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론에서 생성의 철학으로
- 들뢰즈와 데리다 -
1. 고(苦) ; 고(考)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게 되는 고통스러움의 양상 중에서도,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이나 육체의 상태 ― 알리바이 없는 과거의 경험과 가물거리는 기억, 어떤 사물이나 사건 앞에서 무한한 쾌나 고통을 느꼈을 때의 기분 등등 ― 와 같은 자신에게 분명한 하나의 증상 또는 징후를 도무지 언어라는 것으로 표현해내지 못할 때 가지는 고통이 있다. 이것은 언어라는 무의식적 기제 속에 살고있는 우리에게는 분명 메타-징후 또는 메타-감정이다(메타-언어라고 해야할까?). 자신의 감정을 언어화 시키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감정, 자신의 징후를 언어화 시키지 못함으로써 발생하는 징후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단지 고통으로 인한 비명소리만 있을 뿐... 일그러진 웃음과 함께? 또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전달되어 이해되지 못한다면 더욱 힘든 상황이 연출되리라. 의사에게 나의 징후는 전달되어져야만 하는 것이기에 나의 언어는 주관적인 징후를 객관적인 진술로 전환되어야 하는 것이다.
철학도 마찬가지이다. 철학이 자신의 문제를 언어화 시켜내지 못할 때 철학은 고통스럽다. 철학은 자신의 전지전능함omnipotence을 과시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언어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은 언어를 그 안으로 끌어들여서, 바깥의 다른 모든 것을 끌어당겨서 말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말할 수 있는 한 철학은 그러므로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 고통스럽더라도 그것은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말해서는 안되는 고통도 있는 것이다.
해체론 시대에 철학이 다다랐을 때에도 여전히 철학은 웃을 수 있다. 전통적 철학에서 형이상학의 여백들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추스르며 자신을 해체하는 것마저도 겸허하고 자신 있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해체론은 결국 미학으로 자기입장을 정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미학은 원래 형이상학의 극복으로 출현하였으며 형이상학이 말하지 못하는 것을 말할 수 있기 위해 애써왔다. 해체론은 역사의 의미와 의미의 역사를 동시에 탈구성하는 것이지만, 그러한 해체론적 단절 한가운데에서도 여전히 이어지는 것은 바로 예술이다.1) 해체론적 철학은 예술이라는 철학 바깥의, 단지 철학 안으로 포섭되기에는 줄곧 앞서가는 예술의 철학, 그리하여 미학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비록 자신이 해체하려는 것이 미학일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해체론은 결국 미학이 될지도 모른다.
이 시대에 철학이 자신의 정체성 회복과 변형을 위하여 만나는 비철학은 신학이나 과학이 아니라 무엇보다 예술이다. 해체론적 형태의 철학들은 이 예술 안에서 다시 태어난 철학이다. [……] 그렇게 소외를 겪고 자기 상실의 위기감에 빠져 있는 예술에서 해체론은 어떤 야수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사랑한다. 고전적 형태의 철학을 거부하는 예술의 특이 체질 안에서 시대를 바꾸는 전복적 부정성을 알게 되고 그것을 숭배한다. 새로운 형태의 철학은 이러한 숭배 속에서 소생하고 있다.2)
해체론이 이와 같이 예술을 숭배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것은 해체론과 더불어 조금 더 넓은 의미인 포스트 모더니즘 혹은 포스트 구조주의 전반의 경향들과 일치한다. 전통 철학의 여백을 공히 예술의 영역에서 발견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예술은 진정으로 이 시대의 철학이 사랑하고 숭배할만한 것일까? 소외와 자기 상실에 빠져있는 예술에서 '특이 체질'3)과도 같은 어떤 전복적인 부정성을 발견하는 것일까?
이 글에서는 이러한 의문에 대하여 베르슈타인이 {예술의 운명}4)에서 따랐던 길들을 다만 편승하는 방법으로 칸트와 하이데거(이들은 깊이 다루지 않을 것이다.)로부터 데리다에 이르는 데까지 추적할 것이다. 그리고, 형이상학의 극복으로서 데리다의 해체론의 의의를 살펴보고 해체론이 비껴나고 놓치는 부분을 발견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나아가서 데리다 또는 해체론이 극복해내지 못하는 점을 들뢰즈가 극복할 수 있는지 찾아 볼 것이다.
2. 자율적 예술
베른슈타인은 {예술의 운명}에서 미적 소외aesthetic alienation를 이야기한다. 미적 소외란 무엇인가? 소외된 것은 무엇이며, 무엇으로부터 소외되었는가? 그는 예술이 진리로부터 소외되었으며 이를 미적 소외라고 한다. 하지만 철학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이 예술과 진리 사이의 불협화음이 왜 현재에 와서 문제란 말인가? 예술과 진리 사이의 헤게모니는 언제나 진리에 있었던 것이 분명한데... 그러나 베른슈타인은 근대에 이르러서야 예술이 진리로부터 소외되었는데, 그것은 예술의 자율성이 심화되고 그럼으로써 근대적 구성체 속에서 다른 영역들로부터 범주적으로 분리되고 추방되었다고 한다.
칸트는 이러한 시기에 예술이 자율성을 획득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미의 분석과 숭고의 분석을 포함하는 미감적 판단력 비판과 목적론적 판단력 비판을 통하여 철학 일반의 영역에서 미학의 자율적 근거를 확고히 하였다. 감성적인 것의 자율성과 인간적인 것의 신적인 것으로부터의 해방, 나아가 인간의 고유한 영역으로서의 주체의 인정을 칸트는 이루어 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칸트가 모더니즘의 시대와 함께 시작함을 말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반성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주관성과 더불어서 말이다.
모더니즘의 시기는 모든 체계의 파편화와 분화 또는 개별화를 그 특성으로 한다. 근대와 더불어 생성되는 주체, 천재, 취미, 비판과 같은 개념은 그러한 개별화에 대한 표상이기도 하며, 그러한 표상들과 더불어 근대의 미학과 미적 담론들이 성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술의 분화는 결국 미학의 생성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다. 예술이 진리와 도덕에 대한 종속에서 스스로를 소외시키면서 자신만의 영역을 가지기 시작하는 시기가 미학이 학문으로서 자립하여 자신의 언어를 말할 수 있게 된 시기와 일치한다는 사실에서 미학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즉 미학은 스스로 자율화를 쟁취하기 위해서, 진?선?미의 통일적인 체계로부터 미, 예술의 영역을 파편화시키고 영역화시키며 순수화시키는 (결국 자율성을 부여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불가피한 일이었다. 진?선?미가 통일된 체계라는 것이 결코 그 완결된 체계 안에서 그 구성원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체계라고 볼만한 것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그 체계의 완결성에 이바지하던 모종의 전체주의적 독재(신학과 철학에 의한?)가 근대에 와서 자신들의 권위를 점점 상실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대(성)의 시기에 이르러서 미의 영역에서 미학은 노선을 급선회하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지며 스스로의 헤게모니를 구축하려한 것이다(이것이 근대 미학이 성립하게 되는 유력한 근거이다). 또한 예술은 해방적, 탈구조적인 그 본성상 어떠한 철학적 담론과도 대화를 중단하고 오로지 자신의 내부로만 침잠하는 노력을 하게 된다. 붙잡으려는 철학(미학)과 도망치려는 예술; 그 사이에 묘한 공생 관계. 예술은 자유를 쟁취할 것인가, 다시 노예로 전락할 것인가?
3. 예술의 종언
하이데거는 {예술 작품의 근원}에서 예술의 본질을 "존재자의 진리의-작품-속으로의-자기-정립(das Sich-ins-Werk-Setzen-der Wahrheit des Seienden)"5)이라고 정의한다. 이 말에서 하이데거는 그때까지 예술이 수공적 기술과 구분되며 미적 기술로서 진리와의 관계 속에서 고찰된 적이 없다고 지적하면서, 미 또는 예술을 진리와 연관을 가진 것으로 파악한다. 하지만 이것에서 전통적인 모방론, 즉 예술은 현실적인 것의 모방이나 묘사라고 되는 것은 아닌지 반문하며, 자신의 이론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작품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혹시 그때그때마다 눈앞에 실재하는 개별적 존재자의 재현이 아니라, 그들 사물들의 보편적 본질의 재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6)인데, 그 보편적 본질은 또 실체가 주어지지 않는 형이상학적인 개념일 뿐인 것이다. 따라서 하이데거는 미학이 예술 작품을 존재자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의 지배 아래에서 고찰하는 방식이 아니라, "존재자의 존재에 관해 사색"함으로써, "비로소 작품의 작품다움, 도구의 도구다움, 사물의 사물다움에 더욱 가까워짐"을 깨닫는다고 한다.7) 하이데거는 지나치게 예술의 작품 "존재"에 대해서 관심을 집중한다. 나아가서 예술을 진리가 되어가고 일어나는 하나의 방식으로까지 진리와의 근원적 연관성을 부각시킨다.
하이데거는 [예술 작품의 근원]의 후기에서 헤겔의 {미학 강의}를 인용8)하면서, 헤겔의 주장의 배후에 숨겨진 그리스로부터 내려온 서구의 전통적 사유가 깔려 있고 그 사유가 존재자의 진리에 따라 말해왔을 뿐이기 때문에, 헤겔의 주장에 대한 진위 결정을 유보한다. 그보다는 오히려 다른 관점, 즉 헤겔의 주장에서 언급되는 진리가 어떤 진리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결국, 하이데거의 이러한 존재 사유라 할 수 있을 주장들을 따라가는 과정에서는 그의 끊임없는 미와 진리의 동행Zusammengehen에 대한 의지를 읽을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여기에서 칸트로부터 획득되었던 예술 또는 미의 자율성의 영역이 헤겔과 하이데거에 의해 다시 진리 또는 이념이라고 하는 것으로 되돌려지려는 징후를 발견하는데, 그것은 무엇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그들의 지나치게 역사 철학적인 사유가 그들로 하여금 과거에 대한 숭배와 현재에 대한 불신과 무력화를 낳게 하고, 근대에 이르러 점차 자율적으로 되어 가는 예술에 대해 회의하도록 만든 것은 아닐까?
하이데거에게 '예술의 종언' 혹은 '예술의 죽음'을 말하는 헤겔의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 명제가 말하는 것은 예술의 현실적 소멸이나 전적인 무용성이 아니다. 다만 예술이 진리 사유의 최종적 심급이 되던 시기가 지났다는 것을 말하며, 그래서 문화 일반에 대한 최종적 입법의 권리가 예술로부터 다른 영역으로 이전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헤겔에게나 하이데거에게 진리를 사유하는 최고의 형식은 이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는 철학에 있다.9)
이런 대목에 이르르면 예술과 철학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 다툼이 보이게 된다. 예술은 제갈길을 가야하고 (헤겔과 하이데거의, 거슬러 올라가 플라톤의) 철학은 쉬지 않고 자신의 영향력 안으로 예술을 포섭하고, 지배하려 한다. 베른슈타인은 이쯤에서 하이데거의 이론을 독해하는 데리다에게로 눈을 돌린다. 데리다에게로 집중하게 되는 것은, 하이데거에게서 부족한 근대 예술의 역할에 대한 설명과 하이데거에게서 보이던 존재와 존재의 역사라는 추상적 개념으로부터의 탈피라는 이중적인 목적으로 가진 것이다.
4. 해체론 ; 차이의 철학
데리다의 해체론은 넓게 보아서 프랑스 현대 철학의 조류에서 커다란 위치를 점하고 있는데, 그 사상적 기원은 아무래도 3H(헤겔, 후설, 하이데거)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을 비롯한 포스트 구조주의와 같은 현대 철학은 그 3H의 시대를 사로잡았던 헤겔의 변증법과 동일성의 철학에 도전하는, 그럼으로써 "차이를 동일성의 단순한 반대로 여기거나 동일성과 변증법적으로 동일하다고 간주하지 않는, 즉 차이에 대한 비모순적, 비변증법적 사고의 길을 닦는 것"10)으로 간주할 수 있겠다. 비단 데리다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닐지라도, 데리다의 해체론은 그러므로 차이diff rence를 인정하고 사유하는 철학적 담론의 글읽기와 (다시)글쓰기 작업이라고 되는 것이다.
데리다 자신이 생각하는 해체d construction란 무엇일까? 우리는 해체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데리다는 해체라는 용어의 부각을 인정하지 않으며, 다른 여러 단어들 중의 하나로 간주한다. 그에게 그것은 다른 많은 단어들(예컨대 흔적trace이나 차연diff rance처럼)과의 연쇄망 속에 위치한 한 단어에 불과하며, 그가 정확히 어디에 썼는지도 기억할 수 없을 만큼 한두 번 썼던 이 단어가 갑자기 텍스트 밖으로 튀어나가서 그들 마음대로 그 단어에 대한 운명을 결정했던 사람들에 의해 포착되었다11)고 데리다는 주장한다. 그만큼 데리다는 자신의 사유를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술어나 용어를 '현존'하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또한 해체들은 시작되지도 어느 지점에서 끝나지도 않으며, 해체가 역사 인식의 지표들(시대, 시기, 혁명, 변화, 단절, 출몰, 급변, 에피스테메, 패러다임, 주제)과 더불어 선회하는 역사의 내부에서 발생하지 않음을 주장한다.12) 그에게 있어서는 어떠한 현전도 역사 철학적인 관점도 자신의 철학을 규정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같은 사유의 방법은 데리다가 전통적인 형이상학의 방법을 답습하지 않으면서 그 형이상학에 대항하고 상처내기 위한 방법이다. 아니, 하나의 전략이고 전술이다. 데꽁브는 이것을 "이중의 게임"이라고 부른다.
데리다는 '이중의 게임'("이중스파이"가 양쪽에 봉사한다는 의미에서)을 치룰 것을 선택한다 : 전제적 규칙에 복종하는 척하면서 동시에 딱 잘라 해결할 수 없는 경우들을 제기함으로써 그것에 덫을 놓는 것. '해체'의 전략은 절대적 담론이 성취되었기 때문에 "결국" 아무런 할 말도 없는 그 순간에 말하도록 하는 술책이다. 이상이 철학에 의해 제기된 딜레마를 궁지에 몰아넣는 전략이다.13)
진리가 옳다는 것을 이성이 언제나 정당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에 대한 의의 제기와 부정이 그것의 외관에만 작동할 뿐이라는 것을 데리다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이중의 게임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해체, 즉 아무것도 말하지 않기 위해 말하는 방법은 텍스트가 그 자신의 모순된 논리로 붕괴하도록, 말하자면 그 내부에서, 스스로 해체하게 하도록 하는 방법인 것이다. 이 방법은 모든 사유의 방법을 배태하며 흡수하는 전통적 형이상학에 대한 최상의 전술이다.
그러나, "지배자를 '살해하기' 위하여 지배자의 언어로 말하는 척하는"14) 데리다의 음모는 데리다의 독자에게 가끔씩(자주) 혼란스럽다. 분명 살인 사건은 발생했으나, 누가 왜 살해했는지 밝혀지지 않는 추리 소설과도 같이, 때론 정신 병동을 무대로 벌어지는 살인 사건에서 결국 정신과 의사가 미치광이이고 범인이라는, 그래서 나중엔 정신병자인 관객마저도 그 광기의 살풀이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싸이코드라마처럼 독자와 관객을 사유와 광기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게 만든다. 그의 글쓰기는 읽혀지고 다시 쓰여져야 하지만, 또 그래서는 안되는 것처럼 보인다. 읽혀야 하나 읽혀지지 않는, 읽어야 하나 읽지 못하는, 읽었어도 말하지 못하는 중얼거림과 우물거림, 고개의 끄덕임만이 남는다. 해체 수행자로서의 데리다는 저자author이면서 권위authority이지 않은가? 비록 자신의 의도는 그렇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데리다의 이와 같은 이율배반적 글쓰기는, "자기 자신에 관계하는 글쓰기이면서도 또한 철학소들을 ― 따라서 우리의 문화에 속하는 모든 텍스트들을 ― 철학의 역사에서 제시될 수 없으며, 어디에도 현전하지 않는 어떤 것의 징후(sympt me)로서 읽게 하는 글쓰기"15)이면서, 저자 자신은 그의 텍스트에서 자신의 어떠한 흔적도 남기려 하지 않는(또는 남기지 않는 척한)다는데 문제가 있어 보인다. 자신의 목적은 글쓰기로서 정당하게 달성되지만,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점에서 스스로는 모든 이후의 비판의 가능성을 회피하려는 듯한 의심을 사게 한다. 한 발짝 더 나아간다면, 데리다의 글쓰기 이후에는 어떠한 글쓰기도 있을 수가 없는 것이고, 단지 해체된 텍스트만 남아있다. 아니, 오히려 데리다는 자신의 글쓰기가 '예술'이 되기를(하나의 '예술 작품'과도 같이) 혹은 어디에도 정박하지 않으면서 계속해서 출몰하는 "유령선", 끊임없이 떠도는 "유목민"의 삶과 같은 것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라마톨로지}에서 데리다가 "텍스트-바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앞에서와 같은 우리의 의심(해체주의의 함정?)에 어떤 힌트를 주는 것이다. 로널드 보그의 말을 빌리면, "데리다의 '텍스트'는 전(前)-존재론적이며 전(前)-논리적이다. 그것은 이성적인 것도 감각적인 것도 아니며, "의미와 무의미의 대립을 넘어서 있다." 그것은 '원(原)-글쓰기'의 영역"16)인 것이다. 데리다의 텍스트는 그가 해체하려고 하는 형이상학의 다른 얼굴이고, 전통 철학적 이원론의 가능성이기도 하면서 전복의 조건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외디푸스적인 자기 대면과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를 죽이지만 자신도 (아들에 의해 죽음을 당할 운명에 처한) 아버지가 된다. 이제 이런 데리다를 붙들고 늘어지는 것은 무의미할 것인가? 아니면 그와 함께 숨쉬고 그의 텍스트 안에 집을 짓고 벽들과 창문을 만들면서 살아야 할 것인가?
5. 해체 이후 ; 생성의 철학
데리다가 초토화시킨 현전의 형이상학으로서의 철학의 영역을 넉놓고 보고 있을 수 없다면, 우리는 선택의 갈림길에 마주한다. 눈과 귀를 막고 형이상학의 도구를 사용하여 다시 한 번 차이들을 통일할 신전의 건립을 시도할 것인지, 아니면 언제든지 떠날 채비를 하는 유목민들의 집을 지을 것인지... 이런 갈림길에서 또 다른 차이의 철학자, 들뢰즈는 나름의 길을 간다.
철학은 항상 개념을 창출해내는 데 있습니다. 나는 형이상학의 지양 혹은 철학의 죽음에 관하여 근심해본 적이 없습니다. 철학은 늘 완전히 현시적인 기능, 개념들을 창조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철학 대신 아무도 그것을 해줄 수가 없습니다. […] 정보 과학, 전달 매체, 상업적 선전 등 […] 이같은 세력들 앞에서 철학은 왜소하고 외로워 보입니다. 하지만 철학이 만일 죽게 된다면, 그것은 웃다가 죽은 것입니다.17)
철학에 있어서 데리다의 실천이 '이중적 글쓰기'라면, 들뢰즈의 실천은 '개념들의 창조'이다. 데리다가 "철학을 기본적으로 텍스트 주석 내지 해석으로 보는 해석학적 전통 속에서 작업한다"18)면, 대조적으로 들뢰즈는 "스피노자의 예를 따르고 있으며, 패러독스들의 일관된 논리(또는 반논리)에 따라 조직화된 개념들의 복잡한 체계를 창조하고 있다."19) 두 사람은 모두 역설적인 개념들(차연, 파르마콘; 집, 우주, 비인간적 생성 등)을 만들어 내어 사용하고 있지만, "들뢰즈는 이들을 전통적인 텍스트들 내에 다시 집어넣기보다는 대안적인 세계를 만들기 위한 벽돌들로 사용한다"20)는 점이 차이가 있다. 그리하여 들뢰즈가 "데리다처럼 철학을 주석의 형태로 다루지 않으며, 나아가 그는 사유가 전통적인 철학적 담론 안에 머무르면서 영원히 형이상학과 투쟁해야 한다고 보지도 않는다"21)는 점이 들뢰즈가 데리다를 넘어서는 것이 될 것이다. 이것은 데리다를 한갓 주석가로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가 철학적 사유를 텍스트 내부에만 한정하고 무한한 우주적 사유, 힘의 사유, 생동의 사유를 망각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들뢰즈에게 사유는, 무한 속에서 모든 일관성을 혼란시키고 해쳐놓는 '카오스'와 내재성을 무언가에 내재한 것으로, 관조의 대상, 반성의 주체, 소통에서의 다른 주체로 해석하는 '초월성' 양자 사이에서 양자택일하는 것으로 본다. 말하자면, "철학의 문제는, 사유가 뛰어드는 무한을 놓치지 않으면서 어떤 일관성을 획득하는 것이다."22) 사유는 '내재성의 구도plan d'immanence'23) 속에서 하나의 이미지로 떠오른다; 사유의 이미지. 들뢰즈는 푸코와의 대담에서 이론적 실천에 관하여, "... 우리는 한 이론을 고치기보다는 새로운 이론들을 만들어 내야 한다."24)고 말한다. 사유가 가지는 실천으로서의 창조적 성격을 보여주는 말이다. 들뢰즈에게 있어 철학(또는 사유)은 형이상학의 무한궤도 안에서 지속적으로 흠집내기/투쟁하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혼돈으로서의 야생적 살chair에 집과 골조물을 세워내고 무한성의 우주로 나아가는 부정에 대한 진정한 긍정, 부정을 해방시키는 긍정에 이르는 것이다. 이 무한한 사랑이 깃든 긍정에서 앞으로의 세기는 들뢰즈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푸코의 예언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어떤 저자에 대해 글을 쓸 때, 내가 지니는 이상은 그에게 슬픔을 야기시킬 어떤 것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가 이미 죽은 저자라면, 그로 하여금 그의 무덤 속에서 울게 만드는 어떤 것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저자에 관해서 생각한다는 것. 그의 최상을 생각함으로써 그로 하여금 대상이기를 그만두게 하는 것. 박학과 친숙함의 이중적인 불명예를 피하는 것. 그가 줄 수 있었고 발명할 수 있었던 이러한 즐거움, 힘을, 사랑하는 삶과 정치적 삶을 약간이나마 되돌려주는 것."25)
--------------------------------------------------------------------------------
'책,영화,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허공에 흩어진 소년의 꿈 [정주영 자서전] 01 (0) | 2023.03.26 |
---|---|
행선지 없는 차표 [니시무라 西村京太郞] (0) | 2023.03.26 |
한글 맞춤법 강의 (0) | 2023.03.26 |
한국인의 버릇 (0) | 2023.03.26 |
나무야 [신영복] (0) | 2023.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