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오렐 지음 / 돌배나무
이 책은 기업과 로비스트들의 이해관계를 탐사하여 개인의 삶에 깊숙이 뿌리내린 사회문제를 낱낱이
파헤친다. 저자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기업들 중에는 공공보건에 해를 입힐 수 있는 진실을 회피하거
나 왜곡하기 위해 많은 도구를 사용하는 기업이 있다면서, 시민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을 이해
하지 못하는 전문가들이 결정을 내릴 수 없도록 시민들이 논의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로비스트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세뇌하는가
스테판 오렐 지음
▣ 저자 스테판 오렐
《르몽드》기자로 로비활동과 이해충돌이 정책 결정에 끼치는 영향을 오랫동안 탐구해왔다. 2015년 화
학제품 속 내분비계 교란물질이 미치는 영향, 그리고 관련 산업을 둘러싼 정치와 경제의 이해관계를
취재한 내용으로 『중독』을 출간했고, 2017년 유럽 저널리즘상인 루이즈 바이스상을 수상했다. 2018
년에는 스테판 푸카르와 함께《르몽드》에 연재한 ‘몬산토 페이퍼 탐사보도 시리즈’로 유럽 언론상을 받
았다.
▣ Short Summary
우리는 자유 의지대로 주체적인 소비를 한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우리의 욕망은 조작되어 있을 가능성
이 높다. 왜냐하면 의약 제품과 화학물질을 비롯해 우리 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살충제와 담배, 소시
지, 설탕, 탄산음료와 초콜릿 등 일상적인 물건들에도 공공보건에 해를 입힐 수 있는 진실을 회피하거
나 왜곡하기 위해 많은 도구를 사용하는 기업들의 손길이 닿아 있기 때문이다.
최근 상업적 이익과 공공의 이익이라는 경계가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
고 있는 담배, 화학약품, 설탕 그리고 탄산음료 등에도 로비단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로비단
체’는 익명으로 언급되곤 하지만, 로비활동을 하는 기업에는 명확한 ‘이름’이 있으며 그 이름들은 우리
일상 속에서 아주 가까이 존재하고 있다. 필립 모리스, 엑슨모빌, 몬산토, 코카콜라 등이다.
수십 년 전부터 기업은 치명적일 수 있는 제품을 시장에 판매하려는 목적만을 가지고 지식과 집단지성
을 파괴하는 일에 착수했다. 과학을 팔고, 이해충돌을 야기하며, 선전을 퍼뜨린다. 시장경제와 현대사
회의 주요부분으로 성장한 과학조작은 점차 민주주의의 윤곽까지 다시 그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데도 권력집단은 이처럼 공적 특권이 남용되는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기업과 로비스트들의 이해관계를 탐사하여 개인의 삶에 깊숙이 뿌리내린 사회문제를 낱낱이
파헤친다. 저자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기업들 중에는 공공보건에 해를 입힐 수 있는 진실을 회피하거
나 왜곡하기 위해 많은 도구를 사용하는 기업이 있다면서, 시민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을 이해
하지 못하는 전문가들이 결정을 내릴 수 없도록 시민들이 논의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 차례
프롤로그
녹취록 A 로비스트와 나 -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세뇌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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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스트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세뇌하는가
01 “박사님이라고 불러주세요”
02 과학조작의 짧은 역사
03 음모가 도사리는 방
04 대안적 과학사실 워크숍
05 이해충돌 연대기
06 ‘과학 세탁’ 기계처럼
07 유사과학을 위한 기업, 학술지 그리고 연구소
08 몬산토 페이퍼, 일등석을 타고 떠나는 유령열차 여행
09 폐 박사님과 디젤 교수님
10 보답의 함정
녹취록 B 로비스트와 사회 - 그들은 사회를 어떻게 장악하는가
11 이건 공공연구 탈취다
12 이해충돌의 리히터 규모
13 스파이 임무를 수행 중인 작은 두더지 이야기
14 공공정책결정 하도급 업체
15 혼잡한 이해관계
16 거꾸로 된 세계 여행
에필로그
부록: 이해관계확인서
감사의 글
약어 설명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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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스트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세뇌하는가
로비스트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세뇌하는가
스테판 오렐 지음
로비스트와 나 -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세뇌하는가
“박사님이라고 불러주세요”
에드워드 버네이즈는 1984년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텔레비전 쇼 중 하나인 ‘레이트 나이트 위드 데이
비드 레터먼’ 방송에 출연했다. 사회자가 물었다. “박사님, 무엇이 관건인지 다시 한 번 말씀해주세요.”
초대 손님인 그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존재의 비밀 중 하나를 털어놓듯
이 자신의 처방을 알려줬다. “실제로 핵심이 되는 개념은 이겁니다. 제가 ‘박사님’으로 불릴수록 사람들
이 절 더 신뢰한다는 거죠.” 데이비드 레터먼과 방청객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에드워드 버네이즈, 심리학 부당 이득자: 에드워드 버네이즈는 1891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고, 이후
가족과 함께 뉴욕에 정착했다. 그리고 26세의 나이에 기자 겸 광고제작자로 공보위원회 활동에 참여했
다. 후대에 조지 크릴 위원장의 이름을 따서 ‘크릴 위원회’라는 명칭으로 알려진 이 위원회는 윌슨 전
미국 대통령이 1917년에 발족시켰다. 위원회의 임무는 막대한 양의 공식성명, 브로슈어, 애국주의 영
화와 포스터 공세를 퍼부어 미국 여론에 미합중국의 유럽전쟁 참전을 납득시키는 것이었다.
크릴 위원회가 세운 공적 중 하나로 시대를 훌쩍 뛰어넘은 선전물이 하나 있다. 바로 미국을 상징하는
엉클 샘이 짧은 턱수염에 진지한 눈빛을 하고 검지로 정면을 삿대질하는 모습이 그려진 포스터이다.
아래에는 ‘미합중국군은 당신을 원한다(I want YOU for U.S.Army)’는 문구가 쓰였고, ‘당신’이라는 단어
가 진홍색으로 강조됐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모두가 이 포스터를 알고 있을 정도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에드워드 버네이즈는 전시에 국가 프로파간다 설계자로 활약한 경험을 양분으로
삼아 사업을 시작했다. ‘프로파간다’라는 개념이 현대에서처럼 부정적으로 인식됐던 건 아니지만, 마케
팅의 선구자로서 그는 평화의 시대인 만큼 프로파간다에 ‘PR(홍보)’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이기로 결
정하였고, 이후 PR의 고안자이자 이론가로 활약했다. 그는 단어로 현실을 포장해 사람들이 프로파간다
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을 바꿔버렸다. 즉, 새롭게 정의했다. PR의 등장은 일종의 빅뱅으로, 미국인들
이 ‘스핀(Spin)’이라고 부르는 현상의 기원이 되었다. 그 이후로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는 우주에서 ‘스
핀닥터(Spin Doctor)’들이 다양한 전략들을 펼쳤다. 이미지 보호부터 위기관리, 스토리텔링 광고부터
데이터 왜곡까지 수많은 뉘앙스로 거짓말이 다채롭게 변주되었다.
PR의 고문으로 일컬어지던 에드워드 버네이즈는 또 다른 독보적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정신분석학의
개념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삼촌이었으니 그럴 만
도 했다. 삼촌 이론의 핵심을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던 에드워드 버네이즈는 정부와 상사회사의 이익
을 위해 대중을 설득할 때 무의식, 충동, 억압, 억제, 성욕 등 그에게 친숙한 개념을 - 말 그대로 - 이
용하려 애썼다. 상담용 카우치가 없는 그의 사무실은 대기업 지도자들로 문선성시를 이뤘다. 에드워드
버네이즈는 ‘곤궁에 처한 기업들을 위한 정신분석가’로 여겨지길 좋아했다는 소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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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스트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세뇌하는가
1920년대 말, 아메리칸 타바코 컴퍼니의 최고경영자인 조지 힐이 버네이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당시
여성들은 공공장소에서 거의 흡연을 하지 않았다. 그로서는 담배시장에서 절반의 고객을 놓치고 있는
셈이었다. 이 사회적 금기가 사라지기만 하면, 그러니까 여성들이 담배를 더 피우기만 하면 ‘럭키스트
라이크’ 담배 브랜드의 매출이 대폭 증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에드워드 버네이즈는 프로이트의 제
자인 에이브러햄 브릴 박사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문을 구했다. 브릴 박사는 여성이 담배를 피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여성의 욕망은 성평등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억압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당시 125달러였던 이 ‘상담’ 후에, 에드워드 버네이즈 사무실에서 남성의 전유물이자 남근숭배의 상징
인 담배를 여성해방에 대한 주장이자 상징으로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탄생했다.
1929년 그는 한 무리의 여성들을 고용해 부활절 퍼레이드에서 ‘자유의 횃불’인 담배를 보란 듯이 피우
며 뉴욕 시내를 활보하게 했다. 그리고 그가 찍게 한 사진들이 모든 언론에 뿌려졌고 다음날 일간지의
일면에 실렸다. 후에 에드워드 버네이즈는 인터뷰에서, 그로부터 며칠 뒤 샌프란시스코 및 덴버의 대
광장과 모스턴 코먼 공원에서 담배를 피우는 여성들을 봤다는 이야기가 보도되기도 했었다고 과시했다.
몇 주 후 뉴욕의 공연장들은 자발적으로 여성의 실내흡연 금지조치를 폐지했다. 중독에 대한 굴복을
해방으로 전환시킨 위업을 달성한 장본인인 그가 말하길, 담배가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자료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후였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산업화를 거쳐 초가공 식품, 더 나아가 완전히 분말 형태인 식품 붐이 일어
나고 있을 때, 제너럴밀스 브랜드는 첨가물이 가득하고 공기층이 많아 폭신폭신한 인스턴트 케이크
‘베티 크로커’를 출시했다. 결과는 완전한 실패였다. 에드워드 버네이즈는 여성들을 대표하는 표본인
‘포커스 그룹’을 조직해 제품 구매를 망설이는 이유를 조사했다. 그리고 여성들이 어머니로서 케이크를
만드는 데 있어 샐러드 볼에 물을 따라 붓는 것 외의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는 죄책감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아냈다. 이러한 정황에서 확신을 얻은 그는 조리법에 계란을 넣는 과정을 추가했다.
이때 계란은 가임기의 아내가 남편에게 건네는 은유적인 선물을 의미한다. 반죽에 계란을 넣는 건 『당
나귀 가죽』보다 더 오래된 사랑의 케이크 레시피다. 그러자 곧바로 판매량이 치솟았다. 봉지에 든 케
이크 믹스는 오늘날 슈퍼마켓 매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에드워드 버네이즈가 내세운 이론에 따르면,
상징은 ‘프로파간다의 화폐’다.
여론을 요리하는 주방: 버네이즈는 1928년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그의 저서 『프로파간다』에서 “집
단기제와 동기를 이해할 수 있다면, 대중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의지에 따라 대중을 통제
하고 동원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기술했다. 그런데 통제에 필요한 도구가 바로 월터 리프먼에게서
차용한 개념인 여론 조작이다. 월터 리프먼은 언어 구사력이 뛰어났고, 그와 동일한 분야를 탐구했으
며, 훗날 ‘냉전’이라는 표현을 만들어냈다. 에드워드 버네이즈는 여론 조작을 사회과학과 정신분석학으
로 형성된 ‘과학적 방법’의 결실로 내세웠다. 캐나다 퀘벡대학교의 교수 노르망 바야르종은 『프로파간
다』 프랑스어 역서의 서문에서 “이는 오히려 PR고문으로서 그가 지향하는 정치적 목적에 대한 과학적
(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라고 통찰력 있게 꼬집었다.
에드워드 버네이즈의 결코 민주적이지 않은 주장에 따르면, 소수의 엘리트들이 대중을 위해 결정을 내
리고 교묘한 설득으로 대중이 이 결정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는 1928년에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대중의 여론과 행동을 의식적이고 지능적으로 조작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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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스트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세뇌하는가
사회의 이 비밀스러운 메커니즘을 조작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권력을 행사하는 보이지 않는 정부
를 이룬다. […] 오늘날 프로파간다는 사회적으로 조금이라도 중요한 모든 일에 필연적으로 개입한다.
분야를 막론하고 프로파간다는 보이지 않는 정부의 실행조직이다.”
이렇게 해서, 존재의 고통을 이해하고 덜어주기 위해 고안된 정신분석학이 향을 첨가한 스펀지케이크
와 담배를 판매하기 위한 목적으로 PR과 한 몸이 되어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게 됐다. 그는 또한 “어
떤 제품을 구매하라고 설득하는 것처럼 공동체가 좋은 정부를 받아들이게 만들 수 있다”고도 말했다.
아니, 하지만 이 노인이 파스텔 색깔처럼 아름다운 구상을 했을 리 없다. 게다가 현대인의 시각에서
버네이즈의 저서는 민주주의 탈취를 위한 악랄한 계획서 말고 다른 의도로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그
자체로도 유명한 요제프 괴벨스라는 이름의 독자이자 숭배자가 있었다.
1933년, 버네이즈는 나치당의 선전부장이자 독일의 국민계몽선전부를 신설한 괴벨스가 1923년에 쓴
자신의 첫 번째 저서 『여론정제』에서 큰 영감을 받고 개인서재에까지 뒀다는 사실을 접하고 자괴감에
빠졌다. 그러나 괴벨스만이 아니었다. 버네이즈의 방법은 P&G부터 캘빈 쿨리지 전 미국 대통령까지,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부터 제너럴 일렉트릭까지 수십 명의 고객들을 사로잡았다. 출발점이자 모범
이며 영감의 원천이기도 한 그의 방법은 수십 년을 거쳐 전파되면서 다양한 술책을 탄생시켜 세상을
완전히 뒤바꿔버렸고, 사람들의 아침식사 메뉴까지 뒤흔들어 놨다.
우리가 생각하는 미국식 아침식사에는 꼭 계란과 베이컨이 있다. 하지만 미국인이 원래부터 아침에 일
어나자마자 단백질 함량이 높고 기름진 식사를 했던 건 아니었다.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 건 에드워드
버네이즈의 손길이 닿은 이후부터였다. 1920년대까지 미국인은 오히려 과일과 오트밀 또는 작은 빵으
로 가볍게 아침식사를 했다. 비치넛 패킹사가 베이컨 판매를 늘려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이때다.
비치넛 패킹사의 의뢰를 맡은 버네이즈는 직접 개발한 천재적인 술책을 부린다. 바로 제삼자를 이용하
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해당분야의 권위자면서 해당 이해관계와 표면적으로 어떠한 관련도 없는 인물
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버네이즈가 자문을 구한 한 의사는 아침식사가 든든하고 단백질이
풍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버네이즈는 이 의견을 글로 쓰게 하고, 다른 의사 5천 명에게 보내 견해를
물었다. 거의 모든 의사들이 동의하며 간략한 서명을 덧붙였다.
버네이즈는 결과를 언론에 보내고, 이 내용이 과학적 연구 결과인 것처럼 퍼뜨렸다. 반세기 후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전국에서 일간지들이 이렇게 타이틀을 뽑았죠. ‘4,500명의 의사들, 국민 건강증진
위해 든든한 아침식사 권장. 대부분 아침식사로 베이컨과 계란 추천’이라고요. 그 결과 베이컨 판매가
증가했죠.” 제대로 먹혔다. 챔피언의 아침식사는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식사 시간이 되었으며 베이컨
사업은 장밋빛 미래를 그렸다. “제가 ‘박사님’으로 불리면 불릴수록 사람들이 절 신뢰한다는 거죠.” 에
드워드 버네이즈는 이 점에 있어서 핵심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다. 주부, 정원사, 콘트라베이스 연주
자 그리고 장관까지도 ‘박사님’으로 불리는 사람을 훨씬 더 신뢰한다. 심지어 박사끼리도 말이다.
‘과학 세탁’ 기계처럼
독일 콘스탄츠대학교 독성학 교수이며 인체 및 환경독성학팀을 이끌고 있는 다니엘 디트리히는 이따금
씩 유럽연합 의원들과 위원들에게 내분비계 교란물질의 너무 엄격한 규제에 반대하는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 브뤼셀로 향한다. 참고로 그가 정치 및 과학 싸움터에 등장해 센세이션을 일으킨 사건은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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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스트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세뇌하는가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 문제를 담당하고 있던 유럽 위원회 환경총국은 회원국 소속 전문
가들과 2년간의 토론을 거쳐 구상한 내분비계 교란물질 규제안을 다른 부서에 제출하여 승인받을 준비
를 하고 있었다. 규제안은 가장 최근의 과학적 지식과 유럽 연합법에 명시되어 있는 사전예방원칙을
근거로 삼았다. 그런데 농약 제조업체들은 이 규제안을 거세게 반대하고 나섰고, 5월에는 조직적으로
이메일 전격전을 펼쳐 그들의 이익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관료들로부터 유예기간을 얻어내려 애썼다.
이때 전대미문의 두 작전이 동시에 전개되었다.
내분비계 교란물질 규제에 맞선 전문가들의 전투: 6월 중순, 56명으로 이뤄진 과학자 집단이 유럽 위원
장의 수석 과학고문인 앤 글로버 교수에게 한 통의 서신을 보냈다. 그들은 “제안된 접근법에 따라 독
성학과 환경독성학 분야에서 통용되고 있는 과학 및 규제 원칙들을 제정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필요성을 증명할 적절한 과학적 증거도 없다”고 염려했다. 그로부터 3주가 지나기 전에 이 서신은 이
례적인 방법으로 공개되었다. 14종의 학술지에 동시 공개된 사실이 서신의 내용을 뒷받침했다.
사설 자체도 다음과 같이 비범한 제목을 달고 있었다. ‘과학적 근거 없는 예방 조치가 유럽 위원회의
내분비계 교란물질 규제에 대한 권고사항에 힘을 불어넣고, 충분히 정립된 과학상식과 위해성평가 원
칙을 무시한다.’ 사설의 공저자인 18명 중 일부는 앞서 말한 서신의 작성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14종
의 학술지 어디에도 이해관계확인서는 첨부되지 않았다. 따져봐야 할 게 많았다. 우선 저자 18명 중
17명이 실제로 화학, 살충제, 의약품, 화장품 또는 생물공학처럼, 많든 적든 간에 규제안의 위협을 받
는 업계의 기업과 관련이 있었다. 그리고 다수가 규제원칙의 정당성에 언제나 신속하게 대항하는 산업,
바로 담배산업에 협력한 바 있었으며, 내분비계 교란물질 전문가는 얼마 없었다.
그중 한명은 R. J. 레이놀즈의 전 직원이자 컨설턴트인 A. 월리스 헤이즈이다. 다른 한 명은 독일 함부
르크대학교 의과대학 퇴직교수인 한스 마쿼트로 사례를 받고 필립모리스의 외부연구 후원을 위한 과학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또 다른 한 명인 지오바타 고리는 담배 제조업체들을 상대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해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 이중 작전을 주도한 건 세 명의 독일 과학자들이다. 그들의 국
적을 명시하는 이유는 내분비계 교란물질 규제에 맞서 펼치는 로비활동의 전장에서 화학 및 살충제 업
계의 독일 대기업인 바스프와 바이엘이 가장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뷔르츠부르크대학교 독성학 교수인 볼프강 데칸트는 당시 농약, 화학, 플라스틱 기업과 기업 소속의
로비단체와 체결한 약 20건의 계약서를 공시했다. 뮌헨공과대학교 독성학 및 환경위생 연구소 전 소장
인 헬무트 그라임은 이미 화학, 살충제, 석면, 자동차, 향수 등의 수많은 산업에 협력했으며, 2015년에
는 몬산토가 글리포세이트 제품을 방어하기 위해 조직한 전문가 패널에 합류했다.
세 번째 사람은 다니엘 디트리히이다. 다니엘 디트리히와 기업의 관계는 세밀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으
며 다른 이들보다 오래됐다. 어쨌든 공공분야와도 인연이 깊다. 그의 이력서를 살펴보면 그가 질문을
받을 때면 ‘너무 오래전’이라며 둘러대는 불확실한 날짜에 화학산업단체인 유럽 화학물질 생태독성 및
독성센터의 고문을 맡았다는 걸 알 수 있다. 독성학자인 다니엘 디트리히는 2000년부터 2010년까지
다우 유럽, 아스트라제네카 그리고 바이엘 헬스케어와 같은 제약 및 화학 기업의 직원들과 함께 연구
논문 4편을 공동으로 작성했다. 마찬가지로 특기할 것은 2006년 그가 제품방어 전문대행사 더 와인버
그 그룹의 직원으로 알려진 토마스 페트리와 함께 연구의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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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스트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세뇌하는가
왜 독자들과 유럽 정책 결정자들이 이해관계를 확인할 수 있도록 사설 아래에 이해관계확인서를 첨부
하지 않았던 걸까? 2013년 9월 전화로 연락이 닿은 다니엘 디트리히는 “사설이었으니까요.”라는 말로
스스로를 정당화했다. “발행인들의 의견이었어요. 특정 화학제품에 대한 데이터를 발표한 게 아니니까
요.” 그런데 사설이야말로 《뉴잉글랜드의학저널》 편집장이 기업과 연계한 저자의 게재를 막을 정도로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판단했던 형식 중 하나다. 공저자 18명 또한 문제가 된 학술지 14종의 편
집장이자 발행인이었다는 걸 짚고 넘어가야겠다. 다니엘 디트리히가 이끄는 학술지 《화학-생물학적 작
용》의 경우 다른 학술지와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규칙을 정하거나 없앨 수 있었다.
해당분야 전문과학자 약 30명이 충격에 빠져 학술지 《환경보건》에 반박입장을 내놓았다. 두 편집장,
필립 그랑장과 데이비드 오조노프는 ‘현대 사회에서 과학의 투명성과 변형’에 대한 신랄한 사설을 게재
해 그들을 호위했는데, 둘은 “오염물질 규제를 합법화하는 과정에서 과학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학술연구가 산업의 후원에 의존하게 되면서 숨겨진 의도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다. 오늘날 과학은 이
처럼 보이지 않는 전장의 한가운데 있다”고 기술했다. 문제의 사설이 어떤 이해관계확인서도 포함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둘은 사설 저자들에게 누락된 내용을 보완할 것을 신신당부한다. 하지만 결코 이
뤄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해충돌에 관한 토론이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다. 이런 토론은 진정한 문제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리기 때문이다.” 다니엘 디트리히는 “그들
중 누구도 자금을 받지 않았다”고 단언하며 자신을 정당화한다.
누락되거나 불완전한 이해관계확인서는 학술지의 투명성을 입증하는 데에 제1의 장애물이 된다. 2016
년 학술지 《 연구 무결성과 동료심사 》 에 게재된 연구논문에 따르면, 발표된 임상병리학 논문 중
43~69%가 이해관계확인서를 포함하지 않는다. 하지만 학술지에 규정이 존재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디
트리히와 그 외의 적대적인 사설이 실린 학술지 14종 중 12종에는 이해충돌과 관련한 규정이 있었고,
그중 8종은 ICMJE의 규정을 준수하고 있었다. 매우 엄격한 정책을 적용하는 가장 권위 있는 학술지들
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심지어 더 심각한 경우도 있다.
논문저자가 신고하지 않은 이런저런 이해충돌을 발행인에게 알려주는 건 대개 경각심을 늦추지 않는
독자들이다. 학술지는 출판 이후 이해충돌을 알려주는 우편물을 받곤 한다. 이 주기는 어느 정도일까?
매년 6천 편의 원고와 최소 6천 개의 이해관계확인서를 받는 《미국의학협회지》의 편집장은 그 주기
가 빈번하다는 것을 툭 터놓고 인정한다. 때로는 정정문이 실릴 때도 있다. 만일 그런데 정정문이 실
린다 해도 누가 읽을까? 거의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이며 게다가 때를 놓쳤다.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자료는 진작에 ‘과학 세탁’ 기계에 투입돼버렸다. 누락이 됐든 말든 중요치 않고, 정정은 이뤄지지 않
으며 처벌 없이 넘어가는 일이 부지기수다. 완벽한 이미지 세탁이다.
로비스트와 사회 - 그들은 사회를 어떻게 장악하는가
이건 공공연구 탈취다
2016년 4월 4일 뷔테니스 안드류카이티스는 유럽연합의 상징이 인쇄된 종이에 편지를 쓴다. 이는 서
한, 아니 오히려 12개의 별이 그려진 푸른 유럽연합 깃발 위로 올리는 탄원서다. 유럽연합 건강총국장
인 안드류카이티스는 2015년 가을, EFSA가 글리포세이트에 내린 긍정적 평가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제연합 UN으로부터 발암물질 분류 임무를 부여 받은 IARC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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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스트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세뇌하는가
이 사용되는 이 제초제를 인체발암성 추정물질(2A등급)로 판단했다. 안드류카이티스는 “시민 대부분이
이 갈등을 우려하고 있습니다”라고 글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이러한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두 기구가 동일한 학술 데이터를 근거로 삼지 않았기 때문이다. IARC는 동료평가를 거쳐
학술문헌에 게재된 연구들만 검토하고, 몬산토나 다른 농화학기업들이 수행한 내부연구는 제외했다.
EFSA의 경우 글리포세이트 테스크포스 유럽에서 제작한 문건을 주요 출처로 삼았는데, 이 테스크포스
는 약 20개의 기업이 유럽연합 영토 내에서 제초제의 재승인을 획득하려는 목적으로 모여 만든 컨소
시엄이다. 해당 문건 안에는 출간 문헌의 요약본 및 기업이 출자한 수십여 편의 독성 연구 논문이 들
어 있으며, 이 자료들은 기밀이란 명목 하에 보호받는다. 즉 대중들은 접근이 불가능하다.
안드류카이티스는 편지에 “투명성이라는 기준은 사유재산 보호 및 진행 중인 의사 결정 과정의 비공개
와 같은 사회의 요구와 똑같이 중요하게 다뤄져야만 합니다”라고 썼다. 그렇게 논란이 불거지고 몇 달
이 지난 뒤, 비로소 기업들이 다음과 같이 행동에 나섰다. “현재 유럽의회에서 해당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글리포세이트 테스크포스가 먼저 능동적으로 EFSA에 제공한 연구
들의 전문을 발표하길 바라며 이 편지를 마칩니다.”
이 열람실은 감시를 받고 있습니다: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유럽 몬산토 규제업무 전략책임자인 리
처드 가넷이 답신을 보냈다. 이후 기업들은 ‘예외적으로’ 요청받은 정보의 ‘게시’를 수락한다. 다만 수
주간의 협상 끝에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비교적 생소한 조건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2016년 8월 말, 연
구 71건이 공개됐다. 하지만 연구실 기술자들의 이름과 같이 ‘민감한’ 정보들은 쪽 빠져있는 데다, 평
일 9시~12시, 14시~18시에 ‘열람실’에서 단 1달 동안만 열람할 수 있도록 제약을 뒀다. 또한 사전에
빈 시간을 확인하여 온라인으로 신청해야 했고, 네 명 이상이 동시에 열람할 수 없었다. 또 입장 전 허
가증과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고 동의서에 서명을 해야 했는데, 그 규칙의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보안요원이 방문객을 접수처부터 열람실까지 안내한다. 글리포세이트 테크스포스는 회원들이 요청하
면 방문객의 신원을 공개할 권리가 있다. [8번 조항] 열람실은 보안요원 두 명이 지키고 있으며, 이들
은 현행 열람실 규칙의 내용을 이행한다. [10번 조항] 방문객은 오직 컴퓨터에서 읽기 전용 모드로만
연구를 열람할 수 있고, 연구 열람 외에 다른 컴퓨터 기능의 경우 사용이 제한된다. 인터넷, USB 인쇄
장치를 포함해 컴퓨터의 모든 응용프로그램은 비활성화다. [11번 조항] 방문객은 열람실 입장 시 전자
기기, 카메라, 휴대전화, 다른 통신 및 녹음 장치를 소지할 수 없다. 방문객은 열람실에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언제든 소지품을 검사하는 데 동의한다. 휴대폰 또는 기타 모바일 무선기기, 노트북, PDA, 음
성녹음기, 카메라, CD, DVD, USB 등의 모든 기기들은 따로 안전하게 보관되며 열람실 퇴실 시 반환된
다. [12번 조항] 방문객은 열람실에 있는 동안 손으로 메모할 수 있다. [13번 조항] 방문객의 모든 행
동(입실/퇴실)은 어떠한 사유가 있든지 기록되며 절차에 따라 서명을 받아야 한다.’
‘방문객’들은 이 대처가 형편없다고 평가했다. 유럽녹색당의 미셸 라바지 프랑스 의원은 “코미디가 따
로 없다”며 으르렁거렸다. 그녀는 소수의 녹색당 의원들과 함께 NGO ‘유럽기업감시’와 손잡고 몇 주
동안 EFSA를 상대로 글리포세이트 테스크포스의 문서들을 공개하라고 투쟁했는데, 결과적으로 헛수고
를 한 셈이다. 이런 조건 속에서 20만 쪽 분량의 자료를 분석할 수 없다는 것은 어린 아이도 안다.
대개 이런 식으로 규제가 만들어진다. 글리포세이트는 농약이든, 가소제 또는 화장품 재료든 간에, 전
세계 각국 정부가 내리는 판단은 기업이 선별해서 제공한 데이터뿐만 아니라 기업의 기밀 데이터를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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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스트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세뇌하는가
거로 하는데, 이 데이터들은 ‘GLP 연구’, 즉 1981년 OECD가 제정한 ‘우수실험실관리기준’에 따라 실
행된 연구를 말한다. GLP는 일정 품질, 정확성 그리고 재현성 수준을 확실히 보장해주는 가이드라인이
다. 참고로 여러 기업을 고객으로 둔 가장 거대한 규모의 연구실 임원들이 법정에서 유죄선고를 받게
만든 끔찍한 사건 이후에는 연구 가이드라인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임상시험 수탁기관
(CRO)의 책임 하에 진행된 수백여 건의 독성 실험이 무효 판단을 받은 이유는 그 결과가 일정부분 지
어낸 것이었고, 상당 부분 위조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의 40년 전에 제정된 이 체계가 ‘글리
포세이트 사건’으로 풍비박산 나게 된 것이다 - 적어도 여론의 눈에 비치는 상황은 그렇다.
따라서 제품의 판매 허가 또는 재허가 요구를 뒷받침하는 독성연구실험은 관리기구와 전문가들이나 접
근 가능할 뿐, 기업비밀을 명목으로 대중에겐 공개된 바 없다. 연구 내용과 이른바 ‘미가공’ 데이터는
기밀이기 때문에 재현성이라는 주요 과학원칙을 준수하기란 불가능하다. 즉, 어떤 대학 연구원도 이
연구 프로토콜을 재현하여 동일한 결과가 나오는지 확인할 수 없다. EFSA와 비슷한 다른 기구들도 마
찬가지지만 그 이유는 조금 다르다. 그리고 기업들이 데이터를 제출한다고 하더라도 관리기구에는 자
체적으로 연구 - 제조업체들의 실험을 재현하는 것이든 독자적인 연구를 하는 것이든 - 를 수행할 기
술력과 자금력이 없다. 따라서 하는 일이라고 해봐야 문서에 기록되어 있는 결과를 검토하는 정도에
그친다. 데이터가 유효하고 내용 전체가 온전히 제공됐다는 보장이 없다.
부정적인 결과가 도출된 경우, 기업들이 해당 연구를 누락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전무하고, 문제가
있거나 기업의 목적에 피해를 줄 수 있는 데이터가 은폐되고 삭제된 사례는 많다. 로버트 프록터는 ‘지
식과 유리된 연구’의 대표적 사건을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1970년, 담배 업체 R. J. 레이놀즈는 하루
아침에 자사 연구소인 ‘쥐 소굴’을 폐쇄했다. 소속 과학자 약 20명이 담배가 불치의 폐질환인 기종을
유발하는 메커니즘을 간파하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위험성 있는 연구는 수행하지 않고, 거부감을 주
는 데이터는 생산하지 않는다. 증거를 흘려선 안 되며, 자기 자신이 ‘불편한 진실’이 공급원이 되지 않
는다. 얼마나 많은 지식이 이런 원칙하에 우리의 레이더망 밖에서 입막음 당한 걸까?
즉, 수년간 사용되다 뒤늦게 유독성이 판명된 모든 제품은 ‘특례 과학’ 데이터를 근거로 시장에 유통됐
다. 특례과학은 과학 규범 중 어느 것과도 부합하지 않는 과학을 일컫는다. 덧붙이면, OECD의 가이드
라인인 GLP가 아무리 모범기준이라고 하더라도 제품의 무독성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GLP는 단지 품
질보증의 한 형태일 뿐이다. 그렇지만 연구와 도출된 결과에 기업이 영향력 - 고의든 아니든, 후원편
향 효과가 나타나기 마련 - 을 미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케빈 엘리엇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업이
행사하는 영향력은 ‘교묘하지만 완벽하게 합법적인 일련의 의사 결정’ 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2천만짜리 연구: 평가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든 기업들의 천재성은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정부 당국이
이 틈을 메우려고 뭘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특례 과학’ 위주의 절차를 유지하고 있는 주체가 그들이
기 때문이다. 이 절차에서는 과학 지식 생산에 있어서 그 어떠한 안전성 실험도 실시한 적 없는, 껍데
기만 그럴싸한 과학으로부터 나온 연구들이 공중 보건 및 환경 관련 의사결정을 내리는 근거로 쓰이고
있다. 이미 시장에 유통되는 화학제품 대부분이 최소한의 실험도 거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차치하고서
라도 말이다. 유럽연합 당국은 오직 유럽연합법이 새로운 것이라고 규정한 물질의 안전성 데이터만 확
보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1981년 이후 시장에 유통된 물질의 수가 약 4,300종인데, 이 데이터들은
유럽 위원회가 불완전하다고 언급했던 바 있다. 그 이전부터 존재해온 물질의 경우 어떤 문제제기도
없이 산업공정을 거친 일상용품을 매개로 결국 우리 몸에 들어온다. 그 수가 약 10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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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으로 허가가 떨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이 시스템에서 유해성을 증명하는 주체는 공권력이었다.
그런데 2006년 유럽화학물질관리제도(REACH)가 도입되면서 이 책임의 주체가 바뀌었다. 이후로 그
자체 연구를 통해 사전에 제품의 무해성을 증명하는 증거를 제출해야하는 책임은 기업에게 전가되었다.
당시에는 큰 성과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기업에 연구비용 부담을 떠넘긴 것은 좋았으나, 다른 역효과
를 불러오게 됐다. 결과적으로 공권력은 학술과학 대신 특례과학의 우위를 인정하고 기업에게 왜곡,
조작, 속임수의 가능성을 열어주게 된 것이다.
이 시스템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가장 큰 장애물은 GLP 연구의 터무니없는 비용이다. 2017년 초,
EFSA 이사인 베른하르트 우를은 잔뜩 분개했다. “사람들은 이제 EFSA가 매년 농약 20종, GMO 10 종,
오염물질 20개에 대한 연구를 직접 위임하여 자금을 대야 한다고 할 겁니다. 하지만 결국 문제는 비용
이죠.” 그는 당시 진행 중이던 비스페놀A에 대한 다세대간 연구에 든 비용을 예로 들었다. 무려 3천만
달러! 2016년 겨우 8천만 유로에 불과했던 EFSA 연간예산의 1/4과 맞먹는 금액이다.
유럽 재정을 착복하는 기업들: 오늘날 유럽연구자들에게 있어 수년간 재정을 지원받을 수 있는 유럽연
합의 ‘프레임워크 프로그램(FP)’이야말로 현대판 성배라고 할 수 있다. ‘유럽기업감시’ 보고서에 따르면
7차 프레임워크 프로그램(2007~2013)은 사익과 공공지식 생산이라는 공익이 얽히고설킨 나머지 참가
자의 자그마치 1/4이 민간기업이었다. 참고로 이 프로그램에는 소규모 전문기업부터 다국적기업과 로
비단체까지 별의별 기업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예로 오직 정부출연기관만 참가할 수 있는 프로젝트
가 있고, 국가기관, 대학, 대기업이 모두 참여하는 프로젝트도 있다. 그리고 민간업체 관계자들이 프로
젝트를 장악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리고 최대 40여 개의 단체가 참여하는 컨소시엄인 만큼 지휘자
가 필요한데, 이 조정자 역할은 거대 그룹이나 기업조직이 맡는다.
예를 들어 1,320만 유로의 예산을 배정 받은 ‘유레카 계획’(FP6)의 주제는 ‘소비자, 특히 취약계층의
이해에 초점을 맞춘 영양소 관련 유럽 권장사항 통합’이었는데, 2007년에서 2012년 사이의 약 40여
기구가 참가했으며, 그중 대부분이 밀라노와 오슬로대학교부터 헝가리 국립소비자보호협회까지, 공공
및 준공공기관에 해당 되었다. 조정자 역할은 ILSI의 유럽지부에 맡겨졌다. 그러나 ILSI의 유럽은 이해
관계와는 무관한 단체가 아니다. 권장사항의 대상 품목이 ILSI 유럽지부 회원업체에서 판매하고 있는
상품들이기 때문이다. ILSI 유럽지부는 10개의 유럽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그중 다섯 개를 관리했다. 그
리고 2017년에는 총 2,600만 유로 이상의 예산을 투자하는 프로젝트 4개에 참여했다.
혁신의 절대적 필요성: 결과를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서 기업이 자본으로 독성연구의 주도권을 쥐고,
민간 경제주체들은 학술과학 투자에 열과 성을 다하고, 국가는 공공연구에서 빠르게 손을 떼고 있으며,
공공기관과 영리추구가 목적인 기업이 친밀한 관계를 쌓을 수밖에 없게 된 데다, 연구의 의도는 점점
더 뒤섞이고 있다. 즉, 과학의 민영화가 진행 중이다. 스테판 푸카르는 이렇게 말했다. “과학 프로젝트
는 세상을 이해하는 과정이고 기술 프로젝트는 이를 이용하는 일이다.”
하지만 공권력은 과학과 수익성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이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 같다. 유럽뿐만
아니라 다른 대륙도 마찬가지다. 기초연구는 ‘혁신’이라는 슬로건을 위해 길을 비켜주었고, 그 혁신은
더 이상 지적 영역이 아닌 기술적인 관점으로만 이해되는 듯하다. 하지만 과학 연구가 오직 응용개발
과 산업적 용도로만 편향된 사회는 도대체 무엇일까? 과학의 역사는 우연한 발견, 발견의 영감이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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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스트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세뇌하는가
사고, 비즈니스는 넘볼 수 없는 기회와 창의력이 가득하다. 그렇다면 사회는 무엇을 놓친 것일까? 과
학적 방침이나 연구 우선순위가 발표되지 않은 정치 프로그램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오늘날 정
부와 정책결정자들이 실행하고 있는 이 프로젝트는 뭘까? 어떤 의미로는 공공연구의 자금을 대기 위해
민간 자금조달이 이루어진 것이고, 또 다른 의미로는 공공기관 전용이었던 자금조달의 역할이 민간 경
제주체로 넘어간 것이다. 온전한 신체와 자연보호가 이토록 명백한 무관심의 대상이라면, 이 근본적이
며 자본적인 움직임이 공익을 희생시키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프랑스를 비롯한 다양한 국가의 권력중추는 과학 왜곡을 매개로 공공정책이 포획당하는 문제를 염려하
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시민시회가 경고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다. 이미 여러 사회구성원들이 연
구와 혁신을 경쟁의 관점으로만 이해하는 방식에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지식은 공정하다’는 터무니없
는 변명을 방패삼는 대부분의 정책결정자들은 본인의 선택권 일부분을 포기했다고 볼 수 있다. 이해충
돌이 시스템의 역할을 대신한다는 걸 이해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연구의 우선순위를 새롭게 규정하고,
제기된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방법에 대해 고찰하는 이들도 거의 없다. 정부의 정치적 목
표가 기업들의 프로젝트로 대체된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사람들도 드물다. 자신이 기업의 정치적 프로
젝트를 뒷받침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지원금을 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도 적다.
예를 들어 코카콜라는 비만을 영양학보다 오히려 신체활동의 문제로 유도(사실은 갈피를 잃게)하기 위
해 많은 수의 공공보건 연구를 후원하면서 비만 연구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바이엘과 신젠
타는 자사 제품인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의 치명적 영향을 평가하는 단체를 장악했다. 엑슨, 쉘,
브리티시페트롤륨과 셰브론은 기후변화 문제와 관련해 ‘의혹 상인’ 행세를 하며 인류를 위험에 빠뜨렸
다. 21세기의 사회가 정말로 탄산음료, 생명공학, 석유 기업들의 정치적 목표에 의해 좌지우지 되어도
괜찮은 걸까? 단지 한 번도 질문을 받아본 적 없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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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스트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세뇌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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