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한 64가지 믿음 전2권 중 제1권
정호승
(1)
문어의 사랑
깊은 바다 속 바위에 붙어 참문어와 풀문어가 서로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너무 사랑한 나머지 어부가 자기들을 잡아 올리는 줄도 알지 못했다. 그들이 엉킨
다리를 풀고 서로 몸을 떼었을 때에는 햇살이 눈부신 부둣가였다.
"여기가 어디지?"
"육지야."
"왜 우리가 육지로 나오게 되었지?"
"어부한테 잡힌 거야."
"어머! 어떻하지?"
"걱정하지마. 무슨 좋은 방법이 있을 거야."
참문어가 풀문어를 위로해 주었다.
어부는 곧 그들을 집으로 데리고 가 커다란 항아리 속에 집어넣었다. 우선 그들이
죽기를 기다렸다가 바람 잘 불고 햇볕 잘 드는 곳에서 말린 뒤, 겨울밤 술안주로
삼거나 제삿날 제상 위에 올려놓을 작정이었다.
항아리 속에 갇힌 참문어와 풀문어는 무서웠다. 순간 순간 몰려오는 죽음의 공포에
서로의 몸을 껴안고 떨었다.
"졸지마, 졸면 죽어!"
그들은 기진하여 쓰러지지 않도록 서로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려고 애를 썼다.
시간이 쏜살같이 흘렀다. 몇 날 며칠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은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었다.
"이거 먹어. 먹고 기운 차려. 죽으면 안돼."
참문어는 풀문어에게 자기의 다리 하나를 잘라 주었다.
풀문어는 배가 고팠지만 차마 참문어의 다리를 먹을 수가 없었다.
"괜찮아, 먹어. 난 무엇이든지 줄 수가 있어."
참문어는 풀문어에게 자꾸 자기의 다리를 먹으라고 권했다. 그러나 풀문어는 먹지
않았다. 그 대신 자기의 다리를 잘라 참문어에게 주었다.
"이거 먹어. 너도 배고프잖아?"
참문어도 풀문어의 다리를 먹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다리를 먹이려고 둘 다 여덟 개나 되는 다리를 모두
잘랐다.
며칠 뒤, 어부가 항아리 뚜껑을 열어 보았을 때 그들은 둘 다 죽어 있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다른 문어들은 단지 속에 갇히면 제가 제 다리를
뜯어먹으며 연명하다가 서서히 죽어 가는데, 그들은 다리를 잘랐으면서도 먹지 않고
그대로 굶어 죽어 있었다. 그들이 서로 사랑한 나머지, 서로 상대방에게 제 살을
먹이려고만 하다가 그만 그대로 굶어 죽은 줄을 어부는 알지 못했다.
우물 밖의 세상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우물 안에 늘 우물 밖의 세상을 그리워하는 한 젊은 개구리가
있었다. 낮이면 구름이, 밤이면 별들이 우물에 비치는 것을 보고 그는 늘 어떻게 하면
우물 밖의 세상에 나가 살 수 있을까 하는 꿈을 꾸었다.
그는 날마다 우물에 비치는 구름과 별들을 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친구들이
거울처럼 잔잔한 물결을 흩뜨려 놓으면 다시 물결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우물에 비치는 하늘을 들여다보았다.
하루는 우물 안으로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그는 바람에게 물었다.
"바람아, 우물 밖의 세상은 어떤 세상이니?"
"햇살이 눈부신 넓은 세상이야. 여기처럼 이렇게 어둡고 좁은 곳이 아니야. 바다도
있어."
"바다? 도대체 바다가 뭐니?"
"이 우물보다 수천 배, 수만 배 넓은 곳이야. 멀리 수평선이 있고, 커다란 고래도
살아."
그는 바람의 말에 바다가 보고 싶어 가슴이 뛰었다.
"바람아, 날 바다에 데려다 줄 수 없겠니? 난 이 우물 안이 너무 춥고 답답해."
"글쎄, 난 너를 도와줄 수 있는 아무런 방법이 없어. 그건 네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야."
바람은 그 길로 황급히 우물을 빠져나갔다.
우물 밖에 바다가 있고, 바다에 고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더욱더 우물
밖의 세상이 그리웠다.
그는 허구 한날 어떻게 하면 우물 밖으로 나가 보다 넓은 세상에서 살아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을 거듭했다. 그러나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이웃들의 눈을 피해
한밤중에 몇 번이나 우물 한 귀퉁이를 기어올라가 보았으나 역부족이었다.
어느 날 그는 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했다.
"엄마, 전 우물 밖의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여길 빠져나갈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좀 가르쳐 주세요."
"그런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마라. 우물밖엔 나쁜 놈들이 많아. 특히 뱀이란 놈은 우리
개구리들을 한입에 잡아먹는단다."
"엄마, 뱀이 무서워서 한평생을 여기에서 살수는 없어요."
"아니냐, 우리가 살 곳은 여기야. 여기가 제일 안전한 곳이야."
어머니는 우물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나 그는 우물 밖에 나가 살고 싶다는 꿈을 버리지 못했다.
그런 어느 해, 가뭄이 극심한 여름날, 사람들이 하나둘 우물을 찾기 시작했다.
"다른 우물은 다 말라 버렸는데, 이 우물만은 마르지 않았어. 이건 정말 고마운
일이야."
우물엔 하루종일 물을 길으로 온 사람들로 붐볐다. 사람들은 우물 안으로 계속
두레박을 드리웠다.
그것은 그가 우물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어머니와 헤어질 것을 생각하자 눈물이 앞을 가로막았으나 그는 마음을 굳게 먹고
작별 인사를 고했다.
"엄마, 결코 엄마 곁을 떠나고 싶진 않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진 않아요.
"그래 알았다. 난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 섭섭하구나.
그렇지만 난 내 아들을 언제까지나 이렇게 좁은 곳에서 살게 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들이 우리 우물을 늘 찾아왔을 땐 두레박을 타고 많이들 밖으로 나갔다. 이거 한
가지만 명심해라. 나가면 두번 다시 돌아올 생각은 하지 마라. 우리 나라엔 우물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법으로 정해 놓고 있다. 돌아오는 날이면 사형을 받게 돼.
알겠지?"
"네 엄마."
그는 새벽이 오기를 기다려 물을 길으러 온 어느 여인의 두레박을 타고 우물 밖으로
나왔다.
우물 밖의 세상은 바람이 말한 그대로였다. 눈부신 햇살 아래 끝없이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었고, 그 들판 끝에 푸른 바다가 있었다.
그는 바닷가 가까운 강기슭에서 매일 바다를 바라보며 살았다. 멀리 수평선 아래로
고래가 물을 뿜는 모습을 볼 때마다 더 없이 행복했다. 우물 밖에 사는 개구리를 만나
결혼을 하고 자식들도 낳아 더 이상 부족함이 없었다.
눈 깜짝 할 사이에 몇 년이 지나갔다. 그는 문득 우물 속에 사는 어머니가 그리웠다.
세상 넓은 줄 모르고 좁은 우물 속에 갇혀 사는 형제들이 불쌍했다.
그는 어머니와 형제들을 위해 이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
우물 속으로 돌아가 세상에는 우물 보다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른 세상에서 자기 혼자만 행복하게 사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행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결코 돌아올 생각을 하지 말라는 어머니의 당부를 잊고 다시 우물 안으로
들어갔다.
"돌아오지 말라고 했는데, 네가 돌아오다니! 이 일을 어찌 하면 좋을꼬!"
어머니는 그에게 빨리 도망치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도망치지 않았다. 오히려
우물 밖으로 나가 살자고 어머니와 형제들에게 설득했다.
"너는 국법을 어긴 죄가 크다. 우물 밖을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국법을 어긴 너를
용서할 수가 없다!"
그는 곧 체포되어 많은 형제들이 보는 가운데서 재판에 회부되었다.
"더구나 평화롭게 잘 사는 형제들에게 유언비어를 퍼뜨린 죄, 우물 밖으로 나가
살자고 감언이설로 유혹한 죄는 죽어 마땅하다!"
재판장의 목소리는 서릿발같았다.
"재판장님! 우물 밖에는 여기보다 더 넓은 세상이 있습니다."
"그런 세상은 없다."
"저는 우리 형제들에게 우물보다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넌 도대체 어떤 세상을 보고 와서 그따위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느냐?"
"바다가 있는 세상입니다."
"이놈아, 바다라니? 그런 세상은 없다. 여기보다 더 좋은 세상은 없다."
"재판장님! 우물 밖에는 분명 바다가 있습니다. 우물보다 더 넓은 세상이 있습니다.
이제 우린 우물에 갇혀 살 것이 아니라 망망대해가 있는 넓은 세상으로 나가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린 모두 우물 안 개구리가 되고 맙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재판장은 그에게 사형을 명했다.
"너는 죽어 마땅하다. 그러나 아직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단 한번의 기회를
주겠다. 지금이라도 우물 밖에 바다가 없다고 말하라. 네가 살아본 바깥 세상보다
여기가 더 좋은 세상이라고 말하라. 그러면 너를 용서해 주겠다."
사형대 위에 선 그는 잠시 망설였다. 울음을 삼키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 아직도 우물 밖에 바다가 있느냐?"
서릿발같은 재판장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는 말했다. 또박또박 힘있는 목소리로.
"네, 우물 밖에는 바다가 있습니다."
생화와 조화
백화점 특별 선물 조화 코너에 플라스틱으로 만든 장미꽃이 있었다. 그는 너무나
아름다워 백화점을 들락거리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늘 경탄의 대상이 되었다.
"어머! 이쁘다. 정말 장미꽃 같다!"
"어쩜 이렇게 잘 만들었을까? 정말 생화하고 구별할 수가 없네."
보는 사람들마다 놀라움을 나타내지 않는 사람이 없을 만큼 그는 생화와 똑같았다.
아니, 생화보다 더 아름다웠다. '조화 코너'라는 안내판만 없었더라면 사람들은 모두
그를 생화인 줄 알았을 것이다.
그는 백화점 진열대에 처음 나왔을 때에는 사람들의 그런 찬탄이 내심 부끄러웠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들의 그런 찬탄쯤은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오히려 그냥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이 있으면 그런 사람이 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자신이 있었다.
자신이 생화보다 나았으면 나았지 조금도 못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생화나 조화나
출생 과정이 다를 뿐 똑같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꽃의 궁극적 가치가
아름다움의 창조에 있다면 생화나 조화나 그 아름다움의 창조적 차원은 똑같다고
생각했다. 다른 조화들은 조화로 태어나 자신을 원망하고 부끄러워했으나 유독 그만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다른 조화들을 심히 나무랐다. 한 송이 꽃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고 무가치하게 생각하는 조화야말로 세상을 살아갈 자격이 없다고
힐난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꽃이면 되는 거야. 왜 자꾸 생화하고 비교하는 삶을 살려고
그러는 거야? 생화나 조화의 구별이야말로 참으로 무의미한 거야. 지금까지 나는 나
자신을 조화라고 해서 부끄러워해 본 적은 없어.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는
거야. 우리 스스로 우리의 가치를 부정하면 우리 앞엔 고통과 죽음 뿐이야. 우리
자신이 먼저 우리를 인정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해야만 다른 꽃들도 우리를 아름답게
생각하는 거야. 우리의 아름다움은 우리 스스로 깨달아야 돼. 누가 깨닫게 해주는 것이
아니야."
그는 다른 조화들을 만날 때마다 스스로의 가치를 깨달을 줄 아는 꽃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 뒤 그가 백화정을 떠나 혜미 아빠라고 불리는 한 남자의 집에 가서 살게 된 것은
백화점에 진열된 지 약 한 달 뒤였다. 어느 날 혜미 아빠가 백화점에 들러 "결혼 기념
선물로는 이게 제일 좋겠군." 하고 번쩍 그를 안아 들었다.
"여보 고마워요."
혜미 엄마는 그를 껴안은 채 혜미 아빠에게 키스를 퍼부어 대었다.
"여보 너무 이뻐요. 이렇게 이쁜 장미는 처음 봤어요."
혜미 엄마는 마치 그를 생화처럼 대했다. 아침마다 분무기로 물을 뿌려 주는가 하면,
혹시 먼지라도 묻을까 봐 호호 입김으로 불어 주기까지 했다. 가끔 혜미 집에 놀러
오는 이웃들도 혜미 엄마가 쏟는 정성을 보고는 대부분 그가 생화인 줄 알았다.
어쩌다가 직접 손으로 만져 보고 조화인 줄 아는 사람이 있어도 그의 아름다움에
탄성을 터뜨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행복했다. 세상에 사랑 받는 일만큼 행복한 일은 없었다. 그는 조화로 태어난
것을 신에게 감사했다. 그러면서 차차 생화보다 조화가 더 아름답다는 생각을
신념화해 나갔다. 조화로서의 아름다움과 자존심을 오직 자기만이라도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혜미가 한 남자로부터 청혼의 선물로 받았다면서 장미꽃 한
다발을 가슴에 안고 돌아왔다. 물론 그것은 생화였다. 혜미는 기뻐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장미의 가지를 자르고 적당히 잎을 떼내어 화병에 꽂아 놓았다.
그날 밤, 밤이 깊어지자 생화인 장미꽃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넌 나보다 네가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구나."
"그럼, 내가 더 아름답고 말고."
"난 너처럼 오만한 조화를 본 적이 없어."
"넌 나보다 네가 더 아름다운 줄 아는 모양이구나."
"그럼, 그건 당연한 일이야. 난 생화거든."
"하하, 넌 참으로 어리석구나. 난 지금까지 너처럼 어리석은 생화를 본 적이 없어.
넌 영원히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모르는구나. 난 너처럼 시들지도 않고 죽지도 않아.
나에겐 죽음이라는 게 없어. 그러나 넌 이제 곧 죽을 거야. 네가 큰소리 칠 날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어."
"하하, 너야말로 네 자신을 잘 모르겠구나. 넌 명색이 장미이면서도 향기가 없잖아?"
"향기?"
순간, 그는 말문이 막혀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장미에게 향기가 있다는 사실을
그는 미처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그의 처지를 잘 알고 있다는 듯 혜미 엄마가 그에게 장미향
나는 향수를 뿌려 주었다.
"내게도 향기가 나. 자, 맡아 봐. 네 몸에서 나는 향기보다 더 향기로울 거야."
다시 밤이 되자 이번에는 그가 먼저 생화에게 말을 걸었다. 생화는 그에게서 정말
장미 향기가 나자 더 이상 아무 말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서서히 시들어 흉한 꼴을 하고 죽고 말았다.
그는 혜미 엄마에 의해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생화를 보고 고소를 감추지 못했다.
생화보다 자신의 삶이 더 아름답다는 것은 이제 정말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는 이제
아픔도 늙음도 죽음도 두렵지 않았다. 이 세상에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한 해가 지났다. 청혼의 의미라 받쳐진 장미는 시들어 버렸으나, 혜미와 그 남자와의
사랑은 시들지 않아 혜미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혜미가 첫 친정
나들이를 하면서 장미꽃 한 다발을 엄마에게 건네주었다.
"엄마, 그 동안 날 잘 키워 주신 고마움에 대한 내 마음의 표시예요."
"그래, 그래, 고맙다. 남편 잘 받들고, 아들 딸 낳고 잘살아라."
그는 웃음이 쿡쿡 터져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조금 있으면 시들고 말
장미를 사 가지고 와서 혜미가 원 별소릴 다한다 싶었다.
그날 밤, 그는 잠도 오지 않고 해서 혜미 엄마가 정성 들여 꽃병에 꽂아 놓은
장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그 장미는 지난번에 같이
얘기를 나누었던 바로 그 장미가 아닌가. 그는 반가운 김에 먼저 말을 걸었다.
"정말 반갑구나. 시들어 쓰레기통에 버려졌던 네가 다시 살아나 이처럼 아름답다니,
정말 신기하구나."
그 장미도 당장 그를 알아보았다.
"응, 정말 반가워. 난 우리가 이렇게 다시 만날 줄 알았어."
"그게 무슨 말이니? 넌 그때 분명히 시들어 쓰레기통에 버려졌어."
"넌 정말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구나. 그건 네가 잘못 생각한 거야. 우린 그렇지
않아. 우린 죽음을 통해서 끝없이 다시 태어나. 참으로 살아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죽어야 하거든. 죽음으로써 다시 새 생명을 얻을 수가 있어."
"나는 새 생명이 필요 없어. 이대로 영원히 변하지 않아."
"변하지 않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야. 변화 속에 아름다움이 있는 거야. 고정돼
있다는 것은 이미 추함이야. 아름다움이 어떻게 고정될 수 있겠니?"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한참 동안 가만히 있다가 다시 입을 떼었다.
"그럼 나도 죽어야 하니?"
"아니야. 넌 죽을 수가 없어. 그건 슬픈 일이야."
"난 하나도 슬프지 않은데?"
"그건 너에게 죽음이 없기 때문이야. 죽음이 없다는 것은 바로 생명이 없다는
것이고, 생명이 없는 꽃은 아름다운 꽃이 아니야."
"아니야, 난 아름다운 꽃이야. 사람들이 다들 나를 아름답다고 해."
"그건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야. 영원히 죽지 않는 너를 통하여 그
두려움을 위안 받으려고 하기 때문이야. 사람들도 참으로 살아 있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는 것을 잘 모르는 거야."
"그렇지만 난 아름다워."
"그래, 너도 네 나름대로는 아름다워. 그러나 네가 진정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네
자신이 누구인가를 진정 깨닫지 않으면 안 돼. 그렇지 않으면 넌 아름다워질 수가
없어. 우리는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해야만이 아름다워질 수가 있어. 넌
조화로서의 아름다움을 지닐 때만이 진정 아름다운 거야."
생화 장미는 이번에도 며칠 가지 않아서 곧 시들어 쓰레기통에 버려지고는 말았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는 그 장미를 보고 웃지 않았다. 그 대신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꿈꾸었다. 그리고 분수를 지키는, 가장 겸손한 조화 장미가 될 것을 그에게 약속했다.
마부를 길들인 말
어느 마부가 일 잘하기로 소문난 말 한 마리를 사 왔다.
그런데 소문과는 달리 말은 마부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다른 말들은 채찍으로
등허리를 두어 번만 후려쳐도 말을 잘 들었으나 그 말은 그렇지 않았다.
마부는 주인이 바뀐 탓으로 말이 아직 길이 들지 않아서 그런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엔 기둥에 묶어 잡도리를 해보기도 하고, 생당근과 익은 콩을 여물로 먹여
보기도 하고, 들에 나가 풀을 뜯어먹게 해 보기도 했다. 또 마구가 몸에 맞지 않아서
그런가 싶어 마구를 바꾸어 주기도 하고 심지어는 꼬박 사흘을 굶겨 보기도 했다.
그러나 말은 여전히 마부의 말을 듣지 않았다.
마부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이번에는 말을 마구 두들겨 패 주었다. 주먹으로 패고
발로 차다 못해 채찍과 몽둥이로 온몸에 몸이 시퍼렇게 들 정도로 두들겨 패 주었다.
그래도 말은 마부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날 밤, 마굿간에 있던 조랑말이 참다못해 그 말을 보고 말했다.
"넌 정말 어리석구나. 네가 우리 집에 온 이후로 쭉 지켜봤다만, 너 어쩌자고 그렇게
맞기만 하는 거니? 나처럼 주인한테 두어 대 맞고 말 잘 들으면 더 이상 얻어맞지도
않을텐데, 제발 그러지마. 옆에서 보고 있기에 참 딱해."
그러자 조랑말을 보고 그 말이 말했다.
"넌 맞는 게 몹시 두려운가 보구나."
"응, 두려워. 넌 두렵지 않아?"
"나도 두려워. 매가 두렵지 않은 말이 어디 있겠니?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그렇게
매를 맞으면서 일을 할 수는 없어. 무조건 때리기부터 먼저 하면서 일을 시키는
마부의 나쁜 버릇을 고쳐 놓아야만 해. 그래야만 내가 맞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어. 난
그 버릇은 꼭 고쳐 놓고야 말 테야."
"그러지 마. 그러니까 네가 주인한테 자꾸 맞는 거야."
"아냐, 맞아야만 일을 하면 계속 맞게 되는 거야. 난 맞고 살진 않을 거야. 맞는
것을 두려워하면 결국 맞고 살 수 밖에 없어. 그러니까 맞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돼.
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나중엔 결국 맞을 일이 없게 돼."
"글쎄, 주인한테 늘 맞고 있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구나."
말은 여전히 마부의 말을 듣지 않았다. 마부가 아무리 채찍과 몽둥이로 두들겨 패도
말은 고분고분 마부의 뜻을 따라 주지 않았다.
마부는 고민이 되었다. 비싼 돈을 주고 사 온 말이 말을 듣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말을 때리는 데에도 지친 마부는 어느 날 말을 판 전 주인을 찾아갔다.
"아무래도 내가 속아서 산 것 같소. 일을 잘하기로 장안에서 소문난 말이라고 해서
다른 말의 두 배나 되는 비싼 값을 치르고 사 온 말이 도대체 내 말을 듣지 않으니
이게 어찌된 일이오? 아무리 때려도, 심지어 채찍으로 피멍이 들도록 때려도 말을
듣지 않으니 난 이 말을 도로 당신한테 팔고 싶소. 나를 속인 대가로 이 말을 당신이
사시오. 내가 준 값 그대로 다 쳐서 말이오."
그러자 전 주인이 무릎을 탁 치면서 말했다.
"아뿔사, 내가 당신한테 아주 중요한 말을 해주지 않았군요. 그 말은 채찍 앞에서는
절대로 말을 안 듣는 말입니다. 그 말은 절대 때려서는 안 돼요. 내가 그 말을 해준
다는 게 그만 깜박 잊고 말았군요."
그 말을 들은 마부는 얼른 집으로 돌아와 말이 보는 앞에서 채찍과 몽둥이를
분질렀다. 그러자 그날부터 말은 마부의 말을 잘 들었다. 소문대로 그 말은 아주 일
잘하는 말이었다.
사랑과 우정
경애는 당장 남편의 수술비가 필요했다. 그러나 가진 돈이라고는 한푼 없었다.
그나마 조금 있는 돈마저 아들 대학 입학금으로 낸 지가 바로 어제였다. 경애는 어디
마땅히 돈을 빌릴 데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가장 친한 친구인 은숙의
얼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독신인데다 약국을 경영하는 은숙에게 다소 여유 돈이
있을 것 같았다.
경애는 은숙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한 사이일수록 돈을 빌리는 일을 삼가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은숙아, 영우 아빠가 쓰러지셨어. 심장에 이상이 있대.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데."
정작 돈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경애가 머뭇거리자 은숙이 입을 열었다.
"알았어. 어느 병원이야? 나 지금 곧 갈께."
은숙은 급히 수술비를 마련해 가지고 병원으로 달려왔다. 경애는 그런 은숙이
고마웠다. 그러나 경애의 정성과는 아랑곳없이 경애의 남편은 죽었다.
장례를 다 치른 뒤 경애는 은숙을 찾아갔다.
"은숙아, 고맙다. 네가 돈까지 빌려줬는데, 그만 그런 보람도 없이 그인 가고 말았어.
빌린 돈은 내가 꼭 갚을께."
"갚지 않아도 돼. 난 네가 돈을 빌려 달라고 한 것만 해도 고마워. 경애야, 실은
나도 영우 아빠를 사랑했어. 이제 영우 아빠가 세상을 떠났으니 우리 사이에 굳이
숨길 일도 아닌 것 같아. 네가 여고생 때부터 영우 아빠를 사랑하는걸 보고 난 그만
단념하고 말았어."
경애는 놀라 잠시 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왜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말했다간 너랑 나랑 싸움 나게?"
경애는 활짝 웃는 은숙의 손을 덥석 잡았다. 은숙이 지금껏 왜 독신을 고집하고
살아왔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자 그만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품위 있는 죽음
그녀는 쉰 다섯 되던 해에 목 왼쪽 임파선에 암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다. 남편과
상의한 끝에 그녀는 곧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불행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수술은 받은 지 일 년도 채 안 돼 이번에는
오른쪽 배에 암이 전이되었다. 암세포가 너무나 넓게 퍼져 있어 의사가 개복을 했다가
그대로 덮어 버렸다.
"앞으로 석 달을 더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오."
의사는 그녀에게 희망을 주지 않았다. 막막했다. 스스로 고난을 참고 견디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그녀였으나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먼저 억울한 생각이 들어 견딜 수가 없었다. 내 죽고 나면 남편과 자식들이 차차
자기를 잊게 될 것이란 생각에 분한 마음도 일었다. 어떻게 하든 하루라도 더 살고
싶었다.
대부분의 암 환자들이 다들 그러한 듯 그녀도 막막한 채로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
방사선과 약물 치료를 병행하는 가운데 머리카락은 빗을 갖다 대기만 해도 한 웅큼씩
빠져나갔다. 눈썹도 성글어져 얼굴을 곧 나환자의 몰골을 닮아 갔으며, 차차 신경마저
둔해져 걸음을 걷기가 불편해졌다. 그래도 그녀는 안성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에 있는
병원까지 일주일에 다섯 차례씩 오고갔다.
그런데 의사가 선고한 시한부 기간이 석 달을 넘기고 치료를 받기 시작한 지 여덟
달쯤 된 날이었다. 그녀는 그날도 치료를 받으러 가기 위해 서울 가는 버스에 발을
올려놓았다. 물론 머리카락이 다 빠져 가발을 쓴 채였다.
그런데 손으로 한쪽 다리를 들어 버스에 올려놓고, 다시 다른 쪽 다리를 들어올리는
순간, 머리에서 가발이 툭 떨어졌다. 동시에 그녀의 흉한 맨머리가 그대로 들어났다.
그녀는 얼른 가발을 주우려고 했으나 주울 수가 없었다.
"할머니, 빨리 안 타고 뭐하는 거예요? 에이, 참, 재수없게스리."
젊은 차장이 도와주기는커녕 짜증부터 부렸다.
차안에 탄 사람들이 모두 킥킥거렸다.
그녀는 자신이 너무나 비참하고 모멸스러웠다. 살아 있다는 것이 이렇게 저열한
것이라면 차라리 죽고 싶었다. 당장 흔적도 없이 잦아들고 싶었다.
그 길로 그녀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길 밖으로 굴러 떨어진 가발을 주워 들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와 병원에 발길을 끊었다. 어차피 사람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내일 당장 죽더라도 오늘 하루만이라도 인간답게 품위를 지키며 살고
싶었다.
그녀는 모든 생활을 병들기 전처럼 회복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그녀 스스로 희망을 만드는 일이었다. 의사는 그녀가 얼마 못 가 앉은뱅이가
되고 마침내 심한 고통 속에 숨질 것이라고 했으나, 그녀는 지팡이를 짚고 기를 쓰고
일어나 울안의 남새밭을 가꾸었고, 책상에 꼿꼿이 앉아 책을 읽었다. 그것이야말로
옳은 투병이며 주어진 목숨에 대한 독실한 태도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뒤
이태가 지났다. 그녀는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누가 암이 어찌 되었느냐고 물으면
그녀는 간단히 이렇게 대답한다.
"모릅니다. 병원에 안 가니까 알 수가 없지요. 다리가 좀 저린 것 말고는 별로 자각
증세가 없습니다.
어떤 탄원서
존경하옵는 검사님, 저는 지난달 20일 세상을 떠난 허영수의 어미 되는 사람입니다.
이런 글을 드려야 할 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이 글을
드립니다. 저는 태룡이를 용서하고 싶습니다. 검사님께서 태룡이를 용서해 주시면 영수
대신 태룡이를 아들로 맞이하고 싶습니다.
비록 하나밖에 없는 제 아들을 숨지게 한 태룡이의 죄는 밉지만, 그렇다고 그
어린것을 교도소로 보낼 수는 없습니다. 태룡이를 용서해 주십시오. 친자식을 잃은
제가 아들 친구마저 어두운 골방에서 괴로운 나날을 보내게 할 수는 없습니다.
친자식을 잃은 대신 태룡이를 양아들로 맞게 해 주십시오.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하는 제 자신이 정말 제정신인지, 그게 정말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것인지 정작 제 자신도 잘 알 수 없어 그런 생각을 떨쳐 버리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어쩌면 제 자신을 속이는 일인 것 같아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강하게
고개를 흔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한번 그런 생각을 하자 그 생각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태룡이를 미워하던 마음이 없어지고 태룡이를 가엾게 여기는
마음만이 일었습니다.
태룡이는 엄마가 없는 아이입니다. 엄마도 없는 아이가 친구를 죽인 입장이 되어
지금 재판을 받고 있으니 그 마음이 오죽하겠습니다. 태룡이도 아마 죽고 싶은 심정일
것입니다. 검사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태룡이는 그날 영수를 일부러 숨지게 한 것이
아닙니다. 그 결과는 엄청난 것이지만, 그 원인은 단순한 사고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날 영수와 태룡이는 교회 앞마당에서 장난기가 발동해 서로 장난을 치다가, 싸움이
된 것뿐입니다. 태룡인들 장난 끝에 영수가 콘크리트 바닥에 넘어져 숨질 줄이야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둘은 아주 친한 친구 사이였습니다. 중학교를 같이 다닌 둘은 또 고등학교도 같은
학교를 다니게 돼 아주 형제 같았습니다. 둘은 늘 같이 붙어 다녔는데, 주로 태룡이가
우리 집에 자주 오는 편이었습니다. 태룡이는 인사성도 밝고 영수보다 의젓했습니다.
지금도 교회에 다녀오겠다고 꾸벅 인사하고 나가던 두 녀석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둘이 장난을 치다가 한 사람이 죽을 줄이야 그때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저는 영수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태룡이를 원망하는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며칠 전에 아들 앨범을 뒤적이다가
영수와 태룡이가 다정한 모습으로 찍은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둘이 어찌나 다정해
보이던지 저는 태룡이만이라도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수는 이제 제 곁으로 돌아올 수가 없습니다. 시신을 대전 화장터로 보낼 때만
해도 금방이라도 영수가 눈을 뜨고 '엄마!'하고 제 품안으로 파고들 것 같았습니다만,
이제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면서 영수가 이제 제 곁에 있지
않다는 것이 더욱 확실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검사님, 영수의 죽음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잘못이 있다면 어미인 저의
잘못만 있을 뿐입니다. 모든 걸 제 잘못으로 알겠습니다. 그러하오니 태룡이를 저의
품으로 돌려주십시오. 태룡이를 그대로 감옥에서 썩게 할 수 는 없습니다. 아들을 먼저
보낸 이 어미의 마음을 헤아려 주십시오. 검사님께서 태룡이를 용서해 주시면
태룡이를 아들 삼아 세 딸과 함께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지금 태룡이를 받아들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태룡이는 평생 고통스러운 일생을
살게 될 게 뻔한 일입니다.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는 제 딸들도 다들 제
뜻에 따른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탄원서를 검사님께 보내고 나서 아이들을 데리고 8 년 전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남편의 묘에 다녀올까 합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 따라 죽고
싶었던 마음을 아들이 다 잡아 주었는데, 이제 제 아들이 죽어 흔들리는 마음을
남편을 통해 다잡고 싶습니다. 검사님, 부디 아들 잃은 이 어미의 부탁을
들어주십시오.
나도 돈을 줍고 싶다
한 사내가 우연히 퇴근길에 돈을 주웠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역 입구 계단을
내려가다가 뭔가 발에 툭 채이는 것이 있어 보았더니 지갑이었다. 그는 얼른 지갑을
주워 양복 상의 안주머니 속에 넣고 재빨리 계단을 내려갔다. 갑자기 남의 물건이라도
훔친 것 같아 아까와는 달리 계단을 거의 뛰어내려가다시피 했다.
그러나 막상 표를 끊고 개표구를 빠져나가려고 하자 얼른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지갑을 잃어버린 사람이 지금쯤 두리번거리며 지갑을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다시 지갑을 주웠던 장소로 가 보았다. 급히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만 있을
뿐 아무도 지갑을 찾는 사람은 없었다. 혹시 좀더 기다려 보면 지갑 주인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싶어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어 보았으나 누구 하나 지갑을
찾으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제서야 그는 은근히 마음을 놓았다. 잃어버린 물건이란
어차피 누가 주워 가도 주워 갈 것인데 내가 주워 가면 어떠랴 하는 생각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는 '만남의 장소'라고 씌어진 나무 의자에 앉아 슬며시 지갑을 꺼내 보았다.
지갑은 까만 고급 가죽 지갑으로, 그 속엔 10 만원 짜리 자기앞 수표 두 장과 만원
짜리 지폐 몇 장이 들어 있었다. 지갑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명함이나
주민등록증, 운전 면허증 따위는 없고 그저 돈만 달랑 들어 있었다.
'이건 정말 행운이야. 행운의 여신이 나를 도와준 거야. '
그는 속으로 가만히 소리쳤다. 어젯밤 돼지꿈도 꾸지 않았는데 이게 웬 횡재냐
싶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데 내가 이걸 마다할 리가 없지. 그래도 난 지갑을
돌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는 스스로 그 지갑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곧장 집으로 퇴근하려던 생각을 바꾸어 친구한테 전화를 걸었다.
"야, 기태야, 퇴근 안하냐? 내가 술 한잔 살 테니까 만나자. 내가 그쪽으로 갈까?
북창동? 그래, 그래, 북창동 입구에 있는 커피 숍에서 일단 만나자."
기태는 커피 숍에 먼저 나와 있었다. '구두쇠 같은 네가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
술을 다 산다고 그러냐'하는 표정으로 기태가 빤히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그런
기태를 창동 갈비 집으로 데리고 갔다.
"보라구. 이 돈 이거, 조금 전에 길에서 주운 거야."
술이 몇 순배 돌자 그는 주운 돈 자랑부터 먼저 했다.
"오늘은 정말 재수가 좋았어. 가끔 가다가 이런 횡재수도 있어야 살맛이 나는 거야.
돈이란 사람이 직접 찾아 나서서는 안 되고, 이렇게 제발로 사람을 찾아와야 되는
거야. 이거, 주운 돈으로 먹으니까 술맛이 아주 좋군 그래."
기태가 멍하니 부러운 듯이 쳐다보다 그는 더욱 신이 나서 떠들었다.
"내가 국민학교 4 학년 때쯤이었을 거야. 우리 동네 다리 위에서 돈을 한번 주운
적이 있어. 지금 돈으로 치면 한 몇 십만 원쯤은 될 거야. 난 학교에서 배운 그대로
가까운 파출소에 갔다 주면 주인한테 돌려줄 수 있다고 배웠거든. 그래서 파출소
순경한테 돈을 주었어. 순경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어디서 주웠느냐, 이름은 뭐냐,
어느 학교 몇 학년 몇 반이냐 하고 일일이 묻고 적더군. 그래서 난 기다렸지. 이런
착한 학생이 있다고 학교로 연락이 와서 틀림없이 선생님께 칭찬을 받을 줄 알고
말이야. 그런데 그러고는 그만이야.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 소식도 없는 거야. 난 다시
파출소를 찾아가서 그 돈을 어떻게 했느냐, 정말 주인을 찾아 주었느냐 하고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어. 그렇지만 난 순경들이 그 돈을 어떻게 했는지는 늘
궁금했어. 차차 나이가 들고 세상 돌아가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 난 순경들이 그 돈을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지만 말이야. 그 돈을 그냥 내가
갖는 건데, 지금도 그때 일만 생각하면 후회가 돼. 아마 순경들은 이게 웬 떡이냐 싶어
그 돈으로 자기들끼리 술 먹고 치웠을 거야. 아예 처음부터 주인을 찾아 돌려줄
생각조차 안했을 거야. 그래서 내가 지금 그때 일을 보상받기 위해 이렇게 또 돈을
주웠는지 몰라. 나로서는 정말 기분 좋은 일이야.
그는 안주 먹는 일에는 크게 신경도 쓰지 않고 술잔을 홀짝거리며 내내 살맛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음날, 기태는 자기도 한번 돈을 줍는 기쁨을 맛보고 싶었다. 마침 토요일이어서
일찍 퇴근하게 된 그는 돈을 줍기 위해 이리저리 거리를 쏘다녔다. 특히 돈이 떨어져
있음직한 버스 정류장이나 택시 정류장, 지하철 매표구 입구 등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밤늦게까지 돌아다녀도 길 위에 떨어진 돈이라고는 없었다. 다음날
일요일에도 가족들과의 나들이 약속까지 취소하고 거리를 쏘다녀 보았으나 그
어디에도 10원 짜리 동전 하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는 그런 자신이 우스웠다. 더 이상 우스워지기 전에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왕 이렇게 나선 김에 돈을 줍는 기분만이라도 한번 맛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 호주머니 속에 든 만원 짜리 한 장을 꺼내 길에 던져 놓고
남의 돈을 줍는 척하고 집어 보았다. 그러나 별로 신통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몇 번이나 그 짓을 되풀이해 보았다. 역시 신통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자칫
잘못하다가는 다른 사람이 먼저 주워가 버릴까 염려되었다.
염려 끝에 그는 한강 고수부지로 나갔다. 마침 저녁때라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팔짱을 끼고 데이트를 하는 남녀 몇 명과 무심히 흘러가는 유람선만 눈에 띄었다.
그는 그곳에서도 자기 돈을 떨어뜨려 놓고 줍는 일을 되풀이해 보았다. 혹시 무슨
특별한 기분이라도 드나 했으나 역시 별다른 기분이 들지 않았다. 도무지 싱겁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번이 마지막이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해보고 그만 두자'
하는 생각을 하고 다시 돈을 떨어뜨렸다.
그런데 그때 강한 바람이 획 불어왔다. 떨어뜨린 돈이 강물 쪽으로 급히 굴러갔다.
그는 얼른 돈을 주우려고 달려갔다. 그러나 그때 다시 한번 획 강한 바람이 불어 돈이
그만 강물 속으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군밤 장수를 찾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날 밤이었다. 서울 하월곡동 어두운 골목길에 허름한 신사복
차림을 한 한 노인이 쓰러져 있었다. 마침 성탄 전야인데다가 날씨마저 추워 지나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노인은 쓰러진 채 도움을 구하려고 필사적이었다. 그러나
노인은 이미 탈진 상태에 빠져 신음 소리만 내었을 뿐 손가락 하나 까딱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다가 행인들이 한두 명 지나갔으나 그들은 노인을 못 본 척했다. 무심코
길바닥에 쓰러진 노인을 보고는 달아나듯 그 자리를 피해 갈 뿐이었다.
이미 시간은 자정을 넘어 있었다. 노인은 더욱 위급한 상태가 되었다. 노인은 이대로
길에서 객사하는구나 하는 절망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때 한 군밤 장수 사내가 리어카를 끌고 가다가 노인 앞에 멈춰 섰다.
"할아버지, 무슨 일입니까?"
노인은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해도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사내는 급히 노인을 잡아 일으켰다. 노인은 거의 사색이 다 돼 있었다. 사내는
리어카를 그대로 내버려둔 채로 노인을 들쳐업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휴,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정신을 차리실
겁니다. 워낙 당뇨가 심하시군요."
응급 처치를 하고 나온 의사가 정말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노인은 의사의
말대로 조금 있자 사람을 알아볼 정도로 기력을 회복했다.
"할아버지 전화번호를 말씀해 주세요. 제가 집에 연락해 드리겠어요."
사내는 노인의 팔다리를 주물러 주면서 연락처를 알아내 가족들에게 전화를
해주었다.
"여보게, 고맙네, 고마워. 어디 사는 누구인가?"
가족에게 연락을 하고 오자 노인이 사내의 손을 잡고 입을 열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는데 그런 말씀은 마시고, 속히 안정을 취하시도록
하십시오."
"집이 어딘가? 좀 가르쳐 주게."
"그런 건 모르셔도 괜찮습니다. 빨리 나으실 생각이나 하십시오."
"아니야. 집이 어딘지 꼭 좀 가르쳐 주게. 그래야 내가 나중에 인사라도 할 수 있지
않은가?"
"아닙니다. 전 그저 군밤 장수일 뿐입니다. 몸이 불편하신데 말씀 자꾸 하지 마시고
안정을 취하십시오."
노인이 몇 번이나 집을 가르쳐 달라고 했으나 사내는 자신이 군밤 장수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리고 노인의 가족들이 병원으로 달려왔을 때에는 이미 자리에 없었다.
노인은 건강이 회복된 후 군밤 장수를 찾아 나섰다. 하월곡동 시장 일대는 물론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골목이나 지하도 입구를 샅샅이 찾아다녔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다녀도 군밤 장수를 찾을 수가 없었다.
노인은 찾다 못해 일간 신문에다 광고를 냈다.
"하월곡동 군밤 장수만 보시오. 요즘 보기 드문 한 군밤 장수를 찾습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 날 밤, 자정 넘은 시각에 하월곡동 골목에서 쓰러진 노인을 구해 준
고마운 군밤 장수에게 꼭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신문에 광고가 나가도 군밤 장수한테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날 밤 노인을
돕느라 골목에 그대로 두었다가 리어카를 잃어버린 사내가 다시 리어카를 장만하기
위해 막노동을 하고 있는 줄을 그 노인이 알 리 없었다.
노다지의 주인
신씨는 조상 대대로 물려 오던 밭뙈기를 팔아 금광 한 구덩이를 산 일이
후회되었다. 광산에서는 중요한 몇 몇 광구 외에 나머지 광구는 '분광'이라고 해서 몇
구덩이씩 나누어 파는데, 다른 분광에서 금이 나오는 것을 보고 신씨는 밭을 팔아
분광 하나를 샀다. 신씨는 노다지를 캐겠다는 다소 허황된 꿈이었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일을 했다. 집에서 자는 일보다 금광에서 자는 일이 더 많았다. 남들처럼
힘든 일을 한다고 술에 의지하는 일도 드물었다.
"신씨는 노다지 캘 거야. 틀림없어. 두고 보라구.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신씨가
안 캐고 누가 캐겠어."
사람들은 부지런히 일하는 신씨를 보고 다들 그렇게 말했다. 그의 성실성을 봐서
군소리 없이 돈을 빌려주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하늘은 무심했다. 신씨는 3 년째 구덩이를 파고 들어갔으나 금줄이 박힌
광석 하나 나오지 않았다. 이웃한 다른 구덩이에서는 가끔 노다지를 발견했다는 말이
들려 왔으나 신씨한테만은 그런 행운이 따라 주지 않았다.
신씨는 낙망한 나머지 몸과 마음이 차차 지쳐 갔다. 술을 마시지 않던 신씨가 차츰
술청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이제는 노다지를 캐는 일보다 이리저리 빌린 돈을 갚는
일이 더 급선무였다. 신씨는 고민이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걸 팔아 치우고 당장
빚잔치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아냐, 난 할 수 있어! 해낼 수 있어!'
신씨는 딱 한 해만 더 열심히 해 보기로 하고 부지런히 구덩이를 파 나갔다. 그러나
스스로 약속한 한 해는 또 아무런 소득 없이 지나갔다. 신씨는 나머지 남아 있던
농토를 다 팔아 우선 급한 빚을 갚았다. 그리고 또 한 해를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그
한해도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신씨는 그제서야 자신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 이상 금광에 매달리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다.
신씨는 즉각 금광을 팔려고 내놓았다. 금광은 내놓자마자 당장 임자가 나섰다.
신씨로서는 금도 나오지 않은 금광을 사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그런데 신씨가 금광을 판 뒤 한 일 주일쯤 되는 날이었다. 주막에 나가
술을 들고 있는데 김씨가 노다지를 캤다는 말이 들려 왔다. 신씨는 놀라 술사발을
팽개치고 김씨에게 달려갔다.
"아니 내가 5 년이나 파도 안 나오던 구덩이에서 금이 나왔다니, 그게 정말이오?"
"정말입니다. 이걸 한번 보십시오!"
김씨는 흥분한 목소리로 주먹만한 금광석 하나를 신씨에게 보여주었다.
"일을 시작한 지 이틀만에 한 1 미터쯤 파고 들어가자 이렇게 노다지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신씨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멍하니 자신이 피땀 흘려 파던
구덩이만 쳐다보았다. 1 미터만 더 파면 될 것을 그것을 참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금광을 판 자신이 너무나 어리석게 느껴졌다.
아파트 동 대표 회의
서울 강남 H 아파트에서 임시 동 대표 회의가 열렸다. 그날 의제는 주차장 확보에
관한 문제였다. 갈수록 차량 대수가 늘어나 지하 주차장이 없는 H 아파트로서는 이제
주차 문제가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었다.
"오늘 편히 쉬어야 할 일요일날 우리가 굳이 모여 이렇게 회의를 갖게 된 것은
여러분들도 다 알다시피 우리 아파트의 주차 문제에 대한 그 심각성 때문입니다."
101 동 대표이자 동 대표의 회장인 김씨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심각한 목소리로
먼저 입을 떼었다.
"차량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데도 아파트들이 충분한 주차 면적을 확보하지 않고
있어서 곳곳에서 주차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요즘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요즘 새로 짓는 아파트들은 법적으로 지하 주차장을 확보하도록 되어
있어서 그래도 괜찮지만, 우리처럼 오래된 아파트들은 갈수록 주차 전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어서, 우선 각 동 대표들의 의견을 먼저 들어 볼 생각으로 이렇게
임시회의를 소집하게 되었습니다. 각자 좋은 의견이 있으시면 기탄 없이 말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회장의 의제 설명이 있자 어느 자리에서건 먼저 나서기를 좋아하는 201 동 대표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먼저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정말 적절한 시기에 이 회의가 소집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제 생각엔 104 동과 105 동 뒤편에 있는 자연 녹지를 주차장으로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거길 주차장으로 이용하면 차량 60 대는 너끈히 댈 수가
있습니다."
201 동 대표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이었다. 104 동 대표가 벌컥 화를 내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그렇지 않아도 우리 동은 도로변과 인접해 있어서
밤에 차소리 때문에 안면 방해를 받고 있는 실정인데, 주차장까지 들어선다면 그
소음과 매연은 어떡합니까? 전 반대합니다. 자기들 편하자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104 동 대표는 104 동 주민들을 위해 결사 반대를 하고 나섰다. 그러자 201 동
대표가 입을 열었다.
"정 그렇다면, 단지 내 어린이 놀이터 옆에 있는 녹지를 전부 없애 버리는 건
어떻습니까? 그렇게 하면 차를 90 대는 더 주차할 수 있어요. 난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되는데, 다른 분들 생각은 어떻습니까? 문제는 어떻게 하든 이 주차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우리가 도달해 있다는 것입니다."
201 동 대표의 그 발언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곳에다가 주차 시설을 할 수 있게 되기를 오래 전부터 바라 왔던 터였으므로
아무도 반대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임시 동 대표 회의에서 결의된 사항은 즉각
시행되었다. 각동 주민들에게 설문지를 돌려 형식적으로나마 주민 의사를 수렴한 후
보름도 채 되지 않아서 어린이 놀이터 옆에 있던 녹지를 없애 버렸다. 사철나무와
단풍나무와 백목련과 쥐똥나무가 다 뽑혀 나가고, 백목련과 넝쿨 장미가 피던 자리엔
사고 방지 턱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아 H 아파트는 다시
예전처럼 심한 주차 난을 겪게 되었다. 그것은 그 동안 아파트 주민들의 보유 차량
대수가 더 많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H 아파트에서는 다시 임시 동 대표 회의가
열렸다. 회장인 김씨가 주차장 확보 문제에 관한 안건을 내어놓고 좋은 의견이 있으면
말해 보라고 하자 이번에도 201 동 대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 다른 방법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주차장이 없다고 차를 없애 버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이것저것 생각할 필요 없이 어린이 놀이터를 없애도록 합시다.
물론 어린이를 두고 있는 집에서는 반대하시겠지만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201 동 대표의 발언이 끝나자 동 대표들은 당장 두 패로 나뉘어졌다. 한 패는
어린이 놀이터를 없애서라도 주차 난을 해결하자는 것이었고, 다른 한 패는 차량
대수를 줄였으면 줄였지 어린이 놀이터만은 없애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우리 아파트에는 국민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많아요. 놀이터를 없애 버리면
도대체 그런 아이들은 어디에 가서 놀란 말입니까? 아이들이 없거나 다 큰애들만 있는
집에서는 그래도 괜찮겠지만, 한창 아이들을 키우는 집에선 그게 그렇지가 않아요."
한쪽이 이런 주장을 하면 다른 한쪽이 또 다른 주장을 했다.
"요즘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이 몇 명이나 된다고 그러십니까? 요즘은
학교에 갔다 오자마자 과외를 한다. 텔레비전을 본다 해서 정작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은 몇 명되지 않아요. 우리가 그런 몇 명의 아이들은 위해서 그런 공간을
그대로 둔다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서로의 의견은 팽팽했다. 어느 한쪽에서도 양보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201 동
대표의 주장은 더욱 강력해졌다.
"우리 집에도 아이들을 둘이나 키우고 있어요. 그렇지만 저는 놀이터를 없애는 한이
있더라도 주차장 확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는 개인적인 이해 득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아파트 전체 손익에 관련된 문제로, 잘못하다간 집 값마저
떨어질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따지고 보면 아까 어느 분의 말씀처럼 아이들이 실제로
공부하느라고 노는 시간도 별로 없지만, 논다 하더라도 놀이터보다는 텔레비전과
컴퓨터와 비디오를 더 좋아합니다. 그리고 꼭 밖에서 놀고 싶으면 학교 운동장을
이용하면 됩니다. 꼭 아파트 단지 안에서 놀 필요가 없어요. 여기는 시골이 아니라
도시입니다. 도시 아이들은 도시 아이들답게 자랄 수밖에 없어요."
회장은 골치가 아팠다. 어느 쪽도 편들 수가 없어서 표결에 부치는 수밖에 없었다.
"저로서는 하는 수가 없군요. 회칙에 따라 다수결로 정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표결 결과는 어린이 놀이터를 없애자는 쪽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젊은
층보다 중년층이 더 많이 살아 어린이를 키우는 집이 많지 않았던 탓도 있었다. H
아파트엔 곧 어린이 놀이터가 없어졌다. 미끄럼틀과 회전 그네가 있던 곳에는 대형
승용차들이 줄줄이 들어섰다. 그후 몇 달이 지나 어느 일요일이었다. 210 동 대표 집의
아들이 아파트 앞 골목길에서 공놀이를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놓친 공을 주우려고 큰길 쪽으로 뛰어가다가 그만 차를 피하지 못한
탓이었다. 201동 대표는 그제서야 어린이 놀이터를 없애자고 주장한 일이 크게
후회되었다. 그러나 그 후회는 이미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사람은 인간입니다
국민학교 1 학년 수업 시간. 교단에 선 지 10 년만에 다시 1 학년 담임을 맡게 된
최규동 씨는 마치 대학을 갓 졸업하고 처음으로 교단에 선 듯한 느낌이었다.
"자, 오늘 첫 시간엔 '슬기로운 생활'을 꺼내세요."
'슬기로운 생활'은 선수와 자연을 통합한 교과서로, 오늘은 조류와 짐승의 차이점에
대해서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여러분, 모든 동물은 누구한테서 태어납니까?"
최 교수는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눈망울을 쳐다보며 가장 쉬운 질문부터 던져
보았다.
"엄마한테서요."
아이들이 모두 입을 모아 큰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면 새들은 어떻게 태어납니까?"
"알에서요."
"그러면 돼지는 어떻게 태어나지요?"
"제 모습 그대로요."
최 교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최 교사로서는 예상할 수 없었던
대답이었다. 제 모습 그대로 태어난다니! 1학년 아이의 대답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이
얼마나 명쾌한 답인가.
"새들은 꼬리 깃이 있는 대신 동물들은 꼬리가 있어요. 그리고 새들은 날 수 있는데,
동물은 날 수가 없죠, 또 새들은 부리가 있고 발은 한 쌍인데, 동물들은 부리가 없고
다리가 두쌍이에요."
최 교사는 조류와 짐승의 특징을 설명을 해주다가 아이들에게 또 물었다.
"그러면 사람은 어떻게 태어날까요?
"제 모습 그대로 태어나요."
"네 맞아요. 그러면 사람은 무엇입니까?"
최 교사는 아이들이 "동물입니다." 하고 대답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아이들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사람은 인간이에요."
최 교사는 다시 한번 뒤통수라도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한 기분이 되었다.
"왜 그러지요?"
최 교사는 다시 물었다.
"동물은 꼬리가 있는데, 선생님은 꼬리가 없잖아요?"
아이들은 다들 선생님이 그것도 모르느냐는 표정이었다.
최 교사는 잠시 말을 잃고 있다가 속으로 말했다.
'그래 맞아. 사람은 짐승이 아니고 말고. 인간이어야 하고 말고. 고맙구나 애들아,
너희들이 나를 깨우치는구나. 우리는 정말 인간답게 생각하고, 인간답게 대접받고,
인간답게 살아가야 한다.'
송이 할머니의 죽음
송이는 여고생이 되자 자기만의 방을 하나 갖고 싶었다. 지금까지는 남동생 훈이와
한방을 써 왔으나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엄마, 내 방 하나 마련해 주세요."
송이는 틈만 나면 엄마를 졸랐다.
"나도 다 컸단 말이에요. 여동생이라면 또 모를까, 남동생하고 같은 방을 쓰는
애들은 아무도 없어요."
"그래, 네 말이 맞긴 맞다. 이제 너도 다 컸는데, 남동생하고 같은 방을 쓸 수는
없지. 그렇지만 송이야, 지금 당장 어떡하니? 좀 기다려 봐. 이건 돈이 많이 드는
일이야."
송이 엄마는 송이 말대로 방을 하나 마련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서울 강남 땅에서
방 하나가 더 있는 40 평짜리 아파트로 이사하려면 적어도 수천만 원 돈이 더
필요해서 당장 어떻게 해줄 수가 없었다 송이는 참고 기다려 보라는 엄마의 말을 믿고
엄마가 어떤 조치를 취해 줄 것을 고대했다. 그러나 한 학기가 지나도록 엄마는
아무런 조치를 취해 주지 않았다. 송이는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친구들은 다들 자기 방이 있어요. 우리 이 집 팔고 분당으로 이사가요.
분당엔 집 값이 강남보다 싸잖아요? 나 분당에서 학교 다녀도 돼요."
"아니야, 살아도 강남에서 살아야지, 경기도 땅엔 왜 가니? 좀더 기다려 봐."
"그 동안 많이 기다렸잖아요?"
"글쎄, 좀더 기다려 보라니까!"
송이는 자기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엄마가 섭섭했으나 하는 수 없었다.
그 뒤 새학기가 시작된 어느 가을날이었다. 독서실에서 밤늦게 공부하고 돌아온
송이는 다시 엄마한테 방을 마련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송이 엄마가 획 신경질을 내면서 말했다.
"할머니 돌아가실 때까지 기다려.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그 방을 네가 쓰면 되잖아?"
다음날 밤이었다. 일흔이 넘은 송이 할머니가 그만 극약을 먹고 돌아가셨다. 송이
할머니가 송이 엄마의 말을 들은 것이다.
썩지 않는 고무신
그날 이후 나는 지금까지 땅 속에 파묻혀 있다. 낮이면 맑은 햇살, 시원한 바람 한
줄기 온몸에 맞고 싶고, 밤이면 따스한 별빛 한번 바라보고 싶어도 컴컴하고 습기찬
이곳 흙 속에 파묻혀 있다. 이제 나와 함께 파묻힌 것들은 모두 다 썩어 버렸다. 내가
사랑하던 소년의 노트도, 일기장도, 책가방도, 어머니한테 쓴 편지도 이제는 모두 썩어
흔적조차 없어졌다. 그러나 아직 나는 썩지 않고 그대로 있다. 그것은 내가 아직 그
소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그 소년에 대한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았다.
'80 년 5월 어느 봄날이었다. 나는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소년의 발에 신겨
있었다. 소년은 수업을 일찍 끝내고 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소년은
논둑 옆 개울가를 걷고 있었고, 마을에는 손에 총을 든 군인들이 진주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으나 이 땅에 또다시 악독한 군사 독재 정권이 들어섰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야, 우리 개구리 잡으면서 놀다 갈까?"
소년의 친구가 소년에게 말했다.
"개구리가 불쌍하다. 우리 종이배를 만들어 띄우자."
소년들은 개울가에 앉아 종이배를 만들었다. 나의 소년은 허드레 연습장 종이로
만든 종이배를 띄웠고, 다른 소년들은 영어나 수학 시험지로 만든 종이배를 띄웠다.
소년들은 우르르 종이배를 따라갔다. 종이배는 온몸에 햇살을 가득 싣고 기우뚱기우뚱
거리며 흘러갔다. 나는 신이 났다. 나도 종이배를 따라 푸른 바다로 흘러가고 싶었다.
총소리가 난 것은 그때였다. 느닷없이 소년들의 웃음소리가 총소리에 파묻혔다.
소년들은 냅다 뛰었다. 나의 소년도 얼른 논둑길로 뛰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내가
그의 발에서 벗겨졌다. 순간, 소년이 나를 뒤돌아보았다. 그러더니 즉시 나에게 향해
달려왔다.
"돌아가!"
나는 속으로 소리쳤다.
"잘못하면 죽어! 돌아가란 말이야!"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소년은 나의 고함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계속 나를 향해 달려왔다. 아, 총알 하나가 소년의 가슴을 뚫고 지나간 것은
그때였다. 개울가에 벗겨진 나를 막 주우려는 순간, 소년은 "아!"하는 짧은 비명
소리와 함께 푹 거꾸러졌다.
소년의 어머니는 개울가에 앉아 나를 안고 통곡했다. 군인들이 마을을 떠난 뒤, 나는
소년의 책가방과 함께 개울가에 파묻혔다.
세월이 흘렀다. 이제 소년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나만은 아직도
소년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소년이 이 땅에 다시 살아날 것을 믿는다. 그래서 나는
썩지 않았다. 기다림은 우리를 썩지 않게 만든다.
작은 기적
고아원에 양식이 떨어졌다. 굶은 지 벌써 사흘째인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이었다. 원장은 아이들을 굶기지 않기 위해 백방으로 쫓아 다녀 보았으나
어디에서든 쌀 한 톨 구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전쟁 직후라 할지라도 이렇게
몰인정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에 자꾸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원장은 창문을 활짝
열었다. 아이들이 배가 고파 우물가에서 물을 퍼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떤
아이들은 허기진 배를 안고 병든 병아리처럼 오종종하게 양지쪽 담벼락에 기대
있었다.
'아, 저 아이들을 저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어.'
원장은 마음이 탔다. 그 누구라도 붙잡고 매달리고 싶었다. 지금까지 한번도
찾아보지 않은 하느님을 향해, "오 하느님, 제발 좀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는 말이
입에서 절로 나왔다. 그러자 원장은 갑자기 기도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기도해 본 적이 없었으나 그는 얼른 다락방으로 올라가 무릎을
꿇었다.
"하느님, 저는 기도할 줄을 모릅니다. 저의 기도가 당신의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제발 좀 들어주십시오. 지금 우리 아이들이 배가 고파 울고 있습니다. 제가 돈이
있어서 쌀을 살 수만 있다면 그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하느님도 잘 아시겠지만
제 형편이 그렇지 못합니다. 제겐 지금 돈 한푼 없습니다. 이젠 아무도 도와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 이번엔 제발 하느님께서 먹을 것을 좀 보내 주십시오."
그는 마치 옆에 있는 사람의 팔을 붙들고 간절히 부탁하는 사람 같았다. 그는
기도를 다 마치고 마당으로 나가 허기에 지친 아이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 주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곧 먹을 것이 생길게다. 아무도 우리를 이대로 굶어 죽도록
하지는 않을 거다." 하고 다독다독 등을 두드리며 위로해 주었다.
그때 트럭 한 대가 고아원 대문 앞에 와서 멎었다. 젊은 남자 두 명이 급히
트럭에서 내리면서 원장을 찾았다.
"무슨 일입니까? 제가 원장입니다만."
원장은 갑자기 무슨 일인가 하고 대문을 열었다.
"저희들은 제빵회사 직원들입니다. 오늘 우리 공장에서 구워 낸 빵이 시중에
상품으로 내놓기에는 좀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빵을 고아원에 기증하려고
싣고 왔습니다. 배불리 먹는 데에는 아무 부족함이 없습니다. 자, 받아 주십시오."
그들은 말을 마치자마자 트럭 하나 가득 싣고 온 빵을 내리기 시작했다.
금전 두 닢
우애 좋기로 소문나 형제가 돈을 벌기 위하여 고향을 떠났다. 병든 어머니마저 약
한 첩 써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형이 먼저 아우에게 말했다.
"우리는 이제 천해의 고아가 되었다. 부모님 안 계신 고향에 사느니 차라리 고향을
떠나자. 우리가 이대로 고향에 산다면 나중엔 자식들이 아파도 약 한 첩 제대로 먹일
수 없을 게다. 서울로 가자. 서울에 가서 무슨 짓을 하든 돈을 벌러 사람답게
살아보자."
아우는 형의 말을 그대로 따랐다. 아우도 어머니 약 한 첩 지어 드리지 못한 가난이
원망스러웠다. 형제는 탈상을 하자마자 길을 떠났다. 마침 봄날이어서 괴나리봇짐을
걸러 메고 길을 떠나가기는 안성맞춤이었다. 형제는 부지런히 노력해서 큰 부자가 될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길을 떠난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곧 노잣돈이 떨어졌다. 뱃속에 곡기를
채우지 못한 지 이틀이나 된 몸으로 문경 새재를 넘었다.
보릿고개인데다 봄가뭄에 인심이 흉흉해서 어디 가서 밤 한 그릇 얻어먹기가
힘들었다. 몇 켤레 봇짐에 매달고 온 짚신마저도 다 헤어져 이젠 길을 걷기조차
어려웠다.
"형님, 배가 고픕니다."
"나도 고프다. 참고 견디어라. 저기 저 강 건너 마을에 가서 어떻게 밥을 한번 얻어
보자."
"형님 발도 아픕니다."
"어허, 참으래두."
형제는 간신히 강나루에 닿았다. 그런데 배를 기다리다가 나루턱에 황금 동전 두
닢이 떨어져 있는 것을 아우가 주웠다.
"형님, 하늘이 우리를 도우셨는가 봅니다. 정말 사람이 굶어 죽으라는 법은 없군요."
형제는 뛸 듯이 기뻐하다가 서로 한 닢씩 동전을 나누어 가지고 배를 탔다. 배는
물살을 가르며 재빨리 강 한가운데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때 아우가 갑자기 아까
나누어 가졌던 금전을 꺼내 강물 속에다 던져 버렸다.
"너 왜 그래? 갑자기 그게 무슨 짓이야?"
형은 놀라 소리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배가 건너편 나루터에 닿자 형이 아우한테
물었다.
"도대체 네가 왜 그랬는지 알 수가 없구나. 그 연유라도 한번 말해 보아라."
아우가 형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며 말했다.
"금전을 줍기 전까지는 그렇지 않았는데, 금전을 나눠 갖는 순간부터 형이 무척
미워졌습니다. 형이 없었으면 금전 두 닢이 다 내 차지가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
때문이지요. 그래서 차라리 돈을 버리고 형을 미워하는 마음을 없애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돈보다 형님을 미워하지 않는 마음이 더 중요하지요."
(2)
우리 동네 샘물
내가 살던 고향 마을에는 늘 마르지 않는 샘이 하나 있었다. 사시사철 그 어느
때에도 물이 마르지 않아 마을 사람들은 평생 물 걱정을 하며 사는 일이 없었다.
논바닥이 거북 등처럼 쩍쩍 갈라지는 여름 가뭄 때에도 유독 그 샘물에서만은 차고
맑은 물이 퐁퐁 솟아났다. 겨우내 눈이 내리지 않아 몇 십년 만에 겨울 가뭄이
들었다고 난리가 나도 우리 동네 샘물만은 결코 마르는 법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이 샘을 자랑하였으며 또한 사랑하였다. 어른들은 들에 나가 김을 매다가
돌아와서는 꼭 이 샘물에다 손발을 씻었다. 나와 같은 조무래기들도 하루 종일
땡볕에서 뛰어 놀다가 저녁 먹을 때가 되면 그 샘가에 가서 땟국을 씻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보자기에 싼 책 보따리를 등허리에 질끈 동여매고 10리나 되는 읍내
국민학교에서 지쳐 돌아올 때면 나는 으레 이 샘물을 한 바가지 마시고 나서야 다시
힘을 얻곤 했다. 동네 아낙네들은 매일같이 그 샘물을 길어다가 밥을 지었으며, 그
샘가에 와서 빨래를 하는 젊은 아낙네도 있었다. 샘은 바로 마을 사람들의
젖줄이었으며, 마을 사람들 중에 이 샘을 애지중지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물론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내가 청년이 되어 고향 마을을 떠날 때까지 그 샘은 나를 키워 준 또 하나의
어머니였다. 그런데 나는 늘 흘러 넘치는 그 샘물이 아깝다고 생각되었다. 이웃 마을
사람들이 그 샘물을 길어 가는 것조차 아까워 어떤 땐 속이 상할 때가 있었다. 그래서
어떤 때는 그 물을 일부러 몇 바가지씩 떠서 물배를 채워 보기도 하고, 아무 쓸데도
없이 물을 길어다가 그냥 길가에 버리기도 하고, 심지어는 그 물을 몇 동이나
길어다가 뒷간을 말끔히 청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물은 언제나 흘러 넘치기만 할 뿐 조금도 줄어들지는 않았다. 그 아까운
샘물이 훌러 넘치지 않도록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궁리를 해도 별달리 뾰족한 수는
없었다. 나의 그러한 생각은 내가 고향을 떠난 후에도 계속되었다. 도시에서 돈을 주고
물을 사 먹을 때마다 그러한 생각은 점점 더 깊어 갔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때의 내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었던가 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샘물이 흘러 넘치지 않으면 그대로 썩고 만다는 것을 이제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도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사랑이 없으면
사람은 죽고 만다는 것을. 사람도 늘 그 샘물처럼 서로 사랑이 흘러 넘쳐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물찾기
한 시골 국민학교 뒷산에서 보물찾기 대회가 열렸다. 국민학교를 졸업한 지 30여년
만에 모교를 찾은 졸업생들이 재학 시절의 은사님을 모시고 소풍을 간 것이다.
"자 동창생 여러분, 오늘의 마지막 순서로 보물찾기를 실시하겠습니다. 오늘의 이
보물찾기는 아주 이색적인 것으로, 우리들의 영원한 스승 김판영 선생님께서 제안하신
것입니다. 김 선생님께서는 여러분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을 떠난 후 지금까지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 될 소중한 보물들을 많이 잃어버렸다고 하시면서 이제는
그것들을 다시 찾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 동안
잃어버리고 만 그 소중한 것들을 다시 찾고자 합니다. 자, 다들 보물을 찾으러
출발하십시오. 지금이 오후 세 시니까 오후 네 시까지 딱 한 시간 동안의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예전에 우리들이 소풍을 와서 보물을 찾았던 저 산꼭대기까지
바위틈이나 나뭇가지 등을 살펴보십시오. 그곳에 보물을 가리키는 종이쪽지가 숨어
있을 것입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찾아오시는 분께 가장 큰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20여 명의 졸업생들이 5월의 신록 속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마에 주름살이 깊게 패인 김판영 선생은 보물을 찾으러 떠나는 제자들을 지켜보며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한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졸업생들은 대부분 손에 종이 쪽지 한 장씩을 들고 다시
사회자 앞으로 모여들었다. 사회자 앞에는 예쁘게 포장된 많은 상품들이 쌓여 있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가장 큰상을 받기를 원했다.
"자, 여러분. 지금부터 여러분이 찾은 보물에 대한 시상이 있겠습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찾아오신 분께 김 선생님께서 직접 시상을 하시겠습니다. 한 사람씩 차례대로
종이 쪽지를 건네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가 말을 마치자 임산부처럼 배가 툭 튀어나온 졸업생이 먼저 쪽지를
내밀었다. 거기엔 '우정'이라는 말이 씌어 있었다.
"네, 그렇군요. 그 동안 우리들은 정말 소중한 우정을 잃어버리고 있었군요."
사회자는 그 사내에게 조그만 탁상시계 하나를 상품으로 주었다.
다음은 대머리가 된 사내가 쪽지를 내밀었다. 거기엔 '인내'라는 글씨가 씌어
있었다.
"네,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릴 때 쇠꼴을 먹이면서부터 길렀던, 가난을 참고
견디는 마음을 잃어버리고 말았군요."
그 다음은 청바지에다 남방셔츠를 입은 사내가, 또 그 다음은 십자가 금목걸이를 한
아주머니가 '희망'이나 '시간'이니 하는 쪽지를 내밀었다. 그때마다 자그마한 상품들이
주어졌다. 사람들은 모두 '사랑'이라는 쪽지를 찾아온 사람이 가장 큰 상품을 차지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트 형태의 커다란 귀걸이를 한 아주머니가
'사랑'이란 글귀가 씌어진 쪽지를 내밀어도 그 아주머니에게 돌아간 상품은 고작 압력
밥솥이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모두 궁금해했다. 누가 일등을 할 것인가, 누가 가장 큰
상품을 탈것인가 하고 시상대 위에 놓여 있는 가장 크기가 큰 상품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그러나 마지막 시상식이 다 끝날 때까지 그 상품을 가져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보물찾기를 제안한 김판영 선생이 나서서 제자들 앞에 한
말씀뿐이었다.
"나는 오늘 여러분들을 만나서 퍽 반갑기도 하지만, 또한 퍽 유감이기도 합니다.
그건 여러분들이 가장 소중한 보물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큰 것은 분명 사랑입니다. 잃어버린 사랑은 반드시
찾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희생이 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여러분, 사랑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어머니들의 희생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머니의 사랑, 그것은 바로 희생입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들이 '희생'이라는
보물을 꼭 찾아 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순한 양과 풀밭
맞대기가 하면 싸움을 하는 젊은 부부가 있었다. 남편은 아내가 늘 순한 양처럼
고분고분하기를 원한 반면, 아내는 남편이 늘 푸른 풀밭처럼 넓고 아늑하기를 원했다.
"여보, 제발 순한 양이 좀 돼 봐요."
"그럼 당신이 먼저 풀밭이 돼 보세요. 당신이 풀밭이라면 나는 순한 양이 될 수
있어요."
"나는 이미 늘 풀밭이야."
"나도 늘 순한 양이에요."
그들은 이런 식으로 늘 상대방의 원하는 것이 먼저 되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서로
상대방이 자기를 사랑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당신도 이젠 나를 좀 사랑해 봐. 사랑을 받으려고만 들지 말고 먼저 사랑할 줄도
좀 알란 말이야."
"그런 당신은?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당신이야말로 나를
좀 사랑해 봐요."
"허허 참. 난 당신을 사랑해. 우리가 지금까지 이렇게 살고 있는 것도 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하하, 당신도 참, 그건 바로 내가 할 소리예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나마 이렇게 이혼까지 가지 않고 살고 있는 거예요.
"여보, 이젠 그런 쓸데없는 말장난을 그만하고, 정말 나를 좀 사랑해 봐. 부탁이야.
사랑을 얻으려면 먼저 사랑을 해야 해. 사랑을 받기만을 원하면 결국 사랑을 잃게 돼.
주지 않으면 얻을 수가 없어."
"여보, 나도 정말 부탁이에요. 당신이 나를 사랑하면 그 사랑이 모두 다 당신한테
돌아가는 거예요."
그들의 이런 식의 싸움은 늘 되풀이되었다. 서로 상대방에게 싸움의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고 서로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 그러자 싸움의 양태가 갈수록 격렬해졌다.
남편이 고함을 치고 욕을 하면 아내도 소리를 지르고 욕을 했다. 남편이 화를 참지
못하고 물건을 내던지면서 아내도 화를 참지 못하고 물건을 내던졌다. 자연히 그들은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갔다. 하루는 그들 사이에 하나의 협상이 이루어졌다.
그것은 도중에 누가 "순한 양!" 하고 소리치거나 "풀밭!"하고 소리치면 일단 입을
다물고 더 이상 싸우지 않는다는 협상이었다. 그들은 이 협상을 잘 지켜졌다. 정신없이
한창 싸우다가도 남편이 먼저 "순한 양!"하고 소리치면 아내도 "풀밭!"하고 소리치고는
싸움을 중단했다. 그러나 일단 싸움이 중단되기는 했으나 싸움의 회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그리고 남편이 바라는 대로 '순한 양'과 같은 아내가 되기는커녕 '성난 양'과
같은 아내가 되어 갔으며, 아내가 바라는 대로 '풀밭' 같은 남편이 되기는커녕
'폐허'와 같은 남편이 되어 갔다.
그런데 그들 부부가 사는 아파트 202 동에도 그들과 똑같이 "순한 양!", "풀밭!"
하고 소리치며 싸우는 부부가 있었다. 그런데 그들 부부와는 달리 그렇게 소리치면
칠수록 그들은 정말 '순한 양'과 '풀밭'이 되어 갔다. 갈수록 싸움의 회수도 줄어들고
부부 사이의 금실도 좋아졌다. 그들은 202 동에 사는 부부가 부러웠다. 그래서 한번은
202 동에 사는 부부한테 가서 물었다.
"참 이상하군요. 우리 부부도 당신들처럼 싸움을 하다가 '순한 양!', '풀밭!' 하고
소리치는데, 부부 사이가 좋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지기만 합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그렇지 않군요.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러자 202 동에 사는 부부가 빙긋 웃음을 주고받으면서 말했다.
"아, 그건, 우리가 상대방에게 무엇이 되라고 소치 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무엇이 되라고 소리치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은 남편이 자기 자신에게 '풀밭'이라고
소리치고, 아내가 자기 자신에게 '순한 양'이라고 소리칩니다.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이지요."
바람이 하는 말
해와 달이 싸웠다.
"나뭇잎들은 초록색이야." 하고 해가 말하니까, 달이 "아니야, 은색이야."하고
대받았다. 달이 "사람들은 일도 하지 않고 주로 잠만 자지."하고 말하니까, 해가
"아니야, 사람들은 주로 움직여." 하고 말했다.
"그럼 왜 지구가 그렇게 조용하니?"
달이 지지 않고 다시 해에게 말했다.
"넌 누구한테 그런 소릴 들었니? 지구는 늘 시끄럽기 짝이 없어."
"아니야, 너야말로 누구한테 그런 소릴 들었니? 지구도 다른 별들처럼 그렇게
조용할 수가 없어."
그들의 싸움은 그치지 않았다. 그러자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바람이 나타나
말했다.
"너희들이야말로 정말 우습구나.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싸우니? 나는 해가 떠
있을 때도 불고, 달이 떠 있을 때도 불어, 낮에 해가 떠 있을 때는 바로 해가 말한
대로야. 지구는 시끄럽고, 사람들은 모두 정신없이 움직이지. 나뭇잎은 초록색이고
그러나 밤이 되어 달이 떠 있을 때는 모든 게 달라져. 사람들은 잠을 자고, 고요함이
온 누리를 다스리지. 물론 나뭇잎은 달빛을 받아 은빛을 띠게 돼. 간혹 구름이 달을
가리면 검은빛을 띠기도 하지. 그러니까 해 너도, 달 너도 사실은 다 알지도 못하는
거야. 세상은 자기 주장만이 다 옳은 게 아니야. 세상을 자기 입장에서만 이해하면 안
되는 거야."
작은 꽃게의 슬픔
동해안에 사는 큰 꽃게 한 마리가 작은 꽃게 한 마리가 바닷가 모래밭 위로
올라왔다. 바닷가 모래 속이 너무나 춥고 답답해서 바다 구경도 좀 하고 햇빛도 좀
쐬고 싶어서였다.
"밖으로 나온 일은 정말 잘한 일이야. 아이 시원해."
"저길 좀 봐, 아이들이 발가벗고 파도를 타고 놀잖아. 아, 정말 멋있어."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감탄의 소리를 내질렀다. 그런데 그때 작은 꽃게가 밖으로
나올 때 만든 자기의 모래 구멍을 보고 큰 꽃게한테 말했다.
"큰 꽃게야, 참 이상하다. 내가 만든 구멍은 이렇게 작은데 네가 만든 구멍은 왜
그렇게 크니?"
그러자 큰 꽃게가 말했다.
"아, 그건 내 몸이 크기 때문이야. 네 구멍이 작은 것은 네 몸이 작기 때문이고.
우리는 우리 몸에 맞추어서 구멍을 파야 돼."
작은 꽃게는 큰 꽃게의 그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도 큰 꽃게처럼 큰 구멍을
파고 싶었다. 마음만 먹으면 큰 꽃게보다 더 큰 구멍을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 밤, 작은 꽃게는 큰 꽃게 몰래 다시 바닷가로 나와 구멍을 파기 시작했다.
발가락과 집게 다리를 열심히 놀려 자기 몸보다 몇 배나 되는 큰 모래 구멍을 팠다.
파도가 밀려와 기껏 파 놓은 구멍을 무너뜨려도 실망하지 않고 다시 또 큰 구멍을 파
놓았다. '이만하면 큰 꽃게가 판 구멍보다 몇 배나 더 클 거야. 나도 이제 큰
꽃게가 부럽지 않아.' 작은 꽃게는 그런 생각을 하며 그제서야 만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작은 꽃게의 더듬이를 따갑게 찌르는 한 불빛이 있었다.
"야 찾았다! 여기 있어!"
아이들의 목소리가 발자국 소리와 함께 한꺼번에 들려 왔다.
작은 꽃게는 덜컥 겁이 났다. 얼른 자기가 파 놓은 모래 구멍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러나 작은 꽃게는 구멍이 너무 커서 자기의 몸을 다 숨기지 못하고 전깃불을 든 한
아이의 손에 붙들리고 말았다.
봄을 기다린 두 토끼
겨울 산 속에 두 마리 토끼가 살고 있었다. 한 마리는 양달진 산비탈에 살고 있었고,
또 한 마리는 응달진 산비탈에 살고 있었다.
그들은 자나깨나 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들의 소원은 하루 속히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는 일이었다. 허옇게 산을 뒤덮은 흰눈이 녹고 계곡의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산과 들에 막 새로 돋기 시작한 이파리들을 마음껏 뜯어먹는
일이었다. 그러나 겨울은 좀처럼 지나가지 않았다. 조금 따뜻한 기운이 돈다 싶어 굴
밖으로 머리를 조금 내밀면 이내 한풍이 휘몰아쳤다. 지난 해 첫눈이 내리기 시작한
이래로 내내 굴속에 갇혀 겨울잠만 자고 있기란 정말 여간 답답한 일이 아니었다.
"아아, 언제 봄이 오려나?"
"춥고 배고파서 못 살겠네."
"참고 기다리면 언젠가 봄은 오겠지."
그들은 하루하루가 1 년 같았다. 겨우내 먹을 양식마저 곧 떨어질 것 같아 아끼고
또 아껴 먹었다. 땔거리마저 모자라 한밤중에 기온이 뚝 떨어져도 불을 지피지 않고
참고 견뎠다. 그러나 봄은 오지 않았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그 누구와 살이라도
맞대고 사랑을 나누고 싶었지만 봄은 돌아올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함부로 굴 밖으로 나가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자칫 잘못 굴 밖으로
나갔다가는 토끼 몰이 나온 마을 사람들이 산 위에서부터 몽둥이를 들고 몰아쳐
내려오면 꼼짝달싹도 하지 못하고 잡혀 버릴 게 뻔한 일이었다.
"하는 수 없구나. 참고 기다리고 있으면 언젠가는 봄이 오겠지."
그들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 다시 깊은 겨울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뒤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을까.
양달진 산비탈에 살던 토끼는 이따금 깨어나 건너편 응달진 산비탈을 바라보았다.
봄이 와서 눈이 녹았나 해서였다. 그러나 그곳엔 눈이 허옇게 쌓여 있었다.
"아직 봄이 오지 않은 게로군. 깨어날 때가 아직 멀었어."
그는 다시 겨울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얼마 안 가서 다시 눈을 뜨고
건너편 응달진 산비탈을 바라보았다. 눈은 여전히 녹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어머나! 아직도 눈이 녹지 않았네. 눈이 다 녹으면 나가야지."
그는 아직 겨울잠에서 깨어날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그는
이러기를 몇 차례나 거듭했는지 모른다. 눈을 떠서 건너편 응달진 산비탈을 바라보면
언제나 눈은 녹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그 토끼는 양달진 굴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굶어 죽고 말았다. 응달진 산비탈에 살던 토끼도 문득 겨울잠에서
깨어나 건너편 양달진 산비탈을 바라보았다. 볕바른 그곳엔 어느새 눈이 다 녹아
버리고 없었다.
"아, 내가 잠든 사이에 벌써 봄이 왔구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이 왔구나!"
그는 얼른 굴 밖으로 뛰어나와 눈 녹은 양지쪽을 행해 힘껏 달려갔다. 그러나
바람은 살을 에는 듯 차가웠다. 그는 결국 굴속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찬바람 몰아치는
산 속에서 얼어죽고 말았다. 양달과 응달에 살던 두 토끼가 봄을 기다리다가 그만 둘
다 죽고 만 것이다.
대통령이 된 가시나무
민주주의를 해 보고 싶은 남해안 어느 섬에 나무들이 모여 회의를 했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직선제 대통령을 뽑기로 의결하고, 서둘러 대통령 선거법을 정했다. 그리고
그 선거법에 따라 선거일을 공고하고 후보 등록을 받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무도 후보 등록을 하지 않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나무들은 다시 모여 문제점을 검토했다. 후보 자격 기준을 너무 까다롭게 정하지는
않았는지, 후보 등록 신청금을 너무 많이 책정한 것은 아니었는지 여러 가지 문제점을
검토, 보완해서 다시 후보 등록을 실시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단 한 나무도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나무가
없었다. 나무들은 다시 긴급회의를 열었다. 이번에는 '대통령 추대 위원회'를 만들어
가장 나이가 많은 나무 중에서 한 나무를 대통령으로 추대하는 형식을 취하기로
결정했다. 추대 위원장은 나무들 사이에서 가장 젊고 인기가 있는 사과나무가 맡았다.
사과나무는 먼저 가장 나이 많은 동백나무에게 찾아가 대통령이 돼 줄 것을
간청했다. 그러나 동백나무는 빨갛게 얼굴을 붉히고 손을 내저으면서 거듭거듭
사양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동백기름을 만드는 일만 해도 벅차다"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사과나무는 다시 오동나무를 찾아갔다. 그러나 오동나무도 "사람들이 즐기는
거문고의 좋은 재료가 되기 위해 노력하기에 마음이 바쁘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사과나무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심 대통령이 되고 싶어도 선뜻 나서기가
거북해서 다들 겸양의 미덕을 발휘라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러나 사과나무는 다시 용기를 내어 포도나무를 찾아갔다.
"이웃 섬을 보십시오. 일찍이 민주주의를 꽃피워 우리보다 더 평화스럽게 잘 살고
있습니다. 우리도 하루 속히 민주주의를 꽃피워 이웃 섬보다 더 잘 사는 섬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포도나무 역시 "사람들에게 맛있는 포도주를 만들어 주는 일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었다.
사과나무는 자신이 주인이 되는 삶을 살지 못하는 나무들의 그런 태도가 정말
싫었다. 나무들은 오직 사람들을 위하여 존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사과나무는 자신이 인간을 위하여 열매를 맺는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열매를 맺는 일이란 그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삶을 열심히 성실하게 산
하나의 결과라는 데에 보다 더 큰 의미를 두었다.
사과나무는 마지막으로 가시나무를 찾아갔다. 가시나무는 사과나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선뜻 대통령 직을 수락했다.
"그래 내가 너희들의 대통령이 되어 주마. 너희들은 다들 내 그늘에 와서 마음껏
먹고 쉬도록 하여라."
가시나무는 거들먹거리는 목소리를 내었다. 사과나무는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는 가시나무가 독재자가 될까봐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달리 선택할
길이 없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수락해 준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었다. 다른 나무들도
걱정이 되는 눈치였으나 다들 입 다물고 가만히 있었다.
사과나무의 그런 걱정은 적중되었다. 대통령이 된 가시나무는 자신의 분수를 알지
못했다. 자기가 가장 잘나서 대통령이 된 줄 알고 왕성한 번식력만을 자랑해 나갔다.
섬은 점점 가시나무 숲으로 뒤덮여 갔다. 포도원도 과수원도 다들 못 쓰게 되었다.
나중에는 가뭄으로 불이 나 섬에 있는 모든 나무들이 몽땅 다 불타 버리고 말았다.
시인과 장미
한 젊은 시인이 있었다. 그는 한 여인을 깊게 사랑하고 있었다. 그는 오로지 그
여인을 사랑하기 위하여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의
자신의 모든 삶은 오직 그녀를 사랑하기 위한 하나의 준비 과정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하루하루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새로왔다. 풀잎을 스치는 바람도, 어린
나뭇가지에 어리는 햇살도, 푸른 하늘을 나는 작은 새도, 그녀를 사랑하기 이전과는
전혀 다른, 또 다른 아름다움과 경이의 세계였다.
그는 비로소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가 진정 무엇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와 함께 하지 않는 혼자만의 삶이란 정말 무의미한 삶이라고
생각되었다. 어느 날, 그는 청혼을 하기 위해 붉은 장미꽃 몇 송이를 들고 그 여인의
집을 찾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의 청혼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인은 차가운
얼굴을 하고 말했다.
"미안해요.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이해해 주세요."
눈앞이 캄캄했다. 갑자기 천지가 뒤바뀌는 것 같았다. 그는 그녀가 끓여 준 커피도
채 들지 못하고 집을 나왔다. 그런데 그가 그녀의 집 대문을 막 나섰을 때였다. 여자가
창문 밖으로 장미꽃을 획 집어던졌다.
"미안해요. 청혼의 의미로 주는 장미꽃은 받을 수가 없어요."
그는 엉겁결에 발 앞에 떨어진 장미꽃을 주웠다.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세상의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후, 그는 장미꽃을 몹시 싫어하게 되었다. 실연의 원인이 마치 장미에게 있었던
것처럼 꽃 중에서 장미꽃만은 극도로 싫어하는 병적인 모습을 나타내었다. 그는
장미를 볼 때마다 그 여자한테서 받은 마음의 상처가 되살아나서 싫었다.
그 여자를 잊으려고 노력하였으나 결코 잊을 수가 없어서 괴로웠다. 마음의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는 장미가 있는 곳은 어디든 피해 다녔다. 그러나 장미는 어디에든
있었다. 꽃집이나 이웃집 담벼락뿐 아니라 무심코 들른 레스토랑의 탁자 위에도
장미꽃은 피어 있었다.
그는 이제 어떻게 하면 장미가 피어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만
골몰했다. 그의 소원은 이 세상의 모든 장미를 없애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연구해도 장미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어느 날, 그는 문득 장미의 이름을 바꾸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 언어학자를
찾아갔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장미라는 이름을 바꿀 수 있을까요?"
늙은 언어학자가 말했다.
"그건 아주 간단합니다. 언중이 장미를 장미라고 부르지 않으면 됩니다."
"그럼 언중들로 하여금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글쎄요, 그건 언중들의 마음입니다. 학자인 우리들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는 언어학자의 집을 나오면서 자신의 일생을 장미의 이름을 바꾸는 일에 바치기로
결심했다. 그는 누구를 만나든, 우리가 장미라고 부르는 이름은 그 어떤 다른 이름으로
불려져야 한다고 주장해 나갔다. 그러면서 열심히 장미의 부정적 이미지를 드러내는
시를 써서 발표했다. 언중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서 자신이 쓴 시를
들려주었다. 어느덧 많은 시간이 강물처럼 흘러갔다. 젊은 시인이 늙은 시인이 되었고,
마침내 사람들은 장미를 장미라고 부르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장미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다들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장미의 이름이 바뀌어도 단
한 가지만은 변하지 않은 게 있었다. 그것은 장미의 향기였다.
금붕어의 죽음
서울 영희네 집 어항 속에 세 마리의 금붕어가 살고 있었다. 두 마리의 이름은 붉은
붕어이고, 나머지 한 마리의 이름은 검은툭눈금붕어였다. 붉은 붕어는 마음이 곱고
서로 형제처럼 잘 지냈으나, 검은툭눈금붕어는 마음이 사납고 욕심이 많아 툭하면
붉은붕어를 못 살게 굴었다.
붉은붕어의 소원은 어떻게 하면 검은툭눈붕어와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으며, 검은툭눈금붕어의 소원은 어떻게 하면 이 좁은 어항에서 혼자 좀 넓고
편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하루는 붉은 붕어 한 마리가 뭘 잘못 먹었는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헤엄을
치다가 수초 사이에 꼬리가 걸려 빠져 나오지 못하는가 하면 물레방아에 머리를
처박고 죽은 듯이 누워 좀처럼 일어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하룻밤 사이에
그만 붉은 붕어 한 마리가 죽어 버리고 말았다. 처음에는 수면 위로 배를 뒤집고 떠
있더니 어느새 어항 밑으로 깊게 가라앉아 버리고 말았다. 나머지 한 마리 남은 붉은
붕어의 슬픔은 컸다. 좁은 어항 안에서는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더니 결국 먼저
세상을 떠나 버리고 말았다는 생각에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검은툭눈금붕어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하느님이 자기의 소원을
들어주었다는 생각에 시종 마음이 즐거웠다. 영희 엄마가 죽은 붉은 붕어를 땅에 묻어
주려고 어항에서 꺼내갈 때는 살며시 돌아서서 웃음을 흘렸다. 그러면서 그는 나머지
한 마리 남은 붉은 붕어마저 하루빨리 죽어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보다
많은 먹이를 먹을 수 있고, 보다 맑은 신선한 물과 공기를 마음껏 혼자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나머지 한 마리 붉은 붕어 죽지 않았다.
사랑하는 친구를 잃고도 언제나 용기를 잃지 않고 행복하게 잘 지냈다.
검은툭눈금붕어는 속이 상했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하고 밤낮 머리를 싸매고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으나 적당한 때에 기회를 봐서 붉은 붕어 죽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검은툭눈금붕어는 호시탐탐 그 기회를 노렸다.
마침내 그 기회는 왔다. 영희네 식구들이 집을 비우고 모두 영희 이모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가 버린 것이다.
그는 바로 그날 붉은 붕어와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물론 승리는 그의 것이었다.
그는 승리감에 취해 하루 종일 노래를 불렀다. 먹이도, 물론 혼자 다 먹고 마셨다.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사흘쯤 지나자 어항의 물이 차차 탁해지기
시작했다. 죽은 붉은 붕어 몸이 썩기 시작한 것이다. 승리감에 도취해 있던
검은툭눈금붕어는 갈수록 숨쉬기가 곤란해져 갔다.
영희네 식구들이 1주일만에 부산에서 돌아왔을 때에는 금붕어 두 마리가 다 함께
죽어 있었다. 집을 비우기 전에 물을 갈아주고 먹이도 알맞게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눈사람이 된 연탄재
함박눈이 내렸다. 사람들은 새해를 축복하는 서설이 내렸다고 다들 기뻐하면서
거리를 쏘다녔다. 아파트 단지 한 모퉁이에 가득 쌓여 있던 연탄재들도 기쁜 마음은
사람들과 똑같았다. 연탄 아궁이로 들어갔다가 희멀겋게 볼품없이 된 그들에게
함박눈이 하얀 옷을 입혀 준 것은 더없이 고마운 일이었다. 아이들은 눈발이
가늘어지자 너나없이 밖으로 나와 눈사람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눈 뭉치를 만들어
눈싸움을 하다가 나중에는 누가 가장 빨리, 가장 큰 눈사람을 만들 수 있는가 하는
시합을 벌였다. 눈은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습기가 없는 탓인지 잘 뭉쳐지지 않았다.
그러자 어떤 아이 하나가 아파트 뒤뜰에 쌓인 연탄재 하나를 집어들었다. 난생 처음
눈을 보고 마냥 신기해하기만 하던 연탄재는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그 아이에게
끌려갔다.
아이는 연탄재를 눈 위에 놓고 굴리기 시작했다. 아이의 눈 뭉치가 금방 다른
아이들의 눈 뭉치보다 더 크게 되었다. 아이는 신이 났다. 아무도 자기를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 기뻤다. 연탄재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탄으로 태어나 결국
여기에서 죽나 보다 하는 절망감에 눈물이 났다. 그러나 차차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비록 눈 뭉치 속에 갇혀 갑갑하기는 했으나 그리 싫지는 않았다.
연탄재의 신분에서 눈사람의 신분으로 바뀐다는 사실이 오히려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야말로 스스로 운명을 바꾸어 볼 때라는 생각도 들었다.
연탄재는 이리저리 굴려질 때마다 온몸에 멍이 들었으나 조금도 싫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 눈덩이가 커지면 커질수록 중압감에 못 견뎌 연방 입 밖으로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가 새어나왔으나 아프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신분이 상승되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고통쯤은 참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눈사람을 가장 빨리, 가장 크게 만든 아이는 연탄재를 굴려 눈사람을 만든
아이였다. 아이는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어느새 아이의 아버지가 카메라를 가지고
나타나 기념사진까지 찍어 주었다. 연탄재는 이제 자신은 연탄재가 아니라
눈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대로 영원히 순결한 눈사람으로 살게 해준 아이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예전의 자기처럼 아파트 담벼락에 더덕더덕 추한 모습으로 쌓여 있는
연탄재들에게는 연민의 정을 품었다.
다음날, 눈이 그치고 햇살은 빛났다. 또 그 다음날에도 햇살은 내리쬐었다. 자연히
햇살에 눈사람이 녹아 내렸다. 연탄재는 예전보다 더 흉한 몰골을 하고 다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었다. 햇살에 눈사람이 녹는다는 사실을 미처 모르고 있었던 연탄재는
그만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잘려진 바지
날씨가 제법 쌀쌀해지기 시작한 늦가을 밤. 아파트 공사장에서 일하는 이씨는 그날
일을 끝내고 함바집에 들러 밤늦게까지 막걸리를 한 잔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노점상에서 작업복 바지를 하나 샀다. 낮에 공사장에서 바짓가랑이가 못에 걸려
길게 찢어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내일 일할 생각은 안하고 왜 이렇게 늦었어요?"
대문을 열어준 이씨의 아내가 피곤해 죽겠다는 듯이 손으로 입을 가리는 것조차
잊은 채 하품을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서울로 파출부 일을 나가는 그녀는 밤 10시만
넘으면 쏟아지는 잠을 잘 이기지 못했다. 이씨는 그때까지 잠자리에 들지 않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노모에게 인사를 하고 얼른 바지를 아내에게 내주었다.
"여보, 나 오늘 작업복 바지가 찢어져서 새 바지를 하나 사 왔어. 내일 입고 갈 수
있도록 바짓단 좀 줄여 주지 그래."
그러자 이씨 아내의 목소리가 커졌다.
"아휴, 지금 시간이 몇 신데 바짓단을 줄여 달라고 그래요? 우선 잠이나 좀 자요.
정말 피곤해 죽겠단 말이에요. 내일 다른 걸 입고 가면 되잖아요."
"아, 참 그래, 그러지."
이씨는 아내가 몹시 피곤해 하는 것 같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그도 피곤을 이기지 못해 씻는 둥 마는 둥 하고는 곧 곯아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씨의 아내는 잠을 자지 않고 남편이 사 온 바지를 집어들었다. 솜에 물이
배듯 온몸에 잠이 쏟아졌으나 아무래도 남편이 내일 새 바지를 입고 가는 게 좋겠다
싶어 애써 바짓단을 줄여 놓았다.
그 뒤 새벽 1시 무렵이었다. 노처녀인 이씨의 동생이 그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있다가 살짝 마루로 나와 오빠의 바짓단을 줄여 놓고는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또 새벽 5시, 이씨의 노모가 일어나 살그머니 아들의 바짓단을 줄여 놓고는
산에 약수를 뜨러 나갔다.
그날 아침, 이씨의 아내가 이씨한테 그 작업복 바지를 내놓았다.
"오늘 이 바지 입고 가세요. 어젯밤 당신이 곯아떨어지고 난 뒤에 내가 바짓단을
줄여 놓았단 말이에요."
"야아! 역시 당신이야."
이씨는 어머니라도 볼세라 재빨리 아내의 뺨에 살짝 키스를 했다. 그리고
바짓가랑이 속으로 얼른 다리를 집어넣었다. 그 바지는 이씨의 복숭아뼈 위에까지
바짓단이 성큼 올라와 있었다.
유씨 부인의 사랑
천성이 어질고 생각이 깊은 유씨 부인이 집에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쇠고기
한 근을 사 오라고 계집종 꽃분이를 저잣거리로 내보냈다.
그런데 꽃분이가 사 온 고기가 아무래도 이상했다. 빛깔이 지나치게 검고 썩은 내가
났다. 유씨 부인이 그 고깃덩어리를 찬찬히 살펴보았더니 그것은 분명히 상한
고기였다. 부인은 다시 꽃분이를 불렀다.
"꽃분아, 네가 지금 다녀온 푸줏간에 고기가 얼마나 남아 있더냐?"
"상당히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부인은 곧 안방으로 들어가 급한 일이 있을 때 쓰려고 소중히 간직해 두었던 돈을
모조리 꺼내 왔다. 그리고 그 돈을 모두 꽃분이에게 주었다.
"꽃분아, 이 돈을 가지고 가서 그 고기를 몽땅 다 사 오너라. 너 혼자서는 무거워서
못 가져올 테니 행랑아범을 데리고 가거라."
"아니, 마님, 그 많은 고기를 다 어디다 쓰시려고요?"
"그건 네가 걱정할 바가 아니다. 빨리 다녀오기나 하거라."
얼마 후, 꽃분이와 행랑아범이 거의 한 짐이나 되는 쇠고기를 지게에 지고 돌아왔다.
"수고했다. 사람 발길이 잘 닿지 않는 뒤뜰 한 구석에 구덩이를 깊게 파고 고기를
전부 그곳에다 묻어라."
꽃분이와 행랑아범은 무슨 영문인지를 몰라 서로 얼굴을 마주 쳐다보았다. 꽃분이는
마님이 무슨 까닭으로 그런 분부를 내리시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마님, 왜 아까운 고기를 모두 파묻으라고 하십니까?"
"그건 상했기 때문이다."
"그런 줄 아시면서도 왜 많은 돈을 들여 상한 고기를 사 오라고 하셨습니까?"
"꽃분아, 만일 다른 사람들이 그 고기를 모르고 사 먹는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그리고 천상 그 고기를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푸줏간 주인은 또 어떻게 되겠느냐.
살림이 넉넉지 못할 게 뻔한 푸줏간 주인이 그 많은 고기를 버리게 되면 손해가
이만저만 큰 게 아니지 않겠느냐. 그리고 마음 또한 얼마나 상심이 되겠느냐. 그래서
내가 모두 사서 땅에 묻으려 한 것이다."
우물과의 대화
물동이 하나가 우물에 가서 물을 가득 채운 뒤 우물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물을 길으러 오는 일이 미안해서 은근히 물동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나는 지금까지 당신을 가져가지만 했을 뿐, 내가 당신에게 해 드린 것은 아무도
없군요. 내일부터는 매일 오지 않고 하루씩 걸러서 오도록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굳이 그러실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주저하지
마시고 찾아오세요. 나는 당신이 내게 오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입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다. 나는 늘 당신 것을 가져가기만 할뿐인 걸요. 다음부터는
나를 반쯤만 채워 가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매일 나를 찾아 주시는 것이 곧 당신이
내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마음속으로는 내가 자주 물길으러 오지 않는 것이 좋겠지요."
"하하, 정말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은 내게 오는 수많은 물동이 중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당신은 정말 마음이 좋고 관대하시군요. 당신은 당신을 찾는 다른 모든
물동이들에게도 이렇게 내게 대하듯이 하시나요?"
"그렇습니다. 나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대합니다. 차별하지도 않고 거절하지도
않습니다."
"당신이 마를 때도 그렇게 하나요."
"나는 결코 마르지 않습니다. 항상 차고 넘치고 있어서 내게 오는 모든 물동이들을
늘 찰랑찰랑 채워 줍니다."
"하긴 그렇군요. 아직 당신이 마른 걸 본 적이 없군요."
"나는 나를 찾는 물동이들을 참으로 사랑한답니다. 내가 만일 물동이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나를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마르지 않는 건 바로 물동이
당신들 때문입니다."
그때 머리에 또아리를 얹은 아주머니 한 분이 머리 위에 물동이를 얹었다. 물동이는
급히 우물에게 눈인사를 하고 우물가를 떠났다.
우물은 멀리 굽은 논두렁길을 가는 물동이를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채, 우물 속에 달빛이 비칠 때까지.
산울림
사소한 일로 형이 동생과 싸웠다.
그걸 보고 어머니가 형을 야단쳤다. 어린 동생을 귀여워해 주지는 못할망정
때리기는 왜 때리느냐고 나무랐다. 분을 참지 못한 형이 집 뒷산에 올라 "나는 너를
미워한다."고 소리쳤다. 앞산에서도 "나는 너를 미워한다."는 소리가 들려 왔다. 아이는
황급히 집으로 돌아와서 어머니한테 말했다.
"엄마, 산너머에서 누군가가 내게 나는 너를 미워한다고 소리 지르는 아이가
있어요."
어머니는 이 말을 듣고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럼 말이야. 다시 산에 올라가서 이번에는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한번 소릴 질러
봐."
아이는 다시 뒷산으로 올라가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소리쳤다. 앞산 너머에서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소리가 들려 왔다.
아이는 기뻤다.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자꾸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소리쳤다.
하느님의 선물
하느님한테도 고민이 있었다. 하느님이 이 세상에 사는 그 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다
찾아다녀야 하는 일이 늘 고민이었다. 사람들마다 문제없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하느님은 단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다.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할 때 인간이 항상 사랑의 기쁨과 평화 속에서 살게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느님의 바람일 뿐 에덴 동산을 떠난 사람들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은 늘 사랑보다 증오를 가지고 살았다. 삶보다는 죽음이, 행복보다는 불행이,
화해보다는 분열이, 평화보다는 전쟁이 늘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일보다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와 고통에 휩싸이는 일이 더 많았다.
하느님은 그런 사람들을 그냥 그대로 못 본 척하고 지나갈 수는 없었다. 처음
인간을 창조할 때 지녔던 사랑과 평화의 마음을 가지고 일일이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병들어 아픈 사람은 아픈 데를 어루만져 주어야 했으며,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자에게는 그 눈물을 닦아주어야만 했으며, 쓸쓸하고 외로워하는 자에게는 그 쓸쓸함과
외로움을 달래 주어야 했다. 그리고 분노에 들떠 잠 못 이루는 자가 있으면 새벽이 올
때까지 그와 함께 밤을 지새 주어야만 했다.
하느님은 하루하루가 정말 바쁘기 그지없었다. 아무 불평 불만이 없도록 그 많은
사람들을 골고루 다 찾아다니기에는 하루해가 너무 짧았다.
하느님은 곰곰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내 대신 사랑을 골고루 나누어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찾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찾아갈 수 있을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가 하느님은 "맞아, 바로 그거야!"하고 무릎을 탁 쳤다.
그것은 인간들에게 바로 어머니를 만들어 주는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누구나 다
한 사람씩 어머니를 갖게 되었다.
낙타의 모성애
세 사람의 상인이 낙타를 타고 사막을 가고 있었다. 그들이 집을 떠나 사막을 걷기
시작한 지는 이미 두 달째였다. 그들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넉넉하게
준비했던 물과 음식조차 바닥난 지 오래였다. 그들은 갈수록 갈증과 허기를 견디지
못하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늘 다니던 길이었건만 어디가 어디인지 방향조차 제대로
잡지 못했다. 가도 가도 모래언덕만 나올 뿐 길을 잃은 지도 이미 오래였다.
그들은 차차 절망 속으로 빠져들었다. 머지않아 죽음이 찾아올 것이라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그들이 살 수 있는 길은 오아시스를 찾는 길뿐이었다. 물이 있는 곳을
발견하지 못하면 곧 죽음뿐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오아시스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오아시스가 보여 겨우
달려가 보니 한낱 신기루 현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들 중 가장 나이 어린 셋째 대상이 낙타의 등에 앉은 채로 정신을 잃었다. 이어
곧 나머지 두 사람도 정신을 잃었다. 태양 빛은 여전히 뜨거웠다. 그들은 그렇게 낙타
등에 실린 채 뜨거운 사막의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러나 신은 그들의 편이었다. 신은
그들을 그대로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들이 낙타 등에 실려 정신을 잃고 있는
동안, 낙타로 하여금 그들을 물가로 인도해 주었다.
그들은 곧 원기를 회복했다. 그러나 신은 완전히 그들을 돕지는 않았다. 셋째 대상이
하룻밤 열에 들떠 앓다가 그만 죽고 만 것이다. 나머지 두 대상은 눈물을 흘리며 그를
사막의 모래 속에 묻었다.
"이제 동생의 무덤을 찾을 길이 없겠군요."
둘째 대상이 눈물을 흘리며 더욱 슬퍼했다.
그러자 첫째 대상이 말했다
"그렇다면 낙타 새끼를 죽여 동생과 같이 묻고 떠나자."
"낙타가 우리를 살렸는데, 어떻게 그 새끼를 죽일 수 있단 말입니까?"
둘째 대상은 첫째 대상의 제의를 반대했다. 그러나 첫째 대상은 둘째 대상의 말을
묵살하고 낙타 새끼를 죽였다. 어미 낙타 보는 앞에서 낙타 새끼를 죽여 셋째 대상과
함께 묻었다. 그리고 멀리 사막의 언덕을 바라보며 말했다.
"낙타는 자기 새끼가 죽어 사막에 묻히면 오래도록 그 장소를 기억한다. 우리
대상들 가운데 누가 죽어 사막에 묻을 때는 낙타 새끼를 죽여 함께 묻는다. 나중에
어미 낙타를 데려오면 그 무덤을 쉽게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낙타는 자기
새끼에 대한 애정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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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책
사랑에 대한 64가지 믿음 전2권 중 제2권
지은이: 정호승
(3)
죽음보다 강한 사랑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 년 7월 말,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제 14
호 감방 사람들은 그들 중에 한 사람의 탈출자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몸을 떨었다.
"단 한사람이라도 도망을 치면 같은 감방에 있는 다른 사람 스무 명을 아사형에
처한다"는 수용 소장 프리치의 경고를 떠올리고 그들은 다들 죽음과 같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누구 하나 잠을 청하는 사람이 없었다. 잔혹한 고문에 살아남기를
원하느니 차라리 죽기를 원하는 그들이었지만 아무도 잠을 이룰 수는 없었다.
그들은 모두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아사감방으로 끌려가게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숨질 때까지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 창자와 핏줄이 말라붙어
짐승처럼 날 뛰게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레지스탕스의 영웅들마저도 "내가
뽑히면 어떡하나."하고 어린애처럼 울고 있었다.
수용소 안에서는 아사감방에 관한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나돌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밤마다 맹수의 부르짖음을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진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굶주림의
고통보다 목마름의 고통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사형에 처해진 사람들한테서는
인간다운 점을 찾아볼 수가 없어 나치스의 간부들마저도 그들을 무서워한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점호 시간. 수용 소장 프리치는 도망간 사람을 찾지 못하자 14 호 감방
사람 전원을 수용소 마당에 세워 놓았다.
그들은 뜨거운 햇볕 아래 몇 시간이고 서 있었다. 기절해서 쓰러지는 사람들을 열
밖으로 끌어내어 던졌다. 내던져진 사람 위에 또 다른 사람들이 쓰러져 포개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무더기는 점점 커졌다.
오후 3시. 그들에게 30분간의 휴식과 수프를 먹는 일이 허락되었다. 그들은
이승에서의 마지막 식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수프를 먹었다. 그리고 여전히
차려 자세로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었다. 이윽고 저녁 점호 시간. 하루 일과를 마친
포로들이 수용소 마당에 정렬하자 소장 프리치는 교활한 조련사처럼 각 감방별로
보고를 받으면서 이리저리 그들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그러다가 14 호 감방수들 앞에
딱 멈추어 서서 갑자기 발작을 하듯 소리를 질렀다.
"도망친 놈이 아직도 안 잡혔다. 이제 너희들 중 열 명이 저 아사감방에 가서
죽어야 한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그땐 스무 명을 한꺼번에 보내겠다."
소장은 한 사람씩 한 사람씩 그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서투른 폴란드어로 계속
지껄였다.
"입을 벌려! 혀를 내밀어! 이빨을 보여!"
그들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들처럼 벌벌 떨었다. 소장은 그들의 이빨을 자세히
관찰하는 척하면서 그들 사이를 저승 사자처럼 신나게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마침내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너!"
보좌관 팔리치가 즉시 지적된 수형자의 번호를 명부에 기입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인간이 한 개 번호에 불과했다. 지적을 당한 사람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몇 차례 버둥거리는 듯하더니 열 밖으로 빠져나갔다. 물을 끼얹은 듯한
침묵 속에서 포로들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너, 너, 너, 너, 그리고 너!"
한 순간에 열 명이 지적되었다. 그것은 바로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였다.
"불쌍한 내 마누라와 아이들을 이제 다시는 못 보게 되었구나!"
지적을 당한 사람 중 한 사내가 열 밖으로 걸어나오면서 울부짖었다. 지적 당하지
않고 열 가운데 남은 사람들은 아사감방에 가는 일만은 면하게 되었다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 신발을 벗어!"
보좌관이 명령을 내렸다. 사형수들은 맨발로 형장으로 가게 돼 있었으므로 그들은
신고 있던 신을 벗어 던졌다. 부인과 아이들을 더 이상 못 보게 되었다고 울부짖던
사내의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
"좌로 돌앗!"
보좌관이 아사감방이 있는 곳을 향해 다시 명령을 내렸다. 그들은 좌로 돌았다. 그때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포로 한 사람이 동료들 사이를 헤치고 열
밖으로 걸어 나왔다. 머리가 약간 옆으로 굽은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크고 맑은
눈으로 소장 프리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걸어나왔다.
"정지! 무슨 일이야? 이 폴란드 돼지 새끼야!"
당황한 소장이 고함을 질렀다. 그가 소장 앞에 똑바로 섰다. 아주 침착했다. 입가에
미소까지 띤 것 같았다. 그는 바로 옆 사람한테만 겨우 들릴 만한 목소리로 조용히
말을 꺼냈다.
"저 사형수 중의 한 사람을 대신해서 제가 죽겠습니다."
"뭐라구?"
소장은 멍하니 놀란 얼굴이었다. 그 어떠한 반대도 허용하지 않는, 자신의 결정을
결코 바꾸어 본 적이 없는, 반항하는 자는 단 한 발의 총성으로 간단히 처치해 벌이던
소장이 갑자기 얼빠진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도대체 왜 그래?
"저는 이미 늙었고,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사람입니다. 살아 있어도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는 어디까지나 '병든 자와 약한 자를 먼저 처치해 버린다'는 나치스의 불문율을
먼저 내세웠다. 혹시 자신의 태도가 소장에게 영웅적으로 비쳐 자신이 원하는 일을
그르치게 될까 봐 몹시 조심하는 태도였다.
"그래, 누굴 대신해서 죽겠다는 거냐?"
"저 사람, 부인과 아이들을 가진 사람 대신입니다."
그는 아까 한없이 울부짖던 프란시스코 가죠프니체크 중사를 가리켰다.
"도대체 너는 누구냐?"
"천주교의 신부입니다."
그의 대답은 짤막하고 엄숙했다. 소장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그의 얼굴을 한없이
젊고 화사해 보였다. 그는 소장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멀리 지평선에 걸려 있는 붉은
저녁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 침묵이 흘렀다. 점호 중에 이렇게 오랫동안 침묵이
계속된 적은 없었다. 마침내 쉰 목소리로 소장 프리치가 말했다.
"좋다! 함께 가라!"
소장은 감히 안 된다고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보좌관 팔리치가 아사감방행
명단 가운데 번호 하나를 지우고 대신 '16670'번을 적어 넣었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앞으로 갓!"
사형수들은 맨발에 셔츠 바람으로 아사감방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그 사람도 마치
양 떼를 모는 목자처럼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그 사람의 이름은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이다.
어머니의 마음
깊은 숲 속에 커다란 호수가 하나 있었고, 그 호수에 큰 뱀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 호수에 외로운 청년 한 사람이 와서 쓸쓸하게 서 있다가 돌아갔다. 뱀은
그 청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내가 만약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저 불쌍한 청년을
위로해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청년은 호숫가에 자주 찾아왔다. 늘 골똘한 생각에
잠겨 오랫동안 호숫가를 거닐다가 돌아갔다. 뱀은 갈수록 청년에게 마음이 끌렸다.
어떻게 하면 청년의 아내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밤을 새웠다. 하루는 뱀이
호수를 지키는 신을 찾아갔다.
"저는 저 외로운 청년의 아내가 되고 싶습니다. 부디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신은 뱀을 아름다운 여자로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한 가지 단서를 붙였다.
"이제 저 청년을 따라가서 그의 아내가 되어라. 그러나 네가 아기를 낳으면 다시
뱀이 되어 호수로 돌아와야 한다."
뱀은 청년과 깊은 사람을 나누었다. 꿈 같은 세월이 흘러 지나갔다. 뱀은 마침내
아기를 낳게 되었다. 이제 다시 본디의 뱀이 되어 호수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뱀은 눈물을 흘리며 청년에게 자초지종을 다 고백했다. 그리고 자기의 아름다운 한쪽
눈을 뽑아 아기의 장난감으로 남기고 다시 호수로 돌아갔다. 청년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열심히 아기를 보살폈다. 아기의 손엔 늘 어머니의 눈을 쥐어 주었다.
이상하게도 그 눈알을 가지고 놀면 아기가 탈없이 잘 자랐다.
그런데 한번은 아기가 그 소중한 어머니의 눈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청년은 하는 수 없이 아기를 안고 호숫가로 가 뱀을 불렀다. 그러자
뱀이 나타나 나머지 하나 남은 눈알을 마저 뽑아 주면서 말했다.
"저는 이제 앞 못보는 장님입니다. 부디 잃어버리지 마시고 소중히 간직하세요.
녹지 않는 눈사람
꽃샘바람이 부는 이른 봄날 아침, 하늘나라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함박눈이
하늘나라에 사는 모든 흰눈들을 불러 모았다. 첫눈, 봄눈, 싸락눈, 풋눈, 밤눈, 가랑눈,
진눈깨비 등 하늘나라에 사는 눈이란 눈은 모두 함박눈한테 모여들었다.
"자 다들 이리로 가까이 오시오."
함박눈이 허옇게 길게 자란 수염을 쓰다듬으며 잠시 헛기침을 하다가 말을 이었다.
"오늘 내가 모두 모이라고 한 것은 황급히 의논할 일이 있기 때문이오, 올 겨울에
우리들이 다들 바빠 땅의 나라에 내려가지 못한 탓으로, 지금 땅의 나라에서는 가뭄이
들어 난리가 났소. 몇십 년만의 겨울 가뭄이라고 하면서 땅의 나라 사람들이 목말라
야단들이오. 이걸 어떡하면 좋을지 다들 좋은 의견이 있으면 한번 말들 해 보시오."
함박눈이 다시 헛기침을 한번하고 말을 마치자 흰눈들은 일단 안심하는 표정들을
지었다. 그들은 하늘나라에 무슨 큰 변고하고 난 줄 알고 속으로 무척 걱정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우리가 땅의 나라를 잊고 지낸 것이 잘못입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다들 땅의
나라로 내려가는 게 좋겠습니다."
해마다 가장 먼저 땅에 다녀오는 일을 큰 자랑거리로 삼고 있는 첫눈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말을 했다.
"올해 들어 땅의 나라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눈들도
많습니다. 더 늦기 전에 땅의 나라에 한번 다녀오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번에는 싸락눈이 온몸을 서걱거리면서 첫눈의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지금 땅의 나라에 한번 다녀오도록 합시다."
흰눈들은 모두 지금 당장이라도 땅의 나라로 내려가자고 입을 모았다. 그러자
함박눈은 흰 수염을 다시 한번 쓰윽 쓰다듬으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땅의 나라에서는 가뭄이 무척 심하다. 하늘나라에 사는 모든 눈들은 지금
당장 땅의 나라로 내려가도록 하라."
이 말을 듣고 가장 기뻐한 눈은 봄눈 형제였다. 연년생으로 태어난 그들 형제는
아직 단 한번도 땅의 나라에 가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땅의
나라에 한번 가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봄눈 형제는 어머니한테 인사를 하자마자 서둘러 땅의 나라를 향해 길을 떠났다.
"형, 난 지금 기뻐. 콧노래가 저절로 나와. 땅의 나라는 어떻게 생겼을까? 우리
나라보다 더 넓을까?"
"글쎄,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 나라보다는 더 작겠지."
봄눈 형제는 서둘러 도착한 곳은 한국이라는 작은 땅의 나라였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한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가운데 허리 부분이 철조망으로
둘러 처져 있었다.
"형 저게 뭐야? 왜 남북으로 저렇게 갈라져 있을까?"
봄눈 형제는 서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강한 회오리바람이
불어와 다정히 손을 잡고 있던 봄눈 형제를 갈라놓았다.
"어, 어, 형! 혀엉!"
형의 손을 놓쳐 버린 동생이 바람을 타고 내려앉은 곳은 철조망 위쪽 땅인 북한
땅이었다. 동생의 손을 놓쳐 버린 형이 내린 곳은 철조망 아래쪽 땅인 남한 땅이었다.
봄눈 형제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휴전선이 그어진 남북으로 그만 서로 헤어져 버리고
만 것이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눈이 내렸다고 좋아서 다들 야단들이었다. 몇 십년
만의 겨울 가뭄에서 당장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고 더덩실 춤을 추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것은 남한 사람들이나 북한 사람들이나 다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사람들의
그런 마음과는 달리 동생 봄눈은 휴전선 너머 남녘 땅에 내린 형이 보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다. 형 봄눈도 휴전선 너머 북녘 땅에 내린 동생이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봄눈 형제들이 서로의 소식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형이 보고 싶어 울다가 잠이 든 동생은 누가 자꾸
툭툭 몸을 건드려 깨어나 보니 아이들이 자기의 몸을 굴려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남녘 땅에 있는 형도 밤새워 동생을 생각하다가 잠이 든 뒤 깨어나 보니 아이들이
자기의 몸을 이리저리 굴리며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애들아, 왜 이래? 왜들 이러는 거야?"
"가만 있어. 우리가 널 눈사람으로 만드는 거야."
"눈사람이 되면 형을 만날 수 있어?"
"그럼, 만날 수 있고 말고."
"눈사람이 되면 동생을 만날 수 있어?"
"그럼, 만날 수 있고 말고."
봄눈 형제는 남한과 북한의 어린이들에 의해 커다란 눈덩이로 변해 갔다. 그리고 곧
눈사람이 되어 휴전선을 가운데 두고 형은 북쪽을, 동생은 남쪽을 바라보며 서 있게
되었다. 진달래가 피고 산과 들에 봄볕이 완연해도 그들은 그대로 녹지 않고 서
있었다.
또 한 사람의 동방박사
우리는 아기 예수가 태어났을 때 그를 경배하러 온 동방박사가 세 사람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전설에 의하면 멜키온, 발드사살, 개스터라는 세 사람 외에도
알타반이라는 점성술가가 한 사람 더 있었다.
어느 날, 알타반은 하늘의 별을 보다가 메시아의 탄생을 알리는 별을 보았다. 그는
즉시 자신의 전 재산을 다 팔아 아기 예수에게 드릴 선물로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
등 귀한 보물 세 가지를 사 가지고 팔레스타인으로 길을 떠났다. 미리 다른 동방박사
세 사람과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길을 가는 도중에 그는
강도를 만나 겨우 목숨만 건진 한 사내를 만났다. 그 사내는 강도에게 가진 것을 다
빼앗기로 죽을 정도로 두들겨 맞아 누군가가 돌보지 않으면 안 될 상태에 있었다.
알타반은 사내를 들쳐업고 가까운 여관으로 가서 주인을 찾았다.
"이 사람은 지금 강도를 만난 사람입니다. 제 대신 이 사람을 좀 돌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알타반은 여관 주인에게 사내를 부탁하면서 그 대가로 사파이어를 내놓았다. 그러자
강도를 만나 사내가 알타반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를 구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디로 그리 급히 가시는
길입니까?"
"메시아가 탄생한 곳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사내는 유태인으로 성경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그는 알타반에게 하느님의 축복을
빌면서 메시아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알타반은 동방박사들과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로 부지런히 낙타를 몰았다. 그러나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다른
동방박사들은 이미 별을 따라 베들레헴으로 떠난 뒤였다. 알타반은 하는 수없이 혼자
베들레헴을 찾았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그들은 만날 수 없었다. 한 신비스러운 아기가
얼마 전에 마구간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만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아기가 태어나자
천사들이 찾아와 노래를 불렀으며, 동방박사 세 사람이 아기에게 예물을 바치며
경배했으며, 부모들이 어디론가 아기를 데리고 사라져 버렸다는 것 등의 이야기만
들을 수 있었다. 알타반은 베들레헴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가 묵은 집은 어린 아들을
키우며 혼자 사는 한 가난한 과부의 집이었다. 그런데 그날 밤 한 이웃집 여자가
찾아와 울부짖었다.
"헤롯의 군인들이 내 아들을 죽였어요. 지금 헤롯은 읍내에 있는 모든
사내아이들을 죽이고 있어요."
알타반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즉시 과부에게 꼼짝 말고 집안에
있으라고 말하고 문 밖으로 나가 빗장을 질렀다. 그리고 칼을 빼든 군인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루비를 내밀며 말했다.
"이 집에 손을 대지 않으면 이 루비를 드리겠습니다. 내가 이 집의 주인입니다. 내게
아이가 하나도 없습니다. 부디 그대로 돌아가 주십시오."
보석이 탐난 군인을 루비를 받고 그대로 돌아갔다. 알타반은 아기 예수에게 드릴
보물을 벌써 두 개나 다른데 써 버렸다는 사실이 후회되었다. 그러나 아직 보물이
하나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삼으며 다시 메시아를 만나기 위하여 길을
떠났다. 그 뒤 30여 년이 지났다. 그러나 알타반은 그때까지도 아직 만나고 싶은
메시아를 만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알타반은 마침내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한 분이 예루살렘에서 선한 일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알타반은 황급히 그곳의 향했다. 그러나 그가 예루살렘에 당도했을 때에는 그분이
자신을 유대의 왕이자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자처했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당하기 위해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알타반은 급히 발길을 골고다로
돌렸다. 일찍이 그분의 별을 보았기 때문에 그분이야말로 그가 기다리는 하느님의
아들이 틀림없다고 믿고 있었다. 알타반은 보석을 넣어 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았다,
이제는 단 하나의 보석만이 남아 있었다. 그는 보석을 형리에게 주면 어쩌면 그분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알타반이 급히 노예 시장 앞을
지나갈 때였다. 그곳에 한 노예 소녀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눈물로 호소하고 있었다.
"저를 구해 주세요. 저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제게 순결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수치와 죄악에 가득 찬 삶 속으로 내던져지고
있습니다. 부디 저를 좀 구해 주세요."
알타반은 그 말을 듣고 그대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마지막 남은 보물은 이제
그분을 위해 쓰고 싶었으나 어떻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알타반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하느님의 아들이시여, 저를 용서하소서. 당신을 위해 남겨 두었던 마지막 보물은
이제 이 소녀를 위해 쓰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알타반은 마지막 하나 남은 보석 에메랄드를 노예 상에게 주고 소녀를 구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온 천지가 캄캄해지고 비바람이 치고 지진이 일어났다. 알타반은
얼른 가까이 보이는 집으로 몸을 피했다. 그러나 그 집은 곧 알타반을 덮치면서
무너져 내렸다. 알타반은 그 집에 깔려 죽어 가면서 말했다.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 다 주어 버리고, 정작 당신에게는 아무것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어떤 6^3456,12,15^
1951 년 5월 17일. 중공군이 북한을 도와 대공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사상
국군이 최대로 괴멸되는 순간이었다. 장병들은 험준한 산악 지대를 걸어 후퇴의
행군을 계속했다. 적의 포격이 비오는 듯했고, 도처에 매복 공격이 있었다. 대열에서
이탈된 낙오자들은 포로가 되거나 총 맞아 죽거나 동사했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몇 날
며칠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고산 준령을 넘어 후퇴에 후퇴를 거듭했다. 이미 지휘
계통은 무너진 지 오래였다. 병사들은 모두 자기 체력만 믿고 달아났다. 개중에는 낮엔
중공군 포로가 되었다가 야간에 탈출하여 간신히 목숨을 건진 이도 있었다. 참모장
숙소를 돌보고 있던 한 아주머니도 후퇴하는 참모장 일행을 따라 급히 들에 아기를
들쳐업고 후방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그런데 어른 가슴팍까지 물에 잠기는 깊은
계곡을 건널 때였다. 갑자기 적의 총격이 계곡의 향해 집중되었다. 사방에서 총소리가
들리고 앞에서 사람들이 픽픽 쓰러졌다. 병사들은 허겁지겁 계곡을 건너뛰었다. 오직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한참 정신없이 뛰다 보니 앞에 그 아주머니가 가고 있었다.
그런데 아주머니의 들에 아기는 없고 빈 포대기만 업혀 있었다.
"아주머니, 아기는 어떻게 했어요?"
한 병사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그제서야 아주머니는 혼절하듯 다시 계곡을 향해
뛰었다. 그러나 때는 너무 늦은 뒤였다. 이미 계곡으로 떠내려간 아기를 찾을
수는 없었다.
북의 어머니
그는 43 년만에 고향땅 북한을 찾았다. 재미 교포로서의 공식 일정을 모두 끝내고
곧장 고행 마을을 찾아 나섰다. 길도 옛길도 아니고 마을 이름도 옛 이름이
아니었으나 어릴 때의 기억을 더듬어 마침내 한 집을 찾아내었다. 초가 지붕이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뀐 것 말고는 안채와 사랑채가 있던 자리와 뒷간과 광이 있던
자리까지 예전과 똑같았다. 심지어 뒤꼍에 살구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것까지
그대로였다.
그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성큼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봉당에 초라한
할머니 한 분이 꼬부리고 앉아 졸고 있었다.
"할머니, 혹시 43 년 전에 이 집에 살던 사람을 아세요?"
그는 가만히 노파에게 다가가 물었다. 노파는 꿈이라도 꾸는지 눈도 뜨지 않고
한동안 말이 없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내가 50 년 전부터 여기서 살았는데."
"네? 50 년 전부터요?"
놀란 그는 주름 투성이인 노파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낯선 얼굴이었다. 노파는 이빨이 몽땅 빠지고, 하얗게 센 머리가 북데기처럼 엉켜
있었으며, 눈마저 짓물러 눈곱으로 덮여 있었다. 그러나 그는 헛일 삼아 다시 물어
보았다.
"그러면 할머니, 6^3456,12,15^ 나기 전에 이 집에 살던 기영이라고 아세요?"
"기영이?"
노파의 얼굴에 환히 반가운 기운이 스치더니 이내 눈물이 고였다.
"우리 아들인데 죽었어."
"아니 그러면 저의 어머니세요? 어머니, 제가 기영인데요."
"뭐라구?"
노파는 귀가 어두워 잘못 알아들었는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남에 갔는데 죽었어. 한번만이라도 만나 봤으면 좋겠어."
"어머니, 제가 이남에 갔던 기영이에요. 고개를 들어보세요."
그제서야 노파가 번쩍 고개를 들고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눈에
불꽃을 일으키며 벌떡 일어나 다짜고짜로 그의 양복저고리를 벗겨 내었다.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는지 젊은이 못지 않은 힘으로 와이셔츠마저 벗겨 내었다. 그리고는
"아이고, 기영아!"하고 그의 등에 얼굴을 대고 울기 시작했다.
"아이고 이거 꿈인가 생시가? 네가 정말 기영이구나! 등에 삼태성이 있는 걸 보니
틀림없는 기영이구나! 아이구, 내 아들아! 내가 너를 낳았을 때 이 삼태성을 보고, 우리
집에 인물 났다고 네 아버지가 그리 좋아하셨다."
노파는 그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그제서야 그도 "어머니!"하고
노파를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꿈에 그리던 젊은 어머니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는 어머니를 쳐다보고 또 쳐다보았다. 달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 버린 어머니의
모습에 눈물이 더욱 쏟아졌다.
"휴전선이 막히자 아버지는 네 생각에 화병이 나서 돌아가셨다. 그리고 네 누나와
동생은 6^3466,12,15^ 때 죽었고. 나도 오래 전부터 몸이 아파 널 한번만 보고 죽게 해
달라고 매일 매일 신령님께 빌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냐? 정말 이렇게 보게
되다니. 어제는 오랜만에 네 꿈을 꾸었는데, 깨고 나니 네 얼굴이 통 안 떠올라
아까부터 봉당에 앉아 네 얼굴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려고 애를 쓰고 있던 중이었다.
집이 달라지면 네가 영영 찾아올 수 없을 것 같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허물지도 고치지도 않고 그대로 두었는데 정말 잘 한 일이구나."
노파는 연신 꿈만 같다면서 몇 번씩이나 자기의 손등을 꼬집어보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저런 사정상 어머니와 하룻밤도 지내지 못하고 그곳을
떠나야만 했다. 매달리며 우는 어머니에게 몇 달 후에 꼭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만을
남기고 그곳을 떠났다.
그 뒤, 그가 다른 나라에 들렀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와 있었다. 가만히 날짜를 따져 보니 자기가 찾아갔던 바로 그 다음날이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이었다.
금강산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한 지 7일째 되는 날 아침이었다. 하느님은 너무나 피곤해서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지나 엿새 동안 하늘과 땅을 만들고, 낮과 밤을
갈라놓고, 예쁜 새들을 날게 하고, 온갖 짐승들을 골고루 만든 데다가 어제는 하루
종일 자신의 형상대로 아담과 이브를 만든 탓인지 몸과 마음이 너무나 피곤했다.
하느님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말고 도로 자리에 드러누웠다. 오늘 하루 만이라고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편히 쉬고 싶었다. 이제는 천지를 만드는 일도 거의
마무리되어 더 이상해야 할 일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혹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하더라도 하루쯤 뒤로 미루어도 좋을 것 같았다. 하느님은 자리에 누운 채
가만히 천지를 내려다보았다. 그 동안 잠 한 숨 제대로 자지 못하고 고생 고생해
가면서 만든 세상을 지그시 내려다보자 입가에 절로 미소가 돌았다. 비록 온몸이
쑤시고 팔다리가 저려 왔지만 마음만은 편안하고 흐뭇했다. "빛이 있으라." 해서 있게
된 아름다운 아침해가 두둥실 바다 위로 떠올라 눈이 부셨다.
어디 그뿐인가. 이제 막 잎을 터뜨리기 시작한 나뭇가지 위로 한없이 반짝거리는
아침 햇살과, 이리저리 들녘을 오가며 풀을 뜯는 갖가지 짐승들과, 포롱포롱 하늘을
나는 새들의 모습은 하느님의 마음을 잔잔한 기쁨으로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 채운 것은 에덴 동산에서
첫날밤을 지낸 뒤 다정하게 손을 잡고 강가를 거니는 아담과 이브의 모습이었다.
하느님은 어여쁘기 짝이 없는 아담과 이브의 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보다가 그만
드렁드렁 코까지 골면서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그러나 하느님이 7일째 되는
날 하루를 쉬겠다고 생각한 것은 큰 잘못이었다. 그것은 이브가 찾아와 하느님을 깨워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하느님, 하느님, 주무세요? 잠깐 저 좀 보세요. 전 하느님이 왜 저를 만드셨는지
모르겠어요."
이브는 깊이 잠든 아담의 갈비뼈 하나를 떼어 내어 하느님이 자기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부스스 눈을 뜬 하느님이 이브를 향해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저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요?"
"그래, 바로 사랑 때문이다."
"하느님, 전 사랑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왜 이해할 수가 없니? 네 모습을 한번 찬찬히 들여다보아라. 네가 나를 그대로
닮았지 않았느냐? 사랑은 서로가 닮는 것이다."
하느님은 한없이 부드럽고 따뜻한 눈길로 이브를 쳐다보았다. 이브는 하느님의
이야기를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사랑을 이해하고 확인할 수
있을까 하고 곰곰 생각해 보았으나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하느님의
사랑이었다. 아침해는 어느새 하늘 한가운데로 훌쩍 솟아오른 산들이 가장 아름답게
느껴졌다. 에덴 동산에 살면서도 그런 아름다운 산에서도 살고 싶었다. 그래서 이제 막
다시 잠이 들기 시작한 하느님을 또 흔들어 깨웠다.
"하느님, 하느님이 저를 사랑하신다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을 하나 만들어
주세요."
"허허, 그건 또 갑자기 무슨 소리냐?"
하느님이 두 번이나 잠을 깨운 이브가 그래도 사랑스러운지 처음보다 더 다정한
목소리를 내었다.
"에덴 동산보다 더 아름다운 산을 만들어 주세요. 저는 그 산에서 살고 싶어요."
"글쎄다, 내가 지난 엿새 동안 만든 그 많은 산들 중에서 하나 고르려무나."
"아니에요. 저를 위해 새로 하나 만들어 주세요. 그래야만 제가 하느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허허 참 욕심도. 사람은 욕심이 많으면 불행해진단다."
"그래도 그게 제 소원이에요."
"그게 진정 너의 소원이냐?"
"네 하느님."
"그럼 좋다. 오늘 당장 만들어 주지. 그러나 다음부턴 절대 그런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하느님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지구별 가까이로 다가갔다. 그리고 하루 종일
조금도 쉬지 않고 봉우리가 1 만 2천 개나 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을
하나 만들었다. 그 산이 바로 금강산이다.
그녀의 보석
그녀는 아들 셋을 두고도 늘그막에 자녀들과 따로 살게 되었다. 어릴 때는 그토록
착하고 효성스럽기 짝이 없던 아들들이 이제는 며느리한테 꼭 쥐여 분가 할 것을
주장하자 건강이 허락될 때까지 서로 따로 사는 게 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식들은
처음에는 1주일이 멀다 하고 우르르 손자들을 데리고 찾아왔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녀를 찾는 일이 줄어들었다. 이제는 손자들이 보고 싶어 잠깐 들르라는 전화를 해도
바쁘다는 핑계를 대는 일이 잦았다. 그러자 그녀는 노년의 외로움이라도 달래려는 듯
보석이나 장신구 따위의 패물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그녀의 남편은 그런 그녀를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돈 달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그런 값비싼 보석들을 사 모으는 데에야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집안에 무슨 일이 있어 며느리들이 다 모이면 으레 그 패물들을 며느리들이
보는 앞에 꺼내 놓고 손질을 하곤 했다. 자호박이니 비취니 루비니 하는 따위의
보석들을 호호 입김까지 불어 가며 닦기도 하고 몸에 한번 걸쳐 보기도 했다. 그러자
며느리들의 태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그녀를 찾는 회수도 잦아졌을 뿐만 아니라
서로 돈을 각출해서 보약을 지어 오는 일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며느리들에게
이런저런 작은 패물들을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크게 특별한 일도 없이 갑자기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 누구보다도 며느리들이 슬피
울었다. 문상 온 사람들이 '이 집엔 다들 효부를 두었다'는 말들을 하고 돌아갔다.
그녀의 남편은 장례를 치르고 나서 이것저것 아내의 유품을 정리했다. 결국 아내가 사
모은 패물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는 생전 아내가 자기
분신처럼 아끼던 물건들을 며느리들이 잘 간직해 주기를 바랐으나 어떻게
나누어주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패물의 종류와 값이 다 달라 세 며느리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주기 어려웠다. 세 며느리 또한 서로 비싼 물건을 갖고 싶어하는
눈치여서 선뜻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는 세 며느리를 불러 앉혀 놓고
말했다.
"내가 이것 갖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며느리인 너희들에게 주고 싶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나누면 좋을지 모르겠구나. 너희들 셋이서 잘 의논해서 정해 보아라."
며느리들이 곧 의논을 하고 돌아왔다. 큰며느리가 며느리들을 대표해서 입을 열었다.
"재물을 몽땅 팔아서, 그걸 현금으로 똑같이 셋으로 나누어주세요."
"허허, 그게 진정으로 하는 말이냐?"
"네."
그것은 그가 가장 바라지 않았던 결론이었다. '고얀 것들. 시에미 패물을 그저
돈으로밖에 안 보는구나'하는 생각에 마음이 언짢았다. 그렇지만 그는 시아버지로서
며느리들에게 한 말을 지키기로 결심했다.
그는 그 길로 보석상을 찾았다. 중년의 보석상 주인이 이리저리 아내의 패물들을
살펴보더니 잔뜩 이맛살을 찌푸렸다.
"할아버지, 이거 어디에서 사신 겁니까?"
"내가 산 게 아니네, 죽은 내 마누라가 산 걸세."
"할아버지, 이 물건들은 모두 다 가짭니다. 저는 혹시 할아버지가 속아서 사셨나
했습니다."
순간, 그는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울컥 어떤 서러움 같은 것이 치솟아 올랐다. 죽은
아내가 왜 그토록 패물을 사 모았는지 그제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적은 누구인가
"잘 가게. 이제 이곳엔 두 번 다시 들어오지 말게."
교도관이 힘껏 잡고 있던 그의 손을 놓았다.
"그럽시다. 다시 만나더라도 이제 이곳에서는 만나지 말도록 합시다."
그는 옷 보따리를 들고 10 년만에 청송 보호 감호소의 문을 나왔다. 봄 하늘은
맑았다. 멀리 감호소의 산 아래로 가물가물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그는 천천히 청송
읍내로 가는 들길을 걸었다, 어지러웠다. 깊게 심호흡을 하면서 맑은 공기를
들이켰으나 여전히 다리가 휘청거렸다. 갑자기 어디로 걸어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자유를 되찾았다는 기쁨과 해방감을 느낀 것은 잠깐이었다.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면서 살아가야 할지 앞길이 막막했다. 그는 우선 대구로 나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차창 밖으로 겨우내 혹한을 견뎌 온 보리밭이 파랗게 펼쳐져 있었다. 그는 내내
보리밭만 멍하니 쳐다보았다. 10 년만에 감옥에서 풀려 나와도 아무데도 갈 곳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연락할 가족이 아무도 없다는 비감함 때문이었을까. 언
땅을 뚫고 파릇파릇 솟아난 보릿잎들이 바람에 흔들리자 공연히 눈물이 솟았다. 그는
차창에 머리를 기댔다.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바빠서 자네 퇴소하는 날 내가 못 가네. 그렇지만 딴 마음은 먹지 말고 서울로
올라오게. 난 자넬 믿네. 서울역에 내리자마자 전활 하게."
그는 서울 삼양동에 있는 정씨를 생각했다. 면회장을 빠져나가면서 사람 좋아 뵈는
웃음을 흘리며 어깨를 툭툭 치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결국 서울로 정씨를
찾아가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오직 그곳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정씨는 오갈 데 없는 전과자들을 위해 잠잘 곳과 먹을 것을 제공하는
'사랑의 집'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책임질 보호자가 없을 경우, 형기가
만기되어도 퇴소시키기 않는다는 감호소측의 방침에 따라 그가 퇴소하지 못하고 있자
선뜻 그를 책임지고 보호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정씨였다. 그는 종교단체의 사람도,
돈이 많아 자선단체를 운영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 자신이 전과자였다. 정확하게
전과 몇 범이라고 밝히지는 않았으나 10여 년을 감옥에서 살다 나온 사람이었다. 그가
출소하자 그의 아내가 선뜻 오갈 데 없는 전과자들을 위해 집을 내놓았다.
그는 대구에서 하룻밤을 잤다. 그 동안 감호소 작업장에서 축구공을 만들어 저축한
돈으로 국밥도 사 먹고 목욕도 하고 소주도 한 잔 했다. 물론 여자를 불러 같이 잠도
한번 자 보았다. 늘 감옥에서 출소하면 꿈꾸었던, 출소하면 가장 먼저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한꺼번에 해치웠다. 그리고 서울 삼양동 '사랑의 집'에서 리어카
행상을 하면서 새 인생을 시작했다. 이제 다시는 감옥으로 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덤핑용 운동화를 사다가 거리에 내다 팔았다. 돈을 모아 단칸방이라도 하나 얻어
살림도 차리고 여자가 해주는 따뜻한 밥상이라도 한번 받아 보는 꿈을 꾸었다.
사람들이 그를 전과자라는 이유만으로 경원시 해도 그에게는 앞으로의 삶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용기를 내게. 여기에서 실패하면 자네 인생이 끝난다고 생각하게. 여기에서도 자네
할 일은 많아. 자넨 그래도 건강한 편이 아닌가. 다른 이들을 좀 보게. 다들 몸이
망가졌어. 마음들도 상처투성이야. 자네가 저들을 돕겠다고 한번 생각해 보게. 저
사람들을 위해 자네가 국도 끊이고 밥도 하고 돈도 번다고 한번 생각해 봐. 그러면
사는 보람도 있을 걸세. 그러다가 누가 아는가. 자네 좋다는 여자가 나설는지. 절대
낙심하지 말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내게 털어놓고 상의하게. 난 자네 편이네. 자네나
나나 똑같은 신세야."
정씨는 툭하면 그에게 그런 말을 했다. 비도 오고 어디 나갈 데도 없어 술이라고 한
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면 어김없이 정씨가 그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돼지고기 몇 근을 볶아 술을 권하면서 그런 말을 했다. 정말 그는 이제부터라도
자기의 인생이 좀 제대로 풀려 주기를 바랐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의 그는 늘
불안정한 삶의 연속이었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남의 집 농사일을 거들다가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여관 심부름꾼, 구두닦이 등 안해 본 일이 없었다. 어떤 때는 잠잘 데가
없어 남대문 시장 골목에서 온기가 남아 연탄재를 껴안고 잘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하는 일마다 실패가 뒤따랐다. 결혼한 지 1 년만에 아내마저도 해산을
하다가 태아와 함께 죽었다. 낙망한 나머지 죽어 버리겠다고 술을 먹고 한강에
뛰어들었으나 누가 그를 건져내었다. 그는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는 인생을 증오했다.
자포자기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남을 속이고, 남의 물건을 훔치고, 남에게
폭력을 행사하면서 점차 사회의 한 구석으로 밀려났다. 그가 정씨의 중매로 다시 한
여자를 만나 살림을 차린 것은 출소한 지 2 년 뒤였다. 가끔 '사랑의 집'을 찾아와
빨래와 설거지를 해주곤 하던 이웃 교회 여자였다. 가끔 그에게만 특별히 라면을 끓여
주거나 총각김치를 갖다 줄 때도 있었는데, 정씨가 그녀의 그런 행동을 마음속 깊게
새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웃 교회를 빌려 간단히 동료들 앞에서 결혼식을 올린
그는 하나님께 열심히 성실하게 그 길을 걸어가겠다고 맹세했다. 그는 정말 다시 한
여자를 사랑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다시 한 여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정말 꿈 같은 일이었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이대로 그
여자와 열심히 살다가 죽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바람일
뿐이었다. 다시 결혼한 그 여자마저도 첫아이를 낳다가 죽고 말았다. 이번에는 덜렁
아이만 남겨 둔 채. 그는 통곡했다. 절망이라도 말조차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절망의
깊은 구렁텅이로 빠져들었다. 동료들이 그를 찾아와 위로했으나 그들의 말은 한낱
넋두리에 불과했다. 정씨와 이웃 교회의 목사가 그를 위해 기도했으나 그들의 기도
소리조차 마음에 닿지 않았다. 그는 또다시 자신의 인생을 증오했다. 한없이 자신을
미워하고 신을 원망했다. 이젠 아무런 희망도 없다고 생각되었다. 이대로 인생을 끝내
버려도 더 이상 포기해야 할 인생도 없다고 생각되었다. '누구에게나 평생에 세 번의
좋은 기회가 온다'는 말을 믿고 기다렸던 자신의 어리석음이 한탄스러웠다. 자기의
인생을 이렇게 망가뜨린 적이 있다면 도대체 그 적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어느 날 밤, 그는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다가 '나를 이렇게 만든 적이 누구인지
보여 달라'고 신에게 간곡히 요청했다. 그러자 커튼 뒤에서 그 적이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시인 이경록
경주 시내에서 불국사행 버스를 타고 가다가 불국사 종점 조금 못 미처 '우정의
동산' 앞에 내리면 그 작은 동산 길가엔 젊은 시인의 시비 하나가 외롭게 서 있다.
이 시비는 '77 년 4월, 스물 아홉의 젊은 나이에 백혈병으로 작고한 이경록 시인의
시비다. 경주를 찾고 불국사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그러한 시비가 있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아직은 그를 기억하고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간간이 그를 찾아올
뿐이다.
이경록 시인이 죽음의 언저리를 헤매던 겨울밤, 그는 의사들로부터 그날 밤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몇몇 친구들은 흑성동 성모 병원 가까운
어느 소주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고, 또 몇 명의 친구들은 그의 곁에 있었다. 점점
밤이 깊어지고 자정이 넘었을 때 갑자기 그의 숨결이 가팔랐다. 동쪽으로 창이 나
그의 병실로 급히 의사와 간호사가 다녀갔다. 곧 이어 수녀 몇 분이 들이닥쳤다.
수녀들은 그에게 종부성사를 주기 위해 손에 작은 성수병을 들고 있었다.
"이경록 씨, 이제 하느님 곁에 가시는 거예요. 하느님 곁에 가시려면 영세를
받아야만 해요. 받으시겠죠?"
수녀들은 그에게 종부성사를 받기를 권했다. 천주교인이 아니었던 그로서는 뜻밖의
권고였다. 그러나 그는 그 권고를 받아들였다. 의식이 희미한 가운데에서도 머리를
끄덕이며 성사를 받겠다는 표시를 했다.
"그러면 이름을 요셉이라고 하세요. 영세를 받으려면 영세명이 있어야 해요."
수녀 한 분이 그에게 요셉이라는 영세명을 정해 주었다. 그러자 그는 머리를 흔들며
종부성사 받기를 거부했다. 말 한 마디조차 할 수 없는 절대 절명의 순간에 "내가
시인인데, 이경록이라는 이름으로 하늘나라에 가야 시인인 줄 알지, 요셉이라고 하면
아무도 내가 시인인지 모른다."는 뜻의 말을 띄엄띄엄 토해 놓았다. 그러면서
손바닥에다가 수녀들이 자기의 말뜻을 잘 못 알아들었을까 봐 '시인'이라고 손가락
글씨를 써 보였다. 수녀들은 그의 뜻을 금방 알아차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
"괜찮아요. 요셉이라고 해도 하늘나라에서는 시인인 줄 다 알아요. 요셉이라 한다고
해서 이경록이라는 이름이 없어지는 건 아니에요."
그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종부성사를 받겠다는 표시를 했다.
곧 이어 그에게 성수가 뿌려지고 종부성사를 위한 수녀들의 기도가 시작되었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 잠이 든 것 같았다. 그날 밤, 종부성사를 받고도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다들 한없이 기뻐했다. 그는 곧 퇴원을 하고 대학 졸업식에도
참석했다. 연작시 '겨울 바다'를 쓰기 위해 아내와 함께 부산 해운대도 다녀왔다.
그러나 그는 다시 병원에 입원을 하고, 결국은 이 세상과 작별을 고하고 말았다.
'빈혈'이라는 마지막 한 편의 시를 남긴 채.
밤이 되면 내 몸에서 피가 빠져나갑니다. 피는 어디로 가나, 피는 공중으로 흘러서
하늘로 갑니다. 하늘나라, 피가 가는 그곳은 언제나 내 죽음의 집입니다.
피가 빠진 몸은 홀로 꿈을 꾸다가 차게 굳어서 흑연이 됩니다. 별이 된 몸. 별의 꿈,
별이 눈물을 흘립니다. 내 피는 하늘에서 별이 됩니다.
가장 위대한 예술
그는 '인생'이라는 말을 참으로 우습게 여기는 예술가였다. 그는 책을 읽다가도
인생이라는 낱말이 나오면 공연히 키득키득 웃음을 터뜨렸다. 책의 내용이나 저자와는
아무 상관없이 그 책을 마냥 진부하고 유치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고 말았다. 누구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인생이 어쩌고' 하는 말을 꺼내면 그만 그 말을 꺼낸 사람을
유치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단정했다. 그만큼 그는 인생이라는 말을 뭔가
저속하고 감상적이고 간질간질한 저질 유행가 가사처럼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가능한 한 그 말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굳이 그 말을 쓰지 않으면
안 될 경우라도 있으면 '삶'이라는 말을 대신 썼다. 인생이나 삶이나 크게 다른 말이
아니었으나 그래도 삶이라는 말이 보다 더 고상하고 진지하다고 생각했다. 삶이라는
말속에는 그대로 그가 알 수 없는 위대한 그 무엇이 숨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는 늘 예술과 인생을 분리해서 생각했다. 예술은 인생의 우위에 있는 것이며, 인생은
예술에 수반되는 것쯤으로 생각했다. 나이 마흔이 넘도록 인생을 항상 예술의
하위개념에 두었다. 그러나 그도 결국 고통과 눈물의 세월 앞에, 인생이라는 말이 주는
무게와 감동 앞에 스스로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게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예술이란 인생의 한 보잘것없는, 티끌보다 더 작디작은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것은 어느 일요일, 텅 빈 집 뜨락에 내리는 햇살 속에서 혼자 부스럭거리며
인도의 성자 간디 옹의 말씀 한 마디를 읽고 난 뒤였다.
인생은 모든 예술보다 위대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완벽에 가까운 인생을 영위하는
인간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예술가다. 그 까닭은 숭고한 인생이라는 확실한 토대와 틀
없이는 예술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신발
누가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면 나는 아버지가 사주시던 신발 생각이 난다. 요즘
아이들이야 소위 '메이커 있는'품질 좋은 운동화를 사 신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검정 고무신이나 질 낮은 운동화가 고작이었다. 어쩌다가 흰 고무신이나 때깔 좋은
운동화라도 얻어걸리면 그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언제나 내
발보다 한두 치수 큰 신발을 사주셨다. 나는 처음엔 아이들은 키가 쑥쑥 빨리
자라니까 일부러 거기에 맞추어 큰 신발을 사주시는 줄 알았다. 또 가난한 집안
형편에 어떻게 해서든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신발을 신기기 위해서 그러시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무슨 신발을 신든 그리 오래 신지는 못했다. 내 발이 채 크기도
전에 언제나 신발이 먼저 떨어져 버렸다. 그것은 신발의 품질이 너무나 나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아껴 신는다 하더라도 신발이 먼저 닳아 버려 내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을 수 있는 기회란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으레 내 발보다 꼭 한두
치수씩 큰 신발을 사주셨다. 나는 언제나 그게 불만이었다. 길을 걸을 때마다 신발이
벗겨질까 봐 조심스럽게 걷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번은 학교 운동회 때 신발을 신고
달리다가 꼴찌를 한 적도 있었다. 나는 자연히 걸음걸이가 느려졌으며,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뛰어가는 일이 드물었다.
그 뒤 어른이 되어 이번에는 내가 아버지의 신발을 사 드리게 되었다. 아버지의
회갑을 기념하기 위해 시내 어느 구두가게에 들른 나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 저한테 그러셨던 것처럼 이번에는 아버님이 한 치수 더 큰 구두를 사세요."
그러자 아버지가 빙긋이 웃으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네 발보다 큰 신발을 사준 것은 다 나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어서였다. 그건
항상 여유를 가지고 살라는 뜻에 서였다. 자기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바쁘게 세상을 사는 것보다는 발에 조금 헐거운 신발을 신고 좀 여유 있게
걸어다니며 세상을 사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
운명의 손길
장군은 깊은 고뇌에 빠져 있었다. 아무리 중과부적이라 할지라도 이대로 후퇴할 수
없다는 생각이 그를 괴롭혔다. 적의 군사가 열 명이라면 아군의 군사는 단 한 명.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은 수효였다. 더구나 아군 병사들은 몇 차례 접전 끝에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러나 적은 곧 다시 공격을 시작할 것이다. 가까운 곳에 있는
적의 진지에서는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공격의 북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다.
진퇴양난. 천 근이나 되는 바위가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전멸을 하는 일이 있더라도
먼저 공격을 감행하거나 도망칠 수 있는 데까지 도망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장군은 드디어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늠름한 자세로 백마를 타고 병사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나를 따르라! 우리가 먼저 공격을 감행한다! 승리는 승리하려고 하는 자만의
것이다! 이번에는 반드시 우리가 승리한다!"
장군은 목청껏 소리를 드높여 승리를 장담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믿는 병사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이미 전의마저 상실한 채 묵묵히 장군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런데 적진을 향하는 병사들의 행렬이 마침 한 불당 앞을 지나게 되었다. 장군은
잠시 병사들을 멈추게 하고 혼자 불당 안으로 들어가 간절히 기도를 올리고 나왔다.
그리고는 병사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했다.
"보라, 내가 지금 너희들 앞에 동전 하나를 던지겠다. 동전이 앞면이 나오면 우리가
이길 것이요. 뒷면이 나오면 우리가 지고 말 것이다. 자아. 기다려라, 운명의 손길은
우리를 어떻게 인도할 것인가?"
장군은 떨리는 손으로 동전을 높이 던졌다. 동전은 급히 땅에 떨어지면서 앞면이
나왔다. 병사들은 갑자기 사기가 충전되었다. 그들은 그 길로 적진을 향해 달려가
대승을 거두었다. 다음 날, 한 병사가 장군에게 말했다.
"장군님, 저는 이번 전투에서 운명의 손길은 그 아무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장군이 말했다.
"그렇지,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면서 장군은 어제 던졌던 동전을 병사에게 보여주었다. 그 동전은 양쪽이 다
앞면인 동전이었다.
천국의 문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었다. 문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격 여부를 심사 받기 위해서였다. 봄눈이 내린 그날도
남자 세 사람이 문 앞에서 심사를 받고 있었다. 심사 위원장은 성베드로였다.
"자, 맨 앞에 있는 사람부터 차례대로 오시오."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베드로가 소리치자 맨 앞줄에 서 있던 사내가 베드로 앞으로
썩 나섰다. 그는 검은 양복을 입고 있었으며, 오른손에는 금박을 한 '성경 전서'가
들려 있었다. 표정은 어찌나 근엄해 보이는지 심사를 맡은 성 베드로가 오히려 더
초라해 보였다.
"자넨 무슨 일을 했나?"
베드로가 다짜고짜 사내의 직업부터 물었다.
"저는 장로교 목사였습니다. 25 년간이나 주를 찬미하고 불쌍한 우리 인간들의
영혼을 구하는 설교를 해 왔습니다."
"으음."
베드로가 한참 동안 신음 소리를 내다가 입을 다시 열었다.
"자신의 영혼은 구했는가?"
"제 영혼은 지금 천국의 문 앞에 와 있습니다. 할렐루야!"
사내가 넙죽 땅에 엎드려 베드로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
"어어, 이게 무슨 짓인가? 자, 저리 가 있게. 그 다음 사람 들어오시오."
베드로가 목사를 한쪽 편으로 몰아세운 뒤 다음 사람을 불렀다. 이번에는 흰 가운을
입은 사내가 다소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베드로 앞으로 나섰다.
"자넨 그게 무슨 옷인가?"
"의사들이 입는 가운입니다."
"자넨 병원에서 일을 했는가?"
"네, 지난 25 년 동안 내과 의사로서 죽어 가는 많은 생명을 구했습니다."
"으음."
베드로는 한참 동안 말없이 의사를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자네의 생명은 구했는가?"
"구하지 못했습니다. 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분은 바로 당신입니다. 저는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병마의 고통에서 시달리며 죽어 가는 많은 생명들을 구해야
합니다. 저를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게 해주십시오."
사내가 흰 가운을 벗어 땅에 펼치고는 넙죽 베드로에게 절을 올렸다. 그리고는
베드로의 손등에 입을 쩍 맞추었다.
"어허, 이게 무슨 짓인가? 저기 저 목사 옆에 가서 서 있게. 그리고 다음 사람
들어오게."
세 번째 사내는 허름한 작업복을 입은 평범한 사내였다. 그는 무덤덤한 얼굴을 하고
성 베드로의 구레나룻에 하얀 눈송이가 내려앉았다가 사라지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자네 무슨 일을 했는가?"
베드로는 앞의 두 사람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저는 시내버스 운전삽니다. 25 년 동안 아무 사고 없이 차를 몰았습니다. 명색이
무사고 25 년의 모범 운전삽니다."
"오호, 그래?"
베드로가 감탄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내는 자기 자랑을
너무 노골적으로 했다 싶어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허리를 굽혀
베드로에게 절을 하지 않고 손등에 키스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천국의 문 앞에 서서
오직 심사 결과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으음. 으음."
베드로는 몇 번이나 짧은 신음 소리를 토해 내었다. 한참 동안이나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기도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이리저리 문 앞을 거닐기도 하였다. 세
사람의 마음은 초조했다. 눈앞에 지옥의 불길이 어른거렸다. 그때 베드로가 환히 웃은
얼굴로 세 사람을 보고 말했다.
"버스 운전사, 자네만 이리로 오게."
"네에?"
"빨리 들어오게!"
베드로는 버스 운전사에게 천국의 문을 활짝 열어 주었다. 그러자 나머지 두 사내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베드로에게 항의했다.
"아니, 버스 운전사는 들어가는데 우리는 왜 못 들어가는 겁니까? 도대체 이런
불공평한 처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수많은 영혼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저는 죽어 가는 수많은 생명들을 구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건 자네들이 평생 동안 한 일보다 저 운전사가 더 많은 인명을 구했기 때문이네."
더러운 소원
길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 고깃간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 자기 집에
손님을 끌어들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한 집에서 좋은 고기를 주면 다른
집에서는 그보다 더 좋은 고기를 주고, 한 집에서 값을 내리면 다른 집에서는 그보다
더 값을 내렸다. 자연히 둘 사이가 좋을 리 없었다. 어느 쪽이든 한 쪽이 장사가 잘 안
되면 서로 다른 한 쪽 때문에 장사가 잘 안된다고 원망했다. 또 장사가 잘 되어도
다른 한 쪽 때문에 더 잘 될 장사가 그 정도밖에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늘
상대방 때문에 서로 장사가 잘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자기 집장사가 잘 되려면
무엇보다도 경쟁자가 망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서로 다른 집 고깃간을
망하게 해 달라고 신령님께 빌었다. 하루는 신령님이 한 고깃간을 찾아와 주인에게
말했다.
"무슨 소원이든 너의 소원을 다 들어주겠다. 다만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래도 좋으냐?"
"소원만 들어주신다면 무슨 조건이든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주인은 깊숙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자네가 소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 소원의 두 배를 저쪽 가게 주인에게 베풀어주게
된다. 가령 자네가 돈이 아쉬우면, 저쪽은 자네가 바라는 두 배의 돈을 얻게 된다.
만일 자네가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란다면, 저쪽은 자네보다 두 배를 더 오래 살게
된다. 그러니 잘 생각해서 자네 소원을 말해 보아라."
고깃간 주인은 갑자기 무슨 소원을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자칫 잘못
말했다가는 모조리 저쪽 고깃간 주인한테만 좋은 일을 하게 되는 일이었다. 그는 깊은
생가에 잠겨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나중에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신령님, 저의 눈 한쪽이 보이지 않게 해주십시오."
도적과 농부
한 시골 농부가 봄날 아침부터 산기슭 밭에서 김을 매고 있었다. 농부가 사는 곳은
워낙 깊은 산골이라 하루 종일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었다. 그런데 농부가 김을 맨 지
한 식경쯤 되자 어떤 사내 하나가 급히 말을 타고 지나가다가 밭가에 보자기 하나를
떨어뜨렸다.
"여보시오! 보자기를 떨어뜨렸소!"
농부는 얼른 보자기를 주워 들고 소리쳤다. 그러나 사내는 이미 산모퉁이를 돌아간
뒤였다. 농부는 보자기가 너무 무거워 속에 무엇이 들었냐 하고 슬며시 보자기를 풀어
보았다. 그 속엔 큼직한 금덩어리 하나가 들어 있었다. 농부는 깜짝 놀라 다시
보자기를 싸서 처음 있던 자리에다 갖다 놓았다. 하루해는 금방이었다.
어느덧 해는 기울기 시작했다. 서산에 저녁노을이 붉게 깔릴 무렵, 보자기를
떨어뜨렸던 사내가 급히 말을 몰고 나타났다.
"오늘 아침에 내가 여기를 지나면서 보자기에 싼 물건 하나를 떨어뜨린 것 같은데,
혹시 그걸 못 보셨습니까?"
"아, 그 보자기요? 저기 밭가에 그대로 두었습니다."
농부는 서슴치 않고 손가락으로 보자기를 가리켰다. 사내는 말에서 내려 보자기를
끌러 보았다. 금덩어리가 그대로 있었다. 사내는 잃었던 금덩어리를 찾게 된 것이
너무나 고마워 농부에게 말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 금덩어리의 반을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농부는 정색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아닙니다. 말씀은 고맙지만 이 금덩어리를 받아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제가
무슨 이유로 당신의 금덩어리를 나누어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런 말씀 마시고 제 성의이오니 거두어 주십시오. 만일 당신이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저로서는 그만이었을 것입니다."
농부는 막무가내였다. 사내가 아무리 금덩어리를 받으라고 해도 받지 않았다. 그러자
사내가 한참 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농부에게 말했다.
"실은 저는 도적입니다. 이 금덩어리는 남한테 빼앗아 온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남의 물건만을 강탈하면서 살아왔는데, 당신은 내가 준다는 것까지 거절하니 세상에
이렇게 서로 상반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사내는 농부의 해어진 옷자락을 잡고 자신의 전과를 뉘우치는 눈물을 흘렸다.
"이 금덩어리를 주인에게 돌려주도록 하겠습니다."
사내는 금덩어리를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평생을 농부와 함께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다.
(4)
고슴도치의 첫사랑
밝은 대낮에 산책하기를 좋아하는 고슴도치가 있었다. 고슴도치들은 야행성이라서
주로 낮에는 나무뿌리 밑의 구멍이나 바위틈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슬슬
돌아다니는데 그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친구들이 다 잠든 낮이면 혼자 일어나 숲
속을 산책했다. 그리고 친구들이 기지개를 켜고 슬슬 활동을 시작하는 밤이면 혼자
잠을 잤다. 친구들은 그런 그를 비웃었다.
"너 네 자신을 좀 알아야 해. 넌 고슴도치야. 고슴도치는 고슴도치답게 살아야 하는
거여."
"아냐, 난 밤은 싫어. 맑은 바람이 불고 햇님이 있고, 햇살이 눈부신 밝은 대낮이
좋아."
"밤에는 달빛이 있어. 별도 빛나고."
"아냐. 난 어둠침침한 밤은 정말 싫어."
그는 친구들의 말에는 조금도 귀기울이지 않고 해만 뜨면 일어나 숲 속을 산책했다.
그런 어느 날 아침이었다. 아마 유난히 햇살이 눈부시게 빛난 탓이었을 것이다.
아침마다 산책길에서 늘 만나곤 하던 다람쥐였으나 고슴도치는 그날 따라 다람쥐를
보자 왠지 가슴이 뛰었다. 재빨리 나무 위로 기어오르다가 잠깐 멈추어 선 다람쥐의
그 초롱초롱한 눈빛에 온몸이 다 녹아 버리는 것 같았다.
"다람쥐야, 어떻게 하면 나무 위로 올라갈 수가 있니? 좀 가르쳐 줄 수
없겠니?"
"그건 가르쳐 줄 수 없는 일이야. 자기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일이야."
다람쥐는 고슴도치를 쳐다보며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고슴도치는 다람쥐한테
가까이 가고 싶어 나무 위로 오르려고 애를 썼으나 번번이 나가떨어지기만
할뿐이었다. 그날 밤, 고슴도치는 잠이 오지 않았다. 말없이 쳐다보던 다람쥐의 맑고
까만 눈동자와 나뭇가지처럼 탐스러운 다람쥐의 꼬리가 계속 떠올랐다. 고슴도치는
아침마다 더 일찍 숲으로 나가 다람쥐를 만났다. 숲은 언제나 아침 이슬에 젖어
있었고, 다람쥐는 언제나 아침 햇살에 빛나는 나뭇잎처럼 반짝거렸다. 고슴도치는 그런
다람쥐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러다가 물안개가 고요히 피어오르는
어느 날, 고슴도치는 다람쥐에게 말했다.
"난 이 말을 결코 안하려고 했지만, 다람쥐야. 난 너를 사랑해."
그러자 다람쥐가 재빨리 나무 아래로 내려오면서 말했다.
"나도 널 사랑해"
"정말"
"그럼."
다람쥐는 기다렸다는 듯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고슴도치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고슴도치는 힘껏 다람쥐를 껴안았다. 아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갑자기
다람쥐가 비명을 내질렀다.
"아야. 아야! 이거 놔, 이거 놓으란 말이야!."
고슴도치는 깜짝 놀라 팔의 힘을 풀었다. 다람쥐가 얼른 고슴도치의 품속을
빠져나가면서 소리쳤다.
"넌 웬 가시가 그렇게 많니? 따가워 죽을 뻔했어."
"우린 원래 그래. 다들 가시 털이 나 있어."
"가시가 있으면 난 싫어. 난 널 사랑하지 않을 거야. 네 몸에 가시가 있는 줄은 정말
몰랐어."
"그러지마. 내가 누굴 사랑해 본 건 네가 처음이야."
"싫어, 몸에 가시가 있는 한 난 널 사랑하지 않을 거야. 난 널 안을 수도, 안길
수도 없어."
고슴도치는 정신이 멍해졌다. 사랑을 얻게 된 순간에 갑자기 사랑을 잃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굴 사랑한다는 것은 지금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것" 이라는 말이
집안에 뱅뱅 돌았으나 그런 말은 하지도 못하고 멍하니 다람쥐만 쳐다보았다. 그러자
다람쥐는 다시 나무 위로 올라가 버리고 말았다
"가시를 없애지 않는 한 날 만날 생각도 하지 마"라는 말만 남긴 채.
그 뒤, 고슴도치는 다람쥐를 만날 수 없었다. 다람쥐는 고슴도치가 나타나기만 하면
어디론가 멀리 도망가 버리고 말았다. 고슴도치는 다람쥐가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사랑에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알게 된 고슴도치는 허구 한날 눈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곰곰 생각했다. 내가 다람쥐를 사랑하는 한 어쩔 수 없어.
내 몸의 가시 털을 없애는 수밖에. 다람쥐는 나를 사랑하면서도 내 몸에 난 가시 털
때문에 날 멀리하고 있는 것뿐이야. 내 몸에 가시가 없다면 우린 지금쯤 서로 뜨겁게
사랑하고 있을 거야. 내 몸에 가시가 없다면 우린 지금쯤 서로 뜨겁게 사랑하고 있을
거야. 난 다람쥐를 위해 내 몸의 가시를 없애지 않으면 안 돼. 고슴도치는 그날부터
가시 털을 없애기 위해 바위에 몸을 비비기 시작했다. 한 번씩 몸을 비빌 때마다
온몸에 피가 흐르고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고슴도치는 참고 또
참았다. 친구들이 와서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말렸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바위 하나를 벌겋게 피로 다 물들이면서 결국 온몸의 가시 털을 없앴다.
"미안해. 내가 너에게 너무 무리한 것을 요구했구나"
다람쥐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가시를 없애고 찾아온 고슴도치를 안아 주면서
말했다.
"아니야. 난 괜찮아. 난 이대로 행복해."
다람쥐의 품에 안긴 고슴도치는 정말 행복했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 버렸으면
싶었다. 그러나 고슴도치의 행복은 잠깐이었다. 다람쥐를 짝사랑하는 들쥐가 나타나
고슴도치를 공격해 왔다. 몸에 가시가 없어진 고슴도치로서는 들쥐의 공격을 막을
재간이 없었다. 고슴도치는 사랑하는 다람쥐를 들쥐에게 빼앗기고 만 것이다.
고슴도치는 슬피 울었다. 몇 날 며칠 숲 속에는 고슴도치의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고슴도치의 몸 속에 다시 가시 털이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정작 고슴도치 그 자신까지도.
두 눈을 가린 스승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동맹휴학을 일으켰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다소 체벌을 심하게 한 생활 지도 교사를 해직시키라고 요구했다. 학교측에서는
학생들의 그런 부당한 요구는 들어줄 수 없다면서 주동 학생들을 징계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수업을 거부하고 운동장에 모여 있던 학생들이 우르르 교무실로 들이닥쳤다.
개중에는 손에 몽둥이를 들고 있는 학생들도 더러 있었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기세에
놀라 얼른 자리를 피했다. 급히 학교 뒷산으로 달아나는 교사가 있는가 하면, 어느새
교문 밖으로 내뺀 교사들도 있었다. 그런데 유독 김철후라는 나이 많은 한 교사만은
학생들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교무실에 않아 있었다.
"네 이놈들! 밖으로 썩 나가지 못해? 학생들이 교무실에 와서 난동을 부려도 되는
거야. 도대체 이게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야?"
김 교사는 학생들을 향해 대성 일갈했다. 학생들은 앞뒤 가리지도 않고 흥분한 채
김교사를 둘러쌌다. 그리고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김 교사를 마구 구타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김 교사는 얼른 두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렸다. 학생들의 주먹질과
발길질을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눈을 가린 두 손을 떼지 않았다. 한 학생이 김
교사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흔들어도 한사코 얼굴에서 두 손만은 떼지 않으려고
들었다. 그 뒤 사태가 진정되자 학생들에게는 큰 고민 거리가 한가지 생겼다. 그것은
평소 존경해 마지않던 김 교사를 흥분한 나머지 집단 폭행했다는 사실이었다.
학생들은 크게 뉘우치다 못해 김 교사를 찾아가 사죄했다.
"선생님, 저희들이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정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아니야, 괜찮아. 스스로 깨달았다면 그것으로 그만이야. 이 세상에 자기의 잘못을
깨닫는 사람만큼 훌륭한 사람도 없어."
빙그레 미소까지 띠며 그런 말을 하는 김 교사에게 학생들은 다들 큰 감동을
받았다. 그러자 푹 고개를 숙이고만 있던 한 학생이 조그맣게 입을 열었다.
"선생님, 그런데 그때 왜 한사코 손으로 두 눈을 가리셨습니까?"
"하하, 그게 그리 궁금한가? 나는 나를 때리는 학생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어.
수양이 모자라는 내가, 나를 때리는 학생의 얼굴을 본 이상, 그 학생에게 늘 나쁜
감정을 가지게 될 게 아닌가? 그래서 일부러 보지 않으려고 그랬네?"
학생들은 김 교사의 말에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진정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깨달았다.
친구를 사랑한 개
저는 에스키모의 개입니다. 북극의 에스키모인들과 함께 사는 개이지요.
에스키모인들은 원래의 교통 수단으로 흰곰의 가죽으로 만든 눈썰매를 이용하는데. 그
눈썰매를 제가 끕니다. 가슴과 등허리에 씌운 가죽끈을 마치 한국 여성의
코고무신처럼 생긴 썰매에다 길게 연결하여 신나게 북극의 얼음판 위를 달립니다.
물론 저 혼자 끄는 게 아니지요. 썰매가 작고 탄 사람이 한두 명일 땐 두세 마리가
끌지만 보통 10여 마리가 함께 끕니다. 북극의 태양 아래 길게 그림자를 이루며
빙원을 달리는 우리 모습은 일대 장관이랍니다. 그런데 어느 해부터인가 저는 병이
들었답니다. 이제는 기운이 없어 조금만 달려도 숨이 차고 마냥 주저앉고
싶어진답니다. 그 누구보다도 가슴근육이 발달하고, 그 누구보다도 빨리 달려 주인의
사랑을 독차지했으나 이제는 나이가 든 탓이지요. 한번은 빙하 지역에서 툰드라
지역으로 이동할 때였습니다. 주인은 줄을 짧게 해서 저를 썰매 가까이에다 두고
달리게 했습니다. 썰매가 달리는 속도가 늦거나 친구들이 조금이라도 지치는 기색이
있으면 채찍을 들어 사정없이 저의 등줄기를 후려쳤습니다.
저는 비명을 내지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고통에 찬 저의 비명 소리에 친구들은
젖 먹던 힘까지 내어 힘껏 달렸습니다. 제가 비명을 내지를 때마다 친구들은 채찍이
자기들의 등줄기에 떨어질까 봐 겁이 나 더욱더 열심히 달렸습니다. 예전에 저도
그랬습니다. 병약해 죽어도 아깝지 않은 친구가 있으면 주인은 꼭 그 친구를 썰매
가까이에 두고 가죽 채찍으로 후려쳤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 친구의 비명 소리에 놀라
정신없이 빙원을 달렸습니다. 자칫 잘못 그 채찍이 제 등줄기 위에 떨어질까 봐
얼마나 가슴 졸이면서 달렸는지 모릅니다. 그 처절한 비명 소리가 우리들을 힘껏
달리게 하는 셈이지요. 주인은 바로 그 점을 노렸습니다. 저는 이제 제게 곧 죽음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그 동안 주인의 채찍을 맞으며 빙원을 달리다가 죽어간
친구들을 수없이 많이 봐 왔으니까요. 달리다가 쓰러지면 주인은 우리를 그대로
빙원에 버렸습니다. 흰곰의 먹이가 되어도 아무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난날이 후회스러웠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친구를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동안 주인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곰곰 생각했습니다. 친구들은 위해 내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마지막으로 친구들을 위해 살아
볼 수 있을까. 그러자 곧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맞아. 이젠 더 이상 비명 소리를
내지 말자. 주인이 후려치는 채찍이 아무리 고통스러운 것이라 할지라도 더 이상
고통에 찬 신음 소리를 내지 말자. 그러면 친구들을 그 폭력의 두려움에서 건져낼 수
있을 거야. 내 비명 소리를 듣고 떠는 친구들을 그 공포로부터 구할 수 있을 거야.
나의 고통은 나 하나로 족한 거야. 그래서 저는 정말 울지 않았습니다. 주인이 아무리
채찍을 후려쳐도 결코 비명 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북극의 차가운 빙판 위에 쓰러져
저 혼자 버려질 때까지 말입니다.
나는 네가 되고 싶다
소록도는 아름다운 섬이다. 그러나 소록도를 그냥 단순히 아름다운 섬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소록도의 겉만 살펴본 넋두리에 불과하다. 우리 나라 고홍반도
최남단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사슴의 섬' 소록도는 사실 겉으로만 보아도 아름다운
섬임에도 틀림이 없다. 오솔길을 따라 섬 전체를 한바퀴 휘돌아 보면, 소나무 숲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바다는 보는 이의 마음을 한없이 맑고 시원하게 해준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끊임없이 반짝이는 햇살 너머로 무슨 산 그림자처럼 안개에
싸여 아련하게 떠오르는 남해의 작은 섬들은 아름답다 못해 하느님이 그린 그림 같다.
그러나 소록도가 아름다운 것은 그런 자연경관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소록도에
사는 사람들 때문이다, 소록도 국립 병원에서 일하는 젊은 간호사들, 나환자들을 위해
젊음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한껏 꽃피우고 있는 바로 그 간호사들 때문이다. 두 손
모두 손가락이 없는 몽당손에다 고무줄을 친친 잠아 겨우 숟가락을 끼워 밥을 먹는
남자, 손가락은 남아 있으되 갈고리 손이 된 중년 여인, 이미 코와 눈썹이 문드러진
할머니, 끝내는 눈마저 멀어 버린 할아버지들을 부모 형제처럼 돌보고 있는
간호사들이 없다면 소록도는 결코 아름다운 섬이 아니다. 소록도의 간호사들은
'한바람회'를 만들어 스스로 환자들의 머리를 감겨 주고, 이발도 해주고, 손톱과
발톱도 깎아 준다. 결린 근육도 마시지 해 주고, 몸의 군살도 긁어내주고, 각 병사
지대를 나누어 맡아 빨래와 부엌 살림도 돌본다. 나병이 분명히 치료될 수 있는 병인
줄 몰랐던 시절의 간호사들은 환자와 직접적인 피부 접촉을 피하기 위해 손에는
고무장갑을 끼고 입에는 마스크를 하고, 머리엔 모자까지 쓰고 신발을 신은 채 환자
방에 들어갔다. 그러나 지금의 간호사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어느 환자와
마찬가지로 아무 거리낌없이 맨손으로 환자를 돌본다. 소록도병원에 의사들이
지원해서 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자원하는 간호사들의 이력서는 항상
넘친다.
"다른 병원에 가면 봉급도 많고, 소록도에 있었다고 하면 혼인발도 안 선다"는데
그들이 굳이 지원해서 소록도병원에서 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분명 그들의
마음이 아름답기 때문에 것이다. 그런 아름다운 간호사들이 있는 한 소록도는 진정
아름다운 섬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사는 도시에도 이런 아름다운 섬이 있다면 그
얼마나 행복할까. 소록도병원 피부과 병동 간호사실 문 앞에 이런 글이 적힌 글이
적힌 종이 한 장이 붙어 있다.
너를 위하여 나는 무엇이 될까
너의 등불이 되어
너의 별이 되어
달이 되어
너의 마스코트처럼
네가 마주보는 거울처럼
나는 네가 되고 싶다
우린 서로 지켜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배추흰나비의 기쁨
산기슭 배추밭에 배추 애벌레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30 밀리미터 정도 되는
몸길이에 녹색의 피부를 지닌, 잔털이 빽빽하게 나 있는 그는 매일같이 배추 잎을
갉아먹는 것이 일이었다. 한없이 먹을 것도 많고 초봄의 햇살도 눈부셔서 사실 그는
요즘 부러운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밤마다 배추잎 위로 기어올라 밤하늘을 바라보면
별빛마저도 눈이 부셔 행복했다. 그런데 그에게도 고민이 하나 생겼다. 아침저녁으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배추밭을 찾아보는 경애 할머니가 배추밭에 와서 화를 벌컥 내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고, 이놈의 벌레들 때문에 배추 농사 망치겠네. 껍데기만 남기고 다 갉아
치우니, 아이고, 이걸 어떡하나? 벌레 먹은 배추잎 같다는 말이 왜 생겼는지 이제
알겠네."
그는 경애 할머니가 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었다. '오늘 또 아들 내외가
한바탕 부부 싸움을 했나 보다. 그래서 배추밭에 와서 화풀이를 하나 보다'하고 크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그게 아니었다. 경애 할머니는 며칠째 배추밭에 올 때마다
그런 말을 해대었다.
"아이고, 이놈의 벌레들 때문에 정말 배추 농사 못 짓겠네. 오늘은 꼭 애비한테
얘기해서 이놈들을 약을 쳐서 다 죽여 버려야지.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배추 한
포기도 못 건지겠네."
경애 할머니가 약을 쳐서 죽여 버리겠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이건 정말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그날 밤, 그는 잠이 오지 않아 건너편 배추 포기에 사는 친구한테
살짝 말을 걸었다.
"친구야, 경애 할머니가 요즘 왜 그래? 난 도대체 알 수가 없어."
"응, 그건 우리가 배추 잎을 갉아먹기 때문이야."
"우리가 배추 애벌렌데, 배추 잎을 먹지 않으면 무얼 먹고살아?"
"글쎄 말이야. 사람들은 우리를 배추잎에 기생하는 해충이라고 해."
"해충? 그게 무슨 뜻인데?"
"사람들한테 해로움을 주는 벌레라는 뜻이야. 사람들이 자기들 입장에서 자기들
멋대로 지어낸 말이야."
"아냐. 난 해충이 아니야. 나는 그냥 배추 애벌렌야."
그는 눈물이 막 나왔다. 사람들이 자기를 그렇게 생각하리라고는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울지 마. 지금은 울어도 아무 소용없어. 우리가 배추흰나비가 될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해.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우리를 또 익충이라고 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익충이라는 말도 사람들이 자기들 입장에서 마음대로 지어낸 말이야. 사람들한테
이익을 주는 벌레라는 뜻이야. 우리가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농작물들의 꽃가루를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 주는 일을 한다고 그러는 거야."
"우리가 나비가 된다고?"
"그럼, 우리가 나비가 되어 그런 일을 하지 않으면 씨앗을 맺지 못해. 배추씨는 모두
우리가 만든 거야. 배추꽃이 폈을 때 암술과 수술 머리 위로 우리가 막 날아다녔기
때문이지. 그런데 원래부터 익충과 해충의 구별이 있었던 것은 아니야.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이해 득실에 따라서 그렇게 여기는
것뿐이야."
"순 사람들 마음 대로군. 사람들은 참 나뻐."
그는 슬펐다. 살고 싶지 않았다. 해충이 되어 사람들의 욕을 먹느니 깊은 잠에나
빠져 죽고 싶었다. 그는 정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죽음이 조금도 두렵지 않다는
생각을 하다가 배추잎에 붙어 차차 회황색 번데기로 변해 갔다. 그는 정말 죽음이
자기에게 찾아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온몸에 땀이 나고 열이 나고 통증이 왔다. 그는
조용히 경애 할머니와 하느님을 생각하면서 죽음을 맞이했다. 애벌레들은 이렇게
번데기가 되어 죽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어느 날 아침, 죽은 줄 알았던 자기가 죽기는커녕 배추밭 위로 훨훨 날아다니는
것이 아닌가, 그는 자신의 몸을 놀란 눈으로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날개가 있었다.
온몸이 눈부시도록 희디휜 흰빛이었다. 앞날개에는 은은한 검은 반점이 두 개나
있었다.
"할머니! 저기 나비다! 나비!"
이제 막 여섯 살이 된 경애가 할머니의 치맛자락을 끌며 소리쳤다.
"할머니, 저 나비 이름이 뭐예요?"
"배추흰나비!"
"아, 참 이쁘다."
"그래, 참 이쁘지? 우리 경애도 저렇게 이뻐야 된다. 알았지?"
"네." 그는 기뻤다.
가슴속에는 오직 기쁨만이 가득 차 올랐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춤을 추고 싶었다.
아름답게. 배추밭 위에서. 봄 하늘 속으로.
사과 세 개의 축복
눈이 내린 날 저녁이었다. 발목까지 푹 빠질 정도로 내린 함박눈에 어둠조차 환히
밝게 느껴지는 그런 날이었다. 그녀는 퇴근길에 집에서 기다릴 아이들을 생각하고
평소 단골로 다니던 한 과일 가게로 들어갔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새해가 되었으나
아이들에게 뭐 하나 제대로 사준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서 오세요."
늙스그레한 주인 남자가 그녀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녀는 이것저것 생각할 것도
없이 사과 3천 원어치를 달라고 했다. 그러자 주인이 말했다.
"아예 한 상자 들여놓으시지요. 상자로 먹으면 2천 원 정도 싸게 먹힙니다."
그녀는 망설였다. 무작정 사과 한 상자를 들여놓았다가 가난한 가계에 혹시 금이
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그때 20 대 청년 한 사람이 가게문을 열고
들어왔다.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했는지 청년의 머리에 눈송이가 몇 개 앉아 있었다.
"아저씨, 아까 여기서 사과 몇 세 개를 사 가지고 갔는데, 가다가 미끄러져서 사과가
으깨져 버렸어요. 어떻게, 죄송스럽지만, 좀 바꿔 주셨으면 합니다. 실은 오늘이 어머니
제삿날이라 제상에 놓으려고 사과를 샀는데, 이렇게 되고 말았거든요. 다시 천
원어치를 사면 좋겠지만, 제 처지가 그럴 형편이 못 돼서, 아저씨, 어떻게 좀 안
될까요?"
청년은 몹시 겸연쩍어 하면서 주인이 꼭 좀 그렇게 해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눈빛이었다. 그러나 평소에 마음이 퍽 좋아 보이던 주인 남자는 의외로 청년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내가 뭐, 집 팔아가면서 장사하는 줄 알아? 그런 사과를 남한테 어떻게 팔란
말이오?"
"저도 잘 압니다. 제상에 놓을 게 아니고 그냥 제가 먹을 거라면 굳이 이런 부탁을
드리지도 않습니다. 좀 힘드시더라도 다시 한번 생각해 주세요."
"허허, 이 사람, 내가 남 좋은 일 시키려고 이 나이에 이 고생하는 줄 아시오?"
청년은 낭패한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으깨어진 사과를 든 손이 가늘게 떨렸다.
그때 그녀가 선뜻 입을 열었다.
"아저씨, 내가 사과 한 상자 살께요. 그 상자에서 가장 좋은 걸로 세 개를 골라 저
청년에게 주세요. 우린 아이들과 먹을 거니까 조금 상처난 부분이 있어도 괜찮아요."
그녀는 처음 마음먹은 것과는 달리 가장 때깔 좋은 부사 한 상자를 샀다. 주인
남자가 그녀 말대로 가장 잘 생긴 부사 세 개를 꺼내 청년에게 주고, 청년이 갖고
있던 으깨어진 사과를 상자 속에 넣었다. 그러자 청년이 깊숙이 고개를 숙이며 감격한
어조로 말했다.
"아주머니, 정말 고맙습니다.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은혜는 무슨, 학생도 복 많이 받아요."
"네, 고맙습니다."
청년은 다시 한번 허리 굽혀 인사를 하고 가게문을 나섰다. 그녀는 어두운 골목
끝으로 급히 사라지는 청년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보았다. 지금까지 그처럼
진실된 축복의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자기가 그 청년한테
해준 것을 돈으로 따지면 몇백 원도 되지 않지만, 그 청년은 자기에게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중요한 것을 주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저려 왔다.
댓잎 뱀장어의 삶
그는 어릴 때부터 남을 탓하기를 좋아했다. 잘 되는 일은 자기 탓이고 못 되는 일은
조상 탓이라더니 그는 무슨 일이든 잘못 되는 일이 있으면 꼭 다른 데에다 그 원인을
돌렸다. 처음 대한 입학시험에 떨어졌을 때에는 집안이 가난해서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그 흔한 과외 한번 제대로 못해 봤기 때문에 재수생이 되었다고 가난한 부모를
원망했다. 대학에 들어가서 첫사랑에 실패했을 때에도 가난이 원수라고 생각했다. 시골
농투성이의 장남이라는 사실을 알고 여자가 자기를 떠나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후
대학을 졸업하고 어느 중소기업에 취직했을 때에도, 맞벌이할 수 있는 아내를 얻지
못했을 때에도, 승진에서 번번이 누락되었을 때에도, 아이들이 지지리도 공부를 못할
때에도, 친구의 빚 보증을 섰다가 결국 아파트까지 날려 버렸을 때에도, 그 모든
원인을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데에다 두었다. 그는 갈수록 고향과 부모
형제를 싫어했으며, 자신의 환경과 처지를 한탄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불행한 일들만
연달아 일어났다. 아내가 자궁암으로 일찍이 세상을 떠났으며, 재혼한 여자마저도 남의
자식을 키우는 일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면서 그를 떠났다.
그후 그는 세상에 자기만큼 불행한 사내는 없다고 생각하고 허구한 날 술로 세월을
보냈다. 마치 인생을 포기한 사람 같았다.
그런 어느 날, 그는 우연히 텔레비전을 통해 민물고기에 관한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어린 뱀장어에 관한 것이었다. 그때 그는 어린 뱀장어에 관해
설명하는 어느 어류학자의 말을 듣고 자신을 크게 뉘우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아무리 불우한 환경에 처해 있다고 해도 그 환경이나 처지를 탓한 것이 못
됩니다. 이 어린 뱀장어를 한번 보십시오. 심해에서 갓 태어난 이 어린 뱀장어는
태어나자마자 부모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산란을 마치면 어미 뱀장어가 곧 죽어
버리기 때문에, 어린 뱀장어만 살아서 난류를 따라 대륙 연안으로 2, 3 년에 걸쳐 긴
여행을 떠납니다. 이때 어린 뱀장어는 백색의 반투명체로, 물의 중압에 눌려 모양이
댓잎과 같아지기 때문에 이를 댓잎 뱀장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댓잎 뱀장어는 깊은 바닷속에서 태어난 자신의 환경을 결코 탓하지
않습니다. 그 못 견딜 괴로움 참아 내면서 스스로 자신의 삶을 찾아 나갑니다. 온갖
고통을 다 견디고 차차 강어귀로 찾아 들면서 몸이 볼록해지고 본격적인 뱀장어가
됩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어린 댓잎 뱀장어처럼 꾸준히 스스로의 삶을 찾아 전진하는
데에서 삶은 꽃피고 본격적인 인간이 될 것입니다.
딸의 어머니
가난한 농부의 아내가 하나밖에 없는 딸을 서울로 보냈다. 딸이 서울로 가서
남의집살이라도 해서 돈을 벌겠다고 하자 선뜻 허락하는 말을 했다. 딸이 보내 주는
돈으로 논밭이라도 몇 마지기 마련하고 싶어서였다. 딸은 아름답고 영리했다. 처음에는
이 집 저 집 남의 집을 옮겨 다니며 일을 했으나, 그런 일을 하지 않고도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남들이 천대하는 궂은 일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그런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더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재빨리 알아차렸다.
그녀는 젊음과 미모로 돈 많은 남자들을 끌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이
남자 저 남자한테로 옮겨 다녔다. 옮겨 다니면 옮겨 다닐수록 그녀에게는 돈과 쾌락이
주어졌다. 사고 싶었던 옷과 보석과, 타고 싶었던 고급 승용차와, 살고 싶었던 집을
마련하는 데에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참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너무 행복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고향에 있는 어머니마저 잊어버렸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곧 늙음이 찾아왔다. 그녀의 젊음과 미모만을 사랑하던 남자들은 더 젊고
더 아름다운 다른 여자들을 찾아갔다. 그제서야 그녀는 그 동안 잊고 있던 고향의
어머니가 생각났다. 고향을 떠난 후 단 한번도 어머니를 찾지 않은 일이 후회되었다.
그녀는 서둘러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향했다.
그녀가 고향 마을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깊은 밤이었다. 곧장 집으로 달려가자 잠겨
있어야 할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어머니의 방에 불이 환히 켜져 있었다.
웬일일까. 이렇게 늦은 시각에 어머니는 아직도 주무시지 않는 것일까. 그녀가
조용히 마루로 올라서자 안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순아, 너냐?"
"네, 어머니!"
어머니가 활짝 방문을 열었다. 몰라볼 정도로 늙은 어머니였다. 그녀의 가슴은
무너졌다. 그녀는 어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어머니, 절 용서하세요."
"용서는 무슨, 이렇게 에미를 잊지 않고 찾아온 것만으로도 고맙다."
"왜 아직도 주무시지 않으셨어요?"
"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밤이 깊은데, 대문이 열려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나는 네가 집을 떠난 후 지금까지 대문을 잠가 본 적이 없다."
"어머니 방에 불이 켜져 있어서 무슨 일이 있는가 했어요."
"지금까지 내 방의 불도 끈 적이 없다. 난 항상 널 기다리고 있었다."
"아, 어머니."
그녀는 한동안 어머니의 가슴에 묻은 얼굴을 들지 못했다.
목기러기를 날려보낸 목공
나무 다루는 솜씨가 너무나 뛰어난 사람들은 그를 목공의 귀재라고 불렀다. 길가에
버려진 나무토막 하나라도 그 청년의 손에 건네 지기만 하면 때깔 나고 쓸모 있는
것이 되었다. 특히 그는 어릴 때부터 새를 잘 만들었다. 새 중에서도 기러기를 가장 잘
만들었다. 초례상에 그가 만든 목기러기를 놓고 혼례식을 올리면 누구나 복을 받고 잘
산다는 소문이 날 정도였다. 그는 장가를 갈 때는 자기가 만든 목기러기를 안고
신부집으로 가서 전안례을 올리고 혼례를 치르었다. 그리고 첫날밤에는 신부에게
사랑의 징표로 하늘을 날 수 있는 목기러기를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도 했다. 그는
자기가 만든 목기러기를 하늘로 날려 보는 게 평생의 꿈이었다. 예전에 어는 유명한
목공이 나무로 새를 깎아 하늘로 날려보내자, 그 새가 사흘이 지나도 내려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한시도 잊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하늘로 날려보내기 위해
부지런히 새를 만들었다. 한 마리 한 마리 만들 때마다 혼신의 힘을 다 기울였다.
새벽에 일어나 목욕재계를 하고 일단 한번 일을 시작하면 밤잠도 자지 않고 식음까지
전폐했다. 그러나 아무리 정성을 들이고 노력을 기울여도 그가 만든 새는 날지 않았다.
높은 산 위에 올라 목기러기를 하늘로 날려보내면 날기는커녕 그대로 산 아래로
곤두박질칠 뿐이었다. 그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일이 되풀이되면
되풀이될수록 가슴을 치며 슬피 울었다. 그러나 그의 새 만드는 일은 계속되었다.
아무리 온 정성을 다 바쳐도 하늘을 나는 새를 만들 수 없었으나 포기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첫날밤 신부에게 한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세월이 흘렀다. 목공은 어느새 노인이 되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목공의
귀재라고 불렀다. 그는 이제 그런 말을 듣기 싫어했으나 사람들은 그가 만든 목기러기
한 쌍을 갖게 되면 집안의 큰 영광으로 삼았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늙은 목공은 어린
손자와 함께 논길을 걸었다. 가을걷이가 끝난 무논엔 여기저기 이삭들이 떨어져
있었고, 참새들이 그 이식을 쪼아먹으려고 우르르 떼지어 날아다녔다. 목공은 참새
떼를 보자 평생 목기러기 한 마리 날려보내기 못한 자신의 무능함에 대해 가득히
자괴감이 있었다. 그 때 병든 참새 한 마리가 논둑에 앉아 퍼드덕거리고 있는 게 눈이
띄었다. 목공의 손자가 얼른 달려가 참새를 두 손에 담아 올렸다.
"할아버지, 우리 이 참새, 집에 데려가서 살려줘요. 네?"
손자가 목공에게 참새를 건네주었다. 목공의 손에 참새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손끝을 타고 참새의 심장 뛰는 소리도 전해졌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새를 만들어
온 목공이었지만 새의 온기와 숨소리를 느껴 본 것은 처음이었다. 목공은 한 마리
병든 참새를 살리기 위해 목기러기를 만들 때보다 더 큰 정성을 기울였다. 맑은 물과
모이를 주고 통풍이 잘 되는 방안에 있게 했다. 물론 잠시도 참새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자 참새는 며칠만에 원기를 회복했다. 그리고는 곧 어디론가 날아가고 싶어
작은 날개를 푸덕거렸다. 목공은 얼른 방문을 열었다. 참새가 몇 번 방안을 날더니 문
밖으로 날아갔다. 그리고는 푸르른 가을 하늘 속으로 재빨리 사라져 버렸다.
그때 목공은 문득 깨달았다. 어쩌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목기러기를 하늘로
날려보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바늘구멍으로 들어간 황소
농사꾼 김씨 집에 사는 황소 한 마리가 우연히 주인 김씨와 막내딸 순이가 하는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다.
"아빠, 나 중학교 보내 주세요."
"또 그 소리."
"보내 주세요. 아빠. 나보다 공부 못하는 옆집 숙이도 간단 말이에요, "
"넌 내가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말을 해야 알아듣겠니? 나도 널 중학교에 보내고
싶다. 나라고 왜 보내고 싶은 마음이 없겠니? 그렇지만 우리 형편이 그렇지 않다. 네
위로 오빠 둘 공부시키는 것만 해도 정말 힘들다. 우리 집에 너마저 학교 보낼 돈은
없어."
"그럼 이대로 국민학교 졸업하고 말란 말이에요?"
"그럼 이대로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말란 말이에요?"
"어떡하니? 지금 당장은 어쩔 수 없다. 널 중학교에 못 보내는 이 애비 마음도 정말
아프다. 그러니 이제 두 번 다시 그런 말은 꺼내지 마라. 이 일은 황소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안 되는 일이다."
황소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자기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순이가 중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황소는 착하고 공부 잘하는 순이를 중학교에 가게하고 싶었다. 사랑하는 순이를
위한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황소는 그날부터 자신이
바늘구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바늘구멍으로
들어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황소는 매일 밤하늘을 향해 그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어느 날 하늘의 음성이 들려 왔다.
"황소야, 네가 네 목숨을 버리지 않으면 바늘구멍으로 들어갈 수 없다. 너의 그
생각을 버려라."
"아닙니다. 버릴 수가 없습니다."
"네 목숨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데도?"
"그렇습니다, 제 목숨을 버리겠습니다."
"그게 정말이냐?"
"네, 그렇습니다"
며칠 뒤, 첫눈이 내린 날 밤이었다. 하늘에서 빛줄기 하나가 내려와 황소의 눈앞을
환하게 밝혔다. 황소는 천천히 그 빛줄기를 따라갔다. 빛줄기는 어느 커다란 성문
안으로 끝도 없이 이어졌다. 황소는 그 빛줄기를 따라 눈 내리는 밤길을 끝도 없이
걸어갔다.
다음 날 아침, 순이가 눈을 쓸기 위해 빗자루를 들고 나가자 사립문 앞에 황소가
죽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바늘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황소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바이올린의 눈물
늦가을 밤이었다. 거리엔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내린 가을비는 밤이 되어도 좀처럼 그칠 것 같지 않았다. 영등포역
지하상가에서 바이올린을 켜고 있던 맹인 악사 김씨는 '선구자'를 막 끝내고 시계를
만져 보았다. 일반인 시계와는 달리 시계 바늘이 밖으로 돌출돼 있는 맹인용 시계는
벌써 밤 열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김씨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 싶어
바이올린을 케이스 속에 집어넣었다. 바구니에 담긴 백원 짜리 동전 몇 개도 호주머니
속에 챙겨 넣고 낡은 비닐 가방 속에 넣어 둔 휴대용 흰 지팡이를 길게 뽑아 들었다.
그러자 그때 지팡이 끝에 한 남자의 발이 걸렸다. 뜻밖에 그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아저씨, 비가 많이 오는 데 어떻게 가실려구 그러세요?"
술 취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아주 맑은 20 대 청년의 목소리였다.
목소리만으로도 상당히 신뢰가 가는 사람이었다.
"괜찮습니다. 늘 이렇게 다니는 걸요."
김씨는 그 청년에게 감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지하도 출구를 향하여 발을 옮겼다.
그러자 그 청년이 얼른 김씨 앞으로 다가왔다.
"저는 이 상가 건너편 카메라 점에서 일하는 최철호라고 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저씨의 바이올린 소리를 듣지요. 아저씨의 열렬한 팬이라고나 할까요. 전 음악을
아주 좋아합니다."
"아, 예에, 그러세요. 고맙습니다."
김씨는 청년이 자기 팬이라는 말에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집이 어디세요? 버스 타고 다니세요? 제가 차 타는 곳까지 모셔다 드리죠."
"아니, 괜찮습니다. 집은 봉천동이지만 늘 다니던 길이라 잘 갈 수 있어요."
"그래도 오늘은 비가 많이 와서, 지금도 빗방울이 제법 굵은 걸요."
어느새 청년은 지하도 계단을 오르는 김씨의 팔을 가볍게 잡아 주고 있었다. 김씨는
그런 청년의 호의를 굳이 뿌리치지는 않았다. 아무리 세상이 메말랐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자기 같은 사람이 이 정도나마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은 세상 인심이
그리 나쁘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거리엔 청년의 말대로 정말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청년이 우산을 받쳐 주었으나 얼굴에 와 닿는 빗방울이
제법 굵고 차가왔다. 김씨는 지팡이를 요령껏 내뻗치면서 걸음을 걸었다. 그러나 몇
번이나 행인들과 어깨를 부딪쳤는가 하면, 물웅덩이인 줄도 모르고 발을 내디뎠다.
"그 바이올린 이리 주시죠. 제가 들어 드릴께요."
김씨는 그 청년에게 바이올린을 건네주었다. 가끔 그의 연주 솜씨를 칭찬하는
사람들로부터 이런 친절을 받아왔던터라 그는 별다른 생각 없이 악기를 넘겨주었다.
그런데 김씨가 버스 정류장 앞에 채 이르지 않았을 때였다.
"아무래도 비가 많이 와서 안 되겠어요. 집에다 전화를 해서 차를 오라고
해야겠어요. 제가 자가용으로 집에까지 모셔다 드리죠. 가만 있자. 공중전화가 어디
있나? 아, 저기 있군요. 이리 오세요. 저기 공중전화 있는 데로 잠깐 같이 가시죠."
김씨는 청년을 따라 공중전화가 있는 데로 갔다. 청년이 집으로 전화를 걸기 위해
공중전화 박스 속으로 들어가자, 김씨도 비를 피하기 위해 그 옆에 있는 전화 박스
속으로 들어갔다. 10여 분이 지났다. 그런데 어딘가 전화를 걸던 청년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최 선생! 최 선생!"
김씨는 전화 박스 칸막이를 손으로 두드리며 청년을 불러 보았다. 그러나 청년의
대답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김씨는 '아차!'하는 생각이 들어 얼른 청년이 들어갔던
전화 박스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러나 청년은 이미 그곳에 없었다. 김씨는 혹시나
무슨 급한 일로 청년이 잠시 자리를 비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대로 전화
박스 앞에서 한 시간을 기다렸다. 그러나 청년은 나타나주지 않았다. 온통 비를 맞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영등포역 앞을 몇 차례나 왔다갔다했으나 한번 바이올린 가지고
가 버린 청년은 끝내 나타나 주지 않았다.
그날,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채 자정이 넘어 봉천동 달동네 셋방으로 돌아온
김씨는 엉엉 소리를 내어 울었다. 같은 맹인인 아내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잠에
곯아떨어진 세 살 박이 아들만이 세상 모르게 잠들어 있었다. 그는 이대로 죽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청년을 믿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스러웠다.
복받쳐 오르는 설움에 한번 터진 울음이 그치지 않자, 평소 별로 말이 없던 옆방 주인
남자가 자다가 일어나서 '112신고'를 해주었다. 그러자 새벽 세 시경에 방범대원이
찾아와서 김씨의 진술을 받아 갔다.
세 살 때 백내장을 앓아 시력을 잃어버린 김씨는 서울 맹학교를 졸업한 후, 기타를
치는 떠돌이 유랑 악사로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나이 서른이 넘어 서울에
정착한 후, 녹음기를 틀어 놓고 곡을 외워 가며 혼자 바이올린을 배웠다. 싸구려
하숙집에서 시끄럽다고 야단을 치면 겨울에도 추운 골목에 나가 연습을 하곤 했다.
김씨는 꼬박 2 년 동안 바이올린을 연습한 후에야 거리에 나가 손님들을 불러모을
수가 있었다. 운이 좋은 날이면 1 만 원 이상을 벌 때도 있었다. 4 년 전에는 먹고
싶은 것도 안 먹어 가며 아끼고 아낀 돈으로 체코제 바이올린을 1백만 원이나 주고
샀다. 주로 대중이 좋아하는 가곡이나 클래식 소품, 찬송가 등을 연주했으며, 즐겨
연주하는 곡 중에는 '비목', '아베마리아', 등도 들어 있었다.
바이올린을 잃어버린 후 김씨는 마냥 실의의 나날을 보냈다. 일을 나가고 싶어도
바이올린이 없어 나갈 수가 없었다. 아내는 지하철을 타고 하모니카를 불며 구걸
행각이라도 하자고 했으나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를 찾아온 기자를
붙들고 호소했다.
"잃어버린 저의 바이올린에는 거리의 악사가 흘린 눈물과 한숨이 배어 있습니다.
돈이 필요해서 가져갔다면 돈을 드리겠습니다. 제발 저의 생명인 바이올린만은
돌려주십시오."
신문에는 '거리의 맹인 악사, 바이올린 잃고 한숨만. 데려다 주겠다고 친절
베푼 젊은이, 악기 받아 쥐고는 잠적'이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났다.
그러자 기사가 난 다음 날, 악기 제조 회사 사장 한 사람이 산동네까지 그를 찾아와
바이올린 한 대를 선물로 주고 갔다. 그는 김씨의 손을 꼭 잡고 "이건 제가 젊은 날에
쓰던 독일제 활입니다. 부디 용기를 잃지 마시고 열심히 사십시오" 하는 격려의
말까지 하고 돌아갔다. 김씨는 다시 새생명을 얻은 것 같았다. 그는 그 다음 날부터
당장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영등포역 앞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계속해 나갔다.
그 뒤 2 년이 지난 어느 늦가을 밤이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던 김씨의 발
아래에 조용히 바이올린 한 대를 두고 가는 청년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왜 그
청년이 김씨한테 바이올린을 주고 가는지 몰랐으나 김씨만은 알고 있었다.
"바이올린을 돌려 드립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김씨는 바이올린을 켜다가 그 젊은 청년의 맑은 목소리를 다시 들었다. 그러나 그는
바구니에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을 때처럼 잠깐 허리를 굽혔을 뿐 여전히
바이올린만을 켜고 있었다.
바다로 날아간 까치
내 고향은 바닷가 솔숲이다. 우리들은 대대로 이 솔숲에서 살아왔다. 사람들이
방풍림이라고 부르는 이 솔숲을 나는 참으로 사랑한다. 아마 우리 까치들 중에서
나만큼 이 솔숲을 사랑하는 까치도 드물 것이다. 나는 아침마다 해 뜨는 바다를
바라보며 천천히 한 바퀴 솔숲을 휘돌 때가 가장 행복하다.
나의 집은 2백여 년도 넘는 세월 동안 절벽 바위틈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소나무 위에 있다. 파도가 심하게 치면 바닷물이 곧 튀길 듯하다. 바람이 세차게 불면
날아갈 염려가 있다고 다들 송림 한가운데가 집을 지었으나, 나만은 고개만 내밀면
곧바로 바다가 보이는 곳에다 집을 지었다.
몇 해 전 여름이던가. 폭풍에 집이 날아가 버리자 부모 형제와 다정한 친구들이
이제는 송림 한가운데에다 집을 지으라고 야단이었으나, 나는 그들의 염려와 권유를
적당히 무시했다. 집은 언제나 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다 지어야 한다는 내 고집을
버리지 않았다. 그렇다. 둥지에 편안히 쉬고 있을 때에도 나는 언제나 바다를 바라볼
수 있기를 원했다. 공연히 외롭다고 느껴질 때, 왠지 쓸쓸하고 마음이 스산할 때
가만히 둥지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일을 내 행복의 으뜸으로 삼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나의 그런 행복은 깨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느 날 문득
내가 바다로 날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저 수평선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수평선 너머에도 바다가 있을까. 어머니는 왜 우리가 바다로 날아가면 안
된다고 하늘 것일까. 나는 늘 그러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런데 한번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자 예전처럼 행복한 마음으로 바다를 바라볼 수
없었다. 힘차고 멋진 날개를 지니고 있는 내가 막연히 바다를 바라보고만 있다는
사실이 답답했다. 아무리 바다를 바라보아도 수평선 이외에 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나는 바다를 향해 날아가고 싶었다. 바다 한가운데에도
내가 집을 짓고 살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정말 그곳을 향해 날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바다를 향해 날아가서는 안 된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내 뜻대로 행동할
수는 없었다. 어느 날 몇 번 망설이다가 어머니를 찾아갔다.
"어머니, 저도 한번 바다로 날아가 보고 싶습니다."
"네가 지금,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냐? 내가 입이 닳도록 그렇게 얘길 해도
아직도 못 알아들었단 말이냐? 우리가 바다로 날아간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일이야. 우린 갈매기가 아니야. 우리는 바다를 여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 바다는
우리에겐 죽음 뿐이야. 아침에 해가 뜰 때를 조심해야 돼. 아침해는 그 아름다운
빛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거야. 그 유혹에 못 이겨 바다로 날아갔다가 그만 영영
돌아오지 못한 네 형제들을 나는 알고 있어."
어머니는 놀라 펄쩍 뛰는 소리를 내었다. 나는 어머니의 말씀이 백 번 지당하신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어 온몸에 기운이 쑥 빠졌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바다가 정말
나를 유혹하는 걸까. 나는 날이 갈수록 바다를 향해 날아가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아침에 해가 뜰 때마다 눈부신 햇살에 몸살을 앓았다. 오직 바다를 향해
날아가는 것만이 소원이었다. 바다를 그리워해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던 어머니의
말씀을 결코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으나, 이제 바다로 날아가 죽음을 맞이한다고 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나는 결국 바다를 향해 날아가고 말았다. 찬란한 아침해가 내 마음을 못
견디게 만들던 그날, 나는 기어이 바다를 향해 날개를 펼쳤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죽음을 각오하고, 아침놀이 붉게 타오르는 바다를 향해 날았다. 바다는
끝이 없었다. 얼마간 날아가면 그 끝이 보일 줄 알았으나 그렇지 않았다. 날아도
날아도 수평선뿐이었다. 바다가 끝없이 수평선으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웠다. 해는 어느새 바다 위로 떠올라 내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내가 살던
솔숲이 멀리 조그맣게 한 점 점처럼 보이더니 이내 사라졌다. 나는 더럭 겁이 났다.
정말 어머니 말씀을 들을 걸하고 금방 후회가 되었다. 내 옆에서 갈매기들이 줄곧
나를 보고 히죽거렸다.
"까치가 바다로 날아가다니! 저런 병신도 다 있나? 자기가 우리처럼 날 수 있을 줄
알아? 분수를 알아야지, 분수를. 재는 얼마 안 있어 곧 죽을 거야! 저것 좀 봐, 저 축
처진 꽁질 좀 봐. 날개에도 벌써 힘이 빠졌는걸!"
정말 나는 날개에 힘이 없었다. 힘을 주면 줄수록 날개에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마음을 단단히 고쳐먹었다. 죽어도 좋다. 바다는 내가 그 얼마나
날아오고 싶었던 곳이냐. 날아갈 수 있는 데까지 날아가자.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내
가슴에, 내 두 눈에 바다를 모두 담았다.
얼마나 바다 위를 날고 있었을까. 이젠 나를 놀리던 갈매기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아침 햇살만이 내 온몸을 따스하게 감싸주고 있었다. 햇살에 반짝거리는 푸른 바다의
물결을 황홀했다.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원히 가 볼 수 없을 것만 같던 바다를,
오직 망연히 바라보고만 있던 바다를 내가 직접 날고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그러나
나는 점점 지쳐 가기 시작했다. 이제 곧 돌아가지 않으면 죽음이 내게 다가올 것 같아
한순간 공포감이 엄습해 왔다. 그러나 솔숲으로 다시 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때였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힘이 없었다. 이제 곧 완전히 지쳐 버릴 것이
분명했다. 나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어쩔 수 없이 다가올 죽음을 생각했다. 우리에게
바다는 오직 죽음뿐이라는 어머니의 말씀은 거짓이 아니었다. 죽음이란 어머니의
품속에 고요히 안기는 것과 같은 것일까. 나는 발아래 넘실대는 푸른 바다의 물결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서서히 그 물결 위로 내려앉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내 눈에 한 점 점처럼 뭔가 육지 같은 게 보였다. 아, 그것은
섬이었다. 아아, 바다에는 섬이 있었다. 나는 바다에 섬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나는 그 섬을 향하여 힘껏 날아갔다. 나는 그 섬의 솔숲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다시 고향 마을을 향하여 힘차게 날았다. 바다에 섬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하여.
발레리나를 꿈꾸던 소녀
소녀는 발레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다.
"저 애는 발레에 소질이 있어. 열심히 노력하면 세계적인 발레리나가 될 거야."
소녀를 본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말을 한 마디씩 하곤 했다. 소녀 또한 세계적인
발레리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권위 있는 발레단의 단원이 되어 '백조의 호수'의
오테트 공주나,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오로라 공주 같은 배역을 맡아보는 게 최대의
꿈이었다. 소녀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 살 때부터 발레 학교에 들어가 수업을
받았다. 다른 학생들이 한 시간쯤 연습을 하면 그녀 스스로 두 시간 이상씩 연습을
했다. 소녀에 대한 교사들의 기대는 컸다. 소녀의 천부적 재능도 재능이지만 남다른
노력과 성실성을 높이 샀다. 물론 스스로에 대한 소녀 자신의 기대도 컸다. 그런데
소녀가 열 다섯 살이 되던 날이었다. 소녀는 발레의 기본 동작 몇 가지를 연습하다가
갑자기 발목이 시큰하게 아파 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처음에는 별일 아니려니 하고
그냥 무관심하게 지나갔으나 날이 갈수록 시큰시큰 발목 부위가 아파 왔다. 소녀는
너무 지나치게 연습을 많이 한 탓으로 발목에 잠시 무리가 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잠시
발레 연습을 중단했다. 그러나 통증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나중엔 걸음조차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해 병원을 찾았다. 병명은 관절염이었다.
소녀에게 그것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소녀는 발을 잘 쓸 수 없게 된다는
사실보다 발레를 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 앞에 절망했다. 그러나 소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 아침마다 토슈즈(발끝으로 추기 위해 발끝 부분이 단단하게 만들어진
발레용 구두)를 들고 학교로 갔다. 친구들의 연습 장면을 지켜보면서 마음속으로
발레를 계속했다. 그러나 소녀는 결국 발레를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관절의 염증은
가라앉아 걸음을 걷는 데에는 큰 불편이 없었으나 심한 운동이 요구되는 발레만은 할
수 없었다. 소녀는 하루하루를 방안에서 눈물로 보냈다. 세계적인 발레리나가 되고자
하는 꿈을 포기한다는 것은 소녀에게 곧 죽음을 의미했다.
소녀는 정말 죽어 버리고 싶었다.
더 이상 살아야 할 삶의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마지막으로
발레를 한번 추어 보고 죽어 버리겠다고 결심을 했다.
햇살이 눈부신 봄날, 소녀는 토슈즈를 들고 들판으로 나가 신나게 발레를 추었다.
그러나 곡 발목에 통증을 느끼고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화가 났다. 미칠 것만
같았다. 이제는 발레를 포기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정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녀는 들판 한가운데로 걸어가 우물 속에다 토슈즈를 던져 버렸다. 그리고 그 우물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우물 속에는 파란 봄 하늘과 맑은 구름이 지나갔다.
소녀는 자신도 토슈즈처럼 우물 속으로 내던져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누군가 소녀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는 사람이 있었다. 소녀가 다니던
발레 학교의 젊은 여교사였다.
"선생님, 전 더 이상 살 의미가 없어요. 발레를 할 수 없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소녀는 교사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토닥토닥 소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 젊은 교사가 말했다.
"울지 말고, 이 꽃을 봐라. 그리고 저 바위도. 산다는 것에 의미 따위는 소용없어.
장미는 장미답게 피려고 하고, 바위는 언제까지나 바위답겠다고 저렇게 버티고 있지
않니. 그저 성실하게, 충실하게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게 제일이야. 그러다 보면
자연히 삶의 보람도 기쁨도 느끼게 되는 거야. 너무 그렇게 절망할 필요는 없어."
가장 아름다운 꽃
남편이 죽었다. 교통사고로. 결혼한 지 1 년도 채 되지 않아 사랑하는 남편이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새벽에 경부고속도로에서 대형 트럭이 남편의 차를 들이받아
버렸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정신이 없는 가운데 장례를 치렀다. 많은 사람들이 위로의 말을
건네면 남편의 죽음을 기정 사실화했으나 인정할 수가 없었다.
이번 여름휴가 때 첫아들을 안고 고향의 바닷가를 찾자고 하던 말만 떠올랐다. 나는
임신 중이었다. 도대체 하느님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말 원망스러웠다. 가난했지만
착한 마음으로 열심히 살려고 하던 남편이었다.
다니던 성당에도 발길을 끊었다. 그리고 고통 가운데 해산을 했다. 남편이 바라던
대로 아들이었다.
나는 아들을 안고 남편의 고향을 찾았다. 동해가 보이는 산자락에 남편을 잠들어
있었다. 나는 포대기를 열어 남편이 잠든 무덤을 아기에게 보여주었다. 파도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남편을 일찍 데려간 하느님이 다시 원망스러웠다. 아들을 얻은
기쁨보다 남편을 잃은 슬픔이 더욱 컸다.
"오늘이 일요일인데 왜 성당에 가지 않느냐?"
산에서 내려오자 시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정이 넘치는, 햇살같이 따스한
음성이었다.
"나가기 싫어서요, 아버님."
"왜?"
"그이를 일찍 데려간 하느님이 원망스러워요."
"이렇게 어여쁜 아들을 줬는데도?"
"그래도 그래요."
그러자 시아버지가 마당 앞 꽃밭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꽃밭에는 장미와 달리아,
채송화와 도라지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여기에서 꺾고 싶은 꽃을 하나 꺾어 보거라."
시아버지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나는 가장 아름답게 핀 장미꽃 한 송이를 꺾었다.
그러자 시아버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것 봐라. 내 그럴 줄 알았다. 우리가 정원의 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꺾어
꽃병에 꽂듯이 하느님도 가장 아름다운 인간을 먼저 꺾어 천국을 장식한다. 애야,
이제는 너무 슬퍼하지 마라."
땅 위의 직업
강원도 사북에 간 김 기자는 막장 광원 감장순 씨를 따라 수직 갱으로 들어갔다.
먼저 탈의실에 들어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헤드 램프가 달린 헬멧을 쓴 뒤, 작업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7백 미터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갱차를
타고 수평으로 1천 2백 미터까지 가서, 다시 갱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미로와 같은 갱 속은 춥고 어두웠다. 지하 사무실에서 막장으로 가는 지도를
보았으나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갱 양편으로 탄가루가 섞인 검은 지하수가
급히 흘러갔다. 갱 바닥은 탄가루와 뒤범벅이 돼 장화 신은 발이 푹푹 빠졌다. 김
기자는 오직 헬멧에 부착된 희미한 불빛만 의지하고 김장순 씨의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한 30여 분쯤 걸었을까. 더 이상 갱도가 없는 곳이 나타나고, 갱벽
한가운데를 비스듬히 위로 뚫은 새로운 갱도 하나가 나왔다. 두세 사람 정도 겨우
드나들 수 있을 만큼 좁은 갱 속을 제대로 고개도 들지 못하고 거의 기어가다시피
하면서 들어가 보니 그곳이 바로 지하 막장이었다.
광원들은 좌우로 버팀목을 세우며 안으로 안으로 파 들어가고 있었다. 김장순 씨가
한 번씩 곡괭이를 내리찍을 때마다 탄 덩이가 떨어져 나왔고, 떨어져 쌓인 탄덩이는
경사진 배출구를 통해 갱도 밖으로 쏟아져 나갔다.
김 기자는 곡괭이 질을 하는 김장순씨를 지켜보며 막장에 널브러져 있는 버팀목
위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막장 안은 지열 때문인지 몹시 더웠다.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땀이 흐르고 가슴이 답답했다. 아무도 없는 땅 속 저 깊은 곳, 어딘지도 모르는
한 지점에 한 마리 벌레처럼 혼자 멍하니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막장에서는 잠을 못 자게 합니다. 담배도 못 피이지요. 그런데 어떤 때는 앉은 채로
깜빡 졸 때도 있습니다.
김 기자는 곡괭이 질을 하는 중간 중간 한 마디씩 던지는 김장순 씨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를 취재한다는 일이 자기로서는 너무나 건방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웠다.
김장순 씨가 막장을 나온 것은 점심시간이었다. 그는 다시 갱 속에 있는 지하
사무실로 가 그곳에 보관해 둔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어둠 속에서 손도 씻지 않고
작업복도 입은 채 그대로였다.
"드세요. 우린 여기서 이렇게 점심을 먹습니다. 그래도 이때가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입니다."
김장순씨가 김 기자의 몫으로 싸 온 도시락을 건네주면서 허옇게 이빨을
드러내었다. 김 기자는 김장순씨가 건네준 도시락을 먹으면서, 광원이 된 지 몇 해나
되는가, 고향의 농협 빚은 다 갚는가 등의 질문을 던졌다. 그러다가 소원이 있다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건 물론 땅 위의 직업을 갖는 일이지요. 땅 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직업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잘 몰라요."
그 청년이 지고 온 함
전쟁이 끝나 뒤 사람들은 가난했다. 그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가난하기 짝이
없었다. 전쟁에 나가 살아 돌아온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철모에 압록강물 한번 떠먹어 보지 못하고 중공군들에게 쫓겨 내려올 때는
죽은목숨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사랑은 있었다. 그는 한 여대생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결혼을 약속했다. 그는 자신의 가난을 염려했으나 여대생은 그 가난마저도 사랑한다고
말했다.
여대생이 대학을 졸업하고 이태가 지났다. 그는 청혼을 하기 위해 여자의 집을
찾았다. 여자의 부모가 그에게 물었다.
"자네 직업은 무엇인가?"
"아직 뚜렷하게 직업이라고 할 만한 게 없습니다."
"직업도 없이 남의 귀한 딸을 데려가려고 하는가?"
"지금 고등고시(오늘날의 사법 고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몇 번 응시했는가?"
"세 번 응시해서 세 번 떨어졌습니다."
"그럼 언제 합격할 수 있겠는가?"
"그건 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저 열심히 노력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다시 한번 말해 보게. 언제 합격할 수 있겠는가?"
"그건 장담할 수 없습니다."
여자의 부모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얼굴에 마뜩찮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래 자네 부모님은 뭘하시나?"
"전쟁통에 두 분 다 돌아가셨습니다."
"허허, 그것 참 안된 일이군. 그렇지만 난 자네한테 우리 딸을 줄 수 없네."
여자의 아버지는 더 이상 물어 볼 필요도 없다는 듯이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는 말게나."
여자의 어머니가 그것 참 잘된 일이라는 듯 상냥하게 덧붙여서 말했다.
그는 낙망이 되었으나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같이 여자의 부모를 찾아갔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드디어 허락한다는 말이 떨어지고 곧 결혼 날짜가 잡혔다.
그러나 신부집에 함을 보내야 할 날짜가 다가오자 그는 다시 고민이 되었다. 어렵게
승낙을 얻어 결혼을 하게 되었으나 정작 함 속에 넣을 채단 살 돈이 없었다. 최소한
청색, 홍색 치마저고리 감이라도 한 벌 끊어 넣어야 했으나 그럴 만한 형편이 되지
못했다. 고민을 하는 동안 함을 지고 가야 할 날은 다가왔다. 그는 커다란 여행용 가방
하나를 이웃집에서 빌려 달랑 그 가방만 들고 혼자 신부집으로 갔다.
"함 사시오! 함!"
그는 신부 집 대문을 흔들며 커다란 목소리로 당당하게 소리쳤다. 신부집에서는
신랑 친구들이 여러 명 올 줄 알았으나 신랑이 직접 함을 지고 오자 깜짝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는 함을 마루에 내려놓았다. 신부의 부모와 인척들이 그 함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아니, 이 사람아. 이게 무슨 일인가? 이건 빈 함이 아닌가?"
"네, 그렇습니다."
"자네, 우릴 무시하는 건가? 도대체 이런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장인 어른. 비록 이 함이 텅 비어 있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신부를 사랑하는 제 마음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허허, 이 사람, 말하는 거 좀 보게."
"저는 언제까지나 이 함 속에 사랑을 가득가득 채워 둘 것입니다"
"허허, 이 사람, 내 그 말을 평생 잊지 않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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