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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에서의 문화연구

by Casey,Riley 2023.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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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교육학에서의 문화연구












1. 머 리 글

자연이 연속적인데 비해, 문화는 불연속적이다. 문화는 연속적인 자연을 분별하여
길들인 것이다. 우리의 언어는 자연의 소리를 분별하여 길들인 것이고, 말은 야생
마를 길들인 것이며, 결혼(wedding)은 짝짓기(mating)를 길들인 것이고, 문화적 시
간은 자연의 흐름을 분별하여 길들인 것이다. 자연을 길들이는 방식에 따라서 문화
가 달라지며, 어떤 문화도 완전하지 않고 유동적이다. 문화가 완전하지 않을진대 
문화의 개념이 완전하기를 바랄 수 없다. 선가(
언어도단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통일되지 않은 문화의 정의가 문화연구를 혼란에 빠뜨릴 것이라는 생
각은 일종의 강박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문화와 문화개념의 다양성이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것이므로, 문화연구는 오히려 다양성 그 자체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내가 확실한 문화의 정의를 갖고 있으니 이것을 공유하여 
혼란을 피하자.”고 주장하는 문화연구자가 있다면 그는 알게 모르게 다른 문화와
다른 문화개념의 상대적 가능성을 무시하는 셈이다.
문화인류학자들에 의해서 학문적으로 개념화되고 ?
적으로 연구되어 온 문
화는 이제 여러 다른 학문에서도 활발하게 연구되고 재개념화되고 있다. 문화연구
의 ‘원조’(元祖)라 할 수 있는 문화인류학자들이 보기에 우려할 점도 없지는 않
겠지만, 보다 폭넓고 활발한 문화연구를 위해서 이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우리가 할 일은 학문에 따라서 문화를 달리 개념화하고 다른 
시각과 방법으로 문화를 연구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그 다양성을 함께 살펴보고 상호 보완적인 관계 속에서 문화연구를 활성화하기 위
한 학문 공동체의 가능?
置求?일이다.


2. 교육학에서의 문화연구: 교육인류학

교육학에서 교육과 문화의 관련을 연구해 온 대표적인 분야는 교육인류학이다. 교
육인류학 이외에도 교육사회학과 교육상담 분야에서 문화와 관련된 연구가 적잖게 
이루어져 왔으나, 그 분야의 주류를 형성한 적은 없다.
교육사회학에서는 크게 세 방향에서 문화가 연구되어 왔다. 첫째로, ‘시카고 학
파’의 지역사회연구(community study) 전통을 물려받아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해 특정 지역 청소년들의 생활과 교육
을 현장연?
?관찰하고 해석한 연구를 들 수 있다.1) 그 예로 홀링쉐드
(Hollingshead, 1947), 화이트(Whyte, 1955), 레이시(Lacey, 1970), 윌리스(Willis
, 1977)의 연구를 들 수 있다.
둘째로, 사회 불평등 구조의 재생산이 경제논리의 직접적 관철이 아닌 습성, 취향
, 지식, 자격증, 신용 등과 같은 문화적 자본에 의해서 우회적으로 이루어짐을 밝
힌 부르디외(Bourdieu, P.)의 문화재생산이론과 그에 바탕을 두고 행해진 문화연구
를 들 수 있다. 여기서 교육은 문화자본 재생산의 주요 통로로 파악된다. 사회언어
학적 방법으로 계급별 하위문화와
뗌?관련성을 밝힌 번스타인(Bernstein, 
B.)과 그 동료들의 연구도 같은 부류에 포함시킬 수 있다. 번스타인에게 있어서 
학교교육은 언어와 문화의 차별적 사회화를 조장하는 장이다.
셋째로, 비교적 최근에 와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으로서, 영국 ‘현대문화연구
소’(CCCS, The Centre for Contemporary Cultural Studies)의 문화계급론에 영향
을 받은 “대중문화와 청소년” 연구가 그것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홀과 제퍼슨(Ha-
ll & Jefferson, 1976), 윌리스(Willis, 1990)의 연구를 들 수 있다. 여기서 청소
년은 학생이라는 제도적
【?벗어나 다원적인 문화의 생산자와 소비자로 이
해된다.
문화에 관한 교육사회학의 이러한 연구경향은 미국과 영국을 위주로 살펴본 제한
된 것이다. 우리 나라 교육사회학의 경우에는 위 세 가지 연구경향의 어느 것도 뚜
렷하게 정립되지 않은 채 그것들에 대한 이차적 소개가 있을 뿐이며, 문화적 접근 
또는 해석적 접근이 아직 본 궤도에 올랐다고 보기는 힘들다.2) 한국교육학회 산
하 교육사회학연구회의 학술지에 수록된 논문 가운데 문화적 접근을 취하고 있는 
연구로는 고형일(1990), 조용환(1990), 황순희(1990, 1992), 김병욱(
김용
호(1993), 고형일·이두휴·정환금(1995) 등 몇 편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나라 교육사회학의 문화연구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라기보다는, 비교적 일찍
이 교육인류학이라는 분과학문이 자리를 잡으면서 교육학에서의 문화연구 전통이 
교육인류학 속에 분류되어 왔기 때문이라고 봄이 타당할 것이다.
한편, 교육상담분야에서는 상담자와 내담자의 사회문화적 배경 차이가 문제의 인
식과 해결과정에 미치는 영향을 살피는 이른바 ‘문화지향적 상담’ 또는 ‘비교문
화적 상담’을 중심으로 문화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袖?외국의 경우 
쑤우(Sue, 1981), 엣킨슨(Atkinson et al., 1983), 페더슨(Pedesen, 1985) 등 일
부 상담심리학자들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으며, 국내 교육학자의 경우 이영희(Lee, 
1975, 1982), 박재황(Park, 1990), 신혜경(1991)의 연구에서 확인되고 있다.
이 밖에도 교육학의 여러 분야에서 하위집단의 문화적 다양성을 고려하는 가운데 
‘공통문화’ 교육의 가능성을 검토하는 연구가 날로 늘고 있지만, 그 대부분이 
교육인류학 또는 문화인류학의 영향권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논의의 초점을 교육인류학의 성격?
천과정에 두고서 교육학에서의 문화연구
를 개관하고자 한다.
교육인류학이라는 학문의 명칭이 생기고 그것이 하나의 체계적인 연구분야로 인정
받기 시작한 것은 외국에서든 국내에서든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우리 나라 교
육인류학의 모태를 이루는 미국 교육인류학의 경우, 일반적으로 1969년 2월에 ‘인
류학과 교육학 협의회’(CAE, Council on Anthropology and Education)가 결성된 
것을 그 시발점으로 본다. 물론 1952년 미국인류학회 연차대회에서 교육문제의 해
결에 인류학적 지식과 방법을 원용할 가능성을 모색했던 시점을 ?
막?볼 수
도 있고, 스탠포드 대학의 스핀들러(Spindler, G.) 교수가 교육인류학의 정착을 위
해 Education and Anthropology를 편찬한 1955년이나 Education and Culture: Anth-
ropological Approach를 편찬한 1963년을 태동기로 보기도 한다. 국내의 경우에는 
서울대학교 교육학과에서 이광규 교수가 ‘문화와 교육’이라는 명칭의 강의를 하
였던 1960년대 말, 그리고 김영찬 교수가 그 강의를 이어받아 가르치면서 교육학과
커리큘럼 속에 ‘교육인류학’ 강좌를 정식으로 개설한 1970년대 중반을 그 태동기
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
管霞隙繭遮?학문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이전에도 교육과 문화의 관
련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3) 플레츠와 플레쉬(Fletcher & Fles-
che)는 일찍이 1888년에 오마하(Omaha) 인디언 사회가 의례, 놀이, 음악 등을 통해
서 어린이들에게 문화를 전승하는 양상을 보고하고 있으며, 반스와 반스(Barnes, 
E. & M.)는 1897년에 “아즈텍인들의 교육”이라는 논문을 썼다. 그러나 19세기 
말엽의 이 논문들은 현지관찰 자료에 토대를 둔 인류학적 연구의 체계를 아직 갖
추지 못했다.
인간과 그 문화를 연구하는 과학으로서 인류
육연구와 실천에 활용할 것을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은 휴위트(Hewett, 1904)였다. 그리고 몬테소리(Montessori,
1913)는 ‘교육인류학’(educational anthropology)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쓴 학자
로 알려져 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이와 같이 교육과 문화의 관련에 대한 학술
적 연구가 활발해지기 시작하는데, 이 흐름은 교육학보다는 인류학에 의해서 주도
되었다. 그 무렵 토드(Todd, 1913)와 햄블리(Hambly, 1926)는 원시부족사회에서 이
루어지는 형식적, 비형식적 사회화 또는 교수-학습의 사례를 광범위하게 수집하여 
정리하였으며
?Boas, 1928)는 교육을 문화전달의 과정으로 보는 인류학적 
관점을 정립하였다.
그러나 문화의 전승과정과 그 속에서 교육이 행하는 역할을 체계적이고도 본격적
으로 연구하여 교육인류학의 토대를 구축한 공적은 역시 미드(Mead, 1928)에게 돌
아가야 할 것이다. 보아스와 미드 이후에 교육인류학은 일종의 발아기(發芽期)에 
접어들면서 다양한 주제의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게 된다. 예컨대 밀러(Miller, 
1928)는 부족 사회 아이들의 성장과 사회화에 미치는 전통문화의 압력을 연구하였
고, 머레이(Murray, 1929)는 아프리카에서 유럽
들이 행한 서구식 교육이 전
통문화와 갈등을 일으키는 양상을 관찰하였으며, 니콜스(Nichols, 1930)는 북미 인
디언 사회에서 도덕적 훈련이 의례와 행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발견하고
그 구체적 과정을 살펴보았다. 말리놉스키(Malinowski, 1936)는 아프리카의 전통교
육을 소개한 다음 그것에 작용하고 있는 유럽식 학교교육의 영향을 분석하였으며, 
에릭슨(Erikson, 1937)은 쑤우(Sioux) 사회에서, 화이팅(Whiting, 1938)은 콰오마
(Kwoma) 사회에서 어린이가 성장해 가는 과정을 심리인류학의 시각에서 연구하였다
. 베네딕트(
t, 1943)와 허스코비츠(Herskovits, 1943)는 교육이 문화의 유
지와 변화에 미치는 양면적 작용을 고찰하였다. 레드필드(Redfield, 1943) 역시 과
테말라 고지대 주민들의 문화가 학교를 통해서 한편으로는 전승의 과정을, 다른 한
편으로는 변동의 과정을 겪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발아기의 연구들은 1952년 미국인류학회 스탠포드 회의를 거쳐 1969년 CAE
로 결실을 맺은 미국 교육인류학의 밑거름이 되었다. 뒤에서 보다 상세히 논하겠지
만, 우리 나라 교육인류학은 자생물(自生物)이 아니라 애초부터 미국의 교육인류학
을 거의 여
 받아들인 것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미국의 교육인류학이 주로 교육학자가 아닌 인류학자들에 의해서 개척되었
으며, 바로 그 점이 교육인류학을 자연스럽게 인류학의 한 분과학문으로 자리잡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교육학에서의 문화연구는 교육학적 정체성이 없이 이
론과 방법론 양면에서 인류학에 의존하는 양상을 처음부터 갖게 되었다. 그런데 묘
하게도 우리 나라에서는 교육인류학이 인류학과가 아닌 교육학과에서 주로 강의되
고 연구되어 오면서 그 양상이 더욱 복잡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정들 때문에 교육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문화연구의 성격과 방
향을 분석하는 이 논문이 교육인류학의 학문적 정체성 문제를 따지는 데서부터 출
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교육인류학의 학문적 정체성 문제를 차근차근
히 분석하려면 우선 인류학자 미드의 교육에 관한 연구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
다.


3. 미드의 교육연구

미드(Mead, Margaret, 1901-78)는 인류학자로서 교육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최초의
인물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교육인류학’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학
문활동의 시초를 미드에게?
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미드의 교육연
구가 교육학이 아닌 인류학의 전통과 시각에 입각하여 이루어졌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교육인류학을 교육학의 한 분과학문으로 생각하는 사람으로서는 그와 같은 평
가에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사실상 교육인류학은 지금까지 교육학과 인류학 사이에서 애매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물론 교육인류학이 교육학이든 인류학이든 그 구분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교육인류학이 어차피 인류학과 교육학의 양면성을 가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
게는 이 문제가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4) 그러나 교육?
???개념이 어떻
게 규정되어 왔고 문화연구가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보아스와 미드를 비롯한 초기 인류학자들은 교육을 일종의 ‘문화적 과정’으로(e-
ducation as cultural process) 보았으며, 이 관점은 교육인류학의 학문적 체계를 
수립한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스핀들러(Spindler, G.)와 킴볼(Kimball, S.)을 거쳐
최근의 거의 모든 교육인류학자들 사이에서도 별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관
점이다. 그 사정은 국내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교육을 문화적 과정으?
 것은 교육이 문화를 전승하는 수단 또는 통로가 
된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이 관점에 입각한 교육인류학의 과제는 문화전계(文?
閤貯? enculturation), 문화접변(文化接變, acculturation), 문화개조(文化改造, 
reculturation)의 세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5)
문화전계는 교육을 통해 한 사회의 문화가 다음 세대에 전수, 계승되는 현상을 말
한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의 ‘전승’은 사회의 입장에서 본 것이며, 개인의 입장
에서 뒤집어 놓고 보면 문화의 ‘학습’이 된다. 이 양자는 궁극적으로 사회와 개
인의 생존에 관련된 것으로서
英맛?교육이 보편적으로 안고 있는 과제이다.
한편 문화접변은 어떤 문화도 하나의 고정불변한 형태로 유지되지 않으며, 끊임없
이 다른 문화와 영향을 주고 받는 역동적 관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주목한다. 교
육은 거시적 관점에서 볼 때 부단한 변화의 요구 또는 환경압력에 대응하는 사회적
선택인 동시에, 미시적 관점에서 보면 개개인이 새로운 지식, 기술, 가치를 접하여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활동으로서, 교육 그 자체가 일종의 문화접변이라 할 수 있다
.
마지막으로, 문화개조는 앞의 두 측면이 교육과 문화의 관련성을 ‘해석’?
중점을 둔 것과 달리 교육을 통해 기존 문화질서를 ‘재구성’하는 데 관심을 두며
, 문화전승이 교육의 보수적 측면을 말하는 반면에 문화개조는 교육의 혁신적 측면
을 강조한다. 그리고 문화접변이 무의도적, 무계획적인 변화를 주목할 때 문화개조
는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운동을 주목한다.
미드의 경우, 교육의 이 세 가지 측면에 대한 관심의 변화가 흥미롭게도 연구현장
이 바뀌고 교육론의 초점이 바뀌는 과정과 일치하고 있다. 비교적 변화의 속도가 
느리고 자족적(自足的)인 소규모 부족 사회를 많이 연구한 초기에 미드는 주로 교

화전계 기능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다가 2차세계대전을 전후하여 많은 부족
사회가 외세와 갑작스럽게 접촉하는 가운데 문화적 충격을 경험하게 되자 미드는 
그러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과정과 의미를 규명하는 데, 즉 문화접변을 연
구하는 데 더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부족 사회가 산업 사회로 이행하는 과
정에서 교육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주목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후기로 갈수록 미
드는 그러한 변화를 두고 보기보다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운
동적 관심, 즉 교육을 통한 문화개조의 가능성 모색에
構?된다.
미드의 학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스승 보아스였다. 19세기 후반부터 20
세기 초반 사이에 서구 학계에서는 ‘생득(生得, nature) 대 습득(習得, nurture)?
?논쟁이 있었는데, 미드가 인류학 공부를 시작했던 당시의 분위기는 전자의 입장,
즉 유전에 의해 인간의 품성이 좌우된다고 믿는 생물학적 결정론이 지배하고 있었
다. 그러나 미드의 스승 보아스는 그러한 주장에 맞서서 인간의 행동은 후천적 양
육방식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는 문화결정론을 내세우고 있었다. 보아스는 미드에게
그러한 문화결정론을 주입시켰을
틈灸? 인류학적 현지연구를 통해서 문화결
정론의 타당성을 입증해 주기를 기대하였다. 그 점에서 미드가 자신의 첫 현지연구
를 정리하여 저술한 Coming of Age in Samoa는 스승의 기대를 충족시킨 예견된 결
과라고도 할 수 있다.6) 그러나 보아스가 진화가 아닌 문화의 결정력을 다소 막연
하게 강조한 데 비해서, 미드는 생득이 아닌 습득의 과정을 ‘교육’이라는 개념으
로 규정하여 사회와 개인, 문화와 인성의 관계를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설명하
였다.7)
‘생득 대 습득’의 논쟁에서 미드가 가졌던 교육관은 문화전계의 시각에 입각
潔駭? 문화전계는 개념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개인보다는 사회를 중시한다. 
문화전승을 개인의 시각에서 바꾸어 놓고 보면 학습을 통하여 한 문화에 입문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미드는 교육을 사회의 가르침을 개인이 배움으로써 성원성(?
把о? membership)을 획득하고 사회로서는 전통을 유지하는 과정으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교육론을 우리는 ‘사회화 모형’이라 부를 수 있다.
미드의 인류학적 교육론, 특히 초기의 교육론은 다분히 이 사회화 모형에 입각하
고 있었다. 사회화는 주체(agent)인 사회가 객체(client)인 구성원을 변
는 
현상이다. 여기서 주체와 객체는 목적-수단의 관계를 이루므로 ‘사회화되는 자’
의 자율과 권리가 경시될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금기, 감독, 교화, 단순화, 신비
화 등의 형태로 새로운 구성원의 지적 호기심을 변질시키거나 약화시킴으로써 학습
의 주체성과 창의성을 떨어뜨리는 현상은 사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사회화는 도달해야 할 인간의 상이 분명하고 그 상이 고정적으로 재생산
되는 ‘닫힌 사회’의 교육을 설명하는 데에는 유용할지 몰라도 형성해야 할 인간
의 상이 유동적이고 끊임없이 새로운 상?
?창출되는 ‘열린 사회’의 교육
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사회화 모형은 문화를 고정적인 실체, 즉 교육을 통해 고스란히 전승, 학습, 공유
되는 실체로 보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후기에 가서 미드는 이 오류 가능성에서 벗
어나 문화의 역동적 측면을 강조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드를 비롯한 초
기 인류학자들의 교육연구에서는 문화가 교육에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환경변수로 
다루어지거나 교육을 통해 인성이 형성되고 그 인성의 집단적 체제가 다시 문화로
구성된다고 보는 일종의 자기복제적(自己複製的) 순환논
서 개념화되고 있다
. 그 맥락에서 인류학자들은 교육과 문화가 상대적 자율성을 가지면서 서로를 자극
하고 보완하는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했다. 간혹 문화전계의 개념을 교
육보다 더 폭넓게 규정하는 입장도 있기는 하지만,8) 인류학자들의 연구에서 일반
적으로 확인되는 문화전계의 개념은 사회화와 매우 유사하다. 이 점은 교육학의 배
경을 가진 교육인류학자들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교육은 개인을 사회적 존재로 형성하여 사회적 생존을 가능하게 만드는 일종의 사
회화 과정이다. 그러나 사회화가 본질적으로 사회의 문
비해서 교육은 개인
의 문제이다. 만약 교육이 사회를 유지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하면, 그 힘의 원
천은 바로 개인(들)의 주체적이고 구체적인 각성과 실천에 있다. 교육은 사회적 조
건의 산물이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적 조건을 창출하기도 한다. 사회화와 달리 교육
에 있어서는 학습(자)의 자발성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
는 있어도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다.”는 서양 속담이 시사하는 바가 바로 그것
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사회화 모형에 입각한 문화전계 논리로 교육을 이해할 때 파생되
는 문제점을 ?
펴보았다. 그러한 문제점은 미드의 후기 연구가 취한 입장, 
즉 교육을 문화접변과 문화개조의 시각에서 살펴봄으로써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
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문화접변은 문화의 역동성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데 유용
하며, 문화개조는 교육의 혁신적 기능을 설명하는 데 유용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전계, 문화접변, 문화개조의 세 개념이 모두 교육의 문화
적 기능을 강조하는, 즉 교육을 ‘문화적 과정’(cultural process)으로 보는 인식
의 일방성을 드러내는 한계를 갖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뒤에서
撰셜?논
의하기로 하고, 우선 지금까지 교육인류학에서 문화를 어떻게 개념화하고 연구해 
왔는지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4. 교육인류학의 두 전통과 문화

1) 교육적 인류학(educational anthropology)

교육학은 교육현상 또는 교육사실(educational facts)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
문이다. 그러나 초기의 교육학은 학문지향적이기보다는 실천지향적인 성격이 더 강
하였다. 사범대학의 교사 양성과정에서 예비교사들이 장차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급
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여러 지식을 철학, 심리학, 사회학, 행?
학문에
서 추출하여 교육의 맥락에 맞게 응용하여 가르친 ‘교직과목’의 집합체가 초기의
교육학이었다. 다소 뒤늦게 그 대열에 합류하긴 하였지만, 교육인류학은 교육철학,
교육심리학, 교육사회학, 교육행정학과 마찬가지로 교직과목의 하나로 출발하였다.
이러한 출발의 특수성은 교육학과 교육인류학의 학문적 정체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
쳤다. 어떤 학문이 하나의 독립적인 학문으로서 지위를 갖기 위해서는 고유한 문제
, 이론, 방법론의 체계와 그 발전의 전통을 가지고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육학
은 ‘교육쫛쫛학’들의 병렬적 ?
는 느슨한 상태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 주된 원인은 ‘교육쫛쫛학’들이 힘을 합쳐 교육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적 질서를
수립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이미 구축된 ‘모(母)학문’의 권위와 지위에 스스로를
종속시키거나 그 속에서 안주한 데 있다. 예컨대, 교육현상이 심리현상과 구별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교육심리학은 마땅히 그 양자간의 상호 관계와 상호 작용을 탐구
해야 할 것이고 그와 같은 상호 보완적 탐구를 위해서는 보완하는 두 요소(학문)의
이질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심리학이 ‘심리학의 교육적 ?
이라는 종속적 지위를 자임할 경우에는 유익한 상호 보완적 탐구가 불가능해진
다. 똑같은 맥락에서 교육인류학의 일방적 정체성 문제가 파생되었다.
교육인류학의 ‘모학문’인 인류학은 교육연구나 실천에 유용한 관점, 자료, 지식
, 방법을 제공할 수 있는 방대한 자원을 가진 학문이다. 따라서 교육학과 인류학이
교육인류학이라는 접점에서 만나는 현상은 그 양자에게뿐만 아니라 사회과학 전체
의 발전에도 대단히 유익한 것임에 틀림없다. 특히 미국과 같은 다인종 다문화 복
수 사회의 교육을 이해하고 나아가서 문화적 다양성을 고려한
?교육을 실천
하는 데 교육인류학의 공헌은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이었다. 예컨대 북미 인디언들
의 독특한 문화에 관한 연구는 인디언 어린이들의 학업성취가 백인 어린이들에 비
해 크게 뒤떨어지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고 보다 나은 인디언 교육을 위해서 교육의
내용과 방법상 무엇을 고려해야 할 것인가를 제시해 주었다. 말하자면 도시, 인구,
빈곤, 환경 등 여러 사회문제의 인식과 해결에 인류학적 지식이 유용하였듯이 교육
문제의 인식과 해결에도 인류학적 지식은 유용하였다.
이와 같이 교직과목 또는 응용인류학으로서 행해진 실천
교육인류학을 흔히
‘교육적 인류학’(educational anthropology)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인류학적 개
념과 지식을 활용하여 교육현상을 설명하고 교육문제의 해결을 모색하는 접근이다.
교육적 인류학의 대표적인 연구로는 로젠스틸(Rosenstiel, 1954), 허스코비츠(Hers-
kovits, 1956), 에간(Eggan, 1957), 타바(Taba, 1957), 브라멜드(Brameld, 1957, 
1967), 헨리(Henry, 1960, 1972), 넬러(Kneller, 1965), 라벨(La Belle, 1972)의 
연구를 들 수 있다.
‘교육적 인류학’의 두 가지 특징은 인류학보다는 교육학에, 학문적 연구보다는 

嚥?더 큰 관심을 가졌다는 데 있다. 물론 이러한 성격의 교육인류학이
지식의 응용적 소비에 치중하여 새로운 지식의 생산에 전혀 기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교육현상을 설명하는 데 문화개념을 도입하고 교육연구에 인류학 이론을 
접목시킴으로써 교육학과 인류학 사이의 학제적(學際的) 접근의 가능성을 연 것은
중요한 공헌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적 인류학’은 학교나 다른
교육현장의 문화를 방법적(과학적) 치밀성을 가지고 연구하는 단계에까지 나아가지
는 못하였다.

2) 교육의 인류학(anthropology of ed


‘교육적 인류학’과는 별도로 교육현상을 인류학의 시각과 방법으로 연구하는 보
다 학문지향적인 전통의 교육인류학이 있다. ‘교육의 인류학’(anthropology of 
education)이라고 불리우는 이 접근에서는 학교나 지역 사회 또는 다른 교육현장
이 더 이상 실천이나 응용의 장이 아니라 연구의 장, 즉 인류학적 ‘현지연구’(fi-
eldwork)의 대상이 된다. 이것은 마치 종교인류학이 종교세계를, 경제인류학이 경
제현상을, 관광인류학이 관광생활을 그 연구대상으로 삼는 것과 같다. 또한 이 접
근은 교육현장에 뿌리를 둔 인류학적 ‘현
(grounded theory)의 산출에 관
심을 가진다. 이 점에서 ‘교육의 인류학’은 명칭 그대로 인류학의 한 분과학문이
라는 성격을 가진다. 요컨대, ‘교육적 인류학’이 주로 교육학의 맥락에서 이루어
진 반면에, ‘교육의 인류학’은 인류학의 맥락에서 이루어져 왔다.
그 둘을 시대적 기준에 따라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1960년대까지의 미국 
교육인류학에서는 ‘교육적 인류학’이 지배적이었던 반면에, 그 이후의 교육인류
학에서는 ‘교육의 인류학’이 주류를 형성하게 된다. 이 분기점을 형성하는 데 가
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은 ?
 부부(Spindler, George & Louise)이다. 그들은 
1960년대 중반부터 교육에 관련된 인류학적 현지연구를 모아 Case Studies in Edu-
cation and Culture라는 시리즈로 펴냄으로써 ‘교육의 인류학’을 형성하는 데 중
대한 공헌을 하였다.
우리 나라에서도 1970년대 초반에 미국으로부터 교육인류학이 유입된 이래 처음 
10여 년 동안에는 인류학적 지식과 연구방법을 소개하고 그것을 교육현장에 응용
하는 ‘교육적 인류학’이 주된 흐름이었으나,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제 2 세대
교육인류학도’들이 문화기술적 연구법을 활용하여 본격?
痴熾П만?시작하
면서 ‘교육의 인류학’ 흐름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9)
지금까지 이루어진 국내 교육인류학 연구의 경향을 보다 자세히 분석해 보면 다음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로, 학교를 대상으로 한 현지연구가 가장 많
다는 점이다. 1983년부터 1994년 사이에 행해진 42편의 문화기술적 교육연구 중에
서 학교연구가 31편을 차지하고 있으며, 학교 밖의 교육현상을 연구한 것은 11편에
불과하다. 학교문화의 연구는 그 초점을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서 학교 구성원의 문
화에 관한 연구, 학교교육의 과정에 관한 연구, 학교
제도적 조건에 관한 연
구, 학교관에 대한 연구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학교 구성원의 문화에 관한 연구는 
교사문화, 학생문화, 학부모문화에 관한 연구를 포괄한다. 이 세 가지 하위문화는
개별적으로 연구되기도 하고, 둘 또는 세 집단간의 상호 작용의 형태로 연구되기도
한다. 학교교육의 과정에 관한 연구는 수업, 평가, 생활지도와 같이 학교에서 이루
어지는 교육적 상호 작용의 과정에 초점을 둔 연구를 말한다. 그와 달리, 학교교육
의 제도적 조건에 관한 연구는 학교 특유의 조직, 운영, 정책, 관습과 같은 측면을
주로 다룬다. 끝?
교관에 대한 연구는 한 사회가 학교를 규정하는 방식, 즉 
학교의 개념, 의미, 기능에 관한 사회적 합의와 갈등을 다룬다. 이렇게 나누어 볼
때, 지금까지 국내에서 이루어진 학교문화의 연구는 학교 구성원의 문화에 관한 연
구와 학교교육의 과정에 관한 연구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으며, 학교교육의 제도적 
조건에 관한 연구나 학교관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10) 학교 
구성원 중에서는 학생이 가장 많이 연구된 집단이며, 그 다음으로는 교사문화에 
대한 연구가 많다.
둘째로, 연구현장에 1년 이상 장기적으로 체류하면
적인 참여관찰을 수행한
연구보다는 6개월 안팎의 단기간에 현장을 출입하면서 연구자의 계획에 따라 전략
적으로 자료를 수집한 연구가 더 많다. 리스트(Rist, 1980)는 일찍이 이와 같은 연
구를 히틀러 병사들이 전략적 요충지를 정복하기 위해 기습적 공격을 감행한 것에 
비유하여 “기습적 문화기술지”(blitzkrieg ethnography)라고 칭한 바 있다. 하
임스(Hymes, 1978)는 문화기술을 그 폭과 깊이에 따라 포괄적 문화기술(comprehens-
ive ethnography), 주제중심의 문화기술(topic-oriented ethnography), 가설지향적
문화기술(hypothe
ented ethnography)의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있다.11) 
교육학의 문화연구는 이 셋 중에서 주제중심의 문화기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한 사회의 생활세계 속에서 어떤 주제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의미를 총
체적 시각으로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연구자가 특정 주제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현장에 들어가 필요한 자료만을 수집할 때에는 결국 나의 안경을 쓰고 그들의 세
상을 바라보는 과오를 범하기 쉽다. 현재 우리 나라 학계의 연구환경을 전반적으로
고려할 때 기습적 문화기술이 불가피한 면도 없지는 않다. 가시적인 산
 당장
제시되지 않는 현지연구를 위해서 많은 경비와 장기간의 출장을 허용하는 풍토가 
연구소나 대학의 관리자들 사이에 수립되어 있지도 않고, 돈 없는 대학원생들의 
논문연구가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참여관찰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것
도 무리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문화기술적 연구의 정신 또는 연구논리(research logic)를 충실히 따르기
보다는 단순히 참여관찰의 연구기법(research technique)만을 차용한 연구가 적지 
않다는 점을 들 수 있다.12) 연구논리는 한 연구의 이면에 전제되어 있으면서 그 
연구를 지배하는
隙?인식론을 말한다. 세상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기 때
문에 어떤 시각을 가지고 어떤 방법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보는 인식론이 다르면 연
구의 방향과 과정이 전혀 달라진다. 반면에 연구기법은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테크닉, 즉 방법론의 보다 도구적인 측면을 지칭한다. 계량적 연구와 질적 연구는
절차나 기법의 측면에서 어느 정도 상대방의 요소를 공유하고 있으며 상호 의존적
인 측면도 있다. 계량적 연구가 질적 연구의 기법을 활용할 수도 있고 질적 연구가
계량적 연구의 기법을 활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것이든 상대방?
구논리?
??공유할 수는 없다. 그 까닭은 양자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인식론적 차이가 있
기 때문이다. 요컨대 문화기술적 연구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기법보다는 
그 연구논리를 
충실히 따라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교육인류학의 문화연구에서는 그 점이 
다소 미진하였다는 것이다. 사실상 이 문제는 교육인류학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응용인류학 분야에서도 종종 발견되는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교육학도들에 의해서 행해진 문화연구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경우
에 그 성격이 교육학적이기보다는 인류학적이다. 교육
だ?독립적인 학문으
로서 정체성을 갖고 있다면, 교육학자의 문화연구는 인류학자의 문화연구와 분명히
다를 것이고 마땅히 달라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그 차이는 무엇인가? 바로 여기서
교육학자들이 직면하는 한 가지 중대한 난점은 교육학의 독특한 시각과 방법이 무
엇인지가 대단히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최근 교육학계 일각에서는 교육학의 학문적
정체성이 확립되어 있지 않음을 스스로 반성하고 교육학 고유의 이론과 방법론을 
찾아 체계화하려는 노력이 일고 있다(윤병희, 1993; 장상호, 1986, 1991, 1994 참
조). 그러나, 그 결실
은 불충분하여 위 질문에 답하는 데 유용한 자료를 제
공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일단 문제를 제기하고 그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교육학의 정체성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교육인류
학이 교육학 아닌 인류학의 전통에 더 의존해 온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현상이
라고도 할 수 있다.

3) 교육인류학의 두 전통에 대한 반성

교육인류학의 발상지인 미국에서는 그 학문적 성격의 변천에 따라 교육인류학의 
명칭이 ‘Anthropology and Education’, ‘Educational Anthropology’, ‘Anthr-
opology
on’ 등으로 달리 명명되어 왔으나, 우리 나라에서는 그 용어들
을 한결같이 ‘교육인류학’으로 번역해 왔다. 물론 그 세 용어를 제각기 ‘인류학
과 교육’, ‘교육적 인류학’, ‘교육의 인류학’으로 구분하여 번역하기도 하지
만, 그 모두가 교육인류학의 학문명칭으로 사용된 적은 없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
할 사실 중의 하나는 영문 명칭과 국문 명칭에서 공히 발견되듯이 교육인류학의 명
칭 속에 단 한 번도 ‘교육학’이 포함된 적이 없는 반면에 ‘인류학’은 한결같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영어 ‘education’을 ‘교육학
 번역하면 얘
기가 달라지긴 하지만, 하나의 학문에 두 개의 서로 다른 학문명칭이 병열되는 셈
이므로 그것도 이상하다. 그리고 단어구조상 ‘교육인류학’이라는 명칭에서 ‘교
육’은 ‘인류학’을 수식하거나 연구영역을 지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것은
지금까지 교육인류학의 학문사를 훑어볼 때 실제와도 부합되어 왔던 셈이다. 이 점
은 교육사회학, 교육철학, 교육심리학, 교육공학, 교육행정학 등에서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요컨대 지금까지 살펴본 ‘교육적 인류학’과 ‘교육의 인류학’은 공통적으로 인
류학의 한 분야?
학의 한 분야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즉, 지금까지 교육
인류학의 성격은 일반적으로 “인류학적 지식이나 연구방법을 교육에 원용하고, 교
육현상을 인류학적으로 탐구하려는 일련의 학문적 노력”(김영찬, 1984: 3)으로 규
정되어 왔다. 이것은 곧 교육인류학이 교육학과에서 주로 가르쳐지고 연구되어 왔
음에도 불구하고 교육학이 아닌 인류학의 한 하위분야로 다루어져 온 현실과 부합
한다.
최근까지 교육인류학자들은 이 점을 몰랐거나 알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왔
다. 아니면, 다학문적 접근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교육학과 인
공통관심사
를 연구하는 분야가 교육인류학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여기에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다학문적 접근은 시각과 방법이 서로 다른 다
수의 학문이 ‘상호 보완적인 접근’을 하는 것이다. 상호 보완성은 보완하는 두 
대상의 이질성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교육학의 학문적 정체성이 불확
실하다 보니까, 교육학이 다른 학문(여기서는 인류학)과 다학문적 접근을 하는 것
이 아니라 흔히 ‘모학문’으로 간주되기도 하는 그 상대 학문에 종속되는 현상이 
일반적인 추세였다.
아마도 이와
육인류학의 학문적 성격에 대한 논의는 인류학자들에게는 큰 
관심사가 아닐지 모른다. 왜냐 하면 그것은 일차적으로 인류학의 문제가 아닌 교
육학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연구의 다학문적 접근을 활성화한다는 취지
에서 볼 때, 교육인류학의 학문적 정체성을 교육학 편에서 검토하는 일은 충분히 
의의가 있고 필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5. 새로운 문화연구의 시도: 문화의 교육학

앞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인류학의 전통을 이어받은 교육인류학자들은 교육을 ‘
문화적 과정’으로 파악해 왔다. 교육을 문화적 과정으로 파
痼?교육 그
자체의 논리와 역동보다는 교육의 사회문화적 기능, 즉 교육이 문화의 전승, 접변,
개조에 어떻게 관여하는지를 더 주목했다는 것이다.13) 따라서 교육이 다른 무엇(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의해서 규정될 뿐만 아니라, 교육을 기준으로 다른 
무엇을 규정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였다. 바꾸어 말하면, 교육이 일종의 ‘
총체적 제도’로서 다른 인간 활동들에 두루 작용하고 그 활동들을 통합하는 측면
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였다.14) 교육에 대한 이와 같은 편향된 이해는 인류학적 
교육론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
며, 인류학의 전통에 뿌리를 둔 교육인류학
자들은 지금까지 별다른 의심 없이 그러한 이해 방식을 답습해 왔다.
교육은 사회, 문화, 정치, 경제, 철학, 심리, 예술, 공학 등의 측면을 두루 가진 
총체적 현상이다. 그러나 이 모든 측면들을 다 모은 것이 교육은 아니다. 교육의 
총체성은 이 모든 인간활동과 관련을 맺는 교육 나름의 독특한 방식에 의해서 드
러난다. 물론 총체성은 교육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에도 경제에도 사회에도 
문화에도 있다. 예술이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철학적 측면들을 두루 
가지는 동시에 다
으로 환원할 수 없는 예술의 본질을 갖고 있듯이, 교육도
다른 모든 인간활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지만 그것들로 환원할 수 없는 교육의
본질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적 인류학’이든 ‘교육의 인류학’
이든 지금까지의 교육인류학은 교육을 ‘교육적 현상’이 아닌 ‘문화적 현상’으
로 환원하여 본 경향이 있었다.
이 논의를 체계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다음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
다. 그 하나는 교육과 문화의 개념적 관계를 분명히 하는 문제이며, 다른 하나는 
다른 무엇으로 환원할 수 없는 교육의
과연 무엇인가의 문제이며, 나머지 
하나는 교육이 그 총체성을 확보하는 독특한 방식이 무엇인가의 문제이다.
먼저 교육과 문화의 개념적 관계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문화를 최대한 폭넓
게 정의하여 ‘한 집단의 생활방식’(ways of living shared among a group of peo-
ple)이라 할 때, 생활의 한 영역으로서 교육은 문화의 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1
5) 그러나 여기서 유의해야 할 한 가지 사실은 교육이 생활의 한 영역일지언정, 문
화의 한 영역이라고 보아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왜냐 하면 그렇게 볼 때 생활과 
문화가 개념?
?안 되며, 문화를 연구하는 인류학의 정체성도 흔들리게 되
기 때문이다. 문화는 생활 그 자체가 아닌 생활의 독특한 ‘방식’이다. 한국 문화
는 한국인의 삶 그 자체가 아니라 한국적 삶의 방식을 지칭한다. 문화를 학술과 예
술에 중심을 둔 생활의 한 ‘영역’으로 규정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 
경우에는 교육 역시 생활의 한 영역으로 간주되며, 따라서 교육과 문화는 등가의 
개념으로 분석될 수 있다.
문화의 개념을 둘러싼 더 깊은 논의는 이 글의 관심이 아니므로 일단 그치기로 한
다.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지적하고 넘
할 두 가지 사항이 있다. 그 하나는 
교육을 문화의 한 부분으로 포함시켜 논의해서는 곤란하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교육과 문화 모두를 생활의 ‘영역’으로 보기보다는 생활의 ‘방식’으로 규정하
는 것이 학술적 논의에 보다 적합하다는 점이다. 문화를 자연에서 인간적 삶이 창
출되는 방식이라고 한다면, 교육은 동물적 인간을 인간적 인간으로 형성하는 방식
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과 문화는 세상을 ‘읽고’ ‘쓰는’ 서로 다른 방식이며,
그 두 그물이 포착하는 현상이 다르고 관심을 가지는 문제가 다르다.
그 다음으로 해결해?
 가지 문제, 즉 교육의 본질과 교육의 총체성 확보 방
식에 대해서는 현재로서 확고한 논의가 불가능하다. 그 까닭은, 앞에서도 언급하였
듯이, 교육학의 학문적 정체성에 대한 검토가 아직 충실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
만 아니라, 이 두 문제는 사실상 교육학이 지속적으로 안고 씨름해야 할 문제이기
도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이 문제들을 다루는 시각의 조정에 대해서만 간략히 
언급하기로 한다.
교육학은 관찰, 분석, 해석의 중심에 교육을 놓고서 그것의 구심(求心)운동과 원
심(遠心)운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구?
 교육을 중심으로 다
른 인간활동들이 독특하게 통합되는 현상이며, 원심운동은 교육의 힘이 외곽으로 
확산되면서 다른 여러 인간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다. 교육의 구심적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과 관련되지 않은 ‘교육 그 자체’가 무엇인지를 찾
아야 한다. 반면에 교육의 원심적 속성을 파악하는 일은 교육과 다른 활동의 구조
적, 기능적, 역사적 관계를 밝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교육학은 전자
보다 후자에 너무 치중함으로써 학문적 균형을 상실한 문제점이 있다. 그리고 교육
학은 더 이상 교육을 정
정, 경제적 과정, 사회적 과정, 문화적 과정 등으로
환원하여 볼 것이 아니라 ‘교육적 과정’ 그 자체로 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교
육을 교육적 과정으로 본다는 말은 일종의 동의어반복(tautology)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많은 교육학자들이 교육을 연구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정치나 
경제나 사회나 문화를 연구해 왔기 때문에 그 진술 자체를 진지하게 검토해 볼 필
요가 있다. 그러나 이 글의 주된 관심이 교육학에서의 문화연구 또는 교육학적 문
화론에 있으므로 교육학의 성격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다른 장(場)에 미루
한다.
인류학이 인간의 삶을 문화적 과정으로 이해하는 학문이라고 하면, 교육학은 인간
의 삶을 교육적 과정으로 이해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문화를 자연에
서 인간적 삶이 창출되는 방식이라고 할 때, 그 방식에 대한 교육학적 검토는 ‘문
화를 교육적 과정으로’(culture as educational process) 이해하는 일을 포함한다
. 그렇다면 문화를 교육적 과정으로 이해한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교육은 가르침과 배움을 통한 인간 형성의 과정이다. 다양한 집단의 인간이 환경
에 적응하면서 독특한 생활방식을 형성하고 공
일, 즉 문화적 행위 또는 활
동 속에는 교육적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그 속에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심미적, 종교적 과정도 포함되어 있다. 문화 속에 포함되어 있는 교육적 과정은, 
한 마디로 말해서, 한 집단의 구성원들이 서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의 능력과 
품위를 향상시켜 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일차적으로 개개인의 인간적 품격 향
상을 지향하지만, 사회 전체의 혁신에도 기여한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인류학적 
교육론이 의지해 온 문화전계 모형 혹은 사회화 모형은 교육에 대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소지가 다
다.
인간은 교육적 동물이다. 인간은 이쏘그램(ethogram), 즉 종적 본질상 다른 어떤 
생명체보다도 미숙한 존재로 태어나기 때문에,16) 서로 가르치고 배워야 비로소 
생존할 수 있다. 더욱이 흔히 말하는 ‘인간적인 삶’ 또는 실존적 삶을 영위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교육의 가치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인간은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하고 아는 것을 가르치고 싶어한다. 인간은 깨달음을 통해 자신을 향상
시키고자 하며 타인의 향상을 돕고자 한다. 자연으로부터 인간적인 삶을 창출해 내
는 방식으로서 문화 속에는 교육적 과정이
 있다.
인류학자의 눈에는 교육이 문화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보이지만, 교육학자의 눈에
는 문화가 교육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보인다.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통하여 인간은
교육적 가치를 실현한다. 이 사회의 음악을 듣고 저 사회의 음식을 맛보면서, 노동
을 하고 여행을 하면서,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그 깨달음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행
위가 곧 교육이다. 문화 속에 붙박혀 있는 교육적 과정에 대한 연구가 ‘문화의 교
육학’이다. 지금까지 교육학의 문화연구에서 이와 같은 ‘문화의 교육학’은 체계
적으로 시도된 적이 없다. 새로운
?때문에 당장은 막연해 보이지만, 교육
인류학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서 앞으로 활발하게 연구되어야 할 분야임에 틀림없다
.


6. 교육인류학의 양면적 과제

교육인류학은 인류학의 한 분과학문인 동시에 교육학의 한 분과학문이다. 따라서 
교육인류학은 양면적 과제를 안고 있다. 교육인류학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교
육을 문화적 과정으로 보는 인류학적 교육연구를 계속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지금
까지 제대로 행하지 않았던 새로운 과제인 ‘문화의 교육학’, 즉 문화를 교육적 
과정으로 보는 교육학적 문화연구에도 관심을 ?
 후자가 빈약하다는 점
을 감안하면, 적어도 당분간은 오히려 후자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균형을 취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논하였듯이, 교육학의 학문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은 교육인류학의 발전
을 위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교육학의 독특한 시각이 무엇인가 자문
(自問)하였듯이 인류학 특유의 시각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
는 인류학자가 과연 얼마나 있을지 궁금하다. 인류학의 정체성에 대한 이러한 우려
는 문화에 대한 다학문적 접근이 활발해지면 질수록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물론
【??문화연구가 이러한 정체성문제를 떠나서도 얼마든지 다양하게 
이루어질 수 있겠지만, 교육학과 인류학이 각각의 독특한 시각과 방법을 가지고 
교육인류학이라는 접점에서 상호 보완적으로 풍성하게 만날 수 있기 위해서는 반
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다양한 시각과 방법을 가진 여러 학
문이 ‘문화연구의 다학문적 접근’이라는 하나의 관심 공동체 속에서 활발하게 교
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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