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가족
나오는 사람들
아버지 : 강대구, 40대 후반
어머니 : 40대 후반
삼 촌 : 강찬구, 강대구의 동생, 30대 중후반
영 민 : 강대구의 아들, 23세
미 수 : 딸, 22세
미 나 : 막내, 17세
이 장 : 박일문, 50대 초반
은 주 : 박일문의 배다른 동생, 20대 후반
박회장 : 박일문의 아버지, 70대 초반
주 임 : 지서 주임, 40대 초반
오순경 : 20대 후반
제 비 : 20대 중반의 제비 같은 남자
내숭녀 : 20대 초반의 제비 애인
등산여 : 20대 초반의 제비 첫 번째 애인
킬러 : 박 이장의 사주를 받은 살인 청부업자
선배장씨: 30대 초반의 전라도 남자
눈길남 : 장씨의 후배
다리남 : 20대 중반의 다리위에서 자살을 기도하는 남자
다리여 : 20대 초반의 다리위에서 자살을 기도하는 여자
고독남 : 30대 중반의 고독한 남자
그외
강반장, 이형사, 박순경 : 극중 영화 속에 나오는 강력계 형사들
극중 영화속에 나오는 여러 시체들
작업 현장 감독
최기사, 목맨 여인, 괴 노파, 마을 술집 여자, 마을 박순경, 택시 기사
구급 대원들, 등산객들, 작업 인부들, 병원 환자와 간호원, 잡종견 바
우
1. 산 장 / 스카이 라인
타오르듯 붉게 노을이 깃든 하늘. 2층의 허름한 산장이 무겁게 실루엣
으로 보여진다. 검붉은 태양이 커다랗게 걸려있다.
2. 모텔 / 저녁
객실안은 온통 피범벅이 되어 피비린내가 물씬 풍긴다.
벽과 바닥 거울에 피로 쓴 영문 이니셜과 어떤 기호가 어지럽게 씌여
있다.
무엇을 쓴 것인지 알 수 없다.
침대엔 젊은 여자가 나체로 하복부에 예리한 흉기에 찔린채 누워 있
다.
하반신은 무참히 난자 당해 갈기 갈기 찢겨져 있다.
동공은 천정을 응시하고 있고 입술은 반쯤 열린채 가까이 가면 숨소
리가 들릴 것 같다. 한손은 움켜쥐고 있고 한손은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다.
객실엔 경찰, 의사, 기자들로 가득차 있다. 여기 저기 카메라 후래쉬가
터지고, 현장 검증을 하는 경찰들의 표정은 역겹다는 듯 하나같이 미
간을 찌푸리고 있다. 그러나 기이할 정도로 너무 조용히 자기일들은
수행해나가고 있다.
비장감마저 감도는 그런 분위기이다.
입을 열면 지독한 피비린내가 입안에 잔뜩 배이기라도 할듯 모두들
입을 꽉 다문채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강반장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채 객실안으로 들어오면 적막한 가운데
방안의 젊은 형사 하나가 시체를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다.
강반장 : 뭐 좀 나온거 있어?
이형사, 말없이 고개만 흔든다.
강반장, 좌우를 살피다가 침대구석의 어떤 선을 손으로 조심히 잡아당
기며 그 선을 따라 움직인다.
형사들, 사뭇 긴장된 표정으로 강반장의 돌연한 행동을 주시하고 있
다.
선은 침대 밑으로 이어져있고 선을 슬금슬금 잡아당기면 전화기가 툴
툴거리며 따라 나온다.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누른다.
강반장 : 당신이야? 그것 좀 알아봤어? ... 빨리 좀 알아봐!
급하다고 했잖아. 일주일 후엔 갚을 수 있다니까.
그래, 빨리 알아보고 삐삐쳐.
수화기를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벽쪽으로 다가가 벽에 튄 피를 바라본
다.
강반장 : 웬 피가 이렇게 많아? (손가락에 침을 뭍혀 찍어 본다)
이거 사람 피 맞아?
(다시 발걸음을 옮기며 구석 구석 살핀다)
시체쪽으로 다가간 강반장과 이형사, 시체의 상태를 유심히 살핀다.
시체의 꽉 쥔 손을 풀어보려고 하나 너무 움켜쥐고 있어 쉽지 않다.
강반장의 이마에 땀이 맺힌다. 있는 힘을 다해 보지만 역부족이다.
이번엔 하복부에 꽃힌 흉기를 빼려고 한다. 피가 응고되어 빠지지 않
는다.
이형사, 얼굴을 찌푸린다.
강반장이 마구 흔들더니 기어코 빼낸다. 피가 벌컥 솟아올라 강반장의
코트 소매를 적신다.
이형사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입을 틀어 막으며 화장실로 뛰어 간다.
강반장, 흉기를 찬찬히 관찰한다. 끝부분을 수건으로 닥아내자 어떤
문양 같은 것이 얼핏 보이는 것 같다. 다시 깨끗하게 닦아내자 화살표
가 그려져 있다. 시체의 한쪽 손이 가리키는 곳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강반장, 시체의 왼손이 가리키는 쪽 방향으로 고갤 천천히 돌리면 그
의 동공이 커지면서 소스라친다.
3. 산장(휴게실) /초저녁
여고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막 TV를 끄곤 무료한 듯 기지개를
켠다.
소파에 벌렁 누워버린다.
소파 뒤로 그 애의 엄마가 쟁반을 들고 말없이 지나간다.
잠시후, 그 애의 아버지가 연장도구를 들고 역시 말없이 지나간다.
여자 아이의 이름은 미나다.
미나는 무신경하게 소파위에서 고양이처럼 몸을 이리 저리 비튼다.
멍한 표정으로 천정을 응시한다. 그러다 벌떡 일어나 천정을 올려다
본다.
고개를 갸웃거리다 다시 소파에 벌렁 눕는다.
카메라가 미나의 얼굴로 들어가면,
N : 시내에서 이곳 산장으로 옮긴지 벌써 13일이나 지났다.
아무일도 없었다.엄마와 아빤 하루종일 내내 저렇게
왔다 갔다 하기만 한다. 그렇다고 딱히 무슨 일을
하는 것도 아 니다. 평소 친분이 있던 마을 이장 아
저씨의 소개로 허름한 산장을 싼값에 구입해 생전 해
보지도 않던 숙박업을 시작한 것이다.굳은 결의가 점
점 불안으로 굳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미나는 고양이 웅크린 자세로 바꾼다.
N : 왜냐하면 보름 가까이 등산객은 커녕 등산화 한 켤레
조차 볼 수 없었던 것이다.그러나 엄마 아빠는 이
산이 단풍이 유명하기 때문에 가을이 오면 그 땐
정신없이 바빠질거라는 기대에 부풀어 계시다. 아빠
는 이곳이 국립공원은 안되도 유명한 관광지로 부
상할 것이라는 이장아저씨의 말에 내심, 큰 기대를
거시는 것 같다.조만간 우리 산장옆으로 도로 공 사
가 시작될거라는 이장의 격려성 전화에 크게 고무되었던
엄마 아빠는 2주가 넘도록 손님이 없자 기가 꺾인 모습이었
다. 식구들이 점점 히스테리컬한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
도 이 무렵이다.
4. 식당 / 저녁
너무나 조용하게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 식구들.
미나의 엄마, 아빠 날카롭고 사납게 보이는 오빠 영민, 사람 좋게 생
긴 삼촌.젓가락 소리, 밥그릇의 달가닥거리는 소리만 들릴뿐 무거운
침묵 속에 있다.모두 눈을 아래로 내려 깔고 마치, 밥안에 들어간 돌
을 찾기라도 하는 것 처럼.조금 있다 미나의 언니 미수가 들어온다 긴
머리, 흰 피부, 이곳엔 어울리지 않는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나름대로
우아한 자태로 들어온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화면엔 안나오지만 한쪽에선 이런 적막한 분위기와 상관없이 밥그릇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며, 묵묵히 국을 떠먹던 아버지
의 신경을 거스린다. 아버지가 참을만큼 참았다는 표정을 지우며 의자
를 뒤로 물르더니 발길질 한다. 개 한마리가 깨갱 소리를 내며 도망친
다.
그러나 밥그릇에 미련이 남았던지 그리 멀리 도망가진 않는다.
5. 산장외경 / 밤
커다란 보름달이 산장 지붕 끝에 음산하게 걸려있다.
사장 뒷켠에 높다란 느티나무들이 약한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고 그런
정경이 더욱 산장을 음산하게 보이게 한다.
6. 미나의 방 / 밤
미나가 잠을 자다가 어떤 소리에 눈을 뜬다.
귀를 기울리면 누군가 2층에서 무거운 물체를 질질 끌고가는 소리 같
기도 하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 같기도 하다.
미나, 신경을 곤두세워 듣고 있다가 신경질적으로 천정을 향해 곰 인
형을 던진다.동시에 소리가 뚝 그친다.
7. 숲 / 낮
영민과 미나가 숲을 헤치며 나온다. 영민이 갑자기 걸음을 멈춘다.
미나도 엉겁결에 걸음을 멈추고 숨을 죽인다.
풀속에서 무언가 바스락 거리며 움직이고 있다.
영민, 돌멩이를 하나 들어 풀속을 향해 내던진다. 움직임이 멈춘다.
영민과 미나가 조용히 기다려본다.
다시 풀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조금 후에 커다란 두꺼비
한 마리가 엉금엉금 기어나온다.
영민, 조심히 다가가 두꺼비를 바라본다.
영민 : 미나야, 이거봐 생긴게 꼭 아버지 같지 않나?
미나, 두꺼비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킥킥 거리며 웃는다.
영민도 씩 웃으며 작대기를 집어 두꺼비를 툭툭 건드려 본다.
아랑곳 하지 않고 두꺼비는 제갈길 간다는 듯 느릿하게 기어간다.
영민 : 차려! 얼씨구? 이자식이!
영민, 좌우를 살피다가 돌을 하나 들어 내리친다.
두꺼비는 내장과 피를 팍하며 터트리며 즉사한다.
미나 : 아버지를 죽였다!
미나는 징그럽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리는데 두꺼비 다리 하나가 느릿
하게 움직이자 웃음을 터트린다. 영민도 따라 웃는다.
미나가 땅을 파서 두꺼비를 묻어준다.,
8. 산장앞 공터 / 낮
영민과 미나는 꽃을 한다발 꺽어 가지고 내려온다.
삼촌이 할 일 없이 벤취에 앉아 시간을 죽이고 앉아 있다.
커다란 구식 라디오를 안고 주파수를 맞추려고 이리저리 돌리고 있다.
그러다 라디오를 한 대 치면 깨끗한 주파수가 잡힌다.
미수가 손에 든 풀을 이리저리 흔들며 마당앞을 역시 할 일 없이 가
로질러 간다.그런 미수를 가만 보던 삼촌이 웃음을 마구 터트리기 시
작한다.
영민과 미나, 의아하게 삼촌을 쳐다본다. 삼촌,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배
를 움켜잡고 오열하다 시피 몸을 틀다가 의자에서 떨어진다.
옆에서 졸던 잡종견 바우가 깜짝 놀래 컹컹 짖는다.
9. 산장카운터 / 낮
전화가 요란하게 울리면 엄마가 허겁 지겁 달려와 낚아 채듯 수화기
를 든다.
엄마 : 여보세요? 산장입니다.
소리 : 거기가 산장입니까?
엄마의 표정이 밝아진다. 그러면서 식구들이 다 들으라는 듯 소리가
커진다.
엄마 : 네~ 정확히 걸어 주셨습니다. 여긴 산장입니다.
소리 : 그러니까 거기가 산장이란 말이죠?
엄마 : (웃으며) 네~ 여긴 산장입니다.
소 리 : ... 거기가 용문장이 아니고 산장입니까?
엄 마 : ... 지금 어디다 거셨어요?
소 리 : 거기 중국집 아닙니까?
엄 마 : 중국집? 여긴 산장이란 말이에요!
소 리 : 거긴 중국요리 안됩니까?
엄 마 : 아니, 이 양반이 산장에서 무슨 중국요리를 해? 전화
끊어!
소 리 : 죄송합니다.
잔뜩 기대를 걸었던 식구들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쉰다.
신경질적으로 수화기를 내려놓는 엄마.
엄 마 : 별 미친놈 다 보겠네. 산장을 어떻게 보고 그러는거야?
... 이런놈들은 지 애비가 자장면으로 목을 메고 뒈
져야 다신 중국 음식 안찾지. 아휴 속터져
10. 산길 / 늦은 오후
바싹 마르고 괴상하게 생긴 노파 하나가 손에 막대기를 지팡이 삼아
알아들을 수 없는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힘겹게 산길을 오르고 있다.
11. 산장앞 / 시간이 조금 경과
영민, 벤취에 앉아 있고 그 옆에 삼촌이 무슨 끈으로 미나의 목을 뒤
에서 조르면 미나가 꽥꽥 소리를 지르는 이상한 장난을 치고 있다. 옆
에는 바우가 눈을 껌벅거리며 졸고 있다.
영민, 어떤 인기척을 느끼며 산장으로 올라오는 길을 주시한다.
미나와 삼촌의 장난질을 제지하며 길목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뒤늦게 바우가 고갤 들어 길목을 향해 짖기 시작한다.
이윽고 괴상하게 생긴 노파가 나타난다.
그 노파는 아이들 쪽으로 가까와지더니 갑자기 멈춰선다.
노파는 놀란 눈으로 아이들과 산장을 번갈아 보더니 산장 주위를 돌
며 심하게 몸을 떤다.
아이들과 삼촌이 의아해 하며 노파의 뒤를 조심스럽게 쫓아 다닌다.
괴 노파는 산장 꼭대기를 향해 괴성을 질러대며 침을 뱉는다.
노 파 : 캬악 - 퉤! 이노옴! 어서 썩 물러가라 이놈아!
(작대기를 들어 공중에 휘젖는다.눈에 핏발이 벌겋게
선다)
에잇 - 어디서 붙어도 더러운 게 붙었어! 캬악 - 퉤!
노파는 혀를 끌끌 차며 다시 산길을 오른다. 갑자기 돌아서서.
노 파 : 느그들, 조심하지 않으면 흉한 일 생긴다.
괴노파, 바람을 일으키듯 뒤도 안돌아보고 발길을 돌린다.
삼촌과 아이들 얼굴을 쳐다보며 고갤 갸웃거리면서 히죽 웃는다.
그러다, 삼촌이 다시 미나의 목을 뒤에서 조이는 장난을 친다.
미나가 재미없다는 듯, 뚱한 표정을 지으며 끈을 푼다.
미나는 괴노파가 사라질때까지 쳐다본다.
12. 식 당 / 저 녁
조용하게 가족들이 식사를하는 가운데 미나가 낮에 일어난 일을 이야
기한다.
미나 : (노파의 목소리와 표정을 흉내 내며)
아누우움-! 어서 썩 물럿거라 이 눔아!
아버지와 엄마, 미수는 굳은 표정으로 미나를 쳐다본다.
영민과 삼촌이 낄낄거리며 미나의 노파 흉내를 보고 있다.
미나 : 어서 썩 물러가지 못할까? 이 누움! 크아앗 -퉤잇!
엄마와 미수 이맛살을 찌푸린다.
삼촌 : (밥 먹다 말고 팔을 내저으며)
그게 아니지. 캬악 - 퉤! 이렇게 했지.
미나 : 키악 - 퉤이?
삼촌 : 아니, 캬악 -퉤!
미나 : 까악 -퉷!
삼촌 : 에이 바보. 캬악 -퉤! (캬악을 강조한다)
캬악 -캬악 - 다시 해봐. 캬! 악
(그러다가 진짜 가래 끊는 소릴 듣는다)
미수 : 삼촌!
엄마 : 그만해!
아버지 : 씨끄럽다!
삼촌 입안에 이물질을 한움큼 물고 뱉지도 못하고 삼키지도 못한채
고의가 아니라는 표정을 지어보인다.
미수, 밥 맛 떨어졌다는 듯 수저를 놓고 나간다.
아버지 : 밥상앞에서 뭐 하는 짓거리들이야? 에이!
아버지도 수저를 놓으며 일어서다 발길에 바우가 걸리적 거리자 갈긴
다.
그러나 이번엔 바우가 미리 피해 헛발질을 하는 아버지.
한 쪽에선 영민이가 계속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배를 쥐고 있다.
13. 미나의 방 / 밤
침대에 누워 캬악- 퉤를 연습하는 미나.
미수가 그만하라며 소릴 지른다.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연습하는 미
나.
미수, 베게로 귀를 틀어막는다. 소리를 점점 작게 하다가 뚝 그치는
미나.
약간의 정적. 고개를 들어 천정을 올려다 본다.
미세하게 사람의 신음 소리가 들린다.
14. 부모의 방 / 같은 시간
엄마, 이부자리를 다 깔곤 아버지를 쳐다본다.
아버진 가계부만 들여다 본다.
엄마 : 뭐 마실거라도 갖다 드려요?
고개만 끄덕이는 아버지.
아버지 : 이것 봐. 이달에 뭘 이렇게 많이 썼어?
이거 첫 손님 받기도 전에 문닫아야 할 판이구만.원세
상에.
엄마 : 그동안 먹은 건 생각안해요? 그동안 먹는게 일이었지
뭐...
새 학기 시작하면 미나, 이곳에 있는 학교도 알아봐야
하고 돈 들어갈 데가 어디 한 둘인지 알아요?
아버지 : 학교는 뭔 학교? 걔가 공부에 취미나 있어?
엄마 : 그렇다고 요즘 세상에 고등학교도 안나오고 어디가서
사람 구실이나 하겠어요?
아버지 : 우리집 자식들 사람 구실 할 놈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바우만도 못한 놈들. 바우는 때리면 맞기나 하지.
이것들은 뭐라 그러면 버럭 버럭 대들기나 하고.
엄마 : 삼촌은 어떻구? 솔직히 말해 삼촌이 하는일이 뭐가 있
어요?
말마따나 바우는 밥주면 짖기나 하지.
아버지 : 빨리 가서 마실 거나 가지구 와! 여편네가 잔말이 많
아?
15. 식당 / 같은 시간
불을 켜자 미나가 잠옷차림으로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꼿꼿이 서있
다.
화들짝 놀라는 엄마.
엄마 : 어머, 깜짝이야! 너 잠 안자구 여기서 뭐하고 있어?
미나 : 2층에 누가 있어! 신경질나게 자꾸 소리가 난단 말야.
엄마 : 그게 무슨 소리야? 2층엔 있긴 뭐가 있다고 그래?
미나 : (신경질적으로) 정말이란 말야! 에이, 엄만 그것도 몰
라!
미나, 투정부리는 듯한 표정을 지워보이며 식당을 빠져나간다.
16. 산장 2층 / 밤
미나의 부모는 2층 객실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열어본다.
아무런 이상한 조짐을 찾지 못한다.
구석의 마지막 방을 열려고 한다. 그러나 안에서 잠겨 있다.
아버지 : 여긴 왜 잠겨 있어? 열쇠 줘봐.
엄마 : 어머, 이상하네, 잠길리가 없는데.
이상한 생각에 급히 문을 열면 창문이 열려있고
바람에 커텐이 조금씩 흔들거리고 있다.
창문을 닫고 돌아서려 할때 방안에 뭔가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
다.
그것을 줏어들면.
17. 모텔객실 / 밤
강반장이 무언가를 줏어든다.
골똘히 쳐다보며 만지작거리고 있으면 이형사와 박순경이 다가온다.
이형사 : 그게 뭡니까?
강반장 : 글쎄... 나도 처음 보는건데.
무슨 고무 제품 같기도 하고...
박순경 : 째리 아닐까요?
이형사 : 째리?
박순경 : 애들 먹는 거 있쟎아요. 말랑말랑 꼭 고무줄 같은 거.
강반장 : 아- 쫀드기?
이형사 : 쫀드기? 뭐가 맞는거야? 째리야? 쫀드기야?
강반장 : 쫀드기야. 자네 이거 먹어봐.
이형사 : 이걸 먹어보라구요? 바닥에 떨어진건데...
(마지못해 입에 넣고 씹는다)
젤리 맞아요. 음-맛도 괜찮네.
근데, 이거 증거물이면 어떡하지?
박순경 : 반장님- 여기 보세요. 여기에도 많이 떨어져 있는데요.
젤리가 하나씩 하나씩 바닥에 떨어져있다.
강반장, 그걸 하나씩 주으며 따라가다 보면 매입장에 다다른다.
고개를 갸웃하고 돌아서는데 순간적으로 얼어붙은듯 꼼짝없이 서 있
는다.
획 하고 몸을 돌리는 순간, 강반장은 긴장된 표정으로 매입장을 뚫어
지게 쳐다본다.
강반장 : 누가 여기 열어본 사람 있어?
(아무도 대답이 없자 버럭 소리를 지른다) 있어! 없어!
소리 : 없습니다!
강반장, 긴장감을 풀지 않고 매입장 손잡이를 조심스럽게 잡는다.
그의 동공이 점점 커지고 이마에 땀이 베인다.
매입장을 확 열어 제치면,
그안엔 40대의 대머리 남자가 발가벗겨져 옴몸에 피범벅이 되어 있고
젤리를
한웅큼 물고 눈을 부릅뜬채 처참하게 죽어있다.
젤리를 오물거리던 이형사, 헛구역질을 하며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뛰어간다. 벽에는 피로 쫀드기... 쫀드기... 이렇게 어지럽게 가리키고
있다.
강반장, 고개를 그 방향으로 돌려보면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소스라친
다.
(화면 바뀌면 미나가 젤리를 먹으며 텔레비젼을 보고 있다)
미나, 제리를 오물거리다 화면을 보고 인상을 찌푸린다.
후다닥 화장실로 뛰어간다. 변기 뚜껑을 열고 젤리를 뱉는다.
미나 : 캬악- 퉤! 퉤, 퉤!
방 안에 있던 미수, 뛰쳐 나오며,
미수 : 미나얏!
미나 : 왜 그래? (밖으로 나오며)
내가 째리 먹으면서 테레비보고 있는데 영화에서
째리 먹가가 죽어있는데 어떡해?
미수 : 넌 무슨 계집애가 그렇게 유난스럽냐? 테레비 꺼!
미나 : (툴툴거리며 텔레비젼을 끈다. 혼잣말로)
병신같은게 괜히 지랄이야.
미나는 TV를 끄고 복도를 지나 자기 방으로 간다.
복도 한쪽에 걸린 큰 거울을 지나가는데 거울 한쪽에 하늘색 브라우
스를 입은 여자가 서 있는 것이 얼핏 비친다.
미나, 이상한 느낌이 들지만 확인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간다.
18. 산장 / 낮
미나가 소란스럽게 산장안으로 뛰어들어온다.
미나 : 엄마! 엄마! 등산객이 올라와! 빨랑 나와봐!
엄마와 아버지, 식당에 있다가 뛰쳐 나온다.
밖으로 나오면 모두들 나와서 등산객이 올라오는 길목을 내려다보고
있다.
아버지 : (헐레벌떡 뛰어나와) 자,자 모두들 가만있어.
창구 어디있냐?
미 수 : 삼촌 아침 일찍 읍에 갔다오겠다면서 일찍 나갔어요.
아버지 : 이 지식은 허구헌날 집에 틀어박혀 있다가 이럴땐, 어딜 간
거야?
영민 : 온다.
미나 : 와- 많다.
엄마 : 조용!
여러명의 등산객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식구들 모두 현관 앞에 도열해 있다.
만면에 환한 미소를 머금으려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점점 가까워지는 등산객들, 초조와 긴장을 더해가는 식구들.
너무 긴장을 한 나머지 엄마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민망할 정도로 크
게 들린다. 더 가까와지는 등산객들 식구들의 동공이 점점 커져간다.
그런 식구들의 모습을 의아하게 쳐다보며 지나가는 등산객들.
멀어져가는 등산객들의 뒷모습을 아스라히 쳐다보다 실망을 금치 못
한다.
에잇하며 돌아서는 아버지. 침을 찍 뱉는 영민.
미나는 보이지 않는 등산객들을 향하여 발돋움을 할 정도로 아쉬워
한다.
엄마 : 옘병할 놈들. 뮌 뻘났다고 떼거리로 다녀?
뿔뿔히 흩어질때 미나는 아쉬워하며 다시 산길을 내려다본다.
19. 식당 / 같은 시간
엄마는 신경질적으로 설겆일 하고 있다. 아버진 담배를 뻑뻑 피워댄
다.
엄마 : 아따- 담배 좀 작작 펴요. 목구멍 따가와 죽겠네.
목구멍이 아니라 숯구멍이야!
아버지 : 이눔의 여편내가 남 담배 태우는 것 가지고 시비야?
엄마 : 허이구, 잘났어 정말.
아버지 : 한번만 더 그런 아가릴 놀려봐.
그 놈의 아가릴, 그냥 찢어 놀테니까.
엄마 : 이 아가리에다 뭐 좀 채워주고 그런 소리 해봐.
아버지 : 아니, 근데 이 여편내 주둥아리에 뭐가 씌웠나?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릴 해싸지?
엄마 : 씨나락 까먹는 귀신 주둥아리 보다도 못한 팔자여,
내 팔자가.
어버지 : 그만좀 해!
그렇게 씨부렁대는 조동아리 가지고 뭐가 부러워 이 지
랄이야!
엄마 : 지랄? 그래, 씨나락이라도 까먹는 귀신 조동아리가 부러워
이 지랄이다. 왜?
미나가 뛰어 들어오며 급하게 손짓을 한다.
창문을 내다보면 엄마는 재빨리 손의 물기를 닦아내고 나간다.
20. 산장입구 / 같은 시간
등산복 차림의 두 남녀가 뭔가 서로 다투면서 올라온다.
식구들 아까처럼 도열해있지만 조금은 조심스럽다.
제 비 : 글쎄 여기서 쉬었다 가자니까.
등산여 : 지금 서두르면 해 떨어지기전에 내려올텐데 뭣하러 쉬었
다 가?
제 비 : 산이 가파라서 체력을 비축하지 않으면 힘들다니까.
등산여 : 체력 비축? 말이 좋네. 밤새 잠 못자게 할려구?
누가 자기 속셈 모를 줄 알아?
식구들, 그들의 대화 분위기에 따라 얼굴들이 펴졌다 굳어졌다 한다.
등산여 : 몰라. 자긴 여기서 체력을 비축하던지 소비하던지 맘대로
해.
난 올라갈꺼야.
제 비 : 영진아 약속할께. 그럼, 잠깐만 쉬었다 가자. 응? 영진아!
여자는 무시한채 산길을 오른다. 남자가 큰 소리로 여자를 부른다.
엄마가 슬쩍 눈치를 보며 남자 곁으로 간다.
엄마 : 내가 불러 올까요?
제비 : 예? 됐어요. 근데 아줌마, 저쪽으로 넘어가도 이런게 있을
까요?
(엄마의 기분이 상한다)
엄마 : 안 넘어가봐서 모르지만 아마 큰 수녀원이 있다지?
제비 : ...그럼, 영진아, 같이가!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엄마는 혀를 찬다)
엄마 : 아이구, 이 자식아. 그 실력으로 강아지도 안 넘어가겠
다.
모두들 돌아가고 미나 혼자 남는다. 저멀리 삼촌이 올라오는게 보인
다.
그런데 삼촌 뒤로 하늘색 브라우스를 입은 여자가 뒤따라온다.
한참을 삼촌과 그 여자는 무슨 놀이를 하듯 앞서거나 뒤서거니 하면
서 올라오는데 나무 밑은 도는 쯤에 순간적으로 여자는 보이질 않는
다. 미나가 고갤 갸웃한다.
미나 : 삼 - 촌-!
삼촌이 미나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인다. 이윽고 가까워 오면.
미나 : 삼촌, 같이 오던 여자는 어디 갔어?
삼촌 : 엥? 누구? 같이 오던 여자가 누구야?
미나 : 저기 도는 길까지 같이 오던 여자 말야.
하늘색 옷입고 머리 긴 여자.
삼촌 : 무슨 말 하는 거야? 읍내에서 계속 나 혼자 왔는데.
뭘 잘못 봤겠지.
미나 : 진짜야. 삼촌 앞으로 갔다가 왔다가 기다렸다가 다시
앞으 로 갔다가 그랬잖아.
삼촌 : 귀신인가 부다. (씩 웃는다)
내가 노총각이니까 불쌍해서 "날좀보소, 날좀보소" 하
면서 내 앞에서 왔다리 갔다리 했나부다. 그런데 난
왜 못봤지?
... 하긴 그러니까 이 나이에 총각이지.
미나 : 어어? 이상하다. 정말인데...
삼촌 : 들어가자. 내가 맛있는거 사왔어.
미나가 젤 좋아하는 드기드기 쫀드기.
미나 : 꽥-!
(미나, 길가로 뛰어 내려가면 바우가 멍멍 짖으며 쫓아간
다)
삼촌 : 야-! 어디가? 너 정말 드기드기 쫀드기 안먹을거야?
너 이거 내가 다 먹는다. 내가 다 먹었다고 울지마.
미나 : 안먹어! (미나와 바우가 삼촌이 올라왔던 길을 뛰어 내려
간다)
삼촌 : 애가 이상해졌어. ...제도 나만큼 이상한 애야.
21. 식당 / 같은 시간
들어오는 삼촌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보는 엄마와 아버지.
삼촌 눈치를 채고 슬쩍 피하려고 한다.
아버지는 무엇인가 신경질적으로 먹고 있다.
아버지 : 창구야!
삼촌 : 왜요?
아버지 : 넌 이른 아침부터 어딜 쏘다니냐?
이젠 등산객들이 몰릴 판인데.
삼촌 : 그래서 읍에 나갔다 왔어요.
엄마 : 등산객들이랑 삼촌이 읍에 나갔다 온거랑 무슨 상관이
에요?
삼촌 : 아후, 형수님도 답답하시네요. 생각해보세요.
이쪽 등산로가 뚫린게 며칠이나 됐어요?
고작 한 달도 안됐잖아요. 아직 홍보가 안됐잖아요.
등산객들이 이쪽길을 모르잖아요.
아직도 구룡사 쪽으로 가잖아요.
그래 내가 버스 정류장으로 나간거지요.
새길이 났으니 이쪽길로 가시라구요.
형님이 봉고차 키만 내줬어도 한 차 실고 오는건데.
아마 몇 팀이 이쪽 길로 지나갔을텐데요... 지나갔지요?
엄마 : 지나갔어요.
삼촌 : 지나가지만 했어요?
아버지 : 야! 씨끄러. 구룡사쪽은 군사보호구역인가 뭔가 해서
폐쇄 한지가 언젠데 그래?
삼촌 : 아- 그렇구나, 그럼, 안나가도 되겠네요. 잘됐다.
엄마 : 아니, 언제 삼촌보고 나가 있으라고 그랬어요?
(한숨을 내쉬며)대체,삼촌은 바보인지여우인지 모르겠
어요.
22. 산 길 / 같은 시간
미나가 삼촌이 올라오던 길을 걷고 있다.
미나 뒤에서 개가 졸졸 따라오다가 숲속을 향해 컹컹 짖더니 수풀 사
이로 뛰어간다.
미나 : 바우야! 이리와.
바우는 계속 짖으며 점점 숲속으로 들어간다.
미나 : 저 똥개 새끼
미나는 바우를 찾으러 수풀사이를 헤집고 나간다.
바우가 어느 나무 밑에서 컹컹 짖다가 끙끙대기도 하면서 왔다 갔다
한다.
미나는 조금 무거운 생각이 들어 더 들어가지도 못하고 작고 떨리는
목소리로 바우만을 불러댄다.
바우가 짖어대는 나무 가까이 다가간 미나가 고갤 들어 올려다보면
아까 삼촌 뒤를 따라오던 하늘색 부라우스의 연인이 목을 매고 나무
가지에 대롱 대롱 매달려있다.
혀는 길게 늘어져있고 눈은 부릅떠 있다.
시체의 표정이 웃고 있는 것 같아 기묘하게 보인다. 그러나 미나가 소
름끼쳐하는 것은 살이 썩어들어갈 정도로 오래된 시체라는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줄이 뚝 끊어져 시체가 미나 발 앞으로 떨어진다.
바우가 깜짝 놀라 도망가면 미나도 되돌아 뛰어간다.
23. 식 당 / 낮
엄마는 간식거리를 만들고 있고 식구들이 식탁 앞에 모여있다.
바우가 먼저 들어오고 미나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뛰어들어와 식당
앞에 선다.미나는 숨을 고르며 식구들의 얼굴을 한동안 하나 하나 찬
찬히 쳐다본다.
식구들은 미나의 행동이 이해가지 않는지 그런 미나를 멀뚱히 바라본
다.
영민 : 뭐하냐?
미나 :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안믿을테니까, 아무 말도 하지않
겠어.
엄마 : 제가 요즘 왜 저래?
미수 : 나 사춘기때는 저러지 않았는데.
미나는 입을 꼭 다물고 냉정한 태도로 식탁에 앉는다.
삼촌이 장난을 친답시고 쏘세지를 입에 물고 혀처럼 늘어뜨리며 괴상
한 표정을 짓는다.
바우가 컹컹 짖으며 도망간다. 아까 보앗던 시체의 모습과 너무 똑같
았다. 미나가 삼촌을 쏘아보다 수저를 내려놓고 나가버린다.영민이 낄
낄거리고 미수는 고갤 설레설레 흔들고 아버지는 삼촌에게 핀잔을 준
다.
삼촌 : 미나가 이상해졌어. 뭔가 심상치 않아.
아버지 : 난 네가 더 심상치않다. 임마!
24. 강물위 다리 / 저녁
다리위의 젊은 두 남녀가 손을 맞잡고 굽이치는 강물을 한동안 말없
이 바라보고 있다. 남자가 여자를 지그시 바라보며 가라앉은 음성으로
입을 연다.
다리남 : 자, 우리가 약속한 시간이 됐어.
다리여 : 우리의 사랑이 저 세상에선 꼭 이루어질까?
남자, 대답 대신 여자의 손을 꼭 쥔다.
다리여 : 무서워.
다리남 : 눈을 꼭 감고 그냥 뛰어내리기만 하면 돼. 겁낼 것 없
어.
다리여 : ... 난 수영도 못하는데.
다리남 : ... 바보, 자살하는데 수영 못하면 어때?
다리여 : 아-맞다. ...오빤 수영 잘해?
다리남 : 나? 한때는 수영에다 인생을 걸어볼까 하기도 했어.
다시 가라앉는 음성)
... 이제 그만 말하고 빨리 뛰어 내리자.
다리여 : ...
다리남 : 자, 빨리 늦으면 엄마가 기다리신단 말야.
다리여 : 그럼, 오늘은 죽지 말자.
오늘은 그냥 일찍 들어가고 내일 죽으면 안돼?
다리남 : ... 우리 이럴 시간이 없어. 그냥, 오늘 죽자.
다리여 : 나, 이렇게 죽는거 싫어. 강물도 너무 더럽고.
그리고 오늘 삐삐 받을때 있는데 아직 안왔단 말야.
다리남 : 너, 혹시 사랑이 식은거 아니니?
다리여 : (격정적으로) 아냐, 오빠!
난 단지 좀더 드라마틱하고 낭만적인 자살을 원했단
말야.
우리 사랑의 마지막 안식처가 이렇게 더러운 강물인지
몰랐
을 뿐야.
다리남 : 너 옛날에는 이 강이 너무 좋다고 했잖아.
여기만 오면 뛰어들고 싶다고.
그래서 고민고민 하다가 여기로 택한건데,
이제와서 다른 말하면 이 오빤 뭐가 되니?
참 답답하다.
다리여 : 근데... 놀러 올때랑 죽으러 올때랑 많이 다르네...
다리남 : (긴 한숨을 내쉬더니) 좋아.
(수첩을 꺼내 스케즐표를 본다)
가만 있어보자. ...내일은 안되겠고... 그 다음날은 ... 안
되겠네. 음- 그래, 수요일이 좋겠다. 수요일 아침 7시
까지 시외버스 터미널로 나와.
우리가 처음 M.T 가서 만났던 그 산에 가자.
거기서 죽는거야. 알았지?
다리여 : (기뻐하며) 그래 멋있다. 우리가 첨 만난 곳에서 죽는
거.
다리남 : 이 정도면 드라마틱하지 않아?
다리여 : 좋아! 굿 쵸이스.
다리남 : (시계를 들여다보며) 그래, 그럼 나 빨리 들어가야겠다.
7시 늦지마.
다리여 : 그래, 잘 들어가. 추워지는데 감기 조심하고, 차조심하
고.
남자, 추운지 옷깃을 올리고 손을 들어 수인사를 한다.
두 사람은 다리 위에서 서로 반대 방향으로 프레임 아웃된다.
25. 읍 내 술 집 / 저녁
허름한 술집. 한 남자가 혼자서 고독하게 술을 들이키고 있다.
고독남 : 아주머니, 여기 얼맙니까?
술집여 : (술상위에 안주며 술병을 훑어 보다가) 만팔천원만 주
세요.
고독남 : 자, 여기.
그리고 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하루밤 묵을 데가 있
나?
술집여 : 산장이 있긴 있는데 거기까지 갈려면 한참 걸리는데
오늘은
읍내에서 주무시지?
고독남 : 아니, 가야 돼. 혼자서. 이유가 있어.
왜냐? 나는 고독한 남자니까? 껄껄껄.
남자 일어서려다가 약간 비틀거린다.
술집 여자가 반사적으로 부축할려고 한다.
고독남 : 아냐, 됐어. 그냥 내버려둬. 왜냐구? ...
(나가면서 혼자말로) 여자들이 남자들의 고독을 알아?
26. 산길 / 저녁
어두운 산길을 달빛 하나만을 의지한 채 고독하게 걸어가는 남자.
저멀리 산장의 불빛이 그의 고독을 더욱 사무치게 한다.
27. 산장 현관앞 벤취 / 같은 시간
모두들, 신선한 저녁바람을 즐기듯 나와 있다.
미나가 한쪽에서 우두커니 앉아있다.
미수는 아까부터 노래를 구슬프게 부르고 있다.
미수 : 아-무도 나알 찾는 이-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단풍잎
만 차
곡, 차곡, 떨어져 쌓이는데-
가족들의 기분 같은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감정적인 바이브레이
션을 섞으며 호소력있게 부른다.
미수 : 세상에 버림받고오- 사랑마저 물리친 몸, 병들어 쓰러
진 가
슴을 부여잡고오-
미수의 노래를 듣고 있는 가족들의 마음이 다소 무겁고 찝찝하다.
엄마 : 저 기집앤 하고 많은 노래 놔두고 저딴 노래를 불러
싸?
아버지 : 우리집 자식들이 그렇지 뭐.
노래로 지부모 가슴 찢는 애들은 우리집애들 밖에 없
을꺼야.
삼촌 : 저것도 재주에요. 야- 가슴이 저미어온다.
미나가 고개를 들어 발돋움으로 올라오는 길을 바라본다.
졸고있는 바우를 쥐어 박으면 정신없는 가운데 산길을 향해 짖어댄다.
영민 : 누가 오는데.
엄마 : 누가 와? (그만 하라고 미수에게 소릴 지른다) 미수얏
-!
아버지 : 그만해!
삼촌 : 등산복이 아닌데.
엄마 : 등산복이 아냐?
아버지 : 읍내 사람인가?
남자가 올라오고 그 남자와 가족들이 서로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기만
한다.
고독남 : (감동스런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로)
와- 진짜 고독한 가족들이구만.
엄마 : (뚱한 표정으로 잇다가) 무슨 볼일 있으세요?
고독남 : 예? 아, 예. 여기서 하루밤 묵을려구료. 방이 있습니까?
순간, 가족들 얼굴에 놀라움과 감격의 표정이 스친다.
아버지가 거의 반사적으로 의자를 박차고 일어선다.
아버지 : 예! 있습니다. 어서 오십시요. 부인!
엄마 : 예? 부인? (좌우를 둘러보고)
아고, 아고 내 정신 좀 봐. 어서 들어오세요.
가족들 무슨 구경난 것 처럼 남자의 뒤를 우르르 좇아 들어간다.
28. 카운터 복도 / 같은 시간
남자, 숙박계에 간단한 신상을 적고 있는 동안 가족들은 그를 애워싸
듯 지켜보고 있다. 남자가 거북스러운지 자꾸 가족들을 향해 뒤를 힐
끌 힐끔 쳐다본다. 그러다, 신경이 곤두 섰는지 순간적인 위협을 느끼
며 몸을 휙 돌린다.
가족들은 미동도 없이 그대로 있다. 삼촌만 한쪽손을 들어 얼굴을 긁
고있다.
고독남 : 몇 홉니까?
엄마 : 영민아, 손님 203호 안내해 드려라.
고독남 : 아, 됐어요. 나 혼자 올라갈께요.
엄마 : 예, 그럼 편안한 밤 되십시요.
고독남 : 그리고 맥주 시야시 잘된 걸로 3병만 올려주세요.
엄마 : 예, 예. 감사합니다.
가족들이 복도에 도열해있다. 미나와 미수는 이유도 없이 괜히 부끄러
워하며
쭈삣 쭈삣 서있다. 어쩐지 남자는 거북하고 어색하다.
가족들은 남자가 올라가서 보이지 않을때까지 시선을 놓지 않는다.
28. 카운터 / 밤
아버지 : 얼마 받았어?
엄마 : 숙박료에다 맥주 3000원씩 4만원 받았어요.
아버지 : 천원은?
엄마 : 안받는데요. 이젠 필요없다면서 안받더라는데요.
아버지 : 짜아식- 천원 안받으면서 별 폼을 다 잡네.
... 근데, 이젠 필요없다는게 무슨 말이야?
돈이 필요 없다는 거야?
엄마 : 잔돈이 필요없다는 거겠죠.
아버지 : ... 어째 표정이 좀 어둡지 않아?
무슨 사연이 있는 사람 같아.
엄마 : 무슨 상관이에요. 어둡거나 말거나.
따지자면 우리집 사람들보다 더 어두운 표정 가진 사
람, 난 아직 못봤네.
미나, 게 얼굴이 그게 17살 짜리 얼굴이에요?
아버지 : 여편내가 지 딸 가지고 별 소릴 다 하구 있어.
이때 전화벨이 울린다.
엄마 :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 있다) 누구세요?
어머, 이장님이세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바꿔드릴께요. 여보.
아버지 : 예- 전화 바꿨습니다.
소리 : 아, 강사장이요? 나 이장이야. 박이석이. 박사장이야.
아버지 : 아이고, 이장님- 이 밤중에 왠일이십니까?
소리 : 다름이 아니고, 내가 전에 얘기한 거 잊지 않으셨지?
산장 주변으로 도로 포장공사가 시작되면, 땅도
파고 흙도
실어 나르고 할꺼에요.그러면 거기가 조금 시끄러워
질텐데,
조금만 참으시면 좋은 결과가 있으니까 너무 불편해하
지 말
아요.
아버지 : 아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다 우리가 덕 보는 일인
데.
도와주지 못할망정, 불편하다니요.
그런데 언제부터 공사가 들어갈것 같습니까?
어느 쪽으로 뚫린데요?
소리 : 그게 나도 모르겠단 말야. 당장 내일이 될지, 몇개월
후가
될지, 근데, 요즘 분위기가 괜찮아. 조만간 들어갈 것
같아
요.그리고 길이야, 산장 부근 아니겠어요? 길만 뚫리
면 강
사장이나 나나 신수 피는거요. 그건 그렇고, 내가 강
사장이
랑 긴히 상의할게 있는데 말야. 전화론 길게 얘기 못
하겠 고, 에- 거 머시냐. 근시일 안에 우리 아버님
이랑 내 여동
생애랑 강사장 산장에 모실까 하는데 말야.
아버지 : 그 여동생분요?
소리 : 그렇지. 좀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 강사장도 전에 나
한테 들은 얘기가 있으니까
만나서 얘기하면 이해할 수 있을꺼야.
아버지 : 그럼요. 제가 이장님 속사정이야 누구보다 잘알지않습
니까?
소리 : 그렇지, 그러니까 내 사업 파트너로 강사장을 찍은거
아니
요? 어쨌든 자세한 얘기는 올라가서 하고, ...저녁 자
셨나?
그럼, 들어갑니다.
아버지 : 예, 예.
엄마 : 뭐래요? 공사 시작한데요?
아버지 : 그건 조만간 시작할 것 같고, 박이장 배다른 여동생이
있잖 아. 박이장 부친이랑 그 여동생이 우리 산장에
곧 온다네.
엄마 : 어이구, 삼촌 알면 신바람 나겠구먼, 전에부터 여동생
이쁘
다는 소문은 어디서 들어가지구 장기 숙박 한다니까
싱글벙
글 하던데... 근데, 그렇게 장기 투숙하면 얼마나 받아
야 해요?
아버지 : 이사람아, 그게 문제가 아니야,
...더 큰 문제가 있는것 같아.
엄마 : 예? 더 큰 문제?
30. 미나의 방 /같은 시간
미나 : 시시해. 첫손님인데. 저렇게 싱겁게 올라가 버리냐?
미수 : 그럼, 너랑 손잡고 놀아줄줄 알았냐?
미나 : 그러나 저러나 답답해 죽겠어.
미수 : 뭐가?
미나 : 오늘 일어난 일.아마 평생 말 못하고 무덤까지 가지구 갈
거야.
언니, 내가 이야기 해 줄까?
미수 : 뭔데. 간단하게 해봐.
미나 : 오늘 낮에 삼촌이 저 밑에 도는 길에 어떤 여자랑 같이
올라오
는 거야.그런데 여자가 중간에서 갑자기 없어진거야.
그래서 내가 삼촌한테 같이 오던 여자는 어디 갔냐고 그
러니까 무슨 여자? 자기는 읍내에서 혼자 왔다는 거
야.
이상한 생각이 들어 바우랑 도는 길 까지 갔다.
근데 바우가 숲을 향해서 막 짖어대는 거야.
따라 갔더니 바우가 큰 나무 밑에서 낑낑거리는거야.
내가 올려다 보니까-
미수 : 아까 봤던 여자가 목메달아 죽어있지? 오래된 시체로.
미나 : (눈이 휘둥그래지며) 우와- 어떻게 알아? 잉- 아까보다
더 무섭다.
미수 : 돌아가신 할머니한테서 천번은 들었을꺼다.
넌 어린애가 너보다 나이 많은 사람한테 그런 걸 무
서운 이
야기라고 하고 있냐?
미나 :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라 이건 실화란 말야!
미수 : 그 말도 천번은 더 들었다. 할머니 앞에서 무서워하는
척
하는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니?
그걸 또 네 앞에서 하라고? 이젠 못한다.
미나 : 정말, 미치겠네. 진짜라니까! 내일 같이 가보자.
미수 : 불 꺼.
이불을 뒤집어 쓰는 미수.
미나는 답답해서 미치겠다는 표정이다.
포기를 하곤 고개를 삐딱하게 들어 천정을 바라본다.
31. 삼 촌 방 / 같은 시간
영민과 삼촌이 만화를 보면서 쫀드기를 씹고 있다.
영민 : 삼촌, 아가 그 사람 이상하지 않아?
삼촌 : 뭐가? 난 그 사람이 우리를 이상하게 볼 것 같은데.
영민 : 내가 맥주를 가지고 올라갔잖아.
-후레쉬 백으로 VISION 처리 -
N : -문을 두드리니까 아무 반응이 없어.
살짝 문을 열어보니까 이 사람, 바로 앞에서 똑바로 나를 바라보
는거야.
(눈을 부릅뜬채 쳐다보는 고독남)
내가 얼마나 시껍했는데, 그러더니 작은 목소리로 내려놓고 가래.
고독남 : 그냥 내려놓고 가.
-거스름돈 갖고 왔습니다. 했더니 이젠 필요없다면서 그냥 가져
가래.
고독남 : 이젠 필요없으니 그냥 가져가.
-내가 방안을 슬쩍 들여다 보니까 몸으로 딱 가리는거야.
(남자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영민의 앞을 가린다.)
-그러면서 흐릿한 눈빛으로 나보고 뭐라는지 알아?
고독남 : 학생은 고독이 뭔지 알아?
삼촌 : 그래서 뭐라 그랬냐?
영민 : 난, 학생이 아닌데요. 그랬지.
삼촌 : 그러니까 뭐래?
영민 : 알았으니까 내려가래.
삼촌 : 분명히 우릴 이상하게 봤을꺼야.
영민 : 근데, 그 사람 표정이 참 이상했어.
뭐랄까? 고독 그 자체였던 것 같아.
삼촌 : 그 사람은 아마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일꺼야.
너랑 말동무나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싱거워졌던 거
야.
사람이 너무 외롭거나 고독해지다 보면 이상한 행동이
나 생
각을 갖게 돼.
평소 하던 것과는 전혀 반대의 성향을 띄게 되지.
그런 걸 심리학에선 조울성 역전반응이라고 하지.
... 우리 식구중에 제일 이상해진 사람이 바로 미나야.
영민 : 미나? 미나가 왜?
삼촌 : 쫀드기가 싫어졌대.
영민 : 삼촌, 이 만화 빌린거야? 산거야?
32. 1층 휴게실 / 아침
식구들이 휴게실에 모여있다. 신경은 모두 203호 손님에게 쏠려있다.
엄마 : 이 사람, 아침을 먹을 건가?
미수 : 내가 올라가서 물어볼까?
아무도 대꾸를 안해준다.
디졸브되어 - 약간의 시간이 경과되어 - 203호 앞에서 서성거리는 아
버지.
문에 귀를 대보고 안의 인기척이 있나 확인한다.
그러나 답답했던지 문을 두둘긴다.
아버지 : 손님! 체크 아웃 시간입니다.
이번엔 세차게 문을 두드린다. 아무 반응이 없다.
아버지 : 영민아!
소리 : 예-
아버지 : 키 가지고 올라와.
키를 가지고 올 동안 아버지는 손잡이를 돌려보기도 하고
문을 크게 두드리기도 한다.
잠시후, 영민이가 키를 가지고 올라온다.
아버지 : 열어봐.
문을 연다.
맥주병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남자도 침대위에 가지런히 누워있다.
영민과 아버지가 가까이 가본다. 남자를 흔들어 본다. 일어나지 않는
다.
숨을 쉬고 있는지 가까이 대본다. 아버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아버지 : 네 엄마랑 창구 삼촌 빨리 올라오라고 해.
영민 : 그 사람 죽었어요?
아버지 : 빨리!
영민, 후다닥 뛰어내려 간다.
하얀 시트를 걷어내자 가슴에 칼이 꽃혀있고 그 칼을 두손으로 감싸
고 있다.
아버지 : 지미럴.
창문밖을 내다보면 미나가 마당에서 이곳을 빤히 올려다 보고 있다.
33. 산장공터 / 아침
미나가 밖에서 급히 안으로 들어가는 엄마와 삼촌을 바라본다.
마침, 숲에서 꽃을 한 웅큼 따오는 미수가 가까이 온다.
미수 : 왜들 저래?
미나 : 몰라. 언니, 저 밑에 내려갔었어?
미수 : 어.
미나 : 그 시체 못봤어?
미수 : 그만 좀 해! 넌 아침부터 그런 생각이 나니?
34. 객실 203호 / 아침
시체를 가운데 두고 심각하게 의논을 하고 있다.
아버지 : (영민에게) 문걸어.
삼촌 : 자살인가?
엄마 : 그럼, 누가 밤중에 올라와서 죽이기라도 했단 말이예
요?
삼촌 : 그게 아니라 어떻게 저런 자세로 자기 가슴에 칼을 꽃
으 수
가 있지?
(죽은 사람의 자세를 보며 똑같이 이렇게 저렇게 취해
본다)
아버지 : 골치 아프게 생겼군.
엄마 : 경찰에 신고하실 거예요?
아버지 : 가만히 있어봐... 음-
여기 어제 마지막으로 올라온게 영민이였지?
삼촌 : 경찰에 신고하시죠.
아버지 : 누구 망하는 꼴 볼려고 그래?
그리고 자살이 아닐 수도 있잖아.
엄마 : 그게 무슨 말이야?-
아버지 : 자살이라는게 판명되도 소문이라도 퍼지는 날엔 장사
는 다
한거야.
엄마 : 소지품이라도 찾아봐요.
자살이라면 무슨 유서 같은게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소지품을 뒤져보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아버지 : 아무것도 없는데... 이럴수가 있는거야? 아무것도 없어.
엄마 : 어머, 이상하네. 어제 돈 지불할때 분명히 지갑에서 돈
을
꺼냈잖아? 그리고 얼추 보니까 돈도 꽤 있었던것 같
은데.
아버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영민을 바라본다.
영민은 왜 자기를 쳐다보냐는 투로 인상을 찌푸린다.
아버지 : 너 창고에 가서 비닐 포대랑 삽하고 곡괭이 꺼내놔.
삼촌 : 어떡하실려구요?
아버지 : 이렇게 된거 할 수 없잖아.
어느날 엉뚱한 놈이 올라와서 그 다음날 재수없이 죽
어 넘
어갔고 꼼짝없이 우리가 당하게 생겼는데 이놈 대문
에 우리
가족이 뒤집어 쓸 수 없잖아. 아무도 모르게 묻어버
리자구.
엄마 : 이사람 죽은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에요?
아버지 : 이것봐. 누가 이 시체를 보고 자살이라고 하겠어?
유서도 없고, 지갑은 없어졌고,
자살이라고 해도 우리 산장에서 이렇게 끔찍하게 뒈져
버렸
는데 어느 미친 놈이 우리 산장에서 자고 먹고 하겠
어?
삼촌 : 난 못해요.
아버지 : 야, 이 자식아!
이게 나혼자 먹고 살려고 이따위 짓거릴 꾸미는줄 알
아?
(영민을 보고) 넌 빨리 갔다 오지 않고 뭐해!!
(영민이 나가면 삼촌에게)
너... 자살이 아니면 어떡할꺼야?
(삼촌과 엄마가 깜짝 놀란다)
삼촌 : ...그건 말이 안돼요. ...누가 그럴 수가 있겠어요?
아버지 : 지금 네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 말이 되는 상황인지 아
냐?
이 자식이 우리 산장에서 자기 가슴에 칼을 꽃고 뒈져
있는
게 말이 되는 상황이냐구?
삼촌 : ......
엄마 : 아이고, 이를 어쩌나. 아이고, 이게 무슨 변고야?
빌어먹을 놈! 뒈질려면 지집에서 곱게 뒈질것이지 여
기까지
쳐올라와서 죽어 나자빠져있냐?
아이구, 전생에 내가 죄를 져도 큰 죄를 졌나보다.
아버지 : 이러고 있지 말고 이 자식을 좀 옮기자. 거길 들어봐.
35. 산 길 / 초저녁
등산로가 아닌 잡목이 우거진 산장 뒷길.
엄마와 아버지 삼촌과 영민이 시체를 비닐 포대에 싸서 들것에 옮긴
다.
바우가 쫄랑 쫄랑 따라간다.
36. 매장장소 / 같은 시간
그들은 으슥한 곳을 찾아 적당한 곳을 고른 뒤 불안한 표정으로 주위
를 둘러본다. 땅을 파고 시체를 묻는다. 힘겹고 고된 작업이다.
37. 산장입구 / 밤
식구들이 심신이 몸시 지친 상태로 산에서 터벅터벅 내려온다.
미나가 엄마를 부르며 입구에서 뛰어온다.
미나 : 엄마! 손님 왔어.
산장 입구로 들어서면 두 명의 남녀가 손을 잡고 마당에 서있다.
식구들은 그들의 차림세를 유심히 살펴본다.
두 남녀들은 가족들을 의식하지 않으며 산장이며 주위를 밤 풍경에
빠져있다.미수가 두 남녀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돌아보면 다리위의 두남녀다.
다리여 : 오빠, 밤에 우는 새소리, 너무 좋지 않아?
다라남 : 잘 들어봐. 또 무슨 소리 들리지 않니?
다리여 : (예민하게 귀를 기울이다가 조금씩 얼굴이 환하게 밝
아진
다) 어머, 어마.
이 근처에 계곡이 있나봐. 물소리가 너무 깨끗해!
여기 너무 맘이 든다.
다리남 : 어때, 이만하면 낭만적이고 드라마틱하지?
다리여 : 저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다리남 : 그만! 말하지마 우리의 행복이 날아가잖아.
엄마 : 예, 아주 깨끗한 방으로 주세요.
38. 산장내 복도 / 밤
엄마가 그들에게 조금 미심적은 눈초리로 객실을 안내한다.
엄마 : 그런데, 등산 하실게 아닌가봐요?
다리남 : 예, 우리는 다른 일로 왔어요.
다라여 : 일종의 기념일 같은 거죠.
엄마 : 아직 결혼은 안하신 것 같고 무슨 처음 만난 날 이런
건가
보죠?
다리여 : 그 반대에요.
엄마 : 반대요?
다리남 : 크게 보면 우리의 사랑을 영원히 확인하는 날이예요.
엄마 : 난 구식이라 요즘 젊은 사람들 말도 못알아 듣겠네.
자, 이방 쓰세요.우리집에서 제일 깨끗한 방으로 드렸
어요.
뭐 필요하신것 없으세요?
다리남 : 아뇨, 필요한 것 다 우리가 준비 해왔어요.
다리여 : 그리고 우린 이젠 아무것도 필요없어요.
엄마 : (화들짝 놀라며)
아이고, 젊은 분들이 농담도 그런 농담은 하지 마세
요.
다리남 : 자 고맙습니다. 여긴 아주 조용하고 좋네요. 들어가자.
다리여 : 아줌마, 여기 삐삐 안들어오죠?
39. 카운터 / 밤
카운터실의 작은 방으로 들어오면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며 심각한 표
정을 짓고 있다.
아버지 : 아상한 애들 아니지?
엄마 : 무슨 놈의 팔자가 이렇게 기구하냐?
천지신명도 날 보면 불쌍타 하실거야.
근데 영민이가 어떻게 했다고 생각하시는거에요?
아버지 :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새벽에 맥주 추가 시킬때도
영민이
가 올라갔잖아.경찰이 알면 어쨎든 맨 마지막으로 본
사람
취조할거고 그러다보면 영민이 폭력전과 있는 것 다
나올테
고 ... 지갑도 없어진 상황에. 어디 영민이 뿐이야? 우
리도
경찰놈들이 오라 가라 귀찮게 할텐데. 장사는 누가
할꺼야?
...그리고 ...만에 하나 ...어쨎든, 이럴 수 밖에 없잖아.
엄마 : ......
아버지 : 아직 애들은 모르지?
두 사람의 표정이 무겁기만 하다.
40. 미나의 방 / 밤
미수 : 오늘 전부들 이상하지 않니?
미나 : 언니가 언제부터 식구들에게 관심 있었어?
그런데 정말 그 시체 못봤어?
미수 : (미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
...너, 참, 아무리 한 식구지만 징글징글하다.
미나 : 내가 한 식구란 생각은 들어?
미수 : 나 다음에 널 낳은 엄마가 이해 안돼.
41. 객실 207호 / 밤
두 남녀가 전나로 무릎을 꿇고 마주보고 서로의 몸을 어루만지고 있
다. 몇개의 촛불이 타들어가며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과 함께 그들을
비치고 있다. 그들의 소지품이 여기 저기 널려져있고 그들 앞에 약병
이 하나 놓여있다.
다리남 : 두려워?
다리여 : 아니, 이렇게 오빠와 이런 곳에서 마지막을 장식한다
는게
너무 행복해.
다리남 : 나두 행복해. 내가 노래 불러줄까?
다리여 : 정말? 신청곡! 이소라의 난 행복해!
남자, 이소라의 저음을 흉내내며 트롯풍으로 난 행복해를 분위기 있게
낮게 부르면, 자, 남자의 품에 안겨, 달을 쳐다보며 행복한 표정을 지
우며 눈을 감는다.
다리여 : 오빠, 내몸이 너무 뜨거워.
42. 삼촌방 / 밤
창문으로 보름달이 덩그렇게 떠올라있고 삼촌과 영민이 침대에 누워
있다.
영민 : 삼촌, 그 사람 정말 자살한거야.
내가 첨 볼 때부터 느낌이 이상했어.
근데, 지갑이 없어진건 정말 이상하단 말야.
안그래? 삼촌, 삼촌!
영민이가 고개를 들어 삼촌이 잠들어있는 것을 확인하고 침대를 빠져
나온다.
옷을 주섬 주섬 입고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나간다.
삼촌이 샛눈을 떠 영민이가 나가는 것을 본다.
43. 2층 복도 / 밤
영민이가 조심스럽게 발뒷굼치를 들고 207호 쪽으로 다가간다.
그의 손에 만능 키가 들려있다. 문틈으로 귀를 대본다.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씨익 웃는다. 조심스럽게 키를 넣어 돌
린다.
문을 조금 열자 가느다란 빛이 새어 나온다. 그 틈으로 두 남녀의 정
사 장면을 훔쳐본다.영민의 동공이 커지고 두 남녀의 섹스는 고조된
다.
나오는 신음소리를 더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남자의 어깨를 깨무는
여자.
그녀의 뺨 위로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들의 정사가 고조될 수록 영민의 동공도 점점 커진다.섹스가 클라이
막스로 치닫고 있을때 삼촌이 조용히 다가와 영민의 귀를 잡아 당긴
다.
44. 미나의 방 / 이른 아침
2층에서 쿵쿵거리는 소리에 미나가 잠을 깬다.
졸린 눈을 비비며 방문을 열자 엄마와 아버지, 오빠와 삼촌이 2층에서
부산하게 왔다 갓다 한다. 잠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침대로 돌아온다.
미수 : (역시 졸린 표정을 지우며) 뭐야-?
미나 : 몰라, 방 치우나봐. (길게 하품을 한다) 아항- 졸려.
미수 : (다시 돌아누우며) 하여튼 유난들이야.
45. 207호실 / 같은 시간
두 남녀가 전나의 상태로 시트로 몸을 반쯤 가린채 죽어있다.
방바닥엔 약병이 뒹굴고 옷가지가 아무렇게나 널려있다.
그들의 입술은 바짝 마른채 꺼칠해 있고 푸른 빛이 돈다.
입가에 점액질이 말라 붙어있고 베게와 하얀 시트위에도 군데 군데
원을 그린 자국이 배어있다.
엄마 : 이런, 급사랄할 년놈들, 이것들이 우리랑 무슨 원수진게 있다
구...
아버지 : 뭘 그렇게 보고 있나? 빨리 가서 비닐 포대 가지구 와!
영민과 삼촌, 후다닥 뛰어 나간다.
아버지다 방바닥에 뒹구는 검정색 약병을 들여다 보더니 긴 한숨을
내쉰다.
그리곤 사체들을 시트로 감싼다.
엄마 : 이거 푸닥거리를 한번 해야지.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
야?
아버지 : 빨리 서둘러!
46. 산 길 / 아침
두구의 시체를 리어카로 실어 나른다. 산길이라 쉽지 않다.
덩컹거리자 시체중 한구가 조금씩 밀려 내려와 땅바닥에 슬그머니 떨
어진다.
가족들은 주의를 살피면서 가느라 아무도 모른다.
한참을 가다가 엄마가 시체 한구가 없어진 것을 보고 기겁을 한다.
엄마 : 으악- 아이고- 하! ...하나 ..하나가 없쟎아!
아버지 : 뭐야? 이런 제기랄, 너희들 빨리 내려가 봐!
영민과 삼촌, 사색이 되어 뛰어간다.
아버지 : 이거 잘 보고 있어.
엄마 : (겁먹은 표정을 지으며)왜..왜요.당신은 여기 있지 그래
요.
47. 산길 / 같은 시간
영민과 삼촌이 아무렇게나 뒹굴어져있는 시체를 발견하곤 양쪽에서
힘겹게 든다.시체를 어깨에 메고 다시 산길을 오르는 영민과 삼촌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맺힌다.
48. 매장장소 / 같은 시간
시체를 내려놓고 땅을 파내려 간다.
디졸브되어 땅을 깊게 파내고 여자를 구더잉에 밀어 넣는다.
삼촌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삼촌의 머리끝이 쭈삣선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남자 시체 쪽으로 다가간다.
얼굴을 가까이 갖다대자 갑자기 시체가 꿈틀거린다.
삼촌 : 으웩- (뒤로 나가 떨어지는 삼촌) 살- 알- 어!
아버지가 달려온다. 귀를 입가에 갖다댄다.
아버지 : (고개를 획 돌리며 다그치며) 야! 저 여자 시체 빨리
꺼내!
영민 : 삼촌! 이리 와서 나좀 도와줘요!
아버지도 뛰어가 시체를 도로 꺼내는 일을 도운다.
여자 시체를 땅속에서 반쯤 들어올렸을 바로 그때, 남자가 의식을 찾
아 눈을 뜨고는 그 광경을 보고 소름끼치는 비명을 지르며 바둥거린
다.
삼촌이 뛰어가 남자의 입을 틀어막지만 발광하듯 도망치려고 한다.
삼촌이 어쩌지를 못하고 떨어져 나간다. 아버지가 소리친다.
다리남 : 우아아악-!
아버지 : 저 자식 입 좀 틀어막아!
삼촌이 울부짖는 목소리로 꼼짝없이 앉아있다.
삼촌 : 못하겠어요!
엄마 : 제발! (귀를 틀어막는다)
남자가 발버둥치자 리어카에서 떨어진다. 괴성을 지르며 사력을 다해
기어간다. 아버지가 삽을 가지고 뛰어가 무차별하게 남자를 내리친다.
몇번 크게 꿈틀거리더니 입에서 시뻘건 피를 토해낸다. 움직이지 않는
다.
순간적인 광폭함이 휘몰아치고 소름끼치는 전율 속에서 다시 정적이
흐른다.
남자는 다시 시체가 되었다.
모두들 넋이 나간 사람처럼 말없이 서있다.
영민이가 남자 시체로 다가가 다리를 끈다.
엄마 : 삼촌, 그러고 있지 말고 제 좀 도와주세요.
49. 식당 / 저녁
온가족이 무거운 분위기로 저녁 식사를 기다리고 있다.
미수 : 만두 먹을 사람? (아무도 대답을 안한다)
분위기가 왜들 그래? ......
미나 : 나 먹을래.
미수가 밀봉 만두를 냄비에 집어 넣고 불을 올린다.
그러는 동안 누구 하나 입 벙긋 하는 사람이 없다.
침울한 분위기를 가르며 요란한 벨소리에 모두들 놀랜다.
벨이 여러번 울리는데도 받는 사람이 없다.
미수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전화기로 간다.
미수 : 받아보세요.
아버지 : 누군데.
미수 : 몰라요. 받아보세요.
무선 전화기를 건네받은 아버지, 상대는 이장인 것 같다.
아버지 : 예? 뭐라구요?
가족들, 아버지의 반응에 신경이 쏠린다.
아버지 : 도로 공사가 땡겨졌다고요? 2,3일내로 시작될 것 같다
구요.
땅도 파고 흙도 실어 나른다고요?
미나와 미수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진다.
아버지 : 아...아닙니다. 물론 기쁘죠.
(표정없이) 기쁘고 말고요. 날듯이 기쁩니다.
그럼요. 감사합니다. 그럼 그때 뵙죠. 끊습니다.
미수와 미나는 아버지의 반응이 너무 의아스럽다.
아버지, 침울하게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머리를 감싼다.
아버지 : (무겁게 한숨을 쉬며) 내일부터 공사가 시작될지도 모
른데
엄마 : (놀래는 표정이지만 작은 소리로)
그럼, 그것들 다른데로 옮겨놔야 되는거 아니예요?
미수 : 그것들? 그것들이 뭐야? 참, 아상하네.
언제는 공사 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더니...
여하튼 특이한 성격들이야.
조금전 보다 더 무거운 침묵이 장시간 흐른다.
그런데 갑자기 밀봉한 만두가 열 때문에 엄청난 소리를 내며 터진다.
모두들 까무러치듯 놀래자 미나가 까르르 웃음을 터트린다.
50. 산장 휴게실 / 저녁
삼촌과 아이들이 TV를 시청하고 있다.
접촉 불량으로 TV의 화면이 나왔다가 꺼졌다 한다.
삼촌이 TV를 두드린다. 다시 화면이 나온다.
자리에 돌아가 앉으려고 할때 다시 화면이 꺼진다.
삼촌이 일어나 다시 두드린다. 이번엔 잘 안나온다.
TV를 곤혹스럽게 쳐다보던 삼촌, 벽을 쿵 하고 치니까 화면이 나온다.
TV에선 동해안에 무장간첩 일당이 잠수함을 타고 침투했다는 NEWS
보도가
흘러나온다.
51. 산장 / 낮
몇명의 등산객들이 마당 앞의 침상에서 간단한 요기를 즐긴다.
가족들은 처음으로 활기 넘치는 모습을 보인다.
또 몇명의 등산객들이 올라온다. 몇명은 등산로를 따라 그냥 지나가기
도 하고 몇명은 산장 주병에서 간단한 음료와 요기를 하기도 한다.
한 무리의 손님들 중 미수에게 슬쩍 눈길을 주는 남자가 있다.
미수도 음식을 나르면서 싫지 않은 표정으로 눈길을 마춘다.
미나가 빠뜨리지 않고 둘의 수작을 관찰한다. 미수가 미나 앞을 지나
간다.
미나 : 내 생각엔 음흉하게 생겼어.
미수 : ? - 누구?
미나 : 언니랑 눈맞춘 남자.
미수 : 까불지 마.
한 남녀가 산장 현관으로 불쑥 들어서다 엄마와 마주친다.
전에 같이 온 여자에게 산장에서 쉬었다 가자고 억지를 부리던 그 남
자다.
여자가 바뀌었다.
엄마 : 어머, 또 오셨네?
(여자가 다르다는 걸 알고는 실수했다는 걸 깨닫는
다)
내숭여 : 영호씨, 왔던데야? (남자의 얼굴이 조금 당혹해한다)
제비 : 아, 전에 우리 회사 사람들이랑 한번 왔었어.
아줌마, 방 하나 있죠?
내숭여 : 영호씨, 산 되게 좋아하나보다.
언제는 자기는 영원한 씨티 보이라더니.
제비 : 그냥, 머 이렇게 가끔 바람 쐬러 나오는 것도 좋잖아.
내숭여 : 오늘 여기서 자고 갈꺼야? ...영호씨 자면 난, 뭐해?
심심하게
제비 : 자도 되고 ...잠깐 쉬었다 가도 되고.
내숭여 : (작은 소리로) 쉬었다 가는 건 돈 조금 내지?
제비 : 어? ...어.
내숭여 : 그럼, 우리 산에 올라가지 말고 여기서 잠깐 쉬었다
가자.
(주위를 둘러보며) 여기만 올라와도 좋은데 뭘.
제비 : 그래, 나두 빨리 시티로 가고 싶어! 아줌마,방하나 주
세요!
엄마 : 예- 영민아! 203호 안내해 드려! 자고 가실 건가?
내숭여 : (놀래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아뇨, 우리 안잘거에요.
우리, 안잘거지?
엄마 : (혼잣말로) 알았다, 이년아.
52. 객실 203호 / 같은 시간
두 남녀 들어가자 마자 남자가 여자의 옷을 막 벗기려고 한다.
여자는 남자의 행동을 제지하는건지 거들어 주는건지 분간이 안가는
행동을 한다.
내숭여 : 어머, 어머, 왜그래? 뭐하는 거야? 이러지마!
제비 : 알았어, 알았어. 됐어, 그것만 벗으면 되. 그래, 그렇지.
내숭여 : 어머, 안잔다면서 옷을 왜 자꾸 벗기구 그래? 나 싫단
말야.
조급하게 벗기려니까 잘 안된다. 그러니까 더 조급해지는 남자.
여자는 남자가 서투르다는게 파악되었는지 계속 움직이며 잘 벗어지
게 한다.
내숭여 : 대낮에 이게 뭐야. 싫어! 커텐 쳐! 하지마.
제발, 하지 말라니까! 불 끄고. 아우- 아퍼!
영호씨, 이러지마. 그거 그렇게 벗기는거 아냐. 그렇
지.
안에서 풀르는 거야. 어, 어, 그만, 하지마, 오마나-
아이, 씨- 다 벗겼잖아. 영호씨는 안 벗어?
53. 산장앞 마당 / 같은 시간
손님이 조금 한산해졌다. 미수에게 눈길을 보내던 사람도 산행할 차비
를 차린다. 영민 식구들 눈치를 보다가 슬금슬금 안으로 들어간다.
54. 객실 203호 / 같은 시간
섹스중에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남자가 숨찬 소리를 약간 진정시키며 전화를 받는다.
제비 : 예.
소리 : 교환실인데요.
전화가 고장나서 그러니까 수화기좀 내려놓고 계시겠
어요?
제비 : 그냥 내려놓고 있으면 돼요?
소리 : 한 10분이면 돼니까 내려놓고 계세요.
제비 : 알았어요. 내려놓고 있을께요.
내숭여 : (거친 숨을 내쉬며) 뭐 ..뭐야?
제비 : (다시 몸을 격렬하게 움직이며) 수화기! 그냥!
내려놓고! 으- 있으래.
내숭여 : 고장! 헉! 났데?! 아!!
대화와 신음소리가 불규칙하게 끊어지고 이어진다.
55. 카운터 / 같은 시간
영민, 수화기를 귀에 바짝 대고 입을 막은채 킥킥거리며 듣고 있다.
전화기에선 남녀의 교성이 희미하게 들린다.
56. 산장현관 / 초저녁
203호실의 두 남녀가 나온다.
엄마 : 어머, 해 떨어졌는데 가실 수 있겠어요?
제비 : 예, 지금 나가면 버스 탈 수 있겠죠?
엄마 : 산에 가시는게 아닌가 보다.
제비 : 얘기 하다보니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지 몰랐어요.
산은 다음에 탈려구요. 그렇지?
아쉽지만 산은 다음에 올라가자.
내숭여 : 그래요. 다음엔 얘기는 조금만 하고 산에 올라가요.
엄마 : 그럼, 지금 서둘러야겠네.
그리고 다음에 꼭 좀 들러주세요.
제비 : 안녕히 계세요. 잘 쉬다 갑니다.
아참, 이거 전에 그방 쓰던 손님 지갑 같은데 침대 틈
에 끼
어 있더라구요.
돈은 없는데 신분증이랑 명함이랑 무슨 쪽지가 있었어
요.
그 손님 다시 찾게 되면 아주머니가 드리세요.
남자, 검은 가죽 지갑을 건네준다. 엄마, 지갑을 열어보며 놀란다.
제비 : 왜그러세요? 뭐 이상하세요? 돈 들어있었데요?
엄마 : 아니에요. 그게 아니고 우리가 샅샅이 찾았는데 안나
와 가
지구요.이게 거기 있었구나.
제비 : 주인이 찾던가요?
엄마 : 네? 아니요. 그게 아니고... 거 머시냐...
이게 거기에 있었구나.
남자, 엄마의 반응에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지만 그냥 돌아선다.
지갑속엔 함박 웃음을 짔고 찍은 고독남의 주민등록증이 있다.
57. 카운터 / 같은 시간
엄마가 문을 박차고 들어선다.
아버지를 찾는데 보이지 않는다. 큰 소리로 아버지를 부른다.
대답이 없자 삼촌과 영민을 두서 없이 부른다.
58. 화장실 / 같은 시간
아버지가 화장실 안에서 신문을 뒤적거린다.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버지 : 목소리 큰 여편네 때문에 똥 한번 시원하게 못싸는구
만.
(문을 조금 열고) 나 여깄어! 왜 그렇게 불러싸?
엄마 급하게 뛰어오는 소리, 화장실 문앞에서 멈추더니 똑똑 노크를
한다.
아버지 : 노크는 무슨 노크야? 무슨 일이야?
엄마 : 이것 좀 봐요. (문을 조금 열고 지갑을 들이민다.)
아버지 : 이게 어디서 났어?
엄마 : 지금 나간 203호 손님들이 침대 구석에서 찾아냈대요.
아버지 : 이거, 큰일났구만, 어디로 갔어? 산으로 갔어?
엄마 : 시내로 간다고 하고 지금 내려갔어요.
아버지 : 어떻게 하지? 분명 여기에 온것으로 돼잖아.
애들 좀 빨리 찾아봐!
빨리 잡아오라고 해! 어서!
엄마 : 큰일났네. 이걸, 어쩌지? 영민아!! 삼촌-!
57. 산장 뒷공터 / 같은 시간
영민과 삼촌이 톱과 망치를 들고 리어카를 손보고 있다.
엄마가 뛰어가 자초지종을 얘기한다. 영민과 삼촌, 뛰어내려 간다.
60. 산 길 / 초저녁
두 남녀, 터벅터벅 내려가고 있다.
바우가 짖는 소리가 들리면서 멀리서 영민이가 그들을 부른다.
내숭여 : 저기 뛰어내려 오는 사람. 산장에서 일하는 아저씨들
아냐?
제비 : 그러게. 우릴 부르는 것 같은데. 손에 뭘 들었잖아?
야- 큰일났다.
내숭여 : 왜? 뭐가 큰일나?
제비 : 하여튼 빨리 뛰자! 집히면 우린 죽어!
(여자 손을 잡고 마구 뛰는 남자)
내숭여 : 어머, 왜 그래? 우리가 죄 진거 있어?
제비 : 어, 죄 지은거 있으니까 빨리 도망가자.
내숭여 : 무슨 죄? 잤으면서 우리가 안잤다고 그래서 그러는거
야?
거짓말 했다고?
제비 : 잔말 말고 빨리 뛰기나 해!
61. 산길 /같은 시간
두 남녀, 필사적으로 도망치는데 아무래도 여자 때문에 더디기만 하
다.
자꾸 거리가 좁혀져오고 등산남은 삼촌의 손에 톱이 들려있는걸 보고
더욱 기겁을 한다. 여자보고 빨리 오라고 거의 울부짖는다.그런데 그
앞에 영민이가 버티고 서있다. 영민의 손엔 도끼가 들려있는 것을 본
남자, 거의 실신 직전까지 간다.영민 앞에서 무릎을 꿇고 무릅으로 기
어가며 울부짖는다.
바우가 짖어댄다.살려달라는 말, 잘못했다는 말이 어린아이들이 울면
서 빌때처럼 알아듣기가 힘들 정도로 울부짖는다. 여자도 덩달아 운
다.
영민 : 애, 뭐라는 거야? 우째 그렇게 울어쌌냐? 뭐?
제비 : 엉- 엉- 므-애-스 -엉-우 엉- 유 -으-엉
삼촌 : 울지말고 차근 차근 말해봐요. 뭐라구요?
삼촌이 진정시키며 다시 물어보며 귀를 갖다댄다.
영민 : 뭐래요?
삼촌 : ...무섭대.
영민 : 저 여잔 뭐래요?
삼촌 : ... 한번 밖에 안했대.
영민 : 무슨 얘기야? ...그렇게 무서운 걸 왜 했니?
남자, 바지에서 꼬깃꼬깃 구겨진만원짜리 지폐네장을 발발발 떨면서
내민다.
영민 : 이게 뭐야? 이 자식이 우리가 무슨 강도인줄 아나부지?
제비 : 정말이에요요- 엉-엉-지갑에 그-그것 밖에 없었어요오- 엉-
엉-
영민과 삼촌,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다.
삼촌이 영민에게 고개질로 아닌것 같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63. 산장 입구 / 저녁
삼촌과 영민이 올라오면 걱정스레 엄마와 아버지가 나와있다.
삼촌은 엄마에게 돈을 건넨다.
엄마 : 이게 뭐예요?
삼촌 : 아까 걔네들이 가지고 있었어요.
영민 : 거봐요. 그사람 자살한게 틀림없잖아요.
엄마 : 그럼, 이거 우리가 괜한 짓 한거 아니예요?
모두들 아버지를 쳐다보며 묵시의 항의를 보낸다.
아버지 : ...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어떡할구?
이미, 엎질러진 물이잖아!
삼촌이 성질부리듯 톱을 아무렇게나 내던진다.
영민도 심하게 불만스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때, 산에서 내려오는 등산객들이 산장으로 들어온다. 아까 미수에게
눈길을 보냈던 남자다. 마당 침상에 걸터앉아 두리번거리며 미수를 찾
는것 같다.
현관 입구에서 미수를 발견한다. 미수는 그 남자를 확인하곤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벤취에 앉아 발을 까닥거린다.
그 옆 침상에 앉아 땀을 식히며 미수를 의식하는 두 남자.
눈길남 : 선배님, 저 차가 끊긴 것 같은데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죠.
장씨 : 앗따- 그렁께 내가 시방 그렇게 빨리 내려가싸자 해도
쬠만
더 있다 가자 쓰더니 결국 자고 가야 쓰겄네 잉, 이
거 쪼게
무슨 농간이 있는갑다.
눈길남 : 농간은 무슨 농간요?
오랜만에 선배 만나서 헤어지기 아쉬워서 그러죠.
장씨 : 후배님, 알아서 하쇼!
아가씨 고로커럼 서있지 말고 안내해야제?
이때, 엄마가 웃으면서 다가온다.
엄마 : 아니고, 이제 내려 오시나 보다. 자고 가실려구? 영민
아-
영민은 화가 안풀렸는지 대답이 없다. 그때 미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
어나
미수 : 내가 안내해 드릴께요.
엄마 : 네가?
미수 : 자 들어오세요.
미나가 그 남자를 옆에서 아래 위로 못마땅하다는 듯 훑어본다.
64. 객실 208호 / 저녁
선배는 피곤한듯 침대에 벌렁 누워버리고 후배는 막씻고 목욕탕에서
나온다.
눈길남 : 아까 그 여자애 괜찮지 않아요?
이런 산에 있긴 아깝지 않아요?
장씨 : 아이고- 나는 모르겄네. 청춘이 알아서 하쇼.
시방 나는 자는게 일이여.
눈길남 : 저녁 안드세요?
장씨 : 배고프면 깨겄제.
65. 미나의 방 / 같은 시간
미수가 장시간 콧노랠 하면서 거울을 보고 머리 손질을 한다.
그런 미수를 미나가 아무 말 없이 관찰하듯 바라본다.
66. 객실 208호 / 저녁
창문밖에는 노래소리가 들린다.
선배는 잠을 자고 눈을 뜬채 누워있던 남자가 벌떡 일어나 밖을 내다
보면 미수가 흰 드레스 같은 복장으로 노래를 부르며 마당을 서성거
린다.
67. 산장마당 / 같은 시간
208호를 의식하며 노래를 부르는 미수.
미수 : 난 아직 몰라요- 사아랑이 무엇인지- 난 알고 싶어요.
열 일곱 살이에요.사랑이 뭔지 몰라요오- 열 일곱 살
이에요-
이때, 현관에서 남자가 나온다. 마치, 우연히 바람이나 쐬러 나온 사람
처럼.
눈길남 : 어? 누구신가 했네. 노래 잘 하시네요.
목소리가 얼굴만큼 곱고 이쁘세요.
미수 :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어 보이다 다소곳해진다)
어머, 아직 안 주무셨어요?
눈길남 : 예, 아직 그런데 그노래 영화 "별들의 고향" 영화음악
인데.
그 영화 보셨어요?
미수 : 아니요.
눈길남 : 야- 그런데 어떻게 그런 옛날 노래를 아세요?
미수 : 전, 옛날 노래를 좋아해요.
눈길남 : 그거 누가 부른 줄 아세요?
미수 : 어머, 잘 모르는데.
눈길남 : 윤시내란 가수 아세요? 그 여자 노래예요.
미나 : 어머? 정말요? 목소리가 너무 다른데.
그 여잔 허스키 보이스잖아요.
눈길남 : 예, 원래 윤시네 목소리가 그랫대요. 아주 미성이었죠.
그런데, 노래 연습을 너무 많이 해서 그렇게 됐대요.
외국 가수 중엔 보니 타일러란 가수가 있는데 윤시내
랑 창
법이 아주 비슷해요. 그 여잔 성대 수술하는 바람에
허스키
보이스가 됐다나 어쨌다나.
미수 : 어머, 아시는게 참 많으시네요.
눈길남 : (더욱 신이 나서) 그리고 그 노래 그렇게 부르는게 아
니예
요. 가사가 틀리던데...
미수 : ...
눈길남 : (자기 말실수 했다는걸 느낀다)
그런데, 뭐, 꼭 가사가 중요한가요.
부르는 사람의 정서. 필링 뭐 이런게 중요하죠.
미수 : (나직하게) 네.
눈길남 : ...저 ...야- 덥네. 밤인데도 참 덥죠?
이럴땐 시원한 물가에서 발담그고 있음 봏겠다.
이름이 뭐에요?
미수 : 미수요.
눈길남 : 미수씨요. 야- 이름도 이뻐요.
미수씨 우리 더위도 식힐겸 잠깐 산책이나 할까요?
아- 계곡에서 발담그고 미수씨 노랠 들으면 정말 좋겠
다.
어때요? 같이 가시죠.
미수 : (나직하게 눈을 깔고) 네.
눈길남 : 그럼, 갈까요.
미수 : 그런데, 멀리 가지 말고 요기 가까운데 가요.
눈길남 : 왜요? 무서워서요?
미수 : 그게 아니고 저녁밥을 안먹어서...
아니, 그게 아니고 저녁밥 먹으라고 찾을까봐...
눈길남 : 아, 예.
그들 어둠속으로 사라지면 미나가 창문을 통해 쳐다보고 있다.
68. 식당 / 저녁
미나가 식당으로 들어가면 무슨 심각한 의논을 하던 식구들이 미나를
보고선
갑자기 말을 끊는다.
엄마는 식탁을 바삐 차린다. 미나가 식탁에 달라붙듯 앉는다.
영민 : 미수는 밥 안먹는데?
미나 : 그런가봐.
영민 : 이놈의 기집앤 툭하면 밥을 안먹어?
미나 : 뻘렁, 밥 줘-
69. 계곡 / 밤
어두운 계곡, 물줄기가 시원하게 내려가고 그 사이의 징검다리 돌을
건너느라 자연히 손을 잡게 되는 두사람. 후미진 것을 찾는다.
눈길남 : 여기 잠깐 앉을까?
미수 : 네.
잠시 어색한 침묵.
눈길남 : 미수씬, 몇 살이세요?
미수 : 어머, 숙녀 나이를 묻는건 실례인데. 스물 두살요.
눈길남 : 야- 정말 좋을 때다.
사실은 아까 그 노래 부르는데 정말 열일곱살인줄 알
았어요.
휠씬 이쁘고 어리게 보이네.
미수 : 제 동생이 열일곱이에요. 미나요.
눈길남 : 그럼, 남자들은 누구야?
미수 : 좀 못되게 생긴 사람이 우리 오빠구요.
좀 착하게 생긴 사람이 우리 삼촌이에요.
눈길남 : 아- 그래, 오빠 등쌀에 연애도 못하겠구나.
미수 : 머, 그렇진 않아요. 우리 식구들은 다 개인 플레이예
요.
눈길남 : 그럼, 키슨, 해봤어?
미수 : 머, 많이는... 어머, (고개질을 한다)
눈길남 : 그럼... 우리 키스 한번만 할래?
미수 : (다시 고개질을 하며 고개를 숙인다)
눈길남 : 그냐앙, 장난으로-
미수, 고개를 돌리면 남자는 입맞춤을 하려고 파고든다.
미수, 남자가 그럴수록 고개를 숙이고 돌리면서 킥킥거리며 웃는다.
70. 로비 겸 거실 / 밤
미나와 영민, 거실에서 텔레비젼을 보면서 낄낄거리고 있다.
영민 :(무슨 느낌이 들었는지 다른 쪽을 바라보더니) 야, 미수는 자
냐?
미나는 코메디 프로그램에 빠져 정신이 없다.
영민 : (버럭 소리를 지르며) 야! 미수 자냐고!
미나 : 왜, 가까이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영민 : 내가 기집애야, 처음부터 소릴 질렀어?
미나 : 뭐어-?
영민 : 미수 자냐고?
미나 : (아무렇지도 않은 듯)
좀 아까 208호 손님이랑 계곡쪽으로 갔어.
영민 : 뭐라고? 그걸 왜 지금 얘기해?!
미나 : 지금 물어봤잖아!
(영민, 후다닥 뛰어나가는데도 미나는 TV에 정신이팔려 쳐다보지도 않
는다)
71. 계곡 / 밤
미수와 남자가 키스를 하고 있다.
남자의 손이 미수의 가슴을 움켜잡자 미수가 그의 손목을 잡을뿐 큰
저항은 안한다. 남자가 대담하게 나온다. 미수의 치마를 걷어올리려고
한다.
미수는 연신 말아올라간 치마를 내리면 남자는 걷어올리고 그렇게 실
강이를 벌인다. 남자가 흥분을 하기 시작한다. 강제적으로 치마를 올
리려한다.
미수가 키스를 뿌리치고 남자를 밀어내려고 하지만 역부족이다.
미수 : 하지마세요. 저리 가세요.
눈길남 : 저긴 절벽이야. 괜찮아, 이리 와봐. 이리 와, 응?
미수 : 그럼, 소리 지를거에요?
눈길남 : 소리 지르면 들릴것 같아? 물소리 때문에 들리지도 않
을걸?
너 자꾸 이러면 정말, 나 실망한다. 나 실망하면 무서
워진 단 말야.
남자, 미수를 강제로 쓰러뜨리고 그 위에 올라탄다.
미수의 옷을 마구 헤집는 남자. 그때, 미수를 부르는 영민의 소리가
들린다.
미수 : 오빠-! 여기야! 읍!
남자, 놀라며 미수의 입을 틀어막는다. 거칠게 반항하는 미수.
그럴수록 미수의 옷이 찟겨져 나간다. 영민이 소리를 들었는지 물을
첨벙거리며 이쪽으로 건너온다. 영민 달려들고 일대 격투가 벌어진다.
이때 미수가 빠져 나온다.
영민, 그를 거칠게 몰아 붙이지만 만만치가 않다.
그런데 갑자기 그 남자가 백기를 든다.
눈길남 : (헉헉거리며 터진 입술을 닦는다)
잠깐! 잠깐만요. 헉, 헉, 그만 둡시다. 내 실수였어요.
잘못했습니다. 정말입니다. 고의가 아니었어요.
영민도 지쳤는지 허리를 굽힌채 고개를 떨구고 있다.
코에서 피가 흐르는지 볼려고 코를 훔치고 손을 들여다 본다.
피가 묻어나자 다시 성질이 뻗치는지 또 달려든다.
둘은 다시 엉키고 굴른다. 그러나 이번엔 영민이가 역부족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영민, 갑자기 비명을 크게 지른다.
영민 : 아! 잠깐! 팔이 부러진 것 같아! 아! 앗!
남자가 공격을 멈추고 주춤한다. 영민, 그 틈에 남자를 밀치고 빠져
나온다.
남자가 뒤로 밀리며 물기 때문에 미끌 미끌한 돌에 미끄러져 두 서너
발 뒤로
미끄러진다.
영민도 순간적으로 당황한다. 거긴 수십미터 낭떠러지이기 때문이다.
필사적으로 남자가 자세를 잡으려고 발버둥친다. 그러다 겨우 나뭇가
지를 잡아 위기를 모면한다.
순간적으로 둘은 안도감에 찬 표정을 지워 보인다. 그러다, 뚝 소리를
내며 나뭇가지가 부러진다. 동시에 두 팔을 크게 공중에서 휘젖는가
싶더니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절벽 밑으로 사라진다.
영민, 놀란듯 살금살금 절벽쪽으로 다가간다.
어둠속이라 어떻게 됐는지 알길이 없다.
돌을 하나 집어 절벽 밑으로 떨어뜨려 본다.
한참 뒤에 펑하고 아득하게 소리가 들려온다.
72. 산장입구 / 밤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미수가 울면서 영민을 기다리고 있다.
영민, 지친듯 터벅터벅 걸어온다.
미수 : 어떻게 됐어?
영민 : 도망갔어.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말고, 너 빨리 들어가
자.
미수 : 이따가 오면 또 어떡게 해?
영민 : (순간적인 격분을 참지 못하고) 빨리 들어가 자란 말
야!
이 계집애야!
미수, 훌쩍거리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고 영민은 상당히 지친 표정으로
벤취에 주저 앉는다. 삼촌, 나오다 미수와 마주치지만 분위기를 눈치
채고 밖으로 나와 영민의 얼굴을 쳐다본다.
영민, 삼촌을 흘깃 보더니 다시 고갤 떨어뜨린다.
영민 : (몹시 피로한듯) 또... 한 사람을 잡았어.
내일 아침 일찍 계곡으로 가봐야 할 것 같아.
73. 미나의 방 / 밤
미나가 자기 침대에서 미수의 행색을 보니 가관이 아니다.
미나 :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옷이 왜그래?
미수, 쓰러지듯 침대에 얼굴을 파묻으며 운다.
미수, 얼굴이 눈물 범벅이 되어,
미수 : 엄마, 아빤?
미나 : 오늘 너무 피곤하다고 일찍부터 자.
그러더니 다시 얼굴을 베게에 파묻고 울기 시작한다.
미나, 미수에게 가까이 다가가 껴안아 주며 머릴 쓰다듬는다.
미나 : 울지마 언니, 남자들은 다 그래.
74. 산장 내부 몽타쥬 /깊은 새벽
-곤히 잠들어 있는 미나 그 옆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훌쩍거리는 미
수.
-카운테어 잠들어 있는 삼촌.
-역시 방에서 잠을 못이루고 담배를 피워대는 영민.
-객실에서 코를 심하게 골며 자는 선배.
이때, 현관문을 요란하게 두들기는 소리에 영민이 반응하고 엄마가 부
시시 일어난다.
75. 산장 현관 / 새벽
엄마가 졸리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서 현관으로 나간다.
엄마 : 아니, 카운터에 아무도 없는거야?
카운터에 가보면 삼촌이 그렇게 씨끄러운데도 세상 모르게 자고 있다.
엄마 : 쯧쯧, 세상 이렇게 편한 사람도 없을거야. 누구세
요?
대답은 없고 문만 계속 세차게 두들기고 있다.
현관을 열면 아까 절벽에서 떨어진 남자가 피투성이가 된채 서있다.
엄마의 찢어질듯한 비명소리에 208호 손님은 물론 모든 식구들이 놀
래 깨어난다.
엄마 : 어- 어- 누... 누구세요? 아아- 여보!!
눈길남 : 당신 아들 어딨어?
엄마는 자시 방으로 뛰어들어가 남편을 깨운다.
남자는 촛점없는 충혈된 눈에 온몸이 찢겨진 상태로 비범벅이 되어있
다.
복도에 핏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며 방 하나 하나를 열어본다.
연신 터지는 비명소리에 놀란 선배가 뛰어내려 온다.
남자는 미나의 방을 열고 들어선다. 미수가 놀라 깨어난다.
미수를 노려보는 남자, 미수의 비명소리가 터지자마자 그 자리에 쓰러
진다.
선배가 뛰어들어 온다. 그 뒤로 식구들도 들이닥친다.
장씨 : 이 사람 왜 그려? 정신 차리랑께! 이게 어떻게 된거여?
남자, 선배에게 뭐라고 낮게 중얼거린다. 선배, 귀를 가까이 댄다.
장씨 : 무슨 말여? 잉? (남자,고개를 떨군다) 미수 오빠가 누
구여?
엄마 : 왜요?
장씨 : 미수 오빠가 자기를 절벽에서 밀었다는디?
영문을 모르는 엄마와 아버지, 크게 놀라는 표정이다.
영민, 뛰어들어 온다. 손에 도끼가 들려져있다.
선배, 상황이 안좋다는걸 직감한다. 슬그머니 일어서 나가려 한다.
가족들이 자길 노려보며 애워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장씨 : (나가며) 앗따- 이 사람 무슨 말을 씨부리는지 하나도
못알
아 먹겠구만.
영민 : 이것 봐! 어디 가?
장씨 : 그냥, 지는 그대로- 갔으면 쓰겄는디.
76. 매장 장소 / 새벽
시체를 묻는 영민과 아버지, 삼촌.
삼촌과 영민은 처참해진 시체를 보면서 인상을 찡그린다.
영민이 참지 못하고 구토를 한다.
옆에서 그걸 보던 삼촌도 덩달아 시체위로 음식물을 게워낸다.
디졸브되면서 산장안에 흥건한 피를 걸레로 닦아내는 엄마와 미나.
엄마는 걸레질을 하면서 복받치는 격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서럽
게 운다. 한쪽 방에선 미수가 쿠션에다 얼굴을 박고 울고 있다.
상대적으로 미나가 손톱을 깨물면서 무표정하게 그들을 바라보고 있
다.
77. 지하창고 / 같은시간
입에 자갈이 물린채 온몸이 밧줄로 묶여있는 장씨.
공포에 찬 두눈을 크게 뜨고 눈동자만 이리 저리 굴리고 있다.
78. 산장전경 / 아침
조용한 산장 주변. 어디선가 응- 하는 소리와 진동이 아주 희미하게
들린다.
그 소리는 점점 커져 소리의 실체성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잠시 후 소리는 더욱 커지더니 포크레인 등 중장비 차들이 보인다.
가족들, 소리와 진동 때문에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하나 둘씩
나온다.
작업 장소는 산장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가족들이 경악하기 시작한게 그때 부터이다.
그 장소는 시체를 매장한 곳과 매우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다.
거의 발작적인 증세를 보이는 가족들.
79. 작업장 / 정오
현장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곳에서 가족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동네에
온 약장수 구경하듯 쭈르륵 앉아 지켜보고 있다.
포크레인이 흙을 퍼낼때 마다 그래서 시체 매장 장소와 가까와잘수록
누구를 상대로 하지 않은 히스테리컬한 반응을 보인다.
인부들이 거, 참 이상한 가족들이네 하는 표정이다.
그때, 이장이 밑에서 아버지를 부른다.
이장 : 강사장!
아버지 : 좀더 일찍 연락을 주시지 않고...
이장 : (대꾸도 없이 산 위아래를 손짓으로 죽 훑으며) 이것봐
요.
저쪽으로 대형 주차장이 들어설거고 저기- 저쪽으로
대단위 위락시설이 하나 둘 지어질 것이구요.
아버지 : 이렇게 급작스럽게 공사가 시작되면,
이장 : 찬만 다행이야. 이게 또 늦어져 봐,
겨울에 무슨 공사가 되겠어? 또 한해를 넘기는 거지.
잠깐, 저 좀 봅시다.
이장, 주변 가까이엔 아무도 없는데 주위를 살피곤 손을 잡아끌며 목
소릴 낮춘다.
이장 : 이것봐요, 강사장. 이 산이 명산이야.
여기서 저 밑까지 뚫리면 이땅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요?
똥길에서 금싸라기 땅으로 바뀐다 이 말씀이야.
근데 그 동안 군사보호지역이다 뭐다 해서 개발이 꽉
막혔잖 아. 근데, 문맹정부가 들어서 이게 확 풀린거
잖아? 그러면, 이게 누구 땅인가? 우리 꼰대 땅 아닌
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멀지않은 미래의 내땅 아닌가?
그동안 난 주인행세 한번 한적 없었어요.
우리 아버지가 올해 일흔 둘이야.
아버지 : 글쎄,여기까진 전에 도말씀하셨잖아요.본론으로 들어가
시죠.
이장 : 앗따- 이 사람 지금 막 본론으로 들어갈 참이었는데.
근데, 우리 꼰대가 젊어서 바람둥이라 어머니 속을 많
이도
태우셨어요. 아, 이 부분도 전에 했었지.
어쨌든, 중요한건 거- 내 배다른 여동생이 있지요.
꼰대가 그 은주년을 여간 이뻐하시지 않는 거야.
고 기집 얘기라면 하늘에 있는 달도 따신다니까.
이장 : 본처 자식이 후처 자식한테 모든 걸 다 빼앗기게 되버렸
어요.
(격앙되어) 이게 말이나 되는가? 이게 말이나 되는가 말
이야!
아버지 : 세상에는 말이 안되는 일도 말도 안되게 많더라구요.
그래서요?
이장 : 그 기집이 우리 가족의 우환거리야. 상속세 바뀐거 알잖
아요.
세상이 아주 더러워졌어요.
근데 그 기집애가 자기는 땅 파는거 반대래.
자긴 결사적으로 반대라는 거야.
아버지 : (이쯤엔 아버지도 흥분이 된다) 아니, 왜 그런데요?
이장 : 나두 모르지. 하두 베베 꼬인 애가 되서 속내를 알 수 있어
야지.
서른이 다 된 애가 시집도 안가고 아버지 옆에 붙어서 돈
이나 타 쓰고 흥청망청 다니는 거 아, 내 그년만 없어진
다면 아주 춤이라
도 덩실덩실 추겠다고요.
아주, 있는 돈 없는 돈 다 싸주고 싶다고요.
정말이야. 정말이라니까!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지른다) 아, 내말이 거짓말 같아?
아버지, 긍정도 부정도 못하는 애매한 표정으로 다른 말을 한다.
아버지 : 그렇게 흥청망청하면 안되지. 시집도 안간 여자가...
이장 : (다시 차분해지며) 그래서 요양 좀 시켜드릴겸 사업 계
획도
말씀드릴겸 해서 강사장 산장에 며칠 모시기로 결정
한 거지 요. 아버지랑 그 계집애가 이 산장에 오는
걸 아무도 몰라 요. 알겠어요?
아버지 : 예?
이장 : 하! 답답하긴, 그애가 오는걸 아무도 모른다니까.
강사장도 알지만 모르는거요.
아버지 : 예? 제가요?
이장 : 참, 이양반 늦네. 그 애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강사
장은
계속 모르고 있으면 되는거 아니요?
아버지, 그제서야 말귀를 알아듣고 놀라는 표정이다.
그러자 이장이 안심한듯
이장 : 이 얘긴 비밀이요.
강사장은 단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큰 돈이 들
어와요.
세상에 이런 장사가 어디 있나요.
그리고 이 산장 얻을때 내게 조금 빚 진거, 그거 잊어버리
세요.
그럼, 내 다시 연락할께요.
연락드리면 제일 좋은 방으로 두 개 부탁합니다.
내려갑니다. 어험.
아버지, 잠시 멍하게 서있다. 중장비공사의 기계음이 마치 진공 속에
서 점점 광폭하게 들리는 것 같다. 누군가 아버지를 툭 친다.
악몽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화들짝 놀란다. 돌아보면,
영민 : 아버지, 저기 좀 빨리 가보세요.
포크레인이 시체를 매장한 바로 앞까지 파고 들어가고 있다.
80. 같은 장소 / 시간이 약간 경과
식구들이 술과 음식을 잔뜩 싸들고 공사 현장으로 온다.
또, 간이 침상과 돗자리도 들고와 공사장 한가운데 막무가내식으로 펼
쳐 놓는다.엄마는 포크레인이 더이상 땅을 못파게 손에 쟁반을 들고
막아선다.
포크레인이 움직이는 방향따라 같이 움직이며 가로 막는 것이다.
기사 : 아줌마! 비켜요! 뭐 하시는 거예요!
엄마 : 이거 좀 드시고 천천히 하세요.
현장 감독이 이 광경을 보고 뛰어온다.
감독 : 이 아줌마 뭐야? 뭐하는 거예요?
아버지 : (다가오며 점잖게 인사를 한다) 아, 감독님이십니까?
저는 요기 산장을 경영하는 강대구라고 합니다.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준다. 잠시 명함이 바뀌었
는지
도로 뺏고 다른 걸 준다) 이렇게 수고하시는데
우리가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있습니까.이게 결과적으로 우리가 잘
되는
일인데 그래서 이렇게 차려왔습니다. 이거 차린건 없
지만
이것 좀 드시고 하시지요.
감독 : 아, 그래요, 난 또 공사 방해하시는건지 알고 깜짝 놀
랬잖
아요.
아버지 : (갑자기표정이커지며) 그랬습니까? 이거 죄송하게 됐습
니다.
감독 : 어이, 최기사 내려와! 거기, 박씨! 다들 이리들 와!
다들 일손을 놓고 침상으로 모여든다.
감독 : 아니, 왠 술을 이렇게 많이 가지고 왔어요?
기사 : 야, 이 술 먹으면 오늘 일 못하는데, 오늘은 저기 소나
무
있는데까지 파야 되는데.
감독님, 어떻게 해요?
감독 : 뭘, 그런걸 나한테 물어보나? 선수가 알아서 하는 거
지.
기사 : 에라, 모르겠다. 일단 먹고 보자.
박씨 아저씨 오늘은 여기서 쫑냅시다.
인부들, 대충 작업 도구를 정리한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가족들.
삼촌, 슬쩍 매장 장소로 눈길을 돌리다 흙 속에서 삐죽 나온 시신의
발가락을 발견 하고 기겁을 한다. 삼촌은 잽싸게 그쪽으로 가 흙으로
덮으려고 한다.그러나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흙이 무너지면서 완연히
발이 드러난다.
당황하는 삼촌, 인부들을 상대하면서 그 광경은 보고 있는 가족들은
입이 타들어 가는 불안과 초조함에 휩싸인다.
거기다가 인부들이 합석하자고 삼촌을 부른다.
기사 : 저 아저씬 저기서 뭐하시는 거야?
이리와서 술이나 한잔 하지.
엄마 : 아, 아... 어... 흙장난 하나봐요.
(당황해서 엉겹결에 나온 말이 신통치 않자 한숨을 쉰
다)
기사 : 흙장난이요? 나 원, 저 나이에 술 안먹고 흙장난을 해?
금이라고 캐는거요? 하기야 저런게 취미니까 이런 산
에서
살지. 안그래요. 감독님?
감독 : 이 사람, 오늘따라 나한테 묻는게 많아?
저 나이에 흙장난이 취미인 사람이 어디 있겠어?
아주머니가 그냥 하시는 말씀이지.
한편 삼촌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흙을 덮지만 경사면이라 계속
흙이 무너진다.급기야, 다른 곳까지 연쇄 반응을 보이며 전체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설상가상, 삼촌은 벌통을 건드렸다는 비참한
심정을 갖는다.
극도로 당황한 삼촌이 거의 실성한 사람처럼 내던지듯 마구잡이식으
로 덮는다. 그럴수록 흙은 무너져가기만 한다.
그때, 누군가 젖은 진흙으로 간단히 철썩 붙여 버린다.
삼촌은 땀과 눈물과 흙이 두범벅이 된어 올려다본다.
거기엔 미나가 서있다.
81. 매장장소 / 밤
삼촌과 아버지, 영민이가 후레쉬를 비추면 시체의 발 하나가 나와있
다.
전에 묻은 시체들을 다시 파내어 리어카에 싣는다.
82. 식당 / 밤
미수와 미나, 엄마가 식탁 위에 간식을 차린다. 웬일인지 미나가 열심
히 도운다.남자들 시체 옮기는 일이 다 끝났는지 피곤한듯 들어온다.
그러나 표정이 어둡지만은 않다. 무슨 육체적 노동 뒤에 오는 정신적
포만감 같은 것이 남자들을 만족스럽게 한다.
엄마 : 수고들 하셨어요. 얼른 손만 씻고 빨리 드세요.
영민 : 아- 정말 배고프다. 이거 뭐야? 칼국수네. 맛있겠다.
아버지 : 난 조그만 줘. 어이구 피곤해.
그래도 땅파고 덮고 하는데 이력이 붙어가지고 말야,
이젠
전부들 도사가 됐어.
처음엔 하나 묻는데도 댓 시간 걸렸잖아.
(피로해 보이지만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영민이를 바
라본
다) 영민이 저녀석,
오늘은 구덩이 하나 하는데 30분도 안걸린것 같애. 깊
이랑
넓이랑 아주 귀신같이 파더라구.
영민 : 제가 인간 포크레인 아닙니까? 뭐 묻은거 또 없어요?
김장독 이런거?
아버지 : 야, 뉴스 좀 틀어봐. 간첩들 어떻게 됐어?
텔레비젼을 키면 바로 무장간첩 도주로를 수색하는 군인들 모습이 보
이고 현장에서 리포터가 상황 속보를 계속해서 전달한다.
엄마 : 어마, 여기서 가까운 곳이네.
저것들 여기까지 오면 어떡하지.
영민 : 저런 것들은 아주, 생매장을 시켜야 되는데.
가족들, 생매장이란 말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어색하게 웃음보를 터뜨
린다.
오랜만에 온가족이 웃는 광경을 연출한다.
83. 공사현장 / 아침
공사장에 도착한 현장감독과 포크레인 기사가 소나무 있는데 까지 흙
이 파이고 깨끗하게 난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84. 마을 지서 / 낮
읍내 작은 지서. 평생 할일이 없을 것 같은 태도로 경찰들과 지서 주
임이 한가로이 난로가에 모여앉아 밤을 구우며 시간을 죽이고 있다.
유유자적한 분위기를 가르며 전화벨이 울린다.
박순경 : 박순경입니다. 예? 주임님이요? 잠깐만요.
전화 받아 보세요.
주임 : 전화 바꿨습니다. 아이고, 아주머니세요.
예? 언제 나갔어요?
서울서 온 후배랑, 나가서 안들어온지 3일이나 됐다구
요.
산에 간다고? ...연락도 없었고.. 나갈때 옷은 ...국방색
점버에 청바지, 예, 알았어요.걱정마시고, 혹시 연락
오면 이리로 전화 주시고요. 부부싸움 같은 건 한
적 없고, ...아 니, 최근에. 예, 알았어요.덩화 끊고 기
다리세요.
지서 주임이 전화를 내려놓고 책상에서 수첩과 볼팬을 꺼낸다.
메모지에 볼펜으로 끄적거려 본다. 볼텐이 안나온다.
다른 걸 꺼내 다시 끄적거린다.
주임 : 이거 마 다 안나오나? 나오는 볼펜 없어?
박순경 : 여기 있습니다.
주임, 박순경에게 볼펜을 건내받고 수첩사이에 끼우며 자리에서 일어
난다.
박순경 : 무슨 일이 있습니까?
주임 : 거기, 배나무집 장씨가 산에 간다고 나간지 3일이나
됐는데
아직 연락도 없이 안들어왔다는구면, 혹시 산에서 사
고가
났을지도 모르니까, ...산장에 갔다올께.
(나갔다 다시 돌아오며) 오토바인 누가 타고 나갔어?
박순경 : 오순경이 끌고 나가던데요.
집에 가서 밥먹고 금방 온다고 했는데...
주임 : 짜 아식이- 오토바이가 지 자가용이야?! 전화해봐!
박순경 : 안받는데요.
85. 산장입구 / 낮
울퉁불퉁 산길에 마른 먼지를 일으키며 검은색 자가용이 한대 멈춘다.
엄마와 아버지, 다른 사람들은 다 들어가 있으라고 한 뒤 자가용에서
내리는 사람을 공손하게 맞는다. 이장과 기사로 보이는 남자, 노쇠한
백발의 노인, 그 옆엔 빨간색의 타이트한 여인인 차에서 내려 산장 입
구로 걸어온다.
노인은 운신이 불편한지 이장과 딸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걷는다.
그뒤로 기사가 트렁크에서 짐가방을 들고 온다.
아버지 : 회장님,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지요.
노인은 귀가 잘 안들리는지 내용없는 웃음을 지워보인다. 웃느라고 침
을 흘리자 딸이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내 닦아준다.
이장이 아버지를 보며 눈짓을 하며 빠른 고개짓을 한다.
이장 : (큰소리로) 그래, 이쪽 길이 시원하게 뻥 뚤려야 이런
고생 을 안하지.
은주 : (낮고 단호하게) 오빠만 가만 내버려두셔도 고생할 일
없으 신 분이에요.
빠른 걸음으로 앞서 나가는 딸. 이장이 눈을 부라린다.
삼촌과 영민, 미나와 미수가 바짝 붙은채 창문을 통해 그들을 보고있
다.
미수 : 좀 비켜봐. 나두 좀 보게.
영민 : 와- 외게 섹시하네.
삼촌 : 꽤 지적으로 보이네. 같은 씬데도 저렇게 다를까?
미나 : 씨받이가 다르잖아.
미수, 영민과 삼촌이 미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들이 다가오는지 갑자기 후다닥 흩어진다.
86. 로비 겸 거실 / 같은 시간
엄마가 노인과 딸을 201호로 안내하면 이장이 아버지의 팔을 슬쩍 잡
아끈다.
이장 : (낮고 음침하게) 오늘밤 정확하게 12시를 가리키면 한
남자 가 산장으로 들어올꺼에요. 그 사람한테 바로
그 옆방을 줘. 그리고 저 기집 방번호만 살짝 얘
기해주면 그 사람이 알아서 할꺼야.
아버지 : (바짝 긴장하며) 주.. 죽.. 죽이는 거요?
산.. 산장에서 사람이 죽으면...
앞으로 장살 어떡하라구 이러십니까?
이장 : 이양반, 그 사람이 다 알아서 한다니까.
아주 깨끗이 처리 할거에요.
그런건 걱정하지 마요.
오늘밤만 지나면 우린 이젠 부자가 되는 거야.
이제부터 세상에 대고 떵떵거리며 살아보자구요.
자,난 위에 좀 올라가보고 내려갈께요.아무 걱정 말라
구요.
아버지 : 전 아무것도 모르는거잖아요. 이젠, 이장님만 믿겠습니
다.
이장 : (가다말고 갑자기 돌아서서) 12시야. 잊지말어!
아버지 : (깜짝 놀라며) 예? 여. 12시만 알면 되는거죠.
87. 산길 / 낮
지서 주임이 땀을 흘리며 숨차게 오르고 있다.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며 목덜미를 닦는다.
그러다가 코를 벌렁거리며 무슨 고약한 냄새를 맡았는지 인상을 찡그
린다.
좌우를 둘러보다 구두 바닥을 들어보면 개똥을 밟고 있다.
짜증을 내며 풀에다 구두를 문지른다. 구두를 벗어 냄새를 맡아보곤
고개를
갸웃거리며 좌우를 살핀다.그리곤 이 냄새가 아닌데 하는 표정을 지었
다가 다시 산길을 오른다.지서 주임이 지나가면 그 옆 덤불사이로 목
멘 여인의 시체가 썩어가고 있다. 그 위로 구더기가 우글거린다.
88. 비포장 산길 / 낮
이장을 태운 차가 먼지를 일으키며 덜컹덜컹 지나간다.
먼지가 가라앉을때쯤 누군가가 수풀사이로 바지춤을 치키며 길로 나
온다.
지서 주임이 개울가에서 얼굴을 씻고 용변을 보고 나온 모양이다.
지금 뭐가 지나갔는데 뭐지? 하는 표정이다.
89. 산장앞 마당 / 낮
회장 딸 은주가 간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마당으로 나온다.
마당엔 미나가 벤취에 앉아있다 나오는 은주와 눈인사를 나눈다.
은주가 밖으로 나오자 엄마와 아버지가 득달같이 쫓아온다.
삼촌도 덩달아 쫓아 나오자, 아버지가 삼촌을 눈짓으로 자꾸 들어가라
고 지시하는데,삼촌이 못알아듣겠다는 듯 네? 네? 하며 되묻는 표정이
다.
엄마 : 아니, 어디 가시게요?
은주 : 네, 우리 선산이 어느 정돈가 한번 둘러 보려구요.
제가 이곳 지리를 잘 몰라서 그러는데 누가 좀 같이
가실
수 있겠어요?
미나 : 내가 안내해 드릴께요.
삼촌 : 저두 같이 갈께요.
엄마 : 삼촌이 왜 따라가세요?
삼촌 : 여자들만 가면 위험할지도 모르잖아요.
은주 : 그러세요. 괜찮으시다면 저야 좋죠.
그럼, 우리 셋이 가실래요?
삼촌 : 마침, 할 일도 없었는데, 잘됐네요.
엄마 : 저, 오늘밤 12시 전까진 들어오실거죠?
(아버지가 엄마를 툭 친다)
은주 : 네? 12시요?
그럼요, 한, 두시간이면 둘러볼 수 있을거에요.
삼촌 : 그럼, 따라오세요.
엄마 : 삼촌, 일찍 들어오세요.
삼촌 : 일찍 들어오면 맛있는 거라도 해 놓으실 거에요?
자, 다녀오겠습니다.
삼촌의 발걸음이 마냥 가볍다.
아버지 : (멀어지는 그들을 보며) 에이, 푼수같은 놈!
일생에 도움이 안되는 놈이야. 저놈이!
90. 산장 뒷 공터 / 낮
엄마가 그릇을 들고 마당 뒷 공터, 시체를 이장한 주변 장독대 쪽으로
간다.
모퉁이를 돌때, 여자의 다리가 길게 뻗어있는 것이 보인다. 엄마는 너
무 놀래 하마터면 그릇을 떨어뜨린뻔 한다. 잠깐 있다가 미수가 얼굴
을 쑥 하고 내민다. 그리곤 무표정한 얼굴로 엉덩이를 툭툭 털며 무심
히 지나쳐 간다.
엄마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근심어린 눈길로 미수의 뒷모습을 바라본
다.
91. 산 길 / 낮
회장 딸, 삼촌, 미나가 무언가 두런두런 이야길 나누며 걷는다.
삼촌이 후다닥 뛰어다니며 산에 나는 열매들을 따와 회장 딸과 미나
에게 준다. 그걸 받아 먹으며 즐거워하는 딸과 미나, 삼촌도 무척 만
족스러워한다.
92. 산장현관 / 낮
지서 주임이 현관 문을 두드린다.
지하 창고에서 빈 접시며 그릇을 쟁반에 담아 나오는 영민과 주임의
눈길이 마주친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영민, 그 뒤를 따라 나오던 엄마
도 놀라긴 마찬가지다. 주임, 순간적으로 그들의 표정을 놓치지 않는
다.
주임 : 거, 지하에도 식당이 있나보네.
엄마 : 무... 슨 일로 오셨나요?
주임 : 나 여기 지서 주임이예요.
엄마 : 아, 그러세요.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주임 : 다른게 아니고, 머- 행불신고가 들어와서 뭐 좀 물어볼
려구
왔어요.
얼마전에 남자 두 사람이 산에 간다고 나갔는데 아직
안내 려왔다고, 신고가 왔길래. 그래서 뭐 좀 물어보
려고.
에- 혹시, 산장에 들른 사람 중에...
지서 주임, 얘기하다 말고 발걸음을 지하 창고 쪽으로
옮긴
다. 영민과 엄마는 순간 긴장한다.
주임 : 여긴, 뭐에 쓰는 창고여?
엄마 : 그냥, 창고죠. 하도 지저분해서...
주임 : 이잉- 창고가 다 지저분하고 그렇죠 머-
아, 혹시 산장에 들른 사람중에 이런 사람 못봤어요?
한 사람은 서울 사람이고 한 사람은 읍내 사람인데,
전라도 사람이고 중키에다 점퍼차림이고 청바지를 입
었다는 구먼.
엄마 : 글쎄요. 우린 못본것 같은데...
아직 이쪽으로 등산객이 많이 않아요.
장파리쪽으로 많이 올라가잖아요.
주임 : 산장엔 지금 묵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엄마 : 등산객은 아니고 ...그냥, 저희 집안 손님이 두분, 아니
한 분 계세요.
주임 : 아, 그래요... 혹시 나중에라도 그런 인상 착의를 보면
지 체없이 지서로 연락좀 주쇼.
엄마 : 물론이죠.
주임 : 앗따- 여기 올라왔더니 목이 칼칼한게 목구멍이 말라
서 갈 라지게 생겼구먼.
아주머니, 여기 시원한 물 한주전자만 주쇼.
엄마 : 그러지요. 여기 계세요. 내 냉장고에서 한 주전자 갖다
드 릴께.
영민은 주임과 엄마가 말을 나눌때 산장으로 들어간 뒤고 엄마가 물
을 가지러 뒤따라 들어간다.
잠시 후, 엄마가 주전자에 물을 한가득 가지고 나오면 지서 주임은 온
데간데 없다.
93. 산장 뒤켠 산기슭 / 낮
지서 주임이 산장 뒤켠을 서성거리고 있다. 그곳은 시체를 이장한 곳
이다.
여기 저기를 무심히 둘러 보는데 한쪽에서 무언가가 햇빛에 반사되어
주임의 눈을 때린다. 가까이 가보면 은빛 지포 라이터이다. 고르지 못
한 땅을 만져본다. 주임은 다가가 얼른 집어 넣는다. 이때, 엄마가 주
전자를 들고 나타난다. 곁눈질로 엄마가 다가오는 것을 본 주임.
주임 : 차- 경치 한번 끝내주는구만.
여기 살면서 산 한번을 못타보네.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주전자를 받으며 들이킨다) 캬- 시원하다.
이제 슬슬 내려가봐야 쓰겄네.
이 사람들, 그럼 도대체 어딜 간거야?
아이고, 잘 마셨습니다.
주임은 크게 입을 손등으로 닦더니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산길로 내
려간다.
94. 계곡 / 같은 시간
삼촌과 은주, 미나가 계곡에서 쉬고 있다.
은주 : 그래서 오빠는 이 땅을 팔지 못해 안달이 난 것이죠.
이번 기회에 어떻게 해서든지 아버지에게 다짐을 받
아 놓으
려는 속셈이죠.
처음엔 아버지만 모셔가겠다는걸 내가 끝까지 쫓아왔
어요.
아버진 제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세요.
병간호는 커녕 아버지 속만 뒤집어 놓을게 뻔하죠.
오빠한테는 제가 아마 눈에 가시일거에요.
삼촌 : 그래도 은주씨 같이 고운 마음씨를 가진 미인을 따님
으로
두신 아버님께선 복받으신 분이세요.
은주 : 그렇지도 못해요. 아버진 제가 빨리 시집가서 좋은 남
편 만 나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세요. 아버지의
생전의 하나 남은 소원을 못들어주고 있으니 둘도
없는 불효죠.
삼촌 : 저도 아직 결혼을 못했습니다.
은주 : ...좋으신 분 같은데...
미나가 주책 좀 부리지 말라는 경고의 눈치를 준다. 그래도 아랑곳하
지 않고
삼촌 : 은주씨처럼 아름답고 착한 여자가 어디 그렇게 많나
요?
은주 : 너무 고르시는거 아니세요? 자, 우리 이젠 내려가보죠.
(하늘을 올려다 보며) 먹구름이 잔뜩 끼었네.
삼촌, 덩달아 하늘을 올려다 본다. 아쉬운 표정이 역력하다. 미나가 벌
떡 일어나고 은주도 따라일어서자 엉기적거리며 마지못해 일어선다.
95. 산장공터 / 오후
엄마가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을 보다가 빨래를 걷으러 나온다.
하늘을 올려다 보면 먹구름이 잔뜩 내여 앉는다.
마른 공터에 빗방울이 하나 둘 툭툭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산길에서 삼촌과 미나, 은주가 뛰어 내려오고 있다.
96. 지서 / 오후
지서 주임이 산장에서 줏은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며 골똘히 생각에 잠
겨있다.
밖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나고 오순경이 들어온다.
주임 : 어딜 갔다 이제 오나?
오순경 : 집에 ...좀 같다 왔습니다.
주임 : 근무 시간에 마음대로 집에 갔다 오고 이래도 되는거
야?
집에 있었으면서 전화는 왜 안받아?
오순경 : ...
주임 : 자네, 오늘 야간 근무 좀 해!
다른게 아니고 배나무집 장씨가 산에 간다고 며칠째
안들어 왔네.그래서 오늘 산장엘 갔다 왔는데 산장
사람들 눈치가 좀 이상해. 자네가 오늘 거기 하룻밤
묵으면서 산장 분위기 좀 보고와.
오순경 : 오늘요? 비가 꽤 올 것 같은데.
주임 : 비온다고 일 안할꺼야?
오순경 : 아뇨. 그런 일을 왜 우리가 합니까? 형사들이 있는데.
주임 : 왜 이렇게 말이 많아?
근무지 이탈로 시말서라도 쓰고 싶어 이래?
오순경 : (말을 못들은 척 창가로 피하면서 하늘을 올려다 본다)
비가 꽤 올텐데...
주임 : 배나무집으로 전화 좀 돌려봐.
박순경 : 나왔습니다.
주임 : 안녕하세요? 주임입니다. 뭐 좀 확인하려고 하는데, 혹
시
애기 아빠가 지포 라이터 씁니까?
소리 : 지포 라이터가 뭐에요?
주임 : 거... 머시냐, 쇠로 된 네모난 라이터 있잖아요.
미군들이 쓰는거.
소리 : 우리 애 아빤 그런거 없어요.
...가만 있자, 서울서 온 후배라는 사람이 그런거 있던
거 같아요.기억이 잘 안나지만 ...은색으로 된건가
...그런거 있었던거 같아요.
주임 : 잘 알았습니다. 다시 연락드릴께요.
전화를 내려 놓은 주임은 뭔가 실마리가 풀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멀뚱히 서 있는 오순경을 보고 버럭 소리를 지른다.
주임 : 아, 왜 그러고 서있어?
97. 사장 / 저녁
억수같은 비가 쏟아지고 있다.
-202호 : 은주는 목욕탕에서 나와 머리를 말리고 있다.
-삼촌방: 삼촌은 은주 생각에 빠져있다.
-휴게실: 미수가 침대 위에 우두커니 걸터앉아 멍하니 비오는 창가를
바라보
고 있다.
-카운터: 엄마와 아버지가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미나가
그 옆 에서 잠을 자고 있다.
엄마 : 그 사람은 뭐하는 사람이래요?
아버지 : 누구?
엄마 : 이장이 말하는 사람 말이에요. 12시에 온다는 사람.
아버지 : 내가 어떻게 알아? 머, 해결사쯤 되겠지.
엄마 : 그럼, 청부살인 하는 거에요?
아버지 : 앗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청부살인은 무슨...
아무리 이장이 돈에 눈이 멀어도 그렇지, 그래도 지
동생인 데 죽이기야 하겠어? 그냥 겁만 주던가, 어
디다 가둬 놓겠 지. ...근데, 이장이 그러는데 고 애
가 그렇게 흥청망청이 래. 시집도 안가고 남자 문제
도 여간 복잡하지 않다는구만.
엄마 : 생긴게 섹시하게 생겼잖아요.
아버지 : 색시든, 서방이든 우린 그 사람 오면 바로 그 옆방 내
주기 만 하면 돼.그리고 그냥 모른척 하고 있으면
그 사람이 다 해결할거야.
엄마 : 방호실도 얘기해 줘야 되는거 아니에요?
아버지 : 그럼, 우리가 모르는게 안되잖아.
이장이 바로 옆방을 주라는거 보니까 그런것 때문에
머릴 쓴 거 같아.
엄마 : 그러다가 방 못찾아서 아무방이나 막 돌아다니면 어떡
하지?
걱정되네.
엄마가 근심어린 얼굴로 시계를 쳐다보고 있다.
시계는 10시 45분을 가리키고 있다.
미나, 눈을 뜨고 있다가 다시 눈을 감는다.
98. 산길 / 밤
비가 쏟아지는 산길을 작은 후레쉬 하나를 들고 누군가 올라오고 있
다.
땅이 미끄러워 엉덩방아를 쭈욱 미끄러져 내려간다.
그사이 후레쉬를 떨어뜨린다. 길이 아닌 곳으로 미끄러져 내려온것 같
다.
손을 더듬어 후레쉬를 찾아 보지만 찾지 못한다.
99. 객실 200호 / 밤
은주가 방을 나서자 마침 2층에서 서성거리던 삼촌과 인사를 나눈다.
잠시 어색하게 마주 보고 있는 두사람.
삼촌이 무슨 말인가를 하려 하는데 은주가 먼저 인사를 하며 몸을 돌
린다.
은주 202호로 들어가고 삼촌, 텅빈 복도에 덩그러니 남아 아쉬움을 달
랜다.
100. 카운더 작은방 / 밤
시계 11시30분을 가리키고, 아버지가 눈짓을 하자 미나를 방으로 보내
려고 깨운다. 휴게실로 나가자 영민이가 텔레비젼을 아직도 보고 있
다.
엄마는 영민을 윽박지르듯 방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영민이 투덜댄다. 삼촌이 2층에서 내려와 휴게실로 들어가 담배를 하
나 꺼내 문다.
잔뜩 감정이 충만되어 있는데 영문도 모른채 엄마에 의해 떠밀리듯
휴게실을 나온다. 엄마, 삼촌도 강제로 밀어내다시피 방으로 보낸다.
다 들여보내곤 1층 복도 전등을 몇개 꺼서 약간 어둡게 한다.
어둡고 조용해진 복도.
잠시후, 미나가 문을 살짝 열어 문틈으로 복도를 내다본다.
101. 몽타쥬
카운터에 시계가 12시를 가리킨다.
동시에 고개를 들어 시계를 올려다 보는 엄마와 아버지.
때를 같이해 휴게실에 있는 오래된 괘종 시계가 땡 땡 종을 치기 시
작한다.
-살그머니 자기 방을 나가려던 미나가 크게 울리는 종소리에 깜짝 놀라 멈칫
하면,
-잠들어있는 박회장 (종소리는 계속 울리고)
-미수 혼자 침대에 누워 있고 미나, 언제 들어왔는지 문 앞에 가슴을
진정시 키며 서있다.
-잠자리에 들어서 책을 보던 은주는 책을 덮고 불을 낮추며 잠을 청하려 한다.
다시 카운터, 시계의 촛침이 30초쯤 지났을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다.
동시에 엄마와 아버지, 시계에서 현관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현관이 확 열리며 우비를 걸친 남자 하나가 들어선다. 오순경이다.
카운터에 서면 엄마가 긴장을 하며 202호 키를 준다.
그리곤 소리가 나지 않게 그에게 201호라는 입모양을 하며 벙긋 벙긋
한다.
오순경, 엄마의 그런 행동을 의아하게 쳐다본다.
아버지는 나무라듯 엄마를 툭 치더니 오순경에게 웃으며 다 알고 있
다는 듯한 표정을 지우며 고개를 크게 끄덕끄덕 거린다.
오순경은 키를 받아들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오순경 : 얼마에요?
아버지 : 고생하셨습니다.
오순경 : ? ...... 얼마예요.
아버지 : 됐습니다. 머, 그냥 올라 가세요.
엄마 : 수고가 많으십니다. 그냥 올라 가세요.
오순경 : 이거 다 아시는구나. 어떻게 된거야?
아버지 : 머, 시원한 맥주라도 갖다 드릴까요?
오순경 : 이것도 근문데, 됐어요. 근무중엔 안마셔요.
아버지 : (감동한듯) 정말, 프로시군요.
오순경, 계속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2층으로 올라간다.
엄마와 아버지 크게 한숨을 쉬며 가슴을 쓸어 내린다.
아버지 : 거 아는체 하지 말라니까.
엄마 : 아이구, 일하러 온 사람한테 "맥주 갖다 드릴까요" 한
사람 은 누구구?
아버지 : 씨끄러, 문걸고 들어가 자자구.
영민이 깨워서 여기 와서 자라구 그래.
102. 미나의 방 / 밤
미나가 방안을 왔다 갔다 한다.
언니를 깨우려고 흔들어 보지만 일어나지 않는다.
골치 아픈 표정으로 머릴 감싼다.
103. 산장현관 앞 / 시간이 조금 경과
비는 계속 내리고 누군가 현관 앞으로 다가온다.
문을 천천히 무겁게 두드린다. 다시 문을 두드린다.
잠시 후, 영민이 졸린 눈을 비비며 문을 열어준다.
빗속의 사내, 현관으로 들어선다. 엉덩이 쪽에 진흙이 묻어있다.
아까 미끄러졌던 사람이다.
영민, 객실 체크 상황을 대충 흝어보며 203호 키를 준다.
남자, 키를 받아쥐고 2층으로 올라가려고 할깨, 영민이 사내를 부른다.
영민 : 3만원 입니다.
킬러 : 뭐야?
영민 : 뭐라뇨? 3만원 주셔야죠.
킬러 : (인상을 쓰며) 연락 못 받았어?
영민 : 무슨 연락요? 3만원 주세요. (영민도 성질이 조금 뻗친
다)
킬러 : 12시 까지 오기로 되어 있는데, 오다가 길을 잘못 들
어서 좀 늦은거야.
영민 : (시계를 힐끔 본다. 1시를 가리킨다) 그래도 3만원 주
셔야 되요.
킬러, 불쾌한 인상을 지우며 3만원을 던지듯 꺼내준다.
킬러 : 나 참, ...방번호 확실한거지?
영민 : (영민이도 성질이 나서 인상을 쓴다) ...예.
킬러, 인상을 잔뜩 쓰고 있는 영민을 보곤 투덜대며 2층으로 올라간
다.
영민 : 씨팔놈이 어디다가 반말이야. 콱- 죽여버릴까 보다.
좃 같은 새끼.
사내 올라가고 마나가 다시 문을 삐꼼 열면서 나온다.
살그머니 삼촌방 앞에 선다.
망설이다가 삼촌방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삼촌이 몹시 흥분된 상태로 문을 거칠게 열고 나온다.
복도에서 왔다갔다 안절부절 하다가 카운터로 다가와 격한 감정을 표
출한다.
삼촌 : 정말 니네 엄마 아버진 너무하는거 아니냐?
(다이얼을 201호로 돌린다)
영민 : ....?
삼촌 : (작은 소리로 한 손으로 수화기를 가린다) 은주씨세요.
아무말 마시고 조용히 제말만 들으세요.
104. 몽타쥬 / 같은 시간
-잠에 골아 떨어진 오순경.
-창고에선 밧줄에 손이 묶여있는 장씨는 졸고 있다가 빗물이 얼굴로
떨어지 자 잠에서 깬 뒤 기둥에서 한 바퀴 돌아 문쪽으로 몸을 돌
린다.
-킬러는 살인도구를 방에 펼쳐 놓는다. 마치 장엄한 종교의식과도 같
다.
예리한 여러종류의 칼, 밧줄, 포대, 줄톱 등을 가지런히 놓는다.
도에서 인기척이 들리자 불을 끄고 잽싸게 문틈에 귀를 기울인다.
잠잠해지면 다시 불을 키고 정좌부좌로 크게 한번 호흡을 하고 도구
들을 정 비한다.
-2층의 발소리에 천정을 올려다보는 미나.
-현관 입구에 은주가 박회장을 부축하고 서있고 빗속을 헤치며 삼촌이
창고로 뛰어간다.
105. 창고 / 같은 시간
창고 문이 열리면서 빗물이 세차게 들이치자 겨우 잠을 청하던 장씨
는 들이치는 빗물에 온몸이 젖는다. 삼촌은 서두르면서도 순간적으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워 보인다.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건다. 헤드라이
트를 키지 않은채 조용히 차를 움직인다.비는 계속 억수같이 쏟아지
고.
106. 산장 뒷 공터 / 같은 시간
번개와 천둥이 치고 빗물이 시체를 매장한 흙이 비탈길로 씻겨져 내
려가면 조금씩 드러나는 시체의 손.
107. 산장 2층 / 같은 시간
킬러, 조용히 문을 열어본다. 203호를 빠져나와 고양이 걸음으로 202호
앞에 선다. 만능키로 202호 문을 조심히 열곤 다시 큰 호흡을 나직히
한다.
소리가 나지 않게 문을 약간 들면서 열며 발 하나를 옮겨 놓는다.
그리고 또 한동안 정지, 다시 한 발을 들여 놓으며 문을 조용히 닫는
다.
쿵 하는 소리가 빗소리에 가려져 묵직하고 희미하게 들린다.
잠시 후, 킬러는 손에 피를 묻힌채 당황스런 표정으로 나온다.
얼어붙은듯 꼼짝없이 202호 앞에 서 있다가 201호를 바라본다.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201호 문앞으로 다가가 손잡이를 돌려본다.
힘없이 돌아가며 열린다. 놀라는 킬러.
108. 산 길 / 같은 시간
폭우속을 봉고차 한대가 위험하게 산길을 질주한다.
그 안에 은주와 박회장이 뒷 좌석에 타고 있다.
109. 산장 2층 / 같은 시간
킬러, 201호 문을 열고 불을 켠다.
미쳐 챙기지 못한 은주의 옷가지와 소지품 몇개가 어지럽게 뒹굴고
있다.
킬러의 입에 나지막히 욕지거리가 신음과 함께 섞여 나온다.
당혹감과 낭패감으로 얼굴이 일그러진다. 일이 크게 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도망치듯 빠져나와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불을 켜고 도구들을 가방안에 급하게 쓸어 넣는데 등뒤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뒤돌아보면, 영민이가 바로 등뒤에서 삽을 들고 서있다.
킬러, 영민이를 독기에 찬 눈으로 날카롭게 쏘아본다.
영민 : 뭘 그렇게 무섭게 쳐다보나?
순간적으로 킬러는 칼을 날린다. 칼이 영민의 머리를 스치며 문에 강
하게 꽃힌다. 그와 동시에 덩! 소리를 내며 영민이가 내리친 삽에 머
리를 맞고 쓰러지는 킬러.
영민 : 놀랬지!
한방에 쓰러지는 킬러, 다시 일어설 줄 모른다.
영민 : 자아식, 보기보단 더럽게 약골이네.
그러게 왜 처음 보는 사람한테 반말이야? 자식아.
영민, 침대 모서리에 걸터 앉아 담배를 하나 꺼내 문다.
꼼짝도 안하는 킬러를 한동안 바라보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발로 킬
러를 건드려 본다. 꼼짝도 안하는 킬러.
110. 읍내 / 약간의 시간 경과
시외버스 터미널 부근 여관에 은주와 회장을 내려주는 삼촌.
삼촌 : 조금만 있으면 서울 가는 첫차를 탈 수 있을거에요.
그동안이라도 여기서 조금 쉬었다 가세요.
은주 : 창구씨, 정말 뭐라고 감사해야 옳을지 모르겠어요.
삼촌 : 아니에요. 어서 들어가세요. 난 또 빨리 가봐야 해요.
(몸을 돌릴 때)
은주 : 창구씨!
창구, 돌아보면 은주는 메모지를 꺼내 자기 연락처를 써준다.
은주 : 무슨 어려운 일이 있으면 꼭 연락 주세요.
창구 : 예, 저... 이렇게 은주씨를 도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저한 텐 영광입니다.
은주, 갑자기 창구에게 다가가 입맞춤을 한다.
창구, 느닷없는 은주의 키스에 정신이 없다.
창구, 쪽지를 받아쥐고 봉고차에 오른다. 차가 한 바퀴를 돌아 멀어질
때까지 바라보다 회장을 부축하며 여관에 들어간다.
111. 산장 / 동트기 바로 전
영민이가 우의를 입고 킬러를 질질 끌고 나온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 퍼붓는다.
영민이는 비때문인지 킬러의 육중한 체격 때문인지 낑낑거리며 힘들
어 한다.
이때, 봉고차가 산장으로 들어오며 멈춘다.삼촌, 내려서 다가온다.
삼촌 : 죽었어?
영민 : ...그런거 같은데, 어떡하지?
삼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이다. 그러다 킬러를 차에 실는다.
영민 : 어떡할려구요?
삼촌 : 계곡에다 던져 버리자.
영민 : 안묻고? ...어디로 가지?
삼촌 :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용천계곡이 좀 깊으니까 그 쪽
으로 가자.
영민과 삼촌은 차에 올라타 다시 산장을 빠져 나간다.
112. 산장 뒷 공터 / 같은 시간
빗물에 점점 더 쓸려 내려가는 흙.
무너져 내리는 흙과 함께 여기저기 망령처럼 시신들이 드러난다.
113. 산장 마당 / 이른 아침
비는 완전히 멎었다.
날은 거짓말처럼 활짝 개어 아침 햇살이 눈부실 정도다.
밤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미수가 단잠에서 깨어나
만족스러운듯 기지개를 활짝 키며 마당으로 나온다.
마당에 나와 하품을 크게 하며 나오는 순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다.
동공이 커지며 놀란 표정을 지은채 얼어붙은듯 서 있다.
후다닥 뛰어 들어간다.
밤새, 빗물에 쓸려 뒷동산에 매장했던 시체들이 끔찍한 형태로 마당
여기저기 널려져 있다. 잠시 후, 아버지가 뛰어나와 경악한다.
마당으로 나온 엄마와 아버지는 미친듯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여
기저기 널려져 있는 시체들을 창고 앞으로 옮겨 놓는다. 완전히 패닉
상태다.
아버지 : 영민이랑 창구 좀 불러와!
엄마, 뛰어 들어간다.
아버지, 시체 한구 한구를 지하 창고 앞에 힘들게 갖다 놓곤 문을 여
는데 봉고차가 없어진 것을 발견한다. 밧줄에 묶인 장씨는 밤새도록
비때문에 고생했는지 시체보다 더 끔찍한 모습으로 아버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아버지가 입에 자갈을 풀어준다.
아버지 :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 봉고차를 누가 몰고 나갔어?
장씨 : (몸을 조금 떨며) 아..드님이랑, 동생 되시는 분이랑 같
이 나가던데요.
아버지 : (어금니를 깨물며) 이 자식들이 ...너 이리와!
아버지는 다시 장씨 입에 자갈을 물리고 시체들을 볼까봐 이번엔 눈
까지 가린다. 이때, 산장 2층에서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들린다.
114. 2층 202호 / 같은 시간
엄마가 202호 문앞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있다. 아버지가 허겁지겁
뛰어올라와 보면 오순경의 목에 칼이 꽂힌채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있
다. 미나가 뛰어 올라오자 엄마는 팔을 잡아당겨 보지 못하게 한다.
아버지 : (놀란 표정으로)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2층의 각 방을 열어보면, 아무도 없다.
아버지 : 이 자식들이 무슨 짓을 하고 어디들 간거야?
이때, 밖에서 차 들어오는 소리가 난다. 아버지, 창가로 가서 확인한
다.
115. 창고 앞 / 같은 시간
아버지와 엄마가 다시 뛰어 나온다.
창구와 영민이가 차에서 내린다. 아버지, 그들을 노려본다.
아버지 : 어디 갔다 오는거야? ...노인네랑 딸은 어디 갔어?
삼촌 : ......
아버지, 삼촌에게 와락 달려들어 멱살을 잡는다.
아버지 : 빨리 말해! 말안해! 이자식아, 정말 내 손에 죽고 싶어
서 이래?
엄마 : 아이구, 삼촌, 빨리 얘기하세요. 이러지 마시구.
삼촌 : 이거 놓으세요.
아버지 : 뭐야? 근데 이 자식이!
눈과 입이 가린채 장씨는 험악한 분위기 때문에 잔뜩 위축되어 있다.
아버지, 삼촌의 얼굴을 후려친다.
나가 동그라지는 삼촌, 다시 일어서서 아버지를 똑바로 쳐다본다.
삼촌 : 나도 죽여서 땅에 묻어 보세요!
그런 삼촌을 다시 걷어차는 아버지. 영민이 달려들어 아버지를 말린
다.
그런 영민이도 밀어 버린다. 실성한 사람처럼 길길이 날뛰는 아버지.
그는 이성을 잃고 성격도 점점 더 포악해져 있는 상태다.
창고 문을 열고 삽을 드는 아버지때문에 장씨가 기겁을 하고 몸을 웅
크린다.
다시 달려드는 영민을 힘껏 밀쳐내며 뛰어 나간다. 그때, 영민이 자세
를 잡지 못하고 돌기둥에 머릴 부딪히고 장씨 위로 쓰러진다.
엄마 : 영민아!!
엄마, 영민에게 달려가고 아버지,뒤를 돌아보면 영민의 머리에 피가
흐른다.
아버지 : 빨리 방으로 옮겨!
(고개를 떨구더니 장씨를 가리키며)
저 사람도 2층 골방으로 옮겨놔.
아버지, 힘없이 삽을 떨어뜨리며 산장 안으로 터벅터벅 들어간다.
116. 산장 휴게실 / 오후
엠브란스 소리가 뚝 그치고 구급대원들이 들이닥친다.
영민이 머리에 둘러진 수건이 피가 흥건하게 젖어있다.
미수와 미나가 옆에서 울고 있고 아버지와 엄마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영민을
바라본다.
대원 : 이름이 뭐에요?
어버지 : 강대구입니다.
대원 : 강대구씨, 정신차리세요! 내말 들려요?
아버지 : 그...그건 제 이름입니다.
대원 : (신경질적으로) 누가 아저씨 이름 물어봤어요?
급해 죽겠는데. 환자 말이에요.
엄마 : 강영민입니다.
대원 : 강영민씨! 내 말 들려요?
안되겠어. 들것 가지고 와. 응급실로 옮기자구.
다른 구급대원이 들것을 가지고 와서 영민을 조심히 옮긴다.
대원 : 자, 식구들 중에 누가 같이 가실거에요?
삼촌 : 제가 겠습니다.
미나 : 나두 갈래.
미수 : 저두요.
대원 : 차가 비좁으니 한 사람만 가세요.
삼촌 : 저희 봉고차가 있으니까 그거 타고 가겠습니다.
대원 : 그럼, 서둘러요. 갑시다.
구급대원과 아이들 나가고 엄마가 따라 나가려 하자 아버지가 잡는다.
엄마, 아버지를 쳐다본다.
아버지 : 당신은 나랑 할일이 있으니까 여기 남아 있어.
117. 산 길 / 같은 시간
이장이 진흙창이 된 산길을 오르고 있다.
산장쪽으로 난 차바퀴 자국을 보고 고개를 갸웃한다.
차바퀴 자국은 하나는 시내쪽에서, 하나는 용천쪽에서 나있는 것이 이
상한 생각이 들어서인지 턱밑을 쓰다듬으며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것
같다. 시내쪽으로 나 있는 바퀴자국을 따라 바라보다 파인 땅의 상태
를 만져보더니 저멀리 시내로 들어가는 도로를 바라보면 엠브란스 한
대가 내달리는게 보인다.
118. 산장 카운터 / 약간의 시간 경과
이장이 들어선다. 카운터엔 아무도 없다. 산장은 쥐죽은듯 고요하기만
하다.
이장 : 거, 아무도 없는게요? 이 양반들이 어딜 갔나?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인지 이장은 2층으로 조심히 올라간다.
2층에 올라선 이장. 2층 복도가 휑한 느낌이 들어 어쩐지 불길한 예감
이다.
아무 방문을 조심히 열어보는데 마침, 아버지가 목에 칼을 맞고 온몸
이 피에 젖은 오순경을 뒤에서 안고 나오는데 오순경 목에 꽃힌 칼이
덜렁거리며 이장과 맞부딪치자 기겁을 하며 뒤로 자빠진다.
이장 : 아이고- 이게 뭐야? (이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아버지 : 아휴- 깜짝이야. 오셨어요?
(시체를 한쪽 벽에 비스듬히 내려놓는다.)
일이 이렇게 됐습니다.
이장 : (시체를 보며 숨이 막혀 말도 제대로 못할 지경으로)
이..이게..누구..누구요?
아버지 : 예? 누..누구라니요?
이장 : 이..이..사람, 오..오,오순경 아니여?
아버지 : (머리 끝이 쭈삣 선다) 무슨 말씀이세요? ...오순경이라
뇨?
이장 : 아이고- 이사람아, 우리가 큰 실수를 저질렀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아이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실성한 사람처럼) 우리 아버님은 어디에 계시나?
은주년은 어디에 있어? 이사람 어디 갔나?
어제 온다던 사람, 그 사람은 어디 갔어?
엄마 : 이 사람이 그 사람이 아니라면 이 사람은 뭐야?
이장 : (입이 바싹 마르는지 연신 혀로 침을 묻힌다)
이거 큰일일세. 큰일이야.
아버지 : 아, 그러고만 있지 말고 얘기를 똑바로 해봐요!
이장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초점없는 눈동자로 엉금엉금 기다시피 나
가려 한다. 아버지는 일이 크게 빗나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아버지의 머리는 혼돈스러워져 급기야 그의 얼굴이 독살스러워진다.
아버지 : 이것봐요! 지금 뭐하느거야?
이장 : 나..나 집으로 가야겠네. (이장이 정신을 차린듯 일어선
다)
아버지 : 뭐라고?
엄마가 와락 달려들어 이장의 다리를 붙잡는다. 이장이 힘을 못쓰고
쿵 하며 쓰러진다. 그러다가 발길질을 하며 엄마를 걷어찬다. 엄마가
비명을 지르며 나가 동그라진다.
아버지의 얼굴이 파랗게 돌변, 달려들어 이장의 멱살을 잡아채어 일으
킨다.
아버지 : 이 영감탱이가 일 터지니까 혼자 내뺄려구?
이장, 심장에 통증이 오는지 가슴을 부여 잡는다.
아버지 : 이제 어떡할꺼야? 말해! 말해! 이 영감탱이야!
이장이 있는 힘을 다해 아버지의 목을 죄며 밀어 제칠려고 한다.
아버지, 이장의 머리를 벽에다 세차게 부딪치게 한다.
이장이 쓰러지며 오순경의 목에서 칼을 있는 힘을 다해 뽑는다.
피가 벌컥 쏫아진다. 엄마가 다시 달려들어 이장의 손을 깨문다.
이장이 엄마의 눈을 칼로 지른다. 괴성을 지르는 엄마.
아버지가 소스라치며 달려들자 아버지의 팔뚝에 칼을 박는다.
아버지가 비명을 지르며 떨어져 나가 어디론가 도망친다.
이장이 사력을 다해 기면서 그곳을 빠져 나가려 한다.
이장이 전화기로 다가가 수화기를 들 때
이장의 손에 도끼가 내리 찍히며 전화기와 함께 박살난다.
아버진 이장의 멱살을 다시 잡고 방으로 끌고 들어와 유리창으로 던져
버린다.
유리창이 이장 머리에 산산조각이 나고 그의 얼굴이 피범벅이 되버린
다.
복도에선 얼굴에 피를 두집어쓴 엄마가 소름 끼치는 괴성을 지르며
발광하듯 뛰어 다닌다.
아버지는 잔인하고 독살스런 얼굴로 이장의 얼굴을 내리 밟는다.
얼굴이 으깨진다. 피가 튀고 깨진 유리조각으로 아수라장이 되버린다.
이장과 오순경을 양쪽으로 힘겹게 끌고 내려가던 아버지는, 계속 복도
를 발광하며 돌아다니는 엄마를 붙잡기 위해 달려간다.
엄마는 아버지의 손끝이 자기 몸에 닿자 더더욱 기괴한 비명을 지르
며 뿌리치며 복도 끝으로 뛰어간다.
아버지가 소리친다.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엄마는 복도 끝으로 마구 내
달리더니 2층 베란다 유리창을 박살내며 추락한다.
119. 지서 / 스카이 라인
초조하게 시계를 들여다보는 주임. 지포 라이터를 만지작 거린다.
주임 : 얘는 , 왜 연락을 안하는 거야? 오순경 집에 전화해
봐!
박순경 : 전화 안받는데요.
주임 : 산장에 해봐.
120. 2층 골방 / 같은 시간
장씨가 계속 밧줄을 잡아 당기자 침대 다리가 흔들거리더니 뚝 부러
진다.
일단 몸은 자유로워진 장씨는 얼굴을 침대에다 비비며 눈가리개를 풀
려고 한다. 쉽지가 않자 포기하고는 등뒤로 해서 벽을 조심조심 손으
로 탄다.
벽을 타다가 오디오의 스위치를 건들게 된다. 갑자기 음악소리가 크게
들린다. 깜딱 놀란 장씨는 서둘러 스위치를 아무거나 마구 눌러댄다.
음악이 이것 저것 바뀌었다 커졌다 작아졌다 한다. 엉겹결에 잡아 당
긴다.
음악이 꺼지고 장씨는 한숨을 놓는다.
다시 벽을 타는데 이번엔 전등 스위치를 켠다.
-이때 밖에서는 아버지가 시체들을 지하로 옮기는데 그 뒤로 저멀리 2
층 한 쪽 방에서 불이 탁 켜지는게 보인다. 아버지가 그쪽으로 돌아
서기 바로 직 전 다시 불이 나간다.
-다시,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드는 장씨.
이윽고 손잡이를 돌려 복도로 나가게 된다.
장씨는 계단의 반대쪽인 -약한 석약빛이 베란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
자 그쪽 으로 몸을 움직인다.
-옥외 계단으로 나간다. 베란다로 나온 장씨는 아찔하게 서있다.
발을 한번이라도 잘못 움직이면 땅으로 떨어진다.
장씨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121. 산장 카운터 / 같은 시간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아무도 받지 않는다.
소리가 멈추자, 누군가 수화기를 조용히 내려 놓는다. 삼촌이다.
그때, 베란다쪽으로 뭔가가 쿵 하고 육중하게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
다.
삼촌은 잠시 귀를 기울이지만 소리가 이어지지 않자 신경을 끈다.
조심스런 삼촌의 행동이 자못 긴장감을 준다.
122. 지하 창고 / 초져녁
아버지, 형편없는 몰골에 지친듯 피로한 기색으로 지하실로 내려온다.
손에는 석유통이 들려져 있다. 바닥에 나무들을 깔고 시체 하나 하나
를 쌓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이사이에 마른 장작등을 집어 넣는다.
지하 창살 틈으로 누군가 아버지를 주시하고 있다. 엄마의 시체를 보
는 그의 동공이 커진다. 아버지, 시체들의 썩는 냄새가 요동치자 인상
을 찌푸리며 그 위에다 석유를 붓는다. 한통을 다 쏟아 붓던 아버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발 아래를 쳐다본다. 석유가 바닥에 흥건하게 젖
어있다. 흠칫 놀란다.
뒤를 보면 철문 틈으로 석유가 졸졸 흐르고 있고 창고 안은 온통 석
유로 가득하다. 그때, 철문 잠기는 소리가 날카롭게 들린다.
아버지 : 누구야?
철문 창 사이로 어둡게 얼굴 하나가 스친다.
아버지 : 뭐하는 짓이야? 문 열어!! 창구야! 창구야!
삼촌, 신문지에 불을 붙여 철문 틈으로 던진다. 경악하는 아버지.
바닥에 떨어진 불똥이 석유를 타고 들어가 아버지 다리에 불이 붙는
다.
엉겹결에 입으로 후- 하고 분다.
확- 하고 불길이 치솟는다. 소름끼치는 비명소리가 귀를 때린다.
123. 산장마당 / 초저녁
삼촌이 넔나간 표정으로 마당 한가운데 선다.
그 뒤로 검은 연기와 불꽃이 피어난다.
삼촌은 금방 울것 같은 얼굴로 두리번 거리며 무언가를 찾는다.
삼촌 : 바우야! 바우야!
(삼촌은 울부짖는 소리로 바우를 찾으며 무엇인가를
찾는다)
124. 산장전경 / 저녁
텅빈 산장.
검은 연기와 불길이 더욱 치솟는다.
125. 서울, 은주의 집 / 아침
차임벨 소리가 두번 울린다.
은주, 방문을 열고 나온다.
렌즈 구멍을 통해 밖을 확인하곤 급하게 문을 연다.
문을 열면, 미수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얼굴로 미나와 서
있다.
126. 산길 / 아침
장씨가 지칠대로 지쳐 조심조심 산길을 내려가고 있는데 무슨 소리에
잠깐 멈칫한다.
귀를 쫑긋하고 잘 들어보니 맹수가 자기 앞에서 으르렁 거리는 소리
다.
장씨는 잔뜩 겁을 집어먹고 몸을 숨기며 웅크린다.
그 앞에 바우가 딱 버틴채, 장씨가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사납게
짖어 꼼짝 못하게 만든다.
바우가 저 멀리서 무슨 소리가 들려오자 살며시 다른 곳으로 옮긴다.
장씨는 계속 꼼짝 못하고 몸을 웅크리고 있고,
저 멀리서 지서 주임이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게 아스라히 보인다.
127. 병실 / 아침
영민이가 병실에 누워 텔레비젼을 보고 있다.
텔레비젼에서는 무장간첩 수색 속보가 취재 기자의 다급한 목소리로
흘러 나온다. 멍하니 바라보던 영민이가 갑자기 벌떡 상체를 세운다.
잔당중 한명으로 보이는 시신이 계곡에서 발견되었다는 속보다.
카메라가 시신 쪽으로 다가가면, 놀란 영민의 표정이 실룩거린다.
취재기자는 얼굴이 깨어져 나가 신원을 확인할 수 없지만 소지품과
차림새로 비추어 침투 잔당중 한 사람이 틀림없다는 군 관계자의 상
황보고를 인터뷰하고 있다. 영민은 그 시체가 킬러임을 알곤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어댄다.
병실에 있던 다른 사람들과 간호원이 영민이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본
다.
영민은 배를 잡으며 계속 웃어댄다.
128. 은주의 집 / 저녁
미수와 미나, 은주와 회장이 저녁을 먹고 있다.
미나, 밥을 다 먹고는 시계를 쳐다본다.
혼자 식탁을 빠져나와 거실로 가서는 텔레비젼을 켠다.
화면 밝아지면 미나가 즐겨 보는 수사물 시리즈가 방송되고 있다.
-화면안
벽에는 피로 쫀드기... 쫀드기... 이렇게 어지럽게 씌여있다.
시체는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다.
강반장,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소스라치게 놀란다.
-화면밖
미나의 동공이 커지면서 경악스러운 표정이 되어버린다.
-화면안
강반장이 고개를 들어 천천히 돌리면 액자가 있다.
그 액자 안에 사진은 미나네 산장 사진이다.
-화면밖
미나가 비명소리를 지른다.
미수와 은주, 놀래서 뛰어온다.
미나는 계속 울부짖는다.
앤드 타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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