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가 그리는 대상은 당대의 욕망과 탐욕을 투사한다. 화가가 그리는 욕망의 소재는 관객이 선
호하는 영원한 주제인 ‘사랑’에 닿아 있다. 그 사랑은 신성하고 자기희생적 사랑인 아가페도, 이상
적이며 관념적인 사랑인 플라토닉도 아닌, 자기중심적이고 소유적인 이성간 사랑인 에로스에 닿아
있다. 예술가가 그리는 사랑은 파격이고 일탈이며 금지된 사랑이다. 이 책 속의 46가지 주제의 그
림들은 각 시대의 풍속과 함께 예술가와 관객의 욕구를 보여준다. 그것이 팜므 파탈의 치명적 유
혹이든, 금지된 사랑의 욕망이든, 권력욕으로 빚어진 복수의 사랑이든 사랑은 그렇게 지고지순한
치명적 광기 사이에서 예술가를 유혹한다.
욕망과 탐욕의 인문학
▣ Short Summary
본질적으로 예술은 관음이고, 예술가는 대상을 엿보는 관음증자이다. 화가가 그리는 대상은 그림을 소
비하는 관객의 욕망을 형상한다. 그래서 예술가는 관음과 사랑을 욕망하는 판타지의 창조자이며, 예술
가가 그리는 대상은 당대의 욕망과 탐욕을 투사한다. 화가가 그리는 욕망의 소재는 관객이 선호하는
영원한 주제인 ‘사랑’에 닿아 있다. 그 사랑은 자기희생의 사랑인 아가페도, 이상적이며 관념적인 사랑
인 플라토닉도 아닌, 자기중심적이고 소유적인 이성간 사랑인 에로스에 닿아 있다. 예술가가 엿보는
사랑이 지고지순하고 순정적이어선 관객을 유혹할 수 없다. 관객이 호감을 느끼는 에로스는 흥미롭고
드라마틱한 사랑이어야 한다. 그래서 예술가가 그리는 사랑은 파격과 일탈이며 금지된 사랑이다.
이 책에서 그려지는 파격의 러브스토리는 대략 46가지 모습으로 시대의 풍속과 함께 예술가와 관객의
욕구를 반영한다. 1장은 원초적 아름다움의 화신이 된 이브와 릴리트, 릴림, 헬레네, 칼립소 등 절대미
인들의 치명적인 사랑의 매혹을 그린다. 2장과 3장에서는 팜므 파탈의 치명적 유혹을 다룬 7명의 나쁜
여자의 광기어린 성의 판타지를 다룬다. 4장과 5장에서는 남성의 성적 로망과 동경, 가질 수 없는 관
음의 세계를 다룬 7가지 색다른 에로티시즘의 세계가 독자의 욕망을 자극한다. 사디즘(사드), 아동성애
(롤리타), 가학성애(카사노바), 동성애(블라드 공작), 숭고한 헌신의 고디즘(레이디 고다이버), 관음을
통한 유혹(니시아, 밧세바), 미의 동경(프리네) 등이 나쁜 사랑의 상징적 메타포로 등장한다.
6장은 그리스 여류시인인 사포와 남장여인 조르주 상드, 로댕을 사랑한 카미유 클로텔, 낭만적 순정을
바친 샤토브리앙 등 시인과 소설가, 조각가들의 금지된 사랑의 슬픈 자화상을 보여준다. 7장, 8장, 9장,
10장에서는 사랑의 광기와 소유의 집착이 낳은 질투와 탐닉, 치명적 유혹의 여인들의 농도 짙은 사랑
의 광기를 펼쳐보인다. 11장에서는 이슬람세계의 특별한 성의 문화인 하렘과 하렘의 여인들의 사랑과
권력의 암투와 빛 속에 가려진 그림자인 오달리스크의 세계가 독특한 궁정문화를 배경으로 슬픈 사랑
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 책에서 그려진 46가지 그림의 주제는 한마디로 ‘사랑에 이르는 46가지 러브로망’이다. 그 길이 팜
므 파탈의 치명적 유혹이든, 금지된 사랑의 욕망이든, 권력욕으로 빚어진 복수의 사랑이든 사랑은 그
렇게 지고지순한 치명적 광기 사이에서 예술가를 유혹한다. 그런 그림은 대개 가장 완벽한, 환상의 세
계에 대한 메타포다. 이 나쁜 환상의 메타포는 우리가 사는 허무한 세상을 견딜 수 있게 하는 희미한
힘인 동시에 막강한 희망이다. 사랑과 욕망의 간극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그 간격의 틈새에는 우리가
섣불리 말하지 못하는 사실 혹은 진실이 숨어 있다. 그림 속 사실과 진실의 간극은 언제나 숨김과 드
러냄, 감춤과 폭로 사이의 어느 지점을 가리킨다. 예술가와 관객의 관음을 만족시켜주는 에로틱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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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탐욕의 인문학
가 예술의 진실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변주곡이라고 할 때, 그것은 숨김과 드러냄의 변주일 수 있다.
그리고 그 궁극에는 사랑과 성 사이의 섹슈얼하고 에로틱한, 그래서 더 폭력적이고 탈주적인 이미지를
감추고 드러내는 다른 또는 같은 삶에 대한 엇갈린 시선을 보여주는 지도 모른다.
▣ 차례
여인이라는 이름의 원죄, 끌림
이브의 원죄 / 성욕의 화신 릴리트 / 밤의 귀녀 릴림 / 트로이 전쟁의 헬레네 / 숨기는 여인 칼립소
치명적 탐욕의 유혹, 광기
보디발 모티브 / 악녀의 화신 바토리 에르제베트 / 헌신의 여인 루크레티아 /이교의 숭배자 아탈리아
팜므 파탈의 치명적 욕망, 유혹
죽음의 댄서 살로메 / 마법의 여신 키르케 / 아름다운 요부 라미아 / 삼손을 유혹한 데릴라
억압된 영혼의 아름다움, 동경
성의 가학자 사드 후작 /금단의 사랑 롤리타 /관능의 탐구자 카사노바 /드라큘라의 화신 블라드 공작
가질 수 없는 사랑, 관음
숭고한 헌신의 레이디 고다이버 / 비너스의 전신 프리네 / 왕국을 바꾼 니시아 / 왕을 유혹한 밧세바
예술의 마지막 지점, 애증
최초의 여류 시인 사포 / 남장여인 조르주 상드 / 애증의 연인 카미유 클로텔
낭만적 순애보의 샤토브리앙
불같은 사랑의 지배, 탐닉
음녀 옴팔레 / 사랑의 사기꾼 문두스 / 제국을 유혹한 클레오파트라
로마 퇴폐의 상징 메살리나 발레리나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질투, 복수
적장의 목을 벤 유디트 / 비정의 마녀 메데이아 / 집념의 왕비 카테리나
경계에 선 치명적 유혹, 근친
의붓아들을 사랑한 파이드라 / 튜더 왕조의 헨리 8세 / 사랑의 불장난 앤 메리 불린
성폭력의 희생자 베아트리체 첸치
멈출 수 없는 권력의 화신, 치정
전근대의 희생양 루크레치아 보르자 / 폭군의 어머니 아그리피나
애첩에서 황비가 된 포파에아 / 근대 러시아의 영광 예카테리나 2세 / 팜므 파탈의 조세핀
권력자를 향한 치열한 암투, 도발
술탄의 여인 쾨셈 / 하렘의 오달리스크 / 하렘의 여인들 / 하렘의 여인 휴렘 / 녹원의 마리 루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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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탐욕의 인문학
욕망과 탐욕의 인문학
차홍규 엮음
여인이라는 이름의 원죄, 끌림
숨기는 여인 칼립소
칼립소는 아틀라스의 딸로 바다의 님프였다. 그녀는 전설의 섬 오기기아에 살았는데,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배를 타고 귀향길에 오른 오디세우스가 강풍을 만나 표류하다가 홀로 이 섬에 도착하였다. 칼
립소는 ‘숨기는 여인’이라는 뜻을 지닌 여인답게 세상의 서쪽 끝에 있는 오기기아 섬에서 외로운 나날
을 보내고 있었다. 기나긴 고독한 날들을 지새우던 어느 날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이 섬에
나타나자 칼립소는 한눈에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운명이라 생각하였다.
칼립소는 향기로운 포도주와 신들의 음식인 암브로시아를 내놓으며 연회를 펼쳤다. 오직 사랑하는 한
사람만을 위한 간절한 연회였다. 오기기아 섬의 그녀의 동굴은 화려하였다. 암벽 주위로 갖가지 꽃들
과 열매들이 가득했다. “사랑하는 이여. 당신께서 결심만 한다면 영생을 줄 것을 약속하겠어요. 훌륭한
잠자리와 음식, 그리고 무엇보다 저의 거짓 없는 사랑을 주겠어요.” 오디세우스는 10년에 걸친 전쟁과
힘든 여정의 항해 속에 아름다운 님프 칼립소의 유혹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들은 곧 뜨거운 육체의 향
연에 빠져들었다.
오디세우스가 칼립소의 불사신 제의와 자신에게 몰두하는 온갖 지극 정성보다 더 그녀에게 몰두했던
건, 이 섬에 오로지 혼자밖에 없다는 절대적인 고독이 그녀를 놓칠 수 없다는 절박한 감정을 갖게 했
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칼립소의 섬에는 배라고는 한 척도 없고, 수행원들은 모두 죽었기 때문에 오디
세우스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는 7년 동안 그 섬에서 살았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서
로에게 전적으로 속할 수 있고, 영원히 서로를 즐길 수도 있는, 세상과 절연한 이 아름다운 섬은 사랑
하는 시간만큼만 그에게 구원의 시간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뜨거운 사랑을 나눴던 밤이 지나 사랑이
다 식은 아침이 찾아오면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처지를 누구보다 절감하며 더 깊이 고향을 향한 그리움
을 키워만 갔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절체절명의 불안과 허무함은 그만을 향한 칼립소의 뜨거운 갈
구가 깊어 가면 갈수록 더욱더 차갑게 식어가는 자신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그림자가 되고 말았다.
오디세우스에게는 갈 곳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는 아름답고 매혹적인 칼립소와 뜨거운 정사
를 나눌수록 고향을 그리며 우울해 했고, 자신과 고향 이타카 사이에 놓여 있는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훔쳤다. 그러나 칼립소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연모의 정을 더욱 키우면 키울수록
안타깝게도 서서히 식어가는 오디세우스의 예전 같지 않은 반응을 확인하며 단 하루를 같이 있더라도
그와 좀더 가까이 있고 싶었다. 다가올 불행에 대비하기 위해 하루 한 시간도 허투루 보낼 수 없을 만
큼 안타까운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게 변함없는 세월이 흘러갔다. 오디세우스가 10년의 귀향길에서 칼립소와 함께 지낸 세월은 무려
7년이나 되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아테나 여신이 제우스에게 탄원하여 오디세우스를 구해주라는 명령
을 받아냈다. 칼립소는 제우스의 전령 헤르메스로부터 오디세우스를 보내주라는 거역할 수 없는 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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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탐욕의 인문학
스의 명령을 전해 들었다. “참으로 무정하신 분들이군요. 그대 올림포스 신들께선 질투할 상대도 못 되
는 나 같은 여신에게 그렇게 유별나게 질투를 하시고, 사랑하는 사내를 남편으로 맞아 동침하는 여신
마저 시기하시다니! 나는 제우스께서 천둥 번개를 던져 오디세우스의 배를 바다 한가운데에 난파시켰
을 때 그를 구해 주었습니다. 그는 동료들을 모두 잃고 표류하다가 이곳까지 떠밀려 왔지요. 그런 그
를 나는 사랑하고 돌보았을 뿐만 아니라, 평생 죽지도 않고 늙지도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
속했습니다. 그런데 제우스께서 그를 귀환시키라는 명령을 내리셨다고요? 아, 그렇다면 할 수 없지요.
제우스의 명령을 피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사랑하는 그를 서둘러 망망대해로 팽개쳐 버릴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노를 저을 배는커녕 길동무할 사람도 없으니까요. 그러니 조금만 시간을
주면 그에게 솔직히 이야기를 한 다음 무사히 귀국할 수 있도록 하겠어요.”
헤르메스가 떠나자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찾았다. 오디세우스는 마치 망부석이 된 것처럼 해변에 앉
아 있었다. 그의 마음은 이미 칼립소에게서 떠나 있었다. 칼립소는 그 옆에 다가가서 말했다. “정말 당
신은 불행한 분이군요. 제발 이제 그만 울고 그만 슬퍼하세요. 이 섬에서 더 이상 당신의 귀중한 인생
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답니다. 왜냐하면 이제 곧 내가 정성을 다하여 당신이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까요.”
칼립소의 진심 어린 말을 들은 오디세우스는 그녀에게 자신의 미안하고 답답한 심경을 밝혔다. “여신이
여, 제발 나에게 노여움을 갖지 마세요. 이타카에 있는 정숙한 나의 아내가 당신보다 훨씬 못하다는
것을 나도 잘 압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언젠가는 죽어야 할 인간의 몸이지만 당신은 늙지도 죽지도 않
는 신이 아니십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과 귀향의 행복한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한 여인의 남자일 뿐입니다.”
그의 말에 칼립소는 오디세우스의 귀향의 욕구가 자신의 육감적인 매력보다 훨씬 더 큰 것임을 확인하
였다. 그녀는 제우스의 명령보다 사랑하는 오디세우스의 뜻을 존중해주기로 하였다. 칼립소는 오디세
우스를 손수 목욕시킨 다음 이별을 앞둔 연인처럼 한 몸이 되어 진심으로 정성을 다해 사랑을 나누었
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초라하게 보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을 담아 화려하고 향기로운 옷을 입혀
떠나보냈다. 진한 포도주며 물과 음식이 들어있는 부대를 가득 실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남자는 마음이 없어도 팔을 내어줄 수 있지만 여자는 마음이 없으면 그 팔을 베지 못한다. 남자는 마
음속에 묻어둔 그녀가 곁에 없을 때 그 그리움이 자기를 조금씩 갉아먹고 끝내는 흔적도 없이 무너뜨
림을 안다. 하지만 여자는 곁에 없으면 마음도 두지 않는다. 칼립소가 오디세우스와 끝까지 함께하려
는 것은 그때, 다른 사람이 아닌 오디세우스가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가 그토록 못 잊어 그리워하는 정절의 여인인 페넬로페는 진정 남편만 기다리던 순종적인
여인인가? 『오디세이아』에서 페넬로페는 칼립소와는 다른 차원의 욕망과 허영을 지닌 여자로 그려진
다. 한마디로 그녀도 어쩔 수 없이 사랑을 갈구하고 오래된 남편의 빈자리를 허허롭게 견디는 평범한
여자였던 것이다. 페넬로페는 나름대로의 전략과 전술로 백여 명의 남자들을 관리하고 있었고,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키기 위해 시아버지 라에르테스의 대형 수의를 모두 짠 뒤에야 결혼할 작정이라고 구혼
자들을 회유했다.
우리는 지조 있는 조강지처 페넬로페의 따분한 사랑보다 짧은 시간이지만 불같은 정염을 불살랐던 칼
립소의 뜨거운 열정에 다분히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전쟁과 모험의 방랑벽에 시달리며 이 섬 저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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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탐욕의 인문학
을 섭렵하며 묘령의 여인들과 한바탕 뜨거운 정염을 불태우는 오디세우스를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하는
정절의 여인은 솔직히 답답하고 무덤덤하다. 하지만 칼립소는 사랑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사랑하는 사람을 열정을 다해 사랑했고, 실연으로 상처와 절망을 겪었지만 포기할 줄 아는
미덕까지 지녔다. 철저하게 자기 사랑의 주체가 된 칼립소의 후회 없는 사랑은 이별의 순간이 왔을 때
도 사랑하는 사람을 정성껏 보살피며 이별의 정한마저 헛되게 낭비하지 않고 아름답게 보내줄 수 있는
절대사랑의 경지를 보여준다. 자발적이며 독립적인 여자들은 절대로 서성거리며 기다리지만은 않는다.
한 남자만을 바라보는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자신이 찾은 사랑을 포기할 줄 모르는 나쁜 여자는
자신이 가고 싶은 열락의 세계로 기꺼이 자신을 던진다.
훗날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는 아버지의 행방을 찾기 위해 항해를 하게 되었는데 이때 칼립소를
만나게 되었다. 칼립소는 단번에 그가 사랑했던 오디세우스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아보고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오디세우스를 다시 그리워했다. 그녀는 자신의 애틋한 마음을 전하고자 텔레마코스를 자
신의 아끼던 시녀 에우카리스와 짝을 맺어주었다고 한다.
팜므 파탈의 치명적 욕망, 유혹
죽음의 댄서 살로메
성경에서 가장 잔혹한 피와 살육의 광기의 욕정이 불타는 장면은 단연 세례 요한의 목을 자르는 살로
메의 치정살인극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거절당한 여인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잔혹치
정극은 살로메라는 여인을 동서고금을 통틀어 단연 최악의 악명 높은 팜므 파탈의 경지에 올려놓았다.
살로메가 잔혹한 요부의 대명사가 된 것은 자신 매력을 미끼로 의붓아버지를 유혹해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를 살해토록 유도한 주도면밀한 피의 살육과정이 너무도 잔인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갔기 때문이다.
살로메는 성경에 단지 ‘헤로디아의 딸’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살로메는 세례 요한을 간
교한 계략으로 유인해 사지로 몰아넣은 뒤 잔인하게 목을 베게 한 악녀로, 인류의 지탄을 받은 광기의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유대의 왕 헤롯이 세례 요한을 참수한 것은 살로메의 어머니 헤로디아가 요한을 몹시 미워했기 때문이
다. 헤로디아는 헤롯의 동생 빌립과 결혼하였다. 그리고 얼마 안 돼 빌립과 이혼하고 헤롯과 결혼하였
다. 헤롯의 형제와 이혼하고 재혼하는 일련의 일들은 유대 율법에 어긋나는 일이었고, 이때 세례 요한
이 그들의 결혼을 지탄하고 대담하게 비난했다. 그러자 헤롯은 요한을 감옥에 가두었다. 그러나 사람
들은 요한을 신이 보낸 선지자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를 처형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요한은 감옥에서
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때 살로메가 요한을 찾아왔다. 그녀는 요한을 사랑했고, 그를 열망하
여 가슴을 태우고 있었다. 그녀는 감옥에 갇혀 있는 요한에게 말했다. “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이런 컴컴한 감옥에 있다니 마음이 아프군요. 갈증으로 애태우는 당신을 위해 제 입술을 바치겠어요.
어서 저의 키스를 받아주세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당신의 갈증을 해갈시켜 줄게요.”
살로메의 뜨거운 구애의 몸짓에도 요한의 반응은 차가울 정도로 냉담했다. 그는 살로메를 패륜의 상징
인 소돔의 딸, 창녀의 딸로 치부했다. 애절한 사랑이 변하면 지독한 애증만이 남는 법. 자신의 순수한
애정을 한갓 거리의 여자의 치정으로 치부한 요한의 냉정한 반응에 분노한 살로메의 감정은 애정에서
처절한 증오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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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탐욕의 인문학
요한의 독설과 무차별적인 인신공격에 앙심을 품은 헤로디아는 마침내 남편이 의붓딸인 살로메에게 홀
딱 반한 점을 이용해서 요한을 살해할 결심을 굳혔다. 헤로디아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요한의 입을
다물게 만들어야만 했다. 헤로디아는 늙은 왕이 딸의 풋풋한 아름다움과 성적 매력에 혼을 빼앗겼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살로메의 춤추는 모습을 보면 왕은 숫제 넋이 나간다는 점을 이용해서 ‘왕이 네
소원을 들어준다는 약속할 때만 춤을 추라’고 딸에게 압력을 넣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헤롯의 생일
을 맞아 연회가 벌어졌을 때 헤로디아는 딸 살로메에게 왕 앞에 나와 춤을 추도록 했다. 그것은 헤롯
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헤로디아의 추악한 욕망이 빚은 계략의 결과였다.
무대에 모인 좌중의 눈을 사로잡은 살로메의 춤은 그 유명한 ‘일곱 베일의 춤’이었다. 그녀는 몸에 걸
친 일곱 베일을 차례로 벗으며 관능미 넘치는 자신의 알몸을 하나둘 드러내기 시작한다. 살로메의 도
발적인 춤에 사람들은 넋을 잃는다. 특히, 헤롯 왕은 의붓딸이지만 그녀에게 흑심을 품고 있었기 때문
에 딸의 동작 하나하나에 감추어져 있던 발그레한 몸을 놓치지 않고 훑어 내려가고 있었다. 이윽고 그
녀의 춤이 끝나자 헤롯 왕은 환호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살로메에게 말했다. “원하는 것이 있으
면 무엇이든 줄 것이니 말해 보거라. 나는 네 어머니의 자리라도 서슴없이 줄 것이다.”
살로메는 고혹적인 미소를 띠우며 헤롯왕에게 말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은쟁반에 담은 요한의 머리입
니다.” 헤롯 왕은 살로메의 말에 경악하였다. 헤롯은 요한의 머리 대신 보석을 주겠다며 살로메의 마
음을 돌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살로메의 대답은 오직 “요한의 머리!”였다. 헤롯 왕은 마지못해 요한을
처형하도록 명령했다. 망나니가 우물로 내려가고 잠시 후 요한의 머리가 담긴 은쟁반을 치켜든 망나니
의 검은 팔이 서서히 우물 밖으로 나왔다. 살로메는 요한의 머리를 움켜잡고 품에 안았다. 그리고는
요한의 입술을 찾았다. “아! 요한, 내가 그대 입술에 키스했어요. 그대 입술은 쓴맛이 났어. 피의 맛이
었을까? 아니야, 아마 사랑의 맛이었을 거야. 사랑은 쓴맛이 난다고들 하니까.” 그녀가 사주한 살인의
방식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끔찍하다. 살로메는 자신에 대한 욕정으로 불타는 남자에게 그녀가 점찍은
남자의 잘린 머리를 쟁반에 담아서 선물로 줄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살로메는 선혈
이 낭자한 남자의 잘린 머리를 선물 받고선 더없는 희열을 느꼈다.
살로메는 19세기에 접어들어 정욕의 화신 팜므 파탈의 이미지로 변형되어 나타났다. 세기말 예술가들
은 살로메의 치정극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탐욕과 고통, 피와 순교라는 강렬한 주제에 압도적인 몰
입에 빠졌고, 이러한 주제를 이끌어가는 어린 살육자이자 에로티스트인 살로메에게 새로운 유형의 팜
므 파탈을 발견하게 된다. 살로메는 순결한 창녀에서부터 패륜적 요부, 질투의 화신 그리고 흡혈귀까
지 팜므 파탈의 모든 성향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녀는 남자의 이상적인 갈망과 여성의 육
체적인 욕망이 미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남자가 인공적으로 만든 여성상처럼 말이다. 그 살로메는 죽
음에 이르는 남성을 거세하는 전사를 닮아 있다.
가질 수 없는 사랑, 관음
숭고한 헌신의 레이디 고다이버
예술가는 기본적으로 대상을 관음적으로 대한다. 예술가는 자신이 그리고 싶은 대상을 자기만이 바라
본다는 예술주체로서의 관음적 희열에 늘 사로잡혀 있는 존재이다. 예술은 본래 대상에 시선을 던지기
만 하는 예술가만의 주체적인 행위이다. 여기엔 시선을 던진 대상이 그 시선에 반응하는 대응이 없다.
예술가의 관음적 시선이 예술활동에 국한된 것이라면, 일반적으로 관음적 행위는 관음을 받는 이에게
는 성적 가학행위가 될 수 있다. 특히, 남자가 여자를 몰래 훔쳐봄으로써 얻는 가학적 쾌락을 관음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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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탐욕의 인문학
이라고 한다. 상대가 모르게 자기만의 상상으로 성적인 쾌락을 느끼는 행위는 분명 부도덕한 성적 도
착이다. 왜 훔쳐보는 게 죄가 되는가? 그건 바로 상대가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시선으로 상대를 만지기
때문이다. 도착적 관음증은 강박적이며 만족을 모르는 욕구와 관련되어 있다. 이것은 심각한 불안, 죄
책감 그리고 피학적 행동을 가져올 수 있다. 관음하는 자의 속어인 ‘피핑 톰(Peeping Tom)’이라는 말
을 생기게 한 전설적인 인물은 영국의 한 지방 백작부인이었던 고다이버 부인이다.
레이디 고다이버는 11세기 영국 코번트리 지방의 영주였던 리어프릭의 아내였다. 남편 리어프릭은 당
시 자신의 영지에 있던 농민들에게 혹독하게 세금을 걷는 등 가혹한 정책을 시행했다. 신앙심이 깊고
정직하며 숭고한 고다이버는 백성들의 고통에 마음 아파하며 남편에게 세금을 줄여 줄 것을 탄원하였
다. 그러나 리어프릭은 고다이버의 의견을 외면하고 더욱 가혹하게 세금을 징수하고 농민들을 탄압했
다. 고다이버는 남편에게 간절히 호소했다. “저를 사랑한다면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푸세요.” 리어프릭
은 자신의 것을 남과 나누는 것이 싫었고, 어린 아내의 정치적 간섭도 싫었다.
“당신이 진정 백성들을 사랑한다면 그 사랑을 몸으로 증명해보여라. 만약 네가 완전한 알몸으로 말을
타고 영지를 한 바퀴 돌면 그때 백성들의 세금 감면을 신중히 고민해보겠다.” 남편의 말은 충격적이었
다. 귀족인 영주의 아내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을 영지의 백성들에게 보인다는 것은 죽음
과도 같은 치욕이었다.
고다이버는 밤새 고민했다. 아침 해가 붉게 뜨는 새벽 무렵 그녀는 마침내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고
다이버는 다리 이외의 몸을 머리카락으로 감싸고 말을 탄 채 이 신성한 순례를 실행하고야 만다. 고다
이버 부인의 헌신적인 순례에 온 백성들은 감동했다. 영주 부인이 비참한 자신들의 안위를 지켜주기
위해 수치심과 모멸감을 무릅쓴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도 아직 어린 여자였다.
한없는 부끄러움에 온몸이 떨렸다. 그래도 백성들이 자신의 행위로 조금이라도 더 세금을 감면받을 수
있다면 못할 게 없다는 심정으로 그녀는 말을 몰고 성문을 향했다.
한편 영지의 백성들은 그 소식을 듣고서는 모두들 고다이버가 알몸으로 지나갈 때에 문을 걸어 잠그고
밖을 내다보지 않기로 합의했다. 수치스러움을 누르고 어려운 결정을 내린 그녀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
기 위함이었다. 고다이버가 알몸을 백마에게 의지한 채 성문을 나섰다. 그러나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
다. 다른 때 같으면 사람들로 시끌벅적할 영내의 광장에도 휑한 바람만 불 뿐이었다.
그녀의 숭고한 순례에 마을 사람들은 누구도 그 광경을 보지 않겠다고 약속했건만, 이 광경을 몰래 커
튼을 열고 지켜본 사람이 있었다. 바로 고다이버 부인의 재단사인 톰이었다. 궁정 소속 패션디자이너
였던 톰은 예전부터 어린 영주 부인의 옷을 만들기 위해 그녀의 치수를 재면서 부인의 몸을 직접 보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결국 자신의 그릇된 욕망을 채우기 위해 고다이버 부인의 알몸을
훔쳐본 죄로 그는 평생 ‘훔쳐보는 톰’이라는 부끄러운 칭호를 얻어야만 했다. 그리고 천벌을 받아 눈이
멀었다고 한다. 아름다움을 재단하는 재단사가 치른 관음의 대가치고는 너무나 혹독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결국 고다이버는 행진을 무사히 마치고 세금을 감면받는 데 성공했다. 남편은 아내의 행동에 감화되어
선정을 폈으며 농민들은 그녀의 희생정신에 감동해 고다이버를 추앙하였다. 지금도 코벤트리 시의 상
징으로 말을 탄 여인의 형상을 한 기념상이 시내에 있다. 공동체를 위해 고다이버 부인의 결정은 숭고
한 것이었고, 지역의 공동체는 또 다른 공동체적 윤리의식으로 그녀에게 보답했다. 훗날 ‘고다이버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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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탐욕의 인문학
은 관습과 상식을 깨는 정치행동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예술가들의 기본 마인드인 ‘훔쳐봄’을 당하는 고귀한 여인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영국 예술가들의 훌
륭한 예술주제가 되었다. 영국 신고전주의 화가들은 고다이버 부인의 이 헌신적인 사회봉사 행위를 아
름다운 예술의 주제로 승화시켜 수많은 그림들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신고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존
콜리어는 <고다이버 부인>이 대표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림 속 고다이버 부인은 화면을 가득 메우
는 말의 붉은색 안장에 왠지 불안한 모습으로 눈부신 나신을 드러내고 있다. 여인의 풍만한 나신이라
고 하기엔 이제 겨우 열여섯밖에 안된 그녀의 몸은 가녀리다. 하지만 관객들이 안타까워할 만큼 수치
심에 떨고 있는 이 여인의 불안한 태도는 역설적이게도 순결한 여인의 아름다운 정신으로까지 승화된
느낌이다. 고개를 숙인 채 탐스러운 머리카락과 손으로 몸을 가린 그녀는 수치심에 다소 몸을 떨고 있
는 듯 보인다. 하지만 말을 덮고 있는 붉은색 천은 그녀의 고귀한 신분과 희생정신을 강조해주는 듯하
다. 고요하다 못해 숨죽인 적막한 건물들을 지나며 이곳을 빨리 지나치기만을 바라는 여인의 간절한
염원을 반영하듯 시간이 멈춘 적막과 고요의 공간이 신비롭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 작품의 백미엔 이 그림을 훔쳐보고 있는 그림에 없는 ‘훔쳐보는 톰’인 관객이 있다. 이는 곧
여인의 매혹적인 나신을 어떻게든 훔쳐보고 싶은 욕망을 이기지 못하는 우리 시대의 수많은 톰들인 것
이다. 지금 우리가 톰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가? 우리는 마음 놓고 더욱 뻔뻔스럽게 귀부인의 나체를
훔쳐보고 있지 않은가? 예술과 성적 욕망 사이를 오가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관음적 태도를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해할 것인가? 부도덕한 성적 취향이라며 배척할 것인가? 인간의 욕망은 늘 도덕보다 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불같은 사랑의 지배, 탐닉
로마 퇴폐의 상징 메살리나 발레리나
메살리나 발레리나는 로마 제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세 번째 아내였다. 그녀는 로마에서 손꼽히는
명문 귀족 출신에 황제보다 무려 서른 다섯 살이나 젊고, 미모도 뛰어났지만 로마 역사상 가장 음탕한
여자로 낙인이 찍혔다. 메살리나라는 이름은 방탕과 퇴폐의 동의어인데, 오늘날에도 남자를 병적으로
밝히는 여자를 의학적으로 메살리나 콤플레스로 부를 정도이다. 그녀는 로마제국의 황후가 된 이후 부
도덕하고 음란하며 비열한 행동으로 일관해 로마 황실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로 후세인들에게
기억되었다.
메살리나는 16세의 어린 나이에 당시 황제였던 칼리굴라의 주선으로 클라우디우스와 결혼했다. 클라우
디우스는 칼리굴라의 작은 아버지로 메살리나와 결혼할 당시 48세의 상당히 많은 나이로 메살리나와
무려 32살이나 차이가 났다. 그는 선천적으로 뇌성마비 증세와 소아마비로 걸음걸이가 불편했다. 그는
불편한 몸으로 인해 두 번의 결혼을 실패하고 메살리나를 세 번째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메살리나는
세상물정도 모르는 어린 나이에 결혼하였지만 결혼식을 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 칼리굴라가 갑
자기 살해당하여 클라우디우스가 황제가 되는 바람에 예기치 않게 황후가 되었다.
클라우디우스는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어린 황후와 시간을 보내기보다 서재에 파묻혀 제국의 일을 돌
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한창 꽃다운 나이의 메살리나의 성욕을 채워주지 못했다. 메살리나는 자
신의 욕구불만을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풀어나갔다. 그녀는 사치를 일삼고, 자신이 원하는 저택과 토지
등을 얻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누명을 씌워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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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탐욕의 인문학
메살리나는 선천적으로 성욕이 무척 강한 여자였다. 그녀는 늙은 남편이 자신의 성적 욕구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부터 습관적으로 불륜을 저질러 성적인 굶주림을 해소했다. 처음엔 황제
의 눈을 피해 조심조심 불륜의 현장으로 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별 신경을 안 쓴다는 것을
알고는 아예 궁정 안에 은밀한 방을 만들어 미친 듯이 향락에 탐닉했다. 그녀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밤
의 향락에 빠져들었고 자신과의 동침을 거부하는 남자는 가차 없이 죽였다. 로마인들은 개인 매춘방을
만들어 화냥질을 일삼는 황후의 추잡한 행동에 치를 떨었건만 정작 황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아내의
음란한 행실을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메살리나를 섹스 괴물에 비유했던 풍자 작가 유베날리스는 황
후의 난잡한 품행을 이렇게 개탄했다.
“황제가 잠들기가 무섭게 메살리나는 가운을 걸치고 황금 가발을 쓴 채 여자 노예를 데리고 황급히 왕
궁을 빠져나가 악취가 감도는 사창굴의 작은 방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남자들이 지나갈 때마다 황금가
루를 바른 젖꼭지를 내밀어 유혹하고 몸을 팔았다. 광란의 밤을 보낸 파리한 얼굴은 등잔불의 연기에
그을렸고, 몸에서는 사창굴의 고약한 악취가 풍겼건만 황후는 뻔뻔하게도 그 불결한 몸을 황제의 침대
에 뉘었다.”
어린 나이부터 지위를 이용해 치맛바람을 휘두른다고 비난받은 메살리나는 금전욕이나 물욕도 강해서
사치도 꽤나 심했다. 그녀는 단순히 사치만 심한 정도가 아니라 한번 눈독을 들인 재물은 갖가지 음모
를 짜고 누명을 씌우고 사람을 죽여서라도 가로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녀의 악명을 높인 것은 정
도가 심한 불륜행각과 제어할 수 없는 성욕의 분출이었다.
어느 날, 메살리나는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궁정에 들른 의붓아버지를 보게 되었다. 그는 원로원 의원
인 아피우스 실라누스였다. 메살리나는 아피우스의 탄탄한 구릿빛 피부와 서글서글하게 잡힌 주름과
선한 갈색 눈동자에 빠져 첫눈에 의붓아버지에게 욕정을 품게 되었다. 그녀는 어머니에게 편히 쉬기를
권한 다음 술에 취해 잠들어 있던 아피우스의 침실로 숨어들어갔다. 술에 취한 아피우스는 잠결에 이
상함을 느끼며 눈을 떴는데 자신의 옆에 메살리나가 적나라하게 알몸을 드러내며 의붓아버지인 자신을
유혹하는 게 아닌가. 그는 다른 사람도 아닌 의붓딸의 야릇한 미소를 보며 놀랐다. 아피우스는 너무
놀라 그녀를 밀쳐냈다. 그럼에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는 한 마리의 발정난
암캐였던 것이다.
아피우스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의 행동을 막아서고는 그녀의 어머니가 잠들어 있는 방으로 가
버렸다. 메살리나는 자신이 거절당했다는 수치심에 몸을 떨며 급기야는 자신의 남편에게 아피우스 실
라누스가 역모를 꾸미고 있다고 중상모략해 의붓아버지를 죽였다. 이후에도 그녀는 자신의 불륜상대가
되길 거부한 원로원 의원들을 누명을 씌워 죽이거나 추방하는 악행을 질렀다.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원
로원 의원들이 하나둘 죽어나가자 원로원 귀족들은 황제가 메살리나의 말만 듣고 원로원을 공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 동안 클라우디우스는 원로원을 존중하고 황제로서 어떤 특권도 요구하지 않았음
에도 메살리나로 인해 황제와 원로원 사이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메살리나는 궁정의 애인들과의 성행위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욱 짜릿한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 궁정을
몰래 빠져나가 고급 매춘부로 나섰다. 심지어 그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어서 아예 천민들이 이용하는
최하층 매음굴에서 창녀로 일하며 날이 밝을 때까지 여러 손님을 받으면서 온갖 음란한 성행위를 했다.
결국 그녀는 스스로 파멸의 길에 들어서는데, 그 사건이 바로 황후의 중혼과 궁정 쿠테타 시도였다.
메살리나는 중년의 잘생긴 원로원 의원 가이우스 실리우스와 불륜을 저지르다가, 황제가 오스티아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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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탐욕의 인문학
설을 위해 로마를 비운 틈에 궁전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결혼식을 강행했다. 거기에 더
해 그녀는 클라우디우스를 폐위시키려는 반역 음모까지 계획해 실행에 옮기려고 했다.
그러나 이런 메살리나의 중혼과 반역 음모는 황제의 서신 담당비서 나르키수스에게 사전에 발각되고
만다. 이때 나르키수스는 “황후가 실리우스와 음모를 꾸며 황제를 살해하려 했다”는 것을 클라우디우
스 황제에게 전했다. 자신의 최측근의 밀고와 그가 내민 증거까지 나오자 황제는 실리우스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 그러나 메살리나의 애원에 마음이 흔들렸던 클라우디우스는 자꾸만 메살리나의 처벌을
미뤘고, 결국 클라우디우스의 측근들이 루쿨루스 별장에 숨어 있던 황후를 찾아내 칼로 찔러 죽였다.
이때 그녀의 나이 불과 23살이었다.
희대의 창부 메살리나의 문란한 남성 관계, 낮에는 고귀한 황후요 밤에는 비천한 매춘부로 살았던 이
중성, 병적인 성적 탐닉에 빠져 파멸을 자초한 그녀의 드라마틱한 인생은 예술가들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했다. 비어즐리는 메살리나를 과도한 성욕을 해소하지 못해 욕구불만에 빠진 여자로 묘사했다. 성
욕의 화신 메살리나가 두 손을 불끈 쥐고 젖가슴을 풀어헤친 채 궁정 계단을 오른다. 비어즐리는 메살
라니가 남자를 밝히는 타락한 여자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녀를 뚱뚱하고 심성이 고약한 여자로 표
현했다. 그녀의 앙다문 입술, 살벌한 기운이 감도는 매서운 눈길은 메살리나가 피에 굶주린 잔혹한 색
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현대 이탈리아어로 ‘메살리나’는 성욕을 억제하지 못해 몸가짐이 헤픈 여자를 의미한다. 하지만 페미니
스트들은 메살리나를 성의 자유를 부르짖은 선각자로 평가했다. 그녀가 황후의 지위를 누리기보다 자
신의 욕망을 찾아 능동적으로 행동했고, 애인과 합법적인 관계를 갖기 위해 용감하게 이중 결혼을 감
행했다는 이유에서다. 메살리나가 희대의 음탕한 여자인지, 시대를 앞서갔던 성의 선각자였는지는 그
녀를 보는 시각에 따라 각각 다르게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 사람의 여인으로서 평범한 사랑
을 받지 못한 그녀의 엇나간 성욕 추구가 남자들이 만들어놓은 권력의 제국에서 벗어나고자 한 그녀만
의 독특한 몸부림은 아니었을까. 혹은 남자들은 여성의 성욕에 족쇄를 채우기 위해 메살리나를 팜므
파탈로 만든 것은 아닐까.
멈출 수 없는 권력의 화신, 치정
팜므 파탈의 조세핀
프랑스 최고의 정복자 나폴레옹을 사로잡은 단 한명의 여인 조세핀은 팜므 파탈의 전형이었다. 나폴레
옹은 그녀의 냉정한 태도에도 끝내 그녀를 마음속에서 지우지 못했다. “사랑에 대한 유일한 승리는 그
사랑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이다.” 나폴레옹은 절규에 찬 이 말을 남기며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조
세핀의 이름을 외쳤다고 한다.
나폴레옹이 조세핀을 만났을 때 그는 청년 장교였다. 조세핀은 나폴레옹보다 6살이나 많은 연상이었다.
그녀는 자작 보아르네와 결혼했으나 프랑스 혁명기에 남편이 처형되자 곧 이혼하였다. 그후 그녀는 파
리 사교계에서 미모 덕분에 명성을 날려 총재정부의 주역인 프랑수아 바라스를 포함한 몇몇 정치인과
염문을 뿌렸다. 그녀의 애인이었던 바라스는 그녀와의 사랑이 식어지자 그녀에게 전도유망한 청년장교
나폴레옹을 소개하였다. 1795년 파리의 한 파티에서 조세핀과 나폴레옹은 운명적으로 만났고, 첫 만남
에서 불같은 사랑을 느낀 나폴레옹은 그녀를 평생의 연인으로 점찍었다. 당시 나폴레옹은 스물여섯 살
이었지만 불타는 야망과 출세욕에 사로잡혀 여자게게 곁눈질할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벼락처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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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탐욕의 인문학
이 그를 내리쳤다. 나폴레옹은 나른하고 퇴폐적인 분위기가 뒤섞인 독특한 매력을 지닌 젊은 과부에게
걷잡을 수 없이 빨려 들어갔다. 나폴레옹은 조세핀의 비웃음과 냉대에도 불구하고 황소처럼 그녀에게
돌진했다.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나폴레옹의 구애 공세에 조세핀은 못이기는 척 결혼을 승낙했고,
1796년 3월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다.
그토록 열망하던 여자를 소유한 기쁨을 만끽할 새도 없이 나폴레옹은 혼인식을 치른 이틀 후 이탈리아
원정길에 올랐다. 신혼의 달콤함을 빼앗긴 애석함으로 인해 아내에 대한 사랑은 더욱 뜨겁게 타올랐다.
나폴레옹은 조세핀에게 연애편지를 쓸 시간을 벌기 위해 서둘러 작전회의를 마쳤고, 아내가 보고 싶을
때면 그녀의 초상화가 담긴 목걸이를 애틋한 눈길로 바라보면서 그리움을 달랬다. 당시 나폴레옹이 조
세핀에게 보낸 연애편지에는 그의 절절한 그리움이 가득 배어있다. “아내여, 내 삶의 고통이요, 기쁨이
요, 희망이요, 영혼인 사람이여, 나를 사랑에 빠뜨리고 두려움을 느끼게 하고, 대자연의 신비에 눈뜨게
한 유일한 여성이여. 내 사랑, 난 당신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싶다오. 당신은 나를 비참하게 만들고
견딜 수 없는 괴로움과 고통을 줄 수 있는 가장 두려운 존재라오.”
편지에서도 드러나듯 조세핀은 나폴레옹을 완벽하게 지배하는 절대자였다. 이 세상에서 오직 조세핀만
이 코르시카의 흡혈귀라고 불리던 공격적이고 격정적인 기질을 지닌 나폴레옹을 마음대로 조종하고 길
들일 수 있었다. 열정으로 가득 찬 나폴레옹의 연애편지를 우연히 보게 된 조세핀의 친구는 “전 프랑
스 군대의 운명이 조세핀에게 달려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놀라움을 털어놓을 정도였다.
결혼 후에도 나폴레옹은 변함없는 사랑을 보였다. 욕조에 그녀가 좋아하는 장미꽃잎을 가득 띄워 주었
고 장미향의 향수 선물도 자주 하였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뜨거운 사랑 공세에도 불구하고 조세핀은
그가 이탈리아로 떠나자 해방감을 느끼며 그동안 눌러두었던 바람기를 마음껏 발산하기 시작했다. 나
폴레옹은 사흘이 멀다 하고 전선에서 애정의 편지를 보내왔지만, 그녀는 그 편지들을 아무데다 던져두
고는 파티장의 새 애인인 이포리트 샤를의 품에 안겼다.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나폴레옹은 그녀가 보고 싶어 견딜 수 없게 되자 상관인 바라스 사령
관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당장에 내 아내 조세핀을 전선으로 보내주지 않으면 군대를 버리
고 파리로 돌아가겠습니다.” 이에 당황한 정부 수뇌부는 조세핀을 설득하여 이탈리아로 떠나도록 했다.
그리하여 내키지 않는 이탈리아 여행을 하게 된 조세핀은 애인인 이포리트를 여행에 동반해 같은 마차
를 타고, 같은 호텔에 묵으면서 열정을 불태웠다.
10월 13일 마침내 파리로 귀환한 나폴레옹은 조세핀을 집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 하지만 조세핀의 전
남편의 아들인 외젠과 딸 오르탕스까지 울면서 용서를 구하자 나폴레옹은 곧 그녀를 다시 불러들였다.
조세핀은 이포리트와 헤어졌고 나폴레옹은 그녀를 용서하고 화해했다. 조세핀은 이때부터 태도를 바꿔
정숙한 아내가 되었지만, 그녀에 대한 나폴레옹의 열정적인 사랑은 식어가기 시작했다. 그 후 그의 인
생에서 여자는 단순한 오락거리에 불과한 존재일 뿐이었다.
1804년에 나폴레옹이 황제에 즉위하면서 황후가 된 조세핀의 사치는 극에 달했다. 수백여 벌의 드레
스와 보석을 사면서 막대한 빚을 지게 되었다. 나폴레옹 일가는 모두 조세핀을 싫어했다. 특히, 나폴레
옹의 어머니 레티치아는 그녀를 증오한다고까지 말했다. 그들은 처음부터 아이 둘 딸린 이혼녀와의 결
혼을 불만스럽게 여겼고 그녀의 불륜행각을 기억하고 있었다. 레티치아는 나폴레옹이 가족보다 조세핀
과 그녀의 두 자녀를 더 총애하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실제로 나폴레옹은 자신의 형과 동생들보다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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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탐욕의 인문학
세핀의 자녀들을 더 사랑했다. 그래서 그는 외젠을 유럽 최고의 명문 왕가인 비텔스바흐 가문의 공주
와 결혼시켰고, 오르탕스는 자신의 동생 루이와 결혼시켰다. 훗날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되었을 때
나폴레옹은 “나의 유일한 가족은 외젠뿐이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조세핀의 전 남편의 딸 오르탕스는 나폴레옹의 동생 루이와 결혼 후 그녀의 어머니처럼 베르텔
제독 등 남자들과 불륜을 저질러 아들 샤를을 낳았다. 하지만 피레네 여행 중이었던 루이는 샤를을 자
신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았다. 루이에게 샤를은 아들이 아닌 불륜의 사생아일 뿐이었다. 그러나 나폴
레옹은 오르탕스를 위해 나쁜 평판을 잠재우고 아들이 없는 모르니 백작에게 오스탕스가 낳은 사생아
를 양자로 삼게 했다. 그리고 오르탕스와 이혼하겠다는 동생의 요청을 거부했다.
조세핀이 자신의 몸을 함부로 다뤄 나폴레옹의 자식을 낳지 못하자 나폴레옹은 주변으로부터 후계자가
없는 그녀와의 이혼을 종용받았다. 불안했던 조세핀은 오르탕스의 사생아를 자신의 양자로 삼으려고
했지만 실패했고, 황후가 된지 5년 후 그녀의 영광은 사라지고 있었다. 나폴레옹 역시 조세핀과의 이
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조세핀에게 아이를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혼을 통보하였다. 조세핀은
이혼을 막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 다녔지만 벌써 배는 떠난 뒤였다.
1809년 12월 15일, 나폴레옹은 조세핀과의 15년간의 인연을 끝내고 얼마 후 나폴레옹의 동생 루이
역시 오르탕스와 헤어졌다. 새로운 황후는 17세의 오스트리아 황녀 마리 루이즈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마리 루이즈와 결혼한 후에도 나폴레옹은 조세핀을 잊지 않았고 그녀에게 매달 거액의 위자료를 보내
주었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814년 프랑스로 밀려들어온 연합군에 대패한 나폴레옹이 엘바 섬으로 유
배된 그해 5월 29일, 조세핀은 감기에 걸려 말메종 저택에서 5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이 소식을
들은 나폴레옹은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했다.
훗날 나폴레옹은 이렇게 말했다. “조세핀은 늘 거짓말을 했어. 하지만 늘 우아하게 처리했지, 그녀는
내가 일생동안 가장 사랑한 여자였다. 마리 루이즈를 사랑했지만 조세핀과의 사랑은 특별했어. 그녀가
아이만 낳아주었더라면 헤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1821년 5월 5일 세인트헬레나에서 나폴레옹도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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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탐욕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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