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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후기 푸코에서의 주체의 복귀

by Casey,Riley 2023.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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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푸코에서의 주체의 복귀
피터 듀스

이 논문은 나의 ?탈통합의 논리(Logics of Disintegration)?(Verso, 1987)에서 시작된, 푸코의 사유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사유의 비교를 푸코의 후기 국면의 저작들로까지 확장하려는 최초의 시도이다. 그러나 이 글은 포괄적인 분석 대신에 오히려 두가지 근본적인 점을 지적하려고 한다. 첫째, 푸코의 최후 저작에서 자아-구성적 주체성의 복귀는 (들뢰즈가 ?푸코?라는 책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어떤 일관된 기획 내에서 강조점의 변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복귀는 푸코의 초기 저작이 지니고 있는 풀기 어려운 딜레마로부터 생기는 것이자 또한 그 초기 저작의 많은 전제들로부터 단절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둘째, 푸코가 주체 개념을 철학적 ‘반인간주의’의 정치적 함의에 대한 비변증법적 반작용으로서 도입하고 있는 형식은 그것이 해결했던 것 만큼이나 많은 문제를 남긴다. 

만년에 미셸 푸코는 자기가 만일 조금더 일찍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저작들을 접했더라면 자기의 연구에서 그렇게 많은 우회로와 간과점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인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승인된 친화성들에도 불구하고 양자 사이에는 명백하게도 통제적(regulating) 권력과 그것에 지배당한 타자, 그리고 이들간의 관계를 이론화하는 방식에 있어서 간과할 수 없는 간극이 있다. 고전적 프랑크푸르트 학파에게 이런 관계의 억압성은 현대 사회에서 제한된 목적-수단 합리성의 우월성의 결과이지만, 이는 이성 자신의 약속을 남김없이 다 드러낸 것으로 간주될 수는 없다. 이는 육체적인 것(the corporeal)이 본래 비합리적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프로이트의 실수는 위협적이고 무질서한 것으로서의 충동에 대한 순응주의적 자아의 관점을 불변의 진리로 여겼다는 점이다.. “프로이트의 억압적 특성, 즉 그가 지닌 치명성은 그가 시민사회적 이데올로기에 대항하여 유물론적으로 무의식적인 충동으로까지 내려가서 의식적인 행동을 추적하였지만 동시에 충동을 경시하는 시민사회적 경향 - 이것이 바로 프로이트 자신이 제거하려 했던 합리화의 생산물인데 - 에 동의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 심리학 전문가로서 그는 ‘사회성’과 ‘이기성’의 대립을 검토하기지도 않은 채 정적으로만 내세우고 있다. 그는 그 대립 속에 들어 있는 억압적인 사회적 활동이나 - 그 자신이 명시한 대로 - 불행으로 가득찬 메커니즘의 흔적을 인식하지 못했다” (아도르노, 최문규 역, ?한줌의 도덕?, 솔, 1995, p. 89.)
 반대로, 도구적 이성 자체는 그것이 억압하는 고통받는 본성의 견지에서 볼 때 비합리적으로 나타난다. 분할된 이성의 각의 측면은 나머지 측면의 비합리성을 경험한다. 물론 푸코는 이런 견해를 거부한다. 왜냐하면 다른 포스트구조주의적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푸코 또한 미분할된 이성이라는 약속은 전체주의적 함의를 지니고 있다고 의심하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는 이성과 이성의 역사 자체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고, 단지 서로서로가 경쟁하고 중복되는 실천들의 다양성과 ‘합리성의 형식들’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우리의 임무는 어떠한 궁극적 ‘화해’도 예측하지 않으면서 이처럼 항상 유동하는 투쟁의 장 내에 우리 자신들을 위치지우는 것이다. 
푸코의 입장이 지니는 문제는 그 입장이 합리성 개념에서 어떠한 규정적 내용도 박탈해 버린다는 점이다. 합리성들의 다양성은 단순히 실천의 다양성에 등가적인 것이다. 이는 두가지 문제를 야기한다. 우선, 권력과 지식의 일반적인 결합에 관한 문제가 있다. 이는 특히 그의 1970년대의 저서들의 기초가 되었던 문제이다. 비록 그의 명백한 의도가 권력과 지식이 내재적으로 관련되었음을 드러내는 것이었지만 (그래서 ‘권력-지식’이라는 하이픈으로 연결된 용어를 사용했겠지만) 사실 이 관계들은 거의 특정한 유형의 지식 형성을 위한 제도적인 선결조건에 의해서 묘사되어진다. 푸코의 근본적인 주장은 감호소, 병원, 감옥에 의해 주어진 보다 세밀한 감시의 기회들이 그것에 상응한 ‘인간과학’의 정립을 가능케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1975년의 인터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던 것이다. 

“인간과학을 탐색하는 이론적 무기였던 고고학적 방법론이 개발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권력의 메커니즘을 연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육체를 지배하는 권력의 움직임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고고학이라는 새로운 방법론이 필요했다는 것이지요. 더욱이 고고학적 방법론은 우리에게 새로운 사실을 하나 더 알려주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19세기에 인문과학이 탄생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기율과 규범화였습니다.”. 콜린 고든 편, 홍성민 옮김, ?권력과 지식?, 나남, p. 91. 영문판 해석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인간과학의 고고학은 인간의 육체, 행위, 행동의 형태를 탐구한 권력의 메카니즘을 연구하는 것을 통해 정립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탐구가 우리에게 인간과학의 출현 조건 중의 하나를 재발견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즉 기율과 규범화에 대한 19세기의 위대한 노력을.”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은 사실 권력과 지식 간의 관계를 비본래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에 다름아니다.  푸코는 어떻게 해서 ‘기율과 규범화에서의 노력’이 과학적 지식의 적용을 통해 고양되었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이러한 실패의 이유는 쉽사리 찾아질 수 있다. 만일 푸코가 과학적 지식의 적용이 행위의 효율성effectivity을 증대시킨다는 점을 인정했다면, 그는 그의 숨겨진 상대주의적 입장을 포기할 수 밖에 없으며, 적어도 합리성의 한 차원, 즉 인지적-도구적 차원에서는 ‘진보’의 실재성을 인정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푸코가 환기시켰던 기율들에 의한 ‘기술적’ 문턱의 교차, 권력과 지식의 나선형적인 강화는 이론적으로 설명되지 못한 것으로 남게 된다. 
두번째로, 기율적 권력과 지식 간의 관계, ‘합리성들’과 그것들의 ‘타자’ 간의 관계에 대한 더욱 처치곤란한 난점이 남아 있다. ‘합리성’이라는 딱지에 구현되어 있는 요구의 힘을 판단함으로써 푸코는 어떤 명목론적인 입장에서 권력-지식의 복합체를 회피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는 현사실성과 타당성에 대한 구별을 거부할 수 밖에 없게 되고, 따라서 인간과학이 왜곡이나 오해의 형태라고 비난할 수도 없게 된다. ?지식의 고고학?에서 잘 드러나듯이 푸코에게 있어 담론 형성체의 ‘대상’은 이 형성체에 의해 규정된다. 그러나 타당성 판단에서 기권하기 때문에 그는 비판적 입장에 서고자 할 때 곤란함을 겪을 수 밖에 없다. 가령 기율 권력에 대한 공격은 단지 육체에 대한 대안적 개념화의 관점에서만 실행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푸코에게 이 두번째 개념화는 단지 또다른 권력-복합체의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며, 따라서 더욱 커다란 ‘진리’나 규범적인 우월성을 주장할 수 없게 된다. 
이런 딜레마에 대한 푸코의 반응은 근본적으로 모호하다. 한편으로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면서 비판적 주장을 포기하려고 한다. 

“두가지 측면이 나타나게 하는 이 메카니즘으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와지기 위해서는, 한부분으로 알려진 이것의 다른 측면의 그릇된 통일성을 분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측면 - ‘선한 측면’과는 다른 측면 - 으로 넘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Non au Sex Roi’, Le Nouvel Observateur, 644, 12-21, March 1977, p. 113.


다른 한편, 푸코는 해방적 전망 전체를 포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전망은 일시적인 것이자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운명에 처해있다. 왜냐하면 지배적 이성ratio의 비합리성에 대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폭로와는 달리 이것은 비합리성 자체를 지지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는 비규제된 감성인 유토피아 관념에 대한 아도르노와 푸코의 상이한 태도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예를 들어 ?성의 역사?에서 푸코는 더 이상 동일성을 위한 고백적 요청에 종속되지 않는 ‘육체와 쾌락의 상이한 경제’를 일순 주창하려고 하지만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매우 암시적으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육체와 육체의 필요에 대한 더욱 긍정적인 규정은 관계주의에 대한 푸코의 선호와 모순될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도르노는 ?부정의 변증법?에서 “모든 행복은 감각적 충족을 목표로 하며 그런 충족 속에서 객관성을 얻는다. 이런 모든 측면으로부터 폐쇄된 행복은 결코 행복이 아닌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비록 우리가 이러한 암시적인 제안이 그 함의상 전체주의적이라고 여겨서 거부하게 되더라도, 양분된 이성의 통합성을 회복시키려는 기획에 대한 푸코의 거부감 뒤에는 정당한 고민이 있다. 그는 도구적 이성이 전체화가 모더니티의 복잡성을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가라고 의심한다. 역설적으로, 다원주의 개념과 모더니티의 개방성을 옹호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다름 아닌 푸코이며 (물론 때로 ‘포스트모더니티의 원형적 사유가’로 푸코가 여겨지긴 하지만) 반면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이성의 해방적 권력을 완전히 소멸시켰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던’한 인물로 그려진다. ?계몽의 변증법?에서의 직접적인 구절, 즉 “계몽은 어떤 체계만큼이나 전체주의적이다”라는 구절은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계몽의 보편주의가 갖는 진보적 차원을 정합하게 설명하는데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암시해준다. 호르크하이머의 도덕 철학에 대해 언급하면서 슈나델바흐(Herbert Schnadelbach)가 썼듯이, 

“우리는 일반적인 것the General과 강력한 것the Powerful은 그것이 일반적이고 강력한 것이기에 선한 것이 될 수 없다고 하는 확신과 전체로서의 비판이론을 동일하게 생각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세계에서 선한 것the Good은 덧없는 것, 약한 것, 개인적인 충동impulse, 예외 속에서, 심지어 일어날 성 싶지 않은 것 속에서 - 기대하지 못한 것 속에서,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개별적 동기와 행위의 무분별한 선함goodness 속에서 추구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Herbert Schnadelbach, ‘Max Horkheimer and the Moral Philosophy of German Idealism’, Telos 66, Winter 1985-6, p. 87.


모더니티를 합리화의 일직선적인 모델에 의거해서 해석하는 것을 분명히 꺼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푸코는 부르주아 도덕성의 보편적 주장이 성장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 그리고 이에 대해 더욱 적대적으로 된다. 이는 ?광기의 역사?에 있는 어떤 구절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그는 거기에서 광인을 교정의 대상으로 정당화시킨 것은 양심의 출현과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부르주아 사회의 근본적인 원칙은 어떤 논쟁도 가능하게 하지 않으면서 광기를 통치하는 것을 사적이면서도 동시에 보편적인 양심에 허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입장과 푸코의 입장에서는, 그들 입장이 지닌 실천적인 결과의 일관된 형성과 관련해 볼 때 근본적인 난점이 있는 것이다. 가령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경우 그들은 주체 개념을 ‘간직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는 주체가 사물화라는 불가피하고도 전체화하는 과정이 될 운명을 지닌 형태에서만 그럴 뿐이다. (독일 관념론의 도덕철학에서 보편적인 것과 도덕적인 것의 등치는 자연의 지배를 영속화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이와 달리 푸코는 거의 대부분의 저작에서 주체를 전적으로 사회적 실천을 통해 구성된 것으로 이론화하며, 이런 점에서 더 큰 해석의 자유를 획득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것은 때때로 모더니티의 개념에 규정적인 내용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을 부인한다는 한계 내에서만 그러할 뿐이다. 즉 이런 포기의 대가로 인해 그는 해방 개념을 일관되게 사유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이미 보았듯이 푸코는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주체 내에서 자연의 기억, 이것의 충만함 속에서 모든 문화의 승인받지 못한 진리는 은폐된 채로 남게 된다”라는 말을 근본적으로 의심하기 떄문이다. 
부분적이긴 하지만 이런 난점이야말로 푸코의 후기 저작을 특징지우는 돌연한 이론적 변동을 설명한다. 이들 저작은 권력과 해방 개념에 대한 그의 초기 관계가 가진 모호함을 극복하려는 시도이자 주체 개념을 넘어서려 시도하며 결과적으로는 자유에 관한 일관된 관념을 모조리 파괴하려는 ‘포스트모던적’ 사유의 한계에 대한 인정으로 읽혀질 수 있다. 후기 저작에서 푸코의 과제는 주체성과 자유 개념을, 이 자유가 본래적인 ‘자연적’ 자신self의 회복의 형태를 띠어야만 한다는 식의 어떤 제안도 거부하는 방식으로 이 개념들을 접합시키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권력의 모던적 테크놀러지들과 본래적인 신념이 즉각적으로 관련된다는 푸코의 확신에 의해 강화된다. : 정신분석학처럼 심층적 자신에 관한 과학적 이론에 의해 지지된 본성의 해방이라는 관념은 단순히 더 심층적인 노예화를 이끌 뿐이다. 사실 ?성의 역사? 1권에서 푸코는 ‘심층적 주체성’의 계보학을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전통 사회를 특징지우는 집단 정체성의 형태의 와해를 주목하면서, 그리고 이것들이 사적인 경험의 영역을 반성하고 명료하게 하기 위한 개인의 능력에 계속 의존하는 동일성의 형태로 대체되는 것을 주목하면서 이러한 이행을 ‘고백’이라는 말의 의미가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고찰하는 가운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개인은 오랫동안 다른 이들의 신원보증과 타인과의 유대(가족, 국적, 후원자)에 대한 표명을 통해 자기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아 왔으나, 그 다음에는 그가 자기 자신에 관해 말할 수 있거나 말해야 하는 진실의 담론을 통해 존재의 정당성을 인정받게 되었다.”. 미셸 푸코, ?성의 역사 Ⅰ- 지식의지?, 나남, p. 75.

푸코는 이러한 이행을 서사 내러티브에서 내부반성intrespection이라는 근대문학으로의 변동과, 의식철학의 성장 (대두) 즉 “주체의 학, 내부반성의 타당성, 스스로에 대한 의식의 현존성의 증거로서의 생생한 경험을 구성하는 가능성과 관련된 오랜 논의”의 성장과 상호연결시킨다. 그러나 푸코는 여전히 자연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모두의 외적인 세계와 구별되는 ‘내적 세계’로의 넓혀진 우리의 접근은 망각된 강요의 결과에 지나지 않음을 지적하려고 한다. 

“사람들은 고백한다. - 아니 어쩔 수 없기 고백한다. 자발적이지 않거나 어떤 내적인 요청에 의해 강요되지 않을 경우에, 고백은 폭력이나 위협에 의해 갈취당하며 영혼 속의 은신처에서 끌려나오거나 육체로부터 추출된다.”. 상동, p. 76.


고백의 능력을 고백적인 것의 연구와 연결시킴으로써 푸코는 “고백에의 의무는 우리 내부에 깊이 뿌리박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그것을 우리를 제한하는 권력의 효과로 인식할 수 없게 된다 : 오히려 이와 반대로 진리, 우리 자신의 은밀한 본성에 뿌리박은 진리가 그것을 떠오르게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주장은 이를 원형적으로 주장하는 사람과 비교해 보면 더욱 흥미로운 결과를 낳는다. ?도덕의 계보학?의 두번째 글에서 나쁜 양심의 기원에 대한 니이체의 설명이 그것이다. 잔인함(냉혹함)은 도덕적 명령을 내재화해야 함을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하지만, 니이체는 우리 자신의 내적 충동에 대한 강화된 깨달음의 출현을 단순하게 권력이 유발한 환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바로 덧붙여서 말해 두지만, 또 한편으로는 지상에서 동물의 영혼이 자기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배반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새롭고 깊으며, 들어보지 못한 것이며, 수수께끼 같으며, 모순적이며, 미래로 가득찬 것이었기 때문에 이로 해서 지상의 광경은 근본적으로 변해 버렸다. 사실, 그때 시작되어 아직까지도 그 결말의 전망이 보이지 않는 저 광경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신과 같은 관객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것은 어떤 이상한 천체를 무대로 해서 아무도 보지 않는 가운데 그저 아무렇게나 연출되기에는 너무나 미묘하고, 불가사의하며 역설적인 광경이었다. 그때부터 인간은 헤라클레이토스의 ‘커다란 어린이’ - 그것은 제우스나 우연[運]이라고도 불리워지는데 - 라는 주사위 놀리에서의 가장 사행적(射倖的)이고 자극적인 동시에 도박의 하나로 생각되어졌다. 인간이란 존재는, 마치 인간이라는 것에 의해서 무엇인가가 고시되고 준비되는 것처럼, 마치 인간이란 존재는 목표가 아니라 단지 하나의 길, 하나의 에피소드, 하나의 다리, 하나의 커다란 약속인 것처럼, 흥미와 긴장과 희망과 일종의 확신을 불러일으키게끔 되었다.”. 니이체, 김태현 옮김, ?도덕의 계보/이 사람을 보라?, 청하, p. 93.


다시 말해 니이체는 지나친 자기-의식의 무기력한 능력을 강하게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내적 깊이의 발견을 단순히 권력이 유발한 환상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발견은 구체화되어야만 하며, 새로운 자발성을 향해 초월되어야만 한다. 이와 달리 니이체의 입장에서 보면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푸코는 두가지 문제를 합치는 것같다. 치료문화와 가기파괴적인 주체성 가꾸기에 대한 푸코의 비판은 의심의 여지없이 정당하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적 전개가 내적인 자연에 더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형태일 필요는 없다. 주체적인 것과 현대사회의 대중지리학이 더욱 균형잡힌 관계로 될 수 있는 일상생활의 더욱 자기-표현적인 형태화의 가능성 또한 있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푸코는 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설명한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정신분석학의 조작적 잠재력을 결코 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아도르노는 “정신분석학에 있어서 과장된 것 이외에는 진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아도르노, 최문규 역, ?한줌의 도덕?, 솔, 1995, p. 
고 말할 정도로 이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또 ?한줌의 도덕?에서는 정신분석학을 사회통제의 한 형태라고 무자비하게 폭로했다. 

“심리분석은 노이로제에 마비된 쾌락 능력을 인간에게 다시 돌려준다고 자부한다. 마치 쾌락 능력이라는 단순한 말이 쾌락 능력 -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 을 아주 민감한 정도로 훼손시키기에 충분하지 않은 것처럼, 또한 마치 행복에 대한 추상적 사변에 의존하는 행복이 불행이 아닌 것처럼. 그러나 그것은 사실 행복의 정반대인 바, 제도적으로 계획된 행위 방식이 점점 축소된 경험 영역으로 침입하는 것이다.”. 아도르노, 최문규 역, ?한줌의 도덕?, 솔, 1995, p. 91. (번역은 약간 수정함)


이것은 ?성의 역사? Ⅰ권에서 ‘억압가설’에 대한 푸코의 공격 저변에 흐르고 있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또한 동시에 인지적 접근이라는 어떤 특권적인 형태를 통해 벗겨질 것을 요구하는 ‘심층적 자아’라는 개념화에 의존하는 해방의 교리에 대한 의심과도 유사하다. 그러나 동시에 아도르노의 입장은 심층적 자아에 대한 푸코의 거부도 또한 의심받아야함을 지적하는 것 같다. 아도르노는 “단순한 내향성(inwardness)을 이용한 속임수”. Ibid., p. 94.
가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는 ?한줌의 도덕?에서 

“본래성 자체는 그것이 본래적이 되어가는 순간에, 즉 스스로에 관해 반성한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참된 것이라고 전제한다는 점에서 거짓이 되며, 이 속에서 그것은 그것이 똑같이 놓여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동일성을 이미 딛고 넘어선다.” 

그러나 그는 ‘자아의 심연 앞에 공포’가 있다고 속이는 것 역시 똑같은 사회적 적응의 기술의 기능이라고 본다. 

“정신분석은 개성을 삶의 허위로 간주하는바, 즉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충동을 포기하게 하고 현실 원칙에 슨응하게 하는 수많은 합리화들을 유지시켜주는 최상의 합리화로 파악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증거 제시 속에서 정신분석은 인간에게서 비존재를 확인한다. 정신분석학은 인간에게서 인간 자신을 체념시키며, 인간의 통일성뿐만 아니라 인간의 자율성을 고발하고, 마침내 인간을 적응이라는 합리화의 메커니즘에 종속시켜 버린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자아의 대담한 비판은 ‘타자의 자아도 항복해야 한다’는 요구로 넘어가게 된다”. Ibid., p. 94.
 

물론 유사한 개념화가 1960년대에 대중화된 마루쿠제의 ‘억압적 탈숭고화’에 관한 설명 형태에서도 존재한다. 푸코에 앞서 오래 전에 비판이론의 전통은 개인을 현존하는 생산과 소비 체계로 보다 효과적으로 배열한 리비도적 해방의 후퇴적 형태의 가능성을 조망했다. 그러나 비판이론 전통에게 이 가능성은 자연과 사회 간의 변증법이라는 재앙으로 정신분석학자의 통찰을 무효화시키지는 않았다. 30년대 후반부터 비판이론 전통의 경향은 정신에 관한 실증과학으로 이해된 정신분석학과 거리를 두고, 또 개인의 수준에서는 프로이트의 메타심리학적 통찰을 보존함과 동시에 문화의 고유한 갈등적 성격에 관한 이론화로서의 치료적 실천이라는 적응적 기능과도 거리를 두었던 것이다. 
푸코는 후기 저작에서 ‘존재의 미학’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을 주창함으로써 이러한 복잡성으로부터 탈출하려고 한다. 이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윤리 코드에 관한 연구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그는 순수한 자기-스타일화라는 관념에 호소하는데, 이는 보편적 규범으로서 부과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의 선택에 열려진 것이었다. 그러나 어째서 현대사회에서 그러한 존재의 미학을 향한 전회가 다름아닌 원자화로의 사회적 경향의 강화가 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기는 매우 어렵게 된다. 이 뿐만이 아니다. 푸코는 개체성 자체의 개념에 고유한 변증법을 평가하는 것에도 실패한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에게 

“개인적인 것의 독립과 비교불가능성은 비합리적인 전체의 맹목적이고 억압적인 힘에 대한 저항을 명확하게 한다. 그러나 이런 저항은 역사적으로 독립적이고 비교불가능한 개인 각각의 맹목성과 비합리성에 의거해서만 가능했다. ··· 한 사람의 개인적 특성은 하나 속의 두가지 구성요소, 즉 지배체제로부터 탈출하여 운좋게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요소이자 체계가 그 구성원을 불구로 만드는 상처의 징후이기도 한 것이다.”. ?계몽의 변증법?, 문예출판사, p. 241.


이런 변증법과는 달리 70년대 푸코의 대부분의 저작은 개인화를 단지 권력의 테크놀러지의 효과로서만 바라본다. 그리고 나서 후기 저작에 이르면 그는 놀랍게도 자아에 대한 개인적 가꾸기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로 이동한다. 그러나 이들 저작에서 삶의 자의적인 스타일화에 대한 옹호로 나타난 것은 ?계몽의 변증법?에서 묘사된 상황을 더욱 쉽게 강화시키는 것일 뿐이었다. 

“사이비-개인성이 만연되어 있다. 규범화된 재즈 즉흥 연주에서부터 자기의 원조성을 증명하기 위해 눈위로 머리를 둘둘 감아올린 유명한 영화배우에 이르기까지. 개인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매우 확고해서 그것으로만 받아들여지는 우연적인 세부사항을 짓밟으려는 일반성의 권력에 다름아니다.”

이런 결과의 가능성은 “윤리와 다른 사회적이거나 경제적이거나 정치적 구조 간의 분석저이거나 필연적인 연계라는 관념”을 푸코가 공격한다는 사실을 통해서 더욱 강화된다. 
나아가 푸코의 개념화가 지닌 문제의 특징은 존재의 미학에 관한 그의 혁신에서 미학적인 것에 대한 푸코의 개념 내용이 무엇인가를 연구함으로써 조망될 수 있다. 우선 이 용어가 고대의 윤리적 코드에 적용될 때에는 분명 시대착오적인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푸코 스스로 명확히 말하듯이, 이 코드는 권력과 위신이라는 사회적 관계의 결합nexus 속에서 구현된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여기에서는 그 어느 곳에서도 미학의 근대적 자율성은 보이지 않는다. 나아가 존재의 마학의 가능성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미학이 그것의 특정성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을 기술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브너(Rudiger Bubner)가 주장하듯이 

“우리가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생활-세계의 친밀성은 미학적 효과의 결여가 동시에 미학적 가능성의 결여일 정도로까지 미학적 효과의 저장고이다. 우리는 사물에 대한 우리의 일상적인 견해와는 달리 편안함, 소외, 새로운 반성, 충만한 조명, 순수한 만족을 경험한다. 이것들을 발생시킨 것은 예술적 현상들이기 때문에 만일 이러한 것들이 사라진다면, 허구조차도 무감각한 것으로 될 것이다.”

이 주장은 심층적 자아에 대한 푸코의 비판이 현대 문화에 대한 신보수주의적 비판과 갖는 기이한 관계를 보여준다. 한편으로 그는 주체성과 본래성에 대한 숭배를 비난하면서도 동시에 그의 해법은 예술과 인생간의 경계선을 부셔버릴 것을 함축하며, 신보수주의자들에게는 전복적이고 사회적으로 파괴적인 것인냥 이해되는 경쟁과 성취를 우선적으로 지향하지 않는 생활방식의 활성화를 내포한다. 
후기 푸코가 권력에 대한 저항의 기초로서 불러들이고 또한 자기-창조의 자유로서 요청하는 자유의 본성과 관계된 결코 회피될 수 없는 마지막 문제가 있다. 자유 개념의 도입은 자율성이라는 환상을 가진 주체란 실상 권력과 담론의 구성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론화했던 초기 저작과의 돌연한 단절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점에도 불구하고 푸코는 칸트의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글에서 ‘자율적 주체로서의 우리의 구성’에 대해 말하면서 그의 관심은 ‘반성성의 형식들 간의 관계 - 자아에 대한 자아의 관계 - 에 대한 분석이며 따라서 반성성과 진리의 담론간의 관계, 합리성의 형태들과 지식의 효과 간의 관계를 분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주체성의 규정적 속성으로서의 반성성에 대한 이러한 인정은 푸코의 후기 저작에서 전반적으로 탐구되지 못한 채 남겨짐으로 해서 엄청난 문제를 야기시킨다. 
여기에서는 이 중 한가지만을 언급하도록 하겠다. 자아-구성에 관한 반성적 설명이 가진 명백한 역설은, 자아가 자신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이미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후기-칸트적 관념론에서 표면화되며 피히테가 열성적으로 씨름하던 것이다. 피히테에게 자아란 스스로 자리잡는self-positing 행위로서 존재하야만 하는 것이다. 스스로 자리잡는 행위란 스스로를 행동으로서 자리잡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아를 이렇게 실체나 형식적 통일성 대신 행위로 개념화하는 것은 두 가지 중요한 결과를 낳는다. 첫째, 대상 세계에 대처하기 위해 고안된 우리의 언어는 자기-깨달음의 구조를 설명해야할 과제에 직면하게 될 때 문제성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피히테에게 언어의 근본적 정향은 객관성을 향하는 것이고, 바로 이런 이유 떄문에 그는 (사실Tatsache과는 대립된) 행동Tathandlung이라는 신조어를 자아의 활동성의 ‘소여성giveness’을 묘사하기 위해 끌어들인다. 다시 말해 주체성에의 접근의 난점이라는 문제가 시작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이지 단순하 권력의 구성 때문이 아닌 것이다. 두번째, 자아의 이러한 활동성, 그리고 모든 객관적 제약으로부터 자아의 경향적 해제가 도덕성의 원칙이 된다. 
대조적으로 푸코의 다툼은 윤리적 자아-구성이 반성적 매개에서 작동하지만 또한 동시에 이러한 매개 자체가 윤리적인 적합성을 갖는다는 점은 부인하고 싶어한다. 그것은 ‘진리 게임’의 장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푸코의 후기 정식화 대부분은 이런 부인과 모순된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칸트에 관한 논문에서 인간주의에 반대하는 그의 주장을 근본적으로 인간 존재라는 개념화로 고정시킨다. 

“인간주의라 불리는 것은 항상 종교, 과학, 또는 정치로부터 빌려온 인간에 관한 특정한 개념화에 기대야만 했었다. 인간주의는 인간 개념이 결국에는 의지하고야 말 바로 이 개념을 색칠하고 정당화하는데 기여해 왔던 것이다.”

이때까지 푸코는 모든 역사적 제도들과 실천들의 우발성과 “우리의 자율성 내에서 비판과 우리 자신의 영원한 창조라는 원칙”을 자각하자는 것에는 반대한다. 심지어 최후의 인터뷰에서도 푸코는 자신의 역할이란 “사람들에게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유롭다는 것을, 또 사람들이 진리의 증거로서 받아들인 몇몇 주장은 실상 역사의 어떤 특정한 순간에 세워졌던 것임을, 그리고 이렇게 증거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은 비판될 수 있고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단 이러한 이동을 시작하자, 진실하거나 거짓된 자기-관계의 물음에 관한 윤리적 관련성이 더 이상 회피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자아가 자기 자신의 자율성,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의 활동성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아마도 푸코는 정신분석학자들이 제기한 활동성에 관한 특정 해석이라든가 ?계몽의 변증법?에서 표현된 - 자연의 강제로부터의 해방과 동시에 이것의 영속화 - 그런 해석을 부정할 것이다. 그러나 생의 마지막에 푸코는 더 이상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의 자기-이해의 구성분자가 아니라면 적어도 자기-오인으로부터의 우리의 해방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더 이상 회피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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