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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내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앤소니 길버트]

by Casey,Riley 2023.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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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내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 앤소니 길버트                  
      

 
"간호사! 어디 있나, 간호사!"

파렌 부인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불렀다.

"곧 갑니다."

엔스트루더 간호사는 큰 소리로 대답하고, 잠시 후에는 '병실'로 기
세좋게 달려갔다.  
이 파출 간호사는 작은 몸집에  생기가 넘치는 깔끔한 여자인데도, 
파렌  부인은 쇠막대기처럼 뻣뻣한  여자라고 투덜대고 있었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세요?"

"베개를 고쳐줘." 파렌 부인은 신음하듯 말했다. 

"그리고 열이 있는 것 같아."

엔스트루더 간호사는 베개를 바로잡고 환자의 체온을 쟀다. 
예상대로 체온은 정상이었다. 
그녀는 차를 한 잔  마시로 아래층으로 내려간 참이었다고 부인에
게 말했다.

"차는 나한테는 독이야."   파렌 부인은 신음소리를 냈다.

"약 먹을 시간이 안됐나?"

"약은 세 시에 드시면 돼요."

"계속 누워만 있으면 좀처럼 시간이 가질  않아. 
조이는 아직 안들어왔나?"

"따님은 점심을 먹으로 나갔어요, 잊으셨어요,마님?"

"이렇게 늦게 돌아온다고는  말하지 않았어.  내가 저를  얼머나 걱
정하고 있는지 알면서... 요즘 젊은 애들은  그저 자기밖에 모른다니
까."

"2시 45분은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가 돌아오기에는 이른 시간이에
요. 그리고 조이는 어린애가 아니에요. 벌써 서른살인걸요."   
 
"아무리 그래도 나한테는 언제나 어린애야.  점심식사는  집에도 잔
뜩있으니까 밖으로 먹으러  나갈  필요도 없었고...나는 새처럼   식
욕이 왕성하니까."
 
'새도 새  나름이지.당신은  닥치는대로 모조리  분탕질하고 다니는 
독수리야'  하고 간호사는 생각했지만,  입으로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에요.  마님도 아시다시피,  조이는 워터 하우
스대위님과 점심을 같이하고 있으니까요."
  
"그건 몰랐는걸."  파렌 부인은 나른함을 잊어버렸다. 

"그애가 자네에게 그렇게 말하던가?" 

엔스트루더 간호사는 웃었다.

"요즘 대위님  말고 누가  조이와 점심을  함께 먹겠어요? 두 사람
은 마지막 계획을 세우고 있을 거예요."
   
"계획이라니, 무슨계획?"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건 장님도 알 정도인걸요.    대
위님은 이 댁 현관 앞에 살고 있는 거나 마친가지예요."
  
"자네는 머리가 어떻게   된 모양이군, 고맙게도 워터하우스   대위
는 내달에는  식인종과 호텐토트족이  득실거리는 임지로 돌아가게   
되어 있어. 그렇게 되면...뭐가 그렇게 우스워?"

"안 그래요. 케냐에는  식인종도 호텐토트족도 없다구요, 제 여동생
이 케냐에 가 있는데..."
 
"조이는 절데로 케냐 같은 데 가지  않아. 내가 허락하지 않을 테니
까"
 
"그래도 가버릴 거예요.  마님도 조이를 노처녀로  늙게  하고 싶진 
않으시겠죠? 지금까지만 해도  마님은  조이를 넘 오랫  동안 마님 
곁에 붙잡아  두셨어요, 자, 약  드실 시간이에요, 제가  따라드릴까
요?"

"내 약은 내가 직접 따른 다는 걸  자네도 알면서 그래. 난 그게 더 
좋아. 인생 경험을 쌓은  덕에 나는 조심성이 많아졌지.  요즘 사람
들은 너무 부주의해서  믿을 수가  있어야지.  약병을 뒤죽박죽으로 
섰어놓았다가  엉뚱한 약을 주면 곤란해."
  
"그럴 염려는 별로 없어요."

간호사가 말했다. 
그녀는 한번도 파렌 부인에게 화를 낸 적이 없었다.
화를 내고 있다가는 다른 일을 할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저는 25년 동안 간호사 생활을 했지만 환자분한테 독약을 먹인 적
은 아직 한번도 없는걸요."
    
파렌 부인은 손을뻗어,  바로 옆 탁자 위에서  길쭉하고 둥근  병을 
집어들었다. 그것이 '내 약'이고, 6시간마다 머도록  되어 있었다. 
파렌 부인은 모양이 전혀 다른 약병을 또 하나  갖고  있었는데, 거
기에는 수면제가  들어 있었다.  강장제와 수면제는 겉보기에  아주 
비슷했기 때문에, 주치의인  샘프슨 박사는 약을   혼동하지 않도록 
모양이 다른   병에 따로  담아주었고, 게다가 각각의 약봉에  눈에 
잘 띄는 딱지까지 붙여 주었다. 
간호사는 파렌 부인이 주의깊게  1회 복용량을 따른   다음 약병의 
코르크 마개를 닫는 것을 지켜보았다. 
   
"자, 이젠 내 커피를 끓여줘." 부인이 말했다. 

"그리고  조이 말인데, 자네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될 거야. 그애
는 나이에 비해서 아주 젊지만, 그런..그런  모험가한테 걸려들 만큼 
젊지는 않아."

조이 파렌은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키가 큰 금발 아가씨였고, 그 
얼굴은 행복감으로 환히 빛나고 있었다. 10년 전에는 상당한 미인
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하고 있는 지금, 그녀의 얼굴에는 젊음이 되살아나 있었다.

"늦었구나.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니?  늦으면 늦는다고 전화라
도 할 것이지...."

"아직 세 시밖에  안됐는걸요. 우린 의논할 게 너무  많아서 시간이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렸지 뭐예요."

"우리라니?"

"가이와 저 말이에요. 그이는 다음달에  임지로 떠나라는 명령을 받
았는데, 그때 저도 함께  떠날 수 있도록 당장 결혼하고 싶대요. 오
오, 어머니. 다시 한번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
어요."

파렌 부인은 팔꿈치를 괴고 몸을 일으켰다.

"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냐? 워터하우스  대위와 결혼하겠다
니, 그건 말도 안돼."

"아무리 그래도 저는 할 거예요. 결혼 한다구요! 오오, 어머니. 너무
나 멋진 일이잖아요!"

"당치도 않은 일이야." 파렌 부인은 짤막하게 말했다.

"사실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되어버렸어.   워터하우스는 내가 
사위로 삼고 싶은 남자가 아니야. 그리고 너는  어떻게 그런 무정한 
말을 할 수 있지? 나를 환자 두고 가버리겠다니..."

"저는 가이와 결환해야 돼요.  이번 기회를 놓치면, 기회는 영영 다
시 오지 않아요."

"대위가 그렇게 변덕스럽다면!"

"이건 변덕 문제가 아니에요,  하지만 저는 앨런 피어스도, 그 다음
에 만난 모리스도  잊지 않았어요. 요컨대 어머니는  저를 결환시킬 
마음이 전혀 없는 거예요."

"내가 너라면 에미를 고맙게  생각할 거다. 간호사, 거기 멍하니 서
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앞으로 한 시간  동안은 자네한테 볼 일이 
없어. 조이하고 단둘이 의논할 게 있으니까 잠깐 자리를 비켜줘요."

엔스트루더 간호사는 조이 옆을 지날 때 "잘돼면 좋겠어"하고 속삭
였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파렌부인은 자기 뜻을  관철 시키는 일에 관해서는  명수였고, 지금
까지 여러 해 동안이나 조이를 좌지우지해 왔다.  
그녀가 문을 닫자마자  말다툼이 시작되었고, 한 시간  뒤에 돌아왔
을 때도 말다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추는 이제 파렌 부인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이 분명했다.
간호사가 들어갔을 때 부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로  허락할 수 없어. 내가 죽어
도 결혼하겠다면  해도 좋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내가 죽으면  네 
양심은 평생 짓눌리게 될  텐데. 그건 아마 너도 싫을거다. 아마 나
중에는 네가 바보같은 짓을  하지 않도록 구해준 나를 고맙게 생각
하게 될거야."

그후 며칠이 지나는 동안, 조이가 패배를 맛보리라는  것은 점점 분
명해졌다. 
파렌 부인은 그 문제를 더 이상 논하기를 거부했다.

"이런 식으로 말다툼만 하고 있으면  나는 죽어버릴거야. 내가 얼마
나 건강에 조심해야 하는지는 너도 알고 있을 텐데."

그러면서 부인은 이제 기력이 좀 생기면 본머스 같은 데로 함게 여
행이나 떠나자고 덧붙였다.
사태가 이에 이르자 엔스트루더 간호사는 놀라운 결심을 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고 파렌 부
인은 말했다. '내가 죽어도 결혼하겠다면  해도 좋다'고 말하기도 했
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자'고 간호사는 결심을 굳혔다.  그녀의 계획은 
지극히 단순한 것이었다. 약병의 내용물을 바꿔놓고, 파렌 부인이 6
시에 약을 먹을 때 치사량의 수면제를 먹도록 하는 것이다. 
부인은 언제나 6시부터 7시까지는 혼자 있고  싶어했기 때문에, 7시
에 발견했을 때는 이미 때가 늦어서 손쓸 수 없게 될 것이다. 
조사 결과, 진상은 부인이 수면제를 약으로 잘못  알고 먹은 것으로 
밝혀질 것이다. (왜냐하면 간호사는 의사를  부르기 전에 약을 원래
대로 돌려놓을테니까.)
간호사는 자기가 하려고 하는 일에 파리 한 마리 죽이는 정도의 죄
책감밖에는 느끼지 않았다. 
게다가 주변 상황이  그녀의 계획을 도왔다. 드디어  실행하기로 결
심한 날, 파렌 부인에게 손님--크리스티부인--아 찾아왔다. 
손님 덕에  자칭 환자('환자라니,가소롭기 짝이  없어'하고 간호사는 
생각했다. 

'내가 스스로 내 일을  해나갈 수 있는 것처럼, 부인도 얼마든지 혼
자서 해나갈 수 있어!') 의 정신이  산만해져서, 부인의 주의를 끌지 
않고 약의 내용물을 바꿔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겼다. 
파렌 부인은 손님에게 줄곧 딸의 태도를 한탄했다.

"나이를 먹어서 나는  이제 쓸모없는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만큼 비참한 일은 없어요, 내 인생은 무거운 짐이었어요. 그 짐을 
벗어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크리스티 부인은 떠날 때 간호사에게 말했다.

"파렌 부인은 우울증에 빠져 있어요.  침대 옆에 수면제를 놓아두어
도 괜찮을까요? 내가 당신이라면  부인한테서 눈을 떼지 않을 거예
요. 저런 기분으로는 무슨 짓을 할지 모르잖아요."

"그건 미처 생각지 못했군요."  앤스트루더 간호사는 솔직하게 말했
다. "일부러 주의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간호사는 3층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파렌  부인의 방을 들여다보았
다. 
환자는 눈을 감고  베개에 기대앉아 있었다. 부인은  간호사를 보고 
말했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해줘. 조용히 있고 싶으니까. 크리스티 부
인 덕에 완전히 녹초가 되어 버렸더, 어떻게든  잠을 자도록 해봐야
지."

약 한 시간 동안 집안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그리고 6시 15분 전, 
파렌 부인의 초인종이  울리고, 부인이 온 집안의  사람들을 거만하
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온 집안의 사람들--조이와 간호사와 요리사인 파머  부인--이 모두 
침대발치에 늘어서자, 부인이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모두 잘 들어둬요. 그러면  서로 상대의 
알리바이를 증명할 수 있을테니까. 그리고 조이, 너는 결국 네가 하
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 됐구나. 나는  다만 네가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럼 우리 결혼을 승낙해 주시는 거예요?"

조이는 자기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엔스트루더  간호사도 마찬가
지였다.

"이렇게 된 마당에 반대는 하지  않겠다는 것뿐이다. 이것밖에는 해
결책이나 탈출구가 없는 것 같아. 나는 다른  사람들한테 무거운 짐
이 되고 있어. 그래서 수면제를 정량보다 세 배  더 먹었지 그런 얼
굴을 하면 안돼, 조이. 이미 때가 늦었드니까 의사를 불러도 소용없
어. 결혼생활을 마음껏 즐기도록 해라. 결국 그 때문에 나는 목숨을 
잃는 거니까."

조이는 금방이라도 졸도할 것 같은 얼굴이었다. 
파머 부인이 외쳤다.

"간호사, 의사를...빨리 의사를 불러와요."

파렌 부인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이미 늦었어."

오직 엔스트루더 간호사만 침착했다.

"허둥댈 필요는 없어요,  위험은 전혀 없으니까. 마인께서는 치사량
의 수면제를 먹은게 아니에요. 평소에 늘 드시는  약을 정량보다 세 
배 더 먹은 것분이죠,  그걸로는 파리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해요, 사
실은 이렇게 된 거예요." 

그녀는 사정을 설명했다. 

"마님께서 몹시  우울해 하신다고 크리스티  부인이 주의를 주셨기 
때문에, 나는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약병의 내용물을 바꿔놓았어
요 

그러니까..."간호사는 다시 환자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말을 이었다. 
"마님께서는'수면제'라고 적혀 있는  병에서 정량의 세 배를 드셨지
만, 사실은 강장제를 정량보다 좀 많이 드셨을 뿐이에요. 

물론 약은 나중에 다시 원래대로  돌려 놓을 작정이었죠."확실히 그
녀는 그렇게 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이 못된  할망구가 막판에 속임
수를 쓰다니!

"아니, 왜 그러세요,마님? 갑자기 안색이 변하시고..."

환자는 갑자기 등을 꼿꼿이 폈고, 얼굴은 포로 하애져 있었다.

"그게...정말...이냐?"

"물론 정말이죠. 그러니까 연극은 그만두고 주무세요."

그런데 파렌  부인은 자기를 눕히려고 하는  간호사의 손을 뿌리쳤
다.

"건드리지 마, 이...이  바보 같은 살인자. 자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나 알아? 자네가  그런 짓을 하리라는 걸  내가 알 도리가 없잖아? 
나는 당신들과 조이를 놀라게  해주고 싶었어. 단지 그것뿐이야. 그
래서 약을 먹기 전에 약병의 내용물을 바꿔놓았어. 이제 알겠어?"

이 사건이 법정에 올려졌을때, 배심단은 엔스트루더 간호사에게 무
죄 평결을 내렸고, 판사는 그녀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비극을 예
방하기 위해 유별난 조치를 취했을 뿐이라고 논평했다. 그리고 판
사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본 법정은 당신이 파렌 부인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앤스트루더 간호사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자기가 살인자인
지 아닌지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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