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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호 우리소리를 우습게 보지 말라

by Casey,Riley 2023.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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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소리를 우습게 보지 말라                                     
 김준호


  우리 문화에 몰아닥친 김준호,손심심 신드롬을 해부한다.
  우리 문화의 변법자강을 꿈꾸다.
  문화란 무엇일까.더군다나 '우리 문화'란 무엇일까. 나는 요즈음 식혜에 빠져 있다. 식혜는 가
공할 만한 콜라를 뛰어넘어면서 에측  불허의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식혜는 명절날에나 잔칫날에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식혜가 '깡통'을 차용했을 때, 개벽이 일어
났다. 식혜라는 '전략'은 깡통이라는 '전술'을  구사하면서 고정 관념의 '빈틈 찌르기'에 성공했
다. 그래서 나는 식혜의 성공을  "청 말의 변법자강책이 우리 식문화에 와서야 성공하였다"고 농
을 던지곤 한다. 석굴암을 자랑하는 것까지는 좋으나 전 세계에 석굴암을 세울 수는 없는 일. 그
러나 김치를 전  세계 집집마다 냉장고에 들여 놓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우리의 '고리타분'한 
민족 문화관을 완전히 바꿀 때, 어떠한 결과가 초래할 것인가를 식혜는 충실히 보여 준 셈이다.
  우리 문화에서 또 하나의 변법자강이 이루어지고 있다. 어느날 갑자기 텔레비젼에 등장한 김준
호와 손심심이라는 젊은부부가 '우리 소리를  우습게 보지 말라'고 뛰어들어 장안의 인구에 회자
되고 있다.
  무엇이 그토록 그들 부부를 유명하게  만들었을까. 정말 그이들은 '혜성처럼 갑자기'등장한 것
일까. 그이들의 이력을 조금이라도 아는 이라면 결코 '갑자기'라는 단어를 쓸 수 없을리라.
  나는 김준호와 손심심이 거둔 우리  소리의 충격이 우리들 고정관념의 빈틈을 찌르는 변법자강
이라고 단언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이들에게 경악을 금치 못했고,언론은 찬사를 보냈으며,그이들
을 모셔가기 위한 경쟁에 불을 붙였다.
  왜들 그럴까. 한갓  지나가는 '거품'일까. 여기서는 하나의 진실이  있다. 또한 여기에는 그럴 
만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나는 이 글에서 그이들이 미덕을 몇 가지만 제시해 본다.
  우리 것으로 한판 승부를 걸다
  우리 문화 외길 인생을 걷고 있는 나로서는 김준호,손심심 같은 30대의 맹장들이 있다는 데 대
하여 '동업자'로서의 경의를 표하며, 슬금슬금 배어나는 '승리의 미소'를 참을 수 업다. 왜 웃느
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이렇다.
  사실 우리가 얼마나 우리 것을 우습게 알았던가. 지금도 대학을 외국 학문 수입 오퍼상으로 착
각하는 이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고, 우리 소리는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날 '끼워 주기'로 잠시 
보여 주다가 사라지거나, 남들이 다 잠들어 있는 심야 시간에나 방송한다. 된장조차 일본제를 수
입해다가 먹는 판에 우리 문화를  강조함은 '국수주의'따위로 매도당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그이
들은 말한다.
  우리 소리를 우습게 보지 말라!
  이제, 김준호,손심심이 부르짖은 '우리 소리를  우습게 보지 말라'는 우리 시대의 슬로건이 되
어야 한다. 무슨 근거로 우리 소리를 우습게 보는가. 우리 것을 우습게 보는 시대를 통탄하노라. 
그러면서도 그이들 같은 부부가 있다는 데서 '우리 소리의 희망'을 읽는다.
  우리 문호의 원형질을 꿰뚫다
  온돌,솟대,백의,서낭당,소리 따위야말로 우리 문화의 알파요 오메가가 아닐까. 가장 흔하고 평
가 절하된 것들  속에도 진리와 진실,권품,품격 따위는 숨어 있는  법. 솟대와 장승은 마을 마다 
있으니 수를 헤아리기 어렵고,현대화된 아파트에도 온돌문화는 살아 있으니문화적 지속성에서 결
줄 만한 것이 없다. 풍물굿은 세게 무대에서도 손색이 없으니 민족 문화적 특수성과 세게 문화적 
보편성을 균형감 있게 보여 준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거창한' 문화에만 강조점을  두어 온 것은 아닐까. '한민족은 소리와 춤을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그렇게 된 연유를 물으면 시원스런 답이 나오질 않는다. 외국인이 우
리들의 개고기 풍습을 비난할 때,당당한 답변 대신에 '보신탕'을 '영양탕' 또는 '사철탕'으로 개
명시키면서 뒷골목으로 내쫓는 대접 방식. 우리 문화에 대한 '전환 시대의 논리', 21세기는 우리 
문화의 고정 관념에 대한 방향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 문화에 대한 나의 명제. 쓰여진 문화
와 쓰여지지 아니한 문화의 간격을 모르고서야 어찌 제대로 된 문화가 보이겠는가.
  구술 문화와 문자 문화,구비 문학과 기록 문학, 구전 역사와 문헌 역사... 우선권을 어디에 두
어 왔는가. 문자,기록,문헌이 늘 구술,구비,구전보다 문화적 헤게모니를 지녔다. 고려 청자의 위
대성을 누누이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금줄  문화와 숫자 3의 비밀을 좀더 설득력 있게 설명
하면 안될까. '쓰여지지  아니한 문화'는 '쓰여진 문화'에서 수수께끼를  풀 것이며. '쓰여진 문
화'는 '쓰여지지 아니한 문화'에서 수수께끼를 풀어야 마땅할 일이다.
  김준호는 소리하고,손심심은 춤춘다. 김준호는  숟가락이나 꽹과리 같은 간단한 소품을 가지고
서 몇 시간이나  강의를 한다. 그 힘은 바로 '쓰여지지  아니한 문화'에서 비롯되었다. 그이들의 
소리와 품, 강의, 이 모든 것이 우리 문화의 원형질에 가깝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
이리라. 그 동안 잊어버렸던 우리들의  원형질을 그이들에게서 발견하고 사람들은 그네들을 일약 
스타로 만들어 버린 것이리라.
  온달과 평강공주의 사랑법을 배우자
  김준호라는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꾸만 손심심이라는 여자를 묶어서 한 묶음으로 
글을 쓸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시라. 결코 오늘의 김준호가 손심심이라는 그이 때문에 존재한다는 
식의 구분법이 아니다. 흙에 파묻힌 보석처럼 김준호가 지니고 있는 놀라운 저력을 다듬어 낸 손
심심의 안목에 경의를 표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김준호의 저력은 또 다른 알파와 오메가를 얻어
서 이제 바야흐로 우리 소리판을 평정하고 온달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것의 한판 승부로 나설 판
이다. 부창부수라고 했던가. 요즈음 나는  민속학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특히 여학생들에게 이
렇게 말하곤 한다.
  손심심에게 진정한 사랑법을 배울지어다!
  나는 그들 부부가  만나는 과정을 오늘을 살아가는 다양한 기시가  담긴 스크랩철을 읽어 보았
다. 기사마다 논조의 차이가 있으나 결론을 굳이 말하라면, 온달과 평강공주의 사랑법이 아닐까.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비쳤다.
  '잡놈'(김준호 자신의 표현이다)하나가 부산 지역의 극단 예사당에 나타난다. 1988년의 일. 운
명처럼 사건이 시작된다. 오갈데 없어서 극단 사무실에서 청소도 하고,팸플릿 나눠 주는 일도 거
들면서 다락방에 빌붙어 살고 있던  김준호, 직업이라고 굳이 표현한다면 소리를 가르쳐 주는 일
이 유일한 일거리였다. 김씨를 처음  본 손심심의 첫인상기는 '영락없는 거지 행색'에 땟국이 자
르르 흐르는 넝마 같은 승복을 걸친 괴인이였다.
  그러나 김준호의 소리를 들어 본 그녀는 운명을 바꾼다. 아니,운명의 여신은 손심심과 김준호, 
두 사람의 운명을 바꾸었으며,그네들의 운명은  백척간두에서 서성거리는 우리 소리의 운명을 바
꾸어 버릴 기세다. 그네들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하기만 하다. 그래서 늘 스타
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관심투성이인 것 같다.
  지방에서 중앙을 공략하다
  서울은 만원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늘 차고 넘친다. 수많은 스타가 있고,스타 예비생이 있다. 
어느날 문득 '김준호와 손심심'이라는 '무명'의  젊은이들이 서울에 스타로 상륙하였다. 서울 상
륙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만큼이나 의미 심장하다. 서울 문화가에서의 승리는 곧바로 전국적 승리
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서글픈 현상이다. 지나치게 서울로 편향된 중앙 집중화가 만들어 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나는 김준호네가 거둔 '승리'를 보면서,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네들은 애시당초 부산,
경남 일대에서는 이미 유명 인사였던 탓이다. 그곳에서 입지전적인 대중성을 얻은 그네들을 서울
의 방송가에서 때늦게 불러들인 결과가  오늘의 김준호,손심심 신드롬을 일으킨 것이다. 그런 면
에서는 서울의 힘이 전국적인 힘을  발휘하는 데 요긴한 통과 의례이기는 하나 씁쓸하기도 하다. 
아무렴 어떤가. 그네들은 상륙 작전에 성공했다.
  나는 서울 본토박이 출신의 민속학자다. 그런 면에서 참으로 객관적을 사태를 읽어 본다. 그네
들이 한마디로 '서울'을 '물먹였다'고 내가  주장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그네들에게 제발 부탁
한다.
  진실로 서울 중심의 문화주의를 깨는 하나의 본보기가 되어 달라!
  그네들이 지방에서 서울로 바람을 몰로 온  데 대하여 '지방 자치 시대'다운 발상과 중앙 집중
적 문화관을 깰 수 있는 귀중한 모범을 보여 주었음을 격찬할 수밖에!
  낮은 것으로 높은 것을 공략하다
  김준호는 살아온 삶 자체가 민중의 삶이다. 어렸을 적,들일에서 들려 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
랐고, 승복 입은 거지로 이땅을 누비면서 삶의 밑바닥을 온 몸으로 배웠다. 어느 대학의 어느 국
악과를 나와야 자격이 있다는 식의 무슨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의 강의는 통속적이다.  통석성은 늘 고명하신 '문화주의자'드의  공격을 받게 마련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진보적인 문화운동을 한다는  이들도 비슷하다. 김준호 자신도 1980년대에는 부산
에서 어느 누구로부터도 진정한 대접을  받지 못하였다. 문화란 무엇일까. 통속성이란 정말 나쁜 
것일까.
  나는 그들의 인기를  구가하는 통속성은 서양식의 대중성과는 많이  다른 '우리식의 대중 문화 
전술'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동래 학춤 전수자로서의 전문  에인적 기질에서는 장인의 대중성을 
느낀다. 니곳 저곳  마당이 마련된 것이면 어디서나 강의를 하고,  남녀 노소를 막록하고 폭소의 
도가니로 몰아놓는 모습에서 유랑 예인 집단의 떠돌이와 같은 대중성을 느낀다. 이야기를 통하여 
대중을 사로잡던 이야기꾼의 전통도  이어졌고, 만담가의 전통도 이어졌고,들노래를 부르는 민중
의 일과 놀이의 전통도 이어졌고... 그이는 이들을 새로운 통속성으로 재창조하여 변법자강 시킨 
것이다.
  그 동안 이른바 문화인들이 그들 주목하지 못하였던 까닭이 그러하고, 비록 그네들이 '스타'가 
되었지만 아지고 그 진가를 모르는  이들이 일부 있는 까닭이 그러하고,도대체 우리 문화의 힘이 
무엇인지를 실감하거나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이른바 문화 평론가들의 수입 오퍼상식 평론이 그
러하다. 김준호,손심심은 바야흐로 대중들을 우리의 문화의 주인공으로 되돌려 놓는 힘겨운 작업
을 하고 있다.
  우리는 그 동안 우리 문화의 스타를 기다렸다
  '스타'하면 그저 대중 문화에 젖은 노랑머리,빨강머리의 스타만을 의미했다. 때로는 건강법을,
혹은 자녀 교육법을 가지고 스타가  되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하고많은 문화 중에서 우리문화
가 가지고 스타가 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방송에서 보면 우리 문화란'끼워 팔기'로 마
지못해 공공 방송의 '체면 유지용'으로 내보낼 뿐이다.
  하고많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중에서 우리  문화의 양이 오히려 줄어들었고, 대중 오락물이나 
일반 교양물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점에서  김준호,손심심은 이같은 방송계의 고정관념을 
깨버렸다.
  나는 이 진정한 스타의 출현을  기다렸다. 스타 의식에 빠져 소영웅주의로 잘못되어 나가는 일
이 없지는 않지만,그이들이 그럴 리도 없거니와 아주 적확한 시점에서 그네들이 '떳다'고 생각한
다. 우리 문화로 '뜬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김준호네는 이제 부산만이 아니라 전국적인 '공인'이 되었다. 지난날을 생각해 보라, 김준호의 
일대기를 보라. 그가 우리것을 박대하는 잘못된 풍토 속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젊은 시절에 
우리 문화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대개 탈춤,판소리,풍물 따위에 경도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밥 빌어먹는 일'로 간주되었다.  어떻게 우리 것을 사랑하는 일이 '미친 짓'으로 간주될 
정도에 이르렀을까. 그의 오늘이 있기까지, 그를 손가락질하던 무수한 이들이 있었다면 무언가를 
다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문화를 체계적으로 공부하자면 민속학을 전공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인데 사정은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는 민속학을 가지고 박사 학위까지  두루 할 수 있는 대학이 거의 없다. 국문
학과에서도 민속학에서 '고전 문학'의 범주는  더러 학위를 주기는 하나 어디까지나 '찬밥 신세'
다. 부산대 국문과를  나온 김준호가 한때 민속학을 전공하고  싶었으나 좌절하는 과정도 이같은 
현실에서 비롯된다. 지금도 우리 것을  전공하겠다는 학생들이 나의 민족 문화 유산 연구실로 다
수 찾아온다. 학문적으로는 지도를 해주어도  막상 그들이 민속학을 전공할 수 있는 길은 어렵기
만 하다.
  21세기는 대학조차도  경쟁력의 시대다. 명색이 '문화  유산의해'이지만,서울같이 인구 천만이 
사는 것에도 변변한 민속학과 조차 없다.
  그러면서 무슨 우리  문화 중흥을 꿈꾸는가. 김준호 같은 대중적인  우리 문화 스타를 키우고, 
그 스타를 우리 문화의 선봉장으로서, 우리 문화의 듬직한 보루로 만들어 나가는 일은 이제 우리
들의 손에 달렸다.
  이 책을 최소한 백만 명은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준호,손심심이 책을 낸단다. 내 소원은 이들의 책이 백만권쯤 팔렸으면 한다.
  첫째 이유, 우리 문화 이야기도 팔릴  수 있다는 자부심을 심어 주어 우리들의 줏대를 살려 줄 
수 있는 탓이다. 우리 것을 우급게 보지  말라. 도대체 누구의 앨범은 내기만 하면 백만 장이 팔
린다는데, 우리 문화가 그렇게 팔려 나가면 안된다는 이유라도 있단 말인가. 방송이 되었건,음반
이 되었건,책이 되었건,  아직도 우리 것이 널리 알려져야 하는  '게몽주의 단계'에 우리는 살고 
있다.
  둘째 이유, 우리 문화라면 무저건 모조리 사주어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변법자강하고 법고
창신한 것이라야만 한다. 21세기의 주역이  될 아이들에게 우리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식의 
주입식은 통하지 않는다. 스스로 재미있고, 의의 있고,유익하고,즐거운 문화여야 한다. 김준호와 
손심심이 그 선봉장이 아닐까.
  셋째 이유, 나는 그네들이 돈을  많이 벌였으면 한다. 그네들에게 꿈이 있는 탓이다. 그네들은 
우리 문화를 살릴 수 있는'메카'를 건설하는 이상을 꿈꾸고 있으며,그런 이야기를 만나는 언론마
다 공개했다. 이들 젊은 스타들의 꿈이 단지 이상이 아닌 현실이 되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 사
실은 기업들도 관심을 기울여 주어야 한다. 기업과 문화를 연결해 주는 '메세나 운동'이 이들 젊
은 우리 문화 지킴이들에게도 곧바로 연결될 것을 기대해 마지않는다.
  명색이 민속학자인지라 발문을 막상 쓰고 있지만, 천만 시청자가 늘 사랑하는 그네들에 대하여 
무엇을 더 쓰랴. 나는 그의 이번 출간 작업을 적극 지지할뿐 더러 주위에 널리 알릴 팬의 하나이
니,사족이나 하나 더 보태겠다.
  길닦음
  팔도가 내집이요,나는 잡놈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하게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
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
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뿐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본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
기를 원한다.(백범 김구)
  천상 내 팔자는 여기저기를 떠도는  지독한 역마살에 전염된 중이 될 팔자였다. 바랭이 하나에 
무자 화두나 어울릴 놈이 사치스럽게 백범 선생의 문화화두 하나를 무겁게 짊어지고 지금까지 수
많은 방황과 고통으로 참 많이도  싸돌아다녔다. 그러나 무나 문이나 쓸쓸하기는 마찬가지다. 결
국 남은 것은 그늘 짙은 허무와 독설뿐이었다.
  소리가 있음직한 전국의  시골을 떠돌며 장단도 익히고,  춤도 익히고,음식도 익히고,막걸리도 
익혔다. 무속을 공부한답시고 지리산 자락을 떠돌다가 한맺힌 혼령들의 넋두리에 취해 진한 삶의 
무게도 익혔다.
  그렇게 한 스무 해를 헤매다가 언제부터인가  나는 주변인이 아닌 그 분들의 치열한 삶의 일부
가 되어 있었다. 소리에 대한 나의 미친 짓거리는 저녀 예상하지 못한 하나의 사건으로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십몇 년 전, 차를 몇 차례씩 갈아타야 하는 거제도 깊은 골짝에서 있었던 사건이였다.
  두 시간 동안이나 완행 버스를 기다리기가 무료해서 들른 허름한 대표집에는 초로의 주인 아낙
이 있었다. 밖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막걸리 대포 한 잔을 시킨 젊은이가 낯익었던지 아낙은 
내게 어느 동네의 누구 친척인지를 자꾸 물었다.
   이상하게 대꾸했다가는 금방 들통이 날 것  같아 소리를 찾아서 왓다고 하니 대표 한 잔을 서
비스로 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낙은 자기 아버지가 옛날에 그렇게 소리를 잘하셨다면서 자기 
아버지가 불렀던 모심기 노래를 구성진 목소리로 불렀다.
  한동안 그 소리에 넋을 잃고 있는데 버스 시간이 되고 말았다. 사흘 후 돌아오는 길에 다시 들
르겠다고 약속하고는 하루에 들락날락 두 번밖에 없는 완행 버스를 겨우 탔다.
  며칠 후 바쁜 일정을 끝내고 다시 가보았다. 그러나 대포집앞에는 형형색색의 만장기를 펄럭이
고 아낙의 아들임직한 맏상주만 꺼이꺼이 울음을 놓고 있었다.
  나도 죽어 남자 몸이 되어
처자권속만 섬길라네...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른다. 아낙의 죽음은 한 문화의 죽음이였다. 하루만 빨리 서둘러 갔
더라면 좋은 가사하도  베껴 적었을 터이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연약한 지반에 
있는 우리 '문화의 성'에서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사이에 또 한 무더기의 돌덩어리가 천길 절
벽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우리의 문화는 지금  제대로 정리해 놓고 보존하지 않으면 소리  소문 없이 무너진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아먹었다. 그리고는 한 길로만  앞을 보고 열심히 뛰어왔다. 구조적인 시각으로 이론
만 가지고는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직접 일터에 뛰어들어 몸으로 직접 체험하고 같이 부르고 같이 
연주하고 같이 춘 춤이기에 보다 살아 있는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음악 이야기를  글로 옮긴다는 것이나의 무딘 감각으로는  한계가 있어 부족함이 많다. 
논리성의 부족과 증거 자료의 부족은  앞으로 열심히 연구하여 보완할 것을 약속드리며, 독자 여
러분의 양해를 구하고 싶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말뚝이같이 생긴 놈에게 기꺼이 소리를 해주시 가르쳐 주시고 격려해 주신 
여러 어른들게 감사드린다. 또 항상 나와  같이 해준 평생 동지 진짜 한국 춤꾼 손심심이 없었다
면 이 책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졸고 때문에 고생하신 고집 있는 출판사 이론과 실천의 식구 여러분과 글을 다듬느
라 애써 주신 남경태 씨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첫째마당
  문화 줏대를 세우자
  음식 문화에서 소리가 나온다
  문화를 보는 시각을 바꿔라
  흔히 우리는 문화라는 용어를 많이  쓴다. 문화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의 여러 측면들을 가
리키는 말인데, 정치나 경제처럼 딱딱하고  부담 주는 게 아니라서 누구나 편안하게 웬만한 건다 
문화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이 편안한 문화라는 말을 제대로 스면  좋은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특히 요즘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이  문화라는 용어를 약간 오용하고 있다. 뭘 보고 문화라고 하
느냐면 서구화된 것,서양 사람들 비슷하게 닮아 가는 것을 보고 문화라고들 한다. 그래서 문화인
의 첫 번째 조건이 개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는 거다. 개고기를 먹었다간 뭐라고 하는가? 야만인
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건 우리 시각이 아니고  서양 사람들의 시각이다. 서양 사람들은 개를 침대에까지 끌
어들여 같이 자고 먹고 하기 때문에 개고기를 먹는다는 데 특히 혐오감을 품는다. 그런데 오히려 
서양 사람들은 육식 문화가 발달해 있기  때문에 우리보다 훨씬 다양한 종류의 짐승 고기를 먹는
다. 원래 요리 기술이 발달한 곳은 옛날엔 먹고 살기 힘들었던 곳이다. 먹고 살기 힘들었기 때문
에 요리 기술이  발달한 거라고 보면 된다. 요리 기술이  좋으니까 아무 재료나 가지고도 요리를 
만들어 먹는다. 지금  세계적으로 서양에서는 프랑스 요리,동양에서는  중국 요리를 으뜸으로 친
다. 그런데 프랑스  요리,동양에서는 중국 요리를 으뜸으로  친다. 그런데 프랑스,중국에서는 뭘 
가지고 요리하는가를 보면 참 재미있다. 프랑스에선 달팽이, 지렁이가 고급 요리고, 중국에선 원
숭이 골,곰 발바닥이 최고다. 개고기쯤  가지고 야만인이라 한다면 그런 요리를 즐기는 사람들은 
아예 원시인이다.
  문화를 우리 시각  위주로 보지 않고 다른 나라 사람들,특히  서양 사람들 시각으로 보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
  개라고 해서 우리가  복날이면 모두 잡아먹는 것은 아니다.  전세계에서 개를 기르는 민족들은 
많지만, 우리 조상들은 개를 여러  가지로 분류해서 길렀다. 사냥개는 전견,집 지키는 개는 짖는
다는 뜻으로 폐견이라고 불렀고, 이런 개들은 잡아 먹지 않았다. 살이 많아 먹기 좋은 개를 식견
이라고 불렀는데, 이게 바로 식용 개였다. 그러니까 개를 먹는다고 해서 자기가 기르는 애완견을 
생각하고 무조건 펄쩍 뛰는 서양 사람도  문제다. 이렇게 문화를 우리 시작 위주로 보지 않고 다
른 나라 사람들, 특히 서양 사람들  시각으로 보는데서 문제가 생긴다. 그런데 이런 오해는 식생
활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이른바 혼수 품목  1호라는게 있다. 바로 침대다. 언제부턴지  모르겠는데 우리는 침대 생활을 
문화 생활의 일부라고 여기고 있다. 사실  우리 집에도 침대 좋아하는 사람이 한 사람 있다.그래
서 우리 부부는느 아예 별거를 하다시피 한다. 나는 생긴 것답게 침대를 별로 안 좋아한다. 요즘 
텔레비젼을 보면 별별 침대 광고가 다  나온다. 코끼리가 올라타는 것도 나오고, 주사 맞는 것도 
나오고, 볼링공을 든 아저씨가 침대 위로 뛰어내리는 것도 나오고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
도 침대를 많이 쓴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침대라는 걸 한 번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침대와 한국 사람이 과연 체질상 맞느냐 
안 맞는냐 하는  게 문제다. 어떨까? 봄하고 가을은  괜찮을지 모르겠는데 한국의 여름,겨울과는 
잘 안 맞는다. 특히 겨울철에 우리 한국 사람들은 다른 데는 다 추워도 등하고 발만 따뜻하면 아
무데나 막 처박혀서도 잘 누워잔다. 그런데 침대가 어디 그런가?
  그래서 우리 문화와 침대 문화를 합치고 절충해서 요즘 생겨난 희한한 풍습이 있다. 전기 장판
을 위에다 까는 거다. 지구상에 치대  위에 전기 장판을 까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부유층
에서 유행하는 돌 침대도 마찬가지다.
  서양 사람들이 사용하는 침대는 스프링의 탄력을 아주 높여 놓아서 대다니 푹신푹신하다. 이러
면 우린 잠을 잘 수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 침대 업자들은 서양 침대보다 스프링의 탄력을 줄여 
다소 딱딱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이것조차 온동 방바닥과 같은 안정감을 주지 못하기 대문
에 이제 돌 침대까지 등장한 거다. 전기  장판과 돌 침대, 이런 것들은 침대 문화와 우리 문화가 
어딘지 모르겠지만 서로 맞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모두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문화에는 선진,후진이 없다
  외래 문화가 다른 문화와 접촉하면 그 문화를 받아들인 측에서는 외래의 이질적인 문화를 자기
네 생활에 맞게  변형시키게 된다. 문화는 원래 생활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생활 습성이 다른 
곳으로 가면 어떻게든 바뀌게 마련이다.  그렇게 보면 요즘 언론에서나 일상 대화에서나 자주 쓰
는 선진 문화,후진 문화라는 말도 잘못이다.
  문화에는 선진적이고 후진적이고가 없다. 발달한 문화,미발달한 문화도 없다. 무엇이 선진적이
다 하는 말은 비교 대상이 있을 대 쓰는 말이다. 비교하고 평가할 기준이 있어야만 그런 말을 쓸 
수 있다. 그런데 문화는 원래 생활에서  나왔다고 했다. 생활을 비교할 수 있는가? 흔히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을 나누지만, 그건 경제적인 면에서 나누는 것일 뿐이다.
  한 민족의 생활 방식이 다른 민족의  생활 방식에 비해 낫다든가 못하다든가 이렇게 말할 권리
는 아무에게도 없다. 따라서 한 민족의 문화가 다른 민족의 문화에 비해 낫다든가 못하다든가 이
렇게 말할 권리도 없다.
  후진 문화,뒤처진 문화, 야만적인 문화  같은 말들은 서양 문화를 선진 문화,발달한 문화로 보
기 때문에 생긴 말들이다.
  그럼 그런 말을 감히 함부로 하는 사람들은 문화에 대한 어떤 비교대상,기준을 가지고 있을까? 
그 사람들은 서양 문화를 가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개고기를 안 먹는 게 먹는 것보다 선
진 문화다, 침대 생활이 온돌 생활보다 선진 문화다, 이렇게 말 하는 사람들은 바로 서양 문화를 
모범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앞에서 먹는 것 이야기를 했으니 이번에는 마시는 것 이야기를 해보자. 서양 문화의 원조인 영
국에서는 티타임이라 해서 오후 4시만 되면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갖는다. 이건 오랜 옛날부터 게
속되어 온 영국 사회의 전통이다. 그래서 영국이 옛날에 지배했던 영 연방 국가들도 아직까지 티
타임의 관습을 지킨다. 심지어 인도에서는 영화가 상영되고 잇는 극장에서도 오후 4시만 되면 영
화 상영이 중지되고 티탐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영국에서 차를 마시는 관습이  일상 생활의 일부로 자리잡은 이유는 뭘까? 그것은 마실 
물이 드물기 때문이다.  먹을 것이 드문 곳에서 요리가 발달하듯이  마실 물이 없는 곳에서 차가 
발달한다. 방방곡곡 어딜 가나 깨끗하고 신선한 물이 가득한 우리나라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사실 세계 전체를 놓고 볼 때 마음  놓고 마실 물이 많은 곳은 드물다. 영국만이 아니라 유럽 대
륙 전체가 그리 물이 많은 곳이 아니다. 그래서 유럽 사람들에게는 차가 사치품이나 기호품이 아
니라 수분을 섭취하기 위한 필수품이었다. 수백 년 전 유럽 사람들이 동양을 찾아 동쪽으로 모험
을 떠난 것도 차와 향료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러는 와중에서 여러 가지 앙로가 개척되었고 칼럼
버스가 신륙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서양의 차 문화가  우리나라에 와서 묘한 영향을 주었다, 서양에서는 차가 필수품인
데 우리나랑서는 뭔가 선진적인 문화를 향유하는 상징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럼 우리나라에는 차 문화가 없었냐 하면 그렇지 않다. 고려는 불교 국가였다. 불교에는 독특
한 차 문화가 발달해 있다. 그래서 고려 시대에는 차 문화가 대단히 발달했고, 조선 시대에는 왕
실에서 ㅎ루 한 차례 다시라는 티타임까지 정해 놓고 차를 마셨다. 하지만 우리나라으 차 문화는 
왕실과 양반 사회에서만 성행했으므로 차는 생활 필수품이 아니였다.
  서양의 차 문화를 받아들여 이것을 선진 문화로 여기게 된 것은 일제 식민지 시대부터다. 이때 
전국에 다방이 생겼고 서양의 커피와 홍차도 수입되었다. 일본은 원래부터 우리나라보다 더 서양 
문화를 선진 문화로 생각하고 추종했다.
  서양에서는 차 문화가 생활의 필요에서 생겨난 평범한 서민 문화인데, 이것을 우리나라에서 잘
못 받아들여 마치 선진 문화인  것처럼 여기게 된 것이다.우리나라는 서양의 고급 용어를 수입해
서 하층 용어로 바꾸는 희한한 버릇이 있다. 미국에서는 미스터라고 하면 학생들이 선생님들에게 
붙이는 
존칭인데, 우리나랑서는 직함이 없는 아래 직원들을 미스터 김,미스터 리라고 막 부른다. 프랑스
에서는 마담이라고 하면 상대방에 대한 존칭어이고 귀부인이라는 뜻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마담이
라는 프랑스어를 수입해서 거의 술집 여주인이라는 뜻으로 쓴다. 그런데 차에 관해서만큼은 서양 
사람들의 일상 문화를 수입해서 고급 문화로 둔갑시켜 버렸다.
  이렇게 서양 문화를  모범이자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선진  문화니 후진 문화니 하는 
잘못된 용어들이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문화에는 선진이고 후진이고가 없다.
  최근에는 서양 사람들의  시각도 많이 바뀌어서 문화를 자기네  중심으로만 보지 않는다. 현대 
서양의 인류학자들은 아프리카  부족 문화를 과거처럼 원시적이다,야만적이다  이렇게만 보지 않
고, 하나으 독자적인 문화로 인정하고 있다. 또 오늘날 미국과 유럽의 젊은이들 중에는 티셔츠에 
도 같은 한자어를 크게 그려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 젊은이들 중 상
당수는 오히려 서양 문화를 향락에 찌든 문화라고 여기고, 동양 문화를 열심히 추구한다. 개중에
는 '오리엔트'하면 마냥 신비스럽고 높은 차원의 것으로만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종교 광신도처
럼 법석을 떠는 일도 좋은 것만은 아니겠지만.
  어쨋거나 이렇게 서양 사람들의 시각도 바뀌어 가는 즈임에 우리 자신이 우리 문화를 모른다거
나 낯설게만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 모든  사람이 다 우리 문화를 깊이 연구할 수는 없겠지만,적
어도 우리 문화가 어떤 것이구나 하는 것만은 누구나 알아야 될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문화가 세게 최고야!"하고 세계 만방에 외치자는 것은 아니다. 우리 문화에 대
한 애정이 너무 지나티면 그런 시각이  나올 수 있는데, 그것은 오히려 우리 문화를 제대로 아는
데 걸림돌이 된다. 그런 편협한 시각은  또다시 선진 문화와 후진 문화를 가르는 잘못된 사고 방
식이 되기 쉽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문화는 그저 생활의 반영일 뿐,최고도 최저도 없다.
  머리 위엔 쇳소리, 목 아래엔 가죽소리가 특효약
  그래도 요즘은 세상이 달라진 탓인지 우리 문화도 예전과는 달리 꽤나 대접을 받고 있다. 문화
에서 중요한 게 바로 예술이고,예술에서 중요한 게 바로 음악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우리 음악이 
우리 몸에 좋다든가,또는"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따위의 얘기를 흔히 한다. 한동안 무시당하던 
우리 음악이 제대로 평가를 받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사실 이 얘기는 굉장히 막연하다. 우리 것
이 왜 좋으냐고 물으면 "그냥 좋은 것 같다"정도의 반응이다.
  어느 설문 조사에서 청소년들에게 우리  음악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게 뭐냐고 물었다. 여러 
가지 대답이 나왔는데,그 중 1위가 뭔고 하니"제비 몰러 나간다"였다. 또 2위는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였고,3위는 엉뚱하게도 "만나면 좋은 친구 MBC문화방송"이었다.
  다행히도 1위는 원래 우리 음악이자만,불행히도 2위와 3위는 아니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는 어느 상업  광고에서 만들어 집어넣은 말이고,"만나면 좋은  친구"는 방송사에서 굿거리 장단 
가락으로 만든 요새 노래다. 이걸 청소년들은  모두 원래 우리 음악인 것처럼 알고 있었다. 몰라
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느  만큼 느낀다는 말이 있다. 뭐든지 알아야만 정말로 좋은지를 
느낄 수 있다. 우리 음악이 왜 좋은지 모르고서 우리 음악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 우리 음악은 왜 좋은가?여기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된 예를 하나 들어보자. 먼저 외국과의 운동 경기에 임하는 한국 선수들의 모습을 떠
올릴 수 있다. 우리 선수들은  힘없이 비실대다가도 북이다 장구,징,꽹과리 등 우리의 전통 악기 
소리를 들으면 갑자기 굉장한 힘을 얻는다. 축구 경기에서는 어느 나라나 다 요란하게 응원을 한
다. 독일이나 브라질,중동,동남아시아에서 축구 경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관중들이 북을 치고 피
를 불고 온통 난리다.
  그러나 축구 경기는 그럴 수도  있겠다 치지만,우리나라에서는 모든 경기가 다 그렇다. 양궁같
이 조용하고 정숙한  분위기를 필요로 하는 경기에서도 우리나라 선수들은  이 소리에 힘을 얻는
다.이 시끄러운 소리를 들으면서 화살을  정중앙 과녁에 연속으로 꽃아 퍼펙트 경기를 펼치곤 하
는 것이다.
  세계 양궁 선수권 같은 경기에서 이런 장면을 보고 외국 선수들과 기자들은 눈이 휘둥그래지기 
일쑤다.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선수들이 등장하면 응원을 보내는 관중들도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
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한국 선수들이 나오면 갑자기 북, 장구, 
징, 꽹과리 들이 일제히 "따따따따" 하며 장내를 들썩인다. 또 그런 소란에도 아랑곳없이 결과는 
백발백중이니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거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나 선수들에게는 소음으로 
들릴리 모르지만 우리나라 한국 사람들에게는 그게 바로 힘인 것이다.
  놀랍게도 이같은 사실은  과학적으로 증명된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북,  장구, 징, 꽹과리 등 
두들기는 악기들을 참으로 좋아하는데, 이  악기들을 크게 나누어 보면 쇠로 만든 악기에 꽹과리
에 징이 있고, 그 다음 가죽으로 만든 악기로 장구,북이 있다.
  그러데 이러한 악기들ㄹ이 사실 우리 인체에 굉장히 영향을 끼치고 있다.
  꽹과리나 징 같은 쇠로 만든 악기를  두들기면 여기에서 나오는 고유 주파수가 사람의 머리 부
분을 건드린다. 평소에  만성 두통이 있는 사람은 꽹과리를 하루에  한두 시간씩(또는 징도 괜찮
다)한 3개월 정도  두들기면 효과를 금방 볼 수있다. 또  남자들이 간밤에 지나치게 과음을 하고 
난 후 아침에 일어나서도 숙취에 시달릴 때 이 방법을 쓰면 좋다. 못 믿겠다면 당장 내일 아침에 
일어나 남편이나 아버지를  대상으로 실험해 봐라. 차에 타고서 문을  꽉 닫아 놓고 이 악기들을 
10분만 두들기면 술이 확 깨버리는 것이다.
  이처럼 쇠로 만든  악기들이 만들어 내는 주파수는 사람의 머리  부분을 울려서 뇌파의 리듬을 
활성화시켜 적당하게 흥분시키고 힘을 북돋게 하는 효과가 있다. 우리나라 양궁 선수들이 요란한 
꽹과리 소리에서 힘을 얻고 오히려 집중력이 향상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다음으로 장구나 북 같은 가죽으로  만든 악기들은 인체에 배와 가 슴을 울린다.따라서 위장이 
나빠서 소화가 안된다든지 간, 폐 등이  안 좋은 사람들은 장구나 북 등을 열심히 두들기면 금방 
효과를 보게 된다. 장구나 북이 없거나 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 음악을 찾아서 들으면 된다. 
그러나 오디오를 통하는 그런 음악보다는 생음악의 효과가 더 큰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렇게 우리 악기는  허약한 인간들에게는 건강을 되찾아 주는 악기인  데 반해 곤충들은 이들 
악기 소리를 너무너무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누에를 키우는 잠실에 들어가서 꽹과리를 10분만 두들기면 누에 수만 마리가 그 자리에서 
한 마리도 안  남고 전멸해 버린다. 왜 죽었는지 조사해  보면 누에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내장이 
파열되어 죽었다는 결과가 나온다. 누에처럼  사람에게 이로운 벌레는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주
어서 죽일 필요가 없지만, 해충이라면 어떨까?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었나를 보여 주는 실례가 하나 있다. 옛날에는 농
사를 지을 때  요즘처럼 농약이라는 것이 없었다. 농약이 없던  시절에 우리 조상들은 바로 전통 
악기들인 북,장구,징, 꽹과리 소리를 가지고  병충해를 예방했던 것이다. 흔히 농사철에 모를 심
을 때부터 김을 매거나 할 때 꼭 빠지지 않고 풍물 장단을 많이 두들긴다. 논 가장자리에서 걱종 
악기들을 모아서 소리에 맞추어 장단으로  두들기면 멸구,도열병을 일으키는 해충들이 모두 적어 
버려 병충해 예방에 큰 몫을 했다.
  전라북도에서 아무개 씨가 이것이 정말인지 거짓말인지 실험을 한 번 해보고자 마음을 먹고 한 
쪽 논에는 농약을 치고 또 다른 쪽에는 북,장구,징,꽹과리를 치면서 농사를 지어 보았다고 한다. 
악기로 농약을 대신 한 논은 농약을 친 논보다 벼의 소출이 조금 적었다.그러나 그 쌀로 밥을 지
어 보니깐 밥맛이 비교도 안될 만큼 기가 막히더라는 것이다.
  왜 그런 형상이 일어나느냐 하면,벼가  음악을 듣고 자랐기 때문이다. 식물도 동물처럼 음악에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과 과학 실험에서도 수없이 입증된 바 있다. 하물며 우리 땅에서 우리 햇볕
을 쬐고 우리 물을 먹고 자라나는 벼가 우리 음악을 좋아하지 않을 리 없다.
  이렇게 우리 음악은 해충을 죽이는 데만이  아니라 벼를 숙성케 하는 데도 탁월한 효과가 있음
이 입증되었다.
  뜨거운 것이 좋아
  1080년데 세계 음악 평론가들이 한자리에 모일 기회가 있었다. 주최 측에서 이런 질문을 했다.
  "과연 지구상에 있는 수많은 민족  중 리듬이 제일 발달한 미족이 어느 민족이라고 생각하십니
까?"
  이 물음에 음악 평론가 80퍼센트 이상이 뭐라고 적었는가 하면 '코리언'이라고 적어 냈다.
  한국 사람은 이 세상에서 리듬이 제일 발달한 민족이다.그 원인이 뭘라고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하니까 100퍼센트 모두가 코리언들은 숟가락,젓가락 때문에 이 세상에서 제일 리듬이 발달했다는 
것이다.
  이 수저를 우습게 보면 큰일난다. 우리 민족이 이것을 언제부터 사용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
지만 옛날 임금의  무덤을 발굴 했다 하면,해골바가지는 흙이 되고  없는데 꼭 옆에 누워 있는게 
있다. 바로 숟가락과 젓가락이다. 전국  어느 박물관엘 가도 숟가락과 젓가락은 반드시 전시되어 
있다.
  서양 사람들은 밥을 먹는 데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한다.그러나 포크와 나이프를 서양 사람들이 
제대로 사용한 지는 400여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 그 전에는 무엇을 사용했을까? 손이다.손으
로 음식을 먹었던 것이다.
  그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부끄럽다고 감추려고 하는데 지금도 흔적이 남아 있는 게 있다. 우리
는 아기가 서너 살 되면 턱받침을  떼어 낸다. 하지만 서양사람들은 밥만 먹었다 하면 늙어 죽을 
때까지 턱받침을 한다. 손으로 음식을 먹다 보니 질질 흘리는 게 습관이 되어 그런 것이다. 
  손으로 음식을 섭취했느냐, 아니면 수저를  사용했느냐 하는 문화 요인 하나에서 매우 많은 요
소들이 파생된다. 손으로 음식을 먹는  서양 사람들이 뜨거운 음식을 좋아할까,차가운 음식을 좋
아할까?
  물론 차가운 것을 좋아한다. 뜨거운 음식은 우선 손으로 집어 들기가 어려운 탓이다. 무엇보다 
서양 사람들의 주식인 빵이 그렇다. 빵은  구워내자마다 뜨거운 채 그대로 먹는 게 아니라 한 참 
두었다가 손으로 조금씩 떼어 먹는  음식이다.또 서양 사람들은 술을 마시더라도 꼭 얼음을 타서 
마신다. 얼음을 타지 않는 맥주는 냉장고 안에서 만든 게 아니면 전혀 맛이 없다. 포도주와 샴폐
인은 아에 얼음통에 재워 나와야 좋다고 한다. 겨울철 알프스 산장에서 밖에선 스키 탄다고 난린
데 물을 시키면  얼음을 둥둥둥 띄어서 갖다 준다. 이열치열은  있어도 이한치한은 못 들어 보았
다.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찬 음식을 좋아하는 냉식 문화이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지구상에서 뜨거운 음식을 제일 좋아하는 민족이다. 같은고기 요리라 해도 
서양 사람과 우리는 다르다. 서양  사람들이 즐겨 먹는 스테이크 요리는 우리의 불고기처럼 불기
를 게속 가하면서 먹는  음식이 아니라 일단 불에 굽고 나서는  접시에 담아 식혀서 먹는 음식이
다.
  흔히 고급 레스토랑 같은 델 가면 고기를 많이 익혀 드릴까요,적게 익혀 드릴까요를 묻는데,우
리 불고기는 그럴 필요가 없다. 불이  요리판 밑에 게속 있기 때문이다. 설익은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대충 익었을 때 집어 먹으면 되고,푹 익은 걸 좋아하는 사람은 완전히 익은 것을 집어 먹
으면 된다. 심지어 약간 탄 걸 좋아한다면 태워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서양 음식은 요리 따로,
식사 따로다. 한번 요리해서는 그 다음에는 식혀서 먹는 것이다. 우리네 음식은 불고기든 찌개든 
훨훨 타는 불을 음식 아래 척 갖다 놓고 요리하면서 먹는다.
  우리 민족은 뜨거운 음식뿐 아니고 뜨거움 그 자체를 좋아한다. 혼수 50도 가까이 되는 온천에 
전 세게 여자들을 홀랑 벗겨서 다 집어 놓고 본다. 10분도 못
견디고 다 튀어나오는 데 끝까지 앉아 가지고 "아이고 시원하다"는 사람이 한국 할머니들이다.
  우리 할아버지들은 펄펄 끓는 콩나물국을 들이마시면서 "아이고 시원하다"할 만큼 뜨거운 것을 
좋아한다. 불에서 끄집어내 가지고도 한참 동안 끓고 있는 뚝배기를 낳은 민족이 바로 우리 민족
이다.
  이러다 보니 통닭 먹는 방법도  다르다. 어머니들은 솥에서 삶은 닭을 거내 안방까지 뛰다시피 
하면서 가지고 들어온다. 그리고 다급히 아이들에게 소리친다
   "느그 아부지 어딨나?"
  왜?아버지가 먼저 닭 다리를 뜯어야  가족들이 "우-"하고 달려들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
름지기 삶은 닭은 뜨거울 때 먹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처럼 우리는 뜨거운 음식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을래야  않
을 수가 없다.
  서양 사람들은 어떨가? 서양  사람들은 추수감사절 저녁에 칠면조를 굽는다.오븐에서 칠면조를 
끄집어내서는 식탁에 올려놓는다. 초대를 받은 한국 사람이 침을 꼴깍꼴깍 삼키는데 이들은 대체 
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왜? 뜨거운 걸  못 먹기 때문에.그럼 음식이 식을 때까지 뭘 할까? 기
도를 한다.
  "하느님 아버지, 일용할 양식을 내려주신 건 고마운데 와 이리 뜨겁습니까?"
  빨리 식게 한참 시도한 다음 5분에서 10분이 경과한 다음에 그때 먹는다. 각 민족에 맞게 체질
화된 식성이 예사롭지 않다.
  뭐든지 끓어먹고 우려먹는 국물 문화
  손으로 음식을 먹는 서양 사람들을 한 번 더 분석해 보자. 그 사람들은 음식에 물기가 많은 걸 
좋아하겠는가. 없는 걸 좋아겠는가? 당연히 없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접시가 발달
했다. 우리는 온 음식마다 물기가 있기 때문에 오목한 그릇문화가 발달했다.
  한국 사람들이 이토록 물이 많은 걸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첫번째 이유는 누구나 안다. 
여러 식구가 먹어야 하기 때문에 국물이 많은 것이 최상책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원래 농경 민족
이기 때문에 육식보다는 채식을 주로  했다.고기 맛을 보는 때는 명절,혼인,생일 등 잔칫날 뿐이
었다.가장 적은 고기를 가지고 최대 효과를  볼수 있는 조리법은 뭘까?바로 물에 고기를 집어 넣
고 푹 끓이는 것이다. 이렇게 고깃국을  끓여 놓고 온 식구가 둘러앉아 이밥에 고깃국을 먹는데, 
재수 좋으면 고기 한 점 있는거고  재수 없으면 국물만 들이키는 거다. 그래도 살기 어려웠던 시
절에는 멸치 비린내 나는 국물조차 먹기 어려웠다.
  여기에 대한 고기 대용품이 바로  콩나물과 대파와 무였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시장에서 쇠
고기 몇 점을 살 때 꼭  비짓살과 내장을 많이 달라고요구했다. 가난한 살림에 고깃국 끓이는 흉
내는 내야겠다고, 그렇다 보니 고기 기름이  둥둥 떠다녀야 되겠기에 무를 많이 썰어 넣었다. 이
렇게 끓이다 보면 고기 맛이 무에 배여 고기 맛이 무 맛이 고기 맛 같아 고기 몇 점 없이도 서로
가 이해하면서 먹던 그런 시절이었다.  이렇듯 여러 명을 만족시키기는 국물을 많이 끓이는 방법
이 최고였다.
  이렇게 뭐든지 많이 넣어 가지고 빨리 끓여 내면 국이라 한다. 물을 조금 붓고 빨리 끓여 내면 
찌개나 전골,콩나물이나 무를 집어넣으면 조림,찜이  된다. 하나같이 전부 국물이 있다. 이게 바
로 우리 고유의 국물 문화다.
  우리 민족이 국물을 좋아하는 두 번째 이유는 쌀이 특수하기 때문이다. 우리 땅에서 나는 쌀과 
중국의 남방을 비롯한 동남아쪽 쌀은 질  자체가 다르다. 우리 것은 찰기가 있고 동남아 것은 찰
기가 없다. 그네들의 살은 흔히 말하는 알람미,입에 넣고 아무리 씹어도 퍼석퍼석하기만 한 쌀이
다. 입으로 훅 불면 밥알이 확 날아가 버릴 정도이다. 반면에 우리 쌀밥은 물 없이 한 숟가락 퍼
넣었다가는 삼키는 데만도 한참 걸린다. 아마 뱃속까지 내려 가는 데 5초는 걸릴 것이다. 그래서 
밥을 잘 삼키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밥그릇 옆에다 뭘 두더라,국물을 둔다. 국물의 종류가 세계적
으로 제일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다.뭐든지 많이 넣어 가지고 오래 끓이면 이름을 뭐라 붙이더라, 
곰이나 탕이라고 한다. 지구상에서 뼈다귀를  고아 먹는 유일한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인 것이다. 
내가 아는 어느 미국인 친구가 곰탕을 먹으러  가서는 물을 보고 깜짝 놀라 싱거운 말을 한 적이 
있다.
  "어? 뼈에서 흰 물이 나오네."
  짐승을 잡으면 고기와 피,가죽,뼈 기름이  나온다.서양 사람들은 가축을 잡으면 고기와 피, 기
름은 먹고, 가죽은 말려 두었다가 옷을 만들지만,뼈는 버린다.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게 뼈다. 
하지만 우린 어떤가?우린  뼈를 고기에 못지않게 중시한다. 고기야 달랑  입에 넣고 씹어 삼키면 
그뿐이지만,뼈는 솥에 넣고 오랜 시간을 몇  차례씩 끓여 우려 낸다. 소뼈는 설렁탕을 해먹고 돼
지뼈는 감자탕을 해먹는다. 이렇게 우려 낸 국물 맛은 서양 사람들이 즐기는 유일한 국물 요리인 
스튜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래서 세계에서 뼈값이 가장 비싼 곳이 우리나라이다.
  이렇다 보니 우리의 메뉴판과 서양의 메뉴판은 이름부터가 사뭇 다르다. 서양 사람들은 음식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서 음식 이름을 짓는다.  '햄을 첨가한 야채 샐러드' '치즈버거' '햄버거' '에
그버거' 이런 식이다. 그러나 우리의  메뉴판은 국물 일변도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갈비탕' 
'우거지국' 순대국밥'이렇게 나간다. 김치찌개라면 이름만 얼핏 보고는, 이 메뉴에는 김치찌개만 
나오겠지 하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김지찌개는 그 메뉴의 대표 이름일 뿐이다. 한국 사람 누구나
가 김지찌개를 주문하면 밥과 김치,나물,멸치조림,마늘장아찌  등 반찬이 따로 나온다는 것을 다 
안다. 하지만 그래도 이름은 여전히  김치찌개이다.이렇게 여러 가지 반찬들이 나오는 메뉴에 국
물을 대표로 내세우는 것만 보아도 우리 민족이 얼마나 국물을 좋아하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이런 성향이 대대로  핏줄,즉 DNA를 통해서 유전된다.  할아버지도 그렇고,아버지 엄마도 그렇
고, 그 다음 손자들까지 똑같은 식성이 하나 있다. 아무리 우리가 세대 간에 좋아하는 음식이 틀
리고,또 요즘 애들이 패스트푸드를 좋아한다 하더라도 똑같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국물을 즐기
는 미각이다. 100원짜리  꼬치 하나 막고 국물은 500원어치 퍼마시는  것. 애나 어른이나 이점은 
모두 똑같다.가게 주인도 이렇게 국물을 많이 퍼마시는 것쯤은 질끈 눈감아 준다. 그래서 국물은 
아무리 마셔도 공짜다.
  우스개 소리 한 대목 하고 넘어가자. 2002년 월드컵 유치 기념으로 각 나라를 애표하는 개들을 
전부 초청했단다. 각 나라에서 온 300여  마리의 개들이 잠실 올림픽 축구 경기장에서 왈왈왈 짖
고 난리가 났다. 주최 측에서는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고 갈비를 큼지막하게 쪄가지고 각 나
라 개들에게 안겨 주었다.
  그랬더니 독일 대표로 온 셰퍼드 이  놈은 갈비를 몇 대씩 먹고,프랑스 대표로 온 푸들은 갈비 
위에 올라타서 막 먹느라고 난리다. 그런데  중간에 보니까 누렁개 한 마리가 갈비는 줘도 안 먹
고 탁 토라져 앉아 있다. 도우미  아가씨가 쫓아갔다. 어느 나라 개일까 살펴보니까 태극 마크가 
달려 있는 우리 똥개다.
  " 이 자식아, 니 평생에 어디서 그런 갈비를 얻어 먹겠어! 왜 갈비를 줘도 안 먹어?"
  호통을 치니까 이 개가 두 눈을 오끔하게 뜨고 하다는 말이 이거다.
  "내 참,국물에 말아 줘야 먹죠."
  개마저도 국물에 말아 주어야 밥을 먹는 게 우리나라다. 이렇게 뜨거운 음식과 국물 음식을 너
무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우리 음식 문화에서 수저는 필수품이 되어 버렸다.
  국물 문화 덕분에 수저와 친숙하기  때문에 우리는 수저를 다른 용도로도 사용한다. 서양 관광
객들이 와서 한국 사람들이 병에다가 솓가락을  꽂아 흔들면서 노는 것을 보고 희한하게 여겨 홈
비디오로 찍었다. 그래 가지고 어디다  내놓았고 하나 '풍물 기행 세게를 가다- 한국편'이다. 퀴
즈가 나오는디 뭐라고 나올까?
  "한국 사람들이 밥을 먹고 난 다음 숟가락은 무엇으로 사용 할까요?"
  "마이크!"라고 정답을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하지만 우리가 밥 먹고 나서 숟가락으로 사
용하는 용도는 마이크만이 아니다.숟가락을 들고 노래를 불렀다 하면 누가 안 시켜도 전자동으로 
어떻게 되는가?들고 두들기기 시작한다.
  "저건 서커스야!"
  우리 나라와 이웃 일본,중국을  묶어서 인류학자들은 흔히 찰스틱문화권이라고 부른다. 젓가락
을 사용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나의 의견은 다르다.  일본,중국은 찹스틱이 옳지만, 우리는 
아니다. 우리에겐 젓가락말고도  숟가락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지금 숟가락이 거의 퇴화하고 
젓가락만 사용한다. 중국에 가면 젓가락은 크고 숟가락은 매우 작다. 또 숟가락은 음식을 퍼내거
나 국물의 맛을  볼 때만 주로 사용하는 점에서 우리와는  다른다. 서양 사람들은 숟가락은 써도 
젓가락을 쓰지 않기  때문에 일단 찹스틱 문화권에서 배제된다.  더욱이 서양 사람들은 숟가락을 
수프를 떠먹을 때나 음식을 접시에 덜어 내는 용도로만 사용한다.
  그런데 우리는 수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젓가락과 숟가락을 절반씩 사용해 왔다. 숟가락도 50
퍼센트 사용한다. 하지만,사실은  세게에서 숟가락을 제일 많이  사용하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
다.
  여자가 결혼할 때  은수저를 중요한 혼수품으로 싸가지고 가는  나라가 우리다. 군대 훈련소에 
가서 식기는 여럿이 돌려 먹어도 자기  숟가락 하나만큼은 윗주머니에 딱 꽂고 다니는 나라가 우
리다. 밥숟가락에다가 사람이 살고 죽는 걸  표현하는 나라도 우리밖에 없다.
  "김서방네 집에 밥숟가락 하나 늘었단다."
  아기가 태어났다는 소리다.
  "김서방 할아버지가 오늘 아침에 밥숟가락 놓아 버렸단다."
  돌아가셨다는 소리다.
  그래서 우리는 찹스틱 문화권이  아니고,우리민족은 '스푼 찹스틱 문화권'이다. 우리는 지구상
의 어떤 민족도 절대 못 따라오는 동작을 매일매일 사용하고 있다. 바로 숟가락과 젓가락을 놀리
는 솜씨다.
  유명한 '대지'의 작가  펄벅 여사가 1960년 우리나라에 관광을  왔다. 경주엘 갔는데 불국사를 
구경하고 나와서도 별  감흥이 없다. 그런데 한식집에 가서 밥을  먹다가 갑자기 옆자리 다섯 살 
짜리 꼬마가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하는 동작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저건 서커스야!"하고 고
함을 질렀다. 우리 민족의 가능성이 바로 여기 있으며 이것이 바로 우리의 힘이다.
  세계에서 우리밖에 못하는 것이 바로 한 손에 숟가락과 젓락 두 개를 들고 밥 먹는 것이다. 일
본,중국 사람들은 밥을 먹는 도중에라도 숟가락을 쓰지 않을 때는 꼭 밥상에 내려놓는다. 그런데 
우리민족은 밥 먹는 도중에는 수저를  절대 밥상에 내려놓지 않는다. 국그릇,밥그릇에 걸어 놓는
다. 만약 멋모르고 밥상에 내려놓아 버리면 며느리가 들어와서 "아버님 진지 많이 드셨습니까"하
고 밥상을 내가 버린다. 밥 다  먹었다는 표시가 숟가락을 밥상에 내려놓는 것이다. 돌아가신 할
아버지도 제삿날 나타나서 밥 위에 꽂아 놓고 딴 일 보지 절대 밥상에 내려놓지 않는다.
  펄벅 여사를 감동시킨 동작은 바로 이것이었다. 다섯 살짜리 꼬마가 젓가락을 가지고 번개같이 
동굴동굴한 콩알을 콕 집어서는 입에 쏙  넣는 것이다. 젓가락질 한 번만에 콩을 집어먹을 수 있
는 민족은 결코  흔하지 않다. 우린 심지어 국물에 빠져  있는 머리카락 한 올조차도 젓가락으로 
건져낼 수 있다.
  언젠가 한 번 미국인 손님을  한식집에 초대한 적이 있었는데, 막걸리에 도토리묵을 반주로 곁
들였다. 이 손님은 부들부들한 도토리묵을  우리가 젓가락으로 집어 먹는 것을 보고는 미국에 가
서 쇼를 하자고 난리다. 결국  그 손님은 젓가락으로 도토리묵을 집지도 못하니까 솓가락으로 양
념 간장까지 퍼 먹고는 너무 짜다고 투덜거렸다.
  그러면 우리는 왜 젓가락질이 발달했을까?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전  세계 어느 민족이나 식사 문화를 보면  거의 다 두 손을 사용한다. 
서양 사람들은 포크와  나이프를 한 손에 하나씩 들고 식사한다.  한 손만 사용하는 부류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하나는 우리 한국 사람들이고 그 다음 알라신을 믿는 회교 문화권 민족들이다. 
회교에서 왼손은 악마의 손이 라고 해서 그 사람들은 왼손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손으로 하는 건 우리가 세계 최고
  그러면 이웃인 중국이나 일본과 우리를 한 번 비교해 보자. 그 사람들도 두 손을 사용한다. 숟
가락을 쓰지 않는데 왜 두 손을  사용할까? 그 사람들은 왼손에 밥그릇을 받쳐들기 때문이다. 왼
손에는  밥그릇,오른손에는 젓가락을 들고 밥을 먹는다.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지 않으니 자연 밥
알을 흘리기 쉽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밥을 흘리지 않으려고 밥그릇을 입 바로 앞에 가져다 놓
고 먹는다. 그러다 보니 우리 식사  예절에서는 금기시되는 쩝쩝 소리를 피할 수 없다. 이 쩝쩝,
찹찹 소리를 듣고  서양 사람들이 젓가락을 찹스틱이라고 불렀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왼손에 밥그릇을 들 수가 없다. 왜? 뜨거워서다.
  일본,중국 사람들과 우리와는 또 재미있는 차이가 있다. 이 사람들은 밥이 반찬 쪽으로 건너간
다. 팔을 길게 내밀고 반찬을 밥 위에 주섬주섬 얹어서 입 가까이로 가져와서는 젓가락으로 퍼먹
는 식이다. 하지만 우리는 뜨거운 밥그릇을 손으로 받쳐들 수 없으니까 반대로 반찬이 밥 쪽으로 
건너온다.
  그렇다면 문제를 내보자, 젓가락질은 밥이  반찬 쪽으로 가는 사람이 잘하겠는가,반찬이 밥 쪽
으로 오는 사람이 잘하겠는가? 우리가 훨씬 젓가락질을 잘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는 것
이다.
  자, 한 손에 수저를 모두 들고 사용하면 할 일 없이 노는 손이 아나 생긴다. 왼손이 놀기 때문
에 우리 민족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다. 그게 뭘까? 바로 쌈이다. 우리는 야채가 넙적하다 
싶으면 왼손에 놓고 쌈을 싸먹는다. 상추는 물론 배추잎이나 깻잎 ,호박잎 등등 이파리란 이파리
는 모두 쌈으로 이용한다.
  서양 사람이나 중국,일본 사람처럼 두  손이 바쁜 민족은 쌈밥을 먹기가 불가능하지만,우린 왼
손이 놀기 때문에 쌈을 싸먹을 수 있다.  무너든지 닥치는 대로 얹어 놓고 된장만 가져다 바르면 
쌈밥이 된다.
  노는 손의 용도가  어디 그뿐이랴? 노는 왼손은 여러 가지  제스처를 위하면서 식사 중 대화의 
흥취를 돋우는 데  한몫 단단히 거든다. 두손에 식사 도구를  단단히 붙잡고 목에 턱받이를 하는 
사람들은 하고 싶어도 재미있고 신나는 대화를 나누기가 어렵다. 이야기를 한답시고 포크와 나이
프를 든 손을 마음대로 휘두르면 욕먹는다. 하지만 우리는 밥을 먹으면서도 비어 있는 왼손을 보
조 수단으로 삼아 생생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렇게 젓가락질을 잘하다 보니까 한국  사람들은 손가락 근육 자체가 세계에서 최고로 발달하
게 되었다. 간다한 예를 들어 보자.우린 누구나 다섯 손가락 중에서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구부려 
서로 맞닿게 할 수 있다, 섬척동자도  하는 일이지만,서양 사람들은 이거 못 만나는 사람들이 상
당히 많다.퇴화가 되어 버린 탓이다. 우리는 손가락을 계속 사용해 왔기 때문에  가능하다. 많이 
사용하지 않는 것을 저절로 퇴화한다 발가락을  한 번 보자.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발가락
은 큰형님밖에 없다. 발가락 큰형님이 움직이면 사형제가 같이 꼬물락꼬물락거리고 따로는 못 움
직인다. 그러나 우리의 손가락 근육은 아직도 펄펄 살아 있다.
  손가락을 자유로이 움직이는  근육은 한국 사람이 세계에서 최고로  발달했다. 그래서 손 갖고 
하는 것은 무엇이든 잘한다. 첫 번째,  쥐는 힘이 세계 최고다. 쥐는 것과 관련된 운동 경기에서 
은메달 따면 우린 섭섭하게 생각한다. 유도,레슬링 경기 예선전에서 대진 추첨을 할 때 '코리아'
하면 저쪽 편에서는 "아이고 머리야!"곡소리가 난다. 그래서 자기 선수들 불러 놓고 한다는 말이 
이거다.
  "저 한국 사람들한텐 잡혔다 하면 끝장난다. 무조건 도망다니면서 기회를 엿봐라."
  도망을 다니다 다니다 당하는 것이 있다. 빠떼루다. 이렇게 유도나 레슬링 같은 경기에서는 쥐
는 힘이 강한 우리가 강세를 보인다.
  두 번째로 우리는  겨냥하는 것이 세계 최고다.  던지거나 쏘았다 하면 백발백중이다.겨냥하는 
건 손이 아니라 눈으로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눈으로는 
누구나 과녁에 정확하게 겨눌  수 있다. 중요한 건 손으로 활을 꼭  쥐고 흔들림이 없게 하는 거
다. 따라서 양궁에서도 손이 가장 중요하다.
  원래 양궁 경기는 50미터였는데 애틀랜타 올림칙 때부터 20미터를 늘려서 70미터로 하고 있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일까? 한국 사람들에게  질투가 나서 그렇다. 우리 선수들이 너무 잘 맞추니까 
"에라 모르겠다. 우리가 못 먹는  밥인데 너희들도 먹지 마라!"이래서 거리를 늘린 것이다. 양궁 
경기장의 과녁 안에 설치된 소형  카메라는 굉장히 비싼 카메라다. 그것은 과녁 한가운데 설치하
면서 이랬단다.
  "설마 인간이 70미터 거리에서 여길 맞출 수 있겠어?"
  그런데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카메라 두  대를 박살내 버렸다. 그런 능력을 우리가 지니고 있
는 것이다.
  사실 한국 사람들은 개개인이 모두 겨냥을 잘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화투판에서 화투
를 딱 들고 "자 똥광 받아라!"겨냉을 마음먹고 안해도 똥 쌍피가 철커덕 들어맞는다. 머리가 "조
건을 맞춰라" 명령만 하념 손이 알아서 다 한다. 이렇게 겨냥을 너무 잘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는 총을 다루는  군사,활을 다루는 군사,창을 다루는 군사, 포를 다루는 군
사들 외에 투석꾼이라하여  돌을 잘 던지는 군대가 있었는데, 그  위력이 대단했다 한다. 국토의 
70퍼센트가 산이고 돌이니 모았다 하면  무기였을 테고, 또 옛날에는 웬만한 사냥도 돌로 했으니 
마음먹은 목표물을 잘 맞추는 그 능력은 저절로 생긴게 아닐 것이다.
  머리도 빗고 이도 잡고
  손의 감각이 발달하다 보니까 자연히 더불어 발달하는 게 있다. 바로 촉감이다. 촉감이 세계에
서 제일 발달한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바로 한국 여자들이다. 한국 여자들 촉감은 세게 최고다. 
1980년대 세계 산업을  선도했던 반도체 D램 생산국 1위가  바로 우리나라다. 우리나라의 공업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정밀해지면 정밀해질수록 세계 최고의 손 촉감이 더욱 빛을 낸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무 하나와  칼 하나씩 주어서 국제 채썰기 대회를 열어 보자. 얇게 
써는 사람이 우승하는 거다. 이런 대회가 열린다면 한국 할머니들이 전부 금메달을 따올 것이다.
새댁들은 보고 썰지만 묵은댁들이나 할머니들은 보지도 않고 썬다."야야 ,솥에 밥물 넘는다." 눈
은 이것저것 다 보면서도 손은 여전히 채를 썬다.
  왜 한국 여인네들이 촉감이 발달되었을까?  그 이유가 있다. 문화에는 항상 원인이 있다. 수천 
년을 사용해 오다가 불과 수십년 저에 손을 놓은 참빗이 한 예다. 참빗으로 머리를 빗던 우리 할
머니를 한 번 기억해 보자.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할머니가 하는  첫 작업이 있다. 어두컴컴한 방에 앚아 가지고 참빗으로 
머리를 빗다가 뭐를 잡는다? 그 와중에  세가리(이)를 잡아 낸다. 이걸 시각도 청각도 아닌 바로 
촉감으로 가지고 잡는다.  사실 시각이나 청각을 쓸  수도 없는 것이, 이  이라는 놈은 몸길이가 
2-3밀리밖에 안되닌까 새벽녘의  어둠속에는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피를  빨 때 요란하게 소리를 
내는 놈도 아니다.
  촉감,이 위대한 촉감을 가지고 지구상에서  우리 민족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이 잡는 것말
고는 또 있다. 바로 병아리 암수  구별하는 일이다. 서양 감별사는 암수 구별을 잘 못한다. 그네
들은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면 암수  구별을 하기 위해 커다란 돋보기를 들이대고 열심히 살펴
보지만 봐도 모른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병아리를 한 손에 쓰윽 잡고 밑을 한 번 흝으며 말한
다.
  "어 걸리네,수탉!아이고 미끄러지네,암닭!"
  이렇게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조상들 대대로 핏속에 우리 삶의 원리로,DNA로 딱 정해진 것이 하나 있다. 무엇이냐 하
면 국토는 좁고 자원도 부족 하지만 손발만 부지런하게 움직이면 먹고 살 수 있다는 피가 흐른다
는 얘기다. 세계를 놀라게 한 60,70년대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에서 풍부한 노동력이 가장 큰 역
할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노동력이라고 하면  중국만큼 많은 나라가 없다. 
지금 중국도 노동력을 밑받침으로 경제  성장을 게속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력이라고 다 같은 노
동력이 아니다. 실 한 오라기 만져 보고  불량을 척척 판별해 내는 60,70년대 우리  여성 노동자
들은 위대한 촉감 능력을 천부적으로 타고난 질 좋은 노동력이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는데 요즘 청소년들도 그 이야기에 해당할까?혹시 그 탁월한 60,70년대의 
촉감 능력이 요즘 아이들에게서 사라지진  않았을까?그런데 미안하지만 여전히 남아 있다. 한 번 
보자. 오늘 당장 아이들의 공부방 문을 열어 보자. 서양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 공부하는 걸 보면 
놀라 자빠질 것이다. 눈으로 공부하고,귀로는 이어폰 꽂고 음악을 들으면서,입으로는 짝짝거리면 
껌을 씹는다. 손에는 무슨 먹고 살 거라도 볼펜을 빙빙 돌리고,책상 밑 다리는 빠른 속도로 달달
거리면서 공부한다. 펄벅 여사가 아직도 살아서 이 광경을 보았다면 또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이건 완전히 서커스야!"
  삭은 맛,익은 맛의 우리 문화
  삭혀 먹는 우리 음식에 익혀 부르는 우리 노래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대단히 많은  종류의 문화가 있다. 문화중에서 제일 생명력이 끈질긴 게 
뭐냐면 음식 문화다. 음식 문화는 모든게 다 변하고 나서도 변하지 않는 문화의 최후 보루다.
  우리 음식 문화를 보자. 끈질긴  것에서는 둘쨰 가라면 서러워할 우리 미족은 음식 문화에서도 
마찬가지다.
  해외 여행을 가는 한국 사람을 보면 재미있는 광경이 있다.
  어디를 가든 우리 음식을 죽어라고  꼭 싸가지고 다닌다. 멸치,고추장은 기본이다.이게 안되면 
하다못해 김이라도 꼭 가지고 간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목적지에 닿아 비행기 트랩을 내릴 때쯤
에 알맞게 익도록 집에서부터 새 김치를 담아 가지고 가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젓갈까지 싸가는 사람들이 있다. 젓갈통을 랩으로 한 스무 겹 정도 둘러싸도 냄새를 완
전히 막지 못한다. 공항의 마약 수사견은  평생 처음으로 맡는 희한한 젓갈 냄새에 마구 짖어 대
면서 난리를 피운다. 개는 가방을 물어뜯고  가방 주인인 한국 사람은 겁에 질려 벽에 딱 달라붙
어 있다. 미국 공항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이처럼 끈질긴 음식 문화를 지닌 우리 민족은 특히 어떤 맛을 즐기는가?익은 맛,삭은 막이다.
  우리 한국의 3대 음식을 들여 보면 김치.장 그리고 젓갈이다. 이 세가지에 공통적인 것이 뭐냐
면 익은 맛,삭은 맛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김치를 담근 첫날은  조금 먹는다. 배추 겉절이처럼 풋풋한 맛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째 
날부터 물이 찍찍 나오고 하면 손을  대지 않는다. 이 때부터는 풋풋한 맛이 아니라 풋냄새가 난
다는 거다.다시 김치에 손 대는 때는 언제? 익을동 말동할 때다. 이 때의 김치 맛은 최고다.
  김치는 기본적으로 발효  식품이다. 말이 발효지 사실은 삭혀 먹는  것,산폐시켜 먹는 게 바로 
김치이다. 음식을 삭혀 먹다니 무슨 소린다? 무엇이든 이틀이면 죄다 상해 버리는 무더운 여름날
에도 심지어는 담가  놓고 익힌 다음에야 냉장고에 넣는다. 원래  김치가 발달할 이유는 두 가지
다. 우선 채소를  섭취하기 위해서다. 채소는 여름이 아니더라도  상히기 쉽다. 곡식 알갱이라면 
수백년씩이나 그대로 보존되는  경우가 있지만 채소는 보존 기간이  극히 짧다. 그런데 김치처럼 
채소를 소금에 절여 놓으면 절대로 상하지 않늗다. 상하기는커녕 한동안 놔두어야만 익어서 맛이 
난다. 우리 조상들이 김치를 만들어 먹은 두 번째 이유는 염분의 섭취다. 소금은 몸에 꼭 필요한 
물질이지만 소금 그대로 먹을 수야 없기 때문에 채소를 절여 김치로 만들어  먹었던 것이다.
  김치만이 아니라 젓갈과 장도 마찬가지다. 젓갈이나 장도 불을 써서 익히는 음식이 아니다. 물
론 장을 달일 때 불을 쓰긴 하지만 장은 담가서 직접 먹는 음식이 아니라 익을 때 까지 기다려서 
먹는 발효 음식이다.
  이렇게 우리나라 3대 음식인 김치,젓갈,장이  모두 발효 식품이다. 우리 조상은 현명하게도 일
찍부터 삭혀 먹는 요리법을 개발했다.  연전에 우리나라에 온 프랑스 출신의 세게적인 인류 학자
는 이렇게 말했다.
  "서양 요리는 기본적으로 구워 먹느 방식이다.음식을 불에 구워 먹는 것은 원시 시대부터 있었
던 단순한 조리법에 속한다. 그런데 한국의 김치는 삭혀 먹는, 즉 발효시키는 음식이다. 발효 시
키는 요리법은 굽는 요리법보다 진보한 문명을 나타낸다."
  불에 굽는 것보다는 발효시키는 것이 훨씬 시간도 오래 걸리고 복잡하다. 더구나 불에 굽는 것
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발효시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옛부터 김치는 
손맛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음식을 발효시킨다는 것은 익은 맛, 삭은  맛을 낸다는 얘기다. 우리의 이런 음식 문화는 우리 
음악에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그것도 아주 중요하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리 음악도 익은 맛,삭은 맛을  요구한다. 다섯 살짜리 꼬마가 노래하는 것은 악보와 똑같다. 
그런데 칠순 할아버지가 노래 하는  것은 악보하고 똑같으면서도 맛이 다르다. 음악의 맛이 달라
지는 것이다.
  아이구 내 신세야
  박복한 내 팔자야...
  같은 노래라 해도 인생의 깊은 맛을  모르는 다섯 살 꼬마는 새된 소리가 나지만, 칠순 할아버
지에게서는 구성진 가락이 흘러나온다.  멜로디는 똑같지만 맛이 다르다.꼬마의 노래가 풋냄새가 
나서 먹을 수 없는 김치라면 할아버지의 노래는 익고 익어 완전히 삭은 김치다.
  여기서 이 소리의 맛을 좌지우지하는 이 기운을 가리켜 기음이라고 한다.
  무훈경 새해재해는 웬 고호호개해뇨
  이 기음을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우리말의 'ㅎ'소리인데,영어의 발음 기호로 스면 [h]발음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말의  'ㅎ'과 같이 목구멍으의 가장 안쪽에서 인후벽을 스쳐 나오는 
소리다. 프랑스에서는 'r'을 목구멍을 울려  나오는 소리라고 해서 후흠이라고 부르는데, 이것도 
같은 소리다.'전원일기'에서의 최불암 씨가'파-'하고 목구멍으로 웃는 소리도 대충 비슷하다.
  이 소리를 많이  내면 인체의 스트레스나 화증을 없애  주기 때문에 굉자히 건강해진다.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갑자기 받는 스트레스에  '씨-'하고 반응하는 것도 소리로 화증을 식히는 인체 작
용이다.
  기음을 많이 쓰는 게 바로 우리 판소리다. 판소리에서는 맑은 소릴르 명창이라고 할까,탁한 소
리를 명창이라고 할까?
  탁한 소리가 명창이다. 이 탁한 소리는  오랜 수련 끝에 나오는 소리로,목이 쉰 듯하면서도 카
랑카랑한 소리와 '세성'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목으로 판소리에서는 '수리성'이라하여 최고의 
목으로 여긴다.
  이 탁한 소리에 기음이 들어간다. 기음이 들어가기 때문에 탁한 소리가 나온다고 말할 수도 있
겠다. 이 노래가 진짜 우리 노래다. 우리  소리 자체에 이 발음이 들어가는지 안 들어가는 지 확
인해 보자.
  그냥 노래를 하면 이렇게 된다.
  문경 새재는 웬 고개뇨...
  글자 그대로 음성적인 발음에 치중해서 노래를 하면,초등학생이 동요 부르는 것 같아서 대체로 
재미가 없다. 이제 기음을 넣고 어서 해보자.
  무훈경 새해재해는 웬 고호호개해뇨...
  이제 어떤가? 한 가지 더 해보자.
  날 좀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 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이것도 역시 이대로만 하면 재미없다.
  날 좀 보소오호 날 좀 보소오호 날 좀 보소오호오
  동지 섣다아할 꽃 본 듯이이히 날 좀 보소
  이 때 한 글자 한 글자 다음에 들어가는 'ㅎ'소리가 기음이다. 기음이 들어가지 않으면 소리의 
맛이 살아나지 않는다.
  그러나 기음이 들어가면 소리에 한  맛을 더한다. 기음은 듣는 이로 하여금 신명을 좌지우지하
는 음성적인 큰 힘을 지니고 있다.  더구나 이 기음은 흥겨운 노래에 들어가면 더욱 흥겨워 질것
이고,한스러운 노래에 들어가면 더욱 한스러워지는 희한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막 담근 김치도 김치듯이 기음을 넣지  않은 것도 노래는 노래다. 그러나 춧내 나는 김치를 먹
으면 맛이 없듯이 기음이 없는 노래도 맛이 없다. 기음은 팍팍 익고 삭은 김치의 맛이다. 이렇게 
기음은 우리 음악에서 익은 맛, 삭은 맛을 유도하는 참기름 같은 존재다.
  비빔밥 문화가 만들어 내는 시나위
  마지막으로 음식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한 가지 더 해보자.
  우리 음식 중에는 비빔밥이라는 독특한 것이 하나 있다. 지구사에 밥을 비벼 먹는 나라는 우리
나라밖에 없다. 또 쌈밥,쌈을 싸  먹는 나라도 우리나라밖에 없다. 비빔밥이나 쌈밥은 무엇을 넣
고 비비느냐,무엇을 넣고 싸 먹는냐를 묻지 않는 음식이다. 무엇이든 넣오 비벼 먹으면 비빔밥이
요,무엇이든 넣고 싸 먹으면 쌈밥이다.
  그런데 우리 음악에도 이런 식으로  비빔밥,쌈밥이 있다. 시나위라는 것이 그것이다. 시나위란 
한마디로 음악의 비빔밥이요 쌈밥이다. 장구  장단에 맞춰 대금은  대금대로 나가고,아쟁은 아쟁
대로,해금은 해금대로,피리는 피리대로, 이렇게 섞어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섞어도 서로 충돌하
지 않고, 서로 가락을 주고받고 나가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어울려 
나가는 소리가 바로 우리의 소리다.
  우리의 음악은 즉흥 음악이다. 우리 음악은 원래 악보를 보고 배우는 것이 아니고 스승이 제자
에게 입에서 입으로 전승해 왔다. 그래서 가르치는 사람마다, 또 배우는 사람마다 개성이 발휘되
어 조금씩 달라져 왔는데, 이것이 즉흥성의 뿌리가 되었다. 물론 서양 음악의 경우에도 지휘자에 
따라 곡의 해석이 달라지고 오케스트라  연주가 다른 색깔을 내기는 한다. 하지만 이것은 즉흥적
이라기보다는 해석의 차이다.
  서양 음악 중에서도 고전 음악과는  달리 대중 음악에는 즉흥성을 특징으로 하는 것들이 있다. 
요즘 서양의 재즈라는 음악과 사물놀이 같은  우리 음악이 한데 어울려 자주 공연을 갖기도 하고
는데, 그럴 수 잇는 이유도 바로 즉흥성에 있다. 재즈란 음악도 우너래 악보 없이 즉흥으로 연주
하는 데 더 매력이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재즈  음악가들 중에는 악보를 읽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악보를 읽는다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정식으로 체계적인 음악 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말해 줄 뿐이지, 음악에 대한 
재능을 말해 주는  게 아니다. 악보가 없으니까 자연히 즉흥으로  연주하게 된다. 즉흥적인 재즈 
음악에서는 리더가 하나의  악구를 시작하면 다른 연주자들도  자연스럽게 거기에 맞추어 연주한
다. 리더가 처음을 연주하면 모두들 한 번 딱 듣고 "아,이렇게 하자는 거구나"하는 것을 금방 안
다. 이렇게 시작해서  언제 끝낸다는 약속도 없이 하는 데까지  신명나게 연주를 계속한다. 재즈 
음악가들은 이런 식으로 음반도 녹음하고 공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점에서 우리 음악은 둘째 가라면 서럽다.우리 음악에서도 나름대로 악보를 기록하
는 방법이 있지만,대부분은 악보 같은 것  없이 연주한다. 또 웃대의 음악을 아랫대에 전승할 때
도 악보 같은 건 쓰지 않고 직접 연주 시범을 보이면서 가르친다. 악보에 의존하지 않다 보니 그
때마다 약간씩 다른  음악이 나온다. 이것이 바로  즉흥성이고,시나위의 중요한 생명력이 되어왔
다.
  세게의 민족 음악과 관련하여 평론이  제일 발달한 곳이 독일이라는 나라다. 민족 음악 평론이 
굉장히 발달해 있는데,이 사람들의 주 특기가 뭐냐면 청음을 굉장히 잘한다는 것이다. 이 사람들
은 소리를 듣자마자  악보를 타닥 옮긴다. 그런데 이렇게 옮기는  과정에서 미치고 환장할  나라 
음악이 바로 우리나라 음악이라고 한다.
  왜? 즉흥성이 발달해 있어서 똑같이 반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연주가 끝나고 나면 이 사람들이 이렇게 요청한다.
  "선생님 앞에 한 것,그것  한 번만 더 해주십시오."
  그런데 문제는 연주자 자신도 방금 전에 어떻게 했는지 모른다는 거다. 물론 자기가 연주한 곡
이 뭔지,어떻게 하는 건지는  알지만,그때그때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정확히 반복하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 요구에는 이렇게 대답을 한다.
  "다음에 와서 한 번 더 들으시오."
  그런데 다음 날 공연에 와서 들으면 또 달라지는 거다.
  "선생님,어제와 좀 다른데요."
  "그래요?그럼 내일 다시 와서 또 들으시오."
  물론 다음 날 공연도  또 다르다. 이렇게 사흘 공연을 내내 와서  들여 놓고도 악보를 만들 수 
없다. 이러니 미치고 환장할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즉흥으로 나온 음악이기  때문이다. 우리 음악은 그만큼 즉흥적이다. 하지만 그렇다
고 해서 서로 거부한다든지,불협화음이 난다든지 하는 게 아니다. 웬만하면 대충 섞어 놓아도 서
로 어울리는 음악이 바로 우리  음악이다. 심지어 전국에서 모인 수십명의 풍물패들이 선두 꽹과
리 장단에 맞추어 대충 두들기면,치는  연주 방식은 약간씩 다르지만 별다른 연습이 없어도 금방 
잘 어울린다.
  이같은 비빔밥 음악,시나위는 누구나 아주 쉽게 실험해 볼 수 있다.
  두 사람이 함께 노래를 부른다고 하자.  한 사람은 가장 널리 알려진 본조 아리랑 노래를 부른
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옆에서  다른 아리랑,이를테면 경상북도에서 하는 메나리조 아리랑 노래
나 강원도 정선아리랑을 부른다. 같은  아리랑이지만 곡조가 전혀 다른데도 두 노래는 서로 약속
이나 한 듯이 잘 어울려 넘어간다.
  이것은 서양 음악의 화음과는 다른 것이다.  화음은 같은 노래를 높이 음조와 낮은 음조 두 부
분으로 나누어 부르는 것이지만, 시나위는 전혀 다른 노래인데도 잘 섞인다. 서양 사람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서로 어울리는 음계,화음을  찾아내고 이론으로 만든 것이 바로 화성학이다. 하지만 
우리의 시나위는 이 화성학을 이용하지  않고도 본능적으로 척척 어울려 넘어가는 가락을 만들어 
낸다. 직접 해보면 얼마나 멋진진 알 수 있을 것이다.
  시나위는 아주 자유로운 음악 형식이다. 밥에다가 고추장만 넣어도 비빔밥이 되고,된장국을 넣
으면 더욱 좋고,열무김치나 향긋한 취나물을 들어가도 맛있고,콩나물 무침이 있어도 비빔밥이 된
다. 또 쌈을 보더라도 밥에다 된장을  얹어도 맛있고,고등어 조림이 같이 올라가면 한 맛을 더하
고,육고기에 횟거리까지 얹어도 쌈은 쌈이다. 시나위도 바로 그런 것이다. 장구만 가지고 노래를 
해도 어울리고, 거기에 북이 하나 더 들어가면 더 어울리며, 아쟁,대금이 들어가면 더 잘 어울린
다. 이것이 바로 시나위다.
  서양의 악기들은 한 음 한 음을 정밀하게 내도록 여구받는다. 정교한 맛은 있지만 그만큼 까다
롭다. 익은 맛,삭은 맛보다는 정확함과 과학성을 추구한다.  뒤섞임과 어울림보다는 개성과 독자
성에 비중을 둔다. 하지만 우리의 음악과  악기는 결코 까다롭지 않다. 아무거나 막 섞어도 어울
리고 따로따로도 그  독자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음악이 바로  우리 음악이다. 그만큼 우리 음악의 
악기들과 노래들은 편협되지 않고 너그러우며 받아들이는 폭이 넓다.
  그러나 아무리 뒤섞여도 기본적인 것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익은 음악,삭은 음악이
다. 시나위로 음악을 한다 해서 양푼 깨는 소리를 아무렇게나 집어넣는다면 그건 음악이 아닐 것
이다. 그 소리는 그냥 소음일 뿐  익은 맛,삭은 맛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 음악에는 음식 
문화의 영향을 받아 음악의 비빔밥,시나위가 있다.
  눈물을 아끼지 않는 민족
  이렇게 득특한 음식  문화의 전통을 지닌 우리 민족은 음악만이  아니라 생활의 곳곳에서 익은 
맛,삭은 맛을 최고로  친다. 우리네 정서에서도 여러 가지 감정들이  한데 뒤섞인 비빔밥 정서를 
볼 수 있다. 우리 민족은 감정의 표출을 직접적으로 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정
서는 한마디로 단정지을 수가 없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눈물이다. 일반적으로 눈물이라고 하
면,기쁠 때 흘리는가,슬플 때 흘리는가? 슬플 때 흘린다.
  그런데 그렇지만도 않은 게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다. 눈물을 슬플 때만 흘린다면 눈물
은 부정적인 이미지일 것이다.
  그런데 어떤가? 한국  사람들은 눈물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적일까, 부정적일까?우리는 눈물에 
대한 긍정적이다.한번 잘 울어 바라면 옷이 한 벌씩 생기는 나라다.
  국회의원 선거 후보 연설회에 나와서  뭐가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애써 강조할 필요 없다. 조금 
이야기하다가 울어 버리면 여자들 사이에 대번에 소문이 퍼진다. "4번 그 아저씨 우는 데 참  안 
됐어." 이런 식으로 한 번 울 때마다 5천 표씩 더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눈물에 대해서 너무나  긍정적이다. 그래서 재판을 받을 때도 희한한 광경이 있
다. 재판 도중에 눈물을 조금 보이는 듯하면 정상을 참작하여 관대하게 봐준다. "기억이 잘 안납
니다" 하는 식으로 버티었다가는 별로 환영을 못 받는다.
  반면에 서양 사람들의  눈물 이미지는 어떠냐 하면 굉장히  부정적이다. 서양 사람들은 눈물은 
곧 수치요,부끄럼이요,남한테 절대 보여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사나이 눈물이라고 하면 "남자
가 오죽하면 울겠느냐"고 안쓰럽게 봐주지만,  서양 사람들은 특히 남자가 운다는 겁쟁이라는 뜻
이다. 재판장에서도 피고가 눈물을 보이면  우리처럼 봐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거꾸로다. 배심원
들은 "음,눈물을 흘리는 걸 보니 죄가 있긴 있는깁다"하고 생각한다.
  헤어진 가족들을 찾아서 만나는 프로그램  같은 걸 보면,한국 사람이 가족을 찾았을 때는 울고
불고 난리인데,해외로 입양한 아이들은 어른이  된 후 고국으로 와서 자기 어머니나 아버지를 찾
았을 때 잘 울지 않는다. 왜냐하면  입양 갔던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서양식 교육을 받아 절대 
눈물을 보이지 말라고 가르침을 받은 탓이다.
  일본 사람들도 눈물을 좀처럼 남에게  보이지 않는다. 연전에 서울시의 어느 지하철 역에서 열
차 사고가 나서 한국에 유학인 일본인 유학생이 숨진 사건이 있었다. 그 어머니가 일본에서 득달
같이 날아왔는데,눈물을 보이기는커녕 사고를  수습하느라 사람들에게 "폐를 끼쳐서 미안합니다"
하더란다. 그리고는 호텔 방에 돌아와서 참았던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몇 년 전에 일본 고베에서 지진이  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런데 국내에 방영된 텔레
비전 뉴스를 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일본 사람들은 참 무섭다.가족들이 죽었는데 우찌 우는 사람이 없노?"
  일본 사람이라고 왜 슬픔을 느끼지 못하겠는가?하지만 일본은 전통적으로 싸우
면서 성장한 민족이다. 일본의 역사에서는 수백 년 동안 무사들이 각 지방을 쥐고 흔들면서 서로 
치고받고 권력을 잡았다 놨다 하며 겁나게  싸웠다.거기서 발달  한 게 남자는 무사 정신,이른바 
사무라이 정신이요,여자는 참을성과 복종이다.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남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사무라이 정신,감정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는 참을성 때문에 눈물에 인색한 것이
다.
  서양 사람들이 눈물에 인색한 이유는 또 다르다.그 사람들은 이별에 굉장히 세련되어 있다. 왜
냐? 이별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서양 사람들은 육식을 하는 민족이다.이 사람들은 초원을 찾아
서 소도 따라다니고 양도 따라 다니는 이동성 민족이다. 그러다 보니까 이별을 겪는 경우가 대단
히 잦고 이별하는  방식도 굉장히 세련되어 있다. 서양 사람들은  자기 부모와 헤어질 때도 뽀뽀 
한 번, 악수 한 번으로 끝이다.
  반면에 우리는 농경 민족이다. 논을 짊어지고 다닐 순 없다. 농경 민족이다 보니까 한 군데 오
래 사는 게 대단한 자랑거리다.국회의원 선거 하면 꼭 안 빠지고 내세우는 경력 1번에 뭐가 들어
가느냐면 어디 어디에서 15년째 거주, 이런 경력이다. 다른 사람과 싸움 붙을 때도 대뜸 이런 으
름장부터 놓는다.
  "내가 이땅에서 15대째로 살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어디서 굴러온기고."
  이렇게 우리는 자기가  한 곳에 오래 살아온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옛날 어르신들 말씀 중에 
이런게 있다.
  "제가 태어난 고장에서 죽을 때까지 십 리 바깥을 다녀 보지 않고 사는 게 복이다."
  요즘 세상에 그럴 수  있을까만서도 제 고향에서 명대로 살다 죽는  건 그만큼 근심 걱정 없이 
살았다는 얘기다. 객지에 나가면 고생이라는 말도 같은 뜻이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희한한 형상이라고들  말하는 민족 대이동, 추석이나 설에 무려 천만 명
이 고향을 찾아 이동하는 풍습도 우리 민족 고유의 독특한 귀소 본능이다. 서울세서 대전까지 10
시간,부산까지 20시간이 걸리는 길도 마다 않고 온 가족이 차를 타고 떠난다. 텔레비젼 뉴스에서 
이 사람들 인터뷰를 해보면 대답이 한결같다. 
  "교통이 막히니까 귀향 길이 어렵지 않습니까?"
  "와요,그래도 가야지요."
  이 '그래도 가야 한다'는 정신은  외국에 이민 간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정인지 모르나 
하여튼 국내에 살 수 없어 이민을 간 사람들인데도 김포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그 시간
부터 돌아올 것을 먼저 생각한다.
  우리나라 이민자들이 특히 외국 현지 문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도 ㅈ바로 그 귀소 본능
에 있다. 독일 같은 나라에서는 저녁 7시쯤이면 거리의 상점들이 대개 문을 닫아 버린다. 그래서 
퇴근 길이면 급히 식품점에 들러 물거을 사기 위해 시간과 전쟁을 벌이기가 일쑤다. 그런데 우리
나라 이민자들이 많은 곳에서는 걱정을 안 한다.
  왜?밤 12시까지 떠억 하니 가게 문을  열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사람들은 저녁이면 집에
서 편히 쉬거나 분데스 리가  축구 경기를 관람하거나 취미 생활을 즐기지만, 우리나라 이민자들
은 그야말로 개미처럼 일한다. 그러다 보니 현지 사람들이나 문화와 잘 어울리지 못해서 이민 생
활 10년이 다 되어도 여전히 이방인 취급을 당한다.
  그 이유는 뭘까? 바로 언젠가 고국에  돌아가야 한다는 막역한 본능이다. 비록 지금은 이민 와
서 남의 국적이 된 몸이지만,그리고 언제 돌아간다는 기약도 전혀 없지만,언게고 나는 고국에 돌
아가야 않겠나 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 것이다. 기왕 고국에 돌아갈 거면 어떻게 돌아
가야 한다?금의환향해야 한다.  지 집 이민 갔다가 모두 다  까먹고 망해서 돌아왔다, 이 소리는 
도저히 못 듣는다. 최소한 이민을 떠나기 전보다는 나아졌다는 소릴 들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나
라 이민자들은 쉴새없이 바쁘게 일하는  것이다. 오로지 언제 돌아갈지 모른다는 막연한 본능 하
나로.
  눈물의 양이 많은 탓에 눈물의 맛도 달라졌다
  이렇게 정착성 민족에다가 어디를 가도  고향으로 돌아오는 본능을 가진 민족이다 보니까 우리
는 이별에 익숙하지  않고,서양 사람들은 이동을 너무 자조 하다  보니 이별에 대범해진 것이다. 
그래서 아들은 군대에 보내는 모습에서  미국 가정과 한국 가정은 천지차이다. 미국 가정은 아들
이 군대 갈 때"마마,바이바이","아들아,행운을  빈다.잘 갔다와라."하면서 대문 앞에서 작별하곤 
끝이다.
  우린 어떻게 할까?  집 앞에서 절대 안 헤어진다. 온  가족이 논산 훈련소 앞에까지 따라간다. 
어머니는 아들을 붙잡고 눈물을 찔끔거리기 시작한다.
  "시간 됐다,들어가라... 훌쩍훌쩍...드가라, 그냥 드가그라,훌쩍."
  이러다가 진짜 들어갈 시간이 되면 울고불고 난리가 난다. 아버지는 부끄럽다고 저쪽으로 도망
가서 담배만 피우고 있다. 그리고 며칠 지나면 옷을 담은 소포가 날아온다. 그 소포를 딱 받자마
다 어머니는 억 하고 기절해 버린다. 이렇게 한국 사람들은 이별에 익숙하지 않고,서양 사람들은 
이별에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까 결국 생리적인 작용까지도 달라져 버렸다.
  생리적인 작용도 서양 사람하고 한국  사람은 차이가 난다. 서양 사람들은 눈물을 아무리 심하
게 흘러도 앞쪽으로 잘 안 흘린다. 옆으로 찔끔찔끔 흘리는데 그 눈물의 양도 굉장히 적다. 더구
나 흐르기는 흐르는데  이놈이 툭툭툭 떨어지는 게 아니고 짜작짜작  묻듯이 나와서 추풍령 고개
(얼굴 안면의 광대뼈)에 턱걸려 있다. 요놈을 어떻게 닦아 내는가 하니 서양 사람들은 손수 건으
로 찍어서 콕콕콕 닦아 낸다. 이렇게 양이 굉장히 적다. 이별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우선 눈물의 양부터  다르다. 눈을 두 번만 깜박이면 주루룩 떨어진다. 눈
물을 펑펑 흘린다는 표현을 쓸 정도다. 마치 물보가 터지듯이 펑펑 흘리는 거다. 또 한국 사람들
은 울었다 하면 눈물만 안 흘린다. 목 윗부분에서 귓구멍 두 개 빼고 벌어진 데로는 모조리 흘린
다. 눈물도 많을뿐더러 또 거기다 코는  코대로 허연 영감 할멈 둘이서 나왔다 들어갔다하고, 침
은 침대로 또 질질질 흘리게 마련이다. 얼굴 전체의 분비물 자체가 너무너무 많다.
  그러니 서양에서 들어온  손수건 가지고는 수습이 안된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무얼 가지고 
닦는가 하니, 한복의 옷자락을 가지고 닦았다.  이 소매를 반으로 딱 나워서 위로는 눈물을 훔쳐
서 닦아 낸다.밑에는 콧물이 아니라 보다 깨끗한 것을 모은다. 바로 침이다. 그럼 쿳물은 어떻게 
하는가? 콧물은 저  멀리 떨어진 옷고름을 가지고 닦는다. 이렇게  눈문을 닦는 부위까지도 전부 
따로 발달해 있다.
  재미난 얘기가 하나 있다. 옛날에 이산가족  찾기 방송을 할 때 보통 하루분 방송을 보고 한국 
사람들이 흘린 눈물의 양을 어느 짓궂은 사람이 계산을 해봤다. 4톤 트럭 100대분에 달하는 엄청
난 양의 눈물을 흘리는 민족이더란다.
  그러다 보니까 재미난 것도 있다. 눈물의 맛조차도 한국 사람하고 서양 사람이 다르다.서양 사
람이 흘린 눈물은  맛을 보니까 소금기가 없어 조금  냉냉하다. 실제로 그렇다.다음,한국 사람의 
눈물 맛을 본다. 우리 한국 사람 눈물을  받을 때는 직접 눈에서 못 받는다. 얼굴 전체에서 나오
기 때문에 턱 아래에서 긁어서 맛을 본다.
  우리 눈물의 맛은 어떨까? 짜다고? 아니다.  간이 딱 맞다. 심지어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음식 
맛을 보는 데도 눈물 맛을 기준으로 간을 맞추었다.
  옛날에는 집안 식구들이 대가족이어서 주로 큰  솥에 밥을 하고 작은 솥에 국을 끓이는데 전부 
10분 이상이다. 밥을 하는데 무엇을 기준으로 맞추냐 하면 바로 이 눈물 맛으로 맞춘다.
  어느 여자 대학에서 강의하던 중에 이 이야기를 하니까 여학생 하나가 질문을 한다.
  "선생님,눈물이 그렇게 시시때때로 나와요?"
  어떻게 눈물을 흘리고  싶을 때 마음대로 나오겠는가? 요즘처럼  평생 가스불이나 전기 밥솥만 
써가지고는 모른다. 우리 옛날 아궁이에 불을 때봐야 무슨 말인지 알게 된다.
  우리 어머니들은 부뚜막에다 한쪽 발을 올리고  숱뚜껑 문을 열고 국물 맛을 본다. 맛볼 때 연
기와 김이 어디로 들어갈까? 바로 눈으로  들어간다. 눈을 뜨고는 국물 맛을 못 본다. 그래서 우
리 어머니들이 국물  맛을 볼 때는 항상 이런 말씀을  하신다. "어휴,매워라" 이렇게 어머니들은 
짠맛을 보면서도 매운맛을 함께 보셨다.
  우리 삶 속에 파고든 우리 문화
  3에 완전히 미친 민족
  음식 문화와 더불어 우리 민족에게 참으로  끈질긴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숫자 문화다. 1부
터 10까지의 숫자들 중에서 한국 사람이 짝수를 좋아할까,홀수를 좋아할까?
  바로 홀수이다. 우리 민족은 홀수에 미친 민족이다. 우리 조상들은 1,3,5,7,9의 홀수는 만물을 
생장시키는 생수라 했고,2,4,6,8,10의 짝수는 만물이  결실을 맺게 하는 성수라 했다. 우리는 만
물을 생장시키는 홀수를 좋아한다.
  우리 민족은 무엇이든 짝이 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뭐든지 하나 남는 문
화를 좋아한다. 이  문화를 '덤문화'라고도 부른다. 우리는 이  덤 문화를 굉장히 좋아한다.보통 
슈퍼마켓에 들어가서 장을 볼 때 쉽게 손이  안 가는 물건도 바구니 하나 덤으로 얹어 준다고 하
면 너도나도 산다. 콩나물도 묶음 단위로 묶어서 500원 하면 잘 사지 않는다. 한 움큼 듬뿍 얹어 
주면 산다.
  우리의 재래 시장이  그 많은 백화점,슈퍼마켓에다 할인마트까지 별별  게 다 있는데도 아직도 
살아남은 원인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덤 문화다. 서양 사람들처럼 덤 하나 없이 물건을 팔면 아무
리 세일을 하고 싸게 판다 해도 깍쟁이 소릴 듣는다.
  시장에 다녀온 우리 어머니들이 이런 말씀을 하신다.
  "그 집은 쌀되가 좋다."
  이게 무슨 얘긴가. 쌀이 되에 담고 위를 싹 깍은 다음에 한 움큼 더 주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들이 자식이 결혼하자마자 요구하는 것에 있다. 뭘까? 바로 애 낳으라는 것
이다. 결혼이란 짝을 맞추는 행위다.  그러데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낳으라는 것은 짝수를 버리고 
홀수를 빨리 만들라는 얘기다. 짝이 뭐든지 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불안하게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날짜도 홀수 날짜를 좋아한다. 홀수 두  개 겹치게 되면 전부 잔칫날이
다.
  1월1일은 모두 다 알고 있듯이 설이다.
  3월3일은 삼짇날이다.
  삼짇날이 뭐하는 날인가?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날이기도 하지만, 그 유명한 간장 담그는 
날이다.
  간장은 우리 민족하고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옛날에 쌀이 다 떨어진 가난한 집이라
도 끝까지 남아 있는 게 있는데 그게 바로 간장이다. 간장은 한국 사람이 생명줄이다. 그래서 쌀
이 다 떨어졌을 때 이 간장을 찬물에  한 숟갈 섞어서 휘 마시면서 배고픔을 이기며 그런 시절도 
있었다.
  게다가 간장에는 간장  고유의  음식신이 있다. 지구상에 음식에 신이 깃들었다고 믿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간장신,칠성님,철륭신 등등이 그것이다.  다른 데 빌면 잘 효과가 없는데 최
종적으로 비는 데가 있다. 돼지머리를  요구하거나 떡을 요구하거나 술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
저 정성들여 뜬 찬물 한 그릇을 간장독 위에 탁 올려놓고 비는 것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우얗든동 아들놈 4년제 대학 붙게만 해주이소."
  이렇게 정성을 들여 빌면 무조건 합격이다.효력이 보통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간장을 담그는 일 자체가 아주 중요한 일이었고, 간장에 대한 터부도 굉장히 심
했다. 간장을 담을 독을 구할 때조차도 옹기 장수의 나이가 홀수인 사람 것을 구했다.
  장독에 왼새끼를 거는  것은 물론이고,간장을 담그고 장 위에 띄우는  것까지도 따로 있다. 고
추,숯, 같은 거다. 처음엔 비위생적이라고 취급하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까 과학적인 근거가 있었
다.  간장을 잘 보존하는 항균,항취 작용을 바로 고추하고 숯이 해내는 것이다. 요즘에는 현미경 
따위를 가지고 과학적으로 규명을 하니까  겨우 알아낼동 말동 한데,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알고 
고추하고 숯을 띄웠을까? 이런 게 우리 문화의 비밀이다.
  그 다음에 간장독에 붙이는 것도 있다. 하얀 종이를 버선 모양으로 오려서 거꾸로 떡하니 붙여 
놓는다. 이게 뭐냐면 우리 사람들로  치자면 "경고,접근하지 마시오"표시다. 서양 사람들이 인간
의 접근을 막기  위해 해골바가지를 그려 놓는 것과 이치다.  벌레들한테는 제일 겁나는 게 발이
다. 밟혀 죽으니까. 그래서 발 모양을 거꾸로 만들어서 장독에 붙여 놓는다. 거기에다 잡귀,잡신 
침범하지 말라고 장독간  옆에 심는 것도 있다. 맨드라미,봉숭아와  같은 빨간 꽃들이다. 이만큼 
소중한 간장이기 때문에 재수 좋은 날인 3월3일날 간장을 담근다.
  또 5월5일은 단오날이다.
  단오는 뭐하는 날인가. 바로 여자들의  날이다. 조선 시대에 여자들이 다리를 내보인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날만큼은 그네를 뛰면서 다리를 맘껏 내보여도 괜찮다. 그
네를 뛰면서 여자들의 음기, 생산력을 들판에다  막 뿌려 주는 것이다. 그래서 이 날에는 여자들 
오줌만 따로 모아서 농작물에 뿌려 주기도 한다. 풍년을 바라는 마음에서다.
  7월7일은 또 뭔가?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칠석날만이 아니다. 이 날은 우리 민족 고유의 사랑의 날이다. 말하자면 
발렌타인 데이,화이트 데이다. 우리 조상들에게  무슨 그런 날이 있었다니? 의아하겠지만 분명히 
있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저 총각이 마음에 든다 싶으면 요즘같이 초콜릿이나 사탕을 건네주는 것이 
아니고 찰떡을 하나 갖다 주었다.  그 찰떡을 뭐라고 부르느냐면 걸교하고 한다. 다리를 놓아 준
다는 뜻이다. 찰떡을 건네주면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대뜸 안다. 우리가 몰라서 그
렇지 우리 문화에도 있을 건 다 있었다.
  그러면 9월9일은 뭔가?
  9라는 숫자를 알아보기 전에 먼저 알아볼 게 있다.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숫자가 뭘까? 1부터 
10까지의 숫자 중에서 한국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숫자는 뭘까?우선 짝수는 후보에서 빼도 되겠
다. 그렇다면 9일까?9는 화투 치는 사람들이 좋아한다. 7이라고?럭키 세븐은 서양 사람들의 이야
기다.
  한국 사람들은 3을 좋아한다. 아니,이 3이란 숫자에 완전히 미친 민족이다.
  우리 민족은 좋아하는 딸도 몇째 딸인가? 셋째 딸이다. 아들 삼형제가 살았는데 큰아들은 죽일 
놈이고 둘째 아들은 나쁜 놈인데 누가 효도를 하고 잘 살더라? 셋째 아들이 부모님 모시고 잘 살
더라, 반찬도 최소한 몇 가지?세 가지를 먹고 산다. 싸움을 해도 우리는 몇 판을 붙고 결정하나?
삼세판! 세 판 붙고 결정한다. 화장실에 가서 노크할 때 몇 번 두들기나?세 번을 뱉는다. 어릴 
적 불알 친구들은 몇 명? 삼총사. 이름도 대개 세 자로 짓는다. 김,준,호.
  또 우리는  10시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뚜-뚜-뚜 한다. 반면 중국은 어떻게 하느냐면  10시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뚜-뚜-뚜-뚜-뚜 한다. 민족마다 이런 것이 전부 다르다. 그만큼 3이란 숫자
를 좋아하기 때문에 우리 민족은 민족적으로 큰일을 벌인다 싶으면 언제 하나?3월 1일,몇 명이
서?33인이,3월1일 33인이 서로 맞춰 가지고 일을 벌인다.
  옛날 아버지 어머니 세대들은 형제,자매들이 굉장히 많아서. 보통 두 살 터울로 낳는데, 워낙 
낳다 보니 생일이 좋은 날일 수 만은 없었다. 그래서 심한 흉년에 태어나 젖줄이라도 제대로 못 
먹고 크겠다 싶으면 나중에라도 재수가 좋으라고 이름에 삼자를 붙인다. 우리네 삶에서 가장 크
게 생각하는 것이 태어난 시다. 이 시를 잘 타고 나야 앞으로의 삶이 평탄한다.
  그러나 태어나는 모든 자식이 시를 잘 타고난다는 게 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혹시나 시
를 잘못 타고나서 명줄이 짧다든지 살을 짊어지고 태어났다 싶으면 거기에 대한 막음 장치이자 
보상 숫자로 이름에 삼자를 집어넣었다. 삼돌이,삼식이,삼순이,삼월이,춘삼이... 심지어 우리나
라 대통령 이름에도 삼자가 들어간다.
  장단도 리듬도 뭘 좋아하느냐면 3분박짜를 굉장히 좋아한다. 세 박자,그래서 굿거리 장단이다. 
친숙하게 듣는 소리 중에서 세 박자짜리가 많다.
  자진모리라고 해서 한국 사람이 제일 신명을 내고 제일 좋아하는 장단이 바로 이 3분박으로 된 
4박을 잦게 몰아가는 장단이다. 무가에서는 덩더꿍이라고 부른다. 자진모리를 더 빨리 하면 휘몰
아간다고하여 휘모리라고 부르는 장단이 된다. 자진모리 장단은 빠르고 활기차면서도 구성진 특
징이 있다.
  아예 박자도 3박이요 분박도 3분박인 세마치 장단은 3박의 극치다. 그래서 민족의 노래  아리
랑 은 3박에 맞추어야 제 맛을 냈다.
  이렇게 재수좋고 친근한 3이라는 숫자를 세 번 겹친 숫자가 바로 9라는숫자다. 양기가 가장 충
천하는 날인 9월9일을 뭐라고 부르냐면 중양절,또는 중구절이라고 한다.
  얼마나 재수가 좋은 날이냐 하면 이 날 결혼식을 올리면 무조건 잘 살게 되어 있다. 이 날 이
사를 가면 무조건 부자가 된다. 앓던 이를 뽑아도 이 날 뽑아야 뒤탈이 없다.
  한국 사람의 의식 구조에서 조상들 제사 날짜를 모른다 하면 이것은 불효막심이다. 혹은 점을 
쳐보니 집안에 제사를 못 받아 먹는 조상이 하나 있다. 보통 조상으로 인해 생긴 탈을  산바람 
이라 하는데,이건 큰일이다. 그래서 이런 조상들의 제사를 지내주는 날이 생겼는데, 이게 바로 9
월9일이다. 이 날만큼은 기제사 모르는 조상들의 제사를 지내 주면 후손한테도 좋고 죽은 조상한
테도 좋다.
  자, 이번에는 부정적인 숫자를 보자. 우리가 상대적으로 싫어하는 숫자는 뭘까?
  우선 짝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2,4,6,8이 짝수인데 그중에서 6은 좋아한다. 3이 두 번 겹
쳤다 해서 좋아한다. 8은 석가모니가 4월 초파일날 태어났다 해서 좋아한다. 2하고 4는 싫어하는 
숫자다. 4를 싫어하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2를 싫어하는 것은 이해가 안간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2라는 숫자도 싫어한다. 음력 2월에는 죽어도 결혼을 않는다. 2월은 바람
달이라고 해서 영등할매라고 하는 바람신이 심술을 부른다. 그래서 음력 2월에는 결혼을 하지 않
는다.
  아파트 중에서 죽어도 안 팔리는 것,404호. 한500만 원 싸게 내놓아야 겨우 팔릴까 말까다. 거
기다 4동의 404호라면 처음부터 팔 생각은 말아야 한다. 병원 같은 곳에는 아예 4층이 없다. 빌
딩에도 4층은 없고 3층 다음에 직접 5층이 되거나 4층에 에프(F)라고 표시한다. 이렇게 우리의 
숫자 문화에서는 3을 미치도록 좋아하고 2.4를 무척 싫어한다.
  동남슈퍼가 그토록 많은 이유
  그 다음에 우리의 방향 문화가 또 얼마나 희한한지 모른다.동서남북 방향 중에서 한국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방향은 동쪽과 남쪽이다.
  집을 짓더라도 어느 방향으로? 동쪽,남쪽으로 짓는다. 그러다 보니까 한국에서 슈퍼마켓 이름 
중에서 제일 많은 게 동남슈퍼다. 동네마다 가면 동남슈퍼가 있다. 사람 이름에도 동과 남은 많
이 쓴다. 동철이,동준이,성남이,경남이 등등 동과 남은 많다. 그러나 동식이,남식이는 많아도 서
식이나 북식이나 같은 이름은 없다.
  반면에 우리 민족이 상대적으로 싫어하는 방향은 서쪽과 북쪽이다. 왜? 살아서는 갈 수 없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서방정토, 살아서 못 가는 곳이다. 북망산천도 살아서 못 가는 곳이다, 북쪽
과 서쪽이 합쳐진 북서쪽은 무시무시한 곳이다. 차가운 겨울 바람이 몰아쳐 오는 곳이다.
  이렇게 우리가 싫어하는 서쪽과 북쪽을 서양 사람들은 또 굉장히 좋아한다. 오죽하면 하공사 
이름이 노스웨스트다. 서늘해지기도 하고 뭔가 언짢다. 이렇게 서쪽과 북쪽을 우리는 상대적으로 
싫어한다.
  이 방향은 또 색깔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동서남북 사방에는 각기 색깔들이 부여되어 있었다. 
동쪽과 파란색,서쪽과 흰색,남쪽과 붉은색, 북쪽과 검은색이었다. 고구려 고분에는 동서남북 사
방을 상징하는 동물들의 벽화가 있는데, 동쪽에는 청룡( 푸른 용),서쪽에는 백호(흰 호랑이),남
쪽에는 주작(붉은 새),북쪽엔느 현무(검은 거북)였다.좌청룡,우백호란 말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
다.
  또한 우리네 인식 체계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다섯 방위의 신들이 보호를 해주고 있다
고 믿었다. 이 신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색깔을 지니고 있는데, 동쪽은 청제장군,남쪽은 적제장
군,서쪽은 백제장군,북쪽은 흑제장군,중앙은 황제장군이다.
  이러한 색깔들은 신들의 색깔이므로 신탁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래서 풍물패들이 풍물을 두들
길 때 곡 오방의 색띠를 몸에 둘러, 인간의 몸이지만 신탁을 받았음을 상징했다. 성황당 당산 나
무는 항상 이 신탁의 색띠를 허리띠로 두르고 있었고,관청이나 절에 단청을 입히는 것도 이곳이 
신탁을 받은 집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무녀가 굿을 할 때 울긋불긋한 의상을 입다든지,새해에 아이들에게도 때때옷을 입히는 것도 
 이 아이는 신의 아이이기 때문에 잡귀 잡신은 범하지 말라 는 경고성의 음미를 담고 있다.이렇
게 강한 신탁의 색깔들을 여염집에서 입는다는 것은 상상이 안 된다.
  그러나 산의 색깔이라 해서 꼭 우대받았던 것은 아니다. 색깔중에 우더머리인 중앙의 황제 장
군은 우물굿을 할 때는 박대를 받는다.
  동방에는 청제용왕
  남장에는 적제용왕
  서방에는 백제용왕
  북방에는 흑제용왕
  여기서 황제 용왕은 슬쩍 빼버린다. 아니, 아예 황제 용왕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우
물에 황제 용왕이 존재한다면 물이 흙탕물이 되기 때문이다.
  이승과 저승에서 저승의 색깔은 꼭 서방의 흰색과 북방의 흑색이었다. 누가 저승 사자를 보았
다는 사람은 없지만, 우리는 저승 사자가 꼭 검정 도포를 입고 나타난다는 것은 알고 있으며,하
늘의 선녀는 하얀 명주옷을 입고 나타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당연히 이승의 색깔인 동방과 청색과 남방의 적색을 좋아했다. 이것은 일반 
백성들만이 아니라 왕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궁에서 임금은 중앙을 의미하는 황색 용포를 입고,
좌측으로는 동쪽을 의미하는 청색 옷을 입은 대신이 자리하고,우측으로는 적색 옷을 입은 대신들
이 자리했다. 이것을 보면 우리 임금들도 정사를 베풀 때는 꼭 방향을 동남방으로 앉던 것으로 
짐작된다.
  집을 짓더라도 동남향이고,죽어서 묻히는 방향도 양지바른 동남향이다. 그래서 노래도 동남방 
일색이다.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동창이 밝았는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고향이 남쪽이랬지...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 열차에...

  남쪽 나라 십자성은 어머니 얼굴...
  지신을 밝을 때 풀이하는 순서도 동-남-서-북-중앙이고, 판소리를 하는 소리꾼들이 제일 꺼리
는 극장도 서쪽과 북쪽으로 향한 극장이다. 이런 극장에서는 목이 안 나온다고 한다. 이렇게 보
면 우리 민족은 여러 가지 면에서 동남 친화 민족이다.
  15-45도의 미학
  방향만이 아니라 각도도 민족마다 좋아하는 각도가 저마다 다 다르다. 문화를 연구하다 보면 
참 별별 것까지 다 접근해서 살펴보게 된다.
  서양 사람들이 좋아하는 각도는 뽀족한 각도다. 집을 짓더라도 이 사람들은 이단 지붕을 뽀족
하게 만들어야 속이 시원하다.서양의 중세 성당이 대표적인 예다.
  중세의 서양에서는 성당 하나를 몇백 년씩 지었다. 워낙 건물의 덩치가 커서 그런가 보다 하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일단 본채가 완성되면 예배도 드리고 볼일도 본다. 건물을 정상적으로 
사용하는 거다. 그런데 서양 사람들은 그것으로 성당을 다 지었다고 하지 않는다. 지붕이 아직도 
공사중이기 때문이다. 지붕을 아주 뽀족하게 해서 첨답을 지어야 하는 것이다. 이 공사가 또 수
십 년씩 간다.
   이렇게 뽀족한 걸 좋아하는 서양 사람들은 옷의 어깨에 흘러 내리는 곡선을 그냥 두고 못 본
다. 그래서 요것을 죽이기 위해 여기에 억지로 심을 집어넣는다. 양복이 바로 그렇다. 어깨에 뽀
족한 각을 만들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민족은 어떤 각도를 좋아하느냐. 우리 민족은 15-45도, 즉 둥글고 완만한 각도를 
좋아한다. 태어나는 것도 어머니의 배의 각도인 15-45도, 우리 옛날 집의 지붕 모양도 15-45도,
바문을 탁 열면 앞산 모양이 15-45도,빨래줄도 15-45도로 늘어져 있는가 하면, 우리 어머니가 붕
긋하게 담아주는 밥도 15-45도,옷을 하나 만들더라도 둥근 선을 한껏 살린 15-45도다.
  우리의 국토에는 둥글고 완만한 구릉들이 많다. 북한 지역과 태백산맥의 산중을 제외하고는 전 
국토가 다 둥글다. 경부선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 알 수 있다. 언덕인지 산인지 모를 둥글둥글 
한 구릉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중국의 산들은 그렇지 않다. 중국 산악 지대의 산들은 종 모양으로 불룩하게 솟아 있다. 서양
의 산들은 더 뽀족하다. 유럽의 알프스도 그렇고 미국의 로키 산맥도 그렇다. 산들이 모두 삼각
형 모양으로 날카롭게 솟아 있다.
  우리는 삼각형처럼 뽀족한 산을 흉산이라하여 좋아하지 않는다. 뽀족한 산은 대개 메마른 산이
라서 숲이나 나무들이 별로 없다. 우리가 좋아하는 산, 우리 국토에 수없이 널려 잇는 산은 
15-45도,둥글고 완만한 각도를 자랑한다.
  이렇게 우리가 좋아하는 15-45도 각도는 아예 우리의 생활 속에 잡혀 있다. 우리딸이 사윗감을 
데려온다. 사윗감으로 삐쩍 마른 사람을 데려오면 어른들은 별로 안 좋아한다. 사윗감은 어떤 사
람을 좋아하나?
  둥실하게 살집이 잡히고 힘이 넘치는 15-45도 각돌르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 여자들도 며느리
감은 15-45도,그래서 달덩이 같은 얼굴,부잣집 맏며느리감인 얼굴을 반긴다.
  이런 것이 완전히 체질화되어 있다. 얼마나 재미있는지 한 번보자. 한국 여자들은 똑바로 보면 
서양 사람들과 달리 신체구조가 일단 짧기 때문에 별볼일없는데,15-45도로 몸을 살짝 돌리면 아
주 예쁘다. 그래서 우리는 춤을 춘다든지 할 때 각도를 이쪽저쪽으로 살짝살짝 돌리면서 춘다. 
장구 춤을 출 때 보면은 알수 있다.
  그러던 습관이 요즘도 여전히 남아 있다. 20-30대 정도 사람들은 사진 찍는다고 카메라를 갖다 
대면 그래도 좀 세련되었다고 온갖 포즈를 취한다. 그런데 40대 이상 된 여남은 명을 어디 저 관
광지에 데려가서 계단에 세우고 사진을 찍는다고 카메라를 갖다 대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
동으로 몸을 살짝 돌려 15-45도 자세로 선다.
  전 세계 대통령들 가운데서 이런 각도를 사진 찍는 대통령은 우리나라 대통령밖에 없을 것이
다. 이 각도를 너무너무 좋아하다 보니까 우리 민족은 죽어서 묻히는 무덤의 각도까지도 15-45도
다.
  기왕에 각도 이야기가 나왔으니 우리 문화를 보는 각도도 이야기해야겠다. 우리 문화를 관찰할 
때는 여러 가지 다각도의 사각으로 살펴야 한다.
  이제 절에 가서 기와가 걸쳐져 있는 모양을 딱 보고도   아!15도-45도,진짜 둥글고 완만하구
나 하는 걸 느낄 줄 알아야 한다. 경주에 있는 신라 옛 고분들을 보고도  아,15도-45도,정말 선
이 곱구나! 하고 볼 줄 알아야 한다.
  이렇게 다각적인 시각으로 우리 문화를 살펴보고, 절대 우리 문화를 우습게 보지 말기를 바란
다.
  우리의 음악도 이 각도와 무관하지 않다. 서양 음악은 날카롭고 예리한 각도로 슬픔을 표현한
다. 음의 높낮이가 극적으로 변화하면서 슬픈 기분을 나타내는 거다. 실제로 그런 음악도 슬프긴 
하다. 그러나 뭔가 설익은 냄새가 난다.
  왜일까? 슬픔을 너무 직선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서양 음악에는 슬픔을 표현하는 형식이 
아예 자리잡혀 있다. 단조 음악이 그것이다. 단조 화음을 들으면 그 자체로 슬프고 우울한 기분
이 든다.
  이렇게 형식이 발달해 있으면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있다. 형식에 얽매이게 되는 탓이
다. 슬픈 음악은 슬픈 형식으로 표현해야 하고, 기쁜 음악은 기쁜 형식으로 표현해야 한다. 슬픔 
장송곡 형식으로 표현하고,기쁨은 행진곡 형식으로 표현한다. 이렇게 직설적인 게 서양 음악이
다.
  하지만 우리 음악은 다르다. 우리 음악에도 슬픔을 나타내는 형식이 있지만, 거기에 구애받지 
않는다. 서양 사람들은 우리에게 비통한 마음을 표현하는 데도 어쩌면 그렇게도 둥글고 완만한 
각도의 음들을 쓰느냐고 놀린다.
  우리의 슬픈 음악,구성진 곡조는 음의 변화 폭이 서양 음악처럼 크지 않으면서도 슬픔을 잘 나
타낸다. 서양 사람들처럼 슬픈 화음을 구사하지 않으면서도 우장육부가 찢어지는 듯한 슬픔을 자
아낸다.
  이렇게 말하면 생각나는 게 있다. 그게 뭘까?
  앞에서 말한 익은 맛과 삭은 맛이다. 우리 음악은 푹푹 익히고 삭혀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슬픔도 기쁨도 익도 삭아서 나온다. 슬픔을 슬픈 가락으로,기쁨을 기쁜 가락으로 서양 사람들처
럼 직선적으로 표현 하는 것이아니라 한껏 우회를 시키고 빙빙 돌리고 해서 15-45도를 찾아서 표
현한다.
  서양 음악의 표현 형태는 논리적이고 계산적이다. 한국 음악은 산과 골이 적당하게 어울려 은
근한 편안함을 주는 표현 형태를 좋아하며,일본의 음악 형태는 약간 가벼운 듯하면서 골만 파는 
효과를 좋아하고,중국의 음악 형태는 현란한 음악구성으로 그 꾸밈음이 대단하다.
  이렇게 독특하면서도 찬란한 전통을 지닌 우리 문화,우리 음악이 금세기에 들어 최대의 수난을 
맞은 적이 있었다. 바로 일제 치하에서의 일이다. 1910년에 일제가 강제 합병을 해가지고 저지른 
일은 모두들 알고 있지만, 우리 음악에도 커다란 금이 갔다는 사실은 모르는 분들이 많다.
  우리 음악에 칼을 댄 사람들이  일본 사람이다. 잘못된 것을 째서 고치는 게 칼인데,멀쩡한 것
에 칼을 됐으니 무사할 리가 없다. 1919년까지 일본 사람들의 통치 방식은 이랬다.
  첫째, 조센징은 무조건 두들겨패야 말을 듣는다.
  둘째, 조센징한테 일을 시킬 때는 돈내기로 내줘야 한다. 한꺼번에 떼줘야 한다는 얘기다. 일
을 떼줘야 빨리 하는 것을 알고 무자비하게 통치를 한 것이다.
  이러다가 1919년도에 3 1만세 운동이 일어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약속한 것도 없었는데 
33명의 민족 대표자들이 종로의 한 음식점에서 독립 선언서를 읽고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른 것이 
순식간에 전국 방방곡으로 퍼져 나갔다. 그렇다고 무기들고 일제와 맞서 싸운 것도 아니다. 그냥 
두 손을 쳐들고 만세를 불렀다.
  우리 민족을 바보로 알았던 일제는 엄청나게 놀랐다. 조선 사람인 남인,북인,노론,소론으로 갈
려 싸움만 하는 그런 민족인줄 알았는데 너무 단결을 잘한다. 도대체 저 단결력의 원인은 뭘까? 
일제는 고민한다.
  그래서 일본의 학자들이 3대 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토 마코토와 같이 들어와서 조선 민족에 
대해 연구를 시작한다. 이렇게 해서 알아낸 것이 무엇이냐?
   각하,조선 사람이노 와 이렇게 단결을 잘하는지 알아내었스므니다. 
  바로 무엇보다도 조선 사람은 겁이 없는 민족이다. 우리 민족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다른 나
라 사람들을 못살게 군 역사가 한 번도 없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싸움을 하면서도 남을 절대로 공격을 못하는 민족이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남을 공격할 때도 자기가 먼저 학대를 당하는 자학성 공격형 심리라는 게 있다. 주먹을 움켜 쥐
고 싸울 때도 우리는 절대 먼저 치지 않는다. 주먹을 쥐고 우선 선전포고부터 하는 것이다.
   때려 봐라,때려 봐라! 
  상대방이 먼저 때리면 그제서야 악이 받쳐 싸우는게 우리 민족이다. 남을 먼저 공격하는 게 윤
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먼저 맞아야만 싸우는 거다. 한 대 먼저 맞았으니까 신
체적으로는 손해를 볼지 모르지만 싸울 명분이 있어야 싸운다는 군자의 자세다. 정당 방위는 해
도 공격 행위는 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부부 싸움을 할 때 물리적으로 보면 남자가 힘이 세지만 실제로 싸움에서 주로 누가 이기는가?
여자들이 거의 최후의 승자가 된다. 한국 여자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가슴에 핵폭탄을 
하나씩 달고 나온다. 싸움이 무르익을 만하면 희한한 소리를 던진다.
   쥑이라!자,쥑이라, 마!니 새끼하고 같이 쥑이라! 
  3 1 만세 운동의 힘은 바로 이것이었다. 일제의 조선총독부에서 생각하기로는 발포 명령을 내
려서 몇 명이 피를 흘리고 쓰러지면 나머지는 겁이나서 도망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죽이라며 
만세를 더 부르는 것이었다. 사실 싸움 잘하는 사람보다 이런 사람과 싸우기가 더 어렵다.
  3  1 만세 운동에서 우리 민족의 겁 없음에 겁을 집어먹은 일제는 통치 방침을 바꾸기에 이른
다.
   야, 이 조선 사람들은 달래야 되겠더라. 
  그래서 일제는 조선 사람을 달래기 위해 정책적으로 아주 고등 술책을 쓴다. 이것이 이른바 무
단 통치에서 문화 통치로 바뀌게 된 계기다. 이제부터는 문화적인 수단을 동원해서 통치하겠다는 
거다.
  우선 그 화투라는 유명한 것을 가지고 온다.  그리고 이것을 마구 퍼뜨린다. 조선 땅에다가 퍼
뜨려서 조선 사람을 분열시키려는 의도다.
  한국 사람들이 비행기 안에서도 하투 놀이를 한다고 해서 화제 아닌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조금만 가방 안에 넣어 가지고 다녀야 하는 중국의 마작보다도 작고 서양의 카드보다도 작아서 
하투는 손바닥 안에 간단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다. 따라서 비행기 좌석 탁자처럼 가로 세로 한 
뼘 크기의 공간만 가지고도 한판 벌일 수 있는 화투다.
  화투를 민속 놀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그건 아니다. 화투는 원래 포르투칼 상인들
이 카르타라는 일종의 딱지 놀이를 일본이 전래한 데서 유래했다. 일본 사람들은 그것을 개조해
서 하나후다,즉 꽃딱지라는 것을 만들었는데,그걸 조선에 퍼뜨린 거다.
  일년 열두 달을 상징하는 꽃들을 그려 넣어 만든 것까지는 좋았는데,12월의 비 그림에 일본식 
복장이 들어간 것이나,3월4월을 상징하는 꽃으로 개나리나 진달래가 아닌 벚꽃,싸리 등이 그려진 
걸 보면 일본 냄새가 풀풀 풍긴다.
  우리나라 노름꾼들이 이 화투를 이용하여 새롭게 만든 놀이가 바로 고스톱이다. 서양의 카드 
게임이나 중국의 마작과는 달리 고스톱은 길어야 5분이면 한 판이 끝나는 초고속 속전속결형 도
박이다. 이 점부터가 둥글고 완만한 15-45도를 좋아하는 우리 민족과는 영 닮지 않았다. 아무리 
도박이라 해도 이것저것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게 마련인데, 고스톱은 과정보다는 빨리 승부를 
보자는 식의 전형적인 노름 형태다.
  고스톱은 사회학적으로 분석을 해보면 인간 사회에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사회 현상의 병폐 중 상당수가 고스톱판과 똑같다.
  첫 번째, 가만히 놀고 광 팔아먹는 인간들이 그렇다. 박이 터져라고 겨우 3점 나가지고 600원 
거둬들이는데, 자기는 목 좋은데 앉아서 쌍피 두 개하고 광 하나 들었다고 1,200원 딱 받고 앉아 
있다 이 말이다.
  또 문제가 뭐냐. 때린 때 똑 때리자, 피박 씌우기. 쓰러져 가는 사람을 도와 줘도 뭐할 텐데 
아예 박살을 내버린다. 이렇게 일제는 화투를 도입해서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신과 전통을 갉아
먹었다.
  그 다음 조선 사람이 단결을 잘하는 두 번째 이유가 뭐냐?
  바로 우리 음악이다. 조선 사람들은 북, 장구, 징 ,꽹과리,이것들을 치면 안되겠더라. 이상하
게 이것만 쳤다 하면 너무너무 단결을 잘하더라. 그래서 삼국 시대부터 지금까지 데모만 했다 하
면 뭐 들로 나오나? 북,장구,꽹과리,징 이런것들을 들고 나온다.
  그래서 이것을 없애야 한다. 그런데 함부로 손을 댔다가 조선 민중들의 반발을 사서 더 큰 화
를 부를지도 모른다. 문화는 사람들의 생활이기 때문에 생활을 정면로 부정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순식간에 바뀌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일제는 우리 음악을 전면 부정하지는 않으면서 기를 죽이는 술책을 부린다. 일제가 꾸
민 정책은 다른 데선 다 금지하고 딱 한 군대만 살려 놓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권번, 기생 학교
다.
  언젠가  춤추는 가얏고 란 텔레비전 드라마가 있었다. 기생이냐 예술가냐 하는 문제를 다룬 드
라마였다. 이 드라마에서처럼 일제는 기생학교 한 군데만 살려 놓고 우리 음악을 왜곡시켰다. 조
선 예술은 기생들이나 옆에 끼고 앉아서 한량들이 풍월이나 읊는 그런 예술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적어졌지만 아직도 그런 시각은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뇌리 속
에 박혀 있다.
  흔히 가야금 친다.대금 분다 하면 전부 기생 취급을 한다.남자가 그것을 한다면 기생 오라비
다. 또 나팔 소리에서 따온 딴따라라는 말로도 부른다. 아들이 우리 음악을 배우고 싶다고 하면 
어머니, 아버지들은 사내 자식이 기생이나 하는 깃을 하려 한다고 야단을 친다. 그런데 딸이 피
아노나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다고 하다면 집을 팔아서라도 뒷돈을 대준다.
  이렇게 우리 음악은 기생들이나 하는 예술이고,서양 음악을 하면 진짜 예술가라고 여기는 시각
도 일제가 우리 음악을 왜곡시킨 데서 연유한다.
  일제에서 해방되고 나면 이제 우리 자리를 똑바로 찾아야 되는데, 한 번 구부러진 걸 바로 펴
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우리 음악은 계속 수난을 겪고 있다.
  음악 선생님들 모두가 서양 음악 전공자들
  현재 우리 초,중,고등학교 음악 교과서에는 한국 음악이 차지하는 비율이 20퍼센트도 채 못된
다.  나머지는 전부 서양 음악이 차지하고 있다. 더구나 음악을 지도하는 선생님들은 100퍼센트
가 모두 서양 음악 전공자들이지 한국 음악을 전공한 사람은 없다.
  음악 선생님들을 탓하려는 건 아니지만,그래서 생겨나는 문제가 있다. 이 분들은 우리 음악을 
배운 적이 없으므로 우리 창법을 제대로 알 리가 없다. 그런데 음악 교과서에는 아리랑을 비롯해
서 우리 노래들이 어느 정도 실려 있다. 교과서에 있으니 가르치긴 해야겠고, 그래서 음악 선생
님들은 우리 음악도 서양 음악처럼 가르친다.
   늴리리야,늴리리야,니니오 난실로 내가 돌아간다. 
  이런 우리 노래를 서양 창법으로 곱게 부르기만 한다면 무슨 맛이 있겠는가?  문경 새재는 웬 
고갠가 에서 흣 하는 기음을 빼고 고운 목소리로 곡조만 부른다면 거기서 무슨 멋이 나겠는가?그
런데 이 곡조만 배웠다고 학생들은 우리 음악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우리 청소년들이 우린 문화 하면  제비 몰러 나간다 하는 우황청심원 광고부터 생각하
고, 우리 음악 하면 장사 씨름대회에서 아주머니들 네 명이 똑같이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아니,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하는 모습만 연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 창법만이 아니라 가르치는 음악도 자체도 문제다. 음악 시간에 가르치는 우리 음악은 
너무 장체된 음악이다. 다시 말하면, 조선 말기의 형태로만 고정되어 있다. 물론 요즘 들어 우리 
음악 분야에서도 현대적인 창작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일반 대중에게 영향을  
주기에는 대단히 부족하다.
  흔히 한복이라 일컫는 옷들은 대부분 조선 말기 의상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자. 이 의상이 
과연 편할까,불편할까? 우리것이니까 편하지 않겠느냐고? 추석이나 설 이외에는 입어 보지 않은 
사람이나 그런 말을 할 것이다. 기서을 입고 화장실 한 번 가면 수습하는데 15분 가까이 걸린다. 
끈만 아래 위로 일곱 군데를 매듭지어야 한다. 역시 오늘날에는 잘 안 맞는 옷이다.
  그런데도 나름대로 멋이  있다. 무엇이? 바로 선이다. 한복은 15-45도의 선이 있다. 그래서 멋
이 있는 선도 살리고 실용성도 살린 의상들이 최근 제법 나와 있다. 이런 의상을 보고 뭐라고 하
냐면 개량 한복이라고 한다.
  사실 개량이라 하는 말은 식물 종자라든지, 새마을 운동을 할 때 지붕 개량 같은 데 쓰는 것이
다. 이런 의상은 전통의상이라고 불러야 한다. 전통 의상이라는 말은 자생력을 가지고 살아 있는 
의상을 가르키는 말이다. 흔히 입고 다니는 조선 말기 의상은 전승 의상이로고 부른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모르게 옛 것은 모조리  전통 이라는 수식어로 표현한다. 전통 예술,전통 
문화,전통 술... 그러나 이 전통이라는 말에는 큰 책임이 뒤따른다. 바로 자생력이다. 시대의 변
쳔에 따라 그 기본 틀을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고 시대성에 맞게끔 변화
시킨 것이  전통 이다.
  그렇지 않고 오늘날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조선 시대 것이 무조건 전통이라고 고집한다면, 전
통의 생명력인 자생력은 없어져 버리고 만다. 그 시대의 것을 그대로 사진 박아 놓듯이 만든 것
은  전승 이다. 전승도 중요하지만 시대성을 잃는다는 것은 문화의 보편성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
기 때문에 전통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다.
  전승은 옛것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니까 별 문제 없지만 전통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어색해 
보인다. 개량이 덜 된 것은 어딘지 모르게 불완전하다. 낡은 것에서 부분을 뽑아 새 것에 포함시
킨다. 이게 우리 조상이 가르치는 온고이지신의 정신이다. 그런데 말이 좋아서 온고이지신이지 
이게 덜 익으면 영 어울리지 않는다. 현재 우리 음악의 형태도 바로 그렇게 어중간하다.
  에를 하나 들어보자.우선 노래를 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 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한
자 때문이다. 다음 노래를 들어 보자. 
  담담장강수 유유원객정
  하교불상송하나 강수에 원함정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 백번 양보해서 무슨 뜻인지 잘 모른다 해도 제대로 전달만 된다면 그
리 큰 문제가 되지 않겠는데, 중간에 이 말이 또 왜곡된다. 그런 경우는 아주 흔하다. 우리 음악
을 처음 배울 때 누구나 겪는 일로 이런 것이 있다.
  도련님은 흉중대략...
  가슴 흉자,가운데 중자, 큰 대자, 지략 약자 해서 흉중대략이다. 선생님이 이 부분을 노래하는
데 그냥 말로 하는 게 아니라 창으로 하니 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뭔가 한자어는 한자어인데,여
쭤 보면 그것도 모르냐는 핀잔을 들을지도 모른겠고, 그래서 제자는 고민하면서 연구한다.
   하나,큰 대 자가 있는 거 하나는 알아듣겠다. 
  제자는 앞의 흉자를 느닷없이 훈자로 해석해 가지고 그럴 듯 하게 흉내내서 불부른다.
  도련님은 훈령대장...
  웃을 일이 아니다. 이건 사소한 사례이지만 그밖에도 현재의 우리 음악은 안팎으로 많은 문재
점을 가지고 있다.
  사라져 가는 문화 유산의 모으자.
  그나마 지금 이런 노래들을 제대로 기억하시는 분들은 거의 대부분 70대 이상이다. 장차 이 분
들이 돌오가시고 나면 아예 전승이 끊길 수도 있다. 더구나 우리 음악은 기록에 의조나지 않고 
스승이 제자에게,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입에서 입으로 직접 전달하는 식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문화 유산을 감상하고 보존한다면 무슨 사찰,성곽 등을 돌아 다니는 것도 좋지만, 먼저 
눈에 보이지 않게 우리 주변에 막 널려 있는 것들을 모아야 한다.
  시골에 가면 친정아버지,친정어머니도 좋고 동네 할아버지,할머니도 좋다. 그 분들은 아직 다 
이런 소리를 기억하고 있다. 이걸 집안에서 개개인으로 녹음을 해서 간직하는 그런 자세들이 절
실히 필요하다.
  남대문이나 신라 고분,고사찰,고서적 같은 것들은 형체가 있는 문화재, 즉 유형 문화재이기 때
문에 비교적 보존하기가 쉽고 보존 기간도 길다. 그런ㄷ 형체가 없는 무형 문화재는 재때제때 전
승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라져 버리게 된다. 옛날부터 전래되어 오는 노래와 춤, 고예 같은 것
들은 그 기능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죽으면 끝이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인간 문
화재라고하여 여러 가지 지원도 해주고, 제자를 정해 전승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문화에 정신을 쏟을 여력이 모자란 탓인지, 인간 문화재에 대한 정부 지원은 턱없
이 부족하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 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하면 그나마의 혜택마저도 받을 수 없다
는 거다. 하기야 어떤 노래,어떤  춤을 안다고 해서 일일이 정부에서 나서서 모조리 인간 문화재
로 지정하고 지원해 줄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냐? 민간에서 해야 한다. 인간 문화재급의 중요 민족 예술은 정부에
서 담당하게 하고,그 대신 각 지방,각 고을마다 무수하게 존재하는 우리 소리,우리 춤사위,전통 
고예와 기술 같은 것들은 그 지방, 그 고을 사람들이 직접 나서서 보존하자는 것이다.
  언뜻 들으면 막연하다 생각하겠지만, 결코 막연한 게 아니고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가능하다.
  할아버지,할머니의 모심기 소리와 상여 소리는 언제 한 번 마음먹고 녹음기로 녹음만 하면 되
고,춤사위는 약간 신경을 더 써서 할아버지,할머니께 막거리 한 잔 받아 드리고 비디오카메라 있
는 집에서 카메라를 빌려다가 한 번 녹화해 두면 된다.
  또 마을에 짚신 잘 꼬는 사람이 있다, 풀피리 잘 만드는 사람이 있다,전통 술을 잘 담그는 사
람이 있다 하면 그런 기능들도 비디오카메라로 담아 두면 된다. 이런 녹음 테이프와 녹와 테이프
를 잘 보관해 두면 대대로 가보가 될 수 있고, 혹시 나중에 자기 마을에 박물관이 생긴다면 기증
해서 가문의 명예를 드높일수도 있다.
  그 기회는 지금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근대화되면서 1970년대 이후로는 우리 옛것을 이어받으
려는 노력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70년대라면 벌써 20여 년 전이다. 젊은 시절 아버지,어머니에
게서 자기 마을에 전래되어 오는 여러 가지 소리와 춤을 보고 배운 사람들은 지금 이미 60대,70
대 노인들이 되었다. 아마도 한 10년쯤 지나 그 분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전부 없어져 버릴 것이
다. 그때 가서는 녹임기나 카메라를 트럭으로 실어 온다 해도 찍을 수가 없게 된다.
  수천 년을 그런 대로 큰 변화없이 흘러내려온 이러한 수많은 소리들이 1900년대에 들어 하나씩 
없어지다가 지금 현재는 거의 소멸 직전에 놓여 있다.
  더구나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 아무도 안타까워한다거나 이런 소리들을 살리기 위해 발버둥치지 
않는 것이 너무도 이상할 지경이다. 우리의 소중한 무형의 유산들은 바로 오늘도 하나식 둘씩 사
려 가고 있다.
  문화 줏대를 똑바로 세우자
  한국 사람들은 독일이라는 나라에 대한 이미지가 아주 긍정적이다. 저 경제 부흥의 에를 들 때
오  라인강의 기적 이라 해서 좋게 평가하고, 독일 사람은 근면하다든가 맥주도 독일의 호프가 
맛이 있다더라는 식이다.
  그러데 사실 독일은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원흉이다. 냉정한 입자에서 따지고 보면 우리도 
2차 대전의 피해자 중 하나이므로 그렇게 긍정적으로만 생각할 수 없는데 한국 사람들은 참 긍정
적이다. 그렇게 된 원인 중에 하나로 문화라는 것이 들어간다.
  보통 엄마들이 아기를 가졌을 때 태교한다고 듣는 음악의 작곡가들의 거의 반 이상이 독일,오
스트리아 계통인 게르만 민족에 속한다. 음악의 아버지라는 바흐,어머니라는 헨델,그리고 하이
든,모차르트,베토벤,슈베르트,슈만,브람스, 바그너 등등 이 바로 그들이다. 이런 음악을 엄마 백
속에서부터 내내 듣고 자란 애가 유치원에 가면 꼭 안 빠지고 배우는 노래가 하나 있다.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 오노라...
  이것이 또 독일 옛노래다. 게속해서 중,고등학교에 가면 또 독일 노래들을 배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10대 애창 가곡에 들어가는 노래가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 노래를 정작 독일 사
람들은 잘 모른다는 점이다.
  옛날부터 전해 오는 쓸쓸한 이 말이...
   로렐라이 언덕 이라는 노래인데 실제로 독일 사람들에게 물어 보면 그들은 잘 모른다. 이 노
래는 독일에서 제일 슬픈 노래다. 독일에서도 젊은 층은 잘 모르고 할머니들이 많이 안다. 독일 
할머니들은 그 노래를 부르며 눈물짓고 그런다.
  그런데 무슨 원수가 졌는지 독일에서 제일 슬픈 노래가 우리나라 어디에 나오느냐면 횡당 보도 
신호 음악으로 나온다. 횡단보도의 파란불이 켜지면 로렐라이 언덕의 곡조가  뚜뚜뚜뚜 뚜 뚜뚜 
뚜-뚜 하고 나오는 거다.
  이렇게 구슬픈 곡조가 나오니 사람들이 전부 어떻게 걸어갈까?잔뜩 풀죽은 어깨로 힘없이 걷는
다. 자칫하면 교통사고 나기 똑 알맞다. 이건 조금만 신경쓰면 바꿀 수 있다.
  실제로 바꾼 예도 있다.우리나라에서 가장 주체적인 횡단보도 신호 음악을 어디에서 들을 수 
있느냐면 전라북도 남원역 앞에 있다. 여길 가보면 파란불이 켜질 때 진도아리랑의 곡조가 흘러
나온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남원역에서 광한루로 가기 위해 사람들이 그 횡당 보도를 건너가는데   로렐라이 언덕 의 곡조
와는 발걸음이 천지차이다. 이렇게 우리가 조금만 더 신경을 쓰면 생활 속에서도 우리 음악을 얼
마든지 많이 들을 수 있는 틈들이 있다.
  독일 문화가 태어날 때부터 자랄 때까지 죽 연결되면서 나중에 성인이 되면 꼬 빠지지 않고 가
는 데가 있다. 독일식 호프집이다. 이 독일식 문화는 전염을 일으킨다.원래 문화란 전염성이 대
단히 강하다. 문화는 때로 무기로도 사용된다.
  코카콜라,맥도널드 햄버거,할리우드의 미국 영화 이런 것들도 모두 문화적 무기다. 한국 전쟁 
직후 우리나라 아이들이  기브 미 초코렛또 하면서 쫓아다닐 때 초콜릿도 무기였다. 이런식으로 
나쁜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 거름 장치가 필요하다. 우리 문화를 똑바로 알 때, 진짜 문화 줏대가 
똑바로 섰을 때, 거름장치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다.
  그러면 다음으로 둘째 마당을 열고 우리 소리의 내용으로 직접 들어가서 우리 문화를 알아보
자.
  그래서 과연 우리가 문화 줏대를 똑바로 세울 수 있는지 없는지 살펴보자.
  둘째 마당
  우리 소리는 힘이 세다
  센박으로 시작하는 우리 소리
  우리 소리는 무조건 센박으로 시작해야
  이제부터는 직접 우리 소리의 바다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우리 소리의 독특함과 매력이 무엇인
지 살펴보기로 하자. 잘 알려진 경기 소리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늴리리야 늴리리야
  니나노 난실로 내가 돌아간다
  문제는 이 노래를 부르는데 백이면 백 모두 서양식 창법으로 부른다. 서양 창법의 기본은 맑고 
깨끗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오페라에서 목 쉰 구두쇠 영감이나 짓궂은 파파 할머니 역할을 맡은 경우가 아니라면 조건 맑
고 깨끗하게 노래를 불러야 한다. 서양 노래에는 사실 그게 맞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노래에도 그것이 맞느냐는 거다. 우리 노래를 그렇게 부르면 분위기가 전
혀 달라진다. 몸에 와 닿지 않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목청 곱게  늴리리야 하고 불러 보자. 과연 
맛이 살아나는가? 그런 식으로는 백 번을 불러도 제 맛이 살아 나지 않는다.
  노래의 제 맛을 내려면 프로가 불러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론 그건 그렇다. 그런데 누구나 우
리 노래의 맛을 쉽게 살리는 방법이 있다. 박자 하나만 우리 식으로 지켜 주면 된다. 서양 음악
하고 우리 음악은 박자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서양 음악은 노래를 할 때, 앞이 여리고 뒤가 센 형태다. 즉, 뒤로 갈수록 세어진다. 구체적으
로 설명하자면 이 창법은 호흡을 한 후, 성애를 거쳐서 입으로 소리가 나오는 식이다. 즉, 호흡-
성대-입의 순서다. 요즘 우리가 흔히 부르는 서양식 노래는 모두 이런 식이다.
  우리 대중 가요를 부르더라도 마찬가지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여기까지만 불러도 어떤가?  우리 에서는  리 가, 만남은 에서는  은 이, 우연이 에서는  이 
가,  아니야 에서는  야 가 세다. 음을 세게,길게 끌어 줄수록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이 된다.
  그래야 노래방에서 점수가 잘 나온다.  오 마아이 러브,마이 다아알링 하는 서양 대중 가요도 
마찬가지다.
  한 번 직접 불러 보라. 마침 레코드판이 있다면 한 번 돌려서 확인해 보라.
  대중 가요말고 우리가 흔히 부르는 서양 노래 가운데  에델 바이스 를 예로 들어 보자. 이 노
래를 서양 창법으로,그러니까 호흡을 하고 성대를 거쳐서 입으로 소리를 내는 식으로 불러 보자.
   에델바이스-에델바이스- 
  여기서도 역시 뒤가 센 방식으로 노래가 나온다. 또 그렇게 불러야 노래를 잘 부른다는 말을 
듣는다.
  그런데 우리 창법은 서양 창법과 서양 창법과 완전히 거꾸로다. 한마디로 우리는 앞이 세다. 
호흡을 해서 성대를 거쳐 입으로 나오는 소리가 아니다. 이를테면 입부터 먼저 만들고 뒤에 성대
가 따르는 식,즉 호흡-입-성대의 순서다.
  입부터 먼저 만들고 거꾸로 접근해서 에델바이스를 우리 창법으로 불러보자.
  자,입부터 먼저 만든다. 호흡을 해서 입을 만들고 한 자 한 자에 생명력을 불어넣듯 부른다. 
에델바이스의  에 자를 부르려면 먼저 소리를 내지 말고 입으로 크게  에 자를 만들고 나서 잠시 
멈추었다가 소리를 터뜨린다. 이렇게 우리 식으로  에델바이스,에델바이스 하고 부르면 자연스럽
게 맨 앞부분에 강세가 주어진다. 마치 밀양아리랑의  날 좀 보소,날 좀 보소 하는 것처럼 들린
다.
  일하면서 노래하고 춤추는 우리 민족
  그러면 왜 이렇게 박자를 센박으로 해서 힘들게 하느냐,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 민족은 일할 때 일하고,놀 때 노는 그런 민족이 아니다.일과 놀이가 한데 어우러지고 뭉
뚱그려져서 일하는 듯 노는 듯,노는 듯 일하는 듯 하는 게 우리 민족의 일과 놀이이고 생활이다.
  앞에서 비빔밥,쌈밥을 이야기했지만 일과 놀이도 비빔밥,쌈밥이다.신명나게 놀수록 힘이 넘쳐
서 일하고,신명나게 일할수록 놀 때도 흥이 넘친다. 어려운 일을 마치고 직원들끼리 회식을 하면
서 노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놀이를 하는 데 노래가 빠질 수 없다. 원래 노래라는 말도 
놀이에서 나왔다. 그래서 일과 놀이,일과 노래는 거의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어울린다.일만 
했다 하면 노래다.
  힘든 일을 할 때마다 노래가 들어가다 보니 우리 음악에서는 특히 일 노래,노동요가 발달했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베틀로 베를 짠다든지, 물레를 돌린다든지 할 때 전부 일과 관련된 노래들
을 부르면서 했다. 베를 짜면 짜는 동작하고 딱 맞게끔 노래가 짜여진다.
  베를 짜는 동작은 이렇다. 차그닥 차그닥 실 왔다갔다. 차그닥 차그닥 실 왔다갔다.
  이것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고,직접 동작을 보고 같이 해봐야 안다. 노래를 하면서 맞는지 안 
맞는지 한 번 보기로 하자.
  형님 형님 사촌형님
  시집살이 어떻딥까
  아이구 야야 말도 마라
  시집살이 개집살이
  앞 밭에는 당초 심고
  뒷 밭에는 고추 심어
  고추 당초 맵다 해도
  시집살이 더 맵더라
  사아비 방구는 호령 방구
  시어매 방구는 앙살 방구
  시누이 방구는 고자질 방구
  서방 방군만 단 방굴세
  일하는 동작하고 노래가 딱딱 맞아 들어간다.
  또 물레를 돌리면 물레 돌리는 동작과 노래가 딱 맞게끔 되어 있다.
  울어머님 날 섬길 때
  딸캉같이 섬겨 주소
  섬겨 주소 섬겨 주소
  딸캉같이 섬겨 주소
  물레를 돌리면서 시어머니한테 부르는 노래다. 이것도 물레 돌리는 동작을 직접 해보면서 부르
면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울어머님 날 섬길 때 딸캉같이 섬겨주소 하는 대목에서 사고가 생겼다. 원래는 다음 
가사가  섬겨 주소,섬겨 주소,딸캉같이 섬겨 주소 인데 그 부분에서 그만 실이 하나 뚝 끊어진 
것이다.
  그럼 노래를 중단할까?
  아니다. 일과 노래는 언제나 함께 간다. 실을 잇는 것도 일이다. 그래서 끊어진 실을 이으면서
도 노래는 계속한다.계속하는데 가사가 달라진다.
  퉤퉤,이놈의 실이 
  와 이다지 끊어지노
  날이 너무 가물어서 그런가
  이렇게 가사는 바꾸면서 곡조는 계속 가져간다.
  이 다음 대목은 이렇게 진행된다.
  비오다가 볕나들랑
  친정어머니 본 것 같고
  볕나다가 비오들랑
  시어미 본 것 같고
  그런데 이 대목은 약간 문제다. 요즘은 방문들이 다 두꺼워 80퍼센트 이상 발음이 잘되지만 옛
날에는 한 집에 살면 문은 말 그대로 종이 한 장 차이였다. 따라서 옆방 시어머니에게 다 들리는 
것이다.
  시어미니가 귀 똑바로 세우고 다 듣고 있는데,  볕나다가 비오들랑 시어미 본 것 같고 했다간 
당장 난리가 날 거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들은 이런 상황을 너무나 슬기롭게 피해간다. 어떻게 
할까?
  실 끊어졌을 때 하던 것처럼  볕나다가 비오들랑 하고서는 노래를 딱 끊는다. 그 다음   시어
미 본 것 같고 의 대목은 생략한다. 그냥 생략하면 표가 나니깐  어따,이놈 모기 보래,에구 피가 
벌거니 빨아먹었구마 이렇게 사설을 한 자락 집어넣고 은근슬쩍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건 
구렁이 담 넘어가는 것처럼 의뭉스러운 게 아니라 부드럽고도 현명하게 어려운 상황을 처리하는 
지혜다.
  이렇게 우리 노래는 일하는 동작하고 딱 맞아떨어지게끔 되어 있는 것이다.
  여자들 일 노래를 보았으니 이번에는 남자들 일 노래를 보자.
  뱃노래라는 게 있다. 배를 젓는 일은 아주 힘이 든다. 그래서 노래가 없으면 얼마 하지도 못한
다. 이 뱃노래도 노를 젓는 동작과 딱 들어맞게끔 되어 있다.
  어기야 디여라
  어기야 디여 어기 여차
  뱃놀이 가잔다
  이 노래를 서양 창법으로 부른다면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배가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
할 게다.
  일 노래의 리듬도 센박으로 들어가듯이 우리 한국 음악은 전반적으로 박자가 센박으로 들어간
다. 이 이치를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팔도강산의 모든 노래가 전부 박자가 세다.
  제주도,둥그레 당실 둥그레 당실...
  경상도,어쩔시구 옹헤야 저절씨구 옹헤야 잘도 한다 옹헤야...
  전라도,남원산성 올라가 이화문전 바라보니...
  충청도,천안 삼거리 흥흥흥...
  강원도,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
  경기도,짜증을 내엇 무엇하나...
  이북지방,왔구나 왔어, 청천 갔던 배뱅이가 박수무당...
  모두들 잘 아는 놀니까 한 번씩 불러 보자. 그러면 전부 박자가 센박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할머니 자장가는 세계 최고
  우리 음악은 센박이다. 이렇게 말하면 서양 사람들은 종종 반박한다.
   센박 좋다. 일 노래는 센박이 힘차고 좋은데 진짜 박자가 세서는 안되는 음악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장가다.애들을 재우면서 너희 한국 사람들은 행진곡처럼 씩씩하고 우렁차게  잘 자라,내 
새끼 하겠느냐? 
  70년대에 세계 자장가 대회가 있었다.  여기서 어느 나라가 1 등을 했냐면 한국 자장가였다. 
자장가라는 노래는 음악성이나 예술성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자장가는 감감용 음악이 아니
라 목적 기능이 앞서는 노래이므로 자장가는 좌우지간 애만 빨리 재우면 된다. 이름만 들어도 질
려 버리는 모차르트,슈베르트,브람스,이런 대가 선생들의   자장가가 다 나왔다. 그런 세계적으
로 유명한 자장가들을 가지고 유명한 성악자들이 달려부여 감미롭게 노래를 부른다.
  잘 자라 우리 아기, 앞뜰과 뒷동산에...
  잘 자라 내 아기, 내 귀여운 아기...
  그러나 그 노래를 듣는 아이들의 눈을 어떨가? 똘망똑망하다. 계속 다른 사람들이 나와 불러도 
별 효과가 없다. 아이들은 재미는 있어 해도 잠은 자지 않는다.
   다음 차례 나오시오 해서 우리 한국 대표가 나가는데 누가 나가는고 하니 허리가 꼬부장한 할
머니 한 분이었다. 이 할머니가 애들이 나란히 누워 있는 방의 문을 열고 들어거더니만 자장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자장가란  것이 통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뿐이었다. 그러나 신기할 
일이다.  옹알옹알옹알옹알... 이렇게 딱 90초 가량을 부르니까,흑인애,백인애,필리핀애 세 명이 
쿨쿨 잠에 빠지는 거다.
  서양 사람들은 잔뜩 자존심이 상했다. 서양 사람들의 특기는 뭐든지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거
다. 그래서  저 자장가가 어떤 마력을 가지고 있는지 분석해 보자 하고 분석에 들어갔다. 그 결
과 그 자장가는 너무나 아기를 잘 재우게끔 구조가 잘 짜여져 있더라는 것이다.
  첫 번째 과학적인 근거,한국의 자장가는 발음이 불명확하다는 것.
  옛날 학교 다닐 때를 한번 생각해 보자. 점심 먹고첫 시간 5교시 수업은 잠과 싸우는 시간이
다. 어떤 선생님들은 들어와서 또록또록 재미나게 강의를 하시니 잠이 전혀 오질 않는다.그런데 
이런 선생님은 꼭 한 분쯤은 계신다.
   웅얼웅얼...엑스 자승...웅얼웅얼...괄호 치고...웅얼웅얼...숙제해 와라. 
  이렇게 한 시간 내내 웅얼대다가 수업을 끝낸다. 이걸 듣는 학생들은 어떨까? 수업 시작 10분
도 채 못돼 전부 꾸벅꾸벅 졸고 있다.따라서 불명확한 발음이 졸음을 유도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자장가를 주로 불렀던 사람들은 아래 위로 이가 대여섯 개나 없는 할머니들이다.옛날에는 
아기를 워낙 많이 낳다 보니 칼슘 부족으로 나이가 들면 금세 이가 빠져 버린다. 이런 분들이 아
기를 재울 때,자신은 발음을 정확히 한다고 하지만 결과는 어떤가?
  자장 자장 자장 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잘도 잔다 잘도 잔다
  검둥개야 짖지 마라
  우리 아가 잠 잘란다
  흰둥개야 짖지 마라
  우리 아가 잠 잘란다
  느그 아버지 서울 가서
  밤 한 되를 사왔네
  껍데기는 니 어미 주고
  (껍데기는 미운 며느리에게 준다는 얘기다)
  알맹이란 내 새끼 먹고
  자장 자장 자장 자장
  이런 가사를 이 빠진 할머니가 부르면 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자장인지 짜장인지부터 모를 일
이다. 이런 판이니 우리말을 전혀 모르는 서양 사람들조차 저건 뭔가 발음이 불명확한 거야 하고 
쉽게 단정지을 수 있는 거다.
  그 다음 두 번째 근거는 뭐냐 하면 반복 구조다.
  서양 자장가의 경우 논리적으로 1절,2절,3절,4절 딱 짜여져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대게 우리 어머니들이 우리 자장가를 외우고 있는 것은 1절뿐이다. 그런데도 우리 자장가는 밤새
도록 불러도 끝이 안나는 노래다. 얼마든지 늘려서 부를 수 있다.
  왜일까?시작은 있는데 끝이 없기 때문이다. 무슨 가사든지 막 집어넣어 가지고중간중간에 한 
번씩 자장 자장만 해주면 자장가가 된다. 나중에는 애국가 가사도 놓고 유행가 가사도 막 집어 
넣는다. 검둥개 흰둥개만 나오는가 하면 보이는 짐승은 있는 대로 다 집어넣는다.
  꼬꼬닭아 우지 마라
  우리 아가 잠 잘란다
  누렁소야 우지 마라
  우리 아가 잠 잘란다
  새앙쥐야 뛰지 마라
  우리 아가 잠 잘란다
  밤새도록 불렀는데 애가 안 잔다. 그러면 또 가사가 바뀐다.
  애는 안 자는데 우리 서방님은
  어디로 출타를 하셨는지
  밤늦도록 집에 안 들어오고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다
  갑자기 자장가는 신세 타령으로 바뀌어 버린다.
  아이구 이놈의 자슥아
  빨리 좀 자그라
  느그 애비라카는 인간은
  어데 가서 자빠져 있을꼬
  화투도 못 치는 것이
  돈이나 맨날 잃고 다니면
  어이구 야야 내 새끼야
  니가 니가 크거들랑
  느그 아버지같이
  술도 먹지 말고 
  화투도 치지 마록
  니는 느그 각시한테
  잘 해줘라 자장자장
  요련 식으로 해가지고 아기를 재운다. 계속 반복하다 보면 아기한테 최면이 걸리면서 잠이 저
절로 들게 된다.
  이런 자장가 하나를 분석해 보더라도 모두가 노래의 진짜 목적에 딱 맞게끔 짜여져 있다는 것
을 알 수 있다. 앞의 일 노래에서 본 적처럼 자장가에서도 목적에 부합하게끔,일과 노래가 구분
이 안되게 되어 있다.
  사실 아이를 재울 때 서양식 자장가를 고집한다면 아이를 재우기도 어렵거니와 또다른 문제도 
있다. 서양식 노래는 고운 목소리로 맑게 불러야 하기 때문에 부르는 사람의 목청과 노래 실력에 
따라 차이가 심하다.
  그러면 원래 목청이 탁해서 고운 노래가 안 어울리는 어머니는 자기 아이를 어떻게 재운단 말
인가? 또 원래 소질이 없어 노래를 못 부르는 어머니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실제로 노래를 못 부
르는 어머니가 부르는 자장가는 아이도 못 들어준다. 자던 아이도 깰 판이다.
  우리 자장가라면 그런 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불분명한 발음으로 반복해서 웅얼웅얼거려 주면 
되기 때문이다. 노래를 아무리 못하는 어머니도 이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보통 어머니나 할머니가 아기를 재우는 모양을 보면,품에 안고 재우거나 젖을 몰려 재우거나 
업고 재우는데,또 한 가지 빼 놓지 않는 게 있다. 자장가를 부르면서 꼭 몸을 흔들거나 어르면서 
재운다.그리고 자장가의 첫 박을 꼭 센박으로 부른다. 
  자장가도 센박으로 시작한다. 더구나 노래만 센박이 아니라 아기 재우는 몸짓도 그렇다.
  사실 우리 자장가를 보면 조금 희한한 게, 세계에서 아가들을 두들겨패 가면서 재우는 자장가
는 우리 것밖에 없다. 서양 사람들은 아아를 재우면서 책을 읽어 주고 뽀뽀를 해주고 하지만,우
리처럼 가슴을 토닥여 주지는 않는다. 또 서양 사람들은 아이가 잠들기 시작했을 때 조용히 방을 
나간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아이가 완전히 잠들어 숙면을 취할 때까지 계속 자
장자장 하며서 가슴을 토닥여 주는 것이다.
  그런데 어릴 때 가슴하고 배를 두들겨 주면서 재우면 한방에서 하느 ㄴ이야기로 오장육부가 튼
튼해진다고 한다. 아주 어릴 때부터 두들겨서 키우면 굉장히 좋다. 알타이 민족들이 보통 보면 
아이들을 두들겨 재우는데 우리 아기들은 두들겨 맞으면서도 잘잔다. 자장가 자체도 센박이지만 
자장가를 부르는 행동조차 센 것이다.
  평생 동안 함께하는 4박자
  우리 자장가가 아기를 잘 재우는 세 번째 근거가 뭐냐 하면 박자다. 한극 사람들에게 제일 익
숙한 박자는 4박자다.
  하나-두울-세엣-네엣
  이 4박자가 바로 우리 자장가의 박자 구조다. 4박자의 가락이 계속 반복되니까 상당히 지루하
고 단조롭다. 그런데 그 점이 바로 자장가에 딱 어울린다. 아이들은 단조로우니가 잠에 빠지게 
된다.
  서양 자장가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모차르트의 자장가는 느릿3박자이다. 3박자는 
홀수 박자이기 때문에 뭔가 완결될 맛이 없다. 쿵작작, 이것만으로 안정감을 찾기 어렵다. 쿵작
작작,이래야 끝나는 맛이 든다.홀수는 안정감이 없고 짝수는 안정감이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서부터 이 4박자를 느낄까? 바로 어머니의 뱃속에서 이 심장 박도 리듬을 
익혀 가지고 나온다.이 리듬,어머니의 심장 박동 리듬을 똑같이 옮겨 놓은게 바로 자장가인 것이
다.
  자장가에서부터 시작되어 한국 사람들은 평생동안 4박자하고 같이 간다.어릴 때 부른던 노래들
도 전부 4박자의 구조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꽃 찾으로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
  무슨 꽃을 찾으로 왔느냐 왔느냐
  호박꽃을 찾으로 왔단다 왔단다

  할배 할배 어디 가요
  새 잡으로 간다
  새 몇 마리 잡았소
  다섯 마리 잡았다
  내 한 마리 주소
  삶아 먹고 지져 먹고 냠냠냠

  떽떽 꾸린내야
  누가 뀌었나
  니기 뀌었나
  네가 뀌었나
  한 번 보자

  이 거리 저 거리 각 거리
  진주 망건 때망건
  천사 만사 또 만사
  도래중치 장독간
  전부 4박자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만큼 우리는 4박자에서 편안함을 느끼는민족이다.
  세계에서 가장 과격한 사랑가
  한국 사람들은 이것을 설명하면 금방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데 외국인들을 앉혀 놓고 이런 강연
을 하면 이해시키기가 쉽지 않다. 서양 사람들은 이러저러한 여러 가지 창법들을 줄줄이 늘어 놓
고는,센박으로 들어가는 음악으로는 행진곡과 같은 군사용 음악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서양 
사람들은 이런 질물을 하곤 한다.
   코리아 미스터 김, 당신네들이 그렇게 박자가 세다는데 사랑 노래는 박자가 세지 않을 것 같
다. 
  서양 사람들은 박자가 세다가 하면 무조건 신나는 음악이다. 일단 선입견 자체를 그렇게 가지
고 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슬픈 노래는 단조를 써서 부드럽게 불러야 하고, 기쁜 노래는 
장조를 써서 힘차게 불러야 한다. 이게 서양 음악을 하는 방식이자,동시에 선입견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의 슬픈 노래는 어떻게 부른다? 슬픈 노래도 센박으로 간다. 익은 맛,삭은 맛을 요
구하는 우리 음악에서는 서양 사람들과 같은 선입견이 없다. 슬픈 노래도 센박으로 가는데 사랑 
노래라고 안될 게 없다.
  사실 서양 사람들만이 아니라 지구상 모든 민족의 사랑 노래를 들어 보면 전부 아피 여리고 뒤
가 센 창법을 택하고 있다. 그래야 달콤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우리 음악의 창법은 전혀 그렇지 
않다.
  따라서 우리 음악의 사랑 노래는 가장 독특한 사랑 노래라 하겠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구상
에서 제일 과격한 사랑가라고 할 수 있다.
  아리랑 노래 가사만 보아도 그렇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말이 쉬워서 발병이지 사실은 다리가 부러져 버리라는 소리다. 날 버리고 가면 다리가 부러진
다?우리 한국의 사랑 노래는 가사부터 이렇게 과격하다.
  한국 사람들이 가장 큰 감정의 파장을 일으키는 말이  버린다 , 간다 라는 말이다. 이 아리리
아에서도 핵심은 바로  버리고 와 간다 이다. 여기서  버 와   간 에 센박으로 감정 처리를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찡한 감정을 일게 하는 창법으로  자학의 애정 을 극단적으로 표현한다.
  즉, 못 먹는 감은 찔러라도 본다 는 식의 애정도 아니고 애증도 아닌 묘한 감정의 표현이다. 
이것은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얼마나 잘 되는지 보자 는 식의  사랑+용심 이라는 토라짐의 
극치다.
  이렇게 센박으로 시작하는 우리의 사랑 노래는 언뜻 들으면 전혀 부드럽고 달콤한 것이 아니
다. 솜사탕 먹는 것 같은 오,마아이 럽,마이 다아알링 이 아니고 전부세게  둥둥둥 내 사랑! 이
다. 이건  그대는 내 사랑이오 하고 부드럽게 속삭이는 것이 아니라  넌 내 거다! 하고 부르짖는 
거다.
  사랑하는 연인의 창문 바깥에서 은은한 달빝을 받으며 부드럽게 세레나데를 불러 사랑을 호소
하는 서양 사람들은 우리네 사랑 노래를 들으면 화들짝 놀랄 것이다. 남성들에게서 사랑을 받아
만 왔던 서양 여성들이 우리 사랑 노래를 듣는다면  뭐,이런 사람이 다 있나? 하면서 돌아서 버
릴 거다.
  그러나 우리 강인한 여인네들은 이렇게 힘찬 센박의 사랑 노래를 남성들에게 들어 왔고, 또 반
대로 남성들에게 불러 주기도 했다.
  장송곡도 씩씩한 우리 가락
  자장가와 사랑 노래초자 센박으로 부르는 것에 놀란 서양 사람들은 다시 고민한다. 센박으로 
불러선 안되는 게 또 무엇이 있을까? 그렇다, 장송곡이다.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또 질문한다.
   좋다. 당신네들 자장가가 박자가 세다는 것도 이해를 하겠다.사란 노래가 그럴 수 있다는 것
도 인장한다. 그런데 진짜진짜 박자가 세서는 안 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게 뭐냐? 
   장송곡이다.당신네들은 사람이 죽었는데도 신나게 노래를 부르느냐? 
  하지만 이것 역시 서양 사람들의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다. 박자가 세다 하면 일단은 신나는 음
악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우리 음악을 바로보기 때문에 그런 질문이 나오는 것이다.
  이별 중에서 제일 슬픈 이별은 뭘까? 죽은 사람과 헤어지는거 아닌가? 죽은 사람과 헤어지는 
노래는 바로 장송곡이다. 따라서 장송곡은 제일 슬픈 이별 노래다. 이별 노래만 해도 슬플텐데 
장송곡이라 하면 가장 슬퍼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장송곡이라고 하면 서양 음악의 종류이고,우리
는 상여 소리라고 한다.
  우리 상여 소리와 서양의 장송곡을 같이 비교해 보면 여러 가지가 다르다.우선 노래 이전에 복
장이 다르다. 장례식 의상자체가 다른 거다. 우린 흰색인데, 그 사람들은 검정색이다.
  우리는 저승과 이승을 명확히 나누고, 죽은 사람은 이승에서 저승으로 완전히 건너간 사람이라
고 여기지만,서양 사람들은 저승도 이승의 연장이다. 기독교에서는 살아서 한 행적이 죽은 뒤의 
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서양 사상의 모태가 된 그리스 신화를 보면 신들이 인간 세상에 여러 가지로 간섭한다. 신들도 
사람들처럼   사랑을 나누고,복수를 하고,질투심도 많다. 지하에 스틱스 강이라는 강물을 건너면 
바로 저승이라고 한다. 기독교에서는 요단 강 하나 건너면 바로 저승이다.
  반면 우리 의식 구조에서 이승과 저승은 강 하나 정도 건너는 문제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세계
다. 또 우리는 전생에서 살아온 행적이 사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다음 생애에 영향
을 미친다.
  이러다 보니 서양 사람과 우리는 죽은 자를 대하는 태도도 다르다. 예를 들어 서양의 드라큘라
나 흡혈귀는 산 사람들과 부단히 교섭하는 살아 잇는 존재지만,우리의 귀신이나 저승 사자는 이
승과는 다른 세계에 속해 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다른 세계인 저승을 겁내지만 서양 사람들은 
이승과 저승이 이어져 있다고 본다.
  이렇게 인식이 다른 만큼 장례식을 치는 방식도 크게 다르다. 우리는 장례식 전에 시신을 병풍 
뒤에 안치해 놓지만,서양 사람들은 시신을 멀쩡한 사람처럼 화장을 해가지고 관에 넣어 교회에서 
친지들에게 두르 보여 준다. 우리는 염을 한다든가 할 때 시신이 여러 사람 앞에 나오면 울고불
고 난리가 나지만, 서양 사람들은 쭉 줄 서서 차례차례로 시신을 한 번씩 보면서 산 사람을 사대
하듯이 이야기를 한마디씩 걸고 관 속에 꽃을 던진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서양 사람들과 우
리는 장례식 때 흘리는 눈물의 양과 구성 성분도 다르다.
  이렇게 문화 자체가 다르니 음악도 당연히 다르다 우리 상여 소리는 서양의 장송곡에 비해 훨
씬 처절하다. 죽은 자는   아주 다른 세계,저승으로 완전히 넘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서양 장송곡을 듣고는 정신 나가는 사람들이 없는데 우리 상여 소리를 듣고는 정신
이 살짝 나가는 사람이 꼭 있다. 보통 상여가 나가는데 사람들이 쭉 따라가다가 한두 명이 꼬 허
튼소리를 한다, 한참 울며 가다가 봉창 두드리는 말을 하는 것이다.
   야야, 근데 느그 엄마가 죽었나,느그 아부지가 죽었나? 
  소리에 취해서 그만 누구 초상인지도 모르는 거다. 하긴 그 사람 잘못만도 아니다. 모두 다 우
리 상여 소리가 하도 슬픈 탓이니까.
  우리의 상여 소리는 또 지방마다 각기 다르다. 우리나라는 상여 소리 자체가 전 세계에서 제일 
많은 나라다.동네마다 다 다른 것이다. 너무 많아서 분류를 어떻게 하는가 하니 지형에 따라 한
다.산악 지방 상여 소리가 있고,평양 지대,즉 논농사 지역 상여 소리가 있고,바닷가 지역 상여 
소리가 있다.
  평야 지역을 가면 논농사 짓고 조금 먹고 살 만한 곳이라 상여 소리도 신나게 나간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북망 고개로 나는 간다
  서른서이 상둣꾼아
  발 맞추어 나아가세
  여흐 여흐 여흐 여흐
  너거나 넘차 여흐넘

  이제 가면 언제 오나
  기약 없는 기리로세 
  여흐 여흐 여흐 여흐
  너거나 넘차 여흐넘

  복망산이 멀고 먼데
  노자 없이 어이 가리
  여흐 여흐 여흐 여흐  
  너거나 넘차 여흐넘
  이렇게 평야 지대의 상여 소리는 발을 맞추어 걷기가 수월학 굿거리풍으로 약간 신나게 춤을 
추듯 나간다. 역시 발에 맞추어 하다 보니 박자는  센박이다.
  하지만 산악 지방에서는 산에 상여를 메고 올라가면 상당히 피곤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장
단에 맞춰서 못 가고 주로 노동요 비슷하게 단순하게 나간다.
  어허 어허
  가자 가자 어서 가자
  술로 먹으면 넘어가고
  어허 어허
  사람도 늙으면 자빠지고
  어허 어허
  언덕이 많은 산악 지방에서 상여를 메고 올라가는 일은 보통일이 아니다.발걸음을 재게 맞추다 
보니 약간 투박하고 단순하게 상여를 놀리게 된다.
  바닷가 지역으로 가면 또 다르다.우리나라 바닷가 지역에서는 슬픈 소리가 굉장히 발달해 왔
다. 영화로 유명해진 서편제도 따지고 보면 바닷가에서 나왔다. 때로는 호남 지방의 해안가 지역 
자체를 보고 서편제 지역이라고도 한다.
  바닷가 지역에서 왜 슬픈 소리가 발달하게 되었을까?그것은 배 잘못 띄우면 줄초상이 한 번씩 
나는 까닭이다. 그러다 보니 유독 슬픈 소리가 많다.
  여-여-여-어흐너흐
  어이 가리 넘차 여흐노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이 진다고 설워 마라
  여-여-여-어흐너흐
  어이 가라 넘차 여흐노

  명년 춘삼월이 돌아오면
  너는 다시 피련마는
  여-여-여-어흐너흐
  어리 가리 넘차 여흐노

  우리 인생은 한 번 가면
  다시 올 줄을 모르더라
  여-여-여-어흐너흐
  어리 가리 넘차 여흐노
  이것 역시 박자가 세다. 우리는  슬픈 소리조차도 박자를 전부 센박으로가져가는 것이다. 한국 
사람한테는 슬픈 소리가 이런 식으로 와 닿는데 서양 사람들에게는 어떤지를 물어본다.
   당신,이거 들으니까 느낌이 어떠냐? 
  이렇게 물으니 서양 사람들은 그 느낌을 이렇게 표현한다.
   오장육부가 찢어지는 것 같다. 
  가사는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느낌은 제대로 전달되는 것이다. 앞에서 자장가의 경우도  아이들
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면서도 우리 할머니의 자장가들을 들으며 쌔근쌔근 잠들었다.
  상여소리도 그와 마찬가지다. 우리나 서양 사람이나 서로 느낌은 똑같은데 전달하는 방법에서 
서로 다른 것이다. 우리는 슬픔을 강렬하게 표현하고 서양 사람들은 슬픔을 연약하게 표현한다. 
우리는 슬픔을 큰 양푼에 담아서 전달하지만,서양 사람들은 조그만 접시에 잠아 전달하는 슬픔이
다.
  모 심는 동작에서 센박이 나온다
  우리 노래가 센박으로 나가는데 우리 민족 특유의 농경 리듬 때문이다.모를 심을 때 못줄이라
는 것이 있다. 모에 꼬투리를 꽂아 놓은 것을 못줄이라 한다. 모 심는 노래는 모 심는 동작하고 
딱 맞게끔 되어 있다.
  우리 민족은 몇 분박을 좋아한다고 했나? 3분박을 좋아한다. 우리는 3에 미친고 환장하는 민족
이라고 했다. 하나둘셋,둘둘셋,셋둘셋,넷둘셋,이렇게 3분박으로 된 4박자가 우리가 즐기고 익숙
하게 여기는 장단이다. 자,모를 한 번 심어 보자. 모 심는 동작하고 같이 노래를 불러 봐야 노래
가 무슨 뜻인지 안다.
  모야 모야 노랑모야
  언제 커서 열매 열꼬
  내달 크고 훗달 커서
  칠팔월에 열매 열지
  모 심는 동작이 노래하고 딱딱 들어맞는다. 질퍽한 논에서 이렇게 모를 심을 때는 자연스럽게 
엎드리는 자세를 취하게 되는데, 엎드리면 배에 압박이 가해지고 힘이 든다. 그렇다 보니 1절 2
소절을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나누어서 부르개 되어  소리짝 이 형성되는 것이다.이것은 경상도 
풍의 모심기 소리인데,호남 지방의 모심기도 이와 비슷하다.
  이런 소리들이 수십 가지의 가사로 진행된다. 그뿐 아니다. 모 찔 때 소리가 따로 있고,모 심
을 때 소리가 따로 있는가 하면, 점심 때 부르는 소리가 다르고 해거름 저녁 때 부르는 소리가 
또 다르다. 이렇게 반복해서 노래 부르며 모를 심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 몸에 우리 장단이 들
어붙게 된 것이다.
  자사 얘기나 나왔으니 말이지만, 이 모 심는 노래가 가사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른다. 모 심
기 노래를 연구해 보면 세상에 이런 노래가 있다니 하고 그 합리적인 구조에 감탄이 절로 난다.
  자세히 뜯어보면 대단히 조직적으로 짜여 있다. 1절,2절,3절이 조금 재미가 없고 교훈적이거나 
고리타분한 내용의 가사가 나오면,그 다음에는 꼭 웃기고 재미있는 가사가 등장한다. 3대 1의 비
율로 중강 해학적인 가사가 들어간다.
  모시야 적삼에 반쯤 나온
  연적 같은 젖 좀 보소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브래지어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모시적삼 입고 모 심느라 허리를 구부
리면 어떻게 될까? 젖가슴이 훤하게 드러나보인다.
  이 부부능ㄹ 여자들이 부르면 재미가 없다. 그래서 이 부분의 가사를 일부러 몇 개 뛰어넘어서 
남자가 부르게끔 만든다. 모 심는 남자들 중에는 짓궂은 사람도 있지만 점잖고 체면 차리는 사람
도 있다. 하필 점잖은 남자에게 이 부분이 걸리면 차마 부르지 못하고 슬쩍 넘어간다.  모시야 
적삼에 반쯤 나온 연적 같은 까지는 제대로 하다가 짐직  콜록 하고 헛기침을 해버린다. 그래서 
가사는 이렇게 된다.
  모시야 적삼에 반쯤 나온
  연적 같은 콜록(!)보소
  이 대목에서 모 심는 사람들은 모두 깔깔거리며 잠시잠깐 허리 한 번 펴고 쉰다.
  또 여자들은 이 짓궂은 대목에 대해 나름대로 방어책이 있다. 그 다음 가사는 여자들이 부른
다.
  많이 보면 병난단다
  쌀낟같이 조금만 살짝 보고 가소
  또 모두들 웃느라 자지러진다. 일의 피곤함을 푸는데 상사 이야기만큼 재미잇는 게 또 있을까?
  이렇게 일 노래들은 배에 힘을 잔뜩 집어놓고 박자가 지속하다가 터지는 식으로 된다. 따라서 
노래들이 모두 센박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는 거다. 우리 고유의 센박을 잘 이용한 창법을 가지
고 성공한 가수가 있다. 바로 조용필 씨다. 조용필 씨가 처음 불렀던 노래는 바로 이런 스타일이
었다.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정이란 무엇일까 주는 걸까 받는 걸까...
  이 노래들은 모두 이런 식이다
  호흡-성대-입,코
  이런 서양식 창법의 노래르 부르다가 그 이후에 사용한 창법이 바로 지속하다가 터지는 우리 
창법이다. 이것은 앞이 센 센박이고 입을 먼저 만들고 성대를 거쳐 소리를 터뜨리는 창법이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여름 한낮에 꼬마 아가씨...

  일편단심 민들레야...
  이 노래들은 모두 이런 식이다.
  호흡-입-성대
  조용필 씨는 이렇게 우리 음악을 잘 활용해서 슈퍼 스타가 될 수 있었다. 
  우리가 워낙 지속하고 있다가 탁 터지는 센박을 좋아하다 보니까 춤도 독특하게 발달했다. 북
방형의 춤사위는 봉산탈풀이나 은율탈춤이나 강령탈춤같이 그 박자와 노는 몸짓이 활개를 치듯 
힘차고 활달하다. 그 반면에 남방형의 야류,오광대 계통의 춤은 일(-)자 모양의 온화한 춤사위로 
발놀림이 철저하게 박자를 먹으면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손 까딱,안면 근육으로만 춤을 추는데, 
역시 박자에 어긋나는 법이 없이 꼭 짚어 준다.
  서양 사람들은 땅덩어리가 넓으니까 씨를 뿌릴 때도 아무 데나 막 뿌려도 된다. 하지만 우리는 
좁은 땅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모를 심다 보니까 춤 동작도 작고 오밀조밀해졌다.
  문화는 어디서 툭 튀어나와 가지고 되는 게 아니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여기서 조금씩 저기
서 조금씩 생겨나고 진화하는거다. 춤이라고 하니까 우리 춤을 굉장히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춤도 소리처럼 우리 생활 속에서 습관화되고 행동화된 몸짓 양식이다. 이런 것들을 
여러 개 묶어서 여기다  플러스 예술성 하여 다 합해 놓은 게 바로 우리 춤이다. 모 심는 동작까
지 춤이 된다.  우리 할머니들은 눈을 지그시 감고 흥에 겨워 놀면 동작이 굉장히 작게 나온다. 
하지만 내면의 큰 신명은 싱긋이 웃는 입 속에 천근만근이다.
  이걸 잘 이해해야 우리 문화를 제대로 알 수 있다. 사실은 우리 생활 솎에도 여러 가지가 들어 
있다. 원래 사회나 제도는 급속도로 변해도 생활 습관이라든가 문화는 천천히 변하게 마련이다.
아무리 세상이 달라졌어도 요즘 아이들도 생활 습관은 무의식적으로 전통을 따르고 있는 게 많이 
있다.
  앞에서 도구를 들어 여러 가지 설명을 했지만, 그것들 하나하나 우습게 보아서는 안된다. 지구
상에 우리밖에 못하는 동작이 뭐라 했던가? 한 손에 숟가락,젓가락을 두 개 들고 밥 먹는 거다. 
요런 동작 하나하나도 새로운 가치와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쳐다볼 때, 우리 민족 문화가 발달할 
수 있다, 그 밖에도 한국 여자들이 이 세상에서 촉감이 최고로 발달했다는 점, 손수건은 우리 문
화가 아니라는 점, 이런 것 등 등을 다양한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여러 측면에서 노력이 필요하다. 학교 교육도 손질하고,매스컴들도 바뀌어야겠다. 우리 
것을 자꾸 들려주는 방향으로 변해야 한다. 처음에는 낯설고 힘든 측면도 있겠지만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자꾸 듣고 느끼고 분석을 하다 보면 세계에서 최고 가는 진짜 문화의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우리 음악을 들은 사람들은  지겹다.청승맞다 요런 식으로 이야기들 한다. 하지만 지금까
지 이야기한 어느 내용에서 청승맞은 구석이 있던가?자장가도,사랑 노래도, 이별 노래도 과연 청
승맞던가? 아나디. 실제 내용을 연구해서 들어가면 전혀 그렇지 않은 게 우리 음악이다. 그것을 
모르고 우리 음악은  무조건 청승맞다고 말하는 사람은 문화에 대한 시각을 크게 자겨 볼 일이
다.
  우리 음악을 제대로 이애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도 관심,두번째도 관심이 필요하다.그리고 사회
적으로 많이 들려주고 하면 일반인들도 금방 한국 음악을 따라간다. 우선 앞에 말한 횡단보도 신
호 음악부터 고쳐 보자.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사회적인 분위기 자체가 늘 우리 음악을 들려
주면서 우리의 음악을 확산 시키면 우리 음악의 미래는 그만큼 밝아진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잘 모르는데 남이 우리를 알아줄 리 없다. 우리 모두가 우리 음악을 절대 
우습게 보지 않고 깊이 있게 통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음악이 걸어온 길
  나라도 큰일에도 우리 음악을 쓰자
  우리 음악에는 엄청나게 많은 종류가 있다. 크게 나누어 옛날양반 사대부, 즉 지배 계층의 음
악이 있고 일반 백성들 음악이 따로 있다.
  양반들 음악을 보고 이름을 뭐라고 붙이냐 하면 바를  정 자를 붙여서 정악,아악이라고 부르기
도 하고,임금이 사는 궁중에서 주로 한다고 해서 궁중악,궁중 음악이라고도 한다. 얼핏 우리가 
아악이나 정악을 들으면  야,지겹다 고 느낀다. 왜 그런고 하니 전부 효용 음악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본 자장가도 그렇듯이 그런 음악은 뭔가 목적을 가진 음악이다. 그러니까 그 목적과 관
계 없는 지금 우리로서는 도통 알 수 없고 지겨울 뿐이다. 그러나 그 기능과 목적을 잘 알고 들
으면 전혀 그렇지 않다. 아악은 기능에 따라 몇 가지 종류로 나뉜다.
  우선 첫 번째로 연례악이 있다. 이건 뭐냐 하면 궁중에서 연회가 있을 경우 임금이 입장할 때 
쓰는 음악이다. 연회를 하는 거니까 빠르고 신나지 않겠느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이건 오늘날로 
치면 국가 의전 행사용 음악,대통령 입장 음악이다. 지금 우리 대통령들은 어떤 음악에 맞추어 
입장하는가?
   대통령께서 입장하십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 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가 이렇게 마랗면 3군 군악대가 일제일 나팔로 연주한다. 뺨뺘밤뺨 뺨뺨뺨  빠밤뺨뺨 
... 세 살 먹은 아기가 들어 보아도 이 음악은 절대 우리 음악이 아니다. 이 음악의 제목은  대
통령 찬가 라는 것인데, 사실 우리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왜? 이런 식으로는 입장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특히 양반들은 느릿느릿한 음악을 
좋아했다. 소나기가 가자기 쏟아져 경우에도 양반들은 뛰어갈까,걸어갈까?무슨 일이 있어도 걸어
간다.
  구한말에 조선에 들어온 영국 외교관들이 테니스를 치고 있었다. 간편한 복장으로 땀을 흘려 
가면 열심히 테니스를 치고 있는데,멀리서 이 광경을 보고 고종 황제가 혀를 차며 점잖게 한마디
한다.
   허허,영국이 신사 나라,양반 나라라고 하더니만 저 사람들 보니 그게 아니군? 하인들이 시킬 
일이지, 왜 저리 땀 흘리며 난리란 말이냐? 
  고종 황제의 눈에는 공을 따라 요리조리 촐싹 거리며 몸을 재게 놀리는 모양이 영 마뜩찮았던 
것이다.
  이렇게 양반들이 어릴 때부터 양반은 절대로 뛰어다녀서는 안된다는 교육을 받아 왔다. 임진왜
란 때 우리 왕자들이 포로로 잡힌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제 발로 안 뛰고 내시가 업고 뛰다가 
죄다 잡힌 것이다.
  이 점은 이해하고서 옛날 우리 임금의 걸음걸이가 거동을 한 번 보자.
   상-감-마-마-납-시-오. 
  이 말투도 한 자 한 자씩 대단히 느리게 말하지만,임금의 발걸음은 더욱 느리다. 그러니 음악
도 아주 느릴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임금이 입장하는 데만도 20분이 넘게 걸린다.
  오늘날 우리가 보면 우스꽝스럽게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결코 우스운 겡 아니다. 옛날에는 
임금님의 행차처럼 진지한 것은 없었다. 지금 그것을 우습게 보는 이유는 우리가 서양식 색안경
을 끼고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 음악이 펄펄 살아 있는데 왜 우리가 서양식으로 의식을 
거행해야 할까?
  어떤 이는 우리 음악을 어디다 써먹을까를 물어 보는데, 얼만든지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의 클린턴 대통려이 방한할 때 써도 된다. 김포공항에 내리자 마자 옛날 임금의 발걸음에 맞추던 
음악을 떠억 하니 연주하면서 느릿느릿 하게  따라오시지요  하면 감히 작은 나라라록 함부로 얕
보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정치를 갖고 자랑할 것인가, 또는 경제를 가지로 자랑할겠는가? 하지
만 우리에게는 어디다 내놓아도 자랑할 만한 문화라는 게 살아 있다.
  이런 음악을 보고 뭐라고 하냐면 연례악이라 하기도 하고,또 모일 회자를 붙여서 회례악이라고
도 한다.
  그 다음에 제례악이 있다. 지구상에 제사를 지내면서 음악을 연주하는 나라는 우나라가 유일하
다. 제례악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공자.맹자께 제사 지내는 문묘 제례악이 있고, 전주 이씨들에
게 지내는 종묘 제례악이 있다. 여기서 문제 하나. 우리나라 무형 문화재 1호가 뭘까?상식으로 
꼭 알아두자. 바로 종료 제례악이다.
  요즘 순국 선열에 대한 묵념 음악으로는 서양식 음악을 쓴다. 이것도 우리가 조금만 신경 쓰면 
얼마든지 우리 음악으로 바꿀 수 있다.
  우리 악기 중에서 제일 슬픈 악기로,사람 목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내는 아쟁이라는 게 있다. 
가야금처럼 바닥에 놓고 연주 하는 현악긴데,가야금과는 달리 손가락으로 퉁기는 것이 아니라 활
을 가지고 켜서 소리를 낸다. 이 아쟁으로 순국 선열에 대한 묵념 음악을 연주한다면 그야말로 
잘 어울릴 거다. 돌아가신 순국 선열들은 아마 순국의 보람이 있구나 하면서 무릎을 치실 것이
다.
  그 다음 군인들의 행진할 때 연주하는 음악이 있다. 흔히 우리나라에는 군악대가 없었다고들 
알고 있는데 사실은 군악대가 있었다. 옛날에는 군악대가 아니라 취타대라고 했다. 요즘 우리 군
인들은 서양식으로 걷는다.  보람 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하는 군가를 부르면서 행진하다. 그
런데 옛날 우리 군인들은  명일금하대취타- 하는 곡에 맞춰 느릿느릿 행진했다.
  이 느릿한 걸음걸이가 우리 군인들의 제일 씩씩한 걸음걸이다. 이걸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할 
이유가 전혀 없다. 지구상에서 어느 정도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나랑[서는 군인들의 의식을 
행할 때 느리게 걷는다. 빠르게 걸으면 오히려 경망스럽다고 한다.
  영국 군인들이나 러시아 군인들은 결코 빨리 걷지 않는다. 영국 왕국을 경비하는 군인들은 근
무 교대를 할 때 30분씩이나 걸린다. 그러니 느린 걸음을 이상하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 전쟁할 
때만 몸을 빠르게 놀리면 되지,의식에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양반들의 금지곡과 인기곡
  그 다음 양반들이 하는 성악 형태를보고 무엇이라고 할까? 바를  정 자를 놓고 붙여서 정가라
고 한다. 양반들 보고  노래 한 자락 하시지요 하고 이야기하면 양반들이 절대 부르지 않는 금지
곡이 있다.
  첫 번째 입이 빨리 돌아가는 것은 절대 안 부른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어
  연평 바다에 어어어 얼싸 돈바람 분다
  얼싸 좋네 아 좋네 군밤이요
  에헤라 생율밤이로구나
  이런 건 절대 안 부른다. 몸 동작도 느릿느릿한 양반들이 방정맞게 입을 재게 촐싹거리겠는가? 
템포가 빠른 곡들은 모두 양반들이 불러서는 안 되는 금지곡이다.
  또 양반들은 기쁨이나 슬픔 같은 감정이 들어가는 노래는 안 부른다.
  아니,아니노지는 못하리라...(기쁨)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슬픔)
  이런 것들은 절대 금지곡이다. 유교 사상은 원래 감정의 억제를 중시했다. 유교 사상은 사실 
서양의 학문이나 종교보다 훨씬 이성을 중시하고 논리를 따지는 사상이다. 흔히 서양의 과학이 
냉철하다고 하지만, 감정을 배제하는 데는 유교 사상을 따르지 못한다.
  그 이유는, 유교에서는 예로부터 예를 앞세운 수직적인 질서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예의 사상
은 아득한 옛날 지금으로부터 3천 년전인 중국 주나라 때 생겼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힐 드러내
는 것은 서로 평등한 관계일 때에야 가능하다.
   난 너를 좋아해,너는 어떠니? 
   너 정말 예쁘구나! 
  이건 친구끼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다.상하 질서가 분명한 사회에서는 이렇게 노골적으로 의사
를 표명하지는 못한다.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감정을 수선화에 빗대거나,자신의 외로움을 열린 
사립문에 비유하는 게 고작이다. 노골적인 감정 표현은  예 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이러한 예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양반의 체모,체통이 생겨났다.
  목숨보다 체통을 중시하는 양반 사대부들은 죽으면 죽었지 감정이 노골적으로드러나는 노래는 
못 부른다. 그래서 이런 노래들도 양반의 금지곡이다.
  그럼 양반의 인기곡은 뭘까? 양반들은 뭘 즐겨 불렀을까? 빠르고 솔직한 노래는 금지곡이니까 
느리고 은근한 노래였을 게다. 그게 바로 시조였다.
  양반들은 시졸를 노래로 읊는 것을 즐겼다. 이를테면 황진이가 지었다는 시조  청산리 벽계수
야,수이 감을 자랑 마라 같은 느릿하고 청아하게 불렀다. 따라서  청---산---리--- 이런 식으로 
부른다. 노래 세 글자까지 하는 데 20초가 넘게 걸린다. 언제 끝날까? 청산리 벽계수야 까지 하
려면 몇 분이 걸릴지 모른다.
  이것을 갑자기  문화 유산의 해 다 해서 우리 학생들한테 가르쳐 보자. 지금 중학생이나 고등
학생을 붙잡고 앉아서  청---산---리--- 이렇게 가르치다 보면 아이들이 기절해 버린다. 좀 음악
을 배웠다는 야들은  선생님,쉼표가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 하지만 우리 음악에는 쉼표가 
없다.알아서 눈치껏 숨을 쉬어야 한다. 쉼표가 있다고 해서 숨을 쉬고,쉼표가 없다고 해서 숨을 
안 쉬는 게 아니다.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음틀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 요즘 아이들은 이것을 소화할 위장이 없다. 
우리 학생들의 머리 속에 들어 있는 건 랩이다. 따라서  청---산---리--- 는 안되고,얼마 전에 
육각수라는 대중 가요 가수들이 부른  흥보가 기가 막혀 같은 노래처럼,마치 원주민들이 주문 외
우듯이 탁탁 끊어 가면서 빠른 랩으로  청산리벽계수야수이감을자랑마라 이렇게 해야 알아듣는
다.
  그러면 일반적으로 기성 세대라는 30대 이상들을 잡고 이런 노래를 시켜 보면 따라하느냐, 역
시 못한다. 30대 이상들은 머리속에 뽕짝 음률이 들어 있다. 나는 뽕짝이 아니라고 아무리 주장
해도 소용없다. 확인해 보면 역시 뽕짝이다. 한때 성주풀이나 새타령 같은 우리 소리를 뽕짝처럼 
불러 널리 유행한 일이 있었다. 곡조는 비슷하지만 창법은 우리 고유의 창법과 전혀 달랐다. 우
선 센박이고 아니고, 기음도 섞이지 않았다. 그저 우리 노래에서 곡조만 따와 가지고 부른 것이
다.
  어릴 때부터 우리 음악을 제대로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으면 좋겠는데,그게 안되어 
있다. 그래도 우리 음악을 말하는 시간이니까 이 청---산---리--- 세 글자까지만 한 번 해보자. 
이 양반 음악을 해보고  야,이거 내가 숨이 안 가쁘고,이런 노래가 정말 잘 되는구나 싶으면 양
반 핏줄이고 아니면 그저 그렇고 그런 핏줄이다.
  이런 양반들 음악이 소위 말해서 정악이라는 음악이다. 정악이란 쓰임새가 정해져 있고,감정 
개입을 허용하지 않는 이성적인 음악이다.
  그러나 느리다가 해서,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이런 음악이 지겨운 음악인 것은 아니
다. 이런 음악을 접할 때는 오디오를 통해서 들으면 맛이 안 난다. 무슨 음악이나 마찬가지지만 
특히 정악이 그렇다. 하지만 공연장에 가서 직접 들으면  야! 정말 장중하고 멋있는 음악이구
나! 하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이런 음악이 바로 정악,양반 사대부의 음악이다.
  고수를 우습게 보지 말라
  양반들의 음악에 비해 일반 민중들의 음악은 감정표현이 훨씬 자유스러웠다. 민중들의 음악은 
민악,속악,향악,민속악이라 부르는데, 삶의 질박한 소리들을 꾸미지 않고 진솔하게 자유롭게 표
현한 각 지방의  소리 들이다.
  남도 예술의 극치인 민족의 구비 서사시  판소리 ,그리고 판소리에서 파생되어 나온 장르로 판
소리식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산조 , 가야금이나 거문고를 연주하면서 판소리나 소리를 하는  병
창 , 판소리를 여러 명이 역할을 나누어 연주하는 창극 ,우리의 절대 신명인 풍물,사물 등 이름
만 들먹여도 신명나는 많은 민속 에술들이 음악과 넘나들고 춤과 넘나들면서 지금도 우리 주위에
서 시퍼렇게 살아있다.                      
  이렇게 살이 있는 우리 민중의 음악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음악의 판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흔히  1고수,2창,3청중 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제부터 이 말을 
하나씩 설명해 보자.
  우선 고수를 보자. 고수란 북이나 장구를 치는 사람을 가리킨다. 우리 음악에서 고수는 반주자
라고 할 수 있다. 고수는 꼭 창하는 사람만을 반주하는 것이 아니라, 가야금,해금,대금 등 악기
를 연주하는 사람들에게도 반주를 넣어 준다.
  서양 음악의 경우에는 이 반주자를 그다지 크게 취급하지 않는다. 서양 음악의 반주자는 그냥 
악보대로 연주하면 그걸로 끝이다. 그런데 우리는 고수라하여 반주라를 굉장히 크게 취급한다. 
이 반주자는 여러 가지 기능을 한다. 우선 고수 고유의 반주자 기능을 한다. 고수의 반주에 따라
서 그날그날 음악의 분위기가 천지차이로 달라진다.
  고수의 기분이 조금 좋을 때면 원칙대로 창을 하는 사람의 운에 맞게 딱딱 쳐준다. 그래서 창 
하는 사람과 듣는 관중이 모두 한껏 흥이 나게되다. 그러나 고수의 기분이 약간 처지면 공연이 
위태로워진다.
  만약 함께 식사라도 할 때 연주자가 조금 나은 음식을 먹고 고수에게 덜한 음식으로 대접했다 
싶으면 반주가 엉망이 될 수 있다. 공연자의 소리에는 아랑곳없이 치고 싶은 대로 치면서 어깃장
을 놓아 버리고 만다.
  그래서 창 하는 사람들은  고수가 굉장한 권력을 지니고 있다는 는 말을 뻐져 리게 느낀다. 실
제로 스승이 제자에게 창을 직접 가르칠 때 스승은 고수 노릇을 한다. 어린 제장가 창을 하면 스
승이 반주를 해주면서 이것저것 가르쳐 주고 고챠 준다. 그래서 창 하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고
수 앞에서 머리를 숙이게 된다.나만 해도 항상 함께 다니며 고수 노릇을 해주는 손심심 선생 앞
에서는 꼼짝도 못한다.
  고수는 또 연출자 기능도 한다. 고수는 공연 전체를 연출한다. 공연 중에 어떤 부분에서 박수
가 나와야 되는데도 객석에서 박수가 나오지 않으면 고수가 자연스럽게 관객들이 박수를 치도록 
유도한다. 
   아따, 두 손 뒀다 뭣 하시오!박수 좀 치시오 
  이런 식이다.
  또한 고수는 관객석을 넘나들기도 하지만 소리판에 직접 끼어들기도 한다. 소리꾼이 악을 쓰다
가 목이 바짝바짝 마르겠다 싶으면 북통을 딱 쳐서 분위기를 환기시킨 다음 너스레를 떤다.
   아,물 한 잔 먹고 해야 쓰겄네. 
  이렇게 고수가 한 번씩 툭툭 던지는 말투나 너스레는 판을 자연스럽게 웃음으로 몰고 가서 소
리꾼이 한숨 돌릴 기회를 주는  것이다.
 고수는 또한 상대자 기능을 한다.소리꾼이 소리를 할 때 대목대목마다  얼쑤!잘한다! 하면서 흥
을 북돋워 준다. 이렇게 해서 청중의 추임새를 유도하는데, 추임새는 관해서는 잠시 뒤에 청중 
이야기를 하면서 자세히 설명하기로 하자.
  서양 음악에서는 이런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노래를 부르는 가수 이외에 반주자들이 말
을 한다거나 참을 수 없어 재채기를 한다면, 그건 큰일날 일이다. 반주자는 반주 이외에 아무짓
도 할 수 없다. 반주자를 정하는 이로 대개 성악가가 한다. 성악가가 대학교수면 피아노 반주자
는 대개 자기 제자나 조교 같은 사람을 쓴다.
  그러나 우리 고수들은 당당하게 관객들한테, 그리고 소리꾼한테도 막 넘나들면서 공연 진행을 
주도하는 연출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추임새는 청중의 몫
  1고수,2창,3청중. 세 번째가 청중이다. 2번 창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청중부터 이야기하자. 
우리 음악에서 청중은 어떤 역할을 할까?
  고수가 하는 역할은 이미 이야기한 바와 같다. 고수는 창 하는 사람의 상대자 역할도 하고, 연
출자 역할도 하고,반주자 기능도 한다. 그렇다면 고수가 1번인 건 알겠는데 청중은 왜 들어 갈
까? 청중이 무슨 공연을 한다는 걸까?
  청중도 공연을 한다. 청중은 고수와 더불어 노래한는 데 받침 역할을 해준다. 서양 음악의 청
중과는 달리 우리 음악에서는 청중이 공연과 전혀 불리된 사람들이 아니고 항상 판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다. 구체적으로 청중이 참여하는 게 뭐냐 하면 추임새를 넣는 것이다.
  서양 음악은 듣는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조용히 감상해야만 백점짜
리 관객이 된다. 그런 것이 서양의 관람 예절이다.
  하지만 우리 음악의 관객은 조용히 감상만 하다가는 빵점짜리 관객이 되고 만다. 추임새를 할 
수 있어야 진짜 관객이요 청중이다.또 우리 음악은 이런 추임새를 넣어 가면서 공연을 감상해야 
흥이 나고 재미가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지금 서양식 관람 예절에 물이 들어서 공연을 보러 가서도 전부 입을 딱 
다물고 정중하게 앉아 있다. 이건 우리 예술에서 오히려 공연을   방해하는 일이다.
  관객이 가만 앉아 있기만 하면 연주자도 신이 안 난다.  에이, 오늘 관중은 영 재미가 없군,대
충 시간이나 때우고 출연료나 받아야겠다 이렇게 생각한다. 관객ㅇ로서는 본전도 못 뽑게 되는 
순간이다. 관객이 공연에 동참해서 추임새를 열심히 넣어줘야 연주자도 신이 난다. 그래서 공연
장에 갔을 때는 조금 안 맞아도 추임새를 많이 넣어 줘야 좋은 공연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우리 음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양념인 추임새란 대체뭘까? 추임새란 추켜 세워 준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그 정의를 내려보면,연주자나 소리꾼에게 흥을 돋워 주기 위해 넣는 탄성음이
라고 할 수 있다.
  이 추임새도 지방마다 다 다르다. 경기도를 포함해서 황해도와 평안도 지역에서 쓰는 추임새는 
얼쑤다. 그래서 봉선탈춤,강령탈춤,산대놀이 등 탈춤을 보러 온 청중은 이 장단이 나오면  얼쑤!
얼쑤!얼쑤! 이런 것을 넣어 줘야 한다. 그래야만 광대가 펄떡펄떡 신이 나서 더 춤을 잘 출 수 
있다. 이런 일이 바로 청중의 몫이다. 이렇게 청중들이 추임새를 넣어 줘야 판이 훨신 살아나는 
것이다.
  경기도,황해도,평안도 지방에서는 흔히 타령이라는 장단을 많이 쓴다. 타령의 장단과 장단을 
이어 가는 사이에는 비는 공간이 생긴다. 이 빈곳에 관객과 고수가 추임새를 넣어준다. 추임새를 
얼마나 잘 해주느냐에 따라 그날 공연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잘 안 맞
는 추임새를 할 경우 그것은 연주자나 소리꾼을 도와 주는게 아니고 오히려 방해하는 것이다.
  이 북주 지역의 추임새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뭐가 됐는고 하니  이싸,아싸!  하는 게 되었다. 
이것도 일종의 추임새다. 하지만 일본에서 생긴 말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아싸!아싸!아싸! 하는 
것은 자제해야 마땅하다. 우리 어감상으로 보더라도  얼쑤! 하고  아싸! 하고 어느 쪽이 더 무게
가 있을까? 당연히  얼쑤! 가 훨씬 무게가 있어 보인다. 역시 우리에게는 우리 추임새가 맞는 것
이다.
  전라도로 가면 추임새가 전라도 사투리로 변한다. 얼쑤 하던 것을 헐씨고! 하고 이렇게 전라도 
사투리로 해주어야 맛이 난다. 헐씨고.좋다,좋지,잘 헌다! 이것이 전라도의 추임새다. 잘한다가 
아니고  잘 헌다 이다.  그렇지,암믄,어이! 하는 것도 있다.
  경상도 지방에 가면 경상도 사투리를 써야 한다. 경상도에서 는  잘 한다-- 하면서 뒷부분을 
쭉 뽑아 올려 주어야 한다.
  잘 한다-----(자진모리 2장단 정도)

  아이고 누집 아들이고----

  얼씨고 조오타----
  경상도 추임새는 뭐든지 쭉 뽑아 주면 무조건 좋은 추임새가 된다. 추임새도 지방 사투리를 제
대로 맞춰야 한다. 전라도 판소리를 한참 하는데 거기다 대고  잘 한다--- 하면 흥만 깨기 십상
이다.
  강원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태백산맥을 따라 들일을 한다든지,나물을 캔다든지,산에서 일을 
할 때는 독특한 추임새를 넣는다.  이후후후후---- 하는 아주 높은 고주파의 가성이다. 이 소리
를 산 노래(어산령,사영이노래,나무꾼구노래)의 중간중간에 추임새로 넣는다.
  산에서 일할 때는 박자에 맞춰 노래하기가 더 어렵다. 이 산 저 산 돌아다니면 걷고 일하는 것
만도 힘든데, 노래하면서 박자까지 맞추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박자 없이 노래를 하기 때문
에 강원도나 경상도 지역의 산악 지방에서는 독특한 추임새가 발달했다. 하지만 이렇게 추임새가 
독특해진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한 백년이나 이백 년 전에는 산에 호랑이가 있었다.곰도 있었고,멧돼지도 있었다. 이 위험한 
산짐승들이 들판에서 일하거나 산에서 일할 때 사람에게 접근을 한다. 사람들한테 해를 끼치는 
일도 적잖았다. 그래서 이렇게 높은 고주파의 소리를 규칙적으로 계속 내줌으로써 산짐승들의 접
근을 막는다느 의미가 있었다.
   또 조용한 산중에선느 큰 소리보다 이렇게 높은 소리가 더 멀리 퍼져 나간다. 그래서 다른 사
람들에게 소리를 전하거나 위치를 확인하는 데도 이만한 신호가 없었다.
  태백산맥의 첩첩산중은 강원도만이 아니라 경상북도에까지도 이어지므로 경상도에서도 태백산
맥 언저리에서는 이런 식의 추임새를 쓴다.
  이렇게 추임새를 넣을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아무리 추임새가 좋다고 흥을 돋우는 것이라 
해도 상황을 보아 가며 해야 한다.  좋다,좋지 이것도 추임새로는 좋지만,슬픈 대목에선 좀 곤란
하다. 특히 호남 지방의 남도 소리에는 그 내용이 슬프고 구성진 대목이 많다.
  불쌍허네,불쌍허네, 곽씨 부인이 불쌍허구나!...
  이런 대목을 판소리로 하고 있는데,여기다가  좋다! 이렇게 추임새를 넣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가지 마오,가지 마오,불쌍한 영감아, 가지를 마오...
  구슬프게 창을 뽑는데 자기 딴에는 흥을 돋운다고  잘 헌다! 한다면 판이 어떻게 되겠는가? 추
임새를 넣을 때도 분위기 파악이 중요하다.
  이제 추임새가 뭐고 어떻게 넣는 건지는 알겠다. 그러면 추임새는 언제 넣어야 하나? 소리꾼들
이 판소리를 하면서 추임새 넣으라고 표시를 해준다면 좋겠는데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정신을 
집중해서 가만히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이따금씩 틈이 보인다. 그 틈에 추임새를 넣는 것이다. 
제때제때 잘 들어가야 진짜 배기 추임새가 된다.
  이렇게 우리 음악의 청중은 서양 음악의 청중에 비해  언론의 자유 를 많이 누릴 수 있다. 추
임새를 넣을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유를 퍼부을 수도 있다. 탈풀판 같은 곳에서는 못된 
역할을 하는 춤꾼을 향해 야유를 퍼붓는다. 이렇게 해서 스트레스를 푸는 거다. 예술의 기능이 
대체 어디 있겠는가?
  또 우리 음악에서는 서양 음악처럼 한 곡 한 곡이 모두 끝난 뒤에 박수를 치는 게 아니라 중간
중간에도 박수를 칠 수 있다.
  흥이 나면 자연스럽게 표출하면 되고, 욕하고 싶으면 욕하며서 마음대로 스트레스를 푸는게 바
로 우리 음악이다
  명창이 갖춰야 할 조건
  마지막으로, 창 하는 사람을 이야기해 보자.
  노래하는 사람은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냐면 첫 번째 인물새가 있어야 한다. 인물이라니까 뭐, 
긴장할 필요는 없다. 인물 좋은 사람은 으쓱대고 인물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풀이 죽으라는 그 
인물새가 아니다. 얼굴이 잘 생기고 어떻고가 아니라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창 하
는 사람은 예의도 바르고 지식도 많이 갖춘 인간다운 인간이 되어야 한다.
  모든 예술이 그렇지만 우리 소리는 사람됨이 배어 나오는 그런 소리다. 사람됨은 부실한데, 소
리 조금 배웠다고 건들거리거나 깝죽대면 소리가 크지 못한다. 아무리 솜씨가 늘어도 그런 소리
에는 한계가 있다. 이걸 한자말로 재승박덕이라 한다.재주는 있는데 덕이 없다는 뜻이다. 덕이 
없는 재주는 어느 정도 발전하다가도 결국 벽에 부딪히고 만다. 이러한 내면의 인물됨을 갖추었
을 때 우리는 넓은 광자,큰대자를 써서 광대라고 부른다.
  두 번째는 사설이다. 방금 전에도 재승박덕이라는 한자말을 썼지만, 판소리 가사에는 유독 한
자말이 많이 나온다. 이 한자말 모두모두의 제 뜻을 알기란 결코 쉽지 않다. 나는 소리를 공부하
지 한자를 공부하는 게 아니다,이렇게 생각하고 판소리에 나오는 한자어의 발음만 배워서는 제대
로 된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가사의 뜻을 알고 소리를 하는 것하고 뜻을 모르고 하는 것은 천지
차이다. 소리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공부 또한 열심히 해야 한다.
  더구나 판소리 같은 것에서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사건들이 많이 나온다. 따라서 역사에도 해
박해야 판소리의 제 맛을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춘향가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또 자제 도련님이 연광은 이팔인데
  얼굴은 관옥이요, 풍채는 두목지라
  이청련의 문장이요,왕우군의 필법이라
  여기서 두목지가 당나라의 시인이고, 이청련은 역시 당나라의 시인 이백을 가리키는 이름이며,
왕우군이 중국 동진 시대 명필인 왕희지임을 알지 못한다면,이 대목이 이몽령의 자질이 뛰어남을 
말하는 내용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이 대목을 제 맛을 내서 부를 수 없다.
  수궁가에는 진황 만리장성 쌓듯... 하는 구절이 나오는데, 진시황이 만리장성 쌓은 역사적 사
실을 알지 못하면 이 대목을 제대로 불러 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또 흥보가에 나오는 이런 구절
을 보자
  초패왕이 장한 칠 제 삼일량만 가졌으며,
  한신이 진여 칠 제 배수진이 영웅이라...
  이런 대목이 나오는데, 초나라와 한나라가 패권을 다투던 중국 고사를 알지 못하면 장한과 진
여가 사람 이름인지 땅 이름인지도 구분하지 못할 것이다.
  세 번째는 득음이다. 소리를 얻는다는 뜻인데, 목소리를 틔워야 한다는 얘기다.
  흔히 판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목에서 피가 난다는데 정말인가,하고 묻는 이들이 많다.피가 나
긴 난다. 나는데 일반인들은 피를 어떻게 내는 식으로 알고 있냐면 양동이로 쏟는 줄로 상상한
다. 폭포수에서 목청껏 노래를 부르면 푸푸하고 피가 커져오는 줄 안다. 사실 이렇게는 안 나온
다. 성대를 계속 쓰다 보면 성대의 실핏줄이 조금씩 터져서 양치할 때 피가 섞어 나온다.
  이 피를 세 말 흘려야 명창이 된다고 한다 큰 석유통 세 개만큼 피를 흘려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득음은 아주아주 어렵다.
  우선 처음 10년 동안에는 한 선생님 밑에서 제를 받는다. 동편제,서편제 할 때의 그  제 인데 
,우리말로는  바디 라 한다. 이것은 소리의 큰 맥으로,소리 전체의 분위기가 기상이 있고 우렁차
고 아침에 해가 떠오르는 듯한 힘찬 소리는 동편제이고, 서녁에 해가 지는 아련함으로 감정을 섬
세하게 전달하고 듣는 이의 마음 깊숙이 파고드는 소리는 서편제이다.
  이 두 가지  제 의 장점을 모은 것은 중고제로, 그 가르치는 선생님마다  제 가 각기 다르다. 
우선은 자기 목에 맞는  제 를 잘 선택해야 한다.
  그 다음 10년은  더늠 이라 해서 자기가 가진 바디 외에 다른 선생님의 주특기 대목을 배우러 
다닌다. 혹시나 나중에 이 더늠을 이용할 때는  이 대목은 000선생님의 주특기 대목인데,흉내를 
한 번 내보겠습니다 하고 출전을 밝히고 들어간다.
  나머니 10년은  독공 이다. 수시로 산에 들어가 백일 공부를 하며 혼자서 목이 터져라 소리 공
부를 한다. 이 기간에는 몇 시간을 불러도 목이 쉬지 않고, 한 번 내지르면 멀리까지 퍼져 나갈 
수 있는 성량을 키운다. 말이 쉽지 이렇게 기본 30년의 엄청난 세월을 요구하는 게 소리 공부다. 
그래도 득음은 할동말동 했기에 오죽했으면 소리꾼의 길을 가도라 불렀을까?
  첫째로 인물새, 두 번째 사설, 세 번째 득음, 네 번째는 뭐냐면 너름새 또는 발림이라는 것이
다. 유심히 본 사람은 알겠지만 판소리를 할 때는 꼭 부채를 손에 든다. 부채는 흥보 두들겨패는 
몽둥이도 되었다가, 또 심봉사 지팡이도 되었다가, 또 심청이로 둔갑한다. 또 양손이 소리하는 
데 어줍잖을 때 부채를 꼭 쥐면 저절로 힘이 새겨 복압이 세어진다. 이 부채를 가지고 판소리의 
줄거리에서 내용상 꼭 연기가 필요한 부분에 적당하게 표정과 몸짓으로 효과를 극대화시켜  주는 
것이 바로 너름새다.
  판소리의 이 너름새를 억지로 서양식 용어에 끼워 맞춘다면, 마임 이라고 할 수 있곘다. 흔히 
팬터마임이라고 부르는 마임이란 몸짓,제스처를 말한다. 하지만 마임이라고 해서 팬터 마임처럼 
과정된 몸짓,큰 제스처,코믹한 표정 등 이런 것은 아니다.
  판소리의 마임은 이보다는 훨씬 소극적이라 할 수 있다. 판소리는 아무래도 몸짓 위주라기보다
는 소리 위주로 흘러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채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적절한 몸짓을 취해 주면 
판소리는 더욱 살아난다.
  판소리와 탈춤은 민중의 저항 예술
  1고수,2창,3청중이 한데 어울려 낳는 것이 바로 우리 민족 예술의 극치인 판소리다.흔히 판소
리를 민요하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여기서 그 차이를 지적하고 넘어가겠다.
  우리 백성들이 옛날부터 쭉 불러  왔던 노래를 민요하고들 한다. 그런데 사실  일본에서 흘러
들어 온 용어이다. 백성  민 자 노래 요 자 쓰는 것인데, 원래 우리 조상들은 민요라 않고 뭐라
고 했냐면  소리 라고 했다. 그냥 소리라고 해도 다 통하지만,이 소리도 구체적으로 파고들면 팔
도강산 전부 부르는 이름이 각기 다르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옛날에  소리 해봐라 고 할 때  진소리 한자리 해봐라 했고, 호남 지방에서
는  육자배기 한자리 해봐라 고 했다. 또 충청,경기도 지방에서는  경드름 이라는 말을 썼고 입
구 지방에서는 소리를  염불 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것을 알기 쉽게 정리하면 이렇다.
  양반들의 성악 : 노래 -시조,정가,가곡
  백성들의 성악 : 소리
             강원 남부,경상도 - 진소리 (길게 뽑아낸다)
                                메나리소리(산메아리 지르긋이 소리를 낸다)
             전라도 - 육자배기 (호남의 여섯 박자 육자배기가 대표 통칭으로                  
                 쓰인다.
             충청,경기도 - 경드름,경토리
             황해,평안도 - 염불(염불하듯이 목을 쓴다)
                           수심가(대표적인 소리가 통칭으로 쓰인 예)
  그 중에서 호남 지역의 소리들을 중심으로 민간에 떠도는 설화나 ,민담, 전설들이 서사적으로 
집대성되어 음률을 타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판소리다.
  이 판소리는 언제 왜 생겨났는가? 이제 그것을 살펴보자. 16,17세기에 우리나라는 엄천나 전쟁
을 두 차례 겪는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다. 임진왜란은 일본이 침입한 전쟁이고 병자호란은 
청나라가 침입한 전쟁이다.
  이 두 차례 전쟁만 해도 지긋지긋한데,이 두 전쟁은 또 쌍둥이 전쟁이라서 임진왜란 몇 년 뒤
에는 정유재란이 있었고, 병자호란 몇 년 전에는 정묘호란이 있었다. 그러니까 16세기 말부터 17
세기 초까지 50년도 채 못되는 기간 동안 조선에서는 무려 네 차례의 큰 전쟁이 있었던 셈이니 
50년 동안 한반도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이다.
  전쟁이 터지면 다들 고생하지만, 가장 고통을 겪는 것은 일반 백성들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의 
임금이었던 선조는 평복을 입고 야반도주해서 순식간에 의주까지 도망쳤지만, 남은 백성들은 왜
군들에게 몹시 시달렸다. 병자호란 때도 임금과 신하들은 적군이 코 앞에까지 오도록 대책도 못 
세우고 싸워야 한다,말이야 한다는 놓고 말다툼이나 벌이는 동안, 백성들과 국토는 청나라 병사
들에게 무참히 짓밟혔다.
  어디 그뿐인가? 전쟁의 피해는 전쟁이 끝난 뒤가 더 크다.50년 간 전쟁을 치르느라 국력을 쪼
그라들었고, 백성들은 살 길이 막막했다. 먹고 살기가 힘드니까 부자나 관리들은 백성들을 더욱 
못살게 굴었다. 17세기 내내 백성들은 굶주림에 시달리다 여기저기 떠돌며 걸식하는 유민이 되었
고 일부는 화적이 되어 범죄를 저질렀다.
  이렇게 고통을 겪는 백성들이 정부를 고운 눈길로 볼 리가 없다. 그래서 정부를 바라보는 백성
들의 눈초리도 크게 달라졌다.체제 부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예전처럼 고분고분 따르지는 않게 되
었다.
  이러한 민중들의 각성으로 생겨난 게 체제 반항 예술이다.  과연 무엇이 문제이기에 이런 고통
을 겪게 되었는가? 이런 물제에 눈을 뜬 민중들은 겉으로는 양반이 지배하는 유교 체제에 순종하
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그렇지 않다. 그런 백성들의 속 마음이 표출된 것이 바로 민중의 예술이
었다. 백성들은 탈놀이와 꼭두놀이,판소리를 통해서 제도적인 모순을 신랄하게 꼬집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소리가 발달한 전라도를 중심으로 생겨난 판소리다. 판소리는 바로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다. 뭐?판소리가 반항의 예술이라고?이런 의문을 품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
런 의문을 품는 것도 사실 당연하다. 겉으로만  보면 판소리의 주제는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는 유교 윤리를 노래 속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런 큰 주제 말고 조그만 주제들이 그안에 있다. 이를테면 백성들은 흥보
가 가난에 찌들어 사는 모양의 가난타령에 모두 웃었고, 박통 속에서 쌀이 나오는 박타령에 입맛
을 다셨다. 효녀 심청의 이야기는 수백 번을 들어 다 아는 내용이지만,소리꾼이 쥐어짜는 슬픈 
대목에 아예 목이 터져라 꺼이꺼이 우는 청중이 다반사였고, 하층민의 처지인 춘향이가 끝까지 
절개를 지켜 이동령이 암행어사 출도를 할 때쯤이면 아예 오줌을 찔끔ㄹ거리는 청중도 있었다.
  이렇게 판소리 주인공들의 삶은 백성들 자신의 삻과 동떨어지지 않았기에, 그리고 모두들 그와 
비슷한 희망들을 안고 살았기에 백성들은 거창한 주제보다는 자그마한 토막소리들을 더 좋아했
다.
  판소리와 더불어 또 뭐가 생겼는고 하니 탈춤이다. 제 나라 백성들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던 정
부를 고운 눈길로 보지 않게 되니까 그 동안 지배층이었던 양반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백
성들의 눈에는 양반들도 허약한 존재로 보였다. 신분 체제가 무너지기 사작한다. 하지만 아직까
지는 양반 세상, 대놓고 양반들한테 욕을 했다가는 무슨 보복을 받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백성들은 탈을 쓰고 양반에게 욕을 한다. 그러면 양반들도 딱히 꼬집을 수 없이 대충 
넘어간다. 탈춤을 추고 난 다음에 탈은 불에 태워 버린다. 그래서 생긴 말이  뒤탈을 없앤다 는 
말이다. 그밖에   꼭두각시 놀음도 있다. 이것도 탈춤과 비슷하게 백성들의 애환을 담은 것인데,
탈을 쓰고 하느냐 꼭두라는 인형을 가지고 하느냐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일반 백성들이 양반하고 갈등이 있을 땐 탈을 만들어서 변색도 하고 변성도 하고 스트레스를 
풀었다. 탈의 모양을 그 동네에 있는 못된 양반의 얼굴과 딱같이 만들어 탈춤을 추는 거다.
  이 탈에서 나온 게 바로 바가지다. 집안끼리 사이가 안 좋을 경우에는 바가지를 사용했다. 서
로 원수 사이인 박씨 가문의 종손과 김씨 감문의 종손이 만난다. 두 사람은 표주박을 딱 잘라서 
바가지 두 개를 만든다. 여기다 술을 담아 마시고 나서 요놈을 강물에 두 개 다 띄운다. 모든 원
한을 강물에 띄워 버리는 것ㄹ이다. 조상들은 이럴 때 바가지를 사용했다.
  또 며느리들이 시집 식구들한테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때도 바가지를 잘 활용했다. 며느리들
은 어디서 시집살이의 스트레스를 풀까?
  마을마다 여성 해방터가 한 군데씩 있다. 바로 우물가다.우물가에서 이 바가지를 탁 엎어놓고 
제일 미운 사람부터 이름을 댄다. 전라도 말로 머리를 마빡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부르는 노래
가  시어미 마빡 뚝딱,시할매 마빡 뚝딱,시고모 마빡 뚝딱,시누 마빡 뚝딱 하는 노래다. 이런 노
래를 부르면서 바가지를 두들긴다.
  그뿐인가? 바가지를 등에 집어넣고 춤을 추면 곱사춤이다.
  이렇게 바가지의 용도는 아주 다양했다. 소리꾼이 부채를 너름새로 사용하는 것처럼 바가지는 
일반 백성들이 스트레스를 푸는 적절한 소도구요 너름새였다. 게다가 바가지는 그 경쾌한 깨지는 
소리로,또 우스꽝스러운 탈의 모앵으로 민족의 애환을 풀어주는 고마운 스트레스 해소용 기물이
었다.
  이렇게 판소리와 탈춤과 꼭두극은 힘 없고 빽 없는 백성들이 생활을 노래하고 한풀이하는 데서 
생겨나고 성장했다. 이 민중의 음악은 이제 양반 사대부의 음악보다 훨씬 더 우리 음악을 대표하
게 되었고, 국제적으로도 그 진가를 인정받았다.
  판소리는 역시 전라도
  세게에서 혼자 하는 노래로 가장 긴 것은 단연 판소리다. 서양 사람들이 즐기는  오페라는 수
십 명이 출연해서 각자의 역할에 따라 노래를 부르고,막이 바뀔 때마다 노래를 많이 하는 주인공
들이 바뀐다.
  왜냐하면 서양의 창법은 두 시간 이상을 하게 되면 목이 아파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적
으로 노래를 많이 하고 따라서 주인공들도 막마다 바뀌는 것이 상식이다. 또 관객들도 으레 그렇
게 생각한다.
  하지만 판소리는 혼자서 남녀노소, 군중의 역할을 모두 다 해낸다. 소리꾼 한 사람이 여럿의 
몫을 하는 만큼 길이도 엄청나게 길다. 판소리를 완청하는 데는 보통 대여섯 시간이 걸린다. 춘
향가는 여덟 시간이고, 흥보가는 아홉 시간이다.
  언젠가 프랑스 사람들이 뭣도 모르고 파리에서 우리나라 소리꾼을 초청해서 춘향가의 완창을 
부탁했다가 여덟 시간 동안 그곳 관객들이 화장실도 못가고 혼이 난 일이 있다. 프랑스 사람들은 
추임새를 넣는 건지도 모르고, 가만히 앉아 있었을 테니 소리꾼도 답답해서 덩달아 혼이 났을 게
다.
  이 판소리가 18세기에 인기를 끌면서 악기를 가지고 판소리식으로 연주한 것이 생겼는데, 그게 
바로 산조다. 그 다음에 노래를 판소리식으로 하는 것을 병창,여러 명이 꾸며서 공연하는 것을 
창극, 이런 식으로 판소리는 가지를 쳐나간다.
  이렇게 우리 음악에는 많은 종류가 있다. 크게 나누어 양반들 음악한 덩어리하고 일반 백성들 
음악 한 덩이가 있는데 이게 합해져서 바로 우리 힘을 이룬다.그만한 음악적인 힘과 기반이 있었
기 때문에 그렇게 엄청나게 긴 판소리가 가능한 것이다.
  이런 엄청난 에술을 낳는 비결은 바로 풍부한 지역성에 있다. 판소리를 할 때는 어느 지역 말
씨로 해야 맛이 날까? 전라도 말로 해줘야 맛이 난다. 판소리를 서울 말씨로 한다면 이거 상상만 
해도 못 들어 준다.
  흥부 있니?
  아,형님 오셨어요
  형이아, 문 좀 열어 줘.
  이렇게 똑똑 떨어지는 서울 말씨로 해서는 못 듣느다. 그렇다고 경상도 말씨로 판소리를 한다
면 더 못 듣는다.
  그래갖고 놀부가 몽딩이를 들고 나와갖고
  동생을 개 잡듯이 두들겨패는데,
  헹님, 한 번 봐주이소, 한 번 봐주이소.
  이것도 영 어울리지 않는다. 역시 판소리는 전라도 말씨로 해야 한다.
  하루는 제 동생 흥보를 부르는디
  와가리 성음을 내야서  네 이놈 흥보야 
  흥보 이 소리 듣고 나오더니마는
   아이고, 형님 부르셨습니까? 
   오냐,불렀다. 네놈은 허구헌 날
  꼬바리 손이나 집어넣고 관대가리나 둘러쓰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실넘실 다니다가


  내방 출입은 자주 하야 자식 새끼는
  도야지 물똥 싸득기 움쭈루루 놔놓고
  허구헌 날 내 재산만 축을 내고 있으니
  내 두 눈꼬랑댕이가 시려서 못 봐주겠어.
  오늘은 니 처자 권속들을 데리고 나가도록 하여라. 
  이렇게 해야만 판소리의 제 맛이 난다. 판소리의 제격은 전라도다.
  지역성을 얘기했는데,정치에서는 지역성이 강조되면 안되지만 우리 예술에서는 지역성을 강조
되어야 더욱 풍부해지고 생생해진다. 정치에서 지역성은 독약이지만 우리 음악에서 지역성은 보
약이다.
  우리 노래는 언덕 하나 넘고 시내 하나 건널 때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각 지역의 특색에 맞도
록 조금씩  변형되면서 그 내용이 점차 풍부해지는 거다. 이렇게 언덕 하나,시내 하나 차이로 달
라지는데 하물며 산맥을 넘고 큰 강을 건너면 말할 것도 없다.그래서 팔도강산이 모두 제각기 특
색을 지녔다.
  저 남쪽 지리산 부근엘 가면 경상도와 전라도가 맞닿은 곳이 있다. 경상남도 하동과 전라남도 
구레를 가르는 강이 섬진강인데 폭이 좁은 데 가면 50미터 정도밖에 안된다. 옛부터 다리를 놓고
서 왔다갔다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인데도 말씨가 크게 다른 걸 보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른
다. 한쪽에서  형님,어데 가십니꺼 하는 말이 짧은 다리 한나만 건너면  아따,성님 워디가쇼잉 
으로 바뀌어 버리는 거다.
  그러다 보니까 명창도 되는 조건도 지역에 따라 다르다. 지금 명창이라 할 때 맑은 목소리를 
명창이라 할까. 탁한 목소리를 명창이라 한다
  특히 남쪽으로 갈수록 탁한 목소리를 명창이라고 한다. 걸쭉한목소리로,  흥보가 기가막혀 나
가라는 말을 듣더니마는 요런 식으로 해야 명창이다. 반면 중부 지방에선 어떤 소리를 명창이라 
하느냐면 맑고 청아한 소리를 최고로 친다.
  또 북부 지방으로 가면 날카로운 소리를 많이 쓴다.  왔구나,왔소이다.황천 갔던 배뱅이가 박
수무당 입을 빌고 몸을 빌려 왔소이다 이런 식이다. 으은관 선생님이나 최창남 선생님,이런분들 
목소리는 굉장히 날카롭다. 그래서 요즘 북한의 경우에도 그 목소리를 그대로 이어받아 놓으니까 
북한 예술단들의 공연을 보면 그것과 비슷하게 아주 간드러지고 새된 소리를 많이 쓴다.
  이렇게 우리나라는 지역성이 굉장히 발달해 있는 나라다. 지방마다 말씨와 억양,좋아하는 음식
이 다 다르다. 아이 기르는법도 다르고 죽은 사람 매장하는 법도 다르다.시신을 매장할 때 대개
는 관까지 함께 묻지만,충청도 지역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시신을 관에 넣어 장지에까지 와
서는,관에서 시신을 꺼내서 묻고 관은 태워 버린다.
  이렇게 나서부터 죽을 때까지의 생활 관습을 지방마다 약간씩,혹은 크게 다르다. 그러니 노래
와 같은 에술을 말할 것도 없다. 예술은 사람의 생활을 담아 내는 그릇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
다.
  시작은 있으니 끝이 없는 아리랑
  지방마다 우리 음악에 커다란 차이가 생기는 것은 우리 민족의 대표적 노래인 아리랑엣도 볼 
수 있다.
  정신대로 끌려갔다가 캄보디아에서 50년 이상 살고 있는 훈할머니의 아리랑 소리를 들으면서 
누구나 가슴이 찡했을 것이다. 고향도 모르고 이름도 어렴풋하고 나이도 모르고 우리말도 다 잊
은 훈 할머니가 한국인이라는 증거는 너무나도 또렷하게 부르는  아리랑 이었다.
  가늘게 부르는 그 아리랑 소리에 수만 가지 사연이 다 담겨 있는 것 같아 듣는 이들은 갈끝으
로 살집을 후벼 파는 아픔을 느꼈다.아리랑이란 노래는 우리 민족이 고통을 겪을 때 주로 불렀던 
노래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리랑은 하나의 노래가 아니다. 종류만 해도 엄청나게 많다.
  가장 널리 알려진 아리랑은 이런 것이다. 다른 나라 음악책에도 한국의 소리라고 해서 소개되
어 있는 아리랑이다.한번 같이 불러보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이 아리랑을 부르는 창법도 뒤가 센 서양식이 아니라 우리 식으로 앞이 센 창법이다. 호흡을 
하고 나서 바로 성대를 거치는 게 아니고 입부터 먼저 만들고 나서 성대를 거친다.아리랑의  
 아 자도 소리를 내기 전에 먼저 입부터 만든다.  리 도 마찬가지고,  랑 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부르면 아,리,랑,이렇게 한 글자 한 글자가 강조된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널리 부르는 아리랑 노래에도 문제가 많다. 대부분은 서양식 창법으로 힘 
없이 아리랑을 부른다.그리고는 이렇게 변명한다.
   아리랑은 슬픈 노래니까 이렇게 부르는구나.   
  하지만 과연 그럴까? 진짜 아리랑은 맥 없이 부드럽게 이어지는 정서로는 도저히 부를 수 없
다. 자,센박으로,입을 먼저 만들어 가면서 힘차레 불러 보자. 각 마디마다 맨 앞 글자에 힘을 불
어넣는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노래인 아리랑은 그 가지 수만도 300가지가 넘는다. 각 지방마다 그 지방을 
대표하는 아리랑이 있을 정도다. 호남 지방에는 그 유명한 진도아리랑이 있다. 진도아리랑은 이
렇게 진행된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리리가 났네 헤으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문경 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 진다
  이것이 1절인데 이래 가지고 몇 절까지 있느냐면 천오백 절까지 있다. 놀라겠지만 정말이다. 
이렇게 많으니까 한참 가다 보면 별별 가사가 다 나온다.
  또 세월이 갈수록 자꾸 거기에 또 가사가 보태진다. 그리고 시대를 풍자한 가사도 생긴다. 일
제 시대에는 당시의 사회상을 풍자한 가사가 유행했다.
  말깨나 하는 놈은 가막소로 가고요
  인물깨나 생긴 년은 술집으로 가더라
  또 며느리들만 부르는 가사도 따로 있다. 우리는 보통 가족끼리 한데 모여 사는데,아무래도 좁
은 집에 살다 보니까 서로 부딪히는 기회가 많다, 그러다 보니까 주로 며느리들이 스트레스를 많
이 받는다. 며느리들이 스트레스를 푸는 여성 해방터가 어디다?앞에서 우물가를 이야기했는데, 
한 군데 더 있다.
  빨래터가 바로 거기다. 여성 해방터인 빨래터는 동네 며느리들만 모이는 곳이다. 며느리들끼리 
집합헤서 빨래 방망이를 딱 들고 누구 빨래부터 내놓느냐면 시어머니 빨래부터다. 요놈을 두들기
면서 진도아리랑의 가락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떳네 떳어 무엇이 떳나
  시어마시 오강 단지에 똥 덤뱅이가 떳네
  시아버지 줄라고 명태국을 끓였더니
  아이고야 어쩔거나 빗자리몽댕이로 삶았네
  이렇게 가사들이 계속 생기고 이어지고 하니까 천오백 절도 적게 친 셈이다. 사실은 셀 수 없
을 만큼 많다. 심지어 1970년대에 생긴 가사 중에는 외래어가 들어가는 것도 있다.
  하모니카 불거들랑 님 오는 줄 알고
  국죽새가 울거들랑 봄 오는 줄 알아라
  이번에는 강원도로 한 번 가 보자. 똑같은 아리랑인데 강원도로 가면 너무너무 재미있게 변한
다. 강원도는 알다시피 평야가 적고 산이 많다.그래서 강원도 여자와 결혼하고 나서 친척 어른들
에게 인사하러 가면 꼭 안 빠지고 물어 보는 말이 있다.   
   자네 각시 다리를 잘 살펴보았는가? 
   우리 각시 다리가 왜요? 
   이 사람아, 강원도 여자는 예전부터 한쪽 다리가 짧다는디 잘 살펴보아야제. 
  이런 얘긴데, 웃자고 하는 농담이니까 이걸 정말로 알아듣고  아,그렇구! 하지 말기 바란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다른 지역은 밭이 평평한데 강원도는 경사진 밭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원도에서는 밭을 매러 간다 하면 전부 한쪽 다리가 비스듬하게 짧아진다는 우스갯소리다.
  경사진 산비탈을 올라가면서 남쪽 지방 같이 할 수는 없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이렇게 부
르며 올라갔다간 금세 숨이 가빠 헉헉거릴 거다. 그래서 강원도에서는 산에 올라갈 때  이 노래
가 다른 식으로 발달했다.우선 박자가 빠르지 않고 느릿느릿해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오오오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먹장구름이 다 모여든다
  정선아라리라는 노래다. 지팡이 짚고 산에 올라가면서 이렇게 느릿느릿 부르는 거다. 이런 식
으로 해서 가사가 천 절이 넘는다.
  모두 산에 올라가는 것만 있느냐 하면 내려가는 것도 있다. 급하게 내려올 때나 바삐 서둘러야 
할 때는 엮음아라리라 하여 사설을 달아서 죽 늘어놓는 식으로 하다가 아라리가 들어가는데,그 
짜임새가 정겹다.
  태산준령 험만 고개
  칡넝쿨 설크러진
  가시덤불 헤치고
  시냇물 굽이치는
  북원천리 허급지급 허위단심...
  소리는 전라도,춤은 경상도
  다음에는 경상도 지역으로 가보자. 경상도 지역의 대표 아리랑은 밀야아리랑이다.밀양아리랑은 
사실 경상도식으로 약간 거칠게 불러야 맛이 난다. 절간에 간 색시 모양으로 말랑말랑하게 날 좀 
보소,날 좀 보소,날 좀 보소오 하면 맛이 안 난다.
  경상도 말씨는 억양이 퉁명스럽다. 워낙 독특한 억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경상도 사람은 어
렸을 때 서울로 와서 30년을 살았어도 경상도 억양을 버리지 못한다. 이렇게 말시 자체가 고집스
럽기 대문에 자기 스타일도 고집스럽게 지킨다.
  이렇게 고집스러운 데다 경상도 사람들은 원래 표현력이 좀 떨어지는 사람들이다. 경상도 신랑
하고 사는 여자분들은 무슨 말인지 잘 알 것이다. 경상도 남자들은 마음은 있어도 겉으로 표현을 
잘 못한다.
  그래서 이런 재미있는 얘기가 생겼다. 19세기 서울 남자들 사이에 유행했던 게 있었단다. 뭔고 
하니 여자한테 연애를 걸 때 꽃을 던지는 관습이다. 이렇게 꽃 던지는 것을 보고  투화한다 고 
말한다.꽃 모가지에다 연애편지를 탁 달아서 처녀 자는 방에다 던지는 거다.  일곱 시에 물레방
앗간 앞에서 만나요. 
  그런데 경상도 남자가 그걸 보고 배워 자기도 한 번 해보기로 했다.  여자에게 꽃을 던진다,여
자에게 꽃을 던진다. 이렇게 외우면서 고향으로 내려오다가 추풍령 고개에서 돌에 탁 걸려 넘어
졌다. 그때부터 그만  여자에게 돌을 던진다,여자에게 돌을 던진다. 로 바뀌어 버렸단다.
  상대방이 조금 좋다 싶을 때도 경상도 남자들은 표현력 자체가 없어 자기 마음을 제대로 나타
내 보이지 못한다. 그래서 일단 두들겨팬다든지 돌을 던져 머리를 깬다든지하여 일을 저지른 후
에 사후 수습을 하면서 연애를 시작하는 거다.
  둘 사이에 일이 조금 진행되어서 데이트를 한다. 보름달이 훤하니 떠 있는데 물레방앗간 앞에
서 만났다. 서울 남자와 여자는 둘이서 앉아 다정하게 정담을 나눈다.
   달이 참 밝지요. 
   음,보름달 아래 자기하고 둘이 앉아 있으니까 너무 좋다. 
   저기 달에 토끼가 앉아 있는 것 같아. 꼭 자기 닮은 것 같네. 
  이번에는 경상도 남자와 여자가 함께 앉아 있는 걸 보자.
  여자는 달 쪽을 보고 앉아서 옷고름만 계속 잡아뜯고 남자는 반대쪽을 보고서 돌만 계속 던진
다.누가 먼저 말을 건다? 여자다. 밀양아리랑 가사를 봐도 안다. 날 좀 보소,날 좀 보소,동지 섣
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날 좀 봐라, 이 멋대가리 없는 남자야 하는 가사다. 그래서 여자가 견
디다 못해 먼저 말을 꺼낸다.
   무슨 말을 하든지 하이소. 
  남자는 무뚝뚝하게 대답한다.
   니가 불러냈으니 니가 해라. 
    저 앞에 서울 남자와 여자는 달빛이 어쩌구저쩌구 하는데 부러워 죽겠다. 
   달이 어데 떠가 있는데? 
   저기예. 
   어데 말이고? 
   아이,저기예. 
   어데 이 가스나야, 니 대가리를 치워야 달이 보이제. 
  이런 사람들이 경상도 사람들이다. 이 남녀가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해서 신혼여행을 갔다. 서
울 남자 여자 부부를 쫓아 제주도로 따라 내려왔다. 서울 여자가 유채꽃으로 만든 아주 좋은 향
수를 하나 산다. 경상도 여자가 부러워서 자기도 하나 산다. 서울 여자가 톡톡 뿌리고는 남자에
게,  이 향기 어때요? 하니까 서울 남자가  음,향기 좋은데 한다. 경상도 여자가 톡톡 뿌리고는 
 냄사 한 번 맡아 보이소 하니까 경상도 남자가 하는 말, 또 방귀 꿨구나. 이렇게 퉁명스럽게 말
한다.무엇이든 표현자체가 서툴다.
  이런 경상도 사람인지라 노래도 굉장히 무뚝뚝하게 표현한다. 영남 지방에 가면 음식이 아주 
맵고 짜다. 그에 따라서 노래도 아주 외향적이로 힘차게 센박으로 나간다. 더구나 노래를 꾸민다
든지 하는 법이 없다. 한 가지 장점이 있다면 꾸밈이 없기 때문에 담백한 맛이 난다는 점이다. 
다른 지방 사람들이 들으면 경상도 사람들은 노래를 부를 때도 꼭 싸움하듯이 부른다고 말한다.
  그렇다 보니까 다른 지방 사람들은 경상도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냐면  멋대가리가 없다 고 한
다.사실이다. 그런데 하나가 모자라면 다른 하나가 발달하는 법이다. 경상도 사람은  멋대가리 
가 없는 대신에 뭐가 발달햇는고 하니  멋몸뚱어리 가 발달헸다. 몸으로 하는 것,즉 춤추는 것 
하나는 끝내 주는 동네가 경상도다.
  낙동강을 쭉 따라가다 보면 우리나라 춤의 70퍼센트가 여기에 다 몰려 있다. 낙동강의 상류부
터 안동 하회별신굿, 예천 청단놀음,대구 날뫼북춤,밀양 백중놀이,동래 야류,수영 야류,동래 학
춤,고성 오광대,가산 오광대,통영 오광대,진주 검무, 그리고 지금은 연희되지 않고 있는 진주 오
광대,창원 오광대,마산 오광대,가락 오광대 등등 춤이 발달했다.
  그런 후손들이다 보니 피는 속일 수 없는지,고속도로를 달리는 관광버스를 관찰해 보면 그 버
스가 어느 지방에서 올라왔는지 금방 알 수 있다. 관광버스가 조용히 달려간다 싶으면 서울, 충
남,충북, 경기,강원 쪽이고, 차가 끄떡끄떡 흔들리는 버스는 춤을 안 추고는 못 견디는 경상도 
사람들이 타고 있다.이렇게 춤을 너무너무 좋아하는 사람들이 바로 경상도 지방 사람들이다.
  경상도는 춤을 발달하고 전라도는 소리가 발달했다고, 경상도 사람들은 춤만 추고 전라도 지역
은 소리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경상도 춤이 발달하고 전라도는 소리가 발달했다고, 경상도 사람들은 춤만 추고 전라도 지역은 
소리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우리 민족은 항상 일과 소리와 춤이 일체가 되어 붙어다녔다.  하다 못해 제문을 하나 읽더라
도 음률을 탔으며 글을 읽더라도 음률을 타야 했다. 그 음률에 맞추어 몸을 좌우로 흔드는데,이
러한 큰 덩어리의 우리네 삶에서 구조적이고 분석적인 시각으로 춤과 소리와 노동을 분리하는 데
는 아무래도 무리가 따른다.
  따라서 우리 문화에서 지역성이란 이쪽과 저쪽을 완전 분리 시키는 편협한 지역성이 아니라 지
역의 특성을 잘 번영하는 그런 지역성이다. 우리 문화를 이해할 때는 지역성을 눈여겨봐야 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각자 자신의 지역성을 기반으로 우리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물론 서울 사람들은 말씨의 특성상 판소리를 잘 하기가 어렵다. 굳이 판소리는 못해도 좋다. 
그 대신 각자 자기 지역에 맞는 그런 노래,자기들의 어투에 맞는 문화 요소들을 발달시키면 되는 
거다. 그렇게 계속한다면 우리 문화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성음이 빠지면 재미가 없다.
  이번에는 우리 소리에 기본적인 성음이라는 것을 보자. 성음이란 우리 노래를 알기 위해서는 
제일 기본으로 익혀야 하는 것이다.
  우선 평성이라는 것이 있다.  아- 하고 한 가지 음을 길게 뽑는 것이다. 이건누구나 거의 할 
수 있다. 건강한 사람 같으면 한 30초  이상은 한다.
  그 다음 요성이라는 게 있는데 흔들  요 자 소리 성 자다. 즉 소리를 흔드는 것이다. 소리를 
어떻게 흔드는고 하니,평성 음을 기본으로 하면서 아래 위로 진동을 시킨다. 한 번 해보자. 자, 
지금부터 골치가 점점 아파진다. 이게 보기에는 쉬운데 굉장히 힘이 든다. 이 소릴 익히면 거의 
절반은 한 것과 마찬가지다. 한참 하다보면 얼굴이 노랗게 변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여기서 절대 하면 안되는 게 뭐냐면 입을 오무렸다가 폈다 하는 동작이다. 입은 가만히 두고 
목청을 떨어서 떨림을 내야 한다. 그리고 고개를 까딱까딱하는 것도 절대 안된다. 서편제라는 영
화를 보면,그릇을 머리 위에다 올려놓고 노래를 한다. 흔들지 말라는 뜻이다.
  또 뽕짝의 울림음처럼 해서도 안된다. 뽕짝처럼  아- 하면 얼추 비슷하게 들릴지 몰라도 요성
과는 크게 다르다. 뽕짝 가락은 일본에서 흘러 들어온 일본적인 요소다. 뽕짝으로 요성을 흉내내
려 하면 소리의 아래 위로 오락가락하지 않고 아래쪽으로만 떨린다. 즉 소리의 골만 파는 것이
다.
  일본말고 중국의 요성도 있다. 중국 요성은 굉장히 높고 화려하다. 중국의 민속 예술인 경극에
서 배우들의 소리를 들어 보면 중국의 요성을 알 수 있다. 이건 소리를 너무 아래 위로 흔들어서 
요사스럽다 싶을 정도로 간드러진다.
  이 요성들 중에서 사람을 제일 편안하게 해주는 요성이 바로 우리 한국의 요성이다. 노래에서 
이게 빠지면 진짜 재미가 없다.
  그냥 평성으로만 부르는 아리랑하고 요성을 섞어서 부르는 아리랑은 천지차이다. 아리랑만이 
아니라 팔도강상 모든 노래에 이 요성이 들어간다. 요성은 우리 노래에서 중요한 기교이다.
  요성을 가장 많이 쓰는 소리가 바로 경기창이다. 경기창의 경우에는 요성이 너무 많이 들어가
서 무슨 소린지 가사를 못 알아 들을 정도다.
  조선 시대 실학자 이중환 선생은 [택리지]에 경기도의 특성으로 경중미인이라고 적었다. 여자
가 거울ㅇ 앞에 앉았다는 뜻이다. 그 정도로 장식과 꾸밈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양덕맹산 흐르는 물은 감돌아든다 부벽루로다...
  요성을 잔뜩 섞어서 이런 노래를 하면 가사를 알아듣는 사람이 많지 않다. 경기창을 이렇게 요
성을 많이 쓴다.
  요성은 노래뿐 아니라 우리 음악 전반에 나타난다. 대금을 불때도,아쟁을 켤 때도 이 소리가  
난다. 가야금을 칠 때도 당하고 끊듯이 하지 않는다. 오른손으로 현 하나를 퉁기고 나서는 현을 
누른 왼손을 마음껏 흔들어 준다.이렇게 하면 농농한 소리가 난다.이렇게 흔드는 소리,요성이 들
어가야 우리 음악은 제 맛이 난다.
  그 다음 세 번째는 퇴성이다.물러날  퇴 자가 있듯이, 이것은 소리가 뒤로 물러나듯이 하는 거
다. 이건 비교적 쉽다. 퇴성은 일정한 음이 장단을 타다가 본래 음보다 약간 끌어올려 아래로 죽 
내려 빠지는 듯한 기분으로 내는 소리다. 공기 구멍을 통과하여 공기 압력을 점점 세게하여 내는 
성음으로 살짝 꺾는 듯이 낸다하여  꺾는목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헤으헤
  아리랑 응응응
  아리리가 났네
  이 대목에서 마지막 줄  아라리가;의 부분이 바로 퇴성으로 내는 소리다.
  산에 올라가서  야호 하는 거도 하지 말자. 그것도 일본식 함성이다. 그런 것 하지 말고 산에 
올라가서 이 평성,요성,퇴성을 연결시켜 마음껏 소리를 질러 보자. 사실 이건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낼 수 있는 소리다.
  평성,요성,퇴성, 이 섹 가지 소리가 우리 노래의 기본이다.자,이제 정리해 보자. 이 소리들을 
기본으로 하고 박자는 어떻게 한다?센박으로 한다. 호흡과 발음을 어떻게 한다?우리 창법에서는 
성대를 울리기 전에 먼저 입 모양을 만든다고 했다.  읍 하며서 숨을 들이킨 상태에서 잠시 동안 
이 부분을 지속한다. 지속 다음에는 터짐이다. 입 안에 머물렀다가 딱 터지듯이 소리를 내는 것
이다 .
  이제는 우리 장단에 춤추자
  목소리가 악기인 우리 창법
  자,이제 우리 음악을 어느 정도 알았으니 한 번 물어보자.우리 음악은 배우기 쉬울까,어려울
까?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한국 음악은 배우기가 굉장히 어렵다.
  그래도 개중에서 제일 배우기 쉬운 것이 무엇이냐 하면 장구라는 악기다.이 장구는 춤을 출 때
나 소리를 할 때,반주를 담당하는 가장 기본적인 악기다.우리 음악을 하는 사람은 어떤 음악을 
하든 소리를 하든 장구는 필수적으로 배워야 한다.장구를 배우기 위해 한 달에 수백 명씩 우리 
음악 강습소들을 찾는다.
  그런데 장구를 배우려는 사람 중에도 팔자에 맞는 사람이 있고 안 맞는 사람이 있다.옛날 선생
님들이 하신 말씀이라고 웃어넘겼다간 큰일난다. 거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요즘은 문명이 발달한 과학 시대니까 그 이유를 필자론으로 풀이하기보다 이론적으로 분석해 
보자.
  장구 치는 것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오른손과 왼손이 전부 따로 움직인다는 걸 알 수 있다. 대
개 오른손엔 장구채를 쥐고 채편을 치고,왼손은 손바닥으로 장구의 궁편을 친다. 따라서 오른손
과 왼손을 놀리는 모양이 서로 다르다. 방향만이 아니라 힘을 주는 정도도 다르고, 움직이는 속
도도 다르다.
  우선 장구를 배우기로 마음을 먹으면 오른손과 왼손, 양손의 신경이 자기 마음대로 돌아가야 
한다. 이게 장구와 맞는 팔자다.
  혼자서도 손쉽게 자기가 장구와 팔자가 맞는지 안 맞는지 실험하는 방법도 있다.
  오른손은 주먹을 주고 왼손은 활짝 편다. 오른손 주먹은 가슴 앞에다 두고 밖을 향하여 왔다갔
다 움직이고,왼손바닥은 아래 위로 움직이게 한다. 얼핏 보기에는 쉬울 것 같은데 막상 해보면 
의외로 쉽지 않다. 다시 정신 바짝 차리고 한 번 해보고 그래도 잘 안되면 일단 팔자에 안 맞는
다고 생각하라. 잘되는 사람들은 손을 바꾸어서 해본다.
  1차 관문을 통과하면 2차 시험이 또 있다. 왼손으로는 허공에다 원을 그리고 오른손으로 삼각
형을 동시에 그리는 거다. 이것을 자꾸 반복하면서 점점 빨리 해본다. 앞의 것보다 더 쉽지 않
다.
  이런 식으로 장구를 배우기 위해서는 좌우 신경이 잘 돌아가야 한다. 그렇다고 나는 안되니까 
장구를 포기해야겠다, 이렇게 기죽을 필요는 없다. 다만 오른쪽과 왼쪽의 신경 자체가 마음대로 
잘 돌아가야 일단 장구에 접근하기기 수월하다는 뿐이다.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없던 감각도 생긴
다. 이 감각을 어느 정도 익히는 데만도 굉장히 많은 세월이 걸린다.
  여기에다 더 골치아픈 게 뭐냐 하면 기음이다.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데 기음이란 게 필요하다
고 이야기했지만 기음은 노래뿐만 아니라 우리 음악에 전반적으로 사용되고 두루 나타나는 것이
다.
  기음. 기운  기  자에다가 소리 음 자. 이것을 순 우리말로 표현하면 소리 그늘, 즉 소리 그림
자다. 소리에도 그림자가 있는 것이다. 이 그늘이 짙으면 짙을수록 고수,즉 잘하는 사람이다.
  장구를 1년 동안 열심히 치면 기가 하나 붙는다. 이걸 기덕이라고 한다. 2년이 열심히 치면 기
기덕,3년을 열심히 쳤다면 기기기덕,한 10년을 열심히 치면 어떤 소리가 나느냐 하면  기리리리
릭덕 하고 구슬 굴러가는 듯한 소리가 난다.
  이 소리는 어느 정도 공력이 들어간 소리로 한 단계 공부를 마친 사람들의 장구 소리다. 정식
으로 공부하지 않고 동네에서 적당히 배워서 마구 두들기는 장구 소리는 뭐라고 하냐면  니똥 딱
구 내똥딱구 하고 부른다. 덩더더쿵 덩더더쿵 하는 장구 소리에 빗대어 부르는 이름이다. 이 니
똥딱구 내똥딱구 소리와 기가 들어간 장구 소리는 그 분우기의차이가 전지차이로 틀리는 것이 당
연하다.
  그럼 어느 정도 기가 들어간 장구 소리를 내려면 얼마나 배워야 할까? 10년은 기본이다. 그만
큼 오랜 세월을 요구하는 것이 우리 음악이다. 기초를 잡는 것만도 이렇게 힘이 드는 것이다.
  한국 사람은 음치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 음악 중에서 제일 힘든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성악 장르다. 한국 사람의 목소리는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한다. 사실 여자의 경우는 
지금 세계를 석권한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 전 세계 여자 성악가 중에서 가장 높은 소리까지 올
라가는 사람이 누구인가. 조수미 씨,신영옥 씨, 홍혜경 씨 등 전부 한국 사람이다.
  우리 한국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기 때문에 서양 예술의 고음 부분도 자유자재로 처리할 수 있
는 거다.
  서양 사람들은 성대 구조가 우리와 달라서 낮고 묵직한 저음이 강하다.하지만 우리는 누구라도 
맑은 고음을 낼 수 있다. 서양식으로 사람의 목소리를 분류하면 보통 남자 목소리 세 가지에 여
자 목소리 세 가지다. 잘 알고 있듯이 남자의 높은 소리는 테너,여자는 소프라노다.
  그런데 우리의 목소리는 그 정도가 아니다.  창악대강 이란 책을 보면 여러 가지 음색과 성조
에 따라 쭉 분류를 한 것이 있는데, 모두 서른일곱 가지나 된다.
  아마추어 소리꾼은 생목,프로 소리꾼은 둥근목,높은 소리는 된목,낮은 소리는 눅은목,긴 호흡
의 긴목,짧은 호흡의 짧은목,텁텁한 소리 떡목,깔끔한 소리 마른목,그밖에   방울목,찍는목,튀는
목 등등 소리의 구분은 수십 가지다. 이는 우리 목소리가 얼마나 발달한 소링니가를 실증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은 자고로 음치라는 게 없는 민족이다.원래 18번이나 음치라는 말은 일본 사람들
이 쓰던 말이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음치가 없다. 누구나 노래를 잘 하기 때문에 그런 말도 필
요없다.
  우리 소리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다 보면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런 말씀을 하신다.
   아, 소리 못하는 사람이 어딨어? 다들 한 자락씩은 하지. 
  이래 놓고 노래 한 자락 하시는 거다.기다렸다는 듯이 알고 있는 소리를 해주는 분들도 있지
만,가끔 수줍음이 지나쳐 고사하는 분들도 있다. 이런 분들께도 한사코 소리를 들려 달라고 고집
을 부리면 입을 여는데, 그 소리가 여간 은근하고 곱지 않다.
  우리 민족은 원래 예로부터 가무음곡을 즐기던 민족이었다. 신라 시대의 화랑이 되려는 젊은이
는 학문과 무예 외에 노래와 춤에도 능해야 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의 희한한 문화 
현상이라는 노래방이 우리나라에 그토록 성행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음악을 그냥 앉아서 듣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마이크를 잡든 숟가락
을 두드리든 좌우지간 악을 쓰면서 노래를 불러제꺼야  스트레스가 풀리는 민족이다. 그만큼 노
래를 좋아한다.
  노래는 기본이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악기까지도 목소리로 흉내낸다. 관악기,현악기 다 자유자
재다. 이렇게 목소리로 악기 음색을 흉내내는 것을 구음이라 부른느데, 원래는 일종의 악보를 기
록하는 방식에서 나왔다.
  우리 옛 고려가요를 부면 수수께끼 같은 소리가 가끔씩 튀어 나온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아으 다롱 디리...

  다니러 노니러 너니러 노니러 나니러...
  이 말도 안되는 소리들은 당시의 악기 소리를 흉내낸 것인데,언어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감정
이 극치에 달했을 때 나오는 소리다. 원래 한국 사람들은 굉장히 높은 소리에서부터 낮은 소리,
웬만한 악기 소리까지도 목소리로 전부 흉내낼 수 있다.
  이렇게 목소리를 가지고 온갖 재주를 부릴 수 있기 때문에 판소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판소
리에서 고수 한 사람이 반주 넣어 주는 것만 빼고는 내용 중에 나오는 모든 소리를 소리꾼의 입
으로 다 흉내낸다. 할머니 목소리,아이 목소리는 물론이고 새소리,물 소리,바람 소리까지 다 입
으로 낸다. 그래서 장구나 북의 단순한 타악기만을 반주로 삼고서도 충분히 소리판이 형성되는 
것이다.
  농악이 아니라 풍물이다.
  타악기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뭐니뭐니해도 우리 민족은 두들기는 걸 좋아한다.그래서 음
악만 나왔다 하면 그렇게도 두들긴다.
  원래 타악기는 악기 가운데서 그 역사가 가자 오래되었다. 이건 서양 음악이나 우리 음악이나 
마찬가지다. 원시인들은 제사 의식을 행하면서 타악기를 두들겼다. 지금도 아프리카의 원시 부족
들은 타악기만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현악기와 관악기는 그보다 훨씬 나중에 나온 악기다.
  사실 악기를 현악기,관악기, 타악기 등으로 분류하는 것은 서양식 분류이고,우리의 원래 악기
는 향악기,아악기,당악기처럼 악기들을 용도에 따라 분류하거나,금부,사부,죽부,목부 등의 악기 
재료에 따라 분류했다. 하지만 편의상 타악기라고 부르기로 하자.
  타악기는 현악기나 관악기처럼 음의 높낮이를 중시하는 게 아니라 리듬을 중시한다. 그래서 타
악기는 가장 연주하기 쉬운 악기인 동시에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악기라고도 한다. 이 말이 뭔고 
하니, 배우기는 쉬워서 누구나 금방 연주할 수 있지만 잘 하기는 어려워서 완성을 보려면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린다는 얘기다.
  타악기는 가장 먼저 생긴 악기이기에 아직 원시성이 남아 있다. 타악기 소리를 귀 기울여 들으
면 어딘가 모르게 태고의 냄새가 난다. 또 타악기는 음의 높낮이가 아닌 리듬을 중시하는 악기이
기에 리듬감과 힘의 강약이 가장 중요하다. 이렇게 힘이 넘치는 악기가 바로 타악기다.
  우리 음악은 타악기가 굉장히 발달했다. 사실 우리 음악에서는 타악기가 가장 기본이다. 한 가
지 예를 들어 앞에서 우리 음악을 하려면 어떤 종류를 하든 반드시 장구를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
  서양 음악에서 그런 역할을 하는 악기는 뭘까? 피아노다.서양 음악에서는 지휘를 한든 기악을 
하든 성악을 하든 피아노를 기본으로 배워야 한다. 그런데 우린 그 역할을 타악기인 장구가 있
다.
  이렇게 타악기를 즐겨 쓰는 우리 음악에서는 타악기의 중류도 유독 많다.북,장구,징,꽹과리처
럼 사물놀이에서 쓰느 것들은 물론 편종,특종 등 종도 많고,북 종류는 훨씬 다양해서 진고,노고,
좌고,소고,뇌고,영도,영고,건고 등등 무척 많다.
  이렇게 타악기 특유의 힘이 넘치는 소리를 좋아하는 민족성,이것이 바로 한국인의 힘이다. 우
리 모두를 단결시키는 힘이다. 일본인들은 이것을 방해하기 우해서 1930년대에 이 두들기는 음악
을 쭉 모아서 이름을 무어라 붙였냐 하면 농악이라고 했다. 농사 짓는 촌놈들이 하는 음악이라는 
뜻이다.
  농악이 이렇게 해서 나온 말이라면 지금 우리가 쓸 이유가 없다. 더구나 두들기는 음악은 농부
들만 했던 게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텔레비전 프로그램 같은 데서 우리 음악을 소개
할라 치면  농악,농악 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시청자들은 농악만이 우리 음악인 줄로 알게 된다. 
왜 그런고 하니 농악을 대채할 이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이 농악 말고 쓸 말이 없냐 하면 무진장이다. 한강 이남만 해도 각 지방마다 용어
가 엄청나다. 전라도 지방에서는  두들긴다 는 뜻으로  굿을 한다 는 말을 쓴다. 좌도굿을 한다, 
우도굿을 한다,풍농굿을 한다,농기놀이한다,볏가리놀이 한다,걸궁친다,풍장친다,풍물친다,두레친
다 등등 용어가 엄청나다.
  경상도 지역은 주로 어떤 용어를 쓰냐면 매구친다고 한다. 매구친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원래
는 매장할  매  귀신 귀 자다. 표준말은 매귀인데, 남쪽으로 내려가면 귀신이라고 발음을 못한
다.그래서 구신이 되고 매구친다가 된다.이 밖에도 벅구친다,걸궁친다,걸립친다,풍장친다,풍물한
다 등등으로 표현한다.
  그 다음 충청도 지역에 가면 주로 하는 소리가 달친다는 표현이다.달은 응달,양달이라고 할 때
처럼 땅을 가리키는 말이다. 충청도 이북에서는 두들길 때 웃달친다,밑으로 가면 아랫달친다,풍
장친다,풍물친다고 한다.
  그런데 전국에서 공통으로 쓰는 용어가 하나 있다. 바로  풍물 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농악
이라는 일본식 용어 대신 풍물이라는 용어를 쓸 수 있을 것이다.풍물이라는 말은 널리 쓰이기도 
할뿐더러,  신바람을 일으키는 물건 이라는 뜻이니까 뜻도 좋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이제부터라도 농악이 아니라 풍물이라는 말을 써주기 바란다. 그리고 
주의 사람들이 농악,농악 하면 풍물이라고 바로잡아 줄 줄도 알아야겠다.
  꼬리뼈를 자극하는 사물놀이
  바야흐로 풍물은 지금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중이다. 이 풍물에서 나온 것으로 세계
적인 선풍을 일으키는 것이 있다. 북 하나,장구 하나, 징 하나,꽹과리 하나로 구성된 사물놀이이
다.
  사물놀이란 악기 네 가지를 합쳤다는 뜻으로 원래는 절에서 나온 용어다. 절에서 예불할 때눈 
종,북,목어,운판,이 네 가지를 친다.
  사당패들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에 절에서 기거하면서 절의 일도 같이 도와 주고 하다가 
그 용어를 빌려와서 꽹과리 하나,장구 하나,징 하나,북 하나로 연주하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사
물놀이의 원조다.
  여기에 만약 장구 한 명이 더 들어온다면 그건  오물놀이 가 될까? 천만에. 그대는 풍물놀이가 
된다.
  세계 타악기 대회가 열렸다. 우리는 사물놀이 네 명만 주로 나가니까 다른 데서 참 우습게들 
여긴다.알파벳 순서대로 각 나라가 나오는데 우리 한국 앞에 누가 가느냐면 HIJK순서니까 인도와 
일본이 들어간다.
  우리 앞에 항상 나가는 인도는 참 신명나게 잘 두들기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굉장히 잘 
두들기므로 주로 기립박수를 받는다. 그 뒤에 일본이 나간다.
  일본은 북을 한 열다섯 개 들고 나가는데 일본의 큰북 크기가 어느 정도냐 하면 1톤 봉고의 한 
1.5배 정도 된다. 엄청나게 크다. 북 위에 올라타 가지고 한 사람 두들기고 밑에서 쳐다보면서 
두들기고 하면 그 크기만 보고 소리의 웅장함에 전부 기립박수를 쳐준다.
  그 뒤에 한국이 나간다. 엔트리 넘버 몇 번 코리아! 하면 키도 자그마한 사람 네 명이 달랑달
랑 걸어나가는데 악기가 너무 희안하더라는 거다. 장구가 크기가 큰가,그렇다고 부이 크기가 큰
가,징 크기가 큰가(서양에서도 우리의 징과 같은 것으로 공이라는 악기가 있는데,우리 징의 여섯 
배는 족히 되니 크기를 가지고 대적하기란 곤란하다.).또 제일 재미있는 악기는 꽹과리다. 꼭 찌
그러진 양푼처럼 생겨 가지고 손바닥 하나보다 조금 클까말까 한걸 악기라고 들고 나오는 거다.
  하지만 우리는 이 꽹과리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면 두들기는 사람들 중에선 최고로 친다. 그래서 
꽹과리 치는 사람을 상쇠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걸 들고 무대에 나가면 서양 사람들이 공통으로 
하는 소리가 이거다.
   오, 개밥그릇! 
  어느 나라보다도 최소 인원인 데다가 악기도 왜소하니까 우리를 굉장히 우습게 여긴다. 게다가 
연주하는 방식도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의자에 앉거나 서서 연주하는 것이 아니고,인사를 하고 
나면 일단 방석을 깔고 땅바닥에 탁 주저앉는다.
  관객들은 악기도 시시한데 연주 폼까지 우스운 걸 보고, 저런 원시적인 악기를 가지고 나와서 
도대체 무엇을 연주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일단 연주가 시작되면 3초도 못돼 눈
이 휘둥그래지는 거다.
  우리 민족이 어떤 민족이냐? 젓가락 하나만 들려 주면 지구상에서 못 맞추는 리듬이 하나도 없
을 정도로 리듬이 너무너무 발달한 민족이다.
  어떻게 발달했나 보자. 왈츠라는 서양 리듬을 가지고 거꾸로 접근을 해보자. 왈츠는  쿵짝짝 
쿵짝짝 이렇게 3박자로 나가는 춤 리듬이다. 이것을 계속 들어 보면 단조롭고 지겹다. 한마디로 
재미가 없다. 그나마 멜로디를 얹히면 좀 들어줄 만한데 리듬만 따로 독립하면 아무런 재미도 없
다. 서양 음악에서 타악기가 퇴보한 이유도 따지고 보면 리듬이 덜 발달했기 때문이다.
  만약에 한국 사람보고 이 왈츠 리듬을 한 번 쳐보라고 하면,그대로 치는 법이 없다. 우리는 전
문 연주자가 아니더라도 정해진 대로 고분고분 세 박자로 치지 않는다. 딱 듣자마자 이것은 세 
박자,그러니까 어떻게 치다 하는 게 자동으로 머리 속에 입력된다.
  박자는 세 박자를 유지하는데 전부 다르게 친다. 사람마다 다르게 칠뿐더러 한 사람이 칠 때도 
칠 때마다 다르게 친다. 그런데도 희한하게 3박자는 맞아 들어간다. 
  음악의  음 자도 모르는 사람보고 쳐보라고 해도 우리는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전부 다른 
뭔가가 들어간다. 그 이유는 바로 가락,가락이 너무너무 발달한 민족이 우리이기 때문이다.
  우리 음악으로 자진모리를 한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 이 음악을 서양식으로 표현하면 0000하
는 식으로 원박에만 충실하다. 재미가 없다. 우리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전부 다 틀리게 들어간
다.
  북,장구,징,꽹과리를 친다 할 때 처음에는 이걸 치고 두 번째는 이걸 치고 세 번째는 이걸 치
고,하는 식으로 계산하지 않는다. 즉흥적으로 그날 그날 보고,기분에 따라 치면 된다. 이렇게 해
서 나온 음악이 바로 우리 음악이다.
  요런 식으로 리듬이 발달한 민족이 사물놀이판을 벌이며 마구 두들긴다. 두들기니까 신이 난
다. 신명은 우리 인체 중 어느 부분에 있겠는가?목?가슴?팔?다 아니다. 그것은 바로 엉덩이에서 
꼬리가 퇴화한 꼬리뼈 부분,여기에 있다.
  그것이 올라와서 한국 사람들이 신명을 어떻게 표출하느냐 하면 전부 수평 표출한다. 우리 할
머니 할아버지들 춤출 때 보면 팔다리를 수평으로 해서 왔다갔다 한다.
  또 아버지 엄마들 세대,대한민국 50대,60대는 이 수평 상태에서 팔 다리가 접어진다. 그리고 
나서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야 로 가는 거다.
  그래도 뭐는 지킨다? 수평은 지킨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수평을 표출하는데 서양 사람들의 경
우에는 어떻게 표출하는가 하면 수직으로 표출한다. 이 사람들은 의자에 붙어 앉아서 신이 나면 
살살살살 일어난다. 박수도 기립박수 치는 식으로 점점 올라간다.
  따라서 우리가 사물놀이 연주를 하면 그 사람들은 살살살살 일어난다.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
나다가 끝나고 나면 미치고 환장을 하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자기를 감동케 한 이 연주의 이름도 확실히 모르니까 그제서야 아까 입장할 때 받
아둔 팜플렛을 펼쳐본다. 코리아,사물놀이 라고 되어 있다. 그 사람들은 대뜸 자기네식으로 읽어
서 아항,이름이 사물이고,성이 놀이구나 한다. 그래서 자기 딴에는 이름을 부른답시고,  샤물!샤
물!샤물! 하고 앵콜을 외치는 거다. 앵콜을 받는데 두 번 세 번은 물론 심하면 다섯 번 이상씩 
받는 경우도 있다.
  남의 장단에 춤추지 말자
  이렇게 우리 음악은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탁월한 음악성을 인정받고 있다. 여기서는 이제
까지 이야기한 우리 음악이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으며 장차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것으로 강의를 마치기로 하자.
   한국인은 당파 싸움,씨족 간의 갈등,양반 상민의 갈등 등으로 절대 단결할 수 없는 민족으로 
,총칼만이 그들의 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다. 
  한입합방 이후 무단 통치로 일관하던 일제의 한국인 지배 논리는 참으로 단면적이고 무자비했
다. 그러나 1919년의 3,1만세 운동의 거대한 반항으로 일제는 혼비 백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들이 이론상으로 알고 있는  분열의 한국인 상이 깨어지고  두려운 한국인 으로 변해 버린 것이
다. 그리하여 조선 총독부는 본토에서 학자들이 대거 불러들여  한국의 민속 에 대한 새로운 연
구를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일제는 무단 통치의 한계를 절감하고 그것을 수정하여  사이토 총독의 문화 정치 시대 
를 열었다. 하지만 그  문화 라는 말은 애매 모호했다. 그 본질은 조선 문화의 창달이라기보다는 
일제의 식민 통치를 원활히 하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그러나 사이토가 투입한 일본 학자들이 발견한 것은 한국인의 높은 문화 예술 수준이었다. 생
활 속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아름다움의 추구 에 대한 욕망은 일본인의 고용 책략에 역이용
되었고 그들은 무화 예술에 목말라 있던 조선인들에게 퇴폐적이고 향락적인 독주를 퍼 먹였다.
 1922년 정치적 목적으로 선전이라는 것이 창설되었다. 이 선전은 정치적 영달의 길이 봉쇄된 조
선인을 예술 방면으로 유도함으러써 독립의 의지를 꺾으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우리 문학은 
현실 도피의 한담으로 변했으며,우리 음악은 패배적인 쓸쓸한 가락으로 바뀌었다. 그런 탓인지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 가요라는  황성 옛터 를 보면 쓸쓸하고 활량하기 그지 없는 음색으로 이루
어져 있다.
  이치가와 모리오라는 일본의 학자는  민요 라는 일본 말을 처음으로 사용하면서 우리 노래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조선 민요의 연구]의 예고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조선의 가요를 살펴보면 그 민족이 얼마나 향락적이고 영세적이며 도피적인지 알수 있다. 
  그러나 그의 또 다른 책자에서는 자신의 양심을 표현한 글을 발견할 수 있다.
   모든 압박을 견디고 고난과 싸워 온 소박한 민주의 거짓 없는 표현인 조선의 가요는 향토 예
술의 주옥품으로 양과 질에서도 세계에 자랑할 만한 것이다.
  당시 이치가와 모리오는 사이토의 문화 정책의 시녀로,우리 노래를 한층 무기력하고 퇴폐적이
고 찰나적이고 향락적으로 왜곡시키는 데 앞장을 선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연구하는 과정에서 
일본인인 그도 우리 노래에 흠뻑 빠져 우리 음악의 세계적인 규모에,그 예술성에 자신의 양심을 
속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제의 이러한 정책적 노력은 일부 일본 학자들의 양심적인 고백에도 불구하고 결국 우
리 음악을 왜곡시키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 이때부터 비롯되어 오늘날까지도 북,장구를 두드
리면 무당이니,미신이니 하면서 색안경을 끼고 보고, 가야금이나 대금을 연주하면 물러나 앉은 
기생방 예술로 취급한다.
  이런 일제의 손아귀에서 해방되었으면 이제부터라도 우리 음악의 제자리를 찾게 해주어야 할 
텐데,상황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해방 이후에도  구시대 파차 라는 이름 아래 전개된 애매 
모호한 정책은 우리 음악을 봉건적인 잔재로 취급했다. 그리하여 근본도 모르는 왜색 짙은 일본
풍의 가요가 우리 사회에 범림했다.
  한국전쟁이라는 커다란 사건을 치르고 나자 이번에는 미군이 이 땅에 들어왔다. 그와 함께 우
리나라에는 주먹구구식으로 만든 서양 음악 위주의 음악 교과서가 판을 치게 되었고,이로 인해 
우리 음악은 객들에게  음악 이라는 안방을 뺏기고 다략방 한구석으로 몰려 문패를  국악 이라고 
바꿔 달아야 했다.
  이것은 주체와 객체의 뒤바뀜이다. 정확하게 주체성 있는 용어로 바꾼다면, 우리 음악이  음
악 이고,서양 음악은 양악 이라 불러야 옳다. 지금 우리의 음악 행태는 남의 장단에 춤추고 있는 
꼴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음악은 순수 음악과 대중 음악으로 나누어 있다. 순수 음악은 고전 음악이라
하여 좀 배웠다 하는 지식인들이 주로 듣고, 대중 음악은 유행가라고 해서 서민들이나 청소년층
이 주로 듣는다.
  그런데 순수 음악이나 대중 음악이나 모두 서양 음악 일색이다.  순수 음악은 바흐,모차르트,
베토벤 등 대부분 수백년 전에 살았던 서양 작곡가들의 음악인데, 서양에서도 옛날 음악에 속하
는 것이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그 음악은 춘향가나 흥보가에 해당하는 음악이다. 따라서 오늘
날에는 서양에서도 이것을 재해석하여 연주하지 고전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순수 음악 팬이라 하면 무조건 그런 음악들을 잘 알아야 하는 것처럼 되어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대중 음악도 역시 서양 음악이 거의 다를 차지한다. 일본 음악의 
영행을 받은 이른바 뽕짝이라는 트로트를 제외하면,나머지는 랩이다,발라드다,팝이다,록이다,댄
스 음악이다,재즈다 해서 모두 서양 음악이다.
  그래도 일부 의식 있는 대중 음악인들은 우리 음계와 가락을 자신의 음악에 접목시키려고 애쓰
고 있지만, 애초에 배운 음악의 틀이 서양 음악보다 보니 아직까지 그다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 순수 음악과 대중 음악 사이에서 우리 음악은 갈 곳이 없다. 순수 음악의 자리에도 끼워 주
지 않고 대중 음악의 자리에도 끼워 주지 않는다. 다른 나라는 어떠냐면 대부분의 나라들에서는 
순수 음악과 대중 음악이 있고,그와 동등한 자격으로 민속음악이 따로 분류되어 있다. 이렇게 세 
가지 체계로 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우리 음악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다.
  그 한 가지 예가 음악 방송이다. 청소년들이 공부하면서 듣고,직장인들이 버스나 승용차 안에
서 듣는 FM음악 방송은 지금 수십 가지에 이른다. 그런데도 우리 음악만 전문적으로 방송하는 곳
은 없다. 대중 음악과 순수 음악은 각각 전문적으로 방송하는 방송국이 있는데, 우리 음악은 없
는거다. 일부 순수 음악 방송국에서 잠깐잠깐 우리 음악을 방송하는 프로그램이 있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우리 음악의 팬이 없느냐면 그건 아니다. 노인들은 물론이고 청소년,어린이들까지 우
리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런데 막상 들을 기호가 없는 거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
유는 앞서도 말했듯이 학교 음악 교육에서 우리 음악이 다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
서 배우지 않으니까 우리 음악의 팬이 될 소양을 가진 사람도 자꾸만 멀어지게 된다.
  또 학교에서 가르치는 음악 교육이 서양 음악 중심인 것도 문제지만, 작가 교육이라는 점도 큰 
문제다. 모든 사람이 다 음악인이 되는 건 결코 아니다. 따라서 음악은 생산하는 것보다 소비하
는 게 더 중요하다. 다시 말해 음악을 어떻게 만들고 연주하고 하는 것보다는 음악을 어떻게 하
면 제대로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느냐를 위주로 해서 가르쳐야 하는 거다.
  그런데 학교 음악 교육을 보면, 음계가 어떻고 박자가 어떻고,음악 사조가 어떻게 변천해 왔고 
함녀서 정작 중요한 음악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는다. 이러니 특별히 음악적 
재능이 없는 학생들은 음악이 따분하고 지루한 과목일 수밖에 없다. 음악이란 원래가 재미있고 
신명나기 위해 노래하고 듣는 건데 지루하다니, 이것도 커다란 역설이다.
  박자나 음계,화음 따위의 음악 이론을 자세히 가르치는 건 음악 학교 학생들한테나 하는 교육
이다. 음악 학교가 아닌 일반 음악 교육에서는 이론보다는 음악 자체를 가급적 많이 들려 주는 
게 최고다.
  굳이 이론이 필요하다면,우리 음악은 앞이 세게 나가는 센박이다. 우리 창법은 호흡을 먼저 하
고 소리를 터뜨리는 방식이다. 이런 정도만 배우면 우리 음악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 이 정도
만 가르치고 우리 음악을 직접 들어 보고 나서  아,과연 그렇구나 하고 느끼면 그것으로 교육은 
충분하다.
  인식을 바꾸면 희망이 보인다
  수천 년의 긴 역사를 통해 첨삭의 과정을 겪어 오면서 오늘날의 형태에까지 이르게 된 우리 소
리는 백여 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너무나 많은 무형의 문화 유산을 잃었다. 구한말 이후 일제가 
조선 문화 말살 정책을 전개하고, 우리 고유의 농경 산업 구조가 붕괴하고, 서구 문화 환경이 침
투하는 등으로 인해 거의 해체 위기에 놓여 있는 우리의 민족 문화는 비록 소리에 국한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앞세대가 잘못 인식해 온 우리의 문화 인식,나아가 음악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오늘날같이 국가와 국가 간의 장벽이 점차 허물어져 가는 상황을 볼 때 우리 음악을 그대
로 지켜 나간다는 것은 어려움이 많다. 세계 문화의 보편성을 무시하고 너무 우리 음악의 특수성
만을 강조하다 보면 독단적인 국수주의로 빠지기 쉽고, 그렇다고 세계 문화의 보편성에 편승하다 
보면 주체성  없는 음악으로 전략하고 만다.
  문제는 올바른 인식이다. 예술의 역사는 그 분야의 향유자 하나하나가 모여 만들어 낸다. 이제 
우리도 음악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바람직한 전통 음아그이 보편화,세계와에 힘써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억지 이론으로 접근하지 않더라도 무수한 해외공연에서 우리의 전통 음악이 외
국 음악 전문가들에게서 받는 갈채가 그것을 증명한다.
  우리가 잊고 사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곳을 돌이켜봄으로써 가장 자연적이고 가장 인간적인 
기쁨과 슬픔을 노래하고 춤추는 그런 음악, 꾸며지지 않고 지휘하지 않고 마음길 가는 대로 장단
에 맞춰 흘러가다 보면 어느덧 감동의 바다로 이어지는 그런 음악이 바로 우리 한국 음악이다.
  이러한 음악과 문화가 오늘날 대외적으로는 민족 음악 교욱의 부재와 사회적인 무관심으로 대
중에게서 점차 멀어지고 있다. 우리 소리의 경우 대중성을 갖지 못하는 요소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오늘날에 맞지 않는 조선 시대의 어려운 한자말이나 용어로 노래한다는 것이다.
  둘째, 창법 자체가 너무 어렵고 그에 따른 지도서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셋째, 우리 음악은 물리적인 음파로 느끼는 소리가 아니라 철저한 경험 속에서 우러나는 심파
로서 연주되고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정신적인 느낌을 받아들이는 데 걸리는 학습의 과정이 
너무 길고 힘들다는 것이다.
  그리고 넷째, 이것을 교육하는 우리 음악 교사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음악 교과서에 나오는 
우리 음악은 한국 음악을 전공한 사람이 가르쳐야 맛을 낸다. 그러나 현재 우리 실정이 이렇게 
안되다 보니 여기에서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청소년들은 우리 음악을 알고 싶어한다. 어느 자료에 따르면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누가 권유하거나 강제로 시키지 않더라도 70퍼센트 이상이 우리 음악을 알
고 싶어하는 배우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우리 음악을 약간 배운 청소년
들은 대부분이 우리 음악을 신나고 즐겁고 소중한 것으로 느끼게 되었다고 말한다.
  우선 많이 보여 주고 들려 주어야 함은 물론이지만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인식이다. 서
양 음악은 세련되었고 한국 음악은 후진적이라는 편견부터 바뀌어야 한다.
  그 다음은 지도자 양성이 절실히 필요하다. 한국 음악을 잘 연주하고 잘 노래부르는 것도 중요
하지만, 사실 한국 음악이 제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잘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다. 한국 음악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보다 과학적으로 체계적인 학습 방법을 통하여 한국 음악에 대한 자긍심
과 세계적인 음악으로의 진취성을 심어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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