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영화,리뷰,

서울 사람들

by Casey,Riley 2021. 10. 2.
반응형



서울 사람들

커피 한 잔만 했으면 딱 좋겠는데.
그러게 말이다. 오늘 밤 텔레비전에서
쇼를 하는데 놓쳤군.
쇼 뿐야? 프로레슬링도 있다구.
윤경수와 최진철이 덩달아 화투를 팽개치고
길게 가로누우며 말했다.
우리들의 마음이 너무 일찍이
허무하게 무너져 가고 있었다.
최일남 지음

서울 사람들
최일남 지음
▣ 저 자 최일남(1932~ )
소설가 겸 언론인.『흐르는 북』으로 10회 이상문학상 수상. 세태묘사와 현실풍자를 통한 독특한 작품
세계와 늙지 않는 작가.
촌놈의 서울의 꿈
1953년 『쑥 이야기』를 통해 문단에 얼굴을 내민 최일남은 근 50년 가까운 세월동안 꾸준히 작품활
동을 해 온 작가다. 그는 언론인으로 자리를 잡아가던 60년대를 제외하고는 끊임없이 자신의 문학활
동 범위를 넓혔고 끈질기게 자신만의 문학세계를 개척해 온 작가다. 평론가 권영민은 "그와 동년배의
작가들이 이미 문학사적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언제나 자
기 문학의 세계에 완주하지 않고 새로운 문제를 찾아 나섰기 때문이다"란 평가를 하고 있다.
1960년대 최일남은 작가의 길보다는 언론인으로 더 많은 활동을 했다. 소설을 쓰지 않는 대신 칼럼리
스트 이규태를 따라 본격적으로 등산을 했는데, 그때부터 그는 국내의 명산 대부분을 등반했다. 산에
올랐던 기간은 그에게 작가로서 충분한 휴식과 깊이 있는 시선을 가질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 이를
계기로 최일남은 자신의 창작방법과 시각을 새롭게 정리할 수 있었다. 곧, 1970년대 들어 본격적인 작
품활동을 재개한 최일남은 『서울 사람들』『노새 두 마리』등 다수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지칠 줄 모
르는 젊음을 과시했다. 특히,『흐르는 북』으로 제10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그는 언론인으로서
의 성공과 더불어 작가로서도 확고한 위치를 점하게 됐다.
최일남은 시골 출신으로 서울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이러한 전기적 사실들
은 곧바로 작품 속에 형상화했는데,『차 마시는 소리』『우화』『고향에 갔더란다』등은 바로 시골
출신으로 서울에서 성공한 인물들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농촌의 피폐화를 통해 어쩔 수 없이 서울로 흘러든 이들은 악착같은 서울 생활에서 견뎌내고 마침내
돈을 모아 어느새 자신의 신분을 과장한다. 이들은 물질주의에 빠져 인간성을 상실하면서도 허황된
자기 과시욕에 사로잡힌 인물들이다.
『고향에 갔더란다』의 주인공 역시 출세한 촌놈이다. 그는 오랜만에 자신의 고향을 찾는다. 그는 고
향을 향하는 과정에서 고향에 남아 있는 친구들이 자신을 기억하고 모두들 자신의 금의환향을 부러워
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곤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이미 옛 모습을 잃어버린 고향마을과 사람들뿐이었다. 고향 사람들은 주인공보다도 더 계산적으로 변
해 있었다.
고향만은 옛 모습 그대로 있어 주길 기대했던 주인공의 소시민적 바람은 여지없이 깨져버리고 주인공
은 고향에 대한 실망감을 간직한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출세한 촌놈들의 삶을 통해 이들의 허위
의식과 함께 농촌 사람들의 교활한 변모를 동시에 비판했다.

- 2 -

『서울 사람들』역시 비슷한 맥락의 작품으로 시골 출신 서울 사람들의 허위의식을 날카롭게 지적하
고 있는데, 이런 작품경향은 작가가 자신이 시골 출신으로서 서울에서 성공한 언론인 겸 작가였다는
전기적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세태 묘사와 풍자를 통한 소시민 의식의 발현
최일남은 1932년 12월 29일 전주시 다가동 108번지에서 아버지 최문성과 어머니 김성녀 사이에 2남3
녀 중 막내로 출생했다. 어머니가 40이 다 되어 잉태해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여러 번 낙태하
려 했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1939년 전주 숭덕국민학교에 입학했는데, 반에서 키가 가장 작아 언제나
맨 앞에 앉았으며, 누님 같은 여학생들로부터 귀여움을 받았다. 해방되던 해에 아버지를 여의면서부터
생활에 대한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했다.
다음해 생민중학에 입학해서 백양촌 선생님의 서재를 자신의 집처럼 드나들면서 일본어로 된 세계문
학전집과 이태준, 홍명희, 채만식 등의 소설 작품을 읽었고, 그해 어머니마저 타계했다. 부모님이 타계
하자 최일남은 수업료가 국비인 국립체신고등학교 무선반에 입학해 일급 무선사의 꿈을 꾸지만, 전쟁
이 일어나 고향인 전주로 돌아왔다. 곧바로 전주사범학교에 편입해 다음해에 전북일보 주최 학생문예
콩쿠르에서 단편『세모』가 당선됨으로써 본격적인 문학에 대한 꿈을 키워 나간다.
이 일을 계기로 곽기주, 박성우 등 전주시내 고등학생끼리「백탑」이라는 동인지를 만들어 활동했다.
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교사 발령을 받았지만, 교사의 길을 포기하고 전시연합대학에서 시
험을 치르고 1952년 서울대 문리대 국문과에 입학했다. 다음해에 「문예」지에 『쑥 이야기』를 발표
해 문단에 얼굴을 내민 그는 1956년 「현대문학」에 「파양」이 추천 완료되어 문단에 데뷔한다.
1957년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다음해 고려대학교 대학원에 다니다 「민국일보」문화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 대학원을 수료하고 곧바로 「여원」편집장과 「경향신문」「동아일보」문화부장을 역임함으
로써 언론인의 길을 걷었다.
이 시기 그는 작품을 발표하기보다는 언론인으로서 자신의 본분에 충실했다. 대표적인 작품은 『서울
사람들』『노새 두 마리』『타령』『고향에 갔더란다』『서울의 초상』『헛기침 소리』『흐르는 북』
『힘을 먹는 다슬기』『하얀 손』등이다.
최일남은 1950년대 발표한 작품들을 통해 암울한 전후상황 속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고달픈
삶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1960년대 들어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비교적 과작을 했지만, 1970년대 들어
서면서부터 그는 산업화 과정에서 드러나기 시작한 사회적 비리를 고발하고, 이 속에서 소외된 인간
들의 모습에 관심을 기울였다. 1980년대 들어서는 비판적인 작가의식을 바탕으로 현실에 대한 풍자의
강도를 더하고, 최근에는 진실한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치열한 작가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최일남의 작품은 몇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째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심소재로 택한
다. 농민, 힘없는 도시 서민들의 자질구레한 삶에 대해 작가는 깊은 애정을 드러내는데, 이러한 창작
방법은 최일남이 경험에 근거해 작품을 창작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최일남은 오로지 자기
가 직접 체험하거나 관찰한 것을 주로 쓰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는 대부분의 경우 극적인
긴장을 요구하는 사건이나 거창한 사건들이 포함되지 않는다.

- 3 -

둘째, 현실 모순과 비리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투철한 작가의식의 소유자이다. 물질 만능의 세태, 타락
한 정치, 위선적인 지식 등이 그 대상이다. 그러나 최일남은 현실에 대한 비판에 대해 직접적으로 목
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역설과 풍자의 언어를 통해 상황을 역전시키고 설혹 비판의 대상이 직접적으
로 제시되더라도 해학적인 문체를 통해 긴장미를 희석화시켜 버린다. 이러한 글쓰기 방법으로 인해
최일남은 평자들로부터 거침없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이 거침없음이야말로 그가 현실적 문제를
소시민의 관점에서 일관되게 그리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 S ho rt S umma ry
나, 김성달, 윤경수, 최진철은 모두 시골 출신으로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올라와 힘겹게 대학과정
을 마치고, 그럭저럭 살아가는 소시민이다. 가끔씩 맥주집에서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며 고향에 대한
향수를 떠올렸는데, 최진철의 제안에 의해 잃어버린 자연의 맛과 멋을 찾자는 목적으로 갑작스런 여
행계획이 세워진다. 3박 4일로 결정된 여행은 가벼운 옷차림으로,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채 시작됐다.
버스를 타고 네 시간, 다시 갈아 탄 버스로 한 시간, 다시 밤길을 걸어 한 시간, 결국 버스도 들어오
지 않는 외딴 산골마을에 도착하게 되는데⋯⋯.

- 4 -

서울 사람들
최일남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후 사글세방을 얻어 중학생 과외도 하고 프린트 가게의
임시 고용원으로 필경을 도와주기도 하며 대학을 마침. 건축설계사무소 운영.

김성달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후 가정교사로 학비를 벌어 대학을 마쳤고 졸업 후에도
가정교사를 했을 정도로 힘겹게 살아 옴. 국영 기업체의 비서실장.

윤경수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후 태권도도장 사범의 조수를 하며 학비를 벌어 대학을
힘들게 졸업한 인물. 고등학교 교사.

최진철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후 노상에서 싸구려 책을 팔고, 사설 댄스 강습소에서 유
한 마담들에게 춤을 가르쳐 번 돈으로 겨우 대학을 마침, 을지로에서 TV 가게 운영.

갑작스럽게 떠나는 3박 4일의 여행
내가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두 시 십이 분이 조금 지나서였다. 오늘사말로 회사
에 바쁜 일이 있어서, 여느 토요일보다 조금 늦게 회사를 나온 후 단골로 다니는 중국집
에 들러 후닥닥 자장면을 먹어치우곤 이내 택시를 몰았다. 그랬는데도 같이 여행을 떠나
기로 한 일행은 아무도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회사를 나와 서둘러 시외버스터미널에 왔다. 약속 시간까지는 아직 칠팔 분이 남아 있었으니 그
럴 법도 하지만 함께 하기로 한 일행은 아무도 도착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시간을 잘못 알고 있었거
나 장소를 잘못 알았나 하는 걱정이 잠깐 들기도 했다. 약속장소로 정한 이 곳이 서울에도 몇 군데
없는 시외버스 터미널이고 약속을 단단히 했기 때문에 일이 틀어질 리는 없으리라 싶으면서도 혹시
한두 사람이 갑작스런 사정으로 못 나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내 짐은 담배 몇 갑과 양말 따위 간단한 잡동사니가 들어 있는 주먹만한 배낭이다. 일행의 여행 계획
은 삼박 사일이었다. 그 정도 기간의 여행이라면 꽤나 큰 여행가방을 들고 가야 제격일 텐데 작은 손
가방만을 들고 온 것은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일행은 가능하면 그냥 빈손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약속
한 것이다. 오늘 여행을 떠나기로 한 네 사람은 고등학교 동기 동창들이고, 고향도 나이도 엇비슷했
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올라온 후 대학은 서로 달랐지만 모두 형편이 시원치 않아 어렵게 대
학을 마쳤다는 점은 일치했다. 김성달은 가정교사를 하여 대학을 마치고 지금은 국영기업체의 비서실
장으로 있고, 윤경수는 태권도 도장 사범의 조수로 일하며 학비를 벌어 대학을 마치고 지금은 고등학
교 교사로 있으며, 최진철은 길바닥에 가스등을 켜고 싸구려 책을 팔고, 댄스 강습소에서 번 돈으로
대학을 마치고 지금은 을지로에서 TV가게를 벌이고 있다. 나도 사글세방을 얻어 중학생 과외도 하고
프린트 가게의 임시 고용원으로 필경을 도와주기도 하며 대학을 마치고 지금은 건축설계사무소를 운
영하고 있다. 네 명은 한동안 왕래가 뜸하다가 한 칠팔 년 전부터 다시 자주 교우를 가졌다. 아내까지
대동한 모임이 있기도 했지만, 제법 먼 여행을 떠난다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번 여행은 우연한 기회에 이루어졌다. 어느 날 저녁, 자주 드나드는 생맥주 집에서 최진철이 불쑥

- 5 -

언제 날을 잡아 여행이라도 갔다오자는 제안을 했다. 의외로 윤경수와 김성달이 금방 동의를 하고 나
섰다. 지금쯤 시골에서는 추수도 끝나 좋을 거라며 나도 기회를 만들어 보자고 동의했다. 최진철이 이
런 일은 기왕 얘기가 나왔을 때 결정을 보아야 한다며 다그쳐 약속을 정하는 바람에 오늘 여행이 이
뤄졌다. 그날 몇 가지 원칙도 정했는데, 우선 목적지를 정하지 말 것, 가장 멀리 가는 버스를 탈 것,
빈 몸으로 갈 것 등이었다. 소위 여행의 목적은 다만 며칠이라도 도시를 떠나 자연의 품에 안겨보자
는 것이었다. 그래서 치약과 칫솔도 돌소금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공교롭게도 넷은 한결같이 시골 출신이고 그 속에서 뼈가 굵었는데도 부모를 서울로 모셔오고 해서
이미 고향에는 아무 근거가 없어 고향과는 거의 인연을 끊고 살아온 처지였다. 오늘의 여행은 구차하
나마 서울바닥에서 자리를 잡고 잠시 숨을 돌려보는 고갯마루에 서서 생활에 휴식을 가져보자는 의도
에서였다.

자연의 맛과 멋을 찾아 떠나는 설레임
버스 안의 손님들이 그렇게 힐끔힐끔 쳐다보거나 말거나 우리 일행은 쉴새없이 지껄여 댔
다. 마침 버스 창 밖으론 누런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참 좋다. 황금의 파도가 넘실거리는구나. 그런데 늬네들 어렸을 때 논에서 새보던 기억
나니? 학교만 갔다오면 어찌나 새보러 나가라고 몰아세우던지.
윤경수가 다음으로 도착했다. 둘은 서로의 간편한 옷매무새를 보고 웃었다. 잠시 후 김성달과 최진철
이 도착했는데, 김성달은 빈손이고 최진철은 신발주머니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오랜만에 여행을 떠
난다는 들뜬 기분도 작용했겠지만, 피차의 용모는 낯선 이질감을 안겨 주었다.
먼 곳으로 떠나는 버스는 많았다. 요금이 비싼 곳이 서울에서 가장 먼 곳일 거라고 결정을 내리고 버
스를 탔다,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버스 안은 붐볐다. 네 명은 강원도와 충청도의 경계쯤 되는 곳에 네
시간 가량 걸려서 도착했다. 오늘 안으로 가급적이면 더 깊숙한 곳으로 가기로 합의가 됐다. 일행은
미지의 설레임 같은 것에 들떠 높은 톤으로 떠들어댔다. 사실 서울에서의 잦은 약속도 꼭 하나쯤은
늦거나 불참하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나흘 동안의 긴 여행에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퍽 희한
한 일이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가능하다 치더라도 다음 이틀은 빠지기에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당
장 급한 일이 있어 어쩔 수 없이 빠지는 경우도 아니고 놀러가는 데 쉰다는 것이 더더욱 그렇다. 그
것이 서울 살림이다. 윤경수는 교감에게 갑자기 집안에 복잡한 일이 생겼다고 얼버무렸다고 하고 김
성달과 최진철도 각기 사정을 털어놓는다. 나도 이 여행을 위해 밀린 일을 야근을 해서 해치워야만
했다.
버스 안의 사람들은 네 사람을 힐끔거리고 쳐다보았다. 서울 외곽의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시
외버스에 오르게 되면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먼길에 시달려야 한다는 자세를 취하며 앉자마자 눈
을 감거나 하는데 이들의 모습은 왠지 그들에게 이질감을 주어 자꾸 그들의 시선을 받았다. 그들이
힐끔거리며 쳐다보거나 말거나 일행은 쉼 없이 지껄여댔다. 김성달은 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을 보며
황금의 파도가 출렁거리느니 하며 어렸을 적 새몰이를 하던 기억을 되새겼고 윤경수, 최진철은 깡통
달아 흔들며 몰던 참새떼도 두어 번 후에는 속지도 않았다는 것과 요즈음은 수렵 금지령 덕에 다시
극성이라고 말을 받았다. 또한 참새들이 벌레를 잡아주기 때문에 농가에 피해를 주는 것만은 아니라

- 6 -

도 했다. 일행의 나이는 삼십대의 후반에 들어섰지만 마치 소풍가는 아이들처럼 시시덕대며 추억들을
떠올렸다.
사람들이 힘들게 살다가 어느 정도의 여유가 되면 인생의 길에서 허리를 펴고 과거를 더듬어 보는 휴
식을 가지게 되는데 그때 고향을 돌아보는 법이라고 생각한 나는, 일행이 여행을 결정하던 날 어렸을
때 먹던 입맛을 떠올렸다는 것도 되새겼다.
우거지국에 뜨물이나 된장을 풀고 풋고추를 듬성듬성 썰어 넣어먹던 맛과 간갈치나 간고등어의 머리
를 바짝 구워 씹어 먹던 맛이 어찌나 고소했는지, 새우젓에 간장만 있어도 밥맛은 꿀맛이었다는 것
등을 주고 받았으며 이 모든 것이 지금의 서울 생활과는 어울리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영 그 맛이 나
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빈속에 술을 마시면 속이 버릴 것을 염려하여 고기를 먼저 먹고 맥주
를 마시던 네 명은 풀떼죽, 호박떡, 호박잎 쌈, 고춧잎 버무린 것 등이 얼마나 맛있었는지에 관한 이
야기는, 하루에도 칠팔 잔씩 마시는 커피를 이번 여행에서는 안 마시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김성달의
이야기로 절정을 이뤘다.
여행을 가서 오랫동안 잃고 지냈던 자연의 미각을 찾고 단공기와 그런 저런 정경에 몸을 담그자고 맹
세했다. 다만 고향이라고 못 밖을 것 없이 네 명의 고향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전혀 모르는 곳으로
가는 것으로 결정을 보았다. 만약에 고향 쪽으로 가게 되면 이런 저런 관계에 얽히게 되어 당초에 예
상한 바와 달리 일이 틀어질 것을 염려해서였다.

십 년만에 다시 찾은 옛 시절의 추억
그렇군. 그러고 보면 우리들의 미각이 그 동안 얼마나 잡스럽게 변했는가를 알 수 있지.
누가 들으면 그까짓 입맛 하나 가지고 뭐 그리 대단치도 않게 후라이를 까느냐고 할지 모
르지만 흥, 그게 다 촌에서 살아본 사람이 아니면 이 맛 모르지. 가을 무의 이 시원한 맛.
우리는 희멀건 무국 한 대접씩을 놓고 입에 침이 마르게 감격했다.
일행이 탄 버스가 시에 도착한 것은 저녁 6시 무렵이었다. 거리는 벌써 어둑했고 일행은 모두 적당히
피로했지만, 더 먼 곳으로 가자는 말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리로 가는 막차가 떠나려던
참이어서 모두 두말 없이 그 차에 올랐다. 아무도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차츰 정작지가 가까워옴에
따라 약간의 설레임, 낯선 마을에 대한 호기심은 더해갔다. 어차피 이번 여행은 너무 무계획하고 당돌
한 것이어서 앞으로 일어날 사태에 대한 불안감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도전
해보고 싶은 충동도 동시에 생겼다. 버스가 멈추고 다른 승객들과 함께 내렸다. 동네는 밤눈에도 산에
가려진 산골임이 분명했다. 그래서 오싹한 냉기 같은 것이 온몸을 엄습해왔다. 이 동네까지 들어오는
버스는 아침에 한 번 저녁에 두 번, 하루에 세 번뿐이라고 했다.
김성달은 낭패한 얼굴이 되어 여인숙도 없을 것 같다는 말을 하자, 윤경수나 최진철도 지금까지의 흥
분에 비해 심란한 눈치를 보였다. 그러나 최진철이 활기 있게 외쳤다. 버스가 들어오는 마을이니까 여
기도 안되고 다음 마을까지 더 가서 덮어놓고 이장집을 찾아가서 사정을 해보자는 말에 마치 우리는
신들린 사람처럼 밤길을 십리나 더 걸었다. 결국 외딴 마을에 이르러 지나는 농부에게 이장댁을 물었
다. 농부집에 있던 여자는 일행을 뜯어보더니 마지못해 이장댁을 일러주었다.

- 7 -

이장은 일행을 퍽 경계하며 어디서 무슨 일로 왔는지 꼬치꼬치 물었다. 김성달이 나서고 또 우리의
뜻이 전달되었어도 이장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듯 혹은 세상에 별 이상한 사람들도 다 있다는 듯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이 때 최진철이 사례를 할 터이니 방 하나 사흘만 내주면 된다고, 자기 소개는
물론이고 나와 윤경수 직업까지 소개를 하자 이장은 마음을 좀 놓는 듯했다. 이장은 방을 하나 치워
줄 터이니 하룻밤 묵고 차츰 생각을 좀 해보자고 결국 승낙을 했다. 우리는 우선 저녁밥을 부탁했다.
찬이 마땅치 않다고 염려하던 이장에게 김치나 우거지국만 있으면 바랄 것이 없다고 우리는 진심으로
당부했다.
그런 당부를 하면서 왜 우리가 이런 꼴을 사서하는지 우스운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아무도 짜증스런
눈치를 보이지는 않았다 우리는 돌아갈 보금자리가 있고 이런 고생이야 겨우 삼사일인데 하는 여유에
서 오는 일종의 즐거움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가 대충 씻고 호롱불 밑에서 쉬고 있을 때 저녁상이 들어왔다. 진짜 반찬은 김치와 우거지국 무
말랭이 버무린 것뿐이었다. 우리는 막걸이와 함께 허겁지겁 먹었다. 최진철은 십여년 전에 먹던 맛을
여기서 찾았노라고 허세만은 아닌 것 같은 말을 했다. 나머지 세 사람도 맞장구를 쳤다. 그날 밤 우리
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어렸을 적 고향에서 지내던 이야기로 밤이 깊은 줄 몰랐다. 국민학교 5·6학
년 때 나무를 한 짐씩 지고 다녔던 기억, 김성달과 윤경수가 나무하러 다니던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최진철은 고등학교 때 모 여고에 다녔던 여자아이가 벌써 중년부인이 되어 있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 외에도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결국 그날 우리의 이야기는 우리는 촌놈이고 언젠가는 다시
농촌에 묻혀 살고 싶다는 류의 이야기들이었다. 거짓말 같게도 십여 년만에 재현해보는 청소년 시절
의 분위기로 마음들이 들떠 있는 것 같았다. 일행 중 누군가가 이런 소중한 기회는 오래오래 잊지 말
자고 허세만은 아닌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을 때 모두가 제법 진지한 표정이 되었었던 것을 알 수 있
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주인에게 부탁해서 돌소금으로 이를 닦았다. 소금이 입안에서 몰리고 이가 잘
닦이지는 않았지만 옛날 시골에서의 일을 생각하며 소금이 묻은 이를 벌린 채 서로 웃었다. 이장이
찬이 없다며 들여온 밥상은 시퍼런 무총김치, 깎두기, 무국 정말 간단한 밥상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음식을 먹기 위해 일부러 여기에 왔다고 되려 미안해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윤경수가 국물을
먹더니 무릎을 치고 화학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옛날 그 맛이 바로 이것이라고 감탄했다. 우리는 희
멀건 무국을 놓고 감격했지만 거기에는 자기 나름의 기쁨을 얻으려는 가식적인 위력이 더해진 것 같
기도 했다.
우리가 아무리 돈을 준다고는 하지만 생판 알지도 못하는 손님을 넷이나 집에서 재워주고 먹여주는
인심이 또 도시 같으면 어디에 있겠냐고 종일 그 집에서 뒹굴고 산책했다. 낮에 또 그런 반찬에 옥수
수로 빚은 노란 막걸리를 마셨다. 점심 식사도 한바탕 너스레를 떨며 배가 불러오도록 마셔댔다. 저녁
에도 아침과 비슷한 밥상과 술을 받았다. 주인의 찬이 변변치 않다는 말에 우리는 그게 무슨 말씀이
냐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미안해했지만 아침이나 어젯밤처럼 그렇게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다. 마지못
해 국물을 몇 술 떠 넣었을 뿐 모두 입이 당기지 않았다. 나도 그랬다. 간밤에 마셨던 막걸이의 쉰 냄
새가 목구멍에 오르고 돌소금으로 닦다가 생채기가 난 잇몸은 아려왔다.
남포불의 매케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이부자리에서는 퀘퀘한 냄새가 나며 그리 넓지 않는 들판에서

- 8 -

느꼈던 그 시원한 마음도 들판은 그냥 들판일 뿐 어떠한 감흥도 우리에게 가져다주지 않았다. 이제
일행은 그렇게 그리워하는 산천에 와서 파묻혔다 생각하니까 되려 갑갑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일행은
서울서 떠나올 때의 마음과는 다르게 자신의 생활을 이곳으로 끌어 내릴까봐 겁을 먹고 있는 것 같았
다.

얄팍한 감상의 깨달음과 자기 혐오
커피 한 잔만 했으면 딱 좋겠는데.
그러게 말이다⋯⋯ 오늘 밤 텔레비전에서 쇼를 하는데 놓쳤군.
쇼뿐야? 프로레슬링도 있다구.
윤경수와 최진철이 덩달아 화투를 팽개치고 길게 가로누우며 말했다. 우리들의 마음이 너
무 일찍이 허무하게 무너져 가고 있었다.
일행은 주인집에서 빌려온 화투로 섯다를 했으나 별로 신명을 느끼지 못했고, 커피가 지긋지긋하다고
했던 성달은 커피를 원하고 있었다. 윤경수와 최진철은 덩달아 TV에서 하는 쇼와 프로 레슬링을 그리
워하고 있었다. 일행의 마음은 허무하게 무너져 가고 있었다.
처음 우리들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던 그 힘이 이렇게 쉽게 허물어지는 데 자기 혐오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사실 이들은 이번 길을 떠나면서 서로 간에 약간씩 추렴해서라도 야산 하나를 사두면 언젠가
는 내려가지 않겠느냐는 약속까지 하고 온 터였으나, 현지에 와서는 아무도 그런 이야기는 꺼내지 않
았다. 일상에 묻혀 감추고 지내왔었던 고향을 향한 의지가 어느 날 갑자기 고개를 쳐들었고, 그래서
신나게 시골로 달려왔으며 가슴속에 간직했던 낯익고 신선한 경이로움을 즐기기에는 일행은 이미 너
무 소시민적인 안일에 젖어 있었음을 확인한 꼴이 되고 말았다.
지금 이들은 단순히 먹고 자는 것에 대한 불편함뿐만 아니라 뭐라 말할 수 없는 지금까지 이들이 쌓
아 온 생활과의 위화감과 같은 데서 온 것이었지만 결국은 이틀 밤을 보내면서 서울을 그리워하고 있
었다. 맥주, 술을 마시고 나면 냉장고에서 꺼내먹던 우유 한 잔, 김성달과 최진철은 막걸리 때문에 신
트림만 난다면서 서울의 것들에 대해 그리워했다. 일행의 여행 여정은 3박 4일 이었기 때문에 이틀의
여정이 남아 있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은 사이에 다음날로 바로 서울로 올라가기로 되었다.
다음날 일행은 첫 버스를 놓쳤다. 늦잠 때문이었다. 첫차는 이미 떠났다. 시간을 미리 알아두지 않은
게 낭패였다. 집안에 죽치고 앉아 있기가 답답해 동네 앞산으로 올라가기로 합의를 봤다. 동네 사람은
산이 꽤 높은 산이며 중간쯤에 조그마한 폭포가 있고, 화전민이 살기에 쉬어 올 수 있는 곳이라고 했
다. 그들은 흥미가 없었지만 어쨌든 오르기로 했다. 숨이 헐떡거리도록 힘이 들었다. 그들의 얼굴은
파란 정맥이 얼굴에 드러난 정도였고, 어린 시절 노루새끼 같았던 잽싼 동작은 이미 사라져버린 후였
고, 월급쟁이의 허우적거리는 창백함만이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30분 후, 화전민 촌에 다다랐다. 폭포에 들렸다가, 가장 좋은 집에서 쉬어가자고 제안했다. 그들이 마
루에 앉아 담배를 사르고 있을 때, 안방에서 웬 여자가 문을 열고 나왔다. 일행은 그 여자를 보고 놀
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산골의 여자가 아니었다. 한눈에 보기에 술집 여자 같은 느낌이 들었다. 더욱
놀란 것 그녀와 비슷한 여자가 방에 있었고 그들은 술을 먹고 있었다. 그녀들이 취한 목소리로 일행

- 9 -

을 불렀다. 어이가 없던 그들은 너무 놀라 농도 하지 못하고, 그들이 돌아가려 하자, 주인 노파가 여
자들이 산 위에 있는 미군을 상대하는 양색시라는 말을 했다. 일행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깊은 산 속
까지 양색시가 있다는 것에 당혹감과 희한함도 있었지만, 그 일로 인해 도시를 떠올리게 되었다. 산에
서 내려온 즉시 그들은 버스를 탔다.

속물의 꼬리를 매단 서울 촌놈들
서울로 오는 버스 속에서 우리는 너무 말이 없었다. 그까짓 삼박사일을 채우지도 못하고
하루를 앞당겨 온다든가 하는 것보다도 달라진 환경 속에 다만 며칠을 견디어 내지 못하
고 도망하듯 그 마을을 떠나온 데 대한 부끄러움 같은 것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서울로 오는 버스 속에서 아무 말도 없었던 것은 단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마을을 떠나온 것에 대한
부끄러움의 발현이었다. 서울에서 맥주를 마시며 산촌의 정경을 이야기하던 자신들이 이 얼마나 얄팍
하고 배부른 소리였는가 하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으며, 한편으로는 숨이 컥컥 막히는 곳에서 쉽게 빠
져 나온 것에 안도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서울에 도착하자 다방에 들려 커피를 마시고 무교동으로 가, 생맥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모두 이제야
살 것 같다는 말을 뇌까리고, 예전처럼 떠들고 웃었다. 초가을, 술 냄새, 고기냄새 하수도 냄새, 이 안
에 자신들을 집에 넣었을 때, 비로소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이 헤헤거리며 지껄여댔다. 한참만에 윤경
수가 힘없이 우리도 이제 별수 없이 서울 사람이 다 되었나 보다 하고 말을 하자, 김성달과 최진철
도 그런 모양이라고 동의했다. 술집에서 나오자, 이들은 아이들에게 줄 과자 봉지를 하나씩 사들고 뿔
뿔이 헤어졌다. 서로 잘 가라고, 또 만나자고 손을 흔들 때 나는 이놈들아, 우리들이야말로 촌놈이라
고, 형편없는 촌놈이라고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다. 동시에 우리들의 등골뼈 밑으로 칠팔 센티미터
쯤 자란 속물(俗物)의 꼬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걸 의식하고 있었다.

▣ 더 재미있게 읽기 위하여
성공한 촌놈들의 이중성
『서울 사람들』에서 최일남은 서울이라는 도시와 그곳에서 살고 있는 시골 출신들의 이중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다 시골 출신으로 현재는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을 이룬 이른바 서울 사람들이다. 여기서 서울이란 공간은 단순한 거주의 의미만을 지니지 않는
다. 이들에게 있어 서울은 권력의 중심이고 선택받은 이들만을 위한 배타적 공간이다. 따라서 이 공간
에 편입되지 못한 이들은 아무리 그럴싸하게 포장을 한다고 하더라도 몸 어딘가에는 중심으로부터 배
제되는 일종의 주눅이 들어있다.
작품에 나타나듯이 이들은 모두 가난한 시골출신이다. 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서울생활을 몸에 체득
한 서울 출신들은 달리 서울에 살고 있지만, 어딘가 서울이라는 공간으로부터 배제된 인물들이다. 자
신들을 향해 거대한 성곽처럼 버티고 서 있으면서 문을 열지 않는 서울이란 공간의 문을 열기 위한
이들의 노력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대학 4년 내내 가정교사 노릇을 해야 하는 고통과 닥치는 대로 일
을 하지 않으면 중심공간으로 진입할 마지막 끈을 영원히 놓칠 수밖에 없는 이들의 현실은 결국 단

- 10 -

하루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 채, 직장에만 매달려 힘든 생활을 보내야 했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원했던 서울 시민으로서의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보
장은 그들에게 고향을 잃어버리게 하였음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그들이 지나왔던 삶마저 망각의 시
간 속으로 흘려버리게 했다. 그런데 서울 시민으로서 당당히 자리잡은 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문명의
냄새가 전혀 묻어 있지 않는 시골을 찾아 떠난다. 이것은 단순한 여행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시
골 출신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일종의 우월감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태생적 서울 사람들과는 달리 그들이 갖고 있지 못한 고향이란 회귀공간을 지니고
있다. 여행을 통해 이들은 도시의 문명생활을 통해 성장한 이들이 갖지 못한 자신들만의 특성을 공유
하려 했다. 버스가 들어가지 않는 산골을 여행지로 선택하고, 서울 사람들은 경험하지 못한 옛 경험들
을 끄집어 내, 그것을 통해 유년의 겪었던 일들을 즐긴다는 것은 중심으로부터 배제되었지만 중심에
편입된 이들만이 갖는 우월감의 발로였다.
다른 하나는 자신들의 성공에 대한 일종의 드러냄에 대한 욕망이 숨어 있다. 처음 여행지로 고향 근
처를 생각한 것도 이런 심리의 반영이고, 고향으로 갈 경우, 예기치 못한 관계에 휩싸일 것이라고 걱
정하는 것 역시, 아직까지 중심으로 들어오지 못한 채, 여전히 바깥에 머물러 있는 이들에게 자신의
성공을 자랑하고 싶은 욕망의 자연스런 표출이다. 아무런 거리낌없이 이장 집을 찾아가고, 그에게 사
례를 충분히 하겠다는 것 역시, 안과 밖의 생활을 동시에 경험한 안의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행위이
다.
결국 최일남은 『서울 사람들』을 고향을 상실한 채 서울 생활에 안주해 들어가는 이들의 이중적인
심리를 예리하게 분석하고 있다.
회귀와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소시민상
이 작품이 문학적 성과를 높여 주는 것은 소시민의 내면 세계를 섬뜩하리만큼 잘 표현하고 있다는 점
이다. 가정과 사회란 굴레 속에서 정작 자신을 잃고 지냈던 이들은 여행을 통해 일상에 묻혀 잃어버
린 자신들을 찾으려 한다.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만큼 회귀하고 싶은 공간이 고
향이었다.

고향에 대해 반추하는 것은 곧바로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탈도 잠

시. 이들은 곧바로 자신이 발 딛고 있는 현실이란 공간과 맞부딪히게 된다.
십 여년 만에 다시 마주하게 된 호롱불, 김치와 우거짓국, 무말랭이 버무린 것, 반주로 들어온 막걸리,
돌소금 양치질에 그들은 잠시나마 가정과 사회란 굴레를 벗어 던질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정말
로 일상으로부터 탈출하였다는 사실에 감격해했다. 그러나 단 하루가 지나자, 그들은 커피를 찾고 텔
레비전을 그리워하게 된다.
단 하루만에 탈출의 기쁨보다는 누군가 자신들을 영영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할 지도 모른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끊임없이 일상으로부터 탈출을 동경하지만, 그 동경을 즐길 수만은 없는 어쩔 수 없
는 소시민성을 이들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결국 그들은 이틀만에 일상을 벗어난 탈주의 즐거움을
버리고 다시금 일상으로 자진해서 들어가고 만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우리들의 등골뼈 밑으로 칠팔센
티미터쯤 자란 속물의 꼬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걸 의식하고 있었다. 에서 보듯 한편으로는 자신

- 11 -

들의 소시민성에 대해 일종의 부끄러움을 놓치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한가지 특징은 산골까지 파고든 양색시를 들 수 있다. 양색시들은 이들이 산골 마을에
대해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나오게 하는 하나의 매개 역할을 한다. 이들은 산 속에서 양색시들을 만나
면서 한 순간에 다시 도시 한복판으로 진입하게 된다. 작가는 양색시들의 출현을 단순하게만 그리고
있지 않는다. 양색시의 출현은 이미 자본주의라는 일상의 삶의 원리가 깊은 산골까지 지배하고 있음
을 보여준다.
결국, 소시민의 일상에 대한 탈출은 한낱 꿈일 수밖에 없음을 이 작품은 여실히 보여준다. 이러한 설
정을 통해 최일남은 세태에 대한 묘사와 이에 대한 공격을 통해 독특한 풍자를 형성하고 있다.

▣ 최일남의 생애와 작품
1932

전북 전주시 다가동에서 출생.

1952

전주사범학교를 거쳐 서울대 문리대 국문과 입학.

1953

「문예」에 「쑥 이야기」가 추천 발표됨.

1956

「현대문학」에 「파양」이 추천 완료됨을써 문단 데뷔.

1957

서울대 졸업.

1962

경향신문 문화부장.

1963

동아일보 문화부장으로 언론활동에 충실함.

1973

「빼앗긴 자리」,「노란 봉투」,「이런 해후」 등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 재개.

1975

「노새 두 마리」로 월탄문학상 수상, 첫 창작집 『서울 사람들』을 세대사에서 출간.

1981

「숙부는 늑대」를 발표했으며, 한국창작문학상 수상.

1986

「흐르는 북」으로 제 10회 이상문학상 수상. 문학선집 「장씨의 수염」을 출간.

1988

「한겨레신문」 논설고문, 가톨릭 언론문학상 수상.

1991

시사평론집 「왜소한 인간의 위대함, 위대한 인간의 왜소함」출간.

1995~

현재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거주

▣ 참고 문헌
권영민,「최일남론- 삶의 진실과 소설적 상상력」,「한국현대작가연구」,문학사상사, 1991
김병익,「닳아버린 삶과 깨어나는 의식」,「장씨의 수염」, 나남, 1986
김병익,「사회변화와 풍속적 고찰 - 최일남의 작품들」,「문학과 지성」, 1975.가을
김윤식,「최일남문학의 정치적 감각」,「누님의 겨울」, 정음사, 1984
김윤식,「한국 현대소설사의 한 측면- 최일남론」,「세계의문학」, 1977.가을
김주연,「발전의 허구와 삶의 질 - 최일남의 근작세계」,「춘자의 사계」, 문학과지성사,1979
민현기,「작가의 몫,독자의 몫」,「문학사상」, 1991
손자희,「한국적인 진실을 캐는 강한 체념과 휴머니즘」,「동서문학」, 1989
이명재,「원숙한

작가의

문학적

개화-

무화과꽃은

학」,1988.4

- 12 -

언제

피는가최일남

소설집」,「한국문

이보영,「선의적 정치의식의 비극- 최일남의 거룩한 응달론」,「현대문학」,1980.1
이창숙, 「오늘의 작가를 찾아서- 최일남편」,「문학사상」, 1991
조남현,「체험을 바탕으로 끄집어낸 혼란과분열- 최일남의 따따로의 혀」,「중앙일보」,1990.6.27
천이두,「역사의 의미, 최일남의「거룩한 응달」 론」,「세계의문학」, 1981
최원식,「최일남론 - 1950년대의 빈궁소설」,「한국현대작가연구」,민음사,1989

- 13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