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 따라 144일 흔들흔들 세계일주
한 대희
제 1장 세상 밖으로
1. 이별 전야
8월 1일, 진해에서의 이별 전야제
천혜의 요새로 불리는 진해에 당도했다. 도착해 보니 처음 본 진해는 아름다운 소도시이
다. 부산에서 진해까지 오는 길은 초행이라 걱정을 했었는데, 불과 30분 남짓밖에 걸리지 않
는다. 그리고 진해의 첫인상이 좋다. 마치 내 고향 경주에라도 온 느낌이다. 왜 진작 군항제
에 한 번 와 보지 않았을까? 가슴 밑바닥에서 은근한 후회가 꿈틀거린다. 장장 5개월 여의
장도를 떠나는 남편을 배웅하기 위해 먼길을 따라나선 아내도 진해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
다. 장기간의 이별은 싫으면서도 지금 당장은 마치 신혼여행이라도 온 듯 즐거워한다. 그러
고 보니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우리 두 사람만의 오붓한 시간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 마
음 한구석이 찡해 온다. 그래서인지 우리 두 사람만이 가지는 아름다운 도시 진해에서의 첫
날밤이 왠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진해역 옆 남포 장에 여장을 풀고 홍영소 공보참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이름도 아
름다운 '엔젤다방'에서 만나 커피 한 잔을 마셨다. 또 오후 3시 반에는 소설가 황충상 선생
과 국방부 유호상 기자, 박승룡 기자를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이번에 함께 여행할 동료들이
다.
오후 4시경, 부대로 들어가 가져가야 할 짐을 '천지함'에 옮겨 실었다. 짐이 너무 많다. 큰
가방 작은 가방 합해서 네댓 개는 된다. 허나 5개월간을 군함에서 살아야 하니 어쩌겠는가.
봄, 여름, 가을, 겨울옷을 골고루 챙기다 보니 짐이 늘어날 수밖에. 어쨌든 이런 여행은 처음
이다 보니 사뭇 긴장이 된다. '천지함'의 사관 실에서 이번 순항훈련분대의 사령관이신 정병
두 제독과 첫 면담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이번 여행의 룸메이트인 황 선생과 함께 우리가
5개월간 함께 지낼 방 구경을 하고 짐을 대충 챙겨 넣었다. 좁은 선실에 침대가 아래 위 이
층으로 놓여져 있고, 세면대와 책상과 응접소파까지 놓여 있는 제법 괜찮은 방이다. "이 좁
은 데서 어떻게 5개월을 보내?"아내는 군함의 내부 선실이 신기하면서도 좁은 게 신경이 쓰
이는 모양인지 자꾸만 두리번거린다. 그러나 군함에서 이 정도의 방을 차지하고 있으면 최
고의 대우라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다.
오후 6시 10분전. 시내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다가 전야제가 시작되는 시간에 맞추어 다시
군함으로 돌아갔다. '천지함'의 함미에 만들어진 리셉션 장에 들어가니 하얀 정복의 해군들
과 가족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집사람은 해군이 너무 멋쟁이들이라 마음에 드는 모
양이다. 오늘은 해군 지휘부가 총집결된 모양이다. 안병태 해군 참모총장 이하 수많은 제독
들, 평생 봐도 다 못 볼 제독들을 이날 한꺼번에 다 봐 버린 듯한 느낌이다. 리셉션을 마치
고 진해시를 나와 밤거리를 거닐었다. 시장을 들러 군함에서 신을 슬리퍼를 사고 유정다방
에서 아내와 커피 한 잔씩을 마셨다. 손님은 나와 아내 단둘뿐이다. 모처럼 분위기 잇는 낭
만적인 시간을 보냈다. 세상살이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맨 날 오늘만 같았으면.
2. 이별, 그리고 울음바다
출항, 이별의 울음바다.
울음바다. 그것은 또 한 편의 장대한 바다였다. 그러니까 아침 10시 정각. 안병태 해군 참
모총장 이하 해군 지휘부 및 장병들이 참여하는 순항훈련분대 환송 식이 열렸던 것이다. 안
병태 해군 참모총장의 무운장도를 기원하는 축사와 함께 환송 식이 끝나자 출항하는 배에
탑승할 사관생도와 승조원들이 가족들과 면회를 하는 시간이 특별히 주어졌다. 가족과 생도
들은 서로가 뒤엉켜 꽃다발을 주고받으며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단 5분간이었다. 너무나 아
쉬운 순간들이 연출되었다. 10시 30분 정각. 크게 고동을 울리며 군함이 용트림을 시작했다.
그리고 '청주함'과 '부산함'이 서서히 진해 기지를 떠나기 시작했고,'천지함'도 그 거대한 몸
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지함'의 비행갑판에 있는 군악대와 부둣가의 군악대가 이별의
음악을 서로 주고받았다. 배 위의 군악대가 한 번 연주를 하면 그 다음은 부두의 군악대가
화답을 하는 식이다. 이것도 해군의 전통인가 보다. 부둣가에서 수백 여 명의 가족들은 힘차
게 손을 흔들었다. 함상 갑판에 도열한 장병들 역시 손을 흔들었다. 환송객들 틈에서 아내는
손을 흔들었다. 그 옆에 홍영소 공보참모의 가족들이 손을 흔들고 있었는데 공보참모의 딸
은 펑펑 울었다. 공보참모의 부인은 자신도 울고 있으면서 딸을 달래느라 애쓰는 눈치였다.
'여보, 몸 건강히 다녀오세요.' 아마도 그런 꿋꿋한 몸짓을 보이고자했으나 쉽지는 않은 모양
이다. 아내 역시 꿋꿋하게 버티고 서 있었으나 눈은 울고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는지 세 여인은 양산으로 몸을 가리고 펑펑 울었다. 이별이란 조건 없이 슬픈 드라마인
모양이다. 그래서 부두는 소리 없는 울음바다가 되어 있었다. 부두는 점점 멀어졌다. 어느
순간, 부둣가에서 손을 흔드는 아내의 손바닥이 별안간 커지더니 금세 군중들의 모습에 묻
혀 버렸다. 부둣가의 사람들이 까만 점으로 보일 때 장병들은 꽃다발을 바다로 던지기 시작
했다. '바다에서 얻은 것은 바다에 돌려보낸다'는 그들의 순수한 의식과 관습 때문이다. '천
지함'은 길게 고동을 울리며 동지나해를 향하여 장도를 시작했다. 태풍의 진원지인 동지나해
를 지나가야 비로소 뱃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험악한 파도가 기다린다는
험난한 동지나해와 남지나해이다. 왠지 기대가 된다.
3. 군함의 섹스
물위에서의 첫 식사
12시 30분. 사관실에서 첫 번째의 함상식사를 했다. 머리가 약간 어지럽고 속은 울렁거렸
으나 밥맛은 아주 좋았다. 아직 우리 나라 영해를 채 벗어나지 않은 오후 2시경, 우리 영해
상에서 첫 번째 대함 사격훈련을 했다. 출항하는 배를 따라나온 고속 정이 함미에 표적을
달아서 1킬로미터 후방에 표적을 만들어 주었다. 고속정의 표적이 일으킨 물보라를 목표로
'청주함','부산함','천지함'의 순서로 포사격이 시작되었는데, 함교에서 망원경으로 살펴보니
표적 앞에 떨어진 몇 발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명중되었다. 육군의 곡사포와 해군의
포는 직선으로 날아가 정확하게 목표물을 꿰뚫는다. 대단한 솜씨들이다. 왠지 마음 든든하
다. 14시 50분에 상황이 끝나고 고속 정으로 돌아갔다. 17시 50분, 함수를 180도 방향, 대만
남방 5만 마일을 향하여 항진을 시작했다. 21시에 야식으로 라면을 먹었다. 속이 울렁거려서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 해군은 배의 요동으로 소화가 빨리 되기 때문에 세끼 식사 외에도
밤 9시에 야식을 먹는단다.
8월 3일, 출항 이틀째 되는 날
아침에 일어나니 속이 제법 편해졌다. 어젯밤엔 배의 피칭과 로울링, 요잉이 심했는데 오
늘 아침엔 잔잔한 편이다. 몸이 어느새 적응이 되었는지 몸과 마음이 다 편안한 편이다. 그
래서인지 아침밥은 유난히 더 맛있다. 누룽지 한 그릇과 밥 반 그릇, 미역국 한 그릇을 거뜬
히 비워 냈다. 이러다가 돼지가 되어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은근히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9시 30분, 사령관이 주재하는 통합 참모 회가 열렸다. 권병주 정보참모의 일기예보를 시작
으로 박갑제 작전참모의 훈련경과 등 현재의 위치와 태풍의 경로, 사관생도들의 훈련문제
등 제반사항이 거론되고 대응책이 지시되었다. 이어서 10시 10분에는 함장주재의 함상학교
가 열렸다. 젊은 초급장교들을 모아놓고 배의 운영에 관한 실전적인 여러 가지 교육이 실시
되었다. 오후 2시. 이번엔 오키나와 남방 해상에서 대잠훈련이 실시되었다. 오키나와 공군기
지에서 발진한 미 대잠초계기인 P3가 '청주함'과 '부산함' 사이에 잠수함 형태의 모형을 물
속에 떨어뜨리고 우리 군함이 물 속에서 8노트로 움직이는 그 표적을 찾아내어 폭파하는 대
잠수함 훈련이다. 모형 잠수함의 가격은 천만 원 정도이고 훈련이 끝나고 밧데리가 떨어진
모형은 바닷속으로 가라앉는다고 한다.
배 위에서의 생활이 시작되다
오전 9시. 사관 실에서 참모들이 모여 함상학교를 시작했다. 함상학교 수업은 영어공부이
다. 교관은 미국유학을 다녀 온 권병주 정보참모가 맡았다. 해군 장교들은 대부분 미국에서
군사교육과정을 거쳐 영어에는 익숙한 편이다. 그러나 반복 실습교육을 계속한다. 해군 장교
들은 한·미 연합훈련을 끊임없이 해서인지 일찍 국제화가 되어있는 듯싶다. 항해는 순조롭
다. 이상하리만큼 날씨가 좋아 배타는 일에는 초보자인 황 선생이나 나에겐 더없이 순탄한
항해가 계속되고 있다. 사령관 님이나 참모장님은 우리에게 해군체질이라고 농담을 하신다.
파도는 1미터에서 2미터 정도. 이 정도의 파도에는 9,000톤급의 '천지함'은 끄떡이 없다.
피칭, 로울링, 요잉은 모두 양호하다. 첫날은 어지럽고 속이 메스껍더니 이튿날부터는 전혀
이상이 없다. 밥맛도 좋고, 건강상태도 양호하다. 그러나 체력관리를 위해 오후 4시에는 꼭
함미에서 운동을 하기로 했다. 함정에서의 생활은 예상보다 훨씬 양호한 편이다. 식사 도중
에 사령관 님이 물어보신다. 배를 타기 전의 예상에 비해 어떠하냐고. 상상했던 것보다 매우
양호하고 식사 후에 커피 한 잔을 할 때는 행복감을 느낀다고 답변을 했다.
배 위에서 주말 보내기
비록 항해 중이지만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은 뭍에서의 여느 주말처럼 매우 자유스런 분위
기이다. 엄격하기로 소문난 사관실의 분위기도 매한가지이다. 휴일에는 대부분 책을 읽거나
비디오를 보며 시간을 보낸다. 이 배에는 비디오테이프 300개가 실려 있다고 한다. 함정에서
는 무료한 시간을 슬기롭게 보내는 것이 스트레스를 줄이고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상책일
는지도 모른다.
G타임(골프타임) 변경
오전 7시 30분, 사관 실에서 식사를 하고 곧 바로 함상학교가 열렸다. 참석하는 인원은 매
일 들쭉날쭉 이지만 7,8명은 고정멤버로 꼬박꼬박 참석한다. 지도교관인 권병주 정보참모는
본토 발음에 가까운 유창한 영어로 쇼핑할 때의 갖가지 발생 가능한 모든 상황을 열거하며
문답식으로 교육을 진행시킨다. 오늘이 교육 3일째인데 조금씩 향상되는 스스로를 느낄 수
있다.
오늘은 매우 분주한 날이다. 10시 정각에 시각 대를 골프타임으로 변경했다. 골프타임이란
해군에서 쓰이는 군사 용어의 하나이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G타임을 가리킨다. 함상에서 쓰
이는 용어들로는 알파, 브라보, 찰리, 골프, 호텔, 인디아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A, B, C,
G, H, I를 가리키는 호칭들이다. 인디아(I)시각을 쓰는 한국을 떠나 항해를 계속하면서 이동
할 때마다 이동지역의 현지시간을 적용해야만 한다. 베트남 동남방 70마일을 항해하고 있는
이곳은 서울과는 2시간의 시차가 있다.
동작 그만! 참모회의
함상학교가 끝나고 곧 바로 사령관이 주재하는 참모회의가 열렸다. 우선 기상장의 기상정
보 제공이 있었는데 기상현황의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1,007핵타 파스칼의 기압골과 시정 4
내지 7마일로 기상은 양호한 편이나 인도양이 가까워지고 있는 남지나해를 항해하다 보니
기상정보를 제공받기가 마땅치 않은 모양이다. 중국은 자기 나라의 영토에 대한 기상정보만
보내고 있었고, 인근 동남아 국가의 방송은 수신조차 되지 않는다. 설사 수신이 된다고 하더
라도 경제력이 약한, 못사는 나라는 자기 나라 위주로만 기상정보를 방송하고 있어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단다. 그러다 보니 호주의 방송에서 내보내는 기상정보에 의존하고 있는데
북반구를 항해하면서 남반구에서 내보내는 기상정보에만 의존해서 되겠느냐는 사령관의 지
적이 있었다.
박갑제 작전참모는 음력 7월 11일 현재,1,756마일을 항해했고 방콕까지 1,028마일이 남았
음을 보고했다. 또한 일몰시각은 17시 50분,10시 정각에 골프타임으로 시간을 변경할 것이며
현재 유류가 85.4퍼센트 남아 있음을 보고했다. 이기식 인사참모는 첫 번째 기항지인 태국에
주재하는 국방부무관과의 팩스 교환여부를 보고하고, 입국하는 장병과 생도들이 사용할 태
국화폐 바트의 환전문제를 논의했다. 유인수 군수참모는 태국에서 두 개 이상의 업체에 발
주를 하여 각 함정에 파, 오이, 콩나물 등의 채소류를 싣겠다고 한다. 박일구 통신참모는 순
항분대 함정이 현재 태평양 끝에 떨어진 남지나해를 항해하고 있어 통신감도가 불량하여 지
금까지 사용하던 인마 세트를 태평양 위성에서 인도양 위성으로 전환하여 통신감도가 양호
해졌음을 보고했다. 한 번 호출하여 사용하는 데 일 분당 오천원인 태평양 위성보다 인도양
위성은 사용료가 일분당 일만 원으로 두 배나 비싸다는 문제점은 있었다. 노수업 경리참모
는 사병들에게 지급할 수당을 환전하여 지급할 것인 지의 여부를 질문했고, 사령관의 결심
을 받았다. 이재윤 치과 군의관은 의무교육계획과 환자발생상황을 보고했고, 참모장으로부터
환자진료 상황을 메모형식으로 매일 일일보고 하라는 지시를 하달 받았다. 윤병균 참모장은
첫 번째 기항지인 태국에서의 계획을 D-2일까지 총점검하라는 보충지시를 내렸다. 즉, 군수
지원 문제,교민위문행사,선물증정문제,상륙자 조편성문제 등을 총점검할 것을 요망했다. 정병
두 사령관은 태국 입항 후, 국제 관례대로 출력이 큰 통신장비는 사용할 수 없는 경우와 한
국과의 교신이 끊기는 상태에 대한 대응책을 세울 것을 지시했다. 즉, 선박이 정박 중에 이
마세트 위성사용이 가능한지 여부를 확인하고 불가능하다면 본국과의 교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행사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보도차량 운전자의 국제면허확인, 통신요금
절약을 위해 인마 세트 사용을 철저히 통제할 것을 당부했다. 작년의 경우 인마 세트 위성
사용료가 삼천만 원 가량이 나왔는데, 올해는 그 이상이 나오지 않도록 개인적인 사용을 금
하고, 용건이 있을 때는 여러 사람의 업무를 한꺼번에 모아서 일시에 처리할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태국의 국가적인 문제인 에이즈 예방을 위해 승조원들의 외출 시에 교육을 강화하고
콘돔 지급을 중지하여 에이즈를 원천 봉쇄하는 대처방안을 세우도록 세심한 지시를 하면서
참모회의는 끝을 맺었다.
해군 순항훈련
참모회의가 끝난 후, 호텔타임으로 10시 정각인 시간을 골프타임 9시로 변경하고, 이번엔
'부산함'과 '청주함'에 대한 중간급 유를 시작했다. 1,800톤급의 '부산함'과 '청주함'은 전투함
으로 일주일에 한번씩 급유를 받아야 한다. 예전의 경우 전투함 두척만이 세계일주에 나섰
는데 각 항구에 입항하여 기름을 급유하다 보니 기름 값이 들쭉날쭉 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93년부터 9,000톤급의 기동군수지원함인 '천지함'이 참가하여 비교적 가격이 산 우리 나라의
기름 및 군수품을 보급해 예산이 훨씬 절약된다고 한다. '천지함'은 진해에서 탱크를 가득
채우고 출발한 후, 비교적 기름 값이 저렴한 프랑스의 '툴롱'에서 한 번만 유류보급을 하면
3척의 함대가 세계일주를 무사히 마칠 수 있단다. 따라서 해군 참모총장의 결심 하에 93년
부터 해군사상 최초로 3척의 군함이 순항훈련에 나서게 되었던 것이다. 해군의 순항훈련은
여러 가지 목적을 지닌 채 실시되고 있다. 해군의 장래를 두 어깨에 짊어질 사관생도들의
실전경험과 항해경험을 통해 외국의 문물을 접하게 하며, 그들의 기상과 세계관을 드높이는
의미도 있지만 우리의 해군이 대양에 진출함으로써 국력과시와 국위선양의 목적이 있다. 또
수출 물 동량의 98퍼센트가 바다를 통해 드나드는 우리 나라의 입장에서 유사시 해상교통로
보호를 위한 초석을 다진다는 중요한 의미도 있는 것이다. 1945년 해군 창설이래 1954년부
터 매년 사관학교 졸업반 생도들에 대해 실시하고 있는 순항훈련은 금년도가 마흔 두 번째
이다. 광복 5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에, 해사 제 50기 생도들이 떠나는 세계일주 순항훈련은
그래서 더욱 뜻이 깊다. 세계화 시대에 부응하는 유능한 해군장교로서의 자질을 키워주며,
나아가 21세기 태평양시대의 주역이 될 대한민국의 위상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군사외교
사절로서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할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진해를 떠나온 지 일주일째, 정병두 사령관이 승함한 '천지함'을 필두로 '청주함'과 '부산
함'은 끊임없는 훈련을 반복했다. 사관생도들은 학교에서처럼 함정에서 초급장교 실습교육을
끊임없이 받고 있다. 학교 교육과정에는 없는 당직근무까지 해야 하므로 좀 더 빡빡한 일정
을 보내는 편이다. 오늘 실시되는 해상급유는 생도들에게 또 하나의 훈련과정이기도 하다.
프로브(PROBE) 급유방식이라는 해상급유는 매우 어려운 고난도의 기술을 요구한다. 다행히
오늘은 파도가 잔잔한 편이지만 파도가 높을 때는 매우 위험한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군함의 해상 베드신
'천지함'이 일정한 침로와 속력을 유지할 때,'부산함'이 천천히 접근을 시작했다. 120피트
정도의 거리로 접근한 '부산함'이 '천지함'과 동일한 침로를 유지하면서 급유를 위한 준비작
업이 시작되었다. 바짝 접근한 채 일정한 속도로 침로를 유지하며 달리는 두 배의 마스트에
탄약작업, 유류작업을 하고 있음을 알리는 적색의 위험신호기인 브라보기가 걸렸고, 현재 두
배는 조종성능이 제한된 상태임을 알리는 검은색의 형상물이 나란히 걸렸다. 국제해상충돌
예방법규에 규정된 형상물이다. 그리고 '천지함'에서 '부산함'으로 밧줄이 쏘아졌고 전화선과
거리 측정선, 급유호스가 함께 '부산함'으로 건너갔다. 직경 17센티 짜리 대형 급유호스의 주
유기가 천천히 '부산함'으로 건너가는 광경은 한 마디로 장관이었다.
예로부터 선박은 여성으로 불리어진다. 왜 그랬을까?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미국 해군의
'체너터 니미츠' 제독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화장(Paint)을 하고 분(Powder,화약)에 많
은 돈을 투자해서 예쁘게 꾸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에서 선박과 여성은 공통점이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자의 주변처럼 선박은 언제나 남자에 둘러싸여 시끌벅적하고, 온몸에 장
식을 하고 자신을 잘 다루어 줄 남자가 필요하다는 점에서도 선박과 여성은 공통점이 있다.
예로부터 선박은 여자처럼 유지하는 데 시간과 돈이 들고 항상 장식을 해두어야 한다는 고
정관념을 지니고 있었고, 그래서 여성으로 취급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기름을 넣는 주유호스의 주입구 생김새는 남성의 심벌과 아주 흡사했다. 거대한 '천지함'의
허리에서 풀어 내려진 귀두(주입구)가 여성인 '부한함'의 허리에 난 구멍에 콱 틀어박히는
광경을 보자면 누구나 섹스장면이 연상되게 마련이다. 군함의 섹스 바로 그랬다. 동지나해의
망망대해에서 나란히 누워 있는 두 척의 군함. 첫 번째 삽입에서 실패한 귀두는 일단 뒤쪽
으로 물러났다가 두 번째 삽입에 성공하여 무사히 성교를 치렀다. '천지함'이 '부산함'에 5만
배럴의 기름을 방사하는 섹스는 한 시간 가까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나 '부산함'과는 달리 '청
주함'은 쉽게 삽입에 성공했고, 섹스시간도 훨씬 짧아졌다. '청주함'은 벌써 여러 번 기름을
주입한 경력이 있고 '부산함'은 이번이 처음이란다. 급유가 끝나고 늦은 점심식사를 들면서
사령관이 농을 던진다. "부산함'은 처녀라서 그렇게 힘이 들었나?"좌중에서 웃음보가 터져나
왔다. 그러고 보니 '부산함'은 처녀 함이었다. '청주함'은 해상에서 기름을 공급받는 기회가
많았는데 '부산함'은 이렇게 망망대해에서 해상급유를 받은 경험이 없었던 모양이다. '부산
함'은 그야말로 오늘에야 처녀딱지를 뗀 셈이다. 누군가가 부러운 듯이 말했다. "그래도 군
함은 행복하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섹스를 할 수 있으니."
4. 정보참모와 기상예보
기상상황 이상 없음
"오늘의 기상상황은 평일과 별로 다름이 없습니다. 이따금씩 비가 오겠습니다만 기상은
양호한 편입니다. 현재 동남아 국가의 기상정보를 수신할 수 없습니다만 호주의 기상정보만
으로도 항해에는 지장이 없겠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인도양으로 들어서면 디에고가르샤의
미해군기지에서 기상정보를 받을 수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걸로 예상됩니다." 8월 8일,
아침의 함상영어학교를 마치고 곧바로 열린 사령관 주재의 참모회의에서 권병주 정보참모는
기상예보에 대한 보고부터 시작했다. 군함에 있어서 기상정보는 생명 줄이나 다름이 없다.
이런 관계로 기상정보를 맡고 있는 정보참모는 매일 긴장의 연속이다.
권병주 참모는 정말 바쁘다. 아침식사 시간 이후에 벌어지는 함상학교의 영어교육을 맡아
서 바쁘기도 하지만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일기예보에 대한 스트레스, 그리고 정박
중에 배의 안전을 위해 UDT 대원을 바다 속으로 잠수시켜 배의 밑바닥을 검색하는 것도
그의 임무 중하나이다. 어디 그뿐인가. 방문하는 국가에 대한 정보를 수집, 함의 승조원과
생도들에게 알려주어 그들의 편의도 도모해야 하고, 기항지에서 있게 마련인 잠깐씩의 관광
안내도 그의 몫이다. 그리고 입항한 각 나라의 상세한 정보를 수집하는 역할도 당연히 그의
몫이다.
비구름 쫓아가 목욕하자
"함장, 가다가 스콜을 만나면 항로를 많이 벗어나지 않는 한 그 구름 밑으로 항해를 하도
록 하지." 사령관이 지시를 했다. 요컨대 배의 갑판 청소를 좀 해야겠다는 뜻이다. 물이 귀
한 함정이다 보니 어떤 배는 일부러 비구름을 쫓아다니면서 함미에서 장병들의 목욕을 시키
는 경우도 더러 있는 모양이다. "예,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갑판청소를 할 때가 된 것 같습
니다." 오재선 함장도 마침 스콜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대답을 했다. 이번 항해는 이상
하게도 순탄한 편이라 지난 일주일 동안 비 한 방울 오지 않았다. 아니, 때때로 비구름을 만
나기는 했으나 부러 비구름을 피해 항해를 했던 측면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
입항준비 총점검
"본 함대는 진해를 출발해서 오늘까지 2,106마일, 앞으로 방콕까지 678마일 남았습니다.
현재 14.5노트의 속도로 항해 중이고, 유류소모현황은 '천지함' 67퍼센트,'부산함' 79퍼센트,
'청주함' 80퍼센트입니다. 기항 2일 전인 오늘, 도선사와 상의하여 입항순서를 결정하여 보고
올리겠습니다." 작전참모의 보고가 끝나자 사령관의 지시가 내려졌다. "태국 현지의 사정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배 한 척을 다른 항구에 계류하라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야. 그 배
승무원들의 상륙문제도 그렇겠지만 함정의 안전문제로 경비를 세우는 것도 이중의 인력이
들지 않나 이 말이야. 입장을 바꾸어서 우리 진해항에 태국 해군이 들어왔을 때 우리는 그
런 식으로 대접을 하지 않아야겠어. 어쨌든 태국주재 국방부 무관에게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변경이 어렵다면 입항순서는 '청주함','천지함','부산함',이런 순서로 입항하도록 해." 입항 D
데이 이틀 전이라 참모회의는 매우 밀도 있는 문제들을 다루어 나갔다.
이기식 인사참모는 기항지에서 벌어질 행사 일정표를 나누어주고, 상세한 보고를 했다. 정
보참모는 기항지 정보를 요약해서 다시 보고했고, 유인수 군수참모는 입항한 후의 쓰레기처
리 문제와 청수의 보급문제, 청수의 예상 잔류 액이 6,000갤런 남짓이라 '부산함','청주함'에
서 2만 배럴의 청수를 공급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는 보고를 했다. 원래 태국은 물 값이
톤당 2.5달러로 비싼 편이고, 물의 질이 좋지 않아서 물을 공급받지 않고 출항할 계획이었으
나 현재 군함 3척의 물 소비량이 많아서 애초의 계획을 수정해야 할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이어 군수참모는 국내에서 구입하지 않은 채소류의 구매에 관한 보고를 했고, 노수업 경리
참모는 상륙 수당을 현지화폐로 바꾸어 장병들에게 지급하는 문제를 보고했다. 홍영소 공보
참모는 입항행사를 오늘 중으로 완료하여 보고하기로 했고, 배형수 실습대장은 생도실습 때
별도의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과 체력단련을 차질 없이 실시하고 있다는 것, 또 입항한
후 사흘간의 상륙행사 중에 도시락을 준비하겠다는 계획을 함께 보고했다. 이영주 헌병참모
는 첫 기항지인 만큼 생도들에게 상륙 군기를 확립하도록 교육시켜줄 것을 당부했고, 태국
의 위험한 거리인 팟퐁거리에서 장병들이 주의를 하도록 주지시켜 달라는 요청을 했다. 또
교민과 방문국가들과의 접촉시 국위실추 사례가 없도록 승조 생도들의 교육에 만전을 기해
줄 것을 당부했다.
참모들의 보고가 끝나자 윤병균 참모장의 보완 지시사항이 내려졌다. 남방지역의 해역에
는 열대림에서 떠내려오는 통나무들이 많은 만큼 통나무와의 접촉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 함에 지시하여 견시활동을 더욱 보안할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입항 시에는 아침에 총원
이 일시에 기상을 하여 단정한 트레이닝복을 착용해서 우리 해군의 이미지가 손상되지 않도
록 조심할 것과, 소매치기나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만큼 승조원들이 상륙을 할 때 일인당
50달러 이상의 거액을 소지하지 말 것을 재삼 당부했다. 그리고 군수참모에게 함정의 부식
은 반드시 선입선출 원칙을 지켜서 썩어서 버리는 게 없도록 감독할 것을 당부했다. 사령관
은 승조원과 편승자의 귀함 시간을 23시까지로 못박고, 생도복장은 정복으로 입힐 것과, 상
륙자들을 일일이 감시할 수 없는 만큼,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애초
의 뜻과는 달리 콘돔을 지급할 것을 지시했다. 참모회의가 끝나자 곧바로 전투배치 훈련을
알리는 방송이 하달되었다. 전 장병들은 즉시 자기의 배치장소로 달려가 전투태세로 돌입했
다. 필자는 구명 복을 걸치고 전투배치 장소인 함교로 뛰어올라가야 했다.
입항 준비 중,짬에 있었던 이야기
입항일자가 가까워지면서 참모들을 비롯한 전 승조원들의 얼굴이 환해지면서 발걸음은 더
욱 빨라졌다. 모두들 자신들이 맡은 일들이 너무 많아 분주한 모양이었다. 늘 북적거리던 사
관 실은 함장주재의 사관회의를 할 때 외에는 계속 비었다. 오늘따라 비가 많이 왔다. 이곳
남방지역은 지금 우기에 접어들고 있다고 한다. 태국에 도착했을 때 비가 안 와야 할 텐데,
필자는 그것이 걱정이다. 도착하는 날, 방콕시내의 사진을 찍어서 DHL로 '스포츠서울'에 보
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권병주 정보참모는 필자의 기우에 대해 그날은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을 해서 근심을 약간은 덜어준다.
저녁 식사시간에 사령관이 사관 실로 들어오면서 핀잔하듯 한 마디 한다. "정보참모, 일기
예보가 어떻게 된 거야? 때때로 비가 온다더니, 하루 종일 비가 오잖아? 그 일기예보 믿을
수 없겠는데?" 사령관은 아침에 보고했던 일기예보를 꼭꼭 잘도 기억하고 있다. 정보참모의
얼굴이 곤혹스러워진다. 하늘의 장난을 자신인들 어쩌겠는가, 그런 표정이다. 그런데 식사가
끝나고 사령관이 집무실로 돌아 간 후, 날씨는 거짓말처럼 개고 말았다. 정보참모는 얼굴을
활짝 펴고 한 마디 한다. "봐! 내 일기예보가 맞았잖아." 사령관 님이 이 자리에 계시면 당
당하게 한 말씀 올릴텐데, 이 자리에 계시지 않은 것이 자못 애석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5.벌거벗은 남자들
여드레만의 입항을 앞두고 목욕재계하다
드디어 입항 하루 전날이다. 참모들은 함상학교와 참모회의가 끝나기 무섭게 뿔뿔이 나가
버린다. 모두들 자기 방으로 돌아가서 입항준비를 하기에 바쁜 모양이다. 공보참모와 의논할
일이 있어 공보참모를 찾기 위해 함정을 돌아다니는데 도무지 찾을 길이 없다. 함정을 몇
바퀴나 돈 끝에 함정행정실에서 입항관련 서류를 작성하고 있는 공보참모를 찾을 수 있었
다. "알립니다. 잠시 후 스콜이 지나갈 예정입니다." 점심 식사 후, 별안간 함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맑게 개인 날씨가 계속되다가 갑자기 지나가는 소나기를 스콜이라고 한다. 장병들이
우르르 갑판으로 나왔다가 치울 것을 정리하고 이내 문단속을 하며 안으로 들어간다. 스콜.
과연 시원한 비바람이 불어왔다. 아무리 돌아봐도 인적이라곤 없는 망망대해. 아무리 속력을
내어 달려도 둥그렇게 원을 그리고 있는 수평선의 원주 안에 머물러 있는 군함. 그 원의 한
가운데 위치해 있는 군함이지만 하늘과 바다는 천변만화 하듯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우리에
게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코발트빛의 바다는 수심이 깊은 곳에서는 짙은 잉크 색처럼 파랗게 보이다가 오늘처럼 스
콜이 불어오는 날에는 검푸르게 변하여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듯이 이빨을 날카롭게 세우고
입을 널름거린다. 해도를 보니 수심이 5,000미터 가까이 된다. 여기서 물에 빠지면 뼈도 못
추리겠구나,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는데 벌거벗은 남자들이 우르르 갑판으로 달려간다. 무슨
일일까? 궁금해서 따라갔더니 비행갑판에 모인 벌거벗은 장병들이 하늘에서 뿌리는 스콜을
맞으며 목욕을 하는 게 아닌가. 아하, 빗물로 목욕도 하는구나. 그러고 보니 이곳의 빗물은
공해에 오염되지 않은, 그야말로 깨끗한 청수였다. 어디 그뿐인가, 장병들이 샤워를 한 비눗
물은 갑판을 청소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군함에는 원래가 물이 귀한 편이다. 마치 사막에
사는 사람들처럼 해군들은 물을 아낀다. 이러한 사정이다 보니 이런 스콜을 만나면 물 값도
내지 않고 공짜로 목욕할 수 있으니 글자 그대로 장땡이 아닐 수 없다. 금녀 구역인 군함에
여자가 있을 리 없고, 망망대해에 누군가 엿볼 사람도 없으니 좀 좋은가. 벌거벗은 장병들은
마치 축제라도 하듯 비누를 칠하고는 하늘에서 대야로 쏟아 붓듯 내리는 스콜에 온 몸을 내
맡겼다. 그것은 좀체 구경하기 힘든 하나의 진풍경이었다. 아차차, 사진이나 한 장 박아둘
걸.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을 때는 장병들이 갑판청소까지 깨끗이 마치고 함내로 사라진
후였다.
목욕이 끝난 후
함교로 올라갔더니 정면 함창의 윈도우 브러시가 열심히 작동하고 있었다. 함교에서 처음
윈도우 브러시를 보았을 때는 무척 신기하게 생각되었다. 아, 배에도 자동차처럼 윈도우 브
러시가 있구나. 스콜을 만나자 윈도우 브러시는 제대로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비가 억세게
뿌려대어도 시야가 불투명하다거나 하는 불상사는 없을 듯 싶었다. 배에서는 수병 한 사람,
집기 하나라도 쓸모 없는 것이 없다더니 과연 그 말이 맞는가 보다. 하긴,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도 그냥 흘리지 않고 목욕을 할 수 있지 않는가.
제2장 여행자의 고향, 태국
1. 천사와 악마의 두 얼굴 '방콕'
첫 입항
새벽 5시 반. 방콕 항구의 도선사가 '천지함'으로 올라왔다. 도선사란 항구를 잘 아는 사람
으로 뱃길을 안내하는 파일럿을 가리키는 말이다. 방콕 외항에서 메남 차오프라야강을 27마
일을 거슬러 와 '웨스트 퀘이'부두에 정박한 것은 아침 8시 30분. 우리는 첫 기항지인 방콕
에 드디어 당도한 것이다. 진해를 떠나온 지 9일 만이다. 오전 8시 30분, 입항 환영행사가
부두에서 치러졌다. '천지함'과 '부산함'이 부두에 도착하자 태국대사를 비롯한 대사관 직원
과 몇 사람의 교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민을 허용하지 않는 태국이고, 교민의 숫자가 육
천 명 정도로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은 미리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전혀 짐작도 못하
고 있었다. 오히려 태국 해군사관학교에서 환영 나온 군악대와 사관생도들이 몇몇 교민의
숫자를 훨씬 압도하고 있었다. 그나마 그 교민의 숫자도 '천지함'에 군수품을 공급해야 하는
민간업자 몇 사람으로서, 장태동 대사와 국방부 무관 그리고 보좌관을 제외하면 순수 교민
은 거의 없는 셈이다. 그러나 한국해군의 늠름한 기상은 '끌렁떠이'부두를 꽉 메우고도 남았
다. '천지함'의 비행갑판에선 해군 군악대와 사물놀이패가 환영 나온 몇몇 교민들과 구경나
온 태국관리들에게 한국적인 흥겨운 음악을 들려주었다. 입항 환영행사와 함정공개행사 등
모든 일정이 끝나자 장병들은 하얀 정복을 깨끗이 갖추어 입고 '고대도시'와 '악어농장'을 구
경하기 위해 부두로 떠났다. 사령관을 위시한 지휘부와 생도들은 준비된 버스를 타고 태국
의 해군사관학교 견학을 위해 부두로 출발했다.
여행자의 고향, 태국
상하의 날씨, 저렴한 물가, 풍부한 과일, 흔히들 태국을 역사의 유산이 풍부한 나라라고
하듯이 여행자들에게 더없이 자유스럽고 천국과 같은 곳이 바로 태국이다. 방콕에서의 볼거
리는 차오프라야강 가의 왕궁 주변에 몰려 있다. 교통수단도 택시보다는 수상관광선이 더
빠르고 가격이 저렴하다 우기에 갑자기 물이 불어날 때는 위험부담도 있지만 한 번은 타볼
만한 것이 수상관광선이다. 태국 항에 정박하자 나는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다. 우선 급한
것은 스포츠서울에 보낼 사진을 찍는 일이었다. 마감은 바로 내일이다. 서울까지 DHL로 사
진을 보내는 데 사흘이 걸린다. 사진만큼은 오늘 다 찍어야 하는 것이다. 함께 온 사관생도
와 승조원들은 행사준비로 분주한 가운데 나는 가장 먼저 '천지함'에서 내렸다. 부두를 빠져
나와 택시로 스콘비 소이 22번지의 '퀸스파크호텔'로 가서 이번 여행을 도와 줄 친구의 여동
생을 만났다. 태국에 와서 3년째 살고 있는 성경 이는 태국이 살기 좋은 나라라면서 활짝
웃었다. 성경 이는 친구 배현희씨를 불러내었는데, 배현희씨는 알고 보니 나와는 구면이다.
우리는 7년 전에 이태리에서 한 번 만난 일이 있었던 것이다. 역시 세상은 넓고도 좁아 반
갑게 해후를 나눈 우리는 시간에 쫓겨서 호텔을 나왔다.
우리는 먼저 수상시장으로 가서 수상보트를 타고 '새벽의 사원'을 구경했다. 방콕에서 해
가 가장 먼저 뜨는 곳이라는 '새벽의 사원'은 해질녘의 모습이 더욱 아름답다고 한다. 그러
나 해질녘까지 기다릴 수 없는, 시간에 쫓기는 입장이라 서둘러 다시 보트를 타고 다음 행
선지인 왕궁으로 향했다. '새벽의 사원'에서 한 가지 불만스러운 것이 있었다면 담장에 올라
가서 사진을 찍으면 20달러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의 한국말 간판이었다. 또한 이 한국말
간판은 '새벽의 사원' 곳곳에 붙어 있다는 사실이 눈에 거슬렸다.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많
이 이곳을 찾아왔으며, 또 얼마나 제멋 대로였다면 저런 간판을 다 붙였을까 생각하니 얼굴
이 화끈거린다.
1782년, 현 왕조인 방콕왕조의 라마 1세가 지었다는 왕궁과 세계최대의 에메랄드가 들어
있다는 에메랄드 사우나도 방콕에선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였다. 방콕. 태국사람들은 방콕을
가리켜 태국말로 '천사의 도시','미소의 도시'라는 뜻을 지닌 '크룽텝'이라고 부른다. 과연 그
말이 틀리지 않을 정도로 3천여 년간 지속되어 온 독립왕국의 중심지답게 각종 문화유적과
풍물 등 여행의 재미있는 요소를 골고루 갖추고 있는 곳이 방콕이다. 특히 방콕은 동양과
서양을 잇는 아시아의 관문으로 방콕의 돈무앙 국제공항은 세계에서 몰려드는 여행객과 베
낭족들로 연일 붐빈 다.
팟퐁거리, 환락의 위험지대
그러나 방콕을 한 꺼풀만 더 벗겨보면 우리가 주의해야 할 요소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우선 한국사람들이 즐겨 찾는 팟풍거리는 방콕의 환락가이다. 그러나 팟퐁은 혼자서는 돌아
다닐 수 없을 만큼 위험한 지역이다. 태국의 물가는 매우 낮은 편이다. 그러나 그 물가가 반
드시 싸지는 않다. 사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물건
을 사는 사람이 태국 말을 모르거나 영어로 물어오면 물건값은 정자의 열 배를 훨씬 넘어버
린다. 비교적 양심적인 사람이 다섯 배 정도를 더 부른다고 한다. 그런 바가지의 대표적인
곳이 바로 팟퐁의 술집들이다. 특히 삐끼가 호객을 하는 술집에는 절대 혼자 들어가서는 안
된다. 밖에서 삐끼가 호객을 할 때는 맥주 한 병에 50바트라고 하지만 그 말만 믿고 들어가
서는 안 된다. 술집을 나오려고 지불할 때면 바트가 달러로 변해서 기절초풍을 하고 만다.
어떤 술집에서는 2층으로 한국사람이 올라가면 아예 셔터를 내려버리고, 권총을 들이대면
3,000바트의 요금을 3,000달러로 내야 한다고 우기기 다반사란다. 그래서 맥주 몇 병 마시고
3,000달러를 털린 한국사람이 부지기수이다. 어느 교민의 말을 들어보면 팟퐁에서 쇼를 하는
술집이 30여 곳인데 정상적인 요금을 받으며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는 곳은 두 집에 불과하
다고 한다. 특히 2층의 누드쇼를 하는 술집은 특히나 심하단다. '천사의 도시'라는 뜻을 지닌
크룽텝. 그러나 이쯤 되면 어리숙한 한국의 여행객들에겐 자칫 '악마의 도시'가 될지도 모르
는 게 바로 방콕이다.
2. 몸부림치며 변화하는 태국
온 사회를 지배하는 배금주의
방콕에 살고 있는 교민들은 방콕은 지금 과거와 엄청나게 달라지고 있다고 입을 모아 말
한다. 최근의 방콕은 빈부격차가 엄청나게 심화되어 있다. 상속세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보
니 부자 부모를 둔 어린 초등 학생이 벤츠를 타고 다닐 정도이고, 부자는 전 가족이 휴대폰
을 하나씩은 가지고 다니는 것이 방콕생활의 기본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태국의 국민성은
충성심과 절대 복종이 최고의 가치였는데 지금은 물이 상당히 흐려져서 돈이 모든 가치관에
우선하게 되었다고 교민들은 말을 한다. 예전에 교육을 받은 태국직원들은 상사의 앞에서는
멀리 문 쪽에서부터 기어오다시피 했고, 국민 거래가 상사의 그림자도 밟지 않으려고 할만
큼 유순하고 복종을 잘하는 국민성을 지니고 있었는데, 지금은 돈이 아니면 부리기도 쉽지
않다고 하소연을 한다. 300바트(10달러)의 돈 때문에 살인까지 서슴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이
현재의 분위기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돈 많은 외국의 여행객들에겐 무조건 바가지를 씌워
도 무방하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는 것이 작금의 실정이란다. 그래서 태국 전역에서 외국
인들에겐 무차별적으로 바가지를 씌우고 있는데, 그렇게 바가지를 씌운 금액도 외국인 입장
에서 보면 자기네 나라보다 약간은 싸기 때문에 바가지에 대한 불평이 덜할 따름이라고 한
다.
3M(마약·매춘·매연)에 멍드는 태국
또 한 가지 방콕을 멍들게 하고 있는 것은 '마약' '매춘' '매연'이다. 태국 하면 얼핏 떠오
르는 것이 '에이즈의 천국'이란 말이고, 이미 태국 정부에서도 '에이즈와의 전쟁'을 선포하여
위기상황임을 선언한 바 있다. 태국의 환락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인구가 천문학적인 숫자에
달할 정도로 태국사회는 매춘에 무감각해져 있다. 사회일각의 현상일는지도 모르겠지만 오
히려 남편이 아내에게 돈을 벌어 오라고 매춘을 강요하고 조장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한
다. 게다가 방콕의 교통상황은 최악을 치닫고 있다. 교통지옥이라는 서울의 교통사정도 방콕
에 비하면 정말 양반이다. 그러다 보니 방콕에서 약속시간에 한두 시간 정도 늦는 것은 미
안한 느낌도 들지 않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약속에 늦어서 미안하다는 인사도 생략할 정도
이다. 약속시간에 늦으면 으레 트래픽 때문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굳이 사과하지 않아도 상
대가 알아서 이해해 주기 때문이다.
10년 후에는 한국도 따라잡는다, 큰소리
이러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태국경제는 매년 10퍼센트 이상의 고도성장을 계속하고 있
고, 10년 정도면 한국도 따라잡을 수 있다고 정부관리들은 큰소리를 치고 있다. 또 현재의
태국 왕 라마9세에 대한 국민들의 한결같은 존경심과 충성심도 태국사회를 떠받들고 있는
주요한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다.
자식농사를 잘못 지어 1남2녀를 두고 있는 태국 왕은 장녀가 외국인과 결혼할 수 없다는
왕가의 규율을 어기고 미국인과 결혼하여 부모 자식간의 혈연을 끊기고 추방당했는가 하면
하나뿐인 아들은 북한의 김정일을 능가할 정도로 엽색행각에 몰두하여 태국의 유명한 배우
들은 모두 왕자의 수청을 들었다고 국민들이 쉬쉬할 정도로 악명을 얻고 있다. 그나마 둘째
딸이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고 착한 행실로 아버지를 보필하고 있어 국민들의 존
경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왕위를 뺏길까 두려운 아들과 둘째딸간에 반목이 일어
나 아버지인 국왕이 딸을 보호하고 중재를 하는 입장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
들의 국왕에 대한 충성심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혹자는 다음 대에는 태국에도 여왕이 탄생
하지 않을까 하고 바라는 마음도 있지만 포악한 왕자로 인해 그것도 쉽지 않을 것이며 이러
다가 국왕이 돌아가신 후에는 왕정이 끝나는 게 아닐까 하고 우려하는 국민들이 있을 정도
이다. 태국의 부모들은 우리 나라와는 달리 자식의 교육에 관한 한 무관심한 편이다. 정부에
서는 중학교 과정까지를 의무교육으로 권장하고 있지만 돈을 밝히는 부모들은 이제 초등학
교를 갓나온 어린 아들을 식당의 웨이터나 심부름꾼 등으로 직업전선에 내보낸다. 그래서
태국의 식당에서는 아직 머리에 솜털도 벗어지지 않은 어린 웨이터를 자주 만나게 된다. 아
직 공부를 해야 할 초등학생 같은 어린아이가 밥상을 날라 올 때는 애처로운 느낌이 들 지
경이다.
3. 어쨌든 태국은 관광의 천국?!
여행을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주는 곳
이렇게 태국사회의 미비점과 여러 가지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태국은 여전히 관광의 천국
으로 손꼽힌다. 무엇보다 여행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가르쳐 주는 곳이 바로 태
국이기 때문이다. 여행객이 주의할 것은 태국의 환전소는 거리 곳곳에 있으나 환율이 제각
각 이라는 점이다. 가능하면 여러 곳의 환전소에서 환율을 확인하고 바꾸어야 하는데 배낭
여행자 촌이 형성되어 있는 '카오산로드' 지역의 환전소가 비교적 환율이 싸고 정확하다고
정평이 나 있다. 태국을 처음 방문하는 여행객이라면 싼 게스트하우스만 백 여군 데가 오밀
조밀하게 들어서 있는 '카오산로드'에 숙소를 정하는 것이 비교적 싸고 깨끗한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방콕의 관광명소로는 '동양의 베니스'라고 불리는 수상시장이 있고, '어머니의 젖줄'이란
뜻을 지는 '차오프라야강'이 있는데 이곳을 꼭 둘러보아야 한다. 수상선의 가격은 들쭉날쭉
이지만 잘 흥정하여 타 보라. 차오프라야강 상류에서 하류를 거슬러 내려가면서 강변을 따
라가면 태국인 들의 삶을 쉽게 느껴볼 수 있다. 여행객이 꼭 둘러보아야 할 '왕궁'과 '새벽의
사원'도 바로 차오프라야강을 끼고 있다. 팟퐁거리를 보지 않고서는 태국 관광을 한 것이 아
니라는 정평이 나 있는 팟퐁거리도 빼놓을 수 없는 관광의 명소이다. 거리를 따라 술집, 공
예품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거리는 마치 서울의 명동이나 남대문시장, 부산의 광
복동 거리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이곳에서 물건을 살 때는 무조건 50퍼센트 이상을 깎아야
한다. 그리고 팟퐁거리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대단히 위험한 곳이다. 이곳을 구경하기 위해
서는 반드시 가이드와 함께 동행을 하거나 여러 사람이 함께 어울려 다니는 것이 좋다. 방
콕의 명물 중에는 마사지 서비스가 있는데, 태국의 전통 마사지는 누구나 한 번씩은 받아보
기를 권한다. 여행의 피로가 깨끗이 풀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녀 노소 할 것 없이 가족
들이 함께 갈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 풀 마사지 코스로는 펫블리 거리의 '모나
리자'나 '마사 팔레스'가 가격은 약간 비싸지만 가장 깨끗하고 괜찮은 곳이다. 어차피 마사지
를 받으려면 다른 곳보다는 이곳을 권하고 싶다. 특히 '마사 팔레스'는 18층 건물 전체가 마
사지만을 전문으로 하는 빌딩으로 방콕에선 최고급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4. 빛나는 햇빛의 고장, '파타야'
수상스포츠의 낙원, '파타야 해변'
태국 도착 후, 이틀째. 우리는 봉고 차 한 대를 대절하여 새벽 5시에 파타야로 출발했다.
여기서의 우리란 나의 여행조인 황충상 선생과 정운곤 중령, 이영주 소령을 가리키는 말이
다. 여기에 우리를 안내하기 위해 특별히 시간을 내어준 성경 이와 신랑 설씨, 그리고 성경
이 친구 배현희씨가 우리에 포함된다. 오늘은 금요일이고 특히 트래픽이 심한 날이란다. 태
국의 엄청난 교통체증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새벽시간을 이용해 파타야로 가기로 한 것이
다. 파타야로 가는 고속도로에 올라갔을 때, 새벽 6시경인데도 통행하는 차량들이 무척 많았
다. 그러나 혼잡한 교통에도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빠른 7시 30분 경에 도착하는 바람에
아침을 먹을 수 없었다. 너무 일러 문 연 식당을 찾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사실 원활한 교통
은 아니었지만 방콕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걸렸으니 빨리 온 셈이 되었고 다행 중 불행(?)으
로 아침밥도 못 얻어먹은 것이다. 우리는 잠시 해변에서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해
변의 '코리아하우스'라는 한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그 후 모터보트를 타고 '산호섬'으로
향했다.
파타야의 해변은 세계적인 휴양지로 소문이 나 있다. 파타야 해변이 특이한 것은 일광욕
과 수영을 즐기는 일반적인 다른 해변들과는 달리 낚시, 보트 타기, 수상 스쿠터 타기, 페러
글라이딩, 스쿠버 다이빙, 윈드서핑 등과 같이 수상에서 즐길 수 있는 모든 수상스포츠를 즐
길 수 있는 낙원이란 사실이다. 실제로 일명 낙하산 타기라고 하는 페러글라이딩을 탔을 때
의 짜릿한 쾌감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햇빛 넘치는 파타야는 밤 또한 참으로 화려
하다. 그리고 밤에만 공연하는 '알카자쇼'는 그것을 보지 않고는 파타야를 봤다고 할 수 없
을 만큼 꼭 들러야 할 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여자보다 아름다운 남자 게이들이 벌인다
는 쇼인 '알카자쇼'를 불행히도 우리는 관람할 수 있는 시간 여유가 없었다.
5. 다시 오고 싶은 수수께끼 나라
우리네 풍습과 닮은 치앙마이족 생활 살이
태국이 국제적인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여행지의 다양함 때문이다. 남쪽으로
가면 빛나는 해변이 있고, 북쪽으로 가면 흥미진진한 치앙마이 트래킹이 기다리고 있다. '치
앙마이'는 고구려의 유민이 정착한 곳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어 우리에겐 흥미로운
곳인데, 태국 교민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아직 완전한 검증이나 입증이 안된 가설이라고 한
다. 오래 전 하고도 옛날,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을 때 당나라의 군사들은 멸망한 고구려 국
의 군사와 유민 수십만 명을 중국으로 압송해 갔다고 한다. 요컨대 강맹한 고구려의 세력이
다시 부흥하지 못하도록 고구려민들의 힘을 꺾기 위한 술책으로서 그렇게 잡아간 고구려 유
민들을 중국 각 지역으로 뿔뿔이 소개시켜 놓았다는 것이다. 그 때 우리 나라와는 정반대편
인 중국의 운남성에 5만여 명의 고구려 병사와 유민들이 정착했다가 그 중의 일부가 남으로
남으로 이동을 하여 '치앙마이' 지역에 정착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 가설이 설득력 있게 들
리는 것은 치앙마이 원주민들의 풍습이나 생활습관이 우리와 흡사하다는 데 있다. 치앙마이
원주민들은 설날이면 우리처럼 색동옷을 입고 제기차기를 하며 윷놀이, 널뛰기, 그네뛰기,
김치를 담가 먹는 등 식생활이나 풍습이 우리와 매우 흡사하다고 한다. 관심 있는 학자들이
이 부분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를 하여 입에서 입으로만 떠도는 가설을 정설로 확인하여 주
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꼭 그뿐만이 아니더라도 치앙마이는 태국 북부지역 관광의 기점이
되는 북부 제일의 도시로서 이곳 거리를 거닐다 보면 태국 제일의 미녀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여자들은 수수하면서도 빼어난 미모를 지녔다고 한다. 또 이곳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마약왕 쿤사의 거점이기도 해서 아편생산지로 유명하고 아편에 대한 유혹이 수
없이 많이 있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치앙마이 관광을 하기 위해서는 방콕 '카오산
로드'의 여행사에서 표를 사거나 여행사의 트래킹 투어 코스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방콕 북부 80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태국의 고도 '아유타야'도 한 번은 가 볼 만한 명소라
고 한다.
교통사고 나면 죽는 이만 억울해
그 외에도 태국에는 가볼 만한 곳은 너무나 많다. 태국을 일주하기 위해선 최소한 보름
정도의 기간은 잡아야 한다. 2박 3일의 짧은 기간 동안에 태국의 여러 곳을 주마간산 격으
로 둘러본 소감은 언제든 짬을 내어 조용히 다시 한 번 와 보고 싶다는 것이다. 갖가지 부
정적인 요소가 널리 산재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태국의 문화와 풍물은 조용히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이다. 함께 여행했던 황충상 선생은 꼭 다시 와 보겠다고 말씀을 하신다. 평소
불교에 관심이 많고 불교 관련 소설이나 저작물을 많이 쓴 관계로 비록 소승불교이긴 하나
국민의 90퍼센트가 불교도인 태국의 문화가 마음에 흠뻑 드는 모양이었다. 윤병균 참모장도
태국에 와서 잠시 시내를 다녀보았지만 많은 부처를 볼 수 있어서 기분이 흡족했다고 말한
다. 참모장이 말하는 부처란 바로 태국의 소시민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처럼 태국의 국민성
은 만점을 받을 만하다. 방콕 시내의 홍등가와 외국인이라면 무조건 바가지를 씌우는 장사
꾼들을 제외한다면 태국인 들은 대체로 온순하고 정직한 편인 것이다. 태국여행에서 한 가
지 불편한 점을 꼽자면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 어쩌다 통하더라도 그들의
발음이 억세서 알아듣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간단한 태국 말 몇 가지는 메모지에
적어서 들고 다니면 매우 유용하게 사용될 수가 있다. 태국에서 꼭 주의할 점이 있다. 그것
은 절대로 교통사고를 당하지 말라는 것이다. 태국에선 교통사고로 사람이 죽어도 5,000바트
만 내 놓으면 그만 이란다. 으휴, 5,000바트라니. 그야말로 사람 목숨 값이 개고기 값보다 싸
질 않는가. 아서라, 교통사고 요것만은 꼭 주의하자.
현지리포트 태국현지 언어 -태국어
안녕하셔요?:씨왓디 크랍? 안녕히:라컨 나 크랍 감사합니다:컵쿤 실례합니다:카우 톳트 어디
입니까?:티-나이? 언제입니까?:메워 라이? 어디에 있습니까?:유 티나이? 너무 비쌉니다:팽
파이 잘 모르겠는데요:마이 카오 자이 얼마입니까?:타오 라이? 방 있습니까?:미 헝 마이? 오
늘:완니 어제:무어 완니 내일:푸릉 니 역:싸다니 기차:롯파이 버스:롯프라참탕 화장실:헝남 또
는 수카 볶음밥:카우 팟 계란 후라이:카이 다오 토스트:크놈팡 빙 1:능 2:송 3:삼 4:씨 5:하 6:
흑 7:젯 8:파엣 9:고우 10:씹 11:씹엣 12:씹송 20:이씹 100:능 로이 200:판
제3장 바다의 신비 위에
1. 움직이는 영토
법적으로 인정받은 영토, 군함
국제법상 해군의 군함은 그 나라의 영토로 인정을 받는다. 군함이 대양을 항해한다는 것
은 그 나라의 영토가 움직인다는 뜻이며 어떤 나라에 입항하더라도 그에 준 하는 지위와 대
우를 받게 된다. 즉, 해군의 외국 방문은 공군이나 육군의 외국 방문과는 개념이 다르다는
뜻이다. 공군기는 외국에 나가더라도 금방 돌아와야 하지만 영토(군함)를 가지고 있는 해군
은 국가 구 자체로 인정되어 여러 가지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태국의 경우에서도 그랬
다. 방콕의 끌렁떠이 부두에는 '천지함', '청주함', '부산함' 이라는 대한민국의 땅덩어리 3척
이 정박을 했고, 태국의 해군 군악대와 태국 해관사관학교장(중장)의 정중한 영접을 받으며
정병두 사령관 이하 순항훈련분대 지휘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외교사절로서의 역할을 다
하며 태국방문을 마쳤다.
거대한 태국의 땅덩어리에 비하면 대한민국의 땅덩어리 3척은 점 하나에 비유할 수 있는
작은 영토였지만, 맡은 임무를 훌륭히 완수하고 대한민국의 영토를 자랑스럽게 움직여 태국
을 떠나왔다. 대한민국의 영토에 몸을 싣고 방콕항구를 떠나오면서 나는 또 한 번 눈시울이
시큰해야 했다. 대한민국의 영토가 잠시 머물렀던 태국을 떠나 또 다시 머나먼 장도에 오르
는데 부두에는 눈을 씻고 봐도 환송 나온 대한민국 교민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부두에는
태국 해군의 군악대와 태국 해군 수뇌부만이 자리를 지켜 우리의 출항을 지켜보았을 뿐이
다. 물론 정태동 대사와 무관, 보좌관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서, 떠나는 대한민국의 영토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러나 그 초라한 모습을 보며 나는 심각한 회의에 젖어들었다.
우리 나라의 국력이 고작 이 정도인가? 우리 나라의 외교행정은 장말 문제가 있다. 군함의
입항과 출항을 대한민국의 영토 개념이 아닌, 일개 군함의 입출 항으로 지켜보는 시각의 문
제였던 것이다. 그것은 해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 외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과 영국, 러시아, 중국, 일본, 프랑스 등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강대국
들이 왜 해군력 증강에 그토록 애를 쓰는지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바다
를 지배하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이치를. 그런데 함정이 출항하기 직전에 부두로 달
려나온 친구의 여동생 성경이 부부와 배현희씨, 그리고 이틀간 우리를 안내해 주느라 애를
쓰던 성경이 회사의 직원 이만형씨의 출현은 나를 또 한 번 감격케 했다. 그나마 부끄러움
이 조금은 가셨던 것이다. 이별은 늘상 새로운 만남을 기약한다지만, 이별은 언제나 슬픈
것. 짐짓 그 슬픔을 감추기 위해 우리는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부두에서의 이별은 오래도록
여운이 남았다. 우리들은 서로의 모습이 까만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힘껏 손을 흔들었다.
2. 앗! 상어가?
다시 바다의 신비 위에
방콕을 떠나온 지 이틀째 되는 날 아침. 태국 남방 250마일 지점에 도착했을 때 별안간
비상벨이 울렸다. 의아해서 함교에 올라가 봤더니 무기고에서 총을 꺼내는 소리란다. 아마도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무기고를 여는 순간 벨이 울리도록 장치가 되어 있는 모양이다. 무슨
사고인가 급히 우현의 메인 갑판으로 내려가 보았다. 메인 갑판 위에는 수중폭바물 처리반
구성원인 UDT의 박기태 중사가 잠수복으로 갈아입고 다이빙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윽고 안전 줄을 몸에 멘 박중사가 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 M16을 든 소병기 안전요원은 물
속에서 헤엄치는 박중사의 일거수 일투족을 집요하게 쫓았다. 혹시 수정에서 작업을 하는
동안 상어가 나타날 때를 대비한 안전대책으로 중무장을 한 것이다. 나는 혹시나 멋있는
장면을 찍을 수 있을까 싶어 카메라를 두 대씩이나 목에 걸고 M16을 든 저격병의 꽁무니만
졸졸 따라 다녔다. 박중사의 잠수 목적은 다름 아닌 배 밑바닥 청소작업이었다. 방콕 메남
차오프라야강의 오염이 너무 심한 탓으로 '천지함'의 바닷물을 빨아들이는 해수흡입관이 오
물찌꺼기로 막혔기 때문에 잠수부를 들여보내 배 밑바닥을 청소하는 작업인 것이다. 평소에
나는 바닷물은 호숫물처럼 늘 고여 있는 걸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 나라 근해와는
달리 대양은 엄청나게 넓은 까닭에 물 밀도 있고 썰물도 있어 어느 정도 흐름은 있을 거라
고 여겼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고 알고 있는 바다였다. 그러나 실제의 바다는 나의 상식을
완전히 짓밟고 있었다. 바다 속의 물살이 강물보다 빠르게 흐른다면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실제로 바다 속의 물살이 워낙 거센 모양이었다. 20여 분 만에 우현 밑바닥의 청소를 끝내
고 함으로 올라온 박중사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얼마나 바다의 물길이 거세기에 UDT
출신의 떡 벌어진 체구를 자랑하는 박중사를 녹초로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일까? 박중사가
제 체구가 무색하게 워낙 기진맥진해 있기 때문에 좌현 밑바닥 청소는 UDT 반장이 직접
물 속으로 들어가서 청소를 했다. 배의 밑바닥에서 고무장갑과 비닐 등, 별의별 오물이 쏟아
져 나왔다. 그러나 은밀히 겁도 나면서도 은근히 기대를 한 상어는 끝내 한 마리도 나타나
지 않았다. 상어 떼가 야유회라도 간 모양이지?
제4장 보물섬의 열도, 인도네시아
1. 국력 과시하는 인도네시아의 '무기 전시회'
무풍지대 적도의 분노
8월 15일, 아침 7시에 적도를 통과했다. 무풍지대라는 적도의 이름이 무색하도록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다. 파고는 3미터가 넘었고, 배는 심한 피칭과 로울링을 계속했다. 진해를 떠
나온 지 보름만에 처음으로 속이 울렁거리는 고통을 느꼈다. 그 험난하다는 동지나해와 남
지나해도 무사히 넘었는데 엉뚱한 데서 복병을 만난 셈이다. 진해를 출항하는 날, 참모장은
커다란 잉어 한 마리를 사서 진해 앞 바다에 방생했고, 출항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사령관
은 거북이가 군함으로 문안 인사를 오는 걸 목격했다고 한다. 그래서 동지나해의 험악한 고
비를 잘 넘겼다 싶었는데 무풍지대인 적도에서 이런 고생을 하다니, 아마도 인간들의 자연
파괴가 이런 기상이변을 낳은 모양이었다.
아침나절, 저기압의 가장자리에 들어서서 힘겹게 전진을 하던 군함이 별안간 뱃고동을 길
게 두 번 울었다. 그리고 배가 멈춰선 듯 심하게 요동을 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급히 함
교로 올라가 봤더니 '천지함'의 우현에 어느 나라의 어선인지 모르지만 국적불명의 어선이
선미부터 가라앉고 있었다. 아마도 어망을 끌어올리다가 파도를 정통으로 맞아 그대로 침몰
한 모양이었다. 생존자가 있다면 구조하기 위해 기적을 울렸지만 어선에서 신호를 보내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망원경으로 살펴보아도 생존자의 흔적은 없었다. '천지함'은 20여 분
간 지켜보다가 어선이 완전히 침몰하는 광경을 목도하고 생존자가 없음을 확인한 후, 다시
항해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틀 후인 8월 16일 아침. 대한민국의 순항훈련분대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항구의 '딴중뿌리옥' KPLP 부두에서 5마일 떨어진 외항에 투묘하여 닻을 내리고
정박을 했다. 이 자리는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미리 지정해 준 장소였다. 이번에 워낙 많은
군함들이 방문했기 때문에 부두에 정박할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애로사항이었다. 그리고 '워
터택시'라는 명칭의 통선이 부두와 군함을 오가며 사람을 실어 나르게 되어 있었다.
인도네시아 독립 50주년 기념축제로의 초대
자카르타에서 우리는 4박 5일을 체류했다. 대한민국 해군의 이번 자카르타 입항은 인도네
시아 정부의 공식 초청을 받은 것으로, 앞으로 나흘간 인도네시아 독립 50주년을 기념하는
큰 축제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번 축제를 위해 인도네시아는 국력을 초월하는 큰 행사를 준
비하고 있었다. 네덜란드에 의한 350년간의 식민지 생활과 일본의 무력강점에서 벗어난 독
립 50주년은 인도네시아 전 국민의 경사이자 축제이기도 했다.
자카르타 외항은 축하사절로 참여한 배들로 가득 메워졌다. 세계 30여 개국에서 100여 척
의 요트가 자카르타로 몰려왔고, 또 세계 17개국에서 42척의 전함이 각 나라를 대표하여 축
하사절로 참여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행사의 또 다른 목적으로는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을
망라한 참여국가들의 무기체계 전시라는 숨은 속뜻도 있었다. 이번 행사에는 북한도 초대를
받았으나 아쉽게도 참석하지 못했다. 북한에는 대양을 항해할 만한 군함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통령궁에서 열린 기념식에는 북한해군을 대표하여 김일철 북한 해군사령관(대장)
과 중장, 소장이 참석하였다. 첫날, 통선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오후 늦게 부두에 내려서
대사관저에서 벌어진 만찬 초청에 겨우 참여할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 측의 준비 부족과 대
사관 무관부의 부실한 영접은 우리를 여로 모로 피곤하게 만들었다. 첫날부터 인도네시아의
첫인상은 별로 달갑지 않았다.
불야성을 이룬 이색 국력 콘테스트
자카르타에서의 첫날 밤. 자카르타 외항은 찬란한 불야성을 이루었다. 행사에 참여한 각국
의 전함들이 자기 나라의 영토를 빛내기 위해 네온싸인처럼 휘황찬란한 각종 예식 등으로
밤바다를 환하게 밝혔던 것이다. 그 광경은 한 마디로 장관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집결된 42
척의 '움직이는 영토'는 서로 자기 나라의 멋을 뽐내기 위해 별의별 모양을 다 내었고, 그
한가운데에서 대한민국 해군 순항훈련단의 전함들 역시 영토의 일각을 차지한 채 환하게 불
을 밝히고 있었다.
2. "언니, GNP가 뭐야?"
인도네시아의 타산지석, 한국
지난 8월 15일. 자카르타의 '유니버시티 오브 내셔날 대학'의 강당에서 이색적이면서도 성
대한 시상식이 거행되었다. 시상식을 위해 인도네시아의 전역에서 수상자들이 몰려들었고
대학의 부총장이 직접 시상을 하며 시상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그러니까 지난 4월경, 우리
나라의 문화공보부에서 주 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의 공보관을 통해 인도네시아 27개 주에
공문을 보냈다. 인도네시아의 초,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글짓기 대회를 하겠다는 내용이었고
수상작에는 많은 상품을 걸었다. 작문의 제목은 '한국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였
다. 인도네시아 전역의 25개 주에서 응모하는 작문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고, 장기간의
심사 끝에 수상자들이 가려졌는데, 최우수작은 동부 자카르타에서 투고한 초등학교 여학생
이 차지했다. 그 내용인즉 이렇다. 그 여학생이 살고 있는 동네에는 자카르타 한인학교가 있
었는데 그 마을의 인도네시아 아이들은 그 학교에 다니는 한인 아이들을 무척 부러워했다고
한다. 학교의 시설이나 통학버스 등의 시설이 인도네시아 현지인 학교가 따라올 수 없을 정
도로 뛰어났고, 무엇보다 초등학교 1,2학년들이 컴퓨터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이 못내 부러웠
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 여학생의 여동생이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우리는 왜 저렇게 좋은
학교에 다닐 수 없어?" 곰곰이 생각하던 언니는 한참만에 대답을 했다. "우리도 저런 학교
에 다닐 수 있어." "언제?" 동생은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물었다. "좀 기다려야 돼. 우리
가 열심히 노력하고 저축해서 부자 나라가 되면 우리도 저런 학교에 다닐 수 있을 거야. 우
리는 GNP가 이제 겨우 760달러이니까 앞으로 더 노력해야 돼." 동생은 알아들었다는 듯 머
리를 끄덕이다가 다시 물었다. "언니. 근데 GNP가 뭐야?" "몰라. 뭔지는 모르지만 숫자가
높아야 좋은 건가 봐." 이런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한편의 작문을 곰곰이 뜯어보면 현재 우
리 나라와 인도네시아의 현황과 위상, 그리고 국민성을 금방 깨달을 수 있게 된다.
그 여학생처럼 대부분의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대한민국을 부러워하는 편이다. 그들은 앞
으로 자신들이 배워 나가야 할 모델로 단연 한국을 꼽고 있다. 한국에서 뭔가 배워야 한다
는 자세를 국민 누구나 가지고 있다. 한국보다 더 큰 반성을? 서울에서 성수대교 붕괴사건,
지하철 공사장 폭발사건,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등 대형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곳 신문들은
그 사건들을 대서특필하는 등 요란하다. 그러나 그 논조는 사뭇 진지하다. 배울 건 배우더라
도 우리가 저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작 반성해야 할 사람은 우리들인데 구경꾼
인 인도네시아가 우리보다 더 열심히 반성을 하는 형편이다. 이렇게 열심히 따라 배우려는
인도네시아에겐 한국이 잘되는 것도 스승이고, 잘못되는 것도 스승노릇이 된다. 이번 시상식
을 돕기 위해 자카르타 한인회는 400만 루피아를 각출하여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수상자들을
비행기로 실어 나르는 등 이번 행사에 적극적으로 힘을 보태주었다. 그리고 이번에 최우수
작, 우수작을 한두 사람의 수상자에겐 한국행 왕복 비행기표가 부상으로 수여되었다. 그들이
한국에서 또 어떤 것을 배우고 올지 궁금하다.
3.미스터리의 국제도시 '자카르타'
메르데카, 자유로운 인도네시아여!
인도네시아는 특이한 나라 중의 하나이다. 1만 4천여 개의 섬들이 사슬처럼 길게 이어져
있는 인도네시아는 민족과 문화 풍습 풍경이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복잡
하게 뒤엉켜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5번째로 많은 근 2억 여명의 인구 중 말레이
민족이 다수를 점하고 있으나 극소수의 종족까지 합하면 약 3백여 종족이 모여 살고 있으
며, 종교 역시 이슬람교 87퍼센트, 기독교 카톨릭 9퍼센트, 힌두교 3퍼센트, 불교 1퍼센트 등
다양한 종교가 혼합되어 있다. 언어는 말레이 언어와 거의 동일하다.
인도네시아라는 이름은 두 개의 그리스어로 구성되는데, 인디언이라는 뜻의 인도스와 섬
이라는 뜻의 네소스가 합쳐진 이름에서 보듯, 인도네시아제도는 13,677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고, 총 길이는 5,120 킬로미터에 달한다. 인도네시아 제도에는 5천 년 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던 흔적이 있고, 19세기에 바바인의 화석이 발견되어 신석기시대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
다. 행운과 꿈을 찾아 헤매었던 네덜란드의 항해술로 유럽인이 인도네시아에 첫 발을 들여
놓은 이후, 인도네시아는 줄곧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의 세력권 하에 있다가 네덜란드의 식
민지로 350년간 강압통치가 계속되었다. 그 동안 인도네시아인 들의 소망은 오직 메르데카
(독립)였고, 그들의 독립을 위한 노력은 3세기 동안 끊임없이 이어졌다. 2차 대전 당시 일보
에 3년간 점령되었다가 일본이 패망하면서 비로소 독립의 기회를 얻은 인도네시아는 그들의
식민지를 놓치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던 네덜란드의 뜻과는 달리 결국 독립에 성공했다. 1945
년 8월 17일. 인도네시아는 우리 나라보다 이틀 늦게 독립국이 되었다. 우리보다 이틀이나
늦게 독립한 데는 다른 일화가 있다. 당시 이 나라의 통신 사정이 워낙 열악해서 일본이 항
복한 소식을 이틀 후에야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독립국임을 선포하면서 '판자실라' 라
는 그들의 독립정신을 발표했고, 이것이 우리의 독립과는 조금 달랐다. 그들은 5대 건국원칙
을 설립했던 것이다.
첫째, 절대 신에 복종한다. 둘째, 모든 사람들에게 인내와 정의, 인간성 회복을 위한 인도
주의를 촉구한다. 셋째, 인도네시아의 단일성. 넷째, 대표자에 의한 현명한 민주주의. 다섯째,
모든 것을 위한 사회정의구현 등이다. 앞으로 우리는 이렇게 살자는 그들의 목표가 담긴 이
독립정신은 인도네시아 국민들 사이에 오늘날까지 공감대를 형성하며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다.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약간은 무덤덤한 우리와는 달리 인도네시아가 온 국민적인
경축 행사를 벌이고, 전 세계를 상대로 축하행사를 벌이는 것은 인도네시아의 그런 복합적
인 다민족성과 비극적인 역사를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벌써 일주일 전부터 시작된 이
행사로 인해 자카르타는 며칠째 연휴상태이다. 상가는 대부분 철시하고 있으며, 자카르타 전
역에서 세계 각국 사절단이 벌이는 축하 쇼 내지는 스포츠, 독립 50주년 경축 요트시합 등
이 벌어졌다. 바다에서는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영국, 이태리, 네덜란드, 뉴질랜드, 호주,
대한민국 등 세계 동·서양 진영 17개국의 최신형 전투함들이 모여서 무기체계를 뽐내며 전
시를 하고 있다. 우리 나라도 국산 전투함인 '부산함' 과 '청주함'을 참여시켜 이번 전시회에
참가한 세계 각국에 선을 보인 셈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따만 미니 인도네시아' 라는 민속
촌에서 각국 해군이 자기들이 자랑하는 민속을 한 가지씩 선보이고 있는데 대한민국 해군의
'사물놀이패'는 그 정열적이고 흥겨운 사물놀이로 민속촌을 가득 메운 각국 참관자들의 경탄
과 찬사를 한 몸에 받기도 했다. 인도네시아가 이렇게 범세계적이면서 거국적인 행사를 벌
일 수 있는 측면에는 그들의 무궁무진한 천연자원을 배경에 깔고 있기 때문이며, 그것이 바
로 인도네시아의 저력이기도 하다.
속을 알 수 없는 수도
자카르타. GNP가 고작 760달러 정도인 나라의 수도라고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국제도
시이다. 동양에서 가장 긴 고속도로망을 자랑하는 잘 정비된 도로망, 다운타운을 가득 메운
대형 빌딩들, 도심의 고속화 도로, 우거진 열대림과 가로수, 종려나무들, 거기에다 유럽풍의
영향을 받은 도시 미관은 한 마디로 중후하면서도 고색 창연한 첫인상을 풍긴다. 대통령의
영부인이 만들어서 운영하다가 규모가 커지면서 정부에 기증한 '따만 미니 인도네시아'는 인
도네시아 27개 주의 다양한 풍물과 풍습 문화를 한 곳에 축소시킨, 꼭 가볼 만한 곳이다. 인
도네시아의 문화와 예술, 오락을 겸비시킨 안쫄 드림랜드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언젠가는 나도 발리섬에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것은 발리섬이다. 힌두교의 신비한 힌두문
화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열대의 섬 발리의 풍광, 우거진 열대림 속에 산재한 아름다운 시골
마을, 태양 빛에 반짝이는 하얀 해변들, 환상적인 색조로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 힌두의 신
비로운 문화유적,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종교적인 삶으로만 일관하는 원주민들. 아무
리 줄줄이 꼽으며 헤아려도 상상을 불허한다는 환상의 섬 발리를 보지 않고서 인도네시아를
봤다고 할 수는 없다. 발리섬은 꼭 가 봐야지, 벼르고 별렀는데. 으···,이런 변이. 비행기
표 예약이 오래 전에 이미 다 끝나 버린 후였다.
북한 해군사령관도 감탄한 멋쟁이 우리 해군
이번 인도네시아 정부 초청의 공식방문에서 한국 해군은 그 기재와 기상을 인도네시아에
서 마음껏 떨쳤다.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그들의 축제에 참여하여 열광적인 박수
들을 받아내었던 것이다. 따만 미니 인도네시아의 민속촌에서 벌어진 각국 해군의 축하공연
에서도 고작 군악대를 동원한 미국과 중국의 해군, 유도와 검무를 선보인 일본 해군, 민속노
래를 선보인 말레이시아 해군에 비하면 한바탕 흥겨운 잔치를 벌여 인도네시아 관람객들의
혼을 빼앗아 버린 한국 해군의 사물놀이 단의 공연은 그 잔치의 압권이었다.
둘쨋날 대통령궁에서 열렸던 축하행사에는 42개국의 함장급 이상 축하사절단이 참석을 했
는데 우리 나라에선 해군사관학교장을 비롯 정병두 순항훈련분대 사령관과 '청주함' '부산함'
의 함장들이, 북한해군의 김일철 사령관 이하 북한 해군의 고위장성 3명이 함께 조우하게
된 뜻깊은 행사였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날 열렸던 사관생도와 군악대의 시가행진에서도
행사참가자들은 대한민국 해군의 기재를 마음껏 떨쳐 인도네시아 국민들의 우레와 같은 박
수를 한 에 받았다. 단상에서 지켜보던 북한의 김일철 해군사령관이 '규율이 잘 들어 있구
먼' 하며 감탄을 할 정도였다나?
4. 군정국가, 인도네시아의 저력
공산당은 싫고 군인은 좋아요
인도네시아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군정국가이다. 군인은 최고의 지위를 누리며 모든 국
민들의 존경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사관학교의 입학은 곧 이 나라에서 엘리트 코스로의
진입을 의미한다. 또 군인은 두 가지 직책을 겸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를 다스
리는 27개 주의 주지사 중 절반 가량이 현역 군인이다. 군인에겐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혜
택도 함께 부여된다. 우선 군인, 공무원, 군무원들에겐 봉급 외에 별도로 쌀 배급표를 지원
하는 것이 그 중의 하나이다. 이 때 지급되는 쌀은 3등급의 쌀 중 2등급에 속하는 쌀이라고
한다.
인도네시아의 지방으로 내려가면 현역 하사관들이 마을 주민들이 교육과 위생에 관한 지
도를 담당하고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바로 우리 나라의 새마을지도자에 해당한
다. 이렇게 군인들이 사회적 위상이 높다 보니 이 나라 국민들의 최고의 목표는 당연히 군
인이 될 수밖에 없다. 또 인도네시아는 공산주의를 극도로 싫어하는 나라 중의 하나이다.
1965년 소수의 공산주의자들이 중공의 지원을 받아 인도네시아를 공산화하기 위해 쿠데타를
기도한 일이 있었다. 쿠데타는 곧 진압되었고, 그 직후부터 공산주의자에 대한 극도의 탄압
정책이 실시되었고, 지금도 중국문화의 침투는 국력 배제하고 있을 정도이다.
밤에 하는 결혼식
인도네시아의 국민성은 열대성 기후의 탓으로 게으르긴 하나 매우 온순하다. 또 민족과
종교가 다양하게 얽혀서 살고 있는 만큼 문화와 풍습도 가지가지이다. 그 중에서 이슬람교
의 결혼식은 특이하게도 밤에 이루어진다고 한다. 신랑 신부가 모두 상체를 많이 드러내는
민속의상으로 결혼식을 치르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좀처럼 결혼식 광경을 구경할 수가 없다.
이슬람교도들은 그들의 남성우위사상에 의해 4명까지 부인을 얻을 수 있는데 이혼율이 높다
고 한다. 발리섬을 주축으로 한 힌두교의 풍습 중엔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면 여자가 가
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독특한 풍습이 있다. 남편은 대개 힌두축제에 참여하거나 닭싸움을
시키는 일로 소일하며 일생을 보내다니 가히 남성의 낙원이 아닐 수 없다. 발리 섬에서는
심지어 장례식도 축제처럼 치러진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에는 정확하게 확인할 수는 없지만 우리 나라의 교민이 2만여 명은 되리라고
추산되고 있다. 자카르타 교민회와 대사관에서 집계하는 교민 분포는 1만 2천여 명으로 어
림 잡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부도를 내고 도망 온 사람들은 대부분 발리 섬이나 인도네시
아의 한적한 섬에서 숨어살고 있는데 이 사람들은 한인회의 행사나 모임에는 일체 얼굴을
비치지 않고 자기들끼리 모임을 가지며 각종 정보를 주고받고 있다고 한다.
제3세계 선두주자 인도네시아
아직은 GNP 800달러의 개발도상국에 불과하지만 이들은 한국을 모델로 한국을 따라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방자치제도를 선진국 수준으로 뿌리내려 확립시키고 독자적이
면서도 확고한 경제개발 정책을 실현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자카르타 시내에서 빌딩을 짓
기 위해 건축허가를 낼 때는 지금까지 지어지지 않은 새로운 디자인의 설계라야만 건축허가
가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자카르타 시내의 고층 빌딩들은 매우 독특하고 아름다운 건
축미를 자랑하고 있다. 연필 모양의 건물이 있는가 하면 우주선 같은 건물도 있다. 건축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자카르타를 와 봐야 할 정도로 그들은 도시 미관을 꾸미는 데도 독특
한 전통을 지켜 나가고 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인 들은 한국인에
대하여 특히 우호적인 시선을 보내는 편이다.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이곳에는 우리 나라에
서 350여 개의 기업들이 진출해 있고, 우리 나라가 인도네시아에 투자한 금액은 4,50억 달러
규모, 두 나라의 일년 교역량은 10억 달러 정도이다. 이번에 인도네시아 정부는 건국 50주년
기념으로 자국에 진출한 외국의 기업 중 인도네시아 경제발전에 공이 큰 9개의 기업을 선정
했는데, 한국기업으로는 한국남방개발(회장 최계월)이 유일하게 포함되었다. 인도네시아의
한인회 수석부회장인 성인용 씨는 말한다. "우리가 외국에 진출하여 손쉽게 돈을 벌 수 있
는 나라가 어딨겠습니까? 미국? 일본? 천만 에요. 바로 인도네시아가 우리에게 쉽게 돈을
벌어줄 수 있는 나라입니다. 인도네시아 같은 개발도상국가의 독립 50주년에 전 세계의 내
노라 하는 선진국가들이 이렇게 몰려와 축하를 하는 것도 바로 인도네시아의 잠재력 때문이
지요."
인도네사아 현지 언어 -인도네시아어
아침인사:세라밋 파기 오후인사:세라멧 시앙 저녁인사:세라멧 소어 감사합니다:테리마 카
시 미안합니다:마아프 실례합니다:페르미시 이건 무엇입니까?:아파이니? 얼마입니까?:베라파
하르가? 비싸요:마할 당신 이름은 뭐지요?:시아파 나마 사우다라? 제 이름은∼:나마 사야∼
몇 km나 됩니까?:베라파 km? 어디에 있습니까?:디마나 아다? 상점:토코 열렸음:부카 닫혔
음:투툽 아주 좋군요!:바구스? 안 좋아요:티타크 바이크 표:카르시스 버스:비스 기차:키리타-
아피 배:카팔 언제?카판? 내일:비속 어제:키마린 아닙니다:티다크 볶음밥:나시 고랭 볶음 국
수:미에 고랭 생선:이칸 계란:테루 게:케피팅 물(마시는 물):에어 미넘 오렌지 쥬스:에어 제룩
*숫자 1:사투 1:두아 3:티가 4:엠파트 5:리마 6:에남 7:투쥬아 8:데라판 9:셈비란 10:세푸루
11:세베라스 12:두아브라스 20:두아푸루 21:두아푸루 사투 30:티가푸루 100:세라투스 1000:세
리부
제 5장 적도를 통과하며
1. 물침대가 그립다∼
물위에서의 어지러운 잠
8월 20일, 오후 4시. 자카르타 항을 출항한 이래 순탄한 항해가 계속되고 있다. 기나긴 항
해다. 처음엔 15일간의 항해라는 소리를 듣고도 무감각했었는데, 실제로 부대껴 보니까 보통
힘든 상황이 아니다. 진해를 출항하여 방콕에 올 때까지는 매우 상쾌한 항해였는데, 이젠 그
동안의 과로로 바이오 리듬이 무너졌는지 매우 힘겨운 하루하루가 계속된다. 15일간의 연속
항해라서 더욱 그런지 모르겠다. 대한민국의 해군도 인도양을 한 번도 쉬지 않고 단번에 횡
단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것은 새로운 기록이다. 그러나 짧은 경험이지만 항
해가 열흘 이상 계속되면 조금은 문제가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령관 님은 일주일 항
해하고 3일 정박하고, 참모장은 5일 항해하고 3일 정박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한다. 내
느낌도 그렇다. 온통 무너져 버린 인체의 바이오 리듬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언젠가 서울의 변두리 러브호텔에 물침대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신혼 초라 호기심
이 발동해서 가족을 데리고 그 물침대에서 하룻밤 잔 기억이 있다. 그런데 3살 짜리 아들
누리가 물침대 위에서 중심을 못 잡고 뒤뚱거려서 우리 부부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결국
아들은 딱딱한 바닥에 재우고 우리 부부만이 물침대에서 자며 호기심을 충족시켰는데, 그때
의 기분은 매우 쾌적했다는 것이다.
군함의 침대는 흔들린다는 점에서는 물침대와 흡사한데 자고 난 후의 느낌은 정반대였다.
쾌적했던 물침대와는 달리 군함에서는 어지럽기도 하고, 자고 일어나도 개운한 느낌이 덜하
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가는 해군들이 어떻게 보면 대단하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안쓰럽다.
그들이 이렇게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국민들이 과연 얼마나 알아줄까? 어쨌든 사우디
아라비아에 도착하면 물침대는 없더라도 바닥이 딱딱한 육지에서 하룻밤 자고 싶다. 간절한
소망이다. 출항 이틀째. 갑자기 배탈 설사 환자가 늘어나 비상이 걸렸다. 출항 이틀째. 갑자
기 배탈 설사 환자가 늘어나 비상이 걸렸다. '청주함' '부산함'은 이상이 없고 환자는 '천지
함'에만 집중되어 있다. 점점 결과 인도네시아에서 실은 청수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짐작되
어졌다. 수질을 분식할 수 있는 장비 정도는 기본적으로 장치되어 있어야 할 것 같다
앞으로 사흘 후면 적도를 통화하게 되고 적도를 통과할 때는 뱃사람들의 전통의식 그대로
적도 통과제를 지낸다고 한다. 무척 기대가 된다. 무엇보다 기대가 큰 것은 적도의 무풍지대
이다. 바람 한 점 없는 무풍지대의 바다는 해면이 거울처럼 깨끗하여 얼굴이 비칠 정도라고
한다. 아직까지 그런 바다를 한 번도 본 일이 없으니 당연히 기대가 클 수밖에.
2. 적도 통과제
적도 통과제 전야
적도 통과제를 지내기 하루 전날부터 몇몇 참모들은 벌써 전전긍긍한다. 적도 통과제에서
누가 어떤 희생양이 될 것인지, 혹시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이나 당하지 않을는지, 또
벌금은 얼마나 내어야 하는지, 도무지 아무런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알 만한 사람도 없고
함장도 전혀 모르는 눈치다. 적도제는 정확한 유례는 알 수 없지만 상당히 오래된 관습이
라고 한다. 이런 의식은 중세시대에도 있었고 그 훨씬 이전에도 있었다고 한다. 심청이가 임
당수에 몸을 던진 것도 알고 보면 이런 적도 통과제 같은 의식은 아니었을까? 문득 그런 생
각이 든다. 장사꾼들이 용왕 님께 재물을 바쳐 뱃길을 편케 해달라고 비는 것이나, 적도의
넵튠대왕과 그의 지배하에 있는 여러 해저의 생물들을 위로하고 경의를 표하는 적도제의 뜻
이나 방식은 비슷하지 않겠는가. 어쨌든 이런 의식은 옛날 범선시대 뱃사람들의 관습으로서
적도를 처음 통과하는 사람에게 참된 뱃사람을 만든다는 의미에서 시작되었고, 지루한 뱃길
을 모처럼 흥겹게 해주는 축제나 진배없었던 것이다. 해군의 적도제도 마찬가지의 뜻을 지
니고 있었다. 아직 적도를 한 번도 통과하지 못한 장병에게 경험자로 하여금 그 경험을 가
르쳐 준다는 의미에서 적도를 통과한 일이 있는 사병이나 최고선임 사병을 선출하여 넵튠대
왕(용왕)역을 맡기는데, 이때의 용왕은 막강한 권한을 지니고 있어서 해신의 왕비, 궁녀, 도
깨비, 만조백관들을 부리며 그 동안 눈에 나고 미운 털 박힌 상관들을 죄인으로 몰아 족친
다는데 그 대상은 바로 참모들이었다. 참모들이 전전긍긍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적도 통과제 D데이
8월 24일, 오후 6시 30분. 사령관, 참모장, 함장이 좌정한 가운데 공포의 적도 통과제가 시
작되었다. 원래는 비행갑판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비가 오는 등 일기가 불순하여 장소는
홍보 전시관으로 바뀌었다. 당직 근무자를 제외한 생도와 승조원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
"적도제왕 납시오." 사회자의 선포 식이 있고 나서 곤룡포와 면류관을 걸친 용왕이 기세 등
등하게 등극하여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여섯 명의 신하와 두 명의 도깨비들이 좌우로 대령
하였다. "여봐라. 짐이 심기가 곤하여 쉬려는 참인데 어이하여 이 자리에 초청하였는고?" 용
왕이 지엄한 얼굴로 만장을 굽어보는 가운데 신하가 머리를 조아린다. "제왕마마아. 다름이
아니옵고 금번 대한민국 해군 사관학교 50기 생도들을 편승하고 14개국 19개항을 순항훈련
중인 '천지함'이 적도를 통과하여야 되옵기에 제왕님의 허가를 득하고자 하옵니다." "음, 그
렇다면 적도를 통과하는 절차를 알고 있다고 하느냐?" "예으이. 모두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사료되옵니다요." "흠. 그럼 절차대로 집행토록 하라." "예으이." 신하들이 길게 읍을 하는
가운데 해군 사물놀이 단의 풍악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풍악을 마치기 무섭게 한 신하
가 허리를 숙이며 아뢰었다. "제왕마마, '천지함'에는 용궁을 못살게 구는 파렴치한 사람이
몇몇 있다 하옵니다." "파렴치한이라? 그 자가 누구인고?" "예, 제왕마마. 그 자는 '천지함'의
기관장이라는 자로서, 순항훈련 준비랍시고 허구한 날 기관부 총원을 일과 정렬시 땡볕에
세워 놓고 과업을 지시하는가 하며, 함 승조원의 과업시간보다는 과업 지시하는 시간이 더
많다 하옵니다요." "저럼, 물 맑기로 소문난 대한민국 해군에 그런 지저분한 놈이 아직도 있
더란 말이냐. 그 놈을 당장 대령하렷다." "예이." 좌중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도깨
비들이 좌중을 뒤져 자리를 피해서 달아나려는 기관장을 잡아 비참하게 끌고 나왔다. 이어
서 기관장에 대한 죄상이 낱낱이 고발되어 성토되었고, 용왕은 곤장 5대와 벌금 50달러를
부과했다. 기관장이 곤욕을 치르고 물러나자 이번엔 다른 신하가 읍을 했다.
"제왕마마아. 아주 요상한 죄인이 있사옵기에 아뢰옵나이다." "요상한 죄인이라? 그게 누
군고?" 관심이 동하는 듯 용왕의 상체가 앞으로 숙여졌다. "이 죄인은 한국해군의 순항훈련
분대뿐만 아니라 우리 용궁에까지 소문이 자자한 인물로서 그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 하옵니
다요." "어허, 도대체 어떤 인물인데 그리도 원성이 자자할꼬?" 용왕이 관심을 표시하자 신
하는 목소리를 더욱 간드러지게 뽑아낸다. "마마. 이 자는 한국해군 순항훈련분대의 통신업
무를 총괄하고 있는 통신참모이온데, '천지함' 대원들이 가장 좋아하는 신문을 제 시간에 못
보게 하는 장본인이라 하옵니다." 용왕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니, 그런 못된 놈이 있더
란 말이냐? 여봐라, 도깨비는 당장에 그 놈을 잡아 대령하렷다!" 도깨비방망이를 든 도깨비
들이 좌중을 휘젓고 다니며 통신참모를 찾아내어 안 나오려고 버둥대는 통신참모를 연단으
로 끌어내었다. 좌중에선 연신 포복절도하는 폭소가 터져 나왔다. "제왕마마, 이 통신참모란
자의 죄질 중에서 랭킹 1위로 꼽을 수 있는 죄는 인공위성으로 사적인 전화를 밥먹듯 하오
니, 이 죄는 그냥 넘기지 마오소서." "마마, 이 죄인은 허벌나게 패 버리시옵소서." 다른 신
하들이 거들고 나서자 좌중에서는 또 폭소가 터져 나온다. " 이 죄인에게 곤장 10대와 벌금
50달러에 처하노라." 경을 친 것은 통신 참모뿐만이 아니었다. 군수참모, 작전관, 경리참모
등이 줄줄이 용왕님 앞으로 불려나가 한바탕 치도곤을 당하고 벌금을 낸 후에야 풀려 나왔
고, 남장여장인 해신의 왕비들이 좌중을 돌면서 술을 팔고 또 반강제적으로 술값을 징수했
다. 사령관, 참모장, 함장, 수습대장의 순으로 여자가 따라주는 술 한 잔씩을 마시고 돈을 기
부했는데, 필자도 한 잔 술을 마시고 50달러 가량을 뜯기고 말았다. 그렇게 한바탕의 의식을
치른 다음에 적도통과증이 함장에게 수여되고 의식은 끝을 맺었다. 그것은 하나의 축제였다.
마치 갓 결혼한 신랑을 메달 듯이 누군가 애꿎은 희생물을 만들고는 한바탕 웃으며 항해의
지루함을 잠시 잊는 것이 바로 이 적도 통과 제였다.
3. 적도의 분노
웬 난데없는 기상이변?
적도. 원래는 바람 한 점 없는 무풍지대이다. 그런데 이 적도에 이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괌에서 날아온 기상예보에 의하면 우리의 앞길인 북아라비아해에 10미터의 파도를 일으키는
몬순 계절풍의 영향을 받은 저기압대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10미터 짜리 파도는
배를 완전히 뒤덮는 엄청난 파도란다. 맙소사, 3미터의 파도에도 속이 뒤집어지고 머리가 어
지러운 판에 10미터 짜리 파도라니. 오,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8월 25일. 저녁식사 직후 막
들어온 기상정보를 확인한 사령관님은 JS7포인트에서 230도 방향으로 지그재그의 피항항해
를 결심했다. 폭풍의 사정권에서 벗어나고 조금이라도 덜 시달리기 위해서 14노트로 달리던
DR항해를 17노트로 속도를 높여 우리는 이미 상당한 시간을 벌어 놓고 있던 참이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분노
그리고 다음 날 오후. 그러니까, 8월 27일 저녁 7시에 애완견 종자인 마르티스의 원산지라
는 몰타섬과 산호섬들이 몰려 있는 몰디브 해역의 JS7포인트에서 230도로 방향을 선회하여
피항항해를 시작했다. 휴, 비로소 마음이 조금은 놓인다. 우리는 지금 강행군을 하고 있는
중이다. 자카르타를 출항하여 인도양을 횡단하여 사우디아라비아 '젯다'까지의 무려 15일간
연속 항해를 계속 중이다. 제법 큰 바다인 인도양을 한 번도 쉬지 않고 단숨에 횡단하는 것
은 대한민국 해군으로서도 이번이 첫 번째 시도하는 항해라고 한다. 그러나 적도의 기상이
변과 장기간의 항해는 경험이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겐 버겁기 짝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적도의 거울 같은 바다를 보지 못한 섭섭함이 더욱 크다. 무풍지대라는 적도에서 피항항해
를 해야 할 정도의 기상이변이 일어나고 있으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라는 땅덩어리가 못
내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 모두가 우리 인간들이 파괴한 자연현상 때문이라니 더 이상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8월 30일, 11시. 소말리아 반도의 코끝까지 바짝 다가온 순항훈련분대의 함정들은 거기서
350도 방향으로 침로를 수정하여 아덴만을 향해 북상을 시작했다. 우리가 피항항해를 해 온
덕분에 파도는 3미터 내외로 비교적 순탄하게 항해를 해온 편이었다. 그런데 폭풍주의보가
발효되었던 지역 이어서인지 바다는 여전히 험악하고 날카로웠다. 오후엔 파도의 각이 날카
롭게 살아서 서슬이 퍼렇더니 저녁이 되자 바다는 들끓는 듯했다. 이렇게 험한 파도를 지금
까지 본 적이 없었다. 분노의 바다. 왠지 그런 느낌이 들어 섬짓했다. 아니나 다를까, 밤이
깊어지자 심한 파도로 인해 '천지함'은 좌우로 크게 기울어지며 요동을 쳤다. 함교에 확인해
보니 현재의 파도는 5미터, 흔들리는 각도는 최고 30도씩, 좌우 합해서 60도씩 기우뚱거렸다
고 한다. 사관실의 텔레비전이 두 번이나 바닥에 떨어져서 뒹굴었고, 방안의 집기들도 온통
이리저리 쏠리며 굴러다녔다. 밤에는 이층침대에서 이리저리 몸이 쏠리는 통에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고, 항해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침대에서 떨어질까 봐 전전긍긍했다.
다음 날, 아덴만을 지나 홍해로 깊숙이 들어오자 바다는 조금씩 잠잠해져서 평온을 되찾
기 시작했다. 자카르타를 출항하여 사우디아라비아의 젯다까지 15일간의 인도양 횡단항해는
무척이나 힘든 항해였다. 인도네시아에서 실은 청수가 우리에게 맞지 않아 배탈 설사환자가
급증했고, 높이 5미터의 파도로 배가 요동을 치는 바람에 '청주함' 에선 수병이 중심을 못
잡아 넘어져서 크게 다치는 불상사도 발생했다. 젯다에 도착하여 병원으로 후송되어 정밀진
단을 받아 수병은 별다른 이상은 없어 보였으나 다친 부분이 머리라 좀더 경과를 지켜봐야
겠다는 진단을 받고 본국으로 후송조치가 이루어졌다.
4. 작명가의 속사정
해군끼리만 통하는 말들
작전참모 박갑제 중령은 순항훈련분대의 작명가이다. 해군의 군함을 처음 타보는 나 같은
사람에겐 해군들이 쓰는 용어들이 도무지 요령부득이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작명'이란 말이
었다. '작명,'작명'하는 말들이 하도 자주 들리길래 무슨 이름을 저렇게 자주 짓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 말은 '작전명령'이란 말의 줄임 말이었다. 그러니까 작전참모 박중령은 진해의
해군본부 작전사령부와 사령관 님의 지시를 하달 받아 작전명령을 시달하고 지휘하는 작명
가인 셈이다. 도대체 작전명령이 어떤 게 있을까 하고 알아보았더니, 맙소사, 군함의 항해에
관련된 모든 명령이 작전명령이란다. 요컨대, 군함은 '작명'이 없으면 꼼짝도 못한다는 소리
다. 그러니까 박중령의 두 어깨에는 막중한 임무가 부과되어 있다. 그 임무들을 손으로 꼽아
보니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진해를 출항하여 오키나와 남방에서 한미연합 훈련 시에는 통신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
보안장비를 확인하고 주파수를 미군 측과 맞추어야 한다. 미군들은 장비가 다양하여 상관이
없겠지만 우리의 입장으로서는 장비가 제한되어 있어 사용코드를 미리 맞추어야 한다. 만약
미국 비행기가 출동했는데 서로 주파수가 맞지 않아 교신이 되지 않으면 낭패가 아니겠는
가. 또 이번 순항훈련분대에는 연합훈련에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특히 고심을
해야 했고, 훈련은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작명가는 애탄다
태국의 방콕 항에 입항할 때는 수로인 메남 차오프라야강의 심한 간만의 차로 인한 얕은
수심이 그의 속을 끓였다. 수심이 가장 양호한 시각을 택해 입항을 하긴 했으나 워낙 수심
이 낮은 지역이기 때문에 음파를 쏘아 계속 수심을 측정해야 했다. 자칫 배 밑바닥이 바닥
에 닿아 펑크가 나는 날이면 세계일주 항해는 그대로 중단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조마조마하게 가슴을 졸였는데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메남 차오프라야강의
심각한 오염상태도 그의 속을 썩였다. 모든 군함에는 해수를 끌어올려 담수로 바꾸어 사용
하는 시체스터가 있는데 메남 차오프라야강의 오염물질이 발전기를 틀어막아 애로를 겪게
했던 것이다. 4대의 발전기 중에서 막히지 않은 두 대의 발전기를 가동할 수 있어서 천만
다행이었지만 만약 발전기 4대가 다 막혀버렸다면 방콕에서의 2박 3일간 전기를 전혀 쓸 수
없는 불상사가 일어날 뻔했지 않겠는가.
일반인들은 선박이 닻을 내린다고 표현하는데 이걸 해군에서는 투묘를 한다고 표현한다.
닻을 끌어올리는 것은 양묘라고 하는데, 이것도 역시 작전참모의 몫이다. 인도네시아 초청방
문에서는 배의 특성을 모르고 해군을 모르는 인도네시아 사람이 투묘구역을 정하고 계획을
짜놓아서 그는 또 애를 먹었다. 인도네시아 측의 지시대로 투묘를 했다가는 배의 안전에 문
제가 있다는 판단을 내린 그는 독자적인 투묘계획을 수립하고 사령관의 결심을 받아 시행했
던 것이다. 대한민국 해군사상 최초의 인도양 횡단 항해에서는 아라비아 특유의 몬순계절풍
이 우리 순항훈련분대를 기다리고 있어서 그는 또 노심초사해야 했다.
미국의 괌 기지와 숨가쁘게 교신을 주고받은 끝에 배의 속도를 경제속도인 13노트에서 17
노트로 올려 DR(예정위치)보다 훨씬 앞설 수 있도록 조정을 하고, 항해루트를 수정하여 피
항항해를 하도록 사령관의 결심을 얻어내었다. 사령관은 기름을 절약하는 경제속도를 중시
하셨으나 군함의 안전을 위해 17노트의 속도와 600마일이나 우회하는 피항항해를 결심하셨
다.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5미터 짜리 파도와 너울(스웰)을 만나 혼쭐났던 것이
다. 만약 아라비아의 계절풍을 피하지 않고 DR항해를 계속 했다면 3일 정도 혼이 나는 것
이 아니라 일주일 내내 인도양의 혹독한 파도에 시달렸을지도 몰랐다. 으, 그것은 지금 생각
해도 너무나 끔찍한 일이었다.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입항과 출항, 지중해 통과에 이
르기까지 또 앞으로 대서양 횡단과 태평양 횡단 등 우리 순항훈련분대가 무사히 진해항에
입항할 때까지 그가 지어내야 할 '작명'은 무수히 남아 있었다.
제 6장 천년의 신비, 이슬람 문화의 베일 속으로
1. 과거와 미래가 함께 공존하는 나라, '사우디아라비아'
현대 문명 속에서 과거 식으로 사는 나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복잡하게 공존하는 나라. 바로 사우디아라비아를 가리키는 말
이다. 도심에는 고층빌딩이 즐비하고 세계 최대의 석유수출국답게 석유, 화학, 광물학 분야
는 세계적인 수준으로 손꼽히면서도 베드윈(유목민)족의 후손들인 많은 국민들은 아직도 회
교율법에 순종하며 옛날 선조 들의 생활관습을 그대로 따르며 지키고 있다. 도심의 골목에
는 현대 문명의 총아인 벤츠 승용차가 즐비한가 하면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양떼를 지키
는 유목민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여자를 쳐다보면 죄.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거리에는 아직도 아비야(챠도르)를 쓴 여자
들이 많이 보인다. 엄격한 회교율법에 따라 이 나라에선 남자와 여자의 역할을 엄격히 구분
이 된다.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에선 여자를 훔쳐보지 말라, 손이 잘리니 도둑질을 하지 말
라, 사진을 함부로 찍지 말라는 등 처음 가는 여행객들에겐 금기투성이의 교육을 시키게 된
다.
오일파워와 회교 논리
사우디아라비아는 회교의 종주국이나 다름없는 회교 왕정국가이다. 한때는 문맹률이 매우
높은 나라였으나 파하드 국왕의 교육에 대한 열성 때문에 지금은 문맹률이 매우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어린이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교육에 대한 투자야말로 우리의 2세들에게 남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유산이다. 파하드 국왕은 틈만 나면 이런 지론을 설파한다. 그래서 이
나라에선 유치원에서 대학교까지 학비는 전액 국비부담이다. 공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
구나 무료로 공부를 할 수 있고, 공부를 한 사람은 쉽게 관리로 등용이 되고, 또 취직이 되
어 장래를 보장받는 형편이다. 그러다 보니 국민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과 열성이 높아졌고
지금은 문맹률이 매우 낮아지게 되었다고 한다.
세계 최대의 석유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 경제의 원동력은 뭐니뭐니 해도 석유와 광물자
원이다. 지구매장량의 4분의 1인 1,650억 배럴이 매장된 석유는 앞으로 150년간을 뽑아낼 수
있다니 과히 복 받은 나라가 아닐 수 없다. 과거에는 수출하는 건 석유뿐이고 물에서부터
모든 생활공산품을 수입하는 나라였으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정부의 과감한 투자
로 석유화학관련 사업에 관한 한 세계적인 기술수준을 보유하고 있고, 수자원 개발사업으로
해수제염공장을 17개나 건설하여 하루 4억 1천 3백만 갤런의 물을 생산, 물의 완전 자급자
족을 이루어 이제 물 걱정에 관한 한 한 시름을 덜었다고 한다. 막강한 오일달러를 이용하
여 부지와 암흑의 과거시대에서 현대 문명의 시대로 과감히 뛰어들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그러나 여전히 봉건시대의 율법을 지키고 있어 우리 같은 여행객들에겐 불편하고 따분하기
짝이 없는 나라이다.
코끝 찡찡한 교민들의 애국가
그래서인지 이번 해군 순항훈련분대의 젯다입항은 그곳 교민들에겐 큰 이슈인 모양이었
다.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리아드에서 젯다까지 날아온 교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입
항 첫날, '천지함의 비행갑판에서 벌어진 교민환영 리셉션에는 200여 명의 교민이 참여하는
대성황을 이루어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특히 이색적인 것은 환영 식에 참여한 교민 중에서
148명이 어린 학생들이란 점이었다. 이제 유치원을 막 나온 듯한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한국의 해군이 사우디에 입항한다고 해서 페르시아만의 담만이나 수도 리야드에서 장장
1,400킬로미터나 되는 길을 비행기로 혹은 버스로 달려왔다는 사실이었다.
사우디 전역에서 색동옷을 입고 몰려든 코흘리개 꼬맹이들은 환영 식에서 우리의 콧잔등
을 시큰하게 만들었다. 원래는 식순에 없었으나 어린이들이 많이 참석한 것을 보신 사령관
님의 지시로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 순서를 넣었는데 애국가 가사나 제대로 알 수
있을까 싶은 꼬맹이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한 소절도 틀리지 않고 씩씩하게 애국가를 불러
제쳤던 것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렇게 우렁차고 감명 깊은 애국가는 처음 들은 셈이었
다. 그리고 150여 명의 사관생도 전원은 교민들의 초청을 받아 교민들의 집으로 가정방문을
했다.
2. '사막골프'의 진수
어딜 가도 마음 든든한 억척이들
2박 3일간의 짧은 기간이지만 홍해 연안의 젯다를 둘러본 소감은 다양하다.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한국인들은 억척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데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도 예
외는 아니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관광객을 받아들이지 않는 나라이다 보니 이곳에 주재하
는 교민들은 모두 이곳에 진출한 한국기업체에 근무하거나 태권도 사범, 탁구 코치 등으로
사우디에 정착해 있었다. 그리고 이곳 교민들의 근면 성실한 태도 덕분에 사우디인 들의 한
국인에 대한 인상은 매우 좋은 편이었다. 사우디인 들은 일반적으로 한국인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사우디인 들은 우리의 군함이 정박을 하는 동안 미국 군함이 들어왔을
때보다 우리 한국인에게 더 좋은 대접을 했다는 게 그곳 교민들의 중론이었다.
운동을 별로 하지 않는 사우디인 들과는 달리 한국 교민들은 살아가는 데도 억척이었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틈틈이 운동에도 열심이었다. 더운 나라에서 풍토병에 시달리지 않고 체력
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건강관리가 우선인 법이다. 한국 교민들의 억척스런 삶 갈
피에 또 이러한 건강함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교민들이 운동에 열성을 쏟는 한 예를 들면,
교민들은 젯다 인근의 사막에 한국인들만이 운동을 할 수 있는 18홀의 골프장 '홍해골프클
럽'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었다. 그린피는 전혀 없으며 회원들이 석 달에 500리얄(10만원)
씩 내는 회비만으로 운영되는 골프장이었다.
운동효과 만점 보장
서울의 멋진 골프장과는 비교도 할 수 없고, 잔디 그린도 없는 무미건조한 골프장이었으
나 운동에는 그만이었다. 도착 첫날 9홀 정도만을 돌았는데도 땀을 비오듯이 흘릴 수 있었
고, 이것이 바로 사막골프의 진수였다. 아쉬움이라면 땅을 구입하지 못해 사우디 왕족의 땅
을 10년째 무상으로 임대하여 쓰고 있다는데, 땅을 소유하지 못한 까닭에 본격적인 클럽하
우스 건물을 지을 수 없어 우리 나라의 원두막 같은 가건물을 지어 클럽하우스와 그늘 집으
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운동을 끝내고 샤워를 할 수 있는 시설도 물론 없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에 오는 사람들은 교민들의 도움을 받아 이 사막골프를 한 번씩은 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수도인 리야드에는 제법 괜찮은 골프장이 3개나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이 골
프장을 한 번 다녀가면 한국인들이 얼마나 억척 같이 살아가고 있는지 정말 실감이 난다.
3. 사막 속의 계획도시 '젯다'의 낮과 밤
아라비안나이트의 밤거리
황량한 사막의 한 벌판에 세워진 젯다 시가지는 한눈에 이곳이 계획도시임을 드러나게 한
다. 시내의 다운타운에도 고층빌딩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반듯반듯하게 구획된 도심의 모습
과 잘 정비된 도로망은 감탄을 할만큼 잘 짜여져 있다. 미국의 영향을 받은 듯 고속도로와
연계된 각종 도로는 소통이 원활하도록 건설되어 교통체증이 거의 없는 편이다. 교민들에
의하면 젯다는 리야드에 비해 많이 개방화된 도시라고 한다.
사우디의 왕도인 리야드에선 하루 다섯 번의 기도 시간이 철저히 지켜지고 여자들은 반드
시 아비야를 덮어쓰는 등, 과거 중세시대의 율법이 철저하게 지켜진다고 한다. 그러나 비교
적 개방적이라는 젯다의 쇼핑센터에서 만난 여인들도 거의 대부분이 까만 하비야를 쓰고 눈
만 빠끔히 드러내 놓고 다니고 있었다. 사우디의 회사나 상점들은 아침 9시에 문을 열어 12
시면 문을 닫았다가 오후 5시에 다시 문을 열고는 밤 10시 30분까지 영업을 한다. 그래서
밤 영업시간 때문에 젯다의 밤거리는 유난히 아름답다. 세계 최대의 산유국이다 보니 기름
아까운 줄 모르는지 전기를 아끼지 않아, 밤이면 거리는 불야성을 이루어 아라비안나이트의
정취를 물씬 풍기게 하는 것이다.
금단의 이슬람 문화
술을 마시고 여자를 바라보는 것도 죄가 되는 나라. 따라서 관광객들로선 따분하기 짝이
없는 곳이 이곳이지만 볼거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슬람 사원을 들르면 시인 보들레
르가 격찬했다는 아라베스크 미술문화를 감상할 수 있다. 화려한 무늬와 정교한 장식공예,
추상적이고 복잡 난해한 아라베스크 미술은 이슬람문화가 갖는 오묘한 아름다움이라고 한
다. 금요일이면 죄인들을 끌어내어 공개적으로 목을 자르고 손목을 자른다는 할라스 광장.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막. 젯다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타부의 험악한 산세와 우리 나라의
동아건설이 건설할 때 몇 사람이 희생되는 갖가지 일화를 남긴 난공사로 건설된 세계에서
몇 번째로 꼽히는 높은 다리. 그리고 이슬람의 전통찻집에서의 물 담배 빨기 등, 우리의 호
기심을 충족시킬 이슬람문화는 곳곳에 널려 있다.
그러나 이곳을 여행하기 위해선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금기사항이 있다. 우선 이곳에선
왼손 사용이 금지된다. 무슬림은 용변을 본 후 휴지 대신 왼손으로 닦고, 물 세척을 하기 때
문에 왼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것은 큰 실례에 속한다. 또 돼지고기, 비늘 없는 생선,
피가 들어 있는 음식은 먹지 않는다. 그리고 술을 먹거나, 여자를 희롱하다가는 즉각 체포되
어 추방한다. 특히 검은 히비야를 걸친 여자는 사진을 찍는 것은 물론이고 바라보는 것도
죄악시하므로 조심해야 한다.
IBM 문화에 길들여진 민족
일반적으로 무슬림 들은 유목생활을 해온 민족이기 때문에 반가운 사람을 만났을 때는 서
로 얼싸안고 상대방의 뺨 좌우에 키스를 한다. 그리고 매우 장황한 인사를 주고받는데 이들
과 얘기할 때 상대방이 가족얘기를 하기 전에 가족문제를 먼저 얘기하는 것은 실례가 된다.
또 대화 시에는 우리는 같은 동양인이라는 것, 그리고 반공정신을 강조함으로써 동일감정을
유도하는 것이 좋으며, 담배나 음식을 권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젯다항에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해발 160미터의 물기둥이 하나의 볼거리이고, 이브의 무
덤이란 곳이 있다. 그 외에 수크라고 불리는 시장과 대형 쇼핑센터들이 있는데, 이곳에는 세
계의 모든 유명 브랜드들이 몰려 있으며 여타 국가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편이라 쇼핑의 천
국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과거에는 수입품이 모두 관세 없이 시중에서 판매되었는데, 요즘은
이곳의 경제가 불경기라 12퍼센트의 관세를 붙이고 있기 때문에 예전보다는 가격이 조금 비
싸진 편이다. 그리고 이곳에선 백화점에서도 가격을 할인할 수 있고, 반드시 할인해야 한다.
백화점에서도 2퍼센트 정도는 예사로 할인해 주며 그 이하로 할인하는 것도 가능하다. 1달
러는 이곳의 현지화폐인 3.75리얄이며, 우리 돈으로는 200원 정도의 가치가 있고 달러도 쉽
게 통용된다.
이들은 대체로 IBM문화에 길들여져 있는 낙천적인 민족이다. 아이비엠이란 바로 In Sha
Allah(신의 뜻이라면), Boukra(내일), Maleesh(걱정마라), 이런 말들인데 자신에게 어떤 불이
익이 닥치더라도 그들은 신의 뜻이라면서 받아들였다가는 크게 낭패를 당한다. 이들의 내일
은 바로 내일일 수도 있고, 아니면 한 달 후 혹은 두 달 후, 또는 일 년 후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샬라. 이것도 신의 뜻이라면, 어쩌면 나중에 다시 한번 사우디아라비아
를 방문하여 자세히 돌아볼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우디아라비아 현지 언어 -사우디아라비아어
안녕하십니까?:앗 쌀람 알라이쿰 감사합니다:슈크란 얼마입니까?:비캄 전화:틸리푼,하트후 경
찰:불리스,슈르티 차량:사야라 한국대사관:싸화라 쿠리야 한국해군:바흐리아 쿠리야 사관생
도:따비트 싸기르 젯다항구:미나젯다 누가?:민? 언제?:마타? 어디서?:아이나? 무엇을?:마?
왜?:리마다? 좋다:꾸웨이스
4.이집트의 젖줄, '수에즈운하'
수에즈운하에 잠시 닻을 내리며
젯다항을 출항한 지 이틀 만인 9월 8일 13시. 순항훈련분대는 수에즈운하의 입구에 도착
하여 투묘를 했다. 이곳에서 '로드 파일럿'을 만나서 안쪽으로 이동하여 정식으로 투묘하여
하룻밤을 정박한다. 왼쪽 해안으로는 이집트 사막의 고원지대가 보이고 함수 오른편으로는
말도 많은 분쟁지역인 사나이 반도가 펼쳐져 있다. 그리고 양쪽 해안으로 수에즈운하를 건
너기 위해 대기중인 수많은 상선과 선박들이 보인다. 우리 나라 기업 현대의 상선이 컨테이
너를 가득 싣고 우리 군함을 따라 들어온다. 엄청나게 큰 선박이다. 고향의 까마귀도 타지에
서 만나면 반갑다는 말처럼, 뱃전에 붙어있는 'HYUNDAI'라는 글자가 어쩌면 그렇게 반가
울까. 우리의 국력을 새삼 확인하는 것 같아 가슴이 뿌듯해진다.
우리가 잠시 정박해 있는 사이에 '천지함'의 우현에 이집트의 잡상인 선박이 달라붙는다.
이 선박에선 이 지역의 명물인 세계 최초의 종이라는 파피루스에 그려진 그림과 각종 기념
품들을 파는데, 한 장에 4달러라던 그림이 너무 비싸다고 이범림 부장이 호루라기를 불며
그 선박을 쫓아버리려 하자 금방 두 장에 1달러로 가격을 내린다. 으···. 나는 젯다에서
한 장에 3달러씩을 주고, 그것도 무척 싸다며 20여 장이나 샀는데 ··· 처음엔 300달러를
부르던 이집트의 스핑크스가 새겨진 쟁반이 시간이 흐르자 최종적으로는 55달러에 팔렸다.
그러다가 '천지함'의 좌현에 또 다른 장사꾼 선박이 계류를 했는데, 이 배에선 파피루스 그
림을 1달러에 넉 장을 준단다.
수에즈운하와 말보로
얼마 후 파일럿이 '천지함'에 올라 왔다. 이윽고 배는 오늘 밤 정박해야 할 장소로 이동을
했다. 약속장소에 무사히 투묘를 하고 작업을 마친 파일럿에게 함장이 감사의 표시로 모자
를 선물했는데 파일럿은 말보로 담배 두 보루를 달라고 요구했다. 이 배는 상선이 아니라서
외국산 담배는 없다고 하자 일반 상선들은 모두 말보로를 준다면서 승조원이 개인적으로 가
지고 있는 담배는 있지 않느냐고 낯두껍게도 당당히 요구한다. 결국 부장이 소지하고 있던
'말보로' 한 보루와 국산 '하나로' 한 보루를 건네주어야 했다. 파일럿이 자기 배로 내려간
후, 말보로를 보고 감탄하는 환성이 함교까지 들려 왔다. 이 나라 사람들에게 말보로는 대단
한 위력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알고 보니 수에즈운하를 지나가는 상선들은 으레 말보로
를 준비했다가 파일럿에게 선물을 하는데 이게 거의 관례가 되어 있는 모양이다.
함장에겐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고, 그것이 저녁 식탁에서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앞으로
수에즈운하를 건너기 위해서는 4명의 파일럿이 승함을 하는데 그 사람들에게 줄 최소한 4보
루의 말보로 담배가 필요한 것이다. 함장은 부장에게 승조원들이 개인적으로 구입한 말보로
담배가 있는지 확인해서 재 구입해 놓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담배값이 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말보로를 왕창 구입해 두는 건데, 함장은 후회막급인 모양이다. 그런데
파일럿이 나간 후, 새로 군함에 올라온 감독관은 더욱 걸작이다. '천지함'의 무게를 확인하기
위해 승함한 감독관은 군함의 바닥이 미끄럽다면서 함장이 신고 있는 것과 같은 운동화를
요구했다. 그러나 신고 있는 운동화를 줄 수는 없는 일, 창고에 알아봐도 운동화 남은 것은
없었다. 운동화가 없다고 하자 감독관 역시 말보로를 요구했고, 준비해 둔 말보로가 없어서
한동안 실랑이가 계속 되었다. 그리고 그 후에 올라온 방역 검열관 역시 요구사항은 동일했
다.
군함 3척이 수에즈운하를 건너는데 드는 비용은 1억 2천만원 정도라고 한다. 엄청난 금액
이다. 하지만 세 척의 군함이 수에즈운하를 건너지 않고 아프리카의 희망 봉을 돌아 우회
항해를 한다면 한 달 이상의 날짜와 더욱 많은 기름 값이 들어가므로 결과적으로는 엄청나
게 싸게 먹히는 거라고 한다. 이집트 국가재정의 80퍼센트가 수에즈운하에서 들어오는 수입
이라니 그 전체 금액은 아마도 천문학적인 숫자일 것이다. 그런데도 통관작업에 종사하는
관리들은 통과하는 배들에 다양한 요구조건을 내걸고 당당하게 뜯어먹는다.
우리 나라의 파일럿들은 매우 신사적이라고 한다. 하긴, 한 달에 8백만 원 정도의 고소득
자인 우리 나라의 파일럿들이야 이곳처럼 치사해질 이유가 없을 터이다. 이곳 파일럿들은
우리 나라와 달리 국가에서 봉급을 받는 월급쟁이라 수입이 변변찮은 모양이었고, 그들의
요구가 큰 금액은 아니지만 하나같이 말보로 담배를 요구해 오니 피곤한 노릇이 아닐 수 없
다. 없는 담배를 어떻게 만들어 낸단 말인가. 품질이 더 좋은 국산담배를 마다하고 말보로만
을 고집하는 걸 보니, 아마도 그들은 그 말보로를 피우려는 게 아니고 암시장에 내다 팔아
수입원을 삼는 모양이었다. 다음 항해 시에는 필히 말보로 담배 한 상자 정도는 미리 준비
해야겠다면서 담배도 안 피우는 함장이 골치 아픈 담배 때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5.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다
한가위의 통과의례
9월 9일. 추석날이다. 우리 나라에서 민족대이동이 일어나고 모두들 조상을 모실 시간에
우리는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항해의례(?)를 시작했다. 아침 8시, 수에즈운하 입구를 통과
했다는 함내방송을 듣고 놀라서 깨어났다. 어젯밤 추석 전야의 왠지 쓸쓸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 회식을 하느라 새벽녘에야 잠자리에 들어가서 늦잠을 잔 모양이었다. 부리나케 일어나
서 양치와 세면을 하고 함교로 올라갔다. 과연 눈앞에 좁은 협곡과도 같은 수로가 펼쳐져
있었고, 10여척의 선단이 1,000야드 정도의 간격을 두고 줄을 지어 항해하고 있었다. 우리
순항훈련분대는 '부산함', '청주함', '천지함'의 순서로 운하를 통과하고 있었다. 꼭 태국 방콕
의 차오프라야강을 연상케 하는 좁은 운하였다. 그러나 운하의 길이가 장장 193km에 달하
고 꼬박 12시간을 항해해야 한다고 한다.
아, 수에즈운하. 얼마나 보고 싶었던 수에즈운하인가. 인간의 힘으로 이 엄청난 역사를 건
설했다는 사실에 새삼 경이로움을 느낄 정도였다. 만약 이 운하가 없었더라면, 태평양과 인
도양에서 지중해를 가기 위해서는 아프리카의 희망 봉을 돌아가야만 하는 엄청난 불편함이
있었을 것이다. 말로만 듣던 수에즈운하를 직접 목격하고 통과한다는 벅찬 감동을 삭일 틈
도 없이 나는 열을 지어 수로를 항해하는 선박들을 향해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기에 바빴다.
운하의 왼편으로는 인구 50만의 수에즈 시에서부터 이집트의 마을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고 운하 오른편의 시나이 반도 쪽은 풀 한 포기 구경할 수 없는 황량한 모래사막이 펼쳐
졌다. 왼편의 이집트 쪽에는 군데군데 군부대와 탱크들이 보이고, 수많은 초소와 무장한 군
인들이 보인다. 운하를 경비하기 위해 배치된 병력인가 보다 생각했는데, 사실은 시나이 반
도가 이스라엘의 점령지였을 때, 이곳은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국경지대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짐작이 갔다.
우리 나라 땅덩이 만한 시나이반도는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에 점령되었다가 지금은
이집트에 반환되었으나 거의 쓸모 없는 사막으로 이루어진 불모지대나 다름없다. 이스라엘
이 왜 그렇게 순순히 반환했는지 쉽게 수긍이 갈 정도이다. 이 황폐한 사막도 물을 주고 가
꾸면 옥토로 변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시나이 반도와는 달리 왼편의 이집트 땅은 울창한
야자수와 각종 열대림이 우거져 있어 한눈에 옥토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멀리 지평선 너머
로 끝없이 펼쳐진 이집트의 고원지대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집트의 도심은 보이지 않았으
나 운하에서 바라본 변두리의 전체적인 거리 풍경은 지리적으로 인접한 리비아와 거의 비슷
해 보였다. 오후 2시. 인구 50만의 '스멜리아' 시가 바라보이는 수로에서 운하 파일럿이 임무
교대를 했다. 12시간의 항해를 한 사람의 파일럿이 하기에는 벅차기 때문이란다.
보따리 장사꾼들과 함께
운하 입구에서 올라왔던 첫 번째 파일럿은 버릇없이 함장석에 함부로 앉는 등 건방을 떨
다가 함장에게 혼이 나고 계속 입이 툭 튀어나와 있어서 부장이 달래느라 애를 먹었는데,
이번에 올라온 파일럿은 매우 싹싹하다. 자기는 선장을 할 때 한국의 부산에 들어가 본 일
이 있다며, 말보로와 인삼차를 요구하던 첫 번째 파일럿과는 달리 다른 건 필요 없고, 자신
이 입고 있는 흰옷에 맞는 하얀 색 벨트를 하나만 달라고 한다. 결국 두 번째의 겸손한 파
일럿은 승조원들의 호감을 사서 더 많은 기념품을 얻어서 배에서 내릴 수 있었다. 어쨌든
이집트인들의 불쾌한 기억과는 달리 스핑크스와 피라미드의 나라 이집트를 기회가 닿으면
꼭 한 번 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타계하신 이병주 선생의 소설 무대인 '알렉산
드리아'와 함께.
필름을 두 통이나 소모하고 나서야 수에즈운하와 이집트에 대한 갈증이 어느 정도 가시는
듯 싶었다. 그리고 주 갑판에 내려갔더니 안전요원으로 올라온 이집트 관리들이 가방 보따
리를 펼쳐 놓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처음엔 장사꾼으로 알고 함에 못 오르게 했더니 자기
들은 돌풍이 불거나 하는 유사시에 배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들인데, 노느니 염불을 한다
고 기다리는 시간에 좌판을 벌리는 것뿐이라며 장사를 못하게 하면 협조를 할 수 없다고 오
히려 으름장을 놓는다. 세상에 정부 관리들이 장사를 하다니. 우리네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
해할 수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곳이 바로 이곳 중동지역이다. 그런데 이 사람
들이 파는 물건은 어제의 장사꾼들과 거의 같은 메뉴였지만 파피루스 그림의 품질이 좀 더
고급스러웠다. 덕분에 2달러에 파피루스 그림 2장을 구입하고, 이집트의 풍물이 담긴 그림엽
서 6장을 1달러에 구입했다. 게다가 5달러를 건네주고 잔돈 2달러가 없어 1달러는 이집트
화폐 1파운드로 거슬러 받았다. 이집트 화폐의 정확한 환율은 모르겠지만 왠지 횡재한 느낌
이 든다. 이번 세계일주 항해를 하면서 입항하는 각 나라의 화폐를 수집하기로 결심했는데
예정에도 없는 이집트 화폐를 넣었으니까 말이다.
이집트 시각으로 오후 여섯 시경. 우리는 드디어 수에즈운하를 빠져 나왔다. 저녁 식사를
하다 말고 수에즈운하를 빠져 나왔다는 함내 방송을 듣고 우루루 함창으로 몰려들었다. 과
연 함창 너머로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었다. 바로 꿈에도 그리던 바다, 지중해의 녹색바다였
다.
6. 천일야화의 전설을 품은 국제도시 '이스탄불'
도시 한가운데로 흐르는 해협에서
지중해를 빠져 나온 지 이틀째 되는 날. 다다넬스 해협과 마르마라해를 건너고, 보스포러
스 해협을 눈앞에 두고 생일을 맞았다. 고국과 가족을 떠나 혼자서 맞은 생일의 쓸쓸함은
점심식사 때 생일축하 샴페인을 터뜨림으로써 깨끗이 씻겨 나갔다. 함정에서 참모들이 생일
을 맞으면 오찬 때 샴페인을 터뜨렸고 사령관이 생일 축하 선물을 주는 관례가 있었는데 식
사가 끝난 후, 사령관이 사우디아라비아의 명물인 대추야자를 생일선물로 주었고, 함장은 방
으로 축하카드와 함께 '마주앙' 한 병을 보내주었다.
함정에서 맞은 생일은 각별한 느낌이 든다. 지금껏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한꺼번에
축하인사를 받은 적은 일찍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의 생일에는 한 가지의 보너스가 따
라왔다. " 한 작가, 이렇게 객지에서 생일을 맞았으니 집에 전화해서 안부나 물어보도록
해." 사령관이 위성전화를 사용하라는 허락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군함에서 사적인 전화는
금지되어 있다는 걸 잘 아는지라 짐짓 사양을 했다. "아닙니다. 루마니아에 도착하면 집에
전화를 하겠습니다." 어느새 나도 해군이 다 됐는지 그 뜻이 고마우면서도 마음에 없는 말
이 불쑥 나온다. "괜찮아, 오늘은 특별히 허락하는 거니까." "그래, 집에서 아주머니가 걱정
하실 테니 걸어 봐." 참모장 윤병균 대령까지 거들고 나서서 도와준다. 그리고 자신이 보관
하고 있던 전화기 열쇠를 건네준다. 식사를 마치고 괜찮다고 할 때는 언제였는지 부리나케
통신실로 올라가 인마세트를 열어 서울로 전화를 걸었다. "어머, 여보 거기 어디야?" 아내는
뜻밖의 전화에 놀랍고 감동을 받은 모양이었다. "오늘이 자기 생일인데···." "그래서 사
령관 님이 전화를 걸라고 허락하셨어." "그럼, 아직 군함이야?" "응. 이스탄불이 바로 눈앞에
있어. 참, 지금 전화 끊을 테니까 거기서 이리로 전화를 걸어." "알았어." 비록 사령관의 승
낙은 받았지만 1분에 만 원이라는 인마세트 위성사용료가 겁이 나서 군함의 전화번호를 알
려주고 전화를 얼른 끊었다. 서울에서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그러나 통화내용은 어디까지
나 비밀이다. 사실 옆에서 통신참모 박일구 중령과 통신장, 기상장, 선임하사들이 줄줄이 듣
고 있으니 은밀한 얘기를 나눌 분위기도 아니었고, 그런 밀담도 없었지만 말이다. 비록 사랑
한다는 소리를 공개적인 분위기라 하지는 못했지만 제법 괜찮은 생일날을 보낸 셈이었다.
동양과 서양을 잇는 다리
터키의 영해이면서 국제해협인 보스포러스 해협을 군함이 지나갈 때는 반드시 낮에 지나
가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밝은 대낮에 보스포러스 해협을 통과하기 위해 수에즈운하를 지
나온 후 우리는 매우 느린 속도로 이곳까지 항해를 했는데, 해협입구의 '콰다칼레'시를 지나
고 다음날 아침, '이스탄불'이 눈앞에 나타나자 모든 생도들과 승조원들은 갑판으로 몰려들
어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이스탄불'. 그 국제도시의 명성은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그 동안 외국의 많은 나라들을 다
녀봤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는 본 적이 없었다. 특히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바라 본 '이스
탄불'은 더욱 그랬다. 스페인에서 출발한 오리엔트 특급 열차가 유럽을 횡단하여 도착하는
종점이자 동양과 서양을 잇는 국제도시란 점에서 '이스탄불'은 더욱 각광을 받는다. 동서양
을 잇던 국제도시 이스탄불의 내력을 거슬러 올라가 살피면, 이스탄불은 15세기 메흐멧
(Mehmet)이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의 옛 이름)을 점령한 후 동양적 건축설계에 따라 개발
한 도시로 동·서양의 보물들과 비단, 황금, 피혁, 향수, 약재들이 교환되었던 것이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 대륙과 아시아 대륙에 걸쳐 두 쪽으로 나뉘어 있는
'이스탄불'. 보스포러스 해협에는 두 쪽이 난 도시를 하나로 잇는 두 개의 다리가 놓여 있었
는데 바로 이 다리가 동서양을 서로 연결해 주는 매개체였다. 양쪽 대륙의 높은 절벽 위에
걸쳐진 다리는 교각이 없는 특수공법으로 건설된 아치형의 다리였다. 서울의 올림픽대교와
강촌에 있는 다리와 매우 흡사했다.
우리가 해협을 통과할 때는 아침 출근길 이어서인지 두 개의 다리를 오가는 차량들이 가
득했고, 바다 위에도 출근하는 사람들을 가득가득 실은 여객선들이 분주하게 오갔다. 그것은
정말 진풍경이었다. 양쪽의 대륙을 연결해 주는 수많은 유람선과 쾌속으로 달리는 모터보트
들, 그리고 어선으로 보이는 조각배들은 바다를 가득 메운 채 쉴 틈 없이 양쪽 해안을 오가
는데 그 많은 배들을 뚫고 해협을 거슬러 가자니까 매우 위태위태한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쾌속으로 달리는 배들끼리 서로 부딪칠 것 같은 아슬아슬한 장면들이 여러 번 연출되었으나
묘하게 한 번의 사고도 없이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가곤 했다.
보스포러스 해협의 양쪽 대륙으로는 유럽풍의 집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고, 또 군데군
데 중세시대의 옛 성곽들이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채 제대로 보존되어 웅자를 드러내고 있
었다. '이스탄불'을 다녀온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이스탄불'의 뒷골목은 지저분하기 짝이 없
다지만 해협에서 바라본 '이스탄불'의 전경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동서양이 만나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스탄불이야말로 분명 가장 신비스런 여행지이
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를 감탄하게 한 것은 우리 나라의 한강처럼 도시의 한가운데로
해협이 흐르고 있는데 그 바닷물이 그렇게 깨끗할 수 없다는 점이다.
보스포러스 해협의 길이는 17마일 남짓이다. 우리는 한 시간 이십여 분이 걸려서야 보스
포러스 해협을 완전히 빠져 나왔다. 기회가 닿으면 반드시 '이스탄불'을 들러보고 싶다는 마
음이 들 정도로 '이스탄불'은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천지함'을 필두로 '청주함',
'부산함'은 드디어 대망의 흑해로 들어섰고, 루마니아의 '콘스탄차'를 향하여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제7장 동유럽의 빛과 그림자
1.루마니아 '콘스탄차'의 명암
흑해 제 1의 항구에 한국해군 역사상 최초 입항
루마니아 제 2의 도시 '콘스탄차'는 농밀한 짙은 안개에 푹 감싸여 있었다. 10미터 짜리
파도보다 무섭다는 짙은 농무에 잠긴 '콘스탄차'항은 우리의 발을 꽁꽁 묶었고, 해군 함정들
은 예정시간보다 훨씬 늦어진 오후에야 흑해에서 가장 큰 항구라는 '콘스탄차' 항구에 입항
할 수 있었다. 군함 뿐만은 아니겠지만 선박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안개라고 한다. 대양
을 항해할 때는 레이더로 항해하니까 큰 상관이 없겠지만 항구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때문에 우리를 안내해야 할 루마니아의 도선사도 나오지 않았고, 항
구의 콘트롤 타워에서는 계속 기다리라는 메시지만을 보내왔다. 결국 안개가 거의 걷히고
시야가 훤히 트인 오후 한 시경에야 도선사가 배로 올라왔고, 예정시간보다 3시간 30분 늦
어진 오후 1시 반경에 겨우 입항을 완료할 수 있었다.
해군 군악대 연주는 알아서 자중할 것
비록 안개로 인해 우여곡절은 겪었지만 해군사상 첫 번째 루마니아 입항이라는 역사적인
쾌거를 입증하듯 그 입항 장면은 감동적이고 장엄했다. 압권은 군악대와 사물놀이 패의 합
주였다. 해군들은 전통적으로 환영인사로 군악대의 음악을 주고받는 관례가 있다. 루마니아
도 예외가 아니다. 루마니아 해군 군악대가 부두에 나와서 우리의 사상 첫 입항을 환영하는
연주를 시작했는데 그쪽의 환영 연주가 끝나고 비행갑판에 도열한 우리 해군의 군악대와 사
물놀이 패가 우리의 민요를 합주하기 시작하자 루마니아 군악대 원들이 모두들 비행갑판 쪽
으로 몰려와 얼이 빠진 채 구경에만 몰두하는 게 아닌가. 그들로선 사물놀이 패의 징과 꽹
과리 소리도 신기하지만 이렇게 흥겹고 장엄하며 요란한 음악이 있다는 게 신기한 모양이었
다. 그들은 한참 만에야 정신을 되찾아 다시 정렬을 하고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 장
면을 본 사령관은 그 쪽 사람들의 기를 너무 죽이는 것 같다면서, 다음 불가리아 입항 때는
사물놀이 패의 합동연주는 삼가라는 지시를 내릴 정도였다. 그러나 흑해에서 가장 큰 항구
이며, 유럽에서 다섯 번째 큰 항구라는 콘스탄차는 우리를 실망시키기에 족했다. 공산주의
체제가 이 나라 역사의 시계바늘을 얼마나 뒤로 후퇴시켰는지 그 시가지가 똑똑히 증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2. 뒤늦게 눈뜬 자본주의 시장경제
자유 민주주의를 향한 몸부림
1989년, 루마니아의 챠우세스쿠 독재정권이 국민의 봉기에 의해 무너지고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민주공화국으로 새롭게 태어났지만 그 민주주의가 싹을 틔우는 것은 아직은 요원해
보였다. 동구에서 유일한 라틴계로 로마인들의 후손임을 자랑스러워하며 스스로 로마니아라
고 부르는 루마니아 국민들이었지만 아직도 먹을 것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듯 보였다. 국
민들은 경제를 첫 번째 관심사로 두고는 있지만 급작스러운 자본주의 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채 높은 인플레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 예로 우리 나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여행 가이드 책에 이 나라의 화폐 단위인 레이가
1달러에 18레이로 소개되어 있었는데, 실제로는 1달러에 2120레이였다. 우리의 여행안내 책
자가 나온 지 몇 년 되었고, 개정판이 나오지 않았음을 감안하더라도 그 차이는 너무 심했
다. 또 안내책자에 루마니아에선 말보로가 화폐노릇을 할 정도로 값진 역할을 한다는 정보
가 있어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부러 피우지도 않는 말보로 한 보루를 사 왔다가, 차를 태
워주고 도움을 준 호텔의 웨이터에게 한 갑을 선물했는데 기대 이상의 반응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89년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들어서면서 통제 품에서 풀려난 말보로는 이 나라에서 값이 약
간 비싼 담배이긴 하지만 더 이상 희귀품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옛 선조 들의 유산인
고풍스런 거리를 그대로 지키며 이제 막 시장 경제에 눈을 뜨고 가난해서 벗어나려고 몸부
림치는 듯한 모습은 여기저기서 역력히 보였다.
이곳의 주부들은 부업으로 아기를 봐주는데, 한 달간 아기를 봐주고 노력한 대가가 고작
20달러란다. 우리 돈으로 16,000원 남짓인데 이곳에선 이것도 매우 큰돈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매춘은 금지되어 있지만 음성적으로 벌어지고 있는데, 주로 젊은 가정주부들이 거리에
서 부업 삼아 매춘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매춘은 불법이라 마치 스파이작전을 방불하게 한
다고 한다. 외국인이 현지인과 버젓이 호텔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매춘은 주로 그곳의
변두리에 있는 허름한 아파트에서 벌어진다고 한다. 그것도 남들의 눈 때문에 매우 은밀히
들락거린다나? 그러나 루마니아에는 태국 못지 않게 에이즈가 창궐하고 있다는 말이 있으므
로 함부로 불장난을 벌일 수는 없는 일이다.
또, 콘스탄차는 백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거리치고는 차들도 그리 많지 않은 편이었으
며 그 차들도 우리 나라에선 거의 폐차가 되어야 할 노후 차량들이었다. 하루 종일 거리를
싸돌아다녀도 번듯하게 생긴 차는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고, 시동이 꺼진 택시를 승객이 밀
고 있는 모습도 하루에도 몇 번씩 구경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콘스탄차가 관광지
로 각광을 받는 것은 인근에 '마마미아'라는 천혜의 휴양지가 있기 때문이다. 마마이아 해변
에는 특급 호텔들이 즐비하게 들어 서 있으며, 여름시즌에는 유럽에서 휴양객들이 몰려 와
북새통을 이룬다고 하는데, 불행히도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시즌이 끝나서 매우 한산한 모
습이었고, 휴업을 하고 철수 준비를 하는 호텔도 더러 보였다.
선망의 대상이 된 대우차 '씨에로'
루마니아에서 우리를 흡족하게 만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이 나라의 국민들은 대우의
차 '씨에로'를 최고의 차로 칭송한다는 사실이었다. 순항 훈련분대 사령관인 정병두 제독의
기자회견장에 참석한 30여 명의 기자들이 우리 나라 해군과 대우그룹이 무슨 관련이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할 정도로 루마니아에서 '대우그룹'의 명성은 절대적이었고, 그 명성의 발단은
'씨에로'에 있었다. 대우그룹의 루마니아 현지 공장에서 씨에로 2만 대를 생산했는데도 씨에
로를 사기 위해서는 몇 달씩을 기다려야 하는 실정이란다. 그러다 보니 한국사람들을 만나
면 씨에로를 좀 빨리 살수 없느냐고 물어오는 루마니아 사람들이 많고, 심지어는 대사관에
부탁을 해 오는 사례도 왕왕 있다고 한다. 이곳에 진출한 대우의 합작법인인 '로대'는 그래
서 이 나라 국민들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는다. 로마니아와 대우의 머릿글자를 따서 설립한
합자회사는 대우자동차를 판매하는 딜러회사인데 루마니아에선 매우 큰 대기업으로 통한다.
코리아 대환영
또 특이하게도 우리 나라의 삼성, 금성, 대우 등이 이 나라 가전제품시장이 70퍼센트를 석
권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다. 루마니아의 TV수상기 10대 중 7대는 한국제품이라는
이야기다. 일본의 파나소닉사도 루마니아에선 맥을 못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기업들
이 시장의 80퍼센트를 석권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대형 TV쪽에서 일본에 시장을 조금씩 뺏
기고 있다고 한다. 1989년 12월 22일, 4반세기에 걸쳐 민중을 억압하던 차우세스쿠 정권이
마침내 봉기한 민중 앞에서 붕괴되었고, 우리 나라와는 대사급의 국교를 수립한 지 이제 3
년째를 맞이한 루마니아. 라틴계답게 정열적이면서도 다정다감하고, 선천적으로 낙천적 적인
국민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한국을 경제발전의 모델로 삼아 경제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이었고, 우리 나라에 대한 강한 호감을 표시하고 있다. 그들의 오랜 우방이었던 북한
을 제치고 한국과 더욱 가까워지기 위해 우리 나라의 공군 조종사들을 초청하여 미그29기를
태워 훈련을 시키다가 북한의 강력한 항의를 받기도 했던 루마니아다.
3.집시를 조심하셔요.
혹시 중국인? 역시 한국인!
공산화가 되기 전에는 동유럽의 부국이었다는 루마니아. 공산주의 체제로 인해 이 나라
경제는 말도 못하게 피폐했지만 그들은 새로운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여 부흥에 힘쓰고 있
고, 우리 나라에도 꽤 기대를 걸고 있는 눈치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콘스탄차 시민들은 한국
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던 눈치였다. 하얀 정복을 입은 사관생도들이 난데없이 나타나
거리를 휩쓸고 다니자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져서 바라보며 중국인이냐고 물어오기가 다반사
였다. '코리아'라고 하면 그제서야 감탄을 한 듯 고개를 끄덕거린다. 이번에 처음 입항한 순
항훈련분대의 사관생도와 승조원 등 600여 명이 상륙하여 대한민국에 대한 이미지는 확실하
게 심어놓은 셈이다. 그들은 뒤늦게야 북한보다 한국이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한국을 일본보다 잘사는 나라로 인식했다. 사령관님과 만찬에서 만났던 루마니아 해군참모
차장을 비롯한 지휘부는 그 동안 북한의 선전술에 속아 한국을 아주 못사는 나라로 알고 있
었는데 이번에 알고 보니 그 동안 북한과의 관계가 고통스러운 세월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고 솔직하게 토로하며 한국과 루마니아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를 희망한다
며 간곡한 당부를 해 왔다고 한다.
고색 창연한 고도시 콘스탄차
루마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인 콘스탄차는 다운타운인 토마스 거리의 콘티넨탈 호텔을
중심으로 도보로 20분내에 볼거리가 몰려있고 그리스, 로마, 비잔틴시대의 유적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시내의 교통편으로는 특이하게도 트롤리버스라는 게 있다. 전차와 버스를 결합한
것 같은 버스로 시내 전역을 운행하고 있고, 택시를 제외하면 시내를 다닐 수 있는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또 루마니아 국내를 여행할 때는 철도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집시주의보
관광을 할 때 한가지 주의할 점은 집시에 대해 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루마니아는
루마니아인(89퍼센트), 헝가리인(7퍼센트), 집시(1.8퍼센트), 독일인(0.5퍼센트), 기타 터키 및
우크라이나인, 세르비아인, 유태인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집시들의 범죄활동이 치안상의 문
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어린 집시 아이들이 관광객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손을 벌리는데 이때는 동전 하나씩만 던
져주면 된다. 그러나 큰돈을 함부로 내어 보여서는 안 된다. 이번 순항훈련분대의 몇 사람도
큰돈은 아니지만 집시들에게 소매치기를 당하기도 하고, 들치기도 당했다고 한다. 집시여인
이 다가와 돈을 달라고 손을 벌리기에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는데 집시여인이 재빨리 가로채
어 자기의 가슴속으로 쑥 집어넣어 버리더라나? 그러니 어쩔 손가. 그리고 그 여자는 자기
한테 돈이 없다면서 치마를 훌렁 들어 보이는데 치마 속에는 팬티도 입지 않고 있다. 아찔
한 순간이다. 어떻게 처리를 해야할지 몰라서 당황해서 어물어물하면 돈은 어느 사이에 다
른 집시들에게 넘어가고 그 여자집시는 옷을 훌렁훌렁 벗어 알몸이 되고서는 돈이 없다고
떼를 쓴다. 이 정도가 되면 차라리 돈에 대한 미련을 가지지 않는 것이 마음 편하다. 이런
사고는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그리고 집시에 의해 이런 피해만
입지 않는다면 루마니아는 테러위험이 별로 없으며, 물가도 싸서 관광을 하기에는 매우 좋
은 곳이다.
4. 불가리아 제1의 무역항, '부르가스'
동구권 여행 시는 미리 귀동냥을
동구를 여행하면서 가장 애로를 겪는 것은 여행 정보의 부족이다. 국내에서 준비를 해 온
다고 해서 여기 와 보면 실정과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이번 불가리아의 경
우도 마찬가지였다. 불가리아 국민의 80퍼센트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고, 루마니아보다 못살
며 '부르가스'는 불가리아 제 1의 무역항이긴 하지만 그리 크지 않은 자그마한 도시라고 들
었는데 웬걸, 도착해 보니 고층빌딩이 즐비한 제법 큰 도시이다. '부르가스'는 루마니아의
'콘스탄차'보다 더욱 활력이 넘치는 도시였다.
그리고 입항 후, 시내로 나갔다가 운이 좋게도 한국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불가리아 청년
을 만났다. 시내의 가판 점에서 부르가스의 로컬지도를 구입하려고 말을 걸었는데 매점의
아가씨가 영어를 하나도 못 알아들어서 애를 먹고 있을 때였다. "지도 말입니까?" 하는 소
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어럽쇼, 상대는 한국사람이 아니라 불가리아 사람이다. 그런데 자기는
한국의 서울대학교와 연세대에서 일년 반을 공부했다고 소개를 한다. 그런데 일년반동안 우
리말을 배운 사람치고는 우리말이 유창한 편이다. 우리는 반갑게 통성명을 했다. 알고 보니
'보이코 파블로프'라는 그 청년은 한국해군의 불가리아 입항 환영행사에 참석해 달라는 한국
대사관의 초청을 받았고, 어젯밤 소피아에서 열차를 타고 6시간 반을 달려 와 오늘 새벽에
'부르가스'에 도착했다고 한다.
부르가스 시내관광
보이코는 불가리아 문화부 산하의 기관인 '불가리아 문화센터'에서 문화원장이란 직책을
가진 불가리아 공무원이었다. 우리는 금세 죽이 맞아 함께 '부르가스' 시내를 돌아다니기 시
작했다. 그런데 함정에서 만났던 불가리아 주재 참사관의 안내 팜플렛에는 밤에 혼자 택시
를 타는 것은 금물이라고 적혀 있다. 가끔 펑크 족의 택시기사가 강도로 돌변하여 권총을
들이대는 모양이다.
사실 '부르가스'의 외곽지대에 위치한 불가리아의 라스베가스라는 환상적인 휴양지인 '네
쎄버르'와 '써니비치', '쏘조볼' 같은 해변을 갈 때 외에는 택시를 타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부두 앞 200미터 거리에 바로 '부르가스'의 다운타운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또 보이코 역
시 자기가 살고 있는 소피아에 대해선 훤하지만 부르가스에 대해선 생소하단다. 그런데 보
이코와 함께 온 애인인 '에카떼리나 까티야'가 '부르가스'에 대해서 제법 알고 있어 우리를
안내했다.
역시 여자는 꽃에 약해
불가리아에서 최고의 인기 직종은 은행원이라는데 '까티야'가 바로 은행원이었다. '보이코'
와 '까티야'를 만나면서 불가리아의 속사정을 속속들이 알게 된 것은 초행의 낯선 여행객으
로선 큰 행운이었다. 더구나 이곳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겐 어려웠던 동구권이 아닌
가. 불가리아 역시 다른 동구권의 국가들처럼 시장경제로 진입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
었고, 국민들은 몸살을 앓고 있었다. 시장경제에 익숙하지 못한 그들은 바보같이 열심히 일
을 해도 부자가 되기 힘든 경제체제라며 거의 체념상태였고, 빈부 격차의 해소가 이 나라의
최대 관심사인 모양이었다.
저녁을 먹기 위해 들렀던 부르가스의 전통음식점인 '나찌오날'에서, 꽃 팔러 온 소녀로부
터 장미 한 다발을 사서 우리를 안내하느라고 고생한 까티야에게 선물했더니 까티야는 좋아
서 꾸뻑 넘어가는 시늉을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자들은 꽃에 약한 모양이다. 마침 이
나라의 국화는 장미이고 이 나라에서 유일하게 자랑하는 것이 '요구르트'와 함께 '장미 향수'
란다. 불가리아는 장수의 나라, 요구르트의 나라로 알려져 있는데 '보이코'의 말에 의하면 요
구르트를 먹으면 장수를 한다고 한다. 이 나라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74세, 그러나 산악지대
에서 요구르트를 먹고사는 사람들은 거의 90세를 넘긴다고 한다. 보이코의 할아버지 역시
97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고 자랑이다. 우리 나라에도 '불가리스'란 요구르트가 나와 있는데,
보이코가 서울에서 먹어 본 '불가리스'는 과일이 너무 들어가고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변질
되어 자신은 먹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는 서울우유를 사서 특유의 비법으로 가
공하여 자기 나라 식의 요구르트를 만들어 먹었다나.
5. 불가리아의 속사정
불가리아 리포트
불가리아를 여행할 때 주의해야 할 점들이 있는데 불가리아는 관광객에게 하루 15달러 가
량을 의무적으로 바꾸게 하는 강제 환전제도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루마니아도 사정이
비슷하다. 만약 3일을 체류할 예정이라면 45달러를 불가리아의 화폐단위인 레바로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외국인은 반드시 호텔에 체류해야 하는 의무조항도 있다. 호텔에서 비자 뒤에
스탬프를 찍어 주는데 이 스탬프가 없으면 출국 시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물론 편법도 있
다. 마지막 날 하루만 특급호텔에서 체류를 하고 체류기간 내내 그 호텔에 묵은 것처럼 위
장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싸구려 호텔에선 그런 융통성을 발휘해 주지 않으므로 마지막 날
하루만 특급호텔에 체류하면 된다. 또, 배낭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야간열차나 역에서 밤을
보냈다고 하면 통하기도 한다.
불가리아의 또 한가지 특이한 점은 '예스'라고 대답할 때는 고개를 좌우로 젓고, '노오'라
고 할 때는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인다. 우리와는 정반대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불가리아의
우편제도는 그리 신용할 수 없는 편이다. 편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포는 거의 뜯어보는 관행
이 있어 좋은 물건을 보내면 분실사고가 잦다고 한다. 전화는 구라파지역은 DDD시스템으로
쉽게 통화가 가능하지만 한국에 할 때는 전화국에 신청해야만 하는 불편함이 있다. 시내 교
통수단은 매우 발달해 있어 버스나 전차, 택시가 모두 이용 가능하나 밤에 혼자서 택시를
타는 일은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다. 불가리아에도 마피아가 상당히 조직적으로 짜여져 있
고 굉장한 파워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 러시아 마피아의 하부조직이거나 그들과 연
관이 있는, 주로 외국인들로 구성된 조직인데, 그들 조직끼리의 전쟁이 종종 일어나 총격전
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나 마피아가 관광객을 털거나 건드리는 법은 별로 없다. 관광객을 노
리는 것은 이 나라 인구의 2.8퍼센트에 달하는 집시들에 의한 소매치기들이다. 집시만큼은
꼭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불가리아도 루마니아와 마찬가지로 매춘은 불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나 음성적으로 이루어
지고 있다고 한다. 주로 러시아의 성과 같은 외국의 여성들이 호텔의 나이트클럽이나 밤거
리에서 호객행위를 한 후, 외곽지역의 아파트로 데려간다고 한다. 미국 CIA 계통의 정보에
서도 아직 사고가 보고된 것은 없지만 밤거리의 여인 뒤에는 범죄조직이 있을 수 있으므로
주의를 한다고. 불가리아의 국민성은 대체적으로 순박하고 우호적이며 서방 세계의 생활상
에 매우 많은 호기심을 보이고 있고, 관광객들에게는 매우 친절한 편이다. 요즘 우리 나라에
는 중, 고등학생들을 해외유학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은데 물가가 싼 불가리아야말로 적절한
유학장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6. 불가리아 X세대
레닌 거리에서
우리 나라의 대학로와 흡사한 젊은이의 거리인 '레닌 거리'는 밤이면 젊은이들의 천국이
된다. 아직은 별다른 비전도 없고 희망도 없는 그들은 밤이면 이 거리에 몰려들어서 콜라와
쥬스, 맥주 등의 음료수를 마시는 것으로 초라한 젊음을 위로하며 젊음을 보낸다. 거리의 스
낵 카페에 앉아서 지나가는 젊은이들을 눈여겨보고 있자니까 문득 손목시계를 차고 있는 사
람이 매우 드문 것이 눈에 띤다. 그러고 보니 이 나라에선 우리에겐 유행이 한참 지나간 투
박한 세이코 시계를 최고로 친다고 한다. 새삼 보이코를 살폈더니 그 역시 시계를 차고 있
지 않았다. 보이코에게 그 이유를 물어 보았더니 그 대답이 걸작이다. "시계가 없어도 행복
합니다." 가난함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도 그 말속에 깃든 우수는 감추지 못한다.
그날 밤. '레닌 거리'를 거닐던 우리는 부르가스 대학교 앞 광장에 있는 '디아나'란 디스코
텍을 들렀다. 밤 11시가 되자 디스크쟈키의 사회로 공연이 시작되는데 마치 우리 나라의 70
년대 음악다방과 나이트클럽을 합친 것과 흡사한 분위기이다. 조명 역시 세련되진 못했고,
곳곳의 무대에서 토플리스 차림의 무희들이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 이 나라의 개방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술 한 잔으로 얻은 인연
보이코와 나는 이 디스코텍에서 의형제를 맺었다. 보이코가 나를 부르는 호칭이 마땅찮은
지 '당신' '당신' 하는데 못내 그 소리가 귀에 거슬린 내가 제의를 했다. "보이코, 나이가 몇
이야?" "불가리아 나이로 설흔다섯입니다." "야. 그럼 내가 너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니까 앞
으로 형님이라고 불러. 알았어?" "형님?" "그래. 난 형님이고 넌 동생이야. 알겠어?" "한국에
서 의형제 맺을 때 하는 거 있죠?" "손가락의 피로 혈서 쓰는 거?" "예. 우리 불가리아도
그렇게 혈서를 씁니다." 어쭈, 별걸 다 알고 있네. 키 크고 코 큰 동생 하나 얻으려다가 잘
못하면 피 뽑게 생겼네. 그래서 내가 얼른 제의를 했다. "옛날엔 그랬는데 요즘은 혈서 안
써. 붉은 잉크로써도 되고 말이야. 술 한 잔으로 때워도 돼." "아, 그렇습니까?" 이렇게 해서
우리는 건배를 하는 걸로 형제의 예를 치렀다. 건배!!! 팔자에 없는 코 큰 동생이 하나 생긴
기분에 나는 손목시계를 풀어서 기념으로 주었다. 그러자 보이코가 꿈벅 죽는시늉을 한다.
그리고 조금 전에 했던 말을 금방 번복한다. "나 이제 시계 있어도 행복합니다."
밤이 깊어갈수록 홀 안은 더욱 붐비기 시작한다. 이 나라의 10대들은 홀을 가득 메운 채
사이키델릭 조명 아래에서 몸을 흔들며 디스코를 추었다. 희망을 갖지 못한 세대들의 광란
하는 춤. 우리 나라의 디스코텍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그 모습들. 역시 사람 사는 세상은
다 그런가 보다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우리 나라의 'X세대'와 불가리아의 'X세대'들의
외양은 다르지만 그 춤만큼은 흡사하다. 그 광란의 홀에서 불가리아 맥주를 마시며 우리는
또 건배를 했다. 불가리아의 밝은 내일을 위하여, 창(술잔 부딪는 소리)∼ 건배!!! 이제 대양
해군으로 발돋움하는 한국해군을 위하여 창∼ 건배!!! 창, 창, 창, 술잔이 부딪는 가운데 광
란의 밤은 깊어져만 간다.
불가리아 현지 언어 -불가리아어
안녕하셔요? : 이스드라 베이 감사합니다 : 블라고 다리아 어디입니까? : 그데스맥 얼마입
니까? : 고우곡 스트루바 주세요(플리즈) : 몰리야 요구르트 : 요구르기셀로 말라꼬 오렌지
쥬스 : 뽀르도까 로프 쏙 사과쥬스 : 야블꼬프 쏙 장미향수 : 로즈 오브 마쓸록 와인 : 비노
치즈 : 씨에레넥 화장실 : 뚜아렛나 계산서 : 스멕티카 빨리 : 버르조 하나 : 엣노
제 8장 흑해를 건너다
1. 군함 외교
흑해에서 건져 올린 수확
대한민국 해군이 사상최초로 방문했던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순방은 매우 큰 의미를 담
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와는 전혀 교류가 없었던 동구권의 두 나라에 이번 순항훈련을 통해
대한민국에 대한 이미지를 확실하게 심어 놓을 수 있었던 것은 가장 큰 성과였다. 하얀색의
하정복을 입은 사관생도와 승조원 600여 명이 '콘스탄차'와 '부르가스' 거리를 활보하자 별안
간 도시가 훤해지는 느낌이 들었고, 그 멋진 모습에 매료된 사람들은 한결같이 어느 나라
해군인가를 묻고는 '코리아'라고 답했을 때는 모습이 역력했다. 군함 외교의 위력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오찬 장에서 만난 두 나라의 해군 참모차장 등, 수뇌급 인사들도 그
동안 북한의 선전술에 속아 한국을 형편없이 못사는 나라로 생각해 왔는데 이번에 한국해군
을 직접 보니 그게 잘못된 오해였음을 알게 되었으며 그 동안 유지해 왔던 북한과의 관계가
그들로서는 고통의 시기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토로할 정도였다. 두 나라 해군 참모총장
이 하루만 더 묵을 수 없느냐고 간곡한 부탁을 해 왔지만 계획된 일정 때문에 내일을 기약
하며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그들의 뜨거운 환송을 받으며 아쉬운 마음을 간직한 채
흑해를 떠나왔다.
국가와 맞먹는 힘을 가진 해군의 위상
민간인으로서 해군의 군함을 타고 세계일주를 하면서 명확하게 느끼게 된 소감은 모든 나
라가 해군의 전력 강화에 부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순신과 같
은 명장과 수군, 장보고와 같은 훌륭한 인물을 가졌던 우리의 선조들이 왜 대양에 널려 있
는 수없이 많은 섬들 중에서 무인도 같은 섬 하나 차지하지 못했는지, 그런 아쉬움이 문득
문득 생기곤 했다. 또 일본이 왜 우리 나라의 작은 섬인 독도에 그렇게 집착하는지 그 이유
를 확실하게 실감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지나온 그 많은 바다들, 그리고 각 나라의 해군과
군함들, 우리는 많은 나라의 해군들이 그 나라의 바다를 지키기 위해, 또는 대양으로 진출하
기 위해 훈련하고 경쟁하는 모습들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우리가 들어갔을 때 불가리아는
나토 군과 해상 호위를 위한 합동훈련을 하고 있었으며 터키의 '이스탄불'도 예외는 아니었
다. 우리가 흑해에서 지중해를 들어가기 위해 터키의 국제해협인 보스포러스 해협을 지날
때 터키의 해군과 공군이 합동 사격훈련을 하고 있었다.
아시아 대륙과 유럽 대륙을 잇는 국제도시 '이스탄불.' 그 '이스탄불'의 한가운데로 흐르는
보스포러스 해협. 우리가 그 아름다운 모습에 도취되어 있을 때 터키의 공군기 한 대가 우
리가 타고 있는 군함 위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마치 공격당한 느낌이 들어 상당히 불쾌했으
나 알고 보니 그게 다 인사였다. 다른 나라 항구에 입항해서도 군함은 예포발사를 통해 인
사를 하듯이 말이다. 터키의 공군과 해군이 사격훈련을 하고 있는데 우리 군함이 지나가면
서 격려를 했고, 그들이 그 답례로 군함 위로 날아가는 인사를 했다는 것이다. 또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터키의 고속정 한 척이 우리 군함에 바짝 접근하여 줄기차게 쫓아오다가 우리가
보스포러스 해협을 완전히 빠져나간 후에야 방향을 틀어 기지로 돌아갔다. 아마도 그들은
우리 군함을 촬영하기 위해 가까이 접근하여 따라온 모양이었다. 비록 많은 군함이 깔려서
훈련을 하고 있었으나 '이스탄불'과 보스포러스 해협은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하고 있
었다. 또 엄청나게 큰 호화유람선이 군함들 사이를 유유히 헤쳐나가는 모습은 묘한 앙상블
을 일으키고 있었다.
핵잠수함과의 합동훈련
그리고 우리가 지중해의 이탈리아 반도에 인접한 해역으로 들어섰을 때, 우리의 전투함인
'청주함'과 '부산함'은 미 6함대 소속의 핵잠수함 한 척과 합동훈련을 했다. 핵 잠수함이 물
위로 떠올라 자기의 몸체를 내보이며 30분간 여러 가지 기능을 소개한 후에 물 속으로 다시
잠수를 하는데, 우리의 군함이 그 잠수함을 계속 추적하는 그런 훈련이었다. 두 시간 동안
계속된 훈련은 생각만큼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수상함과는 달리 잠수함은 물밑에서 3차원
의 운동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반면, 수상함정이 수중의 잠수함을 추적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행동이 많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수중에는 전파의 전달이 제한되어 음파(소
리)에만 의존하여 탐색해야 하는데, 음파와 수중환경의 특성상 수상함정보다 잠수함이 훨씬
더 용이하게 작전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핵잠수함과의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친 군함들은 우리의 다음 목표인 이탈리아의 띠레니아
해를 향하여 힘찬 항해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탈리아 반도에 인접했을 때는 깊은 밤이 되었
는데, 좌측으로 시칠리아섬과 오른편으로 이탈리아 반도를 끼고 있는 시칠리아 해협을 통과
할 때의 야경은 정말 일품이었다. 해협의 넓이는 8마일 정도, 시칠리아섬과 이탈리아 반도
양켠으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해협을 통과한 기억은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제 9장 유럽 유럽
1. 이탈리아 예술이 본고장 '까라라'
세계의 돌다운 돌은 모두 '까라라'로
사람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고 말을 낳으면 제주도로 보내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세계
의 돌은 어디로 보내야 할까? 정답은 이탈리아의 '까라라'이다. 이탈리아 대리석의 생산지인
'까라라'는 대리석 광산이 몰려 있고, 돌의 가공기술이 뛰어나기 때문에 이탈리아 대리석뿐
만이 아니라 세계의 유명한 돌은 모두 이곳으로 들어와서 새롭게 가공되어 다시 외국으로
팔려 나간다. 재수 좋은 년은 앉아도 뚜껑 있는 요강에 앉는다더니 내가 바로 그짝이다. 이
탈리아의 리보르노항에 입항한 첫날 우리를 환영 나온 사람들 중에서 고향후배를 우연히 찾
아내었던 것이다. 경북대학을 졸업하고 조각을 공부하기 위해 '까라라'에 와 있는 오채현씨
가 그 주인공인데 '까라라'의 자기 집에서 차 한 잔 하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했다. 더군다나
'까라라'가 대리석의 집산지란 말에 홀딱 넘어간 나는 금방 승낙을 했다. 예전에 로만의 바
티칸 성당을 구경하면서 이태리의 대리석에 매료되었던 경험이 있던 나로서는 그 대리석의
원산지를 꼭 보고 싶어했던 참이 아니던가.
리보르노항에서 북쪽으로 6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까라라'에는 우리 나라에서 조각을 공
부하기 위해 체류하는 유학생 가족이 마흔 네 가족, 성악을 전공하는 유학생 세 가족이 머
물고 있다고 한다. 오채현씨와 조용태씨가 우리를 안내했는데, 처음에는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던 '까라라' 였지만 도착하는 순간 나는 금방 매료되고 말았다. '까라라' 야 말로 가장
이탈리아 적인 도시의 하나이자 예술의 본고장이었던 것이다. 로마 바티칸 성당 공사에 투
입된 대리석은 모두 이곳 '까라라'에서 생산되었으며 미켈란젤로가 젊은 시절에 20여 년간
조각을 하며 작품생활을 하여 유명해진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 외에도 지금은 작고했지만
조각의 세계적인 거장인 영국의 '헨리모어'가 이곳에서 작업을 했으며, 이탈리아의 '마리노마
리니', 프랑스의 '세자르'도 이곳에 거주를 하고 있다. 현대조각의 할아버지라고 불리 우는
이들 대가들이 거주하는 이곳 '까라라'는 우리 나라의 조각가 47명 외에도 전 세계에서 몰려
온 천여 명의 조각가들이 활동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내일의 한국 조각의 기둥들에게 갈채를
까라라에서 활동하는 우리 나라의 조각 유학생들은 이곳의 아카데미에 학적을 올려놓고
조각활동을 하는데 조각은 작업의 특성상 낮에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거의
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런 관계로 유학생들은 집에서 보내주는 향토장학금만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고 그 생활은 매우 빡빡한 편이었다. 이곳의 유학생 한 가족이 쓰는 생활비는
120만원에서 150만원 사이라고 한다. 우리 나라의 조각가들과는 달리 미국이나 유럽의 이름
있고 여유 있는 조각가들은 이곳에 제법 번듯한 아틀리에나 작업실을 차려 놓고 여름철에
피서 겸 들러서 작업을 하는 등 여유 있는 생활을 하여 전 세계에서 몰려든 가난한 조각가
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모양이었다.
오채현씨와 조용태씨는 그들의 작업장을 보여 주었는데 선배와 함께 쓴다는 넓은 작업장
에는 이탈리아 개 한 마리가 혼자서 텅 빈 작업장을 지키고 있었다. 우람한 덩치에 비해 매
우 순박한 개였는데, 그 놈이 명물이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다름 아니라 그 개가 이탈리아
산임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사람들이 작업장에 접근하면 매우 맹렬하게 짖으며 사납게 군
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사람들을 만나면 꼬리를 흔들며 순한 양처럼 군다는 게 아닌가. 더욱
웃기는 것은 강아지 때부터 길러서 한국말로 명령을 하면 척척 알아듣고 그대로 순종하는데
이태리 말은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한단다. 그 소리에 우리는 한참 웃었다.
어쨌든 여러 가지로 어렵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이태리의 선진 조각기술을 배워 한국적
인 조각으로 승화시켜 보려는 그들의 노력은 눈물겨워 보인다. 최근엔 우리 나라에서도 건
축물을 지을 때 총 공사금액의 1퍼센트에 해당하는 액수만큼 조각 등의 예술품을 건축물에
설치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지만 그와 같은 조각품을 내는 것은 일부 몇 사람이 독점하고 있
는 형편이며 어렵게 공부하는 이들 유학생들에겐 전혀 차례가 오지 않는다고 한다. 소수의
몇 사람이 기회를 독점하고 있는 차별적인 상황에다가 더러는 외국 작품의 표절시비도 일어
나고 있는데, 많은 사람에게 다양하고 공정한 기회가 제공되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
되어 제대로 운영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2. 미켈란젤로의 포부가 숨쉬는 곳
저 산을 내가 한 번 조각해 봤으면
우리에게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까라라'는, 미켈란젤로가 '저 산 전체를 내가 직접 조각을
해봤으면 좋겠다'고 열망했다는 해발 천이백 미터의 '아푸아나 산맥'이 자리잡고 있고, 마그
로 샛강이 흐르는 매우 살기 좋은 고장이다. 로마시대에는 황제의 여동생이 이곳에 거주하
였고, 역사적인 유적지로는 로마의 콜로세움과 거의 흡사한 조그만 콜로세움을 비롯하여 많
은 건축물들이 있다.
옛날에 이곳에는 대리석 광산에 동원되었던 노예들만이 집단 거주를 했다고 한다. 지금은
도로가 잘 포장되어 있는데도 경사가 워낙 심하고 커브가 많아 아슬아슬한 느낌을 받을 만
큼 험준한 산세를 보이는 대리석 광산촌이다. 아푸아나 산맥의 그 험한 비탈에서 우마차로
돌을 실어 내렸다고 하니 당시의 노예들이 얼마나 힘이 들었으며 얼마나 비참한 생활을 했
겠는지 절로 짐작이 간다. 지금 살고 있는 주민 중에는 당시 노예들의 후손이 상당수 있다
고 한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자기 가족중심의 철저한 개인주의인 이탈리아인들의 특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 자신의 뿌리나 가문의 내력은 별로 따지지 않고 조상에 대해선 관심조
차 없어 컴플렉스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조상으로 모시는 건 아버지뿐이며 할아버지
의 시체도 화장을 하여 30년만 보관하고 있다가 그 후에는 납골당에 뼛가루를 버려 버린다
니 웬지 정나미가 떨어지는 느낌이다.
그러나 대리석의 원산지이자 예술가들이 몰려있는 예술가의 고장답게 거리 곳곳에는 조각
품이 널려 있고, 다 낡은 허름한 집의 계단과 모든 바닥, 화장실까지도 대리석으로 치장할
만큼 대리석이 즐비해, 매우 흥미 있고 운치 있는 고장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고대부터 지
금까지 천년 이상 대리석을 캐어 왔는데 앞으로도 이천 년간은 더 파낼 수 있다니 부럽지
않을 수 없다. 대리석 광산 입구의 기념품점에서 예쁘고 작은 대리석으로 만든 공예품들이
지천으로 널려있는데 그 물건들을 매우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것도 이곳의 장점이다. 어쩌면
로마보다 더 이탈리아다운 곳이 이곳 '까라라'인지도 모르겠다.
3. 피사의 사탑과 피렌체
아드리아와 띠레니아, 의좋게 지내시구려
이탈리아 반도의 오른쪽을 아드리아라고 하고 왼편을 띠레니아라고 부른다. 이탈리아에는
남쪽과 북쪽 지역간에는 엄청난 지역감정이 있다고 한다. 우리 나라의 지역감정은 상대(?)
도 안 된다나? 북쪽 사람들은 대체로 부유하고 일을 열심히 하는 데 비해 남쪽 사람들은 대
체로 게으르고 가난하다고 한다. 왜곡된 편견일는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들 했다. 어쨌든 남
부 사람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으며, 그러다 보니 잘살아 보기 위한 교육열만큼은 남다른 편
인데 머리는 좋아서 보스기질이 많은 편이란다. 마피아가 대체적으로 남쪽 사람들로 구성된
것이 좋은 예이다. 북쪽의 도시는 부유하며 안정되어 있고, 각종 범죄는 적은 편이지만 가난
이 범죄를 부른다는 말이 있듯이 남쪽은 상황이 다르다. 북부 사람들이 차를 타고 남부에
가서 차를 길에 세워 놓을 때면 그건 자기 차가 아니라고 부정해야 할 정도이다. 남부에서
북부 사람이라고 했다가는 백발백중 털리기 때문이다. 창문의 유리를 깨거나 트렁크를 강제
로 열고 짐을 털어 가는 건 약과에 속하고 고급 차들은 전문 절도단에 의해 도난 당하는데
이런 차들은 대개 러시아나 동구권으로 팔려 간다고 한다.
기울어도 유명한 탑
우리가 도착했던 리보르노는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항구도시였다. 이탈리아의 북쪽에 위치
해 있으며 자유무역항으로써 때레니아 지역의 한 축을 이루고 있었는데 '피사의 사탑'으로
유명한 피사와 피렌체가 인접해 있었다. 둘쨋날, 우리는 한 무리의 생도 및 승조원들과 함께
이탈리아 해군에서 내 준 해군 버스를 타고 피사 관광에 나섰다. 해군의 연락장교가 우리를
안내했다. 피렌체를 또 들러야 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할당된 시간도 많지 않았지만 피사에
서의 볼거리는 피사의 사탑과 대성당뿐이다. 우리가 피사를 들렀을 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반침하 현상으로 인해 한때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올 만큼 많이 기울어졌던 피
사의 사탑이 최근에는 기울기를 멈추고 2.5센티미터 정도 복원되었다고 해서 화제가 되어
있었다. 학계의 고증을 거쳐 기울어진 사탑의 반대편에 무거운 납덩어리를 쌓아서 지반침하
현상을 막은 게 주효한 셈이었고, 공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4. 세계 제일을 지향하는 '이탈리아'
세계 제일 타이틀이 많은 나라
이탈리아는 어느 나라보다도 세계 제일이라는 타이틀이 많은 나라이다. 또 이탈리아의 세
계 일류는 각 도시별로 특장점이 있다는 데 있다. 피아트 본사가 있는 '토리노'는 자동차의
메카이고, 빠엔자는 도자기의 도시이며, 로마,, 밀라노는 성악으로 유명한데, 특히 증권거래
소가 있는 밀라노는 패션의 도시이자 이탈리아의 경제의 중심을 이루는 도시이고, 로마는
행정 관광 중심의 도시이다. 로마에는 우리 나라의 성악가들이 사천여 명이 유학을 와 있는
데 성악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로마를 다녀와야 인정을 받을 수 있을 정도라니 로마야말
로 세계 성악의 중심도시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렇듯 이탈리아는 각 도시별로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 플로렌스 지역의 중심도시인 '피렌체'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가죽제품으로
유명하다. 어디 그뿐인가? '피렌체'를 둘러본 사람은 로마에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할 정도
로 피렌체는 번성했던 옛 로마의 문화유적을 많이 보존하고 있으며 도시의 중후한 정경은
옛 로마의 영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듯하다. "피렌체에 가시면 가죽신발이나 하나 사십시오.
피렌체의 가죽제품은 값이 싸고 질이 좋습니다." 유학생의 권고가 있어 가죽제품을 유심히
살펴보았더니 확실히 로마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질이 좋아 보인다. 그렇다고 멀쩡하게 신고
있는 '메이드 인 코리아' 구두를 내다 버릴 수는 없는 노릇. 아깝지만 유학생의 권고는 다음
으로 미루었다. '약간 비싼 게 흠이지만 한국산도 이탈리아산 못지 않다우.'
없는 물건이 없는 피렌체 골목시장
피렌체에서 쇼핑을 하려면 반드시 골목시장을 찾아가야 한다. 도시의 중심부에 우리 나라
의 남대문 시장처럼 상권이 형성되어 있는데 가격이 상당히 저렴한 편이고 없는 물건이 없
다. 그리고 물건을 고른 다음에는 흥정을 잘해야 한다. 25퍼센트는 기본으로 깎을 수 있고
잘만 하면 그 이하로도 살수가 있다. 특히 고가의 가죽제품일수록 많이 깎을 수 있는데, 흥
정을 하다가 가격이 맞지 않는다면 돌아설 때 소매를 붙잡으며 부른 사람은 더 깎아줄 여지
가 있는 상인이다. 더 이상 깎아줄 수 없으면 붙잡지 않는 건 우리네 상인들과 매한가지다.
5. 예술을 사랑하는 이탈리아의 국민
유혹의 로마관광
셋쨋날, 우리는 로마 단체 관광 길에 나섰다. 고속버스로 다섯 시간 반이나 걸리는 장거리
관광코스이다. 로마를 여러 번 가 본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광장과 트레비 분수,
그리고 바티칸 성당과 성시스티나 성당의 벽화가 다시 보고 싶어 나는 부득부득 버스에 올
라탔다. 벌써 세 번째의 관광이었다. 그런데도 마음은 소풍가는 아이처럼 설렌다. 로마의 향
수와 유혹은 그만큼 강렬한 것이다. 새벽 여섯 시에 리보르노 부두를 출발하여 동이 틀 무
렵엔 고속도로를 달렸다. 고속도로변에 펼쳐진 산천은 우리 나라와 어쩌면 그리도 흡사한지
다만 이탈리아에는 높은 산악지대가 별로 없고 평야가 많다는 점이 조금 달랐다. 우리 나라
와 엇비슷한 위도에 위치하고 있어 기후조건이 흡사하고 나무의 수종이나 산천의 생김새는
우리 나라와 거의 흡사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우리 나라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느낌이었다.
이탈리아는 도로망도 잘 정비되어 있는 편이다. 제노바, 밀라노, 로마, 나폴리 등의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를 볼 때마다 이대로 끝없이 달려봤으면 하는 충동이 불쑥불쑥 치밀었다. 그
러나 어쩔손가, 단체가 셋만 되면 따라가지 말라는 단체관광객의 신세인 것을. 어쨌거나 로
마에 도착하여 바티칸 성당에 도착하여 몇 년만에 성당을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로워진다. 그
런데 우리가 탄 4호 차에 배당된 가이드는 성악을 공부하러 온 유학생이라는데 오늘이 관광
안내라고는 처음 해보는 거란다 자꾸만 김이 샌다. 그리고 설명하는 내용도 내가 알고 있던
것과 어긋나는 부분이 많고, 설명에 확신이 없다. 솔직하게 처음이란 걸 밝히고 책을 봐 가
면서 설명을 하는 성의는 대단했지만 초보 가이드이고 보니 버스기사를 다루는 솜씨나 50명
에 달하는 인원을 통솔하면서 끌어가는 능력이 부족해서 인솔책임자인 홍 소령이 애를 많이
태웠다. 또 버스는 빈차로 시내를 돌기만 하고 우리는 엄청나게 많이 걸어 다니는 불편을
겪기도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로마는 몇 년 전과 변함이 없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영화
'로마의 휴일'의 무대였던 스페인광장의 계단이 수리 중이라 고즈넉이 계단에 앉아 '그레고
리 팩'과 '오드리 헵번'의 명연기를 되뇌어 볼 여유가 없었던 아쉬움을 제외하면 말이다. 로
마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일 년 간의 관광수입이 우리 나라 무역고의 총 수출액과
맞먹는다는 이탈리아. 국민소득 2만 달러로 선조를 잘 둔 덕에 등 따시고 배부르게 사는 그
후손들이 어찌 부럽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 게으른 후손들만큼은 우리의 마음에 별로 들지
않는다.
자동차 카세트를 손에 든 연인들
이탈리아 연인들이 데이트하는 모습을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광경이 있다. 공원 벤치에 앉
아 데이트하는 두 남녀의 손을 보면 자동차의 카세트를 하나씩 들고 있는 것이다. 즉, 집시
를 비롯한 자동차를 노리는 도둑들이 차의 카세트를 뽑아가기 때문에 차를 세울 때는 반드
시 카세트를 빼서 직접 들고 다니거나 아예 카세트를 달고 다니지 않는 게 이곳 사람들의
습관이다.
십 년 전에 로마를 찾아왔을 때도 그랬는데, 근 십 년이 다 되도록 이 모습이 변하지 않
으니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게 아닐까? 카세트를 노리는 도둑놈이나 그걸 빼들고 다
니는 사람이나, 그런 모습을 수수방관하는 경찰이나, 이 나라의 정부나 모두가 정상으로 보
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풍조는 로마뿐만이 아니라 유럽 전역으로 번져 있었다. 나중에 알
고 보니 프랑스를 비롯한 주변 대부분의 나라 사람들이 차에 카세트를 달고 있지 않았던 것
이다. 우리가 다녔던 여러 나라도 사정은 매우 비슷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나라의 치안상황
은 매우 양호하다는 느낌이다.
정열의 이탈리아여, 안녕히
3박 4일의 일정을 마치고 리보르노항을 출항하던 날, 매우 이색적인 진풍경이 벌어졌다.
부두에서 이탈리아 사람들 수 백 명이 우리들을 환송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실은 '천지
함'의 함상에서 군악대가 음악을 연주하자 이탈리아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들기 시작했고, 연
주가 한 곡 끝날 때마다 도열한 청중들은 열렬한 박수를 치는 게 아닌가. 때아닌 청중으로
인해서 신이 난 군악대는 계속 연주를 했고 관중은 점점 늘어났다. 그래서 부두에선 때아닌
즉석 송별연주회가 벌어졌던 것이다. 역시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르다. 이탈리아 사람
들에 대한 막연한 불신감이 어느 정도 씻겨지는 순간이었다. 오히려 음악에 열광적으로 호
응하는 그들의 정서에 부러움이 생길 정도였다.
리보르노에는 교민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쓸쓸한 출항이 될 줄 알았던 부두의 이별은 떠
들썩한 이별로 변하고 말았다. 이탈리아 환송객들이 열렬한 박수와 환송을 받으며 '천지함'
은 서서히 부두를 떠나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우리를 배웅하기 위해 까라라에서 달려와
손을 흔들어 주던 오채현씨가 이탈리아 사람들의 인파에 묻혀 오히려 잘 보이지 않았다. 그
들은 까만 점이 되어 서로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부두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6.'레미제라블' 장발장의 무대 '툴롱'
대포끼리의 발사 악수
군함외교의 공식은 예포발사로부터 시작된다. 역시 군함은 입항 전에 대포를 쏘고 들어가
야 제맛이 나는 것이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군항인 '툴롱'에 들어가기 전에 한국의 순항함대
는 예포를 발사했다. 예포발사에는 상대방 국가에 대한 예의도 있지만 들어가면서 대포를
다 쏘아버려 이젠 무기가 없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한국 해군함대는 프랑스에 입항하
면서 모두 21발씩 한프 양국간에 42발의 예포교환이 있었다. 역시 선진국이자 군사대국인
프랑스는 손님을 맞는 방식이 다르다. 진해를 떠나온 지 두 달 여 만에 예포발사 광경을 보
니 웬지 흐뭇하다.
프랑스 툴롱의 택시운전사
그런데 '툴롱' 시내에 들어가자마자 기분을 싹 잡치는 일이 발생했다. '툴롱' 시내와 지중
해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파롱산을 오르는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택시를 탔는데, 택시기
사가 환갑은 훨씬 지난 노인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누구인가? 우리야말로 노인을 공경하는
동방예의지국의 후손들이 아닌가. 황송한 마음으로 택시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했고, 팁까지
후하게 쳐서 택시를 돌려보냈다. 그런데 어렵쇼, 잔돈으로 동전 10프랑을 받았는데 나중에
다시 보니 10프랑이 아니라 이탈리아의 200리라짜리 동전이 아닌가. 10프랑은 우리 돈으로
1,500원이 넘는 금액인데 200리라는 우리의 100원짜리 동전에 불과했던 것이다.
제기랄, 첫날부터 멋지게 당했군. 나잇살깨나 잡순 노인네가 그 나이까지 일을 한다는 게
신기해서 존경스러웠는데 대뜸 '빌어먹을 영감탱이'라는 욕설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큰돈이 아닌데도 속았다는 느낌 때문에 기분이 잡치고 말았다. 그런 기분으로 시내를 둘러
보니 프랑스란 나라와 국민들이 이뻐 보일 리가 없고 모두 도둑놈들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
들의 조상들은 외국의 문화재를 무차별로 약탈해 간 해적들이긴 하지만 말이다.
'툴롱'은 소설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이 노예선을 타고 들락거리던 항구로 알려져 있는데
군항으로 유명한 도시였다. 군항과 인접한 민간부두에는 요트들이 즐비하게 정박해 있고, 부
두와 해안을 중심으로 상권이 발달해 있었다.
7.프랑스의 골칫덩이 '코르시카' 섬
프랑스 마피아의 본거지
대체로 항구라는 게 어느 나라나 비슷하기 마련이지만 '툴롱'의 경우는 경계가 무척 삼엄
한 편이었다. 기관단총을 든 무장군인이 군항 내의 곳곳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
고 보니 프랑스는 속으로 골병을 앓고 있었다. 프랑스가 당면한 골칫덩이는 '코르시카' 섬이
었다. 지리적으로 이태리에 인접해 있었고, 원래는 이탈리아의 영토였으나 1760년에 프랑스
의 왕족이 이탈리아에 돈을 주고 이 섬을 사들임으로써 프랑스의 소유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인구 20여 만명에 불과한 코르시카 주민들이 분리 독립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FLNC(코르시카 민족해방전선)라는 테러단체가 결성되면서 프랑스 전역에서
일년에 200여 건의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었다. 공항을 폭파하여
수많은 인명손상을 일으키는가 하면 몇 년 전에는 감옥을 습격하여 죄수들이 집단 탈출하는
난동이 벌어지기도 했고 '액상 프로방스'시의 유서 깊은 법원건물이 폭파되어 흉한 몰골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골칫덩이인 코르시카섬은 프랑스 마피아의 본거지로서 니스, 칸느, 툴롱, 마르세이
유 등의 '코트 다쥐르' 지역은 이들의 영향권에 들어 있다고 한다. 프랑스 당국에서도 '코르
시카 민족해방전선'과 마피아의 관련설에 의혹의 눈길을 던지고 있으나 확증이 없어 손을
대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프랑스에서도 마피아의 위력은 대단하다.
우선 프랑스에서는 길거리에서 자동판매기를 볼 수가 없다. 우리 나라나 다른 나라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자판기를 말이다. 왜 자판기가 없는가 알아보니 자판기를 법적으로 허용
하면 전국의 자판기는 금세 마피아의 소유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란다.
8. 지중해의 별천지 '코트 다쥐르' 생 트로페, 칸느, 앙티브, 니스, 모나코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 지중해 해안의 '코트 다쥐르'
둘쨋날, 우리는 유학생 김용채씨의 안내로 마피아와 프랑스 극우파가 창궐하고 있는 '코트
다쥐르'를 샅샅이 둘러 보는 행운을 가질 수 있었다. 왜 하필 행운일까? 첫날의 찝찝했던 기
분이 말끔히 가셔지는 환상적인 하루가 되었던 것이다. '코트 다쥐르'는 그만큼 우리에게 깊
은 인상을 남겨 주었다.
'코트 다쥐르'란 '툴롱'항을 기점으로 동쪽으로 펼쳐진 '생트로페', '칸느', '앙티브', '니스',
'모나코'를 경유하여 '이탈리아'로 이어지는 지중해 해안을 가르키는 말이다.
유럽 누드촌의 발생지
그 중에서도 세계적인 동물 애호가 '브리짓트 바르도'가 거주하는 '생트로페'는 유럽 누드
촌의 발생지로서 성 개방의 메카로 각광을 받고 있는 지역이었다. 여배우 '브리짓트 바르도'
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보신탕을 먹는다고 시비를 걸어 온 장본인으로 이곳에서는 엄청난
지명도를 얻고 있었으며 '생 트로페'를 이끌어 가는 저명 인사였다.
'칸느'는 영화제로도 유명하지만 칸느의 해변은 세계의 부호들이 몰려드는 너무나 환상적
인 해변이었다. 세계적인 부호들이 단 몇 시간의 리셉션에 수억 원을 펑펑 쓰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해변에는 최고급 호텔들이 즐비하게 늘어 서 있고, 해변의 금빛 모래사장엔 늘씬
늘씬한 여성들이 남들의 눈은 아랑곳없이 브래지어도 걸치지 않은 채 토플리스 차림으로 해
변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곳, 한 마디로 환상적인 분위기가 연출되는 곳이 바로 칸느였다.
피카소 박물관과 자갈해변 니스해변
칸느에서 20분 거리인 앙티브에는 피카소가 생전에 작업하던 피카소 박물관이 있었다. 어
렵게 물어물어 박물관을 찾아갔는데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옛날의 성채였다. 피카소가 말
년에 젊은 부인과 결혼한 후 고성을 구입하여 일년에 6개월 정도는 이곳에서 거주하며 작업
을 하던 곳이다.
피카소의 유품과 작업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볼 만했으며 피카소 작품을 활용한 엽서
나 그림의 복사본을 싸게 구입할 수도 있었다. 특히 이곳에서 피카소의 도자기를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인접한 니스 해변은 누드촌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니스해변은 모래사장이
없고 자갈뿐이다. 니스 앞에 위치한 '르방' 섬이 바로 나체주의자들의 천국인 나체 해수욕장
이다.
극단은 결국 외면당해
니스는 '코트 다쥐르' 지역에선 가장 큰 도시의 하나인데 프랑스의 극우파인 민족전선당의
발생지이자 근거지이기도 하다. 실제로 '툴롱', '칸느', '니스'는 극우파 시장이 집권을 하고
있을 정도로 휴양도시인 이곳은 극우파들이 드센 지역이다. 모두 살 만한 부유층들만 몰려
있다 보니까 못사는 외국인들은 눈에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극단적인 자기 이익만을 내세우는 극우파들이 득세를 하자 이곳 '코트 다쥐르'에
자리를 잡고 있던 작가 등 예술가들이 이 지역을 떠나는 추세라고 한다. 그런 현상을 보면
어떤 정치형태가 결코 인민을 평화롭고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는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
프랑스는 최근 들어 높은 실업률과 심각한 불경기에 시달리고 있는데 최근 시라크 정권의
극우파 내무장관은 근본적인 원인 해결을 할 생각은 않고 1년에 20만 명씩 외국인을 출국시
키겠다고 공언을 하고 있다. 프랑스의 정신인 자유, 평등, 박애정신은 과연 살아있는지 의심
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내무장관을 계속 기용하고 있고, 핵실험을 계속하고 있는 시라크
정권은 세계적으로 지탄을 받고 있지만 프랑스 국내에서의 인기도 형편없이 떨어지고 있다
고 한다.
카지노 수입으로 운영하는 나라, 모나코
'코트 다쥐르'를 얘기하면서 세계적인 휴양명소이자 도박의 도시인 소공국 모나코를 빠뜨
릴 수 없다. 모나코의 면적은 겨우 1.49킬로미터로 바티칸 시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초미니 나라이다. 나라가 달라도 국경도 없으며 프랑스 화폐와 프랑스어가 그대로 통
용이 되며 국경을 넘는 기분도 나지 않는다. 니스에서 해안도로를 한참 달리다 보면 어느새
모나코왕국에 들어 와 있는 것이다. 모나코에선 왕궁이 있는 모나코시와 카지노로 유명한
고급휴양지인 몬테카를로시가 볼 만하다. 나라 전체가 매우 깨끗하며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
하는 수족관인 해양박물관도 빠뜨릴 수 없는 볼거리이다.
불운하게도 우리는 이 아름다운 나라에 밤늦게 도착하여 카지노를 들러보는 기회밖에 갖
지 못했다. 그리고 카지노에 300프랑을 집어넣어 신고식을 했는데, 이 나라는 카지노의 수입
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국민들의 세금이 전혀 없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도 모나코 왕국
의 국고에 일조를 한 셈이다. 다음에 다시 들를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잭폿을 터뜨리겠다는
각오를 다지면서 다시 '툴롱'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9. 프랑스의 자국 이기주의
외국인은 가라, 푸대접
어쨌든 '코트 다쥐르'는 한 마디로 환상적인 별천지였다. '툴롱'에서 해안도로를 끼고 생
트로페와 칸느, 그리고 앙티브의 발로리스에 있는 피카소 미술관, 니스, 모나코로 이어지는
호나상의 드라이브 코스는 좀처럼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 같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툴롱', '칸느', '니스' 등의 휴양지들은 극우파 시장이 집권하
고 있으며 외국인들에게는 배타적이라는 점이다. 이 아름다운 고장을 그들만이 독점하려는
심보는 괘씸하기 그지없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한국이나 일본에 대한 시각만큼은 그리 나
쁘지 않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일본인이 받는 대접을 보면
질투가 날 지경이다. 유럽사람들은 일본인을 무척 존경하는 눈치이다. 언젠가 우리도 그런
시절이 오겠지만 당장은 분발해야겠다는 마음뿐이다. 우리의 국력이 커지면 당연히 받을 수
있는 대접이니까 말이다. 아직도 우리 나라의 유학생들은 매우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프랑
스의 사회가 제도적으로 외국인에게 불리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 있는 외국인들
은 샹드본 신세를 면치 못한다.
샹드본이란 하녀들이 쓰는 방을 가르키는 말인데, 주인은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지만 샹드
본을 쓰는 사람은 바깥에서 비상계단을 이용하여 집안을 나다녀야 하는 것이다. 옛날 노예
들이 쓰던 그런 방을 오늘날 우리의 유학생들이 쓰고 있는 셈이다. 과연 언제나 노예상태에
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런데 프랑스 극우파들의 호언대로 과거에 그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의
이민족 20여 만명을 추방한다면, 알베리 등 북아프리카 출신들이 하는 일이 하녀나 하인 등
이 할 허드렛 잡일인데, 그 사람들을 쫒아 내고 그 일을 맡아 할 프랑스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는지 그것도 궁금하다. 마치 종로에서 뺨맞고 동대문에서 눈을 흘기는 것 같아 눈꼴사
납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나라 프랑스는 이탈리아와 함께 세계 최대의 관광
도시이다. 아무리 푸대접해도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어찌 할 손가. 그러다 보니 그들의 코만
자꾸 높아지는 느낌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다녀본 여러 나라 중에서 프랑스 대사관처럼 고초를 겪는 곳은 없어 보
였다. 공적으로 혹은 사적으로 파리를 방문하는 정부의 고위공직자들만을 대접하는데도 대
사관의 손이 딸리는 형편이란다. 국익 외교는 뒷전인 채 말이다.
돌아오는 밤거리
모나코에서 '툴롱'으로 돌아올 때는 고속도로를 달렸는데 고속도로망도 매우 훌륭했고, 야
경 또한 일품이었다. 교통문제에 관한 한 프랑스는 흠잡을 데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리고
프랑스에는 우리 나라처럼 네모 반듯한 사거리 교차로가 없는 것도 특이하다. 프랑스의 교
차로는 모두 로터리 식이다. 어떤 사거리이든 로터리 형태의 교차로를 거쳐 자신이 가고 싶
은 방향으로 가는데 신호등도 없이 잘도 빠져나간다. 교통소통도 매우 원활하고 신호등이
별로 없다는 게 무척 마음에 든다. 우리도 한 번 배워볼 만한 제도가 아닐까 싶다.
10. 예술의 고향을 찾아서
예술의 고장에 발을 디디고
셋쨋날, '천지함'은 먼저 출항을 했다. 군수물자 보급선인 '천지함'은 '툴롱'항에서 기름을
공급받아야 했던 것이다. 진해에서 한 번 주입한 기름으로 이곳까지 왔는데 여기서 다시 한
번 더 공급을 받으면 세 척의 군함이 다시 진해까지 돌아갈 수 있다고 한다. 예전에 군수지
원함이 따라오지 않을 때는 전투함들이 매 기항지마다 기름을 넣느라고 법썩을 떨었다는데
지금은 매우 편해진 셈이다.
어쨌든 '천지함'이 먼저 출항을 하는 바람에 소설가 황충상 선생과 나는 각각 '청주함'과
'부산함'으로 갈아탔다. '액상 프로방스'와 '마르세이유'를 보고 싶은 욕심에 사령관의 허가를
받아 '부산함'으로 옮겼던 것이다.
짐을 옮겨 놓고 김용채씨와 함께 물과 예술의 도시 '액상 프로방스'로 향했다. 중간에 '오
바뉴'란 도시를 잠시 들렀는데, 그곳에는 '마르셀빠뇰'의 기념관이 있었다. '마농의 샘', '환희'
의 작가이자 프랑스 신영화의 개척자로 불리는 '빠뇰'은 '오바뉴' 시민들의 영웅이었다. 올해
가 '빠뇰' 탄생 100주년이라고 하여 오바뉴 시에선 대대적인 행사를 하고 있었는데 시에서
기념관을 지어 무료개방하며 '빠뇰'을 기리고 있었다.
알베르 까뮈의 무덤 옆에서
그리고 '액상 프로방스'에서 북쪽으로 30여 킬로미터를 가니 '루즈 마랭'이란 마을의 공동
묘지에 '알베르 까뮈'의 무덤이 있다. '루즈 마랭'이란 이곳의 현지 말로 '뚱뚱한 수병' 이란
뜻이란다. 마을의 유래는 잘 모르겠지만 '까뮈'의 무덤을 보는 순간, 감회가 새로웠다. '이방
인'이란 소설로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대 문호. 어릴 적에 그의 작품을 읽으며 문학소
년의 꿈을 키워왔던 당사자가 아닌가. 당장이라도 무덤 속의 그와 몇 마디 마음 속의 말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선생님, 당신께서 이 세상에 남긴 업적에 비해 이 자리에 누워 계신 모습은 너무나 초라
합니다. 정말 인간사 새옹지마란 말이 문득 생각납니다.' '여보게, 젊은이. 세상살이라는 게
덧없는 거라네. 인생무상이라지 않는가? 뭘 더 바라는가? 나를 보게. 죽고 나면 한 줌의 흙
으로 남지 않는가. 아옹다옹하지 말게.'
까뮈의 묘에는 '백리향'이란 잡초가 마치 나를 나무라듯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그 옆에
누워 있는 부인의 묘에는 '라벤드'라는 잡초가 향기를 그윽히 풍기고 있었다. 그 옆의 수많
은 무덤들은 모두 비싼 대리석과 조각 작품들로 예쁘게 치장되어 있는데 유독 '까뮈' 부부의
묘소만이 흙과 잡초들로 뒤덮여 있었다. '까뮈'가 죽기 전에 유언으로 무덤을 대리석으로 만
들지 말고 흙으로 덮어 달라고 했다는데 그 부인도 남편의 유지를 받들어 자신의 무덤도 흙
으로 덮고 있었다.
까뮈를 찾아서
마을로 내려 온 우리는 '까뮈'의 생가를 찾아갔다. 생가에는 딸이 살고 있다고 했는데, 외
부인들과는 접촉을 삼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밑져 봐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우리는 현관문을
두드렸고, 까뮈의 사위 되는 사람이 나왔다. 까뮈의 사위는 사진을 함께 찍고 싶다는 우리의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였고, 사진을 찍은 후에 우리는 다시 마을로 내려왔다. 생전에 까뮈가
집필작업을 했다는 그 마을은 매우 작고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그 마을의 스낵 바에서 음료
수를 한 잔씩 마시며 우리는 그 마을의 운치를 오래도록 즐겼다. 다행히 우리를 안내하는
김용채씨도 불문학이 전공이라 글을 쓰는 우리와는 정서가 거의 비슷했다.
11. 물과 예술의 도시 '엑스'
예술의 고장, 액상 프로방스
까뮈를 만나고 온 그날 밤, '액상' 시내의 '파스퇴르 호텔'이라는 허름한 호텔에서 일박을
한 우리는 다음날 아침부터 본격적인 '액상 프로방스'의 구경에 나섰다. 이곳 사람들은 '액상
프로방스'를 줄여서 '엑스'라고 부른다.
'엑스'는 인구 13만에 유동인구가5만 명쯤 되는 조그만 중소도시였다. 물과 에술의 도시로
불리우는 '엑스'는 그 이름처럼 일년 내내 예술축제가 끊이지 않는 도시였다. 더불어 예술에
얽힌 갖가지 유서 깊은 사연들이 많은 고장이기도 하다. 유명한 화가 폴 세잔느가 바로 '엑
스' 출신이며 생전에 그가 쓰던 화실이 지금은 기념관으로 변해 있었다. 또 우리에게 '사디
즘'으로 알려진 사디즘의 창시자인 '사드'가 살던 성도 바로 '엑스' 부근에 그대로 남아 있다.
'엑스'에는 한국인이 100여 명 정도 있고, 50여 명의 유학생들이 있다. 하지만 서로의 생활
이 각박하다 보니 상호 잦은 교류는 없는 눈치였다.
'엑스'의 번화가에서 1782년에 생긴 '드 갸르송(두 소년)이라는 이백 년 된 가게에서 '카페
오레' 한 잔씩을 마신 것도 매우 인상에 남는다. 이백 년 전 이곳에서 일하던 두 사람이 전
주인으로부터 가게를 인수하여 이름을 바꾼 후 오늘날까지 그대로 유지되어 오는 가게라고
한다.
없는 게 없는 벼룩시장
'엑스'에서 본 것 중에서 또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벼룩시장이었다. 우리의 5일장처럼 프랑
스에는 각 도시마다 조금씩 틀리지만 벼룩시장이 선다고 한다. '엑스'에는 매주 화, 목, 토요
일에 벼룩시장이 열리는데, 이 때는 온갖 잡동사니같은 중고품이 몰려나온다.
실제로 우리가 본 벼룩시장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우리 나라 같으면 오래 전에 폐기처분
했을 중세시대의 고물 망원경에서부터 입던 옷가지까지 그야말로 없는 것이 없었고, 골동품
적인 가치가 있는 것도 상당수 있었다. 골동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벼룩시장을 잘
뒤지면 좋은 물건을 상당히 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벼룩시장은 프랑스 전 도시에서 열리
지 않는 곳이 없다. 툭하면 잘 내다버리는 우리의 습관을 되돌아보게 하는 좋은 기회였다.
노틀담 성당에서 내려다본 세상
배의 출항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다시 '툴롱' 항구로 돌아오기 전에 마르세이유를 잠시 들렀
다. 그리스 식민지시대부터 있었다는 이천 오백 년 이상 되었다는 구부두에서 수호 성모 성
당인 노틀담 성당이 있는 언덕에 올라가 보니 마르세이유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멀
리 부두 앞에는 소설 몬케크리스토 백작의 무댕니 이프섬과 샤또 이프(이프 성)가 한눈에
굽어보였다.
그런데 우리가 높은 언덕에 올라가 있을 무렵, 때 아니게 '미스트랄' 바람이 불어오기 시
작했다. 주로 3월달에 불어오는 지중해성 계절풍이라는 '미스트랄' 바람이 별안간 불어왔지
만 이 바람으로 지독한 곤욕을 치를 줄은 전혀 짐작도 하지 못한 채 우리는 길을 재촉해서
'툴롱'의 부두로 돌아왔다. 시간에 쫓겨 우리를 안내해 주느라 고생을 한 김용채씨에게 변변
한 대접도 못한 채 말이다.
프랑스 현지 언어- 프랑스어
안녕하세요?:봉쥬르 감사합니다:메르시 보꾸 얼마입니까?:꽁비엥 계산서:아디시용 부탁(플
리이즈):실부쁠레 어디입니까?:우? 예스:위 아닙니다:농 남자 부를 때:무슈 여자 부를 때:마
드모아젤 기혼녀:마담 빨리:빗트 실례합니다:빠르동(뭐라구요?) 이것:쓰시 저것:쓸라 어디로
갑니까?:우 옹바? 커피:까페 쥬스:쥐 오렌지쥬스:쥐 도랑즈 파인애플쥬스:쥐 다나나 사과쥬
스:쥐 드쁨 하나:으(콧소리) 둘:드 화장실:뚜알렛드 물:로
12. 바람의 늪지대, '지브랄타 해협'
초고속 열차도 쓰러뜨리는 바람
사하라 사막에 '할라스 열풍'이 있다면, 지중해에는 '미스트랄 바람'이 있다. '툴롱'을 떠나
오는 날, 불운하게도 독특한 지중해성 바람인 '미스트랄 바람'이 불어 제꼈다. 최고시속 150
킬로미터를 자랑하며 달리는 화물열차를 자빠뜨린 화려한 경력을 가진 세찬 바람이다. 이
무시무시한 미스트랄 바람은 원래 매년 3월에 분다는데 이번엔 어찌된 영문인지 때 아니게
불어닥친 것이다.
그러나 이 지역은 원래 바람이 많은 곳인지도 몰랐다. 지브랄타 해협을 통과할 때 스페인
쪽 해안의 높은 산악지대에 대단위로 설치된 풍력발전소가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대충 세어 봐도 백 개는 확실히 넘는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풍력발전소를 능가
하는 규모로 보였다.
악몽의 바람멀미
바람의 늪지대로 들어서던 바로 그 날, 공교롭게도 나는 '천지함'에서 '부산함'으로 옮겨
탔다. 전투함도 한 번은 타 봐야 한다는 사령관님의 배려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필이면
'미스트랄 바람'이 부는 날 1만 톤급의 '천지함'에서 1800톤의 전투함으로 옮겨 탔으니 엄청
난 악운이었다. 으···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나는 '미스트랄 바람'의 최대 피해자였다. 속이 울렁거려서 저녁
도 먹지 못하고 고픈 배를 움켜쥐고 침대에 누워 있는데 심한 파도로 인해 몸이 허공으로
일미터씩은 붕붕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결국 창피한 노릇이지만 이번 항해를 시작한 지 두
달여 만에 처음으로 의무실로 실려가서 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아마 심한 파도가 하루만 더
계속되었다면 링거 액까지 맞아야 하는 사태가 생길지도 몰랐다.
다행히 둘쨋날에는 바람이 약해지고 파도가 심하지 않아서 견딜만 했지만 말이다. 다행스
러운 일을 또 꼽자면, 내가 다시 '부산함'으로 옮겨 타는 바람에 생일을 두 번이나 찾아먹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했다는 것이다. 흐흐흐.
배 위의 달빛 파티
'천지함'에서 생일을 맞은 추석 다음날, 사관실에서 사령관과 함장, 그리고 여러 참모들의
축하를 받으며 샴페인을 터뜨렸고 생일 선물까지 받았었는데, '부산함'에 옮겨 타니까 김용
옥 함장께서 그 동안 못 해준 승조원들의 생일잔치를 한꺼번에 연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생일을 미리 찾아 먹어서 해당사항이 없다고 부득부득 우겨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부산함'에는 한국을 떠나온 이후 오늘까지 생일을 찾아 먹지 못한 승조원들이 수십 명은
족히 되었다. 그 많은 인원들 틈에 끼인 채 군함의 후갑판 위에서 파티를 열었는데 매우 운
치 있는 행사였다. 달리는 군함 위에서 교교한 달빛을 받으며 '앗싸 노래방'을 틀어놓고 쿵
짝쿵짝 흥겨운 노래에 심취해 있는 광경은 생각만 해도 그럴 듯하지 않은가. 앗싸!
13.추억의 '카사블랑카'
하얀 집, 카사블랑카
50년대 추억의 명화 '카사블랑카'로 유명한 도시. 바람의 늪지대 지브랄타 해협을 건너 사
흘 만에 모로코에 도착하였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과 고역을 치른 끝에 당도한 곳이어서 내
게 '카사블랑카'의 첫 이미지는 그대로 구세주처럼 느껴졌다.
'하얀 집'이란 뜻을 지닌 그 이름만큼이나 카사블랑카에는 하얀 집들이 많았다. 카사블랑
카에서는 건축허가를 낼 때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흰색으로 집을 지어야 한다고 한다. 또
카사블랑카의 인구는 350만으로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최대의 항구도시이기도 하다. 카사
블랑카 시가지의 햐얀 집들로 줄지어진 거리거리들이 퍽 인상적이었다.
모로코 리포트
2,600만 명의 인구와 우리 나라의 2배에 달하는 면적을 가지고 있는 모로코 왕국. 인종은
아랍인(60%), 베르베르인(36%), 소수 흑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기원 전 11세기경 페니키아
인, 카르타고인이 해안지방에 정착하면서 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서기 1세기에는
로마제국에 의해 북부 해안지방을 지배당했고, 15세기에는 스페인에서 쫓겨 온 유태인이 아
프리카 북부에 정착했다. 그래서인지 유태인을 배격하는 다른 회교국과는 달리 모로코에선
유태인을 박대하지 않는다.
1520년에는 싸드왕조가 수립되었고, 1912년 프랑스의 보호령이후 본격적인 근대도시로 개
발되기 시작했으며, 1956년 일방적으로 독립선언을 하고 독립을 할 때까지 프랑스인들에 의
해 개발되었다. 남 북한 동시 수교국인 모로코는 우리 나라와 1962년에 외교관계를 수립했
는데 한국의 유엔가입시 제4,5,6차 비동맹회의에서 우리 나라를 지지하고 북한 결의안에는
기권으로 유보적 태도를 보여 우리 나라와 관계 강화에 주력하고 있는 나라이다. 북한은 모
로코에 접근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1973년에 모로코와 분쟁중인 '폴리사리오'를
'사하라 아랍민주공화국'으로 승인하는 바람에 폴리사리오와 알제리에 밀착한 적대국으로 간
주되어 냉랭한 관계가 되었다고 한다.
여자에게 윙크해도 되는 이슬람국가
모로코는 이슬람국가 중에서 가장 개방적인 나라이다. 거리의 여자들은 거의 챠도르를 쓰
지 않고 있고, 얼굴을 가리고 있는 여자를 구경하기가 오히려 힘들 정도이다. 여자들도 외국
인이나 남자들을 스스럼없이 대화하며 만나기도 한다. 아직은 조심해야 할 부분도 많지만
여자와 눈만 마주쳐도 큰일나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실제로 버스를 타고 수도 라바트로 가는 길에 길을 걸어가는 여학생들에게 윙크를 해보았
더니 활짝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주었다. 처음엔 이슬람국가라 하여 은근히 걱정을 했었는데,
도착하고 보니 유럽의 어느 나라와 별로 다를 바 없는 분위기이다. 또 이 나라의 국민성은
인사성이 밝아 처음 만난 사람도 십 년 지기처럼 대해 준다. 술집에서 처음 본 사람도 서로
악수하면 금방 친구가 된다.
14. 모로코 모로코
모로코와 우리 사이
모로코에 사는 우리의 교민은 90명 미만으로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특이한 것은 이 나
라의 한인회 회장이 모로코 왕국 영빈관의 총책임자로 있으며 현 국왕 하산 2세의 총애를
듬뿍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 한국인을 왕궁 영빈관의 책임자로 임명했을까? 궁금해서 물어 보았더니 모로코 사람은
게으르고 책임감이 없어서 한국인을 중요한 직책에 등용해서 쓴다는 것이다. 모로코는 우리
의 해군이 처음 기항하는 곳이었는데 모로코 해군측에선 우리 해군을 접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주었다.
카사블랑카 부두에 도착한 첫날, 사령관님 이하 지휘부들이 수도 라바트에 있는 대사관저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승용차와 버스로 이동을 하는데 모로코 해군측에선 교통신호도 무시
한채 도로를 멋대로 통제하며 마구 내달렸던 것이다.
우리 나라처럼 계획적인 통제를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면서 위험하고 무식한 방법으로
통제를 하는 그들이 안쓰러웠지만 최고의 국빈으로 대접해 주려는 그들의 성의가 대단해서
감동스럽기도 했다.
대사관저는 매우 크고 멋있었다. 김동호 대사는 우리 고나저가 가격은 싸게 구입했지만
미국대사관보다 크다고 자랑을 했다. 미국의 외교관들이 대사관저를 와 보면 부러워한단다.
우리 나라의 영토로 인정받는 대사관과 관저가 크고 좋은 데 나쁠 일은 없다. 대사관저에
선 국경일마다, 또는 외교적으로 외국의 외교관들을 초청하여 리셉션을 많이 열어야 하기
때문에 크고 웅장할수록 좋을 듯 싶었다.
우리 국력 과시한 해군의 군함외교
우리가 카사블랑카 부두에 도착한 첫날이 마침 우리의 국경일인 10월 1일 국군의 날이었
다. 그래서 10월 2일의 함상 리셉션은 국군의 날과 개천절을 기념하여 각국 외교관들을 초
청하여 대사관 주최의 대대적인 리셉션이 개최되었다. 이 자리에는 주재국 모로코의 주지사,
시장, 해사교장 외 100여 명이 참석했고, 미국대사를 비롯한 각국의 대사, 무관, 외교관 등
160여 명, 교민 50여 명이 참석하여 성황리에 열렸다.
리셉션은 우리가 정박하는 항구마다 공식적으로 열고 있고, 대부분이 교민을 위로하기 위
한 자리였으나 이번의 리셉션은 그 성격이 조금 달랐다. 리셉션장에서 있었던 사물놀이단의
공연과 상지국 수병의 가곡은 각국 외교관들의 열렬한 찬사를 받았으며, 그렇게 훌륭한 공
연을 사람들이 해군수병이라는 사실에 또한 놀라는 눈치였다. 리렙션에 참석했던 일본대사
는 대사관에서 3년 걸려서 이루어질 일을 한국해군이 단 사흘 방문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면
서 한국대사가 부럽다는 말을 연신 늘어놓았다.
이번의 모로코 첫 방문에서 한국해군은 모로코 해군 및 세계각국의 외교관과 주요인사들
에게 확실한 인식을 심어놓았다. 그들 모두는 말로만 듣던 한국의 발전상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기회였다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고, 모로코에 사는 교민들에겐 강한 자부심을 심어
주었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우리의 군 발전상의 홍보와 군함외교의 성과를 확실히 거두
고, 군사외교적 입지국축을 단단히 했다는 데 이번 모로코 첫 방문의 가장 큰 소득이 있었
다.
15. '카사블랑카'여, 영원하라
5억 년 전 화석 파는 자유시장
카사블랑카에 온 둘쨋날 오전, 우리는 이곳에서 '말시 송트르'라고 부르는 자유시장을 찾
아 나섰다. 이유는 이곳의 사하라 사막에서 발굴되고 있다는 화석을 사기 위해서였다. 국영
토산품점에서도 화석을 팔고 있기는 했지만 가격이 비싸고 종류가 다양하지 못하기 때문에
화석 전문상가인 자유시장을 찾은 것이다.
자유시장에는 다기다양한 화석들이 있었고, 과연 5억 년 전의 갑충류가 들어 있는 화석들
을 싼값에 판매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 나라를 거치면서 단련된 우리는 갈고 닦은 실력으
로 그나마의 가격도 무참하게 깎아서 화석 몇 개씩을 구입하고 돌아왔다. 이곳에서 헐값에
팔리는 화석들이 미국 마이애미에서는 엄청난 고가로 팔리고 있다고 했다.
잉그리드 버그만과 한 잔 술을
그 다음에 우리는 모하메드 5세 광장으로 달려갔다. 현 국왕 모하메드 5세의 이름을 딴
이 광장은 '카사블랑카'의 중심부에 있으며 이 도시의 심장부였다. 그러나 우리의 첫 번째
목표는 광장에 인접해 있는 하이야트 호텔이었다.
호텔의 현관 왼편으로 '카사블랑카 바'가 자리잡고 있었다. 과연 소문에서 듣던 그대로 '험
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의 얼굴이 들어 있는 대형포스터가 우리의 시야를 압도했
다. 50년대의 영화 '카사블랑카'는 미국의 캘리포니아에서 촬영되었다는데 이곳 하이야트 호
텔에서 그 영화의 소품들을 옮겨오고 당시의 무대를 그대로 재현해 놓았던 것이다. 피아노
연주자 샘의 피아노 음악이 그대로 들려올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누가 한국 관광
객 아니랄까 봐 영화 속에 나오는 피아노를 배경으로 증명 사진부터 한 방씩 찍었다.
'트로이의 목마' 후예들이 사는 낙원
기원 전 11세기 경, 우리에게 '트로이의 목마'로 알려진 카르타고인들이 해안지방에 정착
하면서 건설된 모로코는 회교왕정국가이면서도 여타 회교국과는 달리 매우 자유로운 분위기
에다 볼거리도 많고 물가도 싼 편이어서 관광객들에겐 낙원이나 진배없었다.
이곳 사람들이 '마이애미 해변'이라고 부르는 해변에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해변을 끼고 호텔과 모텔들이 집중적으로 들어서 있어 이 나라 사람들이 관광객을 끌어들이
기 위해 어느 정도로 노력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실제로 여름시즌
에는 북아프리카의 밝은 햇빛과 지중해의 바다를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이 지역은 발디딜 틈
이 없다고 한다.
세계에 없는 곳이 없다는 '맥도날드 햄버거'가 유일하게 발을 붙이지 못한 곳이 바로 북아
프리카 지역이고, 얼마 전에 북아프리카에선 유일하게 맥도날드 햄버거가 문을 열었는데 그
상점이 바로 이 마이애미 해변에 있었다.
이백 미터 첨탑의 회교사원
항구에서 서쪽으로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하산 2세 모스크도 볼거리 중의 하나였다. 약
7년 간의 공사 끝에 1994년 완성된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회교사원인데 동시에 2만여 명이
예배를 볼 수 있는 본 사원과 8만 명의 수용할 수 있는 광장, 이백 미터 높이의 첨탑으로
구성된 어마어마한 사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볼거리는 내부장식이었다. 순수 모로코식
으로 장식된 내부장식을 위해 3,300명에 달하는 전국 공예가들이 동원되어 완성시켰다고 하
는데 아라베스크 문화가 가미된 모로코의 예술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흥미 있는 기회였다.
카사블랑카여, 영원하라
모로코에서의 추억 중에 한 가지 특별한 것이 있다. 그것은 모로코 여자와 얘기를 나누어
보았다는 사실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주눅이 든 우리는 이슬람권의 여자와는 평생 말 한
마디 못 붙여볼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이곳에선 그게 가능했던 것이다. 카사블랑카 부두 정
문 앞에 제법 큰 바가 있었는데 밤 11시부터 새벽 3시까지 영업을 하는 바였다.
카사블랑카를 출항하기 전날 밤, '부산함' 함장과 함께 우연히 그 바에 들렀는데 제법 분
위기가 좋은 바였다. 밤에는 특별히 갈곳이 없는 곳이다 보니 그 바에는 우리 해군 순항분
대의 참모들 여럿이 미리 와 있었다.
가수가 나와서 노래도 부르고 곡예와 비슷한 쇼를 하는 바였는데, 노래를 하는 가수와 우
연히 합석을 하게 되었다. '리자'라고 자기 소개를 한 그녀는 자기 애인의 이름은 '지미'라며
애인자랑도 했다.
모로코 술집의 특색은 여자와 애기를 해도 팁이 없는 반면 술값이 조금 비싼 편이었다.
버드와이저 맥주 한 병이 우리 돈으로 팔천 원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여자가 먹는 쥬
스나 술은 팁 대신이라서인지 만 원 정도를 받았다.
밤무대의 가수였지만 '리자'는 영어도 제법 잘했고, 서로가 서툰 영어지만 의사소통은 가
능했다. 이슬람권의 여자와 얘기를 나눴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카사블랑카의 그날은 황홀한
밤이었다. 카사블랑카. 비록 경제사정은 우리 나라의 70년대 수준에 불과하나 여러모로 매력
이 있는 도시임에는 틀림이 없다. 카사블랑카여, 영원하라.
16. 원양어업의 전진기지, 스페인의 '라스팔마스'
눈물 콧물 뒤섞인 환영의 뜻은
"존경하는 정병두 사령관님. '천지함', '부산함', '청주함'의 오재선, 김용옥, 오예근 함장님.
그리고 사관생도 여러분과 전 장병 여러분, 고국을 떠나 이곳까지 기나긴 항해에 얼마나 노
고가 많으셨습니까?
이곳 라스팔마스에서 생활하는 천삼백여 한인과 이곳을 기지로 활동하며 생업에 종사하는
칠천여 한국선원들과 중국교포 선원들과 함께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입니다.
우리들은 여러분들의 씩씩하고 늠름한 모습만 바라보아도 새삼 힘이 솟아오르며, 또한 여
러분들께서 불철주야 나라를 철통같이 지켜주시는 덕분에, 고국ㄱ에 있는 우리의 부모 형제
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으며 편안히 주무실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에
우리는 여러분들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곳 라스팔마스의 우리 한인 이주사는 약 삼삽여 년이 됩니다만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1982년에 딱 한 번 대한민국의 태극기를 단 비행기가 이곳 라스팔마스 공항에 착륙한 이래
대한민국 군함으로는 처음 여러분들을 맞게 되어 우리는 크게 감격하고 있습니다. 오늘
1995년 10월 5일은 우리 라스팔마스 한인사에 새로운 기록을 남기게 되는 뜻깊은 날이며,
이 기록은 우리 한인사에 길이길이 보존될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곳에서 살아오는 동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고통과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때로는 3등 국민으로서의 멸시와 천대와 서러움도 겪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3등 국민이 아니오"하고 스스로 변명 할 필요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을 맞이하는 이 감격스러운 날에 여러분과 함께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온 세계 만
민을 향하여 떳떳이 외치고 싶습니다. 우리의 손으로 만든 국산 군함을 타고 우리의 힘으로
세계의 바다를 누비고 다니는 이들을 보라고!
몇몇 선진국에서만 하고 있는 세계일주 순항훈련을 현대식 국산 군함으로 무장한 우리의
해군들이 당당히 하고 있는 이 모습들을 보라고 말입니다.
올림픽 사상 가장 훌륭한 올림픽을 치른 것은 이제 옛 이야기가 되었지만 이로써 우리는
우리의 저력을 전 세계의 인류에게 충분히 보여주었으며, 이제 우리는 세계의 평화를 수호
하기 위해 유엔의 일원으로 소말리아와 서부 사하라, 그루지야, 그리고 이번에는 아프리카의
앙골라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하는 나라가 되었고, 배고파 허덕이면서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
람들에게도 사랑의 쌀을 무조건 제공하는 미덕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모든 노력이 전쟁을
위한 것이 아니라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일임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입니다.
오늘 이곳에 있는 여러분들의 늠름한 모습에서 지구의 반대편 아득히 먼 곳에 있는 조국
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새겨볼 수 있긱에 여러분을 더더욱 환영하는 바입니다.
장병 여러분!
2박 3일의 짧은 체항기간이 우리에게 한없이 아쉬운 마음입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나마
우리의 진심을 조금이라도 더 전달하려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으며, 계시는 동안 이곳의
풍물을 하나라도 더 보고 가실 수 있도록 최대한 편의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곳은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위하여 떠날 때 기항했던 곳으로 콜롬버스
가 만년에 여생을 보냈다는 콜롬버스의 집인 콜롬버스 기념관이 있으며, 높이 1,949미터로
한라산 높이와 맞먹는 산이 이 섬에 있고 이웃 섬에는 높이 3,707미터로 백두산 높이보다
무려 1,000미터나 더 높은 산도 있습니다. 이곳의 산길은 지옥을 연상케 하는 단애의 절벽을
따라 산 정상까지 이어져 있으며, 섬의 남쪽으로 가면 사하라 사막을 연상케 하는 사막과
오아시스, 그리고 긴 해안선을 따라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해수욕장과 부대시설은 유럽 제
일의 휴양지로서 자타가 공인하고 있습니다.
대동강물을 팔아먹었다는 봉이 김선달보다 한 술 더 떠 태양을 팔아먹고 사는 소박한 이
곳 주민들도 만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에 사는 우리 한인들의 하나로
단합된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마음에 새겨 가시기 바랍니다.
사령관님이ㅣ하 633명의 전 장병님들을 대접코자 '라스팔마스 어머니회'에서 열과 성을 다
해 손수 음식을 마련하였습니다. 부족하나마 우리의 정성으로 알고 고향의 음식을 드시는
기분으로 마음껏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한국해군의 라스팔마스 처녀 입항
라스팔마스 부두에서 환영 인사를 하는 라스팔마스 한인회 이횡권 회장의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는 감격에 겨워 떨려 나왔다. 환영사는 무려 5분여나 계속되었고 그 환영사 속에는
그들의 진심어린 바램과 애환이 구구절절이 묻어 나왔다. 한국해군의 라스팔마스 입항은 이
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다 보니 교민들은 군함의 입항을 애타게 기다린 모양이었다. 그 사실
을 반증하듯 부두에는 사백여 명의 교민들이 나와서 열렬히 환영해 주었고, 함상에서 열린
리셉션에는 자치정부 부수상, 주지사, 시장, 항만청장을 비롯 라스팔마스의 요직에 있는 관
리들 145명이 몽땅 참석하여 우리 총영사관측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여태 우리 교민들이나 총영사관측에서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었던 고위관리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이자 총영사관측에서도 감탄을 금치 못한 모양이었다. 함대의 방문이 국가간
외교관계를 이렇게 발전시키는 매체가 될 줄은 미처 몰랐다는 것이다. 즉 영사관이나 대사
관에서 몇 년씩 걸려야 할 성과를 군함외교로 단 며칠 만에 거두었다는 것이다.
라스팔마스는 전통적으로 우리 원양어업의 전진기지이다. 과거에 일본이 잡고 있던 것을
지금은 우리가 거의 독점하고 있고, 이곳에서 한국인에 대한 인식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곳에는 일천 삼백여 명의 교민과 이곳을 기지로 생업에 종사하는 칠천여 한국인과 중국
교포 선원들이 있다. 이들이 대서양을 꽉 잡고 있고, 대서양 바다 속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
으며, 이들이 모두 빠져나가면 라스팔마스 경제가 타격을 받을 정도라고 한다.
17. 햇빛을 팔아먹고 T는 '라스팔마스'
타고난 관광지로 선택받은 땅
라스팔마스는 지레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깨끗하고 큰 도시였다. 크기는 제주도의 80퍼센
트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 지역적 특성과 라스팔마스가 자랑하는 햇빛 때문에 천혜의 휴양지
로 각광을 받고 있었다.
남쪽 바다에는 '누드비치'를 비롯한 해변에서 일년 내내 따끈따끈한 해수욕과 눈부신 햇빛
을 즐길 수 있다. 아직도 용암이 뿜어나오는 화산분화구는 원시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며 관광지로서의 매력을 한껏 덧붙여 주고 있다.
또한 고산지대에 무더기 무더기로 생장하고 있는 갖가지 선인장들을 볼 수 있는 선인장
공원도 있다. 야생의 생명력이 꿈틀거리는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새 공원, 온갖 새들의 쇼쇼쇼
라스팔마스가 속해 있는 카나리아 군도는 일곱 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곳이 카나
리아 새의 원산지라는 사실을 증명하듯 남쪽의 계곡에 웅장한 새 공원이 자리잡고 있었다.
'팔미토스 파크'라고 불리우는 새공원에는 카나리아를 비롯하여 난생 처음 보는 벼라별 새
들이 다 있는데, 새가 쇼를 하면서 재롱을 피우는 것은 정말 볼 만했다. 흔히들 새는 아이큐
가 낮다고 하여 머리가 나쁜 사람을 '새대가리'라고 놀리는데 이곳의 훈련된 새들을 보고 나
면 그런 소리도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감동의 해군군악대 공연
2박 3일간의 짧은 일정이지만 사관생도와 승조원들은 라스팔마스 시내 곳곳을 누비며 한
국인의 얼을 확실하게 심어놓았다. 한국에 대해 얼마나 확실한 인상을 심어주었는지는 스페
인의 국영방송과 이곳의 현지 텔레비젼 방송이 매일 한 시간에 걸쳐 우리의 활동을 방송했
던 것만 봐도 알 것이다.
특히 '산타 카타리나' 공원에서 천이백여 명의 교민과 현지인 청중들 앞에서 펼쳐진 해군
군악대와 해군 사물놀이단의 합동공연은 스페인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모양이었다.
공연은 시종일관 박수와 환호 속에서 진행되었으며, 공연이 끝난 후에도 사람들은 자리를
뜰 줄 모른 채 연이어 앵콜이 터녀 나왔다. 한국의 군악대는 전문 음악인들로 구성되었는가
하는 질문을 무수히 던져왔고, 군의 밴드가 이렇게 수준 높은 연주를 할 수 있다니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여왔던 것이다.
특히 상지국 수병이 '그라나다'라는 이태리 가곡을 테너로 불렀을 때는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의 전율과 감동을 느꼈다' 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라스팔마스의 우리 교민들 뿐만 아니라 현지 스페인 방송과 현지인들의 평가도 동일했다.
해군군악대와 사물놀이단 합동공연 공연실황이 텔레비젼에서 한 시간 동안이나 방영되었으
니 말이다.
장보고의 진짜 후예들
이번 라스팔마스 방문에서 교민들의 성원은 정말 놀라울 정도였다. 한 예를 들자면 길에
서 만난 우리 수병들이 남쪽 바다로 갈 수 있는 방법을 한 교민 아주머니께 물어 보았다.
그러자 볼일을 보러 가던 한인회 아주머니는 자기 차에 수병들을 타라고 하고 자기 볼일을
제쳐두고 곧장 남족 바다로 달려가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남족 바다는 고속도로로 왕복 1
시간 20분이 걸리는 곳이었던 것이다.
라스팔마스 교민 대부분이 라스팔마스에 머무르는 동안 자신의 생업을 팽개쳐 두고 해군
함대를 위해 뛰어다녔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는지도 모른다. 해군함대를 맞기 위해 어머니
회가 총동원되어 어른 장정 일천 명 분의 음식을 만드느라고 며칠 밤을 새웠다는데 그 동안
이곳의 남자들은 집에서 밥 한 끼 얻어먹지 못하고 대부분 식당에서 사 먹어야 했다는 웃지
못할 일화도 남겼다.
필자의 경우는 몇 척의 선박을 보유하고 원양 어업체를 가진 선주 김계윤 사장과 선박 수
리업을 하는 정광윤 사장에게 평생을 잊지 못할 신세를 진 느낌이다. 그 신세를 언제나 다
갚을 수 있을는지. 그리고 대서양을 휘어잡으며 이곳에서 굳세게 뿌리내린 그들에게 새삼
존경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또 군함에선 나름대로 교민들을 위해 준비해 온 다량의 진로 소주와 라면박스들을 한인회
에 기증했는데 교민들은 천백여 상자에 달하는 생선을 군함으로 날라왔다. 함정의 냉장고
사정으로 팔백 상자밖에 받을 수 없다고 하는데도 막무가내로 몽땅 실어 올리는 촌극을 빚
기도 했다.
앞으로 당분간 생선은 물릴 정도로 많이 먹게 생겼다고 누군가가 걱정 아닌 걱정을 한다.
라스팔마스를 떠나 대서양 횡단을 시작하면서 라스팔마스 교민들에게 꼭 남기고 싶은 말이
있었다. '당신들이야말로 장보고의 후예들입니다.'
부두의 이별
부두의 이별은 언제나 슬프다. 그리고 우리는 끊임없는 만남과 이별을 계속하고 있고 앞
으로도 계속해야 한다. 모로코와 라스팔마스에서의 부두의 이별은 특히 슬펐으며 특히 아름
다웠다. 찡하게 가슴에 와 닿는 이별들. 헤어짐이 너무나 아쉬워 석별의 정을 나누는 여러
모습들이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별은 언제나 새로운 만남을 기약하는 법.
우리 다시 만날 그 날을 기다려 봅니다.
부두의 이별에 관한 후일담
귀국한 지 한달여 후인 2월 6일의 일이다. 노환중이신 어머니를 뵙기 위해 부산에서 올라
온 김계윤 사장을 서울에서 만났다. 그가 머뭇거리며 털어 놓은 말이 있었다.
그는 솔직히 말하건대 라스팔마스에서 해군의 배가 떠날 때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고
백을 하는 것이었다. 그 덩치 큰 사나이를 울게 만든 것이 바로 부두의 이별이다.
부두의 이별은 손 한 번 흔들고 뒤돌아 설 수가 없는 이별이다. 멀리 멀어져 가는 배와
떠나가는 이들을 눈앞에 두고는 근한 시간에 가깝도록 지켜보며 이별의 순간을 지탱해야 한
다. 떠나가는 이를 오래도록 지켜보아야만 하는 괴로움을 견뎌야 한다. 오랜 이별의 시간 후
에야 비로소 배도, 이별하여 떠나가는 이들도 눈앞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부두의 이별은 그다지도 슬픈 것이다.
라스팔마스 현지 언어 -스페인어
안녕하세요?:올라 (아침)부에노스 띠야스 (점심)부에노스 따르데 (저녁)부에노스 노체
예:씨 아니오:노 감사합니다:그라시아(스) 안녕히:아디오스 환영합니다:비엔 베니도 부탁합니
다:볼파보르 얼마입니까?:깐또발레 어디입니까?:돈데바스 실례(미안)합니다:베르돈 남자:세뇨
오르 여자:세뇨라 (처녀)세뇨리따 계산서:라꾸엔따(레시보) 이것:에스데(가까이) 둘:도스 화장
실:엘바뇨(또일렛) 물:아구아,신가스(NO가스) 하나:우노
제10장 아메리카 대륙을 찾아서
1. 악명 높은 버뮤다 삼각해역의 삼각파도
악명의 너울 속에서
순조롭게 진행되던 대서양 횡단은 막바지에 밀어닥친 풍랑으로 또 한바탕의 홍역을 치러
야 했다. 원래 삼각파도와 돌풍으로 악명이 높은 버뮤다 삼각해역을 통과할 때였다.
기상상태가 나빠 피항항해를 하고 있는데도 5미터가 넘는 파도와 스웰(너울)이 우리를 무
척 괴롭혔다. '부산함'(함장 김용옥 대령"과 '청주함'(함장 오예근 대령)은 함수가 아예 물 속
으로 들락날락하며 구축함이 아니라 잠수함이 된 느낌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이런 악천후 속에서 한·미 연합훈련이 실시되어 '부산함'과 '청주함'을 더욱
괴롭혔다. 대서양에서 벌어지는 한국해군사상 최초의 한·미 연합훈련인데다 미해군에서 하
루 전에 출항하여 우리를 기다리는 등 워낙 성의를 보이는 통에 악천후를 핑계로 취소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산함'과 '청주함'은 거의 초죽음이 될 정도로 고된 훈련을 때렸다(?).
미해군에서 5천 톤급의 구축함 두척과 헬기와 전폭기, 그리고 핵잠수함까지 동원하여 얼마
나 열심히 훈련을 하는지 노퍽에 도착하기 직전까지 훈련을 계속했던 것이다.
높은 파도 속에서 거의 잠수함이 되어야 했던 우리의 구축함과 너무나 열심히 훈련에 임
해 준 미해군의 앞날에 축복이 있으라. 아멘∼할렐루야∼.
2. 세계 최대의 군항 '노퍽'
기죽은 우리 군함, 그래도 작은 고추의 매운 맛을!
노퍽은 미국 최대의 군항이자 세계 최대의 군항이다. 우리는 하마터면 잠수함이 될 쩐 하
는 시련을 견디고 드디어 노퍽에 도착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정박한 12번 부두 바로 옆에 정박해 있는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와 '루즈
벨트'를 보는 순간 우리는 그 엄청난 규모에 기가 죽을 정도였다. 지금껏 각 나라의 해군과
비교하며 은근히 자부했던 우리의 자존심은 노퍽에 도착하는 순간 여지없이 무너진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우리의 조그만 배로 어떻게 대양을 횡단해서 여기까지 왔는지 감탄을 했지만
우리로서는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우리의 진해와 흡사한 노퍽, 왜 하필 이곳에 최대의 군항을 설치했을까? 의문은 금방 풀
려졌다.
최초의 유럽인 정착촌, 제임스 타운
노퍽과 인접한 페닌슐라 지역의 제임스 타운을 가보니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인 1,590
년대에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주해온 초초의 유럽인 정착촌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곳은 예로
부터 유럽과 대륙을 잇는 주요 해상통로의 하나였던 것이다.
제임스 타운에는 그 옛날에 이주해 왔던 정착민들의 터가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옛날 사
람들의 생활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다만 옛날 사람들이 원시적으로 만들던 유리
병 공장만이 남아 있었을 뿐이어서 못내 아쉬웠다.
노퍽에 도착한 첫 날, 구너병주 정보참모와 함께 승용차를 한 대 렌트하여 지도만 한 장
달랑 들고 용감무쌍하게 나섰다. 버지니아 비치며 제임스 타운이며 다 둘러보겠노라고 나선
행차였는데 버지니아 비치 입구에 '홀리데이 인' 호텔에서 커피만 한 잔 마시고 돌아와야 하
는 운명(?)에 부딪히고 말았다.
엎친 데 덥친 격으로 군함으로 돌아오는 도중에는 길마저 잘못 들어서 애를 태웠던 기억
이 생생하다.
저녁에 교민회 주최의 만찬이 있었는데 한동안 헤매는 바람에 자칫했으면 만찬약속에 펑
크를 낼 뻔 했던 것이다.
전설 속의 그녀, 포카혼타스를 만나다
미국에선 '월트 디즈니사'에서 만든 만화영화 '포카혼타스'가 공전의 화제를 일으키고 있었
는데 그 이야기의 무대가 바로 이곳 제임스 타운이다.
포카혼타스라는 인디언 처녀와 존 스미스 선장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그들이 살던 제
임스 타운에서 지금은 동상이 되어 우리를 맞아 주었다. 인디언과 미국인의 첫 번째 결혼사
례로 꼽히는 아름다운 러브스토리이다.
3.전통을 좋아하고 잘 만드는 미국
노퍽의 오래된 이야기들
미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대학인 '윌리엄 앤 메리 대학'이 있는 곳이 바로 노퍽이다.
윌리암스버그에 있는 윌리암스대학은 그 이름을 영국 왕실에서 따왔으며 200년의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씨가 다녀서 처음으로 알려졌
는데, 윌리암스대학은 미국내 대학서열 35위인 전통 있는 대학답게 고풍스러운 운치를 뽐내
고 있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노퍽 사람들로부터 가장 사랑을 받는 사람은 맥아더 장군이다.
노퍽 다운타운의 관광코스인 '워터 사이드' 옆에 위치한 맥아더 기념관에는 맥아더 장군의
묘와 그의 부인이 사후에 들어갈 묘자리가 안치되어 있고, 맥아더 장군의 온갖 업적과 행적
이 기념관에 적나라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그 중에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도 몇 가지 있었는데 6·25동란과 관련된 유품드링다. 동
란 중에 북한군이 만들어 살포했던 포스터는 지금도 섬뜩한 느낌이 드는데 이런 사소한 것
까지 보관했다가 자료로 만들어 내는 미국사람들의 섬세한 정성이 오히려 감탄스러울 정도
이다.
불과 이백 년의 일천한 역사 속에서도 무수한 전통을 만들어 내는 그들의 재주를 우리도
좀 배웠으면 싶다.
기념일이면 옷 갈아입는 버지니아의 어느 나무
노퍽은 세계 최대의 군항으로서 유명하고 우리 교포들은 많지 않지만 노퍽과 인접한 '페
닌슐라' 지역에는 많은 교민들이 살고 있다.
노퍽에서 버지니아까지는 30여 분 정도가 소요되는데 그 중간쯤 되는 한적한 교외의 도로
변에 아름답게 치장된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여느 가로수와 진배가 없는데 유독 그 나무
만은 아름다운 색종이로 울긋불긋 예쁘게 치장되어 있었다.
그 이유가 뭘까? 알고 보니 그 나무는 '페닌슐라' 지역 사람들의 화제가 되어 있는 나무였
다.
미국의 국경일이나 기념일이면 그 나무는 아름답게 단장이 되는데, 누가 그 나무를 가꾸
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한다. 남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자그마한 기념일에도 그 나
무는 어김없이 아름답게 치장되어 있으므로 그 나무가 예쁘게 꾸며져 있으면 아하, 오늘은
무슨 기념일이구나 하고 짐작하면 틀림없다는 것이다.
그 지역의 모든 사람들이 그 나무를 가꾸는 사람이 누군지 알고 싶어 하지만 몇 년이 지
나도록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버지니아 비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 '페닌슐라' 지역은 18마일의 해변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아름다운 버지니아 해변으로 인해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하지만
고급 주택들이 밀집되어 있는 안정된 주거지역이기도 했다.
버지니아 비치의 우리 동포들
노퍽에서는 페닌슐라 지역에서 '두레신문' 이라는 지역신문을 만들고 있는 박보근 사장의
도움으로 인근지역을 샅샅이 둘러볼 수 있었는데 아쉬운 것은 뉴욕과 이어지는 세계에서 가
장 긴 다리라는 17.5마일이나 되는 다리를 건너보지 못한 점이다. 짧은 일정 관계로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다리 입구에서 차를 돌려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배가 출항하는 날, 페닌슐라 지역에서 주유소를 경영하는 최건 사장의 점심식사
초청을 받아 미국 중류가정의 집안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고급주택가에 자리잡은 넓은 집안 내부와 정원, 그리고 차고가 있는 전형적인 미국의 주
택구조로 꾸며진 이상적인 집이었다. 이런 집이 우리 나라에 있다면, 또 외롭지 않고 이런
집에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러움과 함께 그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최 사장은 미 해군에서 15년간이나 근무하며 미 핵잠수함을 타는 등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 내가 강한 호기심을 가지고 만난 분이었다. 그러나 오랜
타향살이와 외로움에 지쳐 있는 듯 보였고, 그 분의 꿈은 하루바삐 돈을 벌어 고국에 돌아
가 목장이나 하나 차렸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 있는 어린 딸에게 한국말을 가르키
기 위해 일년에 한 달은 딸을 한국에 보내 한국말을 가르키는 열성도 보이고 계셨다.
각박한 미국생활에서 우리가 모처럼의 손님인지 최건씨의 부인은 엄청난 귀빈을 맞이하듯
맛있는 김치를 내어 놓고 온갖 요리솜씨를 발휘하는 등 우리를 따뜻하게 대접해 주었다.
잊을 수 없는 분들이다.
두레 신문의 박보근 사장과 최건 사장. 우리는 또 그 분들과 아쉬운 작별을 나누며 노퍽
을 떠나야 했다.
4.세계 제일의 휴양지, '마이애미'
세계인의 발길 모으는 헤밍웨이의 바다
'노인과 바다'. 어릴 적에 보았던 '헤밍웨이' 원작의 그 영화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고기를 잡는 노인이 악전고투 끝에 거대한 참치를 잡아 횡재를 했나 싶었는데 돌아오는
도중에 상어떼를 만나 다시 사투를 벌이고 어촌으로 돌아오니 뱃전에는 참치의 뼈만 앙상하
게 남는다는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그 훼밍웨이가 태어나고 자란 곳. 헤밍웨이가 꿈을 키웠던 헤밍웨이의 바다. 그래서인지
마이애미의 바다는 웬지 더 친근함이 든다.
그리고 마이애미에 오기 전에 나는 한 가지 은근한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발표한
나의 신작소설 '한국붕괴'에서 '마이애미'를 무대로 펼쳐지는 사건이 있기 때문이었고, 그 무
대를 직접 목격하고 싶다는 소망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직접 마이애미 해변을 둘러본 결과, 현지의 사정은 나의 상상과는 영판 달랐다.
플로리다 반도의 끝단에 붙어 있고, 아열대성 기후의 혜택으로 일년 내내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세계 최대의 휴양지 마이애미. 이곳의 성수기는 겨울이고 추운 북쪽에서 찾아오는
사람들로 특히 붐빈다고 한다.
옅은 녹색의 푸른 바다. 무성한 야자나무.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달리는 모터보트. 해변
에 즐비한 토플리스와 비키니차림의 늘씬한 미인들. 이것이 일상적인 마이애미 해변의 모습
이고 이곳의 주요 수입원은 관광소득이다.
그런데 '마이애미'의 낭만적인 모습도 예전 같지만은 않다고 한다. 쿠바와 가깝다는 입지
조건 때문에 쿠바사람들이 이곳으로 떼지어 건너와 있고, '마이애미'는 쿠바인들에 의해 점
령된 이후 예전의 낭만과 활기를 잃은 셈이다.
우리의 군함이 마이애미의 더치 아일랜드 5번 웨스턴 부두에 도착했을 때 배에 올라온 이
곳의 경찰이 지도에다 부두 바로 앞의 북쪽지역에 커다랗게 표시를 해주며 그 지역에는 들
어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위험지역이라는 것이다. 흑인과 쿠바인들이 몰려 있는 지역
이고, 저녁 5시면 거리에 인적이 끊어진다니 절로 밥맛이 떨어질 지경이다.
굴절된 우리 교포 이민사
노퍽에서도 그랬지만 미국은 어느 도시를 가든 위험지역에 대해 미리 강의를 들어야 한
다. 이곳에는 우리 나라 교민이 7,000여 명이 살고 있는데, 처음에는 인구의 70퍼센트에 달
하는 쿠바사람들의 텃세 때문에 무척 힘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어떤 사람들
인가? 교묘하게 그들의 텃세를 뚫고 정착을 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모두 자리를 잡았는데 그
중에 성공한 사람들은 개인 요트를 소유하고 틈 나는 대로 바다에 나가 낚시로 소일을 하고
있을 정도란다.
그런데 미국이 와서 교민들과 접해 보니 우리의 이민사가 상당히 굴절되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민 초기에는 국내에서 먹을 게 없거나 어려운 정치 상황 때문에 달아나듯 건너오기도
했고, 한 밑천 잡겠다는 일념으로 태평양을 건너온 이가 거개였다. 그들이 향수병과 갖은 신
산스러움을 이겨내며 어렵게 자리를 잡고 보니 고국 사정은 나아져 이젠 모두들 잘 살고 있
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이 그들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목표도 이젠 궤도수정을 하고 있다. 돈도 좋지만 이젠 외로워서 못
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들 고국에 조금씩 투자를 해놓고 고국으로 돌아갈 기회를 노
리고 있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역이민이 점차 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외국의 교포사회가 다시 활기를 띠고 그 지역에서 뿌리박고 정착하기 위해선 국가적인 정
책과 지원이 필요할 때가 아닐까 싶다.
눈 바쁜 볼거리의 도시
세계 제일의 휴양지답게 마이애미 주변엔 볼거리가 제법 많다. 북쪽으로 차를 3시간만 달
려가면 올랜드지역이 있는데 여기에 세계 최대 규모의 '디즈니 월드'가 있고, 그 인근에 '케
네디 우주센터'가 있다.
또 '마이애미'에서 1번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달리면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가 펼쳐진다. 즉
'키 웨스트'에 도착할 때까지 3시간 동안 양쪽으로 바다의 절경이 펼쳐지는데, 헤밍웨이의
생가도 볼 수 있고, 세계 최대의 늪지대에서 악어떼도 구경할 수 있다.
'나중에 우리 애들이랑 다시 한 번 와야겠다.' 그런 소망을 가슴에 새긴 채 마이애미를 떠
나 '푸에르토 리코'를 향해 항해를 시작한다.
5. 두 얼굴의 '푸에르토 리코'
콜럼버스의 첫 발자국
1548년, 라스팔마스를 출발한 콜럼버스의 대륙 탐험대가 세 번째 도전 끝에 서인도 제도
를 발견하고 맨 처음 발을 디뎠다는 '푸에르토 리코'.
그래서 이곳에는 콜럼버스의 동상이 유난히 많다. 한국 해군이 입항한 '산후앙' 부두 앞
의 공원에 높다랗게 세워진 콜럼버스의 동상은 마치 우리를 환영하듯 부두를 굽어보고 있었
다.
스페인과 미국 점령의 역사
1899년 스페인이 서반아전쟁에 패하기 전까지는 스페인령이었다가 미국의 자치령으로 바
뀌게 된 '푸에르토 리코'는 미국이라기보다는 스페인에 더 가까운 나라였다.
국민들은 90퍼센트가 스페인어를 쓰고 있고, 시내에 나가면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을 정
도이다. 그러나 생활과 문화는 모두 미국식이며 대다수의 국민들은 미국의 자치령으로 만족
하고 있다.
미국이기를 원하는, 그러나 독립국가이기를
1999년이면 미국과 맺어진 100년간의 조차기간이 끝나기 때문에 작년에 '푸에르토 리코'에
선 국민투표가 있었다고 한다. 미국의 51번째 주로 통합되어 완전한 미국의 일부가 될 것인
가? 아니면 독립된 독립국가로 남을 것이낙? 그것도 아니면 현상태를 그대로 유지할 것인
가?
이런 질문을 한 투표였는데 뜻밖에도 결과는 이대로 있자는 것이었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가 도착한 다음날 이곳에선 대규모의 반미 시위가 벌어졌다. 미 해군
의 레이다 기지 설치를 반대하는 데모였는데 살벌한 우리 나라의 데모와는 달리 이곳의 데
모는 한바탕의 축제처럼 느껴졌다.
주로 20대의 젊은이들로 이루어진 데모대는 입으로는 반미를 외치면서도 춤을 추면서 질
서정연하게 시가행진을 하고, 커피와 햄버거를 파는 리어카 행상이 데모대를 뒤따르며 장사
를 하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데모대를 구경하는 관광객들이 데모대와 어울려 함께 거리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어쨌든 미국을 거부하면서도 미국을 벗어날 수 없는 '푸에르토 리코'의 현실. 그 이율배반
적인 현상이 '푸에르토 리코'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듯했다.
6. '푸에르토 리코'의 한국 여인들
우리 나라와 푸에르토 리코의 인연
우리 나라와 '푸에르토 리코'의 첫 인연을 알려면 6·25동란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6·25동란에 참전했던 '푸에르토 리코'의 '65대대'가 '백아리 전투'에서 한 명도 살아남지 못
하고 완전히 전멸한 기록을 가진, 우리와는 피로 맺어진 혈맹의 인연을 지니고 있는 나라인
것이다.
우리가 도착한 '푸에르토 리코'의 수도 '산후앙'은 스페인 점령 당시의 오래된 고성과 스페
인풍의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는 '올드 산후앙'과 '콘다도 비치', '이슬라버드 비치'가 있는
'뉴산후앙'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도시였다.
가끔씩 허리케인이 불어오는 것 외에는 일년 내내 겨울이 없다시피한 아열대의 기후, 뜨
거운 햇빛과 맑은 공기가 매우 쾌적한, 복 받은 땅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미국 내에서 두 번
째로 마약과 에이즈의 천국으로 손꼽히고 있고, 일년에 구백여 명이 범죄에 희생될 정도로
범죄가 만연하는 것이 치명적인 약점이다.
특이하게도 이곳은 미국 내에서도 우리의 교민이 많지 않은 곳 중의 하나이다. 교민이라
고 해봐야 총원 27가족이 초미니 한인회를 이루고 있고, 그 중에서도 한국인 남자교민은 여
섯 명뿐이란다. 그 외에는 대부분이 국제결혼한 한국 여성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한국의 해군이 교민을 위해 베푸는 함상 리셉션장에서 특이한 교민 한 사람을 만날 수 있
었는데, '스티븐 안'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미연방의 기상예보 공무원으로 근무하는데 한국
인으로는 유일한 미국의 연방 공무원이다.
'푸에르코 리코'에는 허리케인 연구를 위해 파견되어 있었고, 곧 다른 프로젝트를 맡아 스
위스로 떠날 예정이라고 한다.
굳세어라, 한국인아
세계 구석구석에서 활약하는 한국인들, 이곳에도 억척같은 한국의 여인들이 여럿 있었는
데, 특히 '미스 킴'이라고 불리우는 예순 살의 할머니가 인상깊었다. '미스 킴' 할머니는 억척
같이 일을 하여 빌딩을 3개나 소유하고 있을 만큼 성공한 케이스에 속하는데 지금도 '미스
킴'이란 상호를 붙인 자기 소유의 바에서 바텐더로 왕성하게 일하고 있었다.
자신의 과거를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한 많은 사연을 지닌 김 할머니는 오래 전에 혼자
가 되어 고국에 있는 자신의 친척을 모두 거두어 주고 조카들을 공부시키고 있었다.
'푸에르토 리코'의 한국 여인들은 국제결혼의 멍에를 안고 살면서 나름대로의 애환들을 지
니고 있었다. 시집식구들이 '코리아'라는 나라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
고, 또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이웃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정병두 사령관이 교민회장에게 그런 분들은 자기 가족들과 시부모, 그리고 이웃사
람들까지 모두 해군 천지함상에서 열리는 리셉션에 초청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해군함정 공개행사를 거쳐 리셉션을 마치고 나자 한국여인들의 입장이 한결 부드러워졌음
은 물론이다. 엄마의 나라, 자신의 조국에서 만든 군함이 엄청나게 큰 바다를 항해하여 이곳
까지 왔다는 사실을 자기의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설명하는 여인들의 목소리는 뿌듯한 자부
심으로 한층 들떠 있었다.
7. 침략의 역사가 남긴 남미 혼혈인들
국민의 반 이상이 혼혈
'푸에르토 리코'에서의 둘쨋날.
우리는 군함에서 삼겹살 등 먹을 것을 준비해 가지고 '이슬라버드 비치'로 가서 하루 종일
해수욕을 했는데 뜻밖의 장면들을 많이 구경할 수 있었다.
이곳에는 생각보다 혼혈가족이 많다는 사실이다. 흑인 청년과 백인 처녀의 데이트 광경이
눈에 많이 띄었고, 실제로 흑인남자와 백인여자가 결혼한 가정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2세들이 바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남미의 인종이었다.
서구 열강들로부터 침략과 지배의 역사를 지닌 중남미 제국들이기에 어쩌면 그것은 자연
스러운 현상일는지도 몰랐다. 이 나라 국민의 50퍼센트 이상이 혼혈이란 점에서도 그 사실
은 더욱 자명해 보인다.
지금까지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여러 번 실감한 사실이지만 우리 나라처럼 순수한 단일민
족ㄱ은 정말 드물어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순종들만이 모인 배달민족이 어쩌면 이렇게 통
일을 하지 못하고, 남한 내부적으로도 국민적인 합일점을 찾아내지 못한 채 조선시대에서부
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당파싸움만을 일관하는지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야채를 날로 먹으면 구경거리 되는 곳
어쨌든 우리는 '이슬라버드 비치'에서 우리식대로 둘러앉아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삼겹살
상치쌈에 된장을 듬뿍 넣어 한 입에 털어 넣는 우리들 모습이 신기한지 주변 사람들이 모두
구경을 했다. 말을 타고 지나가던 기마경찰도 우리를 보고 웃으며 지나갔다. 그러거나 말거
나 우리는 배를 두드려 가며 우리식대로 잘 먹었다.
그런데 나중에 한인회 회장한테 들으니 '푸에르토 리코' 사람들은 야채를 날로 먹으면 웃
는다나? 게다가 마늘을 날로 먹는 걸 보면 기절초풍한다고 한다.
그들 웃음의 정체를 뒤늦게야 알았지만 음식 문화의 차이인데 그게 대수랴. 그러고 보니
그곳 사람들은 야채는 반드시 익혀 먹는가 하면 오이와 호박을 제대로 구분을 못한다고 해
서 이번에 우리가 도로 웃었다.
이곳 현지인들의 주신은 '아보카도'라는 열매인데 우리 입에는 잘 맞지 않는다. 이곳은 세
계에서 허리케인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곳인데 이곳 사람들은 동물의 생태를 보고 허리케인
이 오는 것을 금방 알아낸다고 한다. 허리케인이 불 때는 새들이 전부 육지로 올라온다나?
'꼬끼꼬끼' 우는 청개구리
'푸에르토 리코'에서 또 한 가지 인상적인 것 중 하나는 청개구리였다. 이 나라에선 청개
구리가 우리 나라의 무궁화처럼 국가의 상징으로 취급되는데, 이 청개구리가 우리의 개구리
와는 좀 달랐다. 크기도 우리 나라 청개구리의 절반밖에 안되자만 우는 소리는 왜 그리도
큰지 마치 벼락치듯이 크게 운다.
그 소리도 우리처럼 '개골개골' 우는 게 아니고, 이상하게 '꼬끼꼬끼' 하면서 운다. 그래서
이 나라 사람들은 청개구리를 '꼬끼'라고 부른다. 그 울음소리로 아무리 개골개골을 연상해
보려고 신경 쓰면서 들어보아도 우리 귀에도 '꼬끼꼬끼'로 들린다. 어쨌든 우리 나라의 청개
구리와는 종자가 다른 모양이다. 이놈들도 혼혈인가?
8. 미인의 나라 '베네수엘라'
고단한 세상살이의 땅
사람이 산다는 게 이렇게 고단할 수 있을까?
'베네수엘라'의 첫인상이 바로 그렇다. 이 나라의 수도인 '카라카스' 거리에는 사람들이 넘
쳐 흘렀지만 거리를 하릴없이 방황하거나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할 뿐, 어떤 목표를 향해 거
리를 분주히 오가는 사람은 좀체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많은 나라를 다녀 보았지만 이런
분위기의 도시는 처음이다.
'카라카스'는 목표를 상실하고 꿈을 잃은 사람들만이 우글대는, 마치 죽은 도시처럼 느껴
진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 이 땅에 처음 발을 디뎠던 이태리 이민자들
은아름다운 베네치아((베니스)와 흡사하다고 해서 이곳을 '베네수엘라'로 명명했다고 한다.
베네치아에 빗대 이름이 붙여진 내력이 있을 만큼 아름다움의 여신으로부터 축복받은 이땅
이 왜 이렇게 볼썽사납게 되었을까?
"석유 때문에 모든 국민이 기생충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나라의 대표적인 지식인이자
작가인 '우슬라르 피에트리'는 울분을 토하며 이렇게 개탄했다고 한다. 남미대륙에서 석유가
가장 많이 나오고 있고, 천연가스 보유량도 중남미 최대이며, 세계 5위의 금 보유량을 자랑
하는 '베네수엘라.' 88년까지 GNP 7,000달러를 자랑하던 나라가 지금은 1,700달러로 떨어졌
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가 없다.
그의 지적은 정확하다. 경제가 완전히 파탄되어 망하기 직전에 있는 국가적 위기의 첫 번
째 원인은 석유이고, 근본적인 원인은 부정부패와 잘못된 정치 때문이라고 한다.
80년대말까지, 에너지파동으로 석유 값이 천장부지로 치솟을 때 긁어들인 엄청난 자금을
국민들의 교육에 재투자하지 않고, 정치인들이 인기만을 노리고 각종 보조금 정책을 펴면서
국민들에게 나누어주는 바람에 국민들은 일을 할 생각은 않고 이젠 정부에서 도와주기만을
바라는 풍조가 만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국가가 미래 교육에 투자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나라를 이끌어 갈 인재가 태부족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기가 막히는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세 달 일하고 두 달 노는 풍습
실제로 이곳 사람들은 세 달간 일을 해서 먹을 게 생기면 2달간은 일을 않고 놀기만 한
다. 세 달 일하고 두 달 쉬는 게 이곳의 대중화된 풍습이다.
석유 값만 해도 그렇다. 이 나라의 석유 값은 우리 돈으로 1 리터 당 20원으로 세계에서
가장 싸다. 그나마 이것도 얼마 전에 올린 금액이란다. 정부가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석유
값을 대폭 인상하여 현실화하려다가 폭동이 일어나서 삼 백 명이 사망했으며, 치안 부재 상
태로 주말이면 사오십 여 명이 죽어나간다고 한다.
지도 한 장을 구입하기 위해 '라과이라' 부두 앞에 있는 주유소의 매점을 들렀더니 손님은
아예 안으로 들어갈 수 없도록 철망으로 막아 놓고 조그만 구멍으로 얘기를 주고 받는다.
몇 군데의 마켓을 둘러보았는데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런 나라에서 어찌 미래가 있고 꿈이
있을 수 있을까?
해발 900미터의 고원지대에 위치해 있는 수도 '카라카스'는 제법 외모가 번듯하고 잘 꾸며
진 아름다운 도시였다. 도로망도 잘 갖추어져 있고, 규모나 외양에서 우리 나라의 수도 서울
과 비슷한 모습이다. 그나마 '카라카스'가 이 정도의 외양을 갖추고 있는 것은 80년대 잘 나
갈 때에 그나마 기반을 닦아 놓고 투자를 해 놓은 덕분이라고 한다.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모델 국가 중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미인 박명의 나라
앞에 운운한 이 나라의 불운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에는 미인들이 많다. 매년
미스유니버스대회에서 미스 '베네수엘라'는 3위 안으로 꼭 끼어든다. 특별한 비결이 있는가
알아보았더니 이곳에는 미스 유니버스를 목표로 미인들을 양성하는 전문학교가 있다고 한
다. 사람이나 축생이나 혼혈이 잘 생겼다고 하는데, 이곳 남미쪽은 특히 혼혈들이 많아 아름
다운 미인이 많은 모양이다.
그러나 국력이 약하면 수난을 당하는 것은 여자들뿐이다. 미인박명이라는 우리 나라의 속
담이 이런 경우에도 해당이 되는 것일까?
9. 경제재건을 위해 발버둥치는 '베네수엘라'
후진국으로 주저앉은 베네수엘라의 부패상
'베네수엘라'의 상황이 꼭 남의 일 같지만은 않다.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다가 주저앉아 후
진국이 되어버린 이 나라의 상황은 이제 막 선진국의 문턱에 와 있는 우리에겐 타산지석이
될 수 있고, 부패하고 타락한 정치상황은 어쩌면 우리와 닮아 있는 점이기도 하다.
이 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일을 안 하려고 하는 국민 맨탈리티가 문제이고, 두 번째는 부
패한 정치가 문제로 손꼽힌다. 과거의 부패한 정권이 은행을 사금융화하여 정치자금을 끌어
당기는 창구로 남용했던 까닭에 한 번 선거를 치르고 나면 은행이 우수수 망해 버린다. 그
러니 이런 은행에 안심하고 돈을 갖다 맡길 사람이 없다. 우리가 도착하기 얼마 전에도 이
나라의 제일 큰 은행 몇 개가 도산했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90년엔 비록 실패했지만 3차례의 쿠데타가 발생했고, 지금의 '라파엘 깔데라' 대통령은 부
패고리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 용을 쓰지만 쉽지가 않다고 한다. 공짜를 워낙 좋아하
는 국민들인데다가 국립중앙대학이 학생들의 숙식에서부터 몽땅 공짜이다. 재정적자에 허덕
이는 정부가 학교에 더 이상 투자할 여력이 없으니 교수에 대한 처우가 엉망이고, 교수들은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교수를 갈아치우라는 학생들의 데모가 일어
난다.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 지금 이 나라의 실정이다.
또 대통령이 믿고 일을 시킬 사람이 없다 보니 대통령의 가족들이 이 나라의 중요 요직을
모두 독차지하고 있다. 큰아들은 상원위원이며 집권당 대표이고, 둘째는 하원의원겸 비서실
장이다. 큰 사위는 경호실장이며 또 다른 사위는 동자부 장관, 또 다른 인척은 은행장, 이런
식으로 '로열패밀리'들이 경제를 회생시켜 보려고 노력하지만 아직 희망은 보이지 않으며,
곧 대규모의 폭동이 있을 거라는 흉흉한 소문만이 들려온다.
치안상태는 극도로 불안하여 주말 야간이면 사오십여 명이 죽어나가고, 거리에는 군인들
이 깔려서 치안을 통제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 교민들은 상의 윗도리에 약간의 돈을 꼭
넣어 다니는데, 골프를 치는데도 중간에 쑥 나타나서 총을 들이대고 돈을 털어가는 일이 비
일비재하다고 한다.
빈부의 격차가 엄청나게 심한 것도 해결해야 할 문제의 하나이다. 이 나라의 부자는 아주
잘살아서 미국 부호가 놀랄 정도라고 한다. 부자들은 대부분 마이애미에 별장으로 대저택을
가지고 있으며, 자가용 비행기를 소유하여 언제라도 외국으로 달아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 나라의 재무장관이 우리 나라로 찾아와서 재정경제원 장관을 만나려고 애를 쓴 모양인
데, 우리 나라 정치상황도 이 나라 못지않게 혼란스러워서 아마도 뜻을 이루지 못한 것 같
다는 풍문이 들려왔다.
모든 이의 애창곡, 베사메 무쵸
스페인어권을 다니다 보니 한 가지 공통적인 것은 '베사메 무쵸' 란 노래가 모든 사람들의
애창곡이라는 점이다. 술집엘 가도 그렇고, 어디를 가도 '베사메 무쵸'는 꼭 들려 온다. 그리
고 그곳 사람이나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가 어찌나 애수에 젖게 하는지···.
그래서 스페인어 통인 권병주 정보참모에게 그 노래를 번역해 달랬더니 그 내용은 우리
나라에서 번역해 부른 가사와는 뜻이 아주 달랐다. 이 사람들의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 전문을 여기에 소개해 본다.
BESAME MUCHO(베사메 무쵸)
BESAME BESAME MUCHO 키스 해주세요. 많이. COMO SO FUERA ESTA NOCHE
LA ULTIMA VEZ 오늘밤이 우리 사이의 마지막 밤인 것처럼. BESAME VESAME
MUCHO 키스해 주세요. 많이. QUE TENGO MIEDO PERDERTE PERDERTE DESPUES
나는 당신을 잃는 것이 정말 두려워요. QUIERO TENERTE MUY CERCA MIRAR EN
TUS OJOSESTAR JUNTO TI 계속 당신의 품 속에 있고 싶고, 당신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싶고 영원히 같이 있고 싶어요. PIENSA QUE TAL VEZ MANANA E LESTARE
MUYLEJOS MUY LEJOS DE AQUI 생각해 보면 내일 아침이면 나는 멀리 떠나는구료.
정말 먼 곳으로. BESAME BESAME MUCHO 키스 해주세요. 많이. COMO SO FUERA
ESTA NOCHE LA ULTIMA VEZ 오늘밤이 우리 사이의 마지막 밤인 것처럼.BESAME
BESAME MUCHO 키스 해주세요. QUE TENGO MIEDO PERDERTE PERDERTE
DESPUES 나는 당신을 잃는 것이 정말 두려워요.
10. 콜롬비아의 '카르타헤나'
에메랄드와 커피의 나라
1499년, 이 땅에 처음 발을 디뎠던 콜럼버스 일행은 이곳을 엘도라도(황금의 나라)라고 불
렀다. 그러나 지금의 '콜롬비아'는 브라질에 이어 세계 제 2위의 커피 생산국이며 세계시장
의 80퍼센트를 차지하는 에메랄드의 나라로 유명하다. 또 세계 최대의 마약 밀매 국가로 악
명을 떨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국가에서 마약생산 근절을 위해 마약사범을 소탕하는 등 온갖 노력을 하고 있지만 잘못된
사회체제와 정치 경제 상황 때문에 뿌리를 뽑는다는 것은 아예 요원하다고 한다.
경비행기로 양귀비 집단 생산지에 제초제를 공중 살포하면 양귀비는 죽지 않고 엉뚱한 농
작물만 피해를 입으니 불가능하고, 안데스 산맥의 깊은 밀림 속에서 이루어지는 마약 경작
지에는 경찰력이나 행정력이 아예 미치지 않는다니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콜롬비아인 같은 놈!' 그렇게 심한 욕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롬비아'는 '베네수엘라'에 비하면 비전이 있는 나라로 비쳐졌다. 국
민들이 돈을 벌기 위해 아등바등 열심히 일을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의 눈으로 볼 때
는 도무지 일을 하는 것 같지 않은데도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콜롬비아' 사람들이 굉장히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한다고 평가를 한다.
'베네수엘라' 사람들에게 가장 큰 욕이 '콜롬비아인 같은 놈'이라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
는 말이다. 이곳 사람들이 그들보다 악착같고 열심히 일을 하려고 할 뿐 아니라 사회, 정치,
경제 모든 면에서 '콜롬비아'는 '베네수엘라'를 능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르타헤나는 오래된 구시가지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올드타운'과 비치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뉴타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5,000페소를 주고 마차를 타고 시내관광을 했는데
한 시간이면 올드타운과 뉴타운을 속속들이 볼 수 있을 정도로 그리 크지 않은 항구도시가
바로 카르타헤나이다.
마침 우리가 도착한 날이 이 나라의 국경일이자 휴일이어서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라틴아메리칸 특유의 기질 때문에 사람들은 매우 친절했다. 그러나 '콜롬비아' 역시 '베네수
엘라' 못지않게 치안상태는 불안해서 밤에는 혼자서 마음대로 나다닐 수 없었다.
옛 성곽 속에서 데이트를
카리브해와 면해 있는 올드타운의 해변에는 옛날에 프랑스의 침공을 막기 위해 축조된 성
곽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그 성곽에는 10미터마다 총포를 쏘기 위해 뚫어놓은 구멍이
있고, 그곳은 이곳 젋은이들이 뜨거운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데이트 장소였다. 벌건 대낮에
남들이 구경하거나 말거나 성벽 구멍 속의 남녀들은 뜨거운 키스와 애무들을 나누고 있었
다.
또 첫날밤에 이곳에서 제일 괜찮다는 나이트클럽을 들러보았는데 입장료가 5,000페소
(4500원 정도)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제법 넓은 클럽 안은 꽉 들어찬 젊은이들로 인해
도무지 발을 디딜 틈이 없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술을 시켜먹는 건 고사하고 함께 간 일행
들을 놓칠 판이었다. 그것은 정말 기이한 체험이었다. 지금껏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들어간
술집을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백 여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술집에 아마도 이천 명은
들어온 것 같았다.
이 지역의 젊은 남녀는 다 몰려왔는지 통로는 물론 의자 위 테이블 위에까지 올라가서 광
란하는 음악에 맞추어 몸을 흔들어 대고 있었다. 도무지 숨쉬기도 거북해서 입장료가 아깝
지만 금방 나오고 말았다.
치안상태가 불안하므로 밤이면 젊은이들이 데이트를 할 수 있는 장소가 이곳뿐인 모양이
었다. 피끓는 젊은이들이 갈만한 장소가 없다는 것은 얼마나 비극인가? 그런 치안부재 현상
이 빚은 기이한 술집풍경이었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 나라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깨닫고나 있을까?
11. 엘도라도를 점령한 대우자동차
거듭 각광받는 한국 자동차
루마니아나 불가리아 같은 동구권에서도 느꼈지만 이곳 중남미에서도 '대우자동차'의 명성
은 매우 드높았다. 현대자동차가 국내시장과 미국시장에 주력하고 있는 사이에 대우자동차
는 그외의 지역을 재빨리 점령해 버린 느낌이다.
대우그룹의 지사는 이곳에서 맹렬하게 활동하며 세일즈를 하고 있는데 현대그룹의 지사는
도리어 철수를 했다고 들려온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곳 콜롬비아에서는 현대의 엑센트가
'슈퍼 포니'란 명칭으로 들어와서 매우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이곳의 택시는 대부분이 현
대의 '슈퍼 포니'였다.
왜 그런가 알아보았더니 20년 전에 들여왔던 현대의 '포니'가 이곳에서 너무 인기가 좋았
고, 고장이 잘 안나고, 이십 년을 굴려도 끄떡이 없는 차로 호평을 받았던 것이다.
황금의 나라, 엘도라도
콜롬비아의 대표적인 특산물 중에는 커피와 함께 '에메랄드'가 있다. 뉴타운의 시내에는
보석가게가 유달리 많았고, 가격은 무척 비싼 편이었다. 보석이란 게 워낙 비싼 물건이긴 하
지만 말이다. 그러나 국제 가격보다는 이곳의 가격이 비교적 싼 편이며 실제로 사려고 하면
또 엄청나게 깎아 주기도 한다.
옛날에 이곳을 침략했던 정복자들이 바로 이곳 카르타헤나를 통하여 엄청나게 많은 황금
을 실어가서 이곳을 '엘도라도'(황금의 나라)라고 부르기도 했고, 그 앞바다를 황금해안으로
명명했다지 않는가.
과연 명불허전이다. 그러나 그 많은 자원을 가진 나라의 사람들은 왜 그리 지지리도 못사
는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베네수엘라보다는 형편이 좀 낫다고 하지만 콜롬비아도 못
살기는 마찬가지였다. 원래 미인이 많은 이 나라의 진짜 미인들은 모두 파나마나 멕시코로
나가서 외화벌이에 몰두한다고 하니 말이다.
뉴타운의 해변은 매우 아름다웠다. 힐튼호텔을 비롯하여 세계적인 호텔체인이 줄지어 들
어 서 있었고, 해변에는 번지점프를 모방한 크레인 점프를 즐기는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50
미터 높이의 '크레인 점프'를 즐기는 가격은 우리 돈으로 4만 원 정도인데, 점프를 한 번 하
면 '라이어스'를 발급해 주는 게 특색이 있었다.
시간과 돈이 있었으면 50미터 고공에서 뛰어내리는 아찔한 스릴을 맛보고 싶었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고 말았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주의해야 할 점은 이곳이나 남미 쪽에선 함부로 손을 들지 말라는 것
이다. 우리는 반가우면 손을 번쩍 들고 흔들며 반가움을 표시하는데 여기선 그게 욕이란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열심히 손을 흔들고 다녔는데 한국사람들은 욕쟁이로 생각하면 어쩌
지 하는 걱정이 앞선다. 문화의 차이도 이 정도가 되면 가관이 아닐까?
12. 중남미의 무역 전진기지 '파나마'
지금의 최강국 미국을 만든 '파나마 운하'
미국이 세계의 강국으로 떠오른 것은 바로 파나마 운하를 건설하면서부터였다. 일찍이 파
나마 운하만큼 세계 발전에 크게 공헌한 인류의 위대한 업적은 달리 없었다.
80년에 걸쳐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세계 1,2차대전에 소요된 다이너마이트보다 많은 양의
다이너마이트가 소모되었으며, 각종 안전사고와 말라리아 같은 열병으로 2만 명 이상의 인
명이 희생된 공사였다. 결국 파나마 운하가 제대로 완성될 수 있었던 데는 '고르가스'라는
의무대령에 의해 '키니네'가 발견되고 말라리아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게 가장 큰 성공요인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파나마 운하는 천재가 만들어 낸 걸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
늘날의 발전된 컴퓨터로 운하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으나 더 이상 고칠 게 없
다는 결론이 컴퓨터에서 나오고 있다.
계단식의 운하이다 보니 엄청나게 많은 물이 소요되는데 배한 척 지나가는데 소요되는 물
은 보스턴 시민이 하루 먹을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그런데 파나마 운하에 소요되는 모든
물은 우기에 내리는 빗물을 활용하고 있다. 비가 많이 오는 파나마의 환경과 지형을 이용하
여 설계한, 절묘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파나마에는 '나바로'라고 하는 33세의 젊은 환경운동가가 있는데 파나마에서 유일하게 '세
계를 움직이는 100인'에 꼽힐 만큼 이 지역에서 환경의 역할은 중요하다.
일거삼득, 해군 순항훈련 세계일주
한국의 해군 순항훈련분대는 드디어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여 다시 태평양으로 들어섰다.
진해항을 출발하여 무려 4개월 동안 거쳐 온 수많은 바다들. 태평양, 동지나해, 남지나해를
지나고, 보름간에 걸친 인도양 논스톱 횡단. 또 홍해를 건너고, 수에즈 운하를 지나 지중해
와 지브롤터 해협을 거쳐 다시 대서양 논스톱 횡단, 그리고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을 읽
고 감명을 받은 콜럼버스가 향료를 얻기 위해 동양으로 가다가 뱃길을 잘못 잡아서 발을 들
여 놓은 바하마의 서인도 제도와 아메리카 대륙을 거쳐 파나마 운하를 건너 드디어 고대하
던 우리의 바다 태평양으로 돌아온 것이다.
지구를 한 바퀴 횡단하는 세계일주를 내가 어떻게 견뎌내었을까? 지난 4개월여의 추억이
꿈결처럼, 주마등처럼 다시 솟아 나오는 순간이었다.
파나마의 만찬장에서 만난 어느 지사장은 우리 나라의 국력이 벌써 이 정도가 되었는가,
우리 수준에 너무 과욕이나 낭비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내
가 그 동안 보고 느낀 점을 솔직히 얘기해 주었다.
우선 선진국의 해군은 모두 세계일주 훈련을 통해 해군 장교들을 양성하고 있으며, 해군
의 군함은 국내에서 경비를 하든, 세계일주를 하든, 기본적인 기름값은 똑같이 소요된다는
것을 설명했다. 장병들이 먹고 자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3척의 훈련분대 군함이 하루에
천이백만 원어치의 기름을 소모하는데 이것은 군함들이 국내에 있더라도 해안 경비를 위해
똑같이 소모되는 것이다.
반면에 해군 군함이 세계일주를 하면서 해군사관생도들을 교육시키고, 우리의 국력을 과
시하는 군함외교의 성과를 거두며, 나아가서 외국에서 활동하는 교민들을 위안하는 일거삼
득의 효과를 거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 지사장은 그제서야 무릎을 치며 참 잘하는 일이라며 칭찬을 했다.
지난 4개월간 군함에서 해군장병들과 함께 생활하며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가슴 뿌듯한
감동을 많이 느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러웠고, 우리에게도 이런 해군이
있다는 것이 믿음직스러웠다. 그리고 우리의 해군을 대양해군으로 더욱 성장 발전시켰으면
좋겠다는 것이 내가 그 동안 보고 느낀 솔직한 심정이다.
13. 파나마의 이모저모
태평양과 대서양을 좌우로 거느리다.
파나마는 중남미 국가 중에서도 대서양과 태평양을 좌우로 거느리고 있는 특이한 나라이
다. 콜롬비아도 대서양과 태평양을 좌우로 끼고 있기는 하지만 파나마처럼 운하로 연결되어
바다를 통해 대서양과 태평양을 통행할 수 없으므로 효과적으로 활용할 길이 없지만 파나마
는 예외이다.
세계 무역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는 파나마 운하의 수입은 파나마의 재정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마르코폴로가 동방견문록을 읽고 크게 감명을 받은 콜럼버스가 향료를
얻기 위해 동양으로 가다가 뱃길을 잘못 들어서서 "인도다!" 하고 외치면서 도착한 곳이 바
하마 제도였다. 그는 이곳을 서인도 제도라 불렀다. 원주민들이 인디안이 된 유래가 바로 이
렇다.
그 이후 스페인의 점령지로서 수탈을 당하던 이곳은 1800년에 미국이 독립을 하면서 독립
정신에 불이 붙었고, 시몬 볼리바르라는 위대한 인물이 1821년 11월 28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였다.
남미 해방의 영웅 볼리바르에 의해 독립된 독립 국가는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파나마, 에
콰도르, 페루를 합친 방대한 영토였다. 원래의 국가는 콜롬비아뿐이었으나 이후 페루, 에콰
도르, 베네수엘라가 따로 독립을 해 나갔으며, 파나마는 1903년 11월 3일 미국의 도움을 받
아 다시 독립을 쟁취했다.
파나마는 대서양쪽의 '크리스토발' 항구와 '콜론'시, 태평양쪽의 '발보아' 항구가 있는 '파나
마'시를 두 축으로 하여 발전하고 있는데, 국방은 미국이 맡아 주고 있으며 화폐도 미국 달
러를 그대로 쓰고 있다. 그런데 화폐단위는 '발보아'라는 독립된 명칭을 쓰고 있다. '발보아'
는 태평양을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의 이름이라고 한다.
베네수엘라가 독립의 아버지인 볼리바르 장군의 이름을 화폐단위로 그대로 쓰고 있듯 중
남미 제국은 사람의 이름을 화폐단위로 많이 사용하는 모양이다.
소수의 경찰력만 있고, 군대가 없을 만큼 국가의 행정력이 약하다 보니 파나마에는 국가
의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다고 한다. 주로 콜롬비아와 인접한 밀림지역인데, 그들
이 인디언 보호구역이라고 부르는 '샴블리스' 지역이다. 이곳은 자치지역으로 콜롬비아 화폐
를 쓰고 있으며, 인디언들이 통치를 하고 있는데, 종족에 따라 옷도 입지 않고 벌거벗고 지
내는 종족도 있다고 한다. 또 이곳은 마약지대로서 악명을 떨치기도 한다. 이 인디안 보호구
역에 우리 나라 사람으론 여행전문가인 김창삼씨가 유일하게 다녀온 기록이 있다고 한다.
대사관측에서 그곳은 위험지역이니 들어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도 김창삼씨는 자
전거를 타고 홀연히 사라지더니 열흘 만에 '다리엔'이라고 불리우는 그곳을 다녀왔다나? 당
시 대사관 직원들은 간이 콩알만해졌다고 한다.
대서양쪽의 콜론시티에는 중남미 시장을 노리고 파나마 정부가 설정한 프리 존(자유무역
지대)이 있는데, 세계에서 홍콩 다음으로 큰 상권을 형성하고 있었고, 이곳에는 우리 나라의
기업들도 상당수 진출해 있었다.
다가오는 서기 2000년이면 미국과 파나마간의 조약에 의하여 '파나마 운하'의 운영권이 파
나마에 모두 이양하기로 되어 있고 그래서 지금부터 파일럿을 양성하고 기술자들을 교육시
키는 등 인수인계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뜻 있는 사람들은 걱정이 태산이라고 한다.
파나마 사람들이 자체적인 인력이나 기술로 이 운하를 지금처럼 조직적으로 운영할 수 있
을지 걱정이 된다는 것이다. 다만 운하를 이용하는 우리들의 입장으로선 미국에서 운영할
때처럼 저렴한 비용을 계속 받아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을 뿐이다.
14. 타고난 미항, 멕시코의 '아카풀코'
아카풀코의 국적을 찾아라
세계적인 휴양지로서의 명성만 들었던 '아카풀코.' 천지함이 그 '아카풀코' 항으로 입항하
는 순간 과연 명불허전이란 느낌과 함께 강렬한 감동을 받았다.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항
구가 있을까?
'아카풀코'는 방파제를 따로 건설할 필요도 없을 만큼 천혜의 입지 조건을 지닌 독특하면
서도 아름다운 항구도시였다. 몇 년 전에 미국의 캘리포니아와 국경을 접한 멕시코의 '티화
나'라는 국경도시를 처음 방문했을 때의 느낌과는 너무나 천지차이였다. 뭐랄까, 미국의 신
혼여행객들이 첫 번째로 가고 싶어 한다는 아름다운 도시 샌디에이고에서 국경을 넘어 멕시
코에 첫 발을 디뎠을 때의 느낌은 지옥이었다.
천당과 지옥. 당시의 느낌은 바로 그랬다. 미국이 천국이라면 멕시코의 티화나는 바로 지
옥이었다. 그렇게 무질서하고 지저분의 극치를 달리는 도시는 난생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 날 이후 나에게 남아 있는 멕시코의 이미지는 지저분하고 더러움뿐이었는데, '아카풀
코'는 나의 그런 선입견과 편견을 말끔히 씻어내어 주었다.
여행을 하고 돌아오니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했는데 공통적인 질문 중의 하나가 지금까지
다녀본 나라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나라는 어디이며 또 가보고 싶은 곳은 어디냐 하는 것이
었다. 그 대답 중의 하나는 바로 '아카풀코'였다.
미국 사람들이 왜 비행기를 타고 숱하게 날아오며 해발 이천 미터에 살고 있는 멕시코시
티의 사람들이 왜 '아카풀코'에 오지 못해 안달하는지는 '아카풀코'에 도착하는 순간 저절로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멕시코의 '아카풀코'는 멕시코에서 가장 미국화된 도시중의 하나이다.
'아카풀코'에는 미국의 거대 자본이 들어와 있으며 경제권 역시 미국이 차지하고 있었고 생
활, 문화, 도시의 외양, 모든 것은 이미 철저하게 미국화 되어 있었다. 씁씁한 입맛이 다셔지
지만 사실 '아카풀코'라는 도시의 바로 그 점이 우리를 매혹시켰는지도 몰랐다. 휴향도시 '아
카풀코'는 그 세계적 명성 뒤에 이처럼 씁씁한 사연을 숨기고 있었다.
바다를 잠시 떠나도 다시 해변이 좋은 우리
세계의 모든 바다를 건넜고, 바다라면 물릴 만큼 물린 우리들이 그 해변을 보면서 탄성을
내질렀고, 그 해변에서만 뛰어 놀았으니 말이다.
'아카풀코' 만에는 세계적인 고급 호텔들이 경쟁적으로 늘어서 있는 '콘데사비치'가 있고,
이곳이 바로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해변 중의 하나이다. 이곳에선 온갖 해양스포츠는
모두 즐길 수 있는데, 태국의 파타야에서 타 보았던 모터보트가 끄는 낙하산 타기의 재미는
여전히 일품이었다.
모든 정박지마다 늘 그랬지만 사령관이나 참모장을 비롯한 지휘부와 여러 참모들은 도착
하면 각자의 임무와 정박지에서 벌어지는 각종행사에다 당직근무 때문에 시내관광은커녕 그
지역의 특산물 같은 기념품을 사러 가기도 쉽지 않은 형편이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모처럼 여유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콘데사비치의 프린스호텔에서
열렸던 멕시코 대사 주최의 조찬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막간을 이용하여 윤병균 참모
장, 그리고 유인수 군수참모와 함께 해변에서 낙하산 타기를 즐겼던 것이다.
극구 사양하는 참모장을 간신히 설득하여 낙하산에 태웠는데, 이게 웬일인가. 돌섬을 한
바퀴 도는데 참모장의 몸무게 때문에 높이 뜨지 못한 참모장의 낙하산이 돌섬의 절벽을 아
슬아슬하게 스치듯 지나가는 게 아닌가. 당시의 스릴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지만 나중
에 군함으로 돌아와서는 하마터면 돌덩이에 부딪치는 줄 알았다면서 참모장은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든다.
해군도 간이 썰렁해진 죽음의 다이빙
또 한 가지 아찔한 스릴을 느끼게 하는 곳은 '죽음의 다이빙' 계곡이다. 왜 '죽음의 다이
빙'이라는 으시시한 이름을 붙였을까? 직접 그곳을 찾아가 보니 한 마디로 아찔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50미터의 가파른 절벽 위에서 멕시코의 청년들이 생명을 걸고 절벽 아래로 뛰
어내리는 게 아닌가. '라케브라다'라고 부르는 이곳의 계곡은 수심이 그리 깊지도 않았다. 고
작 1,2미터 정도나 될까? 그 정도의 수심에서는 절대 다이빙을 할 수가 없다. 특히 50미터의
높이에서는 말이다. 그런데 다이빙 선수들은 파도가 밀려와 수심이 약간 깊어지는 그 순간
을 포착하여 계곡 아래로 몸을 날린다는 것이다. 만약 자칫 실수하여 타이밍을 놓치는 사태
가 벌어진다면 그대로 죽음과 직결되기 때문에 '죽음의 다이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
다.
입장료는 1달러. 그 1달러에 목숨을 걸고 뛰어내리는 멕시코의 청년들을 보자니 그 용감
무쌍함에 경탄을 하기 전에 애처로운 느낌이 먼저 앞선다. 그러나 정말 볼 만한 광경 중의
하나였다. '죽음의 다이빙'은 특히 야간에 관람을 하는 것이 장관인데, 횃불을 들고 어둠을
뚫으며 비조처럼 날아내리는 다이빙 선수들을 보는 순간, 단말마의 외침이 절로 나온다.
맑은 햇빛과 깨끗한 바다를 앞세워 관광수입으로 지탱하는 도시 '아카풀코'. 요즘은 그 바
다가 꽤 오염되어 이곳에서 나는 해산물을 먹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카풀
코' 는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주체를 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낮보다 밤이면 더욱 흥청
대는 도시가 '아카풀코'였다.
해변을 끼고 발달된 도시의 해변쪽엔 벼라별 형태의 유흥업소가 늘어서서 관광객들을 유
혹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얼마 전에 화폐개혁을 단행했을 정도로 인플레가 심했고, 심각한 불경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아카풀코'는 활력이 넘쳤다. 세계의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것
은 외국인들에겐 무조건 바가지를 씌운다는 사실이었고, '아카풀코'도 예외는 아니었다. 멕시
코의 특산물을 구입하기 위해 기념품 가게를 들를 때는 무려 50퍼센트 이상을 깎아야만 할
정도로 심하게 부르는 게 예사였다. 관광을 마치고 군함으로 돌아온 해군들이 사온 기념품
품평회를 해보면 똑같은 기념품을 같은 가격으로 산 사람이 드물 정도니까 말이다. 75퍼센
트까지 깎아주는 사례도 흔했다.
스페인어 회화 노트
'푸에르토 리코'를 비롯하여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파나마' '멕시코' 등의 중남미권을 다
니면서 가장 애로를 겪은 것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세계일주를 하면서 느낀
소감은 스페인어권의 인구가 전 세계의 3분의 1은 될 것 같다는 느낌이며 스페인어권을 여
행할 때는 간단한 말 몇 마디는 할 줄 아랑야 밥이나 물을 얻어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스페인어 회화는 순항훈련분대의 '천지함' 작전관으로 근무중인 임준호 소령이 작성하
여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이 메모를 들고 다닌 사람은 이 메모의 덕을 톡톡히 보
았다고 장담할 수 있다.
어느 장병은 이 메모노트를 들고 다니면서 현지의 아가씨와 대화하고 친구를 사귀었을 정
도이니까 말이다. 직접 말을 할 필요도 없이 노트를 펼쳐 놓으면 상대가 그 중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면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사용
했던 스페인어 회화노트를 첨부하고자 한다.
1. 기본 회화
1)예/아니오. 씨(SI)/노(NO)
2)-해 주십시오. 뽀르 파브르(PAR FOVOR)
3)대단히 감사합니다. 무차스 그라시아스(MUCHAS GAACIAS)
4)실례합니다. 뻬르돈(PERDON)
5)천만에요. 데 나다(DE NADA)
6)미안합니다. 디스꿀 뻬메(DISCULPEME)
7)괜찮습니다. 에스따 비엔(ESTA BIEN)
8)내 이름은 킴입니다. 메 리야모 킴(ME IIAMO KIM)
9)당신 이름은 무엇입니까? 꼬모 쎄 리야마 우스떼(COMO SE LIAMA USTED?)
10)여기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이 알기엔 께 아블레 잉글레스(HAY
ALGULEN 볃 HALE INGLES)
11)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듣겠다. 노 엔띠엔도(NO ENTIENDO)
12)물 좀 주세요. 아구아, 뽀르 파보르(AGUA, POR FAVOR)
13)화장실이 어딥니까? 돈데 에스따 엘 바뇨(DONDE ESTA 디 BAN~O)
14)경찰 좀 불러 주세요. 리야메 알 폴리시아, 뽀르 파보르(LIAME AL POLICIA, POR
FAVOR)
15)알겠습니다. 엔뗀디도(ENTENDIDO)
16)나는 한국인입니다. 요 쏘이 꼬레아노(YO SOY COREANO)
2. 인사말
1)안녕하십니까?(아침, 오후, 저녁) 부에노스 디아스(BUENOS DIAS), 부에노스 따르데스
(BUENOS TARDES), 부에노스 노체스(BUENOS NOCHES)
2)안녕히 가세요(계세요)-작별인사- 아디오스(ADIOS)
3)처음 뵙겠습니다. 무초 구스또(MUCHO GUSTO)
4)만나서 반갑습니다. 메 알레그로 데 베를레(ME ALEGRO DE VERLE)
5)먼저 하세요(양보 할 때) 우스떼 쁘리메로(USTED PRIMERO)
6)실례합니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뻬르돈, 오이가 우스떼(PERDON, OIAG USTED)
3.환전
1)어디서 돈을 바꿀 수 있습니까? 돈데 뿌에도 깜비아르 라 모네다(DONDE PUEDO
CAMBIAR LA MONEDA?)
2)100달러 바꿔 주세요. 뽀르 파보르, 깜비에메 씨엔 돌라레스(POR FAVOR,
CAMBIEME 100 DOLARES)
4. 숫자
1 우노(UNO) 2 도스(DOS) 3 뜨레스(TRES) 4 꾸아뜨로(CUATRO) 5 신꼬(CINCO) 6 쎄
이스(SEIS) 7 씨에떼(SIETE) 8 오초(OCHO) 9 누에(NUEVE) 10 디에스(DIEZ) 20 베인떼
(VEINTE) 30 뜨레인따(TREINTA) 40 꾸에렌따(CUARENTA) 50 씬꾸엔따(CINCUENTA)
100 씨엔또(CIENTIO) 1,000 밀(MIL) 10,000 디에스밀(DIEZ MIL) 100,000 씨엔밀(CIEN
MIL) 예)2백 도스 씨엔또(DOS CIENTO) 3천 4백 뜨레스 밀 꾸아또르 씨엔또(TRES MIL
CUATRO CIENTO)
5. 기본 회화 추가
1)해군. 나발(NAVAL)
2)나는 해군이다. 요 쏘이 데 꼬레아 나발(YO SOY DE COREA NAVAL)
3)항구. 뿌에르또(PUERTO)
4)원양 항해. 나베까씨온 데 알뚜라(NAVEGACION DE ALTURA)
5)군함. 나비오(NAVIO) 나비오 데 구에라(NAVIO DE GUERRA)
6)해군 소령. 나비오 데 쁘리메라(NAVIO DE PRIMERRA)
7)안녕. 올라(HOLA!)
8)다시 만나요. 아스따 루엔꼬(HASTA LUEGO) 아스따 라 비스따(HASTA LA VISTA)
6. 길을 갈 때
1)미안하지만-로 가는 길 좀 가르쳐 주세요. 뽀르 파보르, 엔세녜메 엘 까미노 빠라-(POR
FAVOR, ENSEN-듣 디 CAMINO PARA)
2)시간은 얼마나 걸립니까? 돈데 에스따모스 아오라(DONDE ESTAHORA?)
4)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를 지도에서 지적해 주십시오. 뽀르 파보르, 인디께메 엔 에스떼
마빠 돈데 에스따모스 아오라(POR FAVOR, INDIGUEME EN ESTE MAPA DEONDE
ESTAMOS AHORA)
5)이 거리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꼬모 세 리야마 에스따 깔리에(COMO SE LIAMA
ESTA CALLE?)
6)저 건물은 무엇입니까? 께 에스 에쎄 에디피시오(QUE ES ESE EDIFICIO?)
7)시장. 엘 메르까도(EL MERCADO)
8)지하철 역.(기차역) 라 에스따씨온 데 메뜨로(레로까릴)(LA ESTACION DE METRO
(FERROCARRIL))
7.화장실
1)화장실은 어디입니까? 돈데 에스따 엘 세르비씨오(DONDE ESTA EL SERVICIO?)
2)화장실 좀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뽀르 파브르, 뻬르미따메 우사르 수 세르비씨오(PRO
FAVOR, PERMITAME USAR SU SERVICIO)
8. 택시 탈 때
1)택시 타는 곳은 어디입니까? 돈데 에스따 라 빠라다 데 택시(DONDE ESTA LA
PARADA DE TAXI?)
2)택시 한 대 불러 주셔요. 리야메 운 딱시, 뽀르 파보르(LIAME UN TAXI,
PORFAVOR)
3)-까지 요금은 얼마입니까? 꾸안또 꾸에스따 마스 오 메노스 아스따-(ANTO CUESTA
MAS O MENOS HASTA-)
4)-까지 가 주셔요. 리에베메 아-(LIEVEME A-)
5)서둘러 주세요(빨리 갑시다) 마스 라삐도, 뽀르 파보르(MAS RAPIDO, POR FAVOR)
6)여기서 서 주셔요. 빠레 아끼, 뽀르 파보르(PARE AQUI, POR FAVOR)
7)거스름돈은 가지셔요. 께데쎄 엘 깜비오(QUEDESE EL CAMBIO)
9. 지하철에서
1)여기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은 어디입니까? 돈데 에스따 라 에따시온 데 메뜨로 마스
2)표 두 장 주세요. 도스 빌리에떼스, 뽀르 파보르(DOS BILLETES, PORFAVOR)
예)동대문 역 5장(동대문 신꼬 DONGDEMUN CINCO)
3)나는 -에 가고 싶습니다. 끼에로 이르 아-(QUIERO IR A-)
4)시내 중심가. 엘 센뜨로 데 라 씨우닫(EL CENTRO DE LA CIUDAD)
10 사진 찍을 때
1)여기서 사진 찍어도 됩니까? 뿌에도 사까르 포또스 아끼?(PUEDO SACAR FTOS
AQUI?)
2)사진 좀 찍어 주세요. 뽀뜨리아 아쁘레따르 엘 보똔 델 옵우라도르?(PODRIA
APRETAR 디 BOTON DEL OBTURADOR?)
3)함께 사진 찍어 주셔요.(나와 함께). 뗀뜨리마 인꼰베니엔떼 엔 아쎄르세 우나 포또 꼼
미고?(TENDRIA INCONVENIENTE EN HACERSE UNA FOTO COMMIGO)
4)보내 드릴테니 여기 주소를 적어 주셔요. 레 엔비아레 라 포또 뽀르 파보르, 에스끄리바
아끼 수디렉씨온(LE ENVIARE LOA FOTO POR FAVOR, ESCRIBA AQUI 녀
DIRECCION)
11. 쇼핑할 때
1)얼마입니까? 꾸엔또 에스(QUANTO ES?)
2)전부 합해서 얼마입니까? 꾸엔또 에스 엔 또탈(QUANTO CUESTA EN TOTAL?)
3)구경만 하겠습니다. 에스또이 쓸라멘떼 미란도(ESTOY SOLAMENTE MIRANDO)
4)나한테는 너무 비쌉니다. 에스 데마시아도 까로(ES DEMASIADO CARO)
5)조금 싸게는 안됩니까? 아가메 운 디스꾸엔또(AGAME UN DISQUENTO)
12.식당에서
1)메뉴 주셔요. 엘 메누, 뽀르 파보르(EL MENU, POR FAVOR)
2)영어로 된 메뉴판이 있습니까? 띠에네 엘 메누 에스끄리또 엔 잉글레스(TIENE 디
MENU ESCRITO EN INGLES?)
3)영어 할 줄 아는 사람 있습니까? 아이 알기엔 께 아블레 잉글레스(HAY ALGUIEN
QUE HABLE INGLES?)
4)이것으로 하겠어요. 데메 에스또(DEME ESTO)
5)지금 곧 됩니까? 뿌에데 뜨라엘로 엔 쎄기다(PUEDA TRAERLO EN SEQUIDA?)
6)완전히(중간,살짝)구워 주세요.(STEAK시킬 때) 뽀르 파보르, 비엔 빠사도(노 무이 삐사
도, 뽀꼬 삐사도)(POR FAVOR,VIEN PASADO(NO MUY PASADO, POCO PASADO)
7)그 요리는 일품이었습니다. 그리씨아스, 에스따바 델리씨오스(GRACIAS, ESTABA
DELICIASO)
8)음식이 맛있습니다. 라 꼬미다 에스리까(LA COMIDA ES RICA)
9)웨이타 주문 좀 받아요. 엘 모소, 뽀르 파보르, 뻬디도(EL MOZO, POR FAVOR,
PEDIDO)
10)계산서 주셔요. 뽀르 파보르, 엘 에스따 꾸엔따(POR FAVOR, EL ESTA CUENTA)
11)주문에 필요한 단어 물 아구아(AGUA) 빵 엘 빤(EL PAN) 스프 라 소빠(LA SOPA)
밥 엘 아로스(EL ARROZ) 버터/쨈 라 만떼꼬리야/라 메르멜라다(LA MANTEQUILLA/LA
MERMESADA) 샐러드 라 인엔살라다(LA ENSALADA) 닭고기 엘 볼리요(EL POLLO) 소
고기 라 까르네 데 바까(LA CARNE DE VACA) 돼지고기 라 까르네 데 쎄르도(LA
CARNE DE CERDO) 소금 라 살(LA SAL) 후추 라 삐미엔따(LA PIMIENTA) 와인 엘 비
노(EL VINO) 맥주 라 세르베사(LA CERVEZA) 커피 엘 카페(EL CAFE) 설탕 엘 아수까
르(EL AZUCAR) 재떨이 엘 쎄니쎄로(EL CENICERO) 냅킨 라 세르빌리예따(LA
SERVILLETA) 담배 엘 씨가릴리요(EL CIGARRLLO) 라이타 엘 엔쎈데도르(EL
ENCENDEDOR) 위스키 엘 위스키(EL WHISKY)
13)대화에 필요한 참고 자료
1)이것은 무엇입니까? 께 에스 에스또(QUE ES ESTO)
2)당신의 직업이 무엇입니까? 께 에스 우스떼(QUE ES USTED?)
3)실례합니다. 꼰 뻬르미소(CON PERMISO)
4)당신은 어디 출신입니까?/나는 한국인입니다. 데 돈데 에스 우스떼?/소이 꼬레아노 (DE
DONDE ES USTED?/SOY COREANO)
5)당신을 만나게 되서 반갑습니다. 무초 구스또 엔 꼬노쎄르레 아 우스떼(MUCHO 변새
두 CONOCERLE A USTED)
6)반갑습니다. 엔깐따도(ENCANTADO)
7)내 이름은 김철수입니다. 미 놈브레 에스 김철수(MI NOMBRE ES KIM CHUL SOO)
8)기혼입니까? 미혼입니까? 에스따 까사다 오 쏠레라(ESTA CASADA O SOLTERA?)
9)미혼입니다. 에스따 쏠레라(ESTA SOLTERA)
10)나는 쇼핑하기를 원한다. 요 데세오 이르 데 꼬쁘라스(YO DES대 IRDE COMPRAS)
11)나는 너를 사랑한다. 요 eP 아모(YO TE AMO)
12)당신은 몇 살입니까? 구안또스 아뇨스 띠에네스(CUANTOS AN-OS TINES?)
13)여기서 담배 피워도 됩니까?
14)나는 만족한다. 에스또이 꼰덴또(ESTOY CONTENTO)
15)당신은 서울에 가 본 적이 있습니까? 꼬노쎄스 쎄울(CONOCES SEOUL?)
16)운전수, -까지 갑시다. 초퍼, 바모스 아 라- (CHOFER, VAMOS A LA-)
17)팁입니다. 에스 라 쁘로삐나(ES LA PROPINA)
18)식당 레스따우란떼(RESTAURANTE)
19)이 근처에 중국 음식점은 없습니까? 아끼 쎄르가 아이 운 레스따우란떼 데 꼬미다 치
나?(AQUI CERCA HAY UN RESTAURANTE DE COMIDA CHINA?)
20)이태리 요리/일본 요리/한국 요리 이딸리아나/하보네사/꼬레아나
(ITALIANA/JAPONESA/COREANA)
21)한번/두번/세번 우나 베스/도스베쎄스/뜨레스 베쎄스(UNA VEZ/DOS VECES/TRES
VECES)
제11장 세상 밖에서, 다시 세상 속으로
1.대장정을 마치며
한번 해군은 영원한 해군
꿈결같은 '아카풀코'에서의 2박 3일
그 일정을 마지막으로 우리의 길고도 길었던 대장정도 거의 내리막기로 치달렸다. 앞으로
미국의 LA와 하와이, 괌을 방문하는 일정이 남아 있지만 그것은 진해로 돌아가는 길에 잠
시 쉬어가는 뜻이 있었으므로 공식일정은 거의 막을 내려가는 셈이었다.
뒤늦게 하와이에서 날아온 전보에 의하면 하와이의 교민들이 우리 해군들을 맞이하기 위
해 해군 순항훈련분대의 입항일자를 '한국의 날'로 정하고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준비하고 있
다고 해서 지칠 대로 지친 해군장병들을 다소 긴장시키고 있기는 했지만 대장정이 끝난 것
은 거의 틀림없었다.
지난 144일간 우리는 정말 많은 일을 했고, 알찬 삶을 살아온 느낌이다. 진해를 처음 출항
할 때의 기대도 물론 그랬지만 실제로 접해본 해군 순항훈련은 확실히 기대 이상의 효과를
거둔 느낌이었다.
우리의 형편에 해군 순항훈련을 한다는 것은 사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하긴 나 역시 처음엔 그랬으니까. 그러나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나의 사고
는 180도로 바뀌고 말았다. 해군 순항훈련은 더욱 확대되고 발전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우리
의 국력을 널리 알리고, 우리의 해군을 대양해군으로 탈바꿈하는 것만이, 오늘날같이 힘의
논리가 앞서는 국제적 역학관계에서 우리의 위상을 높이고 우리 나라가 살아날 길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강력하게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해군 순항훈련분대가 벌였던 군함외교의 공적은 혁혁했다. 해군사관생도들을 교육
한다는 원래의 취지가 무색해질 정도로 군함외교의 성과는 대단했다. 순방하는 국가의 교민
들을 위로하고 조국에 대한 애착심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한 업적도 물론 작지 않았다.. 특
히 순방하는 국가에서 해군군악대와 해군 사물놀이단이 벌였던 공연은 그곳의 교민들은 물
론 현지인들로부터 열렬한 환영과 칭송을 받았다.
늘 순항훈련분대의 안전과 무사귀환을 기대하며 격려를 해주셨던 안병태 해군 참모총장과
정병두 순항훈련분대 사령관. 그리고 윤병균 참모자, 높은 파도에도 불구하고 한미 합동훈련
을 하느라 노심초사하셨던 천지함의 오재선 함장, 부산함의 김용옥 함장, 청주함의 오예근
함장, 그리고 휘하의 여러 참모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624명 전 장병들에게 대한민국
해군순항훈련분대가 그 동안 거둔 성과의 모든 공을 돌리고 싶다. '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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