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카한국위인특대전집 (1) 동명성왕.
동명성왕 (기원전 58 -기원전 19 )
고구려의 시조로 이름은 고주몽이다. 삼국사기 에 의하면 동부여왕 해부루가 죽고 즉위한 금와
왕이 아내로 맞이한 유화에게서 주몽이 태어났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유화는 하느님의 아들 해
모수와 가까이하여 부모로부터 쫓겨나 우발수에 살다가 금와왕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금와왕
의 부인이 된 유화는 어느 날 햇빛을 받고 임신하여 알을 낳았는데, 그 알에서 사내아이가 나와
서 자라니 이가 곧 주몽이었다. 주몽은 영특하고 재주가 뛰어나 금와왕의 일곱 왕자와 신하들로
부터 시기를 많이 받게 되었다. 그러자 유화부인은 주몽의 앞날을 위해 주몽을 동부여에서 떠나
보냈다. 그리하여 주몽은 졸본부여로 남하아여 기원전 37년에 고구려를 세우고 왕국을 건설하였
다.
1. 부여국
먼 옛날, 드넓은 만주 벌판에는 많은 종류의 종족들이 퍼져 살고 있었다.
그들 종족들 중에는 쑹화 강에 모여서 주로 농사를 짓고 사냥을 즐기며 사는 흰색을 숭상하는
종족이 있었는데, 그들을 부여족 또는 예맥족 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부족 연맹체적인 성격을 띤 초기 국가를 세웠으며, 농사와 목축이 성행하여 풍족한 삶
을 누리고 있었다. 그들은 오곡을 생산하였으며, 말. 소. 돼지.개 등이 주요한 가축이었다. 특히,
대평원에서 생산되는 그들의 말은 유명하며, 어린 아이 때부터 말을 타기 시작 하였기 때문에 강
한 전투력을 지니게 되었다.
그들의 특이한 풍습으로는 노래와 춤을 즐기며 휜 옷을 좋아했으며, 특히 12월에는 영고 라는
축제를 거행 하였는데, 이것은 본격적인 사냥철이 시작되는 시기에 행하던 공동 수렵 행사를 계
승한 것이다.
그들의 젖줄이 되었던 쑹화 강은 오늘날 중국의 동북지방이라 불리는, 만주의 큰 강이다.
쑹화 강은 백두산 천지에서 시작되어 장엄한 장백 폭포를 거쳐 서북으로 흐르고, 휘발하. 이통
하 등과 합쳐 흑룡강(헤이룽 강)으로 흐른다. 그리고 그 연안에는 현재의 지린(길림), 하얼빈, 자
무쓰 같은 도시가 있다.
대체 언제쯤이었을까?
부여왕 해부루는 자기에게 대을 이을 아들이 없음을 늘 슬퍼하며 명산 대천을 찾아다니며 빌었
다.
하늘이시여, 부디 저에게 아들을 주옵소서. 이제 저에게는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나이다. 부
디 이 부여국을 이어받을 아들을 점지해 주옵소서.
이러한 기도를 몇 해를 두고 계속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해부루의 정성에 하늘이 감동했는지 그에게 아들이 생기게 되었다.
어느 날, 해부루는 말을 타고 사냥을 나갔다.
그런데 곤여 라는 호숫강에 이르렀을 때, 타고 있던 말이 큰 바위 앞에서 갑자기 무엇에 놀난
듯이 앞발을 들며 히잉! 하고 슬피 울었다.
아니, 이 말이 갑자기 무엇에 놀랐을까?
왕은 말을 달래기 위해 고삐를 당기고 두 발로 말의 옆구리를 걷어찼지만 말은 꼼짝도 하지 않
았으며, 더구나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말의 행동을 수상하게 여긴 해부루는 뒤를 따르는 부하들에게 명령하였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여봐라, 앞의 저 돌을 조심스럽게 밀어 보아라!
부하들이 바위를 밀어 내자, 그 곳에는 한 갓난아기가 몸에서는 눈이 부실 정도로 빛을 내뿜으
며 개구리처럼 웅크리고 있는 것이었다.
해부루는 기뻐하며 외쳤다.
아, 하늘이 내 소원을 들어 주셔서 훌륭한 아들을 내려 주셨구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봐라, 저 아이를 소중히 모시도록 하라.
해부루는 곧 그 아이를 궁전으로 데려가 키웠고, 이름을 금와 라고 불렀다. 금와는 금개구리
라는 뜻이다.
세월이 지나 금와가 성장하자 해부루는 그들 태자로 삼았다.
하루는 대신 아란불이 와에게 말했다.
며칠 전에 하느님이 저에게 내려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머지않아 내 자손으로 하여금
이 곳에 나라를 세우게 할 작정이니 너는 피해 가라. 네가 갈 곳은 동쪽 바닷가에 가섭원 이라
는 넓은 땅이 있는데, 그 곳은 땅이 기름져오곡이 잘 여물어 도읍할 만한 곳이니 너는 그리 가
라. 하셨으니, 대왕께서는 그 말에 따라 도읍을 가섭원으로 옮기는 게 좋겠습니다.
해부루는 이 말에 따르기로 하여 도읍을 가섭원으로 옮기고, 나라 이름을 동부여 라 했다.
그 후, 부여족이 떠난 곳에는 어디서 왔는지 모를 사람이 스스로 하느님의 아들 해모수 라 하
고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웠다.
그러나 여기에서 삼국사기 에 전해지는 이야기를 살펴보면 동부여는 부여의 왕 해부루가 하느
님의 아들이라는 해모수의 세력에 밀려 동쪽 바닷가에 옮겨가 세운 나라로 되어 있다. 이것으로
보아 부여왕과 해모수 사이에 어떤 세력 다툼에서 부여왕 해부루가 패해서 동쪽 바닷가로 밀려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잠시 스스로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해모수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해모수는 고구려 건국 신화에 나오는 사람으로서 그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는 두 가지가 전해
지는데, 그 중 첫 번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해모수는 하느님의 아들로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다섯 마리의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지상으
로 내려와 인간 세상을 다스렸다.
또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해모수는 천제(하느님)로서 직접 흘승골성이라는 곳에 내려와 북부여를 세웠으며 부루를 낳았
다.
그런데 고구려의 건국 신화를 전하는 가장 오래 된 자료인 광개토 대왕비나 중국의 위서 에는
해모수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런 이야기는 훗날 고구려가 부여를 병합한 뒤, 부
여인들의 감정을 달래기 위해서 고구려의 신화와 결합시킨 이야기로 추측된다.
다시 이야기는 동부여로 옮겨진다.
해부루가 죽고 금와가 왕이 되었다.
금와왕은 매우 슬기롭고 용맹스러워 어진 정치를 하여 백성들이 그를 친아버지처럼 따랐다.
그는 사냥을 매우 즐겼으며 활을 잘 쏘았다.
어느 날, 사냥을 나온 동부여의 금와왕는 태백산 남쪽 우발수에 이르렀다. 그 곳은 거울처럼
맑은 강물에 산의 그림자가 잠겨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참 아름다운 강이로다.
말을 세운 왕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고, 말한테 물을 먹였다. 그 때, 금와왕은 강가에서 앉
아 울고 있는 한 여인을 발견하였다.
이 외딴 곳에서 우는 그대는 누구인고?
소녀는 하백의 딸 유화이옵니다.
하백이라면 쑹화 강을 지키는 신이 아닌가? 한데, 울고 있는 까닭이 무엇인고?
부끄러운 말씀이오나, 어느 날 저는 동생들과 강에서 미역을 감고 있었는데, 하느님의 아들이
라는 해모수가 웅심산에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저를 발견하고 산으로 데려갔습니다. 소녀는 해모
수와 사랑을 하게 되었는데, 얼마 있다가 해모수는 하늘로 돌아가서 다시는 내려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의 부로는 함부로 해모수와 지냈다고 저를 야단쳤습니다. 그리고 저를 이 곳 우발수로 귀양
을 보낸 것입니다.
왕은 이야기를 듣고 나자 혀를 끌끌 차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로다. 네 사정이 참으로 딱하게 되었으니 내가 잠시 너를 돌보아 주리
라.
하며 유화를 궁전으로 데려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햇빛이 유화가 묵은 방 안으로 들어오더니 유화를 비추는 것이었다. 유화가 햇빛을 피하려고
했으나, 햇빛은 쫓아오면서 계속 유화를 비추었다.
이런 일이 있은 얼마 후, 유화는 배가 불러 이윽고 알을 하나 낳았는데, 크기가 닷 되들이 항아
리만 했다.
소문은 금세 퍼졌다.
참 별일이야, 사람이 알을 낳다니!
아무래도 상서롭지 못한 일이야.
대궐 안은 술렁거렸다. 왕도 몹시 언짢아서 신하들에게 명령하였다.
사람이 알을 낳다니 수상한 일이다. 그것을 개나 돼지한테 주어 버려라.
신하들은 알을 마구간에 버렸다. 그런데 소와 말과 같은 짐승들이 그 알을 보자, 모두 피하였
다.
왕은 이 보고를 받고 몹시 화를 내었다.
그것 참 망측한 일이로다. 이제 아주 먼 곳에다 갖다 버려라.
왕의 명령을 받은 신하들은 이번에는 알을 들판에 버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날짐승들이 날아와
서로 다투어 알을 품어 주었다.
왕은 더욱 이상하게 여기고 부하에게 명령했다.
도무지 이상한 일이다. 알을 깨 버려라.
왕의 명령을 받고 나간 부하가 잠시 후 돌아와서 보고 했다.
큰 도로 내리쳤지만 도무지 깨어지지 않았습니다.
왕은 몹시 놀라워했다.
이거 예삿일이 아니로구나. 그 알을 다시 어미에게 가져다 주어라.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보다.
알을 돌려 받은 유화는 알을 따뜻한 자리에 두고 마른 풀이나 잎사귀로 싸서 정성껏 보살펴 주
었다.
그런 후 며칠이 지나자 방 안에 상서로운 빛이 감돌더니, 알을 깨고 사내아이가 나왔다.
대궐 안은 또 한 번 떠들썩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아이에 대해 수군거렸다.
어떤 이는 그 아이를 해모수의 아들이라고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해님의 아들이라고 했고,
또 다른 이는 금와왕과 유화 사이에 태어난 아이라고 했다.
그럼 여기서 삼국사기 와 삼국유사 에 전하는 내용을 보면 유화 부인이 낳은 주모의 아버지는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였으며, 해모수는 북부여의 왕이라고 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아 할 점은 그가 동부여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북부여의 왕실의 혈
통을 이어받았다고 기록된 점이다.
아무튼 알에서 태어난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아기는 세 살 때에 벌써 활을 쏠 줄 알았으며, 힘이 매우 장사였다.
일곱 살이 되면서부터는 소년은 자기 손으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았는데, 백 번 쏘아 백 번
다 맞힐 만큼 그 솜씨가 뛰어났다. 아무리 빨리 달리는 짐승도 놓치는 일이 없었다.
그 때, 동부여에서는 매년 활쏘기 대회를 열었는데, 그 대회에서 활을 가장 잘 쏘는 사람을 뽑
아 주몽 이라고 불렀다.
아이도 이 대회에 참가하여 모든 사람을 제치고 주몽이 되었다.
한편, 금와왕에게는 일곱 왕자가 있었는데, 그 중 맏 왕자인 대소는 욕심이 많고 성질이 사나웠
다.
그는 항상 주몽이 재주가 뛰어난 것을 두려워하고 그의 재주를 샘내었다.
동부여의 도읍지 가섭원 근처에는 숲이 좋고 짐승들이 많아 좋은 사냥터가 많았다.
사냥을 좋아하는 금와왕은 주몽과 함께 일곱 왕자들을 데리고 사냥을 즐겼다.
주몽은 짐승을 놓치는 일이 없으니, 화살을 열 개만 주겠다.
그리고 다른 왕자들에게는 활살을 스무 개씩을 주었다. 그러나 화살 스무 개씩을 받은 다른 왕
자들보다 열 개를 받은 주몽이 언제나 더 많은 짐승을 잡았다.
이 소문은 온 나라 안에 퍼져 나갔다.
그러자 주몽의 재주를 본 받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이 주몽에게 몰려들었다. 그 중에 오이, 마리,
협부는 주몽을 그림자처럼 따랐다. 그들은 힘도 세었고 무예도 뛰어났다.
형편이 이렇게 되자, 샘이 난 대소와 다른 왕자들은 주몽과 그의 부하들을 혼내 주기 위해 꾀
를 내었다.
어느 날, 대소는 주몽에게 함께 사냥을 가자고 제의 했다.
대소와 그의 동생들, 그리고 주몽은 궁궐에서 멀리 떨어진 산으로 가서 화살을 가지고 꿩이나
기러기 등 날짐승들을 사냥하였다. 그러나 활 솜씨는 주몽이 당연 앞섰다.
대소나 다른 왕자들은 하루 종일 활을 쏘아야 불과 몇 마리도 못 잡았지만, 주몽은 백발 백중
명중시켰다.
사냥이 거의 끝나갈 무렵, 숲에서 갑자기 푸드덕 하는 소리와 함께 꿩 한 마리가 날아갔다.
야, 장끼다.
아이들은 일제히 꿩을 향해 활을 쏘았다. 여러 개의 화살 중 하나가 꿩의 몸통을 맞히어 날아
가던 꿩이 거꾸로 떨어졌다.
대소는 외쳤다.
하하하, 이번에는 내가 맞혔다.
그러나 주몽은 침착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왕자님. 꿩을 맞힌 것은 제 화살입니다.
거짓말 마라. 네가 어떻게 그것을 알아?
두고 보시면 아십니다.
아이들은 꿩이 떨어진 곳으로 달려갔다.`
주몽은 꿩의 몸에서 화살을 뽑으며 말했다.
보십시오. 이 화살에는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아요.
그러니 이것은 제가 맞힌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꿩은 제가 가져야 합니다.
동생들 앞에서 망신을 당한 대소는 약이 올랐다.
궁전에 돌아오자 대소는 왕에게 졸랐다.
아버지, 주몽을 죽이도록 하세요!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냐?
그는 종이면서 건방져요. 그는 제가 맞힌 꿩도 자기가 맞힌 것이라고 끝까지 우겼어요.
그렇다면 볼기라도 몇 번 때리면 되었지, 꿩 한 마리 때문에 그 아이를 죽일 수야 있겠느냐?
아니어요! 주몽은 사람에게서 태어난 게 아니라고 하셨잖아요.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니니까 그
대로 내버려 두면 반드시 나라에 해를 미칠 거예요. 미리 없애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러자 금와왕은 대소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그 대신 왕은 다시는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
도록 하기 위해서 주몽을 불러 엄하게 말했다.
너는 앞으로 행동을 조심해야 할 것이니라. 특히, 왕자들의 말을 거역해서는 안 된다.
주몽은 왕의 말을 듣고 묵묵히 집으로 돌아왔지만, 가슴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서러움이 치
밀어올랐다.
집으로 돌아오자 그는 어머니(유화 부인)에게 대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고 한숨을 푸 하고 내
쉬었다.
아들의 이런 모습을 보고 유화 부인은 주몽이 태어나기까지의 이야기를 모두 들려 주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난 주몽은 자기가 예사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힘이 솟아나는
듯하였다.
그러면 어머니, 저는 천제(하느님)의 손자이며, 쑹화 강의 신인 하백의 외손자로군요.
맞다. 그러니까 그런 하찮은 일에 너무 상심하지 말아아.
그 후부터 주몽은 매사에 조심하였다.
갑자기 행동이 겸손해진 주몽을 보고 대소와 그의 동생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저 녀석이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저렇게 변했을까? 혹시 아버지로부터 꾸줓을 듣고서 딴 생각
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닐까?
불안을 느낀 대소는 동생들에게 이렇게 제의했다.
저 녀석이 정말 겸손해졌는지 아니면 마음 속의 불만을 감추고 겉으로만 저러는지 한 번 시험
해 보자.
어떻게 하지요? 주몽은 우리하고 사냥도 같이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게 무슨 대수냐? 주몽과 졸개들이 사냐을 하는 곳으로 우리가 가면 될 게 아니냐?
그런 다음에는요?
너희들은 아무 말 하지 말고 나를 따라 오너라.
이렇게 해서 대소는 주몽이 그의 부하들과 사냥을 나갈 때만을 기다렸다.
그 며칠 후, 주몽은 그를 따르는 오이, 마리, 협부와 함께 다시 사냥을 나갔다.
이것을 본 대소와 왕자들은 서둘러 그를 뒤쫓아갔다.
이런 줄도 모르고 주몽은 그의 부하들과 열심히 사냥을 하였다.
사냥이 한창 무르익었을 때, 갑자기 숲 속에서 사슴 한 마리가 뛰쳐 나와서 도망을 쳤다. 그것
을 본 주몽은 즉시 활을 쏘아 사슴을 맞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바로 뒤에서 대소가 말을 타고 쫓아와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닌가/
네 이놈, 네가 쫓고 있는 사슴을 건방지게도 앞질러 가로챘겟다.
대소 왕자님, 정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곳에 왕자님이 계신 줄 몰랐습니다. 제가 어
찌 왕자님이 쫓고 있는 사슴을 가로채겠습니까?
이놈, 변명하지 마라. 네가 활 좀 잘 쏜다고 감히 나를 깔봐?
이렇게 숲이 소란해지자, 흩어져 있던 왕자들과 주몽의 부하들이 그 곳으로 모여들었다. 그것을
보고 대소는 차가운 눈초리로 주몽과 그의 부하들을 노려보고 호통을 쳤다.
이 녀석들, 네가 누구인 줄 알고 뻣뻣이 서 있는 거냐? 이 불한당 같은 놈들아.
대소의 말에 주몽의 부하인 오아, 마리, 협부는 대소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것을 보고 주몽은
대소에게 간절하게 애원했다.
왕자님, 잘못은 저에게 있사옵니다. 저들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용서해 주십
시오.
뭐? 잘못은 너에게만 있어? 이런 건방진 녀석 안 되겠다. 얘들아, 이 녀석들을 저기 서 있는
나무에 하나씩 묶어라.
이리해서 주몽과 그의 부하들은 나무에 한 사람씩 묶이게 되었다.
이놈들, 주몽 녀석이 활 좀 쏜다니까 알랑거리면서 따라다녔지. 어디 혼 좀 나 봐라. 그리고
너 주몽, 너는 사람의 자식이 아니라더라. 네가 알 속에 있었을 때, 많은 짐승들이 너를 피하고
많은 날 짐승들이 너를 감싸 주었다던데, 오늘도 그 짐승들이 너를 구해 줄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왕자들은 깔깔대고 웃었다.
형님, 그럼 날도 저물어 가는데 우리는 그만 돌아갑시다.
이렇게 말하면서 주몽이 잡은 짐승들을 모조리 빼앗아 서둘러 대궐로 돌아갔다.
숲 속에 묶여 있는 주몽과 그의 부하들은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삭히느라 아무도 말을 하지 않
았다.
드디어 주몽이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나 때문에 너희들이 고생이로구나!
아닙니다, 주몽님. 저희들이야 하찮은 것들이라 이런 일쯤은 참을 수 있지만, 주몽님께서는 아
까 그런 치욕을 참느라고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그러나 저러나 이제 해가 지면 사나운 짐승들이
몰려올 텥데 어떻게 하지요?
그 말을 듣고 주몽은 껄걸 웃었다.
하하하, 이 정도 나무에 묶였다고 눈썹 하나 까닥할 줄 아느냐? 잘 보아라.
이렇게 말한 주몽은 힘을 주며 몸을 앞으로 숙였다. 그러자 나무가 뿌지직 하면서 뿌리째 뽑히
는 것이었다.
이 광경을 보고 오이, 마리, 협부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저럴 수가....... 이 나라에서 장사라고 불리우는 우리도 뽑지 못할 저런 나무를 단번에 뽑
아 버리다니.......
주몽은 나무에 묶인 채로 한 명씩 도와 주어 모두 나무를 뽑도록 했다.
그리고 나무를 등에 진 채 대궐로 향하였다.
한편, 대궐로 돌아온 왕자들은 주몽에게서 빼앗은 짐승을 내보이며 자랑을 하였다. 금와왕도 보
통 때와 달리 많은 짐승들을 잡아 온 왕자들을 칭찬하였다.
하하하, 이제 너희들도 제법이로구나. 이제 얼마 안있으면 우리 왕자들 중에서도 주몽 정도의
실력파가 나오겠는걸.
이 말을 듣고 대소는 어깨가 으쓱해졌다.
아버지, 주몽이 활을 잘 쏘면 얼마나 잘 쏘겠습니까? 그 녀석은 늘 자기 부하가 잡아 온 것을
모두 자기가 잡은 것처럼 자랑을 했을 뿐이에요.
그래? 이제 너희들 실력이 주몽보다 낫단 말이지? 하하하, 참으로 대견스럽도다. 그런데 오늘
은 주몽이 보이질 않는구나. 그는 어디에 갔느냐?
금와왕의 말을 듣고 왕자들은 얼굴을 붉히면서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 때 대소가 말했다.
아버지, 그는 왕자도 아니고 또 우리의 친척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아버지는 늘 그를 가까이
두려고 하십니까? 이제 그는 자기 실력이 우리에게 뒤진다는 것을 깨닫자, 우리와 어울리지 않고
불량한 놈들하고만 놀고 있어요.
대소가 말을 마치자 왕은 근심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주몽이 부량한 놈들과 어우려?
이 때, 대궐을 지키던 군사 하나가 뛰어들어오면서 왕에게 말했다.
대왕님, 어서 밖으로 나와 보십시오. 너무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나이다.
뭣이,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나? 아니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그토록 호들갑이냐?
금와왕은 군사를 꾸짖으며 밖으로 나갔다. 그 뒤를 따라 대소와 왕자들도 나갔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분명히 산에 있어야 할 주몽과 그의 부하들이 나무를 하나씩 등
에 멘 채, 아니 엄밀히 말하면 뿌리가 뽑힌 나무에 묶인 채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을 보고 왕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참 후, 왕은 주몽에게 물었다.
주몽이 분명한데 어찌 그런 모습으로 나타났는고?
주몽은 왕의 말을 듣고도 묵묵히 서 있기만 하였다.
그의 모습을 보고 금와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금와왕은 주몽의 모습을 보고 대소 왕자가 한 일임을 알아챈 것이었다. 왕의 그런 모습을 본
대소는 금와왕 앞에 무릎을 꿇고 변명을 하였다.
아버지, 저 녀석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어찌 사람이 저 큰 나무를 뿌리째 뽑을 수 있겠습니
까? 더욱이 저 녀석은 오늘 저를 업신여긴 행동을 저질렀나이다. 저 녀석을 죽여야 합니다.
대소의 말을 듣는 동안 금와왕은 묵묵히 눈을 감고 있었다. 잠시 후 눈을 뜬 왕은 명령을 내렸
다.
주몽과 그 부하들을 풀어 주어라.
그리고 금와왕은 대궐 안으로 들어갔다.
왕은 못난 왕자들의 행동에 화가 났지만, 날로 재주가 비상해지는 주몽의 일이 더욱 걱정이 되
었다.
그리하여 주몽에게 천한 일을 시키면서 그의 행동을 지켜보기로 했다.
며칠 후, 왕은 주몽를 대궐로 불러들였다.
주몽아, 이제 너도 일할 나이가 되었으니 네가 시키는 일을 해야 되겠는데 너 어찌 생각하느
냐?
대왕님, 항상 대왕님의 은혜를 입고 있는 제가 어찌 분부대로 안 하겠습니까?
그 일이 다른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천한 일이라도 괜찮겠느냐?
제 처지에 어떻게 일의 귀천을 따지겠습니까? 어떤 일이라도 대왕님이 시키시는 일이라면 충
실히 하겠나이다.
그럼 나의 목장에 가서 살면서 말을 돌보도록 해라.
주몽으로서는 뜻밖의 명령이었다.
더욱이 금와왕의 목장은 대궐에서 멀리 떨어진 쓸쓸한 산에 있었다.
그러나 왕의 명령이라 하는 수 없이 목장으로 떠났다.
2. 말 기르기
주몽이 목장으로 간 지 십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외롭고 쓸쓸한 곳도 살다 보면 정이 드는 법이다. 또한 주몽에게는 자기를 따르는 오이, 마리,
협부가 항상 같이 행동했으며, 더욱이 아리따운 예씨 여인도 알게 되어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지난 십 년 동안 말고 더불어 살아 온 세월이었기에 때문에 주몽은 말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게 되었다.
특히 준마 와 노마 를 망아지 적부터 가려 내어 사육 관리하는 데 매우 능숙하였다.
준마는 달리기를 잘 하는 우수한 말로서, 전투할 때 쓸모 있게 이용할 수 있고, 그런 준마를 많
이 길러 내는게 목동의 책임이었다. 반면 노마는 그 반대로 굼뜨고 게을러 짐을 옮기는 짐말로
이용한다.
주몽은 망아지 적부터 준마와 노마를 구별하여, 준마에게는 먹이를 절제하여 너무 살이 찌지
않도록 하였으며. 노마에게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느 날, 대소가 목장에 왔다가 말들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어떤 말은 여위었고, 어떤 말은 살이 몹시 쪄 있는 것을 보고, 이번에야 드디어 주몽을
죽일 수 있겠구나 생각하며 왕에게 고자질을 했다.
아버님, 주몽이 보살피고 있는 목장에 가 보았더니 주몽 녀석이 자기의 소임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아마 말을 돌보는 일을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으니 그를 죽이도록 하
십시오.
어떻게 하고 있길래 또 그런 말을 하느냐?
제가 그 곳에 가서 살펴보니 여윈 말이 많고, 살찐 말은 적었습니다.
대소는 욕심만 많았지 어리석었기 때문에 준마와 노마의 구별도 못했던 것이다.
왕은 대소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네 말만 듣고 그를 그냥 죽이면 나라 사람들이 나를 원망할 거다. 며칠 후 사냥을 베풀 테니
너희들은 살찐 말을 타고, 주몽에게는 여윈 말을 타게 하여라.
그 다음에 처분은 나에게 맡기도록 하라.
와의 생각으로는 주몽이 여윈 말을 타고 사냥하다가 쓰러지거나 하면, 관리 책임을 물어 근무
태만이라는 죄를 뒤집어씌워 죽일 생각이었다.
마침내 사냥을 하기로 한 날이 되었다. 대소를 비롯한 왕자들은 몸집이 크고 살찐 말을 골라
타고, 주몽은 네다리가 가늘고 긴 여윈 말을 탔다.
대소가 또 짓궂은 말을 했다.
아버님, 주몽은 활을 잘 쏘니 화살을 적게 주십시오. 그래야만 저희들과 경쟁이 됩니다.
그렇게 하여라.
드디어 사냥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주몽의 여윈 말은 화살처럼 달려 나가
는데, 왕자들이 탄 살찐 말은 땀만 뻘뻘 흘리며, 도무지 속력을 내지를 못했다. 그래도 대소는 지
고 싶지 않아 비웃었다.
흥, 비쩍 마른 말이 달리면 얼마나 달리겠어. 이제 곧 쓰러지고 말 테지. 이제 이 살찐 말이
몸만 풀리면 힘차게 달릴 것이다.
그러나 주몽의 여윈 말은 쓰러지지 않았다.
대소는 약이 올라 왕에게 모함했다.
아버지, 주몽이 요술을 부린 게 틀림없습니다. 그가 보살피고 있는 말에 대해 물어보고 한 마
디라도 거짓말을 하거나 대답을 잘못하면 죽여 버리도록 하세요.
오냐, 알았다. 오늘은 그대로 돌아가고 다음에 그를 불러 확인해 보도록 하자.
며칠 후, 왕은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 주몽을 불러 시험했다. 주위에는 군사들을 늘어세우고
겁을 주면서 주몽에게 물었다.
주몽, 듣거라. 너는 얼마 전 사냥에서 여윈 말을 타고도 왕자들의 살찐 말보다 잘 달렸다. 그
까닭이 무었이냐?
네, 황송하오나 제가 탄 말은 준마였고, 왕자들이 탄 말은 노마였습니다.:
대체 준마란 어떤 말을 말하느냐?
네 다리가 쪽 빠져 길고 알맞게 살이 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발굽이 튼튼하고 콧
구멍이 커야 합니다.
뭣이, 콧구멍이 커야 한다고?
그 정도의 사실은 왕도 상식으로 알고 있는 일이었으나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주몽이 만일
사람이 아니라면 요술을 부렸을 테고, 그 때 어떤 요술을 썼다면 반드시 실수를 하리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주몽이 침착하게 또박또박 대답했다.
네, 말은 콧구멍이 커서 호흡기와 순환기가 발달되어 있습니다. 피를 뿜어 내는 심장도 다른
동물보다는 무겁고 크지요. 달리면 맥박이 빨라지기는 합니다만 땀구멍이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몸 안의 열을 밖으로 내 보낼 수가 있지요. 그러므로 아무리 더운 여름철이라도 개처럼 혓바닥을
늘어뜨리고 입을 크게 벌리는 일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주몽의 대답에 모두 감탄했다.
그러나 왕은 주몽이 침착하게 말을 할수록 더욱 약이 올랐다. 어떻게든지 어려운 문제를 내놓
아 주몽을 죽일 생각이었다. 왕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말은 눈이 잘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독풀을 가려서 먹느냐?
임금님께서도 말은 겁이 많은 동물이기 때문에 이상한 소리나 모양, 낯선 색깔을 겁낸다는 것
은 알고 계시겠지요?
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듯 말은 시력이 약한 대신 청각, 후각, 촉각은 발달되어 있고, 특히 입 둘레에 수염이 나
있는데 그것으로 독풀을 가려 먹습니다.
왕은 그 밖에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으나, 주몽은 무엇을 물어도 척척 대답했다.
말에 대해서 그만큼 자세히 안다는 것은 목동으로서 주몽이 열심히 일했다는 증거였다.
왕도 할 수 없이 주몽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 날 밤, 유화 부인은 아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무사히 넘겼다마는 왕은 언젠가 너를 죽이고 말 거다. 그러므로 이 곳을 떠나도록 해
야겠다. 여기를 떠나서 새 땅을 찾도록 해라.
어머니, 저에게도 생각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유화 부인은 늠름하게 말하는 아들이 대견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몹시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유화 부인은 주몽에게 한 가지 꾀를 쓰도록 하였다. 그것은 이 곳을 탈출할 때 쓸 수
있도록 아주 뛰어난 준마를 골라 혓바닥에 바늘을 꽂아 둔 것이었다. 그 말은 바늘 때문에 먹이
를 먹지 못하여 바짝 말랐다.
그러던 어느 날, 금와왕이 갑자기 목장에 들이닥쳤다. 이번에도 주몽이 성실하게 일하지 않았으
면 그를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목장을 둘러본 왕은 아무런 트집을 잡을 수가 없었다. 말
들은 잘 관리되고 있었고, 말 먹인 마른 풀들도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왕은 흡족했지만, 한편으로는 빈틈이 없는 주몽이 괘씸하게 여겨졌다.
그 때 문득 비실비실한 말 한 마리를 보았다. 그 말은 바로 주몽이 혓바닥에 바늘을 꽂아 둔
말이었다.
모든 말들이 다 건강해 보이는데, 저 말은 어째서 저렇게 되었느냐?
네, 대왕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저 말은 태어날 때 부터 몸이 약해서 늘 병을 앓고 있는 말
이옵니다.
그래, 이전에 네가 나에게 한 말을 생각새 보면, 그 때 너는 바짝 마른 말이 준마라고 하지 않
았느냐?
대왕님, 저말은 마른 것이 아니라 병든 말입니다.
허어, 너는 마른 말을 좋아하지 않느냐? 오늘 내가 이 곳을 돌아보니 모든 것이 잘 정리되어
있고 말들도 잘 관리되고 있으니 내가 너의 노고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구나. 저 말을 너에게 상
으로 주겠노라.
감사합니다, 대왕님.
금와왕은 진정으로 주몽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예전에 마른 말을 타고도 사냥을 잘 했
으며, 자기의 시험에 막힘없이 대답한 것을 빈정대는 뜻으로 바짝 마른 말을 준 것이었다.
왕이 돌아가자, 유화 부인은 말의 혓바닥에 꽂아 두었던 바늘을 뻬내었다.
주몽은 다음 날부터 그 말을 잘 먹이고, 많은 훈련을 시켰다. 어느 정도 날이 지나자 그 말은
천하의 명마가 되었다.
주몽은 그 말을 따로 기르면서언제든 이 곳을 떠날 준비를 하였다. 그 때 이미 주몽은 사랑하
는 예씨 여인과 결혼을 하였었다. 예씨 여인은 아주 슬기롭고뜻이 꿋꿋한 여성이었다.
어느 여름날 밤, 주몽은 어머니께 하직 인사를 드렸다.
소자는 이 땅을 떠나고자 하옵니다.
그래, 가거라. 너에게는 해모수님의 피가 흐르고 있다. 부디 좋은 땅을 찾아 나라를 세우고, 어
지 임금이 되어라.
주몽의 아내 예씨 부인은 슬픔에 젖어 말을 하지 못하였다. 주몽과 결혼한 지 일 년 남짓 되었
으며, 더구나 지금은 아이를 잉태하고 있었다. 그러나 큰 뜻을 품고 떠나는 남편에게 짐이 될 말
은 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며, 그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서방님, 부디 건강하시고 꼭 뜻을 이루도록 하세요. 이 곳에 계신 어머님은 제가 모실테니 아
무 걱정 마세요.
이 말을 듣고 주몽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고맙소, 부인. 그리고 우리 아기가 태어나거든 잘 키워서 나에게 보내 주오. 일곱 모난 돌 위
의 소나무 밑에 어떤 증표를 감추어 두었으니, 그것을 찾아 가지고 오게 해 주오.
말이 끝나자 주몽은 바쁘게 가섭원을 떠났다. 이 때 오이, 마리, 협부가 따라와 주몽에게 말하
였다.
우리 세 사람은 서로 따로따로 태어났지만, 죽기는 한날 한시에 죽기로 약속하였습니다. 아무
쪼록 저희들의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
주몽도 마침내 결심했다.
좋다, 그럼 너희들은 나를 따르라.
그들이 달려가는 말발굽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3. 민족의 이동
당시 부여의 정차 제도와 민간의 풍습에 대하여 좀더 자세히 알아보도럭 하자.
부여의 왕은 일정한 집안에서 나왔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당시는 여러 부족이 모인 연맹체였기
때문에 왕은 족장 회의에서 선출되기도 했다고 생각된다.
그 까닭은 당시의 왕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 역할도 했을 것이며, 이 제사는 날씨나
천재 지변과 많은 관련이 있다고 당시의 사람들은 믿고 있었다.
그러므로 날씨가 고르지 못하거나 그 해에 흉년이 들면, 그 책임을 왕에게 돌려 그를 죽이거나
다른 사람으로 바꾸었던 사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왕 밑에는 여러 벼슬이 있느데 벼슬의 이름은 가축의 이름을 사용했다. 중앙에 4가 3사 가 있
었는데 4가는 대신을 말하는 것으로 마가(말), 우가(소), 저가(돼지), 구가(개)가 있었고, 견사자.큰
사자. 사자의 3사가 있어 왕을 보필하였다.
또, 전국을 4개 지역으로 나누어 각 지역에는 가(우두머리) 를 두어 맡은 지역을 다스리게 했
다.
그들 중에는 대가 라 하여 수천 호를 다스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소가 라 하며 수백 호를 다
스리는 사람도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족장들이 휘하의 부대를 이끌고, 왕의 기치 아래 모두 모여 전쟁에 참여하였
다.
부여의 재미있는 풍습으로는 결혼을 할 때, 남자집에서 여자집으로 소나 말을 보내야만 했다.
이것은 지금도 중동 지방에 남아 있는 풍습인 것으로 보아 유목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적
인 풍습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일단 결혼을 하면 여자에 대한 규율이 엄하였다. 부인이 간음을 하거나 질투를 하면 죽
였다.
특히, 부인이 질투를 하면 그를 죽인 뒤, 시체를 산위에 내버러 두었다.
만약 부인의 친정집에서 그 시체를 거두어 가려면 다시 남자집에 소나 말을 주어야 하는데, 이
것은 결혼할 때에 남자집에서 주었던 소나 말을 다시 되돌려받는 형식이었다.
부여의 법은 매우 엄하여 살인자는 사형을 시켰을 뿐 아니라, 그의 가족들도 모두 노예로 삼았
다.
노예에는 전쟁의 포로도 있었고, 남의 물건을 훔친 자도 있었는데, 특히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12배의 배상을 하게 하였으며, 그 배상을 못했을 경우에는 노예로 삼았던 것이다.
또, 장례를 치룰 때에는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에 거느리던 부하나 노예, 또는 부인이나 첩 등
을 함께 묻는 순장 제도가 있었는데, 대부분 순장당하는 것은 귀족들이 거느리던 노예들이다.
어느 때에는 100여 명이 넘는 노예를 순장 시키는 일도 있었다.
이렇듯 당시 부여는 우리가 생각하는 왕권 중심의 고대 국가 형태가 아니라, 부족에서 이제 겨
우 국가의 형태를 갖추어 나가는 시기였으므로, 주몽과 같이 비범한 사람은 부여의 영향력이 미
치지 않는 다른 곳으로 가서나라를 세울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동부여를 탈출한 주몽과 그의 부하 세 사람은 각각 말을 10여마리씩 거느리고 남쪽을 향해 달
렸다.
말은 본디 무리를 짓고 사는 동물이다. 야생이나 유목 형태라면 한 마리의 수놈이 열 마리 이
상의 암말과 망아지를 거느리고 생활한다. 힘이 센 수놈일수록 많은 무리를 거느리고 있다.
말들이 초원에서 휴식할 때, 암놈은 머리를 안쪽으로 향하여 둥글게 진형을 만들고, 그 안에 새
끼를 보호한다. 이것은 적이 공격하면 그들의 강력한 무기인 뒷발로 차기 위한 것이다.
이 때, 수놈은 진형으로부터 떨어져 높은 곳에 올라가서 사방을 경계한다.
주몽이 말을 여러 마리 이끌고 탈출했던 것도 이러한 말의 성질을 알았기 때문이다.
말은 사람만큼이나 믿음직하다. 우리가 들판에서 잠을 잘 때에도 적의 접근을 먼저 알아 차리
고 경고해 줄 것이다.
이 말에 주몽이 단순히 부여왕을 곯려 주기 위해 말을 끌고 나왔다고 생각했던 오이, 마리, 협
부는 주몽의 지혜에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이처럼 슬기롭고 용감한 주몽을 따른다면
앞으로 살아가는 데 아무런 걱정이 없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게다가 우리는 안전하고 살기 알맞은 곳이 발견되기 까지 먼 길을 며칠이고 달려야 한다. 그
러므로 교대로 말을 갈아 타야 한다.
사실 옛날의 전투에선 예비로 바꾸어 탈 말이 준비되어 있었다. 초원 지대라면 자연의 풀을 뜯
어먹기 때문에 사료 걱정도 없다. 그리고 말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휘파람 소리를 내어
부르면 달려온다.
또 말은 물이 있는 곳을 찾아 내는 본능적이 능력도 있기 때문에 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끝으로 우리는 이 말들을 밑천으로 삼아 생활을 해야 한다. 되도록 많이 끌고 가고 싶지만, 각
각 한 무리씩 끌고 가자.
그들은 첫날엔 동부여를 벗어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렸지만, 낯선 고장에 들어서자
낮에만 달렸다. 지리를 잘 모르면 방향을 잃기도 쉽고, 또한 다칠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몇 날 며칠을 달렸는지 모른다.
주몽 일행은 요동벌을 향하여 계속 달려 드디어 엄수강에 이르렀다. 그러나 도도히 흐르는 강
물은 깊고 넓어 건널 방법이 없었다.
한편, 대소는 이튿날 아침 늦게서야 주몽이 달아난 것을 알았다. 전날 술을 너무 많이 마셔 늦
게 일어났기 때문에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주몽 달아났다는 보고를 받자, 그는 펄펄 뛰며 부하에게 소리를 질렀다.
뭣이, 주몽이 도망쳤다고. 왜 이제서야 깨웠느냐?
왕자님께서 곤히 주무시고 계셔서.......
듣기 싫다. 그래 언제 도망갔느냐?
간밤에 도망친 모양입니다. 그리고 말들도 많이 없어졌습니다.
에잇, 빌어먹을! 내가 이럴 줄 알고 그토록 그 녀석을 죽이려고 했는데, 결국은 도망가게 만들
었구나. 여봐라, 그 말도둑을 즉시 쫓아가 죽여야겠다.
대소는 이를 으드득 갈며 수많은 부하들을 이끌고 추격에 나섰다.
한편, 엄수강에 이른 주몽 일행은 강을 건널 방법을 찾지 못하고 매우 초조해하였다. 더욱이 주
몽이 없어진 것을 알면 대소가 쫓아올 게 뻔하였다.
건너가자니 다리가 없다.
대소는 틀림없이 우리를 쫓아올 것이다.
큰일났다. 어떻게 하면 좋지?
오이, 마리, 협부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주몽을 믿고 따라온 그들이었으나, 막다른 곳에 몰리고 보니 그들의 믿음도 흔들렸다. 이제 죽
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몹시 불안했다.
그러나 주몽은 말없이 팔짱을 끼고 강물을 굽어 보고 있었다. 참다 못하여 오이가 외쳤다.
주몽님! 말을 죽여 강물에 제사를 지내면 어떨까요?
부여국에서는 말을 신성하게 여기고 군신(전쟁에 관한 일을 맡아 본다는 신령)의 사자라고 여
겨왔다.
그렇기 때문에 큰 전투를 앞두고 희생으로써 바쳐지는 일이 있다. 그 대신 말고기를 먹거나 독
살하는 일은 금기로 여겼었다.
그것은 아니 되오.
주몽은 고개를 저었다. 물의 신에게는 말을 바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도, 자기들을 위해 함
께 고생한 말을 차마 죽일 수는 없었다.
말을 바치는 대신 하늘의 해님에게 빌자.
주몽은 마침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며 두 손을 모았다. 부하들도 따라서 했다.
하늘의 해님이시여, 저희들을 도와 주십시오. 저희는 아무런 죄 없이 쫓기고 있습니다. 이 강
을 건너지 못하면 저희들은 죽게 되나이다. 해님이시여 저희를 굽어 살피소서.
주몽은 열심히 빌었다. 그리고 수신에게도 빌었다.
나는 천제의 손자이며, 하백의 외손자입니다. 저를 해치려는 자들을 피해 지금 도망가는 길인
데 저를 잡으러 오는 자가 뒤를 쫓고 있습니다. 아무쪼럭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 주십시오.
그러자 물 속에서 물고기와 자라가 수없이 떠올라 빈 틈없이 뭉치면서 다리 모양이 되는 게 아
닌가.
아, 하백께서 우리를 도와 주셨구나.
주몽과 그 부하들은 기뻐하며 말에 올랐다. 그리고 물고기와 자라의 다리를 서둘러 건너갔다.
이 때 뒤에서 고함 소리가 들렸다.
저기 주몽이 도망치고 있다. 빨리 쫓아가서 잡아라!
대소와 부하들이 나타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저놈들을 잡아라! 그러면 너희들에게 많은 상을 내리리라.
당시 부여는 들이 많아 오곡을 재배하는 데 알맞았다. 또, 강에는 사금과 강진주가 산출되는 매
우 부유한 나라였으며, 울창한 산림도 있어 노루, 사슴, 멧돼지, 꿩등 사냥감도 많았고, 특히 명마
의 산지로 유명했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모두 왕이나 귀족들의 소유였기 때문에 일반 백성들은 공을 세워야 그와
같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고, 또한 신분이 올라가는 기회도 될 수 있었다. 그러기 때문에 대소의
부하들은 기를 쓰고 주몽을 잡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주몽 일행이 강에 떠오른 물고기와 자라의 다리를 건너는 것을 보자, 대소의 부하들은
두려움에 떨며 주춤거렸다.
다리를 건너 도망가고 있지 않느냐! 빨리 잡지 못하고, 뭘 꾸물거리고 있느냐?
대소가 거듭 외치자 추격병들도 물고기와 자라의 다리를 건너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반쯤 이르렀을 때, 물고기와 자라는 흩어졌고 그들은 강에 빠져 죽었던 것이다.
주몽의 부여의 역사가 오래였던 것처럼 고구려의 역사도 그만큼 길다고 보아야 한다.
기원전 15세기쯤 중국 북부의 양사오 농경 문화 가 내몽고나 중국 동북 지방 남부를 거쳐 우리
나라에도 전해졌다. 이 문화를 받아들임으로써 채색 토기의 사용이나 밭농사가 시작되었다.
기원전 7세기가 되자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 다가르 청동기 문화(예니세이 강 중류에서 발달된
문화) ,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 동물 미술 , 오르도스(흉노) 문화, 등이 들어와서 매우 특색 있는 청
동기 문화를 이루었다.
기원전 3세기가 되자, 한반도 남부에서 벼농사가 시작되었고, 철기 문화도 들어왔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의 역사가 유구하며, 매우 독창적 이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
또, 아직은 자세히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새로운 역사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 우리의 고대 역사
즉, 단군의 고조선 때부터 삼국 시대의 역사를 다시 재조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동안 우리의 역사에는 중국을 문화의 중심으로 생각했던 사대주의 역사관과 우리의 고대사
를 왜곡하여 마치 우리 역사가 중국의 일부었거나, 자신들이 고대부터 우리 나라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거짓 역사를 주장하는 일제의 황국 사관으로 말미암아 잘못 알려진 것이 너무 많았
다.
우리가 지금 알아보고 있는 고구려의 건국 이야기도 하나의 전설이나 꾸며낸 이야기로만 생각
할 것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적, 역사적 배경를 잘 생각하면서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성격과 인품,
업적 들을 잘 알아보아야 한다.
4. 고구려
주몽 일행이 다시 말을 달려 모둔곡(지금의 훈강 유역) 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그 곳에서 이상
한 사람 셋을 만났다.
한 사람은 삼베옷을 입었고, 한 사람은 검은 내리닫이 옷을 입었고, 한 사람은 물풀옷을 입었
다.
그들은 무엇이 좋은지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주몽은 말에서 내려 공손히 절을 올리고 물
었다.
선생들은 뉘신데 이 곳에서 그처럼 즐겁게 놀고 계십니까?
삼베옷을 입은 사람이 말했다.
나요? 내 이름은 재사요. 당신의 얼굴을 보니 기뻐서 춤을 추고 있소.
그러자 옆에 있던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말을 이었다.
내 이름은 무골이오. 당신이 이 곳에 왔으니 기뻐서 춤을 추고 있소.
그러자 물풒옷을 입은 사람이 말했다.
나요? 내 이름은 묵거요. 당신이 우리를 다스릴 것이니 기뻐서 춤을 추고 있소.
그러면서 세 사람은 모두 자기의 성은 말하지 않았다.
주몽는 세 사람에게 각각 성씨를 주었다. 재사에겐 극씨란 성을, 무골에겐 중실씨를, 묵거에겐
소실씨라는 성을 주었다.
여기서 잠시 우리 나라의 성씨에 대해서 알아보자. 오늘날 우리 나라 사람들의 성은 모두 한자
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중국 문화가 들어온 이후부터라고 한다.
그럼 그 이전에는 성씨가 없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삼국지 (동이전)을 보면 같은 성끼리는
혼인하지 않았다. 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혈족 관계를 표시한 어떤 호칭이 있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옛날에는 왕이 신하에게 성씨를 내리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것은 사
성 이라고 했다.
주몽이 세 사람에게 성을 주었다는 것은 바로 씨족 을 구분했다는 뜻이 된다.
주몽은 세 사람에게 성씨를 주고 나자 칼을 뽑아 들고 외쳤다.
하늘이 나에게 명을 내리셨다. 이제 여러 무리들과 더불어 가각 직책을 주었다.
극재사가 주몽에게 말했다.
주인님, 이 곳에서 서쪽으로 나아가면 졸본 이라는 강이 있습니다. 그 강 유역은 땅이 기름져
가히 나라를 세울 만한 곳입니다.
주몽은 그 말에 따랐다. 며칠을 여행한 끝에 졸본강 유역에 이르고 보니 과연 땅이 비옥하고
산과 숲이 높고 깊어 나라를 세울 만한 곳이었다.
주몽은 주위의 강산을 둘러보고 흐뭇하게 여겼다.
내 이 곳을 도읍으로 삼겠다.
그러자 중실 무골이 의견을 말했다.
제자 오다가 가만히 살펴보니 근처에 말갈 의 부락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우 사납고 우리가
이 곳에 터를 잡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므로, 그에 대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말갈은 퉁구스 계통의 종족이었다.
말갈이란 이름은 삼국 시대에 생긴 것으로 숙신 . 읍루 . 물길이 모두 그의 옛이름이다. 그러다
가 고려 시대에는 다시 여진 으로 불렸다.
삼국사기 에는 이 때 주몽이 궁전을 지을 겨를이 없어 우선 비류수 위에 살며, 나라 이름을 고
구려 라 하고 자기의 성씨를 고 씨로 삼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김부식도 삼국사기 를 엮을 때,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나 다른 책을 참고로 했을 것이
다.
또, 김부식은 이렇게도 기록했다.
주몽이 졸본 부여에 이르자 마침 왕이 아들이 없다가 그를 보고서 예사 인물이 아님을 알고
자기 딸을 아내로 주었다. 왕이 죽자 주몽이 그 뒤를 이었다고 한다.
고구려를 세운 것은 주몽이 스물두 살때였다. 이것이 신라 시조 박혁거세 21년으로 갑신년이었
다. 박혁거세 21년이란 서기로 따져 기원전 37년이다. 그러나 고구려의 건국 신화를 과학적으로
분석한다면 민족의 이동, 또는 지배 계층의 이주, 부여족의 세력 확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중국의 사서 에 고구려 란 이름이 보이는 곳은 삼국사기의 건국 연대와 거의 들어맞는다.
기원전 108년에 설치된 한사군 가운데 현도군 이란 곳이 있다. 그 안에 있는 고구려현 은 현
도군의 중요한 행정 단위의 하나로 동가강 유역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염난수(압록강) 중류, 서
쪽으로는 소자강 유역에 걸친 지역이었다. 그리하여 그 당시 고구려현은 현도군의 중심이 되는
현이라고 소개될 만큼 문화적, 사회적으로 발전되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역사 역시 그들의 입장에서 기록했기 때문에 한사군의 존재 여부, 위치, 경계가
확실하지는 않다. 중국의 역사는 자기네가 모든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중화 사상 을 근본
으로 하였기 때문에 당시 중국과 대등한 관계에 있는 나라들도 자기들의 속국이라고 쓰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고구려라는 이름도 고(넓다 . 크다), 구려(성읍 . 도성)란 뜻의 음을 한문식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었다. 즉 고구려는 크나큰 도읍 이란 뜻이었다.
광개토 대왕비 첫머리에는 동명 성왕(주몽)의 건국 신화부터 설명하고 있다. 그 내용은 삼국사
기의 내용과 비슷하지만, 이 때 주몽은 어머니 유화가 보낸 사자들이 가져온 물건과 두 마리의
비둘기가 물어온 오곡의 씨앗을 갖고서 건국의 사업을 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주몽이 나라를 세웠다는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선물을 가지고 와서 바치며 충성하기를 맹
세했다.
주몽은 나라 건설에 바빴다.
그는 어느날, 신하들에게 말했다.
내가 비류수에 터를 잡은 지 여러 날이 되었다. 그러나 말갈족만이 아직도 우리를 적대시하고
인사를 하러 오지 않고 있다. 이것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느냐?
그러자 소실 묵거가 아뢰었다.
왕이시여, 그런 버릇없는 자들은 단연코 쳐야 합니다.
그럼 여기서 삼국사기에는 왜 주몽이 비류수 위에 집을 짓고 살았다고 했는지를 생각해 보자.
물론, 그것도 이상한 느낌이 들지만, 물과 말갈족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어떤 부분은 수긍이
가는 점도 없지 않다.
만약에 그들이 삼국사기에 나오는 내용과 같이 물 위에서 살자면 배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당
시는 배 보다는 뗏목 같은 것을 만들어, 그 위에서 거주했다고 보는 게 보다 상식적이다. 주몽과
그 불족들은 밤에는 뗏목에서 자고 낮에는 상륙하여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거나 농사를 지었을
것이다.
이들이 뗏목 생활을 한 까닭은 말갈족의 방해가 있었기 때문이었고, 또 밤이면 날뛰기 시작하
는 늑대, 이리, 호랑이, 곰과 같은 맹수로부터 가축을 보호하려는 뜻도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도
있다.
아무튼 고구려가 건국되자, 가장 먼저 갈들을 겪었던 것이 말갈족이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주몽이 잠자코 있자 소실 묵거는 거듭 말했다.
결단을 내리십시오. 지금 저들을 치지 않는다면 저들이 우리를 공격해 올 것입니다.
그러나 주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하늘의 명을 받아 고구려를 일으켰다. 되도록 이 곳에 우리보다 먼저 살고 있는 사람들
과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살고 싶다.
그렇지만 저들은 지금 우리를 공격하고자 준비하고 있는데도 말입니까?
그렇다. 내가 혼자서 말갈의 부락을 찾아가 그 족장과 담판하여 타협을 하겠다. 전쟁을 하는
것보다 평화롭게 사는 일이 얼마나 좋고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가르쳐 주겠다.
신하들은 모두 놀랐다.
임금님 혼자서 말입니까?
주몽은 미소지었다.
너무 걱정말게. 담판에서 이길 자신이 있으니까.
주몽은 사냥하여 잡은 흰 사슴 한 마리를 두 명의 군졸에게 메게 하고서 말갈 부락을 찾아갔
다.
주몽이 말각 부락에 혼자 나타나자 말갈의 족장은 물론이고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몽이 둘러보았더니 과연 그들은 전쟁 준비로 화살을 만들거나 창날을 갈고 있었다.
나는 당신들과 타협하러 왔소. 선물로 흰 사슴까지 가져왔소.
타협이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하고 말갈의 족장은 물었다.
전쟁은 어느 쪽이고 이들될 것이 없다는 것을 당신들에게 알리러 왔소. 그리고 당신들이 아무
리 애를 써도 우리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소.
그게 무슨 건방진 소리요. 싸움은 해 봐야 결과를 알 수 있는데 당신이 그것을 어떻게 장담한
단 말이오?
그것을 아는 방법이 있지요. 내가 모의로 진지를 만들 테니 당신들 가운데 누구든 나와서 나
의 진지를 공격해 보시오.
오늘날로 말하면 책상 위에서 서로의 작전을 겨루는 도상 전투를 벌이자는 말이었다.
주몽은 자기의 허리띠를 끌러 진지 모양을 만들었다. 그리고 돌멩이에 표시를 하여 망루 같은
방어 시설로 간주했다.
말갈 족장도 이 제의에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자기 부족에서 가장 지혜가 많은 수리 라는 자
를 내세웠다.
수리는 나무 조각을 공격 진지, 배, 사다리와 같은 공격 기구로 표시하여 이걸로 주몽의 진지를
공격했다. 그러자 주몽은 그것을 모조리 막아 냈다. 적의 공격 도구는 다 없어졌지만, 주몽의 방
어 기구는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수리는 모의전에 지자 큰소리를 쳤다.
난 진짜로 이기는 방법을 알고 있지만 그것은 말하지 않겠다.
주몽고 지지 않았다.
나는 당신의 그 방법을 알고 있지만 나도 그것은 말하지 않겠다.
그러면서 한 손을 높이 들어 무엇인가를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난데없이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고 번개가 치며,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천둥이 뒤따랐다.
말갈의 족장과 그 부하들은 겁에 질려 모두 주몽 앞에 꿇어 엎드렸다.
검은 구름이 사라지자 족장은 물었다.
왕이시여, 당신은 천둥 벼락도 다스리는 힘을 갖고 계십니다. 그런데 아까 수리와 마지막에 나
눈 문답은 무슨 뜻입니까?
이 말을 듣고 주몽는 껄걸 웃으며 말하였다.
수리가 말하는 나를 이기는 방법이란 나를 죽이는 일입니다. 그러나 네가 만일 죽임을 당하고
저녁때까지 돌아가지 않는다면 내 부하들이 몰려와서 당신들의 가족과 가축까지도 모두 죽일 것
입니다.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수리는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족장은 주몽의 이 대답에 다시금 감탄했다.
당신은 정말로 신인(신이나 다름없는 사람) 이십니다. 앞으로 저회는 결코 고구려를 침범하지
않을 것이며 친하게 지낼 것을 맹세합니다.
이어 큰 잔치가 베풀어졌다. 주몽은 말갈족과 의논하여 말을 놓아 기르는 목장과 개간할 수 있
는 땅을 서로 나누어 갖기로 했다.
어느 날, 주몽은 비류수에 채소 잎이 떠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아니, 저것은 배추나 무의 잎사귀가 아니냐? 그렇다면 이 상류에 사람들이 사는 곳이 있구나.
주몽은 곧 몇몇 종자만 데리고서 졸본을 떠났다. 오이가 걱정스런 듯이 말했다.
이 근처는 미개한 지역이라 사나운 맹수도 많으니 군사를 데리고 가십시오.
아니다,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다.
주몽은 비류수를 따라 상류 쪽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나무가 밀림처럼 우거져 있고, 때로는 벼
랑이 앞을 가로막아 몇십 리를 우회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마침내 갖은 고생을 해 가며 산등성이에 올라보니 산 밑은 짙은 안개가 끼여 있어 구름 바다와
같았다.
임금님, 이 아래 무엇이 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귀신의 나라일지도 모르니 다시 돌아가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주몽은 껄걸 웃었다.
조금만 기다리자. 깊은 골짜기가 있는 곳엔 아침 안개가 짙은 법이다.
해가 높이 떠오르면서 안개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득한 산 아래에 넓은 분지가 있고 제법 많은 집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저 곳이 바로 우리가 찾던 곳이다. 산을 내려가자.
산을 내려오면서 그 분지가 꽤나 크다는 것과 집들도 수천 호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자연적으로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인 별천지와 같은 곳이었다. 집들이 많은 것을 보면 곡식도
풍부하고 물산도 넉넉하여 부유할 것이 틀림없었다.
아, 저런 것을 우리 고구려가 차지한다면......
중간쯤 내려왔을 떄, 한 나무꾼을 만났다.
주몽은 나무꾼에게 공손히 물었다.
우리는 사냥을 하다가 길을 잃었소. 그런데 도대체 이 곳은 무엇이라는 고을입니까?
나무꾼은 수상하다는 듯이 주몽의 위아래를 보더니 대답했다.
비류국이라 하오.
이렇게 말을 하더니 서둘러 산을 다시 내려와 고을의 중심 부분으로 들어갔다. 집들은 컸고
돌이 많은 고장인지 집들이 모두 높은 축대 위에 지어져 있었다.
주몽의 일행이 마을로 들어서자, 비류국의 사람들은 주몽 일행이 낯설었던지 집집마다 창문에
서 내다보았고, 개들도 요란하게 짖어댔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것으로 보아 이 곳 사람들은 그다지 전투를 해 본 경험도 없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비류국의 왕은 송양 이었다. 송양은 부하들의 보고를 받고 다락마루에 올라가 주몽 일행을 숩
어 보았다.
주몽은 말을 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사람이 훨씬 돋보였다.
송양은 왕비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저 젊은이는 어쨰서 저렇듯 늠름해 보일까? 마치 하늘 나라 사람 같구나. 또, 저 젊은이가 타
고 있는 것은 무슨 짐승일까? 몹시 날렵하게 생겼구나.
왕비도 말했다.
임금님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마치 몸에서 광채를 나뿜는 것만 같습니다.
아무튼 보통 사람이 아닌 것만은 틀림없소. 내 정중히 맞아야만 하리다.
송양은 부하를 시켜 주몽을 맞도록 명령했다.
송양은 왕관을 쓰고 엄숙한 몸차림을 갖춘 후 주몽과 만났다. 서로 인사가 끝나자 주몽은 종
자를 시켜 암말 한 마리를 바쳤다.
이것은 말이란 짐승으로 사람에게 매우 쓸모 있는 것입니다.
나는 깊은 산 속에 살고 있어 이런 짐승은 처음 보았거니와 그대는 어디서 오셨소?
이 물음에 주몽은 가슴을 펴고서 대답했다.
나는 천체의 손자로 하늘에서 내려온 것입니다.
이 말에 송양왕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놀랐다.
엄숙했던 궁전 안이 별안간 술렁거리며 자기들끼리 속삭이는 목소리도 들렸다.
특히, 송양왕의 왕자들은 주몽을 비웃는 기색이 얼굴에 역력했다.
마침내 왕자들 가운데 하나가 비꼬듯이 물었다.
하늘이라니, 그럼 저 구름 위란 말이오?
그렇소.
거짓말 마시오. 사람이 새라면 몰라도 어떨게 구름 위에서 살 수가 있단 말이오?
주몽은 그 말에 조용히 반박했다.
그런 것은 인간의 생각일 뿐이오. 나의 할아버지 천제께서는 다섯 마리의 용이 끄는 수레를
타시고, 아침에는 동쪽에서 떠올라 저녁에는 서쪽 산너머로 돌아가고 계십니다. 다만 그 광채가
너무도 찬란하여 인간의 눈에는 그 모습이 보이지 않을 따름입니다.
그러나 왕자들은 계속 떠들어댔다.
드디어 본색이 드러나는구나. 어찌 인간이 모르는 일을 당신은 알고 있소. 그럼 당신은 인간
이 아니란 말이오.
송양왕이 아들들을 제지했다.
손님이시여, 그대가 정말로 하늘에서 오셨다면, 그 증거를 보여 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 있지요. 잠시 밖으로 나가실까요?
사람들은 주몽을 따라 궁전의 뜰로 나갔다. 왕비와 왕자, 공주, 그리고 신하들도 그것을 구경
하고자 모두 나왔다. 주몽은 한 공주를 보더니 말했다.
임금님, 공주님의 팔찌를 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팔찌를?
네, 팔찌를 저기 보이는 바위 위에 세워 놓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제가 팔찌를 통과시켜 화살
열 개를 뒤쪽에 있는 나무에 모두 맞히겠습니다.
왕자가 심술궂게 물었다.
그래, 거리는 얼마로 하시겠소?
백 보로 하지요.
주몽의 대수롭지 않은 대답에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자기들이 쏘는 화살의 거리는 30보, 길어
야 50보가 보통이었다. 그런데 주몽은 그 갑절의 거리에서 활을 쏘겠다는 것이다.
왕자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어떻게 할 것인가 망설였다. 그러자 그 중 왕자 하나가 말했
다.
좋소. 만일 당신 말대로 되지 않았을 때는 어떻게 하겠소.
그 때는 나를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시오.
팔찌는 바위 위에 세워졌고, 주몽은 그 곳에서 백 떨어진 위치에 섰다.
그 곳에 서자 팔찌는 아물아물해져 잘 보이지 않았다.
주몽은 먼저 화살대의 깃털을 뽑아 버렸다.
깃털은 공기를 가를 때 방향을 조절하는 것이다. 그러나 화살이 팔찌를 통과하며면 깃털이 방
해가 되기 때문에 뽑아 버렸다.
준비를 끝내자 주몽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하느님께 빌었다.
하느님이시여, 꼭 성공하도록 해 주십시오.
그리고 침착하게 화살을 하나씩 하나씩 활시위에 메겨 쏘았다.
와아! 와아!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
주몽은 전동에서 화살을 뽑아 시위에 메겨 연거푸 화살을 쏘았는데, 열 개가 모두 팔찌를 통과
하여 나무에 꽂혔다.
참으로 훌륭한 활 솜씨다! 이분은 틀림없는 하늘 나라에서 온 사람이다..
송양왕은 물론이고 어지간히 고집 센 왕자들도 주몽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신은 참으로 천제의 손자이십니다. 부디 이 나라의 왕이 되어 백성들을 다스려 주십시오.
삼국사기에는 이 때의 일을 이렇게 설명했다.
주몽을 만난 송양왕이 주몽에게 말했다.
나는 이 곳에서 여러 대를 내려오며 왕노릇을 하였다. 그러나 땅이 좁아서 두 임금이 설 수는
없다. 그대는 도읍을 정한 지 얼마되지 않으니, 우리에게 나라를 바치고 나의 부하가 되는 것이
어떤가?
주몽은 이 말에 분개하여 송양과 활을 쏘아 재주를 겨루니 송양이 대적하지 못했다. 그리고
동명 성왕(주몽) 2년 6월, 송양이 와서 나라를 바치고 항복하므로 그 땅을 다물군 으로 만들고 송
양을 봉하여 다물후로 삼았다.
고구려말로 옛 땅을 다시 찾은 것을 다물 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런 이름을 썼던 것이다. 그
런데 광개토 대왕바에는 이것과 조금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주몽과 송양 사이에 지배권을 둘러싸고 싸움이 일어났는데, 주몽은 신통력을 부려 송양을 굴복
시켰다. 그리고 주몽은 하늘의 힘을 빌려 골령 위에 성곽과 궁전을 만들고 왕위에 올랐다고 기
록되어 있다.
삼국사기와 광개토 대왕비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용이 같다, 삼국사기에는 그런
신기한 일들을 나누어서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왕(동명성왕) 3년 3월, 황룡이 골령에 나타났다. 가을 7월, 상서로운 구름이 골령의 남쪽에 나
타났는데 빛이 푸르고 붉었다. 왕 4년 4월, 구름과 안개가 사방에 일어나 사람이 서로 분별하지
못하기를 이레나 계속되었다. 7월, 성곽과 궁전을 지었다.
아무튼 주몽은 송야을 굴복시키고 왕위에 올랐고, 남은 문제는 왕비를 맞는 일이었다.
물론 주몽에게는 동부여에 두고 온 부인 예씨가 있었지만, 언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었고, 나
라를 세운 지금 왕비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혼자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5. 두고 온 왕자
본디 송야왕에게는 세 공주가 있었다. 주몽이 비류국에 처음 와서 활쏘기 시합을 할 때 끼고
있던 팔찌를 빌려 준 것은 맏공주 소부노였다. 소부노는 늘 동생들 소서노, 소미노에게 말했다.
나는 꼭 왕비가 되겠어. 그분이 이 나라에 처음 오셨을 때 나에게 팔찌를 달라고 하셨잖니?
그것은 그 분이 나를 좋아하셨기 때문일 거야.
그런데 비하여동생 소서노는 침착한 성격이라 이런 말을 했다.
그것은 언니의 생각이고, 언니가 그분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나 언
니 혼자 좋아하면 뭘 해요. 임금님이 좋아하셔야 언니도 왕비가 될 수 있는 것 아니예요?
아니야, 주몽이 이 나라 왕이 된 것은 누구 덕분이니? 모두 우리 송씨가 도와 주었기 때문에
왕이 되었어. 그런 은혜도 모르고 나를 관시한다면 그냥 두지 않겠어.
소부노는 성질이 남자처럼 괄괄하고 샘이 많았다. 그러나 소서노는 얌전하고 생각이 깊었다.
그리고 막내 공주인 소미노는 아직 어렸다.
호호호, 언니. 사람은 저마다 타고난 팔자가 있다고 하지않아요? 칠성님이 어련히 알아서 배
필을 정해 주시겠어요.
아니야, 나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왕비가 되겠어.
한편, 왕이 된 주몽은 왕비를 맞이하라는 신하들의 권유를 계속 받고 있었다.
특히, 부여에서 함께 온 오이, 마리, 협부는 대단히 열심이었다.
임금님, 나라에는 왕비님이 있어야 합니다. 밖으로는 임금님이 백성들의 생활을 살피시고, 안
으로는 왕비님이 궁전을 다스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늘과 땅, 음과 양이 화합하여 나라가 발전
됩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부여에 아내가 있지 않느냐?
주몽은 부여에 두고 온 어머니와 아내를 늘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어디 편찮으신 곳이라도 업을까? 아내는 그 때 다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아기가
태어나 무사히 자라고 있을까?
주몽은 정사의 바쁜 틈에도 부여에서 왔다는 사람이 있으면 직접 만나서 그 곳의 소식을 묻곤
했다. 이것을 보고 마리가 아뢰었다.
황송하오나 부여에 계신 분들은 이제 잊으시는게 좋을 것입니다. 금와왕이나 대소 왕자가 임
금님을 좋게 볼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 곳 공주님 가운데서 마땅한 분을 골라......
주몽도 마침내 결심을 결심을 하였다.
영토 정복은 무력으로써만 되는 게 아니다. 고대에 있어선 정략 결혼을 하여, 그 세력을 이용
하고 힘을 빌려 세력을 확장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주몽은 이 곳에서 세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
다.
한편, 동부여에서는 주몽이 달아난 뒤 예씨 부인에게서 아기가 태어났다. 주몽을 닮은 아주 영
특하고 씩씩하게 생긴 아들이었다.
예씨는 아들의 이름을 유리 라고 지었다.
대소와 그 부하들이 이따금 찾아와서 못살게 구는 일도 있었으나, 아직은 금와왕이 살아 있어
이들 모자를 죽이지는 못했다. 게다가 궁궐에 살고 있는 주몽의 어머니 유화가 은밀히 도와 주
었기 때문에 그럭저럭 살아 나갔다. 어느덧 우리는 일곱 살이 되었다.
그도 돌팔매질과 활을 잘 쏘았기 때문에 늘 아이들이 뒤따랐다.
어느 날, 나무에 앉은 새를 잡으려고 돌팔매질을 하였다. 그러나 동멩이가 빗나가 마침 샘에서
물을 길어 오는 여인의 물동이를 맞히었다. 물동이는 깨어지고 여인은 물을 흠뻑 뒤집어썼다.
개구쟁이 아이들은 도망치고 유리만이 어깨를 축 늘어 뜨리며 서 있었다. 그는 잘목을 하고
도망을 가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 여인의 앞으로 가서 용서를 빌었다.
여인은 용서를 비는 유리를 노려보며 욕을 퍼부었다.
아주머니, 잘못했습니다.
듣기 싫다. 아비 없는 자식이니까 이렇게 버릇이 없지 뭐냐? 라고 말하고서 홱 돌아서서 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여인이 무심코 던진 말에 유리는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비 업는 자식? 그러고 보니 나는 아버지가 없다. 어째서일까? 그럼 나는 어떻게 태어났을
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유리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솟구쳐 눈물이 나왔다.
유리는 울면서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어디 계시지요? 돌아가셨어요?
아니다. 살아 계실 것이다.
그럼 살아 계시다면 지금 어디에 계시지요? 왜 다른 아이들의 아버지처럼 한집에서 같이 살
지 않지요?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고 계세요?
아버지에 대한 질문은 집요했지만, 예씨 부인은 고개를 가로저을 따름이었다.
지금은 말할 수 없다. 네가 더 크면 알려 주겠다.
싫어요, 싫어요. 사람들이 나보고 아비 없는 자식이라고 놀리는 게 싫단 말이에요. 빨리 가
르쳐 주세요.
유리는 떼를 썼지만, 어머니는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는 울다가 지쳐 그만 잠이 들었고, 이튿날은 그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다시 아이들과 어울
려 즐겁게 뛰어 노는 것이었다.
그런 유리를 보고 예씨 부인은 주몽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에 눈물을 적셨다. 간혹 사람들에게
서 남쪽에 어떤 신기한 사람이 나타나서 나라를 세우고 그 기세가 나롤 번창한다는 말을 듣고,
그 사람이 혹시 남편 주몽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었다.
한편, 고구려에선 주몽이 왕비를 맞아들였다. 왕비가 된 사람은 성격이 차분하고 생각이 깊은
둘째 공주 소서노였다. 언니 소부노는 분했지만 할 수 없었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두 사람 사이에서 비류와 온조 두 왕자가 태어났다.
이 사실은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는 다르게 설명되기도 한다. 그것은 김부식 자신이 여러
가지 설로 소개하고 있지만, 그 가은데의 하나는 아래와 같다.
온조와 비류의 아버지는 북부여왕 해부루의 손자인 우태였고, 어머니는 시집와서 소서노로 졸
본 연시발 의 딸이었다. 처음 우태에게 시집와서 아들 둘을 낳았는데 달아나 졸본에 이르자 도
읍을 세우고 소서노는 주몽이 나라를 세울 때, 내조의 공이 있어 주몽은 너그러워 비류와 온조를
자기 아들처럼 사랑했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유리도 열다섯 살이 되었다.
예씨와 유리는 옛날에 주몽이 그랬던 것처럼 부영왕의 말을 돌보며 살았다. 유리도 아버지를
닮아 말 사육에 남다른 솜씨가 있었다.
어머니, 망아지를 너무 일찍 어미말에서 떼어 놓았나봐요? 밤낮 시끄럽게 울어 잠을 잘 수
있어야지요.
그러나 예씨는 웃으면서 말했다.
망아지는 어미 젖이 그리워 우는 게 아니란다. 어서 빨리 어른이 되어 벌판에 뛰어나가 저회
들 무리와 마음껏 어울리고 싶어 그러는 것이란다.
예씨는 마구간에서 다 자란 망아지를 끌어내리더니 풀어주었다. 말은 히잉 하며 기쁜지 껑충
높이 쳐들더니 그대로 달려 나갔다.
이것을 보고 유리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사람도 망아지처럼 어른이 되면 밖으로 뛰어 나가고 싶어지지요?
유리야, 언젠가 넌 아버지에 대해 물었었지?
어머니는 아들의 눈 속을 들여다보며 속삭였다.
유리는 별안간 가슴이 두근거렸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가르쳐 주지만, 너의 아버님께서는 보통 분이 아니셨단다.
그러면서 예씨 부인은 주몽이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모든 일을 차근차근 이야기해 주었다. 물
론 금와왕과 대소 왕자가 주몽을 해치려고 했던 사실도 유리가 잘 알아 들을 수 있도록 이야기해
주었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 안전하지 못할 것을 미리 아시고 남쪽으로 피해 가셔서 지금은 나라를 세
우고 왕이 되셨을 것이다.
유리는 감격으로 뭄을 부르르 떨었다.
어머님, 그게 정말이어요?
그렇단다. 지금 남쪽에서는 어떤 신기한 분이 나타나 고구려라는 나라를 세워, 그 기세가 하
늘을 찌를 듯하다고 들었다. 그분이 네 아버지일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아버지는 네가 아
직 태어나기 전에 이 곳을 떠나면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아들을 낳거든 일곱 모가 난 돌
위의 소나무 아래에 유물을 감추어 두었으니, 그것을 찾아 내는 아이가 내 아들이라고 하셨다.
어머니, 그게 어디 있어요?
그것은 나도 모른다. 너도 이제 열다섯 살이 되었으니, 네 힘으로찾아 내야 하지 않겠니?
그 날부터 유리는 아버지의 유물을 찾으러 온 산을 헤매고 다녔다. 그러나 일곱 모가 난 돌
위의 소나무는커녕 일겁 모가 난 돌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럼 여기서 잠시 고구려의 건국 초기의 형편에 대해 알아보자.
주몽은 건국 처기 주변의 적과 여러 번 싸웠을 것이다. 따라서 고구려는 독특한 성곽을 가지고
있었다.
즉 산성 과 평성 의 두 개의 성곽이 있었는에, 평소에는 평평한 들의 궁전에서 살며 사냥과 유
목과 농경을 하였다. 이런 평야의 궁전이 평성 이었다.
그리고 강력한 적이 침입하면 왕의 일족은 물론이고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험준한 산성으로
들어가 끝까지 적과 대항하는 것이었다. 이 곳의 궁전이 산성 이었다.
고구려가 최초로 도읍을 정한 졸본은 환인 지방이다.
환인 지방에는 전형적인 고구려 산성인 오녀 산성 이 있었고, 환인 동쪽 15킬로미터 지점엔 고
력 묘자촌 의 고분들이 지금도 남아 있다.
이 지방의 무덤들은 적석층(돌무지 무덤) 이고 이것들은 시베리아와 북만주 일대에서 발견되는
묘의 형태이다.
이런 고분에서 민무늬 토기 와 노란 잿물을 발라 구운 도기 등이 나오고 있다. 이것은 고구려
의 독특한 양식의 것으로 당신의 수준 높은 문화를 엿보게 한다.
주몽왕 5년이었다. 그 동안 나라 힘을 착실하게 키워 나간 주몽은 이웃 나라 정복에 나섰다.
그 때 신하들이 의견을 말했다.
적과 싸울 때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 강한 나라와 약한 나라가 있습니다.
강한 나라란 저회 고구려와 힘이 비슷하거나 앞섰다고 생각되는 나라이며, 약한 나라란 말할 것
도 없이 모든 점에서 우리 고구려보다 못한 나라입니다.
으음.
그런데 임금님은 강한 나라와 약한 나라 가운데 어느 쪽을 먼저 치시겠습니까?
나는 강한 쪽을 먼저 치겠다.
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누구라도 약한 쪽을 먼저 치고 힘을 길러 가며 강한 쪽과 맞서
나가는 게 순서라고 생각하고 약한 쪽이 있는데 강한 쪽과 굳이 싸우겠다는 것은 모험이 아닐까
요?
전쟁은 보통의 싸움과 다르다. 약한 것을 치고 그것을 정복하기는 쉬우리라. 그러나 그렇게 되
면 이웃 나라로부터 무도한 나라라고 욕을 먹을 게 아니냐. 더구나 강한 쪽을 놔두고 약한 쪽을
정복했다 하여 그들이 진심으로 복종을 할 것 같으냐?
..... .
서로 비슷한 상대, 나보다 강한 적과 싸운다면 이것은 누가 보아도 침략이나 무도라고 생각하
지는 않는다. 그런 강한 나라와 싸워 이기면 이웃의 약한 나라도 자연히 우리 실력을 알고 스스
로 항복해 온다.
신하들은 주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왕 5년 10월, 주몽은 오이와 부분노에게 명하여 태백산 동남쪽에 있는 행인국을 쳐서 고구려의
영토로 만들었다.
왕을 10년에는 부위엄에게 명하여 북옥저를 쳐 없애고 그 땅에 성읍을 두었다.
이렇듯 세력이 막강한 행인국과 북옥저를 공략했으므로, 주위의 작은 나라들은 싸울 생각도 못
하고 고구려에 공물을 바치며 복종했다.
6. 재회
고구려이 세력은 날로 강해졌다. 이제 동부여도 고구려를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주몽왕 14년, 주몽의 어머니인 유화 부인의 장례를 태후의 예로써 지내 주고 사당까지 세워 주
었다.
주몽은 이것을 감사하게 여기고 사자를 보냈으며, 이것으로 양국은 묵은 감정을 씻고 우호 관
계를 맺었다.
이 때, 동부여에 있던 주몽의 부인 예씨는 아들에게 말했다.
유리야, 우리를 은밀히 보살펴 주시던 너의 할머니 유화 부인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이제 이
곳에는 우리 모자를 돌보아 줄 사람이 아무도 없구나. 그런데 너는 아직도 아버님의 증표를 찾아
내지 못했느냐?
네, 어머님.
유리는 대답을 하면서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였다.
이것을 보고 예씨 부인은 차분히 말하였다.
너는 너무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 같구나. 그러나 진실로 귀중한 것은 눈에 보
이지 않는 곳에 담겨 있느니라.
유리는 어머니의 말뜻을 잘 이해하지 못한 채 잠자코 앉아 있었다.
유리도 이제는 열아홉 살이 되었다.
그는 매일같이 사늘을 헤매며 아버지가 숨겨 놓은 유물을 찾으러 다녔다.
일곱 모가 난 돌 위의 소나무 아래가 대체 어딘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리는 찾다 못하여 짜증이 났고 지쳤다.
대체 일곳 모가 난 돌이 어디 있지? 아무리 산과 들을 돌아다녀도 그런 바위는 없었어. 그리
고 돌 위에 소나무가 있다니, 돌 위에 소나무가 자랄 수 있을까?
그는 마루에 있는 기둥에 머리를 대고 중얼거렸다.
이러다가는 영영 아버지를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자기만을 믿고 살아 오신 어머
니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 같아 눈물이 나왔다.
아, 나는 왜 이렇게 운이 없을까? 왜 그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는 걸까?
흐르는 눈물은 볼을 타고 흘러내리다가 기둥을 괴고있는 주춧돌 위에 똑똑 떨어졌다. 그 때 유리
는 문득 머리에 스치는 것이 있었다.
유리는 벌떡 일어나서 눈물을 닦고 돌과 기둥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유리의 얼굴은 점점 환해
졌다.
그는 갑자기 예씨 부인이 있는 밭으로 달려갔다.
어머니, 어머니!
아이고, 깜짝이야, 대체 무슨 일이냐?
어머니께 한 가지 여쭈어 볼게 있어요.
그게 뭔데 이렇게 서두느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집은 옛날 아버지가계실 적부터 살던 집인가요?
그렇다마는...... .
그럼 풀렸어요. 어머님이 말씀하시던 수수께끼가?
내가 말한 수수께끼라니?
아버님은 어머님께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하셨지요? 일곱 모가 난 돌 위의 소나무 아래
유물을 감추어 두었다고요.
그래, 그것은 내가 똑똑히 두 귀로 들었지.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렀다 해도 내가 너이 아버지
말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니?
이 말을 듣고 나자, 유리는 서들러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서 천천히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하늘이시여, 제발 제 생각이 틀리지 않도록 도와 주소서. 이 주춧돌이 있었다.
그위에 세운 기둥 역시 소나무였다.
유리는 이제껏 살아 있는 소나무만을 찾아다닌 자신의 어리석음에 저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유리가 주춧돌 밑을 파보니 과연 그 아래 토막난 칼조각이 있었다.
어머니, 찾았어요. 마침내 찾아 냈어요.
유리는 너무나 기뻐서 소리를 질렀다.
예씨는 그 칼 토막을 보자, 옛날 주몽과 함께 지내던 일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 어머니는 기쁘지 않으세요?
아니다, 내가 왜 기쁘지 않겠니? 그 물건을 보니까 너의 아버님 생각이 나서 그런단다. 그것보
다 이 일을 대소 왕자가 알면 안 되니까 은밀하게 준비를 한후에 떠나야 한다.
어머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유리는 이 날부터 자기를 따르는 옥지, 구추, 도조라는 세 명의 부하와 동부여를 떠날 준비를
하였다.
이번에는 자기 어머니까지 모시고 도망을 해야 하니까 준비를 치밀하게 했다. 그리고 마침내
달밝은 밤을 틈타 동부여를 탈출했다.
그 때에는 동부여와 고구려가 화친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유리에 대한 감시가 그리 심하지는않
았다.
그러나 당시에는 인구 수가 적었고 모든 일을 사람의 손으로 해야 하므로, 인구 수가 바로 국력
을 나타내기 때문에 자기 나라의 주민이 다른 나라로 옮겨 가는 것을 막고 있었다.
유리가 고구려에 온 것은 삼국사기 에는 주몽왕 19년 4월이라고 되어 있다.
왕은 이 때 사냥을 나갔다가 고구려를 찾아오는 유리의 모자 일행을 만났다
예씨는 벌써 먼 곳에서부터 남편 주몽을 알아보았다.
19년만의 만남! 동부여에서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껴 주몽이 탈출한 이후 한시도 잊지를 못했던
그리운 남편.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면서 말을 먹였던 주몽은 이미 옛날의 목동이 아니라, 이제
는 동부여의 왕조차 두려워하는 고구려의 왕이었다.
그러나 태어나기도 전에 이별을 해야 했던 유리는 아버지를 알아볼 리 없었다.
예씨 부인은 감격으로 떨려 오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유리에게 말하였다.
유리야, 저기 왕관을 쓰고 말을 타고 계신 분이 너의 아버님이시다. 어서 가서 인사드리고 네
가 찾은 그 증표를 보이도록 해라.
사냥을 하고 있던 주몽도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이 동부여의 복장을 하고 있으므로,
이상하게 여기고 말을 달려왔다.
유리와 세 명의 종자, 그리고 예씨는 공손히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고개를 들라. 그리고 너희들은 어디서 온 어떤 사람들이냐?
네.
유리는 고개를 들어 주몽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눈물이 고인 유리의 눈과 주몽의 눈이 마주쳤
다. 그러나 예씨 부인은 차마 얼굴을 들지 못하고 흐느끼고 있었다.
이것을 본 주몽은 더욱 이상하게 여겼다.
주몽은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그들을 찬찬히 내려다보았다.
그 역시 동부여에 두고 온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아들인지 딸인지도 모르는 자기의 자식을 한
시도 잊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잊기는커녕 자신의 생활이 안정되어 가면 갈수록 동부여에서 핍
박을 받고 있을 자기 가족들이 더욱 걱정이 되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남아 있는 아내와 자식을 당장이라도 데려오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
다.
그러나 지금은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으로서 그런 사사로운 일들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고,
그저 그들이 자기를 찾아올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동부여에서 온 사람만 보아도 혹시 그들이 자기 가족이 아닐까 하고 유심히 살펴보곤
하였다.
아버님, 저는 유리라고 하옵니다. 그리고 제 옆에 계신 분은 어머님이자, 아버님의 부인이시
죠.
무릎을 꿇고 있는 젊은이 중 하나가 주몽을 보고 아버님 이라 부르자 주몽은 너무 뜻밖이라 눈
이 휘둥그래졌다.
무엇이? 네가 내 아들이란 말이냐?
주몽은 깜짝 놀라 말에서 내려 그들에게 가까이 갔다. 그리고 나서 유리에게 물었다.
네가 나의 아들이라면 그것을 증명할 증표가 있을 텐데.
그러나 유리는 품안에서 칼 토막을 꺼내 공손하게 주몽에게 바쳤다.
주몽이 그것을 받아 보니 자기가 숨겨 놓았던 칼 토막이 분명했다.
그러나 만전을 기하기 위해 뒤따르고 있는 오이를 시켜 자기가 가지고 있던 칼 토막과 맞추어
보니 딱 들어맞았다.
오, 내 아들이 분명하구나!
그리고 그를 덥석 껴안았다. 그리고 나서 무릎을 꿇은 채 울고 있는 예씨 부인 곁으로 가서 그
를 일으켜 세운 후 두 손을 꼭 잡았다.
부인, 미안하오. 나는 부인을 잠시도 잊은 적이 없소. 그러나 일찍 부르지 못한 게 미안하오.
정말 우리의 아들을 잘 키웠구려. 자, 이제 눈물을 거두시오.
주몽은 그들에게 쉴 곳을 마련해 주고 나서 자기 심복들을 가까이 모이도록 하였다.
그가 가장 믿고 있는 것은 동부여에서 함께 탈출한 세 사람 즉 오이, 마리, 협부 였다.
늘 걱정하고 있던 부인과 아들을 만나게 되어 주몽은 매우 기뻤으나, 한편으론 마음이 착잡했
다.
그에게는 이미 소서노라는 왕비가 있었고, 그 몸에서 태어난 비류와 온조의 두 왕자가 있었다.
주몽은 오이와 의논했다.
부여에서 아내와 아들이 찾아온 것은 기쁘지만, 이 일을 장차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주몽의 말을 듣고, 여러 가지를 곰곰이 생각하던 오이가 입을 열었다.
우선은 제가 유리 왕자 모자분을 맡아 모시겠습니다. 임금님께서 좋은 날을 가려 유리 왕자를
태자로 삼으시고 백성들에게 알리면 될 것입니다.
유리를 태자로 삼으면 비류나 온조, 또 그의 어미인 소서노가 서운하게 생각할 텐데. 더구나
소서노의 집안에서 반대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임금님, 큰아들을 놔두고 다른 왕자를 태자로 삼으시면 그것이 바로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이
되옵니다. 옛날부터 나라가 혼란하게 되는 것은 바로 큰 아들을 밀어내고 다른 왕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데 그 원인이 있는 것이옵니다. 지금은 잠시 서운하고 혼란스러워도 나라의 장래를 생
각할 때, 유리 왕자를 태자로 삼으시는 것이 마땅한 일이옵니다.
이 말을 듣고 주몽도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것이 좋을 것 같군. 그러나 당장 저들을 대궐로 데려가면 혼란이 일어날 테니, 저들을
자네가 잠시 돌보아 주도록 하게. 내가 적당한 때를 보아 그들을 대궐로 부르겠네.
그래서 예씨와 유리는 오이의 집에 머물러 있게 되었다. 그런데 오이의 부인은 저 심술궂은 소
부노였다.
그녀는 자기가 큰언니인데도 왕비가 되지 못한 것을 매우 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야 소서노에게 원수를 갚을 날이 왔구나! 건방진 것이 언니인 나를 젖혀놓고 왕비가 되더
니 꼴 좋게 되었다. 이 기회에 예씨 부인과 유리를 내 편으로 삼아 얄미운 소서노에게 복수를 해
야겠다.
그래서 소부노는 예씨와 유리를 극진히 대접하며 기회가 있을 적마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부인께서는 당연히 첫째 왕비가 될 분이지요. 그리고 유리 왕자는 태자가 되어 장차 이 나라
를 다스리실 분이죠. 그런데 주몽왕은 당신들을 우리 집에 맡기고 벌써 한 달이 지났건만 찾아오
지도 않는군요. 그 까닭이 무엇인지 알고 계세요? 그것은 지금 왕비로 있는 소서노와 그 왕자들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이 깊은 사람일지라도 옆에서 누군가가 자꾸 부추기면 그것에 쉽사리 넘어가는 것
이 보통 사람의 마음이다.
그런 징조는 왕자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불씨가 되어 서로 적개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느 날,
주몽은 유리를 궁전으로 불러 비류와 온조를 만나게 해 주었다.
먼저 비류와 온조를 불러 유리에게 인사를 시키면서 따뜻하게 말하였다.
비류와 온조야, 너희들은 이번에 부여에서 온 유리를 친형님으로 알고 의좋게 지내야 한다.
네.
비류와 온조는 자기 어머니를 닮아 몹시 착했다.
주몽은 만족하게 생각하고 다시 유리에게 일렀다.
너는 형으로서 어린 동생들을 잘 돌보아 주어야 한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흉노, 오환, 선비,
그리고 한족이 있다. 이런 강적들과 싸워 이기려면 너희들이 먼저 단결해야 한다. 단결된 나라는
적도 감히 넘보지 못한다. 그러나 분열된 나라라면 얕보고 쉽게 쳐들어 올 것이다. 그러니 너희
형제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야 우리 고구려가 살아남을 수 있단다.
주몽은 유리를 태자로 삼기로 했다. 오이의 건의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나라나 가정이나 질서가 제일 중요합니다. 전에도 제가 말씀드렸지만, 아무쪼록 맏왕자를 태자
로 삼으셔야 합니다.
나도 그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소. 다만 나라 사람들이 유리를 태자로 받들며 진심으로
복종할 지 그것이 걱정이오.
그런 문제라면 염려 마십시오. 저희 신하들이 힘을 모아 태자님을 받들겠습니다.
주몽도 그제서야 안심하고 유리를 태자로 삼았다. 그리고 유리의 권위를 튼튼하게 해 주고 나
라 안의 불만 세력을 달래기 위해, 다물후 송씨의 딸을 맞아 태자비로 삼았다.
이렇게 되자 비류와 온조는 어린 마음에도 가슴이 아팠다. 성미가 급한 비류가 울면서 어머니
소서노에게 호소했다.
아버님께서는 어찌하여 유리 태자님만 위하고 저희들을 괄시하는지 모르겠어요.
소서노는 왕자들보다 더 가슴이 아팠지만 그들을 타일렀다.
그럴 리가 있겠니? 아버님께서 나라의 평화를 위해 모든 일을 그렇게 결정하셨다고 하시더
라.
그러자 온조가 말했다.
유리 형님이 태자가 되신 것은 할 수 없는 일이지요. 하지만 저희들 형제들을 마치 종처럼 다
루는 데는 참을 수 없어요.
이 말에 소서노는 깜짝 놀랐다.
그게 무슨 소리냐? 너희들을 종처럼 다루다니?
며칠 전 태자님과 사냥을 함께 갔었어요. 그 때 꿩을 한 마리 쏘아 떨어뜨렸지요.
누가?
물론 태자님이어요.
그래서?
그랬더니 태자님은 주위에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저희 형제더러 그 꿩을 주워 오라 했어요.
이 일은 며칠 전에 있었던 일로 유리는 비류, 온조와 부하들을 데리고 사냥을 나갔다. 자기의
활 솜씨를 동생들과 부하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냥을 하든 중에 가끔 눈치를 살펴보니 자기와 같이 있을 때에는 별로 기분이 좋은 것
같지 않다가도 자기들끼리만 있을 때에는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그것을 본 유리는
그들이 마치 자기의 흉이라도 보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이 때, 자기와 어머니가 처음 고구려에 와서 오이네 집에 머무를 때, 그의 부인 소부노가 누누
이 소서노와 비류, 온조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것이 떠올랐다.
이 녀석들이 나를 얕보고 있구나. 하기야 자기 이모되는 소부노까지도 나에게 그런 말을 했을
정도이니까 알아볼 일이지. 네 오늘 이 녀석들을 혼내 주리라.
이렇게 마음먹은 유리는 마침 하늘로 솟아오르는 꿩을 활로 쏘아 잡았다.
그를 따르던 부하들이 탄성을 올렸는데도 비류와 온조는 마치 자기 실력을 비웃고 있는 것처럼
딴 곳을 보고 있었다.
이에 화가 치민 유리는 비류와 온조에게 꿩을 주워 오라고 시켰던 것이다.
사냥을 할 때 잡은 물건을 찾아오는 일은 신분이 낮은 종들이 하는 일이었으므로, 비류와 온조
는 유리 태자의 말을 듣지 않았다.
유리 태자는 화를 냈다.
너희들은 태자의 말을 듣지 않겠단 말이냐?
전 죽으면 죽었지 종이나 하는 그런 일은 못합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뭐라고?
화가 치민 유리는 활 시윗줄에 화살을 메기고 금방이라도 쏠 듯이 위협했지만, 비류와 온조는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위협을 주었던 유리는 마침내 활을 내리며 말했다.
좋아! 너희들이 내 명령을 듣지 않았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
비류와 온조는 이 말에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태자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은, 아무리 태자의 명령이지만, 그런 터무니없는 명령은
듣지 않아도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유리는 자기의 부하인 옥지, 구추, 도조 등에게 명령하였다.
이들을 나무에 묶어라, 태자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누구라도 벌을 받아야 하는 거야.
옥지 등은 주저했으나, 유리가 재촉하자 마지못해 왕자와 그 종자들을 나무에 묶었다.
흥, 꼴 좋다! 오늘은 이 정도로 해 두겠지만, 앞으로 또 그랬다가는 그대로 두지 않겠다. 어디
너희 힘으로 묶은 것을 풀고 대궐로 돌아와 보라. 예전에 아버지 주몽께서는 너희들과 똑같이 나
무에 묶이자, 그것을 뿌리째 뽑으셨다. 당연히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니 너희들도 내 형제
라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겠지?
유리와 그 부하들은 비류와 온조를 그대로 남겨 둔 채 산을 내려왔다.
이런 사실을 전해들은 비류와 온조의 외삼촌 을음이 달려와 결박을 풀어 주었기에 망정이지,
날이 저물었다가는 맹수의 습격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소서노는 이런 이야기를 듣자 크게 한 숨을 지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아무래도 큰 봉변을 당하겠구나. 참는 사람이 이긴다고 했지만, 이 일
은 그냥 넘길 수가 없다. 부왕께 말씀드려야겠다.
소서노도 자기가 낳은 자식들을 놔두고 유리를 태자로 삼은 일에 불만이 많았지만, 모두가 나
라의 평화를 위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꾹 참았던 것이다.
그런데 유리 태자가 주몽이 살아 있는 지금 이 정도인데, 만약에 주몽이 죽고 난 후에는 어떤
일을 벌일지 생각만 해도 끔직한 일이었다.
주몽을 만나러 가는 소서노의 다리는 후들거렸다.
아, 장차 우리들은 어떻게 될까?
소서노는 주몽이 죽은 다음의 일이 몹시 걱정되었다.
7. 빛나는 영광
이 무렵 주몽은 몸이 자주 아파 자리에 눕는 일이 많았다. 그러기 때문에 정치는 대부분 태자
가 맡아 하는 일이 많았다.
그는 울면서 호소하는 소서노에게 말했다.
이미 정한 일을 나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구려. 차라리 나라를 떠나 어디론가 살 만한 곳으로
가서 나라를 세우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소? 말을 들으니 남쪽으로 내려가면 땅도 기름지고 물도
풍부하고 기후도 따뜻하여 나라를 세우기에 알맞다고 들었는데 그들에게 이야기나 해 보구려.
삼국사기 <백제본기>를 보면, 비류와 온조는 태자에게 용납되지 못할 것을 염려한 나머지 남
으로 떠날 것을 결심했다. 그러자 오간, 마려 등 열 사람의 신하가 따라나섰고 백성들도 많이 따
랐다.
그들은 염난수를 건너 드디어 한산 에 이르렀고, 부아악에 올라가 살 만한 땅이 있나 둘러보았
다. 비류는 멀리 서쪽을 보더니 말했다.
저기 바닷가 보인다. 저 바닷가야말로 나라의 도읍을 정할 만한 곳이다.
그러나 열 사람의 신하가 모두 이를 반대했다.
이 하남(강 남쪽)의 땅은 북으로 한수를 끼고, 동으로 높은 산을 의지하며, 남으로 기름진 들
이 펼쳐져 있으니, 얻기 어려운 천험 지리입니다. 여기에 도읍을 정하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비류는 끝내 주장을 굽히지 않고 따르는 무리들과 더불어 미추홀로 갔다.
온조는 비류와 갈라져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열 명의 신하 보필을 받으며, 나라 이름을
십제 라고 하였다. 이것은 기원전 18년의 일이었다.
한편, 백성을 이끌고 한산을 떠난 비류는 미추홀의 토지가 습하고 물맛도 짜서 살기가 힘들었
다. 뒤따르던 백성들의 불만이 매우 높았다.
에이, 차라리 한산에 남아 있을 것인데, 괜히 따라와 고생만 하는군.
누가 아니래. 비류 왕자님도 고집만 세지 앞일을 내다보는 안목은 없어. 지금이라도 되돌아가
야겠다.
하면서 한산으로 도망가는 백성들이 점점 많아졌다.
하룻밤만 자고 나면 백성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에 비류도 하는 수 없이 다시 위례성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한산에는 벌써 자리가 잡히고 백성들도 안락하게 살고 있었다.
온조는 한산으로 돌아온 비류를 따뜻하게 맞아들였다.
어서 오십시오, 형님. 이 곳은 형님의 나라이니까. 안심하고 계십시오. 저는 이 곳에서 형님을
도와 드리며 영토를 더 넓힐 작정입니다.
이 말을 듣고 비류는 묵묵히 앉아 있었다.
내가 고집을 피우다가 이 꼴이 되었구나.
비류를 따라 미추홀로 갔다가 되돌아온 백성들도 자리가 잡혀가는 한산의 모습을 보고, 자기들
이 비류를 따라갔던 것을 후회하였다.
이 모습을 보고 비류는 동생 온조와 백성들 보기가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어느 날, 그는 높은 산에 올라가 아버지, 어머니가 계신 북쪽을 향해 절을 드린 후에 목숨을 끊
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비류의 백성도 온조의 백성과 다시 합쳐졌다.
그 뒤, 온조에게 백성들이 즐겨 따랐다 하여 나라 이름을 백제 라고 고쳤다.
그 조상은 고구려와 더불어 부여에서 나왔으므로 부여씨 를 성으로 삼았다.
한편, 고구려에서는 주몽이 세상을 떠났다.
이 때가 바로 유리 모자가 동부여에서 와 주몽이 유리를 태자로 삼은 해였다.
그가 죽자, 용산에 장사를 지내고 시호를 동명 성왕 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사실에 대해 많은 의문을 남긴다.
삼국사기 를 보면 주몽은 왕 19년(기원전 19년) 9월 가을에 돌아가셨다. 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유리가 부여에서 오자마자 태자가 되었으며, 이어 왕이 40세에 승하했다는 것은 좀 부
자연스럽다. 하지만 다른 기록이 전해지지 않으니 일단 이를 믿을 수밖에 없다.
광개토 대왕비에도 대왕이 왕으로 있기를 19년, 40세로 하늘에 올라갔으며, 다시 내려오지 않
았다. 고 했기 때문이다.
중국 사서로 고구려왕 추 의 이름이 최초로 나오는 것은 신의 왕망 때(기원전 12년)이다.
즉, 왕망이 흉노 정벌을 위해 고구려에 대해 출병을 요구했다. 추가 이를 거부했기 때문에 왕망
은 부하 엄우 를 시켜 모살 했다는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고구려의 역대 왕들 중에는 추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삼국사기 에 주몽은
일명 추, 혹은 중해라고 함 이라 적고,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설명했다.
그럼 여기서 주몽은 죽었지만, 그의 아들 유리가 한 일에 대해서 좀더 알아보기로 하자.
유리왕 11년(기원전 9년), 왕은 여러 신하를 모으고 말했다.
"선비족이 자기네 지형의 험함을 믿고 우리와 화친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처지가 유리하면
나와 침략하고 불리하면 들어가 지키니 정말 골칫거리다. 누구 그들을 무찌를 자 없는고?
선비족이란 내몽고 지방에 있었던 퉁구스족과 몽고족의 혼혈 족으로 그들을 동호 라 불렀다.
그런데 흉노의 묵특 선우가 동호를 무찔렀을 때 그들은 뿔뿔이 흩어졌는데, 그 후예가 오환, 선비
족이었다.
선비족은 그 뒤 흥안령 산맥 동쪽에서 사냥, 유목 따위로 생활하면서 살았다. 유리왕의 말을 듣
고 부분노가 나와 아뢰었다.
선비족이 그들의 지리적 유리함을 의지하고 있는데다가 그 백성은 날래고 고지식하므로, 힘으
로 싸우기는 어렵고 꾀로 굴복시키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어떠한 꾀를?
첩자를 보내어 거짓말로 우리는 나라도 작고 군사도 약하여 항상 선비족이 쳐들어올까 미리부
터 겁을 먹고 있다 하면, 저들이 반드시 우리를 공격해 올 것입니다. 그 틈을 타서 반격하면 분명
이길 것입니다.
과연 부분노의 말대로 첩자의 말을 믿고 선비족이 고구려에 쳐들어왔다. 고구려는 때를 놓치지
않고 선비족을 격파하고, 그들을 고구려의 속국으로 삼았다.
유리왕 14년(기원전 6년) 부여와 싸웠고, 왕 22년(서기 3년)엔 도읍을 위나함(국내성)으로 옮겼
다.
이어 유리왕 31년 (서기 12년) 중국의 신의 왕망이 고구려 군대의 출병을 요구하여 호(흉노)와
싸우게 했다.
이 때, 우리 군사들은 출병을 반대했으므로 흉노와의 싸움에서 모두 도망쳤다.
신의 요서 대윤 전담은 이들 도망병을 치려다가 오히려 죽고 말았다.
왕망은 이에 분개하여 엄우에게 고구려를 치라는 명을 내렸다. 이 때 엄우는 왕망에게 말했다.
맥인(고구려인)의 행위에는 마땅히 죄를 주어야 하겠지만 그들을 달래야 합니다. 지금 함부로
큰 죄를 내리면, 그들은 끝내 배반할 것이며, 흉노도 없애지 못한 이 때, 부여와 예맥마저 일어나
면 이것이야말로 큰 일입니다.
그것은 아니 되오. 지금 고구려를 치지 않으면 우리를 얕보고 모두 배반을 하게 될 것이요. 반
드시 고구려를 쳐야 하오.
왕망은 듣지 않았다.
엄우는 할 수 없이 고구려 장수 연비를 꾀어 그의 목을 베고 그것을 장안으로 보냈다.
그러나 가만히 있을 고구려가 아니었다. 신나라가 무리한 강압 정책을 쓰면 쓸수록 고구려의
반격은 거세졌고 신나라는 쇠약해졌다.
드디어 서기 23년 광무제가 다시 한왕조를 일으켜 신나라를 멸망시켰다.
그러나 고구려는 이 때 이미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성장했다. 그 증거로 서기 49년 중국의
북경, 어양, 상곡, 태원까지 공격해 들어갔고, 그 일대를 점령했다. 그리고 중국과는 팽팽한 세력
균형을 이루어 가면서 주변의 작은 왕국을 차례로 멸망시켰다.
서기 118년 이후부터는 예맥, 마한 등 각 부족과 연합하여 현도, 용도 양군과 싸웠고, 동방의
맹주로 떠올랐던 것이다.
우리 민족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고구려!
저 드넓은 만주와 랴호허 강 유역까지를 영토로 삼고 중국의 수나라와 당나라와 맞서서 한 번
도 굴복을 하지 않았던 고구려!
오늘날 왜곡된 역사는 고구려가 중국에게 조공을 바치고 마치 그들의 속국이었던 것처럼 말하
고 있으나, 결코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 증거로 고구려가 그들에게 고분고분하게 따랐다면 중국과의 마찰도 없었을 것이며, 중국의
수나라가 고구려를 쳐들어오다가 멸망당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당나라가 전전긍긍하며 신라와 동
맹을 맺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한, 주몽의 아들인 온조가 세운 백제는 어떠한가? 백제는 해상 강국으로 중국의 요서 지방을
점령하여 백제군을 설치하였고, 일본으로 진출하여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
는 고대 해상 무역을 장악했던 것이다.
지금도 일본에는 백제 라는 말이 붙은 지명이 많이 남아 있고, 고대 일본의 지배층이 백제 사
람이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로 되어 있다. 이런 것으로 보아 동부여에서 탈출하여 고
구려를 세운 주몽에게 동명성왕 즉 동방을 밝게 비춘 성스러운 임금 이라는 시호를 붙인 의미를
우리는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우리 민족의 터전이 되었던 만주를 남의 손에 빼앗긴지 어언 1000여 년(발해도 우리 민족이 세
운 나라이다). 그 동안 우리는 좁은 한반도에서 항상 강대국의 눈치를 보며 살아 왔다. 어떤 때에
는 그들에게 무릎을 꿇었고, 어떤 때에는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기기도 하였다.
그런 우리를 스스로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요, 남의 나라를 침범하지 않는 양순한 민족임을
자랑해 왔다. 그러나 진정한 평화는 우리가 강할 때 얻어지는 것이다.
그 동안 우리는 역사를 통해 남에게 우리의 평화를 보장받겠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를 깨달았다.
지금은 세계의 각 민족이 이념과 사상을 떠나서 같은 민족끼리 뭉쳐 격변하는 정세 속에서 살
아남으려는 몸부림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드넓은 만주 벌판을 호령했던 우리 조상들을 생각하며, 민족이 한데 뭉쳐 한
민족의 기상을 온 세계에 떨치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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