으리가 잘되시어 기안에서 몸을 빼어 놓고 독차지를 
해서 데려가시라우." 옥매향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돈만 있으면 
오늘이라도 자네 몸값을 대전별감한테 치르고 기안에서 돌려내겠네마는 
아직 초사를 한 주제에 돈이 있어야 말이지." "그러기에 어서어서 높은 
벼슬을 하시라우. 세력도 잡고 돈도 잡아서 한평생 같이 살다가 해골을 
임씨 댁 문하에 뉘기 소원이외다." 임백령은 어서어서 발신을 하고 싶었다.
  홀연 어제 계집애가 말하던 윤판서란 소리가 머리에 스쳤다. "어제 
부리는 계집애가 말하던 윤판서는 누구인가?" "윤임 윤판서라구 있지요. 
공연히 귀찮스레 굽니다." "세자전하의 외삼촌 말인가?" 옥매향은 고개를 
까닥거렸다. "자네하고 정분이 들었나?" 임백령의 젊은 눈에는 시새는 
빛이 가득 찼다. "정분이라니, 나으리도 그렇게 사람을 깔보시우? 아무리 
노류장화라 하나, 윤판서한테 정분이 들었으면서 나으리하고 백년해로를 
허락했겠소? 사람을 개돼지로 아시우." 옥매향은 살짝 눈을 흘긴다. 
"세자마마의 외삼촌이야. 왕비마마를 간택해 뽑아 드린 분이야, 나라의 
사돈 김안로 김판서와 한편이야. 나는 새라도 떨어뜨릴 윤판서 대감이 
아닌가. 나 같은 새물청어 시골놈에게 견줄 수가 있나. 윤판서가 정 자네를 
마음에 있어 한다면 윤판서와 평생을 같이하는 것이 좋겠네." 임백령은 
슬쩍 또 한 번 비꼬아 본다. "세자마마의 외삼촌이 옥매향한테 무슨 
아랑곳 있고, 왕비를 간택해 뽑은 세도가 옥매향에게 무슨 상관이 있갔소. 
옥매향은 옥매향이구 윤임은 윤임이지요." 옥매향은 말을 마치자 
뽀로통해서 살짝 돌아앉는다. 임백령은 옆으로 홱 돌아앉는 옥매향의 
모습을 빙긋 웃어 바라본다. 하이얀 뺨으로 가뭇하게 드리운 살쩍이 
유난히도 풍정이 있어 보였다. 임백령은 마음속으로, '천하에 절염으로 
잘생긴 미인은 웃는 탯거리도 좋거니와 짜증을 내서 노한 표정도 
일색이로구나.' 하고 생각해본다.
  "이 사람아, 세상 사람들이 사는 맛이 좀더 잘살아 보려고 한 평생 
호강을 해서 떵떵거리고 살자는 것이 사람의 살정인데, 자네는 세도 
재상의 소성 되기가 싫다 하고 궁조대 선비의 작은집이 되겠다 하니, 
도대체 자네 심정을 암만 해도 모르겠네. 자네 말은 입에 발린 말 같아서 
믿음직하게 믿어지지가 않네그려." "나으리, 그것은 나으리가 애틋한 
참사랑의 맛을 모르고 하는 말씀요. 정말 사랑이 끓어오른다면, 노래에도 
얼음 위에서 대잎자리를 깔고 얼어 죽을망정 떨어질 수가 없다 하지 
않았소이까. 행랑방 속에서도 비지 전골이나 된장찌개가 바글바글 끓지 
아니합데까. 육조판서가 다 무엇이구 옥관자 금관자를 단 도승지면 무얼 
합네까. 오죽해서 동지 섣달 첫새벽에 오들오들 떨면서 대궐로 들어가는 
도승지의 행차를 거지가 바라보고 불쌍하다구 말했다지 아니합데까. 
사랑이 달아서 뜨거워진 곳에 상하귀천이 어데 있겠습니까. 항차 나으리는 
나라에 국혼을 한 양반님네보다도 금마 옥당에 밝은 벼슬만 하실 진짜 
양반인 것을."
  뽀로통했던 옥매향은 말을 마치자 금방 흰 이를 드러내어 방싯 웃는다. 
임백령의 간장은 노그라지는 듯했다. "진정인가?" "진정 아니믄 허튼 수작 
하갔소. 몸까지 바친 옥매향이." "신표를 하나 주게나." 옥매향은 주저치 
않고 무명지에 끼었던 비취옥 가락지 한 짝을 선뜻 뽑아서 임백령의 
새끼손가락에 끼워 준다. 새파란 비취옥 가락지 한 짝은 임백령의 마음을 
더욱 푸르게 부풀어올렸다. "소녀에게도 신표를." 임백령은 마침내 주머니 
속에서 면경을 꺼내어 옥매향의 허리춤에 끼워 준다. 임백령과 옥매향의 
정은 나날이 깊어 갔다. 임백령은 옥매향이 없으면 허술하고 쓸쓸해서 
배겨날 수가 없었다. 공고를 치르기만 하면 옥매향을 찾는 것뿐이 
아니었다. 한 달에 반은 옥매향의 집에서 침식을 같이하고 지냈다.
  윤임은 장안 명기인 평양 기생 옥매향을 어느 재상의 집 잔치 자리에서 
두어 차례 만난 뒤에 영리하고 아름다운 계집이라 생각해서 소실로 
삼으리라 결심했다. 가끔가끔 문밖 정자에 재상들을 청하여 잔치를 벌이고 
옥매향을 사랑 놀음으로 불러들였다. 역시 수십 명 명기 속에 옥매향은 
빼어난 자색이었다. 윤임은 옥매향의 환심을 사려하여 후한 사랑 놀음차를 
주었다. 주는 것이 빌미가 되어 옥매향도 윤임이 차차 싫지는 아니했다. 
윤임이 옥매향의 곁놀음차를 주는데 번수를 거듭할수록 곁놀음차는 
후했다. 찬란한 황금 삼작 노리개를 내릴 때도 있고 진품으로 쏙 뽑은 
옥비녀에 금패지환이며 산호 삼작을 내릴 때도 있었다. 어느 때는 
약과문의 잘배자까지 내렸다. 이것은 곁놀음차로는 너무나 과한 행위였다. 
웬만한 사람들의 속놀음차보다도 훨씬 후하고 호화로운 대접이었다. 
윤임은 옥매향의 환심을 사려 무궁무진 애쓴 뒤에 어느 날 잔치 끝에 
옥매향을 가까이하려 했다. "너, 오늘은 산정에서 쉬고 내일 문안으로 
들어가거라." 윤임 윤판서는 거나하게 취하여 옥매향의 손을 잡았다. 
옥매향은 하도 윤판서의 곁놀음차를 많이 받았으니 인정상 손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손을 뿌리칠 수 없을 뿐 아니라 기생의 몸이었다. 싫어도 
생긋 웃어서, 남자의 마음을 상하지 않도록 해야만 할 의무를 가졌다. 
옥매향은 상긋 웃었다.
  "저만 것을 그처럼 귀애하시니, 대견한 말씀 이루 다 사뢸 길이 
없습니다. 그러하오나 오늘 밤은 집에 돌아가야겠사옵니다." "왜 하필 
오늘만이냐. 무슨 일이 있기에 그러느냐?" "오늘 밤 제 아지 
제삿날이올시다." 영리한 옥매향은 이렇게 말을 꺼내 놓고, 또 한 번 
상글상글 웃었다. "그럼 된 수로구나. 내가 네 집에 가서 네 아비 제사 
비빔밥을 먹으면 좋지 않느냐?" "오시는 것은 좋지마는 재상의 체통에 
기생 아비 제사 비빔밥을 잡숫고 밤늦게 댁으로 돌아가실 수도 없고, 
구종별배를 거느리고 기생방에서 주무실 수도 없으니 그 일이 난처하고 
딱하옵니다." 옥매향은 살짝 이렇게 윤임이 던지는 굴레를 벗어 버렸다. 
"그럼 별 수 없구나. 제사는 다른 사람 보고 지내라구 인편에 전갈하여 
보내고, 너는 나와 같이 산정에서 묵자꾸나." 윤임의 욕화는 벌렁거렸다. 
"아무리 천한 계집이라 하나 너무 괄시를 하십니다. 제 아비 제사를 
대리로 지내라 하구, 대가을 모시구 산정에서 제삿날을 지낼 수야 
있습니까? 삼강오륜으로 백성을 훈계하시는 대감께옵서 이만 사정은 알아 
주셔야 할 것입니다." 윤임은 콧구멍이 맹맹했다. 가슴은 달았으나, 이날은 
옥매향을 아니 놓아 줄 도리가 없게 되었다.
  윤임은 이 뒤로부터 옥매향에게 눈독을 잔뜩 들였다. 그러나 옥매향은 
빼긋빼긋 넘어가면서 기회를 주지 아니했다. 놀음이 벌어졌을 때마다 배가 
아프다고 핑계를 하고 몸이 괴롭다고 일찍 돌아갔다. 이럴 때마다 윤임의 
놀음차는 더욱 후하게 내렸다. 결국 어느 날의 일이었다. 옥매향은 윤임을 
더 속여 넘어뜨릴 수 없게 되었다. 옥매향은 임백령에게 미안은 했으나 
기생의 몸이고 보니 어찌하는 수가 없었다. 윤임에게서는 이번엔 정작 
기막힌 속놀음차가 내렸다. 의복차도 봄, 가을, 여름, 겨울 사시에 철을 
맞춰 입도록 한산세모시, 안주항라, 춘사, 백방사, 모본단, 대화단이 필필이 
내리고, 노리개로도 순금으로 갈고리를 만들고 오색이 찬란한 준주와 
형산백옥으로 장식을 꾸민 주먹덩이 같은 밀화덩이가 달린 대삼작을 
내렸다. 옥매향에게만 내린 것이 아니었다. 옥매향의 기둥서방인 
춘방사령한테도 후한 상급이 필필이 내렸다. 춘방사령의 입은 딱 벌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네 덕에 나도 호사를 하는구나. 윤판서 대감을 잘 받들어 
모셔라. 뒷날 세자마마께서 등극을 하시는 날은, 네가 허릿바를 끄르고 
편안히 살 것이다. 세자마마 외숙의 안어사가 아니냐. 나도 늙바탕에 
춘방사령의 고생을 면하고 집간이나 장만해서 편안히 살아 보자."
  기둥서방은 이렇게 권하고 동무 기생들은 옥매향의 속놀음차 받은 것을 
보자, 입에 침이 흐르도록 부러웠다. "너는 참 복두 많구나. 앞으론 
옥골선풍의 한림학사를 모시고 등에는 윤 부원군 댁 판서대감을 업었으니, 
조선 팔도가 장차 네 치맛자락 밑에서 놀게 되었구나." 이렇게들 동무들이 
부러워할 때마다 옥매향은 새침했다. 새침했다는 것보다 신명이 나지 
아니했다. 어떻게 하면 하루 빨리 기안에서 이름을 뽑아 내서 떳떳이 
임백령과 살림을 차리고 아늑하고 조촐한 살림을 해보나 하는 것만이 
옥매향의 소원이었다. 이때 옥매향의 집으로 매일같이 드나드는 임백령도 
윤임과 옥매향의 사이의 눈치를 짐작했으나, 당장 자기가 옥매향을 
떼어들여 치가를 못 하는 이상 윤임의 옥매향에게 대한 행동을 끊게 할 
도리는 없었다. 어서 빨리 자기가 옥매향을 떼어 들이도록 벼슬 지위와 
앞뒤 형편이 나아지기만 고대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편으로 윤임은 
옥매향을 손속에 넣은 뒤에 전보다 더 자주 옥매향을 산정으로 불렀다. 
이미 벌여진 춤이라 옥매향을 보면 볼 수록 보배로운 구슬같이 생각했다. 
이 귀여운 보배를 독점하지 못하고 사랑 놀음이나 춘방 사령 놈한테 
내맡기기가 차마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윤임이 산정에 앉아 옥매향과 단둘이 거문고를 타고 놀았다. 
윤임은 옥매향과 한동안 풍류를 즐기다가, "내가 너를 치가해서 살림을 
차려 줄 생각이 있다. 너도 지금은 한창 젊고 고와서 남정네를 의지하지 
않아도 살 것 같지만 차차 나이 들면 그대로 한평생을 의지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내가 너를 부실로 삼을 마음이 있으니 네 생각엔 어떠냐?" 
윤임은 은근하게 옥매향에게 물었다. 윤임의 말을 듣는 옥매향은 얼굴에 
미소를 머금을 것을 잊지 않았다. "대감 말씀은 폐부 속에 고이 
간직하겠습니다. 고마우신 처분은 한평생 잊지 않겠습니다마는 아직 
그대로 기생으로 있기가 소원입니다." 윤임은 의외라고 생각했다. 처음에 
옥매향이 방긋 웃으면서 말 허두를 꺼낼 때 윤임은 선뜻 허락하는 대답을 
할 줄 알았더니 오갬향의 대답이 이쯤 나가고 보니 윤임은 오히려 
서운했다. "왜 그러니? 내가 너를 호강을 못 시켜줄 줄 알고 그러니?" 
"아닙네다. 어느 존전이라구 감히 그런 맘을 먹겠습네까?" 옥매향은 
겉으로는 방싯 웃는 모습을 지어 대답했으나 어쩐지 얼굴에는 새침한 빛이 
떠도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사람이 부족해서 내 소실되기가 
부끄러운 점이 있어 그러느냐?" 윤임은 약간 불쾌해져서 이렇게 묻는다. 
"황송합네다. 천만 부당하신 말씀이외다."
  "그러면 왜?" 윤판서 대감의 추궁은 급했다. 영리한 옥매향이언만 얼른 
대답이 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글상글 눈웃음을 쳐 웃기만 할 뿐이었다. 
윤임은 웃음으로 녹이는 옥매향을 바라보자 가슴이 더욱 달았다. 
"그렇다면 네가 따로이 의중의 인물이 있구나." "원, 대감도 별의별 말씀을 
다 하시네. 송구영신하는 기생의 몸으로 모두 다 의중의 인물이니 따로 더 
좋은 사람이 있을 가닭이 있갔습네까." "그도 그렇다만 나하고 살림을 
못할 일이 어데 있느냐?" "남의 눈의 가시가 되는 것보다 이렇게 매인 데 
없는 기생의 몸으로 대감을 모시는 것이 좋지 않갔습네까? 그저 한평생 
귀애만 주시외다그려." 옥매향은 어리광을 부리는 듯 윤임의 무릎 위에 
몸을 실리면서 슬몃 누워 버린다. 모든 거북한 문제를 애욕의 안개 속으로 
흐려 버리게 하자는 옥매향의 묘한 작전이었다. 옥매향의 연막 속에 취한 
윤임은 또 한 번 정취 깊은 밤을 산정에서 지냈다. 애욕의 선풍은 더 한 
번 절정에 올랐건만 옥매향은 영영 부실되기를 사양했다.
  이튿날 옥매향을 돌려보낸 윤임은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옥매향이 
부실되기를 사양하는 까닭을 알 길이 없었다. 아무리 장안명기라 하나, 
자기가 말을 내지 않아서 그렇지, 말만 내리는 날에는 누구를 말할 것 
없이 모두들 자기의 부실되기를 바라는 이 판국에, 유독 옥매향이 
작은집되기를 거절하는 그 까닭을 알 수 없었다. 이튿날 윤임은 사람을 
시켜 장안 명기들을 찾아가지고, 옥매향의 집에 드나드는 오입쟁이들을 
넌지시 캐어 보라 했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옥매향의 집에는 새로 
장원급제가 되어 한리학사를 제수한 회마 임백령이 옥매향의 의중의 
사람이 되어 밤마다 드나든다는 사실을 자세하게 알아내었다. 윤임은 
비로소 옥매향이 자기의 소실되기를 거부하는 까닭을 알았다. 윤임은 
불같이 노했다. 단박 옥매향의 기둥서방인 춘방사령을 잡아 대령시키게 
했다. "네 기생 옥매향을 기안에서 떼어 댁으러 데려올 테다. 몸값은 후히 
치러 줄 테니 네 의향은 어떠냐?" 윤임은 겉으로는 말소리가 부드러웠으나 
얼굴엔 위엄이 등등했다. 춘방사령은 윤판서가 임백령을 시기해서 
옥매향을 아주 떼어 들이려고 서두르는 눈치를 채었다. 아니 응한다면 
춘방사령의 구실까지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대감마님, 어느 영이라 
소인이 감히 거역하겠사옵니까? 분부대로 오늘로 곧 옥매향을 치송해 
보내겠습니다." 윤임의 얼굴은 비로소 풀어졌다. "장악원에는 내가 
기별에서 옥매향의 기적을 뗄 테니 너는 곧 오늘 안으로 옥매향만 
치송하도록 해라."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춘방사령은 총총히 옥매향의 집으로 나왔다. 옥매향은 비로소 
춘방사령을 통하여 이 소식을 알았다. 다시는 임백령을 만나 볼 도리가 
없게 될 것을 생각하니 아뜩하게 현기를 느꼈다. 그러나 옴치고 뛸 수는 
없었다. 임백령과 옥매향의 사랑의 거문고 줄은 영영 끊어져 소리 없는 
무현금이 되게 되었다. 옥매향은 마음이 산란했다. 눈에는 두어 방울 
눈물이 글썽글썽 어리었다. 기둥서방인 춘방사령의 성화같은 독촉을 
받으면서도 옥매향은 연상을 당기어 주지를 펼치고 이별하는 편지를 썼다. 
작별도 못 하고 헤어지는 애운한 심정을 사랑하는 사람 임백령에게 
하소연하자는 것이다. '두고 가는 이별, 발길이 차마 아니 돌아섭니다. 
영창에는 달빛, 주인 잃은 매화꽃 그림자만이 흔들립니다. 지척이 
천리온지라 꿈 속에나 그리우리다. 내내 무양하시어 옥체를 보존하옵소서.' 
옥매향은 쓰기를 마찬 뒤에 쪽지를 접어 매어 문갑 위에 올려놓고, 
몸치장을 차린 뒤에 총총히 판교에 올라 윤임의 집으로 들어갔다.
  이날 밤에 임백령은 전과 같이 옥매향의 집을 찾았으나 주인은 없고 
동자치만 있어서 옥매향의 편지를 전했다. "웬일이냐?" 편지를 대한 
임백령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윤판서 대감이 윽박으로 살림을 
차려서 아씨를 데려가셨습니다." 임백령은 기가 막혔다. '무슨 짓을 하든지 
기어이 옥매향을 윤임의 손에서 앗아 원수를 갚으리라.' 임백령은 이렇게 
생각하고 이를 부드득 갈아 자리를 박차 일어났다. 윤임 윤판서가 
세력으로 장원급제 임백령의 애인 옥매향을 빼앗아 작첩을 했다는 소문은 
명기 명창들의 입을 거쳐 서울 장안에 자자하게 퍼지고 첩실들의 입을 
거쳐서 작은집 난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난정은 이 소리를 듣자 
천재일시의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윤원형이 공고를 치르고 대궐에서 
나오자 저녁 밥상을 받은 앞에서 난정은 화제를 꺼내기 시작했다. "영감, 
윤임 윤판서가 점잖은 줄 알았더니, 아주 사람이 잿감입니다그려." 난정이 
윤원형에게 말을 붙인다. "왜?" 윤원형은 밥술을 입에 넣다가 반문하여 
대답한다.
  "영감은 아직도 모르시우?" "무엇이 점잖지 않단 말인가. 말을 해야 알지 
않나." "벼슬이 판서야, 지체가 세자마마의 외숙이야, 이러한 분이 
체통없이 젊은 사람들과 기생 싸움질을 해서, 권력으로 젊은 사람의 
애인을 빼앗아서 첩을 삼았다니 말이 됩니까?" "오오, 옥매향의 일 
말인가?" "영감두 아시는구려!" "서울 안에서 그 일을 모르는 사람이 어데 
있나. 조정에서도 다 아는 일을." "정말 윤판서가 체통도 체통이지마는 
모자라는 인물입니다." "이 사람이, 색에는 영웅호걸이 따로 없다네. 저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보는 것이 왜 모자라는 일인가?" "영감두, 딱하시오. 
모자라는 까닭을 모르시오? 정말 큰사람이 되려면 이런 짓을 아니하는 
법입니다. 어데 계집이 없어서 새파란 장원급제 젊은 사람의 애인을 
뺏아서 까닭없이 첩을 만듭니까. 영감이 임백령이 되어 보십쇼. 한평생 
이를 갈고 덤벼드실 것이 아닙니까?" "내사 그런 짓을 당할 리가 있나. 
아무리 하늘을 보고 도리질을 치는 세도를 잡은 놈이라도 우리 난정이는 
못 뺏아가지, 하, 하, 하."
  윤원형이 허풍을 쳐 떠드는 소리를 듣자 난정은 상긋이 웃었다. "영감도 
공연히 호언장담을 작작 하시구려. 남처럼 세도잡을 생각을 좀 해보시우. 
정말 시퍼런 세도를 잡은 사람이 있어서 나를 뺏아간다면 영감도 꼼짝없이 
뺏겼지 별 수가 있을 겝니까? 그러기에 영감도 어서 세도를 잡으시란 
말씀이올시다." "내가 난정이를 뺏겨? 어림없는 소리 고만하게. 칼이라도 
들고 덤벼들지." "쓸데없는 소리 작작 하시구, 어서 세도 잡을 궁리나 
해보십시다. 요전에도 말씀했지만, 윤임이 김안로를 붙들어서 세도가 
저렇게 시퍼렇듯이, 영감도 임백령을 잡아서 배편을 차려 보도록 
하십시다." "임백령을 잡으라구? 솔 심어, 정자 지어. 그가짓 새물청어, 
장원급제를 잡아서 무엇에 쓰겠나." "아아 영감두 참으로 딱하시오. 
임백령이 오늘은 비록 장원급제밖에 아니 되었지만, 대감이 붙들어서 새 
사람을 만드시는 날은 윤임을 여지없이 공박해서 윤임의 세력을 이를 갈고 
꺾어 버릴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임백령은 한림학사니 앞으로 간관도 
되고 대간도 되고 사관도 될 수 있습니다. 홍문관이나, 사간원이나, 
사헌부에서 여론을 일으켜서 윤임을 꺾어 버리는 데는 언제든지 임백령이 
앞장을 서서 윤임의 세력을 엎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영감, 장계취계로 
윤임의 원수가 된 임백령을 꼭 붙들도록 하십시오."
  윤원형은 난정의 말을 듣고 황연히 깨달았다. 이튿날 윤원형은 작은집 
난정의 지시대로 장원급제한 한림학사 임백령을 자기 집으로 조용히 
청했다. 임백령도 왕후의 오라비 윤원형이 자기를 만나자고 일부러 
사람까지 보내서 은근히 청하고 보니 마음에 당길심이 있고 유쾌했다. 
윤원형은 난정이 솜씨를 다하여 차려 내보낸 음식으로 임백령을 관대했다. 
"소문을 들으니 노형은 신이 과거를 보다시피 했습디다. 참으로 대운이 
터진 분이오." 윤원형은 이렇게 임백령을 추어주기도 하고. "꿈에 노인이 
나타나서 당신의 이름을 회마라고 지으라 했다니, 회화나무는 정승이 있는 
집을 가리키는 말이라 노형은 앞으로 반드시 육조판서를 거쳐서 영의정이 
될 것이 분명하오. 몸을 돌보아 나라 일을 많이 하시오." 이렇게 축복하는 
말을 보내기도 했다. 임백령은 윤원형의 이렇듯 추어주는 말을 들으니, 
초면이지만 백년지기를 만난 듯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래서 당호를 
회마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임백령은 해사한 젊은 얼굴에 웃음을 풍겨 
대답했다. "앞으로 왕후께 말씀을 드려서, 노형을 크게 쓰시도록 할 테니 
그때 가서 사양하지 마시오." 윤원형은 넌짓 이렇게 왕후인 누님을 팔아서 
임백령을 심복으로 삼을 뜻을 퉁겨 보았다. 임백령은 감격했다.
  "영감께서 그처럼 생각하시어 왕후전하께까지 말씀을 사뢰어 주신다니 
참으로 결초보은이라고 하겠습니다." 임백령은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런데, 여보 회마." 윤원형은 일부러 임백령이 꿈에 노인한테 얻었다는 
회마란 당호를 듣기 좋게 한번 불러 본다. "네, 말씀하십시오." 회마라 
불러 주는 바람에 임백령은 더욱 기뻐서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래, 
그런 법이 있소? 윤임이가 노형의 애첩을 뺏아서 제 첩을 만들다니 낫살 
먹은 작자가 참으로 괘씸하단 말야. 에이 참, 추잡한 위인야. 이런 자가 
있어서 나라가 망한단 말야." 임백령은 윤원형이 이렇듯 윤임을 흉보고 
욕하고 몰아댈 줄은 몰랐다. 같은 윤씨인 데다가, 한 사람은 세자의 외숙이 
되고 한 사람은 왕후의 동생이 되니, 한통속으로만 알았던 것이 
딴판이었다. 임백령은 비로소 윤임과 윤원형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을 
알았다. "그 일은 어떻게 영감께서 아셨습니까?" "온 세상이 다 아는 일을 
내가 모르겠소? 윤임은 아무리 세자마마의 외숙이라 하나, 온 세상 삶들이 
사람의 자식으로 알지 않습니다." 똑똑한 임백령이었다. 윤원형이 윤임을 
헐어 말하는 까닭을 즉각에 알았다. 윤임은 전실 왕후의 오라버니요 
윤원형은 계비왕후의 오라비인 것을 깨달았다. "윤임은 나쁜 자요." 
윤원형의 입에서 나쁘다는 소리가 호되게 떨어졌다. 임백령의 가슴에서도 
옥매향을 뺏긴 적개심이 벌컥 일어난다.
  "윤임은 정책으로 김안로를 붙들기 위하여 세자마마의 동기간인 
효혜공주를 김안로의 집으로 하가시켰소. 바로 부마인 김희가 김안로의 
아들 아니오." "그렇습니까?" 임백령은 비로소 조정과 궁중의 내력을 
알았다. "그러나 김안로는 미구불원 쫓겨나게 될 것이오. 유림 조광조의 
세력을 몰아낸 남곤, 심정은 조금 있으면 김안로를 몰아내리다. 그러나 
김안로나 윤임은 남곤과 심정을 몰아내려 하여 갖은 수단을 또 다시 
쓰리다. 남곤, 심정은 경빈 박씨 편이구, 윤임, 김안로는 세자를 휩싸서 
권세를 잡으려는 편이거든. 그러니 결국 김안로와 윤임이 이기느냐. 남곤, 
심정이 이기느냐, 단판 씨름이 될 것이오. 이러다가 누구든지 이기는 
사람은 나중엔 나하고 대립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오. 그 때 가서는 
노형이 나를 도와 주어야겠소." "결국에 가서 세 갈래로 삼파전을 
이루다가 나중에 가서는 하나가 되어 안정이 되겠습니다그려." 총명한 
임백령은 벌써 이렇게 조정의 분파도를 설명해 대답할 줄 알았다. "그렇지, 
그렇지." 윤원형은 임백령의 총명한 것을 보자, 신명이 나서 대답한다.
  "그렇다면 시생은 숙명적으로 남곤, 심정을 도울 수 없고, 윤임, 김안로 
하구도 손을 잡을 수 없습니다. 소생의 스승은 조광조 선생님의 제자이신 
김안국 선생이십니다. 그러니 우리 선생님을 죽이고 몰아낸 남곤, 심정을 
도울 수 없고, 윤임은 소생의 한평생 잊지 못할 사람이니 김안로, 윤임을 
도울 수 없고, 결국은 영감과 사생을 같이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임백령의 말을 가만히 듣고 앉았던 윤원형의 얼굴은 벙글벙글 
벌어졌다. 손을 내밀어 임백령의 손길을 덥석 잡는다. "우리가 늦게 사귄 
것이 한이오. 한평생 일을 같이 합시다." "미거하지만 모든 것을 늘여서 
보시고, 절 지도를 해주십시오." 윤원형과 임백령은 이렇게 옥매향 사건을 
연줄로 하여 백년지기가 되었다.
  이 일이 있은 뒤부터 임백령과 윤원형은 나날이 만나게 되었다. 
윤원형은 안으로는 절세미인 난정을 참모로 두고, 밖으로는 절세미인 
옥매향을 윤임한테 뺏긴 임백령을 제갈량으로 삼았다. 난정은 날마다 
구중궁궐 깊고 깊은 대궐 안으로 드나들면서 궁중 안에 일어나는 모든 
비빈들의 행동을 쏜살같이 살펴 알았고, 임백령은 조정안에 일어나는 일을 
주목하여 살폈다. 임백령의 벼슬은 다른 동료들에 비하여 성큼성큼 
올라갔다. 한림학사에서 단박 간관이 되고, 간관에서 대간이 되고, 
대간에서 승지가 되고, 승지에서 참판이 되었다 동료들은 어떻게 해서 
임백령의 벼슬이 이렇게 빨리 올라가는지 내막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옥매향을 뺏아간 윤임조차 임백령의 벼슬이 누구의 끄나불이 되어 이렇게 
발리 올라가는가를 까맣게 몰랐다.

    경빈 박씨
  난정과 윤원형이 자주 왕비 윤씨의 부름을 받아 지밀 안으로 드나든 
뒤부터 조정에는 왕비를 중심으로 하여 엉키고 모인 한 덩어리가 뿌리를 
박기 시작했다. 윤비의 오라비 윤원형, 임백령, 이기, 정순붕 등은 소리 
없는 새로운 진을 치고 있었다. 과연 난정의 예언과 같이 남곤, 심정은 
조광조의 세력을 꺾은 뒤에 윤임의 세력을 꺾기 위하여 먼저 김안로를 
조정에서 내쫓으려 했다. 남곤, 심정은 조정의 대간들을 시켜서 김안로를 
탄핵했다. 이때 김안로는 이조판서의 높은 벼슬에 있으면서 임금인 중종이 
효혜공주의 시아버지라 하여 나라 일을 신임해 주는 것을 기회로 하여 
나라의 목장을 함부로 차지하여 밭을 만드는 등 불법한 일이 많았다. 
남곤과 심정의 사주를 받는 대간들은 벌떼처럼 일어나 김안로를 탄핵했다. 
"이조판서 김안로는 내세를 빙자하고 불법한 일이 많을 뿐 아니라 간특한 
꾀로 국가의 호고지 목장을 차지하여 사사로운 전답을 만들고 상감이 
내리신 분부라 사칭하면서 사복, 도제조를 협박까지 했사옵니다. 김안로의 
벼슬을 깎아 멀리 귀양을 보내옵소서." 임금은 얼른 대간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남곤, 심정은 경빈 박씨한테 연락을 취했다. "김안로를 그대로 
두었다가는 공신의 딸들인 후궁들이 위태로울 것입니다. 김안로는 세자를 
등에 업고 공주를 앞에 앉혀서 크나큰 일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기어코 
몰아내도록 하옵시오." 남곤, 심정은 심복 종을 경빈 박씨한테로 보내서 
가만히 이렇게 전갈을 올렸다. 경빈 박씨는 아직도 후궁 중에 제일가는 
굄을 받는 모란꽃 같은 미인이었다. 여기다가 아들 복성군은 동궁보다도 
더 귀여워하는 존재였다. 마침 중종이 경빈 박씨의 처소에 들렀을 때, 
"김안로는 너무나 방자하옵니다. 공주의 시아버지라 하여 정부 대관을 
협박하고, 나라의 목장을 빼앗아 사사로운 전답을 만들었다 하오니 
나중에는 삼천리 강산이 모두 다 효혜공주의 시아버지 김안로의 땅이 될 
것이 아니오니까?" 임금은 경빈 박씨의 한 마디 말을 들으니 참으로 
큰일이었따. 삼천리 강산이 김안로의 땅이 된다는 한 마디 말은 임금의 
가슴을 뜨끔하게 찌르고도 남았다. 이튿날 임금은 대간들이 다시 상소하는 
글을 받자, "김안로를 파직시키고, 고신을 뺏은 뒤에 풍덕으로 귀양을 
보내라." 하는 엄령을 내렸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던 세도 재상 김안로가 별안간 삭탈관직이 
되어 풍덕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는 새 사실로 인해 조정과 궁중은 깜작 
놀랐다. 그러나 이것은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사태였다. 남곤, 심정은 
조광조의 세력을 꺾은 뒤에 다시 새로 일어나는 세력 김안로를 꺾지 
않으면 아니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경빈 박씨의 한 마디 말은 왕후의 
세력보다도 더 큰 것임을 증명하고도 남았다. 김안로의 사건이 일어난 
뒤에 가장 눈을 크게 떠서 이 사건을 바라보는 이는 왕후 윤씨였다. 왕후 
윤씨는 문안 들어온 난정을 앞에 가까이 앉혔다. "남곤과 심정은 기어코 
김안로를 몰아내고 말았구나." 왕후 윤씨는 벅찬 가슴을 안아 이렇게 말을 
꺼냈다. "그것 보십쇼. 제 말이 맞지 않사옵니까?" 난정은 요염하게 웃음을 
머금었다. "너는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로구나. 어떻게 그렇게 네 말이 
여합부절하게 꼭 들어맞느냐?" "별것이 아닙니다. 사기에 다 있는 
일입니다. 세월은 변해서 때는 달라지지만 사람의 인정은 예나 지금이나 
매일반입니다. 사람은 욕심에 사는 물건입니다. 욕심이 있는 한 어찌할 수 
없는 결과를 지어내는 법입니다. 제가 귀신이거나 영특한 머리가 있어서 
앞의 일을 내다본 것이 아닙니다. 인생이란 것은 물레바퀴 돌 듯 똑같은 
길을 되풀이하는 법입니다."
  난정은 말을 마치자 또다시 상긋 웃었다. "앞으로 김안로는 영영 세력이 
떨어지고 말게 될 것 같으냐?" "세자가 계시고 공주가 계신데, 김안로의 
세력이 간단하게 넘어 박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김안로는 어떤 요물입니까. 
조광조 때 이리도 붙고 저리도 붙었던 요물입니다. 그대로 만만하게 
귀양살이를 하다가 썩어 버릴 김안로가 아닙니다." 요물 난정은 김안로를 
요물이라 태연히 불렀다. 난정은 말을 마치자 잠깐 윤왕후의 기색을 살핀 
뒤에 목소리를 더한층 나직하게 떨어뜨려서 소곤거린다. "지금 중전마마의 
적은 경빈 박씨와 그의 아드님 복성군입니다. 경빈 박씨는 나이는 
중전마마보다 몇 해나 위지마는 아직도 후궁 안에 제일가는 국색입니다. 
그리고 복성군은 상감께서 세자보다도 더 사랑하십니다. 대의명분에 
걸리어서 세자를 봉하셨지 실상인즉 복성군을 더 애지중지하십니다. 
어머니가 고우면 아들도 마음에 더 드는 법이 아니오니까. 그러하니 경빈 
박씨와 복성군은 세자마마의 적도 되지마는 중전마마의 대적이 되시는 
것입니다. 경빈 박씨의 한 마디 말로 김안로가 벼슬이 떨어지고 귀양길을 
떠나는 것을 보십시오."
  윤왕후의 버들 눈썹은 찡그려지면서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경빈 박씨를 조처할 길은 없느냐?" 왕후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난정이 가장 듣고 싶어했던 소리였다. "우리는 손을 안 
대도 박빈과 복성군은 저절로 물러날 때가 오고야 맙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힘을 안 들이고 가만히 바라보고 있기만 하면 일은 저절로 우리의 
소원대로 되고 맙니다." "어떻게 그렇게?" 왕후는 초조했다. "박빈은 
김안로를 쫓아냈으니 김안로는 박빈을 쫓아내고야 말 것입니다. 우리는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으면 될 것입니다. 난정은 상긋 웃으며 왕후의 
초조한 마음을 위로했다. 김안로의 세력이 꺾여서 풍덕으로 귀양살이를 
나간 뒤에 조정의 세력은 남곤과 심정의 독무대로 되어 버렸다. 남곤은 
영의정으로, 심정은 우의정에까지 올랐다. 따라서 경빈 박씨는 의연히 
후궁의 제일인자였다. 아들 복성군을 필두로 하여 큰딸 혜순옹주는 광천위 
김인경한테로 하가를 시키고, 둘째딸 혜정옹주는 당성위 홍려한테로 
하가를 시켰다.
  난정은 의연히 왕비전으로 드나들면서 왕비의 몸에서 아들을 낳게 
하도록 축수 발원을 드렸다. 왕비의 힘이 미치는 한 모든 재물을 다 
기울여서 명산 대찰에 기도를 드리고 무당 판수를 찾아서 복을 빌었다. 
물론 극히 비밀한 행동과 계획 아래 모든 잡술은 시행되었다. 김안로가 
귀양을 간 지 이태 뒤의 일이었다. 영의정 남곤은 병이 들어 위독하게 
되었다. 임금은 내의를 보내어 병을 진단케 하고 모든 나라 일을 묻기까지 
했따. 그러나 약석은 효험이 없었다. 일세의 간물 남곤은 마침내 쉰일곱 
살로 세상을 떠나 버리고 말았다. 기묘사화를 일으켜 일대의 명류 조광조 
등의 유림을 엎어 버린 남곤이 와석종신을 했다는 데 대하여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다 놀랐다. "허허, 하늘이 내려다본다는 말이 모두 다 
거짓말일세. 조광조 이하 착한 사람들을 사화를 일으켜 모조리 죽인 
남곤이 제집에서 편안히 와석종신을 하다니 말이 되는 소린가." "죽은 
사람이 평안히 죽을 까닭이 있는가. 무척 괴로워하다가 죽었겠지. 그러나 
그 사람은 천만년을 가도 입초수에 올라 만대의 욕을 당할 사람일세." 
사람들은 이렇게 탄식했다. 남곤은 죽을 때 그의 자제들한테 유언을 했다. 
"평시에 내가 지었던 시와 글을 모두 다 불살라 버려라. 뒷세상에 남겨 둘 
것이 없다." 새가 죽을 때는 울음 소리가 슬프고 사람이 죽을 때는 말이 
착하다는 전설과 같이 남곤은 죽을 때 지나간 허물을 뉘우쳤던 까닭이다.
  남곤이 죽은 뒤에 공신의 딸들로 대궐에 들어왔던 후궁들은 모두 다 
한편 기둥 뭉그러진 듯했다. 여기에 심정이 아직 남아 있다. 하나 꾀는 
많지만 마음이 약했다. 경빈 박씨, 희빈 홍씨를 위시하여 적이 불안한 
마음이 높았다. 남곤이 죽은 지 열흘이 채 못 가서 조정과 궁중에는 돌연 
큰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세자는 이때 올해로 열세 살이요, 이해는 마침 
정해년이었다. 그리고 세자의 탄일은 이월 이십오일이었다. 세자의 탄일인 
전전날 저녁때, 윤원형의 첩 난정은 문안을 드리러 왕비 처소로 들어갔다. 
모든 상궁과 시녀들이 물러가고 조용한 틈을 타서 난정은 윤왕후께 가만히 
아뢴다. "영의정 남곤이 며칠 아니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지금 병이 
위독한 중이라 합니다. 박빈과 희빈들의 세도가 떨어질 때도 얄팍얄팍하게 
되었습니다." 왕후는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데 모레가 동궁마마의 
탄일이 아닙니까?" "그렇다더라." 왕비의 찬 성질은 이 한 마디 말에도 
나타났다. "소녀가 하올 일이 있으니 곤전마마께서는 보고만 계십시오." 
난정의 목소리는 더욱 낮아진다. "무슨 할 일이 있느냐?" "술객과 의논한 
일이옵니다." "무슨 일을 하기에 술객과 의논을 했느냐?" "한 팔매에 새를 
두 마리 맞추는 일이옵니다. 곤전마마를 위하여 곤전마마의 적을 해롭게 
하는 일이니 저만 믿으시고 가만히 앉아만 계시면 모든 일이 쥐도 새도 
모르게 잘될 것입니다. 오늘밤에 소녀가 집으로 나가지 않게만 
해주시옵소서. 그리고 말씀은 일을 한 뒤에 나중에 아뢰겠습니다."
  왕비는 가장 신임하는 풍복인 난정의 말을 아니 믿을 길이 없었다. 이날 
밤에 윤원형의 첩 난정은 궁 안에서 묵었다. 이날 밤 왕 전하는 다른 
후궁에서 쉬었다. 만뢰가 고요하고, 밤은 깊어서 자정이 훨씬 넘은 때였다. 
대내 안은 적막한 꿈속에 파묻혀 버렸을 때였다. 곤전 협실 뒷마당에서 
혼자 방을 차지하고 누웠던 난정은 조그마한 손등에 불을 켜들고 아까 
미리 여염에서 가지고 들어왔던 물건을 손수건에 싸 가지고 방문을 소리 
없이 열고 나갔다. 난정은 그 동안 대궐 안을 무상출입한 때문에 지밀 안 
지리에 밝았다. 난정은 불빛을 치맛자락으로 가리면서 살금살금 자취를 
죽여 걸었다. 세자가 거처하는 동궁은 과히 거리가 멀지 않았다. 난정은 
동궁 뒷담을 끼고 돌자 동궁 서북편 동산에 서 있는 당살구나무 가지에 
살짝 무엇을 붙잡아 매고 다시 발길을 돌려 돌아서 버렸다. 이튿날 이른 
새벽에 왕비는 잠이 오지 아니했다. 협실에 있는 난정을 침전으로 
불러들였다. 여전히 깊은 잠 속에 빠진 지밀 안이었다. 다만 왕비와 난정이 
깨어있을 뿐이었다.
  "일을 했느냐?" "네, 했습니다." "궁금하고나, 가만히 뚱겨 주려무나." 두 
사람의 말소리는 더욱 낮았다.  "쥐를 잡아 태워 가지고 세자궁 뒤, 
당살구나무 가지에 매달았습니다." "그것이 무슨 큰일 될 것 있느냐?" 
"세자마마는 올해 생도야지 띠옵니다. 쥐의 형국은 도야지와 같습니다. 
그래서 생일날 도야지의 형상인 쥐를 태워서 해방에 매어 달면 본명이 
해생인 세자는 몸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술객의 비방입니다. 그리구 
이 짓을 누가 했는가 하니 박빈이 한 것으로 몰아넣을 작정입니다. 
그러기에 아까 말씀드리지 아니했습니까? 한 팔매에 새를 둘씩 맞추는 
격이라구." "박빈이 한 짓이라고 어떻게 단정을 하겠나?" "참으로 마마는 
고지식도 하십니다. 이 사실이 드러나면 윤임과 김안로는 단박 박빈으로 
지목을 보낼 것입니다. 박빈은 김안로를 귀양 보내고 윤임의 세력을 꺾지 
않았습니까. 더구나 남곤이 죽게 되면 단박 들고일어납니다. 마마께서는 
가만히 보고만 계십시오." 난정이 왕후궁에서 일을 꾸미고 집으로 나간 지 
이틀 뒤, 이월 이십오일은 과연 탄일이었다. 궁중 안에서는 세자가 분홍빛 
강사포에 익선관을 쓰고 대비전, 대전, 곤전에 문안을 드리고 수랏간에서는 
번화한 음식을 각 전마다 올렸다.
  비빈들을 위시하여 상궁과 시녀들도 화려한 새 옷을 입고 세자궁을 
위시하여 삼전에 올라 세자의 복을 축하하면서 음식을 나누고 즐거운 
하루를 보내는 중이었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 엊그제 밤에 난정이 동산에 
올라 당살구나무 가지에 죽은 쥐를 달아 놓은 것을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해가 설핏해서 저녁때가 되었다. 경빈 박씨의 비자가 동무들과 
놀다가 소변이 급히 마려웠다. 사람 없는 곳을 찾아가느라고, 우연히 
세자궁의 서북 뒷담을 끼고 숲이 무성한 동산 속으로 들어서서 막 오줌을 
누고 있는 판인데, 별안간 옆에서 인기척이 나면서, "에구머니, 죽은 쥐가 
매달렸네." 계집의 호되게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경빈 박씨의 비자는 깜짝 
놀라서 목소리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어디 후궁의 비자인지는 몰라도 
분명히 비자의 복색을 차렸는데 이름은 알 수 없는 계집애가 역시 옆에서 
오줌을 누면서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어디 죽은 쥐가 있냐?" 경빈 
박씨의 비자는 물었다. "저거 보이지 않나. 당살구나무에 죽은 쥐가 
매달렸다. 저거 보이지 않어? 에그, 징그러워라." 이름 모를 궁녀는 손으로 
가리키면서 떠들어댄다. 이때 창빈 안씨의 비자도 오줌이 마려워서 또 
이곳으로 기어들었다. 이름 모를 비자는 또다시 소리를 치면서 호들갑을 
떤다. "쥐 봐라, 쥐!"
  창빈 안씨의 비자가 또다시 깜짝 놀라 오줌 누려던 것도 잊어버리고 
경빈 박씨의 비자와 함께, 당살구나무 가지에 매달린 쥐를 가까이 가서 
바라보고 있을 때, 이름 모를 비자는 동무들 비자들이 놀고 있는 곳으로 
뛰어가서 소리를 치면서 떠들어댄다. "얘들아, 저기 세자궁 뒤 당살구나무 
가지에 죽은 쥐가 매달렸다. 에이 징그러워라." 각궁의 비자들은 낯선 
비자의 말을 듣자 우르르 세자궁 담 뒤 당살구나무 아래로 모여들었다. 
그곳엔 경빈 박씨와 창빈 안씨의 비자가 서서 죽은 쥐를 바라보고 있었다. 
"에구머니나, 죽은 쥐를 청올치로 꽁꽁 목을 얽어서 매달았구나." 하고 한 
계집애가 떠들었다. "그저 죽은 것이 아니라 발이란 발은 모조리 칼로 
끊어서 잘라 버렸구나. 에그, 끔찍스러워라." 한 비자가 또 떠들었다. "얘, 
발만 자른 것이 아니다. 주둥이도 칼로 끊었구나. 이빨만 앙상하게 
남았다." 또 다른 비자가 떠들어댄다. "아니다. 그대로 발로 주둥이만 잘라 
죽인 것이 아니라 몸뚱이에 단근질을 했다. 털이 벗겨지고 몸뚱이가 타지 
않았느냐? 보아라." 또 다른 비자가 떠들어댄다. "얘, 이게 웬일이냐. 하필, 
오늘 세자마마의 탄신날!" 또 다른 계집애가 떠들어댄다.
  내인 계집애들의 떠들어대는 소리에 후궁의 여자들이 동궁 뒷담으로 
모여든 수는 점점 늘었다. 다섯 명이 열 명이 되고 열 명이 스무 명이 
되고 스무 명이 삼십 명이 넘었다. "아이그, 해괴망측해라. 이게 웬 
변고냐." "그러기에 말이야. 이곳이 어느 곳이라고 감히 어떤 년이 이런 
짓을 했느냐." "하필, 하고많은 날에 오늘 이런 변고가 생겼느냐." "이게 
까닭 있는 일이 아닌가. 어느 년이 예방으로 한 짓이 아니냐." "하고 많은 
쇠털 같은 날에 하필 오늘, 이따위 짓을 했느냐 말야. 오늘이 동궁마마 
탄일인데, 하필 동궁 뒷담에다가 그랬느냐 말야." 이번엔 세자궁 내인이 
떠들었다. "그러길래 저주하는 방해지 무어야." 이번에는 낫살 먹은 
무수리까지 섞여서 지껄였다. 아까 맨 처음 쥐를 발견하고 안빈과 박빈의 
비자한테 떠들어대던 낯선 비자가 또다시 나타났다.
  "이것은 꼭 방자질한 것이 분명하단 말야. 세자마마가 해생이 
아니신가베. 그런데 쥐는 돼지 비슷하게 생겼거든. 그러니까 돼지 대신 
쥐를 써서 해생인 동궁마마를 해치게 한 일야. 동궁마마께서 이 모양이 
되시라구 한 거란 말야. 참 기막힌 일도 다 많다. 그리구 당살구나무가 서 
있는 곳은 서북편 바루 해방이거든." 낯선 비자의 말을 들은 모든 궁녀와 
비자들의 등판에는 오싹하고 소름이 죽 끼얹어진다. 돼지와 쥐의 형국은 
과연 근사했다. 딴엔 그럴 듯한 소리였다. 섣불리 웅기중기 모여서 떠들어 
댈 것이 아니었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목이 달아날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약간 철이 있는 내인들은 한 사람 두 사람씩 슬슬 몸을 피하여 흩어져 
버린다. "그래도 감찰상궁한테는 이 사실을 일러두어야만 해." 낫살 먹은 
궁녀는 이런 말을 남겨 놓고 감찰상궁을 찾았다. 감찰상궁은 낫살 먹은 
내인의 보고를 받자 총총히 세자궁으로 나와서 당살구나무 가지에 매달린 
쥐를 살펴보고 송구하게 생각하면서 돌아갔다. 이때 모든 시비들은 
저주하는 소리에 겁이 나서 입을 봉한 채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이날 난정은 일부러 대궐에 들어오지 아니했다. 저녁때는 세자의 
탄일이라 해서 대비의 명령으로 전하는 특별히 별수라를 대전에서 왕후 
윤씨와 함께 같이하게 되었다. 세자 탄일에 전하가 곤전 윤씨와 함께 
대전에서 수라상을 받게 되었다. 복성군의 어머니 경빈 박씨는 자기 
처소에서 대전이 가까웠다. 아까 공식으로 두 분 전하께 세자 탄일을 
축하했지만 별수라를 드신다 하니 박빈은 대전을 향하고 올라갔다. 주인 
박빈이 대전으로 드니 박빈의 비자 범덕은 박빈을 모시어 전각 앞에 
당도했다가 얼마 뒤에 범덕은 또다시 박빈의 동정을 살피려 두어 번 뜰 
앞으로 오고 가고 한 일이 있었다. 이때 전하는 서침실에서 윤왕후와 함께 
수라를 마친 뒤에 퇴선을 물리게 되니 경빈 박씨는 퇴선을 받들어 
시녀들에게 물려 주어 찬간에서 먹게 한 뒤에 대청분합에 돌아오니, 
전하는 박빈을 보러 왕후와 함게 있던 서침실에서 동침실로 건너왔다.
  경빈 박씨는 전하가 퇴선을 했으므로 은 세숫대야에 물을 가득 담아 
어전에 손을 씻으시라 바쳤다. 전하는 아름다운 박빈이 친히 세숫대야를 
바치는 데 만족함을 느꼈다. 박빈의 모란같이 화려한 얼굴을 미소를 띄워 
바라보면서 은 세숫대야 따뜻한 물에 손을 담갔다. 박빈은 미끈한 흰 
팔뚝을 걷어올리고 은 대야에 담근 전하의 손을 팥비누로 개어 부드럽게 
씻겨 올렸다. 한동안 박빈의 촉감에 만족한 전하는 세수를 마치고 수건에 
물기를 닦으면서 우연히 마루의 난간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곳에는 
거무스름한 무슨 물건이 움직이는 듯했다. 전하는 다시 바라보았다. 확실히 
쥐였다. "쥐, 저기 쥐가 있다." 전하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경빈 박씨는 
전하의 쥐라고 부르짖는 소리를 듣자 깜짝 놀랐다. "어데 쥐가 있습니까?" 
"저기, 저, 난간 앞에 있다." 박빈이 바라보니 과연 난간 앞에는 까만 쥐가 
엎드려 있었다. "누구 거기 있거든 빨리 와서 이 쥐를 좀 보아요." 박빈은 
날카롭게 부르짖는다. 내인 안씨와 김씨가 퇴선을 먹다가 박빈의 높은 
소리를 듣자 동온돌 편 붉은 난간으로 쫓아 들었다. 과연 쥐가 있었다.
  내인 김씨는 날쌔게 몸을 날려 찬간으로 다시 뛰어가 젓가락을 가지고 
와서 쥐를 집어 마당에 내던졌다. 젓가락에 집혀진 쥐는 산 쥐가 아니라 
죽은 쥐였다. 마당으로 쫓아 내려가 종이에 쥐를 싸들고 바깥 개천으로 
내버리고 집어 보니 쥐는 동궁 뒤 당살구나무 가지에 매달렸던 바로 그 
쥐와 같이 발을 모두 다 잘라 버리고 화젓가락으로 지져 죽인 쥐였다. 
전하는 동온돌에서 한동안 박빈과 이야기하다가 천천히 공사청으로 
나가시었다. 박빈도 일어나 전하를 전송한 뒤에 자기 처소로 내려가 
버렸다. 임금도 쥐를 보통 쥐로만 생각하고 박빈도 무심한 채 자기 처소로 
돌아간 것이었다. 그러나 궁중 안에선 발목을 자른 지져 죽인 쥐가 대전 
안에 다시 있었다는 데 크나큰 얘깃거리가 되었다. 쥐는 보통 쥐가 아니라 
발을 자르고 주둥이를 잘라 태워 죽인 쥐라는데 문젯거리가 되는 것이다. 
더구나 동궁 뒤의 나뭇가지에 달아 놓은 태워 죽인 쥐와 똑같다는 데 
얘깃거리의 핵심은 있었다.
  "뉘 짓이냐?" 궁녀들은 또다시 소란하게 수군거렸다. 더구나 세자궁의 
시녀들은 관심이 더욱 컸다. "이것도 동궁을 해롭게 하는 방자질이다." 
"전하께 참혹한 변을 눈앞에 보시라는 것 아닐까?" "한 곳도 아니고 세자 
탄신 날 두 곳에서 일어났으니 기가 막힐 일이다." "글쎄 말야, 뉘 
짓일까?" "뻔하지. 세자마마를 싫어하는 사람의 짓이 분명하지." 
"세자마마를 싫어하는 사람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겠니. 착하고 인자하시고 
효성스러운 분을." "정신 없는 소리 마라. 세자는 장차 대왕이 되실 분 
아니냐. 임금의 자리에 허욕이 나는 것들의 장난이지 무어야." "그렇다면 
왕자를 둔 사람들의 장난이 분명하구나. 누굴까, 박빈? 홍빈?" 궁녀들은 
크나큰 변고를 당한 듯 수군거렸다. 전하의 침실인 대전에 죽은 쥐가 
또다시 나타났다는 소식은 단박 감찰상궁의 귀로 또다시 들어갔다. 
감찰상궁은 무수리 나인의 보고를 받고 개천에 버린 쥐를 사른 뒤에 
자기의 맡은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곤전으로 들어가 왕후 윤씨에게 
아뢰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은휘할 길 없사와 아뢰옵나이다. 아까 
낮이 겨워 동궁 뒷담 당살구나무 가지에 누구의 장난이온지 불에 태워 
죽인 쥐를 매달았사옵고, 아까 대전에서 박빈과 전하께서 말씀하시고 계실 
때 대전 난간 앞에서 황송하옵게 쥐가 있었다 하는 바, 이 쥐도 역시 지져 
죽인 쥐라 하옵니다. 송구하옵고 해괴하와 은휘할 길 없사와 감히 
아뢰나이다."
  감찰상궁은 떨리는 음성으로 겨우 말씀을 끝막았다. 왕후 윤씨의 버들 
눈썹이 찡그려졌다. "지져 죽인 쥐를 동궁 뒷담 나뭇가지에 매달았단 
말이냐? 아까 대전에서 쥐라고 떠드는 소리도 나도 서침실에서 
들었다마는, 그것도 역시 지져 죽인 쥐란 말이냐. 오늘은 세자마마의 
생일인데 참으로 해괴한 일이로구나. 알 수 없는 요변이로다. 위에 어른이 
계시니 내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다. 사실대로 대비전에 여쭈어라." 왕후 
윤씨는 엄숙한 얼굴로 차갑게 대답했다. 긴 말은 하지 않으나 노기가 사뭇 
등등한 듯 감찰상궁은 느꼈다. 감찰상궁이 어전에 물러나려 할 때였다. 
"시각을 지체치 말고 곧 대비전에 소상히 아뢰어라." 왕비의 어성은 
높고도 엄했다. 판단은 내리지 않고 어른께 재결을 받으라 이르는 왕후 
윤씨는 법도가 엄숙하고 범절이 높아 보였다. 감찰상궁은 자기가 죄를 
지은 듯 벌벌 떨면서 왕후궁을 물러나 대비전으로 올라갔다. 감찰상궁은 
대비께 왕비전에 아뢰듯 말씀을 올렸다. "게 무슨 소리냐. 후궁년들의 
요사스런 장난이로구나. 오늘이 세자의 생일이 아니냐. 세자의 생일을 
당해서 이따위 짓을 한 것은 반드시 곡절이 있는 것이다. 감찰상궁은 뉘 
짓인가 자세히 사실해서 아뢰어라."
  대비는 크게 노했다. 세자는 어머니궁이 없는 외로운 손자였다. 후궁의 
손자들은 복성군, 영안군 등 무수한 왕자가 있으나 정궁의 소생으로는 
단지 하나뿐인 세자였다. 대비는 항상 어미 없는 세자라 하여 금이야 
옥이야 하고 세자를 손자인데도 아들보다 더 사랑했다. 더구나 돌아간 
세자의 어머니는 당신의 일가인 윤씨였다. 대비의 진노는 절정에 올랐다. 
감찰상궁은 벌벌 떨면서 대비전을 물러 나왔다. "오늘 밤으로 사실해 
바치어라." 대비는 또 한번 엄명을 내렸다. 한편으로 세자궁의 시녀 은금은 
이 사실을 빈청에 있는 윤임 윤판서에게 고했다. 태워 죽인 쥐가 동궁 
뒷담 나무에 걸리고 또다시 대전 난간 앞에 떨어졌다는 소식은 세자의 
외숙인 윤임한테는 벽력같은 기막힌 놀라운 소식이었다. 즉각으로 세자의 
적인 후궁들이 세자를 모해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윤임은 대궐에서 
부리나케 초헌을 몰고 집으로 돌아와 자기 아버지인 파평 부원군 
윤여필한테 사뢰었다.
  "세자궁에 변괴가 생겼습니다." 윤판서는 아버지한테 이렇게 고했다. 
파평 부원군 윤여필은 세자궁에 변고가 생겼다는 아들의 말에 깜짝 
놀랐다. "변괴라니?" "동궁 뒷담 서북편에 서 있는 당살구나무 가지에 쥐를 
죽여서 매달아 놓고 대전 침실 난간 앞에도 죽은 쥐를 던져 놨더랍니다. 
그러하온데 두 군데 쥐가 모두 다 보통 쥐가 아니라 네 발목을 끊어 놓고 
더구나 작서를 해서 지져 죽인 것이라 합니다." "그것 참 괴상한 
변고로구나. 더구나 오늘은 세자마마의 탄신이 아니냐. 동궁을 방해하는 
요망한 계집들의 짓이 분명하구나." 윤 부원군은 펄쩍 뛰었다. 
"그러하옵니다. 확실히 요망한 후궁들의 짓이 분명합니다. 세자궁의 
시녀들은 이렇게들 추측하고 있습니다. 동궁이 해생인 돼지띠라 쥐의 
형국이 돼지와 비슷하니 돼지 대신 쥐를 써서 해생인 세자가 이렇게 
언짢게 되라고 방해질을 한 것이라고 합니다." 금지옥엽의 왕후궁이 없는 
외손자를 방해한다는 말에 부원군 윤여필은 치가 떨렸다. "어느 년의 
짓이란 말이냐. 필시 복성군의 어머니 경빈 박씨의 짓이 아니냐." 부원군 
윤여필은 당장 단을 내렸다. 세자의 지위를 노릴 사람은 지금 경빈 박씨의 
아들 복성군 밖에 아무 다른 사람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계비 윤왕후 
몸에는 아직까지 아들이 없으니 문제도 되지 아니했다. 희빈 홍씨가 
있으나, 홍씨의 아들은 복성군보다도 어릴 뿐 아니라 세자보다도 나이 
적으니 의심할 대상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복성군의 어머니 경빈 박씨는 남곤, 심정과 부동이 되어 
자기들의 날개인 한팔 힘이었던 세자의 친누님 효혜공주의 시아버지인 
김안로를 귀양보내게 했던 것이다. 지금 영의정 남곤이 죽고 보니, 경빈 
박씨는 초조한 마음에 이따위 짓을 감행했을는지도 모를 것이라 단정을 
내렸다. "아버님 추측이 옳으십니다. 동궁 뒷담 당살구나무 가지에 매달린 
쥐를 먼저 발견한 계집이 경빈 박씨의 시녀구, 대전 앞 침실 어전에서 
쥐를 먼저 발견한 여자가 바로 경빈 박씨라 합니다. 그러구 이때 경빈 
박씨의 시녀는 여러 차례 대전 뜰 앞으로 내왕을 했다 합니다." 윤 
부원군은 노여움이 불길처럼 치올랐다. "너는 곧 왕대비께 들어가 문후를 
드리고 이 사실을 저저이 아뢰어서 죄인을 잡아내도록 해라. 나는 곧 
심정이 놈을 찾아보고 이 일을 밝혀 놓으라 할 테다. 심정이 놈은 박빈과 
일맥이 서로 통했을 테니 이놈을 내가 윽박질러 자백하도록 할 테다. 
상감께서는 영문도 모르고 앉으셨을 테니 딱한 일이다." 윤 부원군은 
시녀를 불러 출입 의복을 내놓게 하고 곧 자비를 차려 사인교에 올랐다. 
윤임도 예복을 바꾸어 입고 왕대비전으로 문후를 들어갔다. 우의정 심정은 
부원군 윤여필이 왔다는 연통을 받자 황망히 사랑으로 나가 윤여필을 
맞았다. "대감, 웬일이시오니까. 어떻게 이렇게 누지에까지 왕림을 
하셨습니까?"
  비록 돌아간 왕비의 아버지지마는 세자궁의 외조부가 찾아오니 서로들 
긴한 사이는 아니건만 우의정 심정은 황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심정은 요사이 영의정 남곤이 죽고 보니 대들보가 꺾어진 듯해서 마음이 
불안하고 전전긍긍한 판인데 정적인 중에도 가장 거물인 윤 부원군이 높은 
나이에 이렇게 찾아왔으니 반드시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심정은 일부러 공손한 태도로 윤여필을 맞아 대청으로 올랐다. 윤여필은 
자리에 앉자, "내가 오늘 대감을 찾은 것은 사사로운 일로 찾은 것이 
아니라 나라의 중대한 일이 있어 찾은 것이오." 하고 눈 같이 흰 긴 
수염을 쓰다듬는다. "네, 무슨 국사오니까?" 심정은 영문을 몰라서 도리어 
반문을 한다. "궁중에 기막힌 변이 있는 것을 대감은 모르시오?" 궁중에 
기막힌 변이 있다는 말에 심정은 깜짝 놀란다. "궁중에 변고가 있다니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심정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대감이 일국의 재상인 
우의정으로 앉아 계시면서 궁중에 변이 있고 없는 것을 모르시다니 말씀이 
되오?" 윤 부원군은 소리를 높여 우의정의 책임을 추궁하면서 노기가 
등등한 눈으로 심정을 쏘아본다. 심정이 박빈과 부동이 되어 반드시 이 
일을 했으려니 하는 선입감을 가진 윤 부원군은 털끝만한 여유도 주지 
않았다. "진정 말씀이지, 궁중에 무슨 일이 있는지 소생은 참으로 
모르옵니다." 심정은 황망히 윤 부원군의 쏘는 눈을 피하며 이렇게 대답할 
뿐이었다.
  윤 부원군은 격하게 분이 터져 올랐다. 별안간 주먹으로 방바닥을 
치면서 방성대곡을 한다. 흐느껴 통곡을 하는 윤 부원군을 바라보자 
심정은 귓구멍이 막혔다.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윤여필의 소매를 잡았다. "대감, 고정하옵시오. 그리고 시원스럽게 말씀을 
내려 주옵시오." 심정은 애걸해 빌었다. 그러나 윤여필은 소인 심정이란 
인상이 머리 속에 깊고 깊게 뿌리 박혀 있었다. '주초위왕' 이라고 비원 
잎사귀마다 글자를 써서 조광조를 모해해 죽인 것을 잘 아는 
윤여필이었다. 번연히 이 일을 알면서 간휼하게 시치미를 떼는 것이라 
생각했다. "우의정 대감의 목에는 칼이 안 들어갈 줄 아시오?" 윤 
부원군은 통곡을 그치고 백수를 흩날리며 노한 눈을 부릅떠 심정을 
호령한다. "그저 죽을 때 죽더라도 무슨 일이 있다는 말씀을 시원하게 
들려주십시오." 심정은 무릎을 꿇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빈다. "우의정 
대감은 세자저하께서 요사해 돌아가시는 걸 보아야 마음이 시원하겠소?" 
윤 부원군은 다시 주먹으로 방바닥을 치면서 우의정 심정을 노려보면서 
호통을 지른다. 심정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진정 목에 칼이 
들어갈 어마어마한 소리였다. "황공무지하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오니까?" 심정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조광조 이하 유생 수백 
명을 정계에서 몰아 내친 간물 심정이건만 간담이 서늘해서 다리가 
부들부들 떨린다.
  "오늘 세자마마 탄신에 동궁에는 작서의 변이 생겼소. 그리고 동궁 뿐 
아니라 어전 지척에도 무엄하게 똑같은 작서의 변이 생겼소. 이 일을 
우의정이 모른다 하니 도대체 정승이란 무엇을 하고 앉아 있는 거요? 
동궁께서 어서 돌아가시기를 축원하면서 모르는 체하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니구 무엇이오." 심정은 과연 금시초문의 일이었다. 박빈하고 아직 
연락이 두터우나, 아무런 소식도 없었던 것이다. "허허,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전혀 몰랐습니다." 심정은 불안하고 억울했다.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대감이 정 모른다면 하는 수 없지. 별 수가 있소? 그러나 
정승으로 앉아서 궁중에 이런 기막힌 변고가 있어도 범인을 잡아서 
다스리지 않는다면 큰코를 다칠 날이 있으리다. 정신차려 처리하시오. 나는 
이런 변고가 궁중 안에 일어났다는 것을 통지해 주고만 가오." 윤 
부원군은 소매를 떨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심정은 윤 부원군을 말릴 
길이 없었다. 뒤도 안 돌아보고 바람처럼 나가는 윤 부원군을 대문까지 
전송한 뒤에 곧 녹사를 불러 자비를 놓게 하고 빈청으로 들어가 궁중 안 
소식을 수소문했다. 과연 윤여필의 말대로 동궁과 대전에는 작서의 변이 
있었다.
  심정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큰일이었다. 까딱 잘못 하다가는 자기가 
몰리기가 십상팔구였다. 그러지 아니해도 영의정 남곤이 죽은 뒤에 자기의 
지위는 점점 외로운 처지에 빠졌는데, 영문도 모르고 이 통에 끼었다가는 
언제 어느 바람에 목숨이 달아날지 모를 일이었다. 설혹 이 일이 윤 
부원군이 추측하는 대로 후궁 속에서 일어났다 하더라도 자기는 발을 빼기 
위해서라도 이 일을 상감께 아뢰어 옥사를 밝히지 아니하면 아니 될 
처지에 빠져 있었다. 심정은 빈청에서 좌의정, 우찬성, 좌참찬을 정해 놓고 
이 일을 어전에 밝혀서 범인을 사실할 것은 아뢰기로 결정했다. 다음 날은 
마침 경연이었다. 좌의정 이유태, 우의정 심정, 우찬성 이항, 좌참찬 
안윤덕은 사정전에 올라 전하께 뵈었다. 심정은 좌의정 이유태를 시켜서 
먼저 말씀을 올리게 했다. "신들은 상감 전하께 아뢰나이다. 일전 세자저하 
탄일에 작서의 사건이 있어 동궁에 변고가 있었다 하옵는 바, 요사이 
천재지변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모두 다 이러한 요망한 무리가 궁중 
안에서 음모를 하고 있는 까닭인가 하옵니다. 더구나 동궁은 모후가 아니 
계시와 외롭고 어리신 것을 기화로 하여 방해하려 하는 것이오니 궁중을 
엄숙히 다스리시어 죄인을 밝히도록 하옵소서."
  좌의정 이유태의 아뢰는 말에 임금은 깜짝 놀란다. 전하는 대전 앞 
난간에서 쥐를 발견한 일은 있으나 동궁에서 쥐를 태워 죽였다는 소리는 
금시초문이었다. "좌의정, 그게 무슨 말인가. 동궁에 작서의 변이 있다니?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인데, 안에서 모르는 일을 밖에서 어떻게 알았는가? 
어찌된 셈인가?" 우의정 심정이 아뢴다. "일전 세자 생신날, 죽어가는 쥐를 
사지를 끊어서 불로 지진 뒤에 동궁 침실 창밖인 다살구나무 가지에 걸어 
놓았고 대전에도 이러한 일이 있었다 하옵니다.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궁중에 간악한 여인들이 있어 동궁을 음해하온 듯합니다. 덮어둘 
수 없는 큰일이오니 죄인을 잡아 엄하게 국문하옵소서." 심정의 말을 듣는 
전하는 더 한 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감찰상궁한테서 
사지를 끊어 죽인 쥐가 동궁에 매달려 있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노했던 
왕대비는, 부원군의 아들 윤임이 문후를 들어와 세자의 일을 근심하여 
울면서 호소하니 더 한층 노했다. 언문으로 전하와 대신들에게 의지를 
내렸다. "궁중에 변고 있어 동궁을 모해하려 하니 빨리 범인을 잡아 
처치하여 종묘와 사직에 근심이 없게 하라."
  준엄한 대비의 의지였다. 한참 이 일을 의논하던 전하와 대신들은 
대비의 엄명이 내리니 단을 내려 국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임금이 
한참 수심에 빠졌을 때 홍문관에서 대제학 이하 모든 선비들이 상소를 
올렸다. 역시 동궁을 음해하는 궁중의 요망스런 사람을 잡아서 엄하게 
징치하라는 상소였다. 사헌부에서도 상소가 올라오고 사간원에서도 상소가 
들어왔다. 똑같이 궁중 안에 동궁을 위태롭게 저주하는 요망한 무리들을 
일망타진해서 동궁을 보호하라는 상소였다. 부원군 윤여필과 윤임이 
삼사의 여론을 일으킨 것이었다. 온 조정이 발끈 뒤집혀서 궁중 안의 
요망스런 여인을 잡아 다스리라는 것이다. 결국 전하는 동궁과 후궁의 
시녀들을 엄하게 국문하기로 결정하고, 추관을 정승 이하 의금부 당상관과 
도승지, 사헌부 간원인 장관이 침국하기로 했다. 국청은 근정전 동편에 
엄숙하게 엄숙하게 설치되었다. 죄인은 드러나지 아니하고, 혐의를 함부로 
씌우기도 난처했다. 추관들은 모여서 의논한 뒤에 먼저 동궁 서북편 
당살구나무 가지에 매어단 쥐를 먼저 발견한 시녀를 찾아서 국문하기로 
했다. 추관들은 각전 비자들을 불러 쥐를 제일 먼저 발견한 비자가 누구인 
것을 조사해 보니, 경빈 박씨의 비자 범덕과 창빈 안씨의 비자 내은이 
쥐를 먼저 발견했다고 여출일구로 대답했다.
  사실상 제일 먼저 쥐를 발견해서 떠들어댄 여자는 낯설고 이름 모를 
비자였으나 궁녀들이 현장에서 만난 여자는 박빈의 비자와 안빈의 비자고 
보니 이렇게들 두 비자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박빈의 비자 
범덕이 먼저 붙들려 국청으로 끌려갔다. 추관들은 엄하게 범덕을 
호령하면서 공초를 받는다. "동궁 뒤, 당살구나무에 죽은 쥐를 매달아 논 
것은 네 짓이 아니냐? 네가 달아 놓고 발뺌을 하느라고 동무들에게 쥐가 
있다고 소동을 친 것이 아니냐?" 추관의 호령은 서슬이 시퍼렇다. 
"아니옵니다. 쇤네가 어찌 감히 이러한 짓을 할 리가 있습니까. 이월 
이십오일은 바로 동궁마마의 탄생날이옵니다. 이날 오후에 쇤네는 소변이 
마려워서 세자궁 서북편 담 밖 동산으로 갔사온데, 이름 모를 궁비 하나가 
'에구머니나, 쥐가 매달렸네' 하고 소리를 치기에 고개를 들어 앞에 있는 
나뭇가지를 쳐다보니 사지와 주둥이를 자르고 몸뚱이를 태워서 죽인 쥐가 
청올치에 묶여서 매달려 있었습니다. 깜짝 놀래서 어찌할 줄 모르고 있을 
때 안빈의 시비 내은이가 와서 함께 보고 있었을 뿐입니다."
  추관들은 여러 차례 추궁했으나 박빈의 시비는 똑같은 말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국청에서는 다시 안빈의 시비 내은을 불러 국문을 했다. 내은의 
말은 역시 박빈의 비자 범덕의 말과 똑같았다. 국청에서는 이름 모를 
비자를 찾았으나 종적을 알 길이 없었다. 국청에서는 다시 세자궁의 시비 
은금을 불러 국문을 했다. "당살구나무 가지에 죽은 쥐가 있었을 뿐 
아니라 대전 앞 난간에도 똑같이 사지를 끊고 주둥이를 자른 쥐가 
있었습니다. 이때 경빈 박씨의 비자 범덕이는 여러 차례 경빈을 모시고 
대전 앞으로 지나다녔습니다." 세자궁비는 박빈의 비자 범덕에게 불리한 
공초를 올렸다. 공초받은 보고는 날마다 전하와 대비한테로 올려졌다. 
궁중과 조정은 유언비어가 물 끓듯 했다. "동궁을 죽이려고 한 짓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누구의 짓이냐?" "아들 있는 후궁의 짓이 분명하다." 
"아들들을 가진 후궁이 한두 사람뿐인가?" "그 중 전하의 신임을 많이 
받고, 세자의 나이와 비슷한 아들을 둔 후궁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박빈이 분명하다." "동궁의 쥐를 먼저 발견한 사람이 박빈의 시녀구 
대전의 쥐를 먼저 발견한 사람이 박빈이구 보니 암만해도 의심스럽지. 
그리고 박빈의 시녀 범덕이 여러 차례 대전 뜰 앞으로 왕래를 했노라구 
자기 말로 그랬다니 뻔한 노릇이 아니냐?"
  궁녀들의 지목은 날이 갈수록 박빈한테로 돌았다. 온 궁중 안에서는 
동궁을 모해해서 쥐를 죽여 매단 혐의를 함빡 경빈 박씨한테로 돌렸다. 이 
소리는 단박 비자들의 입을 통해서 경빈 박씨한테로 들어갔다. "그게 무슨 
소리냐. 내가 대전 난간 앞에 한동안 혼자 있었고 내 시녀 범덕이가 두 
차례 뜰 앞으로 왕래했다기로서니, 그래 그것을 가지고 나와 범덕이가 
쥐를 죽여서 갔다 놓았다구 한단 말이냐? 참으로 생사람 잡으려고 
하는구나." 경빈 박씨는 얼굴이 푸르락누르락 펄펄 뛴다. 때마침 경빈 
박씨의 큰딸 혜순옹주가 궁중이 소란한 소식을 듣고 어머니 경빈 박씨를 
만나서 시집에서 궁 안으로 들어왔다가, 쥐 죽은 혐의가 자기 
어머니한테로 간다는 소리를 듣자, 경빈 박씨 못지 않게 화증이 일어났다. 
"어느 년이 그래 우리 어머니보고 동궁에 쥐를 매달아 놓고, 대전에 쥐를 
놓아서 방자질을 했다구 한단 말이냐. 그런 년은 그저 천참만륙을 해서 
가랑이를 찢어 죽여야 한다." 경빈 박씨와 혜순옹주 모녀가 펄펄 뛰는 
소리를 듣자 시녀 사비, 춘월, 복덕, 금이, 은향 등이 모여들었다.
  "온 궁중의 궁녀들이 입을 비쭉거리며 모두 다 그리합니다. 그 중에서도 
대비전 궁녀들은 저희까지 눈을 흘깁지요. 대비전에서는 이 일을 꼭 우리 
마마께서 하신 줄로만 아신답니다." "무슨 증거로 누명을 우리 
어머니한테다 뒤집어 씌운다더냐?" "세자마마보다도 한살 위인 아드님을 
두셨다는 것입니다." "에구머니나, 이거 생사람을 잡는구나!" 복성군의 
어머니 경빈 박씨는 일어나려다가 펄쩍 주저앉는다. "우선 우리 
어머니한테 혐의를 두는 년을 먼저 죽여야 한다. 얘들아, 어떤 년이 
그러나, 손발이 오그라지도록 예방을 해버려라." "아, 참, 옳습니다. 얘들아, 
우리 옹주마마의 말씀대로 사람을 만들어서 예방을 하자." 시비 금이의 
말에 모든 시녀들은 손뼉을 쳤다. 금이, 은향이, 춘월이, 복덕이, 사비 오륙 
명의 시비들은 빗자루와 참나무 장작으로 사람의 모양을 만들고, 색 
헝겊을 찢어서 저고리와 치마를 지어 입혔다. 송백당 동편 뜰에 인형을 
세운 뒤에 계집들은 인형한테 수죄를 했다. "우리 마마한테 동궁에 쥐를 
매달았다고 누명을 씌우는 년은 요렇게 손발이 오그라지도록 죽일 테다." 
"우리 마마보고 대전에 쥐를 던졌다고 하는 년은 혓바닥이 타고 주둥이가 
불더미 속에 그을려진다."
  시비들은 인형의 손과 발에 관솔불을 붙이고 인형의 혓바닥에 불을 
질렀다. "손발만 오그라드는 것이 아니라, 온 몸뚱이가 다 타버린다." 
계집들은 만든 사람들을 불그을음 속에 넣어 버렸다. 연기가 일어나면서 
인형은 재가 되어 버린다. 계집들은 손뼉을 쳤다. 혜순옹주도 손뼉을 쳤다. 
이 모양을 중문 안에서 가만히 엿보는 궁녀가 있었다. 대비전의 궁녀였다. 
감찰상궁의 명령을 받아 가만히 경빈 박씨의 동정을 살피러 왔던 
궁녀였다. 궁녀는 경빈 박씨와 혜순옹주의 푸념이며, 그들의 시녀들이 
인형을 만들어 저주하는 모습을 자세히 살핀 뒤에 쏜살같이 감찰상궁에게 
고해 바쳤다. 감찰상궁은 지체치 않고 이 사실을 대비께 아뢰었다. 경빈 
박씨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대비는 이 말을 듣자 불같이 노했다. "과연 
요망한 년들이로구나. 지엄한 궁중에서 사람을 만들어 저주를 하다니! 
이년들이 분명 동궁에 작서의 변고를 일으킨 년들이로구나." 대비는 
진노했다. 대비는 경빈 박씨가 인형을 만들어 당신까지 저주한 것이라 
생각했다. 경빈 박씨한테 의심을 보낸 사람은 역시 당신인 것이었다. 
대비의 마음은 철석같이 굳어졌다. 이번 일은 정치에 관계되는 일이 
아니라 궁중 안의 일이니, 궁중 안 일은 궁안의 어른인 대비가 절대권을 
잡았다. 대비는 즉석에서 엄명을 내린다.
  "송백당 뜰 앞에서 목우의 인형을 만들어 요망한 짓을 한 계집들을 
모조리 묶어서 검부로 내리고 작서의 변과 함께 치죄를 하게 하라." 
대비의 엄명이 떨어지니 경빈 박씨의 궁녀들은 모조리 잡혀서 국청으로 
끌려가 국문을 받게 되었다. 경빈 박씨의 시녀들은 아픈 매를 맞으면서도 
주인을 위하여 토설을 하지 아니했다. 그러나 이번 일은 확실히 증인이 
있었다. 경빈 박씨는 전하를 만나 울며 자기의 억울한 것을 변명했다. 
전하도 눈물을 머금고 말없이 경빈 박씨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나 무능한 전하였다. 죄 없는 신비도 공신 등살에 폐비를 만든 
전하였다. 가슴만 태우면서 옥사의 추이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옥사는 질질 
끌면서 또다시 십여 일이 지났다. 대비는 다시 엄령을 내렸다. "빨리 
옥사를 진행케 하라." 전하를 위시하여 좌의정, 우의정 이하 모든 추관에게 
엄명을 내린 것이었다. 대비의 엄명은 추상같이 계속해 내렸다.
  "지엄한 궁중에서 요사스러운 짓을 한 일은 전조 때 연산의 어머니 폐비 
윤씨가 한 일 밖에 없다. 이럼으로써 윤씨는 폐비로 하여 죽음을 내렸다. 
오늘 경빈 박씨는 일개 궁녀로 감히 궁중을 흐리고 어지럽게 하여 
요사스러운 짓을 감행했으니 비록 작서의 죄를 아니 저질렀다 해도 인형을 
만든 죄만으로도 당연히 형벌을 받아야만 할 것이다. 법관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빨리 법을 밝히라." 지극히 엄한 분부를 국청에 내렸다. 
대신들은 떨었다. 전하는 경빈 박씨에게 죄를 주지 아니하려 하고, 대비는 
경빈에게 죄를 주려 했다. 두 틈에 끼인 추관들은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삼사의 여론은 다시 드높게 일어났다. 선비들은 미묘한 궁중의 움직임을 
모르고 경빈 박씨가 복성군으로 세자를 삼기 위하여 세자궁을 모해한 
것이라 그릇 판단을 내렸다. 그들은 임금이 여색에 탐닉하여 대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스리지 않는다고 빗발치듯 상소를 올렸다. 심정은 
간악한 자였다. 형세를 보아 박빈이 불리하니 입을 꼭 봉하고, 박빈에 
대하여 아무런 구원도 보이지 아니했다.
  임금은 경빈 박씨를 백방으로 구하고 싶었으나 사면이 초가였다. 옹이의 
매듭으로 혜순옹주가 허수아비를 만들어 장난을 친 일은 기름에 불을 지른 
격이었다. 옴치고 뛸 수 없었다. 더구나 어머니 대비의 말씀을 어길 수는 
없었다. 여기다가 추관인 우의정 심정은 박빈과 자기의 사이가 가까웠던 
혐의를 받을까 두려웠다. 오히려 박빈을 몰아내려 했다. 간사한 소인이 
상투로 쓰는 수단이었다. "경빈 박씨의 시비들은 죽기를 무릅쓰고 토설을 
하지 아니 하오나 대비의 엄하신 분부가 계시오니 경빈 박씨 이하 모든 
시비에게 죄를 내리심이 온당한 줄로 아뢰오." 심정은 박빈에게 죄주기를 
간청했다. "의심만 가지고 어떻게 죄를 줄 수 있는가?" 임금은 종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박빈을 죽이라는 상소는 또다시 빗발치듯 들어왔다. 
전하는 하는 수 없이 경빈 박씨를 폐하는 전교를 내리고 말았다. "지난 
이월 이십오일 동궁 뒷담과 대전 침실에 쥐를 태워 저주한 일은 상하가 
모두 다 통분해야 하는 바이다. 허다한 궁인을 국문했으나 누구의 짓인 
것을 확실히 모르던 차에 혜순옹주의 시비들이 송백당 뜰 앞에서 인형을 
만들어 요망스런 일을 한 것을 대비께서 탐문해 아셨다. 쥐를 태워 죽인 
요망한 일은 반드시 이것들의 짓이라 하시어 엄하게 치죄하여 문초했으나, 
시비들은 역시 함구불언 토설을 하지 않으매, 그의 아들 복성군은 군의 
칭호를 삭탈하고 귀인은 참에 처하고 시비들은 곤장으로 때려 귀양 보내게 
한다. 중의에 이 뜻을 널리 반포하는 바이다."
  교서가 한번 떨어지니 박빈은 땅을 치고 통곡하면서 금부나장한테 끌려 
친정인 경상도 상주로 귀양을 떠나지 아니치 못하게 되었다. 임금은 대전 
문을 첩첩이 닫고 누웠다. 차마 폐서인이 되어 몸부림치며 통곡하면서 
금부나장에게 끌려가는 박빈의 꼴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기막히게 정이 
든 박빈이었다. 장성한 아들 복성군과 시집 간 혜순옹주, 혜정옹주 두 
딸까지 둔 경빈 박씨였다. 자색은 후궁 중에 첫손을 꼽는 미인이요, 한때는 
왕후까지 봉하려던 경빈이었다. 전하는 일찍이 공신의 권력에 눌려 조강의 
아내였던 신비를 내쫓던 그 비참한 얼굴을 오늘 경빈 박씨한테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었다. 폐비 신씨는 그 아버지 신수근이 반정을 반대했다 해서 
쫓겨났지마는 경빈 박씨는 어느 귀신이 쫓아내는 줄도 모르게 쫓겨나는 
것이었다. 경빈 박씨가 대궐 문밖으로 쫓겨난 뒤에 삼사의 신하들은 
임금의 전교가 명확치가 못하니 확실히 경빈이 죄인이라는 것을 단언해 
밝히고 경빈 박씨한테 죽음의 극형을 내리라는 상소를 열아홉 번이나 
올렸다. 그러나 임금은 박씨를 죽일 수는 없었다. 열아홉 번을 거부하는 
비답을 내렸다. 사랑하던 박빈을 차마 죽일 수는 없었다.

    요녀미소지상
  송백당 박빈의 처소에서 경빈 박씨의 피눈물나는 통곡 소리가 
소란스럽게 들리고 복성군을 위시하여 혜순옹주, 혜정옹주, 한 아들과 두 
딸들이 몸부림쳐 어머니를 이별하는 울음소리가 처절했을 때, 같은 대궐 
안 곤전에서는 왕후 윤씨를 가만히 바라보는 윤원형의 첩 난정의 처염한 
미소가 그믐달 같은 요사스러운 눈매에 차갑게 떠돌았다. 왕후 윤씨의 
눈에서도 소리 없이 대답하는 눈웃음이 살포시 떠돌았다. 말없는 차가운 
웃음을 주고받는 두 여인의 얼굴에는 통쾌한 승리의 쾌감이 물결쳐 
흘렀다. 두 연인은 말이 있을 까닭이 없었다. 미소와 미소만이 마음속의 
뜻을 전하고 쾌감을 전해서 고요히 희고 흰 꽃판 같은 얼굴에 웃음의 
물결만이 흘렀다. 이제, 적은 하나씩 둘씩 떨어져 물러나가는 것이었다. 
미모의 대적인 박빈이 영영 대궐 문밖으로 물러나가게 되니 오늘 밤부터 
군왕의 총애는 함빡 왕후 한 사람한테로 집중이 될 것이었다. 희빈 홍씨, 
창빈 안씨, 숙의 홍씨 등 무수한 후궁이 있다 하나 이들은 경빈 박씨의 
경국미색에 견준다면 모두 다 삼류가 아니면 사류에 속하는 무리들이었다. 
곤전 앞뜰 앞에 서 있는 낙락장송 푸른 솔가지가 흔들흔들 움직인다. 
바람이 송백당의 애끊는 울음소리를 실어다가 청송나무 상상가지에 
흐트러뜨려 버린다. 쫓겨나가는 경빈 박씨의 처절한 울음 소리였다. 난정의 
새벽달 같은 실눈이 처염한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요염하게 떠진다.
  "이제 금부도사에게 끌려나가나 봅니다." 왕비는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곤전 안에 앉아 있는 젊은 왕비의 귀는 송백당 편으로만 
기울어진다. 바람이 또 한 번 청솔가지를 흔들어 놓는다. 딴 울음 소리가 
솔가지 위로 흩어진다. 엉엉 우는 사내 울음 소리였다. "복성군의 울음 
소린가 봅지요." 난정의 속삭이는 소리가 또 떨어졌다. 울음소리에 
찡그려야 할 버들 눈썹가에 상긋 눈웃음이 물결친다. 또다시 바람이 
울음을 싣고 곤전 마당가로 흩어진다. 애띤 소녀들의 목소리다. 금창이 
미어지는 듯한 울음 소리다. "혜순옹주와 혜정옹주의 목소립지요." 젊은 
왕비의 고개는 여전히 까닥까닥 흔들렸다. 마지막 영결종천의 울음소리 
같은 기막힌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두 여인은 또 한 번 요염하게 소리 
없는 웃음을 웃는다. 이내 경빈 박씨는 원통하게 궁문 밖으로 끌려나간 
모양이었다. 대궐 안은 시체 나간 초상집 모양 쓸쓸하고 적막했다. 그러나 
두 여인은 조금도 처량하고 슬프지 아니했다. 난정은 살짝 일어나 
수란치마를 끌었다. 옥 같은 흰 손으로 쌍륙판을 들었다. "마마, 쌍륙을 한 
판 두시랍니까?" "좋지." 왕후는 가만히 대답했다. "내기를 하셔야 합니다." 
"하고 말고." "소녀가 이기면 금수저를 한 벌 주셔야 합니다." 
"금반상이라두 한 벌 주마."
  두 여인은 그래도 약간의 양심의 가책을 받는 모양이었다. 호젓이 두 
여인은 승리의 웃음을 웃었으나 약간의 불안한 마음을 쌍륙 놀음으로 
흐트러뜨리려 했다. 왕비는 상아로 만든 네모진 쌍륙 말판을 판 위에 
던졌다. 던져지는 두 짝의 주사위 구멍은 세 끗, 두 끗으로 되어 판 위로 
떨어진다. 다섯 끗이었다. 난정이 주사위를 들어 판에 던진다. 다섯 끗, 두 
끗, 합해서 일곱 끗이었다. "소녀가 두 끗을 이겼습니다." 왕비의 호롱 두 
개는 난정한테로 넘어갔다. "마마, 두 끗을 지시니 마음이 아프십니까?" 
"그까짓 두 끗." 왕비는 미소를 던진다. "그렇습니다. 참으시면 나중엔 열 
끗이라도 이기십니다. 지긋이 참고 똑바로 바라보시면 이것이 이기는 
묘방입니다. 마마께서는 지긋이 참고 바라보시다가 손 하나 까딱 안 
하시고 대적을 이기셨습니다." 왕비는 대답 없이 상아 주사위를 들어 
또다시 판 위에 던진다. 다섯 끗, 네 끗, 합해서 아홉 끗이었다. 
"가보로구나." "그거 보십쇼. 이번엔 소녀가 졌습니다. 소녀가 마마께 
금반상을 한 벌 해드려야겠습니다." 두 여인은 정말 쌍륙을 두는 것이 
아니었다. 이야기를 하기 위하여 쌍륙을 두는 것이었다. 궁중의 재빠른 
이목을 피하기 위하여 쌍륙판을 벌여 놓은 것이다. 난정은 호롱 말판을 
들어 변죽을 울린다. 판자에 깔아 논 양금줄이 스르렁 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었다.
  "마마." 난정의 목소리는 낮아졌다. 윤왕후는 살며시 눈을 들어 난정의 
요염한 얼굴을 바라본다. "이제 우리의 적은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적인 김안로가 귀양이 풀려서 다시 들어올 것입니다." 왕비도 호롱 
말판을 들어 쌍륙판 변죽을 울린다. 스르렁 양금 소리가 또 일어난다. 
그러나 난정의 가만한 소리는 왕비의 귀로 차근히 들어갔다. "박빈이 
귀양을 갔으니, 박빈의 원수요 윤임과 한패인 김안로는 반대로 귀양이 
풀려 들어올 것이 아닙니까?" 왕비의 고개는 또 한 번 까닥까닥 끄덕였다. 
난정이 주사위를 던지면서 호롱으로 쌍륙판 복판을 탁 친다. 아름다운 
쌍륙판 울림이 또 일어난다. 이제는 주사위의 끗수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바깥에 있는 궁녀들에게 쌍륙을 치는 체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난정의 
목소리가 가만히 또 떨어진다. "김안로는 들어와서 그의 정적인 심정과 
박빈을 아주 죽여버리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공신들의 세력을 완전히 뿌리째 뽑아 버리는 꼴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으면 됩니다." 왕비는 또 한 번 고개를 까닥까닥 흔들었다. 이번엔 
왕비의 손에서 주사위가 던져지면서 쌍륙판에서 양금 소리가 스르렁 
일어난다.
  "마마." 윤원형의 첩 난정의 가만한 목소리가 쌍륙판 울림 속에 가늘게 
일어난다. "김안로와 윤임이 박빈을 죽이고 심정을 죽인 뒤에, 그 다음에 
그들의 적은 누구겠습니까?" 총명한 왕비였다. 아무 말 없이, 하얀 흰 손을 
들어 왕후 자신의 가슴을 고요히 가리킨다. 난정은 별빛 같은 까만 눈을 
반짝이면서 방싯 웃는다. "마마, 옳게 보셨습니다. 만약 마마께서 앞으로 
왕자를 낳으신다면?" 왕후는 소리 없이 다시 손을 들어 자기의 가슴과 배 
두 곳을 가리켰다. 난정은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교태를 부려 자지러지게 
웃었다. "마마께서는 참으로 신이십니다. 보통 여인이 아니시라 하늘에 
계셨던 서왕모가 진세에 하강을 하시어 우리나라의 왕후마마가 
되셨습니다. 참으로 밝고 밝게 잘 통촉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마마께서는 
어찌하시렵니까? 폐비 신씨의 꼴이 되시렵니까, 폐빈 박씨의 꼴이 
되시렵니까?" "아무리 내가 못났기로서니 폐비가 되고 폐빈이 된단 
말이냐? 지금 와서 폐비를 누가 가엾다고 두둔하는 사람이 있더냐? 폐빈을 
누가 구해 주려는 사람이 있었느냐? 심정의 꼴을 보려무나. 권력을 
잡으려고 한 덩어리가 되어 조광조를 몰아 냈던 심정이나 홍희빈이 단 한 
마디라도 박빈을 구해보려고 애를 태운 일이 있었더냐? 남만 믿어서는 
아니 되는 세상이다. 제 일은 제가 해야만 하는 법이다." 왕후의 목소리는 
가만하면서도 차갑도록 조리가 있었다.
  난정은 덥석 왕후의 두 손을 받들어 잡는다. "마마께옵서 이 세상에 
여자로 태어나신 것이 한이옵니다." 난정은 힘차게 왕비의 어수를 잡았다. 
"나뿐 아니라 너도 이 세상에 여자로 태어난 것이 한이다." 왕후도 난정의 
손을 힘있게 꼭 쥐어 준다. "마마!" 난정의 샛별 같은 눈이 왕후의 
초롱같은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못난 사내보담 더 강하게 잘 살면 그만 
아닙니까?" "사는 데까지 싸워서 살아 보자! 우리가 신왕후나 박빈 꼴이 
돼서는 안 된다! 아내를 두 번 세 번 쫓아내도 끽 소리 못 하고 살아가는 
사내보다는 강하게 사는 여자가 되려 나을지도 모를 것이다." 왕비는 
슬그머니 웃었다. 은근히 무능한 대왕을 야유하는 소리다. "왕궁을 휩싸 
안고 권력을 잡으려는 뭇 개들을 쫓아내야 합니다. 그리구 마마께서 모든 
실권을 잡으셔야 합니다." "나라에 벼슬한다는 남자들이 정말 나라를 
생각하고 백성을 근심해서 자기 직책을 다하려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느냐. 모두 다 도둑놈들이다. 부귀영화를 저 혼자만 대대로 누리려 하여 
겉으로는 충신인 체하면서 사리사욕에만 눈이 뒤집힌 것들뿐이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냄새 맡고 덤벼드는 개 떼를 조정에서 다 
쫓아내셔야 합니다." 쌍륙판에서는 또 한 번 양금 소리가 스르릉 일어난다. 
난정과 윤왕후의 예측대로 풍덕으로 귀양갔던 김안로는 영의정 남곤이 
죽고 경빈 박씨가 폐빈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과연 웃음이 얼굴에 
가득했다. "인제 내가 다시 살아났구나!" 안로는 손뼉을 치면서 크게 
기뻐했다. 안로는 풍덕 적소로 기쁜 소식을 전하고 온 아들, 부마 희를 
보고, "너는 공주를 대궐로 들여보내서 대비와 상감께 아뢰고 세자마마를 
보호하려면 내가 다시 조정에 들어가야만 된다고 누누이 말씀을 드려라. 
보아라, 경빈 박씨가 쥐를 태워서 예방한 일은 모두 다 세자를 해롭게 
하자는 것인데 만약 내가 조정에서 벼슬을 하고 있었더라면 감히 이런 
변이 일어날 리가 없었을 것을. 그리고 너는 서울로 들어가는 길로 바로 
경기감사 민수천을 찾아보고 내가 한 번 만나자고 한다고 일러두어라." 
"아버님 말씀대로 봉행하겠습니다." 부마 김희는 풍덕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길로 경기감사 민수천을 찾았다. 민수천은 조광조의 제자들과 
가까운 사람이었다. 남곤이 죽고 경빈 박씨가 쫓겨나니, 김안로가 다시 
조정으로 돌아 올 기미가 농후하게 보였다.
  그는 그렇지 않아도 마음 속으로 이번 기회에 조광조의 제자들을 다시 
조정에 등용시켜서 바른 정치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차인데, 
김안로가 아들을 보내어 만나자고 하니 시각을 지체치 않고 경기감영 말을 
타고 풍덕으로 나가서 김안로를 찾았다. 김안로는 경기감사 민수천이 
찾아오는 것을 보자, 버선발로 귀양살이하는 집에서 뛰어내렸다. "민감사, 
멀리 누추한 곳까지 오셔서 참으로 감사하오." 김안로는 얼굴에 가득히 
요사스런 웃을을 띠웠다. "대감, 귀양살이에 교생이 어떠하십니까?" 
"그까진 고생쯤이 무슨 고생이겠소. 조광조가 죽은 데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지. 그저 소인한테 밀려서 잠깐 고생을 한 뿐이지. 여보, 경기감사. 
내가 이번에 조정에 들어간다면, 기묘사화에 결딴이 난 조광조의 제자들을 
모두 등용해 쓰겠소이다. 첫째로 우리들은 나라의 근본인 세자를 
보호해야만 하겠단 말씀요. 이것은 억울하게 돌아간 조광조 선생도 적극 
주장하던 일이거든. 이런 까닭에 조정암은 남곤, 심정과 후궁들한테 미움을 
받아서 몰려 죽은 것이 아니겠소? 지금 남곤이 죽고 박빈이 쫓기고 심정의 
세도가 떨어졌으니, 내가 조정으로 돌아가기만 하는 날이면 조정암의 
제자들과 손을 마주 잡고 경빈 박씨를 아주 뿌리째 뽑아 버린 뒤에 세자를 
보호해서 조정암의 주장하던 밝은 정치를 한번 해보겠단 말씀요. 경기감사 
어떻게 생각하시오? 조정암의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전해 주시오."
  경기감사 민수천은 김안로가 조정으로 돌아가면 조정암의 제자들과 손을 
맞잡아 밝은 정치를 하겠단 말을 듣자 크게 기뻤다. "대감, 진정으로 
조정암 선생의 제자들과 악수를 하시렵니까?" "암만, 나라를 위하여 밝은 
정치를 해야지."

        여인천하 하
박종화


    소인독소지태
  "그럼 조정암 선생의 제자들한테 대감의 말씀을 전하고 여론을 일으켜서 
대감을 복직시키도록 상소문을 올리게 하겠습니다."
"옳지? 좋아. 그리 해야만 나라 일이 바로 잡히지."
경기감사 민수천은 김안로를 작별한 뒤에 총총히 말을 달려 서울로 
올라왔다. 민수천은 즉시로 조광조의 제사 심언경, 심광언 형제와 언관으로 
있는 채무택을 찾고 김안로의 심정을 이야기했다. 조광조의 제자들은 
그들을 등용해 쓴다는 바람에 그들의 귀는 번쩍 떠졌다. 그들은 곧 
선비들을 찾아 여론을 일으켰다. 
"세자를 보호하는 일은 나라의 국본을 튼튼하게 하는 일일 뿐 아니라 우리 
선생님 정암 어른의 유지이신 것이다. 동궁을 보호하자면 김안로의 귀향을 
풀어서, 다시 조정으로 돌아오게 하는 게 첩경이다."
세 사람의 말은 단번에 유림들한테 통할 수 있었다. 조광조의 제자들은 
결속이 되에 상소를 올린다. 
"동궁은 심히 고단하시옵니다. 그러므로 박빈의 작서의 변도 일어난 
것입니다. 김안로의 귀양을 푸시고 다시 복직을 시키시어 동궁을 보호하게 
하옵소서."
유림의 상소는 빗발치듯 올라갔다. 유림이 움직인 뒤엔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삼사도 움직였다. 여기다가 김안로의 자부가 되는 효혜공주는 
나날이 대비전으로 들어가서 대비의 마음을 움직였다. 동궁은 대비에게 
있어서 끔찍한 원손이었다. 전하를 만나는 족족,
"김안로는 나라의 국적의 중신으로 간악한 남곤과 박빈한테 몰려서 귀양을 
갔으니, 빨리 귀양을 풀어 복직을 시키게 하라."
하고 엄한 분부를 내렸다. 
  전하는 바람 부는 대로 움직이는 과단성 없는 임금이었다. 조정 공론과 
선비들의 여론이 똑같은 데다가 대비마저 독촉을 하고 공주가 들어와서 
시아버지의 무죄를 호소하니, 전하는 마침내, 
"김안로의 귀양을 풀고 벼슬을 복직시켜라."
하는 명을 내렸다. 김안로는 호기가 당당하게 서울로 올라와서 어전에 
뵈온 뒤에 예조판서의 벼슬을 차지했을 뿐 아니라 동지경연사, 홍문관 
대제학. 예문관 대제학, 춘추관, 성균관사를 겸임하게 됐다. 벼슬 중에서 
높고 맑은 벼슬을 모조리 한꺼번에 다 차지해 버린 것이다. 맑은 
벼슬이언만 세도는 다시 나는 새도 떨어뜨리게쯤 됐다. 아들은 부마요, 
자부는 공주요, 대의명분을 내세우기는 동궁을 보호한다 했으니 새로 다시 
일어난 김안로의 세도는 하늘 아래 대적이 없게 되었다. 
  만조정 신하들은 다시 김안로의 콧김을 우러러보면서 고개를 숙였다. 
김안로의 문전은 저자를 이루고, 그는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생살여탈의 
권세를 잡았다. 임금보다도 높았다. 따라서 동궁의 외삼촌인 윤임의 권세도 
버쩍 올라갔다. 조정의 권세는 함빡 김안로와 윤임한테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김안로가 다시 조정에 들어가 다섯 개, 여섯 개의 인뒤웅이를 찬 뒤에, 
과연 난정이 왕후 윤씨께 예언한 대로 난정과 왕비는 손끝하나 까딱하지 
않고 앉았는데 대궐에서 또다시 큰 의옥 사건이 벌어졌다.
  대궐안 대간청에서 사람의 인형을 만들어 놓고 인형의 목에는 나무패를 
걸어 논 뒤에 조정을 저주하는 글이 써 있었다. 뿐만 아니라 대궐 
정문에는 화살이 꽂혀 있고, 대신들이 있는 빈청 기둥에는 화살이 박혀 
있고, 대사헌이 있는 사헌부 대문에도 화살이 박혀 있었다. 또 한 가지 
기괴한 일은 종루에 익명서가 붙었는데, 김안로 이하 새로운 권세를 잡은 
정부 사람들을 욕하는 글이 붙었다. 김안로는 가만히 사람을 사서 밤중에 
이 같은 짓을 해놓고 이튿날 시치미를 뚝 따고 대궐로 들어갔다.
  대궐 안은 발끈 뒤집혔다. 막중한 임금이 계신 대궐 정문에 화살이 
꽂혔으니 이것은 임금을 쏘는 것과 같은 불경의 죄였다. 정원의 승지들은 
깜짝 놀라 이 사실을 전하께 아뢰고 대신한테 품하여, 김안로한테 연통을 
했다. 온 궁중과 조정은 물 끓듯 소란했다. 전하는 급히 범인을 잡으라는 
엄명을 내렸다. 그러나 김안로가 독한 웃음을 웃어 가면서 가만히 해놓은 
일을 누구 한 사람 알 까닭이 없었다. 궁중에는 또다시 별의별 소문이 
떠돌았다. 
"이것은 꼭 나라에 함원을 하고 쫓겨난 사람의 짓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감히 이런 무엄한 짓을 할 사람이 있는가."
"함원을 하고 쫓겨난 사람이 누굴까?"
"이애야, 정신이 그렇게도 없느냐. 쫓겨간 사람은 경빈 박씨지 누구야."
"경상도 상주로 귀양을 간 경빈 박씨가 어떻게 서울로 돌아와서 이 짓을 
한단 말이냐?"
"너는 참으로 숙맥이로구나. 경빈 박씨의 떨거지가 얼마나 많은데 그러니? 
복성군도 있지, 부마가 둘씩이나 되지, 밑에서 살던 아랫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느냐?"
지목은 함빡 박빈한테로 돌아갔다. 
임금은 영의정 정광필에게 영을 내렸다. 
"대궐 정문에 화살을 쏘아 꽂은 것은 나를 쏜다고 위협한 것이고, 빈청 
기둥에 화살을 꽂은 것은 대신들을 위협하는 것이고, 사헌부 정문에 
화살을 꽂은 것은 대간들을 위협한 것이다. 극히 중요한 일이니 영의정이 
추관이 되어 옥사를 다스리라."
전하는 진노하여 지엄한 분부를 내렸다. 영의정 정광필은 구청을 열고 
옥사를 다스리려 했다. 그러나 궁중에 떠도는 소문은 모두 다 박반힌테로 
지목이 가는 것이었다. 
  정광필은 노성한 재상이었다. 옥사는 암만해도 의심스러웠다. 억울하게 
쫓겨난 경빈이 이런 것을 할 것 같지 않았다. 마음에 꼭 소인의 작폐로 
일어난 일같이 생각이 들었다. 만일 옥사를 잘못 벌이다가는 억울한 
박빈을 또다시 죽음의 길로 몰아 넣는 것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 사건을 그대로 불운에 부치는 것이 가장 좋으리라 생각하고 
어전에 엎드렸다. 
"가만히 옥사를 살펴보오니 의심스러운 점이 많사옵니다. 범인은 얼른 
잡히지 아니하옵고, 의심은 또다시 폐비 박씨한테로 돌아갑니다. 이것은 
궁중 안에 떠도는 유언비어가 그러하옵니다. 상주로 귀양까지 보내신 
왕실의 지친을 또다시 국문한다는 것은 극히 난처한 일이오니, 깊은 
통촉이 계시기를 바라옵니다."
늙은 재상 정광필은 재상다운 점잖은 의견을 올렸다. 
  이 소식을 들은 김안로는 얼굴에 노기가 등등하여 시각을 지체치 않고 
어전으로 들어갔다. 
"영의정 정광필을 체임시키옵소서. 정광필은 대신의 지위에 앉아서 대궐 
정문에 화살을 쏘아 꽂은 범인을 국문하지 아니하려 하오니 그 죄상은 
만번 죽어 마땅하옵니다. 대궐 문에 화살을 쏘아 꽂는 것은 전하의 
하교하신 바와 같이 전하의 옥체를 쏜 것이라 마찬가지라 생각하옵니다. 
임금의 옥체를 쏘는 대역부도한 놈들이 백일 아래 있사온데 이자를 잡지 
아니하려하니 이것은 대신이 역적과 공모한 것이라 생각하옵니다. 
정광필을 대신의 직책에서 파면시키시고 광필도 함께 문초하여 
국문하시기를 바라나이다."
영의정 정광필은 빈청에서 이 소식을 듣지 마음이 불안하였다. 안연히 
대신의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급히 어전으로 주창해 들어갔다.
"무능한 소신의 벼슬을 갈아 주옵소서."
임금은 하는 수 없어 영의정 정광필을 영중추부사로 옮기고 김안로에게 
옥사를 다스리는 추관의 주석을 주었다.
  김안로가 옥사를 다스리는 주적이 되자. 폐빈 박씨가 부리던 궁녀들은 
모조리 잡혀 들어갔다. 폐빈 박씨의 궁녀들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아들 
복성군의 시녀와 그의 두 딸 혜정옹주와 혜순옹주가 부리던 시녀까지 
깡그리 잡혀 들어갔다. 시녀와 시비뿐만 아니었다. 혜정옹주의 부마 당성위 
홍려와 혜순옹주의 부마 광천위 김인경까지 붙들려 들어갔다. 한편으로는 
종로 종각에 써 붙인 익명서 글씨는 심정의 아들 심사순의 글씨와 같다 
해서 심사순까지 붙들려 들어갔다.
  김안로는 혹독한 매질로 폐빈 박씨의 시녀와 부마들을 다스렸다. 시녀와 
부마들은 매에 못 이겨 마침내 죄 없는 죄를 자백해 버렸다. 심정이 아들 
심사순도 처음에는 종루에 방을 붙인 일이 없노라 바른대로 말을 했으나, 
아픈 매를 못이겨 아버지 심정이 시키서 종루에다가 정부를 비방하는 글을 
지어 썼노라 자백을 해 버리고 말았다. 김안로는 마침내 강제로 공초를 
받들고 옥사를 얻었다. 
"종로에 익명서로 방을 붇인 것은 아들 심사순의 글씨가 분명하고 
대궐문고 빈청 기둥이며 사헌부 대문에 화살을 쏘아 꽂은 일과 대궐 안 
대간청에 인형을 만들어서 나라와 조정을 저주한 글씨도 역시 심정의 
아들이 한 짓이 분명하니 이것은 심정이 박빈과 한덩어리가 되어 겉으로는 
박빈을 귀앙 보내자고 주장하였으나, 안으로는 박빈과 함께 동궁을 
해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앞으로 큰일을 꾸미려 한 짓이오니 심정에게 
죽음을 내리시옵소서."
하고 아뢰었다.
  전하는 요새 와서 심정이 돌연 미워졌다. 평시에 박빈은 항상 남곤와 
심정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는데 박빈이 작서의 변으로 몰릴 때 
심정은 재상 자리에 있으면서 오히려 박빈을 귀양 보내자고 선두에 서서 
주장하였다. 전하는 비로소 심정을 소인이라 생각했다. 추관 김안로의 
아뢰는 말이 떨어지자 임금은 지체없이, 
"좋다."
하는 전교를 내려 버렸다. 대궐 동산 안에 '주초위왕'이란 악착스럽고 
엄청난 장난을 꾸며서 어진 사람 조광조에게 죽음을 당하게 했던 소인 
심정는 오늘날 정권다툼으로 인해서 마침내 김안로의 손에 사약을 받아 
죽고, 아들 심사순은 끔찍하게 장살을 당해 버렸다. 
  옥사는 심정의 온 집안이 결딴나는 것으로 끝을 맺는 줄 알았는데, 
별안간 동궁 빈청에는 또다시 큰일이 벌어졌다. 세자저하가 계신 동궁 
빈청 남편 모퉁이의 손잡이에 사람 대가리를 만들어 걸어놓았는데, 
인형전면에는 이런 글을 써 놓았다. 
"세자의 몸을 이같이 능지를 할 일. 세자 아버님의 몸을 이같이 교살시킬 
일. 중궁의 몸을 이같이 참할 일."
이렇게 쓰고 인형 후면에는,
"병조서리 한충보 등 열다섯 사람이 씀." 이라 적어놓았다.
동궁 필선 조인규, 송인수 등은 인형을 발견하지 깜짝 놀라 전하께 
아뢰었다. 
"조강때도 없었는데 주강을 하러 동궁으로 들어가니 이런 변괴의 일이 
생겼사옵니다. 황송 송고하와 어찌 아뢰일 길이 없습니다."
  임금이 듣고 보니 기막히는 변고였다. 나라의 임금을 임금으로 생각하지 
않고 궁중을 궁중으로 생각하지 않는 대담무쌍하고 망유기극한 역적의 
짓이었다. 모가지만 남은 인형을 만들어서 세자의 몸을 이같이 
능지처참하시키고 세자 아버지 곧 대왕전하를 이렇게 교에 처하고 중전 
왕후를 이같이 참해 죽인다는 말이다. 전하는 얼굴빛이 변하며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 이조판서 김안로를 어전에 불렀다. 이때 
김안로의 세도는 더한층 높아서 심정의 옥사를 처결한 뒤에 예조판서에서 
이조판서의 실권을 잡았다. 
  김안로는 전하에게 말씀을 듣자, 
"아직도 역적들의 뿌리가 남아 있사옵니다. 곧 처형하여 아뢰겠사옵니다."
감안로는 활개를 치면서 국청으로 나와 다시 옥사를 일으킨다. 김안로는 
어전에서 물러나 합문 밖으로 나오자, 혼자 독한 웃음을 씽긋 웃었다. 
그리고 이내 남이 볼까 하여 얼은 웃음 빛을 스러뜨렸다. 김안로를 국청에 
나오자 단박 한충보를 잡아들였다. 
  한충보는 아무리 이름이 쓰여 있다 하나 범인으로서 제 이름을 밝혀서 
쓸 까닭이 없었다. 김안로는 잠깐 한충보를 국문한 뒤에,
"이것은 병조서리 한충보를 몰아내려고 한 짓이 분명하다. 한충보는 죄가 
없고 이 일은 작서의 변을 일으켜 세자 저하를 모해하려던 자의 짓이 
확실하다."
추관 김안로는 이렇게 단을 내렸다. 지목은 단번에 폐빈이 되어 쫓겨난 
경빈 박씨에게 돌아가고 이 일을 한 사람은 폐빈 박씨의 사위요 
혜정옹주의 남편인 당성위 홍려한테로 지목이 갔다. 마침내 당성위 홍려는 
매를 맞아 장살이 되어 버렸다.
  섣불리 임금의 딸한테로 장가를 든 때문으로 홍려는 까닭없이 젊은 
나이로 억울하게 장살이 되었다. 김안로를 중심으로 한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삼사에서는 임금에게 상소를 빗발치듯 올렸다. 
"폐빈 박씨는 쫓겨나간 함원을 먹고 그의 사위 홍려를 시켜서 대역부도의 
일을 저지르게 했사옵니다. 폐빈 박씨에게 죽음을 내리시고, 이 일이 이쯤 
되게 된 일은 그의 아들 복성군이 있는 까닭에 이러한 망유 기극한 대역 
부도의 일을 저질렀으니 복성군에게도 죽음을 내리서옵소서."
상소는 끊일 사이 없이 날마다 들어갔다. 전하는 차마 폐빈 박씨와 아들 
복성군을 죽이기가 난감했다. 차마 단들 내리지 못한다. 
  김안로를 다시 홍려의 집 비복과 하인들을 형틀에 매달고 뭇매를 쳐서 
윽박질렀다. 홍려의 하인 수견은 매질의 아픔을 참지 못하여 사람을 만든 
나무는 홍려의 집에 있는 물통이라대고 홍려의 하인 강손은 상전 홍려의 
명을 받들어 보모 효덕과 대궐별감 이은석과 공모하여 한 일이라 불었다. 
일은 어찌 되었건 죄인이 불어 좋았으니 전하도 하는 수가 없었다.
  마침태 폐빈 박씨와 복성군에게는 죽음을 내린다는 교칙을 선포하고 
박씨의 딸인 혜순옹주와 혜정옹주는 서인을 만들어 여염으로 내치고 
혜순옹주의 부마 김인경을 멀리 시골로 보내고 박빈의 인아족척들은 몽땅 
몰락을 시켜버렸다. 
  심정이 사약을 받아 비명횡사를 하고 복성군과 경빈 박씨가 죽음을 
받았을 때 중전 윤왕후의 처소는 바람 한 점 일지 않는 평화로운 
처소였다. 김안로에 못지않는 요녀 난정은 왕후마마 윤씨를 모시고 
한가롭게 쌍륙판을 벌이고 있었다. 난정은 쌍륙판을 말판에 던지면서 
가만히 소곤거렸다. 
"궂은 일은 함빡 김안로의 손으로 다 치워버리고 말았습니다. 마마께서나 
소녀는 손끝하나 까닥하지 아니하고 일이 무사타첩이 됐습니다."
난정은 말을 마치자 쌍륙판 변죽을 말판으로 울리면서 간드러지게 웃는다. 
왕비는 대답 없이 새침한 웃음을 얼굴에 띠웠다. 
"인제는 전하께서 가실 곳이 없습니다. 밤마다 곤전마마 침실로만 
들어오실 겝니다. 호호호."
"망할 것."
왕후는 난정의 등을 가볍게 후려친다.
  
    정경부인
  팔선녀 후궁들은 세력을 잃어 다 흩어지고 요부 난정의 추측한 대로 
전하의 은총이 나날이 윤왕후한테로만 기울어지게 되었다. 왕후는 
팔선녀들보다도 오히려 나이 십 세나 젊었다. 삼십 고개에 들어선 
윤왕후는 이제 살이 오르고 몸이 기름져 함박꽃같이 화사했다. 딸만 내리 
셋을 낳던 윤왕후는 전하의 은총을 혼자 모신 뒤에 뜻밖에 옥동자 사내 
왕자를 낳았다. 윤왕후와 난정은 뜻밖이 아니라 평생 소원이 성취된 
것이었다. 왕후와 난정의 기쁨은 말할 나위도 없고 전하의 기쁨도 왕후에 
못지 않았다. 
  왕후는 이번에 자기가 새 아기를 낳은 것은 난정이 자기를 위하여 
금강산 만이천 봉의 봉우리마다 절간을 찾아서 치성을 드리고 팔도강산의 
명산에 올라서 무당과 상궁을 보내서 천지신명께 굿을 올린 덕택이라 
생각했다. 삼칠일이 지나서 난정이 문후를 들어가니 왕후는 난정의 손을 
반갑게 잡았다. 
"모두 다 네가 애를 많이 쓴 때문이다. 앞으로 네 신세를 어떻게 갚아야 
좋으냐."
"곤전마마, 황송한 분부도 내리시네. 신세라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섭섭하게 하십니까?"
난정은 이내 왕후 앞에 비단천의로 싸 누인 왕자 아기씨를 들여다보았다. 
"참 잘도 생기셨네. 눈은 봉의 눈이구, 코는 우뚝이 콧대가 서있고, 참으로 
잘 생기셨네. 삼천리 강산을 주름 잡으실 용안이 분명하십니다."
왕후는 삼천리 강산을 주름 잡을 용의 얼굴이란 말에 마음이 흡족했다. 
그러나 왕후는 겉으로는 얼굴빛을 고치고 손을 저어 난정에게 주의를 
준다. 
"세자마마가 계신데 그것이 무슨 소리냐. 그저 수명장수만 하기 소원이다."
왕비는 나직하게 말을 하면서도 귀여움을 견디지 못하여 왕자 아기의 
얼굴을 자기도 들여다보다. 
"세자마마는 세자마마고, 우리 아기씨는 우리 아기씨지요. 삼천리 강산은 
세자만 차지하란 법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아기씨도 넉넉히 차지하실 
겁니다. 곤전마마, 너무 겸사를 마십시오."
난정은 대담하게 지껄여댄다. 난정의 말을 듣는 왕후는 진정으로 기뻤다. 
그러나 난정은을 조용히 타이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함부로 그런 소리를 마구 말하지 말래도 그러는구나. 외로될지, 바로 될지 
아느냐?"
"염려 마십시오, 난정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한 우리 아기씨로 꼭 
대왕전하가 되시도록 만들어 놓겠습니다."
이번엔 난정의 목소리도 가늘어졌다.
윤왕후는 덥석 난정의 손을 잡는다.
"그래도 그런 말을 함부로 입밖에 내는구나."
"호, 호, 호. 오늘뿐이옵니다. 인제 이미 대비전하도 아니 계시니, 삼천리 
강산은 마마와 소녀의 횡행천하하는 넓고 넓은 길이옵니다."
이때 중종의 어머님 정현왕후 윤씨는 이미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왕후 
윤씨는 또다시 얼굴에 새침하게 미소를 머금는다. 
"이제, 삼천리 강산에 무서운 사람은 김안로와 윤임뿐입니다. 그러나 
그까짓 것들을 치워 버리기는 여반장입니다."
난정이 김안로와 윤임을 제거하기는 손바닥을 뒤집기도다도 쉽다는 말에, 
왕후는 살몃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너는 그렇게 쉬운 듯이 말하지만 일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윤임은 
세자의 외삼촌이구, 김안로는 효혜공주의 시아버지다. 네 말대로 손바닥을 
뒤집듯,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마마께서는 겁도 많으셔, 호, 호, 호. 손바닥을 뒤집듯 쉬운 비방을 가르쳐 
드리오리까?"
난정은 자지러지게 깔깔 웃어댄다.
"어서 비방을 이야기해 보아라."
왕후도 싱긋 웃는다. 
"그대로 비방을 알으켜 드릴 수는 없습니다. 호, 호, 호."
"그러게 네 신세를 후히 갚겠다고 말하지 아니했느냐?"
왕후의 얼굴에도 상글상글 웃음이 쉬지 않고 떠올랐다. 난정의 요염한 
눈에 꽃불이 터지는 듯 반짝하고 광채가 일어난다. 
"비방을 알으켜 드릴 테니 꼭 실행을 하셔야 합니다. 김안로를 
몰아내시려면, 아무 말씀도 마시고 상감 앞에서 자꾸 울기만 하십쇼. 베개 
위에서도 우시구, 일어나 앉아서도 우시구, 까닭을 물으시거든 자꾸자꾸 
그저 울기만 하시다가, 못 이기시기는 체 하시고, 이 어린 것을 해치려 
하니 어찌합니까 하고 간단하게 한 번만 대답하십시오. 그리구 자꾸 
울기만 하십시오."
난정은 하얀 손끝으로 새로난 왕자를 가리키면서 속삭였다. 목소리는 
가늘었다. 싸늘한 기운이 침전 안에 가득했다.
"윤임을 몰아내는 데는?"
왕후의 아름다운 얼굴에는 싸늘한 살기가 어리었다. 
"그것은 더 쉬운 노릇입니다. 김안로가 심정의 꼴이 되어 영영 물러난 
뒤엔, 옥매향을 뺏긴 임백령을 앞을 세워 조정에서 몰아대면 꼼짝없이 
오이꼭지 떨어지듯 물러날 것입니다."
"윤임한테 옥매향을 뺏긴 임백령은 지금 무슨 벼슬을 하고 있느냐?"
"정삼품(正三品) 당상관(當相官)이 되어서 승정원 승지(承旨) 벼슬을 하고 
있습니다."
"요새도 너희 집에 자주 드나드느냐?"
"사랑에 와서 항상 논다 합니다."
"앞으로 긴히 쓸데가 있느니, 오라버니보고 꼭 붙들어 두라고 일러라."
"마마, 염려 맙시오. 소녀가 날마다 귀에 젖도록 일러둡니다."
"너는 나의 장량이 아니면 제갈량이다. 네 신세를 어떻게 갚아야 하느냐?"
"또 그런 말씀을 하시옵니다."
"그래두."
"곤전마마, 정 그러시다면 소녀의 청을 하나 들어 주시겠습니까?"
"무슨 청이나?"
  침전 안의 공기는 다시 부드러워진다.
"소녀는 철천의 한이 있습니다."
"철천의 한이라니?"
왕후는 깜짝 놀란다. 난정의 얼굴은 슬픈 듯 고개가 수그러진다.
"이 한만 풀어주시면 소녀는 죽어도 한이 없사옵니다."
"사위스럽다. 죽기는 왜 죽어."
난정은 얼굴에 비참한 빛을 띠워 말을 계속한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람 노릇을 못 하는 게 제일 불행한 
일이온데, 소녀는 사람이라는 인두겁을 쓰고 이 세상에 태어났건만 사람 
노릇을 못 하고 있으니 이것이 철천의 한이 되옵니다."
난정의 붉은 입술에선 한숨까지 새어 나온다.
"사람 노릇을 못 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언제 네가 사람 노릇을 못 
했느냐?"
"제가 무슨 사람 노릇을 했습니까."
"천만에, 그게 무슨 소리냐. 도섭스럽다. 네가 어째 사람 노릇을 못 했단 
말이냐?"
"마마께서는 소녀의 지친이라 하시나 아직도 소녀의 속을 모르십니다. 
소녀는 무슨 까닭으로 팔자가 기박해 남의 첩실의 몸에 태어나서 또다시 
첩이 되어 가지고 첩년이라는 칭호를 듣고, 사람들한테 한평생 손가락질을 
받고 지내게 됩니까. 제가 남처럼 코가 없습니까. 눈이 없습니까? 무슨 
까닭으로 반병신이 되어서 절름발이 첩년이 되고 앞으로 제 속에서 난 
자식들이 대대 손손 절름발이가 되어서 과거도 못 보고 벼슬도 못 하고, 
사람 구실을 못 할 생각을 하니 참으로 철천의 한이 되옵니다."
  난정의 기름한 속눈썹 끝에는 안개가 엉키는 듯하더니 이제는 맑은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져 남치맛자락을 적신다.
"왜 집안에서 너를 정실 부인으로 오라버니가 입적을 시켰다는데 
그러느냐?"
왕후는 난정이 정실부인 김씨를 내쫓은 뒤에 독살해서 죽인 것까지는 
몰랐지만, 오라비 윤형원이 들어와서 정실부인은 병으로 죽고 첩실 난정이 
똑똑하고 영악한 데다가 마음씨가 어질고 착해서 본실부인으로 승격을 
시켰다는 말을 들었던 까닭에 이렇게 대답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에이그, 마마께서도 구중 궁궐에 깊이 계시와 세상 물정을 모르십니다. 
안방 속에서는 아무리 정실이라고 말을 합니다마는 이불 속에서 활개를 
치는 격입니다. 세상에서 인정을 해주어야만 하지 않습니까? 바깥 
사람들은 말할 것 없고 집안에서도 겉으로는 마마, 마마 하지만 
일가붙이서부터 종년들까지 돌아서기만 하면 피 하고 입을 삐죽거려 
코웃음을 친답니다. 이렇게 곤전마마께서 특별히 상감마마께 아뢰시어 
나라에서 소녀를 정실로 인정한다는 첩지를 내려 주셔야하겠습니다. 
그래야 소녀는 비로소 인두겁을 쓴 사람 노릇을 하겠습니다"
"그렇단 말이냐. 나는 전혀 몰랐구나. 집안에서 네가 정실부인으로 의젓이 
들어앉아서 봉제사 접빈객을 하면서 행세를 잘한다기에 나는 친정 일이 
참으로 잘 되었다고 마음을 탁 놓았더니, 아직껏 집안 사람들과 세상 
사람들이 너를 인정하지 않는단 말이냐. 내일이라도 급히 상감께 아뢰어 
정식으로 조정에서 너를 부인으로 봉한다는 교지를 내리도록 해야겠구나."
왕후의 대답에 난정의 요염한 얼굴엔 환희의 물결이 잔잔히 흘렀다.
"마마, 그저 그렇게 해주신다면 소녀는 죽어도 결초보은을 하겠습니다."
"아까부터 나는 네 신세를 갚는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염려마라."
"그러하옵니다마는......."
난정이 환희에 벅차던 얼굴빛은 금방 새침해지면서 얼굴에는 우울한 빛이 
감돌았다.
"왜 그러느냐? 금방 네 얼굴빛이 좋지 못하다."
총명 영리한 왕후였다. 난정의 우울한 얼굴빛을 얼른 살폈다.
"곤전마마께서는 아무리 소녀를 귀여워하시어 돌봐주려 하시나 이 
미미하고 작은 소녀의 일이지만 이 나라의 국정으로서는 용이하게 되어질 
것 같지 않사옵니다."
"국정이 용이치 않다?"
"그렇습니다."
"너 하나쯤 부인을 봉하는 데 누가 감히 시시비비할 사람이 있느냐?"
왕후는 의아해했다.
"소녀에게 부인 첩지를 내리신다면, 집안 대감이 가자가 높아서 
숭록대부가 되어 남편의 가자를 따라서 정경부인의 첩지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난정의 욕심은 하늘같았다.
"그렇지, 오라비가 대감 지위에 있으니까 너한테는 정경부인을 봉해야지. 
영감의 지위에 있는 정부인이나 숙부인의 직첩이 온당치 않고, 나라 
자위에 있는 숙인의 가자가 당치 않지. 당당한 정경부인의 첩지를 
내려야지."
난정은 새침한 얼굴을 들어 보시시 웃으며 왕후를 바라다본다.
"첩년에게 어떻게 정경부인의 칭호를 주느냐고 조정에서 들고일어날 
것입니다. 이것은 삼강오륜을 신주처럼 껴들고 육모망치 휘두르듯 하는 
시골 퀴퀴한 선비들이 먼저 들고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김안로와 윤임은 
뒤에 앉아서 살며시 웃으면서 시치미떼는 선비들을 부채질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조정이 일어나서 시끄럽게 군다면 아무리 미미한 소녀의 
일이라 하오나, 용이하게 철천의 한이 풀어질 것 같지 아니합니다."
왕후 윤씨는 옥동 같은 왕자를 난 뒤에 적이 뱃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임금으로 앉아서 그만 일을 맘대로 못 하셔야 어떻게 임금 노릇을 해 
먹느냐."
짐짓 상감의 우유부단한 것을 나무라는 어조다.
"그러게 말씀이지요. 사실상 상감마마께서는 여태껏 임금 노릇을 맘대로 
못 해 보셨습니다. 어태껏 공신이 임금 노릇을 하지 아니하였으면 
조광조가 임금 노릇을 하고, 조광조가 죽은 뒤엔 남곤, 심정이 임금보다도 
권력이 더 세었고, 요새는 김안로와 윤임의 천하이옵니다."
난정은 얼굴을 찡그리며 왕비의 마음을 너지시 부채질해 준다.
"윤임, 김안로를 첩이 없다더냐 세씩 네씩 첩을 둔 것들이 공연히 입에 
발린 말로 떠들어대는 것이지. 만일 윤임과 김안로가 네 일을 무어라고 
반대한다면 임백령을 시켜서 윤임이 옥매향을 뺏아간 것을 조정에 
폭로시키라구 이르려무나."
왕후의 태도는 차갑고 결기를 보인다. 난정은 마음속으로 기뻤다.
"대전통편에 남의 첩을 뺏아간 것이 어디 죄가 되어야 말입죠. 저희끼리 
좋아져서 본사내를 버리고 달아났다고 하거든요. 호호호."
난정은 한 번 더 왕비의 마음을 부채질해서 선동을 시키는 것이었다.
"법이란 태고 천황씨 때부터 하늘에서 떨어져서 만들어진 것이란 말이냐? 
사람이 만들어져서 법이 된 것 아니냐. 법은 만들면 되는 것이다. 남의 
정실을 뺏아간 것은 죄가 되구. 남의 첩실을 권력으로 윽박질러 뺏아간 
것은 그래 죄가 아니되더란 말이냐? 민약 윤임이나 김안로가 입을 
벌리나면 윤임이 임백령의 첩 옥매향을 뺏아간 것을 들어서 공박을 
하자꾸나. 아가리가 열둘이라도 대답을 못할 게다."
왕후의 말에 난정은 벌떡 일어나 날아갈 듯 왕후에게 절을 올린다.
"그저. 인간으로서의 철천의 한을 풀어 주시옵소서. 산과 바다 같사온 
마마의 은택을 백골이 부서져 티끌이 되기까지 갚으오리다."
난정은 또다시 어린 왕자의 고사리 같은 손을 잡아 흔들었다.
"그저, 수명장수만이 발원이옵니다. 삼천리 강산을 다스리시는 제왕이 
되옵소서. 억조창생이 모두 다 성주를 모셨다구 할 것입니다."
아들을 칭찬해서 싫은 사람은 없다. 왕비의 마음은 또 한 번 기뻣다.
"날마다 들어와서 왕자를 보호하는 책임을 맡으라."
왕후는 우악한 분부를 난정에게 내린다. 난정은 왕자가 잘 될 수록 자기도 
잘될 것을 잘 알았다.
"황공무지하오이다. 후마마의 분부를 어찌 감히 소홀히 하오리이까."
난정은 감격하면서 대궐에서 물러나갔다.
  이날 밤 왕전하는 왕후의 몸에서 늦게 얻은 귀여운 왕자를 보러 
곤전으로 들었다. 한동안 아기씨를 어루만진 뒤에 전하는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왕후가 전하께 아뢴다.
"늦게 대군을 낳은 것은 난정이의 공이 크옵니다. 명산대찰에 기도를 
올리고 전하의 만수무강하시기를 축원해 올리면서 저의 몸에서 왕자를 
낳으리고 발원을 했답니다."
전하는 기뻣다.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인다.
"난정에게 후하신 상을 내려 주옵소서."
"어처의 마음대로 내수사에 명을 내려 많은 상금을 내리도록 하구려."
"이왕 상을 내리신다면 저의 마음에 드는 상을 내리도록 하옵소서."
"제 마음에 드는 상이 무엇인가, 좋을 대로 해 주구려."
"난정은 정실 부인이 되기 소원이랍니다."
"정실 부인으로 벌써 승격이 되었다면서?"
전하는 왕후를 통하여 왕후의 오라비 윤원형이 난정을 정실로 삼았다는 
말은 들었던 것이다.
"집에서는 정실로 대접하오나 밖에서는 아직도 정실로 알아주지 않는 
답니다. 자식대의 일도 있고 하니 난정에게 정경부인의 첩지를 내려 
주시옵소서."
"집안에서 정실로 알아주면 그만이지. 밖에서 아랑곳할 까닭이 무어 
있는가. 소원이 정 그렇다면 정경부인의 첩지를 내려주도록 하지."
전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꼭 내려 주시기 바라옵니다."
왕후는 신신당부를 올렸다.
  이튿날 전하는 승지를 어전에 불렀다.
"윤원형의 소실 난정은 그의 집에서 이미 정실로 올려서 부인을 삼았다는 
것이다. 원형은 왕후의 지친이라 아내가 있으나 아내의 직책을 다할 수 
없다는 것은 딱한 노릇이다. 난정에게 원형의 벼슬 계제를 따라 
정경부인의 직첩을 내리게 하라."
승지는 어전에서 장지를 펴놓고 붓을 들었다.
"윤원형의 부실, 정난정에게 정경부인의 칭호를 내린다."
승지는 쓰기를 다한 뒤에 어전에서 어보를 눌러 대전별감을 시켜서 
윤원형의 집으로 내보내게 했다.
  그러나 난정이 미리 추측한 대로 일은 간단하게 처리되지 않았다. 
빈청에 있던 김안로와 윤임은 승지에게서 이 소식을 듣자 펄쩍 뛰었다. 
"첩실한테 정경부인의 칭호를 내리다니 가당한 소린가. 왕후마마의 
장난이지.'
김안로가 뱉듯 말을 꺼낸다.
"아무리 왕실의 지친이라 하나 첩으로 정실을 삼는다면 앞으로 신하와 
백성들이 모두 다 이일을 본받을 것이구, 삼강오륜의 도는 깨어져 버릴 
것입니다. 대감, 빨리 들어가 전하께 말씀을 드려 간하시오.
윤임도 펄펄 뛰면서 김안로를 재촉해 어전으로 들여보낸다.
  김안도는 귀양이 풀려서 다시 돌아온 뒤에 남곤, 심정의 세도를 꺾어 
버렸고 전하의 애인 박빈을 몰아 죽이고 전하의 아들 복성군까지 죽음을 
내리게 했으니 하늘 아래서는 김안로의 세력을 당해 낼 사람이 다시 
없었다. 안로가 눈을 한 번 부릅뜨면 위엄은 벽력화 불덩이요, 안로의 
고개가 한 번 가로 흔들려지면 태산준령도 주춤하고 물러서지 않고는 
못배겨나가게끔 되었다. 김안로가 빈청에서 사모품대로 뚜벅뚜벅 지밀을 
향하여 장중한 걸음을 옮기니 합문마다 내시와 별감이며 수문장들은 
고개를 숙여 곁눈질을 하면서 감히 똑바로 바라보지를 못한다. 지밀 안 맨 
마지막 합문에 당도하지 김안로는 주저없이 큰소리로 내시와 별감들에게 
묻는다.
"전하께서는 어디 계시냐?"
"곤전에 계시옵니다."
곤전은 왕후마마의 처소였다.
"대낮에 곤전에는 왜 계시냐. 내가 뵈옵겠다 한다구 편전으로 납시사고 
아뢰어라."
완전히 방약무인한 태도였다. 내시와 별감들은 무엄하다고 생각했으나 
까딱 잘못하다가는 목이 달아날 판이었다. 경빈 박씨를 죽이게 하고, 왕자 
복성군까지 까닭 없이 사약을 내리게 한 김안로였다. 그까짓 내시와 
별감쯤 처리하기에는 하리 새끼 하나 죽이는 것만도 못하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네, 그대로 아뢰겠습니다."
내시는 종종걸음을 걸어 곤전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전하는 복도를 통하여 뒷문으로 편전에 나오고 김안로는 
지체없이 내시의 인도로 편전에 들어섰다. 세도를 얻기 전의 김안로는 
사람을 대하기만 하면 보는 사람의 얼굴이 간질간질할 정도로 계집의 
태깔을 지어 간특하게 웃었다. 그러나 김안로가 불덩이 같은 세도를 잡은 
뒤에는 어디서 그렇게 거드름이 나오고 장중한 태도가 나오는지 모를 
일이었다. 간특한 소인의 상투수단이었다. 김안로는 어전에 들어가자 잠깐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고 장중하게 입을 열었다.
"듣자 하오니 윤형원의 소실 정난정에게 정경부인의 첩지를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
"그런 일이 있었소."
전하는 얼굴빛을 엄숙하게 하여 대답한다. 언제나 김안로를 대할 때 마다 
지었던 화기 가득한 얼굴이 아니었다. 전하는 요사이 와서 김안로를 차차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사랑하던 경빈 박씨와 아들 복성군의 
일에서 강압적으로 김안로의 권력에 눌리기는 했으나, 마음속으로는 항상 
그에 대해 못마땅함을 느끼고 있었다. 
  김안로가 뵙기를 청한다는 내시의 말을 듣자,
"웬 또 잔소리를 하려구 그러누."
혼잣말을 하면서 마지못하여 자리에서 일어날 때였다. 왕후는 전하의 
소맷자락을 넌짓 잡았다.
"전하, 이제는 전하께서는 제발 전하의 주권을 전하께서 쓰시옵소서. 
전하께서는 즉위하신 지 삼십여 년에 한 번도 임금답게 임금의 주권을 
잡아 보신 적이 없었습니다. 폐비 신씨는 소첩이 여태껏 뵈온 적은 
없사오나 공신들의 폭력으로 조강의 아내이신 죄 없는 왕후를 
내리셨습니다. 그리고 또 듣자오니 조광조는 착한 선비요 충직한 사람이라 
하옵니다. 그러나 남곤, 심정한테 억눌려서 역적으로 몰아 죽이셨습니다. 
경빈 박씨와 복성군은 막중한 나라의 귀비요 전하의 혈육이십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윤임의 아버지 윤부원군과 김안로의 방자한 음모로 의심스러운 
옥사를 일으켜서 천고에 씻지 못할 강상의 변을 일으키셨습니다. 이제까지 
김안로는 효혜공주의 시아버지라는 세력과, 공주는 세자의 친동기간이라는 
큰 힘을 동시에 업고 전하를 우습게 여겨 왔습니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전하께서는 전하의 지위를 보전하시기 어려울 것이고 다음 차례는 
소첩에게로 불똥이 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하! 부디 통촉하시옵소서. 
오늘 김안로가 독대를 드려서 뵈옵겠다고 청하는 일은, 필시 아까 
난정에게 정경부인의 첩지를 내리신 데 대하여 불만이 있어 말씀을 드리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전하께서 난정에게 내리시는 이 분부는 나라의 
지친에게 내리는 왕실의 사사로운 일이온데, 김안로가 감히 여기까지 
간섭하려는 것은 전하를 너무나 무시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하께서는 
마음을 굳게 가지시옵소서. 삼천리 강산은 전하의 땅이지 김안로의 강산이 
아닙니다. 이제는 대비마마께서도 아니계십니다. 박빈을 억울하게 의옥으로 
죽이고 전하의 혈육인 복성군을 억울하게 죽이듯 하시어서는 아니 
되십니다. 꿋꿋하게 제왕의 권위를 잡으시옵소서."
차갑게 십여 년 동안 침묵을 지켜 내려오던 왕비는 이제야 푸른 비수칼을 
소리없이 잡아뺐다. 경빈 박씨와 복성군을 두둔하는 체하면서 샛별 같은 
눈을 반짝여서, 처염하도록 차가운 얼굴로 전하에게 임금의 주권을 
잡으라고 권한다. 임금은 황연히 자기의 무능을 깨닫는 듯, 잠자코 왕후의 
간하는 말을 듣다가 이내 어수로 왕후의 손을 잡는다. 
"옳은 말이요. 나는 너무 공시한테 눌려지냈소. 우리 형님 연산이 쫓겨난 
것을 본 나는 신하들한테 억눌려서 너무나 무능했었소. 어마마마의 말씀을 
거역하기 어려워서 자식 하나를 죽이고 말았소. 이제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믿을 사람은 왕후 단 한 사람뿐이오. 이제부터 나를 밀어주오. 
조정에는 한 사람의 신하도 믿을 만한 사람이 없소."
전하는 나직이 목소리를 떨어뜨려 뉘우치듯, 호소하는 듯 말을 보낸다. 
그믐달 같은 왕후의 얼굴엔 처염한 빛이 떠올랐다. 왕후는 전하의 손에 
잡힌 하얀 손을 살며시 뽑아 내서 비단 처네 안에 싸여 무심하게 주먹을 
빨고 누운 어린 왕자를 가리켰다. 
"전하, 이 자식이 또다시 복성군의 꼴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전하의 등골에 싸늘한 소름이 쭉 끼쳤다. 전하의 눈에는 사랑하던 애인 
경빈 박씨가 약사발을 받고 칠흑 같은 머리를 흐트러뜨러 쓰러지는 꼴이 
보인다. 어린 복성군이 약을 마시고 최후의 숨결을 지어 원통하게 눈을 
감지 못하고 부왕인 자기를 흘겨보면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는 기막힌 
모습이 보인다. 왕후의 한마디 말은 새파란 비수로 왕의 가슴을 도려내는 
듯했다. 전하는 마의 환상을 물리쳤다.
"원, 천만에 별소리를! 대군을 어떻게 복성군에게 비한단 말인가. 어처는 
정궁이 아닌가. 정궁의 소생인 대군을 감히........"
"전하....... 폐비 신씨도 정궁이었습니다. 콩꺼풀이 씌인 역적의 눈에는 
정궁, 후궁의 구별이 있어 보입니까? 자기의 세력을 위해서는 임금도 눈 
속에 아니 비칠 겝니다.'
왕비의 싸늘한 비수는 두 번째 전하의 가슴을 도려낸다.
"나도 인제는 정신을 차리오리다."
전하의 어깨가 축 처지는 듯 했다.
"아셨습니까? 정신을 똑똑히 차리옵소서. 만약 이번에 난정이 정경부인 못 
되는 날은 전하의 위신은 일패도지로 땅에 떨어지시는 것입니다. 강하게 
사시옵소서!"
파르족족 새벽달이 빛을 뿜는 듯한 왕후의 얼굴에 반짝하고 눈이 빛난다. 
전하의 용안이 헤엄질 치듯 달렸다. 임금의 눈과 마주친다.
"일마다 중전과 의논을 하리다. 그리고 나도 죽을 때까지 강하게 살아 
보리다.!"
"오늘 김안로한테 지셔서는 아니 됩니다."
"명심하리라."
"오늘 김안로의 말씀을 아니 들으시면 내일은 대간들이 움직일 것입니다. 
아무리 대사헌, 대사간, 대제학이 떠들어대도 끄덕을 마셔야 합니다. 
오늘의 대간들은 모두 다 김안로와 윤임의 콧김을 두려워하는 바지저고리 
대간들이옵니다."
"염려 말라구."
왕후의 젊은 얼굴에 비로소 요염스런 웃음이 상긋 터졌다.
"팔도의 유생들이 상소를 올려서 떠들어대도 끄떡을 마셔야합니다."
임금은 고개를 끄덕이며 외전으로 나갔던 것이다.
  내전에서 이렇듯 임금으로서의 권력을 김안로한테 뺏기지 말라는 왕후의 
지독한 충고를 듣고 나온 전하였다. 전하는 김안로를 대하고 보니 얼굴만 
보아도 벌써 보기가 싫고 불쾌했다. 이때 김안로는 임금의 눈치를 모르고 
윤형원의 첩 난정에게 정경부인의 첩지를 주었느냐고 들이대었고, 임금은 
그런 일이 있었노라고 전에 없던 무뚝뚝한 대답을 내린 것이다.
"전하, 아니 됩니다. 정난정은 정윤겸의 첩의 딸로서 윤형원의 소실이 된 
여자올시다. 대대로 내려오는 소실에게 정경부인의 칭호가 당키나 하온 
일입니까? 난정의 정경부인 첩질를 거두옵소서."
김안로는 불쾌한 목소리로 외친다.
"난정은 윤원형의 정실이 된 지 벌써 오래라 하오. 윤씨의 집에서 정실로 
올려서 제사를 받든 지 오랜 사람이니, 그 남편의 직위에 따라 정경부인의 
칭호를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오. 여기 대해 조정에선 추호도 
간섭할 까닭이 없소."
"조정에서 어째 간섭할 일이 아닙니까? 왕명으로 전교를 내리시니 간섭을 
하는 것이옵니다."
김안로도 임금한테지지 않고 용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우겨댄다. 
"대신들은 할 일이 없는가! 나라 일이나 의논해서 바른 정사를 하도록 
하라. 윤형원의 아내 난정은 왕후의 지친이다. 지친에 대하여 내가 하는 
일이니 여기까지 간섭을 하지 말라."
전하는 아까 왕후의 '지셔서는 아니 됩니다' 하던 말이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게 들렸다.
"전하! 이것도 나라 일입니다. 풍기에 관여되는 강상의 큰 일이옵니다. 
정경부인은 나라에서 내리시는 칭호이지 집안에서 함부로 말들어서 부르는 
것이 아니옵니다."
"두말 할 것 없다. 이것은 궁중의 일이니, 그대들이 참견할 일이 아니다."
전하의 얼굴빛은 푸르렀다. 전에 없이 확고한 태도를 보였다. 김안로는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 전에 없이 강경한 전하의 태도로 보아 이것은 
왕후나 윤형원의 콧김이 단단히 들어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태까지 
대수롭게 보지 않았던 또 하나의 강적이 세상에 생겼구나 하고 마음을 
도스려 먹는다.
"전하, 아니 되십니다. 소신도 사사로이는 나라의 국적과 인연이 있는 
몸이옵니다. 난정한테 정경부인의 첩지를 내리시는 일은 공으로 보아도 
온당치 못하옵고, 사사로 보아도 합당치 못하옵니다. 빨리 전교를 거두어 
주시옵소서."
이번에는 김안로가 일부러 말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아뢴다. 임금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벽달 같은 왕비의 처염한 얼굴이 눈앞에 떠오르는 
것이었다. 백만대군의 구원병보다도 든든한 얼굴이었다. 
'전하! 김안로한테 지셔서는 아니 되십니다."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강하게 사시옵소서.'
하는 소리가 쨍하게 들렸다.
왕은 대답 없이 내전으로 발길을 옮겼다.
  
    옥매향과 정난정
  용포 소매를 떨쳐 내전으로 듭시는 전하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김안로는 무안에 취하여 빈청으로 아니 나갈 수 없었다. 빈청에서는 
세자의 외숙 윤임이 김안로의 손을 잡는다.
"어찌 되었소, 대감?"
"의외로 전하의 태도는 강경하십니다."
"그렇다면 삼사를 움직여 봅시다."
윤임과 김안로는 삼사를 움직였다. 대사헌, 대사간, 대제학들이 연명으로 
상소를 올렸다. 윤원형의 첩 난정에게 정경부인의 첩지를 내린 것은 
불가하다는 여론을 일으킨 것이다. 전하는 불윤이라 써서 상소를 
각하시켰다. 김안로와 윤임은 슬몃 뒤로 물러앉아 버리고 다시 팔도 
유림의 이름을 빌어 상소를 올렸다. 임금은 또다시 상소 글에 불윤이라 
써서 비답을 내렸다. 
  모든 것이 난정의 추측대로 꼭 맞아떨어졌다. 삼사는 또다시 상소를 
올리고 유생들은 기강을 파괴시키는 일이라고 세 번 떠들어댔다.조정에서 
떠들어대는 이 일은 윤원형을 통해서 단박에 난정의 귀로 들어갔다.
"제놈들의 양반은 어제 적부터 된 양반이야? 건방진 자들."
난정은 그믐달 같은 처염한 얼굴에 싸늘한 성에가 끼어지면서 이를 빠드득 
갈았다. 난정은 공고를 파하고 돌아온 남편 윤원형에게 졸랐다.
"대감, 소녀가 이번 정경부인이 되고 아니 되는 것은 대감한테 달렸습니다. 
대감께서 제 청을 들어 주셔야 합니다."
"무슨 청인가. 김안로와 윤임을 탄핵하란 말인가?"
"아니올시다. 임백령한테 말씀하시어. 옥매향에게 보내는 편지 한 장만 
얻어 주옵시오." 
"무슨 청인가. 김안로와 윤임을 탄핵하란 말인가?"
"아니올시다. 임백령에게 말씀하시어, 옥매향에게 보내는 편지 한 장만 
얻어 주옵시오."
"무슨 편지를?"
"이번 정경부인 문제를 가지고 또다시 떠들어댄다면 옥매향을 뺏아간 
윤임의 일을 조정에 공표해서 천하에 성토하겠다는 의취로 편지 한 장만 
받아 주옵소서."
"허, 허, 허, 그거 묘한 계책일세. 어렵지 않은 일이니 이따가라도 임백령이 
오거든 곧 받아 줌세."
윤원형은 선선히 허락했다. 임백령은 옥매향을 뺏긴 원한을 갚기 위하여 
날마다 윤원형을 찾았던 것이다.
  임백령은 원형의 말을 듣자 단번에 붓을 들었다. 안에서 난정은 
임백령이 사랑에 왔다는 소식을 듣자 산해진미의 주안상을 떡 벌어지게 
차려 내보냈다. 술을 마시고 난 임백령의 편지는 미끈하도록 문장이 
출렁거렸다. 옥매향이 아니라도 감동이 되게 되었다.
"일자, 불의의 이별을 한 뒤에 그대의 화용 월태는 아직도 내 눈앞에 
어리고 비쳐 스러지지 않는다. 언제든 하늘가에 사무치는 이 한을 씻어 
다시 한번 그대와 만나려니와, 이번 윤원형의 부인을 위해서 정경부인으로 
봉하신 데 대하여 윤임이 만약 김안로와 함께 앞을 섰다면 나는 의분을 
참지 못하여 윤임이 나의 사랑하는 사람 그대를 뺏아간 죄악을 천하에 
성토하여, 다시는 윤임이 세상에 낯을 들고 행세를 못하도록 할 것이다. 이 
편지를 똑똑히 윤임에게 읽어 주어 쓸데없는 소인의 짓을 하지 않도록 
하게 하라."
임백령은 쓰기를 마친 뒤에 껄껄 웃고 붓을 던졌다. 편지는 윤원형한테로 
넘어갔다. 임백령도 훗벌 인물이 아니었다. 난정의 수단과 솜씨를 잘 아는 
때문이다. 
  난정은 윤원형을 통해 임백령이 옥매향에게 보내는 편지사연을 읽자 
고운 웃음이 새침하게 떠돌았다.
"임백령은 참으로 천하 문장가입니다."
윤원형을 바라보며 좋아했다. 난정은 임백령의 편지를 붉은 자개 경대 
서랍에 고이 간직한 뒤에 교전비를 불러서 옥매향에게 전갈을 보냈다.
"너 윤임 윤판서댁 작은댁에 가서, 안어사 아씨에게 전갈을 여쭈어라. 내가 
그런다구 날씨도 화창하고 후원에 꽃도 한창이니 우리 집으로 소풍 겸 
놀러 오시라구 여쭈어라.'
난정의 교전비는 나는 듯이 옥매향을 찾아 난정의 전갈을 올렸다.
  난정과 옥매향은 사이기 좋았다. 윤임과 윤원형은 은은히 세력 다툼으로 
차차 원수가 되어가지만 작은집이란 천첩의 자호를 가진 난정과 똑같은 
택호를 가진 옥매향은 머리 털끝만한 원한이 있을 까닭이 없었다. 더구나 
난정은 옥매향이 윤임한테로 들어간 되에 일부러 윤임의 동정을 살피기 
위하여 아우님하고 선물을 보내서 옥매향의 환심을 샀던 것이다. 옥매향은 
옥매향대로 난정을 형님 형님하고 따랐다. 옥매향은 평양 명기로 첫손을 
꼽던 여자였다. 자기는 세자의 외숙인 윤임의 소실이 됐지만, 난정은 
왕후의 오리비인 윤원형의 소실이었다. 나이는 젊으나 산전수전을 다 겪어 
온 옥매향이었다. 윤원형의 소실인 난정을 친해 둔대도 해가 없으리라 
생각해서 자주자주 난정과 추축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난정은 옥매향에게 
임백령이 자기 집에 긴하게 출입하는 비밀은 아니 가르쳐 주었다. 
  옥매향은 난정의 전갈을 받자, 
"오늘 해 안으로 곧 가 뵙겠다고 여쭈어라."
화사를 해서 교전비를 돌려보낸 다음에 영리한 옥매향은 마음속으로 
정경부인 때문이로구나 생각하고, 대궐에서 막 들어둔 윤임을 청해 들었다. 
"대감, 나 청이 하나 있소, 들어 주시갔소?"
"무슨 청인가?"
윤임은 옥매향을 하루에 열 번을 대해도 손 안에 든 보옥모양 대견하고 
곱게만 보였다. 청이란 소리가 귀찮아 않고 도리어 입만 벙글벙글 
벌어진다.
"나들이를 좀 갔다 오갔습네다."
"나들이를? 어elf 갈 텐가?"
"윤원형, 윤판서의 소실 난정이 오라구 청하는데 좀 가봐야겠습네다."
윤임은 윤원형이라는 소리를 듣자 얼굴이 금방 찌푸려진다.
"으음! 윤원형이란 놈은 요새 점점 건방져 간단 말야. 배은망덕을 하는 
놈이거든. 오늘날 제가 뉘 힘으로 귀히 된 줄을 잊어버리고 함부로 날뛴단 
말야. 제 누이 왕후는 누가 만들어 놓은 왕후인데, 그래 참으로 고얀 
놈이지. 제 누이가 왕자쯤 하나 낳았다고 건방지게 제 첩년을 정경부인을 
만들겠다구? 참으로 기막힌 세상이거든. 그런 놈의 집을 갈 것이 무에야. 
그만두는 게 옳지."
윤임은 점잔을 빼며 수염을 내리 쓴다.
"대감!"
옥매향은 애원성을 지어 대감을 아련하게 불렀다. 공단결같은 검은 머리에 
자주빛 댕기를 보일 듯 물려서 비취빛 푸른 비녀를 꽂은 옥매향의 
아리따운 자태는 고운 목소리와 함께 점잔을 빼는 윤임의 오장을 솜처럼 
포근하게 만들었다. 윤원형을 꾸짓어 욕하면서 찌푸려졌던 윤임의 
얼굴빛은 옥매향의 애원성 한 마디에 금방 봄눈 녹듯 스러지고 수염 속의 
붉은 입술은 벙글벙글 벌어진다.
"왜 그래."
"대감은 참으로 고지식도 하시오. 윤원형이는 윤원형이구 난정이는 
난정인데, 난정이한테 놀러간다는 데 윤원형을 왜 처드시우. 나두 대감 
덕에 정경부인이나 한 번 도리 줄 알았더니 다 틀려먹었쇠다구래. 대감도 
공연히 거죽으로만 예법을 찾지 마시구, 윤원형이처럼 좀 작은집을 위해서, 
내냥탁을 하시구래. 임백령이를 버리구 대감을 좇은 것은 한평생 호강을 
하자구 했던 것인데, 이제는 싹이 노오랐쇠다. 그만두시라요."
매향은 푸른 강물 같은 눈을 굴려 윤임을 흘기며 살몃 모로 돌아앉는다. 
검은 살쩍이 푸르도록 짙게 되었다. 흘긴 눈은 요염하게 웃는 눈빛보다 
오히려 그 힘이 강했다. 
"나도 자네한테 정경부인을 시켜 줄 생각은 굴뚝같다만 늙은 정경부인이 
있는데 어찌하겠냐, 하루바삐 윤원형처럼 상처나 해야겠네그려."
윤임은 별안간 삶아 논 녹피가 되어 죽어 버린다.
"별의별 소리가 다 많수다래. 내가 왜 상처를 하라구 해서 남의 적악을 
하갔소. 대감계제에 좌우부인은 못 둔답디까. 상감께 여쭙기만 하면 단번에 
될 것을."
옥매향은 더 한 번 모로 살짝 돌아앉는다. 이번엔 모로 비친 옥매향의 
코가 오뚝이 빚어논 듯 정겨워 보인다.
"가고 싶거든, 소풍 겸 가보게나그려!"
윤임은 마침내 허락을 아니 내릴 수 없었다. 그러나 옥매향은 이제 와서는 
조금도 반가운 태깔을 보이지 아니했다.
"늙은 재상의 집 첩년으로 들어온 이년이 정신없는 망할년이다. 무슨 
호강을 하려구 공연히 감언이설에 홀려서, 한평생 젊은 신세만 망쳐 
버렸구나."
옥매향은 말을 마치자, 나들잇벌로 입었던 남치마를 활활 벗어 붙인다. 
눈빛간이 흰 백방사 단속곳이 펄럭 하면서 드러났다. 윤임의 코밑으로 
옥매향의 살냄새가 강하게 스쳐간다.
"공연히 노여워하지 말고 어서 갔다 오게나. 자네한테도 기회만 있으면 
정경부인을 만들어줌세."
윤임은 옥매향 앞에 무릎을 꿇어 옥매향의 치마 허리를 둘러 준다. 
옥매향은 비로소 살기가 약간 풀어졌다.
"공연히 남의 좋은 일에 훼방하지 마시라요. 윤원형이는 윤원형이구, 
난정이는 난정이디, 첩년들이 얼마나 불쌍한지, 그 기막힌 심정을 대감이 
이시갔소? 자식을 낳아두 사람 구실을 못시키는 우리들이 아니갔소? 
난정이 정경부인쯤 됐다구 나라 국사에 무슨 상관이 있다구 대감들이 
그렇게 떠들어대는 거요. 공연히 남의 적악을 작작하실 일이외다."
윤임은 주먹 맞은 감투가 되어 옥매향의 다시 차리는 몸단장을 넋을 잃고 
바라본다. 
  유소보장, 은실, 금실에 오색 수실을 늘인 찬란한 옥매향의 사인교는 
나는 듯이 사동 난정의 집 안마당으로 들어갔다.
"교동 작은마님이 오십니다."
하는 난정의 교전비의 목소리를 듣자, 난정은 장영창 미닫이를 슬몃 
밀치고 오이씨 같은 흰 버선끝으로 남치맛자락을 가볍게 박차면서 마루 
끝에 고운 얼굴을 나타냈다.
"아우님이 참말루 오시네. 이런 미안할 데가 아디 있담. 내가 가서 뵈야 할 
텐데, 누추한 우리 집으로 오시라구까지 해서."
말을 마친 난정은 사인교에서 내려 남스란치맛자락을 걷어잡고 두벌대 
보석돌로 오르는 옥매향의 분결같은 흰 손을 덥석 잡는다. 
"아이구, 형님도 망녕이외다. 누추라니 무슨 말씀을요. 옥경십이루 선경 
같은 댁을 가지고 별말씀을 다하시네. 저 같은 것을 생각하시어 부르시니 
영광이외다."
"이 사람아, 옥경십이루는 자네 집을 두고 하는 말이지. 내집이 어떻게 
동궁마마의 외삼촌이신 윤부원군 댁을 따르겠나, 호호호."
"아이구, 형님두 별말씀을 다하시네요. 왕후마마의 친정댁인 윤부원군 댁은 
누구만 못해서 그러시우. 공연스레 비아냥마시라요, 호호호."
자지러지게 웃어대는 아름다운 두 여인의 목소리는 사월 녹음 속의 꾀꼬리 
소리 모양 방자하고 화사했다. 난정은 그믐달 같은 요염한 맵시를 가진 
미인이라면, 옥매향은 초승들같이 간드러진 미인이었다.
  두 미인은 서로 얼싸안은 체 활짝 열린 북창문 앞 열두간 대청 위에 
아롱아롱 푸른 솔과 나는 백학을 수 놓은 화문등메를 눈같이 흰 
솜버선으로 가볍게 밟으면서 남선을 두른 옥과석 보료 위에 사뿐 앉는다. 
북창 뒤 화초담 앞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철쭉꽃이 천 떨기 만 떨기 
어우러져서 붉은 놀을 활짝 끼얹은 듯 홀연히 두 여인의 얼굴에 비쳤다.
"아이구, 꽃도 흐드러지게 잘도 피었네. 되는 댁은 이렇단 말야. 무심한 
꽃송이까지 구름 일 듯 피어오르거든. 참말 형님, 내가 인사가 너무 
늦었소. 정경부인이 되셨으니 얼마나 기쁘시갔소. 진심으로 치하합네다."
옥매향의 말을 듣는 난정의 그믐달 같은 얼굴빛이 새치름해진다.
"진정인가?"
이때 철쭉 꽃빛 모양 연연하게 붉은 오미자 화채가 유리 쟁반에 받쳐져 
실백을 뛰워 나왔다. 난정은 목이 타는 듯 화채물로 입술을 축인다.
"진정이라니, 형님 그게 무슨 말씀요. 과부의 설움은 동무과부가 안다구 
하지 않았소. 나도 형님같이 한번 부인 소리를 들어보기가 평생 
소원입네다. 그러니까 내레 진심으로 형님께 치하를 드리지 않으면 누가 
드리겠소?"
난정의 태도에 옥매향도 심정이 억울했다. 빨간 화채물로 목을 축인다.
"그저 나혼자 화가 나서 아우님한테 미안한 소리를 너무 해서 미안하이. 
왕은이 태산같이 높아서 정경부인 첩지를 내리시니 받기는 받았네마는 
시절이 하 수상해서 조정에서 하도 말들이 많으니 동각의 설중매라 필 둥 
말둥 한 격으로 내 정경부인도 될 둥 말 둥 하려그려. 그러니 이런 형편에 
치하가 다 무엔가."
난정은 슬그머니 한숨을 내쉰다. 정난정의 가벼운 한숨 소리를 듣자 
옥매향의 마음도 약간 서글폈다.
"그까짓 것들이 천번 만번 떠들어대면 무슨 소용이 있갔소. 상감께서 이미 
첩지까지 내리셨는데 두루 뺏아 가시갔소?"
"여보게, 내가 오늘 아우님을 오란 것은 자네한테 청이 있어서 오라구 한 
것일세."
난정은 옥매향의 손을 덥석 붙든다. 
"저 같은 것한테 무슨 청을?"
"자네 나의 정경부인을 반대하는 사람이 누군 줄을 아는가?"
"알구말구, 그것도 모르갔소. 아까 올 때도 집의 대감을 한번 몰아 주고 
왔쇠다. 대신이란 것들이 할 일이 없어서 나라 일은 아니하고, 그까짓 
정경부인 칭호 한 자리를 가지고 떠들어 댄다구 집의 대감을 막 몰아주고 
왔디요."
"자네도 그럼 내 일을 반대하는 꼭두머리가 김안로와 자네네 대감이신 
것을 잘 아네그려."
난정의 눈이 샛별같이 빛난다.
"형님도 나를 숙맥으로 아시는 구려. 그래, 그 눈치를 모르갔소?"
"아우님도 정경부인 되기가 소원이라지?"
난정의 새까만 눈이 반짝하면서 또 한 번 옥매향의 얼굴로 헤엄질친다. 
"사람의 인정으로 누가 싫단 사람이 있갔소. 하도 뚝 떨어진 기생 출신이 
되어 그렇지. 마음속으론 한번 되어 봤으면 하고 계염이 나디요. 형님 
중전마마께 어느 때구 여쭈어서 한번 사람 구실을 해보도록 해주시구래."
"내 기회를 보아서 아뢰어 줄 테니, 그럼 내 청을 한번 들어주겠나?"
난정의 목소리는 한층 가늘어진다. 옥매향의 눈에는 환희의 빛이 물결쳤다.
"왕후마마께 말씀을 아니 드려 주신들 형님의 일은 범연히 하갔소. 어서 
말씀을 해보시라요."
옥매향의 실같은 눈이 상그럽게 소리 없이 웃었다.
"좀 어려운 일이지만, 아우님의 결심 여하에 달렸네."
난정은 사뿐 일어나 주철한 자개 경재 앞으로 가서 서랍을 열고, 동심결로 
꾀어 접은 편지 쪽지를 꺼내 들었다.
"이 편지를 윤판서 대감께 전해 주게나."
옥매향은 대답없이 난정이 전하는 편지를 받는다. 난정은 다시 속삭인다. 
"사실. 이 편지 사람이 어떤 사람이 아우님한테 전하라는 편지야. 먼저 
아우님이 한번 읽어봐도 무방할 거야!"
난정은 얼굴빛 한 번 변치 않고 차근하게 말한다. 옥매향은 동심결로 
맺어진 편지 쪽지를 글러 읽는다. 글씨가 몹시 눈에 익은 듯 했다. 
옥매향은 무심코 먼저 서두를 읽어본다.
'일차 불의의 이별을 한 위에 그대의 화용 월태는 아직도 내 눈앞에 
어리고, 비쳐 스러지지 않는다.'
옥매향이 무심코 한 줄을 내리 읽다가 가슴이 출렁하고 뚝 떨어진다. 
얼굴이 화끈 달았다. 확실히 임백령의 필적이 분명했다. 옥매향은 
화끈거리는 얼굴을 참고 다음을 읽어 내려간다.
'언제든 하늘가에 사무치는 이 한을 씻어, 다시 한 번 그대와 
만나려니와........,'
옥매향은 여기까지 읽었을 때 눈물이 핑 돌았다. 코뿌리가 재릿재릿했다. 
확실히 사랑하던 사람 임백령의 편지였다. 
"아니 형님, 이 편지를 어디서?"
편지를 든 옥매향의 손길이 바들바들 떨리면서 가는 목소리로 속삭거린다. 
"다음을 읽어 보게나."
옥매향은 다시 편지에 눈을 떨어뜨렸다.
'이번 윤원형의 부인을 위해서 정경부인으로 봉사신 데 대하여 윤임이 
만약 김안로와 함께 앞을 섰다면 나는 의분을 참지 못하여 윤임이 나의 
사랑하는 사람, 그대를 뺏아간 죄악을 천하에 성토하여 다시는 윤임이 
세상에 낯을 들고 행세를 못하게 할 것이다. 이 편지를 똑똑히 윤임에게 
읽어 주어 쓸데없는 소인의 짓을 하지 않도록 하라.;
옥매향의 홧홧 달았던 얼굴빛이 조금 가라앉는다. 급한 숨길이 차차 
본궤도에 올랐다.
"형님, 임백령을 아시우?"
옥매향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하면서 난정에게 뭇는다. 
"아다뿐인가. 우리 집으로 날마다 놀러 오는데, 자네 한 번 만나고 
싶은가?"
난전은 새침히 웃으며 옥매향을 살몃 바라본다.
"에이그, 형님두."
옥매향의 귀뿌리가 발갛게 물들었다. 그러나 눈에는 눈웃음이 은실같이 
아리따웠다.
"에이그는 다 무어야? 만나 보고 싶으면 한 번 만나 보는 게지. 자네가 
정실 부인이 아닌 바에야 내외할 까닭이 무엇 있나. 내 조용한 방을 하나 
치워 줄께. 아우님 만나 보려나?"
난정이 가만히 속삭거린다. 옥매향은 가슴이 출렁하며 두근거린다.
"그래두."
옥매향은 대답을 한 후에 이내 고개를 푹 숙여 버렸다.'
"아주, 첫날밤을 당한 처녀 새색시 같으이그려."
난정은 짐짓 옥매향의 마음을 부채질해 준다.
"형님, 고만 놀려대라구요. 내 마음이 점점 미칠 것 같쇠다."
옥매향은 또 한 전 가느스름한 은실 눈을 떠서, 매력 있게 난정을 
흘겨본다.
"이 기회에 한 번 만나 보는 거야. 공연스레 나중에 후회해서 상사병이 
들지 말고, 약사몽혼으로 행유적이면 문전석로가 반성사라고 임백령의 
집을 찾아서 꿈에만 드나들지 말고, 오래간만에 실물을 한 번 대해 보란 
말일세. 장안 천지에 오입쟁이 간장을 녹여내던 평양 명기 옥매향이 
같지가 않으이그려."
"형님, 아닌게아니라 꿈에선 자주자주 만납네다. 정이란 더러운 것이야요. 
이제는 꽤 노성했갔디요?"
"이 사람아, 남자 심십여 세면 한참 허위대가 좋고 씩씩하지. 뒷모양만 
바라보아도 참으로 옥록선풍인데. 아까웁게 자네가 윤임이 때문에 좋은 
사람을 놓쳤느니."
"벼슬이 이제는 판서라죠?"
"당당한 예조판서지. 왕후마마께서 귀여워하시구 전하께서도 심임을 
하시니,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대신 노릇을 하기는 바로 코밑에 달린 
노릇일세. 그까짓 윤임쯤이야 문젯거리도 아니되네."
난정의 말을 듣는 옥매향의 마음은 차츰차츰 달랐다. 옛날 사랑하던 사람 
임백령을 만나고 싶은 생각이 열에 아홉은 되어갔다.
'윤임한테 한평생 정을 지킨대야 기생출신인 나한테 정실부인을 바쳐 줄 
테냐. 입에 붙은 말뿐이지.'
옥매향의 마음에는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내가 오늘 자네를 청한 것은 임백령의 편지도 전할 겸 꽃구경을 하자는 
것이니 우리 후원으로 거닐어 보세나."
  난정은 옥매향의 손을 이끌고 대청에서 내려가 후원으로 향했다. 난정의 
집 후원 경치는 안채에 피어있는 꽃들에 비할 것이 아니었다. 백일홍은 흰 
구름이 엉킨 듯하고 홍철쭉은 놀을 끼얹은 듯하고 황철쭉은 누런 구름이 
이는 듯했다. 길길이 우거진 백정향, 자정향은 강한 향기를 뿜어 마음을 
포방케 만들고 실실이 늘어진 연못학의 푸른 버들엔 산새 소리가 
아리따웠다. 
"어마나, 형님 댁은 참 별유천지구 인간의 세계가 아니로구려."
옥매향은 탄식하면서 천간들이 푸른 잔디밭을 밟아 산정모퉁이를 돌았을 
때였다. 산정 뒤에서는 바람결에 청아한 남자의 목소리로 시를 읊는 
소리가 들려왔다.
"석인기황학거하니, 차지에 공여황학루라, 황학이 일거불부반하니 
백운천재공유유를,"
청 좋은 목소리로 끊어질 듯 다시 이어가면서 구름 밖으로 흩어진다. 
난정과 옥매향은 손을 꼭 잡고 맑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산정 뒤를 넋을 
잃고 바라본다. 역시 소리는 또다시 일어난다.
"청천역력한양수요, 방초누누앵무주로다."
난정과 옥매향은 청아한 남자의 목소리와 아름다운 시에 도취되지 않을 수 
없었다. 남스란치마을 제각기 걷어잡고 살몃살몃 가벼운 걸음을 옮기어 
산정 뒤로 향했다.
"일모향관이 하처시냐, 연파강산이 사인수로다."
아름다운 목소리는 또다시 계속되면서 한 사람의 젊은 선비가 나타난다. 
난정과 옥매향은 살짝 눈을 들어 바라본다.
  옥빛 푸른 도포에 밝은 도홍 띠를 높직이 가슴에 들러서 창방울 술띠를 
멋있게 고를 매어 흔들거리면서 검은 유건을 머리에 반듯이 쓰고 시를 
읊으며 잔디밭으로 내려오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옥골선풍의 
임백령이었다.
"임백령이로구나!"
난정이 옥매향의 손을 꼭 쥐고 속삭거리자 내외를 하느라고 슬쩍 외면을 
해 돌아선다.
"아이구, 이를 어째."
옥매향은 깜짝 놀라 가만히 대답하면서 어찌할 줄을 몰라 한다.
"너는 만나 보려무나. 내외할 것이 무엇 있니? 가만히 서 있거라."
난정은 이렇게 속삭이면서 내외를 하느라고 외면을 한 채 몸을 돌려 
황망히 안채로 들어와 버리는 것이었다.
  옥매향은 가슴이 사뭇 방방이질을 치는 것 같았다. 이리 할 수도 없고 
저리 할 수도 없었다. 황확루 시를 읊으면서 산성을 끼고 돌던 임백령은 
두 미인을 발견하자 멈칫 걸음을 멈췄다. 백령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윤원형의 정난정과 옥매향이었다. 임백령은 슬몃 내외를 차리는 체 잠깐 
얼굴을 돌려 딴 곳을 바라본다. 윤원형의 작은 첩 난정에게 몸을 피하여 
가게 하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난정의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후원 일각문 
밖으로 스러졌을 때 임백령은 비로소 슬몃 고개를 들었다. 눈에는 
옥매향이 고개를 숙여 푸른 잔디밭을 바라보고 그림처럼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십년 만에 바라보는 사랑하는 사람 옥매향이었다. 얼굴은 모란꽃 모양 
피어오르고, 몸에는 기름이 알맞게 올라서 더한층 아리따워 보였다. 
임백령은 약간 현기를 느낀다. 이때 옥매향이 은실 같은 눈을 떠서 잠깐 
임백령을 도둑질하듯 바라본다. 한림학사 때 바라보던 얼굴이 아니었다. 
그의 얼굴은 희고 윤이 나면서 살이 올랐다. 오똑한 콧대는 더한층 
사내다워 보였다. 눈은 어글어글하면서 정열이 타오르는 듯 했다. 난정이 
말한 대로 몸이 귀하게 되어 판서의 지위까지 가고 보니 참으로 
옥골선풍이 되었다. 풍채와 탯거리는 이미 황혼길을 더듬는 듯 오그라져 
들어가는 윤임한테 겨눌 바가 아니었다. 옥매향은 눈이 부시어 바라볼 
수가 없었다. 이내 은실 같은 눈을 푹 내리 깔았다.
"옥매향이 아닌가.'
임백령의 입에서는 마침내 옛 애인을 부르던 다정한 음성이 떨어졌다. 
옥매향은 가만히 은실 눈을 떠서 그를 바라보면서 소리 없는 말로 
호소한다. 이때 옥매향의 호소는 천만 마디 호소를 늘어놓은 애원하는 
말소리보다도 오히려 애틋하고 서러웠다. 그야말로 차시무성이 승유성인데, 
양인심사를 양인지였다.
"잘 있었는가."
임백령은 옥매향의 눈으로 뿜는 소리 없는 호소를 받으며 이런 대답을 
아니 보낼 수 없었다. 계집은 가만히 고개만 까딱인다.
"잘 있는 줄은 나도 잘 알았네."
임백령은 또 한번 혼잣말을 한다. 계집은 은실 눈을 떠서 임백령을 또 한 
번 바라다보며 고개를 까딱까딱한다. 이번엔 은실 눈에서 진주 같은 눈물 
방울이 엉키었다.
"이 사람아, 그러니 그렇게 박정할 수가 있는가. 펴지 한 장으로 별안간 
연을 끊어 버린단 말인가."
"세력에 눌린 그때의 일을 지금 와서 뇌까려 변명해 드리고도 싶디 
않습네다."
계집의 실눈에서는 마침내 진주 방울이 봄빛에 반짝 반사되면서 은조가 
깨끼 겹저고리 위로 뚝 떨어진다. 비로소 옥매향의 고운 입술이 열려지는 
것이었다.
"나는 자네를 십년 세월에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네."
임백령은 두어 걸음 옥매향의 곁으로 다가선다.
"저도 꿈마다 영감이 보였습네다."
계집은 말을 마치자 임백령의 푸른 도포 앞자락이 멋지게 떨어진 도홍띠 
술방울을 만져본다.
"도홍 술띠를 띠셨습네다그래. 단방울이 아니라 쌍방울이 올시다그래. 벌써 
판서 대감이 되었다디요."
불구슬 같은 쌍방울 속에 옥매향이 하이얀 손끝이 닿았다.
"왜, 나는 판서를 못 할 사람인가?"
"온 천만에 말씀입네다. 대감이 되시더니 딴사람같이 무뚝뚝하게 
되셨습네다그래. 판서대감이 벌써 되셨다구 좋아한 것이다. 어디 못 될 
분이라고 말씀드렸습네까? 꿈에 노인이 말씀한 대로 영의정도 되실 텐데."
"나는 누이가 없어서 나라에 왕비를 바치치 못한 덕으로 자네를 세도재상 
윤부원군의 아들 윤임한테 뺏꼈네마는, 글을 배운 나로서 아무렇기로서니 
판서쯤이아 못하겠나?"
임백령은 도홍띠를 계집에게 맡긴 채 슬몃 비꼬아 본다.
"대감, 그렇게 비꼬시기만 하시면 더 가슴이 아픕네다. 어느날 밤 쳐놓고 
대감의 꿈을 아니 꾸어 본 적이 없는 나를 그렇게 까지 말씀하시면 참으로 
억울합네다."
"조금만 더 참아 보지."
임백령은 옥매향이 곱고도 원망스러웠다.
"화류계 풍속을 아시면서도 그러십네까. 기둥서방이 있는 것을요."
옥매향은 이내 설움이 터져 버렸다. 사랑하는 사람 가슴에 얼굴을 푹 
파묻은 채 흑흑 흐느낀다. 은조사 깨끼 겹저고리 속으로 은은히 비쳐지는 
보얀 어깨살이, 옥산이 물 속으로 뭉그러지듯이 흔들거렸다. 윤나는 검은 
쪽에 자주빛 댕기를 감취 물고, 풍정있게 꽃혀진 비취옥 비녀가 반나마 
미끄러져 빠져나갔다. 
  임백령은 옥매향의 허리춤을 한 팔로 감아 안았다.
"울지 말게, 누가 보면 창피하이. 옥비녀가 떨어지네."
옥매향은 임백령의 팔이 휘어감겨지는 것을 느끼자 더한층 슬픔이 조수를 
밀듯 몰렸다. 임백령은 쪽에서 빠져 내려오는 비취옥 비녀를 반듯이 
바로잡고 흐트러진 옥매향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자, 내가 불찰일세, 말을 잘못했네. 산정에는 아무도 없으니 함께 
올라가세."
사나이는 계집의 손을 이끌고 산정에 올랐다.
  물샐틈없는 난정이었다. 임백령과 옥매향이 산정 사랑으로 오르는 
눈치를 보자 옥매향이 데리고 온 교전비를 시켜서 산해진미의 주안상을 
올리게 했다. 오래간만에 만난 두 남녀가 오붓하게 합환의 술잔을 
나누라는 것이었다. 용안육 호대 주로 빚어진 호박 빛 용안주가 
오래간만에 옥매향의 손으로 옥술잔에 따라져서 임백령의 미각을 부드럽게 
했다. 술이 서너 순배 돈 뒤에 임백령은 눈을 넌짓 들어 옥매향에게 다시 
말을 던진다. 
"어느 때든지 자네는 내 품안으로 다시 돌아올 것을 각오해야 하네."
옥매향은 가만히 고개를 숙여 끄덕인다.
"내가 난정을 통해 자네한테 보낸 편지 사연은 오늘 안으로 꼭 윤임이한테 
전해야 하네."
"알았습네다.'
두 남녀는 다시 술을 주고 받았다. 산정 사랑의 봄날은 길고도 길었다. 
석양에 술상이 걷어질 무렵이었다. 옥매향의 서도조 노래가 가만히 새어 
나온다.
"오늘 하루 낮 즐거운 팔베게, 내일은 상사의 거문고 베게라."
    십일홍
  이날 느직하게 윤임의 집으로 돌아온 옥매향은 윤임이 혼자 있는 뒷사랑 
침방으로 들렀다. 윤임은 옥매향이 돌아오기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오는 옥매향을 보자 반가움을 이기지 못했다.
"이제 오냐, 늦었네 그려. 대접을 많이 받았냐?"
"용탕봉미의 맛있는 음식이 많았디마는 입맛이 당겨야 먹지를 않갔시오? 
혼났습네다."
"어째 혼이 났나."
"원, 대감두 딱하우. 난정이네 집을 내가 갔는데 혼이 안나고 
배겨나갔소이까, 좀 생각해 보시라요. 그러니까 옥은 혼자서 도맡아 
자시면서 세도는 함빡 김안로한테 뺏기시디."
"그러면 내가 숙맥이란 말인가?"
윤임은 그저 옥매향이 귀엽기만 했다. 입을 봉한 채 옥매향의 아리따운 
탯거리를 바라본다.
"숙맥이라도 좋다. 자네만 내 옆에 한평생 있으면."
"옥매향 이년은 바보 대감만 얻어 가지고 한평생 속태고 산답테까. 너무 
못난이 노릇만 하면 옥매향이는 도망을 가버리겠수다."
"그래, 인제부터는 내가 숙맥 노릇을 아니함세. 어째 입맛이 없었나?"
"생각해 보슈. 난정이 정경부인이 된 것을 반대하고 조정에서 떠들어댄 
사람은 첫째로 대감, 둘째로 김안로, 이렇게들 세상이 다 아는 노릇인데, 
명색 대감의 작은 집이라는 옥매향이 갔는데 난정이 가만히 있을 
법합네까. 울고불고하는 바람에 입맛이 있을 까닭이 있습네까. 그러길래 
정작 백성을 다스리는 나라 일은 아니 하고 그까진 정경부인 한 자리를 
가지고 눈이 벌개서 거품을 뿜고 뒤떠드니 그게 세상의 꼴들입네까. 
이제는 대감 덕분에 나까지 휩쓸려 들어가서 욕을 먹으면서 입초사에 
오르내리게 되니 내 신세도 팔자도 정말 기막히디 뭐야요. 자, 대감 이 
편지를 보시라요. 내 입맛이 있갔나, 없갔나."
  옥매향은 허리춤에서 난정이 넘겨 준 임백령의 편지를 꺼내서 윤임한테 
전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임백령의 편지라디요. 무어라 했나 똑똑히 좀 보시라요."
임백령 소리를 듣는 윤임은 셈이 불끈 일어났다. 편지를 읽기도 전에, 
"자네 임백령을 만났는가?"
"난정이네 안방에서 임백령을 어드렇게 만났겠소? 정말 숙맥 같은 소리 
작작하시고 편지나 읽어보시라요."
옥매향은 팔팔하게 뛰는 시늉을 한다. 얼굴빛은 금방 새파란 비수같이 
파르족족 변했다. 단번에 윤임의 얘기를 송두리째 찔러 버리자는 의도였다. 
윤임은 편지를 읽자., 얼굴이 누르락푸르락했다.
"일차 불의의 이별을 한 뒤에 그대의 화용 월태는 아직도 내 눈앞에 
어리고 비쳐 스러지지 않는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윤임의 눈은 이글이글 끓어올랐다.
"언제는 하늘가에 사무치는 이 한을 씻어 다시 한 번 그대와 
만나려니와....."
이 대목에 이르러 윤임의 눈은 불끈 뒤집질 지경이었다.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자네를 두루 뺏어 간다구? 시러베아들놈도 다 있네그려. 내가 임백령 
놈한테 옥매향이 자네를 뺏긴단 말야? 저승엘 열 번 갔다와 봐라. 
윤임이가 임가 놈한테 옥매향이를 호락호락 뺏기나,"
윤임은 임백령의 편지를 홱 방안에 내던진다.
"자네두 자네지, 왜 이따위 편지를 받아 가지도 돌아다니느냐말야. 지금도 
임가 녀석을 따라다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모양이지."
윤임은 고함을 질러 옥매향을 나무란다.
"편지를 좀더 보시고 말씀을 하시라요. 공연스레 화낼 사람은 대감이 
아니라 나외다. 나는 대감 때문에 망신살이 뻗치게 되었소. 임백령이가 
나를 정말 만날 생각이 있다면 그런 편지를 하갔소. 끝을 다 읽어 
보시라요."
옥매향은 열을 아니 내고 도리어 얼음같이 차가웠다. 윤임은 옥매향의 
태도에 주춤 놀렸다. 던졌던 임백령의 편지를 다시 집어서 읽는다.
"다시는 윤임이 낮을 들고 행세를 못 하도록 할 것이다."
윤임의 불덩이 같은 얼굴빛이 점점 죽어지면서 편지를 잡은 채 물끄러미 
천장을 바라본다. 옥매향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왜 나를 중간에 넣고 천하에 말 못할 화냥년을 만들려고 하시오? 백년 
언약했던 젊은 사내를 박차 버리고 세도와 권족에 밀려서 늙은 재상을 
쫓아갔다는 아름답지 못한 소리를 듣게 만드나요? 이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입네까? 난정이가 그래 정경부인이 되는 국태부인이 되든 대감한테 
무슨 상관이 있기에 공연히 훼방을 놀아 떠들어대서 이 창피한 꼴을 
당하게 만드시는 겁네까? 대감은 이년의 목에 칼을 꽂고 죽는 꼴을 
보시랴우?"
옥매향은 새파랗게 질렸다. 아까 윤임이 치를 떨고 분해하던 꼴이 반대로 
옥매향과 자리를 바꾸었다.
  옥매향은 나들잇벌로 입고 갔던 저고리, 치마, 단속곳을 활활 벗어 
던졌다. 번쩍번쩍 광채를 뿜는 안성맞춤의 요강 타구가 요란스럽게 
내동댕이쳐진다. 옥매향은 벗어던진 저고리 고름에 달린 은장도 칼을 바싹 
뽑았다. 새파란 칼날이 반짝하고 푸른빛을 뿜었다. 윤임은 옥매향이 죽는 
줄 알고 급히 달려들어 은장도칼을 빼앗았다. 장도칼은 용이하게 뺏어지지 
않앗다. 
"이 사람아, 이거 왜 이리 소란을 떠나."
"소란을 떠는 건 대감이지, 누가 소란을 떱데까? 옥매향이 임백령을 
배반하고 윤판서를 쫓아갔다고 조정에까지 알려져 사관들의 실록에까지 
쓰여지게 되었으니, 소란을 떤 것은 누구입네까? 내 한 몸 죽어 없어지면 
만사가 고만 아닙네까?"
윤임은 포달을 떠는 옥매향의 손을 비틀어서 장도칼을 빼았았다. 윤임은 
옥매향이 은장도칼을 빼는 소동을 일으킨 뒤에, 시각을 지체지 않고 
자비를 몰아 김안로를 찾았다.
  "대감, 윤원형의 작은집 난정한테 내리신 정경부인 일건에 대해서 
삼사의 교절을 중지하도록 합시다."
"웬일이오니까?"
"우리는 앞으로 큰 일을 많이 해야 할 텐데, 이까짓 소소한 일로 상감의 
의향을 오래 상지해서 거역한다면 정작 큰 일을 할 때 방해가 될 것 
같소이다. 못 이기는 체 그만두기로 합시다."
김안로는 한참 모언가를 생각하다가,
"윤원형은 이제 당당한 우리의 대적이 되었소이다그려. 왕후마마께서 
왕자를 낳으신 뒤부터는....... 대감의 의향이 정 그러시다면 하는 수가 
없지요. 그러나 양호유환이 될른지도 모르지요."
"인제는 장차 왕위룰 계승할 대권 다툼이 날 판인데 그까짓 일개 난정의 
정경부인 쯤이아 문젯거리도 뒤지 않소. 책장은 덮어둡시다."
김안로를 약감 비위에 맞지 아니했으냐, 세자의 외숙인 윤임이 이쯤 
나가지 더 반대하지는 않았다.
"대감 의향대로 하십니다."
윤임과 김안로의 결정은 단번에 대사헌, 대사간, 대제학한테로 전해졌다. 
  다음날 조정에서는 난정의 정경부인을 탄핵하는 삼사의 교장은 딱 
그치고 유림에서 말썽을 부리던 상소도 다시는 정원으로 올라가지 
아니했다. 난정은 어였한 정경부인이 되었다. 다시는 누구 한 사람 옳다 
그르다 할 사람이 없었다. 난정은 외명부 중에도 제일 수반을 차지한 
당당한 정일품 정경부인이 되었다. 들고날 때 유소보장, 금구슬, 
진주구슬을 늘인 사이교를 타고 열두 하님이 앞뒤를 옹위하여 호위를 
했다. 예조판서 임백령은 어느 틈에 벼슬이 올라가서 호조판서가 되고 
별은전이 내려 왕후마마께서도 사후를 들어간 일까지 있었다. 난정이 
정경부인이 된 뒤 일등공신은 임백령과 옥매향이었다. 옥매향은 난정의 
집을 무상출입 하게 되고, 호조판서 임백령은 원형의 집을 큰 집같이 
드나들었다. 임백령과 옥매향에 있어선 난정의 집이 세도를 잡는 종가집도 
되지만 원형의 산정 사랑은 은밀한 애정을 속삭이는 사랑의 
보금자리이기도 했다.
"자네도 어서어서 정경부인이 돼야 하네."
난정은 옥매향을 볼 때마다 미소를 띠며 욕심과 희망을 불붙게 하였다.
"형님이 만들어 주셔야지, 나를 누가 정경부인을 만들어 주갔소. 
왕후마마께 사뢰어서 상감마마께 아뢰어 주시구래."
"윤임이한테서 정경부인이 되기는 싹이 노랗네. 임판서가 영의정이 된 
뒤어 정경부인이 되도록 하세나."
난정은 이렇게 해서 옥매향과 임백령의 사랑을 부채질해 주었다. 옥매향은 
임백령의 사랑이 계속이 되어서 윤임과 김안로의 비밀한 행동을 
손살피같이 알아내자는 것이다.
  난정이 당당한 정경부인이 되어 대궐 안으로 자주 드나든 지 몇 달이 안 
돼서 지밀한 궁녀들 사이에 해괴하고 요상스런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중전마마께서는 까딱 잘못되시면 신비 꼴이 되어 폐비가 되시기가 
십상팔구래. 그리고 아드님 경원대군(뒤의 명종)도 복성군의 꼴이 되기가 
쉬웁다는 거야."
"그게 무슨 소리냐. 나는 금시초문이다. 그럴 리가 있나. 중전마마께서는 
이제는 대비도 아니 계시니 젊으시지만 나라의 어른이실 뿐 아니라, 
상감마마께서 금찍이 사랑하시는데 폐비라니 말이 되느냐? 네가 잘못 들은 
뜬소문인가 보다."
"글세, 소문으로만 그치고 말았으면 좋겠다마는 하두 뒤숭숭한 세상이라 
알 수가 없구나. 아무리 전하께서 사랑하시는 왕비라 해도 세도 잡은 
신하들이 들고 일어나면 꼼짝도 못하시는 전하가 아니냐. 그리기에 신비도 
공신 등살에 폐비가 되고 경빈 박씨도 김안로 등살에 사약을 받지 
않앗느냐? 전하의 사랑을 받을 수가 있어야지."
"그럼 이번에는 중전마마를 폐비하려고 드는 사람은 누굴까?"
"너, 이런 소리 함부로 해서는 아니 된다. 너만 꼭 알아 두어야 한다. 
까딱하면 목이 달아나는 소리다."
"이애가, 나를 아무것도 모르는 숙맥으로 아나베. 어서 말해봐 나만 꼭 
알고 있을테니."
"지금 궁중 형편이 두 갈래로 갈라지지 않았느냐 말야. 정실 왕비의 
소생인 대군과 공주 두 분이거든. 신비는 아드님도 없이 폐비가 되셨으니 
말할 나위도 없고 다음에 돌아가신 정경왕후의 아드님이 지금 세자가 
아니시냐."
"그렇지."
"그런데 말야. 지금 중전께서 경원대군을 또 낳으셨거든. 그러니 정실 
왕비에서 난 아드님이 두 분이란 말야. 그러니 얘깃거리가 생기는 것이지."
"적자가 아무리 두 분이라도 차례가 있지 않은가. 형님이 세자가 돼서 
나중에 전하 백세 후에는 왕위에 나가시는 게 당연하지."
"그야 그렇지. 한 어머니 한 배 속에서 나온 아들이라면 네 말대로 형님 
되는 세자께서 임금이 되시는 게 당연하지. 그렇지만 문제는 다른 어머니 
배에서 형제분이 나왔으니 얘깃거리가 되는 것이란 말야. 세상에 사람이란 
것은 욕심이 제각기 있는 것이거든. 산 어머니가 이기느냐, 죽은 어머니가 
이기느냐, 이런 판국이란 말야. 그러니까 죽은 어머니의 아드님이 세자 
쪽의 김안로가 먼저 칼을 들고빼고 일어나서, 중전마마를 폐비를 시키려 
하는 것이란 마이다."
궁녀의 말은 가늘고도 떨렸다.
"참으로 그럴 듯한 소리로구나. 우리네 여염집으로 말한다면 전실 아들과 
후실 아들의 싸움이로구나."
"경빈 박씨 모자한테 사약을 내린 것도, 역시 복성군이 임금이 될까 해서 
미리 순을 잘라 버린 것이거든, 그런데 그때는 중전마마께서는 아드님이 
없었단 말야. 그러니 경빈 박씨으 복성군한테로 화살이 갔던 것인데, 
이제는 정정당당한 왕비께서 아드님을 낳으셨으니 김안로는 불가불 두 
번째 화살을 중전마마와 대군한테로 쏘아야 한단 말이다. 꼭 너만 알아 
두어라."
"아이구, 무서워라."
이야기를 듣는 궁녀는 소름이 끼치는 듯 어깨를 웅숭크렸다.
  궁녀들이 비밀히 수군대는 유언비어는 마침내 왕후의 귀에까지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왕비는 전부터 김안로와 윤임이 자기의 적인 것은 난정을 
통해서 잘 알았으니 몸서리가 쳐지는 기막힌 이 소문을 직접 귀로 듣고 
보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 않을 수 없었다.
"정경부인을 들라 해라."
왕후는 심복 상궁한테 급히 명을 내렸다. 부름을 받은 난정은 시각을 
지체치 않고 사인교를 몰아가며 지밀로 들어갔다. 마음속으로는 후마마의 
부르시는 까닭을 벌써 미리 환하게 알고 대답할 말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왕후는 좌우를 물리치고 난정을 대했다.
"궁중 시녀 사이에 송구스런 소문이 떠돌고 있다. 기막힌 일이다."
"무슨 소문이오이까?"
"김안로가 나를 폐비를 시키고 아기씨까지 없이하려는 음모를 꾸민다는 
것이다."
"어마나."
난정의 얼굴빛은 파랗게 질리도록 놀라움으로 변했다.
"이 일을 장차 어찌하면 좋으나?"
"소녀가 항상 말씀 여쭙던 일이 그대로 진행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김안로가 마침내 칼을 뽑았으니 우리 쪽에서도 칼을 뽑아야 할 것입니다."
난정의 얼굴빛은 점점 침착하게 가라앉는다.
"어떻게 칼을 뽑아야 하느냐?"
"일이 몹시 급하옵니다. 오늘 밤 안으로 전하께 읍소를 하옵소서. 지금 
전하의 마음은 김안로를 싫어하시게 되신 듯합니다. 전하보다도 김안로의 
세력이 더 큰 것을 전하도 잘 알고 계십니다. 여기다가 공주도 돌아가시고 
부마마저 세상을 버렸으니 전하는 다시 뒤를 돌아보실 필요가 없게 
되셨습니다."
  이때 세자의 누님인 효혜공주는 김안로가 귀양이 풀려 돌아온지 몇 달 
뒤에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고, 큰아들 김회도 공주가 돌아간지 몇 달 
뒤에 역시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난정과 윤원형에게 있어서는 
김안로를 제거하는 데 절호한 시기였다. 난정은 이 기회를 포착한 
것이었다.
"나는 안에서 말씀을 드리겠지만 바깥 조정에서도 누가 공론을 일으켜야 
할 것이 아니냐?"
"윤임을 시켜 김안로를 죽이라 하시옵소서."
난정은 싸늘한 얼굴로 속삭거린다. 윤임을 시키란 말에 왕비는 깜짝 
놀란다.
"윤임? 네가 정신이 있는 소리냐? 윤임과 김안로가 한 덩어리가 되어 나를 
모해하는 것은 너도 잘 알면서 윤임을 시키라니 말이 되는 소리냐."
"속담에 이이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경빈 박씨를 몰아내는 데 우리는 
손끝 하나 까딱 안 하고 김안로의 손을 빌었듯이, 이번에도 우리는 
손끝하나 까딱 안 하고 윤임의 손으로 김안로를 몰아내게 할 수 
있습니다."
"윤임이 말을 듣겠느냐?"
"꼼짝없이 윤임이 김안로를 아니 몰고는 배겨나지 못할 방법이 있습니다."
난정은 왕후의 귀에 대고 무어라 소곤거렸다. 난정의 귓속말을 듣는 
왕후마마의 입은 살며시 벌어진다. 난정도 입가에 웃음이 가득했다.
"너는 나의 장자방이다."
젊은 후마마는 난정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이날 밤에 전하는 젊은 후마마와 함께 저녁 수라를 마친 뒤에 
경원대군을 친히 어수로 받들어 안고 둥둥이를 해주면서 전각을 거닐었다. 
왕의 나이는 점점 늙어 가고, 경원대군은 젊은 왕후가 늦게 낳은 단 
하나의 대군이었다. 이제 전하의 사랑은 모든 후궁을 떠나서 완전히 젊은 
왕후와 귀여운 막내 아들 경원대군한테로 집중이 되었다. 전하는 한동안 
대군을 안고 둥둥이를 하다가 팔이 아파 대군을 후마마에게 넘겨주고 
안석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서 다시 귀여운 대군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후마마는 대군을 받아 안고 젖을 물리자, 홀연 아름다운 얼굴에 
슬픈 빛이 가득해지면서 눈물이 비오듯 쏫아졌다. 무심코 건너다보던 
전하는 왕비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자 깜짝 놀랐다.
"중전, 울지 않소? 웬일이오?"
후마마는 얼굴이 더욱 구슬퍼졌다.
"오랫동안 전하는 받들어 좌우에 모시었더니, 이제 궁중에서 쫓겨나게 
되었사오니 다시 용안을 우러러뵈올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대군의 장래를 
생각하면 광창이 미어지는 듯합니다."
"그게 무슨 말씀요. 궁중에서 쫓겨나다니, 내가 모르는 일을?"
전하는 소스라쳐 놀란다.
"김안로가 윤임과 결탁해서 소비를 쫓아내려 한답니다."
"김안로가, 웬일로?"
"세자를 보호하자면, 소비를 쫓아내야만 한다 합니다."
"어디서 들은 소리요?"
"온 세상이 다 아는 알이올시다. 전하 혼자서만 모르시는 일이올시다. 
공모했다는 윤임한테 물어 보시옵소서."
왕후는 말을 마치자 다시 눈물이 비오듯 쏟아진다.
  전하는 시각을 지체치 않고 외전으로 나갔다. 편전에는 등촉이 휘황하게 
밝았다. 승전빗 내시를 불러 엄한 명을 내렸다.
"윤임을 즉각으로 입시하게 하라."
승전빗 내시는 대전별감을 시켜 윤임을 즉시로 들라 어명을 전하게 했다. 
이때 윤임은 형조판서로 있었다. 윤임은 대전별감이 즉시 입시를 들라고 
어명을 전하니 밤이 깊었으나 시각을 지체치 않고 황황히 어전으로 
들었다. 들어오는 윤임을 보는 전하의 얼굴빛은 등불 아래 위풍이 
늠름했다. 윤임이 어전에 부복하자 전하는 당장 언성을 높여 묻는다.
"경이 중궁을 폐하려 한다 하니 진정이냐? 이실직고하렸다."
돌연 위엄을 떨쳐 묻는 전하의 말씀에 윤임은 간담이 써늘했다. 
  윤임은 전에 김안로를 만나 두어 차례 이런 말을 한 일이 있고 김안로 
역시 기회를 보아서 중궁을 폐해야 하겠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한 일이 
있었다. 윤임은 급했다. 손발이 부들부들 떨렸다.
"왜 대답이 없느냐? 빨리 대답하라."
전하는 노여움이 극한에 올라 추궁이 급했다. 윤임은 더욱 황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 예. 소신은 그런 말을 한 일이 없사옵니다."
윤임의 얼굴빛은 흙빛으로 질렸다.
"똑바로 은휘하지 말고 아뢰렸다. 일국의 국모를 나도 모르게 너희 맘대로 
쫓아버릴 수 있단 말이냐?"
전하의 역증은 절정에 올랐다. 언성은 불덩이가 터지는 듯했다. 윤임은 
무어라 변명을 하지 아니하면 꼭 목이 달아나게 되었다. 
"왜 말이 없는고?"
전하의 목소리는 더욱 높았다.
"필시 그것은 김안로의 계책인가 합니다. 김안로는 소신을 보고 
왕후마마를 폐해야만 하겠다고 몇 번 주장한 일이 있사옵니다."
윤임은 결국 김안로한테로 팔밀이를 하고 말았다. 
"김안로란 놈은 어찌해서 제 맘대로 국모를 폐하자구 한단 말이냐?"
전하는 주먹으로 안석을 친다.
"안로는 성미가 괴팍해서 자기와 뜻이 맞지 아니하면 반드시 해를 주는 
사람이올시다. 동궁을 보호한다는 명분의 말을 내걸고 무단히 옥사를 
일으켜서 사람을 몰아넣습니다. 안로를 없이하지 아니하면 이 화근은 
그쳐지지 않을 것이옵니다. 급히 안로를 제해 버리시옵소서."
마침내 윤임은 자기 몸이 급한 위기에 빠지게 되자 동지를 물에 집어넣지 
아니하면 아니 되게끔 되었다. 안로와 함께 맹세했던 십 년 약속을 찰나에 
배반해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전하는 뚫어지도록 윤임을 한동안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김안로르 당해 낼 사람은 경밖에 없다. 경은 비밀히 김안로를 
제거시키라."
임금은 마침내 장중한 밀지를 내리고 말았다. 이것은 난정이 윤황후의 
귓속에다가 입을 대고 은밀하게 말했던 이이제이란 묘한 수법을 전하가 
왕후한테 듣고 쓴 것이었다. 윤임의 입으로 김안로의 죄상을 말하게 하고 
윤임의 손으로 김안로를 죽여서 그의 팔과 다리가 저절로 떨어져 
달아나도록 하는, 쥐도 새도 모르게 처치해 버리는 물샐틈없는 묘한 
수법이었다. 윤임은 꼼짝달싹 모면할 도리가 없이 자기 손으로 김안로를 
죽이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만약 윤임이 이 일을 거부한다면 자기는 역시 
왕후를 폐위시키자고 공모한 일당이 되고 보니 윤임은 못 하겠다는 말을 
내놓을 수가 없게 되었다.
"밀지를 받들어 곧 거행하겠습니다."
윤임은 이렇게 아뢰고 어전을 물러나왔다. 등에는 처근처근하도록 땀이 
흘러 배었다. 물러나던 윤임은 무엇을 생각했는지 다시 어전으로 들어갔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정원의 승지와 사헌부와 사간원의 대간들을 곧 갈아 
주옵소서. 이 사람들 모두가 김안로의 당이옵니다."
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원의 대간에 배치돼 있는 승지와 간관들은 김안로의 심복이면서 
윤임의 심복이기도 했다. 그러나 윤임은 이렇게 자기 손으로 자기의 심복 
부하의 목을 자르지 아니하면 아니되게끔 되었다. 그렇지 아니하면 윤임 
자신의 중전을 폐위시키는 음모를 했다는 죄명을 당장에 전하한테 목이 
달아날 판국이었다. 윤임은 김안로를 죽이는 이 크나큰 일이 혹시나 
부하들의 입을 통하여 김안로의 귀에 들어갈까 두려워한 까닭이었다. 
전하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승낙한 것을 본 윤임은 그제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고 어전을 물러나왔다.
  이튿날 아침이었다. 윤임은 대사헌 양연을 찾았다. 양연은 조광조를 
대신해서 대사헌이 된 사람이었다. 나라의 풍기와 법을 맡은 장관의 
집이라 양연의 집 사랑에는 이른 아침부터 찾아온 손들이 자리에 
가득했다. 대사헌 양현은 세자의 외삼촌이면서 형조판서를 겸하고 있는 
윤임이 찾아온 것을 보자 황망히 뜰에 내려 맞이했다. 윤임은 사랑에 올라 
수인사를 하고 잠깐 앉았다가 사람이 많으니 별말이 없이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이날 저녁때! 윤임은 또다시 대사헌의 집을 찾았다. 그러나 저녁때도 
손님은 여전히 많았다. 윤임이 두 번씩이나 찾아오는 것을 보자, 양연은 
무슨 곡절이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윤임을 따로이 떨어져 있는 침실로 
청해 들었다. 
"대감 웬일이십니까. 아까 아침때도 친히 오시고 저녁에도 오셨으니, 무슨 
긴한 부탁이 계십니까?"
양연은 어렇게 물었다.
"김안로를 급히 탄핵하라는 어명이 계셔서, 대감을 찾은 것이오."
윤임과 김안로가 가까운 것은 양연도 잘 짐작하는 일이었다. 천만 
뜻밖이었다. 
"정말이십니까?"
"내 언제 실없는 소리를 영감한테 합디까?"
"친히 어명을 듣지 않고는 못하겠습니다."
양연은 윤임의 기색을 더듬으면서 거부하는 대답을 내렸다.
"하도 의외의 일이니 그렇게 생각하리다. 자, 밀지를 보시오."
윤임은 전하가 수결을 둔, 김안로를 탄핵하라는 밀지를 품안에서 꺼내 
보였다. 양연은 그제서야 정말 전하의 뜻인 것을 알았다.
"웬일이오니까?'
양연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김안로를 중전마마를 폐위시키려는 혐의를 받고 있소."
양연은 모두 다 일이 중대한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김안로를 잡아 
죽이기도 어려운 노릇이요, 중전을 폐위시키자는 음모를 했다는 김안로를 
아니 잡기도 난처하게 생각됐다. 윤임은 양연의 눈치를 알았다.
"영감이 정 처사하기가 힘이 들거든 조보를 자세히 보시오. 만약 조보에 
승지와 대간이 갈리는 기별이 실렸거든 곧 탄핵하도록 하시오. 위에서는 
김안로의 심복인 승지를 먼저 갈아 버리실 것이오."
윤임은 승지가 갈리는 비밀을 가르쳐 주었다. 양연은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그럼, 조보에 승지가 갈리는 대로 곧 착수하겠습니다."
  김안로를 이때 공주가 돌아가고 큰아들, 부마 희마저 세상을 떠나서 
집안이 불행했으나 한 나라의 국왕을 능가할 만큼 혁혁한 세도를 잡았으니 
잠깐 불행도 잊어버리고 여전히 사는 맛이 나도록 번쩍 걸리고 살았다. 
때마침 막내아들 시의 장가를 들이느라고 택일을 하고 봉치를 보내서 바로 
혼인날이 되었다. 
  세도 재상 김안로가 아들 장가를 들이는 혼인날이 되니 대궐을 능가하는 
고래등같은 집에선 차일과 군막이 뒤뜰에 드높게 처지고 숙설간에는 
숙수들이 소와 돼지를 잡아서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다. 새색시의 큰상을 
차리고 삼백상, 사백상의 손님 대접할 음식상을 배정했다. 혼인날이 되고 
보니 새벽부터 색떡밥소래, 약식밥소래. 인절미소래, 국수밥소래, 양지머리, 
가리, 우둔, 통돼지가 온종일 연락부절 쏟아져 들어왔다. 권세없이 정성을 
다하여 부조와 가공을 보내왔지만, 장차 앞으로 벼슬 한 자리 얻어 하려는 
구사하는 사람들은 혼인날을 기회로 빚을 얻어 가면서 부조와 가공을 해 
보았다.
  물목 적은 단자를 받는 사람들은 하도 들이밀리는 바람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사랑에는 금관자, 옥관자를 붙인 공경 대부의 재상들이 치하를 
드리러 와서 안팎에 사랑에 그들먹하게 차 있었다. 안채는 안채대로 
번열했다. 정경부인, 숙부인, 숙인 하는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판서, 참판, 
승지들이 부인네들이 사인교, 쌍가마를 타고 들이밀렸다. 잔칫상은 끊일 
사이 없이 숙설청에서 백상, 이백상, 삼백상, 오백상이 안팎으로 쏟아져 
나왔다. 
  김안로는 막내 며느리를 데려오는 경사로운 날이라 진사립 윤이 지르르 
흐르는 통영갓에 도포를 입고 희색이 얼굴에 가득해서 손들을 대접하고 
있었다. 해는 점점 설핏해지기 시작했다. 손들은 녹의 홍상의 기생들이 
권하는 권주가 소리에 질탕하게 술을 마시고, 아첨하는 위인들은 잔대를 
들고 김안로한테 술을 바쳤다.
"오늘, 혼인날 일기가 참으로 좋습니다. 일난풍화고 하늘에는 구름이 한 점 
없습니다. 모두 다 대감의 흥복이십니다. 한 잔만 드옵시오."
"요조숙녀인 자부가 들어오시니, 댁에는 무량대복이 들어오겠습니다. 한 
잔만 드시옵시오."
"온르 같은 날은 상감께서도 친림을 하시어 치하를 하심직도 한데 그런 
말씀이 아니 계십니까?"
"암, 상감이 오셔도 좋지. 부마댁이 아닌가. 오실 수도 있는 일이지."
"전하께서 오시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어사주를 내리시어 선온은 하실 수 
있는 날이지. 대감, 아직 선온이 아니 내리서었습니까?"
모든 재상들은 이렇게 아첨을 더럽게 떨어 바쳤다.
  아닌게 아니라 김안로는 지금 마음속으로 화려한 음식과 어사주를 
내리시기만 고대하고 있는 판이다. 김안로의 집에는 조그마한 생일 
잔치라도 있으면 반드시 전하가 음식과 술을 내려서 선온을 하는 것이 
전례였다. 김안로를 오늘 만당한 손님 앞에서 이 광영스러운 임금이 친히 
내리시는 어사주를 마시고 싶었다.
"얘, 아직도 대궐 안에서는 아무 소식이 없느냐?"
"아직 소식이 없사옵니다."
청지기는 대답했다.
"선온이 내릴 때가 지나지 않았느냐?"
김안로를 거드름을 피우면서 안석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앉는다.
"글세올시다. 다른 때 같으면 아침 일찍이 대궐 안에서 가자(架子)가 
나왔을 텐텝쇼."
청지기는 솔직하게 대답한다.
"승지한테 내가 며느리를 본다고 말을 전했느냐?"
"그러믄입쇼. 김승지 부인은 지금 안에 계시옵니다."
"그것 참 이상도 한 일이다."
김안로를 초조하게 어사주가 내리지 않아서 안절부절을 못하고 있을 때, 
그의 눈에는 만좌한 손님 중에 세자의 외삼촌인 윤임의 얼글이 비쳤다. 
김안로는, 
"대감."
하고 윤임을 청했다.
"위에서 오늘 선온이 내릴 법하신데, 아직도 아니 내리시니 웬일입니까?"
윤임은 전하가 어사주를 내리시지 않는 까닭을 알았다. 조금만 있으면 
잡혀갈 김안로였다. 그러나 어사주를 안 내리시는 까닭을 말할 수 없었다. 
윤임 자신이 오늘 혼인 잔치에 참례한 것도 김안로가 눈치를 차리지 
못하도록 일부러 온 것이었다.
"아니 내리실 턱이 있습니까? 곧 내리시겠지. 아직도 해가 높은데!"
윤임은 해가 설핏해지는 것을 , 해가 아직도 높다고 하면서 김안로를 
위로했다. 
  이윽고 신부의 황금 주옥으로 꾸민 덩 사인교가 열두 하님을 거느리고 
안중문으로 들어갔다. 신랑이 은안 백마를 타고 신부집으로 가서 전안을 
드린 뒤에 초례상 앞에서 신부와 마주 서서 교배를 드리고 신랑이 큰상을 
받은 뒤에 신부는 신랑의 뒤를 따라 폐백을 드리러 온 것이었다.  
김안로는 새 며느리의 폐백술을 받으려고 사랑에서 금관조복으로 갈아입고 
안대청을 향하여 갈 지자 걸음을 걸어 천천히 들어가는 판이었다. 윤임은 
아무도 모르게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대문 밖에서 자비를 타고 대궐 
빈청으로 들어갔다.
  이때 대사헌 양연은 사헌부에서 대사간과 함께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원서리가 조보를 가지고 나타났다.
"김승지가 한성부 우윤으로 체임되었습니다."
김승지는 김안로의 심복이었다. 양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양연은 비로소 
소매 속에서 김안로를 탄핵하는 상소문을 꺼냈다. 정원에서 또다시 서리가 
조보를 들고 뛰어나왔다.
"사헌부 이집의가 승지로 영전이 되셨습니다."
사헌부 이집의는 바로 대사헌 양연의 심복 부하로서 지금 대간 회의에 
참례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제는 확실히 의심이 없었다. 윤임이 말한 
대로 곧 김안로를 죽이라는 전하의 뜻이 분명했다. 양연은 모든 대감을 
돌아본다. 
"나는 지금 김안로를 탄핵하기로 결정하였소. 여러분은 탄핵문을 
들으시오."
말을 마치자 양연은 탄핵문을 낭랑히 읽는다.
"김안로는 성미가 본디 간사하고 음험하여 참람하고 흉악하기 구미호 같은 
자이옵니다. 집을 짓는 데 사치스럽기 왕궁과 같고 전하를 희롱하기를 
아이들과 같이 합니다. 참람되이 전하의 대권을 빼앗아 중궁을 폐하려 
하니 그 죄 만사무석의 역적이옵니다. 시각을 지체치 말고 김안로를 잡아 
국문하옵소서."
대사헌의 탄핵문을 듣고 있던 대간들은 깜짝 놀란다.
"김안로가 정말 왕후마마를 폐하려 했습니까?"
"확실하오."
대사헌 양연은 만좌를 돌아보며 자신있게 대답한다. 이때 정원에서 
정원서리가 또다시 뛰어나왔다.
"새로 승지로 제수된 이집의는 빨리 대령하라는 어명이 내렸소."
양연의 심복 이집의는 창황히 어전으로 들어간다. 모든 대관과 간관들은 
비로소 공기를 알았다.
"좋습니다."
사헌부와 사간원 양사는 탄핵문을 가지고 대사간과 함께 어전으로 
들어갔다. 양사 합계를 받은 전하는 간단하게,
"좋다."
하는 한 말씀을 내렸다. 새로된 승지가 명을 받았다.
"김안로를 즉각 나수하랍신다."
승지는 선전관에게 영을 내렸다. 
  선전관은 시각을 지체하지 않고 금부나졸 수백 명을 풀어 김안로의 집을 
철통같이 에워쌌다. 선전관은 황금 등채를 잡아 마상에 높이 앉아 
지휘하고 금부나장과 나졸들은 육모방망이를 들어 '어명이요' 소리를 높이 
지르면서 김안로의 집 대문을 부셨다. 처음에 김안로 집 사람들은 
선전관이 나온는 것을 보자 선온이 내린 줄 알고, 금관조복에 옥패를 차고 
새 며느리의 폐백절을 받고 있는 김안로한테로 뛰어가려 했다.
"선전관이 나왔습니다. 어사주를 가지고 나온 것 같습니다."
김안로는 어사주가 나왔다는 말을 듣자 마음이 헝그럽고 좋았다.
"내가 폐백을 받고 곧 나갈 테다. 선전관보고 잠깐만 기다려라 해라."
거드름을 피우면서 새 며느리의 큰절을 받고 있을 때 선전관은 벌써 
안마당으로 등채를 짚고 들어섰다.
"역적 김안로를 어명을 받으라."
큰 소리로 외치자, 금부나장 수십 명은 육모 방방이로 폐백받는 
구경꾼들을 헤치면서 금관조복한 김안로를 끌어내렸다.
"어명이요."
"어명이요."
육모방망이는 김안로의 폐백을 받는 상을 두들겨 부셨다. 온 집안이 불끈 
뒤집힌다.
"어명이요."
"어명이요."
금부나졸들의 육모방망이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두들겨 부셨다. 안에서도 
부수고 밖에서도 부셨다. 참의, 참판, 판서, 금관자, 옥관자짜리가 
혼비백산이 되어 신을 거꾸로 신고 달아나고 정경부인들의 남스란치마가 
갈갈이 찢겨지면서 외씨같은 버선발로 신도 못 신은 채 사인교와 가마를 
찾아 대문 밖으로 달아난다. 
"어명이오."
"어명이오."
'어명이오' 소리는 회오리바람처럼 연달아 일어났다. 기생년들은 담을 뛰어 
달아나고 술이 거나하게 취한 갓쟁이 구사꾼 등은 주먹 맞은 감투가 되어 
대가리를 벽에 대고 비비었다. 김안로는 금관조복을 벗긴 채 오랏줄에 
꽉꽉 묶여 결박을 지어 끌려간다. 주지육림은 아수라장의 생지옥이 되어 
버린다.
  밖에 나면 사인교를 타고 구종별배를 거느려 서울 장안이 떠나갈 듯 
벽제 소리를 요란히 쳐서 서슬이 시퍼렇고, 안에 들면 대궐을 능가하는 
긍사극치한 부마의 궁전 속에서 제왕의 권위보다도 세력이 더 높아서 
혼천동지하던 김안로는, 하루 낮 사이에 더구나 며느리를 맞는 혼인날, 
맨발로 끌려나가는 참혹한 죄인이 되어 금부 옥간에 찬 꿈을 꾸게 되었다. 
  김안로가 한번 옥게 갇히고 보니 김안로를 탄핵하는 상소는 대간뿐만이 
아니었다. 우선 옥매향을 윤임한테 뺏긴 임백령이 서리 같은 붓대를 
둘었다. 김안로를 떨어뜨리는 것은 정경부인 난정이 왕후마마께 여쭌 대로 
윤임의 세력을 꺾어 버리는 것이었다. 임백령은 그의 사랑의 적 윤임을 
꺽기 위하여 먼저 김안로를 때렸다.
"세도 불길은 하늘을 그을러서 오히려 전하보다 중하니 공경대부와 
백성들은 다만 안로가 있는 것을 알 뿐입니다. 이러므로 더욱 기탄이 없고 
사치는 날로 방자하여, 새로이 큰 집을 짓는데 객청의 제도가 대궐의 
정전을 모방했소이다. 일찍이 김안로는 작은 저술을 지어 참서 속에 벌여 
놓고 전하의 나라 얻으신 요언을 적은 뒤에 자기의 얼굴은 귀함이 형언할 
수 없게 된다 했으니, 말이 이쯤 갔으니 극히 한심하옵니다. 안로를 참하지 
아니하면 왕법을 보일 수 없습니다. 안로의 목을 장대에 달아 큰거리 
세워서 모든 간사한 자들의 간담이 써늘하게 하시어 생령들의 분함을 
쾌하게 씻게 하옵소서."
임백령은 상소를 올려 여지없이 감안로를 역적으로 몰아 놓았다. 임백령의 
서리 같은 문장에 조야는 뜨르르 울렸다. 김안로의 자칭 자기의 상은 
귀함이 말할 수 없게 된다는 한 마디 말은 김안로가 곧 임금이 된다는 
소리다.
  선비들은 임백령의 뒤를 이어 빗발치듯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 처음 
김안로는 남곤과 심정한테 세도가 밀려서 풍덕으로 귀양을 갔을 때, 
자가가 다시 조정에 들어가기만 하면 조광조의 제자를 등용해 쓰고 
조광조를 신원해 준다고 선비들에게 간청을 했던 것이다. 이 소리를 들은 
선비들은 극력 김안로의 귀양이 풀리도록 추천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김안로는 막상 선비의 덕으로 다시 조정에 들어간 뒤에 사사로운 원수로 
심정과 박빈을 죽였을 뿐 선비는 한 사람도 등용해 쓰지 않고 조광조의 
신원도 아니했던 것이다. 선비들은 배은망덕을 하는 소인 놈이라고 팔을 
걷어붙여 분개하던 판에 김안로가 탄핵을 당하여 옥에 갇히니 모든 
선비들은 김안로를 죽여야만 한다고 떠들고 일어났다.
  전하는 마침내 김안로를 삭탈관직을 하여 멀리 바닷가로 귀양을 
보내라는 엄명을 내렸다. 대간과 유림들은 김안로에게 죽음을 
내리사이다하고 항쟁을 했다. 전하는 윤왕후의 말을 들어 죽이고 싶던 
김안로였다. 마침내 김안로에게는 사약이 내렸다. 김안로는 귀양을 떠나서 
진위갈원에 당도했을 때 사약을 받았다. 혼천동지하던 그의 세도는 열흘 
붉은 꽃판이 되어 사람까지 비명횡사를 하고 말았다.
    피는 물보다 진한 것
  윤원형의 첩 난정과 왕후 윤씨는 희고 부드러운 매끈한 손가락을 한 번 
까딱하지 않은 채 자기의 살길과 자신의 권력을 펴기위하여 소리소문 없이 
하나씩 하나씩 정적을 무찔러 들어갔다. 사랑의 적인 경빈 박씨를 
쓰러뜨리고 의붓 아들인 복성군을 없애 버러고 남곤, 심정을 떨어뜨리고 
마침내는 천하의 간웅 김안로까지 녹여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들은 이 무수한 서슬 푸른, 권력 많은 사람들을 떨어뜨리는 데 
한 번도 주인공이 되어 겉으로 나타난 일이 없었다. 모두 다 다른 사람의 
힘을 빌어서 귀신도 곡을 할 지경으로 묘하게 궁중과 조정에서 정적이 
떨어져 나가도록 만들었다. 
  동궁에 쥐를 죽여 저주한 일은 경빈 박씨한테로 몰아뜨리고, 남곤, 
심정의 당파를 쓰러뜨리는 일은 윤임과 김안로의 손으로 칼을 배게 
말들었고, 사랑의 적인 경빈 박씨와 복성군을 죽이는 일은 김안로가 아니 
처치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리고, 부마의 아버지요 세도가 하늘도 사를 
듯한 김안로를 처치하는 일은 꼼짝없이 그의 동지인 윤임으로 하여금 그의 
목을 자르게 했다. 
  세상에서는 이 무수한 정치의 참변이 요녀 난정과 얼음같이 찬 왕비의 
손바닥 속에서 만두 빚어지듯 빚어지는 것을 전혀 몰랐다. 세상 사람들은 
고사하고 조정에 서 있는 삼공과 육경들도 이 기막히는 조수 물밀 듯 
밀려드는 정치 파동이 어느 쪽에서 일어나는 것인지를 몰랐다. 삼정승, 
육판서는 고사하고 정치의 최고 집권자로서 왕후마마와 자리를 같이하고 
있는 전하조차, 자기가 정치를 하건만 어떻게 되어가는 셈인지를 모르게끔 
되었다. 
  김안로가 집어치워지자 정치 세력은 완전히 세자의 외삼촌인 윤임과 
왕후의 오라버니인 난정의 남편 윤원형으로 대립이 되게 되었다. 맨 처음 
자기 누이의 뒤를 받쳐서 가례를 치르게 하여 왕후로 모셨던 윤임과 
왕후는 완전히 상극의 입장에 서게 되고 말았다. 윤임은 뉘우쳤으나 이미 
미칠 길이 없었다. 남곤, 심정이 없고 김안로가 떨어져 나갔으니, 윤임과 
윤워형은 노골적으로 대립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나라의 정치는 완전히 정실과 후실의 싸움, 적자와 계자를 중심으로 한 
파당 싸움으로 갈려지고 말았다. 윤임은 자기의 세도를 펴기 위하여 
외삼촌이라는 혈연을 가지고 세자 저하를 등에 업었고, 윤왕후와 난정과 
윤원형은 상감과 경원대군을 업은 채 윤임과 대항하게 되었다. 모두 다 
제각기 더 잘살아 보자는 때문이었다. 그러나 윤임의 세력은 김안로가 
떨어져 나갔어도 아직은 꿋꿋했다. 등에는 책봉까지 한 왕세자가 있는 
것이다. 한번 세자 책봉을 한 뒤엔 세자는 곧 왕의 후계자인 것이다. 
세자는 어느덧 나이 삼십이 가깝게 되었다. 윤왕후가 낳은 아들 
경원대군하고는 나이 이십 년의 차이가 있었다. 폐세자를 하기 전에는 
도저히 왕후의 아들 경원대군이 앞으로 대권을 잡을 기회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윤임은 자기의 동지인 김안로를 눈물을 머금고 죽이면서, 자기 
혼자 살 길을 걱정했던 것이다. 
  김안로가 사약까지 받아서 한 가닥이 치워진 뒤에 정경부인 난정은 
후마마의 궁으로 사후를 들어갔다. 왕후는 미소로 난정을 맞았다.
"한동안 보지 못했구나."
"하회를 보느라고 자주 들어와 뵙지를 못하와 죄송했습니다."
"모든 일은 뜻대로 되었구나."
차갑도록 조신한 후마마의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끝까지 소원을 푸신다면 아직도 어려운 일이 태산준령이옵니다."

"무측천 무황후 노릇하기도 과연 용이한 일이 아니로구나."
후마마는, 언젠가 난정이 처음으로 대궐에 들어왔을 때 사기를 펴놓고 
읽던 천기 노릇을 한 측천무후가 생각나서 슬몃 미소를 풍기며 이렇게 
말한다.
"그러기에 한 나라의 주권을 잡는 것이 여간 일이 아니옵니다. 더구나 
없던 일, 무에서 유를 생기게 하는 일은 용이한 짓이 아니옵니다. 
태고적부터 여자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무에서 새로이 있도록 만드는 
것이니 참으로 개척하기란 어려운 노릇입니다."
난정은 요염하게 웃는다.
"그렇다면 너와 나는 우리 나라의 여인 편으로는 처음 나타난 
창업지주로구나. 호, 호, 호."
차가운 젊은 후마마연만 무에서 유가 생기게 된다는 난정의 말에 매력을 
느꼈다. 손바닥을 어루만지면서 가볍게 소리를 내어 웃는다. 
"마마, 천만에 황송스런 말씀이옵니다. 마마께서는 창업지주시구, 소첩 
난정은 개국공신입지요. 호, 호, 호."
그림같이 이쁜 난정은 요사스런 눈웃음을 치면서 젊은 후마마를 바라보며 
겸양의 말씀을 올린다. 같은 여자인 젊은 후마마로도, 이 영리하고 
요사스럽도록 태깔나는 난정의 눈이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다.
"마마."
난정은 목소리를 한층 떨어뜨려서 후마마를 불렀다. 음성을 떨어뜨려 
부르는 난정의 표정에 젊은 후마마는 다시 긴장이 된다. 수정 같은 맑은 
눈이 난정을 소리 없이 바라본다.
"아까 끝까지 소원을 푸신다는 일이 태산준령 같다고 말씀을 드렸지요?"
후마마는 고개를 까닥거린다.
"그것이 곧 창업하기가 힘들다는 말씀입니다. 창업지주의 사업이란 과연 
태산준령이란 것입니다."
후마마는 또다시 고개를 끄덕거린다.
"이제 우리의 적은 누구이오니까? 단 한 사람 남았습니다."
"윤임이지 누구냐."
후마마의 목소리도 낮아졌다. 요염스런 난정의 눈이 샛별처럼 빛난다.
"천만에, 윤임따위야 이제는 백 명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누구냐?"
젊은 후마마의 목소리는 더욱 낮았다.
"후마마의 아드님이십니다."
난정의 목소리도 더욱 낮아진다.
"나의 아들? 세자?"
젊은 후마마의 목소리는 동굴 속에서 나오는 듯 가늘게 떨렸다.
"마마! 아드님은 피가 섞인 아들이래야 합니다. 세자는 마마의 피가 섞이지 
아니했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한 것이옵니다. 피가 섞인 아들로서 세자를 
봉하소서."
  어머니 없이 자라난 세자는 천성이 총명하고 영리하면서도 어질고 
착했다. 아직 세자로 책봉되기 이전, 원자로 있을 때부터 세자는 정암 선생 
조광조한테서 글을 배웠다. 어린 세자에게 정암이 끼쳐 준 덕행은 
자랄수록 빛이 났다. 
  원자가 세자로 책봉될 당시는 아직도 조광조 선생이 전하를 도와서 밝은 
정치를 할 때였다. (편집자 주 : 인종이 세자 책봉되기 전에 조광조가 
죽었으므로 이것은 작가의 착각인 듯 하다.) 원자는 여섯 살에 세자로 
책봉이 된 뒤에도 계속해서 정암 선생한테 지도를 받았다. 정암 선생의 
법도 있는 지도는 어린이가 마치 철난 어른 같이 의젓한 행동을 취하게끔 
했다.
  전하는 동궁이 글을 읽는 모습을 살피고 싶었다. 돌연 동궁의 독서당을 
찾았다. 이때 지도하는 이는 역시 조정암 선생이었다. 세자는 분홍빛 강사 
직령에 옥띠를 띠고 단정히 책상에 앉아 소학을 읽는데, 앉은 태도와 읽는 
글소리는 어른 같이 의젓했던 것이다. 이때 세자의 나이는 겨우 여섯 
살이었다.
  세자가 열 살이 되었을 때, 그의 공부는 더욱 높아 갔다. 어느 날 전하는 
경회루 앞에 경연 자리를 열고, 모든 신하들과 경서문답을 하다가 홀연 글 
제목으로 나온 곳이 막혔다. 모든 경연관들을 둘러보면서 이러이러한 글의 
출처가 어느 책에서 나왔는가? 하고 물으니, 좌우 옆에서 모시었던 
경연관들은 한 사람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전하는 세자를 
돌아보며 물었다. 
"너는 혹시 이 글의 출처를 알고 있느냐?"
하니 세자는 단정히 일어나서, 
"아무 책에 있습니다. 글 뜻은 이러이러합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때 모든 신하들은 절을 하여 치하를 올리고, 전하의 
용안엔 기쁜 빛이 넘쳐흘렀다. 정암 선생에게 단련된 그의 성격은 
안상하고 침착했다.
  세자가 나이 십여 세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동궁에서 강관과 함께 글을 
읽다가, 홀연 그는 얼굴빛이 달라졌다.
"글 읽는 것을 잠깐 중지해야겠소."
강관에게 말한 뒤에 천천히 협실로 들어갔다. 강관은 별안간 웬일인가 
궁금했다. 이윽고 세자는 다시 나와서 아무 일이 없는 듯 낭랑히 일고 
있었다. 몇 시간 글을 일고 파한 뒤에 강관은 아까 일이 궁금했다.
"아까, 옥안이 좋지 않으신 채 잠깐 협실로 들어가셨사온데 어디가 편치 
않으십니까?"
하고 물으니 세자는 얼굴에 약간 웃음을 띠우며 대답했다.
"벌이 소매로 들어와서 급히 쏘므로 잠깐 옷을 벗어 벌을 내보내고 돌아온 
길이오."
강관은 깜짝 놀라 세자의 옷을 헤쳐 보니 과연 벌이 쏘아서 벌겋게 
부어올랐다. 강관은 비로소 급히 약을 바르게 했으나 세자는 어른이 못 
따라가도록 이렇듯 침착했다. 정암 선생의 유고로 다져진 도학의 힘은 
이대도록 어린 세자를 도덕의 도가니 속에 굴레를 씌워 집어넣었던 
것이다.
  세자의 나이 이십대를 지나서 삼십이 가까우니, 그의 유교적 학식과 
도덕적 행동은 완전히 제 2의 조광조였다. 그는 경빈 박씨와 복성군의 
옥사가 일어난 후에 옹주의 처지에 대하여 아바마마께 간하는 상소를 
올렸다. 
"동기간의 친함이란 한 기운이 둘로 나뉘어 이루어진 것이니 호흡과 
천식이 서로 통하여 우애의 지극한 정을 어찌할 수 없는 것이옵니다. 때로 
비상한 변고가 뜻밖에 나타났다 할지라도 옛 사람들은 은혜와 사랑으로 
덮고 가리어 주었던 것이옵니다. 지난번 미의 일은 신의 나이 어려서 일의 
수말을 자세히 알지 못하옵니다마는, 화의 참혹한 것은 차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일이옵니다. 요사스런 일은 박씨가 했다 하나 미야 어찌 이 일을 
알았으리까. 멀리 하방으로 쫓아 보낸 것도 딱한 노릇이온데 그 뒤에 또 
큰 옥사를 일으켜 모자가 다 함께 죽었고 홍려 또한 장하에 죽었으니 
변고에 극함이 옛적에도 들어보지 못했던 일이옵니다. 형제간에 어떻다 
하겠습니니까. 죽은 자는 이미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마는 미의 어린 
딸은 민간에 내버려서 천한 이이가 되었으니 어린 여자아이가 무슨 죄가 
있사옵니까. 더구나 마음 아픈 것은 두 옹주, 연소한 여자가 일에 관여되지 
않았을 것은 분명한 일이온데, 왕실에서 쫓겨나 붙일 데가 없게 되었으니 
생각이 여기 미치매 쏟아지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사옵니다. 신의 한 
몸으로 인하와 형제의 변이 이렇게 일어났으니, 한평생 슬프고 슬픈 
마음이 영영 스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맹자도 말씀하기를 자기는 천자가 
되었는데 동생은 한 사람의 필부로 있는 것은 옳은 일인가 했사옵니다. 
이제 신은 아바마마를 모시어 동궁에 있어 천총의 극진하심을 받잡고 
있사온데 두 누이와 한 질녀는 하천 생활로 떨어져 있으니 몸을 돌이켜 
생각하올 때 얼굴이 확확 달아 부끄럽습니다. 어진 이들은 형제를 대할 때 
노염을 품지 않고 숙원이 없어서 다만 친하고 사랑할 뿐이라 하옵는데, 신 
같은 것은 무슨 원망과 노여움이 형제한테 있기에 친하고 사랑할 수 
없습니까. 선조께서 제사를 올릴 때와 음식을 나눌 때 형제가 화락하여 
즐기지 못하니, 측은한 생각이 더욱 가슴에 간절하오이다. 지난번에 이 
뜻을 아뢰었더니 허락하심을 받지 못하오매, 다시 미충을 피력하와 성덕을 
더럽히오니 엎드려 불쌍히 여기심을 간절히 원하옵니다."
지성스러운 세자의 우애의 정은 상소문 전편에 넘쳐흘렀다. 전하는 세자의 
상소를 읽자 눈물이 쏟아지고 측은한 생각이 움직였다. 마음속으로 세자를 
미덥고 중하게 여기면서 죽은 미에게 양자를 두어 그의 제사를 받들게 
하고 미의 딸과 두 옹주에게는 다시 직위를 회복시키게 했다. 그러나 
대간들은 다시 들고일어나서 복직을 못 하도록 했던 것이다. 그러나 
세자의 우애와 인자스런 행동은 전하를 위시하여 조야가 다 함께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자의 우애 지극한 정은 이뿐이 아니었다. 친누이 효혜공주(김안로의 
자무)가 요사이 돌아가니 어머니 없는 동기간이라 비탄함이 과도하여 
병까지 난 일이 있었다. 젊은 세자는 정암 선생의 학문을 배우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학문을 그대로 자기 몸으로 실천하여 자기의 윤리를 
만들어 세웠던 것이다. 세자를 모시어 시강하던 선비들은 세자의 학문과 
행동을 보고 장차 요순 같은 임금이 되실 분이라고 칭송하는 소리가 
자자했던 것이다. 세자는 어려서부터 정암 선생의 지도를 받아 지극한 
효성과 형제간의 우애가 보통을 뛰어나 유교의 윤리를 자기 자신이 그래도 
실천하는 것으로 목표를 삼았다. 뿐만 아니라 여자에 대해서도 세자는 
조정암의 여성에 대한 태도를 그대로 본따게 되었다.
  동궁에 관례에 의하여 동궁빈 이외에 동궁을 모시는 양제가 수십 
명이었다. 이것은 나라의 법으로 정해진 것으로 임금에게는 후궁이 있듯이 
동궁에게는 양제가 있는 것이다. 삼천 궁녀는 전하의 앞에서 아리따운 
교태를 부려서 귀비가 되고 빈이 되고 숙의가 되듯이, 동궁의 양제들은 
세자의 눈에 들기 위하여 백 가지 교태를 부려서 세자의 사랑을 낚으려 
들었다. 이러한 일은 이 나라 궁중에서 당연한 일로 되어 있고 세자가 
뒤에 대군을 잡아 대위에 오르는 때에는 이들 양제는 후궁이 되어 삼천 
궁녀의 자리를 계승하는 것이었다. 이러므로 양제는 수효와 규모는 삼천 
궁녀들의 후궁을 따르지 못하나 역시 궁중의 궁녀로서 동궁에 소속되는 
후궁들이었다. 
  양제 중에서는 동궁을 간절하게 흠모하는 여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동궁은 세자빈 단 한 분을 평생의 배우지로 선택했을 뿐 양제들에게 손을 
댄 일이 없었다. 양제 중에 아름다운 한 여인이 있었다. 세자의 눈에 
뜨이려고 화려한 비단옷에 고혹적인 향을 몸에 지니고 세자의 앞에 교태를 
부려 아침상을 받들고 들어온 일이 있었다. 세자는 아침상을 물린 뒤에 
양제의 두목을 불러 일렀다.
"아까 상을 받들고 들어왔던 궁녀는 곧 내보내도록 해라. 화려한 의복과 
고혹적인 향내가 나한테는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세자의 분부 한 마디로 화려한 의복에 고혹적인 향을 뿌렸던 여자는 궁 
밖으로 쫓겨나 버리게 되었다. 이 뒤부터 세자궁의 양제들은 얼굴에 분을 
바르지 못하고 비단옷을 입지 못했다. 이것은 조정암 선생이 과거를 보러 
서울로 올라왔을 때 교태를 부리던 여인을 피하여 사관을 옮긴 것과 
비슷한 얘기다. 
  이 소문은 단통 세자의 시강원에 까지 퍼졌다. 시강원에서 세자를 
교도하는 임무를 맡은 이들은 모두 다 조정암 선생의 제자가 아니면 
김안국 선생의 제자들이었다. 그들은 조정암 선생과 김안국 선생이 다시 
나타난 것이라 기뻐하고 좋아했다. 조정암과 김안국은 신하이기 때문에 
뜻을 다하지 못하고 간신에게 몰려서 죽음을 당하고 벼슬이 떨어졌지만, 
세자 저하는 전하의 뒤를 이어 장차 임금이 될 사람이니 앞으로 세월은 
진정 훌륭한 요순의 선한 정치가 이루어 질 것이라 하여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 기대가 크지 않을 수 없었다. 세자의 보도관들은 세자에게 
충성을 다하면서 조정암이 다 피지 못한 유교 정치를 다시 한 번 실현할 
것을 마음속으로 맹세했다. 그들은 강의가 있을 때마다 정암 선생과 
김안국 선생의 도학을 다시 이야기했고, 정암 선생이 사숙한 인물인 
동소문 안의 갖바치 이야기까지 한 일이 있었다. 세자는 귀를 기울여 어진 
이들의 말을 폐부 속에 깊이 새겨들었다.
  후마마는 점점 조바심이 되어간다. 자기 나이는 서른 여덟, 활짝 핀 
꽃이다. 이제 더 필래야 피어질 수 없는 다 벌어진 꽃이다. 여기다가 
전하는 점점 노경으로 들어갔다. 오심이 넘은 중노인이었다. 그러면 세자의 
나이는 몇이나 되었던가. 스물 넷, 한창 씩씩하게 피어날 대로 피어날 수 
있는 청년 동궁이었다. 여기 견주면 후마마의 아들 경원대군은 아직도 
기저귀를 면치 못한, 포대기에 싸여 있는 다섯 살짜리 어린이였다. 세자는 
삼십에 가까운 적자니 앞으로의 대권을 잡아 전하의 자리에 나아가는 건 
요지부동인 불천지위였다. 이런 데다가 자기 아들은 세자의 나이에 견주면 
너무나 어리다. 삼십에 가까운 청년 세자와 다섯 살 난 어린 대군은 
비교해 본대야 견주어 볼거리도 되지 못했다.
  더구나 전하는 점점 늙어 꼬부라져 들어가는 것이었다. 전하의 정력은 
누구보다도 후마마가 더 잘 알았다. 작년이 옛날이요, 가을철은 지난 
봄철만도 못했다. 만약에 전하의 기력이 점점 쇠약하여 세상을 떠나는 날 
자기의 신세는 아무런 권세도 없는 뒷방의 이름뿐인 대비가 될 것이 
분명하고, 자기의 어린 아들 경원대군은 세자와 피를 같이하지 않은 
형제라 물결 거센 이 정계에서 어느 지경에 떨어질지 모를 일이었다. 
거기다가 바깥소문은 몸서리가 쳐지도록 송구한 소리만 후마마의 귀에 
들려 왔다.
'윤임이 김안로가 나가떨어지는 것을 보자. 자기의 앞일이 어떻게 될는지 
몰라서 먼저 선손을 걸어서 경원대군을 없애 버린다.'
하는 기막힌 소문이었다. 비록 다섯 살밖에 아니된 경원대군이지마는 세자 
편에서 본다면 젊은 후마마와 전하가 있으니 세자를 갈아치우기는 손바닥 
뒤집기보다 더 쉬운 노릇이었다. 그럴 듯한 소리였다. 후마마는 음식 맛이 
없었다. 식음을 전폐했다. 이 소문은 요녀 난정이 윤원형을 시켜서 조정에 
퍼뜨려 놓은 소문이었다.
  식음을 전폐하다시피한 후마마의 아름다운 얼굴은 나날이 초췌해 갔다. 
어느 때는 자리에 눕기까지 했다. 조석으로 후마마를 대하는 전하는 
요사이 와서 바짝 얼굴이 여위고 가끔 자리에 누운 왕비를 바라보자 
걱정이 아니 될 수 없었다
"중전, 요새 얼굴빛이 좋지 못하오. 어디가 괴로웁소? 듣자하니 음식도 잘 
들지 않는다 하니 큰일이오. 빨리 내의를 불러 진맥을 하도록 하시오."
전하는 근심스러운 듯 얼굴 야윈 후마마의 이마에 손을 얹는다. 늙게 
또다시 상처나 하면 큰일이었다. 전하께서 수심에 잠겨 버린다.
"황공하오이다. 첩의 몸의 여위고 쇠해지는 것은 병이 아니옵니다. 병이 
아닌 바에는 약은 써서 무엇 하오리까. 차라리 시들어 이 세상을 떠나는 
것만 같지 못하옵니다."
말을 마치자 후마마는 눈물이 비오듯 흘렀다.
"벙이 아니라?"
병이 아니란 소리에 전하는 더한층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름답게 야윈 
후마마의 젊은 얼굴은 오히려 가련한 한 송이의 해당화꽃이었다.
"................"
후마마는 대답이 없이 눈물만 흘렸다.
"병이 아니라니. 의원을 보이기 전에 중전이 어떻게 병이 아닌 것을 
아오?"
전하는 후마마의 싸늘한 손을 쥐었다. 
"손끝마저 싸늘하구려."
전하는 후마마의 싸늘한 손을 만져 보자 더욱 놀란다. 후마마의 눈에서는 
여전히 구슬 같은 눈물이 낙숫물 떨어지듯 했다.
"몹시 괴로운가 보구려. 어서 전의를 불러 봅시다."
"전하, 소란을 떠시지 말아 줍시오. 첩이 괴로운 것은 병이 아니래두."
후마마는 뜻을 몰라주는 전하가 야속하다는 듯 눈물 이런 눈을 곱게 떠서 
전하를 바라본다.
"그럼 병이 아니면 무엇이요."
전하는 강하게 후마마의 사늘한 손을 잡는다.
"저는 공연하게 전하한테로 대혼을 했습니다.
"그게 웬소리요?"
전하는 깜짝 놀란다. 
"지난번에는 김안로한테 쫓겨날 뻔했더니, 이번에는 자식인 세자한테 죽는 
꼴을 당하게 되었으니 탈이 아닙니까. 모두가 이것이 소비가 전하께로 
대혼을 한 탓이옵니다."
말을 겨우 마친 후마마는 또다시 눈물이 억수같이 쏟아져서 베개위로 
흥건하게 흘렀다.
"자식인 세자한테 죽는다? 그게 무슨 소리야? 대군을 세자가 없애려고 
든단 말요?"
전하의 목소리는 분노에 터져서 높았다.
"왜 이리 어성을 높이시옵니까? 옆에서 궁녀들이 듣사옵니다."
전하의 어수가 부들부들 떨린다.
  전하는 이제 조정이나 유림은 완전히 세자 편인 것으로 생각이 들었다. 
자기의 나이는 점점 늙어 가고 세자는 이십이 넘어 삼십 줄에 들었다. 
어린 이복동생이 혹시나 세자의 지위를 뺏을 까 하여 미리 순을 잘라 없애 
버리려는 것이 분명했다. 전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정어정 방안을 
거닐었다. 분함을 못 이기어 팔과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동궁빈이 있다. 
동궁빈의 떼가 있다. 선비들 유림이 있다. 조정의 신하들은 뒷길을 보기 
위하여 모두 다 세자를 추앙하고 있다. 이것은 세자가 동생인 대군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모두 다 주위에 있는 이것들이 이 짓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이 들었다. 전하는 어정버정 방바닥을 미친 듯이 거닐었다. 
이미 이십 년 전에 세자를 책봉해 놓았으니 꼼짝없이 세자는 건드릴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이것은 국법이었다. 조상인 종묘와 천지 신명인 사적에 
이미 고하고 봉해 놓은 세자였다. 이제는 나마저 밀리는 판이구나. 전하는 
이쯤 생각했다. 전하는 다시 펄썩 방바닥에 주저앉는다. 그러나 불쾌했다.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 전하는 또 다시 어정버정 거닐었다. 안절부절을 
못 한다.
  이때 다섯 살 먹은 대군이 들어왔다. 후원에서 내시하고 활을 쏘는 
장난을 하다가 전각 마루를 작은 발로 통통 울리면서 뛰어 들어온다. 다섯 
살 먹은 대군의 재롱은 한참이었다.
"어마마마, 내가 활을 다섯 번이나 쏘아서 이겼어."
어린 손으로 서온돌의 장영창문을 드르륵 열었다.
"아바마마께서 듭시었는데, 웬 수선인가."
후마마는 자리에 일어나면서 어린 대군을 타이른다. 어린 대군은 
어마마마의 말씀을 듣자 얼른 고개를 들었다. 아바마마가 방 속을 거닐고 
계신 것이었다. 얼른 손에 들었던 활을 놓고 공손히 절을 한다. 전하는 
막내아들인 대군의 어린 모습을 바라보자 분한 마음이 잠깐 가라앉는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왔느냐?"
"후원에서 활을 쏘고 돌아왔습니다."
"활을!"
아바마마인 전하의 입이 딱 벌어진다.
"활을 쏘아서 과녁을 맞춰 보았느냐?"
"네, 다섯 번을 맞춰 보았습니다."
"오중을 했구나. 허, 허, 허."
전하는 번쩍 대군을 쳐들어 안았다. 귀여워서 빰을 대어 본다. 순간 전하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 어리었다.
"활을 쏘았어? 활도 쏠 줄 알아야 한다마는........"
전하의 목소리는 목이 쉰 듯 흐렸다. 어린 대군은 무슨 뜻인지 몰랐다. 
전하는 대군을 안은 채 두어 바퀴를 돌았다. 전하는 대군을 안은 채 두어 
바퀴를 돌았다. 이내 펄쩍 주저앉는다. 대군은 아바마마한테 그대로 안겨 
있었다. 전하는 대군을 무릎 위에 올려 앉히고, 머리를 쓸었다. 눈물이 
또다시 글썽글썽 어렸다.
"네가 공주가 되었더라면 무슨 걱정이 있으리."
전하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면서 새어 나온다. 전하의 떨리는 목소리를 
듣는 후마마의 흐느껴 우는 소리는 더한층 높았다. 전각은 첩첩한 시름 
속에 잠겼다. 후마마의 철읍 소리를 듣는 전하의 내장은 굽이굽이 
난도질을 치는 듯하다.
"네가 사내가 됐기 때문, 고생바자기로구나!"
전하의 입에서는 또다시 괴탄이 터지어 나왔다.
"제왕의 자리도 내놓고 우리 세 식구 절간으로 가사이다."
울음 반 말 반으로 후마마의 목소리가 느껴 떠는 울림 속에서 새어 
나온다.
"아아, 절간으로!"
전하는 오장육부가 터지는 듯 부르짓는다. 또다시 후마마의 철읍 소리가 
들려왔다.
"보처자를 하자면 그렇게라고 하여야지!"
긴 한숨이 휴 소리와 함께 전하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아닌게 아니라 이 세상 저 세상 모든 근심을 다 잊어버리는게 상팔자야."
전하는 대군의 머리를 또 한 번 쓸면서 목멘 목소리로 탄식을 하고 
일어선다.
"어서어서 결정을 내리옵소서, 몸서리가 쳐져서 살 수가 없사옵니다. 
우리가 머리를 깎고 중이 되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후마마는 고개를 들어 눈물을 씻으면서 쨍한 음성으로 또렸이 아뢴다.
"어마마마, 왜........?"
다섯 살 먹은 어린 대군이었다. 어마마마의 우는 까닭을 몰랐다. 이 소리를 
듣는 전하의 가슴은 금창이 미어지는 듯했다.
"그저 슬퍼서........"
"왜 슬프오?"
천진난만한 어린 대군의 목소리다. 전하는 차마 이 자리에 더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대군을 무릎 아래 슬며시 내려놓고 외전으로 나간다.
  전하는 밤새도록 괴로웠다. 날이 밝은 뒤에도 고민 속에 빠져 있었다. 
차마 절간으로 가서 중의 몸이 될 수 없었다. 그는 임금의 자리를 
내놓기로 결심했다. 세자에게 전위한다는 글을 친히 지어서 쓰고, 정부 
전원과 중경 삼정승, 육조판서, 판윤 이상의 벼슬했던 사람들까지 모조리 
불러들이라는 명을 내렸다. 돌연 급히 부르는 명패들을 받자 만조백관들은 
황황히 합문밖으로 모여들었다. 
  전하는 신하들을 면대하지 않고 세자에게 선위한다는 사유를 글로 써서 
내렸다. 까닭은 밝히지 아니했다. 다만 나이 오십이 넘고 차차 몸이 쇠약해 
가니 임금의 자리에서 물러앉아 대권을 세자하테 전한다는 것이었다. 
만조정 신하들은 깜짝 놀랐다. 다만 난정의 남편인 윤원형 한 사람이 
속으로 이 일을 알 뿐 참으로 마른하늘에 천둥 같은 일이었다. 
  만조백관들은 서로들 얼굴만 쳐다보는 것이었다. 
"웬일인가?"
"아직도 근력이 정정하신데."
"이상도 하다."
"큰일이로다."
"윤임하고 윤원형이하고 세도 싸움을 하는 꼴이 보기 싫어서 선위를 
하신다는 것이 아닌가?"
모두들 수근거렸다. 
  세자는 정말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질고 착한 세자였다. 아버지가 
살아계신데 임금의 대권을 받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맨발을 벗고 
스스로 죄인을 자처하여 거적거리를 합문 밖에 깔고 대죄를 드렸다. 
"어바마마, 이것이 웬 말씀이오이까. 아바마마 생전에 선위를 하시다니 
말씀이 되시나이까? 이것은 불초자에게 죽으라는 말씀이옵니다. 다시 명을 
거두어 주옵소서."
통곡을 하면서 빌었다. 삼정승 육판서는 전하를 면대해 뵙고 아뢰기를 
요구했다. 그러나 전하는 대면하기를 거부하면서 글로 대답을 했다.
"세자는 나이 삼십에 가까웠을 뿐 아니라 정치에 통하고 학식이 고명하니 
대신들은 세자를 도와 밝은 정치를 할 것이요. 세자에게 이미 대보까지 
전했으니 세자가 아무리 울고 사양하나 내 뜻이 이미 결정된 일이니 
경들은 빨리 세자를 왕위에 나가도록 하라."
지엄한 분부가 내려졌다. 
  영의정 윤인보, 좌의정 홍언필, 우의정 김극성, 좌찬성 소세양, 우찬성 
윤임, 호조판서 조계상, 이조판서 윤인경, 형조판서 성세창, 공조판서 
이구령, 병조판서 양연, 한성판윤 이기 등은 합문에서 밤을 세우면서 반대 
상소를 올렸다. 영중추부사 정광필도 통곡을 하면서 상소를 올렸다.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삼사가 일어나서 불가하다는 상소를 올렸다.
세자는 이틀 밤을 꼬박 새우면서 통곡을 하며 석고대죄를 계속해서 
들렸다. 
  결국 사흘만에 가서야 전하는 세자에게 전위한다는 의사를 변의했다.
    불
  전하가 임금의 자리을 내놓겠다는 내선 소동은 세자의 머리 풀고 발 
벗고 통곡하여 애걸하는 지극한 효성과 삼정승, 육판서와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삼사들의 반대로 사흘 동안을 끌다가 결국 가라앉게 되었다.
  세자의 외삼촌인 윤임은 무식한 무부였으나 김안로가 떨어져 나간 
뒤에는 자기의 세력이 너무도 고립무원의 상태로 빠져 있는 것을 느꼈다. 
동궁인 세자의 학문이 점점 높아 가고 세자의 주위에는 시강원의 어진 
사람들이 많이 있게 되니 윤임이 손을 뻗어 어진 선비들과 사귀기 
시작했다. 그는 조정에서 선비들을 많이 두어 한편으로는 동궁의 지위를 
확보하고 한편으로는 은근히 자기의 정치적 세력을 유림 속에 두기로 
했다. 이러한 윤임의 노력으로 차차 조정에는 정암 조광조 선생의 제자가 
하나씩 둘씩 벼슬자리에 나아가게 되었다. 
  당장은 조광조 선생이 실천했던 현량과의 과거라든지 유도 정치는 곧 
실천이 되지 아니했으나, 조정암 때 귀양을 갔던 모재 김안국이 조정으로 
돌아와서 이륜행실과 주자대전을 간행하여 세상에 반포하고, 조정암 
선생의 제자 주세붕은 풍기군수가 되어 고려 때 유학을 처음으로 개척한 
안유 선생의 서원을 지어 위패를 모신 뒤에 백운동 서원이라 이름하고 
이곳에서 선비들이 학문을 강론하게 하니 이것이 우리 나라 서원의 첫 
시작이었다.
  김안국은 다시 전하께 아뢰어, 팔도감사에게 영을 내려서 학문이 깊고 
덕망이 높은 은일을 뽑아서 과거를 보지 않고도 벼슬을 주게 하니 
개성에서는 화담 서경덕 선생이 뽑히고, 서울에서는 청송 성수침 선생이 
추천되고, 영남에서는 남명 조식 선생이 천거되었다. 나라에서 그들 
은일들을 발탁하여서 초사벼슬을 주었으나 그들은 모두 다 벼슬을 받지 
않고 사퇴해 버렸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일은 다시 차차 정암 선생이 
주장했던 유학 정신의 정치가 다시 실현되는 분위기를 조성시켰다. 
선비들은 조금씩 숨을 돌리면서 다시 생기를 얻기 시작했다.
  세자는 몸조심을 하면서 학문을 닦고, 더욱 지성스럽게 전하와 계비인 
후마마를 받들고, 이복 동생인 경원대군한테 우애의 정으로 대했다. 원래 
몸이 튼튼치 못한 세자는 나이 삼십이 가까워졌으나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지성스런 공부와 전하와 후마마의 마음을 평안케 하려는 지극한 
노력으로 온 정신을 기울이는 까닭에 몸은 점점 약해지고 가냘퍼 갔다. 
그는 그 덕과 유학의 정신으로 온몸을 반숙했으므로 언제나 항상 반성하고 
자책하는 힘이 강했다. 어릴 때부터 궁중에 자주 변괴가 일어나는 것은 
모두 다 자기 자신이 어머니 없는 몸으로 계비인 후마마를 모시는 효성이 
부족한 데서 일어난 것이라 자책을 했다. 지난번 부왕 전하가 자기한테 
왕위를 전위하겠다고 돌연 옥쇄를 내놓고 선위하는 전교를 내린 것도 
자기의 효성이 지극치 못한 탓이라고 자책하면서 더욱더 전하와 후마마께 
효성을 올렸다.
  세자는 이렇게 자기를 반성하고 자책하면서 효성을 다하기 위하여 
전하와 후마마께 하루에 한 번씩 들어가던 문후를 두세 번씩 살폈다. 
더욱이 후마마와 세자의 나이의 차는 열 살밖에 되지 아니하나 어마마라 
지성껏 부르면서 어머니로 받들었다. 이러한 소심한 정신적 불언과 제재는 
그의 육체를 더욱더 약하게 만들었다. 동궁은 나이 삼십이 되었지만 아들 
하나, 딸 한 명을 낳지 못했다.
  전하는 세자가 어린 대군을 없애 버리려고 한다는 후마마의 말을 들은 
뒤에 세상 만사가 다 귀찮아서 임금의 자리까지 내놓으려 했으나, 그것도 
또한 용이치 않은 일이었다. 동궁의 지극한 효성과 신하들의 들끓는 
여론을 어찌할 수가 없어 그대로 왕의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으나 차차 
나이 먹어 갈수록 인생의 허무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세자도 아들이요, 
대군도 아들이다. 아들과 아들이 골육의 참변을 일으키지 않기만 
마음속으로 바라고 빌었다. 세자의 성격과 세자의 행동으로 보아 지금 
같아서는 자신의 동생인 대군을 죽일 것 같지는 않았다. 세자는 경빈 박씨 
사건과 복성군 사건이 일어난 뒤에 경빈 박씨의 딸들과 복성군의 딸을 
천한 백성을 만들어 내버려둔다고 지성껏 간한 일이 있었다. 이러한 어진 
마음을 가진 세자가 대군을 죽일 것 같지는 아니했다. 역시 후마마가 아랫 
사람들의 말을 잘못 듣고 한 소리가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기도 했다.
  전하는 이십 대의 젊은 나이로 형님 연산을 쫓아내고 왕위에 오른 뒤로, 
차마 못 당할 애끓는 일을 너무나 많이 당했다. 까닭없이 공신의 등살에 
생이별을 했던 폐비 신씨의 일, 신씨는 아직도 살아 있어 오십여 세의 
늙은 나이로 외롭게 자기를 사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에는 동궁의 
어머니 윤왕후를 죽음으로써 이별한 일, 경빈 박씨를 쫓아내고 아들 
복성군에게 약사발을 안겨 죽인 일, 사위 당성군 홍려를 장하에 때려 
죽이고 두 딸과 손녀를 대궐에서 쫓아낸 일 등, 모두 다 자기가 하기는 한 
일이나 어찌할 수 없이 얽매여 들어가서 이렇게 처단하지 않고는 못 
견디게 되어서 한 일이었다. 이제는 임금의 자리도 입에 신물이 나도록 
괴롭고 쓸쓸하고 허무하고 허탈이 되었다. 마음이 괴롭고 허무하고 허탈이 
되니 나이 육십 미만에 벌써 전하는 늙은이가 되어 버렸다. 마음도 늙고, 
몸도 늙었다. 그저 현상을 유지한 체로 아무 일이나 일어나지 않기만 
바랐다.
  후마마는 전하를 격동시켜서 세자궁한테 큰 벼락이 떨어지도록 했으나 
일은 빗나가 버리고 말았다. 전하는 임금의 자리를 내놓으려다가 군신과 
세자의 지성에 못이겨 다시 왕위에 앉아 버리게 되었다. 후마마나 
난정이나 윤원형은 이번 일을 계기로 하여 세자를 갈아 버리고 대군을 
세자로 들여앉혔으면 일은 저절로 들어맞는 일인데, 전하는 이러한 용단을 
내지 못하고 세상 만사가 모두 다 귀찮아져서 절에 가 중이 될 생각을 
했다가 그것도 용단을 내지 못하고 겨우 임금의 자리를 내놓으려다가 다시 
자리에 앉아 버렸다. 이번 일은 실패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후마마와 
난정은 잠깐 다음 기회를 노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 기회는 얼른 오지 않았다. 세자의 나이는 완전히 삼십이 되었다. 
몸은 비록 약하다 하나 삼십 먹은 동궁이었다. 동궁의 지위는 
요지부동이었다. 한박산의 바윗돌보다도 더 굳었다. 그러나 이 반면에 
전하는 자꾸 늙었다. 세월이 갈수록 마음도 늙고 육체도 늙었다. 이제는 
전하의 늙음이 완연히 후마마의 눈에 드러나도록 비쳐졌다. 정력은 말할 
것도 없고 요새 와서는 눈이 퀭했다. 눈이 흐려서 보이지 않는다고도 했다. 
귀가 먹먹해서 들리지 않은다고 했다. 젊은 후마마는 전하의 정력을 잘 
잠작하고 있었다. 후마마는 초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이러다가 
전하가 덜컥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나는 날, 자기의 일은 물거품이 되고, 만 
가지 일은 허사가 될 것이었다. 일이 허사가 되는 것뿐이 아니었다. 
  후마마의 나이는 한창 사십대의 세상 재미를 알 나이요, 대군의 나이는 
열 살밖에 아니 되는 아해였다. 한참 싱싱한 과부와 철없는 아해가 전비 
소생인 새 임금 밑에서 뒷방 차지가 되어 풀 죽은 생활을 하고 살아갈 
생각을 하니 기막히고 딱한 일이었다. 아무리 해도 전하가 대권을 잡고 
살아 있는 동안에 결정이 나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뒤엎어지는 
기적이 있기 전에는 용이하게 결정은 나지 않을 것 같다. 후마마는 
초조했다. 후마마가 초조한 것은 곧 난정의 초조요, 난정의 초조는 
윤원형의 초조가 되는 것이었다. 
  난정은 며칠을 두고 계속 후마마한테로 자주 드나들었다. 날마다 은밀한 
이야기가 후마마와 난정 사이에는 계속되었다. 하늘도 모르고 땅도 모를 
예기였다. 그러하니 사람들이 알 까닭이 없었다. 
  계묘는 정월 초이렛날 야삼경의 일이었다. 대궐 안은 새해라 해서 연일 
만복의 축하를 드리는 환락 속에 잠겨 있었다. 궁중에서는 축하하는 
의식이 날마다 벌어지고 종척들의 문안비가 끊일 새 없이 드나들었다. 
밤에는 후궁과 궁녀들이 방마다 윷놀이이, 잣불놀이로 즐거운 연회를 
꾸며서 미인들의 웃음 가락은 밤 깊도록 구중 궁궐에 화사했다. 자정 때가 
넘어서 모든 궁에서는 불들을 끄고 삼천 궁녀들은 고단한 잠 속에 깊이 
들어 있을 때였다.
  모든 것이 어둠 속에 싸인 구중 궁궐의 깊은 밤, 다만 하늘에는 
은갈구리 같은 초승달이 소리 없이 높이 떠서 꿈속같이 대궐 전각의 
천간들이 비늘 같은 기왓장을 비치고 있을 뿐이었다. 이때 돌연 검은 
그림자 하나가 환락 속에 잠든 궁궐 속으로 나타났다. 어느 전각에서부터 
걸어 나왔는지 알 길이 없었다. 검은 그림자는 엷은 초승달 빛이 도리어 
무서운 모양이었다. 자취를 죽여 전각 기슭을 다람쥐처럼 돌았다. 한동안 
전각 기둥을 껴안고 자취를 죽여 돌던 검은 그림자는 동궁 침전 
머리빼기에 서자 숨을 죽이고 안팎 동정을 살폈다. 침전 안에서는 
평화로운 잠 속에 깊이 든 숨소리만 새근새근 새어 날 뿐이었다. 
  검은 그림자는 마침내 품 속에서 육중한 자물쇠를 꺼내 들자 안으로 
잠겨진 정전 출입문의 바깥 고리를 가볍게 걸고 덜컥 자물쇠를 잠가 
버렸다. 그러나 희미한 달빛 아래 검은 그림자의 손길이 부르르 떨렸다. 
전각 안에서는 여전히 깊은 잠을 이룬 평화스러운 숨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동정을 살피던 검은 그림자는 두 번째의 행동을 취하기 
시작했다. 기름 묻힌 솜뭉치를 침실 분합 창살 틈마다 끼어 놓은 채 
부싯돌을 쳐서 불을 일으켰다. 부싯돌은 반짝하고 줄불을 뿜으면서 
부싯깃에 불이 붙었다. 
  빨갛게 피어난 부싯깃 불은 교창 틈틈이 끼어 놓은 기름 묻은 솜뭉치로 
불이 붙기 시작했다. 정월 바람은 차고도 강렬했다. 바람을 따라 교창에 
끼어 놓은 기름 묻은 솜뭉치에는 활활 불이 붙기 시작했다. 검은 그림자는 
쓴웃음을 웃으며서 사라졌다. 윤원형이었다.
  교창에 붙은 금실 설주를 그을리면서 도리 위로 옮아붙기 시작했다. 
입춘을 지난 정월 바람은 소리를 치면서 불었다. 센 바람은 마침내 붙어 
오를 불길을 강하게 부채질해 주었다. 몇 백년 묵은 유주목 바싹 마른 
재목들이었다. 불길은 바람을 타고 길길이 붙었다. 
  침실 안에서 잠이 들었던 세자는 별안간 숨이 콱 막히고 콧구멍과 
목구멍이 싸했다. 세자는 깜짝 놀라 잠을 깨었다. 뻘건 화광이 자기가 
누워있는 쌍창에 비쳤다. 세자는 깜짝 놀라 영창을 밀쳐 보니 시뻘건 
불길이 도리에서 늘름거리면서 추녀 끝으로 옮아 붙는 것이었다.
세자는 무의식 중에. 
"불이야?"
소리를 높이 부르짓으면서 침실에서 뛰어나갔다. 건너편 서온돌에는 
동궁빈 박씨가 있었다. 세자는, 
"불이야!"
소리를 또 한 번 치면서 세자빈이 있는 방으로 뛰어들었다. 이때 세자빈도 
충천하는 화광에 소스라쳐 놀라 깨었다. 세자빈은 벌떡 일어나 세자를 
부축했다.
"동궁마마, 어서 피하옵소서. 어서 밖으로 나시옵소서."
  세자와 세자빈은 한덩어리가 되어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길을 피하면서 
정전문으로 향하여 달렸다. 다행히 정문에는 아직 불길이 돌지 않았다. 
세자빈은 안으로 잠근 문고리를 풀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정문은 열리지 
아니했다. 동궁과 동궁빈은 바로 직전에 검은 그림자가 밖으로 잠가 놓은 
것을 알 까닭이 없었다. 그러나 정전문은 끄떡이 없었다. 동궁과 동궁빈은 
목이 터지도록, 
"불이야!"
하고 소리를 질렀다. 동궁과 동궁빈을 모셨던 양제들이 비로소 같은 
골방에서 쏟아져 나왔다. 전각은 불바다였다. 이제는 화광이 온 전각으로 
돌았다. 연기가 자욱했다.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나어린 양제들은 곡을 
하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모두들 전각 속에서 타 죽게 됐다. 동궁과 
동궁빈은, 
"문을 열어라."
"문을 열 사람은 없느냐?"
하고 고함을 친다 불길은 궁녀의 치맛자락으로 붙으며 늘름거렸다. 양제 
정씨는 송강 정철의 누님이었다. 정씨는 얼른 침방으로 뛰어들어가 
홍두깨를 들고 나와서 죽을 힘을 다하여 문을 두들겨 부셨다. 한쪽 문이 
뚝 떨어지면서 차가운 바람이 쏠려 들어왔다. 동궁과 동궁빈은 이 바람에 
밖으로 뛰어나갈 수가 있었다. 
  세자와 세자빈이 동궁을 벗어나 마당으로 뛰어나왔을 때 비로소 
춘방사령, 무예청별감, 정원사령들이 몰려왔다.
"불이야."
"불이야."
소리가 연달아 일어났다.
"어디 불이 났느냐?"
"동궁에 불이 붙었다."
"동궁?"
"큰일이로다."
불이야 소리는 악구머리같이 끓었다. 화광은 충천했다. 이제 불길을 미친 
듯 동궁 전체를 휩싸 안았다. 기왓장이 불길 속에서 탁탁 튀었다. 도리오 
들보가 천길 화영 속에서 으지적으지적 소리를 내면서 떨어져 나간다. 
대전의 삼천 궁녀들이 깜짝 놀라서 일어났다.
"불이야."
"불이야"
소리는 온 궁중 안에서 들끓었다.
"물을 끼얹어라."
"얼어붙어서 물이 있느냐? 정신없는 소리다."
사람들은 떠들기만 했다. 
  대전에서 전하도 깜짝 놀라 일어났다. 후마마도 일었다. 화광은 충천해서 
대전이 벌겋도록 비치었다.
"웬일이냐, 어디서 불이 났느냐?"
"동궁이라 하옵니다."
어전 지척에서 모셨던 지밀상궁이 대답한다.
"무어, 동궁?"
전하는 깜짝 놀랐다. 눈을 비비며 누마루로 뛰어올랐다. 과연 동궁 편에서 
화광이 하늘로 사를 듯이 기왓장이 튀고 대들보가 떨어지는 것이었다.
"동궁은 어찌 되었느냐, 동궁은?"
전하는 발을 동동 굴렀다.
"아직 동정을 모르겠사옵니다."
"아직이라니, 무엇들을 하고 있느냐. 내시들은 어디로 갔느냐. 무예청놈과 
대전별감놈들은 한 놈도 없느냐?"
전하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 소리를 높여 나인을 꾸짖는다.
대전내시와 무예청별감들이 들이닥쳤다.
"동궁은 어찌 되었느냐?"
"지금 뛰어가는 중입니다."
"이놈아, 지금 뛰어가다니? 저런 천참만륙을 할 놈이 있느냐. 동궁의 
안부를 삘리 물어 가지고 오너라. 그리고 정원에는 아무도 숙직하는 놈이 
없느냐? 급히 정원승지한테 동궁에 불이 붙었으니 사소입번한 군사들을 
얼른 풀어서 불을 두들겨 끄라 일러라. 빨리 동궁의 안부를 알아 오너라."
  전하는 턱이 떨리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대궐 안은 아수라장의 
불지옥을 이룬다. 전하는 혀가 마르고 입술이 탔다. 동궁을 집어삼킨 
불길은 마침내 자선당으로 옮아 붙고 자선당을 태우는 불길은 승화당을로 
옮아 붙었다. 승화당은 바로 지금 전하가 서 있는 대내 안과 맞붙어 있는 
전각이었다. 하늘을 사를 듯한 화광은 전하의 얼굴과 옷을 벌겋게 
물들였다. 화광은 전하를 모시어 서 있는 후마마의 얼굴에도 비쳤다. 
반짝이는 광채를 뿜는 후마마의 새카만 눈이 동궁을 집어삼키는 광란의 
화염을 똑바로 바라본다. 불 속에 타오르는 동궁의 얼굴이 떠올랐다. 
후마마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동궁 대들보가 콰다당 하는 큰 음향을 내면서 미친 화룡의 불길 속으로 
휩쓸려 와짝 떨어지는 모양이 후마마의 눈에 비쳤다. 천간들이 기왓장이 
와를 무너졌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 손이 오그라들면서 눈을 흡떠서 
후마마를 흘겨보는 동궁과 동궁빈의 원망스런 얼굴이 비쳤다. 후마마의 
등골엔 소름이 끼쳤다. 후마마는 이내 미친 불길을 더 바라볼 수가 없었다. 
두 손으로 눈을 푹 가리며 얼른 돌아선다.
  불은 점점 더 맹렬해졌다. 삼천 궁녀들의 곡성 소리는 천지를 진동한다. 
무예청, 춘방사령, 별감,사약, 입번군사들은 갈팡질팡 목 쉰 소리로 떠들고 
부르짖고만 있었다. 정원에서 승지가 사모가 벗겨진 채 상투 바람으로 
뛰어들었다.
"궐내에는 불을 끌 기구가 없사옵니다. 건춘문을 열어 놓고 금화사 
군사들을 불러들여서 불을 잡는 것이 어떠하올지 아뢰오."
승지는 턱을 달달 떨면서 아뢴다.
"건춘문이 아니라 광화문이라도 빨리 열어 젖뜨리고 어서 불을 잡도록 
해라. 그리고 동궁의 안부를 어서 알아 오너라."
전하의 초조는 절정에 올랐다. 이때 악구머리 끓듯 끓어대는 삼천 궁녀와 
예속들을 헤치고 양제 정씨는 세자와 세자빈을 보호하여 대전 뜰로 
들어섰다. 
"아바마마!"
전하의 눈에 비친 건 궁금하던 동궁이었다.
"동궁이냐?"
전하는 버선발로 누마루에서 뛰어내려 세자를 껴안았다.
"아바마마! 불효의 죄 크옵니다. 놀라시게 하여 황공무지하옵니다."
목메어 호소하는 세자의 눈에서는 눈물이 비오듯 쏟아진다.
"네가 살았구나."
늙은 전하의 용안에서도 눈물이 낙수처럼 떨어졌다. 타오르는 화공은 
전하와 세자가 껴안고 우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을 우련히 비쳤다. 
세자빈도 뒤에서 눈물을 머금고 양제 정씨도 치마로 얼굴을 가려 눈물을 
닦았다.
  어두컴컴한 속에서 '아바마마!'하고 부르는 동궁의 소리에 후마마는 
손으로 가렸던 눈을 얼른 떼었다. 동궁의 죽은 혼령인가 하고 후마마의 
등골에는 찬물을 끼얹은 듯 소름이 쪽 끼쳤다. 귀신의 혼령이 아니라 진짜 
동궁인 사람이 나타났다. 동궁빈도 보이고 양제 정씨도 보인다. 후마마의 
가슴은 뚝 떨어진다. 앞에는 태산 같은 절벽 바위가 다시 가로막고 있었다. 
동궁은 죽지 않고 완연히 다시 살아 있는 것이다. 눈앞에는 전하와 세자의 
우는 꼴이 보였따. 불길은 지금 동궁을 집어삼키고 자선당을 초토로 
만들고 승화당을 태우면서 대전으로 넘어오려 하는 것이다.
  세자와 전하의 껴안고 느껴 우는 모습을 바라본 후마마는 비로소 꿈 
속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섰다. 불은 대내 지척에 붙는데 후마마 자신은 
천금 같은 대군을 침실에 둔 채 그대로 전하를 따라 누마루로 올랐던 
것이다. 후마마는 미친 듯 누마루에서 뛰어 내려서 침실로 달음질쳤다. 
대군은 자리에 없었다. 후마마는 미칠 것 같았다.
"대군이 어디 있느냐. 대군이, 아기씨는 어디 있느냐?"
이때 지밀 나인은 후마마를 따라 대군을 등에 업고 누마루 아래 후마마의 
뒤에 있었던 것이다. 
"여기 있사옵니다."
후마마는 궁녀의 손에서 대군을 뺏아 으스러지도록 껴안아 보면서 입을 
맞춘다.
  건춘문은 활짝 열리고 금화사 군사들은 떡메와 괭이와 지레 등 불끄는 
연장을 가지고 들어와서 승화당을 부수기 시작했다. 동궁과 자선당은 이미 
다 타버렸으니 어찌할 수 없으나 붙어오르는 승화당은 바로 지금 전하가 
거처하는 대전과 마주 붙어 있는 전각이었다. 승화당을 부수지 아니하면 
대전마저 불바다가 되는 까닭에 두들겨 부수는 것이었다.
  대궐 안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자 밖에 있는 대신, 승지, 사관들은 
창황히 뛰어들었다. 불은 동궁에서 붙은 것이었다. 영의정 윤은보는 빈청에 
잠깐 들렀다가 불이 붙는 동궁으로 달렸다. 동궁의 외삼촌 윤임도 맨발로 
동궁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불길은 동궁을 다 삼켜 버렸으니 큰 
일이었다. 영의정 윤은보와 윤임은 승지에게 급히 묻는다.
"동궁저하의 행방이 어찌 되셨는가?"
"황망한 중에 미처 살피지 못했습니다. 필시 대내로 피난을 하셨을 듯 
합니다."
승지 조사수는 부들부들 떨면서 대답한다. 영의정과 윤임은 기가 막혔다.
"그게 무슨 소린가. 몸이 승지로 있으면서 먼저 동궁저하의 행방을 살피지 
못하고, 필시 대내로 피난을 하셨을 듯하다니 말이 되는 소린가?"
영의정은 준열히 승지를 꾸짖고 대전 편으로 걸음을 빨리 했다. 윤임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세자가 불 속에서 나오지 못했다면 큰일이다. 
영의정을 제쳐놓고 뛰었다. 윤임과 영의정은 지밀에 모여 서 있는 내시를 
붙들었다. 
"세자의 안부가 어찌 되셨나 알려 주게."
하고 합문 밖에서 당부를 했다. 내시는 전하의 전교를 맡아 나왔다.
"세자는 지금 나와 함께 있으니 염려 말라."
하는 말씀이 내렸다. 정월 찬 바람 속에도 땀을 뻘뻘 흘리던 영의정과 
윤임은 비로소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 금화사 군사들이 승화당을 부셔 버린 까닭에 불기운은 차차 
줄어들고 대전은 무사하게 되었다. 날이 비로소 환하게 동이 트기 
시작했다. 
  사헌부에서는 아무리 화재의 원인을 조사했으나 누구의 소위인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대사헌, 대사간, 양사 장관은 연명으로 해서 합계를 
올렸다.
"동궁의 화재는 우연한 변고가 아니옵니다. 전하의 진경하오신 일은 
조야의 신민이 다 함께 황송하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나이다. 그러나 화재 
난 원인을 알 길이 없사오니 더욱 답답하오이다. 아랫 사람들의 삼가지 
못한 소치라 하겠으나 재앙이란 것은 결코 저절로 나는 법이 아니오니 
반드시 까닭이 있는 일이라 생각하옵니다. 이러한 만고에 없는 변을 
심상하게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전하께서 각별히 경성하심이 좋을까 
하나이다. 놀랍고 참담한 마음 금할 길 없사와 궐정에 모여 아뢰나이다."
사헌부와 사간원에서는 먼저 의미 깊은 상소를 올렸다. 
  전하는 대사헌과 대사간에게 비답을 내린다.
"오늘 일어난 동궁의 화재는 놀라움을 형용해 말할 수 없다. 실화한 
원인은 나도 궁인들을 심문하는 중이라 알아 본 뒤에야 자세한 대답을 
내려니와, 비록 하인들이 잘못해서 불을 냈다 한들 어찌 헛되게 그대로 
났을 리가 만무하다. 날보고 경성하라한 말은 당연한 소리다."
전하는 우선 이렇게 비답을 내렸다.
동궁인 세자는 있을 곳이 없었다. 우선 대내 뒤에 있는 조그마한 전각에 
거처하고 곧 시강원 신하들에게 글을 내렸다.
"나의 박덕한 몸이 외람되이 동궁의 자리에 있으니 천감이 밝아 재앙을 
내린 것이다. 조종조로부터 백여 년을 계승해 전해 온 동궁이 하룻밤에 다 
타서 재가 되어 버렸으니 하늘이 나를 꾸짖은 것이거니와, 위로 성심을 
경동 시켰고 아래로 백료를 황황하게 했으니 이 같은 참혹한 변은 
옛적에도 듣도 보도 못했던 일이라, 내 몸을 돌이켜 책망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러나 무슨 소용이 있으랴. 어떻게 하면 내가 내 마음을 
처리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어찌했으면 좋겠는가? 원컨대 모든 붕료는 
스승 되는 선배와 함께 정확하게 나를 교도해 달라."
세자는 간곡하게 시강원 신하들한테 부탁하는 글월을 내렸다.
  전하는 아무리 화재 원인을 추궁했으나 실마리를 잡을 길이 없었다. 
나인과 후궁들을 국문한다면 또다시 큰 옥사가 벌어지는 것이 
지긋지긋하도록 싫었다. 하도 많이 옥사를 겪었으매 이에서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더구나 경빈 밖씨를 죽이고, 사랑하는 아들 복성군을 죽이고, 
사위되는 부마 홍려를 장하에 때려 죽인 뒤로부터는, 이런 일이 있기만 
하면 또다시 이 의옥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하고 마음이 먼저 떨렸다. 
전하는 무사주의를 취했다. 사건이 크기는 하나 화재의 원인을 덮어두는 
것이 제일 상책이라 생각했다.
  불이 꺼진 뒤에 조정에서는 수군수군 공론이 비등했다.
"뻔한 일이 아닌가. 동궁에 까닭 모를 불이 일어난 것은 동궁을 없애 
버리자는 고약한 놈의 짓이 아닌가."
"그렇다면 동궁의 불을 놓은 것은 윤원형의 짓이란 말인가?"
"동궁을 보호한다는 윤임과 반대되는 자리에 선 자의 짓이 분명하지."
"가엾은 일이야. 우리도 동궁을 보호해야 하네. 착하고 어진 세자가 무슨 
죄가 있는가."
"글세, 그렇기는 하지만 윤원형이 뒤에는 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하네. 
홑벌 윤원형이만이 아닐세. 왕후마마가 있고 세자와 대등한 대군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네."
"그렇지만 장유유서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 이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대경 
대법일세. 우리는 세자를 위하여 싸워야 하네."
선비들은 수군거렸다.
  수군거리는 공론은 마침내 밖으로 터져 벌고 말았다. 윤임의 편도 
아니요, 윤원형의 패도 아닌 가장 공평 정대하고 청렴 결백하다는 치예를 
듣는 정희등이 의분을 참지 못하여 먼저 조정 공석에서 말을 꺼냈다.
"요새 국가의 꼴이 이 지경이 되어가는 것은 윤원형과 윤임이 세력 
다툼으로 원수가 되어 틈이 난 까닭이다. 이렇듯 일이 자꾸 벌어진다면 
이것은 그들의 사사로운 싸움이 아니라 국가의 흥망에 관계되는 큰 
일이다.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나라가 망하고야 말 것이다. 먼저 대윤과 
소윤을 탄핵해서 반성을 시킨 후에 공과 사를 구별해서 나라 망하는 
놈들의 죄상을 천하에 폭로시켜야 할 것이다."
대윤은 윤임을 가리킨 것이요, 소윤은 윤원형을 말한 것이다. 정휘등이 
공석에서 말한 폭탄 선언은 마침내 조정공론을 물 끓듯 일으켰다.
"전하는 두 윤가들이 추잡하게 이렇듯 세력 다툼하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계실 것이다. 두 윤가놈들 때문 나라가 망하고야 만다. 전하께 이 일을 
폭로시켜 직소해야 할 것이다."
"동궁에 일어난 화재도 확실히 이것들이 곁고 틀다가 세자의 몸을 
위태롭게 하려는 망유기극한 음모에서 나온 행동이다. 이자들에게 크나큰 
본보기를 내리지 아니하면 나라는 망하고 만다."
불편 부당하다는 선비의 한패들은 윤임과 윤원형을 똑같은 자들이라 
몰아댔다.
  대윤인 윤임과 소윤인 윤원형은 떠들어대는 공론을 듣자 마음속으로 
은근히 떨었다. 만일 이 소리가 전하의 귀에 들어가기만 하는 날에는 두 
사람의 생명이 다 함께 위태할 것이다. 윤임은 조광조의 제자인 선비들을 
찾았다.
"그저 세자만 보호하도록 해주시오. 세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정암 
조광조 선생도 철저하게 주장하셨던 일입니다. 적자를 내놓고 다음 
아들이나 후궁의 아들이 임금이 된다는 것은 만고에 없는 노릇입니다."
윤임은 정암 선생의 제자들을 찾아가 간곡히 변명을 했다.
  대사간 구수담은 엄정 중립한 정희등과 보조를 같이 했다. 구수담은 
마침내 경연 자리에서 주저없이 전하께 직간하는 말씀을 올렸다.
"이번 동궁에서 일어난 화재 원인은 궁안 하인의 죄도 아니요. 후궁의 
죄도 아니옵니다. 윤임과 윤원형의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져서 마침내 
여기까지 이르렀다고 세상 공론이 비등하옵니다.
바른 대로 쏘아붙였다. 전하도 눈치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기에 
또다시 기막힌 참담한 옥사가 일어날까 두려워하여 무사주의를 쓴 
것이었다. 그러나 이 말이 막중한 대사간의 입에서, 더구나 공공연한 경연 
자리에서 떨어지고 보니 임금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겉으로는 크게 
노한 체 아니할 수 없었다.
"동궁의 화제 원인이 이 두 신하의 권세 다툼에서 일어났단 말이냐? 빨리 
사실을 조사해서 바치라."
엄한 분부를 내렸다.
  전하가 지엄한 분부를 내렸을 때, 정직은 하나 미련하다는 별명을 듣는 
정언 심령이 불끈 아뢴다.
"동궁의 화재는 불이 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불을 지른 것이라 합니다. 그 
증거는 세자 저하의 주무시는 침전을 밖에서 자물쇠로 잠갔다 합니다. 
이리하여 세자 저하는 간신히 문을 부수고 피화를 하셨다 합니다. 사적이 
현저합니다. 궁중 안 사람들은 다 모두 간신 윤원형의 소위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윤원형을 극형에 처하시어 동궁을 모해한 죄상을 천하에 
밝히시옵소서."
기막힌 폭로였다. 만좌는 악연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서로를 
돌아다보면서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전하도 하도 엄청난 소리라 얼른 
무엇이라 대답을 내리지 못한다. 
  이때 경연관으로 옥매향의 애인이었던 임백령도 참석하고 있었다. 
당장은 은인 윤원형이 몰리는 것을 보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까딱 잘못하면 윤원형은 죽는 사람이요, 자기의 애인 옥매향을 뺏아간 
윤임만이 살아서 세도의 독천장이 될 판이었다. 임백령은 목소리를 
가다듬어 점잖게 말한다.
"막중한 의심된 일을 경솔하게 사람을 지적하여 말한다는 것은 불가하다 
생각하오. 더구나 어전 지척에서 함부로 불경스러운 소리를 기탄없이 
건네니 이것은 학문 있는 경연관의 체통이 아니라 생각하오. 동궁에서 
실화한 불상사에 대해서는 전하께옵서 성념을 수고롭게 하시어 친히 궁중 
액속들에게 엄하게 물으시어 아직도 조사를 하시는 중이온데, 궁중 사정을 
모르는 외신(外臣)이 무엇을 안다고 함부로 유언비어를 내어 경솔한 
입술을 놀려서 막중한 전하의 경연 석상에서 성심을 괴롭히니 요망하기 
짝이 없다 생각하오. 성상께오서 충분한 진상을 조사하시어 불이 난 
원인을 파악하신 연후에 신하들은 마땅히 여기 대하여 충성스런 소견을 
피력해 아뢰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오. 경솔한 대사간과 요망한 정언을 
죄수옵소서."
임백령의 장강 대하 같은 웅변에 만좌는 고개를 숙였다. 전하도 점두해 
머리를 끄덕인다.
"동궁 화재에 대해서는 다음날 다시 아뢰기로 합시다."
다른 경연관 한 사람이 만좌를 돌아보며 발론을 한다. 대사간 구수담도 할 
말이 없고, 정언 심령도 말이 막혔다.
  전하는 내전으로 입어를 하고, 경연관들은 뿔뿔이 헤어졌다. 사흘이 
못가서 윤임과 윤원형을 죄주자는 대사간 구수담과 동궁에 불을 지른 자는 
윤원형이라 지적한 정언 심령은 벼슬이 갈려 버리고 말았다. 불은 권세 
다툼으로 일어난 일이라 끝끝내 이 일을 밝히는 날에는 대윤인 윤임도 
넘어가고 소윤인 윤원형도 치워 버리게 된다. 윤임을 두둔하는 사람들도 
입을 닥쳐 버리고, 윤원형을 두둔하는 패들도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동궁의 실화 사건은 다시 더 탄핵하는 신하가 없었다. 변고는 깊고 깊은 
안개 속에 싸여버린 체 세월이 흘러가 버리고 말게 된다.
  윤원형과 난정은 경연에서 물러 나오는 임백령을 자기 집으로 청하여 
백골난망의 사례를 올리며 융성한 대접을 했다.

    새 임금
  동궁에 불이 난 사건이 있은 뒤부터 전하의 정신과 몸은 더욱 피곤하고 
늙어갔다. 전하의 몸이 쇠약해질수록 조정에서는 윤임과 윤원형의 싸움은 
절정에 올랐다고 수군거렸다.
"윤임은 세자를 보호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고 윤원형은 세자를 없애 
버리고 대군으로 전하의 뒤를 받들게 하려고 갖은 계교를 다 쓰고 있다."
이러한 소문은 공공연하게 떠돌았다. 일년의 세월이 흘렀다.
  전하는 마침내 병이 들었다. 별안간 산증 기운이 뻗치면서 복통이 
일어났다. 산증 기운은 이틀 전부터 뻗치기 시작했으나, 전하는 참고 
있었다가 비로소 약방에 말씀을 내렸던 것이다. 전의들은 약방문으로 
지황탕 화제를 내었다. 그러나 대내에는 숙지황이 떨어져 약을 지을 수가 
없었다. 전의감과 혜민서에 영을 내렸으나, 두 곳에서도 지황이 떨어져 
없었다. 급히 사람을 황주와 봉산으로 내려보내서 부랴부랴 지황을 
캐들이게 했다. 
  세자는 효심이 지극했다. 식음을 전폐하고 병상에 누운 전하를 밤과 
낮으로 모시었다. 전하의 병은 십여 일이 넘으니 더욱 중태로 빠져들었다. 
세자는 눈보라치는 엄동이건만 날마다 목욕재계를 하고 뜰에 내려서 
하늘에게 아바마마의 병이 하루바삐 차도가 있기를 빌었다. 그러나 전하의 
병세는 조금도 효과가 없었다. 세자는 친히 대신들에게 분부를 내려 
종묘와 사직이며 산천에 기도를 드리게 했다. 그러나 효험은 여전히 
없었다. 전하는 병이 든 지 이십여 일에 자기는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을 
느꼈다. 전하는 병환 중에도 아직 정신이 있었다. 특별히 좌의정 홍언필, 
우의정 윤인경과 승지, 사관들을 급히 들라하는 어명을 내렸다. 이 
자리에는 후마마도 청하지 않고 윤임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윤원형도 
허락하지 아니했다. 
  두 대신은 승지와 사관을 대동하고 급히 전하의 병상 앞에 부복했다. 
전하는 야윈 얼굴로 대신과 승지들을 둘러보자 혀 꼬부라진 어눌한 말로 
전교를 내렸다.
"나는 이제 다시 일어날 것 같지 않다. 오늘부터 세자에게 전위를 하여 
크고 작은 나라 일을 보살피도록 하라. 경들은 내 뜻을 받아 세자를 도와 
나보다 밝은 정치를 하게 하여 조종조의 계계승승해 내려오는 대업을 
받들게 하라."
말을 마친 전하는 병상에서 어수를 들어 전국지보인 옥쇄를 밀어 대신에게 
전했다. 승지와 사관은 어전에서 왕의 말씀을 기록하고 어보를 받들어 
물러나왔다. 
  대신들은 이 뜻을 세자에게 전하고 어보를 올렸다. 세자는 통곡하면서 
어보를 받지 않았다.
"내일이라도 아바마마께옵서 병세가 쾌차하실 텐데, 내가 전위를 받는다는 
일은 불가한 소리다. 어보를 도로 전하께 바치오, 나는 아바마마께서 다시 
회춘하실 것만 기다리고 있소."
세잔는 울면서 사양해 받지 아니했다. 대신들은 이 사유를 전하께 다시 
아뢰었다. 그러나 전하는,
"아니 된다."
하고 병석에서 고개를 흔들었다.
  새가 죽을 때를 당하면 울음소리가 처량하고, 사람이 죽을 때에 임하면 
그의 말소리가 착하다고 했다. 죽음에 임한 전하의 머리에는 폐비 신씨의 
모습이 떠오르고, 경빈 박씨의 얼굴이 비쳐진다. 참혹하게 죽은 아들 
복성군과 사위 홍려는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니 어찌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폐비 신씨는 아직도 살아 있으니 전하는 죽기 전에 한 번 
신씨를 만나보고 싶었다. 전하는 후마마가 없는 틈을 타서 어눌한 
음성으로 시녀에게 물었다.
"폐비 신씨는 아직도 잘 있느냐?"
"안녕히 계시다 하옵니다."
시녀는 늙은 궁녀였다. 일찍이 폐비 신씨때부터 지밀에 모시어 있던 
궁녀다. 지금 위독한 상감이 신씨의 안부를 묻는 것을 들으니 옛 생각이 
시녀의 가슴을 흔들어 뭉클하게 만들었다. 전하의 가슴도 괴롭고 아파서 
묻는 것이겠지마는 만 가지 회포가 궁녀의 가슴을 서글프게 했다. 마지막 
길에 신씨를 한번 만나 보게 해 드리고 싶었다.
"폐비 신씨를 한 번 만나 보시렵니까?"
늙은 궁녀는 전하의 위중한 베갯머리에 가만히 아뢰었다.
"글세."
전하는 극히 쇠약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나 혼미하고 위독한 중에도 
전하는 후마마 윤씨가 있는 것을 생각했다. 폐서인은 만든 신씨를 
복위시키기 전에는 대면할 수 없는 일인 것을 생각했다. 확실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전하는 이내,
"아니다. 내가 공연한 헛소리를 했나 보다."
전하는 몸이 괴로워서 말을 마치지 고개를 약간 돌려 눕고 푹꺼진 힘없는 
눈으로 먼 허공을 기운 없이 바라본다.
늙은 궁녀는 전하의 마음을 유리 붙인 듯 들여다보았다. 임종을 당해도 
만나 볼 사람을 만나 보지 못하는 임금의 자리가 가엾고 불쌍하다 
생각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마지막 길의 전하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고 
싶었다.
  궁녀는 살몃 옆에서 떠나서 다음 방에 계신 후마마의 의향을 더듬기로 
했다. 궁녀는 후마마의 앞에 팔을 짚고 무릎을 꿇어 아뢰었다.
"전하께옵서는 헛소리 모양 폐비 신씨가 잘 있느냐 하문을 하셨습니다. 
쇤네 생각에는 한번 만나 보게 해 드렸으면 합니다."
늙은 궁녀는 간곡히 아뢰었다. 후마마의 얼굴빛은 금방 얼음같이 
차가워졌다.
"폐서인이 돼서 백성이 된 사람을 어떻게 만나 보게 해 드린단 말이냐. 네 
말뜻은 신씨를 복위시키자는 것이로구나."
"아이구, 마마께서는 천만 도섭스런 말씀을 다 내리십니다. 그저 전하의 
마지막 가시는 실에 소회가 계시어 묻는 말씀이니 한이나 없도록 해 
드리자는 것뿐입니다. 떠들썩할 것 없이 시치미 뚝 떼시고 잠깐 
다녀가도록 하면 좋을 것 아닙니까?"
궁녀는 간곡하게 인정이 돌도록 다시 아뢴다.
"나를 폐위시키고 신씨를 도로 왕후를 삼자는 소리와 똑같은 소리다."
궁녀는 황송하여 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전하의 병은 점점 위독해 들어갔다. 의식은 혼미해지고 말조차 못하게 
되었다. 목에는 약도 넘어가지 않았다. 물도 넘길 수가 없었다. 전하는 
마침내 세자에게 전위한 다음날 동짓달 보름날 유시에 창덕궁 환경전 
소침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때 겨울 해는 짧았다. 해가 기울어 어둡기 
시작하니 밖에서 모였던 백관들은 헤어지기 시작할 때였다. 어의가 안에서 
정원으로 급히 뛰어나오면서, 
"상감마마, 환후 위중하시오!"
하고 소릴 쳤다. 도승지는 창황히 만조백관에게 
"백관들은 물러가지 마오. 대왕전하 환후 위독하시다 하오."
하고 슬픈 통지를 전했다.
  이윽고 대내 안에서 슬픈 곡성이 들려 오자, 약방에서는 대신 홍언필이 
빈청으로 통곡을 하면서 나왔다. 전하가 승하한 것이 확실했다. 세자는 
맨발로 머리를 풀어헤치고 거적 자리에 엎드려 죄인으로 자처하여 통곡을 
했다. 대신들은 국새를 받들어 세자께 올리고 왕위에 오르기를 청했으나 
세자는 통곡해 울어 몸부림을 치면서 옥새를 받지 아니니 대신들도 
어찌하는 수가 없었다. 
"국가의 일은 그렇지 아니하오니 대위에 오르셔야 합니다."
대신들은 세 번 네 번 간하는 말씀을 올리면서 옥새를 바치려 했다. 
그러나 옥새가 나타나기만 하면 세자는 몸부림을 쳐 호곡을 하니 대신들도 
이제는 바칠 수가 없었다.
  세자는 초석에 엎드려 통곡을 한 지가 닷새요, 물과 미음을 마시지 
않은지가 엿새였다. 신하들은 몸이 약한 세자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하들도 세자르 따라서 밤을 새면서 합문 밖 뜰 앞에 서있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해서 세자의 마음을 돌리지 아니한다면 큰 병환이 나실 테니 큰 
일이로구려. 세자의 외숙되는 윤임을 안으로 들여보내서 사유를 반복하여 
아뢰어 빨리 대위에 나가시도록 합시다.
한 사람의 고관은 이런 의견을 내었다. 승지로 있는 정황은 분연히 앞으로 
나타났다.
"도대체 말이라구 꺼내는 소리요? 대신이란 분들은 어느 때 쓰는 
대신이오? 이런 때 대신이 합문 안으로 들어가서 곡진하게 정리를 다하여 
국사를 아뢰고 하루라도 왕의 자리를 비워 둘 수 없다는 것을 간곡하게 
말씀하는 일이 당연하지, 도대체 세자의 외숙이 나라 일에 무슨 상관이 
있소?"
정황은 분함을 이길 수 없어 바른 말로 대신을 타이른다. 대신도 정황의 
말을 옳게 들었다.
  세 차례나 대내로 들어가 세자께 아뢰었다. 그러나 세자는 대행대왕의 
소렴, 대렴을 마치고 재궁을 빈전에 봉인한 뒤 겨우 창경궁 명정전에서 
대위를 허락했다. 그러나 세자는 여전히 여막에서 나오지를 않았다. 
아버지가 않았던 용상에 앉는다는 것이 슬프고 아파서 차마 나갈 수가 
없었다. 아침에 즉위예식의 대례를 치르기로 한 일이 낮이 되어도 
나오지를 아니했다. 예관이 들어가면 낮 상식을 드린다고 만나지 아니했다. 
세자는 슬퍼서 영영 대위에 오르기 싫은 것이다. 
  해는 어느덧 어둑어둑 저물기 시작했다. 이때 성복을 마친 뒤라 
만조백관들은 베로 지은 굴건제복을 입었다가 즉위예식의 대례를 받들기 
위하여 금관조복과 사모품대로 일제히 바꾸어 입고 정전 뜰앞에 구름 뫼듯 
모여 있었다. 해는 점점 석양이 되어 점차 날이 어두워지는 데 세자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승지와 사관들은 대행대왕의 유교를 받들어 앞에 
서고 좌의정 홍언필, 우의정 윤인경, 예조판서 임권이 뒤를 서고 빈전으로 
들어가면서 내시에게 이른다.
"즉위예식을 거행하려 빈전에 유교를 봉진하러 들어가니 아뢰어 주기 
바라오."
하고 연통을 했다. 대행왕의 유교로써 왕의 자리로 나아가기를 제촉하는 
것이다. 이윽고 내시는,
"들어오라 하시오."
하고 세자의 허락을 전하였다. 승지와 대신들이 합문으로 추창해서 들어가 
빈전에 대행대왕의 유교를 진열해 놓은 뒤에 예조판서 임권은 세자가 계신 
여막 앞에 나아가 부복했다.
"면류관 곤룡포를 바꾸어 입으시고 즉위예식을 거행할 정전으로 납시기 
바라오."
하고 아뢴다. 내시가 나타나 예관에게 말을 전한다.
"면복으로 바꾸어 입으시라는 대감의 말씀을 올렸으나 세자께서는 통약한 
중에 옷을 갈아입을 생각을 조금도 아니하시고 그대로 울고만 계시니 
어찌하는 수가 없소이다."
예조판서는 하는 수 없었다. 내시가 전하는 말을 그대로 대신한테 전한다.
"아무리 상복을 면복으로 바꾸어 입으시라 하나 전하께서는 들은 체도 
아니 하시고 울고만 계시다 하니 대신께서 들어가 아뢰는 수밖에 
없소이다."
예저판서의 보고를 받자 대신들은 여막 문 밖에 나가서 부복해 아뢴다.
"성정이 아무리 망극하시나 상복을 예복으로 바꾸어 입는 것은 조종 
때부터 내려오는 예법이오니, 어서 역복을 하시옵소서."
간곡하게 아뢴다. 내시는 대신의 말을 전했으나 세자는 짚베개에 몸을 
의지해 머리를 숙이고 있는 채 일언반구의 대답이 없었다. 내시가 이 뜻을 
대신에게 전하니 대신들은 또다시 아뢴다. 
"지금 선대 왕전하의 유교를 빈전에 받들어 놓았습니다. 황송하기 
그지없사옵니다. 어서 예복을 입으시고 빈전으로 납시옵소서."
세자는 여전히 짚베개에 부복하여 울 뿐이었다. 이때 날은 더욱 저물어 
들었다. 대신 이하 만조백관이 초조하지 아니 할 수 없었다.
  슬픈 세자의 심정, 왕위에 나가기 싫어하는 세자의 심정을 아는 
사람들은 다만 세자와 세자빈이 있을 뿐이었다. 밖의 사람들은 세자의 
효심이 지극하여 아버지의 상복을 벗기 싫어서 짚베개에 몸을 의지하여 
일언반구도 대답이 없이 울고만 있다고 생각했지만, 세자의 왕위에 나가기 
싫어하는 것은 아바마마가 돌아간 그 슬픔만이 아니었고 어마마마가 아니 
계신 그 슬픔뿐만도 아니었다. 가슴속 구곡에 남에게 말할 수 없는 기막힌 
슬픔이 많았다. 장차 계모인 왕대비를 어떻게 효성으로 받들어 모시어야 
하는가 하는 이 슬픔이 섞여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당자인 세자, 삼십 
먹은 젊은 세자 그 자신뿐이었다. 세자는 마침내 짚배게를 짚은 채 
구역증이 일어났다. 엿새 동안이나 굶은 세자였다. 왈칵 토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나올 것이 없었다. 빈창자에서 솟구쳐 오르는 애타는 
기운뿐이었다. 허기였다. 구역증은 점점 세자의 오장육부를 뒤틀어 놓았다. 
슬픔과 애걸과 허탈이 한데 어울려 범벅을 쳐서 구역의 병증을 일으켜 
놓았다. 그러나 대신들이 이 까닭을 알 리가 없었다. 대신들은 또 다시 
간청을 했다. 세자는 구역증에 걸려서 더욱 대답이 없다.
  대신들은 하는 수 없이 자전에 아뢴다.
"세자께서는 상복을 벗으려 하지 않습니다. 즉위식 때 잠깐 면복을 
입으셨다가 다시 상복을 입으시는 것은 조종 때부터 하시는 일이오니 
아무리 애통하시더라도 예문을 쫓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빈전에 
유교를 받들고, 백관이 모여 있사온데 사왕께서 나오지 아니하시니 온 
조정이 황황해서 어찌 할 줄을 모릅니다. 자전께서 함께 권하시어 빨리 
나오시도록 해주옵소서."
대신과 승지들은 내시를 통하여 후마마 윤비께 아뢰어 본다.
"안에서도 힘써 권해 보겠노라."
하고 후마마의 간단한 전갈이 내렸다.
  비로소 후마마는 세자의 여막으로 들렀다. 흰족두리에 대수장군 긴 
거상옷을 입은 사십대의 젊은 후마마는 시녀를 거느리고 세자를 찾았다. 
이때 세자는 여전히 구역증에 걸려 있었다. 창백한 야윈 얼굴에 애통과 
구역증에 걸려 있는 세자는, 나이로는 삼십대 장년이언만 당장 곧 세상을 
떠날 중병환자와 같이 보였다. 세자의 옆에는 빈도 없었다. 더구나 시녀도 
없었다. 다만 수염 없는 두 사람의 내시가 있을 뿐이었다.
"어째 시녀가 없느냐?"
후마마는 구역증하는 세자를 바라보면서 내시에게 묻는다.
"상중이오시라 일체 여인은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십니다. 빈마마도 못 
오시게 하십니다."
후마마는 만족한 표정이었다.
"구역이 심하고나, 부축해 드려라. 구역증이 가라앉는 대로 면복으로 
입으시게 하고 정전으로 나가시도록 해라."
사십대의 후마마는 삼십대의 세자의 이마나 몸에 손을 댈 수가 없었다. 
구역증이 일어나는 중에도 세자는 후마마가 온 줄을 알았다.
"어마마마."
한 마디를 부른 다음 짚베개에 엎드려 운다. 뺏골 속속들이 우러나는 울음 
소리다.
"구역증이 조금 멎거든 면류관에 곤룡포를 입혀 드려라."
후마마의 목소리는 애통과 애절 속에 빠진 세자의 귀에도 들어갔다.
  후마마는 말을 던지고 이내 내전으로 발을 옮겼다. 세자의 병들어 약한 
모습과, 빈도 없고 시녀도 없는 여막 속 환경은 후마마에게 커다란 
만족감을 주었다. 후마마는 세자가 아들이 없는 것이 더 흡족했다. 내전에 
돌아간 뒤에 후마마는 또다시 내관을 통해 전갈을 보냈다.
"그 동안 구역이 멎으셨거던 곧 대례복을 입으시고 어서 빨리 정전으로 
납시도록 해라. 저녁 상식은 대전관이 올려도 좋다. 만조백관이 모두 다 
기다린다고 여쭈어라. 밤이 되면 곤란하다고 여쭈어라."
후마마는 흰 족두리 베치마로 만족한 종다리 모양 전갈을 내렸다. 세자는 
어마마마의 명을 어길 수가 없었다. 내시의 두 번째 전갈을 받자, 상복을 
벗고 면류관 곤룡포를 입은 뒤에 허탈한 몸에 부축을 받으며 여막에서 
나왔다.
  벌써 날은 어두웠다. 두 내시는 등촉을 밝히고 새 임금을 부축했다. 
태복에서는 태화문 앞에 임금이 타는 연을 등대하고 타기를 권했다. 
그러나 새 임금은,
"죄인의 몸으로 연이 다 무에냐."
피로한 목소리는 연 탈 것을 거부하면서 비척비척 내시에게 부축되어 
정전으로 향했다. 세자는 명정전에 당도하자 발길을 정전 용상으로 옮기지 
못한다. 아버지 생각이 나서 차마 용상에 앉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세자는 
아바마마가 지금 용상에 계신 듯 생각이 되었다. 몸을 구부려 용상 아래 
섰을 뿐이다. 승지가 세자의 앞으로 나타났다.
"어서 용상으로 오르시옵소서."
내시들은 좌우 옆에서 세자를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세자의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옥좌에 오르신 연후에야 만조백관이 진하를 드리게 됩니다. 아제 자리에 
앉지 아니하시면 백관들은 예식을 올릴 수가 없사옵니다. 전하, 어서 
오르시옵소서."
승지는 애가 타는 듯 간곡하게 아뢴다. 내시들이 다시 새 임금을 부축했다. 
세자는 하는 수 없이 내시한테 끌려 겨우 용상에 오르는 층계를 밟았다. 
비로소 용상에 앉은 세자는 또 다시 어버지 생각이 났다. 차마 용상에 
반듯이 앉을 수가 없었다. 모로 앉은 채 눈물이 비오듯 흘렀다. 이 모양을 
바라보는 만조백관들은 세자의 지극한 효성에 느껴 울지 않는 이가 
없었다. 만조백관들은 눈물을 머금고 즉위예식을 겨우 마친 뒤에 새 
임금은 대사령을 내리고 다시 여막으로 돌아가 상복으로 바꾸어 입은 채 
정사 일은 대신들한테 맡겨 버렸다. 상제의 몸으로 장례 안에는 정사 일을 
보지 않겠다는 결심에서였다. 임금은 나라 예법에 의하여 석 달만에 
장례를 지내게 되었다. 대행대왕의 장지는 고양으로 정해졌다 [뒤에 광주, 
선주 대왕의 선릉 동편 언덕에 천장하여 정릉이라 함. 지금은 물 건너 
봉은사 옆에 있음] 조정에서는 대행왕의 시호를 올려 중종이라 하고 새가 
바뀐 이월에 국장을 지냈다.
  석달 동안을 슬픔 속에 파묻힌 새 임금은 식음을 전폐하고 미음으로만 
연명을 했다. 기운은 더욱 떨어지고 얼굴은 초췌했다. 삼십대의 장년이 
아니라 당장 큰일이 날 듯한 병객이 되어 버렸다. 여기에 어머니 없는, 
말하지 못할 슬픔이 엉키고 서리었다. 만약 어머니가 있었다면 억지로라도 
음식을 권했으련만, 계모인 어머니였다. 지나가는 말과 겉치례로 전하는 
전갈만으로는 새 전하의 지극한 효성으로 인하여 쇠약해 드는 기력을 
회복시킬 수 없었다. 새 왕비 박씨가 있다 하니 근엄한 신왕이었다. 왕비는 
앞에서 얼씬도 하지 못하게 했다.
  새 임금의 허약한 병은 점점 골수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전의들고 
개탄을 하고 대신들도 황황했다. 종실과 정부와 육조의 장관들은 연명을 
해서, 
"권도를 쫓으시어 고깃 국물을 잡수십시오."
하고 육식하기를 권했으나 새 임금은 간단히,
"알겠노라."
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어느덧 국장도 지나고 산릉 역사도 끝이 났다. 새 임금은 비로소 약한 
몸을 이끌고 정사를 보살피게 되었다.. 총명 영리한 새 임금이었다. 어진 
선비를 등용해 쓰고 밝은 정치를 해보려 했다. 새 임금은 이조와 예조에 
첫 전교를 내렸다.
"착한 사람을 찬양하고 악한 사람을 처벌하는 것은 정치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예조와 이조에서는 충신과 효자 중에 높은 행적이 있는 이와 
나라의 관리가 되어 청백리의 자격이 있는 이를 널리 조사하여 나에게 
알리게 하라. 적재적소로 발탁해서 등용할 작정이다. 만약에 청백리나 충신 
효자로서 몸이 이미 죽어서 이 세상에 없다면 그의 자손을 등용해 써서 
천하에 그 덕을 밝혀서 후생을 장려하리라."
  새 임금은 또다시 대신들에게 전교를 내렸다.
"대신들은 큰 학문과 큰 사상을 품고 조야에 묻혀서 나타나지 않는 
일사들을 천거하라. 장차 발탁하여 조정에 쓸 것이다. 만약 대신들이 
천거하기가 난처하거든 옛 규약에 의거하여 나에게 품하여 아뢰라."
새 임금은 또다시 전교를 정부 전체에 내린다.
"재주를 품고 도학이 높은 사람들은 출처행장을 중하게 생각하여 
여간해서는 세상에 나오려 하지 아니한다. 그들을 나오게 하려면 임금되는 
사람이 지성으로 구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데 달려 있는 것이다. 만약에 
이런 사람을 얻어서 정말로 어진 이라면 백의정승이라도 시켜서 발탁해 쓸 
작정이다. 어진 이를 구하는데 파격이 된다 한들 무슨 상관이 있으랴. 옛 
규약에만 의존하여 어진 이를 구한다면 길이 막혀서 구해지지 못할 
것이다. 모든 규격과 법식과 절차를 타파해 버리고 어진 이를 구하도록 
하라. 설혹 그 집안이 명문 거족이 아니라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 
나라 조야에 파묻혀 있는 어진 이가 없도록 대신들은 한번 힘써 구하라."
새 임금의 전교가 이렇듯 간곡하게 떨어지니 조정의 백관들은 모두 다 
옷깃을 바로 잡아 얼굴빛이 엄숙했고 초야에 묻힌 선비들은 태평성대를 
다시 만났다고 기뻐들 했다. 
  새 임금은 또다시 전교를 전국에 내렸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백성이 없이 나라가 어찌 부지하리오. 
백성이 부강하면 나라가 부강해지는 것이요. 백성이 빈곤하면 나라가 
부강해지는 것이요, 백성이 빈곤하면 나라가 쇠퇴하는 것이다. 혹시 먼 
시골에 굶주리는 백성은 없는가? 헐벗은 백성은 없는가? 배우지 못한 
백성은 없는가? 만일 헐벗고 굶주리고 배우지 못한 백성이 이 세상에 
있다면 그것은 나의 죄요. 벼슬하는 관리의 허물이다. 이 나라에 헐벗고 
굶주리는 백성이 없도록 하라."
새 임금의 전교는 지극한 성인의 말씀이었다. 이 전교가 한번 세상에 
퍼지니 삼천리 방방곡곡에 흩어져 있는 백성들은 금방 요순의 시절을 
만났는가 하고 생각했다. 어서 새 임금이 하루바삐 밝은 정치를 해서 온 
나라를 부강한 천지로 만들고 탐관오리를 비로 쓸어버리기를 원했다.
  새 임금의 밝은 전교가 계속해서 나타나니, 조광조의 제자들은 다시 
때를 만났다 하여 일제히 춤을 추었다. 백성들은 백성들대로 기뻐했다.
"어느 때 이 나라에서 임금이 백성들의 굶주림을 걱정하고 헐벗는 것을 
근심해 준 일이 있었던가. 참으로 우리들은 복이 많아서 좋은 임금을 
만났다."
이렇게 찬양하면서 연부역강한 새 임금이 오래 집권을 해서 이 나라의 
민도를 올리기를 바랐다. 더구나 백성들 중에서도 천대를 받는 계급에 
있는 상사람과 백정과 노예의 칭송은 더한층 놀라웠다.
  "새 상감은 참으로 성인이다. 명문 거족이 아니라도 학문과 포부가 높은 
사람이면 백의정승이라도 시키겠다고 천하에 반포를 하셨으니, 참으로 
용단을 가진 임금이 아니면 이런 말씀을 할 수가 있는가? 이번엔 잘 하면 
동소문 밖 갖바치 어른이 백의정승으로 뽑히기 십상팔구다."
"새 상감은 어렸을 때 조정암 선생께 배워서 도덕과 학문이 출중하신 
분이다. 이러하니 정암 선생께서 생존하셨을 때 백의정승으로 
천거하셨다는 갖바치 어른은 이번엔 꼭 정승이 되실 것이 분명하다. 
상감께서는 지금 정암 선생의 예법과 도덕을 그대로 몸소 행하시는 효자가 
아니신가. 참으로 본받을 반한 분이다."
"어쩌면 이번에 조정암 선생은 소인에게 몰려서 원통하게 돌아간 것이 
신원이 되시고, 기묘사화에 걸렸던 모든 명현들도 다 복직이 될 것이다. 
살기 좋은 새 세상이 될 테니, 우리들의 복이다."
온 세상은 이렇게 밝은 임금을 만났다 하여 넘치는 희망을 껴안고 좋은 
날이 눈 앞에 닥쳐온 것을 기뻐했다.
  조정과 선비와 백성과 하천들만 기대가 큰 것은 아니었다. 공부하는 
학생들도 새 임금의 첫 선언을 듣자 어깨가 으쓱했다. 성균관에서 
공부하는 태학생들은 일일이 연명을 하여 정암 조광조의 무죄한 점을 
설원해 주고 복직을 시킨 후에 치제를 내리고 기묘사화 때 걸린 어진 
이들도 무죄 석방을 시키기를 바란다는 상소를 올렸다. 
  새 임금은 조광조의 무죄한 것을 어려서부터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부왕이 처리해 논 일을 즉위 즉시에 곧 바로잡기가 난처했다. 
마음속으로는 조광조의 벼슬을 곧 복직시키려 했으나, 잠깐 형세를 보아 
처리하리라 생각했다.
"상소한 글뜻은 잘 알겠노라. 그러나 이분의 일들을 선왕께서 우연하게 
처리하신 것은 아닐 것이다."
새 임금은 이쯤 둥글하게 비답을 내렸다. 
  태학생들은 비답을 받들어 읽자 다시 상소를 올렸다. 어서 조광조의 
벼슬을 한시 바삐 복직시켜 달라는 뜻이었다.
"듣지 않는 뜻을 이미 다 말하지 아니하였는가."
새 임금은 더욱 부드럽게 비답을 내렸다. 새 임금은 친히 붓을 잡아 다시 
비답을 내린다.
"연달아 세 번 올린 글에 대답하노라. 너희는 수선 땅에 살아. 옛일을 
좋아하고 시국을 의논하여 말이 간절하고 의리가 곧으니, 바르게 배운 
학문의 공이 이에서 더할 수 없다. 우리 선왕의 교육하신 덕택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뜻이 있어서 그러한 것이다. 
그리하고 태학이란 곳은 공변된 여론을 일으킬 수는 있는 곳이나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여 시비를 정하는 곳은 조정이란 곳이 바로 있어서 행할 
것이다. 너희의 여론이 옳기는 옳으나, 시비곡직을 판단해서 정하는 일은 
그대들에게 맡겨진 임무가 아니니 잠깐 물러가 다시 생각해 보라."
새 임금은 조광조를 신원해 달라는 학생들의 여론이 정당한 것을 
인정하면서 이것을 실천할 곳은 조정에서 정할 것이니 학생들은 아직 
서두르지 말라는 너그럽고 간독한 말을 내렸다. 태학생들은 새 임금의 
비답을 보자 감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들의 여론이 공명정직하고 
의리가 밝다 했으니, 이것은 곧 조광조가 소인한테 몰려서 돌아간 것을 
신원해 주겠다는 소리나 매한가지의 말이었다.
"조금만 때를 기다려 보세."
"그도 그러실 거야. 부왕께서 처리해 놓으신 일을 승하하신지 며칠이 못 
되어서 곧 신원을 한다면 부왕의 한 일을 미타하게 생각해서 단번에 
엎어놓는 일이니 뜻이 있다는 말씀이 당연한 소리야. 잊으시지 않을 
정도로 말씀을 드리기로 하고 그만 물러들 가세."
태학생들은 희망을 품고 물러갔다.
  이 일이 있은 뒤에 새 임금은 우선 기묘사화에 걸려서 가산을 적몰당한 
김식의 재산을 도로 내주라는 명을 내렸다. 너무나 지나친 일을 우선 풀어 
주자는 뜻이었다. 조정과 선비들은 손을 들어 밝은 임금의 높은 뜻을 
치하했다. 조정에는 점점 어진 신하들이 자리를 잡고 참례하게 되었다. 
퇴계 이황에게 응교 벼슬을 주었다. 퇴계는 필선으로 있으면서 동궁을 
보도하다가, 세상이 어지러워짐을 알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더니 동궁이 즉위하게 되매 다시 응교 벼슬로 불러 올렸던 것이다. 
새 임금은 어진 이를 대접하는 뜻으로 퇴계에게 어사마를 내렸다. 
나라정치는 차차 바로잡혀 들어갔다.
  새 임금은 돌아보지 않던 폐비 신씨의 집을 폐비궁이라 하여 궁자를 
붙여 부르게 하고 내환과 궁녀를 내보내서 신씨를 모시게 한 후에 다달이 
쌀과 나무를 보내서 폐비 신씨의 마음을 위로하려 했다. 어버지가 끊었던 
어머니를 아들이 위로하는 것이다.
  새 임금이 정치가 바른길로 지향하니 팔도에서는 청백리가 나오게 되고, 
아직 현량과는 회복되지 않았으나 나라의 도학 높은 선비들은 차츰차츰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
  새 임금은 계모인 대비 윤씨의 마음을 평안케 하려 하며 대비의 
오리버니 윤원형의 벼슬을 불차탁용하여 높은 벼슬로 올려 주었다. 그러나 
이 지극히 효성스런 아들의 마음은 계모인 대비께 통하지 아니했다. 
난정과 윤원형은 국상 중에도 대비께 자주 문안을 들어가고 새 임금이 
즉위한 이후에도 날마다 들어갔다. 후마마 윤씨는 나이는 사십대건만 
이제는 대비였다. 
  난정은 대비께 아뢰었다.
"이미 세상을 버리신 대행왕마마도 계시지마는 그저 불쌍하신 분은 우리 
대비마마와 대군아기씨십니다."
난정은 눈물 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구슬픈 음성을 지었다. 대비의 
마음은 산란하고 신선한 중에 눈물을 흘려 한탄하는 난정의 말을 들으니 
마음이 더한층 흔들린다. 
"과부된 년의 팔자가 무엇이 신통하겠냐. 한평생 인제는 고생 바가지지."
대비도 따라서 눈에 눈물이 괴었다.
"그야 정말 아드님이 대권을 잡으셨다면 무슨 한이 계시겠습니까마는!"
난정은 더한층 구슬픈 음성을 짓는다.
"인제는 할 수 없는 뒷방 차지로구나."
대비는 눈물을 머금고 한숨을 짓는다.
"뒷방 차지만 되신다면야, 그래도 팔자가 좋으신 편입니다마는 단순하게 
그대로 두지 않을 테니까 이것이 걱정입니다."
이번엔 난정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온다.
"왜 무슨 소리를 들었느냐?"
대비는 깜짝 놀란다.
"그저 말씀을 한 것입니다."
난정은 우두커니 먼 산을 바라본다.
"답답하구나, 말을 좀 해봐라. 그대로 두지 않는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혹시 이즈음 무슨 소리를 들었느냐?
대비는 초조했다. 이제는 눈에서 눈물이 나오지 아니했다.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새치름한 난정을 바라본다.
"호랑이보다도 더 무서운 대와마마께서 생존해 계실 때도 대군의 신변이 
위태롭다고 별의별 소리가 다 떠돌아서 선위까지 하시려 했는데, 오늘 
대왕마마께서 아니 계시니 대군아기씨를 가만 둘 리가 있습니까? 기막힐 
일이올시다."
난정은 대비의 불안해하는 마음에 불을 질렀다.
"내 아들을 죽인다더냐?"
대비의 입술이 하얘지면서 얼굴이 해쓱해진다. 입술이 바르르 떨린다.
"윤임의 거드럭거리는 꼴은 코허리가 시어서 볼 수가 없다합니다."
"그래 윤임이 놈이 내 아들을 죽이려 한단 말이지?"
대비의 손이 부르르 떨리면서 경련을 일으킨다.
"윤임이 혼자서 하겠습니까? 새 상감마마께서 동의를 하셔야 할 테죠."
"이놈들, 숙질이 글세 나하고 무슨 대천지원수가 있다구 이러는 거냐."
"원수가 무슨 원수가 있겠습니까. 한평생 조정 세력을 독차지하려고 
그러는 것입죠."
"조정 세력을 누가 꺾는다더냐? 과부와 어린 고아가 어떻게 감히 새 
상감의 외삼촌의 세력을 꺽는 단 말이냐. 이것 참 목을 따 죽일 
노릇이구나."
대비는 주막으로 방바닥을 친다.
"마마, 너무 흥분하시지 마시고 차근차근하게 앞 일을 보살펴 
처리하시옵소서. 분해 하시고 슬퍼하시는 것만으로 만사가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옵니다. 차갑고 냉정하게 앞을 바라보아 처리하셔야 합니다."
"어떻게 차갑고 냉정하게 처리를 하란 말이냐. 우선 힘이 있어야 할 텐데, 
이제 내 힘은 뚝 떨어졌구나. 대왕께서 승하하시고 말았으니 내 힘은 
일패도지가 되어 등이 없게 됐구나. 과부와 고아가 무슨 힘이 있느냐. 네 
말대로 냉정하게 처리하고 싶어도 처리할 만한 힘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 
죽이면 죽음을 당했지 별수가 없구나."
"그래도 그렇지 않사옵니다. 아무리 과부라시나 당당한 어머니시오, 
대왕대비마마십니다. 대비마마의 권력으로 상감을 한번 누르옵시오. 
마마께옵서 먼저 예기지름으로 눌러 놓으시면 만만하게 보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려던 일도 겁이 나서 움찔할 것입니다. 나라에는 법이 
있습니다. 마마께서 아무리 계모라 하시나 선손을 걸어서 한번 눌러 
놓으시면 새 상감도 꼼짝을 못 하고 윤임도 다소 기운이 줄 것입니다."
  난정은 차근차근 대비를 달랜다. 불을 질러 대비의 마음을 흠뻑 달게 
만들어 놓은 난정은 이번엔 슬슬 풀어서 대비를 달래면서 대비가 어떤 
행동으로 옮겨서 움직이도록 부축인다. 
"어떻게 누르란 말이냐. 날보고 상감을 눌러 보란 말이냐. 눌러지겠느냐?"
"어머니인 대비마마의 말씀을 아니 듣는다면 아무리 상감마마라 하나 
불효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기지름을 하기 위해서라도 한번 상감마마를 
부르셔서 꾸중을 내려 보옵시오."
"들을라구?"
"듣고 안 듣는 건 별일입니다. 정면으로 꾸지람을 내려 칼을 빼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야단을 치란 말이냐? 상감보고 어찌해서 나와 대군을 죽이려고 
드냐고 물어 보란 말이냐? 증거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
요염한 난정은 별안간 까르르 웃는다.
"왜 웃느냐?"
"아이구, 마마께서도 하하하, 아무리 칼을 뺀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드러내 
놓고 야단을 치실 수야 있습니까. 은근히 돌려서 꾸지람을 내리셔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나와 대군을 구박한다구? 이쯤 해 둘까?"
"정말 말씀이지, 새 상감께서는 거죽으로는 대비마마께 효성을 극진하게 
드리시는 것 같으나 사실은 대비마마를 무척 업신여기시고 있습니다. 
이번에 신비의 집을 폐비궁이라 부르게 하고 내시와 궁녀들을 내보내서 
대궐 안에서 모시듯 하고, 쌀과 양식을 대어 주라고 어명을 내린 일을 
마마께서는 허락을 내리셨습니까?"
"허락이라니, 알지도 못했지. 나중에 궁녀들한테 소문을 들어서 알았지."
"그거 보십쇼. 부왕마마께서 쫓아내신 신비를 중뿔나게 아드님이 아무리 
상감이라 하나 어떻게 궁의 칭호를 내리고 내시와 궁녀를 보내서 모시게 
하며 끊었던 식량을 내리십니까. 더구나 어마마마 계신데 어마마마께 
여쭙지도 않고!"
난정은 요염한 눈을 들어 대비를 바라보면서 또다시 대비의 가슴이 불을 
질렀다.
  난정이 자극을 주는 말에 대비의 안색은 청기를 띠어 또다시 
핼쓱해진다.
"이것이 벌써 어머니를 어머니로 대접하지 않는 짓입니다. 한 가지 일을 
미루어 백 가지 일을 다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선 이 점을 들어서 
호되게 상감을 꾸지람하십쇼. 이따위 일이 계속해서 일어난다면 세상일을 
누가 압니까 신비마마로 대비를 삼아 받들어 올리고, 마마를 폐모한 뒤에 
궁 밖으로 내몰른지, 윤임의 그 흉칙한 꿍꿍이속을 어떻게 압니까?"
불은 마침내 최후까지 질러졌다.
"깊이 통촉하시어 처리하옵소서. 소녀는 오늘은 그만 물러갑니다."
난정은 절을 드린 뒤에 새침하게 대비전에서 물러갔다.
  대비는 처음에 새 상감이 폐비 신씨에게 끊었던 양식을 내보내고 약간 
명의 궁녀와 내시를 보내서 수직을 하게 하면서 폐비 두 자에 궁자를 
붙여서 폐비궁이라 했다는 소문을 듣자 폐비를 복위시키는 것도 아니고 
폐비란 칭호는 그대로 둔 것이라, 아들의 대로 갈리게 되니, 새 상감에게는 
폐빌망정 그래도 어머니뻘이라 그저 그렇게 해주어도 무방하리라 생각했던 
것인데, 이제 난정의 말을 듣고 보니 과연 대비인 자기한테 한 마디의 
품한 일도 없이 이런 처사를 한 것은 자기를 어머니로 대접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대비의 팔팔한 성미는 절정에 올랐다.
  난정이 물러나자 대비는 곧 내시를 불렀다.
"너, 대전으로 나가서 새 상감을 곧 들어오시라 해라."
대비의 음성은 쨍하도록 높았다. 내시는 걸음을 빨리 하여 대전 앞에, 
풀집을 지은 여막으로 들었다.
"대비전 내시 아뢰오. 대비께옵서 상감마마께 틈이 생기거든 곧 좀 듭시라 
하시오."
이때 새 상감은 정사를 마치고 여막에 꿇어앉아 옛 임금들이 정치하던 
사기를 읽고 있었다. 아직도 석 달 초상 중에 애통하여 먹지 않고 자지도 
못했던 피로가 가시지 않았다. 얼굴은 수척한 대로 그대로 있고 살에는 
혈색이 없었다. 다만 정신으로만 살아갈 뿐이었다. 석 달 장사를 지냈건만, 
전하는 조미음을 자시고 소찬을 들었다. 신하들이 전하의 신상을 염려하여 
소음식을 폐지하고 고깃 국물이라도 자시라고 여러 차례 상소를 올려서 
힘써 간했건만 전하는 삼년 여막에서 소식으로 연명을 해 나갈 것을 
결심했던 것이다.
  전하는 대비전에서 들라는 내시의 전갈을 받자, 어머니의 분부를 
지연시킬 수 없었다. 읽던 책을 짚베개 위에 얹어 놓고 상장을 짚고 
여막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휘청거려 비틀거렸다. 대전내시는 얼른 부축을 
해 올렸다. 삼십대의 상감은 너무 지나친 애통으로 이제는 몸이 지쳐서 
병객이 되어 버렸다.
"소교를 놓으라 이르오리까?"
"죄인의 몸으로 소교가 무에냐. 그대로 걸어가리라."
그러나 말만 그렇지 병든 상감은 비척비척 걸을 도리가 없었다. 
무예청들은 얼른 소장을 두른 소교를 등대하여 타시게 했다. 새 상감은 
소교에서 내려 상장을 짚고 간신히 대비전으로 올랐다. 내시가 부액을 
해서 받들려 했으나 예절 높은 상감은 부액을 막았다. 
"대비께 뵈오러 들어가는데 부액은 당치 않다."
엄하게 내시들의 부액을 물리쳤다. 
  전하는 대비전에 올랐다. 궁녀의 인도로 대비의 방으로 들어섰다. 
어마마마께 절을 드리고 상장을 짚어 초연히 섰다.
"어마마마, 부르셨사옵니까?"
삼십대의 전하는 사십대 계모한테 주저치 않고 어마마마라 불렀다.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정이 뚝뚝 흐르는 듯 친어머니를 대한 듯 불렀다. 
어린 세자 때, 생일날 쥐를 잡아 죽여서 매달았던 변이 있던 일도 
잊어버렸다. 우상을 만들어 바늘로 찔러 대던 일도 잊어버렸다. 아바마마가  
선위를 한다고 떠들어대던 일도 잊어버렸다. 아바마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동궁에 불이 일어난 일도 이제는 관심이 되지 않았다. 궁 안에서는 이런 
일 저런 일을 가지고, 홀로 까불고 별의별 기막힌 소설이 세자였던 지금이 
상감의 귀에까지 들어왔던 것이나, 새 상감은 모두 다 씻은 듯 이런 
사소한 일은 일부러 기억에 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오직 사랑하는 
아우 하나와 홀로 된 늙지도 않고 젊지도 않은 이 어마마마의 마음과 몸을 
태평하고 안락하게 해드려야 할 것이라 생각할 뿐이었다.
  들어와 절을 올리고 상장 막대에 의지해서 초연히 서 있는 전하를 보자 
대비의 역정은 절정에 올랐다.
"전하가 어미를 어미로 대접하는 것인가요?"
대비는 전하를 향하여 소리를 높여 딱 얼렀다. 대비의 이마와 관자놀이엔 
푸른 힘줄이 불끈 일어섰다. 눈에는 살기가 등등했다.
  전하는 어찌 된 영문을 몰랐다. 대비의 역정이 높으나 그저 황송하기만 
했다. 무어라 대답을 올려야 할지 몰랐다. 마음속으로 무엇을 오해하고 
계신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슨 실수를 한 일이 있나'하고 반성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암만 생각해 보아도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내가, 나도 모르는 결에 무슨 잘못한 일이 있기에 저 어른이 
저러시는 게다.'
전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저 불초자가 미거하고 혼미하와, 어마마마의 높으신 뜻을 받들지 
못했나 보옵니다. 잘못이 있거든 종아리 때려 주옵소서."
전하는 목소리를 낮추어 몸둘 곳을 모르면서 공손하게 사뢴다. 몸이 
지극히 높은 지존의 자리에 있는 일국의 대왕이언만, 이렇듯 젊은 
어마마마를 엄한 아버지 모시듯 한다.
"에이, 능글맞은지고."
대비는 더한층 노한 소리로 주먹을 들어 문갑을 친다.
"아무리 어미가 어미 같지 않기로서니, 그래도 나는 선왕의 배우자인 
정궁이요, 오늘날 대비가 아닌가. 대비 모르게 막중한 궁중의 일을 전하 
혼자 결단해 버린단 말이오?"
말을 마친 대비의 눈에서는 새파란 불이 일어나면서 적자인 상감을 
흘겨본다. 
  젊은 상감은 황송했다. 마음속으로,
'대비께서 오해를 하시는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수그렀던 고개를 들었다. 대비의 푸른 불을 뿜어 흘기는 
눈이 자기의 온몸을 집어삼키려는 듯했다. 새 상감의 등판에는 소름이 쭉 
끼친다. 그러나 참을성 많고 안존한 젊은 상감이었다. 어려서 벌이 소매 
속으로 들어가 쏘는데도 태연히 글을 읽다가 지긋이 참고 밖으로 나가서 
옷을 벗어서 벌을 날려보낸 뒤에 다시 조용히 들어와 글을 읽었던 
상감이었다.
"어마마마!"
새 상감은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계모인 대비를 불렀다. 대비의 흘기는 
눈은 의연히 새 상감의 몸 위로 헤엄질을 친다. 새 상감의 어진 눈매와 
불이 붙은 대비의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새 임금은 상장 막대 위에 두 
손을 마주잡고 목소리를 나직이 하여 계속해 말씀을 드린다.
"그것은 정식으로 폐비를 복위시킨 것이 아니옵니다. 그러하옵기 
어마마마께 아뢰지도 아니한 것이옵니다. 아뢰면 공연히 천금같으신 
마음을 혹여나 상해 드릴까 해서 아니 아뢴 일이옵니다. 그러기에 폐비 두 
자를 그대로 쓰고 단지 궁이라 하라 한 것뿐, 다른 뜻은 없습니다. 내시와 
별감과 궁녀를 천한 것이 '폐비집, 폐비집'하고 이렇게 마구 부르옵기, 
듣기에 상스러워서 폐비궁이라 하라고 아랫 사람들에게 말로 한 것뿐 
공식으로 조정에서 의논해서 전교를 내린 것도 아닙니다. 그러하옵고 
폐비께 쌀과 하인을 내보낸 것은 그분의 지위를 보장하려 하여 내보낸 
것이 아니라 지금 폐비께서는 절화 지경이 되어 굶어 돌어가실 지경이라 
하옵니다. 이 강박한 세상에 누가 그한테 쌀을 주겠습니까. 그러니 소자가 
쌀을 좀 내보낸 것뿐입니다. 선대왕께서는 유죄 무죄 간에 그때 형편에 
어찌할 길이 없사와 내치셨사오나 소자한테는 폐모라 하오나 어미는 
어미입니다. 사내가 아내를 내쫓는 일은 있으나 자식이 어미를 굶겨 죽일 
수야 있습니까. 그러하와 다만 소자의 사사로운 일로 처리하기 위하여 
약간의 쌀과 나무를 내어보낸 것뿐이옵고 아무 다른 뜻은 없나이다. 품해 
여쭐 거리가 되지 못해서 말씀을 아니 드린 것이옵니다."
젊은 임금은 쇠약한 몸을 상장 막대에 부지해 실리고 폐비에게 쌀 보낸 
사유를 변명해 사뢴다.
  '사내가 아내를 내쫓는 일은 있어도 자식이 어미를 굶겨 죽일 수야 
있습니까'
하는 젊은 상감의 말씀은 대비의 폐부를 흔들어 놓았다. 그러나 대비는 
새치름해서 펄펄 뛰었다.
"어 참, 갸륵한 효잘세그려. 그래서 어미인 나를 박대하고, 동기간인 
대군을 없애 버리려구 드는구료!"
대비는 고함을 지르며 방바닥을 친다. 돌연 뜻밖에 대비의 입에서 
떨어지는 ,
'어미인 나를 박대하고, 동기간인 대군을 없애 버리려구 드는구료' 
하는 지독하고 기막힌 말에 새 임금은 자기의 귀를 의심할 지경이었다. 
별안간 몽둥이로 가슴을 되게 치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새 임금은 실신한 상태로 상장 막대를 짚고 대비를 바라본다.
"나는 힘없는 과부고 대군은 아비 없는 고아이요. 죽이고 살리는 대권이 
모두다 전하한테 달렸소. 나를 쫓을 테면 어서 쫓아내고, 대군을 죽일 테면 
어서 죽여주시오."
대비는 땅을 두드리던 여세를 슬쩍 돌려서 이렇게 말하고 한숨을 지었다. 
눈물이 뎅겅뎅겅 떨어진다. 아바마마가 생존해 계시던 어느 날 별안간 
임금 노릇을 아니 하겠다고 자기한테 선위한다는 소동을 일으켰던 생각이 
났다. 그 때도 유언비어가 돌았다. 세자를 두둔한다는 김안로, 윤임의 
일당이 왕후를 쫓아내고 대군을 죽인다는 터무니없는 소리에 아바마마까지 
세상 만사가 귀찮다 해서 임금의 자리를 내놓는다고 한바탕 북새를 떨어서 
자기는 석고대죄까지 하면서 선위를 받지 않았던 일이 생각났다.
'아바마마가 생존해 계실 때도 이따위 소문이 돌았는데, 지금 아바마마가 
아니 계시니 또다시 어느 놈이 대비의 마음을 흔들기 위하여 저따위 
소리를 지어내는 것이 분명하구나.'
새 상감은 이렇게 마음속으로 생각해 본다. 나이 젊은 계모가 간악한 
사람의 말을 듣고 의심할 수도 있는 일이라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것은 내 효성이 계모인 대비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탓이다. 결국은 
내 효성이 부족한 까닭이다.'
상인같이 어진 새 상감은 마음속으로 자기를 반성한다.
  "어마마마, 아무리 소자가 불효자이오나 감히 어마마마를 불안케 
해드리고 아우 대군을 박대할 리가 있습니까. 신왕후는 폐비라 해도 
어머님이라 생각하옵거든, 항차 대비마마께 불효를 하오리까. 마음을 
평안케 하옵소서."
새 임금은 상장 막대에 기대어 기운이 탈진한 몸으로 울면서 하소연한다.
"상감의 뜻만이 아니요! 조정에서 그따위 일을 꾸미고 있으니 딱하고 
기막힌 노릇이 아닌가. 대행대왕께서 생존해 계셨을 때도 감히 이따위 
짓들을 생각했는데, 항차 오늘 대왕께서 아니 계신 날, 밑도 뿌리도 없는 
죽지 못해 살아나갈 도리가 있느냐 말요! 아이구나, 이년의 팔자는 왜 이리 
기구한고! 에그 참, 대군이 어디 계시냐. 대군이 잘 있느냐 말이다. 대군이 
안녕히 계신가 알아보고 오너라!"
대비는 홀연 소리를 높여 궁녀를 부르면서 자기의 아들 대군을 찾으며 
호들갑을 떤다.
"대군께서는 대군 방에서 지금 글을 읽고 계시옵니다."
"이것아, 그 동안 누가 어디로 데려갔는지 어찌 아느냐. 빨리 나가서 
살피고 오너라."
대비는 안절부절을 못하면서 신경이 날카로웠다. 어질고 착한 상감이었다. 
어떻게 하면 이 젊은 어머니의 날카로운 심정을 안정시켜서 마음을 평안케 
할 것인가 하고 상장 막대에 몸을 기대어 잠깐 생각해 본다.
  궁녀가 대비의 명을 듣고 대군 방에 나가서 동정을 살피고 돌어왔다.
"대군께서는 여러 강관들과 함께 책을 펴놓고 안녕히 글을 읽고 
계시옵니다."
복명을 올린다.
"자주자주 나가 보아야 한다. 무슨 일이 나면 큰일이다."
대비는 말을 마치자 또다시 한숨을 쉰다. 새 상감은 다시 한 번 대비를 
우러러본다.
"어마마마, 염려 마십시오. 소자의 정통 동기라고는 다만 대군이 있을 
뿐이옵니다. 대군은 소자의 목숨을 걸로 보호하오리다."
"전하가 대군을 보호한단 말이오? 흐흥, 고양이한테 반찬 단지를 맡기는 
셈이지."
대비는 말을 마치자 여름날이건만 찬바람이 일도록 치마를 휩싸고 싹 
돌아앉는다. 
  새 상감은 동짓달 얼음보다도 차가운 태도를 보자, 어떻게 하면 이 꽁꽁 
맺힌 얼음 같은 마음을 풀어 보나 하고 생각했다. 새 상감의 머리에는 
문득 선대왕이 선위를 한다고 소란을 떨 때 자기는 석고대죄를 하여 
아바마마의 마음을 풀어서 돌렸던 생각이 났다. 새 임금은 비척비척 상장 
막대를 짚고 대비 앞에서 슬몃 물러났다. 대청으로 나오자 뜰 아래로 
내려섰다. 내시들이 좌우에서 기운 없이 땅에 내려서는 병들어 약한 새 
상감을 부축한다.
"뜰 아래 짚을 펴라."
내시들은 무슨 분부인지 의아했다.
"거적을 가지고 들어와서 땅바닥에 펴란 말이다. 대비께 석고대죄를 
드릴테다."
  일국의 지존인 임금의 몸으로 대죄를 드린다는 일은 전무후무한 일었다. 
상감 자신은 아바마마가 생존해 계실 때 석고대죄를 드리던 생각이 났다. 
지금 계모의 마음을 돌리기 위하여 아바마마께 향하던 그 마음과 똑같은 
마음으로 석고대죄를 대비께 드리자는 작정이다. 
늙은 내시가 나타났다.
"전하, 일국의 지존하신 몸으로 석고대죄를 드리는 법이 없사옵니다. 못 
하십니다. 하늘 아래는 전하 단 한 분이십니다. 하늘 아래 단 한 분이신 
전하께옵서 누구한테 향하여 대죄를 드리십니까? 전례가 없사옵니다."
늙은 내시는 예법과 전례를 들어 간해 막는다.
"나는 부왕마마께 석고대죄를 드린 일이 있다."
새 상감은 늙은 내시를 바라본다.
"전하, 그때는 전하께서 아직 대위에 오르시기 전인 동궁 때의 일이옵니다. 
지금은 지존의 몸이십니다. 옥체를 함부로 하시지 못하시옵니다."
늙은 내시는 법을 들어 간한다.
"지존인 임금도 부모는 있는 것이다. 부모가 없다면 지존한 이 몸은 
어디서 나왔단 말이냐. 부모 앞에는 지존이라도 죄가 있으면 대죄를 
드려야 한다."
전하의 효성스런 말에 늙은 내시도 눈물을 머금어 고개를 숙인다. 
내시들은 하는 수 없이 공석을 들어다가 대비전 앞마당에 깔았다. 새 
임금은 공석 앞에 엎드려 대죄를 드렸다.
  따갑게 여름볕이 내리죄는 유월 염천이었다. 복중 볕은 모래가 튀도록 
따가웠다. 굴건에 삼베옷을 두껍게 입은 새 임금의 몸에는 따가운 햇볕이 
사정없이 내리쬔다. 땅에서는 뜨거운 더운 김이 확확 뿜어서 숨이 막힐 
지경으로 새 임금의 몸을 휩싸고 돌았다. 내리쬐는 폭양에 기왓장도 튈 
듯했다. 대궐 뜰 앞에 있는 푸르고 싱싱한 활엽수 나무들도 뜨거운 햇볕에 
풀이 죽어서 잎새마다 기운 없이 축축 늘어져 있었다. 새 상감은 더위를 
무릅쓰고 엎드렸다. 아침결이 엎드려 있던 상감은 한낮이 넘어서 미시가 
가까울 때까지 엎드려 있었다. 극히 쇠약한 상감이었다. 내시들은 
민망하기가 한량없었다. 내시들은 궁녀를 통하여 대비가 나타나서 어서 
환궁을 합시사 하고 좋은 말씀을 빨리 내리라 아뢰었다.
  그러나 방안에서는 감감 소식이 없었다. 대비는 아까 젊은 상감이 
내시한테 하던 말씀을 귀를 귀울여 다 듣고 있었다.
'지존인 임금도 부모는 있는 것이다. 부모가 없다면 지존한 이 몸은 어디서 
나왔단 말이냐. 부모 앞에는 지존이라도 죄가 있으면 대죄를 드려야 한다.'
점잖게 분부하는 젊은 전하의 목소리를 다 듣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듣기 
싫은 소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내 자식이 아닌 젊은 상감의 말은 하늘도 
감동시킬 말이었건만, 대비의 가슴속으로는 속속들이 뼈가 저리도록 
스며들지를 않는 모양이었다. 대비는 입을 꼭 봉한 채 아무런 말도 내리지 
않는다. 대비전 나인들도 딱하다 생각됐다.
  막중 상감인 전하께서 아무리 어머니 뻘이라 하나 계모한테 까닭도 없이 
대죄를 드리고 있으니 황송하기도 하고 딱하기도 했다. 더구나 상감의 
육체는 건강한 몸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다. 여기다가 
대전내시들은 벌벌 떨면서 어서어서 대비께 내다보시고 환궁을 합시라는 
분부를 내리라고 재촉이 성화같았다. 대비전 나인들은 대비의 성격이 
만돌같이 댕글거리고 얼음같이 싸늘한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얼른 입을 
열어 감히 말을 올리는 사람이 없었다. 한낮이 지나서 하도 볕이 뜨거우니 
늙은 궁녀 한 사람이 대비께 아뢴다.
"전하께옵서 아까부터 뜰 아래 석고대죄를 드리고 계시옵니다. 날이 
너무나 뜨겁습니다. 기왓장도 튈 듯한 이 염천에 지금 한낮이 겨웠습니다. 
그만 사하시고 환궁을 하라고 분부를 내리옵소서."
늙은 궁녀는 참다못해 간곡히 아뢴다. 
"누가 자기보고 석고대죄를 드리랬더냐. 저 하고 싶어서 하는 짓을 내가 
알바 무에냐. 석고대죄를 드리지 말구 구박도 하지 말라구 그래라."
대비는 뱉듯이 대답했다. 옆의 방에는 언제 들어왔는지 난정이 요염하게 
옷고 있었다. 새 상감의 몸은 물초가 되었다.
  따갑도록 내리쬐는 폭양 아래 한낮이 겨운 대지는 화끈화끈 달았다. 
이글이글 끓는 홍로같이 달았다. 쬐어 내리는 폭양에 더위를 참고 있는 
젊고 쇠약한 상감의 온몸엔 땀이 흘러서 물초가 되었다. 세 겹 네 겹 옷을 
뚫고 굴건제복한 등솔까지 땀이 베어 올라 철썩 붙었다. 숨이 턱턱 막혔다. 
  난정은 옆방에서 문틈으로 전하가 대죄하고 있는 모습을 엿보고 있었다. 
대비가 늙은 궁녀한테 차갑게 사해 주기를 거부하던 말도 귀를 기울여 
자세히 들었다. 난정의 입가에는 미소가 돌았다. 얼마 만에 난정은 가볍게 
치마를 타고 일어났다. 발길을 대비의 방으로 조용히 옮겼다.
"언제 들어왔느냐?"
대비의 차돌 같이 굳어졌던 얼굴빛은 난정을 바라보자 금방 봄바람이 부는  
듯 풀어졌다. 
"벌써 아까 들어왔습니다. 상감의 대죄를 받고 계시기에 황송쩍어 
협실에서 머물러 있었나이다."
"대죄, 흥"
대비는 이렇게 뇌까리면서 코웃음을 친다.
"마마!"
난정은 가볍게 마마를 불렀다. 대비의 눈이 난정의 얼굴로 흘렀다.
"한나절이 지났습니다. 이만하시면 버릇을 가르치신 것이 됩니다. 창 
밖으로 납시어 물러가시라고 한 말씀을 내리시옵소서."
"내가 아느냐. 누가 저보고 석고대죄를 드리라구 했더냐."
대비는 쌀쌀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도. 그렇지 않습니다. 미운 아기 떡 한 개 더 주는 셈으로 나가시어 
말씀을 내리옵소서. 체면도 있고, 외면도 보아야 합니다. 슬몃 나가시어 한 
말씀 사하노라 분부를 내리옵소서. 그러한 뒤에 다시 말씀을 여쭐 일이 
있사옵니다. 임기응변을 하셔야 합니다.
난정은 소곤소곤 속삭거린다. 대비는 난정의 말이면 아니 들을 수 없는 
처지였다.
  "이리 오러나."
지밀궁녀를 불렀다. 늙은 상궁이 대비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정경부인이 들어와서 하도 전하를 용서하라고 졸라대니, 면을 보아서라도 
아니 나갈 수 없다. 대청으로 올라가서 전하를 만나련다."
대비는 정경부인 난정을 하늘 꼭대기까지 치켜세웠다. 난정의 생색을 
내주려는 배짱이다.
"황공하여이다."
늙은 궁녀는 대비의 처사를 고맙다 생각하면서 대비의 곁을 껴서 부액을 
해 올린다. 
  대비는 흰 치마를 끌로 마루청으로 나가 선다. 
뜰 앞에는 젊은 상감이 여전히 거적을 깔로 엎드려 있었다. 옆에 서 있던 
내시들이 대비가 나타나는 것을 보자 황망히 목례를 드린다. 대비는 그중 
나이 많은 늙은 내시에게 분부를 내린다. 대비는 일부러 목청을 높인다.
"어미를 어미로 대접하지 않았기에 잠깐 타이른 것뿐이다. 폭양에 몸이 
깍인다. 전하를 일으켜 모시고 나가도록 해라."
내시들의 귀에는 대비의 말씀이 간질간질하게 들렸다. 억지로 전하를 
부축하여 외전으로 물러간다.
  석고대죄를 드리고 있던 새 상감이 내시에게 부축되어 외전으로 나간 
뒤에 대비와 난정은 마주 앉아 있었다.
"마마!"
정경부인 난정은 가만히 대비를 불렀다. 대비의 새침한 눈이 돌려진다.
"안에서 용을 쓰시던 내수사의 피륙과 곡식은 조금도 깍이시어서는 아니 
됩니다. 후마마로 계실 때보다 더 달라구 청구를 하셔야 합니다."
"설마 내가 사사로이 용을 쓰던 곡식과 피륙까지 깎을 리야 있겠느냐. 
전대로 쓰겠다구 버티어 볼 테다."
"새로 된 왕비한테 절대로 권리를 뺏기서어서는 아니 됩니다. 앞으로 쓰실 
일이 태산 같습니다. 우선 백미 천 석에 피륙 만 필은 가져가야 
하겠습니다."
"어디다가 쓰려느냐?"
엄청난 수에 대비의 눈이 크게 떠진다.
"모두 다 잊어버리시었습니까? 금지옥엽 같으신 대군마마께서 탄생이 되신 
것이 모두 다 어느 분의 힘인 줄 아십니까. 석가여래 부처님의 덕택이시구 
제석님의 조화시구 태상노군과 오방신장 모든 지신님들의 공덕이십니다. 
인제는 대군님의 수명장수 발원을 지성껏 하시어 삼재팔난을 막아내게 
하시고 상감의 자리에 나가시도록 하시려면 명산대찰을 찾아서 곳곳마다 
내원당을 이룩하시고 총명한 도승을 구하시어 수륙대재를 올리셔야 할 
것입니다. 쌀 천 석, 피륙 만 필로 다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힘 자라는 대로 해보자꾸나."
대군 소리에 대비의 귀는 번쩍 뜨인다.
"쌀 천 석, 피륙 만 필만 들여서 우리 대군마마께옵서 상감마마가 되시고 
대권이 함빡 마마께로 돌아오게만 된다면 그까짓 쌀 천 속, 베 만 필이 다 
무엇입니까. 너무나 값이 싼 것입니다."
"꼭 그렇게 되겠느냐. 되기만 한다면 내수사 별차한테 영을 내려서 몇 
차례 나눠서 내주기로 하마."
"아이구, 마마께서도 딱하시기도 하십니다. 누가 쌀 천 석, 피륙 만 필을 
한꺼번에 내립시라구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에 쓰는 것이 아니냐?"
"마침 준비를 하셨다가 쓸 때마다 내립시라는 것입니다."
난정은 대비의 마음을 잠깐 늦춰 준다.
  대비는 사랑하는 단 하나의 어린 아들인 대군의 수명을 빌고 상감 
자리에까지 올라가도록 한다는 난정의 말에 이제는 도리어 자기 자신이 
초조했다.
"오늘이라도 쌀을 몇십 것 쓸 테면 표를 써 주마. 내수사에 가서 찾아 
쓰도록 하려무나."
"좋은 도승과 영한 무당을 찾아서 우선 택일을 해야 합니다. 생기복덕일을 
가려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니, 먼저 대비마마께 아뢰어만 두는 
것이옵니다."
"쇠뿔은 단김에 뺀다구 치성을 드리는 일도 할 테면 빨리 하도록 해라."
"염려 마십시오. 대비마마께서 허락을 내리셨으니, 오늘이라도 나가서 덕행 
높은 도승과 영한 무당들을 찾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정경부인 난정은 이쯤 거래를 드려 놓고 궐문 밖으로 자비를 타고 
나갔다. 대비는 난정이 나갈 때, 우선 쌀 백 석과 피륙 삼백 필을 
내주라는, 내수사에 보내는 표를 내주었다. 내수사에서는 윤원형의 아낙 
정경부인 난정의 집으로 쌀 바리, 피륙 바리가 끊일 사이 없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곳간마다 쌀이 가득 쌓이고 광마다 피륙을 종보를 하여 높이 
쌓았다. 젊은 대군의 수명장수를 축원하고 이복 아들인 상감의 축수하기를 
빌고 나라의 주권을 잡은 대권이 대비마마한테로 넘어오기를 기도드리는 
보시 쌀이요, 시주 피륙에 쓸 물건이었다. 난정의 집으로는 명산대찰의 
중들이 드나들고, 무당 판수가 길을 터서 몰려들었다.
  절마다 대군의 생위패와 젊은 상감의 생위패를 모셔 앉히고, 대군의 
위패 앞에는 수명장수를 비는 축원을 올리게 하고 젊은 상감의 위패 
앞에서는 어서 빨리 세상을 떠나라는 암축을 올렸다. 난정은 사인교를 
타고 구종별배 열두 하님을 거느리고 명산 대찰을 찾았다. 치성과 불공 
드리는 것은 대비의 특명이라 대비의 몸을 대신해 받아서 절간으로 
나아가는 것이니 행차와 기구가 놀라운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난정이 
탄 사인교 행차는 대신의 행차를 능가해 구종별배와 열두 하님이 늘어선 
외에도 대궐 안에서 상궁들이 나와서 십여 채의 가마를 타고 난정을 
호위해 나갔다. 대궐에서 가까운 인왕산 밑에 있는 내불당은 말할 것도 
없고 동불암, 서진관, 승가사, 문수암을 위시하여 금강산 유점사, 안변 
석왕사, 양산 통도사, 동래 범어사, 합천 해인사, 보은 법주사, 강릉 월정사, 
묘향 보현사, 공주 미곡사 등 명산대찰에는 난정의 행차가 아니 간 곳이 
없었다.
  산천에 기도하고 절간에 축원을 올리는 일은 난정이만이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남산 국사당에는 난정의 남편인 윤원형이까지 움직여서 밤마다 
신 앞에 불을 켜놓고 젊은 상감이 어서 승하해 돌아가시기를 빌었다. 
난정은 절만 찾아서 불공을 올리는 것이 아니었다. 무당을 불러 당집에서 
굿을 하게 하고 용왕에게 밥을 준다 하여 감은들, 삼개, 노돌, 두모개에는 
어백미를 지어 가지고 용배를 탄 뒤에 강심으로 들어가 고기밥을 주었다. 
  백성들은 보리쌀이나 조밥을 겨우 연명을 해 가는 판국인데 난정이 
고기밥을 주는 어백미가 다달이 수백 석이 되고 보니, 강변에서 이 꼴을 
보는 백성들의 탄식하는 소리가 점점 높았다.
"우리는 보리쌀도 못 먹는 판국인데 물고기들은 옥 같은 어백미를 힘 안 
들이고 먹으니 고기가 사람의 팔자보다 낫구나."
"싸라기 한 톨이 우리의 피땀인데 우리는 피땀을 흘려서 곡식을 지어 
놓고도 입에 풀칠을 못하는데, 허허 바다 강물 곳으로는 몇백 석씩 쌀이 
들어가니 이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러는 것인가."
"모두 다 암탉이 우는 탓일세. 상감은 돌아가시고 새 임금은 약하고 
조정암 선생 같은 어진 신하는 없고 하니 나라꼴이 되겠는가?"
백성들의 탄식하는 소리는 더욱 높아 갔다.
  허하고 약한 새 상감은 유월 염천 뙤약볕에 진종일 석고대죄를 드리고 
몰러난 후에 별안간 복통이 급하게 일어나고 열이 올랐다. 전하는 
괴로움을 참고 일부러 말을 내지 아니했다. 오뉴월 삼복 중에 대비에게 
석고대죄를 드리다가 병이 낫다는 소문이 생길 것을 꺼려했다. 대비의 
몰인정한 것이 드러나면 아들 된 도리에 불안하기 때문이었다. 전하는 
밤새도록 복통이 치열했다. 더위를 먹어 이질에 걸린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극렬한 복통 속에 대변을 보니 후중기는 뻗치고 뒤는 보이지 
아니했다. 마침내 붉은 적리가 두어 방울 피와 함께 흘렀다. 
  비로소 중전과 나인들이 약방에 급히 기별을 했다. 약방제조는 황급히 
전의를 대동하고 임진을 올렸다. 원래 상중 반년 동안에 소찬만 잡수시고 
애통하게 지낸 몸에다가 적리병에 걸려 놨으니 큰일이었다. 얼굴은 
수척하고 사지는 앙상했다. 여기다가 어머니가 효자 아들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남에게 말하지 못할 기막힌 슬픈 심정을 가슴 안에 안고 
있으니 병은 얼른 나을 리가 없었다. 약방에서는 급히 약을 지어 올리고 
전의는 전하의 병세를 대신들에게 전했다.
  "상감의 육체는 쇠약하신 품이 국상 때보다도 더하십니다. 더구나 날이 
혹서라 이질에 걸리셨는데 이것이 모두 다 허증입니다. 효성이 너무 
지극하시어 몸을 돌보지 아니하시고 애통한 탓이라 생각합니다. 대신께서 
빨리 승후를 하시고 권도에 쫓아서 몸과 마음을 편히 하시도록 하옵소서."
대신들은 전의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시각을 지체치 않고 문안을 
드리기를 청했다. 그러나 전하는 번거롭다 하여 허락을 내리지 아니했다.
"나의 병상은 대단치 않다. 다만 이질의 증상이 있을 뿐이다. 소동하지 
말라."
하는 전갈을 내렸다. 그러나 병세는 용이치 아니했다. 전하는 내리 '사'를 
하고 구역증까지 있어서 수라를 통히 잡숫지 못한 채 사흘 낫, 사흘 밤을 
지냈다. 이 소식은 승전빗 내시 박한종의 입으로 정원에 전해졌다. 
정원에서는 다시 놀라 영의정과 육조판서가 함께 합문 밖에서 문안을 
올렸다.
  전하는 병중에도 미안하게 생각이 되었다.
"나의 기후는 어제와 별로 가감이 없다. 급하지 않은 일로 온 조정이 
문안을 하니 마음에 미안하기 그지없노라."
하는 전갈을 내렸다. 모든 신하들은,
"참으로 어진 상감이다."
하고 감탄하면서 하루바삐 성후가 완쾌되시기를 바랄 뿐이었다.
  며칠이 지났다. 전하의 병은 더욱 침중했다. 황황망극한 사람은 중전 
박씨와 전하의 외숙되는 윤임뿐이었다. 전하는 몸이 허탈이 되어 잠깐 
정신을 잃었다. 중전 박씨는 하늘같은 상감을 살리고 싶었다. 혀로 하아얀 
무명지를 끊어 피를 흘려 상감의 입에 흘려 넣었다. 중전 박씨의 단지해 
넣은 수혈을 받은 전하는 잠깐 소생이 되었다. 
  이때 돌연 청명하던 날씨는 하늘에 먹장을 쏟아 부은 듯하며 천둥 
번개가 일어나면서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돌연 와지끈하는 벼락 
치는 소리가 처절하게 들리면서 불덩이는 경회루 연못 앞 기둥을 때려 
부셨다. 혼몽 중에 겨우 정신이 소생된 전하는 깜짝 놀란다.
"이게 무슨 소리냐. 벼락 치는 소라가 아니냐?"
하시며 시녀들을 돌아본다. 시녀 하나가 창황히 전 밖으로 나가서 
내시에게 물었다. 대궐 안에서는 야단법석이 일어났다. 경회루 기둥이 
벼락을 맞아 넘어 박히고 불덩이는 연못 위로 디글디글 굴렀던 것이다.
"벼락이 경회루 기둥을 쳤습니다."
내시가 황망히 궁녀에게 연통을 했다. 시녀는 급히 어전으로 들어가 
사실대로 아뢴다.
"경회루 기둥에 벼락을 쳤다 하옵니다.
시녀의 말을 듣는 전하는 어눌한 목소리로,
"벼락이, 경회루 기둥을! 대비께서 얼마나 놀라셨겠느냐. 빨리 궁녀를 
보내어 안녕하신가를 알고 오도록 해라."
  중전 박씨를 위시하여 모든 궁녀들은 전하의 지극한 효성에 아니 우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대비는 이 효성스러운 전하의 마음을 조금도 
알아주지 않았다. 알아주지 않을 뿐만 아니었다. 요악한 딴 일을 하고 
있었다. 남산 기슭에는 어서 돌아가라는 주문 소리가 새어나오고, 내원당 
전마다 전하의 옥등잔에 불이 까물거려 명재경각에 이르게 하는 송경 
소리가 드높았다.
  전하는 다시 소생이 된 뒤에 일체의 약과 미음을 거부해 버렸다. 무엇을 
생각했는지 스스로 자기의 다시 살아 나갈 길을 끊어 버리자는 
심정이었다. 시녀가 권해도 약을 마시지 아니했다. 중전이 권해도 미음을 
마시지 아니했다. 중전 박씨는 안상한 말씀으로 아뢴다. 
"전하의 몸은 전하의 한 몸이 아니시옵니다. 천만 시민이 전하가 하루바삐 
쾌차하시기를 하늘같이 바라고 있사옵니다."
중전은 억지로 전하의 입을 벌리고 약을 넣으려 했다. 전하는 대답 없이 
중전의 약을 넣는 손가락을 깨물어 벼렸다. 하는 수 없이 궁녀가 약을 
대신 개어 넣었다. 전하는 역시 궁녀의 손가락을 깨물어 버렸다. 미음을 
권해도 마찬가지였다. 전하는 입을 꽉 다문 채 식음과 의약을 전혀 거부해 
버린다. 
  약과 음식을 전적으로 거부해 버리는 쇠약한 상감은 허탈일로로 떨어져 
버릴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허탈은 마침내 하혈을 일으키면서 
혼수상태로 빠져 버리고 말았다. 전하의 병세는 급전직하로 더욱 위독 
상태에 빠져 들어가고 말았다. 이 소식은 급히 대신이 있는 빈청과 
정원으로 전해졌다.
  영의정 윤인경은 급히 좌의정 유관, 도승지 송기수와 기사관 이덕응을 
대동하고 어전에 뵈옵기를 청했다. 이때 전하의 정신은 약간 다시 돌았다. 
시칙해 모시고 있던 윤임이 대신들이 뵈러 들어온다고 사유를 아뢰었다.
"대신들이 문후를 드리러 들어옵니다. 이번에는 만나 보셔야 할 것입니다."
윤임은 목소리를 낮추어 아뢴다. 대신들의 힘을 빌어 가지고 아니 
자시려는 약을 마시도록 해보자는 것이었다. 전하는 혼미한 중에서도 
의관을 갖추려 했다.
"옷과 갓을 가져오너라. 대신들이 들어오는데 맨상투 바람으로 만나 볼 
수는 없다."
전하는 내시에게 분부를 내린다.
"그대로 만나 보셔도 좋습니다."
윤임이 아뢴다.
"아니야. 대신을 만나 보는데 그대로 만날 수가 있나요? 예가 아니지. 어서 
옷을 가져오너라."
내시는 하는 수 없이 백립과 백포를 받들어 병상에 누운 전하를 부축해 
입혔다.
  영의정 윤인경 등이 어전에 들어가 용안을 바라뵈니 전하의 형상은 말이 
아니었다. 얼굴에는 검은 기가 끼고 뼈만 앙상했다. 전하는 백립 백포를 
입고 베개에 의지해 단정히 앉아 있었다. 이때 윤임이 청심환과 
소시호탕을 쟁반에 가지고 들어왔다. 영의정이 아뢴다.
"듣자오나, 전하께옵서는 약을 아니 잡수신다 하옵니다. 약이 비록 입에는 
쓰오나, 병에는 효력이 있는 것이옵니다. 약을 거부하지 마시고 
잡수시옵소서."
이때 전하는 수척하고 파리한 얼굴을 들어 대신들을 바라보면서 미연히 
웃었다.
"대신들의 면을 보아 한 잔을 마시리라."
전하는 어수를 늘여 약그릇을 들어 단 번에 들이킨다.
  어리석은 신하들이었다. 총명한 이 상감의 스스로 자진하려는 뜻을 
몰랐다. 전하는 한 잔의 약쯤이 자기의 생명을 연장시키지 못할 것을 잘 
알았다. 대신을 예우하는 뜻으로 한 잔을 마신 것뿐이었다. 전하는 약을 
마시고 나서 피곤한 듯 베개에 옥체를 의지한다. 좌의정 유관이 아뢴다.
"신하들도 병이 중하면 임금이 문병을 해도 의관을 더하지 않는 법이온데 
전하께옵서는 소신들을 대하시는데 공연히 번거롭게 백포를 입으시니 
송구하기 짝이 없사옵니다. 공연히 마음을 수고롭게 마옵소서."
전하는 대답 없이 피로한 중에 미연히 웃으며 대신들을 바라본다.
"내 병이 암만 해도 다시 일기 어려울 것 같으오. 이제 정신이 혼미하기 
전에 대신들에게 내 뜻을 전하는 것이오. 조광조, 김정, 기준 등을 
복직시키고 현량과를 다시 회복하게 하오. 조광조의 일은 선왕 때 해 
놓으신 일이라 차차 시기를 보아서 신원을 할까 했더니, 이제 나의 병세가 
이토록 중하니 내 생전에 조광조의 벼슬을 복직시키지 아니하면 아니 
되겠소. 오늘로 현량과를 다시 회복하게 하고 조광조 등의 죄를 사하고 
벼슬을 복직시키게 하오."
모든 대신들은 황송해서 전교를 받들었다. 허탈한 이 병중에 전하가 
조광조를 생각해서 복직을 시키고 현량과를 다시 두게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모두들 감읍하면서 어명을 받는다.
  대신들이 조광조의 원통히 죽은 것을 신원하여 복직을 시키고 현량과를 
다시 설치하라는 어명을 받들어 나오니, 조광조의 제자들은 말할 나위도 
없고 성균관 유생들을 위시하여 팔도의 유생들은 어깨가 으쓱해서 새 
임금의 덕을 칭송하는 소리가 높았다.
"전하는 참으로 성군이시다. 요순의 정치를 넉넉히 하실 분이다. 어서 빨리 
회춘이 되시기만 바랄 뿐이다."
"효성이 너무 지극하시어 오늘날 이 병환이 나신 것이거든. 선대왕이 
미령하실 때, 음식을 전폐하고 의관을 끄르지 아니하시면서 약을 먼저 
맛보아 가며 시탕을 하시지 아니하였는가. 이러하기를 한 달 동안이나 
하셨거든. 돌아가신 뒤에도 물과 장을 입에 대지 않기를 닷새를 하셨고, 
졸곡이 지난 뒤에도 권도를 쫓아 고기를 잡수라 해도 영영 거절을 하시고 
오늘날까지 지내시다가, 오늘날 이 병환이 나지 아니하셨는가. 참으로 
하늘이 내신 효자거든, 어서어서 평복이 되시어 이 나라를 바로 잡아 
놓으셔야 할 텐데."
"이번에 조광조 선생이 원통하게 돌아가신 것을 신원해 주시고 현량과를 
다시 설치하라는 특명을 내리신 것을 보니, 회춘만 되신다면 정말 어진 
이는 들에 숨어 있지 않게 되고 정사는 해와 달같이 밝고 밝아서, 
백성들이 살기 좋은 강구 연월이 될 것일세. 어쩌면 동소문 안의 갖바치 
도학자가 영의정이 될른지도 모르겠네. 조정암 선생이 생전에 전하께 
부탁한 것이거든."
사람들이 모인 곳이면 시골과 서울은 말할 것 없이 모두들 새 임금의, 
조광조를 신원시켜 복직시킨 영명하고 성스러운 자질을 예찬하면서 하루 
속히 병환이 회춘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전하의 병세는 
점점 더 기울었다. 석고대죄 때문에 더위를 먹어 생긴 이질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그러나 전하는 약을 마시지 아니하고 미음도 거부했다. 
지난번에 대신을 대접하여 한 잔의 약을 마셨을 뿐 다시는 마시지 
아니했다. 
  전하는 아들이 없었다. 딸도 없었다. 한평생 효도를 다하여 자기의 옥 
같은 몸에 한 점의 티도 없는 깨끗한 행실을 순수하게 그대로 간직하고 
싶었다. 계모도 어머니였다. 계모에 불효했다는 누명을 가질 까닭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조광조 선생한테 뺏골 속속들이 배워 온 유학 
정신이었다. 자기는 친어머니 이상을 대비를 받들었다. 그러나 대비는 
마침내 이것을 받아주지 아니했다. 받아주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자기를 의심하고 시기했다. 
  부왕이 생존해 계실 때부터 철두철미 자기를 배격하고 시기하고 별의별 
수단을 다 쓴 것을 전하는 잘 알고 있었다. 동궁에 작서의 변을 일으킨 
것도 누구의 짓인지 전하는 잘 알고 있었다. 박빈에게 사약을 내리고 
복성군을 죽게 한 것도 누구의 짓인 것을 전하는 잘 알았다. 동궁에 불을 
일으켜 하마터면 전하 자신의 몸이 타 죽어 버리게 될 뻔한 일도 전하는 
누구의 짓인지 잘 알고 있었다. 부왕이 승하하신 후에 전하는 망극애통한 
중에도 계모인 대비를 친어머니 이상을 받들었다. 단 하나인 대군을 
진정으로 뼈가 저리도록 사랑했다. 그러나 대비는 전하의 이런 마음을 
받아 주지 아니했다.
  대비는 전하의 마음을 받아 주지 않을 뿐이 아니었다. 대비는 오히려 
신비에게 식량을 대어 주었다는 것을 구실고 하여 전실 아들인 자기를 
불효자로 만들려 들었다.
'전하는 어미를 어미로 대접하는 것인가요?'
살기를 등등하여 기막힌 꾸지람을 내렸다. 그는 능글맞다고 살기를 띠어 
소리를 질렀다. 유학 정신으로 볼 때 어머니는 다 마찬가지였다. 자기를 
낳은 돌아간 생모나 폐비의 운명을 당한 신비나 계비인 대비나, 어머니의 
윤기를 따질 때 후궁이 아닌 이상 다 동등한 위치에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삼강오륜을 생활의 목표로 하는 전하는 폐모라도 어머니였다. 
어머니를 차마 굶어 죽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비를 폐한 것은 
아바마마가 한 일이지만, 아들인 자기로서는 폐비 신씨를 박대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가 아내를 박대할 수는 있으나, 아들이 어머니를 박대할 
도리는 없는 일이다. 이것은 삼강오륜을 목표로 하는 유학 정신이 
아니라고 시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자기는 약간의 
식량을 대어 주게 하고, 궁녀 한두 명을 내보내서 모시게 했던 것이다. 
결코 복위를 시킨 것은 아니었다. 한 나라의 임금은 그만두고, 한 사람의 
평민으로도 아들의 이름을 가졌다면 당연히 받들어야만 할 의무였다. 
대비는 이것을 가지고 트집을 잡았다.
  전하는 안상한 말씀으로 자세히 설명해 밝혔다.
'어마마마, 그것은 정식으로 폐비를 복위시킨 것이 아니옵니다. 그러하옵기 
어마마마께 아뢰지도 아니한 것이옵니다. 아뢰면 공연히 천금 같으신 
마음을 혹여나 상해 드릴까 해서 아니 아뢴 일이옵니다. 그러기에 폐비 두 
자를 그대로 쓰고 단지 궁이라 하라 한 것뿐, 다른 뜻은 없습니다. 내시와 
별감과 궁녀를 천한 것이 '폐비집, 폐비집'하고 이렇게 마구 부르옵기, 
듣기에 상스러워서 폐비궁이라 하라고 아랫 사람들에게 말로 한 것뿐 
공식으로 조정에서 의논해서 전교를 내린 것도 아닙니다. 그러하옵고 
폐비께 쌀과 하인을 내보낸 것은 그분의 지위를 보장하려 하여 내보낸 
것이 아니라 지금 폐비께서는 절화 지경이 되어 굶어 돌어가실 지경이라 
하옵니다. 이 강박한 세상에 누가 그한테 쌀을 주겠습니까. 그러니 소자가 
쌀을 좀 내보낸 것뿐입니다. 선대왕께서는 유죄 무죄 간에 그때 형편에 
어찌할 길이 없사와 내치셨사오나 소자한테는 폐모라 하오나 어미는 
어미입니다. 사내가 아내를 내쫓는 일은 있으나 자식이 어미를 굶겨 죽일 
수야 있습니까. 그러하와 다만 소자의 사사로운 일로 처리하기 위하여 
약간의 쌀과 나무를 내어보낸 것뿐이옵고 아무 다른 뜻은 없나이다. 품해 
여쭐 거리가 되지 못해서 말씀을 아니 드린 것이옵니다.'
이렇게 간곡하게 아뢰었어나 대비는 도리어, 
'어참, 갸륵한 효잘세그려. 그래서 어미인 나를 박대하고, 동기간인 대군을 
없애 버리려구 드는구료!'
하고 청천에 벼락같은 기막힌 말을 떨어뜨렸다.
  극진히 받들어 모시는 자기의 마음을 짓밟고 대비가 이런 소리를 탁 
내뱉을 때, 전하는 스스로 자결하고 싶은 마음이 슬프게 솟아났다. 더구나,
'나는 힘없는 과부고 대군은 아비 없는 고아이요. 죽이고 살리는 대권은 
모두 다 전하한테 달렸소. 나를 쫓아낼 테면 어서 쫓아내고, 대군을 죽일 
테면 어서 죽이시오.'
대비의 최후의 발악인 이 한 마디 말에 젊은 전하는 체념을 느끼지 아니할 
수 없었다.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소리였다. 이렇게까지 대비의 마음이 
악화될 줄은 몰랐다. 전하는 아들의 직분을 다하기 위하여 석고대죄를 
드리는 행동을 취하기는 했으나, 이제는 임금의 자리를 대비의 아들인 
이복동생 대군한테로 전하는 수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고 생각했다. 
  왕의 지위를 헌신짝 던지듯 버림으로써 비로소 아름다운 사람의 구실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여기에 비로소 형제간의 우애가 소생되고 여기에 
다시 모자의 체면이 유지되고 모든 선의 표준이 해와 달같이 찬란하게 설 
것이라 생각했다.
  전하는 석고대죄를 드리는 중에 이렇게 생각했다. 다행히 자기가 삼십이 
넘은 자기로 세자인 아들이 없는 것은 도리어 왕가의 가도가 평안하게 
질서를 유지하며 화합하게 될 장본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전하는 
내심으로 왕의 자리를 이복동생인 대군에게 전하리라 마음먹었다. 문제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대권인 왕의 자리가 문제였다. 자기가 
만약 왕의 자리에 앉지 않았다면 대비가 간악한 무리의 참소를 듣고 
자기를 시기할 까닭이 없다고 생각했다. 자기는 상왕으로 물러앉고 
대군에게 왕위를 전하는 날 궁중은 비로소 요마스러운 사악의 기운이 안개 
스러지듯 걷혀지리라 생각했다. 전하는 가까운 장래에 이 일을 실천하리라 
생각했다. 여기까지 생각한 전하는 비로소 마음이 거뜬해진 것이다.
  그러나 전하는 뜨거운 유월 염천이 진종일 석고대죄를 드린 것으로 해서 
병을 얻었다. 병세는 점점 짙어 가고 다시 일어날 가망이 없게 되었다. 
세상이 모두 다 귀찮은 생각이 들었다. 대군에게 왕위를 전하는 일만이 
오직 왕실을 구하는 길이라면 상왕으로 있는 것이나 죽어서 세상을 떠나는 
것이나 매일반이라 생각했다.
'원래 허약한 몸이라 다시 살 가망이 없다. 얘써 약을 먹어서 구구하게 
명을 연장시킬 필요가 없다.'
전하의 생각은 여기까지 이르렀다.
  그 뒤부터였다. 전하는 약을 거부하고 거절했다. 지극한 정성으로 약을 
먹이는 왕비 박씨의 손가락을 일부러 깨물기도 하고 미음을 권하는 시녀의 
손을 악물기도 했다. 병석에 누운 전하는 벌써 마음이 왕이란 대권에서 
떠나 버린 지가 오래다. 
  그러나 한평생 골수 속속들이 스며들었던 원통하게 죽은 스승 조광조의 
누명을 벗겨 주고 현량과를 다시 설치하게 하려는 일은 마지막이나마 아니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기가 이 일을 아니 하면 다시는 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전하는 혼미한 중에도 정신을 차려서 대신들은 면전에서 
조광조를 복직시킬 일과 현량과를 다시 설치할 것을 또렷이 지시했던 
것이다. 
  이미 대신에게 조광조를 복직시키고 현량과를 계속하라는 명을 내린 
전하는 기운이 탈진해서 황한 중에도 마음이 거뜬해서 구름을 타고 넓고 
넓은 하늘 위로 오르는 듯 했다. 옳다고 생각했던 일을 아버지가 처리해 
놓은 일이나 체면이 어찌할 수 없어서 망설이고 있다가 단행해 버린 
것이다. 선비들이 좋아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득하게 가라앉는 듯 
기뻤다. 
  이제 전하에게 남은 일은 왕의 자리를 아우인 대군에게 전하는 일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쓸데없이 초조해 하고 시기하고 계염나서 의심하는 
악의 길로 떨어진 계모의 마음을 평안케 해서, 왕가의 불행과 파멸을 구해 
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전하의 병세는 조광조의 복직을 선포한 뒤에 다시 혼곤해졌다. 
중전 박씨는 아프고 저린 슬픔을 머금고 다시 칼을 들어 단지를 하려 
들었다. 이번엔 왕비가 또 단지를 하면 왕비마저 보존키가 어려웠다. 
시녀들은 깜짝 놀라 왕비의 단지를 막는다. 
  이 소문은 빈청에 있는 영의정한테로 들어갔다. 영의정 윤인경은 마음이 
비창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시를 왕비께로 들여보내서 간곡하게 간하는 
말씀을 올린다. 
"지난번에 단지하신 일도 어려운 노릇이온데, 이번에 또 다시 단지를 
하신다 하오니, 만약 비전하마저 병환이 아니오면 전하의 병구완은 누가 
하시옵니까? 더구나 이질에는 단지가 아무런 효염이 없다고 합니다."
눈물을 흘려 간했다.
  한편 창경궁에 있는 대비는 왕이 위독하다는 보고를 듣자, 한편으로는 
소원을 이루어 마음이 설레이고 한편으로는 초조하기 한량없었다. 만약 
전하가 승하한 뒤에 왕의 자리를 대군에게 내린다 하면 아무런 문제도 
없겠지만 윤임 일파가 왕의 유언을 빙자해서 종실 속에서 양자를 만들어 
왕위에 나가게 한다면 큰 일이었다. 대비는 멀리 떨어져 있게 된다면 
큰일이었다. 급히 내시를 영의정한테로 보내서 경복궁으로 옮길 것을 
주장한다. 
"상감의 옥체가 극히 미령한데 멀리 있어서 미음이 미안하오. 경복궁으로 
옮길 테니 영의정은 내 뜻을 받아 거처할 곳을 마련케 하오."
영의정은 당황해서 윤임한테 묻는다.
"대비께서 경복궁으로 옮기겠다 하시는데, 어찌하면 좋으리까?"
윤임은 단번에 대비의 뜻을 알았다.
"대비께서 경복궁으로 오신다면 별안간 거처할 곳이 없소이다. 빈 곳은 
정원밖에 없는데, 대비께서 정원에 거처하신다면 대신 이하로 모든 
신하들은 어디서 거처를 하겠소이까. 그대로 창경궁에 계시라구 하시오."
윤임은 대비가 옮기는 것을 막았다. 영의정이 이대로 전갈을 올리니 
대비는 더욱 초조했다. 옆에 있는 난정이 대비한테 우긴다.
"경복궁에 별안간 거처할 곳이 없다면 경복궁 대궐에서 멀지 않는 
의혜공주 청원위궁으로 잠시 옮기겠다구 하옵소서."
  대비는 또다시 영의정에게 전갈을 내린다.
"경복궁에 있을 곳이 없다면 우선 임시로 청원궁으로 나가서 전하의 
병구완을 하겠노라."
하고 우겼다. 청원위궁은 대비의 큰 딸인 의혜공주의 부마 한경록의 
집이다. 
  영의정은 또다시 윤임과 의논했다. 
윤임은 펄쩍 뛴다.
"공주의 집은 여염집 틈에 있는데, 대비전하를 어떻게 여염에 계시게 한단 
말씀이오. 절대로 불가합니다."
하고 끊어 말했다. 영의정은 또다시 대비께 전갈을 보냈다. 대비와 난정은 
펄펄 뛴다.
"단지 삼사일 동안 청원궁에 있다가 상감의 기후가 평복만 되면 곧 돌아올 
텐데 무엇이 불가해서 못 간단 말이냐. 나는 청원궁으로 나가겠노라."
대비는 화가 꼭뒤에까지 올라서 내시를 영의정한테로 보냈다.
  윤임은 대신, 정원, 대관, 홍문관을 움직였다.
"존귀하신 대비의 몸으로 결단코 사사로운 여염집으로는 단 하루라도 
옮기시지 못하십니다."
언관까지 들고일어나 간했다. 염불이 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생각이 있다는 
격으로 요사스런 무리들은 임금의 병을 구원하는 데는 마음이 없고 대권을 
도둑질할 기회만 노리면서 서로들 싸우기에만 급급했다.
  이때 착하고 어진 새 임금은 잠깐 기절했다가 다시 소생이 되었다. 
영의정 이하로 만조 백관은 빈청에 대기하고 있었다. 새 임금은 문득 눈을 
들어 사방을 살피다가 왕후 박씨를 베개 위에서 돌아다본다.
"내 병상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아니하니 마침내 일어나지 못할 것 
같소. 나와 중전은 아들이 없으니 아우 경원대군에게 왕통을 잇게 하여 
전위를 시키니 이 뜻을 영의정에게 알리시오."
성스럽고 깨끗한 사람이었다. 아무런 허욕이 없었다. 사욕에 헤메는 
요사스런 무리들은 왕의 자리를 둘러싸고 독사뱀 같은 붉은 혀를 날름거릴 
때 성자인 상감은 한 마디의 장중한 유언을 남긴 채 스스로 눈을 감는다.
  유언을 받은 왕후 박씨의 철읍 소리가 들렸다. 시녀들의 구슬피 흐느껴 
우는 소리가 일어났다. 내시가 눈물을 머금고 창황히 빈청으로 나아가 이 
사실을 대신에게 전한다. 영의정 윤인경과 좌의정 유관은 황망히 승지 
최연을 시켜서 경원대군에게 전위한다는 유언 단자를 쓰게 한 뒤에, 친히 
용안을 뵙기 위하여 청연루 남계로 들어가 부복했다. 확실한 사실을 
알자는 것이었다. 이미 유언을 낭랑히 내렸으니 옆에 시칙해 있는 윤임도 
하는 수가 없었다. 대신들은 별실 안으로 들어오라 일었다.
"영의정, 좌의정이 들어왔사옵니다."
윤임은 혼곤히 누운 전하께 아뢰었다. 임금은 대신이 들어왔다는 말을 
듣자 병상에서 일어나려 했다. 허나 이미 탈진된 몸을 움직일 도리가 
없었다.
"전하! 경원대군께 전위를 내리신 일이 틀림없사옵니까?"
영의정이 소리를 나직이 하여 전하께 묻는다. 전하는 고개를 약간 
끄덕이는 듯 했다. 그러나 이내 기운이 떨어져 최후의 숨을 거두었다.
  영의정은 어전에서 전위 단자에 어보를 찍었다. 대신들은 통곡해서 
대왕을 영결하면서 어전을 물러나왔다. 온 궁안에 곡성이 낭자하게 
진동한다. 임금자기에 있은지 여섯 달, 을사 칠월 초하룻날 묘시에 경복궁 
청연루 침전에서 돌아가시니 나이 겨우 31세, 시호는 인종이었다. 대왕이 
승하하기 직전에 왕위를 경원대군한테로 전위시킨다는 전교가 내려지자, 
영의정과 좌의정은 도승지 송기수를 아랫 대궐 창경궁으로 보내어 이 
사실을 대비께 아뢰게 했다.
  이때 대비는 창경궁에서 인종의 병환이 위중한 경복궁으로 옮기려 
했으나 윤임을 위시하여 대신들의 대비의 거접할 만한 처소가 없다 하여 
옮기는 것을 막고, 경복궁 대궐에서 가까운 사위의 집 청원위궁으로 
가겠다 했으나 윤임과 대신들은 또다시 여염집이라 하여 옮기지 못한다 
하니, 대비와 난정은 독이 뻗쳐 어찌할 줄을 몰랐다.
  대비에게는 위기일발의 일각이었다. 이때 대비의 생각에는 인종이 숨을 
거두는 때에 어보를 손아귀에 넣어 거두지 못한다면 친아들 
경원대군께서는 영영 임금이 되는 기회를 놓치고야 말 것이다. 만약 
아들이 없는 젊은 상감이 후사에 대해서 유언을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날, 
윤임이 왕비께 아뢰고 자기 마음에 드는 종친 중에서 사후 왕자를 만들어 
왕위를 잇게 한다면 자기는 형식적으로 대왕대비라는 존칭만 받을 뿐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보는 격으로 멀리 정권 테 밖으로 떨어져 버리게 
되고, 아들 경원대군은 오죽잖고 세력 없는 임금의 숙부가 되는 길밖에 
아무 도리가 없는 것이다. 초조한 사람은 대비뿐만이 아니다 난정도 
초조하고 난정의 남편 윤원형도 혀바닥 비늘이 돗아서 혀가 탈 
지경이었다. 
  난정은 대비의 부아에 불을 질렀다.
"대신이란 자들이 너무들 합니다. 언강생심 대비마마의 명령을 거역합니까. 
때가 어느 때라고 이따위 말을 합니까. 아드님인 대와마마께옵서 숨을 
모아 승하하시려는 이 기막힌 판국이 아닙니까. 이런 판에 거처하실 곳이 
없어서 경복궁으로 옮기시지를 못한다는 소리가 글세 말이 됩니까. 밤을 
새워 가면서 약을 쓰고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도 될 둥 말 둥한 이 판국에 
거처하실 곳이 뭣입니까. 누가 보료방석에 보진을 차리라고 평안히 쉬러 
가시려는 겁니까. 모자지간에 병구완을 가시는 길인데 참으로 해괴망측한 
말도 다 듣겠습니다. 모자지간의 삼강오륜을 모르는 놈들이 대신이옵니까."
난정은 버들 눈썹을 찡그리고 삼강오륜을 들어서 모자지정을 방패로 들고 
나서는 것이었다.
"윤임이란 놈이 나를 의심하는 모양 아니냐."
"윤임이 하상 무엇이기에 감히 대비께옵서, 아드님의 환후를 걱정하시어 
밤을 새우러 가시겠다는 데 못 오신다고 막고 있습니까. 윤임은 전하의 
외숙일 뿐입니다. 외숙이 이씨네 왕실 일에 무슨 아랑곳이 있습니까. 마마, 
대비의 직권으로 대신들을 부르시어 준절히 꾸지람을 내리소서. 안 할 
말로 윤임이 어느 놈을 데려다가 세자를 봉한다면 어찌합니까. 빨리 
영의정, 좌의정을 부르시어 눈이 빠지도록 꾸지람을 내리신 후에 거처할 
데가 없으면 경복궁 처마끝이라도 좋으니 거동을 하신다구 면대하시어 
명령을 내리옵소서. 만약에 상감이 운명을 하시고 다른 사람이 세자가 
된다면 그때 가서는 마마께서는 말씀을 내리실 권한이 없으십니다. 빨리 
서두르십시오. 일각 일초가 급하옵니다."
  어서 새 임금이 돌아가시기를 축수하고 기도하던 난정은 새 임금이 
운명을 하려 하니, 도리어 이렇게 모자지간의 오륜을 내세우고 조바심을 
치면서 애를 태웠다.
"거기 누가 있느냐?"
대비는 파르족족 독이 난 얼굴에 역정을 내어 내시를 불렀다. 뜰앞에서 
내시가 황망하게 대답을 올린다.
"네이, 소인 대령해 있사옵니다."
"빨리 윗 대궐로 올라가서 빈청에 올라가서 영의정과 좌의정이 있거든 
이곳으로 들라 해라."
대비는 난정이 시키는 대로 영의정과 좌의정을 불러 놓고 대비를 대비로 
여기지 않는다고 톡톡히 한번 꾸지람을 내려서 모질게 닦아 세울 마음을 
먹고 있었다. 
  대비전 내시는 대비의 영을 받들고 걸음을 빨리하여 궐문 밖으노 나갔을 
대 경복궁 정원에서 도승지가 창경궁 대궐로 향해 들어온다."
"급히 대비께 여쭐 말씀이 있어서 정승님 들의 명을 받들어 내려왔네. 
빨리 대비께 아뢰어 주게."
도승지 송기수의 말에 내시는 발걸음을 멈췄다.
"소인은 지금 대비마마의 명을 받들고 영의정과 좌의정을 모시러 가는 
중이올시다."
"여보게, 이 일이 더 급하니 먼저 거래를 드려 놓고 가도 늦지 않을 
듯하이. 빨리 들어가 여쭈도록 하게."
내시는 마음속으로 정승한테서 도승지가 명을 받들어 왔으니 정승을 
부르는 것이나 매일반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 잠깐만 합문 밖에서 기다립시오."
  내시는 승지한테 대답한 뒤에 발길을 돌려 합문 안으로 들어가 대비께 
아뢴다.
"영의정한테서 도승지가 영을 받들고 들어와서 대비께 아뢰기를 
청합니다."
대비는 내시의 말을 듣자 화가 불덩이 같이 올랐다.
"영의정을 불렀지. 누가 도승지를 불렀느냐?"
대비는 더한층 질려서 펄펄 뛴다. 정경부인 난정은 옆에서 또 다시 
부채질을 한다.
"영의정, 좌의정이 모두 앉은뱅이가 되었나 봅니다그려. 마마께서 
부르시는데, 도승지를 대신 보낸다니 참으로 가소롭기 그지 없습니다. 
이러하니 나라꼴이 될겠습니까. 윤임이 점점 곤댓질을 하게 되었고 나라 
일은 떡해 먹게 되었습니다."
정경부인 난정은 살살 부채질을 하고 앉았다.
"아니옵니다. 소인이 아무리 걸음이 빠른들 그 동안에 윗 대궐을 갔다가 
돌아올 수가 있습니까. 소인이 막 궐문 밖을 나가려니 도승지가 대신들의 
명을 받아 급히 아뢸 일이 있다 하와 발길을 돌이켜 아뢰는 것입니다."
  성미 급한 대비와 난정은 비로소 도승지가 불러서 온 것이 아니라 
제출몰에 온 것임을 알았다. 대비는 도승지를 만나야 좋을지 아니 만나야 
좋을지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눈치 빠른 난정이었다.
"도승지가 왜 왔나 먼저 말씀을 들으신 후에 다시 대신을 불러서 꾸지람 
하셔도 좋을까 합니다."
난정은 말을 마치자 얼핏 일어나 쌍창에 발을 내린다. 발을 내리고 승지를 
만나 보십쇼. 하는 뜻이다.
"승지를 들라 해라."
대비의 목소리는 약간 풀리는 듯 했다. 내시는 다시 발길을 돌려 합문 
밖으로 나간다. 이윽고 도승지는 내시에게 인도되어 발을 늘인 쌍창 아래 
허리를 굽힌다.
  "도승지 신 송기수 아뢰오. 전하께옵서 지금 병환이 위독하신 중 대위를 
경원대군께 전위시키라는 어명을 내리셨소이다. 대신들의 영을 받들어 
삼가 대비전에 아뢰오."
방안에 살기가 등등해서 앉았던 대비와 난정은 모두들 자기의 귀를 의심할 
지경이었다.
"무어라 하고? 똑똑히 말을 하오. 거리가 멀어 잘 안 들이오."
대비의 목소리를 또렷또렷했다.
"지금 경원대군께 선위를 하시는 전교를 내리셨습니다."
도승지 송기수는 되풀이해서 아뢴다. 
  내시가 원대위로 뛰어올랐다. 대비전 내시였다. 신이 나서 어깨가 
으쓱해진다. 
"대군방께 선위를 하셨다 합니다."
내시는 발 앞에 다가와서 큰소리로 외치고 입이 딱 벌어진다. 대비의 
얼굴과 정경부인 난정의 얼굴이 마주친다. 새파랗게 질렸던 두 여인의 
살기가 봄눈 슬 듯 스러지고 얼굴에는 금방 봄바람이 이는 듯 했다. 
  초롱초롱 수정 같은 두 여인의 맑은 눈에 눈웃음이 영롱하게 서렸다. 
그러나 가엾게도 일찍 세상을 버리는 전비 아들인 상감이 어질고 착하고 
효성스럽다는 생각은 눈꼽만치도 나지 않는다. 얇고 얇은 접시물 같은 
소견이었다. 대비는 기뻐서 벌어진 붉은 입술을 다물지 못한다.
"어리석은 아이를 데려다가 무엇에 쓰려고. 천하에 이런 망극한 일도 
있는가. 그럼 대군을 이 대궐에 데려오나? 저 대궐로 데려오나? 어디로 
데려와야 좋겠는가?"
대비는 요염한 옷음을 뛰워 입을 다물지 못하면서 발을 승지한테 묻는다. 
정경부인 난정도 앵도 같은 입술을 감쳐물고 눈웃음을 주체하지 못한다.
  이때 대비의 소생인 경원대군은 나이 겨우 열두 살밖에 아니 되었으나, 
왕가의 전례에 의하여 대궐 안에 있지 못하고 그전 제안대군 궁에 있었다.
"그 일은 소생도 황황망망한 중이오라 아직 묻지 못하고 왔사옵니다. 다시 
대신한테 의논한 뒤에 여쭙겠습니다."
내시는 다시 승지의 말을 대비한테 전하니 대비는 마음이 헝그러웠다.
"알겠노라."
고개를 끄덕거렸다.
  도승지가 물러간 뒤에 정경부인 난정은 대비의 손을 꼭 붙들었다.
"그거 보십쇼. 부처님의 공덕이 얼마나 그십니까. 금강산 만이천 봉 
절간마다 쌀을 바친 효험이 납니다. 윤임이 제아무리 요두 전목을 하고 
대권을 뺏으려고 밤을 새워 가면서 전하 옆에서 꼼짝달싹을 안하고 붙어 
있었습니다마는, 결국은 부처님께서 전하의 마음을 슬쩍 돌려서 이렇게 
임금의 자리가 대군께로 돌아오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참으로 
광대무변한 무량대불의 바다 같은 은혜를 갚사올 길이 없습니다. 이제는 
마마께옵서 무측천 무황후가 되셨습니다. 마마! 대권을 잡으신 것을 
치하합니다."
정경부인 난정은 잡았던 대비의 손을 놓고 날아갈 듯 절을 올렸다. 젊은 
대비의 입가엔 즐거운 웃음이 거둬질 사이가 없었다.
    섭정여왕
난정은 치하하는 절을 대비께 올린 뒤에,
"소녀는 물러가겠습니다."
치맛자락을 휩싸고 일어선다. 대비는 깜짝 놀란다.
"이 바쁜 때 어디로 가려고 그러느냐?"
"아무리 바빠도 소녀는 대군마마를 보살펴 드리러 가야 하겠습니다. 
제안대군 궁으로 나갑니다. 세수도 씻겨 드리고 머리도 빗겨 
들려야겠습니다. 옷도 분별을 해야 합지요. 조금 있으면 대궐로 들어가실 
텐데, 가뵙지 않고 어찌하겠습니까?"
난정은 입에 혀처럼 민첩했다.
"그럼 빨리 나가서 뒷배를 좀 보아주어라. 그리고 곧 나한테로 와야 한다."
"곧 오고말굽쇼. 마마께서도 대례복을 입으시고 윗 대궐로 올라가셔야 
하지 않습니까."
"대례복뿐이냐. 네가 없으면 내가 의논할 데가 없구나. 윗 대궐로 내가 
먼저 가게 될는지 대군이 먼저 가게 될른지 두서를 차릴 수가 없구나. 
빨리 가서 분별만 하고 돌아오너라."
"이런 때는 소녀의 몸이 마마를 위해서 여남은 개 되었더라면 좋았을 
뻔했습니다. 호호호."
난정은 신바람이 나서 참새처럼 재잘대면서 대군 궁으로 자비를 몰아 
나간다.
  경복궁 대궐에는 창황망극하고 애통한 중에 어느덧 해는 높이 떠서 
일고삼장이 되었다. 빈청에서 대신들은 승지와 사관을 모아 놓고 회의를 
열었다. 
"이미 경원대군께로 전위하랍시는 유명이 계시니 빨리 경원대군을 대궐 
안으로 모셔 오도록 합시다."
좌의정 유관이 영의정 윤인경을 바라보고 의견을 묻는다.
"대군의 연치가 겨우 열두 살밖에 아니 되셨으니 먼저 대비를 모셔다 
계시게 해야만 어린 몸에 의지가 될 것 같소이다. 승지는 자비를 차려서 
먼저 대비를 모셔 오도록 하오."
영의정의 제의에 누구 한 사람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윤임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 앞일이 캄캄했으나 어찌하는 도리가 없었다. 
아무 말도 못하고 얼이 빠져서 낙루만 하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마침내 승지와 사관들은 대신의 명을 받들어 창경궁 대비전으로 
내려갔다.
"대신들이 대비마마를 모시어 오라 했습니다."
"대군은 어느 때 모시기로 했는가?"
대비는 대군을 들여보내는 일이 제일 급하게 생각되었다.
"대신들의 의견이, 대군께서 어리시니 먼저 모후를 모신 후에 모시기로 
하였소이다."
젊은 대비는 이 말을 듣자 마음이 더욱 좋았다.
"예복을 차릴 테니, 승지와 사관은 합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으라."
  제안궁에서 승지와 사관이 대비를 모시러 왔다는 소식을 들은 난정은 
대군의 세수를 시키려다 빨리 자비를 몰아 창경궁으로 들어왔다.
"먼저 대비마마를 모시러 왔답지요. 소녀가 뒷배를 받들어 
드리겠사옵니다."
정경부인 난정은 대비의 머리를 빗기고 분세수를 시킨 후에 족두리 용잠을 
머리에 얹어 씌우고 하얀 소복의 대례복을 입혔다. 무예청들이 뜰앞에 
대령한 연 위에 대비를 오르게 한 뒤에,
"소녀는 또다시 대군 방으로 가야겠습니다."
난정은 날렵한 열쇠처럼 몸을 놀렸다.
  대비가 창경궁에서 경복궁으로 향할 때는 한낮인 오시였다. 대비전 
나인과 내시들은 어깨가 으쓱해서 대비를 옹위하여 경복궁으로 들어갔다. 
유시에는 영의정 윤인경과 좌의정 유관이 승지 사관들을 거느리고 
제안궁으로 나가서 대군을 연에 태워 모시고 사인교를 타고 호기롭게 
시녀들을 거느리고 열두 살 된 어린 대군을 옹위하여 경복궁으로 
들어갔다. 
  사정전에는 인종의 시체를 모시어 빈전으로 정하고 발상을 하여 통곡을 
하면서 천하에 국상을 발표했다. 성스러운 임금인 인종이 별안간 
돌아갔다는 부음을 듣자, 온 나라 사람들은 아청 하늘에 벼락을 맞은 듯 
급하게 부모를 여윈 듯 슬픔과 수심이 온 나라에 가득했다. 길을 가던 
사람들은 인종이 승하했다는 구슬픈 부음을 듣자, 그대로 궐문 앞에 
주저앉아 땅을 치며 통곡을 하고, 성균관 유생들과 동학, 남학, 서학, 
북학에 모여 공부하던 선비들은 책을 덮고 광화문 대궐 앞으로 떼를 지어 
몰려와서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통곡을 한다.
"조광조 선생을 신원해 주신 요순 같은 임금이 가셨으니 장차 우리는 
누구를 의지하고 삽니까."
"현량과를 다시 회복해 주셨기에 공부를 더 하고 덕행을 닦아서 성스러운 
상감의 뜻을 받들려고 마음먹었더니, 이제 이렇듯 우리를 버리고 가시니 
저희의 공부는 펴 볼 길이 없습니다."
유생들은 삼주오잡 줄을 지어 궐문 밖에 엎드려 땅을 치면서 통곡을 한다. 
땅을 두드려 망곡하는 구슬픈 통곡성은 광화문 대궐 삼문 밖이 떠나가는 
듯 했다.
  유생과 선비뿐이 아니었다. 바지저고리 바람에 삿갓을 쓴 사람, 평양자 
패랭이를 쓴 사람, 갖바치, 관사람, 등짐장수, 종의 결지들 가지각색의 천인 
대우를 받는 사람들도 땅 바닥을 치면서 통곡을 한다.
"춘추가 이제 겨우 삼십밖에 아니 되셨기에 앞으로 사오십 년 동안은 좋은 
세월을 볼 줄 알았더니, 전하, 돌아가셨다니 이것이 어인 변고이오니까. 
헐벗고 굶주리고 천대받는 백성들을 돌봐주시지 않고 이렇게도 무정하게 
혼자 가 버리시고 마십니까. 들에는 숨은 어진 이가 없게 하고 사람은 
귀천을 가리지 말고 불차탁용을 해서 쓰라고 하셨다기에, 이제는 밝고 
밝은 성대가 되는 줄 알고 길게 한번 숨을 돌렸더니, 말만 하시고 
가버리십니까."
"야속도 하옵니다. 정녕 가셨습니까. 불이 반짝하고 켜지려다가 이내 다시 
꺼져버려서 암흑천지가 되고 마는구만요."
백성들은 통곡을 하고 푸념을 했다. 광화문 대궐 앞은 날마다 망곡하는 
사람들로 허옇게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중에는 점잖은 팔십 고령의 백발 
노인이 아관박대로 나타나서 아무 말 없이 아프게 곡을 올리고 자취를 
감추어 사라진다. 아는 사람이 손을 들어 가리킨다.
"저기 저분이 백의재상이 될 뻔한 동소문 갖바치 학잘세. 동궁 때 
조정암이 천거한 분이거든."
슬픔은 이렇게 해서 나라에 가득 찼다.
  상중의 세월은 빨랐다. 어느덧 소렴, 대렴을 마치고 인종이 승하한지 
오일 째 되는 칠월 오일, 열두 살된 어린 대군은 상복을 면류관 곤룡포의 
대례복으로 바꾸어 입고, 사정전 동편 뜰에 나가서 사배를 한 뒤에 다시 
동편 섬돌로 올라 향안에 앞에 꿇어앉아, 선왕의 유교와 어보를 
도승지한테서 받은 후에 근정전에 올라 만조백관의 조하를 받으면서 
즉위예식을 거행했다. 
  이날 대비는 임금이 어리니 어머님의 자격으로 전각에 발을 늘이어 발 
안에 앉았고, 어린 임금은 발 밖에 용상을 타고 앉아 있었다. 대비는 일약 
섭정여왕이 된 것이다. 대비는 호화로운 대례복을 입고, 발 안에서 나라 
일을 처결했다. 어린 임금은 이름뿐인 임금이었다. 실제로 국사를 재결하는 
권한은 대비 윤씨한테로 돌아갔다.
  이제는 한 나라의 섭정여왕이었다. 만조정 백관의 벼슬을 높이고 내리고 
죽이고 살리는 권한을 잡았다. 대비는 만조백관에게 영을 내린다.
"미망인이 덕이 박하고 복이 벗어서 두 번째 큰 변고를 만났으매 다만 
통곡할 뿐이다. 지금 어린 임금이 왕위를 이었으니 국가의 대사는 전혀 
대신들을 믿을 뿐이다. 지난번에 간사한 무리들이 유언비어를 만들어서 
국가를 어지럽게 한 일이 있었으나 지금도 인심을 의심치 않을 수 없다. 
만약에 사설을 다시 일으키는 자가 있다면 아프게 다스릴 것이다. 
대신들은 이 뜻을 알아 충성을 다하여 나라를 돕고 인심을 
진정시키도록하라."
대비의 첫 공사는 서슬이 푸르렀다. 섭정여왕이 된 벽두에 전실 
아들이었던 돌아간 임금을 대비가 해롭게 했다는 윤임 일파가 터뜨린 
소문을 일거에 두들겨 부수자는 소리였다.
  대비는 정치궐을 장악한 뒤에 병조판서 이기, 호소판서 임백령, 공조판서 
허자, 지중추부자 정순붕에게 실권을 주었다. 윤원형과 난정의 천거를 
그대로 받아들여 쓴 것이었다. 독자는 아직도 기억할 것이다. 호조판서 
임백려은 사랑하는 기생 옥매향을 윤임한테 뺏겼던 사람이요, 공조판서 
허자는 우유부단하면서 윤원형을 쫓아다니며 아첨하는 사람이요, 
지중추부사 정순붕은 선비와 사람들을 미워하여 질시하는 사람이요, 
병조판서 이기는 탐관오리의 사위로서 맑은 벼슬을 못 했는데도 윤원형이 
일약 병조판서로 승진시키니, 좌의정 유관은 이것을 엄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대비 윤씨는 마침내 좌의정의 말을 듣지 않고 이기에게 
병조판서의 직권을 주었다. 네 사람이 합심이 되어 윤원형과 대비를 
도왔다. 인종을 도왔던 좌의정 유관과 인종의 외숙되는 윤임의 운명이 
장차 바람 앞의 등불이 될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병조판서 이기는 인종의 초상을 다스리는 총호사가 되었다. 임금이 
돌아가면 다섯 달 만에 장사를 지내는 것이 원칙이요, 나라의 전례였다. 
그러나 이기는 돌아간 인종을 우습게 보아서 다섯 달이 못 되는 시월 
십이일로 발인을 하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섭정여왕의 비위를 맞추자는 
것이었다.
  총호사 이기는 만조백관 앞에서 발언했다.
"인종께서 왕의 위에 계신지 일 년이 되지 못했으니, 대왕의 예를 쓸 수가 
없소. 이러하므로 갈장을 지내야겠소.
일약 권력가가 된 이기 앞에 모든 신하들은,
"좋소이다."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장사를 빨리 지낼 것을 찬성했다. 이때 병조정랑으로 있는 정황은 
분연히 상소를 올렸다.
"장례는 대행대왕을 마지막 모시는 큰일이옵니다. 천지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일정한 상제가 있어서 함부로 바꾸지 못하는 일이옵니다. 이제 
찬궁이 채 마르기 전에 장사를 다가 지낸다는 일은 크게 예를 잃는 일이니 
불가하옵니다."
섭정여왕은 아무런 비답도 내리지 않았다. 
  검열 벼슬을 한 윤결이 정황이 상소를 올렸다는 소문을 듣자 역시 
의분을 이기지 못하여 분연히 상소를 올린다. 
"병조정랑 정황이 올린 상소는 정정당당한 말이옵니다. 대행대왕의 신하는 
다만 정황 한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법대로 다섯 달을 채워서 장사를 
지내야만 합니다."
그러나 섭정여왕은 또다시 아무런 대답도 내리지 아니했다. 듣고도 모른 
체하는 것이다. 태학생 신백령이, 두 사람이 상소를 올려도 비답이 내리지 
않는다는 소문을 듣고 분함을 참지 못하여 상소를 올린다.
"대행대왕깨옵서 평일에 예법에 밝으시어 일호의 차착이 없으셨는데, 
뜻밖에 빈천을 합시와 장사를 모시는 데 예를 쫓지 아니하니 이것은 
신하들이 불충하여 이러하옵니다. 어찌하여 장사를 다가 지내려 합니까. 
크게 배은망덕을 하는 일이옵니다. 뿐만 아니라 대왕께서 승하하신 뒤에는 
이튿날 습을 올리고 닷새 만에 염을 드리는 일은 모두 다 예법이온데, 
습과 염도 다가서 지냈으니 불경하기 짝이 없사옵니다. 장사를 다가서 
모시자고 발론한 신하의 목을 베어 주시옵소서."
그러나 섭정여왕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마침내 장사를 병조판서요 총호사인 이기가 발론한 대로 다섯달 이내에 
고양 땅에 지내리고 결정되었다. 인종의 장사가 갈장으로 지내기로 
결정되었다 하니 만조백관들은 윤원형과 이기와 섭정여왕의 혁혁한 위엄과 
기세에 눌려서 정황과 윤결을 빼놓고 감히 누구 한 사람 대항에서 말하는 
신하가 없었으니, 서울 안 선비들과 백성들은 어진 임금의 장사를 다가 
지내는 것이 불쌍하고 원통해서 땅을 쳐서 통곡하는 울음소리가 궐문 밖에 
끊일 사이가 없었고 산간 벽지에 파묻혀 있는 시골 백성들은 양식을 싸 
가지고 서울로 올라와 백의백립으로 궐문 밖에 끊일 사이가 없었고 산간 
벽지에 파묻혀 있는 시골 백성들은 양식을 싸 가지고 서울로 올라와 
백의백립으로 궐문 밖에서 망곡을 하여 사람의 산과 사람의 바다를 
이루었다. 
  선비의 여론을 듣지 않고 장사를 다가 지내기로 결정한 윤원형과 이기의 
일당은 때를 만난 듯 의기가 양양해서 얼굴에 기쁜 빛을 띄우고 우쭐대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병조정랑 정황은 이 꼴을 보자,
"저 도둑놈들의 기색을 보라. 치가 떨려서 뱃길 수가 없구나!"
하고 팔뚝을 걷어붙었다.
  마침내 인종대왕의 시체를 대궐 안에 모신 채 발인도 하기 전에 큰 
변고는 또 한 번 일어나 세상 천지를 소란케 하였다. 
  인종이 돌아간 지 한 달이 겨우 지난 팔월 하순의 일이었다. 난정은 
밤새도록 윤원형과 무슨 중대한 모의를 한 뒤에 사인교를 몰아 대궐로 
들어갔다. 중종대왕과 인종대왕이 생존해 계실 때도 대비전으로 무상 
출입을 한 난정이었다. 이제는 대비가 섭정여왕으로 등극을 했으니, 더할 
나위가 없는 여인천하였다. 난정은 남자 재상의 위세를 능가하여 
구종별배와 열두 시녀를 거느리고 위세 좋게 육조 앞 넓은 길을 지나서 
경복궁 대궐로 벽제 소리를 치면서 들어간다. 정경부인 난정이 대례복을 
입은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대비는 이제 섭정여왕이었다. 아무 것도 거리낄 것이 없었다. 안석 
장침에 보료를 깔고 만기를 총림하는 군왕의 자격으로 전각 위에 높직이 
앉아 있었다.
"정경부인 드오."
하는 내사와 궁녀들의 연통과 함께 난정은 섭정여왕의 앞에 날아갈 듯 
절을 올렸다. 섭정여왕은 난정만 바라보면 얼굴에 봄바람이 불면서 환한 
기운이 돌았다. 오늘의 자기가 섭정여왕이 된 공로는 순전히 난정의 
은근하고 비밀한 공로로 도니 것이었다.
"정경부인이 들어오니 무슨 좋은 일이 있는가."
사십대의 섭정여왕은 아직도 젊고 화려한 얼굴에 웃음이 꽃판처럼 터진다.
"좋은 일보다 극히 중대한 일이 있사와 급히 아뢰러 들어왔사옵니다."
"앉아라, 무슨 일이냐?"
난정은 무릎을 꿇고 활옷 한삼 속에서 한 개 노랑 주머니를 바쳤다.
"그것이 무엇이냐?"
"기막힌 큰 사건이옵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뼌했습니다. 천지신명이 
도우시고 사방 제불이 받들어 주셔서 일이 무사하게 되었습니다. 속을 
끌러 보십시오. 윤임이 공의전(인종비 박씨)께 바친 언문 편지올시다."
섭정여왕의 표정은 심각했다.
"윤임이란 놈이 공의전에!"
  섭정여와의 손은 약간 떨리는 듯하면서 염낭을 끄른다. 하얀 간지 쪽에 
언문으로 쓴 편지가 나타났다.
"요사이 나라 일이 점점 수상해져서 언제 어느 때 죽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주야로 눈물만 흘리고 있을 뿐입니다. 유판서도 이 일을 걱정하여 대위를 
공우[봉성군, 홍빈의 아들]한테로 선위시키기로 유정승한테 
통해놓았습니다. 작일 하교하옵신 일은 형편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전일 
아뢰어 품한 일을 빨리 단행하도록 하옵소서. 이렇게 지연을 하신다면 
애매하게 죽을 사람이 부지기수올시다.
"이것이 뉘 글씨냐?"
"윤임의 글씨옵니다."
"언제 한 편지냐?"
"인종이 위독할 때 윤임이 우리 대군을 없이하고 홍회빈의 아들 
봉성군한테로 선위를 하라고 주장한 편지옵니다."
"작일 하교한 일이란 무슨 소리냐?"
"그것은 한편으로는 계림군(윤임의 생질)을 추대하자는 음모였습니다."
"윤판서는 누구냐?"
"윤임의 당인 이조판서 윤인숙입니다."
"유정승은 누구냐?"
"좌의정 유관이 아니옵니까. 대행왕 인종을 도와 조광조를 복직시키고 
현량과를 다시 만들어 놓은, 우리를 미워하는 정승입니다."
"이것을 언제 누가 주었느냐?"
"바루 초상 중 창황한 때 원형이 공의전 앞마당에서 주웠다 합니다. 
창황한 중에 공의전께서 나를 떨어뜨린 것이 분명합지요."
"죽일 놈들!"
  섭정여왕은 이를 갈았다.
"하루바삐 윤임을 처치하옵소서. 이 일을 덮어두셨다가는 우리 상감께 
앞으로 무슨 재미없는 일이 일어날지 모르옵니다. 윤임뿐 아니라 유정승도 
쫓아내고 유판서도 죽여 놔야합니다. 어린 임금이라고 엎신여겨서 
역적질을 하면 큰일입니다. 속히 처분을 내리옵소서. 그리고 병조판서 
이기로 정승을 삼으시옵소서. 우리의 심복이옵니다."
"어떻함 좋으냐?"
"밀지를 원형에게 내려서 급히 역적들을 처치케 하시옵소서."
난정은 연상을 당기어 벼루에 먹을 갈았다.
  섭정여왕은 간지를 펼치고 붓을 들었다. 언문 글씨로 밀지를 썼다. 
"윤임이 정승 유관과 유인숙과 함께 자기의 생질인 계림군과 홍희빈의 
아들 봉성군을 추대하려 했다. 대역부도한 놈들이다. 증거가 있고 형적이 
드러났으니 시각을 지체치 말고 처리케 하라."
섭정여왕의 밀지는 꼭꼭 봉해서 난정의 손으로 넘어갔다. 동시에 윤원형과 
이기는 임백령에게는 새로운 발령이 내렸다.
"유관이 좌의정을 파면시키고 이기로 좌의정을 삼고, 임백령으로 우의정을 
삼고 윤원형으로 대사헌을 시킨다."
전교는 정원으로 지체없이 내려갔다.
  난정은 섭정여왕의 밀지를 품고 사인교를 돌려 나는 듯이 집으로 
들어와서 윤원형에게 밀지를 전했다. 
"빨리 밀지를 받아서 처결하시오. 그리고 이기로 좌의정을 삼고 
임백령으로 우의정으로 삼고 대감으로 사헌부 대사헌을 시킨다는 발령이 
내리시었소. 이제는 일등공신들이 되실 테니 정신들을 차려서 일을 
하시오."
새로이 대사헌이 된 윤원형은 난정의 본때 나는 솜씨와 수단에 감복한 
모양이었다.
"제일이야, 우리 정경부인의 수단이 제일이야."
연해 정경부인을 칭찬하고 초들었다. 대사헌이란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고 
생살여탈의 권한을 잡는, 법을 맡은 장관이었다. 정승이라도 다 이 벼슬을 
거치는 것이 아니었다. 덕망과 지식과 인격이 한세상을 지도할 만한 
거벽이라야 이 벼슬을 하는 것이다. 정암 조광조 같은 이가 일찍이 이 
벼슬을 한 것이다. 일개 왕후의 지친이라 하여 이 벼슬이 차례 오는 것이 
아니었다.
  윤원형은 대사헌이 된 뒤에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벙글거린다.
"임백령이 보고도 한턱을 단단히 하라고 말씀하시오. 옥매향이 인제는 
완전히 품안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니, 이 기회에 윤임을 빠짝 녹이도록 
하라고 그러오."
난정은 벙글거리며 윤원형에게 훈수를 준다. 윤원형은 시각을 지체치 않고 
이기, 정순붕, 임백령의 심복들을 모두 자기 집으로 불렀다. 모두들 새로이 
좌의정, 우의정, 대사헌의 발령을 받아서 하늘도 도리질칠 형세였다.
"대감, 좌의정이 되셨으니 치하하오. 이제는 나라가 태평하오리다."
윤원형은 이기를 보고 치하를 했다.
"모두 다 대감의 덕택이오. 그러나 대감께서는 일국의 풍기와 법을 맡으신 
대사헌이 되셨으니 치하하오."
윤원형은 또다시 임백령의 손을 잡는다.
"대감, 정승이 되셨으니 치하하오."
"못난 사람이 대임을 맡아 황감하오."
"못나긴 왜 못났어. 인제는 옥매향을 찾을 텐데.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간사한 무리들은 이렇게 너털 웃음을 웃으면서 좋아했다.
  이윽고 윤원형은 정색하고 말을 꺼냈다.
"대비께서 밀지를 내리셨습니다."
"무슨 밀지오니까?"
이기, 임백령, 정순붕의 눈이 둥그레진다.
"윤임이 공의전에 바친 언문 편지가 공의전 마당가에 떨어진 것을 
대비께서 발견하시고 증거로 압수하신 후에 이 일을 빨리 치치라고 밀지를 
내리셨소. 여러분은 대비께서 친필로 쓰신 밀지를 읽어 보시오."
윤원형은 마침내 잠겨진 문감 서랍을 열고 밀지를 내어 보였다. 이기, 
임백령, 정순붕은 밀지를 둘러보았다.
"윤임과 유관은 본시 그런 자로 알았지만 이조판서 유인숙까지 이러한 
역적모의를 할 줄은 몰랐소."
이기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한다.
"윤임가 유인숙은 사돈간이 아니오. 본시 창자를 맞대고 지내는 
자들이거든."
임백령이 지적을 한다.
"천하에 고약한 사람들이로군."
이기가 탄식을 한다.
"자, 그럼 이 밀지를 가지고 대감들은 어떻게 처리하겠소."
"대감이 이제 새로이 대사헌이 되셨으니 사헌부와 사간원 양사가 모여서 
밀지를 받들고 이 일을 처리케 합시다."
이기가 발론을 한다.
"사헌부와 사간원에는 아직도 윤임과 유인숙을 지지하는 헌관과 간관들이 
많을 텐데, 만일 공론이 빗나가면 어찌하오?"
윤원형이 자처해서 대답한다.
"대역부도의 짓을 한 증거가 판연한데, 이것을 지지할 사람들이 어디 있단 
말씀요. 만일 그러한 자가 있다면, 그것은 역적의 당이나 매일반인 
자들입니다. 나중에 우리들이 직접 대비께 고변하는 형식을 취해서 처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엔 임백령이 주장을 한다. 옥매향을 뺏긴 원한이 아직도 새로운 
모양이다.
"좌우간 한번 사헌부와 사간원의 양사를 모아 놓고 공론을 해 보기로 
합시다."
윤원형은 결정을 짓고 양사 관원을 중학에 모이게 했다.
  중학에는 대사간 김광준, 집의 송희규, 장령 정희등, 이언침, 지평 김저, 
민기문, 사간 박광우, 헌납 백인걸, 정언 김난상, 유희춘 등 제제다사가 
모였다. 모두들 조광조의 제자가 아니면 김안국의 제자들이었다. 밝은 
임금인 인종이 등극하자 다시 한 번 밝은 정치를 해서 유학 정신을 정치에 
실천시키면서 어진 임금을 도와 보자던 사람들이었다. 인종이 조광조가 
원통하게 죽은 것을 설원하고 현량과를 다시 실시하라는 전교를 내리자 
그들은 요순의 임금을 만난 듯 어서 병환이 회춘되기만을 바랐던 것인데, 
뜻밖에 국상을 당하고 보니 부모를 여읜 듯 지통 속에 파뭇힌 
사람들이었다.
  윤원형은 대간 회의에 일부러 나오지 아니하고 대사간 김관준을 시켜서 
대간 회의를 사회케 했다.
"대비께서는 급한 밀지를 윤원형에게 내리시어 정승 유관과 이조판서 
유인숙과 형조판서 윤임을 역적으로 처리하라 하시었소. 사건인즉 
대행대왕께서 위독하시니 윤임은 유인숙과 유관과 공모해 가지고 윤임의 
생질인 계림군을 추대하려 하다가 또다시 홍희빈의 아들 봉성군을 
추대하려고 했다는 것이오. 윤임이 왕비전하께 보낸 언문 편지가 궐내 
마당에 떨어진 것을 대비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밀지를 내린 것이라 하오. 
대간들은 이 일을 심사해서 논핵해 주기 바라오."
중학에 만좌한 대간들은 대사간의 말을 듣자 벌써 이것은 윤원형이 
대비전하의 밀지를 빙자로 첫째로 윤임을 죽이고 어진 정승 유관과 
유인숙을 때려 높히자는 음모인 것을 알았다.
  김저는 분연히 자리에서 일어나 발론을 한다.
"이것은 간사한 무리들이 기묘사화의 재판을 이루자는 음흉한 흉계라 
생각하오. 윤임만을 죽이자는 것이 아니라 착하고 어진 선비들을 모조리 
어육을 만들자는 계획이오. 우리는 결코 이 꾀 속에 떨어져서는 아니 되오. 
우리는 이 일을 가지고 조정에 논핵할 수는 없소."
모든 대간들은 열화 같은 분노를 참지 못하여 일어났다 앉았다 안절부절을 
못 한다.
  장령 정희등이 발떡 자리에서 일어난다.
"대신을 논박해서 죄주는 일은 나라의 큰일이오. 이러한 중대한 일은 
광명정대하게 처리할 것이지 대비가 몰래 밀지를 그의 지친인 윤원형에게 
내려서 처리한다는 일은 부정한 일이오. 결단코 우리는 밀지 한 장으로 
대신을 논박할 수는 없소이다."
"정장령의 말이 옳소. 나는 뼈가 부서지고 살이 점점이 흩어지더라도 
의롭지 못한 이 더러운 일은 차마 할 수가 없소."
  집의 송희규는 책상을 치면서 분연히 일어난다.
"옳소, 일은 광명정대하게 처결해야 하오. 대신이 죄가 있으면 
광명정대하게 처벌할 것이지 밀지란 무슨 요사스러운 수작이오? 법을 
바로잡는 대간과 언론을 맡은 언관들을 개똥같이 아는 수작이오. 대사간은 
어찌해서 이따위 일을 의논하시오?"
백난걸, 김난상, 유희춘 등은 소매를 떨쳐 자리에서 일어난다.
  간사한 무리들이 밀지를 빙자해서 윤임, 유관, 유인숙을 역적으로 몰려던 
중학회의는 대간들의 반대로 수라장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대사간 
김광준의 보고를 받은 윤원형이 급히 이기, 임백령 정순붕, 허자 등을 
불렀다.
"중학에 모인 대관과 간관들은 대비께서 밀지를 내린 일이 옳지 못한 
일이라고 공박을 하면서 대신들로 하여금 정당하게 처결하라고 논핵하기를 
거부한다 하니 이 일을 장차 어찌 허리하면 좋겠소?"
윤원형은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둘러본다.
"그자들은 모두 다 조광조의 제자가 아니면 김안국의 제자들이 되어서 
그러하오. 저자들은 모두 다 윤임과 부동이 되어서 한 패가 되어, 돌아간 
인종을 보호한다던 자들이오. 저것들을 앞에 세워서 일을 하다가는 일이 
죽도 밥도 아니 되게 되었소. 우리들이 직접 대비께 고변을 하는 형식을 
취하여 일을 하겠소이다."
이기가 팔뚝을 걷어붙이면서 분개하는 듯 의견을 꺼낸다.
"좋소, 옳은 말씀이오. 진작 그렇게 할 것을 그랬소. 그까짓 대간이나 
간관들을 통해서 움직일 것이 없소. 우리들끼리 직접 대비께 아뢰어 
처분을 묻기로 합시다."
낫살 먹은 정순붕이 이기의 말에 찬동한다.
"윤임 같은 역적놈을 앞에다 두고 어느 천년에 간관 대관들을 움직여서 
여론을 일으킨단 말씀이요. 애당초부터 틀린 일이라 생각하오. 윤임 그 
자가 역적의 마음을 먹었다면 만약 달아나면 어찌할 작정이오. 빨리 
서두릅시다."
이번엔 임백령이 아직도 옥매향을 뺏긴 한을 잊을 수 없어서 어서 빨리 
역적 고변을 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면 오늘은 밤이 이미 깊었으니 내일 이른 아침에 우리들이 대궐로 
들어가서 고변을 하기로 합시다."
모든 간사한 무리들이 일제히 찬성을 했다.
  이튿날 새벽이었다. 윤원형, 이기, 정순붕, 허자, 임백령등은 광화문 앞에 
모여서 일제히 정원으로 들어가 대비께 뵈옵기를 청했다.
"나라에 큰 변고가 있습니다. 급히 면대해 뵈옵기를 청합니다."
정원승지는 대신께 명을 받고 대비께 아뢰었다. 섭정여왕인 대비는 이미 
아는 일이라 시각을 지체할 까닭이 없었다.
"들라 해라."
전광석화격으로 허락하는 명을 내린다.
  편전인 충순당에는 발이 내려지고 섭정여왕인 명색만의 어린 임금을 
앞에 앉힌 후에 윤원형, 이기, 임백령, 허자, 정순붕 등을 맞았다. 이기가 
앞을 서서 아뢴다.
"형조판서 윤임은 중종조 때부터 역적의 마음을 품고 오던 중 요사이 
와서는 더욱 불순한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하옵고 더욱 놀랄 일은 
좌의정 유관과 이조판서 유인숙이 윤임과 한패가 되어 서로들 잠통한 
형적이 있습니다. 어제 양사 장관이 중학에서 대간과 언관들이 회의를 
열고 논박하기로 했으나 결정을 짓지 못했다 합니다. 소신 등이 재상의 
반열에 있으면서 침묵을 지킬 수 없사와 급히 아뢰나이다."
이기의 아뢰는 말을 듣는 어린 임금은 어머니 섭정여왕의 얼굴만 쳐다볼 
뿐이었다.
  섭정여왕인 대비는 발 안에서 말을 또박또박 내린다.
"윤임의 흉악한 음모는 중종조 때부터 현저했을 뿐 아니라 요사이는 대궐 
안에 변고를 내고 있으니 참으로 어찌해야 좋을지 망지소조했던 노릇이오. 
이제 공론이 일어나니 이것은 참으로 하늘과 땅과 조상이 도와주시는 
일이오. 윤임이 전번에 역적 김안로와 한 배짱이 되어 국모인 나를 
퇴위시키려 했고, 김안로를 죄줄 때도 함께 없애 버리려 했으나 당시의 
동궁이었던 인종을 위하여 손을 대지 아니했던 것인 뿐만 아니라, 도리어 
일품을 올려서 벼슬을 주고 그의 손자에게 나의 딸인 공주를 주어 부마를 
삼으려 했으나 윤임은 이 일을 반대하고 공주를 받지 아니했으니 음흉하기 
짝없는 위인이오. 이것은 벌써부터 나와 전하를 배반하고 역적질할 마음을 
품어서 이따위 패례한 짓을 한 것이오. 요새는 흉칙한 마음을 더욱 일으켜 
막중 대궐 안에서 음모를 하여 내간에 통하고 대신들을 체결해서 역적질을 
하려 했으니 천참만륙을 하고도 남음이 있소. 일이 종묘와 사직에 관한 
중대한 일이니, 대신들은 의논하고 크게 윤임의 죄상을 다스리시오."
섭정여왕의 목소리는 또렷또렷 야무지게 떨어진다.
  이기가 다시 아뢴다.
"조정의 모든 대신들을 부르시어 윤임과 유관과 유인숙의 죄를 함께 
의논하게 하옵시오."
섭정여왕은 발 안에서 다시 전교를 내린다.
"좌의정 유관을 제하고 영의정과 대신의 반열에 있는 신하들을 명패로 
부르게 하라."
  내시와 대전별감들은 명패를 받들고 영의정과 재상들을 부르러 나갔다. 
이윽고 영중추 홍언필, 영의정 윤인경, 좌찬상 이언적, 우찬성 권발, 좌참찬 
정옥형, 우참찬 신광한 등이 명패를 받고 황황히 들어왔다. 중추부사 
정순붕이 발 밖에서 섭정여왕인 대비께 아뢴다.
"윤임, 유관, 유인숙의 죄상은 대사간 김광준이 논핵을 하려 하관들을 
중학에 모아 의논했으나 하관들이 반대해서 죄를 정하지 못했습니다. 
대신들이 모였으니 하문하시어 죄를 정하게 하오소서."
영중추 홍언필이 아뢴다.
"유관과 인숙은 벼슬을 갈게 하시고, 윤임은 형적이 약간 있다 하오니 
귀양을 보내는 것이 마땅할까 하나이다."
좌찬성 이언적이 아뢴다.
"일이란 광명정대해야 하옵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선비와 유림들이 많이 
걸려서 또다시 사화가 일어날 염려가 있사옵니다. 충분히 밝히시어 일을 
처리하심이 좋을까 하옵니다."
이때 섭정여왕인 대비는 선비들의 사화가 날까 무섭다는 이언적의 아뢰는 
말을 듣자, 발연히 얼굴에 노한 기운을 띠었다.
"사화가 나면 났지, 별수 있소. 선비라도 역적과 통했다면 법대로 다스려 
죽여야 하오."
섭정여왕은 야무지게 말을 마치자 입을 다물었다. 이언적이 다시 아뢴다.
"이제 대소신민은 모두 다 일심으로 대왕전하를 받들어 사심이 
없사옵니다. 그까짓 윤임 하나를 죄주시기가 무엇이 어려우시어 
광명정대하게 정원에 분부를 내쳐 처결케 하지 아니하시고 하필 밀지를 
다른 곳에 내리시어 사람들의 의혹을 사십니까. 과거의 윤임은 인종대왕의 
신하였습니다, 지금 대비께서는 사사로운 의리를 따지면 모자지간이옵시고 
왕적으로 따지면 수숙 지간이 되십니다. 일이 너무 벌어지면 성덕에 누가 
될까 하옵니다." 
늙은 재상 영중추 홍언필은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발을 격하여 대비께 
아뢴다.
  발 안에서 섭정여왕은 늙은 재상 홍언필의 울며 간하는 말을 듣자 
얼굴빛이 파랗게 질렸다. 늙은 재상의 충심으로 흘리는 눈물이 도리어 
밉상으로 보이기만 했다.
"제 임금을 위해서 한다는 일이 반드시 부자지간을 이간시키고 형제지간의 
의리가 굳어지도록 해야 한단 말이요. 그래 나를 쫓아내서 폐비를 시켜 
버리고 대군을 없애 버려야만 동궁을 돕는 일이 된단 말이요. 만약 당시에 
대군이 윤임의 손에 해를 당하고 인종의 세상을 떠났다면 이 나라꼴이 
어찌될 뻔했소."
섭정여왕인 대비의 역정은 절정에 올랐다. 주먹으로 장침을 친다.
  우찬성 권발도 목이 곧은 사람이었다. 섭정여왕인 대비의 성난 목소리를 
듣고도 다시 간한다.
"지금 상감께서는 인종의 적제로서 이미 유명에 의하여 정위에 
오르셨습니다. 지금 왕자와 군들은 결당한 일이 없고 대신도 집권을 한 
사람이 없는데, 어느 누가 감히 사특한 마음을 먹겠습니까. 새로 정치를 
하시는 시초에 공연한 혼란을 내지 마시고 광명정대한 처사를 하시어 
인심이 안정되도록 하시옵소서."
영의정 윤인경은 반대하는 편과 섭정여왕의 의사를 존중해서 중간을 타 
아뢴다.
"윤임은 아무리 해도 불공한 마음이 있을 터이오니 경상도 성주로 귀양을 
보내게 하시고, 이조판서 윤인숙은 여론이 있으니 파직을 시키고, 좌의정 
유관은 대신으로 있으면서 말초사에 올랐으니 정승을 갈게 하옵소서."
  대비는 총명영리한 여자다. 정승이라도 윤임을 죽이는 것을 반대하는 
여론이 높은 것을 보자, 우선 윤임을 귀양 보내고 좌의정 정승 자리를 
갈고 유인숙의 벼슬을 삭탈한 뒤에 다음 단계를 취하리라 마음먹었다.
"영의정의 말이 그러하니 우선 그렇게 처리한 후에 공론을 듣기로 
하리다."
섭정여왕은 마지못해서 동의를 하고 조회를 파했다. 정원에서는 마침내 
윤임을 성주로 귀양 보내고 좌의정 유관의 정승을 떼고, 이조판서 
유인숙을 파직시키는 것을 공고해서 결정해 버렸다.
  대신들이 물러간 후에 난정은 섭정여왕 앞에 나타났다.
"마마, 쇠뿔은 단결에 빼야 하는 법이옵니다. 윤임이 성주로 귀양 보내고 
좌의정 벼슬만 떼어 놨으니 선비들과 또다시 부동이 되어 들고일어나면 
어찌하시렵니까?"
난정은 또다시 불을 질렀다.
"설마 며칠 동안은 무슨 일이 있겠느냐?"
섭정여왕은 마음이 불안해서 묻는다."
"설마가 사람을 죽인답니다. 지금 조정은 모두 다 윤임의 편이옵니다. 
중학에서 대관과 간관들이, 밀지를 내렸다고 전하를 비방하면서 윤임의 
탄핵을 아니하겠다는 꼴을 보십쇼. 그자들이 모두 다 윤임의 한패입니다. 
별안간 입을 모아 계림군이나 봉성군을 내세우고 역적일을 할는지도 모를 
것입니다. 큰일이옵니다."
난정은 더 한 번 무서운 선동을 한다.
"어찌하면 좋으냐?"
"정순붕이를 시켜서 탄핵하는 상소를 올릴 테오니 옥사를 일으켜서 
처치하도록 하옵소서. 윤임이 역적질을 모의한 것은 그의 첩 옥매향이 잘 
알고 있습니다. 증거가 확실합니다."
"옥매향도 아느냐?"
"알구말굽쇼."
"그렇다면 정순붕에게 연락해서 빨리 탄핵 상소를 올리게 하도록 해라."
난정은 대비의 허락을 받자 치마에 바람을 일으켜 전각에서 물러나왔다.
  하룻밤을 지낸 다음날 아침이었다. 중추부사 정순붕은 윤임, 유관, 
유인숙을 공격하는 상소를 급히 올린다.
"신 정순붕 아뢰나이다. 신은 역시 윤임의 일당이 간사한 마음을 먹고 
난을 일으킨다는 소문을 듣자 통분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더니, 밀지를 
내리심을 듣고 이삼 대신들과 의논하여 빨리 대관과 간관의 여론을 
일으키려 했으나, 불행히 대간들은 오히려 밀지 내리신 일을 옳지 못하다 
하여 이것을 부결해 버리고 흩어져 버렸습니다. 일이 이쯤 되니 종문 
사직의 앞길에 큰 염려이옵니다. 그 뒤에 간사한 무리의 의논이 비등하여, 
윤임을 귀양 보내고 유관과 유인숙은 벼슬을 뺏는 것으로 끝을 마쳤으니 
통분할 일이옵니다. 윤임은 인종께서 승하하신 뒤에 스스로 겁을 내서 
가만히 대신들과 결탁을 해서 역적질을 하려 했으니, 그의 죄상을 
살핀다면 죽여도 남음이 있습니다. 아무리 선왕의 지친이라 하나 단연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유관은 고명을 받은 대신으로 위급한 때 보필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윤임의 말에 아부하여 전하를 고립시키게 해서, 어린 
임금이 왕위에 나가는 날 대행대왕께서 경원대군에게 왕위를 전하리라는 
유교가 계신데도 불구하고, 영의정에게 묻기를 '누구로 왕을 세우느냐?' 
했으니 해괴망측한 일이옵고, 유인숙은 윤임과 결탁하여 연사간이 된 뒤에 
어린 임금이 착하고 약한 것을 이야기하고 대비께서 섭정하시는 일을 극력 
반대했으니 이자의 목이 오늘까지 붙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없는 
노릇이옵니다. 이자들을 다시 심사하시어 법을 바르게 하시기 바라옵니다."
정순붕의 상소는 윤임 이하 좌의정 유관과 이조판서 유인숙에게 폭탄을 
던지는 상소였다.
  섭정여왕은 당일로 시원임대신들을 충순당으로 불러들여서 정순붕의 
상소를 내뵌다.
"나라가 위급 존망할 때에 정순붕은 나라를 위하여 몸을 돌아보지 않고 
바른말로 상소를 올렸으니 참으로 충신이다. 나는 장차 대결을 하려하니 
경들은 그리 알고 물러가라."
대결하겠다는 섭정여왕의 말은 윤임, 유관, 유인숙 세 사람을 죽이겠다는 
말이다. 섭정여왕의 진노가 여기까지 미치니 늙은 재상 홍언필, 윤임경은 
다만 입으로 염불 외듯,
"전하, 그저 호생지덕을 내리옵소서."
하고 섭정여왕의 비위를 거스르게 아니 하려 하고, 임백령과 허자는,
"천참만륙할 역적놈들이올시다마는, 한번 마음을 돌리시오소서. 허나 
역적은 역적이옵니다."
하고 만류하여 구해 주는 체하면서 오히려 섭정여왕의 마음을 자극시킨다.
  대비의 얼굴에 파르죽죽한 바람이 일었다.
"어린 임금이 외롭게 앉아 있고 나라가 흥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히로에 
놓여 있는 위급한 때오, 옛날 예종조때 남이가 역적질을 하려 하니, 국상 
중이건만 친국을 해서 단근질하는 형벌까지 쓴 일이 있소. 이적은 국사에 
관련되는 중대한 일이기 때문이오. 호생지덕을 내가 어찌 모르랴마는 
소인을 다스리는 법은 독한 뱀의 허리를 끊어 놓을 단을 내려야만 뒷날 
다시 선동을 일으키지 못하는 법이오. 이 일을 떠들고 의논할 일이 아니고 
나 혼자 결단할 테니 경들은 물러가오."
섭정여왕은 매섭게 영을 내리고 붉은 입술을 감쳐 물었다. 비상한 살기가 
눈가에 어리었다. 역대 제왕들이 감히 나 혼자 결정한다고 대신들에게 
말해 본 적이 없는 이 나라였다. 한 개 치마 두른 섭정여왕으로 감히 내릴 
소리가 못 된다. 그러나 대신들은 감히 한 마다 항변도 못 하고 등에 땀을 
흘리며 섭정여왕의 앞에서 물러나간다.
  대신들이 벌벌 떨면서 충순당에서 물러난 뒤에 섭정여왕은 금부당상에게 
지엄한 분부를 내린다.
"윤임의 죄상에 대하여는 윤임의 첩 옥매향이 자세히 알고 있을 것이다. 
당장 곧 옥매향을 대궐로 잡아들이게 하고 내가 친국을 할 테다. 형구를 
엄하게 갖추어 치죄케 하라."
급부당상은 섭정여왕의 분부를 듣고, 시작을 지체치 않고 윤임의 집으로 
금부도사를 내보내서 옥매향을 붙잡아 들이게 했다.
  이때 윤임의 집에서는 윤임이 경상도 성주로 귀양길을 떠나려고 온 집안 
이 난가가 되어 부산하게 길잡이를 차리고 있었다. 윤임은 요사이 와서 
자기의 애첩 옥매향이 옛정을 이기지 못하여 윤원형의 집으로 드나들면서, 
난정의 중매로 임백령을 자주 만나면서 불의의 행동을 취하는 눈치를 겨우 
알았다. 나귀에 안장을 짓게 하면서 아들 흥인에게 당부를 한다.
"얘, 흥인아. 암만 해도 옥매향은 내가 성주로 꼭 데리고 가야 하겠다. 이 
계집의 행동이 요새 와서 매우 수상하다. 내가 만약 이곳이 두고 간다면 
임백령와 결탁이 되어 나를 모함하여 죽게 만들기 십상팔구다. 아무 소리 
말고 나귀 한 필에 안장을 더 지워서 준비해 놓았다가 별안간 소문 내지 
말고 데리고 가기로 하겠다."
큰아들 흥인도 아버지의 말을 그럴 듯하게 생각했다. 급히 아랫 사람을 
분불해서 또 한 필의 나귀에 안장을 차리게 했다.
  윤임은 금부도사의, 어서 귀양길을 떠나자는 성화같은 재촉을 받으면서 
안에서 황황히 행리를 차리고 있었다. 윤임의 첩 옥매향도 윤임의 
옷가지를 부담 농짝에 챙겨 놓고 있었다.
"매향아, 이번 내가 귀양을 가면 다시 돌아오기가 어려울 것 같다. 너도 
나와 함께 성주로 가서 내 뒷배를 보아주어야 하겠다."
간밤까지 아무 말이 없던 윤임은 별안간 옥매향에게 같이 가자는 명령을 
내린다. 옥매향은 마음속으로 깜짝 놀랐다. 윤임이 귀양길을 떠나기만 하면 
자기는 마음속의 애인 임백령한테로 가기로 이미 난정을 통해서 임백령과 
결정해 논일인데, 졸지에 윤임이 귀양길로 떠나자고 하니 딱하고 난처했다. 
옥매향은 새까만 눈을 깜박거리면서 옷을 챙기는 체하다가 다정스럽게 
대답한다.
"대감, 산 설고 물 선 천리 귀양길에 대감의 뒷배를 보아드리는 것도 
소첩의 당연한 일이외다만, 저는 이곳에 남아 있어서 정말 대감의 뒷배를 
보아 드려야 하갔쇠다."
"정말 뒷배란 무엇이냐?"
"어서어서 별다른 일이 없이 대감의 귀양이 풀리도록 주선을 해야 하디 
않갔소이까?"
"얻다 대고 주선을 한단 말이냐. 인제는 내 운수가 다한 것 같다, 별수없이 
죽는 몸이니, 내가 죽거든 천리 타향에서 네 손으로 수발이나 수시를 
해주기 바란다. 함께 가자."
"귀양을 한다가 다 죽습네까? 어서 풀리도록 이곳에서 주선을 해야 
하디요."
"어디다가 주선을 한단 말이냐. 인제는 주선할 데가 다 떨어졌다. 그야말로 
내 신세는 끈 떨어진 뒤웅박이다. 내 일은 내가 잘 알고 있다. 인제 남은 
길은 죽는 길밖에 남지 않았다. 나하고 같이 가서 나 죽을 뒷일이나 
보아다오."
"왜 주선할 길이 없습니까? 난정이도 있고 섭정여왕마마도 계신데 
어서어서 대감을 구원해 드리도록 하갔소이다."
  윤임은 옥매향의 입에서 난정이와 섭정여왕이라는 소리가 떨어지자 열화 
같은 불덩이가 가슴으로 치밀어 올랐다. 옥매향이 딴 맘을 먹고 함께 아니 
가려고 핑계를 대는 것이 분명했다.
"이년아, 난정이가 나를 살려 줄 줄 아느냐? 왜 임백령이 놈보고 내 
목숨을 구해 달라고 해보려무나!"
윤임은 말을 마치자 엄파 같은 손으로 옥매향의 빰을 갈겼다.
"이 양반이 환장을 하셨나, 왜 이러시나."
옥매향도 독살이 나서 푸념을 할 때 돌연 안방 미닫이문이 홱 열리면서,
"어명이다. 옥매향아, 어명을 받아라. 옥매향을 잡아들이랍신다."
  금보도사는 육모방방이를 든 금부나졸 수십 명을 거느리고 큰 소리로 
외치면서 옥매향을 묶으려 달려들었다. 윤임을 귀양길로 영거해 가려는 
금부도사가 아니라, 또 하나의 다른 금부도사였다. 이번엔 윤임이 놀라는 
것보다도 옥매향이 오히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금부나졸들은 옥매향을 
꼭꼭 묶는다.
"내가 무슨 죄가 있기에 나를 묶어가오."
"어명이나 나도 모르겠다.."
옥매향은 대궐 안으로 묶여 가고, 윤임은 귀양길로 끌려간다.
  옥매향은 금부도사한테 끌려서 경복궁 대궐 안 금부 곳간 속에 갇혀 
있게 되었다. 옥매향은 영문도 몰라 어찌할 줄 모르고 있을 때 사각사각 
비단치마 끄는 소리가 들리면서 잠겨진 문이 덜컥 열리자 난정의 아름다운 
얼굴이 옥 속에 나타났다. 옥매향은 지옥 속에서 지장보살을 만난 듯 
반가웠다.
"아이고, 형님!"
하고 소리를 높여 부르짖었다. 난정은 급히 손을 저어 흔들었다.
"떠들지 말고 조용히,"
난정의 목소를 가늘고 부드러웠다.
"내가 무슨 죄가 크다고 이곳에다 가두시오?"
"섭정마마의 지엄하신 분부시다. 윤임의 행동을 알려고 친국을 하실 
모양이야."
난정은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인다.
"어찌하면 좋소. 나는 그대로 죽게 되우? 형님, 나를 살려 주시오."
옥매향도 목소리를 낮추어 소곤거린다.
"가만, 그러기에 너를 구하러 온 것 아니냐."
난정은 안심을 하라고 옥매향의 어깨를 가만히 흔들었다.
"윤임이가 너를 귀양길로 데리고 가려고 나귀에 안장까지 지어놨었다지?"
난정은 어느 틈에 벌써 윤임의 종을 매수했던 것이다.
"형님, 그것을 어떻게 아셨소?"
"내 눈은 천리안이데 그것을 모르겠니. 네가 윤임을 따라만 갔더라면, 네 
몸은 결딴이 날 뻔했다. 임백령 임판서도 못 만나 보고........."
"아닌게아니라 혼이 났어. 막 가자고 끄는구려. 이곳에서 뒷배를 보아 
주겠다구 했더니, 눈치를 챘는지 빰까지 얻어맞았소."
"잘했어, 안 가기를, 임판서는 꼭 너를 데려다가 우부인을 삼으려고 침만 
꿀꺽꿀꺽 삼치고 있다. 한턱 내라."
"아이 형님도, 이런 곳에서도 희롱의 말씀을 하시우."
옥매향의 얼굴은 화끈 달았다.
"그런데 말야, 조금 있으면 섭정마마께서 너를 국문하실 게다. 단근질을 
하라고 꾸지람을 내려도 조금도 놀라지는 말란 말야. 윤임이 역적 모의를 
했느냐 하시거든, 그저 네 네, 하고 대답하란 말야. 알아듣겠느냐? 이번엔 
윤임이 너를 데리고 가려고 한 것을 물으시거든, 그저 사실대로만 대답해 
올리란 말이다. 빰 맞은 것도 말씀드리고."
옥매향은 고개만 까딱거린다.
"자아 그럼, 조금도 겁을 집어먹지 말아요. 너는 오늘부터는 정정당당한 
임판서의 아낙이 될 사람이야."
매향은 대답 대신 또 한 번 고개를 까딱까딱 끄덕인다.
"자아 그럼, 이목이 많아서 나는 곧 가니 너는 맘을 단단히 도사려 먹고 
그렇게만 대답하란 말야."
난정은 이내 치마를 걷어잡고 옥문 밖으로 사라진다.
  이윽고 옥문은 다시 열러졌다. 이번엔 아름다운 미인 난정이 아니라, 
눈이 부리부리한 나졸이었다.
"이리 오너라."
버쩍 옥매향의 옷깃을 추켜들고 잡아끌었다. 으리으리한 전각이 옥매향의 
눈앞에 나타난다. 넓고 넓은 뜰에는 어마어마한 기치창검이 벌여 선 곳에 
형틀이 놓이고 잡장 사령들이 곤장을 들고 들어섰다. 마당가엔 산더미 
같은 숯불이 이글이글 피어올랐다. 옥매향은 소름이 쪽 끼치도록 무서웠다. 
난생 처음 당하는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옥매향은 억센 금부나졸들에게 
끌려서 형틀 위에 동그마니 묵여졌다.
  이윽고 춘순당 전각 마루에 섭정마마가 나타났다. 좌우 시녀가 옹위하며 
황금 옥상 위에 모셔 앉았다.
"저 계집이 윤임의 첩 옥매향이냐?"
섭정마마의 쟁쟁한 호령 소리가 떨어진다.
"예, 그러하옵니다."
형방승지가 대답을 올린다.
"옥매향아, 말 듣거라. 네가 윤임의 소실로 있었으니 윤임의 모든 행동을 
샅샅이 알리라. 추호도 숨김없이 이실직고하렸다."
섭정마마의 음성은 또다시 쨍쨍 올리며 떨어진다. 옥매향은 형틀 위에서 
고개를 숙여 대답하는 뜻을 표한다.
"윤임이 어떻게 역적질을 하였느냐?"
  옥매향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평양 기생이었다. 아무리 난정의 부탁을 
받았으나 잠깐 체면을 지키기 위하여 한 마디쯤 모른다는 말을 해야 될 
것을 알았다.
"소녀는 안에만 들어 있는 계집의 몸이옵니다. 바깥 사람이 하는 일을 알 
길이 없사옵니다."
"요망한 년이 뜨거운 맛을 못 보아서 핑계를 대는구나! 어찌 역적질을 
경륜한 일을 네가 모를 리가 있느냐. 네 저년을 바른 말이 나오도록 되게 
쳐라."
섭정마마의 추상같은 호령이 떨어진다.
"매를 되게 치랍신다."
형방승지의 전령이 떨어진다. 집장사령들은 주장, 곤장을 높이 들어 
옥매향의 볼기를 치마 위로 갈렸다. 때리는 매가 세 번이 떨어지자 
옥매향의 입에서는,
"에개개."
하는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래도 바른대로 아뢰지 못하겠느냐? 윤임이 역적질을 한 일이 있지?"
섭정마마의 호령은 또 떨어진다.
  곤장은 또 한 번 올라가다가 떨어진다.
"네, 윤임이 역적질을 한 일이 있소."
욕매향의 목소리가 가늘게 들렸다.
"윤임이 역적질을 한 일이 있답니다."
형방승지가 중간에서 아뢴다. 섭정마마는 신이 났다.
"공초를 받아 써라."
섭정마마는 형방승지에게 분부를 내린다.
"윤임은 나를 쫓아내서 폐위시키려고 한 일이 있지 않으냐?"
"예, 그런 일이 있었소."
옥매향이 승복하는 대답을 올린다.
"적어라."
섭정마마는 손을 들어 형방승지에게 주의를 준다. 형방승지가 급히 
옥매향의 공초를 적는다.
"윤임은 주상전하께서 대군으로 계실 때에 대군을 해야려 한 일이 
있었지?"
"그런 일이 있었는가 하오."
"있었는가 하오가 다 무엇이냐. 네 저년을 바른말이 나오도록 되게 
때려라."
곤장은 또 한 번 철꺽하고 떨어진다.
"네, 있었소이다."
옥매향은 구슬픈 울음을 울면서 대답한다.
"윤임은 대행 인종께서 대군에게 선위하는 유언을 내리신 것을 보자, 
황황히 제 생질 계림군이 아니면 봉성군으로 왕을 삼으려고 한 일이 
있었지, 이실직고하렸다!"
섭정마마의 호령은 또다시 추상같았다.
"네, 그러한 일이 있었소. 처음에 계림군으로 상감을 삼으로 하다 외숙, 
생질간이 되므로 조정에서 반대가 일어날까하여 봉성군으로 상감을 삼으려 
했소."
옥매향의 입에서는 마침내 터무니없는 공초가 떨어졌다. 요녀 난정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대답한 것이다.
"윤임이 귀양길을 떠날 때 널 보고 무어라 하더냐?"
"소녀와 함께 경상도 성주로 가자는 것을 소녀 앙탈을 했더니 기어코 함께 
가자고 소녀의 빰까지 때렸소. 이때 금부도사가 나왔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소녀는 윤임에게 끌려서 성주로 갈 뻔했소."
"어찌해서 너를 꼭 데리고 가려고 했느냐?"
"역적질을 했다는 말이 소녀의 입에서 나올까 보아서 소녀를 데리구 가려 
했나 보옵니다."
옥매향의 공초로 윤임은 옴치고 뛸 수 없는 역적이 더 확실하게 되어 
버렸다. 형방승지는 옥매향의 공초를 한 마디도 빼놓지 않고 일일이 
적바림했다.
"옥매향을 아직 옥에 내려 가두라."
섭정마마의 분부가 떨어지면서 마마는 친국을 마치고 온돌 안으로 
사라진다.
  다음에는 금부당상이 좌기를 차리고 앉아서 윤임의 집 여종 모린의 
공초를 받았다. 모린은 난정과 윤원형의 일당한테 매수된 계집이었다. 
윤임이 언문으로 쓴, 계림군을 추대하려는 내용의 편지를 계림군의 집으로 
가지고 다녔다는 일과 정승 유관과 이조판서 유인숙에게도 편지 왕래하는 
것을 맡아 가지고 다녔노라고 소상 분명하게 얽어서 대답했다.
  섭정마마가 들어간 온돌방에는 난정이 대기하여 분복하고 있었다. 
"마마, 공초를 받으시었습니까?"
"역적질한 것을 옥매향이 자백해 버렸다."
"빨리 사약을 내리시옵소서."
이때 형방승지는 윤임과 여종 모린의 공초를 받들고 문 밖에서 아뢴다.
"금부당상은 모린의 공초를 다 받았습니다."
섭정마마는 발 안에서 승지에게 마침내 최후의 전교를 내린다.
"금부에 기별하여 윤임과 유관과 유인숙에게 죽음을 내리게하라."
"제각기 죄상을 밝혀서 전교를 내려 주옵소서."
승지의 아뢰는 말을 듣자 섭정마마는 난정을 잠깐 돌아다본다.
"소녀가 말하는 대로, 마마께서는 따라서 큰 음성으로 내리시옵소서."
난정이 속삭인다. 섭정마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윤임은 본디 흉악한 자질을 가진 자로서 오랫동안 외척의 힘을 빌어 
삼흉이 한덩어리가 된 후에 국모를 죽이려 했고, 동궁에 불이 난 뒤에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군중을 현혹시켰다. 감히 역적질할 뜻을 품었던 형적이 
분명한지라 법에 의하여 죽음을 내리라!"
난정은 부르고, 섭정마마는 옮겼다.
"다음을 말씀해 주시옵소서."
형방승지가 아뢴다.
"관이란 자는 지위가 정승이면서 항상 윤임과 사귀어 대행대왕이 위독했을 
때, 정통 일이 돌아갈 곳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승하한 뒤에 누구를 세워야 
좋으냐 공론을 일으켰고, 나의 섭정을 반대했으니 대역부도다. 죽음을 
내리라."
"다음을 말씀해 주시옵소서."
"인숙은 윤임과 연혼을 하여 음모를 조장시키고 나의 섭정된 것이 자기 
몸에 이롭지 못하다 생각했으니, 죄가 종묘와 사직에 관련된 일이라 
단연코 용서할 수 없다. 죽음을 내리라."
난정은 청산유수처럼 사형 전교를 내리고, 섭정마마는 난정의 말을 받아 
옮겼다. 형방승지는 전교를 받들어 쓴 뒤에 금부당상에게 교지를 내렸다. 
금부당상은 시각을 지체치 않고 금부도사를 세 패로 나뉘어 약사발을 
안돈해 보냈다.
  이때 윤임은 옥매향을 귀양길로 데리고 가려다 금부에 잡아하니 하는 수 
없어서 혼자 길을 떠나서 충주에 당도했을 때 금부도사는 사약을 받들고 
뒤를 좇았다. 윤임은 옴치고 뛸 수 없었다. 하늘을 우러러 장탄식을 하면서 
사약을 받은 그의 눈에는 옥매향의 예쁜 얼굴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옥매향이 자기에 대하여 불리한 증언을 하고 상긋 웃으며 임백령의 
품안으로 안기는 모습이 보인다. 십 년 전에 공연히 남의 사랑하는 계집을 
빼앗았구나 하는 뉘우치는 생각이 일어난다. 그러나 모두 다 소용없는 
생각이었다. 모두 다 자기 손으로 얽어 놓은 일이었다.
  자기의 세력을 연장시키려 하여 세력 없고 가난한 일가집에서 
섭정여왕을 데려온 것도 자기가 한 일이요, 임백령의 사랑하는 기생 
옥매향을 빼앗아서 살림을 시킨 일도 자기가 한 짓이었다. 결국은 자기의 
손으로 얽어매 놓은 그물에 자기가 걸려서 쓰러지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모두 다 욕심 때문이었다. 세도를 독점하려고 섭정여왕을 데려온 
것은 환욕때문이요, 남의 애인을 빼앗아서 데려온 애욕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깨단을 했을 때는 죽음이 검은 날개를 펼쳐서 자기의 몸을 
휩싸 안아가는 것이었다. 윤임은 눈을 감고 체념을 하면서 죽음의 약을 
마셔 버린다.
  좌의정 유관은 서천으로 귀양가는 명을 받고 온양에 당도했을 때 
죽으라는 사약을 받았다. 그는 조광조의 기묘사화 때도 되를 당했던 어진 
재상이었다. 유관은 사약을 받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을 했다.
"내가 역적질을 했다니 말이 되느냐. 황천후토가 모두 다 내 마음을 알 
것이다."
그러나 소용없는 소리였다. 그는 청렴강직한 재상이었다. 처음에 윤원형의 
당 이기에게 병조판서를 제수시키니 정승 유관은,
"탐관오리인 장리의 사위가 병조판서가 되다니 말이 되는가."
하고 반대를 한 것이 빌미가 되어 이번에 윤임의 당으로 몰려 사약을 받는 
것이다.
  이조판서 유인숙은 처음에 무장으로 귀양살이 길을 떠났다가 진위 
갈윈에서 사약을 받고 자진해 버렸다. 유인숙은 송당 박영 선생과 함께 
어진 선비가 함빡 화를 당하던 조광조의 기묘사화 때 귀양을 갔다가 다시 
이조판서가 된 사람이었다. 윤원형의 당인 정순붕의 벼슬을 돋우서 주지 
않은 것이 화가 되어 마침내 화를 입게 된 것이다. 
  섭정마마가 대담하게 조정 공론을 물리치고 윤임, 유관, 유인숙에게 
사형을 내렸다는 소문은 조야를 진동시켰다. 윤임은 섭정마마의 적자였던 
인종대왕의 외숙이었다. 외척들의 권력 싸움으로 사약을 받아 몰려 죽는 
것은 세도 싸움이라 하겠으나, 어진 정승 유관과 선비의 대표인 유인숙이 
사약을 받아 죽는다는 일은 조광조의 정통을 이어받은 유림들로서는 
잠자코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헌납 백인걸, 집의 송희규, 사간 박광우, 장령 정희등, 헌남 유희춘, 
김난성 등은 연명을 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상소를 올렸다.
"정치란 것은 아무리 적은 일이라도 광명정대하게 처리해야 옳은 
것입니다. 첫째로 대비가 밀지를 내려서 일을 처리하는 일이 부당한 
일이요, 대신을 죄주어 죽이는 데도 정정당당하게 죄목을 밝혀서 죄를 
주어야 합니다. 지금 전하는 일개의 외로운 고아요, 대비는 치마 두른 한 
사람의 미망인인 과부입니다. 정정당당한 죄명이 없이 함부로 대신을 
죽이십니까. 또한 밀지를 내린 곳도 대신이 아니요, 대비의 동기간이 되는 
윤원형입니다. 나라의 대권이 일개 외척인 윤원형에게 떨어진다는 것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노릇입니다. 이씨 왕조의 수백 년 내려오는 
종묘사직이 오늘날 일개 과부인 윤씨의 손에 결딴이 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옵니다. 다시는 이러한 망국의 정치를 하니 않도록 
하옵소서."
선비들의 폭탄 선언이었다.
  상소가 들어가자 섭정마마와 요희 난정은 하늘이 얕다 하고 펄펄 
뛰었다. 더구나,
'전하는 일개의 외로운 고아요, 대비는 치마 두른 한 사람의 미망인인 
과부입니다.'
'나라의 대권이 일개 외척인 윤원형에게 떨어진다는 것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노릇입니다. 이씨 왕조의 수백 년 내려오는 종묘사직이 오늘날 일개 
과부인 윤씨의 손에 결딴이 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옵니다.'
하는 흰 무기개가 푸른 하늘을 꿰뚫는 듯한 상소는 대비와 난정의 염통을 
서리 같은 비수칼로 도려내는 듯했다.
"이자들 선비들을 모조리 처치해 버리옵소서. 그렇지 않는다면 전하의 
신변이 위태로울 것입니다!"
난정은 쌔근쌔근 숨을 몰아쉬면서 섭정마마를 부채질한다. 눈에는 살기가 
비수 칼끝보다 더 파랗게 서렸다.
  섭정마마는 마침내 형방승지를 불렀다.
"백인걸 이하 모든 간관들은 광명정대한 체 밝은 정치를 주장하면서 
역적놈들을 두둔하니 죄당만사다. 벼슬을 모조리 떼어 파직시켜 버리고 
금부옥에 가두어 엄하게 다르리라!"
섭정마마의 지엄한 명령이 떨어지니, 선비 출신인 대간, 간관, 언관들은 
호역을 했다는 죄명으로 옥에 끌려 들어갔다. 마침내 을사사화는 터지고 
말았다. 
  윤임의 일가친척과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조광조, 
김안국의 제자로 나라 안에 맑은 이름을 듣던 선비들은 비웃 두룸 엮듯 
잡혀서 금부로 들어갔다. 윤임의 일가와 선비뿐이 아니었다. 윤원형의 
일당과 조금만 틈이 있는 사람이면 모두 다 붙들려 잡혔다. 남곤, 심정의 
소인의 무리가 조광조의 바른 선비들을 몰아내던 기묘사화가 일어난 지 
이십 육년 만에 을사사화는 마침내 불길 일 듯 치열하게 뻗쳤다.
  백인걸 이하 간관과 언관들은 모조리 벼슬을 파직시켜 원악도로 귀양을 
보내고 계림군, 봉성군도 역적이라 하여 잡아들였다. 중종이 사랑하던 
팔선녀도 다 뭉그러져 버렸다. 봉성군은 홍희빈의 아들이었다. 조광조를 
몰아낼 때, 비원 나뭇잎에 꿀로 주초위왕이란 글을 써서 어진 사람들을 
죽이고 몰아냈던 홍희빈은, 아들 봉성군이 임금이 될 뻔했다는 죄목에 
걸려들어서 자기 자신이 결딴이 나게 되었다. 팔선녀의 하나였던 경빈 
박씨도 난정의 손에 쥐도 새도 모르게 아들 복성군과 함께 비명에 
죽었지만, 이제는 홍희빈의 아들 봉성군과 도리어 걸려들었다.
  을사사화에 걸려든 이는 윤임, 유관, 유인숙 세 사람의 사약을 받은 사람 
이외에 조정에서 벼슬하는 선비 출신의 대관들이 육십여 명이요, 그밖에 
윤원형, 이기, 정순붕, 임백령과 사사로운 혐의를 가져서 몰려 죽은 
사람들은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었다.
  윤임이 사약을 받아 죽은 뒤에 난정은 섭정마마께 아뢴다.
"옥매향은 본시 임백령의 애첩이었습니다. 윤임께 방자하고 무법한 짓을 
감행하와 옥매향을 뺏아갔사오나 매향은 항상 임백령을 생각하고 있었을 
뿐 아리나 윤임의 역적질 모의에도 참여치 않고 그의 죄상을 
폭로시켰사오니, 옥매향은 특별히 사하시어 임백령에게로 내려 
주시옵소서."
난정의 말이라면 언청계용하는 섭정마마였다.
"제몸이 비록 기생이라 하나 옛사람을 생각한다는 것은 가위 절개 있는 
계집이라 할 것이다. 옥에서 놓아서 임백령에게 내주게 하라."
형방승지는 섭정마마의 분부를 금부당상한테 전하고 금부당상은 당이로 
옥매향을 임백령에게 주었다. 임백령은 십년 적공을 들여서 옥매향을 
완전히 품안으로 데려가게 되었다. 옥매향은 옥 속에서 임백령이 보낸 
쌍가마를 타고 백령이 치가해 논 새 집으로 들어간 뒤에, 새 옷을 
갈아입고 정경부인 난정을 찾아서 옛 애인 품으로 돌아오게 한 공을 
치사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선비들이 또 한 번 쫓게 몰리는 을사사화가 끝난 후에 조정은 함빡 
소인의 무리들로 꽉 차 있었다. 역적을 몰아낸 공신이라 해서 이기는 
우의정 겸 병조판서에 풍성부원군으로 봉하고 정순붕은 우천성 겸 
지경연사에 은양군으로 봉하고, 임백령은 좌찬성에 승선군으로 봉하고, 
허자는 양천군으로 봉하고, 윤원형은 보익공신으로 봉하고 화상을 
기린각에 그려서 나라를 태평케 했다는 공을 억만 대에 자랑하려 했다.
  윤임의 덕으로 왕후가 되었다가 윤임의 세도를 완전히 쓰러뜨린 
섭정마마는 평생의 한과 소원을 풀었다. 생각했다. 아들은 대왕이요, 
자기는 섭정이었다. 아들이 어린 까닭에 섭정마마의 권력은 더욱 크고 
강했다. 말이 섭정이지 바로 곧 여왕이었다. 천하에 거리낄 것이 없고 
두려울 것이 없었다. 생사여탈의 권한이 자기의 조그마한 손바닥 속에 
들어 있었다. 섭정여왕의 마음은 흡족하고 호쾌할 수밖에 없었다.
  섭정마마는 대궐 후원에서 크게 잔치를 열었다. 궁 안에 있는 내명부는 
말할 것 없고, 궁 밖에 있는 보익공신의 부인들을 모조리 비원으로 불렀다. 
섭정마마는 자기 자신이 미망인 과부인 까닭에 과부들도 잔치에 참례하는 
것을 허락했다. 만조백관의 부인들은 채색옷을 입어 꽃같이 벌여 앉고 
진풍경 잔치는 상상이 수파련 가화를 꽂아 만간들이 잔디밭에 화사하게 
벌어졌다. 아악의 청아한 곡조는 구름 밖으로 자지러지게 흩어지고 장악원 
기생들의 화관 몽두리를 입고 추는 춤은 소맷자락에 향바람이 일었다.
  잔치가 한참 어우러졌을 때 섭정마마는 흥이 도도하게 일어났다. 좌우의 
시녀들을 돌아다보았다.
"머리에 꽃을 꽂고 싶다. 꽃을 들여라. 그리고 만조백관의 부인들도 일제히 
꽃을 꽂게 해라."
때마침 국화철이었다. 시녀들은 황국 백국을 화롱에 받쳐 가득히 들고 
들어왔다. 섭정마마는 친히 손을 들어서 검은머리에 노란 국화꽃을 꽂는다.
"자아, 내가 꽃을 꽂았으니 내외명부들은 함빡 나를 따라서 꽃을 머리에 
꽂아서 오늘의 잔치를 더욱 흥겹게 하라."
섭정마마는 미소를 풍겨 즐거운 웃음을 지으면서 만조백관의 부인들에게 
분부를 내린다. 섭정마마의 지척 앞에는 난정이 모시어 있다가, 
"다음에는 소녀가 꽃을 꽂아서 전하의 즐거우심을 돕겠나이다."
난정은 마마의 비위를 맞추어서 요염스럽게 웃으면서 꽃을 집어 꽂는다. 
섭정마마는 다시 분부를 내린다. 
"시녀들이 꽃바구니를 들고 좌중으로 돌릴 테다. 모두들 자기 손으로 
꽃송이를 하나 씩 집어서 머리에 꽂으라."
만조백관의 아낙들은 시녀들이 꽃바구니를 들어 돌리는 꽃을 다투어 집어 
꽂는다. 황국 백국의 향기로운 꽃은 미인들의 검은머리에 꽂아져서 잔치 
자리는 꽃밭을 이루어 더한층 화려했다.
"모두들 미인이라서, 꽃이 사람인지 사람이 꽃인지를 구별할 수가 없구나."
섭정마마는 흥이 도도해서 꽃밭을 이룬 내외명부를 바라보면서 은잔에 
가득히 담겨진 술을 마시었다.
  난정은 섭정마마의 흥을 더욱 돋우려 하여 어전에 무릎을 꿇어 다시 한 
잔을 올리고 재배를 드린다.
"이 술을 잡수시고 만수무강하옵소서."
섭정마마는 난정이 올리는 술을 사양치 아니했다. 다시 손을 들어 잔을 
잡는다. 
  지화자 하는 장악원 기생들의 만수무강을 축복하는 아름다운 놀이가 
수풀에 바람이 일 듯 자지러지게 물결쳐 일어난다. 다음엔 윤임을 
쫓아내어서 사약을 내리게 한 보익공신의 원훈 이기의 아낙이 섭정마마 
어전에 재배를 드리고 축하를 올린다.
"전하, 이기의 아낙이옵니다. 만수무강하소서."
섭정마마는 더욱 기뻐서 석 잔 째 술을 들었다. 섭정여왕이 잔을 드는 
것을 보자, 장악원 기생들의 지화자 하는 노랫소리는 또다시 아련히 비원 
숲을 흔들어 놓는다. 이때 섭정여왕은 기쁨을 이기 못하여 잔을 들고 
만좌를 둘러볼 때, 우연히 머리에 꽃을 꽂지 않고 있는 한 사람의 여인을 
발견하였다. 
  섭정여왕은 잔을 놓고 다시 한 번 여인을 바라본다. 옷은 화려한 
채색옷을 입지 않고 연옥색 저고리 치마에 자주 고름도 달지 않고 
남끝동도 달지 않은 천담복을 입었다. 앞에는 사찬상을 받고 있었으나 
즐거운 빛이 전혀 없이 초연히 원경을 바라보고 앉았다. 섭정마마는 옆에 
있는 난정에게 묻는다.
"저기 저, 셋째 줄 둘째 자리에 천담복을 입고 앉은 명부는 누구의 
아낙이냐. 머리에 꽃을 꽂지 않고 있구나."
섭정마마는 손을 들어 가리킨다. 섭정마마의 마음은 적이 불쾌했다. 꽃을 
꽂으라는 자기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태도가 불쾌했던 것이다. 
"아아, 천담복 옥색옷을 입은 저 사람 말씀입니까? 그 사람은 임백령의 
아낙이구 옥매향의 적실 부인입니다."
섭정마마는 임백령의 아낙이라는 말이 반가웠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꽃바구니를 든 시녀를 불렀다.
"꽃 한 송이를 이리 다오."
시녀는 황망히 꽃바구니를 받들어 올린다. 섭정마마는 어수로 화려하게 핀 
황구화 한 송이를 집어 들고 천담복을 입은 여인의 앞으로 걸었다.
"자네가 좌찬성 승선군 임백령의 부인인가?"
임백령의 부인은 황송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네, 그러하옵니다."
"자네는 어찌해서 머리에 꽃을 꽂지 아니했는가?"
임백령의 부인은 호젓이 대답이 없이 미소만 풍긴다.
"자아, 내가 꽂아 줄 테니 꽃을 꽂으라. 얼굴이 더한층 아름다우리라."
섭정마마는 친히 어수로 국화송이를 임백령의 부인의 머리속에 꽂아 준다.
"어때, 참으로 얼굴이 더한층 화려하구나."
섭정마마는 유쾌하게 웃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임백령의 부인은 손을 들어 쪽에서 살몃 꽃을 
뽑았다.
"전하! 국상 중이오라 꽃을 머리에 더할 수 없습니다."
임백령의 부인의 얼굴엔 성에가 슬어 찬바람이 부는 듯 엄숙했다. 국상은 
겹쳐져 있었다. 중종의 삼년상이 끝나지 않았고 인종의 초상 중이었다. 
임백령의 부인의 한 마디 말은 비수칼로 문정왕후의 안을 도려 내는 
듯했다.
"나도 과부연만 이렇게 꽃을 꽂은 것은 이제 모든 부인들과 나라 일이 
잘되라고 은근히 축복을 하면서 형제같이 화목하자는 것일세. 어서 
꽂게나."
임백령의 부인은 살랑살랑 고개를 흔들고 머리를 숙였다. 종내 꽃을 꽂지 
아니하고 응하지 아니한다. 섭정마마는 당장 곧 불호령을 내리고 싶었으나 
자기를 도와 공이 많은 임백령의 부인이었다. 어찌하는 수가 없었다. 
섭정마마는 뜻을 뺏지 못하고 얼굴을 붉혀 돌아선다. 이 뒤부터 
섭정마마는 임백령의 부인을 무서워했다.
  난정과 윤원형의 득의의 시절은 마침내 오고야 말았다. 하늘은 착한 
사람의 빛을 더욱 드러내려 하며 악한 사람에게도 득의의 시절을 일부러 
주는 것이었다.
  섭정마마가 만기를 총람하고 생사여탈의 권한을 잡은 것은, 윤원형과 
난정이 곧 만기를 총람하고 생사여탈의 권한을 잡은 거나 매일반이었다. 
매일반이 아니라 난정이 바로 곧 여왕이요, 윤원형이 바로 임금이었다.
  난정의 말이면 섭정마마는 언청계용하고 윤원형의 말이면 천호백낙을 
하니, 구중궁궐 안에 깊이 들어 있는 섭정마마는 윤원형과 난정을 통하여 
정사일을 알게 되고 난정과 윤원형을 통하여 세상 사람을 알게 되니, 바깥 
사람들은 윤원형과 난정이면 그만이었다. 판서, 참판, 참의가 난정의 
입에서 떨어져야 하고, 팔도감사와 병사, 목사, 부사가 난정의 치마 밑에서 
나오게 되니, 군수와 현감쯤은 난정의 집 청지기나 교전비가 품하고 
내게끔 되었다.
  글 잘하고 지조 높던 선비들이 대사간, 대사헌, 대제학의 자리를 내놓고 
모두 다 귀양을 가서 쫓겨 나가 버렸으니, 새로된 대관, 간관, 홍문관의 
삼사들은 모두 다 난정과 윤원형의 주구들이었다. 임금이 정치를 잘 
못하면 삼사가 다투어 간하여 임금도 용상에서 내려앉는 것이 나라의 
불문율이었는데, 삼사가 함빡 윤원형과 난정의 주구가 되고 보니 
섭정마마와 난정과 윤원형의 나쁜 정치를 탄핵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삼사가 개가 된 것은 둘째였다.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들 삼정승이 
난정의 치맛자락에서 나왔으니 난정의 개요 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정경부인 난정의 집 솟을대문 앞에는 남녀, 초헌, 사인교가 새벽부터 
오밤중까지 길을 메워 끊일 사이가 없었다. 경복궁 대궐이나 돈화문 
대궐은 대궐이 아니라, 정경부인 난정의 집이 대궐이요 조당이요 빈청이 
된 셈이었다. 나라 정치가 함빡 윤원형과 난정의 집에서 결정이 되는 
것이었다. 
  백수를 흩날리는 도리옥관자에 찬란한 금관조복을 입은 영의정 대감, 
좌의정 대간, 우의정 대감, 영부사 대감들이, 
"정경부인, 밤사이 안녕하시나. 좌의정 이기가 왔다구 여쭈어라."
"정경부인께 여쭈어라. 좌찬성 임백령이 왔다구 여쭈어라."
"정경부인께 문후를 드린 지 오래다. 영부사가 왔다구 여쭈어라."
"이조판서가 왔다구 여쭈어라."
"병조판서가 왔다구 여쭈어라."
이럴 때마다 난정은 윤원형과 함께 손을 대해 만났다. 영리한 난정이었다. 
대신과 대장들 문무백관을 대할 때는 반드시 남편인 윤원형과 자리를 
같이했다. 
  대신 이하 윤조판서가 조정 일을 품하러 오니 윤원형은 이 나라의 
임금이 된 셈이요, 난정은 이 나라의 왕후가 된 것이나 매 한가지였다. 
일이 이쯤 되고 보니 뇌물은 싫다 해도 쏟아져 들어와서 곳간마다 가득 
차고 전장과 논밭은 삼천리 강산의 절반이 난정의 것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요승 보우
  윤원형과 난정의 옷차림은 임금과 왕후의 옷을 입었고, 집은 
궁사극치해서 붉은 난간과 채색 기둥의 주란 화각이 반 공중에 솟은 
듯하니, 대궐이 오히려 무색해서 빛을 잃을 지경이었다. 
  세도를 탐내고 사욕에 눈이 어둔 벼슬아치들은 난정의 지체를 상관할 것 
없이 그의 딸과 아들한테 혼인하고 싶어서 중매할미를 보내어 청혼하는 
무리가 부지기수였다.
  성균관은 텅 비어 버리고 선비들은 흩어지고 말았다. 난정은 대궐로 
들어가 섭정마마께 아뢴다.
"마마께 아뢰옵니다. 나라를 다스리자면 백성의 마음을 이끌어 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옵니다. 여태껏 조광조 이하 모든 유림이 편당을 지어 고집을 
부리고 왕권을 무시하였으나 그들 조광조 등은 백성들의 민심을 어느 정도 
얻었습니다. 이것은 지도의 힘이라 생각하옵니다. 백성의 마음은 마치 물과 
같아서 물꼬를 터놓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옵니다. 백성의 마음이 잘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 정치의 요체라 생각하옵니다. 이래야만 왕조에 
대하여 반항아고 불평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옵니다. 지금 유교를 지도하는 
사람들은 콧대가 너무 억세고 쓸데없는 허례만 주장해서 여러 번 왕가와 
조정에 파란을 일으켜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마마께서 선비들을 제거하신 
것인데, 선비들을 제거한 뒤에는 반드시 선비들을 대신할 만한 신앙이 
있어야 비로소 백성들이 나라를 위하여 따라가리라 생각하옵니다. 
마마께서는 이 점을 깊이 통촉하옵소서."
난정은 간곡하게 조리를 들어 백성을 지도하는 국가의 방책을 정하라 
아뢰었다.
"좋은 말이다. 유교를 대신하여 백성들을 인도할 좋은 대책이 있거든 국가 
백년의 대계를 위하여 네가 말하라."
섭정마마는 난정을 대견하도록 고맙게 생각한다.
"마마, 마마께선 잊으셨습니까?"
"내가 무엇을 잊었느냐?"
"오늘날, 마마께옵서 이 자리에 앉으신 것이 누구의 공덕인 것을 벌써 
잊으셨습니까? 금지옥엽인 대군마마, 아니올시다. 금상마마를 낳으신 것은 
누구의 공덕으로 낳으신 것입니까. 참으로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마마께서는 배은망덕하십니다. 호, 호, 호."
난정은 요염스런 얼굴을 들어 섭정마마를 바라보면서 화사하게 깔깔거려 
웃는다. 
"모두 다 부처님의 공덕이지. 내가 어찌 대불의 큰 공덕을 잊는단 말이냐. 
배은망덕은 과한 소리다. 내 언제 배은망덕을 했느냐. 나는 항상 부처님을 
생각한다."
배은망덕이란 말에 섭정마마의 얼굴빛은 적이 당황한 모습이었다.
"생각만 하면 무엇입니까. 생각으로 은혜가 갚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배은망덕을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호, 호, 호."
난정은 또 한 번 화려하게 웃는다.
  "그럼 어찌하면 배은망덕이 아니 되느냐?"
섭정마마는 난정의 불길 같은 손을 잡고 묻는다.
"불도를 널리 일으키시옵소서. 불법을 홍포(弘布)하시어 창생을 
구제하시고, 나라의 국본을 불교에 두게 하옵소서. 이리하와 마마께서는 
내생에 가셔도 극락세계 연화대로 가도록 하시옵소서. 인제는 막을 사람도 
없습니다. 콧대 센 선비들이 다 쫓겨났으니 누구 한 사람 탄하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선비들은 자기의 교학으로 온 세상을 좌우하려 하여 
불교를 배척했습니다. 불교는 실상 말이지 우리 나라의 근본을 이루었던 
교학입니다. 신라가 천여 년의 빛난 역사를 가진 것도 불교의 힘이구, 왕건 
태조가 고려를 건국하여 사백 년의 기업을 이룩한 것도 도선(導善)대사의 
말을 들어서 건국을 한 때문이구, 우리 나라 태조대왕께서 고려를 
대신하여 한양 서울에 도읍을 정하시고 조선을 건국하신 것도 무학대사의 
힘을 빌어서 오늘의 육조배판을 하신 것입니다. 마마께서 오늘의 섭정이 
되신 것도 부처의 힘이시고, 인종마마가 일찍 세상을 떠나시고 
금상마마께서 대위에 오르신 것도 모두 다 부처님의 힘이십니다. 깊이 
통촉하여 계시기 바랍니다."
섭정마마는 난정의 손을 놓지 않는다.
"불법을 일으키는 것은 나도 좋은 일인 줄 생각한다. 그러나 요새 세상에 
도선대사나 무학대사 같은 학식 높은 고승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 불법을 
일으킬 마음은 간절하나 학식 높은 중이 없는 것이 한이로구나."
"불교가 요새 와서 선비들 등살에 푸대접을 받아서 그렇지 수천 년 
내려오는 도덕과 학문이 쉽사리 끊어질 리 만무합니다. 소녀가 금상마마를 
점지하시라구 금강산 만 이천 봉과 설악산, 오대산, 가야산, 속리산, 
묘향산, 구월산으로 마마의 명을 받들고 팔도강산의 명산대찰로 상궁들을 
거느리고 치성을 다닐 때, 팔구십 된 도승도 많이 보고 그들의 제자 중에 
도리어 스승보다도 낫다는 중들도 여러 사람 본 일이 있습니다. 마마께서 
사람을 구하실 의사가 계시다면 팔도 감사에게 영을 내리시어 가장 도덕이 
높은 승려를 구하시어 이 세상의 불도를 홍포하도록 하옵소서."
난정의 아뢰는 말에 섭정마마는 크게 깨단을 했다.
"좋은 일은 빨리 단행하는 것이 좋다 하는데, 오늘은 승지한테 영을 
내려서 팔도 감사한테 도덕 높은 승려를 구하도록 하리라."
"마마께서는 진정으로 무량대복을 이 세상에 누리신 후에 극락세계 
연화대로 관음보살이 되어 가시어 세세생생 왕후 이상의 많은 복을 누리실 
것입니다. 이래야 국가는 태평성대를 이루고, 금상마마께서는 어마마마께 
효도를 다하면서 만세수를 하실 것입니다."
난정은 손을 모아 합장을 올린다.
  섭정마마는 기분이 당장 좋았다. 상궁을 불러 내시를 들라 했다. 내시가 
뜰 아래 엎드렸다.
"승지를 들라 해라."
내시는 총총걸음으로 정원으로 나가서 도승지를 데리고 들어왔다. 마마는 
발 안에서 영을 내린다.
"팔도 감사에게 급히 영을 내려서 산간벽지에 도덕 높은 중이 있다면 
서울로 데려와서 왕사(王師)로 대접할 테니, 시각을 지체치 말고 팔도 
감사는 구해 올리도록 하라."
마마의 분부를 받들자, 승지는 조방으로 나가서 팔도 감사한테 왕명을 
내린다.
"나라에서 앞으로 불교를 홍포하여 창생을 구제하시려 하는 것이다. 
섭정마마의 갸륵하신 뜻이니 각도 감사들은 어명을 받들어 도학 높은 
승려가 있거든 지체 말고 조정에 천거하라."
영은 즉시 팔도에 전달이 되었다.
  이때 함경도 안변 설봉산에는 보우(普雨 : 1515-1565)란 중이 있었다. 
기골이 헌앙하게 잘생긴 삼십대의 승려로 불경에 통달하고 학식도 약간 
있으면서, 배짱이 무던히 컸다. 기묘사화가 일어나서 조광조들 선비들이 
몰락되고 섭정마마가 어린 임금을 도우면서 불사를 크게 일으키는 것을 
보자, 성종 이래로 극성해진 선비의 세력으로 인해서 결딴 지경에 이른 
불교를 다시 한 번 부흥시켜 보고 싶었다. 
  이러던 차에 을사사화가 또다시 일어나서 윤임, 유관, 유인숙이 죽음을 
당하게 되는 큰 풍파로 조광조의 제자들이 또다시 쫓겨났다는 소문을 
듣자, 보우는 이 기회에 한번 불교를 부흥시켜 볼 생각이 간절히 밀려났다.
  보우는 설봉산에서 장삼을 입고 석장을 짚고 함영감영을 향하여 
내려갔다. 이때 함경감사는 광주 정씨 정만종이란 사람이었다. 중종 때 
문과급제를 해서 벼슬이 예조참판까지 됐다가, 윤원형과 난정에게 붙어서 
김안로를 탄핵했던 공로로 오도(五道)의 감사가 되어 도임을 했던 것이다. 
보우는 벌써 정만종의 등이 윤원형과 맞대어 있는 것을 알고 일부러 찾은 
것이다. 
  삼문 밖에서 설봉산의 동승 보우가 사또를 뵈옵자고 찾아왔다는 말을 
들은 정만종은 무슨 일인가 하고 보우를 불러들였다. 정만종이 보우를 
대해 보니 기골이 비범하게 생겼는데 키는 육척장신이요 몸은 태산이 
굴러드는 듯 무거웠다. 감사 정만종은 단번에 보우의 풍채에 눌렸다.
"대사가 멀리 나를 찾으니 무슨 좋은 수가 있소?"
감사는 은근하게 보우에게 묻는다. 보우는 장중하게 합장을 올리며 
대답한다. 
"감사로 앉으신 대감께옵서 다시 무슨 수를 구하십니까. 
보국안민(輔國安民)을 하시는 것이 제일 크신 수 옵니다."
기걸 찬 보우의 대답에 감사 정만종은 두 번째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감사는 이내 보우가 보통 중이 아닌 것을 알았다. 즉시 내아(內衙)에 
기별하여 다담상을 소찬으로 내오게 하고 다시 묻는다.
"아까 대사가 말씀하기를 보국안민을 하라 했는데,. 보국안민이란 
일인지하요 만인지상의 지위에 가셔야 할 말인데, 나 같은 함경감사쯤이 
무슨 보국안민을 하겠소."
정만종은 보국안민 소리가 좋아서 다시 되까려 묻는다. 보우는 지체없이 
대답한다.
"보국안민이라는 것은 글자 그대로 나라를 도와서 백성들을 편안케 하는 
것입니다. 미관말직인 원이나 군수도 나라를 돕고 백성을 편안케 할 
책임이 있는 것이온데 항차 한 도를 맡아 다스리시는 방백(方伯)이신데 
어찌 보국안민을 걱정 아니 하시겠습니까. 이러한 의향을 가지신다면 
대감께서는 삼 년 안에 정말 보국안민을 하는 정승이 되실 것입니다."
  삼년 안에 정승이 된다는 보우의 말에 정만종의 입은 딱 벌어진다.
"대사는 관상까지 볼 줄 아시오?"
"관상과 풍수는 도선대사와 무학대사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불가의 전통 
있는 학문입니다. 고려의 창업이 도선대사로 인하여 사백여 년의 기업을 
닦았고, 이태조의 등극은 무학대사의 해몽(解夢)으로 기인된 것입니다. 
이태조께서 꿈에 서까래 셋을 지고 나오셨다 말씀하니 무학대사는 임금 
왕(王)자가 분명한 것이라 아뢰고, 꿈에 꽃이 떨어지고 거울이 깨졌다고 
말씀하니 무학대사는 화비종유실(花飛終有實)이요, 
경파기무성(鯨破豈無聲)인가 해서, 꽃이 떨어지니 마침내 열매가 연 것이요 
거울이 깨지는 소리에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란다고 해몽을 했습니다. 
이것이 다 연원이 있는 불교의 비결 공부입니다."
정만종은 비로소 보우가 범승(凡僧)이 아닌 것을 확실히 알았다. 
  함경감사 정만종은 삼년 안에 정승이 된다는 바람에 이날부터 보우를 
융숭하게 대접해서 특별히 별방을 치고 기거를 같이했다. 
  어느 날 보우는 정만종한테 말을 붙였다.
"지금 섭정마마께서는 불법을 존중하시어 팔도강산 명산대찰에 기도를 
올리시는 중입니다. 대감이 소승을 윤원형 대감께 천거를 해주신다면 크게 
불도를 나라 안에 전파시킬 뿐 아니라 대감을 삼 년 안에 정승이 되시도록 
하오리다. 편지 한 장만 써 주시오."
함경감사 정만종은 어서 정승이 되고 싶었다. 당장에 먹을 갈아 
윤원형한테 편지를 썼다.
"지금 대감을 뵈러 서울로 올라가는 대사는 보우라는 도승입니다. 안변 
석왕사의 도학 높은 고승으로, 학식이 유여할 뿐 아니라 항상 금상전하와 
섭정마마며 윤대감댁 볼을 불전에 비는 지성스럽고 충성스러운 
승려입니다. 한번 인견해 보옵시기를 바라나이다."
보우는 함경감사 정만종의 편지를 깊이 품안에 간수하자 표연히 서울길을 
향하여 떠났다.
  한 달 만에 서울에 당도한 보우는 승복을 단정히 빨아 입고 윤원형의 집 
솟을대문으로 들어서서 청지기에게 함경감사의 편지를 전했다. 윤원형과 
난정이 마침 상을 물리고 한담하고 있을 때 청지기는 보우가 바친 
함경감사의 편지를 전해 올렸다.
  윤원형은 안변 설봉산 석왕사 도승 보우가 섭정마마와 자기의 복과 수를 
빌었다는 사연을 읽자 편지를 보이며 난정과 함께 보우를 불러들였다. 
보우는 뜰 아래서 먼저 합장을 올린다.
"나라를 태평건곤으로 반석 위에 올려 앉히신 두 분 내외 분의 큰 덕을 
축수합니다."
엄숙하게 치하를 올린다. 
  나라를 태평건곤 위에 올려 앉혔다는 보우의 말에 윤원형과 난정의 
마음은 흥그러웠다. 난정이 보우의 인품을 훑어보니 키는 육척 장신이요, 
몸집은 태산덩이를 옮겨 논 듯 의젓한데, 나이는 오십대요 얼굴은 
풍윤하며 눈은 화경 같이 이글이글 정열이 타올랐고 목소리는 우렁찼다. 
난정은 마음속으로 비범한 중이로구나 생각하고 손으로 원형을 쿡 찔렀다. 
"대감이 친히 일어나 올라오라구까지 하시오."
원형은 난정이 시키는 대로 마루 끝까지 나가, 뜰 아래서 합장하고 섰는 
보우의 손을 잡았다.
"대사, 먼 곳에서 찾았구려. 어서 올라오시오."
원형은 반색을 하며 보우를 당 안으로 이끌었다. 보우는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태연히 대청을 걸어 권하는 자리에 앉으면서, 다시 합장을 하여 
난정과 원형에게 경의를 표한다. 
"함경감사의 편지를 보니 대사는 항상 금장전하와 섭정마마의 복을 빌었다 
하니 갸륵한 일이오."
윤원형은 먼저 보우를 향하여 치사를 한다.
"국태안민(國泰安民)하라고 복을 빈 것이지, 금상전하나 섭정마마의 개인의 
몸을 위하여 복을 빈 것은 아닙니다. 대감과 정경부인마마에게 무량대복이 
내리시기를 역시 빌었습니다만, 대감이나 정경부인마마의 개인의 복을 빈 
것은 아니옵니다."
보우는 말을 마치자 주저없이 난란하게 타는 눈으로 난정과 윤원형을 
바라본다. 웬만한 중이면 구중궁궐 같은 윤원형의 집의 궁사극치한 
집치장에 눌리고 섭정마마의 형제인 윤원형과 난정에게 기가 질려서 
주눅이 들었을 텐테, 보우의 기상은 점점 더 헝걸했다. 난정의 눈과 보우의 
눈이 번갯불처럼 마주친다.
  난정은 마음속으로, 
'이자는 한번 써 볼 만하구나.'
하는 생각이 일어난다.
"금상마마와 섭정마마는 이 나라의 지존이시니 대사는 신자의 도리로 
당연히 복을 빌었겠지만, 대사가 우리 내외의 복을 빈 것은 무슨 
까닭이오? 듣고자 하오."
난정이 쨍한 목소리로 보우를 쏘아보며 묻는다. 한 점의 미소도 얼굴에는 
머물러 있지 않았다. 쌀쌀한 바람이 이는 듯했다.
"소승이 대감과 정경부인의 복을 빈 것은 두 분 마마께서 구제창생을 
하셨기에 두 분께 감사를 드려 복을 빈 것이옵니다. 무슨 까닭에 한 번도 
뵙지 못한 두 분의 복을 빌었겠습니까. 부귀영화와 진세의 연을 헌신짝 
버리듯 끊어버린 소승이 무엇이 부족해서 두 분의 복을 빌었겠습니까. 두 
분께 잘 보이려고 복을 빈 것도 아닙니다. 두 분께 첨을 올리고 복을 빈 
것도 아닙니다. 두 분이 석가세존이신 소승의 스승을 위하시어 크게 
불도를 닦으시고 믿으시니, 불제자인 소승은 부처한테 향의하시는 두 분이 
고마워서 두 분의 복을 빈 것이옵니다."
보우는 난란하게 타는 눈으로 난정의 쌀쌀한 눈매를 주저없이 바라보며 
대답한다. 
  난정은 보우의 그 타는 듯한 눈이 마음에 들었다.
"어찌하면 불도는 구제창생을 하오리까?"
"세상 사라들을 모두 다 부처의 마음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세상 
사람들을 불도로 귀의시키자면 불도의 지도자를 많이 길러 내야 합니다. 
이리하자면 국초 때에 마련한 승과(僧科)의 과거제도를 다시 부활시키도록 
하옵시오. 이렇게 된다면 불구출신으로 과거에 뽑힌 승려들은 모두 다 
대감마마와 정경부인마마의 심복이 될 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은 
대감마마를 대불로 받들고 정경부인을 관음보살로 모시어 조선 천지를 
극락세계 연화대로 만들고, 만조정 신하와 천만 백성들이 모두 다 두 분 
마마의 명에 의지하여 움직이리라 생각합니다."
보우의 장중한 말을 듣는 윤원형과 난정은 세상 사람들이 윤원형을 대불로 
받들고 난정을 관음보살로 모신다는 말에 비위가 바싹 당겼다. 더구나 
만조백관가 천만 백성들이 자기들의 명대로 움직인다는 말이 여간 
고혹적인 말이 아니었다. 그들은 지금 유교를 신봉하는 선비들을 조정에서 
몰아냈으니 유교 대신 어떠한 다른 길로 백성들의 마음을 통솔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것을 잘 알았다. 난정의 영리한 눈초리는 윤원형의 
얼굴로 헤엄질친다.
  힐끔하고 쳐다보는 난정의 고운 눈결을 윤원형은 얼른 받아 알아차렸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있는 대로 중들의 과거를 다기 복구시키란 말이지."
이제 윤원형은 보우를 누르려 하여 반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합니다 . 중들은 과거를 보아서 장원급제가 되었다 해도 선비들처럼 
결코 묘당에 서서 파벌을 짓고 싸움은 하지 아니합니다. 과거를 보아도 
정치에는 참례하지 않고 자기네들의 학문을 닦아서 불문을 지킬 
뿐입니다."
윤원형은 무엇을 생각했는지, 
"대사, 내일 만나기로 하세."
장중하게 한 마디를 내놓았다. 보우는 마음속으로 서기지망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능청스럽게 얼른 난정과 원형에게 절을 드리고 물러났다.
"그럼 내일 또 와서 문안을 드리겠습니다."
  이날 저녁때 윤원형과 난정은 가시 세고 뼈대 센 유생들보다 불교로 
백성들을 지도하는 근본을 삼을 것을 결정했다. 
  이튿날 보우는 난정과 윤원형을 또 찾았다.
"내가 직접 자네를 나라에 천거한다면 조정 공론이 많을 것이니 
함경감사가 자네를 나라에 천거하는 것처럼 정감사에게 이르도록 하게. 
조금만 있으면 나라에서는 팔도강산에 영을 내려서 높은 도승을 구해 
바치라 분부가 계실 것일세. 그때 가서 꼭 자네를 고승으로 천거하라 
이르게. 신신당부하자."
보우는 기뻤다.
"그럼 소승은 물러가겠습니다. 위에서 조처가 계시는 대로 다시 올라와 
뵙기로 하겠습니다."
보우는 일이 반이나 넘어 된 듯했다. 난정과 윤원형을 하직한 뒤에 
신바람이 나서 고향으로 돌아갔다.
  보우가 고향으로 간 뒤에 이렇게 하여 난정은 섭정마마께 불도를 크게 
일으켜서 복과 수를 빌라고 아뢰었다. 섭정마마는 당장 즉석에서 
팔도감사에게 도승이 있으면 즉시 구해들이란 영을 내렸다. 보우가 
고향으로 돌아가 보니 과연 함경감사한테는 도승을 구해 바치라는 어명이 
벌써 전달되어 있었다. 보우가 정감사를 찾아가서 정경부인 난정과 
윤원형을 만난 이야기를 하니 정감사는 삼 년 안에 정승이 될 수 있다는 
보우의 말에 신바람이 나서 당장 함경도에 도승이 있다는 장계를 써서 
서울로 바친다. 
"함경도에 안변 설봉산 석왕사에는 보우라는 도승이 있사옵니다. 고려를 
건국했던 왕건대왕의 국사인 도선대사와, 이태조대왕의 왕사였던 
무학대사의 전통을 받은 제자로서 학식과 도덕이 높은 고승이옵니다. 
어명에 의하와 삼가 추천하나이다."
장계는 파발말에 달려서 주야를 가리지 않고 서울로 올라갔다. 
  정원을 통하여 함경감사의 장례를 받은 섭정마마는 크게 기뻤다. 
"도승 보우를 불일 내로 서울에 도착하도록 하라!"
왕명은 또다시 돌아가는 말 편에 함경감사 정만종한테로 내려졌다.
  보우는 상자중 오륙명을 거느리고 교자에 올라 설봉산에서 서울로 
치달렸다. 먼저 윤원형 대감과 정경부인 난정을 뵈옵고 정원에 들어가 
어명을 대기하고 있었다. 도승 보우가 대기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섭정마마는 즉시 난정을 들라 했다.
"함경감사가 도승 보우를 올려 보냈구나."
마마는 난정은 보고 만면에 웃음을 띄웠다.
"인견을 하셨습니까?"
난정은 시치미를 뚝 떼고 묻는다.
"너와 함께 대면을 하려고 아직 입대를 시키지 아니했다."
"소녀 같은 것이 무엇을 압니까? 마마께옵서 인물을 잘 살피시옵는데,"
난정은 사양하면서 요사스러운 웃음을 홍모란 꽃판처럼 화사하게 
터뜨린다.
"사양말고 게 있거라."
섭정마마는 난정을 누르자 내시에게 영을 내린다.
"도승을 들라 해라."
  이때 요승 보우는 새로 지은 한산세모시, 진솔먹장삼에 불구슬빛 화려한 
만수가사(滿繡袈裟)를 반어깨에 멋들어지게 메었다. 왕궁에 들어 
섭정마마를 뵙게 되는 절호한 기회였다. 일부러 재력을 기울여 
한산세모시에 검은 물감을 까맣게 들여 입고, 안주의 수 잘 놓는 좋은 
솜씨를 빌어 홍공단가사에 화려한 수를 놓았다. 대왕마마께서 부르신다면 
굵다란 삼베 장삼을 입었을 텐데, 섭정마마가 부르시는 것이라 일부러 
흠뻑 모양를 내서 멋지게 입었다. 왼편 손목엔 검은 구슬, 광채가 찬란한 
백팔 염주를 걸고 바른편 손에 청려로 만든 육환석장을 짚었다. 육척 
장신에 어깨는 떡 벌어지고, 사삽대의 기걸차게 잘생긴 얼굴엔 화경 같은 
두 눈이 쏘는 듯이 타는데, 양편의 관골은 기운차게 솟구쳤다. 한 번 보고 
또 바라볼 남성적인 호방한 자세였다. 요승 보우의 남성적 자세는 머리를 
새파랗게 밀고 검은 승복을 입은 탓인지, 더한층 보는 사람의 마음에 
괴기와 매력을 느끼게 한다. 
  보우는 내시한테 인도되어 섭정마마가 거처하는 지밀 뜰 아래 합장을 
올려 허리를 구부린다. 섭정마마와 난정은 눈에 의젓하고 잘생긴 보우의 
얼굴이 비쳤다. 난정은 이미 대해 본 얼굴이지마는 섭정마마는 처음 보는 
보우의 얼굴이었다. 의복이 날개라, 보우의 별로 걷은 흑장삼과 불빛 
가사는 더한층 보우의 옷거리와 얼굴을 호걸스럽게 돋보이게 했다.
  대비는 마음속으로 잘생긴 중이로구나 생각하면서 합장하고 섰는 도승 
보우를 한동안 바라본다. 여태껏 대비는 많은 남성을 발 안에서 
바라보았다. 늙은 재상도 바라보고 젊은 학사들도 바라보았다. 그러나 
여태껏 보아온 남성들 중세서 보우만큼 호걸스럽게 잘생긴 남자를 바라본 
적이 없었다. 참으로 사내답게 잘생긴 얼굴이었다. 
  대비는 가만히 마음속으로 생각해 본다.
'저렇게 잘생긴 얼굴판에 머리를 기르고 금관조복 찬란한 의복을 
입혔더라면 더한층 돋보이렸다.'
이윽고 마마는 도승한테 낭랑한 옥음을 내린다.
"함경감사 정만종이 천거한 도승 보우인가?"
"예, 그러하옵니다. 섭정마마의 크옵신 은혜에 감읍하올 따름입니다. 
만수무강하옵소서. 소승에게는 억만년을 지내도 차마 잊지 못할 
감격이옵니다."
보우는 뜰 아래 선 채 다시 합장을 오려 섭정마마의 홍은을 감격해서 
대답한다. 섭정마마의 귀에 올리는 보우의 목소리는 사람의 말소리가 
아니라 우렁우렁 종소리가 올리는 듯했다. 우렁찬 보우의 목소리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마치 신의 목소리같이 들렸다.
"그대는 도선대사와 무학대사의 의발(衣鉢)을 전해 받은 제자라 하니 
분명한가?"
"예, 도선대사와 무학대사의 학문을 존중해서 항상 사숙하고 있었사옵니다. 
그러므로 불법을 약간 아는 사람들은 소승을 도선대사와 무학대사의 
제자로 일컫사옵니다."
섭정마마는 도선대사와 무학대사의 제자란 말을 보우의 입으로 직접 듣자, 
마음속에 보우를 존경하고 싶은 생각이 가득히 일어난다. 
"도선대사는 교려 태조 왕건을 도와 삼한을 통일시킨 위업을 이룩했고, 
무학대사는 우리 나라의 태조대왕마마를 도와 한양 배판을 한 분이 
아닌가. 모두 다 임금의 스승이 아닌가."
"예, 그러하옵니다."
"대사는 나를 도와 나라를 중흥시킬 포부가 있는가." 
섭정마마는 다시 한 번 기걸차게 잘생긴 보우의 얼굴을 응시해 바라보면서 
묻는다. 요승 보우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아니했다.
"소승에게 물으실 것이 아니라, 마마께서 자신한테 물으시옵소서. 소승의 
말씀을 들어 억조창생을 부처의 도롤 구원하신다면 나라가 중흥이 될 
것이구, 그렇지 않다면 나라의 중흥이 용이한 일이 아니옵니다. 마마의 
처분이십니다."
보우는 말을 마치자 입을 한 일자로 꽉 다문다. 보우의 뱃 속엔 
천지조화와 육조배판이 함빡 서려져 있는 듯 장중하게 보였다. 섭정마마는 
보우의 기풍에 눌렸다.
"대사는 나라를 중흥시킬 포부를 말해 보라."
"마마, 나라를 중흥시킬 포부가 그렇듯 간단한 것이 아니옵니다. 
마마께서는 아까 말씀하시기를 도선대사는 고려 왕건대왕의 왕사구, 
무학대사는 이태조 대왕마마의 국사라 하셨습니다. 그들이 왕사나 국사가 
되어서 삼한 통일과 개국공신이 되었을 때, 마당가에 서서 잠깐 말씀을 
드려 가지고 크나큰 사업을 이루게 한 것이 아니옵니다. 국사나 왕사가 
하인 노릇하듯 뜰에서 국가 백년대계를 의논했을 리 만무합니다. 
전하께서는 소승을 하인으로 대접하십니까. 그렇다면 소승은 도로 
설봉산으로 들어갈 뿐입니다."
요승 보우는 대답한다. 섭정마마를 향하여 다시 한 번 합장을 올리고 
석장을 짚어서 우쭐우쭐 합문 밖으로 향해 나아간다. 
  섭정마마는 당황한다. 얼른 난정을 돌아본다.
"대단한 사람이로구나. 어떻게 하면 좋으냐?"
섭정마마는 더욱 보우의 기상에 눌렸다.
"마마, 도승 대접을 너무 경하게 하셨습니다. 친히 뜰로 내리시어 도승을 
맞아들이옵소서. 태조대왕께옵서도 무학대사를 몸소 친히 설봉산으로 
찾으셨다 하지 않습니까."
난정은 태조대왕의 옛일을 들어 섭정마마가 친히 뜰에 나가 맞아들일 것을 
권한다. 
  섭정마마는 부리나케 뜰로 내렸다. 정경부인 난정이 부액을 해서 모시어 
내려간다. 이삼의 궁녀가 뒤를 따랐다.
"대사, 고정하시오. 내가 미처 생각이 들지 못했소이다."
섭정마마는 합문 밖으로 나가는 보우를 향하여 큰소리로 외친다. 대비전 
내시가 황망히 합문 앞으로 쫓아가 보우에게 연통을 한다.
"섭정마마께옵서 지금 친히 뜰에 내려 대사를 청하십니다. 잠깐만 걸음을 
멈추옵시오."
내시가 간곡하게 보우의 나가는 길을 막으며 말한다. 
  보우는 짐짓 발길을 멈춘 채 뒤를 돌아본다. 과연 대비와 난정이 
상궁들을 거느리고 뜰 아래로 내려가서 자기를 부르는 것이었다. 
"대사, 내가 너무 무례했소이다. 모든 것을 용서하고 전상으로 오르시오."
섭정마마는 다시 간곡하게 말을 보낸다.
"대사, 아까 일은 다 잊으시고 섭정마마의 분부를 받드시오"
이번엔 난정이 보우를 향하여 간청을 한다. 보우는 못 이기는 체 발길을 
돌린다.
"대사를 모시어 전상에 오르도록 하라."
섭정마마가 내시에게 분부를 내리면서 전상으로 올라선다. 내시는 보우를 
인도하여 섭정마마의 뒤를 따라 전상으로 오르게 했다. 섭정마마는 정좌에 
앉고 보우는 측면으로 모시어, 서서 국궁하여 합장을 올린다.
"대사 앉으시오."
마마의 말씀이 떨어지자 난정은 화려한 수방석을 내서 보우에게 권한다. 
보우는 사양치 않고 의젓이 방석에 정중하게 앉는다. 마치 태산 한덩이가 
의젓이 앉은 듯하다.
"대사! 아까는 너무나 불민한 일이 많았소. 용서하시오. 그리고 우리 한번 
불도를 크게 중흥시켜서 천하에 제일가는 해동조선을 만들어 봅시다."
섭정마마는 은근한 미소를 풍기면서 보우를 바라보며 말을 꺼낸다.
"참으로 마마께옵서는 그러한 높으신 뜻을 가지셨다면 만백성의 
행복이옵고 국운이 창대할 것이옵니다. 항상 석가세존의 뜻을 
받드시옵소서."
보우는 눈을 번쩍 떠서 마마를 주저없이 바라보며 우렁우렁 장중한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나는 부처의 힘을 많이 입었소이다. 금상전하를 점지할 때 저기 저 
정경부인이 나를 도와 팔도강산으로 명산대찰을 두루 찾아다니면서 정성껏 
기도를 올렸소이다. 이것이 모두 부처님의 은공이라 생각하오. 그리고 
오늘날 금상전하가 어린 나이로 등극을 한 것도 역시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힘이라 생각하오. 이 은혜를 갚기 위하여 나는 팔도강산에 절을 
중수하고, 세세생생 부처의 하해 같은 은덕을 갚으려 하오."
"좋으신 생각입니다. 소승도 금상마마를 점지하실 때 설봉산 암굴 속에서 
천일 기도를 올렸습니다. 섭정마마는 장차 이 나라의 산 보살이 되시어 
이십 년 동안 집권하실 대운을 맡으신 때문에 소승이 천일 기도를 올린 
것입니다."
  보우는 슬몃 말꼬리를 둘러대어 공치사를 하면서 마마의 욕심을 
부채질해 흔들어 놓았다. 
"내가 이십 년 대권을 잡는다?"
"그러하외다."
보우는 눈을 끔벅끔벅 떴다 감았다 하며 대답한다. 이럴 때마다 보우의 
눈에는 섬광이 번쩍번쩍 일어난다.
"작히나 좋겠소. 그렇지만 이십 년은 부족하오. 마마 한평생 대권을 잡게 
하시오."
옆에서 난정이 상긋 고운 웃음을 터뜨리면서, 해죽이 말참견을 한다.
"마마, 한평생 집권을 하시자면 요망한 선비들을 조정에서 물리치시고, 
승려에게 과거를 보게 해서 불도의 세력을 크게 창대케 하신다면 나라가 
융창할 뿐 아니라 마마의 집권은 평생이 되오리다. 그것뿐이겠습니까. 만세 
후에라도 서왕모가 요지에 계시듯, 연화대에 항상 계시오리다."
"승과를 뵈인다면 선비들이 오죽이나 야단을 칠라구."
"그까짓 것 꽉 누르시옵소서. 선비놈들은 모두 다 윤임의 일당이옵니다. 
평시에 얼마나 마마를 해롭게 했습니까. 마마를 폐비가지 시키려고 들지 
않았습니까. 모두 다 생도둑놈들이옵니다. 불교를 얼마나 비방하고, 중들을 
얼마나 학대해 왔습니까. 신라 때 삼한을 통일한 것은 진흥왕, 진평왕, 
선덕대왕, 진덕여왕, 이분들이 모두 다 불도를 크게 숭상하시어서 마침내 
통일 삼한을 이룩한 것이구, 고려태조가 다시 삼한 통일을 한 것도 역시 
불도의 위대한 정신을 국시로 삼은 것이구, 이태조의 건국도 무학대사의 
힘이 큰 것을 마마께서도 소상분명하게 짐작하시는 노릇입니다. 이런 것을 
선비들이 저희 혼자 조정의 권리를 농락하기 위하여 불교도를 학대하고 
비방하고 산 속으로 내쫓아서 도성 안에는 얼씬도 못하게 했습니다. 다시 
중에서 과거를 보여서 인재를 뽑도록 하시옵소서. 이리해야만 섭정마마의 
이십 년 정권이 유지될 것입니다."
이십 년 동안 정권을 한다는 말에 섭정여왕의 입은 배시시 벌어진다.
"그리고 선대와마마의 능침을 물 건너 광주 성종대왕의 능침 동평 산으로 
이장을 하시고, 봉은사를 원찰로 하여 크게 중수하옵소서, 이곳은 천하의 
대지올시다. 그러고 섭정마마 만세 후에는 이곳에 합장을 하도록 
하시옵소서. 지금 모신 고양 회릉은 지세가 좋지 못하옵니다. "
"고양의 지세가 그대도록 낮은가?"
"흉악하옵니다. 섭정마마와 금상전하께 좋지 않은 곳이옵니다. 그리고 
과거는 옛법에 의거해서 선종, 교종 두 과를 두시어 승려들이 과거를 보게 
하시옵소서. 그리고 봉은사는 선종의 교장을 만들에 하시고 세조대왕의 
능침 옆에 있는 봉선사에는 교종의 도량을 만들게 하옵소서. 이리해야만 
나라의 국본은 튼튼해지옵고, 섭정마마는 계속해서 대권을 잡으실 
것입니다. 만일 이 일을 반대하는 무리가 있다면, 이것은 섭정마마의 
집권을 긴치 않게 생각하는 무리들이오니 깊은 통촉이 계시기 바랍니다."
보우는 화경 같은 눈을 번쩍거리면서 섭정마마를 바라본다. 잠깐 동안 
침묵이 흐른다.
  "소승은 이제 물러가겠습니다. 불교를 일으키고 아니 일으키는 것은 
이제는 섭정마마의 처분에 달려 있습니다. 대권을 오랫동안 잡으시어 
금상마마의 위가 튼튼하도록 만드시려만 한번 보우를 시험해 보시고, 
그렇지 아니하시면 선비들한테 쫓기실 것을 각오하셔야 합니다. 소승은 
아뢸 말씀을 다 아뢰었습니다. 물러갑니다."
보우는 마마를 향하여 합장을 정중하게 올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좋은 말씀을 더 해주구료."
"아뢸 말씀이 없습니다."
보우는 남자답게 결연히 일어나 난정에게 눈으로 인사를 보내고 뚜벅뚜벅 
전각으로 내려갔다. 중으로 기걸 찬 쾌남이라고 섭정마마는 생각했다.
  보우가 물러간 뒤에 섭정마마는 당장 곧 승지를 불렀다. 
"고양에 모신 중종대왕마마의 능침을 광주 땅 성종대왕을 모신 동편 
언덕을 천릉을 시키라 해라. 봉심관은 윤원형으로 결정하라."
승지는 명을 받았다.
"그리고 예조와 이조에 영을 내려서 승려들에게 과거 보는 제도를 다시 
복구시켜서 준재를 뽑게 하라. 그리고 교종의 도장을 양주 봉선사에 두게 
하고 선종의 교장을 광주 봉은사에 두게 하라."
승지는 또다시 명을 받들어 전교를 쓴다.
"함경도 설봉산 고승에 보우라는 화상이 있다. 이 사람에게 중의 벼슬을 
내리게 하라. 벼슬 직첩은 이렇게 쓰라. 판선교량 종자 도대선사 봉은사 
주지. 알았느냐?
"예의."
승지는 어명을 받들어 전교를 썼다.
"즉시 예조에 기별하여 보우에게 첩지를 내리게 하고 사은숙배케 하라."
"예의, 이조와 예조에 곧 전교를 내리겠사옵니다."
승지는 대답을 해놓고도 사은숙배란 섭정여왕의 말에 기가 막힌다.
  예조와 이조에서는 깜짝 놀랐다. 처음 경국대전을 마련했을 때는 선종과 
교종의 승과를 보게 하고 도선사를 두라는 조문이 있었으나, 그 뒤에 
승려를 사도와 이단이라 하여 천대한 뒤부터는 조문을 뽑아 버려서 아무 
빙거할 고증과 문헌이 없었다. 예조와 이조에서는 상소를 올렸다.
"선종과 교종의 과거를 폐지한 지 오십여 년이 되어 승과를 복구시킬 
고증과 문헌이 없사옵니다. 어찌하면 좋사오리까."
섭정마마는 당장 곧 비답을 내린다.
"문헌이 없다면, 중들은 과거 보던 제도를 잘 알 것이다. 승려들로 과거 
보던 제도를 복구시키게 하라."
강경한 비답이 내렸다. 
  이조와 예조에서는 섭정마마의 분부대로 거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소문을 들은 선비들은 물 끓듯 일어났다. 보따리들을 싸놓고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섭정마마는 강경했다.
"이단을 치는 것은 선비인 유자들이 할 일일지 모르나 너희의 말이라 해서 
다 들어 줄 수는 없다. 성균관에 머물러 공부하면서 말을 해도 좋지 
않느냐."
단번에 섭정마마는 유생을 짓눌렀다. 대신들도 유생들의 여론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임금이 불교에 고혹되어 중으로 과거까지 보게 한다는 것은 
역대 제왕의 무시하는 짓이라고 간곡하게 간했다. 그러나 섭정마마의 
마음은 철석같이 움직이지 아니했다.
"임금께서 불교에 혹하여 과거제도를 복구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화연풍하게 나라를 다스리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교양종의 
과거제도를 복구시키는 것은 상감이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이니 
임금을 공격해서는 아니 된다. 모두 다 내 책임이다."
섭정마마는 더욱더욱 깐깐하고 대담했다. 불교를 일으키는 것은 내 
책임이니 너희는 꿈쩍을 말라는 강경한 대답이었다.
  선비들은 마침내 성균관을 공관으로 만들고 보따리를 싸서 팔도로 
흩어졌다. 성균관이 비었다는 것은 나라의 체모가 아니었다. 그러나 
섭정마마와 난정은 코웃음을 쳤다.
"과거령을 내려서 다시 선비들을 뽑으면 그만 아닙니까."
난정의 아뢰는 말에 마마는 무릎을 폈다.
"네 말이 옳구나."
성균관에는 알성과 과거령이 단박 내렸다. 어린 임금은 연을 타고 문묘로 
친림을 했다. 진짜 선비가 아닌 가짜 선비들이 과거에 응했다 성균관에는 
가짜 선비들이 진사로 뽑혀서 가득차게 되었다. 그러나 선비는 선비였다. 
다시 항의할 사람이 없었다.
  섭정마마는 보우를 불려 중의 과거를 속히 거행하라 일렀다. 보우는 
판선교량종사 도대선사의 자격으로 팔도 사찰에 전령을 내려 승려의 
과겨령을 내렸다. 한번 과거령을 내리리 이 소식을 들은 백성들은 
너도나도 하고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버렸다. 중이 되면 병역을 피할 수 
있고 세납이 면제되는 때문이었다. 여기다가 과거에 뽑히면 선비와 
벼슬하는 관리와 매일반이 될 것이 분명했다. 오십여 년 동안 구박과 
천대를 받던 중들은 일약 사대부와 어깨를 겨루게 되었다.
  정부에서는 섭정마마께 또다시 간하는 상소를 올렸다.
"양종을 복구한 이후로 중이 되려는 자가 나날이 많아 갑니다. 병종과 
군사뿐이 아니라 관속도 모두 중이 되려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족과 
선비들도 병역을 기피해서 중이 되는 자가 많습니다."
그러나 섭정마마의 귀에는 간하는 조정 여론도 들어가지 아니했다. 
마이동풍이었다. 그대로 중의 과거를 보게 하고, 보우에게는 대선사의 
직첩을 내렸다.
  보우는 도대선사의 직첩을 받자 옛적 고려 때 왕사의 자격으로 대궐로 
사은숙배를 들어가는데, 호사스런 행렬이 장관이었다 머리에는 옥로를 단 
검은 모자를 쓰고 어깨에는 금실로 수를 놓은 붉은 가사를 걸었다. 
허리에는 홍공단 대요대를 화려하게 때고 높직이 사인교에 앉았다. 앞에는 
길잡이가 섰는데 먹장삼을 입은 중이 벽제하는 소리를 외치고 취타와 
소라와 대평수를 불어 삼현육각 길군악이 앞을 인도하는데, 보우는 의젓이 
사인교 위에 연화 방석을 높직이 깔아 위풍이 늠름했다. 전배와 후배의 
추종이 수백 명인데 모두 다 먹장삼을 입은 염불법사들이었다. 보우의 
행차는 마치 불왕의 행차 모양 장엄하고 호화스러웠다.
  거리에서 구경하는 백성들은 이 전교 없는 호화로운 승려의 행차에 
눈들이 휘둥그래져서 놀라고 기이하게 생각했다. 보우가 대궐로 행차해서 
벽제를 치고 들어가니 예조판서는 깜짝 놀라서 섭정마마께 사뢴다.
"선교량종판사 보우가 사은숙배를 하러 궐문에 당도하였나이다. 중의 
복색을 차린 이류의 사람이 광화문 대궐로 들어오니, 만백성들이 깜짝 
놀라 해괴한 눈으로 바라보옵니다. 조정에서 벼슬하는 신하들도 나라에서 
내리시는 은전이 있으면 자지 직장에서 대궐을 보고 망궐사은을 하는 것이 
예법이옵니다. 보우는 본디 절간에 있는 중이오니 산에서 사은하는 일이 
당연하다 생각하옵니다. 어떠하옵니까?"
섭정마는 지체하지 않고 전교를 내린다.
"옛 법에 의해서 궐정에서 숙배를 드리게 하는 것이 옳다."
"전례가 없습니다. 빙거할 문헌이 없습니다. 사은숙배를 기어이 시키시려면 
궐문 밖에서 숙배를 하도록 하옵소서."
정문에서 또다시 반대를 했다.
"전례가 없다면 보우한테 물어서 처리케 하라."
섭정마마는 이대도록 보우를 제일로 알았다. 정부에서 보우한테 물으니, 
"전에 의상대사도 숙배를 드린 일이 있소."
하고 궐문 밖에서 딱 버티었다.
  마침내 보우는 대궐 안으로 들어가 장중하게 사은숙배의 의식을 올린다. 
보우는 섭정마마와 어린 임금을 향하여 편전에서 네 번 절하고 치사하는 
말씀을 올렸다. 
"왕은이 융숭하옵니다. 후마마를 위하여 진충보국하겠나이다."
온세상은 여인의 천하와 불교의 천지로 변했다.
  승려들은 모두 과거를 보아 첩지를 받았다. 윤원형은 영의정이 되어 
은근히 보우를 도왔다. 팔도강산에 퍼진 사찰은 나날이 증가되어 붉은 
난간, 그림기둥에 금빛이 찬란하고 정업원 옛터에는 인수사를 드높게 짓고, 
절마다 내원당을 새로 지어 홍살문을 세우고 잡인의 출입을 엄하게 
금했다. 보우는 봉은사의 주지가 되어 대궐 안으로 무상출입을 하면서 
섭정마마를 지척에서 모시니, 왕공지경은 모두 다 그의 밑에 쭈그려 절을 
하게 되었다.
  윤원형과 난정과 보우의 세도는 이십 년을 뻗쳤다. 열두 살 된 명종이 
차차 자라서 나이 이십이 되어 섭정마마는 정치하는 일을 아들에게 넘겨준 
후에도, 섭정마마는 대비의 자격으로 아들을 눌러서 꼼짝을 하지 못하게 
했다. 아들 명종은 배우기를 좋아하고 어진 신하를 은근히 사귀었다. 
어머니 섭저아마가 을축년 사월에 육십오 세로 돌아간 뒤에야 명종은 
비로소 자시 주장대로 옳은 정치를 하게 되었다.
  보우는 섭정마마가 급히 돌아갈 것을 모르고 나랏돈 수만금을 기울여 
사월 팔일 수륙대재를 양주 회암사에 크게 준비하는 중인데사월 칠일날 
섭정마마는 돌연 돌아가 버렸다. 보우는 일이 그른 것을 알자, 마전에서 
말을 도둑질 해 타고 강원 인제로 도망질을 치다가 대간의 탄핵을 만나 
인제에서 붙들려 제주도로 귀양을 가니, 제주목사 변협이 밉게 보아 
장살을 해 버렸다.
  윤원형은 대신 이하 대간의 공격을 받아 벼슬이 떨어져서 교하로 
내려가니, 백성들은 돌팔매와 기왓장을 던져서 줄이려 했다. 윤원형은 
마음이 불안해서 몰래 강음으로 종적을 옮겨서 난정과 함께 마주 보고 
지낼 때, 원형의 전실이었던 김씨의 어머니 강씨는 난정이 김씨를 
독살했던 사실을 형조에 고발하니, 형조에는 강상의 내변을 형조에서 
결정할 수 없다 하여 금부로 넘겨 버렸다.
  이 소문은 난정의 귀로 들어갔다. 난정은 다급하고 두려웠다. 윤원형의 
손을 잡고 울음으로 세월을 보낼 때, 종 아이가 네거리에서 관인 행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금부도사 행차가 옵니다."
하고 뛰어드는 바람에 난정은 미리 준비하고 있던 독약을 훌떡 마셔 
버렸다. 윤원형은 난정이 죽은 뒤에 혈혈단신으로 통곡만 하고 지내다가 
죽음의 그림자가 가까이 올 것을 각오하고 평소에 알고 있던 역리한테 
당부를 했다. 
"서울서 금부도사가 내려오거든 나한테 미리 좀 연통을 해주게."
하고 청을 했다. 때마침 황해도로 가는 금부도사가 벽제관에 당도하니 
역리는 윤원형을 잡으러 오는 줄 사잇길로 원형한테 달려왔다.
"금부도사가 내려옵니다."
"금부도사가?"
윤원형은 소스라쳐 놀라면서 미리 준비했던 짐주를 마시고 이내 목숨이 
떨어져 버렸다.
  조정에는 다시 조광조의 제자가 자득하게 되었다. 돌아간 섭정마마의 
시호는 문정왕후요. 장사는 태릉에 지냈다.(끝)

반응형

'책,영화,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라카미 류-5분후의 세계  (0) 2023.02.23
박종화-여인천하  (0) 2023.02.23
봉순이언니 - 공지영  (0) 2023.02.22
스즈키 케이조-정년 이후 20년은 이렇게 살아라  (0) 2023.02.22
스즈키 코지-링 (1)  (0) 2023.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