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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금 칠만 육천 이백원정

by Casey,Riley 2023.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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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금 칠만 육천 이백원정
 

                                    by 西村京太郞(Nishimura Kyotaroh)


  그 사나이의 얼굴에 기억이 없었으니까 처음으로 온 손님이 분명했다.
  40대 끝말이거나 50대 초쯤 되는 나이로, 간장이라도 나쁜지 묘하게 거무
스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과히 인상이 좋은 사나이는 아니었지만, 이쪽
은 장사속이고, 게다가 본시 말하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어서 오십쇼."
  하면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나이는 힐끗 싱끼찌의 얼굴을 보고나서 잠자코 거울 앞에 앉았다.   그
리고는 졸린 듯이 하품을 했다.  이발관에 오면 묘하게 졸음이 오는 손님이
있거니와, 이 사나이도 아마 그런 축에 드는지 모른다.  흰 머리가  듬성듬
성 섞인 단단한 머리칼이었다.  물로 적시고 눕히면서 "잘릅니까?" 하고 싱
끼찌는 거울 속의 사나이의 얼굴에 대고 물었다.   사나이는  눈을  감은채
"아아" 이렇게 낮은 소리로 끄덕였다.  눈 밑의 피부가 늘어져 있다.  아마
거치른 생활을 해온 모양이라고, 남의 일에 대해 흥미를 품는 싱끼찌는  짐
작했다.
  '이 손님은 무슨 장사를 하고 있을까....?'
  싱끼지는 가위질을  하면서 거을속의 사나이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싱기
찌는 손님의 직업을 이것저것 상상하는 것이 좋았고, 비교적 잘 맞는  것이
다.  그러나 이 손님만은 좀체로 판단할 길이 없었다.
  오늘은 토요일이나 일요일이 아니고, 2시가 조금 지났을  뿐이니까  여느
샐러리맨 같으면 아직 일을 하고 있는 시간이다.  정년퇴직 후 하는 일  없
이 놀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아니다.  상점주인 이라면 좀더 고지식해  보
일 테고, 이 근처의 상점주인이라면 낯이 익다.  '깡패족일까?'   이렇게도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느낌은 나빠도 무서운 생각은 들지 않는다.
모르겠고보니 싱끼찌는 더 한층 사나이의 직업이 알고 싶었다.
  "줄곧 더우니 정말 따분하군요?"
  싱끼찌는 가위를 움직이면서 사나이에게 말을 걸었다.
  "그렇구먼."
  사나이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였다.
  "과히 뵌 기억이 없는데, 이 근처에 사시나요?"
  "그렇다고 해두지."
  사나이는 억양도 없이 말한다.  그러나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대답을 하
고 있다는 느낌도 아니다.  말하기가 귀찮으면 잠자코 있을 것이다.
  "실례지만 손님은 무슨 일을 하고 계신가요?"
  "내 직업 말인가?"
  "네."
  "무얼로 보이나?"
  "아까부터 생각해 보고 있는데, 도무지 모르겠군요.  손님의 직업을 알아
맞추는 게 제 자랑 입니다만...."
  "그래?"
  "물장사를 하시나요?"
  "아니 불원 알게 될테지.  앞으로 자주 올 셈이니까."
  "아이구, 이거 고맙습니다."
  싱끼찌는 절을 꾸뻑 했다.
  머리를 감고나서 면도를 시작한다.  뜨거운 타올을 얼굴에서 벗기고 비누
를 칠하고 있으려니 사나이는 눈을 감은 채,
  "이 가게는 당신 혼자 하고 있나?"
  이렇게 반대로 질문을 했다.  그런 것을 묻는 것을 보니, 사귀기 힘든 느
낌의 사나이지만, 본시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누라하고 둘이 하고 있는데, 오늘은 애를 데리고 친척집에 갔답니다."
  "부인하고 둘이?"
  "네, 그럭저럭 꾸려나가고 있죠."
  싱끼찌는 어깨를 흠칫하고 웃어 보이고나서 면도칼을 손에 들었다.  손가
락 끝으로 가볍게 얼굴의 살갗을 잡아 본다.  거치른  탄력없는  피부였다.
이런 것은 깎기가 무척 힘들다.
  "눈썹 밑도 깍습니까?"
  "아아"
  사나이는 끄덕이고 나서 갑자기 눈을 뜨고 싱끼찌를 올려다보았다.
  "당신 이름은 노무라 싱끼찌지?"
  "그렇습니다만...."
  싱끼찌는 멍청한 얼굴로,
  "아, 문패를 보셨군요?"
  "아니, 당신 일은 전부터 알고 있지."  
  "헤에.  저는 손님을 모르고 있는데요."
  "난 당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구."
  "그래요?  헤에."
  "가령 석 달 전에 당신이 운전하고 있던 자동차가  유치원에서  돌아가는 
계집애를 치어 죽인 사실도 말야."
  면도칼을 든 싱끼찌의 손이 공중에 멈추어 버리고 말았다.  얼굴에서  핏
기가 싹 가셨다.  눈 밑에 있는 사나이의 얼굴이 갑자기  이상하게  부풀어
올라온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애는 죽었어."
  사나이는 즐거운 듯이 천천히 말했다.
  "당신 사고 뒤에 열심히 신문을 읽었을 테니까 죽은 사실은 알고  있으렸
다?"
  "......"
  "목격자가 없어, 경찰은 범인을 잡지 못하고 있는 모양인데,  사실은  딱
한 사람 목격자가 있었지.  나라는 목격자가 말야.  얼굴빛이 파랗군.   새
삼스럽게 경찰에 일러바치거나 하지는 않을테니 염려마소.  그보다 빨리 면
도를 끝내 달라구.  비누칠을 한 채 이러고 있으니 근질거려서 견딜 수  없
군."
  "미안합니다."
  싱끼찌는 얼빠진 대답을 하고 면도날을 사나이의 얼굴에  댔다.   손가락
끝이 떨리고 있다.  사나이는 싱긋 웃었다.
  "이봐, 얼굴을 베지 말라구."
  싱끼찌는 침을 꿀꺽 삼켰다.  살며시 사나이의 뺨을  민다.   거칠거칠한
피부의 느낌이 싱끼찌의 손에 전해져온다.  사나이는 기분이 좋은 듯  또다
시 눈을 감았다.
  "그 자동차는 팔아버린 모양이지?"
  "네."
  "아무래도 그편이 안전하구먼."
  "손님."
  싱끼찌는 손을 멈추고, 필사적인 눈으로 사나이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대체 목적이 뭐죠?"
  "무슨 소리지?"
  "날 협박하러 왔나요?"
  "그런 끔찍한 애기는 그만 하자구.  그보다도 난 이발관에 오면 잠이  드
는 버릇이 있단 말야.  자고 있을 테니까 차분히 밀어 달라구."
  사나이는 입을 다물었다.  싱끼찌는 면도날을 갈면서 거울속의 자기의 얼
굴을 보았다.  아직도 안색이 창백하다.  마치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
이 보인다.
  '차분해야 한다.' 
  싱끼찌는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었다.  사나이는 경찰에 알리고 싶은 생각
은 없다고 했지 않은가?  경찰에 알릴 작정이라면, 석 달씩이나 놓아 둘 리
가 만무하니까, 이 말은 믿어도 될 것 같다.  사나이의 목적은 협박이 뻔하
다.  
  싱끼찌의 머리에 예금통장의 숫자가 떠올랐다.  분명히 26만원쯤 있을 것
이였다.  현재의 가게는 빌려쓰고 있기 때문에 하루 속히 점포를  마련하고
자 부지런히 모으고 있는 돈이지만, 이 금액으로 사나이가 그 사고에  대해
잊어 준다면, 모두 내주어도 상관없다.  돈은 또 모으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싱끼찌는 언젠가 본 범죄영화 생각을 했다.  딱 한 번 공갈을 치는  범인
의 영화같은 것이 있었는가?  모두 한 번 협박에 성공하면  옳다구나  싶어
수없이 뜯어가는 것이다.  이 사나이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쪽에서
돈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그야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노릇일 밖에.
  이럭저럭 면도도, 아이론도 끝났다.
  "당신 솜씨가 제법 좋군."
  사나이는 만족스러운듯 거울 속의 자기의 얼굴을 바라보고, 머리를  만져 
보았다.  졸림이 가득 찼던 눈이 묘하게 생생하다.
  "이 일은 벌써 오래 됐겠군?"
  "십 년째 하고 있죠." 
  "그렇다면 안심이야.  마음이 동요돼서 면도날로 푹 찍을 염려는  없을테
니까."
  사나이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한다.  싱끼찌는 잠자코 있었다.   사나이
를 베어 버리고 싶어졌었기 때문이다.
  "좋은 솜씨야."
  사나이는 또다시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의자에서 내려 거울 속의  자기
모습을 발 끝에서 머리 끝까지 만족스러운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앞으로는 늘 당신집으로 오기로 해야겠군."
  "앞으로?"
  "당신처럼 솜씨가 있는 사람하곤 오래오래 사귀고 싶으니까."
  사나이는 거만스러운 태도로 어깨께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털고 나서,
  "그런데 참 얼만가?"
  "사백 원입니다."
  "솜씨에 비해선 싸구먼."
  사나이는 포켓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내 거기에다 <일금 4백원>이라고 적
어 넣고는 싱끼찌 앞에 놓았다.
  "영수증이라구."
  그리고는 거울 속의 자기에 반한 것 같은 자세로 싱끼찌에게 말했다.
  "앞으로는 자주 쓰게 될 것 같아 아예 인쇄해 뒀다네."
  사나이의 말대로였다.  금액을 적는 난이 비어있을 뿐이고, <노무라 이발
관 귀하>와 <이가라시 고오사부로오>의 두 이름이 아래위로 인쇄되어  있었
다.  사나이의 이름은 이가라시 고오사부로오라고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 이름보다도 싱끼찌는 노무라 이발관이라고 인쇄된 글자에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인쇄되어 있는 사실에 사나이의 강한  의지를  느꼈기  때문이다.
이 사나이는 앞으로도 수없이 싱끼찌를 협박할 작정인 것이다.  빈 난에 적
혀지는 금액은 오늘 4백원이지만, 다음에는 더 커질 것이다.  그리고 그 다
음에는 더 크게......

  싱끼찌는 가위에 눌려 눈을 떴다.
  그 사나이가 다녀간 지도 닷새가 지났는데, 잠이 들기만  하면  영락없이
가위에 눌려 소스라쳐 잠을 깨는 것이다.  모든 것을 빼았기고  세  식구가 
구걸을 하고 다니는 꿈이었다.  일어나 앉으면 온 몸이 땀에 베어있다.  시
계를 보면 12시가 가까왔다.  정작 밤중에 잠을 못자다 보니 아침 일찍  일
어나는 일이 힘들어진다.  이발사로서는 그야말로  낙제감이다.   싱끼찌는
찬 물로 얼굴을 씻고는 흰 웃옷을 입었다.  가게로 나가자 이웃 아이의  머
리를 깎고 있던 아내인 후미꼬가,
  "무리하지 않는 게 좋아요."
  이렇게 근심스러운 듯이 말했다.  
  "무리?  난 아프지 않다구."
  "그래도 요즘 밤에 땀을 흘리고 있잖아요?"
  "애기아버지 어디 아픈가요?"
  어린애를 따라온 모친이 싱끼찌의 얼굴을 본다.  싱끼찌는 억지로 웃으면
서,
  "좀 감기를 들어놔서요."
  이렇게 말했다.  그 때 그 사나이가 나타났다.
  "어서오세요."
  후미꼬가 명랑한 목소리로 말한다.  싱끼찌는 외면을 하고 있었다.  사나
이는 비어 있는 의자에 앉았다.  싱끼찌는 마지못해 굳은 표정으로  다가가
서,
  "아직 안자랐어요."
  이렇게 말했다.  사나이는 눈을 감자,
  "오늘은 면도를 좀 하려고 말이야."
  이렇게 천천히 말했다.
  "내가 밀어도 되지만, 일전의 당신 솜씨에 반해 버렸거든."
  "고맙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후미꼬는 싱글거리고 있다.  사나이는 눈을 뜨고  후미
꼬를 보았다.
  "이쪽이 아주머니군."
  "네."
  싱끼찌는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의자를 쓰러뜨렸다.  사나이는 다시금  기
분좋은 듯이 스르르 눈을 감았다.
  "제법 미인이군.  게다가 부지런하구."
  "싫어요.  미인이시라뇨?"
  후미꼬는 미태를 보이고 있다.  이 사나이는 아내까지  끌어들일  작정인
가?
  "맞벌이라면 남아돌아가서 걱정이겠구먼?"
  사나이가 말한다.  싱끼찌는 사나이의 말뜻을 재빨리 알아채고 얼굴을 굳
혔다.  맞벌이로 모으고 있으니 협박할 만한 보람이 있다는 뜻이리라.   후
미꼬는 남자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그렇지도 않답니다."  이러면서 웃고
있다.  싱끼찌는 사나이와 아내가 말을 나누는 것에 신경이 쓰여져  뜨거워
진 수건을 사나이의 얼굴에 덮었다.  이대로 수건 위에서 눌러대고 있으면,
사나이는 죽을 것이다.  순간 그런 생각이 번쩍였지만, 그는 천천히 수건을 
벗기고 표정없는 얼굴로 면도를 했다.
  끝나자 사나이는 전처럼 거울 속의 자기 얼굴을 만족스러운 듯이  바라보
고 나서 또다시 그 쪽지를 꺼냈다.
  "면도 값은 얼마였나?"
  "이백원 입니다."
  "양심적인 값이군." 
  사나이는 추켜세우듯 말하고 펜을 달렸다.  쪽지를 받은 싱끼찌의 얼굴이 
붉어졌다. 
  5천 2백원정.
  이렇게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이 앞 찻집에서 기다리지."
  사나이는 싱끼찌의 귀에다 속삭이고는 거듭 거울을 보고나서 천천히 밖으
로 나갔다.
  "빌어먹을!"
  싱끼찌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어린애의 조발이 끝나, 싱끼찌가  빠
찡꼬에서 따온 카라멜을 주고 있던 후미꼬가 놀란 얼굴로 돌아 보았다.
  "왜 그래요?  당신."
  "아무 것도 아냐."
  싱끼찌는 허둥지둥 고개를 흔들었다.  교통사고  이야기는  후미꼬에게도
하고 있지 않았다.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애를 치어 죽였다고는, 같은 또래
의 딸을 키우고 있는 그녀에게 도저히 말할 수는 없었다.
  "가오루는 어떻게 됐지?"
  "유치원이 끝나는 것은 늘 한 시가 아녜요?  아직 열 두 시 조금  지났는
걸요."
  "그랬었군."
  싱끼찌는 쓴웃음을 짓고나서,
  "잠깐 나갔다 올께."
  이렇게 후미꼬에게 말했다.  샌들을 걸치고 세째번 집인 찾집으로  갔다.
가게는 텅 비어 있고, 제일 안쪽 테이블에 그 사나이가 앉아 있었다.  싱끼
찌를 향해 손을 들고나서 그가 앉자 말했다.
  "이 찻집은 느낌이 좋군.  앞으로는 이곳을 연락장소로 쓰고 싶은데."
  "연락 장소?"
  "마누라 앞에선 당신 입장이 거북할 테니까.  그런데 영수증에 적은 만큼
가져왔을테지?"
  "갖고 왔다구."
  싱끼찌는 포켓에서 접은 5천원짜리를 꺼내 남자 앞에 던졌다.   사나이는
싱긋 웃고 그 돈을 포켓에다 넣었다.
  "이제 합계 오천 육백원을 빌린게 되는군.  틀림없이 장부에 달아 둘테니
까." 
  "흥!  갚아 줄 생각도 없으면서."
  "그렇게 화내지 말게나."
  "당신은 그 오천원이 우리 부부한테 얼마나 큰 돈인지 알기나 하슈?   하
루종일 둘이 벌어도 오천원이 안될 때가 많다구."
  "그런건 나하고 관계가 없다구."
  사나이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게다가 이런 잔돈푼으로 교통사고 비밀이 지켜진다면 싸다고 난  생각하
는데?"
  "그건 어린애가 갑자기 뛰어나왔기 때문이었고, 브레이크를 걸었지만  피
할 틈이 없었다구."
  "그 말을 경찰이 믿어 줄까?"
  "당신은 목격자니까 잘 알고 있을게 아냐?"
  "글쎄, 만일 내가 경찰에 가서 당신이 스피이드를 지나치게 내고  있었는
데다가 한눈을 팔고 있었다고 증언하면 대체 어떻게 될까?"
  "빌어먹을!"
  싱끼찌는 자기도 모르게 주먹으로 테이블을 쳤다.  그러나 사나이는 여전
히 웃고 있을 뿐이다.  그 웃는 얼굴은 너는 아무리 화를 내도 어쩔 수  없
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 이만 실례해야지."
  사나이는 전표를 들고 천천히 일어섰다.
  "코오피 값은 내가 내지.  덕분으로 주머니는 두둑하고, 백원짜리 영수증
을 끊는 것은 귀찮은 일이니까 말야."

  그로부터 5일 후, 사나이는 또다시 나타났다.
  면도를 해달라는 것이다.  아내인 후미꼬는 좋은 손님이라고 기뻐하고 있
다.  그리고 이번에 사나이가 적은 금액은 1만 2백원이었다.  이런 식이면,
다음에 왔을 때는 곱인 2만원을 요구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4만원으로 불어날 터이니 이렇게 가다가는 이내 파산해 버려, 그 꿈처럼 정
말 세 사람이 길거리를 헤매게 될는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해야지....'  
  싱끼찌는 조바심을 했다.  그렇다고 경찰에 가서 이가라시  고오사부로오
라는 사나이에게 협박을 당하고 있다고 호소할 수도 없다.  그런 짓을 하면
3개월전의 교통사고건이 드러나 버릴 터이고, 그 사나이는 태연히 과속운전
이였다고 증언할 것이다.  아무래도 징역은 면치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혼자라면 교도소에 들어가도 되지만, 아내와 자식이 있다.   싱끼찌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한 가지 대항수단을 강구했다.  사나이는 3개월
전의 교통사고를 미끼로 이쪽을 협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쪽에서도 사나
이의 약점을 잡아내어 상쇄하는 수밖에 방법은 없다.  공갈을 일삼는  인간
이니까 보나마나 전과쯤은 있을 것이다.  떳떳지 못한 점도 있을테지.   그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싱끼찌는 정기휴일인 월요일에 단단히 마음을 먹고
신문에 광고가 나있던 흥신소를 간다(神田)로 찾아갔다.  이름과는 달리 막
상 찾아가 보니, 지저분한 빌딩의 이층만을 쓰고 있는 작은 회사였다.   사
무실 안에는 서른 서너살 가량의 남자가 혼자 있었다.
  "다른 사원들은 모두 조사차 나가고 있지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지만,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싱끼찌는
이런 보잘것 없는 흥신소로 괜찮을까 의심하면서, 
  "한 사나이에 대해 조사를 해주시오."   
  이렇게 말하자 상대방은 책상 위에 노우트를 펼치고,
  "신상 조사군요?"
  "아무튼 그 남자에 관한 것은 모조리 조사해 주슈." 
  "그 사람의 이름은?"
  "이가라시 고오사부로오." 
  "예능인 같은 이름이군요.  주소는?"
  "그건 알 수 없소."
  "주소를 몰라가지곤 좀 어렵겠는데요."
  "주소는 몰라도 그 사람이 오는 곳은 알고 있으니까 그 뒤를  미행하도록 
하시죠."
  싱끼찌는 이가라시가 가게에 오면 즉시 연락할 테니까 그 때는 옆에 있는 
찻집에서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모조리라고 하셨죠?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조사하면  되겠읍니까?
가령 전과유무까지 조사하라고 하나요?"
  흥신소원이 이렇게 물었다.  싱끼찌는 전과라는 말에 가슴이 털썩 내려앉
았지만, 이내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아무튼 이 남자에 대한 일은 무엇이건 알려주슈."
  싱끼찌가 조사를 의뢰한 다음날 이가라시가 또다시 불쑥 나타났다.
  "금방 수염이 자라 버렸단 말야."
  이가라시는 턱을 만지면서 비어 있는 의자에 천천히 앉았다.  오늘은  양
복 가슴포켓에 빨간 손수건을 꽂고 있다.  싱끼찌는 구역질이 나는 것을 가
까스로 누르면서 그의 얼굴에 뜨거운 타올을 올려놓고, 그  사이에  전화의
다이얼을 돌렸다.  어제의 흥신소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싱끼찌는 "부탁하
겠네."  이렇게 말하고 수화기를 놓았다.  그가 돌아와 타올을 벗기자 이가
라시는 눈을 뜨고,
  "면도질하랴, 전화를 걸랴 대단히 바쁘구먼."
  이렇게 위로인지 비꼬임인지 모르는 투로 말했다.
  "부탁한다니, 뜻깊은 전화구먼?"
  "친구한테 돈을 꾸어달라고 한 거라구.  당신한테 뜯기는 통에 말야." 
  "낡은 수라구."
  "뭐가?"
  "내 동정을 끌려고 해봤자 헛일이라는 거지.  게다가 나는 당신한테 아직 
일만 오천 팔백원 밖엔 꾸지 않았어.  단 세 식구에 맞벌이라면, 적어도 이
삼십 만원의 저금은 있을거란 말야.  그러니까 친구한테 돈을 빌린다는  것
은 거짓말이지."
  싱끼찌는 대답을 않고 면도칼을 갈기 시작했다.  우정 위협하듯 썩썩  소
리내어 갈았지만, 이가라시는 기분좋게 눈을 감은 채였다.  전화의  상대방
을 친구가 아니라고 꿰뚫은 것은 빈 틈없는 사나이지만, 설마 흥신소원이었
다고는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사나이의 약점을 잡을 수만 있으면,
꼼짝 못하게 해줄테다.  1만 5천 8백원도 되찾아 보이겠다.
  "오늘은 아주머니가 안보이는군."
  눈을 감은 채 이가라시가 묻는다.  싱끼찌는 면도칼을  들고  다가서면서
말했다.
  "안에서 밥을 먹고 있다구.  교대로 식사를 하고 있지."
  "그게 맞벌이의 괴로움이구먼?"
  "이것 봐.  협박을 당하는 것은 나 혼자만으로 족하다구.  이 일에  마누
라나 딸을 끌어들이면 그 땐 당신을 죽여 버릴테야."
  싱끼찌는 사나이의 눈 위에서 면도칼을 움직여 보였다.  이가라시는 눈을 
뜨고 싱끼찌의 얼굴과 희게 빛나는 면도칼을 번갈아 보았다.
  "난 협박 따윈 한 일이 없다구.  당신한테 그저 돈을 빌리고  있을  뿐이
지.  영수증도 꼬박꼬박 주고 있단 말야."
  "돌려줄 생각조차 없으면서."
  싱끼찌는 씹어배앝듯이 말했으나, 이가라시는 어느새 눈을 감아버리고 있
었다.
  "속히 좀 해줬으면 좋겠군."
  면도가 끝나자 이가라시는 당연한 것처럼 그 영수증에다 2만 2천원이라고
적어 싱끼찌에게 내밀었다.
  "그 찻집에서 기다리라구."
  싱끼찌는 외면을 하고 말했다.  그는 우정 시간을 끌다가 찻집으로 갔다. 
여전히 손님이 없었고, 입구께에 흥신소원이 신문을 펼치고  앉아  있었다. 
싱끼찌는 그 옆을 지나 안쪽에 앉아 있는 이가라시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선채로 만원짜리 두 장을 이가라시 앞에 던졌다.
  "그걸 갖고 속히 꺼지라구.  당신 얼굴을 보고 있으면 구역질이 난단  말
야."
  "그렇게 싫어하지 말라구.  앞으로도 오래오래 사귀고 싶으니까."
  이가라시는 능글맞게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흥신소원은 싱끼찌에
게 눈짓을 하고 이가라시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흥신소로부터의  보고는
좀체로 오지 않았다.  사흘째에서야 전화 연락이 왔고, 두 사람은 찻집에서
만났다.
  "이가라시에 대해 조사할 수 있는 범위의 것은 모조리 알아냈지요."
  흥신소원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하고는 가방에서 얄팍한 보고서를  꺼내 
싱끼찌 앞에 놓았다.  싱끼찌는 그것을 받고 말했다.
  "직접 말해 주는 게 좋겠군.  이가라시란 대체 어떤 인간이지?"
  "나이는 오십삼 세, 영화배우, 아니, 전에 배우였다고 말하는 게  정확할 
겝니다."
  "배우?"
  "텔레비젼에도 몇 번 나온 일이 있죠.  그렇지만 영화의 경우도,  텔레비
젼의 경우도 단역뿐입니다.  인상이 나빠,  악질적인  고리대금업자라든가, 
공갈자 같은 역이 많았던 것 같아요."
  "공갈자라?"
  영화나 텔레비젼에서 하고 있던 역을 이번에는 직접 하고  있단  말인가?
거울속의 자기 얼굴을 자주 들여다 보던 사실도 이해가 간다.  배우였을 때
의 버릇일 테지.
  "연기가 신통치 않아, 차츰 영화에서도 텔레비젼에서도 역을  주지  않게
됐고, 지금은 전혀 출연 교섭이 없는 것 같더군요."
  "그럼 돈이 궁하겠군?"
  "수입은 제로인 데다가 달리 재주가 없으니까요."
  "가족은?"
  "나이가 훨씬 아래인 부인하고 대학에 갓 들어간 아들이 하나 있죠."
  "수입은 없는데 아들을 대학에 보내고 있단 말요?"
  "부인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생활이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싱끼찌에게 있어서는 나쁜 연락이였다.  수입이 없이 외아들을 대학에 보
내고 있다면, 돈은 얼마든지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모처럼 잡은 싱끼찌
라는 돈줄을 좀처럼 놓치지 않을 것이다.  평생 달라붙을 지도 모른다.
  "전과는?"
  약간의 기대를 걸며 물었으나 흥신소원은, 
  "없읍니다.  전에 그와 같이 일한 사람들을 만나 알아 봤는데, 그 사람은 
악역전문이였지만 기막히게 사람이 착해, 나쁜 짓이란 절대로 못한다고  입
을 모아 말하던 걸요."
  "그 놈들의 눈이 어떻게 된 거야."
  "네?"
  "아니, 아무 것도 아뇨."
  싱끼찌는 무뚝뚝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기막히게 착한 사람이라구?'
  보나마나 시치미를 떼고 있었는데도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면 돈이 없어진 순간에 갑자기 악인으로 탈바꿈했는가?  어쨌거나 싱끼
찌에게 있어서는 늑대로밖에 안보인다.  피에 주린 늑대다.   전과가  없다
면, 반대로 그 늑대를 위협할 수가 없게 되었다.
  "전과는 없는지 모르지만, 소문은 어떻소?  나쁜 소문은 없었나?"
  "전혀 못들었는데요.  영화를 좋아했지만, 재능이 없는 게 치명상이었다, 
이게 유일한 비판이였으니까요.  아 참, 그리고...."
  "그리고라니?"
  "오늘밤 영화에 이가라시가 나옵니다.  <악인들을 죽여라>라는 십년 전의 
영화인데요."
  보고는 그것뿐이었다.  그것만으로 조사비로 1만원을 빼았겼다.   상대방
의 정체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것은 수확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협박으
로부터 몸을 지키는 방법은 무엇하나 발견되지 않았다.  그 사나이가  찾아
와서 돈을 요구하면, 이제껏처럼 순순히 넘겨주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날밤 싱끼찌는 혼자서 텔레비젼의 심야영화를 보았다.  오래된  영화였
다.  배역의 마지막께에 이가라시 고오사부로오의 이름이 나와 있었다.  영
화는 전형적인 활극물이었다.  주연남배우가 거리를 지배하는 깡패들을  모
조리 쓰러뜨리고 주연여배우인 꽃파는 처녀와 맺어진다는 껄렁한 내용이다.
이가라시의 역은 꽃파는 처녀를 협박하는 악덕고리대금업자였다.  차용증서
를 미끼로 자기의 첩이 되라고 강요한다.  과연 서투르기 짝이 없는 연기였
다.  여주인공역인 여배우쪽도 서툴러, 두 사람의 연기는 영락없이  만화였
다.  이가라시는 그 뒤에 이내 조무라기 깡패에게 살해되어 버리거니와, 싱
끼찌는 따분해져서 텔레비젼을 꺼버렸다.  흥신소원의 말대로 서투른  배우
이다.  영화에서도, 텔레비젼에서도 쫓겨나게 된 것은  당연한  노릇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방법은 서투르지가 않다.  배우로서는 낙제더라도  진짜
공갈자로서는 가히 일품이다.

  또다시 닷새가 지나갔다.
  오늘쯤 이가라시는 또 올것이다.  그리고 전의 곱인 4만원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싱끼찌는 각오하고 가게에 나와 있었으나, 낮이 지나고 저녁 때가
되어도 이가라시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밤이 되어 8시에 가게를 닫았
는데, 그 때까지도 이가라시의 부은 것 같은 얼굴은 나타나지 않았다.   안
도의 한숨을 쉬며 차를 마시고 석간을 펼쳤다.  그리고는 깜짝 놀랐다.  사
회면에서 이가라시 고오사부로오의 사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어린애를 살리려고 노인 부상>
  그것이 제목이였다.  기사에 의하면, 행길로 뛰어나간 어린애를 구하려고 
때마침 지나가던 이가라시가 자동차 앞으로 뛰어나가다가 다리에 부상을 당
했다는 것이다.  어린애는 무사하고, 다리에 붕대를 감은 이가라시가  어린
애의 머리를 어루만지고 있는 사진이 실려 있다.
  "정신없이 뛰어나갔는데, 어린애가 무사해서 다행이였다.   누구나  하는
일을 한 것뿐이죠."
  이것이 이가라시의 이야기였다.
  싱끼찌에게는 신문에 나있는 이가라시가 그를 협박하고 있는 사나이와 동
일인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다.  어떤 상태였는지, 보고 있지  않았
던 싱끼찌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자동차 앞으로 뛰어 나갔다는 것이니
까 깔려죽을 위험도 있었을 것이다.  알지도 못하는 어린애를 살리고자  죽
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드는 사나이와 태연히 싱끼찌를 협박하는 사나이
와, 도대체 어디서 연결이 되는 것일까?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틀림없는
그 사나이였다.  동명이인은 아니다.  게다가 사고가 있었던  장소로  보아
이가라시는 이곳으로 오는 도중이였던 것이다.  협박하러 오는 도중에 목숨
을 걸고 어린애를 살린다는 것은 대체 어떻게 된 신경일까?  싱끼찌는 이가
라시라는 사나이가 점점 알 수 없게 되었는데, 모르는 가운데에 한 가닥 희
망을 찾아내려고 했다.
  '혹시 그는 갑자기 선심으로 돌아와 어린애를 살리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협박도 중지해 줄는지 모르지 않는가?'

  그러나 다음다음날 오후가 되어, 싱끼찌는 그것이  덧없는  희망이였음을
알게 되었다.  이가라시가 다리를 절면서 여느때처럼 가게에 나타났기 때문
이다.
  "그저께 사고로 내가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게 아
냐?"
  여전히 면도를 시키면서 이가라시는 낮은 소리로 비꼬았다.
  "그렇지만 난 이렇게 멀쩡하지.  미안하구먼."             
  "언제까지 내게 달라붙을 작정이지?"
  "일생 동안이라고 해둘까.  당신이 마음에 들었거든."
  "일생이라구?"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싱끼찌는 허둥지둥 입을  다물었
다.  곁에서 젊은 남자의 머리를 깎고 있던 후미꼬가 놀란 듯이 돌아보았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아냐."
  싱끼찌는 후미꼬에게 말했다.  이가라시는 눈을 감고  싱글거리고  있다.
그 얼굴을 후려갈기고 싶은 것을 싱끼찌는 가까스로 참았다.
  면도가 끝나자 이가라시는 마술사가 비둘기를 꺼내는 것  같은  제스처로
그 영수증을 포켓에서 꺼내자 <4만 2백원정> 이렇게  적어넣고  싱끼찌에게
내밀었다.
  "4만."
  두배를 요구할 것이라 각오는 하고 있었으나 싱끼찌의 안색이 변했다. 
  "그런 돈이 집에 있다고 생각하나?"
  후미꼬는에게 신경을 쓰면서 그는 낮은 소리로 말하고는 이가라시를 노려
보았다.  이가라시는 졸린 것 같은 눈으로 시계를 올려다 보았다.
  "아직 두 시라구."
  "그게 어폓다는 거야?"  
  "은행은 세 시까지 열려 있다, 이 말씀이지."
  이가라시는 싱글거리고나서,
  "그럼 그 찻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싱끼찌는 노여움보다도 절망을 느꼈다.  협박이란 한 번 맛이 들리면  계
속되게 마련이다.  동시에 요구액은 마구 불어나는 법이다.  다음에는 보나
마나 8만원을 요구할 것이다.  후미꼬 몰래 저금을 찾아내서 4만원을  이가
라시에게 주기는 했지만, 싱끼찌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해
서 경찰에 갈 수는 없다.  이렇게 되면 남은 수단은 하나밖에 없었다.   이
가라시 앞에서 도망치는 것이다.
  그날 밤늦게 싱끼찌는 다짜고짜,
  "이사를 합시다."
  이렇게 후미꼬에게 말했다.  후미꼬는 멍청해져서 물었다.
  "왜요?  이제서야 단골도 제법 생겼는데."
  "아무튼 이곳이 싫어졌다구.  견딜 수 없을 정도야."
  "가오루 문제는 어떡하죠?  유치원도 옮겨야 할테구."
  "당신이 싫다면, 나 혼자서라도 여기서 나가겠어."
  싱끼찌는 소리쳤다.  후미꼬는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좋아요.  다른 데로 옮겨도 돼요.  하지만 한 마디만 묻겠어요."
  "뭐야?"
  "이번 일, 그 자주 오는 쉰 두어 살 된 손님하고 관계가 있죠?"
  "그 사람하곤 상관 없는 일이야."
  싱끼찌는 얼굴을 돌리고 배앝듯이 말했다.  후미꼬는 그 이상 캐묻지  않
았다.

  세 식구가 이튿날로 당장 도오꼬오 변두리로 옮겼다.   정작  도오꼬오를 
벗어나지 못한 것은 싱끼찌도, 후미꼬도 도오꼬오 태생이어서 돌아갈  고향
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도 달리 기술이 없는 싱끼찌는 이발관  간판
을 거는 수밖에 없었다.
  이럭저럭 가게도 정리가 되어, 후미꼬가 가오루를 새 유치원으로  데리고
간 날, 싱끼찌는 가게 의자에 맥없이 혼자 앉아있었다.  26만원 있었던  저
금도 이가라시에게 빼았기고, 이번 이사 통에 써버려 거의 없어졌다.  또다
시 한 푼 두 푼 모아야 한다.
  '언제나 셋집이 아닌 내 집과 가게를 갖게 될 것인가?'
  모두가 이가라시라는 남자 탓이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입구에 인기척이 
났다.  그는 반사적으로 돌아보고,
  "어서 오십쇼."
  이렇게 웃는 표정을 지었는데, 그 웃음은 퍼지지를 않고 중간에서 얼어붙
어 버리고 말았다.
  "굉장히 찾았어, 이 사람아."
  이가라시는 좁은 가게안을 힐끗거리며 억양이 없는 소리로 말했다.  싱끼
찌는 잠자코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노여움으로 입술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가라시는 그런 싱끼찌의 심정을 무시해 버리고 빈  의자
에 앉더니,
  "전처럼 면도를 부탁하겠네."
  이렇게 느릿느릿 말했다.
  "그 영수증도 갖고왔으니까.  자아, 이 사람아, 빨리 해치우자구."  
  이가라시의 말에 싱끼찌는 반사적으로 의자에서 내려 타월찌는 용기 쪽으
로 갔다.  굳어진 얼굴로 타올을 꺼낸다.  기계적으로 이가라시가 앉아  있
는 의자를 쓰러뜨리고 눈 밑으로 온 거무죽죽한 얼굴에 뜨거운 수건을 얹었
다.  타올을 벗기자 이가라시는 웃으면서 싱끼찌를 올려다 보았다.
  "안색이 좋지 않군."
  놀리듯이 이렇게 말한다.
  "병이 난 것이라면 속히 고쳐야지.  당신은 나한테 아주 소중한 사람이란 
말야."
  "잠자코 있어 줘."
  싱끼찌는 우는 것 같은 소리로 말했다.  면도칼을 손에 들었으나, 손가락
이 떨리고 있다.
  "간신히 만났는데 그렇게 화를 낼 거야 없잖아?"
  이가라시는 즐거운 것 같았다.
  "기뻐해 달라구.  앞으로는 계속 사귀고 싶으니까."
  "잠자코 있어 줘."
  싱끼찌는 뒤틀린 얼굴로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왜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
  "잠자코 있어 달라구.  부탁이야."
  "좀 웃으면 어때?  손님한텐 상냥하게 대하는 것이 장사의 요령 아냐?"
  이가라시는 웃고 있다.  싱끼찌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진다.  겨드랑 밑에
땀이 배어왔다.
  "가만히 있어 달라는데 모르나?"
  "그렇게 쏘아대지 말고 좀 웃어 보라니까.  난 당신이 아주 마음에  들었
다구,"
  "시끄러워!"
  "그것 참 굉장히 겁을 주는군.  아하, 그렇구먼.  오늘이 당신이 죽인 여
자애 명일(命日)이였구나?  그래서 기분이 언짢다, 이 말씀인가?"
  문득 싱끼찌의 귀에 이가라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이가라시
의 목소리 뿐만 아니라, 주위의 모든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싱끼찌
의 눈 밑에서 이가라시의 입이 우물우물 움직이고 있다.  푸르스름하게  늘
어진 피부가 삐끗삐끗 움직이고 있다.  그것은 추악한  연체동물처럼  보였
다.  보기 흉하고 기분나쁜 생물이다.  싱끼찌의 착란한 머리가 어렸을  때
뭉개죽인 배추벌레를 연상시켰다.  이것은 그 버러지다.  뭉개버리면  파란
물이 나오는 진드기다.  보기 흉한 버러지는 밟아 죽여야 한다.   나이프로
동강을 내버려야 한다.  푸르죽죽한 버러지는 싱끼찌의 눈  밑에서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다.  싱끼찌는 손에 든 면도칼을 힘있게 들어올렸다.
  '자아, 벌레를 죽이는 거야.  그 징그러운 배떼기를 나이프로 푹 찢어 죽
이는 거야.'
  갑자기 <끼악!> 하는 기막힌 비명이 들리고, 싱끼찌의 눈 앞이  시뻘개졌
다.  싱끼찌의 어렸을 때의 세계가 느닷없이 꺼져 버리고,  현실의  세계가
되살아났다.  싱끼찌의 손에서 벗어난 면도칼이 이가라시의 흰목에 깊이 박
혀 있었다.  선지피가 콸콸 소리를 내며 흘러넘치고 있었다.  싱끼찌는  어
떻게 하면 좋은지 몰랐다.
  "살려 줘!"
  싱끼찌는 목쉰 소리로 외쳤다.  그러고 있는 사이에도 피는 연거푸  쏟아
나오고 있었다.  이가라시의 얼굴은 어느새 흙빛이였다.
  "웃...."
  갑자기 이가라시가 신음소리를 냈다.
  "내..가..움..직..인..탓..이..라..고..말..하..는..거..야..."
  이 말만이 가까스로 흘러나왔다.  그것이 이가라시의  마지막  말이였다.
싱끼찌에게는 그 말의 뜻이 이해되지 않았다.  협박자인 이가라시가 목숨을 
걸고 어린애를 살린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피는 여전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가라시 고오사부로오는  이미
죽어 있었다.  싱끼찌는 처음 살인용의로 체포되었다.  그러나 용의 내용은 
이내 업무상중과실치사로 바뀌었다.  경찰은 살인의 동기를 발견할 수 없었
던 것이다.  경찰이 오기 전에 이가라시의 포켓에 있던 영수증은 불테워 버
렸으니까, 어디로 보나 이발관 주인과 단골손님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마침 목을 면도하고 있을 때 그 손님이 갑자기 목을 움직이는 바람에."
  이렇게 싱끼찌는 말했다.  그러면서 이가라시의 마지막 말을 생각해 내고
있었다.
  "내가 움직인 탓이라고 말하는 거야."
  이렇게 분명히 그 사나이는 말했다.  다 죽어가는 판에 그  협박자는  왜
그런 상냥한 말을 한 것일까?  싱끼찌에 대한 판결은 징역 1년 집행유예  3
년이였다.  싱끼찌 자신 형량의 가벼움에 깜짝 놀랐을 정도였다.  물론  영
업정지였으나, 싱끼찌에게 있어서는 그쪽이 고마웠다.  만일 영업이 용서되
었댔자 흘러나오는 피가 눈 앞에 어른거려, 면도칼을 잡을 수 있을 리가 없
었기 때문이다.
  "빈민가로 돌아가 막일이라도 할 테니까."
  이렇게 싱끼찌는 말했다.  후미꼬도, 가오루도 살던  고장으로  돌아가는 
것을 기뻐했다.  두 번째 이사를 하느라 부산을 떨고 있는데 웬 중년여인이
찾아왔다.  낯선 여자였는데,
  "이가라시의 처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바람에 싱끼찌의 안색이 달라졌다.
  "밖에서 듣기로 하죠."
  싱끼찌는 그녀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후미꼬에게 이야기의 내용을 알
리고 싶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싱끼찌는 창백한 얼굴로 기모노 차림의  여
자를 보았다.
  "내가 주인을 죽였다고 말씀하시러 오신 겁니까?"
  "아아뇨."
  부인은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무슨 일로?"
  "주인의 물건을 정리하다가 당신 앞으로 된 유서가 나왔기에  가지고  온
것입니다."
  "유서라구요?"
  "네"
  여인은 두툼한 봉투를 싱끼찌에게 넘겨주자 이내 사라졌다.  그 봉투에는 
분명히 <노무라 싱끼찌님에게 드리는 유서>라고 적혀 있었다.  싱끼찌는 당
장 봉을 뜯었다.

  언제 당신에게 살해될지 모르므로 이 유서를 적어 둡니다.
  나는 바보같은 배우였습니다.  단역 밖에는 못 받는 데다가 그 단역 역활
마저 제대로 못한 배우였습니다.  '였습니다' 라고 쓴 것은 현재의 나는 영
화에서도 텔레비젼에서도 부르지 않는 가엾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53세
의 내게는 배우 말고는 그나마 할 일이 없습니다.  그 배우의 길마저  끊겨
버렸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게 된 것이지요.  물론 나 혼자라면  자살이라도
하면 그것으로 만사 끝장입니다.  하지만 내게는 아내도 있고,  대학에  갓
진학한 아들이 있습니다.  죽더라도 하다못해 목돈을 남겨주고 싶다고 생각
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나는 5백 만원짜리 생명보험에 들어 있습니다.  5백 만원이  있으
면 아내와 아들도 그럭저럭 살아나갈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자살로는 생
명보험이 안 나온다는 것입니다.  운수사납게도 내 몸은 간장이 조금  나쁜
것 외에는 매우 건강합니다.  자연사나 병이 나서 죽기를 기다리다가는  우
리 세 식구는 굶어 죽게 됩니다.  이렇다면 남는 것은 사고사거나,  누구에
게 살해되는 도리 밖에 없습니다.
  그런 때 당신의 사고를 목격한 것입니다.  기억해 둔 차넘버로 당신이 이
발관을 차리고 있음을 알았을 때, 나는 당신을 이용하기로  결정한  것입니
다.  당신을 협박해서 궁지에 몰아 넣으면, 아마 나를 죽여 줄지도  모른다
고.  그래도 실행에 옮기기까지 석달이 걸렸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당신을
나를 위해 이용한다는 사실에 가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사람을  치
고 뺑소니를 친 나쁜놈이니까 이용해도 된다고 나 자신에게 타일렀습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내 연기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였습니다.  나는  워
낙 얼굴이 험상스러워 영화에서건, 텔레비젼에서건 악역만 맡아 왔는데, 본
시 연기가 서툴러 비웃음만 사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을 협박해  보았자
상대를 안 해줄 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고 망설였던  것입니다.   나는 
필사적으로 공갈이라는 것을 연구했습니다.  당신은  실소(失笑)하는  대신
안색을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참 우스운 노릇입니다.  30년 가까운 배우생활 동안 한 번도
만족할만한 연기를 못해 본 내가 배우가 아닌 지금 연기로 성공했으니까요.
  그러나 당신이 악인이 아니라, 평범하고 좋은 사람임을 알게 되었을때 나
는 괴로워졌습니다.  어린애를 살리고자 차 앞으로 뛰어든 것은 그  탓이었
던 것입니다.  그것은 어린애를 살리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나를 죽이기 위해
서였습니다.  그 때 죽었다면 보험회사는 설마 내가 자살한 것이라고는  생
각지 않을테니까요.  하지만 운수좋게, 아니, 재수없게 나는 죽지를 못했습
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이제 별 수 없이 당신한테 매달리는 수밖에 없는  것입
니다.  나는 당신을 협박하면서 요구액수를 곱으로 늘려 나갔습니다.  그렇
게 하면, 당신의 나에 대한 증오도 배가(倍加)해 갈 것이라 계산한  까닭입
니다.  이윽고 당신은 나를 죽일 것입니다.  당신이 손에 든  면도칼이  내 
목숨을 끊을 때, 나는 만족하며 죽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는 5백 만원의 돈을 이제껏 나를 위해 고생해 온 아내와 아들에게 남
길 수 있다는 만족감입니다.  또 하나는 최후에 와서 기막힌 연기를 할  수
있었다는 만족감입니다.
  나를 용서해 주십시요.  끝으로 당신에게 뜯어낸 돈을 동봉해둡니다.
  일금 칠만 육천 이백원정 (그 중 이발료 1천 2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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