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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여흥삼아 읽어 보십시오 [꼬르따사르]

by Casey,Riley 2023.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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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흥(餘興) 삼아 읽어보세요

호세 에밀리오 빠체꼬(Jos  Emilio Pacheco)

친애하는 선생님

        선생님께서 본인에게 부탁하신 비밀 보고서를 동봉합니다. 선생님이 보시기에 나무랄 데가 없는 보고서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1,200(일천 이백 뻬소) 상당의 청구서를 첨부하오니 수표나 지로나 인편으로 본인의 사무실에 납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선생님께서는 수수료가 관행보다 약간 많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이는 보고서가 본인이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 상당히 분량이 많고 또 아주 상세하기 때문입니다. 본인은 난해하고 믿기 어려운 사건을 명백히 밝히고자 보고서를 두 번이나 작성해야만 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본인의 취미는 글을 쓰는 것이므로 ―물론 발표할 엄두도 못 내고 있습니다만― 이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은 취미생활의 일환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선생님 가정의 발전과 행운을 빌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사설 탐정, 에르네스또 도밍게스 뿌가 올림




비밀 보고서

        1943년 8월 9일 올가 부인은 여섯 살 난 아들 라파엘 안드라데를 동반하고 로마구(區) 따바스꼬 106번지 소재의 자택을 나섰습니다. 부인은 따꾸바야구 헬라띠 36번지에 위치한 친정 어머니 아세베도 여사 집에서 식사 약속이 있었습니다. 일찍 집을 나섰기 때문에 부인은 아이를 데리고 근처 차뿔떼뻭 공원으로 갔습니다.
        좀더 자세하게 얘기하면, 당시에는 "개미 농장"이라고 부르던 공원 구역으로 대통령 관저 뒤편에 있습니다. 라파엘은 그네와 미끄럼틀을 타면서 아주 즐겁게 놀았습니다. 그 후 부인과 라파엘은 "철학자 길"을 지나 호수를 향해 걸어가다가 언덕 아래에서 잠시 머물렀습니다. 
그 사건이 있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행인들은 무심코 지나칩니다만, 부인은 이내 남들이 보지 못하는 무언가에 시선이 끌렸습니다. 그곳에서 자라는 나무는 다들 모양이 이상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초자연적이었습니다. 나무들 모양이 이상한 것은 척박한 토양 탓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게에 짓눌린 것 같았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그렇게 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공원 관리인 이야기에 따르면, 그 나무들은 근처의 노간주나무만큼 오래된 나무도 아니라고 합니다. 노간주나무는 19세기에 심은 것입니다. 1847년 미군은 한바탕 전투를 치른 끝에 이곳에 있는 차뿔떼뻭 성을 점령했습니다. 그 후, 막시밀리아노 황제는 황폐해진 이곳을 둘러보고 나무를 심으라고 명령했습니다.


        라파엘은 피곤해서 풀 위에 드러누웠습니다. 부인은 밑동이 구부러진 초자연적인 ―표현력이 부족한 나로서는 다시 한번 이 어휘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점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나무에 걸터앉았습니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습니다. 부인은 시계를 꺼내 눈앞에 바짝 대고 들여다보았습니다. 두 시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할머니 집에 갈 시간이라고 했습니다. 라파엘은 조금만 더 있다가 가자고 했습니다. 부인은 허락을 하기는 했으나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투우사 청년들이 그 길로 지나다녔기 때문에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전부터 투우사 청년들은 언덕 근처의 마른 웅덩이에서 ―"목떼수마 목욕탕"에서도 아주 가까운 곳입니다―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간이면 공원은 인적이 뜸했습니다. 차 소리도, 호수의 보트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라파엘은 나뭇가지로 달팽이 앞길을 막으며 장난을 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풀이 듬성듬성한 언덕에서 네모난 나무 뚜껑이 열리더니 한 남자가 나타나서 라파엘에게 말했습니다.
        "그냥 나둬라. 괴롭히지 말고. 달팽이는 물지도 않고 또 저승에도 왔다갔다 한단다."
        그 남자는 지하에서 나와 부인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접혀진 신문과 핀과 장미 한 송이를 내밀었습니다.
        "여흥 삼아 읽어보십오. 선사하겠습니다."
        부인은 낯선 남자가 갑작스럽게 나타나서 공손한 표현이나 이제는 쓰지 않는 말투를 구사하자 얼떨떨해졌습니다. 그러나 고맙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남자는 웃음을 머금고 목례를 했습니다. 부인은 남자를 공원 관리인이나 차뿔떼뻭 성 경비원쯤으로 생각했습니다. 남자가 너무 친절해서 부인은 놀랐습니다―본인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라파엘은 남자에게 다가가서 소매를 잡아당겼습니다.
        "여기 살아요?" 라파엘이 물었습니다.
        "아니, 더 아래, 더 깊은 곳에 산단다."
        "정말요?"
        "그래."
        "안 추워요?"
        "안 추워."
        "아저씨 집에 가보고 싶어요. 엄마, 나 가도 되지?"
        "아저씨를 성가시게 하는 게 아냐. 인사를 하고 가자. 할머니가 기다리셔."
        "잠깐 보게 하시지요. 호기심을 막지 마세요."
        "아주 깜깜할 텐데 너, 겁나지 않니?"
        "응, 겁 안나, 엄마."
        부인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남자를 쳐다보고 허락을 했습니다. 라파엘은 경비원 손을 잡았습니다. 남자는 내려가기 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곧 돌아오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애를 잘 부탁해요."
        "터널 입구만 보여주겠습니다."


        친척들이나 친구들 증언에 따르면, 올가 부인은 무슨 일이든 주의력이 부족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의 호기심을 보통으로 생각했으며 또 모순적이기는 하지만 ―본인의 이런 생각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경비원의 예의 바른 말씨와 태도를 이상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부인은 핸드백에 꽃을 넣고 신문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스물 일곱밖에 안 된 나이지만 다누진 초점 안경을 사용했고, 외출할 때는 안경 착용을 꺼렸기 때문입니다.
        십오분이 흘렀습니다. 라파엘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부인은 걱정이 되어 지하 통로 입구로 가보았습니다. 그러나 내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깜깜해서 무서웠던 것입니다. 라파엘과 남자를 소리쳐 불렀습니다. 아무런 대답이 없자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부인은 근처 마른 웅덩이로 뛰어갔습니다. 그곳에서는 청년 두 명이 투우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부인은 연신 흐느끼며 지금까지 일을 얘기하고는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 청년들과 부인은 서둘러 그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입구도 지하 통로도 발견하지 못하자 청년들은 이상하다는 듯이 서로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땅바닥을 기어다니며 주위를 샅샅이 살폈지만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부인의 손에는 장미와 핀과 신문이 있었고 땅에는 라파엘이 가지고 놀던 나뭇가지가 있었습니다.
        이쯤 되면 선생님께서는 쇼크를 받은 부인의 절규와 탄식을 상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청년들도 처음에는 장난이 아니면 무슨 재미있는 일쯤으로 생각했으나 이제는 상황이 심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명은 호숫가에 있는 공중 전화 박스로 달려갔고 나머지 한 명은 부인을 진정시키고 있었습니다.
        이십분 후, 올가 부인의 남편이자 라파엘의 아버지 안드라데 기사(技士)가 공원에 도착했습니다. 이어 경찰, 공원 경비원, 할머니, 친척, 친구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또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면 모여드는 호기심 많은 구경꾼들도 모였습니다.
        안드라데 기사는 사업체가 있었고, 까마초 장군과는 절친한 사이였습니다. 선생님께서 기억하듯이, 까마초 장군은 당시 대통령의 동생으로 통신부 장관이며 정권의 실세였습니다. 장군의 전화 한 통으로 전국 경찰의 절반 가량이 동원되고, 공원이 폐쇄되고, 구경꾼을 해산시키고, 투우사 청년들은 체포되어 심문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장군은 빨마 가(街)에 있는 본인의 사무실로 비서를 보냈습니다 (본인은 장군으로 부탁으로 지극히 미묘한 사건을 은밀하게 처리해왔기 때문에 장군이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본인은 만사를 제쳐두고 장군이 보내준 차를 타고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본인이 공원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다섯 시경이었습니다. 수색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으나 소득이 없었습니다. 아무런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항상 그렇듯이 제복을 입은 사람들과 비밀요원들은 본인의 일을 방해하려고 했지만 장군의 비서가 나선 덕분에 일하기가 용이했습니다. 본인은 라파엘이 놀던 흔적은 발견했으나 아이를 데려간 남자의 흔적은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건 현장을 지휘하던 공원 관리 소장은 자기가 아는 한 지하 통로는 없다면서 아들이 사라진 곳이라고 부인이 주장하는 장소를 파보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녹슨 금속 투구와 구부러진 나무뿌리 말고는 사실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날이 어두워 되자 관리 소장은 다음날 계속하자면서 일단 수색을 중단했습니다. 혐의자로 지목된 투우사 청년들은 경찰서로 끌려갔습니다. 본인은 안드라데 기사와 함께 미스꼬악 특수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부인을 만나러 갔습니다. 병원 측은 본인에게면담을 허락했습니다. 본인은 이 보고서 서두에서 말씀 드린 사항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 본인은 그 당시 신문기사를 스크랩해두지 않았던 것을 정말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본인을 헐뜯는 기사 때문에 너무 불쾌해서 스크랩 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아무튼 조간 신문은 이 사건을 게재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석간 신문은 이 사건을 전쟁 소식보다 더 중요하게 취급해 8단 기사로 다루었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가십난에서는 올가 부인과 투우사 청년들은 내연 관계이며 차뿔떼뻭 공원이 밀회장소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관계가 라파엘에게 들통났기 때문에 죄 없는 아이를 제거했다고 했습니다(선생님,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이 터무니없고 모략적인 견해는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까마초 장군이 전격적으로 명령을 내려 담당 기자는 해임되고 종적을 감춰버렸기 때문입니다. 전형적인 실종 사건으로 보일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군은 이런 조치를 취했습니다. 
        어떤 신문은 올가 부인이 최면에 걸려있었기 때문에 있지도 않은 일을 본 것처럼 믿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라파엘은 유괴되었으며, 유괴범들은 몸값을 요구하든지 아니면 신체 일부를 절단하여 부모들이 애걸복걸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모 신문은 이보다 더 무책임한 기사를 게재함으로써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라파엘은 밀교 신도들에게 납치되었는데, 이들은 옛날 아스떼까 신들을 숭배하면서 차뿔떼뻭 공원―선생님께서도 알다시피 아스떼까인의 성소였습니다― 어느 동굴에서 인간을 제물로 바친다고 했습니다(이러한 발상은 깐띤플라스의 영화 "죽음의 표적"에서 착안한 것처럼 생각됩니다.) 
결국, 대중들은 전쟁, 궁핍, 물자 부족, 등화관제, 정치적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탈출구를 발견하게 되었고, 때문에 공원에서 수사가 진행되는 몇 주 동안 이 사건에 열중했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사는 방식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므로 어떤 일이나 일치된 의견은 없습니다. 따라서 이런 얘기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복잡하게 얽힌 이 사건은 선거 판세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악성 유언비어가 떠돌아다녔습니다. 까마초 장군이 대통령직에 오르는 것을 저지할 의도로 만든 유언비어입니다(형제간의 우애를 이용하든지 아니면 무력을 사용하여 권좌에 앉을 것이란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장군은 부인과 내연관계였는데 라파엘이 안드라데 기사에게 이 사실을 고자질할까봐 납치를 지시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탁월한 인물이 바람둥이 여자들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너무 유명한 일이니까요. 본인은 지금까지 본인의 분별력과 직업 의식 그리고 이제 백발이 성성한 부인의 고통과 체면을 고려하여 선생님에게 한 가지 사실을 밝히지 않았는데, 그 당시 부인은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였습니다. 따라서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비록 이런 소문은 활자화되지 않았고 또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겠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파문이 일자 어떻게든 한계를 그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글로 기술하기에는 적합치 않은 모종의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투우사 청년들로부터 자술서를 받아냄으로써 모든 의문을 밝혀졌고 유언비어는 가라앉았습니다. 자술서에 따르면, 청년들은 공원에 인적이 드물고 부인의 시력이 나쁘다는 점을 이용하여 지하 인간 이야기를 꾸며냈습니다. 그리고 몸값을 요구할 목적으로 라파엘을 납치했습니다(안드라데 기사는 장군의 비호 아래 몇 년만에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 겁이 난 청년들은 라파엘을 죽이고 사지를 절단해서 하수구에 던져버렸습니다. 
        대중들은 쉽사리 믿는 경향이 있으므로(적어도 그런 경향이 있었으므로) 몇 가지 의문점을 소상히 밝히라고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공원에서 가장 가까운 하수도 입구도 이십 킬로나 떨어져 있는데 언제 투우사 청년들이 아이를 토막내어 하수도에 버렸는가 따위입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한 명은 경찰과 안드라데 기사에게 전화를 하러갔고 다른 한 명은 부인 곁에 있었으며 가족과 경찰이 왔을 때는 두 사람 모두 사건 현장에 있었습니다.
        어쨌거나 이 세상 모든 일은 신비하며,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세세한 부분까지 남김없이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의 입을 막으려고 하수도에서 건져낸 소년의 머리와 상반신 사진이 신문에 실렸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이 시신은, 부패가 상당히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열 한 살 내지 열 두 살 난 아이이지 여섯 살 난 라파엘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일은 문제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멕시코에서는 늘 실종 사건이 일어나고 시체를 수소문하기 때문에 수색 도중 다른 실종자를 찾아내기 마련입니다.


        제대로 숨기려면 남들 눈에 띄는 곳에 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말도 있고 또 예상치 못했던 이 사건의 여파가 흥미진진해서 본인은 이 글을 쓰면서 수사의 기본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부인에게 아이를 데려간 남자에 대해 심문하는 것입니다. 묵과할 수 없는 일은 (본인은 겸허하게 이 사실을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 남자가 부인에게 꽃과 신문을 준 것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치 않았고, 따라서 이 물건들을 조사하지도 않았다는 점입니다.
        아마 본인은 뭔가를 알아낼 수 있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 심문을 미루었을 겁니다. 아무튼 투우사 청년들은 혐의를 시인했기 때문에 삼십년 형을 선고받고 이슬라스 마리아스 섬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하수구에서 발견된 사체가 라파엘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즈음에 본인은 부인의 자택을 방문하여 처음부터 다시 부인을 심문했습니다. 
        부인은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마치 삼 주 동안에 이십 년이나 늙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들을 되찾으리라는 희망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희망 때문에 부인은 기력을 회복하고 심문에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본인의 기억이 옳다면 (본인은 기억력은 항상 뛰어납니다) 주고받은 대화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부인, 미스꼬악 병원에서 처음으로 부인과 이야기했을 때에는 사정이 여의치 않아 묻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몇 가지 사항을 물어보겠습니다. 첫째, 라파엘을 데려간 남자는 어떤 옷차림이었습니까?"
        "제복이요."
        "군복이었습니까? 아니면, 경찰복이나 경비원 복장이었습니까?"
        "아시겠지만 전 안경 없이는 제대로 보질 못하는데 그 때 안경을 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이 일어난 거예요, 그래서..."
        "진정해." 
부인이 울기 시작하자 남편 안드라데 기사가 참견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아직 답변을 안 하셨습니다. 어떤 제복이었습니까? 
"파란색인데 금술 장식이 달려있었어요. 빛이 많이 바랜 것 같았어요."
"짙은 청색이었습니까?"
        "하늘색이었어요."
        "계속하겠습니다. 제 수첩에는 그 남자가 부인에게 한 말이 적혀 있습니다. '여흥 삼아 읽어보십시오. 선사하겠습니다.'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예. 아주 보기 드문 표현이죠. 그렇지만 그 때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내가 생각해도 한심한 여잡니다. 한심해요."
        "다른 특이점은 없었습니까?"
        "이제 그 사람 모습이 선연하게 생각납니다. 그 사람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아요. 아주 느린 말씨에 억양이 독특했습니다."
        "사투리였습니까? 아니면, 스페인어가 모국어가 아닌 것 같았습니까?"
        "맞아요. 모국어가 아닌 것 같았어요."
        "그럼 어느 나라 억양이었습니까?"
        "모르겠어요... 아마... 아마 독일어 같지 않나 싶네요."
        안드라데 기사와 본인은 서로 쳐다보았습니다. 당시 멕시코에는 독일인이 거의 없었습니다. 한창 전쟁 중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독일인은 다 의심을 받는 형편이었으므로 이런 사건을 일으킬 독일인은 없을 것입니다.
        "그 남자의 용모는 어땠습니다?"
        "키가 크고... 머리가 없고... 아주 냄새가 심했는데... 축축한 냄새였어요."
        "부인, 이런 말씀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그렇게 이상한 사람인데 왜 라파엘이 따라가게 그냥 두었습니까?"
        "몰라요, 모르겠어요. 나는 항상 그 애가 하자는 대로했습니다. 그런 일이 생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참, 또 있어요. 가까이 왔을 때 얼굴을 봤는데 아주 창백했어요. 뭐라고 할까... 새하얗다고 할까... 그래요, 달팽이 같았어요. 껍질에서 나온 달팽이."
        "뭐,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기사가 소리쳤습니다. 본인은 전율했습니다. 그리고 침착하게 보이려고 열거법을 사용했습니다.
        "좋습니다. 아주 드문 표현을 쓰고, 억양은 독일어 같고, 하늘색 제복을 입고, 악취를 풍기고, 얼굴은 부석부석하고, 키가 작고 뚱뚱했습니까?"
        "아뇨, 아뇨. 상당히 키가 크고 아주 말랐어요... 그래, 턱수염이 났었지."
        "턱수염이라니!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턱수염을 안 기르는데요."
        "하지만 그 남자는 턱수염이 있었어요... 아니, 콧수염 같기도 하고 구레나룻 같기도 한데... 회색인지 흰색인지 잘 모르겠어요."
        본인은 기사의 얼굴에서 나와 똑같은 경악을 보았습니다. 본인은 다시 한번 태연한 척했습니다. 그리고 평소와 다름없는 어조로 말했습니다.
        "그 남자가 주었다는 잡지를 보여주시겠습니까?"
        "신문이었어요. 그럴 거예요. 꽃도 내 핸드백 안에 있어요. 여보, 내가 가져온 핸드백 어디 있죠?"
        기사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내가 병원에서 가져와서 당신 옷장에 보관해 두었어. 정신이 없어서 열어볼 생각도 안 했지."


        본인은 직업상 끔찍한 일들을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그러나 안드라데 기사가 가방을 여는 순간 본인은 일생에 가장 소름끼치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런 전율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기사는 바싹 마른 검은 장미 (이 세상에 검은 장미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 송이와 닳아빠진 순금 핀과 누런 신문지를 꺼냈습니다. 우리가 신문을 펼쳤을 땐 아예 부스러졌습니다. 그 신문은 1866년 8월 2일자 "제국 신보"로 국립도서관만 한 부 소장하고 있습니다―나중에 확인한 사실입니다.
        기사는 본인에게 이 사실을 비밀에 붙인다는 맹세를 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제 세월이 많이 흘렀으며 또 선생님의 양식을 믿기 때문에 이 사실을 밝히는 바입니다. 맹세하지만 이 일에 대해서는 본인의 처나 자식들에게도 입에 담아 얘기한 적이 없습니다.


        그 날 이후 지금까지 올가 부인은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공원으로 갑니다. 숲 속을 거닐거나 혼자 중얼거리며 온종일을 그곳에서 보냅니다. 그리고 오후 두 시가 되면 그 구부러진 나무 밑동에 앉아 있습니다. 언젠가는 그 시간에 땅이 열려 아들을 돌려주거나 자기를 달팽이처럼 저승으로 데려가리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언제든 그곳에 가보십시오. 그러면 1943년 8월 9일 입었던 바로 그 옷을 입고 나무 밑동에 우두커니 앉아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올가 부인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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