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세 개의 역설이 던지는 두 가지 질문
독일이 통일되었을 때, 정확히 말하면 사회주의 독일이 붕괴되었을 때 나는 ‘사회주의자’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었고, 소련이 해체되었을 때, 정확히 말하면 사회주의 체제 전체가 붕괴되었을 때 나는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로 청주 교도소에서 징역을 살고 있었다. 사회주의자가 교도소에서 맞아야 했던 사회주의의 붕괴,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당혹스런 역설이었다. 문학적이기 조차한 역설. 사유가 새로운 탈주를 시도하기에는 결코 좁지 않았던, 한평 반짜리 공간을 만드는 사방의 벽들은 그날 이후 한 걸음씩 성큼 다가섰고, 새로운 꿈이 자라기에 충분히 높던 천장은 마치 관뚜껑이라도 되는 듯, 날 서 있던 코앞까지 초조하게 내려앉았다.
그렇다. 그것은 조롱하고 비아냥대는 소크라테스식 반어(反語, irony)처럼 느껴지던 역설(paradox)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누가 보아도 분명한 지극히 단순한 역설이었지지만, 극도로 강한 당혹을 수반하는 강렬한 역설이었다. 그러나 그 당혹의 요인은 결코 단일하지 않았고, 그 점에서 그 강렬함은 아마도 복수(複數)의 역설의 응축에 기인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최소한 세 가지 상이한 차원의 역설 내지 딜레마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첫째 역설. 사실 80년대의 한국에서 삶에 대해, 함께 사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혹은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했던 사람 가운데, 운동의 장(場)에서 자유로울 수 있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것은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나 역시 맑스주의자여서 혁명을 꿈꾸었던 것은 아니며, 사회주의자여서 운동을 했던 것도 아니었다. 차라리 반대라고 말해야 정확하다. 핍박받는 수 많은 사람들의 삶, 억압과 폭력, 강제와 감시 등으로 황폐화된 삶, 나날이 반복되는 지겹고 고통스런 노동의 삶,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변혁을 생각하게 했고, 그것에 대한 분노가 혁명을 꿈꾸게 했으며, 그것을 뒤집어야 한다는 열정이 두려움과 고통을 감내하며 운동에 나서게 했다. 목숨을 걸고서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변혁과 혁명의 꿈, 운동의 열정이 우리로 하여금 사회주의로, 맑스주의로, 혹은 레닌주의로 밀고 간 것이 아니었던가?
이 경우 ‘목숨을 건다’는 말은 은유가 아니었으며, 결코 과장도 아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갔던가? 바로 옆에 있던 동료가, 함께 토론하던 선배가, 얼굴을 가린 채 함께 달리던 후배가, 혹은 그 주변에서 서성대던 사람들이. 매 맞아 죽고, 떨어져 죽고, 최루탄에 맞아 죽고, 고문당해 죽고, 군대 끌려가 죽고, 의문 속에 죽고. 또 스스로 몸 던져 죽고, 스스로 불살라 죽고, 혹은 이유도 안 남긴 채 죽고. 죽음은 언제나 내 옆에 있었다. 소심함에 떠는 내 등 뒤에 바싹 달라붙어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달렸다. 그 죽음을 등에 진 채. 멈출 생각도 감히 하지 못한 채. 누구 말처럼 ‘삶을 내던지며,’ 혹은 ‘죽음으로 미리 달려가보며.’ 헤겔이나 사르트르, 하이데거는 개념으로 사유했지만, 우리는 몸으로 행했다(그들은 그 말들이 정말 얼마나 가슴 졸이고 끔찍한 것인지 알고 있었을까?).
운동과 혁명이 삶 전체를 건 것이었을진대, 맑스주의나 사회주의가 삶 전체를 건 꿈과 희망이었을진대, 몰락한 사회주의 앞에서, 해체된 맑스주의 앞에서 “이제 그건 끝났어”라며 그것을 쉽게 던져 버릴 수 있을까? 다양한 이념 가운데 맘에 드는 하나를 골라낸 것이었다면, 복수의 체제 가운데 그럴 듯한 하나를 선택한 것이었다면 그건 차라리 쉬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삶을 건 진지함이었고, 죽음을 무릅쓴 열정이었다면, 그것을 버리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혹은 그것을 버린다는 것은 얼마나 허무하고 허탈한 것인지.--그리고 이런 점에서 쉽게 버리고 발빠르게 다른 ‘대안’을 찾아낸 영리한 사람에 비하면, 뼈 속 깊이 허무를 느끼며 방황하던 사람들은 차라리 얼마나 이해하기 쉬운 것인지.
그러나 그렇다고 기존의 맑스주의와 사회주의를 고집하고 그것에 안주하는 것 또한 불가능한 것이었다. 삶을 건다는 것이 낭만주의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신념에 대한 열정적 고집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과거와 미래로 무한히 분할되는 현재 속에서, 현재의 문제로서 미래를 제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첫 번째 역설, 아니 차라리 딜레마에 부딪친다. 맑스주의, 그것은 삶의 진지함을 포기하지 않는 한 결코 던져버릴 수 없는 지반이지만, 동시에 그런 만큼 그대로 안주할 수도 없는 지반이라는 역설. 앉을 수도 없고 떠날 수도 없다는 딜레마.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긴장과 조우하게 한다. 결코 던져버릴 수 없는 그 입지점 안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방식으로 사유함으로써만 해결할 수 있는 긴장과. 그렇다면 차라리 우리는 그 긴장을 이용하고, 그 긴장을 통해 막힌 벽을 뚫고 나가야 하며, 그 긴장 안에서 그 지반을 전복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제 우리는 머문 채 떠나야 한다. 앉아서 하는 유목. 기존의 맑스주의를 뒤집고 변이시킴으로써 맑스주의 내지 맑스적 사유를 새로운 방향으로 추동하는 것.
둘째 역설. 붕괴로 끝난 사회주의의 역사, 아니 좀더 정확히는 자본주의로 회귀하는 것으로 귀착된 사회주의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맑스주의자가 있을 수 있을까? ‘국가자본주의’나 ‘관료사회주의’처럼 비-사회주의를 뜻하는 개념을 끌어들이지 않고, 다시 말해 사회주의를 사회주의로서 정의하고서도, 그 사회주의의 붕괴와 해체, 자본주의적 회귀를 이해할 수 있는 맑스주의자가 있을 수 있을까?
내가 아는 한 그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회주의에서는 잉여가치와 이윤에 기초한 계급이 소멸되었기 때문이고, 사회주의적 생산관계 위에서 타인을 위한 노동을 수행할 수 있는 공산주의적 의식이 형성되었기 때문이고, 모든 인민을 위한 모든 인민의 국가가 적대없는 사회를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그리하여 사회주의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기 때문이고, ‘불회귀점’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주의의 붕괴란 나같은 맑스주의자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이었고, 자본주의로 회귀하는 사회주의란 나같은 맑스주의자로선 납득할 수 없는 역사였다.
맑스주의가 유물론을 자처하는 한, 그것의 역사란 맑스주의자들이 생산한 사상과 이론, 이념과 개념의 역사일 뿐만 아니라, 일차적으로는 운동과 혁명, 사회주의의 성립과 ‘발전,’ 그리고 결국은 붕괴로 귀착된 사회주의의 역사기도 하다. 그런데 바로 그 역사를, 자신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역사를, 사회와 세계에 대한 역사적 분석과 이해로써 스스로를 특징짓던, 그리하여 종종 역사이론이라고 불리던 맑스주의 자신이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맑스주의자로선 이해할 수 없는 맑스주의의 역사, 혹은 맑스주의의 역사를 이해할 수 없는 맑스주의자. 이보다 더 근본적인 역설이, 적어도 맑스주의 안에 있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맑스주의 안에는, 자신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역사를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공백이 있는 것이 아닐까? 혹은 그런 공백이 어디에나 있는 것이라면, 지금 우리가 저 역설을 통해 마주하게 된 공백은 자신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인 어떤 근본적인 지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젠 맑스주의 자체에 대해 다시 근본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그 안의 공백을 새로운 사유가 작동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환시켜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로써 기존 맑스주의에 부재하던 외부의 이질적인 요소가 유입되어, 기존의 선들과 섞이면서 새로운 꺾임과 변형을 만들어내는 프랙탈한 선들을 생산하고, 그것을 통해 기존의 구도(plan)와는 다르지만 그렇다고 전혀 다른 것만도 아닌 새로운 구도를 만들어내는 생성의 공간을 창출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를 위해 차라리 맑스주의의 외부에서 맑스주의를 보고, 맑스주의가 자리잡고 있는 위상에 대해 사유하며, 그 외부를 통해, 그 이질성의 지대를 통해 맑스주의 자체를 변이시키는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세 번째 역설은 해체된 사회주의 사회를 통해, 그 균열의 지점에서 드러난 것으로, ‘사회주의적 인민 없는 사회주의 사회,’ 혹은 ‘사회주의적 주체 없는 사회주의 사회’라는 현실적 역설이었다.
감방 안에서 사회주의의 붕괴와 맞닥뜨려야 했던 사회주의자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마도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신문을 읽어대는 일이 아니었을까? 적어도 나는 그랬다. 얻을 수 있는 모든 신문을 샅샅이 뒤져 사회주의에 관한 기사라면 하나도 빼놓지 않고 겹치면 겹치는대로 반복해서 읽었다. 그 중에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것, 그래서 아직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은 것이 있었다. 고르바초프의 ‘쿠데타’가 실패하고 소련이 해체되면서 열대여섯 개쯤 되는 소련의 공화국에는 새로운 대통령이 들어섰는데, 그 대통령 열대여섯명이 그루지아 한 곳을 빼고는 모두 공산당 간부 출신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대통령이 되자마자 취한 최초의 조치는 공산당의 불법화를 선언하고 공산당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이었다. 공산당에 의해 핍박을 받거나 공산당과 연이 없던 사람이 취한 행동이라면 그것은 매우 자연스런 것이었을 것이고, 따라서 별다른 강렬한 인상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얼마나 공산당이 사람들을 못살게 굴었길래 저럴까’ 하는 상식적 통념을 떠올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제까지 공산당 간부를 하던 사람이 취한 조치였기에 그것은 자연스럽지 않았다. 그것을 본 뒤로 맴돌며 떠나지 않았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그들에게 공산당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떻게 그들은 자신의 삶의 많은 부분을 던져온 자신의 당을, 아무리 상황이 그렇다기로 하루 아침에 등지고 가장 먼저 배신의 칼을 꽂을 수 있었을까? 그것도 한두 사람이 아니라 모두가 한결같이. 그렇다면 그들에게 공산당과 공산주의란 대체 무엇이었을까? 이들은 대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았던 것일까?
자본주의에서 (정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본 우리로선, 그것이 사회주의에서 일어난 일이란 점만 추상하면 매우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공산당이란 자신이 입신하고 출세하는데 필요한 조직었고, 공산주의란 그에 필요한 이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공화국의 대통령이라는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것이 자신의 출세와 무관하게 되거나 심지어 방해가 되게 생긴 상황에서 그들은 얼마든지 그것을 불법화하고 내던질 수 있었을 것이며, 재산을 몰수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던 것일게다.
이해(利害)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며, 그 이해의 중심에는 언제나 자기가 있으며, 이해의 동질성에 의해 구획되는 공동체의 범위는 가족을 넘은 적이 없으며, 그러한 이해를 위해서는 자신에게 허용된 권력과 권리를 최대한 이용하고, 또 주어진 일과 연관해 주어진 명령--그것이 무엇이든 간에--에 복종하고, 또한 명령에 대한 복종을 당연시하며 요구하는 사람들. 그들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더욱 근본적인 것은 권력의 주변을 눈치빠르게 떠다니던 그들만이 문제가 아니란 점에 있었다. ‘문화적 이유에 의한 망명’이라며 “거리에 찬바람”을 남기고 소련으로 떠났던 한 선배는 자신이 체험한 매우 극한적인 장면을 전해주었다. 그는 국영상점에서 물건을 사기 위해 어떤 상품의 가격을 물었지만 눈 앞의 점원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세 번을 물어도 대답이 없자, 그는 항의를 했고, 그 점원은 “그 곳은 내 담당 구역이 아니다”라는 냉담한 한 마디 말로 일축했다고 한다. 바로 옆의 진열대였는데... 어찌 그 점원 뿐일 것이며, 어찌 점원들 뿐일 것인가? 이런 모습의 인민들은, 재빠르게 소련으로 가서 취재를 하던 서방 기자들에 의해 반복하여 보도된 바 있다. 비슷한 시기 중국에서는 증권을 사기 위해 줄을 섰다가 새치기한다며 옆에 있던 ‘인민’을 때려 죽인 ‘인민’이 있었다. 어찌 소련 뿐일 것인가?
사실 이는 우리가 눈을 좌우로 돌리면 언제나 부딪치게 되는 사람들의 모습이며, 동시에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것은, 사람들의 가치가 화폐로 환원되고, 사람들의 활동이 가치화되는 한에서만 노동으로 인정되며, 사람들의 삶이 자본을 증식시키는 한에서만 지속될 수 있는 세계인 자본주의에서라면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것을 언제나 아귀다툼을 벌이는 홉즈 식의 ‘인간’처럼 늑대와 같은 모습으로 표현하든, ‘보이지 않는 손’에 좌우되는 스미스 식의 공리주의적 경제인으로 표현하든, 관료적인 삶의 방식에 길들어 자신을 위해 난 문조차 밀치고 들어갈 생각도 하지 못하는 카프카 식의 소시민으로 표현하든 간에.
이를 우리는 ‘근대인’이라고 흔히 부른다. 지배자 없는 지배를 위해, 명시적인 지배 없이도 주어진 규범과 규칙에 스스로 복종하는 근대적 주체. 그것은, 이미 자신의 눈에 자리잡은 감시의 시선을 통해서 자신을 보고, 침범에 대한 두려움으로 서로 간의 사이에 제거될 수 없는 거리를 만들며, 그리하여 결국에는 손을 내밀고 마주하고 싶은 욕망이 스스로 위축되면서 한없는 고독의 공간 안에 스스로를 가두게 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반면 맑스주의자로서 내가 알고 있는 사회주의적 인민 내지 사회주의적 주체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니, 결코 그런 것이어선 안되었다. 그것은 능동적으로 자신의 일을 찾아내고, 다른 사람들 내지 전체 사회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가족을 넘어서 전 사회적인 범위로 코뮨적 관계를 확장해가며, 그 관계 안에서 자기 스스로를 생산하고 관리하는 새로운 유형의 주체가 있었어야 했다. 공산주의적 주체, 아니 좀더 완화시켜 사회주의적 주체가. 그러나 그런 모습은, 전하는 기사들 탓인지 몰라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사회주의 사회에 사회주의적 인민이 없었던 것이다. 반대로 오히려 자본주의에서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근대인의 모습이 훨씬 더 극적으로 과장된 양상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근대적 사회주의’--근대인들로 가득찬 사회주의 사회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부를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주의가 붕괴한 이유는 차라리 ‘쉽게’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사회주의 인민 없는 사회주의 사회가 붕괴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전 인민의 국가가 통치하는 사회주의 사회에 자본주의를 능가하는 거대한 감시와 통제조직이 필요했던 이유도 ‘쉽게’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근대인이란 위계화되고 분절된 통제를 통해 활동하는데, 자본주의에서 이는 많은 경우 자본에 의해 수행되지만, 자본이 자본으로서 존재할 수 없는, 따라서 자본이 통제할 수 없는 사회라면 이를 대체할 별도의 통제와 감시조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주의 사회가 동요하고 해체되는 상황, 그리하여 의사당에 대포를 쏘아대는 상황에서, 대중들이 혁명이나 폭동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극도의 무관심과 냉담함으로 대처했던 것도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정치란 자신들의 일이 아니며, 국가 역시 자신들의 국가가 아니고, 체제의 동요나 해체는 자신들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들뢰즈(G. Deleuze) 말대로, 양식(良識, bon sens)이 다양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유의 힘을 하나의 방향--좋은 방향(bon sens)--으로 정착시키고 고정시키려 한다면, 역설(paradox)은 반대로 하나로 정착된 정설(doxa)을 거역하여 다양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연다. 마찬가지로 맑스주의가 부닥친 저 근본적인 역설은 정통적(orthodox) 맑스주의가 가정하고 있는 ‘올바른 정설’(ortho-doxa)의 일방성(一方性)을 깨고 맑스주의의 양식을 해체한다.
이 세 번째 역설은, 앞의 두 역설과 더불어, 이론적이고 역사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문제 전체를 다시 사유하게 하는 이론적 지대(地帶)를 생성시킨다.
1)이론적 질문: 알다시피 맑스에 따르면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고, 생산양식에 의해 규정된다. 누구의 정의에 따르든, 근대의 소시민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은 분명히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 의해 규정되며, 그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따라서 생산양식이 바뀌면 인간 역시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사회주의 사회의 대중은 자본주의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그보다 더 극단적 양상을 취하기도 하는 근대인이었다. 생산관계는 사회주의적인 것으로 바뀌었지만 사람들은 사회주의적 인민 내지 공산주의적 주체가 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생산관계 내지 생산양식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바뀌지 않은 것일까? 그렇다면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는 맑스의 명제는 잘못된 것일까?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는 역사유물론의 기본 명제는 기각되어야 하는 것일까?
여기서 “그것은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었다”는 대답이나 ‘불충분한 사회주의’라는 말은 많은 맑스주의자들에게 큰 위안이 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대개의 위안이 그렇듯이 그것은 거대한 역사적 비용과 희생을 치르면서 드러난 문제를 회피하고 외면하는 것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위안이 아니라 정면으로 부딪치려는 용기와 과감함이다.
세 번째 역설이 보여주는 것은 분명히 공산주의적 주체 내지 사회주의적 인민이란,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는 명제에 따라 생산관계를 바꾸면 자동적으로 따라 바뀌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또한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기 위해 사회주의에서 다양한 노력을 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할 때, 사회적 의식을 통해 이 문제에 접근하려는 것은 처음부터 난망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주체 내지 ‘인민’의 문제는 차라리 의식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가 아닐까? 의식이 아닌 차원에서 사람들의 삶을 통제하고 규정하는, 혹은 그것을 특정한 형태로 규정하는 고유한 영역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사람들을 특정한 형태의 주체 내지 ‘인간’으로 생산해내는, 굳이 말하자면 ‘주체생산양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론적 영역이 있는 것은 아닐까?
결국 사회주의적 인민이든 자본주의적 인민이든 ‘주체’의 문제를 포착해야 하는 지대는 의식이나 생산관계로 환원되지 않는 영역인 셈인데, 이를 우리는 프로이트(S. Freud)를 따라 ‘무의식’이라고 부를 수 있다. 다시 말해 사회적 주체에는 생산관계로 환원되지 않는 요소가 있고, 그 요소가 차라리 의식에 비하면 일차적이고 결정적이며, 그것은 바로 무의식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맑스주의자가 맑스주의의 역사를 이해할 수 없었다는 역설에, 납득할 수 있는 하나의 통로를 제공한다. 즉 기존의 맑스주의에서는 주체 내지 인민을 무의식의 차원에서 다룰 수 있는 개념이 없었던 것이고, 무의식의 형성과 연관해 주체와 역사의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이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무의식을 통해 생산되고, 그것을 통해 특정한 양상으로 행동하고 사고하는 주체가 역사적으로 상이한 것이 분명하다면, 봉건적인 주체와 근대적인 주체, 그리고 공산주의적 주체가 유효하게 구별되어야 한다면, 그리하여 근대적 주체와는 다른 공산주의적 주체의 생산이 사유될 수 있어야 한다면, 그것을 위해서는 무의식을 역사적으로 가변적인 것으로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그리고 그를 따라 알튀세르(L. Althusser)는 “무의식에는 역사가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주체를 생산하는 방식의 전복 내지 변혁이란 무의식의 변환을 뜻하는데, 역사가 없는 무의식에 대해 그런 전복이나 역사적 변환이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또 한편 그러한 주체나 무의식 개념은 어떤 식으로든 생산관계나 사회적 관계의 효과 아래 있는 것이고, 따라서 사회적인 성격을 갖는 것으로 정의되어야 한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그리고 그를 따라 라캉(J. Lacan)은 그것을 성적인 것, 가족적인 것, 오이디푸스적인 것으로 정의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무의식을 사회적인 차원에서 다루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프로이트적 무의식 개념이 이처럼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에서 무의식의 역사적 가변성을, 주체생산양식의 역사이론을 다루는데 매우 부적절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프로이트적인 무의식 개념은 어느 경우든 무의식을, 따라서 무의식 차원에서 정의되는 주체를 역사적이지도, 사회적이지도, 가변적이지도 않은 것으로 정의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무의식을 ‘습속의 도덕’을 통해 형성되는 신체적 무의식으로 정의하는 니체(F. Nietzsche)가 훨씬 더 적절하게 보이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 왜냐하면 습속 내지 습속의 도덕이란 사회적인 것이며, 또한 역사적인 것이고, 따라서 가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나 라캉, 혹은 알튀세르보다도 오히려 니체와 들뢰즈/가타리(F. Guattari), 푸코(M. Foucault)에 우리가 훨씬 더 근접하고 그들의 개념과 역사적 연구에 훨씬 더 빈번히 의존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제 역사유물론에 관한 맑스의 명제는 기각되지 않으며, 다만 그 개념적 경계선을 달리하게 된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는 명제는 차라리 무의식의 차원으로까지 확장되며 근본화되어야 하며, 이로써 사회적 관계의 총체로서 ‘인간’ 내지 ‘주체’에 대한 고유한 역사이론이 성립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의식은 사회적 존재에 의해 규정된다“는 명제는, 붕괴한 사회주의의 역사를 통해 제기된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그것은 문제가 ‘사회적 의식’이 아닌 ‘사회적 무의식’ 차원에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사회적 무의식은 사회적 관계에 의해 규정된다“는 명제가 제기되어야 한다. 물론 이 경우 사회적 관계는 생산양식과 무관하진 않지만, 결코 그것으로 환원되지는 않는 주체생산양식과 연관된 것이다.
2)역사적 질문: 교과서적인 서적들의 꿈같은 주장을 한 옆으로 치워둔다 해도, 사회주의 사회가 코뮨적인 사회와 공산주의적 관계를 명시적으로 지향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그것은 공산주의적 주체를 사회주의 인민의 모델로 하고 있었음도 분명하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사회주의적 소유제도는 물론 이념이나 이데올로기, 교육, 문화정책, 심지어 공포정치적인 국가장치까지 동원을 했음을 우리는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지향점과 반대로 차라리 자본주의에 더 잘 상응한다고 보이는 근대적 주체, 근대인들이 대대적으로 생산된 것일까? 어떠한 역사적 조건이 근대적인 역사성과 분리할 수 없는 무의식적 주체를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것일까? 이는 우리로 하여금 자본주의로, 혹은 근대라고 불리는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계보학적 질문을 피할 수 없게 한다. 무의식 차원에서 주체가 생산관계의 변화에 따라 자동적으로 변하고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면, 따라서 근대적 주체의 생산을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성립으로 환원할 수 없는 것이라면, 도대체 근대적 주체, 근대인은 언제 어떻게 탄생했는가? 그리고 근대적 주체로서 우리는 대체 어떻게 판단하고 어떻게 행동하는가? 그 판단과 행동의 어떤 반복적 양상을 어떻게 포착할 것인가?--이는 새로운 코뮨적 사회에 적절한 새로운 주체의 생산을 사유하기 위해서 매우 긴요한 질문이다.
앞서 두 번째 역설이 좁은 의미에서 ‘맑스주의와 근대성’이라는 주제를 정립하게 한다면, 여기서 이 질문은, 아니 이론적이고 역사적인 두 질문은 한편으로는 ‘사회주의와 근대성’이라는 주제를,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와 근대성’이라는 주제를 정립하게 한다. 우리는 뒤의 두 주제들을 통해 주체생산양식의 역사이론을 위한 요소들을 찾아내고자 할 것이며, 그것을 통해 근대적인 주체생산양식으로부터 탈주하고 그것을 전복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내고자 할 것이다. 맑스 말대로 혁명이 광범위한 인간의 변혁을 필요로 한다고 할 때, 그리고 그가 무의식의 차원에서 그 ‘인간’의 문제를 사유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분명히 주체생산양식의 변혁을 뜻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결국 생산양식의 변혁으로 환원되지 않는 주체생산양식의 변혁은, 일시에 모든 것을 종결짓는 ‘거대한 부정‘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습속과 신체의 구석구석에 이르는 치밀하고 섬세한 삶의 영역에서 굳은 분절의 선을 바꾸는 끊임없는 변이일 것이며, 모든 곳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삶의 방식(Lebensweise)을 창조하는 ’즐거운 긍정‘일 것이다. 물론 주체생산양식의 변환이라는 문제설정이 생산양식의 전복과 변환이라는 역사유물론의 기본적인 문제설정과 대립하거나 그것을 무효화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생산양식의 전복으로서 ’혁명‘은 새로운 삶의 방식, 새로운 주체생산양식의 대대적인 변이와 실험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형성하며, 또한 주체생산양식의 변혁은 그러한 ’혁명‘이 모든 영역에서 근본적이고 전면적으로 진행되기 위한 조건을 형성한다. 그런 점에서 혁명은 이중적이고, 그 대상은 중첩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혁명은 체제화되었고,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자유로운 개인들의 자발적 연합‘을 통해 수행되던 실험과 변이는 중단되었으며, 대중의 조직들은 체제화된 삶의 방식, 체제화된 권력을 전달하는 전달벨트가 되었다. 그것은 명령하고 통제하는 권력에 익숙하게 길든 근대인들을 재생산하며 작동한다. 하지만 스스로 근대적인 생산양식을 벗어나고자 하는 체제라면, 도처에서 자신이 생산하는 근대인들과 소리없는 전투를 벌여야 하고, 이를 위해 거대한 감시와 통제장치를 발전시키게 된다. 그러나 도처에서 그 거대한 장치를 에워싸고 있는 저 근대적인 게릴라들과의 무의식적 전투는, 삶의 근본적 변이와 전복을 중단시킴으로써 자초한 대가인지도 모른다.
여기서 우리는 ‘맑스주의와 근대성’이라는 주제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그것은 직접적으로는 지배적인 형태의 맑스주의가 갖는 근대적 성격, 혹은 맑스 자신의 맑스주의조차 결코 자유롭지 않았을 근대적 한계에 대한 것이며, 지배적인 형태의 맑스주의 철학 및 정치경제학이 기반하고 있는 근대적 지반에 대한 것이었다. 이제 그것은 근대성의 문제를, 다시 말해 근대적 삶의 방식 내지 근대적 주체생산양식의 문제를 역사와 혁명의 문제로 사유할 수 없었던 내적인 한계와 공백에 관한 것이다. 결국 근대성이란 주제를 통해 맑스주의를 다시 사유한다는 것은, 맑스주의 자신의 역사조차 이해할 수 없게 했던 그 공백을, 이처럼 근대적인 삶의 방식, 근대적인 주체의 문제를 통해 새로운 사유의 공간으로 변환시키는 문제고, 이로써 맑스주의의 경계를 변위시키는 문제다.
이로써 우리는 안주할 수도 없고, 떠날 수도 없었던 첫 번째 역설로 거슬러가게 된다. 이제 삶에 대한 진지함은 근대적인 삶 자체의 변이와 전복을 시도하는 좀더 근본적인 지층으로까지 더 밀고 나아가야 하며, 이로써 안주할 수 없는 지반 자체를 그 밑으로부터 변환시켜야 한다. 그것은 지배적인 형태의 맑스주의가 양식과 정통(옳은-정설)의 이름으로 장착한 경계를 넘나들고 가로지르며 새로운 혁명의 지도를 그리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머문 채 떠날 수 있다. 아니, 더욱 깊숙이 뿌리를 박으며 더욱 멀리 떠날 수 있다. 앉아서 유목하기.
이로써 삶에 대한 진지함이 밀고 가는 맑스적 사유의 대지는, 변환되는 경계에 따라 탈영토화되고 재영토화되며 또 다시 탈영토화하기 시작하는 끊임없는 변이의 운동을 통해 절대적 탈영토화 운동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거기서 우리는 언제나 상이한 형태를 만들어내고 언제나 상이한 양상을 생산하는 진지함의 반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차이화하는 반복, 혹은 차이의 반복.--맑스주의가 반복하여 존재할 수 있다면, 아니 정확하게 표현해서, 맑스주의가 반복하여 생성될 수 있다면, 그리하여 그것이 니체 말대로 ‘영원히 되돌아올’ 수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반복 안에서 생성되는 그 차이를 통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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