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러시아 형식주의의 문학사적 가치
얼마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우리에게 러시아 형식주의 문학이론은 무척 생소한 것이었다. 실상
구미에 있어서도 195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것은 현대 슬라브 문학비평을 연구하는 소수의 사람
들 사이에서나 알려져 있던 비평의 유파에 불과했다. 이 유파의 해묵은 저자들이 다시금 발굴·번
역·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부터이다. 그러나 70년대에 들어와서는 그것이 현대의 문
학 이론의 가장 중심적인 과제를 모범적으로 다루어 주었다는 사실이 인정될 뿐 아니라, 요즘 자주
거론되는 구조라서 현대 문학 이론의 가장 강력한 체계의 하나를 알기 위해서라도 러시아 형식주
의를 알아보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2. 러시아 형식주의 이론의 성립과 역사적 발전
2-1. 러시아 형식주의 이론의 성립
1) 러시아 형식주의 이론의 두 선구자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유럽의 문학 연구를 주도하던 방법은 자연과학적 인과율을 문학 현상에
서 찾아보려는 실증주의 방법이었다. 러시아 문학도 물론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특히 형식주의
이론 성립을 위해 크게 다행이었던 일은 19세기 말에 알렉산드로 포테브냐aleksandr
potebnya(1835-1891)라는 선구적 문학이론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시와 산문은 언어적
현상'이라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진취적인 전제하에 문학이론을 펴나간 학자였다. 그는 문학을 사상
과 감정의 표현, 또는 사회의 반영으로 보던 통속적 사고 방법에서 떠나 있었던 것이다. 말과 생각
의 관계를 고찰한 결과, 그는 생각이 말을 종속적으로 지배하여 그 기능을 순수한 외연적 의미
denotation에 한정시키려는 경향이 있는 반면, 말은 그 풍부한 내포적 의미Connotation의 잠재력
을 실현하기 위하여 언어 표상verbal sign의 절대적 자율을 지향한다고 결론지었다. 말에 대한 이
러한 전제 하에서, 그는 시(문학)의 기능을 말의 근본 속성의 가장 창조적인 발휘로 보았다. 시는
말이 생각(개념화의 과정)의 적대적인 압력에도 불구하고 그 자율성을 옹호하기 위해 사용한 강력
한 방어 기제defence mechanism라는 것이다. 실제에 있어 시의 창조적 기능은 이미지를 형성할
때 최고도로 발휘된다고 그는 보았다. 시의 이미지에 시의 근본 능력이 집약되는 셈이다. 이미지,
특히 비유에 의하여 시는 일반 산문의 추상적, 분석적 경향을 극복하여 구체성과 종합성을 띤다.
이러한 사상은 유럽의 낭만주의 내지 상징주의 문학관의 일단으로서 특히 독창적 이론이라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르나, 시의 언어적 성격에 대한 끈질긴 강조는 남다른 데가 있다.
또 한사람의 선구자 알렉산드로 베셀레프스키Aleksandr Veselevskij(1838-1906)는 당시 유
행하던 실증주의적 문학사와는 성격을 달리하는 문학적 문학사를 구성하려고 애쓴 학자였다. 그는
문학사를 단지 문학에 반영된 교육·문화·정치·사회·사상의 역사로만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즉 문학사에서 역사 시학historical poetics으로의 전이를 주장했던 것이다. '역사 시학'은 문학적
생산품(작품)의 총합체를 그 제작자(작가)와 소비자(독자)와의 연관에서 일단 격리시켜 다룬다. 문
학 작품을 사상·이야기·기교·이미지 등의 객관적 구성요소들로 분배하여 그 구성 요소들이 한
전통 안에서 어떻게 변모·반복되고 있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역사 시학은 개인의 독
창성보다도 문학적 전통과 같은 초개인적 요소들의 시대적 연관 관계에 주의를 집중하게 된다. 베
셀레프스키의 이 역사 시학은 분석적이면서도 역사적이라는 점에서 특별히 우리의 관심을 환기시
키는 바가 있다.
위의 두 선구자의 이론은 당대에는 동조가를 별로 얻지 못했었다. 무릇 새로운 문학이론은 새로
운 문예사조와 어울릴 때 크게 빛을 보는 법이다. 러시아 문학은 20세기에 들어와서 이른바 상징
주의 시대를 맞았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상징주의는 단지 창작상의 유행이었을 뿐만 아니라 문
학이론은 물론 종합적 세계관에 있어서의 전면적 변혁을 동반하였다.
2) 러시아 형식주의의 탄생
전위적임을 표방하는 문예사조의 경우, 창작가는 이론가를 겸하는 수가 종종 있다. 러시아의 상
징주의 문학운동에 있어서도 시인이 창작가와 아울러 이론가를 겸하는 일이 있게 되었다. 전위적
창작가가 종래의 문학이론으로써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문학 현상에 대하여 '작업실로부터의 직
접적인 작업 보고서'를 제출해 준다는 것은 문학 세계를 위하여 아주 유익한 일이다.
상징주의자들은 대체로 문학의 언어의 문제에 대하여 민감하였다. 언어의 암시성을 최대 한도로
활용하려 했던 유파가 상징주의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언어의 암시성은 그 음악성 - 리듬
·화음·멜로디 등 - 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러시아 문학 이론에서 종래의
상식적인 운율론보다 훨씬 심화되고 세밀한 논의가 전개되기 시작했다. 또한 시의 회화적 성격도
상징주의에서 강조하는 바였던 만큼, 이미지·비유·상징 등에 대한 이론적 관심도 높아졌다.
러시아 상징주의는 얼마 안 있어 러시아 미래파fururism{{) 미래파는 정식으로 1909년 이팔리아의 시인인 마리네티가 선언물을 발표함으로써 출발한 현대
시 운동의 하나로, 유럽 각 지역에 파급되었었다. 러시아에서도 일시 성행하였는데, 러시아 미래파
는 입체파의 다다이즘 같은 이질적 유파와도 뒤섞였다. 미래파의 근본 강령은 19세기적 낭만주의
의 잔재 및 상징주의자들의 정신 편향성을 강력히 배제하고 인간 현실적인 감정·갈등·투쟁·희
열 등을 20세기적 색체와 속도를 가진 새로운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마야코프스키는 러시아
의 대표적 미래파 시인이었다.
}}에게 공격을 받았다. 미래파는 무엇보다도 상징주의의 신비적 경향, 막연한 암시성에 대하여 반발하고, 말의 그 말스러움, 그 현실적인 소리, 리듬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미래파는 시의 언어에 대하여 더욱 구체적인 관심을 기울여, 말은 말 그 자체로서 귀중한 존재임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그 기호적 기능, 또는 신비적 암시성 때문에 말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철저히 배격했던 것이다. 러시아 미래파는 그 스스로 창작가를 겸한 이론가가 있기도 하
였지만, 그들의 문학을 옹호하는 일단의 이론가들을 따로 가질 수 있었다. 이들이 바로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었다.
3. 러시아 형식주의의 내용
3-1. 초기 러시아 형식주의: 시의 음운론 연구
미래의 언어적 실험에 대한 발랄한 흥미와 재래식의 신비주의·정신주의 및 실증주의·과학주의
에 입각한 문학 이론에 대한 강한 염오가 젊은 문학도로 하여금 새로운 문학이론의 수립에 적극성
을 띠게 하였다. 1915년 모스크바 대학의 젊은 학생들 일단이 「모스크바 언어학회」를 결성하였
고, 다음 해에는 패트로그라드(현재의 레닌그라드)의 청년학도들이 「시어 연구회」를 형성하였다.
이로써 이른바 형식주의는 정식으로 출범하였다.
이 두 집단의 구성원들은 권위있는 교수와 학자들 밑에서 아직 공부를 하고 있던 20세 전후의
소년배였지만 후일 모두 이름난 학자나 비평가들이 되었을 만큼 정수들이었다. 모스크바 언어학회
의 회장은 후일 「프라그 언어학회」를 창시하는데 공헌한 로만 야콥슨Roman Jakobson이었는
데 후일 미국에 정착하여 하버드 대학 교수로써 명망을 얻는다. 모스크바 언어학회는 점차로 순수
언어학으로부터 시어의 문제로 관심을 집중시켰다. 야콥슨은 당시 한 미래파 시인의 작품을 예로
들어 문학 언어의 특질을 예리하게 파헤쳤다. 이로써 당대 거두인 마야코프스키가 그 언어학회의
집회에 자주 참석했다는 사실도 시사하는 바 적지 않다. 페트로그라드의 「오포야즈」도 전위파
시인들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었고 또한 언어에 대한 관심도 높았으나, 모스크바 언어학회에 비
하여 보다 이질적인 집단이었다. 모스크바 언어학회가 언어학적 입장에서 문학이론에 흥미를 가졌
음에 반하여 오프야츠는 언어학자와 비평가들이 뒤섞여 있었다.
초기의 형식주의는 종래의 모든 문학권-교훈주의, 상징주의의 정신 편향성, 심리주의, 사회학적
관점, 과학적 인과율 등등-을 공격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특히 상징주의의 "유사 종교적, 형이상학
적 경향이 자연과학적 실증주의의 파토스적 재현에 불과하다"고 하여 공격하였다. 형식주의자들은
문학적 사실들에 대한 객관적, 기술적 태도를 고취하였는데, 문학적 사실이란 단적으로 말해서 문
학 작품의 언어적 사실을 뜻했다. 그러나 언어를 종래 개념대로 단지 의미의 전달수단으로 본 것이
아니라 언어 자체가 그대로 가치를 함유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일관하였다. 언어가 단순한 의미 전
달의 기능을 초월하는, 즉 초의미적 가치가 있다고 볼 때, 언어의 소리, 음악성은 특별한 중요성을
띠게 된다. 형식주의자들은 바로 이러한 언어의 소리의 예술적 조직에 관심을 집중하였다. 산문 문
학에 대해서도 한 편의 글이 전달하는 내용(메시지)보다도 그것을 조직하는 특수한 장치들에 흥미
를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이러한 관심, 흥미는 주관적, 인상적 취미담의 차원에서 머물지 않고 합
리적인 체계와 이론의 차원으로 이끌어 올려졌다는 것이 아마 가장 중요한 점일 것이다.
3-2. 러시아 형식주의의 성숙기 : 시의 음운론에서 시의 의미론으로
1920년대에 들어서자 형식주의자들은 성숙기를 맞았다. 그들은 시의 언어의 특성 중 그 소리에
주로 주의를 기울이던 데서 차차 문학의 형식적 요소 일반에 대하여 시야를 넓혔다. 시의 음운론에
서 시의 의미론으로 옮겨간 것이다. 문체·구성·이미지·이야기 수법 등이 예리한 분석과 평가를
받게 되었다. 따라서 "하나의 작품은 거기에 사용된 모든 문체적 장치의 총합"이라고 선언했던 쉬
클로프스키의 초기 입장은 "한 작품의 통일성은 폐쇄된 대칭적 합일체가 아니라 하나의 역동적 통
합을 말하며 문학작품의 형식은 동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한 티냐노프의 후기 입장으로 옮겨
갔다. 시뿐만이 아니라 산문에 대한 이론적 고찰이 많아짐도 주목할 만하다. 더욱 주목할 만한 사
실은 그들이 문학의 진화과정, 즉 역사성에 대하여 이론적 접근 방법을 설득력 있게 수립했다는 것
이다. 그들은 문학사를 문학 이론과는 전혀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것 역시 문학 이론 문
제의 하나로 보았던 것이다. 그들의 문학사는 문학적 과거에 대한 흥미라기보다는 문학적인 것들의
계승과 번영의 과정에 대한 흥미에서 생겼다. 문학적 문제에 대한 역사적 접근을 시도할 때에, 그
들은 방법론적 이론화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3-3. 혁명 그리고 러시아 형식주의의 재편성
1917년은 러시아의 대혁명이 일어난 해이다. 이러한 큰 변혁 속에서 청년 학도들이 사회와 문학
을 분리시켜 문학의 문학스러움을 전대 미문의 예민한 지성과 감각으로 탐색했다는 사실은 위화감
마저 준다. 그러나 그들 중 적지 않은 수가 혁명에 동조했었고, 그들의 새 방법을 과거의 낡은 방
법에 대한 '혁명적인' 방법으로 표방했던 만큼 처음에는 혁명 주체 세력과 충돌이 별로 없었다. 그
러나 형식주의는 사회주의 문학론과 절대로 공존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1924-25년 간에 볼셰
비키의 지도자 트로츠키 자신이 「문학과 혁명」이라는 저술 속에서 한 장을 형식주의에 대한 공
격에 할애할 정도로 형식주의의 '반동성'이 인식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도 "형식주의의 방법이 합
당한 한계 내에 머물러 있다면 문학적 형식의 예술적, 심리적 특질들을 밝히는 데에 도움이 될 수
도 있다"고 시인하였다. 물론 공산주의자가 볼 때 형식주의는 결코 하나의 독자적인 포괄적 문학
관 내지 인생관이 될 수는 없었다. 공산주의의 이론상, 어떠한 인간의 노력도 사회 환경의 절대적
인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 있을 수 없다. 트로츠키는 문학과 사화와의 관련성에 대하여 상당히
소박한 개념에 머물러 있었던 당시의 형식주의의 약점을 쉽게 지적하여 공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맑시스트들처럼 문학을 단순히 사회에 대한 정확한 거울로 볼 만큼 소박한 사실 반영론
자는 아니어서 예술적 창조를 "예술의 특수한 법칙에 따라 사실을 변형, 굴절하는 것"이라고 시인
하고 그 점에 있어서 형식주의가 공헌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역시 이름난 지도자인 부하린도 형식주의를 공격하였지만, 이후의 상상력과 이해력이 부족한 볼
셰비키 선전자들의 저돌적 공격에 비하면 훨씬 관대하였다. 20년대 말에 이르러 사회주의 문학 노
선이 확정되자, 그들은 형식주의자를 부르주아·정신 박약자·도피주의자 들의 못난이로 치부해 버
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프롤레타리아 혁명 완수에 가증스런 위협으로 낙인 찍고 말았다. 이리하
여 1930년에 러시아 형식주의는 하나의 비평 운동으로서는 종언을 고하고 말았다. 다수의 형식주
의자는 '자아비판'을 통하여 과거를 청산했고, 혹은 국외로 망명했고, 혹은 문학 연구를 그만 두었
다.
3-4. 프라그 학파의 탄생, 그리고 러시아 형식주의에서 구조주의로
러시아 형식주의가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무렵이다. 모스크바 언어학회의 로만
야콥슨은 아직 공산화되지 않은 인접국 체코슬로바키아의 크라그 대학에 망명하였다. 유럽의 새로
운 언어관인 구조주의를 러시아 사람들보다 더 깊이 직접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프라하 사람들은
야콥슨의 언어학적 문학 이론에 매혹되었다. 공동의 관심사에 대한 집중적 토론이 잦아지고 심화되
자 드디어 유럽 언어학계에 크나큰 업적을 남긴 「프라그 언어학 서클」의 발족을 보게 되었다.
이 서클에는 주로 언어학자가 많았으나 문학의 언어학적 연구에도 깊이 관여하였다. 더욱이 발전된
언어 이론과 유럽 문학 자체의 문맥 속에서 문학이론은 러시아에서보다 더 공고히 할 수 있었다.
그들은 문학을 보다 더 철저히 의미론의 범주에서 다루고자 하였다.
그들의 대표적 이론가인 얀 무칼조프스키는 "예술 작품 속의 모든 요소는 기호와 의미의 측면에
서 논의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미학은 현대의 기호의 과학 즉 기호론의 일부로 간주될 수 있
다"고 하였다. 프라그 서클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문학 연구를 언어적 측면에다 국한시키고 있
던 경향에서 탈피하여 문학의 구조 속에 들어와서 문학적 기능을 감당하고 있는 문학 외적 요소들
-사상, 정치, 문화 등-에도 넓은 기호론의 적용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보았다. 그들은 구조
주의 언어학의 인간적 문맥을 살펴 문학을 전체성의 관점에서 보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드디어 러
시아 형식주의는 이른바 구조주의로 진일보하는 계기를 맞이한 것이다.
구조주의는 언어를 개별적 사실들의 집합체로서가 아니라 모든 요소들이 상호 작용하고 있는 통
일된 전체로 본다. 구조주의는 인문·사회에 관련된 모든 학문의 기본 방법이 될 수 있다. 문학 이
론도 구조주의 하에 의하여 하나의 견실한 인문과학으로 정립될 수 있다고 프라그 서클은 믿었던
것이다.{{) 현재 프랑스의 구조주의는 물론 프라그 서클의 구조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Poulet,
Richard, Blanchot, Barthes 같은 구조주의자들의 구조주의는 언어의 통괄적 시스템이라는 의미의
구조주의 관념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
구
조
주
의
의
방
법은 한 시인의 특수한 리듬과 그의 인생관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 분석해 보는 접근 방법을 제시하였다.{{) 그 두 요소는 서로 어떤 변증법적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작품의 역동적 구조를 이루는
데 기여한다고 보았다.
}}
그러나 프라그 학파 역시 1938년에 나치의 침공, 1945년 이래의 공산주의 정권 장악으로 말미암아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폴란드에도 바르샤바 대학에 폴란드 문학 서클이 생겨 러시아와 프라하의 이론을 도입, 활용하였으나 이 역시 1930년대 말에서 1940년대 말에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었다. 다행스러운 일은 모스크바와 프라그 학파의 지도자였던 야콥슨이 미국에 망명하여 계속 연구할 수 있었다는 것과 프라하의 제2세대 학자였던 르네 웰렉이 나치 침공 직전에 역시 미국으로 이주하여 그 후 형식주의, 구조주의 문학 이론의 세계적인 거인으로 성장하여 현대 절대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4. 러시아 형식주의의 기본 개념들
4-1. 실용적 언어와 문학적 언어
기법에 초점을 맞추는 러시아 형식주자들은 문학을 언어의 독특한 사용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그런 언어의 독특한 사용은 '실용적'인 언어로부터 이탈하여 왜곡시킴으로써 가능하다고 보았다.
실용적 언어는 의사 소통 행위를 위하여 사용되는 반면, 문학적 언어는 전혀 실용적인 기능을 갖지
않은 채 단순히 우리로 하여금 사물을 다르게 보도록 만들어 줄 뿐이다.
문학이 '실용적'인 언어와 구별되는 것은, 문학은 구성적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시를 가리켜 언어를 순전히 문학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즉 그들의 경
우 시란 '전적으로 음성적 조직으로 구성된 언어'에 지나지 않는다. 시에서 가장 중요한 구성적 요
소는 리듬이다. 존 단의 「聖 루시의 날에 붙이는 야상곡」의 제 2연의 한 행을 보면,
나의 모든 것은 죽었으니
For I am every dead thing
이 시를 형식주의적으로 분석한다면 이 시에 내재되어 있는 약강조의 기본적 리듬에 주목하게
될 것이다. '죽었으니dead'라는 말과 '것thing'이라는 말 사이에 한 음절이 생략됨으로써 우리가 기
대했던 리듬이 깨뜨려지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규범에서 벗어난 비일상적인 것을 느끼게 되며, 바
로 이 점 때문에 심미적 의미가 생겨난다. 형식주의자라면 또한 이 두 시행 사이에 존재하는 문장
구성상의 차이점(예를 들면 첫번째 시행에는 강한 중간 휴지가 있는데 반해 두번째 시행에는 중간
휴지가 없다) 때문에 생겨나는 보다 미묘한 리듬의 차이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시는 실용적인 언
어에 대하여 일종의 통제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며, 따라서 시의 구성적 특성에 대하여 우리의 주
의를 끌기 위하여 실용적인 언어는 왜곡되지 않으면 안된다.
4-2. 낯설게 하기
위에서 논급하였듯이 형식주의자들은 시를 이미지에 의한 진리 또는 실재의 파악이라고 믿는 낭
만주의 및 상징주의의 기본 전제에 대해서 반발하였다. 그러나 예술은 이미지를 통하여 생각하는
방법이며 예술의 목적은 모르는 것-추상적, 초월적인 것-을 아는 것-구체적 이미지-에 의하여 제
시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카시러의 상징주의에서도 기본 전제로 삼고 있는 사상으로서 상당히 널리
믿어지고 있는 것이다. 즉 비유와 같은 수사법은 말하고자 하는 관념적 내용을 아무 마찰없이, 정
신적 노력을 덜 들이고 쉽게 얼른 이해시키는 데에 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학 언어관에 대하여 페트로그라드의 오포야즈의 대표적 비평가였던 빅토르 쉬클로프스
키는 크게 반발하였다. 그는 시에 있어서 이미지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시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것은 강한 인상을 조성하기 위한 여러 시적 테크닉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으로서, 테크닉은 각기 그 목적에 따라 특별히 더 효과적이라든가 덜 효과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
이다. 그는 또한 일반 산문의 이미저리와 문학적 이미저리를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단순히
어떤 사실을 전달하기 위한 일반적 산문에서는 이미지는 추상화의 한 방법이 된다. 대머리를 바가
지라고 비유할 경우, 그것은 둥글고도 민숭민숭한 것이라는 공통적 특성을 추상화한 결과 생긴 산
문적 비유다. 그것은 결국 대머리와 바가지가 둘 다 둥글고 민숭민숭하다는 말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시에 있어서의 이미지는 그러한 추상을 위한 산문적 방식이 아닌 그 스스로의 독특한 효과
를 위한 것이다. 이미지가 없는 시도 있을 수 있음을 감안할 때 그것이 유일무이한 또는 필연적인
시적 방법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지가 정신작용의 절약을 가능케 한다는 통념에 대하여서도 쉬클로프스키는 그것은 실용적
산문에서는 가능할지 모르나 시적 언어가 인간의 사고 과정에 소요되는 에너지의 절약에 특별히
호의적인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확실히 실용적인 산문, 예컨데 웅변에서는 발음하기 힘든 낱말,
이해하기 힘든 구문은 사용하지 않는다. 리듬의 요구 때문에 소리의 배열을 일상적인 것과 다르게
하지도 않는다. 리듬의 요구 때문에 소리의 배열을 일상적인 것과 다르게 하지도 않는다. 이 일에
는 이른바 수사학적 비유라는 것이 쓸모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문학의 경우에 있어 비유, 리
듬, 독특한 구문, 어려운 낱말 등은 그러한 정신의 절약을 돕기는 커녕 오히려 정신의 노력을 더욱
강요한다. 이미지 뿐만이 아니라 문학에서 사용하는 일체의 테크닉이 모두 정신 활동의 경제를 위
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정신적 습관적 태도에 충격을 가져오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쉬클로프스키를 비롯한 많은 형식주의자들은 문학과 예술의 바로 이 기능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바로 이러한 관심으로부터 형식주의의 대표적 이론의 하나인 '낯설게 하기defamiliarisation'라는
예술의 원칙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결코 사물에 대한 감각 작용을 신선하게 유지할 수 없었으며, '일상적인' 삶에서 그런 감
각 작용은 상당한 정도까지 '자동화antomatisation'되어진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낯익음', 혹은
'친숙함'이란 동일한 사물에 대한 우리의 지각이 반복되어 습관화되었을 때 조성되는 상태이다. 지
각이 자동적, 무의지적으로 되었을 때 습관은 완전해진다. 바꾸어 말하면 완전한 친숙성은 완전한
자동성을 수반한다. 일상성과 친숙성은 반복되어감에 따라 언어를 하나의 기호로 만들어 버린다.
이 말을 기호적으로 쓰기 원하는 경향이 비문학적 산문을 생산한다. 우리의 아내와 남편들에 대한
우리의 지각이 자동화, 습관화되어 버릴 때 그들은 우리 주변에 으례 떠돌게 마련인 그냥 일상적인
물체로서 표정이 없는 추상적 존재로서 가족 개개인에 대한 기호로서 존재할 뿐이다. 배우자 될 사
람을 처음 만났을때, 첫 아이를 처음 대면하였을 때의 강한 지각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들은 우
리와의 완전한 친숙관계를 대가로, 우리의 지각 세계에 있어서 죽은 셈이다.
예술은 바로 일상의 낯익음의 껍질을 벗기고 그것을 다시 낯설게하여 지각의 신선함을 되살리는
행위라고 형식주의자들은 믿는다. 예술의 특수한 임무는 일상적 인식의 습관적 대상이 되어버린 사
물에 대한 인식력을 우리에게 다시 되돌려 주도록 만드는 것이다. 낭만주의 시인들과는 달리 러시
아 형식주의자들은 감각작용 그 자체에 관심이 있었다기보다는 오히려 '낯설게 하기'의 효과를 가
져오는 '기교'의 본질에 대하여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기법으로의 예술」(1917)이라는 논문에서
쉬클로프스키는 이 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히고 있다.
예술은 사물이 알려지는 대로가 아니라 그것이 인식되는 대로 사물에 대한 감각을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예술의 기법은 대상을 '낯설게' 만들고 형식을 어렵게 만들며, 감각 작용을
난해하게 만들고, 그것을 길게 연장시키는 데 있다. 왜냐하면 감각작용의 과정은 그 자체가 하나
의 심미적 목적이며, 따라서 그것은 길게 지연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예술은 대상의 기교
성을 경험하는 한 방법이다. 대상 그 자체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18세기 영국의 두 작가 로렌스 스턴과 조나단 스위프트를 즐겨 예로 들
고 있다. 보리스 토마셰프스키는 '낯설게 하기'의 기교가 「걸리버 여행기」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유럽의 사회…정치적 질서를 풍자적으로 묘사하기 위하여 걸리버는 (…) 그의 주인(말)에게 인
간 사회의 지배 계급의 관습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모든 것을 가장 정확하게 말하도록 강요받는
그는 전쟁, 계급투쟁, 의회의 음모 등과 같은 것을 정당화시키는 미사여구와 허구적 전통의 껍질
을 제거해 버린다. 언어적인 정당화가 제거됨으로써 낯설게 된 이런 문제들은 가공할만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하여 정치제도-비문학적인 자료-에 대한 비판은 내러티브 속에서 예술적으로 동기
유발되고 그 속에서 충분히 관여되어 있다.
일견 위의 언급은 새로운 감각 능력 그 자체의 내용-'전쟁'과 '계급투쟁'의 '가공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상 토마셰프스키는 '비문학적 자료'를 예술적으로 변형시키는
데 관심이 있었다. '낯설게 하기'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변화시켜 주지만, 그런 변화는 어디
까지나 우리의 습관적 감각능력을 문학적 형식의 과정 속에 종속시킴으로써만 가능하다.
스턴의 「트리스트럼 샌디」에 관한 논문에서 쉬클로프스키는 친숙한 행동들이 지연되거나 길게
연장되거나 혹은 중단됨으로써 '낯설게' 되는 여러가지 방법에 대하여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행동을 지연시키거나 연장시키는 이런 기법은 우리로 하여금 그런 행동에 대하여 관심을 갖
도록 만들어 주며, 친숙한 모습과 행동은 자동적으로 인식되지 않음에 따라 결과적으로 '낯설게'
되는 것이다. 자기 아들 트리스트럼의 코가 부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후, 기운 없이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샌디씨의 모습은 "그는 슬픔에 잠긴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와 같이 전통적인 방법으로 묘사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턴은 샌디 씨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낯설게' 만들고 있다.
그의 오른 손 손바닥은 그가 침대 위에 넘어지면서 그의 이마를 붙잡았고 그의 두 눈의 대부
분을 덮어버렸으며 (그의 팔꿈치는 뒷쪽으로 젖혀진 채) 그의 머리와 함께 부드럽게 가라앉아 그
의 코가 이불에 닿았다. 그의 왼쪽 팔은 감각을 잃은 채 침대 가장자리 위에 매달려 있었으며,
그의 손가락 마디는 침실용 변기 손잡이 위에 기대어져 있었는데….
위의 예는 '낯설게 하기'가 많은 경우 감각 능력 그 자체보다는 단순히 감각 능력의 묘사에 영향
을 끼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샌디씨의 자세에 대한 묘사를 지연시킴으로써 스
턴은 우리에게 슬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주거나 혹은 친숙한 모습에 대한 새로운 감각능력을 주
는 대신에, 오로지 고양된 언어적 표현을 가져다 줄 뿐이다. 쉬클로프스키는 바로 비문학적인 의미
에서 스턴이 감식력에 대하여 무관심하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실제적인 표
현과정을 강조하는 기법을 가리켜 '드러내기laying bare'라고 부른다. 많은 독자들은 스턴의 소설
이 끊임없이 그 자체의 소설적 구성에 주의를 끌고 있기 때문에 짜증스럽게 느끼지만, 소설이 그
자체의 기교를 '드러내는'것은 쉬클로프스키의 견해로는 소설이 할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문학적
행위인 것이다.
'낯설게 하기'와 '드러내기'의 개념은 베르돌트 브레히트의 유명한 '소외효과alienation effect'
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예술은 그 자신의 과정을 숨기지 않으면 안된다는 고전주의적 이상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과 브레히트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도전을 받았다. 문학이 완벽한 담화의 총체
그리고 실재의 자연스런 재현이라는 것은 허위에 지나지 않으며, 브레히트의 경우 그것은 퇴행적인
것이나 다름이 없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순전히 기법적인 면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기
교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할 가능성을 예측하지는 못하였다.
4-3. 내러티브
그리스 비극 작가들은 일련의 사건으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이야기에 의존하여 작품을 썼다. 「
시학」의 여섯번째 항목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롯'('신화')을 가리켜 '사건의 배열'이라고 정의하
고 있다. '플롯'은 그것이 기본으로 삼고 있을지 모르는 줄거리와는 분명히 구별된다. 플롯은 어느
한 이야기를 구성하는 여러가지 사건을 예술적으로 배열해 놓은 것이다. 그리스 비극은 흔히 '회상
장면', 즉 플롯상 선택된 사건에 앞서 이미 일어난 사건을 요약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베르질리우
스의「에네이드」와 존 밀턴의 「실락원」의 경우, 독자들은 갑자기 '사건의 한 중간에서' 작품을
대하게 되며 이야기 이전에 일어난 사건은 플롯이 진행되는 동안 여러 단계에서 흔히 회고적인 설
화 형식으로 소개된다. 즉 에네아스는 트로이의 함락을 카르타고에서 디도에게 이야기하고 있으며,
라파엘은 천국에서의 전쟁을 낙원 동산에서 아담과 이브에게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스토리'와 '플롯'의 구별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내러티브 이론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
하고있다. 그들은 오로지 '플롯'만이 엄격히 문학적이며 '스토리'는 단지 작가의 구성적인 솜씨를
기다리고 있는 원자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그러나 스턴에 관한 쉬클로프스키의 논문
에서 보여지듯이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플롯에 관하여 아리스토텔레스보다 한결 혁명적인 개념을
갖고 있었다. 「트리스트럼 센디」의 플롯은 단순히 줄거리-사건이 배열일 뿐만 아니라 그것은 또
한 이야기를 중지시키고 지연시키기 위해 사용된 모든 '기교'이기도 하다. 주제로부터의 이탈, 인쇄
상의 유희, 작품의 부분-서문, 헌정문 따위-을 바꾸어 놓기, 그리고 장황하게 늘어놓는 설명 등은
모두 우리로 하여금 소설의 형식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사용된 기교이다. 사실상 어떤 의미에서 이
런 경우 '플롯'은 독자가 기대하고 있는 사건의 형식적인 배열과는 거리가 멀다. 스턴은 우리에게
익숙한 플롯 배열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플롯과 그 자체를 문학적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런 점에
서 본다면 쉬클로프스키는 전혀 아리스토텔레스적이라고 할 수 없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식으로
면밀하게 배열된 '플롯'이라면 우리에게 인간의 삶에 대한 본질적이고도 친근한 진리를 가져다 주
어야 한다. 즉 그것은 개연성을 지녀야 하며 어느 정도 필연성을 지니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
나 흔히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플롯의 이론과 '낯설게 하기'의 개념을 서로 결합시켰다. 다시 말
해서 플롯은 우리로 하여금 사건을 전형적이고 친숙한 것으로 간주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다.
4-4. 모티프(동기)/ 동기화
토마세프스키는 플롯의 문제를 주제론과 연결시켜 다루었다. 한 작품의 각 문장들이 합하여 하
나의 구조를 이루도록 통일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 곧 주제이다. 그런데 면밀히 따지면 작품의 각
부분들도 그 자체대로의 주제에 있다. 부분들로 하여금 부분이라는 뚜렷한 단위를 형성케 하는 것
이 그 부분의 주제인 것이다. 이처럼 부분들을 최소 단위에 이르기까지 나누어 들어가면 결국 각개
의 문장에 이르게 된다. 이런 각개의 문장을 문장이게 하는 주제를 토마세프스키는 모티프motif라
하였다. '그는 말했다','그는 사과를 한 개 집어 들었다' 등등은 모두 모티프가 될 수 있다. 즉 단위
문장의 의미 골자가 모티프가 되는 것이다. 이런 모티프들이 큰 부분들의 주제, 나아가서는 전체의
주제에 참여한다. 그러나 간혹 전체 이야기의 일관성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모티프들도
플롯 구성 때에 들어가기도 한다. 이 모티프를 자유 모티프라 부르고, 이야기의 전개에 필요한 모
티프를 한정 모티프라 부른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에는 한정 모티프만이 필요할 것이나 소설의
예술성은 자유 모티프의 사용에 크게 의존한다. 문학적인 관점에서 '자유로운' 동기는 매우 중요한
예술의 초점이 된다. 예를 들어 라파엘로 하여금 천상에서의 전쟁을 이야기하도록 하는 기교는 자
유 모티브이다. 그것은 현재 논의되는 이야기에 속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식적인 면에서
본다면 그것은 전쟁에 대한 이야기 그 자체보다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밀턴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 이야기를 전체적인 플롯 속에 예술적으로 삽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 내용과는 직접 관련
이 없는 자세한 묘사, 곁다리 이야기 등의 적절한 사용이 작가의 역량을 나타내는 것이 보통이다.
자유 모티프는 오히려 이야기의 직선적 전개를 방해한다. 두말할 것도 없이 자유 모티프들의 사용
으로 낯설게 하기의 효과가 생긴다.
이런 접근 방법은 형식적 '기교'를 '내용'에 종속시킨 전통적 방법을 뒤집어 엎고 있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어느 한 詩가 지니고 있는 내용과 주제 그리고 '리얼리티'에 대한 언급을 단순히
형식적 기교의 사용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작가가 필요로 하는 외형상의 구실로 간주하고 있다. 그
들은 이렇게 외형적이고 비문학적인 가정에 의존하는 것을 가리켜 '동기화motivation'라고 불렀
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유형의 동기화는 바로 이른바 '리얼리즘'이라고 불리는 문학전통이다.
어느 작품이 아무리 형식적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흔히 우리는 그 작품이 우리에게 '실제
적'인 것에 대한 환상을 가져다 주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문학이 '삶과 마찬가지로' 사실적이기를
기대하며, 만약 작중인물이나 묘사가 우리가 상식적으로 기대하는 실제 삶과 일치되지 않는다면 우
리는 짜증을 내게 될 것이다. 한편 토마셰프스키가 지적했듯이 우리는 일단 일련의 새로운 인습을
받아들이게 되면 터무니 없는 일이나 있음직하지 않은 모든 종류의 일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우
리는 모험담의 경우 주인공들이 언제나 악한들에 의해 살해되기 바로 직전에 구사일생으로 구출되
는 터무니없는 방식을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모티프는 또한 동적인 것과 정적인 것을 구분할 수 있다. 동적 모티프는 정황의 변화를 묘사 전
달하는 모티프{{) '그는 뛰었다', '그는 결혼했다' 등등
}}이
고
정
적 모티프는 정황 자체의 묘사{{) '아름다운 강산이다', '그녀는 아름답다' 등등
}}를
담
당
한
다. 정적 모티프는 자유 모티프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모든 정적 모티프가 다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이야기 줄거리를 끌고 나가는 것은 동적 모티프이지만, 일단 플롯이 이루어지면 정적 모티프가 더 우세할 수도 있다. 결국 정적, 동적, 자유, 한정 모티프들이 작품 전체를 이루게 되는데 이 전체를 이루기 위하여 쓰여진 일체의 모티프들은 동기 설정이 된 경우에 한해서 작품의 플롯에 참여할 수 있다. 왜 그 모티프가 그 자리에서 쓰여져야 하는지 전체에 관련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낯설게 하기'도 알고 보면 일종의 동기설정motivation이라 할 수 있다. 한 모티프이 선택은 대개 사실감의 조성과 예술적 구조의 요구라는 두 원칙이 상호 타협한 결과이다. 현실 생활의 사실이 작품 속에서 언제나 사실감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러한 예술적 동기 설정의 한 가지가 '낯설게 하기'이다. 한 작품 속에 이제껏 비문학적이라고 인식되어 오던 요소를 집어 넣어 예술적으로 타당성을 갖게 하려면 그 요소의 새로운 해석 및 조작이 필요하다. 늘 보던 사실로 하여금 마치 처음 보는 것인양 꾸며야 한다. 바로 이렇게 꾸미는 것이 예술적 동기 설정의 한가지인 것이다.
'동기화'의 문제는 앞으로 발전될 대부분의 문학이론 가운데서 중요하게 취급되게 되었다. 조나
달 컬러는 이 일반적인 문제에 대해 "무엇인가를 동화시키거나 해석한다는 것은 그것을 문화적 질
서의 양태 속에 끌어들이는 것이며 이런 행위는 흔히 그것을 문화가 당연시하는 언술 양태로 표현
함으로써 가능하다"라고 간략하게 요약한 바 있다. 가장 임의적이거나 무질서한 말이나 碑銘의 의
미를 해석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데 있어 인간은 무한한 창의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어느 한 텍
스트가 우리의 준거의 틀 밖에서 생소하게 그대로 남아 있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히려 그
것을 '귀화'시키고 그것의 텍스트성을 말살시키기를 주장한다. 일견 아무렇게 사용된 이미지로 된
작품의 한 페이지를 읽게 될 때, 우리는 이미지의 무질서를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것으로 받아들
이기보다는 오히려 그 이미지를 혼란한 정신의 탓으로 돌리거나 혹은 그것을 무질서한 세계의 반
영으로 간주함으로써 그것을 귀화시키고자 한다. 냉혹한 귀화과정을 거부하는 텍스트의 특성에 주
목함으로써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구조주의와 후기 구조주의의 입장을 예견하고 있었다. 쉬클로프
스키는 「트리스트럼 샌디」의 기괴한 무질서를 트리스트럼의 괴벽스런 마음의 표현으로 보지 않
고, 대신 귀화 작용을 거부하는 소설의 집요한 문학성에 주의를 기울였던 것이다.
4-5. 기능
문학적 기교는 문학적 게임에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고정된 장치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제
점차적으로 분명해졌다. 문학적 기교의 가치와 의미는 시간과 상황에 따라 변했다. 이런 변화와 더
불어 중요한 개념으로 '기능function'이란 개념이 '기교'의 개념을 대신하였다. 이런 변화는 매우
광범위한 효과를 지니고 있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이제 더 이상 '내용'을 거부하는 데서 비롯
되는 미해결 문제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낯설게 하기'의 중심적인 원칙을 내면화할 수 있게 되었
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문학이 리얼리티를 낯설게 만든다고 주장할 필요성 대신에, 문학 그 자체
를 낯설게 만드는 문제에 대하여 언급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어느 한 문학작품 안에서 사용된 여
러 요소들은 '자동화'될 수 있거나 아니면 긍정적인 심미적 기능을 지니고 있을지 모른다. 동일한
기교라고 하더라도 다른 작품에서는 다른 심미적 기능을 지니고 있거나 혹은 완전히 자동화될 지
도 모른다. 예를 들어 古語와 라틴어식의 어순은 서사시에서는 '고상한'기능을 지니게 될지 모르며,
풍자적인 작품에서는 반어적인 기능을 지니게 될 지 모르고, 또한 일반적인 '시적 어법'으로 자동
화될지도 모른다. 시적 어법의 경우 기교는 독자로부터 기능적인 요소로 '감식되지' 않고, 일상적인
감식력이 자동화되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과 마찬가지 방법으로 소멸된다. 문학작품은
여러 요소들이 前景과 背景의 간계 속에서 구성되는 역동적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만약 고어적
인 어법과 같은 어느 특정한 요소가 '소멸'된다면 플롯이나 리듬과 같은 다른 요소들이 그 작품의
시스템에서 지배적인 요소로 작용하게 되기 마련이다.
4-6. 지배소
1935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야콥슨은 '지배소dominant'를 후기 형식주의자들의 중요한 개념으
로 간주하면서 그것을 가리켜 "다른 나머지 요소들을 지배하고 결정하며 변형시키는 예술 작품의
중심적인 요소"로 정의하였다. 그는 이런 예술적 구성에 대한 견해가 지니고 있는 비기계적인 측
면을 설득력있게 강조하고 있다. 지배소는 작품 그것을 結晶化하는 초점을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작품의 통일성이나 총체적 질서를 가능하게 해 준다. '낯설게 하기'의 개념 자체에는 변화와 역사
적 발전이 함축되어 있었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모든 위대한 문학을 단 하나의 규범으로 속박
시키는 영원 불변의 진리를 추구하기 보다는 오히려 문학사를 영원한 혁명의 역사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새로운 발전은 제각기 친근성이라는 일종의 영구적 소유와 습관적 반응을 거부하는 하나의
시도이다. 지배소의 이런 역동적 개념은 또한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에게 문학사를 설명하는 유용한
방법을 제공해 주었다. 시적 형식은 제멋대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소의 변화'의
결과에 이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즉 시적 시스템의 여러가지 요소들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 관련성
들은 끊임없이 변화하기 마련이다. 야콥슨은 어느 특정 시대의 시학은 비문학적인 시스템에서 비롯
되는 '지배소'에 의해 지배될지 모른다는 흥미로운 이론을 피력하였다. 르네상스 시대의 '지배소'는
시각 예술로부터 비롯되었고, 낭만주의 시는 음악으로 기울어졌으며, 리얼리즘의 지배소는 언어 예
술인 것이다. 그러나 그 지배소가 무엇이든간에 그것은 개별적인 작품의 다른 요소들을 조직하며,
그 이전 시대의 작품에서는 '지배적'인 것으로 '前景化'되었을 지도 모르는 요소들을 심미적 관심의
背景의 위치로 전락시켰다. 변화하는 것은 시스템의 요소-문장구문, 리듬, 플롯, 어법 등- 보다는
특정한 요소들이나 요소 집단의 기능인 것이다. 알렉산더 포프가 골동품 애호가를 풍자하는 시를
썼을 때, 그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산문의 명확성이라는 가치의 지배소에 의존할 수 있었
다. 지배소의 변화는 특정한 텍스트 안에서 뿐만이 아니라 특정한 문학적 시대 안에서도 작용한다.
4-7. 리듬
형식주의자들이 애초에 가장 즐기던 문제는 시의 소리와 뜻의 관련성이었다. 또한 이 문제에 대
한 그들의 공헌은 가장 실질적인 것이라고 간주된다. 형식주의의 운율론에 있어 두 가지의 기본개
념은 시적 언어의 유기적 통일성과 앞서 이야기한 지배소의 개념이었다.
형식주의자들은 율격·압운·두운·협음 등의 운문의 요소들이 일상 언어에 장식으로 첨가된 것
이 아니라는 주장을 강하게 하였다. 이는 시의 소리에 대하여 약간 생각해본 사람은 쉽게 긍정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 근거를 깊이 있는 이론으로 설명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들은 소리에 의한 의
미의 조직, 의미에 의한 소리의 조직의 양면적 관점에서 운문을 따로 떼어내어 기계적으로 나누려
하지 않고, 그것을 형성하기 위한 모든 요소들의 결합 양태 및 원칙을 규명하려고 하였다.
운문에 있어서 그 형성적 요소, 다시 말하면 다른 모든 요소들을 수정, 변형, 관련시켜 시의 소
리 뿐만이 아니라 그 의미와 형태적 부면에 이르기까지 충격을 미치는 주도적 요소를 '리듬'이라고
그들은 믿었다. 이러한 리듬이 시의 언어(소리 및 뜻)을 조직하고 지배하는 근본 원리라고 본 것이
다. 따라서 리듬은 시의 언어에다 첨가한 외적 요소가 아니라 내적 구조적 요소이다. 전통적인 운
율론에서는 리듬과 율격은 동일한 것으로 취급하지만 형식주의자들은 율격·두운·압운 등은 모두
리듬을 형성하기 위한 부수적 요소들로 보았다. 리듬을 형성질이라고 한 만큼 그들은 기계적 운율
론에 반발했다. 시에서 율격·두운·압운 등이 없어도 리듬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
도 그들의 입장은 옳다. 리듬은 통칭 형식적 요소가 아니라 형성적 원리이다. 유리 티냐노프는 형
식주의 운율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는데, 그에 의하면 리듬은 시의 생동감의 근본 원인이 된다고
하였다. 그는 시의 정적 존재 양식을 부정하고 그것의 동적 성격을 강조하였다.
시의 동적인 성격은 우선 형성원리Gestalt qualital의 개념에서 밝혀진다. 시에서 사용된 낱말들
은 일정한 형성의 원리를 따라 혹은 비상하게 강조되고 약화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강조된 요소와 혹은 비상하게 약화된 요소의 상호 관련성이 빚어내는 긴장된 흐름이다. 바로
이 긴장, 이 투쟁에서 생기는 힘의 감각이 시의 리듬의 동력이 된다.
강·약의 상호 긴장 관계의 흐름에서 조성되는 것이 리듬이라고 한다면 리듬과 율격은 서로 마
찰을 일으킬 수가 있다. 율격은 시의 전통상 이미 정해져 있는 음절 결합의 법칙이라 기계적일 수
밖에 없지만 리듬은 구체적인 개별 작품의 음성·의미의 복합적 조직에서 형성된 것이므로, 기성의
율격 법칙과 다소간 어긋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따라서 일부 극단적인 형식주의자들
은 율격을 어기는 것이 리듬이며, 율격과 리듬은 서로 대척적 관계에 있다고 주장한다. 확실히 율
격은 언어의 한 추상적 성격을 조직하기 위한 추상적 법칙이지만{{) 예를 들면, 한국어의 경우 어간과 어미가 합하여 보통 4음절이 되므로, 한국 시의 전통적 율격
은 4·4조가 된다.
}}
구체적인 작품은 그런 추상적 법칙과 많이 다를 수밖에 없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한 낱말의 음절의 강세 혹은 약세는 절대적으로 고유하게 확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문맥에 의하여 정해진다. 시에 있어서의 문맥은 작품의 소리·뜻의 복합체를 조직, 형성하는 리듬의 충동에 큰 영향을 입으므로 음절의 강·약세는 리듬의 주도권하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리듬이 리듬으로 뚜렷이 지각되기 위해서는 전통적 율격과의 대조감이 필요하며, 또한
일상 언어의 자연적 억양과의 대조감도 필요하다. 따라서 리듬은 율격과 일상 언어의 억양에 대해
서 대위법적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입체적이고 역동적이다. 경우에 따라 율격의 힘이 강하
면 리듬은 초의미적 경향을 띠고 일상어의 억양이 강하면 의미적 경향을 띠게 된다.
종래의 운율론이 음절 또는 낱말 단위의 분석에 그치던 데 반하여 형식주의자들은 세밀하게는
음운론에서 크게는 구문, 문단, 전체 작품까지 다루었다. 브리크는 리듬-구문단위로 재래의 보격의
개념을 대치시키려고 한다. 리듬-구문 단위의 개념을 살리기 전에는 리듬과 의미 사이의 연관성을
파악하기 힘들다. 산문의 구문과 시의 구문은 외형상 동일하다 할 지라도 의미상으로는 대단히 달
라진다. 이 달라짐을 가져오는 요소가 리듬이다. 시의 한 행은 리듬-구문 법칙으로 인하여 생성된
'시적 구문'이다. 그것은 산문에 있어 한 개의 문장 만큼이나 필연성을 띤다. 시는 산문을 전통적
율격에 맞도록 토막을 낸 것이라든가 또는 일부 아방가르드의 말처럼 산문적 의미와 전혀 무관한
소리라든가 하는 주장을 형식주의는 모두 부정한다. 리듬 이론에서도 형식주의의 근본 관심사인
'낯설게 하기'의 한 가닥을 엿볼 수 있다. 리듬은 일상어에 대한 자동적 습관을 파괴하는 힘이 있
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첨부할 것은 지배소(혹은 '주도자'라고도 번역된다)로서의 리듬의 역할이다. 리듬
은 시의 소리, 뜻의 복합적 조직을 주도한다. 지배소는 로만 야콥슨의 정의를 따르면 "한 예술작품
의 초점을 이루는 요소로서, 여타의 요소들을 지배하고 결정하며 변혁시킨다. 그것은 구조의 통합
성을 보장한다." 지배소가 작품의 특질을 형성한다. 시가 시로 되는 것은 그렇게 만드는 주도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리듬이라고 형식주의자들은 믿는 것이다.
4-8. 문체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시의 이미지 즉 시의 시각적 측면에 역점을 두지 않은 사실을 우리는 알
고 있다. 이 입장은 직접적으로는 상징주의 문학에 대한 반발과 관계가 있지만 이미지가 문학의 전
부가 아니라는, 이미지는 문학적 장치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그들의 다층적 구조 개념에서 연유되
기도 한다. 그러나 그 때문에 한 작품의 이미지의 패턴을 해석하는 데에 능수를 보인 영미계의 소
위 신비평가들의 업적에 못 미친다는 평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문체를 이미지라든지, 아이러니라든지, 긴장 같은 단일한 원칙에 의한 구성으로 보지 않고 문학 작
품을 구성하는 데에 동원된 모든 장치들의 총합, 전체의 통일성을 기하고 각 부분들의 기능을 결정
짓는 예술적 원리라고 하였다.
형식주의자들의 문체론 중에서 아마 가장 독창적인 것으로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은 문학의 독
특한 화법에 관한 연구이다. 말에는 그 내용, 그 상대자, 환경, 화자의 태도 등에 따라 일정한 말투
가 생기게 된다. 블로쉬노프는 이 문제에 대한 무척 흥미 있는 분야를 개척하였다. 그는 「전달되
는 말」이라는 논문에서, 한 사람이 남의 말을 전달할 때, 전달하는 말과 전달되는 말이 빚어내는
상호 관계를 문학이론상으로는 물론 언어학상 최초로 세밀히 고찰하였다. 전달되는 말은 전달하는
말 편에서 보면 본래 남에게 속한 말로서 전달자(저자)의 현재의 문맥에서 동떨어져 있다. 이렇게
독립된 문맥을 가진 전달되는 말이 전달하는 말의 문맥 속으로 들어오면서도 그 본래의 의미와 언
어적 구조를 어느정도까지는 유지한다. 전달하는 말은 전달되는 말을 자기 문맥 속에 편입시켜 동
화시키면서 구문적, 문체적 규칙들을 작동시킨다. 즉 전달되는 말은 전달하는 말의 구문적 문체적
규칙의 지배를 어느정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 다른 문맥으로부터의 말을 자기 문맥 속에
편입시키므로 전달하는 말 자체도 그 때문에 어느 정도 변모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전달됨과 전달
함의 상호 관련성의 양태에 따라 다음 세 가지의 문체가 생길 수 있다.
권위주의적, 합리주의적, 도그마티즘- 직선적, 비개인적, 웅장한 맛이 있는 객관적 문체
사실주의적, 비관적 개인주의- 회화적, 전달되는 말에 전달하는 말이 적극 개입
상대주의적 개인주의- 저자 자신의 문맥의 해체
여기서 의 문제는 고전주의, 의 문제는 이상주의 내지 낭만주의, 의 문제는 현대적 사실주
의와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볼로쉬노프의 전인미답의 경지를 개척한 이 예리한 문체 분석은
미세한 사실에 대한 발견에만 그치지 않고 일반 문체론, 나아가서는 문학사와의 직접적 연관성까지
암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4-9. 문학 진화론
문학을 "문학적 장치들의 총합"이라고 정의하다가 "예술적 시스템이 하나"로 정의하기에 이른
형식주의에서 문학을 역동적 통합체dynamic integration로 본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형식주
의자들은 문학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시대를 따라 그 중요성의 순위가 달라짐을 간파하였다. 이리하
여 그들은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공시적 및 통시적 연구 방법을 문학
에서도 적용하기 시작했다. 서술적 방법과 역사적 방법을 하나의 문맥 속에 통합함으로 인해 그들
은 문학이 변하는 시스템임을, 즉 변함이 있되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의 변화임을 믿게 되었다.
이미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쉬클로프스키를 비롯한 많은 형식주의자들이 강조한 '낯설게 하
기', '비자동화', '지각의 각성' 등은 전시대의 문학에 대한 반발을 의미한다. 자동화되어 있는 예술
의 방식에 대한 반발의 가장 강력한 방법은 그것은 비자동화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예술이 예
술로서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 반발을 거듭하여 언제나 새로워야 한다. 그러므로 예술은
자연히 새로워지기 위한 투쟁의 역사를 기록하지 않을 수 없다. 형식주의자들은 자연히 이와 같은
새롭게 되기 위한 문학의 역사를 주시해 보았다. 문학이 새로이 방법을 개발하기 이한 역사를 기록
한다고 믿을 때 문학을 직접 창조하는 작가는 별로 중요성을 띠지 않게 된다. 중요한 것은 문학적
방법들의 신진대사의 과장이고, 문인의 생애·사상·감정 등은 중요한 문학적 제2차적 의미밖에
가지지 못한다.
형식주의자들은 낡은 것과 새것이 일직선을 그으며 바뀌어 나가는 것을 문학적 진화의 과정으로
볼 만큼 단순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분석의 결과, 문학적 진화는 파괴에 힘입는 것이 아니라 문학
적 장치들-구성 요소들-의 재조정·재규합·재조직에 있다는 것이 밝혔다. 문학은 그 긴 진화과정
에서 습득한 구성요소들을 되도록 다 유지하려고 하지 새것을 편입시키고 낡은 것을 아주 제거해
버리지는 않는다. 어떤 요소는 여러 세대 동안 미미한 위치를 지키다가 갑자기 비자도오하의 주역
으로 채용되기도 한다. 그것은 일상 언어에서 속된 낱말로 인정되는 것이 어느 세대에 가서 점잖은
말로 통용되는 일과도 같은 현상이다.
문학사는 명작들의 행진이어서는 안된다고 형식주의자들은 당연히 주장한다. 문학으 구성 요소
들의 끊임없는 재조직의 과정이 명작들만을 낼 수는 없는 까닭이다. 이류 삼류 작품의 구성요소가
훗날 일류 작품의 구성요소로 귀중히 쓰일수도 있는 것이다. 문학의 진화를 위하여 실패는 성공만
큼 중요하다. 또한 우수한 작가는 남의 실패작에서도 얻어올 만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4-10. 문학 발생의 역동적 성격
그들이 문학의 기원, 즉 문학이 있기 이전의 어떤 정신적, 문화적 상태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
었다는 것은 이미 논급한 바이다. 어떤 문학적 현상의 기원·발생- 이를테면 서사시의 기원으로서
의 원시 신화-은 그 설명이 타당하다 할 지라도 문학적 사실 자체에 대한 설명은 안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보리스 아이헨바움의 말을 빌리자면 "문학적 발생학은 어떤 장치의 기원을 밝힐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발생학적 관점은 재로의 사용을 스스로 결정하는 요소로서의 장치를 고찰할 수는
없다. 그것은 문학의 관습적인 재료들을 작가가 어떻게 취사선택하는지, 관습적인 장치들이 어떻게
변모되는지, 또는 그것들이 구조적 역할을 담당하도록 어떻게 조작되는지를 고찰할 수 없는 것이
다. 문학의 진화는 문학 내부의 여러 요소들의 배열의 변화를 제 일차적으로 고찰하지 않는 한, 밝
혀질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문학은 그 자체대로 스스로를 결정할 수 있는 역동적인 성격을 내
포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쉬클로프스키는 이 내적인 힘의 비중을 크게 잡았다. 그는 "예술 작품은
다른 작품들이 이루는 배경으로부터 생겨나며, 또한 그들과의 교감을 통하여 생겨난다.… 새로운
형식의 목적은 새로운 내용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술적 성격을 잃은 낡은 형식을 바꾸기
위한 것이다."라고 언명하였다. 프랑스의 이론가 브릔티에르는 "문학의 역사에 능동적 영향력을 발
휘하고 있는 것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것은 작품이 작품에 끼치는 영향"이라고 말한 바 있다. 쉬클
로프스키와 기타 초기 형식주의자들은 한 작품 뿐 아니라 여러 작품들이 역사적으로 이루고 있는
동적인 연계관계를 밝혀내려는 작업을 문학진화론이란 이름으로 수행하였다. 후기 형식주의에 이르
러서는 문학 진화론 이외에 문학 발생학에 대하여 부정적인 태도를 버리고 조심스런 수용의 태도
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우선 티냐노프의 보다 심화된 문학 진화론을 알아보기로 한다.
티냐노프는 문학 진화론의 근본 개념을 '시스템의 변이mutation'로 보았다. 문학 작품이 하나
의 시스템이라는 것은 형식주의자들의 기본 전제의 하나였다(문학전체가 하나의 시스템을 이룬다
는 것도 형식주의의 문학 진화론을 위해 필요한 전제였다). 이 시스템(또는 좀더 구식 용어로는 유
기적 단일체)을 이루는 요소들, 이를테면 문체·리듬·구문·의미 등등은 서로 유기적 상호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고, 탐색 작업을 위한 가설로서만 분리하여 취급할 수 있다. 그 결과 밝혀지
는 것은 한 요소의 역할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속한 시스템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이다. 한 요소는 다른 시스템에 속한 비슷한 요소와 상호 연관성을 갖고 있는 동시에 같은 시스템
에 속한 다른 요소들과도 상호 연관성을 갖고 있다. 티냐노프는 앞의 것을 자동 기능
auto-function이라 부르고 뒤의 것을 동시 기능 syn-function이라 불렀다. 예컨대 한 편의 시
의 리듬은 일반적으로 모든 시의 리듬과 연관성을 가지며(자동 기능), 또한 그 시의 다른 요소들
즉 구문·문체·의미 등과 연관성을 갖는다(동시 기능). 따라서 한 요소를 논의할 경우에는 그 기
능의 상호 연관성의 이중적 성격과 전적으로 분리시켜 생각할 수가 없다. 즉 단지 '리듬'이란 추상
적 개념은 정확한 문학론이 될 수 없다. 언제나 구체적인 작품 내에서의 기능과 다른 여러 작품들
의 배경 속에서의 기능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 한 작품뿐 아니라 한 장르도 장르의 시스템을 벗어
나서는 바로 설명될 수 없다. 한 시스템 속에서 형식적 요소들의 기능은 작품에 따라 달라지게 된
다. 이런 일이 집적되면 시스템 자체도 더 포괄적이 된다. 즉 변하는 것이다. 한 형식적 요소의 기
능의 변화, 한 요소의 새로운 기능의 발생, 또 한 기능에 어떤 새로운 형식이 주어짐 등은 모두 문
학 진화론이 밝힐 과제들이다.
그러나 티냐노프는 문학 진화론을 거기에다 한정시키지 않고 문학적 시스템 상호간의 연관성과
그 주변 사실들과의 연관성 즉 문학과 사회적 관습의 연관성에까지 확대하였다. 사회적 관습은 우
선 그 언어적 측면에서 문학과 상호 연관된다. 다시 말하면 문학은 사회와의 연관에 있어서 언어적
기능을 갖는다. 사회의 언어적 관습이라는 시스템과 특정한 문학의 시스템이 서로 연관관계를 갖는
다는 것은 정한 이치이다. 예컨대 사회의 존대어 시스템이 어떤 문학 장르에서 패러디의 시스템을
형성할 수도 있다. 바이런 식의 시적 허구의 주인공이 실제 사회에서 유행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문학과 사회의 연관 관계는 한 구체적 작품의 경우에는 탐색될 수 없다. 시스템과 시스템 사이의
비교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올바른 관점에 서게 되는 것이다.
후기의 아이헨바움은 티냐노프가 이야기를 꺼내다가 만 듯한 문학과 사회의 문제를 좀더 깊이
고찰하였다. 그는 우선 특정한 사회적 사실들을 문학외적 사실이라기보다는 문학의 시스템에 편입
시킬 수 있는 새로운 문학적 사실들로 받아들였다. 다시 말하면 발생론적 사실이 진화론적 사실에
합쳐진 것이다. 이보다 불과 수년 전에는 그가 발생론과 진화론을 엄격히 구별할 것을 주장하였었
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아이헨바움의 후기 입장은 심각한 재성찰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문학과 사회의 연관성은 인과관계는 결코 아니다. 그것은 상호 대응관계, 상호 작용, 조건 관계
일 수 있을 뿐이다. 예컨대 대중 전달 매체의 발달로 저널리즘이 발달했을 때, 저널리즘의 문체가
문학에 이용되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관계는 인과 관계라고 할 수는 없다. 대응관계
다. 사회의 저널리즘은 문학의 시스템에 들어와서는 그 기능이 전혀 다른 것이 된다. 사회에서의
저널리즘 문체는 사회의 시스템 및 대중 전달 매체의 시스템에서 가지는 독특한 기능이 있지만, 이
기능을 우리가 잘 안다고 해서 그것이 문학에 나타났을 때의 그 기능을 쉽게 알아볼 수는 없다. 문
학은 그러한 문체에게 문학 자체의 특수한 기능을 부여하게 된다. 이런 경우 저널리즘적 요소의 근
원(발생론)과 그 수용 양상(진화론)은 둘다 문학사적 관심이 될 수 있다. 발생론은 진화론의 충실한
설명이 되기 위해서만 문학적 논의에 포함되는 것이다.
4-11. 체계로서의 문학
러시아 형식주의의 근본적 취약점은 여기서 구태여 길게 열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
들의 지나친 이론화의 경향이 문학의 평가 문제를 도외시하게 한 것이 그들의 가장 큰 결함이었다
는 것과 문학 연구를 지나치게 문학적인 것의 서술에 한정시켰었다는 것이 그들의 큰 결점이었다
고 말하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점들이 그들의 최대의 장점이 될 수도 있었다는 것
은 싱거운 패러독스는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철저한 탐구 정신에서 말미암은 것이었던 것이다.
형식주의자들의 이론화 및 서술적 연구 태도에서 생겨난 가장 귀중한 결론은, 필자의 생각으로
는, 작품 및 문학 일반을 시스템으로 본 것과 시스템의 역사 자체도 하나의 시스템으로 본 것, 즉
모든 문화적 시스템은 진화 과정이 있고 진화 과정도 일종의 시스템의 성격을 띤다는 것이다. 이러
한 문학의 동적 시스템이 사회 현상과 시스템스런 상호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는 발견 역시 귀중한
것이다. 문학은 독립적 현상이되 유아독존적 존재는 아닌 것이다. 형식주의자들이 개척한 이 방향
으로의 계속적 탐색이 절실히 요구된다.
5. 러시아 형식주의자들
5-1. 토마체프스키: 산문의 분석
토마체프스키와 쉬클로프스키, 이 두 작가는 이야기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핵심이 되는 요소를
찾아낸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먼저 토마체프스키는 테마의 선택, 주제와 우화의 관계, 동기작용, 주이공, 기법의 문제, 그리고
문학 장르 등을 자신의 「문학의 이론」으로부터 발췌한 1925년 판의 텍스트에서 다루고 있다.
테마가 시사하는 사상은 작품 전체, 혹은 그 일부분에서 각각으 정한 문장들을 하나의 구조물
로 결합시킨다. 하나의 작품이 문학작품이 되는 것은 작품의 중심부에서 드러나는 고유한 테마에서
부터 구성된 통일성에 의해서이다. 이때문학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중요한 두 계기는 테마이 선정
과 그 전개이다. 전자는 "독자의 반응과 빌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왜냐하면 "막연한 추상에 불
과하지만 독자의 이미지라는 것이, 언제나 작가의 의식에 현존해 있기 때문"이다.
어떤 독자는 기분전환(오락성)에, 또 어떤 독자는 문화 일반의 시사적인 문제들에 관심을 갖기도
한다. 그래서 투르게네프가 작가의 기교성보다 사회적인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에, 또 에렌
부르큰 마야코프스키 등의 작품이 혁명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로부터 큰 환영을 받을 수 있
었다. 사랑이나 죽으들이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서 지속되는 반면, 시사성을 띠고 있는 작품들은
그러한 작품이 생겨나게 된 시사적인 화젯거리에 대한 일시적인 관심 이상으로 더 오래 유지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주의를 집중 시킨다 함"은 종국적으로 흥미를 유발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
서 작가의 공감이나 반감은 독자의 정서와 공감을 일정한 방향으로 인도해주는 긍정적인 주인공
혹은 부정적 주인공의 모습으로 구현되어 나온다.
토마체프스키는 테마의 문제에서 주제와 우화의 관계로 넘어간다. 테마는 "여러 개의 작은 테마
적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테마적 요소들은 인과관계 및 연대기적 순서에 따른 것, 그리
고 인과관계나 시간성에 대한 고려가 없는 것 이 두 원칙에 따라 두 가지 유형으로 배열된다. 전자
는 담화, 소설, 서사시처럼 '주제가 있는' 작품이고, 후자는 시나 여행기처럼 주제가 없는 작품이
다. 우화는 시간과 인과관계에 대한 지시를 요구한다. 이과관계가 약해지면 약해질수록 연대기적
시간의 관계는 더욱 중요해진다. 우화란 작품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되는 서로 관련된 사건들의
총체를 의미한다. 작품 안에서 사건들이 소개되는 순서와는 무관하게 우화는 인과적이고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요약될 수 있다. 따라서 주제는 작품 안에서 사건들이 나타나는 순서에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우화와 대립된다. 바로 여기서 전세기에 걸쳐 이야기의 시학에 영감을 주게 될 허구fiction
와 서술narration, 줄거리histoire,와 담화discours의 구분이 생기는 것을 알 수 있다.
테마는 작품을 분석할 수 있게끔 해주는 요약적인 개념이다. 더이상 분해할 수 없는 가장 작은
이야기의 단위가 되는 테마를 동기 즉 모티프motif라고 한다. 이 모티프들은 서로 결합해서 작품의
테마를 지탱해 준다. 우화는 인과적이고 연대기적인 순서로 연결되는 모티프의 지합체이고, 주제는
작품 안에 나타나는 순서에 따른 모티프들의 집합체, 즉 전적으로 예술적인 구조물이다. 인과적이
고 시간적인 순서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우화를 전개하는데 생략되어서는 않될 모티프들은 관련 모
티프이고, 우화의 전개상 생략되어도 무방하지만 반면 도입, 속도의 지연, 삽입되는 서술 등 문학
적인 전통에 따라 작품의 구조를 결정하므로 주제와 연결되어 있는 모티프들은 자유 모티프이다.
어떤 주어진 순간에 등장인물들 상호간의 관계는 그 주인공들이 서로 각기 다른 방법으로 변형시
키고자 하는 하나의 상황을 구성하게 딘다. 이와 같이 상황을 변화시키는 모티프는 동적인 모티프,
상황을 변화시키지 않는 것은 정적 모티프이다. 자유 모티프들은 따라서 정적인 모티프가 된다. 동
적인 모티프는 우화 속에서, 정적인 모티프는 주제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작가는 중요도에 따라
서 모티프드을 분배한다. 우화의 전개는 하나의 상황에서 다른 상황으로의 전이를 뜻한다. 행동과
그 행동의 성격을 규정하는 모티프들의 총체가 전개되는 것은 극적구성intrigue이다. 극적 구성으
전개는 갈등의 해소나 새로운 갈등의 발생 중 어느 하나에 이르게 된다. 자극효과는 처음의 상황을
흐트러뜨리는 모티프들의 총체이다. 극적 구성은 교차되는 긴장의 법칙에 따라 자극 효과가 도입되
는 다양함이나 반전으로 귀결된다.
우화에서 주제로 넘어가는 과정에는 여러 단계들이 있다. 그래서 최초의 상황에는 서술적인 도
입이 필요하다. 그러나 서술이 반드시 해설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서술의 시작이 꼭 해설을
포함하는 것은 아니며 서술의 끝이 결말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토마체프스키가
발견한 것은 서술(주제)와 행위(우화)라는 두 개의 축이다. 그는 서술에 있어서 지연, 한계적 부연,
비밀, 반복, 시간의 전복 등 여러가지 기법들의 목록을 작성한다. 그는 예시Vorgeschichte{{) 나중에 일어날 일에 대한 이야기
}}와
예
고
Nachgeschichte{{) 나중에 일어날 일에 대한 이야기
}}를
구
분
한
다. 화자의 역할이 주체가 되느냐 대상이 되느냐는 바로 이런 태도와 관련된다. 하자는 직접 행위를 하는 인물이지만 증인과 다른 인물에 의한 제3자가 될 수도 있으며 따라서 객관적 이야기와 주관적 이야기라는 두 개의 기본적 유형이 될 수도 있고, 또한 혼합된 체계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때때로 서술의 실마리가 되는 몇몇 등장인물 만으로도 충분히 작품 전체의 구조가 결정된다. 서술의 시간과 장소에 주의를 기울여 ㅗ면 비평에서는 우화의 시간과 서술의 시간(즉 독서에 필요한 시간)이 대립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자는 절대적이거나{{) '1998년 5월6일' 등
}}
상
대적인{{) '2년이 지난 뒤' 등
}}
행
위
의
시
간
을 제시해 주고, 사건 발생에 소요되는 기간을 제시해 주며, 시간이 지속되는 느낌을 준다.
서술에 참여하는 모티프들의 체계는 일종의 미학적인 통일성을 제공해 준다. 동기화는 각각의
모티프나 모티프群의 도입을 정당화하며 작품의 구성에 관여한다. 그리하여 모티르들은 등장인물의
행위나 특징에 일치하며 추리소설에서 볼 수 있는 오도된 모티프는 독자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는
역할을 한다. 동기작용은 또 사실적이어서 개연성을 느끼게 해 주며, 작품 속에서 진행되는 일이
사실이라는 순진한 믿음이나 환상을 심어주게 된다. 문학 전통에 따른 모티프들의 도입은 개연성을
느끼도록 한다. 새로운 학파는 사실적 동기작용을 고수한다. 환상적인 것에 있어서도 여타 다른 규
범들보다 사실적 동기작용에 따라서 이해된다. 사실적 동기작용은 역사적 사건이나 역사적 인물 같
은 문학 외적인 제재의 도입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반면에 작품의 문학적인 특색은 극중의 극, 모
작 등과 같은 기법의 노출에 의해서 더욱 강화된다. 동기작용의 세번째 유형은 미학적인 것으로 이
야기의 구성에 관여한다. 낯설게 하기sigularisation라는 기법은 묘사된 내용을 완전히 새로운 것처
럼 보이게 한다.
서술의 실마리 역할을 하는 등장인물은 특정한 모티프들을 분류하는 지침이다. 등장인물은 인지
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그 특징이란 주어진 인물과 밀접하게 관련된 모티ㅡ들의 체계이
다. 그리고 그 모티프는 단순히 인물의 이름일 수도 있다. 보다 복잡한 구조에서는 등장인물의 행
위가 일종의 심리적인 단위에 기인한다. 성격묘사는 작가는 주인공 자신, 또는 다른 인물이 묘사를
하면 직접적이 되고, 인물의 행동이나 행위로 드러나게 되면 간접적이 된다. 등장인물의 외모는 반
드시 눈에 보이는 외형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등장인물의 성격도 일관되기도 하고 변화하기도
한다. 따라서 등장인물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등장인물은 독자에게 반감 또는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정서적인 감'을 띠어야 한다. 주인공은 가장 생생한 정서성을 띠므
로 독자는 관심을 집중해서 그를 추적하게 된다. 등장인물은 우화에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모티프
가 삽입되는 방식으로 주제의 내부에서 제시된다.
주제의 기법들을 고안해낸 다음 토마체프스키는 그 기법들의 역사적인 변천을 문제 삼는다. 개
개의 문학시기와 유파는 문학의 흐름과 장르의 스타일을 나타내주는 기법는 고유한 체계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이 기법들은 관습적 기법과 자유 기법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리고 지나치게 낡았다
거나 지나치게 새롭다는 등의 평가를 바탕으로 하는 '지각가능한 기법'과 19세기 작가들이 기법을
은폐하고자 했던 것과 같은 유의 '지각불가능한 기법'이 있다. 또다른 경우 푸시킨이나 미래파처럼
기법을 노출시키고 있는 경우도 볼 수 있다. 기법이 기계적인 것이 되거나 기능을 살리지 못할 때
는 무용한 것이 되고 만다.
문학장르는 하나의 주도적인 기법 아래 결합된 기법들의 체계이다. 장르는 태어나서 성장하다가
소렴된다. 상위 장르가 하위 장르로 대치되거나 희극의 기능을 쟁취한 하위 기법들이 상위 장르를
밀치고 들어 오기도 한다. 장르의 분류는 역사적으로 그 당대의 시대에 유효하도록 실용적이고 공
리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재를 한정된 테두리 안에서 배당할 수 있다. 작품들은 각기 차례대로
종과 유형이 가려지는 거대한 분류통 안에 분배된다. 이런 의미에서 장르의 체계 아래로 내려가보
면 구체적인 역사적 구분이나 추상적인 분류가 특수한 작품들에조차 행해지는 것을 알 수 있게 된
다.
5-2. 쉬클로프스키
소설가이자 전기작가이고 또한 비평가인 빅토르 쉬클로프스키는 그의 논문집 「산문의 이론에
관하여」에서 토마체프스키와 같은 엄격한 방법의 산문문학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개념들의 자
료를 구성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바꿔 말하면 문학의 과학을 가져온 것이다. 책의 서두에서 그는
"문학이 이론에 있어서 나의 목적은 문학에 내재한 법칙들을 연구하는 것이다 … 이 책 전체가 문
학 형식의 변화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이다."라고 쓰고 있다. 그러
므로 토마체프스키만큼 탁월한 이론가는 아니라 할지라도 일반적인 문제나 특정 작품을 가끔은 아
이러니하고 아폴릭하기도 한 문체를 구사하여 더욱 비판적으로 다르고 있는 그는 동일한 질문에
약간 다른 방식으로 답하고 있는 셈이다.
첫 논문 「기법으로의 예술」에서 쉬클로프스키는 예술은 이미지로 사고한다는 명제에 반대한
다. 사실 이미지로 사고한다는 것은 모든 시대, 모든 국가, 모든 시인들에게 불변의 사실이다. 그러
나 시적인 이미지란 유비의 기능을 갖고 있는 하나의 방편에 불과한 것이지 이미지 자체가 시어에
봉사하는 다른 형태나 기법들의 기능보다 우월한 것은 아니다. 여러 상이한 詩에 봉사하는 시학파
의 작업은 언어의 자원을 다루고 정리하는 가운데 새로운 기법들을 축적하고 작품화하게 된다. 즉
이미지를 창조하는 것보다는 이미지를 정리하는 데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한 작품의
시적인 특징을 인지하기 위해선 대중의 의견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하나의 작품은 저자에게는 산
문으로 의도되었는데 독자에게는 시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또 그 반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에 부여된 문학적인 특징은 우리가 그것을 지각하는 양식에서 나온다. 그래서 문학작품이란 저자
가 작품에서 뚜렷한 문학성이 느껴질 수 있도록 특수한 기법을 고안해서 사용하고 있는 작품을 말
하는 것이다.
다른 형식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쉬클로프스키도 시어와 산문어가 각기 다른 규칙에 따르고 있
음을 강조한다. 실제로 일상의 담화는 때로 무늬식적이기까지한 빠르기와 자동화 과정의 결과이다.
그 결과, 예술은 이루어지는 과정 중에 있는 사물을 체험하게 하는 수단, 중요하지 않은 대상에 예
술성을 부여하는 방법이 된다. 이 근본적인 원동력을 되찾기 이해서 색다른 방법으로 사물을 표현
해야 하며 문학적인 지각을 더 어렵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삶의 감각을 전달하는 것이다.
톨스토이의 경우에서와 같이 '색다르게 표현하기'라는 기법으로 해서 대상을 인지하게 하는 대신
대상을 바라보도록 하는 데 더 중점을 두게 된다. 이와 병행하여 유사함 보다는 일치감의 부재를
느끼게 될 것이다. 표현된 대상은 고유한 의미론적 변형을 감수한다. 시에서 사용되는 언어에는 의
도적으로 계획된 난해함이 있다. 오히려 시에 있어서 산문투의 사용은 하나의 난해함으로 받아들
여지는 것이다. 「일상언어와 문학언어」는 서로 위치를 바꾸게 된다. 시적 담화는 일종의 형성된
담화이다. 반면에 산문은 평범한 일상적 담화이다. 문학적 리듬은 깨어진 산문의 리듬이다.
이어서 쉬클로프스키는 주제를 구성하는 기법들과 일반 문체론적인 기법들 사이의 관계를 연구
한다. 몇몇 단편소설들을 예로 생각하면 특이한 구성법칙들이 주제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형식은 새로운 내용을 표현하기 위하여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낡은 형식이 문
학 고유의 미학적인 성격을 상실했을 때 그 낡은 형식을 대치하기 위하여 나타나는 것이다. 형식이
내용을 만든다는 것은 반복, 병치, 속도의 지연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사건은 형식이 된다.
즉 난파라든가 해적들에 의한 약탈 등을 소설의 주제로 삼는 것은 그것이 구체적인 삶의 상황이기
때문이 아니라 문학적인 기교라는 차원에서의 상황이 그와 같은 주제들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베셀
로프스키는 이미 1876년에 소설의 모험담들은 순수한 문체론적 기법이라고 쓰고 있다. 실러 시대
의 형제살해 기법, 드러내기의 기법 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문학작품들은 사고와 분절현상과 소
리에 의한 하나의 그물망을 형성한다. 사고란 하나의 단어나 낯설은 형체가 소리나고 분절되는 양
상과 마찬가지로 명분으로 주어진 것에 불과하다. 우화도 시의 운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형식을 이
루며, 이때 형식은 대상이 되는 구조물을 지배하는 법칙이 된다.
형식에의 탐구를 해나가면서 쉬클로프스키는 소설과 이야기의 구조를 다루어 나간다. 그는 반복,
내적 운율, 끼워 넣기 등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서랍식으로 된 계단식 구조물과 그 자체로 완결된
인상을 주는 고리식 구조물을 구분한다. 어떤 이야기는 이 두가지 형태가 계속해서 병행해가는 것
도 있다. 톨스토이의 경우, 등장인물이나 집단을 각기 그들 사이에서 대립시키는 병치법은 계단식
구성에 속한다. 모든 것은 능숙한 기교에 의해 부여된 것이며 전통이란 시대에 따라 가능했던 기교
들의 총합이다. 가장 오래된 기교 중의 하나는 단편모음, 「이야기시합」, 「서술을 위한 서술」과
같은 계보의 이야기들, 악당 소설에서 볼 수 있는 끼워넣기emboitage이다. 이 기법은 세르반테스,
르사주, 필딩, 스턴의 작품에서 사용되었다. 몇몇 이야기 모음집에서는 주인공 한 사람의 주변 이
야기들을 풀어 나간다. 이와 같은 경우 여행은 '좋은 단골 손님'이 될 수 있다.
쉬클로프스키는 스턴, 디킨스에 의해 다시 사용된 기법드로가 이야기가 주입되는 양식을 환기시
키면서 주변적 이야기를 분류하고 서술한다. 돈키호테에서 볼 수 있는 소설구조의 새로움은 소설의
제2부가 라블레나 스위프트처럼 구조를 바꾼다는 데서 기인한다. 돈키호테는 제1부가 문학적인 규
약들을 강조한 것, 그리고 그것들이 뚜렷이 부각되게끔 씌어졌다는 것을 아는 작품이다. 이러한 방
식으로 후기 소설에까지 분석을 확장시킨 쉬클로프스키는 아퓔레우스에서 톨스토이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이차적이고 고정되지 않은 일화들이 주인공을 받쳐주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또 외부의
기호가 어떻게 내용을 나열할 수 있게끔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쉬클로프스키는 무엇보다도 소설의 기법을 기술하는데 고심한다. 그래서 그는 소설의 구성을 가
장 잘 드러내주는 하위 장르 가운데 하나인 추리소설에 관심을 갖게 된다. 추리소설의 이야기는 불
가사의한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종국적으로는 풀려지게 마련이다. 이는 곧 시간이 전복되는 곳
에서부터 말하자면 하나의 사건이 누락되고 그 결과는 이미 나타난 뒤에 그것에 대한 설명이 언급
되는 것에서부터 미스터리의 효과가 살아난다는 것이다. 톨스토이의 경우에는 반대로 연대기의 전
복이 결말에 나타나는 게 아니라 분석에 나타난다. 많은 추리소설득 속에서 수수께끼는 여러가지
해답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므로 수수께끼의 구조에 따라 소설들이 분류된다고 쉬클로프스키는 강
조한다. 실수의 소설(「80일간의 세계일주」), 병치소설(톨스토이), 추리소설(앤 래드클리프) 등은
처음엔 구성이 잘못되었으나 곧 전환의 형태를 띠게 됨으로써 좋은 결과를 나타낸다.
문학작품이란 제재에 의한 순수한 형식이다. 문학작품은 계층이 없다. 문학의 무해한 특성, 독단
의 부재 등도 그것에서 기인한다. 문학작품들의 연개를 재검토하면서 쉬클로프스키는 문학이 단선
적인 방법으로 발전하지 않았음을 주시한다. 여러개의 학파가 동일한 한 시대에 공존하며 그 중 하
나가 다른 학파들을 지배하게 되고 나머지는 그늘에 가려진 채로 남아있게 된다. 이렇게 빛을 못
보고 조락해가는 학파들은 또다시 새로운 형식을 준비하는데 이것은 처음에 부각되었던, 이제는 조
금 낡아진 형식을 완전히 제거하고자 함이 아니라 대치하기 위함이다. 뿐만아니라 문학작품의 내용
은 (인간의 영혼이 그 문학작품에서 받아들이는 것은) 문체적인 기법들의 총합과 동일한 것이다.
따라서 기법의 총합으로서의 장르들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는 쉬
클로프스키에게서 이야기의 현대적 분석방법인 서술학narratologie의 선구자적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5-3. 티니아노프
쉬클로프스키와 마찬가지로 유리 티니아노프는 소설가이자 영화 평론가이며 창작활동을 한 비평
가이다. 그는 시를 씀으로써 산문을 쓴 쉬클로프스키의 이론과 짝을 이룬다.
시의 구체적인 개념은 산문의 개념과 대립된다. 특히 시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자신만의 언
어를 가지고 있는 바, 전통적으로 시에 대한 연구는 언어langue의 문제와 시적 문체style의 문제를
분리시켜왔다. 시는 그 안에 있는 모든 요소들이 상호적인 상관관계에 있는 하나의 구조물이다. 뿐
만 아니라 지금까지 별개로 간주되었던 양식의 요소들 사이에 하나의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근본
적인 문제는 시 자체의 구조에 따라서 단어들의 의미나 뜻이 특정하게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티니
아노프에 의해 제시된 구성의 중요성은 예술 또한 삶이라는 복합적인 어려움에 봉착한다. "우리가
생활에 대해서 효용성을 요구하지 않는 한 예술에서 효용성을 찾을 필요는 없다.… 일상의 생활이
문학 속으로 들어가는 바로 그곳에서 생활 자체가 문학이 되고 문학적인 사실로서 평가되어야 한
다."
티니아노프는 시를 연구하는 데 있어 우선적으로 리듬, 그리고 단어의 의미에 차례로 주목한다.
리듬은 복합적인 상호작용의 체계이며 요소들의 싸움, 논쟁의 전개이다. 순전히 음성적인 놀이나
음악적인 놀이로 시를 정의할 수는 없다. 하나의 절은 몇 개의 행과 음절과 소리가 존재함으로써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미완성된 행과 구두점들로 구성되며, 텍스트와 하나의 등가물이 된다. 사잊
ㅇ은 시에서 하나의 역할을 담당한다. 시는 운율의 단위에 적용된 역동적인 초안이 실현되지 않은
상태의 것이다. 관찰할 수 있는 또다른 등가의 현상들은 韻과 잘못된 운이다. 리듬을 이루는 요소
로서의 운은 첫째로 '나아가는 때'와 둘째로 '후퇴하는 때'가 있다. 운율도 마찬가지이다. 자유시와
운율이 있는 산문은 등가의 덕분으로 같은 체계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단어의 경우 더욱더 세세
한 언어적 요소로 나뉘어야 한다. 리듬은 언술적 자료를 역동성 있게 하는 것으로 산문에서도 역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시와 산문의 차이는 소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리듬의 기능적 역할에 있
다. 이와 같이 구성된 시에서 의미를 나타내는 요소는 종속적이고 변형된 위치를 차지한다. 즉 산
문에서의 리듬은 의사소통에 기여하는(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의미의 통일성을 지시하고 강화하는
담론의 기호론적 지향성에 의해 비슷해진다. 하나의 산문적 요소를 시의 체계 안으로 끌어들이게
되면 그것은 강조되고 변형되며 동일한 변형이 시에서 산문으로 갈 때도 생기게 된다. 산문과 시는
두 개의 상이한 리듬체계를 가진다.
또한 티니아노프는 '변화하는 장르'의 개념인 문학의 진화 문제를 제기{{) 티니아노프, 「문학의 이론」, 1963, p.120-37
}}함
으로써 역동적인 문학의 성격을 규명하였다.
5-4. 로만 야콥슨
야콥슨의 저작은 형식주의의 모든 작업을 훌륭하게 종합해준다. 방대한 양의 지식, 이미 구체화
되고 실용화된 그의 학문 체계가 지니는 다양성, 그리고 종합성은 로만 야콥슨에게 따라다니는 수
식어이다. 러시아에서 프라하로, 프라하에서 스웨덴으로 그리고 다시 스웨덴에서 미국으로 옮겨다
녔던 그의 생애는 20세기에서 추방된 그러나 그만큼 넓게 사상을 보급시킨 그의 지식 형성의 여건
을 반영해준다.
1919년 그가 다른 모든 형식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어와 시어간의 관계에 대해 의문을 가졌
던 것은 시어의 각 단어가 일상어의 관계에 의해서 변형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시의
형식은 언어에 폭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그런 주장이 있자마자 또 음성학적인 구조로부터 떠나야
한다는 주장이 생겼다. 죽 음성학적 구조는 표현성으로도 모방적 조화로도 또 소리와 사상 사이의
정서적 관계로도 귀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로 이 시기 이후로부터 시의 기능은 음성학으로 한
정된 전언의 형식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으로 소개되었다. 예를 들어 시에서 동의어가 사용되는 것
은 새로운 단어가 새로운 의미를 가져오기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음성적 구조 때문이다.
야콥슨이 은유와 환유의 사용에 있어서 산문과 시 사이의 경계를 세워놓은 것은 1935년 「詩人
파스테르나크의 산문」이라는 그의 논문에서다. 시는 리듬과 이미지에서 나타나는 유사성에 근거를
둔다. 문채(은유나 환유)는 습관적인 관계들을 대신해준다. 주어진 시의 구조에 있어서 은유의 기
능이 팽팽하게 긴장한 상태에서 기능을 행사할 때 전통적인 분류는 그만큼 깊이 전복되고 대상은
새로 만들어진 분류의 특징에 의한 새로운 형상으로 끌려가게 된다. 창조적인 환유는 사물의 전통
적인 질서를 유사하게 변형시킨다. 인접성에 의한 연합은 공간을 재분배하고 시간의 연속을 변형시
킨다.
문채와 유사하게 병치법은 의미론적이고(비유, 변형, 은유) 음성학적인 (운, 울림, 고차) 변화 속
에서 시를 특징짓는다. 즉 한편의 시에서 소리으 합은 그것이 반복되었을 때만이 지각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에서부터 야콥슨은 소쉬르가 아나그람의 연구에 집착했었다는 사실에서부터 야콥슨은
소쉬르가 아나그람의 연구에 집착했었다는 사실에 관심을 갖게 된다.("모든 것은 시에서 한 가지씩
의 방법으로 서로 상응한다.") 시어라는 수단은 우리로 하여금 습관적인 언어의 선조성이나 연속성
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준다.
가장 엄격한 방법으로 시의 연구에 문법을 적용시키는 것을 정의해준 것은 1960년의 유명한 논
문에서이다. 즉 시는 언어의 가장 형식화된 실현이므로 문법의 요소가 가장 잘 적용되는 것은 시에
서이다. 문법적으로 동일한 문채의 반복은 음성학적으로 동일한 문채의 반복과 함께 시 작품을 구
성하는 원칙이다. 여기에서부터 시 연구의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되었다. 등가와 분산을 통한 통사론
적 층위, 형태론적 층위, 어휘적 층위 간의 상호 작용 즉 의미론적 층위에서의 인접성, 유사성, 동
의어, 반의어들의 여러 상이한 종류들은 모두가 시에서, 여러가지 문법적인 조합을 이해하고 해설
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체계적 분석을 요구하는 현상이라고 주장하였다.
야콥슨은 「시학과 언어학」(1960)이라는 글에서 시학 연구의 최종적 결과로 시학 기능 이론,
병치법, 중의성의 원칙 등을 차례로 정의해놓은 도표를 작성한다. 즉 시학의 대상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무엇이 언어로 된 전언을 문학작품이게끔 만드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과 같다고 말하
였다. 시학은 과학적인 특징에 의해서 문학 비평으로부터 구별된다. 즉 사람들은 문학을 연구하는
학자에게 '문학작품에 내재한 아름다움의 묘사를 주관적으로 판단하라'고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묘사는 음성학이 발음교정과 구별되는 것처럼 비평과는 별개의 것이다. 문학연구는 주어진
한 시대의 문학생산물과 살아남거나 부활한 문학전통 즉 공시적인 문제들을 다룬다. 또 문학연구는
통시적인 문제들을 다룬다. 역사적인 시학은 언어학의 역사처럼 일련의 연속적인 공시적 묘사 위에
세워진 하나의 거대한 구조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시학에 대한 정의를 한 뒤 야콥슨은 자신의 연구를 명확하게 정리한 40년의 결과로 '기능이론'를
내놓았으며 60년대 이후로부터는 프랑스에 있는 시인들과 형식주의자들 그리고 미국에까지 그 영
향력을 뻗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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