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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훌륭한 상담자 [게리 콜린스]

by Casey,Riley 2023.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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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훌륭한 상담자

 
  (p7)
  @[  (저자의 한국어판 서문) (pp7--9)

  "훌륭한 상담자"의 한국어판을 읽고 있는 여러분에게 별도로 인사의 말씀을 
드릴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생명의 말씀사에 감사를 드린다.
  나는 몇 해 전에 신약성경이 제자를 삼는 문제를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전도와 예배, 기도 그리고 영적 
성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들은 서로 돕는 일의 중요성을 또한 강조했다. 
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고 심리학자로서, 나는 사람을 돕는 일이 제자를 
삼는 사역의 중요한 부분이며 따라서 주님의 지상명령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이들에 의해 간과되어서는 안 될 영역임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많은 기도와 
생각 끝에 나는 여러분이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책을 쓰게 되었다. 고맙게도 
우리 주님께서는 이 책이 수개 국어로 번역되도록 허락하셔서 이를 축복해 
주셨다.

  한국어 번역판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자연히 나의 마음은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의 추억으로 되돌아간다. 여러분의 현대식 건물과 선진된 기술과 공업 
생산성에 얼마나 깊은 감명을 받았는지 모른다. 한국인의 온정과 가는 곳마다 
내게 베풀어졌던 뜨거운 환대와 순(p8)수한 친절은 너무나 인상적인 것이었다. 
여러분의 풍부한 문화 유산과 화려한 예술 그리고 김치(나의 북아메리카적인 
미각에 김치가 그리 매운 것은 아니었다)를 포함한 갖가지 놀랄 만한 음식을 
즐기다 보니 나의 방한 기간은 너무나 빨리 지나가고 말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러 교회들이 보여준 생동감과 내가 자주 
목도했던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헌신이었다. 한국을 방문하기 전에 여러분의 
나라에 대해 읽긴 했지만, 이와 같은 독서는 역시 내가 직접 한국인들과 
어울리면서 경험했던 한국의 아름다움과 영적인 깊이와 따뜻한 감정을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나의 여행이 가져다 준 또 하나의 기대하지 못했던 즐거움은 본서의 역자 
정동섭씨와 계속 접촉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나의 방한 중 줄곧 나의 
통역과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 나는 그의 가정에 손님으로 초대를 받았고 그의 
가족을 만났었다. 또한 우리는 장시간에 걸쳐 많은 것을 함께 상의했었다. 
김포 공항에서 비행기에 오르려 할 때, 나는 이미 따뜻한 나의 친구가 되어 
있는 존경받는 그리스도인 형제에게 작별을 고하는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본서의 역자는 뛰어난 영어 구사 능력을 지니고 있다. 나의 책이 내가 
잘 아는 형제에 의해 한국어로 번역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특권처럼 생각하고 
있다.

  귀국(귀할 귀, 나라 국)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여러분이 다른 
나라로부터의 침략의 가능성에 대해 수시로 관심을 써야 하는 지역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자주 상기했다. 여러분은 인생이 언제나 안정된 것만은 아니며 
스트레스나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며 생활하고 있다. 나는 
한 방문객으로서 하나님을 의뢰하는 여러분의 자세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이 세상은 우리의 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p9)웠다.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돌아오셔서 여러 나라에 속한 우리들을 
자기와 함께 있도록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하셨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들로서 그리스도를 바라본다. 
  그러나 지상에 남아 있는 동안 우리는 사람을 도와주는 상담자(people 
helper)로서의 특권과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사랑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서로 
권면하고 서로 돌아보고 서로의 짐을 져 주어야 한다. 이 책은 서로 돕는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실제적인 지침을 여러분에게 전하기 위해 쓰여졌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동포들을 통해 나의 삶에 영향을 미쳤듯이, 우리 
하나님께서 보다 훌륭한 상담자가 되기 위해 이 책을 손에 잡은 여러분을 돕는 
데 사용해 주시기를 기도한다. 

  일리노이주, 트리니티 신학대학에서
            게리 콜린스 
  (p11)
  @[  (저자 서문) (pp11--15)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을 돕는 것은 모든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심리학자와 정신병 의사, 사회 사업가 그리고 기타 전문가들은 이 분야에 
특별한 식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우리는 모두가 거의 
매일같이 상담에 참여하고 있다. 위기의 단계를 거치는 우리의 자녀들을 
선도한다든가, 상을 당해 슬픔에 잠겨 있는 이웃을 상담한다든가, 10 대의 
소년에게 이성 교제에 대해 충고해 준다든가, 말을 안 듣는 아들이나 
지진아(더디다^5,23^늦다 지, 나아갈 진, 아이 아)를 둔 친척이 문제를 털어 
놓을 때 들어준다든가, 알콜 중독자의 가족을 위로해 준다든가, 직장의 어려운 
상황에 적응하도록 동료를 도와 준다든가, 의심이 많은 시기의 젊은 
그리스도인을 인도해 주는 일등이 모든 것은 우리가 의식하든 못하든간에 
상담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들은 일반 평신도들에 의해서 
(그들이 스스로 자격이 있다고 느끼든 없다고 느끼든간에) 효과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설령 모든 사람의 문제를 다 다루어 줄 수 있을 만큼 전문적인 상담자나 
목회상담자의 수효가 충분하다 하더라도 상당수의 사람들은 자기 문제를 
오히려 이웃이나 친구와 상의하는 쪽을 택할 것이다. 친구들은 가까이 있고 
상담료(돈)를 요구하지 않는다. 또(p12)한 "상담자"라는 근엄한 호칭으로 
통하는 낯선 사람보다는 친구에게 털어놓고 얘기하기가 더 쉽기 때문이다. 
전문인이 아닌 상담자들은 훈련을 거의, 아니면 전혀 안 받았을지도 모르지만 
이들은 중요한 영양을 미치고 있으며 정신 건강 운동의 최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다.
  지금까지 크리스천 평신도 상담자를 돕기 위하여 쓰여진 책은 별로 
없었다(평신도 상담자를 심리학 계통의 저서에서는 전문직 자격 취득 요건을 
아직 갖추지 못한 사람이라 하여 보조 상담자'paraprofessional'라고 부른다). 
교회가 다른 사람에게 전도의 손을 뻗치는 데 있어서 상담이 중요한 부분을 
담당할 수 있으며 또 담당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책도 거의 없었다. 몇 
해 전에 우리는 전도가 목사들이나 빌리 그래함(Billly Graham)만이 책임질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전도는 교회지도자들에 의해서 훈련된 
평신도들이 담당해야 할 임무임을 보여주는 책들이 쓰여지기 시작했다. 이제 
상담의 영역에서도 같은 전환이 이루어져야 할 때가 왔다. 비전문가 특히 
평신도 그리스도들이, 위로와 우정 그리고 상담을 원하는 사람들의 필요에 
응하는데 있어서 더 많은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사람을 돕는 일은 전문가나 
바쁜 목사님들에게만 내맡길 일이 아니다.

  기독교 상담(Christian counseling)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토대로 해서 
이루어져야 하며, 예수께서 모든 나라로 제자를 삼으라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명령하셨던 지상명령(Great Commission)의 취지와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제이다. 제자 훈련의 개념은 사람을 돕는 행위와 
너무나 밀접하게 연관이 되기 때문에 본서는 제자 훈련이라는 주요 주제를 
먼저 다루고 있다. 이 말은 유능한 상담자는 심리학이나 정신 병리학 또는 
다른 돕는 직종의 기술을 무시한다는 말이 아니다. 이는 또한 책 한 권을 
읽(p13)음으로 사람을 돕는 법을 배울 수 있다거나, 우리 모두가 똑같이 
효과적인 상담을 할 수 있다거나, 아니면 우리 각자가 똑같은 방법으로 
상담하리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가 특이한 재질과 
버릇 그리고 태도를 지니고 있는 서로 다른 인격체들이다. 이러한 개성을 눌려 
버릴 필요는 없다. 오히려 남을 도우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우리 각자를 보다 
효과적인 상담자로 만들고 나아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스스로를 보다 민감하게 
만들 수 있는 방향으로 각자의 특성을 활용되어야 한다. 

  우리는 본서에서 전문적 상담, 목회 상담 그리고 평신도에 의한 상담을 
포함해서 상담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본서의 제 2 
부에서 필자가 중점적으로 다룰 내용이다. 그러나 본서의 주목적은 변화하고 
있는 학문분야(심리학)를 검토하거나 늘어나고 있는 상담에 대한 저술 목록에 
또 한 권의 책을 추가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주로 목표하는 바는 
(제 1 부에 제시한 대로) 그리스도인들이 문제가 있는 친척이나 친구, 동료 
교인 그리고 기타 다른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도우려고 할 때 그들이 필요로 
하는 실제적인 지침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본인은 직업적으로 상담하는 전문 
상담가들을 격하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며 고도의 훈련을 받은 전문 상담가는 
필요 없다는 의견을 제시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 자신도 전문적인 상담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다. 나는 동료 상담가들의 사역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또한 (나의 동료들 중 여러 사람이 공감하는 대로) 훈련을 거의 받지 
않았거나 전혀 받지 않은 분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효과적인 상담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책은 이런 분들이^56,36^그리고 당신이^36,23^보다 
능률적으로 이 임무를 수행하도록 돕기 위해서 쓰여진 것이다. 
  다른 기술이 다 그렇듯이, 사람을 돕는 일도 훈련하는 만큼 향(p14)상하게 
마련이다. 우리는 윤리적인 이유 때문에, 실제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에게 
새로 습득된 상담 기술을 적용하는 데 스스로 삼가고 자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상담을 처음 시작하는 분들은 새로 나타나는 기술을 그룹 안에서 
상호간에 써 보며 서로 격려하는 가운데 배우는 것을 권하고 싶다. 이 
학습과정을 돕기 위한 교재로서 상담자 성장 교재(People Helper Growth 
Book)가 이 책과 병용하여 쓸 수 있도록 고안되어 교회와 교육 기관에서의 
실험 과정을 거쳐 출판되었다. 

  몇 해 전 정부에서 후원하여 실시한 바 있는 한 연구 조사서는, 사람들이 
개인적인 문제가 있을 때 그들 중 28%만이 전문적인 상담자나 상담소를 
찾아간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약 29%가 가정 의사를 찾아 상의했고 42%가 
목회자들에게 도움을 구했다. 의사들이 과로에 시달리고 목사들이 수많은 면담 
요청과 빠듯한 일정으로 정신을 못 차리게 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의사와 목회자들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게 됨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수만명의 사람들은 지난 여러 세기에 걸쳐 그들이 해왔던 것처럼 친구들을 
찾아 격려와 충고를 구하고 있다.
  정부의 연구 조사서는 "정신 건강 원리와 실제에 대해 전혀 훈련을 받지 
못했거나 부분적인 훈련을 받은 수많은 사람들이^56,36^성직자, 가정 의사, 
교사(평신도를 포함한) 기타 다른 사람들^36,23^이미 전문적인 요원이 부족한 
가운데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이들을 도우며 치료하려고 노력하고 
있다^5,5,5^ 단기 과정이나 실무경험을 통한 어느 정도의 훈련을 거친다면 
이런 사람들은 정신 건강 상담원으로서의 기술을 충분히 구비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결론을 맺고 있다. 신학 교육과 기타 지도자 양성 프로그램이 
이미 목회 상담자 훈련에 책임을 담당하고 있다. 이제 평신도들이 보다 나은 
상담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을 도와줄 때가 왔다. 이것은 상담 전문(p15)가들이 
감당해야 할 책임이며 본서가 목적하는 바이기도 하다.

  나의 아내 줄리(Julie)를 비롯해서 많은 분들이 이 책의 발전 과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도움을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래리 
톤퀴스트(Larry Tornquist), 자네트 푸어(Janet Poore) 그리고 조젯 
새틀러(Georgette Sattler)가 원고를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와 
협력했다. 그리고 몇 명의 학생이 보조용 교재를 실험적으로 적용하는 일에 
나를 도왔다. 11장에 나오는 자료의 일부는 원래 크리스처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지에 기고 했던 것이고, 나머지 내용은 원래 
트리니티(Trinity) 신학교와 침례 신학 대학에서 강의와 세미나를 통해 
발표했던 것임을 밝혀 둔다. 본서의 내용에 갖가지로 영향을 미쳤던 분들은 
사실상 나에게 상담자가 되어 주었다. 이제 앞으로 읽으실 내용이 보다 유능한 
상담자가 되기를 원하는 여러분 각자에게 도움이 될 것을 진심으로 바라 마지 
않는다.

            게리 콜린스 
  (p19)
  @[  제1부 남을 돕는 일의 실천 (pp19--212)

  (p21)
  @[  1. 남을 돕는 일과 예수님의 지상명령 (pp21--36)

  예수께서는 지상을 떠나 하늘나라고 돌아가시기 직전, 갈릴리 산상에 모인 
적은 무리의 제자들에게 그의 유명한 명령을 하달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28:19-20). 예수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자기의 권능으로 함께할 것을 제자들에게 확약하고 나서 
그들을 떠나가셨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이들 남녀 추종자들은 이미 그의 제자가 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각자의 생애를 온저히 
그분에게 바친 사람들이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인하여 죄많은 
인간을 대속하는 죽음을 죽으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이들은 부분적이긴 
하지만 이해하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의 죄인 됨을 고백하고 부활하신 주님께 
완전히 자신을 (p22) 헌심했음에 틀림없다. 이와 같이 헌신된 무리에게 
예수께서는 두 가지 사명을 부여하셨다. 제자를 삼는 일에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목적으로 증거하는 일과 예수께서 그의 짧은 지상 생활 
중에 친히 가르치셨던 것을 남에게 가르치는 일이 포함되어 있었다. 

  예수께서는 모든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구주를 필요로 하는 존재라고 
가르치셨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타고난 국적이나 부모의 믿음이나 선행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사상을 공격하셨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영생을 소유하기를 원하거든 죄를 고백하고 자신의 전생애를 
그리스도의 다스리심에 맡길 필요가 있다고 선포하셨다. 더욱 중요한 것으로, 
예수께서는 자기의 죽음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것이며 원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밝히셨다는 점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메시지를 선포하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믿도록 권하고, 이들 새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고 성경 말씀으로 그들을 
가르치라고 훈계하셨던 것이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 그리고 요한을 제자가 되라고 
부르심으로 사역을 시작해서,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하심으로 전도를 마치셨다. 
그리고 전도를 시작해서 마치기까지, 사람들에게 제자가 되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예수께서는 갖가지 다른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접근하셨다. 주님께서는 때에 따라 가르치기도 하셨고 경청하기도 하셨으며 
전파하기도 하시고 논쟁을 벌이기도, 격려하기도 하시고 정죄하기도 하시며 
하나님의 참된 자녀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시범으로 보여주시기도 
하셨다. 아마도 예수께서는 똑같은 방법으로 두 사람을 접근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성격이나 각자의 필요 그리고 이해 (p23) 정도에 있어서 
사람마다 개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시고 상대방의 처지에 따라 
사람을 다루셨다. 
      -----------
    지상 명령의 범주

  지상 명령이 지리적으로 특정한 지역이나 역사적으로 특정한 시기에 
국한되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목사나 기타 교회 
지도자들과 같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것이라는 증거도 없다. 분명히 
예수께서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 세대에 자신의 모든 추종자들이 제자를 삼는 
일^56,36^전도하고 새 신자를 가르치는 일^36,23^에 참여할 것을 의도하셨음에 
틀림없다. 따라서 주님의 지상명령은 오늘날 우리가 남을 돕는 일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주장일까! 
  제자가 되고 제자를 삼는 일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라고 한다면, 분명히 
다른 사람을 제자화(아우 제, 아들 자, 되다 화)하는 일은 기독교 상담의 일부 
주요 목표가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논쟁이 대상이 될 수 있는 이 제안을 더 추구하기 전에 제자의 의미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는 것이 유익하리라고 본다. 넓은 의미에서 제자라는 
말은 "학생"(student) 또는 "생도"(learner)를 뜻한다. 그러나 성경에 사용된 
제자라는 말은 훨씬 더 강력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제자라는 용어는 우리가 
순종하고 따르는 지도자의 견해와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내가 가르치는 신학교에 입학하는 사람들은 나의 학생은 되지만 나의 제자는 
아니다. 그들은 나에게서 배우지만 순종하고 헌신하는 가운데서 나를 따르지는 
않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예수께서는 단순히 학생들을 가르칠 목적으로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자기를 따를 제자들을 만들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던 
것이다. 그는 남자와 여자(p24)를 불러 제자로 삼으면서 그의 생애를 
보내셨다. 예수님은 우리 각자에게 제자를 삼는 일에 자기의 본을 따르라고 
명하심으로(그래서 다른 사람을 제자로 삼으라고 암시하시고) 지상에서의 그의 
생애를 마치셨다.
    ----------------
      제자의 특징

  성경에 의하면 제자는 적어도 세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세 가지 
대가를 기꺼이 지불하도록 요구되고 있다. 또 제자에게는 세 가지 책임이 
주어져 있다. 이는 모두가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는 사람들에게 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는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남을 돕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순종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지니는 세 가지 특징을 먼저 살펴 보기로 하자. 
제자의 첫째 특징은 순종이다. 제자는 스승의 인격과 가르침에 헌신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이다. 드와이트 펜테코스트(J. Dwight Pentecost)는 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논한 적이 있다. 

  그리스도는 그의 권위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과 그의 인격에 대한 완전한 
헌신, 그의 말씀에 대한 확신 그리고 그의 보살핌에 대한 신뢰를 요구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맡기지 못하고 신회하지 못하고 믿지 않기 때문에 갖가지 
핑계를 대고 물러났다^5,5,5^ 제자들은 말씀의 진리 됨을 확신하고 자기들을 
가르쳐 주신 그 인격에 완전히 스스로를 내맡겼던 사람들이다. (p25) 만일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완전히 헌신하는데 이르지 못한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다. 그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 축에는 혹 들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 됨을 확신하는 자리에까지 
나아갔는지도 모근다. 그러나 그가 믿게 된 말씀의 주인공 되시는 그 
인격(Person)에 전적으로 자신을 드리기까지는, 신약성경적인 의미에서의 
제자는 아니다^5,5,5^ 단순히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것이 진리임을 찬성하고 
동조한다고 해서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앞에 
스스로를 내어 놓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도록 할 때 비로소 
제자가 되는 것이다.(주1. J. D. Pentecost, Design for Discipleship(Grand 
Rapids: Zondervan, 1971), pp. 46, 40, 55.)

  예수께서 친히 가르치신 말씀에 의하면, 우리는 그의 말씀 안에 거할 때에 
참으로 그의 제자가 될 수 있다(요 8:31).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생활에 
절대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도록 허용하는 것과 생활의 모든 국면이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되도록 부단히 노력하는 것을 암시한다.

    사랑
  제자의 두 번째 특징은 사랑이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께서 
요한복음 13:34에 하신 말씀이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 프란시스 쉐퍼(Francis Schaeffer)는 
그의 소책자에서 사랑을 (p26) "그리스도인의 표지"(mark of a 
Christian)라고 부르고 있다.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지니는 
특이하면서도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리고 이것은 상담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기도 하다. 
  사도 요한은 그의 첫째 편지를 쓸 때, 그의 독자들 중에 참된 그리스도인과 
거짓된 그리스도인을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들을 도와줄 생각으로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인은 사랑으로 
특징지워지는 사람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아^36^예 믿는 
사람이 아닌지도 모른다고 요한은 말하고 있다(요일 4:7-11). 모든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적인 제자가 되겠다고 나선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적어도 어느 정도 사랑이 있는 사람으로 특징지워지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랑하지 않고도 진실되이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열매맺음
  제자의 세 번째 특징은 열매를 맺는 것이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8). 
예수님의 말씀이다. 
  우리는 성공 지향적인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 다 성공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 대다수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개인적인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제자가 
그리스도에게 꾸준히 붙어 있으면서 그 안에 거하고, 자신이 능력에 의지해서 
자신의 계획을 밀고 나가는 생활을 지양하지 않는 한 이 모든 노력은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할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일러 주셨다. 예수께서는 과실을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를 예로 들면서 이런 나뭇가지는 잘라서 불에 (p27) 태워 
버리는 것이 최상책이라고 말씀하셨다.
  네비게이토 선교회(the Navigators)의 월터 헨리쉔(Walter Henrichsen)은, 
어느 날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사람의 자기 중심적인 일을 모두 멸하시리라는 
것(벧후 3:10)을 처음 깨달았을 때의 반응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세우려고 계획했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모조리 부수어 버린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릅니다!^5,5,5^ 이 사실 앞에 
나는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5,5,5^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가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태워 버리겠다고 이미 말씀하신 것을 
세우려고 나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주2, W. A. Henrichsen, Disciples Are Made-Not 
Born(Wheaton, Illinois; Victor Books, 1974), p.153)
  그래서 헨리쉔은 성경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께서 결코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것이 적어도 두 가지가 있음을 발견했다. 즉 하나님의 말씀(사 
40:8)과 하나님의 백성(요 5:28, 29)이 그것이다. "영원한 것은 
이외에도^56,36^하나님, 천사들, 사랑과 같은 미덕 등^36,23^여러가지가 
있지만, 나는 영속적인 것 중에서 내가 붙들 수 있으며 내 생애와 교환할 수 
있는 것을 원했다. 삶의 목표를 설정하는 데 있어서 나는 사람과 하나님의 
마씀에 자신을 바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따라오셔서 그들을 
태워 버리지 않으시라는 것을 확신했다." (주3. Ibid.,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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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가 치러야 할 대가

  그러나 제자가 되려면 몇 가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본회퍼(p28) 
(Bonhoeffer)는 이 주제만을 전문적으로 다룬 책을 쓴 적이 있다.(주4, D. 
Bonhoeffer, The Cost of Discipleship(New York: Macmillan, 1937). 
그리고 성경은 제자도(discipleship, 아우 제, 아들 자, 길 도)가 값싼 것이 
아님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자기 뜻에 반해서 제자가 
되도록 선발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대가를 지불하려 
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가장 가까운 
관계(눅 14:25, 26), 우리의 개인적인 포부(눅 9:23) 그리고 우리의 소유(눅 
14:33)까지 포기해야함을 의미한다. 

    개인적인 관계들
  먼저 개인적으로 맺고 있는 관계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예수께서는 결코 
가정을 깨뜨리신 적이 없다. 오히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부모를 공경하고, 
배우자를 사랑하고, 자녀를 가르치라고 훈계하셨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와 
맺은 관계는 우리의 가정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어떤 남편과 
아버지들은 이 말씀을, 나머지 식구들이 스스로 자활책을 강구하도록 가정을 
버려 두고 자신은 "주의 일"을 하러 나서도 된다는 뜻으로 해석해 왔다. 
이러한 논리를 펴는 사람들은, 가정을 이루고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책임을 
수행하는 것도 교회를 돌보고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집사로 봉사하는 것 못지 
않은 주님의 일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정, 식구들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그 책임을 우리에게 물으실 것이다. 그러나 
우선 순위상으로 볼 때 우리는 우리으 삶에서 가정보다도 그리스도를 마땅히 
우위에 모셔야 할 것이다.

  (p29)
  개인적인 포부
  우리가 갖고 있는 개인적인 포부를 뒤로 제쳐 놓는 것이 더욱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누가복음 9장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5,000 명을 먹이시는 
얘기를 읽게 되는데 이때 제자들은 틀림없이 무엇인가 매우 성공적인 일에 
참여하고 있다는 기분에 들떠 있었을 것이다. 바로 이때 예수께서는 제자가 
되는 것은 자신(개인의 포부까지를 포함해서)을 부인하고 십자가(낮은 신분을 
상징)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고 선포하셨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제자가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을 허용하신다. 그리고 
제자는 종종 개인적인 목표를 성취할 때도 있다. 그러나 제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생활에 원하시는 바를 따르기 위하여 자신의 개인적인 포부를 포기하거나 
바꿀 용의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것을 간절히 원했는데 그들의 생애를 주님께 
헌신했을 때 그들이 얻은 것은 엉뚱하게도 자기가 원치 않았던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을 종종 듣는다. "나는 뉴욕에서 사업가가 되기를 원했는데 
아프리카의 촌락에서 선교사 생활을 하고 있다"고 불만스럽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들이 암시하는 바는 그리스도께 대한 헌신은 제일 좋은 것이 아닌 
두 번째로 좋은 것으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제한된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받은 것이 그런 것처럼 생각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절대로 둘째로 좋은 것을 주시지 않는다. 우리가 개인적인 포부를 
주님께 양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에게 제일 좋은 것으로 주신다. 

    개인적인 소유
  셋째로, 제자가 되는 길은 우리의 소유를 바치도록 요구할지도 (p30) 
모른다. 부, 건강, 명예, 그리고 물질적인 재화^36,36^이런 것 중 어느 것도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종종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들을 우리에게 
풍성히 주신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생활의 최상 목표가 될 때 이런 소유는 
그릇된 것으로 전락한다. 
  최근 우리 내외는 다른 집을 구입할 목적으로 주택 시장을 둘러 본 적이 
있었다. 우리가 이때까지 살던 집은 이제 너무 협착해서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느 날 저녁 우리 내외는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 즉 난로, 접시 씻는 기계, 별도의 식당, 부속 차고 등등의 목록을 만들어 
보았다. 한 친구의 말을 인용하자면 "우리는 맥주 예산으로 샴페인 저택"을 
구하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 우리는 더 큰 집을 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자문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성공을 집의 규모나 자동차의 제조 회사나 모델에 따라 
측정하는 문화 척도 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소유의 
풍부함에 따라 개인적인 가치를 측정하는 사고 방식에 빠져들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의 가옥 탐색 경험은, 영원한 세상에 가면 사람의 가치가 
지상에서 그가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했느냐에 의해서 측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우리의 돈, 가옥, 자동차, 일손을 덜어주는 
기구들을 포함하는 일체의 소유물은 모두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온 것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 속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바쳐져야 하며, 궁극적으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다 나은 제자가 되도록 만들어 주고, 나아가서 다른 
사람을 보다 효과적으로 주님의 제자로 훈련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향에서 
쓰여져야 한다. 개인적인 소유를 늘리려고 분투 노력하는 생활이나 세속적인 
생활 스타일을 따르려는 태도는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순종하는데 있어서 
효율성을 감퇴시킬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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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31)
  제자의 생활에 따르는 책임

  이러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 외에도 제자가 되려면 다음의 세 가지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증거함
  첫째, 제자는 그리스도를 증거할 책임이 있다. 이것은 모든 불신자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바울의 본을 따라 믿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 몇몇을 그리스도께 인도할 목적으로(고전 9:19-22) 
불신자들과 함께할 공감대를 찾는 것을 뜻한다.

  제자의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분을 소개하는 
사역이다. 제자의 사역은 성령님께서 계시해 주신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사역이다. 제자의 사역은 하나님의 영께서 
하나님에 대하여 무지한 사람들에게 신령한 진리를 납득시킬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준다. 
  사람들은 그들이 무엇을 주거나 행하기 때문에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남에게 무엇인가를 전달하기 때문에 제자일 
수 있는 것이다^5,5,5^ 우리는 주로 두 가지 방법, 즉 우리의 생활과 우리의 
입술을 통하여 제자의 직분을 수행한다. 이 둘 중에 하나만으로는 불충분하고 
부족하다. 제자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은 제자의 생활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일에 의해서 확증되어야 한다. (주5, Pentecost, op. cit, p.104)

  (p32)
    다른 사람을 성숙에 이르도록 도와줌
  제자의 두 번째 책임은 다른 사람을 성숙하게 하는 일이다.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이에 대해 쓰고 있다(골 1:28, 29). 성령의 도구로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필요한 힘(능력)을 제공해 주시며, 다른 사람들을 영적으로 성숙한 
상태에까지 끌어올리도록 헌신된 사람들 가운데서 일하신다고 인정하고 있다. 
  타인을 성숙하도록 자극하는 데는 다섯 가지 방법이 있다고 제시한 분이 
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어떤 것인지 본을 보여줌으로써(살전 2:8), 
제자가 전도와 봉사를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막 6:7), 훈련 
기간동안 제자들의 행동을 평가함으로써(막 6:30), 가르치고 정보를 
제공함으로써(딤후 3:15-17) 그리고 솔직하게 제자도의 어려움을 타인에게 
직접 말해줌으로써(눅 14:25-33)이다. (주6, G. H. Harvey, S. R. Hoyt, and 
C. R. Stewart,  You the Discipler: A Strategy for Success(Wheaton, 
Illinois, Christian Service Brigade, n.d.), p19)
  이 다섯 가지 원칙은 우리가 타인을 제자 훈련시킬 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우리를 제자로 훈련시키는 분들에 의해서도 사용될 수 있다. 
아마도 이 원칙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기가 원하는 종류의 사람으로 만드는 
데 사용하시는 방법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제자 훈련자를 훈련시킴
  끝으로, 제자는 다른 제자 훈련자를 훈련시킬 책임이 있다. 다른 사람을 
제자로 삼기 위해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바울은 
디모테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를 매우 명확하게 밝(p33)혔다.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속에서 강하고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 2:1, 2). 제가 훈련은 이미 제가가 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제자화하고, 또 그 사람들이 제자 훈련자가 되는 하나의 증식 
과정이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인 다음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허송 세월하도록 의도하시지 않았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제자 
생활에 관련되는 모든 특징과 대가 그리고 책임을 지고 그의 제자가 될 것과 
나아가서 그리스도를 위해 더 많은 제자를 삼도록 의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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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 훈련과 사람을 돕는 일

  제자 훈련에 대한 강조는 신약성경의 가르침에 중심을 두며 그리스도인의 
생활 방식에 기초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상담이나 기타 남을 
돕는 일을 시작할 때에 이를 무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상담자는 
도움을 요하는 사람을 다룬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성경적인 메시지를 
지나치거나 회피하는 그리스도인 상담자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직접 그의 등을 
돌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제자 훈련은 기독교 상담자의 생활의 일부가 되어야 
하며, 이것은 그가 또 하나의 인간을 돕는 일을 할 때에 그의 최대 관심사 
중의 하나가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심각하게 다루는 상담자는 믿지 않는 상담자와 몇 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을 것이다. 첫째로, 믿는 상담자는 돕는 일을 상담자 자신의 
생활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상담자는 자신의 심리적인 
장애물과 상대방을 변화시키려는 (아마도 또 한 명의 상담자의 도움을 받아) 
시도를 스스로 검(p34)토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영적 상태에 대한 신앙적인 
자기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상담자는 자문할 것이다. "나는 참으로 
그리스도에게 헌신한 상태에 있는가? 나는 나의 생활에서 죄를 제거하려고 
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성장하는 일에 민감한가? 
그리고 다른 사람의 영적인 성장에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이런 질문에 모두 "아니오"라고 대답하고서도 우리는 남을 능히 도울 수 
있다. 성공적으로 상담 사업을 벌이고 있는 정신 요법사들이 매일같이 이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영적인 차원을 떠난 상담은 결국 허공을 치는 것이다. 
그런 상담은 상담자를 위하여 지상에 보화를 쌓을 수는 있겠으나, 도움을 받는 
내담자로 하여금 일체 영원에 대비한 준비를 시키지도 못하고 지상에서의 
풍성한 삶을 경험하도록 도와주지도 못한다. 이 풍성한 삶은 사람이 
그리스도께 헌신할 때에만 주어지는 것이다(요 10:10).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헌신과 그를 아는 
지식에서 내담자가 성장할 것을 희망한다. 이는 전도와 영적 성숙이 상담의 
유일한 목표가 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그리스도인들도 종종 
지나치는 극히 중요한 목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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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담의 세 가지 접근 방법

  아울러 그리스도인 상담자는 남을 돕는 과정 전체에 대해 다른 견해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오늘날 종종 사용되고 있는 세 가지 상담 
접근 방법을 한번 고려해 보라. 이들 가운데 한 가지만에 참으로 성경적이다. 
(주7, G. H. Harvey, personal communication, Georgia State University) 

  (p35)
    인본주의 및 세속적 접근 방법
  인본주의적이고 세속적인 상담 방법에서는 하나님께 일체 아무런 자리도 
양보하지 않는다. 이 접근 방법에서는 내담자가 자신의 개인적인 안녕을 
향상시킬 수 있는 목표를 향해 움직인다. 그리고 상담자는 이러한 목표 달성을 
돕기 위해 잠시 관여할 뿐이다.

    "하나님께서 돕는 자로 참여하는" 접근 방법
  이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께서 돕는 자로서(God as helper) 참여하는 접근 
방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상담이 있다. 여기서도 목표는 똑같지만 하나님은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상담자와 내담자의 일을 도와주는 보조자 내지는 
보조요법사로 간주된다.

    하나님 중심의 접근 방법
  이와 매우 다른 방법에 하나님 중심의 접근 방법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 접근 방법은 인류를 위해 궁극적인 목적을 갖고 계신 영원한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나님께서 상담 관계에 들어오셔서 
상담자를 자신의 도구로 사용하시어 내담자의 생활에 변화를 일으킨다. 
상담자는 이러한 변화가 내담자와 하나님 사이에 조화를 회복시키고, 그와 
타인의 관계를 향상시키고, 그의 내부 갈등을 해소시키고, 사람의 모든 지각을 
초월한 평안을 심어 주는 결과를 가져오기를 희망한다.
  남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제자는 이와 같은 하나님 중심의 접근 방법을 
지향하려고 노력한다.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그는 기꺼이 제자의 특징을 
개발하고, 대가를 지불하고, 책임을 지려고 한다. 이런 과정에서 제자는 
상담하는 사람들의 생활 속에 변화를 (p36) 일으키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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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적인 상담의 융통성

  우리에게 선교학이나 전도학 또는 설교학에 고루 통하는 한 가지 성경적인 
접근 방법이 없는 것처럼, 상담에 대한 한 가지 성경적인 접근 방법에 
도달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대개 상담 기술은 상담자의 인격과 
내담자가 안고 있는 문제의 성격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지만,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에 기초한 그리고 성경의 가르침과 분명히 일치하는 다양한 기술과 상담 
방법을 발굴하려는 노력을 그쳐서는 안 되겠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 기술을 
적용해 보고, 그 효과를 시험해 보아야겠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참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다"는 증거로서 주관적인 느낌을 쓰는 것보다는 주의 깊게 
개발된 평가 방법을 사용해서 객관성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적인 상담 접근 방법의 개발을 시작할 수 있는 곳은 성경이며, 
예수님께서 친히 주신 지상명령보다 더 기본적인 출발 장소는 없다. 이것이 
교회 건설을 위한 청사진이며, 따라서 상담을 통해 사람을 도움으로써 위대한 
생애와 인간 상호간의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기초가 된다. 
  (p37) 
  @[  2. 평신도 상담의 기본 원리 (pp37--52)

  크리스천 상담자는 어떠한 사람인가? 남을 돕는 일에 있어서 크리스천은 
불신자와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임하는가? 상담자가 남자든 여자든간에 그가 
성경을 심각하게 취급한다면, 그것이 상담자가 내담자를 다루는 방법에 영향을 
미치는가? 돕는 사람의 개인적인 성격차와 도움을 받는 사람의 특징 그리고 
돕는 상황에서 겪게 되는 갖가지 문제들을 고려하고 용납하는 성경적인 상담 
접근 방법이 있을 수 있는가? 크리스천 상담자는 세속적인 정신 요법사들이 
개발해서 효용성을 입증한 상담 이론이나 기술을 모두 내어 던져야만 하는가? 
상담으로 남을 돕는 일에 기독교만이 지니고 있는 특이한 접근 방법이 
있을까?
  이러한 의문들은 내가 몇 년 전에 임상 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어느 
대학교 상담소에 일하러 갔을 때에 가졌던 것이다. 나에게는 상담자로 교육 
과정을 밟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졸업증서가 있었다. 그러나 몇몇 권위있는 
대학원에서 받은 모든 훌류한 교육 배경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아무런 
자신감도 없었다. 그리(p38)스도인으로서 나는 그 동안에 배운 세속적인 
방법만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 이상으로 무엇인가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세속적인 접근 방법과는 다른 더 나은 방법이 어떤 것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주립대학 상담 센터에 고용되어 있던 나로서는 내담자들에게 종교에 
대하여 많은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다. 종교를 논하면서 동시에 그 일자리를 
지킬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나의 사무실을 
찾아오는, 이 외로움과 좌절감에 허덕이는 학생들에게 무엇인가 할 말을 
지니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대학원 시절에 과제물로 제출했던 논문을 종종 생각했다. 논문 제목은 
"정신 요법의 효용성 여부"였다. 나는 (상당히 많은 양의 출판된 연구물을 
검토한 후에) 상담은 별 효력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결론은 두말 할 
나위 없이 막 대학원을 나온 젊은 심리학자의 사기를 북돋워 주는 것이 못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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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신도간 상담의 일차적인 중요성

  그 상담 센터에서 한 해를 보내는 동안, 많은 사람들을 도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용주도 내가 하는 일에 만족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만족하지 
않았다. 상담소에서 수개원을 보낸 후 남을 가르치는 것이 나의 은사라는 
생각이 들어, 상담소를 떠나 급성장하는 어느 종합대학의 심리학과에서 강의를 
담당했다. 가르치는 일은 보람있는 경험이었으나 아직도 상담에 대해서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 때 스위스의 유명한 저작자 폴 토니어(Paul 
Tournier)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기독교 상담이 지니고 있는 
가능성을 보기 시작했다. 
  토니어는 겸손하고 신령한 사람으로서 상담과 그의 저서를 통(p39)해서 수만 
명을 도와준 사람이다. 우리가 토니어 박사의 결론에 다 공감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나는 이분에 대한 책을 쓰는 과정에서 이 분이야말로 효과적인 
상담을 하고 있는 분임을 알게 되었다. (주1, Gary R. Collins, The 
Christian Psychology of Paul Tournier(Grand Rapids: Baker, 1973)) 
사람을 도와주는 상담가로서, 그는 인정이 많은 분으로 성경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꾸준히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보여주면서 상담자마다 그 나름대로 
특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토니어는 성경적인 상담 체계를 공식적으로 
제창하지는 않았지만, 상담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경적인 접근 방법을 
개발했다.

  그러나 다른 저작자들도 역시 성경적이라고 주장하는 여러 가지 접근 방법을 
제창하였다. 이는 여러 사람들에게 혼동을 일으키고 있다. 사람들은 "어떻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 그와 같이 다양한 상담 체계를 모두가 성경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우리는 신학자와 성경을 
공부하는 학생들처럼 상담자들도 오류에 빠지기 쉬운 사람들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사물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본다. 헌신적인 장로교인이 
어떤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침례교인들과 의견을 달리 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들은 똑같은 그리스도인일 수 있다. 설교학(homiletics)이나 성경 
해석학(hermeneutics)은 똑같이 성경에 기초를 두고 있으면서도 그 접근 
방법을 달리 하고 있는데, 이렇게 서로 다른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각각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한 사람일 수 있다. 상담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차이점 때문에 천국에 갈 때까지는 어떤 사람도 완전한 상담 이론을 절대로 
개발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인정하고 우리는 서로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다.
      -----------------
  (p40)
    지상명령의 중요성

  그러나 지상에 머무는 동안 우리의 상담에서 성경을 진지하게 취급한다면 
우리는 지상명령을 도저히 무시할 수 없다. 그렇게 무시한다면 그것은 신약의 
가르침 중에 중요한 교리 하나를 제해 버리는 것이 될 것이다. 사실 
성경에서는 제자 훈련의 개념이 너무나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기독교 상담(Christian counseling)을 제자 훈련 상담(discipleship 
counseling)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재자 훈련 상담은 성경에 기초를 두고 이루어지는 접근 방법으로서 성경을 
시발점으로 하고 있다. 이는 지상명령(the Great Commission)의 중추적인 
중요성을 인식하고 타인을 제자로 삼는 일을 핵심으로 하는 상담관이다. 이 
상담관은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또한 심리학을 포함하는 과학을 
통해서도 그 분의 우주에 대한 진리를 계시하셨다고 믿는다. 따라서 
심리학상의 방법이나 기술들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과학적으로나 실용성 면에서 테스트를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검토되어야 한다. 제자 훈련 상담은 상담자의 
인격과 요령에 따라, 그리고 내담자(counselee)의 필요나 인격 또는 문제에 
따라 각기 다른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상담의 목표는 사람들을 각자의 
생활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기능하도록 도와주고, 영적, 심리적 그리고 인간 
상화간의 갈등으로부터 자유를 얻도록 도와주고, 자기 자신과 화평한 관계를 
누리고 하나님과 더 깊은 영교(신령 령, 사귈 교)를 누리도록 도와주고, 타인과 
원만한 대인 관계를 개발, 유지토록 도와주고,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의 잠재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도와주고,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일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남을 제자로 훈련시키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돕는 것이다. 
      -----------------
  (P41)
  평신도 상담의 기본 원리

  상담에 대한 제자 훈련식 접근 방법은 여섯 가지의 일반적인 원칙으로 
표현되는데, 나는 이를 "평신도 상담 원리"(people helping principles)라고 
부른다. 이 여섯 가지 원칙 중 셋은 이 장에서 다루고 나머지 원칙은 다음 
장에서 다룬다.

    평신도 상담 원리 1.
  어떠한 상담 관계에서든지, 상담자의 인격과 가치관과 태도 그리고 신앙이 
일차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를 쓰는 가운데 
개인적인 죄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바로 
잡으라"고 형제들에게 훈계하고 있다(갈 6:1). 분명 갈라디아인들 중에 죄에 
빠져 죄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 남녀에 대해 바울 
사도는 염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누가 그들을 돕게 되어 있었는가? "신령한 
너희"라고 했다. 
  갈라디아서 5장에서 우리는 신령한 그리스도인을 특징지우는 특성들의 
목록을 읽는다.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가 신령한 자의 특징으로 열거되어 있다(갈 5:22, 23). 신령한 사람은 
자기의 가치관을 예수님의 가르침과 일치시키는 사람이며(갈 5:24), 하나님의 
성령에 인도함을 받으며(25절), 자기 중심적이 아니며,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며, 허영에 덜떠 잘난 체하는 사람이 아니다(26절).
  또한 성경적인 상담자는 온유한 사람으로(갈 6:1) 내담자에게 확고한 태도를 
취하면서도, 동시에 남을 불쌍히 여길 줄 아는 인정스런 사람이다. 그는 깊은 
상담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유혹에 경각심을 갖고 스스로 조심하는 
사람으로(1절), 사람들과의 관계를 밀접하게 하는 사람(2절)이다. 사람들과 
긴밀한 관계를 갖는 (P42) 가운데 상담자는 그 관계가 초래하는 고통과 
불편을 감수하고 내담자의 짐을 한동안 져주기도 한다. 성경적인 상담자는 
그의 힘의 원천을 인식하기 때문에 겸손하며(3절) "나는 너보다 거룩하다"는 
식의 우월한 태도로 행동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를 살피되(4절) 현실적으로 
필요한 자기 성찰은 하지만 남과 비교하는 일을 피한다. 자기 생활에서 마땅히 
져야 할 짐을 질 줄 아는 책임감이 있으며(5절), 남을 도와 스스로 짐을 
지도록 협조하며 내담자에게서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다(6절). 성경적인 
상담자는 하나님을 의식하며 인간의 행동에 미치는 영적인 영향을 의식한다(7, 
8절). 그리고 그는 상담하는 일이 오래 걸리고 고되다 할지라도 오래 
참는다(9절). 그는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행할 책임을 인식하지만 "특히 
믿음의 식구들에게" 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10절).
  이것은 길고 상당히 위압적으로 느껴지는 목록이다. 좋은 상담자의 자격 
기준은 높은 것이기는 하지만 전혀 미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가까이 사귀면서 동행하는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이런 기준을 갖출 
수 있다. 그러나 헌신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모두가 훌륭한 상담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인 기술을 배우는 것이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사랑이라는 작은 낱말 하나로 요약할 수 있는 
특징들을 계발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평신도 상담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상담자와 내담자의 상담 관계에 대한 심리하계의 연구 조사 
결과와 그대로 일치하는 것이다. 이 조사는 효과적인 상담에 상담자의 
개인적인 특성이 그가 사용하는 방법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주2. R. R. Carkhuff, Helping and Human Relations: A Primer for 
Lay and Professional People, Volume I, Selection and Training(New 
York: Holt, Rinehart and Winston, 1969); C. B. Truax, "Therapist 
Empathy, Genuineness, and Warmth and Patient Therapeutic Outcome" 
in Journal of Consulting Psychology, vol. 30, 1966, pp.395--401; L. M. 
Brammer, The Helping Relationship: Process and Skill(Englewood 
Cliffs, New Jersey: Prentice-Hall, 1973). 여러 가지 연구 조사 결과에 
의(P43)하면 효과적인 상담자들이 성공하는 이유는 그들의 이론적인 배경이나 
요령(기술) 때문이라기보다는 감정 이입, 온화함, 순순함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감정 이입(Empathy)이라는 말은 독일어(einfulung)에서 유래한 것으로, 
"상대방과 함께 느낀다", "상대방의 감정에 동참한다"는 뜻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승용차의 뒷자석에 앉아서, 주행 속도를 줄일 필요가 있다고 느낄 
때에 발로 바닥을 힘주어 밟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운전사의 
상황 속으로 우리를 투입하면서 그와 함께 느끼는 것이다.
  상담에 있어서 효과적인 상담자는 내담자의 관점에서 문제를 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자문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이 사람은 이와 같이 
화가 나 있을까?" "당사자는 이 상황을 어떻게 볼까?" "내가 이 사람이라면 
어떻게 느낄까?" 우리는 상담자로서 자신의 객관적인 관점을 간직하되, 이와 
더불어 우리가 내담자의 관점에서 문제를 볼 수 있다면 더욱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이때 내담자에게 그가 어떻게 느끼고 있으며 
어떻게 상황을 보고 있는지를 우리가 이해한다고 알려 주는 것이 필요하다. 
반면에 내담자는 누군가가 진심으로 자기를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상호간의 이해는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에 
최대의 친화감을 가(p44)져다 준다.

  온화감(Warmth)은 보살핌이라는 말과 어느 정도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얼굴 표정, 말투(어조), 몸짓, 자세, 시선 맞추기 그리고 내담자의 
안위를 돌보는 행동에 의해서 보여 지는 친절과 배려를 말한다.
  온화함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당신과 당신의 행복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수많은 인간 태도에서처럼, 여기에서는 말보다 행동이 더 뚜렷하게 
의미를 전달한다. 진정으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상담자는 그의 관심을 
말로만 떠들썩하게 내세우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것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순수함(Genuineness)은 상담자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을 뜻한다. 
남자든 여자든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솔직해야 하며 거짓되거나 진실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말이나 행동은 피해야 한다. 한 저술가의 견해에 
의하면(주3. Ibid., Brammer), 참으로 순수한 사람은 자연스러운 사람이다. 
그러나 충동적이거나 남을 멸시하지 않고, 그의 가치관이나 태도에 일관성이 
있고, 방어적이 아니며, 자신의 감정을 의식하되 자신과 자신의 감정을 기꺼이 
나누려고 하는 사람이다.
  예수께서는 감정 이입과 따뜻함과 순수함을 함께 보여 주셨다. 성공적인 
크리스천 상담자도 마찬가지의 태도를 지녀야 한다. 그러나 이 중 어떤 것도 
지나치게 나타내면 안 된다. 너무나 많은 감정 이입이 이루어지면 우리는 
객관성을 상실할 것이며, 너무 지나친 온정을 베풀면 내담자가 질식할 것처럼 
느낄 가능성이 있고, 순수성이 지나치면 내담자의 진정한 필요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p45) 사이에 망각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상담자는 남을 상담하는 
동기를 자주 재검토해야 한다. 상담자로서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 자신의 
필요가 충족될 수도 있지만, 우리의 제일차적인 임무는, 문제와 갈등을 가지고 
고민하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다.

    평신도 상담 원리 2
  상담에는 내담자의 태도와 동기 그리고 도움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또한 
중요하다. 대부분의 상담자들은 고집이 세고, 비협조적이고, 자신의 행동을 
바꾸는데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을 도와주려고 애쓰다가 좌절감을 느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버릇 좀 고쳐달라"고 보냄을 받은 반항적인 십대나 "나는 결코 
호전될 수 없다"고 믿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을 상담하려면 먼저 그들의 
태도가 변화되는 것을 보아야 한다. 이런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도움을 줄 수가 없는 것이다. 내담자가 도움을 원치 않고,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변화되고 싶은 의욕이 없고, 상담자와 
상담 과정에 대하여 믿음이 없을 때, 성공적인 상담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으실 때 자유 의지를 부여하셨다. 그래서 본인의 뜻에 
반하여 불신자를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는 없는 것이다. 전도할 
때와 마찬가지로, 상담에서도 이와 같은 저항은 식별되어야 하며, 내담자가 
생활에 변화를 일으킴으로써 어떤 덕을 볼 수 있는지를 인식하도록 상담자는 
도와주어야 한다. 상담은 다른 사람이 변화되어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과정이다. 그러나 상담자와 내담자가 문제 해결을 놓고 협조할 때에야 이러한 
성장이 가능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내담자는 그가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 
세상에서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으며, 과거에 변화를 시도했을 때 무엇이 효과가 없었는지를 잘 
알고 있다. 상(p46)담자와 내담자는 이러한 정보를 함께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항상 완강한 태도로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겠다. 때때로 사람들은 그저 두려워하는 수가 
있다. 자기의 실패나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어떤 내담자는 자기가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할 때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 우리의 개인 생활에 대해 털어 놓는 것은 또한 위험 
부담이 따르는 일이다. 우리는 비판을 받거나 거절당할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내담자들은 자기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데 대하여 
좌절감과 자기 비판의 태도를 나타낸다. 이 모든 것이 상담 과정에 방해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상담자가 해야 할 일은 내담자가 "마음을 열고 털어 놓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최상의 결과를 위해, 내담자는 진정으로 변화를 갈망하고 상담자의 도움으로 
사태가 호전되리라는 기대를 갖고 상담 과정이 좀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기꺼이 
협력하겠다는 의향을 보여야 한다. 약간 달리 표현하면, 도움을 받으러 나올 
때 내담자가 희망과 기대를 갖고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예수께서는 그의 병 고치는 사역 가운데 이 원리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주님께서는 혈루증으로 고생하는 여인의 믿음을 칭송하시면서 그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셨고(막 5:34), 그들의 믿음을 인하여 두 명의 눈 먼 사람을 
고쳐주셨으며(마 9:29), 주님의 능력을 믿은 한 아버지의 믿음을 보시고 
간질병으로 고생하는 그 아들을 고쳐주셨다(마 9:23-27). 이와는 대조적으로 
예수께서 그의 고향에 가셨을 때는, 사람들이 그의 치유 능력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의 도움을 받은 사람이 별로 많지 않았다(마 13:58). 성경에 
묘사된 믿음은 희망이나 기대와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 두 (p47) 가지를 함께 
연관시키고 있다(히 11:1). 
  믿음, 소망(희망), 기대, 신앙, 동기 부여와 같은 용어는 때에 따라 서로 
바꿔가며 사용할 수도 있는 말들이다. 이러한 용어들은 한결같이 내담자가 
향상되기를 열망하고 더 좋아지리라고 생각하면 그는^56,36^때때로 상담자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고 그가 사용하는 기술(요령)에도 불구하고^36,23^더 
좋아진다는 관념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신도 상담 원리 3
  상담자가 내담자와 어떤 관계를 맺는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상담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곧 알게 되듯이, 성공적인 
상담에는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의 친화적인 관계가 필수적이다. 이러한 
친화(rapport)가 매우 필수적이라 생각되었던지 한 저술가는 상담을 두 사람 
또는 두 명 이상의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돕는 관계라고까지 묘사했다. 
(주4. Ibid). 때에 따라 우리는 이 관계를 상담, 면담, 만남, "친구와 친구 
사이의 후련한 대화" 등으로 표현한다.
  그런데 이상의 어떤 경우이든, 사람들은 일종의 관계 안에서 함께하면서 
하나 이상의 문제를 놓고 해결을 모색하는 것이다. 돕는 관계는 그 성격과 
깊이에 있어서 서로 다르다. 두사람이 함께 만날 때 그들은 각자의 성격, 
가치관, 태도, 불안, 필요, 감정, 인식, 능력 등을 버리고 만나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이 상담 관계에 그대로 따라 들어오는 것이며, 사람들이 서로 
다른 만큼 어떤 두 사람이 다른 데서 맺었던 관계와 대화를 똑같이 재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어(p48)떻게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는지 고려해 보라. 그 분은 모든 사람과 똑같은 관계를 맺지 않으셨다. 
니고데모와는 지성적인 관계를, 바리새인들과는 직접 대결하는 관계를, 
마리아와 마르다와는 좀 더 느긋한 관계를, 그리고 어린 아이들과는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관계를 가지셨다. 예수께서는 인격과 필요 그리고 이해의 정도 
면에서 각자가 지니고 있는 차이점을 인정하셨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 
차이에 따라 사람들을 대하셨다. 
  상담자들이 모든 내담자를 똑같은 방법으로 대하려 할 때, 그들은 내담자와 
좋은 친화 관계를 맺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사람은 모두 다 같다고 
생각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다 같지 아니하다. 이 
사실은 우리가 설정하는 관계나 우리가 사용하는 방법에서 똑같이 인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수께서는 서로 다른 방법으로 사람들을 대하셨다. 그분은 또한 상대하는 
개인 개인의 사정에 따라 깊이와 친밀도를 달리하셨다. 요한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였다. 그는 아마도 주님의 제일 가까운 친구였을 것이다. 
반면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었던 제자들로서 
특별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처럼 보인다. 이 세 명의 수제자만큼 
가깝지는 못했지만, 다른 사도들은 그리스도와 항상 같이 한 동료들로서, 
그리스도께서 떠나신 후에도 그의 일을 계속 수행하도록 선발된 사람들이었다. 
누가복음 10장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특별 훈련을 시켰던 70 명의 제자들에 
대하여 읽게 된다. 부활하신 후 예수께서는 500 명의 무리 앞에 나타나셨으며 
수천 명 앞에 서신 적도 있는데, 그들 중 많은 이들은 그리스도를 먼발치에서 
한 번 밖에 보지 못했을 것이다. 예수와 제자들의 친밀도는 다음의 도표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 도표설명: 예수를 중심으로 6개의 원이 퍼져 있음. 가까운 쪽부터 
친밀도의 정도를 말하고 있음. (묵자책 49쪽 참고.)

  (p49) 예수께서 한가운데 중앙에 계신다. 그리고 그 분의 제일 친한 
친구였던 요한이 1번에, 베드로^5,23^야고보^5,23^요한으로 이어지는 세 제자가 
그 다음으로 가깝고 (2), 그 다음이 12제자 (3), 그 다음이 70 명 (4), 다음이 
500 명 (5) 그리고 도표의 외곽에 그 외 많은 무리가 있다. (6)
  우리들 대부분도 다른 사람들과 이와 같은 관계를 맺고 있다. 어떤 사람은 
더 가깝고 다른 사람은 더 멀리 떨어져 있다. 우리는 때때로 상담이나 제자화 
과정에 있어서 항상 가까운 관계를 개발해야 한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이러한 관계는 깊거나, 별로 깊지 않거나 친밀도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선생이 그의 학생들과 가질 수 있는 친밀도의 차이를 한 번 
생각해 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나는, 나의 (p50) 학생과 
내담자들 중에서 주님을 섬길 제자를 삼아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들을 각각 다른 방법으로 접근한다. 나는 어떤 사람들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가까이한다. 도표의 중앙 1번에 내가 거의 매일같이 만나는 대학원 조교가 
있다. 그는 시간제로 나를 위해 일하면서, 내 강의 과정이나 연구 활동을 
도우며 내 감독하에서 공부한다. 때에 따라 우리는 함께 기도하고 함께 나누고 
점심을 같이한다. 때때로 그는 내가 가족과 함께 긴장을 풀고 쉴 때에, 이를 
지켜보기도 하고, 어떤 마감 날짜를 앞에 두고 중압감 아래서 일하는 것을 
보기도 한다. 우리는 그가 갖고 있는 갈등과 문제를 자유롭게 상의했으며 나도 
또한 나의 개인적인 염려와 갈등을 그에게 털어 놓았다. 여러 면에서 우리의 
관계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속에서 강하고 또 네가^5,5,5^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 2:1, 2)고 썼을 
당시에 가졌던 관계와 유사하다. 과거에 나는 가까운 곳에 있는 기독교 대학의 
기숙사에서 일하는 대학원 조교들을 가르친 적이 있었다. 상주하는 
"고문"으로서 이들은 내게서 배운 바를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일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교수인 나에게는 내가 제자화하고 있는 다른 학생들이 있다.(도표 
2번에 있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같이 나에게는 내가 가까운 관계를 맺고 
종종 만나는 몇 명의 학생들이 있다. 학과 진도를 놓고 나에게 조언을 듣는 
학생들은 도표 3번의 12제자에 해당될 것이다. 일주일에 두 차례 나는 이들 
남녀 학생들과 만난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서로 기도하며 그들 중 한 학생은 
내가 우리 집에서 운전해서 다녀올 수 있는 거리에서 강연하러 갈 때 항상 
나와 같이 한다. 매 학기마다 내 반에 등록하는 70여 명의 학생들과 내가 맺고 
있는 관계는 훨씬 덜 친밀하다. 우리는 10주 (p51) 동안 일주일에 몇 차례씩 
만난다. 그러다가 학습 과정이 끝나면 서로 각자의 길을 간다. 우리 학교의 
전체 학생과 나의 관계는 이보다 더 소원하다 할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교정에서 우연히 나를 만나거나 "예배" 시간에 내 얘기를 듣기는 하지만 
나와의 개인적인 접촉은 별로 없다.

  제자를 삼는 위치에 있는 우리들 각자는 여러 겹의 사람들에 의하여 
둘러싸여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소수의, 아마도 한 두명의 친구와 우리 
가족과는 매우 가깝다. 다른 사람들은 더 멀리 떨어져 있고, 어떤 이들은 
도표의 외곽에 있어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에 간혹 접할 뿐이다. 
주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향권 도표" 중앙부에 위치해 
있는 우리 각자가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한 제자가 되어 그에게 완전히 
헌신하고 우리 생활에 대한 그의 지시하심에 순종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상호 
대인 관계에 있어서^56,36^가르칠 때나 상담할 때, 부모 역할을 할 때, 아니 
우리 활동의 모든 영역에서^36,23^가까운 사람이나 먼 사람에게 손을 뻗쳐 
말과 행동으로 제자와 제자 훈련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면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제자의 생활은 쉽지 않다. 이러한 생활에는 그리스도께 대한 
헌신과 남에게 자신을 공개할 용의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융통성 있는 태도가 요구된다. 그러나 제자가 되고 남을 제자로 삼는 훈련자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인 모두의 책임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우리 각자의 원형 
도표의 중앙에서^56,36^우리가 있는 바로 그곳에서^36,23^시작된다.

  똑같은 원형 도표가 우리의 돕는 관계에 적용될 수 있다. 상담자가 반드시 
내담자의 제일 가까운 친구가 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상담은 분명히 우정을 
포함하는 관계일 수도 있다. 그러나 (p52) 상담은 주로 내담자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준다는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때에 따라 그 관계는 친근하고, 
친밀하며, 서로 감정과 염려와 필요를 나눌 정도로 매우 가까운 관계일지도 
모른다. 다른 경우에는 그 관계가 그리 깊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아마 
상담자와 내담자가 한 차례만 상면하거나 내담자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니면 비교적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만 간단히 대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상담자는 정신 건강에 대한 공개 강의를 함으로써 또는 유익한 
책을 저술함으로써 먼 거리에서 남을 도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무실에서 일대일로 대면해서 도울 수도 있고, 때로는 그룹내에서 도움을 줄 
수도 있고 또 어떤 때는 한 번도 얼굴을 보지 않은 사람들을 도와줄 수도 있는 
것이다.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는 어떤 의미에서 모두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모든 
돕는 관계는 관계된 사람들의 성격과 고려되는 문제의 성격에 따라, 의견 
교환의 깊이와 상담자와 상담을 받는 사람 사이의 심리적인 원근감에 따라 
달라진다. 상담은 돕는 과정이다. 그러나 돕는 행위는 관계를 수반한다. 관계가 
좋으면 좋을수록 상담은 더 성공적일 수 있다. 
  (p53)
  @[  3. 평신도 상담의 요령 (pp53--74)

  앞에서 밝힌 대로 효과적인 상담은 최소한 여섯 가지의 기본 원칙을 필요로 
한다. 이 중 세 가지는 이미 앞 장에서 다룬 바 있다. 첫째는, 감정이입과 
온화함과 순수함을 보여 주는 상담자가 있어야 한다. 둘째, 변화하고 싶은 
동기를 갖고 문제 해결을 위해 상담자와 협력하려는 자세를 갖춘 내담자가 
되어야 한다. 셋째로, 훌륭한 상담에는 (상담자와 내담자간의 가까운 정도는 좀 
달라도 좋으나) 사람들이 자신과 타인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보다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줄 목적으로 존재하는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가 
필요하다. 
  프로이드(Freud)와 현대의 많은 상담자들은 이상의 내용에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프로이드는 상담자의 기술에 상담의 역점을 두었는데 이는 올바른 
관찰이다. 훌륭한 상담에 필요한 것은 오직 온정과 사랑이 넘치는 두 사람이 
마찰이 없는 관계를 맺는 것 뿐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릇된 결론이 될 
것이다. 이는 기본적인 원리일 뿐, 성공적인 상담에는 더 많은 것이 관계된다. 
성공적인 (p54) 상담을 위해서는 훌륭한 상담자가 배우고 익히고 늘 가다듬는 
기술과 요령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상담에 "타고난 재능"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상담 절차에 대한 연구나 훈련도 없이 성공적인 상담을 
하고 있다. 그러나 훈련과 기술에 대한 이해를 더한다면 이런 이들도 남을 
돕는 관계에 더 효과적일 수 있는 것이다.
  상담자에게 필요한 기술 중 한 가지는 내담자가 어떻게 느끼고 있으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며 그 자신의 행동이 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인식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앞 장에서 서술하기 
시작한 여섯 가지 원리 중 네 번째 원리에 이르게 된다.

    평신도 상담 원리 4.
  상담은 내담자의 감정과 사고와 행동, 이 세 가지 모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세속적인 상담과 기독교적인 상담 방법을 보면, 감정이나 생각 또는 
행동에 역점을 두고 있는 상담학자가 많은데 비해 이 세 가지를 다 함께 
강조하는 이는 별로 없다. 예를 들어, 알버트 엘리스(Albert Ellis)의 합리적 
정서 요법(Rational Emotive Therapy)은 그 제목 자체에서는 생각과 느낌을 
언급하고 있으나, 그의 요법은 거의 전폭적으로 내담자의 생각만을 다루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칼 로저스(Carl Rogers)는 내담자의 느낌을 주로 
강조할 뿐 그의 지성 세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분석하려는 
시도는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또한 정신요법의 많은 접근 방법이 행동의 
변화를 강조하면서 내담자의 느낌과 생각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사고와 감정(느낌)을 얼마나 경시하는지 이들은 내담자가 자기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치료"가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p55) 성경을 살펴보면, 감정과 생각과 행동이 모두 똑같이 크고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감정적인 측면을 먼저 고려해 보자. 예수님 
자신이 적어도 두 차례 우셨고 때에 따라서는 화를 내기도 하셨다. 그는 
감정을 부인하지 않으셨고, 사람들이 그들의 감정을 표현한다고 정죄하신 적도 
없다. 분명히 예수님은 다른 사람의 감정에 민감하셨다.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슬퍼하던 어머니나, 자녀들을 데리고 주님을 뵈러 왔다가 지나치게 주님을 
감싸는 제자들에 의해 면담을 거부당했던 부모들에게 예수님은 민감한 반응을 
보이셨다. 상담 단계에 있어서 감정을 지나치게 강조해서도 안 되겠지만 
감정을 묵살하거나 부인하는것도 안 될 일이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면에서 
양단간에 어떠한 실수도 범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합리적인 사고를 더 강조하신 때가 있었다. 도마는 
의심이 많은 제자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지성적인 질문들을 합리적으로 
다루셨다. 주님은 도마를 무시하거나 믿음이 없다고 그를 비판하시지 않았다. 
오히려 제자들이 의심했을 때 예수님은 증거를 제공하셨다. 예수님의 부활 
후에 도마는 "나는 눈으로 보고 내 손으로 예수님의 손을 만져 보기 전에는 
믿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중에 만났을 때 주님은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 마찬가지로 세례 요한이 옥중에서 그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을 즈음에 
의심한다는 말을 듣고(마 11:2-6), 예수님은 요구된, 합리적인 사실을 
제공하셨다. 예수님은 수차례에 걸쳐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과 지성적인 
토론을 벌였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밤이 깊도록 계속 토론을 하는 중에 
니고데모와 변증법(apologetics)을 논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또한 죄와 죄된 행동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p56)지셨다. 
예수님은 간음 중에 잡혀온 여인을 보고 행동을 바꾸고 더 이상 죄를 범치 
말라고 말씀하셨다. 마리아에게는 지나치게 분주한 생활 방법을 바꾸라고 
이르셨고, 젊은 부자 관원에게는 좀 덜 이기적인 사람이 되라고 이르셨고, 
재산 다툼을 벌이던 두 형제를 보시고는 탐심을 자제하라고 이르셨다. 주님은 
그의 설교와 여러 개인과의 대화 가운데서 거듭 사람들의 죄로 가득 찬 자기 
중심적인 행동을 지적하시고 행동을 변화시킬 것을 권유하셨다.

  우리는 감정과 사고와 행동에 대한 강조를 사도행전과 신약의 모든 서신에서 
읽어 볼 수 있다. 믿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가르침이 
반복해서 나오지만, 감정과 사고를 무시할 정도로 행동을 강조하는 시사는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빌립보서 마지막 부분에 가서 바울 사도는 성도의 일상 생활에 대해 많은 
실제적인 충고를 하고 있다. 첫째로 감정을 다루면서, 그는 독자들에게 
기뻐하고 오래 참고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의 평안으로 안정하라고 훈계하고 
있다(빌 4:4-7). 그 다음에 생각이 강조되고 있다. 무엇에든지 참되며 
고상하고 옳으며 순결하며 사랑스러우며 영예로우며 덕스러우며 칭찬할 만한 
것들을 "생각하라"(빌 4:8)고 바울은 우리에게 훈계하고 있다. 끝으로, 행동이 
강조되고 있다. 우리는 배운 바를 실행하고, 바울처럼 자족하고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서 모든 것을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빌 4:9-13). 감정, 
생각, 행동 이 세 가지는 성경적으로 다 중요하다. 그리고 상담에는 이 세 
가지가 골고루 고려 되어야 한다. 다음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세 가지 
요소는 각각 다른 요소와 연결되어 있다. (주1. 이 도표는 Anderson and 
Anderson, The House Church(Nashville: Abingdon, 1975), p.35에 나와 
있다.).
  (p57) 예를 들어, 우리에게 감정적인 문제가 있으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영향을 받는다. 한 가지 부분만 강조하고 다른 두 부분을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 도표: 묵자책 57쪽 참고. (그림 생략)

    평신도 상담 원리 5.
  상담에는 다양한 상담 기술이 포함된다. 이 "기술"이란 용어는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내담자가 그의 문제를 서술할 때 주의 깊게 
경청하거나 주의 깊게 관찰하고 지혜롭게 질문을 던지는 것과 같은 
상담기술이다. 이는 상담에 있어서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이다. 
이는 상담자가 배울 수 있는 요령들이다. 
  최대한의 효과를 얻기 위해 상담은 또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적어도 
상담자에게는 이들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수 있겠는가 하는데 대하여 어떤 
구상이 있어야 한다. 이 목표를 향해 움직여 나가는 것을 우리는 상담의 
과정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상담 관계에 있어서 사람이 어느 
곳으로 나아가느냐는 문제이다.
  상담 기술을 서술한 여러 권의 책이 있다. 기술의 목록은 저자(p58)마다 
다르다. 그러나 대부분의 저자는 상담자가 또 다른 인간을 이해하고 돕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요령을 활용해야 한다는데 일치하고 있다.

  1. 경청한다.
  이것은 내담자에게 주의를 집중하고 눈과 눈이 마주치고, 편안한 자세, 
격려하는 표현의 사용("이해가 갑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등), 
탐색적인 반응의 주기적인 사용("계속하세요", "더 얘기해 보세요", "그리고 
나서 어떻게 됐습니까?" 등), 우리가 이해한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확인시켜 
주기 위해 중간 중간에 내담자가 한 말을 반복하는 것 등을 통해 꾸준히 
주의를 기울여 주는 것을 뜻한다.
  사람들의 내적인 인격과 문제를 완전히 아시면서도(요 2:25) 예수님은 
참을성 있게 경청하셨다(눅 24:13-24). 아마도 예수님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남과 나눌 수 있는 말로 표현하도록 하는 데 치유적인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계신지도 모른다(약 5:16). 경청하는 가운데 상담자인 우리는 
화를 내는 일이 없이, 내담자의 짐을 참으로 함께 나누기를 원하고 있음을 
주의 깊은 태도를 통해 보여 주어야 한다(갈 6:2; 약 1:19).
  들으려고 하지 않는 태도는 상담에 커다란 장애가 될 수 있다. 이것은 
상담에서뿐만 아니라 전도하는 데에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인이 언제나 
말하는 편이면 상대방의 개인적인 문제나 필요에 적당한 반응을 할 수가 없다. 
때에 따라 상대방이 그리스도에게 자신의 생애를 드리기 전에, 또는 신자로서 
더 성장하기 이전에,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나 상의하고 싶은 문제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상대방에게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상대방을 도와주겠다는 우리의 시도 자체가 무너질 위험이 있다. 
(주2. 지혜로운 왕 솔로몬은 잠언 18:13에서, 말하기 전에 경청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p59) 다음에 나오는 표에는 우리의 경청함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다 도움이 
되도록 할 수 있는 일반적인 제안들이 열거되어 있다. 이 목록을 읽는 데 
있어서 상대방이 말하는 것은 무엇이나 모조리 들어주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임무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상담자로서 우리의 임무는 내담자를 이해하는 
것이며 우리가 귀를 기울여 들어줌으로써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기를 
원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일이다. 그러나 상대방의 상세한 죄상을 이해하는 데 
전문적인 지식을 쌓는 것은 우리의 일이 아니다. 상담자의 편에서는 순진함과 
깨끗함을 유지하는 것이 마땅한 자세인 것이다(마 10:16). 그리고 때에 따라서 
우리는 "상황이 대체로 짐작이 가는 것 같습니다. 그 상황에 대해서는 더 
자세한 얘기를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네요"라고 말하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 성급하게 이런 말로 상대방의 진술을 차단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비록 그 얘기를 들음으로써 당신 스스로에게는 덕 될 것이 
없다 하더라도, 얘기의 흐름을 막음으로써 상담에 도움이 될 귀중한 정보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 경청을 위한 몇 가지 지침들(표 1  (주3, Masaki Kakitani, "Listening 
Evangelism"(unpublished manuscript presented to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Deerfield, Illinois, December 1973))
  --------------------------
  (p60)
  (경청을 위한 몇 가지 지침들) (pp60--62.)
  1. 귀를 기울일 준비를 하라.
  (1) 지식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문제에 대하여 읽어 보는 것은 이해력을 가지고 그리고 
비판적인 안목으로 경청할 수 있도록 도와 줄 것이다. 무슨 얘기를 경청할까를 
미리 안다면 더 잘 경청할 수 있다. 어려운 주제를 피하지 말라.
  (2) 신체적으로
  남의 말을 경청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 만큼, 일에 직면하기 전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라. 피곤함과 나른한 상태로 유도하는 지나치게 편안한 자세를 
취하지 말라.
  (3) 정신적으로
  ㄱ. 당신이 참으로 남의 얘기를 경청하기 원할 경우, 이것이 당신의 
경청하는 능률을 크게 진전시켜 주리라는 것을 인식하라.
  ㄴ. 귀를 기울여 경청함으로써 배우겠다고 결심하라. 다니엘 웹스터(Daniel 
Webster)는 지혜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음으로 배운 것이 책을 읽음으로 
배운 것보다 더 많다고 말한 적이 있다. 경청하는 것은 새로운 정보와 
아이디어를 얻는 최선의 방법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당신이 상대할 사람들에 
대하여 배우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하다.
  ㄷ. 정신 집중은 쉽지 않으며 경청하는 것은 연습과 단련을 요구한다는 것을 
인식하라.
  ㄹ.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무관심과 같은 것이며 이는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라.
  (p61) ㅁ. 서로의 말에 경청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배우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으라.
  ㅂ. 듣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덜 중요하다는 생각을 버려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또한 말할 줄 모르는 사람이기 쉽다.
  ㅅ. 당신이 경청하고 있는 아이디어가 지니고 있는 함축적인 의미를 이미 
충분히 잘 알고 있다고 가정하지 말라.
  2. 말하는 솜씨나 말투뿐만 아니라 내용을 판별하라. 우리는 종종 말하는 
사람을 바라보다가 듣는 내용보다 보는 것에 더 집중할 때가 있다. 우리는 
말하는 사람의 말과 표정, 몸짓 등에 똑같이 주의함으로써 말의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가 있다.
  3. 당신의 감정을 제어하라. 당신 자신의 정서적인 문제에 압도 당한 기분이 
들어 주의 깊게 경청하는 일을 중단하고 싶은 유  을 느낄 수도 있다. 당신이 
상대방을 싫어한다고 해서 경청하는 일을 멈추지 말라. 그가 하는 말을 참고 
들어주라.
  4. 방심을 저지하라. 우리는 듣는 것 뿐만 아니라 보고 생각하는 내용에 
의하여 마음이 분산될 수가 있다. 경청하는 일을 잘하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이러한 방심에 맞서 싸운다.
  5. 주의를 기울이라. 귀를 기울여 듣는 데는 주의가 필요하다. 상대방이 하는 
말에 관심을 갖도록 노력하라. 말하는 사람을 쳐다보라. 상대방이 남자든 
여자든 말하는 사람 쪽으로 몸을 기울이라. 
  6. 상대방이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당신이 더 빨리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에 
유의하라. 
  (1) 미리 앞서 생각하라.
  (2) 듣고 있는 내용을 숙고하라.
  (3) 다 들은 내용을 재검토해 보라.
  (p62) (4) 말 속에 숨은 뜻을 경청하라.
  7. 질문을 아껴서 쓸데없는 질문을 하지 말라. 특히 "왜 그러냐?"고 이유를 
묻는 일을 피하라. 
  8. 말을 중간에 막지 않도록 하라.
  9. 말하는 사람의 주제에서 이탈하지 말라.
  10. 당신의 의사 요지를 전달할 때 상대방이 쓴 표현을 사용하라.
  11. 설교하지 말라.
  12. 충고하는 일을 서두르지 말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충고를 원치 않으며 
들으면 즉시 이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13. 논쟁하지 말라. 논쟁을 폄으로써 내담자를 설득시키려고 노력하지 말라. 
당신이 논쟁조로 나오면 상대방은 자기가 원래 가지고 있던 신념을 굳히고 그 
주제에 대한 어떠한 변론에도 귀를 막는다. 논쟁에서 당신이 승자가 된다 해도 
당신은 친구를 잃게 된다. 논쟁에 지면 당신은 내담자의 존경을 상실한다. 
논쟁에 이기거나 져도 당신은 얻는 것이 없으며 내담자도 얻는 것이 없다. 
  14. 당신 자신의 호기심을 채울 목적으로 쓸데없는 사실을 계속 캐묻지 
말라. 당신의 목적은 스스로를 위해 정보를 입수하는 것이 아니다.
  --------------------------
  2. 유도한다.
  우리는 때로 내담자가 말을 하도록 유도하는 기술을 사용한다. 우리는 그가 
자신의 감정을 나누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 자신의 문제에 대하여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일을 하지 않았는지를 진술하기를 원한다.
  (p62) 처음 상담을 시도하는 상담자에게 조가비처럼 오므라들어서 입을 열지 
않으려고 하는 내담자보다 더 좌절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이럴 
때는 간단히 예, 아니오로 답할 수 없는 질문을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부모님에 대해서 좀 더 말씀해 주십시오", "부인과 말다툼을 할 
때 어떤 일로 발단이 되는지 예를 들어 말씀해 보시지요" 등)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상대방의 상황을 
우리가 아는 대로 요약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다음에 어떻게 
됐지요?" "거기서 어디로 가셨나요?" "이제 당신에게 어떤 (p63) 일이 따를 
것 같습니까?" 등 대화를 유도하는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심리학자들이 반사(reflecting)라고 부르는 기술을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반사는 내담자가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신선한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그 일로 기분이 상당히 좋아지셨던 것 같습니다", "그 분 때문에 화가 
단단히 나셨던 것 같군요!", "그 때 그 일로 인해 상당히 죄책감을 느끼고 
계신 것 같습니다"). 반사는 생각을 재진술하는 것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어느 날이었는지 자신이 안 선다는 말씀이지요?", "선생님의 행동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말씀이지요?"). 아니면 행동의 묘사를 포함할 수도 
있다("지금 보니 상당히 긴장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웃고 계시지만 속에는 
깊은 상처를 안고 계신 것 같습니다"). 상담자가 이 중에서 어떤 반응을 
보였든간에, 내담자가 이에 대해 반응할 수 있는 기회를 반드시 주어야 할 
것이다. 설령 상담자가 한 말이 전혀 실제 상태와 거리가 먼 것으로 판명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우리가 이와 같은 유도 질문을 할 때에, 우리가 목표하는 바는 내담자를 
자극하여 그의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게 하고 그의 행동을 정직한 눈으로 
일별해 볼 수 있도록 격려하자는 데 있다. 목적은 우리를 위해 정보를 
얻어내는 것보다 내담자를 도와 그가 그의 문제를 명확히 직시하도록 
유도하자는데 있다. 그렇게 될 때에 그는 새로운 안목을 가지게 되거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어떤 행동을 취하는 지점에까지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실의에 빠져 있는 두 사람과 함께 엠마오를 향해 걸어가실 때 
유도 질문을 사용하셨다.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 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라고 예수께서 물으셨다. 글로바가 최근 며칠 사이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던 일을 설명하자, 예수께서는 "무슨 일이뇨"라고 물으셨다(눅 
24:17-19). 이것은 그 (p64) 사람들로 하여금 말하도록 유도했던 유도 
질문이었다. 

  3. 지원(뒷받침)해 준다.
  이 말은 상담자가 심리적인 불구자들을 붙들어 주어 그들이 혼자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그러나 
지원한다(support)는 것은 내담자가 처음에 입을 열기가 어려우며, 자신의 
실패에 대해 털어 놓고 죄악된 생각이나 행동을 시인하거나 어떤 문제로 
인하여 타격을 받았음을 인정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받아들임을 뜻한다. 터놓고 
얘기한다는 것은, 특히 그리스도인 상담자에게 마음을 터놓고 얘기한다는 것은 
거절이나 비판 또는 배척을 감수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실패나 내면적인 생각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타인에게 터놓기를 
꺼려하는 것이다. 우리가 남에게 얘기해 주면 그들에게 멸시를 받거나 
외면당할 수가 있다는 말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거짓된 행동의 근저에는 이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우리의 잘못을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아뢸 뿐 
아니라 피차간에 서로 고백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약 5:16). 이러한 고백을 
들을 때, 상담자는 충격이나 거절(거부)의 반응을 보여서는 안 되며, 죄된 
행동을 용인하거나 그것이 하찮은 일인 것처럼 일축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동정하는 마음으로 내담자의 짐을 함께 진다(갈 6:2; 롬 15:1). 
때에 따라서는 어떤 승리를 놓고 내담자와 함께 기뻐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때는 내담자와 함께 울기도 한다(롬 12:15). 죄가 있을 때는 내담자를 
권면하여 그 죄를 고백하도록 하고 그가 태도나 행동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계속 그를 붙들어 준다. 내담자가 개인적인 성장과 성숙을 위해 한 
단계씩 조치를 취함에 따라 우리는 그에게 정서적인 후원과 영적인 지원을 
제공한다.

  (p65) 4. 정면 도전한다.
  상담자가 내담자의 말을 경청하고 유도 질문을 하여 얘기를 하도록 하고 
뒷받침해 주고 후원을 아끼지 않는다 해도 내담자가 조금도 나아지지 않을 
수가 있다. 이것은 내담자의 문제가, 변화되어야 마땅한 행동이나 태도 또는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내담자가 자신의 행동을 직시해야 하고 상담자는 이 과정을 확고하면서도 
온유한 태도로 도와주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상당히 여러 차례 사람들에게 정면으로 도전하셨다. 
바리새인들에게는 그들의 외식(위선)을, 제자들에게는 그들의 깨달음이 
부족함을, 마르다에게는 그녀의 지나친 분주함을, 젊은 부자 관원에게는 그의 
비뚤어진 가치관을 놓고 각각 정면으로 도전하셨다. 정면 도전은 사실상 
예수께서 남을 다루실 때 사용하셨던 중추적인 접근 방법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 방법은 초대 교회로 넘어갔는데, 이는 베드로가 이른바 
유대주의자들의 요구에 비겁하게 굴복하는 것을 보고 바울이 그를 면박한 
사실에 가장 잘 드러나 있다(갈 2:1-21).

  정면 도전은 내담자의 생활에서의 죄를 지적하는 것이지만 이에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내담자의 일관성이 없는 행동("아내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아내를 냉정하게 대하고 있잖습니까?")을 보고 아니면 그의 
자기 패배적인 행동("당신은 성공하기를 원하지만 기준을 너무 높이 설정하기 
때문에 실패할 것이 틀림없습니다.")을 놓고 또는 문제를 회피하려는 
경향("당신은 신앙적으로 성장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이 문제가 나올 때마다 
주제를 바꾸지 않습니까?)을 놓고 정면 도전할 수가 있다. 

  정면 도전은 어려운 과업이다. 이것은 온화하면서, 개인적인 판단은 
피한다(갈 6:1; 마 7:1). 그러나 상담자는 내담자의 공공(p66)연한 저항이나 
수동적인 저항을 감수할 만한 용기를 지녀야 한다. 내담자측에서 자신의 생활 
속에 실재하는 모순이나 죄를 직면하기를 꺼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상담자의 
임무는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돕는 것이며, 문제를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치유시키는 것임을 잊지 말자. 그러나 치유는 종종 고통스런 수술의 
과정을 거친 후에 일어날 수가 있다. 그러므로 내담자가 면박을 받았을 때 
위협적으로 받아들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식하라. 그러므로 상담자는 면박을 
하면서도 내담자를 지원해 주어야 하며, 내담자가 그의 반응을 표현하거나 
행동을 바꿈으로써 면박에 반응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 상담 
과정에서 우리는 대등^56,36^상담자(판사)가 내담자(피해자)를 주장하는 자세가 
아니라^36,23^한 사람들끼리 한 팀으로서 문제를 놓고 함께 씨름하는 것이다. 

  5. 가르친다.
  기본적으로 이것이 상담의 실제적인 내용이다. 내담자는 달리 행동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고, 상담자는 교사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가르침은 물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가르침은 교훈이나 충고 
또는 내담자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말해주는 것을 포함한다. 그러나 이와 
같이 말로 하는 지시는 내담자에게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흔히 보면 상담자가 자신의 행동으로 보다 실제적으로 생각하고 사는 법을 
보여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내담자가 좋아질 때는 그를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고 보강해 주며, 내담자가 결정을 하고 실천에 옮기고 변화를 위해 필요한 
행동을 점검할 때는 그를 도와 협조해 주는 것이다. 

  이상의 돕는 요령들은 상담자가 돕는 과정에서 무엇을 하는가를 (p67)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목표이다. 상담은 어느 
곳을 향해 가고 있으며 무엇을 성취하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이 모든 것은 
돕는 과정에 관계되는 내용이다. 
  이는 전문적인 상담가들 사이에서 커다란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주제이다. 
어떤 사람들은 상담을 매우 복잡한 과정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보다 최근의 
저작자들은 상담 과정을 상당히 간결화하여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에간(Egan)은 (주4. G. Egan, The Skilled Helper(Monterey, Califonia: 
Brooks / Cole, 1975), 상담 과정을 내담자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그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에서부터 내담자에게 반응하고 그를 도와 그의 감정과 경험과 
행동을 탐색하고,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의 상호 이해를 구축하고, 끝으로 
행동을 자극(유도)한 후 그 결과를 상담자와 내담자가 함께 평가한다는 네 
가지 단계로 설명하고 있다.
  로렌스 브래며(Lawrence Brammer)라는 이름의 심리학자는 이 보다 약간 
길지만 거의 비슷한 과정을 열거하고 있다. 인터뷰를 개시하고 문제를 
표현한다. 문제와 상담의 목표를 명확히 한다. 상담 관계와 과정을 설정한다. 
보다 깊은 관계를 맺는다. 감정이나 행동 또는 생각(사상)을 탐색한다. 일종의 
행동 계획을 세워 이를 시험해 본 후 평가한다. 그리고 상담 관계를 
종결짓는다. (주5. L. M. Brammer, The Helping Relationship: Process 
and Skills(Engle-wood Cliffs, New Jersey: Prentice-Hall, 1973).
  상담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 하는 것은 주로 문제의 성격, 상담자와 
내담자의 인격 그리고 그들이 맺고 있는 관계의 성격에 따라 좌우된다. 에간과 
브래머가 제시한 것을 기초로 해서 나는 상담 관계가 최소한 다음의 다섯 가지 
단계를 거친다고 제시하고 싶다. 이들 단계는 성경에 분명히 예시되어 있다.

  (p68) 1.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를 설정한다(요 6:63, 16:7-13; 요일 4:6).
  2. 문제를 탐색하고 문제거리를 명확히 하려고 노력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과거에 어떤 노력이 경주되었는가를 판별한다(롬 8:26).
  3. 취할 행동을 결정한다. 한 번에 한 가지씩 시험해 볼 수 있는 몇가지 
가능한 대안이 있을 수 있다(요 14:26; 고전 2:13).
  4. 상담자와 내담자가 함께 검토한 행동을 실천에 옮기도록 고무한다. 한 
가지가 효력이 없을 때는 다른 것을 시도하라(요 16:13; 행 10:19-20, 16:6).
  5. 상담 관계를 종결짓고 내담자가 자력으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려고 할 
때 그가 배운 것을 적용하도록 내담자를 격려한다(롬 8:14).

  이상의 내용의 대부분을 엠마오로 가는 길에 예수께서 아름답게 예시해 
주셨다. 
  두 사람을 만났을 때, 주님은 그들이 위기와 실의의 기간을 통과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여러 가지 기술을 사용하셨다. 이 상담이 어느 사무실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유의하라. 50분간을 한 시간으로 계산한다는 것도 
없었고, 벽에 박사 학위 수료 증서가 걸려 있지도 않았고, 비싼 상담료도 
없었다. 예수님의 상담은 세 사람이 길을 걸어가는 동안에 먼지 나는 노상에서 
이루어졌다. 
  누가복음 24장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저희에게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신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친화 형성(rapport^6,3^building)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사람들의 필요에 관심을 보이는 것과 
그들이 있는 위치에서 그들을 만나주려는 자세를 말한다. 상담자는 예수님과 
같이 내담자와 기꺼이 동행할 (p69) 용의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담 
요법상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냉담한 무관심이 성공적인 상담을 유도하는 
예는 거의 없다.
  그들이 걸어가고 있을 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지시적이지 않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 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라고 
물으셨다. 예수께서 그들과 문제를 탐색하기 시작하자 그들이 주님께 질문으로 
반응했다. 
  "당신이 예루살렘에 우거하면서 근일 거기서 된 일을 홀로 알지 
못하느뇨?"(눅 24:18). 이때 예수님은 전형적으로 내담자 중심적인 답변으로 
응답하셨다. "무슨 일이뇨?"라고 묻자, 두 제자가 얘기를 시작했다. 
  그들이 함께 걸어갈 때, 예수께서는 얘기를 경청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셨다. 그는 분명히 그들이 하는 말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귀를 기울여 
듣고 그들이 자신들의 좌절감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고 자기가 애초에 
죄인들을 위하여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그 사랑을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한 동안 시간이 흐른 뒤에 예수께서는 그들의 논리적인 오해와 성경을 
개닫지 못함을 두고 그들을 면박하셨다. 면박은 온유하면서도 확고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면박으로 인하여 두 제자는 자극을 받아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기 시작했음이 틀림없다. 그 때 예수께서 그들의 문제에 관계되는 
것을 성경에서 설명하면서 가르치기를 시작하셨다. 여러 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상담자는 내담자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알게 하고 나아가 생각과 
행동을 보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사의 역할을 담당할 때가 
많다.
  여정이 끝나갈 무렵에 예수께서는 음식을 함께 하자는 두 사람의 초청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들과 친근해지셨다. 어떠한 상담 상황에서나 상담자가 
내담자와 정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가까이 하는 (p70)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 방법이 야기하게 될 제반 윤리적인 문제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모든 상담자가 어떤 
내담자, 특히 치유가 어려운 내담자들과의 관계에서 경험하기를 꿈꾸는 
일이었다. 예수께서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신 것이다. 그리함으로써 
예수께서는 그들이 혼자 설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고 들은 바를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격려하셨던 것이다. 더 이상 상담자의 도움을 의지할 필요가 없는 
독립적인 지점에까지 내담자를 인도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모든 상담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다른 상황에서는 예수께서 이와 다른 상담 기술을 사용하셨다. 니고데모와는 
변증법에 대하여 합리적인 변론을 펴셨다. 혈루증을 앓는 소심한 여인에게는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가 하면, 우물가의 여인에게는 그녀의 부도덕한 
삶을 면박하셨고, 간음 중에 잡혀 온 여인에게는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지시하셨고, 교만한 바리새인들은 매우 지시적인 태도로 비난하셨고, 
제자들을 두 명씩 짝지워 보냄으로써 앞날에 대비토록 하셨으며, 자신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사람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모범(본보기)이 되셨다. 
  그리스도인 상담자는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하나님과 가까이 교제하며 매일 
매일의 생활에서 죄를 멀리하고 죄가 있을 때는 이를 자백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을 그들이 있는 위치에서 만나, 그들의 행동이 죄스럽고 
사랑스러운 데가 없다 하더라도 이들을 사랑받을 개개인으로 받아주고, 언제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범이 되려고 노력하고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되는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보다 더 화합하는 행동과 생각과 감정을 유발할 수 
있는 제반 기술을 적용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한 마디 주의를 환기해 둘 필요가 있다. 엠마오로 (p71) 가는 
길에 예수께서 하셨던 상담을 비롯해서 위에 언급된 모든 방법에는, 장시간에 
걸친 경청과 친화 형성이 있었다. 경험이 없는 상담자들은 종종 해답을 서둘러 
제시하거나 곧 자신의 제안대로 내담자가 행동하도록 떠미는 경향이 있다. 
해답이나 해결책으로 뛰어 넘기 전에 우리는 이해하고 탐색하는 데 오랜 
시간을 들일 필요가 있다.

    평신도 상담 원리 6.
  상담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의 내담자들을 제자로 삼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이 또 다른 사람을 제자화하도록 도와 주는 것이다. 이는 크게 오해될 수 
있는 말이다. 이 말은 마치 상담이 신령한 문제만을 다루며, 가장 중요한 
목표는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돕는 일이라기보다 "사람들이 
구원받도록 하는 일"인 것처럼 암시하고 있다. 
  이 여섯번째 원칙을 보다 명확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잠시 동안 그리스도인 
의사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다른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의사에게도 다른 
사람을 제자로 만들 책임이 있다. 그러나 응급실에서 성경을 꺼내 들고 설교를 
시작하지는 않는다. 의사는 사람들이 아파하는 곳에서부터 시작한다. 의사는 
그의 행동과 관심을 표현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낸다. 고통을 
덜어주는 일이 그리스도에게 영광이 되며 가끔 복음전도를 인도하는 첫 단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잠 14:31; 마 10:42). 그리스도인 
의사는 영적인 문제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회피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의료 행위의 주요 부분은 아니다.
  제자화 과정은 적어도 다섯 가지의 단계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사람을 
접촉하고, 말로 증거하여, 회심(conversion, 구원)의 지점까(p72)지 인도하고, 
제자로서 성장하도록 그를 도와주며, 다른 사람을 제자로 삼는 법을 가르쳐 
준다. 지금까지 전도와 증거에 관한 책이 많이 출판되었지만, 제자 훈련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최근의 일이다 (주6. 예를 들어 R. E. Coleman, The 
Master Plan of Evangelism(Old Tappan, New Jersey: Fleming H. 
Revell, 1963); N. A. Henrichsen, Disciples Are Made-Not 
Born(Wheaton, Illinois: Victor Books, 1974)을 보라. 아마 이 분야에 
있어서 고전적인 저서는 A. B. Bruce, The Training of the Twelve(Grand 
Rapids: Kregel, 1971)일 것이다. 이 책은 원래 1871 년에 처음 출판되었다. 
Worldwide Discipleship Association의 Carl Wilson 박사가 쓴 In Christ's 
School of Disciplemaking은 제자 훈련에 대한 최신 저서 중의 하나이다). 
상담자는 두 가지 측면에서 똑같이 관심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중요한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1. 상담자는 위에 언급한 다섯 단계 중 어느 시점에서라도 내담자의 생활에 
접근할 수 있다. 상담자는 복음을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불신자를 상담할 
수도 있고, 여러 해 동안 제자로서 성장해 온 성숙한 신자를 상담할 수도 
있다. 상담은 믿는 신자들에게만 국한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 6:10)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2. 상담자는 한 내담자로 하여금 다섯 단계를 모두 거치게 할 수도 있고 
그에게 몇 가지 영향을 끼치면서 잠시 동안 그와 같이 하고는 타인에게 
넘겨주고 떠나갈 수도 있다. 때에 따라서는 한 사람이 접촉을 하고 어느 정도 
상담까지 하지만, 다른 사람이 말씀을 증거하고 또 다른 사람이 그를 
그리스도께 인도하고 제자훈련은 전혀 다른 사람들이 전담할 수도 있다. 
우리들의 생활은 각각 (p73) 다른 사람들의 생활에 의해서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는다. 상담자로서 우리는 우리의 내담자를 소유하려는 자세를 취해서는 안 
된다. 우리만이 그들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금물이다.
  
  3. 신령한 내용이 너무 빨리 그리고 너무 갑작스레 소개될 수 있다. 
내담자들 중에는 선의의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성급하게 덤벼들어 복음을 
제시하거나 보다 나은 생활의 비결에 대한 설교를 늘어 놓기 때문에 등을 돌려 
버린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상담자는 때에 따라 영적인 
것을 전혀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해야 할 것이다. 제자 
훈련은 은근히 조심스럽게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은 접근 방법일 수가 있다. 

  4. 상담은 제자 훈련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몸 전체에 관련된 일이다. 
로마서 12장이나 고린도전서 12장 그리고 기타 성경 구절에서 우리는 몸의 
존재하는 목적이 서로 붙들어 주고 도와주고 짐을 져 주고 덕을 세우는 데 
있다고 배우게 된다. 우리는 어느새 일대일식의 상담으로 생각이 굳어져 버린 
것 같다. 교회는 상담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지원해 주고 내담자들의 성장을 
도와주는 하나의 치유하는 집단이 되어야 한다 (주7. 이는 바울이 제자 훈련은 
여러 신자들의 상호노력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임을 인정하고 있는 고전 
3:4-10에 잘 예시되어 있다).

  5. 제자 훈련 상담(Discipleship counseling)은 전인격에 관심이 있다. 
인간은 하나의 통일체로서 전적으로 영적인 필요만 느낀다든가, 심리적인 
문제만을 안고 있다든가, 사회적인 갈등만을 별도로 느낀다든가 아니면 순전히 
신체적인 질병만을 않는 존재가 아니다. 통일된 인격체의 어떤 한 측면에 
이상이 생길 경우 그 사람(p74)의 인격 전체에 영향이 미치게 마련이다. 
치유자는 의학이나 심리요법 또는 영적인 상담을 전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문 분야가 무엇이든간에, 치료자(healer)는 인간 안에 영적인 것과 
정서적인 것, 의지적인 것 또는 신체적인 것 사이에 명확한 한계선이 그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한 가지 징후만이 치유를 요구하며 
울부짖을지 모르지만 이런 때에 그의 몸은 전체적으로 균형을 잃게 된다. 
우리는 사람의 영적인 부분만을 다루고 그의 심리적 또는 신체적인 필요를 
망각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되겠다. 이들은 모두 함께 얽혀 있는 것으로서, 
만일 상담자가 이 사실을 망각한 채 내담자를 다룬다면 그는 내담자와 
주님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다. 

  이상이 제자 훈련 상담의 원칙들이다. 이 원칙들은 상담자의 중요성과 
내담자의 태도,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 감정과 생각과 행동의 중요성, 상담 
기술의 중요성, 상담 기술의 활용 그리고 제자 훈련의 목표에 관한 것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이 접근 방법이 실제로 활용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들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p75)
  @[  4. 친구간의 상담 (pp75--94)

  만일 당신에게 문제가 있어 도움이 필요하다면 누구에게 가겠는가? 당신이 찾아갈 
사람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라.
  당신은 아마 친구나 친척 또는 가까운 동료를 선택할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각자의 필요를 충족시켜 줄 만한 전문 상담자(professional counselors)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리고 전문 상담인이 충분하다 하더라도 많은 이들은 전문 
상담자를 피할 것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전문 상담자에게는 비싼 돈을 지불해야 하지만, 
친구에게의 상담은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는다. 전문가는 그의 근무 시간과 상담 
스케줄의 제약 때문에 만나기가 힘든 반면에, 동료 상담자는 바로 이웃에 사는 
친구일 수도 있고, 전화로 즉시 통화할 수도 있다. 전문가를 찾아간다 하면 친구나 
동료 상담자를 만날 때와 달리 어떤 "낙인"이 따를 수 있다. "누군가 정신과 의사를 
찾아간다 하면, 그는 심각한 문제에 빠져 있는 사람일 것이다"라고 많은 사람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뒤뜰 울타리 너머로 남이 보지 않는 데서 얘기하는 것은 훨씬 (p76) 덜 
위협적이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은 전문가를 "독심가(읽을 독, 마음 심, 집 
가)"나 "정신병 의사"라 하여 꺼림칙하거나 두려운 존재로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보통 비전문 상담자는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친구와 논의하는 데는 위험이 
따를 수 있는데, 우리 생활의 비밀스런 내용을 나눈는 데 대하여 불안스럽게 생각할 
경우 특히 위험 부담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낯선 사람과 
속사정을 상의한다는 것은 더욱더 충격적일 수가 있다. 나는 나의 사무실에 
찾아와서 나와 함께 나누었던 상담 내용이 걱정이 되어 사흘밤을 꼬박 세웠다고 
토로하던 부인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러한 불안과 우려는 전문가에게 
친화 형성의 문제를 제기하는데, 비전문가는 이런 문제를 거의 접하지 않는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친구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동료간의 상담, 특히 그리스도인 친구간의 상담(Christian 
peer counseling)에 더 많은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교회내의 평신도가 
이미 교회와 지역 사회내에서 상당량의 상담을 하고 있다. 이들 동료 상담자들(보다 
전문적인 용어로 이들을 paraprofessionals이라 부른다)이 자신의 한계를 
인식한다면, 이들은 약간의 훈련을 받음으로써 주변 사람들의 정신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이것이야말로 참다운 평신도 상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동료 상담과 관련해서, 다음의 다섯 가지 중요한 질문을 고려해 보기로 한다. 친구 
대 친구의 상담은 효과가 있는가? 상담은 어떤 특정한 사람들만이 지니고 있는 
은사인가 아니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인가? 동료 상담자들을 어떻게 하면 보다 
더 효율화할 수 있는가? 동료 상담자들이 목표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 동료 상담에 
있어서 주의해야 할 위험은 어떤 것인가? 이상은 상담하는 사람들이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질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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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77)
  친구간의 상담은 효과가 있는가?

  몇 년 전에 로버트 카커프(Robert Carkhuff)라는 심리학자가 "평신도 
상담자들"(lay helpers)의 상담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주의 
깊은 연구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었다 (주1. R. R. Carkhuff, "Differential 
Functioning of Lay and Professional Helpers," in Journal of Counseling 
Psychology, vol. 15, 1968, pp.117--28.) 이 심리학적인 연구 조사의 결론은 
놀라운 것이었다. 훈련을 받았든 안받았든간에 평신도 일반 상담자들을 전문 
상담자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평신도 상담자의 환자들이 전문 상담자들의 환자들 
못지 않게 또는 그들보다 더 뛰어난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주2, Ibid., p. 117.). 함께 생활하는 데 있어서 문제를 갖고 있는 정상적인 성인 
남녀와 상담할 때나, 어린이들과의 상담에서나, 정신병 진료소의 외래 환자를 
치료하는 데 있어서나, 정신 병원에 입원해 있는 혼란 상태가 심한 환자를 다르는 
데 있어서나 결과는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평신도 상담자가 전문 상담자 못지않게 
효과적인 상담을 한다는 결론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분명한 것이다.

  이러한 조사 결과가 드러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제시되었다. 평신도 
상담자는 직업적인 상담자와 달라서, (1) 내담자와 더 가깝고 내담자를 친구로 알고 
있으며 그의 문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표정이나 몸짓을 읽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진지한 감정 이입을 시현(보일 시, 나타낼 현)할 수 있다. (2) 시간을 내기가 쉬우며 
꾸준히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도움을 제공할 수 있다. (3) 내담자의 가정이나 작업 
상황, 생활 방식, 신앙, 이웃과의 관계 등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 결정을 유도하는 
데 있어서나 생활 환경을 바꾸도록 (p78) 내담자를 돕는 일에 있어서 보다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다. (4) 내담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56,36^속어나 
관용어 또는 모국어 등^36,23^의사 소통을 할 수 있다. (5) 전문가보다 더 실감나게 
편안하고 비공식적인 자세로 숨김없이 터놓고 얘기할 수 있다. 흔히 보면 직업적인 
상담자는 어떤 차원높은 상담 이론에 따라 대화를 추진하려는 경향이 있다. 
전문인은 적절한 기술을 사용하는 일과 전문가의 이미지를 유지하는 일 그리고 자기 
직업에서의 성공 여부 등에 신경을 쓴다. 동료 상담자는 이런 일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는 이론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고, 상담자로서 명성을 날리려 하지도 않고 
요금을 받는 데도 관심이 없다. 그는 또 한 명의 동료 인간을 도와주자는 데에만 
주로 관심을 쓰기 때문에 그의 모든 노력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경주된다. 
따라서 그는 고도의 교육을 받은 전문 상담자보다 더 훌륭한 결과를 가져올 때가 
종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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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간의 상담은 은사인가?

  상담 분야에서 아무런 훈련도 받지 않은 학생이나 다른 분야의 직업인들이 종종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사람들이 계속 찾아와서 도움을 청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전화 벨은 거의 쉴 새 없이 울리는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밤낮 없이 
집이나 기숙사로 찾아와 개인적인 문제를 상의한다. 어떤 사람들은 아^36^예 
"상담자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보이는데" 다른 이들은 이 분야에 대해 전혀 
관심도 없고 능력도 없어 보이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어떤 사람들만 상담 
분야에서의 특별한 은사나 잠재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p79) 모든 기독교인이 상담자가 되어야 한다. 
  성경 말씀은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동료 인간의 필요에 대하여 실제적이고 
희생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야고보는 우리의 믿음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실제적인 관심으로 표현되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거듭 
일깨워 주고 있다(약 2:14-20). 이와 같은 사상은 성경의 다른 부분에도 강조되어 
있다. 우리는 각각 자기 일만 돌볼 것이 아니라 남의 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빌 2:4). 우리는 모두 기뻐하는 사람들과 같이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그들을 붙들어 주는 심정으로) 함께 울라는 가르침을 받고 있다(롬 12:15). 성경은 
또한 우리들에게 서로 세워 주고, 서로 권면하며, 소심한 자들을 격려하며, 약한 
자들을 붙들어 주고,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오래 참으라고 가르치고 
있다(살전 5:11, 14). 모든 신령한 사람은 죄에 빠진 사람을 온유한 마음으로 
고쳐주거나 바로 잡아줄 책임이 있으며, 우리 모두는 서로 짐을 지는 일에 참여해야 
한다(갈 6:1, 2). 기회가 생길 때마다 우리는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특별히 
믿음을 같이 하는 동료 신자들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갈 6:10).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다른 이들에게 사랑 안에서 손을 내주어야 한다. 
그리고 상담은 남을 도와주는 한 가지 방법이다. 가족이나 이웃, 직장 동료 또는 
교회의 형제나 자매가 그들의 생활에 있었던 어떤 사건이나 문제에 대하여 우리와 
얘기할 때,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동기로 하여 대화하는 우리는 스스로 의식하든 안 
하든간에, 그리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간에, 상담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P80) 상담자들을 위한 특별한 은사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남을 돕고 상담해 줄 책임이 있지만, 상담은 교회를 
세워주고 각 성도를 힘있게 세워주기 위해 주어진 영적인 은사 가운데 하나일 
가능성이 많다. 폴 모리스(Paul Morris)는 사랑의 요법(Love Therapy)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성경만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 모든 그리스도인이 유능한 상담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결론이다^5,5,5^ 내가 보기에는, 상담이 약 18개로 분류되는 
"영적인 은사" 중의 하나가 된다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그리스인에게 "방언"의 은사나 "목사", 교사"(pastor-teacher)의 
은사를 허락하지 않으신 것처럼, 모든 신자에게 상담의 은사를 부여하시지 않았다.
  나는 신학교 문전에도 가보지 않고 이 은사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나의 어머니나 "도저히 고칠 수 없는" 정신병자라도 기꺼이 맡길 
것이다. 이 분들은 세상에서 가장 유능한 상담자들이다^5,5,5^ 이 남녀 상담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초자연적인 능력을 부여받았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주시기 전에는 
이러한 능력을 소유하지 않았다. 
  이와 연관해서 나는 상담의 은사가 비교적 적은 수의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다. 상담의 은사는 널리 퍼져 있다^5,5,5^ 성경과 응용심리학 
분야의 훈련을 받으면 이 은사를 지니고 있는 사람의 능률은 크게 향상된다. 사람이 
알면 알수록 그의 은사는 더 크게 사용될 수 있다 (주3. P. Morris, Love 
Therapy(Wheaton, Illinois: Tyndale House, 1974), pp16--17)).
  (p81) 이 말은 오직 특별히 은사를 받은 사람만이 상담에 관여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상담은 전도나 가르침과 유사하다고 할 것이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전도에 특별한 은사를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리스도인은 
누구를 막론하고 사람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려고 노력하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엡 
4:11). 어떤 그리스도인은 교사로서 특별한 은사를 받았지만(롬 12:7; 엡 4:11), 
우리는 모두가 우  의 자녀와 다른 사람들은 가르칠 책임을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상담에 특별한 은사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모두가 피차 짐을 지고 도와주는 상담자가 되어야 한다.
  모리스는 이 은사를 지닌 사람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돕는 일에 참여하고 
싶은 욕망을 강하게 느끼면, 그들의 상담 노력에는 대개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결과가 따른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의 상담 은사가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을 위하여 사용되어지기를 바란다. 상담거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종종 
찾아가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분들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로마서 12:8에서 우리는 권위(exhortation)의 은사에 대하여 읽을 수 있다. 
여기에 쓰인 희랍어 원어(paraklesis)는, "돕기 위하여 곁으로 다가온다"는 뜻이다. 
이 말은 사람들이 미래를 직면할 수 있도록 권고하고 위로하고 지원하고 격려하는 
행위를 암시하고 있다. 이들 행동은 모두 상담과 흡사한 것으로서, 모두가 
하나님께서 선별된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신 은사를 지칭하고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 상담자는 전문인이든 비전문인이든간에 성령의 도구이다. 
성령님께서 종종 우리를 통해서 사람들을 돕는 것이 사실이지만 성령님 한 분만이 
사람들을 도와준다(요 14:16, 26). 사람을 돕는 일에 성령님께서 모든 신자를 
사용하신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상담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문제를 
가지고 (p82) 있는 사람들을 돕는 일에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용하시는 도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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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료 상담자들은 어떻게 훈련되나?

  로버트 카커프는 전문 상담자들과 동료 상담자들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면서, 
상담자들이 어떻게 훈련을 받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기로 했다. 그는 조사 
결과에 다시 한번 놀랐다. 훈련 초기에는 전문가가 비전문가보다 더 효과적인 
상담을 한다. 그러나 훈련이 계속됨에 따라, 직업적인 상담자는 점차 능률이 떨어져 
결국에는 훈련받지 않은 평신도 상담자보다도 비효과적인 상담을 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주4. Carkhuff, op. cit., pp.119--20).
  이러한 증거에 근거해서, 독자들은 동료 상담자가 훈련을^56,36^특히 
전문가로부터의 훈련^36,23^받아서는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릴지 모르겠다. 
훈련이나 연수가 상담자로서의 우리의 효율성을 저하시킨다는 말인가? 일찍이 폴 
토니어(Paul Tournier)는 정신과 의사가 될 것인가, 그대로 내과 의사의 위치를 
지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번민했다. 그러나 정신병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그의 
친구들은 그를 말렸다. "우리들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입니까?" 친구들은 
경고했다. "이와 같은 훈련은 당신을 질식하도록 만들 것이며 당신의 따뜻한 온정과 
즉흥성을 앗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문제는 동료 상담자가 훈련을 받아야 하느냐, 훈련을 멀리 해야 
하느냐가 아니다. 핵심적인 문제는 우리가 어떤 종류의 훈련을 받는냐 하는 것이다. 
전문적인 훈련과정을 보면 종종 정교한 조사 방법이나 복잡한 성격 이론 또는 
복잡한 사례 분석에 (p83)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모든 훈련 과정은 실습 중인 
상담 요원을 사람들로부터 떼어 놓으며 요령(기술)에 대한 지식이나 일정한 상담 
이론을 따르는 것이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과 서로 교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비전문 상담자는 대개 전문가보다 덜 지식적이고, 정확한 
진단을 하는 것이나 최선의 기술을 사용하는 데 별 관심이 없으며 이론이나 연구 
조사 등에 대하여 전혀 관심이 없다. 동료 상담자는 사람을 돕기를 원하나 장시간에 
걸쳐 계속되는 훈련 과정에 참여하고 싶은 의향은 별로 없다. 따라서 그가 받는 
훈련은 보통 짤막하면서도 극히 실제적인 것으로서, 감정 이입이나 온정, 순수함 
그리고 효과적인 상담에 기여하는 기타 특성을 개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동료 상담자들을 위한 훈련은 (전문인들을 위한 훈련도 마찬가지겠지만) 실제적이고 
현실적이어야 하며 실제로 사람들이 생활 중에서 경험하는 문제들을 다루어야 한다. 
전문가들이 훈련 과정에 크게 기여할 수 있겠지만, 다른 동료 상담자나 심지어 
우리의 내담자들까지도 우리의 학습 과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주5. Carhuff, op. 
cit., p.121. 또한 F. Reissman, "Strategies and Suggestions for Training 
Nonprofessionals," in Community Mental Health Journal, vol. 3, 1967, 
pp.103--110; and P. W. Clement, "Parents, Peers and Child Patients Make 
the Best Therapists," in Gertrude T. Williams and S. Gordon, eds., Clinical 
Child Psychology: Current Practices and Future Perspectives(New York: 
Behavioral Publication, 1974), pp.81--97를 보라).
  동료 상담자를 훈련시킬 목적으로 몇 가지 상이한 접근 방법이 개발되었다 (주6. 
예를 들어 Reissman, op. cit.; R. R. Carkhuff, Helping and Human Relation: 
A Primer for Lay and Professional People, Volume I, Seletion and Training 
(New York: Holt, Rinehart and Winston, 1969); S. J. Danish and Brock, 
"The Current Status of Training for Paraprofessionals," in The Personnel 
and Guidance Journal, vol. 53, 1974, pp.299--303; S. J. Danish, Helping 
Skills: A Basic Training Program (New York: Behavioral Publication, 1973); 
G. Egan, The Skilled Helper: A Model for Systematic Helping and 
Interpersonal Relating (Monterey, Califonia: Brooks/Cole, 1975); J. M. 
Gottman and S. R. Leiblum, How to Do Psychotherapy and How to Evaluate 
It: A Manual for Beginners(New York: Holt, Rinehart and Winston, 1974); 
A. E. Ivey, Microcounseling: Innovations Interviewing Training(Springfield, 
Illinois: C. C. Thomas, 1971); and N. Kagan, "Influencing Human 
Interaction^6,3^Eleven Years of IPR" (unpublished manuscript, Michigan 
State University, 1975)을 보라.). 그러나 이 훈련의 몇몇 양상은 거의 모든 접근 
방법에 (p84)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이들 훈련 기술은 동료 상담자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동료 상담자로 육성하는 데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똑같이 
중요한 것이다. 

    신중하게 선발하라
  훈련 대상을 주의 깊게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담 분야를 택하는 사람은 종종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상담을 택한다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관념 속에는 
어느 정도 진실이 담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상담을 통하여 참으로 다른 
사람을 돕고 싶다. 고통을 덜어주고 내 이웃을 보다 훌륭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육성하고 싶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 뒤에는^56,36^보람을 느낄 
필요, 다른 사람 위에 서고 싶은 권력욕, 내담자에게 성(sex)에 대해 자유롭게 
얘기할 기회와 같은^36,23^다른 동기가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한 저작자의 말에 
의하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권위자와 돕는 자 행세를 하는 것은 개인적인 난관을 회피하는 방법 (p85) 
중의 하나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활에 깊이 파고들고 싶은 충동은^5,5,5^ 
종종 심각한 개인적인 불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주7. G. Caplan, Principles 
of Preventive Psychiatry(New York: Basic Books, 1964), p.49)
  상담자는 타인의 문제에 감정적으로 깊이 빠져들기가 쉬운데, 심한 경우에는 
객관성을 유지할 수가 없게 되며 거기서 생기는 긴장감을 감당할 수가 없게 된다. 
이 때 상담자는 자기 안에 불건전한 행동을 발전시키게 되며 다른 사람까지 자기 
패배적인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되면 본래의 문제는 더욱더 
복잡해지게 된다. 전문인들도 같은 위험에 직면하게 되지만, 그들이 받은 훈련으로 
인하여 좀더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고 상담 기회를 자신의 문제 해결에 이용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전문가들은 감독자나 다른 상담자의 객관적 의견에 비추어 
자신의 행동이나 상담 동기를 점검하는 데 마음이 더 열려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상담 도중이 아니라 시작할 때부터 피해야 한다. 
상담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상담을 하고 싶어하는 동기를 주의깊게 그리고 
솔직히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훈련에 임하는 사람도 똑같이 자기 점검을 
거쳐야 할 것이다.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라.
  효과적인 훈련은 하나의 인격체로서의 예비 상담자에게 초점을 맞출 것이다. 
"어떠한 상담관계에서든 상담자의 인격, 가치관, 태도 및 신념이 일차적인 중요성을 
지닌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훈련 과정에서도 이것은 똑같은 중요성을 지녀야 할 
것이다. 상담자의 강점과 약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상담을 통하여 사람들을 
도와주기 원(p86)한다면, 당신은 말씀에 비추어 스스로를 살펴야 할 것이고(시 
119:9-11, 139:23, 24) 하나님의 도우심을 따라 생활에 필요한 변화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당신의 특별한 재능이나 은사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며 당신 자신에 대하여 
다른 사람에게 솔직히 터놓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어떠한 사람도 자기 
자신을 제3자에게 드러내는 과정을 통하지 않고는 자신을 알 수 없다" (주8. S. M. 
Jourard, The Transparent Self, rev. ed. (New York: Van Nostrand Reinhold, 
1971), p.5)는 말이 있다. 자신을 드러내 놓는 이 자기 노출은 사람과 하나님을 
대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약 5:16).
  동료 상담자는 상담을 시작하게 되면 종종 격려와 심리적 지원을 필요로 할 
것이다. 특히 상담이 어렵게 진행될 경우 지원과 격려가 필요하다. 초보자(전문가도 
마찬가지이지만)는 종종 상담자로서 느끼는 불안감을 나누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제3자의 사생활의 내막에 깊숙이 관여할 때, 생기게 되는 불안이나 
유혹에 대하여 얘기하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될 것이다. 초보 단계에 있는 상담자는 
경험이 앞서 있는 상담자와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의논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요령을 배우자.
  상담자를 정상적으로 육성시키려면 요령을 가르쳐야 한다. 이것은 지식 
하나만으로는 부족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할지를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요령을 
효과적으로 배우려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하며, 다른 사람의 시범을 
지켜본 후에 직접 요령을 실습해 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주9. S. J. Danish, "A 
Training Program in Helping Skills: An Examination of What, How and If 
It Works." 이 논문은 the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New Orleans, 
Louisiana, 1974)에서 발표한 것이다.). 그러므로 상담자를 훈련시키는 (p87) 데 
있어서, 지식의 습득, 관찰 그리고 실습의 과정은 모두 중요한 것이다.

    경험을 제공하자.
  효과적인 훈련에는 반드시 현장 실습 경험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러한 현장 
경험을 제공할 때 전문가는 약간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초보적인 상담 
연수생"에게 정신과 의사 행세를 하게 하여 아무 의심없이 응하는 내담자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허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평신도들이 이미 실제로 상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우리의 임무는 이미 하고 있는 것을 더 
잘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장기간의 훈련이 실습에 앞서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여러 종류의 직접 훈련 분야에서 그 기반을 잃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의과 
대학생과 간호사들은 전보다 먼저 병동 실습에 들어간다. 우리는 초신자들이 
구원받은 후 곧 복음 증거에 관여하도록 하고 있다. 앞으로의 동료 상담자 훈련도 
훈련에 이어 곧 현장 실습으로 들어가는 이와 같은 추세에 의해 특징지워질 것으로 
보인다.

    한계를 인식하라.
  끝으로 우리는 동료 상담자들에게 언제 어떻게 위탁 상담을 하는 지를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리고 "요리책에서 보는 것과 같은 일목 요연한 해답"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모든 상담자는 인생의 제반 문제를 
처리하는 데 필요한 예닐곱가지의 원칙을 즉석에서 제시해 주는 상담 안내서를 갖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러한 편람이나 안내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p88) 그러한 
안내서가 있다고 해도 인간의 행동의 복합적인 측면을 제대로 기술하지 못할 
것이다. 상담을 막 시작한 초보자는 모든 문제와 해답을 몇몇 단계로 요약한 공식을 
발견했을 때, 보통 흥분해서 좋아하지만 곧 회의에 빠지고 만다. 초보자는 흔히 
완전한 상담 방법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패한 경우 이들은 그 원인이 
훈련을 잘못받은 데 있다고 생각하거나 스스로의 이해 부족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각 인간을 특이한 존재로 만드셨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 
문제도 역시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독특한 접근 방법을 요한다. 그리고 
때때로 우리는 상담 과정에서 성공적이지 않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다른 상담자에게 위탁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위탁 상담은 
7장에서 더 상세하게 다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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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료 상담자의 목표는 무엇인가?

  동료 상담자가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심리학 잡지와 기타 
간행물에 적지 않은 토론이 있어 왔다. 어떤 전문인들은 평신도들의 임무는 전화를 
받고 검사 결과를 채점하고 격려를 해주는 것과 같은 간단한 일에 국한되어야 하며 
심리 치료는 전문가들의 전문적인 식견에 맡겨야 된다는 견해를 취해 왔다. 동료 
상담자들이 효과적인 상담을 하고 있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는 것에 비추어 볼 때, 
이는 부당한 주장이며 약간 건방진 입장인지도 모른다. 동료 상담자들은 전문 
상담자들처럼 다음에 열거한 내용의 상담을 수행할 수 있다. 
 
  * 필요할 때 지원해 준다.
  (p89) * 감정의 표현을 격려해 준다.
  * 내담자로 하여금 그의 문제 행동에 대해 지적인 통찰을 달성하도록 도와준다.
  * 죄, 무책임, 스스로를 좌절시키는 행동, 생활의 모순 등의 문제를 직시하도록 
내담자를 면박한다.
  * 사교 요령을 가르친다.
  * 내담자가 문제에 대처하는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죄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쓸 때 그 내담자를 격려하고 인도한다.                 * 
사람들이 정보를 찾아 이를 사용하도록 도와준다.
  *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버리도록 도와준다.
  *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도와준다.
  * 신학적인 문제를 가지고 해답을 찾고 있는 이들을 인도한다. 
  * 내담자들에게 그들의 삶을 그리스도에게 의탁하고 제자로서 성장할 것을 
권고한다.
  * 전문적 상담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에는 내담자를 전문가에게 위탁한다.

  이상은 물론 동료 상담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총망라해서 열거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목록은 또한 전문적인 도움이 때때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숨길 목적으로 
제시된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내담자가 자살을 고려하고 있다든가, 환상을 보고 
이상한 소리를 들으며, 스스로나 타인을 위협할 때, 심한 우울증에 빠져 있거나 
괴상한 언행을 할 경우에는 이러한 심각한 문제들을 다룰 수 있도록 훈련을 받은 
전문 상담자에게 위탁 상담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난해한 신학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거나, 신체적 징후에 대하여 불평을 하거나, 재정적인 계획에 관한 
문제로 도움(p90)을 요청하거나, 법적인 문제로 고민하는 내담자를 접할 때도 
있는데, 이는 모두 대부분의 동료 상담자들의 경험과 지식으로 다루기에는 힘에 
겨운 상황들이다. 이러한 상황을 다루는 데 있어 최선의 방법은 목사나 의사, 
은행원, 변호사 및 기타 전문가에게 위탁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위탁 상담이 
하나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늘 기억해야 할 것이다. 위탁 상담은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을 돕는 과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단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무명 알콜 중독자 구제회(Alcoholics Anonymous)가 결론적으로 제시하기를 
경우에 따라서는 심한 문제를 가진 그들을 돕는 데 있어 같은 중독자인 친구들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한다. AA운동은, 때로는 그들 자신의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더 
좋은 상담자가 된다고 하는 생각을 제시하기까지 한다. 아마 "사람을 치료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치료하게 하는 것" (주10. F. Reissman, 
"The 'Helper' Therapy Principle," in Social Work, Apil 1965, 
pp.27--31)이라고 시사했던 저작자와 공감하는 사람은 아마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동료 상담자들은 다양한 상황에서 도움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동료 상담자들을 무시하거나 하찮은 업무만을 그들에게 맡긴다는 
것은 문제를 안고 있는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대한 자원을 방치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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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간의 상담의 위험은 무엇인가?

  우리의 생활에는 일상 대화 중에 털어놓을 수 없는 개인사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재정상태나 (p91) 성생활, 걱정거리 또는 결혼 생활에 
대하여 잘 묻지 않는다. 그러나 상담 관계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괴롭히는 문제들이기 때문에 공공연한 화제거리로 등장하게 마련이다.

    상담자의 호기심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이와 같은 자유는 몇 가지 윤리적인 문제를 제기하는데 
동료 상담자는 이러한 문제에 유의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첫째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 상담자의 호기심이다. 때때로 우리는 상담 과정에서 잠시 내담자의 
필요를 망각하고 주로 우리 자신의 호기심을 만족시킬 목적으로 질문하기 시작한다. 
상담자는 이러한 경향을 스스로 삼가고 이를 피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특히 대화의 
주제가 잡담(험담)에 가까운 것이거나 내담자의 성적인 행동 내용을 자세히 묻는 
것과 같은 화제에 관계된 것일 때는 더욱 조심해야 할 것이다.

    성적 자극
  이와 관련되어 있는 문제는 성적인 자극(sexual stimulation)의 문제이다. 이러한 
자극은 피차간에 오고갈 수 있는데(상담자가 내담자에게 그리고 내담자가 상담자 
측에) 때때로 우리는 그렇게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또는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의식하지도 못한 가운데 상대방을 자극할 수가 있다.
  내담자를 위로할 목적으로 팔로 어깨를 감싸주는 남자 상담자는 그의 내담자가 그 
포옹의 의미를 잘못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의 어느 정도의 신체적 접촉이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니다. 약간의 접촉은 
때때로 상대방에게 (p92) 힘이 되고 격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접촉이 나에게 어떤 만족을 주느냐?" 그리고 "내담자가 이를 어떻게 
해석하는가?"를 조심스레 자문해 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 상담자는 어떠한 모양의 악이라도 이를 피해야 한다는 것이 절대로 
중요하다. 목회 상담자를 포함한 일부 상담자들 중에는 이러한 원칙을 망각하여 
내담자들과 너무 깊은 연관을 맺음으로써 그들의 가정과 인생 그리고 사역을 망쳐 
버리는 예가 허다하다. "나에게는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이미 위험한 기반 위를 걸어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고전 10:12).

    비밀 누설
  동료 상담자가 직면할 수 있는 세 번째 위험은 비밀 누설이다. 동료 상담자는 
전문 상담자들에게 적용되는 것과 같은 비밀 보장 강령에 법적으로 매여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동료 상담자가 그의 내담자에 대하여 이야기한다면 이는 
수다나 헌담과 다를 것이 없게 된다. 비록 우리가 상담의 상세한 내력을 감추려고 
노력한다 하더라도 이웃이나 교회 안의 누군가가 화제의 주인공을 짐작해 낼 수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대화는 회피하고 멀리해야 한다. 이는 우리의 영적인 
성장에 아무런 유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상담자에 대한 내담자의 믿음을 흔들어 
놓을 수가 있다.

    영적인 균형
  영적인 면을 소홀히 하거나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또 하나의 위험이 될 수 
있다. 영적인 면을 경시하는 경우, 내담자는 성경이나 기도의 자원(재물 자, 근원 
원)을 접하지 못하고, 상담자가 문제를 제기하는 (p93) 것을 꺼림으로 인하여 전혀 
복음을 듣지 못할 때가 있다. 둘째로 내담자는 종교에 겁을 집어먹고 밀려나거나 
결국 우리 존재의 영적인 부분만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잘못 인도 받을 수도 있다. 
성경은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하고 있지 않다. 우리가 주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다면 모든 문제가 자동적으로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없다. 영적인 
면은 극히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필히 우리의 상담 과정에서 거론되어야 하지만, 
그것은 적절히 활용되어야지 지나치게 강조되어서는 안 된다.

    위험을 피하는 법
  우리는 이와 같은 위험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가? 우선 우리는 영적인 보호책을 
개발할 수 있다. 매일같이 성경을 공부하고 상담 기간 중에도 적극적인 기도 생활을 
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방황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해롭고 악한 말을 입 밖에 내지 
않게 될 것이다. 둘째로, 우리가 위험을 알고 이를 경계할 때에 도움이 된다. 미리 
경고를 받으면 미리 무장하게 마련이다! 셋째로, 우리는 타협적인 상황과 성적으로 
자극적인 화제 그리고 기타 위험을 의식적으로 회피할 수 있다. 끝으로 우리는 
우리의 상담 내용을 목사나 전문 상담자 또는 우리를 도와 방향 감각과 균형을 잃지 
않도록 위험에서 막아줄 수 있는 친구와 비밀리에 상의하는 습관을 들일 수가 있다. 

    가장 무서운 위험
  동료 상담자를 훈련시켜 서로 도울 수 있도록 활용한다는 것은 극히 흥미있는 
개념인데, 교회는 최근까지만 해도 이를 거의 무시해 왔다. 우리는 교인들에게 전도 
훈련을 시킨다. 우리는 이들에게 (p94) 남을 가르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그리고 
지금은 다른 사람에게 제자 훈련을 시키는 방법까지 훈련하고 있다. 아마 우리는 
이러한 훈련의 일환으로 피차 짐을 서로 져주고 서로 상담하는 방법, 나아가 서로 
대화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할 것이다. 
  친구 대 친구의 상담에는 위험이 있을 수 있으나, 또한 굉장한 혜택이 있을 수 
있는데 특히 동료 상담자가 실제적인 훈련을 받았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물론 
상담에 대한 약간의 지식은 위험한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런 지식도 훈련도 
없이 무지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은 더욱 위험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동료 대 
동료의 차원에서 남을 돕는 일에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야말로 모든 위험 
중에 가장 무서운 위험이 되는 것이다. 
  (p95)
  @[  5. 위기 상담 (p95--111)

  우리들 모두는 인생을 살아나가는 동안 때때로 위기를 맞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기형아 자녀의 출생, 결혼생활의 파탄, 대학 입학 시험에서의 실패, 
자동차 사고 등, 이 모든 사건들은 우리를 뒤흔들어 놓으며 또한 우리로 하여금 
위협, 불안, 혼란, 우울 등의 감정을 갖게 만든다.
  다소 딱딱하게 말하자면, 위기란 한 인간의 안녕에 위협을 주며 그의 일상적인 
생활을 침해하는 모든 사건 및 그러한 상황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들 
대부분은 매일 매일을 살면서 생활에서 일어나는 문제들과 도전들을 유효 적절한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전혀 새롭고도 굉장한 위협을 주는 
상황이 발생해서 우리가 평소 문제들을 다루던 방법으로는 해결하지 못할 때도 
있다. 갑자기 우리들 생활 가운데로 뛰어 들어온 긴장을 다루기 위하여 전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새로운 방법들을 사용해야만 할 때도 있다. 
  과거에 사람들은 주로 친지들에게 그러한 문제들을 들고 가서 (p96) 그들의 
조언을 구하며 또 도움과 동정을 받아들이곤 했다. 이 세상의 많은 지역에서는 
아직도 이러한 방법이 쓰여지고 있다. 그러나 북미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북미 사람들은 자주 이사를 하는 이동성 민족이며 따라서 위기를 맞았을 때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족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때가 많다. 주위에 친척이 
없으므로 자연히 이웃, 친구, 교우와 목사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이들이야말로 
위기의 순간에 그 현장에 있을 수 있는 사람들이며 또 가장 잘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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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의 종류

  위기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주1. E. H. Erikson, "Identity and Life 
Cycle," in Psychology Issues Monograph, vol. 1(New York: International 
Universities Press, 1959). 발달 위기란 우리가 일생을 살아나가는 동안 예기된 
시기에 일어나는 위기들이다. 등교 첫날을 맞는 것, 사춘기를 잘 극복하는 것, 결혼 
생활에 적응하는 것, 중년의 위기에 잘 대처하는 것, 퇴직에 대처하는 것 등, 이 
모든 일들은 그 개인이나 그 가족들에게 특별한 노력을 요하는 위기적 상황들이다. 
이러한 위기들은 매우 심각할 수도 있으나 대부분 미리 예견할 수 있는 것들이며, 
본인이 인생의 새로운 단계에 적응하는 것을 배우게 되면 저절로 해결된다. 
  사고 위기란 이름 그대로 예견하기가 매우 힘들며, 따라서 좀더 강한 충격을 준다. 
갑작스런 지위나 재산의 상실, 사랑하는 사람의 교통 사고사, 예기치 않게 끝나 버린 
약혼, 갑작스런 실직 등 이러한 일들은 그 본인에게 극도의 것을 요구할 수도 
있으며 또 다(p97)음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할 때 혼란을 가져다 
준다.
      -----------------
    위기에 대한 반응

  위기에 처한 사람은 흔히 자기가 늘 문제를 다루던 방법을 먼저 찾게 된다. 
그러나 그는 곧 이전의 방식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최초에 발생했던 
긴장은 그대로 존재하면서, 여기에 그 문제에 대처할 수 없음으로 인하여 생긴 
좌절과 혼란이 더해지게 된다. 이 시기에 그 개인이 지니고 있는 내적 자원이 모두 
가동되게 된다. 그는 그 문제를 다루기 위해 시도하고는 실패하는 방법을 수도 없이 
되풀이하며, 축적되어 있는 신체적 에너지에 의지하며, 그 상황을 다룰 수 있는 
창조적이고도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내기 위해 머리를 짜낼 것이며, 그리고 
변화되어질 수 없는 상황들을 수용하고 또 최대로 이용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이 모든 방법이 실패하고 문제가 계속된다면, 그 사람은 결국 신체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아니면 양쪽 다 쇠약해지고 말 것이다 (주2. G. Caplan, Principle of 
Preventive Psychiatry(New York: Basic Books, 1964). 이것이 바로 소위 신경 
쇠약에서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즉 긴장에 대처할 만한 내적 자원이나 정력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는 것이다. 사람은 지친 채 포기하게 되며, 비현실이 세계로 
퇴보해 들어가거나 불행하게도 그 문제를 부인하는, 그러나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동을 고집하게 된다.
      -----------------
  (p98)
  각 위기의 독특성

  모든 위기 상황은 독특하다. 주위 상황, 성격, 당사자의 심리학적 체질, 위기를 
다루었던 과거의 경험(또는 그런 경험의 결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의 여부 등, 이 모든 것들이 주어진 위기 상황 안에서 발생하는 일들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들 자신을 포함하여 각 개인이 위기에 처해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예견하기는 힘들다. 어떤 사람들은 곧 무너져 버리고 말며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심각한 위기가 오래 계속될 때에도 그것들에 대처해 나갈 수 있는 내적 
자원을 축적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특질들은 매우 일반적인 것처럼 보이는데 (주3. G. W. Brockopp, 
"Crisis Intervention Theory, Process and Pratice," in D. Lester and G. W. 
Brockopp, Crisis Intervention and Counseling by Telephone (Springfield, 
Illinois: Charles C. Thomas, 1973), pp.89--104; U. Delworth, E. H. Rudow, 
and J. Taub, Crisis Center Hotline(Springfield, Illinois: Charles C. Thomas, 
1972) 예를 들어 불안이 그것이다. 이 불안은 때때로 사람들로 하여금 판단을 
그르치게 함으로써 더욱 문제를 가중시키기도 한다. 또 무력감도 흔히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며 또 자신이 좀더 자립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수치심을 느낄 때가 많다. 타인에 대한 의존 역시 피할 수 없는 특질인데, 이 또한 
문제를 발생하게 한다. 때로 그는 너무 의존적인 데에 죄의식을 느끼며, 결정을 내릴 
수 없는 데에 좌절하며,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잘 운영해 나가는 데에 화가 
나기도 한다. 이것은 모두 자부심의 상실을 초래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자신이 
상처를 입기 쉬우며 자제하지 못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전체 상황에 대한 분노는 
흔히 있는 감정인데, 이 감정은 때로는 숨어 있기도 하지만, 도와주려고 애쓰는 
사람을 포함한 타인들에게 향할 때가 많다. 위기에 처한 사람은 (p99) 좌절 가운데 
빠져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할지를 모르며, 그래서 가장 가까운 사이이며 
그가 비록 화를 낸다 하더라도 그와 떨어질 수 없는 사람들을 향하여 화를 쏟아 
놓는다. 때로는 하나님에 대한 분노도 있을 수 있는데 이때에는 죄의식이 뒤따르게 
된다. 우리들 매일의 행동에서 효율성이 감소되는 일도 많다.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는 일,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해 걱정하는 일, 도대체 이 
일이 왜 일어났는가 질문하는 일 따위는 다른 활동을 위해 쓰여져야 할 시간과 
정력과 주의력을 다 빼앗아가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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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에 대처하는 일

  여러 면에서 위기란 우리의 매일 매일의 생활 가운데서 일어나는 긴장이나 혼란이 
증가되는 것 이상의 것을 말한다. 위기란 어느 한 사람의 미래 적응과 정신 건강에 
관계되는 하나의 전환점을 나타낸다. 우리가 위기에 대처해 나갈 수 있다면, 즉 
우리의 새로운 주위 상황에 적응해 나갈 수 있다면, 위기 문제를 해결하는 유효 
적절한 방법을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는 보다 큰 자신감과 경험을 발전시켜 이로 
하여금 장래의 위기를 좀더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될 것이다. 반면에 위기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면, 다음번 위기에는 실패감과 무능감이 더해져서 장래의 
일에 적응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한 정신 의학자에 따르면 (주4. Ibid., Delworth et al., p.48.), 사람은 위기에 
처하면 자신의 내적 차원을 가동시키면서 동시에 주위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구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긴장이 증가하는 징(p100)조를 보고는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게 된다. 직업적인 상담자들이 도와줄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잘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위기에 처한 사람이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 또 존경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우리가 위기에 처한 사람과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즉 그 상황을 좀더 잘 인식하면 할수록, 하는 일도 더욱더 
쉬워진다. 그래서 위기 상담에 있어 가정과 교회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한 개인이 그의 주위의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는 그가 얼마나 
성공적으로 해답을 찾을 수 있으며 또한 그럼으로써 그의 장래의 정신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인가의 여부를 결정하는데 상당한 작용을 한다.
  그러면 우리는 위기에 처한 사람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가? 우선 도표를 
살펴보기로 하자. 이 도표는 위기를 다루는 건전한 방법과 불건전한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질환, 가족의 사망, 재정적 손실, 결혼 생활의 갈등, 그 외의 위기가 닥쳐왔을 때, 
상담자가 목표로 해야 할 일은 그 사람을, 건강하지 못한 행동이나 감정 또는 
사고를 피해서 건강하고 건설적인 일에 초점을 맞추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위기 상담자는 위기에 처한 사람과 지리적으로 가까이 있어야 
하며(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을 도와주기는 힘들다), 즉각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며(한밤중에라도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동성이 있어야 하며(그래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특히 그가 우리에게 올 수 없을 때에 우리가 다가갈 수 
있다), 상담 방법에 있어서 유연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주5. T. F. McGee, 
"Some Basic Considerations in Crisis Intervention," in Community Mental 
Health Journal, vol. 4, 1968, p.323. D. K. Switzer, The Minister as Crisis 
Counselor(Nashville: Abingdon, 1974)에 인용되었다.). 사무실 근무 시간이 
한정되어 있는 직업적 상담자들은 이(p102)러한 기준드를 충족시키기 어려울 때가 
많으며, 그래서 위기 상황에 있어서 가족들, 친구들, 이웃들, 교회신도들과 
교역자들보다 효용성이 덜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비직업적 상담자들은 절망과 
큰 불안 가운데에 있는 사람에게 희망과 종교적 안정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위기의 시기에 특히 도움을 줄 수 있다.

  (p101) * 위기를 맞는 불건전한 방법과 건전한 방법(표 2 (주6, H. J. Clinebell, 
Jr., Basic Types of Pastoral Counseling(Nashville: Abingdon Press, 1966), 
pp.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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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 2). 위기를 맞는 불건전한 방법과 건전한 방법
   * 위기를 맞는 불건전한 방법
  1.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한다.
  2. 문제를 피한다(술 등을 통해).
  3. 도움을 구하고 그 도움을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한다.
  4. 슬픔, 분노, 죄의식 등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숨긴다.
  5. 위기 상황의 본성을 꿰뚫어 보지 않는다.
  6. 위기를 다룰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7. 위기의 원인에 대해 타인을 비난하며 다른 어떤 사람이 위기를 치료하는 데 
전적인 책임을 져 주기를 기대한다.
  8. 친구나 가족들에게 멀어진다.
  9. 위기에 대하여 기도하는 것을 거부한다.
  10. 위기는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 증거하고 확신한다.

  * 위기를 맞는 건전한 방법
  1.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2. 그 상황을 좀더 완전히 이해하도록 힘쓴다.
  3. 친구, 친척, 교역자, 그 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과의 대화 통로를 열어 
놓는다. 
  4. 죄의식, 불안, 분노 등의 부정적 감정을 시인하고 그 감정을 나눌 수 있는 
행동과 다른 견해를 수용한다.
  5. 그 상황 가운데서 변화할 수 있는 것과 변화되어질 수 없는 것을 구별하여 
변화되어 질 수 없는 것은 수용한다.
  6. 문제에 대처하는 실제적인 방법들을 찾아내고, 그 문제를 실제적인 방법으로 
다룰 수 있는 조치(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를 취한다.
  7. 문제가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그 
문제에 대처하는 책임을 받아들인다.
  8. 친구, 가족,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가까이 한다.
  9. 자신의 관심사를 하나님과 함께 솔직하게 나누면서 그 문제에 대하여 
기도한다.
  10. 인간을 사랑하시며, 우리의 위기를 아시며,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주권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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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 조정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도아주는 데는 어떤 표준 공식이나 요리법과 같은 방법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나 어떤 해결책을 취할 수는 있다.

    접촉을 한다.
  위기 상담에서는 도움을 주는 사람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서 아주 먼 
거리(반 구역일지라도)에 떨어져 있을 때에는 효과적인 도움을 줄 수 없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멀리에서도 위기에 개재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또 이것은 분명히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가능하다면 같이 있으며 
따뜻하게 그리고 기꺼이 이야기를 들어줌으로써 우리의 개인적인 관심을 나타내 
주어야 한다. 일찍 위기의 현장에 갈수록 우리는 좀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p103) 불안을 줄인다.
  일반적인 믿음과는 달리 이 일은 위기에 처한 사람이 다른 어떤 일을 생각하도록 
격려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극단적인 예를 든다면, 상가에 가서 상을 당한 
사람에게 야구나 증권 시장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면, 우리들 자신의 불안을 
줄이기 위해 죽음이라는 현실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위기에 처해 있는 
사람에게는 이 일이 별 신통한 작용을 하지 못한다. 그들은 그 상황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일어난 일을 설명하고, 위기 이전에 행복했던 시절을 뒤돌아보며, 
그리고 슬픔, 비통, 회한이나 분노 등의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자유롭게 느낄 때가 
많다.
  그러한 때는 도움을 주는 사람이 침착하게 관심과 수용을 보여 주는 것이 좋다. 
그는 성경 말씀을 가지고 위로를 해주며, 함께 기도해 준다. 그러나 이것은 상처받은 
감정과 표현하고 싶어하는 감정들을 이야기하지 못하게 막는 전술이 아님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만일 도움을 주는 사람이 그 상황에 대하여 알고 있는 바가 많지 않을 때는, 
가능하다면 그 위기가 언제 시작되었으며 그 위기가 시작되기 전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 등을 알아내고자 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동안 때로는 그 고통의 근원을 
발견해 내고 그 문제를 다루기 시작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대학 
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모든 일이 아주 잘 되어갔었어요"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대학 환경에 위기의 원인이 되는 그 무엇이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때때로 불안을 줄이기 위해서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품고 있는 분노의 
감정에 정면으로 맞서고, 그로 하여금 자신의 문제를 볼 수 있게 도와주며, 위기에 
맞서기 위하여 취하여진 조치들은 권유하며, 모든 것이 희망 없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가 (p104) 알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일은 적절하게 
해내지 못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로마서 8:28을 잘못 
인용하면 도움을 받는 사람을 분노케 할 수가 있는데, 특히 충분한 시간을 갖고 그 
상황을 이해하지도 않은 채 그 구절을 인용했다고 그가 생각할 때는 더욱 그렇다.
  여러 사람이 위기에 관련되어 있을 때는, 가장 불안해 하는 사람을 먼저 다루고 
나머지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방관자들을 멀리 보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여러 해 
전에 우리 가족은 한 어린 소년이 차에 차이는 것을 보게 되었다. 간호원인 나의 
아내가 응급 조치를 취하고 당황해 하는 소년의 어머니에게 침착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그 소년의 형이 현장에 나타났다. 그는 흥분한 태도를 소리를 질렀다. 
"엄마, 지미는 죽게 되나요?" 그러자 그 현장은 긴장감이 감돌게 되었으며 그래서 
나의 아내는 그 형에게 지미는 괜찮아질 것이라고 안심을 시켜 주고, 어머니가 
엠뷸런스를 타고 가는 동안 어깨에 외투나 스웨터를 걸치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는 스웨터를 가지러 뛰어갔고 그 상황은 상당히 진정이 
되었다.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위기의 와중에서는 문제 전체가 압도적인 것처럼 보이기 쉽다. 도움을 주는 
사람은 이때에 몇 가지 일을 할 수 있다. 첫째, 위기에 처한 사람으로 하여금 현재의 
상황을 탐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자신의 감정, 생각, 계획(있다면), 벌어진 
일에 대한 견해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신의 노력 등에 관해 말하게 한다. 이 
일은 위협적인 일들이 무엇인지를 발견해 내며, 그 상황에 대해 어떤 일들이 이미 
이루어졌으며 또 앞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가를 알아냄으로써, 문제들을 한 번에 
하나씩 가려내는 과정이다. 
  (p105) 때로는 실제의 문제가 무엇이며, 그가 가지고 있는 자원(얼마만큼의 돈과 
능력과 사람들과 기회들이 활용 가능한지)이 어떤 것이며, 그 사람에게 주어진 다른 
선택의 기회가 어떤 것인지 등을 하나씩 평가해 보며 요점을 좁혀 나갈 필요가 
있다. 도움을 받는 사람이 다른 선택의 기회들을 모두 열거하지 못할 때는 당신 
자신이 몇 가지 예를 들어도 좋다. 각각의 선택 기회에 대하여 도움을 받는 사람과 
함께 어떠한 것이 실천 가능한 것이며 어떤 것이 진정으로 그 문제에 도움을 줄 
것이며 또 어떤 것이 가장 손쉽게 수행할 수 있는 것인가를 결정하도록 한다.

  필자는 본서의 제1장을 쓰기 직전에 한 도시의 폭풍 피해 지역을 방문했었는데, 
그곳에는 수많은 가정이 피해를 입고 있었다. 어느 집은 한쪽 벽만 남고 완전히 
파괴되었는데, 그 벽은 그래도 여전히 무너지지 않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벽지에는 
검정색의 굵은 글자로 "리처드 가족은 다시 집을 일으켜 세울 것입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그들의 선택 기회는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위기에 처한 사람은 암시를 받기 쉬우므로 우리들 자신의 해결책을 추천하는 데 
매우 신중해야만 한다. 우리들은 또 사람들이 현실적이며 실제적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위기에 처한 사람이 필요로 하는 마지막 일은 그가 가지고 있는 
다른 문제들에 실패를 보태지 않는 것이다. 사실 더 이상의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위기의 시기에 고정되어 버리며, 그래서 이들은 행동을 
결정하는 데 도움과 격려를 필요로 하게 된다. 
  위기를 도와주는 데 있어서 도움을 주는 사람은 교회나 지역 사회의 도움을 
동원함으로써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공동 기도를 통한 도움은 사람이 위기를 지날 
수 있도록 지탱해 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진정으로 관시을 가지고 격려해 주는 
것을 실제로 보여준다. 이러한 일에는 야고보서에 쓰여진 바와 같이 좀더 
실제(p106)적인 도움을 보태어 주는 일이 포함될 수도 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약 2:15-16).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그에게 충실함은 때로는 돈, 
양식, 아기 돌보기, 집안일 도와주기나 다른 현실적인 도움 등 실제적인 방법을 
통하여 사람들을 돕는 것으로 나타내야 한다.

    행동을 격려한다.
  때로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거나 아니면 받지 않고도 어떤 행동에 
대해 결정을 내리기는 하지만 그 계획을 계속 밀고 나가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이때 도움을 주는 사라은 도움을 받는 사람이 필요한 기술들을 습득하도록 격려해 
주고 또 그가 행동을 취할 때 그 가까이에 머물러 있어 줄 수 있다. 도움을 받는 
사람을 위해서는 모든 일을 다 해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들은 모두 뒤에 
앉아서 "다른 사람이 그 일을 하게" 시키면서 그 한 일의 질에 대해 불평이나 하고 
있기 쉽다. 위기에 처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돕기 위해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는 상담자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행동을 평가하며, 또 필요하다면 지난번의 
계획이 실패할 때 좀더 나은 다른 선택 방법을 취할 필요가 있다. 
  이 모든 일은 도움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위기 상황을 맞는 단 두 사람일 
때를 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위기는 환경에서 비롯되는 일련의 
사건들로부터 시작됨을 기억해야 한다. 위기에 있어서 어떤 조치를 취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환경을 바꾸는 것일 때가 많다. 내담자로 하여금 다른 직업을 갖게 
도와 주며, 지역 사회가 집을 새로 짓게 해주거나 의료비를 제공할 수 (p107) 
있도록 하며, 가장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친척이나 친구들과 상담을 하는 일 
등 이 모두가 환경을 조정함으로써 위기감을 줄일 수 있는 방법들이다. 

    수용함으로 도와준다.
  폴 토니어는 그의 저서 가운데서 수용이란, 심각한 문제를 다루는 첫째 단계라고 
말하고 있다. 때로 위기는 영원한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재산의 파괴, 치명적인 질환의 발견 등은 일단 수용하고 다루어야 할 
사건들이다. 다른 방법을 취하는 것은 그 문제를 부인하는 것이며 그 해결책을 
지연시키는 것이다. 수용이란 치료와도 같이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그것은 그 
상황에 대한 고통스럽고도 의식적인 사고, 그러한 감정들의 표현, 생활 방식의 
재조정, 새로운 관계의 정립, 미래를 위한 계획 등을 포함한다. 수용이란 모험과 
실패 가능성을 포함할 수도 있다. 그것은 우리들 주위에 진지하고 인내심이 있으며 
도움을 주는 친구들이 있을 때, 그리고 우리의 짐을 그에게로 가지고 와서 그 짐을 
내려놓고 위기의 시기에 참 소망과 평안을 주는 평화와 인도하심을 경험하라고 
말씀하신(마 11:28, 29; 시 55:22, 32:8) 구세주를 개인적으로 알 때 가장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 그의 짐을 주님께 내려 놓을 때에 주님께서 다른 
사람들^56,36^본서의 저자나 독자들과 같은^36,23^을 통하여 지탱케 해주시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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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 상담자이신 예수님

  낯익은 위기 상담의 예를 요한복음 11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p108) 그것은 
치명적인 질환, 개인적인 위험,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손실 등을 포함한다.
  베다니의 나사로가 중한 병에 걸렸을 때 그의 누이들이 예수님께 전갈을 보냈다.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요 11:3).
  성경 이야기에 의하면, 예수님은 나사로, 마리아와 마르다를 사랑하셨다. 아마도 
예수님은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도, 예루살렘 가까이에 있는 그들의 집에서 편히 
쉬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요구에 따라 급히 길을 떠나시는 대신 
예수님은 이틀을 그 곳에서 보내셨다. 물론 예수님은 베다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알고 계셨으며, 제자들이 나사로의 병이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기도 전에 
이미 그 위기를 사용하여 제자들을 가르치셨다(4절, 9--15절).
  그러나 제자들은 자신들의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예수님의 생명이 위험했으며 또 
그들이 예수님과 연합하였다는 이유로 해서 그들의 생명 또한 위험했다(8절, 16절). 
대중 앞에 나타나는 것은 죽음을 무릅쓰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죽었다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주님을 따라 베다니로 가기로 합의했다. 
  그들이 도착해 보니 몹시 슬픈 광경이 벌어져 있었다. 상을 당한 두 누이를 
위로하기 위하여 많은 친구들이 모여 있었으나,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오고 계신다는 
소리를 듣자 곧 집을 나와 그를 맞으러 달려 내려갔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그 
상황을 다루셨는가를 보라.
  * 혼란에 빠진 제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설명해 주셨다(4절, 
14절, 15절).
  * 마르다로 하여금 그녀의 감정과 혼란함을 나타내도록 하셨다(21절, 22절).
  * 조용히 그녀를 안심시키시고 소망을 불어넣어 주셨다(23(p109)절, 25절, 26절).
  * 그녀에게 그리스도의 위(자리 위, Person of Christ)를 가르치셨다(25절).
  * 마리아로 하여금 분노를 포함하고 있을지 모를 그녀의 감정을 표현하도록 
하셨다(32절).
  * 그는 사람들이 슬퍼하지 못하게 하시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슬픔을 
나타내셨다(33절--36절).
  * 그는 슬픔에 잠긴 많은 조문객들의 적의를 조용히 받아들이셨다(37절). 비록 그 
자신의 마음이 깊이 분기하였지만(37절, 38절).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행동을 취하셨다. 그 행동은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었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가져 왔으며, 그리고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게 
하였다(38절--45절). 이 일에서 예수님은 야이로의 딸을 일으켰을 때와는 달리 
구경꾼들을 멀리로 보내지 않으셨으며,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심으로써 모든 
위기들 중의 가장 큰 위기인 죽음에 대한 그의 승리를 결정적으로 나타내 보이셨다. 
며칠 후에 예수님 자신이 처형당하실 때,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하여 조용히 
다가가시고 그리고 다시 부활하셨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죽음이 승리 안에 
삼키어져 버렸으며 믿는 자들은 죽음 후의 생명, 즉 그리스도와의 삶을 확신한다고 
소리친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고전 15:51-58).
  우리들 중 그 누구도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죽은 자에게 생명을 줄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위기 상담자로서, 예수님께서 베다니의 위기에서 사용하셨던 다른 
기술들은 모두 사용할 수 있다. 나사로의 부활이 없었다 할지라도 베다니의 위기는 
유익한 목적으로 활용되어졌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것을 확신시키려고 
하셨으나(요 11:4) 제자들은 후에야 그 말씀을 확실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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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110) 오늘날의 위기 상담

  오늘날의 대부분의 위기들도 마찬가지이다. 그 위기들은 고통스러운 것이며 
외적인 상처를 남기는 경험들이지만 그러나 또한 좋은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성장을 위한 경험들인 것이다. "우리 주위에 문제란 없어, 다만 기회가 있을 
따름이지"라고 말한 한 친구의 말을 기억하고 있다. 
  뉴욕의 버팔로에 있는 자살 방지 및 위기 예방 협회의 진 브로코프(Gene W. 
Brockopp) 박사의 말에 의하면 위기란 도움을 줄 수도 있고 동시에 치료법이 될 
수도 있다 (주7. Brockopp, op. cit., p.94). 위기란 사람으로 하여금 긴장의 상태가 
극도로 되게 하여 방어 기제가 무너져 버리게 하고, 변화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가지게 하며, 또 상담자의 제안에 적극적으로 마음을 열게 만들어 준다. 도움을 받는 
사람이 자신이 가진 내적 자원을 가동할 수 있게 되어 문제를 해결하면, 그의 
자신감과 자부심은 증가하게 된다. 때로 위기들은 사람으로 하여금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들을 좀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또 그 문제들을 좀더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이 모든 일들은 그의 정신적 평안과 심리적 안정에 큰 
도움을 준다. 위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영적인 문제들에 대해 경각심을 갖게 해 주며, 
또 무덤에서 나사로를 불러내신 그리스도를 좀더 의지하게끔 가르친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비평적이게 되며 하나님께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위기를 영적 발전을 위한 하나의 
전환점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보아온 것처럼, 위기에 처한 사람들은 혼란해 하고, 암시를 받기 
쉬우며, 죄의식을 느끼고, 자책할 때가 많다. 그(p111)들은 그 어떤 상황에 대하여 
너무나 절망적으로 느끼기 때문에 흔히 가장 실행하기 쉬운 선택방법은 자살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사람을 다루는 데는, 도움을 주는 사람이 그 사람의 
죄의식을 일깨워 그로 하여금 후에 후회하고 분개하며 거부할 수 있는 그런 영적 
결심을 하게끔 다루는 일이 흔히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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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의 영적 의미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과 그 자신의 생명의 위험에 직면하게 됐을 때, 벌어지고 
있는 일의 영적 의미를 부인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그 상황을 사용하여 영적인 
진리를 가르치셨으며, 위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보여주셨으며, 또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 속에 미치고 있는 하나님의 권세를 실증해 보이셨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예수님은 영적인 것을 가르침에 있어 사람들이 지닌 감정의 약점을 이용하지 
않으셨으며, 사람들이 의심하고(요 11:16) 비판하고(37절) 저항하든(46절--53절) 
그에게로 돌아서서 믿든 (45절) 그 자유를 빼앗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위기를 사용하시어 사람들을 그에게로 부르신다. 그는 위기를 
사용하시어 그리스도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며, 제자로서 성숙될 수 있게 
하신다. 위기 상담자로서의 우리의 임무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마음을 열고 성령께서 
언제 어떻게, 위기에 처한 사람을 주님께로 좀더 가까이 끌어들이며 또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가져올 수 있는 방법으로, 우리의 위기 상담에 영적인 문제들을 
가져오실 것인가를 보여 주시기를 신뢰하는 일이다. 
  (p112)
  @[  6. 전화 상담 (pp112--133)

  전화 상담이란 별로 새로운 것이 아니다. 기계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도움이란 전화만큼 가까이"에 있으며, 또 아이가 아프거나, 수도꼭지가 새거나, 
소득세 양식을 작성하는 데 애로가 있을 때, 또는 좀더 개인적인 문제가 생길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지하는 것은 전화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수년 전에 교회 지도자들은 전화를 사용하여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일의 귀중함을 
깨닫기 시작하였으며, 이에 따라 "전화를 통해 도움을 주는" 여러 상담 기구들이 
처음에는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 그리고 후에는 북미에 설립되었다. 1958 년 
로스엔젤레스 자살 방지회가 설립되었을 때 그 설립자들은 사람들이 전파를 통하여 
상담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현재 미국 한 나라에서만 수백 개의 전화 상담소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주1. U. Delworth, E. Rudow, and  J. Taub, ed., 
Crisis Center Hotline(Springfield, Illinois: Charles C. Thomas, 1972) 그 
중에는 목회 상담, (p113) 자살 방지, 십대를 위한 직통 전화, 약물 정보, 노년층을 
위한 전화, 그 외 사람들이 전화를 통하여 무료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여러 
기구들이 포함되어 있다.
      -----------------
    경시되어온 상담 방법

  전화 상담은 그것이 사람을 돕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상담 서적 
가운데에는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필자의 견해로는, 전문인들은 "전화 상담을 
실재의 요법과는 다르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이며 그래서 주의를 기울일 만한 가치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전화 상담 봉사를 하다 보면 전문 요원들은 면담 
요법을 하기 위해 전화 상담에서 점점 떨어져 나가 비전문인들이 전화 상담을 하게 
되는 일이 흔하다. (주2. D. Lester and G. W. Brockopp, Crisis Intervention 
and Counseling by Telephone(Springfield, Illinois: Charles C. Thomas, 1973), 
P.vii)
  전문인들이 이처럼 떨어져 나간 결과로 전화 상담소는 대부분이 자원 
봉사자들^56,36^전화로 사람들을 도와주는 능력이 분명하게 실증된 자원 
봉사자들^36,23^로 이루어져 있다. (주3. R. K. McGee and  B. Jennings, 
"Ascending to the 'Lower' Levels: The Case for Nonprofessional Crisis 
Workers," in Lester and Brockopp, op. cit., pp.223--237; D. A. 
Knickerbocker and R. K. McGee, "Clinical Effectiveness of Non Professional 
and Professional Telephone Workers in a Crisis Intervention Center," in 
Lester and Brockopp, op. cit., pp.298--309) 어떤 문제(예를 들어 자살 
방지)들에서는 자원 봉사자가 전문인에 비해 훨씬 더 도움이 되고 있다. 이렇게 
하여 자살 방지에서는 가장 저명한 지도자들 중의 한 사람이 소위 "레트만의 
법칙"(Letman's Law) (주4. S. M. Heiling, "Traning in Suicide Prevention," 
in Bulletin of Suicidology, no. 6, pp.41--44, Spring 1970)이라는 것을 
공식화(p114)시키게 되었다: "자살 위기가 혹독하고 예리하면 할수록 그 문제를 
다루기 위해 전문적인 훈련을 받을 필요가 적어진다."
  대부분의 이 "다루기"(managing)는 전화를 통하여 일어난다. 그래서 효율적인 
상담자가 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 자도자들과 조언자들은 전화 상담에 대해 그리고 
전화 상담이 어떻게 효과를 얻고 있는가에 대해 이해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
    전화 상담의 독특성

  수년 전, 장기간의 스위스 방문 중 나와 가족은 전화가 없는 스위스식 벌장에 
살았었다. 이것은 너무나도 편안한 휴식을 준 독특한 체험이었기 때문에 집에 
돌아온 후 나는 가족에게 전화를 떼어버리자고 설득하려고^56,36^비록 실패하기는 
했지만^36,23^했었다. 전화가 있어서 이롭다는 사람들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 전화는 친구들이나 친척들과 연락을 계속할 수 있는 방편이며, 급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위급 사태에 꼭 있어야 하는 것이며, 정보를 얻거나 구매할 때 
편리하다는 것이다. 사업계, 교육계, 행정계는 전화가 없으면 거의 생존할 수도 
없으며 대부분의 개인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므로 대인 대화를 전문으로 
하는 상담 직업이 그처럼 오랫동안 전화 상담의 독특한 면들을 무시해 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간단하게 진술해서 전화 상담은 (1) 매우 간편하며, (2) 위기에 
적합하며, (3) 자신의 생활 양식과 문제로 인해 대면 상담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특별히 귀한 것이다. (주5. 이 단락의 결론 중 많은 부분이 T. Williams 
and J. Douds, "The Unique Contribution of Telephone Therapy," in Lester 
and Brockopp, op. cit., pp.80--89에서 인용되었다.)
      -----------------
  (p115) 전화 상담의 편이성

    덜 위협적이다.
  전화로 이야기 할 때, 내담자는 상황을 좀더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덜 위협을 
받을 때가 많다. 우선 전화를 건 사람은 내담자 본인이며, 상담자의 성격이나 
질문들이 싫을 때 또는 불편하게 느껴질 때에는 전화를 끊음으로써 그 상황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내담자는 낯선 상담소나, 교회 목사관 또는 
친구의 집 거실에서보다는 자신의 집의 안정되고 안전한 분위기에서 이야기할 때 
더욱 편안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상담자에게 얽매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전화가 "유일한 방법"이다. 전화는 도움을 받기 위해 손을 내밀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인 것이다.

    익명으로 할 수 있다.
  전화의 두 번째 편이성은, 사람들이 익명인 채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면담에 대해 너무나 우려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어떤 사람과 개인적으로 이야기하면서 익명인 채로 남아 있기는 어려운 
일이다(비행기 안에서는 두 사람이 비행장에 내려 사람들에게 휩싸여 버리면 다시 
더 만나게 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에 확신을 갖고 자신들의 문제를 옆자리 사람에게 
쏟아 놓은 경우가 가끔 있다). 그러나 전화를 사용할 때는, 특히 전화 상담소에 
전화를 걸어 낯선 사람에게 이야(p116)기를 할 때에는, 자신의 정체를 아는 
사람으로부터 거부를 받는 모험을 하지 않고도 자기 삶의 자세한 내막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친구에게 이야기할 때에도 전화는 안전한 거리감을 갖게 해 
준다. 나의 미혼 시절을 돌이켜 볼 때 나는 전화로 데이트 신청을 하던 것을 
좋아했는데, 그것은 내가 거절을 당하더라도 덜 당황하게 되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유용성이 크다.
  셋째로, 전화 상담이 유용할 수 있는 유일한 때가 있다. 아프거나 교통 수단이 
없을 때, 또는 내담자가 상담자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전화 상담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방법이다. 데이트에 관한 문제들을 이야기하기 위해 
어머니에게 전화를 한 여대생은 자기가 활용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상담자가 곁에 있는 것이 극히 부적합하다고 생각할 때 
사람들은 전화를 사용한다. 나의 동료 한 사람은 최근에 결혼한 제자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신혼 부부는 신혼 여행의 첫날 밤에 성적 적응을 하는데 
약간의 어려움을 갖게 되었으며, 그래서 오전 2시에 그들의 심리학 교수였던 나의 
동료에게 장거리 전화를 걸기로 작정하였다. 그 교수는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 약간의 지시를 하였는데, 그러한 상황하에서는 전화 상담보다 더 좋은 접근 
방법이 없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시간이 절약된다.
  여태까지는 내담자쪽의 편이성에 대해서만 언급을 하였다. 그러나 전화 상담은 
상담자에게도 유익하다. 특히 상담자가 평상적인 사업의 필요 조건들(일정, 상담료 
등)에 관심이 없는 비전문인일 (p117) 때 그렇다. 전화 상담은 상담자에게 시간을 
절약하게 해주며 면담을 결정하는 데 따르는 불편함을 덜어 준다. 그는 내담자와 
연락을 계속하고 자신의 관심을 나타낼 수 있도록 내담자에게 자주 전화하여 
내담자와의 접촉을 계속 가질 수 있다. 상담자가 내담자와 개인적으로 만날 수 없을 
때는 간단한 전화 통화로써 모든 필요를 충족하게 할 수도 있다. 이것은 특히 
위기의 순간에, 내담자가 누군가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할 필요가 있을 때, 그러나 매일같이 면담을 할 수 없을 때에 아주 적합하다. 
전화 대화가 갖는 익명성은 상담자들에게도 역시 귀중한 것이다. 

  전화 치료법사는 면담 치료법사보다 훨씬 더 환자의 이상형에 가까울 수 있다. 
왜냐하면 환자는 진실의 일부분만을 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전화에서는 면담 
상담에서와는 달리 어떤 사람에 대한 인상을 전혀 받지 않게 된다. 우리는 자기와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가에 대해 전혀 알 수 없으며, 또 표정을 볼 
수도 없으며, 면담에서는 일반적으로 받게 되는 기타 사고나 감정이나 인격에 대한 
신체적 표현을 전혀 볼 수 없다. 전화 상담은 면담 상담보다 훨씬 더 환자로 하여금 
치료법사를 자기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주6. 
Ibid., p. 85.)
    -----------------
      위기와 전화 상담

  물론 전화 상담이 가장 도움이 될 때는 위기 중이다. 전화를 (p118) 함으로써 
내담자는 약속을 하고 면담 장소까지 나가거나, 아니면 전문적인 상담소일 경우 
소정 양식을 기재하고 이름을 대기자 명부에 올려야 하는 등의 복잡한 절차들을 
끝내지 않고도 재빨리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전화 상담은 이러한 장애물들을 
지나쳐 갈 수 있게 해준다. 전화 상담은 즉각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때가 많다. 
물론 이것은 희망을 불어넣어 주고 긴장된 상태에 객관성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상담자와 만났을 때만 가능한 것이긴 하다. 
  많은 사람들은 필요할 때 자기가 전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치료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10 대 소년이 언제나 교회 지도자나 농구 
코치에게 전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실제로는 전혀 전화를 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가 필요로 하기만 하면 재빨리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 때문에 기분 좋게 느끼기 때문이다.

  위기에 직면해 있거나 않거나,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성격상 다른 어느 종류의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전화상담으로부터 유익함을 얻게 된다. 예를 들어, 혼자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친밀하게 얼굴을 맞대는 접촉에 대처할 수 없을 때가 
가끔 있는데 그러나 그들도 전화로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절망하는 
사람은 자기가 환경에 의해 혼란스럽고 압도당하고 있다는 것을 자주 발견한다. 
그러나 전화 접촉은 그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생명선일 수도 있다. 매우 불안정한 
사람들도 전화에 의지한다. 예를 들어 사춘기 청소년들은 자신의 약함이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을 시인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 때가 가끔 있다. 그러나 전화 접촉은 
그것이 덜 위협적이기 때문에 그들로 하여금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인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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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119)
  전화 상담의 한계

  필자는 상담 과정을 가르치면서, 상담자는 내담자가 이야기하는 것을 잘 들어야 
할 뿐 아니라 내담자를 주시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어떻게 옷을 입었으며, 어떻게 걸으며, 또는 의자에 어떻게 앉아 있나를 봄으로써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표정, 긴장감의 정도, 몸의 움직임, 눈물 
또는 숨쉬는 방법들도 매우 중요한 단서들로서 우리로 하여금 그를 좀더 잘 
이해하고 좀더 빨리 친밀한 관계를 세울 수 있게 해준다. 뿐만 아니라 몸의 
움직임이나 고갯짓, 눈의 동작들을 관찰함으로써 내담자는 상담자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며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는지를 잘 파악할 수 있다.
  전화로 이야기를 할 때는 이런 시각적인 모든 단서들이 자취를 감추게 되므로 
누구에게나 문제를 제기시킨다. 내담자는 상담자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자기의 
문제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이것은 어떤 
내담자에게는 위안이 된다. 특히 내담자들이 곤란하고 죄의식을 느끼는 행동에 관해 
이야기를 할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상담자가 내담자를 수용하고 이해하고 
있으며, 말하는 내용에 빼놓지 않고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위안이 
될 수 있다. 전화 내담자는 이것을 볼 수 없으며, 그래서 상담자는 그것을 소리로 
나타내 주어야만 한다.

  그러나 전화 상담자 역시 문제를 약간 가질 수 있다. 그 역시 소리에 부대적으로 
따르는 단서들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내담자가 말하는 것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할 
뿐만 아니라 어조, 망설임, 성량이나 말의 빠르기, 어조의 변화, 한숨, 목소리의 
떨림이나 기타 내담자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나타내 주는 모든 소리들을 잘 들어야 
한다. 전화 내담자가 낯선 사람일 때는 그 사람의 성별이나 연령을 (p120)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우리는 그의 옷차림이나 소리로 나타나지 않는 신경증적 버릇에 
대해 전혀 알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알 필요가 있는 것들 즉 연령 또는 
그가 울고 있는지 아닌지 등을 물어야 한다.
  상담자의 전파하는 태도 역시 중요하다. 우리가 듣고 있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때때로 "네"하고 말할 필요가 있으며 우리의 말이나 어조를 통하여 감정이입, 
따뜻함과 진실함을 나타낼 필요가 있다. 처지고 흥미없는 듯한 단음조로는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 보일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적으로 
나오는 것을 행하는 것"의 귀중함을 강조해야 한다. 상담자가 정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그의 목소리가 이를 전해줄 것이다. 그가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면 그것 
또한 드러날 것이다.

  전화 상담에 또 다른 하나의 문제점이 있는데, 그것은 전화 상담이 진정한 도움을 
주기보다는 그저 대화에 그쳐 버리고 마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주7. G. 
W. Brockopp, "The Telephone Call: Conversation or Therapy," in Lester 
and Brockopp, op. cit., pp.111--16) 어느 정도까지는 대화와 상담의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다. 친구와 사교적인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도 치료가 될 수 있다. 
특히 어렵거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다. 그러나 상담은 그 이상이 
것으로 생각된다. 거기에는 다루어야 할 문제가 있으며, 그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상담자는 객관적이어야 하며 또 필요한 것을 직시하고 가르치고 인도해야 한다. 
이것은 전화 상담이 우리가 흔히 전화 통화로 연상하는 사교 이상의 것이 되지 
않고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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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121)
  전화 상담을 할 때 실제로 고려할 점들

  지금까지 우리는 전화를 통해 사람을 돕는 것이 어렵긴 하지만, 전화 상담이 또한 
많은 사람을 돕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도 있음을 증명하려고 시도해 보았다. 이제 
우리는 전화 상담을 통해 사람들을 도와주는 데 있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전화 
상담 도중 발생할 수 있는 유해한 태도를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 그리고 문제성이 
있는 내담자들을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지에 관해 몇 가지 실제적인 제안을 
다루기도 한다.
  몇 해 전 어느 잡지에 발표된 한 기고문은 전화 상담자를 위해 매우 실제적인 
지침을 제시한 적이 있다. "당신을 제한하는 것은 당신의 독창력(슬기)뿐이다"라고 
쓴 저자는 "이러한 한계 속에서 당신은 다음과 같은 일을 할 수 있다"라고 했다.

  당신은 들어줄 수 있다. 그것은 전화를 거는 사람에게 아주 희귀한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단순히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데서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자제할 수 있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며, 좋은 사람과의 관계는 성장을 
촉진한다는 전제하에서 당신은(전화 상담을 위해) 선발 되었다. 곤경에 처해 있는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
  당신은 다른 사람 안에 있는 자원과 다른 사람을 위한 자원을 동원할 수 있다. 
전화를 거는 사람은 흔히 스스로 해답을 지니고 있거나 해답을 창출해 낼 수 있는 
능력(수단)을 갖고 있으나 이를 보지 못하고 있다. 당신은 통화 과정에서 문제의 
초점을 조명해 줌으로써 그가 스스로 해답을 발견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당신은 
또한 그를 다른 상담자에게 위탁(소개) (p122) 하거나 다른 기관과 접촉하게 하거나 
친구나 목사에게 전화해 구조를 요청하거나 경찰을 보내거나 아침에 만나기로 
약속을 함으로써 그를 도울 수 있는 자원을 동원할 수 있다.
  당신은 스스로의 한계를 알아 자신을 위해 도움이 필요할 때, 즉 스스로를 위한 
자원을 동원할 때를 알 수 있다. 설령 잘못되는 일이 있더라도 수시로 당신의 
상담자를 활용하는 편을 택하라.
  당신은 다른 상담원들을 위해 "피이드백"을 제공할 수 있다. 당신은 전화 
상담에서 배울 수 있다. 당신이 배운 것을 다른 전화 상담자들과 나누도록 하라. 
  당신은 동정을 표현할 수도 있고 물어볼 수도 있고 명확히 할 수도 있고 제언해 
줄 수도 있고 알려줄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듣고만 있을 수도 있다!. (주8. C. W. 
Lamb, "Telephone Therapy: Some Common Errors and Fallacies" in Voices, 
vol. 5, 1969--70, pp45--46)

  이는 전화 상담을 자원하는 분들을 돕기 위하여 쓴 것이지만 목회 상담자나 동료 
상담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전화 상담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종류의 상담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내담자의 문제에 유의하라.
  내담자의 문제에 유의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당신 스스로 하는 것을 
뜻한다. "왜 이 사람은 전화를 걸었을까?"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할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종종 우리는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없을 때가 
있는데, 이(p123)럴 경우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짐작을 해보고 우리의 가설을 
증명하거나 반박해 줄 만한 사실을 얻어내려고 노력하게 된다. 시간이 감에 따라 
문제의 윤곽이 드러나게 된다.

    내담자의 감정에 민감하라.
  내담자가 정서적으로 어떻게 반응하는가? 전화를 건 사람이 우울해 하고 있는가, 
불안해 하는가, 당황하고 있는가, 방어적인가, 화가 나 있는가, 의심하는가 아니면 
희망을 표현하는가? 내담자가 이례적으로 침착하거나 감정이 없이 말하는가? 감정의 
강도는 어떠한가? 적절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가? 내담자가 신경질적인 웃음이나 
어색한 웃음을 웃고 있지는 않은가? 무엇인가 슬픈 내용의 말을 하면서 이상스레 
행복한 음성으로 말하지는 않는가? 이 모든 것을 통해서 상담자는 이들 감정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들 감정이 내담자에 대하여 무엇을 말해 주는지를 계속 
자문한다.

    내담자의 생각을 인식하라.
  예를 들어, 내담자는 자신이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내담자는 자기의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라 생각하며 문제의 해결 방법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과거에 어떤 것을 시도해 보았는가? 내담자가 이야기할 때, 횡설수설하거나 
명확성의 결여, 집중력의 부족이나 거짓된 결론으로 비약하는 경향과 같은 긴장의 
징후가 나타나는가를 살피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합리적인 존재로 만드셨지만, 
우리가 스트레스 아래 놓여 있을 때는 합리적으로 생각하지 못할 때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한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느냐와 어떻게 사고하는냐 하는 것은 문제의 
성격을 파악하는 (p124) 데 좋은 단서가 될 수 있다.

    내담자의 행동에 민감하라.
  2차 세계 대전 중에 폴 토니어(Paul Tournier)는 고독에 대하여 재미있는 책을 
서술한 바 있는데 이 책에서 그는 많은 고독의 원인이 우리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주9. P. Tournier, Escape from Loneliness(Philadelphia: 
Westminster, 1962).) 우리는 "불쌍하고 가련한 나,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태도를 취하면서 우리는 운명의 희생물이며 다른 이들의 무감각으로 
말미암은 피해자라고 불평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우리 자신의 태도와 행동 
때문에 사람들은 우리를 멀리하게 되고 따라서 우리는 비참한 지경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모든 문제가 우리의 잘못에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문제가 우리의 
잘못에서 기인하고 있다. 죄는 우리를 문제와 곤경으로 유도할 수 있다. 그리고 
일관성이 없는 행위나 행동은 자기 파멸과 실패를 자초한다.
  다른 곳에서 나는 자기의 결혼한 딸을 상실하는 것이 두려워, 이를 막기 위해 
질식할 정도로 요구적인 "사랑"으로 딸에게 접근했던 어떤 어머니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자연히 딸은 이에 저항했으며 뒤로 움츠러들었다. 딸이 이러한 반응을 
보이자 어머니는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태도는 결국 딸을 
몰아내는 결과를 초래했다. 어머니는 자기 자신의 행동에 의하여 자기가 가장 
두려워하던 결과를 자초했던 것이다. 
  끝으로 우리의 행동에 일관성이 없을 때 우리는 곤경에 빠지게 된다. 거짓말을 
하고 이를 덮어버리려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믿고 저렇게 생활하려 할 때 또한 문제가 따르기 마련이다. "행동과 기본적인 생활 
철학 사이에 갈(p125)등이 있을 때, 대개 인격은 문제에 빠지게 된다." (주10. L. 
Brammer and L. Shostrom, Therapeutic Psychology(Englewood Cliffs, New 
Jersey: Prentice-Hall, 1968), p.435)

    상담자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하라.
  상담자가 조심하지 않으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이러한 실수는 전화 상담을 
할 때는 물론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고 상담할 때에도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질문에 지나친 역점을 두는 경향을 생각해 보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상담을 시작한 지 5분이 못 되어 관례적이고 틀에 박힌 질의 
응답식의 대화로 들어가 당신은 대화를 지속시키기 위하여 허겁지겁 물어볼 주제를 
생각하기에 바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반면에 내담자는 당신이 일단 이 모든 
정보를 입수한 다음에는 문제에 대해 간결한 해답을 제시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질문을 할 때에는, 생각나는 대로 자유롭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하는 것이 제일 
좋다. 예를 들어 "당신은 지금 우울합니까?"라는 식의 질문보다는 "요즈음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그동안 어떤 감정을 경험하셨습니까?"와 같이 한두 마디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하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말을 간결하게 하고 
"계속하세요.",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나요?" "그때 틀림없이 어떤 감정을 
느끼셨겠는데요"와 같이 다음 말을 재촉하는 말을 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
  흔히 범하는 또 하나의 오류는 빠른 해결책을 얻으려고 지나치게 서두르는 
것이다. 내담자는 그의 문제를 안고 오랫동안 고심해 왔을 것이다. 그런데 왜 
당신은 모든 것을 10분 아니면 15분 안에 (p126) 다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시간을 넉넉히 잡고 상대방의 말을 듣는 데 우선적인 역점을 두는 것이 좋다.

  상담자가 상투적인 말을 피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다음과 같은 말은 좋은 뜻으로 
하는 말이지만, 이는 오히려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들 수가 있다. "당신의 기분을 
확실히 알 것 같습니다", "걱정 마세요", "당신은 문제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 문제에 대해 기도만 
하십시오"와 같은 말들은 긴장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때때로 이와 같은 상투어 뒤에는 짤막한 설교나 간결한 충고가 따르게 된다. 이는 
물론 좋은 뜻을 담고 있는 것이지만, 그러한 설교나 충고를 내담자가 귀담아 
경청하는 예는 거의 없다. 대개 이러한 설교나 충고는 무슨 말을 할지, 무엇을 할지 
모르는 상담자의 불안정함을 나타낼 뿐이다. 
  좀 놀랍게 느낄지 모르지만, 상담자와 내담자는 종종 문제 자체를 완전히 
회피하는 오류를 범한다. 내담자의 결혼 문제나 이혼, 직업상의 문제나 실직, 
반항하는 자녀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대신 
날씨나 운동 또는 정치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가 있다. 몇 해 전에 어떤 분이 나에게 
상담자와 의자에 앉아 대화하고 있는 내담자의 모습을 조각한 금속 입상을 
선물했다. 나는 이 금속 입상을 책상 위에 갖다 놓았는데 얼마 가지 않아 이것이 
화제거리 이상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내가 희망했던 것과 같이) 
내담자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고통스럽지만 꼭 
다루어야 할 내담자의 문제를 거론하지 못하도록 마음을 방심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
  (p127)
  상담자들이 벌이는 게임

  한 심리학자가 전화 상담 과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태도를 약간 풍자적인 투로 
다음과 같이 열거한 적이 있다. 에릭번(Eric Berne)의 표현을 빌어 우리는 이것을 
"상담자들이 벌이는 게임들"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첫째 게임. "무슨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록 그 대답이 피상적이고 비현실적이라 할지라도 즉각적이고 빠른 해답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는 태도이다. 더 좋은 것은 오래 들어주는 것이다.
  둘째 게임.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이 더 좋겠다. 말했다가 
그대로 되면 어떻게 하나."
  이는 미신에 가까운 생각이다. 이는 우리가 자살이나 실패의 가능성, 죽음 또는 
내담자가 이혼 소송을 제기하게 될 가능성과 같은 문제들을 거론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이런 것을 화제에 올리면 내담자가 흔들릴 수도 있고 그러한 사건이 
염려했던 대로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내담자는 보통 그와 같이 민감하지 
않다. 만일 상담자가 어떤 현존하는 위기나 가능한 위기에 대하여 생각한다면, 
내담자도 이미 그런 것에 대해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따라서 문제를 터놓고 
상의할 수 있는 기회를 고맙게 생각할 것이다.
  셋째 게임. "내가 더 많이 알았더라면 도울 수 있을텐데."
  이는 상담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우리의 두려움을 감추어 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문제의 열쇠를 제시하거나 즉각 정신적인 건강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어떤 
성경 본문이나 정보를 더 추구하게 된다. 상담은 힘든 과업이다. 상담자와 내담자는 
함께 해답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문제를 즉시 효과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일련의 통찰력이나 금과옥조(쇠 금, 과목 과, 구슬 옥, 가지 조: 금옥과 같이 귀중히 
여기어 신봉하는 법칙이나 규정)를 발견한다는 것은 극히 희(p128)귀한 일이다. 
  넷째 게임. "내가 생각만 할 수 있다면 틀림없이 해답이 있을 것이다."
  아마 생각해 보는 것만이 우리의 할 일은 아닐 것이다. "해답이란 창초되는 
것이지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 어느 상담자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지 모르나, 
우리는 모든 문제 앞에 지시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해답을 제시하려 든다면 큰 
좌절감을 경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의 일은 문제가 있는 사람을 돕는 데 
있어 성령님의 도구가 되는 것임을 기억하라. 해답을 제시하는 사람, 특히 척척 
박사가 되려고 하는 것보다는 이것이 더 중요하다.
  다섯째 게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틀림없이 있을텐데."
  이것을 사실일 수 있다. 그래서 이런 경우 위탁이 지혜로운 선택일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 상황에서 동료 상담자가 가장 훌륭한 상담자가 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당신일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인식하라.
  여섯째 게임. "나는 감정 이입이 가능하며 온화하고 이해심이 많은 그리고 
한결같이 유능한 상담자이다."
  물론 우리는 이와 같이 상담자가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실상 때때로 
실수를 하는, 그리고 심각한 상담상의 오류를 범하는 연약한 인간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을 때 우리는 주님께 용서를 빈다. 그리고 
내담자에게도 용서를 구할 때가 있으며, 다시는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겠다고 
각오를 새로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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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성 있는 전화 통화자들

  전화 상담에 있어서 한 가지 문제는 사람들이 저녁 식사 시간을 (p129) 포함하여 
시간의 제한없이 밤낮으로 당신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식사나 가정의 일상적인 
생활이, 자기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 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계속해서 
방해를 받는다면 전화 상담은 상담자의 가정을 망쳐 버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집에는 저녁 식사 시간에는 어떤 사람도 전화 통화를 하지 않는다는 규칙이 
정해져 있는데 이것은 특히 나에게 적용된다. 전화를 받고 싶은 유혹을 피하기 
위하여 식사 시간마다 우리는 전화벨 소리가 울리지 않도록 플러그를 뽑아 놓는다. 
우리의 친구들과 내담자들은 이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식사 시간에 전화를 
걸었다가 응답이 없으면 나중에 다시 전화를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안전 조치에도 불구하고 어떤 통화자는 상담자의 사정에 무감각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때로 다루기 어려울 때가 있다. (주11. 이러한 통화자들에 
대한 토의는 Lester and Brockopp, op. cit., Park III에 상세히 취급되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 중에는 음험한(교활한) 통화자, 만성적인 통화자, 침묵을 지키는 
통화자, 그리고 외설적인 통화자가 있다.

    음험한 통화자
  음험한 통화자(subtle caller)는 실제로 도움이 필요해서 상담을 요청하면서도 
직접적으로 자기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할 용의나 용기가 결여되어 있는 사람이다. 
미국 버팔로의 자살 방지 및 위기 봉사 센터의 진 브로코프(Gene Brockopp) 
박사에 의하면 (주12. Ibid., pp.193--98) 이와 같은 음험한 상담 요청은 몇 가지 
형태를 취할 수가 있다. 때에 따라 전화를 건 사람이 당신이 전화를 받자마자 
통화를 중단해 버린다. 통화자는 자기가 말하기 전에 당신의 음성의 어조나 음색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그는 잠시 후에 다시 전화를 걸어온다. (p130) 또 어떤 때는 
전화를 건 통화자가 자기는 문제가 있는 친구를 위하여 대신 전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브로코프는 통화자가 말하는 것을 항상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통화자 
자신이 바로 문제를 안고 있는 장본인일 가능성이 많다는 가설을 전제로 한다. 
자살이나 정신 건강 또는 다른 주제에 대하여 정보를 요구하는 전화도 같은 식으로 
처리한다. 때에 따라 사람들은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적의를 갖거나 
농담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보통 하나의 방어에 지나지 않는다. 친절하고 
진지한 태도로 반응함으로써 상담자는 흔히 문제에 빨리 접근할 수 있다. 이러한 
통화는 통화자가 어떤 한 가지 차원으로 말을 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아직 
표면화시킬 수 없었던 자기 문제에 대하여 도움과 도움을 이해를 구하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역시 음험한 데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음험한 접근은 꼭 전화 
상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내담자는 얼굴을 마주보고 상담을 하는 상황에서도 
가면을 쓰고 접근해 올 때가 있다.

    만성적인 통화자
  만성적인 통화자(chronic caller)는 보통 외로운 사람이 아니면 우울증에 걸린 
사람으로 매일 몇 차례씩 전화를 하는 사람이다. 이런 통화 역시 상담자를 피곤하게 
하는 것으로 다루기가 매우 힘들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다시는 전화를 하지 
말라고 말해 주거나 전화를 걸어 올 때마다 얼마든지 얘기를 하고 싶은 만큼 하게 
내버려둘 수 있다. 그러나 두 경우 다 우리는 별 도움을 줄 수 없으며 우리 스스로 
죄책감과 좌절감을 느낄 수도 있다. 종종 보면 이런 통화자와 대화할 때는 시간을 
제한하여 10분 안에 끝낸다는 원칙을 정해 두고 그 규칙을 고수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아울러 부로코프는 이런 사람을 지역 사회의 상담 기관과 접촉할 (p131) 수 
있도록 주선해 줄 것과 충분한 지원을 해주되 최소한의 면박을 가할 것, 통화자로 
무한정 넋두리를 하게 하는 것보다 가능한 해결책과 함께 구체적인 문제를 거론할 
것, 만성적인 통화자들끼리 또는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들어줄 수 있는 교회의 
동료 상담자와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할 것, 통화자에게 전화로 얘기하는 대신 자기 
문제를 적어서 편지로 우송하는 "기록 요법"을 제안할 것, 그리고 통화자에게 가끔 
전화를 걸어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다짐해 줄 것을 제안했다. 한 가지 더 
부언할 것은 우리가 시간을 제한하고 통화수를 제한하는 것에 대하여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제한 조치는 통화자로 현실을 직시하게 하고 
상담자와 그의 가정의 건강과 평온에 기여할 수 있다. 

    침묵을 지키는 통화자
  침묵하는 통화자(silent caller)는 다른 종류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전화를 걸 
만큼 동기가 분명했으나 일단 당신으로 전화를 받게 해놓고는 말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이다. 이때 당신은 상담자로서 이중의 문제를 안게 된다. 당신은 시각 및 
청각적인 실마리부터 완전히 차단되어 있다. 이럴 때는 통화자도 당신을 볼 수 
없으므로 당신은 책을 읽거나 편지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통화자가 말을 
할 수 있도록 약간 격려해 주는 것이 더 좋다. "말을 꺼내는 것이 힘들 때가 
있지요?"라고 서두를 꺼낼 수도 있다. "내가 선생님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나는 당신과 대화하고 싶습니다", "말씀을 안 하시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지 않습니까?" 등은 모두 당신이 나타낼 수 있는 
반응이다. 다른 모든 것이 다 실패할 때는 "나는 당신과 얘기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얘기할 수 없다면 일(p132)분쯤 지난 후에는 끊을 수 밖에 없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좋은 반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침묵이 계속되면, 당신은 
그에게 당신의 관심과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해 준 다음 다른 때에 또 전화를 걸어 
달라고 격려하고 수화기를 놓기 전에 "안녕히 계십시오"라고 말하라.

    외설적인 통화자
  외설적인 통화자(obscene caller)는 교회 지도자들에게 전화하는 것을 특별히 
즐긴다. 그는 교회의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가해 그들을 분노하게 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 싶어한다. 설교자로 하여금 화를 내게 할 수 있을 때, 그는 
종교인도 별로 선한 사람들이 아니며 아마 자기처럼 못된 사람인지도 모른다는 
확신을 더하게 된다. 욕설이 다른 사람 위에 자신의 남자다움과 힘의 우위를 보여 
준다고 하는 느낌과 함께, 이러한 장난이 이상한 방법으로 그의 자기 평가를 높여 
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통화자에게 화를 내는 것은 이런 상황을 대처하는 
방법이 아니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긍정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도 온당치 
못하다. 친절과 동정, 그러면서도 확고한 자세를 보이는 것이 아마 최선의 접근 
방법일 것이다. "나는 당신과 얘기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말씨로 말하는 것을 삼가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통화자가 계속 같은 태도로 버틴다면, 수화기를 놓겠다고 위협하고 전화를 끊으라. 
전화가 계속 걸려 오면, 경찰이나 전화국에 알려야 할 것이다. 이러한 통화자들은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의 통화는 도움과 이해를 구하는 숨은 울부짖음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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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 훈련과 전화

  예수께서는 분명히 그의 사역에 전화를 사용한 적이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전화가 텔레비전이나 확성 장치(P. A. system)와 함께 다른 사람의 생활에 더 많이 
관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기구가 되고 있다. 얼굴을 마주 보고 상담하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전화 상담은 같은 제자 훈련 목표를 지닌다. 누구든지 전화를 
통화여 완전히 제자화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것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전화는 확실히 격려와 지원, 충고, 인도 그리고 면박을 제공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복음은 전화를 통해 전달될 수 있고 우리는 전화를 통해 사람들과 기도할 수 있고 
개인 및 영적 성장을 위해 사람들을 권면할 수 있다. 외출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이들은 특별한 전화 사역을 할 수 있다. 그들은 본인이 직접 갈 수 없는 곳을 
전화를 이용하여 방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장의 처음에서 예시한 대로, 대부분의 전화 상담은 전문가가 아닌 
비전문인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전화 상담은 동료 상담자가 특별히 그리고 
특이하게 은사를 발휘할 수 있는 사역 분야이다. 전화 상담은 온 세상에 나아가 
제자를 삼음으로 지상 명령을 성취하는 것을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는 
분들이 간과해서는 안 될 상담 방법이다. 전화를 통해서도 우리는 세상에 나아갈 수 
있다. 
  (p134)
  @[  7. 자살과 위탁 상담 (pp134--155)

  다음 60초 안에 북아메리카에 사는 누군가가 자살을 시도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속독법에 이하여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면 당신이 이 장을 다 읽기 전에 
이러한 시도 중 하나는 성공을 거둘 것이다. 한 인간이 자기 손으로 목숨을 끊고 
죽어갈 것이다. 그런데 자살에 성공한 그 사람은 남성으로 노년층에 속해 있으며 
우울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사람들이 자살하는 데 가장 성공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자살은 매우 민주적인 현상으로 기술되어 있다. 
자살은 부자와 가난한 자, 교육받은 자와 무식한 자 그리고 젊은이와 늙은이들 
사이에서 고루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살은 불신자는 물론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발생한다.
  예를 들어 마샤(Marsha)라는 여학생을 한번 생각해 보자. 미모에 생기발랄한 
성격을 지닌 그녀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났으며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헌신을 
자주 말하곤 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이 증거가 문제를 야기하기 
시작했다. 동료 학생(p135)들이 그녀의 종교로 인하여 마샤를 비난하기 시작했고 
마약을 사용하고 성개방(free-sex)적인 생활 양식에 참여하도록 압력을 가해왔다. 
그녀는 심각한 내적 혼란을 느꼈다. 그녀는 기독교인인 부모에게 이를 이야기했으며 
그들은 딸을 도우려고 노력했으나 별로 효과가 없었다. 그녀는 어느 날 아침 자기 
방에서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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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에 천명

  세계보건기구(WHO)의 통계에 의하면 세계적으로 하루에 약 1,000 명이 매일같이 
자살로 죽고 있다. (주1. Prevention of Suicide, Public Health Papers, No. 
35(Geneva: World Health Organization, 1968), p.9) 이 수치는 실제보다 약간 
낮은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이나 캐나다 또는 서구 유럽 같은 곳에서는 자살이 별로 
영예로운 것이 못 되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다른 설명이 가능할 경우 사망 
진단서는 여간해서 이를 자살이라 규정하지 않는다. 또한 공식적인 수치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자살을 시도하지만 미수로 그친다는 사실도 감추고 있다. 한 차례의 
성공적인 자살을 위해 여덟 내지 열 차례의 자살 미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추산이다. 이는 오늘날 세계적으로 하루에 10,000 명 정도가 자살을 시도한다는 
것을 뜻한다. (주2. World Health Statistics Report, vol. 21, no. 6, 1968, pp. 
392--94)
  상담에 관여하는 사람은 언젠가 자살할 염려가 있는 사람을 직면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자연적인 반응은 당황하거나 그러한 내담자를 다른 사람에게 떠밀어 버리는 
것이다. 위탁하는 것이 결국 최선의 반응일지 모르지만 어떤 때는 남에게 위탁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때에 따라서는 위탁이 극히 지혜롭지 못한 처사일 수가 (p136) 
있다. 자살 방지의 개척자였던 루이스 더블린(Louis Dublin)은 한때 "동료 
상담자야말로 아마 자살 방지의 50 년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발견일 것이다. 동료 
상담자가 나타나기 전까지 자살 예방에는 별 진전이 없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주3. L. I. Dublin, "Suicide Prevention," in E. S. Shneidman, ed., On the 
Nature of Suicide(San Francisco: Jossey Bass, 1969) 비전문 상담자들은 
자살을 고려하게 되는 상황으로 유도하는 위기를 잘 통과하도록 사람들을 도와주는 
데 매우 유능함을 입증해 왔다. 그러므로 비전문 상담자는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을 돕는 데 가장 중요한 인물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비전문 
상담자들은 자살 우범자를 식별하고 이에 대처하는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는 
제반 지식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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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살의 성격

  자살의 역사는 기록된 역사만큼이나 길다. 자살은 고대 이집트, 히브리 그리고 
로마의 문서에 기록되어 있고 희랍의 철학자들에 의해 거론되었고 전기독교 역사를 
통해 수많은 저자와 신학자들의 관심사가 되어 왔다. 성경은 일곱 번의 자살을 
기록하고 있는데 (주4. 아비멜렉(삿 9:53, 54), 삼손(삿 16:28--31), 사울(삼상 
31:1--6), 사울의 병기 가진 자(대상 10:4, 5), 아히도벨(삼하 17:23), 시므리(왕상 
16:18), 가롯 유다(마 27:3--5). 이 목록은 D. Lumm, Responding to Suicide 
Crisis(Grand Rapids: Eerdmans, 1974), p.29에서 뽑은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알려진 것은 아마 사울   죽음과 가룟 유다의 죽음 (목매어 죽음)일 것이다. 성경 
어느 곳에도 자살을 직접적으로 평가한 곳은 없다. 살인(타살)은 성경에서 분명히 
정죄하고 있는데, (p137) 자살을 자기를 살해하는 것으로 고려할 수 있다면 이는 
하나님에 대한 죄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을 통하여 생명을 창조하셨다(히 
1:1--3). 그분이 생명을 보전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생명을 취할 
권리를 지니고 있는 분은 우리가 아닌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경우, 위기가 지나치게 고조되고 상황이 너무나 절망적이어서 
죽음이 유일한 탈출구인 것처럼 보일 때가 생활 중에 여러 차례 찾아온다. 여러 해 
동안 로스엔젤레스 경찰 당국은 자살한 사람들의 유서 쪽지를 수집했다. 그러나 
에드윈 쉬나이드먼(Edwin Shneidman)과 노만 화브로우(Norman Farberow)라는 
두 심리학자가 이 유서들을 읽고 분석하기 이전에는 사람들은 이런 자살 노트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결국 로스엔젤레스에는 자살 방지 센터가 
설립되었고 지난 20여 년 동안 이 자살 방지 센터는 수천 명의 자살 시도자들과 
잠재자살자들을 도울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에 근거해서, 화브로우와 쉬나이드먼 그리고 로버트 리트만(Robert 
Litman)이라는 정신병 의사는 자살에 대하여 그리고 자살을 방지하는 법에 대하여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 있었다. (주5. 이들 저자들의 연구는 여러 책과 
기사로 나와 있다. E. S. Shneidman and N. L. Farberow, ed., Clues to 
Suicide(New York: McGraw-Hill, 1957); N. L. Farberow and E. S. 
Shneidman, ed., The cry for Help(New York: McGraw Hill, 1961); and E. S. 
Shneidman, N. L. Farberow, and R. E. Litman The Psychology of 
Suicide(New York: Science House, 1970). 이 장의 대부분의 내용은 열거한 저서 
중 마지막 저서에서 번안한 것이다.) 거의 예외없이 자살 기도는 도와달라는 
호소이며, "나는 많은 압력을 받고 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라고 
말하려는 방법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상담자의 책임은 이중성을 (p138) 띠고 있다. 
첫째는 상대방이 자살에 대하여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고, 
둘째는 이 평가에 근거하여 어떤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
  자살 가능성을 평가함

  자살을 기도하는 거의 모든 사람이 사전에 그의 의도에 대해 어떤 실마리(단서)를 
제시한다. 어떤 때는 그 단서가 "나는 자살할 것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아주 분명하다. 그러나 대개 보면 단서는 이보다 훨씬 
더 포착하기 어렵다. 따라서 상담자는 경계심을 가지고 이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 단서를 놓치게 된다. 일반적으로 그 단서는, 구어적(그가 하는 
말), 행동적(그가 하는 행동), 기술적(그가 어떤 사람인가), 상황적(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그리고 징후적(그가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형태 등 다섯 가지 
모양으로 나타난다. 자살 가능성을 평가할 때 상담자는 이 다섯 가지를 모두 염두에 
두려고 노력해야 한다.

    구어적인 단서
  구어적 단서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때에 따라 장본인이 직접 "나는 자살할 
것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다. 이러한 위협은 심각하게 취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입으로 말하는 사람은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는 말이 있는데 
이는 사실로 뒷받침될 수 없는 옛날 아낙네들의 구전에 불과하다.
  두 번째 형태의 구어적 단서는 더 음험하여 포착하기가 어렵다. "나는 다음 
주에는 일터에 나오지 못할 거야", "이것이 나로서는 (p139) 마지막 시험 공부가 될 
거야!"와 같은 말은 자살을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자살의 가능성을 강하게 비치고 
있다.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어떻게 도와주었으면 좋을지 
모르겠어요^5,5,5^"와 같은 말도 그 말 속에 자신의 의도를 감추고 있는 단서로 볼 
수 있다.
  잠재적인 자살자에게 죽는 방법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는 것이 적절한 
때가 있다. 일반적으로 그가 시간과 장소와 방법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면, 그리고 
그 방법이 연탄 가스 중독이나 높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리는 것이라면 그는 
자살의 의도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언제나 거의 
예외없이 효력을 발생하는데 (연탄가스가 새나갈 수 없다든가 베란다가 지상에서 
높은 위치에 있을 경우) 손목을 면도칼로 베는 것이나 아스피린이나 수면제를 
과다하게 취하는 것과 달리 치사율이 높기 때문이다. 그가 이미 쥐약을 사왔다든가 
다른 준비를 해두었을 경우 위협은 한층 더 증대된다.

    행동적인 단서
  때때로 사람들은 자살을 언급하지는 않으나 그들의 정서와 행동이 그 방향을 
가리킬 때가 있다. 먼저 정서(감정)를 고려해 보자. 자살을 고려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울증에 걸려 있고 인생을 절망적으로 느낀다. 그러나 일단 자살을 
결심한 다음에는 오히려 안정감을 느낀다. 결정이 내려지면 어는 정도 압박감이 
제거된다. 그렇게 되면 이들은 갑자기 기분상에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인다. 주위 
사람들은 때때로 이러한 변화로 인하여 안도감을 느끼나 결국 자살이 기도된다.
  때에 따라 사람의 행동은 그의 의도를 드러낸다. 오랫동안 밀려 있던 부채를 
청산하고, 보험료를 확인하고, 스테레오 세트나 골프 (p140) 클럽과 같이 귀중한 
소유물을 넘겨 주고, 상담자와의 관계를 중단하는 것 등은 그 사람이 영원히 사라져 
버릴 준비를 하고 있다는 행동적인 시사이다.

    기술적인 단서
  이 단서는 그 사람이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가에 관해 말하는 것으로 이러한 
단서는 상담자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이미 앞에서 
살펴본 대로, 연령과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자살을 감행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보다 자살 성향이 더 강한 사람이 있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이 여자보다 
자살하는 빈도수가 높고 40 대 이상이 그 이하의 연령층보다 자살률이 높다. 젊은 
처녀도 자살에 대하여 말하고 자살을 기도하기도 하지만, 자살에 대하여 말하는 
50세 이상의 남자는 더 큰 위협이 된다.
  어느 정도까지는 사람의 생활 방식이 또한 중요하다. 어떤 사람은 만성적으로 
자살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한다. "늑대다!"라고 외쳤던 어린 소년처럼 그들은 자주 
위협한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살을 실천에 옮길 가능성은 증대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와 같이 상습적으로 자살을 위협하는 이들보다는 안정된 
생활을 하고 원만한 결혼생활을 하던 이들의 자살 위협이 더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도움을 받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당장에 자살을 감행하고 싶은 심정일 경우가 있다. 그래서 이런 이들은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죽어 버리고 만다.

    상황적인 단서
  사람들이 자살을 생각하기 전에는 보통 다루기 힘든 위기나 스트레스가 있기 
마련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든가 악성 질병(p141)이나 어떤 불치의 병이 
발견되었거나 자녀와 헤어지거나 직업이나 지위를 상실하거나 이혼을 당하거나 
음주나 성욕을 제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절망감, 집안 식구가 구속되거나 범행에 
관련될 때, 재산의 파손, 돈을 잃어버리는 등, 이 모든 것이 사람으로 극단적인 
스트레스를 느끼게 만들 수 있다. 심지어 승진이나 대학 졸업과 같은 경사스러운 
일까지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안겨 준다. 그러므로 스트레스는 항상 
내담자의 관점에서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내담자가 여자이든 남자이든간에 그는 
우리와 전혀 다른 관점에서 상황을 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주6. N. L. 
Farberow, S. M. Heilig, and R. E. Litman, "Evaluation and Management of 
Suicide Persons", in Shneidman, Farberow, and Litman, op. cit., pp. 
273--91) 스트레스가 심각할 때 자살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지게 된다.

    징후적인 단서
  사람이 스트레스에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문제는 스트레스 그 자체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다. 쉬나이드먼에 의하면, (주7. E. S. Shneidman, "Preventing 
Suicide," in Bulletin of Suicidology, December, 1968, pp.19--25) 사람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몇 가지 징후가 있다. 이들 징후에는 우울증, 
절망감, 어리둥절함 또는 혼동, 불평이나 불만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내가 좀 
낙담하고 있기는 하지만 내가 원할 때 내 생명을 마무리 지을 수 있는 권한은 있지 
않느냐?"는 식의 반항적인 태도가 포함된다. 알콜 중독자, 마약 중독자, 중병을 앓는 
사람들, 그리고 불치의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높은 자살 위험성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에 압도당해 도저히 감다하기 어렵다고 느낄 
때는 더욱 그러하다.
      -----------------
  (p142)
  상담자의 유용성

  사람이 고독하고 걱정 근심에 싸여 있으며 대화할 사람이 없을 때, 인생은 
가까이에 돌보아 줄 수 있는 친척이나 친구가 있을 때보다 훨씬 더 견디기가 어렵고 
자살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렇게 관심을 가져줄 사람이 있다 해도, 당사자가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는 시사가 없다면, 그들이 별 도움을 줄 수 없다. 예를 들어, 매일 
사람들과 접촉하면서도 평균 이상의 자살률을 보이고 있는 치과 의사나 내과 의사 
또는 변호사를 생각해 보라. 이들 직업이 지니고 있는 공통점은 극한 스트레스를 
느낄 때에 손을 뻗칠 수 있는 사람이 결핍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성공적인 
직업인들이 자살을 생각한다고 믿지 않는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그들의 내적인 
혼란에 대하여 말하기를 꺼린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주변에 대화할 상대가 있을 때는 자살(자멸)의 가능성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친구와 친척은 가장 눈에 띄는 상담자이다. 그러나 이웃이나 
동역자, 교회의 동료, 목사, 교사, 가정의, 개인 상담자 또는 이발사나 미용사까지도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자원이다. 자살 방지 센터나 생명의 전화에서 전화를 받는 
낯선 상담자도 또한 도움을 줄 수 있다. 긴급 전화를 받는 경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당신도 도움을 줄 수 있다. 

  표3은 보다 흔하게 경험할 수 있는 자살 단서들 중 일부를 요약해 본 것이다. 이 
표는 사람이 얼마나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판별하는 데 하나의 
점검표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 목록에 해당 표시가 많이 나오면 
나올수록 자살의 위협은 더 커지는 것이다. 
  (p143)
  * (표 3) 자살 평가 점검표

  * 구어적인 단서
  노골적으로 자살에 대해 말함
  가까운 장래에 없어질 것이라고 말함
  자살에 대한 질문
  더 이상 상담자에게 말하지 않음
  * 행동적
  (무관심, 불면증을 포함하는) 극심한 우울증
  정신적 태도에서의 갑작스런 향상
  죄책감, 부끄러움, 당황
  적대감, 보복감
  긴장과 불안
  판단력이 약화됨
  유용한 방법에 대한 지식
  분명한 생각을 거쳐 나온 계획
  언급한 방법(총, 연탄, 마약 등)
  소유물을 나누어 줌
  보험에 들거나 보험금을 확인함
  오래 묵은 채무를 청산
  개인적인 일을 정리함
  * 자원
  지원의 원천(친구, 친척 등)이 없음
  가족, 친구는 있으나 도우려 하지 않음
  교회나 동네 사람들과 접촉없음 
  혼자 생활
  * 기술적
  남자 
  40세 이상
  한 차례 이상 가까스로 자살 미수에 그친 적이 있다
  갑작스레 처음으로 자살을 결심함
  * 상황적
  죽음, 이혼 또는 이별로 사랑하는 이를 잃음
  (은퇴를 포함) 돈, 지위, 직업을 잃음
  병이나 중병, 수술, 사고, 수족을 잃음
  범죄 소송의 위협이 있음
  생활 환경의 변화
  상담의 실패
  성공, 승진, 증가된 책임
  * 징후적
  절망감
  불만감
  혼동된 사고
  불평하는 경향
  시비조의 태도
  마약이나 음주 문제 
  충동을 제어할 수 없음
      -----------------
  (p144)
    자살 방지

  우리들 대부분은 앞으로 언젠가 우리가 자살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사람과 
이야기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겁도 나고 당황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예비 상담자가 아마 "내가 잘못 들었겠지" 하거나 또는 이 사람이 자기 문제를 
가지고 다른 곳에 가서 상의하게 되기를 바라면서 뒤로 물러서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 연구 조사에 의하면, 모든 자살자의 3분의 2가 자살 전에 그들의 
의도를 표현했으나 그 의사 전달을 받은 사람이 당황했거나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8. E. Robins, J. Kayes, R. H. Wilkinson, Jr., and G. 
E. Murphy, "The Communication of Suicide Intent: A Study of 134 
Consecutive Cases of Successful(Completed) Suicide," in American Journal 
of Psychiatry, vol. 115, 1959, pp.724--33) 도움을 줄 수 있었던 친구나 친척, 
또는 이웃이 너무나 긴장했거나 걱정이 되어 또는 무엇을 어떻게 할지를 몰랐기 
때문에 도울 수 없었다. 물론 그들은 문제가 사라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도와 달라는 호소를 무시해 버렸던 것이다. 자살이 행해진 후 
이들은 아마 깊은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다.
  자살을 감행하겠다는 결심은 그 사람이 위기에 빠져 있다는 것의 시사이다. 
그러므로 5장에서 거론한 위기 개입 방법은 자살을 의도하고 있는 내담자를 다루는 
데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말해서 어떤 사람이 도와달라고 울부짖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임무는 솔직한 관심을 가지고 경청하고 반응함으로써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은 예리한 눈과 귀, 뛰어난 직관, 
약간의 지혜, 적절히 행동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깊은 결단"이라고 지적된다. (주9. 
Shneidman, op. cit., p25) 말은 쉽지만 구체성이 부족한 것 같다.
  (p145) 뉴욕의 홍보 위원회에서 발행한 소책자에 다음과 같은 도움이 될 만한 
충고가 실려 있다. (주10. C. J. Fredrick and L. Lague, Dealing With the 
Crisis of Suicide. Public Affairs Pamphlet No. 406A, New York, 1972)

  자살하겠다는 위협이나 자살과 관련된 말이나 행동을 모두 심각하게 받아들여라. 
자살은 농담이 아니다. 상대방에게 정말로 자살할 생각을 하고 있느냐고 물어 
보기를 주저하지 말라.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 머리 속에 자살할 생각을 
심어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당신이 그를 심각하고 진지하게 받아준다는 것을 알고 
안도감을 느끼게 되며 자기가 의구심을 품었던 것보다 사람들이 자기를 더 잘 
이해해 준다고 하여 고맙게 생각한다.
  자살하겠다는 위협과 그 말의 중요성을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일축하지 말라.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자살을 한다니, 진심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요? 
자살할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와 같은 말은 절대로 하지 말라. 그러한 말은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하나의 도전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일축해 버리는 
무관심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에겐 관심이 필요하다. 절박한 상황에 처하면 
누구나 "자살한 만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응, 그래. 그럼 가서 해보지 그래"라는 말을 해서 그 사람에게 충격을 주거나 
도전하려고 하지 말라. 그 사람이 자살하겠다는 위협을 되풀이했거나 귀찮게 
굴었다면 그와 같이 짜증스런 말이 나올 만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무의식 중에 
사람을 자살로 초대하는 셈이 된다. 
  상대방의 행동을 분석하고 위기의 순간에 그의 행동과 감(p146)정을 해석하면서 
그를 면박하지 말라. 그런 것은 후에 전문가가 할 일이다. 
  그가 살아야 하느냐 죽어야 하느냐는 문제를 놓고 그 사람과 논쟁하지 말라. 그런 
논쟁을 해봤자 당신은 이길 수 없다. 그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입장은 죽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상처가 치유될 것이며 모든 것이 저절로 좋아질 것이라고 
가정하지 말라. 그렇게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성패를 걸 만한 가정이 못된다.
  기꺼이 경청하겠다는 태도를 보이라. 당신은 전에도 같은 얘기를 들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들어주라. 순수한 관심을 보이고 안정되고 확고한 
자세를 취하라. 그를 살리기 위하여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하라.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살아남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을 상대로 대화할 때에 우리를 도와줄 힘과 지혜의 
신적인 원천이 있다는 사실을 그리스도인 상담자에게 상기시키는 것은 쓸데없는 
한담이 아니다. 사람을 돕는 최선의 방법은 친구가 되어 모든 유용한 자원을 
사용하여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이 성공적으로 위기를 극복 대처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러한 우정은, 종종 상대방을 전도하여 제자를 삼고 현재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충만하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첫 번째 단계가 된다(요 
10:10참고).
      ----------
    남에게 위탁함

  동료 상담자는 흔히 자살에 관련된 위기를 해소하는 데 크게 (p147)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자기에게 닥치는 일을 모두 처리할 수는 없다. 우리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벙법 중의 하나는 그들을 보다 전문적인 상담원에게 위탁하거나 
때로 직접 인계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실패를 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중 어느 누구도 모든 사람을 다 도와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성숙한 인격의 
표현이다. 우리의 실력이나 능력이 부족한 분야에서는 전문적인 훈련이나 지식을 
소지하고 있는 사람에게서 더 많은 사람이 더 좋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참으로 사람을 돕는 데 관심이 있다면 내담자를 더 유능한 사람에게 위탁한다는 
아이디어에 저항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잠시 자살의 주제로 돌아가 보자. 어떤 사람이 수면제를 정도 이상으로 
복용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저 그의 옆에 앉아서 온정과 동정만을 
보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즉시 그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의사의 도움을 
받게 하고 친척에게 알리려 할 것이다. 시급한 목표는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의료 
혜택을 받게 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이 그 사람에게 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구급차나 경찰이나 자살 방지 센터에 연락해 그들의 도움을 요청할 것이다. 
  위탁할 필요는 물론 이보다 덜 충격적인 상황에서도 일어난다. 이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내담자를 더 잘 도와줄 수 있는 상담자에게 인계하는 동안 단기적인 지원과 
격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다음의 세 가지 기본적인 질문을 염두에 
두고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에 위탁할 것인가? 언제 위탁할 것인가? 어떻게 
위탁할 것인가?

    어디에 위탁할 것인가?
  목사님들과 전문 상담자들은 대개 우리의 내담자들을 위탁할 수 (p148) 있는 
사람과 장소의 목록을 지니고 있다. 동료 상담자는 보통 이러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는 보다 경험이 있는 상담자에게 전화를 걸어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리적으로 동 떨어진 지역에서는 선택의 범위가 제한되나, 대도시에서는 
가능성이 거의 무한대로 펼쳐진다.
  때때로 내담자에게는 그의 문제 해결을 위해 훌륭한 일반 병원 의사, 치과 의사, 
산부인과 의사, 변호사 또는 은행가가 필요하다. 그리고 내담자는 흔히 목사로부터 
가장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지역사회에 있는 여러 단체나 기관이 또한 도움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이들 중 
정신 건강 진료소나 정신 병원, 신경정신과 병원, 일반 병원 또는 종합 병원의 외래 
정신병 환자 취급 부서에서는 주로 개인적인 문제 상황을 다룬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면서도 이른바 정신 질환은 취급하지 않는 기관들도 있다. 직업 소개소나 
가정법률상담소, 노인복지 센터와 같은 기관에서도 최소의 비용으로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맹인이나 정신지체아를 위한 복지 기관도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이다. 
국가나 시에서 운영하는 복지 기관도, 스스로 도움을 줄 수 없다 해도 다른 
위탁원을 소개하는 일을 담당할 수 있다.
  일반 기관도 위탁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예를 들어 알콜 중독 
방지협회(Alcoholics Anonymous)는 알콜 중독으로 도움받기를 원하는 사람을 
위탁할 수 있는 최선의 기관이다. 알콜 중독 방지 협회는 알콜 중독자의 배우자와 
자녀들을 위한 그룹도 운영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비만증으로 고심하는 분들을 돕는 
TOPS(지혜롭게 몸무게를 줄이라는 말에서 유래, Take Off Pounds Sensibly)와 
마약 중독자를 전문으로 돕는 시나논(Synanon), 그리고 전에 정신병을 앓았던 
환자들을 돕는 회복 협회(Recovery Inc.) 등이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에 한 심리학자는 이 단체들의 효과적인 봉사 사역에 대하여 별도로 책을 
저술하기까지 (p150) 했다. (주11. John W. Drakeford, Farewell to the Lonely 
Crowd(Waco, Texas: Word, 1969) 표 4 는 자주 사용되는 위탁 서비스 중에서 
대표적인 것을 열거하고 있다.

  (p149)
  * (표 4) 어디에 위탁할 것인가?

  어느 지역 사회에나 다양한 위탁원이 있을 수 있다. 이들 위탁원의 대부분은 전화 
번호부에 기재되어 있다. 

  문제: 위탁을 고려할 수 있는 곳
  * 알콜중독: 알콜 중독 방지 협회, 일반 병원, 내과 의사, 신경정신과 의사, 구세군
  * 어린이 확대, 어린이 문제: 시청의 아동 및 가족 담당 부서, 아동복지협회
  * 우울증, 이상한 행동, 불안 초조, 혼동 등: 심리학자, 신경정신과 의사, 정신건강 
진료소
  * 마약 문제: 종합병원, 상담 진료소, 신경정신과 의사
  * 재정 문제: 정부 및 시청의 복지국, 교회, 은행, 단자회사
  * 장애자: 맹인 협회, 정신지체아 협회, 사회사업 단체, 봉사 단체
  * 법적 문제: 변호사, 가정법률 상담소, 법조인 협회
  * 결혼 문제: 결혼 상담자, 심리학자, 사회사업가, 상담진료소, 목사
  * 사람을 잃어버림: 경찰서, 파출소, 방송국, 신문사
  * 신체적 문제: 내과 의사
  * 중독: 종합병원
  * 임신: 산부인과 의사, 목사
  * 영적(신앙)문제: 목사
  * 자살 위협: 자살 방지 센터,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 정신건강 진료소, 목사
  * 직업문제: 개인직업소개소, 교내생활지도 담당, 심리학자, 상담자 

  그리스도인은 위탁을 하는 데 있어서 매우 기본적인 문제에 직면하는데, 그것은 
내가 소개하는 상담자나 단체가 종교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아닌 상담자들은 모두 종교에 반대하고 있으며 내담자의 
신앙을 무너뜨릴 각오를 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면, 비록 그런 일이 일어날 때도 
있지만, 우리는 부당한 가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 심리학자들과 그 
외 전문가들이 비기독교인 상담자들의 접근 방법과 별 차이가 없는 치료방법을 
사용한다는 것도 역시 사실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각 개인이 제자가 되고 남을 
제자화하는 사람으로 변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담자가 순전히 세속적인 
목표를 가지고 상담을 한다거나 제자 훈련에 대하여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면, 이 
목표를 향하여 어떤 진보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게 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능력을 행사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56,36^당신과 나를 포함하여^36,23^사용되기 전에 완전한 
신학을 소유하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상고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불신자까지 사용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기독교인 상담자는 불신자 의사나 변호사처럼 때때로 그의 전문적인 
기술을 사용하여 내담자가 위기를 통과하도록 인도해 주거나 인격을 재조정하도록 
도와준다. 이와 같은 과정은 둘 다 내담자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제자가 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마음의 상태로 준비시켜 줄 수가 있다. 
때때로 우리는 영적인 문(p151)제를 다루기 전에 신체적 및 심리적 문제를 먼저 
다루어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인격의 모든 측면은 다 
중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비기독교인 또는 태도가 분명치 않은 상담자에게 
위탁하는 것은 해로울 때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적인 치료 원칙을 따르는 
사람을 찾기 위하여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 경주해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상담자를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는 내담자를 종교에 대하여 비판적이지 않은 전문가에게 소개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이러한 사람을 통하여 내담자를 
치유하시는데, 이와 같은 치유 과정은 결국 그로 하여금 제자로서 자라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언제 위탁할 것인가?
  수년 전만 해도 전문적인 상담자들은, 모든 상담 문제는 전문가들에게 위탁되어야 
한다고 통상적인 주장을 했었다. 미국 심리학회 전회장인 호바트 마우러(O. Hobart 
Mowrer)는 논쟁을 야기했던 소책자에서 이 견해에 도전했는데, 그는 이 책자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심지어 기독교 평신도들이 어떤 치료사도 가져다 줄 수 없는 
치유적인 영적 차원을 상담에 보태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주12. O. H. 
Mowrer, The Crisis in Psychiatry and Religion(New York: Van Nostrand, 
1961) 동료 상담자들이 효과적인 상담을 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조사 결과가 
나타나고 전문 상담자의 절대수가 부족하다는 것이 드러나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위탁이 언제나 최선의 선택은 아니(p152)라는 결론을 내리기 시작했다. 
때때로 상담자가 보다 경험이 있는 상담자로부터 가끔 충고를 받아가면서 내담자를 
끝까지 돌보아 주는 것이 위탁하는 것보다 더 좋을 수가 있다.
  그러나 현재의 상담자가 시간이 부족하거나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또는 안정감이 
결여되어 있을 때, 그리고 상담을 계속할 만한 기술이나 경험이 없을 때에는 위탁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람을 도와 인생 문제를 처리하도록 하거나 하나의 
전인(완전할 전, 사람 인)으로 성장하도록 유도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때는 언제나 
위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 좋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다음과 같은 
상황에 있는 내담자들을 위해서는 외부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 법률상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 극심한 재정 문제를 안고 있다.
  * 의료상의 도움을 구한다.
  * 심한 우울증에 빠져 있거나 자살 충동을 느끼고 있다.
  * 우리가 할애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 다른 상담자에게 바꾸어 상담을 받고 싶어한다.
  * 극단적으로 공격적인 행동을 보인다.
  * 마약이나 알콜을 지나치게 남용한다.
  * 강한 증오감이나 성적 자극 또는 상담자에 대한 위협을 불러일으킨다.
  * 심한 혼란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심한 혼란에 빠져 있는 사람을 찾아내는 것은 때때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는 혼란이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한 심리학자는 심한 혼란에 
빠져 있음을 시사하는 징후를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요약하여 제시한 적이 있다. 
(p153)
  1. 다른 사람이 자기를 해치려 하며, 성적으로 공격하려 하며 이상한 방법으로 
자기에게 영향을 미치려 한다고 믿고 있다.
  2. 자신에 대하여 과대망상에 빠져 있다.
  3. 자신의 전형적인 행동 양태에 갑작스런 변화를 보인다.
  4. 존재하지 않는 음성을 듣거나 환상을 보거나 냄새를 맡는다.
  5. 논리에 의하여 좌우될 수 없는 고정된 이상 개념이나 괴이한 두려움을 지니고 
있다.
  6. 충동적인 행동이나 강박적인 사고를 반복하고 있다.
  7. 시간이나 장소 또는 자기 신분에 대하여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8. 혼수상태에 가까울 정도로 우울증에 빠져 있으며 상기되어 있거나 공격적이다.
  9. 정상적 활동에 관심을 잃고 내면 세계로 빠져들어가고 있다. (주13. H. J. 
Clinebell, Jr., Mental Health Through Christian Community(New York: 
Abingdon, 1965), p.244 Copyright c Abingdon Press)

  이러한 징후가 나타날 때에는 위탁이 현명한 대안이 될 것이다.

    어떻게 위탁할 것인가?
  내담자가 원래 당신의 도움을 받으러 왔고 그 동안 좋은 관계가 형성되었을 경우, 
내담자가 항상 위탁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은 아니다. 그러므로 내담자가 
거절당했다고 느끼거나 남에게 "떠맡겨진다"고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탁 과정을 (p154) 가능한 한 원만하게 하기 위하여 몇 가지 지침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첫째로, 위탁 결정에 내담자가 참여하도록 하라. 상담자와 내담자는 어떤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동역자라는 것을 기억하라. 당신은 문제가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결정해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또 다른 
상담자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현재의 상담자가 그러한 
아이디어를 먼저 제시할 때는 온유한 태도로 내담자가 반응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 
  둘째로, 상담자는 지역사회의 상담 자원이 어느 정도 있는가, 비용이 얼마나 드나, 
대기해야 하는 상태인가 등을 미리 알아봄으로써 길을 닦아 주어야 한다. 비록 
이것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은 아니지만, 내담자가 새로운 상담자와 직접 
약속을 하는 것이 더 좋다.
  셋째로, 위탁이 이루어진 다음에 따를 당신과의 관계에 대하여 상의하라. 전문 
상담자들 사이에서는, 이전 상담자는 새 상담자가 인계받은 다음부터 보통 "손을 
완전히 떼는 것"이 상례다. 그러나 목회 상담이나 동료 상담에서는 이러한 관계 
단절이 필요하지 않다. 새로운 상담자나 그룹이 주요 상담 책임을 진다 해도 접촉은 
계속할 수 있는데 특히 친구로서 또는 목사로서 지원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성경의 위탁
  위탁한다는 이 개념은 그 역사가 성경의 역사만큼 오래다. 위탁의 가장 재미있는 
예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광야 여행 도중에 (출 18장) 호렙 산 기슭에 진 치고 
있을 때 일어났다고 할 것이다. 모세는 민원을 듣고 분쟁을 해소하는 가운데 그의 
시간 전체를 (p155) 백성을 재판하는 데 보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는 대부분이 
법률 상담이었는데 모세에게는 또한 개인적인 문제도 제기되었던 것 같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이 당시 그를 방문하고 있었는데 모세가 백성의 상담자로서 
기진맥진할 정도로 (출 18:18) 과로하고 있는 것을 점점 염려하는 마음으로 지켜 
보고 있었다. 마침내 이드로는 자신의 충고로 이 상황에 개입했다. 이드로는 
유능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조력자, 진실되고 정직하며 언제든지 시간을 낼 수 
있으며 상담으로 남을 돕기 원하는 사람들을 선택하라고 제안했다. 문제가 너무 
어려워지면 이 상담자들은 경험이 더 많은 상담자에게 위탁을 하게 된다(출 18:26).
  이는 오늘날 우리가 본받을 수 있는 훌륭한 모델이다. 성령이 충만한 유능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서로 돕는 특권을 가진다. 그러나 이 특권에서 난해한 경우는, 더 
많은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지니고 있는 분들에게 위탁한다는 책임이 따르고 있다. 
남에게 위탁하는 것이 때에 따라서는 최선의 상담 방법이다.




  (p156)
  @[  8. 예방 상담 (pp156--172)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람을 도와줄 수 있다. 상담은 물론 이 방법 중의 
하나이다. 민감하고 섬세하며 기꺼이 남을 돕는 사람들은, 문제에 대처하고 위기를 
극복하고 앞으로의 인간 관계를 향상시킬 수 있도록 남을 돕는 일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때때로 사람을 돕는 것이 위기나 곤경, 또는 정서적인 문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경우가 있다. 이사 가는 친구를 돕고, 한나절 동안 이웃의 아이들을 
보살펴 주고 동료학생의 학기말 논문을 도와주는 일 등은 모두 남의 삶을 용이하게 
만들어 주는 도움이 되는 행위들이다.
  우리가 이 장에서 다루기를 원하는 것은 또 다른 종류의 상담이다. 이러한 상담은 
다른 상담 서적에 자주 거론되지 않는 상담방법이지만, 이 상담은 전통적인 상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다. 이는 예방 상담 또는 집단 상담, 지역사회 상담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목적은 아^36^예 문제나 위기가 발생하지 못하도록 
이를 예방하는 것이다.
  (p157) 문제를 예방하는 일은 정신 의학이나 심리학이 관련될 수도 있고 관련되지 
않을 수도 있다. 꼭 지역사회 전체의 참여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이 예방 
상담에는 보통 한 공동체로서의 지역사회 전체가 관련된다. 이 일에는 상담이 
관련되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더 나은 용어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도록 사람들을 돕는 이 과정 전체를 표현하는데 
"예방 상담(preventive helping)이라는 말을 쓰기로 한다.
      -----------
    예방 상담의 목표

  예방 상담은 보통 세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1. G. 
Caplan, Principles of Preventive Psychiatry(New York: Basic Books, 1964) 
우선 예방 상담은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려고 시도한다. 이는 때에 따라 
1차적 예방이라고 불리는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문제 상황을 예상하고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는 상황이나 조건을 변화시키거나 피하는 것을 포함한다. 결혼 전 
상담(premaritial counseling)은 이러한 예방의 훌륭한 예가 될 수 있다. 약혼한 한 
쌍이 아직 결혼을 앞에 두고 있을 동안에, 남편과 아내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예고받고 이러한 문제를 예방할 방법에 대해 교육을 받는다.
  둘째로, 예방 상담은 문제가 악화되기 전에 문제를 사로잡거나 막으려고 시도한다. 
이는 2차적 예방이라고 불리는데, 이미 발생하여 확대되고 있는 문제의 지속 
기간이나 심각도를 차단시키는 일을 포함한다. 교회가 결환한 부부를 위하여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할 때, 교회는 흔히 이차적인 예방에 참여하고 
(p158) 있는 것이다. 이미 발생하여 진행중인 문제를 식별하여 문제가 악화되기 
전에 처리해 버리는 것이다.
  외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생활 속에 전개되고 있는 문제를 막아준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문제는 발생 초기 단계에 흔히 감추어져^56,36^심지어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에까지 숨기어져^36,23^있으며 그래서 외부 사람의 개입은 간섭으로 
간주되기가 쉽다. 또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을 시인하는 사람은 흔히 스스로 상황을 
처리할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도움을 원치 않는다. 때때로 이런 이들은 변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 음주나 문란한 성행위는 처음에는 즐겁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래서 이러한 행동에 가담하는 이들은 독자적인 행동을 원하고 간섭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
  흔히 3차적 예방이라고 알려져 있는 예방 상담의 세 번째 목표는 이런 문제의 
영향을 감소시키거나 제거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전에 알콜 중독자였거나 
정신병 환자였거나 죄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자기 고향에 돌아가 직업을 
구하려 한다고 가정해 보라. 보통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의심, 비판, 
편견, 거절, 그리고 불신에 직면한다. 이러한 반응은 지역사회로 돌아가 정상적인 
생활을 해보려는 사람에게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담자는 그 
사람과 지역사회와 공동으로 협력하여 전환이 보다 원만하게 이루어지게 하고, 
복귀하는 사람을 낙망하게 하여 옛 생활로 돌아가게 만들지도 모르는 주민의 배척을 
예방해 줄 수 있다.
      -----------------
  교회와 지역사회 안에서의 예방

  성경은 교회와 신자 개개인이 문제를 피하여 보다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실제적인 충고를 수없이 하고 있는(p159)데도, 복음주의자들은 
최근까지만 해도 예방의 문제에 대하여 거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물론 많은 
종교지도자들은 예방이 교회 전체 프로그램의 구성 요소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별도로 상세하게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클라인벨(Cline-Bell)과 그 외의 다른 분들이 보여준 것처럼, 교회는 예배와 주일 
학교, 교제 모임, 제직회 등 업무 회의를 통하여 문제를 예방하는 일을 훨씬 더 잘 
해낼 수 있다. 교회가 언제나 정신적 안정의 요새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교회는 
종종 몸의 분리를 일으키고 교인간의 긴장을 야기시키는 갈등, 험담과 비판 및 기타 
스트레스 요인으로 특징지어지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교회는 치료하는 집단이 될 
수 있고 또 치유적인 집단이 되어야 한다. 지역 신자들의 집단으로서 교회는 각 
성도의 정신 건강과 안정에 기여해야 하며 개인적인 문제를 예방하는 방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다른 형태의 상담과 달리 예방은 흔히 공식적인 면담 밖에서 일어난다. 목사가 
회중에게 마귀를 대적하는 것에 대하여 말할 때, 청년회 담당교사가 각자의 
직업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에 대하여 고등학생 그룹에게 얘기할 때, 목사 
사모님이 한 여성으로서의 보람에 대하여 가정주부 모임에서 말할 때, 예방 상담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학생 선교회(CCC) 지도자가 대학생과 성령 충만한 삶에 
대하여 대화할 때, 아니면 네비게이토나 기독학생회(IVF) 간사가 규칙적으로 경건의 
시간(quiet time)을 갖는 방법에 대해 일단의 학생들에게 말해줄 때, 역시 예방 
상담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콜라를 마시면서 고등학교 신입생과 그의 점증하는 
성적 충동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사역자는, 비록 그들의 대화가 앞으로의 문제를 
예방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종의 상담이라는 것을 서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해도, 
역시 예방 상담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p160) 예방 상담은 전적으로 개인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 오히려 예방은 개인과 전체 지역사회를 동시에 관련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특정한 개인을 도와 문제를 피하게 상담해 줄 수 있고 확대되어 가는 
문제를 막고 이전의 문제를 해결한 후에 재적응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집단 전체나 지역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하여 그와 같이 협력할 
수 있다. 정부나 기타 다른 기관의 관여를 통하여, 우리는 경기 침체를 피하거나 
막는 방향으로 또는 범죄행위, 대중매체(news media)의 도의적 타락 성향 및 
해로운 사회 상황을 피하거나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일할 수 있다. 그 결과로 사회 
전체가 잠재적 스트레스를 모면하고 보다 안정되고 긴장되지 않은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예방의 문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관심의 대부분은 사회 전체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다. 이제 집단 심리학 또는 지역사회 심리학(community psychology) 그리고 
지역사회 정신의학(community psychiatry)이라고 알려져 있는 연구 분야가 생겼다. 
이 방면에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추구하며, 정치나 교육제도 
그리고 뉴스 미디아 같은 분야에 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스트레스가 덜한 사회를 
만듦으로써 이들은 개인적인 문제가 예방되고 현존하는 어려움이 감소되거나 
제거되고 지역사회의 일반적인 정신 건강 수준이 향상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지역사회 심리학 운동이 학교와 병원 그리고 사회 봉사단체들의 역할을 크게 
강조하면서도 심리적 혼란을 예방하는 데 있어 지역교회가 담당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하여는 별로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지역사회 심리학 분야에 
대한 입문서"로 최근에 나온 책에는 (주2. M. Zax and G. A. Specter, An 
Introduction to Commnity Psychology (New York: Wiley, 1974).), 교회나 
종교는 색인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고 본문에서도 일반적으로 무시되고 있다. 이것은 
지역사회에 마음을 (p161) 쓰는 심리학자들의 편협한 마음의 자세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교회가 심리적 문제의 예방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하고 있는 
데에도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예방 목회 상담 분야에서 가장 탁월한 지도자는 의심할 여지 없이 하워드 
클라인벨이다. 그는 이 방면에 대한 책을 저술한 바 있고 또 한 권을 편집했다. 
(주3. H. J. Clinebell, Jr., Mental Health Through Christian 
Community(Nashville: Abingdon Press, 1965); H. J. Clinebell, Jr., ed., 
Community Mental Health: The Role of Church and Temple(Nashville: 
Abingdon Press, 1970) 클라인벨은 지역사회 단위의 정신 건강 운동을 "심오한 
인간적 의의가 있는" "하나의 자극적인 사회적 혁명"으로 "우리나라, 아니 세계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회적 혁명중의 하나"라고 서술했다. (주4. Community 
Mental Health, op. cit., p.11) 이와 같은 열광적인 반응은 지역사회를 
변화시킴으로써 우리는 명백한 혹은 숨은 심리적 문제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은 잘 적응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심리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에서 나온 것이다. 클라인벨은 
창의적인 방법으로 어떻게 교회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그리고 정신건강이 향상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
  사회적인 참여나 개입을 통한 예방이라는 개념은 특히 자유주의적인 성향이 있는 
교회들 가운데서 특히 인기를 끌어 왔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옛날 
사회복음(social gospel)의 새로운 형태이다. 사회복음은, 사회를 변화시키라 그러면 
우리가 개인의 정신 건강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복음주의자들은 대부분 
사회를 변(p162)화시키고 빈곤을 퇴치하고 인종차별이나 기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상황을 제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복음주의자들은 
정신적인 건강을 증대시키고 문제를 예방하려면 우선 개인의 영적인 필요가 
충족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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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방 상담과 제자훈련

  예방 상담의 문제가 제자훈련 분야에서만큼 더 명확하게 예시된 곳은 없다. 
제자는 미래의 스트레스에 대처하고 내면적인 긴장을 처리하고 영적으로 성장하고 
영적 및 심리적 성숙이라는 목표를 향해 움직일 수 있도록 훈련되고 있는 사람이다.
  정신 건강은 때때로 신체적, 지성적, 사회적, 영적 성숙으로 정의된다. 성경에는 
예수께서 (신체적으로) 키가 자라고 (지성적으로) 지혜가 자라고 (영적으로) 
하나님과 (사회적으로) 사람들에게 사랑스러워 가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은 
양호한 정신 건강의 표본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제자들이 건강하고 칭의적인 
방법으로 미래의 문제들의 대처하도록 그들을 훈련시켰다. 
  마태복음 10장은 예수께서 사용하셨던 예방 상담 기술의 훌륭한 예를 제시하고 
있다. 이때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를 단기연수의 사명을 주어 내보낼 준비를 하고 
계셨는데, 그들이 떠나기 전에 주님은 그들이 맞부딪히게 될 상황에 대해 그들을 
준비시켰다. 잠재적 문제에 대해 미리 환기시킴으로 그는 일어날 문제에 미리 
대처할 수 있도록 그들을 도와주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 
문제를 다루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예방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모범에서 우리는 
어떻게 남을 도와 문제를 에방할 수 있는가에 대한 명확한 모델을 보게 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격려해 주고, 다가올 일에 대해 경고해 주고, 반대에 부딪힐 
때 (p163)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해 주고, 문제를 직면하는 경험을 제공해 주고, 
스트레스를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보여주고, 그들과 잠재적인 문제를 상의하고, 
휴식이 앞으로의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을 기르는 좋은 방법임을 강조하심으로 
그들이 당할지도 모를 문제들을 예방해 주셨다. 이제 이들을 한 가지씩 차례로 
고려해 보기로 하자.

    격려
  제자들은 예수께서 시작하시고 그들이 계속하기를 기대하셨던 일을 지속할 수 
있는 능력 여부에 대하여 불안감을 느끼고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에게 재다짐해 주었고(마 10:19, 26, 29--31), 그들의 사역이 
중요하다고 일러 주었으며(마 10:40), 자신감을 갖고 미래를 맞을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을 주셨다(마 10:1; 눅 9:1). 이것은 작은 일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또다른 
동료 인간의 격려와 기도 어린 지원은, 사람들이 미래를 직면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행동을 변화시키고 문제가 악화되기 전에 문제를 처리해 나갈 때 그 사람들을 
붙들어 주는 지속적인 영향력을 부여해 주는 것이다.

    경고
  예수께서 시킨 준비에는 격려만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주님은 다가올 위험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예수께서는 그를 섬기는 것이 위험스런 일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10:16, 17). 주님을 섬기다가 가정이 파탄되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마 10:21, 22, 
34--36)고 경고하셨다. 이러한 말씀은 그저 공포전술에 따라 겁을 주려고 하신 
말씀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말씀은 제자들이 앞으로 (p164) 직면하리하고 예기되는 
위험들에 대한 명확한 진술이었다.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롬 16:19)고 썼던 
바울도 비슷한 접근 방법을 취하고 있다. 이는 우리의 경고는 앞으로 닥칠 수 있는 
위험을 아주 상세히 취급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뒷받침해 주지 않는다. 우리는 
"악한 데 미련한"자가 되어야 한다. 반면에 피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충분히 
깨어 있어야겠다.
  우리는 앞으로의 위험에 대해 경고를 받을 때, 발생할지도 모르는 문제를 
모면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할 수 있게 된다. 교회는 여러 세기에 걸쳐 이를 인식해 
왔으며, 성적으로 타협적인 상황에 빠지는 위험과, 신비주의(occultism)나 점성술에 
심취하는 위험, 결혼 생활에서 자기 중심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태도, 일반 대학의 
가르침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등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경고해 왔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경고를 사람들은 고맙게 열성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특히 
경고가 나이든 쪽에서 젊은이들에게 주어질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경고가 
당시에는 무시될지라도 간혹 나중에 기억될 때가 있는데 이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나는 이에 대하여 경고를 받았다. 그러므로 나는 놀라지 않는다"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 미리 경고를 받을 때 우리는 문제를 피할 수 있게 되고 문제가 악화되기 
전에 이를 막을 수 있게 된다.

    가르침
  앞에 위험이 높여 있다고 경고함으로써 우리는 비극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상대방에게 덜 위험스런 대안들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더 
많은 혜택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경고하신 다음 스스로 
알아서 하라고 버려두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구체적으로 그들에게 일러 주셨다.
  (p165)
  *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마 10:6--8, 11--14, 23).
  * 스트레스를 느낄 때 해서는 안 될 일에 대해(마 10:5후반절, 9, 10).
  * 문제가 일어날 때 무슨 말을 할지에 대해(마 10:27).
  * 감정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마 10:28).

  이는 제자훈련 프로그램을 위한 훌륭한 지침이다. 그러나 이는 또한 예방 
상담자가 해야 할 일의 일부가 사람들을 교육시키는 것임을 예시해 주고 있다. 
문제를 예방하기 위하여 상담자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영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가, 
어떻게 결혼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가, 어떻게 죽음을 대비하는가, 어떻게 충동을 
처리하는가, 어떻게 좌절감을 처리하며 스트레스를 이겨내는가와 같은 주제에 
대하여 교훈을 줄 수 있다.

  이 교육적 형태의 상담에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지나치게 
피상적인 충고를 하거나 너무 단순하거나 실제적이지 못한 훈계를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문제를 회피하는 데 어떤 묘안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물론 여러 
상황에 일일이 적용되는 묘책이란 있을 수 없다.
  교육적 상담에 있어서 또 하나의 문제는 이러한 상담이 아^36^예 상담을 해주지 
않았다면 일어나지도 않을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자 
대학생 중 97%는 자위 행위를 하고 나머지 3%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라는 자주 
인용되는 문장을 한번 생각해 보라. 이러한 말이 자위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일 학년 학생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이러한 정보는 
차라리 몰랐다면 피할 수도 있었을 문제인데 오히려 그를 유도하지는 않는가? 
이러한 의문은 성교육을 반대하는 성교육 비판자들에 의하여 제기되어 왔다. 이들은 
얄팍한 지식이 호(p166)기심을 자극하여 피할 수 있는 문제를 일으키도록 
유도할지도 모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위험 부담이 따르는 것은 확실하지만 침묵을 지키는 데에는 더 큰 위험이 
있다. 젊은이들은 그들의 부모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순진하지만은 않다. 
의문이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정도는 그리 나쁘지 않다. 후에 시간이 지난 
다음에 학습자가 혼자 무방비 상태로 있게 될 때보다 성숙한 상담자가 주변에 있을 
때 이런 일이 있는 것이 더 좋다.
  교육 상담을 할 때 또 하나의 문제는, 내가 한 과정을 가르치거나 강연을 하거나 
책을 쓸 때마다 늘 염려하는 것과 관련된다. 이것이 사람들의 생활에 실제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인가? 우리들 대부분은 책을 읽거나 설교를 듣고 "이것은 참으로 
도움이 되는 내용"이라고 결론을 내리고서도 배운 것을 곧 망각하는 경험을 배 
보았다. 많은 연구 조사 결과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학습자는 새로 배운 
것을 즉시 실제 행동에 옮기는 사람만큼 변화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예수께서는 장래를 위하여 제자들을 대비시킬 때 이 능동적인 학습의 원리를 
사용하셨다.

    경험
  축구팀의 훈련이 격려와 위험에 대한 경고 그리고 상대편 팀을 격퇴시키는 방법에 
대한 강의만으로 이루어진다면 그 축구팀이 어떻게 될까를 상상해 보라! 사실은 
이와 똑같은 방법으로 많은 교회와 부모 그리고 교육기관이 사람들을 교육시켜 
인생문제에 대비하도록 시도하고 있다. 이는 말뿐이고 실제적인 훈련이 없는 
교육이다. 그와 같이 많은 실패와 패배가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무엇인가 할 일을 (p167) 주셨다. 그는 
실제적인 경험을 위해 제자들을 내어 보냈다(눅 9:2, 10:1). 그리고 그들이 가는 
길을 인도해 주셨다.
  배우는 사람에게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그리고 때에 따라 
그러한 행위는 윤리적인 것이 아니다. 때때로 우리는 신학교에서 학생들로 하여금 
서로 설교하게 하고 서로 전도하고 서로 상담하도록 한 다음에 지역사회로 
진출시키는 것처럼 인위적인 학습상황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예를 들어,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간음을 피하는 방법이나 점성술(운명철학)을 멀리 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훈련이 가능한 상황에서 사람으로 하여금 행동하도록 격려할 때 우리는 할 일과 
안 할 일에 대하여 당사자의 제안을 들어봄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상담자와 
내담자는 함께 이들 제안들을 평가하고 다른 제안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나서 실천 
방법을 논하고 실행 과정에서의 위험이나 실패 가능성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방이 행동을 취하려고 할 때 우리는 그에게 계속 머무르면서 경험을 얻기 위해 
나아가는 그와 함께 가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사람들에게 전도(증거) 훈련을 
시킬 때 우리는 이와 같이 한다. 지시와 약간의 실습이 있은 다음,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이 두 명씩 짝을 지어 나간다.
  예수님은 강의만 잘하는 분이 아니었다. 그들의 장래 사역에 따르는 스트레스를 
예상하고 이에 대처하도록 제자들을 준비시키는 가운데, 예수님은 자신의 참여를 
숨기지 않았다. 주님은 그들의 성공에 함께 기뻐했고 그들이 그들 자신의 
실패로부터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고 그들의 사역을 기뻐해 
마지 않았다(눅 10:18--23).
  (p168)
    시범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하나의 모범(모델)이 되셨다(마 11:1). 주님은 그들에게 
남을 제자로 만드는 방법, 현존하는 문제를 처리하는 방법 그리고 잠재적으로 
위험한 상황을 피하는 방법등을 보여 주셨다. 그분의 본보기는 그들이 나중에 혼자 
문제를 직면했을 때 그들에게 크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에게 감동과 영감을 준 생애를 살았던 사람들에 대하여 
알고 있다. 사람들에게 사는 법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따를 수 있는 모범을 제시해 
주는 이것이야말로 상담자가 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평가
  학습(배우는 것)은 언제나 어떤 종류의 평가나 피드백(feed back)이 있을 때 더 
큰 효과를 발한다. 운동 선수들은 오래 전에 이를 체득했고 학습에 대한 연구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으며 예수께서는 이를 시범으로 보여 주셨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실습 과정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보고를 했고 의심할 나위없이 그들의 노력의 
결과를 평가하며 시간을 보냈다(눅 9:10, 10:17).

    휴식
  예수님은 매우 바쁜 분이었다. 그러나 시간에 대한 갖가지 요구가 그를 압박하는 
가운데서도 그는 휴식 시간을 가졌다. 누가복음 9:10에서 우리는 제자들이 돌와와 
사역 보고를 한 다음 예수께서는 그들을 "데리시고 따로^5,5,5^ 떠나 가셨다"고 한 
기록을 읽을 수 있다. 이것도 훈련 계획의 일부가 아니었는가를 우리는 자문해 
(p169) 본다. 이것은 휴식 시간을 가짐으로 앞으로 일어나는 문제에 더 잘 대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방 상담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거의 모든 사람이 바쁘게 움직이고 사회 전체가 빨리 움직이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의 육체는 이러한 변화를 어느 정도만 소화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휴식하지 못할 경우, 신체적 질병이나 긴장 그리고 인간 관계상의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우리가 주기적으로 휴식을 취하지 못할 때,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잠잠히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성장하지 못할 때 우리의 영적 생활까지도 
타격을 입는다.

  우리 자신이 쫓기고 생활의 여러 압박감에 짓눌림을 받을 때 우리는 효과적으로 
사람을 도울 수가 없다. 문제를 피할 수 있도록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는 사람들이 좋은 책이나 게임, 어떤 취미활동, 존경하는 친구와 
아니면 혼자서 주기적으로 휴식하면서 안식하는 시간을 갖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방 상담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다. 휴식을 취했을 때 우리는 더 
큰 확신과 효능을 가지고 미래의 문제에 직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출발 지점은 
이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보여줄 수 있는 상담자 자신이 되어야 한다.
      -----------
    예방을 위한 지침

  심리적 및 영적 문제의 예방에 대하여 우리는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는가?

  1. 개인적인 문제를 처리하는 최선의 방법은 문제가 시작되기 전에 막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했을 때는 문제가 악화되는 것을 (p170) 막기 위해 문제 발생 초기에 
개입해야 한다.

  2. 교회는 문제가 진전되기 전에 이를 예상하고, 일어날지도 모르는 문제에 대해 
사람들에게 주지시키고, 진전될 가능성이 있는 문제를 식별하고, 현존하는 문제가 
악화되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해 개입할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 놓여 있다.

  3. 그리스도인은 개인 문제를 예방하려면 돕는 자 측에 몇 가지 태도가 
요구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통찰: 문제가 일어나거나 악화되기 전에 잠재적인 문제를 보는 것.
  지식: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상황이나 환경을 변화시키는 방법, 사람을 위탁할 수 
있는 곳, 진행중인 문제 상황에 대하여 취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지식.
  용기: 새로 발생한 문제, 보다 급박한 문제 때문에 우리가 흔히 무시하거나 
지나치는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노력에 참여할 수 있는 용기.
  요령: 사람들이 거론하기를 원치 않는 민감한 문제를 제기하고, "나는 너보다 
거룩하다" 또는 "나는 모르는 것이 없다"는 태도를 취하지 않는 요령. 사람들은 
언제나 발생 중이나 아직 심각하지 않은 개인 문제에 대하여 간섭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긍휼(연민): 타인에 대해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거절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문제 예방에 도움이 되기만 한다면 기꺼이 수모를 당하겠다는 자세.
  계획성: 계획성 있게 추진함으로써 데이트나 결혼 전 문제, 중년 이전의 문제나 
은퇴 전 문제 같은 것이 확고하게 그러나 비위협적으로 제기될 수 있도록 하며, 
참석자들에게 최대한의 혜택을 주고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위협을 극소화해 줄 수 
있는 방법으로 행(p171)복한 결혼 생활 세미나나 영적 성장을 위한 수련회 등을 
소개한다.

  4. 교회사역의 모든 측면 즉 설교, 가르침, 전도, 교제 모임, 음악, 제직회 등은 
참석자들의 영적 및 심리적 복지를 염두에 두고 계획되어야겠다.

  5. 교육은 예방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그리스도인 상담자는 결혼 생활을 
향상시키는 방법, 가족간의 갈등을 다루는 법, 스트레스 해소법, 험담을 피하는 법, 
사람들이 죄에 빠질 때 용서하는 법, 대인관계를 원활히 하는 법 등에 관해 
사람들을 교육시키는 방법에 대해 심각한 고려를 해야 한다. 예수님과 신약성경은 
이와 같은 실제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현대의 기독교인들은 흔히 이런 
문제를 도외시한다. 이처럼 문제를 도외시하면, 시초에 예방하거나 막을 수도 있는 
문제가 커지도록 내버려 두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지상 명령(the Great Commission)은 예방 심리학의 훌륭한 예이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의 삶이 어렵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우리의 생활에 최대한의 안정과 
혜택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지침을 제공해 주셨다. 
  그는 결국 "모든 능력과 권세를 내가 쥐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우리에게 
확신을 재다짐해 준다.
  "가서 제자를 삼으라" - 이는 우리의 삶에 진정한 목적을 부여해 준다.
  "세례를 주고 가르치라" - 이는 우리가 따를 표본을 제시해 준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기억하라" - 이는 안정감을 가져다 주고 우리가 섬기는 크신 
하나님을 상기시켜 준다.
  (p172)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하리라" - 이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확실한 희망을 준다.  
  바울은 세상이 줄 수 있는 모든 것^56,36^지위, 교육, 부, 자신감^36,23^을 
소유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고 나아가 남을 
제자로 삼는 일꾼이 되었다. 이와 같은 생활을 하면서 그는 각종 문제를 견디어 낼 
수 있었고 다른 사람도 그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디모데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에서 바울은 이 젊은 제자에게 자신과 남의 문제를 예방하는 데 대한 몇 가지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지침은 오늘날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것들이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저희는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5,5,5^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 (딤후 2:15, 16, 22--26). 
  (p173)
  @[  9. 돕는 집단으로서의 교회

  예수께서는 그의 지상 사역 기간 동안 치유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셨다. 몇 
명의 비판자들에게 이야기하시는 중에, 주님은 건강한 사람들에게 봉사하러 오시지 
않고 고침을 받을 필요가 있는 사람들을 고쳐 주러 오셨다고 자주 말씀을 하셨다(막 
2:17). 신약성경 처음 다섯 권의 책을 살펴보면 전체 말씀의 5분의 1이 병 고침을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1. M. T. Kelsey, Healing and Christianity(New 
York: Harper & Row, 1973), p.14.) 그리고 복음서에서는 십자가와 부활사건을 
제외한 다른 어떤 주제보다도 예수님의 치유 사역에 더 많은 관심이 주어지고 있다. 
(주2. J. A. Knight, "The Therapeutic Opportunity of the Clergyman and the 
Congregation", in H. J. Clinebell, Jr., ed., Community Mental Health: The 
Role of Church and Temple(Nashville: Abingdon Press, 1970), pp.84--90)
  이들 성경적 치유를 고려함에 있어서, 한 가지 흥미있는 사실은 (p174) 이 치유 
사건들이 거의 예외없이 다른 사람들이 있는 데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치유되었을 때 다른 사람들이 그곳에 함께 있어 이를 지켜 보았다는 말이다. 때때로 
사람들이 아픈 사람을 데리고 왔고 어떤 때는 환자의 친구나 친척이 대신 예수님께 
나아와서 사랑하는 이를 고쳐 달라고 간구하였다. 
  앞에서 우리는 영적 및 심리적 치유에 대하여 그리고 돕는 자와 도움을 받는 자, 
이 두사람 사이의 상호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도움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물론 우리는 
상담자들이 때때로 둘씩 짝을 지어서 일할 때도 있고 내담자가 더 큰 집단(그룹)의 
일원으로 도움을 받을 때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소그룹 
상황에서까지도, 상담은 흔히 그룹 밖의 어떠한 사람과는 별도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상담이 그룹의 분위기내에서나 관심있는 사람들의 집단 속에서 이루어질 때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
    집단 상담의 효과

  심리학자들은 여러 해 전에 그룹 상담의 효과를 발견했다. 불결한 수용소에 묶여 
있던 정신병 환자들이 온정과 친절로 치료를 받았을 때에 극적인 향상을 보이는 
것이 발견되었다. "도덕적 치료"라고 일컫는 치료 노력의 일환으로, 병원 
관리자들과 직원들이 환자들과 식사를 같이하며 생활하는 가운데 병원이 형무소와 
같은 곳이 아닌 치료적인 집단사회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주3. J. S. 
Beckeven, Moral Treatment in American Psychiatry(New York: Springer, 
1963))
  이러한 아이디어는, 맥스웰 존스(Maxwell Jones) (주4. M. Jones, The 
Therapeutic Community(New York: Basic Books, 1953))라는 영국의 정신병 
의사가 환자의 일상적인 활동이 그의 회복에 직접적으로 영(p175)향을 미친다고 
치료적인 집단사회의 경험에 대해 발표했던 때인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더욱 
확대되었다. "환경 치료"(milieutherapy)가 바로 이러한 종류의 치료를 지칭하는 
말로 쓰여졌다. 일대일의 상담도 치료의 일부였으나 똑같이 중요한 것은 
직원으로부터의 일상적인 지원과 도움 및 격려 그리고 환자 상호간의 지원과 
격려였다.

    환경 치료
  환경 치료는 상담 관계에 대하여 몇 가지 재미있는 가정을 가지고 있다. (주5. 이 
문단은 R. N. Rapaport, Community as Doctor: New Perspective on a 
Therapeutic Community (London: Tavistock Publications, 1960)에서 번안한 
것이다.) 첫째, 이 치료법은 함께 생활하고 함께 일하며 함께 오락활동에 참여하는 
등의 활동 그 자체가 매우 치유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둘째로, 
환자들에게 병원을 청소하고 병동 활동을 계획하고 병원 정책을 결정하고 서로 
상대방의 증상을 평가하는 등의 책임이 부여되어야 한다고 가정했다. 셋째는, 직원 
모두가 똑같이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었다. 병동 보조원의 영향이나 의견이 
정신과 의사의 의견과 똑같은 비중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로, 병동의 
분위기가 개방적이고 솔직하고 따뜻하고 서로 받아주고 돌보아 주는 분위기일 때 
환자들의 병세가 호전된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끝으로, 환자와 직원들 사이에 개방된 
상호 의사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의견의 불일치는 공개적으로 드러내 놓고 
직설적으로 처리되어야 했다.

  (p176)
    치료적인 집단
  개인적인 상담을 지원하거나 때로 대체시키기 위한 치유적인 집단을 형성한다는 
이 아이디어는 최근 치유 집단(The Healing Community)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저서에서 한층 더 확충되었다. (주6. R. Almond, The Healing Community(New 
York: Jason Aronsen, 1974)) 저자는 여기서 그룹이 환자로 하여금 상처를 
표현하고 행동을 바꾸고 집단의 보다 경험이 있고 성숙한 일원의 본을 따르고 
결합력이 있는 치유 집단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들 심리학 저서를 내는 분들 중 많은 분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과 신약의 저자들이 이미 여러 세기 전에 이상적인 치유 집단의 모델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도덕적 치료 또는 환경적 치료의 가설들은 먼저 성경에 
발표되었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적인 모델을 따르는데 
실패했던 것이다. 그 결과로 교회는 치유하고 돕는 집단사회로서의 구실을 소홀히 
했다. 오히려 교회는 상담을 목사나 몇 명의 평신도에게 일임하는 맥풀린 기관으로 
변모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교회에 
참여하는 교인이 아니거나 독특한 버릇이 있는 사람일 경우에는 그런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거절하는 경향을 보였다.
      --------------
    그리스도의 몸의 성격

  예수께서는 지상에 계실 때 자신의 몸을 통하여 사역하셨다. 그는 가는 곳마다 
병을 고쳐 주고 상담하고 자비를 나타내고 가르(p177)치고 다른 사람이 흠모하고 
따를 만한 삶을 사셨다. 예수께서 부활하고 천국으로 돌아가셨을 때 그의 육체적인 
몸은 지상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그는 그의 사역을 계속 이어갈 또 하나의 몸을 
남겨 두셨다. 오늘날도 남아 있는 이 새로운 그리스도의 몸이 바로 교회인 것이다. 
(주7. 이 부분은 주로 John MacArthur, Jr., The Church: The body of Christ 
(Grand Rapids: Zondervan, 1973); and Ray C. Stedman, Body Life (Glendale, 
Califonia, Regal, 1972)에서 번안한 것이다.)

    그릇된 교회관
  현대인들은 교회에 대해 그릇된 견해를 발전시켰다. 많은 이들은 교회를, 하나님을 
믿으나 주로 교인수를 늘리고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사회 속에서 정치나 하고 일주일 
중 대부분의 시간을 텅텅 비워 두는 대규모 건물을 계속 확장시키기에만 관심이 
있는 경건한 위선자들의 부적합한 기관이라고 보고 있다. 이 묘사는 약간 지나친 
데가 있다고 하겠으나 교회의 가장 신실한 성도들까지도 교회에 대하여 이와 같은 
견해를 갖고 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성경적인 교회관
  이상 말한 것은 물론 성경에서 제시하고 있는 교회의 모델과 거리가 멀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삶을 위탁한 신자들의 집단이며 각 성도가 발견하고 개발한 
신령한 은사를 갖추고 있는 유기적인 연합체이다(엡 4장; 벧전 4:10). 로마서 12장, 
고린도 전서 12장, 에베소서 4장에 열거되어 있는 이 은사는 예언, 가르침, 전도, 
도움, 권위(이는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상담과 비슷하다), 방언, 병고침, 
믿음, 지혜, 지식, 분변, 긍휼, 다스림, 그리고 (p178) 구제를 포함하고 있다. 이들 
은사는 성령님께로부터 직접 주어지는 것으로 성령은 그의 뜻에 따라 은사를 나누어 
준다(고전 12:11). 
  예배소서 4:12--13에 의하면, 성령의 은사는 두 가지 목적을 지니고 있다. 
첫째로, 은사는 각 신자를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로서 봉사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예수께서는 복음을 전하고 눈을 뜨게 하고 눌린 자를 놓아 주고 
진리를 선포하기 위하여 오셨다(눅 4:18). 현대의 "그리스도의 몸"도 같은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성령께서 예수님에게 능력을 주신 것처럼(눅 4:18), 성령께서 
우리에게도 능력을 주시고 은사를 주셔서 서로 섬기고 봉사할 수 있게 하시는 
것이다.
  신령한 은사들을 주신 두 번째 목적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움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연합되고 지식에 풍성한 성숙한 남녀 성도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최근의 풍조나 인생철학에 흔들리거나 불려 다니지 않는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안정되고 사랑이 많은 사람들로서 그 삶이 그리스도에 중심을 두고 
있다(엡 4:12--16).

    진정한 상담자
  그러면 이 모든 것이 진정한 상담자가 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간단히 
말해서 그리스도의 몸의 주요 목적은 사람을 돕는 것이다.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24--27).
  (p179) 하나님의 계획에 의하면, 교회는 연합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능력을 받으며 성숙에 이르도록 성장하고 몸 안팎에 있는 사람들을 
섬긴다(돕는다).
      -------------
    돕는 것과 그리스도의 몸

  그리스도의 몸은 여러 가지 목적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데, 이들 목적은 모두 각 
개인에게 크게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리스도의 몸이 제대로 기능할 때에 몸은 다음과 
같은 것을 제공할 수 있다.

    교제
  도움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외로운 사람들로서 또 다른 
인간과의 어떤 심층적인 관계를 동경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몸이 제공하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은 교제이다. 신자들은 우주의 하나님과 교제를 나눈다(성경에 의하면 
이는 자동적으로 기쁨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피차 교제를 나눈다(요일 1:3, 4, 7). 
초대 교회를 특징지었던 이와 같은 교제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 공통된 헌신을 
했기 때문에 가능하게 되었다(고전 1:9). 이와 같은 헌신과 친밀감이 오늘날도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세워 주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5,5,5^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나누는 교제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불신 
세계에 증거가 될 하나의 사랑의 집단을 형성하기를 원하십니다^5,5,5^ 우리가 함께 
나누는 교제가 전세계적으로 눈에 띄게 결여되어 있는, 사랑하고 서로 나눠 주는 
특질을 지닌 교제로 특징 지어진다면 (p180) 우리는 우리 생활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세상에 확실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주8. J. W. Drane, 
"Fellowship: Our Humpty-Dumpty Approach" in Christianity Today, vol.19, 
May 9, 1975, pp.6--8.)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특질은 오늘날 교회 안에 전반적으로 결여되어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은 그와 같은 교제와 수용, 소속감 
그리고 안정감을 제공할 수 있는 굉장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 것이 있을 때 
신자는 물론 신자들과 접촉하게 되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똑같이 치유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봉사
  예수께서는 한때 사람이 어떻게 해야 위대하게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받으셨는데, 그분의 답변은 약간 놀라운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위대하게 되는 
길은 종이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20:26; 막 9:35). 이 아이디어는 신약에 
되풀이되어 나오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피차 복종하여야 하며 피차 섬겨야 한다.
  이는 자아 중심의(self-centered) 삶이 아닌 타자 중심(other-centered)의 
삶이다. 이것은 꾸준히 실천할 경우 상호 도울 수 있는 관계로 유도할 수 있는 
생활양식이다. 이러한 생활양식은 모든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피차에 짐을 서로 
지도록(갈 6:2), 함께 울고 함께 즐거워하도록(롬 12:15), 피차에 죄를 서로 
자백하도록, 그리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도록(약 5:16) 인도할 것이다.
  레이 스테드맨(Ray Stedman)은 그의 저서 그리스도의 지체(Body (p181) Life. 
본사 역간)에서 다음과 같이 평한 적이 있다.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는 것은 "몸의 생활(body life), 즉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인의 따뜻한 교제이다. 신약성경은 이를 코이노니아(koinonia)라고 
부르는데 이는 초대 기독교회의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신약성경은 서로 짐을 져 
주고, 피차 허물을 고백하고, 견책하고, 서로 권면하고, 권고하며, 노래와 기도를 
통하여 말씀으로 서로를 섬길 수 있을 만큼 서로를 가까이 친밀하게 알 필요성에 
대해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이러한 교제의 생활을 통하여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어야 한다고 바울은 가르치고 있다(엡 3:18, 19). 
(주9. Stedman, op. cit., p.107.)

    사랑
  이는 우리가 앞에서 보았던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표지(표 표, 적을 지)이다(요 
13:35). 그리고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는 지시를 반복해서 받고 있다(마 
22:39; 살전 4:9, 10). 고린도전서 13장에 기록되어 있는 사랑에 대한 성경적인 
묘사는 우리에게 높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하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4--7).
  (p182) 몇 해 전에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자로 유명한 고든 알포트(Gordon 
Allport)는 사랑을 "그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는 최대의 심리 치료 요인"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 (주10. G. W. Allport, The Individual and His Religion(New 
York: Macmillan, 1950), p.90) 그는 계속해서 이 사랑에 대해서는 교회가 다른 
어떤 세속적인 상담자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하고 "교리를 실천에 옮기지 
못한 오랜 세월에 걸친 종교의 실패"를 개탄해 마지 않았다. (주11. Ibid., 93)
  그리스도의 몸은 사랑에 의하여, 우리 자신과 이웃, 우리의 가정 그리고 우리의 
원수들에 대한 사랑으로 특징지어져야 한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롬5:8). 만일 이 신적인 사랑이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흘러나가 다른 사람에게까지 미친다면 그 결과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치료적인 효과를 나타낼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사랑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따르는 일이다. 이러한 사랑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며 우리에게 불편을 초래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에 
대하여 많은 말을 할 뿐 실천은 별로 하지 않는다.

    성장
  그리스도의 몸은 성장, 성숙하는 사람들의 집단이 되어야 한다. 이들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함께 역사하는 단위로서 함께 자라가야 하며 몸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점점 닮아가야 한다(엡 4:13--16).

  이러한 집단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위해서 할 수 있는 (p183) 것을 고려해 
보라.

  * 교제 및 소속감을 제공한다.
  * 내담자 및 상담자 그리고 그들의 관계에 대해 기도로 관심을 보여 준다.
  *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실제적이고 눈에 보이는 도움을 제공한다.
  *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다른 이들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이것은 훌륭한 치료가 된다).
  *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러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성경적인 
사랑을 보여 준다.
  * 의미있는 삶의 철학을 제공한다.
  * 위기를 당한 개인이나 가정을 지원하고 인도해 준다.
  * 주권적으로 섭리하시는 그리스도께 죄를 고백하고 헌신하도록 격려한다.
  * 상담자가 어려운 상담 상황에 직면할 때 상담자에게 충고와 격려를 제공한다.
  * 각 개인이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성숙할 수 있도록 인도해 준다.
  * 내담자가 새로운 행동을 시도할 때 그를 격려해 준다.
  * 다양한 성숙의 모델과 심리적, 영적 안정의 표본을 보여 준다.
  * 전체 지역사회 속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고 있는 과거의 알콜 중독자, 
죄수, 정신병자 등 피해자들을 수용한다.
      -------------
    상담에 대한 장애물

  그리스도의 몸이 그 기능을 정상적으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기에는 별로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물론 예외가 있지만 많은 경우 교회는 치유적인 
집단으로 봉사하기보다는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여기에는 적어도 네 가지 원인이 
있는데 우리가 참으로 효과적인 상담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이러한 분야에서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고립
  몇 해 전에 우리 외로운 사람들(We, The Lonely People)이라는 제목의 책이 
나온 적이 있다. (주12. R. Keyes, We, The Lonely People(New York: Harper 
& Row, 1973)) 저자 랄프 키이스(ralph Keyes)는 우리 대부분이 더 큰 친밀감을 
원하면서도 이 친밀한 관계에 저항하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우리를 알고 우리를 사랑하고 필요할 때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친근하고 가까운 
친구들을 갖고 싶어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것, 즉 프라이버시나 이동성, 편리 
그리고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와 같은 것을 더 원한다.
  이것이 교회에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생각해 보라. 우리들 중 많은 이들이 
지역교회 즉 성도들의 지역적인 집단에 매여 있다고 느끼기를 원치 않는다. 우리는 
움직이고 이전할 수 있는 자유를 원한다. 그래서 우리는 몸 안의(또는 몸 밖의) 다른 
사람들에게 가까워지는 모험을 감행할 생각이 없다. 우리 중 하나가 이사를 하게 
되면 쓰라린 이별에 직면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놀고 싶으나 어떻게 집단의 일원이 되어 같이 (p185) 놀 수 있는지 자신이 없고 
어울리려 하다가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워 방관자처럼 서 있는 유치원생과도 같이 
무관심한 듯 초연한 자세를 유지한다. 어떤 사람과 친밀한 친화관계를 맺었을 경우 
우리는 새로운 사람의 침범을 불쾌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현존하는 그룹이 
비슷한 방법으로 우리의 접근을 불쾌하게 생각할지 모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몸은 사회 속의 여타 집단이나 기관과 다름이 없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교회는 강한 공동체 의식과 함께 나타나는 위험부담을 직면하기를 
주저하는^56,36^따라서 친밀감을 회피하는^36,23^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스도에 대한 공통된 충성심과 믿음을 지니고 있고 서로 보안해 주는 은사를 
지닌 성도의 집단으로서 우리는 사회의 다른 집단과는 달라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교회가 친밀감을 증진하기 위하여 감수성(민감도) 향상 그룹을 
후원해야 한다면 무엇인가 심각하게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이 
도와주는 상담 집단이 되려고 할 것 같으면, 우리는 성경적인 형태의 코이노니아로 
돌아가 피차 가까워질 필요가 있다.

    무성의
  여러 세기 전에 선지자 이사야는 강한 어조로 무성의(불성실)를 정죄하였다(사 
1:10--15).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의 가장 신랄한 연설 중 하나에서 당대 종교 
지도자들의 외식(위선)을 비판하셨다(마 23장). 그들은 경건하고 신령한 척하는 
사람들이었으나 실제로는 자기중심적이고 정직하지 못하고 교만에 가득 찬 
가짜들이었다. 후에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지구의 마지막 때는 위선으로 
특징지어질 것이라고 썼다. 무엇 무엇을 믿는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그들의 행위로 
자기들의 교리(주장)를 모순되게 할 것이다(딤전 4:1--3).
  (p186) "가짜"(phony)라는 말은 나쁜 의미를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들 
대부분은 이것이 우리에게 적용되지 않고 다른 사람, 다른 회중에 적용된다고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학생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불성실함을 비판할 때에, 
우리는 이를 이상주의적인 청년들의 무책임한 객담에 지나지 않느다고 무시하거나 
일축해 버린다. 그러나 위선자라는 말을 듣고 편하게 느끼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키이스 밀러( Keith Miller)와 같은 사람의 예리한 분석을 일축해 버리기는 어렵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를 거의 유아 시절부터 감쪽같이 부정직하도록 
훈련시킨다^5,5,5^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로 하여금 그들의 진짜 감정을 숨기고 
그들의 참된 필요를 감추고 행복한 것처럼, 성공적인 것처럼 보이라고 가르친다. 
그들이 성장했을 때쯤이면,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든간에, 그들의 
자연스런 반응은 거의 모든 상황에서 즉가적으로 그들에게 기대되는 이미지를 
투영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우리의 교회들이 겉으로는 만족하고 평안하게 보이나 속으로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줄 사람을 찾아 울부짖고 있는, 혼동되고 좌절감에 빠져 
있고 가끔 두려움과 죄책감을 느끼며 자기 가정 식구들과도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 안의 다른 사람들은 너무나 행복하고 
만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사람은 이와 같이 자기 만족에 빠져 있는 
그룹 앞에서 감히 자신의 깊은 필요를 시인할 만한 용기를 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보통 교회 모임이 이와 같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5,5,5^.
  결국 우리의 현대교회는 순수하게 보이고 순수한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자신과 
자기의 약점, 좌절감, 교회 안의 실(p187)재의 결여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의 불신자 친구들은 "저 걱정 근심도 없이 즐겁기만 한 
일단의 사람들은 결코 내 문제를 이해할 수 없을거야"라고 느끼거나, 우리를 
사회적으로 직업적으로 알고 있는 예리한 이방인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실제 
인간 현실로부터 완전히 봉쇄되어 있거나 아니면 인간 현실에 대해 무식한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저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불교신자들이 그들의 직관에 
의해 보편적으로 퍼져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죄와 연약함을 고백하지 않을 철저한 
위선자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주13. Keith Miller, The Taste of New 
Wine(Waco: Word, 1965), pp.22, 27)

  밀러는 이 위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새로운 
스타일의 생활, 즉 우리 모두가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음을 참으로 믿는 솔직함으로 시작하는 새로운 생활양식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고 
있다. (주14. Ibid., p.27.) 우리는 스스로의 강점과 약점을 고려하는 가운데 우리 
자신에게 솔직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솔직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며 우리 죄를 그에게 자백하기를 
기대하시며(요일 1:9) 우리의 내적 갈등을 처리하는 데 그의 도움을 구하기를 
기대하신다. 그렇게 할 때에라야 비로소 우리는 서로 솔직할 수 있고 우리의 문제를 
서로 나눌 수 있고 타인으로부터 동정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잠 28:13).
  이것은 실제보다 말이 더 쉽게 들릴는지 모른다. 우리의 감정을 솔직히 나누고,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우리의 짐에 대하여 공개하기에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이러한 태도에 몇 가(p188)지로 반응할 것이다. 어떤 이는 극히 불편하게 
느끼고 뒤로 움츠러드는 자세를 보이거나 화제를 바꾸려 할 것이며 또 다른 이들은 
비판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방적인 태도를 환영할 
것이며, 처음의 놀람과 불편한 감정이 지나간 다음에는 그들도 약간 스스로를 
드러내려교 시도하게 될 것이다.

    활동하지 않는 방관
  글쓰는 이들은 때때로 교회를, 절박하게 휴식을 필요로 하는 소수의 사람이 
절박하게 운동을 필요로 하는 수만 명의 관중을 즐겁게 하면서 그들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있는, 하나의 대규모 축구 경기에 비유하기를 좋아한다.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우리는 교회를 소수의 지도자가 모든 일을 전담하고 대부분의 교인들은 수동적으로 
참여하는 곳으로 보게 되었다. 성숙하는 과정이 없는 것도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활동하지 않는 유기체는 언제나 말라 버리게 되어 있으며 점진적으로 
약화되게 마련이다.
  교회내의 이 죽은 듯한 무기력에는 이유가 있다. 어떤 이들은 다른 일로 너무 
바쁘고 어떤 사람은 나태하다. 그리고 아마도 많은 이들은 목사의 직책이 모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잠시 멈추어 생각해 본 적도 없을 것이다. 목사는 
사람들이 은사를 발견하도록 돕고 이 은사를 열심히 개발하도록 격려하는 "운동 
코치"가 되어야 한다. (주15. E. Trueblood, The Incendiary Fellowship(New 
York: Harper & Row, 1967), pp.43--44) 이러한 목사님이 함께하는 교회는 
능력과 사랑과 절제 그리고 담대한 전도에 의하여 특징지어지는 열정적인 교회가 될 
것이다(딤후 1:6--8). 이는 목사가 설교를 중단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p189) 나는 "오늘날에도 생동력 있고 살아 움직이는 회중이 있는 곳마다 그 
중심에 생명력 있는 설교가 있음을 발견한다" (주16. H. Thielicke, The Trouble 
with the Church(New York: Harper & Row, 1965), p.viii)고 한 헬무트 
티엘릭(Helmut Thielicke)의 말에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그곳에 살아 
있고 순종하는 활동적인 교인들이 있음을 발견한다.

  아마 우리가 특히 상담자로서 활동적이 아니고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서로간에 
너무나 격리되어 있으므로 어떤 사람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어색함을 느끼며 
당황하게 된다. 최근에 우리 이웃에 살던 분이 갑자기 죽어 초상을 맞게 되었다. 
30분 만에 나의 아내는 그 집에 가져다 주려고 오븐에 케이크를 구웠다. "여보, 안 
될 말이야", 나는 반대하고 나섰다. "우리는 이 사람들을 알지도 못하는데, 이런 
식으로 그들을 접근하면 이상하게 생각지 않겠소!" 유감스럽게도 내 말이 옳다고 
인정되어 케이크는 우리가 먹어 버리고 나중에 잠깐 문상을 다녀왔다. 그러나 나의 
아내의 생각이 더 좋은 생각이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을 모를 때에라도" 그들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실제적인 도움을 제공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더 개방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문제는 두가지 형태^56,36^즉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 것과 터부시되는 
것^36,23^로 나타나는 것 같다.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문제는 가족의 죽음, 중병, 
화재나 태풍, 또는 기형아의 출생과 같은 것이다. 이럴 경우 그들은 불안해 하고 
무엇을 어떻게 할지를 몰라 서성거릴 수가 있지만 사람들은 이럴 때 음식이나 거처 
등 실제적인 도움을 주려고 모여든다.
  (p190) 그러나 가정이 터부시되는 문제에 직면했을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가정 
안에서의 이혼, 경찰에 구속된 아들, 십대의 임신, 알콜 중독 등, 이러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은 절박하게 도움을 필요로 하나 보통 그러한 도움을 받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에는 죄가 관여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성경 어느 곳에서도 죄인과 그 
가정을 도와주지 말라고 한 곳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성경은 그 반대로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는 아무 말도 않고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고 
난처한 문제가 사라지기만을 바란다. 이것은 가장 개탄할 형태의 방관일 것이다. 
왜냐하면 혼자 전전긍긍하면서 타인의 도움을 가장 필요로 하는 이들을 돕기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 관계를 강조하는 인본주의
  최근에 들어 복음주의적인 교회 안에서 새로운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상호관계신학(interpersonal theology) 또는 관계 신학(relational theology)으로 
알려져 있는 이 운동은 필요나 문제를 안고 있는 개개인과 사람들 사이의 상호 
인격적인 관계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이러한 운동은 사람들이 모든 올바른 신학과 
성경 구절을 안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지식이 기독교 가정의 파탄과 마약의 남용, 
기독교 가정 출신의 십대 소년 소녀들간의 혼전 성관계, 신랄한 비난이 오가는 
악의에 찬 교회내의 제직회의 등의 문제를 예방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일어난 운동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저 옳은 것을 "믿는 것"만으로는 
우리의 생활이 정상화되고 몸의 지체들 사이의 상호 인간 관계가 사랑과 지원의 
관계로 변한다는 보장이 되지 못하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아마도 상호관계신학에 대한 관심이 증대된 것은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의 점증하는 
인기에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p191) 물론 교회 갱신에 대한 
범교단적인 관심이 또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브루스 
라슨(Bruce Larson)과 키이스 밀러(Keith Miller)의 글만큼 교회내에서의 인간 
관계를 개선할 필요성에 대하여 우리를 일깨워 준 것도 아마 없을 것이다. 서로 
나누기와 솔직함, 소그룹 토의, 문제중심의 회합, 그리고 결혼 관계 및 상호관계와 
같은 주제를 설교의 역점으로 한, 이 신학에의 새로운 접근방법은 교회에 대해 
광범하면서도 건전한 영향을 미쳤다. 드디어 우리는 서로를 알고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원만한 인간 관계의 형성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신선하고 새로운 것이 나올 때에는 언제나 과잉반응의 위험이 따르게 
마련이다. 상호관계신학의 경우에는 이것이 인간 관계를 강조하는 
인본주의(humanism)로 변질될 수 있다는 위험이 있는데, 심리학적인 관심사와 
"서로 돕는 것" 그리고 "솔직하기"등에 심취하다가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교제를 위한 성경적인 기반을 망각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교회나 
소그룹내에서는 상호관계신학의 열성적인 추종자들이 개인적인 경험과 상호 관계 
형성 그리고 자신을 아는 일에 지나치게 강조점을 두는 나머지 성경은 사실상 
무시되거나 망각되고 머지 않아 이러한 그룹들은 그리스도인의 교제의 기반(헌신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하나됨)을 지나치게 된다. 모든 대가를 감수하고 
제자를 삼고 훈련시키라는 명령은 소홀히 된다. 죄와, 고백의 필요성, 헌신의 
필요성, 성령의 능력,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의 성격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점차 
약화되고 완전히 망각되기에 이른다. 결국 과거의 죽은 신학이 경험 중심적 형태의 
현대 인본주의로 대치되는 것이다.

  죽은 교회를 즐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는 상호 인간관계(p192)신학을 통하여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을 환영하면서 동시에 기독교 신앙의 성경저인 기초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설교와 교회 프로그램은 성경의 기반 위에 서야 한다. 그러나 
이들 서교와 프로그램은, 기독교가 현실에 적용될 수 있고 실제적이며 개인생활의 
문제와 관심사를 처리해 줄 능력이 보유하고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나는 학교에서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그들의 말을 듣는 이들이 그리스도께로 
인도되어야 하며 그들의 설교가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는 질문에 좋은 
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해 준다. 우리의 교회 프로그램이 우리 자신에게 
둔탁한 신학적 문제를 강론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인본주의적으로 
운영되는 감수성 훈련 그룹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에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고 참으로 성경적인 
기독교가 그들의 생활과 가정과 인간 관계에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음을 보여 
준다면 몸은 마땅히 자라기 시작할 것이며 모든 사람이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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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돕는 집단

  그리스도의 몸, 즉 교회는 탄생할 때부터 하나의 돕는 집단이었다. 교회 안에는 그 
동안 고립된 불성실, 무기력(활동적이 아님), 험담,비협조, 부정직, 엄격 및 허다한 
이교적 형태가 있어 왔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역사 속에는 신약성경의 원칙 위에 
지역 교회를 성장시켰던 적은 무리의 "헌신된 집단"이 존재해 왔다. 이들은 거의 
모두가 교회에 네 가지의 돕는 행동, 즉 병을 고치고 보전(지탱)하고 인도하고 
상처난 인간 관계를 치유시키는 일을 시범적으로 보여준 회중이었다. (주17. W. A. 
Clebsch and C. R. Jaekle, Pastoral Care in Historical Perpective(Englewood 
Cliffs, N. J.: Prentice-Hall, 1964))
  원래 의도되었던 대로 참으로 돕는 집단이 되기 위해서는 교회(p193)가 먼저 각 
지체로 하여금 그리스도께 헌신하고 각자의 신령한 은사(상담의 은사를 포함해)를 
개발하고 그리스도인의 성숙을 향해 움직이는 가운데 이들 은사를 남을 섬기는 데 
적극 사용하도록 하는 성경적인 모형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노력하는 
각각의 성도는 사람을 도울 수 있고 흔히 실제로 남을 도와준다. 그러나 참으로 
남을 돕는 데는 하나의 단위로서 협력하는 몸이 더 바람직하고 효과적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몸 전체가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구체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겠다. 교회는 상담자와 내담자를 위하여 격려하고 기도해 
줄 수 있으며, 필요를 안고 있는 사람들(터부시되는 문제를 갖고 있는 사람들까지 
포함해서)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고, 교인과 방문객들에게 안정되고 
수용적인 집단분위기를 제공할 수 있고, 회개하고 치유되어 사회 속으로 복귀하는 
이들을 지원해 줄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은 치료적인 도움과 
예방적인 도움을 동시에 제공할 수 있다. 이는 효과적인 상담(도움)이 될 수 있다. 
그 이유는 이러한 상담이 동료상담이며 피차간에 도움을 주는 상호상담이며 몸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상담이기 때문이다. 
  (p194)
  @[  10. 어떻게 당신 자신을 도울 수 있는가? (pp194--212)

  최근에 나는 별로 친절하지 못한 식당에서 친구와 식사한 적이 있었다. 커피가 
나올 때를 한참 동안 기다리다가 웨이터의 시선을 우리쪽으로 유도하는 데 
성공하여(나는 예의 바르게 말했다고 생각했다) 내 컵에 커피를 좀 따라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약간 퉁명스럽게 그는 대답했다. "곧 선생님께로 가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시중들 사람이 많이 있는 것이 안 보입니까?"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친구가 신랄하게 그의 말을 되받았다. "여보시오", 그는 
언성을 높여 대답했다. "나도 사람이오!"
  아마 지금까지의 내용을 읽는 동안 당신은 이 주제에 대하여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다른 사람을 돕는 방법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상담자도 "사람"이라는 것과 때때로 상담자도 자기 자신을 도울 수 있어야 함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직업적인 상담자들 사이에, 우리가 과연 우리 자신을(특히 우리가 심리적인 
문제를 안고 있을 때) 도울 수 있는가에 대하여 논(p195)쟁이 일고 있다. 어떤 정신 
분석학자들은 자기통찰(self-insight)과 변화는 수백 시간의 상담을 거친 후에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도 확실한 것이 못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다른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5,5,5^ 이는 능히 이루어질 수 있다. 사전에 심리적인 지식을 획득했든 안 했든, 
한 개인은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하여 읽거나 들을 수 있고 이를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능동적으로 적용할 수 있고 그의 정신 속에 놀라울 정도로 건설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이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론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 중에 실제로 이를 
이행할 사람은 극히 적다. 그러나 어떤 이는 할 수 있으며, 어떤 사람은 할 
것이다^5,5,5^ 그러므로 자기분석(self-analysis)을 격하시키지 말기로 하자^5,5,5^." 
(주1. A. Ellis and R. A. Harper, A Guide to Rational Living(Hollywood, 
Califonia: Wilshire Book Company, 1970), pp.5--6)

  진정으로 우리 자신을 돕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때에 따라 이는 
가능하지도 않다. 그러나 우리가 우선적으로 해볼 수 있는 실제적인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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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가 되라.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셨을 때, 그는 우리를 최상의 환경 속에 살게 하시고 
인간들이 그들의 창조주와 긴밀하고 밀접한 관계를 (p196) 갖도록 의도하셨다. 
우리를 로봇으로 만들기를 원치 아니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지를 주시고 의지와 
함께 그에게 등을 돌릴 수 있는 자유도 주셨다. 물론 이것은 먼저 에덴 동산에서 
그리고 후에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의 생활 속에서 일어났던 사건이다.
  성경은 인간의 배반을 묘사하는 데 인기없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인간의 
반역은 죄라고 불리는데 이것은 우리 모두의 일부분이기도 하다(롬 3:10--12, 23). 
죄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단절시킨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죄는 
우리의 모든 문제의 근원이 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사람들을 
도우려고 할 때 우리는 조만간 죄라른 기본적 사실에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우리의 죄와 죄인됨을 먼저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생활의 주님 
(주인)으로 모셔들여야 한다(요일 1:9; 롬 10:9).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에게는 
천국의 영생이 보장되고 지상에서의 충만하고 풍성한 삶이 보장된다(요 3:16, 
10:10).
  성경은 선행이나, 세례, 교회 생활 같은 것에 의한 구원을 일체 말하지 않는다.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선물로서 우리가 받거나 거절하거나 무시할 수는 있어도 
결코 벌어 들일 수는 없는 것이다(앱 2:8, 9; 롬 6:23).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이와 같은 결단과 헌신을 할 때 그의 즉각적인 문제는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지만 또한 악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의 와중에서도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다(롬 5:1).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는 생활에 
대처하고 정신적인 안정을 유지하기에 필요한 새로운 능력의 원천이 있다(딤후 1:7).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은 사람을 돕는 일의 중요한 부분이 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우리의 문제를, 우리의 어려움에 관여하시고 이에 대해 무엇인가 
해주기를 원하시는(벧전 (p197) 5:7) 전능하시고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의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담자에게 가끔 "나는 당신의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나에겐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친구가 한 분 계십니다!"라고 말하는 동료 
상담자를 알고 있다. 이것은 특히 스트레스를 느낄 때 격려가 되는 진리이다. 이 
신적인 친구(divine Friend)는 상담자와 내담자를 똑같이 도와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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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스도에게 삶을 의탁했으나 영적으로 자라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들은 일생 동안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로 살아가며 그들의 
미성숙으로 인하여 성경을 이해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질투(시기)나 폭발적인 
분노와 같은 내적인 태도를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전 3:1--3).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기 위하여 우리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될 필요가 있다.
  에베소서 5장은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받는 자가 
되는 것은 우리의 생활 스타일이 사랑(엡 5:2)과 도덕적 순결(3--7절),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행위(8--14절), 지혜(15--17절), 그리고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18절)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갈라디아서 5:16에서 바울은 이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삶"에 대하여(영어 성경에는 성령 안에서 행하는 것'walking 
in the Spirit'으로 번역되어 있음) 말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성장의 비결이다.
  성령은 물론,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3위이시다. 예수께서는 성령께서 
보혜사-교사(Comporter-Teacher)로서 오실 것을 약속하셨고 제자들은 오순절날 
성령의 능력을 경험했다(행 2장). 우리가 우리 (p198)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맡길 때, 
성령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기 위하여 임하신다. 그분은 결코 떠나시지 않으나 
"소멸"될 수 있다(고전 6:19; 살전 5:19).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낙심시킬 것이 
아니라 매일 같이 "성령을 좇아 행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자주 우리 자신을 
검토하고 죄를 자백하며 우리 자신을 완전히 하나님께 헌시하고 성령께 우리를 
충만하게 채워달라고 간구함을 의미한다(요일 1:9; 롬 6:11--13; 눅 11:13) (주2. 
이 단계들은 T. F. LaHaye, "How to Walk in the Spirit," in Moody Monthly, 
Septmber 1973, pp.38--41, 86--88에서 번안한 것이다.) 에베소서 5:18은 우리가 
계속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며 그분으로 하여금 매일 우리 생활을 지배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그 결과는 외형적으로 화려하게 나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도 함께) 곧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 5:22--26)의 성령의 열매가 우리 생활 가운데 자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어떤 자조의 공식의 결과로 오는 것이 아니다. 이는 우리가 성령 
안에서 행하기로 결심하고 그분이 우리의 생활과 감정을 지배하도록 허용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인격적인 변화인 것이다. 
  제 3 장에서 우리는 생각과 느낌(감정)과 행동이 개인의 생활에서 똑같이 
중요함을 지적한 바 있다. 성령을 좇아 행하는 그리스도인과 다른 사람들을 
구별하는 것은 그들의 생활이 무엇을 구심점으로 이루어지고 있느냐하는 것이다. 
불신자에게는 그 구심점이 자아(self)이다. (주3. 이 도표는 Anderson and 
Anderson, The House Church(Nashville: Abingdon, 1975), p.35에서 번안한 
것이다.)
  (p199)
  * 도표: 묵자책 199쪽 참고.
  도표설명: 그리스도와 자아와의 관계 (입력자 참고.)

  성장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경우,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생활에 들어가셨으나 
가장자리의 방관자로 밀려나셨기 때문에, 생각이나 감정이나 행동이 아직 다분히 
자기 중심적이고 자아에 의해 지시를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을 좇아 행할 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생활의 중심에 
오시며 주님이 성령을 통하여 세 부분을 모두 통제하신다. 이는 우리가 우리 고유의 
인격을 상실하여 자아가 제거되(p200)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유의하자. 
우리의 사리사욕이 그리스도에게 승복되고 그리스도께서는 자아를 통해 
역사하심으로 우리의 생각(사고)과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일이 
일어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것은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제자와 남을 제자로 육성하는 이들의 일차적인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 도표: 묵자책 200쪽 참고.
  설명: 위 199쪽의 계혹된 내용.
    -----------------
      계속 성장하라.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규칙과 규율로 이루어진 엄격한 구속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성장할 수 있는 자유를 주는 생활이다. 그러나 모든 성장하는 
유기체가 그러한 것처럼, 그리스도인 남녀는 몇 가지 건강 수칙을 따를 때에 더 
빨리 성장하게 된다. 
  로마서 8:29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를 따르는 자들이 그의 아들의 형성을 닮게 
되기를 원하신다고 하신 말씀을 읽게 된다. 우리의 생활 목표는 예수님과 같이 되는 
것이다. 자연히 이는 우리가 예수님을 가능한 한 긴밀하게 알아야 함을 뜻한다. 
우리는 성경공부와 기도를 통한 주님과의 빈번한 접촉을 통하여 주님을 (p201) 깊이 
알게 된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이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영적 성장과 
발전에 필수적인 이 영적인 양식의 섭취를 회피하기 위하여 각종 핑계를 찾아낸다. 
  이와 같은 영향섭취 외에 또한 운동이 필수적이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시는 것과 우리가 타인을 위하여 하는 것을 성경이 얼마나 자주 연결시키고 
있는지 주의하여 살펴본 적이 있는가? 주기도문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5,5,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며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니라"(마 6:12, 15).
  산상설교에 이 원리가 되풀이되고 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7:2). 빌립보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바울은 그의 
"하나님이^5,5,5^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5,5,5^"(빌 4:19)고 확언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바로 앞에서 빌립보인들이 자기의 쓸 것을 풍성하게 공급해주었음을 
주목하고 있다. 야고보는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약 2:13)고 경고하고 있다.

  우리가 죄사함과 공정한 대우, 물질적인 것, 사랑, 도움 주의(attention) 등을 원할 
때 상담자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원칙이 여기에 나와 있는 것 같다. 받기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곳은 남에게 주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남을 도와줌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성숙 가운데 성장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를 
돕게 되며, 우리가 남을 위해 쓸 것을 제공할 때 우리의 필요가 채워지게 된다. 
      -----------------
  (p202)
  영적 은사를 발견하여 개발하라.

  앞 장에서 우리는 모든 신자 하나하나가 영적 은사나 은사들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거론한 적이 있었다. 이들 은사를 발견하여 개발하므로써 우리는 삶의 참된 
목적을 발견하며 그리스도의 몸에 우리 나름의 기여를 하는 데서 오는 보람과 
만족감을 경험하게 된다.
  비록 성경이 우리의 영적 은사를 찾아내는 정확한 공식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은사가 있다고 말씀하신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은사를 
발견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시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봄으로써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주4. J. A. Davey, "How 
to Discover Your Spiritual Gift," in Christianity Today, vol. 19, May 9, 
1975, pp.9--11에서 번안)
  * 다른 이들은 나에게서 어떤 영적인 능력을 보는가?
  * 내가 자주 부탁받는 일은 무엇인가? 그리고 내가 한번도 부탁받지 않은 일은 
무엇인가?
  * 내가 즐겨하는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흥을 깨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를 섬기는 가운데 행복한 삶을 누리기를 원하신다.)
  * 나는 무슨 일에 가장 성공적인가? (이는 약간의 시행착오를 요할 것이다.)
  * 이 성공적인 활동들이 남을 윤택하게 하고 남에게 유익을 끼치는가?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가? 
  우리의 은사는 곧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은사에 대하여 완전한 
지식을 갖게 되기도 전에 우리는 봉사를 시작할 수 있다. 시행착오에 의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p203)사들을 곧 발견하게 되는데, 이 은사들은 
그리스도의 몸 전체를 돕기에 유익한 것이다.
      ------------
  짐을 넘겨 주는 자가 되라.

  우리의 사고를 자극하는 한 조그마한 책에서 필립스(J. B. Phillips)는 한때 
"오늘날 많은 사람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이, 현대인의 필요를 충족시킬 만큼 
큰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주5. J. B. 
Phillips, Your God Is Too Small(London: Epworth Press, 1952) 현대인들은 
너무나 작은 "하나님에 대한 견해"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필립스나 그와 같은 분들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우리의 
하나님은 너무 작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짐이 너무 크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목적으로 책들을 저술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신적인 위해함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참으로 이를 놀랍게 표현할 줄 알지만 인생의 각종 압박과 시련에 
직면할 때는 이러한 사실을 무시해 버린다. 구약과 신약은 한결같이 우리의 짐을 
주님께 맡기라고 가르치고 있다(시 55:22; 벧전 5:7). 그리고 예수께서는 나중에 
산상설교에 이를 강조하셨다(마 6:25, 11:28, 29).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이 메시지를 
받는 데 느리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염려를 어깨에 메고 다니거나 기도를 통하여 
모든 염려를 주님께 의탁했다가 즉시 염려를 되돌려 받는다. 
  바울에게도 이 문제가 있었다. 그에게는 육체에 가시가 있어 늘 이것 때문에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의 짐에 대하여 다 알고 
계심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상황을 다루시도록 일체를 내맡기고 안식했다(고후 
12:7--10). 이와 대조(p204)적으로 구약의 야곱은 스스로 자기 생활을 주관하려 
했다. 그는 자기 뜻을 달성하기 위해 지능적인 계략과 속임수까지 동원했다. 그러나 
라반과 함께 머물기 위해 그를 찾아갔을 때 야곱은 자기 만큼 교활한 사람을 
만났다.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하나님 앞에 승복하고 그의 
전생애를 주님게 맡길 수 있었다. 
  북아메리카의 독립주의와 개인주의 정신으로 인하여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올무에 빠져 있다.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나, 탈선한 자녀를 다루는 
문제에 있어서나, 새로운 거처를 찾을 필요가 있을 때, 또는 우리의 복음 사역을 
확장시키고 싶을 때, 우리는 목적이 달성되도록 하기 위하여 계략을 짜기 시작한다. 
우리는 때때로 성공하기도 하고 때때로 실패하기도 한다. 그러나 종종 우리는 
우리가 지지 않아도 될 짐을 지고 다닌다. 이는 무기력한 방관이나 사전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에 대해 변호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주권적인 하나님께서 우리 
생활에 대하여 모두 다 알고 계신다는 것을 상기시키려는 말이다. 우리는 우리 짐을 
주님께 맡기고 모든 것을 우리가 다 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주님이 대신 해결하도록 
신뢰하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싸움을 그치고 그분이 하나님 되심을 아는 것은, 
스스로를 돕는 일에 있어서 중요한 첫걸음이 되는 것이다(시 4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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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자신을 한번 살펴보라.

  의학의 세계에서는 보통 문제에 대한 진단이 치료에 선행된다. 우리 자신이나 
남을 돕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의 원리가 적용된다. 무엇이 잘못되었으며 무엇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는지를 찾아낼 수 있다면, 우리는 문제 해결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p205) 물론 이것은 행하기보다 말하기가 훨씬 쉽다. 객관성을 가지고 우리의 
생활을 검토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관념이 
잡힌 다음에도 변화시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기 통찰(검토)은 자기 스스로를 돕는 데 중요한 것으로 이는 다음의 세 단계를 
거쳐 이루어질 수 있다.

    성경 말씀에 비추어
  먼저 우리는 성경에 비추어 우리 자신을 살펴 볼 수 있다. 시편 119편은 이 
분야에 대한 몇 가지 충고를 함으로 시작된다.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5,5,5^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시 119:1, 2, 9).

  우리는 매일 성경을 읽는 가운데 우리의 행동과 태도와 사고와 감정을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비추어 시험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내부의 
정신적인 문제나 갈등을 우리들보다 더 잘 알고 계신다. 주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도록 도와주실 수 있으며, 그의 성령께서 우리가 변화할 수 있도록 
도우실 것이다(시 139편). 성경을 읽기 전에 우리는 우리 자신과 하나님께 대하여 
알 필요가 있는 것을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달라고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당신이 당신 자신을 봄으로
  둘째로,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 강점과 약점에 비추어서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다. 신학교의 상담 과목을 이수하는 모든 학생에게 나는 각자의 
강점과 약점, 목표, 인생의 우선 순위, 현재의 문제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하여 생활 
스타일을 바꿀 계획등을 자필로 작성하여 내도록 한다. 때때로 이것은 어려운 
과제가 되나 거의 예외없이 이는 귀중한 공부가 된다. 각 학생으로 하여금 자신을 
솔직하게 직시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봄으로
  그러나 이 자필 이력서는 그 학생이 이를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을 때 더욱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자신을 아는 세 번째 방법, 즉 다른 사람과 
나누는 방법에 이르게 된다. 심리학자 시드니 조라드(Sidney Jourard)에 의하면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자기가 누구이며, 어떠한 사람이며,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인식시키지 않는다면 그는 현실과 괴리되어 있는 것이며 그는 병들게 
마련이다^5,5,5^ 그리고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냄으로써만 사람은 자신을 알게 
된다는 또 다른 사실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주6. S. M. Jourard, The 
Transparent Self, rev. ed. (New York: Van Nostrand Reinhole, 1971), p.6) 
나아가 조라드는 건강한 인격이란 자기 자신을 적어도 또 다른 한 인간에게 드러내 
알리는 모험을 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을 타인에게 한번도 드러내지 못했으며 따라서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p207) 이러한 사람은 또 다른 인간에게 알려지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열심히 
투쟁한다. 그는 매일 24시간 동안을 쉴 사이 없이 자신을 가리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것은 고된 노역이 아닐 수 없다! 알려지는 것을 피하려는 노력을 하는 가운데, 
사람은 미묘하고 인식할 수 없는 암적인 스트레스를 느끼게 된다. 이는 정신 의학이 
말하는 건강치 못한 유형의 인격을 만들 뿐만 아니라 심신상관의학(psychosomatic 
medicine)의 영역으로 간주되고 있는 다양한 신체의 병을 유발시킨다. (주7. Ibid., 
p.33)

  간단히 말해서 우리 자신을 정확하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솔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어렵고 모험적인 것이지만 우리 각자에게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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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자신을 수용하는 법을 배우라.

  우리는 모두 자아 개념, 우리가 누구이며 어떠한 사람인가에 대한 영상을 지니고 
있다. 만일 당신이 "나는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다", "나는 형편없는 가정 주부이다", 
"나는 너무 뚱뚱하다", "나는 애처가이다"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모두 당신의 자아 
개념(self-concept) 또는 자기 형상(자아상, self-image)의 일부인 것이다.
  이 자아상에 대한 뚜렷한 모습을 그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당신을 묘사하는 
형용사 목록을 작성해 보는 것이다. 이 목록은 당신의 신체적인 특성(잘생겼다, 
대머리다, 코가 크다 등)과 당신의 인격적인 특성(친절하다, 조급하다 등), 당신의 
능력과 신념(p208) (나는 하나님을 믿는 여자다), 당신의 도덕적 가치관(나는 낙태를 
반대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당신이 담당하고 있는 여러 가지 역할(남편, 아버지, 
아들, 집사, 사업가, 보이스카웃 지도자 등)을 포함할 수 있다. 이렇게 작성된 목록을 
보면 어떤 것은 바람직하고(친절하다와 같이) 어떤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임(게으르다와 같이)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자기 형상 중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확신하면서도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 이 목록은 
다만 당신의 의식적인 자아상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의식적인 특징이 따로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자아상(self-image)은 중요하다. 그 이유는 이것이 우리의 행동의 많은 부분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을 능력있는 사업가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는 스스로 사업 감각이 전혀 없다고 믿고 있는 사람보다 훨씬 다르게 사업체를 
운영할 것이다. 다른 이들은 우리의 자아 분석에 공감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대개 
우리는 여러 해 동안에 걸쳐 형성된 이 자아개념에 의거하여 해동하고 생각하며 
느끼기까지 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헌신된 신자는 마땅히 저조한 자아상을 지녀야 하며 
그리스도인이 항상 자신을 끌어내기고 비하시키는 것은 영적 성숙의 표지가 된다는 
태도를 지켜 왔다. 이러한 태도 때문에 우리들 중에는 비참한 상태에 빠져 자기가 
얼마나 못디고 형편없는 존재인가를 자랑하며 돌아 다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우리는 과거에도 죄인이었고 지금도 죄인이지만 그리고 우리의 노력으로는 자신을 
구원할 능력이 전혀 없는 죄인이지만, 우리가 또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보내셔서 자기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의 죄값을 감당케 할 정도로 우리를 귀하게 생각하셨던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앞에 우리의 삶을 헌신하고 바(p209)치도록 강요를 받고 
있지 않다-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자유 선택을 허용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삶을 주께 드릴 때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며 특별한 영적 은사를 부여받고 주권적인 우주의 하나님을 섬기는 
특권을 부여받는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우리를, 개인적으로 아시며 돌보며 
권고하시는, 자신의 아들과 딸로 간주하신다(롬 8:15; 갈 4:4--7; 엡 5:1). 물론 이 
중 어떤 것도 우리가 특별한 대우를 받을 가치가 있기 때문에 받은 것은 하나도 
없다. 오직 하나님의 선하심 때문에 주어진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마땅히 
우리의 자기 형상을 전폭적으로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우리는 중요한 존재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로 인하여 왕의 자녀가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정적인 자기 형상을 지닐 수 있다. 우리는 삶에 있어 우리의 능력이나 성공적인 
업적을 부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활 가운데 행하신 
일들에 근거하여, 이러한 능력이나 성공을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함으로 이를 시인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긍정적인 자아상을 형성한다.
      ------------
    긍정적인 것을 행하라.

  때에 따라 활동은 최상의 치료가 된다. 알콜 중독 방지협회는 여러 해 전에 이를 
발견하고, 음주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서로 돕도록 하는 성공적인 
갱생사업을 개발했다. 
  아마 우리들 중 많은 이들은 이른바 금 투기 증상(gold rush syndrome)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주8. Anderson and Anderson, op. cit., p.51) 
일확천금을 위하여 (p210) 금광으로 몰려들 때는, 사람들은 금을 찾는 데 신경을 
쓰는 나머지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돕기 위해 멈추어 설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다 보면 시간을 낭비하게 되고, 심지어 도와주겠다고 멈추어 서면 도움을 
받은 사람이 그를 밀어버리고 제일 좋은 금광을 차지할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심히 개인주의적이고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생활로 
나타난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나타나기 전에 저 강도 맞아 쓰러진 사람을 모른 
체하고 지나갔던 사람들처럼, 우리는 우리만의 짐을 지고 우리 자신의 작은 세계에 
몰두하면서 허둥지둥 삶을 영위해 나간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목표를 향하여 
다려가기에 바빠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이 우리 자신을 위하여도 치료적인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문제를 위한 유일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을 도와줄 때 우리 자신이 가장 큰 혜택을 입게 되는 
것을 종종 알 수 있다. 
      ----------
    상담자를 찾아라.

  우리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최선의 방법 중의 하나는 삶을 더 정확한 관점에서 
조명하고 문제에 대처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울 수 있는 상담자를 찾는 것이다. 
우리들 다수는 이렇게 하기를 심히 꺼린다. 우리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연약함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담자를 찾아 
우리의 약함을 시인하는 것은 사실상 강함을 드러내는 것이다(고후 12:10). 이는 
우리가 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하고 그 전문적 지식이나 객관성으로 우리를 도울 수 
있는 다른 사람을 찾기로 결심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어떤 때는 물론, 우리가 
거꾸로 그 "상담자"를 도와줄 수도 있는 것이다.
  (p211) 도움을 받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것이다. 우리에게 이를 보상하고 갚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안겨 주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약하게 느끼게 하거나 
열등하게 느끼도록 유도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그렇게도 고귀하게 생각하고 
있는 개인주의 정신에 상치되는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모두 연약한 사람들로서 
서로 필요로 하는 존재이나 우리들은 대부분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도움을 받는 것이, 가만히 앉아서 자기 연민을 되씹으며 제대로 
이해하거나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을 극복하려고(거듭된 실패를 하면서) 애쓰는 
것보다 훨씬 순리적이다. 성숙한 인격으로 자라는 데 도움을 주는 요인 중의 하나는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상담자들의 도움과 봉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9. R. 
Stedman, Body Life(Glendale, Califonia: Regal Books, 1972), p.127)
      ----------
  우리의 목표를 기억하라.

  우리 자신을 돕든, 남을 돕든, 우리의 모든 상담 관계에서 절대로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은 우리의 목표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증인이 되어 
제자를 삼을 것을 가르치고 명령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능력에 힘입어 우리는 
사람들의 생애를 변화시키는 주님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변화는 우리 각자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는 참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인가? 우리는 제자로서 성장하고 있는가? 우리는 복음의 메시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있는가?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각자의 은사에 따라 
봉사하며 다른 이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성숙하도록 돕고 있는가? 우리는 바울이 
(p212) 했던 것과 같이 (가족을 포함하여) 다른 사람을 훈련시켜 그들이 제자가 
되고 또 남을 제자로 삼는 요원이 되게 하고 있는가? 이들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오"로 나온다면, 우리 자신의 생활에서부터 변화를 일으킬 필요가 있다. 
우리가 "네"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이를 깨닫고 있든 모르고 있든간에, 우리는 이미 
사람을 돕는 자인 것이다. 
  (p213)
  @[  제2부 상담의 내력 (pp213--235)

  @[  11. 상담의 과거와 현재 (pp215--235)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은 여러 세기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구약 성경은 성령의 
도움을 힘입어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을 격려하고 인도하고 지원하고 면박하고 
충고해 줌으로 도와주었던 신령한 남녀의 예로 가득 차 있다. 예수님은 "훌륭한 
상담자"(Wonderful Counselor, 모사)라고 묘사되었으며 그의 제자들은 설교(말씀 
전파)를 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영적 및 심리적 욕구(필요)를 다루도록 부름을 
받았었다(마 10:7, 8). 신약의 서신서들은 영감을 받아 기록한 그 저자들의 상담 
기술을 두드러지게 드러내주고 있는데 그 후 기독교 역사가 계속되는 동안 교회 
지도자들은 치유, 지탱, 인도, 화해 등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네 가지 목회 상담 
기능을 발휘해 왔다. (주1. 이 4가지 기능에 대한 논고를 보려면 W. A. Clebsch 
and C. R. Jaekle, Pastoral Care in Historical Perspective(Englewood Cliffs, 
New Jersey: prentice-hall, 1964)을 참조하라.)
  한때 상담에 대한 주요 책임은 신학자들에게 부과되어 있었다. (p216)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상담은 신학에서 의학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정신의학, 심리학 
그리고 사회사업의 분야로 넘어왔다. 금세기 중반쯤에는 상담이 갈수록 전문적인 
학문 분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상담은 교회와 동떨어진 것으로 목사의 기술 
범주 밖에 속하는 것이며 훈련받지 않은 평신도들이 접근해서는 안 될 분야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
    직업적인 상담의 부상

  이 방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프로이드(Freud) 박사(그는 때때로 정도 
이상으로 비난을 받고 있다)가 상담을 직업화시키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프로이드는 심리치료가 외과 의술 못지 않는 전문 기술을 
요하는 과업이기 때문에 훈련받지 않은 사람이 시도할 것이 못 된다고 믿었다. 그의 
몇몇 추종자들과 달리, 프로이드는 평신도도 상담자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 비전문가들은 고도의 기술을 지닌 사람들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목사들은 이 
훈련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그러나 프로이드와 그가 창시한 심리학에 의하면, 
종교인들은 그들의 상담효과를 저해할 수 있는 신경증적 장애물을 지니고 있었다. 
(주2. S. Freud, The Future of an Illusion(Garden City, New York: 
Doubleday Anchor books, 1927)) 그는 참으로 효과적인 상담이 되려면, 상담자 
자신의 행동과 신경증(노이로제)에 대한 통찰을 얻기 위하여 상담자가 먼저 수백 
시간의 상담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목사들은 이와 같은 정신의학적 분석에도 불구하고 상담을 계속했고 
비전문가 평신도들도 상담을 계속해 왔다. 그러나 비전(p217)문가들은 무엇을 
어떻게 할지 자신이 없을 뿐만 아니라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을 참으로 도와줄 수 
있다는 확신이 결여되어 있어 종종 상담자로서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다.
  1950 년대와 1960 년대에 들어오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미국 정부가 
후원한 보고서는 우리에게 비전문인들에게 상담을 훈련시킬 필요성을 강권했으며, 
미국 의회는 이 목적을 위해서 기금을 배당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나는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교수 한 분이 이에 대해 불신의 말을 하던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는 우리가 정부의 아이디어를 좋게 생각하든 나쁘게 생각하든, 
전문가(직업적인 상담자)로서 우리는 비전문 상담자들을 위한 여백을 남겨 두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고 알려 주었다. 그리고 이것이 정서적으로 병들어 있는 
미국인들을 위해 좋은 것으로 생각하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든간에 비전문인들을 
위한 여백을 마련해 주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고 푸념조로 이야기했다.
  이 무렵 평온을 흔들어 놓는 보고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보고서들은, 
비전문가들이 부족한 상담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직업적인 전문가들은 
평신도들보다 별로 낫지도 못하며 많은 경우 더 불량한 상담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영국의 심리학자 한스 아이센크(Hans Eysenck)는 
심리치료의 효력에 심각하게 도전하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던 것이다. (주3. H. J. 
Eysenck, The Effect of Psychotherapy(New York: International Science 
Press, 1966)) 아이센크의 보고서는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다른 연구가들이 
이 과업을 계속 추진하여 모든 치료사(therapists)의 3분의 2 정도가 
비효과적이거나 해로운 상담을 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주4. Allen E. Bergin, 
"The Evaluation of Therapeutic Outcomes," in A. E. Bergin and S. L. 
Garfield, ed., Handbook of Psychotherapy and Behavior Change(New York: 
Wiley, 1971,) pp.217--70) 극히 (p218) 높은 상담료를 받고 있는 상담자들 
중에서도 이와 같은 범주에 속하는 이들이 있다고 이들은 지적했다. 이것은 
직업적인 상담에 먹칠을 하는 주장이었다. 결국 전문가에 대한 이미지는, 크게 
환영을 받았던 심리학자 로버트 카커프(Robert Carkhuff)의 연구 결과가 별로 
훈련을 받지 않은 비전문가들도 심리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에 변화를 
일으키는 효과적인 상담을 할 수 있다고 입증하고 나왔을 때 더욱 손상되었다. (주5. 
R. R Carkhuff, "Differential Functioning of Lay and Professional Helpers," 
in Journal of Counseling Psychology, vol. 15, 1968, pp.117--26. 또한 R. R. 
Carkhuff, Helping and Human Relations: A Primer for Lay and Professional 
People, Volume I, Seletion and Training(New York: Holt, Rinehart and 
Winston, 1969)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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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회 상담의 부상

  그 동안 목사와 평신도는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상담하며 돕는 일을 
계속했다. 이들 대부분은 전문인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던 논쟁을 모르고 있었으며 
많은 이들이 목회 상담 운동이라고 알려져 있는 상담 운동의 점증하는 영향력에 
고무되어 있었다. 1920 년대에 일단의 목사들과 의사들에 의하여 시작되었던 이 
운동은 진전을 보였는데, 특별히 자유주의적인 신학교내에서 큰 진전을 이룩했다.
  목회 상담 운동의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창시자"는 아마 그의 생애 중 처음 60 
년 동안에 여려 차례 정신질환을 경험했고 세 차례나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했던 
목사이며 저술가였던 안톤 보이센(Anton T. Boisen)이었을 것이다. 보이센은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교회는 정신건강 분야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따라(p219)서 그는 정신질환자들을 상대할 수 있도록 신학생들을 훈련시킬 필요성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다. 소수의 학생들로 시작하여 보이센은 매사추세츠 주 
워세스터 주립병원(Worcester State Hospital)에서 신학생들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을 착수했다.
  이와 같이 간단한 시발로부터 "임상목회교육"(CPE: Clinical Pastoral 
Education)이라는 고도로 짜임새 있는 훈련 프로그램이 개발되었는데, 이 
프로그램은 신학생들과 목회 상담자들을 위하여 지도감독식 상담훈련을 제공했다. 
이 임상목회교육 사업은 훌륭한 내용을 많이 포함하고 있었다. 그 과정은 
목회상담자들을 훈련시키는 데 필요한 기준과 지침을 제공해 주었고, 
병원관계자들에게 신체적 및 정신적 환자를 치료하는 데 목회자들이 참여하는 것이 
얼마나 적절하며 중요한가를 알려 주었고, 신학과 심리학이 상호 연관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고, 신학교 교육에 있어서 상담훈련의 중요성을 보여주었고, 나아가 
목회를 위하여는 신학생의 인격 및 영적 발달이 지성적인 훈련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실증해 보여 주었다. (주6. 임상목회 교육(CPE) 운동에 대한 
개관을 보려면 E. E. Thornton, Professional Education for Ministry: A 
History of Clinical Pastoral Education(Nashville: Abingdon, 1970)을 참조하라. 
또한 CPE 창설 50주년 기념 특집으로 발간된 The Journal of Pastoral Core의 
1975 년 3월호를 보라.)
  수많은 신학교가 임상목회 과목을 교과 과정에 새로이 도입하던 1930 년대와 40 
년대에,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학교들은 회의적으로 반응했는데, 이 회의적인 태도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임상목회교육"은 애초부터 신학적으로 자유주의적인 
운동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 사실은 심리학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과 함께 
복음주의자들로 하여금 임상목회교육(CPE) 운동을 멀리하게 만들었다. 반면에 
기독교계 심리학자인 크라이드 내러모어(Clyde narramore)와 헨리 브란트(Henry 
Brandt)는 임상목회교육의 신학을 인(p220)정하지 않으면서 상담에 대한 성경적 
접근이 가능함을 보여 주었고 그 후 일부 복음주의자들은 신학교육에 있어서의 
심리학의 타당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제 대부분의 보수적인 신학교와 성경 
학교는 목회상담 과정을 두고 있으며 이들 신학교육기관 중에는 고도로 발달된 
목회심리 및 상담학과를 개설하고 있는 곳도 있다. 그러나 복음주의와 
임상목회교육과의 접촉은 아직 소극적인 것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명확히 규정되어 
있으며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성경적인 상담접근 방법은 아직 나와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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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의 세속적인 상담

  최근에 어떤 저술가는 인기 잡지에 실린 기사에서 현재 이론 체계를갖춘 상담접근 
방법이 200개가 넘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접근 방법은 각각 열광적인 주창자들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들 여러 상담 체계에서 약 10,000가지로 추산되는 상담 기술이 
유출되었다. 이들 접근 방법 중 정신분석(psychoanalysis), 내담자 중심의 
상담(client-centered counseling), 합리적인 정서 치료(rational-emotive 
therapy)와 같은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다른 방법들은 덜 눈에 띄고 있으며 
추종자도 적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원초적인 절규 치료법(primal scream 
therapy), 근본적 치료법(radical therapy), 무용 치료법(dance therapy), 그리고 
여러 종류의 신체적 치료법(body therapy)은 이 후자의 범주에 속한다.

    지시적인 치료법
  지나치게 단순화시키는 위험이 없지 않으나, 우리는 이들 여러 가지 이론 체계를 
대충 세 가지의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지(p221)시적인 치료법(directive 
therapies)이 있다. 이러한 접근 방법에서는 상담자가 문제를 진단하고 분석하고, 
때때로 행동을 규정하거나 일정한 범주 속에 집어 넣으며, 내담자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결정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내담자에게 이 해답을 전달하는 주체로 
간주된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 접근 방법 중 가장 좋은 예는 알버트 엘리스(Albert Ellis)의 
합리적 정서 치료법(rational-emotive therapy)이다. 엘리스는 인간이 합리적인 
사고를 하며 느끼고 행동하는 유기체라고 가정한다. (주7. Albert Ellis, humanistic 
Psychotherapy: The Rational-E-motive Approach(New York: Julian Press, 
1973), pp.70, 77) 문제를 가진 사람을 돕기 위해서는 우리가 감정이나 행동에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엘리스는 주장한다. 오히려 우리는 사고(생각)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우리는 보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줌으로써 그들의 운명을 조절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담에 대한 
대부분의 다른 접근 방법과 달리, 합리적인 정서방법(RET)은 (내담자보다는) 
상담자에게 대부분의 대화를 이끌어 가도록 권장하는데, 내담자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 자신과 그의 세계에 대한 내담자의 생각에 직접적으로 도전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따지고 논쟁하고 비웃고 명령하고 욕설을 퍼부어도 좋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주8. Albert Ellis, "Rational-Emotive Therapy," in L. Hersher 
Four Psychotherapies(New York: Appleton-Century-Crofts, 1970), 
pp.85--124)
  훨씬 더 온화하나 여전히 지시적인 방법에 정신분석 치료법(psychoanalytic 
therapy)이 있다. 여기서는 초점이 무의식의 세계에 맞추어진다. 정신분석적인 
접근을 하는 이들은 내담자가 인식하거나 이해하지도 못하는 내적인 힘(충동)의 
영향으로 인하여 문제가 발생한다고 가정하고 있다. 상담자의 직무는 내담자가 
자유롭게 (p222) 이야기하거나 그의 꿈을 설명할 때 경청하는 것이다. 결국에 가서 
상담자는 내담자의 행동 이면에 있는 무의식적인 원인을 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이 정보를 조심스레 계획된 방법에 따라 내담자와 나눈다.
  여러 가지 행동 수정치료법(behavior modification therapy)들이 있는데 이들은 
정신분석적인 접근 방법과 매우 다른 입장에 서 있다. 이들 접근 방법들은 보통 
징후의 배후에 있는 또는 징후를 낳는 무의식적인 충동 같은 것은 없다고 주장한다. 
행동주의자에게는 느낌이나 사고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이들은 
징후(symptoms)가 바로 문제이며 유일한 효과적 치료는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 
개발된 기술을 사용하여 행위나 행동을 변하게 하는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이들이 강조하는 것은 때때로 내담자의 인식이나 치료받고 싶은 욕망과 관계없이 
(사람들이 느끼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그들이 행동하는 것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심리치료사는 문제 상황을 분석하고 내담자의 행동을 수정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전문가로 간주된다.

    비지시적 또는 허용적인 치료법
  이들 지시적인 접근 방법과 완전히 상반되는 것으로 비지시적 또는 허용적인 
치료법(nondirective or permissive therapies)이라고 규정된 수 있는 일단의 치료 
기술이 있다. 여기서도 상담자는 개인적인 문제를 다루는 전문가로 간주되나 그의 
할 일은 진단을 하고 해답을 처방하고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담자는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자극하는 조력자로서 이 
문제가 해결되고 인격적인 성장이 일어날 수 있는 창조적 분위기나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칼 로저스(Carl Rogers)의 내담자 중심의 치료법은 이러한 접근(p223)방법 중 
가장 잘 알려진 예가 될 것이다. 치료사는 그의 내담자에게 온정과 이해, 감정이입, 
관심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긍정적인 자세"를 보여 주려고 노력한다. 이와 같이 할 
때 내담자는 자유롭게 좌절감(욕구불만)과 느낌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대화를 이끌어 방향을 설정해 주거나 대화 내용을 해석하거나 충고해 주거나 비난을 
가하려는 시도는 일체 없다. 상담자는 내담자가 이야기할 때 경청하며 이야기한 
내용을 요약해 주며 내담자가 느끼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확인해 주려 노력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내담자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통찰을 하게 된고 변화를 위한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비지시적 상담자들은 가정하고 있다.

  최근에 와서 로저스는 내담자들끼리 서로 돕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집단치료 
방법(group therapy)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다음에 열거하는 치료법은 그 과정과 
목표가 크게 다르기는 하지만, 펄스(Perls)의 게스탈트 치료법(Gestalt therapy), 
여러 종류의 인카운터 치료법(encounter therapy), 겐들린(Gendlin)의 경험적 
심리치료법(experiential psychotherapy) 그리고 몇몇 실존적 치료 방법(existential 
therapy)도 또한 그룹 상관관계에서 오는 치료 가치를 중시하고 있다. 아울러 
부언한다면, 이들 방법은 각각 인간의 내재적인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며 인간의 
경험과 느낌들을 강조하며 적절한 허용적 치료 조건만 주어지면 각 개인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 (주9. 상담과 심리 치료에 대한 현재의 
접근 방법을 일별하려면 C. H. Patterson Theories of Counseling and 
Psychotherapy, 2nd ed.(New York: Harper & Row, 1973); Raymond Corsini, 
ed. Current Psychotherapies(Itasca, Illinois: Peacock, 1973)을 보라.)
      ------------
  (p224)
  상호 작용적인 치료법

  지시적 상담과 허용적 상담 사이에 상호 작용적 치료법(interactional 
therapies)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접근 방법이 있다. 이것은 상담자와 내담자가 
동등한 입장에서 함께 상호작용하는 상담을 말한다. 금세기 초엽 폴 뒤보아(Paul 
DuBois)라는 이름의 스위스 의사가 이 접근 방법을 사용했었다. 뒤보아는 "그의 
환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인생철학을 가르쳤는데, 이 철학에 따라 그들은 마음속에 
병에 대한 습관적인 전념(몰두) 대신에 건강에 대한 생각을 대치시키게 
되었다^5,5,5^ 그는 의사가 환자를 하나의 재미있는 케이스로 다룰 것이 아니라 
하나의 친구로 대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주10. Ibid., Corsini, p.287)
  뒤보아를 가리켜, 현실 치료법(reality therapy)을 대표하는 윌리암 
글래서(William Glasser)의 "정신적인 직계 조상"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현실 
치료법은 본질적으로 상담자와 내담자가 합동으로 벌이는 공동노력이다. 현실 
치료사는 느낌이나 행동을 부인하지 않으며 오히려 내담자로 하여금 그가 현재 처해 
있는 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사랑을 느끼고 사랑하게 하고 자신을 보다 가치있는 
인간으로 느끼게 할 수 있는 장래 계획을 세우도록 격려한다.

  지금까지 거론한 세 가지 상담 접근 방법은 도표상으로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주11. John Drakeford, The Awesome Power of the Listening 
Ear(Waco, Texas: Word, 1967), p.30에서 번안.)
  (p225)
  * 도표(묵자책 p225 참고)
  지시적: 상담자 ^25,135^ 내담자
  상호작용적: 상담자 ^246,25,135^ 내담자
  허용적(비지시적): 상담자 ^246,25^ 내담자

  어떤 상담 상황에서나 적어도 두 사람, 즉 상담자와 내담자가 있게 마련이다. 이 
두사람은 때에 따라 다른 용어에 의해(치료사-환자, 상담자-내담자, 조력자-고객 
등) 지칭된다. 그리고 종종 (집단치료에서처럼) 한 명 이상의 내담자가 있을 때가 
있고 (팀상담에서와 같이) 상담자가 한 명 이상일 때도 있다.
  이들 참가자 사이의 관계는 (대부분의 행동이 상담자로부터 내담자에게로 
옮겨가는 경우처럼) 지시적일 수도 있고, (상담자가 내담자의 행동을 원활하게 
해주는 경우와 같이) 허용적일 수도 있고, (동등한 입장에서 공동 노력을 경주하는 
경우와 같이) 상호작용적일 수도 있다. 어떤 치료법은 양쪽 극단에 가까이 위치할 
수 있고 다른 치료법들은 중앙부에 가까울 수도 있다. 절충적인 이론들과 같은 것은 
연속선 중 더 광범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며, 그 시야가 더 좁은 다른 접근 방법도 
있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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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담에 대한 기독교적 접근 방법

  제이 아담스(Jay Adams)는 상당히 논쟁적이고 생각을 자극하는 그의 저서 
적합한 상담자(Competent to Counsel)에서 우리가 오늘날 기독교 상담이라고 
부르는 상담의 대부분은 이들 세속적인 접근(p226)방법을 취하여 그 위에 몇몇 성경 
구절을 군데군데 "뿌려놓은"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주12. Jay Adams, 
Competent to Counsel(Grand Rapids: Baker, 1970), p.xxi) 아담스 박사는 아마 
많은 기독교 상담자들의 경우 "성경 구절을 뿌리는 일조차도 없다"고 한다면 이에 
공감할 것이라고 믿는다! 세속적인 접근 방법이 별 생각없이 받아들여져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성경과 현대의 여러 심리치료 체제 사이에는 두드러진 모순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상담에 대한 기독교적 접근 방법이 세속적인 치료 방법과 
어떠한 유사점도 지녀서는 안 된다고 하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은 존재하시며 그분은 모든 진리의 원천이 되신다. 그리고 그분은 성경과 
그의 자연계시를 통하여 이 진리를 계시하셨다"고 하는 전제(가정)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주13. 그리스도인 상담자의 전제'가정'에 대해 더 상세히 
고찰하기를 원한다면 Gary R. Collins, The Rebuilding of Psychology(Wheaton: 
Tyndale house, in press)를 보라.) 세속적인 상담자는 성경을 공부하는 데 시간을 
보내지 않으나 적어도 그는 하나님의 자연계시를 연구하는 과학자이다. 그러므로 
불신자가 그의 연구 과정에서 인간 행동에 대한 어떤 유용한 결론을 발견했다 하여 
놀랄 것이 없으며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효과적이면서 하나님의 특별계시와 
일치되는 어떤 상담 기술을 우연히 발견했다 하여 놀랄 것이 못 된다. 
그리스도인들이 상담에 대한 접근 방법을 개발할 때 그들의 기술이 적어도 몇 가지 
세속적인 방법과 일치된다 하여 놀랄 것은 조금도 없다. 

    권고 상담
  예를 들어, 아담스 박사의 "권고"(nouthetic, 이 단어는 권고를 뜻하는 헬라어 
노우데테오'noutheteo'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임) 상(p227)담을 생각해 보자. 이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엘리스의 합리적 정서 치료법과 유사한 지시적인 접근 방법이다. 
비록 아담스는 그가 내린 여러 결론으로 인하여 비판을 받아왔으나, 적어도 그는 
성경으로 시작하며 성경에 기초한 상담 체계를 세워 보려고 시도해 왔다. 이러한 
과업을 시도할 만큼 용기있게 창의력을 발휘한 사람은 극히 적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아담스의 접근 방법을 의문의 여지없이 받아들였는데, 
아마도 그 이유는 아담스의 지시적인 권고 상담체계가 단순한 해답을 제시하고, 
성경을 무시하는 비기독교적인 심리치료법을 비판하고, 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유능한 상담에 필요한 것은 신학교 교육뿐이라고 가정하며, 상담자에게 지시적이고 
권위적인 자세를 취하도록 허용하고, 회복에 대한 책임을 내담자에게 전가시키므로 
상담자의 책임감을 덜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접근 
방법을 성경적으로 뒷받침하려는 아담스 박사의 시도에 감명을 받고 있다. 그리고 
권고 상담만큼 명쾌하게 성경적인 상담 체계가 따로 대안적으로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추종자들이 권고 상담으로 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책 서두에서 아담스 박사는 그의 방법이 다음과 같은 전제 위에서 있다고 쓰고 
있다. "나는 무오한 성경을 모든 믿음과 언행의 기준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솔직히 공언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내가 내리는 모든 판단의 기초와 기준이 된다" 
(주14. Adams, op. cit., p.xxi.) 그는 각주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는데, 현재 인기를 모으고 있는 심리학계의 강사들이 마땅히 유념해야 할 
내용이다. "사례 자료는 뒷받침하는 증거물로 사용되고 있으나 이는 다만 (p228) 
예화적으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이러한 자료는 성경적인 입장을 확인하거나 확증해 
주는 것으로 생각되어서는 안 된다(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적인 지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예시하고 구체화하고 명확히 하는 데 사용했을 뿐이다" (주15. 
Ibid.) 그리고 나서 아담스는 누구든지 그의 저서를 비판하려면 "성경적인 태도"로 
비판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하고 있다. 아담스는 비기독교적인 가정(가설)에서 나오는 
중립적, 객관적, 경험적 자료나 논쟁에는 관심이 없다. (주16. Ibid., p.269)
  아담스는 이러한 조건을 열거할 권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그는 자기의 상담 체계를 거의 비판을 받을 수 없는 위치에 올려놓고 
있다. "당신이 나의 가정(거짓 가, 정할 정)을 수락하지 않는 한 나는 당신의 비판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그의 가정을 
받아들인다면 비판할 것을 찾아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담스의 인식론(지식의 원천에 관한 견해)과 그의 
성경해석학(성경해석)에 잘못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인식론적으로 볼 때 아담스는  성경의 권위를 받아들이고 있으나 우리가 상담에 
대하여 알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성경안에 다 계시해 주셨다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가정을 하고 있다. 분명 하나님의 문서화된 계시는 쓰여지지 않은 
비명문화된 계시에 비하여 훨씬 명쾌한 것이 사실이며, 따라서 성경은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권위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인간과 그의 우주에 대한 모든 (p229) 진리를 성경 속에 다 
계시하셨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의학과 물리, 화학 등 수많은 학문 분야에서,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성경 말씀과 일치되는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진리들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우리가 세속적인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이 
어떠한 진리도 밝혀낼 수 없다고 가정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이러한 과학의 
발견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마땅히 시험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아담스처럼 심리학을 일축하는 것은 성경적인 해석이나 합리적인 분석의 
증거라기보다는 개인적인 편견의 증거로 보아야 할 것이다. 상담자로서 하나님의 
특별계시와 일반계시를 검토하고 이 두 계시 속에서 상담에 대한 교훈적이고 
실제적인 통찰을 찾아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아담스 자신이 그렇게 해 왔다. 
그는 역할극(role play)의 활용과 기독교 상담 테스트, 팀 상담 그리고 때때로 
스키너 식의 조건화의 사용을 옹호한다. (주17. Ibid., pp.111, 152, 176, 203) 이 중 
어느 것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지만 모두 성경적인 계시와 일치되는 
것들이다.
  기록된 형태로 발표된 아담스 박사의 권고 상담은 지시적인 접근 방법으로서 
성도들의 교제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격려나 지원 상담, 또는 재다짐이나 보조 같은 
요소에 지면을 별로 할애하지 않고 있다. 면박과 도전이 강조되고 있다. 경청하고 
자비를 베풀고 사랑하는 것은 중요한 성경적 개념임이 분명한데도 강조되지 않고 
있다.

  이제 아담스의 성경해석을 살펴보기로 하자. 심리학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성경과 
일치되는 상담 체계를 세우기 위한 시도를 하는 가운데, 아담스는 때때로 자기 
자신의 체계에 맞추기 위해 성경을 억지로 꿰어 맞추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행동은 감정을 결(p230)정하나 거꾸로 감정이 행동을 좌우하지는 않는다고 한 그의 
가정을 생각해 보라. 물론 선한 생활이 좋은 감정을 유발하고 죄악된 행위가 우울한 
감정이나 기타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담스가 인용하는 
시편 34:12--13, 베드로전서 3장, 에베소서 2:10, 4:19과 같은 구절들은 감정이 
언제나 행동에서 유발된다는 그의 결론을 뒷받침해 주지 못한다. 우리는 도의적으로 
올바른 행동을 하면서도 태도나 정서적 반응, 또는 동기가 분명히 불순했던 예수님 
당신의 바리새인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권고 상담자들은 사람들의 느낌을 
조사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하지 않는다. 권고 상담자들은 내담자가 어떤 행동을 
하는가를 발견하는 데에 관심이 있다" (주18. Ibid., p.93)고 아담스는 쓰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앞 장들에서 보아온 대로, 성경은 행동은 물론 감정과 사고를 모두 
중요시하고 있다.
  우리는 아담스 박사의 상담체계가 복음주의자들간에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의 저작에 대해 논평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이는 또한 
목사 및 신학적으로 복음적인 분들이 행하는 상담의 많은 부분의 근저에 깔려 있는 
다음과 같은 가정을 표현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인 상담자의 역할은 
상담실에서 내담자에게 설교하는 것이다. 이들은 다른 종류의 접근 방법에 대하여 
회의적인 의구심을 품고 있다.

    허용적인 접근 방법들
  기독교 상담에 대한 비지시적이거나 보다 허용적인 접근 방법은 목회상담 운동의 
초기 저술가들에 의하여 가장 분명하게 제창되었다. 오늘날에는 이것이 임상목회 
교육의 전형적인 접근 방법에서 (p231) 멀어져 가고 있지만 2차세계 대전 이후의 
기간에는 칼 로저스식 기술에 대한 강조가 많이 있었다. 이와 같은 접근 방법은 
원죄와 성경의 권위를 약화시키고 인간의 내재적인 가능성을 강조하고 각자의 문제 
해결 능력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적 신학과 일치하고 있다. 이 접근 방법은 
비성경적인 가설 위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복음주의자들 중에 이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별로 없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하워드 클라인벨의 
다음과 같이 관찰에 공감할 것이다. 

  ^5,5,5^ 내담자 중심의 심리치료 방법이 현대 목회상담에 미친 심대한 영향은 
목회상담을 지나치게 지시적인 과거의 전통에서 구조해 주는 역할을 하였다. 
목회자들은 우리들에게 두 가지의 직업적인 위험성, 즉 쉽게 지적하고 내담자에게 
하나님으로 행세하는 위험성에 대하여 경각시켜 줄 필요가 있었다. 이는 모든 
상담에 있어 훈련된 경청과 감정에 대한 반응의 중요성을 확증적으로 보여 주었다. 
권위 중심적인 전통에 젖은 목사들이나 상담을 공부하는 신학생에게는 로저스의 
접근 방법에 한번 접해 보는 것이 크게 유익할 것이다. 이러한 철학과 방법에 
기초를 다지는 것은 우리의 상담기술을 증대시키는 훌륭한 시발점이 된다. 이것이 
적절한 휴식 지점 또는 중단 지점은 되지 못한다. 이는 우리에게 심리치료 관계를 
수립하는 근본원리는 제시해 주지만 곤고한 사람을 돕는 데 이 관계를 활용하는 
여러 방법에 있어서 안내 및 인도를 제공하지는 못한다. 로저스의 방법은, 굳건한 
기반을 제공해 주기는 하나 상담에 대한 적절한 접근 방법이라는 전체 건축 구조는 
제공해 주지 않는다. 목사는 그의 상담 과정에서 인격 중심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를 "내담자 중심적"인 방법론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주19. Howard J. 
Clinebell, Jr., Basic Types of Pastoral Counseling(New York: Abingdon, 
1966), pp.29--30)
  (p232)
    상호 작용적 접근 방법
  목회상담 운동은 이제 상호 작용적인 접근 방법 쪽으로 움직여 가고 있다. 비록 
본인은 이러한 표현을 쓰지 않지만, 이는 여러 해 전에 스위스의 저명한 상담자인 
폴 토니어(Paul Tournier)에 의하여 제창된 상담 형태이다. 튜니어는 상담에 
관계되는 학습 과정을 밟은 적이 없으며 자기에게는 독특한 접근 방법이 따로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내담자들을 두 동등한 인격 사이의 대화 속으로 유도한다. 
처음에는 별로 말이 없고 긴장된 웃음이 터지지만 결국 튜니어는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에 영적인 교제를, 두 인간 사이에 상호 신뢰적인 인격적 연대감을 구축하려고 
노력한다. 용인, 지원, 서로 나누기, 죄와 개인적인 연약함을 솔직히 고백함, 기도, 
수동적인 경청, 지시적인 충고 등이 모두 상담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주20. Paul 
Tournier의 상담 접근 방법을 보다 상세히 고찰하려면 Gary R. Collins, The 
Christian Psychology of Paul Tournier(Grand Rapids: Baker, 1973), 
pp.118--27를 보라.) 상호 작용적 접근 방법은 사담자를 막강한 전문가의 역할로 
몰아놓지도 않으며 그 반대로 내담자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촉매자의 역할로 몰아넣지도 않는다. 상호 작용적인 접근 방법은 
의사-환자의 구조를 제거하고 상담자와 내담자를 있는 그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동료 인간이 함께 짐을 지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으로 본다.

  의사-환자라는 상담관계의 성격을 한층 더 무너뜨리려는 시도에서 어떤 이들은 
상담자 대신에 도와주는 자라는 말을 쓰고 내담자 또는 피상담자 대신에 도움을 
받는 자라는 말을 사용할 것을 (p233) 제언했다. 우리는 앞에서 여러 번 이 말을 
섞어서 사용했다. 도움받는 자는 문제를 가지고 있는 귀중한 인격이며, 도와주는 
자는 도움을 받는 자의 생활 속에 가르침과 인도를 제공해 주는 하나님의 도구이다. 
도움을 받는 자는 자기 자신의 문제에 대한 전문가이다. 그는 문제와 함께 생활하며 
문제를 분석했고 문제 앞에 패배를 당하여 해결하려고 노력해 보았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도와주는 자는 상담기술은 물론 성경과 인간 심리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전문가이다. 도와주는 사람은 몇 가지 제한된 방법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는 위로해 주고 지원해 주고 물어보고 경청하고 격려하기도 하며 도움받는 자 
옆에 그저 서 있어 주기도 한다. 그는 성령님만이 참된 치료사가 되심을 인식하는 
사람이며 나아가 도와주는 자는 마땅히 또 한 사람의 삶을 개조하고 상담 상황을 
통해 그를 인도해 주는 데 있어서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으로서 봉사하는 
하나님의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사람이다.

    대안적인 접근 방법들
  상호작용적인 접근 방법이 더 바람직한 상담 방법이겠으나, 보다 지시적인 또는 
보다 허용적인 접근 방법이 문제를 가진 사람에게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이 세 가지 모두 성경적인 전례를 가지고 있으므로 모두 다 그리스도인 
상담자들에 의해 사용되고 있다. 
  지시적인 접근 방법은 상담에 대한 예언자적이며 직설적인 접근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방법에서는 상담자가 사랑 가운데서 진리를 말하며 내담자에게 
책임을 지지 못한 것을 면박하고 성경적인 기준대로 생활하라고 도전한다. 허용적인 
상담은 보다 제사장적이고 고백적인 접근 방법으로 이러한 상담 관계에(p234)서는 
내담자가 그의 문제와 필요와 죄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상담자는 이를 경청하고 
죄사함의 길을 가리켜 준다. (주21. 상담을 묘사하는데, "선지자적" (prophetic), 
"제사장적" (priestly)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Illinois 주 Deerfield의 Trinity 
College, David E. Carlson 교수의 출간되지 않은 논문에서 따 온 것이다. 그의 
논문은 1976 년 1월 26일 Georgia 주 Atlanta에서 열렸던 Conference on 
Reserch in Mental Health and Religious Behavior에서 "Jesus Style of 
Relating: The Search For a Biblical View of Counseling"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목회적-대화적"이라는 표현이 상호 작용적인 접근 방법에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에 대화가 있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상담자는 자기이 사랑어린 관심과 전문지식을 보여 주며 내담자를 친절히 
이끌어 주어 심리적으로,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준다. 그러므로 몇 페이지 앞의 
도표를 다음과 같이 수정하여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 도표: 234쪽 참고.
  선지자적, 직설적: 상담자 도와주는 자 ^25,135^ 내담자(피상담자) 도움받는 자
  목회적, 대화적: 상담자 도와주는 자 ^246,25,135^ 내담자(피상담자) 도움받는 자
  제사장적, 고백적: 상담자 도와주는 자 ^246,25^ 내담자(피상담자) 도움받는 자

  상담을 통해 사람을 돕는 것은 어려운 도전이며 많은 것을 요구하는 과업이다. 
그리스도인 상담자는 근본적으로 이와 같은 위치가 갖는 책임과 요구를 짊어지는 
교사이다. (주22. 야고보서 3:1) 그리스도인 상담자(p235)가 된다는 것은 가볍게 
취급할 일이 아니다. 이는 또 다른 인간의 생활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도구가 된다는 도전에 자신을 헌신하는 것이다. 책임은 중차대하며 때에 따라 
좌절감 또한 크다. 그러나 현세와 내세에서의 보상을 생각할 때 사람을 돕는 일은 
우리가 이 지상에서 나눌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도전 중 하나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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