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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금융,부동산,투자

디지털 화폐가 이끄는 돈의 미래

by Casey,Riley 2021.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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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나 스워츠 지음 / 북카라반
이 책은 거래 테크놀로지를 둘러싼 문화와 정치를 설명하면서 돈이 특정 기술에 의존하는 커뮤니
케이션 미디어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아울러 실리콘밸리가 지향하는 ‘파괴적 혁신’에 역사
적 맥락을 부여하고 기술변화가 가져올 미래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와 편견을 바로잡는다. 아울러
결제 서비스의 핵심 메커니즘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그것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어떻게 그런
형태를 띠게 되었는지, 현재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그런 변화로 누가 어떤 결과에 직면하게 될
지를 알아본다.

디지털 화폐가 이끄는 돈의 미래
라나 스워츠 지음
▣ 저자 라나 스워츠
미국 버지니아주립대학 미디어학과 교수다. MIT에서 비교미디어학을 전공하고 서던캘리포니아대학 애
넌버그커뮤니케이션스쿨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 뉴잉글랜드 연구소 연구원과
하버드대학 버크먼-클라인 인터넷&사회센터의 선임 연구원을 역임했다. 각종 돈의 기원과 역사와 커
뮤니케이션 기술을 활용한 돈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결제 완료(Paid)』(공
저)와 『뉴 머니(New Money)』 등이 있다.


▣ Short Summary
아리스토텔레스는 돈의 기능을 정리하면서 돈이 ‘교환 미디어’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마누엘 칸트는
돈이 “사물을 활용하는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수단 중 가장 뛰어나고 쓸 만한 수단”이라고 여겼다. 미
국의 사회학자 탤컷 파슨스는 돈을 “정해진 규칙에 따라 의미를 부여하고 기호를 사용하는 일반화된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라고 설명했다. 또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국 사회철학자 칼 폴라니는 돈이 “말
과 글 또는 도량형과 유사한 의미 체계”라고 주장했다.
돈을 매개로 한 거래는 그 자체로 거대 산업이다. 전 세계적으로 결제 산업의 한 해 매출은 거의 2조
달러에 달한다. 이는 다국적 제약 기업들의 매출을 전부 합한 것보다도 많고, 여러 미디어 산업의 매
출을 합한 것보다도 많다. 흔히 증권 거래소에서 펼쳐지는 현란한 거래가 금융 산업의 꽃이라고 생각
하지만, 실은 결제 산업 부문이야말로 금융 기업의 주요 수입원이다. 거래 테크놀로지는 우리 사회의
필수정보 인프라이고, 그 자체로 거대 산업인데도 우리는 그것에 관심이 없다. 테크놀로지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인프라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인프라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려고 굳이 애쓸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이제 결제 시스템의 작동 방식이 아주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한때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별다른
굴곡 없이 돌아가던 결제 산업이 조명을 받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실리콘밸리의 ‘파괴적 혁신’의 대
상이 되었다. 실리콘밸리에서도 결제는 그 자체로 거대 산업이다. 한 해에 금융 테크놀로지, 즉 핀테크
에 몰려드는 벤처 투자금만 거의 130억 달러에 이른다. 결제 서비스 산업은 이제 금융 서비스 산업이
아닌 소셜미디어 산업으로 재편되고 있다. 예컨대 정부 발행 화폐나 비자카드ㆍ마스터카드 같은 보편
적이고 상호 호환이 되는 현재의 결제 서비스 시스템이 각각의 서비스업체 고유의 설계, 비전, 사업
모델, 관리 체제를 갖춘 틈새 플랫폼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돈이 소셜미디어, 즉 사회적 매체로 탈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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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화폐가 이끄는 돈의 미래

꿈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돈의 모든 측면을 다루지는 않는다. 오히려 시야를 한껏 좁혀서 커뮤니케이션 미디어, 즉
돈이 결제 수단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는 돈의 정치학을 이야기할 때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누가 돈을 쥐고 있고, 누가 돈이 없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등에만 관심이 있
다. 결제 테크놀로지는 단순히 경제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돌고 도는 순환적인 속성을 지닌다. 돈의
정치학은 커뮤니케이션의 정치학이다. 누가 커뮤니케이션 인프라를 통제하고 그 인프라에서 이득을 얻
는지, 그 인프라는 누가 어떤 조건하에서 이용할 수 있는지, 그 인프라를 통해 어떤 것들이 이동하는
지 등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거래 테크놀로지를 둘러싼 문화와 정치를 설명하면서 돈이 특정 기술에 의존하는 커뮤니케이
션 미디어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아울러 실리콘밸리가 지향하는 ‘파괴적 혁신’에 역사적 맥락을
부여하고 기술변화가 가져올 미래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와 편견을 바로잡는다. 아울러 결제 서비스의
핵심 메커니즘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그것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어떻게 그런 형태를 띠게 되었는
지, 현재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그런 변화로 누가 어떤 결과에 직면하게 될지를 알아본다.
▣ 차례
추천의 글 … 5
프롤로그 : 돈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chapter 1 돈은 어떻게 소셜미디어가 되었는가?
지폐에 나타난 ‘국가의 이미지’ / 지폐는 ‘국가의 피부’ / 페니 동전에 새겨진 ‘여성에게 선거권을’
미국의 1달러 동전, 새커거위아 / 가난한 사람들의 이동을 막은 다리 / 돈의 권력
거래 공동체와 국가 공동 운명체 / 매스미디어에서 소셜미디어로
왜 페이스북으로 돈을 보낼 수 없을까? / SNS의 차세대 주자, 벤모 / 현금 없는 사회가 가능할까?
chapter 2 돈의 역사
돈은 전 세계를 빛의 속도로 돌아다닐 것이다 / 우체국장은 연방정부의 대변인이었다
돈을 보내는 가장 빠른 통로 / 파란색 지폐, 여행자 수표 / 수표가 발행된 은행에 돌아오기까지
현금은 세상의 속도를 쫓아갈 수 없다 / 디지털 결제 서비스의 등장
chapter 3 새로운 돈의 탄생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프리미엄 카드의 탄생 / 눈길을 끄는 멋진 고객
신용카드는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다 / 바람직한 배우자는 어떤 카드를 사용할까?
회전인 그룹과 거래인 그룹 / 수수료는 왜 내는가? / 클럽처럼 운영된 다이너스클럽
내가 누군지 아시나요? / 돈이라고 생각하세요 / 은행들의 치열한 전쟁
긱 일자리와 1099 경제 / 신용카드는 빚의 앞잡이 / 초과 인출 수수료는 없습니다
카다시안 카드와 나스카 카드 / 선불카드를 사용하는 이유 / 카드가 말해주는 것
chapter 4 돈의 정치학
크라우드펀딩이 서비스 약관 규정을 위반했다 / 페이팔은 당신의 계정을 얼려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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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화폐가 이끄는 돈의 미래

오퍼레이션 초크 포인트 / 내 돈을 내가 사용할 수 없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면, JP 모건 체이스가 결제한다 / ISO가 고위험군 상인들과 거래하는 이유
페이팔의 개인 간 결제 서비스 / 위험을 사고팔다 / 위험을 완전히 봉쇄하는 방법
사기가 멈추지 않는 세상 / 인종차별적인 거래는 어떻게 분류되는가? / 왜 현금으로 거래하는가?
chapter 5 돈과 빅데이터
나는 전 남친이 한 일을 알고 있다 / 온라인 프라이버시의 최후 / 소셜미디어는 기억을 기록한다
현금은 기억력이 나쁘다 / 회계가 프랑스혁명의 원인이었다 / 거래 데이터가 쌓이다
거래 데이터는 사회 데이터가 되었다 / 구글이 결제 시스템을 도입한 이유
애플페이는 거래 정보를 수집하지 않는다 / 벤모는 지갑이 아니다
벤모가 깬 사회적 금기
chapter 6 돈과 디지털
스타벅스의 디지털 화폐 / 비트코인의 등장 / 대안화폐의 역사 / 스타벅스 리워드 프로그램
국가가 돈을 규정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 국가 통화가 확립되기까지 / 돈은 끊임없이 변한다
리워드 프로그램이 만들어내는 거래 공동체 / 리워드 프로그램은 황금 수갑
데이터가 만든 고객 맞춤 프로그램 / 리워드 프로그램이 변경된다면
공동체 경제를 살리는 리워드 프로그램 / 포인트를 해방시키라 / 돈의 힘
에필로그 : 돈의 미래
두 도시 이야기 / 모든 것의 앱, 위챗 / 거래 공동체를 오가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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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화폐가 이끄는 돈의 미래

디지털 화폐가 이끄는 돈의 미래
라나 스워츠 지음
chapter 1 돈은 어떻게 소셜미디어가 되었는가?
지폐에 나타난 ‘국가의 이미지’
커뮤니케이션학자 제임스 케리는 커뮤니케이션을 “현실을 만들어내고, 유지하고, 수정하고, 바꾸는 상
징적인 절차”로 규정한다. 커뮤니케이션은 정보의 공유이며, 따라서 공유된 의미, 더 나아가 공유된 사
회를 만들어낸다. 요컨대 커뮤니케이션은 사회적 삶의 핵심 내용이다. 미국 실용주의 전통을 따르는
존 듀이 같은 사회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케리는 커뮤니케이션이 단순히 세계를 기록하고 그것을 공유하
는 것에 머물지 않으며, 커뮤니케이션은 세계가 구조화되는 과정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이론
을 구체화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을 전송으로 보는 관점과 의식으로 보는 관점으로 구별할 수 있다고 제
안한다. 커뮤니케이션을 전송으로 보는 관점은 공간을 가로질러 발신자에서 수신자에게로 정보를 운반
하는 것과 그 운반 과정을 통제하는 것을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정의한다.
그가 활동할 당시에는 커뮤니케이션을 전송으로 보는 관점이 주류였다. 그래서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신호의 수리경제학으로 환원하는 사이버네틱 패러다임이나, 서로 떨어진 사람들을 관리하는 커뮤니케
이션 시스템이나, 매스미디어의 청취자나 시청자를 메시지의 수신자로 상정한 다음 메시지가 그들에게
예측 가능한 효력을 발휘한다는 가정 하에 매스미디어를 연구했다. 커뮤니케이션을 의식이라는 관점에
서 접근한 케리는 커뮤니케이션이 단순히 정보가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
이라고 주장한다. 요컨대 커뮤니케이션은 정보를 건네는 행위가 아닌 공유된 신념을 표현하는 행위라
고 본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을 전송으로 본다면 신문은 소식과 지식을 퍼뜨리는 도구다. 의식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신문을 읽는 행위가 정보를 전달하거나 수집하는 행위라기보다는 모임에 참가하는 행위가 된다. 이 모
임에서는 새로운 것이 학습되지는 않지만 특정 세계관이 표현되고 강화된다. 케리는 커뮤니케이션에
의식이라는 렌즈, 즉 문화적 접근법을 적용해야만 실제로 중요한 상징이 창조되고 이해되고 사용되는
사회적 절차를 연구할 수 있으며, 그런 연구를 통해 궁극적으로 우리의 공통 문화를 재형성하는 데 기
여하는 커뮤니케이션을 분석하는 틀을 복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폐는 인쇄 미디어이므로 당연히 상징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거래(去來)는 말 그대로 무언가가 오
가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이론가 존 더럼 피터스는 “돈은 결국 미디어이며, 교환 미디어일 뿐 아니
라 표현 미디어”라고 말한다. 한 국가의 통화 디자인을 보면 그 국가가 어떤 이미지를 추구하는지 알
수 있다. 미국 독립전쟁 중에 매사추세츠 주에서 발행한 지폐에는 검을 휘두르는 애국자가 마그나카르
타(대헌장)를 펼쳐들고 있는 그림과 함께 ‘미국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발행함’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캐나다가 건국 초기에 발행한 지폐들은 캐나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 풍경은 투지가 넘치기보다는 목가적이었고,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보다는 지극히 소박했다. 유
로는 특정되지 않은 ‘유럽적인 것’의 느낌을 내고자 했다. 유로에 인쇄된 상상 속 다리는 유럽 국가들
이 공유하는 과거의 건축 양식을 보여주지만 사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형상화는 지폐가
청중을 전제로 하는 인쇄 미디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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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화폐가 이끄는 돈의 미래

현금 없는 사회가 가능할까?
국가 통화가 당장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비트코인과 항공사 마일리지의 가치는 여전히 달러로
표시된다. 현금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현재 디지털화가 진행되고는 있지만, ‘현금 없는 사회’는 ‘종
이 없는 사무실’만큼이나 요원해 보인다. 우리는 앞으로도 어떤 거래는 현금으로 하고, 어떤 거래는 신
용카드로 하고, 어떤 거래는 벤모(개인 간 모바일 결제와 소셜네트워크의 기능이 통합된 모바일 앱)로
할 것이다. 벤모를 사용하더라도 여러 가지 돈이 오간다. 벤모로 친구에게 지불할 때, 그 돈은 체크카
드로 결제되고 그 거래 금액은 예컨대 달러 단위로 표시된다. 마찬가지로 많은 디지털 지갑이 스마트
폰 화면에 신용카드 이미지를 띄운다. 미국의 인류학자 빌 모러가 지적하듯이 결제 시스템의 혁신은
뛰어넘기가 아닌 더하기여서 결제 테크놀로지가 켜켜이 쌓이는 형태로 전개된다.
실제로 돈은 여느 미디어 테크놀로지와 마찬가지로 소셜 테크놀로지, 즉 사회적 기술이기도 하다. 가
장 대중적인 형태를 띨 때조차도 외부에 특정한 의미를 전달하며 그렇게 전달한 의미는 다의적이다.
소셜미디어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결제 시스템은 특정 행동을 허용하거나 금지하는 등 다양하게 설계될
수 있다. 빌 모러의 말대로 “테크놀로지가 애초의 계획이나 의도와는 무관한 온갖 사용법을 낳듯이,
테크놀로지가 도용되거나 수정되거나 다른 테크놀로지와 결합해 다른 기능을 하는 새로운 파생종을 낳
듯이, 돈도 그럴 것”이다. 결제 시스템의 미디어 테크놀로지는 지금 이 순간 신중하게 재설계되고 있
다. 대부분은 소셜미디어의 형태로 실리콘밸리에 의해서 말이다. 돈은 늘 소셜미디어, 즉 사회적 미디
어로 기능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돈을 소셜미디어로 받아들이는 과정에 있다.
실리콘밸리가 돈을 재설계하면서 통제에 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
는 흔히 새로운 자유를 낳는다고들 여기지만, 현실에서는 새로운 제약도 낳는다. 현금은 국가의 커뮤
니케이션 테크놀로지이지만 접근은 쉬운 반면 통제와 감시는 어렵다. 그러나 새로운 돈은 그렇지 않다.
소셜미디어 모델을 토대로 삼았기 때문이다. 누가 이 새로운 돈을 통제할 것인가? 누가 이 새로운 돈
을 감독할 것인가?
매스미디어 돈이 소셜미디어 돈으로 전환하면서 우리가 떠안게 될 위험을 이해하려면 새로운 결제 시
스템이 새로운 거래 공동체를 창조하고 그 공동체 내에서 거래 정체성ㆍ거래 관계ㆍ거래 권력을 창조
하는 방식을 이해해야 한다. 매스미디어 돈에서 소셜미디어 돈으로 전환하는 것은 곧 매스미디어 거래
공동체에서 소셜미디어 거래 공동체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셜미디어 돈은 새로운 사회적 차이를 낳는다. 그 차이는 국가(달러, 파운드, 유로 등)와 사회적 지위
(현금, 프리미엄 신용카드 등)를 초월하고, 소셜미디어 데이터로 측정 가능한 우리에 관한 모든 것을
포함한다. 우리는 결제 시스템이 분열되거나 탈바꿈하거나 교체되거나 규제되는 사례를 관찰함으로써
이 시스템이 어떤 식으로 은밀하게 작동하는지를 추적할 수 있다.

chapter 2 돈의 역사
돈은 전 세계를 빛의 속도로 돌아다닐 것이다
비자카드를 설립한 디 호크는 1970년대 말에 신용 카드의 미래를 예견하면서 다소 엉뚱해 보이는 주
장을 펼쳤다. 그는 돈을 사회적으로 가치가 보증된 정보로 정의하며, 돈이 디지털화되면 엄청난 잠재
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돈은 앞으로 글자와 숫자를 에너지 자극 배열 형태로 기록한 자료
에 불과할 것이다. 전자기장 스펙트럼 전체에 퍼진 무궁무진한 경로를 따라 전 세계를 빛의 속도로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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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화폐가 이끄는 돈의 미래

아다닐 것이고, 비용도 거의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디 호크의 이러한 말은 오늘날 비트코인 추종자들
이 하는 이야기와 매우 유사하다. 돈이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라는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돈의 실체가
드러날 때마다 우리는 돈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돈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단순
하고 복잡하고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먼저 커뮤니케이션으로서 돈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다른 커뮤니케이션도 그렇지만 거래는 미디
어와 인프라를 통해 일어나고, 그것은 언제나 의미를 담고 있으며 권력관계에 의해 좌우된다. 이것은
돈이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조망할 수 있게 한다. 돈의 테크놀로지는 이미 오래전
부터 인쇄, 전신, 컴퓨터, 정보네트워크, 스마트폰 등 통신 기술로 분류되는 것들과 나란히 존재했다.
돈과 관련된 테크놀로지의 역사에서 반복되는 주제에는 정치뿐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도 있다. 돈의
역사에서 공간 대 시간, 일시성 대 영속성, 개인의 정체성 대 집단에 대한 충성, 사익 대 공익 등 끝없
는 갈등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지폐는 우리가 가장 흔히 접하면서도 가장 간과하기 쉬운 인쇄 미디어다. 현금이 딱히 주목받지 못하
는 이유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발행하는 지폐는 실제로는 비교적 신
기술의 산물이다. 19세기 이전에는 돈이 산발적이고 계층적인 형태로 존재했다. 지폐는 표준화 과정을
거친 뒤에야 매스미디어가 되었다. 국가 통화도 19세기 들어 인쇄술이 눈부시게 발달하면서 등장했다.
신문 등 인쇄 문화의 다른 산물처럼 지폐는 미국의 사회학자 베네딕트 앤더슨이 ‘상상의 공동체’라고
부른 민족국가의 도구이자 민족국가 탄생의 주역이었다. 국가 통화는 국가를 공통 경제 미디어가 통용
되는 경제 영토로 표시한다.
지폐는 공유된 과거, 현재, 미래의 이야기를 전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미디어로 볼 수 있
다. 교환 미디어이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대변하는 미디어’이기도 하다. 민족 국가 탄생 초기 보편 교
육이 도입되기 전까지는 지폐가 그 국가의 공식적인 역사를 국민에게 유포하는 핵심 수단으로 사용되
었다. 현대에 들어서도 미국 달러는 미국 국민이 매일 연방정부와 마주치는 유일한 접점일 것이다.
디지털 결제 서비스의 등장
인터넷이 성장하면서 새로운 가상의 시장이 탄생했다. 이 시장에서는 단순히 국제 거래가 아닌, 지역
을 초월한 개인 간 거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처음에는 영세 자영업자가 멀리 있는 고객의 카드를 결
제 수단으로 받기가 어려웠고, 개인 간 거래는 말할 것도 없이 불편했다. 개인이나 영세 자영업자가
인터넷으로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고객에게 서명한 수표를 우편으로 보내달라고 해야 했고, 며칠 후에
수표를 은행에서 현금으로 바꾼 다음에 상품을 고객에게 보낼 수 있었다. 개인 간 거래에서 돈은 통신
속도를 쫓아가지 못했다.
1990년대 내내 개인 간 디지털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시도는 많았다. 1990년대 말 여러 스타트업
이 합병하면서 페이팔이 탄생했다. 페이팔은 실리콘밸리의 테크놀로지 산업과 그 산업에 만연한 반기
업주의, 사회적 자율성, 문화 보헤미아니즘 같은 가치를 시장주의와 묶은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페이팔의 프로젝트는 단순히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만이 아니라 개방된 세계 화폐 시장을 추
구했다. 애초에 페이팔의 목표는 개인 간 거래가 가능한 글로벌 공동체가 아니라 민족국가의 간섭에서
완전히 해방된 글로벌 시장이었다.
역설적이게도 페이팔의 사업 모델이 성공한 것은 1970년대에 도입되어 여전히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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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화폐가 이끄는 돈의 미래

관리하는 자동교환결제 시스템 덕분이었다. 이 시스템은 은행 고객이 수표를 액면가 그대로 전부 결제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공공 인프라다. 고객에게 수수료를 부과하지도 않았다. 페이팔은 기존 카드
네트워크를 이용할 때 수반되는 각종 비용을 내지 않기 위해 고객들에게 은행 계좌를 등록하도록 권장
했고, 그 덕분에 자동교환결제 시스템의 거래 규정에 따라 고객의 계좌에서 직접 돈을 인출했다. 결론
적으로 페이팔은 이미 존재하는 공공재를 활용한 것뿐이다. 사람들은 돈을 보내고 받을 때 그 인프라
를 사용할 수 있었고, 커뮤니케이션과 같은 속도로 거래를 진행할 수 있었다.
2007년과 2008년에는 돈이 만들어내는 거래 공동체가 재조명되기 시작한다. 글로벌 금융 위기로 인해
정부와 금융기관에 대한 신뢰가 흔들렸고, 대규모 모바일 화폐 시스템인 엠페사가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아이폰 출시 이후 훨씬 더 값싼 안드로이드폰이 쏟아져 나오면서 세계 인구의 대부분이 네
트워크에 연결된 컴퓨터를 들고 다니게 되었다.
2007년 이후의 시기를 결제의 ‘캄브리아기 대폭발’이라고 할 수 있다. 약 5억 4,100만 년 전, 지구상
에 갑자기 온갖 복잡한 생명체가 한꺼번에 출현한 시기에 빗댄 표현이다. 비트코인이 등장했고, ‘차세
대 비트코인’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이런 돈 중에 우리의 일상에 파고든 것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현금 없는 사회가 코앞에 다가와 있다고 말하지만 현금과 신용카드는 여전히 사
용되고 있다. 물론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돈의 형태와 기능이 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 변화가 요란하기보다는 소소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결제 시스템과 인프라의 역사에서는 이런
변화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인프라는 켜켜이 쌓이면서 조금씩 변형된다. 그리고 돈의 순환을 매개하
는 인프라는 불이익을 불균등하게 배분한다.

돈의 정치학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면, JP 모건 체이스가 결제한다
상인은 누구나 돈을 받기 위해 돈을 낸다. 고객이 카드를 사용할 때마다 수수료를 내고, 그 외에도 정
보 처리비와 POS 단말기 대여료 등을 낸다. 은행도 고객을 공급한 신용카드사에 수수료를 낸다. 그리
고 이 수수료를 상인에게 떠넘기면서 자신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비용까지 청구한다. 비자카드
와 마스터카드 같은 카드 네트워크는 발급인과 은행의 중개인 역할을 한다. 카드 네트워크는 회원 은
행에 표준화된 메시지를 전송해 결제의 규칙과 지침을 실행한다. 또한 그런 메시지를 전송하는 컴퓨터
네트워크와 정보 시스템을 운영한다.
대형 상인은 일반적으로 대형 은행과 직접 거래한다. 이들은 대부분 결제를 관리하는 내부 전담팀을
운영하며 심지어 결제 소프트웨어를 자체 개발하기도 한다. 따라서 중소 상인처럼 정보 처리 등의 부
가서비스를 제공받을 필요가 없다. 반면 중소 상인은 은행과 직접 거래하지 않는다. JP 모건 체이스
같은 대형 은행은 일반적으로 상인 전담 고객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며, 중소 상인과 거래하지 않는
다. 그래서 중소 상인은 독립 영업 조직인 ISO를 통한다. ISO는 쉽게 말해 결제 서비스 도매업자다. 은
행에서 결제 관련 서비스를 묶음으로 사들인 다음 작은 단위로 나눠서 상인에게 재판매한다.
실제로 내 단골 카페는 웰스 파고의 결제 서비스를 재판매하는 소규모 ISO업체와 거래한다. 이 ISO는
내 단골 카페를 위해 스타벅스의 내부 부서가 담당하는 업무 대부분을 대신 수행한다. POS 단말기를
관리하고 그 정보가 업계의 표준과 법규를 준수하도록 감독하고 결제 처리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해
결한다. 은행은 결제 서비스 외에 위험도 판매한다. 상인이 고객의 카드를 받으며 은행은 단기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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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화폐가 이끄는 돈의 미래

대금의 지급을 보증한다. 내가 커피값을 결제하려고 카드를 사용하면 JP 모건 체이스는 2.1달러에서
수수료를 뺀 금액을 스타벅스에 빌려주는 셈이 된다. 그런 다음 버지니아주립대학 신용조합이 스타벅
스가 JP 모건 체이스에 빚진 결제액 전부를 정산한다. 마지막으로 버지니아주립대학 신용조합은 커피
값 2.1달러를 포함해 그동안 카드로 결제한 금액과 이자를 내게 청구한다.
사기나 불만 등 어떤 이유로든 내가 커피값 2.1달러의 지급을 거절하면 버지니아주립대학 신용조합은
지급을 거절한다. 내가 단골 카페에서 낸 커피값 지급을 거절하면 버지니아주립대학 신용조합은 그 돈
을 웰스 파고에서 받아내고 웰스 파고는 그 돈을 커먼웰스 머천트 솔류션스에서 받아내고 커먼웰스 머
천트 솔루션스는 그 돈을 단골 카페에서 받아낸다. 은행의 업무, 즉 상인에게 대가를 받고 제공하는
서비스 중 하나는 상인 대신 위험을 떠맡는 것이다.

돈과 빅데이터
나는 전 남친이 한 일을 알고 있다
2017년 《뉴요커》에 올리비아 드리카의 만화가 실렸다. 그는 벤모 거래 내역 몇 개를 손으로 그려가
며 나열한 다음 각 거래 내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일일이 주석 달았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널리 이
용되는 개인 간 결제앱인 벤모를 통하면 개인도 친구에게 직접 돈을 지불할 수 있다. 벤모는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서 유독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룸메이트들끼리 매달 발생하는 경비를 나
누거나 식당에서 여러 명이 함께 식사했는데 웨이터가 한 명씩 음식값을 계산하는 것을 난감해할 때
벤모로 각자의 몫을 낸다. 벤모로 친구에게 돈을 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청구할 수도 있다. 거래 내
역의 ‘소셜 피드’도 제공한다.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돈을 지불하면, 그 거래 내역이 두 사람의 친구들
에게 공개된다. 페이스북의 뉴스 피드나 트위터의 스트림을 떠올리면 된다. 벤모 사용자는 벤모가 제
공하는 양식에 따라 거래할 때마다 메모를 달아야 한다.
드리카의 만화에 등장하는 첫 거래 내역은 꽤 평범하다. “수전이 킴에게 돈을 보낸다”(전구와 전기 코
드 이모티콘)에 드리카의 주석이 붙는다. “수전이 자기 몫의 전기요금을 낸다” 그러다 가슴 아픈 사적
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당신의 전 남친의 거래 내역이 등장하고 당신은 못 본 척 그냥 넘어갈 수가 없
다. 이모티콘이 붙은 거래 내역이 나열되고 당신은 전 남친이 당신의 지인이기도 한 친구와 커피를 마
신 것을 보면서 십중팔구 둘이서 당신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러다 당신은 결국 보고 만다. 클로이라는 여성이 당신의 전 남친에게 돈을 보내면서 초밥과 웃는 얼
굴 이모티콘을 달았다. 이보다 명확한 증거도 없다. “당신의 전 남친이 클로이라는 여자와 사귀고 있
다.” 당신은 클로이의 벤모 피드를 클릭한다. 클로이는 전 남친에게 가수 존 메이어의 콘서트 푯값을
지불했다. 당신이 생일선물로 준 표로 전 남친이 클로이와 콘서트에 간 것이다. 그런데 클로이가 당신
이 관심이 있는 것들에 돈을 쓰고 있다. 클로이는 친구에게 브로드뮤지엄에서 열리는 팝 아티스트 로
이 리히텐슈타인의 전시회 푯값을 지불했다. 당신도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전시회다. 당신은 생각한다.
‘이번 주말에 하는 팝업 쇼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당신은 클로이와 아주 자연스
럽게 만난다. 요즘은 당신이 클로이에게 돈을 보내고 있다(야자나무와 햇살 이모티콘). 함께 바닷가에
놀러가서 전 남친 발이 얼마나 괴상한지, 전 남친이 설거지를 얼마나 대충하는지, 전 남친과 그의 여
동생이 얼마나 비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연인과 헤어지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하고……. 벤모는 스크랩북이다. 영수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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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화폐가 이끄는 돈의 미래

과 이야기로 가득 채워진 상자다. 벤모 피드를 역순으로 훑으면 수천 개의 기억이 드러난다. 우스꽝스
러운 기억도, 부끄러운 기억도, 소중한 기억도 모두 드러난다. 마르셀 프루스트의『잃어버린 시간을 찾
아서』에서는 주인공이 차에 적신 마들렌을 조금씩 베어 먹으면서 자신의 과거로 여행을 떠난다. 그 향
수는 엄청난 분량의 장편소설이 된다. 이 소설은 기억에 관한 명상으로 채워진다. 지금은 아마도 차에
적신 마들렌 대신 벤모 거래 내역이 ‘프루스트의 소설 같은 순간’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벤모가 기억의 테크놀로지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디지털 화폐는 거래의 구체적인 사항을 보존하고 우
리의 지리적 이동을 기록하고 우리의 취향과 습관을 추론하는 능력이 있다. 영국의 사회학자 나이절
도드는 “기억의 테크놀로지가 기업과 국가의 통제를 받는 한 기억을 보조하는 장비는 정치적ㆍ상업적
감찰을 보조하는 도구이기도 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라고 말한다. 한때는 사적 영역에 속
했던 거래 내역이 게시물이 되어 친구와 적, 국가와 기업의 감찰 대상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돈과 디지털
비트코인의 등장
돈은 그 자체로 불가사의한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돈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이다. 이런 혼란
의 와중에 새로운 유형의 돈이나 거래 공동체를 만드는 사람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금융 위기 이후 몇
년간 예술가, 시민운동가, 공학자, 창업가들이 여러 새로운 돈을 만들어냈다.
2008년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가명을 쓰는 개인 또는 단체가 비트코인을 공개했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개인 간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비트코인을 생산하고 전송할 계획이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터무
니없이 복잡하고 또 충격적일 정도로 비싼 비트코인은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누군가 일부러 거래
공동체를 만들 때는 대개 기존의 가치, 정체성, 공간, 시간, 정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만든다.
비트코인은 그런 모든 것을 다시 규정하고자 했다. 정부가 가치를 보증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과 암호
로 가치가 보장되는 ‘디지털 금’이자, 수수료를 내거나 감시를 받는 일 없이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디지털 화폐’로 기획되었다. 비트코인 개발자와 사용자는 비트코인을 일종의 마법과도 같
은 ‘인터넷 화폐’로 여겼다. 이것은 자유지상주의자, 암호화폐 운동가, 사이퍼펑크족(cypherpunk; 암호
기술을 이용하여 기존의 중앙집권화된 국가와 기업구조에 저항하려는 사회운동가), 암호무정부주의자
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비트코인 지지자 대부분은 초창기부터 네트워크 노드를 운영했고, 돈의 미래를
꿈꾸고 지지했다.
비트코인은 종잡을 수 없는 돈처럼 보이지만 꽤 명확한 원칙이 적용된다. 비트코인은 은행이나 소셜미
디어 플랫폼을 거치는 일 없이 가치를 지급인에서 수신인으로 직접 전송한다는 점에서 현금처럼 기능
한다. 그러나 현금과 달리 모든 비트코인 거래는 블록체인에 기록된다. 그리고 지급인과 수신인의 신
원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거래는 암호화된다. 새로운 거래를 확인하고 업데이트하려면 컴퓨터 네트워
크가 꼭 필요하다. 이들 컴퓨터의 운영자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신 가끔씩 시스템이 자동적으로 생산
하는 비트코인을 보상으로 받는다.
이렇듯 블록체인을 자발적으로 호스팅하면서 비트코인으로 보상 받는 노동 행위를 땅에서 희귀한 금을
캐내는 것에 빗대 ‘채굴하기’라고 부른다. 2009년 1월 비트코인 클라이언트가 최초로 동기화되었고, 첫
비트코인 제네시스 블록에서 채굴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비트코인이 채굴되는 속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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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화폐가 이끄는 돈의 미래

점점 느려지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비트코인이 전부 채굴되어 고갈된다. 따라서 비트코인이 디지털 화
폐로 기획되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투기 상품인 ‘디지털 금’에 가깝다. 그리고 비트코인에 대한 투기
거래로 엄청난 시장 변동성도 생겨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비트코인 열성 지지자들은 정부의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운 대안화폐, 즉 미국
정부보다 훨씬 더 오래 살아남을 돈이라는 비전을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의 한 피자가게가 비트코인을
받고 피자 2판을 배달하면서 최초로 현실세계에서 비트코인이 사용되자 이것이 일상생활에서 비트코
인을 결제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증거라며 흥분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비트코인을 결제 수단으
로 받는 상인은 많지 않다(비트코인은 2010년 5월에 30달러, 2017년 2월에 2만 달러, 2018년 5월에
7,600달러였고, 2021년 1월 4만 2,000달러였다).
국가가 돈을 규정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스타벅스를 비롯한 기업들이 디지털 화폐 발행 사업에 뛰어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헌법학자
크리스틴 드샌은 돈을 발행하는 행위를 헌법적 행위로 묘사한다. 그는 돈은 정치 공동체와 헌법 형성
과정에 관여하며 공동체 헌법의 규제를 받는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돈의 탄생 과정이라는 맥락 속
에서 돈을 정의하며, 돈은 다음과 같은 조건하에서 탄생한다고 말한다. 공동체의 중심에 자금 관리인
이 있다. 그 관리인은 공동체의 구성원에게서 개인 분담금을 수거한 다음 다시 배분한다. 관리인은 구
성원들에게 공동체에 대한 의무 이행 확인서인 일종의 영수증을 발급한다. 그 영수증은 중앙 자금 관
리인과 공동체 전체가 보증하는 표준화된 가치로 유통된다.
경제학자들은 한때 돈이 시장에서 탄생했다는 가설을 펼쳤다. 물물교환을 하던 사람들은 금과 은 같은
귀금속을 교환 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귀금속은 운반하기 쉽고, 나눌 수 있고, 견고하고, 적어도
유럽에서는 희소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드샌은 다른 많은 인류학자, 사회학자, 역사학자와 마
찬가지로 돈은 그 돈에 권위를 부여할 수 있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가설을 내세운다.
드샌은 일부러 자금 관리인과 공동체에 개인 분담금 같은 포괄적인 단어를 사용했다. 다양한 맥락에
적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기 위해서다. 대체로 자금 관리인은 군주를 의미하며 개인 분담금은 세
금으로 불린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민간’ 조직, 도시, 사업 협력체 등 어떤 독립체라도
돈을 만들어낼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집단을 조직화하는 과정에서 그 집단 고유의 정치학도
만들어낸다.”
다만 드샌은 자금 관리인의 형태(왕, 교회, 민주 정부, 광산 기업, 블록체인, 공동체, 다국적 커피 체인
점)가 일종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돈은 민주주의 통치 질서의 지배를 받을 수도 있고, 권위주
의 통치 질서의 지배를 받을 수도 있다. 돈은 부와 권력을 여러 다양한 방식으로 분배하도록 설계될
수 있다. 그래서 돈을 설계하는 행위는 그 돈이 유통되는 공동체를 규정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돈에 관한 이론은 기술경제 상상의 산물이며, 더 높은 층위의 사회질서에 관한 이론이자 그
이론을 물리적으로 구현하는 방식이다. 적어도 국가 발행 화폐 시스템에서는 거래 대중이 곧 거래 공
동체다. 근대 계몽주의 프로젝트에서 돈은 시장민주주의 통치 질서의 지배를 받는다.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크 지멜은 돈이 “사회에 대한 권리 주장”이라고 주장한다. 돈의 가치는 집단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다.
그러나 영국의 사회학자 나이절 도드는 “지멜이 염두에 둔 ‘사회’가 민족국가를 의미하는지는 결코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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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화폐가 이끄는 돈의 미래

확하지 않다. 사회가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면 돈도 마찬가지로 유동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이제 국가
가 돈을 규정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비트코인, 브리스틀 파운드, 스타벅
스 리워드 포인트 등 무엇이 되었든 간에 많은 사람이 국가가 발행하는 돈을 대체하거나 최소한 보완
하는 미래를 아주 진지하게 상상하고 있다. 암호화폐든 지역화폐든 기업 화폐든 오늘날 돈은 국가의
정치적ㆍ영토적 영역에서 자유롭다. 도드는 모든 새로운 화폐가 어느 정도는 유토피아적이라고 지적한
다. 새로운 화폐의 도입은 새로운 정치 질서가 확립되는 과정이며, 그런 새로운 화폐를 제안한 구성원
들이 추구하는 정치 질서의 원천인 정치적 상상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비전은 어떤 면에서는 포스트민주주의가 낳은 환상이기도 하다. 사회학자 마누엘 카스텔스는
자유민주주의 제도에 닥친 위기를 기록했다. 카스텔스는 대부분 시민들이 기득권을 지닌 정치 제도와
정부를 신뢰하지 않으며, 이것이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세계 곳곳에서 포퓰리즘 정
권의 선출을 유도한 원동력은 일부 사람들이 비트코인 같은 자유지상주의적 디지털 화폐를 추종하게
만들거나 공동체 화폐를 통해 지역 저항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만든 원동력이기도 하다. 이윤을 위해
브랜드를 덧씌운 신뢰를 서비스의 하나로 제공하는 기업으로서는 이런 환경이 곧 기회다.
실제로 슐츠가 스타벅스를 미래의 디지털 화폐 발행인으로 제안하고 한 달이 지난 2018년 2월에 스타
벅스의 경쟁사인 던킨 도너츠의 최고재무책임자 케이트 재스폰도 주주들에게 디지털 화폐를 이야기했
다. 재스폰은 극단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에 기업을 이끌면서 직면하는 어려움에 대해 설명했다. 그녀는
지금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런 시국에서는 다국적 커피 체인점들
이 화폐 공급자로 나서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기업의 리워드 프로그램을 통해서
는 어떤 거래 대중이 탄생하게 될까?
돈의 힘
리워드 프로그램이 새로운 돈의 대표 주자라는 주장이 가능하듯이, 페이스북이 소셜미디어 돈의 대표
주자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2019년 6월에 페이스북은 자체 개발 중인 디지털 화폐 리브라를 공개했다.
페이스북은 이미 꽤 오래전부터 자체 결제 서비스를 시장에 안착시키려고 노력했고, 그 무렵에는 골드
만삭스부터 터키의 농부에 이르기까지 블록체인에 열광했기 때문에 그다지 놀라운 소식은 아니었다.
그러나 적어도 페이스북이 배포한 홍보 영상에 따르면 리브라는 기존의 시도들보다 훨씬 더 야심찬 실
험이다. 리브라는 보편적이고 국제적인 기축통화, 즉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돈을 지향한다. 위챗, 벤모,
리워드 포인트 프로그램 등 민간 거래 공동체들이 틈새시장과 세분화된 시장이라면 리브라는 국가 통
화와 결제 시스템의 차이를 덮어버리고 은행과 거래를 하건 안 하건 돈의 모든 사용자를 한데 모으고
자 한다. 즉 소셜미디어가 매스미디어가 되는 것이다.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와 달리 리브라는 시장 중심 자유지상주의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다. 암
호화폐 지지자들은 거래 당사자가 아닌 중개인과 통제 체제에서 해방된 세계를 꿈꾸는 반면 리브라는
그런 중개인과 통제 체제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국가 통화는 민주적 통치 질서의 대상인 반면 리브라
는 통화정책과 인프라라는 측면에서 기업이 관리하도록 설계되었다.
국가 통화가 자유민주주의를 대변하고 비트코인이 기술적 자유주의와 무정부주의적 자본주의의 조합을
대변한다면 리브라는 실리콘밸리식 봉건주의를 대변한다. 다시 말해 리브라의 통화정책과 인프라는 원
탁의 기사들을 연상시키는 대기업 회원들로 구성된 리브라협회가 관리한다. 이것은 개인 대 개인의 테
크놀로지가 아니다. 오히려 계급을 부여하는 테크놀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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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화폐가 이끄는 돈의 미래

리브라가 공개되었을 때만 해도 엄청나게 대담한 승부수처럼 보였다. 또한 필연적으로 도래할 미래처
럼 느껴졌다. 2018년 하워드 슐츠는 기업이 주도하는 디지털 화폐라는 비전을 제시하면서 신뢰를 강조
했다. 신뢰가 화폐 발행의 열쇠라면 페이스북은 결코 화폐 발행인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돈은 신뢰가
아니라 어디든 갈 수 있는 유통망에서 나온다. 페이스북은 전 세계 수십억 개의 스마트폰에 탑재되어
있으므로 사용자가 새로운 화폐를 받아들이도록 강제하는 독특한 힘을 지니고 있다.
신뢰가 아닌 이런 강제는 돈의 기원에 대한 몇몇 가설의 핵심 요소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이렇게 설명했다. 자원이 부족하면 중세의 군주는 곧장 신하들을 마을로 보냈다. 재수 없이 걸린 사람
에게서 필요한 것을 빼앗은 뒤 그 재화의 가치를 기록한, 개암나무로 만든 막대기를 던져주면 그만이
었다. 이런 세금 기록용 막대기는 군주가 백성에게 진 부채를 나타냈다. 백성은 그 막대기를 교환권으
로 사용했다. 막대기가 여러 손을 거치면 돈이 되었다. 왕의 부채가 거래 공동체의 결제 수단이 된 것
이다. 그러나 백성으로서는 강제로 거래를 당할 때의 충격은 떨쳐내기가 힘들다. 그레이버는 중세의
유행시를 인용해 그런 관습을 묘사했다. 이 시에서 양치기는 왕이 자신의 소를 전부 빼앗아가고 자신
에게 나무 막대기 하나만 지급했다고 애통해한다. 페이스북은 우리에게 무엇을 던져줄 것인가?
물론 리브라의 등장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불가피한 일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리브라 파트너십
의 핵심 멤버들이 탈퇴했고 현재 리브라 프로젝트는 동력을 잃은 듯 보인다. 그러나 2019년 페이스북
은 비교적 조용히 페이스북페이라는 새로운 계획을 발표했다. 리브라만큼 대담한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페이스북이 규제나 대중의 비판에 좌절하지 않고 결제 시스템에 대한 도전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게
해주었다. 여전히 돈에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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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화폐가 이끄는 돈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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