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미래를 이야기합시다.
이상희
제1장 뛰어난 사람은 발상이 다르다.
이 시대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대학에서 약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을 마친 후에는 변리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타운대 로 스쿨(Law School)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에는 약학과 특허에 관계된 일을 하던 중 한동안 국회
의원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국회에서는 주로 유전공학법, 해양개발기본법,
대체에너지법, 항공우주산업육성법 등 기술 관계법을 다루었다.
기술 관계법은 아직도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분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분야는
미래를 향한 지구촌의 큰 흐름이 어느 방향으로 전개되는지를 가장 먼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분야이며, 동시에 우리 나라의 당면한 현실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분야이다.
나는 지구촌을 움직이는 논리가 다윈의 '종의 기원'에 근거한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논리와 하등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역사 발전을 이끌어 온 면면을
보더라도 항상 강자의 논리가 역사적인 진리로 기록되어 온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인간이건 동물이건 서로 우세한 입장에 서기 위해 약육강식의 생존
경쟁을 끊임없이 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각 나라들 역시 국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투쟁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를테면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이 자연의 대순환이자 법칙인
셈이다. 이 법칙 아래에서는 강자의 행동이 비인도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약자의 이의 제기에 그칠 뿐 현실에서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결국 강자의 약자 지배, 이것이 바로 자연의 질서이며
법칙이다.
인류의 역사를 보더라도 여태껏 일어났던 모든 전쟁은 결국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냉혹한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치열한 생존 경쟁의 이치를 가장
많이 연구한 사람이 중국의 손자다. 손자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한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의 저서인 '손자 병법'에는 승리를 위한 중요한 비결이
단계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첫째, 역사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는 도를 읽어야 한다고 했다. 농사를 잘 짓는
것이 그 시대의 도라면 농업에 열중하고, 또한 산업을 일으키는 것이 그 시대의
도라면 산업에 열중하고, 오늘날과 같은 정보화 시대라면 정보화에 열중하는 것이
도를 제대로 읽는 것이라고 했다. 역사의 흐름이 이미 정보화 사회를 요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생각이나 행동이 산업 사회에 머물러 있다면 뒤처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 시대의 천기를 읽어서 활용이라고 했다. 나폴레옹은 군사 전략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모스크바의 겨울이 얼마나 추운가 하는 천기를 제대로
알지 못해 패배하고 말았다. 반면 우리 나라의 이순신 장군은 조수 간만의 차이로
인한 울돌목 '명량 해협'의 세찬 물살을 이용하면 대포 천문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천기를 알고 이를 적절히 이용하여 열악한 상황에서도 대승을 거두었다.
셋째, 자기가 밟고 사는 땅, 곧 지리를 잘 활용이라고 했다.
넷째, 우수한 사람인 장을 모으라고 했으며, 끝으로 다섯째, 어차피 힘이란 여러
사람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니, 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조직화가 필요하므로
법과 질서를 바로 세우라고 일렀다.
예컨대 첫째가 도(도리 도), 둘째가 천(하늘 천), 셋째가 지(땅 지), 넷째가 장(초
장), 다섯째가 법(법 법)이다. 손자가 병서에 일러 놓은 이 지혜가 이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병서의 지혜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우선 가까운 역사 속에서 검증된 비유를 찾아보자.
우리 나라와 일본은 서로 이웃한 국가이면서도 26 년간 지배와 피지배의 종속
관계에 있었다. 이 문제를 놓고 손자의 병법으로 풀어 보면, 프랑스 선박과 미국
선박이 교역을 원했을 때 우리는 철저한 쇄국 정책을 주장했다. 서양의 문물이
들어오면 양반 체제의 법도가 무너지지 않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우리가 쇄국의 빗장을 걸고 있던 시기에, 산업 혁명을 일으킨 유럽의 발달된
문명을 배워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서구의 개화된 문명을 국가적
차원에서 배우겠다며 특사를 보냈고, 많은 젊은이들을 유럽으로 보내면서 만일 배울
것이 없으면 책이라도 사와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1900 년대 초기에는
일본의 대학 학장과 연구소 소장의 30% 이상이 외국인이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일본의 개방 의지가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신문물을 배우기 위한 이 모든 일본인들의 노력은 결국 명치 유신으로 꽃을
피웠고, 다른 한 나라는 피지배국으로 만드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 역사의
가르침이다. 사실 일본의 경우는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재빨리 읽어 '도'를 취한
격이고, 우리는 전통과 도를 지키기 위해 문을 닫아 걸었으며 '법'을 지킨 셈이다.
'손자 병법'에서 도를 읽는 일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첫째 조건이었고, 법을
지키는 일은 다섯째 조건이었다.
지금 세계 여러 나라들 중에는 법에 매달려 전전긍긍하는 국가들이 많다. 그런
나라들의 경우, 대개 국가 행정이나 운영에서 당장 현안으로 떠오른 문제를 '법'으로
해결하기 위해 열성을 쏟고 있다. 그렇지만 시대의 흐름을 일찍 깨달은 나라일수록
도의 흐름을 중요시하고 시대 변화와 흐름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
스위스 경제 포럼에서 발표하는 보고서는 국가 경쟁력을 비교하는 자료로 곧잘
인용되고 있는데, 이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나라의 92 년도 국가 경쟁력은 칠레에게
뒤지고, 93 년도에는 태국에게 밀려났다는 것이다. 그 결과 96 년도 우리 나라의
국가 경쟁력은 세계 37위로 평가받고 있다. 이 보고서가 어느 정도 정확하고
객관성을 반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 나라가 해를 거듭할수록
뒷걸음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이것은 우리가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다.
우리 나라가 경쟁에서 뒤지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시대의
흐름을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고, 오늘날 '도'와 '천기'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이 시대는 정보화 사회로 가는 중이다. 정보화 사회의 척도는 정보화 수준에 의해
좌우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척도에 경쟁의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
국가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온갖
비리와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요즘, 교통 문화와 환경 문제가 수없이
쌓여 가고 있다. 어떻게 풀어 갈 것인가? 부분적인 대안이나 즉흥적인 대책을
가지고는 문제의 근원을 완전히 치유할 수 없다.
가령, 동굴이 하나 있다고 가정하자. 그 동굴 내부는 습기가 가득 차 있고, 기온은
후덥지근하여 햇빛조차 잘 들어오지 않는 곳이다. 이런 곳에는 반드시 곰팡이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 곰팡이를 없애려 할 때 이를 '법'으로 다스려 없애겠다고
한다면, 먼저 이 곰팡이가 어떤 종류인지 파악하고 또 어떤 약제를 써야 없앨 수
있는지 조사하고 규명해야 옳다. 그러나 이것 역시 시간이 지나 약효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 동굴에는 곧 다른 곰팡이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곰팡이의 척결 방법을 '도'의 차원에서 한 번 풀어 보자.
이를테면 동굴의 구조를 바꾸어 햇빛이 들게 한다거나 통풍이 잘 되게 하여 환경을
변화시키는 방법이다. 이것은 곰팡이가 생길 때마다 약제를 뿌리는 방법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동굴의 곰팡이를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도 습기가 많고 음침한 동굴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기에 교통 문제,
공해 문제 등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약제를 사용하고 동굴 관리자를 처벌하는 식으로 대처해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동굴의 구조를 개선하듯 정책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보다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될 것이다. 물론 시간과 경비가 더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똑같은 유형의 사고를 빈번하게 반복하는 것보다는 미래를
내다보는 효과적인 대책이 장차 시간과 경비를 줄이는 올바른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음습한 동굴의 구조를 근원적으로 바꿔 주는 노력은 문제 많은 후기 산업 사회를
정보화 사회의 구조로 바꾸는 노력과 같다. 이런 마음으로 정보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모두가 나서면 적지 않은 사회 문제가 일시에 사라질 것이다. 미지의 세계
같은 음습한 동굴에 햇빛이 비치게 하고, 개개인의 깊은 동굴 속에 통풍의 바람을
불게 하는 것이 정보화가 아닐까?
기술과 정보를 집약한 정보화가 얼마나 엄청난 위용을 가지고 있는가를
실감하려면 지난 걸프전을 상기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여러 나라의 전쟁에 직5,23간접적으로 군사력 지원에
번번이 관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이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프가니스탄,
이란, 베트남에 군사력을 투입했지만 번번이 패배했다. 그런 상황에서 신바람 나게
이긴 전쟁이 바로 걸프전이다. 당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무려 1백만이 넘는
군대와 한 대에 2백 50억 이상하는 최신예 전투기를 갖추고 있었고, 반면
다국적군은 군사 위성과 패트리어트 미사일 등의 첨단 장비를 갖춘 정보와 기술
집약적 군대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두 군대의 전쟁은 일방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이라크군이 막강한 군사력을 갖추고도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패배한 것은
산업화 사회의 무기를 가지고 정보화 사회와 경쟁하여 패배한 원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역사의 '도'와 '천'의 경쟁에서 정보화 사회가 이길 수밖에 없으므로 집약적인
군대인 다국적군이 승리한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우리는 걸프전을 승리로 마치고 승전 내용을 보고하는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부시 대통령이 연설한 내용을 좀 더 진지하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미국의
교육법을 개정해서 미국 어린이의 수학과 과학 실력을 세계 제일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피력했다. 이 말은 어릴 때부터 정보화 사회에 걸맞는 인간형으로
교육시키겠다는 의미이다. 걸프전 승전 보고의 핵심을 이룬 이 연설은 다가오는
정보화 사회에 대한 확신과 정보화 사회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어떤 요소가 필요한
것인가를 역설한 셈이다.
이 시대, 이 세계의 '도'와 '천'의 흐름이 여기에 있다. 21세가 정보화 사회는 과학
기술의 사회이다. 미개학자들은 본격적인 전자 문명의 시대가 될 21세기 정보화
사회에서는 세계가 하나의 공간이 되는 지구촌 시대를 맞게 있다고 한다. 지구촌
시대에는 세계가 하나의 시장 경제 속에 재편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우리가
홍역을 치르고 있는 UR 이나 GR 보다 훨씬 강력하게 우리의 삶을 간섭해 올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피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변화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선택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는 분명해진다.
멀티미디어 시대의 리더
혹자는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한 1995 년 이후의 세계를 '갈릴레이의
세계'라고 부른다. 그것은 갈릴레이가 과거의 절대 명제를 깨고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고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갈릴레이의 발견은 우주가 하나의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주는 질서와 조화를 이루면서 유지되어 오고 있다. 정보화 사회인 오늘날도
이와 마찬가지여서 어느 한 국가만의 사고 체계는 존재할 수 없다. 오늘날의 정보화
사회란 지구촌 여러 국가가 조화와 질서를 유지하면서 변호하고 성장해 가는
것이다. 정보화 사회의 경쟁 조는 하드웨어 경쟁에서 소프트웨어 경쟁으로, 물질
경쟁에서 문화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 이런 큰 흐름 속에서 '운용' 소프트웨어와
'응용' 소프트웨어를 접속한 다양한 멀티미디어 시스템의 사회로 급속하고 복잡하게
발전해 가고 있다. 국방과 교육을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고, 교통과 환경을
별개의 문제로 다룰 수 없는 것이 오늘날 정보화 사회의 한 특징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복잡하게 변해 가는 이 시대를 이끌어 갈 리더는 어떤 소양을
가져야 될까? 먼저 리더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다양성과 독창성을 절묘한
화음으로 조화시키는 카라얀과 같은 '명지휘자'가 될 필요가 있다. 멀티미디어의
정보화 사회는 각 분야의 다양한 개성과 창의성을 종합하고 조정하는 능력을 가진
인물을 절실히 요구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또한 과학 마인드와 정보 마인드가
있어야 하는데, 산업화 사회에서는 노동력과 자본력이 큰 힘을 발휘했지만, 정보화
사회에서는 정보를 읽고 활용하며 부가가치를 창조해 낼 수 있는 능력이 결정적인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또한 멀티미디어 시대의 리더는 미래를 예측해 내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세계의 구도가 멀티미디어 시대가 되고 변화의 속도가 날로
가속화하고 있는 이 시대를 이끌어 가려면 재빨리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고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또한 리더는 그 시대에 걸맞는
공동선의 철학을 바탕으로 그 구성원 모두에게 정의로운 삶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는 평화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평화란 견해가 다른 때는 점진적인 노력으로 합의를 이룩해 가고, 낡은 사회적
장애물을 무리없이 서서히 제거해 가며, 새로운 제도는 놀라지 않게 조용히
만들어가는 노력을 매일, 매주, 매달 쉬지 않고 꾸준히 해나가는 과정,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멀티미디어 사회에서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어떤 역할이 리더에게
필요한가? 케네디의 말과 같이 평화라는 화음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꾸준히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그 노력을 감당할 능력과 더불어 역사의 진행을 예견하는
역할을 가지는 것이 리더의 필수 조건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어려운 과제이다. 마치 야구 경기에서 투수가 던지는
강속구와 변화구를 정확하게 예견하여, 던지는 순간 배팅하는 타자가 홈런을
터뜨리는 위력을 발휘할 수 있듯이 리더는 빠르게 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정확하게
예견해야 한다. 또한 시대의 발전을 위한 위대한 계기를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하나의 예를 살펴보자.
미국은 남북 전쟁 전 남부와 북부로 갈려 있었다. 북부는 산업화와 함께 노36예
제도가 필요 없게 되었고, 남쪽은 농업 사회였기 때문에 노36예의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남과 북은 이미 공존할 수 있는 체제가 아니었다. 만약 그 때
남과 북이 분열되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남쪽은 후진 농업 국가로 전략했을
것이고, 북쪽은 농업부문이 보완되지 않음으로서 현대 산업 국가의 균형있는 발전은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지금의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을 이루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당시 대통령 링컨은 이러한 상황을 바로 직시하여 전쟁을 치르더라도 나라를
통일시키고 노36예를 해방하는 것이 역사의 장기적인 발전에 부합하리라 판단했던
것이다. 미래 정보화 사회에서의 링컨 이상의 미래 예측력과 결단력을 가져야 한다.
국방, 의료, 에너지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국가 정보화를 추진하고 풍요로운 삶을
위한 환경 정책을 마련하는 한편, 국가 정보화와 과학 기술정치를 실현하고 있는
미국의 엘 고어 부통령은 21세기에 걸맞는 지도자감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보화 사회의 지도자는 당장의 현실 문제에 급급하기보다는 다가올 미래 사회를
예견하여 국민에게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준비시킬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를
통해 멀티미디어의 위대한 화음을 도출할 수 있는 지도자가 바로 멀티미디어 사회의
진정한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사고 방식은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 오늘날은 농업 사회와 산업 사회를 거쳐
정보화 사회가 되었다. 시대의 변화만큼 의식에도 변화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다.
농업 사회에서는 할아버지가 사용하던 농기구를 아버지가 사용하고, 또 그 아들이
이어받아 쓸 수 있었다. 산업 사회에 와서는 한 세대가 대를 이어 도구를 물려받곤
했지만, 두 세대에 걸쳐 사용하기에는 이미 낡거나 구식이 되어 무리가 있었다.
정보화 사회에서는 한 세대는커녕 큰아들이 사용하던 것을 막내아들이 받아서
사용하기도 어렵다. 컴퓨터만 하더라도 286이 나왔는가 하면 386이 출시되고,
이어서 486과 586으로 기종이 바뀌어 왔다. 빠른 컴퓨터 기종의 변화만큼 기술과
정보도 바뀌어 가는 까닭에 의식 또한 숨가쁘게 상황을 쫓아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시대의 상황이 변한다고 하여 막무가내로 따라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급속하게 변하는 정보화 사회를 살아가려면 어떤 생각과 사고 구조를
가져야 하는가?
우리는 먼저 미래의 상황을 대비하는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현실을
총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거시적인 안목을 가지고, 아울러 앞으로 있을 미래의
변화를 감지하는 예견력을 가지고 있으면 주변 상황에 쫓기지 않고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를 보면 과거의 일과 현재의 일,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일들이
한꺼번에 뒤섞여 돌아가고 있다. 정치적인 사안도 그렇고 경제적인 문제, 사회적인
문제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문제는 오늘에 걸려 있고, 이러한 문제는 쉽사리 풀릴 것
같지 않아서 내일로까지 이어질 것이다.
이런 문제는 점점 풀려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늘어날 추세이다. 과거의
문제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은 미래 사회를 제대로 수용할 수 없게 만든다. 오늘날
문제되는 것들을 가능하면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처리해야 배제해 나가야 한다.
합리적으로 변화를 수용할 능력이 없다면 우리의 미래는 결코 밝을 수 없다. 정치
현실도 국익의 차원에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과거 청산이나 지역 감정
해소의 문제에 집착하다 보면 문제를 풀 수 없게 된다. 그런 곳에 쏟을 노력을
미래를 창조하는 데 쏟아야 한다.
컴퓨터는 처음부터 완벽한 것이 아니었다. 286 컴퓨터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여
386 컴퓨터가 나왔고, 이어서 486, 586, 멀티미디어 컴퓨터로 발전해 가고 있다.
이런 마당에 지금까지 286 컴퓨터에 대한 문제점을 토론하고 있었다면 끝이 없었을
것이다. 문제만을 보고 결말도 없는 논의를 하는 것보다는 386 컴퓨터를 만드는
일이 현명하다. 그러면 286 컴퓨터의 문제는 저절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미국은 항공 우주 공학과 기초 과학 기술에 있어서 최첨단을 달리면서도 변혁을
서두르고 있다. 최근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미국 국방부의 무기 수습
체계에도 급속한 변혁이 이루어지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그 변화의 방향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다름 아닌 폐쇄에서 개방으로, 배타적 독점 체제에서
시장 체제로 그 변화의 방향을 틀고 있다.
보수적인 미국의 군부가 변혁을 시도하는 데에는 그만한 내력이 있다. 지난
걸프전 때 위치 확인용 송수신기가 필요해서 납품을 받아 보니, 군용은 한 대에 1
만 3천 불을 요구하는데 상용은 불과 1천 9백 불에 즉시 납품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기능과 성능은 비슷하지만 가격에서 엄청난 차이가 나자 그들의 생각이 좀 바뀌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군수물자 조달체계 개선을 위한 제안이 만들어졌고, 이윽고
검토를 거쳐 국방성에서 채택하여 시행에 들어간 것이다. 그 골자는 상용을
표준으로 하고 조달 불가능한 것은 군용으로 보충한다는 것이다. 전쟁에서도 전방과
후방 개념이 없어졌듯이 이제 군사 물자도 군용과 민간용의 구분이 없어지고 있다.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미국은 장성으로 제대한 사람을 10 년 이내에는 국방부
장관에 임명하지 않는다는 법규를 정해 놓고 있다. 왜 그런 법규를 만들었을까?
장성으로 제대한 사람을 바로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하여 장관직 수행을 군복무 시에
장성 수준으로밖에 하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의 머리 속은
소속 군대의 사고 방식으로 굳어 있기 때문에 미국 전체의 국방 체제를 종합적으로
운용할 사고 체계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 지휘관이 국방 전체를 보는
총체적 안목을 가지는 데에는 적어도 10 년은 걸릴 테니까 10 년 이내에는 장관
임용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상황은 어떠한가?
우리와 그들과의 사고 방식 차이는 아주 크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그들 이상으로
사고하지 않으면 그들을 이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해할 수도 없다. 생각하는
것은 자원도 필요 없고 돈도 들지 않는다. 발상법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무한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사고 방식의 차이로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손실을 보고 있는지 따져 볼 일이다. 우리의 사고를 어느 쪽으로 전환해 가야
할지 생각하는 것이 시급하다.
큰 도둑과 작은 도둑
1986 년 12월 13일자 '조선일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그 내용을 그대로
인용해 보면 이렇다.
국회는 12일에도 신민당이 불참하는 가운데 민정당과 국민당 등만으로 상위(항상
상, 버릴 위)운영을 계속하면서 각종 법안을 대부분 원안 그대로 속속 통과시켰다.
법안 하나하나가 국민 생활, 특히 이해 당사자들에게는 지극히 중요한 내용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를 심의하는 회의장 분위기는 덤덤할 뿐이었다. '단독
국회'라는 점에서, 애초부터 긴장감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할 수도 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특허법 개정안을 다룬 상공위(헤아릴 상, 장인 장, 버릴
위)에서는 이날 여당 의원이 이 개정안의 원인 통과에 반대, 끝내는 눈물을 흘리는
'이변(다를 이, 변할 변)'이 일어났다. 특허법 개정안은 한-미간 무역 마찰의 주요한
요소가 되고 있는 '물질 특허'의 도입을 허용하는 것이 그 중요한 골자.
미측의 강력한 주장으로 체결된 양국간 통상 협정을 국내 입법 조치로 현실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 개정안이 상정되자마자 민정당의 이상희 의원은 첫 발언권을 얻어
법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기 시작했다.
"특허 허용 기간이 명목상 공고일로부터 15 년으로 돼 있으나, 특허청 심사 기간
등을 활용하여 출원일로부터 30 년까지로 약용될 소지도 있다. 대부분의 국가가
특허법 향유 기간을 10 년 정도로 하고 있지 않는가5,5,5."
"국제간의 특허기간회복제도는 세계에서 미국만이 실시하고 있다. 우리가 이를
정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외국인 특허권자가 국내에 특허를 내고 불성실한 실시를 할 경우에 대비할 수
있는 보완책이 필요하다."
이의원의 주장은 계속 됐다. '일본이 세계 김치 수출의 70% 를 점유하는 웃지
못할 사례'까지 들어가며 "우리가 왜 선진국에게 쓸데없는 선심까지 써야
하는가"라고 묻는 이의원의 발언은 이미 질문을 지나 차라리 호소(부르짖을 호,
하소연할 소)로 들렸다.
정부측 답변은 "이미 양국 정부간 약속이라 어쩔 수 없다." "그 같은 보완 조치는
실익(열매 실, 얻을 익)이 없다."는 내용으로 일관했다. 이미 한-미간에 엎질러진
물이라는 얘기다. 정부측은 "시간이 없는 만큼 시행령에서 보완하겠다."는 약속으로
넘어가려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의원은 "모법(어미 모, 법 법)에도 규정할 수 없게
정부가 이렇게 몰아붙이는데 정부 혼자 만드는 시행령에 어떻게 맡길 수
있는가"라며 물러서지 않으려 했다.
이의원이 고군분투(홀로 고, 군사 군, 성낼 분, 싸울 투)하는 동안 다른 여당
의원들은 내용이 복잡한 탓인지 사안(일 사, 상고할 안)이 미묘해서인지 한두 명만이
동조하는 모습. 국민당과 무소속 의원들이 "여당 의원이 저토록 반대할 정도니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며 끼어 들기도 했다. 김두종위원장 대리와 정부측이
절충하는 동안 이의원은 혼잣말처럼 "나중에 역사가 알 것이다" "이럴 때 신민당은
왜 안 나왔나" 하고 한탄까지 했다.
속개된 회의에서 대세(큰 대, 권세 세)가 원안 통과 쪽으로 기울면서 이의원이
마지막 발언을 신청하려 했지만 동료 의원들은 "참아요." "뭐, 그냥 넘어가지."라고
말리고 나섰다. 1시간 20분 동안의 공방이 원안 가결로 낙착되는 순간 안경을
벗었다 썼다 하던 이의원의 손이 눈가를 훔쳐냈다. 눈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요즘
국회가 보여 주지 못한 신선한 눈물이었다. (김현길 기자)
이 기사는 '국회 의원의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기자 수첩'에 난 기사였다. 그 때
다른 신문에서도 이 문제를 상당히 주목하며 다뤘다. 벌써 10 년이 지난 이 일화를
꺼내는 이유는 이 사건 속에 우리의 정치 현실과 의정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런 슬픈 현실을 극복해야 살 수 있는 시점에 이르렀다. 그렇지 못하면
강대국들의 법적, 경제적 공세에 휘말려 우리가 가진 것을 다 내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당시 나는 민정당 정책 위원으로 있었는데 국회에서 이 일이 있기 전에 경제
기획원의 유능한 간부들이 특허법 개정안 문제를 가지고 나를 찾아 왔었다. 그들이
내게 하는 말이 벌써 미국과 합의를 했다는 것이었다. 미국의 법 논리로도 안 되는
걸 왜 했느냐고 따져 물으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뿐이었다. 나는 힘들게
공부하여 변리사 자격을 취득했고, 미국의 조지타운대 로 스쿨(Law School)에서
공부하고 미국 특허청 심의관 과정을 마치고도 이 부분에 대해서 전문가라는 자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는데, 당시 경제 기획원의 엘리트 간부들은 이 분야에 대해선
전문가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정부와 여당이라는 미묘한 관계로 인해 경제 기획원의 간부들에게는 그
정도로 이의를 제기했지만, 관련된 정보와 자료를 모아 여당은 물론 야당
의원들에게까지 물고 늘어져야 한다고 부탁했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정치적인
문제가 얽혀 그 때 제1야당인 신민당이 국회에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단독 처리할
수밖에 어는 상황에서 나는 당정 협의회가 다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물고 늘어져
보았지만 원안대로 가결되고 말았다. 더 기막힌 노릇은 그 일이 신문에 보도 된 후
당에서는 내가 해당 행위를 했다고 하여 징계 대상으로 삼아야 마땅하다는 논란이
있었다. 정치원로 몇 분이 그 논란 중에 나를 해당 행위로 징계하면 어떡하느냐고
함으로써 겨우 징계를 피할 수 있었다.
결국 특허법 개정 문제는 미국에 대해 특혜를 준 것밖에 되지 않아 우려대로
국제적인 반발을 가져 왔다. 나는 법안이 가결된 후 상공부 장관과 함께 유럽을
순방했다. 우리가 가는 나라마다 그 문제를 놓고 미국에게는 소급해서까지 물질
특허를 인정해 주면서 우리에게는 왜 인정해 주지 않느냐는 항의를 들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유럽에서도 미국과 체결했던 것과 똑같은 조건으로 허용해 주어야만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일본이 그 문제를 걸고 넘어졌다.
그 동안 일본과는 특허에 관한 교류가 상당히 빈번했다. 국제 회의에 참석하러
가면 우리 나라 특허청에서 가는 사람을 일본 특허청 사람들이 극진하게 대접했는데
그 문제가 일어나고 난 다음부터는 계속 그 문제를 물고 늘어지면서 자기들 회의 때
우리 측은 아36예 초청조차 하지 않았고, 혹 초청하더라도 일체 협조를 하지
않았다. 그러니 할 수 없이 일본에게도 백기를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문제로 인하여 우리 실물 경제가 얼마만한 타격을 입었는지 계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엄청난 손실에 대해서 이와 같은 문제를 막기 위해
정책의 입안과 가결에도 실명제를 적용해 책임 소재를 분명해 해야 한다. 정책을
잘못하면 국가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끼치지만 정작 당사자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은 좀도둑이 하는 일이다. 정책을 잘못해서 국가와 기업,
국민 전체에서 실제적으로 큰 손실을 입히는 정책 담당자는 수치로 따질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큰 도둑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런 대도(큰 대, 도둑 도)는
처벌받지 않는다. 미국은 물질 특허를 가지고 밀어붙이던 그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일본은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
기구를 축소하면서도 지적 재산권 분야는 더 강화하고 있다. 더 많은 투자와 더
유능한 사람을 보강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왜 그런 일을 추진하고 있는가? 그
여파가 언제 어떻게 밀려와 우리를 압박해 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선진국들이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는 이유와 의미를 우리 정치인과 공직자는 물론 국민들도
명확하게 알아야 할 것이다.
뛰어난 사람은 발상이 다르다.
나는 주한 이스라엘 대사였던 아셸 나임(Asher Naim) 대사와 자주 만나 토론을
벌이고 했다. 내가 그분을 자주 만난 것은 정보화 사회에 대비하는 교육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때문이었다.
물질적인 자원이 부족한 우리 나라는 과거에도 그랬지만 미래에도 창의력에
의존하여 살아갈 수밖에 없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보았을 때, 창의력을 가장 잘 발휘한 사람들은 유태인이었다.
재산과 터전을 잃고 고향 땅에서 쫓겨난 세입자의 신분으로 남의 나라를
전전긍긍하며 살았던 유태인,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그들은 각 나라에서 삶의
뿌리를 내렸을 뿐만 아니라 어느 문화, 어느 민족 속에서도 창조자의 역할을 해
왔다. 빈 주먹과 신앙 그리고 머리뿐인 그들이 이룬 성공은 결국 창의력에서 나온
셈이다. 창의력만으로 지금 그들은 잃었던 나라를 되찾았고, 고국에서는 물론 세계
어디에서나 중산층 이상의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다. 유태인의 두뇌력은 몇몇
단순 지수만으로도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상위 재벌 400 명 중 135 명이 유태인이다. 그리고 하버드와 UCLA
의 로 스쿨(Law School)과 메디컬 스쿨(Medical School) 교수의 절반이
유태인이며, 뉴욕 중5,23고등학교의 뛰어난 과학, 수학 교사의 반 이상이
유태인이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 300 명 중에서는 모두 96 명의 유태인이
수상함으로써 전체 수상자의 1456,343을 그들이 차지했다. 소수 민족인 그들이
이처럼 절대적인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그들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삶과 학문에
대한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리고 그들만의 두뇌 개발 비법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유태인을 기준으로 하여 그들의 의식을 연구하면, 두뇌가 정보화 사회를 살아가는
데 어떤 지침이 되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아셸 나임 대사와의 대화는 이런
가능성을 확인시켜 준 계기였다.
유태인인 우리와의 생활 방식도 다르고 사고 방식도 다르다. 국경을 둘러싼 아랍
제국과 뿌리 깊은 적대 관계를 맺고 있는 그들에게 가장 중대한 문제는 국방과
국민의 안전이었다. 국방에 관한 문제는 우리에게도 생존권의 문제이지만 국방에
관한 개념부터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현재 우리 나라는 60 대군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국방에 대한 온전한 독자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에 비해
이스라엘은 자구국방 체제를 갖추고 있다. 지난 92 년의 다국적군과 이라크군간의
걸프 전은 첨단 전자 기술을 바탕으로 한 정보전이었다. 이 전쟁에서 전쟁 양상의
놀라운 변화와 정보전의 놀라운 위력을 보여 준 것이었다. 정보전을 위해서는
데이터 수집을 위한 정보 위성이 필요한데, 이스라엘은 이미 완벽한 군사 정보 위성
체제를 갖추고 있다.
나는 이스라엘 방문 길에 뉴스에서 자주 등장하는 골란 고원을 가 볼 기회가
있었다. 기대와는 달리 아랍과 가장 치열하게 대치하고 있는 그 곳을 지키는 군인을
찾아볼 수 없었다. 뒤에 알고 보니 이스라엘은 움직이는 물체를 감지하는 전자
장비를 설치하여 전방에서 움직이는 물체가 감지되면 즉각적으로 자동 기관포가
발사되어 전자 방어 설비를 해 놓고 있었다. 군인이 하는 일이란 일 주일에 한 번씩
군장비의 정상적인 작동을 점검하는 정도였다. 군인의 업무가 그런 것이고 보니,
이스라엘에서는 군복무를 마치고 나오면 고도의 정보 전자 기술자가 된다. 군대가
정보화를 가르치는 인력 양성소인 셈이다.
우리 군은 육군과 해군, 그리고 공군의 삼군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디펜스 포스(Defense Force)'라고 명명한 합동군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육5,23해5,23공군의 삼군 체제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당연히 왜 그런 군
체제를 채택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재래 전쟁의 경우 육지에서는 육군끼리, 바다에서는 해군끼리, 하늘에서는
공군끼리 싸웠지만, 지금의 전쟁은 전선의 구분이 무의미해졌다. 어디에서 뭐가
날아올지도 모르고, 비다 잠수함에서 미사일을 쏘아 비행기를 공격하는 판인데,
육군5,23해군5,23공군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정보나 기술
체계, 또는 작전에 따라 기능이 나누어지는 것이지, 육군과 하늘, 바다라는 공간은
이미 그 의미가 상실됐다는 설명이었다.
만약 국경 근처에서 이상한 조짐이 발생하면 감시 위성을 통해 상황을 파악하고
그 위치에 즉각적으로 적당한 병력을 보내 유사시를 대비하도록 되어 있었다. 마치
미식 축구처럼 '전원공격 전원수비'의 태세로 기민하게 움직이는 것이 그들의 총체적
군운용의 전략이었다. 적은 인구를 가진 그들이 아랍 강국을 꼼짝 못하게 하는
비결이 거기에 있었다.
우리군과 이스라엘군의 다른 운영 체제는 또 하나 있다. 그들의 교관의 70%
정도가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성 교관이라 해서 여성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통신 장비를 짊어지고 위성과 교신하면서 일선에 서서 직접 군대를
움직이고 있었다. 국방에 관한 이런 몇 가지 상황과 의식 차이만으로도 이스라엘
식의 사고 방식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은 것 같다.
우리 나라는 인구 12억의 중국, 2억 7천만의 러시아, 1억 2천만의 일본은 물론
태평양 건너 2억 5천만의 미국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즉 세계 1, 2, 3, 4위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들에게 둘러 싸여 있다. 이들 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맞서 대항할 수 있는 결정적인 대안을 가지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에는 국방력도 무역의 대상이다. 북한이 핵 카드를 쥐고 미국을 끌어들려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면 힘없는 국방이나 외교는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하게 된다. 우리 나라 국방에도 '핵카드' 같은 강력한 협상 무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진돗개가 무서운 것은 한 번 물면
절대로 놓지 않기 때문이다.
강대국에 비해 국력도 약하고 인구도 적고 자원도 없는 우리 나라의 비장의
무기는 무엇일까? 과거처럼 막연한 군비 증강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우리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에 의한 새로운 국방 개념과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보화의 변화와 흐름을 하루속히 터득해야 할 것이다.
빌 게이츠와 만나서
나는 빌 게이츠가 한국에 왔을 때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는
쉴 틈 없이 짜여진 일정 때문에 몹시 바쁘게 지내야 했다. 한국을 방문한 마지막 날,
나는 그에게 "한국에 와서 여기저기 방문하느라 참 수고를 많이 했습니다."라고
만족한 표정으로 감사를 표했다. 나는 웃는 그에게 "하지만 대단히 미안한 일이지만
당신은 대단히 중요한 일 한 가지를 빠뜨려 아쉽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깜짝 놀라며 그게 무엇이냐며 궁금해 했다. 나는 정중하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이 한국에 와서 만난 사람들은 주로 어른들입니다. 그들은 나이가 들어
감수성이 없는, 서산 마루에 늬엿늬엿 지는 태양인 셈이죠. 당신은 당신의 열세 살
무렵 같은 순수한 감수성을 지닌, 동쪽에 뜨는 태양같은 아이들을 만났어야 했는데
그들을 하나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열세 살의 감수성 있는 그 애들을
만나서, 당신이 열세 살 때 처음 컴퓨터를 만나 느꼈던 감동을 심어줘야 했습니다.
그래야 당신의 후배들이 한국에서 많이 나오 정보화 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게
아니겠습니까? 당신이 그 일을 하지 못한 게 무척 아쉽습니다."
빌 게이츠는 내 말에 다음 번 방문 때에는 가장 먼저 아이들부터 만나야겠다고
선뜻 약속했다.(빌 게이츠는 지난 97 년 6월 다시 한국을 방문하여 과학고등학교를
찾아갔다.)
한때 우리는 기업에서도 컴퓨터 하나를 사려면 중역 회의를 거쳐야 가능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게 불과 20 년 전 일이다. 그러나 시절은 변해 지금은 당장이라도
아이들에게 사줄 수 있는 '학습 도구'가 바로 컴퓨터다. 변화의 시대가 물결처럼
밀려왔다가 밀려가고 있다. 우리 나라 기업들이 중역 회의에서 컴퓨터를 살 것인가
말 것인가를 논의하던 그 시기에 빌 게이츠는 백지처럼 순수한 상태에서 컴퓨터를
접했기 때문에 그에게 '컴퓨터 마인드'가 생길 수 있었던 것이다. 컴퓨터 마인드를
가질 수 있었던 그는 컴퓨터와 친구처럼 지내면서 자신과 끊임없이 교감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점차 정보 마인드가 생겼고, 이 세상이 어떻게 변화되어 갈
것인지를 읽을 줄 아는 감성이 생겼다. 정보화 사회에서는 시대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교육 역시 정보화 사회를 받아들이는 감각을 기르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우리가 지금껏 해 온 방식의 공부는 과거의 역사나 사례를 뒤짚어 분석하는
형식이다. '과거에는 이런 시행 착오가 있었다. 그 때의 문제는 이것뿐이었다.
그러므로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을 보완해야 한다.'는 식의 교육을
해왔다. 과거를 깊이 분석하고 따져 보아도 현실 문제를 풀 수 없고, 더구나 미래를
전망하기는 더더욱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공부에 매달릴 바에야 차라리 미래를
예견하는 교육을 받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빌 게이츠는 정보화 사회를 연 주인공이다. 그는 열세 살의 어린 나이에 컴퓨터를
접했고, 대학을 중퇴하면서까지 시대의 변화를 예견하고 정보화 사회를 활짝 연
주인공이 되었다. 아주 적은 돈과 창의력만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짧은 시간 안에
소프트웨어라는 무형의 제품을 전 세계에 판매하여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인이
되었다. 그리고 가장 많은 돈을 벌어 들였다. 그렇지만 빌 게이츠 역시 자라나는
세대의 창의력과 대등한 위치에 서려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세상의 변화와 흐름은 빠르게 진행되어 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미래 사회가 어떻게 전개될지를 보여 주는 상징이 아니겠는가.
빌 게이츠가 농부였다면
앞서 언급했지만 지난 몇 해 동안 돈을 가장 많이 번 사람은 빌 게이츠다. 그는
정보화 사회를 맞아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고, 그만큼 영향력도 커졌다. 만약 지금이
농업 사회였다면 그의 이러한 성공적인 삶이 가능했을까? 그가 30 대의 농부였다면
막강한 재력과 기반 시설을 가진 사업가들 틈에서 세계적인 인물이 될 수 있었을까?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의 성공은 정보화 사회가 도래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고, 그 자신도 정보화 사회의 필연적인 도래를 가장 먼저 예감했으므로
가능했던 것이다. 빌 게이츠는 푼돈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의 증조 할아버지와
할아버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컴퓨터가 대중화되는 정보화 사회가 오고 있다는 확신과 정보화 사회가 오면 가장
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었다.
그는 컴퓨터 사용이 대중화되는 정보화 사회가 오면 소프트웨어가 금맥이오,
금광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고, 그의 예측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이런 생각을
'정보 마인드'라고 한다면, 그에게는 남다른 정보 마인드가 있었던 셈이다.
그는 하버드에게 법학을 전공하면서 컴퓨터에 열중하고 있던 어느날
소프트웨어라는 금광을 가득 실은 열차가 어디선가 달려 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미지의 세계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았을 때, 우물쭈물하다가는 열차가
곧 자신을 지나쳐 버릴 것 같았다. 여러 가지 상황을 상상하고 예측한 끝에 대학
공부를 마치고 뛰어든다면 늦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부모님이 살고 계신 집으로
돌아와 학업을 중단하고 사업을 하겠다는 뜻을 펼쳐 보였다. 명문 대학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던 아이가 느닷없이 학업을 포기하고 사업을 하겠다고 하니,
더구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상한 것을 만들어 팔겠다고 하니 그 때 부모의 심정이
어떠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어떤 부모라도 자식이 들어가기 어렵다는
일류 대학에 들어가서 2 년 여 공부를 하다가 어느 날 느닷없이 학교를 그만두고
사업을 하겠다고 한다면 아마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하더니 머리가 좀 이상해진 게
아닌가?' 하고 의심부터 했을 것이다. 그리고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아이의 생각을
돌이기 위해 회유했을 것이다. 하지만 빌 게이츠는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설명과 설득을 계속했고, 빌 게이츠의 어머니는 차츰 아들의 생각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말을 듣고 보니 아들이 생각하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 세계에 대한
것이었고, 남편과 자신이 안 된다고 반대하는 것은 지난 과거의 잣대로 생각한
것이었다. 어머니는 먼저 아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남편을 설득하여 빌 게이츠가
학업을 중단하고 새로운 모험을 시작할 수 있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해 주었다.
그리하여 빌 게이츠는 부모의 동의 아래 미련 없이 대학을 중퇴하고 뜻이 맞는
선배와 함께 곧장 사업을 시작했다. 자본금도 별로 없이 컴퓨터 몇 대로 시작된
조촐한 창업이었다.
어느 위치에 소프트웨어라는 거대한 금맥이 있고,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파고
들어가면 그 금맥을 발견할 수 있다는 예감이 자본의 전부였을 뿐이었다. 그와 같은
자신감을 가지고 달려들어 주저 없이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열세 살 때부터
컴퓨터를 만져본 그 자신만이 가진 영감이 크게 작용했을 뿐이었다. 자신의 머리와
손으로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은 충분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기술과 정보, 그리고 창의성은 정보화 사회에서 주된 자본이다. 사업을 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된다고들 하지만 사실 돈은 꼭 있어야 할 필수 조건은 결코 아니다. 빌
게이츠는 별다른 사업 자금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사업을 충분히 일으킬 수
있었다. 돈은 오히려 기술, 정보, 창의성을 떠받치는 보조적인 위치에 놓여 있을
뿐이다. 사업 자금이 많이 있었더라도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와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더라면 빌 게이츠의 성공은 처음부터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리 나라의 사정은 어떤가? 우리 사회에 빌 게이츠 같은 뛰어난 능력과
아이디어를 가진 아이가 있다면 우리의 교육 제도나 사회 관습은 그 의지를 수용할
수 있을까? 정보화 사회를 이야기하는 이 시점에서 꼭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교육 제도와 사회 관습이다.
빌 게이츠는 정보화 사회의 필연적인 시대 진행을 읽으면서 능력과 창의성을
대학에서는 더 이상 발전시킬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바로 이것이 서른 살의 나이에
이미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업계의 황제가 된 빌 게이츠가 하버드 법대를 중퇴한
이유다.
미래의 사회에서는 많은 지식을 아는 사람보다는 기존의 지식으로부터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고 응용하는 창의적인 사람을 요구한다. 빌 게이츠도 창의성이 있었기
때문에 마이크로 소프트사를 세워 세계를 움직이는 정보화 사회의 주인공이 되었다.
빌 게이츠와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성공은 정보화 사회의 특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
주는 좋은 본보기이다.
정보화 시대의 잣대
정보화 시대는 가치관에도 큰 변화를 몰고 왔다. 과거의 기준으로 오늘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이 시대를 결코 헤쳐 나갈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오늘에 맞는
잣대를 가졌다고 해도 미래에까지 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예로 사회 질서의
가장 절대적 판단 기준이었던 '나이'를 놓고 보자.
농업 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산업 사회에서까지 한 인간을 평가하고 절대적인
기준은 '나이'였다. 사회적 나이는 육체적인 상태를 짐작하여 그 사람이 일을 하기에
적합한지를 판단하게 해 주었다. 하지만 정보화 시대에서는 나이가 아니라 '마인드',
즉 머리를 먼저 고려한다. 나이와 상관없이 그 사람의 생각과 능력이 286급인가
386급인가, 아니면 586급인가에 따라 일을 맡기기도 하고 사업을 도모하기도 한다.
육체적으로는 나이가 많이 들어 정년 퇴직을 했을 나이지만 생각하는 능력이
뛰어나면 그 사람은 20 대 청년으로 대접받고, 20 대가 아니라 10 대라도 286급의
낡은 사고 능력 체계를 가지고 있으면 구세대, 즉 옛날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구세대와 신세대의 구분은 이런 의미에서 별로 중요한 것이 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직장에 대한 가치관, 직업에 대한 가치관, 심지어는 결혼에 대한 가치관까지 변하게
만들었다.
요즘 사회 일각에서는 세대 교체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우려되는 것은
나이만을 잣대로 삼는 세대 교체론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나이가 많고 적어서
곤란하다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정신과 능력이다. 생년월일로
따져서 '당신은 나이가 얼마니까 정년이고, 당신은 나이가 얼마니까 정년이 몇 년
남았다.'는 식의 세대 교체는 곤란하다. 그리고 '당신은 나이가 너무 많으니 이제
은퇴하시고 젊은 우리에게 넘기시오.' 하는 식의 세대 교체 또한 정보화 시대의
마인드와는 거리가 먼 발상이다.
이와 같은 발상은 정보화 사회가 갖은 기본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
있다. 세상은 얼마나 빨리 변하고 있는가? 사고의 전환,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아직까지도 우리는 과거의 경험이나 잣대를 가지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변화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어떤 표준에 맞춰 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아주 중요하다.
이것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아주 달라질 수 있는데, 그 기준을 우리 주위에서 찾는
것보다는 가장 앞서 가는 선진국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소재, 우리가 맞춰야
할 표준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정보화 사회는 하루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급변하는 사회이다. 산업 사회에서는
사업을 일으키고 그 분야의 지도적인 주인공이 되는 데 최소 30 년에서 50 년이
소요됐지만, 정보화 사회의 초기인 지금 5--10 년이면 당당히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과거 50 년의 경험이 현재에는 5 년도 채 안 되는 시간 속으로 사라져 가는 것이다.
과거의 경험이나 기준을 가지고 머뭇거리다가는 시대에 뒤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 번 뒤지기 시작하면 좀처럼 시대의 변화를 따라갈 수 없다. 늘 깨어 있으면서
정보를 얻고 모아진 정보를 잣대로 삼아 늘 새로이 평가하고 판단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정보화 마인드를 가지자.
나는 지난 94 년 한5,23일 포럼에 참석해 일본의 각 분야 전문가들과 시대
상황에 대한 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다수의 참석자들은 일본 경제가 처한 어려움이 거품 경제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거품이 걷히는 과정에서 생기는 여러 상황을 들어 일본 경제의
어려움을 진단했다. 그러나 일부 소수의 참석자들은 일본 경제의 어려움은 정보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일본 경제의 바탕은 산업
사회적인 특징을 기초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보화 사회의 기동성과 창의성에
관련된 부문에서 일본 경제의 본질적인 취약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미국은
정보화 사회가 진행되면 될수록 더더욱 유리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일본이
교육에서부터 각 부문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인 틀을 '정보화'라는 기준으로 새롭게
정립하지 않으면 미국에 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일본 사회는 정보의 활용에 있어서 인간과 인간의 비공개적인 방식에 길들여져
있었다. 즉 정보 자체를 공유하고 객관화하는 데 무관심했다. 이것이 그들의 문화적
특징인 셈이다.
후기 자본주의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가장 핵심적이고 기본적인 요인은 규제와
통제가 아니라 시장 경제 원리와 창의성에 의한 자유 경쟁체제에 있었다. 이를 국가
경영에 얼마나 활발하게 반영하느냐가 지금까지 중요한 정책 과정이 되고 있다.
당시 한5,23일 포럼에 참석한 일본의 전문가들도 정부의 규제를 어떻게 하면 빨리
축소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주된 관심사로 삼고 있었다.
빌 게이츠는 창의성에 바탕한 자유 경쟁 시장에서의 승리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인물이다.
빌 게이츠가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표본이 되고 있는 미국 사회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번 인물이 되었다는 사실은 깊이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규제와 금기가 많은
한국이나 일본 사회에서 어떤 천재적인 청년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빌 게이츠만한 성공을 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만든 '주라기 공원'의 제작비는 6천
5백만 불이었다. 그런데 흥행 수입은 8억 5천만 불이었다. 이 액수는 우리 나라가
자동차 1백 50 대를 생산, 수출하여 얻은 이익과 비슷하다. 얼마 전 우리 경제가
잠깐 호황을 누릴 수 있었던 것도 국산 자동차 수출의 호조 덕분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영화 한 편으로 이를 능가하는 수익을 거둬들인 것이다. 창의성을 가진 몇
사람이 몇십만 명, 몇백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시대가 바로 정보화 사회라는
얘기다.
역사의 흐름은 정보화 시대를 향해 밀려가고 있다. 모든 경쟁력은 정보화의
능력으로 가늠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국가 경쟁력은 정보화 시대의 문턱에서
점차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대비해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먼저 이 흐름의
대세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 필요가 있다. 또한 새로운 시대를 주도하는 미국의
움직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새 시대를 맞기 위해 정보 초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있고, 정보 초고속도로를 건설을 통한 국가정보하부구조(NII)를 만들고 이
계획을 지구 전체에 적용하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이 구상이 실현되면
국경이라는 보호막이 일시에 사라져 전 세계가 미국이 주도권을 장악하는 영역이
되고 말 것이다. 미국은 인간의 사고 속에 들어 있는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286에서
386, 486, 586급으로 바꿔 놓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연구해 오고 있다.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는 두뇌를 초고속도로화 하려는 연구 끝에 '유전자 지도'란 것을
생각해 내고 백악관 주도 아래 '게놈 사업'을 비중있는 정책으로 전개하고 있다.
이런 모든 상황을 주시할 때, 앞으로 우리가 국가 조직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심각히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나아가 개인의 사고와 개인이 추구해야 할 직업적인
목표와 기업의 방향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를 심사 숙고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 나라 기업의 경향은 시장 수요를 따라가는 영업 지향형의 기업이었다가 점차
생산 지향형 기업으로 성장했고, 이제는 연구 지향형의 기업으로 바뀌고 있다.
이것은 바람직한 변화다. 연구 지향형 기업으로는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 소프트사가
대표적인데, 그들은 많은 인력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이익은 세계 어느 기업보다
많이 올리고 있다. 프랑스의 엘프사도 우리 나라의 재벌 그룹보다 높은 매출액을
올리고 있지만 계열사 중에서 제조 업체는 한두 군데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연구를 통해 얻은 특허권으로 로열티를 받아 막대한 수익을 얻고 있는 것이다.
기업 운영의 형태도 변하고 있다. 기업이 번창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한 발과 재주
많은 손만 있으면 되는 시대가 아니다. 이미 이 시대의 주요 기업은 창의적인
머리에 의존하고 이익을 남기고 있다. 미래의 세상은 두뇌 싸움으로 판가름난다. 이
전쟁은 '정보전'이고 현실적으로는 '지적 재산권 전쟁'이며 기술면에서는 '특허
전쟁'이다. 때문에 지적 재산권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가 기업 경영의
중대한 과제가 되고 있다. 일본에서도 '거품 경영'을 해 오던 '거품 기업'들이 감량
경영을 하고 있지만 지적 재산권 관리만큼은 오히려 강화하고 있다.
우리 나라가 갈 길도 여기에 있다. 여하히 높은 가치를 지닌 상품을 만들 것인가
하는 데에는 산업 역량을 결집해야 할 것이다. 스위스는 작은 땅덩어리와 적은
인구로 GNP 4 만 1천 불이 넘는 선진국의 대열에 섰고, OECD 내의 국가
경쟁력도 4, 5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스위스의 국립 대학에는 이공 계열 학과만
있을 뿐 인문 사회 계통의 학과는 없다. 이 정책은 과거와 지금이나 변함이 없고, 이
정책에 대한 국민의 믿음도 여전하다.
다변화의 현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시대에 맞는 적극적인 사고를 길러야 한다.
정보화 시대에 동참함은 물론이고 우리가 미래를 주도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제2장 작은 것이 유리하다.
정보화 사회의 특성
농업 사회에서는 특별한 정보라는 것이 없었다. 있다고 해도 한 지역 내에서
통용되는 편의상의 정보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국경마저 없어지는 정보화
사회가 되면서 지역 간의 벽은 무의미해지고 전 지구가 한 덩어리가 되었다. 말
그대로 '글로벌화'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보는 표준화되어야 하고 호환성도
있어야 할 것이다.
표준화로 가는 것은 명백한데, 중요한 것은 어느 기준으로 표준화가 진행될
것이냐 하는 문제만 남는다. 지금까지의 국제적 추세로 미루어 보면 최강자의
제도를 기준으로 표준화가 진행될 공산이 크다. 국방이든, 교육이든, 변호사 제도든
결국은 최강자인 미국이 추구하고 있는 표준이 국제 표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면에서 보더라도 현실 문제를 꿰뚫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정보화 사회가 더 진행되면 법 체계도 통일된다고 봐야 한다. 정보화
사회의 특징은 무엇인가? 자유 공개 경쟁과 호환성이다. 그러니 법도 호환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표준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각 세대에 따라서 표준화가 동질화가 가속화되어서 10 대라면 한국의 10
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10 대, 일본의 10 대, 유럽의 10 대, 세계
전체의 10 대의 사고가 비슷해질 것이다.
세대 간의 차이는 지금보다 더 심해질 것 같은데, 세대 간의 힘은 정보력과
활동력이 약한 노년에서, 정보력과 활동력이 강한 청년에게로 옮겨갈 것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젊은 세대가 나이 많은 세대의 표준을 따랐지만, 정보화 사회가 될수록
나이가 많은 층이 젊은 층의 표준을 맞추어 가는 추세가 될 소지가 크다.
정보화 사회로 가는 것은 아무도 거스르지 못하는 역사의 진행이다. 이 사회는
정보력에 의해서 부가가치의 크기가 결정된다. 아무래도 경제적 부가가치가 큰 쪽에
몰려서 경쟁을 하게 되는데, 물리적 상품 경쟁보다는 소프트웨어 상품의 경쟁이
치열할 것이다.
과거의 전쟁은 영토 전쟁이었지만, 미래의 전쟁은 정보 전쟁이다. 정보 전쟁은
구체적으로, 각 분야 전문가들이 벌이는 지식과 창의력과 아이디어의 전쟁이다.
그렇게 보면 정보 전쟁은 정보 초고속도로라는 네트워크 안에서 가장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다. 또, 산업 사회가 노동 생산성 경쟁의 시대였다면 정보화 사회는 지적
생산성 경쟁의 시대다.
과거 농업 사회에서 성실한 한 사람이 열 사람을 먹여 살렸다면, 산업 사회에서는
일당백, 즉 성실한 한 사람이 백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었고, 정보화 사회에서는
일당만, 즉 유능한 한 사림이 1 만 명 또는 10 만 명도 먹여 살릴 수 있다. 개인의
능력이 그만큼 크게 발휘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지금의 산업과 기업 형태에서 변화되어 가야 할 요소가
한둘이 아니다. 현재의 기업 구조도 바뀌게 될 것이고, 노동자의 입장과 의식도
바뀌게 될 것이다. 아울러 노동 조합의 기능도 지금과는 많이 달라지게 될 것이다.
지금의 노동 조합이라는 조직이 정보화 사회에서도 노조원을 위해 유익할
것인가를 따져 보아야 한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현재의 노동 조합은 새로운
변신을 필요로 하고 있다. 노조를 가장 잘 조직하고 가장 활발히 했던 나라가
어디였는가? 바로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였는가. 그 공산국가들이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가?
정보화 사회로 가고 있는 지금, 과거의 노조 기능과 역할도 변화되어야 한다.
정보화 사회는 능력 경쟁의 사회다. 힘을 모으고 조직화하고 분업화해서 하던 노동
집약적인 사회가 아니라, 개성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하는 지식과 지능이 사회다.
시대의 변화를 잘 읽어야 한다. 그래서 그에 맞는 의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보 혁명 시대의 기업 생존 전략
정보화 시대는 물질보다 정보가 더 중요한 자원이 되는 시대다.
앨빈 토플러는 "산업 사회에서는 자본가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었지만, 정보화
사회에서는 정보 소유자에게로 권력이 이동된다."고 소리 높여 단정하고 있다.
정보 혁명은 통신망의 발전, 즉 CATV, 근거리 통신망(LAN), PC 통신 등 기존
통신 기구들이 하나로 통합된 통합 정보망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는 사회 전반적인
구조와 생활 패턴의 변화를 주도할 것이며, 동시에 시장 구조를 바꿔 놓음으로써
기업 경영 환경의 변화 역시 불가피하다.
정보화 사회는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부문이 서로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되는
유기체적 사회가 된다.
산업 사회가 일방통행식 단선구조였다면, 정보화 사회는 쌍방향통행식 다중구조로
볼 수 있다. 대우주의 거시적 세계와 생명체를 구성하는 미시적 세계가 서로
어루어진 공존의 틀 속에서 조화와 발전을 이루어 가는 것처럼, 정보화 사회 역시
국가와 사회, 사회와 개인이 정교한 '멀티미디어 소프트웨어'로 조화를 이루게 된다.
이미 많은 개인과 사회와 국가의 벽이 무너졌다. 기업 역시 어떻게 해야 세계적인
'무국적 기업'으로 변신해 갈 것인가 하는 공통의 문제를 놓고 고심하며 종합적인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왜냐하면 '전 지구적 경제영토 확보전쟁의 시대'라 할
WTO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화 사회에서 시장 구조는 소품종 대량 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로
변화한다. 다양해지는 소비자의 기호에 신속하게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물건을 구매하는 방법도 직접 매장에 나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안방에서
모니터를 통해 버튼 몇 개를 눌러 주문하고, 우편으로 받아 보는 이른바 통신 구매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컴퓨터에 의해 가상 현실을 설정해 체험해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미 제품을 만들어
통신망에 띄우고, 이를 필요로 하는 주문자의 요구에 맞게 제품을 생산하여
판매하는 기업도 등장하고 있다.
또한 세계적 대기업을 필두로, 시장과 고객의 기호에 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최신의 디자인을 컴퓨터로만 생산하는 자동화 시스템도 갖추어져 있다. 이런
추세라면 고객들이 회사의 내부 조직을 훤히 알 수 있고, 심지어는 제품의 구조나
디자인의 결정에까지 참여하는 시스템도 곧 나오게 될 것이다.
정보화 사회의 기업은 다양하고 복잡한 주문자의 요구를 다 수용하려고 한다.
소비자의 요구와 수요가 바로 상품으로 이어짐으로서 생산량이 곧 소비량이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리엔지리어링 같은 기업내부의 경영 혁신과 기업 환경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새로운 경영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한 기업의 노력을 예로
들어보자.
뉴욕에 본사를 둔 전화 회사 '나이넥스'의 경영 혁명을 추진중인 리엔지리어링
팀은 지난 92 년 말부터 3개월간 약 6백명의 사원을 대상으로 면담을 벌인 결과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새 기계를 사기 위해 다른 부서를 10군데나 돌아다니고,
전신주에 관해 가장 잘 아는 전신주 설치 기능공이 사무 직원에게 어떤 전신주를
사야할지를 묻고 있었던 것이다.
이 회사는 일단 현업 부서 직원들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게 해야 한다는 개선안을 내놓았다. 그리고 경영진 15% 를 제외한 나머지
직원 4천 명 모두에게 '일반 대표'라는 직함을 주어 업무에 관한 한 만능을
발휘하게 하였다. 직원들은 모두 현업 부서 직원이 되어서 업무의 구분 없이 모든
업무를 혼자서 처리하게 되었다. 이 같은 변화를 위해서는 모든 자료와 기술의
데이터화가 필수적이었다. 각 부서의 업무는 컴퓨터에 의한 정보 처리 시스템이
대신하게 되어, 직원은 오로지 고객과 접촉하는 일만 하게 됨으로써 고객이
이리저리 담당자를 찾아 전화를 돌리는 비능률적이고 불쾌한 일은 사라지게 되었다.
'가장 싸게 잘 만들기만 하면 팔린다'는 자본주의 시장의 기본원칙과 분업주의와
기능주의라는 대전제는 정보화 사회의 통합적인 만능주의의 도도한 물결에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고도로 복잡하고 정교한 제품도 한두 명의 엔지니어가 1 만 달러도 채 안 되는
시스템을 이용하여 설계하고 생산하는 시대가 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꿈만 같았던 정보화 사회의 양상들이 기술과 생산 메커니즘의 혁명, 즉 정보 혁명에
의해 지금의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기업을 구성하는 절대 요소인 기획, 생산, 판매의 세 부문은 이제 예측,
기획, 연구, 개발, 생산, 판매로 이어지는 구조적 변화를 맞고 있다. 지적 활동이
가장 우위를 차지하고, 생산과 판매 조직은 전산화 점점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정보화 사회에서는 기존의 생산 공정과 영업 조직망을 어떻게 멀티미디어의
시각에서 조정하고 지휘하는가 하는 일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제 통신과 컴퓨터의 결합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정보 고속도로 시대의
입구에 접어들고 있다. 미국의 미래 분석가 R. 바네트와 J. 캐버너가 '글로벌
드림스'에서 지적한 것처럼, 세계의 변화를 주도해 갈 기업은 '지구 기업'이 될
것이다. 지구 기업이란 전 세계를 겨냥한 기술을 확보해 지구 어디에서나 생산할 수
있고, 판매도 가능한 상품을 개발하고, 돈의 흐름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며,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연결되는 통신망을 확보한 기업이다.
정보 혁명을 하지 않는 기업은 살아남기조차 힘들어진다.
아프리카에서 온 원료가 동남아 공장에서 미국의 자본으로 상품화되어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기업 경영 전략 역시 국경 없는
무국적 기업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해야 한다.
국경이 없어지는 것처럼 기업과 기업, 기업과 고객, 기업과 학계의 벽도 없어져서
지식과 정보의 장벽은 점차 사라지게 된다. 결국 멀티미디어 체제를 갖는 것이
정보화 시대 기업의 경영 전략이며 정보화 사회의 생존 전략이다.
발상이 바꿔야 산다.
이제 산업도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산업화 시대의 대표적인 산업으로 자동차 산업을 꼽는다. 사실 자동차는 산업의
발전을 종합적으로 반영하면서 꾸준히 발전해왔다. 그러나 정보화 사회로 변화함에
따라 다양한 기능을 가진 자동차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앞으로 자동차에는 정보화와 관련되는 여러 가지 정보 전자 기술이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초소형 저소음 고성능 엔진과 자동항법 장치가 부착되고, 팩스, 쌍방향 TV
와 같은 정보 통신 기능도 추가되어 움직이는 사무실로까지 발전해 가리라
기대한다.
결국 자동차도 정보화 사회라는 틀에 따라 정보화된 자동차로 변모해 갈 것이고,
이런 첨단 기능을 가진 제품을 어떻게 생산해 내느냐에 따라 경쟁력이 결정될
전망이다.
우리의 경우 말로는 정보화 사회를 이야기하면서도 생각과 행동은 여전히 산업
사회의 연장 선상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정보화 사회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며, 구체적으로 생활에 어떻게 반영되어 살아가야 하는지는 따져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산업 현실을 한번 돌아보자.
대구를 중심으로 한 섬유 산업은 한때 호황을 누렸다가 지금은 사양 사업으로
내몰리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인류가 섬유를 필요로 하는 한 사양 산업이 될 수
없는 것이 이치임에도 불구하고 사양 산업이 되었다면 문제는 업계 자체에 있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업계의 창의력이 모자라거나 연구 개발을 게을리 하여
기술력이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신발 산업도 그렇다. 신발 산업의 세계적인 중심지였던 부산은, 지금은 신발
수출경기 침체로 위기를 맞고 있다. 한때 경제 성장을 주도하며 호황을 누렸던 신발
산업이 졸지에 위기를 맞게 된 것도, 섬유 산업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일시적인
호황에 안주해 기술 개발을 게을리 했던 탓이다. 이제 신발은 싼 임금과 충분한
노동력을 가진 웬만한 개발 동상 국가라면 손쉽게 만들어 내고 있어,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호황을 누릴수록 더 좋은 신발, 더욱 매력적인 신발을 연구하여 계속 발전시켜
갔어야 했는데,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그 호황이 영원히 계속되는 줄로 착각하고
생산량을 늘리는 데에만 급급했고, 그 사이 동남아와 중국의 후발 생산 업체들이
손쉽게 신발을 만들어 더 값싸게 시장에 내놓았기 때문에 바이어의 발길이 끊어지고
만 것이다. 누가 같은 품질의 제품을 비싸게 주고 사겠는가?
한때 나는 부산에다 '신발 연구소'라는 걸 만든 적이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2백
불짜리, 3백 불짜리 신발을 만들어 세계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직립 보행을 하는 인간에게 신발은 없어서는 안 될 굉장히 중요한 물건이다. 발은
사람의 전체 체중을 싣고 움직이는 기능을 하는 만큼, 서서 활동하고 보행하는
시간이 많은 현대 생활에서 발이 신체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
그러니 신발 산업을 건강과 연결시켜, 위장 나쁜 사람이 신으면 좋은 신발, 비만에
걸린 사람이 신으면 좋은 신발, 고혈압이나 치매에 좋은 신발, 심지어 다이어트에
좋은 신발의 개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데도 우리 나라 신발 산업의 본산지인 부산의 신발 산업은 근로자들의 생계
보장은커녕 일자리마저 부족해 실업 사태에 빠져 있는 지경이다.
섬유든지 신발이든지 사람이 살아 있는 한 수요가 있게 마련이다. 정보화 사회가
아니라 기계화 사회라 하더라도 신발은 신기 마련인데 부산의 신발 산업이 왜
망했겠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발은 생산하는
시스템 관리 체제를 산업 사회 체제에서 정보화 사회 체제로 바꾸어 갔어야 했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신발을 가장 많이 사 갔던 미국은
신발 산업에 컴퓨터 설계(CAD)를 도입해서 제품에 대한 설계 시간을 1456,34100
로 줄이고, 과거에 6개월 걸렸던 제조 기계부품 생산을 컴퓨터 공정(CAM)을
이용해서 일 주일로 단축했다. 그 결과 최근 미국에서 생산하는 신발은 가격이
내려가서 가격이 싼 중국 제품하고도 경쟁력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왜 어떻게 하지 못했는가? 우리의 경우 신발 산업을 했던 분들은 대부분
자본만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니까 돈의 수입과 지출에 관계된
임금 체제라든지 시장 관리에 관심을 쏟았을 뿐, 기술이나 생산에 대한 관심이
적어서 그와 관련된 업계의 변화가 얼마나 혁명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보지
못했다.
지난 걸프전만 보더라도 그렇다. 혹독한 패배를 당한 사담 후세인도 지고 싶은
생각은 절대 없었을 것이다. 후세인은 100 대군을 거느리고 있었고, 사막을 달리는
최신에 탱크라든지 300억 이하는 전투기도 적지 않게 사들여 보유하고 있었지만,
어떻게 손써 볼 겨를도 없이 패하고 말았다.
많은 돈을 주고 사들인 전쟁 장비를 가지고 있었지만 군사 정보 체계는 갖추지
않아서, 정보 체계면에서 월등한 다국적군을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군전략 운용체제가 다국적군은 정보화 체제였고, 이라크군은 산업화 체제였다. 결국
전투조차 한 번 제대로 해 보지 못하고 패한 것이 걸프전 때의 이라크였다.
우리 나라의 섬유와 신발 산업도 내용으로 봤을 때, 이와 비슷한 입장이었다. 사담
후세인의 군대처럼 과거의 연장 선상에서 아무리 무장을 해 보지만, 그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일본 기계나 미국 기계를 헐값에 가져오는 것이었다. 그런 기계로 아무리
제품을 잘 만들어 봐야 신종 기계와 디자인으로 무장한 그들을 따라잡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섬유와 신발 산업의 패배는 기술과 정보, 그 모든 것을 관리하는 운용 체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지 못한 데에 그 원인이 있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도 선진국들이 기를 쓰고 추진하고 있는 정보화의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사회의 변화라는 것은 결국 핵심적인 고부가가치를 가지는
기술이 어떻게 변화하느냐 하는 데 달려 있기 때문이다.
산업계와 시장을 송두리째 내줄 것인가, 아니면 전 세계를 시장으로 삼을 것인가
하는 것은 지금 내리는 결단에 달려 있다. 지난 95 년 벽두에 마침내 '총성 없는
경제 전쟁'의 개막을 의미하는 WTO 체제가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이는 지난달의
단지 협정에 불과했던 GATT 체제와는 상당히 다르다. WTO 체제는 강제력을
지니고 있다. 이미 국경도 소용 없는 산업의 전면 전쟁 시대에 돌입해 있는 것이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에는 발상부터 바꿔야 한다. 그 동안 해 왔던 방식대로 무작정
노력만 계속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기업과 산업이 나아갈 방향은 정해졌다. 과거 산업화 시대의 구태의연한
생각을 청산하고, 무섭게 닥쳐오는 현실과 미래를 내다보는 일뿐이다.
정보화 사회의 국가 경쟁력
'경제 전쟁의 시대' '기술 전쟁의 시대' '정보 전쟁의 시대' '무한 경쟁의 시대'.
오늘날 이 시대를 상징하는 말들이다. 이 전쟁에는 공히 총성도 없고, 적과 아군의
구분도 없고, 국경도 없다. 하지만 승패의 우위는 분명하다. 그렇다면 지금도
밤낮없이 벌어지고 있는 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무엇일까?
기업 간에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무기는 '산업 기술력'이라고 한다면 국가간에
벌어지고 있는 전쟁 무기를 통틀어 '국가 경쟁력'이라 부를 수도 있다.
국가 경쟁력이란 한 마디로 역사의 진행 방향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신명, 그리고
이의 실천 속도라 할 수 있다. 역사의 수레 바퀴가 어디로 굴러가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국가와 민족은 승자로 남게 된다. 그리고 이것에 저항적이고
수구적인 국가와 민족은 시간이 지나면 패자로 남게 된다. 이런 선례를 우리는 지난
역사를 통해 수없이 보아 왔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산업 구조의 개편 문제,
정치적으로는 개혁과 사정에 따른 문제, 사회적으로는 도덕성의 타락과 가치관의
혼란 등 헤아리자면 한이 없을 정도이다.
우리는 짧은 기간 동안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가스 폭발 등 인재(사람
인, 재화 재)로 규정했던 많은 사고를 겪었다. 이 모든 사고는 우리 사회에 대한
신뢰감과 삶의 의욕마저 잃게 했다. 그렇다면 총체적 재난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과 문제 해결에 대한 접근 방식은 어떠했는가? 솔직히 우리의 이러한 일련의
국가적 재난을 없었으면 좋았을 불행한 사건으로 보았을 뿐, 안전한 사회 구축을
위한 연구 개발비 투자에 소홀했었다거나 사회를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한 기술적
장치가 없었다는 사실은 깊이 인식하지 못했다.
일본에서도 지난 1980 년대 중반 하네다 공항을 이룩한 JAL 기가 야마나시현에
추락해 260여 명이 사망한 대참사가 일어난 적이 있었다. 이미 그 때 한 일간지는
이 사건을 정보화 사회와 관련지어 보도했다. 당시 한 회사의 오사카 지점장들이
본사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동경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참사를 당했는데, 이
신문은 좀 더 일찍 정보화 사회가 구축되었더라면 회의를 위해 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도시를 오갈 필요는 없었다고 논평했다. 이러한 의미에서라도 하루빨리 정보화
사회를 구축해야 한다는 요지의 글을 실었다.
우리의 경우 대형 사고가 생기면, 대개 '교통부 장관 물러가라', '항공사 사장은
책임을 져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관리 행정의 소홀을 먼저 꼬집는다. 하지만 그
때 일본에서는 '금속 피곤증'이라는 생소한 용어를 쓰면서까지 사건 발생의 원인
규명을 위해 객관적이고 총체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일본은 사람이 과로에 의해 피곤해지면 건강에 문제가 생기듯이, 기계나 비행기도
과용하면 금속에 균열이 생기는 등의 문제를 일으켜 사고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이어 일본 여론은 사고 항공기를 만든 보잉사에 강력한
항의를 하고, 사고의 재발 방지에 관한 기술적인 대책 마련을 중심으로 사건을
다루었다. 대형 사고를 대하는 우리와 일본의 차이점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우리가 사건 자체에만 파고드는 근시안적인 태도를 가지고 인간 중심으로
문제점과 해결점을 찾으려 했다면, 일본은 점 더 객관적으로 사건을 보고 대안에
초점을 맞추는 합리성을 보였다. 또 우리는 관리 중심으로 사건을 보았던 것에 비해
일본은 기술 중심으로 사건 이해에 접근했던 점도 다르다.
또 다른 측면에서 우리를 당황하게 했던 우루과이 라운드를 보자.
UR 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큰 발전적 모티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협상 과정과 타결 이후의 실제 교역 상황에서 절감했듯이, 우리
나라는 경쟁력이 선진국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선진국들과
비슷한 책임을 강요당했을 뿐, 우리의 현실적 상황과 입장은 묵살당하고 말았다.
우리의 국제적인 현실 감각과 준비가 얼마나 취약했는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했던
사태였다.
경쟁은 우수한 자에게는 기회로 작용한다. 하지만 열등한 자에게는 생존 자체를
위협받는 엄청난 위험을 야기한다.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국경 없는 무한 경쟁의
상황을 두고 어떤 이는, 호랑이, 사자, 토끼, 사슴, 원숭이 등으로 분리하여 보호하고
수용하고 있던 동물원의 울타리를 하루 아침에 없애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의
국경이라는 보호 울타리가 사라지면 호랑이, 사자 같은 외국의 맹수 떼가 대거
기습해 온다는 뜻이다. 피하고 싶을 만큼 험난한 국제 현실이지만, 이들 선진국들과
교역하며 살기 위해서는 이를 인정하고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전문가들은 2010 년에는 세계 경제의 전체 부가가치 중 무려 75% 이상이
직5,23간접적으로 정보화 사회와 관련된 부문에서 발생한다는 공통된 지적을
내놓고 있다. 전산화, 자동화, 통신망화로 엮어지는 정보화는 국제화, 지방화와 함께
보다 근본적이고 보다 정밀한 국가 개혁을 요구한다.
개혁의 힘은 창의적인 사고와 행동에서 나온다. 우리는 그간 기술과 정보의
가치를 너무 가볍게 여겨 왔다. 이런 통념으로 기술 선진국에 무상 기술 이전을
요구했지만, 그들은 많은 돈과 노력을 들여 쌓아올린 기술을 쉽사리 내주려 하지
않았다. 정치의 우방은 있어도 기술의 우방은 없다. 이런 시대이기 때문에 이제
우리도 기술 주권을 확보하고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여기에
다른 방법이나 왕도는 없다. 국민의 총에너지를 미래 지향적, 창조 지향적으로
결집하여 국내적으로는 기술 독립 정신을, 국제적으로는 기술 협력 전략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제 현실에 대한 인식을 분명히 하고, 교육 혁명을
통해 창의적 사고를 길러 기술 일등 국민이 될 때까지 노력하는 도리밖에 없다.
스위스의 경우, 우리와 같이 부존 자원이 빈약하고 국토의 65% 가 산악 지대인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손꼽히는 선진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실험
정신, 창의성 중심의 교육과 과학 기술을 키우는 정책과 행정을 펴 산업 경쟁력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최근 선진국들은 산업 경쟁력과 더불어 총체적인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사회 정보화를 서두르고 있다. 미국은 지난 89 년에 이미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경쟁력 위원회'를 발족시켜 '91 년에는 '미국기술우위법안'을 제정했고, 93
년에는 국가의 총체적인 과학 기술 기구인 '과학우주에너지기술부' 설립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국제 경쟁력 회복을 위해 대대적으로 정책을 정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초점은 민간 자율에서 정부 주도로 과학 기술 정책을 전환해 종합
조정 기능을 강화하는 것에 있다.
일본은 21세기 정보 중심의 국가 체제를 건설하기 위해 의회내에 '하이테크족'
의원 그룹 중심으로 기술혁신 지원활동을 선도하고 있다.
우리의 경쟁국인 중국도 '과학 기술이 제일 생산력'이라는 인식 하에
'과기흥국(과정 과, 재주 기, 흥할 흥, 나라 국)'의 노선을 확보해 가고 있다. 전국의
38개 도시에 '신기술 산업 개발구'를 건설중에 있고, '남조선 경제연구소'를 설립하여
한국의 경제 성장 과정을 분석하고 있다. 또한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하여 정보
행정 조직을 구축하고 주요 보직에 전문 행정 요원을 포진시키고 있다.
또한 EC 도 '과거의 영광 회복은 과학 기술 개발로'라는 기치 아래
과학기술공동체(ETC)를 설립해 정보 기술, 통신 기술, 신소재 기술 등 첨단 기술
확보를 위한 공동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선진국 행정체제 개편전략의 핵심을 눈여겨 살펴보면 무엇보다 이들 국가들은
국제화, 정보화, 지방화를 위한 기민한 정부, 작은 정부를 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중앙 정부는 국제화 조류에 효율적으로 부응하기 위해 국내 행정의
상당 부문을 지방 행정의 창의와 자율에 맞기고 있으며, 또한 국제 정보 수집과
동향 분석을 강화하고 있다. 정보화 사회로 나아가는 데는 특정한 한 부문의
경쟁력만으로는 안 된다. 따라서 사회 모든 부문의 정보화를 이끄는 중추적 역할을
정부에서 맡아야 한다.
앨빈 토플러는 이제부터의 세계는 '빠른 자와 느린 자의 세계'로 나눠질 것으로
예견했다. 원시 생물은 느린 신경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보다 진화한 생물의 신경
계통은 신호의 처리가 빠르다. 이는 원시 경제와 선전 경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종의 발전에서건 국가의 발전에서건 권력은 역사적으로 느린 자로부터 빠른
자에게로 이동해 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국가의 경쟁력은 결국 멀리, 그리고
빨리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가지는 일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이 속도와 기술의
이데올로기를 유념해야 하겠다.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이 과제는 눈앞의 현실만을 보고는 풀어 나갈 수 없다.
역사의 큰 흐름을 보고 종합적이고 근원적인 방안을 마련해 나가야 그 대안을 세울
수 있다. 행정 체제는 기술 전문 행정 체제로, 정치는 기술 정치로 과감히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국민 개개인은 생활을 과학화해야 한다. 그래서 미래를 멀리, 빨리,
정확히 내다보는 지혜가 사회 전반에 정착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나라도
비로소 미래 사회에 걸맞는 틀을 갖춘 경쟁력 있는 국가가 될 것이다.
과학 기술력이 국력이다.
지난 백 년 동안의 과학은 인류의 생활과 문명을 지난 수천 년 간의 발달과
맞먹을 만큼 향상시켰다. 어쩌면 그 이상의 전혀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학은 인류가 지금껏 겪어 보지 못했던 하이테크 시대로 이끌어
가고 있다.
과학의 세기, 정보화의 세가가 될 21세기에는 자원의 양이나 영토의 크기, 인구의
수보다도 기술의 수준과 정보의 양으로 국력이 결정될 것이며, 인간의 두뇌가 더
크고 영향력이 있는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과학은 복잡한 학문적 이론의 결합체이며, 인간과 자연을 이해하기 위한 단계적인
탐구일 뿐이다.
상식적이고 기초적인 이론들을 모아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고, 그런 사실을
바탕으로 더 큰, 또 다른 사실들을 밝혀가고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해 온 이런
노력들이 오늘의 과학 문명을 낳았다.
그 동안 우리는 세계가 경탄할 정도의 놀라운 발전을 거듭해 왔다. 낙후된 농업
국가에서 세계 열두번째 무역 대국으로, 역동적인 산업 국가로 성장했다. 이 같은
발전을 가져다 준 것은 다름아닌 끊임없는 연구 개발과 과학 기술이었다.
세계는 군사력, 경제력 주권 시대에서 과학 기술, 정보 주권 시대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세계의 선진국들이 이 시대의 더 많은 가상 영토를 확보하기 위해
과학 기술을 무기로 한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다 국제 무역 질서가 선진국들의 뜻대로 좌우되는 WTO 체제까지
출범되었다. 숨 돌릴 틈 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국제 환경의 변화 속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은 그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뿐이다.
지구촌 무한 경쟁의 핵심은 '특허 전쟁'이다. WTO 체제 하에서의 국제 무역
질서라는 것도 결국은 기술에 대한 지적 재산권 전쟁으로 귀착되고 있다. WTO 의
무역 대상은 이제 물건이 아니라 정보, 바로 기술이다.
그래서 요즘 많은 사람들이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의 약자인
WTO 를 세계기술기구(World Technology Organization)로 이해하고 인식하고
있다. 이런 인식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어쩌면 가장 중요하고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이 시대의 변화에 따른 이해와 그에 맞는 발상법을 갖는 일일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최근 많은 기업들이 기술 개발과 특허 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연구소를 설립하고, 산업 재산권을 기업 경영 차원에서 관리하며 기술
개발 능력을 향상시켜 나가고 있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학계에서도 산업
재산권 관련학과나 강좌를 두는 대학이 많아지고 있어, 우리 나라 과학 기술과
경제의 앞날을 밝게 하고 있다.
미국에는 다양한 분야의 첨단 연구소가 설립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연구소를 만들어 가고 있다. 많은 연구소에서 연구 개발을 통해 더
많은 특허권을 만들어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통념으로, 우리는 '특허'라는 것이 그 기술에 의해서 독점 배타적으로
상품을 생산해서, 일정 기간 동안 가격 경쟁 없이 시장에 내다 팔아서 많은 이익을
챙기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이점 때문에 특허를 갖기 위해서 모든 기업들이 애쓰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지금 추세는 특허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특허권 자체를 빌려 주고 돈을
벌어들이고, 심지어는 상대에게 자신이 보유한 특허권을 침해하도록 유도한 다음
막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통해 목돈을 챙기고 있다. 그리고 상대 기업체가 어떤
분야에 대한 기술 개발을 하려고 하면, 그에 상위하는 특허를 무기로 개발을 못하게
방해하기도 한다. 이처럼 오늘날의 특허는 처음의 개념과는 아주 다른 형태로
변질되어, 상대 기업체를 위협하는 무기로 악용되고 있다. 이제 특허권은 경영자가
가진 최고의 경영 전략이자 수단으로 이용되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가 생각해 오던
개념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다.
나는 1973 년에 변리사 시험에 합격하여 자격을 취득했는데, 당시만 해도
변리사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변리사가 뭘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있었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병아리 감별사'를 변리사라
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나는 변리사 시험에 합격한 뒤 미국 특허청 심사원
연수과정에 들어갔다. 민간인 자격으로는 한국에서 내가 처음이었다. 그러니 참고할
만한 자료조차 제대로 구할 수 없어서, 공부를 하는 동안 무척 고생을 했다.
하지만 일본에서 온 사람은 8 명이나 되었다. 그 때 이미 미쯔비시라든지 도시바,
소니 같은 기업체에서 직원을 파견해 교육을 시키고 있었고, 그들에게 물어보니
벌써 훨씬 이전부터 선배들이 교육받아 왔다는 것이었다. 그 중에는 신청한 지 5 년
만에 온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선배들이 공부했던 자료들을 모두 가지고
이미 예습을 다 마친 상태였고, 그것도 부족해서 공부가 시작되기 6개월 전에 와서,
수업과 관련되는 미국의 법률 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힌 뒤 심사원 과정에 들어온
것이었다.
20 년도 지난 그 때 벌써 일본인들은 미국의 특허법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있었다. 왜 그런 공부를 했겠는가? 미국의 특허 심사 과정이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알아서 일본 기업이 여기에 대처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일본은 미국과의 무역에서 엄청난 흑자를 내고 있다. 너무 많은 흑자를 내게 되어
오히려 문제가 되고 있을 지경이다. 일본의 이 엄청난 흑자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미국에 특허를 출허해서 허가를 얻어 내는 순위를 보면 1위부터 6위까지가 일본
회사들이다. 일본 회사들은 미국 시장 내에 지적 재산권이라는 교두보를 여기저기에
설치해 두고 이것을 발판으로 오늘날의 대미 흑자를 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대일 무역 적자를 줄이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일본이 별 어려움
없이 엄청난 흑자를 내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앞으로의 무역 전쟁은 지적 재산권 전쟁이다. 미국은 누적되어 가고 있는
고질적인 무역 적자에서 벗어날 수 있는 티켓을 지적 재산권 확보에 두고, 이
분야에 국가적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래서 물리 화학을 공부하고 이 분야의 경력을 쌓아온 이를 CIA 국장에
임명하기도 했다. 이는 지적 정보에 관련되는 국가 이익을 CIA가 나서서 직접
관리하겠다는 말이다.
이 의미를 잘 알아야 한다. 미국의 이런 포석과 수순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들에게
또 당할 도리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문화만이 살 길이다.
미래에는 각 부문이 지금보다 더 전문화되며, 동시에 그 전문 정보는 모든 사람이
쉽게 접할 수 있어 사회가 공유하게 된다. 이런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각
분야마다 전문성을 더 갖추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지금 우리의 실정으로 보면 가장 많은 전문인을 키워온 집단은 기업이다. 치열한
세계적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전문성을 가진 사람으로
임원진을 구성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외풍을 덜 받는 부문의 전문화 수준은 너무
약하다. 이는 공직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행정 인력 가운데 전문 인력이 차지하는 비율은 13% 정도이다. 정치는
2% 정도이다. 그러니까 우리 정치와 행정은 정보화 사회로의 발전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한 사회 구조 속에서는 이런 대처 능력이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기업의 수준보다 못한
실정이고 기업에 비해 훨씬 비전문적이고 비능률적이다.
이제는 모든 부처가 과학과 기술이라는 전문성과 정보화에 근간을 두고 행정의
역량을 기울여야 한다.
세계는 말 그대로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고 있다. 급격한 세계의 변화를 가만히
보면, 이는 개념 자체가 달라지는 근원적인 변화다.
과거에는 흔히, 보유한 자본이 많은가 적은가, 생산하고 판매하는 제품의 외형이
큰가 작은가에 따라서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분류했는데, 이런 분류가 무색해지고
있다. 이제 자본과 더불어 기술과 정보에 중심을 둔 전문 기업의 시대가 개막되고
있다.
보잘것없는 자본금을 가진 아주 조그마한 컴퓨터 프로그래밍 전문 업체였던
마이크로 소프트사가 몇 개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으로 세계 시장을 석권했고,
일본의 닌텐도나 세가 같은 게임 전문 업체는 게임기만을 팔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다른 사람은 가질 수 없는 독자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이 밑천이며, 이것만 있으면
얼마든지 사업을 펼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뛰어난 기술과 아이디어만 있으면
밑천 없이도 뜻을 펼칠 수 있는 사회가 정보화 사회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이디어가 없고 기술이 없어서 기업을 못하는 사회가 정보화 사회인 것이다.
오늘날 분야의 최고 상품을 가진 소수의 전문 업체가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전 세계를 시장으로 상품을 팔고 있다. 세계 최고의 제품을 생산해야만 상품성을
인정받고 그만한 부가가치를 얻는다.
우리 나라 대기업들은 못 만드는 물건이 없다. 예전에는 이것이 자랑으로
여겨졌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결코 그것이 자랑일 수 없고, 제대로 된 물건
하나를 생산하는 것보다 수익도 더 못하다. 이처럼 다양한 상품을 고만고만하게
만들다가는 하나하나 경쟁력을 잃어 결국에는 총체적인 난국에 봉착할 우려가 크다.
우리 나라의 어느 재벌 그룹에서는 용접봉까지 자회사에서 만들어 쓴다.
자급자족이란 측면에서는 의의가 있고 채산성도 맞을지 모르지만 이런 회사의
미래는 그리 밝지만은 않다. 모르긴 해도 용접봉만 전문으로 연구하고 생산해 온
세계적 메이커와 경쟁한다면 품질이나 가격 면에서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 어떤 제품이라도 상품성을 국제화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제품을
생산하더라도 우리 나라 시장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시장에도 경쟁을 통해 진출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부문에서 울타리를 풀 수밖에 없는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이제는
자본과 인력의 힘으로 사업을 하던 대기업의 시대가 아니라, 기술과 정보의 힘에
중심을 둔 전문 기업의 시대다. 이것이 정보화 시대의 산업 구조이다. 이런 변화를
확실하게 인식해야 한다.
아직까지 우리는 자본이 '주(주된 주)'고, 기술이 '종(따를 종)'이라는 통념을
가지고 있다. 정보화 사회를 이끄는 중요한 사업인 CATV 라든지 통신 사업체도
기술을 가진 기업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자본이 있는 사람에게 허가를 내주고
있다.
그런 사람이 자본을 담보로 사업권을 따고 독점권을 따서는 외국에 나가서 좋다는
기계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판권을 마구 사들인다. 전문 지식이 없다 보니 가격을
부르는 대로 사 오는 바람에 가격만 엄청나게 바뀌게 만들어 놓는다. 그 예로 한때
외화 수입 사업이 괜찮다 하니까 여기저기서 뛰어들어 한 편에 2 만 불이면 수입할
수 있었던 것도 10 만 불, 20 만 불, 30 만 불로 값이 뛰게 만들었다. 자본만으로
사업을 추진하다 보니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철저하게 기술이 '주'가 되고 자본이 '종'이 되는 그런 환경이 되어야 전문
기업으로의 성장이 가능하다.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진 것만으로도 자본이 따라오게
할 수 있는 사회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미국은 이미 그런 제도를 만들어 놓고
있으며, 그로 인해 빌 게이츠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에는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전문가들이 그들이 가진 기술과 아이디어를 상품화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들이 새로운 기술이나 아이디어라는 씨앗을 가지고 있으면, 이
씨앗이 싹이 틀 씨앗인지 아닌지를 판단하여 뿌려볼 수 있는 업계라는 논밭에
파종하는데 드는 비용을 아주 쉽게 빌려 주어 이들을 지원한다.
그러면 신규 사업자는 그 자본으로 창업을 하게 되는데, 그들이 뿌린 씨앗 중에는
싹이 돋는 것도 있고, 돋지 않는 것도 있다. 사업성이 없어서 죽으면 그만이지만,
싹이 돋으면 그때부터는 금융 기관과 연결을 지어 주어 기술 금융으로 뒷받침해
준다. 부동산 담보도 필요없다. 정부가 마련한 기술 보험 제도가 뒷받침해 주기
때문이다.
그것이 정상적으로 자라서 드디어 열매를 맺어 기업화가 가능한 수준이 되면 주식
시장에 상장할 수 있게 되는데, 우리처럼 상장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리고 상장이
되면 아이디어가 상품화하기까지 투자된 인건비를 포함해 그 동안 들어간 모든
비용을 합쳐서 자본금으로 인정해 준다.
미국의 주식 시장이란, 새로운 기업이 탄생하기 위한 기술과 자본, 벤처 기술과
벤처 자본이 만나서 사업을 도모하는 공간이다. 우리의 주식 시장처럼 당기
순이익을 가지고 이익을 보고 손해를 보는 제로섬 게임의 장이 아니다.
이런 지원을 받으면서 자라난 기업을 상대로 국내외의 갖가지 규제로 악전
고투하는 우리의 중소기업이 경쟁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제 모험
정신과 전문성을 갖춘 기업들을 실제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 나라 경제의 미래가 이들 창의적인 전문 기업의 성공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게임 산업을 주목하라.
정보화 사회가 되면서 순식간에 상상을 초월할 만큼 거대한 시장을 형성한 산업이
게임 산업이다.
전자 오락이라는 이름으로 게임이 국내에 처음 들어왔을 때, 청소년들이 공부를
안하고 전자 오락에만 빠지면 어떡하나, 그러다 나쁜 길로 빠지는 건 아닐까라며
숱한 걱정을 했다. 청소년들에게 미칠 악영향을 걱정하면서, 그대로 방치할 것인가
말릴 것인가를 망설이고 있는 동안 게임 산업은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우리
나라에서는 첨단 게임 산업을 단순히 어린이들의 공부를 방해하는 해로운 놀이
정도로 여기고 배척하는 사이 일본의 닌텐도, 세가 등 게임 업체들은 우리 나라에서
제일 가는 그룹의 연간 매출액보다도 많은 매출 실적을 기록하며 세계적인 초우량
기업으로 성장, 게임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순이익을 따져 보면 우리 나라 대기업의
5배가 넘는다.
세가의 경우, 95 년부터 매년 1천억 엔씩 매출 신장을 해 오고 있다. 우리 기업이
그 정도의 경이적인 매출 신장을 올린 적은 없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는 정보화
사회가 어떤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고 있으며, 산업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직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새로운 문물에 대해 지나치게 배타적이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사실은 역사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 보더라도 느끼게 될 것이다. 서양이 산업
혁명이라는 역사의 큰 흐름을 타고 있을 무렵, 우리는 그 바람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산업화 초기의 상품을 싣고 프랑스 선박과 미국의 선박이 우리
나라를 찾아왔을 때에도 서양 문물을 들어오면 양반이 상놈된다고 문을 꼭꼭 닫아
걸었다. 그렇게 문을 닫고 있는 사이에 세상은 많은 변화를 겪고 있었고, 우리의
문물은 그만큼 뒤쳐졌으며 결국은 일본에게 36 년간 식민지로 지내야만 했다.
어떤 상품이 구매욕을 자극하는 것은 결국 그 상품이 인간의 본성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전자 오락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유희 본능을 시대에 맞게
충족시키고 있다. 게다가 그 놀이 속에는 정보화 사회의 모든 유익하고 흥미로운
요소가 담겨져 있다.
인간이란 어쩔 수 없이 본능의 요구에 따라 관심을 쏟는 존재다. 인간의 보편적
본능이 향하는 곳에 그물을 치고 기다리면 돈은 자연이 벌게 된다.
중국 사람들은 인간은 본능적으로 먹는다는 사실에 중점을 두고 먹거리를 만들어
돈을 벌었고, 유태인들은 여자들의 귀금속 선호를 간파했기에 돈을 벌 수 있었다.
요즘에 와서 드는 생각 하나는 인간은 게임의 동물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남녀의 사랑도 결국은 게임이 아닐까?
씨름이나 레슬링 같은 스포츠도 힘 겨루는 게임을 즐기다가 그것에 룰과 규칙이
생기면서 스포츠가 된 것이고, 권투나 축구 등 올림픽의 모든 종목도 게임이다.
그러니 게임이 산업화되어 가는 이치는 너무도 당연하다.
컴퓨터 게임에서는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격투기 왕이 되기도 하고, 스포츠
스타가 되기도 하며, 전쟁 영웅이 되기도 한다. 혹은 의자에 편안히 앉아 느긋한
두뇌 게임을 즐길 수도 있다.
고감도의 현실감 있는 게임도 나와있다. 이것은 우리는 '버츄얼 리얼리티
게임'이라고 한다. 현장에 가지 않더라도 흡사 현장에 가 있는 것처럼 느끼면서
게임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게임 시장은 그 성장을 우리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시장이다. 미래의 산업은 결국 이런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그러면 게임 산업은 어디까지 발전해 갈 것인가?
나는 게임 산업의 발전 가능성은 거의 무한하다고 본다. 우리 나라 전체 예산의
50% 이상이 국방과 교육 예산이다. 앞으로는 단순한 오락 기능을 넘어
군사5,23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게임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면은 최소화하고 게임의 긍정적인 면과 교육적인 면을
결부시켜 우리 교육의 두뇌 생산성을 최대화시켜야 한다. 이런 점에서 게임은 산업
사회에서 교육의 독이었을지 모르지만, 머리의 힘을 필요로 하는 정보 사회에서는
탐구심과 창의성을 자극하는 교육의 약이 될 것이다. 그만큼 게임 산업의 파급력은
엄청날 것이다.
게임은 모든 산업에 적용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 더더욱 눈부신
발전을 거듭할 것이다.
게임 산업을 국가 산업으로 육성시키기 위해서는 게임 문화에 대한 이 같은
그릇된 사회 인식이 바꿔져야 한다. 부모들의 염려와 달리 게임 산업은 교육
발전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교육에 게임 산업을 접목시킬 경우, 단순한 암기 및 주입식 학습 방법에서 탈피,
즐거운 마음으로 학습 효과를 크게 높일 수 있다. 또 정부 각 부처가 부처 간
이기주의를 버리고 협력을 통해 민간 기업 투자를 유도하는 것도 게임 산업 발전을
위해 시급히 해내야 할 과제이다.
대기업들이 게임 산업에 투자하려 해도 공중 위생, 건축, 학교 보건 등 여러 가지
관련 법령에 의해 제약을 받고 있다.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히 풀고 민간 기업들은
협력을 통해 경쟁력을 하루빨리 강화해야 한다.
이런 일을 한번 상기해 보자.
중동전 때, 이스라엘은 미국에서 팬텀기를 사고 싶으니 팔라고 했다. 그러나
중동의 석유 메이저들과 유대를 가지고 있었던 미국은 쉽사리 팔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산유국들의 눈치를 보니 잘못했다가는 입장만 난처해지고 오히려
손해보겠다 싶었던지 미국은 우물쭈물하다가 결국은 팔지 못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할 수 없이 프랑스로부터 미라주기를 샀다. 바로 그
미라주기를 가지고 이스라엘은 중동의 적국들이 가지고 있는 미그기를 상대로
전투를 하게 됐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은 팬텀기를 가지고 월맹의 미그기를 상대했다. 그래서
팬텀기 한 대로 미그기 두 대를 떨어뜨렸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공중전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했다고 평가했다.
이를 경제적인 측면에서 생각해 보자. 팬텀기 한 대의 가격은 대략 200억에서
300억 정도이다. 20 대 잃을 것을 10 대만 잃었다면, 2천억에서 3천억 손실을 줄인
셈이다. 미군기 한 대가 월맹기 두 대를 떨어뜨렸으니 굉장한 손실을 줄였다. 이를
압도적 우세라고 생각할 만하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경우, 미라주기 한 대를 가지고 미군이 상대했던 미그기를 몇
대나 격추시켰을까? 자그만치 20 대였다. 이를 경제적으로 환산해 보면, 조종사 한
사람이 잘 싸워서 줄인 손실이 미국의 열 배나 되었다. 미국은 물론 세계가 깜짝
놀랄 일이었다.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비결은 전자 게임의 원리를 이용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훈련'에 있었다.
이스라엘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가장 먼저 생각해 냈고, 제일 먼저
개발했다. 이들은 미그기와의 전투 상황을 가상해서 시뮬레이터에 입력해 놓고, 이
기계 앞에 조종사를 앉혀서 마치 실제 비행기에 타고 전투를 하는 것처럼 미그기를
상대로 충분한 가상 전투 훈련을 했던 것이다. 그 훈련을 철저하게 받고 미라주기를
타고 전투에 임했으니, 적기인 미그기가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공격해 올지를
훤히 내다보며 공중전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이다. 가상 현실을 이용한 연습을 통해
이스라엘의 전투기 조종사들은 이미 노련한 베테랑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미주라기 한 대로 세계 최고의 장비와 최고의 훈련을 받았던 미국
조종사도 2 대밖에 잡지 못한 미그기를 20 대나 떨어뜨릴 수 있었던 것이다.
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한 정보전인 현대의 전쟁은 결국 게임같은 것이다.
걸프전을 보았지만 전쟁 상황은 마치 모니터를 통해 전자 게임을 하는 것과 같았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이미 군사 훈련을 응용하고 있다. 민간 비행 훈련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자동차 운전 연습 시뮬레이션도 나와
일상 생활에서 응용되고 있다.
대규모 군사 훈련도 컴퓨터를 통해 가상의 상황에서 치루고 있다. 그렇게 되면 '팀
스피리트' 훈련을 할 필요도 없게 된다. 막사에 앉아서 훈련을 해도 실제의 '팀
스피리트' 훈련을 몇 번 되풀이하는 이상의 훈련 효과를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앞으로는 교육에 있어서도, 학생이 자신의 수준에 맞는 교육
소프트웨어를 구입해서 안방에서 스스로 하는 시대가 온다. 그럴 경우 학습의
진척은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수업을 받던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히
빨라질 것이다.
이제는 교육의 기본틀도 깨지는 시대가 되었다. 앞으로는 게임을 하듯이 재미있게
수학과 영어를, 과학과 지리를 공부하는 날이 올 것이다. 이미 교육계에는
교육(Education)과 오락(Entertainment)을 합친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라는
개념이 생겼다.
컴퓨터 게임 산업은 이처럼 다양한 영역으로 활용 범위를 넓혀 가고 있다. 교육의
측면에서든, 산업의 측면에서든, 군사적 측면에서든, 오락의 측면에서든 게임 산업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현실을 주목해서 게임 산업과 관련한 우리의 기술력을 키워 나가야 할
것이다.
정보와 기술의 싸움
WTO 체제가 출범한 후 1차적으로 미국과 일본 간에 자동차 전쟁이 벌어졌고,
WTO 체제로 인해 수세에 몰린 일본은 제소를 하겠다고 맞섰다. 미5,23일 간의
자동차 분쟁의 귀추를 보면 WTO 체제의 방향과 정체가 드러나겠지만, 세계 경제의
흐름을 주도하는 큰 맥이 될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선 이 세계무역기구의 '무역(Trade)'이라는 것이 무엇을 대상으로 하겠는가
하는 것부터 생각해 보자.
지난 역사를 통해 살펴보면, 농업 시대에는 농산물이 무역의 주대상이었고, 산업화
시대에서는 농산물에서 좀 더 발전한 상품, 그러니까 기계나 직물 등 노동과 기술을
더해서 만든 물건이 무역의 주된 대상이었다. 그렇다면 정보화 사회에서는 무역의
대상이 무엇이겠는가? 바로 정보화 기술이다.
산업화 시대의 정보화 시대의 무역 상황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극단적인
대비를 해 보자.
미국이 영화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영화 중 '주라기 공원'이라는 영화가
있다. 그는 이 영화 한 편으로 영화가 상영되었던 지구 곳곳에서 대략 8억 5천만
불의 흥행 수익을 거둬들였는데, 이 액수는 우리 나라가 1백 50 만 대의 자동차를
만들어 수출한 수익과 맞먹는 것이다.
또 우리 나라에도 들어와 있는 글락소라는 제약 회사가 개발한 '라미티딘'이라는
위궤양 치료제가 있다. 이 회사는 이 약을 1 년 간 팔아서 우리 나라가 컬러 TV 를
천만 대 수출한 총액과 맞먹는 수익을 세계로부터 거둬들이고 있다. 물론 뛰어난
약효가 있었기에 전 세계에 널리 팔 수 있었겠지만, 대학에서 약학을 전공했던 나는
이 약이 왜 하필이면 위궤양을 치료하는 약이었는가 하는 데에 관심이 갔다.
농업 사회에서는 육체에서 먼저 병이 생겨서 정신적인 병으로 옮겨 간다고 보면,
정보화 사회에서는 스트레스 같은 정신적인 이상이 먼저 와서 그 영향이 육체의
병으로 이행해 간다. 시대가 점차 정보화 사회로 가면서 증가하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교감 신경을 자극하고, 그 자극이 교감 신경과 길항(열심히 일할 길,
막을 항)적 관계에 있는 부교감 신경의 작용을 억제시켜 신체에 병을 일으킨다.
그래서 나올 수 있는 병이 위궤양 같은 신경성 질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에게는 소화 불량, 위궤양 등 위 관련 질환이
많다. 농사 짓는 사람들에게는 위궤양이 잘 생기지 않고, 군대에 가서 위궤양을
고치고 나오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면, 이 또한 복잡한 정보화 사회로 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한 현상일 것이다. 이런 현상에 착안한 글락소에서는 위궤양
약을 만들었고, 그 결과 성공적일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지금 우리 나라가 수출을 이끌고 있는 주력 상품이 자동차와 컬러 TV 인데, 고작
약품 하나, 영화 한 편의 수입으로 무역 수지가 상쇄되어 버리니 좀 허탈한 감이
든다. 지금 바로 이런 식으로 산업화 사회와 정보화 사회간의 치열한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다.
게임 산업을 키우자.
반도체 기술의 발달로 PC 용량이 증대되고 주변 장치가 발달함에 따라 컴퓨터
게임은 점점 더 실감나고 재미있게 나아가고 있다. 아울러 오늘날의 게임은 교육
효과와 실용성까지 더해져, 비행훈련 시뮬레이션 등 군사 분야에 응용되기도 하고,
교육과 의료 분야에도 폭넓게 쓰이는 놀라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또한 세계적인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으로 게임 소프트웨어는 세계적 산업으로 성장할
전망이어서, 각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에 따라 선진국에서는 게임 산업을 국경과 문화권을 초월한 첨단 산업, 미래의
전략 산업으로 파악하여 과감한 투자로 집중육성 하고 있다.
오락에서 게임 산업이 시작되었지만, 오늘날에는 교육이나 실용화 측면이 더
강조되고 있다. 교육(Education)과 오락(Entertainment)이 합쳐져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란 개념이 만들어졌고, 전투 조종사의 비행 훈련과
우주에서의 가상 훈련을 시뮬레이션하고 있다.
우리의 게임 산업을 1970 년대 말 미국의 전자 오락기를 도입하므로써
시작되었다. 이를 모방한 우리의 기술은 일본과 비교해도 별 차이가 없는
수준이었으나, 일본은 초기부터 이에 대한 육성책을 펼친 반면, 우리는
비교육적이라는 단편적인 인식 탓으로, 보호 육성은커녕 규제 대상 사업으로
취급하여 지하 산업으로 음성화되어 버렸다. 그 덕택에 1980 년대에는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가내 공업 수준의 지하 업체에서 외국 제품을 불법으로
복제하는 것으로 명맥을 유지해 왔고, 1990 년대 들어서는 외국의 통상 압력에 따른
저작권법 강화로, 불법 복제의 단속과 처벌이 불가피해져서 속수 무책의 큰 시련을
맞고 있다.
이에 따라 게임 수요가 급증한 지금, 우리의 게임 산업 기술은 선진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낙후하여, 세계 시장으로의 진출은 고사하고 국내의 수요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래서 국내 시장의 90% 를 일본을 비롯한 외국 선진
기업에 감식당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일본의 닌텐도, 세가, 소니, 3 DO(다국적 기업) 등을 주축으로 한 주도적 게임
메이커들은 순식간에 세계 게임 시장의 80% 를 석권했다. 이들의 절대적 독주가
가능했던 이유는 각 기업의 노력도 있었지만 이 밖에도 사회의 호의적인 인식과
정부의 지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게임 산업의 성장에 따라 일본의 교육 기관을 60여 개나 되는 게임 학교를
설립하여 만화가, 애니메이션 전문가, 전문 작가, 작곡가, 디자이너, 프로듀서, 감독
등 컴퓨터 게임 전문가들을 배출해 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도 컴퓨터 게임 전문 인력을 길러 낼 교육 기관이 전무한
실정이다. 더구나 이 산업을 지원해야 할 관련 단체들은 행정 제도에 따라 각
부처별로 분산되어 있고, 업체는 여러 가지 규제를 받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여기에다 사회적 인식까지 부정적이어서, 게임 산업에 눈을 뜨고 그나마 애쓰고
있는 제작 업체들을 주눅들게 하고 있다.
85 년에 8비트 게임기를 발표해 가정용 시장을 석권하기 전만해도 닌텐도사는
트럼프와 화투 등 단순 오락물을 만들어 팔던 중소 업체에 불과했다. 그러나 게임
산업에 뛰어들면서 놀라운 성장을 거듭해, 1990 년대 들어서는 이 업체는 우리 나라
최고 재벌 그룹의 전체 순이익보다 더 많은 이익을 올렸다.
게임 산업은 특성상 제품의 수명이 짧기 때문에 계속되는 연구 개발과 제작이
필수적이다. 주문형 영화(Interactive Movie)로까지 발전하는 최근의 추세로 보면,
제작비 또한 엄청나게 들어 가야 하는 사업이다. 그러니 자금력과 기술력이 약한
중소기업이 감당하기는 점점 어려워지므로, 중소기업체 간에 컨소시움을 구성하고
대기업과는 사업적 보완 관계를 맺어 조직화해야만 세계적인 거대 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지금 세계의 전자 관련 대기업들은, 컴퓨터 게임 산업을 멀티미디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꼭 보유해야 될 가장 중요한 분야로 인식하여 주도권 확보에
매진하고 있다. 그래서 소니, 산요, NEC, 마이크로 소프트사 등 굴지의 관련
업체들은 할리우드의 영화사들과 제휴하여 게임 소프트웨어 시장 장악을 기도하고
있다. 이런 대형 자본과 고도의 기술이 합쳐진 게임 산업은 정차 초고속 정보
통신망과 연계하여 국경을 초월하여 전 세계에 퍼져 나갈 전망이다. 그 때는 경제적
지출은 물론이고, 문화적인 침투 또한 피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앉아서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지금 이대로의 상황이라면 국내 시장도 개방과 동시에 순식간에 잠식당하고 말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하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정부 차원에서
게임 산업이 미치는 영향력과 중요성을 인식해서 국내 산업 발전을 지원해야 한다.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지금 자원과 함께 관련 산업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 컴퓨터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 인식을 해소해야 한다. 그래서 미래의
산업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컴퓨터 게임 산업은 멀티미디어 시대를 이끌고 나갈 중심 산업이다. 이제는
게임기를 잠시 가지고 놀다 내던지는 단순한 놀이기구로 아는 잘못된 인식을
버리고, 창의성과 상상력을 키워 주는 유익한 교육 기구라는 긍정적 이해가
필요하다. 그런 이해의 눈으로 바라볼 때 우리의 게임 산업계에 더 많은 우수
인력이 참여할 것이고, 이는 산업화로 이어져 건전한 게임을 만들어 쓰는 게임 산업
선진국이 될 것이며, 가격면에서도 상당한 우위를 차지할 것이며, 세계 시장에서는
첨단게임기 제조기술 보유국이 될 것이다.
작은 것이 유리하다.
정보화 사회가 가져온 많은 변화 가운데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이 세계화,
보편화로의 흐름이다. 이런 흐름이 좀 더 커지면, 전과는 달리 개개인과 최소 경제
단위들이 무한한 힘을 얻게 되는 새로운 무대가 펼쳐질 것이다.
앞으로는 개인이나 작은 규모의 경제 주체들이 정보 고속도로를 통해 모든 정보를
수월하게 얻고, 이를 활용하여 기민하게 업무를 펼쳐 거대한 경제 집단보다 더
융통성이 있는 경제 활동을 수행할 것이라는 말이다.
'메가트랜드 2000' 이라는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인 존 네이스비트는 그의 저서
'글로벌 패러독스(Global Paradox)'에서 '작을수록 위대하다'는 역설로 오늘날 세계
경제를 이끌어 가고 있는 대기업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세계 경제의 규모가
확대될수록 그 최소 경제 단위들은 점차 세분화될 것'이라는 것이 미래 사회를 보는
그의 전망이다.
즉 거대 기업은 생존을 위해 소규모 회사로 분할되었다가 자율 경영권을 지닌
기업 연합의 형태로 재결합되어 가고, 이 같은 변화의 결과는 세계 경제를 구성하는
개별 단위들이 보다 작고 강력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거대한 세계 경제의 틀에서는 다국적 기업 또는 대기업들이 경제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발상은 엄청난 착오이며, 세계 경제 규모가 확대되고 개방화될수록 중소
기업체들이 경제를 지배하게 될 것이므로, 다국적 기업이나 대기업이 경영 전략을
전환하지 않으면 주변 기업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정보화 사회에서는 과학 기술 마인드를 가진 창의적인 사람들이 강한 자가 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독창성을 가진 감성 산업이 시장을 주도할 것이다.
멀티미디어 사회에서 꽃피우게 될 영상 산업, 디자인 산업, 레크레이션 산업, 게임
산업, 전자 출판 산업, 인테리어 산업, 데이터 베이스 산업 등 독창적인 창의력을
바탕으로 하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새로운 산업이 세계 시장을 주도하게 될 것이다.
지금 산업의 축은 전형적인 하드웨어 산업에서 무형의 무한한 가치를 지니는
소프트웨어 산업으로 급격히 옮겨 가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해야 한다. 백 원어치의
재료로 백만 원짜리 상품을 만들 수 있는 '마이더스의 손'에 비유되는 산업이 바로
소프트웨어 산업이다.
하이테크 시대의 대표적인 산업인 소프트웨어 산업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정보화 사회에서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미래
산업이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특히 여성 인력에게 적합하다.
다행히 우리 나라는 고학력의 여성 인력이 풍부하므로 여성 인력을 대상으로한
분야별 특수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재교육을 실시하고, 여성 전문인이 경영할
수 있는 소기업의 창출을 주요 과제로 삼아 빠르게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머뭇거리고 있을 여유가 없다.
수명이 다해 가는 농업 사회나 산업 사회에 대한 미련은 버리고, 과학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정보화 사회로 나아가 그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역사는 꿈꾸는 자의 편이다. 문명은 그것을 실천하고 창조하는 자에 의해 꽃피지
않았는가.
제3장 평등화 교육은 깨자.
시대의 흐름을 바로 보자.
"인류 공통의 적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지구의 환경 문제이며, 미국 차대의 전략
병기는 미사일이 아니라 고성능 컴퓨터다."
미국의 엘 고어 부통령이 한 말이다. 그 말 속에는 미국의 새로운 구상이 숨어
있다.
93 년에 이미 개인용 컴퓨터의 수요량이 텔레비전의 수요를 초과했고, 지금은
35% 이상의 가정에 PC 가 보급된 나라, 미국. TV 보다 PC 가 더 많이 팔린다는
것은 PC 가 TV 보다 더 주목받는 가전 제품이 되었다는 뜻이며, 이제 PC 의
사용법을 알아야만 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반증이다.
이제 우리 나라에도 학교의 컴퓨터와 가정에 있는 개인용 컴퓨터를 통신망으로
연결하는 학교 정보통신망 구축이 실현되고 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이 집에
돌아가서도 가정 학습을 선택적으로 편한 시간에 할 수 있게 됨으로써 개별 학습
지도를 받는 효과를 얻게 될 수 있을 만큼 교육 현장의 정보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역사는 농업 사회와 산업 사회를 거쳐 정보화 사회로 진행되고 있다. 농업
사회에서는 과거의 경험이 정보의 전부였기에 모든 판단의 근간은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 '작년에 이렇게 농사를 지으니까 이렇게 되더라.' 하는
식이었고, 산업 사회에서는 지금 바로 시장에 내다 팔 상품의 생산을 중시했다.
미래에 필요로 할 상품도 예상해서 개발하지만, 그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래서
지나간 농업 사회나 산업 사회에서는 육체적인 노력, 부지런한 근면성이 존중받는
사회였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정보화 사회에서는 이런 육체적인 능력보다는 지적인 노력이
존중받는다. 다른 국가나 회사를 이길 수 있으려면 이 지적인 힘과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길러진다. 타고난 성품인 육체적인
부지런함만으로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할 수가 없다.
정보화 사회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경험이나 기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측되는
미래를 정확히 보고 그에 따라 적절히 대응하는 일이 중요하다. 서구에서 먼저
이른바 퓨쳐 리얼리티(Future Reality 가상 현실)나 퓨쳐 테크놀로지(Future
Technology 가상 기술) 개념의 기본 마인드가 여기에 있다.
이 개념을 분명히 알고, 거기에 맞춰 대응해 나가야만 더욱 치열해지는 세계의
기술 시장에서 상당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세계의 변화가
복잡하고 어수선하게만 보이지만, 주변의 이런 변화를 어떻게 판단하고 어떻게
대응하느냐 하는 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변화를 능동적으로
수용하고 그에 맞는 자유로운 발상법을 가지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역사의 흐름인 정보화의 물결을 감지하고, 생활 속의 정보화, 교육 현장의
정보화를 실천하고 습관화하는 일이 불과 몇 년 남지 않은 21세기를 살아갈
사람들의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이다.
미래 예측 불감증
'고득점자의 법대5,23상대 선호, 기초 과학 기피.'
입시철마다 나타나는 이 같은 관행은 과연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세계적 경영 컨설턴트인 월리엄 스테이셔 회장은 '한국 경제는 고비용5,23저효율
구조도 문제지만 그보다 고비용5,23저효율 구조를 예방하지 못한 미래 예측
불감증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최근 국가경쟁력강화민간의원회는 95 년 기준으로 각국의 절대 기술 개발력을
비교, 미국이 1백이라면 일본은 56, 독일은 40, 한국은 4.7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스테이셔 회장의 견해를 빌리면 우리의 미래 예측 수준이 고작 4.7% 라는
이야기이다.
우수한 '기술 두뇌'를 만들어 내야 할 우리 입시 풍토가 알고 있는 문제는
무엇일까?
물리5,23화학5,23수학 등 순수 과학 분야에 지원하는 학생들의 수준이 갈수록
떨어지는 현상은 절대 기술 개발력 면에서 미국의 4.7%, 일본의 10% 미만이라는
우리의 '미래 불감 증후군'과 깊은 관계가 있다.
미국 경제 활성화의 기수이며 현재 실리콘 밸리에서 각광받고 있는 정보산업
정보기업군 사장의 90% 는 모두 전문 기술인 출신이다.
또 정보화 사회의 경제 구조는 부가가치의 75% 이상이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소프트웨어와 고도의 정보 기술에서 창출되고 있다. 역사의 큰 흐름은 오늘날 과학
기술이 결코 하나의 전문 분야가 아니라 정치5,23경제5,23사회5,23문화 등
모든 분야의 기반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때문에 중국의 경우 장쩌민 주석을
비롯해 정치 지도층 대부분이 기술 전문 정치인이고, 미국에선 공과 대학을
졸업하고 법과 대학원5,23경영 대학원 등의 과정을 밟은 전문가들이 절대 기술
개발력 100% 육성하는 법과 경영을 뒷받침하고 있다.
역사의 대세를 꿰뚫어보는 나라는 미래의 역사 방향으로 우수 인력의 흐름을 받아
주는 데 국가 인력정책의 중심을 두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국민
총생산(GNP) 4만 1천 달러인 경제 강국 스위스의 국립 대학은 모두 이공계
학과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은가?
일본에서는 '엄마 말 듣지마' 증후군이 있다고 한다. 과거 지향적인 가치에 의해
만들어진 잣대에 그들을 맞추려는 부모와 신세대 간의 충돌로 빚어지는 현상이다.
우리는 미래 예측보다 과거에 집착하는 '엄마 말대로 증후군' 혹은 '미래 예측
불감증'에 걸려 있는 것은 아닐까?
우수 두뇌의 70% 이상이 주저 없이 이공계를 선택하는 나라, 과거보다 미래의
잣대를 고집하는 젊은이가 많은 나라, 그래서 세분화5,23다원화 되어 가는 정보
사회의 기술 창의력이 모든 부문의 기반이 될 때, 비로소 우리도 국제수지 적자
대국의 경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미래의 아이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배웠을 뿐이다."
발명왕 에디슨이 백열 전등을 발명하기까지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면서 했던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패를 하고, 이를 극복하면서 성숙한다. 인류의 역사도
실패를 극복하면서 발전을 거듭해 왔다. 한 번의 실패가 두려워 새로운 일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영원한 실패자가 되고 만다. 절망적일 때일수록
역사는 실패를 딛고 일어선 사람들에 의해 발전해 왔다는 사실을 되새기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
나는 요즘 우리 어머니들의 지극한 자식 사랑에 다소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자식을 키우는 게 아니라 차라리 시중을 들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진정한 자식 사랑은 자식이 홀로설 수 있도록 뒤에서 지켜보고 도와 주는
것이어야 한다. 지나치게 헌신적인 보살핌이 아이의 눈과 귀를 먹게 하는 주체적인
행동을 못하게 하여 '마마 보이', '마마 걸'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옛부터 '강한 어머니만이 강한 자식을 만든다'고 하지 않았는가? 아이
스스로 자신의 세계를 가꾸어 갈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고 멀리서 끈기있게
지켜봐 주는 현명하고 강한 어머니는 과연 얼마나 될까? 더 복잡하고 더욱 치열해질
미래의 세대를 이끌어 갈 아이를 원한다면, 지금부터 아이에게 독자적인 시간과
공간을 주어 무한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자.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그는 기존의 예술 형식과 틀을 과감히 깨고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여 마침내 '비디오 아트'라는 창조적인 영역을 개척한 일인자가
되었다.
뉴욕 뒷골목에서 고물 흑백 TV 몇 대 주워다가 대형 자석을 이용해 브라운관의
영상을 이리저리 변형시켜 보던 비디오 아트 초창기에는 경제적 곤란과 함께 수많은
시행 착오를 겪었지만 주변의 회의적인 시각에 흔들리거나 좌절하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이는 그가 홀홀 단신으로 일본, 독일 등 외국을 전전하며
터득한 그만이 가진 자신감과 어떤 영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느 분야에서든 주변의 회의적인 시선이나 실패가 두려워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기존의 틀에 안주해서는 결코 새롭고 독창적인 경지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가오는 정보화 사회에서의 현실 안주는 곧 퇴보를 의미하게 된다. 개성과
독자성을 상실하면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며 결코 앞서 나갈 수 없게 된다.
컴퓨터 사용자들 가운데는 '컴퓨터 의사' 안철수 씨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서울대 의대를 나온 진짜 의학 박사인 그는 혼자서 각종 컴퓨터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백신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정식으로 바이러스 연구소를 차렸다. 국내에
보급된 대부분의 컴퓨터에는 그가 개발한 백신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만약 그에게 옳다고 판단하는 일을 추구하는 강인한 독자성과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창의성이 없었더라면, 컴퓨터 바이러스 전문가 안철수 씨는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 속담에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제대로 키워야 한다. 어머니의 품이라는 새장 안에 든 예쁜
새가 아니라 '독립성'과 '창의성'을 갖춘 미래의 아이로 길러야 한다. 정보화
사회에서는 창의성과 독자성이 생명이다. 이는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다. 자녀에게
상상의 자유를 주자. 자녀에게 실패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자. 그러다 좌절하면 다시
한 번 시도해 볼 수 있도록 격려해 주자. 현명한 어머니는 자녀의 실패가 두려워
모험 자체를 못하게 하기보다는 격려와 지혜를 주어 스스로 성취할 수 있게 도와
주어야 한다. 미래를 준비시키는 넓고 큰 안목을 가지고 보다 적극적으로 자녀를
교육하여 미래 사회를 이끌어 갈 주인공으로 길러야 할 것이다.
평등화 교육은 깨자.
중국 송(송나라 송)나라 때 가장 많은 신동을 배출한 고장으로 '요주'땅을 꼽는다.
요주 땅에서 그토록 많은 인재를 배출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그 곳에는
유명한 스승이 있었는데, 그는 재능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다섯 살 된
아이들에게 학문, 예술, 무36예 등 각각의 아이가 가진 능력에 따라 그 독특한
재능을 살려 집중적으로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의 학자 루이스 타이먼은 역사적 천재 4천 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 다빈치,
뉴턴, 아인슈타인과 같이 IQ 130--150 정도의 사람들이 특정 분야에 두각을
나타냈다는 사실을 알아 냈다.
사회 구조적 측면에서 볼 때, 농업 사회가 단순한 직종을 가진 단선 구조의
사회였다면, 산업 사회는 세분화, 전문화된 사회였고, 정보화 사회는 그 세분화,
전문화된 영역을 수많은 시스템으로 엮은 멀티미디어 사회다. 단순 사회였던 농업
사회에서는 많은 분야의 여러 영재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산업 사회에서는 각 분야에서 영재가 필요했고, 그들의 주도하에 사회 발전을
이루었다. 그런데 정보화 사회에서는 세분화, 전문화된 영재들이 이룩한 발전을 엮어
멀티미디어화, 시스템화 한 사회이기 때문에 더 많은 고도화된 영재가 필요한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두뇌 경쟁이 지나치게 가속화되는 감이 없진 않지만, 전쟁을 방불케 하는
국제 경쟁에서 첨단 과학 기술의 습득과 고부가가치 상품 개발에 뒤지지 않으려면,
이 치열한 경쟁의 대열에 뛰어들어 이겨나가는 도리 밖에 없다. 멈추거나 포기하면
영원히 후진국으로 밀려 갖은 요구를 들어 주며 비싼 값을 치르고 물건을 구입해
사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도 많은 영재를 길러 내야 한다. 그 방법으로 IQ 140이 넘는 몇몇
특별한 아이만을 특수하게 교육하여 소수의 영재를 길러 내는 게 아니라, IQ 100
내외의 평범한 아이들을 그 소질과 관심에 맞게 능력을 개발하는 특성화된 영재를
키워야 할 것이다.
최근 선진국에서는 영재의 개념을 폭넓게 정의하고 있다. 집단을 훌륭하게 지도할
수 있는 사람도 영재고, 집단에 강한 동기를 부여하고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사람도 영재며, 복잡 다단한 문제를 단순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도 영재라는
것이다. 머리의 영민함만을 따지지 않고, 사회적 능력과 이해력까지 추가했으니
영재의 폭이 한층 넓어진 셈이다. 미국의 영재 교육가인 '렌츨러' 같은 이는 정보화
사회의 영재를 20% 까지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정보화 사회에서는 재능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IQ 100 정도의 재능을 가진 학생들에 대해, 평등 지향
교육보다는 개성과 다양성, 창의성을 키워 주는 교육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교육 환경이 개편되어야 한다. 교육 환경의 혁신은 몇몇
학교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국가적 차원에서 전폭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컴퓨터 통신을 통한 학교 교육으로 정보에 대한 이해와 응용력을 키우고, 가상
현실을 통한 학습으로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지게 하며, 세계화 교육을 통해 시야를
넓혀 주어야 한다. 세계화는 분명 정보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정보화의 미래도
과학 기술이 발달한 여러 나라와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서만 열릴 수 있다. 따라서
정보화와 세계화는 짝을 이루면서 미래 사회를 이끌어 가는 가장 중요한 축이 될
것이 분명하다.
빠른 속도로 멀티미디어화 되어 가는 세계적 추세 속에서 우리는 교육의 틀을
과연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
먼저, 지금까지의 평준화된 평등 교육으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학생의 재능을
조기에 발견해서 길러주고, 재능별 전문 교사가 전문적인 교육 프로그램으로
지도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재능별 전문 연구 기관이 있어야 한다. 재능별 전문
교육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나씩 제도를 고치고 시설을 늘려 나가야겠다.
아이들이 급변하는 시대 변화에 적응하면서도 착한 심성으로 올곧게 커 나가게
하기 위해서는 가정에서는 부모가, 사회에서는 어른들이 바른 시각으로 바르게
이끌어야 한다. 과학하는 자세, 정보를 읽고 활용할 줄 아는 자세, 세계 주민으로서
세계의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를 길러 주고, 아울러 현실 세계에
대한 이해력과 융통성을 아이들에게 일깨워 주고 심어 줘야 하겠다.
높은 IQ 를 가진 천재가 아닌, 보통의 IQ 를 가진 불특정 다수의 영재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교육에 관한 기존의 고정된 사고 방식을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
여론을 의식하여 쫓겨다니고, 형식적인 개선 작업으로 시간을 허비하다 보면 결국
경쟁력 있는 교육으로의 개혁은 이루지 못하고, 영원한 '희망 사항'으로 미루어 둘
수밖에 없다. 과거나 현실의 문제에 집착해 그나마 가진 여력을 허비해 버린다면 IQ
100은 물론 IQ 150의 아이조차 바보로 만드는 어리석음을 자초하게 된다는 사실을
모두가 명심해야겠다.
영재 교육의 성공을 위해서는 미래의 국가와 사회에 어떠한 공헌을 하는 인재로
키울 것인가 하는 뚜렷한 목표와 함께 개인의 천재성을 존중하고 국민 모두가 이를
지원하는 문화적 풍토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천재는 사회와 동떨어져
고독해지거나 현실과 괴리된 이상한 생각을 가진 기형적 인간으로 자라고 만다.
정신 의학의 입장에서 보면 천재는 보통의 인간과는 다른 존재로서 보호의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재가 그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때는 인재로
자라는 빛나는 업적을 쌓을 수도 있으나, 반대로 그들의 천재성이 묵살될 경우에는
오히려 무능한 생활인이 되거나 협동 사회의 낙오자로 추락하고 마는 경우를 많이
보아 왔다.
영재를 발굴하고, 그 재능을 개발하여 국력화하는 일은 국가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일이다. 미래의 꿈나무를 잘 가꾸기 위한 국민적인 합의와 그 합의의 실천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밝고 희망적인 한국의 미래를 원한다면 밝고 희망적인 교육 체제를 가져야 한다.
미래는 개성과 창의성의 세계가 될 것이다. 이제 평등화 교육은 깨자.
공학이 살아나야 한다.
우리 나라는 그 동안 참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이 발전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그들은 아마도 엔지니어, 공학도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이 분야
종사자들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별로 좋지 못한 실정이다.
과거의 예를 보면 이순신 장군이 '공학적인 마인드'로 거북선을 개발하고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소위 사대부들이 질시와 모함을 했던 수치스런 역사가 있다. 반면
세종대왕은 과학자와 공학자들을 융숭히 대접하고 후원하여 나라의 살림을
살찌웠다. 정보화 사회에서는 전문가에 의해 사회가 관리되고 주도된다.
과거에는 자기 맡은 분야에서만 열심히 일하면 되는 시대였으나, 다양성과
전문성이 특징인 정보화 사회에서는 폭넓고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쌓아야 원만하고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CIA 국장으로 물리 화학자인 더치 박사를 지명했는데,
이는 시대를 이끌어가는 마인드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과거
이데올로기 대립 시대의 세계적 핵심 첩보 기관이었던 CIA 가 이제는 기술 중심,
실익 중심의 정보 기관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지도층인 장쩌민 주석, 리펑 총리, 주룽지 부총리, 쑹찌엔 국무 위원 등도
모두 이공계 출신으로서, 이는 덩샤오핑의 '실용화 정책'이 핵심이 과학 기술에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세계적 추세를 잘 읽고, 그 흐름을 잘 타는 기업체에서는
이공계 전문가들을 중시하여 중용하고 있다. 그래서 10 대 그룹 경영자의 33%,
임원급의 55% 를 이공계 출신 인사로 기용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공공 부문은 그렇지 못해서 국회 의원의 2%, 정부 각료의 9%,
고위직 공무원의 9% 만이 이공계 출신이다. 정보화, 세계화를 위해서는 더 많은
전문가를 공공 부문에 포진시킬 필요가 있다. 미래의 전문가가 주도하는 사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 사회에서는 산업의 초점이 공업 생산에 맞추어져 제조업에
국한되는 개념이었으나 정보화 시대의 산업 개념은 보다 폭넓어지고 있다. 이에
맞추어 가기 위해서는 정보화 사회에서 중추적 산업이 될 소프트웨어 부문과 영상
산업 부문, 컴퓨터 그래픽 부문, 디자인 부문, 데이터 베이스 부문 등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경험을 쌓아야 한다.
우리의 과학 기술 역사는 선진국에 비해 매우 일천하나, 70 년 이후 국가적
차원에서 개발과 발전을 지원해 상당한 성과를 올리고 있으며,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인식되어 발전 전망은 낙관적이다. 과학 기술과 산업을 연결하는 산업
공학인들은 그 역할과 활동 범위를 넓혀 사회 구석구석에 공학적 마인드를
확산시키는 프론티어가 되어야 할 사명을 안고 있는 21세기 정보화 사회의
주인공이다.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산업 공학 부문뿐만 아니라 모든 부문에서 전문화,
정보화 수준을 빨리 끌어올려야 한다. 자본주의가 시장 경제를 주도할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스스로 상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을 수 있었고, 그 성과에
준하는 보상과 책임이 주어졌던 데 있다. 규제와 통제가 자본주의를 승리로
이끌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중시해야 한다.
이제 과학이 시대가 열렸다. 창의적인 전문가가 사회 각 부문의 진두에 서서
개혁과 창조를 이끌어야 한다.
기술 전쟁의 시대다.
미국의 코닥과 폴라로이드사가 인스턴트 카메라에 관한 기술을 도용했다는 문제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벌인 적이 있다. 법원에서 패소자 측에 내린 판결은 7천 5백억
원을 배상하라는 것이었다. 대전 엑스포를 치르는 데 들어간 돈이 9천 5백억
원이니까 그 액수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법원이 이렇게 많은 액수를 배상하라고 한 이유는 오늘날이 바로 기술 주권
시대이기 때문이다. 농업 시대가 영토 주권 시대라면, 오늘날은 기술 주권 시대로
기술의 값이 가장 비싸다. 과학 기술은 그것 자체가 돈이다.
흔히 1 메가디램, 4 메가디램, 8 메가디램으로 불리는 반도체의 기본 원료는
모래다. 모래는 1 톤에 불과 이삼만 원 정도지만 기술적으로 가공해 반도체를
만들면 엄청난 부가가치가 생긴다. 포항제철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원강을
수입하지만 이를 가공해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것은 원자재에 기술을 가해
가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날을 기술 주권 시대라 일컫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이런 시대에 기술을 훔쳤으니 7천 5백억 원이라는 배상금을 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과학 기술을 개발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이것은 창의력을
발산하는 창조적인 두뇌에서 나온다. 인간의 머리는 아주 신비롭다. 농작물은
아무리 잘 가꾸어도 두 배 이상의 수확을 거두기 어려운데, 머리는 개발하기에 따라
무한한 수확을 거둘 수 있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몸은 비록 불구지만 천체의 비밀을 캐냈다. 거시론과 미시론,
양자 역학과 상대성 이론을 묶어 우주를 하나의 생명체로 규명하고 그 생명체가
잉태, 출생, 성장, 쇠퇴하는 과정을 '빅뱅 이론'과 '블랙 홀'로 설명해 냈다. 호킹
박사는 다른 사람과 비슷한 크기의 두뇌를 가지고 있지만, 그 두뇌를 끊임없이
개발해서 마침내 베일에 가려져 있던 우주의 신비를 해독해낸 것이다.
보이지 않는 전쟁이라 할 만큼 비정한 국제 사회에서 경쟁력을 가지는 길은
발전된 과학 기술을 보유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과학
기술을 높이기 위해서는 영재 교육도 좋고, 특수 교육도 좋다. 미래는 철저한 기술
전쟁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도고 제독은 러일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인의 우상이다. 일본의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제일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물으면 도고 제독을 첫 손가락으로
꼽는다고 한다. 이 도고 제독이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후 국민들이 자신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고 부추기자, 그는 "내가 넬슨 제독보다는 나을지 모르지만
이순신 장군에 비하면 나을 것이 없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도고 제독은 그
이유로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 자신은 일본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승리했는데. 이순신 장군은
지원이 전혀 없는 가운데에서도 과학 기술의 개가라 할 수 있는 거북선을 개발하고
물살을 이용하는 치밀한 지략으로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이다.
둘째, 자신은 러시아의 무적 함대와 엇비슷한 전력을 가지고 승리를 얻었지만,
이순신 장군은 1 할도 안 되는 열악한 전력을 지니고도 승리를 거뒀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은 이렇게 살아 돌아와서 영광을 얻은 반면에 이순신 장군은
마지막 해전에서 총을 맞고도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자신의 죽음을
숨기면서까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점이라고 말했다.
도고 제독이 이야기한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중에서, 나는 그가 첫번째로 꼽았던
거북선을 제작한 과학적이고 창의적인 정신에 주목한다. 이는 일본에 비하면 어느
면으로 보나 열악했던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결정적 발상인데, 그는 과학적
사과와 기술을 난국의 타개책으로 이용할 줄 알았던 사람이었다.
우리들의 몸 속에는 두 가지의 피가 흐르고 있다. 하나는 지신이 속한 당파의
이익을 위해 논쟁을 일삼던 선조의 피요, 또 하나는 자연의 이치를 탐구해 도를
익히고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온갖 지혜를 짜내 외세에 대항했던 선조의 피다.
우리가 이어받아야할 피와 정신은 과연 어떤 것이어야 할까?
창조적 재능을 키워라.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만물의 영장이 되고 문화를 이만큼 발전시켜 온 것은
'창조성'이라는 정신 활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창조적 재능이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으로 학습한 것인지, 선천적이라면 다른 동물보다 높은 IQ 를 가졌기
때문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창조해 가고 있다.
이것이 인간의 특성이고, 인류의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었다.
"나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하늘이 내 머리 위로 내려와 하늘 속의 여러 가지
영상이 화려하게 펼쳐지는 꿈을 꾼다. 이 때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내 머리 속에
엉키는데. 이 때 나는 내가 만들 영화의 영상을 느낀다. 이 같은 나의 능력은 나의
어머니가 키워 준 것 같다."
스필버그 감독이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영상 사고(Visual Thinking)'에
관해 언급한 부분이다. 그는 우리 나라 자동차 1백 50 만 대분의 수출 이익을
'주라기 공원'이라는 영화 한 편으로 챙긴 흥행의 귀재인가 하면, 유럽의 마지막
자존심인 영화의 예술성조차 '쉰들러 리스트' 한 편으로 압도한 영상의 귀재이기도
하다. 이 같은 놀라운 그의 창조적 재능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미국 텍사스 주 A and M 대학 교수 3인이 공동으로 펴낸 '창의성과 정신'이라는
책에는, 어린이의 창조적 재능을 자극하고 개발하는 가장 효과적인 교육 방법으로
시각적 영상 사고를 강조하고 있다. 인간의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정보의 80%
이상이 눈을 통해서 입력되고, 그 대부분은 영상 이미지로 기억된다고 한다. 책이나
강의를 통해 입력된 정보가 평면적이고 정태적이라면, 영상 이미지로 입력된 정보는
반대로 입체적이고 동태적이다. 따라서 가장 효과적인 창조적 학습 방법으로 영상을
이용해야 하며, 영상 사고를 키우는 데 교육의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지적이다.
일본 영재교육연구소는 "창조적 재능은 선천적이기 보다는 후천적인 면이 강하기
때문에, 조기에 영상 사고를 훈련시키면 창의성을 키우는 데 가장 중요한 후천적
인자인 확산 사고를 더욱 발달시킨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깨우치는 아이의 경우, 소위 '확산사고'가 발달되어 남다른 창의성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이다.
스필버그는 이미 12살 때 8mm 영사기로 영화를 만들 정도로 '영상 사고'에 푹
빠졌고, 이로 인해 확산 사고의 조기 발달이 가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늘의 정보화 사회는 영상의 세계로 펼쳐지면서 영상 사고의 환경이 점차
성숙되고 있다. 우리의 생활과 교육에도 영상을 더 많이 활용할 필요가 있겠다.
가령, 귀여운 아이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어주기보다는 아이 스스로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찍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겠고, 책 읽기만을 강요하기
보다는 집 밖으로 나가 다양한 놀이를 하면서 갖가지 경험을 쌓아 갈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이 좋겠다. 그렇게 확산 사고에 의한 후천적 창의성을 키워 주는 것이
이 시대의 보다 바람직한 교육 방법이라는 말이다.
다가오는 사회는 창조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세계가 될 것이다. 창의성을 가진
상품이 고부가가치를 가지게 되어, 사회를 운용하는 모든 메커니즘도 여기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다.
우리 민족은 머리가 좋은 민족으로 정평이 나 있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지만
앞으로도 우리는 이 머리에 미래의 국운을 걸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투자는 아이들에게 창의성을 길러 주는 일이다.
정보화 사회의 창의성은 제2의 지식이다.
대학이 변해야 한다.
미래 사회는 지식을 많이 알고 있는 인간보다는 다양한 지식을 종합해서 응용하고
재창조하는 창의적 사고를 가진 인간이 주도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이는 정보화
사회에 따른 필연적인 추세이다.
그렇다면 세계화, 정보화 시대에 국가 경쟁력의 핵심 인재를 배출해야 할 우리
대학은 어떻게 변해야 할까?
교수의 지식을 일방적으로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현재의 대학 강의 방법은
고등학교 수업의 연장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교수 한 사람에 의한 지식 주입은
정보화 사회에서는 뒤떨어진 교육법이다. 다른 분야, 다른 생각들이 모여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사회, 멀티미디어 사회에서는 이제 교수 일인에 의한 강의
형태를 과감히 지양하고 학생들이 서로 팀을 이뤄 연구하고 창조하는 멀티미디어
교육 형태로 거듭나야 한다.
우선 탄탄한 기초 과학의 바탕이 있을 때 급변하는 첨단 과학의 응용, 개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기초 과학 관련 과목의 비중을 저학년에 집중적으로 할애해야
한다. 이와 함께 각종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컴퓨터와 외국어를 필수 기초
과목으로 선정, 창조하고 응용하는 교육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국경 없는 정보
사회에서는 대학과 정보, 사회의 기능 역시 따로일 수 없다. '학문은 대학에서,
정책은 정부에서, 돈벌이는 기업에서'라는 인식은 이제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다.
산학 협동도 기업에서 준조세 형태로 대학 건물이나 지어 주는 차원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부족한 실험, 실습을 현장에서 직접할 수 있는 학습의 장을 마련해 주는
보다 적극적이고 시스템화된 형태로 전환해야 한다.
나는 10 년 전부터 매년 방학 때마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정보화 캠프를 열어
오고 있다. 비록 1박 2일 동안의 짧은 기간이지만, 이 연수를 통해 대학생들에게
세계의 현실과 역사를 보는 안목을 키워 주자는 것이 캠프를 주관하는 나의
취지이다.
캠프가 끝나면 소감문을 받아 읽어 보는데, 대부분 학생들은 '세계를 너무 모르고
있었다.'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요지의 소감을 적는다. 모르긴 해도 이것은 우리
나라 대학생 대부분의 소감일 것이다. 이 정도가 우리 대학 교육의 현실이라면
지나친 비관일까?
우리 대학의 현실이 경직된 학사 운영, 빈약한 정보화 교육으로 수많은 '고등학교
7 학년'에게 학사모를 씌워 주고 있다고 한다면 과연 지나친 표현일까? 지금의
폐쇄적이고 자족적인 대학 형태를 고수한다면 빌 게이츠와 같은 창의적 인재는
영원히 나오지 않으리라는 지적이 기우만은 아니다.
학문의 전당이라지만 대학 역시 시장 원리에 따라 개방되어, 대학 스스로
경쟁력을 제고하는 일이 어느 때 보다 절실해지고 있다. 그런 만큼 대학교 앞으로
나올 무수한 영재들이 미래를 위해 마음껏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루빨리
탈바꿈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위기는 기회다.
잘 되는 집안은 가풍이 제대로 서 있다. 마찬가지로 나라가 잘 되려면 나라의
질서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국가의 운영 방향이 어느 쪽으로 가고 있느냐
하는 것이 나라의 질서라면, 그 질서는 우선 우수한 인력과 국가의 공공 자금이
미래 지향적이고 발전적인 분야에 투입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농업 사회에서는 홍수와 가뭄에 어떻게 대처하고, 가둬 둔 물줄기를 어디로 대야
할지를 고민하는 일이 중요했다. 이에 비한다면 정보화 사회에서는 우수한 두뇌를
가진 고급 인력과 돈이 어디로 흘러가게 해 주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하다. 이들이
부동산 쪽이나 관리 쪽으로 흘러가면 나라의 운세가 기우는 것이고, 건설적이고
창의적인 쪽으로 흘러가면 국운이 상승하게 된다.
우리는 정부 재정의 반 이상을 국방과 교육에 쓰고 있다. 이 절대적인 국가
재정을 바르게 쓰는 일은 국가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한때 이런 귀중한 돈이
엉뚱한 곳에 유용되었으니 국가가 제대로 운영되었을 리 만무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교육 개혁은 시급하고, 더불어 국방 예산도 정보화 방향에 맞추어 제대로
쓰여져야 한다. 이런 시각에서 과학 기술에 대한 투자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 나라의 과학 기술분야에 투자되는 예산은 전체의 3.3%
에 불과한 실정이다.
정보화 사회는 늘 새로이 창조되어 가는 사회다. 과거의 기준이나 잣대를 가지고
사는 사람은 절대로 정보화 사회를 이끄는 지도자가 될 수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여론을 중시하는 태도는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여론에 영합하거나 끌려가서는
안된다. 미래의 이상을 이야기해서 국민의 동의를 얻고, 이를 통해 여론을
창조적으로 이끄는 자가 이 시대의 지도자감이다. 그리고 이런 발전적 의지에
지지와 박수를 보내는 것이 현명한 국민의 태도일 것이다.
정부도 집행하고 관리하는 역할이 아니라 예측하고 기획하고 통합, 조정하는
역할로 바뀌어야 될 것이다. 이미 느끼고 있겠지만 정보화 사회의 변화 속도는
얼마나 빠른가.
과거 3000 년의 농업 사회는 끝나고, 지난 300 년의 산업 사회도 종언을 고하고
있다. 그리고 불과 30 년도 되지 않아 정보화 사회가 도래하여 세상을 뒤바꾸고
이렇듯 변화에 가속이 붙어나가는데, 앞으로 무엇이 들이닥칠지 모를 상황에서
변화하는 것에 대한 대비도 하지 않고 지내다가는 영원히 개발 도상국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홍수가 닥쳤을 때, 쉬지 않고 흘러 들어오는 물을 댐이 수용하지 못하면 저수
용량을 넘거나 댐이 무너졌을 때 강구할 수 있는 대책은 없다. 집을 잃거나 논밭을
잃거나 당할 대로 당하고 견디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미래를
내다보고 다가올 상황을 지금 준비해야 한다.
요즘 미국의 거대한 기업들이 가장 경계하고 겁내는 기업은 시장을 놓고 다투는
동급의 경쟁 기업이 아니라 바로 그 업종에서 패러다임을 달리하는 새로운 기술로
성장해 가는 기업이라 한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고 정체도 알 수 없는 조그만 기업이지만, 그 기업 사람들은
공항에 도착해서 비행기에 타자마자 노트북 컴퓨터를 꺼내 무언가를 생각하며
자판을 두드리고, 정리한 것을 컴퓨터를 통해 회사로 보내고 지시를 받는다. 이런
첨단의 정예가 모인 작은 기업을 미국의 거대 기업들은 제일 겁내고 있다. 왜냐하면
제2의, 제3의 빌 게이츠가 나온다면 그들 중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가는 기업이었던 IBM 이 지난 5 년간 그렇게 고전했던 까닭이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미래를 잘못 보고 줄을 섰던 탓이었다. IBM 의 에어커트
회장은 컴퓨터 세상이 온다는 것까지는 알았지만, 컴퓨터 중에서도 슈퍼 컴퓨터라는
줄과 개인용 컴퓨터라는 줄이 갈라지는 것은 내다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PC 는 무시하고 원론적이고 덩치가 큰 대형 컴퓨터 생산에만
매달렸는데, 그 오판 하나로 5 년을 허덕여야 했다. 이는 마치 세계가 이념
대립으로 맞섰을 때, 국제 정치의 흐름을 제대로 읽어 미국 줄에 섰던 서독은
흥하고 소련 줄에 섰던 동독은 망했던 경우와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줄을 잘
서야 한다는 것인데, 어느 줄에 서야 하는지를 알려면 전체의 흐름을 잘 알아서
꿰뚫어보아야 한다.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 소프트사를 만든 것처럼, 미래의 기업은 새로운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들어 간다. 이들이 진짜 X 세대들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거대하기는
하지만 거대하다고 해서 겁낼 이유는 하나도 없다.
땅덩어리가 작다, 자원이 부족하다 해서 열등감에 빠지는 것은 산업화 시대에나
통하는 말이었다. 미래를 연구하여 바르고 새로운 발상을 가진다면 대국도 거대
기업도 얼마든지 이기고, 조그마한 마이크로 소프트사가 거대한 IBM 을 움직이듯이
대기업을 움직여 나갈 수 있다.
세상은 이만큼 변해 있다.
정보화 시대의 윤리
하버드 등 명문 대학에 입학 추천을 받았던 한 재미 교포 학생이 인터넷에 모교를
비방하는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소속 고등학교로부터 입학 추천을 취소당한 일이
있었다. 이 학생은 자신이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를 상스런 성적 농담까지 섞어
비난하는 글을 공용 통신망에 올려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 그것도 대학 진학이
결정되고, 졸업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말이다. 비록 공부를 잘했는지 몰라도 공동
생활의 예의와 규범을 무시한 채 정보 고속도로 위에 쓰레기를 던진 결과가 되고 만
것이다.
거의 같은 시기에 미국에서 컴퓨터 범죄자 '케빈 미트닉'이 체포됐다. 지난 15 년
동안 장거리 전화를 불법으로 사용하고, 타인의 신용카드를 탈취했으며,
대형컴퓨터를 불법으로 침입해 파일을 절취하는 등 컴퓨터 범죄를 일삼던 그는,
마침내 컴퓨터로 보안 전문가의 파일에 접근하려다 덜미가 잡혔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는 케빈 미트닉은 어머니의 사랑도
받지 못한 채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결혼은 했으나 해커였던 전력 때문에
취직 자리도 구하지 못한 사회 부적응자였다. 가족이나 친구, 연인과의 사랑을
대신해 컴퓨터와의 사랑에 빠졌지만 결국 그마저 실패하고 만 셈이다.
우리 나라도 요사이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이 급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1백 20 만 대 이상이 보급되었다. 정보화 사회로 가는 여건은 다져졌지만, 그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를 남기기도 했다. 전산망의 확산과 함께 개인 정보의
유출이 우려할 만한 사회 문제가 됐고, 단말기 증후군 같은 신종 직업병도 생겨났다.
과학 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생활을 보다 편리하고 윤택하게 만들지만 그 역기능도
동시에 발생한다.
옛날에는 고갯마루에 숨어 있다가 불쑥 나타나는 산적이 경계의 대상이었다면,
오늘날 정보화 시대에는 통신망이란 골목에 수시로 출몰하는 해커라는 컴퓨터
범죄자들이 경계의 대상이 된다. 이들은 정보의 탈취를 통해 금전적 이익을
노리기도 하지만, 개인적 성취감, 또는 막연한 사회적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해킹을
저지른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익명의 정보 산적들의 파괴력은 기존의
범죄자보다 더 가공할 만하다 하겠다.
인터넷의 확산으로 세계가 하나처럼 연결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귀중한 자료를
손쉽게 얻을 수 있게 됐지만, 정보 좀도둑들의 활동 무대도 그만큼 넓어졌다. 정보의
바다로 향한 창이 열려 졌다고는 하지만, 정보화 시대의 창은 저쪽 창 밖의 세계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이쪽의 방 안도 노출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쌍방향성이 도둑들에게는 더없이 매력적인 것이다. 컴퓨터 범죄자는 늘었으면
늘었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 같다.
컴퓨터를 제대로 쓰기 위해서 여러 가지 기능을 익히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에
따른 올바른 가치관이나 철학을 가지는 일도 중요하다. 컴퓨터를 잘 이용하면
유용한 자료들을 얻을 수 있지만, 이를 부정적으로 이용하면 또한 그만큼 나쁜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 우리가 컴퓨터를 사용하는 이유는 정부의 저장이나 활용, 교환 등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단지 도구일 뿐이며, 이 도구를 통해
우리는 유용하고 가치있는 일들을 창출한다.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비싼 컴퓨터를
사 주고는, "나는 할 도리 다 했으니 나머지는 알아서 해라."는 식으로 방치한다.
아이는 밑도 끝도 없는 정보의 광장을 혼자 헤매다가 엉뚱한 발상을 하거나,
불량하고 위험한 곳으로 발을 들여 놓을지도 모른다.
게임이든, 통신이든, 멀티미디어든 무턱대고 아이 혼자 알아서 접하게 하기보다는
부모가 옆에서 지도하며 함께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더불어 정보화 사회의
미래를 이야기해 주고,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 주며, 아이에게 커다란 꿈까지 심어
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제4장 천재를 만드는 어머니
EQ와 어머니
학창 시절 반에서 늘 일등하던 친구가 사회에 나가서는 왜 크게 성공하지 못할까?
어떤 사람은 첫눈에 호감이 가고, 또 어떤 사람은 그 반대인 이유는 뭘까?
교육 학자들은 "성공의 요소 가운데 IQ 가 차지하는 비중은 20% 정도이고,
나머지 80% 는 자기와 남의 감정을 관리하며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인 감성
지수(Emotional Quotient)이다."라고 지적한다. 즉, 어떤 사람의 성공 가능성을
예측할 때 IQ 나 학력보다는 흔히 성격이라고 표현되는 마음의 특성이 더 큰
영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정보(정 정, 고할 보)란 마음이 오가는 것이고, 통신(통할
통, 믿음 신)은 믿음이 교류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정보화 사회의 EQ 의 비중은
날로 높아지는 추세에 있다.
그렇다면 EQ 란 무엇이며 그것은 과연 어디에서 나올까?
흔히 머리 좋은 사람은 IQ 가 높다고 한다. 이에 비해 정이 통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 언제나 사랑을 듬뿍 받는 사람, 발이 넓고 인기가 좋은 사람 등은 감성
지수, 즉 EQ 가 높다고 할 수 있다.
IQ 라는 것은 어떤 일이 객관적으로 옳으냐 그르냐 하는 것을 판단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어떤 것이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인지,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고 불리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데도 IQ 는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런 판단을
행동에 옮기고, 그 행동을 적절히 사회에 반영하는 데 필요한 것은 EQ 이다. 이런
점에서 감성적인 부분인 EQ 를 어떻게 정보화 사회에 맞춰가고 키워 갈 것인가
하는 데 더 큰 비중을 두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마음으로는 자녀들이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하고 많은 친구를
사귀고 어울려 지내기를 바란다. 이 말은 EQ 를 높이라는 이야기인데,
실제적으로는 성적과 관련이 있는 IQ 가 높아지기를 바란다. 자녀의 성적과 IQ 를
높이는 데 주력하는 교육법은 정보화 사회에서는 그리 바람직한 자녀 교육법이
아니다. 그런 교육은 자녀를 백과 사전으로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단순한
지식은 인간적으로 여러 사람을 감동시키고 움직이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학교에서 성적을 올리는 데는 IQ 가 중요하지만 좋은 친구를 사귀는 데는 EQ 가
중요하다.' '입사를 위해서는 IQ 가 필요하지만 승진을 위해서는 EQ 가
필요하다.'는 말도 승진을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 조직과 조직을 유연하게 엮는
시스템적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감정적 지능'의 저자 다니엘 골맨은 감정을 통제하는 기능은 사춘기까지 계속
성장하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어머니에 의한 가정 내의 감정 교육이 중요하다고
했다. 또한 빌 게이츠는 '미래로 가는 길'에서 '정보화 사회의 가정은 우주의
중심'이라고까지 말했다. 가정에서 어머니와 EQ 와의 관계를 강조한 표현이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의 EQ 는 분명히 큰 차이가
있다.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로 TV, 전화, 팩스, 오디오 등 하드웨어가 하나로
엮어지듯, 가족 구성원간의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가정의 멀티미디어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일은 결국 어머니의 몫이다. 사랑과 대화를 통해 아이의 EQ 를 높여 줄 뿐
아니라, 스스로 올바른 정보화 사회의 가치관을 함양하며 가정의 EQ 를 높이는
어머니가 정보화 사회 전체의 EQ 를 높이는 바람직한 어머니라 하겠다.
시대를 여는 어머니상
'머리가 약간 이상한 아이'로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따돌림받던 어린 시절의
아인슈타인은 그의 삼촌 야콥에게 수학을 재미있게 푸는 방법을 배웠다. "쫓고 있는
동물이 잡히지 않으면, 즉시 그것을 X 로 하고 잡힐 때까지 사냥을 계속하면
된다."고 배웠던 것이다. 그러자 수학 공부가 재미있고 신이 났다.
아인슈타인의 어머니는 아들의 사냥 놀이에 함께 생각하고 관심을 기울여 주었다.
아들이 재미를 느끼는 이 '별난 학습'을 통해 궁금증과 호기심을 격려하고 자극해
준다면 장차 훌륭한 학자가 될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이리라, 이렇게 대수(대신할 대,
셈 수)에 취미를 붙인 아인슈타인은 슈피겔의 '평면 기하학'을 열심히 탐독했고,
결국 '상대성 이론'이라는 거대한 X 를 사냥해 냈다.
아인슈타인의 'X 사냥 놀이'처럼 어떤 의미에서는 인생도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이 인생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교육을 받는다. 교육을 받는 과정 또한
평생에 걸친 잠재 능력 개발의 게임이기도 하다. 이처럼 게임의 본질을 활용한
아인슈타인의 어머니는 아들의 호기심과 놀이 본능을 동시에 자극하여 아들의
교육에 성공한 것이다.
최근 교육에 컴퓨터 게임을 접목시켜 단순한 주입식 학습 방법에서 탈피해 즐거운
마음으로 학습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소프트웨어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에듀테인먼트'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만들어진 이 소프트웨어는 '찾아야 할 보물',
'잡아내야 할 악당'등을 교육 목표와 결부시켜 흥미와 집중력, 그리고 학습 효과를
동시에 안겨 준다. 이제 컴퓨터 게임은 더 이상 아이들의 공부를 방해하는 훼방꾼이
아니다. 신세대의 두뇌 개발을 돕기 위한 멀티미디어의 새로운 학습 도구가 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세계 게임 소프트웨어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일본의 닌텐도나 세가가 최근 5
년 동안 급격한 성장을 보인 이유는 게임이 단순한 놀이 차원을 떠나 각종 모의실험
훈련, 가상 현실 등 시뮬레이션에 의한 훌륭한 학습 도구, 두뇌 개발 도구로도
각광받고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를 사 줬더니 게임만 한다고 야단치는 어머니보다
훌륭한 게임 소프트웨어를 선택하여 아이와 함께 컴퓨터 앞에 앉아 아이들의
호기심과 놀이 본능을 자극해 주고 이끌어 주는 어머니가 우리에게는 보다
절실하다.
최근 한 조사를 보면, 서울 시내 초등학생들은 90% 가 과외를 받고 있고, 이 중
58.6% 는 두 종류 이상의 과외 수업을 받는다고 한다. 심한 경우 7--8개의 과외를
받는 아이도 따라서 그러나 이 같은 '전능(온전할 전, 능할 능) 교육'이 과연 아이를
정보화 사회의 슈퍼맨으로 만들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소프트웨어 업계의 황제로 불리는 빌 게이츠는 열세 살 때에 부모를 졸라
컴퓨터를 샀다. 당시의 컴퓨터는 아이에게 사 주기에는 너무나 비쌌고, 또래의 다른
아이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기계'에 불과했다. 빌 게이츠의 어머니는 아들이 다른
아이들과 닮은 꼴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고, 그의 남다른 호기심과 열정을 어디에
쏟는 것이 아들의 미래에 도움이 될지를 생각하여 컴퓨터를 사 주었다. 만약 어린
빌 게이츠가 컴퓨터를 사 달라고 졸랐을 때 이를 묵살했다면 오늘의 그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훗날 빌 게이트가 학교 공부를 그만두고 컴퓨터 사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에도 빌
게이츠의 어머니는, 자식이 이상을 가지고 더 나은 미래를 열기 위해 애쓰는데
부모가 과거의 관념을 가지고 막는다면 자식의 미래를 놓치게 하는 부모가 될
뿐이라 생각하고 승낙했다. 그녀의 이런 따뜻한 모정과 냉철한 판단은 빌 게이츠가
소프트웨어 사업을 성공적으로 일으킬 수 있도록 뒷받침해 준 수백만 달러의
자본금이나 다름없었다.
소질도 열정도 없는데 그저 옆집 아이를 따라 피아노 학원으로, 미술 학원으로,
웅변 학원으로 내몰다시피 하는 부모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런 부모는 모든 것을
할 수는 있지만 특별히 잘 하는 것이 없는 보통의 아이로 키울 수밖에 없다.
아이의 호기심과 열정을 냉철하게 판단하여 그에 맞게 키우면서 따뜻한 모정으로
지켜보는 어머니, 과거의 잣대가 아니라 미래의 잣대로 아이의 미래를 열어 주고
격려하는 어머니, 무한한 정보의 광장에서 마음껏 뛰놀게 해 주는 어머니가 정보화
시대의 참다운 어머니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천재를 기르는 어머니
유태인들은 일찍부터 자녀의 두뇌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통계에 따르면 96 년 현재의 세계 인구를 58억으로 추산한다면 유태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0.02--0.03% 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유태인은 과학, 기술,
예술, 비즈니스, 정치를 비롯한 모든 활동 분야의 세계적 리더 중의 10% 이상을
차지한다.
노벨상 수상자만 하더라도 1901 년 이후 오늘날까지 경제 부문에서 65%, 의학
부문에서 23%, 물리학 부문에서 22%, 화학 부문에서 11%, 문학 부문에서 7% 가
유태인 수상자라는 통계가 나와 있을 정도다. 이들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배후에는 그들의 생존 철학의 하나였던 '생활 속의 교육'이라는 지적 토양이 있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매년 교육 예산의 36.7% 를 어린이 영재 교육 부문에 투입하고
있다. 그리고 어머니의 재교육에 대한 투자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다. 가정
교육에서 어머니 역할의 중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스라엘에서는 어머니의 교육을 위한 정부와 학교, 지역 사회 간의 연대와
협조가 매우 긴밀하다. 이는 전통적으로 가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자녀의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밀접하게 접촉하면서 훈육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이 서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교육 풍토를 보여 주는 한 예를 들어 보자. 이스라엘에서는
자녀들에게 종이에 대해 가르친다고 할 때, 제조 과정, 역사, 종이류 등 종이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가르친 다음 여기에 얽힌 지혜도 함께 알려준다고 한다. '안네 프랑크는
일기 쓸 종이를 어떻게 입수했으며 얼마나 절약해서 썼는가?' 그리고 '폴란드에서
추방당한 유태인들이 추운 허허벌판에서 노숙할 때 어떻게 종이로 이불을
덮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 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 가지 사실에 대해 단순한 명제를 주입하거나 개념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사실에서 연역하여 도출해 낼 수 있는 여러 가지 창의적 경험까지도
전해 주는 것이다. 유태인 사회에서는 어린이에게 탐구심을 길러 주고 실험 정신을
높여 주는 일은 어머니의 당연한 의무와 역할이다. 어머니는 어린이의 호기심을
자극해 주고 어린이의 지적 호기심이 잘 자라도록 격려해주어야 한다는 인식이
보편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식탁에서는 이런 교육이 가능하다.
이스라엘에서는 흔히 오이와 토마토, 당근을 썰어 만든 샐러드와 빵을 먹는다.
그러면 어머니는 그 음식을 먹게 된 역사적인 과정과 그 음식이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들려 준다. 유태인은 전 세계에 흩어져 2천년간이나 나라 없이
생활에 왔기 때문에, 그들이 태어난 곳의 문화와 생활 양식이 제각기 다르다. 그래서
음식도 전 세계의 재료를 이용해 다양하게 요리해 먹는다.
유태인 어머니들은 가능한 한 같은 메뉴의 음식을 계속해서 식탁에 올리지
않는다고 한다.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주는 데에는 새로운 음식을 먹이겠다는 의지
외에도, 그 음식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 주겠다는 교훈이 들어 있을 것이다.
왁친을 발명해 소아마비의 공포로부터 인류를 구원한 유명한 의학자 에드워드
소크는 그의 회고록에서 "나는 소크 왁친을 발견하기까지 수천 번의 실험을
계속해야 했다. 내가 이 같은 실험 정신을 갖게 된 것은 어머니가 매일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라는 매우 의미있는 말을 남겼다. 유태인 가정의
뿌리깊은 교육적 풍토와 탐구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미국의 학교에서 끈질기게 질문하고, 반대 의견을 제시한 뒤 토론하기 좋아하는
학생 중에는 유태인이 많다고 한다. 그렇게 토론하고 재검토하는 시간을 통해
결국은 의문점들을 자기 지식으로 완성한다고 한다. 유태인이 어느 사회에 있어서도
높은 두각을 나타내고 많은 업적을 쌓아올리는 것은 이처럼 늘 탐구하고 사고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와의 경쟁이란 결국 뛰어난 교육 환경과 사고 방식을 가진 세계인들과의
경쟁이다. 우리 나라가 과학 기술 개발에 정책적으로 신경을 쓴 것은 불과 30--40
년밖에 되지 않는다. 이처럼 짧은 역사를 가지고 우리는 이스라엘,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과 경쟁을 해야 하고, 과학의 상용화, 실용화의 귀재라는 일본과도
맞대응을 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의 무역 적자는 기술 경쟁력 열세에 기인한다. 기술 경쟁력 열세는
창의력의 열세에서 오는 것이며, 창의력 열세는 열악한 교육 환경에서 오는 것이다.
우리 교육이 창의력을 키우고 개발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래의 가정
인간 교육의 기초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 경험이 많은 사람을 흉내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가정에서의 자녀 교육은 어린이들이 부모의 행동을 모방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또 자신이 의존하고 있는 가장 영향력
있는 대상이 부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모 스스로가 귀감이 되지 않으면
기대하는 대로 아이를 기를 수 없다. 부모는 좋은 교육자이기도 하고 좋은 표준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상상을 한번 해보자.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남편의 출근을 도운 다음, 아내는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준다. 집에 돌아와서는 식기 세척기를 사용해 설겆이를
해서 건조기에 옮겨 놓는 것을 끝으로 아침 집안 일을 마친다.
그리고는 거실의 컴퓨터 앞에 앉아 용역을 맡은 회사의 지시 사항을 체크하고
곧바로 작업에 들어간다. 서너 시간 뒤 완성된 보고서를 회사의 주컴퓨터로 전송한
다음, PC 통신의 홈 쇼핑 서비스와 홈 뱅킹 서비스를 이용해 집안에서 시장을 보고
은행 업무도 처리한다. 그 사이 유치원에 다녀온 아이는 동네 놀이터에 나가 놀고
있는데, 옆에서 지켜보고 있지 않아도 별 걱정이 없다. 모니터 화면을 통해 수시로
아이의 노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가정 자동화의 진전으로 조만간
실현될 한 가정 주부의 생활 모습이다.
정보화 사회는 핵가족화와 과학화, 자동화 경향에 의해 직장과 가정이 연결되는
기능 사회의 특성을 갖는다. 주부의 가사 노동 비중이 점점 감소하고, 컴퓨터와 통신
기술의 발달로 재택 근무를 통한 사회 참여의 길은 한층 넓어진다. 근래에 이루어진
정보 통신 분야의 급속한 발달은 가정 자동화와 정보 통신망 구축을 가속화시켜
재택 근무가 가능한 여건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우리 어머니들의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할지, 부모를 모방하며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보여 줄 바람직한
어머니상은 어떤 것일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요즘 가구 소득의 증대를 위해 맞벌이를 하는 부부가 늘고 있지만, 항상 염려되는
것은 일로 인해 집안을 비우는 탓으로 야기되는 자녀 교육과 애정 문제다. 자녀가
학교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무도 없는 텅빈 집안의 허전함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정보화 사회의 진전에 따른 가정 자동화와 이에
힘입은 재택근무가 어머니에게 각광받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왔을 때 어머니가 반겨 주는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는
서로 다른 성격 특성을 갖게 되기 마련이다. 아이가 의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대상인 어머니는 역시 집에 있어야 아이가 좋아하며, 이런 보살핌과 사랑 속에서
자라야만 안정되고 온화한 인간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정서적, 사회적 품성을 가질
수 있다.
아이와 함께 시간과 문화를 같이 향유하는 부모, 끊임없이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부모는 이상적인 부모가 아니라 기본적인 부모다. 정보 매체에 익숙해지기 위한
노력과 자기 개발을 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자녀와의 대화는 물론 감정 교류까지
곤란해질 것이다.
사람의 뇌는 논리적 언어를 관할하는 왼쪽 뇌와 감정이나 정서를 지배하는 오른쪽
뇌로 나뉘어 있다. 이 양쪽의 뇌가 각각 맡은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때 비로소
완전한 뇌의 구실을 다하게 된다. 사회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구성원의 절반인 여성의 기능이 제구실을 할 때, 균형 잡힌 틀을 갖춘 합리적인
사회가 된다. 정보화 사회는 노동 생산성보다 지적 생산성이 강조될 뿐만 아니라,
감성 산업과 문화산업이 더 큰 부가가치를 갖는다. 때문에 여성의 감각적 특성을
개발하는 문제는 여성 자신의 자아 실현 욕구충족과 더불어 국가적 차원에서도
요구되는 일이다.
정보화 사회는 자녀만 잘 교육시키면 되는 사회가 아니다. 부모도 꾸준히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고 스스로의 재능을 개발해야 한다. 정보화 사회의 기본적인
도구인 컴퓨터와 정보 통신으로 현대 문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매일 새로운
지식을 쌓아 가야 한다. 부모 자신을 위해서나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나 이는 절실히
요구되는 사항이다.
컴퓨터는 사회 참여의 길로 나가는 보이지 않는 통로이다. 앞으로 더 많은 정보화
도구가 보급되겠지만, 우선 PC 와 PC 통신에 익숙해져 보도록 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컴퓨터는 '나의 미래를 밝혀 주는 유용한 물건'이라는 생각부터 가져야
한다. 컴퓨터를 매개로한 아이들과의 교감을 통해 가정의 화합을 이루고, 나아가
자신의 재능을 개발하여 더 밝은 미래를 열어 보자.
미래의 주부상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박사가 한국에 왔을 때, 그는 인터뷰나 사적인
대화중에 "나를 말할 때 나의 부인을 빼놓지 말라."는 말을 자주 했다. 물론 그가
쓴 일련의 저서가 나오기까지, 자료 조사에서 주요 인물의 인터뷰에 이르기까지
아내가 절대적인 역할을 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내의 역할을 누누이 강조하는
그의 이런 말과 태도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는 멀티미디어의 정보화 사회에서는 '부부의 수평적 협력 관계가 사회 기능의
기본을 형성할 것이며, 여성의 사회 참여와 재택 근무 수준이 곧 그 나라를
평가하는 중요한 지표라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농업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은 '수직적 주종 관계'였다. 또 산업 사회에서는 집안
외부의 일과 내부의 일로 나누어진 기능 보완적 관계로, 직장 일은 남성, 가정 일은
여성의 몫이라는 '수평적 보완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정보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남녀의 관계는, 남성의 하드웨어적 기능과
여성의 소프트웨어적 기능이 상호 협력하는 '수평적 협력 관계'로 발전하면서 점차
가정 중심, 소프트웨어 중심의 사회로 그 형태가 변해 가고 있다. 이 시대의 여성은
가정을 지키는 주부의 역할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직장과
가정에서 여성 특유의 감성적 소프트웨어 기능을 활용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주부가 점차 늘어나고 있고, 이런 추세라면 미래에는 더욱 일상화된 재택 근무로
사회 참여의 수준을 한층 끌어올림은 물론 사회 운영에도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자신에 대해서 얘기할 때 그의 부인을 함께 말해 달라는 토플러 박사의 특별
주문도 결국 부인의 소프트웨어적 기여가 없었더라면 그의 하드웨어적 업적이
불가능했다는 점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특별한 강조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재택 근무 등 여성의 정보화 수준이 선진국, 후진국을 가늠하는 지금,
우리 주부의 관심은 어디에 있으며, 앞으로 주요 관심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 주부들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공통적인 몇 가지는
짚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좋은 집을 장만하는 것, 자녀를 좋은 학교에서
교육받게 하고 싶은 욕구, 그리고 좋은 자동차를 가지고 여유있게 살고 싶은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좋은 집과 자동차를 가지고 여유있게 살고 싶고, 아이를
좋은 학교에서 교육시키고 싶은 주부가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나 급속하게 다가오는 미래를 생각하면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바로 미래의 정보화 사회를 준비하는 일로, 남편에게는 초고속 통신망 활용을
장려하고, 이를 위해 함께 수평적 협력 관계를 통해 사회적 능력을 높여 가는
것이다. 또 자녀에게는 인터넷 등 세계적 네트워크로 재택 학습을 돕는 훌륭한
선생님이 되는 주부, 스스로는 자신의 재능을 향상시키면서 가정의 정보화, 지능화를
위해 노력하는 주부라면 정보화 사회의 멋쟁이 주부라 하겠다.
상호 협력적 위치에 당당히 설 수 있는 주부가 더 많아져야 우리 사회의 진정한
정보화가 앞당겨질 것이다.
여성의 시대가 온다.
세계 은행과 시카고 대학은 정보화 시대에 도로 건설에 투자할 경우의 예상
수익률은 7--11% 이나, 여성 교육에 투자할 경우의 예상 수익률은 27% 로, 최고의
투자는 여성의 교육과 활용에 있다는 공동의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다가오는
미래에 여성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발표이다.
시대는 산업 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산업 사회가
'근력'으로 상징되는 남성의 역할이 중시되는 기계위주의 사회였다면, 정보화 사회는
'감성'으로 상징되는 여성의 역할이 중시되는 지식 위주의 소프트웨어 사회라 할 수
있다. 여성의 교육과 활용에 최대의 투자 가치를 둔 연구 결과는 이러한 인식에
바탕한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의 경우 여성의 사회 참여의 이미 보편화되었고, 그
성과도 아주 훌륭하다. 우리 나라의 경우 최근에 와서 이 문제가 주요한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지만, 선진국에서는 여성의 참여가 없으면 사회의 운용이
곤란할 정도로 여성의 사회 참여 폭이 깊고 넓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여성의 고유한 능력을 인정하고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그 능력을 수용하기 위한
노력을 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정보화와 관련한 산업이 확대되면서 여성 전문 인력의 사회 참여도 더불어
확대되고 있다는 점과 기존의 산업 구조가 점차 창의성과 감성을 위주로 하는 산업
구조로 전환되고 있는 것은 우리가 눈여겨볼 만한 변화이다.
지금 선진국들이 펴고 있는 산업 정책은 여성 정책과도 연계되어 짜여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생명 과학 분야 전문 인력의 41% 가 여성이다. 영국은 노동 인력의
50% 가 정보 관련 산업으로 전환하였는데, 그 중 여성 인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33% 에 달하고 있다. 이는 그 동안 정부와 민간 기업이 공동으로 여성에 대한 교육
제도를 개선하고, 이에 따른 적극적 고용 정책을 전개한 결과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도 정보화 사회로 사회 구조가 변화함에 따라 전문 기술
인력의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측되는데, 현재에도 약 50 만 명의 전문 인력을
필요로 하고, 2010 년에는 약 100 만 명의 전문 인력의 부족을 보충할 여성 전문
인력의 양성은 필요 불가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나라 여성들은 높은 교육 수준을 지니고 있다.
94 년 한 해만 해도 고등 교육 기관에서 배출한 여성 인력은 총 60 만 명에
달한다. 우리 나라 잠재 실업인의 280 만 명 중 여성이 240만 명이, 이 중 기술
전문 인력에 해당하는 유효 인력은 21 만명에 달하고 있다.
주요 선진국의 여성 취업자 중 전문 분야에 종사하는 인력의 비율을 보면,
스웨덴이 44%, 캐나다가 34.8%, 미국이 31.3%, 일본이 12.6% 인데 비해 우리는
9.1% 로, 우리 나라의 여성 인력은 주로 단순 서비스직에 종사하고 있다. 전문
분야의 취업은 크게 저조하다. 특히 전체 취업 인력 중 과학, 기술 분야의 여성
취업은 선진국에 큰 차이를 보이는데, 미국의 경우 38.4% 를 차지하고 있고, 다른
선진국들도 30% 를 넘고 있지만 우리는 8.4% 에 지나지 않는다.
가사 노동의 기계화, 자동화로 시간의 여유가 늘고, 고등 교육을 받은 여성이
늘어나면서 여성이 사회로 진출할 수 있는 여건은 나아지고 있지만, 여성 인력의
개발과 사회 참여 확대는 아직도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과학과 기술
관련 분야는 남성의 영역이며, 기술에 대한 흥미와 능력을 갖고 있는 여성은
여성답지 못하다는 사회적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과학, 기술 분야에의
여성 참여를 제한하는 요소가 깊게 뿌리박혀 있다.
우선 기술 인력을 양성하는 고등 교육 상황에서 보면, 우리 나라 대학생 중 인문,
사회 계열을 전공하는 여학생은 필요보다 많은 반면 이공 계열을 전공하는 여학생은
비정상적으로 적다. 우리 나라 공과 대학의 여학생 비율은 4.9% 로 미시간,
버클리대 등 미국의 주요 8개 공과대학의 여학생 비율 20% 비하면 매우 낮다.
더욱이 우리 나라 공과 대학의 여자 교수 비율은 1.5% 에 불과하고, 서울대 공과
대학 교수 203 명 중에서 여자 교수는 단 1 명이다. 이러한 현상은 과학 기술 관련
정부 출연 연구소, 국5,23공립 연구소의 경우도 비슷한 상황이다.
우수 인력이 학계를 기피하도록 하는 진로 지도, 교육 제도, 사회 풍토는 고쳐져야
한다. 그리고 여성을 과학 기술 인력으로 적극 활용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현실도
바꿔져야 한다.
국가 경영의 승패는 오로지 미래를 준비하는 인력 정책에서 판가름난다. 사람만이
유일한 부존 자원인 우리에게는 인력 활용이 더욱 중요하다.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엔 앞서 가기 위해서 전통적인 인력 정책의 패러다임도 바꿔 보자.
스위스 국가 경영 개발원의 94 년 세계 경쟁력 보고서에 나타난 한국 여성의 사회
활동 수준은 비교 대상 42개국 중 41위로 최하위였다.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길을 이제는 여성에게서 찾아 보자. 인구의 절반인 여성 인력
정책을 바로 세우는 일이 더 나은 국가 경영의 길을 여는 큰 지혜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여성 취업에 대한 우대 조치, 여성 인력 고용 쿼터제 등 고려해 볼 만한 정책은
적극 도입해야 한다. 아울러 여성의 사회 활동에 걸림돌이 되는 육아, 근무 조건,
교육 제도, 의료 복지 제도 등은 사회 인프라 개혁 차원에서 과감하게 개선해야
한다.
다가올 미래 사회가 여성(Female), 감성(Feeling), 가상(Fiction)의 '3 F' 시대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와 있다. 효율적이고 과감한 여성 인력 정책은 보다 나은
미래를 창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여성의 사회 진출은
여성의 힘만으로는 이루기 어려운 구조적인 제약이 있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남녀가 함께 풀어 가야 할 숙제이다. 여성만의 여권 운동으로 가능한 일이 아닌
것이다. 고유한 개성과 특성을 살려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멀티미디어 사회의 이상이다.
미래형 공부방
세상은 정말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간다.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들리던 멀티미디어라는 말이 어느새 신문과 방송의 일상
용어가 되고 있고, 컴퓨터 전문가나 학자들만 관심을 갖던 인터넷을
중5,23고등학생들은 물론 유치원 아이까지 이용하고 있다.
급격히 멀티미디어화 되어 가는 사회 변화를 바라보는 컴맹 부모의 심정은 정말
답답하고 불안하다. 자녀들을 시대의 흐름에 뒤쳐지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가장 서둘러 보내는 곳이 컴퓨터 학원인데, 부모들은
흔히 자녀들을 컴퓨터 학원에 보내고, 컴퓨터를 사다가 책상 위에 놓아 주는 것으로
부모로서의 할 일은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 이상은 자신의 능력 밖의 일이니,
나머지는 자녀 스스로가 알아서 해 주기를 바라며, 자녀의 노력이 기대에 부합하지
못할 때에는 오히려 자녀를 나무란다.
단순히 컴퓨터를 조직할 수 있는 여건과 능력을 가지는 것만으로 미래 멀티미디어
사회의 주역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자세, 정보를
읽고 활용할 줄 아는 능력, 넓은 세계를 자신이 살아가야 할 인류 공공의 영역으로
인식하게 하는 국제적 안목을 키워 주는 일이 더 중요하다.
시대가 급변하고 혼란한 때일수록 가정과 부모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급속한
변화의 와중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녀들이 적응해 갈 수 있도록 침착하고 현명하게
이끌어 주어야 한다.
어린이 교육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유태인 어머니들은 아이들에게
참고서나 전과보다는 백과 사전을 마련해 주고 숙제를 할 때, 참고서의 풀이와
정답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백과 사전의 관련 항목들을 살펴보고 서로
어떻게 되는가를 스스로 생각해서 정답을 찾도록 가르친다.
스위스의 세계적인 심리학자 장 피아제는 인간의 지능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기억하는 지능이고, 다른 하나는 기억된 지식을 활용해서 또 다른
지식을 창조하는 지능인데, 창조적 지능의 발달은 어린이에게 왕성한 반면, 어른이
되면서 점점 쇠퇴해진다고 한다.
아이에게 가정 교사나 참고서보다 백과 사전을 활용토록 하는 것이 창조적 지능
개발을 촉진하는 산업 사회의 모범적인 교육이었다면, 정보화 사회의 모범적인
교육은 어떤 형태여야 할 것인지 생각해 보자.
요즘은 동(움직일 동)화상과 다양한 음악, 각종 게임으로 구성된 CD-ROM 등
멀티미디어 학습 도구가 각광을 받고 있다. 이런 학습 도구가 아이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프로그램의 진행을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창조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게임에 빠져 몰두하는 과정에서 아이의
창조적 지능은 무럭무럭 자라난다. 스스로 문제에 부딪치고 답을 찾아가는 동안
학습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정보화 사회를 살아가는 어린이의 필수품은 바로 멀티미디어 학습 도구이다. 예쁜
책상, 예쁜 의자만으로 아이들이 공부방을 꾸미던 시대는 지났다. 자녀를 유명한
과외 학원에 보내는 것에 신경쓰거나 좋은 책만 권장하는 어머니보다는 다양한
CD-ROM 타이틀과 학습용 게임 소프트웨어로 가득찬 '멀티 공부방'을 꾸며 주는
어머니가 더 필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
3F 시대와 여성
도스(DOS)의 시대가 가고 그 자리를 윈도우즈(WINDOWS)가 이어받으면서
컴퓨터 운영체제에 일대 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변혁의 일단락을 지은 것이
'윈도우 95'의 출현인데, 이는 문자 시대에서 그림 시대로의 변혁이며, 이성
시대에서 감성 시대로의 변혁을 의미한다.
컴퓨터의 기능도 실무적 사무 처리 기능에서 공상적 가상 현실 구현의 기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정보화 사회가 감성(Feeling)과 가상(Fiction)을 지향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여기에 눈에 띄는 여성(Female)의 진출을 더해서, 시대는
바야흐로 '3 F의 시대'로 가고 있다.
감성과 가상의 운영 체제인 윈도우즈의 출현으로 인해 각종 프로그램들은 '더
빠르고, 더 쉽고, 더 재미있게' 움직이고 있다. 이런 재미있고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충분한 용량의 중앙처리 장치를 비롯한 각종 주변 장치가
완비되어야 한다.
성능 좋은 컴퓨터가 되기 위해서는 이 모든 기능을 가진 각종 기관들을 용도에
맞게 꽂아서 쓸 수 있도록 만들어진 컴퓨터의 기본판인 마더 보드(Mother
Board)가 좋아야 한다. 구형 마더보드로는 나날이 쏟아져 나오는 신형의 장치들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다. 보드의 이름에 '어머니'라는 말이 붙은 것은 의미가 있다.
거대한 빌딩이 빼곡이 들어서 있는 복잡한 보이는 도시들도, 결국은 어머니 같은
대지(큰 대, 땅 지) 위에 형성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시대는 어떤 여성을 요구하고 있는가? 그 대답을 컴퓨터의 마더 보드에서
찾는다. 감성과 가상의 시대라는 이 시대에 가정을 제대로 꾸려 나가려면, 이 땅의
여성들이 '마더 보드'와 같은 기능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누구나 무난하게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참으로 바람직하겠지만, 이 일도 쉽지는 않다. 홈 쇼핑, 홈
뱅킹, 거기다가 통신 교육, 원격 진료까지 생활화된 정보화 시대에는 가정의 운영
체제가 지금보다 더 효율적이고 체계적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컴퓨터의 운영
체제도 남성 중심의 상하 수직적 관계에서 서로가 협력하고 보완하는 상호 수평적
관계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은 내조자가 아닌
동반자의 역할을 해야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마더 보드' 같은 폭넓은 수용성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3 F의 시대에는 여성의 운용 능력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가정과 사회, 나아가
국가의 운용 수준이 가늠될 것 같다. 물론 가족 구성원 전체가 팀웍을 이루어야
효율적인 운용이 되겠지만, 여성의 비중과 역할이 아주 중요해진다는 말이다.
바야흐로 정보화 사회는 우리 주부에게 보다 빠르고 보다 효율적이고 보다 수용력
있는 마더 보더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컴맹 주부님께 드리는 고언
95 년 말에 나온 통계에 따르면 우리 나라 인구 백 명 중 13 명이 PC 를 가지고
있고, 보급된 PC 의 수는 5백 44 만 대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엄청난 수량이기는
하지만, 35% 의 가정에 3천 2백만 대의 PC 가 보급된 미국에 비하면 그리 많은
것도 아니다.
우리 가정에도 컴퓨터 보급은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나 많은 가정에서 PC 는
자녀나 남편에게 독점되어 있다. 주부를 위한 컴퓨터 강좌가 전국에서 열리고
있지만, 아직도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여성과 주부들의 컴맹률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가정 구성원 중 PC 와 친할 기화가 가장 적은 사람이 주부다. 그래서 컴맹
주부는 시대의 변화와 흐름에 뒤지고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게 되고, 심지어는 자기
비하나 소외감까지 느끼게 되는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복잡하고 어려운 첨단
기계라는 공포감 때문에 만져 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 컴맹 주부의 실정이다.
이제는 생활 깊숙한 곳에까지 컴퓨터가 쓰이고 있다. 가정에서 컴퓨터를 이용해
가계부와 친지 주소록을 정리하고, 각종 생활 정보를 얻고, 시장을 보고, 은행
업무도 처리한다. 이렇게 안방이 은행이 되고, 도서관이 되고, 전자 오락실과
노래방이 되어 있다. 이처럼 컴퓨터를 이용한 정보화 문화가 우리 실생활에까지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몇몇 미래주의자들에 의해 간간이 이야기되던 정보화 사회가
미래에 올 환상의 세계가 아닌 코앞에 닥친 일상이 되었음을 입증하는 예이다.
컴퓨터를 활용하는 것은 정보화 사회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일이다. 주부라고 해서
컴퓨터 사용 의무를 면제시켜 주지는 않는다. 컴퓨터를 만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일은 아무 소용 없는 일일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일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이
주부라는 직책을 가지면서 시작된 육아와 가사일과 잡다한 일상의 의무는 주부를
자연스럽게 사회로부터 고립시켜 버렸다. 그사이 컴퓨터는 당당히 안방을 점령했다.
아빠가 아니라 아이들의 요구로 컴퓨터를 들여 놓은 집에서는 아이의 방으로
들어가 아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매스컴은 연일 컴퓨터하고 잘
지내지 않으면 앞으로 곤란해질거라며 열심히 가정을 지켜 온 주부를 겁주고 있다.
컴퓨터 없이도 가정을 꾸려 가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으므로, 그 동안 주부들은
자녀에게 사 주기는 했어도 만져 볼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정보화
시대라는 이름으로 그걸 만지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판국이니 어쩔 수 없다. 본의든 아니든 간에 가정 주부들도 컴퓨터 사용법을
익혀야 한다. 다른 대안은 없다. 하지만 컴퓨터는 TV 처럼 리모트 컨트롤의 버튼
몇 개로 조작되는 간단한 물건이 아니다. 가격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컴퓨터는 사람에게 쓰이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는가. 어느 정도의 기초 지식만 있으면 손쉽게 사용할 수 있다.
신제품으로 나온 세탁기나 전자렌지를 제품 설명서만 보고도 다룰 수 있는 주부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주부들 사이에서 한동안 붐이 일었던 자동차 운전 면허를 따기
위해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한다면, 컴퓨터 사용법을 익히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펜티엄 컴퓨터의 대중화로 확산 일로에 있는 '윈도우 95'라는 프로그램은
스위치만 켜면 바로 그림이 나오고 그림의 내용대로 마우스로 선택하기만 하면
작동되기 때문에 컴퓨터 다루기는 더욱 쉬워졌다.
앞으로는 사용자의 명령에 따라 운용되는 프로그램이 나올 전망이다. 그러니 비록
컴맹이라도 주눅부터 들어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컴퓨터는 이제 예전의
어렵고 복잡한 기계가 아니다.
아이의 방 앞에서 문 너머로 들려 오는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무얼 하는지는 모르지만 뭔가 공부하고 있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기 보다는
컴퓨터를 배워 자녀들과 함께 컴퓨터를 자연스럽게 사용하면서, 자녀가 컴퓨터를 더
잘 사용할 수 있게 이끌어 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그러면 요즘 기승을 부리는
음란물 유통의 병폐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학생으로 하여금 각자의 개성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하여 능력을 키워 주는 것이
교육의 목표다. 이 목표의 달성을 위해서는 자녀들에게 정보 통신을 이용한 중앙
도서관, 신문사, 인터넷의 다양한 자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겠다.
요즘 시중에 나와 있는 게임과 학습을 접목시 교육 프로그램을 보면 어찌나
재미있고 다채로운지 탄성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이런 재미있고 유익한
프로그램들을 자녀들이 많이 접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과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자녀들이 컴퓨터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래서 그 비싼 컴퓨터가
오락기로 전락하고 있다면 어머니들이 나서서 아이를 이끌어야 한다.
어머니들이 먼저 컴퓨터와 친해져야겠다.
정보 고속도로 시대의 운전 면허
인공지능 기능을 가진 가전 제품이 줄을 잇고 있다. 인간의 감각을 대신해서
감지하는 인공 센서는 제3의 소재라 부르는 '세라믹' 덕분에 가능한 것이다. 가스
레인지의 자동 점화 장치, 그리고 그 점화 장치의 반대 원리를 적용한 가습기, 가스
누출 감기 센서 등으로 쓰이는 세라믹은 도자기나 유리, 시멘트의 원료로 쓰이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첨단 과학과 결합하면서 이처럼 놀라운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산업 사회에서 단순 재료로 쓰이던 세라믹이 정보화 사회에서는 첨단 소재로
각광을 받게 된 쓰임새의 이 놀라운 변화는, 산업 사회와 정보화 사회의 극명한
대비를 보여 주는 것이다. 산업 사회가 단순 구조를 가진 단순 용도의 사회라면
정보화 사회는 다중의 구조와 다양한 용도를 가진 입체적 사회라는 것이다.
인간 사회는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문명을 발달시키게 되었다. 이를
뒤집어 말한다면 도구를 사용할 줄 모르고는 문명 사회를 발달시키기는커녕 문명
사회의 시민이 될 수도 없다는 말이 된다. 이 시대를 이끌어 나가는 선진 시민이
되려면 첨단 기능을 가진 고성능의 도구들을 유용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컴맹'이나 '과학맹'의 상태로 선진 시민이 되겠다는 것은 큰 오산이다.
정보화 사회는 국민 개개인이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수준에서 출발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 추세인 멀티미디어 사회에서는 영어와 컴퓨터의 사용이
기본이고, 다양한 세계 문화에 대한 이해까지도 요구한다.
이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세계화에 필요한 여러 요소들을 시스템으로 엮은 다중
구조의 다양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 시대는 바로 이러한 체제로 걸맞는
멀티미디어적으로 사고하는 인간형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활에서 과학하는
마음을 갖는 일, 그래서 창조적이고 창의적으로 개인의 잠재력을 발휘해 능력을
극대화하는 일이,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준비해야 할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정보화 사회는 치열한 과학 기술력 경쟁의 시대다. 과학 기술력의 바탕이 되는
것은 결국 창의력이요, 그것을 올바로 키우는 영역이 교육이다. 지식과 지혜의
시대가 될 21세기, 세계 경제 전체의 부가가치 중 무려 75% 이상의 정보화와
관련한 부문에서 발생할 것이라는 21세기의 무한 경쟁 속에서, 우리가 흔들림 없이
올곱게 일어설 수 있으려면 그 준비를 지금부터 해 나가야 한다.
그렇다고 과학 기술을 키우는 일만이 능사라는 말은 아니다. 정보화 사회는
인간과 정보가 합쳐진 '인정의 사회'라고 하듯이, 과학 교육의 중요성 못지 않게
도덕과 윤리에 대한 교육도 그에 맞게 이루어져야 하겠다. 이런 인성 교육은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더욱 강화되어야 할 절대적인 요소이다.
반사회적 아동은 소극적인 경우 남과 어울리지 못하고 항상 자기만 아는 행동을
하고, 적극적인 경우는 사회의 규칙이나 규범을 어기는 행동 특성을 나타낸다는
것이 아동 심리학자들의 지적이다.
이런 반사회적 아동들이 나오는 것은 지능의 조기 개발 못지 않게 중요한 도덕,
윤리의 조기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한 데에 그 원인이 있다. 이런 아이가 자라나서
사회의 지도자가 된다 하더라도 역사적으로 불행한 뒷모습을 남길 수밖에 없다.
영재성과 지능의 조기 개발이 어머니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처럼, 도덕 의식의
조기 교육 또한 가정에서 이뤄져야 할 중요한 부분이다. 농업 사회, 산업 사회를
거치면서 각각 그 시대에 맞는 윤리 규범이 있었듯이 정보화 사회에도 정보 윤리
규범이 있게 마련이다.
자동차 운전을 하기 위해서는 적성 검사와 교통 법규 등에 대한 시험에 합격해서
운전 면허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정보 고속도로를 달리는 안방에서의 컴퓨터
운전은 적성 검사나 면허 시험도 없고 자격증도 따로 없다. 때문에 컴퓨터 이용의
기본적인 윤리, 도덕, 법규 등의 면허 자격 교육은 결국 가정에서 어머니가 맡아야
할 몫이다.
아이가 컴퓨터 운전으로 무한한 정보 고속도로를 안전하게 달려 정보화 사회의
참다운 지도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지적 능력을 키워 주는 일 못지 않게 올바른
사회성과 올바른 정보 윤리를 갖게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PC는 마법 상자
"영재아는 탐구심을 가지고 정보를 찾는 일에 집중력을 발휘한다. 또한 복잡한
문제를 부분적으로 나누어 체계적으로 분석한다. 그래서 다른 아동에 비해 빨리
독립적으로 과제를 수행할 수 있다."
미국 특수아 협회가 발표한 정보화 시대에 걸맞는 영재아의 특성이다. 시대
변화에 따라 영재의 정의가 바뀌듯 학교 교육의 모습 또한 변하고 있다. 미국의 한
대학 교수는 학생들이 워드프로세서나 원고지가 아닌 PC 통신의 전자 우편으로
리포트를 보내면 가산점을 주고 있다. 또 PC 통신망 어딘가에 학교 마크가 있으니
그것을 찾아 리포트 겉표지를 장식하라는 특별 주문을 하여 통신망 사용을
유도한다.
이제는 가진 정보를 어떻게 쓰느냐 하는 노하우(Know How)보다 필요한 정보가
어디에 있는가를 잘 찾아 내는 노훼어(Know Where)를 가지는 일이 더 중요하다.
학생들의 학습 방법도 변해 도서관의 방대한 자료를 일일이 뒤지기보다는, PC
통신을 이용하여 대통령 집무실의 자료까지도 얻을 수 있는 '넷티즌(Netizen)'으로
변신하고 있다.
또한 멀리 외국에 있는 유명 교수의 강의를 집에 앉아서 듣기도 하고, 자판을
두드리며 모니터 상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채팅을 이용해 얼굴도 모르는 다양한
나라의 학생과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PC 통신망과 종합 정보 통신망을 통해 수업을 진행하는 가상
대학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 대학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유치원 수업도 이제
동(움직일 동)화상이 제공하는 멀티미디어의 원격 수업으로 대체될 날이 멀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의 뜨거운 자녀 교육열은 어떻게 변해야 할까? 아이들과의
직접적인 대화는 거부한 채, 저녁만 먹으면 아이들을 공부방으로 밀어 넣고 저녁
내내 TV 앞에 앉아 있는 어머니가 얼마나 많은가? 이런 어머니는 자녀가 살고
있는 미래 교육 환경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바보 상자에 갇힌 어머니다. 자녀와
함께 컴퓨터 앞에 앉을 수 있는 어머니는 무한한 정보의 광장에서 아이와 함께
미래를 열어 나가는 훌륭한 선생님으로서, 마법 상자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TV 가 주는 정보는 일방적으로 한정된 것이지만, PC 안에는 무한한 정보가 들어
있다. PC 통신을 이용해 정보를 찾는 어머니의 모습 그 자체만으로도 아이에게
깊은 교육적 인상을 심어 줄 수 있다. 정보화 사회의 영재 교육은 컴퓨터 등 새로운
미디어를 활용하지 않고는 어렵다. 컴퓨터를 이용해야만 시대에 맞는 높은 교육
효과와 무한한 두뇌 개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자녀의 취향과 호기심에 따라 적절한 정보를 찾아 만족시킬 수 있는 PC 통신은
더없이 훌륭한 교육 도구이다. 이런 도구를 잘 다루는 어머니라면 자녀에게 가장
훌륭한 교육을 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국가는 엄청난 돈을 들여 정보 초고속
도로망을 건설하고 있다. 이를 멍하니 쳐다만 보는 바보 상자 속의 어머니가 될
것인가, 아니면 이를 십분 활용하는 지혜로운 어머니가 될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 선택에 따라 자녀들이 엄청난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점은 더 말할
필요가 없겠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를 좋은 교육 환경에서 키우고 싶어하고, 그래서 탐구심과
집중력을 가진 뛰어난 아이로 기르고 싶어한다. 이런 아이로 키우려면 정보를 찾는
능력을 개발해 주어야 하고, 미래의 교육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적응력과 잠재력도
길러 주어야 한다.
이 모든 교육을 할 수 있는 장이 바로 PC 라는 교실이다. 정보화 시대의
성공적인 자녀 교육은 오로지 PC 와 PC 통신에 대한 어머니의 인식에 달려 있다.
최근 인터넷에 대한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다. 이미 전 세계 약 1백 60십 개국에
연결된 세계 최대의 정보 통신망 '인터넷'은 이제 전문가나 어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인터넷 역시 두뇌 개발의 공장으로도 활용될 수 있는 학습의 장인 것이다.
사람의 두뇌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외부의 자극에 의해 발달한다. 특히 뇌세포
간의 연락망인 신경 회로는 다양한 외부 자극으로 그 발달 과정이 5--10세 사이에
절정을 이루게 된다. 바로 이 신경 회로가 초고속도로처럼 잘 만들어지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외부 자극에 대응하는 일, 즉 생각과 흥미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잘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판가름된다고 한다. 따라서 자녀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가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외부의 자극을 조기에 폭넓고 다양하게 제공해
주는 일이다.
1백 50억 개에 달하는 사람의 뇌세포를 소우주라고 하듯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은 지구의 뇌세포인 대우주로 비유되기도 한다. 아이에게
무한한 자극과 꿈을 제공하는 대우주의 놀이 공간을 열어 주는 것은 교육적으로
더없이 훌륭한 일이다.
방 안에 앉아서 아이에게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를 감상하게 해 줄 수
있고, 미항공우주국에 들러, 허블 망원경으로 촬영한 목성과 혜성의 충돌 장면을
보여 줄 수 있다. 내친김에 미국 백악관에 들어가 미국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 보게
하고, 그의 멋진 사인이 든 답장을 받게 할 수도 있다. 할리우드에서도 개봉되지
않은 영화의 예고편을 보여 줄 수도 있고, 첨단 교육용 게임, 최신 음악 등 다양한
내용들을 웹사이트의 간단한 길목만 알면 얼마든지 보고 들으며, 미지의 대우주에서
놀이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아이 스스로 마우스를 움직여 흥미로운 정보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준다면, 대우주의 무궁무진한 소우주는 훌륭한 초고속 도로망의 신경 회로로 급속히
발달할 것이다. 그것은 책을 읽게 하고 외우게 하는 교육보다 훨씬 효과적인 교육이
될 것이다.
어머니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
정보화 시대를 대비한 컴퓨터 조기 교육, 세계의 공통 언어인 영어 조기 교육이
강조되고 있는 지금이지만 학교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컴퓨터 학원, 영어 학원으로
아이들을 서둘러 보내기보다는 이제 어머니 스스로가 인터넷의 훌륭한 안내원 역을
맡을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을 갖추는 일이 시급하다. 혼자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이 즐겁듯이, 인터넷 여행 또한 영어 실력, 컴퓨터 실력이 있는 어머니가 손을
잡고 함께 가 준다면 아이는 더없이 즐거워할 것이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 먼저 실력을 쌓는 진정한 교육열을 가진, 그래서 아이
스스로 탐험할 정보의 보물 지도를 손에 쥐어 줄 수 있는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진정한 교육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다. 아이에게는
남이 쥐어 준 지식 열 개보다 흥미를 가지고 스스로 깨달은 지식 하나가 더 가치
있으며, 이는 곧바로 두뇌 개발의 활력소로 작용하여 또 다른 아이디어를 낳는다.
이제 '바보 상자의 시대'는 가고 '마법 상자의 시대'가 왔다.
정보화 시대의 여성
정보화 시대의 국가 경쟁력을 가늠하는 핵심은 무엇일까?
농업 사회에서는 농토가 가장 중요한 요소였고, 산업 사회에서는 자본이었다.
그러나 정보화 사회의 국가 경쟁력은 사람이 가늠한다. 사람이 경쟁의 기본이고
핵심이다.
정보화 사회는 노동 생산성보다는 지적 생산성이 강조될 뿐만 아니라 감성 산업과
문화 산업이 더 큰 부가가치를 가진다. 이러한 때에 여성의 감성적 특성을 개발하는
문제는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고려되어야 할 중요한 사항이다. 또한 정보화 사회는
과학화, 자동화, 재택 근무 등에 의해 직장과 가정이 연결되는 기능 위주의 사회로
변화하고 있음을 볼 때 여성의 사회 참여는 사회 구조적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대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여성의 역할과 지위 문제를 단순한 남녀 평등 차원에서 보기보다는 여성의
자아 실현을 통해 사회 전체적인 삶의 질이 개선되고, 여성의 사회 참여도 국가
경쟁력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 정보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여성 취업자 수가 50% 이상의 증가를
보였다는 점을 기억할 때, 정보화 사회의 조속한 발전을 위해서라도 여성 인력의
방치는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절박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 나라 여성의 사회 참여 상황을 보자.
심각한 인력난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은 65% 에
이르는 선진국 수준에 비해 훨씬 낮은 47% 정도에 그치고 있다. 여성의 평균
임금은 남성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며, 그나마 근로하고 있는 여성의 67.2% 가 5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에 취업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성의 정치 및 기타 사회 활동 분야의 참여도도 우리 나라 경제 발전 정도나
우리 여성의 높은 수준에 비해 극히 저조하다. 이는 동일 문화권의 다른 개발
도상국보다도 훨씬 낮아서 국회 의원이 2%, 지방 의회 의원의 0.9%, 5급 이상 고급
공무원의 1.7% 에 불과한 형편이다.
94 년 한 조사에 의하면 부족한 산업 인력은 17 만 5천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통계적으로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을 1% 만 올려도 17 만 명의
인력을 공급하는 효과가 있고, 여성 유휴 인력 1백 60 만 명 중에서 60 만 명만
취업해도 GNP 의 1--2% 추가 상승이 가능해진다.
이제 우리 나라 여성의 역할과 지위도 세계화해야 할 시기이다. 이를 위한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한데. 이는 제반 활동 여건의 평등을 지원하는 데 그
기본 원칙이 정해져야 한다.
정보화 사회에 걸맞는 여성 특유의 감성적 능력이 잘 발휘될 수 있도록 제도를
정착시키고, 여성의 활동에 대한 편향된 인식도 전환하여 보다 살기 좋은 미래
사회를 열어 가야 할 것이다.
제5장 내가 꿈꾸는 그리노피아
내가 꿈꾸는 그리노피아
나의 정치 철학은 단순하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삶을 평화롭고 윤택하게 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는 결국 이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과제와 목표가
설정될 수밖에 없다.
'사람이 돈을 잃으면 그 잃는 만큼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몇 배를 잃는
것이며,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전부 잃지
않도록 하는 정치는 어떤 것일까? 어떤 정치를 해야 할까? 고민 끝에 건강한 삶의
터전을 만드는 것을 나의 정치 철학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 아울러 환경 문제도
이러한 바탕 위에서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환경 문제는 산업화 과정에서 생겨났고, 환경 문제가 심각한 지금에 와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과학 기술에 의존하는 길뿐이다. 그래서 나는 과학
기술 방향을 어디서 찾아야 할 것인지를 고심하다가 그 원천을 자연의 법칙에서
찾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자연의 법칙 중에서 가장 창조적인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광합성이다.
광합성이란 식물에 있는 엽록소가 공기 중에 있는 탄산가스, 하늘의 태양, 땅 속에
있는 물의 작용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이 세 가지가 서로 광합성을 하여
무에서 유를 만들고, 그것을 다른 동식물이 먹고 살게 되며, 그로 인해 많은
유기물체가 형성된다.
나는 이 광합성이라는 자연 법칙에서 나의 기본적인 삶의 철학을 발견했다.
이러한 이상 세계를 '그리노피아'라는 신조어로 표현하려 한다. 광합성의 과정
자체가 '녹색 삶'으로서의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광합성의 과정 속에는 몇 가지 철학적 의미가 있다.
광합성은 흩어져 있던 태양과 물과 공기가 서로 뭉쳐지는 것이므로 '협동'이 있고,
이렇게 해서 새로운 유기체를 합성하는 '창조'의 기능이 있고, 아무런 도움도 받지
않고 모든 과정을 진행하는 '자립'이 있다. 협동하고 창조하고 자립하는 정신이
광합성이라는 녹색 삶에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 사회가 추구해야
될 삶의 모습이 아닌가 한다.
이런 삶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우선 사람은 먹어야 살 수 있으므로 먹을 식량이 필요하다. 그 다음으로는 보다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물품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를 만드는 산업이
필요할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식량이 필요하고, 산업을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한데 이 식량과 에너지 문제를 환경 문제와 관련시켜 해결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즉 과학 기술을 개발하여 전체적으로 좋은 환경을 만드는 일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먹는 식량의 경우에도 가능하면 영양가 있고, 질병도 예방할 수 있는
식품이어야 한다. 산업 에너지도 무공해 대체 에너지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깨끗한 환경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산업에 관련되는 기술을 환경 친화적인 기술로
대체해야 마땅하다.
내가 국회에서 만든 '대체에너지개발촉진법'도 공해 없는 크린에너지를 만들기
위해서 입법한 것이다. 또한 성인병 등 기타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식량은 생명
공학에 의해서 생산이 가능한 것이므로 '유전공학육성법'을 만들었다. 그리고 미래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 해양 자원의 개발을 지원하는 '해양개발기본법'과 21세기
미래의 영토 개척과 첨단 고부가가치의 산업을 위해 '항공우주산업육성법'도
만들었다. 이 모두가 '그리노피아'라는 이상적인 삶의 터전을 만들기 위하여 입법된
것들이다. 물론 입법만으로 이상적인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그런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법적, 제도적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게을리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녹색 삶의 실천 이념은 협동과 창조와 자립이다. 이 중에서
협동이란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반목이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동력이다. 루소는
이 사회에 존재하는 것이 모두 그 존재 이유가 있다고 했다. 그런 정신에서 악한
사람이건 선한 사람이건 모든 사람이 공동의 이상을 가졌을 때 해야 할 역할이 생길
것이다. 이 사회는 각기 다른 성질과 능력을 가진 사람이 모였지만 위대한 화음을
도출해야 아름답다. 그래서 나는 협동 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한 창조 정신도 중요하다. 우리는 세계적으로 상당히 머리가 좋은 민족으로
손꼽힌다. 그런데 그 동안 우리는 창조적 사고를 하지 않고 비판적이고 이기적인
사고를 더 많이 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부정적 사고를 긍정적으로 전환하기만
하면 우리의 미래는 밝다.
다음은 자립이다. 우리는 과거에 이 조그마한 한반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중국과
미국에 의존해 왔다. 백년 전만 하더라도 근대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선각자들조차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근대화를 이루겠다는 자립 정신이 부족했다.
근대화를 이루려면 우리 스스로가 피와 땀을 흘려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그 대가를
치르지 않고 남의 힘을 얻어 쉽게 근대화를 하려다가 더 큰 고난을 당했다.
우리는 과거에 일본의 힘을 빌리려다가 침략을 당했고, 청나라의 힘에 기대다가
공격을 받고 말았다. 도움을 받기 위해 그들을 끌어들였다가 결국에는 그들에게
지배를 당한 셈이다.
오늘날 국제 사회의 논리도 마찬가지다. 최근 핵문제를 놓고 우리는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형편이다. 지난 역사를 교훈삼아 단호하고 냉철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음에도 핵에 관한 우리의 정책은 미국의 핵우산 정책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미국의 핵우산 밑에 있으면 군사비도 절약되고
여러 가지 이익을 얻는다는 안이한 생각에 빠져 있다. 진작부터 과학 기술 인력을
양성해 핵기술을 가졌더라면 지금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 있으면서 눈치를 살피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만의 우산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날이 맑거나 흐리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는가.
우리보다 살기 어려운 인도도 벌써 이 문제를 극복했고, 이스라엘도 오래 전에
해결했는데 우리도 그들만큼 노력해 왔었더라면 핵문제로 인해 지금처럼 눈치를
보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핵기술 보유국들은 태연히 핵실험을 계속하고 기술을
발전시켜가고 있으면서도 다른 나라는 갖지 못하게 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이 되지
않는 논리다. 그들이 핵기술 개발을 저지하는 이유는 너무도 간단하고 명백하다.
핵기술은 국제적으로 신뢰할 만한 국가라면 가져도 괜찮다는 양해가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의 미래를 우리 자신들이 결정하고 준비해야 하는데 사실
그렇지 못한 상태이다. 자립하기 위해서는 국제 사회에서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노력을 병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지금까지 미국이 핵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신경질을 낼 때마다 그들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저렇게 말리는데 무리해서 핵을
보유하기보다는 안 가지는 편이 더 이익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핵이 확산되고 인류가 불의의 상황에 처할 가능성과 위험이 더 커졌다. 도덕적
가치관이 없는 폭력적인 국가가 핵을 보유하여 그것을 무기로 지구촌 전체를 위협할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자연과 세계는 적자생존의 법칙에 의해 진행되어 왔다. 동물의 세계에서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선택은 자립을 할 수 있는 강자가 되는
길뿐이다. 강자가 되고 난 다음에야 인도주의를 베풀 수 있는 것이고, 휴머니즘을
강조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자립할 힘도 없는 상황에서 구호를 외쳐 보아야 아무도
듣지 않고 인정하지도 않는다. 먼저 힘을 가져야 한다. 그 힘으로 남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선을 베푸는 쪽에 서야 하는 것이다.
건강한 이상과 세계관, 거기에 힘까지 가진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폭력배가
힘을 가지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선량한 사람이 힘을 가지는 것은 좋은 것이다.
국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뒤에야 다른 나라의 창조적인 삶을 도와줄
수 있는 것이다. 지구촌 모두가 평화롭게 사는 세상이야말로 인류의 밝은 미래이고
정보화 사회의 이상이다.
정보화 사회의 오늘과 내일
정보화 사회가 된다는 것은 그 사회를 구성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모든
분야에서 정보의 역할이 점차 증대되는 것을 뜻한다. 또한 물질이나 에너지 중심의
사회에서 정보화 지식 사회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정보화의 개념이
미래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주로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기술의 비약적인 발달로 인해 실제의 상황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정보화 사회가 등장하게 된 배경을 한번 살펴보자.
먼저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제한된 자원의 효율적 이용 및 생산성 향상을 위한
시스템적 해결책으로 컴퓨터와 컴퓨터 통신에 의한 정보화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사회적으로는 물질적 풍요에 따른 사회적 자아실현 욕구충족을 위한 정보 욕구가
다양화되었다. 여기에 기술적 지원이 가해져 저렴한 가격으로 컴퓨터를 생산, 공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자 컴퓨터는 점차 소형화, 저렴화, 지능화되면서
보급되었다. 이에 따라 정보를 처리하는 기술이 보편화되고 여기에 인공위성과
광섬유의 등장으로 통신 채널 용량이 증가하고, 통신 기술까지 대중화되어 정보화
사회는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2010 년의 세계 시장 전망을 정보화와 관련된 산업이 전체 산업의 60% 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소프트웨어 산업 중심에서
영상, 지식, 문화, 관광, 교육, 오락 등의 소프트웨어 산업 및 서비스 산업 중심으로
산업 구조가 변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보 관련 산업 종사자가 전체의 50%
이상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또한 주문형 비디오, CATV 를 이용한 주문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듯이, 21세기 정보화 사회에서는 소비 양식과 기호가
다양해지고, 이에 따라 생산 방식도 다품종 소량 생산의 형태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통신망을 이용한 네트워크가 사회 기반 구조(Infrastructure)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네트워크 사회가 된다.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물리적 이동이 크게 줄어들어 물질
자원과 에너지 자원이 크게 절약되고, 공장 자동화, 사무 자동화, 가사 자동화, 판매
자동화가 실현되어 인간은 창조적 업무에 종사하고 단순, 반복 노동은 각종 정보
시스템으로 대체되어 효율성이 대폭 증대되는 합리적 사회가 될 것이다.
한 마디로 정보 기술을 이용하여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고, 사회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며, 산업의 정보화 또는 정보의 산업화로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여 개인
생활의 질을 높이자는 것이 정보화 사회의 목적이다. 하지만 가만히 있어도 정보화
사회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정보화의 진전을 위해서는 사회
기반이 정비되어야 한다. 산업 구조, 사회적 관행, 법률적, 제도적 장치 등이 정보화
사회에 적합한 구조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지난 93 년 신정부 출범과 함께 신경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국가 사회 정보화
및 정보산업 발전전략을 수립, 추진하고 있는 것은 바로 정보화 국가로 가려는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94 년에는 정보화 사회의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한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범정부적으로 공공 기관, 대학연구소, 주요 기업을 광케이블로 연결하여 멀티미디어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초고속 정보통신 기반구축 사업을 시작했다. 여기에는
45조 원이 투입될 예정이며 2015 년에 완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2000
년대 초까지 소프트웨어 핵심 기술을 키워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2위의 선두
그룹에 서기 위해 2003 년을 목표로 국가 핵심 소프트웨어 기술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미래의 핵심 산업인 멀티미디어 산업과 데이터 베이스 산업,
정보통신 기기 산업들을 집중 육성하고, 국가 전산망 사업의 확대와 가상 대학 및
원격 의료 등이 가능하도록 지역 정보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정보화 수준은 선진 5개국에 비하면 아직도 크게 뒤지고
있다. 93 년에 조사된 정보 설비, 정보 이용, 정보 투자 세 가지 요소로 본 국가
정보 지표를 보면, 우리 나라를 100으로 설정한 경우, 미국은 699, 일본은 490,
독일은 475, 영국은 496, 프랑스는 437로 나타나 정보 선진국과의 큰 격차를 보여
주었다. 정보관련 투자 예산도 선진국의 1456,345수준인 0.3% 에 불과하며, 공공
자료는 공개가 기피되고 있다. 산업 부문의 정보화도 대부분 기업 내부 업무의
전산화 수준에 머물러 있다.
21세기 정보화 사회의 주역은 지금의 청소년들이 주축을 이룰 것이다. 체계적으로
정보화된 지식을 쌓지 않고, 정보에 대한 개념을 정립해 가지 않으면, 사회 적응력을
상실하여 멀지 않은 미래에 낙오자가 될 우려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초등학교부터
체계적으로 정보화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재택 교육, 원격 교육을 정보망 사업과
연계해 확대하고, 중5,23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사회 교육, 평생 교육도 실시하여
정보화 사회에의 적응을 도와야 한다.
과학기술처에서는 2001 년까지 46 만 명 정도의 정보산업 전문 인력이 필요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는데, 예상 공급 인력은 32 만 정도로서 14 만 명 정도의 인력이
부족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특히 석5,23박사급 고급 전문 인력의 부족
현상이 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우선 정보산업 전문인력
양성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총괄적으로 조정 평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고급 인력을 집중적으로 양성하기 위한 전문 대학원을 설립하고,
대학에도 정보 관련학과를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보화 인력 분류
체계를 정립하고 국가기술자격제도를 확대해야 하며, 해외의 우수 인력 도입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정보화 사회에서의 전문 인력은 바로 불확실한 미래 사회를 열어 가는 가장
확실한 '열쇠'가 될 것이다.
바둑으로 본 국제 정치판
바둑 급수가 1급인 사람과 10급인 사람이 맞바둑을 두면 백 번을 두더라도
10급이 1급을 결코 이길 수 없다. 1급의 바둑을 두는 사람이 10급의 바둑을 두는
사람보다 수를 보는 안목이 넓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WTO 와 OECD 의 가입이 우리에게 커다란 짐이 되고 있는 이유도
경제적으로 10급 수준에 있는 우리 나라에서 1급 수준인 선진국과 맞대응을 하라는
격이기 때문이다.
WTO 문제를 큰 곤란없이 이겨 내고 있는 일본을 보자.
일본은 이미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법칙을 체득하여 언젠가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강자의 논리'로 일본을 유린해 올 것이라는 걸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 미국은
엄청난 양의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으므로 그것을 자국 내에서 소화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외국에 내다 팔 궁리를 할 것이며, 그럴 경우 일본도
예외일 수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일본은 생명 공학, 유전
공학에 집중적인 투자를 했다. 그 결과 일본은 쌀의 질을 높여 세계에서 제일
품질이 좋은 쌀을 만들게 되었고, 육질을 개선하여 '고베 쇠고기' 하면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쇠고기로 개량했다.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까지 마련하여
일본인들에게 자국의 쌀과 쇠고기를 먹는 것이 예방 보건 차원에서 몸에 가장
좋다는 이유를 들어 정신 무장까지 시켰던 것이다. 드디어 미국이 '강자의 논리'로
WTO 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해 일본에 들어갔을 때, 일본이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의연히 거부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적으로 미국의 전략을 이미 읽고 대비했던
까닭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했는가?
국제 정치와 경제라는 바둑판을 어떻게 읽고 있었는지 한번 돌아보자. 우리는
포석을 어떻게 하건 내 집만 지으면 된다는 식의 10급도 못 되는 어리석은 바둑을
두지 않았던가? 우리는 농산물의 안정된 수급 계획과 품질 개선에 힘쓰기보다는
농민들의 추곡을 가장 싼 값에 가장 적당량을 산다는 정보밖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국회 역시 농민을 위해 열심히 걱정하는 문제는 추곡 수매가와 수매량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수준이었다. 추곡 수매가를 올리고 수매량을 늘리면 우리
농민들 주머니에 돈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은 매년 매번 국회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우리의 농림 정책은 바둑으로 치면 9급이거나 잘해야 7급 수준인 셈이다.
국제 정치판도 바둑판과 비슷하다. 강자는 약자를 무조건 이기고, 약자는 강자의
판세에 밀리는 도리밖에 없다. 억울하면 실력을 키우는 수밖에 없는데, 바둑 실력도
그렇지만 정치 실력도 하루 아침에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막강한 고수들과의
승부에서 이기려면 우리도 국제 정치의 대세를 읽는 안목을 기르고 실력을 쌓아야
한다.
이런 시점에서 국가 경영자의 판단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떠도는 여론에 따라
그저 말썽만 피하는 식으로 바둑알을 놓다 보면 결국 국가 간의 대국에서는 지게
되어 있다. 국가의 대표성을 가진 경영자로서 바둑알을 놓기 위해서는 먼 장래를
생각하는 높은 안목으로 바둑을 두어야 한다. 세계 각국의 포석을 잘 읽어 이에
대응하면서 독자적 포석도 깔아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익 집단의 여론에
끌려다니고 인기나 끌기 위해서 두는 바둑은 곤란하다. 사실 주변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알만한 수준으로 바둑알을 놓아 두면 그 바둑판은 재미가 있다. 또 그런
바둑을 두어 승리하는 사람은 인기가 하지만 다른 사람은 도저히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고수의 바둑을 두면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재미없어 하고 그런 바둑을
두는 사람은 인기가 없다.
하지만 국가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기사'들은 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바둑을
두어서는 안 된다. 국가의 대표성을 가지고 시합에 임하고 있는 만큼, 두기 어려운
곳이지만 꼭 놓아야 할 곳이라면 고통을 감수하고 그 곳에 바둑알을 놓아야 한다.
역사 의식을 가진 그런 고독한 기사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난 세월 동안 우리는
곧잘 결정적인 순간에 관중이 좋아하는 곳에 돌을 놓아 왔다. 그리고 대다수의
국민들은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조차 가지려 하지 않았다. 국가 경영이라는
큰 바둑판임에도 불구하고 몇몇 사람에 의하여 그들의 이해 관계에 따라서 허겁지겁
대충 두어졌던 것이다.
이제는 세계의 강자들과 맞바둑을 두는 시대다. 우리의 국가 경쟁력을 보면 높은
급수를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정도 바둑 급수를 가지고 지구촌의 강자들을
상대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우리는 싸워야 한다. 열세에 있다고
손을 놓고 판을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 세계 정세를 바둑의 정세로 보았을
때 미국이 역학 관계로 보아 제일 강자이고, 유럽에도 강자가 한둘이 아니다. 우리는
이 모두와 마주 앉아 돌을 놓고 있는 셈이다.
9급짜리가 9 단하고 맞바둑을 둘 때, 그런 대로 한 판을 다 두고 네 집 반이나
다섯 집 정도로 지는 방법이 있다. 9 단짜리가 놓는 점의 대칭되는 위치에만 계속
놓으면 네 집 반이나 다섯 집 차이로 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9급짜리가 제
실력대로 바둑을 두면 볼 것도 없이 중간에서 불계패를 당할 텐데, 9 단짜리와
대결하여 네 집 반이나 다섯 집 정도로만 진다면 근소한 차이로 진 것이다.
현실적으로 실력이 부족한 우리로서는 상대방의 움직임에 적절히 대응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대국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오늘도 어디엔가 돌을 놓아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선진국들의 움직임을 잘 살피면서 아울러 먼 미래를 위하여 실수 없는
돌을 놓아야 할 것이다.
변혁의 시대, 우리가 주인공이 되자.
우리는 지금 역사상 가장 큰 변화의 현장에 서 있다. 국제적으로는 WTO 체제
출범에 대응해야 하고, 남북 통일에 대비하여야 하며, 미래를 위한 정보화 사회
구축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입장에 있다.
WTO 체제 출범에 따라 새롭게 형성될 세계의 무역 질서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하는 기술 무역 질서로 개편될 전망이므로, 기술력 신장과 아울러 기술력 창출의
근원인 과학 분야 발전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과거에는 산업 재산권을 가질 경우 그 권리의 보호 기간을 10 년 이상으로
규정했다. 자연 현상에 대한 원리를 규명하는 과학과 그 원리를 활용하여 발명품을
개발하는 기술, 그리고 그 기술을 실용화하는 상품화 기간이 상당히 길었다. 그래서
용어와 개념도 '과학'과 '기술'과 '상품'을 구분하여 사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추세는 원리 규명과 동시에 발명이 이루어지고, 곧바로 상품화로 연계되고
있다. 때문에 과학 기술의 발견이 바로 첨단 기술을 응용한 제품으로 연결되고
있다.
요즘은 과학하는 사람과 이를 응용하는 기술을 가진 사람, 상품을 만들어 파는
사람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기업체에서는 이 모든 기능과 인력을 다
필요로 한다. 과학, 기술, 상품의 개발 접근 추세는 컴퓨터를 필두로 한 정보 산업
분야가 선도하고 있다.
정보 산업은 타분야에까지 급속하게 파급되고 있다. 통합 현상은 과학 기술과
산업 분야, 그리고 문화 분야에까지 파급되어 2010 년이면 사회 전체가 통합되는
완전한 정보화 사회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인류는 5 년마다 두 배의 지식을 창출해 왔다. 이에 비례하여 문화발전이
이룩되어 온 점을 고려할 때, 미래 사회는 지금보다 10배 이상의 지식이 축적되어
삶의 질에 있어서도 엄청난 향상을 가져올 것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범국가적으로 정보화를 추진하고 국제화와 세계화를 아울러 추진하고 있는
이유도 결국은 정보화가 미래 사회의 기본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보화 사회는 우리만 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선진국들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이다. 초고속 통신망의 경우, 지역과 전 세계를 연계하여 구축되어야
하므로 부단한 노력이 없다면 식민지로 전락할 우려도 상존하고 있다. 과학산업,
문화, 기술을 선진국에서 사서 쓰기만 하는 식민지로 남아 있기보다는 우리의 것도
국제화시켜야 한다. 문화를 창조하는 국민이 많으면 많을수록 세계 속에서 우리의
위상은 더 높아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제반 분야에서 창의력을 키워
나가야 한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일본으로부터 우리가 독립을 하려면 우리 자녀들이 일본
자녀들보다 실력이 있도록 교육을 시켜야 한다며 도산 서원을 세웠다. 우리의 힘은
약한데 칼 들고, 낫 들고, 도씨 들고, 일본 군대와 부딪쳐 보아야 독립은커녕 무고한
백성들만 더 많이 죽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런 의지를 가진 우리 선각자들이 초기에는 '저게 대학이냐, 학원이냐, 창고냐?'
하는 모욕적인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학교를 운영하며 많은 기술자를 양산해 낸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탄탄한 기반을 가진 세계적인 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기업체에 가
보면 그들이 이 나라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는지 느낄 수
있다. 산업을 일으키고 상품을 생산하고 수출하여 우리 경제를 이만큼 일으켜 놓은
것이다. 여기에 과학 기술의 중요성이 있다.
외국의 예를 들어 보자.
프랑스의 군사 전문 기자가 독일 국방부 장관을 면담했을 때, 장관이 기자에게
"앞으로는 전쟁의 양상이 보병전에서 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한 기갑전으로 바뀌게
되는데, 이 기갑전의 세계 제일인자가 누구인가?"라고 물었다. 기자가 답변을
못하자 장관은 책을 한권 내놓으면서 "이 책의 저자가 지금 이 지구상에서 기갑전에
제일가는 전략가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책의 저자가 바로 프랑스의 드골
중령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책은 프랑스에서는 320권밖에 팔리지 않은 반면, 독일에서는 1 만
6천 권이 팔렸다. 그 후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프랑스와 독일이 적으로 마주
섰을 때, 독일의 기갑사단은 프랑스가 마련해 놓은 마지노선을 두 시간만에
무너뜨려 버렸다. 결과는 프랑스의 참패였지만 드골은 전쟁 상황의 변화를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 그 결과는 그가 예상했던 대로였다. 드골의 눈에는 이 모든
변화가 한눈에 보였던 것이다. 이처럼 군인으로서 전쟁의 흐름을 읽을 줄 알았던
드골은 후에 대통령이 되어서도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드골이 대통령 재직시에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돈이 흘러 가는 줄기와 우수한
사람이 흘러가는 줄기를 잡아 주는 일이었다. 이 양대 흐름을 잡기 위해서 그는
국가 운영 목표를 세 가지로 정했다.
하나는 지구의 1456,344분에 해당하는 육지의 자원이 한계가 있으니 해양
자원을 개발하자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석유와 석탄 등의 자원 에너지는 한계가
있으니 기술 에너지를 개발하자는 것으로 원자력 에너지를 포함한 미래 에너지
개발을 위해 노력하자는 것이었다.
끝으로 인류는 육상 시대와 해상 시대를 거쳐 우주 시대로 발전할 것이므로 항공
우주 개발에 힘써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우주를 장악하는 국가가 미래의
최강국이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드골의 정치는 과학 기술의 발달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국방부 장관이 예산
심의안을 가져오면 앞서 제시했던 해양 개발, 원자력 에너지 개발, 항공 우주 개발의
국정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국방부에서 편성한 예산안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설명하게 하고, 이에 만족한 답을 듣지 못하면 국정 목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다시 짜 오게 할 정도로 목표 달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소르본 대학 총장이 학제 개편안을 가져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학제에 관한
안을 국정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다시 짜게 했다. 드골의 옹고집은 그 후
프랑스가 과학 기술 선진국이라는 형태로 결실을 보게 했다. 돈이 흘러가는 줄기와
우수한 인력의 줄기가 해양 개발, 원자력 기술 개발, 항공우주 기술 개발 쪽으로
흘러 들어가 과학 기술의 전반적인 발전을 가져왔던 것이다. 이런 노력을 기울인
결과 프랑스는 엑소세 미사일, 콩코드 비행기, 초고속 열차를 만드는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세계 제일의 원자력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
프랑스는 드골의 과학 기술에 대한 집중 투자와 노력을 통해서 첨단 과학
기술국이라는 결실을 얻었다. 앞으로의 역사는 과학 기술이 이끌어 간다는 것이
드골식의 도(길 도)였다. 역사의 흐름으로 보아 농업이나 예술 분야만으로는 선진
강대국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했던 것이다. 미래를 내다본 한 지도자의 집념과
노력으로 프랑스가 부강해진 이 사례를 그저 남의 나라 이야기로 흘려 들어서는 안
된다. 인류가 가고 있는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다. 우리에게는 그 도를 읽어서
미래의 주인공이 되는 일만 남았다.
과학 기술로 미래를 열자.
오늘날의 시대 상황은 전인미답의 벌판에 서 있는 것과 같다. 어제의 상식이
오늘의 비상식이 되고, 오늘의 상식이 내일의 허상이 되는 과학 기술 혁명과 정보
혁명이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 방향을 찾아 길을 열지 않으면 안
된다.
21세기는 지식과 정보로 경쟁하는 시대이다. 이 시대의 핵심은 과학 기술이다.
삶을 풍요롭게 하고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과학 기술력을 가져야 한다.
선진국 어느 나라건 과학 기술의 발전과 진흥에 소홀한 나라가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과학 기술은 미래의 자신이며 현재의 발전을 이루는 원동력이다.
또한 국가의 생존 능력을 대변할 뿐만 아니라 국가 간의 경쟁과 교류의 절대적
담보물이 되고 있다.
세계의 무역 질서가 WTO 체제로 돌입하면서 우리가 혼란과 어려움을 겪게 된
것도 충분한 과학 기술을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처럼 과학 기술에
대한 넉넉한 준비가 있었더라면, WTO 체제는 오히려 우리에게 더 큰 발전을 위한
도약의 기회로 바뀌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고 상황은 여전히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세계는 WTO 체제를 계기로 무한 경쟁 시대에 돌입함에 따라 선5,23후진국을
막론하고 자국의 과학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관련 체제와 정책을 재정비하고
있다. 시장 경제 원리에 입각하여 전통적으로 기술 개발 활동도 민간 자율에 맡기던
미국은 93 년 클린턴 정부의 출범 이후 정치, 군사 부문뿐만 아니라 경제 부문에도
정부가 깊이 관여하고 있다. 국가 발전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 할 과학 기술
부문의 발전에 대해서는 초미의 관심을 보이고 있어 아35예 국가 정책의 기조로
두고 있는데, 국가 전체의 과학 기술 정책을 종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과학기술회의(NSTC)를 설치하여 통치권 차원에서 과학기술
진흥정책을 펴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은 93 년 11월에 국가과학기술회의(NSTC) 설치안에 서명하면서,
'과학 기술에 대한 투자는 곧 미국의 미래에 대한 투자'임을 선언하고, 과학기술
진흥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백악관의 과학 기술 분야의 기능을 재정비할 것과
국가과학기술회의와 대통령과학기술자문위원회가 이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런 통치권 차원의 집중적인 관심과 지원으로 미국은 고용 창출과
장기적 경제 성장, 능률적인 정부의 적극적인 행정 구현, 기초 과학과 수학, 공학
분야에서의 세계적인 지도력 유지라는 3 대 기본 목표를 설정하고 강력하게 관련
정책을 펴 나가고 있다.
또한 93 년에 발효된 '매스트리히트 조약'에 의거, 연합한 유럽의 국가들도 높은
과학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나, 실용적인 응용 기술이 부족하여 산업 경쟁력에서
미국과 일본에 뒤지고 있다는 점에 자극을 받았다. 그래서 국가마다 과학기술
개발체제의 정비를 서두르고 있다. 이들 나라는 축적된 기초 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유럽과학기술협력기구(EUREKA)를 중심으로 1980 년대 후반부터 공동으로 추진한
전자, 정보, 신소재 산업기술 진흥 계획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1990 년대에
들어와서는 추가로 생명 과학과 인적 자원의 교육 훈련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이들은 여타 국가가 유럽에 진출하려면 그들의 표준 규격에 적합해야 하고,
그들의 지적재산권 보호정책에 부응해야 한다는 원칙을 정해 놓고 다른 나라의 유럽
시장 진출을 어렵게 하는 배타적인 장치도 마련해 놓고 있다.
일본은 풍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기초 과학 진흥과 연구 사업을 강화하고
있는데, 92 년은 수상 자문 기구인 국가과학기술회의의 연구안을 토대로 '과학기술
정책대강'을 각의에서 의결하여 새로운 과학 기술 정책을 확립했다. 전후 일본은
미국과 유럽에서 도입한 기초 과학 기술의 창조적인 모방으로 세계 시장을
주름잡았으나, 이제는 독자적 과학 기술 국가로 비약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과학 기술 분야에서 공공재(마을 공, 함께 공, 재물 재)를 창출하여 인류 전체의
이익에 이바지하겠다는 의도 아래 추진하고 있는 '휴먼 프론티어 사이언스
프로그램(HFSP)'을 중심으로 일본은 구미 제국과 분야별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아시아 태평양 지역 국가 간에도 국제적인 과학 기술 협력 활동을 폭넓게
전개하며 관련 활동을 주도하고 있다.
21세기를 눈앞에 둔 전환기에서 선진국들은 국가 경쟁력을 갖추어 세계화 시대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그리고 과학 기술의 진흥을 핵심적 요소로 간주하여
대통령이나 총리 등 행정 수반 직속으로 관련 체제를 재편하고, 해당 부처에
일임했던 과학 기술 정책을 국가에서 종합적으로 조정하고 통제하는 열의를 보이고
있다.
이런 추세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 파급되어 지금은 여타의 개발 도상국들도 이에
대응하는 방안들을 마련하고 있다. 과학 기술 진흥을 위한 노력, 이것은 21세기
국가 경쟁력을 여는 단 하나의 열쇠인 것이다.
생활 혁명을 주도하는 정보 통신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예견한 '제3의 물결'이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속도로
다가와 눈앞의 현실이 되었다. 수학적인 개념의 컴퓨터를 탄생시킨 폴 노이만 같은
대수학자도 컴퓨터의 발달이 가져온 오늘날의 엄청난 변화를 결코 예상하지 못했다.
원시 사회나 농업 사회에서 문명에 소외된 사람들은 '야만인'이 되었고, 이제 막
시작되는 정보화 사회에서는 이런 유형의 사람들을 '정보의 청맹과니' '컴맹'
'넷(Net)맹'으로 분류한다.
컴퓨터와 정보 통신은 점점 더 생활에 절대적이고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사람 개개인의 주민등록번호처럼 개인별 전화 번호가 부여되고 지구상 어느
곳에 있건 즉시 통화가 가능하도록 세계적으로 '저궤도 위성 계획'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간편한 노트북 컴퓨터와 전자 메일 시스템의 개발로 450 만 대
이상의 컴퓨터가 연결되어 있고, 현재 세계 4천만 명이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2000
년대에는 연간 1억 명 이상이 사용하게 될 인터넷 폭풍이 밀어닥칠 예상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살아나기 위해서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인공위성 무궁화호의 발사로 우리 나라도 세계 스물두번째의 상용 위성 보유국이
되었다. 비록 무궁화 위성이 당초 발사 목표를 100%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이를
계기로 우주 정보통신 시대로 진입이 가능해졌다. 우주에는 93 년 말 통계에 따르면
2,700여 개의 위성이 존재하고 있으며, 선진국을 중심으로 아시아 지역의 하늘에는
36개의 위성이 떠 있는 상태이고, 향후 5 년 이내에 150개 이상의 위성이 더
발사될 예정이다.
선진국들이 앞다투어 아시아 지역의 항공에 위성을 쏘아 올리는 것은, 비록
경제적 여건은 뒤처져 있지만 인구 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 아시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국의 문화와 생활 양식을 무차별 확산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상업적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한 국가 전략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국제적 통상 관계를 주도하는 사람들을 겨냥한 '저궤도 위성 통신' 계획과 'P-21',
'이리듐', '글로벌 스타', '오디세이' 등의 대형 프로젝트가 추진중에 있다.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 소프트사는 세계 정보통신 시장을 주도하기 위한 전략으로
7조 2천억 원을 투입하여 메코사와 합작했다. 2001 년까지 840개의 통신 위성을
발사하여 전 세계에 음성5,23화상 데이터 정보를 제공할 계획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히 우주 정보통신 전쟁을 향한 선전 포고라할 만하다. 위성 사업은
우주 영토에 대한 주권 점유 경쟁이다.
창업 20주년을 맞는 마이크로 소프트사가 앞으로의 정보 시장 10 년을 내다보고
개발한 '윈도우 95'는 출시 4일만에 100 만 개가 넘게 팔려 나갔다. 마이크로
소프트사는 새로운 개념의 미래 기술을 망라한 '윈도우 95'를 초보자도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세계 PC 운용 체제 시장의 80% 이상을 석권한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이의 확산 보급에 매진하고 있다. '윈도우 95'의 가장 큰 기능은
MS-NET(MSN) 기능과 멀티미디어 기능으로서 MSN 은 전 세계 통신망을 하나로
묶는 대형화 온라인 시스템으로서, 마이크로 소프트사는 이를 통해 인터넷을
뛰어넘어 세계 정보통신 분야를 주도하겠다는 야심을 보이고 있다.
일부에서는 '윈도우 95'가 정보 통신 시장을 천하통일한다면, 인터넷을 능가하는
완벽한 멀티미디어 환경에 굴복해 빌 게이츠의 노36예로 전략할 수도 있다며
경계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통합 시스템 등 기술적 문제를 들어
결국은 '윈도우 95'의 선호를 예측하고 있는 실정이다. '윈도우 95'의 보급은 우리
나라 지도층과 정책 결정권의 사고와 발상의 전환도 자극하게 될 것이다. 컴퓨터의
사용법이 용이하지 않았던 지금까지는 컴퓨터를 젊은 층이나 실무자들이 주로
사용해 왔으나, '윈도우 95'는 초보자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PC 사용층이
넓어져 국민 전체적인 정보화 체제를 갖추어 나갈 것이다. 이에 따라 누구나 공개
정보 검색을 통해 정책의 입안과 검토에 참여하여 결정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바야흐로 정보 통신 기술은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혁명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 산업은 미래의 주력 산업
흔히 영화를 종합 예술이라 부른다. 한 편의 영화 안에 다양한 장르의 예술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컴퓨터 게임은 어떻게 부를 수
있을까? '종합 기술품?'
컴퓨터 게임은 영화처럼 예술성을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한 편의 잘된 게임
안에는 적지않은 기술적이고 매력적인 요소들이 들어 있다. 이제 컴퓨터 게임
산업은 이 시대 중심 산업으로 자리를 잡고, 미래의 주력 업종으로 초고속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현재 세계 게임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업체들은 일본의
닌텐도와 세가 및 마쓰시다, 산요, AT and T 3사가 제휴한 다국적 기업인 3 DO
사가 있다. 이 3개 기업들이 게임 시장의 80% 를 점유하고 있다.
게임 산업이 미래의 주력 산업이 될 것을 예상한 이들은 세계 굴지의 기업체를
끌어들여 거대한 연합 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우리가 게임을 단순한 오락거리고
여기고 눈총을 보내는 사이에 게임 산업은 세계적인 대규모 종합 산업으로 성장해
버린 것이다.
세계적인 전자 및 정보 통신 업체도 게임 시장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일본의
소니, 산요, NEC 등 가전 업체와 미국의 마이크로 소프트사도 게임 산업을 주력
산으로 선택했다. 여기에 헐리우드의 영화 흥행 업체들까지 가세하여 업체간의 이해
관계와 기술력에 따라 경쟁적으로 제휴하고 있다.
세가의 경우 가정용 게임기도 제작하고 있지만 아케이트용과 함께
테마파크(Theme-Park)라는 도시형 오락 공원도 건설하고 있다. 요코하마에 건립한
테마파크인 '조이 폴리스'는 개장 후 1 년 동안 일백만 명이 넘는 입장객을
불러들였는데, 미국도 테마파크를 건설하기 위해 스티븐 스필버그, MCA 와 손을
잡았다. 세가의 게임기 제작 기술 및 스필버그의 상상력과 창의성, MCA 의 화상
기술이 어우러져 대단한 작품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기업들은 그 동안 게임기 제작 기술이 없는 탓이라고는 하지만, 눈앞의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해 외국 제품의 수입에만 전념해 왔다. 그러는 사이에도
외국의 게임 제작과 기술은 더욱 발전하여 앞으로도 아무 대책 없이 거대한 외국
기업에 국내 시장의 문을 열어 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는
게임 산업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게임 산업의 무한한 성장
가능성과 엄청난 시장성을 늦게나마 인식한 국내 대기업에서는 외국의 선진
기업들과 기술 제휴를 맺고 사업 기반 조성에 들어갔다. 그나마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컴퓨터 게임은 영화 영역과의 접목으로 사실성과 실감성이 놀랍게 향상될
전망이다. 현재에도 영화 영상의 도입과 돌비 시스템 이용 등 보다 생동감 있고
사실적인 게임 제작이 진행되고 있다. 그럴 경우 제작 비용도 더 들게 되므로 곧
영화 제작비 수준을 능가할 것 같다.
게임 산업은 이제 놀이의 차원을 넘어섰다.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발전으로 가상
현실을 이용한 각종 게임과 시뮬레이션이 급속도로 발전해 실제 생활에 응용되고
있다. 이런 추세가 가속화 될 때 미래의 삶은 거의 모든 부문에서 가상 현실의
영향권 안으로 흡수될 것이다. 게임 산업은 부존 자원이 부족하고 우수한 인력이
많은 우리 나라 실정에 알맞는 산업이다. 현재의 부족한 기술을 보완하고 산업화
과정에서 체득한 고속 성장의 노하우를 활용해 게임기와 게임 제작 기술을 세계
수준으로 올리면 우리 나라도 얼마든지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다.
CALS 혁명
미국 국방부는 1982 년도에 역사적 사업을 발표했다. 지상군은 물론 전투기나
잠수함 등 무기 조달은 컴퓨터를 통해 통합, 조정, 관리하겠다는 군수 조달 체계에
있어서의 혁명적인 정보화 선언을 한 것이다.
이 선언은 'CALS(Computer Aided Logistic Support) 프로젝트'로 명명했다.
미국이 이 시스템을 도입하기 전까지만 해도 비행기 한 대의 무게보다 비행기를
유지, 관리하기 위한 각종 서류의 무게가 더 무거웠다는 말이 있었다. 어느 항공
모함은 병사와 전투기 외에 항공 모함 운영에 필요한 23 톤에 달하는 각종 자료
무게 때문에 5cm 는 더 가라앉는다는 얘기도 있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미 국방부의 핵심 사업으로 등장한 '칼스'는 모든 제조업
분야에서 제품의 생산에서부터 소비자의 이용에 이르는 전 과정을 관리하는 '동시
공정'의 모형으로 이용되고 있고, 정보화 군대의 경영 일선의 사업자 모두에게
필요한 전략적 도구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칼스 'Continuous Acquisition and Life cycle Support'라는 개념을
추가하여 민간 산업을 포함하는 용어로 확대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 사업은 강력한
통신망 구축이 필수적이므로 현재 미국의 초고속 통신망 사업과 연계되어 국방과
산업에서 뿐만 아니라 행정과 교육 부문에서도 추진되고 있다. 그 확산 속도도 한층
빨라지고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산업 혁명에 비견되는 '칼스 혁명'이 도대체 어느
정도의 의의를 가지는지 좀 더 살펴보자.
방적기와 증기 기관의 발명이 산업 사회를 낳는 결정적 동력이었다면, 칼스
혁명은 모든 하드웨어적 기능을 하나의 통합된 소프트웨어로 묶어 운용하는 정보화
사회 실현의 요체라 풀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통합 지능의 국방, 통합 지능의
기업, 그리고 통합 기능의 행정과 교육을 이루어 궁극적으로는 통합 지능형 국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칼스 혁명이다. 산업 사회에서는 순차적 업무 처리와 생산
공정의 기능적 분화가 생산성 향상에 기여해 왔다. 그러나 정보화 사회에
들어서면서는 계층적 구조를 최대한 줄이고, 각 업무의 기능도 정보 시스템을
이용하여 동시적이고 통합적으로 처리해야 시장의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칼스 혁명을 통해 정보화 사회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사람들의
공통된 판이다.
그 동안 산업의 성장과 침체는 기업의 자율 의지에 달려 있었다. 또한 그 모든
것은 시장 원리에 의해 저절로 이루어지도록 한다는 원칙 하나로 일관하여, 산업
정책이 없는 곳으로 유명했던 미국 상무부의 오랜 전통도 지난 90 년에 칼스
프로젝트를 떠맡으면서 무너졌다.
'칼스는 침몰 직전의 상태에 빠진 많은 미국 기업을 구해 줄 마지막 구명
보트'이며, '상무부의 유일한 산업 정책은 칼스뿐'이라는 것이 공통의 인식으로
자리잡았다. 실제로 미국칼스산업진흥회가 회원 1천명을 대상으로 제조업에 대한
칼스의 직접적인 효과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제품의 설계 도면은 2백 개에서
3개로 대폭 줄었고, 조립 공정은 6주에서 2시간으로, 생산 공정은 7분의 1로 각각
축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자료가 이동하면서 발생하는 착오도 98% 나 줄었고,
출판비도 70% 이상 절감되었다.
일본 역시 엄청난 효과를 가져온 칼스에 대해 그냥 넘어가지는 않았다.
어물어물하는 사이에 미국 표준이 칼스 표준이 될지 모른다는 긴장감으로 통산성을
서둘러 '칼스기술연구조합'을 설치했고, 칼스 관련 노하우를 축적하여 동남아와
중국의 칼스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해 아시아의 칼스 맹주가 되겠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도요다 자동차, NEC 등의 기업은 아시아지역
생산기지를 칼스 시스템으로 연결하는 작업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유럽 지역에서도 '칼스 유럽'이 활동 중이며, 나토 가맹국들은 '칼스 나토'를
결성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도 지난 93 년 '칼스 퍼시픽'이 결정되었다.
이처럼 칼스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놀라운 속도로 파급되어 산업 구조에 엄청난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제3자의 의식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미래
사회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그렇다면 '칼스'에 대한 우리 나라의
인식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우리 나라의 경우, 현재 컴퓨터와 통신에 있어서 하드웨어 기술 수준은 날로
향상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운용할 소프트웨어 수준은 아주 미흡하다. 특히 칼스와
관련하여 이제 막 개념을 이해하는 정도의 초보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세계 각국이
같은 표준으로 통일된 정보를 공유하고 있을 때, 우리 나라만 우리 방식을
고집한다면 효율면에서 엄청난 격차가 벌어져 결국 경쟁에서 뒤지게 된다.
특히 칼스는 조달 체제 개선을 통해 산업의 정보화를 촉진하여 궁극적으로 산업
경쟁력을 제고시킨다는 원대한 꿈을 담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더
효율적으로 상품을 생산하여 더 많은 상품을 외국에 내다 팔아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 수출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 도입이 시급하다. 또한 칼스가 군수 조달
체계 개선을 통한 국방 예산 절감 효과를 얻기 위해 고안되었듯이, 우리도 이
제도를 국방에 적용하여 막대한 방위 예산의 상당 액수를 절감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산업과 국방의 제 분야에서 칼스 혁명을 이루고, 그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바로
시행만 결정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표준화 작업 등 정부의
획기적이고 신속한 대안이 나와야 한다. 여기에 업계의 야심적인 기술 개발 노력,
특히 제조 기술의 정보화와 시스템 통합 기술에 대한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한
노력이 뒤따라야겠다.
앞으로 칼스는 산업 쪽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 교육, 교통 등으로
이어지면서 궁극에는 모든 정보가 통합 지능화되는 국가적 경영 체제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최근 유럽과 일본이 서둘러 칼스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것도, 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국가 경쟁력이 뒤떨어지는 차원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칼스를 주도하는 나라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서둘러도 빠르지 않는 것이 칼스의
도입과 활용이다. 늦추면 늦출수록 그만큼의 산술적 손해만 입는 것이 아니라,
늦추는 정도에 따라 수천 배, 수만 배의 기하급수적인 국가적 손실을 당하는 것이
칼스 혁명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지방 시대가 열린다.
얼마 전 중국을 방문했을 때 생긴 일이다.
95 년 6월 6일 인민일보 제1 면의 대부분은 중국의 과학 기술 발 사상 처음으로
개최된 전국과학기술자대회에서 리펑 총리가 연설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이
연설문은 '과학 기술은 제일의 생산력'이라는 덩샤오핑의 지도 사상을 전체의 기조로
깔면서 '경제 건설은 과학 기술에 의거하여 과학 기술은 경제 건설에 이바지한다'는
국가 경영 지침을 강조하여, 중국의 현재와 미래의 경제 발전은 종래의 어떤
시기보다 과학 기술에 의지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었다. 또한 장쩌민 주석은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과학 기술을 먼저 발전시켜야 하며, 과학 기술 발전을 굳건히
추진해야만 이 격렬한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공언했다.
전통적 지방 자치제가 비교적 활발한 중국은 중앙 정부의 전략에 맞추어 기술
경영을 지역 발전 전략의 핵심으로 다루고, 탈냉전, 탈이념의 공통적 양상은 경제
제일주의, 기술 제일주의를 국가 운영의 기본 구도이자 핵심 전략으로 띄워 올리고
있다.
미국의 클린턴 정부는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과학기술회의(NSTC)를
설치하고, 부통령 책임하에 국가정보기반(NII)구축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EU 는
유럽 통합과 대미국, 대일본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유럽과학기술협력기구(EUREKA)를 설치하고 유럽 정보 고속도로 건설에 나서고
있다. 일본은 신사회자본건설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선진국들의 이 같은 정책
기조의 전환이 WTO 체제로 반영되고 있어, WTO 체제는 겉으로는 무역과 통상의
개방을 추구하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기술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동안 세계에서 유래없이 짧은 시일 내에 산업화를 이룩하면서 전통
사회에서 근대 사회로 이행해 왔다. 그 배경에는 강력한 통치 체제 아래 모든 힘을
한 곳으로 집중시킴으로서 역동적 국력을 만들어 냈던 중앙 집권 체제가 있었다.
권위주의적인 정치력에 의해 '선 성장 후 분배'라는 논리로 저임금 정책이
강행되었으며, 산업 간에도 성장 산업 지원이라는 불균형 성장 정책으로 말미암아
서울은 국제 도시로 탈바꿈하게 되었고, 지방 도시는 자립 경제의 활력을 잃고
말았다. 그 결과 중앙과 지방의 격차가 심화되고, 각 지방의 다양한 문화는 명백
유지조차 힘겨운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중앙 집중의 방식으로
국민의 힘을 결집하는 데에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주택, 교통, 교육, 환경 등
대도시가 안고 있는 누적된 문제의 해법은 이제 지방의 고른 발전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보다 먼저 지방 자치제를 성공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국가들은 지방 자치의
개념을 지역 경영으로 인식하고, 지역 개발과 기술 혁신을 연계해 지역 경영의
효율성을 높여 왔다. 종래의 중주도적 기업 유치를 통한 성장 정책의 실패를
교훈으로, 기술 지향적인 중소 기업을 지역 내의 능력으로 육성하는 자체 성장
전략으로 전환하여 지역의 균형있는 발전을 이룩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은 일본에서
특히 두드러지는데 일본은 'Town Creating', 'Village Forming' 운동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러한 운동은 새로운 사회적 문화적 정체성을 추구하고, 지역 경영의
정책 주체로 다시 태어나려는 지역사회 재구축운동이다.
이 같은 성공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도 기술 혁신 지향적으로
지역 개발 정책을 전환하고, 지방 자치 단체마다 경영 마인드를 새로이 정립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가 당면한 소득의 불균형, 산업 조직의 이중 구조, 사회
복지의 불균형 등의 문제와 고도 성장의 그늘에 가려졌던 환경, 보건, 의료, 교통,
건설 등 사회 인프라의 문제도 사실은 정보화와 과학 기술 혁신에서 근본적인 답을
얻을 수 있다.
앞으로는 첨단 산업 및 연관 기업의 육성이 지방에서 이루어지고, 멀티미디어형
도시 건설을 위한 전문 기술자의 유턴(U-Turn) 운동이 일어나면서 지방이
각광받는 시대가 올 것이다. 변화는 세계화5,23정보화5,23지방화 시대라는
세계적 흐름에 맞추어 그 속도와 폭이 더욱 빠르고 깊고 넓게 확산될 것이다.
지방 자치 단체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지역 발전 전략에 과감히 반영하는 발상의
대전환을 할 필요가 있다.
정보화의 기본틀
정보화 사회는 21세기 초에 비로소 정착될 것이라는 의견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미국과 일본, 싱가포르는 이미 2010 년을 전후하여 정보화 사회를
정착시키고자 이를 추진하고 있고, 유럽의 선진국들도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선진국들의 움직임을 봐서는, 정보화 추진을 우리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기본틀로 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문제는 추진
방법이다. 일본 신문사의 한국 특파원이 우리 사회를 세계화 병에 걸린 사회로
느꼈듯이 우리는 조급한 마음만 앞서 있을 뿐 목표 달성에 필요한 실행 계획은
마련하지 못했다. 이대로 '세계화'니 '정보화'니 하는 구호만 외치고 있다가는
21세기에도 우리의 입장은 그리 달라져 있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정보화 추진 전략은 국민들의 참여를 근본적으로 여기면서 정부는 규제
완화와 분위기 조성, 그리고 효율적 지원에 주력하고 있다. 일본은 '삶의 질
향상'이라는 목표 아래 그 근간을 정부가 주도하는 형태로 추진하고 있다. 도시 국가
싱가포르는, 기술적인 부문은 외국에 의존하고 사회 전 분야 정보화는 경제적
이익이 있는 부문부터 단계적으로 확산시키는 정부 주도 방식을 채택하여 통관
업무, 관광 안내 등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며 가장 빠른 진전을 이루고 있다.
세 나라의 전략을 분석해 볼 때, 우리는 동양적 사고 방식에 적합한 정부 주도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판단된다. 여기에 국민들의 적극적 참여를
유인하는 전략을 가미한다면 우리 나라에 맞는 형식이 갖추어질 것이다. 가령 입법,
사법, 행정 3부가 공동으로 정보화 추진 기획단을 구성하여 국가 정보화 추진
체계를 관리하지만, 산업체, 학교, 연구소, 관계 기관 합동으로 구성된 실무
추진반의 의견을 100% 반영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때 상의 하달 및 하의 상달의
효과는 물론 부대적인 상승 효과의 창출도 기대해 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래야만 정보화 사회가 정착될 때까지 정치 상황 변동에 관계없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범국가적 지도 체제가 유지되고, 시장 경제 원리에 의한 경쟁력을
확보하여 국가 경쟁력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멀티미디어 시대의 사회와 산업
요즘 공연장이나 스포츠 경기장에는 열광하는 오빠부대들을 볼 수 있다. 시대의
변화를 실감하는 풍경이 아닐 수 없다. X 세대로 불리우는 요즘의 신세대는 여러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핵심은 남의 눈치를 보지않고 개성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일 것이다. 이것은 이 시대의 큰 흐름이 되고 있는데 여기에도 정보화 사회의
단면이 보인다.
X 세대를 거론하는 것은 미래의 멀티미디어 시대를 이끌어 나갈 이들이 개성과
창의를 가진 신세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래의 주역인 이들 세대들이 넓은 세계
무대에 나가 경쟁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멀티미디어 시대에는 오디오와 비디오, 그리고 컴퓨터와 통신 매체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지금과는 무척 다른 생활 양식으로 바뀌게 된다. 첨단 반도체의 개발,
광케이블 시대의 개막, 무궁화 통신위성 발사, 인터넷 열풍 등 근래의 주요 변화를
보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빨리 정보화 사회로 변해 가고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멀티미디어 시대를 맞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야 할지를 생각해
보자.
급격히 변해가는 시대적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회를 운영하는
시스템을 멀티미디어 시대에 맞게 구축해야 하고, 행정 제도와 행정 서비스 방식도
개편해야 한다.
증기 기관차의 발명으로 시작된 영국의 산업 혁명은 인간의 노동력에 의존하던
농경 사회를 산업 사회로 바꾸어 놓았다. 산업 사회는 대자본과 대량 생산을
촉발하여 물질적 풍요를 가져왔지만, 이데올로기에 의한 투쟁과 자연의 파괴라는
심각한 사회 문제를 야기했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인 이유로 극심한 투쟁을
벌여야 했던 시대가 바로 이 시대였다.
산업 사회는 20세기 말에 들어서면서 정보화 사회로 급진전하고 있다. 정보화
사회에서는 사회 전반의 다양한 계층 조직이 멀티미디어 매체를 통해
압축되어감으로 개인의 개성과 창의를 극대화시킬 수 있게 된다. 개성과 창의는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자유 시장 경제, 사회적으로는 합리주의,
그리고 문화적으로는 다윈주의의 사회적 이념틀에서 꽃을 피우게 되었다.
정보화 사회는 개인이 개성과 창의성의 발휘에 따라 전문화, 세분화되는데,
전문화, 세분화한 이들을 효과적으로 연계시키고 부문간 갈등을 잘 조정하여
하모니를 연출해 가는 일이 중요하다.
새로운 멀티미디어 산업은 미래의 경제 핵심으로 등장할 것이다. 멀티미디어
산업은 기존의 기능을 보온하고 통합하는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가 될 것이라고 정형화하기는 곤란하지만 분야별로 몇 가지 구분하여 살펴볼
수는 있다.
우선 기존의 전화와 통신 사업의 개념을 확장한 정보의 유통과 관련된 다기능
전화, 유무선 개인 통신, 위성 통신 등의 사업 분야가 있다. 다음으로 최종 소비자가
멀티미디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접속시켜 주는 워크스테이션, CATV, 비디오
게임기 사업 분야, 멀티미디어를 빌딩 및 가정에 배급하는 네트워크 사업 분야,
리얼타임 비디오, 대화형 매체 등 새로운 매체 개발 사업이 등장할 것이다.
멀티미디어의 공급이 확대됨에 따라 사회 각 부문도 멀티미디어 시대에 맞는
시스템으로 재정비하게 된다. 교육 부문에서는 멀티미디어의 이용에 따라 원격 교육,
가상 교육이 가능해짐으로써, 학교와 교사를 중심으로한 교육 체제에 일대 변혁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또한 멀티미디어 시대에는 다양성 있는 창의적 인재를
요구하게 되므로 현행 학제 등 인력 양성 체계도 멀티미디어를 수용할 수 있는
유연한 체계로의 개편이 불가피할 것이다.
국방의 경우에도 정보화를 통한 소수 정예화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이
군의 정보화, 과학화를 통해 아랍권과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현실을 보거나, 정보
전자전에 대비한 전역 미사일 방어체계(TMD)가 미국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도, 소수 정예화, 정보화되고 있는 예가 될 것이다.
문화 부문 역시 정보화 사회로 가면서 지적 창의력을 중심으로한 소프트웨어는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이다. 이 문화 사업은 멀티미디어와 융합되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새로이 등장하고 있다. 세계적인 보편성이 강조되기도 하지만
문화적 다윈주의에 입각한 창의성이 문화 경쟁력의 핵심이 되고 있다.
산업 부문의 경우는 새로운 멀티미디어 산업의 등장과 함께 기존 산업과
멀티미디어 산업과의 접목이 급속히 이루어지고 있다. 제조 산업 부문에서의 정보화
생산 시스템인 지적 생산 체계(Intellectual Management System) 개발 노력이
일본5,23미국5,23EC 등에서 적극 추진되고 있는 것이 좋은 보기이다.
기업 경영에 있어서도 멀티미디어 시대에 맞는 정보 중심의 신속한 수평적 의사
결정을 위주로 한 정보화 경영 전략이 핵심이 될 것이다. 서비스 부문의 경우에도
보건5,23의료 부문에서의 원격 진료, 유통 부문에서의 홈 쇼핑, 금융 부문에서의
홈 뱅킹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멀티미디어를 통해 소비자의 요구에 맞추는
다기능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기존의 서비스 공급 체제에 변혁을 가져올 것이다.
이런 변화들이 멀티미디어 시대의 도래에 따른 사회 변화의 핵심이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멀티미디어 정보화 사회는 시대적 흐름으로, 그리고 세계적인
조류로 밀려오고 있다. 정보화 사회로의 변혁을 서둘러야 한다. 세계적인 변화를
꿰뚫어 보고 시대 변화에 따른 새로운 패러다임에 입각하여 목표를 설정하고, 미래
지향적인 방향에서 구체적이고 단계적으로 사회 구조와 산업 체제를 변화시켜
미래를 대비해 나가야겠다.
21세기와 환경
인류에게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다 준 것은 과학기술과 경제 발전이었다. 그렇지만
이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 환경과 인간 사이의 조화와 균형을 잃게 되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자연 파괴에 대한 회복은 파괴할 때처럼 손쉬운 것이 아니어서
날이 갈수록 문제의 심각성은 확대되고 깊어지고 있다.
환경 문제는 오존층 파괴와 엘니뇨 현상으로 인한 기후의 변화, 생물 다양성의
상실, 대기와 토양의 산성화와 산성 물질의 이동 및 각종 개발 행위에 따를 생태계
균형의 파괴, 산업화에 따른 유해 폐기물의 급증 등으로 환경 문제가 심화되어
인류는 건강한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환경 문제는 오늘날 전 인류가 공동으로 대처해야 할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었다.
이에 따라 유엔환경계획(UNEP),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 기구는 환경
보전을 위해 석탄, 석유 등 화학 연료의 사용을 억제하고, 열효율을 개선하며, 산림
녹화 등으로 이산화탄소의 배출 억제와 흡수 능력을 높이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한편 세계 유수 기업들은 국제 환경기준 강화 추세에 부응하고 기존의 생존
경쟁력강화 전략 차원에서 환경 문제를 경영 전략에 반영하고 있다. 연구 개발에서
폐기물처리에 이르기까지 기업 활동의 전 단계에 걸쳐 환경 오염을 극소화하는 데
주력하는 추세이다. 앞으로 환경 부적합 상품의 국내 소비는 물론 대외 수출도
조만간 어렵게 될 전망이다.
환경 기업은 21세기의 유망 산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많은 기업들이 환경 관련
기술을 담보로 설비 제작과 제품 개발에 지속적인 투자와 노력을 하고 있다. 1980
년대 이후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우리 나라는 단계적으로 진행되어
온 모든 환경 문제가 한꺼번에 드러나면서 문제 해결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선진국들이 대기와 수질 오염 개선, 생활 쓰레기 처리 등 초기 단계의 국지적 환경
문제의 해결에 성공하고, 기후 변화와 오존층 파괴 문제 등 전 지구적인 환경
문제로 시책의 중심이 옮겨 가고 있는데 비해 우리는 아직 초기 단계의 문제 해결에
급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21세기 환경 운동은 크게 두 가지 측면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첫째, 세계 각국이 환경 보전을 위한 운동을 벌이는데 있어서 개별 국가가
국지적인 노력을 하던 것에서 벗어나 점차 글로벌한 지구 생명체적 시각에서 이
문제를 다룰 것이다. 그 결과 더욱 적극적이고 구속력이 강한 국제 환경 협약이
체결되어 21세기에는 국제 환경 보호를 위한 더욱 강력한 대책이 강구될 것이다.
둘째는, 국제 환경 협약에 의한 무역 규제가 강화될 것이다. 지구 환경보호를
이유로 이미 국제 환경 규제에 대한 조치를 마친 국가들은 자국 상품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환경 문제를 담보로 환경 규제에 대한 대비가 소홀한 여타 개발 국가에
무역 규제를 가하고 이의 입법화를 추진할 것이다. WTO 출범과 함께 선진국들은
환경 기준의 차이에서 오는 자국 상품의 경쟁력 저하를 보완하기 위해 국제적
환경규제 강화에 힘써 오고 있다.
앞으로는 이 목소리가 더욱 커져서 자국 상품에 대한 환경 기술적 조치와 병행해
다자간 규범화를 촉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환경 문제는 21세기 인류의 건강한 삶의 추구를 위해 전 세계가 공동으로
대처해야 할 과제이다. 아울러 국제 무역에 있어서의 경쟁과 이해 문제와도 얽히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앞으로 환경 문제가 국제 무역과 국내 산업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이 점차 증대될 것이다. 또한 그 영향은 경제 산업 활동과 정치, 생활, 보건,
교통, 에너지 등 여러 분야에 걸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국제적 여건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환경 친화적 과학 기술을 개발하고, 환경 관련 정보 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관련 전문 인력을 양성하며, 국민 의식도 높여 가야 한다.
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21세기의 국제적 환경 변화에 대응하여 국가적
경쟁력을 확보하고 국민의 건강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다.
제6장 내 인생의 음지와 양지
신바람 나던 유년 시절
사람은 저마다 개성을 가지고 태어나, 그 개성에 따라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잡아
가기 마련이다. 그렇게 보면 나는 탐구심이랄까 모험심 같은 것이 강한 성격을
가지고 태어난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새로운 일에 뛰어드는 것을 상당히 좋아하고
즐겼던 것이다.
우리 집은 종가여서, 종손인 형은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지대한 관심 속에서
자랐지만, 차남이었던 나는 부모님이 별로 신경 쓰지 않아서 아주 자유롭게 지낼 수
있었다. 초등학교 때에는 신문 배달을 하면서 학교에 다녔는데, 배달하는 구역 내에
철도 공작창이 있었다. 거기에 드나들면서 신문 배달을 했고, 가능한 한 오랜 시간
동안 그 세계를 유심히 살피며 탐구했다.
그 곳은 철물 다루는 곳에서부터 용접실, 목공실, 주물실 등 각양 각색의 공작
설비와 기계가 있어서, 어린 호기심을 끝없이 자극하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그 때
자라난 관심이 지금까지 과학과 기술과 발명과 특허와 세계와 우주에 이르기까지
나의 마음을 이끌고 있는 모양이다.
당시에는 학년이 바뀌어 새로 반이 편성되면 담임 선생님은 연례적으로 가정
방문을 했는데, 그러려면 이 마을 저 마을 곳곳에 흩어져 있는 학생들이 사는
집으로 선생님을 안내할 학생이 필요했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시골에 있었던 터라 학생들이 사는 마을이 꽤 넓게 퍼져
있었는데 나는 이 친구 저 친구와 어울려 그 넓은 지역을 하도 쏘다녀서 어디에
누가 산다는 것은 훤하게 알고 있었다. 같은 반 급우 중에서 친구들의 집을 다 아는
유일한 학생이 바로 나였다.
공부는 안 하고 학교 수업만 끝나면 마을마다 집집마다 놀러 다닌 덕에, 나는
가정 방문하는 담임 선생님의 안내역을 맡아 톡톡히 한몫 해 내고는 했다.
선생님과 함께 친구들의 집을 순회하는 일은 상당히 신나는 일이었다. 그
당시에는 대부분 살림살이가 빠듯하여 못 먹을 때였는데, 가정 방문을 같이 가면
어려운 걸음을 한 선생님을 대접하느라 집집마다 맛있는 음식을 내놓았다. 어떤
집에서는 당시 구경도 못하던 탕수육 같은 중국 요리도 시켜 대접했는데, 그 때마다
나는 선생님 옆에 앉아 그걸 얻어먹을 수 있었다. 게다가 더러 선생님을 모시고
오느라 수고했다며 용돈을 손에 쥐어 주는 어머니도 있었다. 용돈이라고는 설날에
아버지한테 얻기도 힘든 것이었는데, 그 귀한 용돈까지 생겼으니 내게는 가정
방문이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었다. 수업 시간에도 역사적인 사건의 연도를 상기할
필요가 있을 때 선생님은 곧잘 나에게 물었는데, 그 때마다 외우고 있다가
대답하고는 했다. 예전의 초등학교 시절처럼 선생님과 함께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생의 입장이 되어 만나는 것이었지만, 지금도 나는 학생과 학부형을 만날
일이 많다. 애정을 쏟고 있는 우주정보소년단의 일도 그렇고, 십여 년 전부터 매학기
방학 때마다 실시하고 있는 대학생 연수의 일도 그렇고, 대학원 강의 때문에도 나는
학생들과 더불어 산다.
무슨 인연이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지금까지 나는 어린
학생에서부터 대학원생에 이르기까지 학생과 학부형을 만나고 있는데, 그럴 때마다
곧잘 많은 학생과 학부형들이 머리 좋아지는 비결이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면 나는
우스개소리 삼아 이렇게 대답하고는 한다.
동물의 세계를 살펴보면 대개 네 발 달린 동물보다 두 발 달린 동물이 머리가
좋다. 네 발로 서기는 쉬워서, 별로 머리를 쓰지 않고도 세상에 발붙이고 살 수가
있으니 머리가 발달할 필요가 없고, 두 발 달린 짐승은 어떻게든 두 발로
돌아다니며 살아야 하니 머리가 더 발달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한 발 달린
동물이 있다면 두 발 달린 동물보다 머리가 좋아야 할 테니까, 한 발로 오래 서
있는 연습을 하면 머리가 좋아질 게 아니겠느냐고 답하곤 한다.
내 머리가 좋은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나는 오래 서 있는 부문에서
능력이 있었다. 어려서는 닭싸움을 많이 했는데, 닭싸움만큼은 내가 우리 반에서
최강자였다. 한 마디로 끝내 주는 실력이었다.
이런저런 일 때문에 나는 지금도 학교와 야외로 나갈 때가 많다. 그러면 가끔
운동장이나 들판에서 닭싸움 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보게 되는데, 지금도 내 눈에는
그 광경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내 인생의 음지와 양지
한세상 살아온 사람들의 이력을 보면 누구에게나 양지와 음지가 교차되게
마련이다. 양지는 잘 드러나지만 음지는 본인이 이야기하지 않는 한 별로 알려지지
않는다. 내 인생의 첫 그늘은 언제였던가? 아마도 학창 시절이였던 듯하다.
고등학교 2 학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부터 3 년 반의 세월을 병상에서 보내야만
했다. 병상에 누워서 보낸 짧지 않은 그 시간은 내게 많은 고통을 주었지만, 동시에
많은 자각과 교훈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이 시절은 내 인생에 있어서 아주 중요했던 시기였다. 몸은 물론 마음까지도
앓으며 인생이란 무엇이며, 나는 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젊은 베르테르처럼 깊이 고심했다. 그런 고민 끝에 비로소 귀중한 교훈들을
얻을 수 있었고, 참 많은 것들을 새로이 배울 수 있었다.
정상적으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지 못한 나는, 병에서 회복한 다음 검정고시를
쳐서 대학 입학 자격을 얻어 서울대 약대에 들어갔다. 들어가 보니 친구들은 이미
다 졸업했거나 졸업반이 되어 있었다.
더 이상 뒤지지 않기 위해서는 늦게나마 열심히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작정하고
있었다. 그랬는데, 정작 학위 과정을 마치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그 때 생각으로
우리 나라가 처해 있는 현실로 봐서 연구에 관련되는 공부만 열심히 하고 있을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던 것이다.
'사람의 몸뚱이를 놓고 보면 연구를 하는 곳은 역시 머리 부분인데, 이 지구상에서
우리 나라가 처해 있는 위치는 머리가 아니다. 그러면 우리 나라는 어느 부분에
해당하는가'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관절의 신경절 비슷한 입장에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기술이 중요하게 대접받는 세상이 올 모양인데, 그 때 내가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이 뭐겠는가? 기술 계통으로 내가 할 일이 뭐 없을까?' 하고
찾던 중 변리사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다.
우리 나라의 지리적인 입장을 보면 대륙세와 해양세가 왔다갔다하는 다리 같은
형국인데, 변리사로 있으면서 오르락 내리락하는 이것을 잘 통과시키면서 통행료도
받고 하는 데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던 것이다.
그 동안 학교에서 공부하던 것, 그리고 학교에 남거나 미국 유학 가려던 계획도
전부 포기하고, 다시 법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자 형의 성화가 대단했다.
"공부는 또 무슨 공부야,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지 모른다더니, 학위
끝냈으면 됐지 다시 고시 학원 다니면서 법 공부를 또 왜 하려느냐"는 거였다.
어렵게 공부해 박사 학위까지 받아 놓은 마당에, 장래가 보장되어 있는 것을
포기하고 180 도로 방향을 전환해 쉽지도 않은 법공부를 하겠다고 했으니, 같은
대학의 법대를 이미 마친 형이 말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래도 형을 설득해서
책을 준비하고 학원에도 다니면서 공부를 계속했다.
당시 종로의 대성 학원 같은 곳은 퇴근하고 나서 승진 시험 공부를 하던
공무원들이 많았다. 지금의 학원이야 그렇지 않지만 그 때는 시설도 형편없어서,
한여름에도 커다란 선풍기 하나 달랑 돌아가는 찜통같은 곳이었다. 그래도 매일
학원에 나가서 행정법이다 헌법이다 하는 강의를 들으며 변리사 시험을 준비했다.
당시만 해도 내가 하는 공부는 별로 알려지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변리사가 뭐하는 거냐고 물었다. 그 때 우리 나라에서는 병아리 감별사가 많이 해외
취업을 나가고 있었는데, 병아리 감별사를 변리사라 그러느냐고 묻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 때만 하더라도 변리사는 일년에 전국에서 한두 명만을 합격시킬 때였다. 시험
제도가 있으니까 할 수 없이 총무처에서 시험을 보는 입장이었는데, 어떤 해에는
시험도 안 치고 그냥 넘어가기도 하는 실정이었다. 반드시 자격을 따겠다는 결심이
서 있었던 나는 입술이 터지도록 공부했다. 아마 내 평생에 제일 열심히 공부했던
때가 그 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다른 수험생에 비해 이미
나이가 들어 있었기 때문에, 남들처럼 내년 내후년 미루면서 쉬엄쉬엄 공부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속전속결로 끝내는 도리밖에 없었다. 변리사 시험에 합격한
뒤 미 국무성 장학금으로 조지타운대에서 특허법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 동안 해 왔던 약학 공부를 중단하고 법서를 잡고 씨름하던 그 시절도 내게는
고통스러운 음지였지만, 지금에 오서 돌이켜보니 그 음지의 추운 경험이 이제는
양지로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음지가 토대가 되어 지금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운 기술 정치
지금도 그렇지만 지금보다 더 정치 초보였던 시절의 이야기다.
직장이었던 동아제약에 나가 열심히 일하고, 특허 관계 자문이나 무역 관계
상담도 하며 분주히 지내다 보니, 어느 날 내 이름이 11 대 전국구 의원 명단에
들어가 있었다. 자고 나니 유명해졌다더니 하루 아침에 국회 의원이 된 것이다.
국회에 들어가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니, 내가 국회 의원이 된
것은 평상시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던 것들을 국회에 들어가서 실천하라는
소명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나라 발전에 꼭 필요한 법을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과학 기술 관계입법 활동을 하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의원들에게 "이렇게
가야 이 나라가 잘되는 거다. 저렇게 해야 이 나라도 이상과 희망이 있는
거다."라고 열심히 이야기하고 다녔다.
그러면서 나는 주제넘게도 "이상과 희망을 가지고 과학기술 관계입법 활동을
하라고 내 이름이 이상과 희망의 약자 이상희인 모양이다."라고 얘기를 하고
다녔다. 동료 의원들은 "정치라는 것은 현실인데, 이상하고 희한한 일만 꾸미니
이상희"라고 농담반 진담 반의 충고를 해 주었다. 한 마디로 잠에서 깨라는 거였다.
그러면서 동료 의원들은 나를 소개할 때 곧잘 '이상하고 희한한 짓을 많이 하는
이상희'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저러나 일은 열심히 하니까, 정치부 기자들은 정책 활동을 잘하는 의원을
꼽을 때면 항상 나를 넣어 주었다. 그런데서 힘도 얻고 해서 11 대 12 대 걸쳐서
신나게 일하며 임기를 마쳤는데, 이번에는 지역구로 나가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세상
물정 모르는 나는 덮어놓고 지역구를 맡았다. 한 8 년간 열심히 일했으니까
지역구에 나가면 당선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지역구를 맡아서 내려가니까 고등학교 선후배를 비롯해서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기왕에 지역구를 맡았으니 이제부터는 열심히 주례도
서고 상가에도 부지런히 찾아다니라는 것이었다. 여기 저기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해 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주례 서고 상가에 다니는 것은 앨빈
토플러가 권장하는 '기술 정치'라는 것과는 맞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런 건 안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면서 일절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지역의 당 조직 활동을 통해서 사람들이 모이면, 늘 하던 대로 환경이
어떻고 대체 에너지가 어떻고 하면서 나의 이상과 희망을 전했다. 그랬더니
당직자들이 하는 말이 "안 나오려고 하는 사람들을 애써서 모아 놓았는데, 그런
이야기만 하면 어떡합니까? 위원장님 이야기 듣고 가서 하는 말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야기 듣느라 지겨워 죽겠더라 그럽디다."라는 거였다.
그러면서 제발 사람들 모아 놓고 대체 에너지니 기초 과학 같은 이야기는 하지
말고, 서울에서 일어난 재미있는 정치 뒷이야기 같은 것을 하라고 했다. 그래야
다음에 또 모이지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안 모인다는 거였다. 그러나 그런 쪽에는
별로 소질도 없거니와 내 철학에도 안 맞는 일이어서 고민이었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안이 과학 이야기를 하되 좀 재미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 초5,23중5,23고등학교의 생물이라든가 과학
교과서를 구해서 다시 읽었다. 어떻게 해야 과학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연구하고 노력한 결과, 요즘에는 그런 쪽으로 말하는 기술이 상당히
발달해서, 칠순 팔순의 연로하신 분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연을 할 때에도
자연스럽게 컴퓨터 공부를 권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가령 이런 식이다.
"컴퓨터 공부를 해야 합니다. 자판을 익히세요." 한다면 어느 분이 컴퓨터 자판을
익히겠는가. 이럴 때 나는 컴퓨터를 켜고 글자 치는 자판을 익히면 얼마나 몸에
유익한지를 이야기한다.
"자판을 치는 동안 저절로 되는 손가락 운동이 어떤 운동과 관련 있느냐 하면,
이건 결국 뇌 운동하고 관련이 됩니다. 왜냐하면 뇌가 생각한 것을 손이 쓰고, 잡고,
만들고 하니까 결국 손이 뇌의 사촌인 셈입니다.
노인에게 중풍이라는 병이 있는데, 이 병은 오른쪽 뇌가 마비되면 왼쪽 반신
불수가 오고, 왼쪽 뇌가 마비가 되면 오른쪽 반신 불수가 옵니다. 그리고 이 병은
다른 데서 오는 게 아니라, 건강하지 못한 뇌에 마비가 와서 생기는 것입니다.
물도 정체되어 있으면 썩고 공기도 정체되어 있으면 썩는데, 하물며 움직일
동자가 붙어 있는 동물인 사람이 운동이란 걸 안 하면 그건 건강하지 않은 겁니다.
중풍이라는 것도 뇌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걸리는 병이 아닙니까?
그러면 이 뇌를 어떻게 운동을 시키느냐, 머리 속에 들어있으니 그걸 꺼내
주물러서 운동을 시킬 수도 없는 이 뇌를 운동시킬 방법이 있는데, 그게 뭐냐하면
손가락 운동입니다. 뇌가 생각하는 데 따라서 손이 움직이니까 손 운동을 열심히
하면 역으로 뇌가 운동이 되는 겁니다."
사실 중풍과 관련한 의학자료를 보니, 노인 중에서 염주를 계속 돌리는 노인들이
중풍에 잘 안 걸린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염주를 계속 돌리는 것 자체가 뇌
운동을 계속시키기 때문에 뇌가 건강해져서 뇌 마비를 예방하는 이치다.
그 원리를 이용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려 손가락과 두뇌 운동을 하면
치매와 중풍을 예방할 수 있다는 얘기는 노인들에게 관심이 가는 그럴싸한 말이다.
그런 요지의 말씀을 드린 후, 다음 모임 때에 가 보면 정말로 손주나 아들딸의
컴퓨터로 자판 연습을 한다는 노인들이 꽤 있었다. 집안에 있기는 있지만 자기와는
전혀 관계없는, 그게 뭐하는 건지도 모르고 그저 젊은 사람들이 쓰는 물건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것을 직접 만져 본다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즐거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강연 과정에서 나는 과학 기술에 관한 얘기도 당사자의 실제적인 이해
문제와 연결지어 말하는 화법을 구사해야 효과적으로 전달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하지만 재미있게 이야기하려고 아무리 노력했어도 과학을 이야기한 지역 모임
활동은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 그 해 선거에서 똑 떨어져 버린 것이다.
그래도 나는 과학 기술을 주제로 많은 강연과 강의를 했다. 그리고 더욱 흥미있고
유익하게 이야기하는 기법을 많이 개발했다. 유명한 과학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더러 농담 섞인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아직도 나는 과학을 대중화,
보편화하고 상식화시킨다는 점에서는 기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자부하고 있다.
(인물 연구)
과학의 전도사 이상희
이청
과학의 전도사
같은 세상을 살면서도 어떤 사람은 지난 과거에 매달려 살고 어떤 사람은 눈앞의
현실에 빠져 허덕이며, 또 어떤 사람은 미래의 빗장을 열기 위해 땀 흘리며 산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이상희 위원장은 세번째 부류의 대표적인 사람이다.
그는 첨단 과학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실용화를 주장하고 실천에 옮기는 선도적
역할을 한다. 또 산업화에 따른 여러 가지 부작용으로부터 삶의 질을 지키기 위한
녹색 삶의 주창자로서 젊은 엘리트들의 잠을 깨우는 목탁의 역할을 자임하며 쉴 틈
없이 뛰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총체적 국가 경쟁력의 제고를 위하여
'통합지능형 국가건설'과 이에 걸맞는 '전문 정치'를 외치면서 직접 정치 마당에
나서기도 했다.
이 위원장을 부르기 위해 한 마디로 딱 들어맞는 말이 아직도 없다. 어떤 사람은
지난날 그가 과기처 장관을 지낸 경력을 들어 '장관'으로 부른다. 어떤 사람은 또
국회 의원 경력을 높이 사서 '의원'으로 부르며, 어떤 이는 과학자로서의 활동에
무게를 주어 '박사' 또는 '교수'로 호칭하고, 현재의 직위를 들어 '위원장'이라
부르기도 한다.
어떤 이름으로 불러도 맞는 말이지만 그 어떤 이름도 그를 제대로 부르는 호칭이
되지 못한다. 우리 사회가 아직은 이 위원장과 같이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는
프론티어적인 인물들을 가져 본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 위원장은 바쁜 사람이다. 지난 9월 하순에서 10월 초 사이 두 번에 걸쳐 이
씨를 아주 어렵게 만났다.
10월 8일. 어느 일간지는 한국첨단게임산업협회 초대 회장인 이상희 씨에 대한
인터뷰를 실었다. 한국첨단게임산업협회는 삼성전자, 현재전자, LG 등 대형 전자
업체와 데니암, 단비 시스템, 이포인트 등 중소 업체 38개 기업이 회원사로 모여
32비트 게임 산업 등을 육성하기 위해서 지난 9월에 출범한 민간 단체다. 이런
단체를 왜 이 원장이 앞장서서 만들고 끌어가고 있는 것일까? 그의 대답은 이렇다.
"국내에서 게임 산업을 단순히 어린이들의 공부를 방해하는 귀찮은 놀이 기구로
여겨 배척하고 있는 사이 일본의 닌텐도, 세가 등 선진 업체들은 세계적인 초우량
기업으로 성장, 게임 산업을 주도하고 있어요. 닌텐도의 연간 매출액이 우리 나라
최대 전자 업체의 매출액을 능가할 정도입니다.
게임은 단순한 놀이 기구가 아니라 정보화 사회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아주
큽니다. 아랍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미주라기 한 대로 미그기 20 대를 떨어뜨리는
성과를 올렸어요. 이는 이스라엘군이 시뮬레이터를 통한 훈련을 쌓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지난번 미국의 대이라크 전쟁은 이 같은 첨단 게임 산업의 효과를
극대화한 본보기였지요. 게임 산업은 더 이상 귀찮은 놀이 문화가 아닙니다. 산업,
국방, 교육에 광범위하게 활용되어야 할 첨단 산업입니다."
이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한 위원장은 협회의 활동 방향을 "게임 산업의 육성 및
규제 완화를 위해 업계의 의견을 모아 정부에 건의하는 창구 역할을 맡고 게임 관련
기술을 축적, 기업들의 각종 개발 산업을 지원하는 것"으로 정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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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는 창의성을, 가슴에는 야망의 꽃을
21세기를 눈앞에 둔 세계 선진 각국의 국가 목표는 '정보화 사회의 테크노피아
건설'에 있다. 우리 나라가 만년 이등 국가로 자족하며 살겠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냉엄한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거나 앞서야만 한다. 이러한 미래의
상황을 알리고 대처하는 방안을 제시하기 위한 일이라면 '과학의 전도사'는 어디든지
달려간다.
그는 지난 5월 16일 이화여대 김영희 연구홀에서 열린 '21세기 정보화 포럼'에서
기조 연설을 통해 "우리가 과거와 현실에 얽매여 머뭇거리고 있을 때, 세계는
숨가쁘게 달려 싱가포르는 정보 두뇌 국가로, 말레이시아는 선진 기업 국가로,
중국은 21세기 군사 경제 대국으로, 미국은 정보 패권 국가로 나아가고 있다."고
경고하고, 우리 나라 대학생들이 "머리에는 창의성을, 가슴에는 야망의 꽃을 피워야
한다."고 분발을 촉구했다.
'과학 전도사'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자라나는 세대를 가르치고, 그들의 꿈밭을
계발하는 일이다. 그는 대학이든 중5,23고등학교든 가리지 않고 자신을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가 신들린 듯 그들에게 '미래 세계 건설'의 주역이 될 것을
요구하고 그 방법을 가르친다. 최근 그는 어느 여자 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했다.
그의 강연이 있은 직후 지금까지 그 학교 학생들의 인문계와 이공계 지원 비율이 6
대 4이던 것이 거꾸로 4 대 6으로 뒤바뀌었다.
이 위원장은 또 한국발명진흥회 회장으로 특허 및 발명 진흥의 조타수 역할을
하고 있다. '특허' 문제는 과학도이던 그가 법과 제도를 연구하고 개혁하는 방향으로
관심과 활동의 폭을 넓히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분야로서, 그가 가장 애착을 가지고
활동하는 분야 중 하나다. 이유는 간단하다. 발명이야말로 무한 경쟁 시대를 헤쳐
나갈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이것 또한 이 위원장에게는 '미래 사회 건설'을
위한 정치 작업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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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기술과 정치의 접목
지난날의 얘기는 잠시 제쳐 놓고 지금 당장 그가 맡고 있는 직책만 열거해 보아도
그의 관심사와 행동 반경의 폭을 짐작할 수 있다.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 위원장,
조선일보 21세기 정보화 포럼 대표위원, 세계화추진위원, 한국우주정보소년단 총재,
한국발명진흥 회장, 한국영재학회 회장, 한국컴퓨터그래픽스협회 회장,
녹색삶기술경제연구회 이사장, 영상산업민간발전협의회 의장, 중국흑룡강 중의학원
명예교수, 중국청화대학교 객좌교수5,5,5.
이런 여러 가지 직책들이 모두 정보화 사회에 대처하고 미래 한국 건설의 견인차
역할을 하겠다는 그의 꿈과 관련이 깊다. 그 많은 꿈을 집약하여 실천할 수 있는
상징적인 직책은 역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장 직함일 것이다. 93 년 문민
정부 출범과 함께 이 직책을 맡은 이래 안팎으로부터 '가장 잘 어울리는 자리' '자문
위원회 기능을 200% 활용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의 중심적인 기능은 '문민 정부의 새로운 국가 경영의
기본틀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방향은 21세기 비전에 따라 '정보화
체제'를 강조하고 세계화, 정보화, 지방화라는 국가 정책 기조에 대한 각종 자문에
응하는 것이다. 지방 발전을 위한 정책 포럼에 적극 참여하는 것도 이 같은 이
위원장의 고유한 직책과 무관하지 않은 일이다.
이상희 위원장의 바탕색은 '과학자'이다. 그러나 그는 상아탑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학생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는 학자는 아니다. 과학을 적극적인 현실 개조의
수단으로 가져와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강구하고
실천에 옮기는 역동적인 일꾼이다.
당연히 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현대의 과학 기술은 국가 정책에
의하여 강력하게 추진되어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가 115,2312 대
국회 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한 것, 그리고 과기처 장관으로 행정부에 몸을 담은 것,
현재도 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장으로 대통령의 정책 자문에 영향을 미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 이런 것들이 모두 국가를 테크노피아로 건설해야 한다는 꿈을
앞당겨 보려는 집념의 한 표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정치'가 시작된다. 정치는 싫든 좋든 세상을 살기 좋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부터 그는 '정치가'의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그 목소리는 지금까지 보아 온 낡은 정치판의 목소리와는 아주 다른 음색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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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핵 3 년 앓으며 발견한 삶의 본질
이 위원장은 1938 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범일동 조선 방직 앞의 자유
시장에서 포목점을 경영했으나 성격이 곧아 돈을 벌지 못했다. 형제는 모두 7
남매였는데 장남이 이진희 전 문공부 장관이었고 이 위원장은 차남이었다.
그가 자랄 때는 집안이 무척 어려웠다. 초등학교 다닐 때 그는 신문 배달을
했는데, 배달 지역은 범일동에 있는 철도 공작창이었다. 공장다운 공장이 없던 그
시절 철도 공작창은 대규모 철물 공장이었다. 이 공장에 신문을 배달하면서 소년
이상희는 여러 가지 기계와 조립 과정들을 보면서 호기심을 채워 갔다. 기술자
아저씨들의 귀염을 독차지한 이 소년은 그들의 도움을 받아 전국 발명전시회에
발명품을 출품, 상을 받기도 했다. 집에서도 틈만 나면 고장난 시계를 수리한다거나
광석 라디오를 조립하는 것으로 해를 보냈다. 그의 관심은 어릴 때부터 '과학의
세계'에 집중되어 있었다.
1955 년 부산고등학교(10 회)에 입학한 그는 2 년 때 결핵성 늑막염을 앓아
휴학하게 된다. 3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결핵과 싸우면서 그는 생명의 중요한
본질을 발견한다. 병을 비관하고 두려워할 때는 오히려 병이 깊어 갔으나 이를
극복하려고 용기를 일으키자 병세는 급격하게 호전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일을
통해 인간의 육체와 정신이 하나로 결합될 때 무한한 능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병든 아들을 가엷게 여긴 아버지는 "너는 객지에 나가 하숙도 못할 몸이니 삼류
고등학교 졸업장이라도 하나 따 주마"하는 제의를 했다. 그 무렵 삼류 고등학교의
졸업장은 힘만 좀 쓰면 구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고마운 제안을
거절하고 검정고시에 응시하기로 결심한다.
검정고시에서 그는 전국 수석을 했다. 수석으로 합격하자 검정 고시 위원회에서
서울대학교에 장학생으로 추천했다. 그로부터 서울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을 때까지 그는 한 푼의 등록금도 낸 일이 없이 공짜로 공부하여
국가와 사회에 많은 빚(?)을 졌다.
원래 그가 가고 싶었던 과는 공과대학이었다. 어릴 때부터 에디슨을 가장
존경했던 그로서는 공대 진학이 당연한 진로였다. 그러나 중간에 결핵성 늑막염을
앓아 질병을 극복하는 것이 더 급박한 과제라는 생각에서 약학대학으로 진학했다.
고등학교 때 병으로 한 번 좌절을 맛보았던 그는 대학에 들어가자 무섭게 공부에
매달렸다. 2 학년 마칠 때쯤 문교부의 미국 유학 시험에 합격하여 동기생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미국 유학의 길은 부모의 강한 반대로 무산됐다. "몸도 약한데 이역
만리에 가서 공부할 이유가 어디 있노?" 하는 것이 반대의 이유였다. 하는 수 없이
서울대학을 졸업한 그는 박사 과정을 밟기 위해 대학원으로 진학한다. 그의 전공은
약물학. 이 과목의 대학원이 처음 생겨나 두 명의 입학생을 뽑는데 그 경쟁이
치열했다. 당시에는 교수들 중에서도 3분의 1 정도만 박사 학위 소지자였으므로
박사 과정입학 자체가 어려웠다. 또한 학위를 받고 나면 대학에 남아 교수의 길을
가는 영광이 주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1973 년 2월 그는 '항암제 개발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서울대학에서 약학
박사 학위를 땄다. 이 논문은 교수들의 논문을 제치고 그해 서울대학교의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했다.
이 최우수 논문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그의 직장인 동아제약의 도움이 컸다. 그는
대학 졸업과 함께 동아제약에 특체되어 직장 생활을 했다. 대학원은 직장에
다니면서 적을 두었으나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사람에 비해 몇 배의 노력이
필요했다. 직장 내에서도 그의 대학원 진학을 눈엣가시로 보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창업주 강준희 회장은 그를 끔찍이 총애했다. 이 위원장이 밤세워 공부를
하고 회사 일도 열심히 하니 강회장은 이 욕심 많은 젊은이를 적극 보호했다.
창업주 회장의 보호라는 울타리 속에서 그는 빠른 속도로 승진을 거듭했다.
강회장은 '어떻게 하면 회사 내 중역들의 반대를 꺾고 이상희를 승진시킬 수
있을까?' 그것만 연구하는 것 같았다.
이런 환경 속에서 그는 박사 학위 과정을 밟았다. 학교에서는 이론 공부만 했지
실험 기구나 시약이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동아제약의 연구실에는 풍부한 실험
기재와 시약들이 있었다. 그는 밤새워 연구를 했고, 그 결과 '최우수 논문'이 나왔다.
학위 그는 엉뚱하게도 변리사 시험에 도전한다. 이공 계통의 공부만 해 왔던 그가
법률 공부로 한눈을 팔게 된 것이었다. 그 동기를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약학 공부를 하다보니 전 세계의 약에 대한 수많은 연구와 특허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되었고, 그 흐름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구 전체가 거대한
두뇌 싸움의 덩어리로 보인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그 두뇌 싸움의 소외 지역에
머물러 있었지요. 그렇다면 지구촌에서 기술이 이동하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겠다 하는 생각에서 이에 관련된 법률 공부를 하게 되었고, 변리사 시험을
보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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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리사 시험에 도전한 까닭
1973 년 11월. 그는 변리사 시험에 합격했다. 당시 변리사 시험의 합격자는 1
년에 단 한 명이었다. 시험이라기보다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모험이었으므로 어지간한 신념 없이는 도전할 엄두를 내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약학을 전공한 그는 단 한 번의 도전으로 그 어려운 법률 시험에 합격했다. 이 때
그가 받은 역대 최고 점수는 아직도 갱신되지 않고 있다.
제약 회사의 연구 개발 담당으로 있으면서 그는 업무와 관련하여 정부 부서에
출입하는 일이 잦아졌다. 자연히 정부의 생리를 알게 되었다. 또 특허와 관련하여
지구촌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지적 재산에 대한 거래를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기업과 국가의 경영과 국제 기술의 관계에 대한 문제점에 봉착하게 되었다. 변리사
시험을 보게 된 원인도 그 때문이었다.
그 분야를 보다 더 깊이 있게 연구하기 위하여 그는 1975 년 미국 조지타운대 로
스쿨에 유학, 이듬해인 1976 년 미국 특허청의 심사관 과정을 수료했다. 지구라는
큰 덩어리 속에서 기술(특허)이 어떻게 이동하며 그에 필요한 문제들이 무엇인가를
국제적인 시각에서 연구하고자 했던 그의 소원이 성취된 순간이었다.
국제적인 특허 문제를 연구하고 돌아온 그는 76 년 서울 상공회의소의 상담역을
맡아 자신이 쌓은 지식들을 국내 상공업을 위해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더
많은 것을 연구하고자 하는 욕심도 변하지 않아 78 년 2월에는 서울대학교
최고경영자과정을, 8월에는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발전정책연구원과정을 각각
수료했다.
이 위원장이 걸어온 길이 정치와 합류되는 것은 필연이었다. 그가 꿈꾸어 온 것이
정보화 사회의 테크노피아 건설이라면 정치는 그것을 앞당기는 가장 좋은 수단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정치와의 합류가 그 자신의 노력과 소원보다는 정치 쪽에서
먼저 다가왔다. 5공의 출범 이후 정치가 전문직 의원의 수혈을 필요로 하게 되었을
때, 그는 과학계 및 국제 기술교류 전문가로서 정치의 초빙을 받았다. 민정당
전국구로 11 대 국회 의원이 된 것이었다.
초선 의원으로 의회에 들어가자마자 보사위 간사, 경제과학위간사 등을 역임하며
'공부하고 연구하는 의원상'을 부각시켰던 그는 자신의 발의로 해양오염방지법을
개정(81 년)하고 유전공학 육성법을 제정(83 년)하는 등 종래의 의원들과 전혀 다른
모습의 의원으로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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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국회 의원
12 대 국회에서도 역시 민정당 전국구 의원이 된 그는 상공위무역소 위원장으로
활약하면서 산업기술연구조합육성법 제정(86 년), 해양개발기본법 제정(87 년),
항공우주산업개발촉진법 제정(87 년) 등 입법 활동을 벌여 자신이 무엇을 하러
국회에 와 있는가를 물증으로 보여 줬다.
그러나 86 년 연말 야당인 신민당이 불참한 가운데 열린 국회 상공위 회의에서
그는 특허법 개정안 통과를 홀로 반대하다가 결국 통과를 저지하지 못하자
회의장에서 눈물을 쏟아 지켜보는 기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여당 단독
국회에서 일사천리로 원안 통과되어 버린 이 특허법 개정안은 국내 기술 개발과
기업의 보호를 위한 장치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그가 홀로 반대를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이 같은 그의 노력과 신선한 이미지 때문에 국회 출입 기자들은 '12
대에서 가장 일 잘한 의원'으로 주저 없이 그를 뽑았다.
그러나 이 같은 그의 실질적인 의원 활동은 선거라는 정치 바람 속에서는
무력하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13 대에서 부산진 갑구 지구당 위원장으로 첫 지역구
출마, '아름답고 풍요로운 녹색 삶 정치'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걸었으나 야당
지도자인 김영삼 총재의 거센 민주화 태풍에 휘말린 부산의 지역 구민들은 야당
후보를 당선시켰다. 그나마 전멸한 여당 후보들 중 그래도 가장 많은 지지표를
얻었다는 것이 위안이었다.
13 대 국회 진출은 좌절되었으나 그는 1988 년 국회 의원이 된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을 맡았다. 과학기술처 장관이 된 것이었다. 이 위원장이 과기처 장관으로
재임하는 동안 '과기처의 틀을 바꾸고 방향을 비로소 명확하게 설정했다'는 평을
듣는다. 구체적으로 그는 기초과학 진흥원년을 선포하고 기초 과학 진흥에 필요한
법을 제정토록 했으며 전국을 기술 도시화하기 위한 '전국 테크노벨트건설계획'을
주도했다. 이 계획은 오늘날의 전국광역권개발계획의 기초가 되었다. 또 그는 대학
교수의 연구를 활성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우수연구센터제도를
정착시켰다.
21세기 과학 기술의 시대를 앞두고 과학 기술을 제대로 아는 정치인,
행정가로서의 주가가 상승일로에 있던 그는 문민 정부 출범과 동시에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이라는 또 다른 중책을 맡아 활동해 오고 있다. 이 같은
활동은 문민 정부의 '세계화' 정책의 실질적인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 동안 이 자문 회의가 대통령에서 보고한 사항들은 '세계 경제 환경의 변화와
우리의 대응', '스위스의 과학 기술 정책', '산5,23학5,23연 협동 연구 강화와
한5,23중 환경 협력', '정보화 사회의 국가 발전 전략', '정보화 사회의 구축 방안',
'과학 기술 시대의 국가 정책 기조', '국제화5,23개방화에 대비한 지적 재산권
정책',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교육 개혁 방향', 'UR 에 대비한 국민 건강과
안전한 먹거리 정책', '과학기술 전문인력의 활용 촉진 방안' 등 열 여섯 가지에
이른다. 그 외에 정책포럼 19 회, 전문가회의 36 회, 공개토론회 3 회, 간담회 76
회, 정례자문회의 1백 34 회 등을 개회하여 좁게는 과학 기술 정책, 넓게는 문민
정부가 지향하는 국가 발전의 틀을 짜는 막중한 일을 해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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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가는 사람의 고독과 고통
겉으로 드러난 행적을 살피는 것만으로는 이 머리 좋은 사나이가 탄탄대로의 길을
걸어온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그의 삶은 고난과 투쟁의 연속이었다. 우선
과학이라는 것이 현실적인 삶이나 정치 속에서는 그다지 매력이 없는 소재다.
공부하는 교실에서 학생들에게나 지껄일 얘기지 정치마당에서 하는 얘기는
아니었다. 일반 국민들도 과학의 성과를 향유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그것을 연구하고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지 위한 기존 제도의 변화나 고통의 분담에는 냉정하게 머리를
돌린다.
앞서 가는 사람이 외로운 것은 함께 가는 동행이 없는 탓이다. 동행이 없을 뿐만
아니라 뒤에서 잡아당기고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 훼방꾼들이 더 많다. 이위원장이
설파하는 '정보화 사회의 도래'를 알리는 메시지도 아직은 대부분 사람들의 귀에
공허한 메시지로 들리고 있다. 따라서 이 '과학의 전도사'가 지니고 있는 고독의
무게는 엄청나다.
"과학 얘기는 민주화니 뭐니 하는 얘기보다 재미가 없고 사람들을 쉽게 피곤하게
만듭니다. 먼 미래의 공상같이 들려 현실감이 적다고 느끼는지 귓등으로 흘려
들어요. 그러면 말하는 사람도 피곤해지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피로와 외로움은 정치판에서 더 심화된다.
"다른 사람들은 정치를 목적으로 생각하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일이 없습니다. 정치를 통하여 해야 할 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산더미처럼 쌓인 것을 보면서 언제 정치 그 자체를 느긋하게 즐길 수 있겠습니까?"
이 위원장은 정치인의 자질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현실에 적절하게 대응하고 관리하는 사람을 '정치인'이라 부르고, 미래에 대한
비전과 철학을 가지고 역사에 도전함을 '정치가'라고 부르도록 하지요. 정치가의
길은 고달픕니다. 다만 국가와 역사에 대한 기여와 보답으로 스스로 보답을
받아야지요. 이런 정치가들이 많아야 우리 정치의 선진화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정치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요즘 그의 관심의 추가
아무래도 그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모양이다. 다가오는 정치의 계절과도 무관하지
않을 성싶다.
그가 파악하고 있는 역사의 현실과 미래 구도는 일반적으로 예상하고 있는 국제
정세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중국 12억의 인구, 러시아 2억 5천, 일본 1억 2천만 명의 인구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땅도 인구도 제일 작고 기술도 뒤떨어져 있어요. 이 나라가
장차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가진 것은 오로지 머리뿐이잖아요. 인간은 코끼리보다
덩치는 작으나 다행스럽게도 머리를 가졌기 때문에 코끼리보다 힘이 셉니다. 바로
그런 속성을 한국이 절묘하게 살려내야만 미래 세계의 거대한 각축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날 강대국에 둘러싸인 채 수동적으로 대처했을 때 새우등이
터지듯 우리 역사는 짓밟히고 수모당하는 비극의 연속이었지요. 이제 개척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똑같은 역사가 반복됩니다. 이 같은 역사 인식에
잘못이 없다면 지금의 정치인들, 관리들, 기업인들, 교육자들은 우리 후세들에게
이런 불행을 남기지 않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야지요.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다면 정보화 사회(이 위원장은 우리 사회는 이미 정보화 사회에 들어있다고
했다)에 걸맞는 정치는 어떤 정치여야 하는가. 이 위원장은 기다렸다는 듯 해답을
내놓았다.
"우선 기업을 예를 들어 보지요. 지난날 기업의 유능한 경영자는 은행에서 돈을
잘 꾸어 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다음 단계에서는 시장 개척에 유능한 사람, 즉
판매를 잘하는 사람이 유능한 경영자였습니다. 지금부터는 신제품의 개발에 높은
안목을 가진 사람이 유능한 경영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도 이미 그런 시대에
돌입했어요. IBM 사장이 슈퍼 컴퓨터 쪽에 집착하여 회사를 얼마나 큰 위기에
몰아넣었습니까? 이제부터는 시장의 줄을 잘 서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기술의 줄을
잘 서는 것이 유능한 경영자로 대접받는 시대입니다.
정치도 마찬가지36예요. 농업 사회에서는 풍년이 들면 정치 잘하는 거지요.
산업화 사회에서는 공장의 생산이 잘 되고 시장을 넓게 점령하도록 돕는 것이
유능한 정치였고요. 정보화 사회에서는 농토와 공장 대신 사람의 머리를 부(부자
부)의 원천으로 삼아야 합니다. 머리라는 공장에서 기술 정보, 즉 지적 재산권을
생산하는 길로 가야 합니다. 그러자면 정치와 사회 제도가 모두 '머리를 비옥하게
하는' 방향으로 재구성되어야지요. 이제는 기술이 주(주인 주)가 되고 자본이
종(따를 종)이 되어야 합니다. 당연히 기업의 형태도 달라지고 금융 제도도 틀이
바뀌어야 합니다. 국가는 거대한 인텔리전트 빌딩처럼 구축될 것이며 국가를
움직이는 구성원은 전문 설계사5,23감리사5,23건축사와 같은 역할을 분담해야
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전문가 정치, 기술 정치로 바뀌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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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정치의 청사진
그가 말하는 '기술 정치'란 '정보화 사회의 복잡한 기술 문제를 알고 조정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정치'쯤으로 해석해도 모방할 것 같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무식한 정치', '원시 정치'의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닐까?
"현재 우리 나라 국회 의원 2백 99 명 중 과학 기술 분야의 전문인은 아홉 명에
지나지 않고 그들조차도 전공을 못 살리고 헛돌고 있습니다. 법적인 뒷받침이 없는
탓이지요. 이런 국회가 어떻게 정보화 사회에 대처하는 능동적인 입법 활동을 할 수
있겠어요."
한 마디로 수준 이하라는 평점이다. 우리 사회가 이미 정보화 사회에 들어서
있으며, 주변의 강력한 정보화 사회에 포위당해 있다는 관점을 전제로 하여 살펴볼
때 장차의 바람직한 정치 형태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장차의 행정은 정치 원리 아닌 경영의 원리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권위를
바탕으로 한 관리 경영 아닌 기술 전문 경영이어야 하지요. 오늘날 우리는 누구나
자동차를 소유하고 컴퓨터를 일상화하는 단계에 와 있습니다. 기술 시대를 피할
수가 없어요. 이를 거부할 것이 아니라 빨리 인정하고 받아들여 사회 구조를
변혁시켜 나가야만 국제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고 소망하던 세계화의 목표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위원장이 국회로 들어가게 되면 당장 무슨 일부터 하겠느냐?"는
물음에도 그는 대답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내가 만약 다시 국회로 들어간다면 보좌관을 비롯해서 모든 인력을 마쓰시타
정경숙처럼 전문인의 학교로 만들 작정입니다. 젊은 정치인들에게 나의 경험을
전수하여 기술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을 양성하는 데 주력할 것입니다. 내가 무슨
지도자가 되자는 것이 아니라 기술 정치인으로서의 첫 성공 사례가 되어야만 뒤에
오는 후배들이 발을 붙일 수 있게 될 터이니 매우 중요한 시험대에 오르는
셈이지요."
국민들, 유권자들의 이해도가 어느 정도일까 하는 의문에도 그는 자신감을
나타낸다.
"한 나라의 정치는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이 좌우합니다. 우리 정치의 수준이
낮았다면 우리 국민의 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됐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제 우리
유권자들의 수준은 미래 사회를 건설할 일꾼들이 누구인가를 가려낼 만한 안목을
길렀다고 봅니다. 기존 정치의 형태에 대한 환멸이 깊어질수록 새로운 정치에 대한
선택의 깊이도 깊어질 테지요. 기대해 봅시다."
이야기의 순서가 거꾸로 되었다. 정보화 사회가 필연적으로 정치의 구조와 형태의
변화를 요구한다면 그 전제가 되는 정보화는 어느 정도에 와 있을까?
"우리의 기술 수준이 남의 것을 빌어다 쓰는 소작농 수준에 머물러 있으니, 기술
강대국들이 틈만 나면 무시하고 짓밟으려고 덤빕니다. 미국, 일본 등의 회사들이
우리 회사의 유사한 기술에 대해 곧잘 '기술 침해'라 하여 덤비는 바람에 혼쭐이
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이런 기술 전쟁의 시대에 정치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자명한 일 아닙니까? 교육5,23행정5,23기업의 역량을 총화로 묶어
기술 개발을 하고 세계적인 경쟁에 나서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기술도 그
수준에 이르지 못했고, 정치도 적절한 지원을 할 능력을 갖지 못했어요. 그러나
기술과 정치 모두 방향만 잘 틀면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는 소양을 지니고 있어요.
여기에 희망의 정치가 자리잡을 토양이 있는 것입니다. 그 같은 토양 위에서 기술
정치, 희망의 정치를 싹 틔우기 위해서는 최소한 국회 의원의 3분의 1이라도 전문
정치가들이 들어가야 할 터인데5,5,5."
그렇다면 당장에 우리 정치 형태를 바꿀 필요가 있겠는가? 예를 들어 내각제를
실시한다던가.
"대통령 중심제니 내각제니 하는 얘기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과거의 정치 형태는
노동과 자본의 갈등이 낳은 것이지만 이런 갈등은 정보화 사회에서는 중요한 요인이
아닙니다.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 데 2 만 개의 부품이 필요한 것처럼 국가를
구성하는 요소가 기술적으로 분화되고 국가는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지휘자처럼
그것을 통합하는 기능을 수행하면 됩니다. 스위스는 일인당 국민 소득이 3 만 7천
달러가 넘지만 보수니 혁신이니 하고 논한 적이 없어요. 각 전문 분야별로 국제
경쟁력을 갖느냐 아니냐는 하는 것이 가장 심각한 논란의 대상입니다. 우린 지금도
보수냐 아니냐 하고 원론을 가지고 떠들고 있잖아요.
대통령 중심제냐 내각제냐 하는 제도에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여 그 속에 있는 틀을 바꾸어 나가면 됩니다. 국회를 예를 들자면 기존의
분과 위원회를 환골탈태시켜야 합니다. 농수산 위원회니 하는 것들이 모두 산업
사회 때의 제도지요. 상임위 중심이 아니라 특별 위원회를 많이 만들어 기동성있게
현실의 변화와 역사의 요구에 대처해야 합니다. 정기 국회도 중요하지 않아요.
그보다는 전문 분야별로 공청회와 청문회를 자주 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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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5,23대선거구로 가야 한다.
전문 정치인이 많이 들어와 기술 정치가 가능하게 하려면 지금의 선거 제도
가지고는 어렵지 않겠는가 하는 물음에 이 위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중5,23대선거구로 가야 합니다. 소선거구 제도 아래서는 선거꾼들만 들어오게
돼 있어요." 중선거구 제도를 실시했을 때도 정당 간의 동반 당선 현상으로 달라진
것이 없지 않았느냐는 반론에 그는 "그래도 그 제도가 제일 신선한 공기를 들여보낼
유일한 통로"라고 했다.
"전에 한 선거구에서 두 명을 뽑았을 때 차점으로 당선한 의원들이 의정 활동을
훨씬 활발하게 잘했다는 평가가 나왔어요."
과학자냐 하면 정치인이고 정치인이냐 하면 정보화 사회의 프론티어로 정치를
한갖 도구로 생각할 뿐인 사람, 과학과 법과 정치의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인 사람,
그런 이상희 위원장이 존경하는 인물은 어떤 사람일까? 그는 '드골'이라고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프랑스 국민들이 넘쳐나는 자유 정신에 탐닉하여 내각이 일주일이 멀다하고
무너지는 등 '나약한 프랑스'를 만들어 가고 있을 때 드골이 나와 대통령 중심제로
개헌을 단행했습니다. 그게 훌륭하다는 것이 아니라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대통령
중심제로 개헌을 한 후 그는 국민의 분출하는 에너지를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방향으로 흐르도록 물꼬를 잡아 주었습니다. 해양 개발, 항공우주 개발, 원자력
개발이 그런 것입니다. 그 결과 프랑스는 지금 그런 분야에서 세계적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고,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대국이 되어 있습니다. 미라주, 테제베,
콩코드, 엑조세, 원전 기술 등 모두 그 산물입니다. 당시 드골은 국방 장관이 다음
해의 예산 편성안을 가지고 오면 이 예산이 해양 개발, 우주 항공 개발, 원자력 개발
등 3 대 정책 목표의 실현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 하는 문제부터 먼저 질문을
합니다. 미래에 대한 과학 기술적 비전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래서 그를
존경합니다."
좋은 지도자란 어떤 사람인가. 드골이 예에서 저절로 대답이 나온 셈이다. 이
위원장은 "국민의 창조적 에너지를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자신의 소망도 바로 그런 정치인이 되고 싶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다양한 지식과 경험, 활동의 폭을 지닌 이 위원장이 21세기가 열리는 그
무렵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긍금증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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