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 무하유(無何有)
마을에서 들려오는 메아리
우리의 삶은 한계가 있으나 앎에는 한계가 없다. 한계
가 있는 것으로 한계가 없는 것을 좇으니 위태롭기 그
지없다.
장자의 도는 자연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장주 지음
장자(莊子) - 무하유(無何有) 마을에서 들려오는 메아리
장주 지음
▣ 저자 장주(369~286 B.C.)
남화진인(南華眞人)이라 일컫는 도가(道家)사상의 중심인물, 스스로 그러한 것을 도(道)라 규정하고 이
를 근거로 자연관 및 인간관을 전개한다.
푸른 물 속에서 나는 세상을 잊었소이다!
『장자 莊子』의 「추수 秋水」편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 장자가 복수( 水)라는 강가에서 낚시
를 하고 있는데, 초(楚) 나라의 왕이 보낸 두 대부(大夫)가 찾아와서 왕의 뜻을 전했다. 부디 저희 나
라의 정치를 맡아 주옵소서. 장자는 낚싯대를 쥔 채 돌아보지도 않고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듣기에
초 나라에는 신령한 거북이 있는데 죽은 지 3천년이나 되었다고 하더군요. 왕께서는 그것을 헝겊에
싸서 묘당(廟堂) 위에다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는데, 그 거북은 죽어서 뼈를 남긴 채 소중하게 받들
어지기를 바랐을까요, 아니면 차라리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바랐을까요?
두 대부는 대답했다. 그야 당연히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바랐을 테지요. 그러자
장자가 말했다. 어서 돌아가시오. 나도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며 다닐 것이오.
장자는 왜 모든 지식인들이 꿈에도 그리던 재상의 자리를 마다한 것일까? 인륜과 도덕의 수호 성인
공자(孔子)조차도, 반역을 꾀한 양호(陽虎)의 부름에 갈까 말까 망설이다 충직한 제자 자로(子路)의 핀
잔을 사지 않았던가! 장자의 가슴 속에 응어리진 비애(悲哀)가 더 컸던 것일까, 아니면 정말 흔히 말하
듯 무정한 정치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는 비정한 몸부림이 싫어서였을까, 그도 아니면 남방의 대국(大
國) 초나라가 작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장자는 이미 거대한 천지(天地) 사이의 기(氣)로 떠돌고 있으니
우리는 그저 추측만 해 볼 뿐이다. 가장 오랜 중국의 역사서인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서조
차 그에 관해서는 별다른 이야기가 없는데, 오로지 이 이야기만을 기록해 전하는 것을 보면 신빙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 사실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장자는 성이 장(莊)이고 이름을 주(周)라 한다. 그 옛날 찬란한 문명을 과시했던 상(商)의 유민들에게
주어진 땅에 세워진 송(宋)나라의 몽(蒙)이라는 마을에서 기원전 369년에 태어나 그곳에서 칠원(漆園)
즉, 옻나무 동산을 관리하는 낮은 벼슬을 지냈다고 전해지며, 기원전 286년에 죽었다고 한다. 『맹자
(孟子)』에서 먼 길을 온 맹자에게 우리 나라에 무슨 이익(利)이 있겠습니까? 라고 물었던 개혁 군주
위(魏)나라의 혜왕(惠王)과 만났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하며, 특히 위 나라에서 재상까지 지냈던 정치
가이자 사상가였던 혜시(惠施, 370- 310 B.C.)와는 막역한 친구 사이로 전한다. 또한 부인의 상을 당해
슬퍼하기는커녕 춤추며 노래했다는 기이한 행적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장자는 결혼했고 몇 명의 자식
이 있었던 듯하다. 이같은 단편적인 일화들을 제외하면 우리가 장자의 삶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대붕이 구만리 창천으로 날아오르자 매미와 비둘기가 땅 위에서 비웃다!
당시 중국 사회는 전국(戰國, 403~221 B.C.) 시대라 한다. 영어로 국가간의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대
(Warring States Period)라 부르듯, 전국 시대는 전란과 정치적 소용돌이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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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 무하유 마을에서 들려오는 메아리
의 회오리가 요동치는 시대는 난세는 영웅을 기다린다 는 말처럼 뜻이 있으나 때를 얻지 못한 사람
들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장자에게는 그런 커다란 야망조차 없었던 것일까. 사마
천에 따르면 장자는, 초 나라의 왕이 보낸 두 대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대들은 빨리 돌아가 나를 더 이상 욕되게 하지 마시오. 차라리 시궁창에서 뒹굴며 즐거워할지언정
나라를 가진 제후(諸侯)들에게 구속당하지는 않을 것이오. 죽을 때까지 벼슬하지 않아 나의 마음을 즐
겁게 하고자 하오. 그 뿐이었다. 거의 같은 시대를 살았으면서도 수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천하를
주유(周遊)하며 제후들에게 유세했던 맹자(孟子)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아마도 그는 구만리
창천 위 구름 속에 숨어 천하를 비웃으며 살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날 『장자』는 단순히 어느 하나의 학문 영역에 해당하는 책으로 규정지을 수 없다. 이미 한(漢)
나라 때부터 문학 이론과 도교(道敎)의 성립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은 물론, 불교(佛敎)가 중국에 수
용될 때는 이론적 가교 역할을 하기도 했다. 특히 『장자』에 등장하는 도(道)와 덕(德), 유(有)와 무
(無), 물(物)과 기(氣), 무위(無爲)와 자연(自然), 천지(天地)와 만물(萬物), 심재(心齋)와 좌망(坐忘), 양생(養
生)과 복초(復初) 같은 용어들은 도가(道家) 사상을 대변하는 핵심 용어며, 이후 송명(宋明) 시대의 신
유학(新儒學)의 자연철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더구나 한 나라 때에 편찬된 『회남자 淮南
子』와 더불어 『장자』는 중국의 고대 신화와 우주론, 원시 종교 사상을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문헌
자료가 된다. 더불어 『장자』에 나오는 갖가지 이야기들은 후대에 문인과 시인들의 중요한 소재가
되기도 했으며, 세속의 풍파에 찌든 지식인들에게는 늘 마음의 위안이 되는 벗이자 지혜의 보고이기
도 했다. 아마도 대붕(大鵬)의 날개에 몸을 맡겨 보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 『장자』의 내용 구성
역사적으로 『장자』는 장주가 지은 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보는 『장자』는 위
진(魏晉) 시대에 곽상(郭象, A.D. ?- 312)에 의해 정리된 것이다. 장주와는 거의 600년이라는 세월의 격
차가 가로 놓여 있는 것이다. 곽상이 정리한 『장자』는 내편(內篇) 7편, 외편(外篇) 15편, 잡편(雜篇)
11편으로 모두 33편으로 구성, 편집돼 있다.
그러나 기원 후 1세기경의 역사가 반고(班固)의 『한서예문지 漢書藝文志』에는 내편 7편, 외편 28편,
잡편 14편, 해설 3편으로 총 52편으로 이뤄져 있다고 한다. 사마천 또한 그의 『사기』에서 『장자』
가 10만자가 넘는다고 했으니, 오늘날 6만 4천 6백 6자로 되어 있는 것에 비하면 양이 훨씬 많다. 아
마도 장자의 생애가 가려져 있는 것처럼, 『장자』라는 책도 똑같은 비운을 겪은 것이 아닐까 생각된
다. 그러니 그 수수께끼의 장자는 오늘날까지 살아서 어느 날 갑자기 대붕의 날개를 타고 63빌딩으로
내려올지도 모를 일이다: 벗들이여, 강호에서 잘들 지내시는가? 하면서 말이다.
1. 똥 오줌에도 도가 있소이다(屎尿有道)! - 도(道), 덕(德), 기(氣) 그리고 자연(自然)
2. 우물 안 개구리 바다에 가다(井蛙見海) - 천지(天地)와 만물(萬物)
3. 오래도록 잘 살고 싶다면 - 양생(養生), 상망(相忘), 심재(心齋), 좌망(坐忘)
4. 제왕이여, 어디로 가시나이까(帝王之道) - 무위(無爲)와 대용(大用)
5. 무하유 마을에서 들려오는 메아리(無何有之鄕) - 지덕지세(至德之世), 태평(太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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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 무하유 마을에서 들려오는 메아리
▣ S ho rt S umma ry
외편
『장자』를 읽는 것은 대붕의 날개를 타고 세상을 굽어보는 긴 여행에 비유할 수 있다. 제일 첫 편인
「소요유 逍遙遊」에서는 커다란 물고기 곤(鯤)이 붕(鵬)으로 변해 먼 남쪽으로 여행하는 것으로 시작
된다. 거기에서 우리는 구만리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천하는 온갖 잡다한 만물(萬物)로 무질서하게 시
끌벅적한 듯하지만 거기에는 자연스러운 조화와 즐거움이 내재한다는 「제물론 齊物論」의 기묘한 논
리에 마주하게 되고, 뒤이어 생명을 기르는 기묘한 비법을 소개하는 「양생주 養生主」, 변화무쌍한
사건과 덧없는 「인간세 人間世」와 이를 구제하기 위한 대용(大用)의 철학을 배우게 된다. 이어지는
「덕충부 德充符」,「대종사 大宗師」,「응제왕 應帝王」은 천하의 구세주로서의 제왕(帝王)의 자격과
풍모, 치자의 원칙이 논의된다. 마지막 편인「응제왕 應帝王」의 제일 마지막은 그 유명한 혼돈(混沌)
이야기로 마무리 된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이야기들은 대개 이 내편에 속하거나 이와 관련된 외,
잡편의 내용이 대부분이다.
내편
내용이 비교적 일관되고 긴 한 편의 서사시를 방불케 하는 내편 7편의 구조와는 달리 외편과 잡편은
장주의 후학과 이를 계승한 다양한 사조의 작품이다. 그런 만큼 성격이나 주장이 상당한 차이를 보이
고 있다. 최근 중국학자 리우 샤오간(劉笑敢)에 따르면 외편, 잡편은 장주의 사상을 거의 그대로 계승
하고 넓히고자 한 술장파(述莊派), 현실의 도덕과 정치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담고 있는 무군파(無君
派), 유가는 물론 다른 여러 사상가들의 학문을 포괄적으로 수용하면서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개혁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황로파(黃老派)라는 세 유파로 구분된다고 한다. 또한 영국 출신의 저명한 학자
그라함(A.C. Graham)은 이를 장자의 철학을 계승하는 장자학파(the Chuangtzu school), 원시적 이상 사
회의 비전을 제시하는 원시파(the Primitivist documents), 고대 중국의 개인주의 철학을 설파하는 양주
파(the Yangist chapters) 그리고 갖가지 사상과 조류가 혼합되어 있는 절충파(the Syncretist stratum) 네
가지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장자』의 세계는 넓고도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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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 무하유 마을에서 들려오는 메아리
장자(莊子) - 무하유(無何有) 마을에서 들려오는 메아리
장주 지음
▣ 『장자』 읽기
고대 중국에서 이루어진 문헌 대개가 그렇듯 『장자』 또한 장주 한 개인의 손으로 일시에 체계적으
로 저술된 것이 아니다. 어떤 편들은 단일한 한 편의 논문처럼 구성됐지만, 대개의 편들은 여러 가지
일화와 고사들이 엮여져 있다. 더구나 『장자』의 「우언 寓言」편에서 말하고 있듯, 문체상으로도 우
언(寓言)과 중언(重言), 치언( 言)이라는 세 가지 형식으로 돼 있다.1) 또한 『장자』전체의 내용의 흐
름에 따라 일관되게 책의 내용을 설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내편」은 일반적으로 동의
하듯 장주 개인의 일관된 사상을 담고 있지만, 「외편」과 「잡편」은 장주의 사상을 계승하고자 하
는 다양한 색채의 사상가들의 주장을 담겨 있어 편의 흐름에 따라 내용을 요약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통상적인 방식대로 『장자』의 자연관과 인간관을 중심으로 핵심
사상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똥 오줌에도 도가 있소이다(屎尿有道)! - 도(道), 덕(德), 기(氣) 그리고 자연(自然)
『장자』는 도가(道家) 철학의 대표적 문헌이다. 도가가 도가로 불리는 것은 도(道)라는 용어의 빈번한
사용과 거기에 깊은 철학적 함축을 두기 때문이다. 제22편 「지북유 知北遊」에는 지(知)라는 의인화
된 인물이 도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 이리저리 다니며 묻고 다니는 이야기가 나온다. 황제(黃帝)는 그
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말아야 도를 알게(知道) 되느니라. 어떠한 입장에도 서지 않고,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아야 비로소 도에 편안하게(安道) 되느니라. 아무 것도 따르지 않고 어떤
방법도 쓰지 않아야 비로소 도를 얻게(得道) 될 것이로다... 왜냐하면 천하(天下)는 하나의
기(氣)로 통하기 때문이니라. 그래서 성인은 하나(一)를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니라!
「지북유 知北遊」에서
도는 우리가 구분해서 알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몸, 존재하는 모든 것 자체의 흐름을 말하
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산재한 도에 관한 『장자』의 설명은 대개 역설적이고 때로 황당하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도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는 어디 있는가? 없는 곳이 없다. 하물며
똥 속에도 도가 있다! 고 『장자』는 갈파한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괴상하게 들리는 이러한 논법
은 고대 도가의 우주론적 시각에서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1) 연세대학교 철학과 이강수 교수는 이들 각각에 대해, 우언은 사람이나 사물에 의탁하여 자기 주장을 펼치는 방식
으로, 중언은 당시 사람들이 존중하던 사람에게 의탁하여 자기 주장을 펼치는 오늘날의 권위로부터의 논증 으로,
치언은 사람과 사물과 때와 장소에 따라 자기 주장을 펴는 것이니 자연을 대변하는 말 이라 하여 쉽게 풀이해 주
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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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 무하유 마을에서 들려오는 메아리
『장자』에 따르면, 이 세계(天地)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기(氣)가 모이고 흩어지는(聚散) 과정에서
생성된다. 이 때의 기는 어떤 물질적인 재료의 의미뿐 아니라 생명력을 갖추고 스스로 움직이는, 살아
있는 것이다. 모든 존재를 생성하고 구성하는 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그 과정 자체를 바로 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모이고 흩어지는 과정이 어떤 타자의 힘이나 개입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도는 또한 스스로 그러한 (自然) 것이기도 하다.
어떤 존재도 도 밖에 따로 존재할 수는 없다. 달리 말해 도는 모든 개개의 사물, 우리의 몸 속에도 이
미 존재하는 것이다. 즉 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과정에서 우리의 몸이 생성된 것이라면, 그 모이고 흩
어지는 과정의 처음부터 우리의 몸은 도의 작용 안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몸 안에 존재하는
도를 『장자』는 덕(德)이라 부른다. 얼음 조각들이 두둥실 떠다니는 호수를 상상해 보자. 호수를 꽉
채우고 있는 물이 기라면, 호수 안에서 물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흐름이 도가 되고, 그러한 물의 흐름
에 따르면서 물과 살을 맞대고 제 몸을 유지하는 얼음 조각은 물(物)이며, 이 각각의 얼음 조각을 같
은 기이면서도 하나의 개체(物)로 유지시키는 힘, 그것이 덕(德)이 되는 것이다. 도(道)가 세계 전체의
변화와 흐름 자체 그리고 그러한 흐름을 가능케 하는 힘 전체를 말한다면, 각각의 개체(物) 안에 들어
와 그 개체로 하여금 자기동일성을 유지케 하는 도는 덕(德)이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는 기라는
측면에서 보면 같고 하나이지만, 도와 덕으로 말한다면 무한한 변화와 다양한 개체들이 살아 움직이
는 거대한 생명의 세계인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 바다에 가다(井蛙見海) - 천지(天地)와 만물(萬物)
오늘날의 우주(cosmos)에 해당하는 고전 중국어는 천지(天地)다. 천지는 무한한 전체로서 기로 꽉 채
워져 있는 터이며, 도가 드러나는 마당이기도 하다. 이러한 천지 속에는 온갖 사물들로 가득 차 있는
데 이런 개별적 사물들을 통칭해 만물(萬物)이라고 한다. 전체로 말하면 천지지만, 개체로 말하면 만물
의 세계인 것이다. 『장자』에서는 만물의 발생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기가 모여(聚) 형체를 이루고(形), 형체를 갖게 되면 하나의 개체(物)가 된다. 이러한 개체들을 뭉뚱그
려 만물이라 하는 것이다.
여기서 형체를 갖는다 (有形)는 것은 모양과 형상, 소리와 빛깔을 가진다 (「달생達生」)는 의미이다.
즉 우리의 감각 기관을 통해 구별 가능한 하나의 개체를 이룬다는 말이다. 그런데 기가 하나의 개체
로 모이게 될 때, 각각의 개체는 각각의 고유한 성격을 지니게 된다. 다 같은 사람이면서도 얼굴이나
신체의 모습, 음성과 눈빛이 개인마다 다른 것은 바로 각각의 개체가 갖는 고유성, 즉 덕(德)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장자』가 그리는 이 세계의 모습은 기의 측면에서 보면 하나로서의 전체를 이루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없이 많은 사물들로 가득한 다양성의 세계이기도 하다. 그런 수많은 물
(物) 가운데 한 종이 우리 인간이며, 또 그 수많은 인간들 가운데 하나가 각각의 개인인 것이다. 이러
한 개체들은 늘 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과정에서 나오는 한갓된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양생주 養
生主」편에서는 지칠 줄 모르는 지식에의 욕구로 가득한 인간을 향해 이렇게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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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 무하유 마을에서 들려오는 메아리
우리의 삶은 한계가 있으나 앎에는 한계가 없다. 한계가 있는 것으로 한계가 없는 것을
좇으니 위태롭기 그지없다.
「양생주 養生主」에서
여기서 『장자』가 조롱하는 지식이란, 인간 세계의 끝없는 다툼과 혼란의 원인이 되는 시비(是非)의
구분에 관한 것이다. 어떤 일이든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늘 다를 수 있고,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기준에 따라 진상은 달리 보일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눈으로 다른 사람을 보는 것, 내가 속한 집단의
기준으로 다른 집단을 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장자』는 지적한다.
그래서「추수秋水」에서는 자신이 크다고 자만하다가 바다의 광대함에 놀란 황하(黃河)의 신 하백(河
伯)에게 북해(北海)의 신 약(若)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우물 속에 사는 개구리에게 바다에 대해 말해보았자 소용없는 것은 자신의 좁은 소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너는 좁은 강에서 나와 이 큰 바다를 보고 놀라지만... 내가 천
지 사이에 있는 것 또한 마치 자갈이나 작은 나무가 거대한 산 속에 있는 것과 같은 꼴이
다... 도(道)의 입장에서 보면 사물에 귀천(貴賤)이 없지만, 사물(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자
신은 귀하고 상대방은 천하다고 하는 법이다.
「추수秋水」에서
여기서 『장자』는 보편주의적 관점(以道觀之)과 상대주의적 관점(以物觀之)2)을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있다. 이로 인해 『장자』의 인식론적인 관점을 회의주의로 보는 시각도 있고, 불가지론으로 보는 시
각도 있다. 그러나 『장자』가 말하고자 한 것이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다양
성의 존중 혹은 다름의 인정이라는 친근한 주제로 이해할 수 있다. 『장자』의 사상을 관통하는 정
신이 무엇보다도 다원주의의 옹호에 있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잘 살고 싶다면 - 양생(養生), 상망(相忘), 심재(心齋), 좌망(坐忘)
그렇다면 모래펄의 수많은 모래알 가운데 하나와도 같은 우리네 물(物), 인간은 어떠한 존재일까?
『장자』에 따르면 인간은 무엇보다 욕망을 추구하는 존재다. 몸(身)을 지니고 살아가는 인간 존재에
게 욕구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락至樂」에서 말하듯, 인간은 경제적 성공과
신분 상승, 명예, 신체의 안락함, 맛 좋은 음식, 화려한 의복, 아름다운 노래와 미녀에 둘러싸인 쾌락
적인 삶 , 생리적 욕구를 넘어서는 외물(外物)을 추구한다는 데 있다. 이를 위한 경쟁적 삶은 서로 아
웅다웅 거스르고 부대끼며, 때론 말달리듯이 치닫기도 하나 이를 그치게 할 수 없기에 슬픈 것이다.
그래서 「변무 騈拇」에서는, 소인들은 몸바쳐 이익을 추구하고, 선비들은 몸바쳐 명예를 추구하고,
대부들은 몸바쳐 영토를 넓히려 하고, 성인은 몸바쳐 천하를 다스렸다. 이들이 한 일은 서로 다르고
명예도 다르지만 자신들의 본성(생명)을 해치며 외물을 추구한 것은 다를 바 없다 며 한탄한다.
2 ) 여기서 말하는 보편주의적 관점(the comprehens ive view)이란 어떤 특정의 보편적 가치 기준을 세운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오히려 기준의 다원성 혹은 다양성 이란 의미로 보는 것이 쉽겠다. 상대주의적 관점(the re lat ivist ic
view)이란 각기 자신의 입장에서 보는 관점이란 단순한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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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 무하유 마을에서 들려오는 메아리
그래서 『장자』가 말하는 생명 보전하기 (養生)는 신체적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인 것이다. 몸을 보전
한다는 것은 신체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사회적 다툼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세의 논리까지
포함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두 가지 기묘한 논리가 병존한다. 『장자』는 한편으로는 어리숙하고 소박
한 삶의 태도를 권장한다. 「산목山木」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산 속에 커다란 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는 옹이와 잔가지가 많아 쓸모가 없어 나무꾼의 칼에 베이지
않았다. 한편 장자를 손님으로 맞은 그의 친구는 장자를 대접하기 위해 울 줄 모르는 기러기는 살려
두고 울 줄 아는 기러기는 가마솥에 삶아졌다. 이 두 상황을 지켜 본 제자가 어느 쪽을 지지하겠느
냐고 묻자 장자는 나는 그 어느 쪽도 아닌 중간에 처하겠다 고 대답한다. 혼탁한 흙탕물 같은 세상에
서는 섞여 살아야(相與相忘) 하는 법이다. 칼도 뽑을 만 할 때 뽑아야 하는 법이다. 진정으로 능력 있
는 사람은 그 힘을 드러내지 않는 법 이라고 『장자』는 말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조용히 어리숙하게
사는 것이 양생의 비법이다. 이것이 진인(眞人)의 삶이다.
그러나 누구나 쉽게 진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꿈틀거리는 욕망이란 쉽게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도 상당한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다. 『장자』는 이러한 욕망의 절제를 위한
비법으로 심재(心齋)와 좌망(坐忘)을 이야기 한다. 심재란 마음을 비우고 투명한 정신 상태를 유지하는
마음 공부라 할 수 있고, 좌망이란 욕망의 주체인 몸을 잊는 것을 말한다. 이 두 가지는 모두 허정(虛
靜)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데, 『장자』에서 허정은 사려(思慮)와 대비되는 뜻으로 쓰인다. 여기서
말하는 사려란 오늘날의 긍정적 의미와는 달리, 지나치게 정신력을 소모하여 몸을 쇠잔하게 하는 걱
정과 근심이라는 뜻이다. 한의학(漢醫學)에서는 건강을 상하게 하는 심각한 원인으로 사려를 꼽는다.
욕망은 크지만 그것이 실현되지 않을 때 사람은 걱정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마음을 비우고 정신을 맑
게 하는 것 (虛靜)은 매우 중요한 양생의 비법이라고 『장자』는 말한다. 이와 같은『장자』의 양생
사상은 후대에 한의학(漢醫學)과 도교(道敎)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제왕이여, 어디로 가시나이까(帝王之道) - 무위(無爲)와 대용(大用)
첫째 글 「소요유 逍遙遊」에서 혜시는 자신에게 커다란 나무가 있는데 줄기가 울퉁불퉁하고 가지가
꼬여 전혀 쓸모가 없다고 한탄하자, 장자는 혜시가 큰 것을 쓰는 방법을 모른다고 하며 이런 이야기
를 들려 주었다.
송(宋) 나라에 손 안 트는 약을 만들어 솜 빠는 일을 대대로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한 나
그네가 이 소문을 듣고 백금(百金)을 주고 약 만드는 비법을 사서는 오(吳) 나라의 왕을
찾아가 설득해 장군이 되어 전쟁에서 크게 이겼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혜시에게 손을 트
지 않게 한 것은 같으나 한 쪽은 영주가 되었고, 다른 한 쪽은 평생을 솜 빠는 일에서 벗
어나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약을 쓰는 방법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라고 장자는 말한다.
「소요유 逍遙遊」에서
물건이든 사람이든 그것이 갖고 있는 가치는 쓰는 사람의 방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
기서 장자의 대용(大用)의 사상이 나온다. 구만리 하늘 위의 대붕을 비웃는 매미와 비둘기가 자잘한
쓰임새 (小用) 밖에 모른다면 대붕은 커다란 쓰임새 (大用)를 아는 제왕의 상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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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 무하유 마을에서 들려오는 메아리
도가의 가장 핵심 용어인 무위(無爲) 또한 이 대용(大用)과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장자』에서
무위는 대체적으로 세 가지 의미로 쓰인다. 첫째는, 허정(虛靜)과 같은 의미로써 고원한 정신의 경지와
그런 경지에 이른 사람의 행태를 형용하는 말이다. 둘째는 신하들의 행위 방식인 유위(有爲)와 대립되
는 말로써 제왕의 통치 행위를 표현하는 말이다. 셋째는 권력에 간섭받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
가는 소박한 삶을 가리키는 의미이다. 서로 모순돼 보이는 이들의 용례는 그리 불협화음인 것은 아니
다. 둘째 편인 「제물론 齊物論」에서 하늘의 퉁소 소리(天 )에 대해 남곽자기(南郭子 )는 이렇게 말
한다.
수많은 것에 바람이 불어 서로 다른 소리를 내고 있어도 각기 스스로가 소리를 내는 것이
다. 그러나 모두 각자가 소리를 낸다고 생각하지만 정말로 사나운 소리가 나게 하는 것은
누구이겠느냐?
「제물론 齊物論」에서
제왕은 전국 시대 중국에서 전란을 그치게 하고 평화를 가져다 줄 신성한 구세주를 가리키는 말이었
다. 전쟁과 혼란이 그치지 않던 당시 사회에서 장자는 어쩌면 옛 신화에 의지해 구세주 제왕(帝王)의
도래를 염원하던 선지자의 모습인 듯하다. 그런데 앞의 인용문에서도 나타나듯 그가 바라던 제왕은
천하통일의 군주라기보다 다양한 삶의 방식을 수호하고, 개체의 온전한 삶을 보장해 주는 자연의 순
응자로서의 군주였다. 그래서 「응제왕 應帝王」편에서는 각각의 사물의 스스로 그러한 본성에 순응
하고 사사로움을 용납하지 않는다면 천하가 다스려질 것이다 라는 대원칙을 제시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장자』에서 말하는 제왕의 무위 정치는 다양성의 공존 을 인정하고 이를 추구하는 정치적
이념을 드러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전자방 田子方」편의 이야기는 이를 잘 보여준다.
옛 주(周) 나라의 문왕(文王)이 꿈에 본 노인을 만나 그를 기용하였는데, 그는 어떠한 법령
도 인사 이동도 없이(無爲) 정치를 시행하였다. 그런데 삼년이 지나자 온 나라가 화합하여
잘 다스려졌다는 것이다.
「전자방 田子方」에서
무하유 마을에서 들려오는 메아리(無何有之鄕) - 지덕지세(至德之世), 태평(太平)
어느 사상가든 그가 꿈꾸는 이상 사회의 모습은 그 사상의 궁극적인 요점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이는
『장자』에서도 마찬가지다. 『장자』에서 나타나는 이상향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지극한 덕의
세상 (至德之世)이고 다른 하나는 태평(太平) 이라 할 수 있다. 지극한 덕의 세상에 대해 「마제 馬
蹄」에서는 이렇게 서술한다.
지극한 덕의 세상에서는 사람들의 행동이 유유자적하며 눈매가 밝고 환했다. 산에는 길이
없고 못에는 배나 다리가 없으며 만물이 무리지어 생겨나 사는 곳에 경계를 두지 않았다.
사람들이 새나 짐승과 함께 살았고, 만물과 나란히 모여 있었다. 그런데 어찌 군자와 소인
을 따졌겠는가! 어리숙하여 아무 지식도 없어서 제 본래의 덕(德)을 떠나지 않았다. 어리숙
하여 아무 욕망도 없었으니 이를 소박(素朴)이라 한다. 소박하므로 백성의 자연스러운 본
성이 얻어졌다.
「마제 馬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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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 무하유 마을에서 들려오는 메아리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삶이 보장된 태고의 추억으로서 지극한 덕의 세상은 그려지고 있다.
이와 달리 「천도天道」편에 묘사된 태평은, 유가와 법가의 원칙까지 포용하는 종합적인 사상 체계
를 나열하고 나서 다음과 같은 서술로 마무리된다.
어질고 밝은 사람과 못난 사람이 저마다의 실정에 맞춰지게 되면 반드시 저마다의 사회적
역할이 그 능력에 따라 나뉘게 되고, 그 사회적 신분이나 직책에 따라 처신하게 된다. 이
와 같은 방식으로 윗사람을 섬기고, 아랫사람을 길러 주며, 사람들을 다스리고, 제 몸을
닦되, 지식이나 모략이 쓰이지 않게 하여 반드시 그 하늘로 돌아가게 한다. 이것을 일컬어
태평이라 하는데, 곧 통치의 이상이다.
「천도天道」에서
이 사회의 모습은 당시 이미 진행된 변법(變法)의 모습을 상당히 긍정하고 있는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와 더불어 『장자』의 마지막 편인 「천하天下」편도 매우 유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두
편은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사상을 종합적으로 수용함은 물론 정치적 색채가 매우 강한 문헌으로 분류
된다.
다음의 이야기는 「산목山木」편에 나오는 것으로써, 이제까지의 이야기의 일면을 잘 드러내주는 장
자 후학(後學)의 작품이다. 대화가 전개되는 상황과 화자의 심리를 생각하며 읽어본다면 아주 재미있
을 것이다.
시남(市南)에 사는 의료(宜僚)라 하는 선생이 노(魯) 나라의 제후를 만났는데, 노 나라의 제
후가 근심스러운 얼굴빛을 하고 있었다. 시남의 선생이 물었다. 군주께서는 근심스런 얼
굴을 하고 계시니 무슨 까닭입니까? 노 나라의 제후가 말하였다. 나는 고대의 성왕들께
서 전한 도(道)를 배우고, 노 나라의 옛 군주들의 유업을 닦아 왔습니다. 나는 죽은이들의
혼령을 존중하였고 어진 사람들을 귀중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친히 실
행하면서 잠시도 이로부터 벗어나거나 방치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환란을 면치
못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내가 근심하는 까닭입니다.
시남 선생이 말하였다. 군주께서 환란을 없애는 방법이 너무 얕은 것입니다! 저 복슬복슬
한 털을 가진 여우나 우아한 무늬를 가진 표범은 산 깊은 숲 속에 살며 바위 동굴에 웅크
리고 쉬니 고요하다고 합니다. 밤에만 다니고 낮에는 가만히 있으니 조심한다라고 합니
다. 비록 굶주리고 갈증이 나도 인가에서 멀리 떨어져 강과 산을 따라 먼 곳에서 먹이를
구하니 일정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그물이나 덫에 걸리는 환란을 면하
지 못합니다. 이것이 어찌 저들에게 죄가 있어서이겠습니까? 저들이 지닌 가죽이 그들에
게 재앙을 불러오기 때문이지요. 이제 노 나라야말로 오로지 군주의 가죽이 아니겠습니
까? 제가 원컨대 군주께서는 일신의 욕망을 벗어 던지고 가죽을 없애 버리십시오. 마음을
깨끗이 닦고 욕심을 버리십시오. 그리고 사람 없는 들에서 노니시기를 바랍니다. 저 남쪽
월 나라에는 어떤 마을이 있는 데 그 이름을 덕을 세운 나라라고 합니다. 그 마을의 백
성들은 어리숙하면서 소박하고 사사로움이 적고 욕심이 작습니다. 지을 줄은 알면서 숨길
줄을 모르고, 줄 줄을 알면서 그에 대한 보답을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사람으로서의 도리
에 마땅한 것을 알지 못하고 의식을 차릴 곳을 모릅니다. 마치 미친 사람들처럼 일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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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 무하유 마을에서 들려오는 메아리
격식 없이 옮겨 다니지만 그들의 발걸음은 저 대도(大道)를 따라 거닙니다. 살아서는 삶을
즐기고, 죽어서는 편안히 묻힙니다. 원컨대 군주께서는 나라를 버리고 세속의 번잡한 일을
내던지고, 도(道)가 인도하는 대로 길을 떠나시기 바랍니다.
노 나라 군주가 말하였다. 나에겐 그 길이 멀고도 험하겠습니다. 또한 가는 길에는 강도
있고 산도 있는데, 나에겐 배도 수레도 없으니 어쩌겠습니까? 시남의 선생이 말하였다.
군주께서는 거만하지 말라. 집착하지 말라 이런 말씀을 군주의 수레로 삼으시면 될 것입
니다. 군주가 말하였다. 나에겐 그 길이 아득히 먼데 게다가 다른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내가 누구와 더불어 동행하겠습니까? 나에게는 비축해 놓은 곡식이 없어 가다가 허기져도
먹을 것이 없을 터인데 어찌 거기까지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시남 선생이 말하였다. 주군께서 비용을 줄이고 욕심을 적게 가지신다면 비록 비축해 둔
양식이 없다해도 충분할 것입니다. 주군께서 강기슭을 지나 바다 한 가운데에 떠 있으면
멀리까지 바라다보아도 그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가도가도 그것이 끝나는 곳을
알 수 없습니다. 주군을 전송하던 사람들이 모두 강기슭에서 돌아가면 주군께서는 이제서
야 비로소 멀리 벗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사람은 늘 이런 일 저런
일에 매이게 되고, 다른 사람을 위해 힘써 일하는 사람은 이런 저런 근심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요 임금은 다른 사람을 다스리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애써 일하지도 않
으신 것입니다. 제가 원컨대 이런 일 저런 일로 주군을 매이게 하는 것을 내던져 버리고
주군을 근심하게 하는 것을 버리십시오. 그리고 홀로 도와 더불어 대막의 나라에서 노니
시기 바랍니다. 막 배를 타고서 강을 건너 가는데, 어떤 빈 배가 와서 제 배에 부딪힌다면
아무리 속이 좁은 사람이라해도 화를 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배 위에 한 사람
이라도 타고 있으면 소리를 쳐서 멀리 떨어져 돌아가라고 할 것입니다. 한 번 소리쳐서
듣지 않고 두 번 소리쳐도 듣지 않고 세 번째로 소리를 치게 되면 반드시 욕을 해 가며
소리지를 것입니다. 앞의 경우에는 화를 내지 않았는데 지금의 경우에는 화를 내는 것은
앞의 경우에는 빈 배였지만 지금의 경우에는 사람이 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람이
이와 같이 자기 스스로를 비우고 세상에 노닌다면 누가 그에게 해를 끼칠 수 있겠습니까!
「산목」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그려 본 『장자』의 세계는 어쩌면 어디에도 없는 마을 (無何有之鄕), 그러나 언제라
도 갈 수 있는 그런 마을에서 들려 온 메아리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제 『장자』가 들려주는 아름
다운 인간 세상의 모습을 간략하게 상상해볼 수 있다. 때는 전쟁이 끊이지 않던 중국의 전국(戰國) 시
대, 깊은 두메산골 구불구불 난 논두렁을 따라 벼가 익어가고, 움메하는 소 울음소리 뒤로 한 채 초가
집 뒷동산 언덕배기에 올라, 타오르는 햇볕을 피해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어슬렁거리며 걷다가 낮잠
한숨에 시름 잊는 젊은 장주(莊周) 아저씨, 산너머 마을 총각들은 전쟁터에 끌려가 소식도 없는데 이
젊은 총각은 늘어지게 한 숨 자고나서 일어나더니 슬며시 우리를 쳐다보며 미소짓는다.
벗들이여! 강호에서 잘들 지내시기를! 3)
3 ) 이 이야기는 「
소요유 逍遙遊」에 나오는 마지막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다. 마지막 표현은 황희경씨가 풀어 옮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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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 무하유 마을에서 들려오는 메아리
▣ 더 깊이있게 알기 위하여
장자 할아버지, 그게 무슨 얘기요?
어떤 책이든 거기에 무슨 무슨 철학이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더 안 읽히는 법이다. 어려운 책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타이틀이 없으면 누구나 쉽게 달려들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수없이 많다. 『장자』 또한 그런 책 가운데 하나다. 『장자』는 철학책이기 전에 이야기책
이고, 재미있는 우화집이다. 예로부터 우리 선비들 또한 그렇게 읽어왔다.
『장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소 황당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곤혹스럽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
는 신비스럽기도 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을 필요도 없다. 손에 잡히는 대로 펼쳐지는 데부터 읽
으면 그만이다. 재미는 그 재미를 느끼는 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소개하는 글은 글쓴이의 전공과 시
각에서 내용을 간추리고, 핵심적인 사상을 정리한 것이지 『장자』의 이야기들을 다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장자, 할아버지 그게 무슨 얘기요? 하는 익살스런 물음과 함께 읽을 때 『장자』는 가장
『장자』답게 읽혀진다.
어느 상상력 많은 사람들의 『장자』읽기
최근에는 중국 고대 신화와 종교, 정치와 관련된 쉬운 개설서들이 참 많이 나와 있다. 이런 책들을 곁
들여 읽다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읽을 수 있는 것이 『장자』다. 왜냐하면 『장자』에는 고대
중국의 여러 신화와 전설을 패러디한 이야기들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장자』
가 제왕의 통치술을 다룬 정치 수련서로 보기도 한다. 옛 중국인들은 정치적 조언을 하거나, 비판을
할 때 은유와 수사를 장황하게 사용하여 논의하는 것이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장자』는
전통적으로 정치판에서 소외당한 사람들의 친근한 벗이었다. 스스로를 대붕으로 치켜세우고 뭇사람들
을 매미와 비둘기로 생각해 보면 고소를 금치 못했을 테니 말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장자』를 고
도의 처세술을 담은 지침서로 여기기도 한다. 사실 『장자』에는 그런 면이 상당히 많다.
꿈꾸는 장자, 춤추는 장자!
현대의 학계에서 『장자』는 주로 세 가지 측면에서 주로 연구되고 있다. 하나는 고대 신화와 종교
사상을 재구성하는 중요한 문헌 자료로서의 역할이다. 『장자』는 다른 여타의 문헌과 달리 중국의
남방 계열 문화권의 중요한 관념과 사상을 많이 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다른 한 가지는 철학적 저술로서, 도가의 핵심적인 문헌으로서 연구된다. 『장자』에는 인식론이나 형
이상학, 존재론, 정치 철학 등과 관련된 풍부한 개념과 용어가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 중
국에서 도가와 관련된 고대 문서들이 속속 발굴됨에 따라 『장자』연구는 더욱 관심의 초점으로 떠오
르고 있다. 다른 한편 주로 도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유가의 문헌과는 달리 『장자』는 개인의 가치
와 고유성을 긍정하는 사상적 요소로 인해 현대의 학자들에게 각광받는 연구 대상이기도 하다. 하물
며 어떤 외국 학자는 『장자』를 최초의 사이버- 철학자에 비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마지막으로 고대 중국 이후의 문학과 예술, 도교 이론 등을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장자』는 반
드시 거쳐야만 하는 필독서다. 『장자』에 나타나는 갖가지 관점과 사상은 중국 문화의 또 하나의 축
을 이루기에 충분한 포용력과 다양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장자』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 나비
『
삶에 집착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논어』 (시공사) 30쪽에서 따 온 것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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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 무하유 마을에서 들려오는 메아리
도 되고, 천지(天地)의 광활한 공간에서 춤사위를 펼치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 참고 문헌
안동림 역주, 『장자莊子』, 현암사, 1993 개정판
김충렬, 『노장철학강의』, 예문서원, 1995
김형효, 『데리다와 老莊의 독법』,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4
리우 샤오간(劉笑敢), 『장자철학 莊子哲學及其演變』, 최진석 옮김, 소나무, 1998 개정판
이강수, 『노자와 장자』, 도서출판 길, 1997
조민환, 『유학자들이 보는 노장 철학』, 예문서원, 1996
첸 꾸잉(陳鼓應), 『노장신론 老莊新論』, 소나무, 1997
후쿠나가 미쓰지(福永光司), 『난세의 철학- 장자』, 임헌규·임정숙 옮김, 민족사, 1991
▣ 글쓴이 김시천
숭실대학교 철학과 박사과정. 동의과학연구소 연구원, (사)한국철학사상연구회 정회원이며, 한국방송대
학교 및 성결대학교에 출강 중이다. 논문으로는 「유무론(有無論)을 통해 본 왕필(王弼)의 자연과 인
식의 문제」, 「왕필(王弼) 철학에서의 자연과 제도」, 「동양학과 진보론- - 진보 관념의 검토와 동양
사회 정체론 비판」, 「아르카디아(Arcadia)에서 유토피아(Utopia)로- - 『장자莊子』의 이상 사회론과 그
정치 철학적 함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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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 무하유 마을에서 들려오는 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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