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珠語錄
師建州朱氏子 依越州大雲寺智和尙 受業 初參馬祖 祖曰 來須何事 曰 來求佛法
祖曰我這裏一物也無 求甚 佛法 自家寶藏不顧 抛家散走作 曰那箇是慧海寶藏 祖曰卽今問我者是汝寶藏 一切具足何假外求 師於言下自識本心 踊躍禮謝 執侍六載 後以受業師老遽歸奉養撰頓悟入道要門一卷 傳至馬祖覽訖告衆曰 越州有大珠圓明光自在 衆中知師姓朱 推尋依附者 號師爲大珠和尙 贊曰 寶藏久埋 抛家外走 逢人指出 始知本有 照用無方 龍吟獅 吼 入道無門 師闢其 .
사는 건주의 주씨의 아들이라. 월주의 대운사의 지화상을 의지하야 수업했다.
처음 마조스님을 참례할제 마조가 이르되 무엇 할려고 왔느냐. 이르되 불법을 구할라고 왔습니다. 조사가 이르되 나도 저 속에서는 한물건도 없거늘 무슨 불법을 구하리. 자기 보장을 돌아보지아니하고 집을 버리고 달아남은 무엇이랴. 이르되 어떤 것이 이 혜해의 보장입니까. 마조가 이르되 지금 바로 나에게 묻는 놈이 바로 이 너의 보장이다. 일쳬를 구족함이러니 무슨 바깥으로 구하리오하시니 말씀아래에 본심을 깨치고 용약사례하고 모시기를 육년하다가 뒤에 수업사가 노쇠함일세 급히 돌아가 봉양하다가 돈오입도요문일권을 지었다. 그 전함이 마조에게 이르러 보아 마치시고 대중에게 이르되 월주에 대주가 있어 원명하야 빛이 자재하더라하다. 대중가운데에 사의 성이 주씨인 것을 알아 추심해 의지해 붙이는 자가 있어 사를 일러 대주화상이라하고 贊해 이르되 寶藏이 오래도록 묻혀있음에 집을 버리고 밖으로만 구해 달리더니 사람의 가르쳐 냄을 만나 비로소 본래 있음 을 앎이로다. 비추어 씀에 方所가 없고 용트림에 사좌후라. 입도에 문이 없거늘 師가 그 창을 열었다하다.
序
閱傳燈錄至大珠海禪師 自初見馬祖及 接人機語 以至泛應諸宗所問 使之結舌喪氣心悅誠服處 未嘗不爲之慶快而不已 蓋師之言一本於經律論之要旨而卽事卽理全體全用以發明 向上一機殺活 予脫 縱橫逆順 無不合轍而 還源也. 所撰頓悟入道要門論 昔旣盛行年來殊不多見 近四明比丘妙 來言嘗得此論 他語共一編 於弊 斷簡中 寧敢私淑樂與叢林共之 輒경己長 工復 諸梓願一言 識其後 且出新板之文 自一至六 凡六葉以示 然嘗鼎一 又何待覩其全書 噫 大珠此編語言文字耶 非耶 謂其語言文字則 道非語言文字 謂其非語言文字而三藏之文了了在目與此老胸襟流出者 融會貫攝羅列而前陳其間 或自謂我不會禪 無一法可示於人 看他此等語 直是作賊人 心虛盡情 不下 所以今日 不免被人再可塗抹 後之覽者 若於馬祖所謂大珠圓明光透自在無遮障處 當下著得精彩則 隨色摩尼 人人無不具足 其或未然 滯殼遮封 有甚 數具頂門眼者 試爲辨取 洪武六年 癸丑秋九月望日前龍河比丘萬金拜識
접때 전등록을 교열할세 대주혜해선사에 이르러 처음 마조를 친견하고 사람근기에 접하는 말로부터 제종가의 묻는바에 하여금 혀를 묶고 기를 죽이고 마음으로 기뻐하고 참으로 탄복하게 함에 이르기까지 일찍이 경쾌를 짖지아니함이 없어 그침이 없더라 대개 사의 말들이 하나같이 경율론의 요지를 근본하야 즉사즉리요, 온전히 체이며 온전히 용으로서 발명이라 향상 일로로 살활과 여탈에 종횡역순히 궤철에 맞지아니함이 없어 근원으로 돌아가더라. 지으신바 돈오입도요문이 옛날에 이미 성행함이라가 근래로 다못 보지못하더니 사명비구 묘협스님이 와서 이르기를 일찍이 이 론을 얻어 그분의 말씀과 더불어 하나로 엮었음이나 弊 의 斷編殘簡중에서 어찌 감히 사사로히 익히리오 좋이 총림에 주어 함께할것이다하고 자기의 장처를 다해 공장으로하여금 다시 모든 판목들을 새기게하고 일언을 그 뒤에 識하기를 원하더라. 우선 첫째부터 여섯째까지내어 육엽으로 보임이나 그러나 솥의 한점 살점을 맛봄이라. 또한 어찌 그 전모를 보기를 바라리요. 슬프다. 대주스님이 어언문자를 편집했는가 아님인가. 그 어언문자라하면 도가 어언문자가 아님이요, 그 어언문자가 아니라하면 삼장의 글월들이 눈앞애 있어 이 노장의 흉금으로부터 유출한 것이 융회관섭하야 그 사이에 앞하고 있음인가.
혹자가 스스로 이르되 나는 선을 알지못하고 아울러 한법도 가히 사람들에게 보일수 없다한다면 이러한 등의 말을 보거든 바로 이 도적놈이라 하리라. 마음을 허널리 하고 정을 다해서 떨쳐버리지 못함이어니 그래서 금일에 사람들의 다시 쳐 바름을 당함을 면할수 없다. 뒤에 관람하는 자들이 만약 마조의 이른바인 대주가 원명하야 빛이 비춤이 자재하야 막혀 장애가 없다하는 곳을 당하에 정신을 붙인다면 隨色摩尼를 사람사람마다 구족치 않음이 없거니와 그 혹 그러하지 아니할진댄은 겁데기에 막혀 봉해지리니 정문안을 갖춘이가 얼마나 되리오.
시험삼아 가려 취할지어다.
홍무 6년 계축년 가을 9월 14일날 용하비구 만금 배지함
大珠禪師語錄原序
夫 善知識者 如巨海舟航 能度迷類 長夜明炬 存破群昏 大珠和尙 首參馬祖 使入慧海之法界 令開寶藏於自家 所以靈辯滔滔 譬大川之流水 岐機疊疊 如圓器之傾珠 於是曲設多方 垂慈利物 發揚至道 烏可以筆舌讚嘆哉 妙 維那 四明翠山 大中理公之神足 夙具靈根 素培智種 禪餘之暇 閱此老語錄 有所證入 平生碍膺之物 脫然而去 從上佛祖舌頭 一無所疑矣 此亦古塔主 覩雲門語 而嗣之 正所謂也 故 捐資鏤板 以廣其傳 期以後之來者 同一了悟 存此心者 豈淺淺耶 此之功勳不墜 行願彌堅 蓋可見矣 所幾法流不泯 派永接於曹谿 燈焰長存 光愈明於少室者也.
時歲在癸丑春孟十日 阿育王山 沙門 釋崇裕 書於無異堂
대저 선지식이란 마치 큰바다에 배와 같이 능히 미류를 건네주고 장야의 밝은 햇불과 같아서 군혼을 파해줌이라. 대주화상께서 먼저 마조를 참례하시고 하여금 혜해의 법계에 들 게하고 하여금 보장을 자기집에서 열게하시니 소이로 신령한 말씀이 도도하심에 대천의 유수 와 같고 가지가지의 기용이 첩첩함이 마치 둥근그릇에 구슬을 기울인것과 같음이라.
이에 위곡히 다 방편을 설하사 자비를 드리워 중생을 이롭게하고 지도를 발양하나니 어찌 가이 필설로서 찬탄하리오. 묘협유나가 사명취산에서 大中의 道로 公邊無私히 神通하게 하나니 이미 전생으로 영근을 갖추었음이라. 본래로 智種子을 심어 갗추니 禪하는 여가에 이 노장의 어록을 열람하고 증입한바가 있어 평생의 애응지물을 벗어 버렸음이라. 위로부터 불조의 혀끝(설한바)에 한가지도 의심이 없더라. 이 또한 고탑주스님이 운문의 말씀을 보고 운문의 대를 이었음이니 바로 이것을 말함이라. 고로 제물을 내고 판을 새겨 그래서 그 전 함을 넓히니 뒤에 오는 자들이 한가지로 깨닫기를 기대함이라. 이러한 마음이 어찌 얕고 얕으리오. 이러한 공덕은 떨어지지 않을 것이고 행원은 더욱 굳어지는 것을 가히 볼수 있으리라. 바라는 바는 법류가 다하지 아니하고 그 법의 파도가 길이 조계를 이어서 전등이 밝게 길이 빛나고 그 광명이 소실(소실산.숭산 소립사의 근거가 되는 한 봉우리. 불법전등에 비유)을 더욱 밝힘에 있음이라.
계축년 정월 십일 아육왕산 사문 석숭유가 무이당에서 서함
大珠禪師語錄卷上
唐沙門慧海撰
◆頓悟入道要門論
1. 獻辭
稽首和南十方諸佛과 諸大菩薩衆하노이다. 弟子今作此論하오나 恐不會聖心노니 願賜懺悔하시고 若會聖理어든 盡將廻施一切有情하야 願於來世에 盡得成佛 하노이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대보살님들께 머리숙여 예배를 올립니다.
제자가 이 논을 지었으나 성심에 계합치 못하였을까
두려우니 부디 참회를 받아주시고 만약 성심에 계합하거든 일체
유정의 중생들에게 모두 회향하여 내세에 다 함께 성불하기를 바라옵니 다.
2. 頓悟
問 : 欲修何法하야사 卽得解脫고
무슨법을 닦아야 해탈할수있는가
答 : 唯有頓悟一門하야 卽得解脫이니라.
오직 일문을 돈오해야 해탈할수있느니라.
問 : 云何爲頓悟오
무엇이 돈오이냐.
答 : 頓者는 頓除妄念이오 悟者는 悟無所得이니라.
돈이란것은 몰록 망념을 끊음이요, 오라는 것은 무소득을 깨달아야 함이니라.
問 : 從何而修오
무엇을 쫒아 닦을수 있는냐.
答 : 從根本修니라.
근본을 쫒아 닦을수 있다.
問 : 云何從根本修오
무엇이 근본을 쫒아 닦음인가.
答 : 心爲根本이니라.
마음이 근본이니라.
問 : 云何知心爲根本고.
어떻게 마음이 근본인줄을 아는가.
答 : 楞伽經云 "心生卽種種法生하고 心滅卽種種法滅이라"
능가경에 마음이 생한즉 가지가지 법이 생하고 마음이 멸한즉 가지가지 법이 멸한다고 했고
維摩經云 "欲得淨土인댄 當淨其心이니 隨其心淨하야 卽佛土淨이니라" 유마경에 이르되 정토를 얻고자할진댄 마땅히 그 마음을 깨끗이 해야함이니 그 마음이 깨끗함을 따라 불토도 깨끗해짐이라고 했고
遺敎經云 "但制心一處하면 無事不辨이니라" 유교경에 이르되 다만 마음을 한 곳에 놓을 줄알면 이루지 못할것이 없다했고
經云 "聖人은 求心不求佛이요 愚人은 求佛不求心이라 智人은 調心不調身하고 愚人은 調身不調心이니라". 경에 이르되 성인은 마음을 구하고 불을 구하지 아니함이요, 어리석을 사람은 불을 구하고 마음을 구하지 않나니라. 지혜있는 사람은 마음을 조절하고 몸을 조절하지 않고 어리석은 사람은 몸을 조절하고 마음을 조절하지 않는다고 했고
佛名經云 "罪從心生하야 還從心滅이라" 하니 故知善惡一切 皆由自心이니 所以로 心爲根本也니라. 若求解脫者는 先須識根本이니 若不達此理하고 虛費功勞하야 於外相에 求하면 無有是處니라. 불명경에 이르되 죄가 마음을 쫒아서 생하고 도리어 마음을 쫒아서 멸한다고 하니 고로 알라 선악의 일체의 것이 모두 자심을 말미암음이라. 소이로 마음이 근본이 됨이니라. 만약 해탈을 구하는 자일진댄 먼저 근본을 알아야 함이니 만약 이 이치를 요달하지 못하고 헛되이 공력을 낭비하야 바깥 형상에 좌지우지된다면 맞지 않음이로다.
禪門經云 "於外相에 求하면 雖經劫數나 終不能成이요 於內覺觀하면 如一念頃에 卽證菩堤니라.
선문경에 이르되 바깥형상에 끄달려 구한다면 비록 아승지겁을 닦더라도 끝내는 이루지 못할것이요, 안으로 깨달아 관한다면 마치 일념의 순간에 바로 보리를 얻으리라.
3. 禪定
問 : 夫修根本에 以何法修오
대저 근본을 닦음에 무슨법을 닦으리까.
答 : 惟坐禪禪定하면 卽得이니라 禪門經云 求佛聖智인댄 卽要禪定이니 若無禪定이면 念想이 喧動하야 壞其善根이니라. 오직 좌선으로 선정을 닦으면 된다. 선문경에 이르되 부처의 성지를 얻고자할진댄 반드시 선정을 닦아야 할것이니 만약 선정이 없다면 생각 생각이 어지럽게 동하야 그 선근을 부서뜨린다했다.
問 : 云何爲禪이며 云何爲定고
무었이 선이며 어떻게 닦아야 하는가
答 : 妄念不生이 爲禪이요 坐見本性이 爲定이니라.
本性者는 是汝無生心이요 定者는 對境無心하야 八風不動이니 八風者는 利衰毁譽稱譏苦樂이 是名八風이니라. 若得如是定者는 雖是凡夫나 卽入佛位니 何以故오 菩薩戒經云 "衆生이 受佛戒하면 卽入諸佛位라 하니 得如是者는 卽名解脫이며 亦名達彼岸이라 超六度越三界하야 大力菩薩이며 無量力尊이니 是大丈夫니라.
망념이 불생이 선이요 앉아서 본성을 봄이 정이니라. 본성이란 것은 이 너의 무생심이요. 정이란 것은 경계에 대하야 무심하야 여덟 바람에도 부동함이니 팔풍이란 것은 이익 쇠퇴 헐고 기리고 칭찬 시기 고통 쾌락등이 팔풍이라한다. 만약 이같은 정을 얻은 자일진댄 비록 이 범부이나 바로 불위에 들어가리니 어찌해서 그러한가.
보살계경에 이르되 중생이 불계를 받으면 바로 모든 부처의 지위에 들어 간다하니 이와같이 얻은자가 해탈이라 이름하며 또한 피안에 이르렀다고 이름하나니라. 육도와 삼계를 초월한 대력보살이며 무량력존자이니 이 대장부이니라.
4. 無住處 無住心
問 : 心住何處卽住오
마음이 어디에 주하면 곧 주함이 됨인가
答 : 住無住處卽住니라
무주처에 주하면 주하는 것이 된다
問 : 云何是無住處오
무엇이 이 무주처인가
答 : 不住一切處가 卽是住無住處니라.
일체처에 주하지 않는 것이 이 무주처에 주하는것이니라.
問 : 云何是不住一切處오
무엇이 이 일체처에 주하지 않는것인가.
答 : 不住一切處者는 不住善惡有無內外中間하며 不住空하며 亦不住不空하며 不住定亦不住不定이 卽是不住一切處니 只箇不住一切處卽是住處也라. 得如是者는 卽名無住心也니 無住心者는 是佛心이니라.
일체처에 주하지 않는 것은 선악과 유무와 내외중간에도 주하지 않으며 공에도 주하지 않고 또한 불공에도 주하지않고 정에도 주하지 않고 정하지 못함에도 주하지 않는 것이 곧 이 일체처에 주하지 않는것이니 단지 이낱 일체처에 주하지 않음이 곧 이 處에 住함이니라. 이와같음을 얻은 것이 이 무주심이라 이름함이니 무주심이 곧 이 불심이니라.
問 : 其心似何物고
그 마음이 무엇과 같은고.
答 : 其心이 不靑不黃不赤不白하며 不長不短不去不來며 非垢非淨이며 不生不滅하야 湛然常寂이 此是本心形相也니 亦是本身이라 本身者는 卽佛身也니라.
그 마음은 청도 황도 적도 백도 아니며 길지고 짧지도 가지도 오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아니하며 생하지도 멸하지도 아니하야 담연해 항상 고요한 것이 이 본심의 형상이니 또한 이 본신이라. 본신이란 것은 곧 불신이니라.
5. 自性見
問 : 身心은 以何爲見고 是眼見 耳見 鼻見 及身心等見가
신심은 무엇으로 보는가. 이 눈으로 봄인가. 귀로 봄인가 코로 봄인가 내지 심심등으로 봄인가.
答 : 見無如許種見이니라.
봄은 이러한 허다한 봄이 있지 않다.
問 : 云 旣無如許種見인댄 復何見고
이르되 이미 이러한 봄이 없을진댄 다시 무엇으로 봄을 삼는가.
答 : 是自性見이니 何以故오 爲自性이 本來淸淨하야 湛然空寂일세 卽於空寂體中 에 能生此見이니라. 이는 자성으로 봄이니 어찌 그러한가. 자성이 본래로 청정하야 담연 공적하기 때문에 곧 공적체중에서 능히 이 봄을 낸다.
問 : 只如淸淨體도 尙不可得이온대 此見은 從何而有오
단지 이러한 청정체도 오히려 얻지 못함이온 하물며 이 봄은 어디로 부터서 있음인가.
答 : 喩如明鑑中에 雖無像이나 能見一切像이니 何以故오 爲明鑑無心故니라. 學人이 若心無所染하야 妄心이 不生하야 我所心이 滅하면 自然淸淨이니 以淸淨 故로 能生此見이니라 法句經云 於必竟空中에 熾然建立이 是先知識也라 하니라. 비유하면 마치 밝은 거울이 비록 상이 없음이나 능히 일체의 상을 보는것과 같음이니 어찌 그러한가 밝은 거울이 무심한 연고라. 학인이 만약 마음이 물듬이 없어 망심이 생하지 아니하야 나와 상대되는 마음이 멸하면 자연히 청정하야 청정한 연고로 능히 이 봄이 생기나니라. 법구경에 이르되 필경 공가운데 맹렬히 나툼이 이 선지식이니라하니라.
6. 涅槃經의 二句
問 : 涅槃經 金剛身品에 不可見이나 了了見이요 無有知者이나 無不知者라하니 云何오.
열반경의 금강신품에 가히 볼수 없음이나 밝게 요달해 봄이요 아는 것이 없지만 알지 못하는것도 없다하니 이 무엇인고.
答 : 不可見者는 爲自性體가 無形하야 不可得故오 是名不可見也니라.
然이나 見不可得者는 體寂湛然하야 無有去來일세 不離世流나 世流不能流하야 坦然自在卽 是了了見也니라. 無有知者는 爲自性이 無形하야 本無分別이 是名無有知者요 無不知者는 於無分別體中에 具有恒沙之用하야 若能分別一切하야 卽無事不知하나니 是名無不知者니라. 般若偈云 般若는 無知나 無事不知며 般若는 無見이나 無事不見이니라.
가히 볼수 없다 한 것은 자성체가 형상이 없어 가히 얻지 못하는 때문일세 이 가히 볼수 없다고 이름함이나 그러나 가히 얻을수 없음을 본자는 당체가 고요해 담적하야 오고 가고함이 없음일세 세간의 흐름을 여이지 않음이나 세간에 흐름이 또한 능히 흐르게 할 수가 없어 탄연히 자재한즉 이에 료료히 봄이니라. 아는것도 없다는 것은 자성이 형상이 없어 본래로 분별이 없음이 이 무유지자라고 이름하고 알지 못하는 것이 없다함은 분별이 없는 바탕가운데에 항사의 묘용이 있어서 또한 능히 일체를 분별하야 곧 알지 못하는 일이 없나니 이것이 무불지자라 이름함이니라. 반야경에 이르되 반야는 앎이 없음이나 알지 못하는 일도 없음이며 반야는 봄이 없음이나 보지 못하는것도 없음이니라.
7. 不見有無가 眞解脫
問 : 經云 不見有無眞解脫이라하니 何者是不見有無오.
答 : 證得淨心時에 卽名有요 於中에 不生得淨心想이 卽名不見有也니라. 得想無生無住하야 不得作無生無住想이 卽是不見無也니 故로 云不見有無也니라. 楞嚴經云 "知見에 立知하면 卽無明本이요 知見에 無見하면 斯卽涅槃이라 亦名解脫이니라".
경에 이르되 유무를 보지 않음이 이 참 해탈이라하니 무엇이 이 유무를 보지 않음인가. 답이라. 정심을 증득할때에 곧 있음이나 이 가운데에 정심을 얻었다는 마음이 나지 않으면 곧 있음을 보지 않음이요. 얻었다는 생각이 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아니해서 무생무주의 생각을 짖지 않음이 곧 이 없음을 보지 않음이니 고로 이르되 유무를 보지 않음이니라. 능엄경에 이르되 알았다는 견해에 알았다는 것을 세우면 곧 이 무명의 근본이요 알았다는 견해에 견해가 없으면 이 곧 열반이라. 또한 해탈이라 이름한다고했다.
8.無所見
問 : 云何是無所見고
무엇이 이 보는바가 없음인가.
答 : 若見男子女人及一切色相하되 於中에 不起愛憎하야 如不見으로 等이 卽是無所見也니라. 만약 남자와 여자와 그리고 일체의 색상을 보되 그 가운데에 애증을 일으키지 아니하면 마치 보지 아니한것과 같으리니 곧 이 보는 바가 없음이니라.
問 : 對一切色像時 卽名爲見이니 不對色像時도 亦名見否아
答 : 見이니라.
일체 색상을 대할 때 곧 본다라고 함이니 색상을 대하지 아니할때도 본다라고 하는가. 답이라. 본다라고 한다.
問 : 對物時엔 從有見이나 不對物時엔 云何有見고
대상을 대할때는 있다는 견에 따름이나 대상을 대하지 아니할때엔 어떻게 보는 것이 되는고.
答 : 今言見者는 不論對物與不對物이니 何以故오 爲見性이 常故로 有物之時로 卽見이며 無物之時도 亦見也니라. 故知物은 自由來去나 見性은無來去也니 諸根도 亦爾니라.
지금 본다라고 말하는 것은 대상을 대할때나 대상을 대하지 아니할때나를 막론하나니 어찌그러한가 보는 성품은 항상하는 때문이라. 그래서 대상이 있을때나 대상이 없을때나 봄이니라. 고로 알라 대상은 오고 가고 함이 있음이나 보는 성품은 오고가고함이 없음이라.
問 : 正見物時 見中에 有物否아
정히 대상을 볼적에 보는 가운데에 대상이 있음인가.
答 : 見中에 不立物이니라. 보는 가운데에 대상이 없다.
問 : 正見無物時 見中에 有無物否아
정히 대상이 없음을 볼때에 보는 가운데에 대상이 없음을 보는가 마는가.
答 : 見中에 不立無物이니라.
보는 가운데에 대상이 없음을 세우지 아니한다.
問 : 有聲時卽有聞이어니와 無聲時에도 還得聞否아
소리가 있을때에 곧 듣거니와 소리가 없을때도 들을수 있음인가.
答 : 亦聞이니라. 또한 들음이로다.
問 : 有聲時엔 從有聞이어니와 無聲時엔 云何得聞고
소리가 있을때는 소리를 따라서 듣거니롸 소리가 없을때는 어떻게 들을수 있는가.
答 : 今言聞者는 不論有聲無聲이니 何以故오 爲聞聲이 常故로 有聲時卽聞이며 無聲時 亦聞이니라. 지금 듣는다고 말하는 것은 소리가 있고 없고를 상관함이 아님이니 어찌그러한가. 소리를 들음이 항상하기 때문에 소리가 있을때도 또한 들으며 소리가 없을때도 또한 들음이로다.
問 : 如是聞者是誰오
이같을진댄 듣는 놈이 이 누군가.
答 : 是自性聞이며 亦名知者聞이니라. 이는 자성이 듣음이며 또한 아는 놈이 들음이라.
9. 頓悟門宗旨와 體用
1, 宗旨와 體用
問 : 此頓悟門은 以何爲宗이며 以何爲旨며 以何爲體며 以何爲用고
이 돈오문은 무었으로 종으로 삼으며 무엇으로 旨로 삼는며 무엇으로 체로 삼으며 무엇으로 용으로 삼는가.
答 : 無念으로 爲宗이요 妄心不起로 爲旨며 以淸淨爲體요 以智爲用이니라.
무념으로 종으로 삼고 망심이 일어나지 않음으로 지로 삼고 청정으로 체로 삼고 지로서 용으로 삼는다.
問 : 旣言無念爲宗인댄 未審커라 無念者는 無何念고
이미 무념으로 종으로 삼을진댄 알지 못커라 무념이 어떤 념이 없음인가.
答 : 無念者는 無 邪念이요 非無正念이니라. 무념은 삿된 념이 없음이요 정념이 없지 않음이니라.
問 : 云何爲邪念이며 云何名正念고
무엇이 삿된념이며 무엇이 정념인가.
答 : 念有念無 卽名邪念이요 不念有無 卽名正念이며 念善念惡이 名爲邪念이요 不念善惡이 名爲正念이니 乃至苦樂生滅取捨怨親憎愛가 幷名邪念이요 不念苦樂等이 卽名正念이니라.
있다는 생각에 없다는 생각이(은연중 유무를 느끼는 생각) 곧 이 삿된 생각이요 유무를 생각하지 않음이 이 정념인것이며 선악을 생각함이 사념이요 선악을 생각하지 않음이 정념이다. 내지 고락과 생멸과 취사와 원친과 증애가 모두 사념이요 고락등을 생각하지 않음이 곧 이 정념이다.
問 : 云何是正念고
무엇이 정념인가.
答 : 正念者는 有念菩堤니라 정념은 보리를 생각하는 것이다.
問 : 菩提는 何得否아
보리는 어떻게 얻는가.
答 : 菩提는 不可得이니라 보리는 가히 얻을수 없다.
問 : 旣不可得인댄 云何有念菩提오.
이미 불가득인댄 어떻게 보리를 생각한다말인가.
答 : 只如菩提는 假立名字라 實不可得이며 亦無前後得者니 爲不可得故로 卽無有念이라 只箇無念이 是名眞念이니 菩提는 無所念일세니라. 無所念者는 卽一切處無心이 是無所念이니 只如上說如許種無念者는 皆是隨事方便으로 假立名字니 皆同一切요 無二無別이니라. 但知一切處에 無心하면 卽是無念也니 得無念時에 自然解脫이니라.
단지 저 보리는 짐짓 이름을 지음이라 실로는 얻을수 없으며 또한 앞서 얻지 못하다가 뒤에 얻음이 없나니 가히 얻지 못함을 말미암는 연고로 곧 념이 있을수가 없다. 단지 이낱 념이 없음이 이 참되 념인것이니 보리는 념하는 바가 없음인연고라. 념하는 바가 없는 것은 곧 일체처에 무심함이 이 념하는 바가 없음이니 단지 앞의 허다한 념이 없다는 말은 모두 일을 따른 방편으로 이름자를 세움이니 모두 한가지라서 다른 것이 없다. 고로알라 다만 일체처에 무심만하면 곧 이 무념이니 무념을 얻을때가 자연 해탈이니라.
問 : 云何行佛行고
어떻게 불행을 해야하는고.
答 : 不行一切行이 卽名佛行이며 亦名正行이며 亦名聖行이니 如前所說 不行有無憎愛等이 是也라. 大律卷五 菩薩品云 一切聖人은 不行於衆生行이오 衆生은 不行如是聖行이니라.
일체의 행을 행하지 않음이 곧 이 불행이라 이름하고 또한 정행이라 이름하나니 앞의 설한바 유무증해등을 행하지 않음이 곧 이것이라. 대율의 5권 보살품에 이르되 일체의 성인은 중생의 행을 행하지 않음이오 중생은 이같은 성행을 행하지 못함이로다고했다.
問 : 云何是正見고
무엇이 이 바로봄인가
答 : 見無所見이 卽名正見이니라. 봄이나 보는바가 없음이 곧 바로보는것이다.
問 : 云何名見無所見고
어찌해서 봄이나 보는바가 없다하는고.
答 : 見一切色時에 不起染着이니 不染着者는 不起愛憎心일새 卽名見無所見也니라. 若得見無所見時엔 卽名佛眼이니 更無別眼이니라. 若見一切色時에 起愛憎者는 卽名有所見이니 有所見者는 卽是衆生眼이라 更無別眼作衆生眼이니 乃至 諸根도 亦復如是니라. 일체의 대상을 볼때에 착을 일으키지 않음이니 착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은 좋고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지않음일세 곧 봄이나 보는바가 없다함이라. 만약 봄이나 보는바가 없음을 얻었다면 곧 불안이라고 이름함이니 다시 달리 불안이 있지가 않다. 만약 일체의 대상을 볼때에 좋고 싫어하는 마음을 낸다면 곧 보는바가 있음이니 보는바가 있다는 것은 곧 이 중생안이라 다시 달리 눈이 있어 중생안을 지음이 아님이니 내지 모든 眼도 또한 이와 같음이니라.
2, 二性空
問 : 旣言以智爲用者인댄 云何爲智오
이미 지로서 용이 된다고할진댄 무엇이 지가 됨인가.
答 : 知二性空이 卽是解脫이오 知二性不空하면 不得解脫이니 是名爲智며 亦名了邪正이며 亦名識體用이니라. 二性空이 卽是體라 知二性空이 卽是解脫이니 更不生疑하면 卽名爲用이니라. 言二性空者는 不生有無 善惡愛憎 名二性空이니라. 二性이 공함이 곧 이 해탈인줄 알며 이성이 공하지 않음에 해탈을 얻지 못한다고 아는 것이 이 智라. 또한 사와 정을 요달함이며 또한 체용을 안다고 함이니라. 이성의 공함이 곧 이 체이요 이성이 공함이 곧 이 해탈인줄 알아서 다시 의심을 내지 않는 것이 곧 용이라 이름한다. 이성이 공하다고 하는 것은 유무를 내지 않고 선악 증애를 내지 않음을 이성공이라 이름한다.
10. 頓悟 檀波羅蜜
問 : 此門은 從何而入고
이 門은 무엇을 쫒아 들어가는가.
答 : 從檀波羅蜜入이니라. 단바라밀(보시바라밀)을 쫒아 들어간다.
問 : 佛說六波羅蜜이 是菩薩行이어늘 何故로 獨說檀波羅蜜이며 云何具足而得入也오
불이 설한 육바라밀이 이 보살행이어늘 어찌해서 유독 단바라밀만을 설하는것이며 어떻게 구족히 들어갈수 있으리오.
答 : 迷人은 不解五度皆因檀度生이니 但修檀度하면 卽六度悉皆具足이니라.
미혹한 사람은 나머지 다섯바라밀이 모두 단바라밀을 인해서 생한줄을 모르나니 단지 단바라밀만 닦아도 육바라밀을 모두 구족하는것이다.
問 : 何因緣故로 名爲檀度오 무슨인연으로 단바라밀이라하는가.
答 : 檀者는 名爲布施니라. 단이란 것은 보시라 이름함이라.
問 : 問 : 布施何物고
무슨 물건을 보시하는고
答 : 布施却二性이니라. 이성을 보시해버림이라.
問 : 云何是二性고
무엇이 이성인고
答 : 布施却善惡性하며 布施却有無性과 愛憎性과 空不空性과 定不定性과 淨不淨性하야 一切를 悉皆施却하면 卽得二性空이니라. 若得二性空時에 亦不得二性空想이며 亦不得作念有施想이 卽是眞行檀波羅蜜이니 名萬緣이 具絶이니라. 萬緣이 具絶者는 卽一切法性空이 是也니 法性空者는 卽一切處無心이 是니라. 若得一切處無心時에 卽無有一相可得이니 何以故오. 爲自性이 空故로 無一相可得이니라 無一相可得者는 卽是實相이니 實相者는 卽是如來妙色身相也라 金剛經云 離一體諸相이 卽名諸佛이라 하니라. 선악성을 보시해버리고 유무성을 보시해 버리고 증애성과 공불공성과 정부정성과 淨不淨性을 보시해버려 일체를 모두 보시해 버리면 곧 이성공을 얻을 수 있다. 만약 이성공을 얻을때에 또한 이성공의 생각을 얻지 못함이며 또한 보시했다는 생각도 짖지 않음이 곧 이 참 보시바라밀을 행함이니 만연이 모두 끊어졌다할 수 있다. 만연이 모두 끊어진 것은 곧 일체법성이 공함이 바로 이것이요. 법성이 공한 것은 곧 일체처에 무심함이 이것이라. 만약 일체처에 무심을 얻을떼에 곧 한 생각상도 가히 있음이 없음이니 어찌그러한가 자성이 공하기 때문에 한 상도 가히 얻을수 없음이니라. 한 상도 가히 얻을수 없는 것이 곧 이 실상이니 실상이란 것은 곧 이 여래묘색신상이니라. 금강경에 이르되 일체의 상을 여임이 곧 제불이라 하니라.
問 : 佛說六波羅蜜이어늘 今云何說一하야 卽能具足고. 願說一具六法之因하라. 불이 육바라밀을 설했거늘 지금 어찌 하나를 설해서 곧 능히 구족할수 있는고 원컨대 하나를 설해서 육을 구족할수 있는 이유를 설하시라.
答 : 思益經云 網明尊이 爲梵天言하되 若菩薩이 捨一切煩惱하면 名檀波羅蜜이니 卽是布施요 於諸法에 無所起가 名尸羅波羅蜜이니 卽是持戒요 於諸法에 無所傷이 名 提波羅蜜이니 忍辱이요 於諸法離相이 名毘離耶波羅蜜이니 卽是精進이요 於諸法無所住가 名禪波羅蜜이니 卽是禪定이요 於諸法無戱論이 名般若波羅蜜이니 卽是智慧라 是名六法이니라. 今更名六法함에 不異一捨 二無起 三無傷 四離想 五無住 六無戱論이니라. 如是六法은 隨事方便으로 假立名字요 至於妙理하야는 無二無別이니 但知하라 一捨 卽一切捨요 無起卽一切無起이니라 迷徒不契하야 悉謂有差하나니 愚者는 滯其法數之中하야 卽長輪生死로다. 告汝學人하노니 但修檀之一法하면 卽萬法이 周圓이온 況於五法豈不具耶아.
사익경에 이르되 망명존이 범천에 일러 말호대 만약 보살이 일체번뇌를 여이면 단바라밀이라 이름하나니 곧 이 보시이요. 제법에 일어나는 바가 없음이 시바라밀이라 이름함이니 곧 지계이요 제법에 상하는 바가 없음이 찬제바라밀이니 인욕이요 제법에 상을 여임이 비리야바라밀이니 곧 이 정진이요 제법에 주하는 바가 없음이 선바라밀이니 곧 이 선정이요 제법에 희론이 없음이 반야바라밀이니 곧 이 지혜라 이것이 여섯 법이니 지금 다시 여섯법을 이름함에 첫 번째는 사,두번째는 기, 세 번째는 상, 네 번째는 리상, 다섯 번째는 무주, 여섯 번째는 희론과 달리하지 않는다. 이와같이 여섯법은 일을 따르는 방편으로 짐짓 이름자를 세움이요 묘리에 이르러서는 둘도 아니고 다름도 없음이니 다만 알라 한번 버림에 곧 일체를 버림이요 일어남이 없음에 일체가 일으키지 않음이로다. 미혹자는 알지 못하야 모두 차이가 있다함이니 어리석은 자는 法數의 가운데에 막혀 길이 생사에 윤회함이로다. 너희들학인에게 이르노니 다만 단바라밀만 닦으면 곧 만법이 두루 원통함이온 하물며 다섯법에 어째 구족하지 못할까.
11. 三學을 함께 쓰다
問 : 三學等用이라 하니 何者是三學이며 云何是等用고
삼학을 함께 쓴다하니 무엇이 이 삼학이며 어떻게 같이 쓰리까.
答 : 三學者는 戒定慧是也니라. 삼학은 계정혜가 이것이라.
問 : 云何是戒定慧오.
무엇이 이 계정혜이오,
答 : 淸淨無染이 是戒요 知心不動하야 對境寂然이 是定이요 知心不動時에 不生不動想하며 知心淸淨時에 不生淸淨想하야 乃至善惡을 皆能分別하되 於中에 無念하야 得自在者是名爲慧也니라 若知戒定慧體俱不可得時에 卽無分別者이니 卽同一 라 是名三學等用이니라.
청정해서 더럽지 않음이 이 계요 마음이 부동함을 알아 경계에 대하여도 고요함이 이 정이요 마음이 부동함을 알 때 부동하다는 생각을 내지 아니하며 마음이 청정할때에 청정한 상을 내지 아니하야 내지 선악을 모두 능히 분별하되 그 가운데에 생각이 없어서 자재함을 얻는 것이 이 혜이니라 만약 계정혜체를 모두 가히 얻을수없음을 알때에 분별하는 것이 없을지니 곧 一體라 이것을 이름하야 삼학을 같이 쓴다함이라.
12. 無生心
問 : 若心住淨時에 不시是着淨否아
만약 마음이 정에 주할때에 이 정에 착함인가 아님인가.
答 : 得住淨時에 不作住淨想이 是不着淨이니라. 정에 주함을 얻을때에 정에 주한다는 생각을 짖지 않으면 이 정에 착함이 아님이니라.
問 : 心住空時에 不是着空否아
마음이 공에 주할때에 이 공에 주함인가 아님인가.
答 : 若作空想하면 卽名着空이니라. 만약 공이라는 생각을 지으면 곧 공에 착함이 됨이라.
問 : 若心得住無住處時에 不是着無住處否아
만약 마음이 무주처에 주함을 얻을때에 이것이 무주처에 착함인가 아님인가.
答 : 但作空想하면 卽無有着處라 汝若欲了了識無所住心時인댄 正坐之時에 但知心에 莫思量一切物하고 一切善惡을 都莫思量하라. 過去事는 已過去而莫思量하면 過去心이 自絶이니 卽名無過去事요 未來事未至니 莫願莫求하면 未來心이 自絶이니 卽名無未來事요 現在事는 已現在라 於一切事에 但知無著하면 無著者는 不起憎愛心이 卽是無著일세 現在心이 自絶이니 卽名無現在事라 三世不攝일세 亦名無三世也니라. 心若起去時에 卽莫隨去하면 去心이 自絶이요 若住時에 亦莫隨住하면 住心이 自絶하야 卽無住心이니 卽是住無住處也니라. 若了了自知 住在住時에도 只物住이니 亦無住處이요 亦無無住處也니라. 若自了了知하야 心不住一切處하면 卽名了了見本心也며 亦名了了見性也라. 只箇不住一切處心者는 卽是佛心이며 亦名解脫心이며 亦名菩提心이며 亦名無生心이며 亦名色性空이니 經云證無生法忍是也니라. 汝若未得如是之時에 努力努力하야 勤加用功하야 功成自會니 所以會者는 一切處無心이 卽是會니라. 言無心者는 無假不眞也니 假者는 愛憎心이 是也오 眞者는 無愛憎心이 是也니라. 但無憎愛心하면 卽是二性空이니 二性空者는 自然解脫也니라.
다만 공이란 생각이면 곧 착하는 곳이 있음이 없음이라 너가 만약 무소주심을 밝게 요달할려고 할때 정히 좌선함에 다만 마음에 일체 대상을 思量하지 말며 일체선악을 모두 思量말줄을 알아라. 과거의 일은 이미 과거일세 사량하지 않으면 과거심이 저절로 끊어질것이니 곧 과거사가 없다고 함이요, 오지 않은 미래사에 다만 원하지도 말고 구하지도 않으면 미래심이 저절로 끊어지니 곧 미래사가 없음이 됨이요 현재의 일은 이미 현재했음이라 일체의 일에 다만 무착할줄을 알면 무착이란 것은 증애의 마음을 내지 않음이 곧 이 무착일세 현재심이 저절로 끊어져서 곧 현재사가 없다 이름함이니라. 삼세를 섭하지 않음일세 또한 삼세가 없다고 이름함이라. 마음이 만약 일어나갈때에 곧 일어나감을 따르지 말면 과거심이 저절로 끊어짐이요 만약 주할때에 또한 따라 주하지 아니하면 또한 주하는 마음이 저절로 끊어져서 곧 무주심이니 곧 이 무주처에 주함이니라. 또한 住함에 住해 있을때라도 단지 境界인 住일 뿐임을 료료히 스스로 앎이니 또한 주하는 곳이 없으며 또한 무주처도 없음이니라. 만약 마음이 일체처에 머무름이 없음을 스스로 료료히 안다면 곧 료료히 본심을 봤다고 할것이며 또한 료료히 성품을 봤다고 할 것이다. 단지 이낱 일체처에 주하지 않는 것이 곧 이 불심이며 또한 해탈심이며 또한 무주심이며 또한 색성공이니 경에 이르되 무생법인이란 것이 이것이다. 너가 만약 이같음을 얻지 못했다면 노력노력하야 부지런히 닦아 나간다면 공을 이루어 저절로 알게되리니 안다라고한것은 일체처에 무심함이 곧 앎이니라. 무심이라고 말한 것은 假가 眞아님이 없음이니 假는 증애심이 이것이요, 眞은 증애심이 없음이 이것이라. 다만 증애심만 없다면 곧 이 이성공이니 이성이 공한자는 자연히 해탈함이라.
13. 常住
問 : 只坐爲用가 行時도 亦得爲用否아
단지 앉아서만 用功을 해야되는가 아니면 행시에도 또한 용공할수있는가.
答 : 今言用功者는 不獨言坐니 乃至 行住坐臥所造運爲一切時中에 常用無間이 卽名常住也니라.
지금 힘쓴다는 말은 단지 앉는것뿐이 아님이라. 내지 行住坐臥의 나아가는바 행동의 일체시중에 항상 用功하야 간단함이 없음이 곧 이름하야 상주가 됨이니라.
14. 五種法身
問 : 方廣經云 五種法身은 一實相法身이요 二功德法身이요 三法性法身이요 四應化法身이요 五虛空法身이라하니 於自己身에 何者是오 방광경에 이르되 오종법신은 첫째는 실상법신이요, 둘쩨는 공덕법신이요, 셋째는 법성법신이요, 넷째는 응화법신이요, 다섯째는 허공법신이라하니 자기 법신에서 어느것이 이것인가.
答 : 知心不壞가 是實相法身이요 知心含萬象이 是功德法身이요 知心無心이 是法性法身이요 隨根應說이 是應化法身이요 知心無形하야 不可得이 是虛空法身이니 若了此義者는 卽知無證也니라. 無得無證者는 卽是證佛法法身이요 若有證有得을 以爲證者는 卽邪見增上慢人也며 名爲外道니 何以故오 維摩經云 舍利弗이 問天女曰 如何所得이며 何所證하야 辯乃得如是오 天女答曰 我無得無證하야 乃得如是라하니 若有得有證하면 卽於佛法中에 爲增上慢人也니라.
심이 불괴함이 이 실상법신인줄 앎이요, 심이 만상을 함용함이 이 공덕법신임을 앎이요. 심이 무심함이 이 법성법신인줄 앎이요. 근기에 따라 응해 설법하는 것이 이 응화법신이요, 심이 형상이 없어 가히 얻을수 없음이 이 허공법신임을 앎이니 만약 이 뜻을 아는자일진댄 곧 증할것도 없음을 알 것이다 얻음도 없고 증함도 없을진댄 곧 이 불법신을 증득함이거니와 만약 증함이 있고 얻음이 있어 이것으로 증득했다하는 자는 곧 사견의 增上慢人이니 外道라 이름함이라 어찌그러한가 유마경에 이르되 사리불이 천녀에게 물어 가로되 무슨 얻음과 무슨 證辯으로 이같음을 얻었는가 천녀가 답해 이르되 내가 얻음이 없고 증함이 없어서 이에 이같음을 얻었나이다하니 만약 얻음이 있고 증한 것이 있다면 곧 불법가운데에 증상만인이 됨이니라.
15. 等覺과 妙覺
問 : 經云 等覺妙覺이라 하니 云何是等覺이며 云何是妙覺고
경에 이르되 등각과 묘각이라 하니 무엇이 이 등각이며 무엇이 이 묘각인고.
答 : 卽色卽空이 名爲等覺이요 二性空故로 名爲妙覺이며 又云 無覺無無覺이 名爲妙覺이니라.
곧 색이 곧 공을 등각이라함이요 이성이 공한연고로 묘각이라 이름하며 또 이르되 각이 없고 각이 없음도 없음을 묘각이니라.
問 : 等覺與妙覺이 爲別가 爲不別가
등각과 묘각이 같은가 다른가
答 : 爲隨事方便으로 假立二名이라 本體是一이요 無二無別이니 乃至一切法이 皆然也니라.
일을 따른 방편으로 짐짓 두가지 이름을 세웟으나 본체는 이 하나이요 달리 둘이 아님이이 내지 일체법이 모두 그러하다.
16. 說法
問 : 金剛經云 無法可說이 是名說法이라 하니 其義云何오
금강경에 이르되 무법을 가히 설함을 이 설법이라 이름한다하니 그 뜻이 어떠하오.
答 : 般若體畢竟淸淨하야 無有一物可得이 是名無法可說이요 卽於般若空寂體中에 具恒沙之用하야 卽無事不知是名說法이니 故云無法可說이 是名設法이니라.
반야체는 필경에 청정하야 일물도 가히 얻을수 없음이 이 무법을 가히설한다고 이름함이니 곧 반야공적체가운데에 항사의 묘용이 갖추어 있어 일을 알지 못하는 것이 없음을 이 설법이라 이름함이라. 고로 이르되 무법을 가히 설함이 이 설법이라 이름함이니라.
17. 金剛經의 輕賤
問 : 若有善男子善女人이 受持讀誦此經호대 若爲人輕賤하면 是人은 先世罪業으로 應墮惡道어늘 以今世人輕賤故로 先世罪業이 卽爲消滅하야 當得阿 多羅三 三菩堤라하니 其義云何오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이경을 수지 독송호대 사람이 輕賤하면 이사람은 선세의 죄업으로 응당히 악도에 떨어져야 하거늘 지금 당세인(當世人)이 輕賤하는 연고로 선세죄업이 곧 소멸되어 마땅히 아뇩다라 삼먁삼보리를 얻을것이다라하니 그 뜻이 어떠한고.
答 : 只如有人이 未遇大善知識하야 唯造惡業하야 淸淨本心이 被三毒無明所覆하야 不能顯了故로 云爲人輕賤也요 以今世輕賤者는 卽是今日에 發心求佛道하야 爲無明이 滅盡하야 三毒이 不生하야 卽本心이 明朗하야 更無亂念하고 諸惡이 永滅故로 以今世人輕賤也요 無明이 滅盡하야 亂念이 不生하면 自然解脫故로 云當得菩提니 卽發心時名爲今世요 非隔生也니라.
단지 어떤사람이 대선지식을 만나지 못해서 악업만 지을줄을 알아 청정본심이 삼독무명의 덮힌바가 되어서 능히 드러나지 못하는 연고로 사람이 경천한다함이요. 금세인이 경천한다는 것은 지금 금일에 발심해서 불도를 구하야 무명이 멸해 다하고 삼독이 생하지 아니하야
곧 본심이 밝고 밝아서 다시 잡념이 없고 제악이 길이 멸하는 연고로 지금 세인이 경천함이요 무명이 멸해 다해서 어지러운 생각이 생하지 아니하면 자연히 해탈하는 연고로 마땅히 보리를 얻을 것이다함이니 곧 발심할때가 금생임을 말함이요 隔生이 아님이라.
18. 如來의 五眼
又云 如來五眼者는 何오
여래 오안은 어떤것이냐.
答 : 見色淸淨이 名爲肉眼이요 見體淸淨이 名爲天眼이요 於諸色境乃至善惡에 悉能微細分別하야 無所染着하고 於中에 自在名爲慧眼이요 見無所見이 名爲法眼이요 無見無無見이 名爲佛眼이니라.
대상 청정함을 보는 것을 육안이라하고 체가 청정함을 보는 것을 천안이라 하고 모든 색경과 내지 선악에(모든 대상에) 잘 미세 분별하야 물든 바가 없고 그 가운데에 자재함을 혜안이라 이름함이요. 봄에 보는바가 없음이 법안이요. 봄도 없고 봄이 없음도 없음이 불안이니라.
19. 大乘과 最上乘
又云 大乘最上乘 其義云何오
대승과 최상승의 뜻이 어떠한고
答 : 大乘者는 是菩薩乘이요 最上乘者는 是佛乘이니라. 대승이란 것은 이 보살승이요 최상승이란 것은 이 불승이니라.
愚問 云何修而得此乘고
어떻게 닦아야 이 승을 얻는고.
答 : 修菩薩乘者는 卽是大乘이라 證菩薩乘하야 更不起觀하고 至無修處하야 湛然常寂하야 不增不減이 名最上乘이니 卽是佛乘也니라 보살승을 닦는자는 곧 이 대승이요. 보살승을 증득하야 다시 관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닦을곳이 없는곳에 이르러서 담연히 상적하야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음이 최상승이라 이름함이니 곧 이 불승이니라.
20. 定慧를 함께 씀
問 : 涅槃經云 定多慧少하면 不離無明이요 定少慧多하면 增長邪見이요 定慧等故로 卽名解脫이라하니 其義云何오.
열반경에 이르되 정이 많고 혜가 적으면 무명을 벗어나지 못함이요, 정이 적고 혜가 많으면 사견을 증장함이요, 정혜가 동등한연고로 곧 해탈이라 이름하나니 그 뜻이 어떠한고.
答 : 對一切善惡하야 悉能分別이 是慧요 於所分別之處에 不起愛憎하며 不隨所染이 是定이니 卽是定慧等用也니라. 일체선악을 대하야 모두 능히 분별할줄앎이 이 혜요, 분별하는 바의 곳에 증애를 일으키지 않음이 이 정이니 곧 이 정혜를 동등히 씀이니라.
21. 鏡像과 定慧
又問 無言無說이 卽名爲定이라 하니 定言說之時에 得名定否아.
무언 무설이 곧 정이라하니 정히 설할때에 정이라 이름할수 있는가.
答 : 今言定者는 不論說與不說常定이니 何以故오 爲用定性일새 言說分別時에 卽言說分別도 亦定이니라. 若以空心으로 觀色時엔 卽觀色時도 亦空이며 若不觀色不說不分別時도 亦空이며 乃至見聞覺知도 亦復如是니라. 何以故오 爲自性空하야 卽於一切處悉空이니 空卽無着이요 無着이 卽是等用이라.爲菩薩이 常用如是等空之法하야 得至究竟故로 云定慧等者이니 卽名解脫也니라.
지금 정이란 것은 설함과 설하지 않음을 막론하고 항상 정이니 어찌그러한고 정성을 쓰는 연고일세 언설분별할때에 곧 언설분별도 또한 정이니라. 만약 공심으로 색을 관한다면 곧 색을 관할때에도 또한 공이며 또한 색을 관하지 않아 설하지도 않고 본별하지도 않을때도 또한 공이며 내지 견문각지도 또한 그러하니라. 어찌 그러한가. 자성이 공하야 곧 일체처에 모두 공함이니 공한즉 착함이 없음이요 착함이 없은즉 이 동등히 씀이니라. 보살이 항상 이같이 等空의 법을 써서 구경에 至함을 얻는 연고로 정혜를 동등히 쓴다라고 이른 것이니 곧 해탈을 이름함이니라.
今更爲汝譬喩顯示하야 令汝惺惺得解斷疑하리라. 譬如明鑑照像之時에 其明이 動否아 不也니라. 不照時에 亦動否아 不也이라. 何以故오 爲明鑑用無情明照일새 所以照時도 不動이며 不照하야도 亦不動이니라. 何以故오 爲無情之中에 無有動者며 亦無不動者니라 又如日光이 照世之時에 其光이 動否아 不也니라. 若不照時에 動否아 不也니라. 何以故오 爲光無情故로 用無情光照일새 所以不動이며 不照亦不動이니라. 照者는 是慧요 不動者는 是定이니 菩薩이 用是定慧等法하야 得三菩提故로 云定慧等用이 卽是解脫也니 今言無情者는 無凡情이요 非無聖情也니라.
지금 다시 너를 위하여 비유를 현시해서 너로 하여금 성성히 의심을 끊게 하겠다. 비유하면 마치 밝은 거울이 상을 비출 때 그 밝음이 움직이는가 아님이니라. 그러면 비추지 아니할때에 또한 움직이는가 아님이니라. 어찌 그러한고 밝은 거울이 무정히 밝게 비춤을 씀일세 소이로 비출때도 움직이지 아니하며 비추지 아니할때도 또한 움직이지 아니하나니라. 어째 그러한가 무정한 가운데에는 움직이는 것이 없음이며 또한 움직이지 아니하는것도 없음이니라. 또 마치 태양의 광명이 세상에 비추일에 그 광이 움직이는가 아님이니라. 만약 비추지 아니할떼에 움직이는가 아님이니라 어째 그러한가 광이 무정한연고니 무정히 광을 비춤을 씀일세 소이로 부동하며 비추지 아니함에도 또한 부동함이니라. 비춤은 이 혜요, 부동은 이 정이니 보상리 이 정혜의 동등한 법을 써서 삼보리를 얻는 연고로 정혜를 동등히 씀이 곧 이 해탈이라 함이니 범정만이 없음이요, 성정이 없음은 아님이니라.
問 : 云何是凡情이며 云何是聖情고
무엇이 이 범정이며 무엇이 이 성정인가.
答 : 若起二性하면 卽是凡情이요 二性空故로 卽是聖情이니라.
만약 이성을 일으키면 곧 이 범정이요, 이성이 공한 연고로(이성공; 不生 有無 善惡 憎愛등) 곧 이 성정이니라.
22. 言語道斷心行處滅
問 : 經云 言語道斷心行處滅이라 하니 其義如何오
경에 이르되 언어도단심행처멸이라하니 그뜻이 어떠하오.
答 : 以言顯義에 得義言絶이니 義卽是空이요 空卽是道라 道卽是絶言故로 云言語道斷이니라. 心行處滅은 爲得義實際更不起觀이니 不起觀故로 卽是無生이라 以無生故로 卽一切色性空이니 色性空故로 卽萬緣이 俱絶이요 萬緣俱絶者는 卽是心行處滅이니라.
말로서 뜻을 나툼에 뜻을 얻고 말이 끊어짐이니 뜻은 곧 이 공이요, 공은 곧 이 도이라. 도는 곧 이 말을 끊는 연고로 언어도단이라하니라. 심행처멸은 義實際를 얻어 다시 관을 일으키지 않음이니 관을 일으키지 않은 연고로 곧 이 무생이라. 무생을 쓰는 연고로 곧 일체 색성이 공함이니 색성이 공하는 연고로 곧 만연이 모두 끊어짐이요 만연이 모두 끊어진 것이 곧 이 심행처멸이다.
23. 如如
問 : 如如者는 云何오
여여는 무엇인가.
答 : 如如者는 卽是不動義니 心眞如故名如如也니라. 是知過去諸佛도 行此行하야 亦得聖道며 現在佛도 行此行하야 亦得成道며 未來佛도 行此行하야 亦得成道니 三世所修證道도 無二故로 名如如也니라 維摩經云 諸佛도 亦如也며 至於彌勒도 亦如也며 至於一切衆生도 悉皆如也니 何以故오 爲佛性은 不斷有性故也니라. 여여는 곧 이 부동의 뜻이니 심진여인연고로 여여라 이름하니라. 이로서 알라 과거 제불도 이 행을 행하여 또한 성도를 얻었으며 현재불도 이 행을 행하여 또한 도를 이루었으며 미래불도 이 행을 행하여 또한 도를 이룸이니 삼세의 닦아 증득하는 도가 둘이 아닌연고로 여여불이라 이름함이라. 유마경에 이르되 제불도 또한 如하며 미륵불에 이르기 까지
또한 如하며 심지어 일체중생에 이르기 까지 모두 如하나니 어째 그러한가 불성은 끊어졌다 이어졌다하는 성품이 아닌연고니라.
24. 卽色卽空
問 : 卽色卽空하고 卽凡卽聖이 是頓悟否아
바로 색이 곧 공이고 바로 범이 곧 성이 이 돈오인가
答 : 是니라. 맞다.
問 : 云何是卽色卽空이며 云何是卽凡卽聖고
무엇이 이 즉색즉공이며 무엇이 이 즉범즉성인가.
答 : 心有染이 卽色이요 心無念이 卽空이며 心有染이 卽凡이요 心無染이 卽聖이니라.
又云 眞空妙有故로 卽色이요 色不可得故로 卽空이니 今言空者는 是色性이 自空이요 非色滅空이며 今言色者는 是空性自色이요 非色能色也니라. 마음에 물들임이 있음이 색에 즉함이요. 마음에 념이 없음이 공에 즉함이며 마음에 물듬이 있음이 범에 즉함이요 마음에 물듬이 없음이 성에 즉함이니라. 또한 이르되 진공묘유인 연고로 색에 즉함이요. 그러나 색은 불가득인 연고로 공에 즉함이니 지금 공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색성이 스스로 공함이요, 색이 멸한 공이 아님이며 지금 색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공성이 저절로 색하는 것이요 색이 능히 색하는 것이 아닌것이니라.
25. 盡과 無盡
問 : 經云 盡無盡法門如何오
경에 말한 진법문과 무진법문은 무엇인가.
答 : 爲二性空故로 見聞無生이 是盡이니 盡者는 諸漏盡이요 無盡者는 於無生體中에 具恒沙妙用하야 隨事應現하야 悉皆具足하야 於本體中에 亦無損減이 是名無盡이니 卽是盡無盡法門也니라.
이성이 공하기 때문에 견문이 생함일 없음이 이 진이니 진은 모든 루가 다함이요. 무진은 무생가운데에 항사묘용을 보아서 일을 따라 응해 나투어서 모두 구족하야 본체 가운데에 또한 덜어 손실이 없음이 이 무진이라 이름함이니 곧 이 진무진 법문이니라.
問 : 盡與無盡이 爲一가 爲別가
진과 무진이 같음인가 다름인가.
答 : 體是一이나 說卽有別이니라. 체는 이 하나이나 설함인즉 다름이 있음이니라.
問 : 體旣是一인댄 云何說別고
체는 이미 이 하나인댄 어떻게 설이 다름인가.
答 : 一者는 是說之體요 說是體之用이니 爲隨事應用故로 云體同說別이니라. 喩如天上一日下에 置種種盆器盛水하면 一一器中에 皆有於日하야 諸器中日이 悉皆圓滿하야 與天上日로 亦無差別故로 云體同이요 爲隨器立名하야 卽有差別일새 所以有別이니라. 故云體同이나 說卽有別이라 하나니 所現諸日이 悉皆圓滿하야 於上本日에 亦無損減故로 云無盡也니라. 하나인 것은 이 설의 체이거니와 설은 이 체의 용인것이라 일을 따라 응해 쓰는 연고일세 체는 같으나 설은 다르다고 함이니라. 비유하면 마치 하늘위의 한 태양아래에 가지가지 그릇에 물을 담으면 하나하나의 그릇 가운데에 다 태양이 있음이어든 모든 그릇가운데에 태양이 모두 원만하야 하늘위의 태양으로 더불어 쪼금도 차이가 없는 연고로 체가 동이라고 함이요 그릇에 따라 이음을 세움인댄은 곧 차별이 있음일세 소이로 다름이 있음이니라. 고로 이르되 체는 같음이나 설은 곧 다름이 있음이라하나니 나툰바의 모든 태양이 모두 원만하야 하늘위의 태양으로 더불어 또한 손감이 없는 연고로 무진이라 이름함이니라.
26. 不生不滅
問 : 經云 不生不滅이라 하니 何法不生이며 何法不滅고
경에 이르되 불생불멸이라 하니 무슨법이 불생이며 무슨 법이 불멸이닛고.
答 : 不善이 不生이요 善法이 不滅이니라. 불선이 불생이요 선법이 불멸이니라.
問 : 何者善이며 何者不善고
무엇이 선이며 무엇이 불선이냐
答 : 不善者는 是染漏心이요 善法者는 是無染漏心이니 但無染無漏하면 卽是不善不生이며 得無染無漏時에 卽淸淨圓明하야 湛然常寂하야 畢竟不遷일새 是名善法不滅也니 此卽是不生不滅이니라.
불선은 이 물들어 새는 마음이요. 선법은 이 물들어 새지아니하는 마음이라. 다만 무염무루하면 곧 이 불선이 불생이니 무염무루를 얻을때에 곧 청정원명하야 담연상적해서 필경에 바뀜이 없음일새 이 이름이 선법불멸이니 이것이 곧 이 불생불멸이니라.
27. 佛戒는 淸淨心
問 : 菩薩戒云 衆生이 受佛戒하면 卽入諸佛位라 位同大覺已하야 眞是諸佛子라하니 其義云何오
보살계에 이르되 중생이 불계를 수지하면 곧 제불의 위에 든다 위도 대각과 같아버려서 참으로 이 제불자로다하니 그 뜻이 무엇이요.
答 : 佛戒者는 淸淨心이 是也니 若有人이 發心하야 修行淸淨行하야 得無所受心者는 名受佛戒也니라. 過去諸佛이 皆修淸淨無受行하야 得成佛道하니 今時에 有人이 發心修無受淸淨行者는 卽與佛功德等用하야 無有異也니라. 故云入諸佛位也니 如是悟者는 與佛悟同故로 云位同大覺已하야 眞是諸佛子라하니 從淸淨心生智하야 智淸淨이 名爲諸佛子며 亦名此佛子니라.
불계는 청정심이 이것이니 만약 사람이 발심하야 청정행을 닦아서 만약 어떤사람이 발심해서 청정행을 닦아 받았다는 마음이 없음을 얻는자는 불계를 받았다고 이름함이니라 과거의 제불이 모두 청정무수행을 닦아 불도를 이루니 지금의 사람이 발심해 무수청정행을 닦는자는 곧 부처와 더불어 공덕을 같이 쓰서 다름이 하나도 없으니라. 고로 이르되 제불위에 든다라고 함이니 이와같이 깨달은 자는 부처와 더불어 깨달음이 같은 연고로 위가 대각과 같아서 참으로 이 제불자라하니 청정심을 쫒아서 지혜를 내어 지가 청정함이 이름하야 제불자며 또한 이 불자라 이름함이니라.
28. 佛과 法의 先後
問 : 只是佛之與法이 爲是佛在先가 爲是法在先가 若法在先이면 法是何佛所說이며 若佛在先이면 承何敎而成道오.
부처와 법이 어느것이 먼저인가 만약 법이 먼저라면 법은 이 어떤 부처가 설한것이며 만약 부처가 먼저라면 무슨 가르침을 받아서 도를 이루었는가
答 : 佛은 亦在法先이며 亦在法後니라. 부처는 법의 앞에 있고 또한 법의 뒤에 있음이니라.
問 : 因何佛法先後오
어떻게 부처와 법이 선후하는가.
答 : 若據寂滅法이면 是法先佛後요 若據文字法이면 是佛先法後니 何以故오 一切諸佛이 皆因寂滅法而得成佛일새 卽是法先佛後니 經云 諸佛所師는 所以法也니라. 得成道已하야 然始廣說十二部經하야 引化衆生하니 衆生이 承佛法敎하야 修行得成佛일새 卽是佛先法後也니라.
만약 적멸법을 든다면 이 법이 먼저이고 불이 뒤이요 만약 문자법을 든다면 이 불이 먼저이고 법이 뒤니 어찌 그러한가 일체제불이 모두 적멸법을 인해서 성불함을 얻음일새 곧 이 법이 먼저요 불이 뒤이니 경에 이르되 제불의 스승되는 바가 법이다라고하니라. 도를 이루고 나서 비로소 널리 십이부경을 설하사 중생을 꼬시니 중생이 불법의 가르침을 받아 수행해서 불을 이룸일새 곧 이 불이 먼저요 법이 뒤이니라.
29. 說通과 宗通
問 : 云何是說通宗不通고
무엇이 설통이나 종은 불통인고
答 : 言行相違卽是說通宗不通이니라. 언과 행이 상위된즉 이것이 설은 통이나 종은 통하지 못함이니라.
問 : 云何是宗通說亦通고
무엇이 종통설통인고
答 : 言行無差가 卽是說通宗亦通이니라. 말과 행이 차이가 없음이 곧 이 설통종통이니라.
30. 到와 不到
問 :經云到不到不到到之法云何오
경에 이른 도부도와 부도도법은 무엇인가
答 : 說到行不到가 名爲到不到요 行到說不到가 名爲不到到요 行說俱到가 名爲到到니라.
설은 到이나 행은 不到가 到不到이요 행은 到나 설은 不到가 不到到이요 행과 설이 모두 到가 到到이니라.
31. 不盡有爲며 不住無爲
問 : 佛法은 不盡有爲며 不住無爲하니 何者是不盡有爲며 何者是不住無爲오
불법은 유위를 다하지 아니하며 무위에 주하지 않나니 무엇이 유위를 다하지 않는 것이며 무엇이 이 무위에 주하지 아니함인가.
答 : 不盡有爲者는 從初發心으로 至菩提樹下成等正覺하야 後至雙林入般涅槃히 於中에 一切法을 悉皆不捨卽是不盡有爲也오 不住無爲者는 雖修無念이나 不以無念으로 爲證하며 雖修空이나 不以空爲證하여 雖修菩提涅槃無相無作이니이나 不以無相無作으로 爲證이 卽是不住無爲也니라.
불진유위는 처음 발심한 것으로부터 보리수아래에서 성도해서 쌍림에서 열반에 들때까지 그 가운데에 일체법을 모두 버리지 않음이 곧 이 유위를 다하지 아니함이요 불주무위는 비록 무념을 닦음이나 무념으로 증함을 삼지아니하며 비록 공을 닦음이나 공으로서 증함을 삼지아니하며 비록 보리열반무상무작을 닦음이나 무상무작으로 증함을 삼지아니함이 곧 이 무위에 주하지 아니함이니라.
32. 地獄有無
問 : 爲有地獄가 爲無地獄가
지옥이 있음인가 없음인가.
答 : 亦有亦無니라. 또한 있고 또한 없음이니라.
問 : 云何亦有亦無오
어떻게 또한 있고 또한 없음인가.
答 : 爲隨心所造一切惡業이 卽有地獄이요 若心無染하면 自性이 空故로 卽無地獄이니라.
마음의 지은바인 일체의 악업을 따름이 됨일세 곧 지옥이 있음이나 만약 마음이 물들음이 없으면 자성이 공한연고로 곧 지옥이 없음이니라.
33. 衆生과 佛性
問 : 受罪衆生도 有佛性否아
죄를 받는 중생도 불성이 있음인가.
答 : 亦有佛性이니라. 또한 불성이 있음이니라.
問 : 旣有佛性인댄 正入地獄時에 佛性도 同入否아
이미 불성이 있음인댄 정히 지옥에 들어갈때에 불성도 같이 들어가는가 마는가.
答 : 不同入이니라. 같이 들어가지 아니하니라.
問 : 正入之時에 佛性이 復在何處오
그렇다면 정히 들어 갈때에 불성이 또한 어디에 있음인가.
答 : 亦同入이니라. 또한 같이 들어감이니라.
問 : 旣同入이면 正入時衆生이 受罪에 佛性도 亦同受罪否아
이미 같이 들어감인댄 정히 들어갈때에 중생이 받는 죄에 불성도 또한 같이 죄를 받음인가 아닌가.
答 : 佛性이 雖隨衆生同入이나 是衆生이 自受罪故요 佛性은 元來不受니라. 불성이 비록 중생을 따라 같이 들어간다해도 이것은 중생이 스스로 죄를 받음이요 불성은 원래로 받음이 없다.
問 : 旣同入인댄 因何不受오
이미 같이 들어감인댄 어찌 받지 않음인고
答 : 衆生者는 是有相이나 有相者는 卽有成壞요 佛性者는 是無相이니 無相者는 卽是空性也라. 是故로 眞空之性은 無有壞者니라. 喩如有人이 於空에 積薪하면 薪自受壞요 空不受壞也니 空喩佛性이오 薪喩衆生이니 故로 云同入而不同受也니라. 중생은 이 상이 있음이나 상이 있는 것은 성괴가 있음이어니와 불성은 이 상이 없음이라 상이 없는 것은 곧 이 공성이라. 이러한 연고로 진공의 성품은 부서짐이 없음이니라. 비유하면 어떤이가 허공에 나무를 쌓음에 나무가 스스로 무너짐을 당함이나 허공은 무너짐을 받지않음이니라. 공은 불성에 비유하고 나무는 중셍에 비유함이니 고로 이르되 같이 듬이나 같이 받지 않는다했다.
34. 三身四智
問 :轉八識成四智하며 束四智成三身이라 하니 幾箇識이 共成一智며 幾箇識이 獨成一智오
팔식을 굴려 사지를 이루며 사지를 묶어 삼신을 이룬다하니 몇 개의 식이 같이 한 智를 이루며 몇 개의 식이 홀로 한 智를 이루는가.
答 : 眼耳鼻舌身의 此五識이 共成成所作智요 第六이 是意니 獨成妙觀察智요 第七心識은 獨成平等性智요 第八含藏識은 獨成大圓鏡智니라. 안이비설신의 前五識이 함께 성소작지를 이루고 제육식이 홀로 묘관찰지를 이루고 제칠식이 홀로 평등성지를 이루고 제팔식이 홀로 대원경지를 이루니라.
問 : 此四智爲別가 爲同가
사지가 같음인가 다름인가.
答 : 體同名別이니라. 체는 같음이나 이름이 다르다.
問 : 體旣同인댄 云何名別이며 旣隨事立名인댄 正一 之時에 何者是大圓鏡智오 체가 이미 같음인댄 어떻게 이름이 다르며 이미 일을 따라 이름을 세움인댄 정히 한 근본체일때에 무엇이 이 대원경지인고
答 : 湛然空寂하야 圓明不動이 卽大圓鏡智요 能對諸塵하야 不起愛憎이 卽是二性空이니 二性空이 卽平等性智요 能入諸根境界하야 善能分別하되 不起亂想而得自在가 卽是妙觀察智요 能令諸根으로 隨事應用하야 悉入正受하야 無二相者 卽是成所作智니라. 담연히 공적하야 원명부동이 곧 대원경지요, 능히 모든 경계를 대하야 증애를 일으키지 않음이 곧 이 이성공이니 이성이 공함이 곧 평등성지요 능히 모든 육근경계에 들어가 잘 능히 분별하되 어지러운 상을 일으키지 아니해서 자재를 얻음이 곧 이 묘관찰지요 능히 모든 육근으로하여금 일을 따라 응용하여 모두 정수(삼매)에 들어서 두 가지 상이 없음이 곧 이 성소작지이다.
問 : 束四智成三身者는 幾箇智共成一身이며 幾箇智獨成一身고
四智를 묶어서 三身을 이룰진댄 몇 개의 智가 같이 한 몸을 이루며 몇 개의 智가 홀로 한 몸을 이루는가
答 : 大圓鏡智는 獨成法身이요 平等性智는 獨成報身이요 妙觀察智與成所作智는 共成化身이니 此三身은 亦假立名字分別하야 只令未解者看이라 若了此理하면 亦無三身應用이니 何以故오 爲體性이 無相하야 從無住本而立하야 亦無無住本이니라. 대원경지가 홀로 법신을 이루며 평등성지가 홀로 보신을 이루며 묘관찰지와 성소작지가 함께 화신을 이루니 이 삼신은 또한 짐짓 이름자를 세워서 분별하야 단지 알지 못하는 자로 하여금 보게함이니라. 만약 이 이치를 요달하면 또한 삼신의 응용이 없으리니 어찌 그러한가 體性은 相이 없기 때문이니 住함이 없는 根本을 쫒아 세움이나 또한 住함이 없는 根本도 없느니라.
35. 佛眞身
問 : 云何是見佛眞身고
무엇이 이 佛의 眞身을 봄인가.
答 : 不見有無卽是見佛眞身이니라. 有無를 보지 않음이 곧 이 佛의 眞身이니라.
問 : 云何不見有無卽是見佛眞身고
어떻게 유무를 보지 아니한즉 이 불의 진신이라하는가.
答 : 有因無立이요 無因有顯이라 本不立有면 無亦不存이니 旣不存無라 有從何得이리오 有之與無 相因始有하니 旣相因而有일새 悉是生滅也라 但離此二見하면 卽是見佛眞身이니라. 유가 무를 인해서 세우지고 무가 유를 인해서 나툼일새 모두 이 생멸이라. 다만 이 二見을 여이면 곧 이 불진신이니라.
問 : 只如有無도 尙不可交建立이어늘 眞身이 復從何而立고
단지 저 유무도 오히려 서로 건립치 못함이온 진신이 다시 무엇을 쫒아 세울수 있겠는가.
答 : 爲有問故니 若無問時엔 眞身之名도 亦不可立이니라. 何以故오 譬如明鏡이 若對物像時엔 卽現像하나 若不對物像時엔 終不見像이니라. 물었기 때문이니 만약 묻지 않았다면 진신이란 이름도 또한 세울수가 없다. 어찌그러한가 비유하면 밝은 거울이 또한 대상을 비춤에 곧 상이 나타나나 만약 대상을 대하지 아니했을시엔 끝내 상을 볼수 없는것과 같음이라.
36. 常不離佛
問 : 云何是 常不離佛고
무엇이 이 항상 불을 여이지 않음인가.
答 : 心無起滅하고 對境寂然하야 一切時中에 畢竟空寂하면 卽是常不離佛이니라.
마음에 기멸이 없고 경계를 대해서도 적연하야 언제나 필경공적하면 곧 이 항상 불을 여이지 않음이니라.
37. 無爲法
問 : 何者是無爲法고
무엇이 이 무위법인가
答 : 有爲是니라 유위가 이것이라.
問 : 今問無爲法이어늘 因何答有爲法是오
지금 무위법을 묻는데 어찌 유위법이 이것이다하는고
答 : 有因無立이요 無因有顯이라 本不立有면 無從何生고 若論眞無爲者인댄 卽不取有爲며 亦不取無爲 是眞無爲法也니라. 何以故오 經云 若取法相하면 卽着我人이요 若取非法相하야도 卽着我人이니 是故不應取法이며 不應取非法이라 하니 卽是取眞法也니라 若了此理하면 卽眞解脫이며 卽會不二法門이니라. 유가 무를 인해서 세우짐이요 무가 유를 인해서 나툼이니라. 본래로 유를 세우지 않으면 무가 어디로부터 오겠는가 만약 진무위를 논할진댄 곧 유위를 취하지도 않을 것이며 무위를 취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야 이 진무위가 됨이니라. 어찌 그러한가 경에 이르되 만약 법상을 취하면 곧 我와 人에 착함이요, 만약 비법상을 취해도 곧 我人을 착함이니 이러한 연고로 응당히 법을 취하지도 말고 비법을 취하지도 말라 하니 곧 이 진법을 취함이니라. 만약 이 이치를 요달하면 곧 진해탈이며 곧 불이법문을 아는것이다.
38. 中道
問 : 何者是中道義오
무엇이 이 중도의 뜻인가
答 : 邊義是니라. 옆가지 뜻(중심이 아닌)이 이것이니라.
問 : 今問中道어늘 因何答邊義是오
지금 중도를 물었거늘 어찌 곁가지 뜻이 이것이다하는고
答 : 邊因中立이오 中因邊生이라 本若無邊하면 中從何有이오 今言中者는 因邊始有故로 知中之與邊이 相因而立일새 悉是無常이니 色受想行識도 亦復如是니라. 곁이 中을 말미암아 세우짐이요 中은 곁을 말미암아 나툼이라. 애초부터 만약 곁이 없다면 中이 어찌 있으리오. 지금 中을 말하는 것은 곁을 인해서 비로소 있는 연고니 中과 곁이 서로를 인해서 세우짐이라 모두 이 無常이니 색과 수상행식도 또한 이러하다.
39. 五陰
問 : 何名五陰等고
어찌 오음등이라 이름하는고
答 : 對色染色하야 隨色受生이 名爲色陰이요 爲領納八風하야 好集邪信하야 卽隨領受生이 名爲受陰이요 迷心取想하야 隨想受生이 名爲想陰이요 結集諸行하야 隨行受生이 名爲行陰이요 於平等體에 妄起分別繫著하야 虛識受生이 名爲識陰이라 故云五陰이니라. 색을 대하여 색에 물들어 색을 따라 받아 생함을 색음이라하고 八風을 영납하야 좋이 삿된 믿음을 모아들여 거두어 받아들이는 가운데를 따라 생함을 수음이라하고 迷心으로 想을 취해서 상을 따라 받아 생함을 상음이라하고 뭇행을 결집하야 행을 따라 받아 생함을 행음이라하고 평등체에서 망녕되이 분별 계착을 일으켜서 헛된 알음알이를 받아 생함을 식음이라하나니 고로 이르되 오음이라함이니라.
40. 二十五有
問 : 經云 二十五有라 하니 何者是오
경에 이르되 이십오유라하나니 무엇이 이것이요,
答 : 受後有身이 是也니 後有身者는 卽六道受生也라 爲衆生이 現世心迷하야 好結諸業하야 後卽隨業受生故로 云後有也니라. 世若有人이 志修究竟解脫하야 證無生忍者는 卽永離三界하야 不受後有하나니 不受後有者는 卽證法身이오 法身者는 卽是佛身이니라. 後有의 身을 받음이 이것이니 후유신은 곧 육도의 생을 받음이라. 중생은 현세에 마음이 미혹하야 좋이 제업을 결집하야 뒤에 곧 업을 따라 생을 받기 때문에 후유라고 했다. 세간에 어떤사람이 뜻세워 닦아 구경해탈해서 무생인을 증득한자는 곧 길이 삼계를 여이어서 후유를 받지 않나니 후유를 받지 않는 자는 곧 법신을 증득함이오 법신은 곧 이 불신이니라.
問; 二十五有名을 云何分別고
이십오유의 이름을 어떻게 분별하는고
答 : 本體是一이어늘 爲隨用立名하야 顯二十五有니 二十五有는 十惡十善과 五陰이 是니라. 본체는 이 하나어늘 용을 따라 이름을 세워서 이십오유를 나툼이니 이십오유는 십악과 십선과 오음이 이것이니라.
問 : 云何是十惡十善고
무엇이 이 십선 십악이닛고
答 : 十惡은 殺盜 과 妄言綺語兩說惡口와 乃至貪瞋痴邪見이 此名十惡이요 十善者는 但不行十惡하면 卽是也니라. 십악은 살도음과 망언과 기어와 양설과 악구와 내지 탐진치사견이 이 십악이라이름함이요, 십선은 다만 십행을 행하지 않으면 바로 이것이니라.
41. 無念과 頓悟
1. 無念
問 : 上說無念을 猶未盡決이로다.
위에서 설한 무념을 아직도 다 알지못했다하니
答 : 無念者는 一切處에 無心이 是니 無一切境界하야 無餘思求是며 對諸境色하야 永無起動이 是卽無念이니라. 無念者는 是名眞念也니 若以念爲念者는 卽是邪念이요 非爲正念이니 何以故오. 經云 若敎人六念하면 名爲非念이라 하니 有六念하면 名爲邪念이요 無六念者는 卽眞念이니라 經云 善男子야 我等이 住於無念法中하야 得如是金色三十二相하야 放大光明하야 照無餘世界하나니 不可思義功德은 佛說之하야도 猶不盡이온 何況餘乘能知也리오 得無念者는 六根이 無染故로 自然得入諸佛知見이니 得如是者는 卽名佛藏이며 亦名法藏이라 卽能一切佛이며 一切法이니 何以故오 爲無念故로 經云 一切諸佛等이 皆從此經出이라 하니라. 무념은 일체처에서 무심이 이것이니 일체경계가 없어서 나머지 사려해서 구함이 없음이 이것이며 모든 경계에 대하야 영원히 움직여 일으킴이 없음이 이것이다. 곧 이 무념이니라. 무념이 이 진념이니 만약 념으로서 념(무념)을 삼는자는 곧 이 사념이요 정념이 아님이니 어찌그러한고 경에 이르되 만약 사람이 육념을 있게하면 진념이 아님이 됨이라하니 육념이 있으면 사념이 됨이니라. 육념이 없는 자가 곧 진념이니라. 경에 이르되 선남자야 우리등이 무념법중에 주하야 이와같은 금색 삼십이상을 얻어서 대광명을 발하야 끝없는 세계를 비춰나니 이 불가사의공덕은 부처가 설하야도 오히려 다하지 못함이온 하물며 불승이 아닌 다른 乘이 어찌 알리오. 무념을 얻은자는 육근이 물듬이 없는 연고로 자연히 제불지견에 들어갈수 있나니 이와같음을 얻은자는 곧 불장이라 이름하며 또한 법장이라 이름함이라. 곧 능히 일체불을 가능케하고 일체법을 가능케함이라. 어찌그러한가 무념을 쓰는 연고이니 그래서 경에 이르되 일체제불등이 이 경을 쫒아서 나왔다하니라.
問 : 旣稱無念하야 入佛知見이라 復從何立고
이미 무념에 칭합해서 불지견에 들었다면 다시 무엇을 따라서 세울수있는가.
答 : 從無念立이니 何以故오 經云 從無住本하야 立一切法이라 又云喩如明鑑이라 鑑中에 雖無像而能現萬像이니 何以故오 爲鑑明故로 能現萬像이니라. 學人이 爲心無染故로 妄念이 不生하고 我人心이 滅하야 畢竟淸淨하니 以淸淨故로 能生無量知見이니라. 頓悟者는 不離此生하고 卽得解脫이니 何以知之오 譬如師子兒 初生之時에 卽眞師子라 修頓悟者도 亦復如是하야 卽修之時에 卽入佛位니라. 如竹春生筍하야 不離於春하고 卽與母齊하야 等無有異니 何以故오 爲心空故니라.
다시 무념을 따라서 세울수있나니 어찌 그러한고 경에 이르되 무주본을 쫒아서 일체법을 세움이라하고 또 이르되 비유하면 밝은 거울과 같아서 거울 가운데에 비록 다른 상이 없으나 능히 만상을 나투나니 어찌 그러한고 거울이 밝기 때문에 능히 만상을 나투느니라. 학인이 마음 물듬이 없는 연고로 망념이 생하지 아니하고 아상 인상이 멸해서 필경 청정하니 청정함을 쓰는 연고로 능히 무량지견을 생함이니라. 돈오라는 것은 이 생을 여이지 아니하고 해탈을 얻음을 말함이니 어찌 그러한줄을 알리오, 비유하면 사자아와 같나니 처음 생할때에 곧 참 사자라. 돈오를 닦는 자도 이와같아서 닦을때에 바로 불위에 듬이니라. 마치 대나무가 봄에 새순을 냄에 봄을 넘기지아니하고 어미와 나란하야 다름이 없음과 같음이니 어찌 그러한고 마음이 공한 까닭이니라.
2. 頓悟
修頓悟者도 亦復如是하야 爲頓除妄念하고 永絶我人하야 畢竟空寂하야 卽與佛齊하야 等無有異故로 云卽凡卽聖也니라 修頓悟者는 不離此身하고 卽超三界니 經云 不壞世間而超世間하며 不捨煩惱而入涅槃이라 하니라. 不修頓悟者는 猶如野干이 隨逐師子하야 經百千劫하야도 從不得成師子니라.
돈오를 닦는 자도 또한 이와같아서 망념을 몰록 제하고 길이 아인을 끊어 필경에 공적하야 바로 부처와 가지런하야 다름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卽凡卽聖이라 하니라. 돈오를 닦는자가 이 몸을 여이지 아니하고 삼계를 초월하나니 경에 이르되 세간을 부서지아니하고 세간을 뛰어나며 번뇌를 버리지 아니하고 열반에 듬이라하니라. 돈오를 닦지않는자는 마치 여우가 사자를 따라 쫒아 백천겁이 지나도 끝내 사자를 이루지 못함과 같음이니라.
3. 眞如와 無心
又問 眞如之性은 爲實空가 爲實不空가 若言不空이면 卽是有相이오 若言空者인댄 卽是斷滅이니 一切衆生이 當依何修而得解脫고.
진여의 성품은 실로 공인가 실로 공이 아님인가. 만약 공이 아니면 곧 이 상이 있음이요 만약 공일진댄은 곧 이 단멸이니 일체중생이 마땅이 무엇을 의지하야 닦아 해탈을 얻으리오.
答 : 眞如之性은 亦空亦不空이니 何以故오 眞如妙體는 無形無相하야 不可得也일새 是名亦空이라 然이나 於空無相體中에 具足恒沙之用하야 卽無事不應일새 是名亦不空이니라. 經云 解一卽千從이오 迷一卽萬惑이라 하니 若人이 守一하면 萬事畢이니 是悟道之妙也니라 經云 森羅及萬像이 一法之所印이라하니 云何一法中而生種種見고 如此功業은 有行爲本이니 若不降心하고 依文取證하면 無有是處라 自 他하야 彼此俱墮니 努力努力하야 細細審之하라 只是事來에 不受하야 一切處에 無心이니 得如是者는 卽入涅槃하야 證無生法忍이니라. 亦名不二法門이며 亦名無諍이며 亦名一行三昧니 何以故오 畢竟淸淨하야 無我人故니라 不起愛憎이 二性空이며 是無所見이니 卽是眞如無得之辯이니라. 진여의 성품은 또한 공하고 또한 공하지 않나니 어찌 그러한고 진여묘체는 형상이 없어서 가히 얻지 못함일세 이 또한 공이라 이름하고 그러나 공한 상이 없는 체가운데에 항사의 묘용을 갖추어 있어 일을 응하지 못함이 없음일세 이 또한 공하지 않다고 함이라. 경에 이르되 하나를 알면 천가지가 쫒음이요. 하나를 미하면 만가지를 미혹한다하니 만약 사람이 하나를 지킬줄알면 만사를 갖추어 마칠것이니 이것이 도를 깨닫는 妙이다. 경에 이르되 삼라와 만상이 한법의 印친바이라 하니 어찌 한 법가운데에서 가지가지 견해를 내리오. 이와같은 功業은 행으로서 근본이 되나니 만약 마음을 조복치 못하고 글을 의지하야 證함을 취한다면 옳지 않다. 스스로 속고 남을 속여 나와 남이 같이 떨어지리니 노력노력하야 자세히 자세히 살필지어다. 단지 이것은 일이 닿일때마다 받아 들임이 없어 일체처에 무심함이니 이와같이 할수 있는 자는 곧 열반에 들어서 무생법인을 증득하리라. 그래서 또한 불이법문이라하고 또한 무쟁이라하고 또한 일행삼매라하나니 어찌 그러한고 필경에 청정하야 아와 인이 없는연고라. 증애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二性空이요 이 보는 바가 없음이니 곧 이 가히 얻을수 없는 진여에 대한 分辯(진여가 이렇다고 억지로 말한것)이니라.
42. 衆生自度
此論은 不傳無信이요 唯傳同見同行이니 當觀前人하야 有誠信心하야 堪任不退者니 如是之人은 乃可爲說하야 是之令悟니라. 吾作此論은 爲有緣人이요 非求名利니라. 只如諸佛所說千經萬論은 只爲衆生이 迷故로 心行不同하야 隨邪應說하야 卽有差別이나 如論究竟解脫理者인댄 只是事來不受하고 一切處無心하야 永寂如空하야 畢竟淸淨하야 自然解脫이니라 汝莫求虛名하야 口說眞如하되 心似猿 하라 卽言行이 相違하야 名爲自 이니 當墮惡道니라 莫求一世虛名快樂하라. 不覺長劫受殃이니 努力努力이어다. 衆生而自度요 佛不能度니 若佛能度衆生時엔 過去諸佛이 如微塵數하야 一切衆生을 總應度盡이어늘 何故로 我等은 至今流浪生死하야 不得成佛고 當知衆生이 自度요 佛不能度니라. 努力努力自修하야 莫倚他佛力이니 經云 夫求法者는 不著佛求라 하니라. 이 論은 믿음이 없는이에게는 전하지 않음이요 오직 한가지로 보고 한가지로 행하는 이에게만 전함이니 마땅히 앞의 선인들을 관하여 투철한 신심이 있어 불퇴자를 위해서 이에 설하야 깨닫게 함이라. 내가 지은 이 론은 인연이 있는 사람을 위함이요, 명리를 위함이 아님이니라. 단지 저 제불이 설한바인 천경만론은 단지 중생이 미혹한 때문으로 마음과 행이 다름일세 삿된 것을 따라 응해 설하야 조금씩 다름이나 저 구경해탈이치를 논할진댄은 단지 이 일따라 받지 아니하고 일체처에 무심하야 길이 고요하야 공과 같아서 필경에 청정하야 자연 해탈함에 있음이니라. 그러니 너희들은 헛된 이름을 구하야 입으로는 진여를 설하되 마음으론 원숭이와 같이 하지 말지니 노력 노력하라. 중생은 스스로 제도함이요 부처가 제도치 못하나니 만약 부처가 제도할수 있었다면 과거제불이 미진수만큼 많았으라 일체중생을 응당히 제도해야 했거늘 어떻게 우리들은 지금까지도 생사에 유랑하야 성불치 못하는고 마땅히 알라 중생이 스스로 깨달아야 함이요 부처가 깨닫게 해줄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노력노력하야 스스로 닦아 타력을 의지치 말지니 경에 이르되 대저 법을 구하는 자는 불에 집착하야 구하지 말지어다고 했다.
43. 同處不同住
問 : 於來世中에 多有雜學之徒어니 云何共住오
내세에 많은 잡학도가 있으리니 어찌 같이 주하리로.
答 : 但和其光이오 不同其業이라. 同處不同住니 經云 隨流而性常也라 하니라 只如學道者는 自爲大事因緣解脫之事니 俱勿輕未學하야 敬學如佛하며 不高己德하고 不疾彼能하며 自察於行하고 不擧他過하면 於一切處에 悉無妨 하며 自然快樂也니라. 重說偈云 忍辱이 第一道라 先須除我人이니 事來에 無所受하야 卽眞菩提身이로다. 단지 그 빛(근기,근성에 맞춰주고 그 업에는 동참하지 않음일세 같이 처하나 같이 住하지 않음이니라. 경에 이르되 흐름을 따름이나 성품은 항상하다고 했다. 단지 도를 배우는 자는 스스로 일대사 인연의 해탈의 일만을 생각함일세 다 未學(자기보다 조금 부족한사람)을 비웃지 말고 學者를 如佛待接하고 자기를 높이지 말며 다른이의 능력을 시기치말고 스스로 행을 관하고 남을 허물을 보지 않으면 일체처에서 방해받지 않으리니 자연 쾌락하리라. 다시 게송을 하야 이르되 인욕이 제일의 도이라. 먼저 모름지기 아인을 제하고 일마다 받아들임이 없다면 곧 진 보살신이니라.
44. 一切處無心
金剛經云 菩薩이 無我法者는 如來說名眞是菩薩이라. 又云 不取卽不捨하야 永斷於生死하야 一切處에 無心하면 卽名諸佛子니라. 涅槃經云 如來證涅槃하야 永斷於生死라 하니라. 偈曰 我今意況大好하야 他人罵是無惱하며 無言不說是非하야 涅槃生死同道로다. 識達自家本宗이여 猶來無有靑 이로다 一切妄想分別로 將知世人不了하니 寄言凡夫末代하노니 除却心中藁草라 하니 我今意況大寬하야 不語無事心安하니 從容自在解脫이라 東西去易不難이로다. 終日無言寂寞으로 念念向理思看하라 自然逍遙見道하야 生死定不相干이로다. 我今意況大奇하야 不向世上侵欺니 榮華總是虛 이라 弊衣醜食充飢로다. 道逢世人懶語하니 世人咸說我癡라 外現 暗鈍이나 心中明若琉璃하나니 默契羅 密行일세 非如凡夫所知로다. 吾恐汝等이 不會了眞解脫理일새 再示汝等하노라. 금강경에 이르되 보살이 아상 법상이 없다면 여래가 설하대 이 참보살이라하고 또한 이르되 취하지도 아니한즉 버리지도 아니함이니 길이 생사를 끊음이요, 일체처에 무심하면 곧 제불자라고 이름한다하며 열반경에 이르되 여래가 열반을 증득해서 길이 생사를 끊었다고 하니 게송해서 이르되 내가 지금 마음이 너무 즐거워 남이 욕을 해도 괴롭지 않으며 시비를 말하지 않고 설하지 않나니 열반과 생사가 한가지로다. 자기집의 본 근본을 요달함이여 의당 푸르고 검음도 없음이로다. 일체 망상분별로서 세인이 알지 못하는줄을 앎이니 법부 말세에 붙여 말하노니 마음가운데에 짚세기 풀을 제거하라. 내가 지금 너무 마음이 한량이 없어 말이 업고 일도 없어 마음이 편안하나니 조용해 자재 해탈이라 東西에 자재하야 가고 바꿈에 어려움이 없도다. 종일토록 무언 적막으로 념념에 항상 이치에 계합해 보아라 자연 소요해서 도를 보아 생사에 결정코 상관함이 없음이로다. 내가 지금 너무나 기특해 세간에 속임을 당하지않나니 영화가 모두 이 빈겁데기고 속임이라 떨어진 옷입고 거친음식으로 주림을 채움이로다. 세인을 길에서 만나더라도 말을 아끼니 세인은 모두 어리석다함이라 바깥으로 어둔하게 보이나 마음안으로는 유리와 같음이로다. 묵묵히 라후라의 밀행에 계합하니 범부의 소지가 아님이로다. 내가 너희들이 진해탈도리를 모를까봐 다시 너희들에게 보이노라하시다.
45. 畢竟淨
問 : 維摩經云 欲得淨土인댄 當淨其心이라 하니 云何是淨心고
유마경에 이르되 정토를 얻고자할진댄 마땅히 그마음을 깨끗이 해라하니 어떻게 이 마음을 깨끗이 함인고.
答 : 以畢竟淨으로 爲淨이니라. 필경정하면 정이 되느니라.
問 : 云何是畢竟淨으로 爲淨고
어떻게 필경정이 정이 되는것인가.
答 : 無淨無無淨이 卽是畢竟淨이니라. 정이 없고 정이 없음도 없음이 곧 이 필경에 정이니라.
問 : 云何是無淨無無淨고
무엇이 이 정도 없도 정이 없음도 없는 것인가.
答 : 一切處無心이 是淨이니 得淨之時是에 不得作淨想이 卽名無淨也며 得無淨時에 亦不得作無淨想이 卽是無無淨也니라. 일체처에서 무심함이 이 정이니 정을 얻은 때 정하다는 생각을 짖지않음이 이 정이 없음이니 정이 없음을 얻을때에 또한 정이 없다는 생각도 없음이 곧 이 정이 없음도 없음이니라.
46. 畢竟證
問 : 修道者는 以何爲證고
도를 닦는 자는 무엇으로 증을 삼는가.
答 : 畢竟證이 爲證이니라. 필경증으로서 증을 삼는다.
問 : 云何是畢竟證고
무엇이 이 필경증인가.
答 : 無證無無證이 是名畢竟證이니라. 증함도 없고 증함이 없음도 없음이 이 필경증이다.
問 : 云何是 無證이며 云何是無無證고
무엇이 증함이 없음이며 무엇이 이 증함이 없음도 없음인가.
答 : 於外에 不染色聲等하고 於內에 不起妄念心하야 得如是者는 卽名爲證이니 得證之時에 不得作證想이 卽名無證也며 得此無證之時에 亦不得作無證想이 卽名無無證也니라. 밖으로는 색성등 육경에 물들지 않고 안으로는 망념심을 일으키지아니하야 이와같음을 얻는 자는 곧 증했다 하리니 증했을 때에 증했다는 생각이 없음이 이 증함이 없다고 함이요 이 증함이 없음을 얻을 때에 또한 증함이 없다는 생각을 짓지 않음이 곧 증함이 없음도 없다고 이름함이니라.
47. 眞解脫
問 : 云何解脫心고
무엇이 해탈심인고
答 : 無解脫心하며 亦無無解脫心이 卽名眞解脫也니 經云 法尙應捨는 何況非法也이리오 하니 法者는 是有요 非法은 是無也니 但不取有無하면 卽眞解脫이니라. 해탈심이 없으며 해탈심이 없음도 없음이 곧 진해탈이니 경에 이르되 법도 오히려 버리거든 하물며 법아닌것이야 말할것이 있는가하고 하니 법이란 것은 이 有이요. 법아님은 이 無이니 다만 有無를 취하지만 않으면 곧 진해탈이니라.
48. 畢竟得
問 : 云何得道오
무엇이 도를 얻음인가.
答 : 以畢竟得으로 爲得이니라. 필경득으로서 득을 삼느리라.
問 : 云何是畢竟得고
무엇이 이 필경득인가.
答 : 無得無無得이 是名畢竟得也이니라. 득함도 없고 득함도 없음도 없음이 이 필경득이라 이름함이니라.
49. 畢竟空
問 : 云何是畢竟空고
무엇이 이 필경공인고
答 : 無空無無空이 卽名畢竟空이니라. 공함도 없고 공함도 없음도 없음이 곧 이 필경공이니라.
50. 眞如定
問 : 云何是眞如定고
무엇이 진여정인가
答 : 無定無無定이 卽名眞如定이니 經云 無有定法名阿 多羅三 三菩堤며 亦無定法如來可說이니라 經云 雖修空이 不以空爲證이라하니 不得作空想이 卽是也며 雖修定이나 不以定爲證하야 不得作定想이 卽是也며 雖得淨이나 不以淨爲證하야 不得作淨想이 卽是也니라. 若得定得淨하야 得一切處無心之時에 卽作得如是想者는 皆是妄想이라 卽被繫縛하야 不名解脫이니라. 若得如是之時에 了了自知하야 得自在하되 卽不得將此爲證하고 亦不得作如是想면 是에 得解脫이니라. 經云 若起精進心하면 是妄非精進也라 若能心不妄하면 精進無有涯라 하니라.
정이 없고 정이 없음도 없음이 곧 진여정이라하나니 경에 이르되 정한법이 있음이 없음을 아녹다라 삼막삼보리라했고 또한 정한법을 여래가 가히 설함이 있음이 없었다고 했음이라 경에 이르되 비록 공을 닦음이나 공으로서 증함을 짖지 않는다하니 공이라는 생각을 짖지않음이 바로 이것이니라. 만약 정을 얻고 정을 얻어 일체처에서 무심을 얻을 때라도 이와같은 생각을 짓는자는 곧 망상이라. 곧 계박을 당하야 해탈이라 이름하지 못함이니라. 만약 이러할때에 료료자지하야
자재를 얻되 곧 이를 가져 증함이 없고 또한 이러한 생각을 짓지않는다면 해탈을 얻으리라. 경에 이르되 만약 정진심을 일으키면 이것은 망이요 정진이 아님이요 만약 능히 마음이 망녕되지않는다면 정진에 끝다히 막힘이 없으리라.
51. 中道는 一切處無心
問 : 云何是中道오
무엇이 이 중도인가.
答 : 無中間亦無二邊이 卽中道也니라. 중간도 없고 두 변도 없음이 곧 중도이니라.
問 : 云何是二邊고
무엇이 두 변인가.
答 : 爲有彼心하며 有此心이 卽是二邊이니라. 저 마음이 있고 이 마음이 있으면 곧 두 변이니라.
問 : 云何名彼心此心고
무엇이 저 마음 이 마음인고
答 : 外縛色聲이 名爲彼心이요 內起妄念이 名爲此心이니라. 若於外에 不染色하면 卽名無彼心이요 內不生妄念하면 卽名無此心이니 此非二邊也니라. 心旣無二邊이라 中亦何有哉아 得如是者는 卽名中道니 眞如來道니라 如來道者는 卽一切覺人解脫也니 經云 虛空에 無中邊이라 諸佛身亦然이라 하니라 然하야 一切色空者는 卽一切處無心也요 一切處無心者는 卽一切色性空이니 二義無別하야 亦名色空이며 亦名色無法也니라. 汝若離一切處無心하고 得菩提解脫과 涅槃寂滅과 禪定見性者는 非也니 一切處無心者는 卽修菩提解脫涅槃寂滅禪定乃至六道皆見性處니라 何以故오 金剛經云 無有少法可得이 是名阿 多羅三 三菩堤也니라. 바깥으로 색성등 육경에 끄달림이 저 마음이요. 안으로 망념이 일으남이 이 마음이니라. 만약 밖으로 색에 물들지 않는다면 곧 저 마음이 없음이 됨이요, 안으로 망념이 일으나지 않는다면 곧 이 마음이 없음이 됨이니 이것은 두 邊이 아님이니라. 마음이 이미 두 변이 없음이면은 中도 또한 어찌 있을수 있겠는가. 이와같음을 얻은 것을 중도라고 이름하나니 참 여래도이니라. 여래도는 一切覺人의 解脫이니 경에 이르되 허공에 중과 변이 없나니 제불의 몸도 또한 이와같다하니라. 그렇지만 일체의 색 그자체 공한 것이 곧 일체처 무심이요 일체처 무심이 곧 일체의 색성품 그자체 공한것이니 두가지 뜻이 다름이 없음일새 또한 색공이라하고 또한 색무법이라하니라. 그러니 너가 만약 일체처 무심을 여이고 보리열반과 선정견성과 열반적멸을 얻는 것은 말도 안된다. 일체처에서 무심자일지댄 바로 보리해탈열반,적멸선정, 내지 육도를 닦는 것이 모두 성품을 보는곳이다. 어찌 그러하고 금강경에 이르되 '쪼끄만 법이라도 가히 얻을 수 없음을 아녹다라 삼먁삼보리다'라고 하셨다.
52. 一切處無心이 解脫
問 : 若有修一切諸行하야 具足成取하면 得受記否아
만약 일체의 제행을 닦음이 있어 구족히 성취한다면 수기를 얻겠는가.
答 : 不得이니라. 얻지 못한다.
問 : 若以一切法無修하야 得成就하면 得受記否아
만약 일체법을 닦음이 없어서 성취를 얻는다면 수기를 얻겠는가.
答 : 不得이니라. 얻지 못한다.
問 : 若恁 時에 當以何法而得受記오
만약 이러한 때에 마땅히 무엇으로 수기를 얻을수 있겠는가
答 : 不以有行하며 亦不以無行하면 卽得受記니 何以故오 維摩經云 諸行性相이 悉皆無常이라 하며 涅槃經云 佛告迦葉하되 諸行은 是常이라 無有是處라하니 汝但一切處無心하면 卽無諸行하며 亦無無行하야 卽名受記니라. 所言一切處無心者는 無憎愛心이 是니 言憎愛者는 見好事하고 不起愛心이 卽名無愛心也오 見惡事하고 亦不起憎心이 卽名無憎心也라. 無愛者는 卽名無染心이니
卽是色性空也요 色性空者는 卽是萬緣俱絶이요 萬緣俱絶者는 自然解脫이니라. 汝細看之하야 若未惺惺了時엔 卽須早問이요 勿使空度니 汝等이 若依此敎修하야 不解脫者인댄 吾卽終身爲汝受大地獄하며 吾若 汝者면 吾當所生處에 爲師子虎狼所食하리라. 汝若不依敎하고 自不勤修하면 卽不知也라 一失人身하면 萬劫不復이니 努力努力아햐 須合知爾니라. 행이 있음을 쓰지아니하고 행이 없음도 쓰지아니한다면 곧 수기를 얻을수 있다. 어찌그러하냐 유마경에 이르되 제행성상이 모두 무상이라하며 열반경에 이르되 불이 가섭에게 이르되 제행이 항상이면 맞지 않다라하니 너희들이 다만 일체처에 무심할줄만 알면 곧 제행이 없으리니 또한 제행이 없음도 없어 곧 수기가 됨이니라. 말한바 일체처에 무심은 증애심이 없는 것이 이것이니 증애는 좋은 일을 보고 좋아하는 마음을 냄이 없음이 애가 없는 마음이요. 안좋은 일을 보고 또한 싫어하는마음을 내지 않음이 곧 증이 없는 마음이니라. 증애가 없는 것이 곧 무염심이라 이름함이니 곧 이 색성이 공함이요 색성이 공한 것은 곧 이 만연이 모두 끊어짐이요 만연이 모두 끊어짐일진댄 자연 해탈이니라. 너희들은 세세히 보아서 만약 성성치 못할때에는 바로 물어야 할것이니 헛도이 시간을 낭비하면 안된다. 너희들이 만약 이 가르침을 의지해 닦았는대도 해탈치 못한다면 내 곧 종신토록 너희들을 위해서 대지옥의 고통을 받을 것이며 내가 만약 너희들을 속였다면 내가 당래에 태어나는 곳에서 사자와 호랑이의 밥이 될 것이다. 너의들이 만약 이 가르침을 의지치 않고 스스로 부지런히 닦지 않는다면 곧 알지 못할 것이다. 한번 인간의 몸을 잃으면 만겁토록 회복치 못하나니 노력노력하야 모름지기 부합해 알아야한다.
頓悟入道要門 終
大珠禪師語錄卷下
唐沙門慧海撰
◆諸方門人參問
師初至江西 參馬祖 祖問 從何處來 曰 越州大雲寺來 祖曰 來此擬須何事 曰 來求佛法 祖曰 自家寶藏不顧 抛家散走作什 我這裏一物也無 求什 佛法 師遂禮拜 問曰 阿那箇是慧海自家寶藏 祖曰 卽今問我者 是汝寶藏 一切具足 更無欠少 使用自在 何假向外求覓 師於言下大悟 識自本心 不由知覺 踊躍禮謝 師事六載 後以受業師年老 遽歸奉養 乃晦迹藏用 外示痴訥 自撰頓悟入道要門論一卷 法門師姪玄晏 竊出江外 呈馬祖 祖覽訖 謂衆曰 越州 有大珠 圓明光透 自在無遮障處也 衆中有知師姓朱者 迭相推識結契來越上 尋訪依附 時號大珠和尙 [師諱慧海 建州人 依越大雲寺道智和尙受業]
대주선사가 처음 강서에 이르러 마조를 참예할새 祖가 묻기를 어디서 왔는가하니 가로되 월주의 대운사에서 왔습니다. 마조가 이르되 와서 무엇할려고 하는가하니 이르되 와서 불법을 구하겠읍니다하니 마조가 이르되 자기의 寶藏을 나투지못하고 自己를 버리고 달아나 무엇할려고 하는가 나또한 저속에서 한물건도 없거니 무슨 佛法을 구할려고 하는고하니 師가 드디어 예배하고 물어 이르되 무엇이 이낱 이 慧海의 自己寶藏입니까하니 마조가 이르되 지금에 나에게 묻는 자가 이 너의 寶藏이니라 일체를 구족하야 다시 부족함이 없어 使用이 自在하나니 어찌 밖을 향해서 구하리오하니 大珠禪師 말씀아래에 크게 깨쳐 자기의 本心을 알았음이라 그러나 知覺으로 앎이 아니더라. 환희용약하야 스승으로 섬기길 육년하더니 뒤에 수업을 쌓았던 스승이 年老함에 급히 돌아가 봉양하다.
이에 자취을 숨기고 작용을 숨겨 밖으로는 어리숙한척하다. 그리고 스스로 돈오입도요문론 일권을 지음이러니 法門의 조카인 현안스님이 가만히 江外로 유출하야 강서의 마조에게 바치다 이에 마조가 한번 열람하고서 대중에게 이르되 월주에 큰 구슬이 있으니 원만히 밝아 빛이 뻗어 나감에 막혀 장애됨이 없다하다. 이에 대중가운데에 師의 姓이 주씨인 것을 아는 사람이 있어 서로 미루어 알고서 약속을 맺어 월주로 넘어 와서 찾아 방문해서 의지해 기대더라. 때에 대주화상이라 이름지어불리워졌다.
[師의 諱는 慧海이고 建州人이며 월주의 대운사의 道智和尙을 의지해 受業했음]
師謂學徒曰 我不會禪 竝無一法可示於人故 不勞汝久立 且自歇去 時學侶漸多 日夜叩擊事不得已 隨問隨答 其辯無碍
사가 學徒에게 이르되 나는 禪을 알지도 못하고 아울러 一法이라도 사람에게 보일수가 없는 緣故로 자네들은 오래 머물려고 하지말고 다만 스스로 쉬어가라했으나 그 때에 학도들이 점점 더 많이 모여들어 日夜로 두드림일세 부득히 물음을 따라 답을 함이로대 그 말씀이 막힘이 없었다.
時有法師數人來謁曰 擬伸一問 師還對否
그때에 法師 몇사람이 와서 뵈알해 이르되 한 물음을 여출려고 하니 선사는 대답하시겠읍니까하니
師曰 深潭月影 任意撮摩
사가 이르되 깊은 못에 달이 그림자지니 임의대로 끌어 만지겠다하다.
問 如何是佛
무엇이 이 부처이닛고
師曰 淸譚對面 非佛而誰
사가 이르되 지금 서로 맑은 이야기로 대면함에 이 부처가 아니고 무엇이랴
衆皆茫然 良久其僧又問師說何法度人
대중들이 모두 망연하더라 조금있다가 그 스님이 師에게 다시 묻기를 무슨법으로 사람을 제도하는가
師曰 貧道未曾有一法度人
사가 이르되 빈도는 일찍이 한법도 사람을 제도한적이 없다.
曰 禪師家渾如此
가로되 선사가풍이 모두 이와 같은가
師却問曰 大德說何法度人
사가 도리어 물어 이르되 대덕은 무슨법은 설해 사람을 제도하는가
曰 講金剛般若經
가로되 금강반야경을 설한다.
師曰 講幾座來
사가 이르되 강을 몇번(年例소임:방을 짤때)했는가
曰 二十餘座
가로되 스무번쯤했다
師曰 此經是阿誰說
사가 이르되 이경을 이 누가 설했는가
僧抗聲曰 禪師相弄 豈不知是佛說也
스님이 소리높여 이르되 선사는 희롱하는것인가 어찌 이 부처님이 설하신것인줄 모르는가
師曰 若言如來有所說法則爲謗佛 是人不解我所說義 若言此經不是佛說則是謗經 請大德說看
사가 이르되 만약 여래가 설한바의 법이 있다하면 곧 부처를 비방함이요 만약 이 경이 부처님의 설이 아니다하면 곧 이 경을 비방함이니 청컨데 대덕은 설해 보아라
僧無對 師少頃 又問 經云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大德且道 阿那箇是如來
스님이 대답을 못하자 師가 조금 있다가 다시 묻기를 경에 이르되 만약 색으로서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서 나를 구하면 이사람은 邪道를 행함이요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한다했으니 대덕은 또 일러라 누가 이 여래인가.
曰 某甲到此却迷去
가로되 제가 이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迷해지니다.
師曰 從來未悟 說什 却迷
사가 이르되 접때부터 迷했는데 새삼 도리어 미했다하는가
僧曰 請禪師爲說
스님이 이르되 청컨데 선사께서는 說해주십시오
師曰 大德講經 二十餘座 却不識如來
사가 이르되 대덕은 강경을 이십여번하고서도 아직도 여래를 모르는가
其僧再禮拜 願垂開示
그 스님이 다시 예배하고서 개시해주시길 원하니
師曰 如來者 是 諸法如義 何得忘却
사가 이르되 여래는 이 諸法如如한 뜻이니 어찌 망각할수 있겠는가.
曰是 是 諸法如義
가로되 맞습니다. 이 제법여의입니다.
師曰 大德 是亦未是
사가 가로되 대덕이여 맞다라하면 또한 이 아니다.
曰 經文分明 那得未是
가로되 經文에 분명한데 어찌 맞지않다하십니까.
師曰 大德如否
사왈 대덕은 여여하는가
曰 如
가로되 여여합니다.
師曰 木石如否
사가 가로되 목석이 여여하는가
曰 如
가로되 여여합니다.
師曰 大德如 同木石如否
사가 가로되 대덕이 여여함과 목석이 여여함이 같은가 아닌가
曰 無二
가로되 같습니다.
師曰 大德與木石何別
사가 가로되 그렇다면 대덕과 목석이 어찌 다른가
僧無對 乃歎云 此上人者 難爲酬對 良久 却問如何得大涅槃
스님이 대답할수 없어 이에 탄식해 이르되 이 큰사람에게 대적치를 못하겠구나 하고 조금 있다가 다시 묻기를 어떻게 대열반을 얻겠습니까
師曰 不造生死業
사가 이르되 생사업을 짖지말라
對曰 如何是 生死業
대답해 이르되 무엇이 생사업입니까
師曰 求大涅槃 是生死業 捨垢取淨 是生死業 有得有證 是生死業 不脫對治門 是生死業
사가 이르되 대열반을 구함이 이 生死業이요 더러움을 버리고 깨끗함을 취함이 이 生死業이요 얻음이 있고 證함이 있으면 이 生死業이요 對治門을 벗어나지 못함이 이 生死業이라.
曰 云何卽得解脫
이르되 어떻게 바로 해탈을 얻겠습니까
師曰 本自無縛 不用求解 直用直行 事無等等
사가 이르되 본래 스스로 얽힘이 없었기에 풀기를 구함을 쓸것도 없고 곧게 쓰고 곧게 행함인댄 일이 무등등(實相과 等하는 것은 없고 오직 佛과 等함)이라
僧曰 如禪師和尙者實爲希有 禮謝而去
스님이 이르되 선사화상과 같은 이는 참말로 희유합니다하고 예배하고 가더라.
有行者問 卽心卽佛 那箇是佛
행자가 있어 이르되 마음이 곧 부처라하니 어느것이 이 부처이닛고
師云 汝疑那箇不是佛 指出看 無對
사가 이르되 너가 의심해 어느것이 이 부처가 아니다고 생각하는가 가리켜내어봐라하니 대답치못하더라.
師曰 達卽 境是 不悟永乖疏
사가 이르되 달한즉 모든경계가 곧 이것이지만 깨닫지 못하면 길이 어긋나 멀것이라.
有律師法明謂師曰 禪師家多落空
법명이라는 율사가 있어 사에게 이르되 禪師家들은 다분히 공에 떨어지더라고하니
師曰 却是座主家多落空
사가 이르되 도리어 이 座主家들이 다분히 공에 떨어지더라하다.
法明大驚曰何得落空 師曰 經論是 紙墨文字 紙墨文字者 俱空 設於聲上建立名句等法 無非是空 座主執滯敎體 豈不落空
법명이 크게 놀래서 이르되 어찌 공에 떨어지리오하니 사가 이르되 경론은 이 지묵문자일뿐 지묵문자란 것은 모두 공함이라 설사 소리위에 이름,구절등의 법을 건립하더라도 이 空아님이 없음이라 좌주들은 敎體에 집착해 막혀있으니 어찌 공에 떨어 진 것이 아니리오.
法明曰 禪師 落空否
법명이 이르되 선사가 공에 떨어지는가 마는가.
師曰 不落空
사가 이르되 공에 떨어지지않는다.
曰 何 不落空
이르되 어찌 도리어 공에 떨어지지않는가.
師曰 文字等 皆從智慧而生大用現前 那得落空
사가 이르되 문자 句節 名言등법이 모두 지혜를 쫒아서 나와 大用이 현전하거늘 어찌 공에 떨어지리오.
法明曰 故知一法不達 不名悉達
법명이 이르되 고로 알라 일법이라도 달하지못했다면 모두 달했다고 할수 없음이라.
師曰 律師不唯落空 兼乃錯用名言
사가 이르되 율사는 단지 공에 떨어진것뿐만이 아니라 아울러 名言을 그릇 쓰고 있음이라.
法明作色問曰 何處是錯
법명이 얼굴을 붉혀 물어 이르되 어디가 잘못되었는가
師曰 律師未辨華竺之音 如何講說
사가 이르되 율사는 중국말과 인도말의 음도 가릴줄을 모르면서 어찌 강설을 하는가
曰 請禪師指出法明錯處
이르되 청컨데 선사는 이 법명의 잘못된곳을 가르쳐달라.
師曰 豈不知悉達是梵語耶 律師雖省過 而心猶憤然[具梵語薩婆曷刺他悉陀 中國 云 舊云 悉達多 猶是訛略具語]
사가 이르되 어찌 悉達이 이 범어인줄을 알지 못하는가. 율사가 비록 깨달아 느꼈지만 속으로는 오히려 화가 치밀었다.[완전한 범어로는 薩婆曷刺他悉陀이요, 중국말로 번역하면 一切義成이라. 단지 이 완전한 말을 그릇 줄였다]
又問 經律論是 佛語 讀誦依敎奉行 何故不見性
또한 묻되 경율론은 이 부처님 말씀이라 독송하야 敎를 의지해서 奉行함에 어찌 見性하지 못하는고
師曰 如狂狗 塊 師子咬人 經律論是自性用 讀誦者是性法
사가 이르되 마치 미친개가 흙덩이를 쫒고 사자가 사람을 무는것과 같음이니 경율론은 이 自性의 用이요, 독송하는 것은 이 自性의 法이다.
法明又曰 阿彌陀佛 有父母及姓否
법명이 또 이르되 아미타불의 부모와 성씨가 있는가
師曰 阿彌陀姓 尸迦 父名月上 母名殊勝妙顔
사가 이르되 阿彌陀의 姓은 尸迦이고 아버지의 이름은 月上이고 어머니의 이름은 殊勝妙顔이다.
曰出何敎文
이르되 어디의 가르침에 나오는가
師曰 出陀羅尼集
사가 이르되 다라니집에서 나왔다.
法明禮謝 讚歎而退
법명이 예배하고 찬탄해 가더라
有三藏法師 問 眞如有變易否
삼장법사가 있어 묻되 진여도 변하는가 마는가
師曰 有變易
사가 이르되 변역한다
三藏曰 禪師錯也
삼장이 이르되 선사가 잘못알고 있다.
師 問三藏有眞如否
사가 도리어 삼장에게 묻되 진여가 있는가 없는가
曰 有
이르되 있다.
師曰 若無變易 決定是 凡僧也 豈不聞善知識者 能 三毒爲三聚淨戒 六識爲六神通 煩惱作菩提 無明爲大智 眞如若無變易 三藏眞是 自然外道也
사가 이르되 만약 變易함이 없다면 결정코 이 凡僧일 뿐이다.
어찌 듣지 못했는가 선지식은 능히 三毒을 돌려 三聚淨戒를 짖고 六識을 돌려 대신통을 짖고 煩惱를 돌려 보리를 짖고 無明을 돌려 大智를 짖나니 眞如가 만약 變易함이 없다면 삼장법사는 틀림없이 自然外道이다.
三藏曰 若爾者 眞如卽有變易
삼장이 이르되 만약 그러할진댄 진여는 변역이 있다.
師曰 若執眞如有變易 亦是外道
사가 이르되 만약 진여가 변역이 있다고 집착한다면 또한 이 외도이다.
曰 禪師 適來說眞如有變易 如今又道不變易 如何卽是 的當
이르되 선사가 조금전에는 진여가 변역한다해놓고 지금 또 변역하지 않는다하니 어떤 것이 맞는가.
師曰 若了了見性者 如摩尼珠現色 說變亦得 說不變亦得 若不見性人 聞說眞如變 便作變解 聞說不變便作不變解
사가 이르되 만약 료료히 견성한자일진댄 마치 마니주가 색을 나투는것과 같아서 변한다고 해도 또한 맞고 변하지 않는다고 해도 맞음이나 만약 견성치 못한 사람일진댄은 진여가 변한다는 말을 듣고 바로 변한다는 알음알이를 짖으며 변하지않는다는 말을 듣고 바로 변하지 않는다는 알을알이를 짖는다.
三藏曰 故知 南宗實不可測
삼장이 이르되 고로 알라 남종은 실로 가히 測卓할수없음이라.
有道流 問世間有法過自然否
도류(神仙道流)가 있어 묻되 세간에 자연보다 수승한 법이 있는가
師曰 有
사가 이르되 있다.
曰 何法過得
이르되 무슨법이 수승하는가
師曰 能知 自然者
사가 이르되 능히 자연인줄 아는놈
曰 元氣是 道否
이르되 元氣가 이 道인가
師曰 元氣 自元氣 道 自道
사가 이르되 원기는 스스로 원기일뿐이고 도는 스스로 도일뿐이다.
曰 若如是者 則應有二
이르되 만약 이와같은즉 응당히 둘이 될 것이다.
師曰 知無兩人
사가 이르되 그것을 아는놈은 하나다.
又問 云何爲邪 云何爲正
또 묻되 무엇이 이 邪이며 무엇이 이 正인가
師曰 心逐物爲邪 物從心爲正
사가 이르되 마음이 物을 쫒으면 邪가 되고 物이 마음을 쫒으면 正이된다.
有源律師來問 和尙修道 還用功否
원율사가 있어 와서 묻기를 화상이 道를 닦음에 도리어 功用을 쓰는가 마는가
師曰 用功
사가 이르되 功을 쓴다.
曰 如何用功
이르되 어떻게 공을 씀니까
師曰 飢來喫飯 困來卽眠
사가 이르되 배고프면 밥먹고 피곤하면 잠잔다.
曰 一切人總如是同師用功否
이르되 일체인들이 모두 이와같아서 師와 같이 功을 쓰는가
師曰 不同
사가 이르되 같지 않다.
何故 不同
어찌 같지 않는가
師曰 他喫飯時 不肯喫飯 百種須索 睡時 不肯睡 千般計校 所以不同也
사가 이르되 저들은 밥을 먹을 때 끼꺼이 밥먹지아니하고 백가지를 찾아구하고 잠잘때는 끼꺼이 잠자지아니하고 천가지를 계교함일세 소이로 같지않다.
律師 杜口
율사가 말이 막혔다.
有 光大德問 禪師自知生處否
온광대덕이 묻되 선사가 난곳을 아는가
師曰 未曾死 何用論生 知生卽是無生法 無離生法 說有無生 祖師云 當生卽不生
사가 이르되 일찍이 죽어보지도 못했는데 어찌 生을 論하리요 生이 곧 無生法이니 生法을 여이어서 無生을 說하지 아니했다.
조사가 이르되 이 生이 곧 不生이다라고 했다.
曰 不見性人 亦得如此否
이르되 견성치 못한 사람도 또한 이와같음을 얻는가 마는가
師曰 自不見性 不是無性 何以故 見卽是性 無性不能見 識卽是性 故名識性 了卽是性 喚作了性 能生萬法 喚作法性 亦名法身 馬鳴祖師云 所言法者 爲衆生心 若心生故一切法生若心無生法無從生 亦無名字 迷人不知 法身無象 應物現形 遂喚靑靑翠竹 總是法身 鬱鬱黃華 無非般若 黃華若是般若 般若卽同無情 翠竹若是法身 法身卽同草木 如人喫筍應總喫法身也 如此之言 寧堪齒錄 對面迷佛 長劫希求 全體法中 迷而外覓 是以解道者 行住坐臥 無非是道 悟法者縱橫自在 無非是法
사가 이르되 스스로 見性치 못하더라도 이 性이 없지 않음이니 어찌그러한가 見이 곧 이 性이니 性이 없으면 見하지도 못함이요, 識이 곧 이 性이니 고로 識性이라 이름함이요, 了가 곧 이 性이니 了性이라 부름이요,
능히 만법을 생함일세 법성이라 부르고 또한 법신이라 이름한다. 마명조사가 이르되 말한바 법이란 것은 중생심이라했으니 만약 마음이 生한즉 일체법이 生하고 만약 마음이 生함이 없으면 法이 쫒아 生할수 없어 또한 이름자도 없다. 미혹한 사람은 법신이 형상이 없으되 物에 應해 形象을 나툼을 알지 못하고 드디어 靑靑翠竹을 모두 이 法身이라하고 鬱鬱黃華가
般若가 아님이 없다하나니 黃華가 만약 이 般若라면 반야는 곧 無情과 같을것이요, 翠竹이 만약 이 法身이라한다면 법신이 곧 草木과 같으리라.
마치 사람이 竹筍을 먹는다면 응당히 총히 법신을 먹는것과 같으리라.
이와같은 말을 어찌 감히 收錄할수 있으리오. 바로 對面해가지고 佛을 迷
하니 長劫토록 구할수 없다. 體를 온전히한 法가운데에서 밖으로만 구함이로다. 이로서 道를 아는 자는 行住坐臥에 이 道가 아님이 없고 法을 깨친자는 縱橫으로 自在해서 이 法이 아님이 없다.
大德又問 太虛能生靈智否 眞心緣於善惡否 貪欲人是道否 執是執非人向後心通否 觸境生心人有定否 住於寂寞人有慧否 懷高傲物人有我否 執空執有人有智否 尋文取證人 苦行求佛人 離心求佛人 執心是佛人 此皆稱道否 請禪師一一開示
대덕이 또한 묻되 太虛가 능히 靈智를 生하는가 마는가, 眞心은 善惡을 緣하는가 마는가, 탐욕인도 이 道인가, 是非에 執着하는자도 向後에 마음을 통하는가 마는가, 경계를 당하여 마음을 내는자도 定이 있는가 마는가, 寂寞에 주하는 자도 지혜가 있는가 마는가, 相이 높고 物에 거만한자일진댄 我가 있는가 마는가, 空에 有에 집착하는 이는 지혜가 있는가 없는가, 文章을 찾아 증득하기를 요하는자와 고행으로서 佛을 구하는 자와 마음을 집착하야 이 佛이라고 집착하는자 이런사람들이 모두 道에 칭합했는가 아닌가, 청컨데 선사는 하나하나 열어 보여달라.
師曰 太虛不生靈智 眞心不緣善惡 嗜欲深者機淺 是非交爭者未通 觸境生心者少定 寂寞忘機者慧 傲物高心者我壯 執空執有者皆愚 尋文取證者益滯 苦行求佛者俱迷 離心求佛者外道 執心是佛者爲魔
사가 이르되 太虛는 靈智를 生하지 아니하고 眞心은 善惡을 緣하지 아니하고 바라는 욕심이 깊은자는 根機가 下劣하고 시비로 서로 다투는 자는 통하지 못하고 경계에 부딧쳐서 마음을 내는 자는 定이 많지않고 寂寞으로 그때 그마음을 잊는 자는 지혜가 침몰해있고 物에 거만하야 마음이 높은자는 我가 치성하고 空과 有에 執着하는 자는 모두가 어리석고 문장을 찾아 증득하기를 요하는 자는 더욱 막힐것이고 고행으로 佛道를 구하는 자는 다 迷할것이고 마음을 여이어서 佛을 구하는 자는 外道이며 마음이 이 佛이라고 집착하는 자는 魔軍이다.
大德曰 若如是 應畢竟無所有
대덕이 이르되 만약 이와같다면 응당 필경에 있는 바가 없을 것이다.
師曰 畢竟是大德 不是畢竟無所有 大德踊躍禮謝而去
사가 이르되 필경 이 대덕이리니 이 필경에 있는바가 없음이 아니다.
대덕이 용약하야 예배하고 가더라.
師上堂曰 諸人幸自好箇無事人 苦死造作 要擔枷落獄作 每日至夜奔波 道我參禪學道 解會佛法 如此轉無交涉也 只是逐聲色走 有何歇時
師가 堂에 올라 이르되 諸人은 다행히 스스로 좋이 이낱 일없는 사람이로대 죽을 고생을 지어 나아가 형틀을 지고 지옥에 떨어질려고 하나니 무엇이리오. 매일 밤까지 분주히 움직이면서 말호대 내가 참선하고 도를 닦는다 나는 불법을 안다라고 하나니 이와같은 것은 전전히 交涉할 수가 없다. 단지 聲色을 따라 달려갈뿐이니 무슨 쉴때가 있으리오.
貧道聞江西和尙道 汝自家寶藏一切具足 使用自在 不假外求 我從此一時休去
自己財寶隨身受用 可謂快活 無一法可取無一法可捨 不見一法生滅相 不見一法去來相 十方界 無一微塵許 不是自家財寶 但自子細觀察自心 一體三寶 常自現前 無可疑慮莫尋思 莫求覓 心性本來淸淨 故華嚴經云 一切法不生 一切法不滅 若能如是解 諸佛常現前 又淨名經云 觀身實相 觀佛亦然 若不隨聲色動念 不逐相貌生解 自然無事去 莫久立 珍重.
貧道가 강서화상의 이른바 너의 자신 寶藏이 일체구족이라 사용이 자재하나니 밖으로 구할것이 없다는 말을 듣고 내가 이를 쫒아 일시에 쉬어가서 자기 寶藏을 몸을 따라 受用함에 가히 快活함이로다. 한 法도 가히 취할것도 없고 한 法이라도 가히 버릴것도 없어 한 法이라도 生滅하는 相을 보지못하고 한 法이라도 去來하는 相을 보지 못해 십방계에 두루함일세
조그만치라도 이 自家 寶藏이 아님이 없으니 다만 스스로 자세히 自心을 관찰하면 一體인 三寶가 항상 현전해 가히 의심할것도 없음이라
찾아 思慮하지 말고 또한 구하지 말라. 心性은 본래로 청정함이로다. 고로 화엄경에 이르되 一切法이 生하지도 아니하고 일체법이 멸하지도 아니함이라 만약 능히 이와 같이 알진댄 제불이 항상 현전이라. 또한 淨名經에 이르되 身實相을 觀함에 佛을 觀함도 또한 그러하다했으니 만약 聲色을 따라 생각을 움직이지아니하며 相貌를 따라 알음알이를 내지 아니하면 자연히 일이 없어져가리니 오래 있지 말고 진중(자중)하라.
此日 大衆普集 久而不散 師曰 諸人何故在此不去 貧道 已對面相呈 還肯休 有何事可疑 莫錯用心枉費氣力 若有疑情 一任諸人恣意早問
이날 대중들의 시간이 오래되었어도 갈줄을 모름에 師가 이르되 諸人은 무엇 때문에 가지아니하고 여기 있는가 빈도가 이미 대면해서 다 보였으니 도리어 쉬어가는가 마는가. 무엇이 의심되거든 그릇 마음을 쓰서 기력을 낭비하지말고 만약 의심이 있거든 여러분들의 뜻대로 빨리 묻기를 바란다.
時有僧法淵問曰 云何是佛 云何是法 云何是僧 云何是一體三寶 願師垂示
그 때에 법연이란 스님이 있어 이르되 무엇이 이 佛이며 무엇이 이 法이며 무엇이 이 僧이며 무엇이 이 一體三寶입니까 원컨대 선사는 가르침을 내리소서
師曰 心是佛 不用將佛求佛 心是法 不用將法求法 佛法無二和合爲僧 卽是一體三寶 經云 心佛與衆生是三無差別 身口意淸淨名爲佛出世 三業不淸淨 名爲佛滅度 喩如瞋是無喜喜是無瞋 唯是一心 實無二體 本智法爾無漏現前 如蛇化爲龍 不改其鱗 衆生 心作佛 不改其面 性本淸淨 不待修成 有證有修 卽同增上慢者 眞空無滯應用無窮 無始無終利根頓悟 用無等等 卽是阿 菩提 心無形相卽是微妙色身 無相卽是實相法身 性相體空 卽是虛空無邊身 萬行莊嚴 卽是功德法身 此法身者 乃是萬化之本 隨處立名 智用無盡 名無盡藏 能生萬法 名本法藏 具一切智 是智慧藏 萬法歸如名如來藏 經云 如來者卽諸法如義 又云 世間一切生滅法 無有一法不歸如也.
사가 이르되 마음이 이 佛이라 佛을 가지고 佛을 구하지 말것이요, 마음이 이 法이니 법을 가지고 법을 구하지 말지라. 佛과 法이 둘이 없어서 화합한 것이 이 僧이니 곧 이 一體三寶라. 경에 이르되 마음과 佛과 衆生 이 세가지가 차별이 없다했다. 身口意가 청정함에 佛出世라 이름하고 삼업(신구의)이 청정치못함에 佛이 寂滅에 들었다한다. 비유하면 마치 성낼때에는 기쁘지 아니하고 기쁠때는 성나지아니함과 같아서 오직 이 一心뿐이라서 二體가 없음이요 本智가 법다이 그러하야 세는것이 없이 現前하나니 마치 뱀이 용으로 변함에 그 비늘은 바꾸지않고 중생이 마음을 돌려 佛을 지음에 그 얼굴은 바뀌지 않는것과 같다. 性은 본래로 淸淨이라서 닦아 이룰것이 없음일새 증득할것이 있고 닦을것이 있다하면 곧 증상만이로다. 眞空은 막힘이 없어 應用에 끝이 없음이요 비롯함이 없고 끝남도 없커니 利根機만이 頓悟하야 應用에 無等等이라 곧 이 阿 菩提이로다.
마음은 形相이 없기에 곧 微妙色身이요 相이 없은즉 곧 이 實相法身이라. 性相이 體가 空함이라 곧 이 虛空無邊身이요 萬行으로 莊嚴이 곧 이 功德法身이로다. 이 法身이란 것은 이에 이 萬化의 根本으로 곳을 따라 이름을 세우나니 智用이 다함이 없음일세 無盡藏이라하고 능히 萬法을 生함일새 本法藏이라하고 一切智를 갖춤일새 이 智慧藏이요 萬法이 如로 돌아갈새 如來藏이라 이름한다. 경에 이르되 如來라는 것은 諸法如義라하고 또한 이르되 世間의 一切 生滅法이 한 法도 如에 돌아가지 아니함이 없다하다.
有客問云 弟子未知律師法師禪師何者最勝 願和尙慈悲指示
객이 있어 물어 이르되 제자가 알지 못커라 율사와 법사와 선사중에 어느것이 가장 높은가 원컨데 화상은 자비로 지시하소서
師曰 夫律師者 啓毘尼之法藏 傳壽命之遺風 洞持犯而 達開遮 秉威儀而行軌範 牒三番 磨 作四果初因 若非宿德白眉 焉敢造次 夫法師者 踞師子之座 瀉懸河之辯 對稠人廣衆 啓鑿玄關 開般若妙門 等三輪空施 若非龍象蹴 安敢當斯 夫禪師者 撮其樞要 直了心源 出沒卷舒 縱橫應物 咸均事理 頓見如來 拔生死深根 獲現前三昧 若不安禪靜慮 到這裏總須茫然 隨機授法 三學雖殊 得意忘言 一乘何異 故經云十方佛土中唯有一乘法 無二亦無三 除佛方便說 但以假名字 引導於衆生
師가 이르되 대저 律師는 毘尼의 法藏을 열어 壽命(?戒命=淨命,慧命 :佛光5770)의 遺風[壽命之遺風:僧伽삶의 家風]을 傳하며 持와 犯을 잘 알아 開遮를 잘 행하며 威儀를 갖추어 軌範을 行하며 세 번 磨[辦事作法,: 受戒,懺悔, 結界{작법이 이루어지면 자연 형성}등의 관계있는 계율행사의 場에 附合. 어떤일에 대한 한정 또는 태두리를 심어주고 잘 心念하게 하는 것?]를 牒해서 四果의 初因을 짖나니 만약 宿德의 白眉가 아닐진댄 어찌 감히 아무렇게나 할수 있으리오 대저 法師는 師子의 座에 앉아 懸河의 辯을 토하고 많은 대중들앞에서 玄關을 열어 제끼고 般若妙門을 열어 三輪의 空施를 동등히하나니 만약 龍象의 蹴 (자질, 재주?)가 아니면 어찌 감히 이에 이르리오. 대저 선사라는 것은 그 樞要를 모아서 바로 心源을 요달하고 出沒卷舒와 縱橫應物에 다 事理에 맞게 하며 몰록 如來를 보아 生死深根을 뽑고 現前三昧를 獲得하나니 만약 安禪靜慮치 아니한다면 이 속에 이르러서는 모두 茫然할 것이다. 근기를 따라 법을 敎授함에 三學이 비록 다르나 뜻을 얻고 말을 잊으면 一乘과 어찌 다르리요 고로 經에 이르되 十方의 佛土가운데에 오직 一乘法밖에 없나니 둘도 없고 또한 세가지도 없다 오직 부처님의 方便說일 뿐이니 다만 名字를 假佐하야 衆生을 引導할뿐이로다했다.
客曰 和尙深達佛旨 得無碍辯
客이 이르되 和尙은 깊이 佛旨를 了達하야 無碍辯을 얻었도다하고
又問 儒道釋三敎 爲同爲異
또한 묻되 儒敎와 道敎와 釋敎가 같은가 다른가
師曰 大量者用之卽同 小機者執之卽異 總從一性上起用 機見差別成三 迷悟由人 不在敎之異同
사가 이르되 量이 큰 자는 저를 씀에 같음이요 根機 下劣者는 저를 執着함에 다름이라. 모두 一性을 쫒아서 用을 일으킴이니 根機의 見解差別로 三을 이루었다 그래서 迷와 悟가 사람에게 있고 가르침의 같고 다름에 있지 않다.
講唯識道光座主 問曰 禪師用何心修道
唯識을 講義하는 道光좌주가 물어 이르되 禪師는 무슨 마음으로 道를 닦는가
師曰 老僧無心可用 無道可修
사가 이르되 노승은 마음을 가히 쓸수도 없고 道를 가히 닦을수도 없다.
曰 旣無心可用 無道可修 云何 每日聚衆 勸人學禪修道
이르되 이미 마음을 가히 쓸수도 없고 道를 가히 닦을수도 없다면 어떻게매일 대중이 모임에 禪을 배우라하고 道를 닦으라하는가
師曰 老僧尙無卓錐(錫?)之地 什 處聚衆來 老僧無舌 何曾勸人來
사가 이르되 노승이 오히려 석장을 세울곳도 없거니 어디에 대중이 모여올것이며 노승이 혀가 없거늘 언제 사람에게 말한적이 있는가
曰 禪師對面妄語
이르되 선사가 맞대놓고 거짓말을 한다.
師曰 老僧尙無舌勸人 焉解妄語
사가 이르되 노승이 오히려 혓바닥이 없거니 어찌 거짓을 말하리오
曰 某甲 不會禪師語論也
이르되 모갑은 도리어 선사의 말뜻을 모르겠다.
師曰 老僧自亦不會
사가 이르되 노승자신도 또한 알지 못한다.
講華嚴志座主 問 何故 不許靑靑翠竹盡是法身 鬱鬱黃華無非般若
華嚴을 강의하는 志좌주가 묻기를 어쩐 연고로 靑靑翠竹이 모두 이 法身임을 허락하지 않으며 鬱鬱 黃華(국화)가 般若가 아님이 없음을 인정하지 않는가
師曰 法身無象 應翠竹以 成形 般若無知 對黃華以顯相 非彼黃華翠竹而有般若法身也 故經云 佛眞法身 猶若虛空 應物現形 如水中月 黃華若是 般若 般若卽同無情 翠竹若是法身 翠竹還能應用 座主會
師가 이르되 法身은 象이 없음이나 翠竹을 應해서 形象을 이루고 般若는 앎이 없으나 국화를 對하야 相(이것이다,저것이다하는 知)을 나툰다. 저 국화와 취죽에 반야가 있고 법신이 있음이 아님이니 고로 經에 이르되 佛의 眞法身은 마치 허공과 같아서 物에 應해서 形象을 나투니 마치 물속의 달과 같다. 국화가 만약 이 반야일진댄 반야는 곧 無情과 같을것이요 翠竹이 만약 이 法身일진댄 翠竹이 도리어 능히 應用할 것이다. 座主는 알겠는가
曰 不了此意
이르되 모르겠다
師曰 若見性人 道是亦得 道不是亦得 隨用而說 不滯是非 若不見性人 說翠竹著翠竹 說黃華 著黃華 說法身 滯法身 說般若 不識般若 所以皆成諍論 志禮謝而去
사가 이르되 만약 見性人일진댄 그렇다고 해도 맞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맞아서 用을 따라서 說함일새 是非에 막힘이 없다. 만약 견성치 못한 사람일진댄은 취죽을 말하면서 翠竹에 집착하고 黃華를 말하면서 黃華에 막히고 法身을 말하면서 法身에 막히고 般若를 說하면서 般若를 알지 못하나니 所以로 모두 諍論을 이루느리라. 志좌주가 예배하고 가더라
人問將心修行 幾時得解脫
사람이 묻기를 마음을 가져 수행함에 언제 해탈을 얻는가
師曰 將心修行 猶如滑泥洗垢 般若玄妙 本自無生 大用現前 不論時節
사가 이르되 마음을 가져 修行함은 마치 진흙에 미끄러져서 때를 씻을려고 하는것과 같음이니 般若의 玄妙는 본래 스스로 無生이요 大用이 現前함은 時節을 論하지 않음이라.
曰 凡夫亦得如此否
이르되 범부도 또한 이와같이됨을 얻는가 마는가
師曰 見性者卽非凡夫 頓悟上乘 超凡越聖 迷人論凡論聖 悟人超越生死涅槃 迷人說事說理 悟人大用無方 迷人求得求證 悟人無得無求 迷人期遠劫證 悟人頓見
사가 이르되 見性者는 곧 凡夫가 아님이니 上乘을 頓悟하야 凡과 聖을 超越했다. 미혹한 이는 凡과 聖을 論하지만 깨친이는 生死涅槃을 超越하고 미혹한 이는 事와 理를 說하지만 깨친이는 大用이 막힘이 없고 미혹한 이는 證得을 구하지만 깨친이는 求하고 얻을것이 없음이요 미혹한 이는 遠劫토록 證得을 바라지만 깨친이는 몰록 볼뿐이다.
維摩座主問 經云 彼外道六師等 是汝之師 因其出家 彼師所墮 汝亦隨墮 其施汝者 不名福田 供養汝者 墮三惡道 謗於佛毁於法不入衆數 終不得滅度 汝若如是乃可取食 今請禪師 明爲解說
유마좌주가 묻되 경에 이르되 저 外道六師等(心着에 比喩)이 이 너의 스승이다. 그로 인해 출가할새 저 스승 떨어진바에 너도 또한 따라 떨어지며 그 너에게 주는 것이 복전이라 이름할수 없고 너에게 공양하는 바가 이 三惡道에 떨어짐이거니와 佛을 훼방할 수 있고 法을 毁謗할수있으며 능히 衆數(僧團)에 들지아니하며 끝내 멸도(涅槃)에 들지 아니하야 너또한 이와 같이할수있다면 이에 取食할수 있음이라하니 지금 청컨데 선사는 밝게 해설하소서.
師曰 迷徇六根者 號之爲六師 心外求佛 名爲外道 有物可施 不名福田 生心受供 墮三惡道 汝若能謗於佛者 是不著佛求 毁於法者 是不著法求 不入衆數者 是不著僧求 終不得滅度者 智用現前 若有如是解者 便得法喜禪悅之食
사가 이르되 迷해가지고 六根에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六師라고 하고 마음밖에서 佛을 求하는 것을 外道라고 하고 物을 布施할수 있다하면 福田이라 이름못하고 마음을 내어 供養을 받으면 三惡道에 떨어지나니 너가 만약 능히 佛을 誹謗할수 있는 자일진댄 이 佛을 집착해 구하지 않을것이요 능히 法을 헐수 있는 자일진댄 法에 붙어 구하지 않을 것이요 능히 衆數에 들어갈수 있는자일진댄 이 僧에 붙어 구하지 않을것이요 능히 끝내 滅度(涅槃)에 들지 못하는 자일진댄 智用이 現前하리라. 만약 이와같이 아는자일진댄 바로 法喜禪悅의 먹거리를 얻을 것이다.
有行者問 有人問佛答佛 問法答法 喚作一字法門 不知是否
行者가 있어 묻되 어떤 사람이 佛을 물으면 佛이라고 대답하고 法을 물으면 法이라고 대답하면서 一字法門이라 하나니 알지 못커라 옳은가 아님인가.
師曰 如鸚鵡學人語話 自語不得 爲無智慧故 譬如將水洗水 將火燒火 都無義趣
사가 이르되 마치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배우되 자기말은 못하는것과 같음이니 智慧가 없는 緣故라 비유하면 마치 물을 가져서 물을 씻고 불을 가져서 불을 태우는 것과 같음이니 도무지 義趣가 없다.
人問言之與語 爲同爲異
사람이 묻되 言과 語가 같음인가 다름인가
師曰 一也 謂言成句名語矣 且如靈辯滔滔 譬大川之流水 峻機疊疊 如圓器之傾珠 所以廓萬象 號懸河 剖乎義解 此是語也 言者一字表心也 內著玄微外現妙相 萬機撓而不亂 淸濁混而常分 齊王慙大夫之辭 文殊尙歎淨名之說 今之常人 云何能解
사가 이르되 하나다. 言이 句와 名과 語를 이룸이니 즉 靈辯이 滔滔함이 大川의 흐르는 물에 譬喩되고 峻機(峻烈한 機發,臨機應變)가 疊疊한 것이 마치 둥근그릇에 구슬을 기우는것과 같음이라. 所以로 萬象에 퍼짐일세 懸河라고 하며 義解를 가름일세 이 語이라. 言은 一字의 心을 表함이니 안으로는 玄微를 갖추고 있고 밖으로는 妙相을 나투나니 萬機의 어지러운 속에서도 散亂하지 아니하고 淸濁의 섞인속에서도 分을 항상한다 齊王이 오히려 大夫(공자)의 말씀에 부끄러워하고 文殊가 오히려 淨名의 말씀을 찬탄하나니 지금의 사람들이야 어찌 알수 있으리오.
源律師問 禪師常譚 卽心是佛 無有是處 且一地菩薩 分身百佛世界 二地增於十倍 禪師試現神通看
원율사가 묻되 선사가 항상 말씀하시되 마음이 곧 이 불이라하나 이 옳지 않음이라. 저 一地菩薩조차도 몸을 百佛世界에 나투고 二地菩薩은 그 十倍에 달하니 禪師는 神通을 보여보시라.
師曰 梨 自己 是凡是聖
사가 가로되 사리(고승, 또는 승려통칭)여 자기는 이 범인인가 이 성인인가.
曰 是凡
이르되 이 범인이니다.
師曰 旣是凡僧 能問如是境界 經云 仁者 心有高下 不依佛慧 此之是也
사가 이르되 이미 이 梵僧이면서 이러한 境界를 묻는가 經에 이르되 마음에 高下(마음에 높고 낮음을 분별함이 있기에 아니다는 말씀:高下→聖凡의 집착)가 있어 佛慧를 依支하지 아니한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又問 禪師每云 若吾道 現前身便解脫 無有是處
또한 묻되 선사가 매양 이르되 만약 道를 깨치면 現前身으로 바로 解脫한다함은 옳은곳이 없음이라.
師曰 有人一生作善 忽然偸物入手 卽身是賊否
師가 이르되 어떤 사람이 一生동안에 善을 짖다가 忽然히 물건을 훔쳐 손에 넣었다면 곧 몸이 盜賊이 되는가 마는가
曰 故知是也
이르되 그런줄로 안다.
師曰 如今 了了見性 云何不得解脫
사가 이르되 지금에 료료히 견성함일진댄 어찌 해탈을 얻지 못하리오
曰 如今 必不可 須經三大阿僧祇劫始得
이르되 지금은 반드시 가능치못하다 모름지기 삼대아승지겁을 지나야 비로소 가능하다.
師曰 阿僧祇劫 還有數否
사가 이르되 아승지겁을 도리어 셈할수 있음인가 없음인가.
源抗聲曰 將賊比解脫 道理得通否
원율사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도적으로 해탈에 비유함이 도리에 맞는가 마는가
師曰 梨 自不解道 不可障一切人解 自眼不開 瞋一切人見物
사가 이르되 사리여 자기가 道를 모른다고해서 남들이 아는 것을 막지 말고 자기 눈이 열리지 못한다고 해서 남들이 物을 보는 것을 화내지말라
源作色而去云 雖老渾無道
원율사가 얼굴을 붉히어 가면서 이르되 비록 노련하지만 온전히 道가 없다하다
師曰 卽行去者 是汝道
사가 이르되 바로 가버리는 놈이 이 너의 道이다.
講止觀慧座主問 禪師辨得魔否
止觀을 講義하는 慧좌주가 묻기를 禪師는 魔를 가릴수 있는가
起心是天魔 不起心是陰魔 或起不起是煩惱魔 我正法中 無如是事
마음을 일으킴이 이 天魔이요 마음을 일으키지 않음이 이 陰魔이요 혹은 일으키고 혹은 일으키지 않음이 이 煩惱魔이라 우리 正法가운데에는 이와같은 일이 없다.
曰 一心三觀 義又如何
이르되 一心三觀의 뜻이 또한 무엇이냐
師曰 過去心已過去 未來心未至 現在心無住 於其中間 更用何心起觀
師가 이르되 過去心은 이미 過去이고 未來心은 이르지 아니했고 現在의 마음은 住함이 없나니 그 중간에 다시 무슨 마음을 쓰서 觀을 일으키리오.
曰 禪師不解止觀
이르되 선사는 지관을 알지 못함이다.
師曰 座主解否
사가 이르되 좌주는 아는가
曰 解
이르되 안다
師曰 如智者大師說止破止 說觀破觀 住止沒生死 住觀心神亂 爲當將心止心 爲復起心觀觀 若有心觀 是常見法 若無心觀 是斷見法亦有亦無 成二見法 請座主仔細說看
師가 이르되 저 智者대사는 止를 說하야 止를 破하고 觀을 說하야 觀을 破했으니 止에 住한즉 生死에 빠지고 觀에 住하면 心神이 散亂이라. 마땅히 마음을 가져서 마음을 止해야 하는가, 다시 心觀을 일으켜 觀해야 하는가 만약 心觀이 있을진댄 시 常見法이요 만약 心觀이 없을진댄 이 斷見法이요 또한 있고 또한 없으면 二見法을 이루나니 請컨데 座主는 자세히 說해 보시라
曰 若如是問 俱說不得也
이르되 만약 이와같이 물을진댄 모두 말하지 못하리라.
師曰 何曾止觀
사가 이르되 무슨 지관이 있었겠는가
人問般若大否
사람이 묻기를 반야가 크느냐 마느냐
師曰 大
사가 이르되 크다.
曰幾許大
이르되 얼마만큼 크는가
師曰 無邊際
사가 이르되 끝이 없다
曰 般若 小否
이르되 반야가 작은가
師曰 小
사가 이르되 작다
曰 幾許小
이르되 얼마나 작은가
師曰 看不見
사가 이르되 볼라해도 볼수 없다.
曰 何處是
이르되 어느것이 맞는가
師曰 何處不是
사가 이르되 어느것이 틀리는가.
維摩座主問 經云 諸菩薩各入不二法門 維摩默然 是究竟否
유마좌주가 묻기를 經에 이르되 제보살이 각기 不二에 들어가는 법문에 維摩居士는 默然했는데 이것이 究竟인가
師曰 未是究竟 聖意若盡 第三卷更說何事
사가 이르되 이 究竟이 아님이니 聖意가 만약 다했다면 第三卷을 뭐할려고 說했겠는가
座主良久 曰 請禪師爲說未究竟之意
좌주가 조금있다가 이르되 청컨데 선사는 구경이 아닌뜻을 설하시라.
師曰 如經第一卷 是引衆呼十大弟子住心 第二諸菩薩各說入不二法門 以言顯於無言 文殊以無言顯於無言 維摩不以言 不以無言 故默然 收前言語也
第三卷 從默然起說 又顯神通作用 座主會
사가 이르되 저 經의 第一卷은 이 大衆을 끌어 十大弟子를 불러 마음에 住해놓고 第二卷은 諸菩薩이 각기 不二에 들어가는 법문을 說함에 말로서 말할수 없음을 드러내고 文殊는 말할수 없음으로서 말할수 없음을 드러내거든 維摩는 말로서도 하지않고 말할수 없음으로서도 하지않음일세 고로 默然하야 앞의 말들을 거두었다. 第三卷에서는 默然으로부터 說을 일으켜 또한 神通과 作用을 드러냄이니 座主는 알겠는가
曰 奇怪如是
이르되 이상스럽게 이와같더라
師曰 亦未如是
사가 이르되 또한 이와같지 않나니
曰 何故 未是
이르되 어째서 이와같지 않는가
師曰 且破人執情 作如此說 若據經意 只說色心空寂 令見本性 敎捨僞行入眞行 莫向言語紙墨上討意度 但會淨名兩字便得 淨者本體也 名者迹用也 從本體起迹用 從迹用歸本體 體用不二 本迹非殊 所以古人道 本迹雖殊 不思議一也 一亦非一 若識淨名兩字假號 更說什 究竟與不究竟 無前無後 非本非末 非淨非名 只示衆生本性不思議解脫 若不見性人 終身不見此理
사가 이르되 다만 사람의 執情을 破하기 위해서 이와같이 說했을 뿐이니 만약 經의 뜻을 根據한다면 단지 色心이 空寂함을 說하야 하여금 本性을 보게하야 僞行을 버리고 眞行에 들어가도록 한것이니 言語와 紙墨위에서 뜻을 헤아려 計度하지 말라. 다만 淨名의 두글자만 안다면 바로 옳다. 淨은 本體이요 名은 迹用이니 本體을 쫒아서 迹用을 일으키고 迹用을 쫒아서 本體에 돌아감일세 體用이 둘이 아님이요 本과 迹이 다르지 아니하다.
所以로 古人이 이르되 本과 迹이 비록 다르나 不思議하게 하나이다라고 하니 하나도 또한 하나가 아니다. 만약 淨名의 두글자의 거짖 名號를 안다면 다시 무슨 究竟과 不究竟을 說하리오 前도 없고 後도 없고 本도 없고 末도 없고 淨도 없고 名도 없나니 단지 衆生의 本性인 不思議解脫을 보일뿐이라 만약 見性치못한사람일진댄은 終身토록 이 理致를 모르리라.
僧問 萬法眞空 識性亦爾 譬如水泡 一散更無再合 身死更不再生 卽是空無 何處更有識性
僧이 묻되 萬法이 眞空이라 識性도 또한 그러하나니 비유하면 물거품과 같아서 한번 흩어지면 다시 합쳐지지아니하며 몸이 죽으면 다시 生할수 없는것과 같다 곧 이 空無뿐이니 어디에 다시 識性이 있겠는가
師曰 泡因水有 泡散可卽無水 身因性起 身死豈言性滅
師가 이르되 거품이 물로 因해 있음인댄 거품이 흩어지면 물도 없어야될것이요. 몸이 性을 因해 일어날진댄 몸이 죽는다고해서 어찌 性이 滅한다고 하리오
曰 旣言有性將出來看
이르되 이미 性이 있다고 한다면 가져 내어와 보시라
師曰 汝 信有明朝否
사가 이르되 너 내일이 있다고 믿는가
曰 信
이르되 믿는다
師曰 我將明朝來看
사가 이르되 내가 明朝(내일)를 가져와 볼까.
曰 明朝實是有 如今不可得
이르되 명조는 실로 있지만 지금 가히 얻지 못한다.
師曰 明朝不可得 不是無明朝 汝自不見性 不可是無性 今見著衣喫飯 行住坐臥 對面不識 可謂愚迷 汝欲見明朝與今日 不異將性覓性 萬劫終不見 亦如有人不見日 不是無日
사가 이르되 明朝를 얻지 못하나 이 明朝가 없지 않음이니 너가 스스로 見性치 못함이요 이 性이 없지 않음이로다. 지금 옷입고 밥먹고 행주좌와에 對面하고 있으면서 알지못하나니 가히 어리석다하겠다. 너가 明朝와 今日을 보고자함은 性을 가져 性을 구함과 다르지 아니함이니 만겁토록 마침내 보지못할것이니 또한 어떤이가 해를 보지 못한다고 해도 이 해가 없지는 않는것과 같다.
講靑龍疏座主問 經云 無法可說 是名說法 禪師如何體會
청룡소(금강경청룡소)를 강의하는 座主가 묻되 經에 이르되 法 가히 說함이 없음을 이 說法이라 이름한다하니 禪師는 어떻게 體達해 알고 있는가
師曰 爲般若體 畢竟淸淨 無有一物可得 是名無法 卽於般若空寂體中 具河沙之用 卽無事不知是名說法 故云 無法可說是名說法
사가 이르되 般若의 體는 필경에 청정이라서 한 물건도 가히 얻을수 없음일세 이 無法이라함이요 하지만 般若空寂의 體가운데에서 河沙만큼의 많은 作用을 갖추고 있음일세 일을 알지 못함이 없음이니 故로 이르되 法을 가히 說할수 없음을 이 說法이라이름한다하다.
講華嚴座主問 禪師信無情是佛否
華嚴을 講義하는 座主가 묻기를 禪師는 無情이 이 佛인 것을 믿는가
師曰 不信 若無情是佛者 活人應不如死人 死驢死狗 亦應勝於活人 經云 佛身者 卽法身也 從戒定慧生 從三明六通生 從一切善法生 若說無情是佛者 大德如今便死應作佛去
사가 이르되 믿지 않는다 만약 無情이 이 佛일진댄 살아있는 사람이 응당히 죽은 사람만도 못할것이요 죽은 말 죽은 개가 또한 응당히 살아있는사람보다도 수승할 것이다. 經에 이르되 佛身이란 것은 곧 法身이니 戒定慧로부터 生하며 三明과 六通으로부터 生하며 一切善法으로부터 生한다했으니 만약 無情이 이 佛이라고 할진댄은 大德은 지금 바로 죽어서 응당히 佛을 지어가시라.
有法師問持般若經最多功德 師還信否
法師가 있어 묻기를 般若經을 지님에 功德이 제일 많다하니 禪師는 도리어 믿는가 마는가.
師曰 不信
사가 이르되 믿지 아니한다.
曰 若爾靈驗傳十餘卷 皆不堪信也
이르되 만약 그러하다면 靈驗傳이 十餘卷을 모두 믿지 않는가
師曰 生人持孝 自有感應 非是白骨能有感應 經是文字紙墨 文字紙墨性空 何處有靈驗 靈驗者 在持經人用心 所以神通感物 試將一卷經 安著案上 無人受持 自能有靈驗否
사가 이르되 살아있는 사람이 孝順을 지니면 스스로 感應이 있음이요 이 白骨이 능히 感應을 하는 것은 아니다. 經은 이 文字紙墨일뿐 文字紙墨은 性이 空한것이니 어디에 靈驗이 있으리요 靈驗이란 것은 經을 지니는 사람의 마음 씀에 있음이라 所以로 신통스러히 物을 感應(마음씀의 인연으로 반응)하나니 시험삼아 한권의 경전을 책상위에 놓고 사람이 受持함이 없다면 저절로 靈驗이 있는가 마는가.
僧問 未審 一切名相及法相 語之與默 如何通會 卽得無前後
僧이 묻기를 알지 못커라 一切의 名相과 法相 그리고 말과 침묵을 어떻게 通達해 알아야 바로 前後(前後가 어차피 있다 없다의 妄計)가 없음을 얻겠는가
師曰 一念起時 本來無相無名 何得說有前後 不了名相本淨 妄計有前有後 夫名相關 非智 不能開 中道者 病在中道 二邊者 病在二邊 不知現用 是無等等法身 迷悟得失 常人之法 自起生滅 埋沒正智 或斷煩惱 或求菩提 肯 般若
사가 이르되 一念이 일어날때에 본래로 相이 없고 名이 없거늘 어찌 前後가 있다하리오 名相이 본래로 깨끗한 줄을 알지 못함일세 망녕되이 前이 있고 後가 있다고 計度하나니 대저 名相의 빗장 자물쇠는 智慧의 열쇠가 아니면 능히 열지 못한다. 中道는(中道라는 名相은) 病이 中道에 있고 二邊은 病이 二邊에 있나니 現用(현재 쓰는것)이 이 無等等法身인줄을 알지 못함이로다. 迷悟와 得失이 尋常人의 法이니 스스로 生滅을 일으켜 正智를 埋沒하야 혹은 煩惱를 끊고 혹은 菩提를 求함일세 般若를 등져버린다.
人問律師何故不信禪
사람이 묻기를 율사는 어찌하야 禪을 믿지 않는가.
師曰 理幽難顯 名相易持 不見性者 所以不信 若見性者 號之爲佛 識佛之人 方能信入 佛不遠人 而人遠佛 佛是心作 迷人向文字中求 悟人向心而覺 迷人修因待果 悟人了心無相 迷人執物守我爲己 悟人般若應用現前 愚人執空執有生滯 智人見性了相靈通 乾慧辯者口疲 大智體了心泰 菩薩觸物斯照 聲聞 境昧心 悟者日用無生 迷人現前隔佛
사가 이르되 理致는 깊어 나투기 어렵고 名相은 쉽게 가질수 있음일세 見性치 못한자들이 所以로 믿지 아니함이요 만약 見性한 사람일진댄은 佛이라고 이름하거니 佛을 아는 사람일세 비로소 믿어 들어간다. 佛은 사람을 멀리하지 아니하나 사람이 佛을 멀리함이니 佛은 이 마음이 지은 바라. 迷人은 文字를 향하여 구하고 깨친이는 마음을 향하여 깨닫는다. 迷人은 因을 닦아 果를 바라고 깨친이는 마음을 了達해 相이 없다. 迷人은 物을 執着하야 나라고해서 自己로 삼거니와 깨친이는 般若의 應用이 現前이라. 어리석은 이는 空과 有에 執着해 막히거니와 智人은 見性해 相을 了達하야 신령스러히 통함이라. 智慧가 엷은 자는 입이 피로하고 大智慧者는 마음이 泰然이라. 菩薩은 境界를 닿아 이에 비추지만(걸림없이 비추지만) 聲聞은 境界를 두려워해서 마음을 장애해 버린다. 깨친자는 日用에 生함이 없지만 迷惑人은 現前에 佛과 막혀있다.
人問如何得神通去
사람이 묻기를 어떻게 神通을 얻어 갈수 있는가
師曰 神性靈通 周沙界 山河石壁 去來無碍 刹那萬里 往返無跡 火不能燒 水不能溺 愚人自無心智 欲得四大飛空 經云 取相凡夫 隨宜爲說 心無形相 卽是微妙色身 無相 卽是實相 實相體空 喚作虛空無邊身 萬行莊嚴 故云 功德法身 卽此法身 是萬行之本 隨用立名 實而言之 只是淸淨法身也
사가 이르되 神性이 靈通하야 一切世界에 두루하나니 山河와 石壁에 去來가 無碍라 刹那에 萬里이나 가고 옴에 자취도 없음이요 佛도 능히 태우지 못하고 물도 능히 빠지게 하지 못한다. 어리석은 이는 스스로 心智가 없음일세 四大의 飛空을 바이니라. 經에 이르되 相을 取하는 凡夫를 위해서 마땅함을 따라 說한다하나니 마음은 形相이 없음일세 곧 이 微妙色身이요 相이 없음일세 곧 이 實相이라 實相은 體가 空함일세 虛空無邊身이라하고 萬行으로 莊嚴일세 고로 이르되 功德法身이라하나니 곧 이 法身이 이 萬行의 根本이라 用을 따라서 이름을 세웠거니와 實답게 말한다면 단지 이 淸淨法身일뿐이다.
人問 一心修道 過去 業障 得消滅否
사람이 묻되 一心으로 修道하면 過去의 業障을 消滅할수 있는가
師曰 不見性人 未得消滅 若見性人 如日照霜雪 又見性人 猶如積草等須彌山 只用一星之火 業障如草 智慧似火
사가 이르되 見性치 못한 사람은 消滅하지 못하지만 만약 見性한 사람일진댄은 마치 해가 霜雪에 비추는것과 같다. 또한 見性인은 마치 풀을 쌓아놓음이 須彌山과 같을지라도 단지 아주 조금의 불씨만을 쓰는것과 같음이니 業障은 풀과 같고 智慧는 불과 같다.
曰 云何得知業障盡
이르되 어떻게 업장이 다한줄을 알리오
師曰 現前心通 前後生事 猶如對見 前佛後佛 萬法同時 經云 一念知一切法 是道場 成就一切法故
사가 이르되 당장 앞의 이 마음만을 통하면 前後의 일어나는 일을 마치 對見하는것과 같으리니 前佛과 後佛과 萬法이 同時라. 經에 이르되 一念에 一切法을 아는것이 이 道場이라하니 一切法을 成就하는 緣故라.
有行者問 云何得住正法
행자가 있어 묻되 어떻에 정법에 주할수 있습니까
師曰 求住正法者是邪 何以故 法無邪正故
사가 이르되 正法을 求하는 것이 이 邪이다. 어찌그러하냐 法에는 邪正이 없는 緣故라.
曰 云何得作佛去
이르되 어떻게 불을 지어 가는가
師曰 不用捨衆生心 但莫汚染自性 經云 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
사가 이르되 衆生心을 버릴려고 하지 말라 다만 自性을 汚染하지 말지니 經에 이르되 마음과 佛과 衆生이 差別이 없다했다.
曰 若如是解者 得解脫否
만약 이와같이 안다면 해탈을 할수 있는가
師曰 本自無縛 不用求解 法過語言文字 不用數句中求 法非過現未來不可以因果中契 法過一切 不可比對 法身無象 應物現形 非離世間 而求解脫
사가 이르되 본래로 묶지 않았기에 해탈을 구하지 않는다. 法은 언어문자를 여이었기에 글귀가운데에서 구할수 없음이요 法은 過去 現在 未來가 아니어서 因果가운데에서 契合할수 없음이요 法은 一切를 지남일새 가히 比較 配對할수 없다 法身은 無象이나 物에 應해서 형상을 나투나니 世間을 떠나서 解脫을 구하지 못한다.
僧問 何者是般若
승이 묻되 어떤것이 이 般若인가
師曰 汝疑不是者 試說看
사가 이르되 너가 이 반야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을 시험삼아 설해 보아라.
又問 云何得見性
또한 묻되 어떻게 하면 견성할수 있습니까
師曰 見卽是性 無性不能見
사가 이르되 見이 곧 이 性이라 性이 없다면 능히 見할수 없다.
又問 如何是修行
또한 묻되 무엇이 이 수행이냐
師曰 但莫汚染自性 卽是修行 莫自欺 卽是修行 大用現前 卽是無等等法身
사가 이르되 다만 自性을 더럽히지 않는 것이 이 修行이요 스스로 속임이 없는 것이 이 修行이요 大用이 現前함이 곧 이 無等等法身이다.
又問 性中有惡否
또한 묻되 性가운데에 惡이 있음인가 없음인가.
師曰 此中善亦不立
사가 이르되 이 가운데에는 善조차도 세우지 아니한다.
曰 善惡俱不立 將心何處用
이르되 선악을 모두 세우지 아니한다면 마음을 어디다가 쓰겠는가
師曰 將心用心 是大顚倒
사가 이르되 마음으로 마음을 쓴다면 이것은 大 顚倒이다.
曰 作 生卽是
어떻게하면 곧 옳으냐
師曰 無作 生 亦無可是
어떻게함이 없다해도 또한 맞다고 할수 없다.
人問 有人乘船 船底刺殺螺 爲是人受罪 爲復船當罪
사람이 묻기를 사람이 배를 타고 가다가 배밑으로 고동 조개를 쳐죽였다면 이것은 사람이 죄를 받는가 다시 배가 죄를 받는가.
師曰 人船兩無心 罪正在汝 譬如狂風折樹損命 無作者 無受者 世界之中無非衆生受苦處
사가 이르되 사람과 배 둘다 무심이라 죄는 너에게 있다. 비유하면 狂風이 나무를 꺽고 生命을 죽이더라도 지은자가 없음이요 받는자가 없음과 같음이니 世界가운데에 衆生의 괴로움을 받는곳이 아님이 없다.
僧問 未審託情勢 指境勢 語默勢 乃至 揚眉動目等勢 如何得通會於一念間
승이 묻되 알지 못커라 託情勢(義理禪?)와 指境勢와 語默勢와 乃至 揚眉動目등의 勢를 어떻게 一念간에 알수 있으리오
師曰 無有性外事 用妙者 動寂俱妙 心眞者 語默總眞 會道者 行住坐臥是道 爲迷自性 萬惑滋生
사가 이르되 性外의 일은 없나니 妙를 쓰는자 動과 寂에 다 妙할것이요, 마음이 眞하는자는 語와 默에 모두 眞할것이요, 道를 아는자 行住坐臥가 이 道일것이라 自性이 迷한 緣故로 萬惑이 부풀어 生할따름이라.
又問 如何是法有宗旨
또한 묻되 무엇이 이 法에(이) 宗旨가 있음인가
師曰 隨其所立 卽有衆義 文殊於無住本立一切法
사가 이르되 그 세운바를 따라서 뭇 뜻이 있음이나 문수는 無住의 本으로 一切法을 세웠다.
曰 莫同太虛否
이르되 太虛와 같은가 마는가
師曰 汝 同太虛否
사가 이르되 너 太虛과 같을까봐 두려운가
曰
이르되 두렵다
師曰 解 者 不同太虛
사가 이르되 두려운줄을 아는 놈은 太虛과 같지 않다.
又問 言方不及處 如何得解
또한 묻되 말이 비로소 미치지 못하는곳을 어떻게 하면 알수 있으리요
師曰 汝今正說時 疑何處不及
사가 이르되 너가 지금 正히 說할때에 어느곳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느냐(言語道斷자리)
有宿德十餘人 同問 經云 破滅佛法 未審佛法可破滅否
宿德 십여인이 있어 같이 묻되 經에 이르되 佛法을 破滅한다하는데 알지 못커라 佛法을 가히 破滅할수 있는가
師曰 凡夫外道 爲佛法可破滅 二乘人爲不可破滅 我正法中無此二見 若論正法 非但凡夫外道 未至佛地者 二乘亦是惡人
사가 이르되 凡夫와 外道는 佛法을 가히 破滅할수 있다하고 二乘인은 破滅할수 없다하는데 우리 正法 가운데에는 이 二見이 없음이라 만약 正法을 논할진댄 비단 凡夫 外道가 佛地에 이르지 못했을 뿐만아니라 二乘도 또한 이 惡人이다.
又問 眞法 幻法 空法 非空法 各有種性否
또한 묻되 眞법과 幻법과 空법과 非空법등이 각기 가지가지 성품이 있는가
師曰 夫法雖無種性 應物俱現 心幻也 一切俱幻 若有一法不是幻者 幻卽有定 心空也 一切皆空 若有一法不空 空義不立 迷時人逐法 悟時法由人 如森羅萬象 至空而極 百川衆流 至海而極 一切賢聖 至佛而極 十二分經 五部毘尼 五韋陀論 至心而極 心者是總持之妙本 萬法之洪源 亦名大智慧藏 無住涅槃 百千萬名 盡心之異號耳
사가 이르되 대저 法은 비록 가지가지 성품은 없지만 物에 應해 모두 나툼이라. 마음이 虛幻함일세 一切가 모두 幻이니 만약 한 法이라도 이 幻이 아닌 것이 있다하면 幻을 곧 定할수 있을것이요(환이 이것이로구나하면 이미 아니다), 마음이 空함일세 一切가 모두 空이니 만약 한 法이라도 空아닌 것이 있다면 空의 뜻이 서지 못하리라(空이라하면 이미 孔이 아니다). 迷惑할때는 사람이 法을 쫒지만은 깨침에는 法이 사람을 쫒는다(만가지 법을 다 마음자리로부터 쓸수 있다). 마치 森羅萬象이 空에 이르러야사 다하고 百川의 뭇 흐름이 바다에 닿아야사 다하고 一切의 賢聖이 佛에 이르러서야 다하고 十二分敎(經)와 五部毘尼(律)와 五韋陀論(論)이 마음에 이르러서야 다하는것과 같아서 마음이란 것이 이 總持의 妙本이며 萬法의 洪源이다 또한 大智慧藏이라하고 無住涅槃이라하나니 百千萬가지의 이름이 단지 마음의 다른 이름이로다.
又問 如何是幻
또한 묻되 무엇이 이 幻인가
師曰 幻無定相 如旋火輪 如乾 婆城 如機關木人 如陽炎 如空華 俱無實法
사가 이르되 幻은 定相(변함없는 상)이 없어 마치 선화륜(불을 돌리면 잠시 원상이 생김)과 같고 건달바성(신기루)과 같고 기관목인(인형,傀儡)과 같고 아지랑이와 같고 허공꽃과 같아서 다 實다운 法이 없다.
又問 何名大幻師
또한 묻되 어찌해서 大幻師라고 이름하는가
師曰 心名大幻師 身爲大幻城 名相爲大幻衣食 河沙世界 無有幻外事 凡夫不識幻 處處迷幻業 聲聞 幻境 昧心而入寂 菩薩識幻法 達幻體 不拘一切名相 佛是大幻師 轉大幻法輪 成大幻涅槃 轉幻生滅 得不生不滅 轉河沙穢土 成淸淨法界
사가 이르되 마음을 大幻師라 이름하고 몸은 大幻城이 되며 名相은 大幻의 衣食(大幻이 형성되는 곳.형태를 갖추어지는곳)이 되나니 河沙世界가 幻밖의 일이 있음이 없다. 범부는 幻인줄을 알지못하고 곳곳마다 虛幻의 業을 迷惑하고 聲聞은 虛幻인 境界를 두려워하야 마음을 알지 못하고 寂滅에만 들며 菩薩은 虛幻인 法을 알아 虛幻의 體를 通達하야 一切의 名相에 얽매이지 않음이요 佛은 이 大幻師라 大幻法輪을 굴려 大幻涅槃을 이루고 虛幻인 生滅을 굴려서 不生不滅을 얻고 河沙의 穢土를 굴려 淸淨法界를 이룬다.
僧問 何故不許誦經 喚作客語
승이 묻기를 어쩐연고로 誦經을 客語라고 하야 不許하는가
師曰 如鸚鵡之學人言 不得人意 經傳佛意 不得佛意而但誦 是學語人 所以不許
사가 이르되 鸚鵡새가 사람의 말을 배움에 사람의 뜻을 얻지 못하는것과 같음이니 經은 佛의 뜻을 전함이나 佛의 뜻은 얻지 못하고 단지 말하기만하나니 이것은 말을 배우는 사람일뿐이라 所以로 허락하지 않음이라.
曰 不可離文字言語 別有意耶
이르되 문자언어를 여이고서 따로 뜻이 있을수 없잖는가
師曰 汝如是說 亦是學語
사가 이르되 너가 이와같이 說함도 또한 이 말만 배운 것이다.
曰 同是語言 何偏不許
이르되 같은 이 언어(말)들인대 어찌 치우쳐 不許하는가
師曰 汝今諦聽 經有明文 我所說者 義語非文 衆生說者 文語非義 得意者 越於浮言 悟理者 超於文字 法過言語文字 何向數句中求 是以發菩提者 得意而忘言 悟理而遺敎 亦猶得魚忘筌 得 忘제(토기그물제)也
사가 이르되 너 지금 자세히 들어라 經에 밝히는 문장이 있다. 내가 설한바는 義語이요 文語가 아니며 衆生이 說한 것은 文語이요 義語가 아니다 뜻을 얻은자는 뜬 말을 초월할것이요 理致를 깨친자는 文字를 초월할 것이다하시니 法은 言語文字를 넘어선것이라 어찌 몇글자가운데서 구하리오. 이로서 보리를 發한자는 뜻을 얻고 말을 잊으며 理致를 깨치고 敎를 버리나니 또한 마치 고기를 잡고서 통발을 잊고 토끼를 얻고서 그물을 잊는것과 같다.
有法師問 念佛是有相大乘禪 師意如何
법사가 있어 묻되 念佛이 이 有相大乘禪이다 禪師의 뜻은 어떠한가
師曰 無相猶非大乘 何況有相 經云 取相凡夫 隨宜爲說
사가 이르되 無相도 오히려 大乘이 아니거늘 하물며 有相이겠는가
경에 이르되 相을 취하는 凡夫를 위해서 맞추어 說했다하다.
又問 願生淨土 未審實有淨土否
또한 묻되 정토에 나기를 願하나니 알지 못커라 정토가 실제 있는가
師曰 經云 欲得淨土 當淨其心 隨其心淨卽佛土淨 若心淸淨 所在之處 皆爲淨土 譬如生國王家 決定紹王業 發心向佛道 是生淨佛國 其心若不淨 在所生處 皆是穢土 淨穢在心不在國土
사가 이르되 經에 이르되 淨土에 나기를 바란다면 마땅히 그 마음을 깨끗이 하라했으니 그 마음 깨끗함을 따라서 곧 佛土도 깨끗해 진다. 만약 마음이 청정하면 있는곳이 모두 淨土가 될것이니 비유하면 國王家에 태어남에 결정코 王業을 잇는것과 같음이라 發心해서 佛道를 향하면 그 佛國에 生함이거니와 그 마음이 만약 깨끗치 못하면 있는바의 곳이 모두 穢土가 되니 淨과 穢가 마음에 있고 國土에 있지 아니하다
又問 每聞說道 未審何人能見
또한 묻되 매양 道를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알지 못커라 어떤이가 능히 볼수있는가
師曰 有慧眼者 能見
사가 이르되 혜안이 있는자가 능히 볼 수 있다.
曰 甚樂大乘如何學得
이르되 깊이 大乘을 좋아하는데 어떻게 배워 얻을수 있으리오
師曰 悟卽得 不悟不得
사가 이르되 깨친즉 얻을 것이요 깨치지 못한즉 얻지 못할것이라.
曰 如何得悟處
이르되 어떻게 悟處를 얻는가
曰 但諦觀
이르되 다만 자세히 관하라.
曰 似何物
이르되 무슨 물건과 같는가
師曰 無物似
사가 이르되 유사한 것이 없다.
曰 應是畢竟空
이르되 그렇다면 이 畢竟空일것이다.
師曰 空無畢竟
사가 이르되 空은 畢竟이 없다.
曰 應是有
이르되 그렇다면 이 있을것이다.
師曰 有而無相
사가 이르되 있지만 相이 없다.
曰 不悟如何
이르되 깨치지 못함은 어떻는가
師曰 大德自不悟 亦無人相障
사가 이르되 대덕이 스스로 깨치지 못할뿐이요 또한 사람이 장애하지아니했다.
又問 佛法在於三際否
또한 묻되 불법이 三際(內,外,中間)에 있는가 마는가
師曰 見在無相 不在其外 應用無窮 不在於內 中間無住處 三際不可得
사가 이르되 번 듯이 드러나있음이나 相이 없음일세 그 바깥에 있지 아니하고 應用이 끝이 없음일세 안에도 있지 아니하고 그리고 중간은 住할곳이 없나니 三際를 가히 얻지 못한다.
曰 此言大混
이르되 이말은 크게 어지럽다.
師曰 汝正說混之一字時 在內外否
사가 이르되 너가 정히 混이란 한글자를 말할때에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
曰 弟子究檢內外無踪跡
이르되 제자가 궁구해 찾아도 안과 바깥에서 踪跡이 없음이니다.
師曰 若無踪跡 明知上來語 不混
사가 이르되 만약 踪跡이 없다면 위의 말들이 어지럽지 않을것이다.
曰 如何得作佛
이르되 어떻게 佛을 지을수 있는가
師曰 是心是佛 是心作佛
사가 이르되 이 마음이 이 佛이요 이 마음이 佛을 짓는다.
曰 衆生入地獄 佛性入否
이르되 중생이 지옥에 듦에 佛性도 들어가는가
師曰 如今正作惡時 更有善否
사가 이르되 지금 정히 惡을 지을때에 다시 善이 있는가 마는가
曰 無
이르되 없다
師曰 衆生入地獄 佛性亦如是
사가 이르되 중생이 지옥에 듦에 佛性도 또한 이와같다.
曰 一切衆生 皆有佛性如何
이르되 일체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다는데 어떠한가
師曰 作佛用 是佛性 作賊用 是賊性 作衆生用 是衆生性 性無形相 隨用立名 經云 一切賢聖皆以無爲法而有差別
사가 이르되 佛用을 지으면 이 佛性이요 賊用을 지으면 이 賊性이요 衆生用을 지으면 이 衆生性이니 性은 形相이 없어 用을 따라 이름을 세움이라. 經에 이르되 一切의 賢聖이 모두 無爲法으로 差別이 있다했다.
僧問 何者是佛
승이 묻되 무엇이 이 佛인가
師曰 離心之外 卽無有佛
사가 이르되 마음을 여이버리고서는 곧 佛이 있음이 없다.
曰 何者是法身
이르되 무엇이 이 法身인가.
師曰 心是法身 爲能生萬法故號法界之身 起信論云 所言法者 爲衆生心 卽依此心 顯示摩訶衍義
사가 이르되 마음이 이 法身이니 능히 萬法을 生하는 緣故로 法界의 身이라했다. 起信論에 이르되 말한바으 法이란 것은 衆生心이니 곧 이 마음을 의지해서 摩訶衍義(大乘의 敎義)를 나투어보인다하다
又問 何名有大經卷 內在一微塵
또한 묻되 어찌해서 大經卷이 一微塵안에 있다하는가
師曰 智慧是經卷 經云 有大經卷量等三千大千界 內在一微塵中 一塵者 是一念心塵也 故云 一念塵中 演出河沙偈 時人自不識
사가 이르되 智慧가 이 經卷이니 經에 이르되 大經卷이 있어 量이 삼천대천계만큼이나 一微塵가운데에 있다하니 一塵은 이 一念心塵이라. 고로 이르되 一念티끌가운데에 恒河沙만큼의 偈頌이 나온다하나니 사람들이 알지 못하더라
又問 何名大義城 何名大義王
또한 묻되 어찌 大義城이라 이름하고 어찌 大義王이라 이름하는가
師曰 身爲大義城 心爲大義王 經云 多聞者 善於義 不善於言說(不善於義 善於言說?) 言說生滅 義不生滅 義無形相 在言說之外 心爲大經卷 心爲大義王 若不了了識心者 不明(名)善義只是學語人也
사가 이르되 身이 大義城이요 心이 大義王이라 經에 이르되 많이 들은자는 義를 잘하고 言說을 잘하지 않는다(義는 잘못하고 言說을 잘한다?)하나니 言說은 生滅이요 義는 不生滅이라 義는 形相이 없어 言說의 바깥에 있음이로다. 마음이 大經卷이며 마음이 大義王이니 만약 마음을 료료히 알지 못한다면 義를 잘한다고 이름할수 없음이니 단지 이 말만 배우는 사람일뿐이다.
又問 般若經云 度九類衆生皆入無餘涅槃 又云 實無衆生得滅度者 此兩段經文 如何通會前後 人說皆云實度衆生而不取衆生相 常疑未決 請師爲說
또한 묻되 般若經에 이르되 九類衆生을 제도해서 모두 無餘涅槃에 들인다하고 또한 이르되 실로 중생이 멸도(열반)를 얻은자가 있음이 없다하니 이 두가지 經文을 어떻게 앞뒤로 會通해야만 하는가 사람들은 모두 이르되 실로 중생을 제도함이나 衆生相을 취함이 없다라하나 항상 의심이 없지아니하니 請컨데 禪師는 설해주시라
師曰 九類衆生 一身具足 隨造隨成 是故無明爲卵生 煩惱包 爲胎生 愛水浸潤爲濕生 起煩惱爲化生 悟卽是佛 迷號衆生 菩薩只以念念心爲衆生 若了念念心體俱空 名爲度衆生也 智者於自本際上度於未形 未形旣空 卽知實無衆生得滅度者
사가 이르되 九類衆生을 一身에 具足하나니 따라 짓고 따라 이룸이라 이러한 緣故로 無明이 卵生이 되고 煩惱를 싸고돎일세 胎生이 되고 愛水에 침윤함일세 濕生이 되고 홀연히 煩惱를 일으킴일세 化生이 된다 깨친즉 이 佛이요 迷한즉 이 衆生이라 菩薩은 단지 생각생각의 마음으로서 중생으로 삼나니 만약 생각생각에 心體가 모두 空한줄을 알면은 중생을 濟度했다하리라. 智者는 자기 本際上에 未形(일체의 境界)를 濟度하나니 未形이 이미 空함일세 곧 실로 중생이 涅槃을 얻은자가 없는줄을 앎이라.
僧問 言語是心否
승이 묻되 언어가 이 마음인가 아닌가
師曰 言語是緣 不是心
사가 이르되 언어는 이 緣이요 이 마음이 아니다.
曰 離緣何者是心
이르되 緣을 여이고서 무엇이 이 마음인가
師曰 離言語無心
사가 이르되 言語를 여이고서는 마음이 없다.
曰 離言語旣無心 若爲是心
이르되 언어를 여이고서 이미 마음이 없다면 또한 이 마음이 됨이라.
師曰 心無形相 非離言語 非不離言語 心常湛然 應用自在 祖師云 若了心非心 始解心心法
사가 이르되 마음은 形相이 없음일세 言語를 여이지도 않으며 言語를 여이지 않음도 아님이니 마음은 항상 湛然해 應用이 自在하다 祖師가 이르되 만약 마음이 마음이 아닌줄을 了達하면 비로소 마음과 마음법을(心心所法) 앎이라.
僧問 如何是定慧等學
승이 묻기를 무엇이 이 定慧를 동등히 닦음인가
師曰 定是體 慧是用 從定起慧從慧歸定 如水與波 一體更無前後 名定慧等學 夫出家兒 莫尋言逐語 行住坐臥 幷是汝性用 什 處與道不相應 且自一時休歇去 若不隨外境之風 性水常自湛湛 無事珍重
사가 이르되 定이 이 體이요 慧는 이 用이라 定을 쫒아서 慧가 일어나고 慧를 쫒아서 定으로 돌아가나니 마치 물과 파도와 같아서 體가 하나라 다시 前後가 없음을 定慧等學이라이름한다.
대저 出家한 사람일진댄 言語를 찾아 구하지 말라 行住坐臥가 이 너의 性用이니 어느곳에서 道와 相應치 않겠는가 다만 스스로 한 번 쉬어가서 만약 바깥의 境界에 끄달리지 않는다면 性水가 항상 湛湛하리라. 일없이 珍重(保重,自重)하라.
大珠禪師語錄 後序
昔披閱祖燈至大珠和尙傳云有頓悟入道要門論一卷 思仰之久 未如所願 後於洪武己酉歲 從壞 中 得一故冊 信手展卷 隨覽數分 如熱得凉 踊躍歡喜 不能自勝 方視其首 卽斯論也 復詳披究 見其義理 質直詣實 如飮醍 如得至寶 後較他錄 得無差謬 所願旣獲 不敢私 願與一切衆生 同霑法味 復綴諸宗所問語錄一卷 於後略分上下 共成一冊 幷達摩大師安心法門 附於卷末 總名曰 頓悟要門 謹捐布帛 命工繡梓 垂於不朽 流布十方 使天下學佛之士 各各了知正修行路 不墮邪見 頓悟自心 咸開佛慧 實 之所志願矣
洪武七年歲在甲寅春三月丙戌日 比丘妙 焚香稽首禮題
대주선사어록 후서
엣날 祖燈(조사어록)을 열람하다가 大珠和尙傳 이르러 돈오입도요문론 一卷이 있다는 것을 보고 우러러 생각하기를 오래했으나 소원과 같지 못하더라 뒤에 홍무기유년에 부서진 상자에서 낡은 책한권을 얻어 손가는대로 책을 펴다가 몇군데를 보매 마치 열병에 시원함을 얻은것과 같아 환희용약하야 스스로 이길줄을 모르다가 비로소 그 앞을 보아 이 論인줄을 알았다. 다시 자세히 펴 그 이치를 궁구해보니 소박하고 정직해 진실하야 마치 醍 를 마시는것과 같고 지극한 보배를 얻는것과 같더라 뒤에 다른 기록과 비교해보고 틀리지 않음이라. 소원을 이미 이룸에 감히 사사로히 가지고 있지 못하고 일체중생과 더불어 같이 法맛을 적시고자 다시 諸宗의 묻는바인 語錄 한 권을 뒤에 붙이고 상권 하권으로 나눠 한권의 책을 이루고나서 삼가 布帛을 보시하야 匠人에게 命해 판을 세겨 없어지지 않게하고서 十方에 流布하야 천하의 佛道를 배우는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바른 수행로를 알게하야 邪見에 떨어지지않게하야 몰록 自心을 깨쳐 다함께 佛慧를 열게 함이 진실로 이 妙 의 소원이로다.
홍무 칠년 갑인년 춘삼월 병술일에 比丘 妙 이가 焚香하고 머리를 조아려 삼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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