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우리 시대의 화제소설
평민사
제목 : 경찰서여 안녕
김종광
아까부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멈출 줄을 몰랐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눈을 떴다.
야 이 개새끼야 문 안 열어 욕을 섞지 않고는 말을 못하는 전투경찰 내무반 최고 고참 정수
의 목소리였다. 식당 문을 열어 주자 정수는 천재성이 가득 들어 차 있는 내머리통을 쥐어
박았다. 씹새끼 게을러 터져 가지고 디스 한 갑 빵하고 우유 정수가 이천 원을 카운터에 올
려놓았다. 거스름돈은 너 가져. 정수는 호기롭게 선심 쓰고는 담배를 꼬나 물고 초소를 향
해 팔자로 걸어갔다. 정문 근무를 교대해 주러 나가는 길일 것이다. 정문 초소에서 졸병들
이 그를 향해 우렁차게 충성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전경들은 충성을 입에 달고 살았다. 또
늦잠을 잤지만 깨워 준 정수가 하나도 고맙지 않았다.
천안댁과 이씨 할머니가 출근하는 여섯 시 삼십 분까지는 일어나서 식당 청소를 하는 시
늉이라도 하고 있는 게 천안댁의 지청구를 조금이라도 덜 먹는 길이었다. 천안댁의 꼼꼼한
눈초리와 욕지거리를 생각하니 나름대로 열심히 쓸지 않을 수 없었다. 걸레를 비틀어 짤 때
는 걸레가 유 형사라는 환상에 젖었다. 걸레가 아니라 유 형사의 엄장한 몸뚱이를 비틀어
짜는 것이다. 피가 쏙 빠지고 가죽만 남은 그의 시체로 가스레인지를 이십 인용 국그릇을
찬장을 대형냉장고 식탁을 벅벅 문지르는 것이었다.
아가야 별일 없었지야. 이씨 할머니는 열한 살이나 먹은 나를 꼭 아가라고 불렀다. 그럼
유. 제가 지키고 있는데 어떤 놈이 감히 넘보겄슈. 그 뒤에 작은 키에 떡 벌어진 어깨의 천
안댁이 큰 눈을 부라리며 들어섰다. 그들은 고부 사이였다. 김칫독부터 열어 본 천안댁이
새된 소리를 질렀다. 강수 너 또 전경놈들한테 김치 줬지 김치 없으면 라면을 못먹는대잖
유. 새끼가 주지 말라면 주지 말아야 될 것 아냐. 김치가 하늘에서 쏟아진다냐. 너 다시 한
번 김치 내주면 손모가지를 부러뜨릴거야. 억울했다. 김치를 일부러 내준 게 아니었다. 전
경들은 떼로 달려들어 나를 팰 것 같은 기세였다. 천안댁한테 야단 맞는다고 사정해 보았지
만 막무가내로 김치를 퍼갔다.
여덟 시까지는 별의별 운동을 다 해야 했다. 나를 착하고 튼튼한 어린이로 바꿔 놓고야
말겠다는 유 형사의 각오 때문이었다. 식당에서 출발하여 강당 민원실 정문 본관 무기고 화
단 농구장 형사계 전경 내무반 옥외 화장실 창고를 차례로 거친 뒤 다시 식당으로 돌아오는
대략 백 미터쯤 되는 거리를 열다섯 바퀴씩이나 돌아야 했다. 어디선가 유 형사가 감시하고
있을 것이 뻔하므로 게으름을 피울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아침부터 매타작을 당하기는
싫었다. 엎드려뻗쳐 팔굽혀펴기 50개 뒷짐지고 쪼그려뛰기 50개 피티 체조 50개 줄넘기 300
개. 눈알이 핑핑 도는 것 같았다. 이런다고 정말로 튼튼해질는지 의문이었다.
그런데 유 형사가 보이지를 않았다. 아직 미혼이라 형사계 숙직실이나 직원 숙소에서 자
는 그가 잠 덜 깬 낯으로 어디선가 살모사 대가리같이 생긴 눈을 빼꼼히 내놓은 채 나를 훔
쳐 보고 있어야 정상이었다.
운동을 마친 뒤에는 형사계 사무실을 청소해야 했다. 형사계에도 유 형사는 없었다. 백
형사 혼자 스포츠신문을 보고 있었다. 형사계에 딸린 숙직실에도 유 형사는 보이지 않았다.
청소는 않고 뭘 두리번거려 숙직실부터 치우려구요. 대충 빨리 해. 거치적거리지 말고. 백
형사는 내가 형사계에 들락날락거리는 것을 드러내놓고 못마땅해했다. 원래 나의 잠자리는
형사계 숙직실이었는데 식당의 쪽방에서 편히 자게 된 것은 모두 다 백형사의 불평 덕분이
었다.
일회용 그릇에 말라붙어 있는 감자탕과 탕수육의 찌꺼기와 소줏병 보나마나 어제도 한잔
한 모양이었다. 어제 성폭행 용의자가 한 명 잡혀 들어온 것으로 아는데 역시나 취조실에
바닥에는 핏자국이 떨어져 있었다. 또 한바탕 한게 틀림없었다. 형사계 숙직실에서 자던 한
달간 나는 삼사 일에 한 번씩은 취조실에서 들려 오던 짐승들이 울부짖는 것 같은 소리에
잠을 설치곤 했었다.
청소 다 했으면 나가. 문 앞에서 쭈뼛거리는 내게 백 형사는 지청구를 했다. 나는 용기를
내 물어 보기로 했다. 유 형사님은 어디 가셨대유 병원에 있다. 병원이라니유 그렇게 튼튼
한 사람이. 키는 보통이지만 8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몸무게와 부단한 운동으로 다졌다는 그
의 근육질 몸매는 병원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용의자가 부상을 당했거나 유 형
사의 가족에게 무슨 사고가 생겼단 말인가. 발목이 삐었다. 누가유 유 형사님이유 그래. 거
짓말 마세우. 유 형사님처럼 싸움 잘 하는 사람이 발목이 삘 리가 있나유. 나가. 나가께유.
그런데 진짜로 유 형사 발목이 아니 유 형사님 발목이 삐었대유 나가.
너무 좋아서 하늘로 솟아오르는 줄 알았다. 전경들에게 물어 봤더니 유 형사의 발목이 삐
었다는 것은 정말이었다. 발목 부위가 웬만한 여자 허리 굴기 빰치게 부어 올랐다니 삐어도
단단히 삔 모양이었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불 것 안 불것다 분 성폭행 용의자가 오줌
마렵다고 애걸복걸하자 유 형사는 그를 데리고 옥외 화장실로 갔다. 유 형사는 용의자가 요
청대로 수갑까지 풀어 주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용의자가 화장실을 나와서는 재빠르게
옆 계단을 밟고 올라가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당황한 유 형사는 물불 가리지 않고 용의자를
쫓아 뛰어내렸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었다.
신이 난 마음을 감추려 해도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나는 경찰서에서의 하루하루를 숨막
힐 듯한 일상을 오로지 하늘이 내려 준 것만 같은 이런 기회를 기다리며 견디고 있었던 것
이다. 밥 처먹어. 천안댁이 막말을 해도 하나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아침 식사 이후의 일과는 식당에서 잔심부름을 하는 것이었다. 본관에서 경찰들이 자잘한
것들 담배나 음료수 같은 것들을 시키면 잽싸게 배달해 주는 것이 주로 하는 일이었다. 또
한 전투경찰인 명오가 내주는 한글 쓰기 숙제를 해야 했다. 공책을 펴는데 천안댁이 마늘
한 양동이를 내주고는 까라고 했다.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몰랐다. 마늘이라도 까고 있어야
지 가슴이 두근거려 주체 못할 지경이었다. 유 형사가 발목이 삐어 며칠간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면 무조건 성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없을 것이었다.
강수 전화다. 누가 나한테 전화를 나는 경찰서에서 생활하는 동안 개인적인 전화를 단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었던 터라 몹시 뜻밖이었다. 문득 형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럴
리는 없었다. 내가 납치된 지 일주일 만에야 경찰서를 방문한 형이 유 형사에게 시부렁대던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했다.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겄습니다유. 지가 명색이 형이라고는 하지만 나이 터울이
스물도 넘는 판에 아들놈이나 마찬가비니다유. 아버님 어머님이 늘그막에 무리하셨지유. 애
새끼가 다섯 살 되는 것도 못 보고 돌아가실 거믄서 그 무리를 했나 나도 답답하다니께유.
근데 이 자식이 집안에 도통 내력이 없는 도적놈을 닮아놔 하라는 공부는 절대로 않고 내돌
아댕기며 도둑질이나 해대는데 난들 안 돌아 버리겠습니까유. 아무리 줘패도 그 개 같은 버
릇이 떨어지질 않으니 내 속도 어지간히 끓었다니께유. 이 자식은 패서 될 놈이 아니고 정
신머리를 뜯어 고쳐야 될 놈이 마땅헌디 나라의 정신개조기관이라는 소년원인가 뭐신가도
안 받아 주고 이 불상놈을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던 판국인디 이렇게 형사님이 나서 주시
니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난감해 부리네유.
더더욱 잊혀지지가 않는 것은 내가 처음으로 경찰서를 탈출해 집으로 갔던 새벽의 일이었
다. 형은 반가워하기는커녕 바로 유 형사에게 전화를 걸어 애를 데리고 갔으면 끝까지 책임
져야 될 게 아니냐고 오히려 꾸짖었다. 형수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를 반가워해 준
것은 감나무에 쇠줄로 묶여 있던 검둥이 개뿐이었다. 형은 유 형사가 도착할 때까지 경찰서
에서도 못 버티냐고 나를 때렸다.
어디 형한테 맞은 게 그때뿐이었겠는가. 그러나 그날 일이 유독 가슴에 아프게 남아 있는
이유는 한 달간이나 떨어져 있다가 내 딴에는 감옥 같은 경찰서를 빠져나와 찾아간 형의 품
이었는데 그런 대접을 받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날 이후로 형을 형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그런 형은 없는 게 나았다. 그래도 아버지나 다름없는 형에 대한 미련이 내
가슴 어느 구석엔가 남아 있었던 것일까. 난데없는 전화의 주인이 형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
하다니.
강수냐 유 형사였다. 형일 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바보였다. 그렇다. 나는 유 형사를 잠시
잊고 있었다. 그의 몸뚱이는 병원에 있지만 그의 예리한 눈은 경찰서를 떠나지 않고 여전히
나를 감시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운동했어 네 그렇습니다. 유 형사는 전
경들처럼 군대식으로 대답하지 않을 때에도 기가 빠졌다는 이유로 나를 때렸다. 형사계 청
소 했어 네 그렇습니다. 차리 낙상할 정도로 예 그렇습니다. 거짓말 아니지 거짓말 아닙니
다. 좋아. 나중에 확인해 봐서 거짓말이면 작살난다. 밥은 먹었냐 네 먹었습니다. 너 지금
내가 병원에 신세 지고 있다는 거 알고 있지 네 그렇습니다. 기분좋지 하마터면 네 그렇습
니다라고 솔직하게 대답할 뻔했다. 아닙니다. 슬픕니다. 거짓말이지 솔직히 말해봐. 정말입
니다.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슬픕니다. 고맙다. 재수가 없으려니까 발목이 다 삐었구나. 네
가 그렇게 슬퍼하는데 빨리 낫겠지. 깁스를 하고라도 글피까지는 나가마. 너 때문에라도 꼭
나가야겠다. 내가 없다고 게으름 피우지 말고 특히 튈 생각하지 말아라. 열심히 일하고 성
심껏 공부하고 있어. 내가 수시로 전화할 거니까 어디 짱 박혀서 잘 생각은 안 하는 게 좋
을거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마늘 양동이는 까도 까도 줄어들지 않는 것만 같았다. 정문쪽이 시끄러웠다. 보지 않아도
뻔했다. 오늘은 유치장에 있던 미결수를 지방검찰청으로 이송하는 수요일이었다. 미결수와
그의 가족은 한마디라도 더 나누려고 애쓸 것이고 경찰과 전경은 통제하려고 악다구니를 써
대고 잇을 것이다. 그 외에도 재미난 일은 얼마든지 많았다. 형사들의 용의자 취조 전경들
의 한 따까리 데모 진압 훈련 사고처리반 경찰들과 교통사고를 저지른 시민들의 따따부따
전경 대 의경의 농구 시합... 신바람 나는 난장판이 여기 경찰서처럼 빈번하게 펼쳐지는 곳
도 드물 것이었다. 경찰서에서 처음 일주일은 보는 것마다 듣는 것마다 겪는 일마다 새롭고
신기로웠다. 그러나 곧 지루해졌고 답답해졌다. 내가 감나무에 쇠줄로 묶여 있는 검둥이와
다를 바 없는 처지임을 깨닫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도둑질을 너무 잘했기 때문에 납치되었다. 나는 광철이처럼 다섯 살에 인터넷인가
뭔가를 마음대로 넘나드는 컴퓨터 도사는 아니었지만 여섯 살 때 순희네 가보인 금덩어리를
감쪽같이 훔쳐 냈을 정도로 뛰어난 도둑이 될 수 있는 재주를 지니고 태어났다. 여덟 살 때
까지도 동네 어른들이 광철이만 천재라 하고 나는 천재로 여김받는 것은 고사하고 동네 사
람들로부터 쳐죽일 놈 호로자식 싹수 노란 놈 개만도 못한 놈 등의 갖은 욕지거리를 얻어먹
고 형한테 뒈지게 맞은 뒤 감나무에 이틀 동안 매달려 물 한 모금 못 마신 채 굶어야 했다.
초등학교 시절에도 나는 천재적인 솜씨를 숨길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나 선생이 가진 돈
과 물건을 이 학년 때까지 단 한번도 발각되지 않고 훔쳐 내서 실컷 먹고 놀았다. 뿐만 아
니라 꾸준히 저금도 했다. 3학년 때에 두 가지 실수를 하는 바람에 그때까지의 모든 일이
들통나고 말았다. 사실 들통났다기보다 는 이왕 걸린 것 신나게 자랑이나 한번 해보자는 속
셈으로 스스로 모든 일을 밝혔던 것이다.
첫 번째 실수는 선생이 꿈이 뭐냐고 물었을 때 다른 아이들은 서태지 같은 연예인 박찬호
같은 야구 선수 박정희 같은 대통령 아인슈타인 같은 박사 슈바이쩌 같은 의사를 말했는데
나는 괴도 루팡을 뛰어넘는 위대한 도둑이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없어지는
돈과 물건이 너무 많아 반 아이들 하나하나를 세세히 지켜 보고 있던 담임선생은 나를 드러
내 놓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실수는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모금할 때 다른 아이들은
천 원에서 만 원까지 겨우 냈는데 나는 그때까지 훔쳐 모은 20만 원을 탈탈 털어 성금했던
것이다. 담임선생은 그 두 가지 나의 실수를 가지고 나를 닦달했다. 끝까지 아니라고 우기
려고 했지만 예쁜 처녀 담임선생이 나의 도둑질 때문에 교장과 교감 학부모들에게 당한게
미안해서 모든 것을 숨김 없이 말해 주었다. 퇴학은 면했지만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받아야
만 했다. 그러한 불리한 상황에서도 괴도 루팡 버금가는 솜씨로 계속 훔쳐 내는 데 성공했
으나 오래가지는 못하고 4학년 때 재수없이 한번 더 걸렸다. 그때도 순순히 다른 사건까지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털어놓았다. 나는 더 이상 구제가 불가능한 아이로 찍혀 결국 퇴학당
하게 되었다.
그러나 퇴학은 나에게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학교라는 조그만 물에서 놀던 나는
시내 중심가라는 큰물에서 마음껏 나의 능력을 펼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유치한 아이들
과의 놀이가 아니라 세계를 손아귀에 쥐고 있는 어른들과의 다툼이었다. 어른들은 초등학교
의 아이들처럼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다. 그게 내 마음에 꼭 맞았다. 아이들의 물건을 훔치
는 것은 너무 쉬워서 재미가 없었다. 내가 원했던 것은 손에 땀이 나는 두뇌 싸움 핏방울
튀는 추격전 끝에 얻어지는 값진 승리였다. 시내에서 어른들과 싸우며 그 값진 승리를 만끽
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파출소가 그렇게 먼 곳에 있는 곳이 아니었다. 세 번의 도둑질에 한 번 꼴로
체포되어서 파출소를 들락날락거려야만 했다. 일주일 이상 꼼짝 못하고 누워 있을 정도의
매질로 나를 다스리던 파출소 경찰들은 차츰 지쳐 갔다. 나란 놈을 아무리 때리고 타일러도
나의 도벽이 고쳐질 게 아님을 깨달은 것이었다. 민생치안하느라 좆 볼 짬도 없이 바쁜 우
리가 너 같은 애새끼까지 신경 쓰고 있어야 되겠냐. 파출소 경찰들의 말은 그럴듯했으나 자
신들이 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비겁함에 불과했다. 그들은 나를 소년원에 보내거나 감
호 조치 시킬 수도 없었다. 내가 아직 만 10새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의 책
임보호자인 형은 나만큼이나 어쩔 수 없는 고집불통이었다. 난 물러. 그 새끼는 그 새끼고
나는 나여. 어떤 시러베자식이 그 새끼가 나하고 핏줄이 같다고 씨부렁대고 다니는 서이여.
죽이든지 살리든지 마음대로 허라니께. 오히려 큰소리치면서 발뺌하려고만 들었다.
파출소 경찰들은 나란 놈을 어떻게든 처리해야만 관내가 조용해질 것이라고 생각한 게 분
명했다. 그들이 고민고민하여 기껏 생각해 낸 수가 나를 경찰서에 가두어 놓자는 것이었다.
또한 내가 꼼짝 못하고 경찰서에 갇혀 있도록 책임지고 감당할 적임자로 험악한 얼굴과 무
식한 수사방법으로 민간인에게까지 악명이 나있는 유 형사를 점찍었던 것이다. 나의 도벽은
파출소만의 문제가 아니라 경찰서 전체의 문제로 커져 있었기 때문에 경찰서의 경찰들도 협
조적이었다. 유 형사도 코웃음을 치면서 순순히 나를 떠맡기로 했다. 그까짓 애새끼 하나를
가지고 그 난리들이야. 불알을 떼든지 경찰복을 벗든지 해야 할 순 병신들이잖아. 유 형사
는 나의 형을 만나 경찰서의 뜻을 전했고 형은 혹 떼게 된 혹부리 영감처럼 좋아라 굽실거
렸다. 그렇게 해서 나는 떡볶이를 먹던 도중 대낮에 유 형사에게 납치되어 경찰서에 갇히는
몸이 되었던 것이다.
점심 때가 되자 경찰서 사람들이 몰려왔다. 나는 마늘 양동이를 밀어 넣고 열 평 남짓 되
는 식당을 꼬리에 불붙은 송아지처럼 정신없이 오갔다. 강수야 전화 받아. 점심 때 천안댁
의 목소리는 보통 때보다 세 배는 더 신경질적이 되었다. 유 형사였다. 유 형사는 바빠 죽
겠는대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었다. 내가 안 보이니까 좋지. 도망갈 생각 하고 있지. 게으
름 치우고 있지. 오전의 전화의 내용과 크게 다른 바가 없었다. 강수야 전화 후딱 못 끊어.
유 형사님인듀. 그 백정놈은 병원 밥이나 열심히 처먹을 것이지 왜 자꾸 전화질이여.
밀물처럼 밀려왔던 경찰서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바닥에 떨어진 음식찌꺼기를
치우고 식탁을 행주로 훔친 뒤에야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다. 천안댁은 밥을 먹으면서도 쉬
지 않고 떠들었다. 경찰 전경 여직원들의 흉을 보는 것이었다. 천안댁의 말을 듣고 있으면
이 경찰서에는 제대로 된 인간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녀의 이모부인 경비
계장은 빼놓고였다. 시민의 등을 처먹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합법적이 사기꾼들이고 그까짓
무궁화 이파리 몇 개 단 것도 권력이랍시고 행세하려 드는 꼴불견들이고 주면 주는 대로 처
먹을 것이지 음식 투정이나 해대는 좀생원들이고... 다른 것은 모르겠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도 음식 투정은 하는 게 당연했다. 혓바닥이 고장나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 맛없는 밥과 반
찬에 그어 항상 두 그릇을 비워 냈고 반찬은 싹 긁어 먹었으며 국물은 한 방울도 남기지 않
았다. 체력은 천재적인 두뇌와 더불어 괴도 루팡을 뛰어넘는 위대한 도둑이 되기 위한 필수
요건이라는 게 내 개똥철학이었기 때문이었다. 천안댁의 말대로 거지 새끼 하나 경찰서가
잘 먹여 살려 주고 있는 셈이었다. 너 마늘 다 깟어. 아뉴. 너 또 게으름 피웠지. 정말이지
천안댁의 입은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그와는 반대로 이씨 할머니는 말이 거의 없었다. 며
느리에게 구박받을까 봐 입을 열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마늘을 다 까고 나니 세 시였다. 눈알이 찌릿찌릿 아팠다. 거울에 비춰 보니 빨간 실핏줄
이 튀어나올 듯했다. 이씨 할머니가 천 원짜리 한 장을 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가
야 고생했다. 어머니 이런 놈한테 무슨 돈을 줘요. 천안댁이 내손에서 지폐를 낚아 채더니
마늘 가지고 시비를 했다. 이게 뭐야. 꺼풀이 그대로 붙어 있잖아. 이 따위로 까면 안 된다
니까. 너 똑바로 안 할래. 유 형사한테 이른다. 천안댁은 진짜로 유 형사에게 고자질했다.
유 형사의 세 번째 전화가 오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 욕을 한 양동이는 하는 것이었
다. 이강수 나 없을 때 더 잘해야 될 것 아냐. 똑바로 못 하겠어. 나 지금 화났다. 일다 다
섯 대 등록했다. 매수 늘어나지 않도록 똑바로 해.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대답이 작다.
유 형사는 나를 다스릴 때 항상 무기고 뒤로 끌고 갔다. 발가벗겨 놓고는 야구방망이로
허벅지를 때리는 것이었다. 경찰서에 온 이후 내 허벅지에서 피멍이 가신 날은 없었다. 어
제도 전경 졸병들한테 시건방지게 까불었다는 이유로 세 대를 맞았다. 내 허벅지의 색상도
다양한 무수한 맷자국을 보고 명오는 약을 발라 주면서 백남준도 이렇게는 못 만들 거라는
뚱단지 같은 말을 웅얼거리며 혀를 찼었다.
마지막이 될는지도 모르므로 다른 날보다 더 열심히 쓰기 숙제를 하고 싶었지만 천안댁
때문에 속이 뒤집어졌기 때문인지 글씨가 엉망진창으로 씌어지고 자꾸만 틀렸다. 강수야 수
경이년한테 갔다 와. 그년은 서장 비서가 무슨 벼슬이라도 되는 줄 안다니까. 젊으나 젊은
것이 상전 첩마냥 꼼짝 않고 시켜 먹으려고 들어. 천안댁이 담배 한 보루를 던져 주었다.
서장이 필 담배일 것이다.
나는 수경의 심부름을 해줄 때가 제일 좋았다. 하루 종일 그녀가 뭐 가져오라고 시켜 주
기만을 기다린 날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서장 비서인 수경은 내 마음에 꼭 드는 여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결정적으로 그녀를 포기한 이유는 열두살이라는 나이 차이 때문이
아니었다. 도벽에 관한 한 천재적으로 발달된 두뇌와 추진력 그리고 출중한 외모로 나이 차
정도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었다. 내가 그녀를 포기한 것은 스승에 대한 예우 때문이었다.
나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는 명오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눈물을 머금고 저수지보
다 더 넓은 마음으로 물러섰던 것이다.
수경은 양코배기 글자가 난무하는 책을 펴놓고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강수구나. 나
는 담배 보루를 탁자에 올려놓고 간이 의자에 엉덩이부터 붙였다. 누나 나 좀만 졸다 겨면
안돼. 수경이 시계를 보았다. 서장님이 다섯 시쯤 들어온다고 하셨으니까 한 시간은 놀 수
있겠다. 평소에도 수경은 서장 비서실에서 홀로 지내기가 심심해서인지 나와 잘 놀아 주었
다. 누나 지금 뭐 해. 공부하는 거야. 응 무슨 공부. 영어. 왜 그냥. 대학에 가려는 거지 누
가 그래 식당 아줌마가. 그 아줌마 아는 것도 많네.
누나 명오 형이 누나 좋아하는 거 알지 명오라는 말이 나오자 수경의 얼글은 대번에 발갛
게 물들었다. 수경이도 명오에게 관심이 있다는 표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게 다 내
노력 때문이다. 나는 툭하면 명오에 대한 이야기를 함으로써 수경의 머릿속에 명오를 계속
해서 심어 왔던 것이다. 보통 좋아하는 게 아니라 거의 상사병 단계야. 먼 발치서라도 누나
얼굴 한번 못 보면 잠을 못 잔대. 수경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 경찰서 밖에서 한번 만나
는 게 소원이래. 한번 만나 주지 그래. 사람 하나 살리는 셈치고. 그만 못하겠니. 어린애가
못하는 소리가 없어 화를 내는 수경의 얼굴은 아예 홍당무였다.
누나 나 소원이 있는데 들어 줄 거야. 들어 줄 수 있는 거면 들어 줘야지. 손수건이 필요
해. 왜 요새 자꾸 눈물이 나. 휴지로 감당하기에는 벅차. 무슨 말이니 슬픈 일이 하도 많이
일어나. 오늘만 해도 그래. 유 형사님이 발목이 다쳐서 펑펑 울었지 마늘 까다가 눈물 한
양동이는 흘렸지. 하지만 눈물을 닦을 손수건이 없었어. 내가 그럼 내일 하나 선물할게. 안
돼. 지금 당장 필요해. 왠지 예감이 오늘 저녁에도 슬픈 일이 많이 일어날 것 같아. 그럼
어떡하지 누나가 가지고 있는 손수건을 주면 되잖아. 어떻게 내가 쓰던 걸 너에게 주니 나
는 더 좋은데. 손수건을 펼칠 때마다 누나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 누나 꺼 줘. 부탁이야.
소원이라구. 수경은 잠시 망설이다가 마지못하겠던지 제 손수건을 나에게 주었다. 나도 슬
픈 일이 하도 많아서 손수건에 눈물이 많이 묻어 있다. 괜찮지 수경은 이내 웃는 낯을 지었
다. 오늘 이후로 나를 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수경은 아름다웠지만 입
까지 무거울 것이라고 함부로 장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저녁 때 식당은 주린 배를 채우려는 경찰서 사람들로 또 한번 소란스러워졌다. 마지막 손
님들은 전경들이었다. 그 분주한 와중에 유 형사는 전화를 걸어 와 나를 또 귀찮게 했다.
숙제했어 예 그렇습니다. 확실하게 예 그렇습니다. 공부 열심히 해. 나 없다고 명오 말 듣
지 않고 농땡이 피우면 그냥 안 놔둔다.
성만이 나 좀 보자. 천안댁이 밥그릇을 비우고 일어서는 전경 내무반 반장 성만을 불러
세웠다. 왜요 너희들 자꾸 김치 훔쳐 갈래 아주머니도 말이 지나치시네. 그게 뭐 훔쳐 가는
거예요. 여기 강수도 말이 지나치시네. 그게 뭐 훔쳐 가는 거예요. 여기 강수도 알겠지만
우린 강수한테 이야기하고... 이야기 이야기 좋아하네. 네놈들이 불쌍한 강수 핑계 대지 마.
강수는 주고 싶어서 줬겠냐. 너희들이 못살게 구니까 겁먹고 내주는 거지 참나 좋아요. 아
줌마. 그렇다고 해요. 우리가 까짓 것 훔쳤다고 하자고요. 그런데 인간적으로 너무하신 거
아녜요. 그깟 김치 가지고... 그깟 김치라니. 요새 배추 한 포기 값이 얼만지 알아. 김치가
억만 금이래도 그렇지 아줌마나 저희나 같이 경찰서 생활하는 거 아닙니까 너희들이 언제
도와 줬어 아무튼 한 번만 더 김치 훔쳐 가면 손모가지를 부러뜨릴테니까 그리 알아.
아 좆 같네. 성만이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그것을 천안댁은 귀 밝게도 들은 모양
이었다. 너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말버릇 좀 봐.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정말 싸가지 없다. 성
만은 천안댁을 아니꼽다는 듯이 노려보더니 아직 식사를 못마친 졸병 전경들의 식탁에 다가
가 식판을 하나씩 집어 들어 던지기 시작했다. 쌓이고 쌓인 분을 한꺼번에 폭발시키는 한
마리 짐승 같았다. 식당은 밥알 콩나물 국물 미역 조림 오이 무침 고등어 조림으로 뒤덮였
다. 내가 씨발 여기서 다시는 밥쳐먹나 봐라. 성만이 그러고 휙 나가 버리자 나머지 전경들
도 주저앉아 눈물을 펑펑 쏟아 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게 분명한 이씨 할머니와 약간의
잘못이 있는 것도 같은 나는 엉망진창이 된 식당을 치우느라 바삐 움직여야 했다.
본관에까지 들린 천안댁의 울음소리를 듣고 경비계장이 달려왔다. 천안댁의 이모부인 경
비계장이 그녀의 하소연을 듣고 얼굴색이 시퍼래져서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날카로운
칼로 유리를 긁는 듯한 벨 소리가 울렸다. 간첩이 나타났을 때와 데모가 일어났을 때 그리
고 비상 훈련 때에만 울리게 되어 있다는 5분 대기조 출동 비상벨 소리였다. 나는 문을 열
고 전경 내무반 쪽을 바라보았다. 전경 내무반에서 철모 쓰고 군장 메고 군화 신은 전경들
이 쏟아져 나오더니 본관을 향해 줄달음쳐 들어갔다. 5분도 채 되지 않아 총 포 무전기 등
을 각각 짊어지고 다시 몰려나오더니 어느새 운전병이 시동을 걸어 놓고 대기중인 작전 트
럭에 재빠르게 올라타서 사방을 경계했다. 경비계장이 나왔다. 그는 전경들을 트럭에서 내
리게 한 후 오리걸음부터 시켰다. 그 다음은 포복을 시켰다. 그 다음엔 사격자세 연습 그러
니까 긴급 상황도 비상 훈련도 아닌 얼차려였다. 나는 구경꾼에 불과한 주제에 천안댁에게
괜스레 화가 났다.
그런데 알 수 없는 것은 천안댁의 표정이었다. 김치를 훔쳐 먹은 것도 모자라 싸가지 없
이 대든 전경들이 땅바닥을 뒹굴어 다니고 있는데도 하나도 흡족한 표정이 아니었다. 그 정
도로는 모자란단 말인가. 전경들과 함께 얼차려를 받을 각오로 나는 용감하게 천안댁을 비
꼬았다. 아줌마 속 시원하시겠네유. 당장 욕지거리를 내뱉어야 마땅했을 천안댁은 딴 사람
이 되어 눈물을 글썽이는 것이었다. 어이구 저 일을 어쩐대. 어쩐대야. 그리고 천안댁은 경
비계장을 향해 죄지은 사람처럼 뛰어갔다.
이씨 할머니와 천안댁이 집으로 돌아가고도 한참 뒤 명오는 다른 날과는 달리 세 시간 늦
게 식당에 왔다. 얼차려를 받은 다음 취침 점호까지 받고 왔을 것이다. 명오는 국어책을 펴
놓기는 했으나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식당 천장을 멀거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명오는 본래
얼굴이 어두운 편이었다. 세상이 우울해서 얼굴이 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
를 가르쳐 줄 때는 잘 웃고 장난말도 곧잘 했다.
유 형사가 하도 전화를 해대는 바람에 늦게나마 오기는 했지만 다만 공부 가르쳐 줄 마음
이 영 아니다. 명오가 20여 분 만에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유 형사였다.
공부하고 있냐 예 그렇습니다. 명오 좀 바꿔라. 피식피식 웃으며 전화를 받던 명오가 수화
기를 내려놓고 담배를 꺼내면서 말했다. 유 형사가 네 걱정 때문에 10년은 늙어서 퇴원하겠
다. 그게 뭐 걱정이랴. 감시 억압 압박 이런 거지. 불안한가 봐. 아무래도 오늘 네가 튈 거
같대. 나보러 너랑 함께 자달란다. 나는 바늘 끝으로 가슴을 찔린 듯 뜻금했다, 갑자기 얼
굴이 사색이 되는 이유가 뭐냐 너 진짜로 튀려고 했어 아녀 아녀 이렇게 재워 주고 먹여 주
고 가르쳐 주는 경찰서를 내가 뭐 때문에 나간댜.누가 칼 끝 들이대고 위협하면서 나가라고
해도 나는 목이 잘리면 잘렸지 안 나간다니께. 나는 두 손을 내저으며 죽어도 아니라는 시
늉을 했다.
네 탈출 이야기나 들어 보자. 이것은 또 무슨 말인가. 명오가 내 속마음을 눈치채고 있기
라도 한 것일까. 그러나 다행히도 명오가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는 내가 경찰서에 갇힌 이후
세 달 동안 일곱 번 도망쳤다가 일곱 번 모두 되잡힌 실패담이었다. 별 것 아녀. 내가 미쳤
지 왜 그랬나 물러.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가 형이 신고하는 바람에 되잡
혔다니께. 황당했지. 두 번째에서 네 번째까지는 탈출은 했는데 갈데가 없잖아. 시내를 멧
돼지 새끼마냥 쏘다니다 그냥 잡혔지. 그 다음에 난 깨달아 버렸다니께. 이 도시를 떠나야
만 한다는거. 그래야 안 잡힌다는 거. 큰 데로 가서 크게 놀아야 크게 된다는 거. 형도 알
다시피 내 꿈이 괴도 루팡보다 더 위대하게 되는 거잖여. 큰 데 하면 어디겄어. 서울이잖
여. 그래서 다섯 번째 여섯 번째는 무작정 서울로 가려고 했던겨. 최소한 서울로 숨으면 유
형사가 잡지는 못할 것이란 판단이 섰던 거여. 근데 다섯 번째는 톨게이트를 통과하다가 고
속버스 검문에 걸려서 잡히고 여섯 번째는 서울까지 가는데 성공은 했지만 고속터미널을 벗
어나지도 못하고 자가용으로 쫓아온 유 형사한테 잡혔지 뭐.
또 탈출하면 이번에도 서울로 갈 거냐 형 왜 이런댜. 나 마음 잡었다니께 나 이젠 도망
안 쳐. 그래 너 이제 도망 안 친다는 거 알아 이건 가정이야. 또다시 도망친다면 진짜로 안
간다니께. 그래도 도망친다면 참말로 형이 왜 이런댜. 내가 자꾸 대답을 하지 않으려고 하
자 명오는 묘한 표정을 지으면 혼잣말을 했다. 그래 서울로 가는 게 좋겠지. 서울이 너에게
는 길 같은 건가 보다. 희망 같은 것.
그런데 너 왜 자꾸만 경찰서를 나가려고 했었냐 답답해서. 그것뿐이냐 그게 얼마나 중요
한대. 나는 감나무에 쇠줄로 묶인 검둥이가 되고 싶지 않다니께. 먹여 주고 재워 주면 뭘
해. 묶여 있는 걸. 난 멍멍 짖으면서 들판을 날뛰고 싶다니께. 안가본 데 없이 싸돌아다니
고 싶다니께. 그런데 지금은 왜 경찰서 생활에 충실하기로 마음을 바뀠지 네 말대로라면 그
건 감나무에 묶인 개로 안주하겠다는 것이잖아 명오는 무슨 뜻으로 말하고 있는 것인가. 나
를 떠보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형 왜 그리 복잡스럽게 이야기를 한다. 나 마음잡았다니
께.
나도 너처럼 탈출하고 싶다. 탈영 형 왜 그런댜. 군대 생활 다 해놓고. 이젠 다섯 달도
채 안 남았잖어. 경찰서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 이 길이 보이지 않는 구조에서 탈
피하고 싶다는 거다. 명오는 나에게 말한다기보다는 연극에서처럼 독백하는 것 같았다. 그
게 뭔 소리랴 길이 보이지 않는 머시기라고 희망이 없다는 거다. 희망이...
명오에게 줄 것이 있음을 기억해 냈다. 내가 내민 포장지에 싼 것을 명오는 물끄러미 바
라보았다. 이게 뭐냐 선물이구만. 선물 네가 나한테 왜 형이 나한테 한글 가르쳐 준 스승
아닌가베. 형 때문에 이제 일고 쓰는 것 장자재라니께. 내가 루팡보다 더 위대하게 되면 이
것보다 더 좋은 걸로 보답할 것이여. 근디 이것보다 더 좋은 게 있을라는가 그것이 문제라
니께. 지금 펴봐도 되냐 물론이여. 왠 손수건 명오는 꽃무늬 손수건을 펴고는 갸우뚱거렸
다. 형 냄새를 맡아 보라니께. 왜 얼른 맡아 보라니께. 명오는 손수건에 코를 대고 벌름거
렸다. 여자 냄새가 나는 거 같다. 맞았다니께. 바로 그거라니께 그 냄새가 바로 수경이 누
나 눈물 냄새란 말이여.
열두 시쯤 유 형사의 전화가 또 왔다. 강수야 오늘은 명오하고 자라. 명오한테 신신당부
했으니까. 그러나 명오는 유 형사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내무반으로 갔다. 가기 전에 명오는
나에게 물었다. 나랑 같이 잘래 명오와 한 번쯤 자고 싶었다. 친형같이 느껴지는 그의 품에
안겨서 편안히 잠들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다 컸는디 남부끄럽게 같이 잔
댜. 그러구 형도 내무반에서 자는게 편하잖여.
명오가 돌아간 뒤 나는 바빠졌다. 플래시를 들고 식당 창고에 가서 쌀 포대 쌓아 둔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바깥의 벽과 맞닿아 있는 곳을 손으로 팠다. 묻어 두었던 양은 냄비는 어
둠속에서도 빛을 냈다. 냄비 속에서 동전 한 개까지 끄집어 내어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식당에서 자투리를 슬쩍 해서 모은 돈. 천안댁은 김치에만 신경 썼지 내가 잔돈푼을 빼돌
리는 것은 가마득히 몰랐다. 전경 내무반을 뒤져 모은 돈. 그들은 내가 단순히 장난감이 되
어 주려고 찾아가는 줄 알았다. 본관 각 부서에서 훔친 돈. 그들은 단순히 심부름을 시켰지
만 그것은 나에게 기회를 준 것이기도 했다. 경찰서를 방문한 민간인을 상대로 소매치기한
돈 서울에서 가장 손쉽게 적응할 수 있는 기술이 소매치기 기술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밤늦게까지 홀로 연습을 했고 민간인을 상대로 경험을 쌓았다을 다 합치니 이십만 사천사백
사십원이었다.
방으로 돌아와 생일 때 유 형사가 사준 때깔 나는 옷으로 갈아 입었다. 백 형사에게서 훔
친 일제 지갑에 지폐를 챙겼다. 동전은 바지 호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유 형사에게서 딱 하
나 훔친 물건 스위스 제 시계를 손목에 차는 것을 잊지 않았다.
식당을 나서려고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간이 떨어질 만큼 놀라서 식당문을 얼른 도로
닫았다. 전화벨이 열 번은 울리도록 놓아 두었다가 받았다. 그리고 잠이 덜 깬 목소리로 가
장했다. 여보세유 경찰서 구내식당인듀. 강수구나. 걱정이 되어서 잠이 와야지 말이야. 마지
막으로 듣는 것일지도 모르는 유 형사의 목소리였다. 명오는 자냐 예 그렇습니다. 어라 그
놈이 그렇게 일찍 자는 놈이 아닌 것으로 아는데...
강수야 넌 내가 보고 싶지 않냐 보고 싶습니다. 유치한 얘기다만 떨어져 있으니까 알겠
다. 내가 널 얼마나 아끼는지. 내가 너를 왜 이렇게 끔찍이 아끼는지 아냐 넌 모를 것이다.
나도 너 같은 과거가 있었다. 어쩌면 조실부모한 거까지 똑같냐. 너 하는 꼬락서니가 어릴
때 나를 꼭 빼닮았다. 내가 너마냥으로 개판 치고 다닐 때 내가 너를 챙겨 주듯이 나를 챙
겨 주는 사람 한 분만 계셨어도 내가 이 모양 이 꼴로 촌구석 형사나 하고 있겄냐. 내가 너
때리고 야단치고 일 시키고 그러는 게 너 미워서 그러는 게 절대 아니라는 거다.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사랑의 매라는 거다. 내 말 알겠냐 내 마음 이해하겄냐.
아직까지 한번도 느껴 보지 못 해본 감정의 덩어리들이 내 가슴속을 뜨겁게 채우는 것을
느꼈다. 유 형사가 술 먹고 주정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사랑의 매 좋아하시네. 나는 당신에
게 스트레스 해소용 샌드백이었다.
술 한잔 했더니 나답지 않은 말만 나오는구나. 그래 그만하자. 어서 자라. 유 형사님 몸
도 안 좋으신데 술 드시지 말어유. 야 네가 내 걱정을 다 해주는구나. 기특하다. 우리 강수
가 다 컸어. 곤할 텐데 그만 자라. 좋은 꿈꿔라. 형사님두유.
바닥에 주저앉아 펑펑 울고 싶었다. 방으로 되돌아가 유 형사의 말대로 좋은 꿈을 꾸며
편히 잠들고 싶었다. 그 유혹은 정말이지 참을 수 없이 짜릿해서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
다. 어두운 식당에서 카운터 전화기를 매만지며 방 쪽과 문을 쉴새 없이 반갈아 보았다. 그
렇게 한동안 떨었다.
수많은 얼굴이 보였다. 형 형수 3학년 때 담임선생 파출소 경찰들 백 형사 이씨 할머니
천안댁 정수 성만 명오 수경... 그리고 유 형사의 얼굴이 오래도록 보였다. 삔 발목에 깁스
를 하고 병실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는 나 이강수만을 생각하고 병실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
는 나 이강수만을 생각하고 있다는 유 형사가. 그리고 그리고 또 무엇인가가 보였다. 감나
무였다. 그리고 또 보였다. 감나무에 쇠줄로 묶인 채 문밖 불빛 가득 피어 있는 들판을 향
해 고통스럽게 있는 힘을 다해 한없이 짖고 있는 검둥이가.
그 검둥이는 쇠줄만 풀어 주면 나를 버리고 들판을 향해 달아났었다. 아무리 때려도 아무
리 구슬려도 쇠줄만 풀어 주면 미련도 없는지 또다시 달아났었다. 들판에 뭐가 있기에. 바
라보기에 좋은 불빛만 가득하고 바람만 요란하게 불 텐데. 저를 반겨 줄 것이라고는 고작
해야 집 잃은 개 아니면 보신탕 좋아하는 인간들이 다면서 뭐가 그리 좋은지 큰 귀를 펄럭
이면서 뛰어갔었다. 그래 들판에는 아무것도 없을지 몰라. 아무것도.
울음을 그치고 눈물을 닦았다. 언제 울었냐는 듯이 나의 날카로우며 강인한 눈빛이 어둠
속에서도 빛나기를 원했다. 나는 누가 뭐래도 괴도 루팡을 뛰어넘는 위대한 천재 도둑이었
다. 나를 기다려 주는 것이 없어도 좋았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그 무엇이라도 좋았
다.
식당문을 열자 달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식당을 살그머니 빠져나와 정문 초소 전경들이
보지 못하도록 오리걸음으로 옥외 화장실까지 갔다. 화장실에서 본관 뒤쪽으로. 본관 뒤쪽
에서 무기고로. 무기고에서 화단으로. 화단 뒤의 철조망 앞에 서서 허리를 조금 폈다. 튼튼
하게만 보이는 철조망의 매듭 한 부분을 곽 쥐고 잡아당겼다. 철조망에 내 한 몸 빠져나가
고도 남을 넉넉한 틈이 벌어졌다. 보름 전 화단의 잡초를 뽑다가 이 틈을 발견했었다. 누군
가 철조망의 매듭 여남은 개를 교묘히 절단해 놓은 것이었다. 아마도 나처럼 경찰서로부터
탈출을 꿈꾸었던 천재가 있었나 보다. 내가 그렇게도 원하던 틈이었다.
철조망을 빠져 나온 감격을 느끼기도 전에 담배 연기가 훅끼쳐 왔다. 나는 너무도 놀라
그 자리에 자지러져 앉고 말았다. 누군가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쇠줄을 끊고 달아났다가
뒈지게 얻어맞고 다시 감나무에 묶이는 검둥이가 떠올랐다. 도대체 나의 앞길을 가로막는
당신은 누군가.
기다리고 있었다. 명오였다. 명오에게 속았구나 명오가 순순히 내무반으로 돌아가는 척한
것은 나를 현장에서 붙잡기 위한 잔꾀였구나. 수경이 손수건까지 주었는데 빌어 볼까. 하지
만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괴도 루팡보다 더 위대하게 될 천재인데 빌다니. 나는 유 형사
에게 그렇게 맞으면서도 기절하면 기절했지 빌어 본 적은 없었다.
배웅하려고 나와 있었다. 누구 하나쯤 너의 길 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다. 나는 다시 내부에 팽창하는 거대한 힘을 느끼며 일어섰다. 명오가 손을 내밀었다. 명
오의 손을 힘껏 쥐었다. 잘 가라. 뭐라고 대꾸해야 될 것 같은데 말이 나오질 않았다. 얼른
가라. 명오가 내 어깨를 툭 쳤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뛰기 시작했다. 한참을 뛴 다음에
야 뒤돌아보았다. 명오는 어둠 속에 묻혔는지 보이지 않고 거대한 정승처럼 웅크린 경찰서
만 보였다. 되돌아서니 다시 길이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힘차게 뛰었다.
제목 : 용늪 가는 길
지은이 : 김하기
1
호흡이 곤란하다. 가위가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활처럼 휘어진 갈비뼈가 가슴속
의 응어리를 밖으로 쏘는 순간 해준은 두 개로 분리되었다. 꿈 속에서 유체 이탈을 한 해
준의 의식은 방금까지 하나였던 몸을 하늘에서 내려다보았다. 매미 허물처럼 벗어 놓은 해
준의 몸이 민첩하게 움직이며 라이카 소형 카메라를 들고 목표물을 찾고 있었다. 자욱하게
밀려오는 안개에는 화약 내가 스며 있었다. 안개 속으로 희미한 얼굴들이 드러났다. 안개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은 음화 속의 피사체처럼 희고 투명했다. 낯익은 얼굴 하나가 나타
났다. 소형 라이카는 어느새 망원 렌즈가 장착된 대형 캐넌 카메라로 바뀌었고 몸은 파인더
를 들여다보며 그를 겨냥하고 검지를 셔터 위에 얹었다.
안 돼. 찍으면 안 된다구.
해준은 몸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해준의 소리는 젤라틴 막에 걸려 전달되지 않았다. 어느
새 망원 렌즈는 점점 가늘고 길어져 싸늘한 M16 총신으로 바뀌어 있었고 몸의 집게손가락은
안전장치가 풀린 방아쇠에 단단히 걸려 있었다. 동그란 가늠자 구멍으로 낯익은 눈동자가
가득 차오는 순간 몸은 방아쇠를 당겼다.
쏘면 안 돼. 이건 꿈이야. 깨어나면 그만이라구.
해준은 몸을 향해 필사적으로 손사래를 치지만 몸은 그예 방아쇠를 격발하고 말았다.
빠방 빠바방
총소리와 함께 SY44 최루탄 지랄탄 불타는 화염병이 작열하고 해준은 걸레 조각이 되어
쓰러졌다. 페퍼포그가 분열된 몸과 자아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어 분사되었다.
쿨럭 쿨럭 쿨럭
코점막을 자극하는 매캐한 냄새에 쿨럭이며 해준은 악몽에서 깨어났다. 꿈 밖의 세계는
칠흑 같은 암흑이었다. 속눈썹에 들러붙는 섬유질 같은 진득한 어둠 속을 더듬다 머리 위로
붉은 암등 한 점이 흐느적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제사 해준은 밤새워 암실에서 인화작업을
하다 새벽녘에야 깜빡 잠이 든 것을 알았다. 그러나 현상액 밭에 반쯤 잠겨져 있었던 한 장
의 인물 사진은 절반이 까맣게 지워져 있었다. 낡은 필름에서 현상된 반이 잘려 나간 희미
한 얼굴. 꿈 속에서 본 낯익은 그 얼굴이었다. 해준은 서둘러 핀셋으로 여느 때처럼 그 인
화지를 건져 올려 백열등에 비쳤다. 희미하게 남은 절반의 잠상마저도 까맣게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2
연식이 오래된 고물 지프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약속 장소인 양수리로 달렸다. 해준의 지
프는 퇴행성 관절염에 걸린 늙고 비루한 말과 같았다. 십여 년간 전국의 산하를 누비며 고
락을 같이했던 이 애마는 이제 낮은 언덕길을 만나도 힘에 부쳐 낑낑거렸다. 달포전 폐기처
분하려고 폐차장을 향해 달리다가 왠지 눈물이 나 핸들을 꺾어 되돌리고 만 차였다.
해준은 벌써 일주일째 밤을 새며 우리 나라 들풀 사진과 슬라이드 작업에 매달리고 있었
다. 각종 야생화의 사진첩에 보기보다 크고 곱게 피어 난 들꽃 사진은 들풀의 참모습이 아
니다. 들꽃은 며칠만 화려하게 피고 떨어진다. 비록 잡초 같긴 하지만 매일 보는 잎새와 줄
기 그대로가 들풀의 진정한 모습이라 생각하며 해준은 지난 일 년간 부지런히 들풀 사진을
찍어 두었다. 그리고 들풀 작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용늪의 생태계 취재여행을 떠나야 했
다.
양수리 풍차 가든 앞에는 카키색 배낭을 멘 김 교수가 미간을 찌푸린 채 담배를 뻑뻑 빨
고 있었다. 두꺼운 안경알에 떠오른 작은 눈 목에 깁스를 한 듯한 뻣뻣한 태도. 동행하기엔
까다로워 보이는 첫인상이었다.
'풍차는 하염없이 돌아가는데 자네는 오지 않더군.'
김 교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올린 해준의 인사도 제대로 받지 않고 퉁을 놓았다. 그리곤
냉큼 뒷좌석으로 올랐는데 당연히 조수석에 앉아 나란히 가리라 생각한 해준으로선 당혹스
런 일이었다. 그리곤 대뜸 개인적 취향을 빌미 삼기도 했다.
'뒤로 묶은 말꽁지 머리는 뭔가 지금 양구가 아니라 제주도로 가는 건가.'
그의 말투에 익살기나마 묻어 있지 않았다면 듣기 거북한 빈정거림이 되었을 것이다.
식물분류학을 전공한 김 교수가 휴전선의 야생화와 생태계에 관한 한 꾸준히 한 길을 걸
어온 점은 인정해야 했다. 분단과 냉전의 엄혹한 산물로만 파악되던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일대를 생태계의 보고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전적으로 그의 선구자적 탐사와 연구에 따른
결과였다. 용늪의 생태계에 관한 논문도 여러 번 썼다는 걸 월간 환경 잡지 '그린'의 편집부
장으로부터 들었다. '그린'의 사진기자인 해준 또한 한국의 자연과 환경 사진만을 고집해 온
독특한 사진가로서의 이력을 지니고 있었다. 잘만 하면 환상적인 커플이 될 수 있는 이들이
첫 만남부터 수레바퀴가 삐걱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봄에서 여름으로 옮겨 가는 산록의 녹음은 풍성하고 아름다웠다. 정오의 따가운
봄볕으로 약이 오른 솔잎들은 투명한 감청색으로 일렁였다. 산마다 흘러내리는 푸른 물결은
대지 위에 철철 넘쳐서 강으로 흘러 들어가 물빛을 한결 푸르게 했다. 해준은 복잡한 인간
관계보다 이런 자연이 좋아 자연만을 찍어 왔는지 모른다.
'자네는 용늪에 가본 적이 있나.'
'처음입니다.'
대암산 용늪은 우리 나라에서는 유일한 산마루 습원지로 생태계가 독특하다죠. 움직이는
식물인 북통발이나 끈끈이 주걱이 살고 희귀종인 금강초롱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면서요.
그가 임의로운 사람이었다면 읽어 둔 상식으로라도 말을 붙였을 것이다.
'이런 고물차로 산마루까지 올라갈지 의문이군. 이번이 초행길이라면 용늪에 사는 용을
보지 못했겠군.'
'예 용늪에 용이 사나요.'
해준은 반사적으로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
'용늪에 가서 용을 보지 못한다면 용늪을 못 본 거야. 인적이 끊어진 휴전선 일대에는 일
반인에게는 알려지지 않는 불가사의한 일이 많아. 남북으로 자유로이 왕래하는 흙섬에 관해
들어 본 적이 있나 콩나물 대가리처럼 갈라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아름다운 섬이지.'
볼리비아의 티티카카 호수에 떠 다니는 섬이 있고 중국 고비사막에 방황하는 호수가 있다던
가. 해준은 지난 십여 년 동안 전국을 더투고 다니면서 신비롭다는 곳은 웬만큼 답사했다.
시동 끈 차가 기어오르는 제주도의 도깨비 도로 완주 송광사의 땀 흘리는 부처님 삼척 소한
굴샘에 자생하는 민물김을 보고는 이 땅의 신비로움에 경의를 표했다. 그러나 용늪에 사는
용과 남북으로 자유로이 왕래하는 흙섬에 관해서는 금시초문이었다.
'한강의 하구인 청수바다 위에는 정처없이 부유하는 흙섬이 있지. 갈대와 물풀 사이에 숨
어 있는 이 흙섬은 물길 따라 남북으로 자유로이 이동하고 다닌다네. 그러나 물이 크게 썰
때는 숫제 남북을 하나로 이어 버리기도 하는 거야. 갈라진 남북으로 자유로이 왕래하고 있
는 이 흙섬은 분단시대의 혼령들이 쉬어야 할 이어도가 아닐까. 지친 영혼이 쉬어 간다는
전설의 섬 이어도는 실상 서해안 임진강 하구에 있는 셈이지. 말 꽁지머리 그렇지 않는가.'
잡지사 편집부장의 말이 떠올랐다.
'내 말을 명심하게. 사진이라도 몇 컷 건져 오려면 늙은 원숭이처럼 심심해 하는 노교수
의 신경을 건드리지 말게. 언제 예측 불가능한 돌출 행동이 나올 줄 모르니까. ㅈ신문 기자
는 카메라가 박살났다네.'
외양으로 보자면 두꺼운 안경알에 떠오른 작고 까만 눈동자와 마른 턱 위로 인중이 뾰죽
하게 튀어나온 김 교수의 얼굴이 영락없는 쥐상 아닌가. 게다가 목뼈마저 살짝 기울어진 주
제에.
해준은 자제를 했음에도 자기도 모르게 운전이 거칠어졌다.
3
차가 도계를 지나 춘천으로 접어들자 김 교수가 해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여보게나 사진작가. 오줌보도 찼고 속도 출출한데 잠시 휴게소에 들렀다 가지.'
해준은 시큰둥하게 운전대를 돌려 강촌 휴게소에 차를 세웠다. 둘을 나란히 화장실로 들
어가 오줌발을 비켜 눈 뒤 식당 대신에 노점에서 껍질째 볶아 파는 통감자구이로 요기했다.
강렬한 햇살을 받은 북한강은 프리즘 효과를 일으켜 물빛이 오색으로 번쩍거렸고 강물엔
해오라기 한 마리가 한가롭게 유영을 하고 있었다. 잘하면 한 꼭지 건질 법도 한데. 해준
은 목에 건 카메라를 벗겼다.
'교수님 말 꽁지나 사진작가란 말 대신에 그냥 권 기자로 불러 줄 순 없나요.'
더욱이 뭔가 부탁이 있다는 사람이 하인 부리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허 그저 친하자고 터놓고 부른 이름을 가지고 과민하게 반응하기는. 초면에 내가 좀 과
했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 사진작가라고 부르면 그렇게 기분이 나쁜가.'
'소설가 화가 무용가는 소설작가 화작가 무용작가라고 부르지 않잖아요 사진 찍는 우리들
만 사진작가라 하니 무슨 쟁이 같이 기분이 든단 말입니다. 사진가 어감도 부드럽잖아요.'
'그럼 사진가 양반 들어 보게나 내 목은 좀 비틀어졌지만 성격마저 그런 건 아니라구. 육
이오 전쟁 때 뒷목 경골에 비스듬히 박힌 수류탄 파편 하나가 지금도 간혹 내 신경을 건드
리긴 하지만 이게 나의 감춰진 훈장이고 메달이지. 비록 콩알만한 크기지만 공항 체크게이
트를 통과하면 삐삐 소리를 확실히 내는 존재야. 메스로 파내지 않는 것은 신경을 건드리면
목 아래를 못 쓰는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다는 거야. 그래 이것이 조금은 내 인생을 신경질
적으로 만들어 왔다는 걸 인정해. 그래도 이것을 우습게 보지 말라구. 쬐그만 이것이 날 국
가유공자로 만들어 평생을 먹여 살렸으니까.'
장황한 사설 끝에 나온 김 교수의 부탁은 아름다운 강촌 풍경을 배경으로 인물사진 하나
를 찍어 달라는 것이었다. 이 달에 그가 회갑논문집을 내는데 사용할 마땅한 사진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미농지로 덮은 망자의 영정 같은 저자 근영은 죽어도 싫다며 자연 풍경
을 배경으로 한 자연스런 전신 사진을 원하고 있었다. 흐르는 강물을 뒷짐 지고 근엄한 포
즈를 취하고 서있는 김 교수에게 해준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교수님 안 됩니다.'
'안 되긴 뭘 안 돼 이 사람아. 말 꽁지라고 불러서 삐친 게야.'
'아녜요. 전 인물사진은 찍지 않습니다.'
해준은 아직도 잠상이 남아 있는 꿈 속의 얼굴을 떠올렸다. 언제부턴가 그는 인물사진을
찍는 것을 기피해 왔다. 불꽃 같은 팔십 연대를 살아 온 해준은 누구보다도 많은 인물사진
을 찍었다. 화염병을 움켜쥐고 구호를 외치는 청년학생들. 최루탄 안개 속에서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복면의 전사들. 온몸에 시너를 뒤집어쓰고 달려가는 불덩어리들. 그러나 사진을
찍는 것이 사람을 쏘는 것과 같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된 후부터 셔터를 누를 때의 짜
릿한 손맛은 사라지고 방아쇠를 당겨 사람을 사살한다는 죄의식만 남았다. 한 때 아무것도
찍을 수 없어 완전히 카메라를 놓을까도 생각했지만 사람 사진을 버리고 자연과 환경 사진
에만 몰두함으로써 어느 정도 심리적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이후 해준은 단 한 컷도 사람
을 찍은 일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 김 교수도 예외일 수 없는 것이다.
'아직도 꽁하고 있는 게야.'
김 교수는 자존심을 접소 은근하게 눙치고 들어왔지만 해준은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전 인물사진은 안 찍는다구요.'
'그만두라구. 젊은 사람이 밴댕이 속처럼 속이 좁아 가지고선.'
김 교순 무시당했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해준은 침묵했다. 말을 걸면 '넌 바보야 바보'만
되풀이하는 구관조 같은 늙은 이와 피곤한 입씨름을 계속할 필요가 없었다.
강상의 푸른 기운에 마음이 좀 눅어지긴 했지만 이번 용늪 기행은 고갯길을 오르는 고물
지프처럼 심리적 부하가 무겁게 걸려 있었다.
4
해준의 지프는 양구로 들어가는 완만한 고갯길을 느릿느릿 올라가고 있었다. 뒷자리의 김
교수는 눈을 흘겨 뜬 채 졸았다 깨었다를 반복하더니 그예 코를 골았다. 지프의 앞에 가는
돼지를 실은 개조한 트럭은 숫제 엉금엉금 기어오르는 거북이 형국이었다. 아무리 애마가
비루먹고 추월 금지선이라 해도 추월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준이 추월하려고 깜박이 신호
를 넣는 순간 덜컹 트럭 뒷받이가 빠지면서 돼지 네 마리가 꽤액꽥 멱따는 소리를 지르며
길바닥으로 쏟아졌다. 당황한 해준은 급제동을 걸었으나 찻간 거리가 너무 없어 떨어진 돼
지 한 마리를 치고선 길섶에 비스듬히 멈췄다. 돼지 두 마리는 산비탈로 달렸고 한 마리는
길 옆 저수지로 내닫기 시작했다. 트럭문이 열리고 군복을 입은 텁수룩한 중년 사내가 뛰어
내렸지만 동작은 민첩하고 침착했다. 군복 사내는 뒷바퀴에 고임목을 고인 후 짐칸으로 돼
지가 오르내리는 나무 사다리를 장치하곤 해준에게 말했다.
'좀 도와 주시오.'
그리곤 군복 사내는 산 쪽으로 달아나는 돼지를 붙잡으러 뛰어갔다.
한 마리는 봄 가뭄으로 밑바닥이 드러난 저수지로 뛰어들어 갔다. 급제동 때 앞좌석의 등
받이에 박치기를 하고 잠이 깬 김 교수는 어느새 차에서 내려와 현장을 본 뒤 뜻밖에 좋은
일거리를 만났다는 표정이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본 이상 그대로 지나칠 수는 없지 않는가.'
김 교수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저수지로 뛰어들어가리라곤 미처 예측하지 못했다. 해준은
돼지를 치어 죽인 미안함도 있는 데다 노교소가 앞장서니 따라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중
돈이 넘어 보이는 돼지는 생각보다 몸이 날렵하고 성격이 거칠었다. 군복 사내는 산으로 도
망가던 돼지의 방향을 돌려 트럭쪽으로 몰아오며 고함을 질렀다.
'그놈이 저수지 안으로 들어가지 않게 좀 붙잡아 줘요.'
그러나 돼지는 저수지 뻘탕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김 교수보다 한 발 먼저 도착한 해
준이 돼지 옆구리를 차며 뛰는 방향을 돌리려 했다. 그러나 포악한 돼지는 오히려 해준을
원통형의 코로 뜸베질해 뻘밭에 처넣었다. 뒤따라온 김 교수가 돼지 목을 잡았지만 돼지는
김 교수를 매단 채 뻘밭에 나뒹굴었다. 순식간에 둘은 뻘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이 돼지는
일반 집돼지들과는 달리 털리 긴 다갈색인데다 송곳니가 조금씩 솟아올라 있어 생김새가 흡
사 멧돼지 같았고 성질도 난폭하고 사나웠다. 뻘밭에 들어간 김 교수는 돼지와의 진흙탕 싸
움에 완전 몰입해 버렸다. 그는 머리까지 뻘탕을 뒤집어쓴 채 돼지를 껴안고 뒹굴었다. 돼
지를 잡는 게 아니라 함께 어울려 노는듯했다. 돼지 한 마리를 트럭에 집어 넣고 달려온 군
복 사내도 뻘밭에 합류했다. 그는 돼지처럼 꿀꿀 소리를 내며 손바닥으로 돼지 등을 때리며
방향을 잡았다. 그제사 저돌적으로 덤비던 돼지가 뻘 밖으로 내달렸다. 군복 사내가 방향을
잡아 트럭까지 몰아갔으나 이놈은 나무사다리로 오르려고 하지 않았다. 셋은 버둥거리는 이
놈의 목과 배와 다리를 붙잡고 들어 올려 간신히 짐칸 안으로 도로 넣을 수 있었다.
지나가는 차량들이 속도를 줄여 이 해괴한 돼지몰이 광경을 보았고 몇 대는 아예 차를 연
도에 세우고는 본격적으로 구경했다. 돼지와 격투를 벌인 시간은 그닥 길지는 않았지만 갯
벌을 뛰어다니며 온종일 짱뚱어를 잡은 사람처럼 축 늘어졌다. 마지막 작업으로 지프에 받
쳐 죽은 돼지를 트럭에 실은 뒤 셋은 저수지 둑에 앉았다. 군복 사내가 권하는 담배를 받아
문 해준은 순식간에 일어난 돼지몰이 사건과 이런 진흙투성이로 바뀐 자신들의 모습이 비현
실적으로 느껴졌다. 용늪을 방문하러 가는 길이라는 김 교수의 말에 양구 해안 마을에 사는
신무홍이라는 군복의 사내는 반가워하는 빛이 역력했다.
'용늪은 내가 사는 해안 마을 대암산에 있지요. 돼지들도 그곳에서 자랐지요.'
셋은 여는 통성명과 같이 서로 어떤 인연의 끈을 확인하려고 지연과 학연을 찾았으나 별
공통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저 돼지들은 일반 집돼지완 다르게 매우 성질이 거칠고 난폭하더라구.'
진흙투성이의 김 교수가 트럭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다.
'산으로 도망간 한 마리는 산돼지가 되어 살 겁니다.'
신무홍은 돼지들이 사나운 것은 산기슭에서 방목하고 키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돼지들
에게 먹이를 하루 한 끼만 주면 배가 고픈 이놈들은 우리를 빠져나가 산과 들로 다니며 칡
뱀 따위를 찾아 먹고는 배를 채운다. 그러다 보면 산에서 부닥치는 멧돼지들과 교접을 해서
새끼를 낳는데 이 새끼들은 반 가축 반 야생의 잡종돼지가 된다.
그리고 해안 마을이란 이름이 붙은 유래도 곁들여 말했다.
'옛날에 이 마을에 뱀이 얼마나 많았던지 사람이 살 수 없을 지경이 된 거죠. 그때 어느
대사가 마을에 와서는 뱀의 천적인 돼지를 기르라고 했고 대사의 말씀대로 돼지를 기르니
과연 마을이 편안했다 해서 돼지 해자 편안할 안자를 써서 해안마을이 되었다고 하지요. 지
금도 우리 마을엔 뱀들이 많아 뱀을 잡아먹고 자라난 이 야생돼지들은 약재로 쓰이기도 할
뿐만 아니라 비계가 적고 육질이 부드러워 돼지고기론 최고로 치지요.'
'아무튼 오늘 돼지몰이는 굉장했어. 돼지 목살을 잡고 육박전을 벌일 때는 마치 육이오
때 중공군을 붙잡고 백병전을 치르는 기분이었다구.'
'근력이 대단하시더군요. 저도 월남전 이후 이런 난리는 처음입니다.'
'이런 월남 참전용사시군.'
지연과 학연에서 인연의 끈을 찾지 못한 김 교수는 참전용사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고 마치
옛 전우를 만남 듯 반가워했다. 김 교수의 호들갑스런 반응에는 전쟁을 모르는 전후세대들
이 말 꽁지머리나 하고 다니며 나라와 조상 귀한 줄 모른다는 심리가 깔려 있었다.
해준은 팔십 년 광주항쟁으로 발발된 불꽃 같았던 십 년간의 투쟁을 굳이 전쟁에 견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전쟁만이 빚을 수 있는 인간의 한계상황을 경험하고 그 후유증을
앓고 있는 그에게 전쟁을 모르는 세대하고 규정하지 말았으면 했다. 전쟁이 인간을 죽이고
타락시키는 폭력이라면 육이오와 월남전과 팔십 년대의 투쟁이 서로 다른 차이점이 무엇인
지 알지 못했다.
'청룡부대에 있었어요. 유명한 짜빈 동작전에 참가래 무궁훈장까지 받았지요.'
'난 육이오 때 최초로 삼팔선을 돌파하고 철모로 압록강물을 떠먹은 수고사단 소속이었
지.'
'군대 얘기는 술이 있어야 제 맛 아닙니까. 양구로 나가서 목욕부터 하고 난 뒤 소주나
한잔 합시다.'
'조오치 군대 얘긴 평생 돈 안 드는 술안주감 아닌가.'
담배를 다 태운 셋은 저수지 둑에서 일어났다. 트럭에서 꿀꿀거리는 돼지들의 소리가 들
렸다. 해준은 오늘 일어난 모든 일들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다. 이것들은 아무런 인과도
없이 암실의 꿈에서 이어져 잔몽으로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5
군복으로 갈아입은 해준의 일행은 휴가병과 귀대병들이 몰려다니는 군사 도시 양구의 밤
거리를 비틀거리며 이차를 할 술집으로 걸어갔다. 목욕을 마치고 세탁소에서 가져온 군복으
로 갈아입을 때만 해도 김 교수는 어깨를 추스르며 어색함을 감추지 않았다.
'이것 참 다시 이등병으로 돌아간 기분이군.'
세탁소에서 옷을 맡기고 가져온 허드레 여벌 군복이라 김 교수의 군복바지는 길어서 길바
닥에 쓸리었고 마르고 키가 큰 행주의 군복은 바지와 소매 기장이 짧아 우스꽝스러웠다.
일행은 부대찌개와 손두부 맛이 일품이라는 후곡집으로 들어갔다. 겉모습은 허름해도 박
정희 대통령의 휘호인 유비무환의 복사본 액자가 걸려 있는 실내는 비교적 깔끔하고 아담했
다. 창가엔 술 취한 하사관 세 명이 앉아 군에 대한 현 정부의 시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었고 구석진 자리에는 외박 나온 병장이 마주앉은 애인을 눈에라도 넣고 싶은 듯 손과 봉
을 어루만지며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이미 일차에서 반주를 권커니 잣커니 하면서 군대 이야기로 거나하게 된 김 교수와 신무
홍은 이차에도 과장과 모험과 배반의 전쟁 이야기를 술안주호 삼았다.
하사관들이 나가자 후곡집 아주머니가 어느새 술병을 따르며 합석해 있었다.
'군인 아저씨들이 아니시구나. 계급장도 없고 군화도 신지 않았길래 무슨 에이치아이딘가
생각도 해봤지만 나이가 영 맞지 않았고. 어디 서울에서 오셨수.'
사글사글한 눈매를 가진 아주머니는 '교수님이 멋있게 늙으셨다.' '신 사장님은 마누라밖
에 모르는 불출인가 봐.' '해준 씨는 아무리 봐도 숫총각 같애.'라는 둥 시시껄렁한 얘기로
분위기를 띄웠다.'
그러나 취기가 올라 눈이 게슴츠레한 김 교수는 했던 말을 또 하면서 군대 얘기만을 고집
했다.
'난 이래 뵈도 역정의 노장이라구. 당신들 육이오를 알아. 전쟁은 잔인한 게임이야. 자기
가 죽지 않기 위해서는 남을 죽여야 하는 거라구. 절망적이고 처절한 상황에 빠지면 합리적
이성이란 암 짝에도 쓸모 없는 거야. 세상에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을 오래 들고 있다 던지
는 시합을 하기도 했지. 사내다움을 증명하는 시합이자 도박이기도 했지. 달러를 걸고 했으
니까. 난 누구보다 수류탄을 오래 들고 있었고 돈도 많이 땄지. 그러던 어느날 결국 사고가
나고 말았지. 죽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지만.'
'그러면 뒷목의 수류탄 파편은 그때 박힌 건가요.'
해준의 기습적인 질문에 김 교수는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었다.
'엔씨엔디 정책 몰라. 공식적으로는 확인해 줄 수 없는 사실이라구.'
장교 둘이 술집으로 들어오자 아주머니는 하품을 뽑음 일어났다. 새로운 외지 이야기를
기대했던 그녀는 늘상 듣는 군대 이야기에 식상했을 것이다.
'월남은 어땠어 공까이하고 재미 많이 봤다문서.'
김 교수는 흐흐거리며 신무홍을 자극했다.
'교수님께서 수류탄 얘기를 하니 생각나네요. 제가 나트랑에 갔을 때는 베트콩의 대공세
가 시작되어 외박이고 휴가고 일체 중지되었지요. 삼 개월을 꼬박 참호에서 지내니 미치겠
더라구 외박을 보내 주지 않으면 너 주고 나 죽자는 식으로 덤벼들었죠. 그때 부대장이 화
끈해서 좋다면서 하룻밤 외박을 보내 주더라구요.'
'그게 다야. 별 싱거운 사람이군.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솔직하게 얘기해 봐.'
이제 김 교수의 말은 언어의 구조가 허물어져 횡설수설이었다.
'글쎄요. 이건 극적인 얘기라서 어떨까 모르겠네요. 아직도 제 마음에는 죄의식으로 자리
잡고 있으니까 말이죠.'
'이 순진한 친구야 죄의식이라니 전쟁 자체가 큰 죄악이고 거짓말이지. 큰 죄악일수록 모
든 걸 용서해 주고 큰 거짓말에 진실이 들어 있다네. 그렇지 않아 날 보라구. 수류탄 파편
하나가 날 평생을 먹여 살렸다구. 전쟁이 괴로워서 아니 모든게 지겨워서 그렇게 터트린 수
류탄이 말이야...'
후곡집에서 벌써 소주병을 세 병이나 깐 김 교수는 괴로운 나머지 꺽꺽거리며 마른 구역
질을 올렸다.
신무홍도 말하기가 괴로운 듯 병째 나발을 불고 난 뒤에야 떠듬떠듬 말문을 열였다.
'우리 청룡부대 옆에는 베트남의 원주민들의 전략촌이 있었지요. 이 마을엔 남편이 월맹
으로 넘어간 것으로 알려진 미모의 과부가 외팔이 딸과 함께 주막을 하면서 살고 있었고
요.'
헌데 이 과부는 부대 주위의 여느 술집과는 달리 술만 팔지 몸은 팔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
키며 장사했다. 그런 도도한 자세는 팔팔한 군인들의 호기심만 눈덩이처럼 키워 버렸다. 사
병은 물론이고 헌병대장 보안대장이 나서서 내가 한번 꺾어 보겠노라고 덤벼 보았지만 번번
이 퇴짜를 맞았다. 이 과부의 미모와 수절은 마침내 부대장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어느날 부
대장이 직접 과부를 불러 동침을 요구했으나 과부는 부대장의 요구를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덤벼드는 그의 귀를 물어뜯고 뛰쳐나와 버렸다.
부대장과 과부의 관계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게 돌고 있을 때 부대원 다섯 명에게 작전명
령이 떨어졌다. 그 과부집 모녀는 부대 주위에서 술집을 위장 경영하면서 군사기밀을 수집
해 북쪽으로 빼돌린 스파이이며 그 날 밤 자정을 기해 모녀를 체포하고 반항할 경우 사살해
도 좋다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막상 팀장인 주임상사는 과부의 술집에 도착해서 그런 명
령이 없었다며 여기까지 온 김에 도도한 년의 가랑이 맛이나 보고 가자고 했다. 군에서 억
압된 병사들의 성은 마치 농축 우라늄과 같이 강한 폭발력을 가지고 있었다. 주임상사의 제
의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신무홍도 마찬가지였다. 그 날 밤 짐승 같은
오인조는 과부집 모녀를 덮쳐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것은 광란의 축제였다. 축제가
끝난 다음날 과부는 목을 매었고 외팔이 딸은 정신이상이 되고 말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사건은 묻히지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한국 정부에 진상규명
과 처벌을 강력히 요구하며 진정서를 내었던 게지요. 그 결과 주임상사는 구속되었고 저를
비롯한 나머지 넷은 한 달간 영창생활을 한 뒤 한국으로 추방되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지
요.'
추악한 전쟁. 전쟁이 추악한 것이라면 해준도 전쟁을 치렀다. 군대 대신 감옥에 갔을망정
휴전선의 병사들보다 더 많은 전투를 치렀고 더 많은 전우와 사귀었고 더 많은 배신을 경험
했다.
김 교수와 신무홍의 총구 앞으로 뭇으로 죽어 나가던 중공군과 베트공의 이야기도 끝나
가고 있었다.
김 교수가 혀가 꼬부라진 소리로 말했다.
'여봐 말 공지 자네도 학창시절 부마사태다 광주사태다 전쟁의 맛을 조금은 보았을 것 아
냐 거기도 탱크와 장갑차가 술안주 같은 얘기가 분명히 있을 텐데.'
'죄송스럽게도 전 없습니다.'
'전쟁의 웅대한 스케일과 그 비참함을 경험하지 못한 전후 세대들의 정말 염려스러워. 온
실에서 자란 화초가 뭘 알겠나. 설사 광주에서 총을 들었다 해도 일주일 만에 끝난 게 어디
전쟁 축에나 들겠나. 우리 삼 년간을 포화 속에서 싸웠단 말이야.'
'시간의 길이나 포탄의 무게보다 얼마나 처절한 싸움이었나가 중요한 거 아녜요.'
해준은 김 교수에게 항의하고 싶었지만 김 교수는 '말 꽁지 사진작가 아니 사진가 양반
그래 가지고 내일 용늪에 가서 용을 보겠는가'라는 등 횡설수설하다 바닥에 쓰러졌다. 해준
과 신무홍은 그의 어깨를 부축하며 숙소인 신라장으로 걸어갔다. 겉 보기완 달리 김 교수도
해준 못지않은 내면의 깊은 상처를 조금은 그의 인생을 신경질적으로 만들어 왔다는 것을
인정했지 않았는가. 약간 비스듬하게 떨구어진 그의 늙은 목에는 쓸쓸한 연민이 드리워져
있었다.
6
해준의 우려와는 달리 만취한 김 교수가 가장 빨리 기상하여 몸에 좋다는 검붉은 후곡 탄
산약수를 마시고 돌아왔다. 해준과 거의 같은 시간에 일어난 신무홍은 용늪 취재가 끝나면
해안 마을의 자기 집으로 꼭 들러 줄 것을 신신당부하며 양구를 떠났다.
해준과 김 교수는 예정대로 민심처 장교의 안내로 대암산 용늪으로 향했다. 해준의 애마
는 일찍이 들어 보지 못한 늙고 비루한 신음소리를 내며 가파른 돌산령을 오르고 있었다.
용늪에 사는 용을 볼 것인가.
김 교수의 말을 믿진 않았지만 어쩌면 용늪에서 자신도 모르는 신비한 어떤 것을 목격할
지도 모른다는 설레임이 일었다.
고물 지프는 돌산령 팔부 능선쯤에서 우측으로 난 비포장도로 진입해 도솔산 허리를 돌아
대암산으로 올라가 용늪에 도착했다.
식물생태계의 보고라는 용늪은 겉으로 보기엔 용이 살만한 거대한 늪도 신비한 구석도 없
는 초라한 웅덩이였다. 다만 누런 산사초와 푸른 이끼로 뒤덮인 광활한 주변 슾지는 대규모
로 조성한 농장의 목초지를 바라보는 듯 눈맛이 시원했다.
최상수 중위는 용늪을 내려다보며 마치 통일 전망대나 안보 전적지에서 관광객들에게 브
리핑하는 어조로 말했다.
'여기 동쪽으로 세 시 방향으로 보시면 해발 1305미터인 대암산이 보입니다. 그리고 표고
1280미터의 산마루에 시원하게 펼쳐진 이곳이 바로 전국 유일의 고층 습지이자 식물생태계
의 보고인 용늪이 되겠습니다. 충북대 강상준 교수가 용늪의 퇴적층을 파서 연대를 측정한
결과 약 4천5백 년 전에 이 용늪이 만들어졌음을 밝혀 냈습니다.'
김 교수는 최중위의 설명이 틀림이 없다는 듯 고개를 주억 거렸다.
'4천5백 년 전이면 우리 국조 단군 왕검이 태백산에서 신시를 열고 홍익인간의 인념을 펼
쳤던 바로 그때야. 아마도 단군이 거느리고 온 풍백 우사 운사가 이곳에도 머물렀을 게야.
잘 살펴보게나. 그들이 나린 바람 비 구름을 흠뻑 맞고서 형성되기 시작한 이 대암산 용늪
에서 용이 한 마리쯤 산다는 건 결코 신비한 일이 아닐 터이니.'
해준은 김 교수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용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보았다.
풍수와 지리에서 산을 용이라 했다. 대암산 도솔산 대우산 가칠봉 운봉 매봉 금강산으로
이어지는 산의 흐름은 분단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거대한 용트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금
강산이 용의 머리라고 한다면 대암산 용늪은 용의 배꼽에 해당되지는 않을까.
밟으면 용의 등처럼 출렁이는 산사초 늪은 어떤가.
용늪은 수천 년 동안 쌓인 식물부식층 위를 물이끼와 산사초가 그물처럼 감싸는 구조로
되어 있다. 용늪 위를 뛰면 마치 트램폴린처럼 용늪 전체가 출렁거리며 탄력을 얻는다. 이
용은 폭우와 거센 바람에도 배를 뒤채며 출렁거린다.
어쨌든 그가 온 첫 번째 목적은 환경 잡지에 실을 사진을 찍어야 하는 것이다. 용늪의
습원지에선 희귀종으로 알려진 금강초롱 비로용담 제비동자꽃은 아직 개화철이 아닌 탓인지
눈에 띄지 않았지만.
해준은 들꽃과 들풀을 찾아 근접 촬영을 하고 산마루에 시원스레 펼쳐진 용늪의 아름다눈
풍경을 부지런히 필름에 담았다. 용늪 한가운데는 노루나 토끼가 목을 축일 수 있는 옹달샘
이 있어 한층 목가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해준이 두 롤의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녔어도 용이라고 할만 것은 꼬리조차 보이지 않았
다.
저 손바닥만한 물웅덩이 안에 용이 살 리는 없을 테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물웅덩이에서 도롱뇽 한 마리가 기어 나와 돌출된 작은 눈으로
해준을 겁 없이 바라보았다. 도롱뇽은 나와 돌출된 작은 눈으로 해준을 겁 없이 바라보았
다. 도롱뇽는 녹색의 둥근 주둥이 끝으로 혀를 내밀며 뭔가를 중얼거리는 듯하다가 그가 누
른 셔터 소리에 놀라 황급히 홀아비 바람꽃 뒤로 자취를 감추었다.
설마 저 작은 도롱뇽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도롱뇽은 작지만 서양에선 쌀라맨더라고 하여 마법사와 연금술사들이 찾아 헤매던 전설의
동물이었다. 용늪에는 도롱뇽이 제법 서식하는지 웅덩이에는 정력에 좋는 투명한 한천질의
도롱뇽 알주머니가 서너 줄 누에 띄었다.
어쩌면 용이란 게 저 작은 갈색의 도롱뇽을 가리키는지도 몰라.
자신을 처음부터 대뜸 말 꽁지라 부르는 김 교수라면 도롱뇽을 용이라고 하는 작은 익살
을 능히 부를 수 있으리라. 해준이 김 교수를 돌아봤을 때 그는 배낭에서 모종삽을 꺼내 습
원지에서 자란 진달래를 캐내고 있었다.
'이것 보라구. 습지에는 자랄 수 없는 진달래 나무가 여기로 내려와 뿌리를 내리고 있잖
아. 이건 습원지 용늪이 말라 죽어가고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라구.'
김 교수는 습지에 사는 벌레잡이 식물인 북통발과 끈끈이주거도 이젠 찾아보기 힘든 실정
이라고 개탄하며 말했다.
'반만 년 동안 가혹한 자연환경에도 용케 잘 버텨 낸 용늪이 최근 이십여 년 동안 인간의
간섭을 받아 급속도로 죽어가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야. 인근의 한 부대가 용늪 한가운데
다 트랙을 파고 스케이트장을 만들면서부터 용늪의 파괴는 시작되었지. 지금도 군부대에서
흘러드는 오수와 토사의 유입으로 늪의 원형이 점점 손상되어 가고 있고.'
군의 환경정책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김 교수의 말을 들은 최 중위는 억울하다는 듯 건
조한 브리핑 어조를 바꾸어 물기 어린 부탁조로 말했다.
'제발 군의 이미지나 사기를 실추시키는 그런 글과 사진은 게재하지 말아 주세요. 아시다
시피 요즘 우리 군도 워낙 어렵지 않습니까. 사단장님의 제일 방침은 모든 부대가 환경군대
가 될 때 전투력도 배가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군은 과거와는 달리 생태계의 보고인 용늪을
지키는데 앞장을 설 뿐만 아니라 군부대에서 나오는 오폐수나 쓰레기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음을 꼭 알려주십시오.'
해준 일행은 용늪 취재를 마치고 대암산과 도솔산을 내려왔다.
해준은 브레이크 페달에 발이 미끌리는 걸 조심하면서 김 교수에게 궁금한 점을 물었다.
'용이란 게 용늪에 서식하는 작은 도롱뇽을 말하는 게 아닙니까.'
'글쎄 자네가 나의 사진을 한 장 찍어 주면 모를까.'
김 교수는 강촌 휴게소에서 거절당한 것을 끄집어 내며 흥정을 하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해준은 그것만은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었다.
말없이 운전하는 그에게 악몽이 되살아났고 그의 회백질의 뇌리엔 낯익은 얼굴의 잠상이
맺히고 있었다.
구범학. 일명 둘리. 전학련 지하 총책. 얼굴 없는 일급 수배자. 대학과 여관 등을 은신처
로 삼아 지하에서 각종 반정부투쟁을 배후 조종함. 애인 이미은. 참고사항 검거에 수배자와
가까운 망원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사료됨.
공안기관에 붙잡힌 해준은 죽음으로 앞서간 동지들을 생각하며 물과 전기로 거듭나는 세
례의식을 통과했다. 한 달 동안 인내력의 한계를 넘는 고문과 구타에서도 웃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말대로 마조히스트여서가 아니라 동지간의 의리를 지켜 냈다는 기쁨 때문이었
다. 단순한 국사보안법과 집시법 위반으로 수사가 종결되고 구치소로 송치될 날만을 기다리
고 있던 그에게 호남형의 낯선 수사관이 파일 뭉치를 들고 왔다. 구범학 파일이었다.
애인 이미은.
해준은 서로 동지의 의식으로 몸과 마음을 허락했던 미은이 구범학의 애인일 수가 없고
지하 은신처에서 그와 함께 동거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해준은 이것이 자신의 질투심에
불을 당겨 구범학을 검거해 보겠다는 수사기관의 마지막 수사기법인 줄 알았고 그들의 석방
제의를 단호히 거부했다. 이 년간 면회 한 번 없었지만 해준은 그들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않았다. 동지로서 애인으로서 출소 후 미은을 만나 모든 것을 확인하기까지는... 그리고 둘
리는 미은과 함께 반지하 아파트에 몸부림치던 해준은 잠시 학원반의 사진채증요원으로 일
하기도 했다. 시위판에서 찍은 그의 사진이 재판에서 유죄선고의 결정적인 증거물로 채택될
때 이 년 전 고문을 받으면 기뻐했던 것과 똑같은 희열을 느꼈던 것이다.
미은은 서둘러 유산을 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갔으며 수감중 정신과적 외상으로 병보석으
로 나온 구범학은 전국의 요양소를 전전한 끝에 지금은 인천 어디에선가 아파트 경비원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7
해준 일행은 대암산 용늪에서 돌산령을 넘어 신무홍이 사는 해안 마을로 넘어갔다. 대암
산 도솔산 대우산 가칠종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가운데가 사발같이 보이는 해안 마을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김 교수는 지난번 용늪을 찾았을 때 안내 장교로부터 들은 이야기라며 자살한 어느 병사
의 얘기를 들려 주었다. 가칠봉 어느 부대에 근무하던 미대 출신의 이 병사는 시간이 있으
면 봉우리에 앉아 뭘 하느냐고 물으면 그는 마음의 캔버스에 해안 마을을 그리고 있다고 했
다. 그는 삼 년 동안 거의 매일 해안 마을을 내려다보며 보이지 않는 물감으로 내면의 풍경
화를 그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총에 맞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 병사의 호주머니에서 자필 유서가 나오지 않았으면 의문사로 처리될 수도 있었다네.
왜냐하면 그 날은 그 병사가 제대 특명을 받은 날이었거든. 유서엔 이렇게 씌어 있었다더
군. '삼 년 동안 해안 마을을 마음속에 그리고 지운 그림이 수백장이 됩니다. 그러나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을 끝내 마음의 화폭에 담아 내지 못한 나의 부족한 재능에 절망해서 먼저 갑
니다.'라고.'
해준은 돌산령을 내려가다 해안 마을의 전경이 잘 보이는 곳에 차를 세우고 마을 사진을
몇 컷 찍었다. 화가 지망생의 그 병사가 끝내 그려 내지 못한 이 마을 풍경을 사진으로나마
담아 내며 명복을 빌고 싶었다.
최 중위는 에프엠 장교였다. 그는 안내 장교로서 맡은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겠다는 듯 또
다시 정확하고 기계적인 브리핑을 했다.
'철책선 바로 밑에 있는 저 해안 마을은 반 조직으로 이루어진 전략촌으로 일명 펀치볼이
라고 합니다.'
'전략촌.'
해준은 어젯밤 신무홍으로부터 들은 베트남 원주민들의 전략촌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이
생각났다.
'왜 펀치볼이라 하는지 아십니까 저곳이 욱이오 때 유박전까지 벌인 치열한 전투지역이므
로 당연히 권투의 펀치볼을 연상하시겠지만 실은 해안분지의 모양이 화채그릇을 닮았다 해
서 펀치볼이라고 합니다. 저기 아홉시 방향으로 우뚝 솟은 아름다운 가칠봉이 보입니까. 저
가칠봉의 이름에도 유래가 있습니다. 금강신은 원래 일만 이천 봉우리에서 일곱 봉우리가
빠지는 일만 천구백구십세 봉우리였답니다. 그런데 가칠봉이 거느린 아름다운 일곱 봉우리
를 더해서 가칠해서 비로소 온전한 금강산이 되었다고 합니다.'
돌산령을 내려온 해준과 김 교수는 성황에서 오늘 하루 안내를 마치고 부대에 복귀하는
최 중위와 헤어졌다. 최 중위는 거수경례를 붙이며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기사와 사진은
기재하지 말아 주시길 다시 한번 부탁합니다'며 마지막까지 자신의 임무를 잊지 않았다.
300여 호의 해안 마을에서 신무홍의 집을 찾기란 어렵지 않았다. 그가 가르쳐 준 대로 성
항에서 현리를 지나 가칠봉 산자락인 수뢰굴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 끝 산기슭에 지어진 몇
채의 돈사와 독립가옥이 신무홍의 집이었다.
돼지우리를 고치고 있던 신무홍은 해준과 김 교수를 보자 연장을 흔들며 반가워했다.
'매일 밤 멧쇄지들이 내려와서 이렇게 부숴 놓으니 사흘이 멀다 하고 고쳐야 하지요.'
신무홍은 연장을 놓고는 김 교수와 해준을 마당의 평상으로 앉게 하고는 부엌을 향해 소
리쳤다.
'여보 빨리 나와 봐요. 내가 말하던 서울 손님들이 찾아왔다구.'
신무홍의 아내는 막걸리 주전자를 든 채 부엌문에서 딸막거리고 있었다. 겁먹은 듯한 크
고 불안한 눈동자가 찾아온 손님을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듯했다. 그녀는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동그랗게 오므린 채 인사를 한 뒤 주전자를 평상 위에 놓고 서둘러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다. 해준은 그녀의 행동이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고 어색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
다. 한참 뒤에 그녀는 돼지고기 편육 한 접시를 들고 왔다. 해준은 눈을 의심했다. 접시를
받쳐 든 그녀의 왼손이 의수가 아닌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고 느낀 것은 바로 그 의수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그 외팔이 여자가'
해준과 김 교수는 동시에 한방 먹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 보았다. 그제사 해준은 어젯밤
신무홍이 외팔이 여자의 이야기를 월남과 한국 무대만 바꿔 얘기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
무홍은 이곳 전략촌에서 그 사건을 저지른 대가로 월남에 가게 되었단 말인가.
'드십시오.'
둘에게 막걸리 잔을 권한 후 신무홍은 돼지우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돼지우리는 너무 높으면 산에 있는 멧돼지가 울타리를 못넘어와 집돼지가 교접을 못합니
다. 반면에 너무 낮으면 집돼지가 모두 산으로 도망쳐 버리지요. 무릎 높이가 적당하죠. 어
디 돼지 울타리뿐이겠습니까. 남북관계나 우리 인생살이도 그렇지 않습니까. 뭐든 극단으로
가면 꼭 문제가 발생하죠.'
막걸리를 한 잔 들이킨 김 교수는 해준을 보고 뚜벅 말했다.
'캬 가칠봉도 아름답고 이들 부부도 멋있지 않는가. 이만하면 멋진 사진이 한 장 나올 만
도 한데.'
'말 꽁지머리 자네는 아직도 용이 아닌 도롱뇽만 찍을 텐가.'
김 교수가 신무홍의 어깨를 걸었고 신무홍은 자꾸만 달아나려는 아내의 허리를 꽉 잡았
다. 문득 해준은 이들의 포연을 이겨 내고 자라난 무성한 들풀과 같다고 생각했다. 화려한
꽃은 없지만 잎새와 줄기가 그대로인 우리 나라 들풀이었다. 해준은 머뭇거릴 이유를 찾지
못했다. 목덜미에 수류탄 파편이 박혀 살짝 기운 김 교수의 목선. 도망갈세라 두 팔로 아내
의 허리를 꽉 잡고 있는 신무홍. 대인기피증이 분명한 의수를 한 그의 아내.
찰카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이 인물사진은 연령초 얼레지 처녀치마 홀아비바람꽃 도롱뇽
해안 마을 다음으로 현상될 것이다.
제목 : 빈 수레 끄는 언덕
지은이 : 김한수
보름째 계속되는 도시가스 공사로 동네의 길이란 길은 남김없이 엉망이 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해거름까지 포크레인을 동원해 닥치는 대로 아스팔트를 뜯어 내고 구덩이를 파놓
는 바람에 이건 숫제 온 동네가 먼지 구덩이에 들어 앉은 꼴이었다. 발걸음만 떼어 놓아도
먼지가 풀썩거렸고 야채 트럭이라도 한 대 지나가면 부옇게 흙먼지가 일어 앞을 볼 수가 없
었다. 뿐만인가 덤프트럭 오가는 소리며 공룡의 울부짖음 같은 포크레인의 엔진 소리가 온
종일 끊이질 않아 땅거미가 깔릴 무렵이면 골이 다 지끈거렸다. 특히 포크레인에 장착된 정
이 아스팔트를 까부술 때 타타타타... 하고 귓전을 쪼는 파열음은 고문도 그런 고문이 없었
다. 포크레인 삽날에 수도관이 파열되어 때아닌 물난리를 겪는 일도 심심치 않았다. 도로를
숫제 헤집다시피 파헤쳐 놓은 터에 수도관까지 터지고 나면 이건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더
욱이 안내 공고문 하나 없이 포크레인과 덤프트럭을 앞세워 온 동네를 들쑤시고 다니는 통
에 주민들은 내일은 또 어디를 파제끼려나 벙어리 냉가슴을 앓으며 공사가 속히 끝나기만을
바랐다.
'저러다 가스라도 터지면 여기 사람들 다 죽지.'
덤프트럭을 피해 오토바이를 몰던 나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아차 하고 입방정을 후회했지
만 이미 내뱉은 말이었다. 매일 같이 오토바이를 타고 시장을 돌아야 하는 나는 장만 보면
절로 짜증이 났다. 모래흙으로 뒤덮인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노라면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
다. 저속에서도 브레이크만 잡으면 모래흙에 바퀴가 헛도는 통에 수도관이 터져 진흙탕이
된 길을 지날 때면 마음이 다 조마조마했다. 그렇게 장을 보고 식당으로 돌아오면 흙먼지로
입 안이 까끌까끌했고 오토바이는 한 번도 세차를 안 한 것처럼 너저분했다. 그때마다 나는
오토바이에 실린 배추 등속을 거칠게 끌어 내리며 정말 무의미하게 제기랄 하고 투덜거렸
다. 오늘 내일중으로 식당 앞 큰길도 난장판이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절로 심란하다. 아
스팔트를 절단하는 기계가 어제 오후 놀이터 앞에서 식당까지 두부 썰듯이 아스팔트를 잘라
놨으니 포크레인만 등장하면 오전중에라도 식당 앞은 쑥대밭이 되고 말 터였다.
따지고 보니 공사가 시작된 그 날부터 단 한 번도 상쾌하게 식당 문을 열지 못했다. 지난
이 년간 주판알 같은 생활을 한 알 한 알 튕기기 위해 열 시 정각에 식당 문을 열어 왔다.
출근 행렬이 끝나 한산한 거리를 오토바이 뒷좌석에 아내를 태우고 질러 와 식당 앞에 닿으
면 새로운 하루를 맞는다는 설렘이 바람처럼 나를 감쌌다. 드르륵 요란한 쇳소리를 내며 재
빠르게 위로 말려 올라가는 셔터 문의 움직임도 겨울잠에서 깨어난 원시 동물의 용트림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의 신선함을 무어라 표현할까. 셔터 문이 올라가면서 식당이 훤히 드러나
는 그 순간 나는 매번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이른 아침 약수터 풀숲에 굵디굵은 오줌 줄기를
선사할 때의 상쾌함이 신선한 바람과 함께 숨구멍을 통해 가슴 깊숙이 스며드는 기분이라
니... 팔뚝의 솜털이 가지런히 일어서는 긴장감에 감았던 눈을 뜨면 고압선에 반사된 햇살
이 전신에 안겨 왔다. 먹자골목 앞 대로는 앞 다퉈 피어나는 꽃들이 봄볕과 어우러져 눈부
시다. 우리 식당과 이웃한 성당 건물 담벼락은 군락을 이루다시피 해서 피어난 개나리꽃으
로 뒤덮여 바람도 샛노랗다. 성당이 터뜨리는 벚나무에 가려 빼꼼이 지붕만 엿보인다. 나는
바람결에 무씬 묻어 나는 꽃내음에 묻혀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공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나
는 그렇게 하루를 시작했었다.
'염병할 가뜩이나 장사 안돼 죽겠는데 별놈의 공사가 다 사람 염장을 지르네.'
나는 배추 등속을 가게 안으로 들여놓으며 허공에 대고 푸념을 했다. 주방에서 장사 준비
에 여념이 없던 아내가 볼이 부운 내 모습을 곁눈질하며 피식 웃었다. 쓸데없이 예민하게
군다는 표정이다. 화풀이 삼아 배추를 발끝으로 걷어 차고 밖으로 나온 나는 주차 방지용으
로 내다 놓은 의자에 걸터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맞은편 보신탕집 여주인이 장바구니를 들고 나오다가 엉거주춤 아는 척을 했다. 우둥푸둥
한 몸에 남루한 옷을 걸친 그이는 오랜 세월 시집 식구들과 남편 등살에 애면글면 속을 끓
여 온 탓에 사십대 초반인 실제 나이보다 오륙 년은 족히 더 들어 보인다. 나는 어색함을
애써 감추고 인사를 했다. 계면쩍은 미소가 보배네의 입가에 어렸다. 이웃이 알도록 부부싸
움을 했다는 쑥스러움이 홍조처럼 묻어 있는 그이의 얼굴을 보며 나는 죄라도 지은 사람처
럼 뒤꼭지가 켕겼다. 내가 무심코 베푼 친절이 빌미가 되어 벌어진 부부싸움이었다.
어제 오전 오토바이를 몰고 시장에 갔던 나는 때마침 장을 보고 돌아가는 보배네를 만났
다. 그이의 양손엔 검정 비닐 꾸러미가 바리바리 들려 있었다. 나는 그 많은 짐을 들고 십
분남짓 걸리는 식당까지 걸어갈 보배네가 안쓰러워 오토바이 뒷좌석을 내주었다. 극구 사양
하는 그이의 태도를 부끄러움으로만 이해한 나는 반 어거지로 잡아 끌어 오토바이에 태웠
다. 이웃해서 장사를 하는 사람끼리 가는 길목에 태워 준다고 남우세스러울 까닭이 없었다.
그러나 식당 앞에 나와 있던 보배네 시어머니는 오토바이에서 내리는 그이를 보고 두 눈을
흡떴다. 팔순을 앞둔 노인네의 할기족거리는 눈길이 여간만 표독스럽지 않았다. 보배네는
금방이라도 네 이년 하고 머리채를 나꿔챌 기세로 씩씩거리는 시어머니 앞에서 고개를 떨군
채 안절부절 못했다. 예기치 못한 광경에 아차 후회를 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아
니나 다를까 보배네는 저녁에 퇴근해 돌아온 남편에게 호되게 치도곤을 당했다. 늙은이가
고자질을 하기가 무섭게 보배네의 남편은 화냥년이 아니고서야 어디 남의 남자 오토바이에
넙죽넙죽 올라타냐는 요지의 장광설을 한시간은 좋이 늘어놓으며 두 눈이 벌개졌다. 그런
아들 곁에서 그악스러운 늙은이는 종주먹으로 가슴을 쳐가며 미친년 썩을년 화냥년 별의별
년을 다 찾아가며 씨근벌떡거렸다. 속절없이 화냥년이 되어 버린 보배네는 변명 한마디 못
해보고 식당 주방 구석에 숨어 눈물만 질금거렸다. 덩달아 이상한 놈이 되어 버린 나는 하
도 어처구니가 없어 접시물에 코라도 박고 싶게 억울하고 분했지만 앞으로 썩 나서지 못했
다. 내가 좀더 신중했더라면 모든 사태를 예견할 수도 있었다. 여자란 기회만 닿으면 언제
고 바람을 피우게 마련이라는 사고에 젖어 있는 보배 아빠 생각을 조금만 했어도 보배네를
오토바이에 태우는 미련한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괜찮으세요.'
미안한 마음에 인사 삼아 물으니 보배네는
'고만 일에 뭘요. 이젠 이력이 붙어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나저나 삼촌 미안해요 우리 집
양반이 워낙에 그런 사람이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마음에 담아 두지 말아요.'
하고 되려 나를 위로했다.
'그나저나 노래 연습은 잘 되세요.'
'그냥저냥요.'
어색함에서 벗어나 볼 요량으로 말을 돌리니 보배네는 수줍은 듯 말꼬리를 얼버무리며 시
장을 향햐 발걸음을 옮겼다.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인내심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나는 멀어져 가는 보배네의 뒷모습
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고 보신탕집 화단으로 눈길을 돌렸다. 행운목이며 동백 같은 화초
들이 튼실하게 뿌리를 내린 여남은 개의 큼직한 화분 앞에는 수십종의 난초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보배네는 하루에도 몇번씩 화단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화초들의 잎을
뽀닥뽀닥 닦아 주며 마치 벗에게 말을 건넨 듯 대화를 나누는데 내눈에는 어쩐지 그 모습이
처연해 보였다. 보배네의 가슴 가장 깊은 곳에 묻혀 있는 얘기를 들은 것은 애오라지 화초
들뿐일 것이다. 간혹 가다 보배네가 간판집 여자나 아내를 붙들고 앉아 이런저런 하소연을
할 때가 없진 않다. 그러나 그건 동네 아낙 서넛이 모이면 으레 쏟아지게 마련인 가벼운 신
세 한탄에 지나지 않았다. 어지간하면 남편에게 한번 대들 법도 한데 나로서는 그이의 고함
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다. 끝끝내 참기만 하는 사람 벅차게 참다가 식당 주방에 홀로 쪼그
려 앉아 우는 사람 울다가 일어나 화초에 물을 주고 숨죽여 말을 하는 사람 울다가 일어나
화초에 물을 주고 숨죽여 말을 하는 사람 나는 보배네의 삶이 존경스럽기보다는 안쓰럽고
가여웠다. 차라리 간판집 여자처럼 감정이 북받칠 때마다 목청 높여 한바탕 해댄다면 기약
없이 흘러가는 일상을 견디기가 쉬울터인데 보배네는 그제처럼 어제를 어제처럼 오늘을 깊
은 숨을 들이쉬며 흘려 보낼 따름이다.
그랬던 보배네의 태도가 변한 것은 요 며칠 사이의 일이다. 이십여 일 뒤에 있을 장기자
랑에 참가하기로 마음을 굳힌 그이는 손님이 없는 오후 시간이면 앗싸 노래방에서 숫제 살
다시피 했다. 두어 시간은 좋이 노래방에서 악을 쓰고 밖으로 나오는 보배네의 모습은 연애
라도 하는 사람처럼 얼굴이 환했다. 늘상 그늘진 얼굴로 식당과 시장 사이만 오가던 보배네
는 벚꽃축제에서 열리는 장기자랑대회 소식을 접하고부터 회춘하는 사람처럼 생기를 되찾았
다.
한화 에너지 사내에서 매년 열리는 벚꽃축제는 인근 주민들을 위한 행사로 그 규모가 자
못 컸다. 연예인과 사수들이 무대를 꾸미고 음식과 술이 무료로 제공되며 한쪽에서는 아마
추어 사진작가들의 사진전도 열린다. 동네 주민이라면 누구라도 행사에 참가해서 먹고 마시
고 놀 수 있었다. 늘 그렇듯이 벚꽃축제의 매미는 장기자랑이었다. 사원 가족들은 말할 것
도 없고 동네 주민들 가운데서도 넘쳐 나는 끼를 주체 못해 옥수수만 봐도 마이크로 착각하
는 이들이 허다했다. 수상자에게 주어지는 상품도 제법 푸짐해서 장기자랑은 매번 참가 인
원도 많고 참가자들간의 경합도 뜨거웠다.
보배네가 장기자랑에 참가한다는 소식은 그이의 가족들은 물론이고 주변 상인들에게도 하
나의 사건이었다. 보배네가 가족들이 몯 모인 자리에서 장기자랑에 참가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식구들이 보인 반응은 한마디로 웃긴다는 표정이었다. 보배네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남편은
'병신 육갑 떨고 자빠졌네. 쓰잘 데 없는 짓거리 말고 집구석에 붙어 있어.'
꼴같잖다는 투로 일축을 해버렸고 반 건달이나 다름없는 두 시동생은 멀쩡한 사람을 망령
난 사람 취급해 가며 형이 걱정스럽다는 낯빛이었다. 수원에 살면서도 일주일이 멀다 하고
빨간색 프라이드로 친정 문턱을 뻔질나게 넘나들며 살림을 축내는 시누이는
'아유 언니. 여자가 그런데 나가 뭣하우 요즘 여자들 공연히 허파에 바람 들어가지구 여
기 기웃 저기 기웃 해가며 얼굴 팔고 다니는데 그러다 보면 바람나기 십상이우. 본인은 아
니라고 우길지 모르지만 사람 잘못되는 거 한순간 아니겠어요 요즘 애들 큰일이다 큰일이다
하지만 정작 더 큰 문제는 정신 못 차리는 어른들한테 있다구요. 그러니 언니도 장사나 신
경쓰세요. 요즘 식당에 통 손님도 없던데 언니는 그래 걱정도 안되우 엄한데 정신 팔게.'
하고 숫제 대놓고 이죽거렸다.
그러나 보배네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침묵했다. 모두가 합세하여 그이를 윽박지르고 구슬
리고 꾀송거려도 보았으나 보배네는 돌부처 모양으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보배 아빠는 당
장이라도 주먹으로 치켜들어 몇 귀퉁이 쥐어박을 태세였지만 차마 손지검은 하지 못했다.
그는 아내에게 손찌검을 했을 경우 그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었다. 버릇을 가르치다고 손찌
검을 했다가 아내가 보따리라도 사서 도망가 버리면 그야말로 큰일이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몇 날 며칠 화풀이 삼아 술만 마셔 댄 그는 별수없이 아내가 장기자랑에
나가는 것을 묵인하고 말아따. 어삐 보면 보배 아빠가 오토바이 건을 붙들고 보배네를 심하
게 닦아 세운 것도 일종의 분풀이였는지 모른다.
보배네의 가족들과 달리 주변 상인들은 그이가 장기자랑에 나간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진심으로 격려를 해주었다. 특히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누구보다도 보배네를 딱히 여겨 온
간판집 여자는 보배네가 노래방에 갈 때마다 커피에 음료수에 날계란에 이런 저런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노래방 주인 여자는 아무 때고 찾아와서 노래 연습을 하라며 땡전 한푼 받지
않았다. 걸핏하면 손님들에게 바가지를 씌워 욕설과 삿대질이 끊일 날 없는 썬호프 마담까
지도 장기자랑에 나갈 때 목에 두르라며 실크 스카프를 선물했고 가족 중 유일하게 엄마 편
인 외동달 보배는 루주를 선물했다. 직접 선물은 하지 않았더라도 주변 상가 여자들은 내남
없이 성원을 보내며 응원단이라도 조직할 태세였다.
'야아 보신탕집 아줌마 인기 좋네.'
경사라도 난 듯 호들갑을 떠는 상가 여자들 기세에 놀란 내가 한마디하자 깍두기을 담던 아
내가 잠시 일손을 놓으며
'남자들은 저렇게 눈치가 없다니까. 우리 상가 여자들 중에서 제일 불쌍한 이가 보신탕집
아줌마하고 노래방 아줌마잖아요. 사는 재미가 뭔지도 모르고 맨날 죽도록 일만 하던 이가
장기자랑에 나간다니 같은 여자 입장에서 신이 난 거라구요. 그래 너도 인제 재미나게 좀
살아 봐라 하고. 보신탕집 식구들만 보면 정말 얄미워 죽겠어. 이건 완전히 이조시대라니
까.'
하고 제 일이라도 되는 양 흥분을 해서 큰소리를 냈다.
보배네가 시장을 향해 멀어져 간 허공에 멍하니 시선을 풀어 놓고 있는데 요란한 기계음
이 들려 눈길을 늘이니 골목 입구에 대형 포크레인이 들어서고 있었다. 예견했던 일인데도
와락 짜증이 치민다. 가뜩이나 손님이 줄어 똥줄이 타는 판국에 도시가스 공사라니 식당 문
을 닫아 버리고만 싶다. 그나저나 어째 이리 손님이 줄었을까 머리를 공 굴리는데 눈길이
저절로 도로 맞은편 큼직한 단층 건물로 향한다. 며칠 전에 개업한 이백 석 규모의 고깃집
이다. 백여 대가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만으로도 고만고만한 주변상가들을 압도한다. 평양
가든은 개업날부터 개미떼처럼 몰려드는 손님들로 점심부터 밤까지 주방장 담배 한 대 필
짬이 없다. 동네 사람들이 전부 그리로만 몰려가는 모양이다. 두어 달 전에는 옆 상가에 번
듯한 횟집이 문을 열어 손님을 뺏어가더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형 고깃집이라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무슨 수를 내던가 해야지 이거야 원 굶어 죽기 딱 좋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두르며 피우던 담배꽁초를 손가락으로 휙 튕겨 버렸다.
'아따 잘 묵었다. 김치가 맛난 게 뭘 묵어도 꿀맛이구만.'
참으로 내온 라면을 게눈 감추듯 먹어 치운 인부들을 담배 한 대씩을 척 꺼내 물고 자리
를 떴다. 그들이 앉았던 자리에는 흙먼지가 때글때글하다. 걸레질을 하고 나니 문 밖에서
공사를 재개한 소음이 요란스레 울려 왔다. 포크레인이 아스팔트를 까부술 때마다 바닥을
통해 진동이 느껴진다. 그러나 오전처럼 못마땅하지는 않았다. 되레 고마울 따름이다. 나흘
간 하루 세끼를 우리 식당에서 해결한다니 여간 큰 부조가 아니다. 언뜻 보니 설거지를 하
는 아내의 표정이 모처럼 밝다.
인부들이 어지르고 간 상을 걷는데 건장한 청년 둘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 하나는 팔뚝이
문신 천지였고 다른 하나는 왼쪽 뺨에 칼자국이 길게 파였다. 그들은 거칠게 자리를 잡으며
술을 청했다. 주문대로 소주와 두부김치를 갖다 주자 얼굴에 칼자국 난 청년이 부탁이 있다
면서 내팔을 잡았다.
'아저씨 요 앞 길 건너 길다방 있죠 그리루 전화 좀 걸어서 큰 미스 김더러 쌍화차 두 잔
만 갖다 달라고 해주시겠소.'
나는 별 웃기는 자장이 다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색 않고 시키는 대로 해주었다. 술
장사 이 년 만에 별 사람을 다 겪었지만 술집에 와서 차를 시키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전화
를 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예쁘장한 레지가 차를 배달해 왔다. 이십대 중반이 넘어 보이는
레지는 칼자국 난 청년을 보자 낯색이 변했다.
'쌍년아 빨리 와서 앉지 않고 뭐 해.'
말없이 연거푸 술잔을 비워 대던 청년이 난처한 듯 머뭇거리는 레지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레지는 마지못한 듯 엉거주춤 다가가서 여차하면 달아날 품으로 빈 의자에 엉덩이
를 반만 걸치고 앉았다. 칼자국 난 청년은 차를 따르려는 레지를 제지하며 술잔을 건넸다.
레지가 주저하자 청년은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것처럼 눈알을 부라렸다. 잔이 차기도 전에
술이 떨어지자 청년은 식당 안이 쩌렁쩌렁 울리게 큰소리로
'아저씨 여기 소주 하나 하고 글라스 좀 갖다 주쇼.'
하고 주문을 했다.
술과 맥주잔을 갖다 주자 문신을 한 청년이 내게 이해하란 눈짓을 했다. 칼자국 난 청년
은 레지의 잔을 마저 채운 뒤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채워 단숨에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그리곤 또다시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따랐다. 그는 게슴츠레하게 풀린 눈길로 긴장을 풀지
못하고 눈치를 살피는 레지를 한동안 쏘아보다가 말문을 열었다.
'야 너 내가 정말로 싫냐 도대체 내 어디가 어떻게 싫냐. 시원하게 말 좀 해봐.'
'오빠 이러지 마. 이미 끝난 애기잖아.'
'뭘 끝나. 좆 같은 년아. 너 인간 박광수의 순정을 그렇게 몰라주냐 엉 인간 박광수의 순
정을 모르냐구 이씹팔년아. 순정 말이야 순정.'
칼자국 난 청년은 고함과 함께 맥주잔을 든 손으로 탁자를 힘껏 내리쳤다. 그 바람에 맥
주잔은 박살이 났고 청년의 손바닥에선 선지 같은 피가 콸콸 솟구쳤다. 문신을 한 청년이
친구의 손바닥에 박힌 큼직한 유리 파편들을 뽑아 내며 피를 닦아주려 하자 칼자국 난 청년
은 세차게 뿌리치며
'놔 필요 없어. 시팔 순정도 몰라주는 세상... 살아도 살아 있는 게 아니다.'
주절거리며 울먹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문신을 한 청년은 두루마리 휴지를 한 뭉치 떼어
내서 피가 철철 흘러내리는 친구의 손바닥에 대고 지압을 했다. 그 틈에 헤지는 도망을 갔
다. 눈시울이 붉어진 청년은 레지가 사라진 것도 모른 채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횡설수설
늘어놓다가 그만 탁자에 이마를 박고 잠이 들었다. 문신을 한 청년은 죄송하다는 사과와 함
께 술값을 치른 뒤 친구를 들쳐 없었다. 등뒤에 숨어서 벌벌 떨던 아내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청년들이 술을 마셨던 자리는 칼부림이라도 났던 것처럼 살풍경했다. 탁자 위는 깨진 유
리 조각들이 엎어진 반찬 그릇들과 뒤섞여 난장판인 데다가 한쪽에는 피가 흥건했다. 피를
닦아 낸 휴지 뭉치는 탁자고 바닥이고 할 것 없이 흉물스럽게 널렸고 탁자 모서리에서는 아
직도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다른 손님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아휴 아직도 간이 떨리네.'
난장판이 벌어졌던 흔적을 말끔히 치우고 난 아내는 담배를 태우는 내 곁에서 가슴을 쓸
어 내렸다. 그러나 나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순정을 아느냐고 고함치던 청년의 얼굴이 자
꾸만 눈에 밟혔다. 순정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 보는 말이다. 사색이 된 아내와 달리 나는
애틋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까마득히 잊었던 추억이 손 안에서 생생하게 뛰노는 느낌에 나
는 손바닥을 펴서 찬찬히 들여다보기까지 했다. 막연한 그리움이 안개처럼 밀려와 가슴을
아늑하게 감싸는 느낌이었다.
그때 식당 밖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좀 전의 청년들인가 싶어 나가보니 노래방
막내아들이 제 엄마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스무 살을 갓 넘긴 그 애는 무슨 일인지 두
눈이 벌개지도록 흥분을 해서 길길이 날뛰며 죽여 버리겠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다.
씨름선수처럼 덩치가 좋은 그의 형은 노래방 입구에 서서 동생이 날뛰는 모양을 묵묵히 지
켜 보기만 했다.
'엄마 이거 놔요. 더 이상 어떻게 참으란 말예요.'
'이 녀석아 제발 그만 좀 해라. 니 아버지잖니.'
'씨팔 그딴 게 아버지는 무슨 얼어 죽을 놈의 아버지예요. 나도 그 동안 참을 만끔 참았
다구요. 엄마도 잘 알잖아요. 그렇게 참았는데 이게 뭐냐구요.'
노래방 막내아들은 웅성거리며 몰려든 상가 사람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왜장을 치다가 가
게 앞에 세워 둔 빨간색 스포츠카의 앞 유리를 돌멩이로 부숴 버렸다. 그가 애지중지하며
몰고 다니던 차였다. 그러자 이제껏 뒤에서 구경만 하고 있던 큰 아들이 앞으로 나서며 동
생의 뺨을 오려붙였다.
'이제 그만 해라.'
뺨을 얻어맞은 막내는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제 형의 얼굴을 뚫어져라 쏘아봤다. 큰아
들도 동생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한동안 눈싸움을 하던 막내는 그만 풀이 죽어서 노래방
안으로 들어갔다. 큰아들이 한쪽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어머니를 부축해 노래방 안으로 사
라지자 우 몰려들었던 구경꾼들도 모래알 처럼 흩어졌다. 그러나 평소 노래방 여자와 친하
게 지냈던 보배네를 비롯한 몇몇 상인들은 상가 사람들의 어지간한 속사정쯤 좌를 꿰고 있
는 간판집으로 몰려갔고 아내도 그들의 뒤를 따랐다. 나는 식당에서 아내를 기다리며 궁금
증을 삭였다.
무슨 일인지 모르나 노래방 막내아들이 그토록 난리친 걸보면 조만간에 큰 사단이 날 것
만 갚았다. 노래방 막내아들의 성격으로 봐서 이대로 조용히 넘어갈 리는 없다. 녀석이 비
록 몸피는 작아도 또래들을 몰고 다니며 동네를 휘저을 때 보면 여간 암팡지지 않았다. 폭
주족을 하다가 큰 사고를 내고 퇴학을 당한 녀석이 그나마 마음을 잡고 조용히 지내는 것도
따지고 보면 마음 맞는 처녀와 살림을 차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아버지에게 질려
집을 나갔던 엄마가 돌아온 영향이 컸다.
'어쩜 인간이 그럴까. 이건 숫제 말종이라니까.'
간판집에서 돌아온 아내는 기가 막히다는 듯 혀부터 찼다.
'왜 그래 무슨 일이래.'
'아 글쎄 어젯밤에 작은며느리가 짐을 싸서 집을 나갔대요. 시아버지라는 작자가 손찌검
을 해댔으니 바보 멍청이가 아니구서야 누가 참고 있겠어요. 하긴 나이도 어린애가 참기도
많이 참았지. 열아홉이면 한참 꿈 많을 땐데. 그 참하고 엄전한 애가 오죽했으면 집을 나갔
겠어요. 시아버지라는 작자가 허구한 날 쌍년아 개 같은 년아 온갖 욕설을 퍼부어 가며 지
랄을 해대니 그 구박을 무슨 재주로 견뎌요.'
'왜 때렸대.'
'어제 노래방 아줌마가 작정을 하고서 남편에게 대들었나봐요. 왜 큰길 모퉁이에 있는 호
프집 마담 있잖아요. 그 여자방에 글쎄 에어컨을 들여놨다지 뭐예요. 노래방에서 식구들이
밥 한끼만 시켜 먹어도 개쌍년들이 셋씩이나 있으면서 밥을 사먹는다고 생난리를 치던 위인
이 새 여자 치마폭에 싸여 보석에 옷에 에어컨까지 사줬으니 노래방 아줌마가 천불이 난거
죠. 그래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는데 작은며느리가 끼어들어 말리는 것을 그 화상이 머리채
를 휘어잡고 직사하게 뺨을 때린 모양이에요. 그러니 가뜩이나 물불 가릴 줄 모르는 그 집
애가 가만히 있겠어요. 그 화상 정신 못차리고 활개치고 다니더니 조만간 처자식한테 험한
꼴 좀 당할 걸요.'
아내는 제 일이라도 되는 양 흥분해서 씩씩거려 가며 말을 옮겼다.
'사람 참 어째 동네 여자들을 껄떡거리나. 바람을 피울려면 좀 멀리 가서 소리 소문 없이
피울 일이지. 광고하는 것도 아니고 벌건 대낮에 여자들을 끌고 돌아다니다니 자식 보기 부
끄럽지도 않나. 그건 그렇고 여보 우리 곗돈 탈 때 되지 않았어.'
'곗돈 무에 쓰게요.'
'봄도 되고 했으니 실내장식을 좀 바꿔 보면 어떨까 해서.'
'다들 죽어라 죽어라 하는 판에 그런다고 매상이 오르겠어요. 그리고 이번 달은 앞집 보
배 엄마 차례에요. 우린 다음 달이구요.'
'사정 얘기하고 우리가 먼저 당겨 쓰면 안 될까.'
'어림없는 소리 말아요. 그 아줌마 곗돈 타서 가겟세 내야돼요. 월세를 일년 치나 못 내
서 길거리로 쫓겨날 판이라구요.'
'그래 아니 뭐 한다고 십만 원도 안 되는 세를 일년 치나 밀렸대.'
'그 집 아저씨가 돈을 벌어야 말이죠. 빈둥빈둥 놀기만 하다가 이거 해본다 저거 해본다
하면서 까먹은 돈이 과장 좀 해서 집 몇 채는 될 걸요. 거기다가 시동생들하고 시누가 밤낮
없이 뜯어 가잖아요. 아줌마가 돈 좀 모아 놨다 싶으면 그 집 할머니가 귀신같이 알아내 가
지고는 자식들한테 쪼르르 일러 바치잖아요. 너희 형수 돈 생겼다고. 눈치 채면 또 뺏긴다
고 이번 계도 식구들 모르게 하느라 얼마나 조바심을 치던지. 노인네가 망령난 것도 아니고
왜 그렇게 미운 짓만 골라 하는지 몰라요. 그런 거 보면 보배 아줌마도 어지간히 무던해.
아마 그 아줌마 아니면 그 집 식구들 꼼짝없이 길거리로 나앉을 거야.'
'가만 보면 간판집 식구들이 문제없이 잘살어 그치 한 달에 이백만 원씩 꼬박꼬박 저축하
겠다 여기저기 돈놀이해서 이자 받겠다. 노후 준비도 다 해놨겠다. 참 근심 걱정 없는 사람
들 같아. 고민이라면 얘들 공부 못하는 거밖에 더 있어 그런데 그것도 두 양반이 걱정을 해
야 말이지. 니들 팔자 니들이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그냥 냅두잖아. 큰애가 겨우겨우 턱걸
이 해서 전문대 야간을 들어갔어도 어디 눈썹 하나 까딱하기를 해 그냥 성실하게 일해서 버
는 족족 갖다 바치잖아.'
'당신두 참. 세상에 문제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몰라서 그렇지 간판집 아줌마도 속이
푹푹 썩네요. 그 아줌마 친정 얘기만 나오면 애간장이 녹아서 눈시울이 다 벌개지잖아요.
사람살이가 제각각 달라 보여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오십 보 백보라구요.'
아내는 제법 철학자다운 말을 한 뒤 잔설거지를 끝내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내린 비는 오후 들어서도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늘이 좀 번해 오는
가 싶어 내다보면 지짐거리던 빗줄기가 어느 결에 등을 돌려 허연 아가리를 쫙 벌리고 되달
려 왔다. 차들이 미어 터진 도로와 달리 빗속에 잠긴 거리는 한산했다. 봄비를 맞노라면 낮
술 생각들도 날 법한데 점심을 먹으러 오는 손님조차 없다. 아내와 나는 식당 문을 활쫙 열
어 놓고 빗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마셨다. 어차피 오늘 하루 공쳤다 생각하고 마음을 편히
먹으니 아무런 근심도 없다. 커피를 홀짝거려 가며 빗소리를 듣노라니 우산도 없이 빗속을
거닐고 싶은 욕망에 마음이 달떠오른다. 아내는 커피를 마시다 말고 오디오의 판을 바꿔 끼
웠다. 대금산조의 애잔한 가락이 빗소리와 어울려 식당 안을 가득 메운다. 문득 이대로 시
간이 멎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이따금씩 우산을 받쳐 든 행인이 한 껏 볼
륨을 높여 놓은 대금 연주 소리에 식당 안을 기웃거리며 지나간다. 나는 냉장고에서 맥주
두 병을 꺼내 와 아내와 잔을 기울였다. 술로 입술을 축이며 나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길이
이윽하다. 연애하던 시절 비에 잠긴 거리가 환히 내다보이는 카페 창가에 앉아 칵테일을 마
시던 생각이 난다. 어스름한 빗길을 달려 모텔로 뛰어들어가던 기억도 새롭다. 알몸으로 나
란히 누워 빗소리를 듣다가 손을 마주잡으며 미소 지었을 때의 따스함까지도 생생하게 떠오
른다. 나는 맥주잔을 내려놓고 아내의 손을 끌어당겨 잡았다. 잡은 손에 힘을 주자 아내의
귓불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수줍어하는 아내의 모습이 허공을 긋는 빗낱처럼 마음에 담긴
다.
'아쭈 그림 좋은데.'
인기척에 놀라 돌아보니 간판집 한 사장이다. 횅한 앞머리를 가리기 위해 눌러 쓴 빵모자
와 똑같이 동그란 얼굴이 어글서글하니 선량하기만 하다. 그는 허둥대는 우리 부부를 향해
'비오는 날 아내와 마주앉아 음악을 들어 가며 맥주 한잔이라. 카아 좋다.'
하고 빙글거려 가며 놀려 먹었다.
'정 부러우면 형님두 해보시지 그래요. 근데 형수님이 받아줄까 몰라.'
나는 짐짓 토라진 척 고개를 외로 꼬고 응수를 했다. 악의 없이 툭 던진 농담이건만 한 사
장은 어깨가지 내려오는 파마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난감해 한다. 박장대소를 해가며 재미있
어하는 주변 상인들과 달리 그는 시간이 지나도 그 일이 영 껄끄러운 모양이다.
한 사장이 모처럼 놀러 온 친형과 호프집에 갔다가 낯 모르는 여자들과 합석을 한 건 보
름 전의 일이다. 합석을 하자며 다가온 여자들을 웬 떡이냐 싶게 반기며 옆자리에 앉혀 놓
고 실떡거린 친형과 달리 숫기 없는 한 사장은 간간이 미소를 지어 가며 술잔만 비워 냈다.
급한 간판 제작 주문을 받은 간판댁이 호프집으로 찾아가지만 않았더라도 평소 한 사장의
성품으로 미루어 그 날 술자리는 별 얘깃거리도 없이 끝났을 터였다. 그러나 간판댁이 호프
집에 나타나면서 한 사장 형제는 졸지에 현장에서 덜미를 잡힌 바람둥이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제아무리 매사에 시원시원하고 통이 크기로 소문난 여자라지만 남편이 다른 여자들
과 어울리는 꼴을 그대로 보아 넘길 리 만무했다. 그이는 당장 그 이튿날부터 한 사장을 굶
겼고 가게에도 나오지 않았다. 사무실을 지키고 앉아서 주문을 받고 상담을 하고 장부 정리
까지 도맡아 해주던 마나님이 가게에 코빼기도 내비치지를 않자 애가 단 한 사장이 사실대
로 해명을 하고 두 손을 싹싹 비벼 가며 용서를 구했지만 간판댁은 아랫목에 이마를 싸매고
누워 숫제 일어날 생각을 안 했다. 간판댁의 마음을 돌려 놓은 것은 올해 고등학교 이 학년
인 딸이었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고 동네방네 떠들어 댈 수도 없어 벙어리 냉가슴 앓듯
속을 끓이던 간판댁은 꿩 대신 닭이라고 딸을 붙들고 앉혀 놓고 네 아빠가 이러저러했으니
어쩌면 좋겠냐고 하소연을 했는데 그 애의 반응이 너무도 뜻밖이었다. 엄마의 하소연을 잠
자코 듣고 있던 딸은 대뜸 '어머 그 얼굴에.' 하고 한마디하더니 깔깔대고 한참을 웃더라는
것이다. 어이없는 딸의 반응에 기가 막힌 간판댁은 한동안 넋 빼고 딸의 얼굴을 빤히 들여
다보다가 그만 웃어넘기고 말았다.
그쯤해서 화를 푼 간판댁과 달리 한 사장은 상가 사람들로부터 '그 얼굴'운운하는 인사깨
나 받아야 했다. 그러나 재미있어하는 상가 사람들과 달리 예술가로 자처하며 살아 온 한
사장는 딸에게 꽤나 서운한 눈치였다. 딴에는 에술가다운 풍모를 갖추려고 외모에 각별히
신경을 써온 한 사장이었다. 아마추어 사진 공모전에서 여러 번 입상한 경력이 있는 한 사
장은 술자리에서 누가 빈말이라도 '한 작가 '소리만 하면 그 날 술값을 자처해서 뒤집어쓸
정도로 기분을 냈다. 빵모자야 벗어진 앞이마를 가리기 위해서 썼다고 쳐도 파마를 해서 기
른 뒷머리며 담배를 태울 때마다 자랑 삼아 꺼내 드는 물부리 파이프도 에술가처럼 보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런 한 사장을 향해 딸이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 어머 그 얼굴
에.'하고 기막힐 소리를 해댔으니 뒷간 쥐한테 똥구녕을 물렸을 때보다도 곱절 억울한 노릇
이었다. 간판댁 말에 의하면 한 사장은 술만 취했다 하면 딸애 방으로 건너가서 내가 정말
그렇게 못생겻냐 어디가 어떻게 못생겼냐 하고 꼬치꼬치 캐묻는다니 허허 웃어넘기는 외에
달리 도리가 없다.
'사람두 참 그 애긴 왜 또 꺼내고 그래.'
'농담이에요 농담. 건 그렇구 그래 사다리는 찾으셨어요.'
'그렇잖아도 애들 엄마가 좀 전에 이발소 황가네 집으로 쳐들어갔네.'
한사장은 일이 다 해결된 거나 마찬가지라는 듯 여유를 부렸다. 하긴 간판댁이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섰으니 마음을 놓아도 좋았다. 남에게 싫은 소리 하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한 사
장은 누가 돈을 안 주려고 버팅기거나 하는 따위의 처치 곤한한 일이 생길 때마다 아내에게
떠넘겼고 간판댁은 그때마다 한 걸음에 달려가서 아무리 곤란한 일도 시원시원하게 마무리
지어 놓았다. 이발소 주인이 제아무리 우기고 발뺌을 해봐야 어지간한 사내 서넛쯤 얼르고
뺨치는 간판댁 손에 걸린 이상 뼈도 못 추릴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쳐들어갔다는 말 나오
기가 무섭게 한 사장을 찾는 목소리가 들리기에 내다보니 간판댁이 비를 맞아 가며 장정 둘
이 들기에도 무거운 사다리를 악착같이 끌고 오고 있었다.
'그래 이 독사 같은 여편네야 어디 신고해라. 신고해. 누가 눈 하나 깜빡할 줄 알고 어림
도 없다. 어림도 없어.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 당할 사람으로 보이냐.'
삼단으로 접히는 알루미늄 사다리를 끌고 오는 간판댁 뒤에서 우산을 받쳐 쓴 이발소 주
인 씩씩대며 소리를 질러 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간판댁은 코방귀도 뀌지 않았다. 남편에게
사다리를 넘겨 준 간판댁은 수건으로 머리를 닦아 내며
'추잡한 새끼 세상에 그래 할 짓이 없어 이웃들 살림을 훔쳐다 창고에 쌓아 둬. 백날 그
래 살아 봐라 빌어먹기밖에 더 하나. 벌건 대낮에 술 처먹고 길거리에 드러누워 잘 때부터
알아봤지만 아이구 인간아 왜 사니 왜 살아. 부아 나는데 콱 신고나 해버릴까 보다.'
하고 이발소 주인이 곁에 있기라도 한 듯 또깡또깡 게목을 질러 댔다.
'그 집 창고에 다른 집 물건들도 있어요.'
수건을 받아 들며 아내가 물으니 간판댁은 휘휘 손을 내저어 가며
'말도 마. 수도 없어. 동네 사람들 도둑 맞은 살림살이 절반은 거기 있을걸. 그것도 값나
가고 큰 거면 몰라. 이건 위인이 쫌생이라 훔친 물건이라곤 빗자루 세숫대야 고무 다라이
뭐 그런 거 일색이고 비싸 봐야 자전거 따위가 고작이야. 웃기지도 않아. 이 위인이 저 사
다리는 자기가 사다 놓은 거라며 박박 우기다가 신고한다는 소리 하기가 무섭게 찍소리 못
하는 거 있지. 그래도 막상 내가 사다리를 끌고 나오니까 훔쳐 놓고도 아까운 생각이 드는
지 찐드기처럼 쫓아나오면서 아까 그 염병을 떨더라구. 두고 봐 내가 신고한다고 겁을 줘놨
으니 저 인간 한 며칠은 잠도 못 잘걸.'
하고 걱실거렸다.
'그나저나 슬슬 모일 시간 됐지요. 빨리 상 차려야겠다.'
아내가 계원들 모일 시간을 가늠하며 서두르자 간판댁도 비에 젖은 옷을 갈아입어야겠다
며 종종걸음으로 식당을 빠져나갔다. 계원이라고 해봐야 늘상 얼굴 맞대고 사는 상인들이지
만 아내는 계 모임이 있을 때마다 잔칫상 보듯 음식 준비를 했다. 아내를 도와 상을 차리고
있는데 계원들이 하나 둘 문을 밀고 들어왔다. 간판집 내외의 뒤를 이어 노래방 주인 아줌
마와 중국집 주인여자가 차례로 이어 보배네는 가장 늦게 나타났다. 보배네는 행여라도 시
어머니 눈에 띌세라 식당 안에 들어서자마자 일부러 찾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자
리를 잡고 앉았다. 시어머니 몰래 계를 하기가 귀신을 속이기보다 더 어려운 모양인지 보배
네는 자리에 앉자마자 가쁜 숨을 몰아쉬며 냉수부터 들이켰다.
꽃게탕으로 배를 채운 계원들은 낙낙해진 모습으로 술잔을 돌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
주치는 뻔한 얼굴이지만 한자리에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다 보면 새삼 정이 가고 식솔처럼
정겹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수도세 문제로 어제 한바탕 싸움을 했던 중국집 여자와 아구집
여자는 어는 결에 화해를 했는지 몇 순배 돌지도 않은 술기운에 언니 동생 해가며 자못 사
이가 좋다. 남자라고는 한 사장과 나밖에 없다 보니 여자들은 제 세상 만난 듯 집안 대소사
부터 시작해서 시집 식구들 흉보기까지 그 많은 입이 쉴새가 없다. 한 사장과 나는 국으로
조용히 앉아 권커니 잣거니 술잔만 기울였다. 이쪽에서 한마디하면 저쪽에서 자글자글 웃고
저쪽에서 한마디하면 이쪽에서 깔깔대며 술을 부어라 안주를 내라 해가며 정신이 없는데 문
득 간판집댁이
' 아 다들 조용히 좀 해봐. 우리 오랜만에 이렇게 모였는데 보배 엄마 노래 한 자락 들어
보는게 어때. 처녀 적에 콩쿨대회에 나가서 상도 타고 완전히 날렸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그
건 어디가지나 처녀 때 얘기고 우리들이 확인도 안 해보고 장기자랑 응원을 갈 수는 없잖겠
어. 그러니 이 자리에서 동네 망신을 시키는지 아닌지 확인을 해보자고 다들 어때.'
하고 노래를 청하니 사방에서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보배네는 쑥스러워하면서도 과
히 싫지 않은 듯 일어섰다. 호기심으로 빛나는 눈길들이 보배네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
며 숨을 죽였다. 나도 자못 기대에 차서 귀를 기울였다. 보배네가 목청을 가다듬자 굵어진
빗소리가 배경음악처럼 들려 왔다. 이윽고 보배네의 입에서 김추자의 '봄비'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슬비 내리는 길을 걸으면... 꾸미지도 과장하지도 않은 노래가 빗물 고여 흐르는 도랑
물 소리처럼 편안하게 귓가에 울려 퍼졌다.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적막강산에 홀
로 보려진 듯한 쓸쓸함이 바람 같은 노랫소리에 실려 가슴을 적셔 왔다. 슬픈 노래를 보배
네는 너무도 편안하게 불렀고 그래서 그 노래는 더욱 처연하게 들렸다. 봄비 나를 울려 주
는 봄비 언제까지 내리려나 마음마져 울려주네... 산에 혹은 하늘에 바람결에 그리고 가슴
속에 남모르게 덮어 둔 사연들이 보배네의 노래에 다 실려 있는 듯 그이의 노랫가락에는 무
수한 울림이 있었다. 언뜻 지난 시절 좋아했던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아내를 만나기 두 해
전이었을까 사랑했던 여자를 떠나 보내고 나서 술만 취하면 암송했던 시였다. 그대 앞에 엎
드려 울고 싶다 숨죽이자 않으리라 통곡으로 목을 놓아 울고 싶다. 나는 두 눈을 지그시 감
은 채 보배네의 노래를 들으며 속절없이 지자가 버린 날들을 고스란히 끌어 안은 듯한 느낌
에 사로 잡혔다.
노래가 끝났으나 주위는 숙연했다. 모두들 꿈결에라도 빠진 듯 몽롱한 눈빛을 허공에 붙
들어 매고 움직일 줄을 몰랐다. 머쓱해진 보배네가 말없이 자리에 앉자 그제서야 정신이 든
듯 모두들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쳐댔다. 감탄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보배
네는 어린 아이처럼 부끄러워하며 낯을 붉혔다. 계원들이 앙코르를 외치자 보배네는 수줍은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쭈뼛거렸다. 그러나 가수를 만나 영산이 오른 계원들은 앙코르를 연
호하며 박수를 치고 탁자를 두들겨 댔다. 마지못한 보배네가 막 몸을 일으키는데
'보배냐 보배야아.'
하고 밖에서 그이를 찾는 쉰 목소리가 들려 왔다.
보배네가 잠시나마 눈에 띄지 않으면 식당 문가에 서서 야단스레 목청을 높이는 보배 할
머니였다. 노래를 부르려고 일어섰던 보배네는 그 소리에 질겁을 하며 주저앉았다. 네 하고
뛰어나가고 싶은 마을이야 굴뚝 같아도 행여 계원들 모인 걸 눈 밝은 시어머니에게 들키면
야단인지라 보배네는 마른 침을 삼켜 가며 바깥 동정을 살폈다. 그러나 노인은 며느리 똥줄
타는 줄도 모르고 골목 이쪽 저쪽에 대고 보배야 보배야 연신 부러 제낀다. 그 서슬에 보배
네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화장실로 통하는 식당 뒷문으로 몸을 내뺐다. 상가 건물을 빙
돌아가서 태연하게 얼굴을 내비칠 요량이다. 보배네가 뒷문으로 빠져나가기가 무섭게 심술
사나워 보이는 얼굴이 식당 문을 밀고 들어왔다.
'할머니 어쩐 일이세요.'
아내가 시치미를 뚝 떼고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 우리 며느리 여기 없는가.'
'시장 가지 않았어요.'
'호프집 여자가 일루 갔다고 하던데.'
'어제 꿔간 술 갚고 시장 간다고 하면서 나갔는 걸요.'
아내가 그럴싸하게 둘러 댔으나 어디서 무슨 냄새를 맡았는지 노인은 선선히 물러가지를
않고 식당 안을 도리반거려 가며 살폈다. 심상찮은 낌새를 챈 한 사장이 자리를 내주며 술
한잔 하시라고 권했으나 노인은 되레
'계 모임들 하는가.'
다 알고 왔다는 투로 물었다.
'계 모임은요. 오늘이 이 사람 생일이라 모인 걸요.'
한 사장이 내 어깨를 툭툭 쳐가며 둘러대자 노인은 통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
거리다가 발길을 돌렸다. 구부정한 뒷모습이 문 박R으로 사라지자 계원들은 저마다 혀를
차며 보배네를 걱정했다. 아무래도 능구렁이 같은 노인네가 돈 냄새를 맡은 눈치인데 자칫
하면 밀린 가게세는커녕 시동생 좋은 일만 시키고 보배네는 입에 거품 물고 뒤로 나자빠지
게 생겼다. 건물 주인은 전에 없이 보배네를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지난 몇 년간 세를 올
리지도 않고 월세가 몇 달씩 밀려도 채근하지 않던 건물 주인의 인내에도 한계가 온 모양이
었다. 하긴 일 년 치나 세를 밀렸으니 화가 날 만도 했다. 계원들은 보배네 시집 식구들을
싸잡아 비난하다가 어차피 남의 일 고만 맥들이 풀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나는 사람들을 배웅한 뒤 문가에 서서 담배를 불을 붙였다. 웃비가 걷히려는지 서쪽 하늘
이 구름을 벗고 있었다. 먹장구름이 밀려나면서 생긴 푸른 틈 새로 노을이 비쳤다. 나는 담
배를 초를 버리고 돌아서다가 언뜻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이발소 색실 모퉁이에 누
군가 숨어서 자꾸만 내가 서있는 큰 길 입구를 힐끔힐끔 살피는 게 보였다. 이발소 주인이
다. 신고를 하겠다던 간판댁의 으름장에 겁을 집어먹고 내내 그렇게 살피고 있었던 모양이
다. 위인의 하는 꼴을 보니 간판댁의 말대로 며칠 동안 불안해서 잠도 못자게 생겼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때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순찰차를 보자마자 기겁을 해서 놀이터 쪽
으로 꽁지가 빠져라 달아났다. 얼마나 급했으면 신발 한 짝이 벗겨진 것도 모르고 죽어라
뛴다. 순찰차에서 내린 순경들은 달아나는 이발소 주인은 거들떠도 안보고 건물 모퉁이 저
쪽으로 사라졌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로 봐서 무슨 일이 벌어진 모양이다.
'무슨 일이지.'
가볼까 망설이던 나는 그냥 식당 안으로 발길을 돌렸다. 식당 문을 닫으면서 보니 하루
종일 지겹게 내렸던 비가 서서히 그치고 있었다.
텔레비전을 보다 말고 꾸벅꾸벅 졸던 나는 왈칵 문 열리는 기척에 놀라 눈을 떴다. 손님
인 줄 알고 바짝 긴장했던 나는 챙모자를 눌러 쓴 야채 장수 모습에 맥없이 짜증이 났다.
필요한 거 없냐는 야채 장수의 질문에 나는 눈살을 찌푸린 채 아예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
에 아랑곳없이 야채 장수는 오랜 단골이나 된 듯 친근한 태도로 저녁에 다시 들르겠다며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서서 식당 문을 나섰다. 나는 그런 야채 장수의 뒷모습을 감사납게
쏘아보았다. 언짢은 심사를 달래기 위해 담배에 불을 붙였으나 불쾌감이 쉬 사그라들지 않
는다.
'뭐 저런 찰거머리가 다 있어. 이거 완전히 깡패 아냐.'
나는 야채 장수가 눈앞에 있기라도 한 듯 투덜거렸다. 강적도 이런 강적이 없다. 그만큼
무안을 줬으면 발길을 끊을 법도한데 무슨 놈의 위인이 아침저녁으로 무턱대고 찾아와서는
거래를 트게 해달라며 한 발작도 물러날 줄을 모른다. 누구 소개도 아니고 생판 처음 보는
장사치가 허구한 날 불쑥불쑥 찾아와서 사람을 귀찮게 구니 이건 숫제 식당 문이 열릴 때마
다 경기가 날 지경이다. 식당을 개업한 지 이 년 동안 별의별 사람을 다 겪었지만 이런 무
경우는 처음이다. 그래도 사기꾼에 비하면 몸뚱어리 놀려서 먹고 살려고 아둥거리는 야채
장수는 양반이다.
나이 젊고 사지 육신 멀쩡한 작자들에게 두눈 뻔히 뜨고 사기를 당한 것만도 금년 들어서
벌써 두어 번이다. 큰 돈이라도 뜯겼으면 말을 안 한다. 이건 사리라고 해봐야 오천 원 만
원이 고작이다. 모델이라고 속여도 곧이들을 만큼 허우대 좋고 입성 번지르르한 위인들이
별 치사한 수단을 다 동원해서 잔돈푼을 뜯어 가는데 이건 허허 웃어넘기는 외에 달리 도리
가 없다. 지난 달 만 원을 우려 간 위인만 해도 그렇다. 한창 손님이 버글거릴 점심시간에
길 건너 사무실 직원이라며 찾아온 위인은 다짜고짜 만 원만 꿔달라고 서슴없이 손을 버렸
다. 인상이 어글서글하고 풍신도 좋아 귀티는 나 보이지만 아무리 뜯어 보아도 처음 보는
낯짝이었다. 그러나 위인은 내가 머리를 공 굴릴 틈을 주지 않고 자기를 모르겠냐고 종종
주문도 하고 어제도 여기서 점심을 먹었는데 자기 얼굴을 모르겠냐고 되레 추궁을 해왔다.
손님들이 여기저기서 주문을 받아라. 그릇을 치워 달라 물을 달라 이런저런 주문으로 성화
를 불려 대는 바람에 머릿속에 벌떼가 들어앉은 것처럼 정신이 하나도 없던 나는 긴가민가
해가며 돈을 내주고 말았다. 만 원짜리를 건넴 혹시나 해서 뭐에 쓸려고 돈을 빌리냐고 물
었더니 배우 뺨치게 생긴 위인 하는 소리가 포커를 하다가 밑천을 다털렸는데 막판에 죽이
는 족보를 쥐었다며 퇴근시간에 틀림없이 갚아 주겠노라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어지간한 사
무실에서는 밤낮없이 노름판이 벌어진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던 나는 더 이상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쥐뿔 저녁에 돈을 갚기는커녕 동네에서 위인의 낯짝도 구경할 수 없었다.
영화광을 자처해 오면서도 나는 지금까지 그만한 연기를 본 적이 없다. 만 원짜리 한 장을
위해 위인이 보인 연기는 각고의 노력 없이는 다다를 수 없는 경지였다. 잘 아는 집에 온
듯한 천연덕스러움과 빨리 가서 돈을 따야 된다는 초조함 단골에게 이럴수 있느냐는 당당함
과 여차직하면 발을 끊겠다는 으름장이 섞인 눈초리 나는 그 모든 것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
룬 명연기 하나만으로 식당을 돌아다니며 늙어 갈 위인의 세월을 떠올려가며 허 참 허 참
입맛을 다시다가 그냥 웃어 버릭 말았다.
'그나저나 이살은 노래방에 꿀단지를 묻어 놨나. 한번 갔다 하면 함흥차사네.'
나는 공연히 자리에도 없는 아내에게 골풀이를 해가며 담배를 부벼 껐다. 갑갑하다. 텔레
비전 앞에 하릴없이 죽치고 앉아 있자니 하품만 나온다. 요즘은 점심시간만 지나면 병든 닭
처럼 꾸벅꾸벅 조는 게 일이다. 아무래도 춘곤증인 모양이다.
기지개를 켜며 밖으로 나가니 봄볕이 아지랑이처럼 몽롱하게 거리를 감싸고 있다. 사제관
옆 단독주택 담벼락 위로 만개한 벚꽃은 갓 튀겨 놓은 강냉이처럼 몽글었다. 부는 바람에
나비처럼 팔랑거리는 꽃송이를 보노라니 햇살이 하늘이 아닌 벚나무로부터 뻗쳐 나와 퍼져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이틀 앞으로 다가온 벚꽃축제 나는 수천 그루의 만개한 벚나무를 눈
앞에 그려 보이며 더디게 흘러가는 시간을 원망해 보았다. 일상의 시름을 잊고 애오라지 꽃
향기에 취해 사람들과 어깨를 겯고 푸지게 놀다 보면 발톱의 때처럼 내 삶의 갈피에 파고든
권태를 잠시나마 벗어 던질 수 있을 것만 같다.
요즘은 장사가 잘돼도 따분하고 파리를 날려도 따분하다. 정규 휴일마다 승용차 옆 좌석
에 아내를 태우고 교외로 드라이브를 다녔지만 이제는 그나마 시들해져서 아내는 아내대로
나는 나대로 따로 논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이가 없는 탓인 듯도 싶다. 지난 삼 년간 이
런저런 노력을 아끼지 않았는데도 아이가 들어서지 않는다. 혀에 땀띠가 돋도록 채근해 대
던 양가 어른들도 이제는 지쳤는지 별다른 말이 없다. 산부인과에서는 스트레스 탓이라며
초조해 하지 말라고 충고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초조해 한 적이 없다. 때가 되면 어련히
알아서 생기겠거니 여기고 휘파람 불어 가며 세월아 네월아 한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아
이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어인 까닭
인지 부쩍 아이 생각이 간절하다. 아마도 십이지장궤양에 시달리고부터 애를 낳아야겠다는
욕망이 일었던 것 같다. 슬슬 건강을 걱정해야 할 나이에 접어들고부터 세상이 다르게 보이
고 축구공처럼 구려 보낸 일상도 사계의 하늘처럼 다양하게 보인다. 그런데도 일상은 시계
추처럼 흘러간다. 일상을 바라보는 시야는 미묘한 일상은 시계추처럼 흘러간다. 일상을 바
라보는 시야는 미묘하게 변했지만 여전히 무기력하게 주판알로 튕겨져야만 하는 내 자신을
끊임없이 의식하는 속에서 나는 권태를 배웠다.
'빨리 아이가 생겼으면 좋겠다.'
식당 앞 경계석에 쪼그려 앉아서 담배를 태우던 나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뿐 나
는 노래방 입구 양쪽에 새로로 길게 늘어진 쌍둥이 플래카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신장
개업을 맞아 사은품을 증정한다는 내용의 활자가 큼직하게 박힌 플래카드의 샛노란 빛깔이
봄볕과 잘 어울려 보인다.
담배 한 대를 다 태운 나는 페인트 가게와 성당 사제관 앞을 기웃거렸다. 그러나 출장을
갔는지 페인트 가게는 문이 잠겼고 신부는 보이지 않는다. 바둑 상대를 찾지 못한 나는 입
맛을 다시며 발걸음을 돌렸다. 나는 아내가 있는 노래방 앞을 그대로 지나쳐 도로를 건넜
다. 말도 없이 식당을 비운다고 지청구를 해댈 아내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나는 개
의치 않았다. 손님이 들지 않을 시간대이기도 하거니와 내심 아내가 시비를 걸어 와 부부싸
움이라도 하게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오늘같이 다분한 날은 부부싸움이라도 하지 않으면
심심해서 숨통이 막힐 것만 같다. 나는 무단횡단을 감시하는 단속반이 숨어 있지나 않은지
사위를 짯짯이 둘러본 뒤 도로를 건넜다.
도로를 건넌 나는 당구장으로 향하다가 맞은편 건물에서 나오는 고 사장을 발견하고 행여
눈이라도 마주칠까 발걸음을 재우쳤다. 여는 때처럼 오전 내 호프집에서 뭉기적거리다가 단
란주점으로 출근을 하는 눈치다. 당구장 앞에서 슬며시 뒤를 돌아보니 대낮부터 한바탕 힘
을 쏟은 모양으로 는적는적 걸음걸이에 힘이 없다. 휘파람까지 불어 가며 벙글거리는 걸 보
면 기분이 퍽 좋은 모양이다.
'입이 귀밑에 걸린 걸 보니 호프집에서 뭐 빠지도록 낮탕을 뛴 게 뻔하구만.'
나는 주는 거 없이 미운 위인이 뒤꼭지에 대고 빈정거렸다. 동네가 발칵 뒤집어지도록 치
도곤을 당했으면 낯뜨거워서 이사를 가도 시원찮을 판에 무슨 놈의 위인이 무안해 하는 기
색 한 점 없이 전과 다름없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닌다. 고 사장은 길을 가면서도 해찰에 정
신이 없다. 곁을 지나가는 약속다방 레지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툭 치며 눈을 찡긋거리고
도로 건너편 여자의 미니 스커트 밑을 드러난 다리를 보며 걷다가 허방을 짚어 겨우 중심을
잡기도 한다. 그는 입맛이 쓴 듯 앗싸 노래방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길을 건너 앗싸 단
란주점 안으로 가라졌다.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주변 상인들이 동네 망신이라고 쉬쉬해 감 뒷말 삼가는 내막도
모르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식들에게는 카페를 차려 주고 마누라에게는 고깃집을 차려 주
었다고 입에 침을 튀겨 가며 가슴을 탕탕 쳐대는 고 사장이고 보면 철판도 보통 철판이 아
니다. 하긴 식구들에게는 굴비 천장에 걸어 놓고 밥 먹게 할 위인이 다름아닌 그 식구들에
게 고래 힘줄 같은 생돈을 토해 냈으니 그렇게 생색이라도 내고 돌아다니지 않으면 억장이
무너져 제 명대로 못 살 노릇이기는 할 터였다.
나는 당구장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며 성난 황소 같던 고 사장의 큰아들을 떠올렸다. 우
리 식당에서 계모임을 하던 날 고사장의 큰아들은 호프집을 때려 부쉈다. 맨정신으로는 용
기가 나지 않아 후루룩 낮술을 걸치고 호프집으로 쳐들어간 고 사장의 큰아들은 닥치는 대
로 기물을 부쉈고 말리는 아버지를 두들겨 팼다. 고 사장의 애첩인 호프집 마담은 카운터
밑에 숨어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고 사장의 큰아들은 아버지에게 주먹질을 한 뒤 탁
자와 의자를 집어 던져서 진열장을 박살냈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은 그는 짐승처럼 고
함을 지르며 이 층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발목이 부러져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몸부
림쳐 가며 울부짖었다는 그의 모습을 상상할 때마다 나는 등허리가 선득해지곤 했다.
그 일이 있은 며칠 뒤 고 사장은 간판댁에게 사천오백을 받고 노래방을 넘겼다. 그 돈은
큰아들과 작은아들에게 고스란히 건네졌고 그들은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카페를 차렸
다. 노래방 아줌마는 두 아들의 지원사격을 받아 남편에게서 돈을 타내 앗싸 단란주점 이층
에 조그만 고깃집을 차렸다. 그로써 노래방 가족은 그토록 원하던 독립을 했다. 노래방 아
줌마는 고깃집을 차린 이후로 남편의 일에 일절 간섭을 하지 않았다. 남편이 단란주점 여종
업원들을 돌아가며 건드리는 걸 뻔히 알면서도 노래방 아줌마는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했
다. 따지고 보면 고 사장으로서는 비록 비싼 대가를 치르기는 했지만 그다지 손해 본 것은
없는 셈이다.
주변 사람들도 차라리 잘된 일이라며 시원해 했다. 고 사장의 그늘에 묻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았던 그의 가족들을 생각하면 백번 축하를 해줘도 모자랄 만큼 잘된 일이었
다. 그러나 노래방을 인수한 간판댁은 고 사장만 보면 전에 없이 눈을 부라려 가며 인간 취
급을 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고 사장을 미워하는 간판댁의 태도가 의아하게 여겨져서 연유
를 캐물으니 그이는 생각할수록 화가 치민다는 듯이 흥분해서 그간 아무도 알지 못했던 사
실들을 까발려 놓았다. 간판댁의 얘기를 듣고 보니 그이가 그토록 흥분하는 이유도 그간 노
래방이 장사가 안 된 이유도 절로 납득이 됐다.
간판댁의 입을 빌리자면 고 사장은 그간 참으로 지저분하게 장사를 해온 모양이다. 노래
방에 놀러 온 남자들이 여자를 불러 달라고 요청하면 앗싸 단란주점 여종업원들을 데려와서
살살 꾀송거려 가며 바가지를 씌우기가 예사고 단란주점이 바빠 아가씨들이 올 수 없을 때
에는 반 강제로 마누라의 등을 룸으로 떠밀었다. 설사 아가씨들이 도착할 때까지 노랫자락
이나 뽑아 가며 손님들의 비위를 맞추라는 뜻으로 마누라의 등을 떠밀었다 할지라도 좀처럼
납득기 어려운 일이다. 두 눈 번히 뜨고 그 꼴을 지켜 봐야 했던 고 사장의 두 아들은 차마
아버지에게 대들 수가 없어 어미의 편도 들지 못하고 번번이 어금니만 깨물어 댔다. 발 없
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앗싸 노래방에 대한 인식은 점차 나빠졌고 가족들과 오울려 노래방
을 찾는 사라들은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간판댁이 고 사장에게 억하심정을 품은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간판댁이 노래방을 인수하기 전까지 노래방 하루 매상은 기껏해야 십만 원 안짝이었다.
남편에게 시달리느라 청소고 뭐고 마음 쓸 여유가 없던 노래방 아줌마는 카운터에 앉아 한
숨을 쉬는 게 하루 일과였다. 그러다 보니 노래방은 계단을 채 내려가기도 전에 눅진한 곰
팡내가 코끝에 묻어 났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을 떼놈이 번다고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 봐야 돈을 버는 족족 아버지에게 상납해야 하는 탓에 고 사장의 두 아들도 손님이 오
면 오나 보다 가면 가나 보다 하고 상 건너 불 구경하듯 자리나 지키고 앉아 있었다. 그러
니 기본적인 서비스는 아예 말할 것도 없고 최신곡은 삽입 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게다가
낮 시간이면 인상 험악한 막둥이의 친구 예닐곱이 노래방 앞에 경주용 오토바이를 세워 놓
고 두어 신간은 좋이 장사진을 친 탓에 기껏 찾아온 손님들도 겁을 집어먹고 발길을 돌리기
예사였다.
그런 노래방을 인수한 간판댁은 우선 실내장식부터 뜯어 고쳤다. 전에는 없던 단체석도
뀌고 수십 번의 물걸레질로 곰팡내를 없앴다. 도배는 물론 바닥도 새로 깔았고 간판도 큼직
하게 바꿔 달았다. 뿐만 아니라 녹음기기도 설치해서 원하는 손님에게 무료로 테이프를 만
들어 줬으며 화면에는 이승희를 띄웠다. 손님에게 아가씨를 불러다 주던 관행도 개업 당일
부터 없애 버렸다. 아가씨를 불러 달라고 끈덕지게 물고 늘어지는 손님들은 등을 떠밀어 되
돌려 보냈다. 그러한 효과는 당장 나타났다. 개업 첫 날부터 하루 매상이 오십만 원을 웃돌
았고 손님이 없다고 죽는 소리를 해도 삼십만 원은 넘게 챙겼다. 간판댁이 노래방을 인수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주변 상인들은 반 년이면 간판댁이 노래방에 투자한 돈 전액
을 회수할 수 있을 거라며 부러워했다. 개중에는 시샘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해도 고 사장만큼 속이 쓰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고 사장이 마각을 드러낸 것은 간판댁이 노래방을 인수한지 열흘째 되던 날이었다. 그는
고등학생 서넛이 노래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뒤 청소년 선도위원회로 신고를 했다.
이어서 노래방으로 전화를 건 그는 형사들이 출동했으니 미성년자가 있으면 빨리 내보내라
고 천연덕스럽게 위해 주는 척했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는 간판댁에게 고 사장은 뻔뻔스
럽게도 원조 부대찌개에서 나오던 손님이 핸드폰으로 신고하는 걸 운 좋게도 마침 자기가
그 앞을 지나다가 들었다며 자신의 공치사까지 곁들였다. 간판댁은 전화를 끊자마자 뒷문으
로 애들을 내보냈는데 애들이 나간 지 십분도 지나지 않아서 형사들이 들이닥쳤다. 무사히
위기를 넘긴 간판댁은 득달같이 우리 식당으로 달려와서는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그 시간에
찾아온 손님이 있었느냐고 확인을 했다. 그러나 그 시간에 우리 식당에는 개미 새끼 한 마
리 얼씬거리지 않았다. 비로소 뭔가 감을 잡은 간판댁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됐다. 그이는 틀
림없이 고 사장이 무슨 꿍꿍이 속이 있어 꾸민 수작이라고 단정을 짓고는 분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이튿날 간판집으로 한 사장을 찾아온 고 사장은 예의 그 뻔뻔한 얼굴로 전날 자
기가 간판집에 얼마나 큰 부주를 한 셈인지 누누이 강조해 가며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뜻을 은근히 내비쳤다. 그러면서 자기 마누라가 새로 차린 고깃집 간판 얘기를 넌지시 끄집
어 냈다. 그는 한 사장이 뭐라고 입을 뻥긋하기도 전에 전날 일을 또다시 들추어 내며 거저
는 못 해줄망정 절반은 깎아 줘야 도리가 아니겠냐고 옆구리를 찔벅거렸다. 그러나 때마침
나타난 간판댁에게 덜미를 잡힌 고 사장은 혹 떼러 왔다 혹 붙인 격으로 간판값을 깍긴커녕
일 년을 넘기면서 어영부영 떼어 먹은 단란주점 간판값을 토해 내고 말았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사흘 뒤 노래방은 신고를 받고 달려온 형사들에게 청소년보호법 위반으로 비싼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사람 사는 방법도 참 여러 가지다.'
나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고 사장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밀어 냈다. 불경기의 여파인지 당
구장 안은 썰렁했다. 무료하게 신문을 읽고 있던 당구장 주인이 반색을 하며 나를 반겼다.
한떼의 청년들이 나인볼을 치는 옆 당구대에서 나는 당구장 주인과 일 점에 천 원 내기 쿠
션볼을 쳤다. 서로의 실력과 성격을 뻔히 알고 있는 최 사장과 나는 느긋하게 잡담을 나누
며 당구를 쳤다. 그러나 한 푼 두 푼 돈을 잃어 가면서 나는 팽팽하게 신경을 곤두세웠다.
침착하지는 의지와 달리 옆 당구대에서 시끄럽게 떠들어 가며 나인볼을 치는 청년들이 거슬
려 쉬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배달돼 온 회에 소주 몇 병을 다 비운 뒤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탕수육에 고량주까지 시킨 그들은 거나가게 취해서 제멋대로 행동을 했다. 쿠션볼 서
너 개는 좋이 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내가 신중하게 자세를 가다듬고 막 공을 치려고 하면
그들 중의 하나가 등 뒤에서 걸리적거렸다. 몇 번이나 그들 때문에 픽사리를 했건만 그들은
사과 한마디하지 않았다. 참다 못해 한마디하려고 돌아선 나는 청년들 가운데 낯익은 얼굴
을 발견하고 무춤해서 입을 다물었다.
'야이 씨발놈아. 이게 어떻게 떡이야.'
얼굴에 칼자국이 길게 난 청년이 붙어 있는 두 개의 공을 손가락질해 가며 목청을 돋구었
다. 일전에 우리 식당에서 깨진 유리컵에 손을 베어 피를 흘렸던 청년이다. 그의 곁에는 그
날 대취한 그를 부축해 간 문신투성이의 청년도 있었다. 칼자국 난 청년의 얼굴을 발견한
나는 순정을 아느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던 모습을 떠올려 가며 피식 웃었다. 떡이다
아니다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이던 끝에 칼자국이 난 청년은 주먹으로 당구대를 힘껏 내리치
며
'잘 바 개새끼야. 이게 어떻게 떡이야.'
'임마 우길 걸 우겨야지. 주먹으로 당구대를 쳐서 공을 떨어뜨려 놓곤 스위치라고 우기면
어쩌자는 거야.'
'관둬 새꺄.'
칼자국이 난 청년은 큣대를 바닥에 내던지며 돌아서서 당구장을 나가 버렸다. 말다툼을
벌였던 청년이 몹시 감정이 상한 듯 시근벌떡거리며 뒤쫓아 나가려는 걸 문신 투성이의 청
년이 가로막았다.
'야아 니가 참아라. 저 자식 저거 다방 기집애가 달아난 뒤로 제정신이 아니다. 얼마 전에
도 이빠이 취해서 미스 김 행방을 대라며 길다방에서 주정하다가 거기 애들한테 작살 났잖
냐. 자식이 어쩔 생각인지 눈만 뜨면 술 먹고 우는 게 자빠졌네.'
'그런 소리마라. 저 자식 이번엔 보통 심각한 게 아니야. 빠져도 단단히 빠졌다니까. 술만
들어갔다 하면 죽고 싶다고 그 기집애 없는 세상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허구한 날 나를
찾아와서 노래를 해대는데 밤마다 그 주정 받아 주는 내가 다 죽을 맛이다.'
청년들의 얘기를 엿들으며 나는 종전의 불쾌감을 잊었다. 큣대에 초크 칠을 하면서 칼자
국 난 청년의 얼굴을 떠올리던 나는 일순간 무중력 상태에 빠져들었다. 일방적으로 누군가
를 좋아하고 쫓아다니다가 별다른 추억도 없이 실연을 당했을 청년의 슬픔을 짐작하기는 어
렵지 않았으나 나는 뜬금 없게도 내 자신이 낯설게 느껴져서 잠시 어리둥절한 기분이었다.
만남과 이별을 거듭하며 지새웠던 지난날의 수많은 밤들이 참으로 가마득한 속에서 젊은 내
나이와 상관없이 앞으로 두 번 다시는 만남과 이별을 경험할 수 없으리라는 막연한 절망이
돌덩이처럼 가슴에 얹혔다. 나는 당구공을 큣대로 겨누고 멀거니 쳐다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게임을 포기했다. 아깟 당구는 쳐서 뭣하나 싶은 허무가 마지막 잎새처럼 가슴속에서 떨어
져 내렸다. 또 놀러 오라는 최 사장의 인사를 등 뒤로 하고 당구장을 나온 나는 도로변에
서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 연기를 뱉어 내며 올려다본 하늘이 참 맑다. 술 생각이 간절
했지만 술을 마시고 싶지는 않았다. 맨정신으로 가슴을 울리는 이 순간의 외로움을 통째로
느껴 보고 싶다는 욕망이 산들바람처럼 전신을 간지럽힌다. 나는 은행나무에 등을 기대고
서서 눈앞에 놓인 거리를 별 뜻 없이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러다 문득 쳐든 시선에 칼자국
난 청년이 잡혔다. 나는 하마터면 앗 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청년은 도로 건너편 오 층 건물 옥상 난간에 걸터앉아서 깡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두 다
리를 건물 밖으로 늘어뜨린 채 난간에 엉덩이만 걸치고 앉은 청년의 모습이 위태롭기 짝이
없다. 건 듯 바람만 불어도 그의 몸은 오 층 건물 아래로 곤두박질 칠 것만 같다. 소주병을
기울이다 말고 이따금씩 옷소매로 눈가를 훔치는 청년의 시선은 먼 허공을 향하고 있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청년의 모습을 발견한 사람은 나뿐인 듯 행인들은 갈 길에 여
념이 없다. 하긴 길 이쪽 저쪽을 오가는 사람들 모두 한결같이 발걸음만 재우칠 뿐 머리 위
로 눈길을 주지 않는다. 구멍가게 앞 파라솔 아래서 방앗간 여자와 감자탕집 주인 여자는
하품을 쩍쩍 해가며 잡담을 나누고 있다. 전면이 유리라 안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오토바이
상사에서는 예닐곱의 사내가 포커판을 벌이다 말고 말다툼에 열을 올린다. 눈이 벌개져서
핏대를 올리는 그들 모두 동네에서 낯이 익다. 새로운 주문을 맡았는지 한 사장은 간판 제
작에 정신이 없고 골목 맞은편 밴댕이 횟집에서는 수족관 청소가 한창이다. 얘기를 업은 아
낙만이 수족관 앞을 지나다가 물이 튈까 무품거렸을 뿐 길 양편을 오가는 행인들 발걸음은
거침이 없다.
나는 행여 청년이 자살을 하지 않을까 마음을 졸여 가며 그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빈 술병을 옆에 내려놓은 청년은 망연자실 허공에 눈길을 붙들어 매고 있다가 천천히 일어
섰다. 그가 일어서는 것과 동시에 나는 다급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솜털처럼 부드러운 햇
살을 가르며 걸어가는 사람들이 가깝고 멀게 시야에 들어왔지만 나는 발만 동동 구를 뿐 그
어떤 도움도 청하지 못했다. 우둔우둔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청년에게로 눈길을 돌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난간에서 내려선 청년은 바람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넘겼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먼 허공에 못박혀 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어처구니
없게도 묘한 배신감을 느꼈다. 청년이 난간에서 뛰어내리기를 바라기라도 했던 걸까.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러나 정체를 알 수 없는 배신감은 깊은 골에 울리는 메아리처럼 긴
여운을 남기며 사라졌다. 그때였다. 청년은 옥상 난간에 바짝 붙어 서서 손나팔을 만들어 허
공에 대고 외치기 시작했다.
'미자야 보고싶다. 사랑한다. 천하의 박광수가 미자를 죽도록 사랑한다아.'
청년의 외침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오 층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포커판에 빠져 있던
상인들까지 오토바이 상사 밖으로 나와 밖으로 나와 고개를 두리번거렸고 청년과 함께 당구
를 쳤던 패거리도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목청껏 허공에 대고 소리
를 지러 댄 청년은 손등으로 눈가를 쓱 닦은 뒤 난간 저쪽으로 사라졌다.
꼭 뭐에 홀린 사람처럼 청년이 사라진 건물 옥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버스 경적 소
리에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보행자 신호를 지키느라 멈춰 선 승용차 뒤에 바짝 붙어
선 버스가 연방 견적을 울려 대고 있었다. 행인들이 경적소리에 놀라거나 말거나 버스 운전
사는 신호가 바뀌고 승용차가 출발을 할 때까지 쉬지 않고 빵빵거렸다.
'또라이 새끼.'
나는 버스를 향해 나직이 쏘아붙인 뒤 무단횡단을 했다. 도로를 거진 다 건넜을 때 호루
라기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멀지 않은 곳에서 단속반이 뛰어오고 있었다. 나는 부리나케 골
목 모퉁이를 돌아 식당 안으로 뛰어들었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보배네와 마주앉아 있던 아
내를 향해 나는 별일 아니라는 뜻으로 손을 내저어 보였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씩씩대는
단속반의 모습을 빼꼼이 내다본 나는 빙그레 미소 지으며 돌아서다가 무춤해서 멈춰 섰다.
등을 보이고 앉아 있는 보배네의 분위기가 왠지 심상치 않았다. 얼핏 보기에도 보배네는 많
이 취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안내는 모른 척하라는 뜻으로 한쪽 눈을 깜빡거렸다. 나는
발소리를 죽여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에서 홀 쪽을 기웃거리는데 문득 얼마 전에 보배네가 타간 곗돈에 생각이 미쳤다. 나
는 속으로 혀를 차며 보배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엿보았다. 그이의 뒷모습이 전에 없이 딱
해 보인다. 뭐라 위로해 줄 말을 찾지 못한 아내는 보배네가 비워내는 잔에 묵묵히 술을 쳐
주며 이따금씩 한숨을 내쉬었다.
짠한 마음에 나는 고만 돌아서서 거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유리를 가운데 두고 보신탕
집 화간을 내다보는데 어쩐지 화초들이 새득새득해 보였다. 눈여겨보니 하나같이 조잡이 들
어 있다. 하긴 주인의 가슴이 썩어 문드러지는 판에 화초라고 성할 리가 없다. 고개를 절레
절레 내두르며 돌아서려는데 낯익은 얼굴 하나가 보신탕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
간해서는 얼굴 구경도 할 수 없는 건물 주인이다. 잠시 후 보배 할머니는 안색이 파랗게 질
려서 밖으로 나왔다.
'보배야 보배야 보배야아.'
보배 할머니는 골목 이쪽 저쪽에 대고 애타게 며느리를 찾았다. 나는 내 일이라도 되는
양 당황해 하며 보배네를 돌아다 보아싿. 마주앉아 술을 쳐주던 아내도 난처해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정작 보배네는 아무런 소리도 귀에 들리지 않는다는 듯 묵묵히 술잔만 기
울이고 있었다. 그 사이에도 며느리를 찾는 노인의 쇳소리는 계속해서 들려 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주방에서 쭈뼛거리던 나는 큼큼 헛기침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보배네는
어깨를 가늘게 떨며 일어날 줄을 모른다. 그러나 보배네는 어깨를 가늘게 떨며 일어날 줄을
모른다, 침 한 번 꿀꺽 삼킬 시간이 참으로 길게만 느껴졌다. 이윽고 보배네는 천천히 일어
섰다. 마음 다라 몸도 천 근인지 일어서는 그이의 모습이 퍽이나 힘겨워 보였다. 몸을 다 일
으켜 세운 보배내는 술기운이 도는지 휘청거렸다. 아내가 부축을 해주려고 옆으로 다가갔으
나 그이는 아내의 손길을 뿌리쳤다. 보배네는 탁자를 짚고 서서 돌아서려다 말고 느닷없이
흑 하고 얼굴을 감싸쥔 그이의 손가락 사이로 봇물처럼 흘러 내렸다.
나는 더 이상 식당 안에 머무를 수가 없어 밖으로 나갔다. 나를 발견한 보배 할머니가 마
침 잘 만났다는 듯이 보배네의 행방을 물어 왔으나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모른 척했다. 그
러자 노인은 난처한 기색을 돌아서서 또다시 허공에 대고
'보배야 보배야아.'
애타게 목청을 높였다.
전깃줄에 걸려 밤새 잉잉 거리며 울던 바람은 누긋해지는 기색도 없이 오전 내 흙먼지를
피워 올렸다. 따사로운 봄볕도 매운 바람에 온기를 잃고 골목에 숨어 아이들이 돌리는 팽
이에만 매달려 반짝거린다. 바람을 피해 옹기종기 아이들이 모인 골목 밖은 공사가 한팡이
다. 포크레인과 덤프트럭이 무시로 드나드는 주택가 빨랫줄은 공원 의자에 쪼그려 앉은 노
인처럼 오래 전에 제 기능을 잃고 먼지만 뒤집에쓴 채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고 있다. 빈
빨랫줄을 멀거니 보노라니 문득 세수를 하고픈 욕망과 함께 햇볕에 잘 널어 말려 가슬가슬
한 수건 생각이 간절해졌다. 도시가스 공사가 시작되고부터 빳빳이 마른 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기억이 없다. 하긴 속옷이고 양말이고 한 달 가까이 덜 마른 듯 눅눅한 것만 꿰차다
보니 이제는 가슬가슬한 감촉이 어떤 느낌인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창문을 닫아 놓고 사는
일에 익숙해지면서 집 앞에 땅굴을 파든 말든 공사가 안겨 주는 크고 작은 피해에도 무감각
해졌다.
길게 줄을 늘어선 자동차 행렬에 오도 가도 못하고 갇혀 버린 나는 오토바이를 돌릴 궁리
를 하다가 그만 포기해 버렸다. 오토바이 한 대 겨우 빠져나갈 여유밖에 없는 공간에서 어
찌 어찌 재주를 부려 방향을 돌린다 한들 동제 전체가 공사중인 마당에 공연히 헛 힘만 패
일 따름이다.
나는 마음을 느긋이 다져 먹으며 튀김가게 건물 옥상 빨랫줄에 앉은 나비를 쳐다보았다.
부연 먼지 구덩이 속에서 노 젓듯 나폴거리는 나비의 날개가 두 눈 가득히 담기고 까마득히
높은 하늘가에 비행운을 그리며 여객기가 지나간다. 나는 멀어져 가는 비행기를 눈으로 좇
으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장을 보러 나왔다가 먼지 구덩이 속에서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풀빵을 사먹는 여자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앞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걷
는 것보다 느린 속도로 서행을 하는데도 길 전체가 울퉁불퉁 요동을 치는 바람에 배달통의
빈 그릇들이 맞부딪치면서 깨질 듯이 요란한 소리를 낸다. 공사가 끝난 구간에서도 차들은
속도를 내지 못했다. 공사가 끝난 구간만이라도 아스팔트를 입혔으면 좋으련만 무슨 놈의
공사가 파제끼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나는 놀이터 쪽으로 향한 샛길로 방향을 틀어 와락 속도를 높였다. 동네 길을 모조리 뜯
어 놓은 공사 덕분에 나는 산악 오토바이 경주 대회에 나가도 좋을 만큼 오토바이를 모는
요령이 늘었다. 급가속에 급브레이크를 잡는 횟수도 그만큼 많아졌다. 놀이터 앞에서 식당으
로 향하는 골목 입구가 포크레인으로 막혀 있는 것을 발견한 나는 놀이터와 골목길 사이의
경계석을 훌쩍 넘어 놀이터 안으로 오토바이를 몰았다.
놀이터 안으로 들어선 나는 뛰노는 아이들을 피해 서행을 했다. 놀이기구 주위엔 유모차
를 끌고 나온 아낙들이 한가로이 잡담을 나누고 등나무 넝쿨 아래선 삼삼오오 짝을 이룬 노
인들이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사철나무가 울타리를 친 잔디밭에는 어린 학생들이 빙 둘러
앉아 주위의 시선 따위엔 아랑곳없이 답배를 피워 가며 킬킬거린다. 몇몇 남학생은 스커트
를 입은 여학생의 다리를 베고 누워 있다.
늘 똑같은 풍경의 놀이터를 지나치던 나는 벤치 위에 벌러덩 드러누워 코를 고는 이발소
주인을 발견하고 오토바이를 멈춰 세웠다. 팔다리를 벤치 아래로 축 늘어뜨린 채 잠이 든
그의 행색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행려병자로 오인하기에 딱 좋았다. 대낮부터 취해서 누구
와 싸움을 벌였는지 찢겨서 너덜거리는 셔츠 밖으로 땟국물 줄줄 흐르는 런닝이 드러나고
흙묻은 바지의 지퍼는 흉물스럽게 열려 있었다. 술만 취했다 하면 길바닥이고 공터고 안방
벌러덩 드러눕는 위인의 몰골을 신물나게 보아 온 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어 가며 혀를 찼
다.
이발소를 내놓고 이사를 갔다기에 두 번 다시 못 볼 줄 알았는데 취중에 발길이 저 혼자
이리로 향한 모양이다. 나는 혀를 내두르며 그 앞을 지나쳤다. 두어 달 됐을까 아내가 자식
들을 앞세워 집을 나간 이후로 그의 주정은 더욱 심해졌다. 낯모르는 사람에게 턱없이 시비
를 걸다가 반 죽도록 얻어맞는 것쯤 우습게 알았고 길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꺼이꺼이 목
을 놓아 우는 일도 흔했다. 그가 맨정신으로 이발소에서 손님을 맞는 일은 일주일에 이틀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워낙에 소문이 짝자그르하다 보니 문을 열어도 손님은 들지 않았다. 그
런데도 어디서 술값이 생겨 술을 먹고 돌아다니는지 신기한 노릇이었다.
놀이터를 막 벗어나려던 나는 낯익은 얼굴 하나를 발견하고 오토바이를 세웠다. 주유소에
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야간학교에 다닌다던 이발소집 큰딸이다. 나는 오토바이를 세워 놓고
이발소 집 딸의 하는 양을 물끄러미 지켜 보았다. 그 애는 행려병자나 다름없는 아버지를
흔들어 깨워서 서슴없이 부축을 했다. 주위의 시선이 껄끄럽지도 않은 듯 이발소집 딸은 자
기보다 한 뼘이나 키가 작은 아버지를 부축해서 부축해서 놀이터를 가로지르는 동안 눈빛이
꼿꼿했다. 놀이터를 벗어난 부녀는 택시에 몸을 싣고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꼭 뭐에라도 홀린 사람처럼 한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머물렀다. 등나무 아래에서 그
모습을 줄곧 지켜보며 말을 잊고 있던 노인들은 택시가 떠나고 나자 고개를 주억거려 가며
두런두런 말을 주고받았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한 노인이 잔디밭의 불량스런 아이들을 이
발소집 딸과 비교해 가며 비난한 것을 빌미로 사방에서 요즘 아이들 큰일이라며 기다렸다는
듯이 성토에 열을 올렸다. 아무리 그래 봐야 아이들이 어른보다 나쁠 수는 없다고 한마디
쏘아 주고 싶은 걸 애써 참으려 나는 식당을 향해 오토바이를 몰았다.
찾아 온 그릇을 서둘러 씻은 아내는 셔터를 내리고 화장에 열을 올렸다. 이발소집 딸 얘
기를 들려 주고 싶어 입이 근질거려 죽겠는데 거울을 끼고 앉은 아내의 폼을 보니 다 틀린
노릇이다.
'여보 보배네 아줌마도 안 가는데 대충 해. 가서 벚꽃동산이나 한 바퀴 휘둘러 보고 올 걸
공들여 치장할 필요가 뭐 있어.'
'안 가긴 누가 안 가요.'
'보배네 말야. 길거리로 나앉을 판에 벚꽃축제라니 눈에나 들어오겠어.'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 웬걸요. 그 아줌마 아침부터 날계란 먹어 가며 노래방에서 연습중
이에요. 그래서 아줌마하고 밴댕이 횟집 호프집 중국집까지 다들 모여서 응원할 계획까지
세워 둔 걸요.'
나는 그만 어리둥절해져서 아내의 입만 쳐다보았다. 보배네가 노래자랑 대회에 나간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제 밤까지만 해도 끼니를 걸러 가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드러누워
서 방 밖으로 나오지도 않던 보배네였다. 입만 열었다 하면 죽고 싶다고 중얼거리며 한숨만
푹푹 내쉬던 그이가 무슨 마음으로 하룻밤 새에 태도를 바꾸었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
았다. 돈을 구하러 백방으로 뛰어다녀도 시원찮을 판에 노래자랑이라니 비록 남의 일일망정
생뚱 맞기 짝이 없다. 아내는 화장을 하는 간간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내 모습을 돌아보며
픽픽 웃었다. 남자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비웃음이 분명했다. 머쓱해진 나
는 입을 다물었다. 나이 든 주변 상인들이 힘있을 때 아내에게 잘해 두라고 농담 삼아 하던
한마디가 교묘하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나는 전에 없이 진지하게 아내의 뒷모습을 눌러 보
았다.
아내는 선이라도 보러 나가는 처녀처럼 화장에 여념이 없다. 평상시에는 스킨과 로션만으
로 화장을 끝내는 사람이 외출할 때면 어김없이 한 시간은 좋이 공을 들여 치장을 한다. 그
런 아내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 보노라면 종종 짠해질 때가 있다.
일 년 내내 식당 주방에 묻혀 살아야 하는 아내의 쓸쓸함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먹고 사
는 일에 쫓기면서 자신도 모르게 나이를 먹어 버리는 두려움을 나는 내 자신을 통해 아내에
게서도 읽는다. 일상의 작은 일들을 유달리 소중히 여기는 아내의 태도도 어쩌면 그 두려움
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비손 같은 몸짓일지도 모른다. 문득 크게 울리는 시계의 초칠
소리가 소름이 돋도록 두려워질 때 밤을 새워 가며 술을 마시는 따위의 가해를 통해 거기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치는 나로서는 그런 아내가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아내가 옷을 갈아입은 동안 나는 셔터를 내리고 그 위에 잠시 외출중이라는 쪽지를 써붙
였다. 해바라기 꽃무늬가 시원스레 수놓아진 원피스를 걸쳐 입은 아내는 내 앞에서 한 바퀴
빙그르 맴을 돌았다. 티없이 밝은 아내의 미소를 보며 나는 잠깐 동안 나른한 행복감에 사
로잡혔다. 적어도 잘못 살아 오지는 않았다는 위안이 솜이불처럼 가슴을 덮어 온다. 나는 식
당을 나서기 전 아내를 품에 안고 이마에 가벼운 입맞춤을 했다.
노래방 앞은 기차 타고 어디 멀리 여행이라도 가는 것처럼 들뜬 상가 사람들로 쫙자그르
했다. 물가에 내놓은 오리떼처럼 떠들썩한 그들은 노란 모자 쓰고 소풍 가는 유치원생들처
럼 천진난만해 보였다. 그러나 사람들 그늘 뒤에 말없이 서서 멀리 고개를 돌린 보배네는
무엇을 견디는지 아랫입술을 감쳐 물고 있었다. 곁의 사람이 무어라 말을 걸면 언제 그랬냐
는 듯이 태연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돌아서면 그뿐이었다. 내 눈에는 그런 보배네가 어
딘가 모르게 위태로워 보였다. 노래자랑에 나갈 사람답지 않게 후줄근한 차림새도 께름직하
니 마음에 걸렸다. 나는 아무래도 불안해서 아내에게 보배네를 주의 깊게 지켜 보라고 사람
들 몰래 일렀다. 그러나 아내는 내 얘기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되레 멀쩡한 사람 이상
하게 만들지 말라며 면박을 주었다.
버스 종점에 닿도록 주변 풍경은 삭막하기만 했다. 눈길 닿는 곳마다 야산 하나 없이 상
가 건물과 주택 일색이었다. 버스 종점 뒤에 이층 건물 높이로 비죽 솟은 언덕은 수목 하나
없이 벌건 엉덩이를 까뒤집어 흉물스러웠다. 사위를 짯짯이 둘러보았으나 벚나무는커녕 버
스 종점 특유의 메스꺼운 기름 냄새만 진동을 했다.
그러나 언덕 아래 주택가를 끼고 모서리를 돌자마자 거짓말처럼 별천지가 눈앞에 펼쳐졌
다. 잘 포장된 도로 전체가 벚꽃으로 뒤덮여 꽃대궐을 이루고 있었다. 도로 위 허공은 양쪽
에서 뻗은 벚나무 가지로 뒤덮여 도로 전체가 하나의 굴이나 다름없었다. 담장 삼아 둘러친
철망 안쪽과 도로 맞은편 인공으로 조성한 언덕도 만개한 벚꽃을 앞세워 눈길을 붙잡고 놔
주지 않았다. 벚나무 밑에서 고개를 드니 조각으로 남은 하늘이 꽃빛으로 물들어 꽃잎과 함
께 나폴나폴 떨어져 내리고 곁을 지나는 사람들은 물비늘에 부서지는 햇살처럼 한 점 꽃빛
으로 아롱거렸다. 꽃향기에 취한 나는 보배네를 비롯한 일행들은 물론이고 팔짱을 낀 아내
마저 잊고 그저 나리는 꽃잎이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행들도 입구에서 탄성을 지
른 이후로 꽃에 홀려 말을 잊었다. 자칭 예술가인 최 사장만이
'쥑인다. 끝내주네.'
하고 한마디했을 따름이다.
백여 미터가 넘는 꽃굴을 지나 한화에너지 정문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비로소 잊었던 말
문을 되찾을 수 있었다. 보배네의 얼굴도 웃비가 걷히는 하늘처럼 그늘을 많이 벗었다. 활짝
개방한 정문을 지나자 곧게 뻗은 도로 양쪽으로 바벨탑 같은 느낌을 주는 공장 건물들이 굴
뚝 위로 불기둥을 토해 내며 우뚝우뚝 붙박여 있고 건물과 건물은 거대한 수송 파이프로 연
결되어 있었다. 고층 아파트 크기의 철 구조물들은 위압적인 자태로 보는 이들을 단숨에 압
도해 버렸다. 정문 옆 동산에 뿌리를 내린 수백 그루의 벚나무는 마치 야수를 다루는 사육
사처럼 살풍경한 공장의 전경을 부드럽게 희석시켰다. 벚나무는 산 밑 너른 잔디밭에도 총
총히 박혀 오며 가며 지친 가슴들에게 평온한 쉼터가 되어 주었다. 삼삼오오 짝을 이뤄 동
산을 누비는 사람들은 따로 행사를 치르지 안아도 좋을 만큼 만족스러운 모습이었다.
장기자랑 대회가 열릴 무대는 잔디밭 머리에 설치되어 있었다. 동산 밑에서는 아마추어
사진사들의 작품전이 열렸는데 누드 사진 앞을 지나치는 남자들의 표정이 볼 만했다. 생맥
주의 마른 안주를 제공하는 차량 앞은 남녀 가리지 않고 몰려든 사람들로 떠들썩했다.
이윽고 무대에 오른 사회자가 행사의 시작을 알렸고 뿔뿔이 흩어졌던 사람들은 잔디밭으
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행사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듯 벚꽃에 홀려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적
잖았다. 마이크를 쥔 사회자는 무대 옆에 둥덩산처럼 쌓여 있는 경품을 미끼 삼아 변방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꼬드겼고 꽤 많은 발길이 벚꽃을 등지고 무대 앞으로 향했다.
텔레비전에서 몇 번인가 낯을 익힌 개그맨은 죽었던 사람도 뻘떡 일어나 배꼽을 쥐게끔
좌중을 들었다 놨다 해가며 순식간에 분위기를 띄웠다. 사회자의 말재간이 워낙에 뛰어나다
보니 사람들은 그가 채 입을 열기도 전에 옷을 준비부터 했다. 판을 벌이기에 맞춤하게 분
위기가 무르익자 사회자는 동남아 순회공연 운운해 가며 악단과 초청 가수들을 소개했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초청 가수들은 악단의 반주에 맞춰 민요로 판을 꾸려 나갔다. 유명
가수의 얼굴을 볼 줄 알고 한껏 기대했던 사람들은 그만 맥이 풀려 시큰둥한 표정으로 무대
를 올려다봤다. 그러나 민요 가수들의 빼어난 가창력에 사회자의 말재간이 곁들여지면서 좌
중엔 차츰차츰 신명이 지폈다. 낮술에 취한 노인들은 곳곳에서 하나 둘 자리를 털고 일어나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어 가며 신바람을 냈고 사람들은 와아 웃음을 터뜨리며 박수를 쳐댔
다. 애오라지 벚꽃 구경만 하던 이들도 무슨 재밌는 일이 있나 호기심에 이끌려 슬글슬금
무대 앞으로 몰려왔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자 민요 가수들이 무대 뒤로 물러가고 사회자는 대단히 순
서라도 기다리고 있는 양 한껏 폼을 잡았다. 넓은 잔디밭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기대감에
들떠서 입도 뻥긋 못하고 사회자를 주목했다. 한참 동안 능청을 떨어 댄 사회자는 갑자기
정색을 하며 조용필을 외쳐 댔다. 생각지도 못했던 조용필의 등장에 좌중은 눈에 띄게 술렁
거렸다. 사람들은 환호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무대로 시선을 모았다.
그때 조용필을 소개하며 뒤로 물러났던 사회자가 앞으로 썩나서며 악단의 반주에 맞춰
'고추잠자리'를 부르기 시작했다. 영락없는 조용필의 목소리였다. 어리둥정해 하던 사람들은
깔깔대며 사회자의 모창에 박수로 박자를 넣어 주었다. 모창을 마친 사회자는 또다시 폼을
잡으며 유명 가수가 등장할 것처럼 분위기를 띄웠다. 사회자의 장난에 꼼짝없이 속아넘어갔
던 사람들은 우우 야유를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떨치지 못하고 숨을 죽였다.
두두두두 긴장을 고조시키는 드럼 반주에 사람들은 꼴깍 마른침을 삼켰다. 무대 앞을 가
득 메운 사람들을 천천히 둘러 본 사회자는 팔을 뻗어 무대 뒤를 가리키며 양 수 경 하고
목청을 높였다. 그와 동시에 텔레비전을 통해 한참 낯이 익은 여가수가 무대 위로 올라왔고
떠나갈 듯한 환호성이 무대 주변에 울려퍼졌다. 삽시간에 극성 팬으로 둔갑한 사람들은 휘
파람을 불어 가며 박수를 치고 발을 굴러 댔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사방에서 언니를 외쳐
대는 가운데 수십 명이 무대 앞으로 우르르 뛰어나가 악수를 청했고 유명인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일념에 때아닌 자리 다툼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양수경이 노래를 시작하면서 그
모든 소동은 일시에 수그러들었다.
1부 순서가 모두 끝나고 곧바로 장기자랑이 이어지자 유명가수의 출연으로 한바탕 소동을
벌였던 사람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이웃의 등장을 기다렸다. 금실 좋아 보이는 부부가 무대
위로 오르자 사람들은 어디 우리 동네 사람들이 무슨 재주를 바꿔 가며 무대에 오른 이웃들
의 숨은 재주는 한 번 보고 말기에는 참으로 아까웠다.
나는 출연자들이 바뀔 때마다 이제나 저제나 초조해 하며 보배네의 순서를 기다렸다. 몇
몇 출연자의 가창력이 워낙 출중해서 보배네가 그들을 제치고 상을 탈 수 있을지 적잖이 걱
정이 됐다. 아내를 비롯한 일행들의 눈치도 나와 다를 바 없었다.
기타와 바이올린과 첼로를 들고 무대에 오른 일가족이 연주를 마치고 내려가자 사회자는
다른 출연자의 이름을 불렀다. 호명을 했는데도 출연자가 무대에 오르지 않자 사회자는
'안복순 씨. 안복순 씨 안 계세요.'
하고 목청을 높였다.
'누군지 몰라도 순서 기다리다가 똥 누러 갔는갑다.'
간판댁의 농담에 깔깔대고 웃던 우리 일행은 머뭇거리며 무대 위로 오르는 보배네 모습에
무춤해서 입을 다물었다. 의아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는 폼이 다들 보배네의 이름을 몰랐
던 눈치다. 일행은 하나같이 고개를 주억거려 가며 저이의 이름이 안복순이었구나 하는 눈
빛이었다.
보배네가 무대에 오르자 악단이 김추자의 봄비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우리 일행은 숨을
죽이고 보배네의 입에서 언젠가 들었던 꿈결 같던 노래가 흘러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어인 까닭인지 보배네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반주는 계속해서 흘
러가건만 보배네는 먼 허공만 쳐다보고 있었다. 당황한 사회자가 뭐라고 보배네에게 말을
걸었으나 보배네는 들판에 호로 선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물어물 반주가 멎고 아래 사
람들은 술렁거렸다.
'저어 아주머니...'
사회자가 난처한 듯 보배네의 어깨를 흔들며 말꼬리를 흐렸고 보배네는 고개를 돌려 사회
자를 바라보았다. 그도 잠깐 다시금 허공으로 눈길을 돌린 보배네의 얼굴에 한 줄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보배네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 앞에서 나는 가슴이 뻐근해졌다.
먼 하늘가에 한 방울 눈물을 남긴 보배네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돌아서서 무대 뒤로 사라
졌다. 보배네의 돌연한 행동에 한참 신명이 지폈던 좌중은 찬물을 끼얹은 듯 고만 숙연해지
고 말았다. 사회자가 나서서 갖은 애를 다 써보았으나 썰렁해진 분위기는 좀체 달아오르지
않았다.
우리 일행은 누가 먼저할 것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무대 뒤로 달려갔다. 그러나
보배네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각자 흩어져서 보배네를 찾아봤지만 헛수고였
다. 더 이상 자리를 지키고 있을 필요가 없어진 우리 일행은 한화에너지 정문을 나섰다. 버
스를 타고 동네에 도착하기까지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 일행은
각자의 생각에 사로잡혀 발걸음이 무거웠다. 터덜터덜 간판집 골목 어귀까지 무거운 발걸음
을 어거지로 끌고 온 우리 일행은 구경이 난 듯 골목 어귀에 모여서 웅성거리는 사람들 모
습에 무춤하니 멈춰 섰다. 나는 골목 어귀에 모인 사람들을 보자마자 보배네의 얼굴을 떠올
리곤 발걸음을 재우쳤다.
말없이 사라진 보배네는 우리 식당에서 정면으로 올려다보이는 오층 건물 옥상 난간에 걸
터앉아 있었다. 동네에 도착하자마자 그의 가족이 세 든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지 보배네는 꽤 취한 모습이었다. 그이는 발 아래 모인 구경꾼들쯤 안중에도 없다
는 듯이 태연한 모습으로 술병을 기울이며 실성한 사람처럼 웃고 있었다. 마시던 술이 다
떨어지자 보배네는 술병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그이의 두 다리가 그네를 타듯
흔들거렸다. 밑에서 수군거리던 구경꾼들은 그이가 뛰어내리는 줄 알고 움찔하며 일제히 숨
을 죽였다. 그러나 그이는 난간 밖으로 내놓은 다리를 흔들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많은
날들을 노래방으로 살다시피 해가며 연습했으나 오늘 차마 부르지 못했던 노래였다.
'이슬비 내리는 길을 걸으면 봄비에 젖어서 길을 걸으면 빗방울 소리에 눈물이 되었나
한없이 울리네. 봄비. 나를 울려주는 봄비. 언제까지 내리려나. 마음마져 울려 주네...'
느닷없는 노랫소리에 구경꾼들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술렁거렸다. 그러나 구경꾼들의 술렁
거림도 이내 보배네의 노랫소리에 묻혀 잠잠해졌다. 나는 어쩐지 숨이 컥 막히는 느낌이었
다. 그건 노래가 아니었다. 내 귀에는 그 소리가 울음으로 들렸다. 나는 나도 모르게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러자 보배네의 노랫 소리가 거짓말처럼 사라지면서 빗소리가 밤새 조용히
양철 지붕을 울리는 그런 빗소리가 생생하게 들려 오기 시작했다. 하염없이 추적거리는 빗
속을 나는 걸었다. 질척거리는 흙탕길을 맨발로 걸었다. 지둥치게 바람이 불어 오고 나는 나
무 밑에서 비를 피하며 눈을 떴다. 그런 내 눈에 오층 난간에 걸터앉아 넋으로 노래하는 보
배네의 모습이 하늘을 떠가며 그름처럼 잡혔다.
그러나 보배네의 노래는 집 안에 있다 뛰어나온 남편에게 꼬리를 잘리고 말았다. 보배 아
빠는 뛰어나오자마자 다따고짜 게목을 질러 댔다.
'야 너 미쳤냐. 동네 창피하게 이게 무슨 짓거리야. 존 말할 때 빨리 내려와라. 올라가서
다리몽둥이 부러뜨리기 전에 얼른 내려와.'
그러나 보배네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이는 얼굴이 시뻘개져서 펄펄 날뛰는
남편을 빤히 내려다보다가 경련을 하듯 깔깔거렸다. 예기치 못한 아내의 행동에 당황한 보
배 아바는 어쩔 줄을 몰라하다가
'뭘 보고 있어. 이 사람들이 구경 났어. 구경 났냐구.'
주변에 몰려든 사람을 닦아 세웠다. 그런 그의 얼굴엔 두려워하는 기색이 완연했다. 뒤늦
게 소동을 눈치 채고 밖으로 나온 보배 할머니는 사색이 되어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떨어
댔다. 보배네는 겁에 질린 시어머니와 허둥대는 남편을 싸늘한 눈초리로 한동안 노려보다가
무슨 결심이라도 선 듯 난간 안쪽으로 내려섰다. 잠시 후 보배네는 계단을 밝고 건물 밖으
로 나왔다. 그이는 아무 일도 없던 사람처럼 구경꾼들을 헤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보배 할머니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아들의 등을 떠밀었다. 주저하는 아들의 등 뒤에 대고
노인은 빨리 들어가 보라며 채근을 했다. 뒤에 남은 노인은 불 구경이라도 하듯 우우 모인
사람들에게 삿대질을 해가며 갖은 악담을 다 퍼부어 댔다. 노인의 고약한 성미를 익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구경도 다했겠다 슬금슬금 자리를 떴다. 사람들이 흩어지고 나자 노인
은 가게 안의 동정을 살피며 안절부절 못했다. 얼핏 부기에도 노인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주
차 방지용으로 내다 놓은 의자에 앉은 노인은 풍을 앓는 사람처럼 손발을 떨어 댔다. 그 모
습이 어찌나 애처롭던지 나는 노인에게 연민을 느꼈다. 저녁 어스름이 깔리는 땅바닥에 대
고 노인은 푹푹 한숨을 내쉬었다. 후회를 하는 것일까 노인의 얼굴이 참으로 복잡해 보였다.
그때 보배네가 밖으로 나왔다. 그이의 커다란 가방이 들려 있었다.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
는지 보배 아빠는 엉거주춤 뒤쫓아 나오면서도 보배네를 붙잡지 못했다. 노인은 황망히 일
어서며 며느리의 팔을 붙잡고 늘어졌다. 그러나 보배네는 자신에게 매달린 시어머니를 야멸
차게 밀어 내며 성큼성큼 앞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보 보배야...'
격한 감정으로 말문이 막힌 노인은 전처럼 큰소리로 며느리를 부르지 못했다. 그러나 보
배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로를 건넜다. 딱지를 떼려 달려온 단속반원들은 심상찮은 낌
새를 눈치 채고 순순히 길을 터주었다. 모두의 눈길이 보배네를 쫓는 가운데 나는 보신탕집
과 사제관 틈바구니에 숨어서 눈물을 훔치는 보배의 모습을 보았다. 그 애는 멀어져 가는
엄마를 지켜 보는 대신 쪼그려 앉아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딸
의 흐느낌을 듣기라도 한 양 큰 도로로 향한 언덕길을 오르던 보배네의 발걸음이 주춤거렸
다. 그러나 보배네는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자꾸만 멀어지는 며느리
의 모습에 다급해진 보배 할머니는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 한 달음에 도로를 건넜다.
뒤뚱뒤뚱 힘겨운 뜀박질로 며느리를 뒤쫓으며 노인은
'에미야 에미야.'
하고 연신 쇳소리를 냈다. 그러나 골목에서 눈물을 훔치던 길이 어디로 뻗어 가는지 몸으로
익힌 보배네는 끝내 발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그이의 모습이 큰길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자
보배 할머니는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에미야 에미야아.'
빈 허공에 대고 부르짖었다. 그러자 이제껏 건물 틈바구니에 숨어 울기만 하던 보배가 공
처럼 튀어나와 제 엄마를 부르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보배가 달음질치는 언덕길 앞을 칼자
국 난 청년이 휘파람을 불어 가며 지나갔다. 싱글벙글 입에 귀밑에 걸린 그의 품에는 큼직
한 꽃다발이 들려 있었고 어디서 풍경오는지 몰라도 진한 봄꽃 향기가 밤바람을 타고 전신
에 안겨왔다.
제목 : 소설 쓰는 인간
지은이 : 성석제
나는 지금 소설을 쓰려 하고 있다. 자기 살아 온 걸 쓰면 소설 몇 권은 충분히 나온다
는 사람은 나도 지겹게 많이 봤다. 또 소설처럼 사는 인간도 만났고 소설을 써야 먹고 사는
인간하고도 이야기해 봤다. 나로 말하자면 소설을 쓸 수밖에 없는 인간이다. 장난이 아니다.
거창하게 시작했다가 한 권도 못쓰고 땡할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 나는 이때까지 살면서 한
번 마음먹고 시작한 일은 끝을 봤다. 중간에 어물어물 그만두는 건 체질상 맞지 않는다. 사
실 나는 이때까지 소설은 물론이고 소설 비슷한 편지도 써본 적 없다. 왜 내가 소설을 쓸
수밖에 없는 인간이냐. 도대체 왜 쓰느냐.
나는 세상에 잘못 알려진 우리의 세계를 바로 알리고 싶다. 우리의 세계가 뭐냐. 우리 세
계는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졌다. 춤 춤방 남자 여자. 내가 춤에 관해 알게 된 건 우리 세계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말하듯이 친구를 통해서였다.
나는 원래 통신판매 대리점의 총무였다. 대리점에서는 각 가정에 전단을 뿌리든가 광고를
해서 주로 건강보조식품 같은 걸 판매했는데 사장이 자형이어서 자동으로 능력을 인정받았
다. 삼 년을 정신없이 사람들이 혹할 만한 상품을 고르고 주문 받고 포장해서 배달하는 일
을 하고 나니 총알도 안 맞았는데 가슴에 바람구멍이 나는 거 같더라. 물론 나도 그 동안에
남처럼 결혼도 하고 중고차도 장만했다. 그렇지만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고 할 일
은 무엇이고 내 인생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은 일단 생기고 나서는 목구멍 속의 질긴 가래처
럼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근 십여 년 만에 고등학교 동창을 새벽 포장마차
에서 우연히 만나게 됐다. 술잔을 두세번 부딪치고 나서 걔는 이런 말을 했다.
넌 고등하교 다닐 때 내가 가장 부러워한 애였어.
나야 뭐 다 어정쩡했지. 뭐 하나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고 말이야. 그래서 지금도 이렇게
어정쩡하게 살고 있는 거 아니니.
나는 일 등만 하는 친구를 부러워한 적은 없어. 우리 동창중에서 삼 년 내내 아버지 차로
등교한 군수 아들도 있었고 또 삼 년 내내 일 등만 하다가 대학 가서 곧바로 고시 패스한
놈도 있지. 나는 그런 놈들을 부러워하지도 않았어. 그놈들은 그야말로 별종이야. 나도 별종
이었는데 안 좋은 쪽으로 별종이지. 반에서 등록금도 제일 늦게 낼 정도로 가난하고 공부는
꼴찌고 사고 쳐서 학생과에 제일 많이 불려 가는 게 나였어. 그런데 그놈들은 나를 별종 보
듯 하면서 저희가 별종인지는 몰라. 나는 네가 부러웠어. 평범해 보이는 게 그렇게 부럽더라
구.
네 말대로 나는 평범했다. 지금도 평범하지 뭐.
처음 만나서 술을 한 잔 하면서 나눈 얘기는 그런 평범한 얘기였다. 그렇지만 걔는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걔는 내가 값을 짐작할 수도 없는 수제 양복을 입고 있었고 기사가
딸린 최고급 승용차를 포장마차 옆에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도 간신히 마칠
정도로 가난하고 열등생인데다 희망이 없던 걔가 어떻게 갓 설흔 나이에 그렇게 빨리 출세
했는지 궁금했다. 자연스럽게 걔 직업이며 살아 온 얘기를 들으려 했지만 걔는 금방 이야기
해 줄 것처럼 하다가도 교묘하게 핵심을 피해 나가곤 했다. 그렇지만 그게 기분 나쁜 건 아
니었다. 그는 평범한 내가 어떻게 평범하게 사는지 궁금해했고 나는 내가 사는 방식 그대로
를 얘기해 주었다. 그렇다고 먼저 이야기한 내가 손해를 보았다거나 그래서 기분이 나쁘다
거나 하는 느낌은 없었다. 걔는 무척 바빠 보였다. 술을 마시는 동안에도 버릇처럼 시계를
들여다보았고 당시로서는 드문 카폰으로 그 새벽 시간에 전화가 걸려 오기도 했다. 정말 나
하고 있는게 세상에서 가장 즐겁고 하고 싶은 일인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안타깝다는
식이었다. 그것만 빼면 우린 늘 기분좋게 마셨고 기분좋게 헤어졌다. 술값은 그쪽에서 늘 부
담했고 몇 번은 택시비까지 주었다. 그게 한두 번은 신경이 쓰였지만 결코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두 번씩 사무실 근처의 포장마차에서 걔를 만나는 일이 두어
달쯤 계속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걔한테서 연락이 끊어졌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때
까지 걔 연락처도 모르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빼고는 언제나 그쪽에서 먼저 연락을 해
왔던 것이다.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며 새벽 포장마차에서 혼자 앉아 술잔을 기울이다 보
면 버림받은 사람처럼 서글퍼지기까지 했다. 걔가 다시 연락을 해왔을 때는 정말 무슨 일이
든 할 것 같은 심정이었다.
야 이거 정말 미안하다. 좀 바빴다.
무슨 사업인데. 뭐가 잘 안 풀려.
그걸 물었던 게 내 인생을 평범한 것에서 별종의 것으로 바꿔 놓았다. 걔는 나를 한참 쳐
다보았다. 그 눈길만 두고 보면 원래 그놈은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다. 걔는 마침 내게 부탁
을 하려던 참이었다고 했다. 워낙 타고난 재주가 있어서 그런지 춤을 금방 배웠다 사회에
나와서 시험 삼아 카바레에 갔는데 첫 날부터 엄청나게 인기가 좋았다 재미 삼아 다니다가
보니 춤을 따로 배우려는 여자들을 만나게 됐다. 카바레에서 가르칠 수도 있지만 거긴 원래
수많은 제비들이 진을 치고 있어서 눈치가 보인다 그렇다고 순수한 뜻으로 춤을 배우려는
여자들을 무작정 뿌리칠 수도 없어서 장소를 물색중이다 혹시 네가 아는 데가 있으면 소개
를 좀 해달라고 했다. 나는 우리 사무실이 물건을 쌓아 두기 위해 공간은 크게 얻었어도 보
통 때는 대개 비어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내 손을 잡으면서 바로 그런 데를
찾고 있다면서 사용료는 충분히 지불할 테니 하루 몇 시간만 쓰게 해달라고 했다. 나는 그
부탁을 거절했다가 걔가 다시 내게 연락을 해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돼서 무조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걔는 내가 부담스러워할 걸 알았는지 일단 한 달 정도만 해보자고
했다. 정작 사무실 주인인 자형에서 이야기하기가 힘들었는데 자형은 뜻밖에도 잘됐다고 했
다. 그렇지 않아도 상품 홍보 차원에서 무슨 행사라도 벌이려고 했다면서 실험 삼아 한번
해보라는 거였다. 한달 예정한 실험은 두 달이 가도 끝나지 않아도 세 달이 넘어서야 끝났
다. 네 달째부터는 실험이 아니라 공식적인 행사가 됐다. 소문이 살살 퍼지면서 정식 무도장
에 가는 건 겁이 나도 됐다. 소문이 살살 퍼지면서 정식 무도장에 가는 건 겁이 나도 춤은
배우고 싶은 여자들이 몰려들었다. 그 여자들이 사무실 한쪽에 쌓여 있는 상품을 한두 개씩
사들고 가주니까 사장도 좋아했다. 남자 파트너는 늘 부족했기 때문에 나는 처음부터 춤을
배우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스텝을 밟는 순간부터 전기가 온몸을 지나가는 것 같더라. 왜 진작에 춤을 몰랐는지
그때까지 춤을 모르고 산 게 억울해서 한숨이 다 나왔다. 하긴 그 전까지는 나 역시 남들처
럼 춤을 붉은 등불 아래 푸른 등불 아래 불륜의 남녀가 끌어 안고 도는 것만으로 알아 왔던
게 사실이었다.
성인 남녀가 추는 춤을 사교 댄스라고 한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대여섯 살 먹은 애들도
사교 댄스를 배운다. 남녀가 춤을 추는 건 외국에서는 손잡고 걸어가는 것만큼이나 흔한 일
이다. 외교관들도 외국 나가기 전에 사교 댄스를 배운다고 들었다. 이렇게 외국에서는 건전
한 사교 댄스가 우리나라에서 찬 바람을 맞게 된 건 자유부인인가 하는 유부녀가 집과 남편
을 버리고 춤바람이 나서 신세를 망친다는 소설이 나오면서부터다. 또 그 무렵에 박인수라
는 사교 댄스의 선구자가 나타나서 여대생 70여 명과 사귀는 바람에 특히 유부남들이 사교
댄스를 엄청나게 오해했다.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유부남들이 사교 댄스가 제 마누라
를 잡아먹기라도 한 것처럼 죄악시했고 그때부터 사교 댄스는 컴컴하고 좁은 데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밝고 넓은 데서 사교를 위해 춤을 추던 것이 숨어서 바짝 붙어서 추는 춤이
됐다. 그러니까 진짜 안 생길 일도 생기고 억울해서라도 바람을 더 피운다. 그 바람에 사람
들 인식이 더 나빠지고 . 이게 얼마나 한심한 악순환이냐. 지금은 그래도 많이 좋아졌다. 볼
룸 댄스가 버젓한 자치단체의 문화강좌의 정식 과목이 되고 건전한 여가를 권장하는 사회단
체에서 강의 요청이 몰려 온다.
올림픽에도 스포츠 댄스라는 정식 종목이 생겨 나는 세상이다. 이젠 춤만 잘 추면 올림픽
에서 메달을 딸 수 있다는 거다. 스포츠 댄스에는 젊은 애들이 마구잡이로 흔들어 대는 트
위스트나 고고 블루스 디스코 같은 건 안 들어간다. 그건 춤도 아니라는 거다. 올림픽도 카
바레에서 추는 진짜 춤을 인정한다. 이 중에서도 자이브는 우리의 지르박처럼 지터벅이 조
상인데 영국으로 가서 발전한 춤으로 지르박하고는 전혀 성질이 다르다. 이런 게 좀 아쉽다.
우리 국력이 조금 더 발전했다면 우리의 지르박이 자이브를 제치고 정식 종목이 됐을 거고
그러면 볼 것도 없이 박인수의 후배들이 메달을 몽땅 따올 건데.
불룸댄스는 알고 보면 예절 그 자체다. 테크닉보다 예절을 더 중요시한다. 진짜 춤을 추는
사람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사다. 제대로 된 선생은 제자에게 먼저 예절부터 가르친다. 그
다음이 스텝이다.
제대로 된 선생을 만나 춤을 여섯 달쯤 배우면 스텝이 몸에 익는다. 3년쯤 춤을 배우면
자기 스텝이 생긴다. 이때는 처음 만나는 사람하고 춤을 춰도 욕을 안 먹을 정도가 된다. 상
대가 초보면 초보인 대로 선수면 선수인 대로 상대에 맞춰 춤을 출 수가 있는 거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게 있다. 자기 스텝이 생겼다고 응용을 하네 뭐네 하면서 멋대로 춤을 추다 보
면 스텝이 개판이 된다. 이 바보를 교정하는 데 드는 시간과 돈이 처음부터 가르치는 것과
맞먹는다. 요즘 애들은 춤 배우는 데 3년은커녕 서너 달만 배우면 금방 카바레에 가서 더러
운 방법으로 떼돈 벌 궁리부터 한다. 못 가게 하는 선생한테 면도칼 갖다 대는 놈까지 있
단다. 요런 놈들은 얼굴이 좀 반반하고 몸매가 쪽 빠진 걸 밑천으로 알고 있지만 춤의 세계
는 춤이 밑천일 뿐이다.
정통으로 춤을 배워서 5년이 되면 춤을 좀 안다고 할 수 있겠다. 제 나름대로 예술을 추
구할 수 있다는 거다. 이 수준에서 무도계의 일원으로 들어가든가 못 들어가든가 하는 거다.
춤을 배우기 시작하자 내게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놀랍고 짜릿하고 새로운 세계가 나타
났다. 그때부터 나한테는 오로지 춤밖에 보이지 않았다. 걸어가는 사람들은 모두 스텝을 밟
고 있는 것 같았다. 잠자기 전에 천정에서 스텝이 오락가락했고 화장실에 앉아서도 손으로
는 보이지 않는 상대를 끌어 안고 발바닥으로 스텝을 밟았다. 아침은 해의 독무대로 열리고
밤은 별의 군무가 벌어지는 무대였다. 한마디로 나는 춤에 미쳐 버렸다.
내가 3년쯤 춤을 배웠을 때 내게 처음 춤을 가르쳐 준 고등학교 동창 놈이 감옥에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는 그 친구와 나는 만나지도 않았다. 걔 사업이 고급승용차를 타고 비싼
양복을 입고 사업한다고 사기 쳐가면서 골 빈 여자들에게 용돈을 얻어 쓰는 일이라는 걸 알
게 되어서 그 때문에 실망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춤의 세계로 가는 길을 가르쳐 준 게
그 친구였으니 걔가 제비든 오리든 상관없이 나는 속으로 고마워하고 있었다. 그 친구하고
헤어지게 된 건 춤에 대한 생각이 달라서였다. 내가 춤을 배운 지 6개월쯤 됐을 때였다. 내
가 춤에 빠져서 일을 그 전처럼 안 하니까 자형이 잔소리를 해대기 시작했다. 결국 자형과
대판 싸우고 대리점 총무 자리를 정리한 날이었다. 내가 더 이상 사무실을 무도장으로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렇지만 난 전혀 괴롭지 않고 외롭지 않으며 두렵지 않다 오히려 홀가분
하게 춤을 배울 수 있겠다는 희망으로 꽉 차있다. 춤은 이제 나의 인생이다. 나는 결코 후
회하지 않을거더, 우리 더 열심히 춤을 추면서 함께 앞날을 개척해 나가자고 내가 열변을
토하는 동안 그 친군는 내내 술잔만 뒤집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주머니에서 때가 묻었는지
기름을 묻혔는지는 몰라도 하여간 윤이 반질반질 나는 구슬 같은 걸 꺼냈다.
이게 뭔지 알아.
글쎄. 호두 같구만.
이걸 바지 주머니 옆에 있는 특수한 주머니에 넣고 아줌마들 허벅지를 슬슬 문질러 주면
효과가 백 퍼센트지. 돈이 쭐쭐 흘러내리게 하는 거야 이게.
그때 나는 걔 정체를 확실히 알 것 같더라.
그래서.
너 가져.
걔는 네 개의 호두 중에서 두 개를 나한테 내밀었다. 그놈에게는 진짜 제비에게는 전혀
쓸모가 없는 멍청한 우정과 맹목적인 의리가 있었다. 나는 잠자코 그 호구를 받아 들고서
포장마차의 카바이드 불빛에 비춰 보았다. 고마워해야 하는데 전혀 고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화가 나기 시작했다. 점점 화가 났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있다가는 미칠 것 같았다.
가 새끼야.
뭐.
가버리란 말야. 춤을 모독하는 놈.
야 이 미친 놈아. 춤이 무슨 예술이냐. 다 그게 그거지.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잘 나갈 때 한 몫 챙겨야지. 넌 늙어서 무르팍 떨어 가면서 이 짓 할래.
그러니까 너는 저질 제비 짓밖에 못하는 거야 임마 꺼져. 네 마빡이 호두마냥 박살나기
전에.
그러면서 나는 유혹적으로 반들거리는 호두를 구두로 콱 밟아 박살내 버렸다. 그 친구는
에라이 미친 놈 늦바람 나 환장한 놈 얼마나 잘 되는지 보자 어쩌고 저쩌고 혀 꼬부라진 소
리로 중얼거리더니 제 운전기사와 어깨동무를 하고는 가버렸다. 그리고 예정된 순서에 따라
고등학교 때 학생과에 끌려가는 듯이 감옥에 갔다. 사기 감금 폭행 성폭행 협박 따위의 죄
명을 쇠사슬처럼 줄줄이 달고서. 예술을 모독하는 인간 고등학교 사회생활 춤 제비에서도
열등생이 가는 코스였다.
그 친구하고 헤어지고 나서 나는 본격적으로 춤선생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어디에 유
명한 춤 선생이 있다면 삼고초래 아니 삼세 번 초대를 해서라도 문전에 발을 들이밀고 세숫
물까지 바쳐 가면서 배우고 또 배웠다. 지금 나를 키웠다는 춤 선생들이 전국적으로 수십
이다. 나는 그 사람들 다 인정한다. 그렇지만 그 춤선생들이 전성기에도 지금 나보다는 못
했다는 걸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나를 사교 댄슬의 황제니 왕제비니 하고 부르던 사람들
은 다 안다. 나를 사교 댄스의 황제니 왕제비니 하고 부르던 사람들은 내가 발바닥에 물집
이 생기고 쌍코피가 터지도록 노력한 것을 모르고 있다. 그렇게 3년 동안 한눈도 팔지 않고
오로지 춤만 배운 뒤에 나는 서서히 춤방에 나가기 시작했다.
춤방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진짜 춤은 카바레에서만 출 수 있다. 카바레의 조상은 모르
긴 몰라도 왈츠의 황제 요한 스트라우스가 지휘하는 악단이 반주하고 최고급 샴페인의 분수
속에서 잘생긴 귀족과 요염한 숙녀가 춤을 추는 궁전일 거다. 가끔 외국 영화에서 일이백
년 전 구라파의 궁전 무도회를 보여주는데 나는 그런 영화가 나왔다. 하면 만사 제쳐놓고
남 먼저 보려고 달려갔다. 휘황한 샹들리에와 영롱하게 반짝이는 보석 원색물감을 풀어 놓
은 듯한 드레스를 휘감은 미인들 흰 가발을 쓴 시종 검정 예복에 우아한 스텝으로 춤을 추
는 귀족들은 언제나 크나큰 감동을 안겨 주었다. 줄거리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나는 잃어버린 낙원을 보는 듯 목이 메였고 대책 없이 울먹이기도 했다. 이처럼 나
는 뼛속까지 춤을 좋아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정상에 오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죽도록 좋아한다고 해서 다 성공하는 건 아니다. 그걸 기본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사
람이 정상에 오른다. 재주가 없어도 게으르면 소성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대성할 수는 없
다. 춤에서 운이 좋은 소성은 이른바 제비다. 왜 제비라고 부르나. 춤을 출 때 입는 정장이
연미복도 입지 않고 빈둥거리는 주제에 제비라고 하면 더럽게 싫어하고 선생이니 무도예술
가라고 불러 달라고 한다. 제비들은 카바레에 오는 여자들을 춤으로 홀리고 여관으로 데려
간 뒤 몸을 뺏고 남편에게 알린다고 협박해서 용돈을 뜯어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워낙
그렇게 알려져 있다 보니 아예 제비가 되기 위해 춤을 배우는 녀석들까지 생겨 난다. 제비
들의 밥이 되는 여자들도 그 사실을 빤히 알고 있을 텐데도 어제도 오늘도 오고 또 와서 내
일치까지 합쳐 넘어간다. 내가 한마디하고 싶은 건 이 부분이다. 제비가 되고 싶어서 춤을
배우고 춤방에 나가서 여자를 유혹하는 짓이나 제비라는 걸 알면서도 같이 즐기고 넘어가는
것이나 피장파장이라는 것이다. 나는 한번도 내 입으로 춤추다 만난 여자에게 용돈을 달라
고 해본 적이 없다. 춤이 좋아 추을 추러 춤바에 갔다가 춤으로 만난 여자들에게는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그러니까 여자들이 알아서 돈을 갖다 주더라. 용돈이 아니라 집 몇 채를 사
고도 남을 뭉터기 돈을 갖다 주었다.
한창 때 내 하루 일과는 이랬다. 나는 하루도 새벽 운동을 빠뜨리지 않았다. 내가 회원권
을 가진 헬스클럽에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예술 등등 각계의 유력인사들이 많이 왔다. 나
는 어떤 분야의 유명인사며 권위자와 비교해도 지지 않을 건강과 육체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나는 몸을 철저히 관리했다. 나한테는 몸이 자산이고 수단이며 목적이었다. 말이 나
왔으니 말인데 사실 춤만한 운동도 따로 없다.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배달된 조간신문을 샅샅이 읽어 간밤에 별다른 사고나 없었
는지 시중의 흐름이나 여론의 움직임을 알아 둔다. 언제 어떤 사람을 만나도 대화에 막힘이
없으려면 나 자신이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신문 두 종 시사주간지 하
나 이상 월간지 둘을 정기구독하고 때에 따라서는 전문서적도 사서 봤다. 워낙 많은 사람
특히 여성들을 최선을 다해 상대하다 보니 내 지식의 폭은 유흥업에서 꽃집 식당 의류 액세
사리 사무직 등등 여성들이 진출해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분야는 물론이고 중장비 임대 광
업처럼 여성 진출 인력이 극히 드문 분야에도 전문가는 못 돼도 일반적인 수준은 가볍게 뛰
어넘는 범위까지 넓어졌다. 여자들 특히 돈 있는 여자들은 무식한 제비는 질색을 한다. 이건
정말이다. 무식한 사람하고는 아예 상대를 안 한다. 너절한 춤솜씨하고 상판대기만 믿고 제
비짓 하다가는 오래 못 가 감옥간다. 무식하니까 싫다는데도 쫓아다니면서 무리를 하게 되
는 거다.
점심 때가 되면 일정을 체크한 뒤에 좋아하는 음식을 찾아 잘한다는 식당에 들른다. 나중
에 다시 올 것에 대비해 식당의 인상이나 지리 음식의 질을 체크해 둔다. 아무리 잘하는 음
식점이라도 두 번 이상 연달아 가서 주인에게 특별한 인상을 남기는 일은 삼간다. 자 이제
점심을 먹었으니 슬슬 춤방으로 가서 새로운 상대와 인생을 구가해야 할 차례다. 돈을 뜯자
는게 아니다. 같이 즐기자는 게 중요하다. 춤방은 오후 두 시부터 나편족들이 퇴근하기 전까
지가 제일 황금기다.
춤방으로 들어간다. 어두컴컴한 조명에 눈이 익으면 나느 어떤 여자가 있나 홀을 한 바퀴
둘러본다. 처음 온 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든가 친구 손목에서 일 미터 이상 떨어지지 않으
려는 여자가 일차 대상이다. 혼자서도 미친 듯이 흔들어 대거나 운동을 하듯이 춤을 추면서
땀을 흘려 대는 여자 정말 춤에 미쳐서 아무하고나 부둥켜 안고 돌아 가려고 하는 여자는
사절이다. 내가 한번 찍은 상대는 다른 제비들이 접근을 할 수 없다는 게 불문율이다. 나는
보통 제비가 아니라 왕제비였던 것이다. 따라서 내가 고르는 상대는 나와 수준이 맞아야 한
다. 커다란 진주목걸이나 누런 금빛이 번쩍거리는 장신구를 한 여자는 내 취향이 아니다. 이
런 여자들은 목걸이나 장신구가 재산의 전부인 경우가 많다. 나는 겉으로 드러나는 부와 감
추어진 알짜배기를 구별하는 데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다. 춤을 추면서 알짜배기를 구별하는
데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다. 춤을 추면서 상대의 목덜미 바로 아래 옷을 달린 메이커를 보
면 구십 퍼센트는 그 여자의 경제 사정을 알 수 있다. 속옷까지 확인하면 확실해진다. 생소
한 외국 상표 이름은 십 년 넘게 살아 온 남편보다도 초보 제비가 훨씬 더 잘 안다. 작아서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독특하고 잘 어울리는 장신구를 한 여자도 물이 좋다. 상대가 어떤 수
준이라도 그 수준에 맞추는 건 기본이다. 일단 여자를 고르면 어디까지나 신사적으로 춤을
청하고 춤을 출 때도 신사적이고 춤을 추고 나서도 신사라는 호감을 사도록 노력한다. 그렇
게 하려면 나부터 나를 신사라고 생각해야 한다. 사실 나는 신사다. 예절 그 자체인 사교 댄
스를 나처럼 정통으로 배우면 신사가 안 될 수가 없다. 춤이 끝나고 나서도 애프터 신청을
할 때도 어디까지나 신사답게 정중하게 한다. 내가 신청을 해서 안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
다. 신청을 안 받아 줄 사람 같으면 아예 신청을 하지도 않았고 춤도 추지 안았을 테니까.
애프터로 차를 마시러 가게 되면 기사를 호출한다. 한때는 감옥에 간 내 친구처럼 월급
기사를 고용한 적도 있었는데 몇 달 안 가서 약점 같지도 않은 약점을 찾아 내서 제비 잡는
독사처럼 설치는 꼴을 보고는 필요할 때 부르는 쪽으로 바꿨다.
뭐 하는 분이세요. 이런 데서 만날 분 같지가 않아서요.
차를 타고 가다 보면 그런 질문을 받는 게 보통이다. 나는 상대에 따라서 내가 전에 만났
던 여성들이 가지고 있던 직업 가운데 한두 개를 댄다. 전문용어는 얼마든지 주워 댈 수 있
고 업계의 흐름 같은 건 한 시간 이상을 떠들어 댈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상을 알려고 하는
여자는 거의 없다. 꼭 믿으란 법도 없고 믿어 달라는 것도 아니다. 나는 굳이 상대의 직업을
캐묻지 않는다. 묻지 않아도 이야기를 해주는 게 보통이다. 나는 그 이야기가 정말인지 아닌
지 한두 마디만 듣고도 금방 알 수 있다. 거짓말이라고 해도 상관하지 않는다. 나는 제비 중
의 왕제비이고 그 여성은 제비가 득실대는 춤방에서 춤을 출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 왔다
제비를 만난 거니까 그 범위 안에서 생각하고 움직이는 게 좋다. 커피를 마시는 장소로는
특급 호텔 커피숍을 이용한다. 호텔로 들어서면 여자들은 반신반의 하는 표정으로 나를 돌
아본다. 아니 만나자마자 호텔로 직행하는 거야 이렇게 빨라 그런 표정도 있고 평생 처음
와보는 호화로운 곳이라서 얼떨떨해 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오로지 최선을 다할 뿐이다. 커
피를 마시면서 물건이 되겠는가 아닌가 판단한다. 안 된다 싶으면 그때까지 들어간 기사 일
당과 커피값만 날리면 된다. 이제 가능성이 있는 상대와 식당으로 간다. 물론 맛있고 정갈하
고 유명한 내가 점심 먹으러 다니면서 미리 점찍어 둔 식당이면서 나를 나는 사람이 없는
특히 다른 제비가 없는 식당이다. 거기서 최고의 요리를 최고로 입맛에 맞게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고 먹는다. 식사를 같이 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사이가 훨씬 가까워진다. 밥을 나눠
먹고도 친밀감이 조성이 안 되는 상개가 있으면 여기서 끝. 식대만 날리면 되니까. 그 다음
에는 예정된 대로 술을 마시러 간다. 물론 일류의 술집에 가서 일류의 술을 마신다. 비용은
내가 모두 현금으로 부담한다. 나는 최선을 다하는 신사이므로. 상대가 술에 취해 집에 못
들어가든가 늦게 들어가게 되는 경우가 생기면 나는 역시 최선을 다해 숙박업소로 모신다.
그 다음 과정이야 제비 아닌 사람도 다 아는 거니까 상상에 맡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도
최선을 다해 봉사한다. 이 과정이 단 하루 만에 끝날 때도 있고 며칠이 걸릴 때도 있다. 이
렇게 한 사이클이 지나면 나는 한동안 춤방에 나가지 않고 그 여자에게 집중한다. 경치 좋
은 곳 열정적인 사랑을 나눌 러브호텔이 있는 곳 맛있는 식당이 있는 곳으로 다니며 신뢰와
사랑을 쌓아 나간다. 그 동안에도 절대 계산대 앞에서 여성이 핸드백을 열게 하는 일이 없
다. 시간이 흐른다. 눈이 오고 비가 오고 바람이 몰아 치는 날도 있다. 따라서 피치 못할 사
정으로 못 만나게 되기도 한다. 꼭 그때쯤 내 사업 자금이 모자라게 된다. 자금이 모자라면
나는 할 수 없이 연락을 끊는다. 열렬하게 나를 원하는 상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게 연
락을 해온다. 나는 그동안 바빠서 연락할 수 없었다. 요즘 자금 흐름이 나쁘다고 말한다. 융
자를 받아야 하는데 은행 측에서 망설이고 있다. 물론 금방 좋아질 것이며 전혀 걱정할 게
없다고 한다. 하지만 몸을 빼기가 어렵다고 한다. 연락을 끊고 나서 빠르면 몇 시간 뒤 아니
면 며칠 뒤 내 상대가 간곡하게 때론 억지까지 써가며 만나자고 한다. 나는 그러고 싶지만
지금은 은행에 가서 고개를 숙이고 융자를 부탁해야 한다. 좋아지면 보자고 한다. 정말 내
사정이 그렇다. 만나면 최고급 호텔 최고급 식당 최고급 술집으로 가야 하는데 내가 가진
현금은 바닥이 난 것이다. 상대는 은행으로 가기 전 자기를 잠깐이라도 만나 달라고 애원하
다시피 한다. 나는 몇 번을 망설이다가 한숨을 쉬며 그러겠다고 한다. 사업이냐 사랑이냐.
나보고 고르라면 언제나 사랑을 고를 것이다. 내 사랑을 만난다. 내 행색은 초췌하다. 하찮
은 자금 때문에 속을 끓인 탓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동안에도 핸드폰은 쉬지
않고 울려 빚을 독촉해 댄다. 어쩔 수 없이 시계를 보기도 한다. 그때마다 미안한 건 난데도
상대는 나보다 더 미안해 한다. 그때마다 미안한 건 난데도 상대는 나보다 더 미안해 한다.
헤어질 무렵 내 사랑은 핸드백을 열어 흰 봉투를 내놓는다. 그리곤 내가 만류할 겨를도 없
이 도망치듯 가버린다. 나는 쓸쓸히 봉투를 바라보다가 내용물을 확인하지도 않고 주머니에
집어 넣는다. 그 봉투에서 나온 돈으로 나지도 않고 주머니에 집어 넣는다. 그 봉투에서 나
온 돈으로 나는 아파트 다섯 채를 샀고 고급 맞춤양복 백여 벌 골프 세트 배기량 3천6백 씨
씨의 고급 승용차를 장만했으며 아이들 과외비도 대주었다. 여기에 무슨 협박이 필요하며
감금 폭행 사기 공갈 성폭행 혼인빙자간음은 또 무슨 말인가. 물론 내게도 몇 개의 전과가
있다. 왕제비로 태어난 사람은 없으니까 처음엔 나도 실수를 하긴 했다. 하지만 왕제비가 된
이후에는 한번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
춤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어떤 분야에서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정상에 올라갈 수가 없다.
춤바람이 나면 춤이 직업이 아닌 한 자기 분야에서 정상에 오를 수 없다. 정상 일보 직전에
서 춤바람이 나든가 나 같은 제비를 만나서 좌절할 수밖에 없는 상대를 보면서 안타깝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만난 여성들 가운데 대부분의 여성은 일정한 직업이 없었다. 남편이 벌어
다 주는 것을 가지고 춤방에 나오든가 아니면 이혼 위자료를 두둑히 챙겼다든가 하는 게 보
통이었다. 그런 여성들이 갖다 주는 돈을 받는 건 사실이지 덜 켕기더라. 자기 분야의 사업
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러 나왔든지 집 안에 갇혀서 애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하다가 어지
간히 여유가 생기고 할 일이 없어서 나왔든지 간에 나는 춤방에서 만난 여인들은 똑같이 최
선을 다해 상대했다. 그래도 혹시 미안한 마음을 느낀 적은 없느냐. 있긴 있다.
아직 기억이 나는 사람은 중부시장에서 멸치 좌판을 벌여서 자식들 공부시키고 무능한 남
편을 먹여 살리다 지루한 인생을 극복하기 일보 직전에 참지 못하고 춤방에 나왔다는 나의
아흔 여덟 번째 사랑이다. 그 여자는 맨 처음 내 사업자금으로 백만 원을 가져왔다. 나는 그
백만 원이 멸치를 몇 마리나 팔아야 나오는지 몰랐다. 물론 나는 그 돈이 적다고 서운해 하
지는 않았다. 사업은 사업이니까 나는 딱 그 액수만큼만 성실했다. 그 다음에 만났을 때 나
의 사랑은 목덜미까지 빨개지면서 봉투를 내밀었는데 집에 와서 꺼내 보니 백오십만 원쯤
됐다. 대부분이 헌 돈이었고 내 사랑이 시장에 앉아 밥을 먹다가 고추장을 떨어뜨린 오천
원짜리까지 있었다. 그때 미안했던 것도 아니다. 나는 내가 사람을 잠못 고른 것을 후회하느
라 좀 바빴으니까. 마지막으로 그 여자가 내게 가져온 돈은 시장의 가게 권리금으로 받은
돈이었다. 권리금에서 아이들 등록금과 큰딸의 혼수비용 자신이 돌아갈 때 탈 지하철 표값
을 뺀 돈이었다. 그게 얼마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여자는 자신이 춤방에 드나들던 게
들통났다 남편이 술만 마시면서 며칠을 울더니 이젠 자신이 공사판에라도 나가서 벌겠다 모
든 것을 용서하니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다고 그 여자는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봉
투를 집어 넣고는 원래 예정한 대로 결별을 선언했다. 그 여자에게서 더 이상 나올 게 없어
서 헤어지자고 한 게 아니다. 그 여자가 수억짜리 복권을 탔다고 해도 헤어지는 건 마찬가
지였을 것이다. 일어서려다 보니 그 여자는 탁자에 떨어진 눈물을 뽀드득 소리나게 문지르
며 그 옆에 새로운 눈물방울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때 나는 그 집이 하필 싸구려 중국집
이라는 게 신경이 쓰였다. 내가 미안했던 건 그거다. 자기 돈으로는 자장면 한 그릇도 사먹
을 용기가 없는 사람과의 이별의 장소로 하필 싸구려 식당을 택한 게 미안했던 것이다.
생활에 여유가 생기고 춤이 생계와는 큰 상관이 없는 일이되자 내게 이상한 감정이 찾아
들었다. 진정 춤은 무엇이고 위대한 제비는 뭔가. 진정한 내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 어느
때부터인가 혼자서 그런 질문을 뇌까리며 술잔을 기울이는 일이 잦아졌다. 모든 것이 시들
해지고 일에도 의욕이 없어졌다. 그랬을 때 우연히 어느 포장마차에서 내 친구가 말한 별종
동창 군수 아들을 만나기도 했다. 무슨 건물의 청원경찰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인생이 공허
하다가 한숨을 푹푹 쉬었다. 좀 안돼 보이긴 했지만 나는 내 친구같이 고등학교 때 부러워
한 친구를 경쟁자로 만드는 바보 같은 짓을 하지는 않았다. 그냥 한 잔 술을 나누고 깨끗이
헤어졌다. 나는 권태를 이기기 위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춤을 추러 갔다.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서 춤을 추러 갔다. 나한테는 춤이 직업이고 취미였고 이상이었다. 춤말고는 나의
고뇌를 잊어버릴 방법이 없었다. 나는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이름없는 변두리의 허름한
춤방을 찾아갔다. 거기서 나는 한 여자를 알게 됐다. 나는 그 여자가 분식집을 계속할 수 있
도록 도와 주었고 분식집을 일식집으로 바꾸도록 해주었다. 그 여자는 일식집을 개업하자마
자 개업 축하화환의 꽃이 시들기도 전에 팔아먹고 도망갔다. 그 여자가 진짜 제비 잡는 꽃
뱀이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었고 가련한 그녀에게서 일찍이 경험하
지 못한 풋풋한 사랑마저 느꼈다. 당하는 줄도 모르고 당했다. 어수룩한 놈이 당수 팔 단이
라더니 프로 같지 않은 진짜 프로였다. 그 덕분에 나는 집을 한 채 팔고 한 채는 저당을
잡혀야 했다. 집에도 선후배 동료 그 누구에게 말도 할 수 없어서 속으로만 앓았다.
제비나 꽃뱀이나 춤방을 무대로 사업을 하는 인간의 공통점은 그 사업으로 한 몫을 쥐었
다 해도 언젠가는 춤방으로 돌아온다는 거다. 송충이가 솔잎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춤으로
흥한 인간은 춤으로 망해서 결국 춤판으로 돌아온다. 나는 그 여자를 찾기 위해 어리숙한
중년 사업가 행세를 하며 그 여자가 망해서 돌아올 만한 변두리의 보잘것없는 춤방을 찾아
다녔다. 그러다가 나는 또 꽃뱀에게 걸렸다. 함께 여관을 들어갔다가 먼저 샤워를 하고 나오
니 오빠라고 하는 영낙없는 제비가 사진기와 야구방망이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결혼 날짜 받아 놓은 순진한 내 동생 몸 망치고 단물 빨아 먹고 이제 어쩔겨.
내가 아무리 왕제비라 한들 왕제비 면허가 있는 것도 아니요 면허가 있다 한들 사교 댄스
의 황제가 변두리 여관에서 새파란 애와 재미를 보려다가 새파란 애들한테 잡혔다는 게 알
려지면 그 순간부터 내 인생은 끝장이었다. 나는 애들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말
하기도 창피하다. 나는 알몸으로 엎드려 뻗쳐 같은 군대 시절에도 받아 보지 못한 온갖 기
합을 다 받았고 통장을 압수당했으며 각서를 쓴 다음 수천만 원을 또 뜯겼다. 몽둥이찜질
안 당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 덕분에 저당 잡혔던 집을 아예 넘기게 되었다. 거기서 비
싼 세상 공부를 하고 깨닫게 된 진히가 있다. 마음먹고 계획적으로 덤벼들면 아무리 날고
기는 왕제비라도 초짜 꽃뱀에게 당할 수 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천하에 없는 열녀
라도 제비가 마음먹고 달려들면 무너지게 되어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건 춤판에서의
이야기이다. 또 다행인지 불행인지 춤판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나는 지금 소설을 쓰려고 한다. 일선에서 물러났다고는 해도 나는 아직 나이 오십도 먹지
않은 앞날이 창창한 사나이다. 은퇴하고 나서도 음악만 흘러나오면 발이 움직이는 걸 참느
라 무진 애를 먹었다. 내 딴에는 이런저런 생각을 잊기 위해 조용히 머리를 정리하기 위해
한동안 소설만 수백 권을 읽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아무것도 모르면서 세상을 다 산 것처
럼 폼만 잡는 한심한 소설이 너무 많더라. 그래서 내가 직접 소설을 써야겠닥 마음먹게 됐
다. 세상에는 소설처럼 사는 인간도 있고 소설을 써야 먹고 사는 당신 같은 인간까지 있는
데 나로 말하면 소설을 쓸 수밖에 없는 인간이다. 춤으로 인생의 황금기를 보낸 한 사나이
왕제비로 알려진 인생 그러나 이제 원고지 앞에 돌아와 알몸으로 앉아 있는 인간의 이야기
를. 제목 어느 왕제비의 인생. 내 운명을 바꾼 호두알 두 쪽.
이때까지 내가 최선을 다해 여자들을 상대해 왔듯이 소설을 상대하는 데도 최선을 다하련
다.
제목 : 장천리 소태나무
지은이 : 이문구
술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무슨 책에 있는 말이 아니었다. 바로 이 장천리에서 동
내 사람들의 추대에 못 이겨 이장을 세 축이나 연임하고 물러나 사방은 약간의 논농사와
밭농사만 붙잡고 있는 이송학씨가 시내에서 술을 마시다가 한 말이었다. 씨는 어쩌다가 한
번이나 술이 얻어 걸려도 술을 받는 작자마다 맨 막걸리하고 소주밖에 모르는 데에 비위가
상하여 들으라고 술의 질을 높여서 먹는 것이 곧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란 뜻으로 씩둑거린
말이었다. 그렇지만 말은 뒤미쳐서 그에게 되돌아올 정도로 구석구석 안퍼진 데가 없이 널
리 퍼진 눈치인데다 막상 씨에게 술을 받아 주는 작자들은 생전 텔레비전도 안 보고 신문도
안 읽고 라디오도 안 듣고들 사는지 붉은 포도주가 좋다더란 말도 모르고 연한 술이 낫다더
라는 말도 모른 채 시킨다 하면 그저 막걸리요 찾는다하면 으레 소주가 고작이니 역시 헐수
할 수 없는 위인은 21세기가 내일 모레라고 해도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씨는 오늘도 먼논의 물꼬를 보고 오다가 올라가는 버스를 기다릴 겸 버스 정류장 옆의 뚱
뗑이네 포장마차에 앉아서 데친 주꾸미를 시켜 소주 한 병을 비웠다. 씨가 뚱뗑이네 포장마
차를 작은집 드나들 듯 하기 버릇한 것은 먼논이 부쩍 가깝게 느껴지기 시작할 무렵부터였
다. 먼논은 장천리에서 버스로 반시간 남짓이나 뚝 떨어져 있는 논이라고 하여 그렇게 이르
기로 했다지만 속내로는 아무리 걸게 거루어 가면서 농사를 지었댔자 논바닥은 매양 남의
논에 지나지 않으므로 어디까지나 먼논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기도 했을 것이다. 논 임자는
따로 있었다. 김아무개라고 주말이면 꼭 씨의 집앞에 있는 저수지로 낚시를 다닌 까닭에 씨
가 둔치에서 풀을 하면서 담뱃불을 주고받으며 사귄 이었다. 씨는 김아무개를 낚시철에 흔
히 오고 흔히 보는 서울 사람 가운데의 하나로 쳐서 예사로 여겼으나 김아무개는 무엇을 보
고 그랬는지 몰라도 씨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지 하루는 오더니 노는 돈이 은행에서 자
고 있는데 그보다는 논마지라도 사두는 쪽이 낫지 않겠는냐면서 씨의 이름을 빌렸으면 하였
다. 씨의 앞으로 명의신탁을 하자는 투였다. 농지매매증명서를 갖추어 이전등기를 하려면 농
지를 중심으로 20킬로 이내에서 6개월 이상 살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르므로 그것이 귀찮
다는 눈치였다. 씨는 다른 이들처럼 미등기 전매나 위장전입 같은 방법이 얼마든지 있는데
도 언제부터 봤다고 차명 거래와 명의신탁을 하자고 하는가 싶었고 또 그렇게 미더워해 준
것이 고마워서 대뜸 그러마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 장차 땅값이 몇 배로 뛰어서 땅을 내놓
을 때까지는 씨가 무엇을 지어 먹거나 마냥 지어 먹도록 해주겠다는 말에 혹하여 얼씨구나
하고 응했던 것이다. 씨는 김아무개네의 논 닷 마지기짜리 한 배미가 애시당초 봄에 물대기
와 여름에 물빼기가 걱정인 논으로 보이지 않고 금줄이 곧으면 곧아서 좋고 굽으면 굽어서
좋은 금점의 노다지판에 진배없이 알짜배기로만 보였다.
이윽고 부동산 실소유자 명의의 등기에 관한 법률이라나 뭐라나 하는 총기 없는 사람은
정신 사납기 똑 좋은 법까지 생겼다. 씨는 대번에 알아들었다. 씨는 자못 기대가 컸다. 수탁
자가 아무리 배부른 흥정을 해도 신탁자는 꼼짝 못하고 굽죄게 마련인 법의 내용 때문이었
다. 어떤 소설가 하나는 농촌소설을 쓰고 싶어도 농지매매법이니 농업진흥법이니 농지임대
차관리법이니 개발이익환수법이니 토지초과이득세법이니 부동산양도신고법이니 하는 각종
법률은 물론이고 무슨 부령이니 훈령이니 규칙이니 세칙이니 시행령이니 예규니 조례니 고
시니하는 규제 장치가 하도 자주 생기고 하도 자주 바뀌고 하도 자주 손질되어 당최 시작을
못하겠다고 어디에다가 쓰기까지 한 것을 보기도 했지만 그러나 그자는 자기가 똑똑치 못해
서 그렇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딱한 위인일 뿐이었다.
씨는 부동산실명제법에 따라 김아무개도 당연히 저의 앞으로 명의를 이전해 갈 줄 알았
다. 그런데 벌써 3년이 지나서 위장과징금이 당해연도 토지 가격의 60퍼센트에 달한다는 지
금까지 이렇건 저렇건 간에 통 기별이 없는 거였다.
이런 사람두 이런 때가 더러 있으야 허잖여 암 그걸 말이라구 혀. 씨는 한동안 눈만 뜨면
그런 자문자답을 하였다. 물론 그 김아무개가 자기만 알게 씨와 구두약정을 해놓고 지내다
가 탈도 많고 탓도 많은 세상인지라 갑자기 이승을 하직했거나 풍을 맞고 쓰러져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그럭저럭 자기의 것으로 굳어 간다는 심증을 전제로 하여 하고 또 하
고 했던 자문자답이었다. 하지만 늘 껄쩍지근하였다. 언제 무슨 일이 불그러져서 한껏 가까
워진 먼논이 도로 달아날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특히 부동산 실소유자명의의 등기
에 관한 법률의 제3조 제1항 즉 부동산에 관한 물권은 타인의 명의로 등기하여서는 아니 되
며 실소유자 명의로 등기하여야 한다고 한 대목과 벌칙 제7조 제2항인 제3조 제1항의 규정
을 위반한 명의수탁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한 대목을
떠올리면 늘 기분이 이상해지곤 하는 거였다.
깨잇것 냅둬번져. 씨는 아까 뚱뗑이네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실 적에도 문득 그놈의 벌칙
조항이 떠오르자 그럴 때마다 입가심으로 뱉어 온 허텅지거리를 하였다.
'어채피 이런 나라서 사는 이가 안 그러면 또 워 쩔뀨.'
뚱뗑이가 물건을 해온 신문지를 들고 하품이 늘어지던 때와 달리 귓등으로 들어 넘기지
않고 참견을 했다. 씨는 그녀가 무엇을 알고 하는 말이 아닌 줄 알면서도 찔리는 데가 있던
참이라 짐짓 퉁명을 부렸다.
'이런 나라라니 딸라 빚 안 지구 사는 나라가 워디 있간 이런 나라유.'
'그래두 그렇지 이런 일이 이냥 느닷없이 일어나는 나라가 워디 있대유. 이런 일이 일어나
두 다른 일이 안 일어나는 나라는 또 워디 있구.'
뚱뗑이가 얼핏 쳐들어 보이고 나서 구기적거리려 쓰레기통에 버린 것은 접때 국회의원 보
궐선거에서 이긴 네 명의 사진이 조르르 실린 묵어도 여러 날 묵은 신문이었다. 씨는 뚱뗑
이가 다시 보여서 은연중에 찌그렁이를 부렸다.
'경상도 사람허구 혐의 지구 사는 이두 아니구 자민련이 밥 멕여 주는 이두 아닌 것 같은
디 왜 이러신댜.'
'긔덜이 왜 우덜을 밥 멕여 줘유. 우덜이 긔덜을 밥 멕여 주지.'
뚱뗑이도 눈을 희옇게 흘기면서 퉁바리를 주었다.
'그놈의 돈장사는 망허지두 않는다구덜 해쌓지만 봐봐유 종금사구 증권사구 닫을 때가 되
니께 척척 안 닫던가. 이런 나라 두 괜찮은 나란규. 안 그류.'
'괜찮은 건지 편찮은 건지... 새벽종이 울렸네가 워느 시댓적 새벽종이간 여적지 새벽종이
울렸네여 울렸네가. 안 그류.'
'얼라. 요새사말구 새벅죙이 방마다 울릴 땐디 무슨 얘기셔. 즌화방에 편의방에 비디오방
에... 아 방이나 즉은감.'
'시내에 나와설랑 맨 그런 방만 찌웃그명구 댕시셨던가베. 즘잖은 아저씬 중 알었더니 그
것두 아니올씨였구먼그려.'
'방에서만 그런다면 나 말두 안 혀. 승용차구 봉고차구 트럭이구 가릴 것 없이 새벅종만
울리남 낮종 밤종 저녁종 아침종 그저 질갓에 차만 서있다 허면 죄다 바쿠가 저절루 굴러갈
지경으루 종을 쳐대는 세상이니...'
'어이구 술이 사람 맹근다더니만... 됐네유 됐어. 허는 말마다 쇠주 먹구 막걸리 마신 소리
만 더럭더럭 허더랑께. 넘의 걱정 작작 허시구 아침에 더운밥 얻어 자시구 싶걸랑은 니열버
텀이래두 아저씨네 새벽종이나 제대루 치시는 게 나슬뀨.'
'우리 집 새벅죙이야 끄덕없으니께...'
씨는 그렇잖아도 별 실없는 소리를 다 노닥이는구나 싶던 참이었는데 마침 버스가 닿는
바람에 그만해서 일어선 터였다. 시끄러 끄떡없는 것 좋아허네 그게 끄떡없는 거요 끄떡두
않는 거지 하는 소리가 뒤통수를 쥐어박는 것 같았으나 씨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툭하면
듣는 지청구였지만 그러고 퍼붓는 것은 그 포장마차의 뚱뗑이가 아니라 벌써 한 십여 년 전
부터 내주장을 하는 아내였기 때문이었다.
웬일로 빈 자리가 다 있나 싶어서 뒷문께로 가보니 안팎으로 아는 아낙네가 이미 서넛이
나 앉아 있었다.
'나오셨슈.'
먼저 보고 아는 체를 한 것은 불뭇골 한필만이의 안이었다.
'집에 있남유.'
씨는 빈말로 필만이의 안부를 물어 답례를 대신하면서 자리를 잡았다. 씨는 그녀를 볼 적
마다 그녀와 아내가 의가 나서 서로 물어뜯으며 지내는 사이인 데다가 자기의 잘못 판단으
로 필만이까지 셈평이 안 펴인다는 생각이 떠올라 거북살스럽기가 짝이 없었다.
씨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고개가 절로 수그러들었다. 노태우 전대통령이 취임하고 얼
마 안 되었을 때였다. 그 양반이 청와대로 조무래기들을 불러들여 어울리는 장면만 안 봤으
면 생전 가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조무래기들이 그 양반에게 이것저것 대중없이 물어
가며 시실거리던 중에 웬 아이 하나가 어려서 좋아했던 음식이 무엇이냐고 물었던 것이다.
그 양반은 서슴없이 깻잎장아찌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짝 하고
생장작 패는 소리가 났다. 텔레비전에서 난 소리가 아니었다. 텔레비전에 턱을 받치고 있던
씨가 자기의 허벅지를 내려친 소리였다.
'이이가 간 떨어질 뻔 봤잖여. 내둥 가만히 앉어 있다가 왜 난디없이 희나리 뻐개는 소리
는 내구 이런댜.'
그때만 해도 요새처럼 구박덩어리로는 안 보았던 터라 아내는 어리둥절하여 두런거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씨가 다시금 무릎을 쳐가며
'맞어 저거여 저거 바루 저거라닝께.'
하며 9년 면벽 끝에 드디어 무엇인가를 크게 깨닫은 것처럼 부접을 못하자 씨가 들썽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힐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기도 했다. 씨는 번개같이 떠오르는 바람에 무
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던 생각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들깨 모를 잔뜩 부었다가 밭이 있
는 대로 들깨를 갈되 가을에 가서 들깨를 할 것이 아니라 잎사귀를 수확하여 깻잎장아찌로
팔자는 내용이었다. 씨는 그것이 장사가 될 수밖에 없는 발상의 근거도 있는 대로 늘어놓았
다. 아내에게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경운기가 말을 잘 안 들어 모터를 보이려고 제일공업사
에 갔다가 돈거리로 심을 만한 것이 없어 텃밭까지 묵밭을 만들기 십상이라고 불뚝거리는
바람에 한필만이에게도 똑같이 귀띔을 했던 것이다.
저 냥반이 워떤 냥반이신가. 편모 슬하에 어렵게 자라서 육사에 들어갔다가 더 달을 별이
없어서 니 개만 달구 나온 냥반 아닌가. 그뿐이간. 정무장관에 체육부장관에 내무부장관에
민자당 대표에 쓸 마헌 자리는 죄 한번씩 앉어 본 댐에 청와대에 들어간 냥반 아닌감. 헌디
그런 냥반이 어렸을 적 좋아헌게 꽤잎짱아찌라구 했으니 그 댐이는 보나마나 아녀. 되여. 그
럼. 틀림없이 될 텡께 두구 보라먼.
씨는 아내와 필만이가 무엇을 보고 그렇게 장담을 하는지 몰라 긴가민가해 하는 것 같아
서 다시 뒷동을 달았다.
워컴이라구 허는 이가 있었어. 저 냥반덜이 총을 뽑았을 적에 미8군 사령관이라나 뭐라나
루 있던 이였지. 그이가 헌 말이 있어. 왜 기억 안 나 한국 사람은 들쥐떼 근성이 있어서 큰
쥐가 한 마리 나오면 죄다덜 그 뒤를 쫙 따러가는 게 버릇이라 역쿠데타 같은 건 있을 수가
없다구 워싱턴에다 보고했다던 거 말여. 기맥힌 증답이지. 그거여 꽤잎짱아찌를 허면 된다는
게 바루 그건겨. 콩너물대가리 안 먹는 애덜 어거지루 피아노 학원 보내구 눈설미 없는 애
덜 어거지루 미술학원 보내구 허는 게 다 뭐간디 보내는 대루다가 됐으면 이 나라가 온통
음악가 천지 미술가 천지 예술가 천지 되었게 그게 아닌 줄 뻔히 알면서두 보내구들 있잖
여. 왜 넘덜이 보내니께 나두 보낸다 이거여. 내 새끼 기 안 죽이려면 개성이니 창의성이니
허는 거 다 말짱 헛게구 오로지 넘덜 허는 대루 해서 가급적이면 평균적인 애루 기성품적인
애루 기성품적인 애루 질러야 되는 줄루 알구덜 있기 땜이 될 수밖에 없다 이거여. 아 생각
을 해보라구. 어려서 꽤잎사구 짱아찌 많이 먹구서 오늘날 참일국의 통치자가 되었는디 몰
랐으면 모를까 그것두 테레비에 나왔겄다 안 사다 멕이구 배겨 큰일나지 큰일나...
씨는 들깨를 닷 말이나 팔아다가 갈았으나 돈값 품값은커녕 장아찌 담그는 데에 들어간
소금값도 못한 채 두 손을 들고 말았다. 필만이도 마찬가지였다.
깻잎을 지게로 다서 장아찌를 드럼통으로 담가 놓아도 누구하나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씨는 서울에서 한다하는 백화점 지하 식품부에 밑바찬 납품으로 한창 수가 났다고 하던 장
모 손식품의 사장이자 농고의 원예과 동기이기도 한 정가를 찾아 가기도 했다. 그랬지만 정
은 없고 차림새가 달삯꾼인지 날삯꾼인지 대중이 안 되는 아낙네 하나가 깻잎장아찌란 말에
손사래를 쳐가면서 두말도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서울서는 짜게 먹으면 들 좋다구 늙은이덜두 싱겁게 먹는게 유행이라는디 짐치두 냄새 나
서 싫다는 애덜이 뎁세 짱아찌를 먹겠네유. 이 아저씨 아다마가 영 빵꾸라데쓰까시구먼.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나 먹는다고들 하듯이 생선회를 먹여도 맛을 모르고 먹는 이나 집
이 어려워서 푸성귀밖에는 몰랐던 이들은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구워 먹어도 본맛을 모르는
탓에 고기 맛이 안 나는 줄도 모르고 흔히 상추나 들깻잎으로 싸서들 먹으므로 날깻잎도 그
나름으로 판로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씨는 그러나 양심의 불허는 둘째 치고 첫째로
겁이 나서 날깻잎을 시장에 낼 수가 없었다. 잔딧물 구제약을 비롯해서 오갈병 방제약이며
탄저병 예방약 따위를 수도 없이 쏟아 부은 탓에 차라리 거름으로 쓰는 쪽을 택했던 것이
다. 필만이라도 날깻잎을 내봤자 품삯도 안 나온다고 퇴비장을 채웠다. 해서 필만이의 안에
서는 씨가 그 집 앞으로 지날 때마다 고개를 들 수가 없게 입이 늘 한 자씩은 나와 있곤 했
다.
그러나 그 일로 하여 아내와 필만이 안 사이에 의가 상해서 지내는 것은 아니었다. 아내
가 집에서 하던 그대로 조심성 없이 말전주를 한 탓에 그렇게 된 거였다.
들깨로 실패를 본 이듬해 봄에는 장전리의 부녀회와 경로당에서도 모이기만 하면 텔레비
전에서 본 부녀자 인신매매 이야기를 되삶고 곱삶고 하는 것이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다
른 사람도 아니고 필만이의 안이 납치되어 갈 뻔했다는 이야기가 드렸다. 필만이의 안이 친
정 조카가 하는 그린랜드 가든에 마늘 깐 것을 전하러 갔다가 내려가는 막차를 놓치고 바삐
걸어오는 참인데 웬 오토바이 한 대가 뒤에서 오는 줄도 모르게 와서는 가느 데까지 태워다
주마고 하는 거였다. 어두워서 잘은 안 보여도 입성으로 보나 목소리로 보나 잘해야 스무남
은 안팎의 청년 같았다. 필만이 안이 다 와간다면서 좋은 말로 거절을 하자 청년은 태도가
일변하여 그녀의 손목을 왁살스럽게 잡아 끌면서 강제로 태우려고 하였다. 그녀는 겁이 더
럭 나서 최홍식이가 물갈이를 해놓은 길가의 무논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다 틀린 줄 알았
는지 오토바이도 시내께로 불살같이 사라지더라는 거였다.
'세상이 하 어수선허니께 이런 디서두 그런 일이 다 생기너먼그려. 좌우간 무사했으니 다
행이지 뭐.'
씨가 들은 대로 옮기자 아내는 뜻밖에도
'그런 큰굿헐 년 육갑허구 자빠졌던가베.'
대번에 막말부터 퍼대었다.
'미친년이 따루 없어. 인신매매단이 눈이 뼈서 저 같은 걸 잡아가겼구먼. 잡어다 양로원
채릴 일이 있어서 저같이 늙은년을 잡어가.'
'무슨 말을 그렇게 헌다나. 냄의 귀에 들어가면 워쩔라구.'
'들어가면 워떻댜. 제년 늙었다는 거 말 못하는 어린애 빼놓구는 다 아는 일인디. 체. 그게
저만 색색으루 논다구 되는 일이라면사 뭣이 걱정여.'
'그게라니 그게 뭣이간 그려.'
'몰러두 되는 거.'
씨는 더 이상 물을 수가 없었다. 이러니저러니 하다가 잠자리가 어떻다는 이야기로 옮겨
붙으면 할 말이 없을 터이기 때문이었다. 어째든 아내는 집에서 하는 말 본새로 말전주를
하다 필만이의 안과 틀어져서 피차 서먹하게 지내게 된 지가 사뭇 오래였다.
씨는 차에서 무슨 소리인가 하고 고개를 돌리다가 요즈음 유행하는 가지고 다니는 전화기
소리였음을 알았다. 다들 가만히 이는 것으로 보아 승객 중에서 들고 다니는 전화기가 있
는 이는 필만이의 안 하나뿐인 듯했다.
필만이의 안은 집에서 하는 말투로 전화를 받고 있었다.
'누구 어매나 본 지 오래네. 그런디 내 핸드폰 번호는 워칙게 알았댜 그려 이거 이깨잇 거
싸 돈냥까지 갈 것 없이 쇳냥이면 되여. 편한 것두 편헌 거지만 갖구 댕기면 뭣버덤두 든든
해서 좋다닝께. 맞어 인신매매단헌치 납치당헐 뻔한 뒤루는... 어매나 내가 배얌에 물린 건
또 워칙게 안댜 물렸지. 복숭아뼈 옆댕이. 괜찮여. 나는 용띠라서 배얌을 안 타. 독사는 물으
면 바루 흙에다 혀를 대냐. 그래서 독사헌티 물리면 물린 사람이 독사버덤 먼저 흙을 먹으
라는겨. 그래야 독을 안 탄댜. 가이헌티 물리면 그 가이털을 짤라서 불에 태워 물린디다 붙
이면 덧두 안 나구 낫듯이 아마 그런 이칠껴. 나 내가 누구여. 따끔헐 때 벌써 알어채리구
흙버텀 싸게 집어 먹은 댐에 이만헌 돌팍으루다가 볼 것도 없이 쌔려 쥑여 번졌지. 갱깃찮
다구. 봄 독사 독해 봤자 여름 물배얌만밖에 더 헐라간다. 워디를 거기 거기두 가본 지가 한
참 됐으닝께 수일 내루 한번 들러 봐야지... 그야 물론이구. 우덜은 물론 아니면 불론이닝께.
이 여편네 시방 말허는 것 좀 봐. 이래 봬두 노래방에서 98점 받은 실력이여. 그려그려. 또
즌화 줘. 응 응 응.'
전화를 그치는 소리에 이어 필만이의 안은
'저 아저씨 즌화 오래 헌다구 속으루다 뭐라구 허셨겄네.'
하고 입기심을 하였다. 씨를 두고 하는 말인 성싶었다.
'했남 왔지.'
누군지 모를 여자 목소리가 뒤를 받쳐 주었다.
'그래서 주사 맞구 오시는규.'
씨는 뱀에 물렸다는 말을 듣고도 모르쇠를 댈 수가 없어서 필만이의 안을 돌아다보았다.
'주사는사리 삭신이 각놀어두 돈이 아쉬워서 그것 한 마리를 못해먹었는디 염생이 다섯
마리 팔아서 즌화국에다 옜슈 허구 오는 질이네유. 아옘에뿐지 뭔지루 안 올르는 게 없이
죄 올러두 쌀값 안 올려서 고맙다구 농민덜이 배얌 물려두 주사값을 깎어 주는 것두 아니구
맞는 시늉만 허더가 말어번졌네유.'
'무슨 즌홧세가 그렇게 나왔대유. 그 휴대폰 쓴 값이라남유.'
씨는 기계 요리에 숙맥이고 보니 그렇게 묻는 수밖에 없었다.
'워디가유. 그놈의 국제 폰팅이라나 뭣이라가 잔속을 끊여대너먼그류. 어린 것이 뭘 알겄
슈. 즌화국이 속였지. 몇 번 안 돌렸다는디두 고지서에 턱허니 칠십만 원 돈이 찍혀 나왔으
니 워쪄 물어야지유. 이년아 붙어두 대학 가기는 다 틀린 줄 알어 해놨는디 모르지유 정신
을 채릴라나.'
'아따 하늘에서 오는 비두 오구 싶어서 오는 비 없구 가구 싶어서 가는 비 없는 벱인디
애덜이 무슨 실수는 않유. 놔둬유. 쇠똥두 밟어 봐야 개똥을 안 밟는 벱이니께.'
말은 그렇게 했지만 형편이 째는 필만이 처지에 수십만 원 돈이나 생돈을 잡았다고 하니
아니 들었으니만도 못했다. 필만이가 깻잎장아찌의 실패로 기가 죽어 지낼 무렵에도 씨는
위로 한번을 쓰게 해준 적이 없었다. 깻잎장아찌가 먹히지 않은 이유에 대해 대중을 할 수
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서울 아이들이 김치를 먹지 않는다는 것도 까닭을 알 수 없었지만
부모네가 짜게 먹이지 않는 방법으로 깻잎장아찌를 마다했다면 그야말로 우스운 노릇이었
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라면은 간이 싱거웠던가. 햄이나 소시지는 무가염식품이라
서 도시락 반찬에 바뜨리지 않았고 통닭구이는 소금 대신 대금으로 간을 했으며 양념통닭구
이의 양몀은 소금 대신에 무슨 금을 쓴 양념이었던가. 생갈비구이와 삼겹살구이를 가짜 참
기름에 섞어 먹는 소금은 짜지 않은 소금이며 햄버거와 스테이크는 또 무엇으로 간을 하는
것이기에 그토록 찾아다니면서 사먹여싸는 것인가. 씨는 필만이 내외를 찾아가 그런 푸념이
나 실컷 늘어 놓다가 물러났을 뿐이었다.
씨는 그로부터 햇수로 오 년이나 지난 뒤에서야 깻잎장아찌가 먹히지 않았던 이유를 어렴
풋이나마 가늠을 할 수 있었다. 그것도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다가 느낀 것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취임하고 얼마 안 되어서 춘천인가 어디로 첫 지방 나들이를 한 날이었을 거였다.
어느 동넨가에서 대통령을 맞이하는데 그 동네에서는 그나마 쳐주는 풍신이었는지 늙은이
하나가 난데없이 꾀죄죄한 검정 두루마기를 꿰고 방바닥에 이마를 조아려 가며 읊조리는 수
작이 임금님이 오셔서 영광이라는 것이었다. 씨는 하 기가 막혀 멍하니 앉아 있다가 속에서
올라오는 대로 씨부렁거렸다.
'저런 것하구 하냥 세금을 내구 사는 내가 안됐다 내가 안 됐어. 저런 이는 아마 메루치
꽁댕이두 거제도 메루치 꽁뎅이라구 허면 임금님 수랏상에 올러가는 진상품이라메 저만치
물러 앉겄지. 암 저런 츤것이 감히 워따가 손을 댈껴. 비극이다 비극. 대통령을 저러구 잘못
아는 것덜이 아직두 저냥 있으니 뭐가 되겄냐. 뭐는 되겄어. 안 된다구. 암것두 안 될 거라
닝께.'
씨는 팔만이에게도 같은 말을 되뇌며 깻잎장아찌가 실패한 장본의 하나로 얼뜬 사람들의
뼛속에 배어 있는 천민의식을 꼽았다. 필만이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으나 씨는 이 날토록 그
날의 텔레비전 화면을 잊어 본 적이 없었다.
씨가 미련하게도 미국인가 호주에서 한다는 음란전화에 빠져들어 국제전화 요금으로 모갯
돈을 내버리게 했다는 필만이의 막내딸이 생각으로 한참 쓴 입맛을 다시고 있을 즈음이었
다.
'저 차덜 좀 봐 아옘에뿌가 다 워느 나라 얘기냐구 차라구 생긴 건 몽땅 일루다 뫼들었잖
여.'
누군지 모를 여자가 씩둑거리는 소리에 이어 필만이의 안에서
'아옘에뿌니께 일루다 모들은겨, 그 전에는 굉일허구 반굉일만 뫼들었지 무시 때는 안 그
랬잖여. 그러나 저러나 사건반장님은 에서 내리시야겄네유.'
하는 소리가 들렸다. 씨를 보고 하는 말이었다. 씨는 얼결에 창틀 위에 있는 정지단추를 눌
렀다. 누르기야 얼결에 눌렀지만 가다가 내렸으면 싶었던 것은 아까부터였다. 아내와 틀려서
서로 오고 가지도 않는 필만이의 안과 한 차를 타고 가는 것도 그렇지만 그녀가 언제 또 전
화를 받아서 차가 시끄러울는지 알 수가 없어 차라리 다음 차로 가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
던 것이다.
버슬가 섰다. 씨는 차에서 내렸다.
'그럼 사건반장님 수고허셔유.'
필만이의 안이 웃느라고 하는 소리도 등에 업혀서 내렸다.
수고는 무슨 놈의 수고. 그게 수고헌다구 되는 일이던감.
씨는 길가에 줄을 지어 세워 놓은 차들을 피해 길턱으로 싸장이듯 걸어가며 저수지를 둘
러보았다. 낚싯대가 호안선을 따라 울바자를 두른 것처럼 줄느런한 것으로 보아 낚시꾼이
접때보다 부쩍 는 것 같았다.
씨가 경로당께를 지나 길굼턱으로 돌아드니 돼지우릿간 자리에다 은행돈으로 2층짜리 조
립식 집을 지어 큼지막한 네온사인 간판까지 내걸고 개업을 한 산천초목 가든의 김광세가
길처에서 서성거리고 있다가 씨를 보고 말했다.
'낚시꾼은 앉을 자리가 없어 앉었는디 때가 지나두 와서 국밥 한 투가리 말어 달라는 늠
이 없네그려. 이 동네에 와서 이 동네 고기를 잡어가면 다만 얼매래두 이 동네에 떨어트리
구 가는 것이 있으야 동네 사람덜두 돈 귀경을 허구 살 거 아녀. 안 그려.'
'좋아허네. 저 중에 옳은 낚시꾼이 몇이나 되길래 쓰레기봉투값 근검절약차 제 집 쓰레기
예다 놓구 가려구 낚시꾼으로 꾸미구 온 것이 반두 넘을 텐디 떨어트리긴 뭘 떨어트려 보나
마나 쓰레기뭉치나 슬쩍 떨어트리구 갈걸.'
'하여커나 저질덜이여.'
'고질이 바루 저질이니께.'
'어이 사건반장 볼 만한 사건이 있걸랑 혼자만 보지 말구 그런 때는 가끔 나두 좀 불러
봐. 영화 하나를 봐두 노얄티루 딸라가 나간다는디 이 아옘에뿌 시대에 그러면 쓰간. 딸라두
벌구 시간두 벌구 일석이조 아녀. 안 그려.'
'왜 안 그려.'
'그럼 지둘러 봐.'
'그려 지둘러 봐.'
만나면 하는 말이 노상 빈말이었던 터라 씨는 김과 수작을 하는 사이에도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물들이 골짜기 앞에 이르니 싸개싸개들밥이라는 상호로 차체를 뒤발하다시피 한 차
가 길가에 붙어 서서 프로판 가스불에 올린 냄비를 끓이는 한편으로 스티커를 통해서 김밥
잡곡밥 해장국 사골국 보신탕 매운탕 된장찌개 김치찌개 라면 손국수 틀국수 파전 족발 골
뱅이 소주 맥주 막걸리 커피 녹차 인삼차 따위를 주워섬기는 녹음 테이프를 돌리고 있었다.
주말에는 낚시꾼들을 상대로 배달을 하지만 보통 때는 이 동네 저 동네로 마을 안길을 뒤지
고 다니며 들일을 하는 농가의 새참뿐 아니라 일손이 달리는 집의 끼니까지 해결해 주는 좋
게 말하면 영농지원 이동 주방차인 셈이었다. 면소 옆에서 앉은장사를 하던 양창복이 아들
홍춘이가 장사가 시들하자 꾀를 내어 팔뚝을 걷어붙이고 음식 방물장수로 나선 폭이었다.
'재미가 워뗘.'
씨는 얼음상자에 생수병을 채우고 있던 양흥춘에게 지나가는 말을 하였다.
'낚시꾼은 몇 배루 늘어 보이는데 주문은 그전 같지가 않네요. 저수지를 벌써 세 바퀴나
돌았는데도 시키는 이가 없어요.'
양의 아내는 시아비와 알고 지내는 사이라고 공손히 대답하는데 양은
'이것두 다 해먹었슈. 전에는 시내에서 밤참이나 배달하던 야식집덜이 너만 역마살이냐 나
두 역마살이다 허구 산길 들길 안 가는 디가 없이 죄 쑤시구 댕기메 낮식까지 배달허자구
나오니 저이덜만 부도 나서 낚시 다니는 게 아리라 잘허면 나두 낚싯대 붙잡게 생겼슈.'
애비 친구에게 하는 말버릇치고는 싸가지가 하나 없는 입으로 불퉁거렸다.
'자네가 낚싯대 잡으면 내가 성가셔서 안 되니께 다다 그러들 말어.'
씨는 웃는 말을 흘리고 걸음을 옮겼다.
씨가 작녀부터 사건반장이란 모자 없는 감투를 쓰게 된 것은 동네 늙은이들이 하도 성화
를 해대는 통에 마지못해서 대답한 거였다. 하루는 경로당에서 보자는 전갈이 와 웬일인가
하고 가보니 동네 늙은이란 늙은이는 있는 대로 나와서 차포마상으로 벌려 앉아 장히 우국
충정에 침통한 화상으로 설왕설래를 하는데 가만히 뒷전에 앉아서 듣자하니 비장한 공기가
자못 볼 만하였다.
'예나 이제나 공자님 맹자님 밑에 님짜 붙이구 사는 건 매일반인디 워쩌다가 이 지경이
된겨. 당최 내가 내 동네 돌어댕기는디두 넘의 일에 내가 넘부끄러 고개를 숙이구 댕겨야
허니. 이게 사램이 짐승을 치는 동넨겨. 짐승이 사램을 치는 동넨겨 나 원 기가리가 맥혀서
매가리가 안 돌어가두 유분수지...'
'좌우지간 산길 들길 논길 개릴 것 없이 신작로구ㅜ 흔작로구 닥치는 대루 차가 들어가는
길이면 들어가서 낮이구 밤이구 차만 서있다 허면 꼭 그 지랄덜이니 암만 더웁구 바뻐두 애
덜 시켜서 물꼬 한번을 못 보게 허면서 산다면 말 다 헌겨. 뭐라구 허면 수굿이 듣기나 허
남. 댕신이 뭐간 챙견이냐구 뎀되 삿대질이 예사니 어런 늙다리가 젊다리덜허구 대거리를
헌들 말루다가 이길껴 심으로다가 이길껴. 드러워서 참말루...'
'젊다리덜만 그러간디 보면 한 사오십씩 처먹은 중다리덜이 되려 더 허여. 아 작년 여름에
저 비각 모텡이서 해필 물가 쪽으로 세워 놓구 연늠이 정신없이 거풋거리는 바람에 차가 못
견디구 빠꾸해서 풍덩했던 것덜두 건져 놓구 보니께 둘 다 거진 한 오십씩이나 됐더라닝께.'
'그때 그 차처럼 헐 때 빵꾸나 났더라면 영구차루 갈어 타지나 않았지.'
'빵구는 제기... 아 절구질 쎄게 헌다구 절구통 밑 빠지는거 봤어.'
'하여간 문제는 무단히 벌어지는 그놈의 접촉 사고가 문제여.'
'운전수가 딴전허는 바람에 바쿠가 밀려서 풍덩했다더만 왜 접촉 사고랴.'
'누가 차차간 접촉 사고라남 남녀간 접촉 사고라지.'
'그건 사고가 아니구 사건이여 접촉 사건. 안 그려.'
'기구 아니구 간에 이냥 국어책만 읽구 앉어 있으면 워쩐다나. 무슨 대책을 세워야지. 시
방까장은 눈에 띄는 족족 서서 구경허구 있으면 우물쭈물하다가 가게 허는 수뿐이었는디...'
'그 수가 난 수여. 짜꾸 그러다 보면 해두 여기서는 훨씬 들헐 테니께.'
'비 오구 눈 오는 날은 워쩌구유. 먼논에 댕기메 보니께 그런 날이 훨씬 더 심허던디유.'
씨는 자기도 모르게 시키지도 않은 말이 불쑥 튀어나오고 말았는데 그것이 불찰이었다.
기중 연장자인 최점동 옹이 내심 벌렸던 모양으로 얼른 말꼬리를 낚아 채며 다짐을 받자고
나섰던 것이다.
'그려. 거기가 부지런해서 날 궂은 날두 먼논으루 워디루 즐겨 돌어댕기니께 거기가 사건
반장 좀 맡으야겄어. 거기가 적임자여.'
씨는 짜고 하는 말 같아서 더욱 펄쩍 뛰었다.
'저는 싫유. 아 먼논이 무슨 죄가 있다구 먼논에 자주 댕긴다는 이유루다 그 노릇을 헌대
유. 지가 나슬 게 따루 있지유.'
'앞으루는 면장 읍장두 법으로 없애다는디 이장을 시 축이나 지낸 사램이 없는 면장을 허
잘 수두 없구... 뭐래두 더 허야지 이냥 늙다리 많은 동네서 내 한 몸 편헌 게 장때은 땡 잡
는 게 아니라 황 잡는 거여. 알어.'
'그야 알지유. 그래서 늘 국민 여러분께 죄송허게 생각 않남유.'
'국민 여러분까장 갈 것 없어. 동네 여러분 선에서 허여.'
'사램이 개허구 겨뤄 봤자 사램이 이기면 개버덤 나은 늠이구 개헌티 지면 개만두 못헌
늠이구 개허구 바기면 개 같은 늠인디 그 노릇을 허라구유.'
씨는 어떻게 해서든지 피해 보려고 중절거린 말이었으나 그 말을 하고 나니 더는 할 말이
없는 것 같아서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경로당은 뭘 주려구 아까버텀 오너라 가너라 허구 부산 떨었댜.'
저녁 뉴스가 끝나자 아내는 텔레비전을 끈 다음 자리를 보면서 경로당에서 찾았던 이유를
물었다. 씨는 경로당에서 나온 이야기를 들은 대로 옮겼다.
'제우 팔자에 없는 감투 씌워 주려구 찾은 모냥이더먼.'
'이장은 벌써 지냈구... 동네에 그 말구 무슨 감투가 또 있간 당신더러 허랴 뭔지는 몰러두
하여간 내 돈 들어가는 일허구 툭허면 생기는 것 없이 불러 대는 일허구는 일절 맡덜 말어.
알어.'
'이장은 허구 싶어서 했남. 그때두 긔덜 성화에 피치 못해서 했구먼두.'
'그래서 그래서 이번이두 또 대답을 했다는겨 뭐간디 그려 먼젓번마냥 슨거에 박수꾼으루
따러댕겨 달라는겨 아녀 그런 것 같은 것이면 쉬쉬 허구 자긔네가 타먹지 이런 이헌티 차례
올 리가 없지.'
'그게 아녀. 요새 차덜이 하두 가다가 말구 길에서 거시기 해쌓니께 나버러 말리는 일을
허라구... 사건반장을 맡으라구 찾어 댄겨.'
'그러면 자긔더러 그 카쎅스라나 뭐라나 허는 거 그거 단속 반장을 해라 듣구 보니 그 얘
기 아녀 시방.'
그녀는 베개를 끌어당겨 먼저 누우면서 단박에 알아듣고 따졌다.
'그런 심이지.'
씨도 그녀 옆으로 베개를 베었다.
'그걸 왜 말려. 놔두지.'
'애덜이 봐두 그렇구 아주먼네덜이 봐두 그렇구 도덕적으루 봐두 그렇구 갈수록 걱정이니
께 그러는 거 아녀.'
'그런 걱정은 두 번두 많어. 대강 허구 나머지는 뒀다가 혀.'
그녀는 핀잔에 이어서 이기죽거리는 버릇을 그치지 않았다.
'이 동네 뇌인네덜은 하나같이 망령기구먼. 해서 될 일이 따루 있구 해두 안 될 일이 따루
있는디 몰러두 너머덜 모르네. 그게 워디 냄이 신칙헌다구 듣구 냄이 챙견헌다구 들을 일이
여. 원제는 안 해봤던감. 해보니 무슨 효과가 있었어. 아 자긔두 말려 봤다메.'
'말렸지 접때. 왜 냄의 사생활 침해냐구 즘잖게 나오더라구 했잖여. 여긔가 늬 집 방이냐
니께 방버덤 낫다는겨. 헐 말이 있으야지. 혼만 잔뜩 났다니께.'
씨는 그래서 할 말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여자는 새파라도 사내가 오십 중반이라 젊은
이들 다루듯이 얼굴에 있는 나이를 명함 삼아 느긋하게 닦아 세울 수도 없는 데다가 대가리
에 들은 것도 있는지 하는 대꾸마다 씨로서는 듣는니 처음인 말로만 너스레를 떨어 대어 우
선 말이 째어서도 하리없이 돌아 서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 봐유 여기가 방버덤 낫다니 그 집은 배이 월마나 좁어서 이 좁어 터진 차 안이 더 낫
단대유. 딱두 허슈. 그 나이에...'
씨는 부아를 돋워 주어야 부앗김에 어서 사라지려니 하여 짐짓 약오르기에 좋은 말을 해
본 거였다. 사내는 말대답을 해도 예를 갖추어 차창 밖으로 고개까지 내밀어 가며 나직하게
말했다.
'이거 보슈. 나두 요전에 우연히 어느 신문에서 봤소이다마는 그 아이비엠 간부가 뭐라구
헌 줄 아슈 남의 로멘스를 불법화허는 것은 바로 일기 불순을 불법화허는 거나 같다... 무슨
소린지 아슈.'
'아옘예뿌 간부가 뭐라구 허구 않구는 나두 금시초문이라 모르겄시다만 그야 알구 모르구
간에 가다가 말구 여기서 이러구 있으면 쓰겄슈 가만히 보니께 영 쓰다가 못쓸 양반일세 그
려.'
'이보슈. 가다가 말구 서있는 것두 다 그럴 만헌 이유가 있어서 서있는 거유. 들어 보시겄
수.'
'들어 봤자 무겁기밖에 더 헐라구.'
'이보슈. 인간의 평균 수명이 얼마요. 한 칠십 정도가 아니우. 그러면 평균 칠십 년 잡구
인간이 그 칠십 년을 향해서 가는 속도가 얼마나 되는지 알우 나두 얼마 전에야 우연히 어
떤 책에서 보구 깜짝 놀랬시다마는 무슨 얘기냐 허면 인간은 앉은 자리에 가만히 앉어서두
그 칠십 년을 채우기 위해서 즉 죽음을 향해서 시속 40킬로루 달리구 있다 이거요. 자 그러
니 가다가 안 서게 됐수 그것두 차루다가 달리는데 가다가 더러 안 설 수가 있겄느냐 이거
요. 그렇잖수 어떠슈 들어 보니 무거워요.'
씨는 그때처럼 입이 무거웠던 적이 없었다. 그 사내는 천천히 뒷문을 열고 차에서 나오더
니 다시 천천히 앞문을 열고 들어가 천천히 운전대를 잡았다.
'본전두 못 추리고 혼만 잔뜩 나구 말었네그려.'
씨는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마치 소태나무 껍질을 핥았을 때처럼 입맛이 썼다.
그러나 아내는 그런 속도 모르고 딴소리만 하였다.
'그래서 자긔가 맡기루다가 헌겨 워쩐겨 보나마나 얼씨구나 했겄지 뭘. 안 그래두 일허기
꾀가 나서 죽겄는 판에 슬슬 뒷짐 지구 댕기메 그런 구경만 골러 가면서 허구 아주 살판났
구먼그려.'
'구경은 자긔두 해봤다면서 뭘 그려.'
그러자 그녀는 얼른 씨 쪽으로 바짝 다가들며 생각지도 않게 엉뚱한 것을 물었다.
'나두 보기야 했지. 그런디 이상허데 앞 유리루 봐두 사람 뒤통수만 뵈구 뒷 유리루 봐두
사람 뒤통수만 뵈구 워칙게 허면 그렇게 뒤통수만 뵌댜.'
'다 그러는 방벱이 있으니께 그럴 테지.'
씨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녀는 또
'자긔두 알어 그럼 우덜두 한번 해볼텨.'
하고 옆구리를 툭 치는 거였다. 씨는 속으로 찔끔하며 이내 주눅이 들었지만 그것을 내색하
지 않으려고 일부러 툽상스런 말투로 받았다.
'우리가 차가 워디 있어서 경운기에서.'
그 말에 그녀는 얼핏 풀이 죽나 싶더니 어느새 씨의 정강이께를 냅다 걷어 차면서 목청을
돋우는 거였다.
'저만치에서 자 그렇잖어두 후덥지근헌디 옆댕이에 붙어서 열받치는 소리만 허구 자빠졌
어.'
'차는 차차 사면 되구...'
씨는 정강이가 뻐근했지만 아야 소리도 못한 채 속도 없이 따리를 붙이며 담배를 찾는 시
늉으로 일어나 앉았다.
'다 구만둬. 어채피 고생을 낙으루 알구 살어 온 인생인디 다 늙어서 차가 무슨 쇠용일껴.
인생은 저저끔 제 과목대루 사는 거여. 나두 워느 새에 틈만 나면 앉을 자리버텀 보는 사람
여.'
씨도 듣기만 하고 있기가 밋밋하여 덩달아서 중얼거렸다.
'나는 워떻구. 나는 틈만 나면 누울 자리버텀 보는 사램여.'
'누울 자리 누울 자리는 산에 있지 이 방에는 안 있어. 나가라구. 나가서 산에 가서 거울
러지던지 먼논에 가다가 논두렁을 비던지 꼴두 보기 싫으니께 이 방에서 나가라구. 어여 나
가라닝께.'
씨는 마루로 나오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그녀는 암탉처럼 나지막하고 씨는 수탉처럼 뻣
뻣했던 때가 문득 그리웠던 것이다.
'뭘 잘했다구 한숨을 쉰댜.'
그녀는 씨의 한숨소리마저 트집을 잡았다.
'세월이 꼭 비행기 가는 것 같아서 그런다.'
'그러구 그늠의 사건반장인지 옘병헐 것인지두 니열 당장 집어쳐. 제 집구석 사건 하나두
해결 못허는 주제에 사건반장이 다 뭣 말러 비틀어진겨. 반편이 반장이라면 또 몰러두.'
사건반장감은 씨가 아니라 싸개싸개들밥의 양흥춘이었다. 씨는 흥춘이 덕분에 내내 신수
가 편했다. 흥춘이가 이동 주방차를 몰고 동네방네 안 가는 구석이 없이 뒤지고 다니며 김
밥 잡곡밥 해장국 사골국 하고 방송을 틀어 대는 통에 길가에 서있던 차들이 저 먼저 보고
는 부랴부랴 사라지곤 했기 때문이었다.
씨가 집에 들어선 것은 흥춘이와 헤어지고 겨우 담배 한 대참 사이였다.
'워디서 나 찾는 즌화 없었남.'
씨는 나갔다가 들어올 때마다 늘 들어서기가 바쁘게 외는 말을 되풀이하여 물었다.
'무슨 즌화가 와. 저이는 나갔다만 들어오면 으레껏 먼저 자긔 찾는 즌화 없었냐구 물어
쌓데.'
그랬으면 됐어.
씨는 오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길내 자기를 찾는 김아무개의 전화가 없으
면 장차 먼논이 텃논으로 바뀌게 될 것이 정해진 이치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씨는 늘 혼자서 염불하듯 해온 혼잣말을 웃어 가면서 다시금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되면 그 김아무개야 개 길러서 개장수 좋은 일 시키는 심이지만 나는 지금 먹구
이따가 뱉더래두 밑져야 본전인겨. 꼭 넘의 것을 거저재기루 먹어서가 맛이 아니라 차를 얻
어 마시면 술두 얻어 마시구 싶은 게 사램의 마음 아닌감. 먼논... 이런 아옘에뿌 시대에 그
게 워디여.
제목 : 밤의 나선형 계단
지은이 : 전경린
어둑한 현관 우편함 아래에는 밟힌 광고 전단들이 흩어져 있다. 자전거가 세 대나 세워져
있어서 우편함 속에 가신히 손을 집어 넣고 휘젓듯이 우편물을 꺼낸다. 그 과정에 불안하게
서있던 자전거의 핸들이 획 돌아가 손잡이가 여자애의 관자놀이를 친다. 여자애는 우편물을
쥔 한쪽 손을 앞으로 내뻗은 채 두 눈을 질끈 감는다. 가끔 아무 이유도 없이 이런 식의 따
귀를 맞을 때가 있다. 통증이 지나가자 여자애는 눈을 뜨고 다른 사람들처럼 광고 전달들을
바닥에 흘려 버린다. 남은 우편물은 아파트 관리비와 의료보험비 가스비 청구서들이다. 아파
트 관리비와 사스비는 독촉장도 함께 왔다. 아파트 관리비는 2개월 동안 밀리면 정문 앞 게
시판에 공고하고 3개월까지 밀리면 전기와 수도를 끊는다고 한다. 여자애는 청구서들을 들
고 더러운 계단을 오른다.
3층에는 오늘도 빨간색 코르덴 원피스를 입고 손에는 비닐백을 든 아이가 커다란 여자 슬
리퍼에 발을 걸고 서있다. 비닐백 속에는 분홍색 피부가 드러난 벌가벗은 바비 인형과 그녀
의 드레스들과 플라스틱 트렁트 그리고 올이 풀렸을 스타킹이 들어 있다. 늦겨울 공기에 드
러난 발가락이 까치밥 열매처럼 붉다. 이 시간에 계집아이의 엄마는 늘 낮잠을 자기라도 하
는 걸까. 그 애는 여자애가 학교에서 돌아올 쯤에 늘 문 앞에 서있다. 어디로 가고 싶은 것
이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이곳엔 위에도 아래에도 계단들뿐이다. 그 아이
도 고양이 메메처럼 계단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겨우 네 살 정도이니 당연하다.
'안녕 빨간 원피스.'
여자애가 인사를 해도 아직 세상의 빛을 본 적 없는 것 같은 조그맣고 여린 애는 깊은 물
속의 생선 같은 눈으로 말끄러미 보기만 한다. 아이는 오늘도 계단을 내려가지 못할 것이다.
이 아파트는 너무 낡았고 5층이 마지막 층이니 엘리베이터가 없다. 계단 바닥은 무수한 발
자국들이 실어 온 흙먼지가 켜켜이 덮혀 바탕색을 분간할 수 없고 문들의 손잡이 근처와 발
이 닿는 아래 부분은 거뭇한 때로 얼룩이 져있다. 그리고 벽에는 중국집 치킨집 열쇠 수리
집 막힌 데 뚫는 집 맛사지집 특수 영양집 등등의 전화번호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었다. 그
리고 계단 벽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마구 비벼 댄 신발 자국들이 나있다. 어쩌면 많
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사람들이 열리지 않는 문 때문에 계단 벽을 찼거나 한쪽 다리를 벽
에 올리고 짜증스럽게 비벼 댄 것인지도 모르겠다. 끝 층에는 옥상으로 올라가는 철제 사다
리가 놓여 있고 그 사다리를 타고 오른 사람 몸 하나가 드나들 만한 둥근 구멍이 천장에 나
있다. 여자에는 그 철제 사다리 곁에서 스웨터의 목 안으로 손을 집어 넣어 감추었던 목걸
이 열쇠를 꺼낸다.
여자애는 플라스틱 우유병들을 담은 비닐 봉투가 우유병 몇 개를 도로 개어 낸 채 쓰러져
있고 신발들이 뒤집어진 채 나뒹구는 어수선한 현관을 들어서면서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
쉰다. 식탁 위엔 엎지르진 우유 속에 씨리얼이 엉켜 붇어 있고 우유를 마신 컵 두 개와 아
침에 먹다 남기고 간 씨리얼 그릇이 바짝 마르는 중이다. 등받이에 먼지가 낀 식탁 의자들
은 한쪽으로 불편하게 몰린 채 꼼짝도 하지 않는다. 여자애는 의자들을 떼내어 간격을 맞추
어 제자리에 놓는다. 안방에서 의자들을 떼내어 간격을 맞추어 제자리에 놓는다. 안방에서
메메가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늘어지게 하고 첫 걸음을 떼는 듯 뒷발을 절름거리
며 태만하게 걸어나온다. 메메는 여자애의 벌리고 선 다리 사이를 몇 번이나 지나며 복숭아
뼈 부분에 제 단단한 머리와 귀를 힘껏 스친다. 그리고 가스렌지 대 아래에 놓인 밥그릇 앞
으로 가서 그릇과 여자애의 얼굴을 번갈아 훔쳐보며 탐욕스럽게 운다. 나오옹 이냐오옹 다
시 물을 빼내 불어난 멸치 몇 마리가 올려진 밥은 그대로 굳어 있다. 사사는 기름이 가득한
참치 캔만을 먹는다. 여자애는 모른는 척 한다. 이젠 고양이에게 줄 참치 통조림은 더 이상
없다. 여자애가 걸음을 옮겨 딛자 메메는 야생 짐승처럼 꼬리를 꼿꼿하게 치켜 세우고 발톱
을 드러내더니 순식간에 여자애의 발등에 이빨을 박는다. 여자애는 가느다란 비명을 지른다.
참치가 떨어진 일주일여 사이에 메메는 점점 사나워진다. 메메는 이제 여자애와 약간 거리
를 두고 선 채 얼굴을 올려다보며 원망스럽게 운다. 메메의 입이 벌어질 때마다 커다란 두
눈이 사악하게 치켜 올라가고 흰 이빨이 박힌 새빨간 입 안이 활짝 드러난다. 고양이의 입
안을 들여다보던 여자애의 두 눈에 의심과 두려움이 짙게 어린다.
거실 구석에는 아직도 선풍기가 있다. 여름이 지난 지 여섯달이나 지나 지금은 2월이다.
겨울에 선풍기 살과 파란 날개를 보는 것은 을씨년스럽고 혼란스러운 일이다. 선풍기 살과
세 개의 날개가 가슴속에 차가운 바람을 불러일으킨다. 전에는 계절이 바뀌면 아빠나 엄마
중에는 선풍기를 비닐 커버로 뒤집어 씌워 창고에 정리해 넣었다. 그러나 지금 엄마와 아빠
는 모든 것을 방치하고 있다.
'은행 잔고가 바닥 났어.'
엄마는 한 달 전에 그렇게 중얼거렸다. 작년에 아빠가 회사에서 해고되었다. 아빠는 퇴직
금으로 조그만 찻집을 시작했는데 아빠뿐 아니라 엄마까지도 밤낮없이 매달리는데도 형편없
는 모양이다. 빛까지 얻었다는데... 지난 달에는 아빠가 엄마 모르게 아파트를 담보로 은행에
서 대출받아 쓴 사실이 탄로나 두 사람은 근 일주일 동안 마주치기만 하면 언성을 높여 싸
웠다. 제대로 다 받아 내지도 못한 퇴직금으로는 가게를 차리기에 부족하자 아빠는 은행 빚
을 내어 가게 자금에 넣었고 일부는 자기 주머니에 넣어 다니며 그 동안 진 술빚도 청산하
고 이런 저런 밀린 돈도 갚으며 써버린 모양이었다. 빌린 돈을 어느 정도 해결해 주지 않으
면 집이 넘어가게 되니 집을 팔아서 갚던지 가게를 넘기던지 해야 한다고 엄마가 새된 비명
을 질렀다. 그리고 며칠 뒤 엄마는 외박을 했다. 아빠는 그기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요즘 두 사람은 서로 전혀 모르는 사람들처럼 군다. 여자애는 우편함에서 빼낸 청구서들을
서류 바구니 속에 넣는다. 거기엔 다른 청구서들도 쌓여 있다. 동생의 유치원 회비 봉투에는
2학기 교통비와 점심값 종일반 회비와 유치원 회비 총 22만 원이라고 계산된 노란색 쪽지가
독촉을 의미하며 따로 붙어 있다.
어제는 가게가 쉬는 일요일이었고 엄마는 좀 울었다. 꼭 빚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빠는 친
구들과 낚시를 가버렸고 여자애와 동생은 아무 곳에도 가지 않고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엄마는 10시에 일어나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아무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엄마는
이번엔 삐삐를 쳤다. 전화를 기다리다가 엄마는 무료해서 비디오를 틀었다. 엄마는 지난 해
부터 책도 읽지 않고 텔레비전 뉴스도 보지 않고 신문도 읽지 않는다. 다만 어쩌다 틈이 나
면 늘 똑같은 영화 한 편을 반복해서 본다.
영화 속에는 뚱뚱한 여자가 마술쇼를 한다. 공기 속 어딘가에서 비스킷을 꺼내고 귀 뒤에
서 계란을 꺼내며 녹색 나뭇가지에 주전자로 물을 부어 커다랗고 화려한 꽃을 피운다. 여자
애는 처음 영화 속의 여자를 언 듯 보았을 때 혼란스러웠다. 엄마와 아빠와 온천에 목욕하
러 갔다가 돌아올 때 가끔 들러 저녁을 먹었던 길가의 오리 구이집에서 써빙을 하던 여자였
기 때문이다. 뚱뚱하고 살결이 지나치게 희고 단정하게 뒤로 틀어 올린 머리와 둥글고 가느
다란 눈썹과 아이 같은 동그란 눈. 뚱뚱한 여자는 유황 오리 고기를 가위로 잘라 주고 술이
나 음료수를 가져다 주고 마지막엔 커피와 민트 사탕을 주었다. 그 여자를 본 지도 일 년이
나 되었다. 엄마는 온천 목욕을 유난히 좋아해서 한 달에 두어 번씩은 꼭 갔었는데 어느 사
이 일 년이나 가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른 것이었다.
화면 속에는 뚱뚱한 여자가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다시 사막 카페로 돌아왔다. 더욱 화려
한 본격 마술쇼가 펼쳐지고 서른일곱 대의 트럭이 카페 마당에 들어찬다. 카페 주인 여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활짝 열린 꽃잎처럼 관대해진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흐른다.
미소는 견딜 수 없는 현실의 무게를 머리에 이고도 꿈결처럼 가볍게 걷는 법을 가르치는 것
같다. 그리고 거센 모래 바람이 공중에 가득히 날리는 어느날 늙은 화가가 꽃다발을 들고
마당을 가로질러 와 뚱뚱한 여자에게 청혼을 한다. 영화 속의 사람들 모두가 독한 꿈에 취
한 것만 같다. 삶은 그저 도취이며 마술이라는 건가. 두려운 것은 한 존재가 사라진 빈 자리
하나의 세월이 흩어진 빈 자국 마술이 끝난 뒤의 황량한 침묵뿐 마술이 있는 동안은 아무도
슬퍼하지 않다.
비디오를 보는 도중에 엄마는 두 번 더 삐삐를 쳤지만 전화는 한번도 오지 않았다. 엄마
는 갑자기 비디오를 끄고 방에 들어갔다. 엄마는 그 후 하루 종일 방안에 틀여 박혀 있었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지만 피자 배달원이 왔을 때 지갑을 들고 나온 엄마의 눈과 코끝이
붉은 것을 여자애는 보았다. 엄마는 아주 커다란 치즈 크리스트 피자를 받아 상자째로 여자
애에게 내밀었고 여자에와 어린 남동생은 하루 종일 피자와 콜라만 먹었다. 나중에 동생은
배가 아프다고 칭얼댔다. 여자애는 속임수로 엄마의 샛노란 비타민제를 배 아픈 데 먹는 약
이라고 먹었다. 동생은 이내 설사를 했고 그 뒤에는 완전히 나았다고 말했다.
집 바깥에 엄마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여자애는 지난 해 겨울에 그 사실을 눈치챘다.
그 날은 눈이 내려싸. 엄마는 전화를 받았고 화장을 정성스럽게 한 후 거실과 식탁 사이를
오가며 초조하게 시계를 보다가 홀연히 나갔다. 유난히 검게 칠한 엄마의 검은 보라빛 입술
이 인상적이었다. 엄마는 꼭 30만에 다시 돌아왔다. 돌아온 엄마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여자에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보라색 립스틱이 다 어디로 갔어.'
엄마의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지푸라기가 묻었고 짙은 눈화장은 여전한데 입술 화장은 완
전히 사라져 얼굴이 환자처럼 창백했다. 엄마는 천천히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엄마의 두툼
한 조끼의 어깨에서 마른 풀잎이 하나 떨어졌다. 거울에 비친 엄마의 얼굴이 왈칵 달아올랐
다.
'엄마 눈을 먹고 왔단다.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눈을 받아 먹었지. 그리고 눈을 주먹만
하게 뭉쳐서 먹었고 나뭇가지에 내린 눈 위에 입술을 파묻고 먹었어. 그랬더니 눈이 엄마
입술을 다 지워 버린 거야.'
여자애는 열두 살이다. 그때 여자애는 어렴풋이 알아챘다. 엄마가 그 잠깐 사이에 누군가
를 만났다는 것을. 그는 엄마를 사랑하는 남자라는 것을... 밤이 되도록 아빠는 돌아오지 않
았고 엄마는 방에서 나오지 않고 이불을 코끝까지 덮어쓰고 계속 잤다. 은행돈을 해결하지
못한 채 한사코 잠을 자는 엄마는 어떤 꿈을 꾸는 것일까 영화 속의 뚱뚱한 여자처럼 잠자
는 동안 엄마도 마술을 배우고 있을까 지루한 녹색의 나뭇가지에 주전자의 물을 부어 종이
꽃을 활짝활짝 피우는 마술사가 되어 이 현실을 잊은 채 지나가 버리고 싶을까 엄마가 삐삐
를 쳤는데도 전화는 하루 종일 오지 않았다. 여자애는 전화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 속 어딘
가에 엄마의 종이꽃이 있을 것만 같았다. 아무 소용도 없고 향기도 없는 속임수에 불과하다
해도 엄마는 그것에 의지해 장애물 경주 같은 생을 가로질러 갈 수 있을 것이다.
엄마의 방 침대 머리에는 그림 액자가 두 개 걸려 있다. 한 개는 흰 석고상과 빨간 고무
장갑이 있는 그림이다. 단지 그뿐이다. 엄마는 왜 그 그림을 액자에 넣었을까 그리고 다른
한 장은 바닷가 풍경이다. 커다란 고래가 바다에 떠있고 그 속에 줄무늬 셔츠를 입고 수염
을 기른 남자가 팔을 괴고 옆으로 누워 자고 있다. 고래 뒤에는 다섯 개의 돛을 단 배가 빠
르게 지나가고 있고 해변에는 두 개의 이층집이 있다. 이층집 곁에는 실버들 나무 몇 그루
와 물렁하게 감은 털실 뭉치같이 둥글고 부숭부숭한 잎이 달린 나무들이 있다. 그 그림 속
의 남자는 틀림없이 아빠 같다. 아빠는 집을 비우고 나가 고래 뱃속에서 옆으로 누워 편안
하게 잠이 든 것이다. 그리고 흰 석고상의 여인은 유난히 창백한 얼굴을 가진 엄마 같다. 그
리고 빨간 고무장갑... 엄마는 고무 장갑 끼는 것을 싫어한다. 고무 장갑을 끼어야 하느너 삶
을 모욕으로 느낀다. 그렇게 질기게 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났다고 말한 사람이다. 엄마
는 가게에서 설거지를 하면서도 고무 장갑을 끼지 않는다. 손에 습진이 생겼는데도 말이다.
엄마는 고무장갑처럼 질겨질 바에는 지루한 녹색의 나뭇가지에 주전자의 물을 부어 종이꽃
을 만들어 낼 사람이다.
여자애는 식탁 위를 치운다. 두 개의 잔과 씨리얼이 말라붙은 그릇을 싱크대 속에 담그고
행주로 우유 자국이 눌러 붙은 테이블을 닦는다. 그리고 빗자루로 마루를 쓴다. 찬장 위에
진열장 위에 가느다란 여자의 모습인 흑단 장식물들 위에 진열장 위에 가느다란 여자의 모
습인 흑단 장식물들 위에 마른 먼지가 덮여 있다. 여자애는 먼지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먼지를 닦아 내는 행위를 이해할 수도 없다. 아무리 닦는다 해도 끊임없이 쌓
이고 무한히 계속해서 쌓일 먼지의 힘을 생각하면 여자애는 일찌감치 절망적인 기분이 된
다. 어른들은 먼지를 혐오하고 먼지를 털고 닦아 내고 떠도는 먼지가 없어야 안심한다. 여자
애도 언젠가는 먼지를 털어 내는 법을 배우고 그것에 몰두하게 되겠지만 아직은 먼지에 대
해 무관심하다. 여자애는 그저 바닥을 쓸고 닦는 정도일 뿐인 청소를 한다. 베란다 화분들에
게 물도 준다. 붉은 꽃이 피는 장미꽃 화분 베고니아 화분 파키라 화분 선인장 화분들 조그
만 난화분들 그리고 탑처럼 쟁여져 있는 텅 빈 화분들... 나무와 꽃들에게 물을 주면 보그르
르 한숨 소리를 내며 스며든다. 그런 때면 이상하게도 그것들이 엄마를 그리워한다는 기분
이 든다. 엄마가 저희를 찾아 주기를 기다리며 조금씩 죽어간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엄마는
화초가 잘 되는 사람이라고 한다. 엄마의 것이 되면 어떤 까다로운 식물도 죽지 않고 꽃을
피운다. 그래서 잘 아는 사람들은 죽어 가는 화분을 엄마에게 맡기거나 선물을 하기도 했었
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지난 몇 달 사이에 화분들이 줄지어 죽어 나갔다. 하긴 그
건 엄마 탓이 아니다. 엄마의 신비한 힘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화분과 엄마 사이에 무언가
가 끼어들어 화분들이 엄마의 손길을 받지 못한 지가 너무 오래된 탓이다.
화분에 물 주기와 생수 떠오기는 이제 여자애의 몫이 되었다. 현관의 신발 정리는 유치원
에 다니는 동생의 일이다. 신발이 함부로 뒤엉켜 있어도 다른 사람이 정돈해 버리면 그 애
는 몹시 화를 내며 장난감을 내던진다. 동생은 요즘 눈물에 대해 연구중이다. 기쁨의 눈물
슬픔의 눈물 사랑의 눈물 이별의 눈물 분노의 눈물 다짐의 눈물... 그 애는 사람이 기뼈도
눈물을 흘린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저는 누군가에게 얻어맞았을 때만 우는데 세
상에 그렇게도 다양한 눈물이 있다니 말이다. 그 애의 이름은 명이다. 명은 딸기 우유와 딸
기 아이스크림을 좋아하고 비디오광이며 로봇을 너무나 좋아한다. 그리고 우리가 우주 속에
떠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는 채로 지구에는 수많은 나라와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한는 채로 내가 물구나무를 서서 지구를 들었다고 주장하는 것을 도
저히 납득하지 못하면서 언제나 지구를 지켜야 하고 우주의 평화를 위해 우주선을 만드는
박사가 될 거라고 말한다. 명은 세상과 사물의 이치를 알려고 늘 생각을 많이 하는 아이다.
이르테면 멀리 있는 것들은 자신의 손으로 무엇이든 다 덮을 수가 있는데 가까이 가면 왜
자신의 손이 그렇게도 작은지 하는 문제들에 골몰한다. 명에게 세상은 아직 신비 그 자체이
다. 그러나 얼굴이 희고 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 애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명도 이기적이고
까다롭고 겁쟁이이고 치사한 아이이다. 여자애는 차라리 작고 착하고 성실하고 과묵한 남자
친구를 사귀고 싶다. 그리고 장래에는 아빠보다 키는 좀더 작더라도 세 배는 더 잘생기고
세 배는 친절하고 돈도 잘 버는 남자와 결혼할 것이다.
엄마가 가게에 나가게 되면서 왔던 파출부는 이제 오지 않는다. 2주 저부터다. 엄마는 아
침 10시경에 가게에 나가고 6시경에 아이들에게 저녁밥을 해먹이려고 온다. 그리고 8시30분
경에 다시 가게로 나가 새벽1시쯤에 집에 돌아온다. 아빠는 12시경에 나가지만 엄마와 함께
집에 들어오지 않는 겨우가 많다. 특히 요즘은...
현관문 긁적이는 소리가 나고 명이 돌아온다. 언젠가 엄마와 명을 데리러 유치원에 간 적
이 있었다. 유치원 수업이 끝나면 명은 2층의 조그만 방에서 나머지 오후 시간 동안 같혀
있다. 우리가 갔을 때 보모는 거울 앞에서 냉정해 보이는 작은 입술을 새로 칠하고 있었고
아이들 다섯은 상자 같은 방에서 담요를 덮고 아주 작은 베개를 베고 잠들어 있었다. 그리
고 명이는 그 구석에서 숨을 죽이고 겨우 다섯 개의 블록으로 살금살금 뭔가를 만들고 있었
다. 고아원 아이처럼 양말을 벗고 있어서 발바닥이 까맸다. 여자애는 그제야 그 동안 왜 명
의 발바닥이 양말 바닥보다 더 더러웠는지 알게 되었다. 유치원의 2층 놀이방은 불결했다.
집 안으로 들어서는 명은 이제 겨우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듯 통통 뛰며 신나 한다. 마치
어른들이 아홉 시 뉴스를 보며 세상을 염려하듯이 먼저 텔레비전 만화 채널을 틀어 만화의
주인공들이 지구를 잘 지키고 있는지 살핀다. 만화 프로그램이 끝나면 로봇들과 칼을 꺼내
거실에 주르르 세워 전열을 정비한 다음 씨리얼을 우유에 부어 허기진 배를 채운다. 배가
불러지면 그 다음 하는 일은 현관 정돈이다. 신들을 바로 세우고 허리에 양쪽 손을 올리고
돌아설 때면 명은 이 집을 위해 자신이 현실적으로 이바지한 것을 느끼며 몹시 흐뭇해 한
다. 그 애는 칼을 바지춤에 다섯 개도 꽂을 수 있고 로봇끼리 싸움을 시킬 수 잇고 하루 종
일 정말 하루 종일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끊임없이 떠들어 댈 수 있으며 만화에서 본 대로
흉내를 잘 낸다. 유치원 명의 별명은 깡통이다. 교사들은 자주 벌을 세우고 아이들은 아무도
명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명은 이 세상에서 왜 엄마만 자신을 좋아하는지 자주 묻곤 한
다. 그 애도 엄마를 끔찍하게 사랑한다. 그 애에게 엄마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마
음씨가 곱고 하루빨리 자라서 보호해 주어야 할 세상에서 살아가기엔 가혹하도록 가냘프고
신비한 존재이다.
아직 어스름인데 벌써 어디선가 고등어 굽는 냄새가 난다. 미역국 끓이는 냄새도 나고 밥
끊는 냄새도 난다. 엄마가 올 시간이다. 이 시간에 가게는 가장 붐비는 시간이다. 그런데도
엄마는 몸을 빼고 나와 저녁을 짓는다. 엄마는 적어도 한 끼쯤은 자신이 식사 준비를 해주
고 두 아이의 밥 먹는 모습을 지켜 보는 것을 의무라고 생각한다.
바람이 휙 불어 들어오고 곧바로 엄마가 들어서자 집 안에 엄마의 냄새가 왈칵 채워진다.
화장한 얼굴에서 나는 분과 검은 보라색 립스틱 냄새 계란색 원피스에서 나는 따뜻한 옷 냄
새 엄마의 무릎에서 나는 고소한 빵 냄새 엄마의 입에서 나오는 달큰한 한숨의 냄새. 손에
서 나는 담배 냄새와 술과 김치 냄새... 모자간에는 언제나 찡한 상봉이 이루어진다. 여자애
는 그 곁에 약간 결핍된 얼굴로 엉거주춤 서있다. 엄마는 명을 끌어 안아 올리고 이마와 입
술과 두 뺨에 입을 맞춘다. 명은 또 생각하나 보다. 왜 이 세상에서 엄마만 이토록이나 나를
사랑할까 여기엔 기쁨의 눈물 같은 그런 비밀이 반드시 있을거야. 명도 엄마의 입술에 입을
맞춘다. 그리고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떠들기 시작한다. 엄마는 늘 그렇듯이 몹시 지친 모
습이다. 그리고 반찬도 사오지 않았다. 사람이 지치면 차에서 내려 반찬을 사러 슈퍼마켓에
가는 일조차 힘겨워지는 모양이다. 여자애는 음식을 제대로 먹고 싶어서 노력을 한다.
'엄마 나 물 뜨러 갈 건데 반찬을 사올까.'
'어제 먹었던 찌개가 남아 있지 않니.'
엄마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다.
'시었어.'
'그래.'
엄마는 찌개를 맛본다. 그리고 낙담한 표정을 짓는다. 엄마는 밥을 안치고 그리고 당장 침
대로 가서 쉬고만 싶었나 보다.
'무얼 해먹지... 미역국 끓일까.'
엄마도 올라오다가 미역국 냄새를 맡은 걸까.
'아니 난 배추 넣은 된장국이 먹고 싶어.'
'나도 배추 넣은 된장국이 먹고 싶어. 그리고 구운 생선을 먹고 싶어.'
명도 팔팔 뛰며 떠든다.
여자애와 명을 쳐다보던 엄마의 시선이 어느 순간 툭 끊어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장
님 같은 어둔 눈빛이 된다.
'그건 오래 걸려... 하긴 제대로 된 밥을 차려 먹은 지가 오래됐구나. 그래 그러자 . 얼간이
배추를 사와. 그리고 고등어 한 마리와 시금치도 사오고 어묵과 계란도 사와. 그리고... 그래
됐어.'
엄마는 지갑 속에서 지폐를 한 장 꺼내 준다.
'메메가 아무것도 먹지 않아요. 참치를 줄 때까지 굶을 건가봐.'
여자애가 변명이라도 하듯이 기어들어가는 음성으로 말한다.
'이젠 정말 더 이상은 고양이에게 참치를 사먹일 수 없어. 메메를 아파트 지하실 창문 속
에다 버리거라. 많이 컸으니까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을 거야. 그곳에서 다른 고양이 무리를
만나 결혼할 수도 있고 함께 쓰레기통 속의 비닐 봉투들을 뜯어 먹이를 찾을 수도 있고 쥐
를 잡아 먹을 수도 있지. 물가가 아주 많이 올랐어. 돈이 점점 종이가 되고 있단다. 가게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면 지갑 속의 돈이 녹고 있는 것만 같아. 가게 안의 공기 속에 보이지
않는 손이 떠다니고 있어서 지갑속의 돈을 감쪽같이 꺼내 가는 것 같기도 하지. 어리둥절해.
가게엔 정말 가고 싶지 않아. 사람들은 이제 미용실에도 가지 않고 머리 자르는 기계로 자
기 머리를 스스로 자르고 있어. 그리고 뉴스에서는 매일매일 자살하는 사람들의 소식을 잇
달아 전해 주지. 인심도 흉흉해졌단다. 집에 오는데 약국 앞에서 웬 노파가 여태까지 5000원
에 산 신경통 약을 6800원이나 달라고 한다며 약국에서 장사를 하지 않고 손님에게 비럭질
을 한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어.'
여자애는 지폐와 주스통 두 개를 들고 나간다. 신을 신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엄마는 식
탁 의자에 앉아 우두커니 여자애를 보고 있다. 눈이 마주쳐도 엄마는 표정의 변화가 없다.
엄마는 천천히 담배를 물고 일회용 라이터로 불을 붙인다. 엄마는 아직 젊고 아름답다.
전에 그런 저녁들이 있었다. 다른 집보다 빨리 밥이 끓고 엄마는 손으로 시금치 나물을
주물러 무치면서 어린 여자애에게 간을 보게 하고 엄마가 저녁 준비를 할 동안 여자애는 식
탁에 앉아 일일 시험지를 하고 반찬을 만드는 틈틈이 엄마가 여자애가 쓴 시험지 답이 옳은
지 점검하며 자주 미소 짓던 길고 평화롭고 다정한 저녁... 그땐 세상이 잘 닫힌 원처럼 안
전하고 포근했고 아무도 지치지 않았다. 아빠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7시에는 어김없이 집
에 와 저녁을 먹었다. 그때 엄마는 하루 종일 여자애와 함께 집에 있었다. 함께 놀이터를 가
고 시장에 가서 반찬거리를 사오고 김치를 담고 미싱을 돌려 시장에서 떠온 초록색 체크 무
늬 천으로 조그만 원피스와 냉장고 덮개를 만들고 여자애에게 가나다라를 가르쳤다. 덕분
데 여자애는 네 살 때부터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일요일에는 아빠가 처음으로 샀던 소형차를 타고 야외로 소풍을 다녔다. 마지막으로 갔던
소풍은 언제나 여자애의 가슴에 남아 있다. 그들은 숲으로 들어가 덤불 위에 떨어진 맑은
홍시를 주워 먹었고 꼬챙이를 하나씩 들고 밤송이를 까 알밤들을 주머니 가득 채워 왔었다.
공중에는 하루 종일 잠자리떼가 낮게 날고 있었다. 갈대와 샛노란 들국화 꽃을 꺾어 세 개
의 꽃다발을 만들었고 붉은 까치밥 열매도 땄다. 못 가 나무 그늘에 자리를 펴고 앉아 김밥
을 먹을 때 못 가 교회에서 종소리가 울렸고 물이 많은 배를 깎아 먹을 때는 찬송가가 울려
나왔다. 그리고 그들이 자리를 접고 일어날 때 예배를 마친 시골 사람들이 성경책을 가슴에
안고 좁다란 산길을 걸어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엄마는 명을 가져 배가 불렀다. 그들은
덜 마른 수채화처럼 선명하게 노랗고 붉은 산길에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흰 갈대와 산 국
화꽃 속에 숨어 있던 검은 염소들과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여자애는 피처럼 새빨간 단
풍잎 하나를 주워 왔었다. 그 뒤 명이 태어났다. 그리고 몇 년 뒤에 아빠는 회사를 그만두었
다. 그리고 두 사람은 자주 싸웠다. 엄마의 이마에서 단풍잎처럼 붉은 핏방울이 흘러내린 적
도 있었다. 이젠 모든 것이 바뀌어 버렸다.
온 집안에 고등어 익은 냄새가 가득하다. 전에는 생선 냄새가 싫었는데 오늘은 향긋하게
까지 느껴진다. 엄마가 여자애와 명에게 밥 먹으러 나오라고 부르며 생선을 식탁 위에 올리
고 몸을 돌릴 때였다. 메메가 의자를 타고 올라가 어느 사이 식탁 위의 생선을 향해 달려들
었다. 아마도 생선은 너무 뜨거웠을 것이다. 메메는 뒤로 물러서려 했던 것 같은데 오히려
다리를 국그릇에 빠뜨렸고 흥분한 나머지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낸 채 네 개의 다리를 휘저
어 생선 토막 하나를 냉장고 문 쪽으로 날려 버렸고 반찬이 담긴 접시들을 바닥으로 내팽개
쳐 버렸다.
'악.'
엄마가 비명을 지른다. 엄마는 눈을 감고 그 무엇도 아닌 천장을 향해 마구잡이로 비명을
질러 댄다. 비명 지르기를 끝낸 엄마는 팔을 뻗어 소파 위에 앉아 눈치를 보고 있는 메메를
가리켰다. 베란다에 놓인 메메의 모래 변기 통에서 지린내가 스며들었다.
'저걸 전에 주워 왔던 그 자리에 도로 갖다 버려.'
엄마는 더 이상 베란다의 지린내와 방바닥에 지그럭거리는 모래 가루와 침대 시트를 물어
뜯어 레이스를 망가뜨린 이빨과 가죽 소파에 보풀이 일도록 긁어 댄 발톱들에 대해서 설명
하지 않는다. 엄마가 너무 단호했기 때문에 여자애는 전처럼 버틸 수가 없다. 여자애는 지난
여름 저녁에 생수를 뜨러 갔다가 자동차에 다리를 친 새끼 고양이를 주워 왔다. 배와 등과
꼬리가 온통 흰색 털인데 두 눈가에만 커다란 이태리 제 선글라스를 낀 듯 까만 반점이 동
그랗게 찍힌 다치지 않았다면 결코 여자 애의 손에 몸을 맡겼을 리가 없는 앙증 맞고 쌀쌀
한 고양이였다.
여자애는 야위었지만 뼈대가 여물어 묵직해진 고양이를 안고 계단을 내려간다. 메메는 가
끔 그랬듯이 산책을 나가는 줄로 아는지 아옹거리며 즐거워한다. 여자애는 아파트 현관을
나서자 망설임 없이 좁다란 화단으로 들어가 지하실의 작은 창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여
자애는 언젠가 그 앞에서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놀다가 숨어 들어가는 것을 본 적이 있었
다. 지하실의 창문 안쪽엔 원래는 촘촘한 철망이 대어져 있었지만 이제는 흔적만 나아 있을
뿐 철망 가운데가 휑하게 뜷려 있고 유리도 깨어졌다.
'잘 가. 이제 자랐으니 결혼도 하고 예쁜 새끼도 낳아야 해. 그리고 거리의 다른 고양이들
처럼 사냥도 해야 해.'
여자애는 품에서 고양이를 떼어 낸다. 메메는 위기를 느끼는지 밥톱으로 여자애의 스웨터
를 한 올 한 올 쥐고 있었다. 고양이를 떼어 내자 스웨터의 실 한 올이 발톱에 감겨 휙 삐
어져 나온다. 여자애는 고양이를 지하실의 창문 안으로 밀어 넣는다. 메메는 고개를 뒤로 빼
며 저항을 하다가 문득 가볍게 밀려 안쪽으로 떨어졌다. 여자애가 두 눈을 바짝 붙이고 지
하실 안쪽을 들여다보니 메메 역시 돌아서서 여자애를 마주본다.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는
암흑 속에 두 개의 눈동자만 푸른 광채를 내었다. 여자애는 가슴속 어딘가가 베이는 듯한
공포를 느낀다.
'안녕...'
여자애는 두려움과 죄책감을 속으로 다스리며 두 개의 낯선 광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설거지를 끝낸 엄마는 청소를 시작한다. 여자애가 정리하느라 했지만 명이 와서 어질러
놓기 때문에 물건들이 뒤죽박죽이다. 명의 장난감들이 말썽이다. 연필을 대지도 않은 여러
장의 일일 시험지도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고 명이 벗어 던진 양말 짝들에는 모래가루가 묻
어 있다. 전화기도 뒤집어져 있고 잡동사니를 담아 둔 바구니도 넘어져 물건들이 다 쏟아졌
다.
'대체 누구보고 치우라고 이렇게 뒤집어 놓니 이젠 파출부도 오지 않는데 우리 파출부도
쓸 수 없는데 왜 이렇게 집을 어지르니 난 집 치울 기운이 없다. 난 죽을 거같이 피곤해. 지
금 또 가게엘 가야 한단 말이야. 사람에게 시달리는 일이 얼마나 힘든 건지 너희들이 아닌
술 취한 인간들이 얼마나 지겨운지 똑같애. 교수고 시인이고 운동가고 늙은이고 젊은이고
여자고 남자고 간에 인간이란 게 술에 취하면 똑같아진다구. 허리가 휘고 입에서 단내가 나
고 손이 붓도록 일을 해서 번돈은 고작 월세 주고 술값 주고 은행 이자 주면 남는 게 없어.
게다가 너희들 아빠라는 사람은 나 모르게 집을 잡아 빚까지 얻어 쓰고... 아 지겨워 지겨워
지겨워 죽겠구나.'
엄마가 새된 소리를 지르면 숙제를 하려던 여자애는 바에서 튀어나온다. 그리고 엄마를
분주히 돕는다. 엄마가 지겹다고 소리 지르면 여자애는 고통을 느낀다.
엄마는 언젠가 그렇게 말했었다. 아니다 아니다 하면서 이렇게 계속할 수는 없어. 이 지겨
움을 모두 과거로 만들어 버릴거야. 언제까지나 이런 현재가 계속되는 건 믿을 수 없어. 그
래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지.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을 테니...'
'내가 이 집을 떠나야지...' 여자애는 엄마의 다음 말도 알고 있다. '이건 모두 과거야.' 다
른 엄마들도 그럴까 엄마는 집을 떠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여긴다. 엄마에겐 자신이 태어난
해와 달의 숫자인 635이라는 비밀 번호를 가진 커다란 검정색 트렁크가 하나 있다. 겨우 한
달 전 깊은 밤중에 엄마는 트렁크를 들고 나가 현관 앞에 놓았다. 여자애는 꿈속에선 듯 그
모습을 보았다. 일어서서 엄마를 붙잡고 싶었지만 여자애는 아무것도 못하고 반듯하게 누워
서 눈물만 흘렸다. 눈물이 귓속으로 들어가고 목을 타고 흘렀다. 꼭 차갑고 깊숙한 무덤 속
에 누워 있는 것만 같았다. 다른 아이들은 무어라고 말하면서 떠나는 엄마를 붙잡을까 엄마
들이 떠날 때 아이의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술 취하고 난폭한 아버지들 끝나지
않을 가난 음식 냄새도 없는 어둡고 텅 빈 저녁들 무엇인가를 집어 던지게 되는 삶의 균열
겨울 하늘의 샛별 같은 떨림 잠이 들려고 할 때 흘러내리는 눈물 어둡고 낯선 길을 혼자서
걷는 꿈들... 현관문 열리는 소리는 오래도록 나지 않았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거의
날이 밝을 무렵에 아빠가 돌아왔다.
'아이들을 잘 부탁해. 나는 떠나. 미안해. 모든 것을 네게 다 맡겨서. 가더라도 네게 인사
하고 가는 게 도리인 서 같아 기다렸어. 자리가 잡히면 명을 데리러 올게.'
엄마는 신문을 읽듯 한결같은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몸의 움직임이 느껴지고 현관 타일
바닥을 딛고 신발 신는 기척이 들렸다.
'이리 줘.'
엄마가 낮게 소리를 쳤다. 아빠가 트렁크를 뺏은 것 같았다.
'바보같이 굴지 마. 이야기 좀 해.'
아빠의 음성은 야비하게 느껴진다. 자신의 약한 모습을 숨기면서 강해 보이려는 남자의
음성이다. 비겁하고 억지스럽고 그리고 간절하다.
'내가 할 이야긴 다 했어. 공연히 이러는 게 아니야. 진심이야 난 가야 해. 붙잡아 달라고
너를 기다린 거 아니야.'
'넌 절대로 못 가.'
아빠는 일 층까지 들리도록 커다랗게 외친다.
'나는 가.'
엄마는 여전히 억눌린 음성이다.
'어디로 간다는 거니.'
'아무 곳이나. 네 그림자가 내게 드리워지지 않는 곳.'
'좋아 갈 때에 가더라도 일단은 들어와. 나도 이야기할 게 있어.'
아빠가 엄마를 달래려는 듯 음성을 낮춘다. 두 사람은 조용하게 이야기하고 어투도 점점
부드러워진다. 그들은 사실은 싸우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다.
'그 남자 이혼한대 아니면 근처에 집이라도 얻어 준다는 거야.'
'그건 상관없는 문제야. 그게 아무것도 아니란 건 알지 않니 너의 낚시 같은 것뿐이야. 난
다르게 살고 싶어. 너무 오랫동안 난 졸고 있었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상황에 이르
러서야 난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어. 나도 노력하고 싶어. 그러나 이곳에
서 너와 함께는 아니야. 너와 함께 이런 삶을 더 끌어가다가는 만신창이가 될 거 같아. 너는
낚시로 나는 일종의 히스테리로... 우린 돌이킬 수 없이 타락하게 돼.'
'너를 붙들지 않을게. 하지만 다음에 가. 말하자면 가게를 넘기거나 집을 판 뒤에 돈이 좀
만들어지면... 그래야 나도 널 보낼 수가 있어. 아무것도 없이 떠나는 게 무섭지 않니.'
한참 뒤에야 엄마가 말했다.
'처음 가게를 열고 몇 달 동안 넌 생활비를 한푼도 넣어 주지 않았어. 회사에서 월급을 받
지 못하던 달들이 이어진 뒤인데다 온갖 부스러기 돈까지 다 긁어 모아 가게에 넣은 뒤여서
정말 생활비가 한푼도 없을 때였지. 우리가 어렵다 해도 설마 생활비조차 한푼 없으리라고
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을 거야. 엄마도 오빠도 여동생도... 꼭 한 사람 아버지가 돈을 보내
주었던 날이 떠올라. 20만 원이었어. 돈이 생기자 아침에 일찍 나가 돈을 찾은 뒤 애들이 먹
고 싶어했던 떡국을 사와서 멸치국물을 우려 내 끓여 주었어. 그리고 명의 손을 잡고 가 오
랜만에 비디오를 빌려다가 틀어 주었어. 그리고 아파트 현관에 며칠 전부터 붙어 있던 광고
지를 오래 쳐다본 뒤에 아이 옷을 사기 위해 버스를 타고 갔어. 12월 초순이었는데 한겨울
이 닥친 것처럼 추운 날이었어. 부도 상품을 처리한다는 자폭 세일전에서 아이들 내의를 한
벌씩 샀고 양말을 두 켤레 샀으며 생애 처음으로 내가 입을 내의도 한 벌 샀어. 자라고 나
서는 내의를 입은 적이 없었는데 아직 본격적인 추위가 오기도 전에 내 몸은 오한에 떨고
있었거든. 인생에서 가장 추운 겨울이 닥칠 것 같았어. 쌓인 옷 중에서 순모 80%에다 안을
누빈 재고품이지만 두툼하고 가벼운 아이의 외투를 발견했는데 물건 파는 여자의 옷에 붙은
가격표를 보더니 그 옷은 다른 옷과 달리 공장도가가 비싸기 때문에 가격이 다르다고 했어.
값을 깎아 보려 했으나 여자와는 흥정이 되지 않았어. 도대체 70%라는 세일 선이 정해져
있는 이상 흥정을 한다는 일 자체가 실은 궁상스럽기 짝이 없는 짓이잖아. 나는 여자의 거
절을 듣고 일단 떠났다가 다시 그 자리로 가서 아무도 몰래 옷에 붙은 가격표를 떼어 버렸
어. 그리고 다른 남자 판매원과 흥정을 했지. 그 남자는 4000원 더 작은 가격을 불렀고 나는
거기서 2000원을 떠 뺐어.
값이 싼 아이 바지를 하나 더 사서 돌아오다가 이번엔 7만면 고개돌파 사은잔치를 한다는
백화점에 들렀어. 물건을 30만원 이상 사면 이불 세트를 주고 20만 원은 곰솥을 주며 10만
원 고객에게는 그릇 세트를 준다고 현수막에 쓰여 있었어. 난 배가 많이 고팠어. 아침에 떡
국을 먹은 뒤로 이미 오후 4시였어. 백화점에서는 매장마다 방송을 요란하게 하고 있었어.
하루에 세 번 한다는 반W가 세일 시간이었던 거야. 검은색 양복을 입고 넥타이까지 맨 남
자가 10분 동안만 신제품 스킨과 로션 에센스가 각 4000원씩 세트에 12000원이라고 소리를
질러 댔어. 화장품이 떨어진 지 일주일째였기에 가까이 가보았어. 샘플을 발라 왔는데 스킨
은 이미 샘플조차 없었거든. 나는 화장품을 쥔 채 망설이다가 10분이 되기 직전에 돈을 꺼
냈어. 리필투웨이 케익이 3000원 립스틱이 3000원 아이라인은 2000원 에나멜은 200원이었어.
그 곁엔 유명 브랜드 신발이 12000원 균일가로 판매되고 있었고 그 곁에는 9800원 균일가로
판매되는 백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남방 셔츠도 만 원 균일가로 팔리고 있었어. 어디에
나 물건들이 함부로 재여 있고 사람들이 겹겹으로 들러 쌓고 있었어. 그런데 화장품은 10분
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앞으로 10분 동안 스킨과 로션과 에센스를 각 4000원 드린다라고 소
리지르고 있었어. 싱거워진 나는 무료 시식 팝콘을 주워 먹었어. 레몬 버터에 튀긴 팝콘이
가장 구미에 맞다고 생각했지. 팝콘 한 통에 9000원 15000원 20000원이라고 쓰여 있었어. 비
현실적인 가격이라는 느낌이었어. 어떤 맛을 드릴까요 판매원이 먹기만 하고 서있는 나에게
심술궂게 물었어. 나는 여자의 얼굴을 똑바로 노련본 뒤에 애초부터 살 마음 따윈 전혀 없
었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돌아섰어. 그리고 그 맞은편으로 가 어묵 고치를 한 개
먹고 국물을 두 컵이나 마셨어. 그곳에선 계산하는 여자와 손님이 커다란 소리로 싸우고 있
었어. 손님은 만 원을 냈다고 얼굴이 빨개져서 악을 쓰고 계산대의 여자는 천 원을 받았다
고 소리지르고 있었어. 서로 뻔한 수작을 한다고 손가락질을 하고 욕설을 퍼부었어. 피자 코
너 패스트 푸드 코너 손국수 코너 각종 김밥 코너 죽 코너 볶음밥 비빔밥 코너들이 있고 유
난히 환한 빵가게가 있었는데 어디에나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붐볐어. 나는 그때 3
개월 만에 백화점을 온 길이었어. 식품부로 가서 노란 바구니를 든 뒤에 그 속에 100그램에
300원 하는 시금치를 300그램 담았고 4개에 1000원을 한다는 단감을 8개 담았으며 데워 먹
는 호빵과 돼지고기 600g을 담았어. 그리고 신속하게 계산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백화점 버
스를 탔지. 운이 좋아 이내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었어. 그 날 내 마음은 너무나 가난했어.
만약 가난하다면 평생 동안 계속 가난하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생각할 것이 거의 없
다는 것을 알았어. 돈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 같았어. 단지 필요한 것을 충족시키고 필요하
지 않은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거야. 그러자 막연히 두려워했던 안개가 걷히는 것 같았
어. 물론 알아. 정말 가난 한 사람에 비하면 엄살에 불과하지 . 그래 내 가난은 아직 실재가
아니야. 내가 가난하다는 게 믿어지지도 않았으니까. 그냥 우울한 정도지. 가난이란 우울조
차도 복잡하거나 모호하지 않고 명백해. 돈만 있으면 해결되니까.'
엄마와 아빠의 말이 끊겼다. 누군가 냉장고 문을 열었고 곧이어 물을 따르는 소리가 들렸
다. 그리고 또 침묵이 어어지다가 엄마가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없이 떠나는 게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지 전엔 그게 두려웠어. 여자도 남자도 모
두 그것에 매여 있지. 하지만 난 이제 돈이 없는 게 걱정되지 않아. 돈이 있는 사람이 살아
가는 것처럼 돈이 없는 사람도 평생 동안 살아가. 단지 생각하는 가난과 잠시 느끼는 가난
은 정말로 가난한 것과는 다르다는 거 알아. 하지만 난 달라졌어. 수중에 돈이 한푼도 없어
도 삶은 계속돼. 두려운 건 가난이 아니라 두려움 자체에 매여 자신을 묶는 거야.'
'인생은 동화가 아니야. 너는 이상하게도 어려움을 겪으면 더 비현실적으로 되어 버리는구
나.'
'그런지도 몰라. 어려움을 경험하는 게 나쁘지만은 않게 느껴져. 그렇지만 문제는 내가 원
하는 것이어야 해. 난 더 이상 너와의 삶을 원하지 않아.'
'알아 알고 있어. 알아...'
아빠는 피곤한 음성으로 안다고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엄마 아빠가 실랑이를 벌일 동안 어느 사이 날이 환하게 밝아 버렸고 여자애는 엄마의 나
지막하고 길게 계속되는 음성을 들으며 마음이 편해져서 잠에 빠져 버렸다. 잠은 산만큼 크
고 깊었다. 마치 벌레가 달콤한 냄새가 나는 카스테라를 팜먹는 듯 따스하고 뭉클한 잠...
엄마는 욕조에 물을 받아 주고 거실 바닥에 명과 여자애의 속옷을 펴놓고 집을 떠난다.
여자애는 힘겨워하면서 명을 달래 몸에 비누칠을 해주고 머리를 잠겨 주고 잘 헹구어 준다.
명은 하얗고 깨끗하게 변한다. 목욕을 하고 난 후 명이 가방에서 카드를 꺼내며 소리를 질
러 댄다. 금세 울 것 같은 얼굴이다.
'언어 전달을 써야 해.'
'오늘은 뭐니 내가 써줄게.'
명은 생각한다. 그만 잊어버린 모양이다.
'생각해 봐. 네가 기억만 해내면 이내 쓸 수 있으니 걱정마.'
여자애는 침대 속에 명을 누이고 계속 생각해 보라고 격려한다. 그러나 명은 이내 잠들어
버린다. 명은 내일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언어 전달장을 선생님한테 드리게 되겠지. 선생님
은 버려진 아이를 보는 눈으로 내려다볼 것이고 아이들은 잠시 잠시 놀릴 것이다. 그리고
명은 아무 영문도 모르는 채 파도에 밀려 멀리멀리 떠가는 쪽배같이 외로운 감정에 사로잡
히겠지. 여자애는 하다가 만 수학 숙제를 한다. 시간은 이미 11시이다. 요즘은 책 읽을 시
간도 없다. 여자애는 책 읽기를 좋아한다. 언젠가, 세상에서 길을 잃어 빛 하나 없는 어둠
속에 있을 때, 그때 구절들이 수많은 반딧불처럼 되돌아와 여자애의 길을 밝혀 줄 거라고
엄마가 말했기 때문이다. 또 책은 세상에 더 힘겨운 고통과 더 환한 기쁨과 더 김은 의미와
더 귀한 가치가 있으니 쉽게 절망하지 말라고 용기를 주고 언제나 새로워질 힘을 준다고 한
다. 아무래도 엄마는 가족을 버리고 가버릴 것 같다.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든다. 오래 전의
여름, 여자애에게 그 말을 하던 날 엄마는 이미 떠나려고 결심을 했던 것 같다. 어른들은 모
르지만 아이들이 생각하는 건 대부분 이루어진다.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는 예언처럼.
불 끄기 전에 잠든 동생의 얼굴을 본다. 이상하게도 꼭 감긴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다. 여
자에는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쳐준다. 그리고 내일은 좀더 일찍 일어나서 언어전달 내용을
다시 물어 보아야겠다고 생가하며 형광등 불을 끈다. 방안이 깜깜해지자 벽지의 야광 그림
들이 연두색 빛을 낸다. 우주선을 탄 토끼, 초원의 기린, 나뭇가지의 새, 강가의 코끼리, 북
극의 곰, 사과나무 아래에서 책을 익는 소녀 그림들이 반복된다.
눈을 감자 여자애의 눈 밑에도 축축한 눈물이 느껴진다. 여자애가 아무리 착해도 소용없
이,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없이 엄마는 결과 떠나 버린다. 엄마에겐 태어난 해와 달인 비밀
번호 635인 트렁크가 있다. 언제나 여자애의 가슴을 죄이는 불길한 트렁크... 여자애는 불현
듯 자리에서 튕겨 일어났다. 그리고 엄마의 방으로 가 불을 켠다. 불빛이 이마를 찌르고 머
리속으로 파고드는 듯했다. 여자애는 비틀거리며 장롱 곁의 좁은 틈에 숨어 있는 검정색 트
렁크를 붙들었다. 트렁크는 무거웠다.
여행용 화장품 세트, 여행용 세안제 세트, 칫솔, 새하얀 수건 아래로 속옷이 든 작은 비닐
주머니, 그리고 스타킹과 양말들, 꽉꽉 눌린 옷가지들... 트렁크 속은 이제 막 짐을 싸둔 것
만 같다. 엄마는 밤에 일기를 쓰듯이 매일 매일 트렁크를 새롭게 싸고 있는지도 모른다. 트
렁크 포켓 속에는 여자애와 남동생의 사진들이 들어 있다. 명이 소파에 등을 기대고 간신히
앉아 두팔을 휘젓는 돌 무렵의 사진, 퍼머 머리를 한 여자애가 레이스 원피스를 입고 햇살
을 향해 얼굴을 자뜩 찡그리고 찍은 세 살때의 사진. 유원지의 작은 동물원에 갔을 때, 조랑
말 우리 앞에서 찍은 세 살 무렵의 남동생과 아홉 살 때의 여자애 사진. 일 년 전 여름에
외가의 돌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찍은 사진. 여자애는 활짝 웃고 있고 명은 장난감 선그라
스를 끼고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고 있다. 여자애와 명, 함께 찍은 사진 두장과 따로 찍힌
사진 네 장씩이다.
계단은 너무 어둡다. 눈도 없는 아주 깊은 물의 고기들, 물의 무게에 눌려 납작해진 물고
기들이 헤엄칠 것 같은 어둠이다. 여태 한번도 다닌 적이 없고 어디로 연결되었는지 알 수
없는 낯선 통로 같다. 여자애는 바퀴 달린 트렁크를 끌며 어둠속에 계단을 더듬더듬 내려간
다. 안대로 눈을 가린 것 같다. 한없이 내려가도 계단은 끝날 것 같지 않다. 몇 층인지 모를
계단 참에 내려섰을 때, 여자애는 계단 모서리에서 흔들리는 두 개의 초록빛 광채를 발견하
고 몸이 굳어 버린다. 초록빛은 여자애를 올려다보며 계단을 올라온다. 여자애는 목구멍 속
에서 아무도 들을 수 없는 비명을 길게 지른다. 그것은 메메다. 여자애가 놀라 만큼 메메의
눈 역시 버려진 공포에 질려 더욱 새파랗다. 메메는 여자애의 다리 사이를 발작적으로 맴돌
며 온몸을 비벼 댄다. 안아 올려 달라는, 쓰다듬고 사랑해 달라는 하소연이다. 계단 위에서
소리내어 우는 것이 안전하지 못한짓이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입은 꼭 다물고 있다.
"저리 가-."
여자애는 고양이에게 낮게 소리치고 트렁크를 끌며 계단을 내려간다. 그러나 고양이는 트
렁크와 여자애의 발길에 채이며 여자애와 동시에 같은 계단을 밟는다. 고양이 때문에 발이
꼬여 휘청 앞으로 기울어진다. 그 바람에 트렁크가 왈칵 앞으로 몰려 손아귀에서 떨어져 나
가 둔탁한 울림을 내며 뒹군다.
"저리 가-."
여자애는 억제된 음성으로 소리치며 발로 고양이의 배를 차버린다. 고양이는 낮게 비명만
지를 뿐 물러서지 않고 여자애를 따른다. 여자애는 현관 밖으로 나와 환한 외등 아래를 지
날 때 발을 구르며 고양이에게 외친다.
"저리 가-. 저리 가-."
고양이는 세워진 차 밑의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긴다. 여자애는 커다란 트렁크를 끌고 태연
하게 걷는다. 하늘엔 노란 광채를 내는 싱그러운 반달이 머리 위로 지나가고 있다. 금속적인
노란빛도 아니고 계란 같은 노란색도 아니다. 명랑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새어나오는 반쯤
열린 노란 창문 같다. 아파트 뒷문을 빠져나갈 때 경비실의 경비원이 작은 창문에 두 개의
눈을 대고 여자애를 잠시 관찰했다. 여자애는 등을 곧게 펴고 무심하게 지나간다. 길을 건너
면 곧 바로 호수가 있는 공원이다. 소나무 숲에 한가운데서 여자애가 멈칫 섰다. 바로 앞벤
치에 한 남자가 앉아 있다. 무릎 곁에는 서류 가방이 놓여 있고, 벤치 곁엔 아주 낳은 자전
거가 목 꺾인 닭처럼 핸들이 휙 돌아간 채 세워져 있다. 양복을 이은 남자는 꼼짝도 않고
호수를 향해 앉아 있다. 오수 속엔 맞은편 고층 모텔과 쇼핑몰의 휘황한 불빛들이 깊게 빠
져 물의 흔들림에 따라 불고 푸르게 일렁거린다. 위험성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여자애는 남
자의 곁을 지난다. 벚나무 숲길에서 여자애는 또 걸음을 멈춘다. 이번엔 호수로의 가로등 아
래에 새하얀 파카를 입은 여자와 청색 점퍼를 입은 남자가 끌어 안고 입을 맞추고 있다. 남
자의 손이 여자의 파카 속 어딘가를 다급하게 더듬는다. 여자애는 뒷걸음질을 쳐 몸을 숨기
려 하는데, 언제 따라 붙었는지. 고양이가 발길에 채여 예리한 비명을 지른다.
여자가 소스라치며 남자의 몸에서 빠져나온다. 긴 머리카락이 머리채를 휘어 잡힌 것처럼
함부로 헝클어진 여자와 어리둥절한 남자가 여자애를 힐긋 쳐다본다. 여자애는 어쩌지 못한
채 커다란 트렁크를 쥐고 서있다. 여자는 머리를 더듬더니, 몸을 숙이고 손으로 땅바닥을 더
듬는다. 머리핀을 잃어버린 모양이다. 남자도 몸을 구부리고 눈으로 땅바닥을 훑는다. 머리
핀은 찾을 수 없는 모양이다. 여자는 갑자기 다시는 그 남자를 만나지 않을 것처럼 쌀쌀하
개 걸어간다. 남자가 뒤따라가 붙잡아 세운다. 여자가 뭐라고 화를 내며 남자의 손을 뿌리치
고 돌아선다. 남자가 뒤에서 여자의 등을 끌어 안는다. 여자가 등에 벌레라도 붙인 듯 바둥
거린다. 남자는 여자를 끌어 안은 채 곁의 벤치에 앉는다. 남자의 무릎 위에 여자가 앉혀진
꼴이다. 여자가 남자의 팔을 풀고 일어서더니 팔을 커다랗게 휘둘러 앉아 있는 남자의 따귀
를 때린다. 그리고 여자는 다시는 그 남자를 만나지 않을 듯이 찬 바람을 일으키며 걸어간
다. 남자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여자애는 마치 자신이 남자의 따귀를 때린 것같이 미안하
다. 여자애는 호수가 길로 내려가 트렁크를 끌며 간다. 고양이도 여자애의 발길에 자꾸만 채
이며 걷는다.
"저리 가-."
여자애는 벤치에 앉은 두 남자가 다 듣도록 커다란 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고양이는 계속
여자애를 따라 걷는다. 여자애는 소나무 숲속의 남자와 따귀를 맞고 앉아 있는 남자의 반대
편에 이를 때까지 묵묵히 걷는다. 도중에 호수의 난간에 양쪽팔을 끼우고 앉은 채로 잠들어
버린 소년을 보았지만 그냥 지나간다. 여자애는 호수 안에 지어진 물 위의 휴게소로 들어가
는 긴 다리 가운데서 멈추어 선다. 언젠가 엄마와 아빠와 남동생과 물고기떼에게 과자를 던
져 주었던 장소이다. 휴게소는 깜깜하다. 여자애는 다리 위에 우두커니 앉아 시간을 보낸다.
새하얀 파카를 입은 여자는 완전히 사라졌고, 따귀를 맞은 남자도 동그란 호수길 저편의 어
둠 속으로 사라진다. 여자애 곁을 빙빙 돌던 고양이가 눈치를 보며 여자애의 무릎 위에 기
어올라 사타구니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발톱이 가시처럼 허벅지를 찌르고, 발바닥에
묻은 흙이 여자애의 바지를 함부로 더럽힌다. 고양이의 배는 따뜻하고 살집은 없지만 꽤 묵
직하다. 네 개의 다리가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지린내가 희미하게 올라온다. 여자애가 가만
히 있자 고양이는 여자애의 얼굴을 말끄러미 올려다보며 탐욕스럽게 운다. 입을 커다랗게
벌리며 원망스럽게 운다. 배를 너무 주려서 고통스러운 것 같다. 울 때마다 커다란 눈이 사
납게 당겨 올라가고 흰 이빨이 가지런히 박힌 새빨간 입 안이 활짝 드러난다. 여자애는 사
방을 둘러본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이 고양이가 낯설다. 고양이는 발톱까지 활짝 드러낸 채
바로 코 앞에서 여자애를 노려보며 운다. 여자애는 트렁크를 636에 맞추어 연다. 그리고 위
에 얹힌 여행용 화장품 세트와 세안용훔 세트를 물고기에게 과자를 던져 줄 때처럼 호수 속
으로 휙휙 던진다. 그리고 악력이 가득한 손아귀로 고양이의 뒷목을 쥐고 들어 올려 트렁크
속에 내던지고 순식간에 뚜껑을 닫아 힘껏 누르며 잠근 번호를 마구 돌린다. 번호는 869에
서 멈추고 트렁크 속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새어 나온다. 여자애는 가방을 난간
위로 힘겹게 들어 올려 단번에 아래로 떨어뜨려 버린다.
여자애는 깊은 밤중에 잠에서 깨었다. 무서운 꿈을 꾼 것 같았다. 화장실에 가려고 문을
열었을 때 여자애는 아빠의 음성을 들었다.
'그 남자 이혼한다든.'
아빠의 음성은 극도로 고요하다. 화난 것도 아니고 비웃는 것도 아니고 폭력적이지도 않
다.
'또 그렇게 말하는구나. 그 남자 만나지 않아. 난 단지... 내 나름대로는 생을 위해 노력하
려는 거야.'
'끔찍해. 나도 이렇게 살려고 한 건 아니었어. 이 모든 게 거짓말 같아. 너에게 부도덕하다
는 말을 하진 않을 거야. 나의 무능 이런 현실 역시 부도덕한 거니까.'
'나도 너와 함께 잘하려고 노력했었어. 그래서 뒤늦게 명까지 낳았고. 하지만 더 이상은
불가능해.'
'알아. 네 말뜻 알아. 너에게 화나지 않아. 너의 생에 이렇게도 긴긴 그림자를 던지는 나
자신이 더 싫으니까.'
'꼭 그런 뜻이 아니야. 너에게 화나지 않아. 너의 생애 이렇게도 긴긴 그림자를 던지는 나
자신이 더 싫으니까.'
'꼭 그런 뜻이 아니야. 차라리 근본적인 거야. 많은 것을 잃고 난 뒤에야 제자리로 돌아갈
용기가 생겨 나는 그런 거 겨울에 들판과 숲의 길들이 선명하게 드러나듯...'
'아무래도 좋아 네 뜻대로 해. 최소한 넌 눅눅한 뒷방에서 곰팡이 피는 삶이 아니라 햇빛
과 바람을 향해 걸어가는 삶을 선택할 권리는 있어. 너를 잡지 않을게. 어쩌면 나도 다시 노
력할 수 있을 거 같아. 도시에서 배회하는 생활을 버리고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지을 수도 있
겠지. 나쁘지 않아. 나가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지만 너와 함께 밤바람을 쏘이면서 숨을
좀 쉬고 싶어. 산책을 하고 해가 뜬 뒤에 가도 그다지 늦지 않을 거야.'
곧 두 사람이 신발을 신는 부스럭거림이 들리고 조용히 현관문이 열렸다가 닫힌다. 여자
애는 오늘 밤 아빠의 음성은 낯설다고 느낀다. 고요하고 부드럽다. 무섭도록 부드럽다.
여자애는 화장실에 갔다와서 다시 눕는다. 밤의 공원에 혼자 앉아 있던 남자의 모습이 떠
오른다. 자전거와 서류가방도. 그리고 머리채가 휘어 잡힌 것처럼 헝클어진 여자와 따귀를
맞은 남자 난간에 양쪽 팔을 끼우고 앉은 채 잠든 어린 소년... 난간 위에 끌어 올려진 트렁
크는 첨벙 소리를 내며 호수 속에 빠졌다. 물 속에 잠긴 고양이. 여자애는 다시 잠이 든다.
잠결에 메메의 울음소리가 가냘프게 들려 온다.
여자애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늦은 아침이었다. 첫째 수업이 이미 끝난 시간 남향 거실
에는 햇살이 깊숙이 비쳐 들어 한낮처럼 밝았다. 소파와 거실 바닥에는 가장자리가 시들은
꽃들이 열다섯 송이나 넘게 흩어져 있다. 분홍과 흰색의 장미꽃들과 자주색 소국과 커다란
꽃잎을 가진 노란 꽃과 흰 꽃이었다. 밤 산책을 할 때면 엄마와 아빠는 거리의 꽃가게를 지
나다가 버려진 꽃다발이나 화환들 속에서 한두 송이씩 꽃을 뽑아오느 버릇이 있었다. 현관
에는 가까운 곳에 나갈 때 신던 엄마의 운동화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아빠의 방에는 명과
아빠가 꼭 끌어 안고 잠들어 있다. 여자애는 엄마의 방문 앞에서 숨을 멈추고 선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문을 열고 안을 엿본다. 파란색 커튼이 쳐져 새벽처럼 서늘하고 엷은 그늘이
드리운 엄마의 침대는 잘 정돈된 채 텅 비어 있다. 잠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여자애는 자
신이 트렁크 속에 닫혀 물 속에 빠진 고양이처럼 아득해진다. 어디선가 메메의 울음소리가
들려 온다. 침대 아래인 것 같다. 침대 아래 그 아래의 아래 엄마가 사라진 까마득히 깊은
낭떠러지 아래...
여자애는 꽁꽁 언 얼음장같이 커다랗고 무겁고 무감각하게 느껴지는 발을 떠걱떠걱 움직
여 침착하게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가방을 매고 천천히 학교로 간다. 담임 선생님은 무서
운 남자 선생님이다. 여자애는 학교로 가는 동안 잠시 고민을 한다. 그리고 이제 막 둘째 수
업을 시작한 교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 곧장 선생님께 말한다.
'B 시에 있는 선생님은 여자애의 얼굴을 유심히 본다. 여자애는 선생님의 눈을 태연하게
마주본다. 전혀 무섭지 않다. 선생님은 지난 밤 여자애의 꿈속에 나타났다. 꿈속에서 여자애
는 당번이어서 새벽에 학교를 갔다. 교정은 아직 텅 비어 있었다. 신발을 들고 목조 계단을
올라갈 때 여자애는 계단을 딛고 내려오는 선생님을 보았다. 곱슬머리에 얼굴이 유난히 검
붉은 선생님은 검은 여자 한복을 입고 있었다. 선생님은 무엇엔가 끌려가는 환영처럼 공허
하게 여자애를 스쳐 내려갔다. 여자애는 무서워서 온몸이 저릿하게 떨었다. 선생님이 왜 여
자 옷을 입고 있을까 선생님이 왜 이 시간에 교실에서 나올까 여자애는 공처럼 튀어나가려
는 공포를 가슴속에다 꼭꼭 누르며 입을 꼭 다물고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다. 커다
란 주전자에 물을 가득 떠놓고 빨간색 플라스틱 컵도 씻었으며 교탁과 칠판도 닦았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아이들로 교실이 가득 차자 새 분필통을 든 선생
님이 태연하게 들어오셨다. 선생님은 늘 입는 감색 줄무늬 양복을 입었고 아이들의 인사에
답례하고 난 뒤 출석을 부르고 펴소처럼 수업을 시작했다. 수업이 끝나고 여자애는 교실 정
리를 하고 마지막에 나섰다. 복도는 텅 비어 있었는데 문득 복도 끝에서 선생님이 나타나
걸어왔다. 선생님은 또 검은 여자 한복을 입었고 발은 바닥을 스치지 않고 둥실 떠있었다.
여자애는 너무 무서운 나머지 복도 한가운데서 굳어 버렸다. 선생님은 왜 이 시간에 교실로
가는 것일까 왜 여자 옷을 입었을까 선생님은 무엇엔가 끌려가는 환영처럼 공허하게 여자애
의 곁을 지나갔다. 여자애는 계단을 내려오며 그 무시무시한 비밀을 간직한 선생님이 가여
워졌다. 여자애는 다른 아이들에게 소문을 내지 않고 비밀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그 꿈을
꾸어서인지 선생님이 무섭지 않다. 선생님과 여자애 사이에는 서로를 이해하겠다는 약속이
되어 있는 것만 같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고 들어가 앉으라고 말한다. 돌아설 때 여자에는 조금 웃는다. 아
이들이 일제히 여자애를 쳐다본다. 여자애의 두 눈에 언듯 파란 커튼 그늘 속에 놓인 엄마
의 빈 침대가 떠오른다. 여자애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말을 해도 아무도 납득하
지 못할 혼란스럽고 무서운 꿈, 엄마들이 떠나면 흔히 아이들의 인생에 일어날 수 있는 슬
픈 일들이 여자애의 눈 속을 스쳐 간다. 술 취하고 난폭한 아버지 끝나지 않을 가난 음식
냄새도 없는 어둡고 텅 빈 저녁들 겨울하늘의 샛별 같은 떨림 무언가를 집어 던지게 되는
삶의 균열 잠이 들려고 할 때 흘러내리는 눈물 어둡고 낯선 길을 혼자서 걷는 꿈들... 그것
은 앞으로 오랫동안 계속될 것만 같다. 그러나 여자애는 조금 웃는다. 여자애는 꿈속에서 선
생님을 이해하겠다고 결심한 것처럼 전날 밤 엄마의 음성을 들으면서 엄마를 이해하려고 이
미 결심했다. 겨울에 들판과 숲의 길들이 선명하게 드러나듯... 엄마는 그 길을 따라갔다. 누
구나 노력하면서 살고 싶은 것이다. 여자애는 엄마 없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마음
속으로 천천히 세어 본다. 배가 고프면 냉장고 문을 열고 무언가를 찾아 먹을 수 있고 계란
후라이를 만들 수도 있다. 옷이 더우면 벗어 던질 수 있고 추우면 더 껴입을 수 있고 세탁
기를 돌릴 수도 있다. 먼지를 없애지는 못하지만 바닥을 쓸고 닦을 수 있고 가게에 가서 필
요한 것을 살 수 있으며 명을 데리고 병원에도 혼자 갈 수 있다. 운동회엔 엄마 없이도 달
릴 수 있고 자모회에 엄마가 나타나지 않아도 마음에 담지 않을 것이며 친척들이 모이는 날
에도 엄마가 부엌에 없는 것 때문에 마음을 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 모든 날에 마치 먼지에
무관심하듯 엄마에 대해 무심한 척 할 수 있다. 실제로 슬픈 일 따위는 없다고 자꾸만 자신
에게 타이를 것이다. 조그만 나무 의자에 앉을 때 여자애는 자라서 마술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먼 훗날 여자애는 여러 곳을 여행하다가 우연히 엄마가 사는 마을에 도착할 것이
다. 그러면 늙은 엄마의 집을 찾아가 모자 속에서 가장 자리가 시든 장미꽃들과 보라색 소
국과 커다란 꽃잎을 가진 노란색 꽃과 흰 꽃들을 만들어 내고 입 안에서 핑크색 종이 테이
프 속에서 깃털이 망가진 살찐 비둘기들을 꺼내어 창 밖으로 날려 보내고 그리고 비밀번호
가 635인 검은 트렁크에서 메메를 꺼내 다시 살려 낼 것이다. 엄마의 웃는 모습이 여자애의
눈동자에 아프게 박힌다. 여자에도 조금 웃는다.
제목 : 태풍이 오는 계절
지은이 : 전성태
돌쩌귀 한 축이 삭아 빠진 WC 양철 문짝을 손으로 들어서 겨우 아귀를 맞춰 놓고 앉
긴 했는데 거적때가 둘러친 것만 못해 앞산이 훤히 내다보인다. 멀리 갈뫼 쪽으로 자빠진
해를 멍든 구름 한 장이 들쳐 업었다. 그 해를 빼앗겠다고 산마루에 포진한 먹구름장의 기
세도 심상치 않다. 고추를 두 물 세 물째 따서 넌 때라 가을 장마 시샘이 없을 까마는 초장
부터 큰 바람으로 본때를 보이겠다니 까짓 것 나도 날을 만났다.
'윳시 그 새 해냈네 그 새 해냈어그려.'
난데없는 곤말 영감의 숨 넘어가는 목소리가 숭숭 털려 나간 뒷간 토석담으로 파고든다.
보나마나 그 풋배 타령일 게다. 그렇지 않아도 방금 나는 울 밖으로 늘어진 가지에서 하나
를 따냈다가 썩은 밤 내뱉듯 콩밭에 던져 버린 터이다.
'아엥 싸그리 훑어 낼 일이지 어쩌끄롬 따박따박 하나썩 해대냔 말여 천불나게.'
작년에 첫물을 본 데다가 올해는 해거리를 앓아 손가락셈도 안 되는 것에 어떤 까마귀새
끼 주둥이가 탄다고 무장 목청이 높던 영감님이고 보면 며칠 전부터 누군가 몰래 해내는 모
양인데 나는 이제 조막만하게 오른 그것이 도대체 얼마나 맛이 들었기에 자꾸 잡숴 대나 하
고 무심히 건드려 본 것이었다. 역시나 아직 가칠가칠하고 텁텁한 풋것이었다. 그런 것을 영
감님의 성질머리를 건드려 가며 벌써 네댓 알 바수어 낸 푼수로 보면 맛보다는 은근히 주인
곯려 먹는 재미로 그러는 짓임에 분명했다. 도대체 어떤 작자의 수작인지 나도 부쩍 궁금해
진 터라 귀를 쫑긋 세운다.
'누군 중 빤히 알고는 있었다만 쾨 앞에서 그 짓거리를 해야.'
해대시는 게 어라 심상치 않다. 헛총질은 아닐 테고 아무래도 나 들으라고 이웃이라고는
우리 집밖에 없으니 하는 소리 같다. 오늘은 마당귀에 앉아서 내 짓을 사그리 훔쳐 낸 모양
인가.
'지미 반정부 족쇡들.'
과연 뭔가를 집어 던진 모양인데 땅따그르 뒷간 바람벽에 부딪쳐 풀새밭에 처박히는 것은
개밥그릇이다. 집 안까지 싸잡는 독살풀이에 나는 끙 엉덩이를 들썩였다. 사발허통이나 다름
없는 뒷간 꼴도 그렇지만 영감님이 저렇게 해대고 보면 나는 없던 변비 기미마저 돌아 진작
에 일 보기도 틀린 듯싶다.
그래도 좀 지나치다. 설령 내가 그 짓을 했다손 아니 더한 것을 먹었대도 이웃간에 집안
내력까지 들츨 필요는 없잖은가. 우리 집이 오늘까지 초가로 남아 있는 내력을 온 동네가
다 아는 터 집구석 꼴이 안됐다고 어른 주제로 타박하는 것쯤이야 이해아겠다. 그런데 저렇
게 우리 모자까지 싸잡아 건드리면 곤란하다. 새마을운동 바람이 몰아칠 때도 동네에서 유
일하게 초가 신세를 못 면한 집이 우리 집이다. 어머니가 업구렁이를 품은 지붕이라고 한사
코 개량을 마다했기 때문이다. 그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압구렁이에는 사족을 못 쓰는 당골
이다. 반장이네 이장이네 하는 동네 유권자들이 뻔질나게 드나들어도 꿈쩍 않자 면에서 직
접 공무원이 나왔는데 그이는 그 면상에 대놓고 국록을 묵재도 댁네 대에서 막장 볼 상이로
고 시방 우리 업신님이 그러시네 하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래도 용하다는 소문은 들었던지
그 공무원은 시월 무화과 낮빛이 되어 이 골엔 순 반정부인사가 처박혔구만하고 돌아갔다.
그때 얻어먹은 별명이 대를 잇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는 그 별명을 좀 억울하게 얻었는지
몰라도 나로 치자면 사실 옳게 받은 셈이다. 지난 해 한탕 해먹은 국가 기물이 있으니 헛바
닥이 세 발이래도 할 말은 없다.
그래저래 꼼짝없이 덤터기를 쓸 것 같아.
'암마 도둑 잡어 줄라믄 물겐 진가를 제대로 알어야 어째 볼 것 아니요이. 그래 내...'
하고 발뺌을 하다가 나는 외려 화가 더 돋쳐서 담배까지 내뱉었다. 번연히 뒷간으로 기어드
는 걸 보고 개밥그릇을 내던진건 생각할수록 심하다. 눈앞에 있었다면 그것이 오롯이 내 면
상으로 날아들었을 게 아닌가. 기왕 이렇게 두드리자고 나오는 마당.
'이녁 땅에 뿌리박었다고 거 넝쿨은 아무디로나 나대도 암시랑토 않다요.'
나도 한껏 역정풀이를 했다. 콩밭 둑에서 굴뚝을 타고 넘어와 우리 지붕에 둥지를 튼 영
감님 저희네 호박에 대한 트집이 아무려나 제일 약발이 듣는 대거리겠거니 해서였다.
그래 놓고 얼마나 해대는지 보자고 바짝 도스렸더니 아무 기척이 없다. 제대로 과녁에 들
어백인 모냥이군 하고 바람벽틈으로 눈길을 쑤시는데 웬 승용차 한 대가 가로막고 든다. 차
는 뒷간 뒤를 멈칫멈칫 감아 돌더니 자갈더미 밟는 소리를 내며 이내 멈추는 것이다.
'힝 굼벵이가 이제사 낯바닥을 내미는군.'
이 자식 똥을 한 볼때기 처먹여야지 나는 화장지를 둘둘 말아 쥐었다. 그런데 기다리는
목소리 대신
'와 동화책에 나오는 집이다.'
하고 웬 낯선 사내아이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래. 흥부와 놀부에서 봤지 옛날 우리 조상님들은 저런 집을 짓고 살았단다.'
이번에는 나긋나긋한 여자의 목소리다. 낯선 목소리는 바람멱 틈에 대놓고 속살거리는 듯
가깝다.
'근데 근데 엄마. 허수아비가 왜 지붕에서 살아요.'
'어머머 정말이네 박 대신 호박을 지붕에 올린 것도 재밌지만 호박을 지키느라고 허수아
비를 올린 건 더 재밌네. 여보 사람이 사나 봐요 마당에 텐트도 말려 둔게.'
'민속촌에서도 퇴짜 맞을 흉가 같은데 뭘.'
어쭈... 나는 허리춤을 그러쥐고 양철 문짝을 퉁 차며 마당으로 나섰다. 승용차 창문에 매
달린 채 사철나무 울타리 너머로 집을 들여다보는 비둘기 가족은 낯선 외지인들이다. 나는
덤빌 듯 한 발을 내딛으며.
'아예 마당 밟고 볼텨 내 관람료는 안 받지.'
하고 내쏜다. 난데없는 나의 출현도 그렇겠지만 사뭇 비뚜름한 기세에 외지인들은 당황해
어쩔 줄 모른다. 무안해서 까딱 머리를 숙인 여자가 채 얼굴을 들기도 전 차는 이미 고샅길
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나는 맵찬 눈길로 차 뒤꽁무니를 좇다가 닭 쫓던 개 뭣 한다고 새삼
지붕을 올려다보았다.
삭은 이엉 고랑마다 버섯과 개망초까지 뛰어올라 자라고 있고 호박줄기는 이제 지붕갓머
리를 다 휘덮었다. 누가 날 찾으면 곤말 영감이 저그 문패 안 봬하며 지석다리 없이 집적거
리기 일쑤인 그 쇠불알 같은 호박 한 덩이는 이엉을 해작이고 앉아 놀면하다. 지붕 한 귀에
삼아 올렸던 허수아비놈은 밀짚모자을 어디로 내버리고 민둥머리로 기우듬히 지쳐 있는지...
'참말로 유제 못 허겄네. 머 겁나서 장 못 담겄다고...'
잘코사니 입이 벙그러졌을 줄 짐작했던 영감님은 배나무 가지를 울 안으로 휘어 잡고 고
리눈이다. 보아 하니 함지박까지 내놓고 배를 털어 내는 주이었나 보다. 나는 좀 미안한 마
음이 드는 한편으로 천상 익은 과실은 못 자실 좀생이라고 코방귀를 질렀다. 그래도 그는
손끝에 갈씬거리는 배 세 알은 끝내 못 해냈던지 까치밥만냥 그대로 달아 둔 채 울타리 너
머로 고개를 세운다.
'이렇금 해라 저렇금 해라 내 간십할 처지는 아니다만.'
그렇게 끼여들더니.
'기앙지사 도깨이 짜리럴 들었으믄 씰어넹기든지 폴아치등지 양당간에 먼 수를 내야 쓸
거 아잉감. 여름 내 모구 퍼리 끓어 쌓더니만 요샌 밤마동 뷩이가 한 마리 앉거서 구신 소
리를 해대는 것이 영 못 살겄구만.'
하며 기어이 볼장까지 보고 만다.
'마침 호박이 몬자 이사 왔응께 아예 그 질로 따라 들어 살믄 쓰겄네요.'
나는 샐샐 웃으며 가시를 박아 놓고 뒤란 언덕빼기를 올라 콩밭 둑으로 내뺀다. 콩밭 위
로는 박씨 문중 선산 종암이 녀석은 바둑판을 차려 놓고 눈이 빠졌을 것이다. 중반전에 들
어섰던 판을 놓고 내가 뒤를 누르며 일어서자 녀석은 몹시 아니꼬운 눈초리였다.
그늘이 내린 안골 뜸은 그대로 구름 빛이다. 한데 얼린 응원단 손짓처럼 콩잎은 노대바람
에 희뜩희뜩 뒤집힌다. 콩밭을 휘두르며 놀던 바람이 뺨까지 훑고 간다.
'작것은 얼마나 모지락시럽게 쎄레불라고 예행 연습도 읎다냐.'
기다린 정성이 닿았던지 오신다는 태풍은 참 굵은 놈인가 보다. 으레 괴괴하고 후끈하고
찌무룩한 기운이 감도는 중낮이어야 하거늘. 이것은 소나기 그어 댈 상으로 갈피를 못 잡게
한다.
상석 한 귀를 차고 앉은 종암은 바둑알부터 한 웅큼 그러쥔다. 엉덩이짝을 대기 무섭게
딱 바둑돌을 꽂는 게 그 사이 대단한 수를 엮어 둔 기세다. 나는 뜨끔하여 고의춤에 꽂았던
손을 뽑아 낸다. 이윽히 수를 읽던 끝에.
'고자 좆이구마.'
하며 뻣뻣하게 당겼던 허리를 누그러뜨리자 녀석은 찌른 흑돌을 도로 집어 낸다. 딴에는 도
수 높은 안경까지 손가락으로 걷어 받치고 상석에다가 색연필로 친 바둑판을 짯짯이 훑는데
내 셈으로는 거긴 찌를 구멍이 아니다. 물릴 수를 귀띔해 준것도 삼세판의 끝판도 얼추 내
쪽으로 판세가 돌았기 때문이다.
'호 자충수라...'
녀석은 턱을 훑고 돌을 바각바각 주무른다. 대학물 먹은 대가리치고는 더디다. 입문서에
줄을 쳐가며 열을 올리는 모양이지만 넉 점 접고 보름 가량 둔 바둑이 줄바둑을 못 면했다.
내가 녀석에게 해볼 만한 것은 나잇살이나 공짜로 더 먹은 것하고 이 바둑뿐이다. 나는 고
등 학교도 다니다 말아서 가방끈부터가 대보지 못하게 짧다. 처음 두 번 서울로 내뺐을 때
는 학교에서 도로 받아 주었지만 세 번째에는 어머니가 손을 끌고 가 굿판 비난수로 내리
사흘을 사정했는데도 에누리가 없었다.
그리고 인물 쪽으로 돌아가면 난 참 할 말이 없어진다. 종암이는 눈이 안 좋아서 그렇지
깍은 밤톨마냥 허여멀쑥한 게 논두렁 볕을 쬐고 자란 여기 물색은 아닌 것 같다. 그에 비하
면 나는 무쇠솥 밑창 같은 얼굴에 그 빛깔만큼이나 깊은 여드름 구멍도 숭숭 많다. 봉자년
의 말에 따르면 너무 서둘러 배운 담배 탓이란다.
하긴 나도 잘하는 게 요것 말고도 또 있긴 하다. 용접봉도 댈 줄 알고 담벼락쯤은 우습게
미장을 하고 삼동네에 묻어낸 보일러는 여태 뒷말이 없다. 그것뿐이냐. 근래에는 석재 공장
에서 돌도 자르고 갈았다. 허나 그게 무슨 대순가. 서른 살을 눈앞에 차려 놓고 이 촌구석에
서 썩고 있는데.
나는 담배를 빼물고.
'제대가 을매 안 남읐제.'
매양 묻던 그 소리를 또 한다. 빈말이래도 녀석이 듣기 즐겨하는 소린 줄 번연히 아는 터
라.
'공휴일 제하고 반공일 포개면 슥 달.'
하고 한 마디 더 밀어 놓아 본다.
'딱 사십팔 일이오.'
'그람 돌아오는 학기에는 복학하겄구나 나도 한총련이냐.'
하고 좀 아는 체를 해볼 양인데 녀석은 어물어물 웃고 만다.
'애당초 거기 안 들었다믄 잘했다. 요새 보믄 모다 각서 씨고 도로 기나오지덜 않대 아다
리 단수 받고 근디 거그 애기덜이 외통수에 걸려 영 시세 읎게 생겼드래도 끝까장 뻗댔으먼
좋겄드라. 우리 나라같이 시세가 오락가락허는 나라도 읎잖애.'
'행님 거 다리 좀 안 털믄 바둑이 안 되우 정신 사나와서 수를 못 읽겄네이.'
'자식 밀리면 그 찜부럭이드라.'
나는 손바닥으로 무릎을 누른다. 갑자기 바둑판에 적막감이 흐른다. 억새 덤불에 소시락소
시락 일던 바람 잦아들면 어김없이 풀새밭에 귀뚜라미 소리 인다. 찌릿찌릿 흘레 붙자는 그
소리에 더 부푸는 건 적막감. 이럴 때면 나는 천상 수놈인가 보다. 봉자년의 야리야리한 살
맛이 그리웁다.
'야 놀고 먹는 노식아.'
그년이 작년 여름 잉기미 거리에서 날 부른 소리다. 미장이 장씨 일행에 묻어 공사판으
로 나돌다가 거의 보름 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느 썩을년이 내 짧은 학창 시절
별호를 부르나 하고 돌아보았더니 목욕탕에서 막 나온 축축한 차림새로 봉자년이 서있었다.
서방과 갈라서고 석재 공장을 하는 제 아버지 곁으로 내려와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얼굴
을 맞닥뜨린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야 서울 구경 제일 먼저 한 니가 고향을 지키는구나. 반갑다야.'
봉자년은 내 팔을 끌어 붙들고 설레발 치는 거였다.
그 날부터 우리는 한데 얼려서 다방에서 커피도 홀짝였고 노래방도 갔고 항구에서 회도
먹었다. 년이 떼어 놓고 온 두 살배기 딸애가 자꾸 눈앞에 밟힌다며 흐느끼는 바람에 나는
소맷자락에 분가루깨나 묻혔다. 어느 한 군데 석 달을 착실히 못 버티는 내 주제에 장씨 일
행에 붙어서 두 철을 공사판에서 난 것도 다 봉자하고 따뜻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나는 전력이 있는 여자면 어떠랴 싶었다. 봉자년의 말대로 노친네에게 차마 말을 못 꺼내고
주저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년의 배꼽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아예 살림 날 결단을 했
으니 일쑤년의 짜증이 옳은 것도 아니다.
년의 배꼽은 꽈리를 박아 놓은 것처럼 봉긋했다. 더러 애들 배꼽이 그런 것은 보았지만
다 자란 어른 것이 그렇게 생겨 먹은 것은 처음이라.
'으마 배꼬마리가 붓어 부렀냐.'
하고 윗몸을 벌떡 세웠는데 년은 단작스레 까르르 웃어젖혔다.
'피잉 사내라는 것들 손에는 그것밖에 안 잡히니.'
'암만 봐도 희한하게 생겨 부렀네.'
'우리 아부지가 누구네 산소일 하는데 엄마가 샛거리 내갔다가 거기서 날 싸질렀어야. 아
부지가 이빨로 탯줄을 끊는데 너무 질겼다나 대중없이 물어뜯어 놓은 게 이 꼴이란다. 이래
봬도 지금이야 봐줄 만큼 들어갔어야. 너 학교 다닐 때 내 별명 못 들었니 뽁지라고 복어
말이야. 다 지긋지긋하게 못살 때 이야기구 내 최대의 핸디캡이지만서두...'
봉자년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돌아 눕던 거였다.
'다덜 부족한 거이 한 가지썩은 있잖겄냐.'
나는 그 꽈리 같은 것을 조몰락거리며 말했다.
'히히 하긴 니도 신앙심 없으믄 보기가 영 괴로워야. 인물로 보나 비전으로 보나... 그러고
보니 나나 나나 쌤쌤이다. 그치.'
우리 사이를 걸고 넘어진 이는 정작 노친네가 아니라 봉자 아버지였다. 봉자 아버지는 대
를 이은 석수장이인데 몇 년 새에 일대에 들어선 석재 공장들과는 달리 비석과 망부석이나
쪼을 뿐 돈 된다는 건축 자재는 엄두도 못 내는 공장을 근근이 꾸려 가고 있었다. 더구나
올 봄에는 정화 시설을 안 갖췄다고 환경법 위반으로 석 달 영업정지까지 당해 전기마저 끊
겼다. 그런 비실거리는 공장에 정화 시설을 같추라면 아예 문을 닫으라는 소리나 다름없었
기 때문에 봉자 아버지는 길길이 날뛰었다.
'지미 신작로 저짝은 그거 읎어도 되고 이짝은 그가 꼭 있이야 된다는 벱이 으디 있냐구
어차피 바다로 섭슬리는 건 맹한가진디. 아싸리 와이로럴 쑤세박으라고 허란 말이여.'
그는 뇌물을 안 먹여서 정지 처분을 당한 것으로 단단히 믿었다. 그런 성질머리와 편벽을
가진 위인이
'시상 천하에 팔자 고칠 사내가 읎어서 당골네 새끼놈이냐 으이 혼차 살아라 혼차.'
하고 봉자를 공장 돌마당으로 끌고 다니며 패댈 때는 참 속수 무책이었다.
나는 봉자와 함께 아무데로나 내뺄 결심을 했다. 일해 둔 노임이나 챙겨서 뜨자고 장씨
일행을 따라 나섰다가 사흘 만에 돌아와 보니 봉자년은 이미 서울로 내빼고 없었다. 봉자
아버지 말로는 옛 서방이 싹싹 벌어 데려갔다는 것인데 나는 곧이 듣지 않았다.
'으디로 내돌렸는지 싸게 대란 말요.'
나는 돌덩이 위에 앉아 시위를 했다.
'워따매 총객 망부석 하나 나왔구마이.'
하고 봉자 아버지는 본 척 만 척 제 일만 했다. 저도 어쩌다가 한번씩은 돌을 못 뒤집어서
용을 쓸 때가 있어 그때마다 나는 쪼르르 달려가 단통에 뒤집어 주고 돌아와 앉곤 했다. 봉
자 아버지는 돌에 먹줄을 퉁기다가 한쪽이 샐그러진 눈으로 이리 와보라고 손을 까불린다.
그래 내가 줄레줄레 다가서면 이번에는 먹줄 끝에 눈을 박아 보라고 손가락질이다.
'뭣이 보이냐 나가 요 줄을 퉁길 때마동 왜 한쪽 눈탱이를 지그시 감는 중 아냐 이거이
죽은 사램 문패가 될 돌인디 인생이란 거는 빛과 어둠 그러니께 니 귓구녕에 맞을 말로 살
고 죽는 거의 한꾸네 있다는 그거거덩. 죽음이 행여 보일끄나 하고 나가 눈을 감는 것이여.
알긌냐.'
하면서 내 두통사를 맵게 올려붙이는 것이다.
난 일이고 뭐고 아예 손을 대지 않았다. 장씨가 숱해 찾아와 정신 차리고 함께 일 나가자
고 해도 나는 텐트를 무덤 삼아 지냈다. 오로지 서울로 가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 봉자년을
만나서 우리 관계는 무엇이었는지 한번 속 시원하게 자초지종이나 듣고 싶어서였다. 그게
다 부질없는 짓거리라고 마음이 돌아섰을 때는 무작정 이 촌구석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
만 간절해 드러누워도 엎어져도 한숨뿐이었다.
'행님 웬 한숨이유.'
종암이 녀석이 대뜸 부르는 서슬에 나는 이마를 응등그린다. 담배 필터가 마른 입술을 물
고 늘어진 탓이다. 녀석의 행님 소리는 영영 귀에 익지 않을 성싶다. 콧물 훌쩍이며 고드래
뽕이나 하고 놀던 애가 어느 새 면사무소 공익 근무 요원으로 자라 예닐곱 낫살 차이를 무
색케 하니 말이다. 때로는 동제에 나도는 평판도 들었을 녀석이 창아리도 없이 그 행님 소
리를 더끔더끔 섬길 때면 놀리자고 이러나 다시 보게 된다.
'거 주택 복구 보조금 건 말입니다.'
마치 그림자놀이 하는 손 모양으로 착점할 데를 노리는 녀석은 남의 얼굴은 안중에도 없
다.
'완파냐 반파냐에 따라 다르다는디요.'
'완파믄.'
'그람 융자만 천이백이고요.'
'보조넌.'
'그건 상황에 따라 다르고라. 걷히는 의연금이 얼매냐에 따라 액수가 정해진다는디 볼 게
없답디다.'
'천이백이라...'
나는 가슴이 할랑거린다. 이거 용궁에 빠진 심청이 꼴 났다. 일이 이리저리 꼬이더니만 외
려 큰 것이 걸려드느라고 그랬는 갑다. 이번에는 내 편에서 바둑알을 바각이다가 종암이 깨
알콩 알 캐묻고 들까 싶어 진작에 입 막음할 작정으로
'그 아재두 참 내가 뭔 힘아지구가 있다구 그런 걸 다 알아봐 달랜지...'
하고 헛다리를 놓아 둔다.
'요새도 태풍에 넘어가는 집이 다 있나 봬.'
'왜 읎겄냐 것도 삼사십 년썩 묵은 것 칠팔십 년썩 묵은 것이 있는디... 느그 집도 애그니
슨가 사란가가 스레트를 통째로 들어다가 깨밭에 옮게 논 통에 새로 성주한 걸로 안다만.'
그만 입이 쑥 들어간 녀석은 끝내기돌을 던져 넣는다. 지척에서 풀무치 한 마리가 떼그르
르 허공을 가르며 옮겨 앉는다. 나는 울타리 둘렀다고 다 집이 아니다 해놓고 빈틈없이 짱
짱한 녀석의 귀집에 딱 흰 돌을 꽂아 넣었다.
귀퉁이를 한 귀밖에 못 훔쳐 먹었는데도 집내기를 해보니 백이 따낸 돌에서 다섯 점 남는
다. 승부는 볼 것 없이 배꼽점 어름 대마싸움에서 갈렸지 싶다. 담배 한 갑을 내미는 녀석은
역시 아니꼬운 기색이다.
'날로 는다. 아생연후하고 살타라. 다시 말해 나부텀 밍줄 잇어 놓고 그 담에 넘도 거시기
허라는 말씀인디 고것만 맹심하믄 니도 솔찮은 바둑이다.'
나는 무릎을 두드리며 일어난다. 바둑돌 그릇을 도시락 가방에 챙겨 넣은 종암이도 기지
개를 켠다. 녀석은 시계를 들여다 보고
'음마 시간 좀 보소.'
하고 서둘러 산을 내려간다.
'반공일 오후인디 방우가 머가 그리 바쁘냐.'
'면에 도로 나가 봐야 해요. 비상이거든요. 태풍이 올라온다니께...'
입아귀가 샐쭉 죽은 녀석은 자전거를 내몬다.
초가 옆을 지나는 농로가 새터를 넘어 지방 도로와 잇닿고 녀석은 그 길을 타고 버스 종
점인 잉기미 쪽으로 넘을 것이다. 너른 구릉밭에는 드문드문 사람이 박혔다. 비설거지를 하
느라고 바쁜 일손들인가 보다. 말려 둔 깻단에 비닐을 둘러씌우고 무배추밭에는 비료를 뿌
릴 것이다.
나는 콩밭 둑길을 가로질러 초가 뒤꼍으로 내려서다가 무춤 몸을 낮춘다. 내리막길을 내
달리던 종암이가 곡예하듯 몸을 꼿곳이 세우고 영감님네 남은 그 풋배를 낚아 채는 것이다.
아주 잽싸고 능숙한 몸놀림이다. 녀석은 풋배를 신문 배달하는 아이처럼 콩밭으로 내던지곤
길모퉁이를 돌아 유유히 사라진다. 영감의 등쌀에 고달픈 건 누구라는 사실을 빤히 아는 놈
의 수작치고는 바탕 없이 약았다.
바람 한 줄기가 시누대 울타리를 치더니 지붕에서 검불이 날린다.
빗도랑이나 겨우 돌린 뒤란은 힘받이로 걸친 여남은 개 말목이 언덕바지를 짚은 채 넘어
오는 바람벽을 받치고 있고 허리까지 자란 지칭개와 개망초가 우거져 발 한 치 디밀기가 어
렵다. 마당 한편에 쳐둔 텐트는 줄이 느슨해져 서리 맞은 애호박마냥 쪼물짝하다. 애초에는
관리 사무소 격으로 쳐놓은 텐트였다. 그런데 요새는 그 용도가 달라졌다. 태풍에 가옥이 파
손되면 틀림없이 피해 조사를 나올 터이고 사람 사는 집이라고 우기려면 틈틈이 드나들며
잠을 자두는 수밖에 없는데 이 텐트는 그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나는 줄을 팽팽하게 당
기고 쇠말뚝을 새로 박는다.
내가 애초부터 태풍을 기다렸던 건 아니다. 그나마 근근 들어 살던 초가도 올 해동비에
찡그둥 우는 소리를 낸 바람에 노친네가 자다가 쫓겨나왔다. 그래도 시누대를 얽어서 흙벽
을 친 집이라 당장 넘어가지는 않아 며칠 더 묵새기다가 새터 쪽에 새로 난 빈 집으로 이사
했다. 입식 부엌 하나 제대로 안 갖춰진 그 집도 슬레이트나 올렸달 뿐이지 이 초가와 별반
다를게 없었다. 그래도 꼴에 전세에다가 신방은 못 차린다는 조건이 붙었다. 나야 장씨 일행
에 묻어 공사판으로 나돌아 집이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지만 신방을 못 차리면 당
장 가위에 눌려 죽을 판이라는 노친네는 사정이 달랐다. 마냥 그이를 남의 집살이로 지내게
할 수 없어서 집자리에 조립식 주택이라도 엮어 볼 작정이었는데 혓바닥을 뽑을 그 굼벵이
놈이 다 잡쳐 놓았다.
이러구러 짬만 보다가 오월도 훌떡 다 넘길 무렵이었다.
'거 지붕만 팝시다.'
지나가다 우연찮게 들렀다는 장사꾼인지 사기꾼인지 알 길 없는 놈이 대뜸 내놓은 흥정이
그랬다. 그는 이엉 한 귀퉁이를 되작여 누에만한 굼벵이 굴이 여태 남아났다니...'
하며 감탄 연발이었다. 놈은 오십만 원을 내놓겠다고 했다. 나는 웬 횡재냐 싶었다. 놈이 저
썩어 문드러진 지붕을 손수 드러내 주고 거기에 그런 적잖은 돈까지 얹어 놓겠다니 누가 들
어도 꿩 먹고 알로 입가심했다는 말 나오게 생겼다고 손바닥을 쳤다. 놈이 굼벵이를 더 키
워야 쓸 만한 물건이 되겠다며 초가을에나 이엉을 들어 내자는 걸 나는 몇 푼 더 우려 낼
생각으로 넌지시 딴청을 놓았다.
'그리 오래는 못 기다리는 골동품인디...'
'물건을 잘 키워 놓으면 내 그 품삯까지 쳐서 삼십을 더 얹어 드리리다. 땅 살 사람도 물
색해 보고.'
그래 놓고 간 놈이 입때껏 낯바닥을 안 내미는 것이다.
여름 내 나는 그 지붕만 쳐다보며 지냈다. 굼벵이를 가꾸는 일이라고 해봐야 기갈 든 지
붕에 물을 뿌려 두엄더미 안 아쉽게 푹 삭혀 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지붕에 물을 대고 있노
라면 오가는 사람마다 무슨 장난으로 지붕농사냐고 혀를 털었다. 참새 한 마리 얼씬 못하게
하느라고 허수아비를 지붕에 올려 구경거리가 되었던 것까지 생각하면 굼벵이놈을 갈아 마
셔도 시원찮을 판이다.
나는 손을 털고 마당을 나섰다. 사철나무 울타리를 경계로 삼은 앞 텃밭엔 노친네가 갈아
둔 무와 배추가 제법 무성하다. 제대로 솎아 내지 않아 모판 같은 열무나 겨우 상추 포기만
큼 벌어진 배추는 다른 집들 것에 대면 훨씬 더딘 생장이다. 노친네 성미에 저리 가만둘 리
없는데 백중맞이 대목 뒤로 그이는 집에서 지내는 날이 드물었다.
나는 밤을 잉기미의 으용 소방대 사무실이나 텐트에서 나기 일쑤이다. 소방대 사무실 소
파는 잠자리가 좀 옹색해서 탈이지 밤으로 놀다가 먼 길을 안 들어와도 좋으니 한결 나은
편이다. 그래도 여름 한 철은 봉자네 석재 공장에서 밤일을 하고 거기에서 거꾸러져 잤다.
어느 하루 낮에 어이 있는가 하고 텐트 밖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있었다. 장씨인 줄 알고
홑이불을 말아 감는데 텐트속으로 머리를 비집어 넣는 이는 뜻밖에도 봉자 아버지였다. 또
무슨 해찰을 부리려나 나는 적이 긴장했다. 그는 영업 정지 탓인지 봉자를 패대던 때의 기
세는 없이 꽤 곯은 낯빛이었다. 선산 일을 하나 맡아 손이 달리는데 며칠만 바짝 도와 달라
고 했다. 공장은 가정용 전기를 끌어다가 전압기로 튀겨서 밤으로만 몰래 기계를 돌리고 있
는 모양이었다. 나는 마침 용돈도 궁하고 밤 시간에 잠깐 거들면 된다는 말에 흔감했다가
문득 미운 생각이 치밀어서 도로 이불을 감고 돌아 누워 버렸다.
'당골네 자제라 했던 소리는 내 미안함세.'
휴 한숨에 묻어 오는 그의 더운 이김이 귓결에 느껴져도 나는 기척을 하지 않았다. 그대
로 반 시간은 족히 뭉그적이다가 묶어 둔 아랫배를 그러쥐고 나서니 봉자 아버지는 토방으
로 물러나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발 밑에는 담배꽁초가 수북했다.
'내 애비로서 할 말은 아니네만 봉자 그년하고 깨진 건 천만다행인 줄 아소. 그 샐 못 참
고 간통으로 들앉겄네.'
나는 봉자 아버지와 저만큼 떨어진 토방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서로 등지고 앉아 애꿎은
담배를 몇 대나 그슬렸을까 던적 없이 눈물이 앞을 가렸다.
'자고로 사나이넌 말이여 여자하고 돈하고만 조심하믄 벨탈이 읎는 거거덩.'
위로랍시고 봉자 아버지가 입을 뗐다.
'나 시방 헷또가 팍 돌아불겄소. 한때나마 사람 정으로 살맛을 준 아가... 여자 쪽으로는
안중 철이 안 들어서 그란지 몰라도 그때는 나가 왜 사는지 알 것도 같았는디... 암튼 갸를
다시 보믄 그 독헌 배꼬마리를 후벼 내고 말 것인께 아재는 말리지 마시시오.'
그러고 나서도 한참 만에 나는 그를 따라 나섰다.
트림을 해대며 툇마루에 앉았는데 사위는 금세 어웅하다. 동편으로 세 굽이 키대로 포개
진 산이 어둠에 녹아빠지고 있다. 앞산 쪽에서는 거무스레했던 때깔이 봉봉을 넘으며 연해
밀개지다가 끝내 마지막 봉우리에서는 잿빛 하늘과 얼려 버렸다. 어둠은 꿀렁꿀렁 흔들리며
고이는 것 같다.
'하 저닉도 싸게 오네. 비료나 허체 볼끄나.'
나는 동굴처럼 어둔 광에 발을 담근다. 벽과 기둥을 쓸어 봐도 전깃불 스위치는 어디에
붙었는지 잡히지 않는다. 어렴풋이 눈에 익어 오는 광 안은 자질구레한 가재도구를 쓸어 넣
은 창고답지 않게 큰 물건은 아래 작은놈들은 위로 업히고 옹기는 옹기대로 그릇은 그릇대
로 들앉아 가지런하다. 발 밑에 밟히는 쌀톨 하나 없다. 시렁의 라면 박스는 무구함인가 보
다. 위로 삐죽이 코를 쳐든 회색 나막신 한 켤레는 업구렁이 나들이 신발이다. 노친네는 밥
을 먹다가도 울 밑으로 구렁이가 언뜻 스치기라도 하면 저 나막신을 들고 내달아 땅바닥에
가지런히 놓아 두고 아이고 출타하실라고라. 몰른 땅으로만 펜이 댕게오시시요이 하고 합장
례를 올렸다.
드디어 쌀가마니 옆에서 위아래를 새끼줄로 질끈 동여맨 비료 포대 하나가 눈에 띈다.
'차암 깊이도 모셨네.'
반이나 쓰고 남아 간수해 둔 모양이다. 이 정도면 텃밭을 한 바퀴 돌며 뿌리고도 남겠다.
나는 비료 포대를 들쳐메고 노는 손에 해머와 소주병 담은 봉지를 들고 집을 나섰다. 마
을에 들어오기 시작한 전깃불들이 까물가물거릴 만큼 바람은 사납다. 아직 비는 뿌리지 않
지만 도랑가에 선 늙은 밤나무 그늘 아래서라면 물 듣는 소리도 들릴 만큼 뺨에 감기는 공
기는 축축하다.
조금돌이등을 넘는데.
'아이 노식아.'
누군가 언덕빼기 아래 밭자리에서 부른다. 빈 비료 포대를 옆구리에 낀 장씨가 올려다보
고 있다. 이번에는 한 달포 만이다.
'아예 추석 쇠려고 나오셨수.'
나는 길가에 쪼그려 앉아 담배에 불을 붙여 문다. 장씨는 새포대잇을 낫으로 그어 낸다.
낮일로 밥벌이를 하면서도 가랫자루 근성을 못버려 어디를 가나 노상 전답 걱정인 것을 보
면 쑥 백 년 농사꾼 내림이다.
'추석은 무신... 태풍에 쉰다고 해서 한 이틀 짬 낸 거여. 낼 다시 가면 한 열흘거리나 될
랑가. 업자놈이 안 올 줄 알고 아싸리 간조를 반이나 띠놓고 주더라.'
'벽돌 몇 장 빼놓고 오지 그랬수.'
'그나저나 나눔이 다 비료 푸대를 메고 벨 일이다.'
'왜요 이 실바타운에 순 깔린 기 뗏장인디 미리 고것들이나 키와 노믄 동네 노인들한테
혹 귀염받을까 해서 나선 길이요.'
번쩍 번갯불이 지나간다. 우르릉 갈뫼 쪽 하늘이 꺼지는 소리를 낸다.
'욕보시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이봐 노식이.'
장씨가 다시 불러 세웠다.
'낼 떠날 셈인지 따라 나설랑가 개도 자꼬 나도는 놈이 배 채우는 벱이여.'
나는 손사래를 치고 돌아선다.
'일 읎네요. 앉어 있어도 오가는 바람이 돈 물어다 주는 수도 있제라...'
'왜 또 바람이 도졌남 낼 첫 차인께 늦지 않게 나와 보라구.'
나는 장씨의 말을 뒷전으로 흘려 버린다. 남 생각해 주는 말 같지만 걱실걱실 일 잘하고
이것저것 부려먹기 좋으니 아쉬워 매번 저 소리다.
이랑 하나를 남겨 두고 비가 듣기 시작한다. 배추 잎사귀를 투둑투두둑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쳐드니 찬 빗방울이 뺨을 때린다. 나는 남은 비료를 내털 듯 쏟아 놓고 한 걸음에
처마 밑으로 기어든다. 그 새 몸은 젖어서 습한 김이 피어오른다. 손바닥으로 우산을 해 쓰
고 밭둑으로 뛰어가 해머와 술 봉지를 낚아 채서 다시 처마 밑으로 기어들 때는 초가 이엉
에 낙 숫물이 듣기 시작했다.
비바람이 더 여물고 시간이 이슥해져서야 일 해내기가 용이 할 것이다. 하긴 내가 무슨
도둑질을 하는가. 작년 나라 고물 잡숫던 것에 비하면 이 일은 흠집 하나 없이 깨끗한 일이
다. 무엇보다 내 물건을 투자하는 일이니 안전하기로 치자면 바람결에 방귀 흘리기보다 쉽
다. 공으로 거저 먹자는 것도 아니고 차차로 꺼나갈 테니 쥐뿔도 없는 놈이 무담보로 목돈
좀 당겨 쓰는 셈이다. 작년 가을은 참... 재미가 좋았다. 여러 모로 운수가 잘 맞아떨어졌다.
우선 빌린 차에 드라이브시켜 주겠노라고 봉자까지 태운 것도 잘했다. 뭐가 되려고 그랬는
지 풍광 좋은 곳 많이 놔두고 개막이 공사장 근처의 폐염전으로 차를 몰았던 건 두고두고
모를 일이다. 보상금을 챙긴 사람들이 다 떠난 염전 마을은 빈 집과 창고만 갯둑 아래로 늘
어선 채 갯바람에 말라 가고 있었다. 이곳 저곳 기웃거리다가 발가벗은 여체 사진이 벽에
나붙고 베니어로 조잡하게 짠 침대가 놓인 방을 발견했다. 아마도 젊은 인부 하나가 지냈던
방이었나 보다. 그 방에 들어 우리는 눈을 맞추었다. 내가 염전에서 눈을 맞춘 것은 그것뿐
이 아니었다. 염전에 널려 있는 양수용 경운기 대가리와 몇만 평이 넘을 듯싶은 검은 비닐
매트리스 거기다 순쇳덩어리인 롤러까지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아따 자원 재활용 잠 해야 쓰겄네이.'
내가 궁시렁거리자 볕 좋은 창 밖으로 고개를 내뺀 봉자년은 제 소린 줄 알고 희뜩 돌아
보더니.
'니는 재활용도 못 하는 불량품이어야.'
하고 눈을 흘겼다.
그 날부터 근 일 주일에 걸쳐 나는 그 고물들을 빼돌렸다. 마지막 차짐에는 무쇠솥 네 개
와 집집 처마 밑에 제비집마냥 나붙은 전기 계량기도 섞여 있었다. 그렇게 날것으로 해먹은
것이 돈 백이 넘었다.
부엌문 두 짝이 바람을 안고 활개를 친다. 자정이 훌쩍 넘었는데도 바람은 호박 한 덩이
도 건드리지 못하고 빈 데로만 들쑤시고 다니며 장난질이다. 비는 뿌리다 말다 한다. 사람
독종도 자꾸 얼굴 맞대고 있으면 순해 보이듯 벌써 몇 시간째 비 바람 뒤척이는 것만 들여
다봐선지 태풍은 오는지 가는지 매지근하다. 나는 손전등을 더듬어 들고 마당을 훑어본다.
삭은 검불이 흘러내려 낙숫물 고랑은 개 그슬린 뒷자리 같다. 바람이 서까래 밑을 들이박고
나가는 소리가 무척이나 으스스하다. 묵은 집이라 저런 짐승 소리는 내는 것일까. 나고 자란
집인데도 괜히 무슨 흉측한 짐승을 대하듯 두렵다.
나는 손바닥에 밭은 침을 뱉고 해머 자루를 움켜쥔다. 남의 눈 피해 덧나지 않게 하기에
는 맞춤한 시각이다. 영감님도 잠이 들었는지 들창에 서렸던 텔레비전 푸른 기운도 가셨다.
툇마루 산기둥을 툭툭 두드리자 의외로 들썩인다. 내처 해머를 마루 산기둥을 툭툭 두드리
자 의외로 들썩인다. 내처 해머를 머리 위까지 치켜들고 내리쳐 본다. 대번에 서까래받이가
찌그둥 기울고 호박이 덩굴째 쏟아져 허공에서 대롱거린다. 집을 빙 돌아가며 홑벽이며 기
둥 골골샅샅이 쳐본다. 물을 먹어 무거워진 이엉은 한 몽텅이씩 빠지지만 흙벽은 맞은 자리
만 털릴 뿐 기미가 없다. 기운 쪽으로 털어 내면 땅바닥으로 주저앉을까 싶어 두란 쪽으로
들어섰으나 여차하면 그 비좁은데 묻혀 무덤 삼기 십상이겠다. 나는 미끄러운 언덕빼기를
뭉개고 다니며 말목부터 모로 쳐 넘긴다.
뒤란 바깥귀 두리기둥을 두드려 들도리까지 빼내니 집이 반은 뒤틀린다. 건너편 기둥에
해머질을 해대자 어느 순간 우지끈 뒤틀리는 소리를 내더니 이내 우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뒷벽은 쪼개져 언덕에 처박힌다. 서까래 한 귀가 이마를 긋고 가는 바람에 나는 철퍼덕 땅
바닥에 주저앉았다. 귀도 멍멍하지만 가는 바람에 나는 철퍼덕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귀도
멍멍하지만 일어나는 흙먼지에 도시 눈을 뜰 수가 없다.
난데없이 울타리 너머에서 손전등 불기둥이 쑤석거려 나는 아예 납작 드러누워 버렸다.
이거이 먼 일이당가 하고 소리치는 이는 곤말 영감임에 틀림없다. 나야말로 일 났다. 나는
헤무른 이엉 날개를 이불처럼 끌어 덮곤 내처 아이고 사람 살려 사람 죽으요 해놓으니 곤말
영감이 첨벙첨벙 마당으로 뛰어드는 기척이다. 전깃불이 휘도는 게 쉽사리 날 발견하지 못
하는 눈치라 아이고 사람살려 하고 한번 더 소리를 낸다.
'먼 일이여 왜 거그는 기들어가 있으까이 으마 이거 얼굴에 피가 벌거시.'
젠장맞을 손전등은 왜 그렇게 얼굴에다가 쑤셔 박은지...
'어이고 내다리 작살난 모양이네.'
'어째 운신을 해보겄냐.'
영감님이 어깻죽지에 손을 밀어 넣는다. 아구구구... 나는 땀바닥으로 한 바퀴 몸을 굴리
고 간신히 일어난 척 영감님의 앙상한 어깨에 몸을 부린다.
영감님네 툇마루에 드러눕자 주인은 걸레인지 수건인지 축축한 것을 얼굴에 들어댄다. 나
는 그것을 빼앗아 들고
'무단히 집 받치러 올라왔다가... 휴지 같은 건 읎소.'
'신문 쪼가리야 많제.'
'쯧 괜찮은 거 같응께 면에 전화나 한 통 너줄라요.'
'보겐소에.'
'아니 면사무소 대책 본부요. 집 넘어갔다구 신고는 해얄 것 아니겄소.'
'그란다마는...'
영감님이 방으로 들어간 지 한참 만에
'아 민이요.'
하는 소리가 들린다..
'여그 안골인디 집이 한 채 자빠졌소. 이 싸그리. 사람은 죽지넌 안 했지만서두 마이 다체
부렀소. 누네 집이냐고 이 일공오삼 번지... 호주는 그러니께 이큰가이내...'
'호적에는 이대녀로 올랐소.'
내가 노친네 함자를 정절해서 소리쳐 넣자
'이큰가이내가 아이라 이대녀라네. 그렇제 큰 대 기집 녀... 피해액 그기야 암껏도 읎는 거
나 다름없제만서두 글쎄나... 음마 신고한 사램은 누군 중 알아서 뭐 할라고 암튼 조새 나와
보믄 알 거 아이요 이상 신고 마치겄소이.'
나는 그제야 온몸에서 맥이 빠지는 느낌이다. 아무데라도 드러눕고 싶다.
빗길을 걸어오며 전깃불에 들여다본 집은 깔축 없이 돋아 있어 누가 건성 봐서는 원래 저
꼴 아니었어 하고 되묻게 생겼다.
새터 노친네 집으로 비척비척 기어들었을 땐 나는 잠들면 다시는 못 일어날 사람처럼 그
대로 쓰러졌다. 밤새 나는 꿈인지 생신지 모를 귀살스런 소리와 광경에 시달리며 뒤척였다.
빛 한 점 없는 그믐밤 큰 업구렁이가 봉자 몸뚱어리를 친친 감은 채 물바다 어디론가 헤엄
쳐 가는데 나는 초가 지붕 위에 앉아 애타게 부르기만 했다. 전화를 받은 것 같은데 무슨
말을 나불거렸는지 흐리마리하다. 아니다. 종암이 녀석이 아 글세 태훙이 씨급이 된 디다가
진로마저 일본으로 확 틀고 지나갔는디 왜 우리 면에서 가옥 파손이 하나 나왔냐며 면장님
이고 군청이고 전화질이고 난리예요하고 씨월거리던 소리만은 귀에 쟁쟁하다.
분명 사위가 훤해졌으니 날이 샌 것만은 분명하리라. 나는 문을 벌컥 밀어 냈다. 안개가
피어오른 들녘은 착 가라앉아 있다. 그제야 나는 일이 걷잡을 수 없이 꼬였다는 사실을 알
고 문지방에 낯을 묻었다. 전국을 탈탈 털어 태풍에 넘어간 집은 우리 집밖에 없는 게 아닐
까. 방송마다 우리 초가에 카메라를 들쑤시고 있는지도 모른다.
옷가방을 끼고 잿등 너머 정류장으로 허둥지둥 나가자니 그 예감은 더 확실해진다. 뒤돌
아본 마을은 밤새 가을로 한 자는 더 성큼 빠진 듯했다. 누릇누릇 이삭 팬 논들은 어디 한
구석 기계총 흉터처럼 누운 데가 없고 하다못해 길가에 퍼질러져 굳은 쇠똥도 제자리를 지
키고 있다. 사방을 둘러봐도 간밤의 태풍으로 못쓰게 된 건 나 혼자뿐 다 때깔이 피었다. 어
디로 갈 것인가.
가방을 하나씩 둘러멘 장씨 일행이 잿등을 넘어온다. 어디 몸 감출데 없나 둘러봐도 물
젖은 도랑에 엎어지면 모를까 사방 천지에 몸 담아 줄 응달 한 점 없다. 장씨 일행은 도롤
로 올라서서 신발에 묵근히 엉겨 붙은 흙을 털어 낸다. 무슨 농지거리를 삶았는지 한통으로
내지르는 웃음소리가 시끌벅적하다. 젠장 난 고개를 틀고 먼 산 바라기다.
'자식 천상 양반 되기는 글렀다. 앉거서 돈 버는 수를 터득헌 놈이 웬일이냐.'
장씨 옆에 선 영섭 아빠다.
'나 거기들 안 따라가우.'
내가 뚱하여 쏘아붙이자
'니 간밤에 일 저질렀더만 아주 밭자리가 훤하든대.'
하고 장씨가 말을 내고 옆에 선 영섭 아빠가 받아서 퉁퉁 불어 볼 만하더라니께 하며 피할
데 없이 몰아붙인다.
'지미럴 금세들 보셨구마이. 거 참 재밌대.'
엎어져도 똥칠밖에 더 하랴 나는 헤헤 너털웃음을 내놓고 만다. 행여 뉴스에 도배가 되었
더냐고 물어 볼 참인데
'보다뿐이여 에끼 아모리 비료 허기 싫대두 그라제 싸래기를 그리 허체놔 밤새 눈보라친
중 알았단 말시.'
한다. 어안이 벙벙해 섰던 나는 때마침 재를 넘어오는 버스가 눈에 들어와서 나는 펄쩍 뛰
어 나섰다.
'아 싸게 서둘러요 오늘 일당은 죽 쑤고 말 거여.'
제목 : 부용산
지은이 : 최성각
그때 은미가 앵콜을 받아서 노래를 몇 곡 더 부르면서 그 사이에 부용산도 슬그머니 끼어
넣어 불렀다는 것을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다.
'무슨 노래야 슬프고 좋은데...'
마침 옆자리에 앉아 있던 경수에게 내가 물었다. 처음 들어 보는 노래이기 때문이었다.
'얼렐레 저 녀석 저 노랜 잘 안 부르는데 오늘은 이상하다.'
은미의 선배인 경수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쥑인다 쥑여 앵콜.'
국회의원에 나왔다 떨어진 두엽이 플라스틱 소주 됫병을 들고 버스의 좌석 난간에 걸터앉
아서 소리쳤다. 노래라면 사족을 못 쓰는 두엽이었다. 앵콜을 외치면서도 두엽은 들고 있던
소주병으로 사람들에게 소주를 따르느라 정신이 없는 눈치였다.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소리
쳐 은미에게 앵콜을 청했다. 은미는 마지못해 한 곡을 더 불렀다. 이번에도 흘러간 뽕짝잉었
다. 미아리 고개 어쩌구하는 노래였던 듯싶다. 머리를 뒤로 묶은 은미는 노래를 부르 때에는
목에 가느다란 핏줄이 돋곤 했다. 이상하게도 목의 가느다란 힘줄이 노래 부르는 그녀에게
어울렸다. 어딘가 처연하면서도 그 처연함이 낯설지 않았던 것도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청
바지에 체크 무늬의 푸른색 나방 그리고 두껍지 않은 회색 스웨터 차림이었던 은미는 어떻
게 봐도 서른이 넘은 노처녀로는 보이지 않았다. 대개 산삼 심기 행사는 1박 2일로 진행되
었고 성루을 빠져나갈 즈음 사람 소개가 끝나면 소주잔이 오가고 노래들이 터져나오곤 했는
데 그때 강원도 정선 산행도 예외는 아니었다. 처음 농심마니 패들에 합류한 은미에 대한
소개는 면목동에서 한의원을 개업하고 있는 경수가 맡았다. 은미는 경수의 한의과 후배로서
아직 학생이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노처녀라는 것이 경수에 의해 특별히 강조되었다.
그러나 한의과에 다니는 아리따운 노처녀보다도 그녀가 강압에 의해 부르게 된 노래로 인해
은미는 더 시선을 끌었다. 전날 정선으로 내려올 때에도 은미는 앵콜을 받았었다. 은미가 부
르던 노래는 한결같이 노래가 생긴지 오래되었건만 여전히 되불려지고 있는 노래 그러니까
흘러간 트로트였다. 비내리는 고모령 울고 넘는 박달재 황성옛터... 는 물론이었고 나중에는
심수봉에 이르기까지. 그런데 그 뽕짝이 예사로운 뽕짝이 아니었다.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어
김없이 흐르는 메들리 뽕짝 가수들은 저리 가라 할 수준이었던 게다. 음정과 박자도 정확했
고 끌 때에는 끌었고 당길 때에는 당겼고 넘어갈 때에는 꼴가닥 넘어갔으며 알던 가사도 잊
어버리는 노래방 시대에 가사도 너무나 정확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배로 부르는지 목으
로 부르는지 알 수 없었으나 그렇잖아도 노는 일이라면 모두 내로라 하는 농심마니 패들이
은미에게 환호하는 모습이라니 가관이라면 가관이었다.
농심마니란 산에 산삼을 심는 사람들이라는 말로서 산삼을 캐는 사람들을 뜻하는 심마니
와 달리 그 말이 생긴 지 10여년이 조금 넘는 조어였다. 국운 쇠퇴와 참혹한 일제강점 그리
고 미증유의 동족상잔 그 후 미완의 혁명을 깔아 뭉갠 5월 쿠데타를 필두로 길고도 긴 군부
독재로 점철된 우리 현대사가 공교롭게도 산삼의 씨가 마르는 것과 궤를 같이했다는 다소
엉뚱스러운 역사의식에서 비롯된 산삼 심기는 자연을 잡아먹으면서 건강을 사려는 이기적인
태도가 아니라 산삼을 심음으로써 우리 땅의 정기를 되찾고자 하는 취지에서 발상된 작은
문화운동이었다. 독서회 친구들과 가까운 산꾼이 중심이 되어 나 또한 모임의 시작부터 관
여하고 있는 농심마니는 산삼의 묘삼을 산에 심되 심은 자가 캐먹지는 않는다는 이타적인
정신을 근간으로 삼고 있었다. 환쟁이 글쟁이 얼론인 환경 운동하는 사람들 산악인 농사꾼
장사꾼 전교조 교사 일반 직장인들...로 구성된 모임은 봄 가을 벌이는 두 차례 산삼심기 행
사에 한 번이라도 참여하면 그대로 정식 멤버가 되어버리는 말하자면 까다롭지 않은 열린모
임이었다. 워낙 모임의 들락거림이 수월해 장안의 내로라 하는 날건달과 술꾼들이 다 기웃
거리다 보니 산행 언저리에 술로 인한 잡음도 더러 있었지만 산삼 심기가 어언 10년이 넘도
록 지속되자 이제는 단순한 임의 모임이 아니라 산삼을 심는 그 행사가 제법 사회적 의미도
띠게 되었다. 그 동안 스물세 차례의 산삼 심기를 통해 농심마니패들이 전국 골골샅샅에 심
은 산삼의 묘삼만도 수만 뿌리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심는 것은 산삼의 묘삼이지만 보
이지 않게 심어지는 것은 그것만은 아니게 된 것이다.
은미가 선배를 따라 처음 참여했던 그때의 산삼 심기 장소는 정선 하장의 야산이었다. 숙
박과 식사는 동면 몰우대 언저리 숲에서 농사를 짓고 있던 강원도 친구가 준비했다. 도착한
날 밤에도 장작에 불을 붙이고 거나하게 술판이 벌어졌는데 노래를 부르지 않을 때 은미는
생글생글 웃기만 할 뿐 별로 말이 없었다. 대개는 선배인 경수 옆에 붙어 있었지만 가끔씩
은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어둠 속에 가만히 서있곤 했다. 일부러 말을 붙여보지는 않았지만
한마디로 인상이 깨끗한 아가씨였다. 그러나 그 나이 또래의 아가씨들 누구나 자세히 보면
의당 느낄 수 있는 그늘도 언뜻언뜻 느껴지는 아가씨였다. 어떤 젊은인들 그늘이 없으랴.
'무슨 아가씨가 노랠 저렇게 잘해.'
농심마니 대장이면서 산악인인 박인식 선배가 경수에게 물었다.
'저 솜씨가 하루 이틀을 생긴 게 아니라 그래요.'
경수가 박 선배에게 대답했다.
'무슨 소리야.'
내가 물었다. 같은 연배인 경수와 나는 같은 독서회 회원이었다. 말하자면 농심마니 창설
멤버인 셈이었다.
'아버진 쟤가 초등학교 다닐 때 돌아가신 모양이야. 그리곤 꽤나 어렵게 학교를 다닌 모양
인데 저 녀석이 어렸을 때부터 일 나갔다 돌아온 어머니에게 매일 밤 뽕짝을 불러 드렸다는
거 아냐.'
'어머니에게 뽕짝을 불러 주다니.'
'그것도 이불 속에서 말야. 나도 맨 처음 그 얘기 들을 때 콧날이 징하더라구. 나중에야
사정을 알게 됐지만...'
경수의 말은 들을수록 오리무중이었다. 은미는 미아리 고개...에 연이어 으악새 우는 사
연...을 한 번 더 뽑고 있었다. 박 선배와 나는 말없이 은미의 노래를 들었다. 더 이상 경수
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그 정도 정보만으로도 짐작이 전혀 안 되는 일은 아니었다. 산동네
어느 사글세방에서 낮의 막일로 피곤에 지쳐 누운 어머니에게 흘러간 뽕짝을 나직이 불러
주는 소녀의 모습이. 딸의 노래를 듣고서야 잠이 들 수 있었던 어느 홀로 된 여인의 모습이.
어머니가 잠든 뒤 다시 공부를 좀더 하고서야 잠자리에 들곤 했던 어린 소녀의 모습이.
'나인 몇이야.'
'서른둘인가 그럴 거야. 무슨 전문대학에 다니다가 때려치우고 한의과대학에 다시 시험쳐
들어왔으니깐 보기엔 저레 갸냘퍼 보여도 아주 독족이야 독종.'
'지금은 살기 좀 나아졌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리야까도 끌고 막일도 했는데 이젠 영등포 근처 어느 재래
시장에 과일 노점사을 하나 가지게 된 모양이야. 그치만 공분 아마 쟤 혼자 벌어서 하다시
피 했을 걸. 이젠 곧 졸업이니까 개업도 개업이지만 결혼을 해야 할 테네 말야.'
경수가 말했다. 본디 잔정이 많은 친구였지만 경수의 어투에 은미에 대한 남다른 정이 담
겨 있음을 어렵잖게 느낄 수 있었다.
'대단한 아가씨로군.'
박 서내가 마치 마침표를 찍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뿐이었다.
노래와 거듭 돌아가는 소주잔 귀경하는 버스 속이라는 게 늘 그렇긴 하지만 그런 난장판
비슷한 분위기였기 때문에 나는 은미가 그때 흘러간 뽕짝 사이에 슬며시 끼워 넣듯이 불렀
던 그 노래에 대해 더 이상 경수에게 묻지 못하고 말았다.
다시 부용산을 듣게 된 것은 공교롭게도 그 다음 농심마니 산행 때였다. 부용산을 들려
준 사람은 그 또한 한 사람의 농심마니이면서 한겨레신문사의 논설위원인 김종철 선배였다.
봄 가을 일 년에 두 번 치르어지는 산삼 심기는 지난 번 정선행에 이어 이번에는 정읍 내
장산 언저리로 잡혔다. 이번 산삼 심기에는 서울을 들락거리며 10여 년쯤 전 우리 땅에 산
삼을 심자고 처음 제창한 울릉도 사람 고 이덕영이 발해의 해양활동 탐사라는 기치를 내걸
고 블라디보스톡에서 뗏목을 타고 부산으로 흘러 내려오다 태풍으로 일본 오끼 섬 근처에서
조난당한 데 대한 위령제도 곁들여졌다. 고인이 서울에 오면 동식서숙하던 패들이 바로 박
선배를 포함한 산꾼들이었던 것이다. 나야 산꾼은 아니었지만 10여 년 전 잡지사 시절부터
박 선배와 가까이 지내던 사이였고 고인 또한 그렇게 흐르던 인연 속에서 마침내는 한겨울
남의 나라 앞 바다에서 세상을 뜨고 만 것이다. 더욱이 고인이 뗏목의 난간에 한쪽 다리를
묶어 배가 전복될 때 정강이뼈 언저리가 절단되어 두 동강 났다는 뒷이야기는 그 비장함이
사람의 마음을 후벼 파는 바 있었다. 위령제와 산신제가 함께 올려졌고 지난해에만 해도 같
은 산행에 있던 사람이 이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낼 수 없게 된 분위기 때문에 이번 산삼
심기 산행은 전에 없이 무거운 기운을 감출 수 없었다. 아니 무겁다기보다 지인의 비장한
죽음이 가져온 숙연함으로 인해 타성적으로 살며 켜켜이 쌓인 마땅히 벗겨져 내려야 할 때
가 벗겨진 듯한 씻긴 감정도 어쩌면 없지 않았다 해야 할 것이다.
'부용산이라는 노랠 알고 있는지 모르겠네. 전라도 사람들은 웬만하면 이 노래를 거의 다
알지. 오랫동안 빨치산 노래로 알려져 왔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고... 내가 이 노래를 알게 된
것은 쫓겨다닐 때부터였는데 관심 있는 사람들은 얼마 전에 한국일보 김정우 선생 칼럼에
자세히 소개되기도 했으니 서울가면 한번 찾아보도록.'
버스의 앞쪽에 앉아 있던 김 선배였다.
낮고 분명한 목소리도 그렇지만 또박또박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말하는 것을 그대로
글로 옮겨도 문장이 되는 김 선배 특유의 방식은 언제나 듣는 이들을 새삼스럽게 긴장시키
곤 했느네 이번에도 그러했다. 이음씨나 어찌씨조차 그는 매우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발음하
곤 했는데 사실 그런 사람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다. 쫓겨다닐 때부터라는 말은 그의 언
론민주화 활동과 그로 인한 수난을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있는 우리에게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말이었다.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들의 순정성이 그들의 이력과 그대로 일피하는 것은
아니지만 번역에 문학평론도 한 언론인인 그가 정확하게 말한다는 것은 정확하게 세상을 보
고 읽겠다는 의지와 무관하지 않게 느껴지곤 했다.
부용산 오리길에 잔디만 푸르러
솔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채
병든 장미는 시들어지고
부용산 봉우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일요일 밤시간이라 귀경하는 밤 버스의 속력은 그다지 빠른 편은 아니었다. 김 선배가 버
스의 앞쪽을 향해 앉아 있었기 때문에 노래 도중에 간간히 마이크의 잡음이 더러 섞였지만
노래는 처연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애상이 가슴을 찌르고 있었지만 틈이 없는 격조를 유지하
고 있었다. 노랫말에서는 빨치산 노래라는 노래의 위명과는 달리 뚜렷한 사상성을 발견할
수 없었다. 누군가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가버렸는데 그의 존재가 안타깝게도 결실을 맺지는
못한 모양이라는 것 그리고 부용산 오리길의 숲과 거기 푸르디푸른 하늘은 노랫말이 겨냥하
고 있는 대상의 처연한 비극미가 강조되어 있는 듯했지만 흔들리는 버스에서 들은 김 선배
의 딱 한 차례 노랫소리로는 그러나 곡의 이해에 만족할 만큼 가까이 갔다고 할 수는 없었
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그 노래가 왠지 처음 들어 보는 노래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는
점이었다.
노래를 마친 김 선배는 이번 모임에 처음 참여한 뒷자리의 젊은이들에 의해 그가 전날 정
읍으로 내려올 때 불렀던 노래 꽃밭에서나 내가 만일 따위의 지정곡 앵콜로 들어갔다. 뒷자
리의 젊은이들은 빨치산 노래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했다. 김 선배는 마지못해 앵
콜 곡 중 내가 만일을 한 번 더 부르기 시작했다.
'귀에 익어 왠지.'
옆자리에 있던 세경에게 내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지난 번 은민가 그 아가씨가 불렀었잖어. 거 왜 경수 후배 한의과 다닌다는 노처녀 말야.
이번엔 안 왔네 그 아가씨.'
농심마니 산행에 거의 빠지지 않는 출판업을 하는 세경이 말했다. 세경은 은미가 이번 산
행에 빠졌음을 이미 확실하게 짚고 있었던 터였다. 그 순간 나는 얼른 고개를 뒤로 돌려 경
수를 찾았다. 내가 앉아 있던 자리 앞쪽으로는 경수가 안 보였기 때문이었다. 경수는 내가
앉은 바로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내가 그를 찾는 눈치이자 그 또한 내 쪽으로 몸을 당겼다.
'바로 저 노래야.'
경수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종이컵속의 소주를 비운 뒤 내가 컵
을 건넸다.
'저번에 은미가 불렀던 노래가 저 노래지.'
소주를 받으면서 내가 물었다.
'응 부용산.'
그가 짧게 답했다. 그는 지나 번 산행 때 은미의 노래가 끝난 뒤 내 질문에 답하지 못했
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근데 놀랍다. 김 선배가 어디서 노랠 배웠는지 거의 원형에 가까운 것 같애. 은미 부용산
이랑은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구말야. 언젠가 한번 송영 선생 노래를 들었었는데 김 선배
부용산이 송 선생 부용산과 거의 흡사한 것 같군. 사실 나도 원형이 어떤 건지 잘 모르지만
말야.'
원형에 가깝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경수의 옆쪽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나는 부용산이라는 빨치산 노래에 내가 전에 없이 흥미를 품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관심이 노래에 대한 관심이었는지 은미에 대한 관심이었는지 잘 알
수 없었다.
'송영 선생이라면 소설 쓰는.'
경수에게 술을 따르며 내가 물었다.
'응.'
경수가 짧게 대꾸했다. 만나 인사를 드린 적은 없지만 송선생의 음악에 대한 조예는 알
말한 사람이라면 아는 일이었다. 그라면 충분히 부용산을 접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생각이
어렵잖이 들었다.
'송영 선생 말고도 김지하 선생이나 황석영 선생도 즐겨 불렀다는 소리가 있어. 당연한 일
이지만 말야. 근데 정곡이 없어 아직. 모두들 악보 없이 입에서 입으로 배웠기 때문일거야.'
경수가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그러구 보니 부용산을 부를 줄 알 리라고 떠오르는 사람들
이 한둘이 아니었다.
'아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로구먼.'
'응 남쪽 사람들은 엔간하면 이 노랠 다 알어. 운동권 애들도 덩달아 따라 부르고...'
경수의 설명이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 노래를 알고 있다는 데에 왠지 실망스러운 기
분이 안 드는 것도 아니었다.
김 선배가 부른 안치환의 노래가 거의 합창처럼 어우러져 끝나자 함께 노래를 불렀다는
상기된 감정이 김 선배에게 다시 노래를 청하게 했다.
'앵콜 김 선생님 어제 그 노래 있잖아요 정훈희 노래.'
뒷좌석의 젊은이들이 소리지렀다. 어제 그 노래 중의 정훈희 노래라면 꽃밭에서였다.
'무슨 앵콜은 앵콜 다른 사람 노랠 듣지 뭘. 경업이 어디 한번 네팔가나 불러 보지.'
'네팔가라면 언젠가 히말라야 트레킹 때 어디로 갈거나로 시작되는 우리 노래를 보지산
봉알봉에 좃씨를...' 어쩌구 하는 네팔가를 발정난 수캐처럼 그러면서도 구성지게 불러제꼈
다.
'은미는 그 노래를 어떻게 알게 됐지 어린 녀석이.'
내가 물었다. 나는 네팔가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다.
'걔 아버지가 빨치산이었어.'
경수가 대답했다.
빨치산이라는 말은 그 말이 쓸데없이 그리 자주 쓰이지는 않는다 해도 꼭 써야 한다면 스
스럼없는 일상어가 되어 버렸다는 감도 그리 틀린 감이 아닐진대 그럼에도 지루하고 맥 빠
지는 일상의 공기에 갑자기 탄력을 실을 정도의 환기력은 여전히 지나고 있었다.
'아하.'
나도 모르게 낮은 신음소리 같은 것이 베어 나왔다.
버스가 좌우로 흔들렸다. 갑자기 버스가 긴장을 하는 것 같았다. 호남고속도로와 경부고속
도로가 만나는 회덕 인터체인지를 지나는 모양이었다. 그 구간은 공사 때문에 급한 커브가
유난히 많은 구간이었다.
'그치만 어떻게 된 거야 나이가 안 맞잖어.'
한참 있다가 내가 다그치듯이 물었다. 은미가 빨치산의 딸이라면 그토록 어릴 수가 있느
냐는 이야기였다.
'아버지가 전향을 하고 나왔거던. 그러니까 은미는 출소한 뒤에 낳은 자식이지. 그게 첫
결혼이기도 했지만 말야.'
경수가 담배를 피워 물었다.
나는 지난 해 가을 산행 때 무리에서 좀 떨어진 어둠 속에 그녀가 홀로 서있던 기억을 떠
올렸다.
'부용산은 빨치산 노래라기보다는 더 정확히는 빨치산들도 부르던 노래라 해야 할 거야.'
경수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부용이라면 꽃이름 아닌가.'
세경이 경수에게 물었다.
'음 연꽃이야 연꽃. 그치만 전라도 벌교에 가면 부용산이란 산이 실제 있다나 봐. 그 지방
과 관련돤 노래이기도 하구 말야. 목포설 벌교설이 시방 팽팽하지만 말야.'
'도무지 무슨 얘길 하는지 모르겠네.'
세경이 말했다.
'경수 형 형도 그 노래 부를 줄 알어.'
가만히 경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좌석의 한 친구가 물었다. 장승을 깎는 명덕이었다.
'알지.'
'근데 넌 왜 그 동안 한 번도 안 불렀어.'
내가 물었다.
'아무데서나 막 불러제낄 노래가 아니었어. 금지곡이었으니까. 나야 여기저기 따라다니다
가 배웠지.'
경수가 말했다. 오리발로도 통하는 경수는 크고 작은 시민운동에 꽤 깊숙이 관여하고 있
었다.
'그렇다 해도 그렇지. 빨치산들이 불렀다고 해서 입에서 절로 나오는 노랠 못 부르게 해
차라리 숨을 못 쉬게 하는 게 낫지.'
'그러니까 빨치산들이 앉았던 소나무 그늘에 앉거나 빨치산들이 쳐다보던 구름도 보면 안
된다니깐. 그 사람들이 바라보던 노을도 물론이고 그게 다 죄가 된다니까...'
내가 빈정거렸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손치고 어디 한번 불러 봐라. 되게 궁금하다.'
'아직도 그런 시절 아닌가 모르겠네. 그나저나 김 선배만큼 난 못 부른다. 나중에 부르자
구.'
경수가 뒤로 뺐다.
이 땅에 전라도는 그토록 길고도 어처구니없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과하는 동안에 그런
은밀한 노래 한 가락을 가슴속 깊이 내장하고 그 노래로 서로를 부축하고 위로하고 더러는
깊은 울화를 삭이고 있었구나. 뜬금없이 그런 다소 신파조의 고즈넉한 생각이 들자 나는 들
고 있던 종이잔의 소주를 얼른 목구멍 깊숙이 털어 넣었다. 버스는 중부고속도로를 버리고
경부고속도로로 들어선 듯했다.
서울에 도착한 이래 나는 곧 김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일보 기사의 출처를 다시 확인
했다. 그리고 통신으로 들어가 김성우 에세이를 찾았다. 기사 검색식으로 잠시 헤매다가 어
렵지 않게 나는 정설 부용산이라는 칼럼을 화면에 떠올릴 수 있었다.
김성우 논설위원은 부용산과 관련하여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두 개의 에세이를 썼음을 알
수 있었다. 그 하나는 1998년 2월 13일에 게재된 부용산 오리길에이고 다른 하나는 한 달
뒤인 3월 27일에 쓴 정설 부용산이라는 에세이였다.
김 논설위원이 부용산을 처음 들은 것은 20년 전 박성룡 시인이 불렀다고 했다. 노래 끝
에 박 시인은 이 노래의 애상의 곡조가 가슴을 찔렀다고 쓰고 있었다. 그 후 노래를 잊고
있던 김 논설위원은 우연히 지난 해 목포 출신의 배우 김성옥 씨가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듣게 된다. 뜻밖이고 반가운 마음에 노래의 출처를 물었더니 김성옥 씨 또한 모른다고 답한
다. 자기만 모르는 게 아니라 아는 사람이 없더라는 말과 함께 김성옥 씨는 그런 채로 그러
나 호남 지방 특히 전남 지역에서 언제부터인가 오래 전부터 이 노래가 악보도 없이 구전으
로 널리 불려온다고 덧붙인다. 그러구 보니 김 논설위원이 20년 전 처음 들었던 박 시인도
해남 사라이었음을 떠올린다.
호남인이라야 아는 노래가 따로 있다니. 왜 이 아까운 곡조의 노래가 전국적으로 유행하
지 않았을까. 이런 고운 노래를 왜 어느 가수도 취입하지 않았을까. 도대체 이 노래는 어디
서 나온 것일까...'
김성우 논설위원이 부용산의 내력을 추적하게 된 동기라면 동기였다.
김 논설위원은 목포에 사는 김성옥 씨에게 부탁한다. 김성옥씨는 얼마 후 황급히 상경한
다. 서울에 사는 한 여성이 이 노래의 키를 쥐고 있음을 알아낸 것이다. 경기대에서 일문학
을 강의하고 있는 김효자 교수가 그였다. 김 교수의 증언이 계속된다.
광복 직후 김효자 학생이 다니던 항도여중에 안성현이라는 작곡가가 음악교사로 부임한
다. 당시 지방의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크게 활약하던 조희관 교장이 초빙해 온 것이란다.
안 교사는 월북한 무용가 안막의 조카였다. 안막은 최승희의 남편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김 교수의 같은 반에 김정희라는 학생이 있었는데 이 소녀는 광복 직전 서울의 경성
사범에 합격한 천재소녀였다. 광보으로 인해 고향에 내려와 항도여중에 전학한 것이다. 좋은
집안에 성적은 늘 수석이었고 예쁘고 조숙했단다. 책도 많이 읽었고 자작시가 문예지에 당
선된 적도 있었단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던 이 천재소녀는 1948년 여중 3학년 때
폐결핵으로 죽는다. 온 하교가 울었단다. 이때 시인이었던 박기동이라는 국어선생이 제자의
죽음을 애통해 하는 가사를 쓰고 안 선생이 곡을 붙였단다. 이 슬픈 노래는 배금순이라는
노래 잘하던 학생이 발표했고 전교생이 불렀고 이윽고 교문 밖으로 퍼져 나갔다는 것이다.
작곡자 안성현 교사는 6 25 때 월북했다는데 소문에 의하면 북한에서 국립교향악단 단장을
지내기도 했단다. 부용산이 입에서 입으로 불리면서 차츰 작고가의 정체가 숨어 버린 까닭
도 이 때문이었다고 김 놈설 위원은 쓰고 있었다.
작사가 박기동 선생은 3년 전까지 서울에 거주하다가 호주로 이민을 갔다고 칼럼은 밝히
고 있었다. 그런데 다행히 제자였던 김효자 교수가 안성현 작곡집을 소장하고 있는 모양이
었다. 칼럼은 그 일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건국 초기 사제간의 이런 끈끈한 정이 우리 교육의 사발점이었다. 김 교수는 안성현 작곡
집을 소장하고 있다. 여기 부용산이 수록되어 오랫동안 실종했던 악보가 재생하게 되었다.
악보를 찾았으면 곡도 사연도 아름다운 이 노래가 이제 호남만이 아닌 전국의 노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작곡집에는 명곡들이 많다고 한다. 김순남도 벌써 해금되었으니 안성현의 노래
들이 어서 큰 목소리로 불렸으면 싶다.'
이것이 김성우 논설위원이 밝혀 낸 부용산의 목포설 낼력이었다.
이 칼럼이 나간 지 한 달 뒤인 3월 27일 김 논설위원은 정설 부용산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칼럼을 쓰고 있었다.
그 내용은 50년 동안 이 노래가 악보 없이 초야에 굴러다니면서도 끊임없이 불려졌다는
이야기와 함께 여러 독자들의 제보가 끊임없이 불려졌다는 이야기와 함께 여러 독자들의 제
보가 끊이지 않았다는 거였다. TV 드라마였던 목욕탕집 남자들에서는 양희경이 이 노래를
부르더라는 제보도 그 중에 있었던 모양이다. 이런 가운데 볼멘 소리가 터져나왔으니 부용
산의 벌교설이 그것이었다. 부용산이 목포의 노래로 주장된데 대해 전남 보성군 벌교읍 쪽
에서 쪽에서 이것은 벌교의 노래라고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작사자 박기동이 벌교
사람인데다 부용산은 벌교에 실재하는 산이라는 것 그리고 노래의 친누이 동생이라는 주장
이 그것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벌교 사람들은 한자리에 모이면 이 노래를 고향의 노래처럼
합창한다는 계기가 그것이었다. 이른바 제망매가설이었다.
김 논설위원은 다시 부용산의 본향을 찾아 나선다.
광주에서 발행하는 예향이라는 잡지에 전남 순천의 금둔사 주지 지허 스님의 증언이 있다
고 한 독자가 알려 준다. 지허 스님은 부용산이 작사자가 16세 때 죽은 그의 누이동생을 벌
교의 부용산에 묻고 돌아오면서 가사를 지은 제망매가라고 쓰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김 논설위원은 지허 스님의 찾기 위해 호주 시드니까지 국제전화를 하면서 작사자를 찾아
내 마침내 육성으로 작사자의 증언을 받아 내고 있었다.
그 대목을 김 논설위원은 일렇게 쓰고 있었다.
'... 5년 전 호주로 이민 가서 시드니에 살고 있는 박기둥씨의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올해
81세인 그의 육성 증언의 내용은 이러하다.
박씨는 전남 여수의 돌산이 고향이다. 일본의 간사이 대학엣 영문학을 전공하고 1943년
귀국해 벌교의 남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해방이 된 이듬해 벌교상업중학교로 옮겨 국
어와 영어를 가르쳤다. 이 무렵 아버지가 벌교로 이사왔다. 1947년 박 교사는 새로 설립된
순천사범학교로 전근했다. 이 해에 큰 누이동생인 박영애가 순천도립병원에서 폐결핵으로
죽었다.
누이동생은 심성이 곱고 얼굴도 예뻐 천사 같다고 소문나 있었다. 1941년 18세 때 벌교로
시집을 갔고 죽은 것은 24세 때였다. 30세이던 박 교사는 벌교의 부용산에 누이동생을 장사
지내고 돌아와 순천에서 부용산이란 시를 썼다.
이듬해인 1948년 박 교사는 목표의 항도여중으로 초빙되어 갔다. 여기서 안성현 음악교사
를 처음 만났다. 안 교사는 극단적인 낭만주의자였다. 이때 항도여중 3학년에 김정희라는 학
생이 경성사범에서 전학해 와있었다. 특히 문예 방면에 소질이 뛰어난 천재소녀였다. 조희관
교장 말이 이 학생에게 국어를 가르칠 선생이 없어서 박 교사를 모셔 왔노라고 했다. 이 해
에 이 아까운 소녀가 폐결핵으로 죽었다. 박 교사는 장지까지 따라갔다.
얼마 뒤 서랍 속에 넣어 둔 박 교사의 시작 노트를 안 교사가 몰래 가지고 가서 곡을 하
나 붙여 왔다. 그것이 부용산이었다. 박 교수는 맨 끝 구절인 부용산 봉우리에 하늘만 푸르
러푸르러를 상여 나가는 소리로 만들자고 조언했다.
부용산은 노래를 잘하던 배금순이라는 상급반 학생이 맨 처음 불렀고 금방 전남 일대로
유행해 나갔다. 나중에는 전혀 사상성이 없는 노래이면서 지리산 빨치산들의 애창곡이 되기
까지 했다.
곡이 나오자 학생들이 수근거렸다. 박 선생님이 정희의 무덤에 가서 울었단다하는 소문이
퍼졌다. 박 교사는 그때 아직 총각이어서 여학생들한테 인기 있는 선생이었다. 부용산의 주
인공이 정희라는 설은 이래서 와전된 것일 것이다. 박씨의 카랑카랑한 전화 목소리는 여기
서 끝난다.
작사자 본인의 토로이니 제망매가설을 정설로 굳힐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말의 의문은
남는다. 누이동생이 결혼까지 하고 24세에 죽었다면 피어나지 못한 채 병든 장미는 시들어
지고라는 구절은 어색하지 않은가. 박씨는 시를 미처 다듬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예향이란
잡지에는 향도여중 때 김정희의 단짝친구로 애제자곡설을 내세운 경기대 김효자 교수의 기
고도 실려 있다. 김 교수는 이 글에서 박 교사가 누이를 묻고 읋은 시가 부용산이라고 해명
하는 것을 들은 적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부용산은 우리에게 의당 사랑하는 친구 정희
를 애도하는 노래였다. 부용산이 어디 있는들 무슨 상관이랴. 그것은 차마 일찍이 잃어버리
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운 사람이 묻힌 상징적인 살일 뿐이다라고 썼다. ...부용산의 고향이 어
디인들 무슨 상관이랴. 차마 잃어버리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운 노래 하나를 만 50년 만에 살
릴 수 있다면 족할 뿐이다.'
목포설과 벌교설이 왜 나왔는지 김 논설위원의 칼럼 두 편을 꼼꼼히 읽어 보면 어렵잖이
이해되는 일이었다. 부용산이 차마 일찍이 잃어버리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운 사람이 묻힌 상
징적인 산으로 불려지면 족하지 않겠는가라는 김효자 교수의 말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
김 논설위원 또한 부용산의 고향이 어딘들 무슨 상관이랴 잃어버린 음지의 노래가 다시 양
지에서 불려지는 게 중요하지 않겠는가라는 끝맺음을 하고 있었다.
모니터 화면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두 번쯤 꼼꼼히 칼럼을 살혀본 나는 갑자기 부용산
을 듣고 싶어서 환장할 지경은 아니었지만 다시 정색을 하고 듣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은
감정에 휩싸였다. 그 일은 어렵지 않았다. 경수더러 은미를 불러 내라고 하면 될 일이었다.
처음 우리에게 그 노래를 들려 준 김종철 선배도 함께 불러 내면 더욱 좋은 자리가 될 성싶
었다.
'그러지 뭘. 마침 돈용이 선배가 된장비빔밥집을 열었다는데 아직 가보지 못했거던. 잘됐
네. 거기서 모이면 되겠네.'
경수가 선선히 대꾸했다. 송수화기 너머로 이빨 가는 기계음 같은 것이 들리는 듯했다.
'언제.'
'오늘 저녁 때 모이자. 은미한테는 내가 연락할 테니 딴 패들은 네가 해라.'
경수가 말했다.
경수와 모이기로 전화 통화를 한 것이 오후 늦은 시각이었는데도 그 날 저녁 돈용 선배가
개업한 된장비빕밥집에 모일만한 사람들은 거의 다 모인 일은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몰랐
다. 좋은 술자리는 빠지지 않는 김종철 선배도 나타났고 박인식 선배나 세경이 명덕이 두엽
이... 등이 그들이었다. 누가 불러 주지 않나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모두 모인 데 대해 서로
손가락질을 하며 웃어 댔음은 물론이다.
'근데 은미 얜 왜 안 나타나는 거야.'
세경이 말했다.
'글쎄다. 아까 분명히 알았다고 했는데 말야.'
은미와 전화 통화를 한 경수가 미닫이 문 입구께를 뒤돌아 보며 대꾸했다.
이런 저런 식당업을 해오던 돈용 선배는 이번에는 박인식 선배의 어머님이 개발한 된장비
빔밥 딱 한 가지 메뉴로 승패를 걸 작정이었다. 식사는 4천5백 원짜리 된장비빔밥 딱 한 가
지 떠먹는 걸쭉한 된장이 아니라 비벼 먹을 된장이기 하기 때문에 뚝배기에 짜글짜글 된장
을 끓여 내오면 거기에 콩가루를 묻힌 배추나물과 파무침 치커리 등속을 넣고 비벼 먹는 방
식이었다. 안주로는 제주도 돼지를 쪄서 도마 채 나오는 돔배보쌈과 문어 석쇠에 구은 너비
아니 부추전 따위들을 마련하고 있었다. 식당 위치가 조계사에서 안국동 로터리 쪽이라 회
사원들이 횡단보도를 건너 식사를 하러 와야 했기 때문에 내심 불안했는데 음식에 기울인
정성 때문인지 제법 괜찮다는 이야기였다. 그러구 보니 이 방 저 방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덕담이 오고갔고 과묵한 돈용 선배는 숯불을 피우느라 바쁜 눈치였다.
동동주를 서로 나누며 이야기는 부용산 이야기에서 자연스레 은미 이야기로 넘어갔다. 경
수는 단순히 과 선배라기에는 은미에 대해 지나치게 소상히 알고 있었다. 나중에야 모두들
느꼈지만 경수와 은미 사이는 단순한 선후배 사이가 아닌 것 같았다. 둘 중의 한 명은 남녀
간에 있을 수 있는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었거나 지금도 그러하거나 둘 중의 하나임이 틀림
없었다. 그러나 아무려면 어떠리 누구도 그런 느낌을 내색하지 않았다.
은미가 행상에서 돌아온 어머니의 피로를 뽕짝을 부르는 것으로 풀어 주었다는 이야기는
저번에 들은 적이 있었으므로 자연히 이야기는 빨치산이었다는 은미 아버지 이야기로 넘어
갔다. 순창이 고향인 은미 아버지는 21세 때인 1949년 연희전문 국문과에 입학한 문학 청년
이었다는 이야기 해방 후의 혼란상을 목도한 그는 이미 좌익계 전국문학 예술총동맹 순창
지부 서기장직을 병행하고 있었다는 이야기 휘문산에 입산해 빨치산 활동을 한 것은 전쟁이
나던 해 그러나 뜨거운 지성파 빨치산이었던 그는 때로 지도부로부터 혁명적 센티멘털리즘
이라는 자아비판을 강요받곤 했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가 토벌대에 의해 잡힌 것은
1952년 3월 인천상륙작전 이후 남부군 세력이 약화되면서 더욱 깊숙이 지리산 골짜기로 들
어갔으나 동상과 열병에 거려 네 명의 환자대원과 함께 지리산 백무골에서 반 주검이 다 된
상태로 체포되자 곧바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이후 광주고등군법회의에서 20년 확정 시베리
아라고 불리던 대전형무소 독방에서 2년을 보낸 은미 아버지가 전향서를 제출한 때는 1956
년 그러나 가출옥된 때는 1964년 그의 나이 서른다섯일 때였다. 당시 스물넷이던 어머니와
의 결혼은 그 이듬해 은미 아버지가 고향 순창고등학교에서 잠시 영어교사를 할 때였다. 빈
농의 딸이었던 어머니는 노총각 영어선생이 있다기에 아무것도 묻지 않고 결혼했다고 한다.
그러나 빠치산 전력이 밝혀지자 학교에서 쫓겨난 그들 부부는 더욱 궁벽한 촌으로 들어가
10년여 채소농사를 지으며 산다. 은미가 태어난 때는 1966년께. 농사는 잘 지었으나 판매에
늘 실패한 그들 가족은 마침내 은미 나이 열세 살 때 서울로 무작정 상경 영등포역에서 내
리자 이리저리 헤매다 도림동 언저리에 사글세방을 얻고 과일상을 하며 지내기 시작한 것이
다. 북이 버리고 남이 저주한 빨치산 게다가 전향의 원죄의식을 늘 품고 있던 은미 아버지
는 마침내 시집 한 권을 이 세상에 남기고 오십이 채 안 되는 나이에 과로와 지병으로 한
많은 분단의 땅을 뜬다. 은미가 어머니에게 흘러간 노래를 불러 주기 시작한 것은 아버지를
잃고 난 뒤의 일이 되는 셈이었다. 은미가 부른 부용산은 그러니까 두말할 것도 없이 아버
지가 부르던 부용산이었던 것이다.
'야 임마 너 너무 소상히 알고 있는거 아냐. 남의 가계를.'
경수의 이야기가 끝나자 내가 물었다.
'뭐 소상히 아는 것도 아니지. 내가 아끼는 후배니까 이 정도야...'
경수가 간단히 일축했다.
'아끼는 후배 그 이상 아냐.'
재차 내가 물었다.
'그분이 시집을 한 권 남겼다는 얘기했지 우연히 은미한테 빌려서 봤는데 이런 구절은 아
직 안 잊혀져.'
경수는 이번에도 내 질문을 질문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어떤 구절인데.'
'당연한 일이지만 통일을 염원하는 시들이 많았어. 그 외엔 리야까 행상의 생활고가 많은
편이었고. 열심히 리야깔 끌면 돼지보담은 조금 낫게 살 수 있다. 그런 자조적인 시도 기억
나는구먼. 오래 전에 봤지만 시들은 아주 밝고 투명했던 것 같애 동시처럼.'
'어떤 구절이 안 잊혀지냐니까.'
'네가 살아야 나도 산다는 그런 전투는 없을까 그런 시였어. 제목이 보루대였던가 뭐 그랬
는데 말야.'
'네가 살아야 나도 산다는 그런 전투는 없을까.'
누군가 조용히 다시 읊조렸다.
좌중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잠시 기침 소리 하나 없는 정적이 좌석을 훑고 지나갔다. 모두
들 자신들이 잠기게 된 침묵의 뿌리를 잘 느끼고 있는 그런 시간이 흘러가자 불쑥 경수가
김 선배에게 요청했다.
'김 선배님 부용산 한번 더 부르시지요.'
'그럴까.'
시원시원한 성격의 김 선배는 주저 없이 부용산을 부르기 시작했다. 부용산 오리길에 잔
디만 푸르러 푸르러...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아주 늦게 나타난 은미 때문에 은미 부용산과 김 선배 부용산과 우
리들 부용산이 막 뒤섞여 불러진 것은 그 날 아주 늦은 시각에나 가능했다.
'책,영화,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주영-객주(5)-2 (0) | 2023.06.13 |
---|---|
김주영-객주(5)-1 (0) | 2023.06.13 |
김유식-맥주전쟁 (0) | 2023.06.12 |
진짜 유럽이야기 [이원복] 02 (0) | 2023.06.12 |
진짜 유럽이야기 [이원복] 01 (0) | 2023.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