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上) 서장
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상)
오노 후유미(小野不由美)
서장
- 1 -
건강해라, 라고 말하며 어머니는 눈가를 눌렀다. 아버지도 두 사람의 오빠도 말없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여동생도 남동생도 집안에서 나오지 않는다. 두 사람을 달래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문 밖에 서있는 스즈(鈴)의 귀에도 들려왔다.
뭐어, 하고 느긋하게 말을 꺼낸 것은, 스즈의 곁에 서있는 남자뿐이었다.
「아오야기(靑柳)사마는 큰 부자니까. 예쁜 옷도 입혀주실 거고, 예의범절도 가르쳐 주실 거다. 해가 바뀔 때쯤이면 완전히 시골 때가 벗어져서,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아가씨가 될지도 몰라.」
남자는 말하고서, 혼자서 큰 소리로 웃었다. 스즈는 그런 남자를 몸을 뒤로 돌리며 올려다보고, 눈앞에서 쓰러져 가는 자신의 집을 보았다. 기울어진 기둥과 비틀린 초가지붕. 안에는 흙바닥 채인 마루와 방 둘뿐, 어느 것이나 모두 기울어지고 비틀려 있었다.
스즈의 집은 가난하다. 토지를 빌려 쌀 농사를 짓고 있었지만, 결실은 대부분 소작료로 나간다. 그런데다 올해는 흉작으로, 여름이 되어서도 벼의 싹이 나지 않는다. 이대로는 소작료도 물 수 없다. 그래서 스즈는 첩으로 팔려간다. 17살의 오빠도 11살의 여동생도, 9살의 남동생도 아닌, 14살의 스즈가. --만으로 말하자면, 12살밖에 되지 않는다.
「--자, 갈까.」
남자에게 재촉 받고서 스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에게 작별의 말은 하지 않았다. 말을 꺼내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똑바로 눈을 뜨고, 눈을 깜박이는 것을 애써 참았다. 그 눈으로 가족을 둘러보고, 다시 한 번 얼굴을 기억했다.
건강해라, 라며 어머니는 다시 한 번 말하고, 소매로 얼굴을 감쌌다. 그리고 스즈는 등을 돌렸다. 울고 있는 어머니, 말없이 입을 다문 아버지와 오빠. 누구 하나 스즈를 붙잡아주지는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입을 다문 채 남자의 뒤를 따라 타박타박 걸어서 마을을 벗어나고, 정오 무렵에는 스즈가 알고 있는 세계의 끝까지 도착했다. 산의 사면을 더듬는 듯한 언덕길, 멀리 기슭에서 보이는 이 언덕의 바깥으로, 스즈는 가본 적이 없다.
「넌 착한 아이다. 훌쩍거리며 울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는걸.」
남자는 굉장히 쾌활해서, 멋대로 지껄이면서 큰 걸음으로 거침없이 걸어나간다.
「도쿄는 멋진 도시야. 너, 가스등 같은 것 본 적 없지? 저택으로 가려면 철도마차도 탈 수 있어. 철도마차라는 거 알고 있어?」
스즈는 말을 흘려들으며, 뒤를 돌아보지 않도록 애쓰며, 남자의 발치에 끌리는 그림자를 열심히 쫓아갔다. 조금 뒤쳐지면 빠른 걸음으로 쫓아가서, 남자의 그림자의 머리 근처를 에잇, 하고 밟았다. 그것을 되풀이하며 언덕을 넘고, 내려가던 참에 남자의 신식 머리의 그림자가 멈춰 섰다, 남자가 하늘을 올려다본 것이다.
등뒤에서 구름이 쫓아오고 있었다. 스즈가 밟은 남자의 그림자도 흐려져 버렸다.
「--비가 오려나.」
돌아본 등 뒤, 산간의 마을에서 무성하게 이어지는 숲의 사면을, 그림자가 내려오고 있었다. 물이 밀려오는 것처럼 구름의 그림자가 남자와 스즈의 그림자를 쫓아오자, 미지근한 바람이 불면서 툭, 하고 빗방울이 길을 때렸다.
「이거, 곤란한데.」
남자는 말하고, 언덕길의 곁에 나있는 커다란 녹나무의 쪽으로 달려갔다. 비를 피하려는 거라고, 스즈도 보퉁이를 가슴에 안고서 그 뒤를 따랐다. 투두둑 굵은 빗방울이 뺨과 어깨를 때려, 가지 아래로 달려들어가는 짧은 시간동안에 심하게 내리기 시작했다.
스즈는 목을 움츠리고, 녹나무 줄기로 달려들어갔다. 지면에 뻗어있는 뿌리는 이들처럼 비를 피하거나 휴식을 하는 여행자들의 발에 닳아서, 어느 것이나 미끌거렸다. 거기에 빗방울이 떨어져, 스즈의 발을 미끄러지게 했다.
아아, 미끄러지지 마, 라고 스즈가 생각한 순간, 발치가 크게 흔들렸다. 앞으로 고꾸라지며 발을 내민 곳에 또 다른 뿌리가 있어서, 거기를 붙잡았다. 넘어질 뻔한 것을 간신히 멈추려던 발이 또 다시 미끄러져, 스즈는 굴러 내려가듯이 절벽 가장자리까지 내려가 버렸다.
「어이, 조심---」
남자의 목소리는 도중에서 비명으로 바뀌었다. 녹나무의 뿌리가 끊어진 앞에는 절벽이라고 불러도 좋을만한 급경사가 있었고, 스즈는 그곳에서 굴러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스즈는 짐을 내던지고 손을 뻗었다. 손가락은 남자의 손에도, 근처의 나뭇가지나 풀뿌리에도 닿지 않았다. 절벽으로 몸이 내던져지며, 갑자기 굵은 빗발을 맞았다. 두두두, 폭포수가 떨어지는 듯한 빗소리가 났다.
떨어진다, 고 생각했던 순간까지는 스즈도 기억하고 있다. 갑자기 의식이 멀어지다가, 물에 빠지면서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아래에는 강이 있었던 걸까, 라고 반쯤 물에 빠지면서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계곡인 걸까. 끝없이 빠져드는 이 깊이는. 게다가 입안으로 들어오는 물의 짠맛은.
어두운 물 속으로 빠져 들어가며, 의식을 잃고, 다음 순간 눈을 떴을 때는 천천히 흔들리는 마루 위였다. 몇 명의 남자가 스즈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스즈가 깜짝 놀라 눈을 깜박거리자, 남자들은 안심했다는 듯이 표정을 부드럽게 하며, 저마다 뭐라고들 말했다.
스즈는 몸을 일으켰다. 주위를 둘러보고서 깜짝 놀라 입을 벌렸다.
그곳은 물 위였다. 오래된 판자가 이어져 있는 바로 앞은 수면, 눈을 들자 새까만 물이 끝없이 이어져, 먼 저편에 한 일자(一)로 하늘과 닿아있다. 이렇게 넓은 수면을, 스즈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았다.
아까 떨어졌던 녹나무를 찾아서 등뒤를 돌아보자, 바로 등뒤에는 목을 한껏 뒤로 젖히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 절벽이 서있었다. 절벽은 깊이 파여, 군데군데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 절벽의 기슭에서, 판자를 이어서 넓은 마루가 만들어져 있는 것이었다. 마루의 가장자리에는 몇 개나 되는 잔교(棧橋)가 있고, 거기에 세 척의 작은 배가 정박해 있었다.
--강에 떠내려와서, 바다에까지 와버린 걸까.
스즈는 그렇게 생각했다. 강을 계속 내려가면, 점점 커지다가 바다에 닿는다고, 그렇게 들은 적이 있었다.
--이게 바다.
새까만 물. 손을 짚고 마루에서 들여다보자, 근처에 있던 연못이나 강과는 완전히 다르게, 무섭도록 맑았다.
그럼에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먼 저편의 암흑에까지 이어져, 그곳에 반짝거리며 빛나는 무언가가 무리를 지어 헤엄치고 있었다.
「-----------」
말을 걸어오며 가볍게 어깨를 흔들려, 스즈는 간신히 바다에서 눈을 떼었다. 남자들이, 걱정스러운 듯이 스즈를 바라보고 있었다.
「---------」
남자들은 스즈에게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다. 그 말을 완전히 알아들을 수 없어서, 스즈는 깜짝 놀랐다.
「에? 뭐라고 말했어요?」
남자들은 웅성거리며, 얼굴을 마주보았다. 저마다 뭔가 말을 주고받았지만, 스즈는 전혀 그 대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여기는 어디? 저, 돌아가야 해요. 여기에서 마을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하죠? 도쿄에 가는 길이라도 괜찮은데요. 아저씨들, 아오야기사마 집 알아요?」
남자들은 또 다시 웅성거렸다. 곤혹한 듯한 표정이 각각의 얼굴에 떠올라 있었다.
남자들이 이마를 모으고 상담하기 시작했기에, 스즈는 어쩔 줄 모르고 마루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절벽은 땅을 끊어놓은 듯이 늘어서 있었다. 똑바로 수면으로 내려오면서, 더욱 안쪽으로 깊이 파여있다. 스즈의 집 근처의 산 속 깊은 곳에 폭포가 있었지만, 지금 보는 절벽은 그 폭포수가 떨어지던 절벽보다도 후러씬 높았다. 그것이 수면에 떠있는 마루를 크게 싸안는 듯이, 좌우로 뻗어있었다.
마루가 있는 곳을 빼면, 단애의 기슭에는 해변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스즈가 있는 이 장소만이 넓고 넓은 뗏목같은 마루가 물에 떠서, 절벽 아래에서 수면으로 뻗어있다. 거기에 배가 묶여있고, 마루 안 쪽, 마루와 절벽이 만나는 곳에 작은 오두막이 늘어서 있었다.
과연, 이라고 스즈는 생각했다. 해안이 없으니까, 만들어놓은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 이 절벽을 올라가는 것까, 라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세히 보자, 높은 절벽에는 돌계단과 사다리가 이어져 있었다. 어쨌거나 저걸 올라가는 듯 했다.
「저런 사다리를 오르다니, 눈이 핑 돌 것 같아.」
스즈가 중얼거렸을 때, 남자들이 스즈를 돌아보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스즈에게 절벽 위를 가리킨다. 절벽쪽으로 걸어가는 남자들에게 인도되어, 스즈는 절벽에 만들어진 돌계단에 발을 얹었다.
그것이 고행의 시작이었다. 스즈는 절벽을 올라갔다. 몇 번이고 주저앉으려는 것을, 뒤에서 밀고 앞에서 끌어주며, 등뒤를 돌아보고서 너무나 높아서 눈이 돌아버릴 뻔 하는 것을 다독거려지면서, 간신히 절벽 위에 닿았다.
「해변에 사는 사람들은 큰일이네.」
털썩 주저앉아서 스즈가 말하자, 남자들은 웃으며 스즈의 등과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말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수고했다고 말해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논밭에서 일하는 편이 훨씬 편했어.」
마루 여기저기에서 투망이 펼쳐져 있었기에, 남자들이 고기를 잡고 있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있다. 고기를 잡을 때마다 이 절벽을 오르내린다면, 그 고생은 엄청나겠지. 농사일을 돕는 것도 큰일이었지만, 적어도 논두렁 정도는 걸어다닐 수 있었다.
절벽의 위에는 스즈의 키보다도 훨씬 높은, 돌을 쌓아올린 벽이 이어져 있었다. 그 한쪽에 있는 입구 쪽으로 인도되어, 풀려 버릴 것만 같은 다리를 질질 끌면서 남자들의 뒤를 따라갔다.
벽 안쪽은 작은 오두막들이 늘어서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그 중 한 채로 데려가져, 스즈는 노파의 손에 신병이 넘겨졌다. 바닷물에 젖은 옷을 벗기고, 방안에 놓인 침대 위에 펼쳐져 있는 이불을 가리켰기에 스즈는 얌전히 거기에 누웠다. 노파는 스즈의 옷을 가지고 오두막에서 나갔다. 그것을 눈으로 쫓다가, 스즈는 눈을 감았다. 완전히 피곤해져 있었다.
--제대로 도쿄에 갈 수 있을까.
추락하는 듯이 잠에 빠지며, 스즈는 생각했다.
--아오야기사마 댁에 가지 않으면 안되는데. 난 팔려버린 거니까.
이미 달리 갈 곳도, 돌아갈 곳도 스즈에게는 없으니까.
스즈는 물론, 여기에는 도쿄라는 거리 따위 존재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스즈가 빠진 것은 허해(虛海).
스즈가 도달한 곳을, 경동국(慶東國)이라고 한다.
--그리고 긴 세월이 흘렀다.
- 2 -
열 둘의 나라들, 북서쪽에 그 나라가 있다. 나라의 이름은 방(芳), 정확히는 방극국(芳極國)이라고 하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봉왕(峯王) 츄타츠(仲革+達), 그 원래 성을 손(孫), 씨(氏)를 켄(健)이라 한다.
켄 츄타츠는 원래 군사를 담당하는 하관(夏官), 선왕이 쓰러진 후에 호우린(芳麟)의 선정을 받아 봉왕을 이었다.
방국의 국력(國曆)으로 영화(永和) 6년, 츄타츠의 치세가 30년에 이르러서, 방국의 왕궁 응준궁(鷹佳+十宮)에 십만의 병사가 몰려들었다. 츄타츠의 압정에 견디다 못해 봉기한, 팔주제후(八州諸候)의 주사(州師)였다.
방국 수도 포소(蒲蘇)의 문은, 뜻을 같이 하는 시민들에 의해 안쪽에서 열려졌다. 곧 왕궁의 심부, 후궁에까지 들이닥친 팔주사(八州師)는, 삼백 가까운 수의 소신(小臣)과 장렬한 전투를 벌인 끝에 봉왕 츄타츠를 쓰러뜨렸다.
「--저 환성은.」
쇼케이(祥瓊)는 그 함성을 어머니의 팔 안에서 들었다. 츄타츠의 왕후 카카(佳花), 그 외동딸인 공주 쇼케이, 그리고 몸이 좋지 않아 누워있던 호우린이 후궁 안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바깥에서 들려와요. --어머님, 저 소리는.」
쇼케이는 나이 열 셋, 츄타츠와 카카가 보물처럼 소중하게 아끼며 익애하던 딸이다. 총명하고 똑똑하며 미모가 수려하여, 응준(鷹佳+十)에 경(瓊)이 있다고 말해지던 그 소녀는, 두려움에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다.
「저것은--설마.」
모든 주에서 봉기한 백성, 포소의 주위에 집결한 창검의 번쩍임, 궁중에까지 울리는 왕을 저주하는 노래. 왕궁에 밀려들어온 청회색의 갑옷, --그리고, 이 함성.
「설마, 아버님----.」
「아니요----아니에요!」
카카는 쇼케이를 안은 팔에 힘을 더했다.
「그런 일은.」
있을 리 없다, 고 카카가 외치려 하던 찰나, 피냄새에 취해 쓰러져 누워있던 호우린이 비통한 소리를 질렀다.
「호우린---」
「왕기가---아아, 왕기가 끊어져 버렸습니다.」
호우린의 창백한 얼굴이 더욱 새하얘졌다. 그러자, 동시에 후궁의 가장 안쪽에 있는 그 방의, 문이 소리를 내며 열렸다.
밀려들어온 그들의 피칠갑이 된 갑옷. 선두에 서있는 젊은 남자의 휘장은 성진(星辰), 그것은 주후의 인이 아니었던가.
「--무례한!」
카카가 소리를 질렀다.
「여기를 어디라 생각하오. 왕후, 타이호의 앞에, 허락도 없이.」
남자의 침착한 표정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말없이 카카의 앞에 오른손에 들고 있던 것을 던졌다. 무거운 소리를 내며, 점점이 피를 떨어뜨리며, 그것은 쇼케이의 발치에 굴러가 원망스러운 듯이 하늘을 노려보았다.
「---아버님!」
불사를 약속받은 왕이라고 해도, 목을 베이면 살 수 없다. 쇼케이도 카카도 비명을 지르며 호우린이 누워있는 침대로 물러섰다.
「아버지의, 남편의 목이여도 두려운가.」
남자는 비웃음을 지었다. 카카는 그 얼굴을 노려보았다.
「너--혜후(惠候)--아니, 겟케이(月溪)!」
혜후 겟케이는 냉랭한 음성으로 말했다.
「봉왕은 우리가 죽였다. 왕후도 공주에게 작별을 고하도록.」
「무엇을---」
소리를 지르는 카카의 팔에 매달려, 쇼케이는 심하게 떨었다.
「가혹한 법으로 백성을 오랫동안 괴롭힌 왕과, 그 왕에게 참언하여 죄없는 백성을 주살시킨 왕후. 둘 모두 백성들의 원한을 알아야 한다.」
「왕은--왕은 백성을 위해서 좋게 하려고---」
「빈곤에 신음하며, 어쩔 수 없이 한 개의 떡을 훔친 아이에게까지 죽음을 내리는 법이 백성을 위한 것인가. 세금으로 바치는 곡식이 조금 부족해도 사형, 병으로 누워 부역을 잠시 쉬어도 사형. 백성의 공포는 지금 너희들의 공포에 비할 것이 아니었다.」
겟케이가 손을 들었다. 등뒤의 병사가 카카에게 달려가, 그 팔에서 쇼케이를 떼어냈다. 쇼케이는 절규하며, 카카 역시 비통한 소리를 질렀다.
「다른 부녀의 미모와 재기를 시샘하여, 혹은 공주보다도 영리한 여자아이들을 시기하며 죄를 날조하여 참언하고, 국토에는 만가가 가득했다. 가족의 시체를 앞에 두는 비통함을 알겠는가.」
「네놈---겟케이.」
소리를 지르는 카카에게는 상관하지 않고, 겟케이는 병사에게 제압당한 채 몸부림치고 있는 쇼케이를 돌아보았다.
「공주도 잘 보고 있으시오. 자신의 가족이 형장에 끌려가, 눈앞에서 목을 베이는 고통이 어떠한 것인지.」
「그만! 부탁이야! ---어머님!!!!」
쇼케이의 비명은, 그 자리의 어느 누구의 마음도 움직이지 못했다.
눈을 크게 뜨고, 신음하는 쇼케이의 눈앞에서 겟케이의 팔이 내려졌다. 너무나도 큰 충격으로 눈을 감는 것마저 할 수 없었던 쇼케이는, 모친의 목숨이 사라지는 그 순간을 보았다.
--굴러 떨어진 머리는 비통한 표정으로 얼어붙은 채, 허공을 향해 열린 입이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면서 봉왕 츄타츠의 목 옆으로 굴러갔다.
쇼케이의 눈꺼풀도 목도, 그 순간 얼어붙어버렸다.
겟케이는 담담한 시선을 쇼케이에게 던지고, 호우린이 누워있는 침상으로 걸어갔다.
「--타이호.」
호우린은 초점없는 눈으로 겟케이를 올려다보았다.
「2대에 걸쳐 암군(暗君)을 고른 당신에 대한, 백성의 절망을 이해해 주시길 바라오.」
호우린은 뚫어져라 겟케이를 올려다보고, 마침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겟케이는 깊게 배례하고, 피에 젖은 검을 겨눴다.
--봉왕 및 호우린 승하.
방국에서 한 개의 왕조가 끝났다.
시체가 옮겨지는 것을, 쇼케이는 망연하게 보고 있었다.
--아니, 그녀 자신에게도, 자신이 그것을 보고 있는 것인지, 단순히 눈에 비치고 있을 뿐인지, 알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힘없이 주저앉은 쇼케이의 앞에 겟케이가 서자, 그녀는 겟케이의 모습을 발끝부터 위로 시선을 향했다.
「봉왕 공주, 손소(孫昭), 그대를 선적에서 제한다.」
그런, 하고 쇼케이는 겟케이의 얼굴을 보았다. 부모의 죽음은 아직 실감할 수 없다. 그보다도 선적을 잃는다는 쪽이 직접 무섭게 몸에 닥쳐왔다. 선적에 들어서 삼십년 근처. 그런 쇼케이가 살 수 있는 장소가 어디에 있다는 것인가.
「그만, ...........부탁해요, 그것만은......」
겟케이는 연민의 시선을 향해왔다.
「공주를 이대로 방치하면, 원한을 품은 백성들이 밀려올 것이오. 혜주(惠州)에 호적을 준비하겠소. 공주의 지위도 선적도 함께 버리고, 이름을 바꾸어 사람들 사이로 섞여들어가는 것이 몸을 위한 일이겠지요.」
그것만 말하고서, 겟케이는 등을 돌렸다. 쇼케이는 그 등에 외쳤다.
「--죽여줘요! 저도!」
쇼케이는 마루에 손톱을 세웠다.
「어떻게 살아가라는 거에요!」
겟케이는 돌아보지 않는다. 쇼케이의 팔을 병사가 잡았다.
「너무해요, ----너무해!!!」
응준궁의 구석에 오동궁(梧桐宮)이라 불리우는 궁이 있다. 그 궁의 주인은 백치(白雉), 백치는 그 생애에 단 두 번 사람의 말로 울기에, 별명을 이성(二聲)이라고도 한다. 일성(一聲)은 「즉위」, 이성(二聲)은 「붕어」, 그리하여 이성을 말성(末聲)이라고도 한다.」
오동궁의 백치는 말성을 외치고 죽었다. 겟케이는 그 백치의 발을 베었다.
왕의 교지에는 주력이 있다. 왕밖에 사용할 수 없는 신기인 것이다. 왕이 죽어버리면, 교지는 거기에 새겨진 인을 상실한다. 이후 신왕의 등극까지, 그대로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법도 포고도, 교지 없이는 효력을 갖지 않는다. 그 대용이 되는 것이 백치의 발이었다.
육관팔후(六官八候)가 지켜보는 가운데, 한 통의 서면에 백치의 발이 날인되었다.
공주 쇼케이를 선적에서 제한다, 라고.
--그로부터, 3년의 세월이 흘렀다.
- 3 -
천상에는 운해라고 불리우는 바다가 있어서, 그것이 세계를 상하로 이분한다. 하계에서 올려다보아도 거기에 바다가 있다는 것은 알 수 없다. 하늘 아래의 높은 곳에서 올려다보면, 투명한 유리의 천장같은 운해의 바닥을 볼 수 있었지만, 그렇게 높은 곳에 오를 수 있는 자의 수는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그저 모든 사람들이 지식으로서, 하늘 높은 곳에는 바다가 있어서 운해라고 부르며, 그것이 천상과 천하를 가르고 있다고, 알고있는 것 뿐이었다.
그 운해에 한줄기의 구름이 뻗어간다. 엷은 무지개빛으로 빛나는 가늘고 긴 구름이 동쪽을 향해 흐르고 있었다. --서운(瑞雲)이다.
완만한 구릉지에 펼쳐진 농지, 논두렁의 풀을 베고 있던 소녀가 그것을 깨달았다.
「케케이(桂桂), 봐. 서운이 간다.」
란교크(蘭玉)는 땀을 닦고, 그 손을 가리키며 눈부신 여름 하늘을 올려보았다.
그녀의 곁에서 베어낸 풀을 모으고 있던 아이는, 누나의 시선을 따라 깜짝 놀라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남쪽 하늘에 예쁜 구름이 뻗어나가는 것을 보았다.
「서운이 뭔데?」
「신왕이 왕궁에 들어갈 때에 나타나는, 경사스러운 구름이야.」
헤에, 하고 케케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남매가 하늘을 올려보는 것을 따라, 밭에서 여름풀을 베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들었다.
「새 임금님이 나타난 거야?」
「응. 전에 있던 나쁜 임금님이 죽고, 다음 임금님이 나타났어. 봉산에서 요천(堯天)에 있는 왕궁으로 가고 계시는 거야.」
백성은 언제나, 죽은 왕에 대해서는 용서가 없다. 왕이라는 것은 백성에게 있어서 신이었지만, 신으로서의 왕이라는 것은, 자신들에게 현치(賢治)를 베풀어주는 왕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봉산은, 여신님이 있는 산이지. 세상의 한가운데에 있는.」
「그래. 잘 알고 있구나.」
케케이는 조금 가슴을 폈다.
「알고 있어. 봉산은 타이호가 태어나는 산이야. 타이호는, 기린이고. 기린은, 임금님을 고를 수 있는 유일한 분인거지.」
케케이는 다시금, 몸을 뒤로 젖히며 하늘을 보았다.
「봉산의 여신님은 벽-----에에또, 벽...........」
「벽하현군(碧霞玄君).」
「응, 응. 벽하현군 교크요사마라고 했었지. --그래서, 봉산의 안쪽에 있는 화산(華山)에는, 가장 높은 여신님이 살고 있어. 서왕모(西王母)라고 하는.」
「응. 그래.」
「숭산에는 천제가 살고 계시고, 세상을 모두 지켜보고 계셔.」
그리고, 라면서 아이는 머리 위를 올려보았다. 서운은 길게 꼬리를 끌며, 동쪽을 향하고 있다.
「임금님이 나라를 다스리는 거야. 나쁜 임금님이 없어지고서, 새 임금님이 나타났으니까, 우리들은 집에 돌아갈 수 있는 거지?」
그래, 라고 대답하며 란교크는 동생을 끌어안았다. 논두렁에 서서 서운을 올려보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것들을 가슴 속에 끌어안으며.
--경왕 죠카크(舒覺). 나라를 황폐하게 만든 무능한 선왕. 특히 그 말기에, 경의 여자란 여자는 모두 국외추방을 명령받았다. 란교크 역시, 동생의 손을 잡고 나라 밖으로 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많은 여자들은 집안에 숨어서, 또는 남장을 하고 관리나 병사들의 손에 큰돈을 쥐어주면서 해를 피하려 했지만, 란교크는 감싸줄 부모를, 영주(瑛州)를 덮친 대한파 때에 잃었다.
어지러워진 나라, 부모를 잃고, 나라에서 쫓겨나 동생과 둘이서 바다를 통해 다른 나라로 도망치려 했다. 마찬가지로 나라에서 쫓겨나, 또는 끝없이 황폐해지는 나라로부터 도망나가려 길을 서두르는 사람들. 그 여행 도중에, 리사(里社)에 신왕 즉위의 깃발이 올랐다. 검은 바탕에 힘차게 비상하는 승룡, 떠오르는 일월성진(日月星辰)--왕기(王旗)인 것이다.
이것으로 나라가 평화로와 질 거라고, 풍요로와 질 거라고 안도의 숨을 내쉬며 란교크는 다시 동생의 손을 잡고 정든 마을로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신왕의 선정이 이루어지면 리사에 비룡을 그린 용기가 걸리며, 정식으로 등극하면 왕기가 걸리는 것이지만 그 용기를 본 기억이 없다. 사람들에게 묻자, 역시 용기는 걸리지 않은 채, 그것도 리사에 따라서 왕기가 걸리기도 걸리지 않기도 한다는 것이다.
노인들은 이상하다고 말했다. 신왕이 등극하면 전재도 딱 그치는 것이지만, 언제까지고 천재가 계속된다. 게다가, 신왕이다, 위왕(僞王)이다, 하면서 일어난 전쟁. --그 전쟁의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인가, 왕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이들로서는 알 길이 없다.
역시나 위왕이었다, 라는 소문이 흘렀다. 정식의 왕이 일어서, 위왕과 싸우고 있다고.
그리고 걸려진 용기. 동쪽으로 뻗어가는 한줄기의 서운.
--정말로 왕이 선 것이다.
란교크는 동쪽으로 사라지는 서운을 전송했다.
「........부디 신왕이, 우리들을 행복하게 해주시도록.」
논두렁에 서있던 사람들은 함께 끄덕이며, 그 서운을 전송했다.
경국 수도, 요천(堯天). 높은 구릉지에 층을 지어 펼쳐진 도시, 그 수도의 서쪽에 면해 높게 솟아있는 산이 있다. 그 산정은 구름을 꿰뚫는다. 운해의 높이를 넘어서기 때문에 그를 능운산(凌雲山)이라 부른다. 요천의 능운산, 그것을 요천산(堯天山)이라 하며, 그 산정에는 왕궁이 있다. 경국왕(慶國王), 경왕(景王)의 거처인 금파궁(金波宮)이다.
운해의 위로 시점을 옮기면, 요천은 바다의 한가운데에 떠있는 섬, 층지어 서있는 봉우리의, 그 사면에, 단애에, 또는 공중에 걸려있는 누각. 이것이 금파궁의 모습이었다.
그 요천산--요천도(堯天島)라고 불러도 좋다--의 서쪽 기슭에, 거대한 거북이 도착했다. 이것은 봉산에서 왕을 모시는 신수(神獸), 그 이름을 현무라 한다.
왕궁의 제관이 항구에 평복하고 이를 맞았다. 이 현무가 운해에 남기는 자취가, 하계에서는 서운으로 불린다는 것을 천상에 사는 누구나 알고 있다.
현무는 제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 큰 바위 같은 머리를 기슭으로 뻗었다. 그것을 밟고 기슭에 내려선 신왕을, 제관의 장인 재상이 맞는다.
그것을 살짝 훔쳐본 몇 명인가가,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여왕(女王)인가.
경국은 파란의 나라, 왕이 오랫동안 옥좌에 있어본 전례가 없다. 특히 최근 삼대간, 단명의 왕이 연이었고, 게다가 그들 모두가 여왕이었다. 그 뒤를 이어 섰던 위왕마저 여자, 그리고 그 뒤에 선 신왕까지인가.
회달(懷達), 이라는 말이 경에는 있다. 아주 옛날, 300년 이상의 치세를 구가했던 왕, 달왕(達王)을 그리워한다는 뜻이다. 달왕은 그 치세 말에 백성을 심하게 괴롭힌 왕이었지만, 적어도 거기에 이르기까지 300년 가까이, 안정된 현치(賢治)를 베풀었다. 달왕과 같은 장명(長命)의 왕을 바라며 현치를 기원한다는 뜻이지만, 그 안에는 한숨이 숨겨져 있다.
--여왕은 이제 됐어. 왕이 있던 시대가 그립다.
다른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조용히 내쉰 한숨은, 그 수가 적지 않았기 때문에 한숨을 쉰 당사자들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뚜렷하게 흘렀다.
어쨌든, 그 날, 경의 모든 리사에는 왕기가 걸렸다.
경동국에 신왕 등극. 경왕 세키시(赤子)의 시대--적왕조(赤王朝)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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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상) 1장
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상)
오노 후유미(小野不由美)
제 1 장
- 1 -
세계의 중앙에 봉산이라고 불리우는 산이 있다. 그 성지를 다스리는 여신의 이름이 교크요(玉葉)라고 한다. 이 여신에의 경애에서, 여자의 자(字)에는 교크요라는 이름이 많다. 세계의 북서쪽, 방국의 동쪽에 위치한 혜주(惠州) 판현(坂縣)에도, 교크요라고 불리는 소녀가 있다.
「교크요-----!」
가을 바람에 실려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에, 소녀는 마른풀 사이에서 고개를 들었다. 가볍게 눈썹을 찌푸린 것은, 구부리고 있던 허리가 아팠고, 그 이름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쇼케이.
원래는 아름다운 이름이 있었다. 교크요 따위의 평범하고 진부한 이름이 아닌.
부모의 피에 젖은 왕궁에서 판현의 신도(新道)라는 리(里)에 온 지 3년, 진주처럼 하얗던 피부는 볕에 그슬려, 주근깨가 생겼다. 복숭아같던 뺨은 푹 들어갔다. 손가락에는 마디가 생기고, 손도 발도 울퉁불퉁 해졌으며, 군청색의 머리카락은 볕에 바래어 회색빛이 돌게 되었다. 청보라빛의 눈동자마저도 생기를 잃고, 탁한 빛으로 변해버린 것 같았다.
「교크요, 어디야! 대답해!」
날카로운 여자 목소리를 듣고서, 못박힌 듯이 서있던 쇼케이는, 여기에요, 라고 대답했다. 발을 돋우고 마른 억새 사이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얼굴을 볼 것도 없이, 이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알 수 있다. 고보(水+互姆)겠지.
「풀 베는데 언제까지 걸리는 거야. 다른 애들은 모두 돌아왔는데.」
「--지금, 끝났어요.」
고보는 풀을 가르며 나오는 쇼케이가 모아놓은 풀의 다발을 보고서 코웃음을 쳤다.
「확실히 여섯 묶음이군. 그렇다고는 해도, 꽤나 작은 다발이잖아.」
「하지만........」
쇼케이가 말을 하자,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말대답하는 게 아냐. 언제까지고 그 모양이냐.」
고보는 목소리를 낮췄다.
「여기는 궁성이 아냐. 넌 이미 그냥 고아일 뿐이라는 걸 잊지 말라고.」
물론, 하며 쇼케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단 한번도 잊은 적은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렇게 말하며 욕을 들으면,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다.
「조금은 뉘우치는 게 어때. 내가 큰 소리로 말하면, 마을 사람 전체가 네 목을 베려고 달려들 거라는 걸 잊지 마.」
쇼케이는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대답은? 하는 날카로운 말이 날아와, 예, 하고 작게 대답했다.
「그것 뿐이야?」
「........감사합니다.」
고보는 입가에 비웃음을 띄웠다.
「여섯 다발 더 해. 저녁밥 때까지 마쳐라. 늦으면 식사는 안 줄테니까.」
「.........네.」
이미 중추의 해는 기울고 있다. 물론, 이제부터 저녁때까지 여섯 다발의 억새를 벤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고보는 한번 코웃음을 치더니, 억새를 모아서 돌아갔다. 그 등을 잠시 바라보다가, 쇼케이는 발치에 놓인 낫을 쥐었다. 그 손--억새에 베인 상처 투성이의, 손톱에는 진흙이 끼어있는.
쇼케이는 혜주로 연행되어, 그 변경의 산촌(山村)에 호적을 받았다. 부모를 잃은 것으로 하여, 근처의 리가(里家)에 맡겨졌다. 리가라는 것은 각 마을마다 하나씩 있는, 고아나 노인들을 위한 시설이다. 그 담당역인 장로가 고보였다.
고보 말고는 노인이 한 명, 아이가 아홉 명, 고보도 처음에는 쇼케이에게 친절했다.
아이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어떻게 해서 그들이 부모를 잃었는지. 이미 죽은 왕에 대한 원망의 소리. 쇼케이는 여기에 낄 수 없이, 입술을 깨물며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서 양친을 잃었냐고 물어와도,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쇼케이는 원래부터 유복한 관리의 집안에 태어나, 농촌의 생활을 알지 못한다. 하인이 없는 생활, 자신의 손으로 흙을 일구고 천을 짜는 생활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으므로, 갑자기 거기에 던져져서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서툴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마을의 생활에 익숙해지지 못하고, 그런 쇼케이를 리가의 사람들은 소외시켰다. 괭이 쓰는 법도 모르는 바보라고, 리가의 아이들은 말한다. 괭이를 본 적도 없거니와, 잡아본 적도 없었다고, 그렇게 변명할 수는 없었다.
현재 쇼케이의 호적상의 부모는, 이 리에 가까운 산림 속에서 조용히 살고 있던 부민(浮民) 부부였다. 부민이라는 것은, 나라에서 내려준 토지에서 떨어져 어느 리에도 소속되지 않게 되어버린 자들을 말한다. 이를테면 모험자, 범죄자, 쇼케이의 호적상 부모와 같은 은둔자. 두 사람은 신도에서 그다지 떨어지지 않은 산 속에서, 몰래 화전을 일구며 살고 있었다. 토지와도 토지의 사람들과도 아무런 관련없이, 완전한 부민이었다. 그리고 죽었다. 사형된 것이다.
쇼케이의 아버지, 봉왕 츄타츠는 부민을 어떻게건 토지로 돌려보내려고, 몇 번이고 영을 발하며 법을 만들었다. 법의 보호를 거부한다고 하는 것은, 즉 법에 대한 의무 역시 거부하는 것이다. 부민은 타락과 범죄의 온상이며, 그들의 무궤도한 생활은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타락으로 유혹하며, 죄를 저지르도록 유혹한다. 토지로 돌아와 바르게 살라고, 츄타츠는 몇 번이고 재촉했다. 부민들이 조금도 따르지 않자, 이를 처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쇼케이를 이런 처지로 떨어뜨린 남자--겟케이는, 쇼케이를 그 죽은 부민들의 딸로써 호적에 넣어주었다. 먼 리의 리가에 맡겨진 아이를, 죽기 직전에 가까이 데려온 것으로 해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인지, 고보가 눈치챘다. 리가에 맡겨진 소녀가, 츄타츠의 딸--죽었을 터인 공주라고.
「만약 그렇다면, 말해줘요. 이런 데서 살려면 힘들겠지요.」
고보가 어느 날 그렇게 말해와, 쇼케이는 울었다. 실제로, 땅을 일구고 가축을 돌보는 생활은 쇼케이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힘들었다.
「세상에 공주님이 이런 시골에서 누더기를 걸치고 지내시다니. 포소(蒲蘇)에 경(瓊)이 있다, 응준(鷹佳+十)의 보물이라고까지 불리던 분이.」
얼굴을 감싼 쇼케이에게, 고보는 달콤하게 말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혜주의 수도에 사는 큰 상인이 있어요. 지금은 죽은 봉왕을, 존경하고 계셨습니다.」
--쇼케이는 저항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 흙투성이의 생활에서 해방되어, 이전만큼까지는 아니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다면, 하는 유혹에 빠져버렸다.
「--아아, 고보. 도와줘요.」
쇼케이는 울며 쓰러졌다.
「혜후 겟케이가 아버님과 어머님을 죽이고, 저를 이런 꼴로. 겟케이는 제가 미운 거에요.」
「--역시 그랬군.」
고보의 목소리는 얼어붙을 듯이 차가왔고, 쇼케이는 핫, 하고 고개를 들었다.
「네가 그 짐승의 딸.」
빠득, 하고 이를 악무는 소리를 듣고서, 쇼케이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백성을 벌레 죽이듯이 죽여댄---그.」
그것은 백성이 법을 어겼기 때문이에요, 라는 반론을, 쇼케이는 고보의 기세에 압도되어 도로 삼켰다.
「내 아들을 죽였어--형장에 끌려가는 아이를 불쌍해하며, 형리에게 돌을 던진 것을 빌미로 죽였던--그 짐승같은 왕의.」
「하지만--그것은.」
「네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야.」
쇼케이는 당황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는 몰랐어요. 아버님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따위.」
실제로, 쇼케이는 몰랐다. 아버지가 무엇을 하며, 어머니가 무엇을 했는지. 후궁 안 깊숙히 숨겨져 행복하게 지내면서, 세상도 그런 것인줄로만 알았다. 성 아래에 병사가 모여서 불온한 공기가 흐르고, 그때에야 처음으로 부왕이 원망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몰랐어요, 라고? 설마 공주가 조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다는 건가. 그만큼 온 나라에 가득찬 장송곡을, 원망의 소리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거로군.」
「저는...........정말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살아남아서--네 그 더러운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고 있어? 그건 너희들에게 학대당하고 학대당하면서, 그러면서도 도를 벗어나지 않고 올바르게 살아온 이 리의 사람들이 수확한 거야.」
「--하지만 정말로, 몰랐는 걸요!」
「이런 계집을 먹여주기 위해서 일하고 있었다니!」
--푹, 하는 둔한 통증을 느끼고 쇼케이는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이가 빠진 낫이, 쇼케이의 손끝을 파고들어 작은 핏방울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흐윽...........」
아픈 것은 손가락일까, 아니면 가슴 쪽일까.
「.......정말로 아무 것도, 몰랐어......」
고보가 쇼케이를 미워하기 때문에, 리가의 사람들도 마을 사람들도, 이유없이 쇼케이를 싫어한다. 다른 아이들보다 두 배, 세 배 일을 시키면서, 남들보다 늦다고, 멍청이라고 욕을 한다.
「내가 무슨 짓을 했다는 거야.......」
정말로 몰랐다. 부모는 절대로 쇼케이를 조정에 관여하지 못하게 했다. 궁성의 바깥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나라가 어떤 상황인지, 알 길 따위 없었는데도.
길게 그림자가 지는 길을 세 번 왕복하면서 억새를 날랐다. 간신히 끝났을 때, 이미 리가에서는 식사가 끝나 있었다.
「이런 시간까지, 어디 갔었어?」
큭큭, 리가에 사는 소녀들의 조소가 향해져왔다. 고보는 냉담한 눈으로 쇼케이를 보았다.
「말했을 텐데. --시간에 늦었으니, 오늘 저녁밥은 없다.」
쇼케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리가에 살게도니 지 3년이 지났다. 궁핍한 생활도 조잡한 옷도, 간신히 참는 법을 익혔다. 그렇지만, 배고프다고 애원하는 것만은 입이 찢어져도 할 수 없다.
「어쩔 수 없지. 교크요는 멍청이니까.」
「밥벌레라고 하는 거야. 난, 알아.」
비웃음을 들으면서, 쇼케이는 발을 질질 끌며 본채를 나왔다.
중추의 달빛이, 마당에 내리고 있었다. 마당의 좌우를 둘러싸는 건물, 그 좌우에 남녀가 나뉘어 지내고 있다. 여자는 정면에서 오른쪽 건물, 거기에서 쇼케이는 다른 소녀들과 지내고 있다. 다른 소녀들이 방으로 돌아올 때까지의 시간, 그것이 쇼케이에게 주어진 극히 짧은 편안하게 숨쉴 수 있는 시간이었다.
늘어서 있는 조잡한 침대, 작은 탁자와, 삐걱거리며 기울어진 의자. 그것들을 둘러보면서, 쇼케이는 눈을 감았다.
--악몽 같다.
응준궁의 일곽, 쇼케이에게 주어졌던 것은, 작다고는 해도 건물 한 채였다. 넓고 화려한 침상, 몇 개나 되는 방, 꽃이 피고 새가 울며 햇볕으로 가득찬 정원. 시중을 드는 여관들, 쇼케이를 위한 무희들과 악단, 비단옷, 구슬장식. 제후제관들이 놀이상대로 보내오는, 명랑하고 우아한 소녀들.
기어 들어간 이불은 얇고, 눅눅하며 차가왔다. 북쪽 나라에 추운 계절이 오려고 하고 있었다.
살해당한 부모, 차례차례로 구르던 목.
--겟케이, 그 남자. 그 살육자.
이런 꼴로 전락시킬 바에는, 왜 차라리 자비를 베풀어 죽여주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이것은 겟케이의 악의인 것인가. 영원히 고통받으며 살아가라는.
쇼케이는 눈을 감았다.
이대로 두 번 다시 눈을 뜨지 않으면 좋을텐데.
- 2 -
세계의 남서쪽에 재주국(才州國)이라는 나라가 있다. 그 한 지방, 보주(保州)의 진현(塵縣)에 파산(琶山)이라는 능운산이 있었다.
능운산은 왕이나 제후의 거처, 그렇지 않으면 그 기슭까지가 금역--한마디로, 왕의 소유물이었다, 그곳은 왕의 정원이거나, 또는 이궁(離宮), 혹은 요새가 된다. 하지만 이 파산은 선선대의 왕에 의해 한 명의 여자에게 하사되었다. 여자는 산정 가까운 중턱에 거처를 두고 있었다. 그 거처를, 취미동(翠微洞)이라 한다.
취미동에 사는 것은 신선이었다. 선선대의 왕--시호를 부왕(扶王)이라 한다--의 칙면에 의해 승산하여, 이곳 파산의 취미봉(翠微峯)에 동부(洞府)를 세웠다. 그리하여 통칭을 취미군(翠微君)이라 한다. 옛 이름은 리요우(梨耀), 부왕의 애첩이었다.
그 리요우는 새벽녘, 자신의 동부의 문 앞에 서있었다. 하인들은 있지만, 그것뿐인 적막한 거처였다. 사람의 활기를 느끼려 인근의 거리를 찾아가기도 하지만, 불노불사에 가까운 몸이 되면 사귈 수 있는 사람들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아주 조금,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의 지인은 모두 선인으로, 그 중 한 명을 방문하기 위해서 동부를 떠나려고 하는 참이었다.
하계를 먼발치로 내려다보는 취미봉, 동부의 문전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등반할 수 없는 천길의 단애, 리요우는 기승의 고삐를 쥐었다. 그녀가 기승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부왕에게 하사받은 적호(赤虎). 하늘을 달리는 호랑이를 타고, 반드시 그녀는 정문으로 출입한다. 말이나 도보로 하산할 수 있는 샛길이 있기는 하지만, 빛도 들지 않는 뒷길을 남몰래 통행하는 것은 리요우의 긍지에 거슬리는 것이다.
「빨리 돌아오십시오.」
동주(洞主)를 배웅하는 하인들이 문안에 줄을 지어, 일제히 깊게 평복했다. 맑은 가을 공기 속에서, 그들의 입김이 하얗게 흐른다. 리요우는 그것을 바라보면서 가볍게 눈을 찌푸렸다. 그 수, 열 하고도 두 명.
「배웅할 때만은 위세가 좋구나.」
리요우는 비웃음을 지었다.
「내가 나가는 것이, 그렇게나 기쁘냐? 귀찮은 주인이 없어져서, 한껏 날개를 펼 셈이겠지.」
큭큭, 리요우는 웃었다. 하인들의 대답은 없었다. 가만히 찬바람을 견디는 새처럼, 몸을 움츠리고 있을 뿐.
리요우는 평복한 하인들 중, 한 명의 처녀에게 눈을 돌렸다. 별다를 것이 없는 여자다. 동부의 하인들 중 가장 젊다는 것을 제외하면, 아무런 장점도 특징도 없다. 자(字)는 모크린(木鈴)이라고 하지만, 그런 이름으로 부르는 일은 없었다.
「돌아오지 않으면 좋겠다고, 솔직하게 말해도 된다. --어때, 혼마(奔女+馬)?」
멍청이, 라는 뜻을 담아서, 리요우는 조소가 담긴 붉은 입술로 그 별명을 불렀다. 처녀가 주저주저하며 눈을 들었다. 마른 얼굴에 눈만이 큼직한, 그 얼굴을 보며 리요우는 웃었다.
「정말은 돌아오지 않는 편이 좋은 거겠지?」
말도 안됩니다, 라고 처녀는 고개를 저었다.
「모두들, 동주님이 돌아오시는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조심하시고.」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반 달만 있으면 돌아오고 말고. 아니면, 더 빨리 돌아오면 좋겠나?」
처녀는 곤란한 듯이 주위를 돌아보고, 리요우의 얼굴을 겁먹은 듯이 올려보고서, 예, 라고 대답했다. 리요우는 소리내어 웃었다.
「과연.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돌아와 주지. 물론 성대하게 맞아주겠지?」
「예, 그야 물론.」
그러면, 이라고 리요우는 하인들을 둘러보았다.
「옥고(玉膏)를 익혀둬. 동을 깨끗이 청소하고, 마당을 정리해 놔.」
처녀의 안색이 변했다. 옥고는 세계 중앙, 오산에서 나오는 돌. 이것을 주술로써 발효시키면 영주(靈酒)가 되지만, 그렇게 간단히 주워올 수 있는 돌이 아니다.
「왜? 성대하게 맞아줄 거잖아? 잠어(箴漁)를 굽고, 요초(瑤草)를 쪄두어라. 동에는 먼지 하나 남기지 말고. 정원에 마른 잎파리 하나만 있어도 각오하도록.」
무리난제(無理難題)인 것을 뻔히 알면서 내놓고, 큭큭, 리요우는 웃었다.
「그리고나서 벽과 기둥을 다시 칠해 놔. --그게 좋겠군. 칠이 낡은 건물은, 개운하지가 않으니까. 혼마, 부탁한다.」
처녀는 오들오들 떨면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주위의 하인들은 고개를 들지 않는다.
그것을 보고서, 리요우는 흰 담비가죽옷을 끌어올리며, 적호의 고삐를 쥐었다.
「뭐, 느긋하게 하도록 해. 난 자상한 주인이니까, 맡긴 일만 잘 해놓으면, 왠만한 실수로 화내거나 하지 않아. 모두, 내가 없는 동안 잘 부탁한다.」
옛, 하고 하인들은 이마를 땅에 대었다. 울 것 같은 얼굴로 처녀도 그에 따랐다. 리요우는 적호에 탔다. 한 번 웃고서, 겨울빛 가득한 하계를 향해 기승을 달리게 했다.
고개를 든 하인들은, 북쪽을 향해 적호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일제히 처녀를 돌아보았다.
「--정말, 쓸데없는 짓을.」
「좀 다르게는 말할 수 없는 거야?」
「고르고 골라서 무리난제만 잔뜩. 혼마가 뿌린 씨니까, 혼마한테 시켜.」
「하선(下仙)인 혼마가 오산까지 갈 수 있겠어? 돌아올 때쯤엔 이미 동주님이 돌아와 계실거다.」
신선에도 격이라는 것이 있다. 리요우마저도 그 격은 3위, 그 하인쯤 되면 간신히 선적이 이름이 올라온 정도, 이렇다 할 능력도 갖고 있지 않다. 특히 혼마라고 불리는 처녀는, 하선 중에서도 최하위의 신선이었다.
「정말 폐라니까. 이 추운 때에, 오산에 가서 옥고를 찾으러 가서, 그 다음엔 허해에서 잠어를 찾아오라고 하는 건가. 거기다가 요초라고? 이제 겨울인데, 어디엘 가서 요초를 찾으라는 거야.」
「모처럼 동주님이 외출해서, 숨 좀 돌릴 수 있게 되나 했더니.」
「청소하고 칠은 혼마한테 시켜. 그 정도 일은 하겠지.」
쏘아보는 시선이 집중되어, 처녀는 그 자리를 도망쳤다.
그녀는 마당 안으로 달려갔다. 절벽을 마주한 정원 구석, 오래된 노송 아래에서 울었다.
저런 식으로 리요우에게 말을 들으면, 그밖에 뭐라고 대답해야 좋았다는 걸까. 다른 하인들 역시, 마찬가지로 대답했을 것이 틀림없을 텐데. 자기가 실수를 한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리요우는 자신의 하인들에게, 외출중에 놀면서 지내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도 리요우다운 행동으로, 이 동부의 누구나 그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왜 그러냐, 라고 등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이것은 정원지기 할아버지의 목소리다.
「신경쓰지 마라. 모두 너한테 화풀이를 하는 것뿐이니까. 동주님에게는 거스를 수 없으니까, 너한테 억울함을 풀어보려는 것 뿐이야, 모크린.」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저........그런 이름이 아니........으읏.」
스즈, 라고 불리고 있었다. 그 그리운 나라에서는. 어느 스님이 가르쳐준 글자는 단 세 글자, 「오오키 스즈(大木鈴)」. 그것을 들은 사람들이 그녀를 모크린이라고 부르게 되었지만, 그리고 그것은 혼마라는 경멸을 담은 이름보다도 몇 배는 나은 이름이었지만, 그래도 그것은 그녀의 이름이 아니다.
둥글둥글한 산들, 그곳에 있던 가족. 따뜻한 대화, 너무나도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그녀가 그곳에서 흘러온 것은, 이미 백년도 더 전의 일이다. 거간꾼을 따라서 언덕길을 넘는 도중에 절벽에서 떨어졌다. 떨어진 그곳이 허해였다.
「왜 그런........?」
「동주님은 그런 분이니까, 신경쓰지 마. 어쨌거나 너무나 기가 드세서, 이 동부를 받으면서 쫓겨나 버린 분이니까.」
「그런 거, 알아요. ............하지만.」
갑자기 헤매게 된 이국. 말도 통하지 않고,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게다가 스즈는 아직 14살에 지나지 않았다.
해변의 작은 마을에서, 그보다 더 큰 마을로 옮겨져, 무엇이 일어난 것인지 이해도 하지 못한 채 며칠이고 그곳에 억류되어 있었다. 간신히 마을 사람들에게 끌려서, 더 큰 도시로 옮겨지고서, 그 곳에서 유랑예인 극단으로 넘겨졌던 것이다.
3년 정도, 그들과 함께 여행을 했다. 스즈로서는 무엇 하나 이해할 수 없는 채였다. 여러 도시를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적어도 이곳이 자신이 살고 있던 세계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라는 것만은 이해했다. 하늘을 뚫는 산,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이상한 풍속, 이상한 언어, 모든 것이 스즈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라서, 그렇다는 것을 이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다음에 가는 거리야말로, 스즈가 이해할 수 있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어서, 고향으로 다닐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다 낙담하는 것에도 질려가며 무엇 하나 기대하지 않게 되었을 즈음에, 진현에 닿고서 리요우와 만났다. 스즈는 4년 동안 어떤 기술 하나도 익히지 못한 채, 잡역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말을 모르는 걸......」
어디엘 가도, 모두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많이들 말을 걸어와, 스즈도 열심히 얘기했지만 조금도 통하지 않았다. 돌아갈 길은 모르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도 알 수 없는 채, 매일같이 울면서 지냈다.
의미불명의 말을 걸어와, 모르겠다고 말하면 비웃는다. 스즈는 점점 말수가 적어졌다. 말하는 것도 누군가 말을 걸어오는 것도 두려웠다.
--그래서, 진현의 어느 거리에서 리요우와 만났을 때에는 기쁘고 기뻐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때부터 이미 리요우는 스즈를 깔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지만, 설령 욕이라고 해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뻤던가.
말이 통하는 것은 리요우가 신선이기 때문이며, 신선이 되면 누구와도 얘기를 할 수 있다고 듣고서, 스즈는 리요우에게 애걸했다. 하녀라도 좋다, 어떤 힘든 일이라도 하겠다. 부탁이니 승선시켜 달라고.
--그리고 100년 동안, 이 곳에 붙잡혀 있었다.......
도망가려고 생각했던 것은 셀 수도 없다. 하지만, 동부를 뛰쳐나가면, 리요우는 용서없이 선적에서 스즈를 빼겠지. 그러면 이 이국에서, 스즈는 또다시 말을 모르는 불운 속에 떠돌게 된다.
자, 라며 할아버지는 스즈의 어깨를 두드렸다.
「돌아가자. 쉬고 있을 틈이 없으니까.」
스즈는 끄덕이면서 얼어붙은 손가락을 꽉 쥐었다.
--아아, 누군가........
누가 날 이 곳에서 구해줘요.
- 3 -
하늘의 색이 흐려져 있다. 겨울 하늘색이다. 낮아진 하늘 아래, 산의 사면을 따라 사행하는 듯이 이어져 있는 거리에는 떠들썩한 소란이 흐르고 있었다. 소란은 거리 전체를 휩쓸며 우뚝 선 능운산에까지 울린다.
도시의 이름은 요천(堯天), 그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얼굴은 밝다. 여기저기에 건물의 폐허가 남아있는 거리도, 궁핍한 생활을 나타내는 몸차림도, 어쨌거나 염두에 없는 듯 했다. 그 이유는 거리의 여기저기에 펄럭이는 깃발을 보면 자연히 알 수 있다.
깃발은 흑색, 한 줄기의 가지가 황색으로 그려져 있다. 기자에 열린 열매는 셋. 전설에 의하면 복숭아의 열매로, 가지에는 띠처럼 한 마리의 뱀이 감겨 있다. 세계가 열릴 때, 천제가 왕에게 내렸다고 하는 전설상의 가지였다. 그 깃발이 거리 여기저기, 건물 귀퉁이마다 걸려져, 사람들을 이끌 듯이 언덕 위로 이어지며 왕궁에 길사(吉事)가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집집마다 대문에 걸려진 꽃장식, 기둥마다 걸려있는 등롱, 그것들이 이어진 곳에는, 국부(國府)의 입구인 고문(皐門)의 푸른 지붕이 우뚝 서있었다.
--신왕 등극.
신왕 등극을 나타내는 왕기가 걸리고서 두 달, 겨우 즉위식의 포고가 있었다. 깃발은 길일을 나타내며 축하하는 것이다.
큰길에 흐르는 인파는 고문 안으로 쓸려 들어갔다. 국부와, 예전을 행하는 정전(正殿)으로 둘러싸인 광대한 광장에는, 이미 입추의 여지도 없다. 금군, 국관의 검은 갑옷과 검은 관복, 그것들이 정연하게 늘어서, 몇 겹으로 걸린 깃발이 휘날리는 가운데, 정전의 단상에 흑의의 인영이 나타나자 광장에는 환성이 가득찼다.
--그 흑의를 대구(大求+衣)라고 한다. 검은 의장에 검은 관, 담적색의 치마, 붉은 무릎덮개와 붉은 구두. 그리고 그에 맞춘 듯한 붉은 머리.
「...........정말로 왕이 된 거구나.」
호사한 실내에 서있는 인영을 확인하고,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앞서 입실한 크고 작은 두 명의 인물도, 감탄이 섞인 소리를 내었다.
대구는 왕의 대례복이다. 장식은 최고위를 나타내는 열 둘, 여왕이므로 관은 작고 그 대신 훌륭한 머리장식이 있다. 옷의 용 문양도 호사스러웠다.
즉위식을 막 마친 신왕은 뒤를 돌아보았다. 방에 들어선 그들을 보고서, 활짝 웃음을 띄웠다.
「--라크슌.」
그리고 라크슌의 옆에 서있는 크고 작은 두 명을 보고서, 가볍게 일례했다.
「먼 길 왕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연왕, 연 타이호.」
여어, 하고 손을 올린 것은 작은 쪽이었다.
「멋진걸, 요코. 구경꾼들도 만족했나봐. 왕이 멋져보이지 않으면, 그만큼 백성들은 낙담하니까. 게다가, 왕이 훌륭하다고 국민이 생각하게 해두면, 이렇다 싶을 때 꽤나 쓸모가 있으니까.」
엔키, 하고 쇼류가 주의를 주었지만, 그는 전혀 신경쓰는 태도가 아니다.
큭큭 웃고서, 요코는 손님에게 의자를 권했다. 경의 북쪽에 위치한 안국의 왕, 연(延)과 재보 엔키(延麒). 그 이름을 연왕 쇼류라 하며, 엔키 로쿠타라 한다. 현재로서는 안이, 경과 국교가 있는 유일한 나라였다.
「오랫만입니다.」
요코는 쇼류와 로쿠타에게 깊이 절했다.
「정말로 신세를 져서, 매우 감사했습니다.」
요코는 그렇게 말하고서, 그 곁에 우뚝 서있는 회갈색 털의 쥐에게도 고개를 숙였다.
「라크슌도, 고마워. 덕분에 간신히, 즉위식까지 해올 수 있었어.」
「그만해.」
라크슌은 꼬리를 흔들었다.
「난 일개 반수일 뿐이니까. 임금님이 고개를 숙이면, 꿈자리가 안 좋아.」
큭, 요코는 웃었다.
요코는 바다 저편, 왜국(倭國)--고국에서는 일본이라고 부른다--에서 태어나, 갑자기 아무 것도 모르는 이 세계에 내던져져, 이 세 명에게 도움을 받아 등극했다. 왕을 사칭하며 국권(國權)을 노리고 병사를 일으킨 죠에이의난을 진압하는 데 힘을 빌려준 연왕과 엔키, 길에 쓰러져 죽어가면서, 심신이 황폐해진 요코를 구해준 라크슌에의 감사는 더욱 깊다. 등극까지의 길고도 짧았던 8개월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고개가 숙여진다.
「--정말로 감사하고 있어.」
당황하면서 꼬리를 우왕좌왕하고 있는 라크슌을 보면서, 로쿠타가 짖궂게 웃었다.
「대구 차림의 왕한테 고개숙여 인사를 듣는 거, 흔히 있는 일이 아니라구.」
「그만 좀 봐줘어......」
그렇게 말하며 라크슌은 요코를 올려보았다. 반수인 라크슌은 쥐이기도 하며, 인간이기도 하다. 쥐일 때에는 그 신장은 어린아이 키 정도, 요코를 올려보는 형태가 된다.
「감사하지 않으면 안되는 건 내 쪽이야. 요코 덕분에, 안의 대학에도 들어갈 수 있었고, 연왕도 잘 해주셔. --고마워.」
「그건 나한테 감사할 일이 아냐.」
하지만, 이라며 라크슌은 다시 웃었다.
「잘 생각해보면 라크슌은 굉장해. 왕을 두 사람이나 알고 있잖아. 대학의 녀석들이 알면 놀라서 허리가 빠질걸.」
「타이호오---」
「--하지만, 상당히 천천히 준비했군.」
웃음을 지으며 말한 것은 쇼류였다.
「죠에이의 난이 끝나고 나서 이미 두 달이나 지났어.」
요코는 옅게 쓴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더 미루고 싶었지만, 동지까지는 어떻게든 해야 한다고 제관이 고집해서.」
나라의 왕은 천지를 안정시키며 제신을 위로한다. 이 제례의 때에,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되는 것이 동지의 제례였다. 왕이 스스로 교외로 나아가, 하늘에 제사를 올리며 국가의 진호(鎭護)를 기원한다. 이것을 고사라 한다.
「미루고 싶었다니, 왜?」
요코는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초칙이 정해지지 않아서.」
초칙이라는 것은 신왕이 처음으로 발포하는 칙령을 말한다. 모든 법은 왕의 이름 하에 세워지는 것이지만, 법이라는 것은 애초에 관리에게서의 제안이 있고, 관계되는 제관과 의논하여, 삼공육관(三公六官)의 찬성을 얻어 처음으로 왕의 재가를 받게되는 것이다. 왕의 임무는 스스로 법을 만들고 나라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제관을 지도하고 감독하는 것이다. 왕 스스로가 법령을 만들어, 이것을 선언하면 칙령이라고 불리게 된다.
「연왕은 어떻게 하셨지요?」
「나는 사분일령(四分一令)이었지만.」
「그건?」
「한지를 개척해서 농지로 만든 자에게는, 그 사분의 일을 자기 땅으로 준다. --경작할 수 있는 땅이 적었으니까.」
과연, 하고 요코가 몸을 움츠렸다.
「제관은, 귀색(貴色)을 적색으로 하라고 하지만. 여왕(予王)의 귀색이 청색이었으니까, 라면서.」
로쿠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잖아? 이치에 맞는데.」
「그런 거야?」
「목생화(木生火)니까. 위를 물려받았다는 거지.」
요코는 한숨을 쉬었다.
「.......이쪽에는 잘 모를 풍습이 많구나.」
「서두르지 마. 곧 익숙해질 테니까.」
요코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초칙이라는 것은, 왕이 이제부터 어떤 나라를 만들 건지, 그것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거라고 들었어.」
「뭐어, 확실히, 어떤 색이 제일 좋다, 따위를 정하고 있는 건 납득이 가지 않을 거라는 건 알겠지만.」
그렇구나, 라고 요코는 몸을 움츠렸다가 희미하게 쓴웃음을 지었다.
「............난, 나라를 운영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직 잘 모르겠어. 좋은 나라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해. 하지만 좋은 나라란 건 어떤 나라지?」
「그건 어려운 얘기군.」
「풍요로운 나라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해. 난 경의 국민이 굶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지만, 풍요로워지면 그걸로 되는 걸까. 내가 태어난 나라는 풍요롭기는 했지만, 좋은 나라였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말할 수 없어. 풍요로운 만큼, 많은 것들이 잘못되어 있었어.」
왜 더, 나라의 움직임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일까. 솔직히 말해서 왜국의 정치구조마저 알지 못한다.
「일국(一國)이라는, 이렇게나 무거운 것을 맡으면서, 그걸 어디에 어떻게 내려놔야 할지도 모르겠어. --이런 왕이 정말로 도움이 되는 걸까.」
요코, 라고 입을 연 것은 쇼류였다.
「요코,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사실 힘들어.」
「---예.」
「하지만, 그 고충을 절대로 백성들에게 보여서는 안돼.」
「그런 건가요.」
「네가 아무리 고생하건 고민하건, 백성들로서는 자기 생활이 좋아지지 않으면 아무런 가치도 없는 거니까.」
「...........확실히 그렇군요.......」
「그럼, 힘들다는 얼굴을 해도 좋을 게 없어. 오히려 아무리 고민하고 있어도, 고민 따위 전혀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어. 그 편이 백성들도 기뻐하니까.」
「하지만---」
「백성이 망설이는 군주를 믿을 거라고 생각해? 나라를 다스는 걸 힘들어하는 왕한테 생존을 맡길 수 있겠어?」
「........그렇군요.」
「망설이고 있을 때에는, 음미하고 있다, 고 말해. 아무 것도 서두르지 마. 어차피 수명은 기니까.」
하지만, 하고 로쿠타가 요코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모든 것에는 정도라는 게 있으니까. 쇼류처럼 정말로 고민 따위 안 해버리는 것도 문제야.」
「--로쿠타.」
쇼류가 떫은 표정을 짓는 것을, 로쿠타는 무시했다.
「초칙에 대해서 고민하는 건 좋은 일이야. 가볍게 칙령을 내리는 왕은 신용할 수 없어. 칙령은 적을수록 좋은 거야. 대체로, 칙령이라는 것은 나라의 시작과 끝에 많아. 어지러운 나라를 일으켜 세울 때, 평화로운 나라를 멸망시킬 때.」
「과연.」
「거기다 쇼류는 엄------청, 칙령이 많으니까. 절대로 배우지 마.」
요코는 웃음을 억눌렀다.
「........기억해둘께.」
「뭐, 느긋하게 하라구. --어때? 조금은 나라도 안정된 거야?」
간신히 조금은, 하고 요코는 대답했다.
「마음 편하게 해. 나라를 어디로 이끌 것인가, 따위의 일은 실은 간단한 거야. 요코라면 어떤 생을 살고 싶은가, 그것을 위해서 나라가 어떻게 되면 좋을까, 그걸 서두르지 말고 생각하면 되는 거 아닐까?」
「문제는, 초칙인데.........」
그런 거, 하면서 로쿠타는 웃었다.
「아예 초칙을 내지 않은 왕도 있는걸. 만민은 건강하게 살 것, 따위를 초칙으로 낸 강한 녀석도 있었지.」
요코는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설마, 정말로?」
「지금의 염왕(廉王)은, 그게 초칙이었다나봐.」
「그거 엄청난데.」
가볍게 요코가 웃었을 때, 마침 재보가 들어왔다. 이쪽은 이미 예장을 평복으로 갈아입은 뒤였다. 요코는 웃으며 그를 돌아보았다.
「--케이키, 연왕이 와주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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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상) 2장
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상)
오노 후유미(小野不由美)
제 2 장
- 1 -
금파궁은 빈객을 맞아 바쁘게 움직였다. 한 달 뒤에 있을 동지의 제례 준비까지 겹쳐서, 제관의 발도 하관들의 발도 분주했다.
의류를 담당하는 여관들도 들떠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요코는 살짝 쓴웃음을 지었다.
「오늘 머리모양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신변을 시중드는 것은 여어(女御)라고 하는 여관들이었다.
「.........묶는 걸로 충분하니까.」
요코가 말하자, 여어들은 일제히 요코에게 눈을 부릅떴다.
「손님이 계시는데, 그런 차림으로는 나가실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특별히 바라는 게 없으시다면, 저희들에게 맡겨 주시어요.」
저마다 요코를 꾸짖으며, 그녀들은 요코를 빼놓고서 의장의 상담에 들어갔다.
「저 녹색 옥의 꽃장식을 꽂아드리지요.」
「그럼, 거기에 맞춰서 홍옥의 비녀를.」
「어라, 머리가 붉으시니까, 홍옥보다도 진주가 나아요.」
「그럼, 옥패도 진주로 할까요.」
요코는 맥없이 한숨을 쉬었다. 예쁜 차림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머리를 틀어 올리고 비녀를 주렁주렁 꽂으면 상당히 무겁다. 떨어지지는 않을까 신경이 쓰이는 데다, 그렇지 않아도 긴 치맛자락 때문에 움직이기 힘든 것이 한층 움직이기 어려워져 견딜 수가 없다.
「묶어줘. .........입는 것도 포(袍)만으로 됐으니까.」
「그런, 말도 안됩니다!」
여어들은 눈꼬리를 세웠다. 요코는 다시 한 번 한숨을 쉬었다.
이거고 저거고, 이쪽의 의상은 움직이기 힘들다고, 이국에서 자란 요코는 생각한다. 등극할 때까지는 거의 부랑자 같은 차림으로 지냈었고, 그동안 입은 것이라고 해봤자 거친 천으로 만들어진 포(袍)와 반고(半袴) 뿐이었다. 최저한의 의류라고 말해도 좋다. 거기에 익숙해져버렸으니, 질질 치마를 끄는 여자용의 의상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일본에서 입었던 옛날 옷도 이렇게까지 심하지는 않았어.
요코는 한숨을 쉬었다.
기본적으로, 이쪽에서 남자가 입는 것은 포삼(袍衫), 여자가 입는 것은 유군(衣+需裙)이다. 삼(衫)은 포의 아래에 입는 얇은 옷으로, 이 차림으로 바깥에 나가는 일은 거의 없다. 위에는 반드시 포를 걸친다. 유군은 고향식으로 말하자면, 블라우스와 스커트가 되는 거겠지. 유(衣+需)가 블라우스, 군(裙)이 스커트로 이대로 외출하는 경우 역시 거의 없다. 반드시 위에 조끼같은 짧은 상의나 기모노 같은 상의를 걸친다.
어느 의류에도 각각의 형태가 있고 칭호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말하자면 유복한 사람이 입는 것일수록 길이도 소매도 길고, 넉넉하다. 이쪽에서는 천이 절대로 싸지 않다. 가난한 사람은 천을 절약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길이가 짧아지고, 여유도 없어진다. 한눈에 상대의 경제상태를 알게된다는 것으로, 다른 나라에서 자라난 요코에게는 꽤나 곤혹스럽다.
동시에, 이쪽에는 신분제도가 있다. 특히 지위의 유무에 의해서 생활 수준이 완전히 달라져 버린다. 국관(國官)처럼 지위가 높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포라고 하는 것은 길이도 소매도 긴 상의를 말하는 것으로,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입는 것은 포자(袍子)라고 불러 구별한다. 반대로 지위가 없는 사람들은 보통 자신들이 입는 것을 포라고 부르며, 높은 사람들이 입는 길이가 긴 포를 장포(長袍)라고 불러 구별한다. 그정도로 엄연하게 생활에 격차가 있는 것이다.
요코가 입는 것에는 나라의 위신이 걸려있으므로, 군(裙)은 장군(長裙), 길이는 기가 막히도록 길어서 자락이 끌리며, 유의 소매도 크고 길다. 여러 겹의 옷은 유복하고 지위가 높다는 증거이므로, 그 위에 더욱 몇 겹이고 여러 가지 옷을 걸쳐지게 되는 건 견딜 수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무거워서 귀찮은 것을, 목도리를 두르고, 목걸이다 옥패다 주렁주렁 달리고, 머리에는 산만큼 비녀를 장식한다.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귀걸이를 달려고 여관이 귀에 구멍을 뚫으려는 것을, 귀에 구멍을 뚫는 것은 고향인 왜에서는 범죄자를 뜻하는 풍습이라고 거짓말을 늘어놓아, 간신히 그것만은 면제받았다.
「..........간소해도 돼. 손님이라고는 해도, 연왕이니까.」
여어가 요코를 노려보았다.
「연왕이시니까 더욱, 그런 차림은 시킬 수 없습니다. 그렇게 훌륭한 나라의 분이신 걸요, 주상도 뒤떨어지지 않는 차림을 하시지 않으면.」
「연왕은 무골의 왕이시니까.」
요코는 씁쓸한 웃음을 띄웠다.
「너무 치렁치렁한 차림은 좋아하지 않아. 왜 그렇게 호들갑이냐고, 기분나쁜 표정을 지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걸로 해두자고.
하오나, 라고 아쉬운 듯이 요코와 비녀를 번갈아 바라보던 여어에게, 요코는 다시금 웃어 보였다.
「포만 입겠다고는 안 할 테니까, 가능한 간소하게 해주지 않겠어?」
이 전말을 듣고서, 당사자인 연왕 쇼류는 크게 웃었다.
「요코도 고생하는군.」
「..........현영궁은 좋겠어요. 이해가 있어서.」
왕이 되면, 남자라도 역시 포 차림으로는 안되는 것인 듯 하다. 그런데도 쇼류의 몸차림은 전반적인 경의 고관보다도 간소했다.
말도 안 돼, 라며 정자의 난간에 앉아있던 엔키 로쿠타가 얼굴을 찌푸렸다.
「300년 동안 싸워서, 겨우 이만큼으로 합의한 거라고.」
「싸움---과연.」
요코는 쓴웃음 지었다.
「왜는 좋겠구나. --양장이라고? 그거, 절대로 움직이기 쉽겠어.」
「꽤 자세하게 아는걸. 언제나 그렇게 왜에 다니는 거야?」
뭐어, 하고 로쿠타는 씨익 웃었다.
「이것도 기린의 몇 안되는 특권이니까. --응, 또, 1년에 한 번 정도.」
그렇게 말하며 로쿠타는 팔짱을 끼었다.
「저쪽에서 옷을 가지고 돌아와서, 이런 걸 만들어 달라고 해봐도, 절대로 안 만들어줘. 거지가 입는 누더기 같다고 말하면서.」
「확실히, 저쪽의 옷은 천이 필요없지.」
말을 하다가 요코는 휙 로쿠타를 보았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 옷은 손에 넣은 거야? 돈이 전혀 다르잖아.」
「그거는 그...........뭐, 여러가지로.」
씨익 웃는 로쿠타를 요코는 기가 막혀서 바라보았다.
「기린은 인도(仁道)의 생물인 거 아니었어?」
「너무 깊이 알려고 들지 말라니까.」
그렇게 말하고 로쿠타는 난간에서 정원으로 뛰어내렸다.
「--라크슌, 뭐 필요한 거 없어?」
복도에 가까이 있는 연못가에 서서 연못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라크슌의 곁으로 다가갔다.
금파궁의 남쪽에 위치한 파리궁(王+皮璃宮)이었다. 몇 대인가 전의 왕이 세웠다는 유리의 온실. 하얀 돌기둥이 늘어서 있고, 벽도 격자도 모두 유리, 급경사의 지붕 역시 유리로 되어 있다. 햇빛이 비쳐 들어오는 정원 안에는 맑은 물을 가득 채운 연못이 파여 있고, 계곡을 흉내낸 시내가 흐르고 있었다. 마음다운 날개의 새와, 연못에는 물고기가 살고 있다. 꽤 넓은 숲을 복도가 둘러싸고, 꽃이 피어있는 숲 안에는 작은 정자가 몇 개인가 세워져 있었다.
「--낮잠자기에는 좋은 곳이구나, 여기는.」
쇼류가 말해, 요코는 웃었다.
「낮잠을 잘 여유가 있나요, 연왕은?」
「안은 관리들이 멋대로 알아서 하니까, 난 별로 할 일이 없어.」
「과연.」
「정치라는 것은, 믿을 수 있는 관리를 찾아낼 때까지가 큰일이지.」
낮게 말하는 것을 듣고, 요코는 연왕을 돌아보았다. 그는 쓴웃음 지었다.
「막 등극한 지 얼마 안 되는 왕조에는 봐준다는 게 없지. 그런 때에, 기린은 거의 도움이 안 돼. 얼마만큼의 시간동안 얼마만큼의 신하를 모을 수 있는지, 거기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고 말해도 좋아.」
「........그렇군요.」
「맥후(麥候)는 어떻게 됐지?」
요코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맥후의 이름은 코우칸(浩瀚)이라고 한다. 코우칸은 원래 경국 서쪽 해안, 청해(靑海)에 면하는 맥주(麥州)를 다스리며, 경이 위왕에 의해 혼란되었을 때, 최후까지 위왕을 따르지 않고 저항을 계속했던 주후였다. 요코가 연왕 쇼류의 조력을 얻어 위왕을 토벌하기 위해 일어섰을 때, 가장 먼저 쇼류에게 권유받은 것은, 코우칸에게 연락을 해서 맥주군의 원호를 받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연락을 하기도 전에 맥후는 위왕군에 의해 붙잡혀버렸던 것이었다.
「.......맥후는 옥좌를 탐냈다는 듯 해요.」
「호오?」
일어선 왕이 진실로, 왕인지 위왕인지, 궁중에 있는 자가 아니고서는 판단이 어려운 것인 듯 하다. 궁성에서 먼 제후의 대부분은 위왕을 진짜 왕이라고 믿고 위왕의 휘하에 집결했지만, 코우칸은 이에 따르지 않고 위왕에 대해 저항을 계속했다. --이것은 대체 어떻게 도니 일인가, 라고 관의 비난은 위왕에 따랐던 제후들보다도 오히려 코우칸에게 집중되었다.
스스로 옥좌에 서려고 하면서, 위왕을 따르지 않았다. --어떤 관료들은 코우칸을 그렇게 규탄하며, 이에 대해 다른 한 파는 코우칸을 옹호하면서 조정이 이분되었지만, 실제로는 전자의 주장을 입증하는 증거가 수없이 나와 결론이 지어졌다. 결국, 코우칸은 맥주후의 지위에서 사임되고, 맥주에서 신병을 구속당해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과연.」
요코의 말을 듣고서, 연왕은 쓴웃음지었다.
「관은 엄격한 처분을, 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케이키가 반대해서 결론이 나질 않아. 아마도, 어딘가에 한직을 내리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남의 일처럼 말하는군.」
요코는 아주 조금 웃고, 거기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신왕조라고 하는 것은, 어쨌거나 취급하기 어려워. 하지만, 조금 긴장을 풀도록 해. 왕이 확실하게 하려고 할수록, 간신은 뒤를 숨길 궁리만 하게 되니까. 얕보이고 있는 쪽이, 해나가기 쉬워.」
「그런가요.」
「왕이 눈을 빛내는 걸로 위축될 정도의 간신이라면, 굳이 먼지를 털어볼 것까지도 없어. 어차피 대단한 일은 못하니까.」
「연왕도 힘들었나요? 막 즉위했을 때에는.」
「뭐어. --서두르지 마. 옥좌에 왕이 있으면, 천재가 줄어든다. 그것만이라도 넌 뭔가를 하고 있는 게 되니까.」
「그것만, 이라는 건 곤란해요.」
「왜 왕의 수명이 길다고 생각해? 50년 정도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그런 거야. 어차피 끝 따위는 없는 거니까, 느긋하게 해.」
요코는 고개를 갸웃했다.
「연왕에게도 고민이 있나요?」
「머리아픈 일이라면, 얼마든지 있지. 절대로 없어지지 않아.」
「큰일이네요.......」
「뭐, 문제가 없어져 버리면, 할 일이 없어서 질릴 뿐이야.」
그렇게 말하고, 500년의 긴 세월동안 일국을 지탱해온 왕은 숲을 바라보았다. 어딘지 비웃음도 자조도 아닌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분명히, 나는 안을 멸망시켜보고 싶어질 거야...........」
- 2 -
「뭐어.........요코, 혹시 우울한 거 아냐?」
파리궁의 물은 미지근하다. 신발을 벗고 물가에 앉아, 발을 연못에 담그고서 물장구를 치고 있던 로쿠타의 곁에서, 라크슌 역시 마찬가지로 주저앉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나요, 역시.」
라크슌은 로쿠타의 옆얼굴을 보았다. 혹시 그런 식으로 느껴지는 것은, 자신뿐인가 생각하고 있었지만.
「응. --케이키하고 잘 지내질 못한다던가.」
「설마.」
「하지만, 그다지 함께 있는 걸 볼 수 없잖아.」
「그렇네요..........확실히.」
으---음, 하고 로쿠타는 무릎 위에 팔을 얹고 턱을 괴었다.
「케이키가 나오지 않는 건, 우리들이 거북해서 그러는 것도 있겠지만. 나도 쇼류도 이 모양이라, 그 고지식한 케이키는 같이 있기가 어려울 거야. ..........하지만 그 이전에, 왠지 케이키하고 요코, 위험해보여.」
「그런가요?」
「너무 진지하지, 케이키는. 차라리 요코가 쇼류처럼 막 나가는 인간이라면, 그걸로 어떻게 보완이 되겠지만, 요코도 진지한 사람이니까 케이키가 몰아세우면 생각이 너무 깊어져. ..........게다가 케이키한테는 요코가 두 번째 왕이니까.」
「그것, 역시 관계가 있나요?」
「그야 그런 거지. 두 왕을 섬기려면, 아무래도 비교하게 돼. 처음 왕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기린에게 있어서 정성이 들어가는 거니까, 아무래도 뒤의 왕한테는 점수가 짜지. 설령 전의 왕이 별 볼일 없는 왕이었다고 해도, 단명으로 끝났다고 해도, 기린으로서는 후회가 남으니까 잊을 수가 없는 거야. --차라리 요코가 남자였다면 좀 나았겠지만.」
라크슌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렇겠군요........」
「요코 역시 여왕(予王)을 의식하지 않을 리가 없잖아. 게다가 케이키가 저렇게 무뚝뚝하고 말이 없는 성격이니까, 아무래도 고민하게 되겠지. .........이것만은 시간이 지나지 않으면 안되겠지만.」
라크슌은 케이키의 무뚝뚝한 말투를 떠올렸다. 표정이 없는 얼굴과 차가운 빛을 띠는 금발. 금발은 기린에게만 고유한 색이지만, 로쿠타와 케이키를 비교하면 같은 금발이라도 개성이 있었다. 로쿠타의 금색은 황색이 강하고 밝은 것에 비해서, 케이키의 금색은 극히 옅고 어딘가 차가운 빛을 띠고 있었다. 본인의 성격을 잘 표현하고 있다.
「뭐어, 어떻게 건 될 거야, 요코라면.」
로쿠타가 씨익 웃자, 라크슌도 끄덕였다.
「..........그렇군요.」
「뭔가........」
요코는 물가에서 뭔가를 말하고 있는 라크슌과 로쿠타를 보았다.
「........이쪽의 일을 알 수 없어서.」
낮게 말한 얘기에, 밝은 대답이 들려왔다.
「그건, 그렇겠지. 어쨌거나 이쪽은 이상하니까.」
쇼류는 가볍게 웃었다.
「아기가 나무에 열린다는 말을 듣고, 기가 막혔어.」
요코 역시 가볍게 웃었다. 바로 그 웃음에서 힘이 사라졌다.
「.........이쪽의 사람들로서는, 그런 것도 모른다는 것이 불안한 것 같지만요.」
「케이키가?」
쇼류가 묻자, 요코는 일순 쇼류를 돌아보았다가, 조금 뒤 고개를 저었다.
「관리들도에요. 어차피, 정말로 무엇 하나도 알지 못하니까, 모두가 기막혀 하는 것 같고. .......무리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요코가 모르겠다고 말할 때마다, 케이키도 관리들도 한숨을 쉰다.
「.........게다가 난 여자니까. 그게 불만인 게 아닌지.」
이러니까 여왕은, 이라고 숨어서 말하는 소리를 몇 번이고 들었다.
「그건 좀 틀려.」
쇼류가 단언하자, 요코는 그를 바라보았다.
「틀려요?」
「내가 이쪽에 와서 제일 당황했던 건, 여자가 관리가 될 수 있는 것과, 부모자식의 관계가 묘한 거였지.」
「..........헤에?」
「왜에서는, 여자는 집 안에 있고 밖에는 나오지 않는 거였어. 그게, 이쪽에서는 아이를 남편에게 맡겨두고 일하러 나가는 여자도 있지. 경은 여왕(予王)이 여자를 추방했으니 여자 관리의 수가 적겠지만, 안은 거의 반수가 여자야. 무관은 역시나 남자 쪽이 많지만, 병사라면 삼할 정도가 여자야.」
「그렇구나........」
「생각해보면 무리도 아냐. 왕은 기린이 뽑지만, 그 조정 대신의 필두에 서는 기린의 반이 여자다. 시대에 따라서 증감은 있지만, 평균적으로 반반이니까. 그 기린이 고르는 왕도 남녀가 반반, 역사서를 보면서 대략 세어봐도, 특별히 어느 쪽이 더 많다고는 말할 수 없어.」
헤에, 하고 요코는 눈을 크게 떴다.
「왕과 기린이 여자여도 좋다면, 관리도 여자라서 안 될 이유가 없겠지. 게다가, 이쪽의 여자들은 아이를 낳을 필요가 없어. 기르는 것도, 특별히 여자가 아니어도 되니까, 여자가 집에 쳐박혀 있을 필요가 없지. 남자만큼 억센 것은 아니니까 물론 무관이나 병사로서는 아무래도 떨어지지만, 잡다한 일에 신경쓰면서 번잡한 실무 따위도 정말 성실하게 하니까, 관리로는 잘 맞아. 실제로 사관(史官)은 여자가 많지.」
요코는 웃었다.
「과연.」
「그러니까, 경의 관리가 여왕이라고 하면서 떫은 표정을 짓는 것은, 여자가 왕이라서가 아니야. 경은 여왕운이 없는 거니까.」
요코는 쇼류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았다.
「최근 삼 대, 무능한 왕이 계속되었지. 그게 우연히 모두 여왕뿐이었어. 케이키가 고른 선왕은 여왕(女王)으로, 심하리만치 재위가 짧았고. 그 케이키가 또 여왕을 골랐다. 관으로서는, 또냐, 싶겠지.」
「.........그래서 그런 건가요.」
「그런 것 뿐이야. 북서쪽의 나라, 공국(恭國)의 공왕(供王)은 여자지만, 재위는 90년에 가까워. 그 전에도 오랫동안 치세를 펼쳤던 여왕이 있었기 때문에, 공(恭)에서는 왕이 남자면 백성들이 아쉬워하지. --그 정도의 일이야. 신경쓰지 마.」
요코는 가볍게 숨을 토했다.
「신경쓰지 않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뭐, 라며 쇼류는 웃었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으면 말하도록 해. 가능한 한 도와줄테니.」
요코는 깊게 고개를 숙였다.
「정말로--감사합니다.」
- 3 -
재국 취미동의 주인인 리요우가 자신의 동부에 돌아온 것은, 예정대로 출발로부터 반달 뒤의 일이었다. 리요우는 파산의 취미봉, 거기에 솟아있는 누각으로 기승을 향하게 했다. 하계, 취미봉의 기슭에 작고 푸른 지붕이 보였다. 취미봉에서 봉의 내부를 지나는 샛길을 통해 하계로 나가게 되는 곳이 거기였다. 그 지붕을 둘러싸는 장벽, 문전에는 더욱 푸른 기와가 늘어서 있다. 취미봉에 사는 선인을 모시는 사당이었다.
리요우는 적호의 등에서 그것을 내려다보고, 조금 일그러진 웃음을 띄웠다. 그저 여기에서 나이를 먹어갈 뿐, 이렇다 할 무엇을 하는 것도 아닌데, 하계의 인간들은 동주라는 것만으로 고마워한다. 언젠가 큰일이 있을 때에는 리요우가 도와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저명한 비선(飛仙)이 있었고, 그들은 확실히 백성들을 도와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비선들 모두가 선의에 가득차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쪽이 어리석은 것을.
「돌아오셨습니까.」
적호가 문전에 내려서자, 이미 문전에 달려나온 종들이 다섯 명 정도. 리요우는 적호에서 내려 그 얼굴을 둘러보았다.
「내가 없는 중에, 변한 것은.」
있으면 좋을텐데, 라는 생각을 가슴속으로 억눌렀다. 어쨌거나 오랜 생이므로, 사는 것에도 질려 있었다. 게다가 나이도 삼백살 쯤 되면, 이미 세상에서 잊혀진 지 오래. --적어도 리요우라는 이름의 여자가 있다는 일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
하인 중 하나가 깊이 고개를 숙였다.
「없습니다.」
「그렇겠지, 물론.」
말을 내뱉고서 리요우는 동부를 바라보았다. 떠나기 전에 남기고 간 말을, 물론 리요우는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적어도 동부는 깨끗하게 쓸고 닦아놓은 상태로, 확실히 기둥도 대들보도 선명한 붉은 색으로 새로 칠해져 있고, 벽도 회반죽으로 새롭게 칠해져 있었다.
「놀고있지는 않았던 것 같군.」
리요우는 웃으며 적호를 하인에게 맡기고, 본채로 발을 옮겼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자, 이미 하인 누군가가 알렸는지 하녀가 셋, 머리를 숙이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오십시오.」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리요우는 서있었다. 세 명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서, 리요우의 의복을 벗기려 했다. 방도 확실하게 정돈되어, 기둥도 벽도 새로 칠해져 있었다. 겨우 반 달 사이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리요우의 눈에 닿는 장소만, 간신히 해놓은 거겠지.
「---혼마.」
부르면, 움찔 하면서 스즈가 고개를 든다. 이 처녀는 시종 리요우를 두려워한다. 그것을 잘 알면서 일부러 악의를 내보이고, 리요우는 꿇어앉아서 리요우의 의복을 정돈하고 있는 처녀를 내려다보았다.
「경(慶)의 신왕을 봤다. --나이는 네 또래일까. 여왕이시다.」
여왕, 하고 스즈는, 주저주저 리요우를 바라보며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같은 나이의 계집애라고는 해도, 너하고는 전혀 틀리더구나. 꽤나 위세가 좋은 아가씨더군. 꽤나 씩씩하고 말야.」
스즈는 몸을 움츠렸다. 리요유는 실내복을 입히게 하면서 음침하게 웃었다.
「와산(臥山)의 개첨동(芥沾洞)에서 만났지만 말야. 막 즉위식을 끝낸 뒤라서, 인사를 드리러 왔다지. 개첨동의 주인은 선선대 경왕의 모친이니까. 꽤 예의를 알더군. 너하고는 엄청나게 틀려.」
느긋하게 실내복으로 갈아입고서, 리요우는 의자에 앉았다. 리요우의 흥미가 목하 스즈에게밖에 없다는 것을 눈치챈 두 명의 하녀가 말없이 절하고 방을 나갔다.
「봉래에서 태어났다는 것 같아.」
스즈는 핫하고 고개를 들었다. 큰 눈이 인상적인 얼굴이 희미하게 일그러졌다.
「--그래, 네가 태어난 곳이다. 그 허해 동쪽의 왜국이지. 우습지? 같은 봉래 출생으로, 한쪽은 쓸모없는 하녀, 한쪽은 경동국(慶東國) 경왕(景王). 간소하게는 하고 있었지만, 과연 왕이야. 입고있는 것도 비녀도 꽤나 화려하더군.」
그렇게 말하며 리요우는 큭큭 음침하게 웃었다.
「너 따위는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구슬 한 알도 손에 넣을 수 없는 물건이야. 왕궁에 돌아가면 그정도가 아니라, 산더미같은 보물이 가득하겠지. --응?」
스즈는 다시 몸을 움츠렸다. 비웃음 받아도 노려보지도 못하고, 반박조차 할 수 없는 비굴함이 리요우를 더없이 자극한다. 이 아이를 조롱하는 것은, 사냥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여러 얘기를 들었다. 경왕도 이쪽에 쓸려와 버린 듯 해. 처음엔 아무것도 몰랐었다고 하시더군. 그래도 꽤, 의젓하잖아. 어쨌거나 잘 모르는 가운데에서도 여행을 해서 연왕에게 보호를 요청했다던가.」
리요우는 꼬고 있던 발끝을 스즈의 가슴팍에 가볍게 찔렀다.
「누군가와는 엄청나게 달라. 유랑예인들 틈에 섞여서, 그것도 기술이라도 배웠다면 모르겠지만 그럴 능력도 없어서 잡역을 하고 있던 녀석하고는 말야. 울면서 매달려서, 하녀로 해달라고 애걸하던 어딘가의 누구 말이지.」
더욱 발끝을 그녀에게 들이밀자, 스즈의 푹 수그린 머리가 흔들리면서 눈물이 떨어졌다.
「어라라. 경왕에게 동정이라도 한 거야? 그건 실례라고. 너 따위에게 동정 받아봤자, 경왕은 모욕당했다고 화낼걸.」
억눌린 오열이 들려왔다. 리요우는 가볍게 눈썹을 찌푸렸다. 사냥감은 꺾였다. 흥미가 사라졌다.
「물러가.」
리요우는 말을 내뱉었다.
「그 짜증나는 면상을, 빨리 안 보이는 곳으로 치워버려.」
스즈는 졍원으로 달려나갔다. 인기척이 없는 가장 안쪽으로 뛰어들어가, 구불구불한 소나무 줄기에 기대어 울었다.
--봉래. 그, 그리운 나라.
「왜 그래 모크린. 또 동주님께 뭔가 들었나?」
정원지기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스즈는 그저 고개만 저었다.
언제나 리요우는 저런 것이다. 그렇게 스즈를 괴롭히면서 기뻐한다. 그렇게까지 스즈가 미운 것일까. 리요우에게 미움을 받을만한 구석이 스즈에게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데도.
「무슨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신경쓰지 마. 동주님을 모시는 것은, 그저 참고 견디는 것 뿐이니까.」
「그런 거, 알고 있어요.」
알고는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비웃음을 사는 것이 괴롭지 않을 리가 없다.
「하지만, 왜 그렇게..........」
울면서 주저앉는 스즈의 등에서 할아버지는 한숨을 쉬었다.
「...........경왕.」
스즈는 중얼거렸다. 봉래 출신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고향은 어디일까. 지금쯤 그 나라는 어떻게 되어있을까.
저기요, 라고 스즈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 그대로, 등뒤에서 곤란한 듯이 한숨을 쉬고 있는 할아버지를 돌아보았다.
「...경왕은, 어디에 있죠?」
「그거야 당연히, 경(慶)이지. 경의 왕궁에 계실게다.」
「.........네.」
스즈와 마찬가지로 봉래에서 온 여자. 스즈처럼 경으로 흘러들어온 것일까. --그리고 그녀는 왕이 되었다. 이 지상에서 둘도 없는 지위.
............만나고 싶어.
어떤 사람일까. 어쩌면.
그녀라면, 정말로 스즈를 불쌍하게 여겨주지는 않을까. 그녀라면 이해해주겠지.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이국(異國)에 쓸려와 버린 괴로움, 말이 통하지 않는 고통, 스즈가 처한 상황의 슬픔.
「경왕이 재(才)에 올 일이 있을까요?」
할아버지에게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없지 않을까. 어딘가의 왕이 오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니까.」
「네.......」
경왕과 만나고 싶어, 라고 스즈가 마음속으로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어떻게 해서 만나면 될까. 경에 가서 만나고 싶다고 말하면, 손쉽게 만나게 해줄까. 어떻게 경에 갈까. 리요우에게 말하면, 또 웃음거리로 삼을 뿐이겠지. 이유를 숨기고 여행을 하고 싶다고 부탁하면, 과연 리요우가 스즈를 쉽게 내보내줄 것인가.
스즈는 리요우의 조소와 악담을 떠올리고서, 조금 떨었다. 아무리 100년이 지나도, 남에게 비웃음 당하는 것에 상처를 입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다.
만나고 싶다. 만나러 갈 방법이 없다.
어떤 사람일까. 옥좌에 앉아있을 테니, 자비심이 깊은 사람일 터이다. 절대로 리요우같은 잔혹한 성격은 아닐 터.
묻고싶은 것이 많이 있다. 그보다도 더욱, 말하고 싶은 것이 많이 있다.
--와줘.
스즈는 동쪽 하늘을 보았다.
부탁이니까, 재로 와줘.
..........여기에 와서, 날 찾아줘-------.
- 4 -
하얀 언덕에 바람이 불어온다. 꽃잎이 진다.
쇼케이는 썰매를 끌던 손을 멈추고, 허리를 폈다. 멀리서 신도(新道)의 격벽(隔璧)이 보였다. 간신히 리의 근처까지 도착한 것이다. 눈 속에 가라앉는 듯한 리, 석양이 가까워져 주위에는 이미 희미하게 어둠이 떠돌고 있었다. 거기에 하얗게 쇼케이의 입김이 흐른다.
북쪽 나라의 겨울은 혹독하다. 특히 눈이 많은 방(芳)의 겨울은, 추위보다도 삶 그 자체가 힘들었다. 눈에 묻히는 가도, 고립되어 폐쇄되는 마을. 숨을 죽이고 눈이 녹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 화물이 이동할 수 없기 때문에, 마을에도 몇 없는 가게는 문을 닫는다. 가을에 비축해둔 것이 바닥을 드러내면, 말썰매를 끌고 찾아오는 행상만이 생명줄이었다. 그것을 기다릴 수 없을 때에는, 무릎 위까지 쌓인 눈을 헤치고 근처 리까지 가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의 쇼케이처럼.
쇼케이는 어깨로 숨을 쉬며, 다시금 밧줄의 끝을 잡고 어깨에 걸었다. 문이 닫히기 전까지 리에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리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은, 얼어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길은 주위의 농지와의 구분이 없어져, 어디까지가 길인지 알 수 없었다. 주위에 펼쳐진 농지도 근처에 이어져있는 언덕도 새하얗다. 언덕의 사면에는 방목하는 양이나 소가 다른 리에 도망가지 못하도록, 돌을 쌓아 만든 낮은 담장이 이어져 있었지만, 그것도 지금은 눈 속에 파묻혀 있다. 동지 전인데도, 올해는 평상시보다 눈이 많았다.
밧줄을 걸고 있는 어깨가 아파온다. 발끝은 이미 감각이 없다. 열 근의 숯을 실은 썰매는 쉽에 움직여주지 않았다. 열 근이라고 하면, 어른 남자의 체중에 필적한다.
--이런 생활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 거야.
피로에 마비된 쇼케이의 머리 속에는 그것만이 남아있었다.
길을 잃고, 몇 번이고 돌풍에 쓰러졌다. 그 때마다 썰매를 일으키고, 숯을 안아 올린다. 서두르지 않으면 문이 닫힌다. 그 한가지 생각으로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격려하며, 목도 옆구리도 찢어질 것만 같은 통증을 참으며 쇼케이는 썰매를 끌고 있었다.
--오늘 다른 아이들은, 모두 놀고 있을텐데.
겨울의 리를 방문하는 것은 행상과 주정(朱旌)뿐이다. 주정이라는 것은, 재주를 보여주면서 각국을 돌아다니는 예인을 말한다. 그 주정이 마을에 와있는 것이다. 겨울에는 정말로 즐거움이 없기 때문에, 주정이 오면 작은 축제가 된다. 그런데도 쇼케이만은 그 날에 리에서 쫓겨나, 숯을 사러 나오게 되었다. 겨울에 숯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당연히 쌓아둔 것은 잔뜩 있다. 그런데도 봄까지 부족할지도 모른다, 면서 마을에서 내쫓긴 것이다. 말썰매도 빌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미운가.
쇼케이는 마음속으로 고보를 욕했다.
혼자서 썰매를 끌고 열 근이나 되는 숯을 다른 리에서 사러 가는 것은,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를 고보가 아니다. 죽어도 상관없다, 라고 고보는 말없이 쇼케이에게 전하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20세가 되면, 농지를 받아서 리가(里家)를 나갈 수 있다. 이 20이라는 나이는 만 나이가 아니라 그냥 나이로 세는 것이 예로부터 내려오는 관례이지만, 쇼케이의 호적상의 연령으로 계산하면 아직 2년을 더 견디지 않으면 안된다.
--앞으로도 2년이나 이런 생활을.
게다가 2년이 지나서, 정말로 농지를 받을 수 있다는 보증은 어디에도 없다. 겟케이--쇼케이의 부모를 죽인 그 남자가, 간단히 쇼케이를 자유롭게 해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주저앉아버릴 것만 같은 자신을 격려하며, 간신히 문에 도착했다. 폐문 전에 간신히 리 안으로 들어서자, 리 안에는 아직도 들뜬 분위기가 남아있었다. 쓰러질 듯이 리가로 돌아와, 한동안 눈 위에 앉아 있었다. 리가 안에서는 아이들의 흥분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2년이나.
그것은 영겁의 시간처럼 생각되었다. 왕궁에서 지냈던 30년은 그렇게나 짧았었는데.
비참한 기분으로 일어서서, 짚에 싸인 숯을 하나씩 내렸다. 창고에 모두 넣고서야, 간신히 쇼케이는 리가에 들어섰다.
「다녀왔습니다.」
뒷문을 열고 부엌에 들어가자, 고보가 비웃음을 지었다.
「제대로 숯은 사왔어? 한 근이라도 부족했다가는, 다시 한 번 사러 보낼테니까.」
「사왔어요. 열 근.」
흥, 하고 고보는 코웃음을 치고, 손바닥을 내밀었다. 쇼케이는 그 손위에 얼어붙은 돈주머니를 얹었다. 고보는 안을 확인하고, 쇼케이를 차갑게 바라봤다.
「잔돈이 상당히 적잖아.」
「숯이 비쌌어요. 올해는 숯이 적게 났다고.」
여름에 태풍이 불어, 근교의 산에 자라던 나무가 휩쓸려버렸다. 그 때문에 올해는 숯 값이 상당히 비싸다.
글쎄, 하고 고보는 중얼거리고, 쇼케이에게 냉랭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거짓말을 하면 바로 알 수 있어. 그 때까지는 그런 걸로 해두지.」
쇼케이는 말없이 몸을 움츠렸다. 이런 푼돈에 손 댈 줄 알아? 라고 마음 속으로 내뱉었다.
「--자, 저녁 일 하러 가.」
고보에게 명령받고, 쇼케이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장로에게 거스를 권리 따위 쇼케이에게는 없었고, 얼마나 피곤한지를 말하는 것도 소용없다는 건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안채에서 나온 아이들과 함께, 가축에게 물을 주고 우리의 짚을 갈았다. 소와 산양의 젖을 짠다. 저녁일을 하면서도, 아이들은 즐거운 듯이 얘기하고 있었다.
「늦었구나. 빨리 돌아왔으면 좋았을 텐데.」
여자아이 한 명이 쇼케이에게 말했다.
「이미 주정들, 마을을 떠났어.」
쇼케이는 가만히 입을 다문 채 먹이에 섞을 짚을 잘랐다.
「눈이 왔으면 좋았을텐데.」
남자아이가 진심으로 아쉬운 듯이 말한다. 썰매와 말이 있다고는 해도, 눈 속의 여행은 쉽지 않다. 눈이 오면, 어쩔 수 없이 주정들도 마을에 머무른다. 솔직히 말해서 쇼케이도 그것을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눈이 내렸다면 오늘 중에 돌아올 수 없었을 것 역시 확실했다.
주정들은 여행에 숙달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겨울의 여행이 힘들지 않을 리가 없다. 애초에 주정은 봄부터 가을에 걸쳐 각지의 리를 돌아다니며, 겨울에는 큰 도시의 건물을 빌려서 거기에 머무는 것이다. 그런 것을 이 눈 속에, 위험을 감수하면서 겨울에까지 여행을 하는 것은 쇼케이의 아버지 츄타츠가 농한기 이외의 흥행을 금지했기 때문이었다. 츄타츠가 죽고서 많은 주정들은 위험한 겨울 여행을 그만두었지만, 지금까지 겨울에 여행하는 주정들도 있다. 겨울의 리에는 즐거움이 없다. 주정이 오면, 온 리가 환대해준다. 그것을 목적으로 무리를 해서라도 눈길을 돌파하는 주정도 결코 적은 수가 남아있다.
「연극도 재미있었어.」
「난 곡예 쪽이 좋았어.」
즐거웠던 하루 일들을 몸을 움츠리고 듣는다. 그런 것, 궁중에서는 얼마든지 봤어, 라고는 죽어도 말할 수 없는 분함.
「--그러고보니.」
말을 꺼낸 것은 소녀들 중 하나였다.
「소설(小說)에서, 멋진 얘기를 들었어. 경국(慶國)에 새 왕이 즉위하셨대. 아직 16, 7세 정도의 여왕이라고.」
에, 하고 쇼케이가 얼굴을 들었다.
「굉장하지 않아? 왕은 신이나 다름없는 분이라고? 천하에 단 12개 밖에 없는 지위에 오르다니, 어떤 기분일까나.」
그렇구나, 라고 다른 소녀가 끄덕였다.
「분명히 입는 것도 비단이겠지. 자수에, 예쁜 새의 깃털장식. 금도 은도 보석도 원하는 만큼.」
「위왕(僞王)이 서서 멋대로 하고 있는 것을 쓰러뜨렸대. 굉장해.」
「어라, 그건 안(雁)의 연왕(延王)이 조력해줬기 때문이야.」
「연왕하고 아는 사이라니, 굉장하잖아.」
「그건, 분명히 사이가 좋은 거야. 도와줄 정도인걸.」
「즉위식은 어땠을까나. 분명히 멋진 모습이었겠지.」
쇼케이는 발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해서 들려오는 목소리들이 멀어져간다.
16, 7세의 여자아이. --그게 왕으로.
쇼케이는 알고 있다, 왕궁에서의 생활이 어떤 것인지. 이 한촌(寒村)에서의 생활과 얼마만큼의 차이가 있는지.
--너무해.
쇼케이는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쇼케이가 여기에서 이런 생활을 하고 있는데. 같은 나이의 여자애가, 쇼케이가 잃어버린 모든 것을 손에 넣었다. 쇼케이에게는 두 번 다시 왕궁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다. 다정한 부모님이 살해당하고, 변경의 한촌으로 쫓겨나, 일생을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
쇼케이는 가래를 쥔 자신의 손을 보았다.
염천하의 노동으로 햇볕에 그슬고, 무거운 것을 계속해서 들면서 마디가 생긴 손, 손질을 해주는 사람이 없어지고서 손톱의 모양도 일그러져 버렸다. 이런 식으로 쇼케이는 나이를 먹어간다. 한촌의 생활에 젖어가는 것처럼 몸도 마음도 거칠어져서, 결국엔 고보처럼 더러운 노파가 되는 것이다.
그 왕이 아름다운 16세 그대로, 왕궁에서 살고 있는 사이에.
............너무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더욱 작은 소리가 들렸다.
.............용서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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